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바쁘다. 정치할 때는 좀 외로웠는데 정치판을 벗어났더니 의외로 불러주는 곳이 많다. 그렇다. 유시민은 정치에 입문하기 전부터 책을 썼다. 시사 칼럼을 연재했고 토론 프로그램 진행자로도 일했다. 2002년 정치에 입문한 후에도 꾸준히 책을 써온 그. 2013년 정계를 은퇴한 뒤로는 ‘지식소매상’이라는 명함을 파고 전업작가로 살고 있다. JTBC <썰전>, tvN <알쓸신잡> 등에 출연 중이라 간혹 10대들에게는 “방송인이세요?”라는 질문을 듣지만, 그가 가장 긴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집필이다. 파주출판단지 지혜의숲에서 작가 유시민을 만났다. 책상 위에는 『국가란 무엇인가』를 올려두었다. 2011년 4월에 쓴 책으로 올해 1월 개정 신판을 출간, 현재 14만 부가 팔렸다.
이것이 국가인가?
『국가란 무엇인가』개정신판 리뷰를 보다가 재밌는 글을 발견했다. “책을 안 팔아줘야 한다.” 인세가 들어오지 않으면 정치판에 다시 나올까, 기대하는 독자들이 있더라.
웃자고 하신 이야기이겠지만, 정치하면 돈 못 번다.(웃음)
방송의 힘이 무섭긴 하다. 요즘 인기가 무척 많다. JTBC <썰전>과 tvN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의 시청자는 좀 다르지 않나? 방송을 보니 아내 분이 추천해서 출연하게 됐다고.
시즌제니까 그렇게 힘들지 않겠다는 생각도 있었고, ‘교양의 확산’이라는 관점에서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을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찍다 보니 독서로도 연결이 되더라. 정재승 박사나 김영하 작가, 황교익 칼럼니스트도 모두 책을 쓰는 사람 아닌가? 통영에서는 박경리 선생의 『토지』를 이야기하고, 또 네루의 『세계사 편력』도 언급되고. 사람들이 방송에 나오는 책을 좀 찾아 읽으시는 것 같더라.
<알쓸신잡> 출연진의 도서를 묶은 기획전도 한다. 가끔 베스트셀러 순위를 찾아보기도 하나?
집에서 신문을 두 개 구독하고 있어서 주말판이나 수요판, 북 섹션을 눈여겨본다. 무슨 기준으로 이런 책을 크게 소개하나? 싶을 때도 있지만, 신간을 보면 사람들의 관심사, 트렌드를 알 수 있으니까 볼 필요가 있다. 예컨대 『총,균,쇠』는 우리나라에 번역된 게 2005년 아닌가? 지금까지 스테디셀러인데 읽기 수월한 책이 결코 아니다. 과학자가 쓴 역사책이기 때문에 절반은 과학책이라고 볼 수 있다. 읽고 나면 엄청난 지적 자극을 받는 이 책이 오랜 사랑을 받는 걸 보면 우리나라 독자들이 장난 아니구나 싶다. 하지만 믿을 수 없는 베스트셀러도 많다. 이런 책을 뭐 하러 읽지? 이걸 책이라고 할 수 있나? 이건 그냥 소비재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물론 책의 기능은 다양하니까 생산재도 될 수 있고 소비재도 될 수 있지만, 가끔은 출판사에서 장난 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이런 생각이 들면 꼭 몇 달 후에 신문에 기사가 나더라.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책이 인기가 많다.
선거가 끝났으니 일시적 유행이 아닐까. 시간이 좀 지나 읽을 분들이 다 읽으면 또 다른 책을 읽지 않겠나. 나쁠 거야 없다고 생각한다. 남이 써준 게 아니라 본인이 쓴 책이라면 정치인의 책이든, 대통령의 책이든 가치가 있다고 본다.
『국가란 무엇인가』개정 신판이 6개월 만에 14만 부가 나갔다. 2011년에 초판을 찍은 책이니 개정판이 나오긴 좀 짧은 기간 아닌가 싶었다.
