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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팩트 따윈 모른다. 그냥 그들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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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와 나」의 주인공은 ‘모든 걸 궁금해하는 프루스트형 소설가’다. 김영하 작가는? 물론이다. 원고지를 채워야 사는 소설가는 매우 사소한 사건도 쉽게 잊지 않는다. 카페를 가도 집회에 가도 신문을 읽어도 사람들의 표정과 목소리를 샅샅이 살핀다. “세상 사람들은 지나치게 작가들에게 잘해주고 있는 것 같아요.” 이건 또 무슨 소린가? 김영하의 이야기다. 약속한 시간에 원고도 주지 않으면서 언제나 ‘선생님’ 소리를 듣는 작가들의 세계. 문학을 지나치게 신비화할 때, 김영하는 눈살을 찌푸린다.

 

소설집 『오직 두 사람』은 김영하가 7년간 상실을 목도하며 쓴 작품이다. 창조성을 잃은 철없는 작가, 아이를 유괴당한 부모, 아버지의 죽음을 지켜보는 딸, 탈출의 희망을 버린 청춘 등을 그렸다. 소설을 쓸 당시, 김영하는 자신이 상실을 쓰고 있는지 알아채지 못했다. 묶인 작품을 다시 읽고 나서야 상실이 보였다. 그리고 2015년에 쓴 문장 하나를 기억해냈다. “이제 우리도 알게 되었습니다. 완벽한 회복이 불가능한 일이 인생에는 엄존한다는 것, 그런 일을 겪은 이들에게는 남은 옵션이 없다는 것, 오직 ‘그 이후’를 견뎌내는 일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상실 후의 견딤. 김영하가 창조한 소설 속 인물들은 어떤 결말을 만들어낼까. 희극도 비극도 없는 시대, 소설은 과연 독자에게 가닿을 수 있을까. 매일같이 팩트 체크를 해야 하는 시대, 팩트 따윈 없는 소설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김영하는 말했다. “작가는 팩트를 확인하고 인용할 근거를 찾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이들을 대신하여 ‘잘 느끼는’ 사람” 이라고.

 

 

김영하 셀렉 (3).jpg

 

지독한 정신은 우리를 숨 막히게 한다

 

7년 만입니다, 단편집은.

 

시간이 꽤 걸렸죠? 7년 동안 쓴 작품을 묶은 거라 기억이 잘 안 나더라고요. 비교적 최근에 쓴 소설은 기억이 나지만 오래된 작품은 좀 이상해요. 장편은 어떤 이야기가 쭉 진행되다가 끝나면서 출간이 된단 말이에요. 여행에 시작과 끝이 있듯이, 어떤 결말이 모여서 해단식을 하는데 단편은 그런 게 없어요. 오래된 작품을 다시 읽으면 과거에 내가 보낸 편지 같기도 하고, 좀 달라요.

 

낯선 느낌이 드나요?

 

좀 그렇죠. ‘내가 쓴 문장이었나?’기억이 잘 안 나는 문장도 있고. 소설가는 당시에 자신이 뭘, 왜 쓰는지를 잘 몰라요. 쓴 다음에는 돌이킬 시간이 별로 없고요. 단편을 묶어 책을 내는 데 의의가 있다면, 다른 작품들과의 관계 속에서 찾을 수 있어요. ‘아, 내가 7년 동안 이런 문제에 대해 생각해왔구나’, 그런 걸 알게 되는 거예요. 이번 작품들은 일관되게 무언가를 상실한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옥수수와 나」의 소설가는 창조성을 상실하고, 「아이를 찾습니다」의 부모는 아이를, 「오직 두 사람」의 주인공은 아버지를 잃었잖아요. 일곱 단편을 쓴 게 2010년부터 2017년인데, 내가 계속 상실의 문제를 고민했다는 걸 최근에서야 알았어요. ‘뭘 잃어버렸냐?’ 하면 그건 잘 모르겠어요. 많은 걸 잃어버렸겠죠.

 

출판사에서 이번 소설집 제목으로 「신의 장난」을 밀었다고 들었어요. 가장 김영하 소설다운 제목이라고 생각했는데요. 『오직 두 사람』으로 결정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장난’이라는 단어의 어감이 좋지 않았어요. 소설 전체를 아우르는 제목은 아닌 것 같았어요. 상실 이후의 삶을 생각해볼 때, 「오직 두 사람」이 가장 잘 어울리겠다 싶었어요.

