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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탁환 “불편한 문장, 소리내서 읽어 봤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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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 광활한 인간 정도전』 정도전과 정몽주, 이성계가 만들어내는 화음

김탁환 역사 소설의 중심에는 사건이 아닌 사람이 자리한다. 『불멸의 이순신』『나, 황진이』『혜초』『허균, 최후의 19일』이 모두 그러했다. 그리고 그의 작품 속에서 우리가 마주하는 것은 늘 과거가 아닌 오늘이었다. 100년 전 이 땅에서 자본주의가 태동하던 시기를 그린 『뱅크』에서도, 조선 정조 시대의 실학자들에 대해 이야기한 ‘백탑파’ 연작(『방각본 살인사건』『열녀문의 비밀』『열하광인』) 안에서도, 끊임없이 던져지는 질문은 현재를 향하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어떠하냐고, 묻고 또 묻게 되는 것이다. 김탁환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한 이 모든 이야기들을 아우를 수 있는 하나의 단어가 있다면, 그것은 ‘혁명’일 것이다.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것. 김탁환의 인물들이 염원했던 단 한 가지는 바로 그것이었다. 동시에 그들의 입을 통해 작가가 나지막하게 뱉어난 단 하나의 외침이기도 했다. 그런 까닭에 김탁환 작가가 새로운 작품의 주인공으로 정도전을 선택했다는 사실은 조금도 놀랍지 않았다. 그 이야기에 ‘혁명’이라는 제목을 붙였다는 사실까지도.

“작가로서 저에게 가장 매혹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주제는 혁명과 사랑밖에 없어요. 그래서 혁명 같은 사랑, 사랑 같은 혁명에 대해서 쓰고 싶은 거죠. ‘지금의 체제가 아닌, 인간을 더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체제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던 사람들한테 매혹되는 것 같아요. 그게 정도전이고, 허균이고, 백탑파들이고, 개화기 때의 인물들이죠. 그 중에서도 정도전은 새롭게 만든 패러다임으로 잘 건너갔던 인물이니까 ‘그렇다면 이 사람은 어떻게 성공했을까’ 하고 관심을 갖게 된 거죠.”

낡은 현실 속에서도 새로운 세상에 대한 꿈꾸기를 멈추지 않았던 혁명가 정도전. 『혁명, 광활한 인간 정도전』은 그와 함께 새로운 나라 조선의 문을 열었던 정몽주와 이성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들을 둘러쌌던 현실과 그들이 나아갔던 이상, 그 사이에서 펼쳐지는 긴박하고 역동적인 이야기를 18일이라는 짧은 시간 안에 모두 담아냈다. 이성계가 해주에서 낙마한 날로부터 이방원에 의해 정몽주가 암살당한 날까지, 그 18일 동안 세 사람의 꿈은 한 데 모이고 또 흩어졌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역사에서는 공백으로 기록된 시간이었다. 수많은 역사서와 문학 작품들이 위화도 회군 이후 조선 건국에 이르는 과정을 간과해 왔다. 김탁환 작가는 바로 그 시간에 주목했다.

“굉장히 독특한 문제적 시간인 거죠. 다른 무신이었다면 위화도 회군에 성공한 이후에 바로 왕을 자처하고 나섰을 거예요. 그런데 이성계는 그렇게 하지 않았던 거죠. 국가 권력을 장악한 이후에도 다른 왕을 세우고 정몽주를 중심으로 개혁 정치를 펴기 시작해요. 이성계는 그걸 묵인하고요. 세 사람이 나름대로 혁명 정치를 펴나가기 시작하는 시기인데, 그 부분을 잘 보면 그들이 하고자 했던 혁명의 모습들이 보이는 것 같아요. 그런데 혁명 1세대인 세 사람이 알지 못했던 건, 혁명 2세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거죠. 혁명 2세대들은 권력을 장악하면 당연히 새로운 국가를 세우고 자신들이 요직을 차지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던 거예요. 세 사람은 그 사실을 몰랐던 상황이니까 굉장히 문제적 시기라는 생각이 들었죠.”

『혁명, 광활한 인간 정도전』이 기록한 시간들 안에서 이방원으로 대표되는 혁명 2세대는 혁명의 시기와 방법을 두고 정도전, 정몽주, 이성계와 충돌한다. 특히 이성계는 자신을 태조로 옹립하려는 이방원의 야망을 염려하며 강력하게 경고하기를 반복한다. 그런 이성계를 바라보며 정몽주는 역성혁명 없이도 개혁은 가능하리라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지금과 같이 이성계가 군사를, 자신과 정도전이 정치를 맡아 개혁 정책을 펴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 지점에서 세 사람의 꿈은 같은 것이되 같은 것이 아닌 게 되어버렸다. 하지만 그 순간에 이르기까지 세 사람이 나누었던 마음과 이상은 결코 작거나 단순하지 않았다. 정도전과 정몽주는 10년이 넘는 세월동안 재상 중심의 새로운 국가 체제에 대해 논의해 왔다. 그 위로 이성계의 바람이 겹쳐진 시간 또한 짧지 않다. 그 방대한 이야기들을 18일 안에 모두 담아낸다는 것은 어쩌면 고행이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김탁환 작가는 이전에도 허균의 이상과 삶을 19일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펼쳐 보인 적이 있다. 『허균, 최후의 19일』이 그것이다. 한정된 시간 안에 이야기를 함축적으로 전달한다는 측면에서 두 작품은 닮은 듯 보이지만 『혁명, 광활한 인간 정도전』은 전혀 다른 방식의 말하기를 시도했다.

『허균, 최후의 19일』하고는 또 다른 것 같아요. 『허균, 최후의 19일』은 19일 동안 스토리가 이어지는데 이번 작품은 다른 공간의 이야기들을 하잖아요. 정몽주는 개경, 정도전은 영주, 이성계는 해주에 머물죠. 같은 날 다른 장소의 이야기이고, 같은 날 공식적인 기록과 비공식적인 기록의 이야기죠. 『허균, 최후의 19일』을 쓸 때보다 두 배 가량 어려운 게 아니고 스무 배 정도 어려웠어요. 단선적인 이야기 구조에 익숙해져 있는 독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일지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죠. 저는 음악적으로 화음을 넣는다고 생각했어요. 왕과 이성계와 정몽주가 개경에서 만들어내는 화음 아래로 영주에 있는 정도전이 개경을 생각하는 화음이 있고, 또 민중들과 어울리는 화음이 있는 거죠. 동시에 5도 화음 정도가 쭉 이어지면서 울림을 주는 음악처럼 생각하고 썼어요. 과연 독자들이 어떻게 읽을지 굉장히 궁금해요.”

작가는 서로 다른 장소에 있는 정몽주와 이성계에게 벌어지는 사건들을 객관적인 기록으로 전한다. 그리고 같은 날 영주에 머물렀던 정도전에게는 어떤 일들이 있었고 또 무슨 생각을 했는지, 일기와도 같은 그의 내밀한 기록으로 보여준다. 두 가지 방식으로 이야기되는 한 날의 기록을 통해 혁명의 과거와 현재는 깊이를 더해간다. 그 과정에서 인물들을 생생하게 되살리는 역할을 하는 것은 실제 그들이 향유했을 문학 작품들이다. 김탁환 작가는 『혁명, 광활한 인간 정도전』안에서 편지와 동물우화, 여행기와 전(傳) 등 당시의 신진사대부들이 애용했던 문체를 빌려 그 안에 세 인물의 마음을 채워 넣었다. 그들이 어떤 형식으로 어떤 뜻을 주고받았는지를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내용이 새로운 것도 중요하지만 스타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 사람들의 삶의 스타일을 보여주고 싶은 거니까요. 영화나 드라마는 배우를 통해서 보여주면 되지만 소설은 그게 안 되니까 글로 보여줄 수밖에 없는 거죠. ‘당시의 정도전이 추천사를 쓴다면 이렇게 썼을 것이고 죽을 사람을 기리는 묘지명을 쓴다면 이렇게 썼을 것이다’ 혹은 ‘친구들을 그리면서 작은 전기문을 쓴다면 이렇게 썼을 것이다’ 하고 생각했어요. 그들의 문집들을 다 읽고, 그 사람들이 좋아했던 글 쓰는 스타일들을 뽑은 다음에 제가 정도전이라고 생각하고 하나씩 쓴 거죠. 각색을 한 거니까 문집에는 하나도 없는 글들이죠. 하나하나가 작은 단편들인 거예요.”




정도전, 21세기 대한민국의 문제를 고민하다

치밀한 고증을 바탕으로 작품을 쓰는 그의 고집은 이번 작품에서도 계속됐다. 3년의 준비기간 중 절반의 시간을 인물들에 대해 공부하는 데 쏟아 부었다. 그들이 직접 기록한 혹은 곁에 두고 아꼈던 문집들을 빠짐없이 살펴보는 것은 물론이고, 관련 논문과 책을 찾아 읽고 모임을 만들어 함께 토론하기도 했다. 그 시간들 속에서 작가는 지금까지의 평가와는 다른 모습의 정도전과 만났다. 단순히 왕의 곁에서 그를 보필하는 책사로만 여겨졌던 정도전이 아닌, 조선 왕조를 설계하고 밑바탕을 닦아놓았던 역동적인 인물로서의 정도전을 보게 된 것이다.

“영ㆍ정조 시대의 실학파들을 다룰 때에도 기존에는 한 명씩 다뤘거든요. 그런데 실제 삶을 보면 박지원, 박제가, 홍대용, 이들이 같이 모여서 어울리거든요. 그러면서 시너지 효과가 생겨서 지식이 확 타오르죠. 백탑파 연작을 쓰면서 그런 모습이 굉장히 감동적이었어요. 그 이후에는 어떤 인물을 다룰 때 항상 이 사람의 옆에 누가 있었는지, 친구들은 누구였고, 어떻게 만나서 어울렸는지, 어떻게 헤어졌는지를 보게 되는 거예요. 이번 작품에서도 저한테 중요한 건 이색 학당이었던 것 같아요. 이제현과 이색으로 전통이 내려오는데, 그 밑에 여러 명의 뛰어난 문하생들이 들어가는 거죠. 정도전, 정몽주, 이숭인, 하륜, 이런 사람들이 전부 이색의 제자들이잖아요. 그런데 이 사람들이 어떻게 만났고 어떤 책을 공부했고 어떻게 정치했는지, 어떻게 서로 틈이 벌어지고 어떻게 서로 죽고 죽이게 됐는지를 자세히 탐구하는 소설은 없었던 거예요. 다시 얘기하면 모든 것들을 아주 정치적으로 단순화시켜서 정몽주는 충신이고 정도전은 정몽주를 죽인 사람이라는 식의 정치 논리로만 한 인간의 삶을 해석해버리는 단순화의 오류에 빠졌던 거죠. 저는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차근차근 보여주려고 했어요. 지금까지 그런 시도는 없었던 것 같아요.”

『혁명, 광활한 인간 정도전』의 본격적인 탄생은 3년 전에 시작되었지만, 작가 김탁환 안에서 정도전의 이야기가 태동한 것은 그보다 이전의 일이다. 7년여 전쯤 학생들을 가르치던 강단에서 내려올 무렵, 앞으로 자신이 10년 동안 써야 할 작품에 대해 생각하던 작가는 세 가지 주제를 떠올렸다. 자연과 인간, 자본주의, 그리고 혁명가가 그것이다. 인간이 자연을 잔혹하게 정복하는 모습을 멸종해가는 호랑이를 통해 보여주었던 『밀림무정』과 한국에서 자본주의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를 조명한 『뱅크』는 그때의 계획이 실현된 작품이다. 그리고 한국의 혁명가로 작가가 선택한 정도전은 『혁명, 광활한 인간 정도전』으로 태어났다.

“제가 대학을 다녔던 80년대 후반은 굉장히 격동의 시절이었죠.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 있었던 것 같아요. 당시에 있었던 큰 변혁의 흐름들, 그런 걸 써보고 싶은 거죠. 물론 직접적으로 80년대 이야기를 써보고 싶은 생각도 있지만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하고 정리해야 될 부분들이 더 있어요. 그렇다면 스무 살 이후부터 제가 살아왔던 기간과 가장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던 사람들은 누가 있었을까 하고 찾아보니까 정도전이었어요.”

지금 우리에게 정도전의 삶이 던져주는 질문과 깨달음은 무엇일까. 김탁환 작가는 한 인터뷰를 통해 “지금 사람들이 정도전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개혁이 필요한 시대라서 그런 것 같다”고 밝히기도 했다. 정도전이 살았던 시대로부터 600년이 흐른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개혁은 무엇일까.

“그들이 혁명의 텍스트로 삼은 것이 <맹자>예요. 맹자 사상은 여러 가지로 설명 가능하지만 가장 날카로운 부분은 백성이 가장 귀하다는 거죠. 백성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왕은 바꿀 수 있다, 백성을 가장 귀하게 여기지 않는 왕은 왕도 아니다, 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그런 부분에 근거해서 보자면 당시와 지금은 비슷한 부분들이 많죠. 빈익빈 부익부가 굉장히 심했고요, 서울 중심의 사람들과 지방 사람들의 간극이 엄청났어요. 그리고 공직 사회가 굉장히 부패했었죠. 고려 말에 원나라에서 명나라로 세계사적인 패러다임이 바뀌는데 그 흐름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문제도 있었죠. 지금도 우리나라가 중국과 미국이라는 큰 나라 사이에 끼어있기 때문에 만약 미국과 중국이 충돌을 일으키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해 볼 수 있을 거예요.”

“그래서 정도전이 고민했던 문제들을 하나씩 풀어보면 그냥 지금 우리가 앓고 있는 문제예요. 정도전이 내린 결론은 국가 체계를 바꾼다는 거였죠. 철학, 시스템, 제도, 도읍지 전부를 바꾸는 거죠. 지금 우리 안에서도 수도를 서울이 아닌 다른 곳으로 옮기자, 경제 구조 도 바꾸자, 교육 정책을 바꾸자, 중앙과 지방의 문제를 해결하자, 이런 이야기들이 나오는데요. 600년 전의 고려에서는 정도전이라는 한 사람이 그 모두를 계획하고 실행한 거예요. 어떻게 보면 그것이 정도전의 광활한 인간으로서의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죠.”

정도전의 혁명은 성공한 것일까. 그는 백성을 가장 위하는 재상이 중심에 선 국가체제를 꿈꾸었다. 하지만 그를 제거한 이방원은 왕권 강화를 위해 수많은 정적들을 죽이고 심지어 자신이 왕위에 오르는데 협력했던 처가까지 멸문시켰다. 과연 조선은 정도전이 꿈꾸었던 새로운 나라였을까.

“정도전은 죽었지만 정도전이 마련해 놓은 시스템은 그대로 있는 거죠. 왕이 독단적으로 결정하지 못하고요. 영의정 좌의정 우의정이 모여서 회의를 해야 돼요. 그리고 고려의 왕들과 가장 큰 차이점은 조선의 왕들이 어렸을 때부터 유학자로 성장한다는 거예요. 어렸을 때부터 《맹자》를 읽혀요. 왕이 제대로 정치를 하지 못하면 제거될 수도 있다는 걸 교육 받는 거죠. 그 시스템은 정도전이 만들어 놓은 거예요. 고려의 왕들처럼 불교 신자라고 해서 갑자기 신돈같은 중에게 권력을 던져주고 정치에서 물러날 수가 없는 시스템이죠. 그런 체계 자체를 만든다는 게 무서운 거예요. 어떻게 보면 이방원은 정도전을 제거하는 데 성공했지만 정도전이 세워놓은 국가를 제거하지는 못한 거죠. 정도전이 세운 체계 속에서 왕을 한 거니까요.”

역사라는 거대한 물줄기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이는 때때로 미온적인 태도로 현실을 바라본다. 지금 벌어지는 상황들을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 이해할 때가 있는 것이다. 우리 현대사에서 독재정권이 존재했던 시기도 세계사의 흐름으로 보면 대부분의 개발도상국에서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마음으로 묵묵히 견뎌내기만 한다면 봄날을 맞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이유로 역사를 공부할수록 경계해야 할 것은 회의 아닌 회의에 사로잡히는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역사 안에서 진정으로 배우고 깨달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19세기를 들여다보니까 100년 내내 나라가 엉망이에요. 정조가 죽고 난 다음부터는 몇몇 가문들이 국가를 장악하고 자기들의 사리사욕을 위해서 왕을 뽑아요. 왕이 마음에 안 들면 갈아 치우고요. 정도전이 세워놓은 체계에 따라 공부를 시키지도 않아요. 왕이 멍청해야 그들이 잘 사니까요. 그렇게 100년을 보낸 거죠. 그래도 그 때 희망을 갖고 혁명적인 생각들을 가지고 삶을 살았던 사람들, 이이화 선생의 표현을 빌리자면 ‘봉기꾼’으로서 살았던 사람들이 있었던 건 역사를 읽었기 때문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역사를 아는 건 너무나 중요하죠. 역사가 거울일 수 있는 거예요. ‘나한테 이런 문제가 닥쳤는데 옛날에 비슷한 경우가 없었나? 그때 사람들은 어떻게 해결했지? 어떻게 잘못해서 실패했지?’ 이런 걸 살펴볼 수 있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과거를 아는 게 미래를 아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소설가 김탁환이 꿈꾸는 혁명

『혁명, 광활한 인간 정도전』은 김탁환 작가와 민음사가 함께 기획한 ‘소설 조선왕조실록’의 시작을 알리는 작품이기도 하다. 조선 500년의 역사를 소설로 재구성하는 작업인 만큼 작가가 느끼는 부담감도 적지 않았을 터. 그 험난한 여정을 자처한 이유가 궁금했다.

“정도전을 공부하면서 영향 받은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한영우 선생 같은 사학자는 정도전을 왕조의 설계자라고 정리하시는데요. 설계자는 자신이 어떤 국가를 만들겠다는 걸 가슴에 품고 계획대로 삶을 살아가는 거잖아요. 정도전이 설계한 것이 조선이었다면 저한테는 ‘소설조선완조실록’ 시리즈인 것 같아요. 제 가슴이 그 정도 크기는 안 되지만 설계를 하고 계획대로 살아가보고 싶은 거죠. 물론 설계대로 완벽하게 살다가 죽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아요. 또 설계대로 되지도 않고요. 변화와 우여곡절 속에서 어떤 사람의 인생도 미완성으로 끝나죠. 정도전도 그랬고요. 그렇지만 시작하는 거죠. 계속 소설을 쓸 거니까 자의식을 하나 더 얻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좋아하는 인물을 쓰면서 동시에 이 인물이 조선이라는 거대한 왕조의 흥망성쇠 속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는가를 살펴보는 거죠.”

뒤이어 그는 한 생애에 그치는 사유가 아닌 100년, 500년으로 사유의 폭을 확장시켜 나간다는 점에서 ‘소설 조선왕조실록’ 작업에 매혹됐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독자들로 하여금 600년 전의 인간과 만나고, 그와 소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소설가로서 자신의 역할인 것 같다고 밝혔다. 그를 위해서 김탁환 작가는 『혁명, 광활한 인간 정도전』과 같은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한편, 기존의 작품들을 재탄생시키는 작업도 함께 진행할 예정이다. ‘소설 조선왕조실록’으로 새 옷을 입게 될 작품은 어떤 모습일까.

“예를 들면 『서러워라, 잊혀진다는 것은』이라는 작품은 숙종 때 장희빈과 김만중의 이야기를 쓴 건데요. 출간된 새로운 연구 성과들이 있었고, 저도 숙종 실록을 다시 읽으면서 숙종이라는 인물에 관해서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서러워라, 잊혀진다는 것은』을 쓸 때는 ‘김만중이 왜 최후의 작품을 장희빈을 저주하는 소설을 썼을까, 한 인간의 최후의 작품이 왜 저주의 문학일까’ 이런 부분이 고민의 포인트였거든요. 그런데 저도 공부를 더 하다 보니까 그 반대쪽에 있는 숙종이라는 숨겨진 위대한 왕이 보이는 거죠. 우리는 위대한 왕을 생각할 때 세종과 영ㆍ정조를 꼽지만 제가 볼 때는 숙종도 조용하면서도 굉장히 센 사람이거든요. 우리 영토를 백두산까지 확장시킨 왕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숙종은 계속 후궁들에게 놀아난 나약한 왕으로 재생산되고 있잖아요. 그 부분에 대해서 생각을 하고 있어요. 『서러워라, 잊혀진다는 것은』을 조금만 수정하고 숙종 이야기를 다시 쓸 수도 있고요. 그게 아니라면 연결고리를 찾겠죠.”

‘소설 조선왕조실록’의 새로운 이야기를 위해 작가가 관심을 갖고 있는 인물들은 1400년대와 1800년대 조선의 인물들이다. 태조과 세종, 사육신과 생육신을 비롯하여 홍경래, 전봉준과 같은 민란 시대의 영웅들이 작가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들이다. 그들 중 누가 김탁환과 만나 새로운 세상을 이야기하며 그 마음을 활자로 새겨 넣을까. 또 다른 모습으로 찾아올 혁명의 모습을 기대하며, 그 안에 감춰둘 김탁환의 혁명은 어떤 모습인지 물었다.

“제가 《한국일보》에 문학 칼럼을 쓰고 있는데요. 오늘 인터뷰에 오기 전에 「삐딱함을 옹호함」 이라는 칼럼을 쓰고 왔어요. ‘우리에게 올바르게 살라고 말하지 마라, 올바르게 살라고 말하는 사람이 삐딱한 땅 위에 서 있는 거다’라는 내용이에요. 자신이 삐딱한 땅 위에 서 있는 걸 모르고 나한테 삐딱하게 살지 말라고 말하는 건 횡포라는 얘기죠. 특히 예술가들에게 삐딱함을 권장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작가는 삐딱하기 때문에 글을 쓸 수 있는 거죠. 제가 생각하는 좋은 사회는 다양한 삶이 공존하는 사회예요. 답이 하나로 정해져 있어서 거기로 가는 것만이 옳다고 하는 사회가 아니고요. 생태학에서도 생물 다양성을 얘기하잖아요. 한 지역에 하나의 생물만 살고 있으면 금방 멸망한다고요. 다양한 생물들이 모여서 섞여 살아야 하듯이 우리가 하나같이 비슷한 말만 해서는 안 되겠죠. 각각 다른 삶, 다양한 삶을 살 수 있는 방향으로 사회가 나가야 되는데 그렇게 안 되니까 힘들 때가 있죠.”




『혁명, 광활한 인간 정도전』은 가벼운 마음으로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 안에 담긴 인물들의 삶이, 그들의 마음이 결코 가볍지 않은 까닭이다. 이따금씩 책장을 넘기는 손길을 멈추게 되고 한동안 허공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기게 되는 것은, 600년 전 혁명을 꿈꾸었던 그들의 현실과 이상이 오늘의 우리와 닮아있기 때문이다.

『혁명, 광활한 인간 정도전』의 독자들로부터 ‘너무 세다’는, 짧고도 강한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하는 작가의 얼굴에는 기분 좋은 미소가 가득했다. 이번 작품을 통해서 독자들이 우리의 삶을 불편하게 느끼고 그로 인해 많은 생각을 떠올릴 수 있기를, 작가는 바라고 있었다. 그의 말을 듣고 나니, 『혁명, 광활한 인간 정도전』이 가진 묵직함은 정도전과 정몽주, 이성계의 이상 때문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곧 작가 김탁환이 가진 이상의 무게이기도 했다. 그 무게가 독자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지기를 바라며 작가는 독자들에게 작은 부탁을 전했다. 어쩌면 김탁환의 정도전 이야기에 보다 쉽게 빠져들 수 있는 방법에 대한 귀띔이기도 했다.

“저는 독자들이 『혁명, 광활한 인간 정도전』을 소리 내어 읽어보셨으면 좋겠어요. 눈으로도 읽지만 자신을 불편하게 만드는 부분은 소리 내서 읽어보셨으면 해요. 그러면 제가 넣어놓은 리듬들을 몸으로 더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그러면 이 소설이 몸에 더 잘 붙지 않을까 생각해요.”

<독자 무료초대>

소설가 김탁환과 역사학자 강문식의 조선 읽기

일시 : 2014년 3월 21일 (금) 저녁 7시
신청http://ch.yes24.com/Culture/SalonEvent/3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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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 광활한 인간 정도전김탁환 저 | 민음사
이 책은 이성계가 해주에서 낙마하는 순간부터 정몽주가 암살당하는 순간까지, 고려라는 불꽃이 스러지고 조선이라는 동이 튼 18일의 광활하고 내밀한 비망록을 담고 있다. 편년체를 통한 외면적이고 공식적인 세계와 정도전의 일기를 통한 내면적이고 비공식적인 세계를 동시에 구현하는 이 작품은, 형식에 있어서 다양한 실험을 담고 있다. 편지, 동물우화, 전(傳), 여행기 등 다양한 문체를 구사하며, 하나의 문체만을 고집하지 않음으로써, 역사가 어떻게 문학적 옷을 입게 되는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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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니, 이 노래 내 이야기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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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데뷔 10년을 맞은 몽니가 3년 만에 새 앨범 『Follow My Voice』를 발매한다. 최근 소속사에서 독립해 모던보이레코드를 설립한 몽니는 “이번 정규 4집은 강함과 부드러움, 따뜻함과 차가움, 애절한 등 다양한 감성을 담아냈다”고 말했다. 오는 3월 11일, 선공개하는 타이틀곡은 「돋는다」. 어린 시절, 사랑했던 여자를 잊지 못하고 추억을 안고 사는 한 남자의 마음을 표현한 곡으로 리더 김신의가 작곡했다. 몽니는 오는 4월 서울, 부산, 대구 등을 차례로 새 앨범 발매 기념 콘서트를 연다. 5월에는 ‘그린플러그드 서울 2014’ 페스티벌에도 참여한다.

4집 앨범 발매를 1주일 앞둔 날, 홍대의 작은 카페에서 몽니를 만났다. 드러머 정훈태는 현재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 중이라 만날 수 없었다. 3년 만에 발매되는 정규 앨범인 만큼, 몽니의 기대와 자신감은 여느 때와 달랐다. 몽니의 목소리만을 따라오라는 새 앨범처럼, 김신의, 공태우, 이인경 세 명의 목소리에만 주파수를 맞췄다.




봄을 느낄 수 있는 신곡 ‘돋네요’ ‘순간 안에’

정규 4집 앨범명이 『Follow My Voice』다. 제목만으로도 자신감이 엿보인다.

세상에 정말 수많은 소리가 있지만, 우리 목소리를 한 번 따라와보라고 말하고 싶었다. 기존 앨범과 차이점이 있다면 프로듀서와 협업했다는 점이다. 밴드 사운드를 기본으로 일렉트로닉 요소를 많이 가미했다. 아무래도 프로듀서와 함께 작업을 하니, 보다 폭넓은 시야에서 앨범을 준비할 수 있었다. 이인경(베이스), 공태우(기타)의 곡도 수록했다. 몽니의 다양한 색깔을 느낄 수 있다.

믹싱, 마스터링에도 굉장히 신경을 썼다고 들었다.

홍대에서 활동하는 웬만한 밴드들의 믹싱을 도맡고 있는 오영석 기사님이 함께했다. 굉장히 유능한 분이다. 마스터링은 미국 최고의 마스터링 스튜디오인 스털링사운드에서 작업했다. 지금까지 몽니가 해보고 싶었던 것을 다 해보자는 생각으로 과감하게 시도했다.

소속사에서 독립하고 모던보이레코드를 설립했다. 보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작업할 수 있었겠다.

소속사가 있을 때는 의존했던 부분이 없지 않았다. 독립을 했으니 자유로움이 생긴 만큼 책임감도 더 커진 것 같다. 모든 걸 진취적으로 할 수 있다는 부분이 가장 큰 장점이다. 몽니에게 집중적으로 투자할 수 있었다. 그래서 4집이 더 기대된다.

3월 11일에 타이틀곡 「돋네요」 를 선공개 한다고 들었다. 봄이 느껴지는 제목이기도 하고, 몽니의 느낌이 많이 묻어있는 것 같다.

김신의:첫사랑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곡이다. “네가 썼던 향수 이름을 아직도 찾고 다녀”라는 가사가 있는데, 내 실화다. 가끔 그 향수 냄새를 맡으면 그 때의 공간으로 확 들어간다. 한 때 인터넷 상에서 ‘~돋는다’는 말이 유행하지 않았나? ‘추억이 돋네요’, ‘소름이 돋는다’, ‘새싹이 돋는다’와 같은 말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공태우:이번 앨범에서는 타이틀곡을 두 개로 잡고 있다. 「돋네요」 와 함께 「순간 안에」 라는 곡으로 활동할 계획이다. 오늘 오전에도 콘서트 연습을 하고 왔는데, 오랜만에 새로운 곡으로 준비하니까 정말 설렌다. 4월 단독 콘서트에서는 4집 전곡을 선보일 계획이다.

다른 두 멤버 이인경, 공태우의 곡도 궁금하다.

이인경: 「스노우볼」 이라는 곡을 썼다. 여러 차례 곡 작업을 하면서 느낀 점은 내 노래에는 감성적이고 슬픈 감성이 있다는 점이다. 동화 같은 멜로디의 곡이다.

공태우: 제목이 「남아줘」 다. 보통 아르페지오는 통기타로 표현하지만, 이 곡에서는 일렉기타로 작업했다. 다른 한 곡은 「아일랜드」 라는 노래다. 여행에 관련된 곡인데 대중이 좋아할 만한 가볍고 발랄한 곡이다.

김신의:보통 ‘~줘’ 이렇게 끝나는 제목은 연륜이 있어야 쓸 수 있는 말인데, 태우가 자꾸 반말을 쓴다(웃음). 또 다른 곡이 있었는데, 더 좋은 곡이 나올 것 같아서 다시 한 번 써보자고 했더니, 「아일랜드」를 가져오더라. 기대해도 좋을 곡이다. 인경이의 「스노우볼」 도 좋다. 좋고 나쁨을 떠나서 인경이의 곡에는 인경이 만이 갖고 있는 뚜렷한 색깔이 있다.

4월 서울, 부산, 대구 콘서트에 이어 5월 4일에는 ‘그린플러그드 서울 2014’ 무대에 선다. 강산에, 장기하와 얼굴들, 피아 등 라인업이 무척 화려하다. 페스티벌은 밴드들에게도 축제가 되는 무대인데, 어떻게 준비하고 있나.

단독 공연 같은 경우에는 몽니의 팬들만 오지만, 페스티벌은 음악을 즐기려는 모든 팬들이 모이는 자리다. 팬들도 즐기지만 밴드 역시 즐기는 시간이다. 경계 없는 무대가 펼쳐질 때 흥분된다. 페스티벌은 여건에 맞으면 대부분 참여하려고 한다. ‘그린플러그드 서울 2014’는 봄에 하는 축제이기 때문에 봄을 즐기려는 관객들이 많은 것 같다. 해가 좀 길어지는 계절이기 때문에 너무 밝을 때, 발라드만 부르지 않는다면(웃음) 멋진 축제가 될 것 같다.

페스티벌은 새로운 팬을 만들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물론이다. 밴드끼리 교류할 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고, 우리를 모르는 관객에게 몽니를 소개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다. 여러 밴드의 무대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페스티벌에서, 우리 무대 앞에 앉아 있는 관객들을 볼 때면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참 좋다. 그리고 페스티벌은 확실히 관객들의 반응이 훨씬 좋다. 음악을 정말 즐기는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인 것 같다.

올해도 ‘그린플러그드’를 비롯해 지산락페스티벌, 안산밸리록페스티벌, 인천 펜타포트 록페스티벌, 그랜드 민트 페스티벌 등 많은 페스티벌이 예정됐다. 몽니에게 특별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페스티벌은 무엇인가.

아무래도 ‘쌈지 사운드 페스티벌’을 잊을 수 없다. 지금은 페스티벌이 많이 생겼지만 1999년, 당시만 해도 ‘쌈사페’가 밴드들이 꿈꾸는 최고의 무대였다. 입장료도 3천원? 5천원? 정말 저렴했다. 몽니로 활동하기 시작할 때, 가장 서보고 싶은 무대였다. 2005년 ‘쌈지 사운드 페스티벌’ 숨은 고수로 선정이 됐는데, 그 때 동기가 슈퍼키드였다. 전국 밴드 중에 다섯 팀이 붙었는데, 되게 치열했다.




몽니의 키워드는 지속성, 공감, 힐링

2005년에 1집 앨범 『첫째 날, 빛』을 냈으니, 올해로 10년차 밴드가 됐다. 지난해 발매한 싱글 「노인」 에서는 몽니의 연륜이 느껴졌다.

김신의: 「노인」 은 박해일 씨가 나온 영화 <은교>를 보고 영감을 얻어 작곡한 곡이다. 극 중에서 박해일 씨가 은퇴하는 나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젊은 시절을 떠올리며, 은교라는 아이와 사랑하는 상상을 하는데, 되게 슬프게 다가왔다.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이지만 상상은 할 수 있으니까. 우리도 언젠가 나이가 많이 들면, 젊었을 때 공연한 사진을 보면서 추억에 잠길 수 있겠구나, 그 때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그립겠구나, 후회 없이 살아가자. 그런 생각을 했다. 영화를 보면서 우연찮게 감동을 받을 때가 있다.

결혼한 멤버가 두 명이다. 뻔한 이야기지만, 결혼을 하면 감수성보다 현실적인 감각이 더 많아지고 책임감도 생기는데, 밴드 활동을 하기에 어려운 부분은 없나.

김신의:확실히 감성은 떨어지는 것 같다. 결혼 전에는 되게 슬프고, 되게 즐겁고 그런 감정들이 들쑥날쑥 했는데, 요즘은 삶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이 많다. 「노인」 같은 노래도 그렇고. 「술자리」 같은 노래에서도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의 시간이 중요하다는 그런 가사를 쓰게 된다. 어떤 사람은 감성이 떨어진다고, 일부러 여자친구와 사귀었다가 헤어지고 한다는데, 그건 솔직히 오버인 것 같다. 사람이 살면서 자연스럽게 모양새도 바뀌고 스타일도 바뀌는데, 그걸 애써 받아들이지 않는 것보다는 좋은 방향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현명한 것 같다.

공태우:결혼 3년 차다. 아마 우리가 얼굴로 승부를 보는 아이돌이나 배우였으면 힘들었겠지만, 몽니 팬들은 몽니의 음악을 좋아하게 되면서 우리를 좋아하게 된 사람들이라서, 결혼은 그다지 크게 상관이 없는 것 같다.

한 곡만 뽑기는 힘들겠지만, 몽니로 활동하면서 개인적으로 남다른 의미가 있는 곡이 있을 것 같다.

공태우: 2011년에 발표한 「밴드뮤직」. 싱글로 낸 앨범이었는데, 처음으로 우리 넷이 모여서 함께 만든 곡이다. 몽니의 색깔이 잘 묻어난 곡이다. 라이브로 부를 때도 늘 신나는 곡이다.

이인경: 「레미제라블」, 초창기 곡이다. 지금까지 몽니가 만든 곡 중에 가장 대곡이 아닌가 싶다. 다른 곡들에 비해서 굉장히 화려하고, 카타르시스가 느껴지는 곡이다.

김신의: 「소나기」. 밴드가 아니면 만들 수 없는 곡이지 않을까. 20대 초반, 사랑했던 여자친구가 3개월 만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던 기억을 가지고 쓴 곡이다. 처음에는 편곡보다 조금 느린 곡이었다. 곡을 쓸 때 고민하고 쓴 게 아니라, 내 실제 경험이 자연스럽게 묻어 나왔다. 무덤 속에 관이 내려가고 국화꽃이 떨어지고, 내가 묘지에서 내려오면서 막 울고 소리 질렀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밴드 이름 이야기를 안 할수 없다. ‘몽니’는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할 때 권리를 주장하기 위하여 심술을 부리는 성질’이라는 뜻인데, 긍정적인 의미는 아니다. 리더 김신의가 지은 이름인데, 다른 멤버들의 불만은 없었나.

공태우: 사람들에게 밴드 이름을 이야기할 때, 꼭 두 번 이상 말해야 알아 듣는다. 한 번에 들리는 이름이 아니라서 ‘별론가?’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독창적이고 예쁜 이름이라고 사람들이 말하더라. 그래서 불만은 없다(웃음).

이인경:처음에는 잘 모르는 단어라서 의아해 했는데, 오래 쓰다 보니 적응한 것 같다. 좋다.

김신의:밴드가 잘 되면 이름은 크게 상관이 없는 것 같다. ‘오아시스’를 봐라. 밴드 이름은 진짜 촌스러운데, 음악을 잘하니까 멋있어 보이지 않나? (웃음).

몽니 음악의 주요한 키워드는 무얼까.

공태우: 공감이다. 몽니 음악을 들었을 때, ‘저 노래 내 이야기인데?’ 하는 느낌? 다른 사람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로 느껴질 때, 심취해서 듣게 되는 것 같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고.

이인경: 힐링. 몽니 음악을 듣고 사람들이 위로를 받고 치유됐으면 좋겠다.

김신의: 지속성이 아닐까 싶다. 같은 멤버로 변함 없이 활동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멤버가 한 명이라고 바뀌면, 삐그덕 소리가 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자우림이나 넬 같은 밴드는 멤버 교체 없이 쭉 함께하니까 그 안에서 터지는 힘이 무척 강하다. 밴드라는 게, 잘하는 사람들이 만난다고 잘되는 게 아니다. 마음에 맞는 사람들이 만나서 오래 지속되어야 빛을 발한다. 10년차를 넘기고 지금 한 자리를 하고 있는 밴드를 보면, 오랜 시간 동안 화합을 만들어 왔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나, 싶다.

몽니를 존재하게 한, 몽니를 밴드로 이끈 아티스트나 앨범이 있나.

김신의: 스매싱 펌킨스. 고등학교 시절에 친구와 함께 많이 들었다. 스매싱 펌킨스 때문에 베이스는 무조건 여자로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인경이와 함께하게 됐다.

공태우: 딱 한 명을 꼽긴 어려운 것 같다. 자연스럽게 음악을 하게 된 것 같은데, 몽니를 하면서부터는 이소라 씨의 음악을 많이 듣게 됐고, 이소라 노래의 감성을 좋아하게 됐다.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

이인경:뮤(mew)를 좋아한다. 일본에 가서 뮤 공연을 봤는데, 그 때 감동을 받고 음악을 하게 됐다. ‘아 진짜 세상에 이런 사람이 있구나, 이런 음악이 있구나’ 생각하게 만든 아티스트다. 지금도 제일 좋아한다.




평생 음악을 하고 싶다

리더 김신의는 뮤지컬배우로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2008년 <로키 호러 픽쳐 쇼>를 시작으로 <락 오브 에이지>,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머더 발라드> 등에서 탁월한 실력을 선보였다. 뮤지컬과 밴드를 병행하기가 조금 힘들진 않나.

김신의: 만약 내가 뮤지컬에 재능이 없는데, 오디션을 보러 다니고 꾸역꾸역 출연한다면 잘못된 일이겠지만, 나를 필요로 하는 공연이 있으니까. 이 부분을 같이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멤버들에게도 그렇게 설득했다.

공태우: 처음에는 뮤지컬 무대에 선 형의 모습이 굉장히 낯설었다. 예전에 <로키 호러 픽쳐 쇼> <락 오브 에이지> 공연을 하는 걸 봤는데, 미녀들이 옆에 달라붙어서 연기를 하더라. 그걸 보고, ‘아 나도 연기를 할 수 있다면 또 다른 인생을 살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을 했다. 부러움이 조금 있었다(웃음). 요즘은 새로 시작하는 뮤지컬이 있으면 멤버들이 항상 보러 간다.

몽니가 가장 수다스러워질 때는 언제인가?

공태우: 웃긴 영상을 볼 때, 다같이 한 마음이 된다(웃음). 또 인경이가 언제쯤 연애를 해서, 우리가 연애상담을 해줄 수 있을지? 몽니가 언제 축가를 불러줄 수 있을지가 주요한 관심사다(웃음).

이인경: 이렇게 나오니까 더 말을 못하겠다.

모던보이레코드에서 밴드 후배를 육성할 계획은 없나?

물론 있다. 하지만 어떤 밴드를 소속시키자, 그런 개념보다는 좋은 팀들과 가족 개념으로 같이 가고 싶은 생각이다. 계약서에 얽매어서 활동하는 게 아니라, 우리 회사가 좋고 우리 팀이 좋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몽니의 미래는 어떻게 보고 있나.

처음 음악을 시작할 때부터, 평생 음악을 할 거라는 각오가 있었다. 지금까지 10년이라는 시간이 어떻게 보면 긴 시간이지만, 우리에게는 정말 훅 지나간 시간이었다. 몽니로서 정규앨범을 여섯 장까지는 꼭 내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 물론 6집이 7집이 될 수도, 10집까지 갈 수도 있다. 다만 몽니가 가진 색깔 만큼은 언제라도 유지하고 싶다.

4집 앨범, 4월 단독 콘서트, 5월 그린플러그드 페스티벌로 몽니를 만날 것을 기대하는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이인경: 입에 발린 말이 아니고, 정말 기대 많이 해주셨으면 좋겠다. 4집 앨범에 담겨진 곡들, 진짜 좋고 멋있다. 진심이다. 공연을 함께 즐겨준다면 더없이 행복할 것 같다.

공태우: 봄에 어울리는 노래들을 많다. 많이 들어주셨으면 좋겠다. 공을 많이 들인 앨범이니만큼 팬들에게도 흡족할 것을 기대한다.

김신의: 4집 앨범 수록곡을 여러 곳에서 정말 많이 부르고 싶다. 한강에서 부를 수도 있고 공연장에서 부를 수도 있고. 장소, 시간 구애 받지 않고 활동하고 싶다. 오랜 기간을 거쳐 나오는 음반이니 만큼, 기대해도 좋다. 공연을 직접 오셔서 라이브로 들으면, 감동이 배가 될 거다.

봄이 왔다. 개인적으로 봄에 하고 싶은 일은 없나?

이인경:공연하느라 바쁘겠지만, 그래도 틈을 내서 여행을 가고 싶다. 홍콩에 가고 싶다. 혼자 가는 건 싫고, 친구랑 같이(웃음).

김신의: 음, 공연하느라 무지 바쁠텐데. 인경이가 여행을 간다면, 태우와 함께 10cm 아류작이라도 만들어야 하나? 태우야, 너 키 몇이지?

공태우: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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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배우 김보강 “고흐에 대한 편견을 버린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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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가 보여준 것은 집착이 아니라 진심

빈센트 반 고흐. 그의 삶에서 ‘평범함’을 발견할 수 있을까. 끼니조차 해결되지 않는 절대적인 궁핍 속에서도 그림에만 매달리고, 창녀라 손가락질 받는 여인을 진심으로 사랑한다 외치고, 스스로 자신의 귀를 자르고, 끝내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한, 이 남자의 삶을 평범하다 말할 수 있을까.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는 그렇다고 말한다. 고흐 역시 꿈을 꾸고, 자신이 꿈꾸는 그 날을 기다리며, 불확실한 미래가 주는 불안으로 괴로워했던, 우리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많은 사람들은 그의 삶이 절망으로 점철되어 있었노라 이야기한다. 하지만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에서 고흐를 연기한 배우 김보강은 ‘희망’을 말한다. 고흐의 삶이 비극적인 결말을 맞은 건 모두 희망 때문이었다고. 이 역설적인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배우 김보강을 직접 만나 그가 되살린 고흐의 이야기를 들어봐야겠다.

세계인이 가장 사랑하는 천재 화가, 그러나 살아 있는 동안에는 단 한 점의 그림밖에 팔지 못한 비운의 화가, 빈센트 반 고흐. 그의 이야기가 창작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로 부활했다. 동생 테오와 주고받은 700여 통의 편지를 바탕으로 쌓아올린 이야기는 두 형제의 시간을 되짚어간다. 그 안에서 관객은 고흐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 걷는다. 그리고 끝에 이르러 발견하게 되는 것은 우리가 알지 못했던 ‘인간 고흐’다. ‘광기에 사로잡힌 예술가’로 모두 설명되는 줄 알았던 고흐와는 분명 다른 모습이다.

“처음 <빈센트 반 고흐>의 출연 제의를 받았을 때 제가 알고 있던 고흐는 미치광이 화가였어요. 독기와 광기가 가득했던 사람, 자신을 극한으로 밀어 넣고 자살까지 선택했던 인물. 그 정도로만 알고 있었죠. 그런데 고흐를 연기할수록 예술가들이 우러러봐야 하는 독보적인 존재라는 걸 느껴요.”

광기와 집착. 지금까지 고흐의 삶과 작품은 이 두 단어를 빼놓고는 설명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광기 없이 탄생하는 예술이 있었던가. 집착 없이 완성되는 작품이 있었던가. 어쩌면 그건 모든 예술가들이 가장 염원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배우 김보강도 예외일 리 없었다. 그래서 물었다. 고흐가 보여준 광기와 집착이 열정의 또 다른 이름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는지.

“저희 입장에서 볼 때는 집착이지만 고흐는 그게 진심인 거예요. 그 사람은 좋아하면 정말 마음을 다해서 좋아하고, 좋아하는 것만 봤던 거죠. 그러니까 일반적인 생각으로 바라보면 심하게 집착하는 걸로 보일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고흐가 되어 보면 자신한테 가장 정당성이 있는 거거든요. ‘내가 사랑해서 하는 행동이 잘못된 거야? 왜 사람들은 나를 이해해주지 못할까? 나는 정말 그림이 좋고 친구 고갱이 좋아서 다 쏟아 붓고 있는데, 왜 사람들은 나에게 미치광이라고만 할까?’ 이렇게 생각했을 것 같아요. 고흐가 갖고 있었던 본연의 모습과 특유의 성격은 순수해요. 더 나아가서는 집착까지 보일 수 있을 정도로요. 그만큼 사랑이 많은 사람이었어요. 사랑의 표현을 받고 싶어 하고 주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죠. 그렇기 때문에 상처가 더 많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김보강은 자신의 색깔을 고집하는 고흐의 모습에서 자신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위해 모든 것을 내걸 수 있는 고집. 그 고집을 배우 김보강 안에서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대중적인 스타가 될 수 있었던 기회 앞에서 ‘인정받더라도 무대에서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미련 없이 발걸음을 돌린 그였기 때문이다. 2007년 창작 뮤지컬 <마리아 마리아>를 통해 데뷔한 그는 이듬해 MBC 드라마 <누구세요?>에 출연하며 떠오르는 신예로 주목받았다. 하지만 그는 공연 무대로 돌아왔고, 브라운관에서 다시 그를 볼 수는 없었다. 지름길을 놔두고 굳이 멀리 돌아가려는 이유는 뭘까.

“뮤지컬 홍보 차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했는데, 흔히 하는 말로 빵 터졌죠. 하루아침에 인생이 바뀌어 있더라고요. 길거리의 사람들이 알아보고 사인 받으러 오기도 하고요. 그러면서 드라마 출연 제의가 갑자기 들어왔어요. 연기적인 내공을 갖추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이 된 거죠. 어떤 과정 없이 높은 곳에 오르게 되면, 그보다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해서 많은 것이 요구되는 것 같아요. 그때 저는 나라는 사람이 아닌, 영혼이란 없는 상품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기 싫은 것까지도 해야 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고요.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 어린 생각을 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한데요. 제가 선택한 삶에 후회는 하지 않아요. 무대에서 연기를 하고 노래를 하면서 저의 최종 목표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건 아니니까, 그래서 과감하게 포기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무대 위의 배우가 가장 희열을 느끼는 순간은 자신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고 관객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을 때가 아닐까, 라는 섣부른 추측은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위해 무대에 서지 않는다’는 그의 말 앞에서 흔적 없이 무너져 내렸다. 그렇다면 배우 김보강이 희열이 느끼는 순간은 언제일까. 그는 ‘공연 잘 봤어요’라는 한 마디가 자신을 살아가게 하는 힘이라고 답했다. 자신이 표현한 캐릭터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힘들었던 순간이 모두 잊혀 진다고.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 터닝 포인트가 되다

배우 김보강이 고흐가 되기로 결심한 이유는 ‘터닝 포인트’ 때문이었다. 연기 인생에 있어서 터닝 포인트가 필요하다고 절감하던 시기에 운명처럼 이번 작품과 만나게 된 것이다. 연극 <내 이름은 김삼순>, 뮤지컬 <환상의 커플>과 <빨래>등의 전작들에서 대중적인 캐릭터를 연기했던 그는 과감한 변화를 결심한다. 다른 배우들이 연기해 본 적 없던 캐릭터, 연기하기가 까다로워 꺼려하는 캐릭터를 찾아 나선 것이다. 그러던 중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와 만난 그는 허구가 아닌 현실에 존재했던 인물을 연기한다는 사실에 매력을 느껴 출연을 결심했다. 초연 작품인 만큼 자신만의 ‘고흐’를 그려낼 수 있다는 점에서도 배우로서 의미 있는 작업이었다. 음악과 무대 연출에 있어서 <빈센트 반 고흐>가 보여주는 새로운 시도들 역시 빼놓을 수 없다. 무대 전체를 거대한 캔버스삼아 펼쳐지는 3차원 영상들과, 뮤지컬 음악감독으로 첫 발을 내딛는 싱어송라이터 선우정아가 들려주는 넘버들 모두가 신선한 충격을 안겨준다. <빈센트 반 고흐>가 배우 김보강에게 뿐만 아니라 국내 공연계와 관객들에게까지 ‘터닝 포인트’가 될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되는 이유다.

