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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호 커버스토리] 만화가 윤태호는 미생일까, 완생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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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간 100권. 윤태호의 신작 『오리진(Origin)』의 계획이다. “1년에 10권을 내는 것이 가능할까?” 물으니, 윤태호는 “죽을 때까지 해야 할 것 같다”며 한숨을 쉬었다. 딱 봐도 기분 좋은 한숨이었다. 『오리진』의 타이틀은 ‘내러티브 교양만화’다. 『미생』의 성공으로 ‘완생’에 다다른 듯한 윤태호는 왜 후속작으로 ‘교양’을 택했을까. 그것은 그의 무식에 대한 공포, 학력 콤플렉스에서 기인한다.


스무 살 윤태호는 미대 입시에 실패하고 만화가 허영만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2년을 보낸 후,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만화가는 또래보다 나은 정도의 재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만화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생각보다 정교하다는 사실이었다. 윤태호는 독자와 작가 사이의 균질함을 확보하기 위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소설, 이론서, 시나리오 등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러나 낯선 내용과 단어는 쉽게 소화되지 않았다. 결국 지적 줄기를 세우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독서의 세계로 들어갔다.

 

“흔히 교양이라고 말하는 단어를 깊이 파고들고 싶었다.” 윤태호가 『오리진』을 기획한 이유다. 그러니까 윤태호는 작가이기 전에 독자로 우왕좌왕하는 독서에서 한 발 나아가고 싶었다. 『미생』에서 윤태호는 말했다. “기초가 없으면 계단을 오를 수 없다. 기초 없이 이룬 성취는 단계를 오르는 게 아니라, 성취 후 다시 바닥으로 돌아가게 된다.” 윤태호는 필시 완생으로 가기 위해 『오리진』을 그리기 시작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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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이 없으면 배움 없이 성장한다


4년 만의 신작이다. 교양 만화라는 것도 놀랍고 100권을 목표로 한다니 더 놀랍다.

 

나는 지금 엄청난 심적 부담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건 혼자 만드는 작품이 아니니까. 가장 성실한 편집자들과 함께하고 있으니 스스로도 기대가 크다.

 

왜 교양이었나?

 

내가 알게 된 지식들을 그냥 날려버리고 싶지 않았다. 작품을 위해 취재하고 사람을 만나다 보면 새로운 정보, 지식을 알게 된다. 그런데 연재가 끝나면 자연스럽게 까먹는다. 왜냐하면 수집하듯이 책을 읽었기 때문이다. 체계적이지 않은 지식이라 곧 휘발된다. 예를 들어 상대성 이론에서 30cm자 역할을 하는 게 빛의 속도다. 그런데 과학자들은 왜 빛의 속도를 잴 생각을 했을까, 빛이라는 건 그냥 있는데 왜 속도를 쟀을까를 따져보면 이 속에 엄청난 창의력이 있다. 상대성 이론이라는 게 일반인의 입장에서 보면 굉장히 어렵게 느껴지는데, 스토리를 따라가다 보면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다. 항상 떠올리지 않더라도 머릿속에 저장이 돼 있으면 언제든지 지식을 끄집어낼 수 있다. 『오리진』은 5년 전부터 생각했던 만화다.

 

5년 전이면 <미생 시즌 1>을 연재할 때가 아닌가?

 

원고가 잘될 때는 쓸데없는 아이디어들이 나온다. 작두를 탄 것처럼(웃음). 물론 편집자에게 까이는 아이디어도 많다.

 

윤태호도 까이나?

 

물론이다. 많이 까인다. 그런데 『오리진』은 많이 아깝더라. 한동안 이야기를 안 하다가 위즈덤하우스 연준혁 대표를 만났는데, 자기랑 하자고 하더라. 그래서 편집자들을 섭외해 팀이 꾸려졌다.

 

처음부터 100권 시리즈를 염두에 뒀나?

 

할 수 있을 때까지 한다는 게 목표였는데, 연 대표가 “100권 가죠”라고 했다. 허무맹랑했지만 안 할 이유도 없지 않나? 그래서 “그러죠”라고 했다.

 

‘세상 모든 것의 기원’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이런 주제는 주로 학습 만화나 과학서에 등장했던 것 같은데.