 

작가로서 가장 행복할 때는 “장편을 쓰는 순간”이라고 했어요. 단편을 쓸 때는 어떤가요?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쓰지 않나요?


‘단편으로 써야지’ 하고 시작하는 작품은 별로 없어요. 보통 장편으로 시도해요. 「오직 두 사람」도 그래요. 장편으로 써보려고 계획한 소설인데, 쓰다 보면 장편이 안 될 때가 있어요. 단편은 쓰는 입장에서 너무 빨리 끝난다는 느낌이에요. 이 세계에 오래 머무르고 싶은데 너무 빨리 돌아오는 느낌이랄까. 몰입의 경험이 참 좋은데, 단편은 그런 느낌이 없어요.

 

단편은 대개 청탁이 들어오면 쓰나요?


이번 소설의 상당 부분은 미리 써놓은 작품이에요. 청탁이 들어오면 그동안 써놨던 소설을 보내죠. 언젠가부터 마감에 맞춰 쓰는 작품이 드물어졌어요.

 

혹시 가장 빨리 쓴 작품은 「옥수수와 나」일까요?


맞아요. 며칠 만에 신나게 다 썼어요. 미친 듯이 거침없이 썼다고 할까요? 제 호흡에 가장 잘 맞는 소설이에요. 수정도 거의 안 했어요. 넣을 것도 뺄 것도 없더라고요. ‘쓸데없는 농담이긴 한데 빼자니 좀 그런’ 장면들은 있었죠.

 

2012년 제36회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입니다. 이번 소설집에서 가장 속도감 있게 읽은 작품이에요. 주인공은 자신이 옥수수라는 망상에 시달리는 소설가예요. 계약금을 받았는데 작품이 안 써져서 괴로워하죠. 친구에게는 이렇게 말해요. “모든 작가는 편집자에게 이렇게 거짓말을 한다. ‘뭐 다 써봐야 알지. 열심히 쓰고 있기는 해.’”(60쪽) 실제 김영하는 어떤가요?


편집자한테 거짓말은 잘 안 해요.(웃음)

 

마감을 어긴 적이 없다고는 들었어요.


마감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예전에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수업을 3번 빠지면 무조건 F학점을 줬어요. 강의 시작하기 전에 계약서도 받았어요. 사인하라고 했죠. 왜냐하면 소설을 잘 쓰는 건 가르쳐줄 수 없지만 마감을 지키는 건 가르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세상에 나가면 제때 원고를 쓰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될 텐데, 천재라면 F를 받아도 상관 없지만 그렇지 않다면 마감이라도 잘 지켜야죠. 사회에 나온 학생들이 그래요. “정말 중요한 가르침이었다”라고. 먹고 살려면 제때 넘겨야 하거든요. 글 안 써진다고 잠수 타고, 연락 안 되고, 그렇게 살면 안 되잖아요. 학생들 중에 숙제를 완성하지 않고 넘기려는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이 한 시기에 도달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오래 고친다고 해도 나아지지 않아요. 저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고요. 그래서 때가 되면 원고를 보내요. 내 능력의 70, 80%를 써야 한다, 그런 철학을 갖고 있어요.

 

완벽주의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네요.


얼마 전에 안자이 미즈마루의 에세이를 읽었는데 “대충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더라고요. 제 생각도 비슷해요. 물론 끝까지 최선을 다하면 좋겠지만, 소설은 스포츠가 아니에요. 예컨대 피겨선수라고 하면 명확히 도달해야 하는 목표가 있잖아요. 트리플 악셀이 라든지. 스포츠는 점수가 나오지만 소설은 그렇지 않잖아요. 지독하게 최선을 다하는 자세로 소설을 쓸 때, 어떤 위험 같은 게 있어요. 지독한 정신은 우리를 숨 막히게 해요. 어느 정도 수준이 되면 받아들이고 내보내야 해요. 저는 한 사람이 어떤 때에 도달할 수 있는 한계, 경지가 있기 때문에 밤을 샌다고 드라마틱하게 나아지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또 세상에는 훌륭한 편집자가 많아요. 제가 놓친 걸 잘 봐주죠. 작가는 ‘이 이야기가 말이 되나’ 그런 것에 집중해야 해요. 소설은 좀 비어 있어야 해요.

 

마감을 쪼아야 작품이 잘 나온다는 작가들도 있어요.


