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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려령 “온기 없는 글은 쓰고 싶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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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주네 가족이 여름휴가를 간 곳은 남쪽 끝 ‘부유도’라 불리는 플로팅 아일랜드였다. 떠다니는 이 섬은 전화도, 인터넷도 되지 않지만 이국적이고 잘 정돈된 풍경과 친절한 사람들이 있는 곳이다. 덕분에 강주네 가족은 기쁜 마음으로 휴가를 시작한다. 어딘가 이질감이 느껴지기 전까지는 그랬다.

 

김려령의 신작 동화 『플로팅 아일랜드』는 은밀하고 악의적인 차별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신비로운 ‘섬’이라는 세계에서 분투하는 인물들을 통해 변화와 희망을 말한다. 희망은 명백하게 섬의 아이들에게서 나온다. 강주가 만난 초이와 초아, 수 등 섬의 아이들은 숨죽이는 어른들과 다르게 의연함과 강인함이 있다. 그리고 이들은 작가가 목격한 아이들의 모습과 매우 닮았다. “차별, 정서적인 억압, 오로지 미래의 일꾼으로만 만들려는 환경 속에서도 아이들은 멋지게 성장하고” 있던 것. 이들이 섬에 놀라운 변화를 가져오리라는 기대와 희망이 이야기 속에 가득하다. 그 온기가 동화 바깥으로 퍼져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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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이 참 자랑스럽다


오래 담아 두었던 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반짝 떠오른 이야기도 있잖아요. 이 소설은 어느 쪽이었는지 궁금했어요.

 

반짝, 하고 온 거예요. 그런데 발표하기까지는 오래 걸렸어요. 지금까지 발표한 동화 중에서는 가장 오래 걸렸죠. 이것은 단번에 쓰인 동화였거든요. 그런데 발표 시기가 고민이었어요. 이 이야기를 조금 더 공감할 수 있는 시기를 생각한 거예요. 처음에는 햇것이라 품고 있었고요. 몇 년 지나서는 성인 소설을 발표하느라 잠깐 밀렸는데요. 동화를 내려고 했을 때는 『탄탄동 사거리 만복전파사』와 이 작품을 두고 조율하다가 또 뒤로 밀렸어요.

 

공감할 수 있는 시기, 라면 무엇이었을까요? 짐작할 만도 하고요.


여행 동화잖아요. 기차도 타고, 배도 타요. 여객선 안에서 먹고, 놀고, 까불까불 하는 이런 모습이 모두 여행인데요. 발표할 때 다 삭제됐어요. 세월호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요. 즐겁게 내보낼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우리 모두가 그 상처를 안고 있고, 그보다 더 큰 상처를 안고 계신 생존자 분들과 유가족 분들이 계시는데 이런 이야기를 발표하는 것은 무책임해보였어요. 이 작품으로 힘든 세상, 어른들이 만든 엉망진창인 세상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참 잘 버티고 있더라, 라는 말을 하고 싶었거든요. 아이들은 이런 세상에서도 조금씩 움직이고 있어요. 그래서 너희들이 참 자랑스럽다고 말을 하고 싶었는데 그게 너무 위선적인 것 같았어요. 나의 책임을 미래 세대에게 미뤄버리는 것 같더라고요. 어른스러움을 보여준 뒤에 이 이야기를 해야지 무조건 희망을 던져놓는다고 될 일인가 싶었던 거죠. 발표가 계속 밀릴 수밖에 없었어요.

 

이제는 사회의 변화를 보신 건가요?


