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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민 “30대 여배우의 고민, 다르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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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플랜맨>속 소정(한지민)은 작은 클럽에서 노래를 부른다. 화려한 레깅스를 입고 고양이 분장을 하고 신나게 외친다. “나도 완전히 변할 거야. 계획 따윈 세우지 않을 거야. 시간도 안 지킬 거야. 지각도 맨날 할거야.”즉흥적이고 자유분방한 일상을 사는 ‘소정’은 1분 1초까지 계획대로 살아온 남자 ‘정석’(정재영)에게 밴드를 같이 하자고 제안한다. 급기야 정석을 8년 7개월 26일 만에 지각을 하게 만들고, 점점 무계획적인 일상으로 정석을 초대한다. 한지민은 <플랜맨>시나리오를 처음 받았을 때, 기대가 크지 않았다고 한다. 눈에 띈 건 ‘소정’의 캐릭터. 독특하고 엉뚱한 성격의 소정이 클럽에서 부르는 노래 가사를 읽고는 “이 작품 하고 싶다”고 생각했단다.

<플랜맨>개봉 날, 삼청동 카페에서 만난 한지민. 실제 성격이 무척 털털하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허스키한 목소리는 예상 밖이었다. 이유인즉 노래를 부르느라 목을 많이 썼더니 후두염에 걸렸단다. 영화를 찍으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겠다고 묻자, “극중 역할이 밴드 보컬이라서 오히려 ‘너 진짜 보컬 같다’는 소리를 들어서 오히려 좋았다”고. <플랜맨>성시흡 감독은 영화 촬영이 들어가기 전, 한지민에게 “예쁘지 않게 보였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한지민은 큰일났다. <플랜맨>남성 관객의 대부분이 “한지민은 역시 예쁘다”로 관람평을 내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상반된 두 남녀가 만나면 어떤 사랑이?

“성시흡 감독님이 조화롭지 않은 캐스팅을 하고 싶었대요. 안 어울릴 것 같은 두 남녀가 만났을 때 어떤 케미스트리가 나오는지를 영화에 담고 싶었다고요. 정재영 선배님이 잘생기지 않았다는 건 결코 아니고요(웃음). ‘소정’이라는 인물은 항상 기분이 업 되어 있는 캐릭터지만, 알고 보면 사랑에 대한 상처도 있고. 그래서 ‘정석’(정재영)에게 마음을 여는지도 몰라요.”

지난 1월 9일, 개봉해 관객들을 찾아가고 있는 <플랜맨>은 정재영, 한지민이 호흡을 맞춘 코미디 영화다. 사소한 모든 일에도 계획을 세우는 남자 ‘정석’이 자유분방하고 즉흥적인 밴드 보컬 ‘소정’을 만나 ‘무계획적인 인생’에 도전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정재영이 출연한 2004년작 <아는 여자>와 살짝 비슷한 느낌이 들지만, 10년의 거리감이 있으니 영화의 색깔은 확연히 다르다.

“정재영 선배님이 ‘정석’ 역을 맡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흔쾌히 출연을 결정했어요. 선배님이 <이끼>같은 스릴러물도 많이 하셨지만 <아는 여자><김씨 표류기>같은 드라마물도 하셨잖아요. 잔인하고 무서운 면도 있지만, 일상적이고 자연스러운 연기도 너무나 뛰어난 배우라서 함께 작업하고 싶었어요. <플랜맨>의 ‘정석’이 너무 꽃미남이면 안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도 있었고요(웃음).”

한지민과 <플랜맨>으로 처음 호흡을 맞춘 정재영은 요즘 영화 홍보를 다니며 “한지민은 여신”이라는 찬사를 늘여놓는 중이다. 이 이야기를 들은 한지민은 “정재영 선배님의 이번 영화 홍보 콘셉트”라며 “이제 여신 소리를 들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아쉬워했다.

“인간 세계에 내려오기 전에 실컷 들어 보려고요(웃음). <플랜맨>을 보시면, 놀라는 관객들도 계실지 몰라요. 사실 제 실제 모습이랑 가장 닮은 캐릭터이기도 하거든요. 이번 작품에서는 예쁘게 보이고 싶다는 생각이 없었어요. 머리도 약간 헝클어진 상태로 나오고 즉흥적이고 게으르고(웃음). 물론 저랑 똑같이 닮진 않았지만 비슷한 면이 많아요. 즐겁게 인생을 살고 싶다는 생각은 굉장히 닮았죠.”

한지민은 인디밴드 보컬 캐릭터를 소화하기 위해 5개월간 혹독한 보컬 트레이닝을 받았다. 수능을 앞둔 입시생의 기분으로 기타를 배우고 노래를 불렀다는 한지민은 <플랜맨> OST를 작업한 UV 뮤지, 유세윤의 도움도 톡톡히 받았다. 노래가 UV 작곡답게 예쁜 노랫말은 아니지만, 한지민이 부르니 더욱 귀에 감기는 건, 비단 남성 팬들만의 생각은 아닐 듯싶다.

“5월부터 노래 연습에 들어갔어요. 9월 말에 녹음을 했는데, 처음에는 멜로디가 아직 완성이 안된 상태라서 윤하, 아이비 노래를 연습했어요. 완전히 다른 느낌의 노래가 나왔는데 전 부르기도 힘든 여자 가수 노래만 연습하고(웃음). 뮤지 씨가 도움을 많이 줬어요. 영화 촬영하면서 술자리 회식이 많았는데, 저는 항상 도망갔었거든요. 녹음해야 하는데 목이 상할 까봐. 그런데 뮤지 씨가 그러더라고요. 음악은 즐겁게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요.”

<플랜맨>에서 싱어송라이터 ‘소정’(한지민)이 작곡한 노래는 ‘플랜맨’을 비롯해 ‘삼각김밥’ ‘개나 줘버려’ ‘유부남’ 등이다. 한지민이 가장 마음에 들었던 노래는 정재영이 피처링으로 참여한 ‘개나 줘버려’. 심리적으로 공감이 된 노래는 ‘유부남’이다. 극중 소정은 유부남 작곡가와의 스캔들로 고역을 치렀다. 유부남 작곡가가 심사위원으로 출연한 TV 오디션에서 소정은 ‘유부남’을 열창하고, 작곡가를 곤혹스러운 상황에 빠뜨린다.

“결혼한 남자를 만나본 건 아니지만, 여자라서 그런지 마음에 많이 와 닿더라고요. 뭔가 마음이 시원해지고 좀 더 세게 부르고 싶고(웃음). 실제로도 오디션 프로그램을 많이 봤었어요. TV를 보면 출연자들이 노래만 부르는 게 아니라 막 사연도 나오고 그러잖아요. 사연을 듣고 있으면 아무도 안 떨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막 들고, <위대한 탄생>에 출연했던 손진영 씨에게 문자 투표를 많이 했었어요. 얼마 전에 휴대폰에 쌓인 문자들을 정리하는데, ‘손진영’ ‘손진영’ 이런 문자가 여러 개 있는 거예요. 이게 뭐지? 했는데, 생각해보니 문자 투표를 한 거였더라고요.”

한지민이 <플랜맨>을 선택한 건, 고착화된 이미지에 틈을 열어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드라마 <빠담빠담> <옥탑방 왕세자> 등에서 비슷한 캐릭터를 연이어 소화하며 연기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예전에는 작품을 고르기보다는 계속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이 컸는데, 연차가 쌓이면서 이제 나도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하는 건 아닐까, 생각했어요.”




재밌게 일하고 싶은 열망이 많아요

어느덧 데뷔 12년차. 고등학생 때 연기에 입문한 한지민은 드라마 <올인>에서 송혜교 아역으로 출연해 주목을 끌었다. 쉼 없이 필모그래피를 쌓아오며, 브라운관을 넘어 스크린까지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한지민은 “재밌게 일을 하고 싶은 열망이 많다”고 말했다.

“무슨 작업이든 재밌는 일을 좋아해요. 어떤 일을 해도 즐겁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일이라는 게 좋아서 하는 거지만, 당연히 그에 따른 스트레스가 있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큰 즐거움을 얻는 게 연기고요. 사실 데뷔 초에는 겁쟁이였어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오디션장에 가서 자기소개도 제대로 못하고, 한 바퀴 돌아보라고 하면 쭉 돌고(웃음). 강심장이 아니라서 오디션을 볼 때마다 엄청 긴장했어요. 너무 어리숙했는데 그 모습이 오히려 플러스가 됐던 것 같아요.”

대가족 안에서 자란 한지민은 혼자 있는 시간들이 어색하다. 현장에서도 집에서도 언제나 북적거리는 시간이 행복하다고. <플랜맨>‘정석’과 비슷한 캐릭터의 남자가 한지민 앞에 나타난다면? “나쁘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영화를 찍기 전까지는 ‘정석’이라는 인물이 나랑 너무 다른 사람이고 특이하고 비호감이라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저런 사람이 나에게 다가온다면 못 만날 것 같았는데, 영화를 찍으면서 생각이 달라졌어요. 이렇게 순수한 사람이 요즘은 흔치 않잖아요. 순수함이 귀엽고 또 그 안에 있는 아픔을 이해하니까 다르게 보이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정리정돈을 잘 못해요. 어지르는 것만 잘하고. 정석이 같은 사람을 만나면 다 치워주지 않을까요? (웃음) 저에게 스트레스를 주지 않는다면 좋을 것 같아요.”

아직은 30대 초반이지만 결혼도 생각할 나이. 한지민은 결혼 계획을 묻는 질문에 “결혼보다는 연애만 하고 싶다”고 말했다. “나이가 점점 들면서 나도 때가 다가오겠구나 싶지만, 결혼 상대로 누군가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은 아직 없어요. 시기적으로 연애를 하고 싶다는 마음은 들지만 결혼은 글쎄요.”

이상형으로 꼽는 성격은 긍정적이고 밝은 사람이다. “부정적인 사람을 만나고 있으면 내가 가지고 있던 좋은 기운마저 뺏기는 느낌”이라는 한지민. “주위에 결혼한 사람들이 많아지다 보니까, 결혼에 대해 진지한 생각을 하게 되는 건 사실이에요. 마냥 좋은 감정으로 결정하는 게 아니라, 결혼은 생활이잖아요. 두 가족이 만나는 느낌도 있고요. 가끔 조카를 봐주기도 하는데, 봐주다가 지쳐요(웃음). 정말 결혼은 현실인 것 같아요.”




법륜 스님 『인생수업』 읽고 있어요

2009년 『우리 벌써 친구가 됐어요』를 출간한 바 있는 한지민. 『우리 벌써 친구가 됐어요』는 한지민과 드라마작가 노희경 등을 비롯한 9명의 서포터즈가 필리핀의 오지 마을 알라원을 찾아가, 아이들과 함께한 4박 5일을 기록한 책이다. 8년째 국제구호단체 한국JTS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한지민은 요즘 법륜 스님의 『인생수업』을 읽고 있는 중이다.

“소속사를 옮기면서 대표님께서 주신 책이 법륜 스님의 『인생수업』이에요. 평소 법륜 스님의 팬이기도 해서 반가운 마음으로 읽고 있어요.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만, 쉽게 마음에 닿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책을 보니까 이해가 되더라고요. 예전에 노희경 작가님과 함께 마음공부 프로그램에도 참여하고 즉문즉설도 들었는데, 굉장히 도움이 됐었거든요. 세상에 정답 같은 이야기를 하는 건 쉽지만, 그걸 놓치지 않고 마음에 담기는 어렵잖아요. 그럴 때 이런 프로그램이나 책을 읽는 게 도움이 돼요.”

『인생수업』에서 한지민이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에서 비롯된 이야기다. “복을 받을 일을 하지 않았으면서, 받을 생각만 하면 안 된다고요. 맞는 말 같더라고요. 새해가 되면 복 많이 받으라는 소리만 하는데, 복을 받을 일을 하는 게 훨씬 중요하지 않을까요.”

여배우로 살아간다는 것은 굉장한 축복이면서도 고충이 많다. 늘 새로운 스타를 기다리는 대중과 미디어. 언젠가 작품을 고르는 게 아니라, 선택되는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 배우 10년차를 넘어서며, 한지민은 결심한 것이 하나 있다. 일상 생활에 있어서는 ‘사람 한지민으로서의 삶’에 집중하는 것. 카메라를 벗어난 일상에서 얻는 것들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늘 배우들 곁에는 스태프들이 많잖아요. 다 챙겨주고. 가끔 ‘내가 너희들 없으면 어떻게 살아갈까’ 이런 말을 하기도 해요. 여배우의 특혜인 것 같기도 하고. 30대 중반이 다가오면서, 내 삶의 변화가 더욱 커질 거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외모부터 많이 달라질 텐데 내가 잘 감당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도 많이 하고. 주인공이 아닌 작품이 들어왔을 때, 담담할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고요. 연기자는 새로운 작품을 하면 내가 아닌 다른 캐릭터가 되어야 하잖아요. 물론 매력적인 일이고 얻는 것도 많지만, ‘연기자’라는 정체성을 갖고 사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작품 외의 삶에도 집중하고 싶고요. 내 삶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싶어요. 어쩔 수 없는 것들에 집착하고 싶진 않아요.”

작품 활동을 하지 않을 때, 한지민은 잠순이가 된다. 생각이 많은 편이라, 잠을 잘 때만큼 행복한 시간이 없단다. 평소 공상이 많으니 잠을 자도 꿈을 여러 개 꾸는 게 일쑤다. 숙면을 취하고 눈을 떴을 때, 꿈이 생생하게 기억날 때가 많다.

“생각이 많아서 잠이 들기까지의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이에요(웃음). 올해는 무엇보다 건강한 한 해가 됐으면 좋겠어요. 다른 여배우 분들에 비해 외모에 정말 신경을 안 쓰는 편인데, 요즘은 나이도 먹어가고 하니까 음식 조절이 필요하겠더라고요. <플랜맨>을 찍으면서 정재영 선배님이 이런 말을 해주셨어요. 영화 쪽에서는 네 나이가 시작하는 나이니까 절대 다급하지 않게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잘됐으면 좋겠다고 말씀해주시는데 너무 감사하더라고요. 조급하지 않게 천천히 한 단계씩 나가고 싶어요. 일상의 행복도 잘 요리하면서, 후회하지 않게 잘 놀고 싶어요.”

한지민은 요즘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 푹 빠졌다고 한다. “전지현 씨 너무 예쁘지 않아요? 정말 팬이에요”라며, 동조를 구하듯 살갑게 물었다. 또래 배우를 극찬하는 것, 여배우에게는 쉽지 않은 일인데 한지민은 거리낌이 없었다. 청순하고 단아한 매력 때문에 한지민을 좋아했던 남성 팬들, 이제 얼마 안 있어 그녀의 솔직하고 자연스러운 인간미에 더욱 호감을 느끼지 않을까. 조바심 낼 필요는 없다는 듯, 일상을 즐기는 한지민의 또 다른 모습은 후속작 <역린>에서 만나볼 수 있다. <역린>은 현빈의 복귀작으로, 한지민은 정재영과 또 한 번 호흡을 맞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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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렬 “좋은 상사가 되고 싶다면 커뮤니케이션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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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을 선택하는 조건에는 네 가지가 있다. 일, 사람, 돈, 회사. 일이 1순위인 사람은 수입이 조금 적어도, 함께 일하는 사람과 호흡이 맞지 않아도 견딜만하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 때문. 그러나 사람이 1순위인 사람은 일, 돈, 회사가 모두 만족스러워도 ‘내가 언젠가 이 회사를 나가고야 말지’하며 마음속에 딴 생각을 품고 있다. 조직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관계만큼 중요하고, 힘든 일도 없다. 관계 맺기를 잘하려면 무엇보다 잘 알아듣고 잘 말해야 한다. 커뮤니케이션을 잘하는 사람 치고 일을 못하는 사람은 드물다.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성공하는 직장생활을 할 수 있을까? 상사 복 없고, 부하 복 없다고 하소연하기 전에 내가 먼저 좋은 상사, 좋은 부하가 되어야 한다. 우선 열 마디 할 말을 두 마디로 줄이고, 말한 만큼 들을 줄 알아야 한다. 부하에게 의견을 묻는 상사를 두고 의뭉스러운 행동을 할 후배는 없다.

2002년, 유승렬 대표는 SK주식회사 대표이사 사장을 스스로 박차고 나왔다. 오랫동안 회사 내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고민해왔던 터라 기업 CEO, 임원들을 대상으로 코칭, 컨설팅을 주로 하는 벤처솔루션스를 창업했다. 유 대표가 회사생활을 하면서 첫손에 꼽을 만큼 가장 인상적인 메시지는 “직장인은 누구나 경영자”라는 말. 당시 10년차 과장이었던 그는 스스로 경영자라는 자아의식을 갖고 업무에 임하게 됐다. 오랜 직장 생활 끝에 얻은 노하우로 최근 『베타 커뮤니케이션』을 펴낸 유승렬 대표. “모든 일에 있어서 ‘어떻게 할까?’에 앞서 ‘무엇을 할까?’가 중요하듯, 회사 내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도 ‘무엇을 커뮤니케이션할 것인가’가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 『베타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다. 유 대표는 “좋은 상사란, 배울 게 많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부하 입장에서는 이렇게 토를 달 수도 있을 것이다. “배우고 싶은 마음이 들게끔 행동을 하셔야죠.” 이런 마음,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해답은 ‘커뮤니케이션’에 있다.

새로운 시대의 패러다임은 기존의 ‘알파’와 대비되는 ‘베타’. 알파 모델이 하향식 방침과 명령에 의한 계층적 조직 운영 위주의 방식이라면, 베타 모델은 구성원 각각이 자아를 실현하면서도 서로 간에 협업을 이루어내는 재즈 밴드와 같은 수평식 조직 운영 위주다. 회사 내의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도 서로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양방향 커뮤니케이션을 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베타 조직에서는 개개인의 재능과 창의성을 결합하여 공동체의 목표를 달성하는 것을 핵심 가치로 삼는다. (『베타 커뮤니케이션』 p.5)




상사는 존중하고, 부하는 제때 보고하라

‘회사 업무 중 80%는 다른 사람의 말을 듣거나, 내 말을 다른 사람이 듣는 것’이라는 조사 결과가 있다. 이만큼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은 높지만 정작 기업에서는 눈치껏 잘 알아듣기를 바란다.

피터 드러커는 “기업에서 발생하는 문제의 60%는 커뮤니케이션의 잘못에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미국에 있는 한 기업이 직장인 2만3천 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했는데, 회사원의 37%만이 자기가 속한 조직이 무엇을, 왜 달성하려고 하는지를 분명하게 안다고 말했다. 그리고 5명 가운데 1명만이 자신의 업무가 팀과 조직의 목표와 일치한다고 답했다. 이런 현상은 누구의 잘못이겠나? 누구에게나 근본적인 잘못은 없다. 대부분 커뮤니케이션의 잘못에 기인한다.

조니 버나드 쇼는 “커뮤니케이션의 가장 큰 어려움은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었다고 착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곡을 찌른 말이다. 사실 본인들이 이 사실을 깨달으면, 이미 반 이상이 발전된 거다. ‘내가 커뮤니케이션을 과연 잘하고 있을까?’하고, 되돌아보는 건 발전의 시작이다.

대학에서 경영학과를 전공하고 대기업에서 대표이사직까지 올랐다. 신입사원 때부터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깨달았나?

커뮤니케이션이라는 항목, 그 명제를 가지고 잘했다기보다는 그래도 조금은 일찍 ‘경영자’ 마인드를 가질 수 있었다. 직장생활 10년차 때 회사에서 교육을 받았는데, ‘초급 간부도 경영자’라는 마인드를 알게 됐다. 그 때부터 ‘어떻게 일을 해야 할까’에 초점을 두고 직장생활을 했다. 부하 직원을 육성해야 하는 책임감도 있으니,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이 더 절실했다. 예전에는 서류를 검토하는 일에만 급급했지, 서로 협의하고 결정해야 하는 과정의 중요성을 잘 파악하진 못했다.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깨닫고 가장 먼저 바뀐 변화는 무엇인가.

일방적인 지시가 아니라 질문하는 법을 알게 됐다. 내가 깨달은 것을 동료들한테 이야기하고, 동료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들어 보는 일의 중요성을 알았다. 다른 부서가 가지고 있는 정보, 지식을 얻어다 써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이 부서, 저 부서 기웃거리면서 사람들을 사귀고 요청도 많이 했다. 정성껏 이야기하면 상대도 거부감이 없다. 인문계를 전공해서 이공계 지식은 부족했다. 생산, 기술, 엔지니어 이런 부분에 약하니까 타 부서에 가서 많이 물어봤다. 특별히 밀접하게 관계되는 일이 아닌데도, 와서 물어보고 궁금해 하니까 처음에는 어리둥절해 하다가 나중에는 친절하게 가르쳐주더라. 저절로 자신감이 붙었다. 내가 이공계 지식이 필요하듯 그 쪽도 시장 상황이나 경쟁사 동향, 마케팅 등을 알면 업무적으로도 효율이 붙는다. 서로 윈윈 했던 것 같다.

책에 나온 조사를 살펴보니 “어떤 형태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리더를 선호하느냐?’’고 물었을 때, “달변은 아니더라도 인격적으로 존중하는 말을 하는 리더”라는 답변이 66%로 압도적이었다.

사실 중소기업이나 중견기업 같은 경우, 팀원들의 의견을 묻는다는 것 자체에 여유를 부린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시간에 쫓기고 할 일은 많은데 사람들의 의견을 취합하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급해 죽겠는데, 그럴 여유가 어딨나? 이렇게 생각하는 게 안타깝다. 하지만, 물어보고 결정하면 결과가 어마어마하게 달라진다. 예를 들어, 부하 직원 다섯 명이 있는데 본인을 포함해서 여섯 명이 뛰는 것과 한 명이 열심히 뛰고 다섯 명이 그냥 쫓아다니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그렇다면 그 다섯 명을 어떻게 열심히 뛰게 하냐? 기계가 아니고 사람이기 때문에 의사 결정에 참여하게 하고 존중해주고, 자기가 이 일에 기여하고 있다는 인식을 갖게 해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수동적이게 된다. 열정이냐 몰입이냐, 이런 데서 결과가 차이가 난다.

임원들에게 경영 코칭을 하며 가장 강조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첫째는 통찰력이다. 많은 정보가 축적되고 내적으로 침착이 되어야, 그것이 논리적인 사고나 통찰력으로 발휘된다. 이건 혼자 힘으로는 어렵다. 동료, 부하 직원들의 도움을 많이 받아야 하고, 여러 가지 지식, 아이디어를 공급 받아야 한다. 임원에게는 리더십을 많이 강조하는데, 같이 일하는 동료와 부하직원들이 기꺼이 자발적으로 몰입을 해서 창의적으로 일을 하게끔 만들어주는 것에 핵심이 있다. 어떻게 서로 힘을 모으게 만드느냐에 성공 여부가 달려 있다.

리더십, 통찰력을 갖기 위해서도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절실히 요구된다. 말이 통하지 않는 상사에게는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내가 상사라고 치자. 내가 일에 대한 열정이 있고 부하에 대한 애정이 있더라도, 그걸 밝히지 않으면 부하들은 모른다. 속마음은 ‘너를 아끼고 있어’라도, 그걸 표현하지 않으면 모른다. 가장 중요한 건 ‘같이’ ‘함께’ 일한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다. ‘내가 뭐를 해줄게’ ‘내가 너를 어떻게 생각해’라고 말하는 것보다, ‘너희들과 함께 더 좋은 성과를 내서 그걸로 승부하겠다’는 마인드가 중요하다. 자기 자신을 내세우려고 할수록 실패한다. 파트너 십, 같이 하겠다는 마인드, 일을 도모하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성과를 ‘같이’ 낸다는 생각을 할수록 일은 성공한다. ‘신입사원들이 사장과 같이 함께한다는 생각’은 내가 잘해서 빛을 보겠다는 것과 큰 차이가 있다.

일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을 잘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도 중요하다는 말이 있다. ‘처럼’이 아니라 정말 잘하는 사람이 그렇게 보인다는 이야기도 있고. 그런데 정작 동료들에게는 인정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일을 잘하더라도 너무 어필을 많이 하니까, 동료들이 볼 때는 언짢은 것이다. 상사의 입장에서는 어떤가?

상사는 부하가 자신이 애를 많이 썼고 고생했다는 것이나, 자신이 출중한 능력을 발휘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장황하게 보고하는 것을 싫어한다. 상사는 이미 자신의 부하직원 개개인의 활동에 대해 속속들이 잘 알고 있다. 경험이 쌓이고 자리가 높아지면 자연히 보이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또 상사가 문제점에 대해서 질문할 때 답변에 충실하기보다는 자신의 입장을 해명하는 것 또한 매우 싫어한다. 대부분 부하직원은 상사가 자신을 비난하거나 공격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지만 그건 틀린 생각이다. 상사는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고자 하는 것이다.

상사의 입장에서 함께 일하기 편한 부하는 어떤 태도를 지니고 있나.

어렵고 곤란한 일이 생길수록 빨리 보고하는 부하가 현명하다. 명제는 ‘그것을 잘했냐’가 아니라, ‘나 혼자 풀려고 하지 않고 즉시 보고를 잘했냐’다. 직속 상사는 보통 직속 후배와 짧으면 2,3년차 길면 4,5년차 차이가 나기 마련이다. 비슷한 경험치가 있기 때문에 업무를 부여할 때 이미 짐작을 하고 있다. 그리고 유능한 상사는 일을 맡겼다고 해서 일이 끝날 때까지 그냥 내버려두지 않는다. 계속 모니터링을 한다. 그런 모니터링을 하는 과정에서 직간접적으로 보고, 알고 있다.




똑똑한 질문보다 무식한 질문이 좋다

일이 잘 풀리고 성과가 좋을 때는 커뮤니케이션이 쉽다. 그러나 일이 잘 안 풀렸을 때, 상사와 부하는 어떻게 소통해야 할지 난감하다.

회사 대표 입장에서 가장 신경을 써야 하는 상황이기도 하다. 어떤 목표를 추진했는데 뜻대로 잘 안되고 성과가 나오지 않았을 때, 부하직원에게 짜증을 내거나 야단치면 안 된다. 정말 중요한 대목이다. 호흡을 잘 고르는 게 필요하다. 실패에 대해 화를 내고 야단을 치면 그 다음에 상대는 권한을 행사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럼 그 권한은 나에게 짐으로 넘어오고, 나는 효율적으로 일할 수 없게 된다. 두 번째로 일을 판단할 때는 70% 성과면 대성공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어차피 60% 비즈니스 룰을 가지고 일한다. 60% 이익을 내면 되는 거다. 70%면 좋은 성과라고 판단한다. 30%를 못했다고 담당 직원에게 화를 내면 그 사람은 판단을 포기한다. 60%에서 50%로 떨어질 때는 그 권한을 회수해야 한다. 70%를 해냈는데 그 이상을 유지하고 싶으면, 담당자에게 권한을 더 줘야 한다. 30%를 못한다고 그냥 놔두는 게 아니라, 30% 상황에 대해 조언을 해줘야 한다. ‘나 같으면 이런 생각을 했겠다, 누구에게 이런 걸 물어봤겠다’ 이런 조언이 필요하다.

조언을 해주는 방법, 타이밍도 중요하다. 말하는 태도에 따라서 듣고 싶을 상사가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

조언은 바로 해주는 게 제일 좋다. 시간을 지체할 필요가 없다. 이야기하는 톤은 ‘내가 질책을 하는 게 아니라, 네가 더 잘하기 위해서 이런 생각을 해봐라’ 긍정적인 태도로 말해주는 것이 좋다. 부하 입장에서도 자신을 야단친다거나 앞으로 내 평가를 나쁘게 하겠다고 생각하지 말고, 나를 더 잘하게끔 도와준다고 생각해야 한다.

질문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가? 직장생활에서 좋은 질문이란 무엇인가?

질문하는 ‘목적’에서 좌우된다. 질문하는 목적이 나를 프리젠테이션 하기 위한 목적인가? 내가 상대방을 더 이해하고 배우고 싶어하는 목적인지가 중요하다. 데이트할 때도 마찬가지 아닌가? 상대방에게 관심이 있으면 하나라도 더 알고 싶다. 아니면 내가 과시하기 위해 질문을 하기도 한다. 사실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발전을 하려면, 듣고 배우는 비중이 높아야 한다. 그래야 좋은 질문도 나온다. 좋은 질문에 신경을 쓰는 것보다는 일단 질문은 많이 하는 게 좋다. 상사 입장에서 질문을 많이 하는 부하를 보면, ‘궁금한 게 많구나’ ‘습득하고자 하는 욕구가 크구나’ 생각한다. 체면을 따지지 않고 무식한 질문을 한다고 해도 욕하지 않는다. 용감하다고 생각하고 더 호감이 간다. 질문을 통해서 그 사람을 더 알게 되면서 ‘저 친구를 이렇게 훈련 시켜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알게 되면 배려도 할 수 있다. 좋은 질문을 한다고 똑똑하다고 평가하는 일은 별로 없다.

동료 입장에서도 유식해 보이는 질문을 숱하게 하는 사람보다는 이 상황에서 정말 필요한 질문을 하는 동료에게 더 호감이 가기 마련이다.

상사 또한 마찬가지다. 유능한 상사는 그런 단면으로 부하를 평가하지 않는다. 한 조각에 불과한 단편적인 행동에 감동을 받거나 좌우되지 않는다. 반복적인 대화를 통해 부하에 대해 잘 알게 되고, 무엇이 필요한지, 무엇을 원하는지 알게 되어 배려해줄 수 있다. 자기를 노출시키면 자기에게 유리하다. 결정적일 때 잘난 모습을 보여주고 ‘잘 넘어가겠지’ 이런 생각은 좋지도 않고 효과도 없다.

회의 때도 그렇다. 지금 상황에서는 불가능한 일임이 분명한데, 본인이 하고 싶어하는 일을 끊임없이 늘여놓는 사람들도 있다.

자기 나름이다. 이를테면 소주 한 잔 마시면서 여유롭게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는 것과 분초를 다투는 보고회의, 업무회의에서 사견을 내는 것은 구분되어야 한다. 짧은 시간에 많은 이슈를 다뤄야 하는데 장황하게 이야기하는 건 좋지 않다. 그런 이야기를 아예 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이야기할 수 있는 타이밍을 잘 살피는 게 필요하다. 그걸 업무시간, 회의시간에 하려고 하면 그건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일이다.

좋은 상사의 정의를 내려 본다면?

‘저 분하고 일하면 배울 게 많겠다’라고 생각이 드는 상사가 좋은 상사다. 좋은 훈련을 받을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들면 좋은 상사다. 두 번째는 나에게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제안하고 도움을 많이 주는 상사. 무슨 이야기를 해도 잘 들어주는 상사가 좋은 상사다. 또한 어떤 성과가 있으면 공을 부하에게, 잘못되면 내 탓으로 여기는 상사가 좋은 상사다.

요즘 직장인들은 멘토에 대한 갈급함이 있는 동시에, 좋은 상사보다 편한 상사를 추구하고자 하는 경향도 있다.

‘나를 편하게 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봤을 때, 편하게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상황이 되어야 하는데, 내가 일을 좀 덜해도 되는 상황을 편하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잘못됐다. 일을 적게 하게 만들어주는 상사가 과연 좋은 상사인가? 이건 쥐약이다. 마취제, 담배, 술 같은 거다. 당장에는 즐겁고 편한 것 같아도 평생 도움이 안 된다. 부하들은 상사가 간섭한다고 생각하고 오해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건 왜 간섭하는가? 골똘히 생각해볼 문제다.

상사가 간섭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부하가 만들고 있는 것인가?

예전에 공장을 가보면 공장 간부들이 자기에게 권한을 주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 본부장, 팀장이 권한을 안 주고 일일이 다 체크한다고 불평한다. 그러면 난 이렇게 질문한다. 첫째로 당신이 팀장으로서 상사인 본부장에게 일하는 과정을 얼마나 잘 알 수 있게끔 모니터링 수단을 제공했는가? 이렇게 물으면 대부분 보고를 제때 하지 않았다. 팀장 입장에서는 팀원들이 도대체 무슨 일을 했는지 알 수가 없어서 답답하다. 상사가 부하에게 권한을 줬다고 책임까지 없어지는 건 아니다. 일을 잘하기 위해서 부하에게 권한을 줬지만, 잘못하면 상사 책임이다. 보통 회사에서 보고서 쓰다가 판 난다는 소리를 한다. 관료 체계가 어쩌고저쩌고 말도 많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내가 얼마나 상사에게 모니터링 수단을 제공했는지.

책 속에 ‘상사와 부하가 서로 불만을 겪는 사례’가 나온다. 매우 동의하는 바가 컸다. 직장생활을 이제 막 시작하는 신입사원들이 읽어도 좋겠지만, 특히 상사와 부하가 모두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팁이 많더라. 임원이나 간부, 상사들이 읽어보고 직원들에게 소개해주면 좋을 것 같다. 직원들이 찾아서 읽기는 어렵고, 알아서 해주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이다. 직원들이 커뮤니케이션 스킬을 잘 습득하고 소통을 잘하면 누구의 이득이겠는가. 회사가 잘되는 길은 직원들이 상사, 부하 관계 없이 모두 소통을 잘하는 길에 있다. 친구가 이 책을 보더니 ‘30년 전에 알았다면 얼마나 좋았겠냐’고 말하더라. 그래서 내가 이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너 아들 주랬잖아.”(웃음)



상사와 부하가 서로 불만을 겪는 사례

부하의 불만

상사의 불만

 우리 팀장(상사)는 왜 내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가?

 김 대리는 시도 때도 없이 뜬금없는 이야기를 한다.

 아무도 회사의 전략이나 본부의 전략을 나(평사원)에게
 알려주지 않는다.

 신입사원 박 모씨는 모르는 것을 도통 물어보지를
 않는다.

 나는 회사의 중요한 사정을 소문으로 듣고 있다.
 심지어 외부로부터 듣는 경우도 있다.

 정 파트장은 내부는 물론 외부의 소문에 대해서
 즉시 보고하지 않는다.

 전략 수립이나 의사결정을 할 때 나의 의견은 묻지도
 않는다. 결정은 혼자 하고 나에게는 지시만 한다.

 부하들의 의견을 몇 번 들어보았지만 열심히 준비를 하지
 않고 즉흥적이고 피상적인 말만 하니 의미가 별로 없다.

 간혹 의견을 말하면 그 의견의 단점을 날카롭게 지적하여
 주눅이 들고, 더 이상 의견을 말하고 싶지 않다.

 이 대리는 비합리적인 의견을 말하는 경우가 많고
 문제점을 말해주어도 잘 이해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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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타 커뮤니케이션유승렬 저 | 위즈덤하우스
이 책을 쓴 유승렬 대표는 "직장인은 누구나 경영자다"라고 말하며 되도록 많은 경영자들이 이 책을 읽도록 권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경영자는 조직 구성원 모두를 의미한다. 말단 직원이라도 자신이 한 사람의 경영자라는 자아의식을 갖고 업무에 임한다면 회사를 잘 경영하기 위해 무엇을 잘 알고, 무엇을 행해야 하는지 저절로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부서 내 협업, 부서 간 협업, 공식 행사 등과 같은 서로 다른 상황에서의 커뮤니케이션, 상하ㆍ부하ㆍ동료 등 대상에 따라 달라지는 커뮤니케이션 등 각각의 경우에 맞는 커뮤니케이션 전략을 제공하고 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윤순례 “소설가가 특정한 존재에 관심을 가지는 건 스스로 구속하는 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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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란 무엇인가?

‘가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쉬우면서도 어렵다. 어머니, 아버지, 딸, 아들은 가족이지만 그 경계가 확실하지는 않다. 최근 황선재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와 김현식 사회학과 교수가 발표한 논문이 화제다. 「재산상속대상 결정요인 분석」 은 아들은 동거 여부와 상관 없이 상속 대상이나 딸은 동거해야 상속하겠다는 경향이 우리사회에 강하다고 지적한다. 이는 딸보다는 아들을 진정한 가족으로 여기는 가부장적 질서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사실을 나타낸다.

일반적으로 가족을 이루는 기본적인 요소로 ‘같은 핏줄’을 들지만, 가부장제에서는 핏줄보다는 남자라는 성별이 우선했다. 상속을 위해 다른 핏줄(서자)을 들여오는 경우가 이를 증명한다. 그렇다고 서자를 들일 때 완전히 다른 핏줄을 데려오지는 않았다. 주로 부계 쪽의 남자 아이를 서자로 들였다. 어쨌든 지금보다 덜 복잡한 전근대사회에서도 가족제도는 고정불변한 게 아니라 상황에 따라 유동적이었다. 어제는 남이었는데 오늘은 가족으로써 겸상을 할 수 있는 게 가족.

서울의 변두리, ‘궁전빌라’라는 이름과는 어울리지 않게 낡아빠진 다세대 주택. 주인공인 효은의 터전이자 장편소설 『낙타의 뿔』의 무대다. 그곳에서 효은은, 아내와 이혼하고 쓸쓸히 늙어가는 아빠와 살고 있다. 재혼을 위해 노력하던 아버지는 조선족 여인을 만나 두 번째 결혼에 성공한다. 살갑지 않은 효은과 궁전빌라의 안주인을 자처하는 조선족 여인 사이에 냉기가 감돈다. 효은의 아버지는 딸 편을 들지 않고, 아내의 손을 들어준다. 계모로부터 친자식이 아니라는 출생의 비밀까지 전해들은 효은, 행방불명이 된 옛 애인 규용을 찾으러 가출을 감행한다. 오랜 방황을 견딜 만한 재정적 여유가 없었던 그녀, 할 수 없이 다시 궁전빌라로 돌아온다.




핏줄 안 섞인 타자와 가족처럼 지내기

아버지가 쓰러진다. 아빠의 병은 암. 그에게 남은 시간은 짧았다. 아버지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은 효은에게도 당혹스러웠지만 조선족 여인에게 특히 충격으로 다가왔다. 국적을 노린 사기 결혼으로 요즘은 결혼한다고 해서 바로 한국 국적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결혼한 뒤 일정 기간 살아야 외국인 등록증이 나오고, 국적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갖춰야 할 요건이 많다. 그러므로 배우자의 갑작스런 죽음은 코리안 드림을 노린 조선족 여인에게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인 셈이다.

벼락으로 모자라 조선족 여인에게 거센 폭풍우가 몰아친다. 얼마 안 되는 유산을 차지하기 위해 아버지의 사촌들이 병원으로 모인다.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타국에서 온 사람이 아니라 핏줄 섞인 자신들이야말로 유산을 나눠 가질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그들은 여인에게 폭언은 기본이고 육탄전도 서슴지 않았다. 이 모든 걸 온몸으로 저지하며 여인은 결국 아버지의 장례까지 무사히 치른다.

아버지가 남긴 재산은 그리 많지 않았다. 결코 팔릴 것 같지 않은 낡은 빌라가 전부. 유산 분배는 여인에게 55, 효은에게 45로 결정. 빌라가 팔릴 때까지 둘은 미우나 고우나 함께 살기로 정한다. 여인이나 효은 모두 당장 갈 데가 없었고, 설사 갈 곳이 있더라도 한쪽이 빌라를 처분하고 도주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궁전빌라가 팔릴 때까지 효은은 사라진 규용을 추억하고 여인은 이곳 저곳에 탄원서를 제출하며 외국인등록증을 받으려고 힘쓴다.

그러던 중 궁전빌라에 식구 한 명이 더 는다. 조선족 구씨. 성격도 호탕하고 입담도 좋은 구씨는 효은에게 놀라운 말을 전했다. 몽골 사막에서 규용과 비슷한 한국 남자를 본 적이 있다는 것. 그러나 구씨는 사기 전력이 많은, 사기꾼이기도 했다. 조선족 여인의 돈을 사기로 가로챈 적도 있었다. 궁정빌라에 살게 된 이유도 여인이 사기당한 돈을 받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서로 핏줄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세 사람의 동거가 시작된다.

『낙타의 뿔』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 중, 주인공 못지 않게 매혹적인 사람이 바로 구씨다. 선과 악의 경계를 아슬하게 넘나드는 그의 존재로 이야기에 긴장감이 부여된다. 구씨는 어떻게 해서 만들어졌을까. 아니나 다를까, 사연이 있었다.

『낙타의 뿔』은 처음에 내기로 했던 출판사가 경영난으로 출간이 미뤄졌다. 그러던 중 조선족 출신 가이드와 친구와 함께 3명이 중국 여행을 떠난다. 여행 도중에 여러 문제가 생겼다. 누구보다 현지 사정을 잘 알아야 할 가이드가 관광지에서 속아 돈을 떼였다. 처음에는 그러려니 했으나, 생각해 보니 그 가이드가 사기를 치는 느낌이었다. 구씨의 모델이 된 사람이 바로 이 가이드였다.


우리는 사슴일까 낙타일까

구씨와 마찬가지로 『낙타의 뿔』이라는 제목도 모티브가 있다. 바로 몽골 설화다. 윤순례 작가는 실크로드에 관한 다른 소설을 구상하던 중 낙타에 빠졌다. 낙타를 공부하다 만난 게 바로 낙타와 꾀보 사슴에 관한 설화였다. 낙타에게는 원래 뿔이 있었는데, 이 뿔을 꾀보 사슴이 빌려간 뒤 돌려주지 않았다는 이야기. 설화에서 낙타는 사슴에게 뿔을 받으러 가지 않고, 그저 기다리기만 한다. 한편 꾀보 사슴은 낙타에게서 빌려간 뿔을 자랑하며 우아함을 뽐낸다. 참고로 설화에서 ‘뿔’이라는 장치는 원초적인 신성함, 힘 등을 상징한다.

사랑하던 연인 규용과 집나간 조선족 여인을 묵묵히 기다리기만 하는 주인공 효은의 처지와 낙타가 비슷하다. 효은 외에도 조선족 여인, 구씨 등이 뿔을 빼앗긴 낙타처럼 느껴진다. 여기서 궁금증이 생겼다. 그렇다면 작품에서, 혹은 이 시대 사슴은 누구일까.

“우리 모두가 꾀보 사슴이다. 누군가를 만나서 어떤 편안함을 취하려는 심리가 있다. 모든 인간은동시에 낙타이기도 하다. 피해의식이 있을 때는 스스로가 낙타의 삶을 산다고 생각한다. 조선족 새엄마도 처음에는 한국 남자를 등에 업고 사슴처럼 살려고 했다. 계획이 어그러지면서, 고단한 삶을 시작한다. 낙타로써의 삶 말이다.”




소설 속 인물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나 자신도 몰라

『낙타의 뿔』은 윤순례 작가가 6년 만에 쓴 신작이다. 1996년 <문예중앙>에 「여덟 색깔 무지개」 로 등단하여, 2005년 장편 『아주 특별한 저녁 밥상』을 썼다. 이후 2007년 소설집 『붉은 도마뱀』을 출간했다. 2003년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소설 부문 신진예술가상, 2005년 오늘의 작가상, 2012년 아르코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받은 상은 많으나, 작품 수는 다소 적다. 창작활동이 다소 뜸했던 이유를 물었다.

“등단한 뒤에도 문학사상에서 근무했다. 문학사상에 근무했을 때 자세는, 소설이 현실의 생활 아래에 있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월급이 소설보다 중요했다. 그 기간이 오래 갔다. 대학을 졸업했으면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 이런 사고가 꽤 오랫동안 따라다녔다. 등단하고 뜸하게 단편 발표하면서도 계속 일을 하려고 했다. 그러면서 사회생활도 많이 했고, 결혼도 했고. 살면서 좋은 작품도 많이 읽었다.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 있는 작품을 읽으면서 태도가 변했다. 돈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지금은 생활보다 소설이 위에 있다.”

앞으로 창작에 전념하겠다는 윤순례 작가. 그녀의 독자라면 윤작가의 바뀐 마음가짐이 반가울 테다. 자연스레 그녀의 차기작이 궁금해졌다.

“아르코문학상을 수상하면 작품을 발표해야 한다. 서사가 있으면서 연작 느낌의 작품을 구상 중이다. 국경밖에 있는 한국인들, 한국에 들어와 있는 이방인들을 주제로 연작처럼 묶어서 올해 안에 창작집을 낼 계획이다.”

『낙타의 뿔』은 조선인을 비중 있게 묘사한다. 앞으로 나올 소설집에도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는, 그러면서 여러 곳에 걸쳐 있는 존재가 등장한다. 경계인을 향한 관심은 어떻게 생겼으며, 작가가 된 계기에 관해 물었다.

“특별히 어떤 존재에 관심을 가져야겠다, 이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작가는 모든 인간에게 창을 열어놔야 한다. 어느 인물, 어느 계층에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자신 안에 경계가 생긴다. 소설을 쓰기 위해서, 인생을 열린 마음으로 살기 위해서라도 구분 짓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소설 속 인물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는 나 자신도 모른다.”

“특별한 계기는 없다. 자연스럽게 됐다. 중고등학교 다닐 때 백일장에서 줄곧 상을 탔고 대학에서도 문예창작을 공부했다. 엄마가 태몽 이야기를 들려 줬다. 산에서 청색 구렁이를 보는 태몽인데, 뱀을 길에서 보는 거랑 집에서 보는 거랑 산에서 보는 게 다 풀이가 다르다. 태몽풀이 책으로 봤더니, 작가나 연예인이 될 꿈이었다. 힘들 때, 태몽을 생각한다. 작가 될 태몽이니 글을 써야지, 하며 힘을 얻는다.”

