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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현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을 받은 기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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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록의 비조'를 넘어 '한국 대중음악의 선각자'로 불리는 신중현이 우리 범주를 넘어 미국 음악계로부터 위대한 음악가라는 공식 상찬을 받았다. 지난 5월 미국 매사추세츠 보스톤 소재의 위세 높은 버클리 음악대학은 그에게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했다. 2009년 기타 명가 '펜더'로부터 맞춤형 기타를 헌정받기도 했지만 당시에는 미국에 가지는 않았다. 버클리 음대 로저 브라운 총장은 박사학위 수여식(버클리 음대 졸업식)에서 펜더 제품전략가 리처드 맥도날드의 말을 빌려 신중현을 두고 '절대적 음악전설'이자 '끊임없이 발전하는 아티스트'라는 찬사를 보냈다.

 

심지어 “1970년대 정부의 압박에 굴하지 않고 자신의 뜻을 견지한 '반정부'적 자세가 더욱 그의 위상을 드높였다”고 해 졸업식 현장에 있는 한국인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신중현은 예상치 못한 버클리 명예박사 학위수여에 대해 “원래 상을 밝히는 체질은 아니지만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라며 기뻐했다. 1938년생으로 80세인 신중현은 빠듯한 미국 스케줄에도 불구하고 여전한 체력과 음악을 향한 활활 타오르는 의지를 보였다. “음악을 제대로 표현하기 위해서는 정신 건강, 몸의 건강이 조금이라도 흐트러지면 안 된다”고 했다. 신중현은 어디서든 음악가의 면모를 조금도 잃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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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클리 음대의 명예박사 학위 소식은 언제 접하셨어요?


이미 소문은 들었다. '설마 날 주겠나?'하고 믿지 않았는데 1년 전에 버클리 음대 로저 브라운 총장이 직접 날 찾아왔더라. 그 전부터 수소문했지만 찾지 못하자 아들 신대철에게 연락해 행방을 알았다는 것이다. 우선 성의가 있었다.

 

총장이 만나서 뭐라고 하던가요


여러 가지를 물어봤고 내 이력을 쭉 살펴보더라. 아마 그쪽(버클리 음악대학)에서 충분히 내 신상파악을 했고 나한테 직접 확인을 하려고 온 것 같았다. 이력 때문에 학위를 주었다고 판단한다.

 

어떠세요, 학위를 수여받은 기분이. 막상 현장에서 받으시는 순간을 본 한국인 졸업식 참석자와 관계자들 모두 눈시울이 뜨거워졌습니다.


믿어지지 않는다. 음악 하는 사람한테는 영광이다.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상상도 못했다. 정확한 표현일지는 모르지만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을 받은 기분이랄까. 내 음악만 묵묵히 해왔다. 그런데 내 음악이 세계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조금은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기쁘다. 내 개인적으로도 하나의 계기가 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웃음)

 

공식 졸업식 하루 전에 버클리 음악대학은 졸업생과 재학생들이 모여 학교관계자와 학부모들에게 그간 배운 기량을 연주로 들려주는 졸업공연(Commencement Concert)을 한다. 이번은 5월12일 저녁 버클리 음대 근처 보스톤 유니버시티의 아가니스 아레나에서 진행되었다. 이곳은 아이스하키 구장으로 유명하다. 공연 레퍼토리는 명예박사 학위를 받는 다섯 음악가의 명곡과 추천 곡이라서 팝스타 공연을 방불했다. 다섯 음악인은 신중현를 비롯해서 라이오넬 리치(Lionel Richie), 토드 런그렌(Todd Rundgren), 루신다 윌리암스(Lucinda Williams) 그리고 그래미상 주관사 미국 레코딩 예술과학 아카데미(NARAS)의 회장 닐 포트나우(Neil Portnow)였다.

 

현장에서 라이오넬 리치의 코모도스 빅히트넘버 'All night long', 토드 런그렌의 'I saw the light'와 'Love is the answer', 루신다 윌리암스의 'Passionate kisses'를 듣는 기분은 각별했다. 라이오넬 리치가 (마이클 잭슨과 함께) 작곡한 'We are the world'가 피날레를 장식했다. 신중현의 곡은 '세 나그네' 시절의 앨범 그리고 1994년 <무위자연>앨범에도 수록된 '즐거워'를 시작으로 김정미가 노래한 '바람'과 '봄' 그리고 신중현이 밴드 '퀘션스' 시절인 1970년 아이언 버터플라이 것을 리메이크해 당대 가요계에 충격을 던진 기타 대곡 'In a gadda da vida' 등 네 곡이 거푸 무대에서 실연되었다. 신중현도 이 무대에 올라 펜더 기타로 미국 재즈 파퓰러 고전 'Autumn leaves'를 연주, 우레와 같은 객석의 박수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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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굳이 'Autumn leaves'를 선택하셨나요.


