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비너스』는 어느날 고양이를 진찰하던 수의사 하쿠로가 의문의 전화를 받으면서 시작된다. 울리는 벨소리는 미스터리 소설에서 고전적으로 쓰는 도입부지만, 히가시노 게이고는 클리쉐를 쓰면서도 흥미진진함을 놓치지 않는다. 이공계 출신의 추리소설가라는 독특한 이력으로 첨단 과학이나 의학과 같은 주제를 능수능란하게 다루기도 한다. 1985년 에도가와 란포 상을 받으면서 데뷔한 후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추리소설, 사회파 소설, 판타지 등 다양한 분야의 작품을 50편 넘게 발표하면서도 자신의 사생활을 드러내지 않는 작가이기도 하다.
노출을 적게 하기로 유명한 히가시노 게이고를 대신해 번역가 양윤옥에게 『위험한 비너스』만의 매력이 무엇인지 서면 인터뷰를 요청했다. 번역가 양윤옥은 1992년 무렵부터 번역을 시작해 히라노 게이치로의 『일식』, 아사다 지로의 『철도원』,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등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작품을 번역한 대표적인 일본 문학 번역가이다.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이 워낙 많기도 하지만, 그중에서도 번역가에 양윤옥의 이름이 빠지지 않습니다. 같은 작가의 작품을 계속 번역하는 소회가 궁금합니다.
맨 처음 번역한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은 2007년 『붉은 손가락』이었습니다. 아, 그게 벌써 십 년 전이네요. 그 뒤로 <가가 형사 시리즈>를 연달아 번역하게 됐습니다. 『악의』에서부터 『졸업』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 『내가 그를 죽였다』 『잠자는 숲』, 그리고 개인적으로 아주 인상 깊었던 단편집 『거짓말 딱 한 개만 더』까지 일곱 권이 연속으로 나왔습니다. 덕분에 히가시노 게이고만이 가진 특징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죠. 한 작가를 이만큼 집중적으로 번역할 기회를 가진 것은 번역자로서 큰 영광이고 행운입니다.
『위험한 비너스』는 출간과 함께 베스트셀러 목록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는데요. 번역가가 봤을 때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이 사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우선 문체가 담백해요. 이 작가는 각각의 등장인물의 생각이나 감정, 주장을 단순히 관찰하는 역할만 하는 느낌이 듭니다. 작가 자신의 생각은 거의 드러나지 않아요. 자신을 최대한 감추는 포즈를 취하는 것이죠. 게다가 등장인물과도 일정한 거리를 둡니다. 마치 타인처럼. 타인이니까 이 작가는 등장인물들의 의식을 알지도 못하고 굳이 헤집으려 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그들의 행동이나 말을 관찰해서 그대로 기록하는 식이에요. 이건 소설이 감정 묘사나 의식의 흐름 쪽으로 기우는 것을 막아주는 아주 효과적인 장치가 됩니다. 특히 추리소설은 냉정한 객관성을 어떻게 끝까지 견지하느냐가 중요하니까요. 작가 자신의 주장은 마지막까지 최대한 감춰두고 등장인물이 스스로 움직일 때까지 기다린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일정한 거리를 두고 마치 타인처럼 관찰한다―. 거기서 담백한 문체가 나오는 것 같아요. 사건 위주의 속도감 있는 전개도 그런 장치 덕분에 가능합니다. 그래서 읽기도 편하고 재미도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물리법칙과 수학 문제, 과학적인 법칙을 잘 쓰기로 유명합니다. 특히 이번 작품에는 프랙털 도형, 울람 나선, 리만 가설 등 생소할 만한 단어들을 검색하셨다고 하셨는데요. 이번 작품을 통해 새롭게 알아낸 사실이 있다면요? 비과학전공자로 번역에 어려움은 없나요?
이 작가는 정말 공학 전공자답게 과학 분야의 소재를 자주 사용합니다. 이번에도 그런 단어들이 소설 곳곳에 점점이 박혀 있어요. 하나같이 과학자, 수학자들이 평생을 바쳐 연구한 것들입니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세기의 난제도 있고. 그런 걸 모두 다 이해하고 소설을 쓴다거나 번역한다는 것은 애초에 어려운 일입니다. 단지 겉핥기가 되더라도 가능한 한 많은 자료를 훑어보고 만져보고 냄새도 맡고 귀로 들어보기도 한다, 라는 과정을 거치는 정도예요. 이건 뭘까, 궁금하다, 라는 순수한 호기심이 충족될 때까지 실컷 둘러봅니다. 인터넷이 있어서 정말 좋죠. 거의 은총입니다. 마감 날 따위는 잊어버리고 이 사이트 저 사이트 인터넷 서핑으로 며칠을 보내기도 합니다.
