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보면 좋을까?” 싶은 책을 만날 때가 있다. 무작정 읽어도 좋겠지만 약간의 엉뚱한 생각을 하고 보면, 더 좋을 책. ‘오기사’ 오영욱의 『변덕주의자들의 도시』를 보고 든 생각이다. 이 책은 오영욱이 지난 20년간 위대한 생각이 담긴 도시들을 찾아다녔던 경험으로 서울 이태원의 녹사평 언덕 위에 ‘우연한 빌딩’을 지은 기록이다. “참 많은 변덕을 부리며 살아왔다”고 말하는 작가 오영욱. 그가 정의한 변덕주의(Capricism)은 “세상에는 정답이 없음을 전제로 무수한 답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과거에 피웠던 고집을 정당화하고 현재의 삶을 미완성형이 지속되는 상태로 보려는 경향”이다.
서울시 용산구 녹사평대로40나길 39. 이 곳에 오영욱이 지은 ‘우연한 빌딩’이 있다. 1,2층은 임대를 주었고 3,4,5층에 그의 건축사무소가 있다. 재밌는 건 1층이 8.9평, 2층이 12.8평, 3층이 13.9평이라는 사실이다. 윗층으로 올라갈수록 넓어지는 이 그림 같은 빌딩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2015년 9월 공사를 시작해 딱 1년이 지나 완공된 ‘우연한 빌딩’. 『변덕주의자들의 도시』는 1년의 시간을 골조로 20여년간 오영욱의 건축적 자세를 담은 하나의 건축물이다. 2014년 『인생의 지도』를 펴낸 후, 3년 만에 책을 쓴 오영욱을 우연한 빌딩에서 만났다. 시큰둥하기가 어려워지는 이 공간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즐거운 인생인가?’를 엿보았다.
하나도 훌륭하지 않은 사람의 자서전
가제가 ‘실패의 기록’이었다고요. 꽤 멋진 제목이었는데요.
(웃음) 건축 일을 시작한 지 벌써 20여 년이 됐어요. 그간의 기록을 모으면 성공보단 실패가 많겠죠. 이 책은 결국 꿈이 연착륙하는 이야기예요. 우리가 꿈을 꾼다고 원하는 대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마음 같이 잘 안 되고요. 1만 명이 꿈을 꾼다면, 1명 정도가 돋보이는 일을 했을 텐데. 그렇다고 9천 9백여 명의 삶이 잘못된 건 아니니까요. 제각각의 삶 속에서 의미를 찾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어떻게 보면, 하나도 훌륭하지 않은 사람의 자서전일지도 몰라요. 꼭 성공담을 읽어야 내 삶을 되돌아볼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누군가의 실패의 기록을 통해 자기 삶을 생각해봐도 좋을 것 같았어요. 1996년 어지러운 간판으로 가득한 신촌 거리에 세워지는 상가 설계 프로젝트부터 시작해, 가장 최근에 지은 ‘우연한 빌딩’까지요.
건축을 보는 여러 시선도 곁들였습니다.
개인적인 이야기만 하면 재미가 덜할지 모르니까요. 지식적인 부분은 아니지만 생각의 폭을 넓혀주는 부분을 넣었어요. 제가 지금까지 건축을 해온 생각들을 정리했어요.
‘우연한 빌딩’을 짓고 친한 친구로부터 “딱 너 같다”는 평가를 들으셨더라고요.
빌딩을 오픈하고 옥상에서 작은 파티를 했어요. 같은 업계에 있는 사람들은 알죠. 작은 것 하나 결정하기까지 얼마나 오래 고민했을지. 고생했다는 말을 제일 많이 들은 것 같아요.
우연한 빌딩에 들어서면서 느낀 감정은 “앗, 재밌다”예요.
