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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항 “좌파? 진정한 삶의 즐거움을 좇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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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좌파』, 『가장 왼쪽에서 가장 아래쪽까지』, 『나는 왜 불온한가』, 『아웃사이더를 위하여』 등은 모두 김규항의 저서다. 『김규항의 좌판』이라는 제목을 듣고는, 어떤 내용이 담겨있을지 대략 짐작이 되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제목 앞에 ‘우리 시대 에피큐리언들의 26가지 생활양식’이라는 조금 독특한 부제가 붙었다. 에피큐리언은 무엇이며, 생활양식은 무엇일까? 15년 넘게 대표적 ‘좌파’ 칼럼니스트로서 활동하고 있는 김규항은 왜 인터뷰어로 나섰을까?

 

『김규항의 좌판』은 1년여 동안 저자가 전국 곳곳의 진보인사 26명을 만나 그들의 삶의 양식을 묻고 들은 기록이다. 희망버스 시인 송경동부터, ‘강정마을 지킴이’ 신부 문정현, 판화가 이윤엽, 음악가 김두수, 작가 김중미, 기타리스트 윤병주 등. 김규항이 직접 섭외하고 녹취를 풀며, 인터뷰를 진행했다. 26명의 인터뷰이들은 ‘김규항의 좌판’으로 초대되자, 한결같이 모두 머뭇거렸다. “내가 자격이 됩니까?” “쑥스러운데요”라며 흔쾌히 수락하지 않았다. 김규항은 속으로 “인터뷰이를 잘 골랐구나” 싶었다. 김규항은 인터뷰이들을 마주하며, 새삼스런 존경심을 가졌다. 이들은 신념을 위해 행복한 삶을 포기한 사람이 아닌, 행복한 삶을 신념으로 삼은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오늘 좌파는 불안의 아수라에서 자유로운 사람, 남과의 비교가 아니라 제 이성으로 판단하고 선택하며 그 판단과 선택들이 촘촘하게 짜여 ‘제 나름의 생활양식’을 이룬 사람이다. 좌파는 경쟁과 승리라는 감각적 즐거움을 좇아 불안의 아수라를 피하려는 사람들 곁에 피어난, 진정한 삶의 즐거움을 좇는 ‘에피큐리언(epicurean)’이다” (『김규항의 좌판』 6쪽)

 

 

만나고-김규항

 

책 제목이 ‘김규항의 좌판’이다. 살아가는 이야기를 벌여놓은 판에 ‘좌파’의 의미가 보태졌다. 어떻게 기획된 인터뷰인가?


말하자면 ‘좌파의 좌판’이다. 좌파에게 반감을 보이는 사람이든 존경을 표하는 사람이든 좌파에 대한 견해는 비슷하다. 자신의 신념을 위해 행복한 삶을 포기한 사람, 사람들은 이런 견해 때문에 좌파를 자신의 삶에서 분리한다. 이런 생각이 오해라는 걸 보여주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행복한 삶을 신념으로 삼은 사람, 행복한 삶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얼만큼의 불편을 감수하기로 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삼았다.

 

시인, 신부, 판화가, 해고노동자, 다큐멘터리 감독 등 26명의 사람들을 만났다. 인터뷰를 섭외하는 과정에서 인터뷰이들이 한결같이 머뭇거렸다고 들었다.


역설적인 기준이기도 한 것 같다.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하니, 반갑다고 하는 분이 한 분도 없었다. 자신이 자격이 되냐며 민망해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속으로 ‘내가 잘 골랐구나’ 싶었다(웃음). 이미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였던 분들도 많았지만, 인터뷰를 하게 되면 새로운 이야기들을 꺼내게 된다. 사적인 만남이 아니라, 독자를 대변해 질문을 하는 자리니까.

 

인물 선정의 기준은 무엇이었나?