 

온 가족이 읽는 전 연령대의 교양 만화로 『오리진』을 작업하고 있다. 학습 만화와는 많이 다르다. 학습 만화는 정규 교육 과정을 기준으로 주제를 선정하는 반면, 『오리진』은 AI 로봇 ‘봉투’(Bong Two)가 21세기에 적응해가는 과정을 통해 인간이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100개의 주제로 그린다. 기본적으로 서사 만화지만 전문가의 논픽션을 결합했다. ‘내러티브 교양 만화’라는 새로운 장르로 이름을 붙였다. 쉽게 말해 서사와 정보를 결합해 지식과 정보를 더 쉽고 오래 기억할 수 있게 만드는 게 우리의 목표다.

 

1권의 주제가 ‘보온’이다. 정하기까지 고심했을 것 같다.

 

확정 짓기까지 2년이 걸렸다(웃음). 중간에 4개 주제를 갈아엎었고. 스토리를 썼다가 뒤집은 것도 꽤 많다. ‘보온’이 어떻게 보면 굉장히 하찮고 우리가 다 알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지만, 보온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따뜻하게 하는 의미도 있지만, 따뜻함을 보존한다는 의미도 있다. 즉, 보온은 생명의 가장 기본적인 활동이다. 초기 인류의 멸종과 진화, 지구라는 계의 시스템 유지까지,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활동이기 때문에 『오리진』을 시작하는 주제로 적합할 거라 생각했다.

 

집필 과정은 어떻게 이뤄졌나?

 

주제를 정하면 편집자들이 관련 서적을 섭렵했고, 정리한 내용을 토대로 치열한 기획 회의를 진행했다. 1권 ‘보온’ 편은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님께 교양 원고의 집필을 제안 드리고, 편집자들과 함께 관장님의 강연을 들었다. 이후 강연과 집필해주신 원고를 바탕으로 만화 원고 기획 회의를 다시 했고 원고 작업에 들어갔다.

 

등장인물들의 캐릭터, 배경은 어떻게 정했나?

 

시트콤을 떠올렸다. 다가구가 사는 주택을 배경으로 ‘봉투’라는 로봇이 각 구성원들과 지지고 볶는 이야기를 생각했다. 쓰다 보니 너무 밝지만은 않은 느낌으로 시작됐는데, 어쩔 수 없이 내가 가진 개성이 들어갈 수밖에 없더라. 등장인물은 모두 저마다의 개성, 역사, 욕망을 가지고 있다. 결격 사유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각자의 결핍을 ‘봉투’로부터 채우려고 한다. 이 욕망이 『오리진』의 전체 이야기를 이끌어가 는 주요한 동력이다.

 

‘봉투’는 인류 멸망을 막아야 한다는 엄청난 사명을 품고 미래에서 21세기로 날아온 학습형 로봇이다. 1권에서 봉투는 자신의 기능으로 감기에 걸린 주인공의 아들 ‘봉원’의 체온을 떨어뜨린다.

 

봉투는 지식을 단순히 입력하는 시스템이 아니라 직접 경험하고 체화해야 온전히 기억할 수 있는 로봇이다. 봉투가 봉원의 체온을 떨어뜨린 것도 봉원 엄마의 행동을 학습했기 때문이다. 봉투는 인류의 지적 유산 100가지를 학습한 뒤 미래로 전송해야 하지만, 타임슬립 도중 생긴 알 수 없는 오류 때문에 학습 목록이 백지가 된다. 콘센트만 보면 충전하려고 달려들거나, 일부러 농땡이를 부리는 아이 같은 모습도 있다.

 

만화를 재밌게 쭉 보는데 불쑥 의미심장한 문장이 나오더라. “배움이 없으면 배움 없이 성장한다.” 너무 무시무시한 말이 아닌가?

 

부모들이 맨날 아이들한테 해주고 싶은 말이지 않나? 현실에서도 많이 보이고. 『오리진』은 지식과 정보 자체를 알려주는 작품이 아니라 ‘지식과 정보가 어디에 복무해야 하는가’에 포커스를 맞춘다. 수많은 정보와 지식으로 목표한 100권에 다다랐을 때 우리팀이 그려내고 싶은 마지막 이야기는 결국 ‘사람’에 대한 것이다. 그것이 ‘사랑’에 대한 것일지, 무엇일지 지금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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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부터 공부가 되는 작품을 하는 게 목표


지난 5월부터 위즈덤하우스미디어그룹이 만든 플랫폼 ‘저스툰’에 『오리진』을 연재하고 있다. 댓글을 보니 “원화전을 해달라”는 요청도 있더라.