초고를 끝냈을 때는 계속 격변기였죠. 어른들도 우왕좌왕했을 때였고요. 지켜보자고 하면서도 무기력했어요. 그런데 작년에 무기력이 줄기차게 이어지다가 근사하게 목소리를 냈다고 생각해요. 축제 같았죠. 게다가 그 촛불 정국에서도 중학생, 고등학생들을 봤잖아요. 『플로팅 아일랜드』에서도 초이, 초아가 아버지 대신 쓰레기를 치워요. 어린 나이에 일을 하면서도 상당히 멋있어요. 세상에 대해 겁먹지 않아요. 의연함이 있죠. 그런 모습을 그때 본 거예요. 실제로도 그렇거든요. 광장에 모인 아이들 아니어도 똑같아요. 애초에 그런 모습을 보고 써야겠다고 생각했던 건데요. 우리가 엉망으로 만든 이런 온갖 차별, 정서적인 억압, 오로지 미래의 일꾼으로만 만들려는 환경 속에서도 아이들은 멋지게 성장하고 있던 거예요. 참 의연하게 잘 자랐더라, 그것이 내게도 감지가 된다, 이런 말을 하고 싶었어요.

 

그것은 실제 만난 청소년들의 이야기이기도 한가요?


저희 아이 친구들도 그랬고요. 북콘서트에서 만난 청소년들도 그랬어요. 사인회를 하면 곁에 와서 살짝 그런 이야기를 하거든요. 자기는 시간이 없대요. 늘 뭔가를 하고요. 분명히 열심히 하고 있는데 눈 뜨면 다시 제자리래요. 아이들은 자기가 얼마나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지 모르는 거예요. 그럴 수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아니야, 충분히 움직이고 있어’라고 말을 했었는데요. 그때 생각했던 것이 바로 아이 한 명 한 명을 하나의 섬으로 보는 거였어요.

 

플로팅 ‘아일랜드’ 말이군요.


감수성은 어렸을 때 자기도 모르게 쌓여요. 감성과 이성의 조화는 초등학교 때 읽은 많은 문학 작품, 균형적인 독서활동에서 나오죠. 이 책을 그냥 어떤 섬에 다녀왔어, 이렇게 읽잖아요. 그렇다 하더라도 한참 뒤에 툭 올 때가 있어요. 아, 그 섬이 인생일 수도 있겠구나, 생각할 수 있을 거예요. 당장은 몰라요. 당장은 아주 신기한 어떤 섬에 갔다 왔는데 이 섬에서 어떤 부당한 일을 봤죠. 우리 아이들한테 지금 현실이 이렇게 비루하다고 직접 이야기하기보다 어떤 섬의 상황을 보여주는 거예요. 결국 읽을 때는 내 얘기가 아닌 듯 읽히지만 책을 덮었을 때는 이것이 다른 세계 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다, 사실은 내 얘기 같다, 라고 확 오게 되죠.

 

내가 샘물에 냄비를 씻고 물을 받았다. 어린 초아에게 먼저 주고 다음으로 초이에게 건넸다. 하지만 초이가 나 먼저 먹으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먼저 먹고 초이에게 주었다. 초이가 물을 마시는 동안 정육점 아저씨가 길을 건너왔다. 그리고 초이의 따귀를 때렸다.
“이 자식이 어디서 함부로 샘물을 마셔…….”(149-151쪽)

 

제가 어른들의 이기주의 중 가장 싫은 게 아주 사소해 보이는 것으로 굴욕감을 주는 거예요. 물 먹는 장면을 썼는데요. 급식 같은 거죠. 돈 있으면 먹어, 이거잖아요. 학교라는 곳에서는 돈이 지배하면 안 돼요. 금전적인 것으로 아이들을 자극하면 안 된단 말이에요. 모두가 같잖아요. 세금이니 재원 마련이니 하지만 한 반에 그렇게 잘사는 아이들이 몇이나 되겠어요. 잘산다고 해도 그것은 부모의 것이죠. 그런데 ‘우리가 좋은 세상 만들었어’ 하면서 시치미 뚝 떼는 건 너무 파렴치해 보였어요.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해야죠. 용기가 필요한 일이고요. 그러나 얘기는 해야 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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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다


결코 어떤 섬의 이야기만으로 읽히지 않았어요. 우리 세계와 맞닿은 부분이 아주 많거든요.