‘인터뷰는 무엇이다’ 라는 주장을 갖고 있지 않지만, 내가 별로 존중하지 않는 사람인데 상대가 유명하기 때문에 하는 인터뷰는 흥미롭지 않다. 외국의 한 유명한 인터뷰어는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만나서 공격적인 인터뷰를 진행하는데, 독자들에게는 좋은 콘텐츠가 되더라도 나에게는 맞지 않는 것 같다.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들은 내가 소개하고 싶은 사람, 그 사람이 가진 사회적인 가치보다 덜 알려진 사람들이다. 『김규항의 좌판』에 소개된 사람들 중에 문정현 신부님이나 김중미 작가님 같이 몇몇 분은 꽤 알려진 분들이다. 하지만 사실은 정작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분들이기도 하다.

 

인터뷰를 하면, 상대의 새로운 면을 보기 마련이다. 어쩔 수 없이 갖고 있었던 편견도 깨지고.


결국, 인터뷰는 뭘 물어보는 가가 중요하다. 어차피 인터뷰이는 질문에 대답을 하기 마련이니까. 『김규항의 좌판』에 소개된 분들이 기본적으로는 굉장히 이미지가 세고, 자기 주장이 강한 분들인 것 같지만, 사실 굉장히 겸허한 분들이다. 한 분야에 지속적으로 헌신하고 활동하는 분들을 보면, 인격적으로 어느 경지에 올라가지 못하면 이렇게까지 하기는 힘들다. 본의 아니게 수행이 된 사람들이다. 분노는 하지만, 화를 내는 모습은 상당히 보기 힘들다. 인터뷰를 하면서 인품을 많이 보게 된 것 같다.

 

26명 인터뷰이들의 공통점을 살펴보면, 개인보다 이웃, 사회를 먼저 보고 언제나 현장에 서 있는 사람들이다.


현장의 기준이 반드시 책상 밖은 아니다. 이를 테면 몸을 움직이는 곳만이 현장은 아니다. 현장은 생명력이 있어야 한다. 책상 위, 책상 밖 등 역할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현장적으로 치열하게 연구를 할 수도 있고 밖에서 투쟁을 할 수도 있다. 어떤 분들은 굉장히 필드에 나와 있지만 안이한 경우도 많다. 책에 소개된 음악가 김두수, 기타리스트 윤병주 씨 같은 경우는 좌파로 분류되는 분들이 아니다. 하지만 이분들 역시 자기 현장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만나고-김규항

 

공통적으로 질문한 내용은 무엇이었나?


인터뷰 말미에 “살기 괜찮아요?”라고 물으면, 모두들 표정이 밝아지면서 “좋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보면 의외일 수 있다. 힘들게 사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많으니까. “힘들지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같은 대답을 할 것 같지만, 대부분 “이렇게 안 살았으면 어떻게 했을까”라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삶의 의미에 대해 고민을 해야 한다는 것, 어떤 문제에 대해 무작정 피해서 살 수 없다는 걸,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느낄 것이다. 한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것 중 하나가 “현실이 어쩔 수 없다”는 말이다. 인문 공부를 그렇게 많이 하고 책을 읽으면서, 결혼할 때, 자녀 학원을 보낼 때, 가정 경제 관련한 문제가 생기면 하나 같이 현실이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그간 쌓은 인문, 교양이 용광로처럼 무너지고 있는 거다. 하지만 『김규항좌판속 사람들은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삶이 생기 있고 자존감이 있었다.

 

실험예술가 이한주 씨가 한 말 중에 “고민을 피하면 삶이 무너지고 말 것”이라는 말이 인상 깊었다. 책에 소개된 사람들은 끊임없이 자신의 고민과 사회를 연결하고 있다.


지금 세상이 그런 것 같다. 자기 삶과 여러 가지 것들을 직시하기가 너무 힘들다. 기본적으로 불안감에 쫓겨 살고 있기 때문에, 성과주의에 급급하다. 그렇게 살다 보니, 멘토라는 사람들이 나와서 사람들의 고민과 성찰을 대신해주고 있다. 보통 사람들은 『김규항의 좌판』사람들을 보고, 굉장히 힘들게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도 이렇게 살기 힘든데, 저 사람들은 남을 위해서 저렇게 노력을 하니 얼마나 힘들까’라고 생각한다. 그 분들을 존경하다고 말하지만 역설적으로는 그 사람들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자신들과 분리한다. 그건 그들의 삶을 반대하는 거다. 존경할 뿐, 내 삶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으니까.