두 명의 남자 배우만으로 극 전체를 이끌어 가는 이번 작품에는 빠질 수 없는 또 한 명의 주인공이 있다. 바로 3차원 영상으로 되살아난 고흐의 작품들이다. 「별이 빛나는 밤」 「고흐의 방」 「까마귀가 있는 밀밭」와 같은 그림들이 무대 벽면과 바닥까지 가득 채운다. 그림 속의 인물들은 관객을 향해 손짓하고 밀밭의 까마귀는 바람을 타고 날갯짓을 한다. 그림 속에 박제되었던 순간, 고흐가 바라보았을 풍경 속으로 독자들을 이끄는 것이다. <빈센트 반 고흐>가 야심차게 준비한 3차원 영상은 명작들을 보여주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배우들이 무대 위로 등장하고 무대 뒤로 숨어드는 순간까지도 포착해낸다. 이야기가 펼쳐지는 공간과 관객의 시야를 확장시키는 시도라 할 만하다. 그러나 배우에게는 혁신적인만큼 낯선 변화였을 것이다.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영상과 어우러지는 연기’를 하느라 고생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 아닐까.

“처음에는 영상 없이 연습을 했어요. 영화 <아바타>의 배우들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허공에 대고 연기를 하는 것 처럼요. 백지를 두고 그림이 있다고 상상하면서 연습했죠. 그렇게 상상 훈련을 하고 나서 무대에서 영상을 만났을 때, 오히려 감정이 배가 되더라고요. 그 전에는 연기가 영상에 묻히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거든요. 사실 영상 때문에 더 증폭되는 감정을 포기해야 했던 부분도 있었어요. 그런데 그 감정이 영상이랑 어우러지면서 배가 되는 걸 보고 많이 놀랐죠. 굉장히 흥미롭더라고요. 앞으로는 이 기술력이 어마어마해지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제가 그림 속에 있다가 창문을 열고 나오면서 실제 무대 위로 등장하는 장면이랄지, 그냥 제자리에서 걷고 있는데 배경 영상이 움직이면서 거리를 걷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장면들만 보더라도 그렇죠. 아마 나중에는 더 엄청난 장면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렇게 3D 영상을 도입한 게 한국에서는 <빈센트 반 고흐>가 처음일 것 같은데요, 이 작품을 통해서 많은 제작진들이 공연 예술의 발전 가능성에 대해서 희망을 느끼고 갔으면 좋겠어요.”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를 제작한 HJ컬처의 한승원 대표는 “인디밴드와도 같은 그의 삶을 표현하기 위해 기존 뮤지컬 음악감독들이 아닌 선우정아를 선택했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2NE1의 「아파」 GD&TOP의 「Oh Yeah」 등을 작곡하며 대중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선우정아는 지난 2월 ‘2014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올해의 음반, 음악인, 최우수 팝 음반 부문에 후보로 선정되기도 한 실력파다. 배우 김보강은 그녀를 두고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반 고흐와 가장 닮은 예술가’라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감독님께서 작곡하신 노래만 들어도 감정을 잡을 수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물어봤죠. 어쩜 이렇게 고흐의 감정과 맞아 떨어지냐고요. 감독님도 자신의 음악 색깔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는 싸우기도 하면서 지금까지 활동해 왔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씀을 듣고 나니까 음악이 더 좋게 들리는 것 같았어요. 상황에 딱 맞는 더 좋은 음악들도 나오고요. 선우정아 감독님과는 정말 쉽고 재미있게 작업했어요.”

기존의 뮤지컬과는 다른 음악을 보여주겠다는 선우정아 감독과 한승원 대표의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뮤지컬 넘버는 웅장하고 장엄하다는 편견을 뛰어넘는 선우정아 표 음악들은 친숙한 가요를 듣듯 부담 없이 다가온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고흐의 감정들을, 누구나 읊조릴 수 편안한 리듬 안에 담아낸 것. 이렇듯 선우정아가 선보이는 새로운 스타일의 뮤지컬 넘버들은 공연이 시작되기 전부터 대중들의 호평을 받았다. 지난 해 12월, 국내 최초로 뮤지컬 프리미어 콘서트 ‘Concert for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를 공연하며 주요 넘버들을 공개한 것이다. 당시의 실황 음원은 예스24의 <빈센트 반 고흐>예매 페이지에서도 감상할 수 있다.

<빈센트 반 고흐>의 넘버들은 한껏 힘을 뺀 모습이지만 그 안에서도 고흐가 가졌던 절절함은 그대로 살아있다. 두 명의 배우가 쉼 없이 노래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인데, 무대 위에서 끊임없이 절절한 감정을 토해내는 배우를 보고 있자니 그 에너지를 가늠하기조차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연극 <우먼 인 블랙>을 통해 2인극의 고됨을 잘 알고 있는 그가 또 다시 그 길을 걸어가는 이유가 궁금했다. 관객이 느끼는 것 이상으로 배우가 느끼는 2인극의 매력도 있지 않을까. 거창한 대답을 기대했지만 의외로 단출한 대답이 돌아왔다. 힘든 게 매력이라는 얘기였다.

“저는 무대에서 모든 걸 다 쏟아내고 내려왔을 때가 제일 행복해요. 다 쏟아낸 다음에 무대 뒤에서 거울을 보고 있으면 ‘이 맛에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맛에 무대에서 사는 거죠. 에너지를 다 써버렸을 때, 저는 그게 그렇게 좋더라고요. 내일이 없을 것처럼 오늘 하루를 다 쏟아 붓는 게 좋은 거죠.”

김보강과 함께 고흐 역에 더블 캐스팅된 배우 라이언. 그가 연기하는 고흐는 어떤 모습일까. 김보강의 고흐처럼 열정적으로 감정을 토로하는 인물일까. 두 배우의 고흐는 얼마나 닮아있고 또 얼마나 다른 인물일지, 궁금증이 짙어졌다.

“라이언은 예리한 감정을 가지고 반응하는 속도가 굉장히 빨라요. 그래서 소년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순수함의 강도가 무척 큰 거죠. 그래서 건드리면 곧바로 무너져버릴 것 같은 느낌이에요. 그런 매력이 있더라고요. 가슴 졸이게 하고 안타깝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라이언이 연기하는 고흐도 너무 좋아요. 라이언의 공연을 보면서 ‘저런 면은 나도 가지고 가면 굉장히 좋겠다’고 발견한 부분들이 많아요. ‘이래서 캐릭터가 조금 다른 게 더 효과적이구나’ 라고 느낄 정도예요.”


배우 김보강은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가 쉽게 치유될 수 없는 상처를 안은 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스스로 치유해 나갈 수 있는 힘을 줄 수 있는 작품이라고 했다. 덧붙여 인생의 계획을 세우는 단계에 있는 30대 관객들에게 추천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아마도 그들이 서른일곱의 나이에 생을 마감하며 고흐가 느꼈을 꿈과 좌절에 가장 많이 공감할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고흐의 삶에서 ‘상처를 치유해 나가는 힘’을 발견할 수 있을까. 그의 삶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을지, 인터뷰를 시작하며 품었던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사람은 그냥 희망을 바라보고 살았다는 거죠, 끝까지. 그런 면모가 있었기 때문에 결국자기 가슴에 총을 쏘고 죽었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던 힘은 희망이에요. ‘내가 죽어서도 내 그림은 분명히 빛을 보겠지’ 라고 생각한 거예요. 고흐는 알고 있었던 거죠. 나중에 사람들은 각각 방에 자기 그림 한 점을 걸어놓고 자신한테 말을 걸어줄 거라고요. 그 이야기가 실제로 테오에게 쓴 편지에 적혀있다고 해요. 저희 작품에도 그 말이 나오죠. 모든 대사들이 편지를 기반으로 쓰였으니까요. 그런데 지금 정말 그의 말처럼 됐잖아요. 곳곳마다 반 고흐의 그림이 없는 곳이 없을 정도니까요. 그러니까 희망을 항상 바라보고 살아야 되지 않을까요? 그 부분이 저희 작품을 감상하는 팁이죠.”

배우 김보강은 뮤지컬 <빈센트 반 고흐>를 통해서 ‘무너지고, 쇠약해지고, 많은 것을 잃고 살아왔지만 굉장히 심지가 단단한 사람’으로서 고흐를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그가 발견한 것처럼 <빈센트 반 고흐>는 절망이 아닌 희망 때문에 삶까지도 그림과 맞바꿀 수 있었던 사람, 우리가 몰랐던 고흐에 대해 이야기한다. 감춰져있던 그 모습은 충무아트홀 중극장 블랙에서 4월 27일까지 만날 수 있다. 동생 테오 역에는 뮤지컬 <위대한 캣츠비><노트르담 드 파리>의 김태훈,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맨 오브 라만차>의 박유덕이 더블 캐스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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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박윤영 “연애하면 한 번쯤은 그래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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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만화의 미덕은 무얼까. 가슴을 콩닥콩닥 설레게 만드는 주인공? 삼각관계?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의 결말? 평범해 보여도 내 일이 되면 절대 간단한 일이 될 수 없는 ‘연애’. 웹툰 시장에서는 의외로 많이 볼 수 없는 ‘로맨스’ 만을 그리는 『여자만화 구두』 박윤영 작가를 만났다. 굳이 ‘여자만화’라는 타이틀을 붙여서 남성 독자들을 쑥스럽게 만든 박윤영 작가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오로지 ‘만화가’ 만을 꿈꿨던 소녀였다. 대학에서 만화예술학을 전공하고 네이트에서 『여자만화 구두』를 웹툰으로 연재하며, 데뷔한 스물아홉 만화가. 3년 전 연재했던 작품이 동명의 드라마로 제작되면서 또 한 번 주목받고 있다.

『여자만화 구두』는 첫사랑의 아픈 기억으로 사랑을 두려워하던 여자 ‘신지후’와 사랑에 지친 남자 ’오태수’가 만나게 되면서 시작된다. 다를 수밖에 없는 남녀의 사랑법은 답답하기보다는 짠하다. 이제는 서툴지 않다고 다짐했던 우리의 사랑, 주인공들의 심리를 따라가다 보면 순간 움찔하는 자신을 목격한다. 그간 잊힌 감정들이 새록새록 찾아오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순정만화를 즐겨 읽고 열심히 따라 그렸던 박윤영 작가는 “사랑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봤던 사람들이 『여자만화 구두』를 읽었으면 좋겠다”며, “자신의 감정에 한 번도 솔직해 보지 못한 여자들이 읽으면 퍽 동감할 작품”이라고 말했다. 7년 전에는 3cm 구두도 잘 신지 못했는데, 이제는 아름다워질 수만 있다면 12cm 구두도 거뜬히 신는다는 박윤영 작가. 아직은 앳된 얼굴이지만, 7년차 연애를 안정적으로 하고 있는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전 제 사랑이 어떤 모양의 것이라 할지라도 사랑을 하는 그 놀라운 순간의 모든 것을 기억하는 청춘이고 싶습니다. 그 순간에 담긴 엄청난 크기와 무게를 오롯이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많은 시간이 흘러간 후에도 부정하거나 지워버리고 싶지 않습니다. 여러분 또한 그러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한 마음으로 지금 사랑을 하고 있는 분, 사랑을 했던 분, 사랑을 두려워하는 분, 그리고 사랑을 꿈꾸는 분 그 모든 분들에게 지후와 태수의 이야기가 ‘세상에 분명히 존재하는 사랑의 한 모양’으로 기억되길 소망합니다. (『여자만화 구두』 4권 작가의 말 中)




남자가 봐도 공감 가는데 왜 ‘여자만화’?

SBS플러스에서 <여자만화 구두>가 현재 방송 중이다. 원작과 똑같은 대사도 많이 나온다. 원작자가 본 드라마는 어땠나?

각색이 많이 될 줄 알았는데, 같은 대사들이 많이 나와서 너무 놀랐다. 내가 막 부끄러워서 제대로 못 보겠더라(웃음). 쑥스러웠다. 만화를 연재할 당시인 2011년에도 드라마 제의를 받았다. 그 때 연출가님하고도 만났는데, 잘 안 됐다. 그 때 기대를 버려서 그런지, 이번에 제안이 왔을 때는 ‘정말 드라마가 될까?’하는 의구심이 있었다. 이렇게 금방 TV에 내 만화가 나올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진짜 끝까지 가봐야 아는 것 같다.

드라마에서는 한승연, 홍종현이 주연을 맡았다. 신지후, 오태수 역과 잘 어울리는 캐스팅으로 보았는지.

방영 전부터 캐스팅에 대한 이야기가 정말 많았다. 솔직히 나는 드라마는 또 하나의 작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연출가의 선택을 믿었다. 만화 속 지후가 한승연 씨와 딱 떨어지지 않지만, 귀엽고 동그란 인상은 닮은 것 같다. 괜찮다고 생각했다. 홍종현 씨는 이번 드라마를 위해 머리를 잘랐는데, 오태수와 정말 닮은 느낌이다. 드라마를 볼 때는 원작자의 입장이 아니라 한 시청자로 보게 되는 것 같다. 새 드라마, 새 작품이라는 느낌 때문에 설레기도 하고, 극 중 내용에 따라 막 속상해지기도 하고 그렇다.

‘여자가 그린 여자 만화’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여자 만화’라고 확실한 타깃을 정한 것이 오히려 이목을 끈 것 같다.

대학 졸업작품으로 생각했던 만화다. ‘여자만화’라는 큰 범위 안에서 ‘구두’ ‘치마 입은 날’이라는 단편이 나왔는데, 같이 작업을 하던 선배가 ‘구두’를 가지고 웹툰 연재를 해보라고 권했다. ‘여자만화’라는 타이틀이 없었으면 독자들이 크게 의식하지 않고 봤을 텐데, 남자 독자들의 경우에는 “어, 나는 남자인데 이 만화를 본다”라며 자신의 성별을 밝히기도 하더라.

재밌게 읽은 리뷰 중 하나가 “왜 여자만화예요? 남자가 봐도 공감 가고 재밌네요”라는 평이었다. 매일 달리는 수천 개의 댓글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리뷰는 무엇이었나.

나와 나이가 같은 분이었는데, 결혼을 일찍 해서 벌써 엄마가 됐는데, 우울증에 걸려서 힘들어 하다가 『여자만화 구두』를 보게 됐다며, 남편이랑 아이가 잠든 12시 자정에 만화를 본다고 하더라. 삶의 낙이 되었다고. 또 만화를 보고 첫사랑이 생각났다는 분들도 많았다. 10대, 20대가 주 독자일 거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20대 중 후반, 30대들도 만화를 봐주셨다.




연애 감성이 없이는 그리기 힘든 것이 로맨스 물이다. 연재 중에 실제로 연애를 했나?

지금도 만나고 있다(웃음). 장기 연애다. 7년차 커플이다(웃음).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여자만화 구두』프로필 사진을 그려준 손규호 작가다. 『여자만화 구두』배경 작업을 함께 해줬다. 정말 고생을 많이 했다.

역시, 예상이 맞았다. 『여자만화 구두』가 로맨스물이라 특히 남자친구의 도움을 많이 받았겠다. 연애할 때 남자들이 갖는 심리라든지, 이해가 되지 않는 행동 등을 파악해야 할 때.

피드백을 많이 해줬다. 오태수의 심정을 토론하듯이 이야기한 적도 있고, 남자친구와 오태수가. 실제로 조금 닮은 부분도 있다(웃음). 아무래도 연애물을 그리다 보니, 우리의 연애 과정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엄청나게 힘들기도 했고. 커플이 같이 작업을 하면서 헤어지지 않은 건, 정말 기적과 같은 일이라고도 하는데, 맞는 말인 것 같다.

연애할 때는 어떤 성격인가?

남자친구가 나한테 하는 말이 “카멜레온 같다”고 한다(웃음). 너무 많이 변한다고. 남자친구는 자기 감정에 굉장히 솔직한 편이다. 워낙 말을 잘한다. 확실하게 의사표현을 하는 성격이다. 연애 초반 때는 남자친구가 지나가면서 한 말들을 수첩에 적어 놓기도 했다. 그냥 좋아서, 그 사람이 그런 말을 한 게 좋아서(웃음).

작품 속에서 ‘구두’가 꽤 중요한 역할을 한다. ‘좋아하는 이성에게 잘 보이고 싶을 때, 평소보다 2cm 높은 구두를 신어라’라는 잡지 문구 때문에 지후가 높은 구두를 신게 되고, 오태수 앞에서 굽이 망가지는 창피한 일을 당한다.

언젠가 육교에서 내려오다가 ‘여기 계단에 굽이 끼면 정말 쪽팔리겠다’ ‘옆에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면 더 창피하겠네?’라는 생각을 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높은 구두를 한 번도 신어보지 않은 때였다. 3cm만 신어도 힘들고. 구두는 나에게 먼 존재라고나 할까?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구두를 신기 시작했고, 높은 구두를 신는다는 게 도전? 성숙함? 같은 의미가 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구두를 신으면 평소보다 긴장감이 많이 생기니까.



스스로를 볼 때 지후랑 닮은 점이 있나?

조금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달라진 것 같다. 예전에는 무슨 일이든 되게 조심스럽고 어려워하고 그랬는데, 지금이 그렇다고 쉬워진 건 아니지만 예전보다는 할 말도 할 수 있게 된 것 같고,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서 분명해졌다.

사실 지후라는 인물이 스스로의 감정에 대해 다소 과잉 반응하는 성격이다. 착하고 순수하고 따뜻하지만, 곁에 있으면 조금 피곤하고 답답할 수 있는 캐릭터다.

맞다. 자신의 감정을 너무 크게 생각하는 스타일이다. 다른 사람이 보면, 그냥 평범한 짝사랑, 첫사랑일 수도 있는데 스스로의 의식이 크다. 하지만, 연애를 하려면 한 번쯤은 그래야 하지 않나? 싶기도 하다. 안 그러면 연애 못한다. 망가지고 부딪혀봐야 아는 게 연애니까.

오태수를 좋아하는 직장 선배 ‘임한나’는 미워할 수만은 없는 인물이다. 의외로 현실에 많이 존재하는 캐릭터이기도 하고. 끝으로 가서는 연민도 느껴진다.

『여자만화 구두』가 단편으로 시작한 만화라서, 웹툰으로 연재하면서 인물들을 좀 더 풍성하게 가져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서브 캐릭터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지후랑 반대의 성격을 가진 여자 캐릭터를 넣어보면 어떨까? 하다가,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는 ‘임한나’를 만들었다. 회를 거듭하면서, ‘임한나가 왜 이런 성격을 갖게 됐을까? 왜 이런 행동을 할까’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해하게 됐다. 임한나 주임이 오태수 대리랑 술을 먹으면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 “나랑 상견례까지 간 남자가 바람을 피웠다. 그 사람은 정말 자기 마음대로 하더라. 그런데 내 마음을 다시 보니, 너더라”라고. 겉으로는 굉장히 센 척하지만, 정작 속마음은 여린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친구들만 봐도 그렇다.

친구의 연애담을 작품 속에 넣은 경우도 있나.

많다(웃음). 주위 친구들이 연애하고 헤어지고 슬퍼하고 그런 걸 보면, 저절로 감정이입이 된다. 나는 지금 7년차 연애라 안정기다. 평온한 상태다. 그렇기 때문에 친구들을 보면서 설렘도 다시 느끼고 아픔도 느끼고 한다. 내가 만화를 그릴 수 있도록, 친구들이 역할을 잘해주고 있다. 고맙다(웃음). 아, 친구 중 한 명이 남자친구를 사귀었는데 그 남자친구가 『여자만화 구두』를 읽고 새벽에 내 친구를 찾아온 일이 있었다. “이 만화 덕분에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는데, 네가 갑자기 너무 보고 싶어서 찾아왔다고. 너, 열심히 좋아해보겠다”고 고백했단다(웃음). 뿌듯했다.




만화의 매력, 마음의 흐름이 보인다

현재 네이버 웹툰에서 「강변살다」 를 연재 중이다. 주인공 ‘이강변’이 펼치는 20대 청춘 로맨스를 그리고 있는데, 『여자만화 구두』와는 조금 다른 분위기다. 일상, 삶에 대한 이야기도 많다.

『여자만화 구두』가 연애와 사랑에 초점을 맞췄다면 「강변살다」는 20대를 마무리하는 작품으로 그리고 있다. 서울에 잠깐 산 적이 있었는데, 서울 자체를 강변이라고 생각한 것도 있고, 한 여자의 20대 삶을 표현하고 싶었다. 20대를 지나고 보니까 생각나는 사람, 일, 이미 끝난 것들이 어느 순간 보이더라. 이미 지나가버렸지만 하나하나씩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그때의 한 조각을 담고 싶어 그리기 시작했다. 처음 연재를 시작했을 때는 악플도 있고, ‘어렵다’는 평도 많았다. 『여자만화 구두』를 보고, 연애의 설렘 같은 것을 기대하고 온 독자 분들은 초반에 조금 힘들어 하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같이 가고 있는 느낌이다.

독자와 같이 가고 있다는 느낌이란, 어떤 감정인가.

갑자기 만나도 친구가 될 수 있을 것 같은 관계? 그냥 내 친구들 같은 느낌이 있다. 내가 막 설레는 감정으로 그린 장면을 보고 좋아하는 독자를 만날 때, 행복하다. 동병상련? 이런 걸 느끼는 관계가 좋다.

웹툰 작가들이 가장 행복할 때가 수많은 댓글을 읽을 때라고 한다.

한 시간 정도 댓글만 계속 읽을 때도 있다(웃음). 희열을 느낀다. 대학생 때, 과제물을 발표하고 학교 사이트에 올렸는데 좋은 반응이 있으면 굉장히 행복하다. 웹툰에서는 몇 배의 뿌듯함을 느끼는 것 같다.

단행본이 처음 나왔을 때, 소감이 궁금하다.

너무너무 좋았다. 편집자 분이랑 인쇄소에도 함께 갔는데, 되게 뜻깊고 좋았다. 만화책을 즐겨 보던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인터넷 화면에 뜬 내 만화만 보다가, 손으로 잡히는 책으로 보니까 엄청 색달랐다. 어릴 때부터 웬만한 순정만화는 다 읽을 정도로 광팬이었다. 이미라 작가님 만화를 제일 좋아했다. 학교 끝나고 만화책 대여점에 가서 책을 고를 때가 가장 행복했다. 친구들은 돈도 많고 시간도 많은지 여러 권을 고르는데, 나는 엄마의 잔소리 대문에 한 두 권만 골라야 했다. 그래서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렸다. 정말 보고 싶은 것만 골라야 해서(웃음).

한두 권의 책을 고르는 와중에 무조건적으로 반드시 선택한 작가의 작품은?

『나나』라는 작품이다. 일본 작가 야자와 아이의 만화인데, 중학교 때부터 보기 시작했다. 건강이 좋지 않으셔서 잠깐 쉬셨는데, 아직도 완결이 나지 않았다. 빨리 그려주셨으면 좋겠다. 또 초등학교 3학년 때 읽은 이미라 작가님의 『은비가 내리는 나라』도 잊지 못하는 작품이다. 이 만화를 따라 그리면서 만화가를 꿈꾸기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미술에 대한 관심이 많았고 잘 그린다는 이야기도 들었지만, 정작 미술 관련 상은 하나도 받지를 못했다(웃음). 그래서 ‘난 순수미술은 안 되나 보다’ 생각했다.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굉장히 깊게 좋아하는 것 같다. 작가, 작품에 대한 충성도도 높고. 만화의 매력은 어디에 있을까.

만화를 하면서 느끼는 건, 절대 다른 장르가 모방할 수 없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 마음의 흐름, 재미라고 해야 하나? 만화 한 컷 한 컷이 이어질 때, 작가의 의도를 넘어서 그냥 자연스럽게 물이 흘러가듯이 이어지는 힘이 있다. 절대 만화만이 할 수 있는 게 있는 것 같다.

글과 그림 작업 중에 무엇이 더 어렵나.

글에는 재주가 없는 것 같다. 만화적인 흐름, 대사는 쓰지만 뭔가 깊이 있는 메시지를 주는 힘이 아직 부족하다. 글로써 완성된 걸 보여주는 건 다른 사람의 몫인 것 같다.

로맨스 말고 도전하고 싶은 장르는 없나?

판타지를 해보고 싶다. 물론 판타지 멜로(웃음). 다른 건 상상이 안 되는 것 같다. 내 20대를 되돌아보면 연애를 하다가, 연애물을 그리다가 시간이 다 간 것 같다. 30대가 되도 20대처럼 살고 싶다.

아직 웹툰, 드라마로 보지 않은 채, 단행본 『여자만화 구두』를 처음 접할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좋아하는 드라마나 순정만화를 볼 때, 자다가 이불 속에서 하이킥을 한다고 하질 않나. 나도 다시 연애 감정을 느끼고 싶고, 사랑에 대해 한 번쯤은 다시 생각해보고 싶은 분들이 재밌게 읽었으면 좋겠다. 옛날의 감정들, 아니 또 다시 찾아올 감정을 기대하면서. 『여자만화 구두』가 그 감정들을 봉인해주는 작품이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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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만화 구두박윤영 글,그림 | 애니북스
『여자만화 구두』 는 첫사랑의 아픈 기억으로 사랑을 두려워하던 여자와 사랑에 지친 남자가 만나 서로를 통해 사랑에 대한 새로운 생각을 가져나간다는 줄거리로, 특히 연애 과정에서 여자들이 경험하는 심리들을 아주 실감나게 그려낸 작품이다. 지난 2010년 9월부터 이듬해 5월까지 약 8개월에 걸쳐 포털 사이트 네이트만화에서 연재되었던 이 만화는 여성들 사이에 입소문을 타며 유명세를 떨쳤고, 여주인공을 두둔하고 남주인공을 비난(?)하는 여성 독자들의 댓글로도 화제가 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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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권순훤 “보아 오빠? 나는 베토벤 좋아하는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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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월광’에 담긴 것은 달빛이 아닌 실연

클래식은 어렵고 지루하다는 편견은 어쩌면 ‘아는 만큼 보인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오랜 생명력을 자랑하는 만큼 방대한 역사를 품고 있는 까닭에, 클래식을 즐기기 위해서는 우선 ‘공부’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예술적 경향, 작법, 상징에 이르기까지 알아야 할 것들이 많아도 너무 많다. 그렇다 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클래식이란 말 앞에서 ‘너 되게 낯설다’는 말만을 남기고 뒤돌아서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들의 발길을 되돌리기 위해서는 쉽고, 흥미롭고, 친절한 ‘클래식의 이야기’가 필요하다. 『나는 클림트를 보면 베토벤이 들린다』는 바로 그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클래식에 대한 우리의 편견에 맞선다.
귀로 듣고 눈으로 본다는 차이가 있을 뿐, 그림이 주는 감동과 음악이 주는 감동은 다르지 않습니다. 모든 예술은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음악과 미술, 문학이 주는 감동은 각각 따로따로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한 곡의 소나타가 어떤 그림을 더 잘 설명해줄 수 있고, 사연을 품은 그림 한 점이 어떤 음악을 더 깊이 듣도록 우리를 이끌어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책에서 하나의 주제에 대해 화가와 음악가를 짝지어 그들의 스토리를 구성해보았습니다. (p.7~8)
“예술 각 분야의 경계를 허물어뜨리고 대통합을 이루는 예술적 ‘통섭’이야말로 우리 시대가 원하는 새로운 접근법이자 감상법”이라고 말하는 저자 권순훤. 그는 『나는 클림트를 보면 베토벤이 들린다』의 주인공으로 스물다섯 쌍의 미술가와 음악가를 선택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헨델, 렘브란트와 바흐, 고흐와 드뷔시, 모딜리아니와 드보르자크와 같은 ‘환상의 짝꿍’을 찾아낸 것이다. 두 예술가를 이어주는 연결고리는 그들의 삶 속에 숨어 있었다. 미켈란젤로와 모차르트는 천재적인 재능을 바탕으로 작품 속에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냈다는 공통점이 있었고, 클림트와 베토벤은 끝내 사랑을 이루지 못했다는 점에서 닮아 있었다. 그와 같은 이야기들이 작품 속에 묻어났음은 물론이다.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안에 감춰진 경고의 메시지도, 클림트의 「키스」 가 황금빛 채색에 어울리지 않는 애잔한 분위기를 뿜어내는 이유도, 달빛을 연상시키는 베토벤의 <월광>에서 비장함과 분노가 느껴지는 이유까지도, 해답은 그들의 삶 속에 있었던 것이다.

이렇듯 『나는 클림트를 보면 베토벤이 들린다』는 보여주는 음악, 들려주는 그림을 통해 어렵고 딱딱한 이론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클래식에 한 발 다가설 수 있도록 해준다. 생소하지만 반갑기 그지없는 이 시도는 2008년 ‘이지 클래식-미술관에 간 피아니스트’ 콘서트를 통해 시작되었다. 클래식의 대중화를 위해 피아니스트인 저자가 직접 기획하고 진행한 무대였다. 관객에게 익숙한 음악과 그에 어울리는 그림들을 직접 선정하고 소개했다. 공연은 매회 전석 매진을 기록하며 3년이 넘는 기간 동안 사랑 받았고, 그 이야기는 『나는 클림트를 보면 베토벤이 들린다』로 다시 태어났다. 모두가 클래식의 진입 장벽을 허물기 위한 저자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일이었다.

‘클래식의 대중화’는 피아니스트 권순훤의 행보를 설명하는 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다. 서울대 피아노과 석사과정을 마친 후 영국 왕립음악원에 합격하고도 입학을 포기한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유학 대신 그가 선택한 것은 클래식의 디지털 음원화 작업. 음악전문스튜디오 ‘네오무지카’의 문을 열고 50장이 넘는 클래식 디지털앨범을 정규 발매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음악 교과서 음반을 제작하는 한편 어린이를 위한 ‘체르니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더불어 서로 다른 클래식 음악을 교차 편집해서 뮤직 비디오를 제작하고, 여기에 연기자와 댄스팀을 출연시키면서 ‘보는 재미가 있는’ 클래식을 선보이기도 했다. 매번 파격적인 시도를 거듭하는 이유는 물론 ‘클래식의 대중화’ 때문이다. 흔들리지 않는 목표를 향해 쉼 없이 달려온 ‘피아니스트’ 권순훤과 만났다.




뭉크의 「절규」 를 보고 떠오른 바흐의 작품은…

음악을 글로 설명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나는 클림트를 보면 베토벤이 들린다』출간과 함께 동명의 앨범을 발매했어요. 책에 소개된 음악 중에서 제가 운영하는 스튜디오 ‘네오무지카’가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는 30곡을 실었어요. 『나는 클림트를 보면 베토벤이 들린다』의 독자 분들께 부록으로 제공해 드리기도 했고요, 음원 사이트를 통해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학창시절에 음악과 미술 작품에 대해서 배우지만 졸업하면 기억나는 게 없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책을 읽으면서 음악도 들으면 효율적인 문화 서적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책 속에서 음악을 전달하는 방법으로 선택하신 건 무엇이었나요?

미술 작품이든 음악 작품이든 창작 당시의 예술가의 심정을 표현하려고 굉장히 노력했어요. 예를 들면 베토벤은 <월광>을 쓸 때 줄리에타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었죠. 그녀는 귀족 가문의 소녀였는데 음악가라는 베토벤의 직업은 높게 평가 받지 않았었거든요. ‘내가 과연 그녀와 잘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암울했던 거죠. <월광> 1악장이 굉장히 어둡고 슬픈 이유예요. 결국 <월광>이 다 완성될 때쯤에 줄리에타는 집안의 뜻을 이기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시집을 가는데요. 그때 베토벤이 느꼈을 분노가 3악장에 담겨있죠. 보통은 <월광>을 ‘달빛을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소나타’라고 이야기하는데, 이 분노는 사실 달빛이랑 상관없는 거잖아요. 이렇게 작품을 만들 때 작가의 기분을 알면 독자들이 이해하기 쉬울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이야기들을 찾으려고 거의 1년 동안, 매일 밤 12시까지 책과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죠.

음악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건 당시 ‘작가의 심정’이라는 말이네요.

그렇죠. 학구적으로 분석하고 연구하는 건 전공자들이 하면 되는 일이거든요. 그런 부분까지 다 공부한 후에 클래식 음악을 즐기는 분들이 얼마나 되겠어요. 그리고 학구적으로 다가가면 일단 지루해져요. 먼저 작품의 동기나 처음에 어떤 심정으로 썼는지를 알고 음악을 즐기게 된 다음에 학구적으로 접근할 수 있게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5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다고 들었습니다. 처음 느낀 피아노의 매력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음악을 마음대로 칠 수가 있잖아요. 예전에는 가요도 참 많이 연주했어요. 김건모의 <미련> 같은 곡이요. 그냥 흘러나오는 음악들을 바로 표현해낼 수가 있으니까, 그런 게 참 마음에 들었어요. 그래서 『불후의 명곡 : 박진영 편』『불후의 명곡 : 발라드 편』처럼 가요를 피아노로 편곡해서 악보집을 출간하기도 했죠. 피아노라는 악기가 음역이 가장 넓잖아요. 건반이 88개이다 보니까 클래식 악기 중에 가장 많은 음들을 동시에 표현할 수 있고, 마음대로 풀어낼 수도 있죠. 그래서 좋아했던 것 같아요.

그림을 읽는 방법은 어떻게 배우게 되셨나요?

2007년에 영국 왕립음악원에 시험 보러 갔을 때 파리를 들렀어요. 거기에서 도슨트(docent, 박물관과 미술관 등에서 관람객들을 상대로 전시물과 작가 등을 설명해주는 사람-필자 주)를 한 명 만났죠. 한 번은 그 친구가 한 번 오르세 미술관을 견학시켜주면서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더라고요. 관광 가이드까지 했을 정도로 그 분야에서 능력 있고 유명한 친구였거든요. 그때 붓 자국부터 시작해서 어떤 정신 상태를 반영한 건지, 마네의 「올랭피아」 에서 까만 고양이는 어떤 의미인지 얘기해주더라고요. 사실 그런 부분을 알지 못한 채 미술관에 가면 그림 앞에 멀뚱멀뚱 서 있다가 그냥 지나가잖아요.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까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가더라고요. ‘이렇게 재밌는 얘깃거리가 있구나, 이런 걸 알려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그림의 스토리와 음악의 스토리를 엮어서 공연을 하게 된 거예요.

책에 소개된 예술가 혹은 작품들 중에 특별하게 인연을 맺은 경우도 있나요?

클림트의 경우에는 예전 여자친구 때문에 알게 됐어요. 그 친구가 클림트를 굉장히 좋아했거든요. 그 전에는 클림트의 그림에 대해 알지 못했어요. 「키스」 같은 작품도 ‘그냥 뽀뽀하는 모습이구나’ 하고 말았죠. 그런데 알고 봤더니 정말 재밌는 스토리가 있는 거예요. 클림트의 남동생과 플뢰게의 언니가 부부였기 때문에 클림트와 플뢰게는 겹사돈이 되지 않는 이상 맺어질 수 없는 관계였죠. 두 사람이 굉장히 사랑하면서도 그걸 가슴 속에 담고만 살았던 거예요. 그 이야기를 알고 나니까 ‘완성되지 못한 사랑을 그림 한 장으로 영원토록 남겨놨구나’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클림트의 「키스」 를 보면 남자가 여자의 입술이 아닌 볼에 입을 맞추고 있잖아요. 그 여자는 행복해 보이지도 않고요. 심지어 둘은 절벽에 서 있어요. 하지만 어찌 되었든 후대 사람들은 그림을 보면서 클림트와 플뢰게를 연상할 수 있는 거고, 두 사람은 그림 안에서 앞으로도 계속 함께하겠죠. 참 멋있더라고요. 그래서 인생은 짧지만 예술은 길다고 얘기하는 것 같아요. 베토벤의 <월광> 같은 경우도 완성되지 못한 사랑에 대해 음악으로 편지를 쓴 거잖아요. 나는 외롭다고, 암울하다고, 화났다고요. 이렇게 감춰져 있는 이야기들이 예술을 즐겁고 재밌게 소비할 수 있도록 해주는 하나의 방법인 것 같아요.

그림을 보고 순간적으로 특정 음악이 떠올랐던 적도 있나요?

바로 떠오르는 것 보다 배경지식이 갖춰지면 훨씬 더 잘 연상되는 것 같아요. 그림을 통해서 작가의 인생을 볼 수 있는 거니까요. 이런 적은 있었어요. 뭉크의 「절규」 를 봤을 때 바흐의 <토카타와 푸가>와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비탈리의 <샤콘느>가 떠오르기도 했고요. <샤콘느>가 날카롭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듯한 느낌의 곡이니까요.




‘열정’으로 클림트와 비견되고 싶다

기존의 클래식 공연에 대해 쓴 소리를 했습니다. “관객을 배려하기보다는 자기자랑을 하고 있다”고요.

처음에 일본 음식이 미국에 소개됐을 때 미국 사람들은 날 것을 어떻게 먹냐고, 미개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면서 먹지 않았대요. 그래서 일본 사람들이 미국 사람들한테 맞게 살짝 익혀서 주기도 하면서 입맛을 끌고 온 거예요. 어떻게 보면 일본 사람들이 자존심을 굉장히 낮췄던 거죠. ‘이 맛있는 걸 왜 익혀서 줘야 하나’ 하고요. 음악도 똑같다고 생각해요. 저와 같은 사람이 있음으로써 클래식 음악이 조금 더 쉽게 소개되는 거잖아요. 그러면서 많은 사람들이 클래식에 관심을 갖게 되면, 그들 중에 누군가는 더 어렵고 힘든 클래식에도 도전하게 되겠죠. 그 사람들이 결국에는 클래식의 팬으로 추가될 거라고 생각해요. 뭐든 관심을 가져야 발전이 이루어지잖아요. 일단 관심을 갖게 만들어야죠. 그게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클래식의 문턱을 낮추려면 대중의 노력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대중들이 다가오지 않으면 클래식 음악을 하는 저희들은 계속 활동할 수 없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클래식 음악계 안에서 더 많은 배려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서 프랑스에서 유학한 음악가가 귀국 독주회를 하는데 프랑스 클래식 음악으로만 프로그램을 기획했다면, 결국엔 자기 자랑을 한 거죠. ‘내가 프랑스 음악을 들려줄 게 들어봐’라는 태도인 거예요. 저는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러분, 이렇게 재밌는 음악이 있습니다. 들어보세요. 이렇게 재밌어요’ 이렇게 맛보기를 보여줘야죠. 소화할 수도 없는 음악에 쉽게 다가올 수는 없잖아요.

클래식에 접근하기가 어렵다고 하지만, 일단 클래식 음악의 매력을 알고 나면 마니아가 됩니다.

지금 우리나라에 클래식 마니아가 3천 명 정도 있다고 해요. 세종문화회관이나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을 관람하는 유료 관객층 중에 마니아로 분류되는 사람이 3천 명 정도라는 거죠. 전 국민의 1만 분의 일도 안 되는 거예요. 그 숫자를 늘리려면 일단 많은 사람들에게 쉽게 알려야죠. 일단 알아야 좋아하든지 말든지 할 것 아니겠어요?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클래식 음악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아는 만큼 들리는 거죠. 클래식 음악 중에서 바로크 음악 같은 경우는 400~500년 전에 탄생한 거예요. 그동안 음악이 변하지 않고 지금까지 전해졌다는 건 그만큼 생명력이 강하다는 거잖아요. 그만큼 가치가 있고 매력이 있는 거겠죠. 그러니까 클래식이죠. ‘이래서 클래식이 좋은 거야’ 라는 식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만큼 강인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게 바로 ‘클래식이 클래식인 이유’죠.

클래식의 대중화와 함께 피아노를 배우는 학생들을 위해 많은 활동을 하고 있는데요. 피아니스트로서 꿈꾸는 것은 무엇인가요?

아직은 말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닌 것 같아요. 하지만 류이치 사카모토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류이치 사카모토는 피아니스트이기도 하고, 작곡가이기도 하고, 영화음악 감독이기도 하죠. 방송 프로도 자주 하고 굉장히 다방면에서 활동하죠. 그의 직업은 그냥 류이치 사카모토인 거예요. 저도 그렇게 되고 싶어요. 먼 훗날에 사람들이 제 직업에 대해서 생각할 때 ‘피아노도 치고, 공연도 하고, 책도 쓰고, 학교에서 강의도 하고(현재 그는 서울종합예술학교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음반 프로덕션도 경영하고, 그냥 권순훤이네’ 이렇게 말했으면 좋겠어요. 아직 저는 열심히 사는 사람인 것 같고요. 앞으로 더 열심히 살다 보면 그렇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때까지 저는 클래식 음악을 알리는 허브(Hub) 같은 존재가 되고 싶어요.

『나는 클림트를 보면 베토벤이 들린다』에서는 클림트와 같은 삶을 살고 싶다고 말했어요.

클림트처럼 살 수 있다면 굉장히 좋죠. 고흐는 상업적으로 실패해서 가난하게 살다 갔잖아요. 고갱도 지금은 ‘타히티의 풍광을 그림에 담아낸 훌륭한 화가’로 인정받지만 생전에는 정말 비참한 인생을 살았잖아요. 그런데 클림트는 본인이 뛰어난 능력이 있었고 분리파를 창설하기도 했죠. 결국 분리파에서 쫓겨났지만 그는 아쉬운 게 없는 거예요. ‘내가 잘났는데 뭐 어때’하면서 개의치 않고 본인이 이뤄놨던 부와 명예를 기반으로 자유롭게 작품 활동을 했어요. 그러니까 생전에 본인의 능력을 다 발휘하고, 그 결과를 모두 누리다가 편하게 간 거죠. 결혼은 안 한 건지 못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요(웃음). 어쨌든 굉장히 멋있게 산 남자 같아요. 그리고 르누아르도 굉장히 좋고요. 어떻게 보면 조금 속물 같은 이야기로 들릴 수 있지만, 저는 예술을 널리 알리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그걸로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싶은 사람입니다.

어떤 삶을 살았던 예술가에게 끌리는 것 같나요?

솔직히 재밌는 건 카라반조의 삶이죠(웃음). 하지만 제가 살고 싶은 삶은 클림트처럼 본인의 능력을 잘 발휘하면서 누리는 거예요. 루벤스처럼 존경 받으면서 모범생다운 삶을 사는 것도 좋죠. 그런 사람이 되는 게 더 현실적으로 좋은 게 아닐까요(웃음).

책에 소개된 ‘환상의 짝꿍’들은 저마다 열정, 사랑, 다양성 등의 연결고리로 맺어 있습니다. 저자의 삶은 어떤 키워드로 이야기 될까요?

‘열정’이라고 해줬으면 좋겠어요. 제가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항상 뭘 해야 되거든요. 약간 일 중독자 같은 부분이 있어요. 그래서 열정이라는 키워드가 제일 좋지 않을까 생각해요. 10년 후에 같은 질문을 받는다면 ‘안정’이라고 답할 지도 모르겠지만요(웃음). 제가 7년동안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면서 100회 이상 공연을 했어요. 앨범을 30장 넘게 발매했고, 프로듀싱 한 앨범도 50장이 넘어요. 4권의 악보집과 『나는 클림트를 보면 베토벤이 들린다』도 출간했죠. 정말 안 쉬고 달렸는데요. 앞으로도 이렇게 계속 살게 될 것 같아요(웃음).

‘열정’이라는 키워드로 저자와 비견될 예술가는 누가 될 것 같나요?

역시 클림트를 선택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자신이 잘하는 것으로 상업적으로 성공도 거뒀고, 어디에서나 아쉬울 것 없는 당당한 예술가였으니까요. 칸딘스키의 경우에는 ‘이 사람은 예술가일까 행정가일까’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맡고 있던 직책만 봐도 ‘이 사람 그림을 그릴 시간이나 있었을까’ 싶거든요.

『나는 클림트를 보면 베토벤이 들린다』에서 ‘멀티 플레이어’라는 키워드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이야기했어요.

다빈치는 멀티 플레이어 정도가 아니잖아요. 그렇게 다양한 영역에서 많은 작품들을 남긴 걸 보면, 사람이 아닌 것 같아요(웃음). 루벤스와 들라크루아도 멀티 플레이어라고 할 수 있죠. 특히 들라크루아는 문학에서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고 쇼팽과도 교류가 두터웠죠. 화가이면서 음악 작품도 남겼고, 음악가들과도 많이 교류했죠. 그러고 보니 들라크루아가 진정한 멀티 플레이어네요.




‘보아 오빠’라는 수식어, 부담감은 많죠

늘 ‘보아의 큰 오빠’라는 수식어가 붙는데, 부담감이나 불편함을 느끼지는 않나요?

어쩔 수 없어요. 그게 현실이에요. 여동생이 너무 유명하니까요. 사실 우리나라에서 (여동생을) 모르는 사람이 없잖아요. ‘보아 오빠’라는 수식어는 제가 싫다고 해서 떼어지는 게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어요. 열심히 살다 보면 그 수식어가 바뀌지는 않더라도 빠질 수는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요. 기분이 나쁘다거나 그런 건 전혀 아니에요.

부담감은 당연히 많죠. 동생이 너무 잘하고 있으니까 제가 못하면 안 되잖아요. 더 정신 똑바로 차리고 열심히 살아야죠. 사고 치면 안 되니까요(웃음). 제가 실수를 하면 ‘권순훤’이 실수한 게 아니라 ‘보아 오빠’가 실수한 게 되잖아요. 어디 가서 행실을 잘못해도 마찬가지죠. 그러니까 항상 조심하게 돼요.


‘피아니스트’ 권순훤으로 평가받고 싶다는 생각도 할 것 같아요.

그런 생각은 처음부터 했는데요, 그 수식어는 제가 열심히 살면 언젠가는 떨어질 거라고 생각 돼요. 제가 쓰지 말라고 해서 사람들이 안 쓰는 거 아니거든요. 그런데 열심히 활동을 계속 하고 쌓아놓은 게 많다보면 어느 순간 사람들 반응이 ‘보아 오빠이기도 하지?’ 이렇게 바뀌겠죠. 그러다 보면 ‘권순훤이 보아 오빠였어?’ 이렇게 될 수도 있겠고요. 그러니까 쉬지 않고 열심히 하려고요(웃음).

세 남매가 모두 예술 분야에서 활동 중이에요. 부모님으로부터 영향 받은 부분이 있는 것 같은데요. 아버님께서는 방송국에서 근무하셨고, 어머님께서는 에세이 『황금률』을 출간한 작가세요.

아버지께서는 TBC에서 카메라맨으로 활동하시면서 음향 관련 일도 하셨어요. 인력이 부족하던 시절이니까 여러 장비를 다루셨던 거죠. 부모님께서는 저희가 뭘 하고 싶은지 아시고 지원해 주셨어요. 부모님이 원하시는 대로 살기를 바라지 않으셨죠. 그게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남매가 클래식과 대중음악이라는 서로 다른 장르의 음악을 하고 있는데요. 음악과 관련해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나요?

