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인물 최민석은 운동권의 실세로 지목된, 한 번도 얼굴을 드러낸 적이 없는 신출귀몰한 사람이다. 신문 사회면에 그에 관한 기사가 실리고, 술자리에서 영웅으로 회자되면서 정보 당국은 최민석을 잡아들이기 위해 특별팀을 꾸린다. 팀장으로 발탁된 김기준은 젊은 연극 연출가인 이태주가 최민석이라 확신하고 그의 인생을 조종하면서 궁지에 몰아넣는다.
『선한 이웃』은 등장인물의 시점으로 격동의 시대인 1980년대를 돌아본다. 소설 속에서는 정보기관 공작원도, 무고하게 잡혀 들어가는 예술가도 ‘관리자’로 대표되는 권력 앞에서 장기판에 놓인 말처럼 이용당할 뿐이다. 과연 선과 악의 기준은 무엇인가? 『바람의 화원』, 『뿌리 깊은 나무』등의 전작에서 주로 역사적 배경으로 매력적인 이야기를 선보인 이정명 작가는 『선한 이웃』을 통해 1987년 직선제 전후 30년간 ‘정의’와 ‘선’이 정권에 의해 흐려지고 뒤바뀌는 과정을 묵직하게 조명한다.
주인공은 그 분이 아닙니다
이번 작품에서는 연극이 소재로 많이 나왔어요.
이제까지 제 소설에서는 주인공의 행동과 그 행동을 추동하는 다른 하나의 매개체가 있는데, 『뿌리 깊은 나무』는 한글과 언어, 『바람의 화원』은 그림, 『별을 스치는 바람』은 시였죠. 연극은 80년대를 이야기하기에 가장 적합한 매개체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음악이나 철학, 역사 등 각 분야의 지식인들이 실질적으로 연극 무대를 통해 정권을 비판하고 현실을 풍자하면서 정권 쪽에서는 눈엣가시처럼 여기는 분위기가 있었고요. 심했기 때문에 연극판을 하나의 배경으로 삼으면 그 당시 사회에서 예술을 검열하고 압박하는 분위기를 더 절실하게 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실제 대학을 다닐 때 연극을 하신 적이 있나요?
직접적인 상관은 없었지만, 그 사건에 직접 가담하거나 연루되는 것과는 별개로 심정적으로 그 사건 혹은 인물에게 얼마나 동정심을 느끼는가가 더 그 사건과 상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세월호 사건이나 그 이후 여러 사건에 내가 관련되지 않았다고 이야기할 수 없듯이, 어떤 식으로든 동시대의 사건을 겪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관련된 것이 아닌가 싶어요.
이제까지 소설에서 이야기나 재미가 중시되었다면 이번에는 주제나 메시지가 조금 더 나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80년대 이야기를 하면서 주제의식을 얕게 짚고 넘어갈 수는 없었어요. 이전의 조선 시대라든가 하는 배경에서는 이야기 자체에 집중할 수 있었지만, 80년대 사건은 아직 우리 삶을 규정하기도 하고, 아직 해결되지 않은 부분이 많이 있기 때문에 생각할 거리를 우리가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태주가 ‘관객이 무엇을 좋아할 건가가 아니라 그들에게 무엇을 말할 건가’(37쪽)가 중요하다고 하는 내용이 있습니다. 주인공의 입을 빌려 작가가 한 말이 아닐까 싶었어요.
어떤 면에서는 그런 대사가 저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겠죠. 책을 쓰면서도 스스로 그런 생각을 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반전이 있는 소설입니다. 인물의 순서가 중요했을 것 같은데요.
어떤 인물이나 사건에 관해 이야기하기보다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할지가 더 집중했던 부분이었습니다. 형식적으로 각각 인물의 눈으로 상황을 제시하고 그 인물들이 결국 같은 주제를 이야기하되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하면서 하나의 큰 사건을 일으키게 되죠. 그 사건에서 다시 각각의 결론으로 도달하고요. 개념적으로 모래시계 형상을 생각했었어요. 각각의 인물을 통해 그 시대를 이야기하는 것이 다양하게 그 시대를 보여주는 방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선’과 ‘악’이 주요 모티프이기도 합니다. 선한 이웃일지라도 악한 일을 한다는 문제의식은 어디서부터 시작됐나요?