 

‘존경’이라는 표현이 나올 때는 어떤 사람들을 마주할 때인가?


자기 삶의 양식을 가진 사람들을 볼 때, 존경스럽다. 사람들은 불안감에 빠져 있어서 자기 삶의 기준이나 취향, 양식이 없다. 남하고만 비교하고,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휘둘린다. 우월감을 갖고 또 열등감을 갖게 되는 이유다. 이것들에 대한 면역 체계가 삶의 양식이 되는데 돈, 차, 인테리어, 먹을 것 등 내가 살고 있는 사회와 문제에 대해 자기 관점이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뭐라 하든 휘둘리지 않는다. 우리 나라에서는 극우보고 우파라고 해서 문제인데, 고전적인 우파적 가치인 충성, 명예, 자존심 등이 있는 사람들을 보면, 우파라고 하더라도 삶의 양식이 있기 때문에 멋있다.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할 때, 행동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무엇인가.


어떤 의미가 앞선다기보다, 시간이 지나도 내 마음이 편한 쪽으로 선택한다. 남이 볼 때는 비장한 선택을 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데, 선택을 그르치게 되면 그만큼 값을 치른다. 자기 스스로를 존경할 수 없기 때문에 무엇으로도 보상 받을 수 없다. 나는 그럭저럭 쪽 팔리지 않게 살아간다에 불과하지만, 사람들이 말하는 현실적인 선택, 즉 두고두고 값을 치르게 되는 선택을 하면 결국 마음이 괴롭다. 즐겁지 않다는 거다. 창피하지 않은 선택을 하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이런 건 사회적 명성과는 관계가 없다. 원거리에서 보면 삶의 양식이 있어 보이는데, 옆에서 보면 없는 사람들도 많고, 굉장히 평범해 보이는데 근사한 삶의 향기가 나는 사람이 있다.

 

김규항의 좌판』에 소개된 사람들이 근사한 삶의 향기가 나는 사람이 아닐까.


삶의 양식에 있어서는 소박하고 초라할 수 있지만, 자세히 보면 근사한 집처럼 보인다.

 

 

만나고-김규항

 

자발적으로 읽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나

 

‘기차길 옆 작은학교’를 꾸리고 있는 김중미 작가는 “어른이 되어서도 작은 집에서 가난한 사람들끼리 모여 살고 싶은 꿈을 꿨다”고 했다. 지금의 삶이 “어릴 적 꿈을 이룬 셈”이라고 말한 게 인상적이었다.

김중미 작가 같은 분들은 빈민운동을 하는 게 ‘예수의 실천’ 이런 게 아니라, 그냥 좋은 거다. 이런 삶이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이가 성장할 때 어떤 영향을 받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다. 크고 높아지고 많아져야만 행복한 게 아니니까. 우리가 현재 갖고 있는 가치관이나 생활습관은 상당 부분이 학습된 거다. 김중미 작가 같은 삶이 무조건 좋고 이상적이라는 게 아니라, 완전히 반대쪽으로 키워지고 있는 아이들의 미래가 안타까울 따름이다.

 

요즘은 책임감이 강한 사람들은 아이를 못 낳는다는 이야기도 한다.


어떤 것이 옳으냐의 기준으로만은 버티기 힘들다. 하지만, 어떤 것이 아이가 행복해 하는가, 어떤 게 좋은 삶인지를 생각하면 접근이 가능하다. 내 자녀가 대학 입시를 안 해서, 사람들은 부모의 교조적인 생각 때문에 다른 인생을 산다고 오해하는데, 좌파 우파가 중요한 게 아니라 아이가 행복한가가 중요하다. 어떤 게 행복인가에 대한 고민을 안 하는 게 지금 사회의 가장 큰 문제다. 아이를 만들어놓고 이런 고민을 하지 않는 건, 어른이 아니지 않나. 고민은 안 하고, 할 줄 아는 건 불안해 하는 것밖에 없으니 모두가 지친다.