오히려 안 해요. 가끔씩 동생이 멜로디를 쓰고 나서 화음을 넣어달라고 하면 만들어 주기는 해요. 그런데 깊은 이야기는 서로 안 해요. 어차피 서로 분야가 다르니까요. 그리고 어느 정도 각자의 위치에서 전문가가 됐잖아요. 그러면 서로 보는 것만으로도 힘이 돼요. 여동생 콘서트에 가서 무대를 보면 정말 대박이에요(웃음). ‘저렇게 하기 위해서 얼마나 뒤에서 피땀을 흘렸을까’ 보이거든요. 말 하지 않아도 보여요. 여동생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오히려 고수가 될수록 서로 알아보고 말이 필요 없는 거죠. 그런데 남동생과 여동생은 같은 분야에서 일하니까 많은 이야기를 나눠요. 예를 들어서 ‘뮤직 비디오 촬영할 때 앵글을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고 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실행할 수 있잖아요. 그런 차이는 있더라고요.

독자들에게 추천하는 『나는 클림트를 보면 베토벤이 들린다』의 감상법은 무엇일까요?

식사 후에 커피 한 잔, 과일 한 조각 맛보는 기분으로 즐기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이지 클래식-미술관에 간 피아니스트’ 공연을 기획할 때도 그랬지만, 이번 책에서도 많은 분들에게 친숙한 음악과 그림을 소개했어요. 『나는 클림트를 보면 베토벤이 들린다』를 통해서 그림과 음악의 깊이 있는 이야기들에 쉽게 접근하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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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클림트를 보면 베토벤이 들린다권순훤 저 | 쌤앤파커스
2008년에 시작되어 클래식 공연으로는 이례적으로 수년째 매진 행렬을 기록하며 현대 클래식 공연의 가장 성공적인 표본이 되고 있는 ‘권순훤의 이지 클래식 - 미술관에 간 피아니스트’가 책으로 나왔다. 미켈란젤로와 모차르트, 렘브란트와 바흐, 모네와 슈베르트, 고흐와 드뷔시… 대체 이 위대한 예술가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인류 최고의 화가와 음악가들의 흥미진진한 비하인드 스토리! 62점의 명화와 67곡의 클래식 음악이 보여주고 들려주는 상상초월 클래식 오디세이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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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주, 김재연의 “나의 일 센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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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 출판계에서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법정 스님이 타계한 뒤, 스님의 유언에 따라 책을 절판함으로써 중고 책 가격이 폭등한 것이다. 지금도 법정 스님의 저서는 높게는 수십만 원대에서 거래되고 있다. 이와 비슷한 일이 『1cm』를 두고도 벌어졌다. 2008년에 나온 이 책은 처음 책을 낸 출판사가 문을 닫으면서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래서 이 책의 초판본은 한때 4만 원까지 치솟기도 했다. 


‘인생을 긴 자라고 했을 때, 인생에 부족한 1cm를 채워줄 무엇’을 주제로 한 글과 삽화가 어우러진 이 책은 출간 당시에 많은 독자로부터 사랑을 받았다. 절판된 뒤 2013년에 나온 『1cm 플러스』가 나왔고 후속편의 성공은 『1cm 첫 번째 이야기』가 다시 나올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글을 담당한 김은주 작가는 제일기획과 NHN을 거쳐 현재 TBWA에서 활약하는 카피라이터다. 짧은 글로 대중을 사로잡아야 하는 카피라이터답게 그녀가 쓴 문장은 촌철살인이다. 김은주 작가의 글이 촌철살인이라면 김재연 작가의 그림은 화룡점정이다. 제일기획 아트디렉터로 활동 중인 김재연 작가는 김은주 작가가 제일기획 재직 시절 뜻을 합쳐 『1cm』를 냈다. 이 책을 다시 내기 위해 재결합한 두 사람을 만났다.


김재연(좌) 김은주(우)

2008년의 1cm 그리고 2014년의 1cm


『1cm』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절판되었는데요.

김은주 : 출판사 사정으로 책이 절판되고 나서 제 블로그나 메일로 문의가 많이 왔어요. 『1cm』를 구하고 싶은데 어떻게 구할 수 없느냐고요. 『1cm+』가 출간된 후, 더 많은 분으로부터 재출간 요청이 왔어요. 독자분들이 계속해서 보내주신 사랑과 관심 덕분에 이번에 허밍버드 출판사에서 『1cm』를 재출간하게 되었습니다. 『1cm』로 다시 만나 뵐 수 있어서 기쁩니다.

김재연 : 1cm를 찾는 분들이 많았는데 절판돼서 안타까웠습니다. 책을 구하기 어려우니까 절판된 1센치가 중고로 4만 원 이상의 가격으로 거래되기까지 하더군요. 다시 나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찾아주시는 독자분들 덕분에 이렇게 다시 재출간하게 돼서 감사합니다.

새로 내면서 달라진 부분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부분이 달라졌나요.

김재연 : 기존 『1cm』를 다소 급하게 내서 아쉬운 점이 많았었죠. 그래서 이번에 새로 만들면서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추가로 그린 부분이 좀 있습니다. 특히 각 챕터의 타이틀 페이지를 컬러나 패턴을 채워 수정했습니다. 그리고 가독성이 떨어지는 손글씨는 다시 썼습니다. 또한 그림을 시대에 맞게 삭제도 했는데요. 예를 들어 ‘말로만 오십 년, 준비만 백 년’을 보면 여러 운동에 관한 소품이 나오는데 그 당시에는 운동하면서 MP3로 음악을 많이 들어서 그렸는데, 요즘은 휴대폰으로 음악을 듣기 때문에 과감히 MP3를 삭제했습니다.

김은주 : 전체 챕터의 구성을 새로 잡았고 시대가 드러나는 글들은 최근 이슈로 보완했어요. 예를 들어 28쪽의 ‘씨앗’이라는 글에서 스티브 잡스나 넬슨 만델라의 타계와 같이 최근에 있었던 일들로 업데이트했습니다. ‘19금’ 페이지가 한 장 있었는데, 워낙 제 책의 독자분들 연령대가 다양하다 보니 그 페이지는 뺐습니다. 그림의 제목을 새로 붙인 것도 있고, 전체적인 흐름과 내용은 그대로 두되 완성도를 높였습니다.

그리면서 어떤 점을 더 염두에 뒀나요?

김재연 : 광고에서 카피와 아트(비주얼)가 만나서 시너지 효과를 내잖아요. 그 모토로 1cm도 그렇게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그림은 삽화 개념이 아니라, 그림 자체로도 메시지를 전하는 그림을 그리려고 노력했어요. 평소에 캐릭터에 관심이 많았는데 1cm를 준비하면서 재미있는 캐릭터 개발을 위해 고심했는데요. 캐릭터도 잠깐 등장하는 게 아니라 생명력을 부여해서 그 캐릭터가 스토리를 만들 수 있도록 염두에 두며 그렸습니다. 가령 책에 나오는 초등학생 꼬마와 슈퍼모델 캐릭터를 보면 태어나서 처음 본 슈퍼모델에게 첫눈에 반한 초등학생 꼬마가 그녀를 짝사랑하게 되는 과정이 그려져 있는데요. 책의 그림만 보더라도 초등학생 꼬마의 첫사랑에 빠지는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으실 거예요.

2008년에 나온 『1cm』와 2014년에 나온 『1cm』가 같은 책이면서도 살짝 바뀌었네요. 두 저자의 삶은 변한 게 있나요?

김은주 : 그때는 싱글이었고 지금은 결혼했네요. 그리고 『1cm』를 출간한 이후에, 직접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 『달팽이 안에 달』과 양현정 작가와 함께 작업한 『1cm+』를 출간했고, 『우리 삶이 춤이 된다면』이라는 책의 번역 작업도 했어요. 책으로 계속해서 많은 사람과 소통하게 된 점이 가장 큰 변화 같아요.

김재연 : 저도 미혼에서 기혼으로 변한 거예요. 그리고 그때와 같은 회사에 다니고 있지만 현재 일의 책임과 강도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세져서 ‘불면불휴’의 여러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당시에 두 사람은 어떤 계기로 책을 만들었나요?

김은주 : 평소에 크리에이티브한 생각과 구상을 하는 것을 좋아해요. 단순히 글뿐 아니라 비주얼적인 요소들을 같이 생각하는 것을 즐기는데 오랜 시간 동안 그런 글과 구상들이 쌓이다 보니 많은 사람들과 공감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비주얼적인 부분의 완성도를 높이고 싶어서 같은 회사 동료였던 재연선배에게 같이 책을 내보자고 제안을 했어요. 제가 먼저 글에 맞는 그림 아이디어를 구상하면 재연선배가 그 구상들을 기본으로 그림의 표현을 구체화하는 과정으로 책이 만들어졌습니다.

김재연 : 저희는 4년 동안 함께 아트와 카피로 일하며 광고를 만들었는데요. 유독 잘 통하는 친한 선후배 사이였습니다. 어느 날 은주가 먼저 책을 내보자고 제안했고 써왔던 글과 여러 가지비주얼 아이디어를 구상해서 보여주었습니다. 사다리 타기, 종이 접기, 숫자대로 선을 그으면 메시지가 나오는 아이디어 등등 정말 신선한 표현이 많았었죠. 그 아이디어를 극대화 시키기 위해 그림을 어떻게 그릴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반대로 글은 나와 있는데 그림 아이디어가 안 나와 있는 본문들은 단어나 글의 컨셉을 파악해서 좀 더 위트 있는 그림을 그려서 우리 둘만의 독특한 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1cm는 새로우면서도 독자와 공감하는 책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를 어떻게 보나요? 최근에 사인회도 열었는데 그때 분위기도 궁금합니다.

김은주 : 당시에도 글과 그림으로 이루어진 책은 많았지만 다른 책들과 형식과 내용의 차별화가있었던 것 같아요. 『1cm+』『달팽이 안에 달』을 보신 독자님들은 느끼셨을 텐데 저는 늘 텍스트와 다른 요소가 결합하고 시너지 효과를 내는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또 독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인터렉티브한 장치들도 넣어 책의 가능성을 확장했는데요, 이런 형식의 새로움과 함께 위트와 공감이 있는 내용이 많은 호응을 받지 않았나 싶어요. 제가 현자는 아니지만, 그래서 더 통할 수 있었던 부분, 동시대를 살아가면서 좌절하기도 하고, 다시 일어서고, 꿈을 꾸고, 사랑하면서 느낄 수 있었던 것들을 독자 분들이 공감해주신 것 같아요.

김재연 :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전하지 않고 나만의 책을 만들어가는 ‘유일함’ 때문인 것 같아요. 사인회는 독자분들께서 많이 와주셔서 예정보다 1시간 길어졌어요. 정말 감사했어요.


『1cm』『1cm 플러스』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김은주 : 『1cm』는 20대에 썼고, 『1cm+』는 30대에 썼습니다. 20대에 쓴 『1cm』는 재기발랄하고, 『1cm+』는 깊이가 더 깊어진 느낌입니다. 일러스트 분위기도 『1cm』가 시선을 사로잡는다면, 『1cm+』는 더 따뜻하고 포근해진 느낌이라고 할까요? 전자를 좋아해 주시는 분도 있고 후자를 더 좋아해 주시는 분도 있어요. 아마 다음에 나올 책도 앞의 두 권과는 또 다른 느낌이 되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광고 만들면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기도

두 사람 모두 광고 업계에서 일하잖아요. 매력적인 일 같은데, 일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나요?

김재연 : 2년 전 , 눈이 나오는 장면을 찍기 위해서 알래스카로 가야 했어요. 30여 명의 스텝들이 만년설에 도착하고 한 4시간 정도 촬영하고 있는데 갑자기 기후가 안 좋아지는 거예요. 기후가 나쁠 때 잘못하면 3~4일 정도 고립되는 위험한 순간이니 여자들만 우선 7인승 경비행기를 타고 먼저 빠져나가라고 하더군요. 다행히 촬영을 무사히 마쳤는데요. 그때 생명에 위협도 느꼈고, 남겨진 분들에게 미안하기도 했어요. 요즘 들어 가장 느끼는 건, 이쪽 일을 하려면 체력이 강해야 해요. 원하는 아이디어대로 안 될 때가 있고 좌절도 많으니 강한 멘탈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김은주 : 회사 창립 기념일 때 내부 직원들을 위한 광고를 만들었을 때 김아중씨가 모델로 출연했었는데, 스케줄이 있어 먼저 가게 되었어요. 추가 안무를 찍어야 해서 할 수 없이 제가 대역으로 어설프게 춤을 추면서 몸 모델을 했던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기억이 나네요. 카피라이터 일은 야근도 많고 주말근무도 있어서 힘든 부분도 많은데요, 그럼에도 이 직업을 통해 세상을 보는 시각도 다양해지고, 스스로 성장할 수 있기 때문에 힘들지만 매력적인 직업인 것 같습니다.

어떤 책을 즐겨 읽으시나요?

김은주 : 장르는 특별히 가리는 것은 없고 알랭드보통의 작품을 좋아해요. 또 비주얼, 디자인에 관심이 많아서 관련 책을 찾아서 봅니다. 최근에는 『피로사회』라는 철학서를 흥미롭게 읽었어요. 책을 읽고 많이 공감했고 사색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김재연 : 아트디렉터라는 직업 특성상 디자인 관련 전문서적을 자주 봅니다. I Love Type Series시리즈 책을 좋아하는데 책도 예뻐서 수집 수준으로 모으고 있어요. 그리고 하라 켄야의 『디자인의 디자인』, 나가오카 겐메이의 『디자인 하지 않는 디자이너』등의 생각의 자극을 주는 책도 좋아합니다.

김은주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1cm』



두 사람이 생각하는 나의 1cm는?

김재연 : 세월이 지나가면서 자꾸 변하고 있어요. 1cm라는 책이, 인생이 긴 자라면 우리가 찾아야 할 1cm는 무엇인가, 이런 내용을 담고 있잖아요. 그게 사랑이었다가, 지금은 여유였다가, 계속 변하는 것 같아요. 하나로 규정할 순 없네요. 아무튼 지금 나의 1cm는 여유입니다.

김은주 : 저도 비슷한 맥락인데요. 1cm는 늘 채우고 싶은 것 그래서 나를 완성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생의 흐름에 따라 채우고 싶은 것들이 변하고, 그것들을 채워가면서 스스로 성장해나가는 것 같아요. 요즈음 제게 필요한 1cm를 꼽으라면 사색하는 시간입니다.

김재연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1cm』

김재연 작가는 ‘우선은 놀아야 힘이 난다’고 프로필에 적었는데, 어떻게 노시나요?

김재연 : 저년차 때 존경하는 선배님과 일한 적이 있는데 그 분께서 ‘즐길 수 없으면 피하라’는 카피를 쓰셨어요. 위트 넘치는 그 카피가 정말 좋아서 지금까지 좌우명으로 삼고 있어요. 너무 바빠도 나만의 시간을 가지려고 해요. 특이하게 노는 방법은 없어요. 시간 나면 삼청동이나 가로수길을 산책하거나 고양이를 기르고 있는 친구의 집에 가거나 해요. 일상에서 나만의 재미를 찾는 편이입니다.

『1cm』를 어떤 사람이 읽어야 할까요? 특별히 추천하고 싶은 독자가 있다면.

김은주 : 일상이 평범하게만 느껴지는 분들, 지금의 인생에서 무언가를 더하고 싶은 분들이 읽으시면 좋을 것 같아요. 1cm의 시선을 바꾸면 그 동안은 보지 못했던 인생의 흥미로운 면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이 책을 통해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 덜 상처받고, 더 이해할 수 있게 되고,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더 사랑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김재연 : 위로받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합니다. 또한 유독 자기자신에게만 가혹한 분들이 계시는데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과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은 자기 자신임을 깨닫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해드리고 싶습니다.

앞으로 계획은?

김은주 : 계속해서 응원 보내주시고 다음 책을 기다리시는 분들이 많으신데 앞으로도 좋은 책으로 뵙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강연 요청도 있는데 잘 준비해서 또 다른 모습으로 만나 뵐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재연 : 순수미술 전공이긴 하지만 짧은 기간에 다양한 기법과 각기 다른 스타일의 그림을 그린 건 처음인 것 같아요. 『1cm』를 준비하면서 정말 힘들었지만 그만큼 재미있었고, 제가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다는 걸 다시 발견하게 되는 계기였어요. 그때처럼 즐겁게 작업할 수 있는 그림을 다시 그려보고 싶어요.

김은주 작가는 번역도 했는데, 더 도전하고 싶은 장르가 있나요.

김은주 : 텍스트와 멜로디의 결합도 매력적인 것 같아서 작사에 도전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쓰다만 소설이 있는데 완성해 보고 싶고, 일러스트뿐 아니라 다른 요소와 결합한 책들도 구상해보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흥미롭고 공감 가는 작품을 선보일 수 있도록 노력 중이니 많은 기대 부탁합니다.

* 인터뷰에 함께 수록한 두 편은,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을 꼽아 달라는 요청에 두 저자가 뽑은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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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cm 일센티 첫 번째 이야기김은주 저/김재연 그림 | 허밍버드
2008년 출간, “인생이 긴 자라면, 우리에게는 1cm만큼의 ( )가 필요하다”는 독특한 부제를 달고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았던 《1cm(일 센티)》. 아쉽게도 절판되어 출간 후 5년 이상이 지난 최근까지도 독자들의 재출간 요청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소장 가치가 높아 중고 서점에서도 구하기 어려웠던 이 책. 2014년 3월, 허밍버드가 《1cm(일 센티) 첫 번째 이야기》라는 제목과 함께 완성도를 높여 새롭게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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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화 “언제까지 대영박물관, 루브르만 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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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다소 식상한 단어로 느껴지나, 힐링은 삶에 꼭 필요하다. 더구나 속도에 지친 현대인이라면 말이다. 힐링은 여러 활동으로 느낄 수 있지만, 도심에서는 좀처럼 접하기 어려운 자연에서 얻을 수 있다. 자연 속에서 근심 걱정 내려놓고 힐링하는 것도 좋지만, 한 걸음 나아가 예술 작품까지 감상할 수 있다면?

 

뮤지엄 스토리텔러 이은화가 쓴 『자연 미술관을 걷다』에 그 답이 있다. 부제 ‘예술과 자연, 건축이 하나된 라인강 미술관 12곳’에서 나타나듯, 이 책은 미술관을 소개한 책이다. 라인강에 위치한 미술관이라고 지레 겁먹을 필요는 없다. 뮤지엄 스토리텔러라는 이름답게, 저자의 친절한 스토리텔링을 따르다 보면 직접 가지 않아도 라인강에서 힐링하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특히 저자가 직접 찍은 아름다운 라인강과 미술관 그리고 현대 미술 작품은 풍부한 간접 경험을 가능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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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보고 명상하고 가족과 함께 시간 보내는 미술관

 

뮤지엄 스토리텔러로 불리고 있는데, 이런 타이틀은 어떻게 생겼나?

 

스토리텔링이라는 말이 많이 쓰이고 있고, 여기에 뮤지엄이 붙어 뮤지엄 스토리텔러가 되었다. 유럽의 미술관과 컬렉션에 관해 강의하고, 칼럼이나 책을 쓰다 보니 어느 순간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더라. ‘뮤지엄 스토리텔러’라는 이름이 내 마음에도 든다. 이은화 외에는 이런 이름으로 불리는 사람을 아직 보지 못했다.

 

전작인 『가고 싶은 유럽의 현대미술관』에 이어 이번에도 미술관에 관한 책을 냈다.

 

『가고 싶은 유럽의 현대미술관』이야기부터 해야겠다. 이 책은 유학 시절부터 일하던 시절까지 배낭여행과 취재 차 미술관에 갔던 것을 정리해서 낸 기행서였다. 원래부터 미술관 기행서로 그 책을 내려고 한 건 아니었다. 현대미술 입문서를 준비 중이었는데, 입문서라는 게 딱딱하지 않나. 미대생도 사 보지 않는 게 현대미술 입문서다. 저 책을 냈을 때는 내가 ‘뮤지엄 스토리텔러’라는 말보다는 ‘현대미술 전도사’라는 표현을 썼다. 현대미술을 널리 알리고 싶은데, 입문서는 너무 딱딱하니 다른 방식을 고심했다. 그래서 미술관 기행이라는 형식으로 현대미술과 작가를 소개했다.
 
『자연 미술관을 걷다』도 그런 고민의 결과물 같다. 이번 책은 어떤 계기로 쓰게 되었나.

 

『가고 싶은 유럽의 현대미술관』은 런던, 파리, 베를린, 바르셀로나 등 대도시에 있는 미술관 중심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언제까지 대영박물관, 루브르만 갈 것인가. 이번 책은 좀 다르다. 철저하게 마이너한 미술관을 다뤘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미술관이 대부분일 것이다. 네덜란드와 독일을 가로지르는 라인강 하류에 예술과 자연, 건축이 하나된 미술관이 많다. 그곳을 소개해 보고 싶었다. 이제는 미술관을 가는 방식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주로 작품을 보러 미술관에 갔지만 지금은 작품만 보러 미술관에 가지는 않는다. 미술관에서 작품도 보고, 명상도 하고 가족과 함께 시간도 보낼 수 있다. 이런 변화를 지켜 보다 보니 라인강에 위치한 미술관이 생각나더라. 게다가 한국에도 한솔 뮤지엄 같은 자연 미술관이 붐처럼 생기고 있었다. 자연 미술관을 국내에 짓고자 하는 분이나, 특별한 미술 여행을 원하는 분에게 도움이 되고자 이 책을 냈다.

 

전문가에게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미술관을 대상으로 글 쓰는 게 쉽지 않았을 듯하다. 자료조사는 어떻게 했나.

 

한국에 안 알려졌을 뿐, 그곳에서는 유명한 미술관이다. 크뢸러 뮐러 미술관이나 홈브로이히 박물관 섬은 『가고 싶은 유럽의 현대미술관』에도 소개했던 곳이다. 『가고 싶은 유럽의 현대미술관』에 실린 뒤, 여행사마다 아트투어 때 두 곳을 필수 코스로 넣더라. 여행사 사장님들도 나에게 새로운 루트를 개발해보자고 제안 많이 한다. 미술 애호가는 이런 특별한 투어를 원하니까. 사실 유럽 여행을 평생에 단 한 번만 가지는 않는다. 3번이나 4번 갈 수 있는데, 똑같은 루트가 싫증난 사람에게는 『자연 미술관을 걷다』에 소개한 미술관이 어울린다. 처음으로 유럽여행 간 사람보다는 여러 번 유럽여행 가는 사람에게 좀 더 도움되는 책일 수 있으나 크게 상관은 없다. 여기에 소개한 미술관이 대부분 대도시 옆에 붙어 있으니까 가기 어려운 곳은 아니다.

 

이 책을 읽고 회사를 관두거나, 일상생활을 접고 떠나고 싶어할 사람이 생길 것 같다. 책에 등장하는 미술관이 정말 아름답다. 책 띠지에 ‘느림’, ‘쉼표’, ‘힐링’ 등 단어가 눈에 띈다.

 

실제로 주변에서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하더라. 친한 후배 중 한의사가 있는데, 그 좋은 일을 그만두고 힐링하러 유럽으로 떠나고 싶다고 한다. (웃음) 힐링, 느림, 쉼표 등의 단어를 원래 좋아한다. 한국은 속도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오죽하면 외국 사람이 한국 와서 가장 빨리 배우는 말이 ‘빨리 빨리’일까. 나는 외국에서 20대, 30대를 보냈는데 한국에 돌아와 대형 마트에 가서 깜짝 놀랐다. 계산대에서 점원도 고객들도 정말 빨리 계산하더라. 식당에 가도 ‘제일 빨리 나오는 메뉴’를 주문하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왜 그래야 할까? ‘빨리 빨리’에 익숙한 한국인이 느림의 미학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 자연미술관은 눈과 마음과 몸이 모두 즐거울 수 있는 장소다. 돈도 얼마 안 든다.

 

오히려 한국이 더 물질적 가치에 매달려

 

건축이라든지 미학 쪽에서는 서양은 공간을 지배하고 동양은 공간과 어우러지는 걸 추구했다는 담론도 있는데, 이 책을 보면 전혀 그런 것 같지 않다. 서양의 전통과 동양의 전통에 관해 어렴풋이 편견을 가졌다는 생각도 들더라.

 

나는 그런 편견을 가져본 적이 없다. 조화라는 건 인간의 본능이고, 유럽도 당연히 조화를 추구한다. 그런 이분법이 있다면, 잘못된 편견이다. 예술과 건축은 자연과 조화로워야 하고, 조화가 깨질 때 우리에게 불쾌감을 준다. 서양보다는 오히려 우리나라에 그런 건물이 많다. 시각적인 공해를 일으키는 건물에 노출되다 보면 심미안도 잃는다. 책에 소개한 미술관은 모두 조화로운 공간이다. 이런 걸 보고 자란 사람은 자연스럽게 조화를 추구한다. 다른 한편으로 유럽 사람들은 과거의 전통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우리는 모두 새롭게 짓길 원하지 않나. 유럽에선 18세기나 19세기에 지어진 아파트를 리모델링한 것이 많다. 밖에서 보면 19세기 전통이 그대로인데 안에만 현대에 맞게 꾸몄다. 이런 집이 렌트비가 제일 비싸다. 우리는 1970년대, 1980년대 지어진 건물을 부수고 새로 지어 달라고 데모하고 난리다. 다행스럽게도 요즈음은 ‘건설’이 아닌 ‘건축’을 하려는 시도들이 있어 기쁘다. 원래 우리 전통 건축은 못도 거의 안 쓰고 잘 지은 게 많지 않은가.

 

그런 면에서 서양은 물질, 동양은 정신이라는 이분법에도 문제가 있는 듯하다.

 

과거 우리가 학문적으로는 정신을 지향했는지 몰라도 현실은 어떤가? 중산층에 관한 여러 나라의기준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우리나라 중산층 기준은 철저히 물질 중심적이다. 주택이나 자동차 소유와 소득이 기준이고, 프랑스나 영국, 미국 등이야말로 정신적인 것이 기준이었다. 자신의 신념이 있어야 한다든지, 사회적 약자를 돕는다든지, 부정과 불법에 저항한다든지 하는 게 서구의 중산층 기준이었다. 이렇듯 한국이 오히려 물질적 가치를 중심에 두고 있고 서양은 여전히 정신적인 것과 역사성,과 전통을 강조하는 분위기다. 물론 전부가 다 그렇다는 뜻은 아니고…

 

뮤지엄 스토리텔러라고 불리지만 이은화 저자는 현대미술, 미술관 정책, 미술사 등 다양한 주제로 다양한 청중과 만난다. 한 분야에 정통하기도 어려운데, 어떻게 이게 가능했을까? 답을 알기 위해서는 앞의 책 날개를 들춰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 대학원 미술사학, 영국 런던 캐빈디시대학 그래픽 디자인, 런던예술대학 순수미술 석사, 소더비 옥션하우스에서 세운 런던 소더비 인스티튜트에서 현대미술학 석사, 맨체스터대학과 소더비 인스티튜트가 함께 운영하는 아트비즈니스에서 박사...... 보통 사람이라면 학위 하나 갖기도 힘든데, 그녀가 거쳐간 학교가 정말 많다. 전공도 다양하다. 자연스레, 이은화 저자의 공부 이력이 궁금해졌다.

 

모범생 아닌데도 공부를 오래 한 이유

 

오래, 여러 곳에서 공부했다. 덕분에 다양한 각도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것 같은데, 원래 공부를 좋아하나.

 

몇 년 전까지도 학생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었다. 모범생 체질은 아니었지만 어릴 때부터 호기심이 많았고 배우는 걸 좋아했다. 처음에는 서양화를 전공했다. 아티스트로 살고 싶었으나, 한국에서 쉽지 않다. 그 당시에는 미술 시장이 형성도 안 돼 있어서 생계도 어려웠다. 디자인 기술이 있어야 밥은 먹고 살겠다 싶었는데 한편으로는 이론도 배우고 싶었다. 그래서 유학 갈 때, 그래픽 디자인을 할까 미술사를 할까 고민하다 대학도 두 군데 다 지원했다. 결국 미술사를 선택하고, 미술사를 공부하니까 그림을 그리고 싶더라. 이제는 서양화, 이런 게 아니라 디자인 쪽으로 공부하고 싶어 런던으로 갔다. 디자인을 공부하니 순수미술이 그립더라. 순수미술을 하고 졸업작품을 내는 데, 갤러리에서 작품 값이 얼마인지 물었다. ‘아, 미술도 상품이구나’, 하는 깨달음이 생기면서 예술경영이 궁금해졌다. 그렇게 소더비에 들어갔다. 당시 소더비에 입학하기로는 한국인 최초였을 것이다. 그곳에서 아트 비즈니스까지 공부했는데, 내가 아트 비즈니스 박사과정 1호였다. 그렇게 다양한 분야를 공부했다. 생각해 보니 결국은 아트, 미술 하나를 공부한 것이다. 순수미술, 디자인, 미술사, 미술경영까지 공부했는데, 미술을 다각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과정이었다.

 

졸업 작품은 결국 얼마에 팔렸나?

 

영국 유명한 회사에서 사겠다고 제안했다. 작가 500명 리스트를 갖고 있는 기업체였는데, 안 팔 생각에 비싸게 불렀다. 한국에서 개인전을 열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작품이 라이트 아트, 디지로그 페인팅으로 당시에는 첨단인 기법이었는데, 결과적으로는 한국에서 개인전할 때 못 썼다. 배 타고 건너오면서 재료가 성한 게 없어 결국 새로 제작했다. 예술품은 사겠다는 임자가 나타날 때 팔아야 한다는 걸 느꼈다. 지금은 아끼는 작품이 없다. 누군가가 갖고 싶다고 하면 다 판다. 그렇다고 내가 잘 팔리는 작가는 아니다. (웃음)

 

뮤지엄 스토리텔러인데, ‘스토리텔러’는 글쓰기에 고민을 많이 하지 않나.

 

글쓰기에 관한 고민은 없다. 팩트 중심으로 쓴다. 그렇게 쓰기 위해 엄청 열심히 조사한다. 특히,유럽미술관을 많이 연구하다 보니 영어나 독일어뿐 아니라 불어, 스페인어, 네덜란드어 등 다양한 유럽어 지식이 필요하다. 번역기를 끼고 살고, 늘 새로운 외국어 습득에 노력한다. 시중에 미술에 관한 책이 많은데, 그 중에는 개인적 감상 위주로 쓰면서 잘못된 지식을 전달하는 것도 있다. 그러면 안 된다. 가장 중요한 건 팩트이고, 다만 팩트만 전달하면 재미 없을 수도 있으니 개인적인 이야기도 살짝 섞는다. 단, 개인사가 많이 들어가면 일기가 된다.

 

저술, 강연, 창작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 각 활동 간 밸런스는 어떻게 유지하나.

 

하루 24시간 주어진 건 똑같으니 밸런스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책 출간을 앞두고는 글에, 강의 많으면 강의에, 전시 앞두고는 작품 활동에 집중한다. 일주일 단위가 아니라 연간 단위로 짜는데, 그때 그때 하고 싶은 거에 시간을 더 투자한다. 올해는 책에 집중할 것 같다. 출판사에 내겠다고 입으로만 약속한 책이 너무 많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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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자연 미술관 소개하는 책 준비 중

 

한국의 자연 미술관을 소개하는 책도 준비 중이라고 들었다.

 

한솔 뮤지엄, 제주 본태 뮤지엄 등 전국에 자연 미술관이 굉장히 많이 생겨나고 있다. 지금까지 16곳을 다녀왔다. 특히 제주에 자연 미술관이 많다. 강원도에도 많고. 리스트를 수십 개 뽑아놨는데 이중에서 추려내야 할 정도다. 미술관 역사가 유럽에 비하면 한국이 많이 짧지만 우리도 우리 나름의 콘텐츠가 있다. 거기에 스토리를 만드는 게 내 역할이다. 주말마다 아이를 데리고 부부가 미술관 전국 투어를 다니고 있다. 놀면서 일하고 있다. (웃음)

 

융합미술연구소 크로싱을 운영하고 있는데, 어떤 곳인가?

 

‘미술과 타 장르간의 융합을 통한 새로운 가치 창출’이 연구소의 모토다.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다양한 분들이 연구소를 찾아준다. 미술작가로서는 미술과 테크놀러지의 융합에 관심이 많다. 예로, 내 작품은 '디지로그 페인팅'이라고 해서 디지털 기반의 키보드 문자나 기호 이미지를 아날로그적인 프로세스를 통해 이미지로 만드는 것이다. 첨단의 기술을 가진 게임업체 사장님이나 산업분야에 계신 분도 미술적 콘텐츠를 고민하며 찾아오기도 한다. 내가 콘텐츠를 제공하고 그들은 기술을 제공하면 그게 뉴미디어 아트가 될 수도 있고 예술적인 산업 제품이 될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음악에 관심이 많다. 미술은 늦게 입문해도 접근이 가능한 분야인데, 음악은 어릴 때부터 노출되지 않으면 너무도 넘기 힘든 분야더라. 지금은 피아노도 칠 줄 모르고 음악도 잘 모르지만 더 늦기 전에 클래식부터 시작해서 다양한 인디음악까지 도전해 보려고 한다. 그 다음은 현대무용이나 공연계도 더 공부해 보고 싶다. 그래서 한 5년이나 10년 후쯤에는 미술, 음악, 퍼포먼스까지 아우르는 융합적인 예술 책을 내보고 싶기도 하다.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웃음) 최종적인 꿈은 내 이름을 건 아카데미 설립이다. 유치원생부터 전문가, 노인까지 아우르는 평생 교육 기관을 세우는 게 목표다. 이건 공교육이 커버해 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 미술에 관한 다양한 콘텐츠를 제공하고 싶다. 아이는 아이대로. 전문가는 전문가대로 필요한 지식이 있다. 미술창작에서부터 미술시장, 미술사, 미술경영 등 다양한 분야를 내가 모두 강의할 수 있다. 실현 가능할지 모르지만 꿈이다.

 

타 장르 간 융합은 지식이나 실력도 필요하지만 사람의 매력도 중요하지 않나. 융합이 혼자 하는게 아니라 함께 하는 것인까. 이은화의 매력이란?

 

그냥 나는 논다. (웃음) 돈, 명예를 지향하지 않는 삶을 추구한다. 평생 풀타임 잡을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다. 여러 곳에서 제안은 받았지만, 받을 때마다 “저는 3일 이상 출근 못해요.”라고 대답했다. 앞으로도 풀타임 잡을 가질 생각은 없다. 생계를 위해서는 이틀이나 3일만 일하고 나머지 날은 논다. 읽고 싶은 책 읽고, 여행하고, 글 쓰고, 하고 싶은 작품 하며 살고 있다. 일과 놀이와 공부가 조화로운 삶이 내가 추구하는 삶이다. 종종 “돈을 포기하면 자유가 와”라고 이야기하는데 이런 말을 하면, 나보다 훨씬 연봉도 높고 대기업에서 높은 자리에 있는 친구들이 부러워하더라. 이 친구는 “나중에 직장을 관두면 같이 놀아요”라고 말한다. 그리고 돈이라든지 명예와 같이 내게 없는 것에 연연하지 않고 관심도 없다. 가진 것에 감사하고 산다. 그래서 행복지수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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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 미술관을 걷다이은화 저 | 아트북스
『자연미술관을 걷다』에 소개된 미술관 대부분은 유럽의 새로운 아트투어 루트로 주목받고 있는 ‘크로스아트CROSSART’에 속한다. 크로스아트는 라인강 하류에 위치한 지역미술관 열 곳을 묶어 새로운 문화 관광 루트로 개발하기 위해 독일과 네덜란드 두 나라가 진행(2003~06년)한 문화관광 협력 프로젝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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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희경 “자기라는 존재를 느낄 때,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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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부터 일산에 살고 있는 은희경 작가. 오랫동안 신도시에서 살고 있는 까닭일까. 유독 신도시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 많았다. 올해 펴낸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이하 『단 하나의 눈송이』)의 주요 배경도 신도시, 또는 낯선 이국이다. 새 작품을 쓸 때마다 장소를 옮겨 가며, 펜을 드는 작가는 『단 하나의 눈송이』를 강원도 원주 토지문학관, 제주, 뉴욕, 처음 가본 카페에서 썼다. 표제작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는 2008년 겨울, 토지문학관에서 쓴 작품이다. 은희경 작가가 장소를 선택하는 기준은 ‘장소 자체에 큰 성격이 없는 곳’이다. 온전히 글에만 집중할 수 있는 곳에서 작가는 새로운 글감을 떠올린다.

한 번에 외우긴 참 힘든 제목,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는 일본 시인 사이토 마리코의 작품 「눈송이」 에서 따왔다. 비슷하지만 명백히 단 하나의 모습일 수밖에 없는 눈송이. 사람의 인생도 다르지 않다. 소설집에 실린 6개의 단편은 연작 형태를 띤다. 표제작의 주인공 안나는 「T아일랜드의 여름 잔디밭」 의 소년의 엄마, 「프랑스어 초급과정」 의 주인공이 품고 있던 태아는 「스페인 도둑」 에서 아들 ‘완’으로 등장한다. 장편으로 써도 됐을 법한 이야기, 작가는 쉽사리 빠져 나오지 못한 인물에 대해 생각을 거듭했다. 퍼즐을 맞추기라도 하듯, 모든 작품을 읽고 나면 하나의 풍경처럼 보인다. 작가의 의도대로 읽힌 셈이다.

은희경 작가가 주로 출몰하는 요지, 홍대의 한 카페에서 작가를 마주했다. 작품이 나오면 더 바빠지는 것이 스타 작가의 일상. 인터뷰, 저자와의 만남 등 여러 행사로 쉴 틈이 없는 요즘이지만, 행복한 일과다. 2012년 펴낸 장편 『태연한 인생』이후 2년만의 신작이니, 은희경을 기다린 독자에게도 반가울 따름이다. 은희경에게 찾아온 봄은 또 어떤 풍경을 만들어낼까. 4월에는 소백산 천문대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은희경이 독자에게 꺼내 놓은 말, 듣다 보니 잉여의 감정들이 마음을 후볐다.
풍경은 늘 그렇게 있다. 계절과 날씨에 따라 조금은 다를 것이다. 결국 시간이 개입된다는 뜻이겠지. 풍경을 보기 위해 내가 간다. 대체로 헤맸다. 익숙한 시간은 온 적이 없다. 늘 배워왔으나 숙련이 되지 않는 성격을 가진 탓이고 가까운 사람들이 자주 낯설어지는 까닭이다. 왜 그럴까. 시간이 작동되는 거겠지. 내 탓도 네 탓도 아니다. 내가 어떻게 그곳에 닿느냐에 따라 풍경이 달라진다고 여겼을 때는 그랬다는 말이다. 지금 이 풍경 앞에서 생각한다. 내가 풍경으로 간 것이 아니라 실려갔다. 떠밀려간 것도 아니고 스침과 흩어짐이 나를 거기로 데려갔다. 이런 생각을 하던 시간들이 이 책 속 이야기가 되었다. 쓸 수 있다, 고마운 일이다. _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작가의 말



독립적이지만 하나의 풍경이 되는 소설집

한 때, 일산의 어느 카페에 가면 은희경을 만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웃음). 카페에 갈 때는 여유로울 때가 아니라, 글 쓸 게 있을 때 가요. 한 카페에서 몇 개를 쓰고 나면, 다른 생각이 안 나죠. 예전에 기운이 있을 때는 지방도 많이 돌아다녔는데, 요즘에는 그것도 힘들어서. 남들처럼 카페에서 한 번 써봐야겠다 생각하고, 찾아 다녔어요.

유명 작가가 출몰하면, 카페의 단골도 늘 것 같은데요.

한 군데를 오랫동안 가진 않아요. 단골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에요. 나를 의식하는 느낌이 들면, 불편하잖아요. 아, 그리고 카페는 1카페, 1작가가 원칙이에요. 잘 안 겹쳐요.

『새의 선물』은 절에서 쓴 작품으로 알고 있어요. 이번 신작 『단 하나의 눈송이』는 어디에서 쓴 작품일까, 궁금했어요.

강원도 원주에 있는 토지문학관에서 썼어요. 다른 작품은 제주도의 아는 선배 집을 빌려서 쓰고, 또 작년 여름 뉴욕에서 쓴 작품도 있어요. 낯선 공간에 가면, 글 쓰는 데만 집중할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아요. 그렇지만 다음 작품에는 영향을 미치죠. 『새의 선물』을 쓴 절이 『그녀의 세 번째 남자』 의 배경이 된 것처럼요. 처음에 작품에 들어가면 잘 안 써지니까 ‘아는 것부터 써야지’ 생각해요. 그래서 전에 경험하고 본 것들이 많이 등장하죠.

사이토 마리코의 작품 「눈송이」 에서 이번 소설집 제목을 따왔어요. 제목이 너무 길어, 반대가 있지는 않았나요?

무슨 뜻인지 한 번에 와 닿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있었어요. 너무 길어서 책 제목으로는 적당하지 않다는 반응도 있었고. 그렇지만 제 마음에는 딱 들었어요. 나중에는 독특하고 좋다는 의견도 있어 결정한 제목이에요. 봄에 나오는 책이지만, 이야기 자체가 화사한 느낌은 아니라서요.

6개 작품 속에서 중복된 등장인물이 있어요. 인물의 성장을 보여주기보다는 다른 정체성으로 표현된 점이 인상적이었어요.

표제작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 를 처음으로 썼는데, 이 인물을 계속해서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인물에서 빠져 나오는 게 힘들었거든요. 하지만 다른 두 번째 작품을 썼죠. 그런데 정서가 이어져 있더라고요. 인물을 중심으로 연작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죠. 그 때부터는 의도적으로 디테일을 맞추고, 결국에는 관계가 드러나게 썼죠. 장편으로 엮어도 됐지만, 따로따로 읽어도 상관 없게 써보고 싶었어요. 각기 독립적이지만 전체가 하나의 풍경이 되는 것. 이 소설에서 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연관이 된다고 생각했어요.

소설집 제목이 각기 다른 6개 작품을 설명해주는 셈이네요.

그렇죠. 단독적으로 표현되어 있지만 비슷하게 보이는 눈송이와 같은.

1998년작 『아내의 상자』도 신도시가 배경이었죠. 이번 소설집 역시 주요한 배경이 신도시에요. 「프랑스어 초급과정」 은 낯선 신도시에서 신혼을 시작한 여성의 이야기이고, 「스페인 도둑」 의 소영은 신도시와 집을 벗어나지 못하는 인물이에요. 신도시라는 배경이 작가에게 주는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

이전 작품에 등장한 도시들도 거의 신도시가 주였어요. 이번 소설집에는 작품을 모두 붙여 놓으니까 유독 드러나는 것 같아요. 「프랑스어 초급과정」 에서 신도시가 왜 생겨나고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꿔 놓았는지를 설명했잖아요. 제가 실제로 신도시에 살면서 느꼈던 이식의 느낌, 편리한 것을 위해 효율성을 따지고, 뿌리를 내리지 않고 금방금방 옮겨 다니는 신도시의 모습이 소설의 볼모의 느낌으로 나오는 게 있어요.

20여 년 신도시에 살게 되면 고향으로 느껴질 법도 한데, 한 해가 지나기 무섭게 모습이 바뀌니 살고 있어도 영 낯선 느낌이에요.

신도시라는 게 오래된 동네처럼, 시간을 두고 하나씩 생겨난 게 아니잖아요. 자연발생적으로 필요에 따라 생긴 게 아니라 조성된 공간이라서, 이곳은 영원히 신도시일 수밖에 없어요. 낡긴 하겠지만 고향이 될 수는 없죠. 1년 사이에 거대한 아파트 단지가 생긴 거니까요. 오랜 시간이 지나면 누군가의 고향이 될 수 있는 시간인데, 그렇지 못한 이유를 작품에 담아보고 싶었어요.

「T아일랜드의 여름 잔디밭」 을 읽으며, 작가가 다녀온 도시일까? 궁금했어요. 묘사가 너무 생생해서 마치 그 곳에 가 있는 착각이 들었어요.

2002년부터 2년간 살았던 미국 시애틀의 한 동네를 배경으로 썼어요. 시애틀을 두고 ‘에버그린 시티’라고 말하잖아요. 녹지가 많고 정말 아름다운 곳인데, 2년을 살다 한국에 오니 확 대비가 되더라고요. 제가 한국에 왔을 당시, 일산에 ‘라페스타’라는 상업 공간이 생겼거든요. 일제히 한 골목에서 연기를 피우며 고기를 굽고 있는 모습을 보며, ‘아! 진짜 사람들이 못할 짓이 없구나’ 싶었어요. 자기 식으로 산다는 거에 대해서 생각이 없구나, 그런 생각요. 물론 저도 라페스타를 즐겨 가고 글도 쓰고 밥도 먹어요. 하지만 ‘내 고향이다, 정든 거리’라는 그런 느낌은 없어요. 저 역시 편의에 의해서 그 곳 사람이 된 거니까요. ‘고향 상실이다’ 이런 걸 말하려는 건 아니에요.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조건이 태생 자체가 조성된 공간이라는 것, 이런 사실을 우리가 의식하고 살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봤으면 했죠.




포기하는 게 아니라, 다른 걸 선택하는 것

등장인물들이 모두 고독해요. 쓸쓸하죠. 타인과의 이질감도 많이 느끼고. 하지만 이들이 불행하다는 느낌으로 다가오진 않았어요. 스스로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에요.

서른 다섯에 소설가가 됐을 때, 이런 말을 했어요.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삶은 어떤 틀에 맞추려고 애를 쓴 인생이었는데, 이 틀이 내 것인지를 생각해본 적이 없다. ‘내가 누군지 알자’라는 생각으로 소설을 썼다”고. 지금은 내가 누군지 알기 때문에 고독할 수 없어요. 사람들이 이번 소설집을 보고, 따뜻해졌다고 말하는데, 갑자기 따뜻해졌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예전의 인물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방어하는 입장이었지만, 지금은 자기 자신을 드러내 버리니까요. 작품 속 인물들은 언제나 시류에 적응을 못하는 주류가 아닌 사람들이었어요. 제 안에 그런 인물들이 많으니까요.

비주류의 정서가 많다는 뜻인가요?

음. ‘이 정도면 내가 그동안 해온 일이니까 할 수 있겠다’가 아니고, 항상 어려워요. ‘이 정도 배짱은 가질 수 있어’라고 생각하다가도, 남과 다르게 행동해야 할 때 불안감이 있고 항상 낯설어 하는 정서가 있어요. 그런데 낯설고 불안하면 어디를 가지 말고 피해야 하는데, 저는 또 늘 낯선 사람이 되길 바라요. 예전의 나로부터 벗어날 수 있으니까요. 나를 알지만, 나를 좋아할 수 없는 그런 것들로부터 벗어나고 싶어서 낯선 것들을 감당하는 것 같아요. 고독과 함께.

여행을 자주 떠나는 것도 낯선 감정을 누리기 위해서일까요?

그럴 수 있죠. 새로운 것을 자꾸 찾으니까요. 환경을 바꿔서 내가 뭐가 되겠다는 건 아니고, 일단 내가 아는 상태를 찾는 거에요. 어떻게 보면 저는 틀에 갇힌 사람이에요. 30대 중반까지 그렇게 살아왔죠. 소설가가 되면 인생이 달라질 줄 알았고, 내가 좀 자유롭게 생각하고 틀에서 벗어날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결국 나는 틀에 박힌 소설가인가?’, ‘대상만 바뀌었을 뿐인지, 아직도 정답을 맞추려고 하는 건 아닐까’ 이런 생각을 많이 해요. 내가 정말 규정된 인간이구나 싶을 때, 익숙한 공간이라도 벗어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여행도 많이 하고 다른 장소에서 3개월간 살아보기도 하고 그러죠. 편안한 사람들 속에 있으면 정말 좋은데, 자꾸 갇히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까요. 새로운 걸 찾는다기보다는 벗어나려고 하는 것 같아요.