 

한다면 출력물전이 되지 않을까. 『미생』은 그림을 몇백 컷 만들어놓고 시작할 수 있었지만, 『오리진』은 매 권 주제가 달라지니까 주인공이 살고 있는 집, 배경을 제외한 모든 장면을 새롭게 그려야 한다. 마치 만화 잡지에 연재하는 느낌이다. 힘들다(웃음).

 

그래도 쾌감을 느낄 때가 있을 텐데.

 

내가 생각해도 ‘앗싸!’ 하는 내용이 나왔을 때 행복하다. 예를 들어 1권 주제로 ‘보온’을 잡긴 했는데 이게 기능으로 존재하는 개념이니까, 달려가야 할 지점이 있어야 했는데 고심 끝에 ‘항상성’을 찾았다. 그때 쾌감이 컸다.

 

“나부터 공부가 되는 작품을 하는 게 목표”라는 말을 종종 했다. 『오리진』이 지금까지 윤태호 작품 중에 가장 공부를 해야 하는, 공부가 되는 작품이 아닐까?

 

물론이다.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오리진』은 웹툰보다는 단행본에 초점을 맞추고 진행하는 만화다. 20권까지는 주제를 정했고 계속 소재를 찾고 있다.

 

2권의 주제는 ‘에티켓’이다. ‘보온’과 다소 거리감이 있는 소재로 느껴진다.

 

아이가 세상에 나오면 보온을 획득해야 한다. 보온이 깨지면 죽으니까. 아이는 맨날 엄마 아빠랑 얼굴을 맞대고 비비고 사는데, 낯선 사람이 와서 자기를 안으면 죽을 듯이 운다. 왜? 거리감 때문이다. 아이조차도 자신과 친숙하고 친숙하지 않은 걸 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안전한 거리감이 필요하다. 내가 당신을 신뢰할 수 있으려면, 한 마디로 가까워지고 싶다면 거리를 유지해줘야 한다. 우리가 어릴 때 친구와 어깨동무를 할 수 있는 이유도 친숙한 사이이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가 어릴 때 책상에 금을 그어놓고 짝꿍에게 넘어오지 말라고 하지 않나? 거리감은 성인이 돼서야 느끼는 감각이 아니다. 에티켓은 어떻게 보면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해 꼭 필요한 마음가짐이다.

 

윤태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에티켓이 있다면?


거리를 지키는 것. 훅 들어오는 사람들은 별로다.

 

포털 <다음>을 통해 <미생 시즌 2>를 매주 화요일 연재 중이다. 1년가량 부상으로 쉬다가 지난 4월부터 재연재를 시작했다. 이미 인기를 크게 얻은 작품의 시리즈를 이어가는 것, 힘들지 않나?

 

힘들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으니까. 중소기업이 너무 처절하니까 다시 쓰고 싶었다. 대기업은 표준을 만들기가 쉽다. 사회적으로도 계속 감시를 받고 누구나 욕해도 되는 분위기가 있으니까. 그런데 중소기업은 업체마다 룰이 다르고 개성도 다르다. 그래서 표준을 잡기가 힘들다.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도 쉽지 않고.

 

작가가 한 작품에 너무 오래 소진되면 지칠 수 있다.

 

그런 것도 있지만, 요즘 미디어는 한 사람이 뜨면 그 사람을 완전히 소진시켜버린다. 질려버리게 만든 다음 또 새로운 사람을 찾는다. 소진되지 않기 위해서는 애를 써야 하는데 선택지는 두 개다. 하나는 기꺼이 소진되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 다른 하나는 평생 먹고살 만큼의 돈을 벌어 소진이 돼도 살 수 있게 만들어놓는 것. 그런데 이게 되나? 그럴 수 없으니까 소진되지 않기 위해 발버둥을 쳐야 한다. 『미생』연재할 때, 영화 <내부자들>이 개봉했다. 인터뷰 요청이 쏟아지는데 피할 수가 없어서 한 달 동안 숨어 있었다. 가끔 방송사들을 보면 너무 집요하게 요구한다. 하물며 나를 보호해야 하는 사람도 필요에 따라 과한 것을 요구한다. 그럴 때는 정말 질려버린다.


한 주간의 일정은 어떻게 되나?

 

일요일 저녁부터 <미생 시즌 2>를 그리고, 화요일은 한국만화가협회에 가서 일을 본다. 또 누룩미디어 일도 해야 하고. 수요일부터는 『오리진』을 그리는데, 『오리진』은 실제 작업하는 것보다 자료를 봐야 하는 시간이 더 길다. 개인 창작물이 아니고 기획 만화다 보니까 팩트 체크가 중요해서 자료 보는 시간이 굉장히 길다.