 

어린이 교양지 <고래가 그랬어>이야기를 듣고 싶다. 어른을 위한 칼럼집 10권을 쓰는 것보다 <고래가 그랬어> 한 권이 더 의미가 있다는 말을 했는데.


2003년부터 발행하기 시작했으니 벌써 10년이 넘었다. 초등학교 2학년이 넘어서부터 좀 편하게 보는 것 같지만, 1학년인데도 다 아는 거라고 말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중학생인데도 어렵다는 이야기를 한다. 며칠 전에 제주도에 사는 후배 집에 놀러 갔는데, 후배 아들의 친구가 이 집에 올 때마다 <고래가 그랬어>를 그렇게 열심히 봤다고 한다. 결국 부모를 졸라서 구독하게 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서점 판매량은 그리 많지 않지만, 정기 구독자 수는 꽤 많다. <고래가 그랬어>에는 일반 정기구독과 사회적 구독 ‘고래동무’가 있는데, 고래동무에서는 구독을 하면, 잡지가 보육원, 공부방, 탈북자 시설, 분교 같은 곳으로 전달된다. 고래동무 구독의 경우에는 한 권을 수십 명, 수백 명의 아이들이 보는 셈이니까 발행 수 대비, 독자들이 많은 편이다.

 

제호 <고래가 그랬어>의 의미는 무엇인가.


재밌게도 이 질문은 꼭 어른들만 한다(웃음). 놀랍게도 10년 동안<고래가 그랬어>를 본 아이들 중에 이 질문을 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이 질문은 어른의 감각인 거다. 나라도 물어봤을 것 같다. 그런데 아이들은 잡지 이름의 뜻이 무엇인지 궁금해하지 않는다. 아이들에게는 “웃기네” “재밌네”, 이러면 되는 거다. 어른들을 위해 의미를 보태면, 생태 어쩌구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아이들은 친근하게 여기고, 우리 편 같다는 생각을 하면 그게 좋은 제목이다.  우리 역시, 그런 의미 정도로 남겨 놓으려고 한다.

 

10년 전, 초창기 <고래가 그랬어>는 어떤 모습이었나? 아이들도 성장하듯이, 잡지의 성장도 있었을 것 같은데.


창간호를 내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보통 ‘좋은 어린이책’이라고 하는 책들은 학부모나 교사들이 좋아하는 책이지, 아이들이 좋아하는 책이 아니질 않나. 나름 열심히 만들었는데<고래가 그랬어>를 보니 딱 그 모습이었다. 깔끔한 텍스트에 좋은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이건 어른이 좋아하는 어린이책의 모습이었다. 옛날로 보면, 평론가들이 별을 높게 매기면 ‘이 책은 재미없겠구나’ 생각한 것처럼. 창간 초기, 故 이오덕 선생님이 출간에 깊숙이 개입하셨는데, <고래가 그랬어>에 만화를 많이 넣게 되면서 싫어하시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무척 좋아하셨다. 이오덕 선생님은 우리말, 우리글을 중시하는 게 아니라 민중언어를 중시하는 분이셨다. 어른이 좋아하는 책이 아닌, 아이들이 좋아하는 책이<고래가 그랬어>의 목표다.

 

자녀의 독서교육에 있어서는 부모들의 관심이 줄지 않는다. 아이들의 독서, 어떻게 접근하는 것이 현명한가?


최종적으로 말한다면, 아이가 책을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부모가 인정해야 한다. 사람의 모습과 성향, 성격은 굉장히 다르다. 책을 통한 인문적 깨우침은 성숙의 한 방법일 뿐이지, 전체는 아니다. 옛날 어르신들은 책은커녕 학교도 한 번 다니지 못했는데, 인간이나 삶, 생태에 대한 깊은 사유가 있지 않나? ‘사람이라는 게 말이야~’ 같은 철학적인 이야기를 하는 분들도 다 옛날 어르신들이다. 요즘 사람들은 인문 도서를 정말 많이 읽는다. 그런데 놀랍게도 하나같이 “현실이 어쩔 수 없다”는 말만 한다. 이런 말만 하는데 왜 그 많은 책이 필요한지 모르겠다. 불안감에 찌들어 책을 읽을 뿐이지, 달라지는 게 없다.

