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유사』의 내용대로 살인을 저지르는 범인을 쫓아가는 미스터리 장편 『김유신의 머리일까?』로 새로운 이야기를 선보였던 차무진 작가. 그의 두 번째 장편 『해인』은 세상을 구원할 단 한 명의 메시아, ‘아기장수’를 둘러싼 주변인들의 이야기다. 아기장수를 낳을 운명인 ‘성모(숙지)’, 성모를 지키는 불사의 존재 ‘박마’, 다른 목적을 위해 ‘해인’을 훔치려는 ‘정만인’과 역사적 사실들이 절묘하게 하나를 이룬다. 이순신이 ‘박마’였다는 설정, 이성계가 쭉정이 아기장수라는 설정과 윤심덕이 ‘성모’라는 이야기의 다양한 설정은 묘한 몰입감을 준다. 시간을 넘나들며 모습을 바꾸는 인물들과 하나씩 밝혀지는 진실이 숨가쁘다. 후반부를 지배하는 진실의 반전은 독자로 하여금 재차 책을 다시 들춰보게 한다.
차무진 작가는 일본이 고전이나 괴담을 적극적으로 변용해 즐기는 것처럼 우리의 고전이 좀 더 다양한 형태로 이야기에 담겨 더 많은 사람들이 즐기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그것은 고전이 될 수도, 밴드 ‘들국화’나 광화문에 서 있는 이순신 동상이 될 수도 있다. 현재 집필 중인 작품은 종말이 온 세상에 아버지와 아들이 서울에서 유일하게 청정지역이라고 알려진 대구로 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말하자면 이 모든 것이 한국적인 이야기, 차무진 작가가 생각하는 장르문학이다.
굉장히 멋진 소재가 많다
2014년 ‘창비장편소설상’ 최종심에 올랐던 작품이라고 들었습니다. 출간까지의 이야기가 많을 것 같아요.
2012년에 끝낸 작품이에요. 첫 책 『김유신의 머리일까?』를 쓰고 회사를 그만 뒀어요. 습작하던 중에 스토리가 나왔는데요. 원래는 이 이야기가 아니었어요. 그때는 ‘메시아’ 이야기였죠. 그런데 메시아 이후가 고민이 되더라고요. 메시아 주변의 인물들로 시선을 조금 바꿨고, 이 이야기로 끝낸 게 2014년 정도였어요. 대통령보다는 대통령 비서실장이 더 할 말이 많을 거란 생각이 들었거든요.(웃음) 창비장편소설상 최종심에 올랐을 당시 심사평이 대부분 사회적 의식이 결여되었다, 는 혹독한(웃음) 평이었어요. 충분히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 중 정세랑 작가님의 평이 조금 달랐는데요.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셔서 고무적이었어요. 그러다 엘릭시르 출판사와 계약을 해서 이제 나오게 된 거예요.
많이 기다리셨을 것 같은데요.
그런데 첫 책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요. 앞으로도 그럴 것이지만 책에도 운명이 있는 것 같아요. 너무 연연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제 입장에서는 지난했던 시간이 좀 있었고요. 어쨌든 책이 나왔으니, 자기 삶을 잘 살겠죠.
소재 이야기를 먼저 해보고 싶어요. 고려 때부터 조선시대와 현재까지 아우르고 있는 작품이거든요. 전작에서도 그랬고, 무엇보다 소재가 눈길이 가요. 이른바 ‘한국적인 소재’인데요. 이런 재료가 작가님에게 어떤 매력을 주나요?
