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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직업 특집] ① 앨리스 전 “멈추면 시작되는 새로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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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 저성장 시대, 고용의 종말, N포 세대, ‘으깬 아보카도 세대’… 무한히 늘어나는 비관적 시대 명과 세대명 안에서 사람들은 여전히 직업을 고민한다. 몇은 ‘헬조선’을 탈출하거나, 미래를 위해 현재를 포기하기보다 현재를 잡는 ‘욜로’를 택한다. 지금 하는 밥벌이를 넘어 다른 일을 꿈꿀 자유가 있을까? 한국 국적을 가지고도 외국에 나가서 일할 수 있을까?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스스로 외국에 나가 그 답을 찾아본 앨리스 전의 글은 카카오 브런치 구독자 1만 명을 넘어섰다. 당장 해외 취업에 관심 없는 사람이라도 커리어와 직업을 고민하게 만든 그의 글은 ‘첫 직업이 중요하다’는 통념에 맞서 틀에서 벗어나 도약을 위한 모험을 해보라고 권한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이 뭘 원하는지 아는 게 중요하고, 알기 위해서는 지금 자리를 벗어나 봐야 한다. 『당신의 이직을 바랍니다』에서 궁극적으로 원하는 건 이직이 아니라 변화와 ‘나 자신을 알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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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외국에서 일할 수 있을까요?


이력을 소개해 주시겠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STX에너지에서 3개월 정도 일했어요. 원래 계속 외국으로 가고 싶었는데, 회사를 들어가고 나서도 포기할 수 없더라고요. 직업 없이 싱가포르로 가서 5개월 정도 구직 활동을 하고 헤드헌팅 회사에 들어가 돈을 벌다가, 이게 정말 내 실력일까 아니면 시장이 호황이어서 그런 걸까 하는 불안이 들었어요. 장기적으로 먹고살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겠다 싶어서 인적 자원 관련 플랫폼인 링크드인에 들어갔다가, 지금은 P&G에서 브랜드 마케팅을 하고 있어요.


카카오 브런치에 글을 올린 계기로 책이 나왔어요.


싱가포르에 있을 때 부모님도 주변 분들도 걱정하시니까 페이스북에 제가 어떻게 지내는지를 종종 썼어요. 글이 퍼지면서 개인적으로 해외 취업 관련 상담이 많이 들어오더라고요. 열심히 이메일로 답장하다가, 시간이 지나고 질문이 쌓이다 보니 물어보는 내용이 다 비슷했어요. 그래서 주로 궁금한 내용을 블로그에라도 써 놓으면 사람들이 편하게 와서 읽을 수 있겠다 싶어서 쓰기 시작했어요. 또 하나는, 저는 외국에서 잘 지내는데 사람들이 외국 나가면 힘들 거라는 둥, 인종 차별이 있을 거라는 둥 겁을 줘서 다른 사람들이 하고 싶은 걸 막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하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막기보다 용기를 주는 게 훨씬 나아요.


주로 어떤 내용을 물어보나요?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건 ‘해외 취업을 하는 방법’이 아니고 ‘내가 해외 취업을 할 수 있냐’인 것 같아요. 항상 자기가 왜 해외에 가고 싶어 하고 자신이 어떤 상황인지 길고 자세하게 사연을 써서 보내요. 그리고 마지막에 항상 ‘저도 외국에서 일할 수 있을까요?’하고 끝을 맺거든요. 이 책이 그 질문에 대한 답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독자와의 만남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독자 만남에서도 질문을 많이 해주셨는데, 결국은 자기 경력이 이러이러한데 해외 취업이 가능한지 여쭤보시더라고요.


그만큼 한국 내에서 외국 취업의 기준이나 자료가 없어서 그런 걸까요?


방법은 많지만 지금 자신의 상황에 딱 맞춰서 말하는 건 또 다른 이야기인 것 같아요. 사람들은 전반적인 방법이나 답변보다 자신의 상황에 맞는 답변을 원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그래서 책의 결론이 ‘나만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인 것 같아요.