 

아이가 책을 좋아하게 하기 위해, 일부러 부모가 아이 앞에서 책을 읽는다는 말도 있다.


그것도 개연성이 있지만, 부모와 자식이 다를 수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부모가 인문적 정서로 똘똘 뭉쳐있더라도 아이는 책을 싫어할 수 있다. 아이가 책을 좋아했으면 하는 부모의 욕망은 어떻게든 드러나게 되어 있다. 이러면 아이한테는 독서가 숙제가 되는 거다. 자발적으로 읽지 않는 책이 무슨 양식이 되겠나? 정보 같은 건 이야기할 수 있지만, 마음에 깊게 들어오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독서를 너무 빨리 하는 것도 문제가 된다. 속도와 양으로 자랑하는 사람들도 많다.


386세대부터 젊은 인텔리 부모들을 보면, 책을 지나치게 많이 읽는다는 생각도 든다. 오랜 기간에 걸쳐 쓰여진 인문서적을 하루 이틀 만에 읽고 리뷰를 쓰는 걸 보면, 뭔가 기괴하다는 느낌이다. 이런 시대일수록 한 권의 책을 오랫동안, 느리게 읽어서 거기에 들어 있는 사유와 형성된 결들을 발견하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김규항의 좌판』에 소개된 김하은 동화작가가 한 말이 기억난다. “가장 좋은 책은 불편함을 주는 책, 한 번 더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책”이라고 말했다.


동의한다. 불편함의 범주에 있을 때, 인상 깊은 책들이 많다. 지금 현재의 나에게 쾌감을 주는 게 아니라, 자꾸 뭔가를 건드려서 내가 괜찮다고 생각했던 부분을 의심하게 만드는 것, 불편하지만 그걸 보게끔 하는 책이 읽을 이유가 있는 게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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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시인에게 가장 큰 영향 받아


칼럼니스트 김규항 앞에는 언제나 ‘B급 좌파’라는 말이 따라붙는다. 2002년 저자가 펴낸 책 제목이기도 한데.

글의 제목, 책의 제목이었을 뿐인데 왜 이렇게 불리는지 모르겠다. 즐겁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불편하지는 않다. 글을 쓰기 시작할 때부터 인텔리들의 어떤 사고, 우스꽝스러운 속성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글 쓰는 사람들은 왜 구름 위에 앉아 있나? 왜 자기 이야기는 안 하지? 이런 불만이 많았다. 글을 쓰면서부터는 김수영 시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내가 읽은 김수영은 모두 자기 이야기부터 시작한다. 읽기 민망할 정도의 이야기부터 시작하는 태도가 인상적이었다. 남을 욕하려면 내 이야기부터 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한국 지식인들에게 그런 면이 부족하다. <씨네21>에 글을 쓸 때, 나 스스로 ‘꼴에 지식인이랍시고’, ‘어쭙잖게’라는 의식이 많았다.

 

38세 나이에 뒤늦게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전업으로 글을 쓰는 사람치고는 늦었다고도 볼 수 있는데. 글을 쓰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1998년도에 <이매진> 이라는 문화잡지가 있었다. 기자를 하던 후배가 펑크 난 원고를 때워달라는 연락을 했는데, 술김에 승낙을 했다. 그 후로 <씨네21>에서 일하던 선배가 글을 계속 써보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해서, 당시 번역가 일도 끊기도 해서 칼럼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썼던 글은 어떤 내용이었는지 궁금하다.


당시 록 담론이 유행이었는데, 왜 자꾸 모범생, 인텔리들이 록에 깃발을 꽂으려고 하는지 화가 나서 그런 이야기를 썼던 것 같다. 고등학교 때 드럼도 치고 국악도 했는데, 내 입장에서는 기분이 나빴다(웃음). 뭔가 어려운 록 이론을 제시해서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든다는 글을 쓴 기억이 난다.