서울대 프락치 사건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는데, 사건 자체의 내용이라든가 그 사건의 법적인 판결보다는 항소 이유서에서 꿈많은 소년이 결국은 폭력배가 되어 법정에 서 있다는 구절이 귀에 걸렸다고 해야 할까요? 한 개인의 도덕적인 양심과 그 개인을 둘러싼 국가 또는 체제, 사회 전체가 지향하는 이상이 각각 괴리될 때, 개인의 선한 의도가 결국에는 권력과 결부되면서 선하지 못한 방향으로 왜곡되는 일들이 매우 많이 있었고, 지금도 그런 경우를 흔히들 보고 있죠.
빛나는 미래를 생각할 때마다 가슴 설레던 열아홉 살의 소년이 7년이 지난 지금 용서받을 수 없는 폭력배처럼 비난받게 된 것은 결코 온순한 청년이 포악한 청년으로 성장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 시대가 ‘가장 온순한 인간들 중에서 가장 열렬한 투사를 만들어 내는’ 부정한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 1984년 ‘서울대 프락치 사건’에 연루된 유시민의 <항소이유서> 중
범죄자들이 그럴 의도가 전혀 없었고 결과적으로 잘못되어서 교도소에 왔다는 장면을 흔히 보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판단할 때 그 사람이 한 행위와 그 사람의 행위로 낳은 결과로 판단하기 때문에 어떤 부분에서는 선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자기변명 혹은 면죄부가 되어서는 안 되겠죠. 그래서 보통 사람으로 사는 개인의 선택이 권력과 결부되었을 때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지 경각심을 가져야겠다는 마음이었어요.
소설을 읽으면 떠오르는 실제 인물들이 있게 되잖아요. ‘서울대 프락치 사건’의 항소 이유서도 유시민 씨가 자연스럽게 떠오르는데, 실제 인물을 겹쳐서 그리게 되는 부담감은 없으셨나요?
소설은 소설로 받아들여져야 하고 또 그럴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큰 부담은 느끼지 않았어요. 조금이라도 소설 때문에 피해가 있다면 그런 부분에서는 전혀 의도한 것이 아니고, 주인공은 그분이 아니라고(웃음) 정확하게 이야기해줄 수 있습니다. 항소이유서에는 전적으로 공감했는데, 불의한 권력이 개인의 도덕적 양심을 악으로 왜곡시켜서 전과자로 만든 상황이었잖아요. 그러면 우리가 개인을 탓할 것만이 아니라 권력에 대한 감시와 견제를 통해서 불의한 시스템 자체를 개선하고 제거해나가는 게 제대로 된 방법인 것 같아요. 『선한 이웃』이라는 제목도 중의적인 의미가 있는 것이죠. 개인의 선한 의도가 정의로운 사회와 부합하면서 선함이 선함으로 계속 지켜져 나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나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습니다.
1987년이 2017년을 비추는 거울이 되기를
이청준의 『당신들의 천국』인용문으로 소설이 시작합니다. 책을 관통하는 내용으로 봐도 될까요?
원고를 마무리하는 과정에서 넣은 구절인데요, 내용과는 상관없이 권력과 개인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고 있어서 넣었습니다. 적합하다고 생각한 첫 번째 이유로는 제가 쓴 이야기가 결국 개인과 권력의 마찰 또는 관계에서 개인이 허물어져 가는 모습이기 때문이었고, 두 번째로는 시민들이 권력의 억압을 견디지 못할 때까지는 견디는 것들이 어느 정도는 체질화되어 있는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1987년에 직선제를 획득하고도 민주주의의 질적 완성을 가져오지 못한 하나의 이유가 아닌가 생각이 드는데, 그래서 항상 주의하고 견제하고 감시하는 시민의식이 계속 가동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었어요. 이청준 선생께는 죄송스럽지만 그런 부분과 가장 부합하는 내용이었기 때문에 독자들께서 꼭 한 번 곱씹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었죠.
“…그 지배자가 최초에는 아무리 성실한 인간성과 선의의 명분을 지닌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리고 그 갇힌 인간의 무리가 아무리 그들의 지배자를 바로 경계한다 하더라도 다스리는 자와 다스림을 받는 자가 다 함께 그들을 가두고 있는 울타리에 대한 깊은 각성에 도달하지 못하는 한, 다스리는 자는 결국 그의 무리를 일방적으로 조작해나가게 마련이며, 다스림을 당하는 자들 또한 다스리는 자의 뜻을 재빨리 수락하고 그것에 봉사해나갈 수밖에 없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 이청준, 『당신들의 천국』
처음에는 ‘대통령 후보가 된 비밀 정보원’이란 소재로 집필을 시작하셨다고요. 초고에서도 선과 악에 관한 주제의식이 있었나요?