작가가 소재를 찾고, 이런 책을 쓰겠다고 마음먹는 게 전적으로 우연 같아요. 이런 이야기를 소재로 삼은 건 제가 이 분야에 자신이 있어서 그랬을 거고요. 역사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잘 다룰 수 있는 부분을 저도 모르게 선택한 것 같아요. 그런데 한국적인 소재라는 말에 의문이 있어요. 지금 구상하는 작품 중 밴드 ‘들국화’에 관한 것도 있거든요. 그것도 충분히 한국적인 소재죠. 꼭 『삼국유사』나 조선 시대의 사극 같은 것들만 한국적인 소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고요. 한편으로는 이런 소재를 계속 고집하겠다는 생각도 있는데요. 과거 이런 것을 조금 기피했던 때가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일본의 경우 자기 나라 괴담들을 작품에 굉장히 많이 차용하고 즐기잖아요. 그에 비하면 우리는 『금오신화』나 이런 것들이 그냥 전래동화처럼 치부된 것 같아요. 예전에 『삼국유사』를 봤을 때 딱 생각이 바뀌었죠. 우리나라에 굉장히 멋진 소재가 많구나, 하고요. 사라진 책들이 아쉬울 뿐이고요.
일본에 비해 한국이 그런 이야기를 많이 즐기지 않았던 게 어떤 이유에서 기인했다고 생각하세요?
예를 들어 일본에 ‘요츠야(四谷) 괴담’이라고 있어요. 사위가 장인을 죽이고 아내의 얼굴을 상하게 하는, 그런 유령 이야기예요. 그게 다른 작품으로 전환될 때 사람들은 그게 요츠야 괴담인 걸 모르죠. 구조만 살짝 가져와서 드라마도 만들고 하는 거예요. 우리나라는 그런 작업들이 많지 않은데요. 『금오신화』의 ‘조신의 꿈’이라는 테마를 현대물로 만들려는 시도를 하려고 해도 주변의 반발이 거세지 않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일본은 누군가 그런 작업을 하려고 하면 출판 편집자든 영화 제작자든, 주변 사람들이 지지해주는 것 같은데 한국은 그렇지 못한 것 같아요. 분위기, 토대 때문인 것 같은데요. 글쎄요. 모르겠어요, 일단 재미있으면 받아들여지겠죠.
이런 상황에서 작가님은 고전에 담긴 테마를 기반으로 한 작품 활동을 계속해나가려고 하는 거잖아요. 부담감이나 아쉬움도 있을 텐데요.
제가 설정한 허구에 역사적인 사실을 정확히 끼워 완벽히 작동하게 하는 걸 제가 즐기기도 하고요. 거기서 희열을 느끼는데요. 이런 소재로 소설을 썼을 때 다른 소재로 쓸 때보다는 어려움이 많죠. 설정을 만들거나 세계관을 만들어야 하는 부분이 많으니까요. 그런데 그게 재미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재미있어요. 앞으로도 뭐라도 계속 캐내면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요.(웃음)
적이 매력적이어야 한다
방금 ‘캐낸다’는 표현을 쓰셨는데요. 자료를 보면 이야기가 찾아지나요?
『해인』에서 이순신이 등장하죠. 우리가 아는 민족의 영웅이 아니라 메시아를 보호하는 가디언이라는 설정인데요. 원래 이 작품을 쓰면서 이순신 이야기는 쓸 생각이 없었어요. 그러다가 문득 이순신이 ‘박마’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거기까지는 상상력으로 가능해요. 그런데 실제로 박마처럼 움직였던 근거가 역사 자료에 몇 줄이라도 있어야 하거든요. 그래야 넣을 수 있어요. 저는 일단 찾아봐요. 직접적인 것이 아니고 멀리 있더라도 건너 건너에 찾아지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실제 이순신이 ‘정은부’의 머리를 벤 적이 있었고요. 노량해전도 굉장히 무모한 부분이 있죠. 그런 것들을 보고 제가 활용할 수 있겠다고 생각이 들면 그 자료들만 가지고 와서 살을 붙이는 거예요.
이순신이나 대원군, 전봉준, 윤심덕 등이 등장하죠. 확실히 그런 부분이 읽는 재미를 줘요.