이 책을 읽을 때 각자가 부당하다고 느끼는 부분이 다를 거예요. 심각성을 느끼는 정도가 다르겠죠. 그것들을 각자가 느끼는 문제들이 해결될 거라는 희망을 주는 그곳으로 오게 했어요. 당장 물 먹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 하나로 문제가 해결된 게 아니거든요. 궁극적으로 언덕부터 허물어야 하는 거잖아요. 주인공 가족은 시작점을 주고 간 거죠. 희망, 딱 거기까지만 주었어요. 뒤에 이런 저런 문제들이 있다고 다 언급하고 싶진 않았어요. 게다가 외부에서 온 가족이 문제를 다 해결해줄 수는 없는 거거든요. 다만 계기를 줄 순 있는 거예요. 타자가 타인의 시선에서 봤을 때 더 선명하게 볼 수 있으니까요.

 

근본적으로는 이 작품을 통해 희망을 말하고자 했던 거군요. 작품을 쓸 당시 현실의 상황은 그렇지 않았지만 말이에요.


강주가 섬으로 다시 갔을 때는 또 다른 희망이 있겠지, 라고 할 수 있을 정도까지죠. 그런 희망을 주고 싶었어요. 일어나자. 어쩌면 그 염원이 모든 사람들한테 있었던 것 같아요. 저한테도 그 염원이 있었고요. 부당해, 뭔가 잘못됐어, 라는 걸 자각하고 있었으니까 이 이야기를 썼죠. 그리고 촛불 정국을 지나면서 지금이다, 발표를 할 때다, 라고 생각한 거예요. 그 전에 써둔 작품인데도 이상하게 맞닿은 부분이 있더라고요. 그때의 열망이 수 년 뒤에 현실이 됐잖아요. 그것에 대단한 행복감이 있었어요. 너무나 바랐던 모습을 현실로 보는구나, 내가 그 안에 있구나, 하면서 깜짝 놀랐었죠. 이 원고를 출판사에 드린 게 지난 1월 즈음이었는데요. 지금이다, 생각했던 거예요.

 

주인공 외에 특별히 마음에 담았던 인물도 있나요?


글쓰기를 할 때 꼭 염두에 두는 것은 어떤 한 문장의 서술일지라도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에요. 문단을 풍성하게 하기 위해, 문장력을 보이기 위해 어떤 문장을 쓰는 건 아니거든요. 낙엽을 가져왔으면 그 낙엽마저도 헛되이 쓰면 안 되죠. 하물며 인물도 그래요. 강주가 초이를 찾아 들판으로 갔을 때 엑스트라처럼 몇몇 어른과 아이들이 일을 하고 있잖아요. 현장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최대한 절제해서 서술했고, 잠깐 등장하더라도 사람을 사물화하면 안 되니까 약간의 움직임이라도 주고 끝낸 건데요. 그래도 미안하죠. 그들을 군중으로 표현해야 했던 게 굉장히 마음에 걸렸어요. 필요해서 넣었지만 배경 처리가 된 것 같아서요. 책이라는 건 그 자체로 하나의 세상인데 어떤 건 귀하고 어떤 건 귀하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 악인도 아껴야죠. 제가 쓴 모든 작품에서 그랬거든요. 지나가는 사람마저도 뭔가 표현하기 위해 쓴 거예요. 그런데 이 밀밭의 사람들은 더 해주지 못해서 조금 마음에 걸리죠.

 

독자는 모르고 지나갈 이야기라 굉장히 흥미롭네요. 그런가 하면 희미하지만 뭔가 더 많은 이야기가 남아 있을 것 같았던 인물이 있었어요. 바로 ‘수’예요. 