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하는 거잖아요. 자기가 어려운 상황에 부닥치거나 어려운 결정을 해야지만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게 뭔지 알게 되거든요. 그 전까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몰라요. 그 상황에 가야지만 자기가 사교력이 좋은 건지, 혹은 알고 보니 사람들이랑 말하는 게 부담스러워서 집에 와서 혼자 공부하는 노력파인지 알아요.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다 달라요. 수능을 보거나 입사 준비를 한다거나 하는 모두가 비슷하게 겪는 상황을 벗어나 전혀 다른 문제를 부딪쳐 봐야 그때부터 나만의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하게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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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질문해야 하는 시기


한국에서는 도전을 더 무서워하는 경향이 있어요. 커리어 부분에서도 그렇고요. 남들을 따라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공포가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더 커요.


예전에 책을 볼 때는 우리나라만 사계절이 있는 줄 알았어요. 항상 한국의 장점으로 사계절이 뚜렷한 아름다운 나라라고 하잖아요. 그렇지만 대부분 나라는 사계절이 있잖아요. (웃음) 그런 것처럼 한국이 강대국 사이에서 독립을 유지하면서 우리만의 강력한 정체성이 필요했던 게 아닐까요? 그러려면 모든 사람이 동일하게 생각하는 게 중요하고요. 이제까지는 산업 발전 단계를 빠르게 밟으면서 항상 모범답안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 질문해야 하는 시기가 왔다고 생각해요.


책에서 말씀하신 ‘커넥팅 닷(connecting dot)’처럼 다른 커리어를 서로 연결해 움직일 때, 사회적 안전망이 없으면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한국이 안전망이 없는 사회라는 이야기가 계속 나오는데, 싱가포르와 비교할 수 있을까요?


싱가포르도 안전망이 없어요. 대신 싱가포르는 기회가 많다는 것 자체가 안전망이에요. 한국 산업에서 손꼽는 대기업에 들어가면 비슷한 업계의 비슷한 규모의 회사로만 이직해요. 하지만 싱가포르는 전 세계 글로벌 회사들의 헤드쿼터가 다 있어서 옵션이 많았어요. 선택권이 많다는 것 자체가 망해도 아예 망하진 않게 해주는 것 같아요.


처음 싱가포르로 가야겠다고 생각했을 때도 그런 기회를 고려했나요?


할 수 있는 언어가 영어라면 영어인데, 영어를 쓰면서도 한국 관련 비즈니스가 많아서 한국인이라는 걸 강점으로 가져가는 나라가 아시아권에서 홍콩과 싱가포르 둘이더라고요. 홍콩은 조금 더 중국을 배경으로 하는 데다 산업 자체가 금융과 패션 중심지여서 저랑은 안 맞겠다 싶었어요. 싱가포르가 가장 일반적인 비즈니스를 많이 다루면서 세금이 낮아 글로벌 회사에 매력적인 곳이더라고요. 여러모로 생각했을 때 조건이 맞는 나라라고 생각했어요.


개인적인 안전망이 있었나요? 시도가 실패하면 그래도 부모님이 돌봐줄 거라는 기대라든지요.


부모님을 부양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것도 배부른 소리겠지만, 그래도 한 가지 안전망은 제가 부모님을 보살펴드리지 않아도 된다는 거였어요. 부모님은 알아서 살고, 저는 제 몸 하나만 처리하면 된다는 생각이었어요.


직업 없이 외국으로 나간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우려했을 것 같아요.


어머니가 제일 먼저 반대하고, 아버지도 반대하면서 ‘너 그렇게 특별한 애 아니야’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되게 상처받았어요. 부모님이 항상 ‘넌 잘할거야’ ‘넌 특별해’ 하시면서 정작 제가 원하는 일에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고 말리시니까요. 하지만 부모님을 설득해서 나가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어차피 설득은 안 될 거니까요.