 

요즘, 자꾸만 쓰게 되는 글의 주제는 무엇인가?


기본적으로 아이들 문제다. 교육 문제는 여러 가지 사회 문제 중 하나가 아니라 최전선이다. 좌우도 없고 괴멸된 상태다. 최근 세월호 사건을 겪으면서 많은 분들이 빠져나갈 곳이 없다는 생각을 한다. 이 같은 사건이 끊임없이 불거지고 있지만, 현실에 대한 분노가 과거를 망각시키고 있는 것 같다. 과거의 기억과 현실이 병행되어야 하는데, 과거를 망각하기 위해 지금의 현실에 집중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다.

 

중앙 언론지의 1면을 쓸 기회가 주어진다면, 쓰고 싶은 글이 있나. 


우리 애들이 죽어가고 있다는, 그런 이야기를 해야 하지 않을까. 그보다 더 의미 있는 이야기는 없는 것 같다. 우리는 아이들이 되도록이면 불행하지 않게, 너무 가난해질 까봐 아등바등하고 불안해 하는데, 그런 걱정의 결과는 전체 아이들을 불행하게 만든다. 아이들이 불행한 사회에서 내 아이만 행복할 방법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 어른스럽지 못하지 않은가.

 

『김규항의 좌판』을 누군가에게 선물을 한다면, 어떤 사람에게 주고 싶은가.


사는 게 답답하고 불안한 사람들, 되도록 현실적인 선택을 하려고 하는데 해답이 안 나오는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다. 26명의 사람들은 뭔가 특별하고 헌신적인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꼭 그렇게 불안해 하지 않아도 적은 걸로도 즐겁게 살 줄 아는 사람이다. 『김규항의 좌판』을 다른 말로 한다면, 진짜 사랑과 우정을 누리면서 사는 사람들의 사례집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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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항의 좌판김규항 저 | 알마
『김규항의 좌판』은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에 길든 일상적 상식에 균열을 일으키는 예술인들, 그리고 첨예하고 격렬한 저항의 자리에 섰던 활동가들과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한 책이다. 어쩔 수 없는 현실에 대해 말하는 이들과 달리 말이 아닌 행동으로 내일을 향해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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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병권 “앎에는 두 가지 차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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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와 화폐, 민주주의를 종횡무진 탐구하며 앎을 추구해온 고병권이 11번째 책을 냈다. 책 제목인 『철학자와 하녀』에서 보듯 이번 책의 소재는 철학이다. 원래 KB레인보우 인문학에 ‘시민의 철학’이라는 이름으로 연재한 글로, 철학자나 철학 개념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에게 철학은 무엇인가라는 주제를 다뤘다.

 

<교수신문> 2월자 칼럼에서 권경우 평론가는 그를 일컬어 ‘거리의 철학자’라고 칭했다. 실제로 고병권은 다양한 장소에서 사람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장애인, 해고노동자, 밀양송전탑 현장 활동가 등과 만나고 대화하고 사유한 결과물은 『살아가겠다』로 나왔다. 『철학자와 하녀』역시 ‘현장’, ‘거리’를 강조한다. 철학은 관념에 머무르는 게 아니라 지금 시대, 이곳과 끊임없이 맞닥뜨려야 한다는 게 고병권의 신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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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제목은 탈레스의 우화에서 따왔다. 철학자 탈레스가 별을 보며 걷다 우물에 빠졌는데, 하녀가 이를 보며 비웃은 것이다. 하녀는 철학자가 하늘을 보는 데 열심이지 발치 앞에 있는 것을 알지 못한다고 조롱했다. 반면 소크라테스는 하녀 같은 사람들이 공중에서 아래를 보는 데 익숙지 않다고 비웃는다. 이렇듯 철학자와 하녀 사이에는 높은 벽이 있다. 둘이 화해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둘의 소통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서로 조롱하고 적대하면서 철학과 가난한 사람이 함께 불행하다면, 역설적이게도 각자의 구원은 서로에게서 오는 게 아닐까. 삶의 절실함과 대면하면서 철학자는 새로 철학을 배우고, 앎의 각성을 통해 가난한 사람들은 삶을 새로 살지 않을까. 나는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위대한 탈레스를 재치 있게 조롱했던 총명한 하녀가 어느 밤 다락방 창문을 열고 밤하늘의 별을 보았다면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7쪽)

 

철학은 내가 어디까지 나로 멀어질 수 있는지를 일깨워주는 앎


책 제목이 『철학자와 하녀』다. 지금 여기의 철학자는 누구인가?
 