수많은 과학의 성과 중에서 이 작가가 그 소재를 골라냈을 때는 아마 그보다 몇십 배의 ‘반짝이는 호기심’을 갖고 자료들을 섭렵했겠지요. 그렇게 해서 마침내 콕 집어낸 것이니까 이건 뭐, 재미있지 않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할 거예요.
잘 알지 못하는 소재가 나왔을 때, 그것을 흡족할 때까지 훑어보는 과정을 거치면 번역의 질이 달라질까? 그건 잘 모르겠어요. 아무튼 ‘아차, 내가 이렇게 서핑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 다음 주 월요일에는 번역원고 보내야 하는데’라고 안달복달하면서도 역시 좀 더 알아보는 짓을 ‘저절로’ 하게 됩니다.
이를테면, 「옮긴이의 말」에서도 말했지만, 서번트증후군 화가 스티븐 윌트셔에 관한 것. 이건 이번에 『위험한 비너스』를 번역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정말로 재미있어서 서핑을 멈출 수 없는 서프라이즈’였어요. ‘인간 카메라’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사람입니다. 그가 전 세계 도시의 상공을 한 차례 비행한 뒤에 자신의 뇌에 저장된 도시 모습을 대형 캔버스에 그대로 재현하는 프로젝트. 관련 내용이 인터넷에 많이 올라와 있습니다. 이미 아시는 분도 많겠지만, 아직 모르시는 독자분들은 인터넷으로 꼭 검색해보시기를 권합니다.
반전이 있는 소설도 많이 작업하셨습니다. 첫 번째 독자로 반전을 즐기고 나서, 번역을 하려고 다시 앞부분으로 돌아오면 처음에는 지나쳤던 내용이 새롭게 다가오기도 할 것 같은데요, 『위험한 비너스』는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추리소설은 되도록 미리 읽지 않고 곧바로 첫 번역에 들어갑니다. 미리 읽어버리면 ‘복선’이나 ‘반전’을 이미 아는 상태에서 번역하게 되겠죠. ‘안 본 눈 삽니다’라는 재미있는 말이 있는데, 첫 번역 때는 ‘안 본 눈’이 필요한 게 아닌가 합니다. 아무래도 자칫 무의식중에 ‘이미 아는 눈’으로 단어를 선택하지는 않을지, 걱정이 되거든요. 첫 번역 때, ‘엇, 이거 뭐야?’라는 독자로서의 두근거리는 즐거움이 담겼으면 하는 바람에서 되도록 미리 읽지 않으려고 하는 편입니다.
『위험한 비너스』는 사전 검토를 위해 미리 읽었지만, 다행히 여러 개의 미스터리가 복잡하게 얽혀 있고, 마지막 대반전을 위한 복선이 전체적으로 삽입되어서 미리 읽었던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되었습니다. 아무튼 여주인공 자체가 복선이었으니까요. 두 번째, 세 번째 윤문(번역 문장을 고르는 작업) 때, ‘이미 아는 눈’으로 그녀에 관한 부분은 다시 미세하게 조정하는 작업을 해야 했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사생활을 절대 밝히지 않는 작가로도 유명합니다. 작가의 폐쇄성이나 작가의 기존 인터뷰 등 작가의 생활이 번역에 영향을 끼치는 게 있나요?
이상한 말인지도 모르지만, 작가와 작품은 별개의 생물입니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자신의 손을 떠난 작품을 자기 스스로 이러니저러니 말하는 것을 쑥스러워해요. 내가 쓴 것이 아니라 나에게 잠시 들어온 ‘소설의 신(神)’이 쓴 것, 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요. 문학론, 사상론을 공식적인 자리에서 밝히는 작가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사적으로 만나면 자신의 소설에 대한 이야기보다 오히려 평범한 사람으로서 일상적인 잡담을 나눕니다. 번역자로서 작품에 대해 무한한 존경과 애정을 품고 있지만, 저는 작가를 꼭 만나고 싶다는 생각은 별로 해본 적이 없습니다. 번역은 작품과의 일대일 대결, 이라고 할까요.