해외에서 일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계기는, 한국에서는 도저히 답이 없다는 느낌의 절박함이었을까요?


저 한국 좋아해요. 우리나라 너무 사랑해요. 한국이 싫다는 것보다, 한국이 필요로 하는 걸 줄 수 있으면 중요한 인재가 되잖아요. 저는 공업 인재도 아니고, 기초 학문에 기여할 순 없지만, 상경계 학생으로 한국에 가장 필요한 건 세계화라고 생각했어요. 결국 우리나라는 제조업을 많이 하는 나라고 밖으로 많이 팔아야 하는데, 앞으로 한국은 외국으로 물건을 팔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할 것 같았어요.


선구안이 있으셨네요.


세계화가 필요하다는 건 다 알고 있어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 없고 그 답을 내놓는 사람들도 외국에서 많이 산 사람들은 아닌 거죠. 예를 들어 비빔밥을 세계화하겠다고 브랜딩을 하지만, 정작 외국인이 한국에 오면 삼겹살을 제일 많이 먹거든요. 삼겹살이 싱가포르에서 진짜 유명해요. 그런 것들을 보면서 외국 경험이 중요하고, 그 경험을 가진 사람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해외생활에 관한 동경도 있었나요?


한국에서는 길거리에서 모르는 사람을 붙잡고 ‘하이’ 하는 게 어렵잖아요. 그런데 여행을 나가 보면 외국에서는 그게 편하게 되더라고요. 저조차도 한국과는 다르게 마음이 열리는 것 같고요. 교환학생이나 외국에 놀러 갔다 오신 분들은 느낄 거예요. 나와 전혀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을 만나는 게 한국보다 훨씬 수월했어요.


다른 사람을 만난다는 것, 이상한 사람을 많이 만나는 것에 신나 하는 성격이신 것 같아요.


한국 대기업에 다닐 때 점심을 먹으러 내려가면 다 같이 남자든 여자든 모두 비슷한 생김새에 검은색 정장을 입고 있는데, 그 광경이 되게 숨이 막혔거든요. 어느 날 그 자리에 외국인이 앉아 있는데, 그 사람이 너무 튀어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그냥 그 사람 앞에 가서 여기서 일하고 있는 이유랑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 물어보는 게 너무 좋았어요. 낯선 것, 그리고 똑같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 항상 좋았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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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야 하는 일, 하고 싶은 일


‘싫다면 하지 않을 자유’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 쉽지 않아요. 한국에서는 늘 참으라는 교육을 많이 하니까요.


조금만 생각하면 너무 당연한 거예요. 내가 하고 싶은 거 하기 위해 태어났지 억지로 살려고 태어난 건 아니잖아요. 당장 경제가 너무 빠르게 성장해서 어제와 내일이 명백하게 달라지는 게 보이면 물결에 휩쓸려 갈 수 있는데, 경제가 저성장 하면 노력을 붓고 남들보다 조금 빨리 간다고 해서 되는 것 같진 않거든요. 부모님 세대가 기초 욕구를 충족 못 한 시대를 살아온 분들이라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하는 일이 먼저 오는 걸 배운 거고, 지금은 당연히 충돌을 겪게 돼요. 사실 저도 가끔 저의 한국인다움에 놀랄 때가 있어요. 재택근무를 하면 마음이 불안한 거예요. 10시부터는 항상 메신저에 있어야 할 것 같고요. 다른 나라 사람들이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하는 걸 보면 불편하다가, 지금은 그게 너무 당연하고 부러워요.


항상 거칠게 이분법으로 돈이냐 꿈이냐를 생각하게 돼요. 먹고 사는 기준이 어디까지인가도 흔들릴 것 같고요. 외국에서는 먹고 사는 기준이 충족되는 느낌이 있었나요?