「스페인 도둑」 에서 소영은 신도시와 집을 벗어나지 못하는 대신, 많은 걸 쉽게 바꿨어요. 작가님에게도 그런 게 있을까요? 쉽게 바꿀 수 있는 것, 또는 그렇지 못한 것들.

저는 이사도 못 가지만, 오래된 것도 못 바꿔요(웃음). 그래서 여행을 자주 가죠. 다른 건 몰라도, 어디를 가자고 하면 굉장히 쉽게 받아들여요. 왜 이렇게 나가는 걸 좋아할까? 생각해보면, 낯선 것에 대한 호기심도 있지만 벗어나고자 하는 욕망이 있는 것 같아요. 유난히 내 물건을 버리지 못하고 주변을 바꾸지 못하니까, 오히려 다른 식으로 살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아닐까 싶어요. 소영도 마찬가지에요. 동네를 떠나지 못하는 걸 ‘포기’하는 게 아니라, 다른 걸 바꾸기로 ‘선택’하는 삶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뭔가 잘 안 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럴 때, 포기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다른 걸 선택한다고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소년을 위로해줘』도 마찬가지에요. 자기가 원하지 않는 인생을 살게 됐을 때, ‘이렇게 밖에 안 되는구나’ 포기하는 게 아니라, 이혼하고 아들이랑 사는 것처럼 ‘인생 규모를 단출하게 만들어서 새로운 사이즈로 살아봐야겠다’라고 생각하는 것. 이걸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세상이 말하는 너무나 획일적이고 폭력적인 성공의 기준을 내 식대로 바꿔가며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T아일랜드의 여름 잔디밭」 이야기를 다시 꺼낼게요. 이번 소설집에서 가장 흥미롭게 읽은 작품이기도 한데요. 주인공의 엄마는 낯선 이국땅에서 생긴 취미가 개러지 세일을 다니는 일이었어요. 사람들이 버리는 중고제품을 사들이는데, 좋은 추억보다는 슬픈 추억이 담긴 물건들을 눈여겨보죠. 아들은 엄마를 두고 ‘마치 불행을 수집하는 사람 같았다’고 말했어요. 뭔가 안쓰러운 감정이 들다가도 이해가 되더라고요.

시애틀에서 지내면서 저도 실제 개러지 세일을 많이 다녔어요. 다른 사람들의 삶의 스타일을 엿보는 게 흥미로웠어요. 물건을 구경하는 것도 재밌었지만 실제 생활하고 있는 집을 구경하는 것도 인상적이었죠. 그 곳에서 마주친 사람들을 보면, 진짜 물건이 필요해서 오는 사람들도 있고 그냥 구경거리로 오는 사람들, 골동품을 건질까? 하는 기대로 오는 사람들 등 정말 다양했어요. 그런 걸 보는 게 재밌어서 일요일마다 구경하러 다녔죠. 「T아일랜드의 여름 잔디밭」 의 엄마는 아들과 함께 다녔지만 저는 남편이랑요. 책 속에 등장하는 식탁은 지금 일산 집에 있어요.

수집을 즐겨 하나요?

그렇진 않아요. 뭔가 의도적으로 하면 의미를 두고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서, 우연히 되는 것에 오히려 의미를 두는 편이에요.

뜨개질 이야기도 하고 싶어요. 「독일 아이들만 아는 이야기」 에서 주인공이 뜨개질을 배우는 모습이 퍽 인상적이었어요. ‘결혼을 유지하는 건 목도리를 이어 뜨는 일 아닐까’ 라는 글귀도 기억에 남고, ‘작가님도 실제로 뜨개질을 배웠겠구나’ 하는 상상도 했어요.

재작년 겨울에 배웠어요. 갑자기 저한테 따듯한 기운이 들었는지 모과차도 담그고, 목도리도 뜨고 다정한 짓을 좀 했어요(웃음). 「프랑스어 초급과정」 의 시간 배경이 제가 과천에서 신혼을 시작했을 때인데, 그 때 처음으로 뜨개질을 배웠어요. 한참을 지나 다시 뜨개질을 하면서, 그래도 조금은 기억이 나지 않을까 싶었는데 아니더라고요. 소설 속 주인공처럼 야단 맞으면서 배웠어요. 처음부터 뜨개질을 소설로 쓸 생각은 없었는데, 뜨다 보니 ‘이게 무척 간단할 것 같은데, 선택할 것도 많고 책임질 것도 많고 성격도 다 드러나는구나’ 싶었어요.

힘을 빼야 한다는 대목에서는 ‘소설을 쓸 때도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목도리를 뜨면서 남편한테 이런 말을 했어요. “사람이 뜨개질을 하다가 실수를 하면 실을 풀어야 하잖아. 그런데 여기서 푸는 사람이 있고, 끝까지 풀지 않고 이어가는 사람이 있어”라고. 그랬더니 남편이 “이거 소설 하나 나오겠네” 그러더라고요(웃음). 그런데 소설은 뭔가 의도하고 취재를 해서 쓰면 처음 생각한 그대로는 나올 수 있지만, ‘이런 식으로 써야지’ 생각하고 거기에서만 뱅뱅 돌면 재미 없어요. 의도에서 조금 벗어나도 정확히 쓰면, 그 다음 단계는 저절로 나타나요. ‘이 소설 제대로 썼다’ 느낌이 올 때는 내가 의도했던 것보다 반 발자국 앞으로 나간 세계죠.




틀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가 슬럼프

소설가들은 첫 문장을 쓸 때가 가장 어렵다고 합니다. 수백 번을 고치고 마음에 드는 문장을 쓰면 그 이후로는 쑥쑥 풀린다고 하던데요. 작가님도 마찬가지인가요?

소설가로 데뷔하고 장편을 발표하고 사람들이 관심을 많이 가져주기 시작할 때, 누군가 저에게 슬럼프에 대한 질문을 했어요. 아직 겪어보지 않았고 모르겠다고 대답을 했죠. 내가 갖고 있는 문장을 잃어 버릴 일이 없고, 당시 내가 갖고 있는 문제나 질문 같은 걸 소설로 쓰니, 쓰고 싶은 건 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래서 그 때는 ‘뭘 못 쓰길래 슬럼프가 있지?’ 생각했어요. 그런데 나중에 쓰다 보니, ‘이렇게 써야겠다’ 하는 힘을 빼는 게 어려웠어요. 힘을 못 빼겠더라고요. 첫 단계에서 어려운 건, 나의 틀에서 벗어나는 거예요. 못 벗어나면 슬럼프인 거죠.

올해로 등단 20주년을 맞았는데, 지금은 어느 정도 틀에서 벗어난 것 같나요?

익숙해지는 일이 아니라서요. 새 작품을 쓸 때마다 슬럼프에요. 저만의 습관인지 모르겠는데,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에 대해 자꾸 질문하고 좁히는 과정에서 많이 헤매요. 너무 많은 게 닥쳐온다는 것 자체가 욕심이 많고, 힘을 주고 있다는 거겠지요.

이번 소설집에서 그래도 수월히 풀린 작품은 없었나요?

어렵게 나온 소설은 없었어요. 작품으로 들어가지 않은 부분, 없어진 부분을 썼다가 버리는 과정이 힘들었죠. 그런 부분을 다 쓴 다음에야 쉬운 부분이 나와요.

은희경 소설의 특징이라고 하면, 디테일의 힘도 빼놓을 수 없어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려면 마음에 걸리는 게 많아서, 디테일이 있는 부분은 다른 사람의 것을 못 가져와요. 전체적인 에피소드, 사건들은 제 것이 아니지만 작품 속에 등장하는 풍경, 사물, 음식 등은 모두 제 경험이죠. 시애틀에 가서 「T아일랜드의 여름 잔디밭」 의 엄마처럼 고독하진 않았지만 개러지 세일을 다녔고, 「독일 아이들만 아는 이야기」 의 주인공과는 다르지만 뜨개질을 배운 것처럼요.

작품의 균형감각은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을까요? 너무 드러내서도, 너무 보여주지 않아도 안 되는 소설의 긴장감 같은 것들은.

첫 문장을 수없이 많이 써보고, 뭔가 나온 순간부터는 크게 궁리를 안 해요. 내가 잘 아는 어떤 이야기가 있는데, 그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친구한테 들려준다고 생각해요. 친구가 애인이 생기면 궁금하잖아요. ‘네 남자친구 이야기 좀 해봐’라고 했을 때, 생김새나 직업 그런 걸 먼저 말하지 않고 어떤 사건을 말하다가 툭 나오잖아요. 그런 호흡으로 쓰려고 해요. 내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누군가에게 들려준다는 느낌으로.

올해 등단 20주년을 맞았어요. 촌스러운 질문이지만, 20년 동안 소설을 쓰는 삶은 어떤 느낌인지 궁금해요.

등단 10년이 됐을 때는 미국에 2년 동안 갔다가 한국에 돌아온 시기였거든요. 그 때는 굉장히 불안했어요. 속도가 느린 조용한 소도시에 있다가, 너무나 빨리 변한 한국 사회에 적응하기가 힘들었죠. ‘내가 10년 동안 글을 썼는데 해놓은 게 뭐가 있지?’ 그런 불안감, 무기력한 기분이 있었어요. 지금은 몇 주 전 인터뷰를 하면서 처음으로 알았어요. 내가 소설가가 된지 20년이 됐다는 사실을. ‘20년을 썼으니 앞으로는 얼마나 쓰게 될까?’ 이런 시간적인 개념은 별로 없어요. 후배 작가, 선배 작가라는 개념보다는 그냥 동시대의 작가 중에 한 사람이고, 동시대에서 관심 있는 질문에 대해 소설을 쓴다는 사실, 그게 저라고 생각해요.

지금 고민하고 있는 문제, 질문들은 무엇인가요?

아무도 잘못이 없는데, 서로 다 사랑하는데 왜 우리는 고독할까? 서로의 고독에 대해 왜 해줄 게 없을까? 충분히 이해하고 생각하는데, 왜 저 부분은 이해하지 못할까? 저 사람은 자기가 이런 사람인 줄 알고 행동하는데, 우리는 모두 눈치를 채고 있다는 사실을 정말 모를까? 그런 문제가 늘 머릿속에 있어요. 살아오는 시간 속에서 닥쳐오는 질문들이 있죠. 그렇다고 이걸 당장 쓰겠다는 건 아니에요. 소설을 쓰려고 책상에 앉았을 때, 내가 평소에 느낀 것들 중에 강렬하게 오는 게 있거든요. 그런 걸 영감이라고 하는 것 같아요. 생각지도 못한 게 오는 법은 없거든요.

영감을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작가들의 숙제겠지요.

소설을 쓰지 않을 때는 뭐가 소설이 될지 모르기 때문에, 되도록 그냥 열어놓고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보려고 해요. 소설이라는 게 새로운 관점을 보여주는 건데, 익숙한 방식으로 생각하면 안 되죠.

소설집을 펴내셨으니, 다음 순서는 장편일까요?

청탁을 받아서 쓰고 있는 단편이 있어요. 단편을 몇 편 쓰고 나서, 내년부터는 장편을 새로 쓰려고 해요. 오래 전부터 쓰고 싶은 소재가 있어요. 30년 전에 여자 기숙사에서 알게 된 친구들이 30년 동안 인생이 어떻게 변해가는지에 대해 쓰려고 해요. 제가 기숙사 생활을 했거든요. 디테일은 저에게 있으니까, 이제 시작만 남았죠.

『단 하나의 눈송이』를 이미 읽은 독자, 이제 읽을 독자에게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것 같아요.

젊은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인데요. 다른 방식의 삶을 생각해봤으면 해요. 우리 사회는 너무 모든 게 정해져 있잖아요. 이 길로 가면 성공, 저 길로 가면 실패. 기준이 너무 명확한데, 사람들은 모두 같은 존재일 수가 없거든요. 사람은 자기라는 존재를 느낄 때, 가장 행복한 것 같아요. 자기라는 존재에 대한 실감이 자기를 기쁘게 해요. 그러려면 자기를 알아야 하는데, 세상이 말하는 성공의 기준에 너무 맞춰가니까 실패자가 생겨요. 기준에 맞지 않은 사람도 있을 텐데 말이죠. 이 소설도 마찬가지에요. 지금까지 생각한 것과는 다를 수 있어요. 저 사람이 불행해 보이지만 실은 저 사람이 울지 않고 다른 사람이 울고 있을 수 있어요. 고독해 보이는 저 사람이 실제로 강한 사람이 아닌 것처럼요. 흔히 결정된 일로 보는 것들을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 보게 하고 싶어요. 탄력과 유연성이라고 할까요. 우리에게 강요하는 경직된 시스템에서 벗어나 다른 방식으로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태연한 인생』에서 이런 글귀가 나오지요. “멘토 같은 건 만들지 마. 한 두가지 맞는 말은 어지간하면 다 해. 계속해서 맞는 말을 하는 인간이란 성립되기 어렵고, 그러니까 남을 다 믿지 말고 자기가 혼자 생각하라구.”

그동안 멘토라는 말이 붙은 강연은 절대 안 했어요. 멘토가 한가지 방식은 보여줄 수 있지만, 누구에게나 맞는 말일 수는 없잖아요. 지금의 젊은 사람들은 선택의 폭이 넓고 자유로워 보이지만, 사회의 시스템은 더 견고해져서 루저를 만들어내는데 너무 적합한 사회가 됐어요. 경직된 기준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해요. 저도 소설을 쓸 때, 처음 쓰려고 한 소설이 아닐 때가 많아요. 처음 원했던 것을 못했다는 거에 대해서는 실패지만, 이게 훨씬 더 좋을 때가 많아요. 뚫고 나가면 더 좋은 다른 풍경이 보이는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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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은희경 저 | 문학동네
1995년 데뷔, 등단 20년차인 작가에게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이하 『눈송이』)는 그의 다섯번째 소설집이자, 열두 권째 작품집이다. 연재를 하고 계절마다 단편을 쓰고, 그것들을 모으고 정리해 책을 내는 시간들을 생각하면, 작가는 그동안 한순간도 긴장을 놓지 않고 작품을 쓰고 책을 묶었다. 20년, 작가의 첫 책 『새의 선물』 에 열광했던 이들의 딸들이 자라 다시 그의 책을 집어드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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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감독 박찬경, 을 찍은 결정적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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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이 영화 <만신>을 만들었다. 이달 5일에 개정 출간된 『만신 김금화』. 전작 <파란만장><청출어람> 등에서 한국전통문화에 대한 각별한 관심을 드러냈던 박찬경 감독은 4년 전 무렵, 김금화의 자서전을 읽고 마음이 흔들렸다. 제대로 된 이름조차 없이 태어난 여자아이의 삶이 대한민국의 현대사와 딱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지금은 절판된 김금화의 첫 저서 『복은 나누고 한은 푸시게』를 비롯해 『김금화의 무가집』까지 완독한 후, 박찬경 감독은 <만신>의 영화화를 결심했다. 12세 때 무병을 앓고 17세 때 내림굿을 받아 지금은 중요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가 된 ‘만신 김금화’. 박찬경 감독은 그를 매일같이 찾아가 영화화 허락을 받았다. 


 

영화 <만신>은 신기를 타고난 소녀가 모진 세월을 거쳐 최고의 만신이 된 삶을 통해 한국 현대사를 들여다보는 판타지 다큐 드라마다. 세계가 먼저 인정한 굿의 천재, 만신 김금화의 드라마틱한 삶을 한판 굿처럼 펼쳐 보인다. 김금화 역은 배우 김새론, 류현경, 문소리가 맡았고, 생존해 있는 김금화 선생이 등장해 영화는 실사와 다큐멘터리를 오가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설치미술가로 활동하고 있는 박찬경 감독의 작품답게 전통민화를 차용한 설화 애니메이션, 판타지의 특수효과, 경계를 넘나드는 혼재된 장르가 관객들의 눈길을 끈다.<만신>은 개봉 19일만에 누적관객 3만 명을 넘어서며, 올해 개봉한 국내 다양성영화 중 관객수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분단, 새마을운동 등 한국의 현대사가 고스란히 투영된 김금화의 삶은 지금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씻김굿 같은 의미로 다가온다. ‘만신’은 무당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만신 김금화』에서, 열일곱 살 무렵의 선생이 처음 대동굿의 주무를 맡았을 때 묘사를 보면, 정말 한 편의 아름다운 영상이 그림처럼 떠오른다. 이 장면이 완벽한 클라이맥스라면, 그 전에는 놀라운 반전의 드라마가 있다. 그것이 걸립에 관한 회상이다. 따돌림 당하고, 구박 당하던 한 가난뱅이 소녀 앞에서, 이제 마을 사람들은 고개를 숙인다. 극심한 고통은 남의 고통을 보듬고 씻어줄 수 있는 무당의 자격증이다. 그보다 따기 어려운 자격증은 아마 내가 알기론 없다. (『만신 김금화』 p.334)




 

영화 봐도 좋지만 책은 꼭 읽었으면


작은 극장에서 <만신>을 봤다. 평일 저녁이라 사람이 없을 줄 알았는데, 80% 정도 자리가 찼더라. 관객들의 몰입도가 대단했다.


개봉한 지 조금 지났지만, 입소문이 좀 난 것 같더라. 개인적으로 장편영화로는 첫 극장 개봉작이라 잘됐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스태프들의 열정이 컸다. 김금화의 어린 시절을 연기한 김새론이 쇠걸립을 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것처럼 나도 스태프들의 노동을 걸립했다. 고마운 사람들이 많은 작품이다. 



다양성영화로는 꽤 흥행하고 있다. 관객들과 함께하는 GV 행사를 많이 가졌는데, 반응이 대단하다고 들었다. 질문들이 예상을 뛰어넘는다고. 


“왜 무속을 다루냐”라는 질문이 가장 많았다. 한 작품이 아니고 두세 번씩 다뤘으니. 작가에게 무속은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재밌는 건, 내가 목사나 신부 같은 삶을 다뤘으면 이런 질문을 안 했을 거란 사실이다. 질문 속에 이미 무속은 양지의 문화가 아니라는 개념이 들어있다. 며칠 전에는 김금화 선생의 제자 두 분과 함께 관객과의 대화를 가졌다. 진짜 만신이 등장한 GV였는데, “죽으면 어디로 가나?” “어떻게 살아야 하나?” 그런 걸 주로 질문하더라.


김금화의 자서전을 읽고 영화 제작을 결심했다. 무엇이 끌렸나?


헌책방에서 『복은 나누고 한은 푸시게』를 읽고, 도서관에서 『김금화의 무가집』를 빌려 봤다. 한 사람의 자서전이지만 한국 현대사가 기술되어 있다는 점이 끌렸다. 이야기가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김금화 선생의 육필 원고 스무 권을 기본으로 쓴 책이라, 너무나 생생하고 절절했다. 넘세가 어릴 때 쇠걸립을 하는 장면에서 가장 감동했다. 그 장면 때문에 영화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굳혔다. 요즘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다닌다. 영화랑 책이랑 비교하면서 보라고. 영화를 안 보더라도 책은 꼭 보라고. 책에서 주는 감동이 정말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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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걸립은 내림굿을 받기 위해 신애기가 마을을 돌며 못 쓰는 쇠를 모으는 것이다. 영화에서는 마지막 장면에 나온다. 류현경, 문소리, 김금화 선생까지 쇠걸립을 하는 넘세(김새론)에게 쇠붙이를 준다. 류현경은 총, 문소리는 카메라를 줬다. 의미 있는 물건으로 보였다. 


김금화의 젊은 시절을 연기한 류현경은 전쟁 시기에 거의 총을 맞을 뻔한 상황을 겪는다. 김금화 선생이 실제로 DMZ에서 굿도 하고,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활동들을 많이 하고 있다. 비극적인 사건을 평화의 모티프로 전환시키는 의미를 담고 싶었다. 무속에 깃든 ‘화를 복으로 갚는다’는 용서의 윤리를 드러낸다. 문소리에게 카메라를 준 건, 대한민국의 상징적인 여배우이기도 하고, 카메라는 김금화 선생에게도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선생은 TV에도 많이 출연했고 방송을 중요하게 여겼다.


영화가 예상보다 다큐멘터리 부분이 많다고 느꼈다. 


내레이션, 자료화면이 많이 들어가서 그런 건데, 실제 영화 분량은 실사와 다큐가 반반이다. 드라마는 시간이 빨리 가는 느낌이 들어서 일거다. 처음에는 오히려 드라마가 더 적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찍어 놓고 보니, 많아졌다. 


4년 전, 김금화 선생에게 영화 제작 허락을 받으러 갔을 때, 선생의 반응은 어땠나. 워낙 유명한 분이라 그간의 제안도 많았을 텐데. 


하도 많아서 ‘나도 그 중에 한 사람이겠지’ 생각하신 모양이었다. 그런데 일을 자꾸 벌이고 찾아가니까, 신뢰를 한 것 같다. 예전에는 거절하거나, 두고 보거나 하신 것 같다. 김금화 선생의 다른 인터뷰를 보니까 “박찬경 감독은 다른 사람하고 달랐다”며 “시골사람이라서 좋았다”고 하셨다. 나는 사실 완전 서울촌놈인데 말이다. 수염을 안 깎고 자주 찾아 봬서 그런가 보다(웃음).


영화를 찍기 위해 굿에 대해 공부도 많이 했을 텐데, 실제로 접한 굿은 어땠나.


책을 통해서도 알 수 있지만, 일단 굿은 준비과정이 엄청나다. 제사상을 차리는 일에서부터 소품을 만드는 일까지. 일상적인 일인데도 거의 매일 같이 쉬지 않는다. 그러면서 틈틈이 산에 다니면서 기도도 해야 하고.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점쟁이의 삶이 아니다. 만신들의 특징은 공감이 정말 빠르다. 대상이 뭘 원하는지, 어떤 한풀이를 원하는지 금세 파악한다. 우리가 병원에 가서 의사에게 상담을 받고, 성당의 신부 앞에서 고해성사를 하지만 모든 걸 이야기하지는 않지 않나. 그런데 굿을 할 때는 무당을 전적으로 의지한다. 감추고 싶은 이야기도 모두 꺼내놓을 수밖에 없다. 그건 어떤 치유, 정화라고도 할 수 있다. 한국사회에서 굿 문화 이상의 문화는 없는 것 같다. 


영화의 첫 장면이 김금화 선생이 <만신>을 위해 고사를 지내는 장면이다. 


영화 촬영 현장이라는 것이 위험한 촬영도 많고 사고도 많다. 선생님이 흔쾌히 들어주셨다. 나로서는 안전이 최우선이었기 때문에 영화의 성공, 흥행보다는 안전을 좀 빌어달라고 부탁 드렸다. 무당들도 굿을 할 때, 안전을 기원하는 굿을 가장 많이 한다. 


류현경의 신내림, 문소리의 굿 연기도 <만신>에서 빠질 수 없는 명장면이다. 김금화 선생을 그대로 따라 하기보다는 배우의 개성을 살린 연기였다. 감독으로서 주문은 없었나?


김금화 선생과 똑같이 연기를 한다는 건, 사실 불가능했다. 살고 있는 시대부터 다르고, 언어도 다르다. 비슷하게 따라 할 수는 있겠지만, 그게 보기에 좋았을까? 똑같이 따라 했으면 TV 속 재연 연기가 됐을 거다. 모르고 보는 것도 아니고, 톤이 다르다고 감정이입이 안 되는 것도 아니다. 류현경은 표정, 대사보다 몸 연기가 중요했다. 가느다란 몸에서 갑자기 힘이 나오는 것 같은. 문소리에게는 김금화 선생의 굿 영상을 보여주면서 연습하라고 했는데, 그걸 문소리화 시키더라. 문소리도 나오고 김금화도 나와야 재밌지 않겠냐며. 선생의 어린 시절을 연기한 김새론 양까지, 정말 최적의 배우들을 만났다. 감독으로서 행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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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적인 장르 도전하며 영화감독 준비 


설치미술가로 활동하고 있는 감독의 작품이기 때문에 영화에서 미술적인 부분이 유독 도드라지더라. 특히 전통민화를 차용한 설화 애니메이션이 눈에 띄었다. 자동차 앞에 엠블럼처럼 괴목을 단 것도 인상 깊었고. 


<만신>미술감독이 굿을 엄청나게 좋아하는 양반이다. 부탁하지 않을 일까지 찾아서, 정말 재밌게 즐기면서 일을 했다. 황해도 무속이 가지고 있는 시각적인 요소들이 많았다. 무속화나 민화를 많이 끌어 들였으니까. 아무래도 내가 비주얼한 쪽으로 많이 신경을 쓰는 성향이라, 영향도 조금 있었을 거다. 


대학에서는 서양학, 석사는 사진학을 전공하고 미디어 아티스트로 왕성하게 활동하던 중 영화감독으로 데뷔했다. 이른 나이라고는 할 수 없는데.


나이 오십 줄에 극장 데뷔하려니 쑥스러운 마음이 없지는 않다. 영화는 어릴 때부터 하고 싶었다. 포기를 한 건, 형이 데뷔하는 걸 보고 ‘저건 사람이 할 일이 아니다’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형 박찬욱 감독이 데뷔할 90년대 초는 정말 힘들었다. 충무로 고집, 스태프들 신경전도 다 이겨내야 하고. 대학원에 갈 때 영화를 전공하려다, 형이 현장에서 일하는 걸 보고 포기했다(웃음). 하지만 영화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늘 있었다. 영상에 관심이 많으니까 미술가로 활동하다가 영화로 접근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었다. 시작한 지는 5,6년 전이다. 단편도 해보고 16mm 영화도 했다. 실험적인 장르를 도전하면서 조금씩 준비를 해온 것 같다. 


박찬경 감독에게 늘 따라붙는 것이 ‘박찬욱 감독의 동생’이라는 타이틀이다. 그동안 'PARKing CHANce'라는 이름으로 스마트폰 단편영화 <파란만장>을 비롯해 <오달슬로우> <청출어람> <V> 등의 작품을 함께 만들었다.


어떤 사람들을 나를 ‘박찬욱 작품의 미술감독 출신’으로 알고 있는 경우도 있더라(웃음). 형의 촬영 현장을 보고 영화 일을 포기했지만, 영화를 시작하게 한 영향도 있었을 거다. <만신>은 중간중간 형에게 시나리오를 보여주거나 상의를 했다. 보이지 않는 도움을 많이 받았다. 


영화평론가 오동진은 <만신>의 영화평으로 “박찬경은 박찬욱을 뛰어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웃음). 오동진 선배랑은 오래 전부터 친분이 두텁다. 격려 차원에서 해준 말일 거다. 난 3억짜리 영화를 찍는 이제 입봉을 한 감독이고, 형은 100억 이상의 제작비 영화를 찍는 20년 이상 감독을 한 사람이다. 같은 선상에서 보는 것 자체가 무리라고 본다.


박찬욱 감독의 작품 중에서는 어떤 영화를 좋아하나.


<올드보이>, <박쥐>를 재밌게 봤다. <박쥐>는 옛날 영화 같은 클래식한 느낌이 있어서 좋았다. 한국적인 느낌이라고 할까, 아시아 고딕이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박쥐>가 딱 그런 영화였다. 송강호의 연기, 김옥빈이 날아다니는 장면도 환상적이었다. 


영화를 볼 때, 스토리보다는 이미지를 중심으로 보는 것 같다.


말하고 보니 그렇다. 영화를 볼 때 스토리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거의 안 한다. 화면, 이미지로 이해하는 편이다. 사람들은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이건 어떻게 된 거지?”하고 의문을 갖는데, 그런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나는 영화를 완전히 다르게 이해하고 있구나’ 싶을 때가 있다. 아내가 <CSI 과학수사대> 같은 장르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스토리를 다 꾀고 있다. 나는 그런 극을 하나도 이해하지 못한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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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바리데기’ 이야기


다시<만신>으로 돌아가보자. ‘만신’은 감독과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감독은 만신과 같지 않지만, 만신은 모든 연출을 다 하니까 감독이기도 제작자이기도 투자자이기도 하다. 만신은 모든 현장을 감독한다. 소품을 배치하고, 악기 연주는 언제 시작하고, 옷은 무슨 천을 써서 만드는지 세세한 모든 걸 챙겨야 한다. 굉장히 민감하고,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현장에서 엄청 잡는다. 


영화 <만신>이 박찬경 감독에게 주는 특별한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일단 영화를 만들면서 내가 많이 성장했다. 실제로 큰 무당들을 여러 번 만나고, 다양한 굿들을 관찰하고 이야기를 들은 것 자체가 나에게 많은 도움이 됐다. 영화든 문학이든, 시간이 지나면 더 많은 가능성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정말 마음 같아서는 국가에서 무속 박물관을 하나 만들고, 아카이브도 하고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


굿에 있어서 무당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관객 없는 굿은 무의미하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대중문화이기 때문에 보다 더 많은 관객들과의 교감이 중요하다. 


한국사에서 무당은 독특한 위치에 있다. 사람들은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무당을 찾고 회복을 기원한다. 사람들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 무당이다. 영화도 굿과 다르지 않다. 혼자 만드는 장르가 아니다. 미술 작품은 혼자서 방에서 작업할 수 있지만, 영화는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하물며 봐주는 관객도 필수 요소다. 영화를 만드는 이유 중 하나가 대중과 소통하고 싶어서이듯이, 굿도 마찬가지다. 


<만신>은 어떤 사람들이 보면 좋을 작품인가. 


종교인들이 많이 보면 재밌을 것 같다. 어떤 종교를 믿는 사람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일단 종교인들은 성스러움을 존중하고, 다른 세상에 대한 관심도 많은 사람들이다. <만신>이 무속에 대한 이야기지만, 어떻게 보면 한 여성의 역사와 무속인의 역사가 겹쳐 있다. 처음 영화가 시작될 때, “여자가 여자를 낳았다”는 표현이 있지 않은가. 어떻게 보면 ‘바리데기’와도 같다. 일곱 번째 딸이 어떻게 아버지를 구원하고 죽은 사람들을 저승으로 이끌게 되는지. 살아 있는 ‘바리데기’ 이야기다. 여성들이 봐도 흥미로운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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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작품은 공포영화를 준비 중이라고 들었다. 


작년까지만 해도 꼭 해야겠다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이 조금 달라지고 있다. 다만 미스터리, 공포 장르에 관심이 많다.


영화감독으로서 관심을 갖고 있는 주제들을 살펴보면, 주로 어두운 정서들이 느껴진다. 무속신앙, 도시를 바라보는 시선, 남북 관계, 냉전 등. 이 같은 관심사의 물줄기는 어디에서 온 걸까.


글쎄, 아마도 내가 둘째라서 그런 게 아닐까. 형은 집안의 기둥이고 장남이라는 부담이 있었겠지만, 나는 자유로운 편이었다. 잘 놀러 다니고 술도 많이 마시고. 그런데 예술가로 산다는 건 되게 힘든 일이다. 특히 한국사회에서는 버티기가 정말 힘들다. 그래서 40대가 되면 작가들이 반 이상 줄어든다.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 30대 후반까지는 어떻게든 견뎠는데 그 이후로 넘어가면 살 수가 없다. 상업적인 작품을 하지 않으면서 작가로 살아가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이런 현실 때문에 한국사회의 어두운 면을 더 많이 보게 되고, ‘이 믿어지지 않는 현실이 어디에서 온 걸까?’ 하는 물음이 생긴다. 그럴수록 좀 더 깊이 있는 측면을 보려고 노력하고. 전 세계에서 한국처럼 네온 십자가가 많은 나라가 없다. 이건 너무나 독특한 현상인데,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이런 고민들을 많이 한다. 


오는 9월 열리는 서울 국제 미디어아트 비엔날레의 예술감독 직을 맡았다. 미디어 아티스트로서 현재 주목하고 있는 키워드는 무엇인가?


아시아고딕, 귀신, 간첩, 할머니와 같은 것이다. 책에도 썼지만. 이것들은 한국의 전형적인 타자들이다. 굉장히 매력을 느끼고 공경하면서 한편으로는 무시하거나 덮어놓는 대상이다. 이런 것들에 관심이 많다. 미술 작품을 만들 때는 주로 냉전, 남북 관계에 대한 포커스를 갖고 작업했다. 우리 사회가 발전했다고 말하지만, 전 세계 유일하게 20세기를 살고 있는 분단 국가다. 언제 해방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많이 한다. 



굿은 사후에 올 일을 약속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 마음을 그 자리에서 후련하게 해준다. 이 후련한 잔치를 통해서 미워하던 관계도 풀리고, 죄의식도 치유하는 것이라고 선생은 항상 강조한다. 극장도 텔레비전도 노래방도 없는 어촌에서, 미녀 무당이 울긋불긋한 무복을 걸치고 칼을 휘두르고 작두 위에 올라 신령의 말을 전할 때, 어느 누가 그 앞에서 마음이 녹지 않을 수 있을까? 그렇게 본다면, 과거 김금화 만신의 대동굿이나 배연신굿은, 현대의 영화가 하고 있는 역할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 강렬한 집단 카타르시스를 통해 공동체의 문화적인 통합을 주도한다는 점에서 말이다. (『만신 김금화』 p.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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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신 김금화김금화 저 | 궁리
『만신 김금화』는 2007년 출간되었던 『비단꽃 넘세』를 개정증보하여 새롭게 펴낸 것이다. 사진들을 새롭게 골라 배치하고, 김금화 만신을 곁에서 지켜봐온 민속학자 황루시 교수와 이 자서전을 읽고 영화 〈만신〉을 찍은 박찬경 감독의 글을 실었다. 특히 박찬경 감독은 평소 무속에 다양한 관심이 많던 차에 김금화 만신의 자서전을 읽고 영화 제작 제안을 했는데, 그의 인생이 파란만장할 뿐만 아니라, 현대사를 관통하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무당의 삶으로 보는 한국사’라는 앵글로 이야기를 만들면 문화적 의미와 흥미를 동시에 표현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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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이유명호 “몸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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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년 전, 이맘때. 필자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이제는 시험을 위해서가 아닌, 인생을 위해 필요한 책을 읽어야겠다는 결심을 세우던 중이었다. 그러던 중에 지인으로부터 이유명호 저자가 쓴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자궁』을 추천 받았다. 그 책은 우리 몸에 관해서, 몸이 품는 욕망에 관해서, 몸이 앓을 수도 있는 병에 관해서 친절하면서도 재미 있게 설명해줬다. 저자가 여성 한의사인 덕택에 기존의 서구 남성 중심적인 세계관과 다른 관점으로 이야기하는 것도 신선했다. 필자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그 책은 신선했는지 베스트셀러이자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으며 많은 독자를 사로잡았다.

 

이후로 10년이 지났다. 이유명호 원장이 『안녕, 나의 자궁』을 냈다. 책 제목이 다소 달라지긴 했으나, 여전히 책 제목 전면에 ‘자궁’을 내세웠다. 문체도 경쾌하고 발랄하다. 그녀가 다루는 소재에는 금기가 없다는 점 또한 변하지 않았다. 심지어 이유명호 원장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꽁지머리 역시 그대로였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아파서 고통 받는 사람도 존재한다.

 

『안녕, 나의 자궁』은 부제가 ‘아프지 않고 오래오래 행복한 여자로 사는 건강법’이지만, 여성만을 위한 책은 아니다. 오히려 부부와, 연인이 함께 읽으면 더 좋은 관계로 이끄는 방법을 소개한다. 제목에 ‘자궁’이라는 단어가 있지만, 책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몸 전반에 관해서 설명했다. 한의학은 양생을 중요하게 여기는지라, 이 책도 단순히 병의 증상과 치료 방법만을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 어떤 운동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지 전반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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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이나 지금, 여성의 위치는 변한 게 없어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자궁』 이후로 10년 만에 『안녕, 나의 자궁』을 냈습니다. 이번 책에도 제목에 ‘자궁’이라는 단어를 썼는데요.

 

『은밀하고 실속있는 여자들의 건강서』, 줄여서 은실이, 이런 후보도 있었죠. 이 이름은 남의 다리 긁는 것 같아 안 시원했고요. ‘여자 몸의 노래’로 하고 싶었으나 『칼의 노래』가 있으니… (웃음) ‘명랑발랄에로 여성건강서’라고 하려고 하니까, 명랑이 요즘 트랜드가 아니라네요. ‘자궁’이라는 단어도 사람들이 싫다고 했어요. 처음 책도 그랬지만 사람들이 어떻게 부끄럽게 ‘자궁’ 책을 달라고 하느냐며 반대하더군요.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했어요. 자궁이라는 말은 꼭 넣고 싶었어요. 있는 걸 왜 가리려고 해요? 가려서 문제가 되지 않나요? 우리 입에 자연스럽게 ‘자궁’이라는 단어가 붙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책 제목에 ‘자궁’을 넣었고요.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에서 ‘안녕’으로 바뀐 건 이전 책 문구가 너무 길어서죠. 이 책이 자궁뿐만 아니라 머리에서 발끝까지 건강 전반을 다루니까, 안부를 묻는 ‘안녕’이라는 표현이 좋겠더라고요.

 

‘자궁’이라는 단어를 전면에 내세우기도 했고, 이전 책이 화제를 모았습니다. 살짝 민감한 소재이기도 해서 책과 관련한 에피소드가 많았을 것 같습니다.

 

책을 봤다는 환자에게 물어보면, 추천해 준 사람이 다양했어요. 심지어 신부님이 추천했다는 사람도 있었고요. 군부대에서 부대 소식지를 만드는데, ‘자궁’을 추천하고 싶었으나 거절당해 대신 독후감을 써서 보내준 군인도 있었죠. 그 분은 책 읽은 감상을 ‘후천개벽’이라고 표현했어요. (웃음) 경찰서 강의도 생각나네요. 경찰서에서 와 달라고도 해서 갔더니, 제목이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자궁’이 아니라, ‘사상체질’ 이렇게 써 붙였더라고요. 제가 “정말 사상체질 강의해요?”, 했더니 결재 올릴 때 필요해서 저렇게 썼고 원래 하던 강의를 해 달래요. 이렇듯 여전히 자궁에 관해서는 선뜻 드러내 이야기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있어요. 자궁질환 앓는 환자도 처음부터 말을 못해요. 요통, 두통을 이야기하다 가기 전에야 돌아서서 ‘아참, 자궁혹이 있는데요’ 이렇게 말해요. 이게 무슨 심리일까요? 아직도 여성이 산부인과 갈 때 자기 동네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잖아요. 남자가 비뇨기과 가고, 사람들이 피부과나 안과 가는 것이랑 똑같은데 말이죠.

 

책 서문에서 밝혔듯, 책을 낸 지 10년 지났지만 여성을 대하는 처우나 여성의 사회적 위치는 별로 변한 게 없는 듯합니다.

 

없죠. 오히려 억압이 교묘하게 심해졌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성형입니다. 한국이 성형강국이죠. 어떤 곳까지 성형하느냐 하면 성기가 늘어졌다고, 색이 짙다고 성형해요. 세정제 만드는 회사에서는 냄새가 나면 깨끗하게 세정제를 쓰라고 광고를 하고요. 여성들이 이런 것 때문에 속앓이를 많이 해요. 우리 여성에 대한 각종 지수는 후진국이죠. 2013년에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하기로는 한국은 성 격차 지수에서 135개국 중 111위였습니다. 형편 없죠. 만약 월드컵이나 올림픽에서 112위 했다고 해 봐요. 난리가 났을 텐데요.

 

자궁을 보는 한의학과 서양의학 사이에 차이가 있나요?

 

질환을 예로 들어 설명하겠습니다. 서양의학에서는 근종을 다루면서 ‘작습니다, 괜찮습니다’ 하고 돌려 보내요. 환자는 이게 자랄 거라 생각 못하죠. 3년, 5년이 지나서 환자가 다시 갔습니다. 그때 의사는 ‘커졌으니, 이제 수술해야 합니다.’라고 말합니다. 환자들이 얼마나 놀라겠어요? 진료의 한계이기도 합니다. 음식을 이렇게 먹고 생활을 이렇게 하면 덜 자라겠다는 이야기를 해 줘야 하는데, 이렇게 말하는 의사 선생님이 잘 없어요. 딱 매뉴얼대로 크기를 재고 끝나요. 한의학은 양생이에요. 예방의학 개념이죠. 천천히 자라도록, 수술하더라도 충분히 자궁을 오래 갖고 있을 수 있게 합니다. ‘애기를 가질 건지, 안 낳을 건지, 가지면 언제’와 같은 점도 고려하고요. 많은 환자가 수술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로 고민하다 답답하고 하니 소문 듣고 저를 찾아와요. 저는 설거지 전문 같기도 하지만, 이게 누군가는 해야 할 역할이지요. 아픈 사람을 어리석다고 보기도 하는데, 사실 우리가 몸을 공부할 시간이 없었죠. 학교 다닐 때도 국영수 음미체만 했잖아요. 몸에 관한 공부를 해야 합니다. 그러면 의료비도 줄이고, 수술도 피할 수도 있고 늦출 수도 있죠.

 

책에서 여성의 몸을 둘러싼 담론이 남성 중심적이라는 지적도 했는데요.

 

『버자이너 문화사』라는 책을 보면 웃겨요. 여성의 몸을 향한 공격이 최근까지 있었죠. 히스테리를 치료한다는 명목으로 여성 성기에 물총을 쐈고요. 성기 마사지를 남자의사들이 했죠. 여성이 난소를 적출하는 수술과, 남자가 고환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는다고 가정해 봐요. 누가 대접받겠습니까? 남자는 극진하게 위로받고 여성의 난소 정도는 떼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황우석 사태 때 난소를 떼서 바친 사람도 있었잖아요.

 

또 하나의 문제는 최근에 나오는 의학 기사가 병원 홍보라는 사실입니다. 어느 병원에 무슨 로봇이 들어왔다, 이런 기사죠. 의료 소비자 관점에서 쓰는 게 아니라 병원 홍보용으로 나오는 기사에요. 병원으로써는 환자를 유치해야 하니까 저런 식으로 광고를 합니다. 갑상선 암이 대표적인데요. 2008년도 기준으로 갑상선을 수술할 수 있는 로봇이 31대가 있는데, 이중 28대가 한국에 있다고 합니다. 3대는 일본에 있고요. 우리나라가 디스크, 제왕절개, 갑상선 암 수술을 참 많이 하는데요. 우리나라에 환자가 많다는 게 아니라 병을 발굴한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한의사가 쓴 책인데 특이하게 ‘산부인과 잘 가는 법’을 소개했습니다.

 

사람들이 진료, 검사 받고 비용을 지불했는데요. 정작 환자는 뭘 한지도 몰라요. 자기 몸의 증상과 생리주기, 아픔 등은 기록하면 좋은데 대충 말로 의사에게 말하니, 의사도 파악하기 어렵거든요. 진찰받을 때 도움되고 치료 잘 받기 위해서는 산부인과 잘 가는 법을 알아야 하니, 책에 넣었습니다.

 

여성도 아프고, 남자도 아프고 건강하지 않은 현대인

 

책에서 남자를 응원한다고도 썼잖아요.

 

남자들도 많이 아파요. 늘 참고 시간 없어 몸을 돌보지 못하죠. 현실이 녹록치 않고 아픈 게 드러나면 회사에서 불이익 당하니까 하소연 할 데도 없어요. 집에서는 밖에서 놀다오는 줄 아는지 불만이 많고 비교도 당하지요. 부모님, 아내, 자식을 쓱 보고 자신을 바라보면 “지게지고 벌러 나간다”고 느끼기 쉽죠. 섹스만 해도 남자들이 얼마나 예민하고 힘든지 여자들은 잘 몰라요. 부담 안 가진 남자들은 거의 없을 거예요. 깊은 이해와 공감이 필요합니다. 남자도 고달프고 아픈데 어떻게 하면 쉬운 방법으로 건강을 챙길 수 있을까, 하는걸 알려주고 싶었어요.

 

요즘 환자들은 어떤 병 때문에 오나요?

 

내막증, 월경통 때문에도 오고요. 아기모라든지 완경기에 접어든 분들도 오시죠. 어떻게 작명하느냐가 중요한데요. 저는 불임이 아니라 아기모라고 부릅니다. 아기를 기다리는 엄마라는 뜻이죠. 듣는 사람에게 불임이라는 말이 상처가 됩니다. 폐경도 완경으로 부르고요. 낙태라는 말도 섬뜩하고 무섭지 않나요? 임신중절로 부르는 게 낫겠죠.

 

예전에 비해 최근에 부쩍 늘어난 환자의 유형이 있을까요?

 

요즘은 운동부족 때문에 오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게으르다고 탓할 수 없는 게 실제로 시간이 없어요. 직장인 여성이 많은데, 일 많죠, 야근 많죠. 아프다고 오래 쉬면 잘리고요. 화장실 갈 시간도 없는 회사도 많아요. 콜센터 봐요. 밥 먹을 시간도 부족하고 CCTV로 감시하고 하루에 의무로 받아야 하는 콜 수가 정해져 있잖아요. 독거 직장인도 많은데, 자취하면서 몸 상한 사람도 많고요.

 

직장인의 옷차림도 몸에 좋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하이힐이라든지 꽉 낀 치마가 그렇잖아요.

 

뉴욕에 갔는데요. <섹스엔시티>가 다 거짓말이던데요? 하이힐 신은 사람이 없어요. 우리는 그런 이미지를 보고 잘못 받아들였어요. 한국 여성들이 정말 멋을 부려요. 차라리 저녁에 애인 만날 때 한 번 정도는 괜찮죠. 왜 낮에까지 그렇게 쓸데 없이 힘든 옷차림을 하나요. 낮에는 직장인이고 생활인이니까 편하게 옷 입고, 신발 신어야죠. 회사가 능력 보고 사람 뽑지, 미모 보고 뽑나요? 물론 외모로 눈에 들려고 하는 생존전략이기도 하겠지만, 브레지어 와이어를 뺀다든지, 편한 신발 한 켤레 정도 더 챙기고 다니면서 신으면 좋겠어요. 무엇보다 춥게 하고 다니는 게 제일 안 좋아요. 따뜻하게 입어야 해요. 다리 꼬면 나팔관 운동에 지장을 줘서 난소에 안 좋으니 다리도 꼬지 않는 게 좋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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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람들이 커피와 치킨과 맥주에 탐닉하는데, 건강에는 어떤가요?

 

커피는 열이 있는 물로 그 열이 술보다는 약하긴 하죠. 그래도 열이 많은 사람에게는 좋지 않겠죠. 독한 커피 한 잔에 든 카페인은 진통제 한 알에 든 카페인 양 정도가 되지 않을까요? 뇌의 피로를 잠시 잊게 해 주겠지만, 카드빚 같다고 생각해요. 커피 대신 보리차나 결명자 차를 마시면 좋습니다. 맥주는 냉하고 습하니까, 여성에게 안 좋고요. 치킨은 우리가 너무 많이 먹지 않나요? 닭에게 미안할 지경이에요. 스포츠 경기만 하면 치맥이고, 조류독감이라고 해서 다 죽이고요. 이왕 먹는다면 차라리 찜닭, 닭볶음탕으로 먹으면 좋겠어요. 기름에 튀겨 먹으면 몸에는 안 좋죠.

 

1일 1식 열풍은 어떻게 보시나요? 책에는 하루 세끼를 꼭 챙겨 먹으라고 했는데요.

 

열풍은 언제나 불죠. 골뱅이가 좋다, 치커리가 좋다, 버섯이 좋다, 하면 거기에 쏠리잖아요. 누군가는 그걸로 돈을 벌겠죠. 몸은 식욕과 성욕, 두 바퀴로 돌아가는데요. 사실 1일 1식은 무엇보다 행복하지 않아요. 저만 해도 점심 먹으러 일부러 나가요. 먹는 즐거움이 인생에 크거든요.

 

꽁지머리 한의사가 사는 법

 

이유명호 원장이 쓴 문장에는 재치가 넘친다. 예컨대 아래와 같은 문장이 대표적이다.