태몽부터 천생 작가인 윤순례 소설가. 앞으로 그녀가 그려낼 존재가 어떤 인물일지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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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의 뿔윤순례 저 | 은행나무
‘오늘의 작가상’ 수상 작가 윤순례가 6년 만에 펴낸 두 번째 장편소설이다. 《낙타의 뿔》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실의에 빠진 한 여성의 내면적 방황과 치유에 관한 이야기를 문학적으로 형상화하는 동시에, 한국 사회에 안착하지 못하고 떠도는 이방인들의 삶을 다룬 다문화 주제 소설로서도 그 빛을 발한다. 다른 색깔, 다른 질감을 가진 두 개의 서사를 맛깔스럽게 버무려내는 작가의 문학적 원숙미를 느낄 수 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황규원 “‘루저’는 너무나 매력적인 문학의 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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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 일어났을 땐 모든 게 다 해결되어 있었으면 좋겠다’ 이 허무맹랑하지만 간절한 바람이 현실이 된 한 남자가 있다. 『옴파맨이 간다』의 주인공 장호준이다. IT 보안회사의 직원인 그는 이직한 지 석 달 만에 전임 분석팀장의 업무를 대신하게 되고, 전 세계적으로 퍼진 악성코드 ‘카멜레온 바이러스’ 때문에 곤란한 상황에 처하게 된다. 문제를 해결할 능력은 없고, 손 놓고 있자니 이대로 밥줄이 끊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해온다. 그렇게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시작된 야근이 반복되던 어느 날, 스스로도 믿기 어려운 일이 벌어진다. 꿈속에서 풀어낸 악성코드 패턴으로 치료백신을 개발한 것. 그러나 일은 점점 더 꼬여간다. 도리어 악성코드의 유포자로 의심받게 된 것이다. 게다가 그를 수사하기 위해 찾아왔다는 ‘사이버테러대응센터’ 와 ‘사이버범죄수사대’의 형사들은 서로 자신들이 연행해 가겠다며 총격전도 불사한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언뜻 화려한 액션이 곁들여진 미스터리 소설처럼 보이지만 『옴파맨이 간다』는 시종일관 유쾌함을 잃지 않는 SF소설이다. 평범한 삶을 꿈꾸지만 좀처럼 찌질한 현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30대 남성이 자신의 정체-‘지구의 생명 에너지를 지닌 초인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된 뒤 펼쳐지는 좌충우돌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간결한 문장과 빠른 전개, 곳곳에 배치해 놓은 웃음 코드와 미스터리한 요소들로 빠르게 책장이 넘어가지만 그 안에 담긴 문제의식만큼은 결코 가볍지 않다. 인간의 선과 악, 거대 담론과 개인의 삶 사이의 불분명한 경계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다.

재미와 의미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이 소설은 일찌감치 검증을 마쳤다고 할 수 있다. 2012년 개최된 ‘제7회 대한민국 디지털 작가상’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매일경제신문이 공동주최하고 예스24와 한국전자출판협회가 주관한 ‘제7회 대한민국 디지털 작가상’ 공모전에 쏟아지는 반응은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총294편, 원고지 15만 매에 이르는 작품들이 응모됐고 하나 같이 높은 완성도와 뛰어난 호소력을 자랑했다. 그 중에서도 『옴파맨이 간다』는 가장 많은 주목과 호평을 들으며 대상을 차지한 작품. 당시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자들’라는 제목으로 응모작을 제출했던 황규원 작가는 수상 후 1년 동안 검토와 수정을 거쳐 『옴파맨이 간다』를 완성했다.




우리 눈에 보이는 세계가 전부라고 생각하세요?

‘제7회 대한민국 디지털 작가상’ 공모전에 응모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이야기를 처음 구상한 건 5년 전이었어요. 결혼 10주년 기념으로 아내와 유라시아 여행을 떠났는데 터키에서 모티프를 얻었어요. ‘눈에 보이는 것과는 다른 세계가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당시에 썼던 이야기는 마술사들에 대한 것이었어요. 마술이란 게 분명 트릭일 테지만, 진짜 그런 세계가 있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볼 수 있잖아요. 어쩌면 마술이라는 진짜 능력을 감추고 트릭인 것처럼 꾸민 것은 아닐까, 하고 상상해 봤어요. 그 내용들을 여행 중에 틈틈이 기록해 뒀죠. 공모전을 준비하면서 이야기를 더 전문적으로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많은 내용을 바꾼 끝에 지금의 『옴파맨이 간다』와 같은 이야기가 탄생한 거예요. 이렇게 자유롭게 상상한 이야기를 ‘디지털 작가상’의 심사위원 분들은 충분히 봐 줄 여지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터키 여행에서 모티프를 얻었다고 하셨는데, 직접 영향을 준 사건이 있었나요?

여행을 하면서 지금까지 볼 수 없었던 일들을 많이 목격하게 됐죠. 예를 들면 터키의 작은 도시인 셀축에 가면 곳곳에서 황새를 만날 수가 있어요. 어느 날은 산책을 하다가 좁은 골목에서 아주 낮게 나는 황새를 만난 거예요. 머리 위로 황새의 배가 보일 정도였어요. 어디에서도 경험해 보지 못한 일이었죠. 그런 새로운 경험들, 그리고 여행에서 느끼는 자유로움이 상상력을 자극했던 것 같아요.

당시에 여행을 떠나지 않으셨다면 『옴파맨이 간다』는 탄생하지 않았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저희 부부는 도시를 떠나 시골에 가서 살기로 결심했었어요. 제가 줄곧 출판사에서 근무하다가 아내와 같이 교정?교열 일을 하게 됐는데 경제적으로 어려웠거든요. 그런데 시골에서 살면서 세계여행을 떠난다는 건 쉽지 않을 것 같은 거예요. 오래 전부터 꿈꿨던 여행을 지금이 아니면 갈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거죠.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여행을 떠나길 잘한 것 같아요. 여행이 끝나갈 때쯤 되니까 삶의 의지가 더 강해지더라고요. ‘디지털 작가상’을 수상하면서 등단도 하게 됐고요. 여행을 떠나지 않았다면 『옴파맨이 간다』를 쓰지 않았을 지도 몰라요. 이전에는 SF와 같은 장르문학을 쓰겠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거든요.

『옴파맨이 간다』는 지구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스토리는 어떻게 떠올리게 되셨나요?

예전에 『가이아』(제임스 러블록 저)라는 책을 읽었어요. 지구가 하나의 생명체처럼 기온이나 대기를 조절한다는 이야기인데, 거기에서 모티프를 얻었죠. ‘과연 지구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은 어떤 존재일까’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지구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은 대단히 위험하고 엄청난 존재가 아닐까, 싶었어요. 처음에는 이야기를 단순히 선과 악의 측면에서 풀어나가자고 생각했지만 써 나갈수록 그렇게 되지 않더라고요. 저 자신도 소설을 쓰면서 선과 악이 명확하게 구분되지 않고 혼돈이 오더라고요. 생각하고 있는 바를 문장으로 표출시키는 게 어려웠죠. 그래서 『옴파맨이 간다』출간을 준비하면서 많은 부분을 수정하고 다듬었어요. 그 결과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자들’보다 더 정교한 이야기가 됐고요. 스토리의 전반적인 틀은 바뀌지 않았지만 캐릭터를 분명하게 만드는 데 신경을 많이 썼어요. 옴파들에 대한 부분이 명확하게 중심이 잡혀있어야 나머지 이야기들이 전개될 수 있으니까요.




마흔 중반에 이룬 소설가의 꿈

작가를 꿈꾸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왜 초등학생 때부터 소설가를 꿈꿨는지는 저도 의문이에요. 어렸을 때부터 집에 책이 많아서 읽기는 했지만, 그것 때문인지는 모르겠어요. 특별히 남들보다 더 많이 읽은 것 같지도 않고요. 기억나는 건 어릴 때 원고지에 이야기를 써서 아버지께 읽어드렸던 일이에요. 지금 생각해 보면 아주 유치한 내용이지만요(웃음). 소설 속의 안타깝거나 비극적인 이야기를 해피엔딩으로 바꿔보고는 했어요.

어떤 작가나 작품으로부터 영향을 받으셨나요?

살만 루시디의 『무어의 마지막 한숨』에서 아주 큰 영향을 받았어요. 남들보다 2~3배는 빠른 속도로 나이 드는 ‘루어’라는 인물의 시선을 통해서 인도의 현대사를 보여주는 내용인데요. ‘나도 이런 작품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한겨레신문의 응모작이었죠. 대학교에 다니던 80년대에는 황석영 선생님이나 조정래 선생님의 책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초등학생 때부터 갖고 있던 소설가의 꿈을 마흔이 넘은 나이에 이루게 되셨습니다. 등단의 기쁨이 남다르셨을 것 같은데요.

저녁 식사를 하다가 ‘디지털 작가상’ 대상에 선정됐다는 전화를 받았어요. 그 순간은 말로 형언할 수가 없죠. 사실 마흔이 넘어가면서 부터는 ‘등단이 안 될 수도 있겠구나’ 싶었거든요. 제 아내는 밥을 먹다 말고 울더라고요. 누구보다 아내와 어머니가 가장 좋아했죠.

긴 시간 동안 포기하지 않고 도전을 계속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았을 텐데요.

응모작이 떨어질 때마다 좌절감을 많이 느꼈죠. 신춘문예도 두세 차례 도전했었는데 예선도 통과 못했어요. 15년 전쯤에 한겨레신문에 장편 소설을 응모하기도 했고요. 그때는 본선까지 진출했는데, 작품을 조금 더 고쳐서 출판사에도 보내봤지만 등단하지 못했죠. 이미 서른이 넘은 나이였어요.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던 이유는 제가 할 일은 이것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생활이 조금 안정되었을 때 아내에게 부탁했죠. 마지막으로 도전해 보고 싶다고요. 1년만 작품을 쓸 수 있게 기다려 달라고 했어요. 그때 쓴 작품이 ‘디지털 작가상’에 당선된 거죠. 아내가 마음을 많이 비워줬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에요.

‘디지털 작가상’을 통해 등단하지 못했더라도 계속 도전하셨을까요?

좌절은 했겠지만 시간이 지난 후에 또 다른 작품을 썼을 것 같아요. 제게 허용된 재능이니까요.

등단 이후에 달라진 점이 있나요?

예전에는 작품을 구상하거나 쓸 때 문단의 기준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그런 부분에서 제한이 있었다고 할 수 있죠. 지금은 다음 작품 쓸 때 ‘어떻게 써야 할까’ 보다 ‘무엇을 써야 할까’를 고민해요. 그런 점에서 조금 더 자유로워졌다고 볼 수 있을 거예요. 자신감도 생겼고요. 그리고 출판계가 어렵다는 것을 몸소 체감하게 됐죠(웃음). 예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내 책을 출간하면 독자들로부터 많은 반응을 얻지 않을까’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시장의 평가란 냉혹한 거니까요.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꾸준하게 좋은 작품을 보여주면 독자들이 인정해 줄 거라고 생각해요.

쓰고 싶은 이야기 혹은 써야 할 이야기에 대한 생각도 달라지셨나요?

제가 대학을 다니던 80년대에는 모든 문단이 이데올로기적인 이야기를 할 때였어요. 그때도 문학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이야기들을 열심히 읽었고 리얼리즘 논쟁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졌었죠. 그러면서 저의 사고와 문학도 그런 방향으로 틀이 지어졌던 것 같아요. 예전 리얼리즘 문학의 영향을 받은 거죠. 그런데 90년대가 지나면서 세상이 변했잖아요. 이데올로기에 대한 이야기들이 너무 낡은 것이 되어버렸죠. 예전에는 선이었던 것이 또 다르게 보이는 부분도 있고요. 특히 여행 가서 작품을 쓰고, 그걸 다듬어서 『옴파맨이 간다』를 완성하면서 이전에 제가 가지고 있던 가치관이나 문학관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일종의 훈련이 됐죠. 생각은 많이 바뀌었어도 글로 쓸 때는 기존의 틀을 벗어나기가 힘들었는데, 이번 작품을 쓰면서 많이 변했다고 생각돼요. 앞으로도 더 자유롭게 표현하고 싶어요.

지금은 큰 변화에 직면했을 때 사람들이 보여주는 반응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있어요. 그리고 선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집단행동으로 인해 개개인의 선택과 권리가 무시되는 일에 대해 말하고 싶어요. 그것에 엄청난 희생이 따르기도 하는데 지나간 뒤에 좋게만 포장되기도 하잖아요. 80년대에도 그런 측면이 있었고, 인류사에서 종교라는 이름으로 자행된 사건들도 있었죠. 지금도 미국과 같은 곳에서는 자유를 위한다는 명목 아래 추진되는 일들로 인해 이면의 사실들이 감춰져 있고요. 그런 현상들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 것인가 생각하게 돼요. 『옴파맨이 간다』에서도 나타나기는 하지만 더 본격적으로 다뤄보고 싶어요.





작가의 삶도 루저와 다르지 않아요

기존의 문학과 달리 디지털 문학만이 가지는 특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인터넷을 통해서 연재되거나 전자책으로 독자들과 만나는 콘텐츠는 대중문학이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그로 인해 생기는 특징은 출판사를 거치지 않고 바로 독자들과 만난다는 것이겠죠. 그것이 기존의 본격문학과 다른 특징이 아닐까 생각해요. 작품이 문단의 권위나 기준에서 벗어나는 것과는 관계없이 독자들의 선택을 받게 된 거죠. 물론 그 과정에서 전체적으로 콘텐츠의 질이 저하되는 결과가 생길 수도 있겠지만, 독자들이 현명하게 추려내서 선택할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디지털 문학은 독자들의 반응을 직접 볼 수 있죠.

  어떻게 보면 그것이 사람들이 예술과 만났던 본래의 모습일 수도 있어요. 시장이나 저잣거리, 무대에서 예술과 만나고, 재밌으면 반응하고 아니면 외면하고요. 그게 본래 예술의 모습이 아닐까요. 본격 문학은 근래에 와서 생긴 것이라고 볼 수 있어요. 예전에는 그와 같은 방식으로 글 쓰는 사람도 없었고, 그렇게 탄생된 콘텐츠를 소비하는 사람도 별로 없었어요. 그래서 디지털 문학이 대중 지향적인 성격을 띠는 건, 다시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옴파맨이 간다』의 주인공과 그의 친구는 소위 말하는 ‘루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렇듯 주류에서 밀려난 사람들의 삶에 집중하신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제가 루저처럼 살았고요(웃음). 문학 하는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루저처럼 살고 있어요. 사실 루저는 옛날부터 문학에서 많이 다뤄온 주제죠. 일제시대 근대문학을 봐도 젊은이들의 관심사는 지금과 똑같아요. 직장이 없다는 것. 물론 지금보다 상황은 더 안 좋았겠지만, 직업을 구하기 힘든 사람들, 끼니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등장해요. 그런 면에서 루저들이 갖고 있는 비참함과 욕망은 문학의 영원한 주제라고 할 수 있죠. 문학에서 루저는 너무나 매력적이고 소재가 끊이지 않는 대상이라고 생각해요. 고대 문학에서는 영웅들을 다뤘지만 근?현대 문학은 모두 루저 이야기죠.

7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역사적으로 보면 아주 짧은지만 풍요로운 시기를 보내면서, 사람들은 대학 졸업하면 당연히 직장을 얻고 아이를 낳고 집을 장만하면서 사는 거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하지만 그 시기 외에는 항상 인류는 먹고 사는 걱정을 했어요. 오히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10억 가진 부자도 100억 가진 부자 앞에서는 비참함을 느끼죠. 그런 사람도 루저죠. 오히려 그들이 느끼는 비참함은 평범한 서민들보다 더 클 거예요. 오히려 장발장처럼 돈이 없어도 루저가 아닌 사람이 고귀한 사람이 아닌가 생각돼요.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신념을 굴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희생하잖아요. 그런 사람은 루저가 아닌 거예요.


이번 작품에서는 루저의 모습을 어떻게 그리고 싶으셨나요?

특별히 미화시키고 싶지 않았고 더 비참하게 보이고 싶지도 않았어요. 요즘 SNS를 보면 자조하는 듯 자기의 루저성을 드러내놓으면서 그것을 별로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냥 그렇게 사는 거지’ 라는 식으로 표현하는 거죠. 저도 원래 사람들 사는 게 이런 거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지금의 우리가 특별히 더 비참한 게 아니라 원래 이렇게 살다가 간다는 걸요. 그렇게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비춰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선과 악처럼 주류와 비주류도 명확하게 구분되는 게 아니에요. 자기가 이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다른 거죠. 김제동 씨가 ‘행복하지 않을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라고 말하는 것 처럼요(웃음). 기본적인 삶을 꾸려나가고 싶은 욕망이 누구에게나 있는 거고, 그걸 위해서 고군분투하는 거죠. 그 모습을 독자들이 불쌍하게 보는 건 바라지 않았어요.

『옴파맨이 간다』의 영화 제작이 논의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만약 영화로 재탄생된다면 어떤 모습일 것 같으세요?

아직 확정된 건 아니에요. 영화화 제의를 받았고 계속 이야기가 오가고 있어요. 『옴파맨이 간다』를 쓰면서 영화 <본 아이덴티티>를 많이 떠올렸는데요.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헤매고, 자신의 정체를 찾으려는 과정이 관객들에게 흥미진진하게 전달되잖아요. 그런 면에서 재밌게 봤어요. 그리고 이번 작품이 독자들에게 그런 느낌을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요. ‘이 사람이 왜 이런 일을 당하는 걸까, 무슨 일이 있는 걸까’ 궁금해 하면서 계속 페이지를 넘길 수 있도록 만들고 싶었거든요.

황규원 작가는 ‘정말 재밌는 작품을 쓰고 싶다’는 말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상업주의에 영합하는 작품을 쓰고 싶다는 말이 아니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재밌게 읽을까’를 가장 염두에 두고 싶다는 뜻이었다. 그러면서도 주제의식이나 작품 속의 가치관은 타협할 수 없다는 소신을 분명하게 밝혔다. 독자에게 다가가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해야 한다고 말하는 작가 황규원. 묵직한 메시지를 던져주면서도 재기 넘치는 그의 이야기는 앞으로도 계속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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옴파맨이 간다황규원 저 | 노블마인
제7회 대한민국 디지털작가상 대상을 수상한 황규원 장편소설 《옴파맨이 간다》가 노블마인에서 출간되었다. 《옴파맨이 간다》는 심사위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은 대상작으로, “황당할 정도로 스케일이 크지만 대담하고 정교한 필력으로 쓰인 유쾌한 이야기”라는 평을 받았다. 이 책은 ‘루저’로 살다 우연히 자신의 특별한 능력을 발견하고 슈퍼히어로가 되기로 결심한 한 남자의 종횡무진 활극을 통해 유쾌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윤한 “피아노 치는 남자의 연애, 다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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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이 피아니스트, 싱어송라이터, 음악감독, 뮤지컬배우에 이어 또 하나의 직업을 더했다. 예능 프로그램에 고정으로 출연하는 방송인. 누군가는 그를 두고 트집을 잡는다. “음악 작업을 할 시간도 모자를 텐데 예능을? 유명해지고 싶은 거야?” 그러나, 지난해 서른 해를 넘긴 윤한은 조금도 주춤거리지 않는다. 타인의 시선과 오해, 그에게는 중요한 일이 아니기 때문. “오해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솔직히 관심 없어요. 지금 제가 즐거운 일을 하고 싶어요. 그게 더 우선이에요.” MBC <우리 결혼했어요>의 파트너 이소연에게는 한없이 자상한 남자이지만, 사석에서는 다른 모습이다. 까칠해 보이기도, 직설적이고 무뚝뚝한 면도 많다. 윤한의 소속사 스태프에 의하면 “4차원 캐릭터가 없지 않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는 굉장히 몰입하는 성격”이란다. 첫인상과 끝인상이 다른 인물, 궁금증이 샘솟았다.

미니앨범 『Man On Piano』로 전국 투어 콘서트를 열고 있는 윤한. 서울, 부평, 수원, 안산, 김해, 의정부, 인천, 성남 등 총 8회에 걸쳐 관객들을 만나고 있다. 지난 1월 7일에는 예스24 회원들과 함께 미니 콘서트를 펼치기도 했다. “윤한의 음악으로 아침을 열고 있다”는 팬부터 “피아노 잘 치는 남자가 이상형”이라는 여고생까지, 200명의 관객들은 윤한의 목소리와 선율에 취해, 추위를 잊었다. 공연도 방송도 화보 촬영도 무작정 즐겁다는 윤한은 2014년을 어떻게 보낼 계획일까. 압구정의 한 스튜디오에서 윤한을 마주했다.




피아노 치는 남자, 노래하는 피아니스트

2010년 발매한 윤한의 1집 앨범 『Untouched』를 두고,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단은 “소울 감성과 도시적 세련미가 적절히 조화를 이룬 앨범”이라고 평했다. 김정위 위원이 덧붙인 한 마디는 “이 정도 음악이라면 일등 작업남이다”. 다짜고짜 윤한에게 자신의 앨범을 자평할 것을 권했다.

“작업남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는데요. 여자들의 속마음을 잘 아는 남자를 표현한 말이라면 뭐, 좋은 거 아닌가요? (웃음). 젬병보다는 낫잖아요. 저도 아직 제 자신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진 않은 것 같아요. 그래서 끊임없이 계속 시도해보는 거고요. 완전히 클래식한 곡을 만들기도 하고, 되게 힙합적인 곡도 좋아하고 워낙 다양해요. 하나의 장르, 느낌만으로 표현할 순 없는 것 같아요. 다만 제가 원하는 분위기 같은 건 있죠. 1집에 「Someone」이란 곡이 있는데, 그 곡은 참 마음에 들어요. 좋아요. 굉장히 오래 전에 쓴 곡인데, 아직까지 좋으니까. 나중에 다른 작업을 할 때도 참고하고 싶은 곡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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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의 음악을 듣기 전, 방송에서 보여진 이미지만으로 그를 파악한다면 대부분의 여성들은 “윤한은 일등 작업남이 맞다”고 말할 것이다. 작사, 작곡, 노래, 연주에 이르기까지 팝 피아니스트와 싱어송라이터의 경계를 허문 윤한은 1집 발매 전부터, 이사오 사사키 내한공연, 이루마의 러브레터 공연, 시청 광장 크로스오버 콘서트 등 다양한 무대에 오르며 팬들을 확보했다. 흔하게 볼 수 없는 ‘노래하는’ 피아니스트 윤한. 목소리에 자신감이 있으니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건 아닐까? 물으니, 윤한은 거듭 고개를 저었다.

“절대요. 노래를 잘 부른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자신 없어요. 실제로 ‘노래는 부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팬들도 종종 있고요(웃음). 그런데 제가 ‘나 노래 잘해’ 이런 마음으로 노래를 부르는 건 아니거든요. 그냥 좋아서 부르는 거예요. 그러니까 부담 없이 부를 수 있어요. 노래 레슨을 받으라는 권유도 많이 들었는데요. 한 번도 받지 않았어요. 자신 없지만, 잘 불러서 부르는 게 아니니까요. 제 목소리를 그대로 살린 노래를 부르고 싶어요.”

최근 발매한 『MAN ON PIANO』는 윤한의 정체성이 고스란히 들어간 앨범. 영화 <맨 온 파이어>가 ‘세상을 놀라게 한 남자’의 의미로 활용된 것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피아노로 다양한 팝 넘버를 선보이는 윤한을 표현했다. 타이틀곡 ‘피아노 치는 남자’는 좋아하는 사람과 주말 오후, 데이트를 하는 상상을 하며 지은 곡이다. <우리 결혼했어요>에 출연 중인 윤한의 실제 모습과 썩 다르지 않다.

“즐거운 마음으로 곡 작업도 했고, 방송도 즐기는 기분으로 찍고 있으니까요. 그런 면에서는 같을 거예요. 『MAN ON PIANO』는 피아노를 일상 속에서 재밌게 즐기길 바라는 마음으로 만든 앨범이에요. 최근에 브릿 팝을 즐겨 들으면서, 이런 스타일의 앨범은 어떨까? 하는 생각도 있었고요. 아무래도 앨범을 작업할 당시에 즐겨 듣게 되는 음악 스타일이 조금은 반영이 되는 것 같아요.”

그동안 선보인 곡들이 서정적이고 감성적인 연주를 바탕으로 했다면, 『MAN ON PIANO』는 페스티벌이나 야외공연의 분위기에 어울릴 법한 업템포의 곡들이 주를 이룬다. 특히 여성 팬들에게 유독 사랑을 많이 받고 있는 4번 트랙 「B형 여자」는 윤한이 팬들과 직접 소통하면서 가사를 붙인 곡. 유독 B형 여자와 연애를 많이 했던 윤한의 에피소드도 들어 있을까?

“제가 실제로 만났던 사람들 이야기와 함께 팬클럽 친구들의 재밌는 사연을 뽑았어요. 입에 착착 맞고 가사로 쓰기 적합한 이야기를 모았죠. 아무래도 팬 분들과 같이 만든 곡이라서 더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저도 애착이 가고요. 특별한 곡이죠”

윤한이 가장 애정을 가지고 작업한 곡은 「Cafe De Wilsburg」. 1집 『Untouched』의 「London」, 2집 『For This Moment』의 「From Paris To Amsterdam」에 이어, 도시를 주제로 한 곡을 선보였다. 윤한은 자신이 실제로 가보지 않은 도시를 상상하며, 곡을 쓰고 있다. 3년 후 즈음에는 ‘Place’라는 제목으로 앨범을 발매할 계획이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음악 전공 결심

방송 프로그램 속 윤한은 한없이 부드러운 남자지만, 실제 생활에 있어서는 꽤 이성적인 사람이다. 일찍 일어나고 일찍 자는 매우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회사원의 일상이라고. 새벽에 작업하는 일은 손에 꼽는다.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왠지 밤 늦게까지 작업하고 올빼미 생활을 할 거라는 생각들을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저처럼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아요. 펜으로 메모 같은 것도 별로 안 해요. 컴퓨터 앞에 앉아서 워드 파일로 곡 쓰고 그래요(웃음). 곡 작업을 할 때도 즉흥적이지 않아요. 거의 다 계획적이었던 것 같아요. 멜로디를 쓰면서 동시에 가사를 붙여 보면서, 곡을 만들어요. 컴퓨터로 한 번에(웃음).”

피아니스트에게만 있을 것 같은 특별한 감성과 예민함. 윤한에게는 쉽사리 찾을 수 없는 걸까? 그렇다면 앨범 속에 담긴 음악의 물줄기는 어디에서 찾지? 윤한은 큰 눈을 깜빡이면서 “저 되게 단순해요”라며, 피식 싱겁게 웃었다.

“그냥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고 그런 성격이에요. 저희 회사가 클래식 연주가들이 많은 기획사거든요. 그래서 직원 분들이 피아노 조율하는 것도 다 알아서 챙겨주세요. 굉장히 익숙하시더라고요. 연주가 분들은 대부분 작은 것도 꼼꼼히 챙기는 편인데, ‘조율을 442㎐로 했냐’ 이런 것까지 확인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데 솔직히 사람이 분간하기 힘든 거거든요. 전 처음에 그런 게 있는지도 몰랐어요. 그래서 직원 분들이 ‘조율, 어떻게 해드릴까요?’ 물으면, ‘잘해주세요’라고 말했어요. 지금까지 페달도 안 눌리고 건반도 다 깨지고, 이런 피아노로도 연주 많이 해봤거든요. 피아노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느낌이랄까. 조율이 잘 된 피아노로 연주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좋아요.”

윤한은 고등학교 2학년 무렵, 음악을 전공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어릴 때부터 취미로 피아노를 배우기는 했지만, 음악인이 될 거라는 상상은 하지 못했다. 공부 잘하고 모범생이었던 아들의 갑작스런 선전 포고에 그의 어머니는 적절한 타협점을 찾았다. 유학을 가서 전문적인 음악 공부를 한 뒤 음대 교수가 되는 건 어떠냐는 제안이었다. 막연했지만 음악을 포기할 수 없었던 그 때, 윤한은 어머니의 설득을 받아들여 음대 입시 공부를 시작했다. 6개월 동안 명문대 출신 작곡가에게 스파르타식 교육을 받은 결과, 윤한은 버클리음악대학에 합격했다. 전공을 결정하는 2학년 때, 그는 재즈 피아노를 선택했지만 졸업 후의 미래를 그려보며, 영화음악작곡으로 전공을 바꿨다. 윤한은 그간 드라마 <성균관 스캔들><로맨스가 필요해><돈의 화신><장옥정 사랑에 살다>등 다수의 드라마 OST를 선보였다.

“OST 작업도 재밌어요. 드라마 <구가의 서>를 함께 작업한 음악감독이 <로맨스가 필요해 3>를 맡게 되셨는데, 또 한 번 호흡을 맞출 수 있을 것 같아요. 제 곡을 쓸 때는 길이 제한, 이런 조건이 없지만 드라마는 극의 상황, 분위기에 맞게 곡을 풀어가야 하잖아요. 길이도 2분 30초, 딱 맞게 끊어야 하고, 음악이 너무 튀어서도 안 되고. 여러 가지 제한이 많지만 OST 나름의 매력이 있어요. 제 음악이 드라마에 쓰여진다는 것도 기분 좋은 일이고요. 드라마, 영화 분야에서도 점점 음악에 많이 투자하는 분위기라서 스케일이 점점 커지는 것 같아요. 퀄리티도 좋고. 요즘 나오는 OST를 들어보면, 다 좋더라고요.”




음악과 전혀 상관 없는 연기도 해보고 싶다

윤한은 2012년 뮤지컬 <모비딕>에서 주연을 맡기도 했다. 피아노를 연주하며 동시에 노래, 연기를 함께해야 했던 첫 무대. ‘엑터-뮤지션 뮤지컬’이라는 색다른 공연에서 수준급 연기를 선보였다. 이후 MBC 음악 프로그램 <아름다운 콘서트>에서 음악감독 겸 보조 MC로 활동했고, 지난해 9월부터 <우리 결혼했어요>시즌4에 출연 중이다.

“<우리 결혼했어요>섭외 전화가 왔을 때, 흔쾌히 수락했어요. 파트너가 누군지도 모르는 상태에서(웃음). 제작진에게 귀띔이 있을 줄 알았는데 원래 안 알려준대요. 첫 녹화 날까지고 안 알려줬어요. 다행히 같이 출연하고 있는 이소연 씨가 성격이 너무 좋으셔서 잘 맞춰가고 있어요. 아무래도 공중파 프로그램에 출연한 후부터 많은 분들이 알아봐주세요. 감사하죠.”

<우결>에서는 매너남, 배려남으로 통하는 윤한. 때때로 남성 시청자들로부터 원성을 듣기도 하는데, 존재감 하나는 탁월하게 뛰어난 윤한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다. 방송 모니터는 꼬박꼬박 하지만, 악플이 달려도 선플이 달려도 무심한 반응이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는 음식이 없듯이, 음악도 사람도 마찬가지잖아요. ‘윤한’이라는 사람을 오해할 수 있는데, 솔직히 그런 거에 관심이 없어요. 최대한 최선을 다해서 즐기면서, 진실되게 하려고 노력하는 것일 뿐이에요. 음악인인데 왜 방송에 나오냐? 그런 거는 제게 큰 의미가 없어요.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음악을 하던 사람이 연기를 하거나, 연기를 하던 사람이 음악을 하면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데, 외국에서는 당연한 흐름이에요. 저스틴 팀버레이크 같은 사람을 봐봐요. 영화를 찍었다가, 빌보드 차트 1위 앨범도 내고, 쇼 프로그램에 출연해 개그도 하고 그러잖아요. 왜 그러겠어요?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 그런 거예요.”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면, 윤한은 어떤 새로운 일도 도전할 생각이다. 음악과 전혀 상관 없는 연기도 언젠가 해보고 싶다고. “제가 피아니스트로 데뷔했지만 나중에는 그림을 그린다고 할 수도 있어요. 그런 저를 보고 좋아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반대로 거부감을 갖는 분들도 있을 거예요. 그런데 제가 좋아서 하는 일일 거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 반응이 뭐가 그렇게 중요해요? 그런 시선을 따라 살다 보면,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게 나타날 때 머뭇거리겠죠. 저는 그러진 않을 거예요.”




모든 공연, 항상 만족스러운 이유

윤한은 2월 14일, 서울에서 열리는 발렌타인데이 콘서트를 비롯해 3월까지 전주, 울산, 군포에서 ‘윤한 로맨틱 콘서트’를 펼친다. 연인보다는 솔로들이 많이 온다는 윤한의 콘서트. 여성 관객의 점유율이 압도적이라서, 언젠가 남자들을 위한 곡도 써볼까 궁리 중이다. 지난해 12월,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전국투어 콘서트 ‘맨 온 피아노(MAN ON PIANO)’는 윤한에게 유독 잊히지 않는 무대였다.

“데뷔 초부터 예술의전당에서 ‘윤한’ 이라는 이름을 걸고 공연을 하는 게 꿈이었거든요. 아티스트 윤한으로서의 시작점이 된 무대였어요. 감격스러웠어요. 지휘자 포지션으로도 무대에 섰는데, 관객들이 제 뒷모습을 본 건 처음이었을 거예요. 무언가 처음 도전을 할 때는 어색한 게 당연한 것 같아요.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시도를 했다는 게 중요한 거죠. 어디에 의미를 두는 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요즘 그의 일상은 공연 연습, 방송 촬영, 인터뷰의 반복이다. 올해로 데뷔 5년 차지만, 아직은 신인의 자세를 잃지 않으려고 한다. 윤한이 늘 마음에 새기는 건 “시간이 없다는 건 핑계”라는 말이다. “하고 싶은 욕심만 있다면 언제든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윤한. 타고난 낙천성과 긍정적인 마인드는 부모님의 성격을 빼닮았다.

“데뷔하기 전까지 콩쿨, 오디션에 수 차례 떨어졌었어요. 필드에 좀 나가서 음악을 하고 싶었는데, 아는 사람도 없고. 돌파구가 그런 것밖에 없었으니까요. 당시에는 오디션 프로그램도 별로 없었고 저는 연주자였으니까, 계속 찾아가고 떨어지는 일의 연속이었어요. 하지만 힘들진 않았어요. 힘들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이런 게 모두 언젠가는 경험이 될 거라고 생각했으니까요. 지금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걸 좋아하지만, 예전에는 낯도 많이 가렸어요. 미국 유학 생활을 하면서 조금 달라진 거고요. 미국 친구들은 아직도 제가 이렇게 방송활동하고 조금이나마 알려진 걸 잘 몰라요. 요즘 뭐하냐고 물으면 ‘그냥 음악해’라고 말하니까요.”

윤한에게는 공연이 끝난 후, 빼먹지 않는 버릇이 하나 있다. “오늘 공연 좋았어”라고 스스로를 칭찬해주는 일이다. 무엇 하나 아쉽지 않은 일이 없지만, 되도록 후회는 하지 않는다. “후회해봤자 달라지는 건 없잖아요. 항상 이변은 있는 법이고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 실수도 있는 거고요. 후회보다는 건설적인 마인드로 다음을 약속하는 게 현명하다고 생각해요.”윤한이 화가 나는 순간은 단 하나. 노력하지 않는 사람들을 볼 때다. 더 잘할 수 있는데 노력하지 않는 사람을 보면, 나이를 막론하고 제언한다. 때때로 너무나 직설적인 표현에 당황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지만, 오랫동안 윤한을 지켜본 사람들은 그의 본심을 알아챈다.

“피아니스트 키스 자렛을 좋아해요. 공연도 많이 찾아갔고요. 지금 키스 자렛에 대한 박사 논문을 쓰고 있는데, 연구해보고 싶은 아티스트에요. 저도 키스 자렛처럼 되고 싶다는 소망이 있어요. 내가 환갑이 넘었을 때, 어린 친구들이 ‘윤한’에 대해 궁금해한다면 뿌듯할 것 같아요. 논문 거리가 되는 사람, 매력적이지 않아요?”

윤한은 자신의 트위터에 종종 “오늘 하루도 선물입니다”라는 말을 적는다. 하루하루를 시작하면서 스스로에게 거는 주문이기도 하다. “며칠 전에 눈이 많이 온 날, 친구들이랑 이자카야에서 사케를 한 잔 했는데 그렇게 좋을 수가 없더라고요. 건강검진을 했는데 아무 이상이 없는 것도 감사하고, 꿈의 무대에서 전국 투어를 한 것도 행복하고, 친형이 아이를 낳아서 조카가 생긴 것도 기쁘고요(웃음). 소소한 행복을 느낄 줄 아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2014년 첫 달을 보내고 있는 지금, 윤한의 고민은 무엇일까. “봄 지나면 금방 여름이잖아요. 몸을 키워야 하나 고민이에요. 대학생 때는 헬스 중독이었거든요. 근육질 몸매였는데 한국에 오니까 슬림이 대세더라고요. 살을 뺐다기보다 운동이 줄고 식습관도 변하니까 원래대로 돌아왔어요. 지금은 좀 마른 거 같지 않아요? 워낙 운동을 좋아해서 다시 시작할까 봐요.”헐크 몸매의 윤한이 쉽게 상상이 되진 않지만, 윤한은 자아가 원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시도할 테니까. 색다른 윤한의 모습을 볼 날이 머지 않았다.


   피아니스트 윤한의 추천 앨범 BEST 3

Joe Brooks『A reason to swim』

조 브룩스의 앨범 중에 한국에 처음 소개된 EP 『A reason to swim』 에 수록된 「Holes Inside」 를 추천합니다. 이 곡은 조 브룩스가 세상에 알려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곡이기도 한데요. 조 브룩스는 별다른 레이블의 도움 없이 혼자 마이스페이스에 음원을 올리고 1년 가까이 1위를 차지한 괴물이기도 합니다. 20대 초반의 풋풋함이 살아있는 멜로디와 감미로운 목소리가 귀를 녹아 내리게 만들어 주로 저녁에 운전하면서 많이 듣고 있습니다.



John Mayer『Continuum』

존 메이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점이 자연스러움이에요. 그러한 면이 굉장히 잘 살아난 그의 셀프 프로듀스 앨범인데요. 이 앨범은 트랙 별로 쭉 들으면 점점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이 그와 함께 하고 있음이 느껴지는 앨범입니다. 언젠가 존 메이어의 인터뷰를 본 적이 있는데 말을 적게 할수록 사람들이 자신을 더 잘 이해하게 된다는 말을 했어요. 있는 그대로의 그의 모습을 음악을 통해 표현해낼 수 있다는 점이 참 부럽더라고요. 제가 그를 존경하게 된 앨범이기도 합니다.


Jamie Cullum『The Pursuit』

좋아하는 뮤지션, 닮고 싶은 뮤지션이 누구냐고 물었을 때 제가 늘 언급하는 아티스트입니다. 경계가 없고, 한계도 없고, 늘 새롭게 자신의 영역을 넓혀나가는 그의 모습이 너무 멋있더라고요. 그의 앨범은 음악 뿐 아니라 아트워크도 참 좋아하는데요. 모든 앨범을 추천하고 싶지만, 최근 제 공연에서 몇 차례 커버한 적이 있던 「Mixtape」 이 수록된 이 앨범을 추천합니다. 함께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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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가분 "일베 극복하려면, 온라인의 오프라인화가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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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일베’라는 생소한 단어가 우리에게 익숙한 존재로 자리 잡았다. ‘일간베스트저장소’는 유머 게시글을 백업해두는 데이터베이스에서 출발해 이제는 거대한 커뮤니티로 발전했다. 그런데 문제는 일베에 올려진 글 중 상당수가 특정 지역이나 여성 그리고 일부 정치세력을 거친 언어로 표현한다는 점이다. 이러한 일베의 모습은 한국사회에 몇 가지 물음을 던진다. 일베는 어떤 공간이며, 일베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일까, 하는 질문 말이다. 일베를 둘러싼 논의는 예전에도 있었고 현재도 진행 중이다. 대부분 단편적인 분석에 그쳤다. 박가분 저자가 쓴 『일베의 사상』은 일베를 종합적으로 보려는 시도다.

 

박가분과 일베, 그렇게 잘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다. 전작 『부르주아를 위한 인문학은 없다』에서 복잡하고 어려운 현대사상을 능수능란하게 다뤘던 그는 일베처럼 시사적인 주제와 어울리는 저자는 아니기 때문이다. 굳이 이 책과 저자 사이의 공통분모를 찾으려면 책 제목에 넣은 ‘사상’에 있을 테다. 그렇다면 저자는 왜 이 책을 저술했을까? 그는 일본의 대학자 마루야마 마사오가 쓴 『일본의 사상』에서 저술 동기를 일부 얻었다고 한다. 마루야마 마사오는 사상이 아닌 것처럼 보이는 현상에서 사상을 도출해낸다.

 

『일베의 사상』도 일베라는 현상에서 이 사회의 사상을 뽑아냈다. 박가분이 정리한 일베의 사상은 다음과 같다.

 

(1) 일베는 2002년부터 시작된 촛불의 사상(여기 인터넷=광장에 모인 우리가 곧 국가이다)을 계승한다. (2) 일베는 현실의 국가, 현실의 시민사회에 대한 요구를 단념하고 인터넷 내에서의 인정투쟁 방식을 현실로 끌고 오는 새로운 유형의 젊은 우파들이다. (3) 이러한 일베의 사상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광장=인터넷에 모인 사람들이 이후에도 각자의 일상적인 공간에서 자신의 이상을 작게나마 실현할 수 있어야 한다. (254쪽)

 

이 책을 낸 뒤, 『일베의 사상』은 영화 <지슬>처럼 한 포털에서 평점 테러를 당했다. 이를 예상했을까? 저자는 평점 테러를 당한 사실도 모르는 눈치였다. 실제로, 그는 이 책을 낸 뒤로 일베를 방문하지도 일베에 별다른 관심을 쏟지 않았다고 한다. 책을 낸 뒤, 저자는 어떻게 지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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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베의 혐오 정서, 어떻게 봐야 하나

 

근황이 궁금하다.

 

항상 해왔던 대로 생활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다. 졸업해서 여기를 떠난다. 대학원에 진학하기로 해서 그와 관련한 준비를 하고 있다. 아울러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를 붙인 사람들과 함께 모임을 만들었는데 그 모임을 마무리하고 떠나려 한다.

 

저술하기 위해 일베를 유심히 관찰했다. 특정인, 특정지역을 향한 혐오 정서가 일베 사용자 중 일부에 해당하는 문제인가, 아니면 커뮤니티 공간 전체에 혐오 정서가 만연한가?

 

물론 일베에는 언론에서 보도하는 막장 패륜 사건만 있는 건 아니다. 눈팅만 하는 사람도 있고. 댓글만 다는 사람도 있다. 게시물 전체가 문제라 보기는 힘들지만 일베를 한다는 것 자체가 강한 동류애 의식을 전제한다고 본다. 나도 병신이고, 너도 병신이다, 나는 너를 혐오할 권리가 있는데 혐오 표현하는 걸 왜 막느냐, 이런 동류 의식 말이다. 눈팅도 재미있으니까 하는 것이지 않나. 눈팅을 지속해서 하는 것만으로 일베의 사상에 물들어 있다.

 

일베에서 보이는 혐오 정서가 인터넷 어디를 가도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시대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나도 처음에는 감을 못 잡았다.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를 보고 느꼈다. 온라인에서 나왔던 이야기를 모두 오프라인으로 가져 와야 한다고. 온라인의 오프라인화가 있어야만 사회가 바꿀 수 있지 않을까? 각자의 공간에서 뜻이 맞는 사람끼리 뭔가를 해야 한다. 말 그대로 스스로 집회를 만들어보는 것도 좋다. 인정 욕구를 채워야겠다는 게 비뚤어지면 일베가 된다. 비뚤어진 경로가 아닌 제대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장소를 만들어야 한다.

 

인상적인 대목이 논객의 시대는 갔다는 부분이었다. 본인이 청년논객이라 불리면서 이렇게 지적한 내용이 흥미로웠다.

 

청년논객이 바라던 칭호는 아니었다. 일베를 보면서 논객의 시대가 끝이 났구나, 하고 느꼈다. 일베를 보면 일상의 욕구를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그런데 논객이 이런 욕구를 대변하지 않는다. 어떤 집단, 어떤 논객이 대신하지 않고 당사자가 스스로 목소리를 낸다. 일베는 그걸 왜곡된 모습으로 표현했다. 왜? 자신의 목소리를 표현하고 싶어도, 표현할 수단이나 방법을 본인이 모르고 가르쳐주는 사람도, 마련해 주는 사람도 없으니까.

 

강준만의 유산이 이후의 인터넷 논객들에 의해 배반당했듯이, 인터넷 논객들이 얻은 권위도 일베와 같은 새로이 출현하는 공격적인 조롱 문화 앞에 보잘것없는 것이 되었다.