 

어깨와 팔꿈치 연골이 상했다고 들었다. 요즘은 어떤가?

 

아직도 안 좋은데 대책이 없어서 뭐, 그냥 지낸다.

 

연재로도 바쁜데 한국만화가협회장까지 맡았다.

 

안 한다고 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일이 적잖이 많은데, 일주일에 한 번은 출근해서 주간 업무 보고를 받고 한 달에 한 번 이사회를 열고, 문화부 정책 간담회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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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도 편집자가 돼야 한다

 

작업실 옆방에서 문하생들이 만화를 그린다. 모두 몇 명인가?


아르바이트 한 명까지 포함해서 6명이 함께 일한다. 가장 오래된 친구가 3년이 좀 넘었다.

 

문하생을 뽑을 때 기준이 있나?


1번은 선착순, 2번은 성격이다. 성실한지가 가장 중요하다. 재주는 이 바닥에 들어오기로 한 이상 거기서 거기다.

 

선생으로서의 윤태호도 궁금하다. 왠지 잔소리를 안 할 것 같다.


안 한다. “펜선을 가늘게 써라, 채도는 좀 높여라 낮춰라” 같은 말은 하지만 이건 업무적인 이야기니까 잔소리가 아니다. 뭐 청소하라는 이야기는 종종 한다. 하지만 짜증을 내거나 그런 건 없다. 나는 애들이 있을 때 업무를 다 본다. 특히 전화 통화 같은 거 일부러 들리게 한다. 내 선생이 어떻게 일하는지 애들도 배워야 하지 않나? 자연스럽게 보게끔 한다. 이를테면 통화할 때 상대방이 한 말도 내가 다시 정리해서 “이런 내용으로 질문한 거죠?”라고 묻는다.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알게끔. 작업 때문에 취재하다가 인터뷰를 하게 되면 녹취를 시킨다. 내가 어떻게 질문해서 이런 답변이 나왔는지, 애들이 녹취를 풀면서 이해한다. 재밌어한다.


편집자들과는 어떻게 일하나?


나는 편집자를 많이 신뢰한다. 편집자들은 1만 명의 시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편집자가 아주 그르지 않다면 대체로 그 사람의 판단이 옳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골방에 파묻혀 작품을 하는 작가도 존재하지만 나는 그런 타입이 아니다.

 

어떤 스타일의 편집자가 좋나?

 

신중한 사람이 좋다. 그리고 용기 내서 말해줄 수 있는 사람. 나를 존중하는 건 존중하는 거지만, 해야 할 말은 해줘야 한다. 그냥 술친구가 되면 서로에게 좋지 않다.

 

평소에도 편집자 마인드가 있는 것 같다.

 

데뷔에 실패하고 다시 데뷔했을 때 거의 ‘반편집자’라고 생각할 정도로 잡지사에 자주 갔다. 집도 잡지사 근처로 옮기고. 가제본이 나오면 잡지사 사람들이랑 같이 보고, 마감 끝나면 맥주 한 잔을 꼭 같이 했다. 그때 참 좋았다. 재밌고. 난 같은 종류의 작가를 만나는 것보다 다른 포지션의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하는 게 훨씬 재밌었다. 도움도 많이 됐고. 만화 문하생을 하면 그림을 배울진 몰라도 스토리는 못 배운다. 아무리 빛나는 아이디어가 있어도 대부분 서너 작품을 하면 다 고갈된다. 그때부터는 발견되는 것들로 작품을 만들어가야 하는데, 편집자들은 파는 것에 대한 전문가 아닌가. 작가가 5~6년 정도 경력이 쌓이면 반편집자는 돼 있어야 한다. 창작자가 되면서 동시에 마케터가 돼야 하고 편집자가 돼야 한다. 이런 감수성이 없이는 그 이상의 작품을 해나갈 수 없다.

 

아까 편집자들에게 많이 까였다는 뜻이 이제 이해된다(웃음).