전반적인 주제는 비슷했지만, 처음 구상 단계에서는 조금 더 플롯의 전개에 충실하게 무게를 둔 방식으로 써나가려고 했고, 초고 단계에서는 주인공들의 물고 물리는 관계가 빠르게 진행하는 장면이 많았었죠. 이후 수정하는 과정에서 연극적인 요소가 강조되고 결과적으로는 지금의 소설이 되었습니다.
‘1987년 6월이라는 시점이 2017년 6월을 비추는 거울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고 썼습니다.
처음 소설을 구상한 건 2012년 대선 전후 시기쯤이었던 것 같아요. 한 번 더 대통령이 바뀌면 절차적인 민주주의를 획득했다고 하는 6월 항쟁에서 30년이 되는 시점이었죠. 30년이 한 세대를 상징한다고 봤어요. 한 세대가 넘어가는 동안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하고 어떤 방향으로 왔는지 생각해 보고 싶었고, 저 스스로 앞으로 30년을 어떻게 나아갈지 생각하는 계기로 삼고 싶었어요.
2012년부터 쓴 소설이었으면 꽤 오랫동안 집필하신 셈이에요. 세월호 사건 이후 원고 수정이 중단되기도 했다고요.
저뿐만 아니라 어떤 측면에서는 대한민국 전 국민이 거의 탈진상태에 마비 상태였어요. 넋을 잃고 거의 1년, 길게는 2년이 지나간 상황에서 저 자신도 역시나 쓴다는 것에 대해 큰 의미를 느끼지 못할 정도의 상태로 보낸 거죠. 그 이후 작업이 더뎌지고 아예 작업을 중단했던 상황까지 갔었어요.
다른 문인들도 거의 그런 상황이었다고 하더라고요. 세월호 이후 글쓰기가 달라졌다고 하는 분도 있었어요.
저도 이번 원고를 수정 과정에서 보충하는 시간이 있었어요. 이야기 자체로 나가기보다 생각할 수 있는 부분에 조금 더 무게중심을 두고 개고 작업을 했습니다.
수정은 어느 정도나 하셨나요?
작품마다 다를 것 같아요. 이 작품은 거의 1년 가까이 하지 않았나 싶어요.
행간에 숨은 이야기에 더 관심이 갑니다
전작을 보면서 ‘소재가 다양한 소설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비류 백제부터 시작해서 서양의 살인 사건을 다루기도 하고요.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싶다는 마음인가요, 혹은 다양한 주제를 다뤄야 한다는 당위인가요?
소재 자체를 탐닉하는 건 아닌 것 같고요. 아마도 기록에 대한 호기심에서 출발한 게 아닐까 해요. 주로 역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쓰다 보니 역사에 관심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 제가 관심이 있는 건 역사가 아니라 기록된 기록인 거죠. 지금 기자님도 제가 드린 말씀을 일일이 쓰지 않고 일정 부분은 기록자의 관점에 따라 삭제되기도 하고 관점이 삽입되기도 하지 않습니까? 기록은 모든 걸 담고 있지 않기 때문에 기록된 것보다는 기록되지 않은 이면의 이야기, 행간에 숨은 이야기에 더 관심이 갑니다. 특히 역사에서 빈 부분을 호기심 또는 상상으로 채우는 과정 때문에 제가 역사 소설을 많이 쓰게 된 것 같아요.
역사가 좋아서라기보다는, 역사가 비어 있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었네요.
『별을 스치는 바람』에서도, 윤동주 시인에 관해 여러 가지로 취재한 내용과 판결문 등 꽤 많은 자료가 나와 있어요. 하지만 형무소로 체포되고 난 뒤에는 기록이 다 말소됐거든요. 그 비어 있는 부분이 오히려 저한테는 상상력을 펼치는 공간이 되었던 것이죠.
『선한 이웃』띠지에 ‘가장 한국적으로 압도적인 서사’라는 홍보 문구가 들어갔어요. 부담스럽진 않으셨나요? (웃음)
출판사에서 이렇게 써주셨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제가 어떻게 말씀드릴 수가 없네요. (웃음)
왜 ‘한국적인 서사’일까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한국의 거시적인 역사적 상황을 소재로 쓰시는 경우가 많아서 그런 것 같거든요. 역사를 크게 보는 것도 어떻게 보면 비어 있는 부분이 많아 보여서 그런 걸까요?