그림처럼 만들고 싶었어요. 잠깐 걷다가 걸음을 멈추고 10초라도 전경을 바라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공간, 이 건물은 사실 조각이에요. 건물은 1층 임대료가 가장 비싸기 때문에 1층을 크게 짓는 게 보통인데, 우연한 빌딩은 윗층으로 갈수록 더 넓어요. 차도로부터도 멀찍이 떨어져있고, 건물과 길 사이에 있는 배수구에는 재밌는 글자를 적었어요. 건물에 꼭 들어서지 않아도 보고 재밌어 할 수 있는 모습을 넣고 싶었어요.
너무 많아요. (웃음) 모든 요소가 대여섯 번 이상의 변덕을 거쳤을 거예요. 창문부터 시작해서 바닥까지. 그런데 따지고 보면 기본적인 형태부터 간단하지 않았어요. 일단 건축법을 지키면서 구불구불한 건물을 지어야 하니까요. 그런데 제가 이런 건물을 짓겠다고 이 땅을 선택한 게 아니라, 이 장소가 좋아서 건물을 짓게 된 거라서요. 남산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풍경을 확보하기 위해서 가장 경제적인 건물은 어떤 형태일까, 그 고민을 가장 많이 했어요.
큰 프로젝트는 없어요. 자체적으로는 안식년인데요. 10년 동안 일한 후에는 1년 정도는 조금 쉬엄쉬엄 하려고 해요. 책도 그래서 묶은 거고요. 어쨌든 공간과 관련한 일을 할 때는 새로운 관계를 맺게 돼요. 20년간 고마운 인연이 참 많았는데, 그분들이 사소한 것들을 부탁하시면 해결해드리기도 하고 그래요.
영화 같은 책을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책은 종이를 물리적으로 넘겨야 하기 때문에 영상미를 표현하기 힘들지만, 그 속성이라도 넣어보려고 했어요. 프롤로그를 보면, 문단을 나누지 않았어요. 목차의 제목만 약간 큰 글씨로 넣었고, 다음 장인 목차를 보면 제목만 또렷하게 보여요. 페이드 아웃(fade-out) 같은 효과를 상상하면서 디자인했죠. 암전이 됐다가 크레딧이 나오고 인트로가 시작되는 영화처럼, 책을 펼쳐도 재밌게 읽으실 수 있을 거예요.
제가 그렇게 되고 싶어요. 그런 사람으로 사는 게, 맞다는 생각을 어느 순간 했거든요. 소소한 재미를 아는 분들이 이미 많겠지만, 앞으로 더 많아지면 좋지 않을까요? 세상이 더 재밌고 즐거우려면요.
전혀 상관 없어요. 누가 어떻게 부르든지요. 제가 책을 쓰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콤플렉스라고까지 할 수 있는 ‘말하기’에 관한 문제도 있어요. 책은 제게 누군가와 이야기하는 방식이거든요. 건축을 포함해 여러 활동을 하면서, 무대 앞에 서는 두려움이 계속 있었어요. 그러다 언젠가 정신과의사인 클라이언트를 만났어요. “아직도 무대에 서는 게 너무 힘들다”고 말했더니 의사 선생님께서 이런 말씀을 해주시더라고요. “세상의 모든 무대 공포증의 원인은 실제 자신보다 더 멋있게 보이고 싶은 욕망에서 시작된다”고. 이 말이 정말 정답이더라고요. 물론 답을 안다고 해서 해결되는 건 아니지만요. 내가 가진 모습을 온전히 보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지금도 물론 때때로 자존감이 사라질 때가 있지만 마음속의 원칙은 잡혔어요. 엄지원의 남편이 됐든, 입만 살아있는 사람이라는 말을 듣든, 이 사람의 디자인은 잘 모르겠다는 평가를 듣든, 상관 없어요.
1년에 한 두 달 이상은 해외로 나가는 것 같아요. 출장을 겸해서 갈 때도 있고요. 최근에 다녀온 곳은 중국인데, 호사스럽지만 『중국인은 왜 시끄러운가』프롤로그를 쓰러 갔어요. 중국은 충분히 저렴하게 다녀올 수 있는 여행지이기도 하고요.