시간이 쪼들릴 때 높은 창조성이 생기는 경우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전 여유 있는 순간에 좋은 생각이 나지, 마지막에 몰리면 생각이 안 나요. 인간의 마음속에 어떤 프로그램이 있다면, 제 경우는 프로그램의 설정이 자동적으로 이뤄질 때 글이 더 잘 써져요.

 

김영하 셀렉 (2).jpg

 

어떻게 살아갈까, 질문 만이 남겨진 상태


「아이를 찾습니다」는 2014년 겨울에 발표한 소설이에요.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해죠. 「옥수수와 나」는 미친 듯이 쓰셨다고 했지만, 이 작품은 다를 것 같아요.


장편으로 쓰고 싶었고 쓸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쓰는 동안 참 힘들었어요. ‘어떤 말도 안 되는 운명으로부터 인간은 탈출할 수 없는 것인가’ 이런 생각도 들었고. 모든 인류사가 그랬겠지만, 특히 요즘은 어떤 일을 당하면 회복이 불가능해진 세상 같아요. 삶이 순식간에 무너져버리는 너무 잔혹한 세상이 된 게 아닐까. 세월호에 탔다가 돌아오지 못한 한 기간제 교사의 아버지는 성대가 녹아내 릴 정도로 울부짖었다고 하잖아요. 공동체가 살아있었던 시절에는 비극 이후의 삶을 상상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너무 가혹해졌어요. 가습기 살균제 사건도 그래요. 아픈 아이를 위해 선의로 살균제를 사용했는데, 결과는 치명적이었어요. 과학기술의 발달, 진보된 민주화로 훨씬 문명적인 삶을 살 것 같았는데 아닌 거죠. 아이를 낳았을 때의 위험이 너무 커요. 사회 공동체가 아무런 뒷받침도 하지 않는 세상에서 아이를 낳는다는 건 위험한 결정이 됐어요.

 

결말을 읽으면서 ‘이건 어떻게 생각해야 하지’ 싶더라고요. 가족이 다 떠난 상황에서 찾아온 새로운 가족. 이것이 과연 끝인가, 시작인가? 해피 엔딩인가, 절망인가? 고민했습니다.


인물이 겪게 되는 상황이 비극도 희극도 아닌, 회색 지대에 있기 때문일 거예요. 이번 소설집의 다른 인물들도 비슷해요. 분명한 선과 악,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라 어찌할 수 없는 교착 상태에 놓여 있으니까요. 「오직 두 사람」에서 주인공도 아버지로부터 해방됐지만 또 막막하기도 하거든요. 이건 저뿐 아니라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도착해 있는 지점일지 몰라요. 우리는 민주화 운동도 해봤고 뉴타운 열풍에도 있어봤고, 국정농단 사건도 겪었잖아요. 뭔가가 끝났지만 뭐가 시작됐는지 뚜렷하게 보이지 않아요. 어떻게 살 아갈까, 질문 만이 남겨진 상태예요.

 

소설을 쓸 때마다 안전한 거리를 생각한다고 했어요. 단편은 장편보다 조금 거리가 가까워도 될까요? 작가가 거리감을 준다 한들, 독자 개개인마다 다를 수밖에 없지 않나 싶기도 한데요. 속도감도 그렇고요.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소설은 ‘감동적인 데 막상 밑줄을 치려고 하면 어디에 쳐야 할지 모르는 소설’이에요. 뺄 것도 없고 더할 것도 없어 보이는 작품이죠. 밑줄을 친다는 건, 그 부분이 확 도드라지는 거잖아요. 결말이 났을 때, 약간의 당황이라고 할까요? ‘이게 뭘까?’ 하면서 감흥에 사로잡히는 작품이 좋아요. 읽는 속도와는 무관해요. 예를 들어 『백 년 동안의 고독』같은 작품은 어디 딱히 밑줄 칠 데도 없고 한 호흡에 읽히지도 않는단 말이에요. 한도 끝도 없이 나오는 에피소드가 불필요한 것 같은데 또 필요하고, 이윽고 거대한 벽화 같은 게 완성되죠.

 

단편을 쓸 때도 취재를 하시나요?