주로 대한민국 국민이 다 안다고 해도 될 만한 이야기를 많이 그리는데요. 어떤 시대를 쓸 것인가, 어떤 시대의 어떤 인물을 쓸 것인가 보다는 어떤 관점으로 바라볼 것인지 더 고민하는 편이에요. 세종을 다루면 사실 쓸 게 없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많은 사람이 알고 있죠. 하지만 그 인물과 시대를 이제까지 바라봤던 관점과 다르게 봤을 때 그 상황과 인물의 새로운 면모를 드러낼 수 있다는 게 소재를 채용하는 데 제 나름대로 기준이 될 것 같아요. 물론 그 사람의 이면이 사실이 아닌 허구라고 할지라도 이제까지 나온 기록에 근거해 개연성 있는 하나의 관점이 될 수 있다면 그걸 이야기로 풀어나가는 게 흥미로워요.
이제까지 소설을 낸 걸 보면 1,2년에 한 권씩은 꼬박꼬박 나오고 있어요.
출판사에서는 저보고 과작이라고(웃음) 더 빨리 쓰라고 그러시는걸요. 이번 책은 제가 생각해도 중간에 작업을 중단한 기간이 있었기 때문에 꽤 시간이 걸린 편이었어요. 더 분발해야 될 것 같습니다.
요새 생각하는 소재는 무엇인가요?
여러 소재를 두고 생각하는데, 소재가 작품이 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이 소재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방안이 서야 집필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런 의미에서만 본다면 소재만 많은 셈이죠.
자료를 선택하는 방식이나 축적하는 방식, 작품을 발표하는 시기를 보면서 소설가라는 직업에 성실한 분이라고 생각했어요.
직장인으로 10년, 15년 가까이 살았기 때문인지 직장인의 생활 양식에 충실한 편이에요. 9시에 출근해서 저녁까지 사무실에서 일하고 6시가 되면 또 내일을 위해서 퇴근하는 게 저한테는 제일 편하더라고요.
직장을 다닐 때는 저녁이나 이른 아침에 소설을 쓰셨는데, 소설을 쓰는 일이 업이 되면서부터는 저녁에 다른 취미가 생겼나요?
주로 운동을 많이 해요.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9시부터 6시까지 일하는 시간이 굉장히 고통스러워지더라고요. 글을 열심히 쓰기 위해서라도 운동을 해야 하는 셈이죠.
직업 정신이 투철하시네요.
정신만 투철하고요. (웃음) 게으름도 사실 많이 피웁니다. 일이라는 게 하겠다고 해서 되는 건 아니니까요. 그 시간만큼은 충실히 하려고 노력하죠.
소설을 쓰기 전에는 기자 생활을 오래 하셨죠. 인터뷰를 하는 입장에서 받는 입장으로 바뀐 지 꽤 오래됐는데, 인터뷰이로서 많이 자연스러워진 것 같아요.
인터뷰 초기에는 새삼스레 무슨 이야기를 할 게 있나 생각하고 제 자리 같지 않았거든요. ‘웬만한 건 책 내용을 통해서 독자분들이 아시겠지’ 이렇게 생각했었는데, 간간히 독자들과의 만남을 가지면서 의외로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궁금증, 아니면 만나서 설명할 수밖에 없는 부분들이 또 있더라고요. 책만 불쑥 내놓고 알아서 읽으라고 하는 게 어떻게 보면 무심하고 불친절해 보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최소한 어떤 부분이라도 보충해서 말씀드려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번역본도 많이 나왔다고 들었어요. 다른 언어로 쓰인 책을 보면 기분이 어떤가요?
제 책 같지는 않지만 먼 친척뻘 정도 되는 느낌이에요. 직접 모국어로 쓴 책이 아니기 때문에 어느 정도 거리감은 있지만, 나와 아주 가느다란 관련이 있기 때문에 약간의 감정이 생기죠. 먼 친척을 오랜만에 보는 감정이 들더라고요.
여러 책을 내셨는데, 독자에게 특히 사랑받거나 드라마로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주목을 못 받아서 안타깝거나 하는 책이 있나요?
모든 소설은 저한테는 소중하죠. 독자분들이 사랑해 주시느냐와는 별개로 그 시점에서 제가 쓸 이유가 있었고 또 썼기 때문에 모든 소설이 다 비슷한 비중으로 소중합니다. 제가 안타까운 것은 소설 자체에서 놓치고 지나간 부분, 혹은 과했던 부분이 나중에 발견되었을 때일까요. 그런 부분이 아쉬울 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