 

5년 이상 경력이 된 사람에게는 신인 작가의 것을 요구하진 않지 않나. 꽹과리보다는 더 원숙하고 울림을 줄 수 있는 작품을 원할 텐데, 이게 자가 발전만으로는 굉장히 어렵다. 그렇다면 편집자의 안목을 넣어 내 머릿속을 휘저을 필요가 있다. 대 부분의 경우 작가들은 한 출판사와 일하기 시작하면 그 출판사와 계속 일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출판사와 일하는 게 아니라 자기를 담당하고 있는 편집자와 일하고 있는 경우가 더 많다. 그 사람과의 신뢰 관계 때문에 일하는 경우도 많고. 편집자를 만족시키기 위해 작업하는 경우가 생기는 거다. 내 첫 번째 독자가 편집자니까, 그 사람을 감동시키는 게 첫 번째 목표가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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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걸 꿈꿀 이유가 없다

 

일중독인 것 같다. 취미가 없어 보인다.

 

예전부터 딱히 없었다. 하지만 만화가라는 직업 때문에 남극도 가게 되고, 영상화가 되면서 생각지도 못한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자연스럽게 사고도 넓어지고. 다른 걸 꿈꿀 이유가 없다.

 

『오리진』의 ‘봉투’ 같은 로봇을 가져볼 수 있다면, 어떤 기능을 넣고 싶나?

 

로봇은 필요 없다. 난 불편한 게 좋다.

 

이유가 있다면?

 

그래야 사는 게 아닐까. 영원히 살고 싶은 생각도 없고.

 

책을 꾸준히 많이 읽는 것 같다. 한 작가를 알게 되면 그 작가의 전작을 파는 스타일이라고 들었는데, 『오리진』을 준비하면서 어떤 책들을 읽었나?

 

‘저스툰’이라는 플랫폼을 만들기 전에는 플랫폼에 관한 책들을 주로 읽었다. 또 인물 전기도 많이 보고. 애플이나 아마존, 픽사, 디즈니 같은 기업체의 히스토리를 많이 찾아 읽었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가 쓴 『출판의 미래』도 읽었고. 이 업계가 궁금했다. 예전에는 순문학도 많이 읽었는데 요즘은 잘 못 읽는다. 이문열, 조정래 작가 등의 연보를 쫙 만들어 읽곤 했다. 낱권으로 책을 읽으면 ‘어떻게 이 사람은 이런 세계관이 있지?’ 하고 놀라는데, 한 작가의 작품을 수필까지 다 찾아 읽어보면 하나의 줄기가 보인다. 결국 한 작가가 다루는 테마가 수십 개가 될 순 없더라.

 

후속작은 남극 만화라고 들었다.

 

『오리진』을 하는 사이사이에 하려고 한다.

 

나이가 더 들어서는 실버 만화도 그리고 싶다고.

 

실버 만화라는 게 내 또래 이야기를 하는 거다. 내가 50~60대가 됐을 때 10대, 20대 독자들을 탐하면서 그들을 향한 작품을 하면 이상하지 않나? 내 작품을 읽어온 독자들도 나이가 들 테니, 그 독자들과 함께 내 또래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윤태호 작품은 단행본으로도 갖고 싶어 하는 독자가 많다. 신작을 기다린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오리진』 1권 ‘보온’ 편을 보면, 만화가 되게 순하다. 『미생』때도 그랬지만, 나는 독자들의 기대치를 낮게 만들어서 올라가는 타입이다. 『오리진』을 하는 나도 근력이 생겨야 한다. 처음부터 무리하면 안 된다. 서서히 근력을 만들어야 하고 독자도 『오리진』의 문법에 적응해야 한다. 독자와 내가 같이 탄력이 붙어가면서 성장했으면 좋겠다. 『오리진』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선의를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도 얼마든지 갈등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굳이 악마가 나오지 않아도 갈등은 존재한다. 그걸 그리고 싶다. 내가 세상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따져보면 그렇지 않다. 허블 망원경이 발견해 보여준 이상의 세계는 아직 알 수 없다. 내가 신경조차 못 쓰는 무수한 세계가 존재한다는 걸 인지한다면, 우리는 감사하면서 살 수밖에 없다.

 

10년에 100권을 내려면 계속 달려야 할 것 같은데. 올해까지는 몇 권이 나오나?

 

2권 ‘에티켓’, 3권 ‘돈’까지는 올해 나올 것 같다.


 

 

오리진 : 세상 모든 것의 기원 1. 보온 윤태호 저 / 이정모 글 / 김진화 그림 | 위즈덤하우스
[오리진] 시리즈는 인류의 멸망을 막기 위해 미래에서 온 AI 로봇 ‘봉투’가 21세기 보통 사람들 사이에서 성장하는 과정을 윤태호 작가 특유의 따뜻하고 섬세한 시선으로 그려낸 만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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