윤심덕도 그랬죠. 배에서 바다에 빠졌다는 사실을 보고 왜 그랬지, 하고 생각을 한 적이 있었는데요. 이런 이유로 빠졌다면 하면 어떨까 하고 보니까 몇 가지 코드가 딱 맞는 게 있더라고요. 그렇게 건지는 거죠. 그런데 작품을 쓰다가 그런 이야기를 건져서 작품 안에 넣을 수 있으면 제일 좋겠지만 거의 불가능해요. 평소에 관심 있는 자료들을 잘 찾아두었다가 쓸 때 ‘아, 그거!’ 하고 올 수도 있고요. 이야기를 막아 두었다가 어딘가에서 자료를 보고 집어넣을 수도 있어요. 어떨 때는 어디 없을까, 해서 찾다보니까 갑자기 나올 때도 있죠. 그것은 전적으로 운인 것 같아요.
그 외에 『해인』을 쓰면서 많이 고심한 부분이 있었다면 무엇인지 듣고 싶습니다. 반전도 크고, 역사적 사실도 많아서 고심한 대목이 많을 것 같거든요.
전체 얼개를 잡고 살을 붙일 때 먼저 해야 할 일들은 역사적 사실이 정확하게 이야기 속에 부합되도록 설정을 만드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이걸 쓸 때 주인공과 주적, 그리고 성모라는 세 인물들과 반전은 기본적으로 설계를 했었기 때문에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는데요. 그보다는 주적, 주인공의 반대편에 있는 안타고니스트(antagonist, 반동인물)가 얼마나 매력적인지가 제일 고민이었어요. 저는 주인공은 별로 관심이 없거든요.(웃음) 적에 관심이 많고요. 적이 매력적이어야 한다고 생각을 해요. 『해인』도 적에 관한 이야기라면 이야기일 텐데요. 주인공은 적이 펼쳐놓은 아이스링크에 스케이팅을 하는 것뿐이죠. 그 부분에 대한 평가를 잘 받고 싶다는 욕심이 조금은 있었어요. 그래서 다른 부분도 애를 썼지만 ‘정만인’이라는 인물이 얼마나 매력적일까를 고민했던 것 같아요.
순문학과 장르문학의 경계에 관한 작가님의 생각이 궁금해요. 작가님은 스스로 장르문학을 한다고 생각하세요?
네, 그게 제 꿈이에요. 장르문학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 한국적 소재로 한국적인 장르소설을 쓰고 싶어요.
장르소설가로서의 꿈이 있다면요? 좋아하는 이야기는 어떤 이야기인가요? 이것은 작가님이 지향하는 이야기와도 맞닿아 있을 것 같습니다.
코맥 매카시 같은 글을 쓰고 싶은 것이 저의 근본적인 꿈입니다. 저는 코맥 매카시 ‘빠’예요.(웃음) 아직 갈 길이 멀죠. 지금은 제가 쓰고 싶은 것이 조금 달라요. 야마모토 겐이치라는 작가가 『리큐에게 물어라』라는 작품으로 나오키상을 받았는데요. 같은 해에 텐도 아라타의 『애도하는 사람』이라는 소설과 경합하다 두 작품 모두 상을 받았어요. 저는 이 『리큐에게 물어라』를 열 번 이상 읽은 것 같아요. 근본적으로는 매카시 쪽을 바라보고 있지만 지금은 『리큐에게 물어라』처럼 세심한 이야기를 팩션화하는 데 좀 더 몰두하고 싶어요.
특별히 그 작품의 어떤 점에 매료되셨어요?
‘리큐’가 일본에서는 다도(茶道)의 신으로 추앙 받거든요. 거의 우리나라 이순신 정도 되는 것 같아요. 만화나 영화, 드라마에 리큐 이야기가 안 나오는 데가 없어요. 리큐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자결을 명받았는데 왜 그랬는지는 여러 설이 있죠. 『리큐에게 물어라』에서는 리큐가 조선 여자를 사랑해서 그 여자가 건넨 향합, 향이 나는 작은 단지를 히데요시에게 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나와요. 쉽게 말하면 이순신이 일본 여자를 사랑해서 노량 해전 마지막 해전 때 일부러 총탄에 맞아 죽은 걸로 가장하고 일본으로 사랑 때문에 도망간 것처럼 이야기를 만들어버린 거죠. 그런데 일본 사람들이 열광했잖아요. 만약 우리나라에서 그런 이야기를 쓰면 독특하다고 다독거림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어쨌든 저는 아직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그런 판타지가 제가 생각하는 장르문학이에요.