인터넷이 (공론장이 아닌) 하나의 거대한 ‘데이터베이스’로 변한 오늘날에는 이제 평범한 유저들도 간단히 검색만 하면 인터넷 논객들이 과거에 한 모순적인 발언이나 행적을 발견할 수 있고 이를 얼마든지 비웃을 수 있게 되었다. (82쪽)


박가분의 사상, 관심사, 글쓰기



근작인『일베의 사상』은 모스의 증여론, 하버마스의 공론장, 아즈마 히로키와 데이터베이스, 미시마 유키오의 미학 등 다양한 사상이 논의에 수시로 개입하는지라 그렇게 읽기 편한 책은 아니다. 그렇지만 『부르주아를 위한 인문학은 없다』보다는 훨씬 문장이 간결하고 쉽다. 혹시 그 사이 박가분에게 인식론적 단절이라도 생긴 걸까?

 

전작보다 문장이 짧고 쉬워졌다. 계기가 있었나?

 

이 책을 쓸 때 나 자신에게 정직해지자고 다짐했다. 그럼에도 큰 이야기, 사상적 논의가 꽤 많이 들어가긴 했다. 일베라는 괴물을 보면서 이런 큰 이야기, 사상적 논의가 나에게 무슨 의미였는지 회의가 들었다. 나 자신에게 정직해지자, 속이지 말자, 이렇게 쓰다 보니 문장도 짧아졌다. 쓰고 나서 보니, 나란 사람도 별거 아닌 사람이구나, 하고 깨달았다. 앞으로는 최대한 짧고, 쉽게 쓰려고 한다.

 

시사적인 주제로 쓰는 마지막 책이라고 했는데,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어 보자.

 

원래부터 일베에 그렇게 큰 관심은 없었다. 일베를 징후로 봤고, 이게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나 한국사회에 폭로하는 바가 더 흥미가 있었다. 솔직히 시사적인 문제를 잘 모른다.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도 훨씬 많다. 원래 관심사는 사상이다. 대학원으로 진로를 잡았고, 시사적인 문제에는 순발력 있게 글을 써야 하는데 그렇게 글쓰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 다만 일베와 같이 징후를 표출하는 사건이 나타나면 쓸 수 있지 않을까?

 

학부에서는 경제학을 전공했는데, 대학원은 어떤 전공인가?

 

경제학이다. 궁극적으로는 비주류경제학을 전공하려 한다. 맑스주의 경제학을 하고 싶다. 요즘은 정량적으로 됐는데, 원래 경제학은 담론적인 학문이다. 석사 때 할 공부는 내가 쓴 책과 좋아했던 담론과 무관할 것 같다. 두 세계를 번갈아가면서 낮과 밤을 따로 살 듯하다. 2년은 이 기간을 견뎌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독특한 독서 이력이다. 경제 전공하는 사람이 인문이나 사회 쪽 사상에 관심이 생기기 쉽지 않다.

 

제목이 좋아서 서동욱 선생의 『차이와 타자』를 처음으로 집어 들었다. 생소한데 재미있었다. 그 이후에 진중권, 이진경, 고미숙이 쓴 책을 찾아 읽었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고진, 지젝, 바디우에 와 있었다. 이정표가 된 사람이 있다면 로쟈로 알려진 이현우, 지젝 번역자 이성민. 신뢰하는 사람이 추천하는 도서 목록을 따라 읽다 보니 이렇게 됐다. 아즈마 히로키를 최근에 읽었는데. 일본 현대 사상가에 관심 두게 됐다.

 

일베의 사상이란 게 있다면, 박가분의 사상은 무엇일까?

 

사상이랄 건 없지만, 의제는 있다. 저마다 세계관이 다르다.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 보편적인 기획에 참여할 수 있을까, 고민한다.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를 보면서, 알던 사람의 예상하지 못했던 모습을 보고, 처음 본 사람도 있었다. 무엇이 이들의 마음을 움직이게 했을까, 궁금했다. 앞으로는 활동은 지양하려 한다. 다만 놓을 수 없는 게 몇 가지 있다. 시간강사 문제 등 내가 당사자라 생각하는 문제가 그렇다. 이전에는 글쓸 때 운동 전반에 대해 갖고 왔던 생각을 많이 썼는데 앞으로는 운동에 대해서는 거리를 두고 학문적으로 글을 쓰고 싶다.

 

인터뷰 내내 그는 진지했다. 잠자고 먹는 시간 빼면 책 읽고 글만 쓸 것 같은 인상이었으나, 그에게도 쉬는 시간은 필요했다. 독서와 집필 이외에 무엇으로 시간을 보내냐는 질문에 박가분은 ‘애니메이션’이라고 답했다. 최근에 본 작품으로는 <알바 뛰는 마왕님>. 인간 세계에 떨어진 마왕이 마력을 잃고 먹고 살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작품인데 그는 이 시대의 노동현실을 드러내는 좋은 애니메이션이라 평했다. 애니메이션을 보면서도 사회의 구조에 관해 생각하는 천상, 학자였다. 책을 좋아하는 저자답게, 학교에서는 생활도서관이라는 자치 공간에 몸담고 있다.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여러 가지 이유로 대학에서 자치 공간이 설 자리가 없어진다지 않나. 생활도서관은 어떤 편이가?

 

생활도서관은 어려운 곳과 비교하자면 잘 되는 편이다. 일단 장소가 있으면, 그 이후는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다. 요즘은 자치 활동이 어렵다고 하지만, 장소를 가지는 게 중요하다. 장소를 얻었다면 패배주의에 빠지지 않고 많은 사람을 만나고 끌어들일 수 있는 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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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활동, 저술 계획은?

 

대학원 수강생으로 공부할 것 같다. 이 자리에서 처음 밝히는 건데, 앞으로 쓸 책은 레닌에 관한 것이다. 저술에 들어가진 않았고 제목만 정했다. 『레닌주의 2.0』. 안녕들 하십니까를 보고 느낀 점이 좀 들어가겠지만 그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다.

 

마지막으로 『일베의 사상』을 탄생하게 해 준 일베에 한 마디를 한다면.

 

너희들은 재미없어, 진부해, 이런 거고. 그 외에는 딱히 할 말이 없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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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첩기행』의 김병종 화백, 알제리에서 카뮈와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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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첩기행』 독자에게 더 반가운 소식은 북아프리카를 다룬 5번째 책(이번 개정판에서는 이전에 나온 『김병종의 모노레터』와 『김병종의 라틴화첩기행』을 묶어 4번째 권이 되었다. 그래서 북아프리카편이 5번째 권이다)이 나왔다는 사실이다. 

 

『화첩기행』이 오랫동안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에는 저자인 김병종 화백의 출중한 능력 덕분이다. 그는 화가이면서 작가다. 대학에서는 동양화를 전공하면서도, 대학 시절에 이미 신춘문예에 당선되는 등 글솜씨를 뽐냈다. 그가 거쳐 간 공간은 글과 그림으로 예술작품이 되었다. 『화첩기행』은 그래서 색다른 독서 경험을 준다. 마치 문학관과 미술관 그리고 아름다운 풍경을 걷고 있는 느낌말이다.

 

『화첩기행 5』에서도 그 느낌을 접할 수 있다. 해가 지는 서쪽이라는 뜻의 마그레브(Maghreb). 지는 해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실제로 마그레브 지역은 유럽사람들의 휴양지로 인기가 많다. 그렇지만 지구의 반대편에 있는 한국에서 가기는 쉽지 않다. 알려진 정보도 아시아나 유럽 그리고 북미에 비해서는 많지 않다. 이런 마그레브 지역을 찾기로 한 건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고 생각하던 어떤 여름. 원래 혼자 떠나려 했지만 아내와 아들 그리고 전문 사진가 겸 가이드 이렇게 4명이 떠났다. 목적지는 알제리와 튀니지, 모로코 그리고 몰타. 책에는 몰타가 빠지고 이집트를 넣었다. 몰타를 북아프리카로 보기에는 모호한 부분이 많았고, 북아프리카를 논하면서 이집트를 뺄 수 없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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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첩기행 15년, 카뮈를 만나러 북아프리카에 가다

 

『화첩기행 5』를 내면서 이전에 낸 책도 모두 개정했다. 책을 새로 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가 있나.

 

1권을 낸 뒤로 햇수로 15년 정도 지났다. 그러다 보니 그때 살아 있던 분 중 유명을 달리한 사람도 있고, 없던 시설물이 생기기도 했다. 그래서 국내 편을 손볼 수밖에 없었다.

 

남미를 다룬 『화첩기행 4』에는 헤밍웨이를 비중 있게 서술했다. 『화첩기행 5』에서는 카뮈를 서술한 부분이 많다. 카뮈는 인생에 어떤 의미였나.

 

카뮈는 문학적 향수의 기점이었다. 어린 나이에 『이방인』을 읽었다. 제임스 딘이 나오는 영화 한 편을 보는 듯했다. 체 게베라도 그렇지만 카뮈도 미남에, 열혈남아다. 이런 작품의 외적인 요인과 함께 문학적 아우라가 어우러지면서 카뮈를 많이 좋아했다.

 

알제리 출신의 카뮈가 정작 알제리에서는 그렇게 인정받지 못한다던데?

 

깜짝 놀랐다. 카뮈에 관한 유적이 있을 거로 생각했고, 거기에 가는 방법을 안내하는 표시도 흔하리라 예상했는데, 전혀 그런 게 없었다. 오히려 현지에서는 어떻게 알고 찾아왔느냐, 하고 놀라더라. 세계적인 작가에 왜 소홀할까, 의문이 생겼다. 그 의문은 여행 막바지에 어느 정도 풀렸다. 알베르 카뮈가 알제리 태생으로 소년 시절을 보냈으나, 알제리를 식민지로 하고 있었던 프랑스에서 생활했다. 그리고 알제리 독립전쟁에 반대했다. 지금 알제리가 인민공화국이다. 사회주의적 관점으로 봤을 때는 카뮈가 자본주의적인 작가로 비쳤거나, 알제리 독립전쟁을 반대했으니 카뮈를 알제리적 정체성으로 내세울 수 없겠구나, 싶더라.

 

튀니지의 카페 데나트, 아름다운 너무나 아름다운

 

북아프리카에서 인상적인 곳은 어디였나?

 

알제리의 티파사. 고대 로마의 유적지가 있는 한적한 바닷가다. 로마가 알제리를 점령했을 때 주둔했던 바다 도시인데 여기에 카뮈의 문학 비석이 외롭게 서 있다. 청정한 지역에 역사의 아우라가 어려 있는 곳이다.  그리고 튀니지의 카페 데나트. 튀니지안 블루라는 색이 있다. 블루 중에서도 색이 깊고 신기한 푸른색이다. 카페 데나트는 이 튀니지언 블루의 상징처럼 되어 있는 바다에 위치한 문인 카페다. 앙드레 지드, 알베르 카뮈, 시몬 드 보부아르, 모파상 등이 즐겨 찾았던 곳이기도 하다. 이들이 튀니지언 블루의 바다를 보며 문학과 예술을 논했다. 신비한 푸른색의 바다와 흰 색의 집들 그리고 고혹적인 색깔의 꽃들이 어우러지며 색채의 향연을 느꼈다.

 

5권에는 그린 작품의 수가 적다. 의도적으로 안 그리려고 했나?

 

독자 중에서 사진도 좀 넣었으면 좋겠다는 요청이 있었다. 사진 자료를 넣다 보니 그림은 좀 빠졌다.

 

마그레브 지역이 이슬람 문화권이다. 이슬람을 접한 인상은 어땠나.

 

경외감이다.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달하면서 종교가 자본의 욕망 속에 용해되거나 자본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 된 경우를 많이 봤다. 그렇게 종교가 쇠퇴하는 경우를 서구 유럽이나 미국을 여행할 때 체험했다. 이번에도 그렇지만 시리아, 요르단, 이란 등을 여행하면서도 느낀 점인데, 이슬람은 종교적 영향력이 현실 속에 대단히 깊숙하게 들어와 있다. 현대사회에서 사라져가는 경건이 이슬람에는 건재한다. 특히 나는 아잔 소리가 좋더라. 우아하고 낭랑한 그 소리. 종교의 육성을 듣는 것 같았다.

 

이번 책을 쓰면서 문장에 대해서도 고민을 많이 했다고 들었다. 1권과 비교해서 5권에서는 어떻게 쓰려고 했나.

 

아무래도 나이 영향도 있을 테다. 과거에 쓰던 문장은 수사적인 데 치중했다. 현란한 문체에 마음이 끌렸고. 이번에는 그런 수사적 현란함보다는 내면을 성찰하려고 했다. 내면에 집중하면서도 외부의 풍경과 어울리는 문장을 지향했다. 물론 지금도 컴퓨터가 아니라 원고지에 직접 쓴다.

 

『화첩기행』도 그렇지만 이전의 『바보 예수』에서도 종교와 예술이 주요 주제로 등장한다. 종교와 예술은 어떤 의미인가?

 

분리할 수 없다. 두 개가 하나가 되는 지점을 느낀다. 종교의 궁극에는 아름다움이 있다. 둘 다 왜 절대적 아름다움이 소멸하는가에 관심을 둔다. 이게 종교의 생성 원리와도 만난다.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아오악’이라고 할 만한 풍경을 만난다. 아, 아름답다고 하는 풍경. 오, 하고는 말을 잇지 못하는 풍경. 악, 하는 비명에 가까운 감탄을 한 뒤 더는 말문이 안 열리는 아름다움. 천국이 현실에서 나타난 게 악 하는 비명을 지르게 하는 풍경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다. 이렇듯 종교와 예술은 분리할 수 없다. 한 지점에서 궁극으로 만난다. 다만, 그 아름다움에 대해 예술은 집착하게 하고 종교는 떠날 것을 요구한다. 예술은 영원히 머무르기를 바라면서 한순간을 그림과 글로 잡아내지만 종교는 그것이 소멸하는 것이라는 것을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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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잃어버린 것, 화첩기행이 앞으로 갈 곳

 

4권에서도 그랬고, 5권에서도 물질적 풍요와 가난에 관해 다뤘다. 다른 세계를 접하면 우리 사회를 돌아다보기도 할 텐데, 대한민국은 어떤 곳인가?

 

그동안 다른 사회를 통해 우리를 비춰볼 거울이 없었다. 그런 면에서 여행이 우리를 돌아다볼 계기였다. 가난하면 불행하다는 공식이 있는데, 쿠바처럼 우리보다 훨씬 가난한 나라에서 사람들이 그렇게 불행해 보이지 않더라. 행복하게까지 느껴졌다. 여행자의 피상적인 시선일 수 있긴 하다. 자본주의가 지고지선이며 우리가 지향하는 최대의 가치다. 지금 4만 불을 목표로 했는데, 1인당 국민소득 4만 불에 이르면 우리가 행복할까? 물질적인 결여가 많아도 행복할 수 있다.

 

서울대 미대 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예전 학생과 비교하면 요즘 청춘은 어떤가?

 

지금 청춘이 더 힘들다. 우리 때는 자본주의가 숙성하는 시기였다면 지금은 만개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숙성 단계에서는 기회가 많았다. 현재는 경쟁이 심하다. 경쟁이 느슨했던 우리 때보다 요즘 젊은 사람이 힘들겠더라. 나는 시골에서 초등학교를 나왔는데, 4학년 때까지 반에서 상당수가 한글을 못 읽었다. 농번기 때는 공부하지 않고 농사일을 도와줬다. 지금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이미 영어는 다 하지 않나. 어수룩한 사람을 보기도 어렵다. 이런 사회에서 과도 경쟁에 내몰렸는데, IT 강국으로써 정보 통신 쪽에서 엄청난 속도감을 발휘하면서 인문적 가치는 결여했다. 경쟁사회에 치이는 사람이 많이 생겼는데 패자부활전이 있는 사회도 아니다.


김병종 화백의 다음 여행지는 어디일까? 『화첩기행 6』의 행선지 궁금하다.

 

일본과 중국, 이 두 곳을 가려고 한다. 먼 곳으로 갔다 가까운 곳으로 오는 셈인데 이슬람, 아프리카보다는 잘 안다고 생각해서 아껴뒀다. 일본 속에 스러져간 한국 예인들의 이야기를 다음에 해 볼 생각이다. 심수관, 이삼평 등과 같은 한국의 예인들이 일본 사회에서 어떻게 힘든 삶을 영위했으며 그런 고난 속에서도 아름다운 예술이 꽃피웠는지를 큐슈로부터 홋카이도를 돌면서 다룰 것이다. 중국과 한국의 예술 관련 양상을 훑어볼까 해서 중국도 갈 것이다.

 

올해는 김병종 화백에게 화가 인생으로써 30년이 되는 해다. 이를 맞아 전북도립미술관에서는 ‘김병종 30년, 생명을 그리다’는 전시가 진행 중이다. 이 전시는 2월 16일까지 이어진다. 한편, 이보다 앞서 시작한 『화첩기행』삽화전은 전주한옥마을에 있는 교동아트센터에서 열려 2월 2일에 전시를 끝낸다. 화백의 작품을 책이 아니라 직접 눈으로 보고 싶은 독자에게 반가운 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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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은애 “아이들이 뭘 모른다는 생각, 가장 큰 편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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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非行)은 잘못되거나 그릇된 행위라는 뜻이잖아요. 그런데 제가 만난 소위 ‘비행 청소년’이라고 불리는 아이들은 지극히 평범하고 건강했어요. 아이들을 바라보는 관점을 조금만 바꿔보니, 그들은 자신의 행복을 향해 나아가는 ‘비행(備幸)’ 청소년이었어요.” 지난해 6월부터 동대문경찰서에서는 청소년 선도 프로그램으로 ‘인문도서 읽기’를 진행하고 있다. “프로그램이라는 거창한 말은 보태지 말아 달라”는 이은애 여성청소년과장의 아이디어로 시작된 책 읽기 시간. 독서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한 시도는 아니다. 아이들 스스로가 자신의 삶에 ‘질문’을 해보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시작됐다.

경찰대학교를 졸업하고, 캠브리지대학교에서 범죄학 석사를 받은 이은애 과장은 15년간 주로 수사 분야를 담당했고, 지난해부터 여성청소년과에서 일하고 있다. 극악한 범죄의 현장에 있다가 여성청소년과로 부임했을 때, 이은애 과장에게 밀려든 감정은 안타까움과 쉽사리 이해할 수 없는 아이들의 반항심이었다. 그는 아이들을 다그치기보다는 호기심으로 다가갔다. 정해진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그저 어른들이 말하는 성공을 좇고 있는 아이들에게 동기 부여를 주고 싶었다. 『관점의 힘』은 이은애 과장이 아이들의 비행(備幸) 시간이 더욱 풍성하고 다채롭길 바라는 마음으로 집필한 책이다. 목표, 사랑, 가족, 폭력, 권리, 행복 등 청소년들이 품고 있는 고민들을 자신만의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동서양의 고전 24권을 소개했다. 무엇이 옳은지 판단할 여유도 갖지 못한 채, 어른들이 정해 놓은 삶을 받아들인 청소년들에게 이은애 저자는 속삭인다. “세상이 가르쳐준 정답이 네게는 정답이 아닐 수도 있어. 네가 정말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니?”
『지상의 양식』 의 저자, 앙드레 지드는 “알려는 욕망은 의혹에서 나오니, 믿는 것을 그치고 앎을 얻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지금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이 정말 옳은 것일까요? 그리고 그것이 나의 생각이 맞을까요? 나의 인생이 궁금하다면, 내 고민의 해답이 궁금하다면 우선 지금 알고 있는 것들을 의심해 볼 일입니다. 어른들이 말해준 살아가는 방법, 세상이 강요하는 성공의 비법, 무슨 뜻인지 알기도 전에 외워버린 인생의 정답 따위는 잊어버려도 좋습니다. (『관점의 힘』 p.6)



믿고 의지할만한 어른들이 필요하다

비행 청소년뿐만 아니라, 청소년들에게 책을 추천하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다. 무엇 하나 고민이 아닌 것이 없는 아이들에게 책을 읽으라는 소리만큼, 허공에 뜬 이야기는 없을 것 같은데.

어려웠다(웃음). 책을 읽으라고 빌려주면 잃어버리고, 다시 가져오지 않았다. 실제로 『관점의 힘』에 나온 24권 책을 다 읽은 아이들은 없다. 조금이라도 읽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각 책의 요약본을 만들어 줬더니, 좀 읽더라. 어려운 책 말고 쉬운 책, 짧은 소설을 읽으라고 했다.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책 좀 많이 읽어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막상 무슨 책을 읽어야 할지를 모르는 아이들이 많다.

책에 대한 관심 자체가 없는 아이들의 반응은 어떠했나.

아이들이 선도조건부 입건유예로 들어오면, 경찰서의 선도 프로그램을 10주 정도 수료하게 된다. 각자 상담 선생님이 배당되는데, 선생님을 만나러 가기 전에 잠깐 시간을 내서 30분간 이야기를 나눴다. 일대일로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친한 애들끼리는 두세 명 같이 이야기를 하기도 했다.

아이들에게 어떤 책을 읽으라고 추천했나?

처음부터 책을 읽으라고 하면 무반응이다. 아이들의 상황을 들어보고 관심이 있을 만한 책을 추천했다. 한 중학생  아이는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읽고서, 톨스토이의 다른 책을 추천해달라고 하기도 했다. 애초부터 아이들이 책을 몇 권 읽고 인생이 바뀌길 기대하진 않았다. 다만, 정해졌다고 생각한 길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다. 일단 책을 읽어 보면, 자연스럽게 좋아하는 작가가 생기고, 좋은 책을 찾아갈 수 있다.

『관점의 힘』에서는 한 주제당 2권씩, 총 24권의 책을 소개했다. 선정 기준이 있었나?

일부러 2권 중 1권은 쉬운 책을 소개했다. 쉬운 책을 먼저 읽고, 다른 한 권은 나중에 읽어도 좋은 책으로 선정했다. 『꽃들에게 희망을』같은 책은 한 시간이면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짧고 쉬운 책부터 읽으라고 권했다. 또 역사적인 인물에 대해서는 흥미를 갖는 아이들이 많았다.

제목이 『관점의 힘』이다. 사랑, 행복, 생각, 엄마, 외로움, 공부 등 12가지 주제를 다뤘는데, 청소년들이 가장 많이 하고 있는 고민들이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는 아이들이 읽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책을 썼다. 지금 너무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삶에 대해 질문을 갖고 있는 친구들이 본다면, 약간은 숨통이 트이지 않을까? 요즘 청소년들은 고민을 많이 갖고 있는 동시에 모든 문제에 정답을 가지고 있다. 공부는 잘해야 하고, 얼굴은 예뻐야 하고, 친구는 많아야 하고, 돈은 많이 벌어야 하고. 요즘 학교에서는 친구가 많은 서열대로 짱이 된다. 자기를 따르는 친구가 얼마나 많은지가 서열의 기본이다. 아이들은 모두 자기의 고민을 해결하고 싶은데, 그게 잘 안 되면 힘들어 한다. 아이들이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스스로가 정말 원하는 게 아닐 수도 있고, 갖고 싶었던 직업이 정말 내가 갖고 싶은 게 아닐 수도 있는데, 고민하는 타이밍이 없으니까 그냥 산다. 나도 중고등학교 때 고민을 많이 했으면, 경찰이 되지 않을 수도 있을 거란 생각도 가끔 한다.

상담 시간에 ‘자신의 장점과 단점 찾기’를 하면, 아이들이 단점 리스트만 가득 채운다고 들었다. 예뻐져야 한다는 강박, 외모에 대한 불만이 청소년들에게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한 언론사가 고등학생들에게 ‘키만 클 수 있다면 OOO도 할 수 있다’라는 설문조사를 했는데, ‘키만 클 수 있다면 감옥에라도 가겠다, 재수도 할 수 있다, 평생 혼자 살 수 있다’고 답했다고 한다. 심지어 ‘노예라도 되겠다’라고 말한 아이도 있었다. 외모는 특성에 불과하다는 주장은 더 이상 청소년들에게 공감을 살 수 없다. ‘외모도 경쟁력’이라고 평가 받는 사회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우리는 온갖 스트레스와 콤플렉스를 안고 외모를 고치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심리학자들은 이러한 상태를 ‘욕망의 트레드밀(Hedonic Treadmill)’라고 불렀다. 이제 그 런닝머신에서 내려와야 한다. 러닝머신 위에서 계속 뛰어도 우리는 원하는 것을 결코 얻을 수 없다. 일단 런닝머신에서 내려오면 우리가 원하는 것이 실제로는 우리가 원하던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나를 진정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것은 쌍꺼풀 수술이 아니라,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눈동자라는 사실을 알았으면 한다.

사춘기 때는 또래집단에 대한 결속력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다. 아이들은 자신이 단체 카톡방에 초대되지 않는 걸 굉장히 두려워한다. 스마트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폴란드의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의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에는 한 달에 3천 건의 문자 메시지를 보낸 한 여고생이 등장한다. 하루에 100통 이상, 깨어 있는 동안 10분마다 한 통씩 친구들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낸 거다. 이 학생은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10분마다 확인하려 한 것이다. 2장 ‘사랑’에서 소개한 책, 『사랑의 기술』에서 에리히 프롬은 인간이 고독해진 이유로 ‘진정한 관계 맺음’의 무능력을 지적했다. 사람들과 제대로 관계 맺지 못할 때 우리는 고독을 느낀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은 ‘받는’ 문제가 아니라, 사랑할 줄 아는 능력, 곧 ‘사랑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다면,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또한 남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청소년들이 알았으면 한다.

12장 ‘공부, 꼭 해야 돼?’를 자녀들에게 읽히고 싶은 학부모들이 많을 것 같다. 『동물농장』, 『백범일지』를 추천 도서로 소개했는데.

출판사에서 ‘공부’ 부분은 빼도 되지 않냐고 했는데, 나는 꼭 넣고 싶은 주제였다. 가끔 학교에서 강의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공부를 왜 해야 하는 거냐” “어떻게 하면 공부를 잘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다. 정확히 말하자면 ”경찰대학에 가려면 몇 등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이었다. 학생들이 공부와 관련해서 갖는 스트레스는 ‘공부가 힘들다, 하기 싫다, 쉬고 싶다’ 정도가 아니다. ‘굶어 죽을 수 있다’는 공포감을 느낀다. 청소년들은 입시 때문에 청년들은 취업 때문에 공부하는 실정이다. 영국의 작가 알랭 드 보통은 “교육의 목적은 유능한 변호사나 의사를 배출하는 것이 아니라, 교양 있는 인간을 만드는 것이며 더 나아가서는 ‘이 세상을 우리가 처음 보았을 때보다 더 훌륭하고 더 행복한 곳으로 만들려는 고귀한 포부’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말했다. 내 삶을 내가 결정하기 위해 공부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청소년들이 알았으면 한다. 내 삶을 규정짓는 수많은 사회의 법칙을 이해하고 판단하기 위해, 우리가 공부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길 바란다.




아이들은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저자가 만난 청소년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고민, 문제는 무엇이었나.

아이들이 이미 먹고 살 걱정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아이들은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해 극도의 공포감을 가지고 있다. 아이들마다 갖고 있는 문제나 고민은 천차만별이지만, 공통점은 자존감이 많이 떨어져있다는 것이다. 스스로를 아껴야 하는데,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잘 알지 못한다. 또래집단에 대해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 건, 누구나 방황하는 순간에 믿고 의지할만한 대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믿고 의지할만한 어른들이 없으니까, 대신해서 만족시켜줄 만한 친구들을 찾는 것이다.

담임 교사에게도 속마음을 털어놓지 않는 아이들이 대부분인데, 경찰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아이들도 있었나.

초중고 학생들마다 다르지만, 실제적인 고민을 털어놓는 아이들은 흔치 않다. 정말 아무한테도 이야기하기 힘든 순간에 경찰을 찾는 경우가 있다. 대구 중학생 자살 사건 이후, 학교폭력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면서 경찰이 교육문제까지 진입을 하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논란이 됐지만 지금은 국민적인 공감대가 있다. 요즘 아이들은 폭력에 대한 감수성이 월등히 높아졌다. 초등학생 같은 경우에는 폭력에 대한 교육을 잘 받아서, 굉장히 민감하다. 중학생으로 올라가면 오히려 둔감하다. 실제로 학생들에게 ‘학교폭력을 어떻게 해결하면 좋겠냐’고 물어보면, ‘신고자를 철저히 보호해주고 가해자는 가혹하게 처벌해달라’고 말한다. 아무리 피해자를 100% 보호한다고 해도, 친구 하나 둘에게는 알려지기 마련이다. 신고의 정당성을 생각하고 스스로 당당하게 여기면 조금의 피해를 감수할 수 있는데, 아이들에게 그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가해자, 피해자가 분명히 나눠지길 원하는데, 그 속을 깊이 살펴보면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다. 복잡한 문제다.

부모의 불화로 인해 방황하는 청소년들이 많다. 부모의 사이가 좋으면, 자녀가 불행할 수 없다는 이야기에 동의하는지.

분명 가족 문제로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많다. 딱히 편부모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만이 포함되는 건 아니다. 가족 안에서 사랑 받지 못하는 경우, 또 지나친 관심으로 힘들어하는 경우도 많지만, 정말 멀쩡한 부모, 멀쩡한 집안에서 자라나고 있는 아이인데도 문제를 겪는다. 부모가 아무리 좋은 분이라도 아이와 맞지 않을 수가 있다. 그럴 때 믿고 의지할만한 다른 어른을 찾아볼 수 있어야 하는데, 쉽지 않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듯이, 아이들을 보살피는 사람이 부모만으로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영국에서 공부할 때, 인상 깊었던 것 중에 하나가 청소년 선도 프로그램을 경찰서가 아닌 동네 커뮤니티에서 운영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경찰이 아닌, 동네에서 가장 오래된 가게의 할아버지, 목사, 교장 선생님 같은 분들이 모여서 아이들을 화해시키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다. 경찰이라는 존재는 강압적인 처벌을 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어른으로만 다가가긴 어려운 부분이 있다. 동네에 아이들이 믿고 의지할 만한 어른들이 많다면 더없이 좋을 것 같다.

100여 명의 아이들을 만나면서, 부모의 역할에 대한 고민도 많이 했을 것 같다. 부모들이 자녀에 대해 갖고 있는 착각은 무엇일까? 또는 부모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아이들이 뭘 모른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이들은 정말 많이 알고 있다. 본능적으로도 알고 있다. 내가 상담기법을 배운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무작정 질문을 던졌다. “뭐가 그렇게 불만이냐? 왜 이렇게 사는 거니” 등. ‘아무리 사춘기라도 그렇지, 인생에 대해 너무 책임감이 없는 게 아닌지’ 이해하는 척을 하는 것도 힘들었다. 그래서 순수하게, 정말 호기심으로 물었더니 오히려 아이들이 이야기를 했다. 어른들이 가장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게, 아이들이 뭘 모른다고 지레 짐작하는 것이다. 부모 본인의 상황이 어렵더라도 숨긴다고 숨겨지는 것도 아니고, 아이들에게 솔직하게 말하고 상의를 했으면 좋겠다. 부모가 자기 자식을 최고라고 생각하듯이, 아이들도 자신의 부모들이 최고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둘 다 마찬가지인데, 둘 다 그렇지 않다. 아이들을 대화의 주체로 여기는 것,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게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24권 책 중에 콕 집어서 ‘이 책은 정말 읽었으면 하는’ 책이 있나?

아이들이 읽으면 좋을 책으로는 『전태일 평전』을 꼽고 싶다. 『관점의 힘』 9장 ‘잃어버린 나의 권리 찾기’에서 소개했는데, 지금 어딘가에도 그 때와 다르지 않게 살고 있는 또래 아이들이 있다. 우리 주변을 살아가는 이웃을 바라볼 수 있는 책이기 때문에 추천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좋았던 책 중에는『월든』을 고르고 싶다. 아직 영어로 읽어보지 못해서 언젠가 원서로 꼭 읽을 생각이다. 저자 헨리 데이비드 소르는 삶의 모토가 매우 명확한 사람인데, 욕망을 초월한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날 선 느낌이 없다. 어떤 사회비판서보다 강렬한 책이다.

저자의 인생에 있어서, 삶의 방향성을 새롭게 해준 책은 무엇인가.

대학교 1학년 때 읽었던 『성평등의 사회학』이란 책이다. 이대출판부에서 출간한 논문을 모아놓은 얇은 책인데, 읽으면서 전율을 느꼈다. 당시 대한민국 사회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이해되지 않아 모든 것에 분노가 가득 찼던 때였는데, 이런 현상이 왜 일어나는지에 대해 논리 정연하게 구술되어 있어 굉장히 인상 깊게 읽었다. 부당한 일을 당할 때마다 한 번씩, 오랫동안 많이 읽은 책이다.


   『관점의 힘』 이은애 저자의 청소년 추천 도서


월든

19세기의 미국의 위대한 시인이자 사상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대표작이다. 자연과의 조화 속에 검소하고 단순한 삶을 원했던 소로는 아름다운 호숫가 윌든으로 들어가 통나무집을 짓고 자급자족하는 삶을 살기로 한다. 현대사회의 배금주의에 대해서는 날카롭게 비판하면서도 자연 속에서는 평화를 찾는 그의 모습이 아름다운 언어로 표현되어 있다. 부당한 정부권력에 대한 개인의 저항을 주장한 『시민불복종』 은 20세기 마하트마 간디의 인도 독립운동에 큰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랑의 기술

에리히 프롬은 독일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법학, 사회학, 철학, 정신분석학을 공부하고 정신분석학자, 사회심리학자로 활동했다.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계승하였으나 개인 차원의 분석에서 그치지 않고 사회 구조 전반에 적용하여 ‘사회심리학’이라는 분야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소유나, 존재냐』, 『자유로부터의 도피』, 『사랑의 기술』 등 화제작을 통해 현대인에게 억압받지 않는 진정한 자유의 의미를 알려주고 있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시대의 패셔니스타이자 댄디보이인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이다. 와일드는 멋진 말솜씨와 화려한 패션으로 영국 사교계의 유명인사였지만, 동성애 스캔들로 유죄판결을 받고 영국을 떠나 파리에서 외로운 죽음을 맞이한다. 괴짜 천재였던 그는 ‘예술을 위한 예술’이라는 기치 아래 탐미주의 운동에 동참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살인자의 이야기라는 매력적인 소재를 가진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은 몇 차례 영화화되기도 하였으며, 고딕호러의 고전으로 평가 받고 있다.




딸들이 자라서 엄마가 된다

프랑스의 아동문학가인 수지 모르겐스턴이 사춘기에 접어든 딸 알리야와 대화하기 위해 함께 일기를 쓰자고 제안했다. 같은 사건을 바라보는 엄마와 딸의 다른 시각을 재미있게 풀어내고 있다. 28년 전 프랑스의 모녀 사이에 있었던 일이지만 한국의 나와 우리 가족이 겪고 있는 일처럼 생생하다. 1985년 발표되어 프랑스 여성인권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으며, 지금도 전세계의 엄마와 딸들이 읽고 있다. 책을 쓸 당시 18세였던 딸 알리야 모르겐스턴은 현재 프랑스 파리3대학에서 문학을 가르치고 있다.




전태일 평전

1970년 11월 13일 청계천 거리에서 22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노동자 전태일에 대한 이야기이다. 평화시장의 극악한 근로조건을 접하고 고민과 분노, 방황 끝에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를 외치며 분신을 감행한다. 이 책의 저자인 조영래 변호사는 민청학련 사건으로 경찰의 수배를 받으면서 당국의 감시를 피해 이 책을 집필했다. 1983년 저자의 이름 없이 책이 출간되었지만 판매금지조치를 당했고, 1991년이 되어서야 저자 조영래의 이름이 찍힌 개정판이 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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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의 힘이은애 저 | 생각학교
『관점의 힘』은 청소년들의 대표적인 고민 12가지와 동서양 고전 24권을 통해 자기만의 해법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왕따와 공부, 폭력 등의 현실적인 고민으로 시작해서 사랑과 행복, 권리와 정의 등 우리가 일상에서 부딪치는 삶의 본질적 가치들을 담고 있다. 청소년들의 고민을 푸는 열쇠는 무엇일까? 바로 고전이다. 수백 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고 생생하게 전해지는 철학, 역사, 문학 고전은 인간 본질에 다가갈 수 있는 통찰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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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숨 “매일매일 일기 쓰는 사람이 존경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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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를 집은 젓가락에서 글자가 후드득후드득 떨어진다. 소면으로 담아낸 국수, 중면으로 담아낸 국수. 작가는 세밀하게 묘사를 하다가도, 뜨문뜨문 문장을 훅 내리치기도 한다. 소설가 김숨이 3년 만에 펴낸 『국수』는 2010년부터 2011년까지 문예지에 발표한 단편들을 수록한 소설집이다. 현대문학상 수상작 「그 밤의 경숙」 을 비롯해 두 자매가 어머니의 고향을 찾아가는 「옥천 가는 날」, 며느리와 시아버지와의 불편한 동거를 그린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 밤」, 표제작 「국수」 등 9편의 작품이 실렸다. 『국수』는 1997년에 등단한 김숨의 열 번째 작품집. 그간 작가는 소설집 『투견』『침대』『간과 쓸개』, 장편소설 『백치들』『철』『나의 아름다운 죄인들』등을 펴냈다. 『국수』의 작품 해설을 쓴 철학자 이병창은 “김숨 소설의 인물들은 외부적인 힘에 의해 압박 받으면서 심각한 내면적 혼란을 겪는다. 그 결과 김숨의 소설은 한편으로 리얼리즘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모더니즘적인 비현실적인 분위기를 띠게 한다. 이런 두 차원의 중첩이야말로 김숨의 소설의 독특한 매력”이라고 말했다. 김숨의 시선은 언제나 주변인에게 닿아 있다. 아는 체를 하지 않으면 잘 보이지 않는 주변인들. 현실을 꾸역꾸역 살아가지만 좀체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는 인물이다. 현실의 작가 김숨은 햇빛을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그의 작품에서는 짙은 안개가 보인다. 선명하지 않아서 때론 답답하지만, 단호하지 않은 문장들이 독자들에게 느낌표를 안겨준다.

조용한 카페에서 김숨 작가를 만났더라면 조금 편했을지 모른다. 시끄러운 카페의 공기 속에서 작가의 조용한 목소리에 집중하기란 여간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때로는 작은 목소리가 더 큰 울림을 주기도 한다. 김숨 작가는 대답을 할 때마다 ‘아!’하고 감탄사를 연발했다. 호들갑스러운 표정이나 어조는 아니었다. 3초 동안 질문을 곱씹은 뒤, 머뭇거리다가 이내 신중하게 말을 보탰다. 중간중간 “이렇게 말하면 되나?”라고 중얼거리기도 했다. 김숨은 요즘, 틈틈이 얼굴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다음 장편이 ‘얼굴’을 소재로 한 소설이기 때문이다. 김숨의 얼굴을 2시간 남짓 탐색했다. 여간해서는 쉽게 늙지 않을 것 같은 얼굴이었다. 그의 작품 또한 언제나 젊은 기운을 갖고 있을 것 같았다.
제 의도도 있지만, 제 의도를 넘어서는 그 어떤…… 흐름이라도 밖에 설명할 길 없는 그 무엇인가가 저를, 지금 제가 앉아 있는, 이 의자 위에 데려다 놓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날이 밝아오고 있습니다. 새벽이 간직한 신비를 깨달은 것은 마흔이 되어서입니다. 자명하지만, 그 신비를 제대로 모르던 것들을 하나하나 알아가고 싶습니다. 한 편의 소설을 쓰는 동안에도 그 흐름이라고밖에 설명할 길 없는 그 무엇인가를 느낍니다. 제 의지대로 소설이 쓰이고 제 인생이 전개되었다면, 기쁨과 감사를 몰랐을 것입니다. - 『국수』작가의 말 中



나에게 화두로 다가오는 이야기들을 쓴다

친근했어요. 소설집 제목 『국수』가. 표지도 인상적이었고요. 젓가락에서 떨어지는 문장들. 마치 낚시를 해서 글을 잡아 올린 듯한 느낌이랄 까요. 동그라미 세 개는 무언가 했는데, 한 묶음의 국수의 잘린 면이더라고요.

잘린 면이었구나(웃음). 동그라미의 의미는 몰랐어요. 4,5년 전부터 ‘국수’를 가지고 소설을 쓰고 싶었어요. 국수라는 음식이 만드는 과정이 재밌잖아요. 흥미롭잖아요.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이기도 하고요. 어릴 때 누군가 제게 좋아하는 음식이 뭐냐고 물으면, 수제비와 국수를 두고 고민을 했어요. 밀가루 음식을 원래 좋아해요. 수제비는 종종 만들어먹어요. 반죽이 쉬우니까. 그런데 국수는 난이도가 있는 것 같아요. 가끔 반죽을 해서 해먹곤 하는데, 엄마가 해주는 거에는 훨씬 못 미쳐요. 반죽도 숙련된 기술을 요구하는 것 같아요.

국수가 작가님의 힐링 푸드인가요?

그런 건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몸살이 난다던가 그럴 때 생각나는 음식이라면 맞는 것 같아요. 몇 가지가 있어요. 흰 죽, 계란찜, 국수 같은 음식.

이번 소설집에는 유독 가족, 관계 이야기가 많아요. 「옥천 가는 길」 은 장례가 치러질 어머니의 고향으로 가는 두 자매의 이야기고,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 밤」 은 서로를 불편해하는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일상, 부부의 갈등을 보여주는 「그 밤의 경숙」 과 「명당을 찾아서」 등.

글을 쓴다는 게, 소설을 쓸 당시에 저에게 화두로 다가오는 이야기를 쓰는 거잖아요. 저에게 흥미롭게 다가오는 삶에 대해서 쓰게 되는 거라, 의도적인 건 아니었어요. 해체된 가족과 소통하지 못하고 있는 사회 문제 때문에 흔들리는 사람들의 모습이 제 눈에 많이 보였던 것 같아요.

해체된 가족과 사회의 불화, 현대인에 대한 관심사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나요?

이어지긴 하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국수』를 쓸 때보다 지금은 나이를 먹었고, 조금 젊었을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 읽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는 것 같아요. 나이를 먹는 게 소설가에게는 좋은 것 같아요. 인간에 대한 이해가 아무래도 깊어져요. 또 깊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어쨌든 제가 쓴 글이기 때문에 제 소설이고, 제가 썼던 작품들과 닿아있지만 변화는 있어요. 변화 또한 있어야 하고요.

이번 소설집에서 장면을 묘사할 때 유독 ‘혀’가 많이 등장해요. 「국수」 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계모는 설암이 걸리죠. 혀를 잘라내야 하는 고통을 갖고 있고, 맛을 느끼지 못하고 제대로 씹지 못해요. 혀라는 신체기관에 어떠한 상징성을 담은 건가요?

음… 아무래도 그거 같아요. 고등학교 때 제 뒷자리에 앉은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자기 할아버지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어요. 담배 농사를 지었는데 암이 걸려서 돌아가셨대요. 돌아가실 때 음식을 못 드셨다고 했는데, 혀에 암이 걸려서 혀를 절제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 때 굉장히 충격적이었어요. 과거에 인상적이고 충격적인 이야기가 10년, 20년 지나서 작품에 나오는 것 같아요. 그런 영향 아닐까요?

철학자 이병창에 의하면 “김숨의 소설들이 주는 느낌은 카프카의 『변신』의 마지막 장면을 상기시킨다”고 했어요. 저 역시 다르지 않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프라하에 있는 카프카 박물관을 간 적이 있는데, 건물 전체를 아우르는 음침한 분위기 때문에 다소 공포스러운 느낌이 들 정도였어요. 『국수』속 모든 작품이 그렇지는 않지만, 불안하고 섬뜩한 분위기를 관통하는 무언가가 있어요.

그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어요. 카프카의 작품을 연상 시키는데, 그런 평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그런데 제가 말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닌 것 같아요. 저하고 너무나 먼, 비교할 수 없는 자리에 있는 작가라서, 저와는 다른 차원의 어딘가에 있는 작가인데다가 작품이라서요. 그냥 감사해요. 발문을 써주신 이병창 선생님이 예전에 제 소설에 대한 글을 쓰신 적이 있었는데, 글이 자유롭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런 좋았던 느낌이 있어서, 선생님의 글에 예의를 할 수 있는 어떤 기회가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부탁 드렸어요. 작품 해설은 제 글을 가지고 쓰신 것이긴 하지만, 그건 그 분의 글인 것 같아요. 그래서 ‘이런 것들을 읽어줬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나, ‘내가 몰랐던 걸 알게 해줬다’는 그런 감상은 경계하려고 해요. 이번 발문은 뭐라고 해야 하나… 제 글을 귀하게 대접해줬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걸로 충분한 것 같아요.

그동안 잔혹하고 어려운 소설을 쓴다는 평을 많이 받았는데요. 작가와 문체가 반드시 동일하지만은 않지만, 작가와 닿아 있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일상에서 공포를 많이 느끼는 사람이기 때문에, 작품이 저와 많이 다르지 않다고 생각해요. 제 소설이 분노하는 소설은 아니지만, 저의 취약한 모습이 작품 속 인물과 많이 닿아 있어요.




작품은 작가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

9편의 단편 가운데, 가장 힘들게 쓴 작품이 있나요?

힘들게 썼다기 보다는 퇴고를 할 수 있다면, 아직 책으로 묶어내지 않고 퇴고할 시간을 2,3일이라도 준다면 「대기자들」 을 퇴고할 것 같아요. 문장과 문장 사이가 좀 비어있다는 느낌이 들어서요. 좀 덜 때운 느낌이 들어요.

「대기자들」 이라는 제목을 먼저 읽고는 뭔가 큰 스케일의 이야기를 상상했어요.