아무래도 미국이고 미국인들에 널리 알려진 곡이니까. 내 곡을 할 생각이 없지는 않았지만 이게 관객과 좀 더 소통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펜더 관계자 리처드 맥도날드 표현대로 '고난도의 기타 기교'를 들려주셨는데 현장 연주가 맘에 드셨는지요.


분명히 버클리 음대 측에 내가 원하는 영국제 앰프를 요구했는데 리허설 현장에서 보니 아니더라. 좀 실망했다. 버클리 음대가 이러다니.... 당연히 내가 원하는 음색이 나오지 않아 아쉬웠다. 지금도 마음에 걸린다.

 

그래도 다음 날 보스톤 거리에서 만난 많은 미국인들이 빼어난 기타연주를 들려줘 영광이라는 찬사를 보냈지요.


괜히 버클리 음대 콘서트 그리고 관계자들이겠나. 전에 미국공연 왔을 때도 느낀 것이지만 그들은 음악을, 연주를 들을 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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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식 전 리셉션 장소에서 라이오넬 리치, 토드 런그렌 등이 선생님을 직접 찾아와 인사를 건넸죠. 어떠셨나요. 라이오넬 리치 경우는 만약 자신의 내한공연이 성사된다면 꼭 무대에 나와 주십사 연신 부탁하던데요.


안 나갈 거다. 그건 그때 가봐야 알 것 같다. (웃음) 그들이 내게 인사한 것은 예의일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누군지 잘 몰랐겠지만 다 나보다 나이가 어리니까 당연한 것 아닌가. (웃음) 그리고 내 기타소리를 들었지 않나.

 

미국에서 연주한 적이 처음은 아닐 텐데요, 무대든 졸업식 현장이든 전부 외국인들이라 조금 편하지는 않으셨겠어요.


음악을 어디에서 하느냐 그 위치를 따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동양인이라 생경했던 것은 사실이다. 좀 떨리기도 했다. 졸업식 현장에선 무려 3시간 반을 앉아 있었다. 왜 그리 졸업식이 길고 말들이 많은 건지….

 

졸업공연 현장에서 '즐거워', '봄', '바람'과 같은 선생님의 곡을 버클리 학생들이 연주한 것을 들으면서 평소에는 몰랐던 것을 확인했는데요. 록은 록이되 다른 미국 아티스트의 록과 뚜렷이 대조될 정도로 한국적인 냄새가 물씬했습니다. 서양 록과 한국 음악의 융합이라는 선생님의 업적을 비로소 절감했습니다.


그게 내 음악의 평생 과제였다. 우리는 우리만의 장단이 있고 흥이 있다. 그게 우리의 얼을 이룰 것이다. 내 몸속에 그게 있으니 내가 외국 록을 해도 우리 것이 되어 나올 수 있다는 것은 오랜 신념이었다. 1974년 '엽전들'의 1집만 해도 한국적인 록, 우리의 대중음악을 만든다는 야망을 가지고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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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우리 후배 뮤지션들이 그 앨범을 통째로 리메이크해 헌정한 앨범이 나왔습니다. 들어보셨지요.


들어보고 놀랐다. 젊은 친구들이 잘 해석해줬다. 젊은이들의 음악성이 굉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본적으로 원곡 틀을 유지하면서 숨은 것을 찾아내면서 거기에 자기 개성을 부여했더라. 이게 큰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지금 수요자들이 무리 없이 접근할 수 있도록 '현대화'되었다. 가히 '사운드 아트'랄까. 리메이크는 남의 작품을 자기의 것으로 만드는 또 하나의 창의적 과정이자 도전이다. 명반으로 손색이 없다. 역사에 남을 거다. 요즘 사람들이 많이 들었으면 한다. 대중들이 이 앨범 계기로 후배들의 음악성 그리고 록이 무엇인가를 인식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선생님은 록의 대부로 알려져 있는데요. 세상을 떠난 재즈 뮤지션 정성조 선생님이 언젠가 신중현선생님이 재즈에도 상당한 조예가 있다고 말한 게 기억이 납니다.