물론 작품에 대해 밝힌 문학론, 사상, 인터뷰, 기사 등은 번역하는 동안에, 혹은 마무리하는 단계에서 찾아봅니다. 독자를 소설로 이끌어주는 재미있는 얘깃거리가 되니까요.
앞서 히가시노 게이고 문체가 담백하다고 하셨지요? 상대적으로 다른 문체의 작가보다 번역이 쉬운 편일까요?
중문(重文), 복문(複文)이 줄줄이 이어지는 문장은 번역하기도 어렵고 독자가 읽기도 어렵습니다. 등장인물의 의식세계나 어떤 일의 내밀한 기척을 정밀하게 포착해내려는 소설이죠. 이런 소설들은 난해함이 미덕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히가시노 게이고는 문장이 짧고 스토리 위주로 속도감 있게 진행되니까 상대적으로 번역하기 쉬운 편입니다. 추리소설은 원래 오락성을 추구하는 장르라서 대부분의 추리 작가들이 쉽게 잘 읽히는 ‘재미’에 중점을 두지 않을까요. 그런데 술술 읽히는 문체라는 게 말처럼 그리 쉽게 써지지 않아서 이것에 성공하는 작가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문체는 번역자에게는 고마운 텍스트입니다. 다만 짧고 쉬운 문장일수록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 경우도 없잖아 있기는 합니다.
여름 추리소설을 찾는 이들에게 히가시노 게이고는 재미와 분량을 절대적으로 보장받는 작가이기도 합니다. 분량이 많다는 건 번역 일이 많다는 뜻이기도 할 텐데요. 번역하는 데 얼마나 걸리셨나요? 긴 분량의 작품을 번역할 때 짧은 분량의 작품과 다른 점이 있나요?
네, 책의 ‘볼륨’도 재미의 중요한 요소지요. ‘두툼한 소설’을 머릿속에 그려보니까 그냥 독자로서 아주 흐뭇한 기분이 드네요. 그걸 들고 어딘가에 틀어박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고 있는 장면―.
두툼한 소설은 단순히 원고지 매수가 많다는 것만이 아니라 그 작품을 ‘살아내는’ 기간이 길어진다는 뜻입니다. 한 작품을 일주일을 사는 것과 두 달을 사는 것은 거기에서 살고 있는 동안에도, 거기에서 벗어날 때도 전혀 다른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단편이나 중편을 ‘작은 방’이라고 한다면 대작 장편은 ‘큰 방’인가, 그렇지는 않고 아예 규모가 다른 ‘건축물’이 되어버립니다.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시선도 있어야 하고, 균형도 잘 잡아야 하고, 마음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점점 가중되는 피로도 적절히 조정해야 합니다.
얘기하다 보니 뭔가 거창해졌네요. 어떻든 좀 힘들더라도 두툼한 책을 번역했을 때 훨씬 더 뿌듯한 보람이 있고, 물론 번역료도 두둑해집니다.
줄거리의 핵심이 되는 그림 <관서의 망>에서 ‘원망’의 반대말로 ‘관서’를 고르셨는데, 혹시 염두에 두었던 다른 단어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관서(寬恕)’는 ‘죄나 허물을 너그럽게[寬] 용서(容恕)함’이라는 뜻입니다. 어려운 한자어죠. 저도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아예 독자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관용(寬容)’이나 ‘용서’로 바꿔버릴까, 아니면 비슷한 말로 ‘관면(寬免)’이 그나마 나을까, 많이 망설였습니다. 아, ‘관면’도 낯설기는 마찬가지인가요?
어려운 한자어를 쓰면 불편해하고, 때로는 ‘일본어를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뒀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번역하는 사람으로서는, 작가가 ‘용서’나 ‘관용’, 혹은 ‘너그럽게 봐줌’이 아니라, 일본에서도 잘 쓰지 않는 ‘관서’라는 단어를 어렵사리 선택해서 썼을 텐데 그걸 마음대로 바꿔버리자니 아무래도 주춤하게 됩니다. 짧은 한자를 한글로 풀어쓰면 아무래도 문장이 길어지는 것도 마음에 걸립니다. 이것을 정확히 담아낼 우리말이 없을지, 네, 나름대로 고민하죠. 작가와 독자 사이에서 줄타기랄까. 한자에 대한 방침이 다른 두 나라 사이를 중재하는 작은 외교전이랄까.