초판을 썼을 때는 내가 정치를 업으로 하고 있을 때라 절치부심이 심했다. 언론, 미디어에서 일종의 반지성주의가 심하다고 느꼈다. 무슨 말을 하면 그 주장이나 의견의 사실적 근거, 이론적 타당성의 여부를 보지 않고, 현실적인 어떤 정파적 대결의 맥락 안에서만 해석을 하니까 힘들었다. 어떤 해석에 이의를 제기하면 그것이 도덕적으로 문제 있는 행동인 것처럼 두들기고. 진보, 보수를 불문하고 일종의 반지성주의 아닌가? 하는 생각이 컸다. 정치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내가 생각하는 국가, 내가 생각하는 정치를 쓴 게 2011년의 『국가란 무엇인가』였다면, 개정판에서는 직업 정치인으로서 주장했던 대목을 덜어냈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국가와 정치를 분석하는 지식인의 시각을 분명하게 입혔다.
초판 원고 집필을 시작했을 때는 이명박 정부 3년 차였다. 2009년 1월에 용산참사가 있었고. 박근혜 정부 2년차인 2014년에는 세월호 참사, 2015년에는 메르스 파동, 2016년 10월에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터졌다. 아마 이 같은 사건이 없었다면 개정판을 쓰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이명박 정부가 권력의 폭주였다면 박근혜 정부는 국가의 사유화, 정부의 오작동이다.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파동을 통해 정부의 무능이 드러났다. 국가의 무기력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국가 권력을 사유화하고 오남용한 대통령과 측근들의 행위가 노출되자 대통령의 정치적 정통성이 무너지고 정부의 기능은 사실상 정지됐다. 촛불을 든 시민들은 자문했다. ‘이것이 국가인가?’ 나 역시, 이 질문을 던지면서 다시 한 번 대답을 찾아봤다. 그래서 나온 게 개정판이고.
서문에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썼더라.
좋아하는 말이다. 눈보라 치는 광장에 섰던 시민들에게 응원의 말이 될 것 같았다.
“훌륭한 국가는 우연과 행운이 아니라 지혜와 윤리적 결단의 산물이다. 국가가 훌륭해지려면 국정에 참여하는 시민이 훌륭해야 한다. 따라서 시민 각자가 어떻게 해야 스스로가 훌륭해질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은
글을 정리하면서 느낀 개인적인 소회는 없나?
우선 살아가는 방식이 많이 달라졌으니까. 사실 정치는 지적인 활동을 하기 참 힘들다. 일상 자체가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하는데, 사람을 만나는 시간이 너무 많아서 어떤 기업의 제품을 세일즈 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 자신을 판다는 게 좀 다를 뿐이지. 그러다 보니 거의 세일즈맨의 삶과 비슷한 면이 있다. 아주 많은 사람과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가볍게 접촉해야 하는데 이런 생활에서 어떤 기쁨, 삶의 의미, 자기 존재의 근거를 찾을 수 있는 사람도 있지만, 또 아닌 사람도 있다. 나는 후자였던 것 같고. 직업 정치 자체가 한편으론 굉장히 빛나 보이지만, 이면을 보면 상당히 공허한 활동이다.
작가의 삶은 반대가 아닐까 싶은데.
글 쓰는 일은 겉보기에는 그리 빛나는 일은 아니지만 내면적으로는 굉장히 충만해지는 일이다. 책을 읽고 생각하고, 글을 쓰는 이 행위 자체가 그렇지 않은가? 아주 극단적으로 생각해보면 정말 다른 삶의 패턴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개정판을 쓰면서 느낀 소회는 별 차이가 없다. 그러니까 글을 통해 사람을 만나는 것과 어떤 정치적 메시지를 통해 사람을 만나는 것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는 없다.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본다면.
인간이 만들어내는 관계와 사회질서, 그리고 그것들이 변화할 수 있는 폭과 깊이에 대해 예전이나 지금이나 큰 기대를 걸지 않는다. 사람들이 본질적인 변화를 가져오기에는 우리의 생애가 너무 짧다. 근원적인 변화를 이끌고 오기에 인간은 너무 어리석은 존재고. 그래서 소박하게, 그냥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하고 진실한 대화를 나누는데 의미를 두자,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요즘 젊은 세대로부터 ‘멘토’라는 칭호를 받고 있지 않나? 특히 대학생들에게 만나고 싶은 작가를 물으면 ‘유시민’이라는 이름이 빠지지 않는다.