그 친구(정성조)는 내가 미8군 음악활동을 하고 있을 때 고등학생(서울고) 교복을 입고 색소폰을 불고 있었다. 정말 열심히 불었다. 재즈 광이었다. 그의 얘기대로 나도 재즈를 통해 미국음악을 알게 됐다. 그 당시 디지 길레스피, 소니 롤린스, 찰리 파커, 자니 하지스, 스탠 게츠, 마일스 데이비스, 쳇 베이커 등을 부지런히 들었다. (이 얘기 도중 정말 쉴 새 없이 줄줄이 뮤지션의 이름이 나왔다) 오스카 피터슨은 블루스의 정체를 알려주었고 셀로니어스 몽크는 더 나아간 케이스라고 할까. 그 재즈감성이 내게 사라질 리 없을 것이다. 나도 어쩌면 재즈에서 록으로 전향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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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선생님이 남기신 명곡 얘기를 해보죠. 신중현사단의 대중적 시작을 만들었다고 할 펄시스터즈의 '님아'는 어떻게 탄생된 건가요.


펄 자매가 나를 찾아와 곡을 만들어 달라고 했을 때 다소곳이 공손하게 앉아서 기다리는 것을 보고 준비가 된 인물들임을 느꼈던 게 기억난다. 당시 이 작업 저 작업 하느라 너무 바빠서 그들에게 '떠나야 할 그 사람' '님아' '커피한잔' 등 다섯 곡만을 써주었고 LP 다른 한 면은 기존의 내 곡들을 우겨넣어 앨범을 만들었다. 솔직히 이 무렵 한국에서보다는 월남에서 내 뜻을 펼칠 수 있을 것 같아 월남에 갈 생각에 계약까지 맺었다. 하지만 어느 날 새벽에 유니버설/킹, 신나라 레이블 대표 '킹박'(박성배)이 내 방문을 두드리며 “신형, 떴어! 떴어! '님아'가 떴어!!”하는 순간, 모든 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만든 곡 가운데 가장 자랑스러운 곡은 뭔가요.


꼽지 못하겠다. 이런 질문이 참 부담스럽다. 다들 애써서 만든 곡들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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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현에게 음악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글쎄, 내 열정과 에너지의 원천일 것이다. 일찍이 음악을 운명으로 여겼다. 천직이고 최선을 다했다. 좋은 곡, 맘에 드는 곡을 딱 못 고르는 게 이 때문이다. 음악을 떠나서 나는 없다. 음악에서 내가 나온다.

 

선생님과 동격이 된 록이 무엇인가 정의하신다면요.


글로벌 문화교류의 장이다. 세계가 만날 수 있는 장르가 됐다. 결코 흘러가는 하나의 유행이 아니라 영원한 음악문법이다. 나의 경우도 우리 정서를 록에다 얹어 우리의 장단과 흥을 세계에 알리고자 하려는 목표로 살았다. 록은 '리얼'이고 '라이브'가 중심이 된다. 지금 유행의 대세가 힙합과 EDM이란 것을 안다. 시대에 따라 환영받는 스타일이 있게 마련이고 또 있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록은 흔들리지 않는다.

 

신중현은 인터뷰 도중 후대와 후배 음악인들을 향해 음악에 대한 여러 관점을 피력했다. 그중 몇 가지를 요약하면.


1 음악은 섞지 말아야 한다. 자기마다 오리지널을 지켜야 하고 그것들이 전체적으로 등위(等位)를 이루면서 이른바 문화다양성이 나온다.
2 결국 순수함이 이긴다. 음악가는 음악지향, 돈, 명예와 관련해서 순수해야 한다. 대중들도 결국에는 순수한 것을 사랑하고 인정한다.
3 시키는 것을 하지 말고 스스로 자기 것을 하라.
4 음악가는 자기가 만든 곡을 설명할 정도의 전문성을 가져야할 줄로 안다.
5 음악은 장르를 가리지 말고 모두 듣는 것이 좋다. 음악 하려고 마음을 먹었으면 듣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 여기서 길이 잡힌다. 나는 클래식, 재즈, 각국의 민요, 우리 국악 심지어 트로트도 좋아했다.

 

인터뷰, 사진 및 정리: 임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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