코맥 매카시 이야기도 들려주세요.
코맥 매카시 소설이 순문학이다, 장르문학이다, 구분하기도 하는데 그건 참 바보 같은 짓인 것 같고요. 그 또한 서부 역사라는 미국적인 소재를 썼죠. 자기 역사나 자기만의 이야기를 썼다는 점에서 존경해요. 여러 표현과 탁월한 문장력도 좋지만 매카시의 소설은 다 고독하거든요. 멋있다고 생각하고요. 코맥 매카시도 초반에는 문단에서 인정을 못 받았던 작가이기도 하잖아요. 『핏빛 자오선』이라는 작품이 나오기 전까지는 천대 받는 느낌도 좀 있었고요. 서사나 내러티브, 기승전결 같은 게 없잖아요. 그나마 서사가 있는 게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죠. 그래서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작품인데요. 저는 다른 작품도 다 좋아하지만 『국경을 넘어』가 진짜 좋아요. 매카시의 책을 어렵다고 받아들이는 게 안타까울 뿐이죠.
게임과 애니메이션 시나리오 작업 등 다양한 작업을 해오셨잖아요. 『똥 먹는 도깨비』에서는 그림을 선보인 적도 있고요. 소설 외에 이 같은 다른 작업은 어떻게 하게 된 건가요?
밥벌이로 한 거였어요. 그림책 작업이나 게임 시나리오, 애니메이션 시나리오 등 많이 했었는데 그건 모두 밥벌이 때문이었어요. 소설로는 먹고 살 수가 없잖아요. 저는 장르문학을 하는, 그것을 고민하는 작가가 되고 싶은데 그런 밥벌이 이력을 많이 봐주시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아요. 저는 지금도 애니메이션 시나리오를 쓰거든요. 계산을 해본 적이 있어요. 한 달 동안 소설을 쓰는 시간이 8일 정도밖에 없더라고요. 8일도 많이 시간을 낼 때죠. 주말까지 포함하면요. 그럴 수밖에 없죠. 제 직업이니까요. 여러 가지 뭐라도 해야 하는 부분이 있고요. 그래서 그런 일을 한 거예요. 계속 그렇게 일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요. 8일 정도 되는 그 기간만이라도 집중할 수 있으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전업’이 힘든, 이것 역시 ‘한국형 소설가’의 솔직한 상황인 것 같아요.
저희가 후속을 기다리는 많은 작가 분들이 계시잖아요. 그분들이 더 많이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시고 후속작을 독자들에게 빨리 선보일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요. 먹고 사는 문제 등등 때문에 시간을 빼앗기는 문제가 있죠. 소설 쓰는 사람들이 대개 비슷한 것 같아요. 제 주변에 저와 비슷하게 소설을 시작한 친구들 중 포기한 친구들도 많거든요. 저도 그런 생각이 있었고, 지금도 내일이 되면 어떻게 변할지 모르지만요. 포기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어떻게든 밥벌이와 작업을 구분해서 계속 써야죠. 독자가 한 명이라도 있든 혹은 없든, 많든 그것은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하고요. 쓰고 싶은 책들이 있으니 그것이 하나씩 쌓이길 바라요. 첫 책을 내고 자만했던 순간도 있었지만 이후 7년이라는 시간을 보내면서 그런 생각은 다 사라졌어요. 지금은 책이 외부에 어떻게 받아들여지느냐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있어요.
밥벌이와 상관없이, 한 달에 8일 정도를, 계속 쓸 수 있는 원동력은 뭔가요?