제목을 먼저 정하고 썼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대기자들」 을 쓸 때 차례, 순서에 대한 생각을 했었어요. 다음 차례는 나, 다음 차례는 너. 이런 순서가 공포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잖아요. ‘어떤 차례냐에 따라, 왜 이 사람이 내 앞에 있지? 내 뒤에 있지?’ 이런 생각을 하던 중에 자연스럽게 쓴 소설이에요. 진찰실 앞에서 대기하고 있는 환자들이 있는 병원, 그 공간이 맞물린 것 같아요.

주인공은 치과에서 자신의 진료 차례를 초초하게 기다리면서, 순서에 대한 강박증적인 불안 증세를 보여요. 실제로 그런 사람들이 많죠. 내 차례에 대해 부당하다는 생각도 갖고 있고.

그것이 강박관념같이 느껴지기도 하고 불합리하다고 생각할 때가 있지 않아요? 다음 차례는 네 차례, 그 다음은 나. ‘차례’라는 단어 속에 강박이라는 심리가 들어있는 것 같아요. 저에게는 흥미로운 단어였어요. 어쨌든 차례가 정해져 있고, 그 차례대로 이뤄질 때. 왠지 내 앞에 있는 사람에 대해 뭔가 묘한 감정이 발생하지 않나요? 약간의 적개심 같은 것일 수도 있고, 차례가 지켜져야 한다는 강박, 내 차례가 되기를 기다리는 어떤 기대나 바람? 이런 생각들을 했어요.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 밤」 의 주인공인 며느리는 시아버지, 남편, 시아버지에게 돈을 꾼 202호 여자를 기다려요. 기다리지 않는 것 같지만 기다리는 것 같고, 또 기다리는 것 같지만 또 오지 않기를 바라는 모습으로 비쳐져요. 며느리의 시점으로 읽는 시아버지는 공포의 대상이에요. 언젠가 남편이 날려버린 재산을 돌려달라고 할지 모르니.

가족이라는 관계가 언제나 사랑일 수도 증오일 수도 없으니까요. 「아무도 돌아오지 않는 밤」 은 시간이 가장 적게 든 작품이에요.

누군가를 기다리는 행위를 어떻게 느끼세요? 힘들어 하나요?

잘 기다리는 편이에요. 싫어하지 않아요. 상대가 좋아하는 사람이고 신뢰하는 사람이면, 올 거라고 믿고 기다려요. 늦었다고 짜증을 내거나 왜 늦었는지 뭐라고 따지는 경우가 잘 없어요. 누군가가 나를 기다리는 것보다 내가 기다리는 게 훨씬 나아요. 초조해지기는 하지만, 신뢰가 있는 관계라면 기다리는 쪽이 더 편해요. 어릴 때 시골에서 살았는데 버스가 그렇게 많지 않을 때였어요. 버스가 올 시간이 언제 오는지도 기다려야 했고, 버스도 기다려야 했죠. 사람이든 사물이든 기다리는 행위에 대한 기억이 많아요.

소설가 김숨의 작품을 기다리는 독자들도 가끔은 의식이 되나요?

제가 인기 작가가 아니니까, 그런 의식은 별로 없어요. 하지만 이런 건 있어요. 작품은 작가에게서 출발해야 한다는 생각. 독자에서 출발해서는 안 되고, 작가에서 출발해서 어떤 지점에서 만나야 한다는 게 기본적인 생각이에요. 만약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책이 잘 팔리고 인기를 얻는 작가라면, 독자로부터 출발할 수도 있을 거예요. 기대하는 게 있으니까요. 하지만 전 그런 거로부터 자유로워요. 물론 독자들이 좋아하면 더없이 좋겠죠.




보고 있지만 보지 못하는 것들을 이야기하는 작가

대학에서 사회복지를 전공하셨어요. 문예창작학과나 국문과 등 다른 길도 있었을 텐데요.

문예창작학과에 가서 글을 배워야겠다, 이런 생각을 못했어요. 사회복지학과는 고등학교 선생님이 추천해 주셔서 갔어요. 적성에 안 맞지는 않았어요. 사회복지사로 활동도 했었고요. 대학 때는 공부도 잘 안 했고, 고등학교 다닐 때도 등수나 이런 거에 연연하지 않았어요. 학창시절에는 반 대항으로 무슨 경기를 하면 아이들이 막 승부욕이 생기잖아요. 전 그런 게 없었어요. 피구대회를 져서 속상해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왜 속상해 할까? 이기면 이기고, 지면 지는 거 아닌가’ 생각했어요. 저는 문단에 들어왔을 때, 문학을 전공하지 않은 게 오히려 훨씬 자유로웠던 것 같아요.

감정을 많이 드러내지 않는 성격으로 보여요. 화도 잘 안 낼 것 같고, 흥분하는 경우가 없을 것 같아요.

말수도 적고, 화도 잘 안 내고 그래요. 뭐 참을 수 없는 것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갈수록 더 그런 거 같아요. 분노가 없어지는 것 같아요. 어릴 때는 짜증도 있었는데, 지금은 뭔가 민감하고 그런 게 있기는 하지만, 많지는 않아요.

분노가 왜 줄어드는 것 같아요? 나이가 들면서 관대해진 걸까요?

기질인 것 같아요. 그냥 제가 그런 것 같아요. 엄마가 이야기해준 건데, 어릴 때 남동생이 까불면 혼내줘야 하는데, 때리지도 못하고 “왜 그래, 하지마”라고 말하는 게 끝이었대요. 친척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맨날 어디서 혼자 놀고 있는 아이였다고(웃음). 20, 30대가 되면 힘든 일이 많잖아요. 여러 관계들이나 사회 속에서. 그 때는 제가 제 기질을 거슬러서 오히려 힘들었던 것 같아요. 사회가 다른 성격을 요구하고, 다른 기질과 섞이면서 혼돈스러웠어요. 지금은 그냥 기질을 찾은 게 아닌가 싶고요.

「국수」 의 주인공은 어릴 적에 온종일 친어머니를 기다렸어요. 기다리다 보면 어머니가 살아 돌아올 것만 같아서, 간절히 기다리다 보면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사람들은 대개 ‘간절히’ 원하면 이뤄진다고들 해요. 또 반대로 ‘간절히’ 바란다고 모든 게 이뤄지진 않는다고 말하고요. 살아오는 동안, 무언가 간절히 바라거나 기다린 기억이 있나요?

등단은 뭣도 모르는 상태에서 한 것 같고, 좋은 작품을 쓰고 싶다는 간절함은 있었어요. 지금도 있고요. 작가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어야 하는 기본적인 자세고요. 사적인 거는 순간순간 있을 거에요. 다만 저는 사람에 대한 집착은 없는 것 같아요. 친한 친구들 같은 경우에는 자주 문자를 주고 받잖아요. 지금 내가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는데, 답신이 3,4일이 지나서야 와도 저는 상관이 없어요. 전화가 왔을 때, 못 받았다고 다시 거는 경우도 많지 않아요. 일주일 지나서 전화하는 적도 많고. 부모님에 대해서도 그렇게 관계에 집착이 별로 없어요.

김수진이라는 이름으로 등단을 했고, ‘김숨’이라는 필명으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어요. 이름에서 느껴지는 독특한 기운이 있는데,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 궁금해요.

얼결에 등단을 했는데, 한동안 청탁도 없었고 소설가라는 자의식도 없었어요. 어떻게 운 좋게 등단을 했지만 어디 가서 말도 못하고. 그러다가 우연히 작품을 발표할 기회가 생겼는데, 내가 본명을 좋아하진 않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평범해서라기보다는 막연한 어떤 느낌인데, 저하고 겉도는 느낌을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필명을 써볼까? 하는 참에 갖게 됐어요. 어떻게 보면 ‘김수진’이라는 이름에서 파생된 이름이에요. 벗어나 있는 이름은 아닌 것 같아요.

이름을 바꾸고, 인생의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하세요?

그런 생각을 하진 않았어요. 이름이 좋았고 마음에 들었지만요. 작가들이 필명을 많이 갖는데, 저도 여러 필명들 중 하나일 뿐이에요. 김숨으로 작품을 발표하면서, 저라는 사람과 잘 맞는 이름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하지만 김숨이라는 이름이 마니아적인 느낌을 줘서, 오히려 작아 보인다는 평가도 있었어요. 다른 이름으로 짓지 그랬냐는 분들도 있었어요.

만약 지금까지 등단을 하지 못했더라면, 글을 계속해서 썼을까요?

음… 썼을 것 같아요. 글을 쓰고 싶은 욕구가 있었을 테니까. 글을 쓰는 사람에 대한 경외심도 있어서요. 저는 매일매일 일기를 쓰는 사람에 대한 경외심이 있어요. 그런 사람을 존경하는 마음이 있어요. 일기를 쓴다는 건, 기도하는 행위와 닿아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일상에 대해 성찰하고, 성찰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는 사람이 일기를 쓴다고 생각해요. 또한 매일매일 쓴다는 건 성실, 한결 같다는 걸 증명하는 거라서요. 저는 막연히 글을 쓰고 싶어 했고, 노력하게 됐고, 자연스럽게 이어진 것 같아요. 쓰고 싶은 게 있을 때 썼고, 발표할 기회가 있으면 했고, 흘러가는 대로 산 것 같아요.

소설가, 작가 외에 직업 선택의 자유가 주어진다면, 다른 직업을 갖고 싶나요?

음, 재능도 주어진다면 음악을 하고 싶어요. 타고난 목소리가 있다면 노래하는 사람도 좋을 것 같고. 인간이 하는 예술 중에 음악이 가장 사람에게 직접적인 행복을 주는 것 같아요. 치유의 힘도 가장 큰 것 같고요. 작가로서는 어떤 소망을 가지고 있나요.

삶에 대해 어떠한 정의를 내리고 진단하는 역량은 제겐 없는 것 같아요. 그런 역할을 원하지도 않고 할 수도 없고요. 그런데, 그냥 제대로 보여주고 싶어요. 보고 있지만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을 대신해서 보여주는 역할, 이야기해주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글로 받는 스트레스를 글로 푼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작가들은 작품을 쓰지 않는 순간이 오히려 힘들다는 이야기도 들었었는데, 마찬가지신가요?

그럴 것 같은 데요? 공감이 가요. 뭔가 쓰고 있을 때 마음이 편하니까. 내가 할 일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니까요. 글이 안 써질 때는 책상에 억지로 앉아있진 않아요. 음악도 듣고, 걷기도 하고, 뭘 먹기도 하고요.

일상에서 행복한 순간은 언제인가요?

햇빛을 좋아해서, 햇볕이 좋은 날 걷는 걸 좋아해요. 그리고 오리를 볼 때 좋아요. 그냥 좋더라고요. 최근에 내가 오리를 좋아한다는 걸 느꼈어요. 또 깨끗하게 탈수된 빨래를 널고 있을 때 기분이 좋고, 맛있는 빵을 먹을 때도 좋고요(웃음).

『국수』로 소설가 김숨의 작품을 처음 접하는 독자들도 있을 텐데요. 어떤 마음으로 작품을 대하면 좋을까요.

무수한 책들이 있는데, 그 속에서 제 책에 눈길을 준거잖아요. 이 책을 끝까지 읽든 읽지 않든, 펼쳐봤다는 것, 눈길을 주고 만져봤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그 자체만으로도요.

요즘 서울과 경주를 오간다고 들었어요. 다음 작품과 관계가 있나요?

네, 작품 배경이 경주라서 자료를 찾으려고요, 초고를 쓰고 있는 중인데, 다음 작품은 발품을 팔아야 해요. 얼굴에 대한 소설이에요. 사람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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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수: 김숨 소설집김숨 저 | 창비
대산문학상과 현대문학상을 거머쥐며 뛰어난 작품세계를 인정받고 있는 작가 김숨의 네번째 소설집 『국수』 가 출간되었다. 현대문학상 수상작 「그 밤의 경숙」을 비롯 김숨의 탁월한 소설세계를 보여주는 9편의 작품을 실었다. 김숨은 자칫 진부할 수 있는 ‘가족’이라는 주제를 끊임없이 새롭게 보고 관계의 심연까지를 집요하게 파고들어 진실과 마주하려 노력한다. 그리고 그 노력은 그가 구사하는 단단한 문장과 독자들의 눈을 한순간도 놓아주지 않는 탄탄한 구성과 만나 진정성의 파장을 획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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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경 “여성을 아름답게 하는 건, 관계와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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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서 온 편지』가 출간된 지 벌써 12년이 지났지만, 저자 현경은 지금도 한국, 미국, 프랑스, 영국, 독일, 스페인, 인도, 네팔, 캄보디아 등 지구의 여러 마을에 흩어져 사는 많은 한국의 딸, 아들들로부터 이메일을 받는다. 그들은 현경에게 자신의 영혼의 속살을 보여주며, 자아를 찾아 헤맨 과정들을 들려준다. 현경은 『미래에서 온 편지』를 두고 “지금까지 내가 쓴 모든 책들 중 가장 신비롭고 이상한 책”이라고 여긴다. 바람 부는 히말라야의 산골 마을에서 전기도 없이 연필로 쓴 책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수천 명의 독자의 마음에 神을 불어넣었기 때문이다. 현경은 뉴욕 유니언 신학대학의 아시아계 최초의 여성 종신교수로 세계평화위원회 자문위원, 평화통일운동단체 조각보의 대표를 맡고 있다. 기독교 신학과 함께 불교 명상을 가르쳐 ‘불교적 신학자’로, 다양한 퍼포먼스와 축제를 통해 신학을 표현하는 ‘신학적 예술가’로, 학술, 사회운동, 영적 수련, 예술의 경계를 넘나들어 ‘문화통역사’로도 불린다. 저서로는 『미래에서 온 편지』외에도 8개 국어로 번역된 『다시 태양이 되기 위하여』, 『결국은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 거야 1, 2』등이 있다.

지난 1월, 홍대의 한 카페에서 현경 저자와 독자들이 함께하는 티 타임이 열렸다. 『미래에서 온 편지』를 읽고 자신의 내면과 마주할 용기를 갖게 된 다섯 명의 독자들은 ‘내 안에 여신을 발견하게 해준’ 현경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현경은 새로 펴낸 개정판 『미래에서 온 편지』첫 장에 ‘神 나시길!’이라는 문구와 함께 독자에게 사인을 건넸다. 神나는 삶은 어떤 인생일까. 기, 끼, 깡이 넘치는 여신, 한과 살을 풀며 금기를 깨며 신나게 노는 여신, 과감하게 살려내고 정의롭게 살림하는 여신, 기도하고 명상하는 지구, 그리고 우주와 연애하는 여신 ‘현경’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즐거운 존재의 가벼움’으로 변하는 기적을 맛볼지도 모르니.




인생의 장마철에 만난 책

『미래에서 온 편지』가 출간된 지 벌써 12년이 흘렀어요. 조카 리나에게 쓴 10편의 편지를 읽고, 마음이 두근거렸던 기억이 납니다. 리나 양은 지금 많이 성장했겠어요.

올해로 서른이 됐어요. 얼마나 용감한지 흑인 남자랑 결혼했어요. 오바마처럼 생긴 남자와(웃음). 뉴욕에 있는 광고회사에서 일하고 있는데, 행복하게 잘 살고 있어요.

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만나셨잖아요. 『미래에서 온 편지』와 함께 개정판으로 출간된 『결국은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 거야』에 추천사를 쓴 방송인 홍석천은 이 책을 “내 인생의 책 한 권”으로 꼽았어요. 나윤선 재즈 보컬리스트는 “현경의 책을 읽고 엄마 뱃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경험을 했다”고 말하기도 했고요.

아르헨티나의 어떤 목사님은 자기 아들이 입대할 때 들고 간 책 한 권이 『미래에서 온 편지』라고 했어요. 그런 말을 들으면 송구스럽기도 하고 감사하기도 하고, 그래요. 이 책은 정말 제게 특별해요. 제가 쓴 책이 아니라, 제 안의 여신이 불러서 쓴 책이니까요. 전기도 없이 촛불 앞에서 글을 쓰는데, 불러주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손이 아플 정도였어요. 지금까지 여러 책을 썼지만, 『미래에서 온 편지』는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어요.

개정판을 내면서 혹시나 수정하고 싶은 부분은 없었나요?

전혀요. 살아보니까, 작가들이 글을 쓸 때 딱 그 나이에 맞는 글을 쓰는 것 같아요. 김치에도 겉절이가 있고 묵은지가 있잖아요. 잘 익은 김치, 덜 익은 김치가 나름대로 맛있듯이 책도 마찬가지에요. 그 나이, 그 감성으로 쓸 수밖에 없었어요. 그 때의 생각, 감성들을 존중하고 싶어서 하나도 고치고 싶지 않았어요. 왜냐면 그 때의 제 삶이 너무 괴롭고 힘들어서, 정말 벗어나고 싶어서 최선을 다했거든요. 지금 보면 맨날 울고 짜고 한 이야기인데, 그 때는 그럴 수밖에 없었던 내 인생의 장마철이었던 것 같아요.

인생의 장마철이었지만, 폭우를 맞아봤기 때문에 『미래에서 온 편지』와 같은 책이 탄생할 수 있었겠죠.

책을 내는 건, 아이를 낳는 것과 같아요. 아이를 낳았다고, 내 자식이 내 자식이 아니잖아요. 아이는 절대 내 뜻대로 자라지 않아요. 제멋대로 가죠. 칼릴 지브란이 “너의 아이는 네 아이가 아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자기다운 삶을 갈망하는 삶의 아들, 딸들이다”라고 말한 것처럼, 책도 마찬가지에요. 일단 책이 태어나면 독자의 책이에요. 저자를 통해서 왔을 뿐이지, 앞으로의 책은 독자의 것이에요. 독자들이 어떻게 사랑하고 키우느냐에 따라 살이 찌고, 영혼의 양식이 되는 거예요. 저자는 일단 책을 쓰면, 책을 해방시켜야 한다고 생각해요.

대한민국의 ‘여신’은 멋진 외모의 소유자에게 붙는 타이틀이에요. 날씬해지려고 예뻐지려고만 하는 여성들을 볼 때 어떤 생각을 하시나요?

성형 수술 많이 해서 세상의 기준에서 외모가 예뻐지면, 삶의 여러 문제들이 해결되리라는 착각과 환상을 바라볼 때, 저는 많이 슬퍼집니다. 탤런트처럼 예뻐져서 능력 있는 남자들에게 ‘간택’되면 여성의 삶이 필 거라는 착각은 빨리 벗어날수록 좋아요. 정말 여성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그 여성의 관계들과 일이니까요.

여신이 되려면, 끼와 깡이 넘치고 금기를 깰 수 있어야 하고 과감하게 살려내야 하잖아요. 그런데 사람들은 타인을 의식하느라 뭔가를 시도할 용기를 내지 못해요. 특히 대한민국 사람들에게는 ‘쪽팔리다’는 정서가 많아요.

쪽팔리면 그냥 팔리면 돼요(웃음). 제 멘토였던 묘지 스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정말 좋은 말씀을 해주셨어요. “남이 뭐라고 하는 건, 그 사람 생각이다. 하지만 그 사람 생각에 흔들리는 건 네 문제”라고. 아,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누가 뭐라고 하면 우선 받아들여요. 감사하다고 이야기하고. 그 사람 말에 휘둘릴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내 안에 있는 여신의 목소리를 듣고, 그 목소리를 따라 살면, 남이 뭐라든지 별 상관이 없어요. 내가 선택하고 내가 책임지는 거니까요. 그 사람이 옆에서 뭐라 뭐라 할 수 있지만, 그 사람은 내 삶을 살아줄 수 없어요.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아요. 사람들의 직언, 충고는 생생하게 귀에 들리지만, 내면의 목소리를 들으려면 시간을 내고 또 엄청난 기운이 필요하기도 해요.

언젠가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는데, 손님들이 어떤 중견가수를 폄하하더라고요. 그 때 미용사 분이 그러더라고요. “네가 OOO처럼 살아봤어?” 누구를 욕하긴 쉽지만 그러한 삶을 살긴 어려운 거예요. 남을 옆에서 비판하고 욕하긴 쉽지만, 소신껏 내 삶을 살아가는 건 힘들어요. 남이 뭐라 그러면, 약간 기분이 나쁠지 모르지만 나에게 문제를 일으킬만한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여성들이 특히 힘들어 하는 게,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미국에서 ‘Power of vulnerability’라는 여성 컨퍼런스가 열렸는데, 그 때 한 여성 박사가 “21세기에 가장 필요한 건 연약함의 힘”이라고 말했어요. 이게 어떤 힘인가 하면, 나보다 센 권력 앞에서 쫄지 않는 힘, 나보다 약한 사람 앞에서 교만하거나 우쭐대지 않는 힘이에요. 내면의 목소리에 굳세게 서서 살아가는 힘, 멋지지 않아요? 우리 모두가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살아가는 힘이 여신의 목소리를 듣는 힘이에요. 『미래에서 온 편지』에 여신으로 살아가는 십계명을 썼는데, 모두 무엇을 하지 말자가 아니고, 무엇을 하자는 거잖아요. 왜냐면 그렇게 잘 못하기 때문이에요. 연습을 해야 해요. 사람들이 웨이트 트레이닝을 할 때, 가장 낮은 파운드부터 들잖아요. 영성도 마찬가지에요. 제일 낮은 것부터 시작하다가 점점 더 무거운 걸 들어야, 감당할 수 있어요.

최근 몇 년간 대한민국에는 강연 열풍이 불고 있습니다. 자기 내면의 목소리를 듣기보다는 성공한 사람들, 멘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어요.

먼저 경험한 지혜로운 분들께 배우는 것 중요해요. 그분들이 지도를 보여주기 때문이지요. 어디에 절벽이 있는지 어디에 생명의 샘이 있는지, 지도를 가지는 것은 삶의 여행에 큰 도움이 돼요. 그러나 지도가 진짜 현실은 아니에요. 혼자 길 위의 여행을 떠났을 때, 맞이하는 삶의 많은 문제들은 아무리 좋은 지도가 있어도 해결사는 결국 자기 자신이에요. 어떤 위기를 만나도 자기 자신은 항상 나와 함께하기 때문이죠. 진정한 자기 자신과 연결되어있고, 자신의 참 목소리를 들을 능력이 있으면, 삶이라는 여행을 두려움 없이 즐기면서 향유할 수 있어요. 제일 정확하고 도움이 되는 멘토는 다름아닌 나의 진짜 목소리입니다. 진정한 힐링이란, 여러 방식으로 상처 받아 도망가고 숨은 자기 자신의 파편들을 다시 불러들여, 완전한 자신으로 돌아가는 거예요.




내 슬픔이 해결되니 너무나 좋은 애인들이 다가왔다

대한민국에는 요즘 연애를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이 늘고 있어요. 시도조차 해보려고 하지 않는.

사람은 그런 것 같아요. 내가 좇고 싶은 이상형이 있다면, 우선 내가 그런 사람이 되야 해요. 그래야 그런 사람이 찾아오니까요. 모든 인생의 비밀은 내가 변하는 거에요. 젊어서 사랑을 해봐야 해요. 10대, 20대, 30대 때 하는 연애와 40대, 50대, 60대의 연애는 다 달라요. 맛이 너무 달라요.

외로움을 유독 많이 느끼는 사람들도 있어요. 사랑은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이별도 좋게 해야 한다는 말도 있는데요.

저도 어려운 시절이 많았어요. 이혼하고 힘들 때, 정말 외롭고 슬프고 그런 시절이 있었어요. 그 때는 막 도망하고 싶으니까 놀아도 하나도 치료가 되지 않았어요. 연기를 하고 있을 뿐이었어요. 일생 동안 어떤 남자도 나를 사랑하지 않고, 쓸쓸한 홈리스 우먼으로 죽을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무섭고 외롭고 그랬어요. 도망가려고 했는데, 어느 날 ‘그래도 할 수 없다. 받아들이자’라고 생각했어요. 며칠을 꺼이 꺼이 울면서 통곡하고 나니까, 받아들이게 되었어요. 내 슬픔이 해결이 되니까 너무나 좋은 애인들에 내 인생에 다가왔어요. ‘그 때 이혼 안 하면 어떻게 할 뻔했어? 이 남자도 못 만났을 거 아냐?’ 라고 생각했죠(웃음).

충분히 슬퍼하고 애도해야, 또 다른 사랑이 찾아온다는 뜻이지요?

진짜 슬퍼하면서 그 사랑을 보내줘야지, 그렇지 않으면 옛사랑과 혼돈해요. 새로운 사랑이 와도 긴가민가해요. 사랑에서 도망하고 싶어하고 그 사랑에 빠지질 못해요. 그런데 정말 미쳐야 미쳐요. 사랑도 사랑해야 사랑하는 거지, ‘이게 사랑인가? 아닌가?’ 묻고 있는 건, 사랑이 아니에요.

내 안의 여신을 발견하고 스스로를 잘 가꾸고 사랑하고 있는데도 사랑이 찾아오지 않으면, 노력을 해야 할까요?

연애 상대를 찾기 위해서 자기 삶을 타협하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하고 싶은 일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기와 같이 가는 사람이 생겨요. 그렇지 않다면, 너무 외로우면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투자를 해요. 살사 댄스를 배우러 간다든지, 등산 모임을 참석하든지, 뮤지엄에 간다든지. 연애 상대를 만나지 못해도 하나도 억울하지 않은 그런 취미를 하면 좋겠어요. 실수는 해봐야 해요. 시행착오를 많이 해봐야 좋은 만남을 가질 수 있어요.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도 했잖아요. 정말 필요하면 나타나요.

내가 변해야 한다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 타인, 세상이 바뀌길 바라기 전에 내 생각을 바뀌는 게 먼저여야 진짜 변화를 맛볼 수 있겠죠.

해방신학에서는 만약 얼음이 체인에 묶여 있다면, 잘못된 구조를 잘라서 얼음을 해방시켜야 한다고 말해요. 좋은 방법이지만, 또 다른 면의 해방은 그 얼음이 그대로 있어서 내 안의 불길을 내서 얼음을 녹이면, 체인이 있어도 더 큰 바다로 흘러갈 수 있어요. 유니온 신학대학에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공부를 제일 잘하는 학생이 ‘자기는 졸업하고 유기농 농업을 하겠다’고 말해요. 무너진 도시를 일으키겠다면서요. 투쟁을 하는 게 아니라, 명상하고 농사하면서 즐겁게 살겠다는 거죠. 예를 들어, 누구나 대기업에 들어가려고 하면 그건 너무 작은 확률이기 때문에 포기하는 사람, 절망하는 사람이 나올 수밖에 없어요. 그렇지만 나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맛있는 떡볶이 장사를 할 거라는 소망을 갖고 산다면, 그렇게 어려울 것도 없어요. 그 꿈이 결코 작은 것도 아니고요.

여신의 10계명 중, 가장 먼저 실천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제 1계명 ‘여신은 자신을 믿고 사랑한다’. 이것이 모든 것의 근본이에요. 어려운 일, 이해 못 받고 힘든 일이 있을 때, 그 가르침이 제일 필요해요. 저도 최근에 힘든 일이 있었는데, 매일 만트라처럼 여신의 제 1계명을 외웠어요(웃음).

어떤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나요?

자기 내면의 소리를 따라가면서 그것을 활짝 꽃피우는 사람이요. 여자를 영원히 아름답게 하는 건, 일이라고 했어요. 그 일을 통해서 계속 진화할 수 있는 거예요. 작가 앨리스 워커의 집에서 만난 70세가 넘은 한 할머니는 숲 속에 혼자 살면서 돌 조각을 해요. 처음 만났을 때, 가죽 점퍼에 부츠를 신고 할리 데이비슨을 타고 나타났어요. 헬멧을 벗기 전까지는 20대인 줄 알았는데, 헬멧을 벗는 순간 머리가 하얀 할머니의 얼굴이 반짝 빛이 나는 거예요. 제가 물어봤어요. “Are you in love?” 그랬더니, “Of course. I’m in love”라고 했어요. 그리고 덧붙이는 말이 “I’m always in love with or without object”였어요. 대상이 있건 없건 언제나 사랑에 빠져있는 분이었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말이 정말 명언이에요. “Because I am love.” 일상을 잘 살아온 여자는 자기 결핍감 때문에 누구를 필요로 하고 그러지 않아요. 저도 그 단계에 가고 싶어서 매일 수행하고 있어요. 대상이 있으면 그 사람이 있어서 사랑하고, 그렇지 않아도 사랑할 건 많아요. 책을 사랑할 수도 있고 춤을 사랑할 수도, 산을 사랑할 수도 있고 모든 게 사랑이에요. 꼭 내 사랑을 한 대상에 국한할 필요는 없어요. 있을 때는 있어서 잘하고, 사라지면 실컷 슬퍼하고,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을 사랑하면 돼요.

이제 두려운 순간은 없나요?

있어요. 이슬람 문화권을 혼자 여행했을 때, 두려운 마음이 많았어요. 티베트에는 쥐가 정말 많거든요. 절에서 명상을 하고 있으면, 쥐가 계속해서 왔다 갔다 하고 있어요. 옛날 같으면 ‘으악’ 하고 소리를 질렀을 텐데, 가만히 들여다보기만 했어요. 한참 보니까, 쥐가 가까워지면서 귀여워지더라고요. 뱀도 마찬가지에요. 사람들이 이만한 구렁이를 목에 걸고 사진을 찍고 막 그러잖아요. 정말 끔찍하고 너무 싫은데, 한 번 해봤어요. 싫으니까 한 번 해본 거예요. 한 번 해보면, 그들이 나를 잡고 있는 힘에서 해방돼요. 그 마법에서 풀어나는 거죠.

무서운 걸 받아들인다는 게, 쉽지는 않은 데요.

내 감정으로부터 도망가지 않는 게 좋아요. 그 감정들에게 주목해보세요. 우리 감정도 그만큼의 관심을 기울여주면 스스로 지나가요. 가만히 바라보면 그렇게 무섭지 않아요.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이 있듯이 받아들이면 지나가요.

시도를 할 자신이 없을 때는 무엇을 먼저 하는 게 좋을까요?

명상하고 기도해요. 항상 수호천사가 나를 지켜준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죽어야 한다면 그게 운명인가보다 받아들일 마음은 되어 있어요. 죽을 때 행복하게 죽는 게 중요해요. 티벳에서는 어떤 의식으로 죽었는지가 그 다음 생애의 출발트 포인트가 된다고 해요. 살인을 당한다고 해도, 사고를 당한다고 해도 마지막 순간에 다 용서하고 감사하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죽어야 해요. 우리는 항상 죽는 연습을 해야 해요. 죽을 때 의식이 너무 중요해요. 불교 공부를 하면 참 좋은 게, 다음 생이 또 있다는 걸 아니까 너무 안달복달하면서 살지 않아도 된다는 거예요.

명상은 어떻게 시작해야 하나요?

명상의 세 가지 요소는 멈추고, 숨쉬고, 자신을 깊게 들여다보는 거예요. 이 세가지 요소만 충족되면, 어디서나 어떤 방식으로 명상을 해도 다 좋아요.

요 며칠간 금식하셨다고 들었는데, 얼굴색이 너무 좋아 보이세요. 건강의 비결은 적게 먹는 것인가요? 나누는 삶인가요?

뉴욕에 재벌 친구들이 많아요. 그들의 고민은 누군가가 자기를 좋아하면 ‘나를 사랑하는지, 내 돈을 사랑하는지’를 끊임없이 의심해야 한다는 거예요. 헝그리 스피릿으로 살아본 적이 없어서, 뭐 하나가 생겨도 그다지 기뻐할 줄은 몰라요. 인생을 심심해 해요. 노력해서 뭐 하나 사고 그러는 게 하나도 즐겁지 않은 거예요. 하버드대학 행복보고서에 따르면, 일단 연봉이 1억이 넘으면 앞으로의 연봉이 1조든, 1억이든 아무 상관이 없대요. 1억 전까지는 돈의 차이가 행복과 불행을 많이 좌우하지만, 그 이상이 되면 똑 같은 거예요. 그래서 행복은 내가 얼마나 아름다운 관계를 맺고 있느냐에 달려있어요. 내가 얼마나 의미 있는 삶을 사느냐가 가장 중요하다는 거예요. 행복에 대한 환상을 가질 필요가 없고, 상황이 이래서 그렇다는 핑계는 그만 이야기해야 해요. 서른 다섯 살까지는 봐줄 수 있을지 몰라도, 그 나이를 넘겼는데도 아직도 부모의 탓을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물론 많은 트라우마가 있겠지만 그 트라우마를 감내하고 이겨내는 것도 내 자신이에요. 마흔이 넘으면 네 얼굴에 책임지라는 말이 있잖아요. 내 행동에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해요.

다시 한 번 젊음을 누리고 싶다는 생각은 없으신가요? 언제 가장 행복하세요?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어요. 제가 하고 싶었던 일은 다해본 것 같고요(웃음). 완경기가 지나고 보니 이제 나를 가장 행복하게 하는 일은 ‘신과의 대화’에요. 명상하고 기도할 때, 삼매경에 들어가 글을 쓸 때, 또 깊은 만남을 가졌을 때 나의 깊은 진짜 자아와 만날 때 다가와요.

요즘 바라고 소망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한반도의 통일에 기여하며, 좋은 글을 쓰는 것. 그리고 탱고를 배우는 일이에요(웃음). ‘여신과 보살’이 제 삶의 키워드에요. 여신처럼 보살처럼 살면, 참 아름다운 삶이겠다 생각해요. 나누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나눌 수 있을 때가 있는 게 아니라, 지금 있는 걸로 나누면 돼요. 10원이 있으면 1원은 나눌 수 있잖아요. 나누는 것도 연습을 해야 해요. 연습하지 않으면 때가 되었다고 해도, 할 수 없어요. 전 모든 사람이 십일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꼭 종교기관에 할 필요는 없어요. 내 삶에서 내 수입의 10분의 1은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쓰겠다는 마음을 먹고 살면 좋아요. 돈도 다 에너지에요. 나가야 들어와요. 안 나가면 물처럼 고여있어서, 들어오지 않아요.

남북여성 평화통일 모임 ‘조각보’의 활동도 기대됩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통합으로서의 통일이 아니라 통함으로서의 남북 여성이 마음과 마음으로 하나되는 거예요. ‘진달래 무궁화’라는 남북 여성 삶 나누기 대화 모임, 합창단, 평화 인문학 강의와 세미나, 남북여성 함께 잘 살기 운동, 사회적기업 등을 준비하고 있어요. 여성의 감성과 지혜로 남북이 다시 ‘통’하여 정치적 통일만이 아니라 마음의 통일도 이뤄지길 바라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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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독해도 괜찮아, <인사이드 르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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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서 온 편지현경 저 | 열림원
한국을 대표하는 신학자이자 여성ㆍ환경ㆍ평화 운동가인 현경. 『미래에서 온 편지』 는 저자 현경이 1999년, 2000년에 걸쳐 히말라야 수도원에 머물면서 내면에 귀 기울이며 깨달은 ‘삶의 지혜’를 조카 리나에게 전하며 쓴 편지 형식의 글이다. 저자는 리나와 동세대인 “미래를 살아가야 할” 여성들을 대상으로 글을 썼기에, 독자들은 마치 이모가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책을 읽어나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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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임헌우 “실수를 해야 성장할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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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의 함정이라는 말이 있다. 예를 들어 40명으로 이루어진 집단에서 그 사람의 키와 몸무게를 평균 냈더니, 키가 175cm였고 몸무게가 70kg이었다. 이 집단이 단체로 옷을 맞추는데, 평균 키와 평균 몸무게로 치수를 주문한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평균만을 생각한다면 돈 주고 주문한 옷은 걸레 대용으로나 쓰일 게 뻔하다. 사회에도 평균의 함정은 존재한다. 평균은 그 집단의 전반적인 경향을 알려줄 수는 있겠지만, 인간 개개인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사람마다 독특한 개성이 있듯, 책에도 책만의 개성이 존재한다. 개성을 표현하는 게 인간에게는 일차적으로 옷이나 머리 모양, 신발이라면 책에서 이런 역할을 하는 게 표지다. 그래서 책의 표지는 내용만큼이나 중요하다. 표지를 잘 만들기 위해 없어서는 안 될 과정이 디자인이다. 흔히 디자인을 본질에 딸린 부속품, 옵션 정도로 생각하지만 디자인은 제품의 본질과 뗄 수 없다. 인간의 몸과 정신을 분리할 수 없듯이. 앞서 평균의 함정, 이라는 명제로 돌아가자면, 디자인은 평균의 함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해결책이기도 하다. 저마다 다른 사물에 어울리는 외관을 입혀주기 때문이다.

 

『멋지게 실수하라』는 표지부터 본문에 이르기까지 디자인적인 고민이 담긴 책이다. 이 책은 닐 게이먼이 필라델피아 예술대학 졸업식에서 한 연설을 담았다. 닐 게이먼은 전 세계 판타지 팬으로부터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는 작가다. 그는 연설에서 미래 창작자를 대상으로 포기하지 말고 도전할 것을 주문했다. 연설문답게 분량이 그리 길지 않은 책이다. 이 책을 번역한 임헌우 디자이너에게 처음 온 제안은 번역이 아니라 디자인이었다. 책을 보면서 그는 이 책은 글자를 번역할 때도 디자인적인 고민이 필요하리라 생각했다. 디자인과 함께 번역도 해보겠다고 나섰다. 그렇게 『멋지게 실수하라』가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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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지게 실수하라』는 읽고 보고 생각하는 책

 

기존의 책을 번역하는 게 아니라 새로 책을 만드는 수준으로 작업했다고 들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에서 원서와 번역서가 다른가?


졸업식 연설문이라 구어체 표현이 많았다. 말을 글로 다듬는 작업을 했다. 날 게이먼의 의도를 살리되, 우리나라 정서에 맞게 윤문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한편으로는 내용과 어울리게 활자를 조율하는 작업도 병행했다. 책 앞에 보면 타이포그래피는 르나르 수열을 참고했다. 르나르 수열은 역동적이다. 이 책에서는 큰 글씨와 작은 글씨의 조화에 르나르 수열의 역동성을 활용했다. 이렇듯 글만 번역한 게 아니라 이미지도 함께 번역했다.


제목 및 표지도 원서와는 다소 다르게 나왔다.


원제는 Make Good Art다. Art가 여러 가지로 번역할 수 있고, 굳이 번역하자면 ‘좋은 작업 작업을 하세요’ 정도일 텐데 제목으로 다소 평범했다. 부제가 Fantastic Mistakes였는데, 부제를 활용해서 ‘멋지게 실수하라’라고 지었다. 원래 책 표지색이 에메랄드 그린에 가깝다. 책의 내용을 살리려면 충동적이고 자극적인 느낌의 핑크 계열이 좋겠더라.


제목도 그렇고, 닐 게이먼도 실수를 권한다. 인생에서 한 실수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


실수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어렸을 때부터 그림에 관심이 많았다. 만화책을 따라 그렸다. 만화를 그리기 위해 만화방에 가서 몰래 만화책에서 몇 장씩 뜯어 왔다. 안 걸릴 줄 알았는데, 결국 걸렸다. 그 당시가 1970년대인데, 2만 원 정도를 변상해줬다. 당시에는 큰돈이었다. 다음부터는 만화방도 출입금지였고, 부모님도 내게 그림을 그리지 말라고 했다. 당시에는 그림을 그린다는 데 이해나 공감이 없었으니까 부모님의 반대도 극심했다.


이 책에서 인상 깊은 가르침이 많은데, 역자에게는 어떤 부분이 기억에 남나?


산에 관한 비유. 목표를 산으로 생각하라, 산에서 멀어지면 똑바로 가지 않는 것이고 산에 가까워지면 맞는 방향이라고 저자가 말한다. 너무 작은 것에 일희일비하지 말고 쭉 해 보라, 이런 격려가 마음에 들었다. 젊었을 때는 잘 모른다. 내가 어떤 일을 하고, 이 일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모호하다. 나중에 지나고 보면 보인다. 작은 것이 모여서 나의 삶을 이루었구나, 하고 깨닫는다. 젊었을 때는 조바심, 불안이 많다. 한편으로는 불안이 청춘의 특징이다. 이런 게 없으면 젊다고도 할 수 없고. 하고 싶은 것 중 많은 걸 버리고 선택해서 집중해야 하는 부담감이 젊은 시절에 크게 느껴진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청춘이 보면 좋겠다.


청춘에게 위안을 많이 줬으면 좋겠다. 지금 우리나라 정서에 맞지 않는 이야기이일 수도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실수를 용인하는 사회가 아니니까. 그래도 앞으로는 실수를 용인하는 사회가 다가오지 않을까. 뭔가를 계획하고 진행하는 과정에서 실수가 벌어질 수밖에 없다. 실수를 많이 해 봐야 한 사람의 성장이 이루어진다. 이 책은 읽는 책이면서 보는 책이기도 하다. 여기에 바람이 있다면, 읽고 보고 생각하는 책이 됐으면 좋겠다.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없애고 축 처졌을 때나 위로가 필요하고 용기가 필요할 때 편안하게 펼치면 된다. 다만 편하게 보되, 공감하고 자극받기를 바란다.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말하다, 디자인이란?


임헌우는 세계적인 디자이너다. ‘GDUSA 2012’와 세계 3대 디자인대회로 알려진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 2012’, ‘iF 디자인어워드 2013’에서 본상(Winner)을 받았다. 특히 ‘레드닷 디자인 어워드’와 ‘GDUSA’등 두 대회는 2년 연속 수상이다. 그는 현재 왕성하게 활동하면서도 계명대에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다.


세계적인 디자인상을 많이 받았다. 상 받을 때 감회가 어떤가.


열심히 하면 누구나 받을 수 있는 상이라고 생각한다. 제자 중 한 명이 이런 말을 했다. 그 나이에도 상을 받을 수 있고 현역처럼 활동하는 게 부럽다고. 상 받은 것 자체보다도 나이가 들어도 도전할 수 있다는 걸 제자에게 보여주고 싶었는데 다행히 상을 받았다. 나이가 들면 안 된다, 이런 건 없지만 젊을 때 감각이 더 반짝이는 건 사실이다. 반면 오래 경험한 디자이너가 잘할 수 있는 부분도 있다. 감각적이지는 않지만 좀 더 성숙하고 진중한 디자인이 가능하다. 어느 것이 더 뛰어나다고 할 수는 없다.


디자인은 범위도 넓고 쓰임새도 광범위하다. 디자인이란 무엇인가?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디자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보수적이다. 부속품 정도로 여긴다. 디자인은 단순히 외형의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게 아니라 생각의 과정을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작업이다. 이런 과정을 깡그리 무시하고 그냥 예쁘게 만들어 주세요, 할 때 디자이너로서 화가 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다. 이전에는 경영컨설팅이 담당했던 분야를 외국에서는 디자인회사가 많이 맡는다.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하는 게 디자인이기에 컨설팅을 못 할 이유가 없다. 


한국의 디자인계의 작업 환경이 그리 좋지는 않다. 보통 디자인을 외주에 맡기면서, 공개입찰을 붙여 가격이 싼 업체를 선정할 때가 많기도 하다.


어려운 문제다. 디자인 수준은 많이 올라왔으나 디자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아직 미진하다. 우리나라는 압축성장을 겪었다. 이 과정에서 먹고 사는 문제, 경제적인 문제가 우선했고 나머지는 부차적 문제였다. 이러다 보니 문제점이 한꺼번에 여러 분야에서 터진다. 그중 한 가지가 디자인이다. 디자인 경영이 도입된 지는 오래나 디자인 수준이 선도적이라 볼 수 없다. 선진국에서 중요하다 하니, 따라가기에 급급하다. 왜 디자인이 중요한지, 디자인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깊은 성찰과 고민이 없었다. A, B를 붙여서 싼값으로 공개 입찰하는 방식이 가장 나쁜 방식이다. 이런 방식을 취하면 질적 저하가 당연하다. 디자인을 위해서 생각할 시간이 필요한데 빨리, 싸게 갖고 오라고 하니 디자인 수준은 정체될 수밖에 없다.


교수가 되기 전에 회사생활도 하지 않았나. 과거와 비교하면 어떤가?


오히려 디자인이 들어온 초창기에 디자이너가 주도할 수 있는 시기가 있었다. 디자이너도 희소했고. 지금은 디자이너가 많고 일반 회사에서는 디자인을 외주에 맡기니 운신의 폭이 좁다. 디자인 담당자 의견, 팀장님 의견, 마케팅팀 의견, 사장님 의견, 기획팀 의견, 이런 식으로 여러 의견이 보태지니까 디자이너가 처음 한 것과 최종 결과물이 달라진다. 디자인은 창조적인 하나를 결정하면 나머지는 버려야 하는데. 오히려 많이 더해지고 첨가하는 게 우리 현실이다. 여러 의견이 더해지고, 보태지면 좋은 디자인이 나올 수 없다. 디자이너를 전문가로 인정한다면, 이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디자이너가 문제 해결 전문가로서 인정받지 못한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디자인, 디자이너라는 환상을 품고 대학에 진학한 학생이 아니겠나. 학생들에게는 어떤 조언을 하나.