멘토라는 것 자체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물론 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 삶에서 그냥 생각과 감정을 주고받으면서 서로 자극이 되는 관계, 그 안에서 각자가 필요한 조언을 발견해내는 그런 관계 정도가 맞는 게 아닌가 싶다. 멘토라는 게 좀 웃기지 않나? 과연 어떤 사람들이 멘토로서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 멘토링을 해서 나온 결과는 누가 책임을 지나? 타인과의 관계에서 어떤 책임을 부여받는 일, 나는 하고 싶지 않다. 내가 하는 말, 내가 하는 주장, 내가 전달하는 보에서 뭔가를 발견했다면, 그 결과도 당신이 져야 하는 게 아닌가? 우리가 리영희 선생님 같은 분에 대해 말할 때, 그 분께 많은 걸 배웠다고 한다. 물론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지만 그 분을 멘토로 생각하진 않는다. 즉 내 삶에서 요만큼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을 안 한다. 멘토, 멘티를 남발하는 것은 인격적 주체 또는 삶의 주인으로서 각자가 감당해야 할 책임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게 아닌가 싶다. 좀 발칙한 생각이긴 하지만.
예전에 한 작가가 이런 말을 했다. “사실 성공하는 사람들을 보면, 멘토링을 듣겠다고 강연장에 오지 않는다. 그 시간에 혼자 이미 실행한다. 책을 보거나.” 맞는 이야기 아닌가, 싶었다.
책이 훨씬 낫다. 왜냐면 책은 말보다 훨씬 더 압축되어 있으니까. 또 더 정제되어 있으니까 빨리 읽을 수 있다. 눈으로 읽는 게 말로 듣는 것보다 몇 배 빠르다. 자기가 집중하고 싶은 대목은 반복해서 집중할 수 있고. 서양 속담에 “좋아하는 책의 필자는 만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여러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데, 글은 필자의 어떤 한 면을 보여주는 것이라서 그 사람에게 그런 면만 있다고 생각하면 오해다. 만나보니까 다른 면이 보여 실망할 수 있고, 책은 괜찮았는데 말을 들어보니까 별로일 수도 있다. 말은 덜 압축되니까. 그래서 어떤 사람의 생각이나 감정, 그 사람이 중요하게 여기는 정보는 책으로 접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지 않나, 싶다.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것보다 더 나은 걸 얻을 수는 없다.
동의한다. 만나면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저자는 “기대감을 드러내는 것도 저자에게는 폭력”이라고 하더라.
그럴 수 있다. 이해한다.
지금의 유시민은 어떤 시기라고 생각하나.
글 쓰는 사람으로서, 상대적으로 높은 긴장이 필요한 작업을 할 수 있는 마지막 시기가 아닐까 싶다. 나이도 들었고 공부도 부족하고. 작년까지 글을 많이 쓰느라 팔이 아파 상반기에는 작업을 거의 못했다. 지적으로 많이 긴장하고 써야 하는 글을 매년 쓰기엔 이제 힘들 것 같다. 앞으로 남은 몇 년은 어떻게 버틸 수 있겠지만, 그 시기가 지나면 긴장도가 높지 않은 장르의 글쓰기로 바꿔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여행, 도시 기행 같은 가벼운 글쓰기랄까. 그쪽으로 전환하는 게 맞지 않을까, 궁리 중이다.
살면서 후회하는 일이 있나?
딱히 없다. 모든 선택이 잘 되진 않았지만, 그 때 상황에서는 잘 판단해서 행동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중에 생각해보니 판단이 잘못됐거나 결과가 안 좋았던 것도 있었지만 후회는 안 한다. ‘그 때 내가 잘못 판단했어’ 이렇게 생각할 뿐이지, ‘괜히 그랬어. 다른 걸 할걸’ 이렇게 생각하진 않는다. 당시에는 최선이었으니까. 내 선택이 왜 그랬지? 이유가 뭐였지? 그렇게 돌아보고, ‘비슷한 상황이 생긴다면 다르게 해야겠다’ 그 정도로 생각한다.