한국에서 길이 그렇게 많이 보이진 않는다는 게 있긴 있어요. 회사에 다니다 나가면 다 거기서 거기라고 말하는데, 그게 맞긴 맞거든요. 창업을 하거나 아니면 비슷한 분위기의 비슷한 분야의 회사로 이직밖에는 답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외국에서는 상품 같은 걸 만들 때도 훨씬 다양한 소비자들이 있어서 아무리 니치 시장(Niche market)이라도 인원이 꽤 되는 거예요. 한국보다는 훨씬 내가 어디에 맞춰서 살아갈 수 있을지 잘 보였던 것 같아요.


첫 번째 직업은 중요하지 않다고 강조해주셨어요.


외국에서는 대기업 공채로 모든 걸 가르지 않아요. 당연히 학교를 막 나왔고 많은 역량을 기대하지 않으니 첫 직업에서는 역량과 적성을 발견해 가면서 움직이는데 한국에서는 공채가 자격증인 것처럼 따라다녀요. 이게 떼어지지 않아서 한국에서는 더 어려운 것 같긴 해요. 하지만 지금은 안정적으로 비즈니스를 해도 다음 단계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태라서 희망이 있어요. 큰 기업에서도 새로운 영역에 들어가고 싶은데 잘 못 하겠으니 경험했던 사람을 데리고 오는 추세예요. 그래서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보고 뜨는 산업을 습득한 사람은 여기저기 필요로 하기 때문에 이직이 쉬운 편이에요.


일단은 뜨고 있는 산업에 들어가 보고, 그 이후에 자신이 원하는 걸 찾아서 가는 게 좋다는 말씀인가요?


사람마다 원하는 게 달라서 어떤 사람은 취미가 중요하고 회사는 돈 주는 존재일 뿐일 거예요. 그리고 어느 정도 내 시간을 보장해 준다면 대기업에 가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하지만 첫 직업은 항상 자신이 선택하는 게 아니라 회사가 나를 선택하는 거더라고요. 최선을 다해서 연락하고 지원하면 회사가 선택하지, 결코 내가 목표한 모든 곳에 갈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어떤 회사가 나를 선택했다면, 그 회사에서 월급을 받으면서 다시 시작해 보는 거죠.


처음 싱가포르에서 취직했던 회사에서는 거의 최저시급에 가까운 연봉을 받고 들어갔는데, 이후로 연봉 협상은 어떻게 하셨는지 궁금해요.


항상 한국과 외국이 다른 점이라고 느낀 게, 외국에서는 정말 성과평가가 엄격해요. 연봉협상은 그 자리에서 협상하는 게 아니라 몇 개월 전부터 이미 시작된 거예요. 산업과 회사 상관없이 매니저와 일주일에 한 번씩은 일대일로 미팅을 하는데, 제가 얼마를 회사에 벌어왔고 기여했는지 명백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그 이후에는 제 가치가 보여요. 제가 이 회사에서 제일 돈을 많이 버는 헤드헌터라면, 이 회사는 저를 놓치면 안 되거든요. 스스로 연봉을 올려달라고 말할 필요 없이 매니저가 줄 수 있는 최대한을 줄 거예요. 영업처럼 명확하게 돈으로 보이는 분야가 아니라면 제가 했던 일에 관해 매니저에게 꾸준히 알려줘야 하겠죠. 상사가 제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아는 게 중요해요. 제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알게 되면 연봉 인상은 따라와요.


일단 성과로 내보여야 하는 거네요.


한국에서 성과 평과가 불공평하다고 들었어요. 승진할 차례에 따라서 한 사람에게 점수를 몰아준다든지요. 그럼 열심히 일할 맛이 안 나죠. 오히려 성과 중심의 환경에서는 제가 하는 만큼 보상으로 돌아오니까 그런 면에서는 훨씬 좋은 것 같아요.