학생에게 두 가지를 조언한다. 첫째, 디자인이 예쁘게 꾸미는 것이라는 생각을 버리라고 말한다. 디자인은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다. 소통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 개인의 의견이나 주장이 중요할 때가 있지만,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그들을 공감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이건 디자이너에 관한 본질적인 조언이다. 둘째, 디자인의 현실이 이렇다고 인지시킨다. 많은 사람이 디자이너라는 낭만적이고 멋진 이름 때문에 학과를 선택하는데 현실적인 문제가 존재한다. 그러므로 정말 좋아해서 해야지만 지치지 않고 할 수 있다. 디자인의 대상은 인간이고, 인간이 사는 세상이다. 세상을 이해하지 않고 좋은 디자인을 만들 수 없다. 낭만적인 눈으로만 보지 말고, 많이 경험해 보라고 이야기한다.


이번에 낸 책 제목이 ‘멋지게 실수하라’인데, 회사에서 또는 학교에서 후배나 학생이 실수했을 때 어떻게 반응했는지 궁금하다.


디자인 쪽에서는 인쇄 사고가 자주 난다. 잡을 수 있는 실수였다면 따끔하게 한소리 할 때도 있지만, 누구라고 고의로 실수를 저지르겠나. 다음부터 안 그러면 되지, 어쩌겠니, 이런 자세를 취하려고 노력한다. 학생 가르치는 입장에서는 실수는 피할 수 없다. 실수를 양적으로 많이 하다 보면 질적으로 올라간다. 실수를 많이 해 보고, 부딪쳐 봐야 생존할 수 있다. 프로가 아닐 때 실수를 많이 해 보라고 말한다.


작업할 때 음악을 항상 듣는다고 하더라. 어떤 음악을 듣나?


요즘은 아이슬란드 음악을 주로 듣는다. 시규어로스, 올라퍼 아르날즈. 최근에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에 수록된 오브 몬스터스 앤 드 맨도 자주 듣는다. 항상 주변에 음악을 틀어놓고 작업한다.


BMW(Bus Metro Walking)족을 고집한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차가 있긴 한데 거의 안 탄다. 원래 걷기가 우리 인간에게 친근한 활동이다. 예전에는 인류의 일과 중 95%가 걷기였다. 지금도 아프리카의 어떤 부족은 하루에 20km, 30km씩 걷는다. 이렇게 걸으면 건강에도 좋고, 무엇보다 디자이너에게는 영감이 떠오르는 순간이 온다. 또 하나는 생태적인 차원인데, 가까운 거리를 이동하면서 자동차를 타서 굳이 오염 물질을 배출할 필요는 없지 않겠나.


순수 국내파다. 유학을 고민하는 학생도 꽤 있을 텐데, 어떻게 하는 게 현명할까?


일부 나라가 우리보다 디자인 선진국이다. 하지만 대부분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디자인을 해야 한다. 내가 정말 세계에 나가 세계적인 디자이너와 겨루겠다, 한다면 외국에 나가는 게 꽤 괜찮은 방법이다. 유학이란 네트워크를 넓힌다는 의미도 있고. 그런데, 단순하게 디자인을 배우겠다는 생각이라면 굳이 유학을 갈 필요는 없다. 인터넷도 발달했고, 좋은 강의를 얼마든지 원격 강의로 들을 수 있으니까. 내가 어떤 목적을 갖고 유학을 갈 거냐를 판단해야 한다. 가장 안 좋은 사례가 유학가서 한국의 어떤 것, 예를 들면 한글의 조형성 등을 연구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 사람이 잘할 수 있는 분야인데, 굳이 외국에 나가서 공부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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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임헌우가 읽는 책, 앞으로 쓸 책


임헌우 디자이너는 베스트셀러 저자이기도 하다. 『상상력에 엔진을 달아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 책이 나온 때가 2007년이다. 이후에 책을 낼 만도 하나 공저로 참여한 적은 있지만 오롯이 처음부터 끝까지 책을 쓴 게 없다. 오랜만에 임헌우 저자의 신작을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작년부터 저술한 책이 곧 나온다고 한다.


그간 집필 활동이 뜸했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상상력에 엔진을 달아라』후속편을 내자고 제안 왔지만 글이 안 나왔다. 글을 써도 형식적인 글이고, 마음에 들지 않았다. 글 쓸 마음이 들 때까지 놀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어느덧 시간이 이렇게 흘렀다. 작년 초부터 글을 썼는데, 써진다는 느낌이 들더라. 그 과정에서 『멋지게 실수하라』가 나왔다. 책을 번역하고 디자인하면서 글 쓰는 데 많은 위로도 받았다.


방학 기간인데, 집필활동 외에는 어떻게 지내나.


책을 많이 읽고 있다. 주로 철학책이다. 철학자는 대부분 좋아한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최근에는 『피로사회』를 쓴 한병철 교수가 인상적이었다. 한병철 교수는 시대를 대표하는 질병이 있는데, 산업시대에는 전염되는 바이러스성 질병인 흑사병이 그랬고 지금은 우울증이 대표적인 질병이라 말한다. 우울증이 널리 퍼진 사회는 건강하지 않은 사회다. 개인이 과도한 자기 계발로 스스로 소진된 사회, 이걸 피로사회라고 칭했다. 그리고 에바 일루즈라는 사회학자가 쓴 『사랑은 왜 아픈가』를 인상 깊게 읽고 있다. 보통, 사랑이라 하면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하지만, 사회학의 관점에서 사랑을 사회적인 문제로 다룬다. 설득력 있는 책이다.


앞으로 나올 책은 어떤 책인가.


인문 에세이다. 제목은 『스티브를 버리세요』다. 여기서 스티브가 스티브 잡스를 의미할 수도 있지만, 한 시대를 지배하는 고정관념, 굳어진 생각, 낡은 생각들, 지배적인 시선을 의미하기도 한다. 스티브 잡스는 스탠퍼드 졸업식 연설에서 죽음은 삶이 발견한 가장 위대한 것으로 새로운 것이 낡은 것을 치운다고 말했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사회는 낡은 것, 고정 관념을 버리지 못하고 거기에 매달려 있는 듯하다. 이제는 좀 다른 관점에서 바라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쓴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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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박철범 “공부 못하는 아이들에게도 공통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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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아 가장 많은 이들이 목표로 세우는 것, 그것은 아마도 공부일 것이다. 입시를 앞둔 학생들과 이직을 준비하는 직장인들, 그리고 자기계발의 필요성을 절감하는 모든 이들이 ‘배우고 때때로 익히는 일’에 도전하기 때문이다. 그 대상은 국어와 영어, 수학이 되기도 하지만 외국어와 컴퓨터 활용 능력, 요가와 댄스 스포츠가 되기도 한다. 분야는 다르지만 이들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작심삼일을 거듭하는 한이 있더라도 끝까지 실천하고 말겠다는 의지를 가질 것. 그리고 그 과정을 보다 효율적으로 만들어줄 방법을 찾을 것. 이 두 가지의 ‘필승법’에 관해 조언해줄 멘토를 찾아 <채널예스>가 나섰다. 『이것이 진짜 공부다』의 공동저자인 박철범이 그 주인공이다.

온라인교육전문기업 (주)데이스터디의 대표인 박철범 저자는 ‘꼴등에서 전교 1등까지’의 인생 역전을 이뤄낸 인물이다.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전까지 한 번도 제대로 공부해 본 적 없던 학생이었지만 혼자 힘으로 6개월 동안 공부한 끝에 전교 꼴등에 가까웠던 성적은 전교 1등이 되었다. 이후 서울대 공과대학 입학에 성공했고 진로를 바꿔 고려대학교 법학과에 다시 입학했다. 그리고 자신의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학생들에게 공부 비법을 전하는 멘토가 되었다. 『하루라도 공부만 할 수 있다면』『박철범의 하루 공부법』『공부는 예배다』안에 담긴 그 이야기는 많은 학생들에게 희망이 되어 주었고, 그를 청소년 분야의 베스트셀러 작가로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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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진짜 공부다』는 그가 참여했던 ‘빅3 공부 콘서트 : 이것이 진짜 공부다’ 강연회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2012년과 2013년에 걸쳐 총 세 차례 진행되었던 강연회에는 박철범 저자와 함께 (주)에듀플렉스 에듀케이션의 공동 창업자인 이병훈, ‘공부의 신’으로 유명한 공신닷컴의 대표 강성태가 함께했다. 세 사람은 공부를 잘하고 싶지만 방법을 알지 못해 헤매는 학생들을 위해 자신들의 노하우를 아낌없이 공개했다. 지치지 않고 공부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꿈의 힘에 대해 들려주는가 하면, 전략적으로 공부하는 방법과 수능에 대비하는 자세와 같은 실전 팁도 제공한다. 그 모든 이야기가 『이것이 진짜 공부다』안에 상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특히 박철범 저자는 공부 전략에 대해 강의하면서 시간 관리 방법과 수능 영역별 공부 방법, 수준별 학습 방법에 대한 해답을 제시했다. 예습이 중요한 영어 과목은 다른 학생들은 그냥 흘려보내는 시간을 활용하는 ‘기습 공격’ 전략으로, 균형 잡힌 생각을 필요로 하는 수능 국어는 스스로 공부법을 결정하는 ‘자기주도’ 전략으로 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성적에 따른 학습방법으로 하위권 학생에게는 과외와 인터넷 강의를, 중위권 학생에게는 설명보다 문제 해결 위주로 진행되는 과외를 권한다. 이제 학생들과 학부모는 박철범 저자가 제안하는 다양한 방법들 중에서 선택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선택지가 많을수록 선택 또한 어려워지는 법. 그래서 준비했다. 박철범 저자가 들려주는 나에게 꼭 맞는 공부법 발견하는 방법!




공부를 통해서 배우는 건 삶의 지혜예요

박철범식 공부법은 기존의 방법과 무엇이 다른가요?

많은 사람들이 능력의 부족에 대해서 절감하는데요, 그건 스스로를 정당화하기 위한 거라고 생각해요. 나는 애초에 머리가 부족해서 공부를 못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해지니까요. 어떻게 보면 하나의 핑계일 수가 있는 거예요. 핵심 키워드는 심리적인 거죠. 나태해지는 자신을 다그치지 못하는 게 문제의 시작이 되는 거예요. 아침에 일어나서 도서관에 가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요? 그건 능력의 부족이 아니잖아요. 자신을 다그쳐서 도서관에 가게 하는 방법을 모르는 거예요. 저는 심리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춰서 어떤 마음을 먹어야 실천할 수 있는지를 이야기하는 거죠.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해서 동기부여가 되지 않는 학생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궁금해 하는 학생들에게 저는 항상 이렇게 얘기해요. 공부를 하면서 삶의 지혜를 배우게 된다고요. 공부에 최선을 다하면서 앞으로 어떤 일이든 잘 할 수 있는 지혜를 배우는 거죠. 나중에 쇼핑몰을 운영하든 요리사가 되든, 그것 또한 잘할 수 있게 만드는 지혜를 배우는 게 공부하는 과정에 다 들어있다고 얘기하는 거예요.

정체기가 찾아왔을 때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까요?

정체기에는 성적 정체기와 감정 정체기가 있어요. 성적 정체기는 기분에 관계없이 성적이 그대로인 경우에요. 이럴 때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어요. 내가 열심히, 그리고 제대로 공부를 하고 있다면 언젠가 성적이 오를 거라는 걸 믿고 하루하루를 버티는 거예요. 아직 그 시기가 오지 않았을 뿐이에요. 그리고 감정 정체기는 성적과 관계없이, 성적은 심지어 오르고 있는데도 공부하기 싫어지는 거예요. 이렇게 감정의 기복이 오르내리는 건 청소년기의 특징이에요. ‘이런 게 정상적인 신체발달 과정이고, 나도 미성년자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겪는 것이다’라는 걸 인정해야 돼요. 공부가 안 된다고 해서 휴식을 취해야 된다는 핑계로 놀러나가거나 잠을 12시간씩 자게 되면, 나중에 공부하고 싶어질 때 발목이 잡혀요. 그렇게 되면 절대 남들을 따라갈 수가 없죠. 정체기가 왔을 때 가장 좋은 방법은 감정의 변화를 스스로 무시할 수 있는 힘을 기르고 하루하루 연습을 하는 거예요. ‘공부가 되든 안 되든 일단 정해진 시간까지 버티기라도 한다’는 생활습관을 길러나가는 것이 제일 중요해요.

‘머리의 탄성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가끔 실컷 놀아도 좋다’고 말한 적도 있으신데요. 정체기에도 해당되는 이야기인가요?

그건 정체기와는 관련 없는 방법이에요. 학생들이 불안하니까 놀고 싶어도 놀지 못하고 계속 열심히 공부하잖아요. 그런데 정작 공부는 안 되거든요. 앉아만 있는 거예요. 그러다 보면 휴식을 못하고 공부도 안 되고, 공부가 안 되니까 자신감도 안 생기죠. 버티기만 하는 거예요. 그러면 실력이 안 쌓이고 성적도 안 나와요. 이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면 머리가 점점 탄성력을 잃어버려서 책을 봐도 눈이 활자를 스치기만 하고 머리에 입력이 안 되죠. 그럴 때는 과감하게 접고 정신줄 놓고 하루를 보내는 것도 머리를 식히기에는 좋다는 말이에요.

성적이 오르지 않을 때 방법을 바꿔보는 건 어떨까요? 문제집을 바꿔볼 수도 있겠고, 공부하는 환경을 바꿀 수도 있겠고요.

일이 잘 진행되지 않을 때는 항상 두 가지 해결책이 있어요. 하나는 노력이 부족한 경우가 있고, 또 하나는 하루 시스템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되는 경우가 있죠. 그 중에 무엇이 해답인지 본인은 몰라요. 공부 방법이라는 것이 건강관리와 비슷한데요. 우리가 책상에 앉아서 아무리 생각해봐도 몸의 문제가 무엇인지 알 수 없잖아요. 병원에 가봐야 해결책이 나오죠. 그것처럼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나 전문가, 또는 멘토의 얘기를 먼저 들어봐야 돼요. 그래야 ‘나는 저 사람의 말처럼 하고 있나? 내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이 그것은 아닐까’ 하고 반성하게 되거든요. 스스로 해결하려고 하면 끝이 없어요. 해결도 안 되고요. 그래서 저는 공부 멘토의 조언을 항상 옆에 두라고 얘기해요. 예를 들어서 어떤 학생은 수업시간에 집중이 안 된다고 해서 ‘나는 집중력이 약한 것 같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근본적인 원인은 예습 부족에 있을 수 있어요. 예습이 부족하니까 선생님 설명이 이해가 안 되고, 그래서 집중을 못하는 것일 수도 있거든요. 원인은 예습 부족인데 집중력이 부족하다고 잘못 진단하고 방법을 찾을 수도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특정한 분야의 공부 방법에 대해서 찾아보지 말고 전반적으로 조언을 듣고 나서 자기 생활을 점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어요

꼴등을 하다가 전교 1등이 되었다는 작가님의 이야기를 듣고 누군가는 ‘원래 머리가 좋았던 사람 아닌가’하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동일한 조건에서 누군가는 성공하고 자신은 성공하지 못하면, 사람들은 그가 성공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찾아내려고 해요. 자기가 바보 같아 보이니까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기 위해서죠. 자존심을 지키려는 당연한 심리적 반응이에요. 하지만 발전을 하려면 그 생각을 먼저 깨야 하죠. 그 생각이 있는 한 발전을 해야겠다는 시도조차 하지 않으니까요. 물론 머리가 좋은 학생들이 있어요. 하지만 그 아이들이 서울대에 수석으로 입학한다고 해도 상관없잖아요. 나는 내가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면 되는 거죠. 그러니까 아무런 관련이 없는 거예요. 중ㆍ고등학교 과정의 공부라는 건 그 나이 때의 학생들은 누구나 알아야 하고 알 수 있는 정도의 수준만 모아서 만든 것이기 때문에 머리가 영향을 미칠만한 내용들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방법과 노력으로 다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시작하는 것이 성공의 첫 번째 열쇠라고 생각해요.

뭔가 외워지지 않고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난 머리가 나쁜가 보다’ 가 아니라 ‘머리가 좋아질 만큼 공부를 많이 하지 않았다’고 생각해야 돼요. 저도 처음에는 두 자릿수 곱하기를 종이에 써가면서 푸는데도 자꾸 실수했어요. ‘내가 바보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점점 익숙해지다 보니까 나중에는 세 자릿수 곱하기도 암산으로 되더라고요. ‘공부가 익숙해지지 않아서 그런 것이지 하다보면 점점 머리가 좋아진다’는 믿음을 가지는 게 중요해요. 사람의 머리는 녹이 슨 맷돌과도 같아요. 처음에는 너무 녹슬어서 잘 돌아가지 않지만 돌리다 보면 점점 잘 돌아가고 날카롭고 반짝이는 부분이 나오게 되는 거죠. 머리가 좋아질 만큼 공부를 하다보면 성과는 반드시 나와요.


스스로 뛰어나게 머리가 좋은 편은 아니라고 생각하세요?

다 똑같다고 생각해요. 천 명이 있다면 한두 명은 정말 머리가 좋고, 또 한두 명은 해도 안 되는 아이들이 있어요. 그 외에 나머지의 아이들은 최소한 중ㆍ고등학교 공부만큼은 다 이해할 수 있고 다 풀 수 있다는 거예요. 저는 천재나 바보라고 생각하지는 않고 평범하다고 생각해요.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의 공통점이 있을까요?

딱 한 가지가 있어요. 제가 멘토가 되어서 공부에 대한 이야기를 하잖아요. 그런데 같은 얘기를 했는데도 누군가는 성적이 수직상승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성적이 그대로이거나 떨어져요. 제가 한 말에 차이가 있는 게 아니라 받아들이는 사람에 따라서 차이가 있는 거죠. 성적이 오르지 않는 아이들은 꼭 그렇게 해야 되냐는 식으로 반응해요. 고집이 있어서 받아들이지 않는 거죠. 그런 아이들은 절대 성적이 오르지 않아요. 그런데 정말 성적이 수직 상승하는 아이들은 멘토가 단순하고 진부한 이야기를 해도 ‘이런 꿀팁이 있나!’하고 감동하고 그대로 실천하려고 노력해요. 다른 사람의 조언을 스펀지처럼 잘 흡수하는 마음가짐이 성적을 오르게 하는 원동력인 거죠.

콘서트와 이메일을 통해서 공부와 관련된 많은 질문들을 받으시는데요. 학생과 학부모가 가장 많이 고민하는 것은 무엇이었나요?

공통적인 질문은 없어요. 어려움을 느끼는 경우는 각자 달라요. 이성 교제, 수면 시간, 문제집 선택에 이르기까지 모두 다른 문제에 대해 조언을 구해요. 각각의 질문에 대한 해답도 중요하지만 저는 공부에 관한 방법에 대해서 전반적으로 듣고 배웠으면 좋겠어요. 말씀드렸다시피 자기가 생각하는 진단이 아닐 수도 있거든요. 그럴 가능성이 꽤 높아요.

자신에게 맞는 공부법을 찾으려면 여러 선생님의 다양한 공부법을 실천해봐야 하나요?

방법은 두 가지예요. 여러 선생님의 방법을 종합해서 실천해볼 수도 있고, 한 선생님이 제안하는 모든 방법을 따를 수도 있어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두 번째 방법이 나은 것 같아요. 선생님마다 이야기하는 방법이 충돌되기도 하거든요. 나의 경우와 맞지 않는 조언을 그대로 적용했을 때 시행착오가 있을 수도 있어요. 차라리 한 선생님의 조언을 그대로 따르는 게 낫다고 이야기하는 이유가 최소한 일관성은 있기 때문이에요. 자신과 맞는다고 생각되는 멘토의 방법을 그대로 적용하는 게 오히려 나을 수 있어요.

모든 학생들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면서 효과를 거둘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그런 방법은 구체적인 것보다 상위의 것이에요. 예를 들어서 필기 방법에 대한 조언은 기술적인 것이고 꼭 그렇게 해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것보다 더 일반적인 내용, 즉 ‘수업 시간에 필기를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는 말은 구체적이진 않지만 진리에 부합할 가능성이 더 높은 거죠. 그렇게 상위 단계의 조언일수록 도움은 안 되지만 더 맞는 말이 되는 거예요. 제일 중요한 건 균형점을 잡는 거예요. 도움이 되면서도 진리인 말은 무엇인지, 어떤 이야기가 기술적인 부분에 불과한지, 잘 잡는 게 중요한 거죠. 제가 항상 고민하는 것도 그런 부분이에요. 저도 예전에 공부할 때 공부법에 대한 책을 많이 쌓아놓고 읽었는데 여러 가지가 섞여있더라고요. 그걸 나름대로 다시 정리하고 연구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어요. 그러니까 공부법에 대한 조언은 공부 잘해서 좋은 대학에 간 선배가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공부하는 방법에 대해서 공부한 사람이 정리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봐요.

공부에 대한 고민들을 듣다 보면 안타깝게 생각되는 학습 방법이나 태도도 있을 것 같습니다. 어떤 것들이 있나요?

태도에 있어서는 공부 방법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어요. ‘열심히 하면 되지 공부법을 뭐 하러 배우나’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제일 성적이 안 오르죠. 다 자기 합리화거든요. 공부법 같은 건 필요 없기 때문에 그걸 공부 안 하는 자신은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렇게 해서는 발전이 없어요. 항상 발전하는 사람은 겸손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내 방법이 잘못됐을 수도 있지 않나’ 하고 점검할 필요성을 느끼는 학생들이 발전하는 거예요. 공부 방법에 대해서 배우는 태도가 필요하죠.

방법에 있어서는 따라가기 급급한 공부를 하는 걸 봤을 때 안타까워요. 선생님이 내 준 숙제만 열심히 따라하면 잘하게 될 거라는 막연한 희망만 가지고 공부하는 학생들이 있잖아요. 휘둘리기만 하다가 고3이 끝나고 나면 뒤통수 맞는 거죠. 자기주도라는 것이 학원을 안 다니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에요. 학원을 다녀도 자기가 정한 목표에 따라서 학원을 선택하고 이용하면 자기주도가 되는 거죠. 그런 자기주도가 없는 학생들이 가장 안타까운 결과를 맞게 돼요.


『이것이 진짜 공부다』에서 기습공격과 자기주도, 자기혁신의 세 가지 방법을 소개하셨는데요. 이것을 실천할 때 지켜야 하는 순서가 있을까요? 혹은 가장 비중을 두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자기주도가 가장 상위에 있어요. ‘끌려가지 않고 내 공부를 먼저 해보겠다’고 생각하는 자기주도가 시작이죠. 기습공격은 남들보다 앞서 나간다는 거예요. 그건 자기주도의 한 종류에 불과한 거죠. 자기 혁신이라는 건 어떻게 보면 가장 강력한 방법이기도 하고 최종적인 결과이기도 해요. 공부하는 방법을 전혀 모르거나 공부 방법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다면 멘토 한 명을 정해서 모든 이야기를 들을 필요가 있어요. 고집을 버리고 몇 달 동안 실천을 해보는 거예요. 그러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이 방법은 이렇게 바꾸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떠올라요. 그게 자기혁신이에요. 먼저 그대로 적용한 뒤에 저절로 되는 게 자기혁신인 거죠. 최종적인 결과이기도 하고요. 이 때쯤 되면 이미 공부의 고수가 되어있는 단계예요. 최상위권이 되지 못하고 상위권에 머무르는 학생들, 그러니까 전교 5~10등 정도이고 전교 1~2등은 되지 못하는 아이들 중에 자기혁신이 없는 경우가 많아요. 애초에 공부를 못하는 학생이라면 선생님이 하라는 대로 다 하겠다는 자세가 되어있지만, 자신의 방식으로 성공한 경험이 있는 학생들은 그 방식을 버리라고 말하는 사람을 못미더워 하는 거죠. 자기혁신을 못하는 그 마인드가 발전을 가로막는 경우예요. 그런 학생들에게 특히 자기혁신을 강조하는 거죠.




부모의 역할은 작은 일에도 칭찬을 해주는 거예요

새 학년이 시작되는 지금 시기에 가장 집중해야 할 부분은 무엇일까요?

이번 학기에 대한 선행은 늦었어요. 그건 방학 때 끝냈어야 하고요. 3월에는 마음이 급해서 ‘수업 내용을 미리 예습하고 시험 때 다시 한 번 반복해야겠다’고 계획할 거예요. 이런 헛된 희망을 버려야 돼요. 하루하루 수업 따라가는 것도 벅차기 때문에 계획대로 할 수 없거든요. 가장 중요한 건 하루 동안에 배운 내용을 하루가 지나기 전에 복습하는 거예요. 오늘 배운 것을 오늘 내에 여러 번 공부하는 거죠. 여기에서 포인트는 ‘오늘 내에’ 해야 된다는 거예요. 외울 것을 수첩에 적어놓고 쉬는 시간에 틈틈이 보고, 자습 시간에는 오늘 배운 내용에 대해서 문제를 풀어보고, 수업 전후에 잠깐이라도 목차를 보면서 예습을 하거나 연습장에 필기한 것을 떠올려 보면서 복습을 하는, 이 모든 게 하루 만에 이루어져야 돼요. 이렇게 잊혀져가던 것을 다시 떠올리면 잘 잊히지 않아요. 평소 실력으로 시험 본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죠.

동기부여가 필요한 학생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면 좋을까요?

부모님들이 가장 답답해하시는 게 아이가 머리는 있는 것 같은데 공부를 열심히 할 생각을 안 한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건 아이 잘못이 아니에요. 교실에 갇혀 있는데 무슨 자극을 받겠어요. 친구가 공부 잘하는 걸 보면서 자극을 받기는 어렵거든요. 동기부여를 심어주면 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 전에 자신은 공부를 잘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부터 깨야 해요. 자신감이 없는 거거든요. 아이들에게 동기부여를 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자신감인 거예요. 단어 10개도 외우지 못하는 학생에게 너도 의사, 변호사가 될 수 있다고 얘기해 줘봐야 아무 소용이 없어요. 10개 단어 중에 3개만 외우겠다고 할 때 ‘100개씩은 외워야 하는데 3개만 외워서 어떻게 할래’라고 말하지 말고 ‘그래, 한 번 외워봐’ 라고 말하는 거예요. 그리고 3개 중에 하나는 외웠다고 하면 좋아해 주셔야 해요. 그래야 엄마가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이의 기분이 좋아져요. 그게 다음 공부를 할 수 있게 만들어요. 결국 공부 방법이라는 게 심리적인 거예요. 기분이고 감정인 거죠. 부모님의 역할은 작은 것에도 칭찬을 해주면서 아이의 기분을 띄워주는 거예요. 그러면 공부는 스스로 하게 되어 있어요.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낮은 단계의 목표부터 단계적으로 줘야 하나요?

너무 낮은 단계의 목표를 주면 오히려 머리가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을 안 하게 돼서 성취감이 없어져요. 성취감을 주기 위해서는 ‘조금 노력하면 될 것 같다’고 생각되는 수준의 목표를 줘야 해요. 그걸 부모님이 파악해 주셔야 하죠. 단지 학원에 보내고 숙제는 했는지 확인만 해서는 절대 그 수준을 파악할 수 없어요. 학원을 보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거고 노력이 많이 필요한 거죠.

‘내가 정말 바보인지 한 번 시험해 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공부를 시작하게 되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사건을 계기로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건 아니었어요. 모든 열등감들이 쌓였던 것 같아요. 똑같이 공부하는 것 같은데 나만 뒤처지는 일들이 쌓이면서 어느 순간 ‘이렇게는 못 살겠다, 성적을 떠나서 열심히 해보자, 왜 나는 그것도 안 되지’ 라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어떻게 보면 공부라는 것은 국어 영어 수학의 지식들을 배우는 게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 대한 나의 능력을 테스트하는 시험이기도 해요. 그걸 스스로에게 이겨보고 싶었던 거죠. 어떤 성과가 나올까 측정해 보고 싶었던 거고요. ‘내가 노력이라는 걸 얼마나 성실하게 해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 시작했던 거예요. 그런데 해보니까 어렵지 않더라고요. 공부 잘하는 애들은 머리가 좋아서 잘하는 거라는 핑계를 만들면서 그동안 속아왔던 거죠.

만약 사교육을 받을 수 있는 여건이 됐다면 더 수월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물론이죠. 사교육이라는 게 학교 수업만으로 되지 않는 부분을 돈을 주고 배우는 건데, 저는 수학을 전혀 몰라서 친구와 선생님을 찾아다니면서 물어봐야했어요. 만약 돈을 주고 가르쳐 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었다면 훨씬 편했을 거예요. 사교육이든 공교육이든 중요한 건 선생님에게 물어볼 만한 걸 스스로 정리할 만큼 공부했냐는 거예요. 학원이나 과외 선생님이 내주는 숙제를 따라가기 급급하다면 사교육을 해도 소용이 없을 거예요. 자신이 질문할 것을 준비해서 물어보는 시간으로 활용한다면 가장 좋을 거고요. 사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논의는 무의미하다고 생각해요. 핵심은 자기주도냐 아니냐에 있는 거죠. 끌려가지 않고 내가 이용하는 방법이 중요한 것이지, 그 대상이 학교 선생님이든 과외선생님이든 그건 상관없다는 얘기예요.




엉덩이로 하는 공부, 상위권 학생들은 다릅니다

진득하게 책상 앞에 앉아있지 못하는 학생들이 있죠. 이럴 때 해결책은 무엇일까요?

‘공부는 엉덩이로 하는 거다’ 라는 말이 있죠. 이건 모든 학생들에게 적용되는 말이 아니에요. 하위권 학생들에게만 적용되는 거예요. 이 아이들은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고급 정보든 저급 정보든 일단 집어넣어야 돼요. 그러려면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죠. 이 학생들은 집중력을 고민하면 안 돼요. ‘똑같은 시간을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보낼까’ 하고 집중력을 고민하는 건 상위권 학생들이 해야 하는 거예요. 하위권 학생들은 일단 앉아있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중요해요. 어떻게 해서든 앉아 있는 시간을 확보하는 게 중요한 거죠. 저는 심리적으로 자신을 다스리는 방법에 대해서 조언을 드리고 싶어요. 인간은 자신이 해야 될 일이 많으면 도망가고 싶어져요. 공부도 마찬가지인데요, 이럴 때는 스스로를 속여야 돼요. ‘도서관 가서 공부하지 말고 음악부터 들을까’ 하고 스스로 속이는 거예요. 그리고 도서관에 가서 자리에 앉으면 ‘사실 거짓말이었어, 공부하는 거야’ 하면서 속아 넘어가는 거죠. 처음 출발을 ‘이건 쉬운 거야’라고 자기 자신을 설득하는 게 필요하고, 자리에 앉은 다음에는 수준에 맞는 공부부터 하면서 성취감을 느껴야 해요. 그 감정에 주목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면 자기도 모르게 앉아 있게 되는 거죠.

공부하면서 마음을 다잡기 위해 되뇌었던 다짐이나 명언 같은 것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좌우명을 정말 많이 적었어요. ‘지금도 경쟁자의 책장은 넘어 간다’ ‘뜻을 이루지 못하면 돌아오지 않으리’ 이런 것들을 책상에 조각칼로 새기기도 했죠(웃음). 그런데 그 마음이 3일 이상을 가지 않아요. 좌우명보다 더 중요한 건 공부 조언이에요. 책을 읽든 강의를 듣든 방법은 상관없어요. 공부 방법에 관한 조언을 매일 꾸준히 듣는 게 가장 좋은 동기부여가 돼요. 오늘 하루의 공부 방향을 잡기도 쉬워지고요. 계단을 오를 때 난간을 잡으면서 올라가면 마음 편하게 올라갈 수 있죠. 공부 조언이라는 게 난간과 같은 역할을 하는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멘토의 공부 조언이 가장 좋은 공부 명언이라고 생각합니다.

학습에 도움이 되는 공부 이외의 활동은 무엇이 있을까요?

첫 번째는 운동이에요. 중ㆍ고등학교 공부는 장기간 레이스이기 때문에 초반에 너무 달리면 나중에는 열심히 해도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아요. 그건 방법의 문제가 아니라 체력이 떨어진 거거든요. 그래서 매일 꾸준하게 운동을 하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운동이 효과가 있으려면 하루에 30분 정도는 약간 땀이 날 정도는 해야 되는데요. 학생들은 시간이 아까워서 잘 못하잖아요. 제가 권해드리는 방법은 등교할 때 몇 정거장 전에 내려서 뛰어가라는 거예요. 쉬는 시간에는 예습 복습을 하고 나서 남는 시간을 이용해서 걷는 거죠. 그런 운동만으로도 충분해요. 그리고 두 번째는 독서예요. 독서는 시간을 정해놓고 하면 절대로 할 수 없어요. 그 시간에 또 해야 할 공부와 숙제들이 있잖아요. 그러니까 시간을 정해서 하지 말고 내가 좋아하는 책 한 권을 항상 가방에 가지고 다녀요. 공부를 하다가 스트레스를 받을 때 꺼내서 읽으면 마음이 다스려지고 분노가 가라앉아요. 다시 한 번 해보자는 생각도 들고요.

『이것이 진짜 공부다』에서는 소개하지 못했지만 학생들에게 꼭 알려주고 싶은 공부 비법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저는 이 부분을 가장 강조해 드리고 싶어요. 일단 자기가 좋아하는 멘토를 한 명 정해서 그 멘토가 하는 조언을 다 듣고, 한 달이든 3개월든 그대로 실천하는 거예요. 나만의 방법을 찾겠다는 환상을 버리고요. 나만의 방법은 없어요. 일단 실천하면 모든 방법들이 머릿속에 들어오고, 그렇게 실천을 하다보면 저절로 응용이 돼요. 그러니까 나만의 방법은 저절로 찾아지는 거죠. 그리고 저는 멘토를 정해서 그 멘토의 공부 조언을 다 적용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공부하는 방법에 대해서 공부하라고요. 그래야 시행착오를 줄이고 소중한 시간을 성적을 올리는 데 쓸 수 있다는 거죠. 여러 멘토들의 이야기를 듣기 보다는 마음에 드는 한 사람의 멘토를 정해서 그 멘토가 하는 모든 말을 따라하는 게 좋아요. 왜냐하면 멘토들 중에 누군가의 말이 맞는지 더 혼란스러워질 수 있거든요. 만약 내가 정한 멘토의 말이 맞지 않다고 생각하면 다른 멘토를 찾아서 그 사람의 모든 말을 따라하라는 거예요. 그 모든 걸 그대로 적용하다 보면 응용은 저절로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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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하면 되고, 안 하면 안 되는 거다.” - 『박철범의 하루공부법』 박철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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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의 신’ 강성태가 말하는 비법 ‘집중과 보상’
-머리가 좋아야 공부를 잘한다?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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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진짜 공부다강성태,박철범,이병훈,서경석 공저 | 다산에듀
하루라도 공부만 할 수 있다면의 저자 박철범, 2001년 수능 전국 상위 0.01%로 공부의 신으로 더 익숙한 강성태, 최초로 가르치지 않는 교육인 ‘학습 매니지먼트’로 강남 엄마들에게 반향을 일으킨 공부법 전문가 이병훈이 최초로 한 자리에 모여 공부에 대한 강력한 동기와 핵심적 공부 비법을 밝힌다. 공부 때문에 울고 웃는 모든 청소년과 학부모들에게 공부에 대한 뜨거운 의욕을 불러일으키고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패션큐레이터 김홍기 “남이 시킨 대로 하면, 인생이 바뀔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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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가운을 입을 때는 내가 옷의 주인이었는데, 새 옷과 함께 나는 옷의 노예가 되었구나. 모든 환경이 자신의 우아한 기품에 맞추어야 한다고 강요하는 오만한 진홍빛 가운이여. 황금 양털을 보호하던 용도 나보다는 걱정이 덜했을 터. 세상의 모든 염려가 나를 둘러싼다. 저주 있으라, 진홍색 물을 들여 보통의 물건에 가격을 얹어 받는 이여.-『댄디, 오늘을 살다』 60쪽.
여기서 잠시 퀴즈! 저 글이 쓰인 시대는 언제일까? 답을 찾기 위해 글이 가리키는 장면을 분석해 보자. 한 사람이 새 가운을 샀다. 새 옷을 사면 응당 기뻐해야 할 텐데, 화자는 기뻐하는 감정보다는 우려가 앞선다. 주체적인 결단이라기보다는 사회의 시선 때문에 소비를 했다는 자괴감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약간의 변형으로 물건의 가격을 높인 상술을 향한 비판적인 시선도 나타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위 글을 쓴 사람은 18세기에 활동한 프랑스의 사상가 디드로다. 디드로는 1769년에 『나의 오래된 침실 가운을 떠나보내며』 에서 소비 문명을 고찰했다. 새 가운을 사면서 느낀 감정을 토로하며, 그는 ‘가난은 자유를 가져다주지만 부는 장애를 가져다준다’라고 썼다. 자본이 주도하는 소비사회에서 자본에 휩쓸려가지 않고 저항하려는 태도가 드러난다.

최윤정, 「Pop Kids #40」

『댄디, 오늘을 살다』에도 소비욕망에 압도되지 않고 주체를 세우려는 시도가 나타난다. 책을 쓴 김홍기는 국내 패션 큐레이터 1호다. 『샤넬, 미술관에 가다』『하하 미술관』등을 쓴 집필가이자 『패션 디자이너로 살아남기』를 비롯해 여러 책을 번역한 번역가이기도 하다.

패션 큐레이터가 쓴 책이니 옷 입는 법에 관한 내용이겠지, 하고 추측한다면 그 예상은 틀렸다. 그렇다고 이전에 나온 『하하 미술관』처럼 따뜻한 에세이도 아니다. 전작처럼 미술 작품을 소재로 한 글이라는 점은 똑같으나, 글이 따뜻하지는 않다. 힐링이 범람하는 이 시대, 더는 그런 글을 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했다.


세상과 맞장 뜬 정신적 귀족, 댄디

패션 큐레이터라는 타이틀 때문에 이 책이 패션에 관한 책이라 짐작하는 사람이 많을 것 같다. 그런데 현대 한국 미술 작품을 보고 현대 사회를 조망한 책이다. 책을 쓴 계기가 궁금하다.

원래는 패션 에세이를 쓰려고 했다. 그렇다고 요즘 뜨는 핫 아이템, 뭘 입으면 빛나 보이는지, 이런 내용은 아니고. 굳이 말을 붙이자면, 패션의 인문학 정도의 느낌이었다. 패션에도 철학이 있다. 철학은 다른 말로 태도인데, 한 벌의 옷을 입는 사람의 태도가 어느 시대마다 있었다. 개인적으로 18세기와 19세기에 관심이 많다. 이 시대가 바로 백화점이 생기고 쇼핑을 하기 시작하던 때로, 오늘날과 다를 게 없다. 현대 소비문화를 반성하고 보완하려면 이런 문화가 처음 태어났을 때를 봐야 한다. 이렇게 하려면 19세기의 그림을 소재로 써야겠으나 그렇게 하면 글이 재미 없겠더라. 그것보다는 오히려 현대적인 작가의 그림 속에서 댄디라는 이념을, 생각의 틀을, 태도를 추출해낼 수 있다면 오히려 더 매력적일 것 같았다.

책 제목에 쓴 ‘댄디’라는 말은 개념이 다소 모호하게 느껴진다. ‘댄디’는 어떤 의미인가?

지금 유행하는 자기계발서는 1,800년대에도 이미 유행했다. 기존 질서가 무너지고 새로운 신분질서가 생기면서 사람들은 더 높은 곳으로 가기 위해 경쟁했다. 이때 나온 자기계발서를 보면 밤에 어떤 장갑을 껴야 하고, 수트 입을 때 어떤 단추를 써야 하고, 수염을 어떻게 기를지 이런 게 세세하게 나온다. 지금 자기계발서에 나오는 말과 다를 게 없다. 이런 자기계발의 시대, 소비 광풍의 시대에 저항한 사람이 있었다. 정신의 귀족됨을 놓치지 않으려고 했던 사람들. 이런 사람의 태도가 댄디다.
댄디란 패션에서 멋진 옷차림, 맵시 있는 스타일을 뜻합니다. 이 댄디란 말을 더 깊이 들여다보면 ‘사회적 질서와 이에 상응하는 스타일에 대한 독특한 형태의 저항’이란 깊은 뜻이 담겨 있답니다. (중략) 그들은 특유의 우아함으로 시대의 흐름에 휩쓸리지 않고 그 속에서도 정신의 귀족이 되는 법을 만들어 냅니다. 우아함은 ‘심혈을 기울여 선택하다’라는 뜻의 동사입니다. 우아한 삶이란 곧 동사적 삶입니다. 선택이라는 행위를 통해 우리 자신의 외양과 정신을 가꾸는 일, 나아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를 바꾸고 이를 연대하는 인간이 되는 것, 이것이 진정한 댄디의 필요조건이랍니다. (5~6쪽)
한국 작가의 작품으로 소재를 한정한 이유가 있나.

『샤넬, 미술관에 가다』를 쓰긴 했으나, 서양명화를 소재로 글 쓰는 게 싫어졌다. 이런 책이 세상에 너무 많이 나오는 것도 싫었고. 또 하나 이유는 이렇다. 우리사회에는 서양 명화로 설명하면 있어 보이는 분위기가 있다. 우리 나라 화가를 잘 모르는데, 그 이유가 한국 미술 수준이 낮아서 알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정신 승리하는 사람이 많다. 이런 태도가 싫었다. 그래서 일부러 한국 작가의 작품만으로 글을 썼다. 『하하 미술관』도 그랬고 『댄디, 오늘을 살다』도 마찬가지다.


힐링만으로 현실이 바뀌나

처음 이 책을 봤을 때는 요즘 유행하는 힐링이 주요 테마인 책 같았다. 읽어 보니 아니더라.

요즘 잘 될 거다, 괜찮다, 이런 류의 힐링 메시지가 많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미 올라가기에 유리천장이 공고하지 않나. 기득권의 저항도 강하고. 저항해도 아큐처럼 정신승리에 그칠 때가 많다. 18세기에도 자기계발서에서 이렇게 입어라, 저렇게 행동하라고 했지만 그걸 지나치게 따를 필요가 없다. 적당하게 만족하고 내 몸에 맞는 옷을 입는 법을 찾아내야 한다. 힐링, 하면서 다른 사람에 기댄다. TV 프로그램 같은 데서 자신의 고민을 토로하는 사람이 많더라. 소위 '멘토'라는 사람들이 말해주는 대로 따라 하면 인생이 바뀔까? 모든 답은 내 안에 있다. 누군가의 말을 듣는다고 용기가 나오지 않는다. 이 책은 힐링과 거리가 멀다. 이야기하는 게 아니고 과거에 세상과 맞장 뜬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을 적었을 뿐이다.

패션에 관한 이야기가 주이지만 성형을 다루기도 했다.

이 나라는 성형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다. 영화관 가 봐라. 성형외과 광고가 보란 듯이 나온다. 나는 성형한 모습이 너무 꼴 보기 싫더라. 우리사회에 성괴(성형괴물)된 사람이 너무 많다. 성형은 한 시대에 지배적인 얼굴의 형상을 따라가는 것인데, 유행은 몇 년만 지나도 바뀐다. 그때 가서도 또 성형할 텐가. 주름 없애려 하는 것도 반대다. 팔자주름 있으면 늙어 보이긴 하지만 내 몸에서 나온 주름을 없애고 싶지 않다. 내 얼굴은 찰흙이 아니다. 그때 그때마다 바꿀 수 없다. 패션의 기본 미덕과도 다르다. 패션은 못 생긴 부분을 없애는 게 아니라 예쁜 곳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성형은 못 생긴 부분을 없애려 한다.

패션의 기본 미덕이 예쁜 곳을 극대화하는 것이라고 했는데, 옷을 잘 입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 벌의 옷에 집착하지 않고 옷장을 설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일관성. 두 번째로, 계절마다 방점을 찍는 포인트가 있어야 한다. 우선 상황에 맞게 입을 수 있는 베이직을 갖춰야 한다. 베이직을 갖추고 그 시즌에 맞게 적절히 다양한 소품을 이용하면 된다. 소품을 명품백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샤넬 클러치가 예쁜 건 나도 알지만 예쁘다고 다 살 수 없지 않겠나. 안 비싼 소품으로도 자신의 멋을 낼 수 있다. 패션이 발전한 나라일수록 스타일리스트가 쓴 책은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스타일리스트가 권하는 건 정형화된 문법일 텐데, 언어에 랑그와 빠롤이 있듯 옷 입기도 랑그와 빠롤이 결합한 행위다. 잘 결합하려면 스타일리스트의 조언보다는 나 스스로가 내 자신을 철저하게 이해해야 한다.

옷을 잘 입는다는 건 인간에게 어떤 의미일까?

일관성 중에서도 시즌별로 약간의 변화를 보여줄 수 있는 파격 같은 건 즐길 줄 알아야 한다. 파격은 거창한 게 아니다. 지금 이 현재를 긍정하는 게 파격이다. 그런 의미에서 패션은 긍정주의자의 산물이 아닐까 생각한다. 지금 이 순간 뜨고 있는 걸 알아내고 몸으로 느껴보고 감싸라고 권하고 감싼 사람끼리 뭉쳐서 이 시간대를 긍정하고, 용기 내서 살아가는 행위니까. 그런데 지금 우리는 이 브랜드가 떴다면 그 브랜드로 우르르 몰린다. 상업주의에 매몰됐다. 유행의 희생자가 아니라 유행을 즐겨야 한다.