세상이 돌아가는 판을 볼 때, 화나는 일은 없나?
옛날에 강준만 교수가 자주 썼던 말인데, 공격적인 뻔뻔스러움? 그런 걸 느낄 때 화가 난다. 뻔뻔한 건 어느 정도 참아줄 수 있지만 그 뻔뻔함이 공격적인 형태로 표출될 때 화난다. 20대 때는 공격적인 무지를 볼 때 몹시 화났는데, 환갑을 바라보는 50대 후반에 들어선 후에는 권력을 잃어버린 자들의 뻔뻔스러운 공격성이 보인다. 3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는데 아직도 이런 모습을 보고 있으니, ‘사회의 변화라는 게 쉬운 게 아니구나’ 그런 생각이 든다.
유시민을 두고 ‘애증’을 표하는 사람이 많은데. 유시민이 애증하는 대상이 있나?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은 것 아닐까. 호불호가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애증, 이건 정치를 하기 전부터 많이 들었던 말이다. 일간지에 칼럼을 연재하고, 라디오 방송, 토론 프로그램도 진행했을 때도 내가 주장이 강한 편이니까, 항상 반대편이 많았다. 입장이 어떠하든 자기 주장이 뚜렷하면 반대편은 생기기 마련인데, 여기에 대해서는 ‘I don’t care’. 그 사람의 문제지 내 문제는 아니다. 나는 내 색깔대로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옳다고 믿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고, 이것에 대해 안 좋은 감정을 느끼거나 옳지 않다고 판단하는 것은 그 사람들의 몫이다. 내가 간섭할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보고 별로 마음을 쓰지 않는다. 오늘도 <썰전>에서 청와대 인선에 대해 비판했다고 문자 메시지, 메일을 엄청 받았는데 이것도 OK. 내가 남을 비판했으니까 남이 나를 비판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내가 비판한 당사자가 나에게 항의하지 않는 것처럼, 나도 나를 욕하는 SNS 유저들에게 항의하지 않는다. ‘That’s OK’하고 넘어간다.
오래 전 해명한 개혁당 ‘조개’ 발언이 지금도 페미니즘 관련 책에 등장하던데.
알고 있다. 온라인에 뭔가 한 번 나타나면 없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어쩌겠나. 명백히 왜곡된 보도였고 내가 항의를 했지만 시정이 안됐다. 계속 맥락 없이 인용되고 있는데, 이건 나의 과거 활동의 부산물이라고 생각하고 내버려둘 수밖에 없다. 내가 알려진 삶을 살았으니까, 내 모든 게 있었던 그대로 알려지기를 바랄 순 없다. 그래서 ‘욕을 하려면 욕을 해라, 내가 일일이 따라다니면서 그걸 바로 잡는데 인생을 쓸 수는 없다’가 내 태도다. 아무리 해명을 해도 안 듣는 상대들이 있다.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이제 해명을 안 한다.
우리나라 보수들이 ‘이런 책 좀 읽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은 안 하나?
글쎄. 내가 인문, 사회, 역사 쪽 글을 쓰는 사람인데도 이쪽 분야 책은 잘 안 읽게 되더라. 익숙해서 그런지 아니면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라서 그런지, 지적인 자극이나 긴장감이 별로 없다.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과학 책을 좀 많이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떤 의견을 형성하고 주장하게 될 수밖에 없지 않나? 그런데 이런 의견이나 주장의 토대가 되는 기본적 사실을 우리가 얼마나 알고 하나, 그런 의심이 많이 든다. 이를 테면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보다 ‘우리는 무엇이냐?’는 질문이다. 보통 인문학이 인간의 문제, 삶의 문제를 다룬다고 하는데, 과학도 부분적으로는 동일하다.
근거를 더 살펴야 한다는 말로 해석된다.