정 생각이 안 날 때는 ‘우리말 사전에 실려 있는 단어라면 되도록 작가의 뜻을 살리기’로 하고 있습니다. 독자분이 소설을 읽는 동안에 새로운 우리 한자어를 익힐 기회, 라고 둘러대면서.
일본어의 음독 방법으로 인해 줄거리가 진행되는 등, 번역자의 각주를 달아야만 이루어지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각주를 달지 않기 위해 애쓰는 편인가요?
동음이의어의 언어유희, 철자나 구절을 바꿔서 전혀 다른 뜻을 만들어내는 아나그램은 번역자에게는 악몽의 패닉입니다. 정말로 꿈을 꿔요. 딱 맞는 우리말을 내놓아라, 안 그러면 구워 먹겠다~. 성공하는 비율은 낮고, 결국 주를 달게 됩니다. 주가 길어지면 독서의 몰입도를 해친다는 게 일반론입니다. 특히 스토리 위주로 속도감 있게 진행되는 소설은 주를 최대한 짧게 효과적으로 치고 빠져야 합니다. 꼭 필요할 때는 다 읽은 뒤에 되짚어볼 수 있게 「옮긴이의 말」에서 언급하기도 합니다.
번역자로서는 주를 마음껏, 아주 길게 달고 싶을 때가 더 많습니다. 하지만 지면은 한정되어 있으니까 작품 이외의 내용은 최대한 잘라내는 것이 바람직하겠지요.
워낙 많은 작품을 번역하면서도 「옮긴이의 말」이 빠지지 않습니다. 독자 입장에서는 작품을 이해하는 재미를 주지만, 기존에 있던 소설을 번역하는 것과 달리 「옮긴이의 말」은 직접 써야 하는 부담이 있는데요. 보통 어떤 내용을 중점적으로 쓰고자 하시나요?
「옮긴이의 말」, 네, 이것만 안 써도 번역하기가 수월할 것, 이라고 투덜거릴 때가 많습니다. 소설 한 권을 번역하면서 완전히 불태워버렸는데 그 재를 다시 뒤적여 한참 더 불씨를 유지해야 하니까요.
우선 최대한 많은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하려고 합니다. 공식적으로 알려진 등단 과정, 문단 내에서의 위치, 작품 경향, 수상 내역, 일화 같은 것들이죠. 두 번째로는 칭찬할 만한 점을 빠짐없이 찾아내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 책을 사주신 독자를 위해 장점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최대한 맛볼 수 있도록 안내한다고 할까, 그런 작업입니다.
역자님만의 번역 방법이 있나요? 가령 하루에 언제 일어나 작업은 어떻게 하는지 등 사소한 방법이 듣고 싶습니다.
27인치 모니터를 쓰고 있는데, 큰 화면을 둘로 나눠 등장인물의 이름, 지명 등을 한쪽에 메모하면서 일하면 편리합니다. 그리고 첫 번역 때는 자칫 단어에 집착하면 나무만 보고 숲을 잃는 우를 범할 수 있으니까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문장 속에 일단 다 적어놓고 앞으로 척척 나아갑니다. 전체를 파악한 뒤에 차근차근 생각해나가면 되니까요. 등장인물의 관계도는 따로 손으로 직접 그려두는 게 좋습니다. 아날로그가 필요한 순간이죠.
윤문 작업은, 첫 번역을 한 부 남겨놓고 따로 복사해서 하는 것이 좋습니다. 두 번 세 번 문장을 고르다 보면 ‘첫 느낌’이 사라질 수 있는데, 그런 때 아직 흥분이 생생한 첫 번역이 도움이 됩니다.