철물점의 수 역시 그냥 물건을 팔고 빠지는 인물이 아니에요. 원래 낯선 곳에 가면 그런 사람이 꼭 한 명 있거든요. 낯섦이 주는 새로운 에너지가 있죠. 사랑을 하게 만들어요. 일단 언어부터 다르죠. 고백하자면 저는 사투리 쓰는 사람한테 약해요.(웃음) 그 낯섦에 해제가 되고 그 사람에 대한 호감도가 확 올라가요. 이것이 그냥 소설이었다면 수도 조금 달랐을 텐데요. 이들은 지금 설렘의 단계거든요. 수 역시 낯선 외부인을 본 건데 담백하게 대하죠. 수의 매력이 그거고요. 이들은 서로 호감을 느끼는 단계라 다음에 만나면 한 걸음 나갈 수 있었을 텐데 아쉽게 헤어졌어요. 강주는 아마 집에 와서도 수를 생각하지 않을까요.(웃음) 첫사랑은 다시 만나면 안 된다는데 이들은 나중에 다시 멋지게 만날 것 같아요.

 

마지막에 강주가 ‘나는 반드시 우리가 가진 열쇠로 그 방의 문을 열고 다시 들어갈 것이다’라고 다짐하잖아요. 꼭 다시 가라고 응원하게 돼요. 그때 수와도 꼭 만났으면 좋겠고요.


그때는 섬사람들이 바꾼 세상이겠죠. 그때의 초이는 지금보다 더 멋있어졌을 거고요. 초아도 마찬가지예요. 저는 그런 것들을 생각하고 썼는데 들키면 안 되잖아요.(웃음) 지금 이 섬은 비정상적이고, 아이들이 그 안에서 힘들게 버티고 있지만 이들끼리 딱 모였을 때는 굉장히 예쁘죠. 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고요. 그래서 간절하게 어떤 동화보다도 이것을 어른들과 아이들이 같이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이 예쁜 아이들이 놀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하지 않나, 하는 거예요. 작가의 말도 모두 어른들한테 한 거고요.

 

지금 아이들이 꿈꾸는 세상이, 오래전 내가 아이 때 꿈꾸던 세상은 아니었을까요? 아이의 눈으로 아이들을 바라봐 주십시오. 우리 아이들이 지금 원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는지, 우리 아이들이 정처 없이 떠다니고 있지는 않은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아이들이 얼마나 잘 버티고 있는지. 저는 아이들이 버티는 세상이 아니라, 즐겁게 사는 세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과 어른들이 함께 행복한 세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꿈이 아닌 현실이었으면 좋겠습니다.(194-195쪽, 작가의 말)

 

아이들은 그저 재미있게, 판타지 소설을 읽은 듯이 읽고 와야 해요. 우리가 어렸을 때 읽은 『톰 소여의 모험』 같은 것들을 우리 안에 이야기의 원형으로 갖고 있잖아요. 『플로팅 아일랜드』도 그러길 바라요. 신나고, 화도 나고, 멋진 섬에 사는 멋진 초이를 보면서 멋있다고 생각도 하고요. 그러다가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고 성인이 되었을 때는 그 섬이 내 섬일 수도 있었겠구나, 그것이 곧 나일 수도 있겠구나 하고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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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목소리로 쓴 것들


소설, 동화 등 여러 방향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잖아요. 동화를 쓰는 작가는 어떻게 다른가요?


동화도 그렇고 모든 작품은 어떤 의미에서든 재미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눈물이 철철 나도 재미있는 것을 봤다고 하잖아요. 너무 무서워하면서 보고도 재미있었다고 하죠. 동화, 특히 고학년 동화는 그림도 적고 서술도 더 많이 들어가다 보니까 최대한 서술도 간결하면서도 재미있게 쓰려고 애를 많이 써요. 동화가 그래서 어려워요.(웃음)

 

매년 꾸준히 책을 내셨어요.