김현정, 「내숭, 투혼」


이해란 나 자신을 내려놓고 위를 보는 것

『하하 미술관』도 그렇고 『댄디, 오늘을 살다』도 미술 작품을 보고 쓴 글이다. 한편으로는 알렝 드 보통의 『영혼의 미술관』은 예술 감상에 관한 책이다. 옷을 입을 때도 필요하겠지만, 예술 작품을 감상할 때도 주체적인 태도가 필요하다. 우리는 어떤 태도로 작품을 봐야 하나?

『영혼의 미술관』은 미술이 우리에게 주는 기능을 치유, 자기 확장 등으로 설명하는데, 그 내용이 새롭지는 않다. 미술 작품을 보고 느끼다 보면 자동으로 내 자신이 확장된다고 느껴진다. 다른 사람도 그렇겠지만 그림 한 장을 읽어도 내 나름대로 읽는다. 그걸 글로 쓰자면 작가가 그림을 그린 의도, 사물을 바라보는 방식을 생각하고 공부하게 된다. 그렇다고 여기에 너무 꽉 메이면 나와 다른 방식으로 보는 사람과는 적이 된다. 세상에 의외로 자신 안에 갇힌 사람이 많다. 내 것만 답이 아니고, 물론 저 사람도 답이 아니다. 하나의 표상이 다양한 의미로 다양한 사람에게 다가가는 게 미술 작품이다. 이해가 언더스탠드(understand) 아니겠나. 왜 낮아지겠나. 이해는 나 자신을 내려놓고 위를 보는 것이다. 감상도 똑같다.

유투브에 2시간 30분짜리 강의를 통째로 올리고 있다. 공짜로 올리긴 아까운 콘텐츠 아닌가?

패션큐레이터? 말이 예쁘지 나 혼자다. 외롭게 버거운 싸움을 하고 있다. 대학에 들어갈 생각은 없고, 대중을 많이 만나고 싶다. 그래서 강의를 무상으로 올렸다. 좋은 강의를 온 힘을 다해 웹상에 깔면 가장 긴장하는 집단은 대학 교수다. 요즘은 세계의 유명한 학자 강의를 해외 직구하듯 구할 수 있다. 아직도 70년대, 80년대 노트로 강의하는 교수가 있는데, 학생들이 더 많이 안다. 이게 나쁜가? 우리 학계도 바뀌어야 한다. 공부 안 하면서 학문으로 돈 벌면 안 된다. 나는 굽었던 걸 바로 펼 뿐이다.

한편으로 번역도 꾸준히 했지 않나?

주로 외국 책을 본다. ~의 역사, 이런 류의 책을 좋아하는데 이런 책을 찾다 보면 한국에 번역된 책이 그리 많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원서를 보게 된다. 지금 베이컨의 『수상록』을 읽는데, 1970년대 번역된 뒤로 제대로 번역된 정본이 없다. 사실 번역이 돈은 안 되는데 시간은 많이 걸린다. 저자로서 책을 내면 인터뷰 기회라도 얻지, 번역은 백날 해 봤자 뭐가 있겠나. 그럼에도 좋은 책을 세상에 알리고 싶어 번역을 계속하고 있다. 우리사회가 번역하는 사람에게 투자도 하고, 좋은 번역서가 나왔을 때 밀어줬으면 좋겠다.

『댄디, 오늘을 살다』에서 인용하는 학자나 작가를 보면, 평소에도 책을 많이 읽을 것 같다. 채널예스 독자를 위해 추천 부탁한다.

아쉽게도 요즘 책을 많이 읽지 못하고 있다. 한 권을 추천하라면 『마에스트로의 리허설』.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지휘자에 관한 이야기다. 한 분야를 오래 했던 사람의 삶이 자기계발서 이상의 메시지를 준다. 굳이 자기계발서를 읽을 필요가 없다. 가령 말을 안 듣는데 말을 잘 듣게 하려면 지휘자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런 이야기는 CEO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일반 대중을 사로잡으려는 문필가에도 해당하는 문제다. 연극 연출도 마찬가지고. 특정한 장르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다 통한다.

* 기사에 수록한 작품은 『댄디, 오늘을 살다』에서 다룬 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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댄디, 오늘을 살다김홍기 저 | 아트북스
살기 힘들다는 아우성이 여기저기서 울려 퍼진 지도 벌써 몇 년째다. 삶의 피로가 쌓이면서 ‘행복’이라는 손에 잡히지 않는 가치에 대한 갈망도 커져만 가고 있다. 하지만 주위들 둘러보면 불행한 사람들과 불행한 사건들만 가득 차 있는 것 같다. 그동안 서점에는 ‘위로’와 ‘힐링’을 키워드로 하는 책들이 쏟아져 나왔다. 세상살이가 힘들다는 방증일 테다. 지은이는 이제 위로의 말들로는 치유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의 상처가 깊어졌다고 판단했다. 여기서 지은이는 19세기에 등장한 ‘댄디’라는 단어를 제시한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사회학자 노명우 “투덜대지 않고 불만을 말할 수 있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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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세속을 산다. 세상과 세속은 같은 말인데, 두 단어가 주는 어감은 다소 다르다. ‘세상’이라는 단어에 ‘물정’을 보태보자. 긍정적인 느낌보다는 부정적인 느낌이 크게 다가온다. 세속을 산다는 것과 세상물정을 들여다보는 것. 사회인이라면 당연지사이거늘, 우리는 왜 두려워할까? 또는 머뭇거릴까? 『세상물정의 사회학』이라는 제목을 맞닥뜨렸을 때, 호기심과 함께 불편한 마음이 드는 건, 왜 일까? 저자 노명우 교수는 “처세만큼 타락하여 슬프게 들리는 단어도 없다”고 말한다. ‘처세’는 세상과 교류하는 방법을 뜻하는 말이지만, 어느 순간 성공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온갖 술책을 생각해낼 수 있는 잔머리를 뜻하는 단어로 타락해 버렸다. ‘세상물정’ 또한 다르지 않다.

지난해 ‘고독한 사람들의 사회학’이라는 부제를 단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를 펴내, 출판계에 적잖은 반향을 일으켰던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는 오랫동안 사람들이 살면서 느끼는 삶의 여러 가지 순간들을 ‘사회학자’의 시선으로 살펴보고 싶었다. 딱딱한 책상, 고립된 학교에서 벗어나 삶의 현장, 세속으로 향했다. 『세상물정의 사회학』은 상식, 명품, 프랜차이즈, 불안, 종교, 이웃, 성공, 수치, 취미, 섹스, 자살, 노동 등 세상물정의 이치를 냉정하게, 그리고 진지하게 마주볼 것을 권한다. 무턱대고 듣기 좋은 말, 몸에 좋은 약을 소개하는 성급함은 없다. 그렇다고 냉소하거나 비관적인 태도도 없다. 노명우 교수가 말하는 ‘사회학’의 정의는 “삶에 대한 근거 없는 희망이나 ‘하면 된다’와 같은 사실상 거짓말에 가까운 헛된 기대가 아니라, 철저하게 삶의 리얼리티에 뿌리를 두고 있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노명우 교수는 『세상물정의 사회학』에서 ‘프랜차이즈’를 주제로 한 ‘맥도날드에 대한 명상’ 편에서 미국의 사회학자, 조지 리처의 저서 『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를 인용했다. 조지 리처는 급격하게 변하는 사회현상을 두고 소수의 학자들만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도 이해할 수 있는 책을 쓰고자, 새로운 스타일을 과감하게 시도했다. 노명우 교수의 신작 『세상물정의 사회학』도 다르지 않다. 노명우 교수는 이론이 이론을 낳고 이론에 대한 해석에 또 다른 해석이 덧칠되며 사회로부터 고립되어 가는 폐쇄적인 학문보다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에서 연구 동기를 찾는 사회학을 지향한다. 때문에 『세상물정의 사회학』역시, 매우 세속적인 환경에서 써내려 갔다. 사람들이 열변을 토하는 술집과 카페에서, 삶에 대한 근심 어린 걱정을 이야기하는 버스와 지하철에서, 또 수다 속에 담긴 사람들의 경험을 마주할 수 있었던 트위터와 페이스북에서 그 어떤 텍스트보다 생생한 우리의 세속 풍경을 관찰했다. 너도나도 3D카메라로 세상을 담는 풍경 속에서 노명우 교수는 언제나 6mm카메라를 고집할 것 같다.
자신의 처지를 공통감각과 연결시키지 못하는 한, 자신의 삶에 대한 절실하고 치열한 생각은 팔자타령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팔자타령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삶에 대한 개인의 생생한 느낌과 때로는 냉정한 사회학이 균형을 이루는 시도에 ‘세상물정의 사회학’이라는 이름을 부여한다. ‘세상물정의 사회학’은 사회학과 삶의 느낌의 조우이지만 그 둘은 만났을 때 힐링이라는 값싼 동정과도 신세한탄이라는 투덜거림과도 좋은 삶에 대한 기대를 포기한 시니컬한 태도와도 다르다. 비판이란 본래 투덜대지 않으면서도 세상에게 불만을 말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러한 비판 고유의 능력은 세속이라는 리얼리티와의 용감한 대면에서부터 시작된다. 우리에겐 용기가 필요하다. (『세상물정의 사회학』 p.21)



버스, 술집, SNS 세상에서 얻은 소중한 데이터

『세상물정의 사회학』이라는 제목, ‘세속을 산다는 것에 대하여’라는 부제를 보고서 호기심이 생겼다. 사회학자가 말하는 ‘세상물정’. 과연 현실적으로,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는 범위에서 표현됐을지도 궁금했다.

제목을 정해놓고 책을 쓴 건 아니었다. 책을 기획하고 의도했던 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살면서 느끼는 삶의 여러 가지 순간들을 담고 싶었다는 점이었다. 인간은 누구든지 희로애락을 갖는데, 이 감정들은 언제나 교차하는 지점이 있다. 기쁠 때도 있고 분노할 때도 있고 희망에 차있을 때도 있다. 한 개인의 삶을 만화경처럼 펼쳐놓았을 때, 그 개인이 휩싸이게 되는 정서를 표현하고 싶었다. 또한 책 제목에 ‘사회학’이라는 이름이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바람이 있었다. ‘사회학’이라는 학문이 점점 사회로부터 멀어지고 고립되는 상황이 안타까웠다. 사회학이라는 것이 마냥 정치적이지도, 이데올로기적이지만은 않다는 것, 다채로울 수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 사회학은 인간의 삶과 밀접하게 관계를 맺고 있고, 인간의 삶에 뿌리를 내린 학문이다.

다소 무겁게 느껴지는 제목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의 반응이 꽤 빠르게 왔다.

사회학을 대중화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대중화를 하지 않으면서도 ‘공감’을 기대해도 될까? 반응이 올까? 우려했는데, 이 책을 내고 용기를 얻었다. 공감 능력의 회복이 가능하다는 걸 느꼈다. 사회를 살면서 느끼는 민감한 촉수, 사회학이 가지고 있는 촉수가 사람들 사이에서 교차되는 순간이 생기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공감이 중요한 키워드였다. 친구 어머님이 환갑이 넘으셨는데, ‘‘이 책을 너무 재밌게 읽었다고, 삶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개인적으로 『세상물정의 사회학』을 쓰고, 가장 기뻤던 순간이다.

그동안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사회와 개인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했거나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방증이 아닐까.

독자들을 모두 접하진 못했지만 『세상물정의 사회학』을 읽은 분들의 공통점은 자신에 대한 고민을 매우 진지하게,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이었다. 자기 자신에 관한 고민을 하려면 굉장히 많은 에너지가 소비되는데, 한국 사회는 그것이 흡수되는 영역이 매우 부족하다. 개인의 진지한 고민이 교차될 수 있는 영역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이번 책을 펴내고 느낄 수 있었다.

『세상물정의 사회학』을 읽으며 가장 좋았던 점이, 통계에 의한 해석이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연구실에서 쓰지 않고 세상 속으로 들어가서, 세속을 살아가는 한 사회학자가 바라보는 시선이 무척 현실감 있게 다가왔다.

책을 쓰기까지, 보이지 않게 도움을 줬던 분들이 많았다. 매일매일 SNS에 올라오는 수많은 저주와 원망, 한탄 등. 이런 것들이 때로는 무책임한 저주도 있고, 매우 깊이 있는 성찰이 담기기도 했지만, 이 모든 건 사람들이 자기 방식대로 세상을 해석하는 모습이었다. 술집, 버스에서 우연히 들려오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사회학자의 입장에서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한 데이터였다. 동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에 대한 경험과 해석은 나에게 날 것 그대로의 경험이 되었다.

인상 깊었던 것 중 하나가, ‘비판’에 대한 정의(투덜대지 않으면서도 세상에게 불만을 말할 수 있는 능력)였다. 그런데 이런 정의를 내포한 ‘비판’은 쉽지 않다.

투덜대다 보면 시니컬해지고, 시니컬한 건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 비판한다는 건,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고 어떤 걸 염원하는 것인데, 시니컬한 태도, 패배주의가 그런 걸 갉아먹는다고 생각한다. 비판적인 사람은 까다롭고 투덜대는 시니컬한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강하고, 반대로 비판적이지 않은 사람은 선하고 낙관적인 이미지가 있다. 그런데 무조건적인 긍정성은 사실 큰 문제다. 또 우리 주변에는 무조건적으로 긍정할 수 없는 많은 문제들이 발생한다. 착한 사람이 되라고 말하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못마땅한 대상에 대한 감정이 있는 건 당연한 일인데, 그 감정이 분노, 시니컬리즘, 염세주의로 빠지지 않는 방법은 없을까? 투덜대지 않으면서도 세상에 대한 불만을 말할 수 있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비판인데, 이것을 감당할 수 있는 학문이 사회학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모든 불만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투덜대지 않고, 건강한 에너지로 전환시켜 밝은 미래를 꿈꿀 수 있도록 실마리를 제공해주는 게 사회학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한 편으로 생각한 건, 운명이라는 것이 있고, 또 처지가 있다는 점이다.

운명과 처지라면, 바꿀 수 없는 것과 바꿀 수 있는 것의 구별인가?

운명이라는 건, 예를 들어 내가 한국 사람으로 태어나 동양인 남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건 내가 투덜댈 영역이 아니다. 그런데 처지는 다르다. 바뀔 수 있는 영역이다. 여기서 비판이라는 건 운명과 처지를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처지란, 공통적으로 다루고 있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같이 해결해야 할 ‘처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걸 보여주는 게 사회학이라는 것이고, 우리가 그것을 찾아낸다면 비관적이고, 근거 없이 세상을 낭만적으로 보는 낙관주의와는 거리를 둘 수 있다는 것이다.

상식을 이용하는 베스트셀러는 승승장구하고, 양식을 설파하는 추천도서는 서가 구석에 처박히는 현실도 지적했다. 상식과의 경쟁에서 언제나 양식이 지는 이유는 ‘말투의 차이’라고.

성인들은 완고한 자신의 생각들을 절대 바꾸려고 하지 않는다. 논리적으로 맞는 말에 의해서 설득 당하지 않는다. 오히려 역설적으로 논리적인 강박을 가해올 때, 벌컥 화를 내기도 한다. 그런데 어떤 감동적인 문학작품이나 영화를 봤을 때, 철옹성 같은 생각을 버리고 자기 자신을 해체시키는 순간이 있다. 무장해제가 되는 거다. 내가 원하는 순간이 바로 이것이다.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쌓아 올린 각자의 생각의 습관이 있다. 나이를 먹을수록 그 생각은 더욱 강해진다. 누가 논리의 힘으로 그 생각의 습관을 부수려고 하면 분노한다. 누군가 이기고 지는 싸움이 되면, 진 사람은 담담하게 결과를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어느 순간 보복하는 순간을 만든다. 최근 한국의 정치사가 그렇지 않은가? 그렇다고 한다면 좀 다른 건 없을까? 누구나 마음의 사고의 벽, 습관을 가지고 있는데, 세상이 조금 더 좋아지려면 무장해제된 상태에서 서로의 이야기를 터놓고 말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사람이 가지고 있는 마음의 습관, 사유의 습관을 살펴볼 여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뭘까? 생각을 하다가 말투라든가, 맥락 이런 것들을 고민하게 됐다.

『세상물정의 사회학』가 지향하는 말투, 문체, 어조도 고민했겠다.

조카들에게 쓰는 책이라 생각했다. 삼촌 입장에서 “세상은 이런 거야”라고 말해주는 것. 내가 어릴 때, 누구도 “세상은 이런 거야”’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네가 열심히 하면 돼”, “세상은 아름다운 거야”, “믿을 건 사람이란다”라는 말을 듣고 자랐는데, 어른들이 말해준 것과 세상의 격차가 너무 커서 가장 힘들었다. 앞으로 나보다 세상을 더 오래 살게 될 조카들에게 중간의 영역들을 말해줄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어릴 때 생각했던 것처럼 마냥 아름답지 않은 세상이지만, 분노 없이 받아들일 수 없는 현실 속에서도 그것을 투덜대는 태도만으로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 그 생각을 받아들이고 또 다른 긍정적인 에너지로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20대들의 관계 맺기, 풍요 속 빈곤이다

책 속에 소개된 25개 키워드 중, 저자가 요즘 가장 깊이 있게 고민하고 있는 키워드는 무엇인가?

첫 번째로 소개한 ‘상식’ 문제다. 상식의 배반, 양식의 딜레마. 어떻게 보면 내가 생각하는 사회학의 가장 커다란 방법론적인 틀, 지향하는 핵심 키워드가 ‘상식’이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죽음’에 대한 고민이 많아진다. 아버지가 아흔이 넘으셨는데, 식민지 시대 때 청년기를 거친 분이다. 지금은 치매에 걸려서 컨디션이 아주 좋으실 때만 대화가 가능하다. 언젠가 아버지의 죽음을 맞이할 텐데,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부모의 죽음이 굉장히 공포스러울 것 같다. 또 다가올 공포에 대한 생각도 하면서, 아버지가 살았던 시대에 대한 고민도 하고 있다. 한국전쟁을 겪은 아버지의 삶을 ‘죽음’, ‘가족’ 이라는 키워드로, 아버지를 위한 책을 한 편 쓰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

아버지와 저자의 삶 가운데 시대의 격차가 있듯, 지금 청년기를 보내고 있는 세대와 저자와의 격차도 있을 텐데. 대학에서 학생들을 대할 때, 격차를 느끼는 부분이 있나.

그게 애매한 문제일 수 있다. 판단의 기준을 어디에 두냐에 따라 다르다. ‘우리가 80년대에는 이랬는데’ 하는 생각은 경계하려고 하는데, 안타까운 건 있다. 가장 아쉬운 것, 측은하게 여겨지는 것이 ‘관계의 문제’다. 옛날에 비해 많이 자유로워졌고 끊임없이 연애를 하지만, 풍요 속의 빈곤인 것 같다. 장벽은 사라졌지만 관계 맺기는 더 힘들어지는 상황이다. 젊은 친구들은 매니저맘들에 대한 매니징 대상이었고, 학원에 다닌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았기 때문에 학교 친구들은 같은 공간에 있다는 것뿐이지 친구는 아닌 거다. 학교에서도 일대다의 대응일 때가 많다. 선생님과 학생들과의 관계도 다대다의 관계, 상호작용이 일어나야 하는데 쉽지가 않다. 관계에 대한 안정성이 높아지려면 만남의 빈도, 묵은 경험들이 필요한데, 똑같은 스무 살이라고 해도 예전의 스무 살과는 확연히 비교가 된다.

소통할 수 있는 공간, 채널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는데, 왜 이렇게 관계 맺는 일을 힘들어 하는 걸까?

서로가 서툴기 때문이다. “네가 먼저 다가가”라고 말할 수만은 없는 문제다.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져야 하니까.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는 측면에 대해서는 나도 확신하기가 어렵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하고 싶은 것, 해야 할 것은 있다고 생각한다. 수업시간에 가능한 학생들끼리도 상호작용이 가능할 수 있도록 장치에 신경을 쓰고 있다. 하지만 일주일에 두 번 만나는 게 전부인 수업시간에서 얼마나 영향을 받을 수 있을까? 경험의 폭, 빈도가 작다는 점에서는 미래가 환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지난해 출간된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가 화제가 됐었다. 1980년 전체 가구의 4.8%에 불과했던 한국의 1인 가구가 2013년 통계에 의하면, 25%에 다다랐다. 저자 역시, 1인가구다. 혼자 사는 일상, 어떻게 즐기고 있나?

나는 개인적으로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인데, 동시에 누군가와 같이 있는 것도 좋아한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독립성에 대한 갈망이 있는데, 그것과 연결되지 못한 상황은 긍정적이지 않다. 혼자라는 것과 혼자가 아니라는 것이 개인의 삶에서 자유롭게 전환될 수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수월하지 못한 상황이 아쉽다. 혼자 하는 행위가 독립성, 자율성의 강력한 열망과 교차되지 못하는 점이 안타깝다.

자발적인 의지로 혼자가 되는 것과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의해 혼자가 되는 것의 차이로 보인다.

혼자서 사는 걸 좋아하고, 혼자 하는 행위가 늘어나는 걸 고양이 같은 거라고 한다면, 마냥 고양이처럼만 살기는 좀 그렇지 않은가? 펭귄과 같이 군집생활도 해봐야 하는 거 아닐까? 두 가지가 교차돼야 책임이라는 중요한 윤리가 부각될 수 있다. 책임은 언어상으로만 놓고 보면 강제적으로 부여하는 것이라고 생각되지만, 돌려서 생각해보면 책임은 서로의 반응에서 오는 거다. 상호작용하는 상황에서 타자를 인식하고 감지하고 있다가, 알아채는 것이다. 고양이 성향이 너무 강해지면, 무책임한 경우가 많이 나타난다. 애완견이 늘어나는 동시에 유기견이 많아지는 현상이다. 애완견이 늘어난다는 건, 자기 영역에 대한 감각이 높아졌다는 이야기인데 그게 책임의식으로 나가지 못하니까 동시에 유기견도 많아지는 것이다.

프랜차이즈 식당, 카페만을 즐겨가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다. “맥도날드는 불확실성으로 가득한현대 사회에서 ‘유일하게 확실성을 보장하는 예측 가능한 장소”라는 정의가 씁쓸하더라. 현대인들은 점점 사람들 간의 접촉이 최소화되는 공간을 찾는다. 그리고 자신의 예상이 벗어나는 걸 견딜 수 없어 한다.

일상 속에서 소비자 마인드가 너무 강해졌기 때문이다. 즉각적인, 감각적인 피해에 예민해졌다. 식당에서 우리 테이블이 먼저 주문했는데, 다른 테이블에 음식이 먼저 나오면 불같이 화를 낸다. 화가 나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예를 들어, 어떤 정치인이 공약을 어겼다고 치자. 이것 역시 나에 대한 굉장한 모독인데, 사람들은 식당에서 화를 내는 만큼 분노하지 않는다. 추상적인 감각, 통찰력을 통해서 이해하는 모독에는 점점 무감각해지고, 직접적으로 맞닥뜨리는 피해에만 극히 예민해지는 것이다. 소비자로서 무시당하는 것과 공약이 무시되는 것 중에 어떤 것이 더 치명적인 모독일까? 후자가 더 큰 모독이 아닐까? 그런데 사람들은 꽤나 이성적인 판단, 조금이라도 우회적으로 추론을 해야 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점점 무감각해지고 있다.

취미의 탄생 조건은 개인의 취향이다. 취향은 개인적인 기호이고, 옳고 그름의 문제는 개입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개인의 취향에 대한 세상의 참견은 멈출 줄을 모른다. 참견과 관심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건, 어떤 이유 때문일까?

자신이 너무 작기 때문이다. 책임지지도 못할 거면서 남에 대해 띄엄띄엄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다. 나는 타인에 대한 관심에는 조심하는 편이다. 내가 정말 좋아해야 관심을 갖는다.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갖는 건, 함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겉으로 보면, 무관심해 보이는 사람으로 보일 수 있지만 띄엄띄엄 관심을 갖고 싶진 않다. 우리 모두가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지 않나. 알지도 못하면서 툭툭 던지는 말들로 얼마나 상처를 받는지.




천천히 긴 호흡으로 가고 싶다

성공에 목숨 거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자기계발서 출간 열풍이 멈추지 않을 거라고 전망했다. 1859년 새뮤얼 스마일즈가 쓴 『자조론』이 자기계발서를 관통하는 장르 규칙의 원형을 만들어냈다고 지적했는데, 성공과 실패를 사회적 맥락에서 해석하지 않는 자기계발서의 행태는 언제까지 유지될 것으로 보이는가.

꽤 지속될 것으로 생각한다. 자기계발서를 기획하는 능력이 점점 진화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익숙해져 있는 포맷을 보면 오래 갈 것 같지는 않지만, 기획하는 능력이 진화해서 새로운 포맷으로 출간되고 있다. 2013년만 해도 자기계발서에 인문학 터치를 해서, 사실은 자기계발서인데 그런 줄 모르고 읽는 새로운 장르가 탄생하지 않았나. 올해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무언가가 나오지 않을까? 자기계발서가 쓸데없는 책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분명히 자기계발서가 필요한 사람이 있다. 다만, 모든 사람이 읽을 필요는 없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읽어야 할 것 같은 그런 느낌’에 대해서는 대범해질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사회학을 전공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학창시절에는 건축에 관심이 많았다. 원래 이과였고, 의대를 갈까? 건축과를 갈까? 고민하던 중에 고3 여름방학 때 의사가 된 내 미래를 떠올려보니, 조금 암담했다. 더 큰 무언가가 없을까? 천체, 우주 같은 걸 생각하기도 했었는데, 그 때 관심 있게 구독했던 잡지 중 하나가 건축잡지 <공간>과 <뿌리 깊은 나무>가 폐간되고 나온 <마당>이라는 잡지였다. 유신시절, 그 당시 한국 분위기 속에서 사회과학적인 인식이 담겨진 기사가 우회적으로 나올 수 있는 매체가 잡지였던 것 같다.

9년째 아주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 중에 있다. 학교 학생으로부터 저자가 ‘다시 듣고 싶은 명강의 선정’ ‘평생 함께하고 싶은 교수님’으로 노미네이트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비결이 뭘까?

글쎄, 내가 학창시절 때 좋아했던 선생님들이 많지 않아서 그런지, 그 선생님처럼은 되지 말자는 생각이 있다(웃음). 나는 학생들에게 좋은 멘토이고 싶지만, 학생들의 처지를 잘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쉽사리 상담을 하지 않는다. 일단 고민 상담을 해주려면, 둘의 관계가 가까워지고 친해져야, 오해 없이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낯을 좀 가리는 성격이고 친해지는 데 오래 걸리는 편이다.

많은 매체로부터 칼럼 기고 요청이 들어올 텐데, 칼럼을 쉽게 쓰진 않는 것 같다.

칼럼은 되도록 쓰지 않으려고 한다. 직업적인 문필가도 아니고, 학기 중에는 학생들을 가르쳐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내기 쉽지 않다. 두 번째 이유는 약간 긴 호흡으로 가고 싶기 때문이다. 물론 칼럼을 많이 기고하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좋은 홍보 수단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이 독이 될 수 있다. 이상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나는 유명해지고 싶은 생각이 없다. 책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보통 인물 자체가 화제가 되면, 어느 순간 책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고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칼럼 내용보다 그 사람의 평상시 태도, 생각, 인물이 소비된다.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라서 인물이 소비되는 것보다 내가 쓴 글이 읽히는 게 더 좋다.

닮고 싶은 사람이 있나?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을 존경한다. 80세가 넘은 나이에도 여전히 저술활동을 하고 있다. 글을 쓰는 건, 일종의 마라톤 작업인데, 초반에 너무 페이스를 오버하면 힘들어진다. 그냥 천천히, 느린 호흡으로 갔으면 좋겠다.

교수라는 타이틀을 넘어, 세속을 살아가고 있는 한 사회학자로서 시도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최근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이, 시민과 함께하는 강좌. 서양식 언어로 표현하자면 ‘오픈 유니버시티’다. 사회학자에게 현장은 사회이고, 대학이라는 건 사회 속에 아주 작은 일부일 뿐이다. 어떤 식으로든 바깥으로 나가지 않으면 사회학자로서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지난해 수원의 한 평생학습관에서 ‘시민과 함께하는 사회학 세미나’를 열었다. 처음에는 이게 될까? 싶었는데, 의외로 많은 분이 신청했다. 25명으로 출발했는데 최종 10주차에 23명이 남을 만큼 호응이 좋았다. 23세부터 60세까지 직업, 성별, 하는 일까지 굉장히 다양했는데, 이 분들의 공통된 의견이 “이렇게 세대를 나누지 않고 진지하게 사회에 대해 이야기하는 공간이 처음이었다”는 것이었다. 위계 없이 동등하게,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성인의 입장에서 사회를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경험 자체가 너무나 감동스러웠다는 이야기를 했다. 내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한 모델이 바로 이런 모델이다. 학교 바깥에서 더 많이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 『세상물정의 사회학』을 시민들과 함께 쓰는 버전으로 써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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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물정의 사회학노명우 저 | 사계절
'세속을 살아가는 월급쟁이 사회학자'가 사회학자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평범한 사람들의 삶과 일상의 문제를 고민한 책이다. 저자는 임금을 받아 생활하는 월급쟁이 노동자 교수로서 스스로가 평범한 세속적 존재임을 자각하고, 누구나 살면서 겪는 세상 경험과 희로애락의 감정을 채집하고 궁리하며 ‘세상물정의 사회학’을 시도했다. 민감한 감수성과 비판적 시선으로 포착된 세상물정의 사연과 이야기는 스스로 그 비밀과 거짓말을 드러내며 아름답고도 추한, 선하고도 악한 세속의 풍경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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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삼킨별 김효정 “좋아하는 일에 오랫동안 기웃거리다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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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니스트 임경선은 밤삼킨별 김효정을 두고 ”글은 소녀인데 사람은 어른인 여자”라고 칭한다. 글은 어른이지만 사람은 소녀인 사람들이 훨씬 많은 세상에서, 김효정은 여전히 따뜻한 사진, 글을 담아낸다. 홍대의 작은 골목 안 카페 ‘마켓 밤삼킨별’ 주인장이기도 한 김효정은 두 딸의 엄마이자, 아내, 작가, 여행자로 살아가고 있다. 누군가는 김효정을 두고 “부럽다”, “닮고 싶다”, “어떻게 하면 당신처럼 살 수 있냐”고 묻곤 하지만, 어디서든 젠체하는 법이 없는 그녀는 ‘밤삼킨별 속 김효정’의 모습도 거리낌없이 보여준다. 다만, 삶에 대한 긍정성,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은 결코 버리지 않는다.

2012년에 펴낸 『당신에게 힘을 보낼게 반짝』이 ‘밤삼킨별의 공간’에 대한 이야기였다면, 『미래에서 기다릴게』는 조금 더 목적어를 뺀 밤삼킨별, 김효정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언제나 ‘일상, 시간’에 탐닉하는 김효정은 이번 책을 펴내며, “내가 가야 할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나를 기다리는 상상을 했다”고 한다. 스스로에게 약속한 느낌, 또 그 약속을 지키는 느낌을 가졌다. 날씨가 조금 풀린, 2월의 어느 오후. 이층집을 개조한 카페 ‘마켓 밤삼킨별’에서 김효정을 만났다. 딸아이의 학교에 다녀오느라 5분쯤 늦은 그녀. 바빠 보였지만 행복해 보였고, 단단한 성품이 느껴졌다.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오면 손뼉을 치는 호들갑 대신, 더욱 진지한 시선을 보냈다. 인사치레로 그냥 하는 말, 그러니까 ‘멘트’를 치는 걸 싫어하는 사람, 대화의 쉼표를 아는 사람, 밤삼킨별 김효정이었다.
사소함이 결코 사소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최후의 안간힘 대신, 우리 안에 있는 사소함이 결국 견디는 힘이 되어줄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특별함이 아닌 내 안의 사소함으로 행복했으면 한다. 각자의 생의 시간으로부터 사소함을 꺼내어 배를 만들고, 사소함이 가진 의미로 돛을 만들어, 마음이 사는 미래로 고요히 고요히 흘러갔으면 좋겠다. 오늘을 보내고 미래에서 기다리는 나의 모습이, 그리고 우리의 모습이 지금보다 조금 더 행복했으면 좋겠다. (『미래에서 기다릴게』프롤로그 中)



오래오래 좋아할 수 있는 재주가 있는 사람

살아가면서 남는 건, 역시 사람이라는 생각이에요. 『미래에서 기다릴게』를 펴기 전, 임경선 작가의 ‘김효정이라는 여자에 대해’를 읽었는데, 살가운 애정이 느껴졌어요. 사적인 호감을 넘어, 한 사람을 깊게 들여다본 느낌이랄 까요.

저라는 사람에 대해 소개해주는 글이었잖아요. 임경선 언니는 저에게 인생 선배 같은 존재에요. 『하루키와 노르웨이 숲을 걷다』의 독자로, 언니를 처음 알게 되었는데, 지금은 아이를 키우면서 글을 쓰고 활동을 하는, 같은 길을 걷고 있잖아요. 제가 몸이 좀 아팠을 때, 언니가 그랬어요. “우리는 서로 망 봐주면서 살아야 한다고.” 사람들이 경선 언니를 되게 쿨하고 도시적인 사람으로 생각하는데, 속이 참 따뜻해요. 좋아하는 것과 좋아하지 않는 것을 정확히 명명하는 모습을 보면, 제가 갖지 못한 면이라서 부러운 게 많아요.

홍대에 카페를 연 지 벌써 4년이 지났어요. 요즘 모든 사람들의 로망이 ‘카페 주인’인데, 운영은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다른 카페와의 경쟁도 그렇고, 동네 분위기도 너무 자주 바뀌고요.

이 자리를 선택한 이유가 홍대, 홍대 사람들이 가진 분위기가 있었기 때문인데, 너무 금방 금방 바뀌어가고 있어서요. 다정하게 생각했던 카페 앞 이웃 상점들도 바뀌고, 건물도 계속 증축이 되고. 골목의 활성화는 좋지만, 너무 모든 게 새로워지니까요. 제가 건물 소유주가 아니라서 낭만적인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자체로도 의미가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어요.

카페에는 자주 오나요? 출장도 다니고, 두 딸도 보살펴야 하는데.

최대한 많이 오려고 하는데, 쉽지는 않아요.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올 때, 엄마가 집에 있는 게 좋으니까요. 또 학교 다녀온 딸들의 얼굴도 보고 싶고. 웬만하면 아이들이 집에 온 다음에, 나가려고 해요. 어제 카카오스토리에서 책 출간을 기념에 댓글 이벤트를 했는데, 큰 딸이 이렇게 댓글을 남겼더라고요. “엄마, 언제 오세요?” 둘째 딸은 “엄마, 왜 저랑은 카스 친구 안 맺어요?”라고 남기고(웃음). 아이랑 부모가 일상에서 같이 밀착되어 있는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그래서 카페에 오는 시간도 아이들에 따라서, 달라져요.

단골이 많다고 들었어요. 아무래도 밤삼킨별의 감성을 좋아하는 손님들이 많겠죠?

요즘은 새로운 손님들이 생겨나고, 그 분들이 새로운 단골이 되어주셔서 감사해요. 카페라는 공간이 누군가와 차를 마시고 대화를 하러 오는 곳이기도 하지만, 때때로 저에게 오신 분들이 있어요. 아무래도 행복한 일을 나누고 싶어서 오신 분들보다는, 여기에서 좋은 기억을 만들었는데 그 기억이 아픈 추억이 된 사람들, 뭔가 힘든 일이 생겨서 위로를 받고 싶어 하는 분들이 많아요. 또 “나는 왜 이렇게 일이 풀리지 않을까요?”라는 고민을 갖고 오는 분들도 있고요. 가족, 친구들에게 쉽게 말하지 못하는 고민을 털어놓기도 하세요.

상담가 밤삼킨별을 상상하고 오는 건가요? 대면하지 않은 사이에서는 쉽지 않은 일일 것 같은데.

온라인에서 SNS를 통해, 또 책을 통해 한번쯤 감정적으로 기대오고 그랬던 분들이 계세요. 20대 때는 그런 분들을 만나면, 제가 아는 잡다한 정보, 누군가의 경험을 말해줬는데, 이제는 제 경험을 털어놓아요. 제 것을 아프게 꺼내놓더라도, 그 분들이 아프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을 하는 거예요. 나의 아픈 일을 공유해버려요. “너만 힘들어? 나도 힘들어”라고 맞짱을 뜨자는 게 아니라, “나도 이런 일을 겪었지만 나아졌다”, “나아지고 싶은 마음이 있으니까 더 좋아질 수 있다”는 생각이죠. 3년 전쯤, 어떤 분이 트위터에 이런 글을 쓰신 적이 있어요. “글쎄, 밤삼킨별님이 고민이 있더라. 헐”이라고. 그 글을 보고 충격 받았어요. 내가 정말 철저하게 내열을 많이 갖고 살았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 때 시기적으로 개인적으로 힘들었던 일이 여럿 겹쳤었는데, 제가 너무 힘들지 않은 척을 했던 거죠. 견디려고 해서 더 많은 힘이 소진됐는데, 그 때부터 사람들한테 말을 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누구나 같다”고.

우스갯소리이겠지만, 남편 분이 “나는 김효정이 아니라 밤삼킨별과 살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던데요(웃음). ‘감성사진가’ 밤삼킨별과 ‘엄마, 여자, 아내’ 김효정의 삶이 충돌할 때는 없나요?

고민, 있었어요. 밤삼킨별이라는 이름이 내 모습이고, 끝까지 오래오래 좋아하는 재주가 있는 게 저라는 사람인데, 밤삼킨별 안에 김효정이 들어갈 때가 힘들었어요. 나는 정말 화가 나서 글을 썼는데, 사람들이 그 글에서 온기를 느껴 버리면, 저는 슬퍼도 슬프다고 말하지 못하는 거죠. 슬픔을 인정 받고 싶거나, 그게 너무 예쁘게만 보이면, 그 감정은 허세, 과잉이라고 생각해 버리게 되니까. 내가 거기에 일조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괴리감이 있었어요. 사람이 살아가면서 감정은 너무 중요한 것인데, 나는 길을 잃은 적이 없는데 길을 잃은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나는 그냥 글을 쓰고 사진을 찍을 뿐인데, ‘감성 사진작가’라는 수식어가 붙으니까요.

밤삼킨별에게 ‘감성’이라는 타이틀이 없으면, 무척 허전할 것 같은데요.

나이 마흔을 먹은 사람이 언제까지 소녀감성으로 보이는 게 좋을까? 좀 떼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고민도 했는데, 결국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지금처럼 하고 싶다”는 것이 제 결론이었어요. 할머니가 되었는데도 소녀감성이 있으면 어때? 그걸 왜 부끄러워했지? 이런 생각을 했어요.




일의 우선순위, 가치가 우선이다

홍보마케팅을 10년 동안 했고, 지금은 출장을 다니며 글, 사진 작업을 하고 있어요. 두 딸의 엄마, 아내로서의 해야 할 역할도 많을 텐데. 시간을 내기가 어렵지 않나요?

이제 큰 딸이 12살, 작은 딸이 10살이 됐어요. 아이들한테 약속했어요. 너희의 나이가 두 자리 숫자가 되면, 엄마가 출장을 갈 때 데리고 갈 거라고. 큰 딸이 10살이 됐을 때 북유럽 출장을 함께 갔어요. 아이의 보폭으로 걷는 여행은 혼자 하는 출장과는 달라요. 내가 보는 것과 아이가 보는 것이 다르니까요. 내가 못 보고 지나치는 걸, 아이가 먼저 볼 때도 있고. 또 거꾸로 일 때도 있고요. 같은 것을 의미 있게 만드는 건, 새로운 걸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내 안의 있었던 것들 것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발표되는 것 같아요. 『미래에서 기다릴게』표지 사진이 첫째 딸이 찍은 거예요. 스페인의 한 공원에서. 저는 제가 찍은 사진인 줄 알았는데, 딸이 로모카메라로 찍은 거였더라고요.

아이들이 엄마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알고 있나요?

둘째 딸이 학교에서 엄마를 소개하는 시간에 “우리 엄마는 커피를 잘 만드는 마담”이라고 했대요(웃음). 아이들한테는 엄마가 일하는 사람이라는 걸,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주진 않아요. 아이들이 아직 어리기 때문에 자랑으로 이야기할 수도 있고, 그게 특별하다고 생각할 수 있어서요. 큰 아이한테는 아이가 10살이 됐을 때, 그동안 제가 만든 책들을 보여줬어요. 그러고 나서 출장을 데리고 간 거예요. 처음에는 출장에 대해 힘들어 하는 게 있었는데, 지금은 많이 이해해주고 오히려 착한 맏딸이 됐어요.

출장을 갈 때, 일을 선택하는 기준이 궁금해요. 최근에는 월드비전, 아름다운가게와 함께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고 들었어요.

우선 제가 좋아하는 일과 밀접해야 해요. 사실 돈은 크게 상관하지 않아요. 가치가 항상 먼저에요. 긴 시간 출장을 가야 해도, 아이들한테 많이 미안하지 않은 일을 하려고 해요. 내가 좋아하는 것, 선망하는 일을 위주로 간다면 부끄럽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아이들도 이해해줄 거라 믿어요. 월드비전에서는 서아프리카 니제르에 가서 리포팅 작업을 했고, 아름다운가게에서는 베트남 소수민족지원사업으로 현장에 가서 사진을 찍고, 글을 쓰는 일을 했어요.




좋아하는 일에 손을 잡은 느낌, 아시나요?

언제나 글에서 사람에 대한 관심, 애정이 느껴져요. 누구에게도 함부로 대하지 않을 것 같은 사람.

영화 <터미널>에 이런 대사가 나오잖아요. “친절하세요. 당신이 대하는 모든 사람은 다 힘겨운 전투를 벌이며 살아간답니다(Be kind, for everyone you meet is fighting a hard battle).” 영화에서 나온 말이지만, 중고등학교 때부터 줄곧 생각했던 거예요. 친절하지 못하고 폭력적인 선생님을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요즘 스팸 전화가 정말 많이 오잖아요. 바쁠 때 전화가 오면 짜증나고 귀찮지만, ‘그 사람도 힘들고 나도 힘든데, 내가 그 사람에게 짜증을 내서 뭘 하려고 하지?’ 그런 생각을 해요.

새로 만난 사람과 쉽게 친해지는 성격은 아닐 것 같아요. 오래 지켜보는 만큼, 친해지면 끝까지 갈 것 같아요.

오래 알고 지낸 사이이지만 친해지는 기회가 없었는데, 어느 순간 어떤 일에 의해 친해지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대면대면 알다가도, 그 사람의 글을 읽거나 말투를 보면 성격을 파악할 수 있잖아요. 혼자 알아가다가 호감을 전하기도 하는데, 뜸을 들이는 시간이 긴 편이에요. 오래오래 보면서 좋아지는 것 같아요.

좋아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대할 때, 어떻게 다른 가요? 티를 내지 않을 것도 같은데요.

좋은 사람한테는 아무래도 한 이야기를 해도, 정성스럽게 하게 돼요. 하지만 마음에 통하는 느낌이 없는 사람에게는 말이 아니라, 멘트로 나가는 것 같아요. 말의 거리가 있다고 할까요.

‘밤삼킨별’이라는 이름이 알려지게 된 큰 계기 중 하나가, 매거진 <페이퍼>의 필진으로 참여하면서부터인데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었나요?

<페이퍼>의 오랜 독자였어요. 독자 투고란에 글, 사진이 실리면 좋아하고(웃음). 그러다가 2001년 쯤인가, 지금은 언니 동생 사이가 된 정유희 기자한테 싸이월드로 쪽지가 왔어요. 함께 작업해보고 싶다고요. 와! 정말 기분 좋았어요. 평소에 제가 ‘시간’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미래에서 기다린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있어요. 오랫동안 좋아하면, 언젠가 그것들이 저에게 응답을 해주는 것 같아요. 내가 무언가를 좋아한 이유에 대해, 답을 해준다는 느낌이랄까요. 제가 유희열 씨도 참 오랫동안 좋아했거든요. 팬클럽 ‘종점다방’에서 한 명의 팬으로 좋아했는데, 어느 날 유희열 씨가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 PD님께 전화가 왔어요. ‘밤삼킨별’ 김효정으로. 게스트로 출연해달라고.

꾸준히 누군가를, 무엇을 좋아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만은 아닌데요.

대학교 때부터 그랬던 것 같아요. 제가 좋아하는 것의 주변에 맴도는 것, 서성이는 것을 좋아했어요. 옛날에는 잡지 <샘터>를 좋아해서, 혜화동에 있는 빨간 벽돌 건물, 샘터사를 자주 찾아갔어요(웃음). 팬시 브랜드 모닝글로리, 미스터케이도 좋아해서 무작정 사무실에 들러보기도 하고. 좋아하는 것에 관해서는 항상 오래오래 좋아하고, 좋아하는 방법을 스스로 표현하고 싶어하는 사람이에요. 과거에는 내가 그 곳에 엽서를 썼던 한 사람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엽서를 직접 만드는 사람이 되기도 하는 것. 좋아하는 것과 손을 잡은 느낌이랄까. 그럴 때 행복해요.

요즘, 젊은 세대는 존경할 만한 어른을 찾기 힘들다고 말해요. 멘토는 아닐지라도 존경하는 사람이 있다는 건, 굉장히 소중한 것인데. 어떤 사람들을 만날 때 ‘존경’의 마음을 갖게 되나요?