취재는 거의 안 하죠. 다만 평소에 이런저런 일들이 유심히 봐요. 이를테면 사람들은 기사를 볼 때 제목만 보는 경우가 많잖아요. 저는 기사를 읽을 때 굉장히 디테일하게 봐요. 사건이 발생한 시간, 인물의 나이, 현장에 있었던 작은 단서까지 세세하게 읽어요. 학교에서 소설을 가르칠 때, 학생들에게 똑같은 신문을 나눠줬어요. 신문에서 소설, 영화의 이야깃거리를 찾아보라고 했어요. 여섯 개 조가 찾아낸 이야기를 보면 같은 게 하나도 없어요. 다 달라요. 사람들은 소설이나 영화가 될 수 있는 이야기는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요. 중요한 건 어떻게 가공하느냐죠. 세상에는 매일 굉장히 많은 양의 기사가 나오잖아요. 기사만 꾸준히 관심 있게 봐도 많은 이야깃거리를 찾을 수 있어요.

 

「신의 장난」은 방탈출 게임을 소재로 한 작품입니다.


잠시 해외에 있었는데 방탈출 게임이 엄청 유행이었어요. 신기하게 생각하다 한국에 오니까 이미 많이 하더라고요. 가서 해보진 않았어요. 조사만 조금 했죠.

 

주인공 ‘정은’의 독백이 인상적이었어요. “나는 우울을 믿어. 인간은 천둥이 치고 비가 퍼 붓는 궂은 날씨에는 울적하도록 진화했어. 인류가 이렇게 진보한 건 섣불리 움직이지 않고 끝없이 자신의 과오에 집착해온, 사실 나 같은 우울증 환자들 덕분이야. 그들은 헛된 희망을 품지 않아. 스스로를 과신하지도 않고. 그래서 살아남은 거야.”(151쪽) 소설가 김 영하의 세계관이 읽혔어요.


문학 작품의 주인공들을 보면 외향적이고 활 달한 사람이 거의 없어요. 오히려 과하게 내성적인 사람이 많죠. 아마 외향적인 독자들 은 ‘소설 속 주인공들은 왜 이렇게 생각이 많고 상처를 잘 받냐’고 생각할 거예요. 하지만 이게 바로 사회에서 소설에게 맡겨진 역할이에요. 내성적으로 성찰하고 필요 이상으로 인간 관계를 깊이 생각하는 것. 활발한 사람들이 개척만 했다면 우리는 벌써 죽었겠죠. 그리스 로마 시대의 ‘카산드라’는 예언의 능력을 받았지만 아폴론의 사랑을 거절한 대가로 설득력을 빼앗긴 인물이에요. 정확한 예언을 하지만 사람들은 그녀의 말을 믿어주지 않죠. 소설, 문학이 하는 게 바로 이거예요.

 

굳이 찾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사람, 현실에 서는 존재감이 없는 사람이 소설에서는 주인공이죠.

 
『인비저블』이라는 책이 있어요.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죠. 공항에 가면 안내 시스템이 있죠. 그걸 설계한 사람이 있고요. 이 사람들의 일은 무척 중요하지만, 이들이 일을 잘하면 잘할수록 보이지 않아요. 콘서트에서 음향을 조절하는 디자이너도 일을 잘할수록 존재가 보이지 않아요. 편집자나 번역가도 마찬가지예요. 오자나 오역이 나오면 그때야 눈에 띄죠. 이번 국정농단 사건에서 최순실의 태블릿PC를 JTBC 기자에게 건넨 경비원이 알고 보니, 진보정당의 당원이었잖아요? 최순실이 어떤 사람인지 가까이에서 지켜봤을 거예요. 그러다 사건이 터졌을 때 중요한 역할을 했죠. 그 사람은 자신의 존재가 드러나지 않았을 때도 사람을 돕고 있었어요. 문학은 바로 이런 자아를 위해 마련된 공간이 아닐까 싶어요.

 

김영하 셀렉 (1).jpg

 

 

혼자 글만 쓰고 있으면 사람을 만날 수 없다

 

작품을 쓸 때는 칩거도 하신다고 들었는데, 강연은 활발하게 하는 편이세요.


말하는 건 크게 어렵지 않아요. 글 쓰는 건 지금도 어렵지만, 강연은 힘든 일이 아니라서 시간이 크게 뺏기지 않는 한에서 필요하다면 해요. 또 다른 이유를 꼽자면 소설은 혼자 쓰잖아요. 조수도 뭐도 없어요. 방안에만 틀어박혀 혼자 글만 쓰면 정신건강에 안 좋아요. 「아이를 찾습니다」 같은 소설을 쓸 때면 정말 미칠 것 같아요. 가끔 살아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러 가야 해요. 강연장에서 생각지도 못한 질문을 받으면 ‘아! 사람들이 이런 문제를 겪고 있구나’ ‘실제 사람들의 고민은 이런 거구나’ 느껴요. 혼자 글만 쓰고 있으면 사람을 만날 수 없어요.