제 안에서도 글쓰기에 대한 변화를 겪던 시기가 있어요. 쓸수록 겁나는 시기였거든요. 6-7년 정도 되니까 언제까지 글을 쓸 수 있을까, 글이 나한테 계속 올까, 그런 게 오더라고요. 굉장히 쓰기가 두려워졌어요. 가장 힘든 시기가 언제였느냐고 물으면 데뷔 후 6-7년 시기라고 할 정도예요. 그러면서 나한테 안식년을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그때 한 해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정말 아무것도 안 했어요. 그냥 여기저기 발 닿는 곳 아무 곳이나 가고요. 온전한 휴식이 너무 필요한 거예요. 완벽한 혼자됨을 미치도록 갈망하는 거죠. 쉬면서 나를 다지게 됐어요.

 

어째서 그토록 두렵고 힘들었을까요?


아마 너무 잘 돼서 그랬던 것 같아요. 데뷔 때부터 말이에요. 오히려 지나치게 잘 됐던 걸 두려워했던 것 같아요. 나는 하나인데 가짜인 내가 아홉이 생겨 얘들이 막 움직이는 것 같더라고요. 일 년 동안 쉬면서 많이 정리가 됐죠. 무언가를 획득하고, 그걸 잃는다고 해도 그것은 잃는 게 아니다, 생각했어요. 애초에 아무것도 없었으니까요. 적어도 시작점일 때보다 지금 사정이 더 좋잖아, 이렇게 생각하니까 나아지더라고요. 지난 5-6년 동안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내 안에 지나치게 자만함이 있었나보다 깨달은 거죠. 이제는 가감 없이 내가 원래 했던 것들을 하자고 결심하게 됐어요.

 

원래 했던 것들이라고 한다면 소설을 말씀하시는 거죠?


저를 힘들게 했던 두려움은 아마도 소설을 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밖에서 철저하게 감췄기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소설을 먼저 썼고, 소설 공부를 했으면서 동화를 덜컥 썼는데 돼버렸고, 동화작가라고 세상에 나온 거예요. 무언가를 감추면서 사는 사람이 된 거죠. 숨겨 둔 게 많으니까 인터뷰 같은 것도 무서웠고요. 그런데 정리하는 시간을 보내면서 가장 솔직하게 다 보여주자고 생각했어요. 장르를 열어버린 거예요. 저한테 장르의 캐비닛이 있다면 그걸 다 해제시켜버린 거죠.

 

그 다짐 후 출간한 작품이?


『너를 봤어』예요. 이 작품도 한참 전에 써둔 작품이었어요. 동화를 쓰면서도 사실은 내 얘기, 내 공간에서 나한테 들어온 이야기를 내 목소리로 쓴 것들을 묻어뒀던 거죠. 결국 타인이 저를 힘들게 한 건 하나도 없었어요. 지금까지도 그래요. 독자, 동료, 누구도 저를 힘들게 한 적이 없어요. 심지어 기자 분들도 마찬가지인데요. 저 혼자 내면에서 계속 힘들었던 거예요. 그런데 안 열면 못 견디겠으니까, 열어버린 거죠. 소설이란 장르는 손에 먼저 붙은 이야기니까요. 허기진다고 하죠. 안 되겠다고 생각한 거예요.

 

그저 작가를 따라온 독자들은 이런 갈등을 거의 몰랐을 텐데 굉장히 솔직한 말씀이네요. 안에 이렇게 치열한 고민이 있었군요.