그렇다. 최근 과학자들이 발견해낸 물리적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한 팩트로, 인문서나 사회 서적에 들어 있는 정보나 이론, 주장, 견해를 살펴볼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어떤 새로운 주장이 나올 때, 바탕이 되는 근거들이 얼마나 튼튼한가에 의문이 간다. 진보, 보수가 논쟁해서는 끝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인간에 대한 과학적 사실을 토대로 접근하는 게 더 낫지 않나? 싶은 거다. 트럼프는 온실 효과도 부정하지 않는가. 이건 진보, 보수의 문제가 아니라 무지의 문제다. 그래서 최근에는 인문서, 사회과학서보다 과학책을 더 보고 있다. 좀 어렵긴 해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년에 『사피엔스』를 읽고 극찬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최근에 재밌게 읽은 과학 책은 무엇인가?
『랩 걸(Lab Girl)』을 재밌게 읽었다. 여성 과학자 ‘호프 자런’이 식물에 비추어 세상을 바라보는 이야기인데, 과학 연구자들의 삶에 관한 내용도 있고 철학적으로 보면 페미니즘 시각도 전반적으로 깔려 있다. 올해 들어 가장 재밌게 읽은 책인데 지적으로도 아주 큰 도전을 받았다. ‘내가 아는 게 별로 없구나’라는 사실도 새삼스레 느꼈고.
자존감의 폭, 크기, 강도
새 정부, 문재인 대통령을 어떻게 보고 있나?
대통령이 굉장히 용기를 내서 일하는 것 같다. 그 점이 마음이 놓이고. 계속해서 용기를 갖고 할 수 있도록 국민들이 지켜봐야 하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한다.
책에서 “선호하는 국가론과 선호하는 리더십 스타일 사이에는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했다. 지금 대한민국은 어떤 리더십을 가진 사람들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나?
자존감이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스스로 판단할 줄 알고 옳고 그름을 가리려고 노력하는. 대통령은 최고 권력자 아닌가? 어디를 가나 대화를 주고받아야 한다. 그 자리에서 정서적으로 교감을 할 수 있는 게 중요한데 문재인 대통령은 참 잘한다. 문 대통령은 자존감이 엄청 강한 사람이다. 자존감이 강한 만큼 다른 사람에 대한 존중도 강하다. 그리고 상대방이 그걸 느끼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의 앞에서 위축되지 않고 셀카도 찍자고 한다. 상대가 나를 존중하지 않을 거라는 예측이 있으면 경직된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권력을 가진 앞에서는 긴장하게 되는데, 그 사람이 나를 존중하는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면 자연스러워질 수 있다. 지금 김정은 옆에 있는 사람과 문 대통령 옆에 있는 사람을 비교해봐라. 두 사회의 체제의 차이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권력자의 인격, 자존감의 차이를 보여준다. 그래서 나는 확실한 자존감을 가진 사람이 권력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래야 뻔뻔하게 정치하지 않는다. 자기 무지를 공격적으로 과시하지도 않을 거고, 잘못했으면 잘못했다고 사과할 줄 알고.
『국가란 무엇인가』도 결국 정의와 존중 아닌가.
이 책에서 가장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 “민주공화국의 시민, 유권자라는 사실에 대해 대통령 자리에서 느끼는 만큼의 자부심을 시민들이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민주주의자가 없으면 민주주의가 잘 안 된다. 단순한 원리지만, 주권자답게 행동하는 민주주의자가 많아야 민주주의가 제대로 간다. 이번 촛불집회 때 가장 두드러진 대목이, 스스로를 대표하는 시민들이 많이 나왔다는 점이다. 우리 현대 사회에서는 별로 없었던 현상이다. 깃발 밑에 모이지 않고, 직접 만든 손팻말을 든, 자기 의견을 직접 대변하는 시민들이 대거 등장했다는 사실에 의미를 둬야 한다. 이건 자존감이 강한 시민이라는 증거다. 최근에 『자존감 수업』이 베스트셀러가 된 것도 나는 좋게 봤다.
자존감을 인지하는 독자가 많아진 현상에 대한 긍정적 인식인가?