 

6월 2일에 첫 방송되는 나영석 PD의 차기작 tvN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에 출연하신다고요. 예능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하는 것은 처음이신 것 같은데요.


처음에는 나영석 PD가 하는 프로그램인지 몰랐어요. 유시민 작가, 황교익 칼럼니스트, 정재승 교수가 출연한다길래 재밌겠다 싶었어요. <1박2일>의 지식인 버전이 될 것 같은 데, 나중에는 까나리액젓을 먹어야 하는 건 아닌가 걱정돼요.(웃음)

 

예전에 남성 집단과 어울리는 걸 썩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출연진이 모두 중년 남자예요. 어쩌면 ‘꼰대’ ‘아재’ 소리를 듣기 너무 좋은 조합일지 몰라요.


그렇죠. 어쨌든 저도 한국에서 아저씨가 됐단 말이에요. 최근 들어 페미니즘에 관련된 책을 많이 읽어요. 문학계 이슈이기 때문에 한국의 많은 남성 작가가 읽고 있을 텐데요. 21세기 한국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흐름이라고 생각해요. 페미니즘에 맞춰 제가 살아온 인생을 보면 부끄럽기 짝이 없어요. 대세라는 걸 떠나 페미니즘은 옳아요. 옳은 흐름이에요. 인권은 동의하고 동의하지 않는 문제가 아니에요. 유엔이 동성애자와 성전환자들의 권리를 인정하는 결의안을 채택했잖아요. 이건 합의를 한 거예요. 합의를 했으면 닥치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닥치고 받아들이는 정신, 이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닥치고 받아들인다? 이런 태도를 갖는 게 쉽지 않잖아요.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하면 여전히 주저하는 부분도 있고, 이건 좀 과하지 않냐고 말하기도 해요. 하지만 우리는 기득권자이기 때 문에 바보일 수 있거든요. 모르는 거예요. 사람은 자기가 경험한 한도 안에서 생각하니까. 이해가 안 된다고 틀렸다고 생각하는데, 아닐 수 있거든요. 저는 밤거리를 돌아다닐 때 걱정을 안 해요. 누구한테 잔소리를 듣는 일도 없고요. 지금까지 이 사회에서 사회적 약자로 살아본 적이 없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에 있어서는 모른다고 가정하고 시작해요. 개그우먼 김숙 씨가 윤정수 씨에게 말했잖아요. “남자가 좀 조신해야지.” 40, 50대 남성들에게 필요한 건 어쩌면 조신함이 아닐까 싶어요. 조신하게 삼가는 태도, 비단 우스갯소리만은 아니에요.

 

김영하 셀렉 (4).jpg

 

소설은 어떻게 보면 황혼의 장르

 

최근 몇 년간 “현실이 더 소설 같아서, 소설을 읽을 필요가 없다”라는 이야기가 많이 들렸어요. 작가에게도 지난한 시간이 아니었나 싶어요.


모두가 큰 상처를 입었죠. 사람들은 스스로를 잘 몰라요. 괜찮다고 말하지만, 지난 몇 년간 우리는 다른 나라에서는 상상하지 못할 험한 일을 겪었어요. 몇 년 동안 애도가 금지 당하기도 했으니까요. 하지만 이제 어느 정도 추스를 때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소설이 좀 읽힐 거라는 기대감이 있나요?


아무래도 그렇지 않을까요? 조금은 기대해요. 고통을 치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더 고통받은 자를 읽는 거예요. 그들이 어떻게 감내하고 견뎠는지를 보면서, 인간의 내면성을 회복할 수 있어요. 타인에게 공감하며 연대 해야만 우리 힘도 강해져요.

 

팩트만 읽기도 어렵다고 하는데요.


현실과 소설은 완전히 다른 세계라고 생각해요. ‘어떤 게 더 재밌냐’가 아니죠. 존재하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요. 사람들이 정보를 자꾸 찾는 건 불안감 때문이에요. 사람이 불안하면 소설을 읽을 수 없어요. 내 가족이 수술을 하면 병원 대기실에 앉아 있잖아요. 열 몇 시간이 걸릴 수 있는 상황에서 보호자가 대기실에서 소설을 볼 수 있나요? YTN 뉴스만 봐요. 불안한 사람들이 읽을 수 없는 게 소설이에요. 소설은 어떻게 보면 황혼의 장르예요. 어떤 일이 지나가고 돌아보는 장르죠. 소설에는 정보가 없어요. 나와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인물들이 윤리적인 딜레마를 겪는 걸, 지 켜보는 거예요. 그러면서 깊은 수준의 문제 들을 생각해보는 거죠. 많은 현대인이 게걸스럽게 정보를 수집하지만, 커다란 만족감 같은 건 얻지 못해요.