글쎄요. 오랫동안 여행을 한 일은 제 인생에서 굉장히 소중한 경험이지만, 특별히 더 소중했다고 여기진 않아요. 결과론적으로는 덕분에 제가 여행작가가 되었지만. 인생을 조금 더 관대하게 바라본다면, 인생의 모든 순간은 다 의미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으로 살고 있어요.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선택이 없어요. 그런데 이건 사람의 성향 문제이긴 해요. 저는 여행지에서 어디가 가장 좋았다, 어떤 책이 좋았다, 같은 답변을 잘 못해요. 안 좋았던 것을 빼고는 각각의 의미로 좋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영덕에서 촬영을 한다고 하길래 놀러 가는 마음으로 갔거든요. 사실 누구한테 어떻게 글을 쓰라고 말했던 적이 없었어요. 방송이니까 괜히 이상한 이야기를 해서 욕을 먹진 않을까 잠깐 고민했는데, 솔직한 이야기를 해드리고 왔어요. 글쓰기를 두 가지로 구분한다면, ‘돈을 벌기 위한 글쓰기’와 ‘돈을 벌 필요가 없는 글쓰기’가 있다고 생각해요. 전자의 경우는 글쓰기의 원칙이 있을 수 있지만, 후자라면 마음 편히 말해도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비결이라기보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통해 나의 방식을 찾아보는 게, 맞지 않을까요?
거의 안 한다고 볼 수 있어요. 최근 3년 동안 가장 큰 변화는 강아지(비키)를 입양한 일이에요. 예전에는 하루 15시간 이상을 건축 일에 쏟았거든요. 친구들과 술을 마셔도 늘 건축 이야기만 했고요. 결혼 전에는 골방에서 살았지만 지금은 아내도 있고 집이 넓어져, 집안일도 많아졌어요. 7시간 정도는 가정, 아내와 비키와 살아가는 일에 투자하는 것 같아요. 15시간에서 7시간을 빼면 제가 건축 일에 집중하는 시간은 8시간 정도인 것 같아요. 아마 위대한 사람이라면 어떻게든 시간을 더 투자해서 훌륭한 일을 하겠지만, 저에게 더 중요한 일을 따져보니 아내, 강아지와의 시간을 포기하기 어렵더라고요. 우연한 빌딩을 짓게 된 것도 여유 있게 가는 게 맞다는 생각에서 시작된 거고요.
이건 영원히 불가능할 수도 있는데 웃긴 건축, 웃게 만드는 건축을 하고 싶은 막연한 희망이 있어요. 제가 우연히 건축과를 선택한 후 유럽 답사를 갔는데, 프랑스에서 '르 꼬르뷔제'가 지은 수도원을 보고 무척 감동했어요. 거친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수도원이었는데 왠지 모르게 울 것 같았어요. 물론 건축을 하기로 마음먹은 상태에서 감동할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그 때의 감동은 지금도 잊을 수 없어요. 멋있는 건축을 하겠다는 마음보다는 누군가를 감동시킬 수 있는 작은 요소를 만들고 싶어요.
『변덕주의자들의 도시』도, 『중국인은 왜 시끄러운가』도 정말 신나서 썼어요. 세상을 전복 시키는 완전히 새로운 생각 같은 건 없지만, 10도 정도 곁가지로 벗어난 약간 다른 이야기를 하는 책들이에요. ‘이렇게 보는 시각도 있어’라고 말하는 느낌이죠. 올해 말에는 반려견 ‘비키’ 이야기를 담은 책이 나올 예정인데 이 책도 신나게 쓰고 있어요. 짧은 글과 만화, 사진들이 들어갈 것 같아요.
‘대책 없이’라는 말이 아주 순수한 말은 아닌 것 같아요. 저도 나이가 들었기 때문에 ‘이거 저질러야지’ 하는 순간, ‘이걸 어떡해야 하지?’라는 생각을 동시에 하거든요. 어릴 때 저지르는 사고와 지금 저지르는 사고는 좀 다른 거죠. 다만 제 소망은 이런 대책 없는 사고가 너무 없어지진 않았으면 해요. 어느 정도 성향을 갖고 있으면서 감당도 할 수 있어야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