그렇다. 사실 그런 책은 흔할 수 있지만,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오랜 임상경험을 토대로 일반 원리를 밝혀주니까. 제목이 독자들에게 크게 어필하지 않았나? 그건 스스로 자존감이 너무 약한 것 같다고 자각한 독자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아이를 키울 때, 절대 자존감을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다음부터 회복이 안 된다. 학교에서 성적이 많이 안 나오고 체육 시간에 다른 애들에 비해 체력이 조금 떨어져도 자존감이 있으면 견뎌낸다. 삶을 자기가 버텨낸다. 그런데 자존감이 무너지면 그 때부터는 막 나간다. 엄마한테 욕하고 대드는 것도 아이의 자존감을 파괴했을 때 나오는 현상이다. 엄마가 자존감을 지켜주는 양육을 했더라면 어떤 경우에도 엄마에게 욕하지 않는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자존감이 진짜 중요하다. 사회의 리더가 됐든, 일반 시민이 됐든 간에 한 사회의 수준과 품격을 좌우하는 건 시민 개개인이 갖고 있는 자존감의 폭, 크기, 강도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든다.
젊은 독자들이 유시민에게 가장 궁금해 하는 질문을 찾아봤다. 토론 잘하는 법이 압도적이더라. 책과 방송에서도 종종 말했지만, 압축해서 이야기를 해준다면.
논리적으로 말을 잘하고 싶다면 일상적인 삶에서 누군가가 논리적이고 지적인, 정신적인 도발을 해오는 걸 즐겨야 한다. 자기도 도발하고 주변에 그런 친구들이 있어야 한다. 친구가 됐든, 동료가 됐든. 내가 운동권 생활을 꽤 했지 않나. 늘 그런 생활이었다. 사실 지금보면 다 틀린 이야기인데, 그 맞지도 않는 이야기를 두고 피 터지게 논쟁했다. 독일 유학 5년 동안도 늘 도전의 연속, 정치 생활 10년에서도 일상이 매일 공격과 방어였다. 그렇게 20년 넘게 살다 보니, 나도 모르게 사고 패턴이나 문장을 구사할 때 사용하는 어휘나 문장의 형식이 논쟁적으로 되더라. 그런데 정치는 그렇게 하니까 잘 안 된다. 정치는 세일즈라 논쟁해서 팔 수는 없으니까.
지적 도전을 많이 받으려면 책 읽기만큼 좋은 방법은 없을 것 같은데.
물론이다. 나는 책을 읽을 때마다 늘 생각한다. ‘이거 맞아? 이렇단 말이야? 이 이론이 맞다면 내가 지금까지 생각한 개념이 무너져야 하나?’ 매일이 도전이다. 책을 읽고 생각해보고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아닌 건 참고하고. 그렇게 가면 된다. 독서뿐 아니라 일상생활 모든 데서 도전 받고 응전 받는 걸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삶의 긴장감이 느껴진다. 최근 예능 프로그램 속 모습과는 다르다.(웃음) 역시 사람에겐 다양한 면이 있다. 다음 주에 유럽 여행을 간다고 들었다. 여행 작가가 오랜 꿈이지 않나? 여행서는 언제쯤 출간 예정인지.
그건 좀 시간이 걸릴 것 같다. 먼저 작업할 책이 있어서 준비 중이다.
어떤 책인가?
우리말로 옮기면 의미 전달이 좀 어렵던데. History of writing history. 일종의 ‘역사서 속의 역사’를 쓰고 있다. 역사 서술이 어떻게 바뀌어 왔는가를 찾아보는 책인데, 돌베개에서 나올 예정이다. 연말까지는 이 작업을 해야 해서 좀 바쁘다.
『국가란 무엇인가』를 읽은, 또는 읽을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 이런 책을 읽고자 마음먹은 독자에게 어쩌면 더 희망이 있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을 읽고 국가에 대해 이해를 하셨다면, ‘내가 사는 국가를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려면 내 몫은 뭐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뭐지?’를 생각해보셨으면 좋겠다. 그것이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정부의 한 책임자를 바꾸는 일도 수많은 사람이 보이지 않은 곳에서 노력해서 바뀐 게 아닌가? 일상적인 삶 속에서 헤아릴 수 없는 사람이 꾸준히 노력해야만 사회가 조금씩이라도 좋아지는 건 사실이니까. 그 일을 찾는데 조금이라도 이 책이 보탬이 된다면 더 없이 좋을 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