 

2015년에 펴낸 산문집 『말하다』에서 “모든 것이 털리는 저성장 시대, 감성 근육으로 다 져진 영혼은 아무도 빼앗을 수 없다”고 했어요.


소설 안에는 다양한 감정이 있잖아요? 그 감정을 다양한 방식으로 라벨링하는 것이 소설 읽기라고 생각해요. 감성 근육이 단단하면 감정의 폭군이 자신을 지배할 때, 최소한 이 감정이 뭔지 알아요. 자기감정을 잘 알면 느낌을 조율할 수 있어요. 너무 많이 느껴서 고통받는 사람은 본 적이 없어요. 느낌이 뭔지 몰라서 고통받는 거죠. 자기감정을 잘 느끼고 정확한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훨씬 더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SNS, 칼럼 등을 통해 사회적 발언도 꾸준히 하고 계신데요. 비슷한 맥락일까요?


지금 제가 연희동에 살고 있는데, 2년 전에 난개발 문제로 개발업체와 싸운 일이 있어요. 그때 저희 집까지 연대하러 와주신 분들이 있었는데 굉장히 고마웠어요. 누군가 그런 도움을 필요로 할 때, 나로서 크게 힘든 일이 아니라면 하려고 해요.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동성애 발언이 논란이 됐을 때, 제가 페이스북에 짧은 글을 올렸더니 누가 저를 말리면서 그러더라고요. 정치적으로 잘못 해석될지도 모르는데 괜히 아사리판에 끼지 말라고. 하지만 힘이 있는데, 그걸 쓰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나요? 발언권이 있다면 발언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예상하지 못한 욕을 먹을 뿐이지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에요.

 

‘책 읽는 대통령’이라며 기대하는 독자도 많아요. 문재인 대통령에게 추천하고 싶은 소설이 있다면요?


엠마뉘엘 카레르의 『적』을 읽어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인데요, 마을 사람 모두가 의사라고 알고 있었던 한 사람이 어느 날 자기 가족 모두를 죽여버려요. 이 사건을 접하게 된 작가가 팩션으로 쓴 소설이에요. 왜 이 이야기를 권해드리고 싶냐면, 제가 보기에 문재인 대통령은 굉장히 좋은 사람이에요. 선량한 사람이고 남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는 분인 것 같아요. 하지만 대통령은 악에 대해서도 많이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누구나 선한 사람을 좋아하지만 리더라면 악이 무엇인가, 인간의 악함, 나쁜 것들을 어떻게 적절히 제어하느냐도 중요해요. 문재인 정부가 출발을 참 잘했잖아요.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됐고요. 하지만 그들이 성공하기를 바라는 사람만큼 실패하길 바라는 사람도 꽤 있거든요. 지도자라면 악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해요. 누가 악한 마음을 먹어도 함부로 사람을 해 칠 수 없는 세상을 만들어야 하니까요.

 

한 독자가 “김영하의 작품을 읽고 싶은데 아직 한 권도 못 읽었다. 출발하는 작품으로 소설 한 권을 추천해달라”고 한다면, 어떤 작품을 골라주시겠어요?


『오직 두 사람』. 언제나 가장 최근에 쓴 작품이죠.(웃음) 이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소설도 자기 시대와 가까울 때 가장 즉각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100년 전, 200년 전 소설을 읽으려면 어렵잖아요. 배경도 시대도 다르니까요. 이왕이면 최근 한국을 배경으로 쓴 소설로 시작하는 게 좋아요. 갈수록 더 잘 쓰고 있어서 그런 건 아니고요.


 

 

오직 두 사람 김영하 저 | 문학동네
작가 김영하의 신작 소설집이 출간되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이후 7년 만이다. 제9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 「아이를 찾습니다」, 제36회 이상문학상 수상작 「옥수수와 나」를 포함해 일곱 편이 실렸다. 묘하게도 편편이 무언가를 ‘상실’한 사람들, 그리고 ‘상실 이후의 삶’을 사는 이들의 이야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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