 

초경 이후 완경까지 양쪽 난소에서 교대로 한 개씩 성숙해서 35년 동안 400여 개 배란이 된다. 그중의 하나가 수정되어 태어난 아기가 바로 당신, 그리고 나. 우주적 로또 당첨! (30-31쪽)
수정은 일방적인 힘의 논리가 아닌 서로 당겨주고 끌어주는 난자와 정자의 협동작전. 남자가 삽입하면 여자는 흡입해서 반쪽 씨를 투자하는 합자회사이다. (44쪽)
월경은 성경, 불경, 역경처럼 최고의 가치를 지닌 생명의 경전. (50쪽)
남자 세계에서 술과 접대와 성매매는 삼박자가 되어 굴러간다. 남편도 같이 치료하고 콘돔 사용하라 넌지시 일러주면 한 짓이 있는 남편들은 다 알아듣게 마련. (75쪽)

 

문장에 개성이 있습니다. 평소 원장님의 생활 태도가 문장에도 반영되었다고 보면 되나요?
 
타고났습니다. (웃음) 원래 제가 심각한 인간이 아니에요. 재미 없는 걸 못 참습니다. 진지하고 어른스럽고 그런 태도는 대접받으려고 겉으로 치장하는 게 아닐까, 하고 생각하고요. 자연스럽지 못하거나, 재미 없는 일은 절대로 안 하려고 합니다. 평소에도 농담을 잘하고요. 남들이 보면 엉뚱하다고도 하는데, 사람들은 다양하잖아요.

 

그런 면에서 책은 재밌는 작업이었나요?

 

처음에는 한의사가 글까지 잘 써야 할까, 내용에 진정성만 있으면 되지 않겠어, 하고 생각했는데요. 문장이 어렵고 복잡하게 나오니까, 못마땅하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야말로 문장에도 신경을 썼습니다. 유일한 약점은 '푸하하'가 많다는 정도? '푸하하'를 '히히'로 바꿀 걸 그랬나 봐요. (웃음) 나머지는 다 마음에 듭니다. 친절하게 밥을 한 숟갈씩 떠 먹이는 것처럼, 읽기 좋게 만들었어요.

 

특히 이 책을 읽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독자층은?

 

부부가 함께 읽으면 좋죠. 연인도 그렇고요. 누구나 사랑받기를 원하잖아요. 사랑하라면 공부해야죠. 어떤 사람은 포르노를 교재로 쓰는데, 포르노 따라 하면 남자는 죽어요. 영화 <셰임>에 남자가 좌절하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포르노만 보면 진짜 상대방과는 교감을 못해요. 원조교제도 그런 맥락에서 볼 수 있죠. 열등감이 생기니, 자기보다 어리고 취약한 애를 상대로 하잖아요. 어른스럽지 못한 행동이에요. 책이 대박 나면 다들 환자가 늘어 좋겠다지만, 저는 그저 고요한 평정심을 유지합니다. 강신주식으로 말하자면, 책 보면 독자가 좋죠. 지혜로워지고 의료비 아낄 수 있으니까요. (웃음)

 

예전에 방송에 나오다 최근에는 뜸한데요.

 

나가고 싶은 방송도 없고, 이번에 쓰는 책도 마지막입니다. 저는 방송 욕심이라든지, 이런 게 없습니다. 앞으로는 놀 거예요. (웃음) 이 책이 마지막이지만 진정성을 가지고 한 사람 한 사람 마음 속으로 들어가면 방송보다 더 의미가 있지 않을까요?

 

진료 안 하는 날에는 어떻게 보내시나요?

 

토요일 오전 진료를 끝내고 나면, 그날은 떡볶이 사 먹는 날입니다. 그날은 한주의 피로가 몰려와서 몸이 앓아요. 휴일에는 조조 영화를 보고요. 책, 소설 읽기를 좋아하고 여행도 다니죠.

 

좋아하는 소설가가 있나요?

 

라이오넬 슈라이버요. 영화 <케빈에 대하여>의 원작자에요. 지금 읽는 책이 『내 아내에 대하여』인데요. 혼자 올해의 영화, 책 10개를 꼽고는 하는데, 후반기까지 읽어도 『내 아내에 대하여』를 능가할 책이 나오기 힘들 것 같아요. 미국 의료 보험의 불합리함에 대해 썼는데, 비유와 풍자와 문장력이 끝내줘요.

 

자궁에 좋은 운동, 음식을 추천해 주세요.

 

운동은 무조건 걷기. 시간 나면 걸으세요. 걸어야 골반도 호흡을 할 수 있어요. 음식은 많지만 몇가지만 소개할게요. 부추, 미나리, 양배추. 몸의 순환을 돕고 몸을 가볍개 해 줘요. 부추는 지혈 작용을 도와 월경혈 많은 사람에게도 좋고요. 양배추는 무난하죠. 위장 아플 때도 다이어트 할 때 좋아요. 요즘 사람들이 된장이 부족한데요. 파는 된장 말고 시골에서 만든 된장이나 생협 같은 데서 구할 수 있는 된장을 많이 드세요. 무 많이 넣은 묽은 된장국을 자주 끓여 먹도록 권합니다.

 

끝으로 채널예스 독자를 위해 한 마디 부탁합니다.

 

고통은 몸과 마음이 기억해요. 이걸 이해받지 못하면 고립감, 자기부정, 불안에 시달리죠. 기계가 몰라도, 검사로도 안 나와도 내 몸이 옳아요. 공감해줘야 합니다. 몸 공부로 극복하고 살아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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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나의 자궁이유명호 저 | 나무를심는사람들
자궁은 그 정교함 때문에 몸과 마음의 균형이 깨졌을 때 더 민감하게 영향을 받는다. 자궁이 여성 건강의 바로미터가 되는 이유다. 『안녕, 나의 자궁』은 월경과 임신 출산, 성생활, 완경 등 여자 일생 전반과, 자궁 질환을 비롯한 여성 질환, 갑상선, 두통, 우울증, 비만, 탈모 등 신체와 질병에 대해 폭넓게 다루고 있다. 또한 여자가 꼭 알아야 할 남자의 몸, 남성 건강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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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지웅 “나는 글 쓰는 사람, 인기는 실체 없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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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우리 사회에서 공개적으로 언급된 ‘남녀 관계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차(車) 떼고 포(包) 떼고 졸(卒) 밖에 안남은 장기판이 된다. “갑돌이와 갑순이가 만나서 사랑을 했지만, 끝내 인연은 이어지지 못하고 헤어져버렸다”는 식으로, 이를테면 ‘수박 겉핥기 식’의 단순한 동화가 된다는 것이다. 남녀상열지사의 진짜 이야기, 그 은밀한 속사정을 시시콜콜 이야기하는 것은 터부시되거나 눙치며 넘어가는 것이 보통이다. 마치 어린아이가 엄마에게 “나 어떻게 낳았어”라고 물었을 때 “다리 밑에서 주워왔어”라고 거짓말을 하는 것처럼…. 사실 “따지고 보면 거짓말도 아니라”는 의미를 이해하게 됐을 때, 이미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녀 관계의 이야기’에 대한 사회의 암묵적인 합의에 동조해 버린 상태가 된다.『개포동 김갑수 씨의 사정』은 그런 암묵적 합의를 통쾌하게 파기했다. ‘니 맛도 내 맛도 아닌’ 것이 돼 버린 남녀 관계의 이야기 이면에 숨겨진 질펀하고 아름답지 않은 연애사의 속살을 공개한 것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이 소설의 저자가 <마녀사냥>의 허지웅이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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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지웅의 직설화법은 오래전부터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렸다. 그의 화법을 싫어하는 부류들은 TV 화면에 그가 등장함과 동시에 채널을 바꿀 정도의 비호감을 드러낸다. 하지만 동감하는 부류는 아낌없는 박수와 환호를 보낸다. 어찌 됐든, 최근 들어 그의 위상은 예전에 비해 완연히 달라져 있다. 그의 직설화법이 꽤 많은 사람들에게 동의를 얻고 있다는 의미다. 호감어린 시선을 보내는 대중의 비중을 보면 여성들이 더 많다. 대다수의 남성들에게 질투를 유발할 찬사지만, 최근에는 ‘섹시하다’라는 평가(?)까지 더해지고 있다. 그런 반응조차 “셀럽에 대한 호기심” 정도로 치부하는 이 남자, 참 시니컬하다. 하지만 한편으로 묘한 믿음도 뒤 따라 온다. ‘마음에 없는 소리는 안할 거라는 믿음’이다. 조심스레 점쳐보건대, 『개포동 김갑수 씨의 사정』을 읽게 된다면, 허지웅를 비호감이라 생각하던 사람도 조금은 그를 달리 보게 되지 않을까? 수위 높은 직설화법 대가의 첫 소설, 그 행간에 담긴 생각들을 들어보았다.


나는 글 쓰는 사람, 인기는 실체 없는 것


오늘날 거의 모든 성공은 노력이 아닌 운으로, 혹은 타인의 연민으로 가능해집니다. 혹은 『1984』의 거짓 전쟁처럼 미디어를 통해 가짜 성공과 신분 상승이 ‘선전’됩니다. 그나마 오래 지속되지도 않습니다. 운은 일시적이고, 연민은 매우 빠른 시간 내에 휘발되기 때문입니다. 

- 『개포동 김갑수 씨의 사정』작가의 말 中


허지웅은 온 몸으로 시니컬함을 뿜어내는 사람이다. 무표정 속에 뭔가 알 수 없는 생각들이 스쳐가는 듯하다. 방송의 모습과는 조금 다르다. 하기야, 방송이란 것이 원래 정해진 모습, 제한적인 이미지만이 어필되는 곳이니 그 사람의 일상적인 모습은 알리 만무하다. 아무튼, 그는 요즘 최고의 셀러브리티로 주목받고 있다. 2005년 영화주간지 <필름 2.0>기자로 시작해 <프리미어>, 월간지 <GQ>를 거친 그는 영화비평 분야에서 자신만의 영역을 확고하게 구축했다. 정치적인 발언도 거리낌 없이 해 온 터라, 그 자신은 어떨지 몰라도 세간에는 진보적인 논객으로 분류돼 있기도 하다. 사안에 따라 피아(彼我)가 없고 직설적인 생각을 이야기하는 탓에, 종종 진보 쪽에서도 지탄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 나름대로는 자신의 정체성이 담긴 탄탄한 필모그래피를 만들어 온 셈이다. 미루어 짐작하건데 그가 방송에 등장한 뒤 얻게 된 인기는 수많은 ‘안티팬’의 교화에 성공한 덕분이 아닐까? 어쨌든 방송을 통해 그는 꽤 멋지고 좋은 면을 보여주고 있다.     




방송을 통해 꽤 매력적인 남성으로 부각되고 있다. 얼마 전 북콘서트도 했다고 들었는데, ‘90%가 여자들이었다’는 어떤 남성참가자의 질투어린 블로그 글도 봤다. 최근 인기의 비결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원래 내 글을 좋아한 사람도 있을 거고 아니면 이 책을 보고 좋아서 온 사람도 있을 거고, 아니면 방송을 보고 셀럽에 대한 호기심이나 궁금증으로 온 사람도 있을 듯하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다. 내 책을 사가지고 오신 분들이니 고맙지. 하지만 내가 지금 얻고 있는 소위 인기라는 것은 사실 실체가 없는 것이다. 허상 같은 것?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커지다보니 끊임없이 새로운 피가 수혈이 돼야했던 것뿐이다. 실질적으로 내가 그에 걸맞은 깜냥이 있어서 스타라거나 대세라거나 그런 류는 아니지 않나? 그래서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  



하지만 대중적 인지도가 생기고 나서 실제 ‘허지웅’이란 사람이 가지고 있는 진짜 모습과 다른 이미지로 부각되기도 할 텐데, 방송 이후 주어진 이미지 중 마음에 드는 것, 혹은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나? 


호불호를 따질건 아닌 것 같다. 일반적인 공중파 예능하고 다르게 <썰전>이나 <마녀사냥>에서 보여주는 ‘나’는 그냥 ‘나’다. 그럴 수 있는 프로라서, 그렇게 하도록 해주는 제작진이라서 같이하는 것이기도 하다. 뭐라던 상관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나라는 존재에 대해 ‘섹시하다’라고 이야기를 하고 생각한다는 건 불가능하지 않나? 그런 건 정말 개별적인 취향이다. 그래서 요즘 내가 소위 ‘섹시의 아이콘’으로 언급이 되는 것에 대해서는, 앞서 말한 것처럼 산업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허상이라 생각한다. 


어쨌든 요즘은 허지웅이란 사람의 모습을 방송에서 보는 것이 어색하지 않다. <썰전>이나 <마녀사냥> 등은 굉장히 유쾌하게 참여하고 있는 듯하다. 


맞다. 순전히 제작진들이 좋아서 하고 있다. 그 외에는 다른 이유는 없다. 제작진에 대한 무한한 신뢰와 같이 하고 있다는 기쁨?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지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앞의 사람들 때문에 기회를 얻지 못하는 젊은 세대가 많다. 방송 쪽은 특히나 그런데, 20년 전 스타피디가 아직도 스타피디일 정도다. 하지만 지금 나와 같이 하고 있는 스텝 친구들은 딱  79~80년 생, 내 또래다. 그들이 억눌려왔던 자기 재능을 터뜨리고 있는데 같이 하고 있다는 기쁨과 설렘이 크다. 사실 방송 출연은 그 친구들에 대한 믿음이 없이는 못하는 일이다.  


책 표지에 ‘마성의 그 남자’, ‘섹시한 글쟁이’라 칭한 것이 눈에 띈다. 좀 의아했다. 방금 전에도 스스로 부정하긴 했지만, 고백하자면 ‘허지웅이 이런 식의 수식어를 즐겼나?’하는 생각을 했다.


(쓴 웃음) 아~ 정말, 띠지(책의 겉면을 두른 종이) 사진과 글 때문에 스트레스 받고 있다. 이렇게 해야 한다고 해서 하긴 했는데, 참 마음에 안 든다. 마치 파멜라 앤더슨과 같은 느낌이다. 동물원 우리에 갇혀 전시되는 느낌? 그런 느낌은 그리 유쾌하지 않다. 다행히 다음 쇄부터는 이 사진이 없어진다. 그나마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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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만의 책, 그리고 첫 소설의 의미


『개포동 김갑수 씨의 사정』은 그의 첫 소설이다. 이미 3년 전부터 써왔다는데, 무슨 이유인지 최근에야 탈고를 마쳤다. 요즘 방송인으로 더 부각되고 있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글 쓰는 사람이다. 지금도 영화비평은 계속하고 있고, 앞으로도 ‘글 쓰는 허지웅’으로 살고자 한다. 특히나 소설을 향한 욕심은 아직 넘치는 듯하다. 각설하고 『개포동 김갑수 씨의 사정』은 소설 속의 ‘허지웅’이 가끔 술자리에서 마주치는 ‘개포동 김갑수 씨’에게 듣는 실패한 연애담이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어른을 위한 이솝우화’이기도 하다. 때문에 연애사 이면에 시시콜콜한 이야기, 이를테면 콩깍지가 씌이는 과정과 남녀가 몸을 섞는 과정, 변심 등을 유쾌하게 풀어내고 있다. 그리 아름답지 못한 현실을 그리 무겁지 않게 담은 소설을 통해 우리는 스스로의 연애사를 새삼 되돌아보게 된다. 


 

앞면은 허지웅 소설, 뒷면은 허지웅 첫 소설이라고 씌여있다. 5년 만에 낸 책이고, 3년 전에 쓰기 시작했다. 비로소 책이 출간된 후, 개인적으로 나름 감회가 특별했을 듯 한데? 


중간에 영화 전문 서적이 있다. 『망령의 기억』이라는 책인데, 한국의 공포영화를 다뤘다. 개인적으로 애착이 가는 터라 중간에 그 책이 있었다는 것을 언급하고 싶다. 첫 소설을 낸 것은, 당연히 감회가 새롭다. 어렸을 때부터 이야기를 쓰는 걸 좋아했다. 솔직히 기쁘고, 많이 읽어줬으면 좋겠다는 느슨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개포동 김갑수 씨의 사정>이라는 제목이 독특하다. 책을 읽기 전에는 몰랐는데, 마지막 장을 넘기고 나니 ‘뭔가 중의적인 표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노골적으로 중의적 표현이다. 언어유희라기보다…, 난 그 두 가지 의미가 이 이야기 안에서 저마다의 기능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케이스일 수도 있고 말 그대로 사정(射精)일 수도 있고…. 아무튼 제목은 꽤 마음에 든다. 잘 지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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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장르를 구분한다면 어떤 장르의 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우화다. 이솝우화, 탈무드 같은…. 어른들을 위한, 여우와 토끼와 거북이가 떡을 치는 이솝 우화라고 할 수 있다.


완성하는데 3년이 걸렸다고 하는데, 탈고되지 않은 원래의 글은 어땠을지도 궁금하다. 


이 책은 순전히 편집자에 대한 믿음으로 나온 거다. 내가 신뢰할 만한 믿음을 줬다. 안 그랬다면 아마도 기약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절반을 쓰고 그 나머지는 언제 쓸까 하던 차에 좋은 편집자를 만나서 동기부여가 된 셈이다. 편집자는 최대한 내가 쓰고 싶은 내용을 자유롭게 쓸 수 있게 울타리가 되어줬다. 덕분에 내용이 크게 달라지진 않았다. 문장을 다듬는 수준 정도? 난 원고를 송고하기 전에 소리 내어 읽는데, 최대한 속도감 있게 빨리 읽혀지는데 주안점을 뒀다.  


수다 떠는 여자들을 비웃지만, 실제로 은밀한 부분에서는 더 시시콜콜해지는 남성시각의 연애사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실제 책을 접한 독자들 반응은 어떤 것 같나? 여성과 남성을 구분지어 말하자면? 

   

글쎄…, 개인적으로 젠더에 따라 극명하게 나뉠 수 있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평가는 각자 다를 테니, ‘내 책이 그런 책이구나’라는 식으로 규정짓고 싶지는 않다. 내가 생각하는 이 책의 의미나 중요한 부분은 따로 있는 거고 독자들이 생각하는 것은 또 다를 거다. 그럼에도 앞서 이 책이 우화라고 말한 것은 독자들이 삶의 어떤 순간에 문득문득 이 책의 교훈을 적용할 수 있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상황을 한발 떨어져 제 3자의 입장에서 객관화하고, 성찰하며 스스로 사유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는 것이 우화라고 생각한다. 그런 텍스트로는 꽤 괜찮은 것 같다. 표면적으로는 연애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사실 이 책은 인간관계에 고루 넓게 적용할 수 있는 이야기도 된다.  


인기 없는 남성의 입장에서 갑수 씨의 버라이어티한 연애사, 좀 더 구체적으로 섹스사는 공분을 살 수도 있을 듯하다.


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사람이 누구를 만났다거나, 혹은 몇 명을 만났다가 아니다. 관계가 파행이 되는 과정과 왜 파행이 될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이후 이 소설을 쓰고 있는 화자로서의 ‘허지웅’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를 객관화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작가의 말에서 ‘아름답지 않은 것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은 인간의 특권’이라고 했는데, 저자가 사랑하는 ‘아름답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사람들이 근사한 의미를 부여하는 비루한 현실, 풍경들이 있다. 그런데 난 거기에 굳이 근사한 해석을 붙이는 게 우스워 보인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기가 수용 가능한 것으로 바꾸는  행위일 뿐이니까. ‘노동의 위대함’, ‘우리사회를 이끄는 원동력’, ‘청춘은 원래 아픈 거야’ 같은 것들이 그렇다. 그런 식의 의미부여는 비루한 현실을 본인이 수용 가능한 것으로 실제와 다르게 바꿔버리는 위선적인 행동이라 생각한다. 나쁘면 나쁜 대로 더러우면 더러운 대로 인정을 하고 같이 살아갈 준비가 되어 있어야만 그것에 대해서 옳고 그름을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판단을 하는데 가장 근본적이고 기본적인 자세는 올바로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다. 그런 생각에서 쓴 문장이다. 



마음을 얻기 위해 사랑을 볼모로 상대를 겁박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 신념을 지키기 위해 남을 희생시키는 사람보다 남의 신념을 위해 내가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것이 아니면 오직 저것뿐이라며 세상만사를 재단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 과거만이 오직 숭고하고 고단했다는 자신감으로 남의 인생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을 얹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중략)…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개포동 김갑수 씨의 사정』에필로그 中



본인 스스로도 책을 통해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는데, 어떤 남자가 진짜 좋은 남자라고 할 수 있을까? 


에필로그에 나열된 조건들이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사람들의 조건이다. 그것 그대로라고 할 수 있다. 그중에서 나이든 좋은 사람의 가장 좋은 조건이라면, 자기보다 나이 어린 사람의 신념을 위해 자신의 신념을 희생하는 행동이다. 혹은 드러내지 않다거나. 그런 태도가 진짜 좋은 사람의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광의의 의미로서 좋은 사람은…, 이를테면 다이하드의 부르스 윌리스 같이 책임지는 사람이다. 죽도록 고생해서 책임지고 나면 다음 편 가서 다시 망가져 있지만, 어찌됐든 그걸 정상으로 돌리려는 책임감이 있지 않나? 그게 진짜 훌륭한 어른, 좋은 사람의 모습이 아닐까? 좋은 사람이 되려면 적어도 책임지려 노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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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년생, 남자, 그리고 허지웅


소설은 기본적으로 픽션이라고 하지만, 글쓴이의 배경이 녹아들어가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갑수 씨가 맴도는 공간이나 소설 속 화자인 ‘허지웅’이 내비치는 스스로의 배경들은 작가의 실제 경험과 어느 정도 연결 돼 있다. 작가는 1979년생, 오늘날 30대 중반을 살아가고 있는 세대에 속해 있다. 이 세대를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X세대를 동경하다 낭패 본 세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시절, 그 세대라면 아마도 그의 책에서 더 많은 공감을 얻을 수 있으리라 짐작해 본다. 


1979년생, 소위 IMF 사태의 직격탄을 맞은 세대다. 책 속에서도 그렇고 이야기 중에도 언뜻언뜻 비춰지는 개인적인 굴곡이 느껴지는데, 그런 경험이 작품 속에도 녹아들어간 듯하다. 


이야기를 만든 사람의 삶하고 완전히 무관한 픽션은 존재하지 않으니까. 연관이 깊은 게 당연하다. 1979년생 같은 경우는 고등학교 때 ‘건축학과가야지’, ‘오렌지족이 되겠다’ 같은 여러 가지 꿈을 품다가 고3 때 세상이 달라진 세대다. 거대서사로 따지면 불행한 세대기도 하다. 본인이 원치 않는 이유로 본의 아니게 인생을 낭비해버린 친구도 많았고…. 그래서 아까 말한 것처럼, 지금 출연하는 프로그램의 제작진이 좋다는 거다. 나와 같은 세대인 그들과 일하는 게 좋다. 79~80년생들 에게는 자기가 할 수 있고, 잘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생각이 있다. 방송만 해도 과거 방송의 관성을 벗어난 다른 것을 만든다는 자부심이 있다. 그걸 같이하고 있다는 자부심, 그걸 실제 함께하고 있다는 자체가 소중한 거고,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듯하다.  



그래서 인지, 책 속의 ‘허지웅’이 갑수 씨를 두고 하는 생각 중에는 부러움, 비해도 있지만 애처로움도 있는 듯하다.  


그건 세대보다는 한 사람이 타인을 이해하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허지웅’은 초반에는 갑수 씨가 웃겨서 만났고, 그 이후에는 호기심의 대상, 관찰의 대상으로 봤다. 그 다음은 ‘얘는 영 글러먹은 놈이구나’ 하고 나와 다른 사람으로 타자화 시킨 후 단절한다. 하지만 나중에 다시 ‘아, 그게 아니었구나. 나와 같은 사람이었구나’하며 공감하고 이해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한 사람이 타인을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고, 난 그걸 화자로서 ‘허지웅’과 갑수 씨라는 인물을 통해 이야기한 것이다.  


중간 중간에 삽입된 ‘인터미션’은 실제 본인의 이야기라고 했다. 소설 속에 논픽션을 넣은 셈인데 이유가 있나? 


난 고전영화를 굉장히 좋아한다. 고전 중에서도 2시간 넘는 할리우드 에픽물 시대로 넘어가면 인터미션이 있지 않나? 난 그게 정말 좋았다. 화장실도 가고, 쉬는 중간에 나오는 클래식 음악도 너무 좋았다. 앞의 이야기를 상기하면서 뒤의 이야기를 상상하는 것도 좋았다. 그런 고전영화의 인터미션과 같은 효과를 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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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을 하고 있지만, 그러면서도 본인은 여전히 글쟁이라고 선을 긋는다. 이는 앞으로도 계속 허지웅의 책을 기대해도 된다는 뜻으로 들린다. 


그렇다. 영화비평 작업은 계속 할 생각이다. 다만 그걸 책으로 묶을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계획을 잡고 착실히 쓰겠다고 결심한 것은 소설인데, 개인적으로는 대체역사와 SF 장르에 관심이 많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르이기도 하다. 그런 장르의 책을 쓸 생각이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개포동 김갑수 씨의 사정』이 어떻게 읽히길 바라는지,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감독도 그렇고 작가도 그렇고 그 이야기를 만들어 낸 사람이 ‘어떻게 읽혀졌으면 좋겠다, 사실 내가 감춰놨던 메시지는 이거다’라고 이야기하는 건 어리석은 짓이지 않나? 그래도 큰 틀에서 느슨하게 말한다면(웃음), 아까도 말한 것처럼 이 이야기는 우화라는 것이다. 우화로서 효과를 주기 위해 각 챕터를 최대한 짧고, 읽기 쉽고, 재미있게 갔다. 쉽게 읽혀질 거라는 점은 확신한다. 내가 소리 내어 꽤 여러 번 읽어봤으니까. 독자들에게 바라는 점이라면, 한 번 쭉 읽어보고 책장에 뒀다가 어떤 에피소드가 떠오를 때 그 부분만 다시 읽어보라는 거다. 그러면 아마 지금 스스로가 처한 상황을 객관화해서 보게 되고, 거기서 또 다른 사유로 넘어갈 수 있는 계기가 될 거라 믿는다. 우화의 목적이 그런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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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포동 김갑수씨의 사정허지웅 저 | 아우름
『개포동 김갑수씨의 사정』은 ‘허지웅’이 가끔가다 술자리에서 마주치는 한 지인의 망한 연애담이다. 작품 속의 ‘허지웅’이 술자리에서 이따금 마주치는 개포동의 김갑수씨는 늘 연애에 망하고 “내가 지나간 옛사랑에게 얼마나 사무치게 쌍놈이라 하늘의 분노를 샀으면, 이제 와 이런 쌍년을 만나 개고생을 하느냐”며 소같이 울어대는 사람이다. 그는 늘 여자를 탐구해야겠다고 말하지만, 그에게서 파란만장한 연애 이야기를 전해 듣는 ‘허지웅’은 그가 정작 알고 싶은 것은 ‘자기 자신’이 아닌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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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기호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듣는 감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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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잉접속과 관계단절’. 쉴 새 없이 접속하지만 끊임없이 차단하는 아이러니는 한국사회, 한국사람들을 표현하는 키워드가 됐다.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에만 귀를 기울이고, 반대 편에 있는 사람의 이야기는 들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 사회. 말할 입도 들을 귀도 없다. 오죽하면 “질문하면 죽는다”는 표현이 나오기도 한다. “튀지 않는 것이 나를 보존하는 원리이자, 남을 배려하는 방식”이라니. 그러나, 우리는 다시 한 번 생각해봐야 한다. 나부터 듣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지, 상대가 이해할 수 있는 말로 표현하고자 했는지를. 


엄기호가 ‘단속사회’로 책 제목을 지은 건, 사회의 역설 혹은 아이러니를 드러내기 위함이다. 한국사회가 ‘사회가 아닌 상태의 사회’라는 역설을 드러내고 싶었기 때문. 같고 비슷한 것에는 끊임없이 접속해 있지만, 나와 다른 것은 철저히 차단하고 개입하지 않는 사회. 철저하게 자기를 ‘단속(斷續)하며, 타자와의 관계는 차단하며 동일성에만 머무르며 자기 삶의 연속성조차 끊어져버린 상태를 두고, 엄기호는 ‘단속’이라 명명했다. 엄기호는 “곁에서 쓴, 곁이 있는 글”을 추구한다. “곁에서 말을 걸고 상대방의 말을 들으며 곁을 만들어가는 것”을 중시하는 까닭이다.


현재 대학에서 문화인류학을 가르치고 있는 엄기호는 초등학교 때, 부패한 교사를 만나 학교와 교육 문제에 일찍이 눈떴다. 인권연구소 창에서 연구활동가로, ‘교육공동체 벗’에서 발간하는 <오늘의 교육>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며, 그간 『닥쳐라, 세계화!』, 『아무도 남을 돌보지 마라』,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우리가 잘못 산 게 아니었어』,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등을 펴냈다. 『단속사회』에서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말 걸기’다. 말을 해야 할 타이밍을 아는 ‘감각’을 키우자는 뜻이다.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들을 수 있는 감수성’을 키우자는 말, 또한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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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돕는 질문이 될 수 있다


현대인의 관계를 맺는 현상을 ‘단속’으로 표현했다. 차단하고(斷) 접속한다(續)는 반대 개념의 결합이다. 


지난해 박사논문을 「‘단절-단속’ 개념을 통해 본 ‘교육적’ 관계의 (불)가능성에 대한 연구」라는 제목으로 썼는데, 『단속사회』는 논문에서 말한 개념을 한국 사회의 여러 사례에 빗대어 쓴 책이다. ‘단속’이라는 개념을 따로 빼서 사회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한 것이다. ‘단속’은 오래 전부터 생각한 개념이었다. 교육공동체 ‘벗’ 활동을 하고 있는데, 교육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게 ‘연속’이다. 성장을 하려면 삶에서 경험을 풀어내야 하는데, 한국사회는 연속성이 끊어졌다. 살아남기 위해 자기를 단속하고 그러는 사이에 연속성이 사라졌다. 처음에는 ‘사회’라는 단어를 붙이기 싫었다. ‘단속된 상태’를 사회라고 할 수 있냐는 문제가 있었다. 이건 삶의 형태이지, 사회의 특성은 아니니까 ‘단속사회’는 말이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너무 고민이 돼서, 복지국가를 공부하고 있는 친구에게 물어보니, “사회라는 말이 꼭 들어가야 한다”고 하더라. 사회 아닌 사회를 강조하는, 아이러니를 드러낼 수 있는 말이 ‘사회’라면서. 묘하게 설득력이 있더라. 


책 속에 구체적인 사례가 많다. ‘곁’을 중시해서 일까. 책을 쓰면서 ‘곁’에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난 것 같다.


‘구체적 보편성’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구체적인 게 정말 보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보편적인 건, 추상적인 게 아니라 구체적인 거다. 방법론적으로는 연속성이 깨진 사례를 먼저 찾는 게 우선이겠지만, 나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보편성을 발견하고 여기에 해당하는 개념을 찾는 편이다. 학교에서도 그렇고, 학교 밖에서도 사람 사는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한다. 인터뷰를 통해서 대놓고 듣는 이야기도 있고, 지나가면서 듣는 이야기도 놓치지 않는 편이다. 어떤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당신도 그렇게 생각하나?’라고 묻는다. 가장 좋은 이야기는 “나도 그렇다”가 아니라,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인데, 듣고 보니 그런 것 같다”는 말이다. “나도 그렇고 너도 그런 건” 보편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일반적인 이야기다. 보편적인 건 “몰랐던 건데, 나도 그렇구나”라고 깨닫는 것이다. 


저자도 ‘불통’을 많이 느꼈기 때문에『단속사회』를 썼을 텐데. 소통의 부재를 느낄 때는 주로 언제인가?


하나를 말하자면 사람들이 오히려 소통한다고 생각할 때 불통을 느낀다. 누군가 내게 질문할 때, ‘대화가 안 되는구나’를 느낀다. 질문할 때는 내 경험을 집어넣어서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질문 자체를 통으로 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안은 있나? 한국사회는 바뀔까?” 이렇게 질문하면 답변할 수 없다. 삶은 “이것이냐, 저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자본주의냐? 민주주의냐? 이런 특정한 지점에서 말할 수는 있지만, 우리의 삶 전체를 통째로, 속된 말로 퉁 치는 질문을 하면 토론은 불가능하다. 학교나 정치 모두 질문을 통으로 하니, 할 말이 없는 거다. 


상투적인 질문을 하는 건, 비겁해서 일까? 애당초 원하는 답이 없을 거라는 확신 때문일까?


자기가 움직이지 않는 이유에 대한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서인 것 같다. 대안이 뭐냐? 대안이 없으니까 나는 움직이지 않겠다는 거다. “물어봤는데, 네가 말한 건 대안이 아닌 것 같으니까 난 안 움직인다”, 이렇게 되는 거다. 많은 질문들이 해답을 찾기 위한 게 아니라,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한 질문으로 느껴질 때가 많다. 그러니까 답변하는 사람은 질문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말하기가 싫어지는 거다. 


그래도 소통을 하려면, 질문이 필요하다. 그냥 듣고만 있는 것보다는 질문이라도 하는 게 낫다고 본다. 문제는 질문도 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는 거다. 누구든지 튀면 삿대질을 한다. “질문하는 자에게는 폭력이 행사된다”는 말까지 나오고.


학교 수업을 하다 보면 학생들이 꼭 수업이 끝난 후에 질문을 한다. 왜 수업시간이 끝난 다음에 질문을 하냐고 물으면, 질문이 쪽 팔려서 그렇다고 한다. 또 다른 이유는 다른 아이들에게 민폐를 끼칠 까봐 그런다. 나만 관심 있는 문제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 두 가지 답이 우리가 어떤 사회를 살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사람들이 예의 바름에 대한 강박관념, 절대 민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 타인에게 나를 약자로 드러내서는 안 된다는 강박이 너무 강하다. 그러니까 끊임없이 일대일, 사적으로 해결을 해야 하는 거다. 나는 학생들에게 이야기한다. “네 질문이 쪽 팔린 질문이면, 다른 아이들은 그 질문을 대신 해주는 네가 얼마나 고맙겠냐”고. “사적인 질문을 넘어, 누군가를 도와준다는 생각으로 질문을 하라”고 말한다. 누군가도 나와 같은 궁금증을 가지고 있다는 걸 인정하면서 생각해야 한다. 질문을 하는 건, 민폐를 끼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누구를 도와줄 수 있는 행위가 될 수 있다.


쪽 팔린 질문도 할 수 있는 분위기, 사회를 만드는 것도 중요한 것 같다. 


물론이다.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사회적 존재감이다. 내가 쓸모 있는 존재라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는 게 중요하다. 사회라는 건, 서로 쓸모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다. 서로를 쓸모 있게 하는 관계망이 사회라고 생각한다. 서로를 쓸모 있게 생각해줘야 하는데, 지금은 누구에게도 민폐를 끼쳐서는 안 되고, 잘못하면 오지랖 넓다는 소리만 듣는 분위기가 됐다. 내 질문이 공통의 질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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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 해지길 강요하면, 성장할 수 없다


한국사회에서 ‘말의 불신’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말에 가치가 있고, 힘이 있다는 생각이 점점 들지 않는다. 말은 힘이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쓸모가 있어야 한다. 그 말을 들음으로써 다시 생각하고, 다른 방향으로 바라보고, 다른 가능성을 쳐다보게 하는 통로가 되어야 하는데, 우리가 하는 말은 힘이 없다. 말에 완전히 지쳐버려서 말에 냉소하게 됐다. 


현대인은 오프라인 사회에서는 끊임 없이 단속하면서, 온라인에는 쉴 새 없이 접속하고 있다. 옆집 사람들하고는 인사를 하지 않으면서, SNS에서 만난 사람들과는 매일 같이 안부를 전한다. 온라인 세계에서의 관계 맺기, 가끔은 굉장히 무의미하게 느껴질 때도 많다. 


나는 페이스북, 트위터를 모두 하고 있지만, 좀 폐쇄적이다. 페이스북은 아주 소수를 제외하고는 전부 어떤 활동, 공간에서 만난 얼굴을 아는 사람이다. 트위터는 공개되어 있지만, 팔로잉을 하지 않는다. 연속성을 강조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트위터를 보면 타임라인이 계속 올라가는데, 그게 연속성인 것 같지만 모두 파편화 되어 있다. 누가 내게 질문을 하면, 나는 곧바로 대답을 하지 않는다. 상대의 트위터를 방문해 최소한 3일치, 길게는 1주일치 글을 쭉 읽어 본다. 그 사람이 주로 어떤 걸 궁금해 하고 질문하는지, 맥락이 잡히면 대답을 한다. 물론 질문이 무의미하게 느껴지면 답하지 않는다. 이렇게 해야 시간관념으로 보면 실시간이라는 데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대부분 실시간으로 반응을 해줘야 열광하는데. 


우리는 너무 많은 걸 실시간에 의존하고 있다. 실시간이 현재적 시간인 것 같지만, 우리의 삶은 늘 실시간이기 때문에 시간이 아닌 시간이다. 시간이라는 건, 과거와 현재의 연속성에 있기 때문에 실시간은 무중력의 상태, 파편화된 시간이다. 사람들은 어제까지 실시간 뉴스에 흥분하면서, 하루가 지나면 금세 잊는다. 흥분을 지속해서 가지고 가려면 실시간이 아닌 시간에서 살아야 한다. 팔로잉 하는 것 자체가 문제 되지는 않지만, 너무 인스턴트한 답변을 하게 되는 건 문제다. 질문하면 바로 답변하는 것보다, 오래 걸리더라도 정성을 다해 답변하는 게 중요하다. 시간의 길이가 있을 때, 정성을 만들 수 있다. 관심 자체도 그렇고. 


‘기획된 친밀성’이라는 지적에도 동감했다. 친밀성이 의사소통의 전제가 아니라 ‘관리와 기획의 대상’이 되었다는 말에 퍽 동의한다. 가족관계, 사회생활에서 맺게 되는 관계 또한 다르지 않다. 나와 조금만 다르면 선을 긋고, 서로의 필요에 의한 친밀성이 느껴질 때 무척 씁쓸하다.


사람이 성장을 하려면, 기본적으로 상처를 겪어야 한다. 상처를 받는 게, 되게 중요하다. 예를 들어 연애를 할 때, 우리는 그냥 좋기 때문에 사랑이 뭔지를 알지 못한다. 실연을 경험한 후에 사랑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벗어나서 바깥에 있을 때만 그걸 알 수 있다. 그런데 실연도 언제 알게 되는가 하면, 실연이 끝난 후다. 실연 자체가 애도인데, 내가 잃어버린 것에 대한 애도를 하는 기간이 끝나면 사람은 성장한다. 애도가 없어도 사람은 성장하지 못하고, 애도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해도 성장하지 못한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애도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를 ‘우울증’이라고 이야기 한다. 두 가지가 모두 문제다. 쿨하다는 건, 어찌 보면 애도기간이 없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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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 자꾸만 사람들에게 쿨 해지라고 요구하는 것 같다. 감정적이고 쿨하지 못하면 굉장히 미성숙한 사람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우리 문화가 만든 모습이다. 자꾸만 쿨 해지라고 말하는 건, 뒤바꿔보면 성장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강요할수록, 사람들은 모두 애도 상태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그래서 우울증, 우울감이 엄청 많이 팽배해졌다. 사람들이 산다는 게 상처를 받고, 상처를 주는 것이다. 상처를 주지 않는 관계라는 건 없다. 우리가 구분해야 하는 건, ‘감당할 상처인가, 감당할 수 없는 상처인가’ 하는 문제다.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상처를 주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너무 강해, 관계 맺기 자체를 꺼린다. 그래서 친밀성 자체도 기획되는 거다. 아주 매끄럽게 만들어간다. 친밀성도 통제 아래 두려고 한다. 


상처를 주고 받을 바에는 아예 관계를 맺지 않는다는 말인데, 그렇다면 살아갈 이유도 없다. 모든 걸 기획하고 계획한다고 뜻대로 되는 게 인생이 아닌데. 


사람의 삶이란, 우연의 연속이다. 우연을 통하지 않고는 인간으로 성장하는 게 불가능하다. 학부모를 대상으로 한 강의를 갈 때,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애들한테 책 좀 추천하지 말라고. 책은 아이들이 알아서 보는 거다.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안 좋은 책을 보면 어떡하냐?”고 묻는데, 그게 우연인 거다. 나도 어릴 때 『왕비열전』 같은 책도 읽고 그랬다. 이게 우연이다. 요즘 부모들은 너무 기획한대로 아이들을 키우려는 성향이 짙다. 


그렇다면, 아이들에게 책을 추천하지 않는 게 가장 현명한 것인가? 


“이 책, 어때?” 이렇게 권하는 건 상관없는데, “이 책 읽고, 그 다음엔 저 책 읽고” 이런 식으로 스케줄을 만드는 건 반대다. 내가 제일 비판하는 건, 어린이가 어린이책만 읽는 거다. 가장 좋은 서재는 아이가 읽는 책과 부모가 읽는 책, 조부가 읽는 책이 함께 있는 서재다. 그래야 아이들이 물어본다. “엄마는 뭐 읽어?”라고. 요즘 부모들은 아이한테 좋은 책을 읽혀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아이들 책만 읽는다. 좋은 책인가를 확인하려고. 이러니까, 아이가 어른으로 성장하는 게 아니라 어른이 아이가 되고 있다.


초중고, 대학까지 교육 현장을 지속적으로 지켜보고 연구하고 있다. 학부모에게 하고 싶은 말도 있을 것 같다.


보통 초등학교 고학년, 중학교 저학년 자녀를 둔 부모들의 고민이 가장 많다. 아이가 자기 뜻대로 안 되니까. 내가 자주 하는 말은 “좋은 부모가 되려고 하지 말고 현명한 부모가 되라”는 말이다. 좋은 부모는 좋은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데, 아이들도 말을 듣고 싶지 않을 때가 있다. 현명한 부모는 쓸모 있는 이야기를 해야 하고, 쓸데 없는 이야기를 안 해야 한다. 쓸모 있는 것과 없는 것을 판단하는 게 현명한 부모다. 이 이야기를 지금 하는 게 맞는가? 때를 봐야 하고, 아이가 원하는 형식, 아이에게 맞는 형식으로 이야기를 해야 한다. 어느 때, 어느 형식으로 아이에게 말할까를 고민해야 한다. 그런데 부모들이 “무슨 좋은 이야기를 할까”만 고민하니까 문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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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떠드는 사회, 들을 귀를 만들자


한국사회에서 재밌는 현상이 하나 있다. 질문하라고 하면 안 하고, 순번대로 이야기할 시간을 주면 다들 자기 이야기하기 바쁘다. 그런데 타인을 고려하지 않는다. 주제에 벗어난 이야기도 많아, 사람들이 경청하지 않는다.  


우리는 지금 말할 입도, 들을 귀도 없다. 내 문제를 이야기하고 싶으면, 내 앞에 있는 사람에게 들리게끔 이야기를 해야 한다. 타자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는 건, 내 경험을 바깥에서 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기 이야기를 하긴 하는데, 남하고 관련 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까 문제다. 듣고 있는 사람과 관련 있는 이야기를 하고, 끊임없이 사람을 연관 시켜야 보편적인 이야기가 되는데, 혼자만의 이야기를 하니까 앞에 있는 사람들이 밀쳐내는 거다. 또 한편에서는 사람들이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을 때, 나와 연관 시켜서 들어야 하는데 그렇게 듣지를 않는다. 그러니 혼자 떠드는 거다. 이번에 책을 쓰면서 ‘혼자 떠는 사회’로 제목을 할까? 하는 생각도 했다. 


마냥 징징대는 사람들도 있다. 조언을 원한다고 하지만 막상 조언을 해주면, 픽 돌아서버린다. 그냥 토닥토닥 위로만 해주기를 바란 게 진심이었던 거다. 


맞장구만 쳐야 하는 시대가 된 거다. 맞장구, 정말 중요하다. 그런데 왜 또 그런가를 생각해보면, 일종의 분리감각이 없기 때문이다. 맞장구만 쳐줄 수 있는 관계는 연애하는 관계에서만 가능한데, 요즘 사람들은 친구랑도 연애를 하려고 한다. 친구, 동료, 선후배라고 이름을 달리 붙인다는 건, 그 관계에 걸맞은 의사소통 방법이 있다는 거다. 그런데 연애를 제대로 못해 봐서 그런 건지, 연애에 대한 환상이 너무 커서 그런지, 모든 사람이랑 연애를 하려고 한다. 아무나 하고 연애를 하려고 하니까, 말만하면 상처를 받고 그런다. 이런 상황의 기저에는 가족으로부터 온 경험도 무시하지 못한다. 


한쪽에서는 징징대고, 다른 쪽에서는 묵묵부답이고. 이러면 관계 맺기가 불가능해지는 게 아닌가.


왜 징징거리는데 아무도 안 듣나? 고통을 듣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고통은 말할 수 없는 거니까 징징거리는 건데, 어느 정도 언어가 있으면 애도 기간이 끝난 후 상대방이 들을 수 있는 말로 표현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안 된다. 그러니까 계속 징징대고, 다른 쪽에서는 징징대는 것으로만 듣고. 고통에 대한 무지가 한국 사회의 가장 심각한 문제다. 


'경청’에 대한 이야기도 다시 해보자. 말할 입도 중요한데, 들을 귀가 먼저이지 않을까 싶다. 요즘에는 무관심이 미덕이 됐다. 그러니 들을 여유가 없다. 아니, 시도조차 하려고 하지 않는 것 같다.


어찌 보면 가장 중요한 이야기다. 우리는 말하지 못하는 걸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말하는 걸 듣는 건 ‘수비’만 하는 거다. 말할 수 없다는 것은 그게 ‘고통’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고통을 느끼면 소리를 지른다던가 침묵한다. 고통은 소리, 침묵을 통해 표현되는 것이지 말로 전달될 수 없는 거다. 우리 한국사회가 끔찍한 이유가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자기 고통을 국가의 언어, 상대방의 언어로 증명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내 고통이 얼마나 심각한지에 대해 내 말도 아닌, 국가가 원하는 형식으로 증명해야 한다. 고통은 말할 수 없는 건데, 자기 말로도 할 수 없는 걸 국가의 공식화된 언어로 증명하라는 것이 말이 안 되는 시스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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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어떤 사건이 터지면, 그때서야 ‘왜 말하지 않았어?’라고 한다. 말했는데 듣지 않았으면서.


“고통을 당한 사람이 말해라, 그러면 들어준다”는 논리 아래 국가 시스템이 세워져 있으니, 말이 안 되는 거다.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있다는 걸 인정하고, 그 고통에 의해 어떤 사건이 벌어졌을 때, 해당 사건에 대해 공동으로 의례를 치를 수 있어야 한다. 왕따를 당한 아이가 자살하면, 학교는 2박 3일을 멈춰야 한다. 공부를 하면 안 된다. 왜 우리 학교에 이런 일이 생겼는지 학년마다 반마다 토론을 하고, 교장부터 전교생 아이들이 죽은 아이의 책상 위에 꽃을 한 송이 올려놓아야 한다. 저 아이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를 생각해봐야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어떤가? 아이가 죽으면 동요하지 말고, 공부하라고 방송을 한다. 아이들을 쌍놈을 만들고 있는 거다. 고3들은 어떤가?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도 장례식장에 못 있게 한다. 입관할 때나 오라고 하고. 이게 말이 되는 사회인가? 고통은 말할 수 없다는 전제 하에서, 사적인 인간관계에서부터 시작해 국가 복지 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 이게 우선이다.


고통을 들어주는 곳이 없으니, ‘힐링’ 바람이 분 걸까.


아무도 내 이야기를 안 들어주니까, 돈을 주고 곁을 사는 거다. 정신분석 상담을 받던지, TV에 나가든지, 대중 강연회를 찾으러 간다. 거기서 막 자기 이야기를 하고. 거긴 어차피 한 직업인이 들어주는 거지, 내가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이 들어주는 게 아니다. 그러니까 “돈 내고 야단 맞는다”는 말이 나온다. ‘곁’이 시장화되고 있다. 오히려 내 주변 사람들에게 고통을 이야기하기가 거추장스러워졌다. 돈을 주고 하면 되니까, 상황이 더 악화됐다. 내 옆 사람과 언어화하는 게 아니니 우리는 언어의 주인이 될 수 없고, 말의 주인이 될 수 없다. 소리만 내고 있다. 시장은 그 말을 번역해 주고 있고, 남의 고통은 내가 들을 이유가 없어지고. 이렇게 되면 사회가 없어지는 거다


존경할 만한 어른이 없는 사회라는 이야기도 많이 한다. 