자기 자신에게 긍정적인 사람들 있잖아요. 위인을 좋아할 수도, 아티스트를 좋아할 수도 있지만. 저는 모든 사람에게서 긍정적인 모습을 먼저 찾아내는 사람을 봤을 때, 존경하는 마음이 생겨요. 긍정적인 것을 먼저 이야기해주고 그것을 살려주려고 하는 모습을 볼 때, 존경하게 돼요.

페이스북에서 어떤 분이 ‘밤삼킨별님이 요즘 고민이 많은 것 같다’는 말을 해줬어요. 최근에 많이 생각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내 자신이요. 내가 고요해지는 것. 사실 지금까지 살면서 나를 이렇게 들여다본 적이 많지 않은 것 같아요. 골똘히 집중해서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틈틈이 나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요. 에필로그에도 썼지만, 정말 좋아하고 평생 내 곁에 있을 것 같았던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면서 더 그런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남편 분이 광고 일을 하고 계시고 또 저자이기도 한데, 함께 책 작업을 할 생각은 없나요?

글쎄요. 같이 하는 책 작업은 아니지만, 언젠가 우리 가족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있어요. 조금 있다가는 캐논에서 강의를 한 내용을 가지고, 감성사진 에세이가 출간될 계획이에요.
옷깃을 여미고 걷는 길. 바람결에 들려오는 목소리는 내게 이제 편안해지라고 한다. 사랑하여 사랑 받는 한 사람으로, 엄마로, 여자로, 아내로 편안하게 웃으라 한다. 아가씨에서 아줌마가 되고, 이십 대에서 삼십 대가 되고, 그리고 사십 대보다 사십 대가 더 가까운 이때. 나잇살에 붙은 군살은 굳은살로 바뀌어 단단해지고 있다. 불안함은 초연함으로 바뀌고, 유악함은 유연함으로 바뀌어 간다. 누가 뭐라 해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살아가는 것이 가장 큰 행복이며 감사이자 목표인 나이를 나는 지나고 있다. 여전히 길게 늘어뜨린 머리에 꾸미지 않은 얼굴로, 커다란 가방을 메고 즐거운 음악을 들으며. (『미래에서 기다릴게』 p. 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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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서 기다릴게김효정(밤삼킨별) 저 | 허밍버드
솔직하지 못했고 스스로 방을 만들어 제 마음 가두던 자신을 용서하기 위해, 이제 조금 편안해져도 좋다고 허락하기 위해, 어쩌면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를 꺼낸다. ‘밤삼킨별’로서의 일상과 ‘김효정’으로서의 일상 속에서 과거와 현재의 날들에 안부를 묻는다. 사람들 간의 관계를 고민하면서 때때로 ‘일’처럼 느껴지는 이 삶을 말하기도 하고, 지난날의 반짝이는 추억에서 힘을 얻어 현재의 따스함을 발견하기도 한다. 이것은 한 개인의 아주 사소한 응시(凝視)다. 그러나 동시에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은 진솔함으로 내민 언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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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준 위원장 “정치는 압축성장이 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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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소소함에서 온다. 평일이라 생각하고 일찍 일어났는데, 주말일 때, 행복하다. 마찬가지로 달력에는 검게 표시된 날인데, 알고 보니 공휴일! 복권 당첨된 것도 아닌데 괜히 기분이 좋다. 6월 4일은 그런 날이다. 내 달력에는 검게 표시되었는데, 옆 동료가 쓰는 달력에는 빨갛다. 지방 선거일이라고 한다.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면서 뿌리다.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하는 성스러운 날이 선거일인데 꽤 많은 사람에게 선거일은 그저 쉬는 날이다. 지난 대선에는 24.2%가, 총선은 45.8%가, 지방선거는 45.5%가 투표하지 않았다. 이 중에서도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20대의 투표율이었다. 지난 대선에서 20대 투표율은 65.2%로 전 연령 중에서 가장 낮았다. 투표를 안 한 이유에는 여러 사정이 있겠으나, 다른 연령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투표율은 젊은 층이 정치에 관심이 없는 증거로 삼아도 무방하다. 한 표라도 아쉬운 정치인에게, 그래서 젊은 층은 언제나 함께하고 싶은 대상이다. 윤여준 새정치추진위원회 공동위원장도 그렇다.

 

『윤여준의 진심』이 다가가고 싶은 독자가 바로 젊은 사람이다. 책에는 윤여준 위원장의 인생과 그의 정치적 소신을 담았다. 경무대에서 이승만 대통령과 함께 보낸 유년기, 신문기자로 시작한 사회생활, 주일대사관 공보관에서부터 대통령 공보수석 비서관까지 공보 전문가로 활동한 시절 등 개인사를 1부에 기록했다. 2부에서부터 4부까지는 대한민국 정치의 현실을 진단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바를 조명한다. 개인사를 넣고, 장마다 분량을 길지 않게 하고, 문장을 짧게 쓴 것은 젊은 독자를 위해서였다.

 

“젊은 세대를 나무라기만 해서 아무 소용이 없더라. 어쨌든 관심을 갖게 해야 읽든지 말든지 한다. 가능하면 말을 쉽게 하고 순수한 우리말을 쓰려고 노력한다. 책을 만든 출판사 의도가 한국 젊은 사람에게 한국 정치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도 가능한 한 어렵지 않게, 한국 정치의 이모저모를 한 가지 각도만 아니라 여러 각도로 볼 수 있게 말했다. 젊은이들이 한국 정치를 혐오하고 분노하고 외면하고 있지 않나. 젊은이들이 그렇게 하면 정치가 평생 자신을 따라다니면서 괴롭힐 것이다. (이 책으로) 한국 젊은 사람이 정치를 재미있게 이해하고 재미있게 생각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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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정치는 공공성을 추구하지 못해

 

제목이 『윤여준의 진심』이다. 출간 의도가 쉽고 재미있게 한국 젊은 세대에 다가가는 것이라 했는데, ‘진심’이라는 단어는 묵직하게 다가온다. 책 제목은 어떻게 지었나.


책 제목을 반대했다. ‘진심’ 때문에 반대한 게 아니라, 내 이름 석 자를 넣는 게 편하지 않았다. 내가 대통령 후보 반열에 올라간 사람이라면 모르겠는데, 좀 그렇다. 출판사에서 이 제목을 고집했다. 나는 지금도 제목은 불만이다. (웃음)


젊은 독자를 위해 만든 책인데, 이들이 어떻게 책을 읽었으면 좋겠나?


사회는 개인에 스펙을 쌓으라고 말한다. 불행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다. 스펙을 쌓았는데도 해결 안 되면 구조 때문이다. 구조적인 요인이 있고 개인의 요인이 있다. 어느 한쪽이라 할 수 없는데, 사회가 네가 하기에 달렸다고 하면 공정하지 않다. 좋은 일자리를 주는 건 누구인가, 기업? 맞다. 그럼 기업이 많은 일자리를 만들게 하는 건? 정치다. 비정규직, 청년실업 등 젊은이의 고통을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는 정치인이 많나? 국가를 왜 만들었나. 약자를 보살피려고 만들었다. 가진 자는 내버려 둬도 잘 산다. 사회적 약자를 보살펴서 약자가 안 되게 만드는 게 국가의 목적이다. 이게 바로 공공성이다. 공공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게 정치이고. 그런데 소수 권력 엘리트가 기득권을 지키려고만 한다. 여기에 대한 분노의 감정이 안철수로 분출되었다.


『윤여준의 진심』에는 유독 공공성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쉽게 다가오는 단어는 아니다. 책에 적힌 내용을 살펴보자.


민주주의의 핵심은 공공성이란 점을 인식하는 게 중요합니다. 국가는 거대한 정치 공동체입니다. 인류가 이 거대한 정치 공동체를 만든 이유는 공공성 때문입니다 (중략) 공공성은 공동체의 전체 이익을 뜻합니다. 이 공공성 때문에 우리는 국가가 합법적 폭력을 독점하고 국민에게 세금을 거두는 강제를 행사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한 것입니다. (중략) 대통령이나 고위 공직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국가 권력은 공공성 유지와 확대를 목적으로 국민이 부여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170~171쪽)


윤여준은 지금 그가 몸담은 새정치추진위원회(이하 새정추)의 ‘새정치’에서 핵심이 공공성이라고 책(173쪽)에서 밝힌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어떤 정권이든지 의도적으로 공공성을 해치려고 하지는 않았을 테다. 하려고 했는데 제대로 안 된 측면이 있을 텐데, 어쨌든 지금 대한민국 정치에 만족하는 국민은 많지 않다. 새정추가 기존의 거대 양당을 비판하며 새로운 정치 세력으로 등장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일단 의도는 좋은데, 새정추에 쏟아지는 비판도 존재한다.


새정치를 이야기하고 있고, 지방 선거를 준비 중이다. 선거의 본질은 사람을 뽑는 것일 텐데. 어느 정당이나 그렇지만 새정추에 합류하는 사람을 두고 말이 나온다. 새정추는 어떤 기준으로 사람을 내세울 것인가.


새정치가 원칙이지만 문제가 있다. 과거 낡은 정치가 이뤄지던 그 시절에 참여했던 사람은 모두 낡은 사람인가? 그 중에는 낡은 정치에 몸담으면서도, 이건 안 되겠다고 끊임없이 투쟁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을 모셔와야 한다. 국민이 이 사람을 새사람이라 여길지는 다른 문제지만, 이 사람들을 모두 배제하면 정치가 가능할까? 국민이 모르는 사람이 새사람인가? 이런 현실적인 딜레마가 있다. 과거 구정치에 몸담았던 사람 중에서도 파렴치하거나 국민의 지탄을 받은 사람이 아니고, 새정치를 추진하는 세력이 갖는 원칙과 가치에 동의해서 원칙, 약속, 신념을 지킨다면 받아주려 한다. 한 번의 과오가 있는 사람이라도, 과오를 씻으면 된다.


요즘은 서울 시장 후보를 내세운다고 해서 비판이 많다. 


공개적으로 서울 시장 후보를 낸다고 했고, 의장이 말했으니까 그게 원칙이 되어버렸다. 안 의원도 생각이 그랬다. 말을 안 하고 있었을 따름이지. 개인적으로 괴로운 일이다. 박원순 시장과 잘 알고 친하다. 박원순 시장 떨어뜨린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서 서울 시장 이야기만 하면 괴롭다. 박원순 시장에게 미안하고 괴롭다. 하지만 그건 사적인 거고. 지금 이야기는 공적이지 않나. 사적인 미안함을 표시하는 건 개인적으로 하면 된다. 공적으로, 새정치 의장으로서는 어쩔 수 없다. 원칙은 원칙이니까.


그래도 결국은 야권에서 연대하지 않겠나.


연대해서 결국 졌지 않나. 선거에서 중요한 게 구도다. 내가 연대하고 상대방이 분열하면 쉽게 이기는 구도다. 그래서 한국 정당이 매번 선거 때마다 연대했다. 국민은 이걸 지켜보고 정치가 흥정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새정치를 하겠다고 등장한 사람이, 국민이 구태라고 생각하는 모습을 할 순 없다. 민주당은 거대 정당이고 70년 역사를 자랑한다. 왜 저렇게 왜소해졌을까? 선거 때만 되면 연대하자고 하고 독자적으로 이길 생각을 안 한다. 3자 구도든 4자 구도든 독자로 이긴다는 전략으로 임해야 않겠나. 처음부터 패배주의다. 그리고 우리 입장은 여야를 구분하는 게 아니다. 양당 모두 본질에서 낡은 정치 아니겠나. 우리는 낡은 정치는 청산의 대상으로 본다. 그러니 야권 연대라는 게 우리하고 안 맞는다. 계속 다른 차원의 이야기를 하니까, 곤혹스럽다. 그렇다고. 새누리당이 의석을 갖고 가면 안 되지 않나, 하는데. 우리도 정말 고민하고 걱정한다. 민주당이 비켜 주면 선거를 한번 잘 치러보겠다만. (웃음)


정치는 압축성장이 불가


지방 선거에서 ‘새정치’의 가능성은 어떻게 전망하나.


지방 선거가 전국 단위의 선거이긴 하나, 성격상 제약이 있다. 지방 단위의 일꾼을 뽑는지라. 전국적 이슈가 잘 안 먹힌다. 지역의 특성, 지역의 경쟁력이 좌우한다. 국가적 어젠더로 선거 끌고 가기가 쉽지 않다. 어쨌든 국가의 공공성이 지방 단위에서도 이뤄져야 하는데 요즘 지역을 보면 가관이다. 오죽하면 공천하지 말자고 하겠나. 지방자치를 풀뿌리 민주주의라 하지 않나. 풀뿌리가 썩으면 나무가 성할 수 없다. 지방자치제가 제대로 안 되면, 한국 전체 민주주의가 안 된다. 기초가 튼튼해야 건물이 튼튼하지.


한국의 정치, 희망은 있나?


유럽은 시민혁명 이후 오늘날의 제도를 갖추기 위해 300년 이상 걸렸다. 우리는 건국으로 쳐도 100년이, 권위주의에서 민주화된 게 30년이 안 된다. 앞으로 갈 길이 멀다. 정치는 압축성장이 안 된다. 거칠 것 거치고 대가 지불할 것 다 지불해야 한다. 지금 겪는 고통을 비관적으로만 볼 게 아니다. 다만, 지금 나라 사정이 어려우니 가능하면 대가를 적게 지불하고, 대가를 지불하는 기간을 줄이자는 것이지. 길게 보면 의회 민주주의가 성숙하리라고 낙관한다. 그런 의미에서 새정치를 하자고 난리 굿을 치고 있다. (웃음)


오랫동안 여러 정치인을 봤는데, 존경하는 지도자가 있나?


없다. 사람이 누구를 존경한다는 말을 쉽게 하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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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현 정권을 향한 조언도 있다. 현 정부에서 필요한 건 뭘까?


민주주의 국가의 대통령은 수직적 위계질서의 꼭대기가 아니다. 많은 사람 중 하나다. 국민의 의사를 활발히 들어서 나라를 이끌어가야 한다. 대통령이 어떻게 일일이 국민과 소통하나. 상당 부분은 집권당이 해 줘야 한다. 정당이 이 역할을 안 한다. 헌법 8조에 민주주의에서 정당이 하는 역할을 규정했다.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형성하는 것. 지금 거대 정당 둘이 정치적 의사를 형성하나? 대통령 의사만 국민에 전달한다. 대통령이 국민을 동원할 대상으로 본다. 정당을 동원의 수단으로 쓰고. 이렇게 하면 안 된다. 대통령은 국민의 참여를 이끌어 내야 한다.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이 참여 정부라는 이름을 지었을 때, 정말 이름을 잘 지었다고 생각했다. 대중의 직접 참여 욕구는 책임이 수반되지 않은 거라, 민주주의 발전에 도움은 안 될 수 있다. 그래서 어떻게 욕구를 수용하고 제도로 바꿔서 국민의 참여를 활성화시키는지를 고민했어야 했는데 노무현 정권 이후로 고민한 정부가 없다. 박근혜 정부는 지금이라도 수직적 꼭대기에 있다는 자의식을 버려야 한다. 이제 1년밖에 안 됐으니까 지금부터라도 민주주의 논리가 무엇인지, 대한민국 민주주의 공화국이 무엇인지 깨달아야 한다. 그것만 깨달으면 훌륭한 대통령이 될 수 있다. 좋은 자질이 많은 대통령이다.


경제 민주화는 재벌 개혁이 아니라 공공성 회복의 문제


책에는 정치에 관한 이야기가 많은데 정치와 맞닿아 있는 게 경제다. 지난 두 정권이 집권한 배경에도 고도성장을 향한 향수가 작용했을 텐데, 그런 의미에서 경제를 진단하고 경제 문제에 해결책을 제시하는 게 정치인에게 중요한 능력이다. 한국 경제를 어떻게 진단하나.


내가 경제에는 전문성이 없는 사람이다. 지금 하는 이야기는 일반적인 사람의 생각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한국 경제에서 시장 경제는 양보할 수 없는 가치이나 20년 가까이 신자유주의가 세계를 휩쓸었다. 신자유주의는 모든 걸 시장에 맡기고 국가는 빠지라고 한다. 결과가 뭔가. 1과 99의 사회로 양극화되었다. 이렇게 되면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가 유지가 안 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헌법 119조 2항에도 나와 있는 경제 민주화가 필요하다. 자, 국가는 뭔가? 국민경제를 균형 있게 발전하게 하고 안정적으로 이끌어야 한다. 그래서 공정거래법, 공정거래위원회도 만든다. 지금은 공정경쟁이 아니라 불공정경쟁이 일반적이다. 박근혜 대통령, 안철수 의원, 문재인 의원 모두 지난 대선에서 경제 민주화가 시대 정신이라 했다. 그런데 경제 민주화 이야기가 나오면 출자 총액 제한, 재벌의 소유 구조와 지배 구조 등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런 게 일반 대중에게는 와 닿지 않는다. 재벌 이야기가 나오니까 재벌에 관한 이야기가 경제 민주화고 일반 대중과는 아무 상관 없다는 경향으로 간다. 진짜 경제 민주화는 많은 서민 대중의 삶을 좌우한다. 경제적으로 풀지 않고, 공공성이라는 가치로 봐야 한다. 국가의 핵심 가치가 공공성이고, 공공성은 공동체 구성을 위한 것이다. 그런데 국가가 공동체 전체가 아니라 소수 개개의 이익에 봉사한다면 어떨까. 이런 일이 안 벌어진다고 장담하나? 물증은 없지만 벌어진다고 장담한다. 우리나라만 그런 게 아니라 세계적인 현상이다. 국가가 공공성이라는 핵심 가치를 파괴한다면 대한민국이라는 정치 공동체를 유지할 이유가 없다. 공공성이라는 핵심 가치로만 봐도 경제 민주화는 양보할 수 없는 가치다. 재벌 중심, 재벌의 국제 경쟁력을 없애자는 게 아니다. 경제 민주화하면 기업을 옥죈다? 기업가 정신을 꺾는다? 이건 아니다. 언제 우리가 기업가 정신을 꺾었나. 공정경쟁하고 잘못된 경제 구조가 국가의 공공성을 파괴하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것이다.


정치계에 입문하지 않았다면 뭘 했을까?


장관을 관둔 게 1998년 2월이고 1997년에 이미 미국 유학 가기로 했다. 미국의 대학 캠퍼스가 참 좋다. 아파서 대학을 제대로 못 다녀서 늘 그 부분이 회한으로 남아 있었다. 대학 캠퍼스에서 도서관 가서 책도 보고 학생과 이야기해보고 강의도 들어보려고 했다. 미국 대학에서는 나 같은 커리어를 둔 사람을 높이 평가하더라. 언제나 받아주겠다고 했다. 신났다. 그러던 중 1998년 연초, 설 연휴에 이회창 총재가 사람을 보내서 나를 부르더라. 내가 환경부 장관이었으니, 환경에 민원이 있는 줄 알았다. 그게 아니고, 직전 12월 대선에서 김대중 대통령에게 졌지 않나. 실수를 되풀이하면 안 되겠다 싶어 조언하는 사람을 구하려고 수소문을 했는데 공교롭게도 나를 많은 사람이 천거했다고 한다. ‘공교롭게도’라는 표현을 굳이 썼다. (웃음) 원래 8월까지 도와 드리기로 했는데 우여곡절 끝에 결국 빼지 못하고, 한발 한발 들어가서 미국 유학 계획은 날아갔다. 그리고 욕먹는 삶을 살게 됐다. 그 전까지는 욕 안 먹었는데. 학살의 원흉이라고 신문에 나지를 않나. (웃음)


유년시절부터 많은 책을 읽었다. 인상에 남는 책은?


나이가 들수록 인상에 남는 책이 별로 없다. 제레미 다이아몬드 『총균쇠』정도가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양자물리학, 분자생물학 관련한 책을 보면서 사고의 변화를 겪었다. 토머스 쿤이 쓴 『과학 혁명의 구조』도 어렵지만 누구나 반드시 읽어야 하는 책이다.


‘공교롭게도’ 『과학 혁명의 구조』와 윤여준 위원장이 추구하는 ‘새정치’는 자연스레 이어진다. 쿤은 기존의 이론으로 물리적 현상을 설명할 수 없을 때 혁명적인 이론이 등장한다고 밝힌다. 이게 바로 패러다임 시프트(Paradigm Shift)다. 예로, 뉴턴의 물리학 이후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나왔다. 쿤은 그의 이론을 인간 세계에 적용할 수 없다고 말했지만, 푸코의 에피스테메라는 개념이 시사하듯, 정치에도 혁명적인 변환이 등장하는 시기가 있다. 지금이 그때인지는, 우리가 모두 두고 볼 일이다. 공공성을 염두에 두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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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준의 진심윤여준 저 | 메디치
안철수 의원의 신당 창당 준비기구인 새정치추진위원회 윤여준 공동위원장이, 2014년 총체적 붕괴 상태인 한국 사회를 보며 박근혜 대통령과 이 땅의 젊은 세대에게 전하는 간곡한 메시지가 담긴 책이다. 우리 사회는 가계부채와 양극화 등 갈등과 분쟁을 겪고 있으면서, 대외적으로는 대외적으로는 미-중 간의 패권경쟁, 격화되는 남-북 문제, 갈수록 나빠지는 경제 여건 등 국가적 위기를 초래할 수 있는 요인에 노출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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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명희 작가, 내가 드라마를 쓰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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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그랬다. 어떤 절망적인 일이라도 그것이 꼭 나쁜 점만 있으리라는 법은 없다고. <따뜻한 말 한마디>는 제목과는 달리, 극단적인 설정이 가득한 드라마다. 바람 핀 남편, 또 다른 모습의 바람을 피는 아내, 남편의 내연녀와 같은 요리 클래스를 듣는 아내, 외도한 매형의 내연녀의 차에 교통사고를 내는 처남. 세상에 나쁜 사람은 다 모아놓은 것 같은데, 드라마를 보다 보면 악역이 없다는 느낌이다. 모든 인물에게 측은지심, 동병상련을 발현한 까닭일까? 아니다. 그들 모두는 매우 평범하고 연약하고 외로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좋은 드라마의 기준은 각기 다를 테지만, 가장 보편적인 인간 군상을 그려내는 힘만큼 위대한 것이 없다.

1994년 MBC <베스트극장> 극본 공모에 당선된 후, <종합병원> <사랑이 꽃피는 계절> <사랑과 전쟁> 등을 집필한 하명희 작가. 2012년 <우리가 결혼할 수 있을까>로 ‘우결수’ 신드롬을 만들어내고, 지난해 12월부터 <따뜻한 말 한마디>를 썼다. ‘우결수’를 보고 작가의 필력을 신뢰한 PD와 배우들. 매회 대본을 받아 들고는 “한 편의 소설을 읽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극중 은진(한혜진)의 아버지 역을 맡은 윤주상은 “인생사, 부부간의 문제를 다루면 칙칙하고, 누구 하나 나쁘게 만들기 마련인데, 우리 드라마는 그렇게 만들지 않았다. 각 인물을 이해할 수 있도록 그려냈다. 결론도 까닭 없이 나오는 해피엔딩이 아니라 아픔을 극복하고, 성숙을 통한 해피엔딩이라 더욱 의미 있고 힘있는 결말이었다”라고 종영 소감을 전했다. 외도한 남편 ‘재학’으로 분한 지진희는 “<따뜻한 말 한마디>는 나를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준 드라마”라고 평했다. 누군가는 <따뜻한 말 한마디>를 두고 ‘불륜 방지 드라마’라고 말한다. 보고 있으면, 도저히 마음이 찔려 불륜을 저지를 수 없다는 것이다. 누구나 갖고 있는 선악의 양면성, 그리고 성장. 하명희 작가는 <따뜻한 말 한마디>를 통해 보여줬다.

종영을 4일 앞둔 날,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하명희 작가를 만났다. 이토록 실감 나는 대사를 쓰는 작가는 어떤 얼굴일까? 올 1월 출간한, 장편소설 『착한 스프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어떻게 쓰게 된 작품일지, 몹시 궁금했다. 드라마보다는 예능작가다운 달변가, 유쾌한 토크쇼 대본을 쓸 것 같은 목소리였다. 경쾌한 목소리에 오히려 신뢰감이 들었다. 어떠한 일에도 옹색한 변명 따위는 절대 하지 않을 것 같은 인상, 하명희 작가의 뭉근한 통찰력의 발신지를 찾아보았다.
이 작품은 인간이 서로를 사랑할 수 있느냐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된다. 사랑을 주고받는 과정에서는 상처 또한 주고받을 수밖에 없다. 상처는 사랑에 따르는 필수사양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상처를 받지 않으려는 사람은 피상적인 관계에 머물 수밖에 없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네 사람은 서로의 세계관에 부딪히며 오해하고, 자신의 세계관에 상대를 편입하려 든다. 그 과정에서 균형 감각은 깨지고, 결국 그들은 홀로 남는다. 그리고 혼자가 되었을 때 그들은 비로서 상대를 사랑하고 이해하게 된다. 그러므로 인터넷 시대에 관계의 키워드는 고독이다. 피상성에는 고독이 따르기 때문이다. ‘피상적인 소통’으로 인한 관계의 허약함이 이 시대 우리가 해결해야 할 숙제다.-『착한 스프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저자의 말 中



드라마는 ‘문화’, 편견을 깰 수 있어야 한다

‘따뜻한 말 한마디’. 요즘 세상에 쉽게 들을 수 없는 말이다. 현실에서도 듣기 힘든 말을 드라마에서 한다는 것이 새로웠다. 드라마 제목으로 반대는 없었는지, 궁금했다.

너무 교훈적인 제목 아니냐는 반응이 있었지만, 좋다는 사람도 많았다. 15년 전쯤인가? MBC에서 <베스트극장>을 할 때, 최창욱 감독이 던졌던 제목이다. 그 때 너무 좋아서, ‘나중에 작품을 하게 되면 써먹어야지’ 생각했었다.

<따뜻한 말 한마디> 덕분에 남편, 아내의 말투가 변했다는 시청자 평도 있었다. ‘불륜 예방 드라마’라는 이야기도 있었는데.

바람 피던 친구가 돌아왔다는 이야기도 들었다(웃음). 종방연 때, 본부장님이 “이거 너무한 거 아니야? 이렇게 하면 어떻게 바람을 피워? 여지를 남겨 줘야지”라며, 우스갯소리도 하더라.

불륜의 끝에서 시작하는 드라마다. 등장인물 또한 지금까지는 보지 못했던 캐릭터다. 미워할 수 없는 것과는 또 다르다.

인간이라는 게 그렇다.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해결할 수 있는 어떤 한계점이 있다. 부모라든지, 주위 환경이라든지. 그런 것들로 망가질 수 있다. 그래서 운명과 선택이라는 게 공존한다. 드라마라는 건, 이 선택과 운명을 어떻게 씨줄과 날줄로 엮느냐다. 나는 드라마를 문화라고 생각한다. 문화는 인간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그리는 드라마적 인간들은 완벽한 인간이다. 착하거나 잘났거나. 그래서 감정이입이 단번에 된다. 그런데 실제에서 우리는 완벽하지 않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내가 얼마나 후진 사람인지 확인하게 되는데, 드라마 속 인물들과 비교하면서 나락에 빠지는 거다. 저런 사람이 될 수 없는 나는 못난 사람이 되는 거다. 그래서 나는 남자 주인공을 왕자 캐릭터로 그리지 않는다. 왕자 캐릭터는 조연으로 주지, 주연으로 주지 않는다. <따뜻한 말 한마디>의 왕자 캐릭터는 민수(박서준)였다. 주인공에게는 사회적 책임감, 아이러니를 반드시 준다.

악역 캐릭터가 너무 분명하게 드러나는 드라마를 볼 때, 불편한 감정이 든다. 모든 사람에게는 나쁜 면만 있을 수는 없는데, 너무 극단적으로 몰고 가니까 현실성이 떨어진다.

대부분의 드라마는 주인공에게 좋은 걸 몰아준다. 그러니까 시청자들은 주인공에게는 열광하고 악역을 두고는 ‘죽여라’라고 말한다. 우리 모두에게는 이런 점도 있고 저런 점도 있고, 제각기 결점이 있는데, 다양성을 존중하지 못하니까 인정을 하지 않는다.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은 쉽게 구별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데, 좋은 사람만 좋아하고 나쁜 사람은 ‘죽여라’라고 댓글을 단다. 이런 현상이 사회를 경직되게 만들고 불행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인물을 만들 때, 다양성에 초점을 둔다. 결점이 있지만 아예 밉지는 않은 사람. 우리가 사실 편견 덩어리 아닌가? 문화라는 건 편견을 깨야 하는데, 드라마라는 장르가 편견을 강화시키는 게 많다. 재벌을 그리더라도 인물에 대한 다양성과 편견을 완화시키기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

<따뜻한 말 한마디>에서 가장 욕을 많이 들은 캐릭터가 ‘은진(한혜진)’이였다고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퍽 이해가 되는 인물이었는데, 드라마에서는 존재하기 힘든 캐릭터이기도 하다.

원래 은진과 같은 인물을 설정하려면, 가난하게 하거나 신랑이 무지 못됐거나 시댁이 힘들게 해서 동정심을 갖게 하는데, 나는 <따뜻한 말 한마디>로 불륜을 정리하고 싶었다. 불륜에 대한 사회적, 개인적 정의를 하고 싶었다. 주인공을 동정하게 되면, 그냥 ‘은진’이라는 개인에게 감정이입을 하는 거지, 불륜에 대한 걸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지 않나? 극중 은진이 시를 읊는 장면이 있었는데, 시청자들이 이 장면을 보고 그렇게 욕을 하더라. “불륜녀한테 시를 읽게 하지 말라”고. 사실, 은진 캐릭터는 『안나 카레니나』가 모형이었다. 그 시대에는 안나가 자살을 시도했지만, 은진이를 죽일 수는 없으니까 남편 ‘성수’를 붙여서 내보낸 거다. 성수가 은진을 구원해줄 수 있으니까.

성수(이상우)의 변화도 무척 인상 깊었다. 대한민국의 전형적인 남편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인데, 결국 아내 은진을 한 여자, 사람으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부부는 무한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마이너스도, 영도 될 수 있지만,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한 쪽이 넘어졌을 때, 상대가 붙잡아줄 수 있으니까.

등장 인물의 이름이 다 평범하다. 의도한 것 같다.

<따뜻한 말 한마디>가 사실 ‘나도 가해자가 될 수 있다’라고 생각하고 시작한 드라마다. 사람들은 모두 자신이 죄와는 멀리 있다고 생각하고 살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 형법에는 간통죄가 있기 때문에 불륜을 저지르면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다. 민수는 착하게 잘 살다가, 단지 누나의 일에 휘말려 죄를 짓게 되지 않나? 정말 이런 일이라고는 상상해보지 않았는데, 저지르게 되는 인간의 심리? 보통 사람들이 저지를 수 있는, 누구나 가해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출발했다.

부부의 속사정은 그 부부밖에 모른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타인의 이야기를 너무 쉽게 한다. 바람을 피웠다고 하면, 무조건 헤어지라고 한다. 그게 정말 내 일이 되면,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닐 수도 있는데.

헤어지라는 것, 말은 정말 쉽다. 외도한 남편, 아내와 헤어지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의 심정은 오죽하겠나? 사람들이 남의 일은 되게 쉽게 말한다. 그냥 현금지급기로 생각하고 살라고. 하지만 그게 온전한 삶인가? 그렇지 않다. 부부 사이는 정말 불가사의한 관계다. 그래서 무촌 아니면 남보다 못한 존재라고 말하지 않나?

대본을 쓰면서 힘들었을 것 같다. 인물에 감정이입이 심하면 객관성을 유지하기 힘들어진다.

힘들었다. 인물들의 감정이 너무 세서 죽을 뻔했다. 성수가 경찰서 앞에 우는 장면을 쓸 때는 나도 울었다. 비극성이 강한 인물 ‘민수’를 쓸 때도 힘들었다. 배신은 정말 너무 힘든 일이다. 사람의 영혼을 파괴시키는 일이다. <따뜻한 말 한마디>를 쓰면서, 인물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드라마는 역시, 희망을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배우들 복도 많았던 작품이다. 누구 하나, 연기력이 떨어진 배우가 없었다.

1순위 배우였던 연기자들이 많이 캐스팅됐다. 한혜진 씨 같은 경우는 <따뜻한 말 한마디>에 출연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틀을 깨보고 싶다고 했다. 젊은 여자 배우들은 보통 결혼한 아줌마, 아이가 꽤 큰 엄마 역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광고에 하나도 도움이 안 되니까. 한혜진 씨가 좋은 배우이기 때문에 출연한 거다. 고두심의 연기는 클래스가 달랐다. 감동했다.

김지수의 연기도 훌륭했다. 그래도 ‘미경’이 가장 불쌍한 인물이 아닐까 싶었는데, 마지막 회를 보면서 위로를 받았다. 미경은 스스로에게 솔직해지면서 행복해진 인물이다.

미경, 재학 커플은 드라마를 쓰기 시작했을 때부터 무조건 헤어진다고 생각하고 썼던 인물이다. 그런데, 김지수 씨가 촬영을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났을 무렵,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 “미경이랑 재학이랑 헤어지면 너무 힘들 것 같다고.” 문자를 보고 깨달았다. 한 달 사랑한 사람도 지금 이러는데, 20년을 같이 산 부부는 어떨까? 그래서 이들 부부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결론을 내리는데 힘들었다. 외도를 한 상대와 헤어질 수 없는 분들이 많이 공감하더라.

먹는 걸로 모든 걸 승화하는 재학의 어머니 ‘추 여사’(박정수) 캐릭터도 새로웠다. 마냥 밉다가 나중에는 귀여워지더라. 애잔하기도 하고. 은진의 엄마 ‘나라’(고두심)와의 차별성을 꾀한 것 같다.

의도했다. 처음에 딱 나왔을 때, 정말 ‘나쁜 시어머니’ 같지 않았나? 그런데 사람은 언제나 같을 수 없다. 언제나 착하고 언제나 나쁠 수는 없다. 사람은 입체적이다. 추 여사와 안나(최화정)가 붙는 신을 쓸 때는 정말 편했다. 두 사람이 가벼운 캐릭터라서, 인물 속 대화에 사람에 대한 시선, 편견 등의 이야깃거리를 집어넣었다.

대본을 쓸 때, 감정지문을 거의 쓰지 않는다고 들었다. 배우에게 자유를 주는 대신 그만큼 책임감도 주는 건데, 배우들이 어려워하지 않나? <우리 결혼할 수 있을까>를 함께했던 이미숙 씨는 “하명희 작가 대본은 머리 나쁘면 못한다”고 했다던데.

예전에 어떤 중견배우가 술 먹고 그러더라. “감정지문 ‘슬프게’ 때문에 계속 NG를 내다가 배역에서 잘렸다고.” 그 이후로 웬만하면 쓰지 않는다. 배우는 일단 감성이 뛰어난 사람이다. 캐릭터의 특성을 뽑아내서 자신의 연기에 녹여낼 줄 안다. 감정지문을 쓰게 되면 배우들은 대본에만 기대서 연기를 하게 된다. 배우들이 생각을 하고 연기를 할, 시간을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드라마는 ‘시와 수학’의 만남

『착한 스프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가 올해 1월에 출간됐다. 써놓은 지는 꽤 오래된 작품이라고 들었다.

2003년쯤인가? 2002년 월드컵 지나고 쓴 소설이다. 1994년에 드라마 공모에 당선이 돼서 일을 시작했는데, 글 쓰는 건 좋았지만 주변에서 벌어지는 상황과, 방송국 생리 등이 힘들었다. 드라마는 혼자 써서 되는 게 아니고 협업이니까. 너무 쓰기 싫어서 폐업을 했다. 그 당시 쓰고 싶은 글, 아이템을 정리해놓았다. 소설로 먼저 써야 할 소재가 있고, 드라마로 먼저 풀어야 소재가 있는데 『착한 스프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책으로 먼저 쓰고 싶었다. 마무리까지 했는데, 2006년부터 <사랑과 전쟁> 집필에 들어가게 돼서, 이제야 책으로 출간됐다.

10년 전 작품을 출간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시대감이나 저자의 변화도 있을 테고.

작품 속 주인공들은 PC통신 요리 동호회에서 만난 사이다. 여기에서 말하려는 게 인터넷시대의 관계의 피상성인데,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소설에 나오는 대사를 <따뜻한 말 한마디> <우리 결혼할 수 있을까>에서 갖다 썼다. 소설에서 현수가 정선에게 “너, 나 몰래 나한테 약 먹였지?”라는 대사는 <따뜻한 말 한마디>에서 은영이 민수에게 했던 말이기도 하다.

소설 속 주인공 ‘현수’는 드라마작가 지망생이다. 저자의 실제 모습과 겹쳐지는 부분이 많은데.

물론 있다. 방송작가교육원을 다니고 사람을 분석하는 걸 좋아하는 성격은 닮아 있다. 그런데 지금의 내 성격은 달라졌다. 나는 내가 되게 이성적인 사람인 줄 알았는데, 살다 보니 아니다. 상황이, 사람들이 좋아서 이성적일 수 있었던 거다(웃음).

현수가 소설에서 말했다. 작가는 화술에도 능하고 튈 수 있어야 한다고. 정말 그런가?

작가들이 너무 힘들다. 시달리는 게 너무 많다. 공모전에 작품 하나 당선되고 그게 끝인 작가들도 많다. 창작이라는 게 사람들의 머리가 다 비슷비슷하지 않나. 비슷한 아이템이 나오면 자기 것이 없어지는 거다. 소리 없이 사라지는 작가도 많다.

소설을 쓰고 나서, <사랑과 전쟁>을 4년간 집필했다. <사랑과 전쟁>은 자극적인 요소가 많은 드라마 아닌가? 드라마국이 아니라 예능국에서 만드는 프로그램인데, 쓰면서 힘들었던 부분은 없었나?

즐겁게 썼다. <사랑과 전쟁>도 <따뜻한 말 한마디>처럼 말 되게, 극단적이지 않게, 재밌게 썼다. <사랑과 전쟁>은 대게 드라마를 처음 만들어 보는 PD들이 연출을 한다. 연기자도 인지도가 크지 않은 배우니까, 극본의 힘이 많이 발휘된다. 드라마는 ‘시와 수학의 만남’이라고 생각하는데, 시는 ‘대사’고 수학은 ‘구성’, 즉 보게 하는 힘이다. 감성과 이성이 잘 짜져야 한다. <사랑과 전쟁>은 70분 동안 모든 이야기를 끝내야 하니까, 결혼생활을 10년 한 부부도 70분 안에 모두 담아야 하니까 엑기스만 담아야 한다. 그래서 구성 공부를 많이 했다.

하명희 작가라는 이름이 알려진 건, <우리 결혼할 수 있을까> 부터다. 데뷔 년에 비해서는 꽤 늦은 편이다. 중간에 쉬었던 시기도 있지만 근 20년간 드라마를 쓴 건데, 결국 <따뜻한 말 한마디> 같은 작품을 쓰고 싶어서 지금까지 온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내가 싫어하는 스토리가 출생의 비밀, 얼토당토않은 성공 스토리, 판타지, 신데렐라 스토리다. 이런 것들이 사람들의 정서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우리 결혼할 수 있을까>의 경우에는 우리나라 결혼문화를 지켜보고서, ‘이건 좀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으로 기획한 거다. 그래서 한 커플의 결혼, 한 커플의 이혼 과정을 동시에 보여줬다. 예전에 <종합병원>을 쓸 때, 어떤 시청자가 드라마를 보고 자신이 심근경색인 줄을 알게 되었다면서, 생명을 구하게 해줘서 고맙다고 방송국에 전화를 한 일이 있었다. 드라마는 감정만을 전달하는 매체가 아니라, 이렇게 정보 전달도 가능하다. ‘우결수’ 역시,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결혼문화, 과정들을 현실감 있게 그리면서 어떤 측면에서는 정보도 주고 싶었다. ‘우리 결혼문화, 이대로 가도 좋겠냐’를 묻고 싶었다.

예전에 좋아했던 드라마는 무엇이었나? 김수현 작가의 뒤를 이을 작가라는 평도 들려 오는데.

그건 선생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선생님에게는 범접할 수 없는 영웅 같은 캐릭터가 있다. 난 1등 마인드가 아니다. 행복한 2등이 되고 싶다. 내가 하고 싶은 작품을 쓰지만, 대중과의 접점을 찾고 싶다. 가끔 사람들이 홈드라마는 그만하고 장르물을 해보는 게 어떠냐는 이야기도 하는데, 나는 장르물이 홈드라마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따뜻한 말 한마디>에서 은진이 했던 말과도 교차되는 것 같다. 남편의 특별한 이벤트보다 아이와 집에서 저녁을 먹고 잠을 재워주는 일상이 더 행복하다는.

작품 속에서 사건, 이야기들이 너무 거대해지면서 일상성에 대한 존중이 사라지는 게 아쉽다. 특별한 게 싫다. 일상적인 것, 사람들이 보기에 별 거 아닌데 별 거인 이야기를 쓰고 싶다. 그게 내 지향성이다. 우리 사회는 매일 성공하라고 말하고, 비교하고, 다시 불행해진다. 사람들이 좀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편견을 완화시키는 그런 드라마, 이야기를 하고 싶다. 모두가 드라마를 보는 건 아니지만, 드라마를 보고 삶의 의미를 바꾸는 사람들이 있다. 의외로 많다. 내 삶의 의미를 찾으려고 하고, 발전적인 관계를 꾀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다.

드라마작가는 스트레스를 엄청 많이 받을 것 같은 편견이 있었는데, 인터뷰를 하고 나니 편견이 사라졌다. 작품의 성공, 실패를 떠나 일상을 누리는 법을 아는 것 같다. 행복해 보인다.

시청률 경쟁, 아예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만 웬만하면 넘기는 편이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위가 안 좋아져서 많이 못 먹고, 기분이 안 좋다(웃음). 그동안 방송계에 있으면서 드라마작가로 성공한 사람,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 정말 많이 봤다. 그들이 과연 성공으로 인한 기쁨을 언제까지 누릴까? 결국 사람은 친구랑 가족이랑 사는 거다. 작품이 끝나고 칭찬을 받으면 행복하지만, 그 칭찬 때문에 사는 게 사람 인생이 아니다. 글 쓰는 게 좋다. 많든 적든 세상이랑 원하는 방식으로 소통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행복하다.


[관련 기사]

-<따뜻한 말 한마디> 김지수의 마음을 바꾼 소설
-이민호가 맡은 '최영' 캐릭터에 가장 애착 느꼈다 - 『신의』 송지나
-설레고 아프고 잠 못 들면서 하는 질문, 사랑이 있어? - 『거짓말』 노희경
-송지나 작가가 드라마작가 지망생들에게 건네는 조언
-“삶이 글이고, 글이 삶이다.” - 드라마 작가 노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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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스프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하명희 저 | 북로드
이 소설은 PC통신을 이용해 밤새 대화를 주고받으면서 시작된다. 주인공 현수는 ‘제인’이라는 대화명을 쓰고 그녀의 절친 홍아는 ‘우체통’이라는 대화명을 쓴다. 어느 날 결혼을 앞둔 홍아가 PC통신 요리동호회에 들면서 현수를 끌어들인다. 그녀가 PC통신 요리동호회에서 홍아의 소개로 ‘착한스프’라는 대화명의 남자 온정선을 만난다. 그들은 그렇게 PC통신이라는 공간에서 서로 친해진다. 사랑하면서도 그것이 사랑인지 모르는 바람에 긴 시간을 돌아 운명처럼 만나고…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나영 “작가놀이? 놀이가 아니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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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줏대 없고, 잘 울고, 속 얘기 잘 못하고, 숫자 개념 없고, 결정 잘 못하고, 쉽게 흥분하고, 쉽게 행복해지는 여자, 기분에 따라 달라지는 살짝 즉흥적인 좀 문제가 있는 여자! 그러나 매일 매일 멋지게 살고 싶어 애쓰는 여자.” 방송인 김나영이 첫 책을 펴내며 자신의 프로필에 보탠 글이다. 책 제안을 받고 “작가놀이 한 번 해볼까?” 싶었는데, 쓰다 보니 놀이가 아니었음을, 될 수 없음을 깨달았다는 김나영. 초판이 나온 날, 출판사에서 보내준 30권의 책을 두고 차마 부끄러워서 책장을 펼칠 수 없었단다.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몇 시간을 망설이다가, 친한 친구와 함께 책을 열어 보았다. 친구는 “어차피 너를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책을 볼 거 아냐? 부끄러워 하지마. 좋아할 거야”라고 말했다. 의외로 숫기 없는 여자, 서른 넷 김나영은 첫 책에서 어떤 이야기를 풀어냈을까.