장시간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일이라서 스트레칭은 필수입니다……. 라고 생각하는데 깜빡 잊어서 몸이 굳어버릴 때가……. 매번 작심삼일로 끝나지만 산책이나 스포츠센터, 주민센터 운영 프로그램, 휴일을 갖자, 라는 로망은 포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일본 문학 번역 전문가로 자리매김하셨는데, 문학 중에서도 추리소설부터 스릴러, 인터넷 소설, 라노벨 등 작품 폭이 넓습니다. 전혀 다른 작품을 동시에 작업하거나 바로 바꾸어서 작업할 때는 어떻게 하시나요?
「옮긴이의 말」을 보내고 ‘아, 이제 진짜 끝났다~’라는 실감이 드는 순간, 그 소설은 망각의 세계로 사라집니다. 뭔가 다 불태웠다고 할까, 최선을 다해 온갖 애증의 격전(추태 포함)을 벌인 끝에 이제 이별해도 여한이 없다고 할까. 아주 나중에야 다시 어느 대목이 불현듯 생각나는 일은 있지만, 일련의 작업을 끝낸 직후에는 그야말로 슈슈슉 미련 없이 빠져나가는 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한 권 끝냈으니 놀러 나가볼까, 라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그간 밀려나 있던 새 소설의 스토리가 더 궁금합니다. 당장 ‘새 글’ 표시를 마우스로 콕 찍을 때가 전체 번역 과정 중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입니다. 아마도 번역자의 가장 중요한 자질은 ‘이야기를 광적으로 좋아한다’는 것과 ‘성질 급함’이 아닌가 싶습니다. 장르 불문, 시대 불문, 난해도 불문, 이라는 게 가장 이상적이지요. 각각의 작가마다 개성 강한 톤으로 써내는 문장이니까 번역자의 할 일은 그것에 최선을 다해 몰입하는 것뿐입니다.
기점 언어에 친숙한 독자들이 번역에 아쉬움을 표하는 때도 잦습니다. 특히 원작의 팬층이 두터울수록 번역에 관한 여러 말이 나올 텐데요, 독자 반응도 확인하는 편이신가요? 번역을 평가하는 말을 들을 때 어떤 기분인지 궁금합니다.
번역은 반역이다, 라는 명언을 만들어낸 분의 심정을 해가 갈수록 더욱더 실감합니다. 새 소설이 출간되면 독자들의 반응을 검색해보기도 합니다. 모골이 송연하죠. 번역할 때 참고하기도 하고, 눈에 띄는 대로 해명할 것은 해명하고 사과할 것은 사과하기도 합니다. 독자 여러분께 부디 잘 봐주십사고 이 기회에 인사 올립니다.
번역하신 책 중에서 가장 애정을 느끼시는 작품이 있나요? 혹은 가장 우여곡절이 많았거나 인상 깊었던 작품이 있으신지요.
아사다 지로, 무라카미 하루키, 오쿠다 히데오, 나카무라 후미노리, 이사카 고타로, 그리고 사쿠라기 시노……. 젊은 작가로는 스미노 요루, 오카자키 다쿠마……. 모두 다 열거할 수가 없네요.
가장 애정을 느끼는 작품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마음을 들볶지 않는 착한 소설이에요. 사람살이의 깊은 기척을 어떤 과장도 없이 스르륵 길어 올리고, 게다가 적절히 통속적이기도 합니다. 뭔가 힘들고 세상이 시끄러운 때일수록 친구처럼 곁에 두고 위안을 받고 싶은 소설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작업은 히라노 게이치로의 『장송』입니다. 1, 2권을 합해 천육백 페이지의 대작입니다. 그해 늦가을과 겨울, 봄의 차가운 책 냄새가 아직도 기억날 정도. 책장 사이사이에서 쇼팽의 음악이 물처럼 흐르는 소설입니다.
마지막으로『위험한 비너스』를 추천하는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일단 읽기 시작하면 끝까지 다 읽고 싶다, 라는 소설의 재미가 단연 뛰어납니다. 몇 개의 스토리가 정교하게 엇갈리는 것도 대단합니다.
단지 이 이야기는 ‘일본 남자들, 어째 패기가 없고 약해빠졌어. 안 되겠다, 일단 속마음을 솔직하게 다 말해버리게 하자!’라는 발상에서 시작한 기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여성 독자들에게는 마음 불편한 부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아직 한국 남성들은 그런 위로를 받을 단계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관서의 망’을 좀 더 너그럽게 펼치고 읽는다면 정직에서 출발한 뜻밖의 해결책이 찾아지지 않을까,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