일하면서 커리어 패스가 흔들리는 시점은 언제였나요?


과거에 해왔던 경험이 쌓이면서 먹고는 살겠다는 확신이 생긴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 하는 일이 제 적성인지는 항상 헷갈리고, 이게 정말 나를 얼마나 건강한 질문인 것 같아요. 오히려 세상에 자기 커리어에 만족하면서 사는 사람이 적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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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직’은 변화하라는 의미


외국에 나와 보니 기업 문화가 궁극적으로 좋은 사람을 키우는 목표로 나가고 있다고 하셨어요. 어떤 식의 문화인가요?


예를 들면 회사 자체에서 직원들이 봉사활동을 하도록 격려해요. P&G에서도 NGO를 초대해서 마케팅 문제들을 같이 풀어주는 워크숍을 했는데, 이런 걸 하면 회사 입장에서는 시간과 돈을 쓰는 거예요. 하지만 행복하게 준비해요. 왜냐하면 물건만 파는 것보다 회사를 도울 수 있다는 역량이 있다는 걸 알 때 직원이 행복하니까요. 그리고 기본적으로 아이가 아프면 부모는 당연히 집에 가는 거예요. 당연하게 가족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걸 회사나 직원 모두가 이해하고 있는 거죠. 한국 회사에서 퇴근한다고 그러면 눈치 준다는 것도 듣긴 들었는데, 회사가 개인 삶을 존중하는 정도가 다른 것 같아요. 생각해보면 회사는 인격체가 아니고 그저 조직일 뿐인데 어떻게 회사가 개인의 삶을 존중해줄 수 있겠어요. 결국은 회사에 있는 리더나 매니저가 이해를 해주냐 안 해주냐의 차이인 것 같아요.


한국이든 외국이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부담은 다 비슷하긴 할 것 같아요. 이민 1세대로서의 다급함도 외국에서 성과를 내는 데 영향이 있을까요?


항상 불안해요. 제가 외국에서 회사를 잘리면, 비자도 없어지고 당장 며칠 만에 그 나라를 나가야 하잖아요. 그렇다고 그게 힘들었냐 하면 그것도 아니거든요. 이민 세대는 현지 사람들과 경쟁하지 않고 항상 제3의 무언가로 분류되기 때문에 호의를 좀 더 받기도 해요. 뭐라 설명할 수는 없는데 이민자들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장점이 있어요. 다른 나라에 와서 살고 세상이 넓은 걸 본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쉽게 판단하지 않는 어떤 관점이 생기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에게 조금 더 마음을 열게 되고 서로 소통하게 되고요.


책 제목이 『당신의 이직을 바랍니다』이지만 이직 자체가 중요한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해외로 눈을 돌려보라는 의미도 있겠고요.


변화하라는 의미도 있었어요. 이직을 생각할 때는 항상 자신이 다니는 회사 밖에 다른 게 좋아 보이는데 지금 가진 걸 포기하기 어려운 상태잖아요. 그 상황에서 변화를 택했으면 좋겠어요. 자신이 변해야겠다는 마음이 든 순간 이미 문제가 생긴 거거든요. 행복하지 않으면 더 나아질 가능성은 항상 있어요. 변화 전 갈등과 고민하는 순간이 가장 최악이에요. 저도 외국 가기 전 회사를 그만두고 나가기 전까지의 고민이 가장 힘들었어요. 하지만 정작 변화하고 나면 새로 습득해야 할 게 너무 많고, 이렇게 다양하고 재밌는 세상이 있는데 고민할 게 없어요. 이직을 고민할 때가 제일 힘들어요.


‘이직’이 아니라 ‘변화를 바랍니다’였네요.