쓰고 싶은 게 아직은 남아 있으니까요. 쓰고 싶은 걸 계속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거창한 건 절대 아니에요.(웃음) 어쨌든 아직까진 포기 안 했으니까요. 앞으로도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죠.
힘든데 마지못해 직장을 다니는 분들도 있고요. 힘든데 부모님을 봉양하는 분들도 있는데요. 그런 힘듦과는 다른 것 같아요. 그렇다면 힘든데 이런 작업을 하는 이유가 뭐냐고 하시면 희열이 있기 때문이겠죠. 의무감으로 하는 게 아니니까요. 희열이 있습니다. 독자들도 같이 희열을 느껴주면 좋겠지만 그렇게 못한다 하더라도 앞으로 계속 했으면 좋겠어요. 저 같은 사람은 그러다보면 언젠가는 빛을 받겠지, 라는 것 외에 의지할 게 없어요.
행간 사이에 숨겨둔 것들
이 작품이 독자에게 어떤 인상을 주었으면, 하고 기대한 바도 있으신가요?
독자 분들이 제 작품을 어떻게 읽어주실지 모르겠지만요. 돈을 내고 시간을 들여 콘텐츠를 소비할 때 유치하지는 않다, 공들여 만들었구나,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네, 라는 생각을 하실 수 있으면 좋겠어요. 트릭을 다 끝까지 알고 난 뒤에도 유치하게 만들지는 않았구나 하고 생각해주시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큰 기대는 아닌 것 같은데요.
쓴다고 생각하면 날짜를 찾아봐야 하고, 자료를 비교해야 하고, 팩트 여부도 확인해야 하죠. 이것저것 하다보면 공력이 많이 들긴 해요. 그렇지만 읽는 분들이 소설을 한 권 읽으면서 자료를 찾아보는 경우는 없죠. 유치하지 않다는 표현 속에는 이런 의미가 포함되어 있을 텐데요. 이런 장르 문학들이 트릭을 알고, 이야기가 끝나면 다시 안 보게 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사건 소설이니까요. 하나의 소비 형태가 되는 건데요. 코맥 매카시의 소설들이나 토머스 해리스의 『양들의 침묵』, 스티븐 킹의 소설처럼 반복해서 읽어도 새로운 맛이 나는 작품들이 있잖아요. 그것처럼 행간 사이에는 여러 가지 숨겨둔 것들이 있거든요. 그냥 읽으면 지나가버리는 거지만 몇 번 더 읽었을 때 그것들이 발견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숨겨둔 것들, 조금만 더 들려주세요.
예를 들면 이런 거죠. 이자춘은 이성계의 아버지잖아요. 이성계가 쭉정이 아기장수라는 설정을 했지만 이성계 이야기는 하나도 안 나오거든요. 이자춘의 부인이 ‘숙지’라는 역할을 하고 있는데 그 부인이 역사에서 실제로 있었던 해와 행동이 그대로 들어가 있어요. 찾아볼 수는 있지만 독자는 그걸 찾아볼 필요도 없죠. 그런 것들까지도 정확하게 잘 맞춘 것이기 때문에 유치하진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그걸 알아주셨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은 하죠.
곧 또 한 권이 출간될 예정이라고요?
『해인』은 박마에 관한 이야기고요. 가을쯤에 성모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아요. 그런데 그 작품도 나온 후 반응이 어떨까, 그런 생각은 하지 않고 있어요. 그냥 계단을 하나 씩 오르듯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독자에게 꼭 하고 싶은 말씀이 있을까요?
한국적인 소재를 쓰려고 하는 것이 사극이나 삼국유사의 어떤 것만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는 걸 말씀드리고 싶어요. 말씀드렸지만 밴드 들국화를 주제로 해도 되고, 김광석을 주제로 해도, 이순신 동상을 주제로 해도 충분히 한국적인 소재의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것들을 일본이나 유럽처럼 받아들여주셨으면 해요. 우리 이야기가 미스터리가 되고, 장르문학이 되고, 재미있는 서사가 되는구나 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서 소비가 되었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