어른이 된다는 건, 경험이 많아야 하고 체험으로부터 얻은 교훈을 들릴 만한 이야기로 후손에게 전달해줄 수 있어야 한다. 앞에서 말했듯이, 말하는 형식도 중요하지만 때를 볼 줄도 알아야 한다. 이것이 현명함의 핵심이다. 우리는 너무 형식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 방식대로만 이야기를 하니까, 어른이 없다는 말이 나온다. 나도 누나들과 이야기하면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저렇게 늙지 말자”라는 거다. ‘저렇게 늙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가 공포다. 사람들은 늙는다는 걸 무시하지만, 자기가 늙는 거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는다. 경계심이 없으니 철없이 늙어가고 있다. 어느 순간 되게 슬퍼하면서. 

 

다음 저서로 한국 극우를 분석한 책을 준비하고 있다고.


부제를 ‘우리 아버지는 왜 그렇게 박근혜를 좋아하나?’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한국 극우들이 왜 극우가 되었는지에 대해, 논리를 밝히는 책이 아니라, 한국사회에서의 어떤 경험들이 이 분들을 극우로 만들었는지를 살펴볼 계획이다. 한국전쟁, IMF와 같은 경험이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었을 텐데 어떤 장치, 어떤 경험에 의해 극우가 되었는지를 연구해볼 예정이다. 언제나 그렇지만, 논리보다 경험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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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속사회엄기호 저/ 창비
이 책은 기존의 인문사회과학이 관계 단절을 하나의 문제적 현상으로만 여겨왔던 관성에 도전한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그 단절의 양상, 즉 우리가 언제 누구와 접속하며 또 언제 누구와는 단절하는지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중산층, 시민사회 등의 사례를 채집해왔고, 결론적으로 우리 모두가 자신이 속한 가족, 직장 내에서 소통이 쉽지 않음을 호소하면서도 그 불통의 당사자와 직접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자기만의 ‘취향의 공동체’ ‘힐링’을 통해서만 이를 해소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을 던진다.



[관련 기사]



- 대한민국 20대는 ‘잉여’ 존재로 전락? - 『이것은 청춘이 아닌가』 엄기호

- 열폭이 뭐야? 진짜 청춘이 말하는 세대론 - 한윤형 김류미

- 당신 마음은 당신 편인가요?

- 송하영 ‘‘하루키, 베르베르, 진중권 책은 꼭 소장합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선재, 위로하고 싶어서 시작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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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없음을 알면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는 사람들


한밤의 야경이 아름다울 수 있는 이유는 불빛만이 남아버린 그곳에 소리는 없기 때문이다. 빛이 덮어버린 소리-한숨과 탄식, 절망과 눈물이 뒤섞인 그 소리를 듣고도 우리는 야경이 아름답다 말할 수 있을까. 결국 야경이 아름다워 보이는 이유는 어떤 소리도 듣지 못할 만큼 높은 곳에 올랐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세상은 마냥 눈부시고, 따스하고, 크고 작은 웃음소리로 가득 찬 곳이어서 낮은 곳의 소리들이 금세 잊힌다. 그렇게 우리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이야기를 잃어버리고 만다. 김선재 작가의 장편소설 『내 이름은 술래는 바로 그 잊어버리고 잃어버린 이야기들에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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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동네를 걸으며 불 켜진 창문들을 바라볼 때마다 혼자 안부를 물어요. 잘 지내고 있느냐고. 그 불빛은 모두 똑같지만 각각의 창들 안의 이야기는 아무도 모르는 거라는 생각도 하고요. 너무나 평범한 사람들이지만 그들이 갖는 이야기는 모두 특별할 거고, 또 각각의 비밀들이 궁금하기도 했어요. 아마, 그런 마음이 이 소설을 쓰게 했고, 희망 없음을 알면서도 희망을 버리지 않는 인물들을 만들어낸 것일지도 몰라요.” - 작가 인터뷰 중에서


『내 이름은 술래』에는 죽은 것처럼 살아가는 이와 살아있는 것처럼 죽은 이가 등장한다. 납치된 지 2년 만에 집으로 돌아온 10살 소녀 술래, 고향을 잃고 떠나온 새터민으로 술래와 친구가 되는 영복이, 전쟁의 상흔을 안고 죽을 날만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노인 박필순, 어느 날 그의 집 담장을 넘어 들어온 어린아이 같은 노인 광식이. 그들은 쉽게 아물지 않는 상처를 안고 죽음과 같은 삶, 삶과 같은 죽음을 살아간다. 고통스러운 기억을 잊기 위해 애써 노력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끝내 그것을 잃어버린 이도 있다.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박필순의 마당 가득 쌓인 고물들처럼 그 기억들을 깊은 곳 어딘가에 내버려둔 채 돌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네 사람은 만남을 거듭하면서 멀어지고자 애썼던 그 기억 속으로 서로의 발길을 이끈다. 그 과정에서 인물들은 서로의 상처를 들여다보게 되고 자신의 기억 앞에 마주 선다. 이제 한 사람의 상처는 그만의 것이 아닌 게 된 것이다. 이 이야기를 통해 작가 김선재는 서로 다른 존재가 관계를 맺고, 서로의 삶에 작용하는 과정과 그것이 가진 힘에 대해 말한다. 



“누구에게나 부끄러운 기억들이 있잖아요. 그걸 내재화해서 누군가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자신의 과오에 치를 수 있는 최소한의 대가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해요. 『내 이름은 술래에서 노인(박필순)은 전쟁에서 자신이 했던 행동들을 잊지 않고 괴로워하면서 살아가잖아요. 그런 것들과 화해할 수 있는 결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용서를 구하는 게 아니라 그 기억을 바로 보는 것이 가장 솔직한 고백이 아닐까 생각했고요. 이 사람이 지상에서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용서가 아닐까 싶었어요. 어떤 사실을 회피하거나 망각하지 않고 그것과 대면해야 된다는 이야기는 굉장히 상투적인 이야기일 수 있는데 ‘그것이 인간이 과오에 대해 치룰 수 있는 최소한의 대가가 아닌가’라는 생각을 늘 했던 것 같아요. 비겁해지지 않는 것만이 나를 가장 잘 지킬 수 있는 길이 아닐까요.”




위로하고 싶어서 시작한 이야기『내 이름은 술래』


『내 이름은 술래』가 세상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건 지난해 3월. 한겨레의 문학 웹진 <한판>을 통해 8개월 동안 연재되며 독자들과 만났다. <한판>의 기획위원으로 활동 중인 백가흠 작가의 제안으로 연재를 시작했지만 『내 이름은 술래』의 이야기는 오래 전부터 작가가 구상해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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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죽음이라는 것이 결국은 삶의 일부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기회들이 있었어요. 죽음을 겪은 당사자의 일이 아니고 남은 사람들의 일부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소중한 누군가를 잃는다는 건 누구에게나 굉장히 힘들고 견디기 어려운 일이잖아요. 이 이야기를 쓰면서 저도 위로를 받고 싶었고, 이런 일을 겪는 누군가가 있다면 위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어요.”


『내 이름은 술래』는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노인 광식이는 딸을 잃은 충격 속에 자살까지 시도하다가 기억을 모두 잃었고, 술래의 아빠 역시 술래가 사라진 2년 동안 지하철 행상을 하며 딸을 찾아왔다. 두 사람에게 딸의 죽음은 부재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단지 곁에 없을 뿐, 그 존재가 사라져버리거나 잊히는 것은 아니었다. 죽음 뒤에도 아버지와 딸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지고 또 새롭게 생겨났다. 소중한 이의 죽음이란 그런 것이다. 그 사실을 작가는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 통영에서 태어나 유년 시절을 보낸 그녀는 하루아침에 가까운 사람을 잃는 일이 바닷가 사람들에게는 예사가 아님을, 그리고 그 사실이 주는 공포를 일찌감치 깨달았다. “오랫동안 입에 올릴 수 없는 어떤 이름을 갖게 되는” 삶과 그 안에 녹아든 죽은 이의 지워지지 않는 존재까지도. 그러한 유년의 기억을 의도적으로 『내 이름은 술래』안에 녹여낸 것은 아니지만, 죽음과 그 이후의 삶에 대한 작가의 인식은 오랜 시간과 경험을 통해서 깊이가 더해진 것일지도 모른다. 


“노인(박필순)의 이야기는 사실 저희 아버지 이야기와 많이 닮았어요. 아버지가 월남전에 참전하셨는데 평생 가족들과 어울리지 못하셨거든요. 안 그래야지 하시면서도 누군가 곁에 있는 걸 견디지 못하셨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외상 후 스트레스였던 것 같기도 해요. 아버지는 늘 ‘나는 사람을 너무 많이 죽여서 지옥에 갈 거다’라는 얘기를 하셨어요. 전쟁에 대한 이야기나 그곳에서의 기억들은 거의 얘기를 하지 않으셨고, 저는 관심이 없었죠. 돌아가시고 난 후에야  아버지와 화해를 했어요. 유품을 정리하면서 그를 하나의 존재로 이해했던 것 같아요. 그 세대가 가지고 있는 공포와 절망과 고통스러운 기억을 어떤 식으로든지 한 번은 이야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제가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베트남 전쟁 이야기를 쓸 수는 없으니까, 그 사람 곁에서 다음 세대가 보았던 상흔에 대해서 쓰는 게 최선이 아닐까 생각했죠.”


『내 이름은 술래』를 읽고 시인 허수경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남겼다. “당신의 삶이 중심부가 아닌 주변부를 맴돌고 있다면(어떤 의미에서 모든 삶은 중심부이고 주변부이다) 당신은 이 이야기를 사랑할 것이다.” 그녀의 말처럼 누구의 삶도 중심부 혹은 주변부의 어느 한 곳에만 귀속될 수는 없다. 하지만 『내 이름은 술래』속 인물들의 삶은 중심부의 그것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전쟁의 상처, 소중한 이를 잃는 아픔, 삶의 터전을 떠나야 하는 고통, 그것들로 인해 뒤틀린 삶을 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이들이 들여다보고 싶어 하지 않는 이야기, 그래서 끝내 잊힌 이야기를 품고 있는 까닭에 그들은 도심의 주변으로 밀려났고 관심의 주변으로 비켜서있다. 


“제가 위로할 수 있는 사람들은 잘 보이지 않고 늘 주변부에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해요. 그런 부분들이 문학이 위로할 수 있는 것들이 아닌가 싶어요. 문학은 무용한 것이고 무용해서 유용하다고 하지만, 무용해 보이는 것들-없어도 아무 상관이 없는 이들이 결국 이 세계를 이루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굉장히 유용한 존재들이고요. 많이 가지고 많이 배운, 중심부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여러 군데에서 많이 하고 있잖아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잘 보이지 않고 무용해 보이는 존재들을 발견하고 잊지 않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그렇다면 문학과 작가의 역할이란 주변부의 삶을 위로하는 것일까. 김선재 작가에게 물었다. 


“문학의 역할이 위로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자각하게 하는 거죠. 문학은 도피의 공간이아니라 삶을 재인식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누군가를 위로하고 싶다는 생각이 『내 이름은 술래』를 쓰게 된 시작이기는 했어요. 그런데 동시에 이런 존재들을 잊는 사람들에게 자각하게 하고 재인식하게 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었어요. 여전히 재개발의 거대 논리에 맞서서 쫓겨나는 사람들이 있고, 유괴되어서 죽는 아이들이 있잖아요. 사각 지대에서 죽어가는 노인들도 있고요. 이런 이야기를 환기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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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의 길로 이끈 작품은 최인호의 「술꾼」  


『내 이름은 술래』는 김선재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다. 2006년 <실천문학>을 통해 소설을, 이듬해 <현대문학>에 시를 발표하며 등단한 그녀는 2011년과 2012년에 각각 소설집『그녀가 보인다』와 시집 『얼룩의 탄생』을 출간했다. 이전 작품들에서 보여줬던 탄탄한 서사와 간결한 문체는 『내 이름은 술래』에서도 계속 이어진다. 


“스스로 가장 뿌듯했던 건 이제 소설을 좀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예요. 소설이 무엇이라는 이야기는 늘 했지만 사실 소설이 뭔지 모르고 썼던 것 같아요. 그런데『내 이름은 술래』를 쓰고 난 뒤에 이제 소설을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돼서 가장 기뻤어요. 단편소설을 쓸 때는 삶의 한 단면을 통해서 뭔가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문장이나 언어에 대해서 강박적이었던 것 같아요. 그때는 몰랐는데 장편소설을 쓰면서 ‘맞다, 그러면 안 되는 거였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제는 어깨에 힘을 빼고 쓸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김선재 작가는 이번 작품을 통해 시를 쓸 때와는 또 다른 문체를 보여주고 싶었다. 시와 소설이 담고 있는 이야기, 그리고 그것을 전달하는 방식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작가에게 물었다. 


“아주 단적으로 예를 들면 시는 삶 이전의 세계나 세상을 이루는 근본 같은 것들, 즉 시원을 향해 가려는 시도인 것 같아요. 그런데 소설은 철저히 삶 중심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거든요. 예전에 사막에 간 적이 있었는데 가기 전에는 많은 계획들을 세웠어요. 사진도 많이 찍고, 시도 많이 쓰고, 소설도 한 편 구상해 오겠다고요. 그런데 결국 다녀와서 얻게 된 건 시 한 편이었어요. 사막이라는 곳이 문명과 동떨어져 있는, 시원에 가까운 곳이더라고요. 그곳에서 뭔가 소설을 만든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알았어요. 사막이라는 공간 안에서도 소설을 쓴다면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간 인간 혹은 조난을 당해 그곳에 떨어진 인간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게 시와 소설의 가장 분명한 차이점이라고 생각해요.”


작가 김선재를 소설가의 길로 이끈 것은 최인호 작가의 단편소설 「술꾼」(『타인의 방수록)이었다. 대학교 시절 소설론 강의를 통해 「술꾼」을 만난 후, 그녀는 처음으로 소설 쓰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전까지는 한 번도 소설가나 시인의 길을 꿈꿔본 적 없었던, 그저 잘 읽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학생이었다. 그런 그녀로 하여금 ‘나도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것, 그것은 「술꾼」의 마지막 문장에 적힌 ‘내일’이라는 하나의 단어였다. 


 “「술꾼」은 미래가 없고, 절망적이고, 슬픈 시대를 한 소년의 사적인 모습을 통해 보여주는 이야기잖아요. 그 이야기 끝에서 ‘내일’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굉장히 가슴이 뛰었던 것 같아요. 지금까지 제가 많이 비뚤어지지 않고 너무 비겁하지 않게 살아올 수 있었던 건, 희미하지만 그래도 내일이 있다는 것에 대한 희망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요. 굉장히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내일이라는 희망에 대한 낙관이 저를 여기까지 데려온 것 같아요. 그때도 그런 이유로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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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아름다워


김선재가 「술꾼」 안에서 내일을 발견한 것처럼, 오늘의 우리도 『내 이름은 술래』를 통해 내일을 그려볼 수 있을까. 해답은 이야기의 결말이 아닌 과정에 숨어있다. 『내 이름은 술래』의 목적지는 누군가의 정체가 밝혀지거나 어떤 사건의 실마리가 풀리는 지점이 아니다. 인물들이 서로의 곁에 서게 되는 과정, 그 안에서 떠올리는 지난 시간들과 알게 되는 삶의 진실들, 그 모든 순간들이 이야기의 목적지다. 비유하자면 『내 이름은 술래』의 장르는 미스터리가 아니라 로드무비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고자 하는지’가 아니라 ‘길 위의 사건들을 통해 변화하는 그들의 관계와 감정’이다. 그 여정에 길잡이가 되어줄 작가의 이야기를 전한다.


『내 이름은 술래』의 인물들은 결말에서 뭔가 기대할 수는 없는 운명을 가진 사람들이잖아요. 그러니까 영복이와 술래의 관계, 광식이라는 인물과 박필순이라는 노인의 관계가 결국 우리 얘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냉소적이고 비관적일 수밖에 없는 순간에도 누군가 옆에 있다는 사실은 늘 위안이 되는 것 같아요. 경중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다 그럴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존재가 있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한 번 느껴보셨으면 좋겠어요. 광식이처럼 인생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계속 얘기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건 정말 소중한 게 아닌가 싶어요. ‘그래도 인생은 아름다워’ 라고 말해주는 누군가가 있는 것과 ‘인생은 별 거 아냐, 그냥 아무렇게나 살면 돼’ 라고 말하는 누군가가 있는 건 굉장히 다르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런 존재가 이 세상을 지탱한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내 이름은 술래』는 한 존재가 갖고 있는 서사보다 그들이 타자라는 존재를 이해하고 알아 가는 과정이 더 중요한 소설이 아닐까 생각해요.”


『내 이름은 술래』 안에서 광식이는 노인 박필순을 향해 끊임없이 말한다. 세상이 아름답고, 살아있는 게 아름답다고. 그런 광식이를 두고 작가는 ‘가장 아프고 가장 좋아했던 캐릭터’라고 말했다. 자신에게도 광식이와 같은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독자들은 광식이를 중간에 죽은 사람으로 읽을 수도 있고, 끝까지 죽지 않고 박필순이라는 인물 옆에 있는 친구라고 볼 수도 있을 거예요. 그 부분은 독자의 해석에 맡겨 놓고 싶었어요. 제가 워낙 이 캐릭터에 애정이 많아서 누군가가 그렇게 읽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거든요. 광식이라는 캐릭터는 끊임없이 누군가에게 인생은 아름답다고 말해주는 존재로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 바람은 누구에게든 광식이 같은 존재가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광식이에 대한 작가의 애정을 통해 짐작해볼 수 있는 것은 『내 이름은 술래』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다. 살아있는 이 순간이 아름답다고 말해주는 이의 곁에 머무르는 것, 혹은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 주는 것. 그것은 어쩌면『내 이름은 술래』안에서 찾게 되는 희망의 단서일지도 모른다. 상처받은 이들의 이야기가 이토록 따스하게 느껴질 수 있는 것은 아마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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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아름다워’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죽은 것처럼 살아있는 노인도 결국은 그 사실을 깨닫게 되는 데에서 끝이 나고, 술래와 아버지의 관계도 결국 그걸 서로에게 확인시키면서 끝난다고 생각하거든요. 거기에서부터 이야기는 다시 시작되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생은 아름다워’라고 느끼는 순간 어떤 이야기는 끝나지만, 그 이야기가 끝나면 다음 이야기가 또 만들어질 수 있지 않을까요. 누군가의 입을 통해서 그런 얘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광식이라는 인물을 통해서 뜬금없이 ‘아름다워, 아름다워’ 라고 얘기하는 거고요. 결국은 작품 속에 등장하는 모두가 그걸 확인하게 되는 얘기라고 할 수 있죠.”


 악몽 같은 현실 속에서도 우리를 살아가게 만드는 힘은 다정하게 어깨를 흔드는 손길과 뒤이어 전해지는 ‘괜찮아, 다 괜찮아’라는 따뜻한 음성이다. 김선재 작가의『내 이름은 술래』는 그렇게 온기를 나누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이야기를 통해서 작가는 주변부에 머무르며 중심부를 동경하고, 중심부에 머무르며 주변부를 경계하는 삶을 살아가는 이의 등을 다정하게 쓰다듬는다. 


 아빠는 그때마다 나를 세게 흔들어 깨웠다. 악몽은 누군가 곁에 있는 사람이 깨워줘야 하는 잠이라고 했다. 그래서 사람은 혼자 잠들면 안 된다고, 혼자 사는 건 악몽 같은 일이라고 했다. 나는 아직도 아빠의 그 말이 슬퍼서 목이 메곤 한다. 내가 없으면 누가 아빠를 깨워줄까. 혼자 잠들고 혼자 일어나야 하는데. 그럼 사는 게 매일매일 악몽일 텐데. 노래를 불러줄 사람도 없을 텐데. 잠에 취한 채 일어나 비틀거리며 물을 떠다줄 사람도 없을 텐데. 그러니 아빠에게는 내가 필요하고 나에게는 아빠가 필요하다. 우리는 그런 사이다. (내 이름은 술래, 5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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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술래』의 주인공 술래는 자신의 이름에 담긴 뜻처럼 “잘 안 들리는 소리나 잘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고 들을 수 있기 위해” 죽은 듯 살아가는 이들의 곁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작가 김선재는 한 사람의 술래를 자청해 잊어버리고 잃어버린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이야기와 만난 이들은 어떤 모습의 술래가 될까. 잊고 싶어서 잊었고 그래서 끝내 잃어버린 우리의 이야기를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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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술래김선재 저 | 한겨레출판
시인이자 소설가인 김선재의 첫 장편소설 『내 이름은 술래』가 출간되었다. 촘촘한 심리 묘사와 탄탄한 서사, 시적인 문장과 간결한 문체로 인정받은 그의 소설 세계는 첫 장편소설에서도 어김없이 발휘된다. 이 소설에는 이 년 만에 집으로 돌아온 열 살 소녀 술래, 언제나 술래와 다정한 대화를 나누는 아빠, 고향을 잃어버린 탈북 소년 영복이, 아파트에 둘러싸인 채 고물 더미가 가득한 집에서 혼자 사는 노인 박필순과 담을 타고 필순의 집으로 들어온, 어린아이 같은 노인 광식이가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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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체사진가 권오철이 말하는 ‘현명하게 꿈꾸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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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꿈이 없다면 인생은 오아시스 없는 사막이다. 그 꿈은 거창할 수도, 소박할 수도 있으나 일상에서 느끼는 고단함을 견디게 해 주는 게 바로 꿈이다. 사회가 건강하기 위해서는 다양성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개인의 꿈은 각각 다양하면 다양할수록 좋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고 한다. 많은 사람이 막연하게 많은 수입과, 높은 사회적 위치를 꿈꾼다. 기성세대의 사고는 아이에게 전해져, 요즘은 어린 학생 중 일부도 ‘연봉’이 곧 ‘꿈’을 의미한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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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세태가 권오철 사진가가 『진짜 너의 꿈을 꿔라』를 쓰게 만들었다. <SBS 스페셜 - 오로라 헌터>가 소개한 뒤로 많은 사람에게 알려진 그는 오로라 사진가, 천체 사진가로 유명하다. 대학 때부터 천문학이나 사진을 전공했으리라는 예상과는 달리, 그의 대학 전공은 조선해양공학이다. 졸업하고 나서도 그가 간 곳은 암실이나 천문대가 아니라 회사였다. 꽤 오랜 시간 회사에서 일하며 안정적이면서도 높은 수입을 얻었지만 행복하지는 않았다. 회사를 관두고 천체사진가로 살기로 했다.

 

천체사진가로 전직한 뒤 수입은 줄었다. 그렇지만 행복했다.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 덕분이었다. 그의 사진도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하며 NASA에서 선정하는 ‘오늘의 천체 사진’에 한국인 최초로 뽑히기도 했고, 그가 찍은 천체 사진은 내셔널 지오그래픽, 초중고 과학 교과서에도 실렸다.

 

인터뷰 도중 권오철은 자신을 ‘돌아온 탕아’라고 말했다. 그는 학창 시절에는 우등생이었고, 서울대를 졸업했으며 대기업과 벤처 등 다양한 회사에서 직장 생활을 겪었다. 성적이 좋기도 했지만 학생 시절에는 학과 공부 외에도 별과 사진에 빠졌다. 대학 시절을 천체 동아리에서 시작해 천체 동아리로 끝났다고 할 정도였으니.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회사 생활을 마치고 처음부터 하고 싶었던 일을 하는 중이다. ‘돌아온 탕아’라는 비유가 과히 틀리진 않았다.

 

꿈 대신 연봉을 말하는 중학생

 

천체사진가 권오철이 낸 책이라고 하면, 왠지 사진에 관한 내용일 것 같은데요. 이번에 나온 책은 청소년에게 전하는 인생 선배의 조언 같습니다. 『진짜 너의 꿈을 꿔라』는 어떻게 쓰게 되었나요?

 

아들이 초등학교 2학년인데요. 대화하면서 느끼는데, 예전이나 지금이나 아이들이 ‘꿈’을 막연하게 꿉니다. 과학자, 대통령, 이런 식이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잘 하는지 알지도 못하면서요. 이렇게 막연하게 꿈을 꾸니까, 대학 갈 때도 막연하게 전공을 정하고, 전공과 상관 없는 직업을 택하죠. 교육이 낭비되고 있어요. 진로나 꿈에 관한 교육을 잘못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진짜 너의 꿈을 꿔라』가 막연하지 않은 꿈을 가지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막연하지 않은 꿈이라고 하면, 구체적인 꿈일 텐데요. 구체적인 꿈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들에게 “너 뭐 먹고 싶니”라고 물으면 먹어본 것 중에서 이야기해요. 직접 경험이든 간접 경험이든 자기가 어느 정도 아는 범위 내에서 답하죠. 꿈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꿈을 구체적으로 정하기 위해서는 경험의 틀을 넓히는 게 중요합니다. 해 본 게 많아지면 좋아하는 것을 찾을 수 있습니다. 좋아하는 것을 하다 보면 다른 경험도 자연스레 접하고요. 저는 처음에는 벌레를 좋아해서 벌레를 쫓아다니다, 조류로 관심사가 바뀌었죠. 벌레를 좋아했다 새를 좋아하는 건 성장이라고 봅니다. 책에도 썼지만 경험이 쌓이고 접한 게 많아지면 내 꿈이 구체화되어 갑니다. 내가 무엇이 되겠다는 생각을 굳이 할 필요가 없죠. 하고 싶은 것을 충분히 다 누려 보고, 그 과정을 만끽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내가 원하는 나’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어른, 기존 세대가 원하는 나사 같은 존재가 아니라, 진정으로 ‘내가 원하는 나’ 말이죠.

 

기업 강연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도 종종 강의를 하잖아요. 자연스레 어린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도 있을 듯합니다. 요즘 청소년은 어떤 꿈을 많이 꾸나요?

 

사실 이 책은 제가 먼저 쓰겠다고 해서 쓴 책은 아닙니다. 아직 40대에 내 인생은 이랬다, 이렇게 하기가 다소 민망하잖아요. 출판사에서 먼저 내자고 연락이 왔어요. 마침 우연이 겹치듯, 제가 한 중학교에 진로 관련하여 강의를 하게 되었죠. 그곳에서 천체 사진을 좋아해서 회사를 관두고 지금은 사진가로 살고 있다, 좋아하는 일을 해서 행복하다고 이야기했어요. 강연이 끝나고 나서 질문을 받는데, 그 질문이 ‘연봉은 얼마나 되요?’였어요. 회사 다닐 때 얼마를 받았다고 하니, ‘우아’, 지금은 그보다 절반 정도 번다고 하니까, ‘아’ 하더라고요. 요즘 중학생은 옛날과 많이 다르구나, 하고 느꼈는데요. 그런데, 그 중학생이 연봉 몇 천, 이런 개념을 알까요?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젊은 사람의 사고에 문제가 있을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어른들이 원하는 꿈은 주로 돈을 많이 벌거나 지위가 높은 꿈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돈이 많으면 행복해질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나는 그건 돈이 많다는 결과만 가지고 봤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돈을 쓸 때는 기분이 좋다. 내가 원하는 걸 가질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 돈을 벌기 위해 보낸 시간들을 한 번 생각해 보자.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시간이 즐겁고 행복하지 않는데, 인생이 행복해질 수 있을까? 사실 돈을 쓰는 시간은 짧지만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시간은 아주 길다. 긴 시간을 내가 원하지도 않는 일을 하면서, 정작 내가 갖고 싶은 것을 사는 즐거움은 아주 짧게 누리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선택이다.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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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문제는 기성 세대의 문제이기도

 

사실, 한국의 많은 문제가 돈을 인생의 최우선 가치로 두면서 생긴 게 아닐까요? 그런 면에서 어릴 때부터 물질 위주의 사고를 한다는 데 문제가 있겠네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사회 분위기가 바뀌는 건 사람들이 생각을 바꾸는 게 아니라 예전 방식대로 사고하던 사람이 사라지고 새로운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자라기 때문이라고요. 젊은 사람들이 바른 생각을 해야 우리나라가 좋아질 텐데, 지금 젊은 세대들이 극우화되는 문제도 있고요. 우리나라 사회가 좀 더 좋아지려면 젊은 친구들이 기존의 잘못된 생각을 깨야 합니다. 책에는 실리지 않았지만 ‘학교를 깨고 나와라’는 말도 초고에는 적었어요.

 

기성세대, 부모세대의 잘못된 교육도 문제가 있지 않을까요?

 

친구 중에 의사 부부가 있는데요. 둘 다 의사니, 돈이 많죠. 그런데 돈을 쓸 시간이 없어요. 그래서 차를 사도 외제차를 사고 옷을 사도 비싼 옷을 사요. 소비에서 만족감을 얻죠. 그것까진 괜찮다고 쳐요. 그런데 아기가 둘인데, 베이비시터에 맡겨요. 둘 중 한 명만 벌어도 충분한데 정작 자식은 다른 사람 손에 맡기고 있잖아요. 그렇게 살아요. 돈이 많아도 돈을 더 벌려고요.

 

서울대학교를 졸업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공부법에 관한 질문도 종종 받을 것 같은데요.

 

공부법은 따로 있는 게 아니고요. 책에도 나오지만, 공부를 잘 한 원인 중에 하나는 책을 많이 읽어서입니다. 공부는 곧 읽는 습관이에요. 그런데 한국인은 책을 안 보죠. 선진국일수록 읽기 훈련을 많이 시켜요. 그림도 거의 없고 텍스트만으로 되어 있는 두꺼운 책도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을 어릴 때부터 기르거든요. 인터넷 시대 이후에 우리는 웹페이지 스크롤 한 번 정도 되는 분량에 익숙해졌는데 지성을 쌓으려면 그걸 뛰어 넘어야 해요. 지금은 아들에게 사 주려고 찾아봐도 없던데요. 제가 어릴 때는 대백과 사전이 있었어요. 계몽사 10권짜리 세계 대백과 사전. 그걸 걸레가 될 정도로 읽었어요. 제가 가진 세계관은 그때 대부분 형성됐죠.

 

『진짜 너의 꿈을 꿔라』가 선생님 인생에 관한 책이기도 한데요. 짧게 선생님 인생을 돌아본다면?

 

나기는 서울, 자라기는 경남, 학교는 부산에서 다녔어요. 서울대에서 가서는 천체 동아리에 가입했는데요. 동아리에서 시작해서 동아리로 끝났죠. 사진도 많이 찍었고 술도 많이 마셨습니다. 대학 졸업한 뒤로는 대기업에도 다녔고, 벤처 회사에도 갔다 결국 사진가로 돌아왔습니다. 천체 사진도 딥스카이까지 찍어 보고 지금의 사진으로 돌아왔어요. 돌아온 탕아죠. (웃음)

 

천체 사진은 망원경으로 찍을 수 있는데, 일반 카메라와 렌즈로만 찍은 이유가 궁금합니다.

 

책에도 썼는데요. 망원경으로 찍는 게 별로 재미가 없어요. 그리고 잘 찍으려면 장비가 엄청나게 비싸요. 망원경 한 대가 중형차 한 대 값입니다. 그 장비를 사서 찍는다고 해도 허블 우주 망원경과는 게임이 안 되죠. 왜 계란으로 바위 치기를 해야 하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사진은 내가 좋아해서 찍는 것인데, 그 사진에는 의미가 있어야 하잖아요. 망원경으로 찍은 사진에서는 그런 의미를 못 찾겠더라고요. 그래서 초보나 찍는다는 일반 카메라와 렌즈로 풍경 사진 느낌 나는 천체 사진을 찍었죠. 한때는 초보자나 찍는 분야로 인식되었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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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전염성, 회사 관두고 행복해

 

대기업을 다니다 사진가로 전직을 결심했을 때 주변에서 말리지는 않았나요?

 

안 말렸다면 거짓말이고요. 좋아하지는 않았습니다. 생계 걱정이 크죠. 지금 어느 정도 회복했다고 해도 대기업에서 받던 때에 비하면 수입이 절반 정도에요. 특히 사진가로 전직한 직후 수입이 확 떨어졌죠. 그런데 지금은 주변에서 오히려 더 좋아합니다. 제가 행복하게 사니까요. 행복이 전염됩니다. 대한민국은 회사에 다니면 본인을 위해 쓸 시간이 없으니 노예 상태가 되는데요. 제가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서 굶지 않을 정도로 돈을 버니까 행복해요. 가족이 함께 행복해졌어요.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청소년뿐만 아니라 30~40대가 읽어도 좋겠네요.

 

타겟은 중고등학생인데. 20대가 더 많이 산다고 하더라고요.

 

회사원으로써 삶은 어땠나요?

 

최악이었죠. 『미생』에 보면 회사의 본질을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거기서 회사는 결국 사람이라고 말하죠. 회사가 안 좋다는 의미는 상사가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에요. 그런 면에서 본다면 저는 별로 좋지 않은 회사에서 별로 좋지 않은 상사와 일했어요. 그런데 제 상사가 안 좋아서라고 말할 수 없는 게, 기업 문화는 결국 가장 위에서부터 만들어지거든요. 한국 기업 문화는 일본의 식민지 시기, 착취하던 기업 문화가 아직 남아 있어요. 자국민을 상대로 했다면 그러지 않았을 텐데, 식민지 사람을 채찍질하던 문화가 지금까지 온 것이죠. 직원이 아니라 노비로 대하는 회사도 많잖아요. 그러니까 직장 만족도를 조사하면 서구 선진국은 80퍼센트 넘게 만족하는데 한국은 다니는 회사에 만족하는 비율이 10퍼센트도 안 되죠.

 

그렇다면, 선진국처럼 기업 문화가 앞섰다면 회사를 관두지 않으면서도 사진가로 활동했을까요?

 

그런 사회였다면 굳이 회사에 들어가지 않았겠죠. 우리나라는 회사에 안 다니면, 굶어 죽지 않을까 고민하는데요. 캐나다의 브리티시 콜롬비아에 가면 사람들이 언제 일할지 궁금할 정도에요. 낮에 가도 젊은 사람들이 조깅하고 있거든요. 우리는 낮에 가면 거의 노인들밖에 없잖아요.

 

사진은 찍고 나서 꼭 인화할 것

 

초등학생 아들과는 어떻게 지내나요?

 

책에 나온 아버지가 내 이야기처럼 되어 가고 있는 것 같아요. 어렸을 때 해 보고 싶은 것들을 아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레고를 쌓는다든지, 복싱을 한다든지, 축구 보드 게임을 한다든지, 스폰지로 만든 칼로 칼싸움을 한다든지요. 아들을 보습 학원에 보낸 적이 없고, 앞으로도 그럴 일이 없을 겁니다.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 남학생이 130, 140명 정도 있는데요. 보습 학원 안 다니는 학생이 2명인가 3명밖에 없대요. 학교에 그런 애들이 많으면 학원 안 다니는 애들끼리 모아서 놀게 할 텐데 너무 없어요. 그게 좀 아쉬워요. 초등학교 1학년이 8시, 9시까지 공부하고 와요. 대한민국이 미쳐가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저런 애들이 커서 행복한 어른이 될까요? 초등학교 때부터 야근에 익숙해지는 환경을 마련하는 거예요.

 

사진 인구가 늘고 있는데요. 사진 찍을 때 염두에 둘 팁을 소개해 주신다면?

 

요즘 사진이 디지털로 넘어가면서 인화를 안 하잖아요. 하드디스크가 날라가면 없어져요. 뽑아 두세요. 그리고 무작정 찍지 말고 자신에게 제일 소중한 걸 찍으세요. 가족사진이라도 많이 찍는 게 남아요. 마지막으로 정말 중요한 순간에는 사진을 찍어야 할지, 눈으로 봐야 할지를 생각해야 해요. 학부모 행사에 가면 다 휴대폰으로 사진 찍고 있는데요. 핸드폰 사진이 잘 나오지도 않는데, 눈으로 보면 될 걸 그러고 있어요. 순간을 못 즐기는 방법이죠. 사진이 너무 보편화되다 보니 주객이 전도되는 일도 생겨요. 정말 소중한 순간은 눈으로 즐기세요.

 

끝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이 책에 쓰려다 빠진 내용인데요. 학교가 학생 개인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고 구조에 필요한 나사를 만들기 위해 존재하잖아요. 교육은 기득권 체제에 편입시키기 위해 있지, 개인의 행복을 위해 존재하지는 않아요. 공부를 잘할 필요는 있지만, 행간을 읽었으면 합니다. 사회가 만들어 놓은 교육은 개인을 야근 잘하고, 고분고분하게 일하게 만들도록 짜여졌어요. 스스로 행복하기 위해서는 고민할 필요가 있어요. 배부른 돼지가 될래,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될래, 하는 물음을 던졌으면 좋겠어요. 굶지만 않으면 좋아하는 일을 해야 행복합니다. 그래서 저도 오로라 보고 와서 회사를 관뒀습니다. 그리고 좋아하는 일을 하려면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할 때가 있어요. 학교 공부가 싫어도 원하는 전공을 공부하기 위해서는 해야죠. 기회는 준비된 사람에게만 찾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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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너의 꿈을 꿔라권오철 저 | 명진출판
이 책은 ‘어떻게 꿈을 꿔야 하는지 그 방법을 모르겠다’고 묻는 청소년들의 질문에 대한 아주 구체적인 대답이다. 꿈과 진로를 다르게 생각해 긴 시간을 돌고 돌았던 저자는 그만큼 꿈에 대해 청소년들에게 해 줄 이야기가 많다. 자신의 꿈인 ‘별’과 ‘사진’으로 ‘천체사진가’라는 직업을 만들어 이제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위치에 오른 저자는 “꿈과 진로가 일치되어야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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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현 “완벽한 부모야말로 최고의 재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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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초등학생 두 아들을 둔 하지현 건국대 정신과학교실 교수. 그의 아내는 결혼 후에 남편이 아이를 좋아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가장 의외라고 했단다. 아이를 키우면서 사람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하지현 교수가 육아서엄마의 빈틈이 아이를 키운다』를 펴냈다. 그간 심야 치유 식당』,  사랑하기에 결코 늦지 않았다,청소년을 위한 정신의학에세이예능력도시심리학』 등 다양한 저서를 썼지만,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를 위한 육아서는 처음이다. 『엄마의 빈틈이 아이를 키운다』는 지난해 네이버 캐스트에 ‘부모를 위한 심리학’이라는 주제로 연재했던 글을 토대로 새롭게 집필한 책이다. 1부에서는 부모가 되기 힘든 이유, 2부에서는 부모와 아이의 관계를 개선하는 방법, 3부는 10대의 심리를 이해하는 내용, 4부는 아이와 부모가 처한 환경의 문제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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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현 교수는 네이버에 글을 연재하던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댓글이 하나 있다. “우리 엄마가 봐야 해요”라는 10대 학생의 글. 부모를 위한 연재였지만, 의외로 10대 독자도 많았다. 부모만큼이나 아이들도 부모를 이해하고, 자신의 마음을 이해 받고 싶어 했어 했다. 『엄마의 빈틈이 아이를 키운다』는 10대 부모들이 읽으면 가장 좋을 책이지만, 자녀가 10대가 되기 전 읽어두어도 좋다. 자연스레 겪을 자녀의 사춘기를 당황하지 않고 맞이하고 싶다면 말이다.

 

나를 찾아오는 엄마들은 대부분 빈틈없고 야무진 엄마, 아내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그러나 삶에는 빈틈이 필요하다. 빈틈이 있어야 숨통이 트인다. 빈틈이 있다는 말은 한편으로는 웬만한 공간은 다 채워졌다는 뜻이 아닐까? 살짝 빈틈이 있어야 인간다운 법이다. 빈틈이 있어야 삶의 방식을 재배치할 여유가 생긴다. 이 책을 통해 빈틈이 있어야 하는 이유, 그리고 빈틈을 살짝 비틀어 자리를 조정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상황이 개선될 수 있다는 점을 발견하기를 바란다. 나는 가족 구성원 모두가 각자 뭔가에 몰입하며 삶을 즐겁게 살 때 최고의 팀워크가 발휘된다고 믿는다. 너무 고민하지 말자. 아이에게 가장 좋은 롤 모델은 재미있게 사는 부모의 모습이다. 자기 인생이 재미있어지면 아이에 대한 고민은 줄어들고, 빈틈 중에서도 ‘엄마로서의 빈틈’은 상대적으로 적어진다. - 『엄마의 빈틈이 아이를 키운다』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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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부모는 아이를 필요로 하지 않는 부모


10대 청소년을 자녀를 둔 부모를 위한 육아서는 처음 쓰셨습니다. 특별히 사춘기 아이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가 있나요?


2005년에 『전래동화 속의 비밀코드』란 책을 쓴 적이 있습니다. 부모가 전래동화를 가지고 어떻게 육아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썼죠. 그 때 제 아이들이 4세, 9세였습니다. 아무래도 아이들하고 어떤 놀이를 하면 좋을까를 궁리하다가 썼던 책이죠. 지금 두 아들은 초등학생, 고등학생이 됐습니다. 아이들이 겪은 사춘기의 변화라는 부분이 제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또 병원에서 만나는 상당수의 환자들이 중고등학생입니다. 대학생들조차도 정체성, 독립, 부모와의 관계 문제 등 청소년 때의 이슈를 아직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고요. 책을 찾아보니, 3세부터 7세 아이를 둔 부모들을 위한 책은 많은데 10대에 대한 이야기는 무척 드물더라고요. 10대 아이들의 문제점을 말하는 르포 형식의 글은 많지만, 해결책을 주는 책은 찾기 힘들었어요. 그래서 우리 아이들을 키우면서 겪었던 이야기, 또 환자들의 이야기를 세밀하게 들여다봐야겠다고 생각했죠.

 



책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좋은 부모는 아이를 필요로 하지 않는 부모’라는 이야기입니다. 오히려 아이에게 의존하고 있는 부모들이 많다는 지적인데요.


병원에서 상담을 하다 보면, 아이들이 변화하는 경우도 있지만 부모가 아이에게 갖고 있는 기대치, 기준점이 달라져서, 아이가 편안해지고 나아지는 면도 많아요. 가장 나쁜 부모의 모습 중 하나가 자기 기대를 아이에게 투사하는 부모에요. 자기가 못했던 것을 아이가 해주길 바라고, “내가 너 때문에 얼마나 희생하고 사는 줄 아냐”고 보채고 경쟁사회 속에서 부모들은 자기들의 미래를 포기하면서 살고 있는 거예요. 은퇴 후 노후자금을 아이들에게 모두 쏟아 붓고 있는 거죠. 좋은 부모는 아이를 필요로 하지 않는 부모에요. 내 인생이 너무 재밌으면, 내가 더 중요해서 아이가 절대적으로 중요하지 않아요. 그러면 아이들은 편해지고요. 부모들이 이런 이야기를 자주 하죠. ‘내가 너를 위해 이렇게 희생했는데, 넌 왜 나한테 이렇게 대하냐”고. 이런 말을 하는 거 자체가 옳지 않아요. 모순적인 일이죠.

 

부모의 불안이 큰 문제입니다. 경쟁사회이다 보니, 내 아이가 조금이라도 뒤쳐지면 완전히 뒤쳐질까 걱정하고요. 더 잘해주지 못한다는 것에 대한 강박관념도 크고요.


어떤 부모는 아예 포기해버린 부모들도 있고, 반대로 너무 기대가 커서 문제인 경우도 많죠. 대부분은 기대를 지나치게 한다는 게 문제가 돼요.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합리적인 수준의 전략을 짤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중요하죠. 우리나라 부모들의 또 다른 특징은 내 아이를 ‘나의 확장된 자아’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마치 시험을 보듯이 아이를 키우고 있어요. 조금 관심을 줄여도 방임이 되지 않아요. 특히 고학력, 경력 단절 여성들이 전업주부가 됐을 때, 자기의 발전을 아이에게 올인 하는 경우가 많죠. 부모가 자신을 위한 시간을 다양하게 갖는 게 중요해요. 부모가 불안해하면 아이도 느끼는 법입니다. 아이가 잘못되는 것보다 무서운 건, 자신이 부족한 엄마여서 아이를 망치고 있다고 여기는 좌절감이에요. 필요 이상의 압박감에 시달리거나 막막해할 필요는 없어요. 아이에게 쏟을 에너지를 부모 자신의 삶에 쏟으려고 노력하는 게 중요해요. 부모가 하루하루 즐겁게 살면서 자신의 일상에 만족하는 것만큼 좋은 자녀교육은 없어요.

 

교수님도 자녀가 사춘기를 겪을 때, 부모로서 갈등도 많았을 텐데요. 무엇이 가장 힘들었나요?


사춘기가 찾아오면 옛날에는 그냥 넘어갈만한 사소한 문제도 바락바락 대들고, 감정이 시도 때도 바뀌지요. 우리 둘째 아이는 끝없이 논쟁을 하려고 했어요. 부모가 보기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가지고 계속해서 토론하려고 들고 그래요. 아이들이 8세가 되면, 자기 신체 발달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욕망이 생겨요. 12세가 넘으면, 자신의 지적 수준을 과시하고 싶어하고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구가 많아지죠. 자연스러운 행동이에요. 아이는 한편으로는 노는 건데, 부모들은 귀찮아하고 짜증을 내니 싸우게 되죠. 아이가 끊임없이 쓸데 없는 이야기를 하려고 든다고 해도, 부모는 잘 들어주는 게 중요해요. ‘피곤해 죽겠는데 왜 답도 아닌 이야기를 자꾸 물어?’ 이런 생각보다는 아이가 발달하고 있다는 점에 관심을 보여주는 게, 논술학원을 보내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교육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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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방송가에서는 아빠 육아 프로그램이 한창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긍정적인 면이 많지만, 한편으로는 아빠들의 부담도 커지고 있는데요.


아빠들이 많이 달라졌어요. 주말에는 종일 잠만 자는 아빠 대신, 일찍 퇴근해서 아이들과 함께 놀아주고 주말에는 야외활동을 하는 아빠들이 늘어났어요. 아이와 친구처럼 지내는 아빠가 좋은 아빠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프렌디(friend, daddy의 합성어)라는 말까지 생겨났죠. 이 말이 어디에서 나온 건지 궁금해서 위키피아 등 여러 군데를 찾아봤는데 한국에서 만들어진 조어더라고요. 친구 같은 아빠가 되는 건, 좋다고 생각해요. 다만 친구 같은 아빠가 ‘친구’가 될 수 없다는 점은 분명히 해야죠. 아빠의 역할, 엄마의 역할은 따로 있고, 아빠는 권위적일 필요는 없지만 권위는 있어야 하는 존재거든요. 아빠가 남성성, 권위 체계에 대한 롤 모델이 되어야, 아이들이 선을 넘지 않고 사회관계망을 가질 수 있어요. 엄마가 아이의 상처를 치유해주는 베이스캠프 역할을 한다면, 아빠는 방향을 제시하고 넘어서는 안될 선과 사회적 규율을 내재화해서 훗날 아이가 독립된 성인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내용을 일러주는 ‘선배’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해요.

 

사춘기 아이들은 부모와 대화하는 걸 무척 꺼립니다. 귀찮아 하고요. 이럴 때는 부모가 어떻게 다가가면 좋을까요?


집안의 대소사를 함께 이야기하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집안에 중요한 일이 생겼을 때 아이에게 의견을 묻는 건, 존중감을 심어줄 수 있어요. 엄마라면 자신의 친구나 시어머니, 친정엄마, 형제자매와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좋아요. ‘엄마도 딸이구나, 동생이구나’ 하고 이해할 수 있죠. 아빠도 마찬가지에요. 아이랑 할 이야기가 없다고 생각하지 말고, 요즘 아빠가 무슨 일을 하고 어떤 사람들을 만나는지를 이야기해주면, 아이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아빠도 고민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돼요. 중요한 건, 신세 한탄이 되어선 안 된다는 거예요. 자기 동기랑 비교하면서 “엄마가 친구보다 입사 성적은 더 좋았는데, 너 낳고 키우느라 회사도 그만두고 집에서 뭐 하는 꼴인지 모르겠다” 같은 말을 하는 건, 절대 해서는 안 될 말이죠.