스스로가 장르 이미지에 나를 가둔 거예요. 동화 작가라는 이미지에 말이에요. 누구도 뭐 하지 말라고 한 사람이 없는데(웃음) 혼자서 그런 거예요. 그걸 다 여니까 새로운 이야기가 올 때 훨씬 자유로워지더라고요. 소설로 풀 이야기, 청소년소설로 풀 이야기, 동화로 풀 이야기, 이렇게 되는 거죠. 요즘은 그래서 아주 좋아요. 저한테 오래 쓴 그릇 여러 개가 있는 것 같아요. 큰 전을 예쁘게 부쳤는데 작은 접시밖에 없어서 이걸 억지로 잘라서 놓으면 안 되잖아요. 큰 접시가 없으면 쟁반에라도 턱 놓고 찢어먹어야 하잖아요. 이 그릇이 이제는 저한테 딱 생긴 것 같아요. 맛있는 음식을 맛있게 담을 수 있는 그릇이 있는 거죠. 이제는 요리를 얼마나 잘하느냐만 남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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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열망하는 세상


작품에서도 그랬지만 인터뷰를 하면서도 작가가 가진 어른으로서의 역할 의식이 많이 느껴져요.


세상의 모든 어른은 세상의 모든 아이를 보호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고 생각해요. 일단 내 아이에게 잘해주자고요. 그리고 친구가 놀러 오면 존중해야죠. 내가 남의 아이를 존중해야 내 아이도 남한테 존중을 받잖아요. 그러니까 모두가 옆에 있는 아이들을 돌보면 결과적으로 모두를 존중하게 되는 거예요. 그런 세상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싶은 간절한 소망이 있어요. 『플로팅 아일랜드』는 그런 마음이 왔을 때 막 쓴 거예요. 그런데 아직 첫발도 내딛지 못한 것 같고, 어딘가 부끄럽고 그랬죠.

 

여러 모로 다행이네요.(웃음)


쓰이는 시기, 발표되는 시기가 따로 있는 것 같아요. 어떤 건 정말 쓰자마자 나오거든요.

 

집중해서 담고 싶은 나만의 주제 같은 것도 있나요?


아니요, 가훈처럼, 명언처럼 딱 정해두고 이 주제에만 천착해서 쓰는 건 없어요. 모든 것에 저를 최대한 열어두려고 해요. 글 쓰는 사람들의 숙명은 남이 안 보는 것을 봐야 한다는 건데 저를 자꾸 가두면 안 될 거예요. 너무 아파서 못 쓰는 것도 있죠. 그것은 안 쓰는 게 아니라 못 쓰는 것이고, 계속 단련이 필요하죠. 굉장히 좋아해서 수시로 보는 소설이 『소년이 온다』이에요. 얼마나 긴 시간 뒤에 이야기가 나왔겠어요. 길게 다지고, 숙성한 뒤에 편견 없이 사실적으로 보기 시작했을 때 서술이 되어야 하니까요. 삶에 목표를 세워놓고 사는 것처럼 힘든 삶이 없고, 저는 그것이 잘못된 삶이라고 봐요. 격변하는 세계를 버텨야 하는 거고 어떤 것을 마주했을 때 극복해야 하지 자기만의 목표만 보고 외면하면 이 세계는 차단된 세계가 되겠죠. 글 쓰는 사람마저도 그러면 안 되죠.

 

지향점이라고 바꿔 질문하면 어떨까요?


지향점은 있죠. 저는 기본적으로 따뜻했으면 좋겠어요. 악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따뜻한 사람을 열망하니까 자꾸 누군가는 제 글에 할머니가 많이 들어온다고 하는데요.(웃음) 그 때문인 것 같아요. 결국 그것이겠네요. 악에 대한 이야기를 하더라도 그 이야기를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온기 때문이에요. 작품에 온기 없는 글은 쓰고 싶지 않아요. 어떤 장르라도 말이에요. 살인자에 관한 이야기라 할지라도 어디선가는 온기가 느껴지는, 온기 있는 글을 쓰고 싶어요. 그 세상이 제가 열망하는 세상이에요.

 


 

 

플로팅 아일랜드김려령 글 / 이주미 그림 | 비룡소
뜰 부(浮) 자를 써서 ‘부유도’라고도 불리는 낯선 섬 ‘플로팅 아일랜드’로 부모님과 여름휴가를 떠나게 된 강주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섬의 신비하고 비밀스러운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모험의 여정이 펼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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