인터뷰가 있던 날. ‘패션 피플’로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는 주인공이니, 당연히 옷 한 두 벌은 준비했을 줄 알았는데, 김나영은 스타일리스트도 없이 거의 맨 얼굴에 가까운 화장을 하고 스튜디오에 들어섰다. “화보처럼 사진 찍는 거 아니죠? 그냥 편안하게 인터뷰한다고 생각하고 왔는데.” 마치 방송을 시작한 지 오래되지 않은 신인 같은 느낌, 김나영의 첫인상이었다. 누군가와 친해지기 위해서는 시간이 조금 많이 필요한 사람, 김나영은 요즘 틈날 때마다 생각한다. “칭찬받는 사람보다는 좋아하는 일들을 오래오래 할 수 있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고. 누군가의 칭찬도 즐겁지만, 스스로를 다독일 줄 아는 사람, 김나영에게 묘한 호기심이 생겼다.
책을 내자는 제의를 받았을 때, ‘내가 책을?’이라고 생각했다. ‘감히 책을?’이라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술렁거렸다. 누군가가 감춰둔 나의 마음을 알아봐준 것 같아서 반가웠나 보다. 똘똘하지는 못해도 띨띨하지는 않다고 속으로는 나를 다독이고 있었던가 보다. 그래, 말은 자신 없지만 책이라면 훨씬 수월하지 않을까. 오글거리는 감정도 감출 수 있고, 흥분하면 높아져 버리는 톤도 들키지 않을 수 있고, 할 말이 생각나지 않을 땐 잠깐 멈추고 흩어진 생각들을 다시 불러 모을 수 있는 시간도 벌 수 있으니… 그래, 책이다! 했다. (『마음에 들어』 p.10~11)



마음을 글로 옮기니, 답이 보였다

처음 생각했던 책 제목이 ‘거지꼴을 못 면해도 좋아’였다고 들었어요.

예전에 박명수 씨가 해줬던 이야기에요. “기획력 있게 잘하지 못하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고. 장난스럽게 한 말인데, 저한테는 좀 꽂히더라고요(웃음). 책에도 썼지만, 꼭 주인공이 아니어도 누군가를 빛내줄 수 있는 사람으로, 그렇게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제가 생각보다 야심이 없는 사람이거든요.

“야심 없는 성품은 사실 크게 될 가능성이 적고, 실패할 확률도 적다”라는 글귀가 인상적이었는데,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하나요?

그런데, 가끔은 ‘내가 정말 야심이 없는 사람일까?’ 생각해요. 야심이 없었더라면 이렇게 변화를 꿈꾸거나 시도하지도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들고 ‘사실은 야심이 있는 사람인가?’ 생각도 하는데, 그냥 물 흐르듯이 방송 일을 한 걸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고요. 성격이 원래 뭐든 금방 잊어버리는 편이거든요. 잠깐 좌절했다가, 금세 훅 털어내 버려요.

지난해 <무한도전> 쓸친소 특집에 출연했잖아요. 남자 출연자와 커플을 정하는 게임에서 유독 쑥스러워하던데. 평소 생각했던 김나영 씨의 이미지와는 달라, 기억에 남았어요. 왠지, 실제 성격과 닮은 모습일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더 적극적으로 게임에 참여해야 했는데, 방송인으로서 부족한 모습이었어요. 잘못한 거죠. 그 때, 여러모로 생각이 많았던 시기였거든요. ‘내가 계속 예능을 해야 하는 걸까?’ 고민도 했고. 사람들은 변화된 나의 모습을 받아들일 준비가 아직 안 됐는데, 나의 마음은 이미 너무 변해있고.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하지 못했던 건, 잘못했다고 생각해요. 정말 멋있게, 적극적으로 해야 했는데 후회가 많아요.

책 속에 비쳐진 모습도 그렇고, 수줍음이 많은 성격인 것 같아요. 굉장히 털털하고 솔직할 것 같았는데. ‘여자 노홍철’이라는 타이틀이 정말 맞는 것 같아요. 노홍철 씨의 실제 성격은 굉장히 따뜻한 사람이잖아요. 사기꾼도 아니고(웃음).

맞아요. 비슷해요. 예전에는 숫기가 정말 없었어요. 그런데 요즘에는 가끔 깜짝깜짝 놀라요. 제가 먼저 다가갈 때도 있더라고요. 평소에 화를 잘 못 내는 성격이에요. 그렇다고 잘 참지도 못하고. 빽 하고 소리를 질러 버리다가도, 동시에 미안한 마음이 들어요.

매니저 분이 “김나영 씨는 연예인 대접을 받는 걸 싫어하는 사람”이라고 하던데요.

평소에 연예인이라는 자각이 없어요. 오늘도 화보 촬영이 아니라고 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왔어요. 자연스러운 게 제일 편하고 좋아요. 아직도 길에서 사람들이 저를 알아보고 그러면, 되게 부끄러워요. 그런데 기분 좋게,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어요. 며칠 전에 여권을 연장하려고 구청에 갔는데 사람들이 엄청 많더라고요. 줄을 서고 기다리는데, 어떤 분이 오셔서 “우리를 즐겁게 해주는 분이신데, 먼저 하셔야죠”라면서 양보를 해주더라고요. 단순히 양보 때문에 좋았던 게 아니라, 누군가를 ‘즐겁게’한다는 사실이 행복했어요.

책을 보니, 메모하는 습관을 갖고 있더라고요. “모르면 적어야 한다”는 말이 정답이라고요?

진심을 알고 싶은 순간에는 말보다 글이 강한 것 같아요. 말을 하면서 생각이 정리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글을 쓰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사람이 있잖아요. 저는 후자인 것 같아요. 뭔가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을 때, 내 마음을 잘 모를 때 무작정 써봐요. 마음을 글로 옮겨보는 거예요. 생각나는 대로 쓰다 보면 마음이 보여요.




할 이야기도, 들을 이야기도 많은 사람이고 싶다

책 속에 사진이 많아요. 패션 때문에 찍은 사진이 주이지만 유독 눈길이 끄는 건, 대부분 노메이크업이라는 사실이에요.

책을 위한 사진을 하루 날 잡아서 집에서 찍었어요. 메이크업도 거의 안 했어요. 집에서 머리 감고 말리고. 일부러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개인적으로 화장 안 한 제 얼굴을 더 좋아해요. 대신 머리 스타일을 바꾸는 건 좋아해요. 지금 이 단발 머리가 작년 파리에 가기 전에 잘랐으니까 8월쯤일 거예요. 작년 한 해만 해도 반삭, 탈색, 긴 머리 다해봤네요. 올해 단발을 계속 고수할지는 잘 모르겠어요.

이제 김나영에게 ‘패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가 됐어요. 패션 피플로 불러진 이후로 달라진 점이 있다면.

일단은 저를 더 사랑하게 된 느낌이 들어요. 아직 모자란 부분이 많지만 그래도 예전보다 자신감도 생겼고요. 어릴 때부터 패션에 대한 관심은 많았어요. 구체적으로 계획하지는 못했지만. 막연한 꿈이었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물 흐르듯 쭉 이어진 것 같아요. 좋은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들이 기획을 해주고. 운이 좋았죠. 박승건 디자이너를 만나게 된 것도 굉장히 행운이고요.

요즘은 언제 가장 행복한가요?

인스타그램 아시죠? 팬 분들이 제 책 사진을 많이 올려주는데, 그런 사진을 보다가 ‘좋아요’를 누를 때가 행복해요(웃음).

책 읽기도 꽤 좋아한다고요.

되게 열심히 읽진 않는데요. 책을 막 사서 모아 놓는 걸 좋아해요. 어떤 책은 끝까지 읽고, 또 중간에 읽다가 그만둔 책도 많아요. 다시 꺼내서 읽어야 하는데, 그러긴 참 어려워요. 서점에 가서 직접 책을 고르는 경우도 있지만, 인터넷서점에서 사는 것도 좋아요. 적립금이 금방 쌓이니까요(웃음). 최근에 재밌게 읽은 책은 친구가 선물해준 『LOVE & FREE』에요. 일본 작가가 쓴 책인데, 마음먹고 집중하지 않아도 잘 읽히더라고요. 얼마 전에 고창 여행을 가면서 읽었던 책이에요.

‘나는 머릿속부터 다이어트 한다’는 챕터도 재밌었어요. 타고나길 마른 체형인 줄 알았더니, 엄청난 노력이 숨겨져 있던데요.

음식을 좋아하고 요리를 즐기는 사람이 쉽게 빠질 수 있는 함정이 ‘군살’이에요. 먹는 걸 줄여보기도 하고 다이어트도 몰래 해봤는데, 결국 제대로 되는 건 없더라고요. 어쩔 수 없이 식욕이 오를 때는 『가공식품의 진실』 『조미료의 진실』 『과자의 유혹』 같은 책을 보면서, 식욕을 떨어뜨리기도 했어요. 여자라면 다이어트는 평생 하는 거니까, 마인드 컨트롤을 해야죠.

대학에서는 아동학을 전공했는데, 우연히 기회로 방송 VJ를 하게 됐어요. 만약 방송을 하지 않았다면 어떤 업계에서 일하고 있을까요?

광고 쪽 일을 재밌어 했어요. 대학 때 광고 수업도 많이 들었고요. 기획을 하다든지, 카피를 쓴다든지, 뭔가 창의력으로 하는 일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방송 일을 아르바이트 개념으로 시작한 거라, 4학년이 됐을 때는 취업을 하려고 했어요. 그래서 토익학원을 며칠 다녔는데, 수업을 듣다 보니까 정이 확 떨어지는 거예요. 지금 토익을 준비하는 분들께는 죄송한 일이지만, 강사 분이 마이크를 끼고 강대상을 왔다갔다 하시는데 정말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고, 너무 어색하더라고요. 토익 수업을 듣고는 ‘아 나는 취직을 할 수 없는 사람이구나’ 깨달았어요. 그렇게 방송 일을 계속 하게 된 거에요. 지금도 토익은 못 하겠어요.

해외 패션위크나 촬영을 가게 되면, 기본적인 회화는 필수일 텐데. 요즘 영어 공부도 하고 있다고요.

영어는 무조건 많이 써보는 게 최고인 것 같아요. 공부를 하긴 하는데 꾸준히 잘 못해서, 해외를 가기 전에는 집중해서 문장을 통째로 외워 버려요. 그러면 어떤 상황에서는 정말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되어 버려요. 문제는 그때 대화가 너무 잘 통했던 사람을 한국에서 다시 만나면, 벙어리가 된다는 사실(웃음). 그래서 꾸준히 하는 게 필요해요. 일부러 집을 청소해주시는 아주머니도 필리핀 분으로 구했어요. 정말 간단한 영어라도 흐름을 놓지 않으려고요.

좋아하는 스타일도 궁금해요. 톰보이 이미지인데, 좋아하는 옷들을 보면 은근히 여성스러운 취향이 느껴지기도 해요.

늘 어딘가에 여성스러움이 숨어 있는 스타일을 좋아해요. 클래식 라인도 좋고요. 패션 스타일을 하나로 정해놓지 않아요. 언제나 열려있고, 과감하게 시도하는 게 좋아요. 다만, 작더라도 여성스러움이 한 요소 정도는 있었으면 해요.

음악하는 남자한테 호감을 많이 느낀다고요. 이성을 떠나 관심을 갖게 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나요?

잘 웃는 사람이 너무 좋아요. 목소리나 발음이 좋은 사람한테 호감을 느껴요. 또 향이 좋은 사람, 예쁘게 밥 먹는 사람이요(웃음). 되게 맛있게 먹는데, 입에 음식을 묻히지 않고 깨끗하게 먹는 사람을 보면 좋아 보여요. 그런데 어떻게 보면, 사람마다 다른 것 같아요. 그게 이상하게 보이는 사람도 있고, 유독 예뻐 보이는 사람도 있고. 예상치 못했는데 목소리가 정말 좋은 사람을 봤을 때도 관심이 가요.

배우 윤여정 씨를 롤모델로 꼽았는데요.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라는 게 있을까요?

나이가 들어도 날씬한 사람이이었으면 해요. 어떤 옷을 입더라도 자유롭게 소화할 수 있는 몸을 갖고 싶어요. 그러려면 정말 부단히 노력해야 할 거예요. 또 바라는 게 있다면, 들려줄 게 많은 사람이었으면 좋겠고, 또 나한테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할 이야기도, 들을 이야기도 많은 사람. 그런 사람이면 좋을 것 같아요.

올해에도 각국에서 패션위크가 열릴 텐데, 참여할 계획인가요?

이번에는 안 가려고요. 특별한 이유가 있다기보다는, ‘내가 두 시즌을 갔는데 또 가는 것이 맞는가’에 대해 약간 의문이 들어요. 그래서 잠깐 쉬었다 가려고요.

연예인이라는 직업이 겉보기에는 무척 화려하지만, 대중의 인기, 관심에 큰 영향을 받기 때문에 불안한 직업이기도 하잖아요. 대중들이 원하는 방송인 김나영과 내가 원하는 모습이 충돌할 때는 어떤 생각을 하나요?

음, 때때로 힘들긴 해요. 방송인 김나영에 대한 편견을 벗기 위해서 새로운 변화를 꿈꾸고, 패션에 관심을 두었는데, 어떤 분들은 “너무 그 쪽으로 간 게 아니냐”고 말하기도 해요. 편견을 깨기 위한 도전이었는데, 저는 또 다른 숙제를 안게 된 거죠. 하지만 그렇다고 방송 일을 그만둘 것도 아니고, 계속 함께 가야 할 사람이니까요. 숙제를 풀어야죠. 대중들이 원하는 모습에 맞춰 가는 것도 맞는 거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원하는 제 모습이 내 안의 진짜 모습과 상충될 때도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내 모습이 아닌 것도 아니니까요. 그래서 우울해지면? 거기에서 즐거움을 찾아야죠. 일과 내 일상이 철저하게 분리가 되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해요.

김나영에게 특별한 관심은 없었지만, 어쩌다 보니 우연한 계기로 『마음에 들어』를 읽게 된 독자가 있다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어요?

(웃음). 그냥 인연인 거니까요. 예쁘게 읽어줬으면 좋겠어요. 마음에 들면 더더욱 좋겠고요.
영혼에 찰랑찰랑 윤기를 주고 싶을 때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이 책이다. 교양 있고 우아하게 나이 들고 싶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도 책이다.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데 갈 수 없는 나를 달래주는 방법도 책이다. 지금은 옷 방이 넘쳐나서 침실 책장 앞이 길쭉한 행어로 가로막혀 있지만 나는 책을 썩 귀하게 여기는 편이다. 책 사는 걸 좋아한다. 보고 싶어서 사기도 하지만 갖고 싶어서 사기도 한다. 그 차이는 구입한 책을 다 읽느냐 마느냐에 달려 있는 것 같은데 그래도 추천하는 책을 보고 대충 사지 않고, 나 혼자서 열심히 읽고 싶은 책을 찾아서 사는 편이다. 단숨에 읽은 책은 신경숙의 『리진』, 사놓고 뿌듯했던 책은 안철수의 『생각』, 두고두고 읽고 싶은 책은 이석원의 『보통의 존재』. (『마음에 들어』 p.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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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들어김나영 저 | 포북(forbook)
이 책은 … 입고, 바르고, 사랑하고, 더 매혹적으로 성장하는 법을 찾아가는 진짜 ‘여자 공부’ 책이다. 또한 방송인 김나영 안에 숨어 있는 인간 김나영의 인생과 여자 되기, 그리고 연애에 대한 솔직한 모습을 보여준다. 자신의 전부를 다 쏟아 부어 터득 중인 김나영의 ‘여자 공부’를 만나 보면, 거지꼴을 못 면하더라도 한 번쯤은 도전해보고 싶은 매혹적인 여자 이야기가 쉴 새 없이, 거침없이 당신을 행복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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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광, “이우 왕자가 살았다면 분단으로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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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소설 『왕자 이우』를 봤을 때 처음 느낀 감정은 의외였다. 왜 그런가는 김종광 작가가 쓴 작품을 비교하면 알 것이다. 먼저 『왕자 이우』에 나오는 장면이다.

 

일본 황족들은 울었다. 조선 왕 이은도 울었다. 이건과 이우는 울지 않았다.
황족들의 의견도 항복과 항전으로 갈렸다.
천황은 조선 왕공족들도 의견을 말해보라고 했다.
이은은 “저희는 그저 천황폐하의 명에 따를 뿐입니다” 했다. (중략)
이우 차례가 되었다. “항복은 필연적입니다. 항복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우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모든 사람을 경악시키는 말을 했다. “일본이 항복하기로 했다면, 조선은 즉시 독립되어야 한다.” (중략) “일왕은 서양제국에 항복하기 이전에, 우리 조선의 독립을 승인해야 한다. 구 대한제국 황실(왕공족)에 통치권 반납 등을 문서로써 확약해야 한다.” (김종광, 『왕자 이우』)

 

『왕자 이우』는 제목 그대로, 조선의 왕자였던 이우를 쓴 소설이다. 그는 1912년 광무제(고종)의 5남인 의친왕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대원군의 장손 이준용이 사망하자 이준용의 양자로 운현궁의 4번째 주인이 되며 ‘이우공 전하’라는 공족 칭호를 받는다. 식민지 시절 일본 육군사관학교에서 군인으로 교육받았으나 민족의식이 투철해 일본을 향한 적개심을 숨기지 않았다. 소설가 김종광이 쓴 『왕자 이우』에서도 그런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소설의 절정 부분에 해당하는 저 장면에서 이우는 일본 천황을 향해 조선 독립을 요구하는데, 비장함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여기서 잠시, 김종광 작가가 쓴 다른 작품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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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을 지키기 위해 정상에 선 똥개를 본 일이 있는가? 인간과 끝없이 투쟁하는 호구산의 똥개! 나는 똥개가 아니라 천연기념물 개이고 싶다. 어디에서나 대접받는 태평천국의 그 천연기념물이고 싶다. (중략) 바람처럼 왔다가 보신탕으로 갈 순 없잖아! 우리 개들이 산 흔적일랑 남겨 둬야지. 갈비 수육으로 가뭇없이 먹혀도 빛나는 불꽃으로 타올라야지. (중략) 개로 사는 일이 허전하고 등이 시릴 때 개로 사는 것을 위안해 줄 아무것도 없는 보잘 것 없는 세상을, 그런 세상을 새삼스레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건 우리 개들의 투쟁 때문이다! (중략) 인간들은 개고기를 사랑한다고 했다. 우리 개들은 사람고기를 먹지 않는다. 인간들은 보신탕을 사랑한다고 했다. 우리 개들은 사람탕을 본 적도 없다. 인간들은 애완견을 사랑한다고 했다. (김종광, 『똥개 행진곡』)

 

눈치를 챈 독자라면 알겠지만, 가수 조용필의 <킬리만조로의 표범>을 개의 처지에 맞게 고쳐 썼다. 평론가 김만수는 그를 가리켜 ‘김유정의 반어, 채만식의 풍자, 이문구의 입담을 가진 소설가’라고 표현했다.『똥개 행진곡』에 쓴 문장을 보면 김만수의 지적에 ‘아!’ 하고 동의할 것이다. 『71년생 다인이』처럼 예외도 있지만 등단작 『경찰서여 안녕』에서부터 근작인 『처음의 아해들』, 『군대 이야기』, 『똥개 행진곡』 등 김종광이 쓴 작품은 능청스러웠다.  『왕자 이우』를 읽는다면 다소 의외라고 생각할 수밖에. 그래서 의례적이면서도 꼭 묻곤 하는 ‘집필 계기’가 이번에는 정말로 궁금했다.


김종광이 왕자 이우에 주목한 이유도 결국은 풍자하기 위해


지금까지 쓴 소설과 다소 다른 소설이다. 『왕자 이우』를 쓰고자 마음먹은 계기가 궁금하다.

 

내가 쓴 소설과 많이 다른가? 2년 전만 해도 쓰리라 생각한 적은 없다. 책 속 ‘작가의 말’에도 밝혔듯, 정범준이 쓴 『제국의 후예들』을 읽었다. 왜 조선 왕조는 깨끗하게 청산되었을까, 그렇게 사람이 없었나, 하고 의문을 품었다. 『제국의 후예들』을 보니, 딱 한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이 죽지 않았다면 뭘 했을 것 같은 생각이 들더라. 그게 바로 이우 왕자였다. 마침 출판사에서 내자고 제안도 와서 썼다.

 

역사소설이 잘 쓰면 재밌으나 쓰기 힘들다. 역사소설에는 항상 역사적 사실과 작가의 상상 사이에 긴장이 있고. 작가의 상상이 역사 왜곡으로 비판받기도 한다. 독자가 어떻게 읽었으면 하고 썼나.

 

100명이 읽으면 99명이 똑같이 생각하고 똑같이 감동하는 소설이 있다. 이를테면 가족 간의 사랑이라든가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오는 이야기. 그런 책도 좋지만 공감하지는 않는데 계속 그 책을 비판하면서도 생각하는 책이 있다. 『왕자 이우』도 이 책을 매개로 역사에 관해 생각하고 비판적인 관점을 세우도록 유도하는 소설이 되었으면 한다.

 

역사소설은 자료 조사를 해야 하지 않나. 어느 정도 했나.

 

책에 공개한 게 전부다. 이우 왕자에 관한 기록이 많지 않다. 신문기사를 보면 어린 시절에는 자세한데 뒤로 갈수록 조선에 입국했다, 신궁을 참배했다, 이 정도밖에 없다. 우선 이우가 스스로 남긴 기록이 없고 앞으로 나올 자료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더는 자료를 찾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1부가 ‘이우 실록’이고 2부가 ‘이우 외전’인데 말이 실록이지 절대 실록이라고 할 수 없다. 순종 장례식날 현금 180원과 트렁크가 없어졌다, 오사카에서 납치 모의하다 검거된 무리가 있다, 기차를 탔는데 충돌 사고가 일어나 정차했다, 이 정도만 사실이다. 나머지는 다 꾸몄다. 실록은 아닌데 어차피 조선왕조실록도 사실이라고 할 순 없지 않나. 사관이 쓴 소설이다. 2부 ‘이우 외전’은 죽은 사람을 산 것으로 가정한 완전 허구다. 그래서 둘을 가르긴 해야 할 거 같아서 앞은 실록, 뒤에는 외전이라고 표현했다.

 

김종광, 하면 풍자다. 이번 소설에는 풍자가 별로 없던데.

 

이 소설도 풍자의 관점으로 쓰려고 했다. 조선 왕가가 나라를 빼앗기고도 귀족처럼 살았다. 방탕하고 부정 저지르면서 친일한 왕족이 많다. 순종도 그랬고. 파렴치한 왕가였다. 이우는 그렇게 했다는 증거는 없다. 그래서 조선 왕조를 풍자하는 관점에서 쓰긴 했다.

 

이우가 살았다면 분단으로 갔을까


이우가 살았다면 어땠을까?

 

해방을 맞고 내전까지 갔다. 대통합 정권을 세웠으면 어땠을까. 혼란스러웠겠지만 전쟁까지는 안 가지 않았겠나. 분단도 안 됐을 테고. 누군가가 구심점이 있어야 하는데 이우가 그런 역할을 했을 것 같다. 나도 왕자, 공주라는 말을 들으면 분노하고 경기를 일으키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최대한 좋게 봐서 대통합의 매개체가 되어서 독립운동가를 다 모으고 정부 형태가 갖춰지면 깨끗하게 물러나는 멋진 사람이기를 바란다. 신문에서 윤동주가 쓴 조서를 봤는데, 그가 이렇게 썼더라. 지금 해방이 된다고 했을 때, 독립투사만으로는 혼란스럽고 나폴레옹이나 가리발디처럼 강력한 군인 장교가 나서서 이끌어야 한다고. 이우도 군대를 조직할 능력이 있었고 이 사람 신분 자체가 지지를 어느 정도 형성할 수밖에 없는 위치였으니까 이끌 수 있지 않았겠나. 단적으로 지금도 대통령의 따님이 대통령이 되는 상황이니 1945년은 더 가능성 있는 시나리오가 아니었을까. 소설을 2년간 쓰면서 이우를 사랑하게 된 것 같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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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종광, 진담보다는 농담이 편한 사람

 

『똥개 행진곡』작가의 말에서, 개 때문에 작가가 되었다고 했다. 사실인가?

 

15살 때 친구 집에 가서 이외수 작가의 『들개』를 3시간 동안 쭉 읽었다. 읽고 나니까 소설가가 되고 싶더라. 소설이 뭔지 느낌이 뭔지 딱 왔다. 소설로 먹고사는 사람이 되겠다는 얘기를 하고 다녔더니 진짜 그렇게 됐다.

 

이문구 작가의 계보를 잇는다는 평가를 받는다.

 

고향도 똑같고 작품에 사투리를 쓰는 시골 사람이 나오니까 그런 평을 받았다. 나에게는 과분하면서도 굴레다. 아무리 잘 써도 내 소설은 이문구 소설의 아류밖에 안 된다. 그래서 이문구 선생님을 극복하려는 마음이 굉장히 강했다. 사실 이문구 선생님 작품과 내 소설이 다르다. 나는 이문구 선생님이 좀처럼 안 쓰는 욕설이나 저속한 표현을 많이 쓰기도 하고. 참 희한한 게 내가 보기에는 다 똑같은 여성 작가의 작품인데, 독자와 평론가는 그 여성 작가의 다름을 봐준다. 그런데 농촌을 소재로 하면 다 이문구다. 한창훈, 이시백, 백가흠, 김종광이 다 다른데 모두 이문구의 아류다. (웃음) 어이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평론가 대부분이 도시에서 나고 자라서 그런 쪽으로는 관심이 없어서일까?

 

나는 소설만 15권 정도 냈다. 작품 수가 많으면 보기 힘드니까 아예 보지 않는다. 3~4권 되면 오늘은 그 친구를 연구해볼까, 하고 연구할 수 있는데 엄두를 못 낸다. 『군대 이야기』도 기대를 하고 썼는데 잘 안 팔린 모양이다. <진짜 사나이> 같은 프로그램은 시청률이 높고 『군대 이야기』는 전혀 안 읽는데 이 역시도 이해가 잘 안 간다.


문장이 능청스러우면서 재미있다. 글을 보면 평소에도 장난 많이 칠 것 같은데, 어떤가.

 

진담은 잘 안 하고 나는 농담만 한다. 집에서도 만날 아이에게 농담만 건넨다. 그래서 처음에는 아내가 굉장히 싫어했다. 이제는 적응해서 괜찮다. 충청도 사투리가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처음에는 기분이 나쁠 수 있다. 경상도 사투리는 직설적인데, 충청도 사투리는 비아냥거리는 것 같다. 욕하는 건지 칭찬하는 건지 헷갈리니까. 글도 그렇다. 풍자의 관점으로 쓴다. 직설적이지 않고 에둘러서 비아냥거리고 조롱하는 느낌이 많이 들어간다. 알아들을 분은 알아듣고, 웃을 사람만 웃어요, 이렇게 쓴다. 그런데 전혀 이해 못하는 분은 화낸다. 『왕자 이우』의 리뷰를 쓴 몇 분 중에도 이런 사람이 있더라. 다소 야한 장면이 등장하는데 그 대목을 굳이 쓴 이유가 로열 페밀리로 살면서 그 사건을 계기로 밑바닥 계층 사람을 만나기 때문이다. 왕자라고는 해도 사람이 본능이 있으니 자연스럽기도 하고.
 
『71년생 다인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진지하다. 진담보다는 농담이 익숙할 텐데, 이 작품을 쓰면서 힘들지 않았나?


내 작품 중에는 유일하게 진지한 소설이다. 생각해 보니 힘들었던 것 같다.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1971년생인데, 『71년생 다인이』에 어느 정도로 자전적인 이야기를 넣었나?

 

지질하고 못나고 멍청한 남자 나오지 않나. 그건 다 나다. 다른 단편에도 꼭 나 같은 사람이 있다. 『처음의 아해들』이 담임 선생님을 모시고 노는 이야기인데 거기에 보면 선생님을 빼도 10명 정도 아이가 나온다. 다른 단편도 대개 그런 식이다. 단편인데도 사람이 많이 나오고 주인공이 누구라고 할 수 없다. 그중에 내가 꼭 있다.

 

올해도 다양한 소재로 독자를 찾아갈 것


『군대 이야기』,『똥개 행진곡』등은 먼저 연재하고 책으로 나온 작품이다. 예스24 e연재, 네이버 웹소설 등 만화 단행본이 웹툰으로 갔듯, 소설을 인터넷으로 옮기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작가가 느끼기에는 어떤가.

 

내 작품에는 무반응이었다. 조회수도 낮았고 댓글도 안 달렸다. 그럼에도 독자의 눈치를 보는데 문제는 독자의 성향이 천차만별이라 쓰는 내내 혼란에 빠져 연재하게 된다는 점이다. 웹진에 연재하더라도, 작가가 자기가 처음에 쓰려고 작정했던 것을 거리낌 없게 쓰는 게 제일 나은 방법인 듯하다. 라이트노벨을 읽는 것보다는 괜찮은 연재소설을 읽는 게 낫지 않을까. (웃음) 그리고 나도 전자책이 좋다. 나무에 미안하다. 전자책으로 전환되면 좋겠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웹진 이런 쪽에 독자가 익숙해지는 게 필요하다.

 

아마존이 한국에 진출한다. 아마존 진출이 문단을 중심으로 짜여있는 한국 문학의 분위기를 바꿀까?

 

그런가? 아마존이 진출하더라도 명품, 화장품 이런 쪽이 경쟁력 있지 책은 글쎄. 다음과 네이버가 살아남지 않았나. 이상하게 우리나라 사람들이 애국심이 강해서 방어될 것 같다. 영화도 살아남은 데가 우리나라밖에 없지 않나.

 

앞으로 나올 작품은?

 

책 한 권 내면 3~4개월 정신을 못 차리는데 이번에는 빨리 쓰고 있다.『똥개 행진곡』느낌으로 담배를 없애려고 하는 사람들과 담배를 피우려는 사람 사이에서 담배 혁명이 탄생하는 작품. 그리고 조선 통신사에 관한 소설. 고전 야담집을 보면 청소년이 주인공이 있는데 이걸 현대소설로 각색하는 작업. 이 3가지를 조금씩 하고 있다.

 

그럼에도 김종광, 하면 농촌과 시골이 떠오른다. 농촌을 다룬 소설은 언제 나올까? 아니나 다를까 계획 중인 작품이 있다고 한다. 『관촌수필』처럼 연작소설이고, 지금까지 썼던 농촌소설의 집대성이 될 예정. 생태계가 건전하기 위해서는 다양성이 필요하다. 김종광 작가는 그런 의미에서 한국 소설의 생태계를 건전하게 하는 작가다. 어느덧 변방으로 밀린 농촌을 여전히 다루는 작가이기에. 그래서 그의 차기작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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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 이우김종광 저 | 다산책방
1945년 8월 6일 원폭이 투하된 히로시마. 그곳엔 일본 군복을 입은 한 조선인 남자가 쓰러져 있었다. 조국의 군복을 간절히 입고 싶어했던 그의 이름은 이우. 그는 고종의 5남 의친왕 이강의 아들로 태어나, 흥선대원군의 장손 이준용이 사망하자 양자로 입적되어 운형궁의 네 번째 주인이 되었다. 8월 7일 니노시마 해군병원에서 눈을 감았을 때, 그의 나이는 불과 33세였다. 『왕자 이우』는 능청스런 입담과 해학으로 이야기꾼으로 주목받아온 김종광 소설가가 김종광만의 문체로 쓴 첫 역사소설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강원국, “노무현 대통령에게 혼날 때 무덤에 묻히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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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겔은 나폴레옹이라는 인물에서 세계정신을 보고자 했다. 독재를 추구한 황제 나폴레옹이 아니라 자유, 평등, 형제애를 추구한 프랑스혁명의 수호자로써 나폴레옹에 반했다. 에릭 홉스봄이 이 시기를 ‘혁명의 시대’로 봤듯, 당시 시대정신은 혁명이었고 혁명은 나폴레옹이라는 인물로 구체적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공동체를 이끄는 지도자와 시대정신을 잇는 작업에는 비약과 과장도 있겠으나, 대의민주주의가 자리 잡은 많은 사회에서 둘 간 연결고리를 찾는 일은 일반적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김영상 정부는 문민정부, 김대중 정부는 국민의 정부, 노무현 정부는 참여 정부, 이명박 정부는 녹색성장, 박근혜 정보는 창조경제, 이런 식으로 각 정부는 정체성과 목표를 표현했다. 정체성은 현재, 목표는 미래인데 시대정신은 양자에 모두 걸쳐 있다.

 

시대정신은 모호한 말이다. 대통령 연설은 자칫 추상적이기 쉬운 시대정신을 구체화하는 데 중요한 도구다. 대통령 연설은 연설이라는 행위가 있기 전에 연설문이 존재한다. 대통령이 하는 연설이지만 대통령이 연설문을 직접 쓰지는 않는다. 초안은 여러 명의 연설비서관이 작성하고, 대통령이 보고 개성에 맞게 고친다. 어쨌든 자신의 쓴 글이 곧 시대정신인 자리, 대통령 연설비서관은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선망하는 직업이지 않을까.

 

한편으로는 힘든 점도 많으리라. 자리가 자리인지라 압박이 굉장할 것이다. 생각해 보라. 글 때문에 학교 선생님에게 혼나는 것과 대통령에게 혼나는 것. 이 둘 중 어떤 게 더 무서울까. 『대통령의 글쓰기』를 쓴 강원국 저자는 “무덤에 묻히는 느낌”이라 표현한다. 게다가 1년 내내 온갖 일정으로 가득한 대통령의 연설비서관이니 제대로 된 휴가가 있을 리 없다. 매력적이면서도 힘든 자리를 강원국은 8년을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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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김대중 대통령을 3년, 노무현 대통령을 5년 모시며 연설문을 작성했다. 두 대통령은 책을 많이 읽고 달변에 달필이라는 점은 닮았으나 연설 스타일이 달랐다. 상황에 맞게 두 대통령 연설문을 작성하며 겪은 일과 경험을 재료로 글쓰기 책을 완성했다. 『대통령의 글쓰기』는 두 대통령을 추모하는 책이라기보다는 기본적으로 글쓰기 교재다.

 

글을 먼저 생각하고 시작했다.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가는 곳을 알아야 떠날 수 있다. 그래서 끝은 중요하다.
글쓰기는 다음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 과정이다.
첫째, 무엇에 관해 쓰지?
둘째, 시작은 어떻게 하지?
셋째, 마무리는 무슨 말로 하지?
이에 대한 답을 가졌다면 글쓰기는 다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125쪽)

 

많은 글쓰기 교재가 이론과 예시를 함께 담듯, 『대통령의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특이한 점은 위와 같은 이론을 설명하면서 드는 예가 역대 두 대통령의 연설문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 책은 글쓰기를 배우려는 독자와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에게 관심이 있는 독자를 모두 만족하게 할 수 있다.


청와대 출근하자마자 연설문 써

 

책을 쓴 계기는?

 

참여정부 3년 차에 노무현 대통령께서 책을 만들어 보라고 하더라. 글쓰기, 말하기 문화를 넓히는 데 일조하라고. 그 말씀을 들은 뒤 8년 만에 썼다. 언젠가는 써야겠다고 했으나 게을러서 미뤘다. 마침 출판사에서 남이 쓴 책을 내다보니, 나도 쓸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말씀하신 게 동기부여라면 출판사에서 일한 게 직접적인 계기인 셈이다.  

 

연설문이 말을 하기 위해 쓴 글이라는 점에서 글과 말을 나누기 어렵다. 그럼에도 제목을 글쓰기로 할지, 말하기로 할지 고민이 많았겠다.

 

여러 의견이 있었다. ‘대통령의 말과 글’, ‘대통령의 언어’를 제안한 사람도 있었고. ‘대통령에게 배우는’이나 ‘전략적 글쓰기’라는 수식을 앞에 붙이자는 의견도 있었다. 최종으로 『대통령의 글쓰기』로 나왔는데 솔직히 맘에 안 들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책도 잘 팔리고, 잘 정했다고 생각한다. 일본어 '노(の)'처럼 '의'가 의미가 모호하다. 문법적으로 맞으려면 ‘대통령에게 배우는 전략적 글쓰기’ 정도가 되어야 한다.

 

연설비서관으로 청와대에 간 계기가 궁금하다.

 

김대중 대통령 때 경제 분야 연설을 쓰던 사람이 관뒀다. 청와대 연설은 연습하고 쓸 수 없다. 4명이 담당하는데, 매일 매일 연설이 있으니 공석이 생기면 누군가는 2배를 써야 한다. 공석 생길 때는 당일에 바로 쓸 수 있는 사람을 찾는다. 나도 출근한 첫날 연설 2편을 썼다. 그래서 이미 연설문을 써서 밥 먹고 사는 사람을 찾는데 한국에 그런 사람이 10명이 안 될 것이다. 찾다 보니, 전경련 연설문을 쓰는 사람이 나였다. 경제 분야라는 점도 같고 해서 물망에 올랐다. 그래서 가게 되었다. 청와대에 인맥이 있다고 해서 일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 글쓰기의 차이


두 대통령 글은 어떻게 다른가.

 

두 사람 차이는 명쾌하다. 노무현 대통령이 남성적이라면 김대중 대통령은 여성적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한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면 도달하기까지 과정을 친절하게 설명하는 스타일이다. 그러니 글이 길다. 김대중 대통령의 연설문은 노무현 대통령 그것보다 두 배 길다. 노무현 대통령은 단도직입적이다. 과정이 필요 없고 결과를 말한다. 오해가 생길 수 있다. 그럼에도 노무현 대통령은 위험을 감수한 스타일이었다. 3대 맞더라도 7대 때리면 된다는 식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운동권 출신답게 내지르는 스타일, 김대중 대통령은 교수처럼 친절하게 설명하는 편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만연체, 화려체고 노무현 대통령은 간결체, 건조체. 노무현 대통령은 반복을 싫어하고, 김대중 대통령은 반복을 좋아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인용을 좋아했지만, 노무현 대통령은 질색했다. 심지어 속담이나 격언도 못 쓰게 했다. 그래도 두 분 다 일화를 드는 건 좋아했다. 수치, 통계보다는 현장의 이야기를 좋아했는데, 문제는 연설문 쓰는 사람이 예화 찾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책상머리에서 생각하는 건 쉽지만, 그런 사례를 발굴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고 거짓말로 쓸 수 없다. 대통령 연설문으로 나가면, 기자가 사연의 주인공을 추적하는 데 거짓말 쓰면 큰일 난다.

 

대통령의 연설비서관으로 글을 썼고, 기업에서도 글을 썼다. 회장의 글쓰기는 대통령의 글쓰기와 어떻게 다른가.

 

2탄으로 쓸까 한다. 명확히 다르다. 대통령은 표를 먹고 사는 사람이라 인기가 중요하다. 국민이 지지하지 않으면 국정 운영을 할 수 없다. 그에 비해 회장은 회사를 소유한 사람이다. 물론 구성원의 동의를 얻고 참여를 이끌어내서 회사를 끌고 가면 성과가 좋다는 건 안다. 그래서 최대한 설득하려고 한다. 그럼에도 ‘하라면 하는 것이지’라는 생각이 깔렸다. 구성원을 의식하느냐 안 하느냐가 대표적인 차이일 것 같다.

 

대통령에게 혼나는 것과 회장에게 혼나는 것, 둘을 비교한다면?

 

회장에게 혼나는 게 더 세다. 회장은 내 생계를 쥐고 있는 사람이다. 대통령도 “잘라”라고 소리를 하긴 하지만, 연설비서관이 엄연히 공직이고 공무원이라서 대통령이 자르라고 자를 수 없다. 대통령도 실제로 자른다는 생각으로 한 말도 아니고. 밑에서도 자르라는 소리로 듣지 않는다. 회장이 자르라고 하면 진짜 잘린다.

 

대통령에게 혼날 때 무덤에 묻히는 느낌


과민성 대장 증후군에 걸릴 정도로 긴장하는 날들이 이어졌는데, 글이라는 게 항상 잘 나오는 건 아니지 않나. 글이 안 나올 때 어떻게 극복했나.

 

항상 마감이 있기 때문에 안 나올 수가 없다. 반드시 나와야 한다. 안 나오면 보통 사고가 아니다. 대통령과 약속한 날짜에 항상 나온다. 그럼에도 진짜 안 나올 것 같은 공포에 싸일 때가 있다. 끝은 얼버무리면 되는데, 뭘 써야 할지 모르거나 서두 쓰기가 막막할 때가 문제다. 새벽 3~4시에 혼자 있을 때도 잦다. 진짜 무섭다.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들면 걷잡을 수 없다. TV를 켜도 소용이 없다. 권력의 손에 죽은 사람이 얼마나 많나. 주변에 이렇게 죽은 원혼이 떠돌 것 같은 느낌도 들고. 그럴 때는 항상 3가지를 취했다. 첫 번째는 지금까지 해결 안 된 적이 없다, 다. 반드시 해결될 것이다는 믿음. 두 번째는 자리를 뜬다. 경내를 돌거나, 밖에 나가서 술을 마시고 들어오면 생각날 때가 있다. 둘 다 안 될 때는, 실제로 그렇게 해도 안 나와서 혼난 적이 있다. 엄청 심하게 혼난다. 물론 대통령이 행사 당일에 말 못하는 경우는 없다. 혼자 가서 즉석에서 하셨다. 한 번 그런 일을 당하면 무덤에 묻히는, 말로 표현하지 못할 그런 걸 느낀다. 그렇게 혼나도 며칠 지나면, 대통령이 불러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나간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게 해결된다.

 

공교롭게도 두 대통령이 돌아가셨다. 살아 계셨다면 어떻게 반응하셨을까?

 

아내가 이야기하더라. 노무현 대통령은 정말 기뻐하셨을 거라고. 본인이 쓰라고도 하셨지만. 본인은 책에 애착이 정말 강했다. 김대중 대통령도 마찬가지였고. 책을 들고 봉하에 갔으면 기뻐했을 것이다. 꼼꼼히 보시고, 지적도 엄청나게 하시겠지. 추측이 아니다. 재임 시절에 노무현 대통령에 관한 책을 몇 사람이 썼다. 이런 게 대통령에 다 보고가 올라간다. 책을 보시고 고생은 했지만 잘 썼다고 한 건 하나도 없었다. 어쨌든 지적은 했겠지만 책 낸 사실에 기뻐하셨을 테다.

 

쓴 연설문 중 가장 잘 썼다고 생각하는 글은?

 

없다. 초안이 그대로 살아남은 게 없다. 초안이 없어지니, 최종적으로 남은 연설문은 내가 쓴 연설문이 아니지. 그래서 내가 최고라고, 최악이라고 할 만한 게 없다. 책에 ‘독회 제도’에 관해 썼는데 조직이든 글 쓰는 사람이든 혼자 골머리 앓지 말고 도입해 보면 좋겠다. 일종의 협업인데 함께 쓰면 훨씬 수준을 높일 수 있다. 청와대 독회 제도를 5년 해보니 효과를 엄청나게 봤다. 자세한 내용은 책을 사서 확인하시길, 인터뷰에서 이야기하면 안 되고. (웃음)

 

청와대에서 나온 뒤 대통령이 연설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나?

 

진짜 안 본다. 광복절, 현충일, 국군의 날이 다가오면 무심코 길을 걷다 흠칫 놀란다. 가위눌리듯, 중요한 연설이 다가오면 잠을 못 자는 악몽을 다시 꾸기도 하고. 군대 다시 가는 악몽과 똑같다. 깜짝 놀라다, 아 이제 난 아니지, 하면서 기분이 진짜 좋다. 이제 그런 거 안 써도 되니까. 가끔 기자들이 전화 와서 이번 연설을 어떻게 평가하느냐고 묻지만, 안 봐서 모릅니다, 하고 대답한다. 내가 미쳤다고 보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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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할 때 가장 필요한 것은 뭘까?

 

세 가지다. 첫 번째는 생각이다. 끊임없이 생각해야 한다. 책상에 앉아서 무슨 글을 쓸지 생각하다 안 나오면 몰두하지 말고 다른 일을 해 보라. 불쑥 생각난다. 둘째, 독서. 셋째, 메모해야 한다. 무엇을 쓸지 알면 구성을 어떻게 할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나머지는 기교다.

 

많은 글을 썼고, 많은 글을 볼 텐데 개인적으로 어떤 글을 좋아하나?

 

사람에 관해서 쓴 글을 좋아한다. 사람에 관해 쓴 글 중에서도. 도전하고 극복하고 이런 내용의 글을 좋아한다. 나이가 들수록 다른 글은 눈에 잘 안 들어온다.

 

요즘 관심사는?

 

글쓰기에 관해서 두 번째 책을 준비 중이다. 글쓰기와 관련한 강연을 할 생각이고. 

 


[관련 기사]

-<따뜻한 말 한마디> 김지수의 마음을 바꾼 소설
-이민호가 맡은 '최영' 캐릭터에 가장 애착 느꼈다 - 『신의』 송지나
-설레고 아프고 잠 못 들면서 하는 질문, 사랑이 있어? - 『거짓말』 노희경
-송지나 작가가 드라마작가 지망생들에게 건네는 조언
-“삶이 글이고, 글이 삶이다.” - 드라마 작가 노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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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글쓰기강원국 저 | 메디치미디어
청와대에서 연설비서관으로 일했던 저자가 8년간 두 대통령에게서 직접 보고, 듣고, 배운 ‘말과 글’에 관한 최초의 책! 대우그룹 회장과 효성그룹 회장의 연설문도 작성했던 저자 강원국은 한국의 정치와 경제 분야 ‘거인’들의 연설문을 책임져 왔다. 연설문의 ‘달인’인 저자는 그간에 온몸으로 체득한 글쓰기 비법을 40가지로 정리했다.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은 총과 칼이 아닌 말과 글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지금이 ‘불통의 시대’이기 때문에 두 대통령이 발휘했던 언어의 설득‘력’에 우리는 다시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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