 

아이에게 정말 해서는 안 될 말이 또 있다면.


아이가 뭔가 잘못했을 때, 사건 사안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너는 왜 그러니? 너는 왜 이 모양으로 생겼니?”라고 추궁하는 거죠. 부모 자기는 아니라는 거잖아요. 이런 이야기는 할 필요도 없는데, 보통 부모들이 입에 달고 살죠.

 

병원에서 상담을 하면서, 가장 답답한 유형의 학부모는 어떤 경우인가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죠. 자기가 생각하는 스토리텔링만 있을 뿐, 실체를 보려고 하지 않는 부모들이 있어요. “전학을 보내야겠어요”, “가해자를 어떻게 처벌해야 하죠?” 이런 문제만 갖고 있을 뿐, 속은 열고 싶지 않은 거예요. 충분히 이해는 해요. 하지만 설득은 안 되죠. 이럴 땐, 더 잘 생각해보고 생각이 나면 다시 오라고 말씀 드리는 경우도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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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손을 내밀 때, 도와주는 것이 중요


책을 보면, “때로는 아이에게 일부러 틀린 답을 제시하는 것이 좋다”고 써있습니다. 이게 과연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을까요?


아이가 찾은 답은 불안합니다. 틀린 답일 수도 있고요. 다만, 가끔은 그럴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아이는 일부러 반항하려고 부모의 말을 작정하고 부정하는 게 아니에요. 자기 세상을 만들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조언이나 충고를 거절하는 건, 독립을 위한 일종의 노력입니다. 부모의 제안이 비록 옳고 확실한 답이라 해도 아이에게는 답을 얻는 것보다 내 세상을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가끔 일부러 틀린 답을 제시하라는 건, 황당한 소리일 수도 있지만 아이들의 현재 마음 상태와 판단의 근거를 고려하면 납득할 수 있습니다. 만약 맞는 답을 제시해서 아이가 그것을 받아들인다면 아이 입장에서 그 결정은 부모 것이지 자기 것이 아닙니다. 부모의 뜻을 따르면서도 마음이 편치 않고 부모에게 복종했다고 여기기 쉽죠. 이런 갈등이 일어나지 않으려면, 부모가 생각하기에 틀린 답, 혹은 최적이 아닌 답을 먼저 제시하는 게 필요합니다. 그러면 아이는 “이건 아니에요”라면서 자기가 주도권을 쥐었다고 여기죠. 이때 부모는 옳다고 생각하는 답을 아이가 직접 찾아낼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겁니다.

 

칭찬에도 기술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셨는데요. 결과보다 아이가 노력한 ‘과정’을 칭찬하고, 완벽을 의미하는 ‘늘’ ‘항상’ ‘언제나’와 같은 표현은 자제하는 것이 좋다고요.


적절한 칭찬은 아이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게 합니다. 채찍이 그 자리에 머물지 않고 계속 나아가게 하는 외적동력이라면, 당근은 방향을 제시하고 지속할 수 있는 내적동력이죠. 한편, 부모가 무심코 하는 칭찬이 역효과를 불러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 딸은 늘 정직해”, “우리 아들은 항상 말을 잘 들어”와 같은 칭찬은 완벽을 의미하기 때문에 아이에게는 자칫 부담스러울 수 있죠. 또 칭찬과 꾸중을 함께 해야 하는 경우는 야단을 먼저 치고 그 다음에 칭찬을 하는 게 낫습니다. 칭찬을 먼저 하고 꾸중을 나중에 하면, 칭찬받은 내용은 머리에서 다 잊어버리고 야단맞은 내용만 기억하기 쉽습니다.

 

무슨 말을 해도 짜증을 내고 고집을 피우는 아이에게는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현명한가요?


일단 꼭 해야 할 말만 하고 가만히 지켜보는 겁니다. 아이의 감정이 가라앉으면 그때 대화를 시도해야 합니다. 아이의 고집은 오래 가지 않아요. 감정을 누그러뜨리고 이성을 되찾았다 싶으면, 조금 전에 있었던 일을 복기하고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차분하게 물어보는 게 좋습니다. 아이도 자신의 행동에 대해 난감해하고 있기 때문에, 이때 부모가 비난하면 다시 전투 모드로 무장한 어린 자아가 나섭니다. 부모가 적극적으로 대화할 대상은 건강하고 성숙한 자아입니다. 멀쩡하던 아이가 갑자기 감정적인 행동을 보일 때, 중요한 건 아이에게 문제가 생겼거나 성격에 문제가 있다고 섣불리 단정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이 시기를 잘 지나 성숙한 자아를 보일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이 부모의 몫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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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문제로 갈등을 겪는 부모와 10대 아이들도 많습니다. 사주자니 불안하고, 안 사주면 친구들 사이에서 소외감을 느낀다고 하니, 쉽게 결정을 못합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는 사주지 않는 것이 최선입니다. 초등학생 때까지는 자기절제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스마트폰을 사주고 적당하게 쓰라고 하는 건, 테이블에 고기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옆에 있는 야채도 골고루 먹으라는 꼴과 같습니다. 친구들이 다 있으니까 우리 아이도 사줬다는 건, 부모로서의 책임을 방기하는 일입니다. 가끔 아빠가 쓰던 걸 물려받았다는 아이들이 있는데, 그건 엄마가 쓰던지 다른 식구가 써야 합니다.

 

아이에게 가장 좋은 롤 모델은 ‘재미있게 사는 부모의 모습’이라고 말했습니다. 최악의 부모는 어떤 모습인가요?


완벽한 부모야말로 자식에게는 최고의 재앙이죠. 도저히 아빠를 넘어설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면, 아이가 무슨 노력을 하겠어요. 요즘 20대 학생들을 두고 정말 불쌍하다고 말하잖아요. 제가 학생일 때만해도 조금만 노력하면 부모 세대보다 나아질 확률이 70% 이상이었어요. 386세대들은 부모보다 더 좋은 세상을 살 수 있을 거란 확신이 있었죠. 그런데 지금은 거꾸로 됐죠. 취업조차 힘드니까요. 예전에는 대학교 졸업하고 딱히 취업공부를 하지 않더라도 취직이 잘됐는데, 이제는 백수 신세를 면하는 것조차 힘들고 ‘성공’은 정말 하늘의 별 따기죠. 아이들이 갖는 좌절감이 정말 커요. 부모가 너무 완벽한 모습만 보이려고 하면, 아이들은 지쳐요. 지식을 많이 아는 것보다 부모의 열린 마음과 태도가 중요합니다.

 

가장 현명한 부모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요?


아이가 손을 내밀 때, 도와주는 부모입니다. 부모는 항구가 되어야죠 폭풍이 치고 너덜너덜해질 때, 아이들이 항구에 들어왔다 쉴 수 있어야 합니다. 언제든지 열려있고,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언제나 내 편이 있다는 거, 정말 든든하잖아요. 그런 존재가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죠.

 

자녀를 성장시킬 수 있는 부모의 빈틈, 교수님에게도 있나요?


물론 있죠. 우선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상황은 아니고요. 하지만, 시간은 양이 아니고 질이에요. 퀄리티 타임(quality time)이라고도 하죠. 어떤 엄마는 하루 종일 아이랑 같이 있었다고 해놓고, 자기는 요가를 하고 있어요. 이건 아이와 함께한 시간이 아니죠. 저에게 빈틈은, 완벽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점일 것 같네요. 빈틈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인정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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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빈틈이 아이를 키운다』는 어떻게 읽으면 좋을 책일까요.


아이의 반항이 시작돼서 힘들 때 읽어도 좋고, 다가오기 전에 미리 읽어둬도 좋을 거예요. 다만 책을 읽고 지식이 생겼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태도의 변화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를 테면, “아이가 반항을 할 때, 화를 내지 않게 됐어요”, “혼자 울고 있지 않게 됐어요”, “아이가 회장선거에 떨어져도 분하지 않게 됐어요” 같은 변화가 있으면 좋겠죠. 부모로서 내가 어떤 태도를 가지고 변화할 수 있다는 느낌을 갖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부모로서 아이의 삶을 바라보는 태도가 조금이라도 변한다면, 가치가 있을 거예요.

 

부모가 아이를 키우지만, 아이만 자라는 것이 아니라 부모도 함께 성숙한다. 나도 아이와 함께 자랐던 것 같다. 아이는 아이답게, 어른은 어른답게. 이 간단한 원칙을 지킬 수 있을 때, 그리고 각자 자신의 삶에 충실하면서 더 많은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때 부모와 아이 모두 더 나은 삶을 살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다. 렁켈은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부모는 아이를 필요로 하지 않는 부모’라고 했다. 아이의 인생에 집착하기보다는 자신의 인생을 즐겁게 사는 부모는 아이를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인생을 배우게 한다. 그리고 함께 자란다. 놓을 줄 알 때, 책임져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날 때 많은 불안이 사라진다. 세심히 지켜보고, 응원하고, 필요할 때 돕는 것만으로도 부모의 역할을 충분히 하는 것이다. - 『엄마의 빈틈이 아이를 키운다』 318~3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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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빈틈이 아이를 키운다하지현 저 | 푸른숲
정신과 의사인 저자는 진료실에서 마주한 수많은 진료 경험과 풍부한 임상자료를 바탕으로 1)엄마들이 느끼는 불안감의 정체는 무엇인지, 2)아이가 문제 행동을 보이는 이유와 십대들의 발달과정은 어떠한지, 3)아이와 부모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등을, 발달심리와 정신분석학, 풍부한 최신 임상 사례들을 통해 명쾌하게 설명한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단순히 듣기 좋은 소리, 대책 없는 위로가 아닌, ‘왜 엄마가 억지로라도 빈틈을 보여야 하는지’, ‘엄마가 빈틈을 보일 때 아이들의 뇌와 마음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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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노력하면 혼나는 회사 ‘놀공발전소’, 다녀볼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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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시용품 디자인에나 등장할 법한 ‘노력 금지’. 게임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는 ‘놀공발전소’의 진지한 모토다. 놀공발전소는 놀듯이 일하고 놀듯이 공부하고, 일상을 재미있게 만드는 법으로 신나게 밥벌이를 하는 사람들이 모인 회사다. 컴퓨터 모니터 세상이 아니라 현실에서 몸을 움직이면서 하는 게임을 만든다. 게임 프로그램으로 인턴 교육, 기업 마케팅 개발을 지원하기도 하고, 해외 문화원과 함께하는 페스티벌, 클래식 프로그램 등도 진행했다. 놀공발전소 직원들은 일종의 게임 기획자이지만, 문화 창작자이기도 하다.

 

노력은 금하지만, ‘놀력’ 만큼은 충만하다는 ‘놀공발전소’의 이야기를 담은 책 『노력 금지』는 구성부터 독특하다. 필자들의 소개부터 놀공발전소 집기 소개 등 마치 게임을 하듯 읽어야 할 것 같다. 『노력 금지』는 지난해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선정한 ‘우수출판기획 지원사업’ 최우수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2010년 8월 문을 열어 올해로 5년차 기업이 된 ‘놀공발전소’ 사무실은 입구부터 독특하다. 온돌 바닥에 책장에는 만화책, 피규어가 가득하며, 오픈형 주방은 먹을 거리가 풍성해 웬만한 카페와 비교해도 꿀리지 않는다. 직원들의 책상에는 칸막이 따윈 없다. 언제든 간식을 즐기며 자유로이 일한다. ‘놀공발전소’는 왜 ‘놀공’이 되었고, 노력을 금하는 공동체일까? 진짜 회사가 맞는 걸까? 궁금증을 풀기 위해,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위치한 놀공발전소를 찾았다. 회사 내 ‘잠재력’을 담당하고 있는 ‘놀공 1호기’ 피터 리(이승택) 대표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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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즐거운 일이 아니라면 노력은 의미 없다


회사 이름이 ‘놀공발전소’, 슬로건이 ‘노력 금지’다. 너무 과감한 모토가 아닌가? 직원들에게 노력을 금하다니 말이다.


5년 전, 한국에 돌아와 회사를 만들면서 회사 소개서를 쓰는데, 당시에는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이기 때문에 쓸 말이 많지 않았다. 없는 걸 포장하려니까 이것저것 이야기를 끄집어 냈는데, 이게 정말 우리 이야기인가? 싶었다. 우리가 너무 노력하고 있는 것 같아서, 떠올랐던 말이 ‘노력 금지’다. 우리가 원하는 게 뭔가? 그것을 생각하는 가운데 생각난 말이다. ‘노력 금지’는 열심히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진정으로 즐거운 일이 아니라면, 노력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책 제목도 『노력 금지』다. 오해하는 독자들도 많겠다. 이게 과연 회사 이야기인가 싶었다.


출판사에서 놀공발전소에게 출간 제안을 하게 된 이유가 바로 ‘노력 금지’ 때문이다. 놀공이 어떤 회사인지 모른 상태에서, 어디에선가 ‘노력 금지’라는 말을 들었다며 연락을 해왔다(웃음). 이 제목으로 책을 냈으면 좋겠다고 하셨는데, 우리의 반응은 “이게 책이 되나요?” 였다. 직원 4명이 책을 썼는데, 책을 써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라 완성하기까지 최종 1년 정도 걸렸다. 책이 거의 600쪽인데, 초고는 더 많았다. 제목이 ‘노력 금지’인데, ‘책을 쓸 때는 너무 노력한 거 아닌가?’ 싶기도 하다(웃음).

 

『노력 금지』가 놀공발전소의 진짜 회사소개서가 됐다. 책을 읽고, 이력서를 보내오는 취업준비생들도 많다고 들었다.


꽤 있었다. 놀면서 일하고 싶은 분들이 많은 것 같다(웃음). 책 덕분에 회사의 정체성을 조금이나마 알게 됐다는 분들이 많다. 새로운 프로젝트를 제안해오는 경우도 있고. 예전에는 우리 부모님도 ‘놀공발전소’가 무슨 일을 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고 하신다. 베스트셀러도 아닌데, 이 책을 읽고 주변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뿌듯하다.

 

피터 리 대표의 개인 프로필을 보면, 미국 SVA(School of Visual Art)에서 학부를 마치고 NYU Tisch ITP를 수료했다. 졸업 후 잡지사 <TIME>에서 뉴미디어 디자이너로 취업했고 꽤 탄탄한 직장생활을 이어갔다. 그러다 퍼즐 게임이 공모전에 당선되면서, 2000년 뉴욕에 게임 회사를 열었다. 회사도 꽤 성공적이었는데 19년의 미국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왜 한국에서 다시금 창업할 생각을 했나.


<TIME>지도 좋았고 게임 회사, 게임 학교를 연 것도 의미 있었다. 일 자체를 항상 즐기는 편인데, 완전히 만족한 느낌이 아니라 뭔가 비어 있다는 느낌이 있었다. 다른 분야의 일도 해봤고 수익도 꽤 괜찮았지만, 나에게 딱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 게임회사를 창업했는데, 그 때 그 생각이 없어졌다. 나한테 창업이 맞는다는 것보다 내가 뭔가 새로운 걸 생각해서 그 방향대로 가는 게 맞다는 생각이었다. 작더라도 내가 만들어가는 게 의미 있었다. 한국에 올 때만 해도 게임이라는 매체를 디자인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한국에는 없었다. 아직 게임을 제대로 경험한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 생각했고, 가능하다면 많은 사람과 게임을 경험할 수 있는 활동을 하고 싶었다. 마침 국내 아티스트 지원 프로젝트에서 한국 대표로 선발되면서 한국에서 새로운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2010년 귀국했고, 새로운 사람들과 놀공의 터를 다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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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주력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무엇인가.


독일문화원과 함께 괴테의 작품인 『파우스트』를 게임으로 소개하는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있다. 작년에 정신건강박람회에서 소개한 게임 ‘톨스토이가 묻습니다’가 좋은 평가를 받았고, 이 기획을 좋게 본 독일문화원이 제안했다.

‘톨스토이가 묻습니다’는 책에도 소개한 ‘놀공 클래식’의 한 프로젝트다. 고전을 가지고 게임을 한다는 시도가 신선했다. 공 클래식은 2010년, 내가 성균관대학교에서 강의할 때 만난 학생의 아이디어로 시작됐다. 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에 대한 지적으로 시작해, “좋아하는 소재가 게임이 되면 어떨까?” 라는 질문으로 조지 오웰의 『1984』를 게임으로 만들면 재밌겠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고등학생 때 읽은 『1984』는 미래에 대한 디스토피아적인 묘사로 가득한 소설이었지만, 게임 디자이너로 바라보는 『1984』는 언어에 대한 실험으로 가득한 구조적인 소설이었다. 『1984』에 나오는 신어의 개발 원리, 책 속에 등장하는 각종 슬로건과 설정들이 무척 흥미로웠다. 그렇게 시작된 아이디어가 메모리 카드 게임과의 만남으로 이어졌다. 그 외에도 『로미오와 줄리엣』, 『안나 카레니나』, 파우스트』까지 놀공 클래식이 진행됐다. 『로미오와 줄리엣』은 10대 청소년, 30대 직장인을 대상으로 한 서점에서 진행됐다. 이야기 카드를 모으고 미션을 수행하면서 최종 우승 커플을 선정했다. 참여자들의 교감을 보면서 무척 뿌듯했던 기억이다.

 

새로운 프로젝트 제안 받을 때, 어떤 기준으로 일을 선택하나?


일단 우리가 잘할 수 있느냐를 생각한다. 대부분의 기업이나 단체들이 우리에게 제안할 때, 뭔가를 뚜렷하게 구성해서 주는 경우가 없다. 뭔가를 하고 싶은 계획이 있지만 구체적인 실행 방법이 없는 상태로 말한다. 우리는 그 계획을 듣고서, “이런 방법이 있을 것 같다”고 역제안을 한다. 모든 게 새로운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그 전에 했던 것을 그대로 답습하는 경우는 없다. 수익이 중요하긴 하다. 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건, 놀공 식구들에게 의미 있는 일인가에 대한 문제다. 창작자로서 재미를 느끼는 일을 해야 일의 성과도 좋다.

 

게임을 기획하는 회사라는 정체성은 이해됐다. 그런데, 항상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때문에 주력하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헷갈리는 부분이 있다. 놀공발전소의 목표는 무엇인가.


두 가지다. 게임으로 세상을 바꾸는 것, 또 하나는 이름 지어지지 않은 것을 만드는 것이다. 영화가 처음 나왔을 때는 영화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지 않았나. 우리가 만들고 싶은 것은 새로운 문화가 될 것들인데, 아직 이름이 지어지지 않은 것들이다 보니, 설명이 잘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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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은 안 하지만 전력하는 회사


직원들 사이에 직급이 따로 없다. 대신 1호기, 3호기, 8호기 등 호기와 동력 타이틀이 있다. 피터 리 대표는 ‘1호기’이자 ‘잠재력’이다.


처음 놀공발전소를 시작할 때, 직원이 5명이었다. 약간 덕후스러운 느낌으로 시작하는 에너지가 있으니까 각자에게 번호를 붙였다. 그게 전통이 돼서 새로 직원들이 들어오면 호기를 붙여준다. 기본적으로는 순서인데, 몇 명의 경우는 좋아하는 숫자가 있어 그 숫자로 호기를 정했다. 동력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능력이나 갖고 싶은 능력 중에 선택한다. 나는 잠재력이 많았으면, 잠재력을 찾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잠재력’을 갖게 됐다.

 

지금 정식 직원은 몇 명인가?


작년에 책을 쓸 때까지만 해도 5명이었는데, 지금은 정식 멤버가 9명이고 액티브하게 활동하는 분들을 합치면 15명, 다른 직업을 갖고 있으면서 프로젝트 별로 조인하는 분들까지 합치면 40명 정도다.

 

직급이 없으면 상사와 부하 관계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인데, 일을 진행하는데 어려움은 없나?


직급은 없지만 경력에 대한 부분은 인정한다. 굳이 직급으로 나누지 않을 뿐이다. 직급으로 직원들을 부르면, 상하관계가 분명해져 회의를 할 때도 모두 동일하게 의견을 내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우리 일은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직급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놀공발전소의 회의 분위기도 궁금하다.


다른 회사처럼 책상에 둘러앉아서 하는 회의도 있고, 밖에 나가서 움직이면서 아이디어를 찾는 경우도 있다. 기본적으로는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다. 막말을 해도 괜찮은 분위기. 기본적으로 말을 할 때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머뭇거리게 되는데, 우리는 모두가 공평하게 말할 수 있는 구조를 추구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서로를 존중하고 신뢰할 수 있어야 한다. 인턴이 들어와도 마찬가지다. 실무 능력은 차이가 있겠지만 기본적인 발언권은 공평하다. 우선 말을 던지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생각해보는 게 놀공의 회의 문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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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공에는 밥이 있다’는 모토 아래, 식사를 굉장히 중요하게 여긴다고 들었다. 창의력이 필요할 때마다 밥을 먹는다는 이야기는 사실인가?


어머니가 항상 하신 말씀이 “먹는 것에 아끼면 안 된다”는 말이었다. 먹는 것 가지고 사람들 섭섭하게 하면 안 된다고. 잘 먹자고 하는 일 아닌가? 맛있게 먹고 힘을 내서 열심히 고민하는 것, 놀공이 탄생할 때부터 지켰던 유일하고도 절대적인 원칙이다(웃음). 메뉴를 정하는 것부터 계산하는 그 순간까지 모든 과정이 고스란히 창의적인 생각을 자극하는 요소가 된다. 밥은 뭐 먹을까? 간식은 뭐 먹지? 이런 생각이 놀공에서는 문화다. 때가 돼서 먹는 밥이 아니다.

 

매년 ‘흑역사 청산의 밤’을 연다는 것도 무척 흥미롭다. 각자 겪은 흑역사를 이야기하며, 한 해의 성장통을 위로한다. 이 행사가 시작된 후, 놀공발전소의 변화가 있었나?


전후의 변화는 잘 모르겠지만, 우리에겐 이미 중요한 문화가 됐다. 회사 입장에서 직원 각자가 흑역사를 공개한다는 건,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만의 소통 방식이다. 중요한 건, 회사가 만든 문화가 아니라 직원으로부터 시작된 문화라는 점이다. 흑역사 수집에는 두 가지 원칙이 있다. 하늘 아래 한 점 부끄럼 없는 사실성, 절대 쿨한 척 하지 말기. 애초에 엄살을 부리기로 작정한 이상 끝까지 앓는 소리만 담는다. 억지로 의젓한 척을 하거나 어설픈 희망의 메시지는 없다. 수집된 흑역사로 만든 지인공의 노래를 듣다 보면, 서로의 마음을 읽을 수 있게 된다. 지인공의 말처럼, 각자의 흑역사를 유쾌하게 털어 버리게 된다.

 

놀공발전소 직원들의 공통점이 있을 것 같다. 궁금증도 많아야 하고 창의력도 뛰어나야 할 것 같다.


무엇보다 자발적 의지가 중요하다. 놀공에는 가이드가 많지 않다. 각자 알아서 결정하거나 해결해야 하는 일들이 많다. 누군가가 자기를 이끌어주길 바라는 사람에게는 맞지 않은 것 같다.

 

인턴을 뽑을 때 최우선으로 여기는 것은 무엇인가?


일단 중요한 건,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느냐다. 디자인이면 디자인, 문서 작성이면 문서 작성 등 자기가 잘할 수 있는 생산 능력이 있어야 한다.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혼돈기에 빠질 때가 있는데 그럴 때 이겨낼 수 있는 게 자신의 생산 능력이다. “아무거나 시켜만 주세요”는 아니다. 그러면 본인도 힘들다. 그런 사람을 원하는 사람은 없다. 또 하나는 “그 사람이 우리 회사에 짐으로 여겨질 수 있는가”다. 이건 미묘해서 설명하기가 어렵지만, 가장 중요한 건 우리와 문화가 잘 맞는 사람이다. 실력은 습득 능력만 있으면 배우면 된다. 그런데 기질이 맞지 않으면 힘들다. 어떤 커뮤니티가 이뤄지려면 함께 어우러지는 느낌이 있어야 한다. 문화적으로 잘 맞는지가 중요하다. 그리고 사고가 열려 있어야 한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자세, 열린 마음이 중요하다.

 

 

뭔가 새로운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안정적이지 않다는 불안감 때문에 모두들 대기업을 선호하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한다.


사람마다 각자 주어진 길이 따로 있는 것 같다. 직원 중에 3호기 관찰력 담당 지인공은 놀공발전소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5년을 함께했다. 처음에는 무지 힘들었을 거다. 회사 같지도 않은 상황에서 수익이 꾸준히 나는 것도 아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든 시기를 거쳐, 지인공도 성장하고 회사도 성장했다. 지인공 역시 시키는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자발적인 의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견딜 수 있었던 거다. 만약 주어진 일을 하는 게 더 맞는 사람이라면 적응하지 못했을 거다. 결국은 자기의 선택인데, 불안함에도 불구하고 다른 것들이 충족되면 견딜 수 있다. 내 생각, 내 의지가 어디까지인지를 알게 되면 선택이 쉬워진다. 학생들을 보면, 의외로 내가 원하는 것과 부모님이 원하는 것 사이에서 갈등을 많이 한다. 생각보다 부모님 때문인 것이 많다. 사회생활에는 답이 없다. 매일매일 후회하는 일을 한다면 관두는 것이 맞고, 뭔가 다른 게 있어서 참을 수 있다면 견뎌낼 수 있는 것이다. 무엇이 틀렸다고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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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회사란 어떤 회사일까?


계속 변해야 하는 것 같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몇 십 년을 할 수 있을까? 직급이 올라간다고 해도 하는 일은 크게 변할 수 없다. 평생직장이라고 해서 한 가지 일만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놀공은 현재 게임 기획을 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공연을 하고 있을지도 영화를 만들게 될지도 모른다. 요즘은 음악하는 사람들과 다양한 교류를 하고 있다. 곧 음반이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온라인 게임에는 배경음악이 있지만, 오프라인 게임에는 아직 없지 않나? ‘흑역사의 밤’이라는 앨범이 나올 수도 있고. 이상적인 부분에서 말한다면, 뭐가 될지 모르지만 자연스럽게 우리 식구들이 만들어가는 변화들을 통해서 회사가 성장했으면 좋겠다. 또 필요한 건, 이것이 지속 가능하도록 돈을 벌어야 한다는 것이다.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중요하다. “순수함을 지키고 싶으면 순수함을 지킬 정도의 돈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돈이 첫째 우선순위는 아니지만, 유지해 나갈 수 있는 자본은 필요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같은 비전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일하는 것이다.

 

앞으로의 놀공발전소의 미래가 궁금하다.


나도 모른다(웃음). 놀공에서 하는 일들은 모두 연결되어 있다. 어떤 프로젝트를 하다가 다른 생각이 파생돼서 다른 걸 하다 보면, 또 다른 생각들이 생겨나고 한다. 오래 전부터 해보고 싶은 것들 것 많다. 역사 관련 프로젝트도 있고, 도심 전체에서 할 수 있는 활동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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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금지놀공발전소 저 | 이야기나무
뉴욕에서 20년간 게임 회사와 게임 학교를 세우며 파란을 일으킨 ‘Peter Lee’가 한국에 세운 회사 놀공발전소 이야기를 담았다. 2013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우수출판기획 지원사업 최우수 선정작이기도 하다.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놓지 않기 위해 아등바등하고 있는 내 모습이 너무나 헛되고 욕심에 가득 차 보여 공허함이 밀려올 때가 있다. 경쟁에서 살아남으면 정말 행복해지는 걸까? 떠나지 않고 내가 서 있는 지금 이곳에서 행복해지는 방법은 없는 걸까? 『노력 금지』는 이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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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오렌지렌지(Orangerange), 자유롭고 당당한 에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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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제이팝 신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 톱밴드의 내한공연 소식에 많은 이들이 환호성을 내뱉었을 것이다. 애니메이션 주제곡으로 유명해진 「ビバ★ロック(Viva rock)」, 「*~アスタリスク~(아스타리스크)」 등의 업템포 곡뿐만 아니라, 유명 여배우인 다케우치 유코 주연의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 >    에 삽입된 엔딩곡 「花」가 크게 히트하며 국내에서 역시 큰 인기를 누린 오렌지 렌지. 2월 14일과 15일 이틀에 걸쳐 펼쳐진 이들의 무대는 팀에 대한 추억과 앞으로의 기대감을 동시에 접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임과 동시에, 2014년 들어 부쩍 잦아진 일본 아티스트들의 한국방문 소식을 직접 몸으로 체감했던 설레는 순간이기도 했다.

 

12년이라는 세월 동안 상승세와 하락세를 두루 경험하며 겨우내 자신들의 원하는 길을 찾아낸 다섯 명의 면면은 인터뷰 내내 자유로움이 섞인 당당함으로 다가왔다. 과거에 의식하지 않고 지금 있는 그대로를 펼쳐 보이려는 그룹의 패기는 긴 고민보다 즉흥적으로 몸을 내던지는 행동력과 호기 좋게 맞물리며 새로운 길을 창조해내고 있는 중임을 확신시켰던 잊지 못할 한 시간. 좀 늦은 듯한 아쉬움보다는 지금이라도 찾아주어 더 반가웠던 첫 대면동안 나눈 대화를 통해 지금 그들이 걷고 있는 길을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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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날 공연이 끝났어요. 분위기가 어땠는지요?


RYO : 좋았어요. 무엇보다 일본어를 잘 이해해주셔서. 처음이라 긴장을 많이 했는데 그러한 점에서 초반에 좀 안심했던 것 같아요.

 

평소 라이브에서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은 무엇인지요?


RYO : 저에게 있어서는, 역시 관객들에게 다가가는 방법을 중점으로 두고 있습니다. 관객들과의 시너지효과를 많이 보고 있어요.

 

이번처럼 대대적으로 아시아투어를 하는 것은 처음이기에 일본에서의 공연과는 조금 다르게 접근해야 했을 것 같은데, 특히 신경 쓴 부분은 어디인지요.


RYO : 여러 가지 타입의 곡이 있기 때문에, 전부 보여줄 수 있도록. 저희가 여러 가지 얼굴을 가지고 있는 밴드잖아요. 그것을 모두 담아낼 수 있도록 세트리스트를 짜려고 했어요.

 

한국을 온다는 사실이 놀라우면서도 굉장히 반가웠습니다. 갑작스레 아시아 투어를 계획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RYO : (전부터) 하려고는 했었어요.


HIROKI : 뭔가 새로운 도전을 할 때가 된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리고 뭐랄까, 좀 별거 없는 이유일 수도 있는데(웃음),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심플한 마음이 컸어요.

 

좀 늦게 온 것 같은 느낌이 있긴 해요. 많은 분들이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이제야 한국을 찾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RYO : (전원 멋쩍은 듯 웃음) 우선은 일본에서도 가지 못한 곳이 많았기 때문에, 그곳을 일단 가야겠다는 생각이 컸어요. 그게 가장 크지 않았나 싶네요.

 

한국의 문화도 조금씩은 좋아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관심분야가 있으시다면요?


RYO : 댄스뮤직이요. 엔터테인먼트랄까. 스토이크(Stoic)한 면이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NAOTO : 백팩이요. 맘에 드는 걸 아까 호텔 근처에서 봤는데... (웃음)


YAMATO : 영화에 관심이 있네요. 일본영화는 거기 출연하시는 분들이 가진 캐릭터를 알고 있으니까 막 빠져들어서 보기가 좀 힘들어요. 한국영화는 물론 제가 알고 있는 배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잘 알고 있지 않으니까요. 미국영화 보듯이 빠져들 수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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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겠지만, 먼저 오렌지 렌지의 팀명 유래를 알려주실 수 있나요.


HIROKI : 가장 유명한 설은(웃음) 리더의 어머니가 지어줬다는 설입니다. 그게 가장 유명하죠. (실제로는요? 하고 묻자) 사실 밴드명이 엄청 많이 바뀌었어요.

 

색깔이 들어가면 좋다는 얘기가 있어서 그렇게 지었다고 들었던 것 같기도 해요.


HIROKI : 아 그런 설도 있네요.(웃음)


RYO : 힘을 주는 색이 오렌지색이기도 하고요.

 

작년에 나온 앨범 <spark>(2013)를 굉장히 잘 들었습니다. 사실 4집 <ORANGE RANGE>(2006) 이후로 이렇게 록 스타일로 어필하는 앨범을 다시는 못 만날 줄 알았거든요. 더군다나 < NEO POP STANDARD >(2012)가 완전한 일렉트로니카 작품이기도 했고요. 다시 이렇게 록으로 회귀한 이유나 계기가 있을까요?


HIROKI : 리더, 리더~


NAOTO : (한국어로) 안녕하세요.(전원 웃음)


YAMATO : 아까 인사 했잖아(웃음)


NAOTO : 아무래도 작년 이전 앨범(< NEO POP STANDARD >)이 밴드스럽지 않았기 때문에, 작년은 좀 밴드스러운게 그리워졌었던 것 같아요.

 

일렉트로니카 성향은 나오토가, 록 성향은 요가 맡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싱글이었던 「オボロナアゲハ(어슴푸레한 나비)」를 비롯해 아무래도 <spark>에서는 요가 좀 더 주도적으로 앨범의 성격을 이끌어나가지 않았나 생각하는데, 이 앨범에서 요의 비중이 얼마나 됐는지 궁금합니다.


YOH : 음... 주도적으로 한건 아니고요. 좀 더 믹스적인 측면에서 의식을 많이 하는 편이기 때문에 딱히 얼마나 비중이 되는지는 말하기가 조금 어려운 것 같아요.

 

요가 본격적으로 앨범작업에 좀 더 깊숙하게 참여하게 된 건 언제부터인가요? 송라이팅이라던가 사운드의 조율면에서.


YOH : 이전부터 기본적인 프레이즈를 만들고 나오토가 그것을 확장시키는 작업은 계속 해왔고요. 음.. 아무래도< orcd >(2010)부터 인거 같아요. 요즘도 혼자 작업을 하긴 하는데, 아무래도 다른 요소들과 믹스시키는 측면을 가장 중요하게 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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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드가 대체적으로 단단하면서도 심플합니다. 여기에 초창기 오렌지렌지의 색깔도 묻어나는 것 같고. 의도한 것인지, 아니면 생각나는 대로 만들었더니 그렇게 된 것인지 궁금합니다.


NAOTO : 무의식적으로 하는 것 같아요. 옛날에는 이게 좋았는데, 지금은 별로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든지. 그런 영향이 있습니다.

 

< NEO POP STANDARD >는 정교함, 정밀함이 부각되는 작품이고, < spark >는 직선적인, 스트레이트 함이 매력인 작품입니다. 두 앨범간의 작업 방식이 많이 달랐을 것 같은데요.


NAOTO : 그다지 없...(웃음). 언제나처럼 했어요.

 

그럼 만들면서 고생했던 앨범을 고르자면요?


HIROKI : 곡 단위로는 있는데요. 앨범으로는 그다지.... (그러면 곡 단위로 대답해달라고 하자) 제가 방금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잘 기억이... (전원 웃음) 막 고생스럽게 만든 앨범은 없는 건 같아요. 자연스럽게, 또 즐겁게 하면서 나온 결과물이기 때문에.

 

장르가 널을 뛰다보니 보컬 팀도 가끔은 어떻게 자신의 목소리를 사용해야 하는지 혼란스러울 때가 있을 것 같은데요. 곡을 들었을 때 무엇을 기준으로 보컬톤이나 감정을 맞추나요?


HIROKI : 이것도 거의 무의식적으로.(웃음)


YAMATO : 곡의 캐릭터라고 할까요. 가사라던가 부르는 방법이라던가. 하드한 곡에서는 좀 더 격하게 부른다던가. 그런 식으로 제 캐릭터를 찾아간다는 느낌이 있어요.


RYO : 개인적으로, 그 「ミチシルベ(이정표) ~a road home~」라는 곡이 있는데요. 합숙하는 느낌으로 산 속에 들어가서 3박 정도 했었던 기억이 있어요. 처음으로 발라드 느낌의 곡을 만들어 보자라는 생각이었는데, 뭔가 팀이 할 수 있는 영역이 넓어진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노래하는 것에 있어서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고요.

 

현재 자주 레이블인 < SUPER ((ECHO)) LABEL >에서 활동 중인데요. 당시 어떤 목표를, 생각을 가지고 이 레이블을 세웠는지, 그리고 지금의 오렌지렌지가 추구하는 음악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RYO : 음악성이 바뀌었는지 어떤지는 저희들이 그다지 의식하고 있지 않고요. 그 순간의 저희 그대로를 보여준다라고 하면 맞겠네요. 관객에게 전해지는 촉감 같은 것을 가장 우선시하고 있습니다.

 

다른 밴드와 협업을 한다든지, 후배를 키우면서 이 레이블을 키워갈 생각은 없으신지요?


RYO : 키울 생각은 전혀 없고요. 콜라보레이션 같은 것은 개인적으로 하고 있네요.

 

여전히 활발하게 작품을 내고 있지만, 아무래도 과거의 오렌지 렌지와 비교를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옛날의 오렌지 렌지가 좋았어!' 같은 반응 말이에요. 워낙 그때의 임팩트가 컸던 탓이겠지만, 그런 사람들을 보면 어떤지요.


YAMATO :지금 현 지점에 있는 저희를 따라와 주시는 팬 분들도 계시고, 들어본 적 없는 분들도 그렇고, 옛날이 좋았지 하시는 분들도 모두 지금의 저희를 봐주시고 들어주셨으면 하는 바람은 있죠. 그래도 과거는 과거, 지금은 지금이라는 느낌이에요. '부탁드립니다. 들어봐 주세요'라는 강제적인 자세보다는, 모두가 '오렌지 렌지 들어보고 싶은데, 한번 들어볼까' 같은 감각으로 들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시그니쳐 송이 되어버린 「花」가 담긴 2집 < musiQ >(2004)가 270만장이 팔려나갔었는데요. 그때 기분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이렇게 히트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나요?


RYO : 놀라는 일 빼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HIROKI : 미라클


YAMATO : 복권.(전원 웃음)


HIROKI : 완성하고 나서의 감상으로는 그렇게 팔릴 거라곤 생각 못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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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花」 이후, 「ラヴㆍパレ一ド(Love Parade)」, 「キズナ(인연)」 등의 발라드 싱글이 계속해서 인기를 얻으며 한 때 오렌지 렌지의 이미지가 단지 티비용 발라드를 부르는 그룹으로 고착되었던 적이 있었는데, 그런 것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나요.


YAMATO : 원래 발라드가 없었던 밴드였기 때문에, 저항은 처음에 좀 있었어요. 결과가 나오니까 발라드를 해도 괜찮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서, 그러면 발라드도 하자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부를 때는 어떤 스타일의 곡을 선호하시는지요?


RYO : 록에 있어서는, 그 「キリキリマイ(키리키리마이)」라는 곡이 있는데요. 이 곡과 같은 파워를 가장 중심에 두고 있습니다.


HIROKI : 곡이라기보다는, 확실한 리액션이 나오는 곡이라면 어떤 곡이라든 좋아요.


YAMATO : 특별히 가리지는 않습니다. 장르라던가, 틀에 갇혀 있지 않은 밴드이기 때문에. 격렬한 곡도, 발라드도, 밝은 곡도 뭐든 가능한 것이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게 좋다거나 하는 것은 따로 없네요.

 

싱글 컷 되지 않은 곡 중에 혹시 이 곡은 진짜 아쉽다하는 곡이 있나요?


RYO : 「以心電信(이심전심)」이요. 싱글이 되지 않았는데도 이만큼 사람들이 알고 있다는 것이 굉장히 기쁜 곡인데요. 싱글이 되었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전달되는 파워가 강했었습니다.(「以心電信(이심전심)」도 원래 싱글화 계획이 있던 곡이 아니었냐고 묻자) 그런 계획은 없었네요.

 

그러면 싱글 컷 되는 건 그룹의 의지인건가요?


YAMATO : 그렇죠.

 

만장일치 되지 않을 경우에는 어떻게 하나요?


YAMATO : 단순히 투표에요. 다수결이죠. 곡을 고를 때 자신의 취향이나 관객에게 전달되는 것을 생각하거나 하기 때문에 표가 갈려요. 매니저와 스태프를 포함해서, 함께 투표를 한다든가 의견을 낸다던가 하는 방식으로 결정합니다.

 

특별히 음악적으로 해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요?


RYO : 그렇게 딱 정해져 있지는 않은 것 같아요. (AKB48과의 콜라보레이션은 어떤지 묻자) 아 그건 해보고 싶네요.


HIROKI : 그건 하고 싶어요! (전원 웃음)


NAOTO : 사적으로요... (웃음)

 

다들 30대가 되었거나 문턱에 있고, 가정을 이루고 있는 멤버들도 꽤 되는데요. 그러면서 음악을 대하는 방법이라던가, 감수성 측면에서 좀 변화가 있을 것 같은데, 이 점은 어떤가요?


RYO : 의식하고 있지는 않지만 의식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가능하다면 플러스가 되었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되려면 무의식적으로 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나 싶습니다.

 

올해로 활동 12년차입니다. 감회가 어떤지. 활동 초창기와 비교해 각 멤버가 생각하는 '오렌지 렌지'라는 팀의 의미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궁금합니다.


RYO : 하나의 사람이라고 할까요. 저는 그 사람의 일부인거고. 시간이 흐르면 감정이 바뀌듯이, 뭐 고향에 있는 친구들과도 마찬가지인데요. 어쨌든 하나로 묶이는 것 같아요.


NAOTO : 뭐든지 가능한 곳이라고나 할까요. 아무것도 고려하지 않아도 되고,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고. (팀을 시작할 때는 그런 느낌이 없었냐고 묻자) 없었어요. 그때는 프로가 될거라는 의식도 없었거든요.


YOH : 어렵네요.(웃음). 그리운 느낌도 있고요. 어릴 때부터 (멤버들이) 동네친구였기도 하고, 뭔가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곳 같아요.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려워요.


HIROKI : 지금과 예전.... 옛날에는 모두 모르는 것 투성이였기 때문에 갑자기 많은 것이 들어와 혼란스러울 때도 있었지만, 이만큼 경험을 쌓으면서 여러 가지 노하우도 습득되었고요. 사람으로서도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고. 그리고 시작했을 때의 느낌은 아니지만, 음악에 대한 심플한 즐거움이랄까요. 그 훌륭함을 좀 더 여유를 가지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이 가능해진 듯한, 그런 느낌이 있습니다.


YAMATO : 옛날에는 정말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지금 저에게 있어서 오렌지 렌지는 도전, 챌린지. 정말 여러 가지가 가능한 밴드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다음 앨범은 아무도 노래하지 않는 앨범이 될 수도 있고요. 저희로서도 예상할 수 없는, 앞으로도 여러 가지에 도전할 팀이라고 생각해요. 여러 면에서의 스킬 업을 목표로 말이죠.

 

요즘 일본 뮤지션들이 많이 오는데요, 추천하고 싶은 일본의 뮤지션이 있다면요?


RYO : 오키나와라면 역시 비긴(Begin)이죠. 듣는 세대도 굉장히 넓고, 오키나와의 좋은 점을 충분히 담고 있기도 하고요. 그 푸근함, 상냥함을 느껴보셨으면 좋겠어요.


HIROKI : 호르몬(Maximum the Hormone) 온 적 없죠? (곧 퍼퓸과 합동 투어로 올 것이라고 하자) 퍼퓸이랑? 하하하, 진짜요? 워낙 강렬한 음악이라 객석이 완전 난장판이 될 거에요, 아마!

 

인터뷰 : 조아름, 황선업
정리 : 황선업
            사진 : 황선업
 
황선업(sunup.and.down1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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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의경 “아르바이트 인생, 유일한 오락은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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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먹고 쓰려고 한 이야기는 아니었어요. 그런데 글이 너무 빨리 써져서 저조차도 놀랐어요.”

 

‘제2회 한국경제 청년신춘문예’ 당선작 『청춘파산』은 김의경 작가의 자전적 장편소설이다. 어머니의 사업 부도로 신용 불량자, 개인 파산자가 됐던 작가의 인생이 오롯이 들어가 있다. 사채업자의 눈을 피하기 위해 직장생활을 오래하지 못하고, 아르바이트로 생활을 이어나가야 했던 작가의 이야기는 『청춘파산』이라는 제목으로 일단락됐다. ‘청춘’이기 때문에 파산을 견딜 수 있었던 작가는 실제로 10여년 만에 파산을 면책 받았고, 문학상 수상으로 그동안의 고단한 삶을 위로 받았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 10년간 습작생활을 해온 김의경 작가는 ‘소설’의 맛을 알게 된 후 꿈이 생겼다. 좋아하는 글을 쓴다는 목적이 있었기 때문에 수십 개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힘들지만은 않았다. 14번의 도전 끝에 서른 다섯이 된 올해, 첫 책 『청춘파산』을 펴냈다. 수상 소식을 전해들은 날도 작가는 콜센터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블랙 컨슈머의 황당한 주문에 어안이 벙벙했지만 곧바로 전해든 수상 소식에 “이게 복선이었나?” 자문했다. 15년 만에 일을 쉬고 있는 김의경 작가는 “상금이 떨어지면 또 아르바이트를 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했다.

 

굳이 돈이 아니더라도 세상의 모든 사람은 누군가에게 또는 무언가에게 무엇인가를 빚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십수 년 전부터 최근까지, 그동안 지나쳐 온 길 위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만난 많은 친구들에게(그들에게 나는 분명 많은 것을 빚지고 있다.) 이 소설로 안부를 전하고 싶다. 특히나 너는 소설가가 되면 좋겠다고 말해 주었던, 함께 아이스크림을 팔았던 녹색 머리 친구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 김의경 작가의 당선 소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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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CCTV, 상가 수첩 돌리기. 들어는 봤나요?


『청춘파산』은 자전적 소설이다. 작가들이 성장소설을 쓸 때 자전적 소설을 많이 쓰곤 하지만, 이렇게 최근에 있었던 일을 현실적으로 그리는 경우는 많지 않은데.


재작년 4월쯤이었나? 일을 그만 두고 여기저기 이력서를 냈는데 소식이 없었다. 이렇게까지 연락이 없는 적은 없었는데, 일을 안 하고 있으니까 불안했다. 불안하니까 글이 막 나왔다. 3년 전에 상가수첩 아르바이트를 했던 기억을 살려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쓰려고 했던 소설은 아니다. 습작 기간 동안 쓴 작품들 속에 아르바이트 이야기가 많이 들어가긴 했지만, 이렇게 아르바이트 이야기가 주된 줄거리가 된 작품은 없었다. 불안하니까 막 써졌던 것 같다. 이렇게 빨리 써진 작품은 처음이었다.

 

소설을 쓰는 동안은 일을 하지 않았나?


매달 생활비는 벌어야 할 것 같아서, 한 달에 열흘 정도 단기 알바를 하면서 나머지 시간에는 소설을 썼다. 그렇게 네다섯 달을 쓴 것 같다. 이렇게 잘 써질 때 써보자고 생각했다. 올해는 어떻게는 당선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당선 소식을 들었을 때는 무슨 일을 하고 있었나.

 

콜센터에서 피자 주문을 받고 있었다. 블랙 컨슈머가 전화를 해서 짜증이 난 상태였는데, 그 다음 전화가 당선 소식 전화였다. 더 기뻐하라고 복선을 깔아준 건가? 싶었다. 소식을 들을 때쯤 유독 좋은 꿈을 많이 꿨다. 그래서 은근히 기대도 했는데, 전화가 늦게 와서 ‘안 되는 구나’ 체념을 했다. ‘청년신춘문예’는 응모 자격이 만 34세 이하였다. 작년에 도전하고 두 번째인데, 마지막으로 응모할 수 있는 나이였다. 두 달이라도 일찍 태어났으면 작품을 못 냈을 거다.

 

주인공 인주는 20대에 신용불량자가 되고, 30대에 개인 파산자가 됐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소설에는 일부분 개인적 체험이 포함됐다. 책 속에 등장하는 아르바이트는 대부분 경험한 것인가?