제목을 ‘변화를 바랍니다’라고 하면 시적이지 않아서요. (웃음) 자신이 회사에서 조금만 있으면 승진할 단계인데 누가 내 앞으로 오는 게 싫고, 그러면서 본인은 나갈 생각이 없는 고인 물이 된 사람들이 있어요. 적응력을 상실하고 회사에 남아 정치를 하고 리더에게 예쁨을 받는 게 편안하다면 회사는 경쟁에도 뒤처질 거고 개인에게도 좋지 않아요. 이런 사람이 이직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어요. 당신이 지금은 편하지만, 조금만 있으면 당신도 불편하고 당신 회사도 편한 상태가 아니게 될 거예요. 그게 안타까워서 이 제목을 썼어요.


꾸준히 사용되는 단어 중 ‘헬조선’이라는 말이 있어요. 세대 갈등으로 치환되기도 하고요.


한국에 들어오면 갑자기 턱에 보톡스를 맞아야 할 것 같고, 미용실이나 마사지샵도 한 번 더 가야 할 것 같아요. 안 하면 뒤처질 것 같은 분위기가 사회 전반에 있어요. 외국인들도 한국에 오면 갑자기 다른 서비스를 찾기 시작해요. 그게 어른들 세대만 만든 건 아닌 것 같아요. 뒤처지면 안 된다는 부담감은 세대와 상관없이 다 가지고 있어서, 한국만 나가면 괜찮아지더라고요. (웃음)


현재 P&G 마케팅 일은 만족하시나요?


제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일에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연장을 챙기는 과정이랄까요. 분명히 배울 건 많은 회사인데, 여기서 꾸준히 같은 일을 하고 싶냐고 물으면 그건 아니거든요. 더 재미있는 일을 찾는 도중에 이 경력이 중요한 디딤돌이 되어줄 거라는 의미에서 만족해요.


요새 꿈이 감자 농장을 짓는 거라면서요.


감자 농장은 핑계고요,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어요. 다양하고 똑똑한 사람들과 만나서 토론하는 게 저는 제일 재밌어요. 그것만 하고 살 수 있으면 좋겠어요. 물건에 대한 욕심은 별로 없거든요. 버릴 수 없는 게 집이랑 먹을 거라면, 감자 농장이랑 집이 있으면 해결되고, 그러면 아티스트나 독특한 사람들을 초대해서 재미있게 같이 살고 싶어요. 그리고 하나 더 욕심을 부리자면 유럽의 난민을 도울 수 있는 일을 했으면 좋겠어요. 장소와 커뮤니티가 형성되면 그 사람들의 재교육을 도와준다거나 하는 같이 할 수 있는 일이 생길 것 같아요.


책 쓰기 잘했다고 생각한 리뷰가 있었나요?


책을 읽고 자기가 하고 싶지 않았지만 억지로 했던 일을 멈췄다고 한 분을 보고 제일 뿌듯했어요. 그게 노력하는 삶이거든요. 자신이 원하지도 않았는데 하던 일을 멈추면 그때부터 멈출 줄 알게 돼요. 한 번 하면 할 수 있는데 그걸 멈추지 못해서 계속 끌려가는 거잖아요. 그리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어요. 오늘은 해외 취업을 원했지만 내일은 갑자기 한국 대기업에 들어가고 싶을 수도 있어요. 원하는 건 언제든지 바뀔 수 있지만 원하지 않는 걸 멈추는 건 결정과 선택이 필요한 일이에요. 일단 멈추면, 다른 게 시작될 거거든요. 
 


 

 

당신의 이직을 바랍니다 앨리스 전 저 | 중앙북스(books)
‘노오력’을 강요받는 세상에서 더 열심히 한다고 달라질 것 같지 않을 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평범한 사회 초년생이었던 저자 앨리스는 평생 먹고살 수 있는 배틀필드(battlefield)를 찾아 더 넓은 세계로 뛰어들었다. 어렵게 들어간 대기업 STX를 3개월 만에 그만두고 무작정 싱가포르로 떠난 저자는 결국 그토록 원했던 워크&라이프 밸런스가 있는 삶을 쟁취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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