아르바이트는 90% 정도가 내가 직접 해본 일이다. 실화가 얼마나 반영됐다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수치상으로 정확히 말하긴 어렵지만 50% 이상이라고는 말할 수 있다. 친구들이나 지인들이 소설을 읽고는 “이거 의경이 이야기네?”라고 했다. 대강은 알고 있는 이야기이고 책이 어둡지는 않으니까 재밌게 읽었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아주 친한 친구는 슬퍼서 일주일간은 책을 못 읽었다고 하더라. 엄마는 “그래서 네가 나한테 돈 한 푼, 안 달라고 했구나”라고 하셨다. 가족들이 다 각자 사는 게 바빠서, 서로가 어떻게 사는지 잘 알지 못했다. 책을 보고 아신 것 같다.

 

작가의 실화라고 공개하는 것이 부담이 됐을 법도 싶은데.


나와 전혀 상관 없는 일이라고 말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랬다면 웃겼을 것 같다. 수상 소식이 전해지고 ‘작가의 실화, 사채 빚’에 초점이 맞춰져 기사가 나가는 걸 보고, 조금 놀라긴 했다. 하지만 이제 내 삶의 일부, 작은 부분이라서 크게 상관이 없다. 더욱 많이 기억될 대표작을 써야 하니까(웃음).

 

청년신춘문예에 작품을 응모했을 때는 제목이 「프리바이터」였다.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을 뜻하는 단어다. 『청춘파산』이라는 새로운 제목으로 작품을 대했을 때, 어떤 기분이 들었는지 궁금하다.


출판사에서 많은 고민 끝에 나온 제목이다. 이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 ‘딱’ 이라고 생각했다. 이 제목이 나오려고 이렇게 시간이 많이 걸렸나? 싶었다. 상반된 두 단어지만, 결국 파산을 이길 수 있는 건 청춘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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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챕터를 서울의 여러 동네 이름으로 구성했다. 작가가 대부분 살았던 동네인가 싶기도 하다. 서울 지리에 굉장히 밝은 것 같다.


어릴 때부터 정말 많이 돌아다니면서 살았다. 소설에 나온 동네 중에 반 정도는 살아본 것 같다. 다른 사람들에 비해 서울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동네마다의 추억들이 많다. 아르바이트한 기억들이 가장 많지만, 아픈 기억도 있고 좋은 기억도 있다.

 

책을 쓰면서 가장 진도가 안 나간 동네는 어디였나?


아무래도 개포동이다. 개인사적인 부분, 아픈 이야기가 나오니까. 다른 동네 이야기는 신나게 썼는데, 개포동 이야기를 쓸 때는 조금 힘들었다. 한동안 묻어놓았던 기억을 꺼내서 그런 것 같다.

 

그동안 경험한 아르바이트 중에 가장 힘들었던 일은 무엇이었나?


백화점 판매 아르바이트는 정말 오래 못하겠더라. 어릴 때니까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없어진 인간 CCTV도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다. 좀도둑을 감시하려고 모퉁이에 숨어 있는데, 이게 참 너무 비인간적인 느낌이 들었다. 1,2년만에 CCTV가 생기면서 지금은 사라졌는데, CCTV로 가득한 가게에 들어가면 그 때 생각이 난다.

 

반대로 즐기면서 했던 아르바이트는?


아무래도 책을 볼 수 있었던 북카페 아르바이트가 좋았다. 주인 아저씨한테 맨날 책만 보고 있다고 많이 혼났다(웃음). 아르바이트를 선택할 때, 나름의 기준이 있었다. 밤에는 일하지 않고 건강을 해치지 않는 일을 한다는 것이었다. 내 몸이 약해지면 일을 할 수 없으니까,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즐거움은 그저, 소설에서 찾았다.

 

빚이 없는 20대로 돌아간다면, 하고 싶은 일이 있나.


미팅, 소개팅 이런 거를 제대로 못해봤다. 바쁘기도 했고 나는 그럴 팔자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당시 친구들이 배낭여행을 많이 떠났는데, 부러운 마음이 있었다. 친구들이 하는 걸 많이 못한 시절이었다. 그 때는 내가 일하고 있는 식당이나 카페에서 미팅하는 친구들을 보면 박탈감을 느꼈는데, 나도 친구들이 하지 못한 경험을 많이 하고, 많이 배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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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유일한 오락이 ‘소설’이었다

 


처음 들어간 대학에서는 법학을 공부했는데.


그 때만해도 소설가가 되고 싶다는 마음은 없었다. 집에 맨날 빚쟁이들이 찾아오니까 어린 마음에 조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법을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국문과로 편입한 건, 사는 게 너무 무서워서 외국을 나가고 싶어서, ‘국문과에서 공부를 하면서 번역 일을 할까’ 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 때만해도 파산 면책을 받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을 못했다. 그렇게 편입을 하고 나서, 우연히 학교에서 ‘성대 문학상’ 공모를 봤다. 한 번 써볼까? 가벼운 마음에 시작했는데 소설을 쓰는 게 무척 재밌었다. 1주일에 단편 4개를 쓰고 그랬다.

 

본격적으로 소설가의 꿈은 언제부터 꾼 건가?


다른 사람들보다 1,2년 늦게 대학에 들어갔는데 3학년 여름에 첫 소설을 썼다. 정말 소설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2003년에 했으니까 거의 10년이 넘은 거다. 국문과에는 글 쓰는 사람이 많지 않았고, 등단이라는 게 있다는 사실도 나중에 알았다. 뒤늦게 친구들이랑 창작패를 만들었는데, 다들 하고 싶은 분야가 달랐다. 한 명은 시, 한 명은 소설, 한 명은 동화. 이러니까 몇 번 모여서 술만 마시다 헤어졌다(웃음). 제대로 소설을 쓴 건, 오히려 대학을 졸업한 후다. 3년 정도 틀어박혀서 소설을 썼고 2007년 겨울부터 합평 모임에 나가기 시작했다. 각종 문학상에 응모했는데 계속 문턱에서 떨어졌다. 14번쯤 떨어진 것 같다. 최종심에만 올라가고 당선이 안되니까 나중에는 기사를 보기도 싫었다.

 

등단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을 것 같은데.


몇 년 동안 더 해보고 안 되면, 그냥 투고를 해봐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나는 등단을 못해도 작가가 아니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작가라는 게 무한경쟁체제는 아니다. 친구의 작품을 읽고 자극을 받아서 더 멋진 글을 쓸 수도 있는 게 아닌가. 습작 기간이 무작정 힘들지만은 않았다. 떨어지는 게 속상했지만, 소설 쓰는 것 자체는 마냥 즐거웠다. 자꾸 취직이 안 될 때는 소설에만 전념하라고 그러는 건가? 싶은 생각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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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파산』을 쓰기 전에 습작 기간 동안에는 어떤 소재를 주로 썼나.


대중 없었다. 현대인의 고독, 장애인 이야기도 있고, 보통 20대 여자들이 쓰는 연애소설도 썼다. 장편 3개, 단편 10개 정도를 썼는데 약간은 자전적인 내용도 많았다. 아르바이트 이야기를 작품에 많이 쓰다 보니, 『청춘파산』도 자연스럽게 나온 것 같다.

 

만약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았더라면, 모두 취재를 하고 자료조사를 해야 할 내용들이 많다. 어떻게 보면 『청춘파산』이 탄생하려고, 이렇게 고단한 일을 해야만 했나? 라는 생각도 들 법하다.


내 인생의 아르바이트 역사를 정리한 느낌이 든다. 남다르게 다가온다. 맨날 아르바이트만 하고 살아야 한다는 게 때론 마음을 어렵게 했는데, 지나고 나니까 ‘정말 이 소설이 나오려고 그랬나 보다’라는 생각도 든다. 처음에는 이런 생각이 없었지만, 조금 여유가 생기니까 생각이 달라지더라. 내 인생이 하나의 소설이고, 내가 주인공이고, 모든 사건들이 복선처럼 느껴지고. 너무 불행할 때는 차후에 정말 기쁜 일이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소설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견딜 수 있었던 걸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나 스스로를 낙오자라고 생각하지 않은 건, 소설을 쓰기 위해 선택한 삶이라는 부분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삶의 불행이 소설가로서는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소설 하나를 위해서 다른 부분은 적당히 포기하는 삶이 크게 불안하게 다가오진 않았다. 하나를 포기하지 않고 있으면, 길이 보인다.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자기 자신만의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등단을 준비하면서, 힘이 됐던 작품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대학에 다닐 때, 『화차』를 읽었는데 나중에 영화로 다시 보니 울컥했다. 눈물이 나긴 하더라. 도스토옙스키 작품도 많이 읽었다. 작가 정보를 보니, 그도 빚 때문에 힘든 시절이 있었다고 했다. 『노름꾼』이란 작품은 빚 때문에 출판사에서 협박을 받아 절박감에 쓴 작품이다. 이 소설을 읽을 때, ‘난 왜 그런 절박감이 없을까?’ 싶은 생각도 했다.

 

좋아하는 선배 작가는 누구인가?


대학 때는 은희경, 성석제, 오정희 작가의 소설을 많이 읽었다. 서사가 분명한 소설을 좋아한다. 나에겐 소설이 오락이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와서, 비스듬하게 누워 소설을 읽으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요즘 일상이 궁금하다. 콜센터 아르바이트는 계속 하고 있나?


수상 소식을 듣고 일주일 정도 일을 더 하고 그만 뒀다. 두 달 정도 저축한 돈으로, 일을 안 하고 빈둥빈둥 거리고 있는데 너무 행복하면서도 불안하다. 그래도 아침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되는 현실이 좋다(웃음). 요즘은 닥치는 대로 만화, 소설, 드라마 모든 걸 보고 있다. 사람들이 상금이 다 없어지기 전에 스스로에게 선물을 하라고 해서,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전집을 샀다. 나중에 역사 소설도 써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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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청춘파산』를 선물한다면?


소설을 쓰면서 누군가에게 힘이 되고 희망을 준다는 생각까진 못했는데, 몇 분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듣고 나니까 나도 힘을 얻었다. 청춘들에게만 선물하고 싶지는 않다. 이미 청춘기를 지낸 40, 50대 독자들이 읽는다면, 지나간 청춘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빚 때문에 힘든 무기력한 청춘들, 삼포세대가 읽는다면 조금이라도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다음 작품을 어떤 소재로 쓸지는 모르겠지만, 첫 번째 작품을 잊지 않고 쓸 생각이다.

 

청춘파산은 ‘2014년, 아르바이트생 구보 씨의 일일’로 읽힌다. 서울특별시 곳곳의 동네 이름으로 짠 목차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주인공은 매일 봉고차를 타고 다양한 거리에서 상가수첩을 돌린다. 분초를 다투며 상가수첩을 나눠 주는 현재의 날렵함과 각 동네에 얽힌 지난날 아르바이트의 추억담이 교묘하게 겹쳐 울림을 만든다. 빚더미에 앉은 주인공에게 날아드는 공문서들을 고스란히 제시하면서, 프리터 삶이 결코 즐거운 낭만이 아니라 힘겨운 현실임을 상기시킨 대목도 좋았다. 개성 넘치는 인물들이 폭죽처럼 등장하는 흥미로운 장면을 잘 만드는 작가, 그 장면들을 맵시 있게 엮어 삶의 기쁨과 슬픔을 치열하게 담는 작가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 심사평에서 은희경(소설가)ㆍ장은수(문학평론가)ㆍ김탁환(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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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파산김의경 저 | 민음사
어머니의 사업 부도로 20대에 신용 불량자가, 30대에 개인 파산자가 된 주인공의 위태롭고 치열한 젊은 날을 그린 소설 『청춘 파산』이 출간되었다. 신용 불량자 신분으로 인해 일자리라고는 아르바이트밖에 구할 수 없고, 사채업자의 눈을 피하기 위해 가방 속엔 온갖 종류의 가발을 넣어 다녀야 하며, 빚 독촉 서류들에 대항하기 위해 밤새워 파산법을 공부해야 하는 서른셋의 백인주. 빚과 함께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수많은 청춘의 얼굴인 백인주는 작가 김의경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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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훤 “보아 오빠? 나는 베토벤 좋아하는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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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월광’에 담긴 것은 달빛이 아닌 실연

클래식은 어렵고 지루하다는 편견은 어쩌면 ‘아는 만큼 보인다’는 믿음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오랜 생명력을 자랑하는 만큼 방대한 역사를 품고 있는 까닭에, 클래식을 즐기기 위해서는 우선 ‘공부’가 되어 있어야 한다고 여겨지는 것이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예술적 경향, 작법, 상징에 이르기까지 알아야 할 것들이 많아도 너무 많다. 그렇다 보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클래식이란 말 앞에서 ‘너 되게 낯설다’는 말만을 남기고 뒤돌아서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들의 발길을 되돌리기 위해서는 쉽고, 흥미롭고, 친절한 ‘클래식의 이야기’가 필요하다. 『나는 클림트를 보면 베토벤이 들린다』는 바로 그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클래식에 대한 우리의 편견에 맞선다.
귀로 듣고 눈으로 본다는 차이가 있을 뿐, 그림이 주는 감동과 음악이 주는 감동은 다르지 않습니다. 모든 예술은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음악과 미술, 문학이 주는 감동은 각각 따로따로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한 곡의 소나타가 어떤 그림을 더 잘 설명해줄 수 있고, 사연을 품은 그림 한 점이 어떤 음악을 더 깊이 듣도록 우리를 이끌어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책에서 하나의 주제에 대해 화가와 음악가를 짝지어 그들의 스토리를 구성해보았습니다. (p.7~8)
“예술 각 분야의 경계를 허물어뜨리고 대통합을 이루는 예술적 ‘통섭’이야말로 우리 시대가 원하는 새로운 접근법이자 감상법”이라고 말하는 저자 권순훤. 그는 『나는 클림트를 보면 베토벤이 들린다』의 주인공으로 스물다섯 쌍의 미술가와 음악가를 선택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헨델, 렘브란트와 바흐, 고흐와 드뷔시, 모딜리아니와 드보르자크와 같은 ‘환상의 짝꿍’을 찾아낸 것이다. 두 예술가를 이어주는 연결고리는 그들의 삶 속에 숨어 있었다. 미켈란젤로와 모차르트는 천재적인 재능을 바탕으로 작품 속에 사회적 메시지를 담아냈다는 공통점이 있었고, 클림트와 베토벤은 끝내 사랑을 이루지 못했다는 점에서 닮아 있었다. 그와 같은 이야기들이 작품 속에 묻어났음은 물론이다.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 안에 감춰진 경고의 메시지도, 클림트의 「키스」 가 황금빛 채색에 어울리지 않는 애잔한 분위기를 뿜어내는 이유도, 달빛을 연상시키는 베토벤의 <월광>에서 비장함과 분노가 느껴지는 이유까지도, 해답은 그들의 삶 속에 있었던 것이다.

이렇듯 『나는 클림트를 보면 베토벤이 들린다』는 보여주는 음악, 들려주는 그림을 통해 어렵고 딱딱한 이론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클래식에 한 발 다가설 수 있도록 해준다. 생소하지만 반갑기 그지없는 이 시도는 2008년 ‘이지 클래식-미술관에 간 피아니스트’ 콘서트를 통해 시작되었다. 클래식의 대중화를 위해 피아니스트인 저자가 직접 기획하고 진행한 무대였다. 관객에게 익숙한 음악과 그에 어울리는 그림들을 직접 선정하고 소개했다. 공연은 매회 전석 매진을 기록하며 3년이 넘는 기간 동안 사랑 받았고, 그 이야기는 『나는 클림트를 보면 베토벤이 들린다』로 다시 태어났다. 모두가 클래식의 진입 장벽을 허물기 위한 저자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일이었다.

‘클래식의 대중화’는 피아니스트 권순훤의 행보를 설명하는 데 있어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다. 서울대 피아노과 석사과정을 마친 후 영국 왕립음악원에 합격하고도 입학을 포기한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유학 대신 그가 선택한 것은 클래식의 디지털 음원화 작업. 음악전문스튜디오 ‘네오무지카’의 문을 열고 50장이 넘는 클래식 디지털앨범을 정규 발매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음악 교과서 음반을 제작하는 한편 어린이를 위한 ‘체르니 콘서트’를 열기도 했다. 더불어 서로 다른 클래식 음악을 교차 편집해서 뮤직 비디오를 제작하고, 여기에 연기자와 댄스팀을 출연시키면서 ‘보는 재미가 있는’ 클래식을 선보이기도 했다. 매번 파격적인 시도를 거듭하는 이유는 물론 ‘클래식의 대중화’ 때문이다. 흔들리지 않는 목표를 향해 쉼 없이 달려온 ‘피아니스트’ 권순훤과 만났다.




뭉크의 「절규」 를 보고 떠오른 바흐의 작품은…

음악을 글로 설명하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나는 클림트를 보면 베토벤이 들린다』출간과 함께 동명의 앨범을 발매했어요. 책에 소개된 음악 중에서 제가 운영하는 스튜디오 ‘네오무지카’가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는 30곡을 실었어요. 『나는 클림트를 보면 베토벤이 들린다』의 독자 분들께 부록으로 제공해 드리기도 했고요, 음원 사이트를 통해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학창시절에 음악과 미술 작품에 대해서 배우지만 졸업하면 기억나는 게 없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책을 읽으면서 음악도 들으면 효율적인 문화 서적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책 속에서 음악을 전달하는 방법으로 선택하신 건 무엇이었나요?

미술 작품이든 음악 작품이든 창작 당시의 예술가의 심정을 표현하려고 굉장히 노력했어요. 예를 들면 베토벤은 <월광>을 쓸 때 줄리에타와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때문에 괴로워하고 있었죠. 그녀는 귀족 가문의 소녀였는데 음악가라는 베토벤의 직업은 높게 평가 받지 않았었거든요. ‘내가 과연 그녀와 잘 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암울했던 거죠. <월광> 1악장이 굉장히 어둡고 슬픈 이유예요. 결국 <월광>이 다 완성될 때쯤에 줄리에타는 집안의 뜻을 이기지 못하고 다른 사람에게 시집을 가는데요. 그때 베토벤이 느꼈을 분노가 3악장에 담겨있죠. 보통은 <월광>을 ‘달빛을 연상시키는 아름다운 소나타’라고 이야기하는데, 이 분노는 사실 달빛이랑 상관없는 거잖아요. 이렇게 작품을 만들 때 작가의 기분을 알면 독자들이 이해하기 쉬울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이야기들을 찾으려고 거의 1년 동안, 매일 밤 12시까지 책과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죠.

음악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건 당시 ‘작가의 심정’이라는 말이네요.

그렇죠. 학구적으로 분석하고 연구하는 건 전공자들이 하면 되는 일이거든요. 그런 부분까지 다 공부한 후에 클래식 음악을 즐기는 분들이 얼마나 되겠어요. 그리고 학구적으로 다가가면 일단 지루해져요. 먼저 작품의 동기나 처음에 어떤 심정으로 썼는지를 알고 음악을 즐기게 된 다음에 학구적으로 접근할 수 있게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5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다고 들었습니다. 처음 느낀 피아노의 매력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음악을 마음대로 칠 수가 있잖아요. 예전에는 가요도 참 많이 연주했어요. 김건모의 <미련> 같은 곡이요. 그냥 흘러나오는 음악들을 바로 표현해낼 수가 있으니까, 그런 게 참 마음에 들었어요. 그래서 『불후의 명곡 : 박진영 편』『불후의 명곡 : 발라드 편』처럼 가요를 피아노로 편곡해서 악보집을 출간하기도 했죠. 피아노라는 악기가 음역이 가장 넓잖아요. 건반이 88개이다 보니까 클래식 악기 중에 가장 많은 음들을 동시에 표현할 수 있고, 마음대로 풀어낼 수도 있죠. 그래서 좋아했던 것 같아요.

그림을 읽는 방법은 어떻게 배우게 되셨나요?

2007년에 영국 왕립음악원에 시험 보러 갔을 때 파리를 들렀어요. 거기에서 도슨트(docent, 박물관과 미술관 등에서 관람객들을 상대로 전시물과 작가 등을 설명해주는 사람-필자 주)를 한 명 만났죠. 한 번은 그 친구가 한 번 오르세 미술관을 견학시켜주면서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더라고요. 관광 가이드까지 했을 정도로 그 분야에서 능력 있고 유명한 친구였거든요. 그때 붓 자국부터 시작해서 어떤 정신 상태를 반영한 건지, 마네의 「올랭피아」 에서 까만 고양이는 어떤 의미인지 얘기해주더라고요. 사실 그런 부분을 알지 못한 채 미술관에 가면 그림 앞에 멀뚱멀뚱 서 있다가 그냥 지나가잖아요.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까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가더라고요. ‘이렇게 재밌는 얘깃거리가 있구나, 이런 걸 알려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그림의 스토리와 음악의 스토리를 엮어서 공연을 하게 된 거예요.

책에 소개된 예술가 혹은 작품들 중에 특별하게 인연을 맺은 경우도 있나요?

클림트의 경우에는 예전 여자친구 때문에 알게 됐어요. 그 친구가 클림트를 굉장히 좋아했거든요. 그 전에는 클림트의 그림에 대해 알지 못했어요. 「키스」 같은 작품도 ‘그냥 뽀뽀하는 모습이구나’ 하고 말았죠. 그런데 알고 봤더니 정말 재밌는 스토리가 있는 거예요. 클림트의 남동생과 플뢰게의 언니가 부부였기 때문에 클림트와 플뢰게는 겹사돈이 되지 않는 이상 맺어질 수 없는 관계였죠. 두 사람이 굉장히 사랑하면서도 그걸 가슴 속에 담고만 살았던 거예요. 그 이야기를 알고 나니까 ‘완성되지 못한 사랑을 그림 한 장으로 영원토록 남겨놨구나’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클림트의 「키스」 를 보면 남자가 여자의 입술이 아닌 볼에 입을 맞추고 있잖아요. 그 여자는 행복해 보이지도 않고요. 심지어 둘은 절벽에 서 있어요. 하지만 어찌 되었든 후대 사람들은 그림을 보면서 클림트와 플뢰게를 연상할 수 있는 거고, 두 사람은 그림 안에서 앞으로도 계속 함께하겠죠. 참 멋있더라고요. 그래서 인생은 짧지만 예술은 길다고 얘기하는 것 같아요. 베토벤의 <월광> 같은 경우도 완성되지 못한 사랑에 대해 음악으로 편지를 쓴 거잖아요. 나는 외롭다고, 암울하다고, 화났다고요. 이렇게 감춰져 있는 이야기들이 예술을 즐겁고 재밌게 소비할 수 있도록 해주는 하나의 방법인 것 같아요.

그림을 보고 순간적으로 특정 음악이 떠올랐던 적도 있나요?

바로 떠오르는 것 보다 배경지식이 갖춰지면 훨씬 더 잘 연상되는 것 같아요. 그림을 통해서 작가의 인생을 볼 수 있는 거니까요. 이런 적은 있었어요. 뭉크의 「절규」 를 봤을 때 바흐의 <토카타와 푸가>와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비탈리의 <샤콘느>가 떠오르기도 했고요. <샤콘느>가 날카롭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듯한 느낌의 곡이니까요.




‘열정’으로 클림트와 비견되고 싶다

기존의 클래식 공연에 대해 쓴 소리를 했습니다. “관객을 배려하기보다는 자기자랑을 하고 있다”고요.

처음에 일본 음식이 미국에 소개됐을 때 미국 사람들은 날 것을 어떻게 먹냐고, 미개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면서 먹지 않았대요. 그래서 일본 사람들이 미국 사람들한테 맞게 살짝 익혀서 주기도 하면서 입맛을 끌고 온 거예요. 어떻게 보면 일본 사람들이 자존심을 굉장히 낮췄던 거죠. ‘이 맛있는 걸 왜 익혀서 줘야 하나’ 하고요. 음악도 똑같다고 생각해요. 저와 같은 사람이 있음으로써 클래식 음악이 조금 더 쉽게 소개되는 거잖아요. 그러면서 많은 사람들이 클래식에 관심을 갖게 되면, 그들 중에 누군가는 더 어렵고 힘든 클래식에도 도전하게 되겠죠. 그 사람들이 결국에는 클래식의 팬으로 추가될 거라고 생각해요. 뭐든 관심을 가져야 발전이 이루어지잖아요. 일단 관심을 갖게 만들어야죠. 그게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클래식의 문턱을 낮추려면 대중의 노력도 필요할 것 같습니다.

대중들이 다가오지 않으면 클래식 음악을 하는 저희들은 계속 활동할 수 없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클래식 음악계 안에서 더 많은 배려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서 프랑스에서 유학한 음악가가 귀국 독주회를 하는데 프랑스 클래식 음악으로만 프로그램을 기획했다면, 결국엔 자기 자랑을 한 거죠. ‘내가 프랑스 음악을 들려줄 게 들어봐’라는 태도인 거예요. 저는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러분, 이렇게 재밌는 음악이 있습니다. 들어보세요. 이렇게 재밌어요’ 이렇게 맛보기를 보여줘야죠. 소화할 수도 없는 음악에 쉽게 다가올 수는 없잖아요.

클래식에 접근하기가 어렵다고 하지만, 일단 클래식 음악의 매력을 알고 나면 마니아가 됩니다.

지금 우리나라에 클래식 마니아가 3천 명 정도 있다고 해요. 세종문화회관이나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을 관람하는 유료 관객층 중에 마니아로 분류되는 사람이 3천 명 정도라는 거죠. 전 국민의 1만 분의 일도 안 되는 거예요. 그 숫자를 늘리려면 일단 많은 사람들에게 쉽게 알려야죠. 일단 알아야 좋아하든지 말든지 할 것 아니겠어요?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클래식 음악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아는 만큼 들리는 거죠. 클래식 음악 중에서 바로크 음악 같은 경우는 400~500년 전에 탄생한 거예요. 그동안 음악이 변하지 않고 지금까지 전해졌다는 건 그만큼 생명력이 강하다는 거잖아요. 그만큼 가치가 있고 매력이 있는 거겠죠. 그러니까 클래식이죠. ‘이래서 클래식이 좋은 거야’ 라는 식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만큼 강인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게 바로 ‘클래식이 클래식인 이유’죠.

클래식의 대중화와 함께 피아노를 배우는 학생들을 위해 많은 활동을 하고 있는데요. 피아니스트로서 꿈꾸는 것은 무엇인가요?

아직은 말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닌 것 같아요. 하지만 류이치 사카모토처럼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류이치 사카모토는 피아니스트이기도 하고, 작곡가이기도 하고, 영화음악 감독이기도 하죠. 방송 프로도 자주 하고 굉장히 다방면에서 활동하죠. 그의 직업은 그냥 류이치 사카모토인 거예요. 저도 그렇게 되고 싶어요. 먼 훗날에 사람들이 제 직업에 대해서 생각할 때 ‘피아노도 치고, 공연도 하고, 책도 쓰고, 학교에서 강의도 하고(현재 그는 서울종합예술학교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음반 프로덕션도 경영하고, 그냥 권순훤이네’ 이렇게 말했으면 좋겠어요. 아직 저는 열심히 사는 사람인 것 같고요. 앞으로 더 열심히 살다 보면 그렇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때까지 저는 클래식 음악을 알리는 허브(Hub) 같은 존재가 되고 싶어요.

『나는 클림트를 보면 베토벤이 들린다』에서는 클림트와 같은 삶을 살고 싶다고 말했어요.

클림트처럼 살 수 있다면 굉장히 좋죠. 고흐는 상업적으로 실패해서 가난하게 살다 갔잖아요. 고갱도 지금은 ‘타히티의 풍광을 그림에 담아낸 훌륭한 화가’로 인정받지만 생전에는 정말 비참한 인생을 살았잖아요. 그런데 클림트는 본인이 뛰어난 능력이 있었고 분리파를 창설하기도 했죠. 결국 분리파에서 쫓겨났지만 그는 아쉬운 게 없는 거예요. ‘내가 잘났는데 뭐 어때’하면서 개의치 않고 본인이 이뤄놨던 부와 명예를 기반으로 자유롭게 작품 활동을 했어요. 그러니까 생전에 본인의 능력을 다 발휘하고, 그 결과를 모두 누리다가 편하게 간 거죠. 결혼은 안 한 건지 못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요(웃음). 어쨌든 굉장히 멋있게 산 남자 같아요. 그리고 르누아르도 굉장히 좋고요. 어떻게 보면 조금 속물 같은 이야기로 들릴 수 있지만, 저는 예술을 널리 알리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라 그걸로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싶은 사람입니다.

어떤 삶을 살았던 예술가에게 끌리는 것 같나요?

솔직히 재밌는 건 카라반조의 삶이죠(웃음). 하지만 제가 살고 싶은 삶은 클림트처럼 본인의 능력을 잘 발휘하면서 누리는 거예요. 루벤스처럼 존경 받으면서 모범생다운 삶을 사는 것도 좋죠. 그런 사람이 되는 게 더 현실적으로 좋은 게 아닐까요(웃음).

책에 소개된 ‘환상의 짝꿍’들은 저마다 열정, 사랑, 다양성 등의 연결고리로 맺어 있습니다. 저자의 삶은 어떤 키워드로 이야기 될까요?

‘열정’이라고 해줬으면 좋겠어요. 제가 가만히 있지를 못하고 항상 뭘 해야 되거든요. 약간 일 중독자 같은 부분이 있어요. 그래서 열정이라는 키워드가 제일 좋지 않을까 생각해요. 10년 후에 같은 질문을 받는다면 ‘안정’이라고 답할 지도 모르겠지만요(웃음). 제가 7년동안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면서 100회 이상 공연을 했어요. 앨범을 30장 넘게 발매했고, 프로듀싱 한 앨범도 50장이 넘어요. 4권의 악보집과 『나는 클림트를 보면 베토벤이 들린다』도 출간했죠. 정말 안 쉬고 달렸는데요. 앞으로도 이렇게 계속 살게 될 것 같아요(웃음).

‘열정’이라는 키워드로 저자와 비견될 예술가는 누가 될 것 같나요?

역시 클림트를 선택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자신이 잘하는 것으로 상업적으로 성공도 거뒀고, 어디에서나 아쉬울 것 없는 당당한 예술가였으니까요. 칸딘스키의 경우에는 ‘이 사람은 예술가일까 행정가일까’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맡고 있던 직책만 봐도 ‘이 사람 그림을 그릴 시간이나 있었을까’ 싶거든요.

『나는 클림트를 보면 베토벤이 들린다』에서 ‘멀티 플레이어’라는 키워드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를 이야기했어요.

다빈치는 멀티 플레이어 정도가 아니잖아요. 그렇게 다양한 영역에서 많은 작품들을 남긴 걸 보면, 사람이 아닌 것 같아요(웃음). 루벤스와 들라크루아도 멀티 플레이어라고 할 수 있죠. 특히 들라크루아는 문학에서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고 쇼팽과도 교류가 두터웠죠. 화가이면서 음악 작품도 남겼고, 음악가들과도 많이 교류했죠. 그러고 보니 들라크루아가 진정한 멀티 플레이어네요.




‘보아 오빠’라는 수식어, 부담감은 많죠

늘 ‘보아의 큰 오빠’라는 수식어가 붙는데, 부담감이나 불편함을 느끼지는 않나요?

어쩔 수 없어요. 그게 현실이에요. 여동생이 너무 유명하니까요. 사실 우리나라에서 (여동생을) 모르는 사람이 없잖아요. ‘보아 오빠’라는 수식어는 제가 싫다고 해서 떼어지는 게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어요. 열심히 살다 보면 그 수식어가 바뀌지는 않더라도 빠질 수는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요. 기분이 나쁘다거나 그런 건 전혀 아니에요.

부담감은 당연히 많죠. 동생이 너무 잘하고 있으니까 제가 못하면 안 되잖아요. 더 정신 똑바로 차리고 열심히 살아야죠. 사고 치면 안 되니까요(웃음). 제가 실수를 하면 ‘권순훤’이 실수한 게 아니라 ‘보아 오빠’가 실수한 게 되잖아요. 어디 가서 행실을 잘못해도 마찬가지죠. 그러니까 항상 조심하게 돼요.


‘피아니스트’ 권순훤으로 평가받고 싶다는 생각도 할 것 같아요.

그런 생각은 처음부터 했는데요, 그 수식어는 제가 열심히 살면 언젠가는 떨어질 거라고 생각 돼요. 제가 쓰지 말라고 해서 사람들이 안 쓰는 거 아니거든요. 그런데 열심히 활동을 계속 하고 쌓아놓은 게 많다보면 어느 순간 사람들 반응이 ‘보아 오빠이기도 하지?’ 이렇게 바뀌겠죠. 그러다 보면 ‘권순훤이 보아 오빠였어?’ 이렇게 될 수도 있겠고요. 그러니까 쉬지 않고 열심히 하려고요(웃음).

세 남매가 모두 예술 분야에서 활동 중이에요. 부모님으로부터 영향 받은 부분이 있는 것 같은데요. 아버님께서는 방송국에서 근무하셨고, 어머님께서는 에세이 『황금률』을 출간한 작가세요.

아버지께서는 TBC에서 카메라맨으로 활동하시면서 음향 관련 일도 하셨어요. 인력이 부족하던 시절이니까 여러 장비를 다루셨던 거죠. 부모님께서는 저희가 뭘 하고 싶은지 아시고 지원해 주셨어요. 부모님이 원하시는 대로 살기를 바라지 않으셨죠. 그게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남매가 클래식과 대중음악이라는 서로 다른 장르의 음악을 하고 있는데요. 음악과 관련해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나요?

오히려 안 해요. 가끔씩 동생이 멜로디를 쓰고 나서 화음을 넣어달라고 하면 만들어 주기는 해요. 그런데 깊은 이야기는 서로 안 해요. 어차피 서로 분야가 다르니까요. 그리고 어느 정도 각자의 위치에서 전문가가 됐잖아요. 그러면 서로 보는 것만으로도 힘이 돼요. 여동생 콘서트에 가서 무대를 보면 정말 대박이에요(웃음). ‘저렇게 하기 위해서 얼마나 뒤에서 피땀을 흘렸을까’ 보이거든요. 말 하지 않아도 보여요. 여동생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오히려 고수가 될수록 서로 알아보고 말이 필요 없는 거죠. 그런데 남동생과 여동생은 같은 분야에서 일하니까 많은 이야기를 나눠요. 예를 들어서 ‘뮤직 비디오 촬영할 때 앵글을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고 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실행할 수 있잖아요. 그런 차이는 있더라고요.

독자들에게 추천하는 『나는 클림트를 보면 베토벤이 들린다』의 감상법은 무엇일까요?

식사 후에 커피 한 잔, 과일 한 조각 맛보는 기분으로 즐기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이지 클래식-미술관에 간 피아니스트’ 공연을 기획할 때도 그랬지만, 이번 책에서도 많은 분들에게 친숙한 음악과 그림을 소개했어요. 『나는 클림트를 보면 베토벤이 들린다』를 통해서 그림과 음악의 깊이 있는 이야기들에 쉽게 접근하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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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클림트를 보면 베토벤이 들린다권순훤 저 | 쌤앤파커스
2008년에 시작되어 클래식 공연으로는 이례적으로 수년째 매진 행렬을 기록하며 현대 클래식 공연의 가장 성공적인 표본이 되고 있는 ‘권순훤의 이지 클래식 - 미술관에 간 피아니스트’가 책으로 나왔다. 미켈란젤로와 모차르트, 렘브란트와 바흐, 모네와 슈베르트, 고흐와 드뷔시… 대체 이 위대한 예술가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인류 최고의 화가와 음악가들의 흥미진진한 비하인드 스토리! 62점의 명화와 67곡의 클래식 음악이 보여주고 들려주는 상상초월 클래식 오디세이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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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임지윤 “꿈이 없는 게 야단맞을 일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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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지윤 작가

 

 

임지윤 작가의 첫 장편동화 『앵무새 돌려주기 대작전』은 실수해도 괜찮다고, 아직 꿈을 찾지 못했다고 해서 잘못을 저지른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지금까지 우리가 아이들에게 ‘희망고문’을 해왔던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된다.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도 때로는 ‘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는 진실을 알려줬더라면, 실패 앞에서 아이들은 조금 덜 아파하지 않았을까. 조금 더 빨리 다시 일어설 수 있지 않았을까. 아이들을 자라게 하는 것은 성공의 경험만이 아니고, 실패를 거듭하는 중에도 꿈은 발견된다. 그 작지만 소중한 진리를 『앵무새 돌려주기 대작전』은 경쾌한 리듬으로 들려준다.

 

선머슴 같지만 이름처럼 정이 많은 13세 소녀 ‘정마니’.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한 마리 앵무새로 인해 마니는 특급 임무를 부여 받는다. 동생이 실수로 데려온 아빠의 사장님네 앵무새를 아무도 모르게 돌려보내야 하는 것. 승진 발표를 앞둔 아빠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 ‘작전’을 앞두고 마니는 최선을 다해 해결 방법을 찾는다. 하지만 실수를 거듭하면서 일은 점점 꼬여만 가고, 같은 반으로 전학 온 사장님 아들 ‘문수혁’에게 앵무새를 들킬 위기에 처하게 된다. 과연 마니는 ‘앵무새 돌려주기 대작전’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을까.

 

『앵무새 돌려주기 대작전』은 제18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의 고학년 부문 수상작이다. 어린이책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던 중 ‘아이들에게 재밌는 책을 읽게 해주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동화를 쓰기 시작했다는 임지윤 작가. 『앵무새 돌려주기 대작전』을 통해 그 바람은 현실이 되었다. “입담 좋은 문장, 리듬을 타듯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서사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시선을 잡아끄는 작품의 도입부도, 선머슴 같지만 속은 여린 주인공도, 작품 전체를 일관하는 유머러스함도 매력적”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동화 작가로서 성공적인 첫 발을 내딛은 것이다. 가벼운 웃음은 물론 묵직한 의미까지도 놓치지 않으며 주목할 만한 신인 작가의 탄생을 알린 임지윤 작가와 만났다. 


 
앵무새를 기르듯 아이를 키우고 있다면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시다가, 동화를 직접 써야겠다고 생각하신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그림책 그리는 일을 하면서 동화를 많이 읽었는데, 조금 우울하거나 사회 비판적인 내용의 동화들을 볼 때면 아쉽기도 했어요. 아이들에게 뭔가 일깨워주려고 하는 건 정말 좋다고 생각하지만, 조금 더 재밌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정말 웃기고 재밌는 책을 쓰면 어떨까’ 생각이 들어서 동화를 쓰게 됐어요.

 

소설이 아닌 동화를 선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제게는 성인 독자를 대상으로 한 소설보다 동화가 더 잘 맞는 것 같아요. 이야기가 훨씬 담백하고 꾸밈이 없잖아요. 표현적인 측면보다는 서사로써 보여줄 수 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아주 담백하게. ‘인생은 이런 거야’라고 멋지게 이야기하지 않아도 돼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살다 보면 삶의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소설 같을 때가 있잖아요. 거기에서 오는 감동들도 있고요. 그런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이야기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그게 가장 동화답다고 느끼고요.

 

동화 속 아이들의 모습은 굉장히 현실적입니다. 대화에 사용된 단어만 보더라도 요즘 아이들에게서 흔히 들을 수 있는 것들이죠.


어른의 입장에서 ‘아이들은 이럴 거야’하고 생각하면서 쓰면 진실 되지 않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아이들을 만날 기회를 많이 가졌죠. 성당 주일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하고, 도서관에서 봉사활동을 하기도 하고요. 그러면서 아이들을 가르치기보다는 많이 지켜봤어요. 아이들의 생각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쓰기 시작하니까 아이의 말투가 나오기 시작하더라고요. 『앵무새 돌려주기 대작전』에 등장하는 아이들 대부분은 제가 친하게 지냈던 아이들을 모델로 하고 있어요. 아이들을 전혀 이해하지 않고 동화를 쓸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임지윤작가

 

 

『앵무새 돌려주기 대작전』은 이야기의 끝까지 반전이 이어지죠. 서사에 있어서 많은 고민을 하셨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정말 많이 다듬었어요. 초고가 나온 후에 출간되기까지 1년이 걸렸는데요, 후반에 수정 작업을 할 때는 거의 캐릭터들한테 맡겼던 것 같아요. ‘주인공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생각하면서요. 그러다 보니까 ‘이 캐릭터라면 이렇게 멋지게 이야기를 끝맺지는 않을 거야, 뭔가 엉터리 같은 사건이 벌어질 거야’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반전 있는 이야기들이 떠올랐죠. 단조로운 서사를 피하고 싶은 마음에 사건을 조금 더 다양하게 넣어서 풀어가고 싶은 욕심도 있었고요.

 

작품 안에서 아이들은 앵무새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아이들의 모습을 앵무새에게 투영시키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동네 도서관에서 봉사 활동을 한 적이 있는데요, 그 곳 관장님이 새를 굉장히 좋아하셔서 ‘호동이’라는 이름의 초록 앵무를 키우셨어요. 그런데 어느 날 호동이가 없어진 거예요. 아이들과 같이 앵무새를 찾아 나섰죠. 동네 곳곳에 포스터를 붙이면서요. 그때 ‘이건 완전 동화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그 이야기를 꼭 써봐야겠다고 생각을 했었죠. 이야기의 재미를 위해서 배경은 도서관이 아닌 ‘정마니’의 집으로 바꾸고 새롭게 각색을 했지만, 앵무새를 찾는다는 사건은 똑같죠. 지금도 그 도서관에는 ‘길동이’라는 이름의 회색 앵무를 키워요. 『앵무새 돌려주기 대작전』에 등장하는 앵무새 ‘한비’의 행동이나 특징은 ‘길동이’를 보면서 쓴 거예요.

 

수혁이 엄마가 앵무새 ‘한비’를 대하는 태도는 현실에서 우리가 아이들을 대하는 방식과 닮아 보입니다.


수혁이 엄마는 ‘한비’에게 말을 가르치기 위해서 하루 종일 녹음기를 틀어 놓잖아요. 실제로 그런 모습을 보고 너무 속상했던 적이 있었어요. 아이들을 가르치는 엄마의 모습 그대로더라고요. 그런데 그렇게 한다고 해서 앵무새가 말을 따라하지는 않거든요. 자기가 하고 싶을 때만 말하고, 자기와 친한 사람이 아니면 말을 하지 않을 때도 있어요. 아이들도 마찬가지예요. 자기가 기분이 좋고 말을 하고 싶을 때 엄마와 이야기하는 거죠. 아무리 ‘왜 엄마랑 얘기를 안 하니, 왜 공부 안 하니’라고 해봤자 말을 듣지 않아요. 그런 점에서 앵무새와 비슷한 점이 참 많죠.

 

 

임지윤작가

 

 

꿈이 바뀌어도 괜찮아. 중요한 건 나를 믿는 거야

 


작품을 쓰시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셨던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앵무새 돌려주기 대작전』에서 ‘정마니’의 엄마는 집안 곳곳에 명언을 붙여놓잖아요. 그걸 보면서 의지를 북돋우는 게 좋기는 하지만, 부모가 자신이 하지 못했던 걸 자식한테 강요하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내 인생을 사는 거지, 부모의 인생을 대신 살아주는 게 아니잖아요. 부모님 뜻대로 살다가 어른이 돼서 ‘나는 꿈이 없어, 나는 뭘 해야 될지 모르겠어, 난 다른 걸 하고 싶은데 엄마한테 어떻게 말하지’ 이렇게 고민하는 사람들도 굉장히 많아요. 자존감이라는 건 대학에 보낸다고 해서 생기는 게 아니거든요. 어릴 때부터 자기 자신을 믿는 것이 중요한데, 그러려면 부모가 자식을 믿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이 가끔 못된 짓을 할 때가 있긴 하죠. 그런데 스스로 책임을 질 수 있다면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못된 짓 한 번도 안 하고 자란 아이가 결코 좋은 어른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그런 경험도 해 보면서 ‘이러지 않아야 되겠구나’ 느끼잖아요. 남한테 준 것보다 더 큰 상처를 자신이 받는다는 것도 느껴보고요. 그런 것들을 다 느끼면서 또 자기 자신을 믿으면서 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앵무새 돌려주기 대작전』을 쓰면서 알게된 ‘아이들과의 소통법’이 있다면.


아이들한테 답을 주려고 하지 말고 질문을 조금 더 많이 해보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사실 어른들도 완벽하게 답을 알지 못하거든요. 그런데도 답을 주려고 하다 보니까, 속으로는 ‘이게 아닌 것 같은데’ 싶으면서도 체면 때문에 강하게 자기 주장을 펼 때가 있죠. 그게 아이들한테는 조금 더 폭력적이고 강압적으로 느껴질 때가 많은 것 같아요. 아이들에게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하고 물어보려면 인내심이 필요하죠. 아이들은 전혀 엉뚱한 이야기를 하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그것 자체로 이해하고 포용해줄 수 있는 인내심이 조금 더 필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아이들에게 참으라고 하지 말고 우리가 조금 더 참아주면 안 될까’ 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게 아이들과 더 가까워지는 방법이 아닐까 싶어요. 아이들은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데 시간이 걸려요. 속상한 일이 있으면 심통 부리고 화부터 내죠. 그럴 때 혼을 내는 게 아니라 ‘무슨 일이 있었니? 오늘 어땠니?’ 이렇게 물어보면 아이가 분명히 얘기할 거예요. 그렇게 아이 안에 있는 감정이 무엇인지를 건드려줘야 부모와 아이가 잘 생활해 나갈 수 있는 것 같아요.

 

부모와 아이가 함께 책을 읽는 것만큼 좋은 일도 없을 텐데요. 『앵무새 돌려주기 대작전』을 읽은 독자와 자녀들이 어떤 이야기를 나누기를 바라시나요?


엄마 아빠의 꿈이 아이들한테만 기울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엄마도 꿈이 있었으면 좋겠고, 아빠도 꿈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대부분의 동화책들과 달리, 저는 『앵무새 돌려주기 대작전』의 끝에서 아빠한테도 행복을 주고 싶었어요. 아빠한테도 꿈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꿈을 이루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꿈을 갖고 있지 않은 부모님들을 보면 안타까운 생각이 들어요. 부모가 꿈이 없는데 과연 아이가 어떤 꿈을 갖고 살아갈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드는 거죠. 제 바람은 『앵무새 돌려주기 대작전』을 통해서 엄마, 아빠, 아이가 다 같이 모여서 자신의 꿈에 대해 얘기하는 시간을 가져봤으면 좋겠어요.

 

임지윤작가

 

 

 

 

『앵무새 돌려주기 대작전』의 아이들처럼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 무엇이 될지 몰라서 고민하는 아이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으신가요?


꿈이 바뀌는 건 괜찮다고 생각해요. 가장 중요한 건 나 자신을 믿는 거죠. 그냥 나니까, 믿는 거예요. 내가 무엇이 돼서 좋은 사람인 것도 아니고, 무엇이 되지 못해서 나쁜 사람인 것도 아니잖아요. 이야기의 끝에서 ‘정마니’는 꿈을 찾지만 그 꿈이 바뀌어도 된다고 생각해요. 지금 그게 좋다면 그렇게 생각하고 행복하게 지내라고 얘기해 주고 싶어요.

 

앞으로 작품 속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깔깔대고 재밌게 웃을 수 있는 명랑 동화를 쓰고 싶고요. 그리고 진지하게 고민하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아이들이 재밌게 읽을 만한 이야깃거리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하겠지만 삶의 진솔한 부분을 놓치고 싶지는 않아요. 꼭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아이들의 생활 안에서 소소하게 벌어지는 일들에도 철학이 다 담겨있거든요. 그런 이야기 안에서 아이들이 즐겁게 삶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동화를 쓰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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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 돌려주기 대작전임지윤 글/조승연 그림 | 창비
언뜻 평범해 보이지만 저마다 문제를 안고 있는 열세 살 소녀 마니네 가족이 앵무새를 둘러싼 사건을 겪으면서 서로의 아픔을 이해하는 과정이 독자들의 공감을 자아냅니다. 때로는 따뜻하고, 때로는 톡톡 튀는 유머도 작품을 더욱 친근하게 느낄 수 있게 합니다. 화려한 성공만을 좇고 멘토가 넘치는 요즘 같은 때, 성공이 아닌 행복을, 멘토가 아닌 자기 자신을 긍정하는 건강한 어린 주인공의 등장이 믿음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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