일단 내가 철학과를 나온 게 아니라 조심스럽다. 도대체 철학자가 누구냐, 철학자가 뭐 하는 사람이냐를 스스로 물어본다. 철학 학위를 가진 사람, 철학책을 쓰는 사람? 아니라고 생각하고, 아니어야 한다고 믿는다. 사실 플라톤부터 대부분의 철학자는 철학을 전공하진 않았다. 대학의 특정 학과가 분류한 지식이 철학이라면, 철학이 삶에 필요할까?


철학은 뜻 자체로는 앎을 향한 사랑, 앎과 우정을 맺는 것이다. 앎에는 두 가지 차원이 있다. 하나는 정보와 지식을 축적하는 것. 칸트가 이런 말을 했다, 헤겔이 이런 말을 했다, 이런 정보 차원의 앎이다. 나머지 하나는 다른 차원이다. 깨우침. 깨달음, 일깨움이라 할 수 있다. 단 하나의 정보를 보더라도 다르게 보는 것. 예를 들어, 어제는 무심히 본 뉴스인데 오늘 보니까 못 견디겠다는 식으로 기존의 자기가 깨지는 것이다. 첫 번째 차원은 어떤 학문이나 다 해당된다. 철학이 첫 번째 앎이라면 거기에 관해서 나는 할 말이 별로 없다. 두 번째 차원인 일깨움, 다르게 보는 경험이 철학이라면 철학은 내가 어디까지 나로부터 멀어질 수 있는지를 일깨워주는 앎이다. 나를 일컬어 철학자, 인문학자라고 하는데 기본적으로는 철학자, 인문학자라는 말을 좋아하진 않는다. 집에 걸려 있는 옷이 이 옷밖에 없으니 안 맞아도 입는다. 기왕 입을 거라면 낯설게 입어보고 싶었다.

 

지금 여기의 하녀는?

 

하녀는 넓은 의미에서 가난한 사람들이다. 돈이 없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자유가 없는, 도덕적인 명예를 박탈당한, 추방된 존재들을 넓은 의미에서 가난한 사람들이라 칭했다. 이런 사람들과 공부할 기회가 있었다. 이들은 지금 삶과 다른 걸 꿈꾸는 열망이 있으나 앎을 만날 기회가 많지 않았던 사람들이었다. 조심할 건, 철학자가 앎을 갖고 있고 이 앎을 가난한 사람에게 건넨다는 식으로 오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하녀에게는 하녀의 진리가 있고, 철학자에게는 철학자의 진리가 있다. 저마다 부족한 점, 바꿔야 할 점이 있다. 특히 하녀는 공허한 이야기를 경고하는 사람이다. 하녀와 마주침에서 철학자가 선물을 받을 수 있다.

 

첫 번째 영역의 앎, 즉 지식의 축적이라는 면에서는 대학이 떠오른다. 하지만 ‘일깨움’이라는 두 번째 앎의 영역을 대학이 이끌어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수유너머R도 그렇고 오래 전부터 제도권 밖에서 연구를 계속해오고 있지 않나.

 

대학이라고 해도 좋고, 학계라고 해도 좋고, 지식인라 해도 좋다. 거기서 생산되는 앎의 생산 방식, 소통 방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는 질문이라면, 답은 이렇다. 내가 좋아하거나 지지했으면 그쪽으로 갔겠지. 물론 그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는 잘 모른다.

 

제도 바깥에서 공부하게 된 이유는, 대학에 맞서 싸우겠다는 거창한 게 아니라 소박하게 삶의 출구를 찾기 위해서다. 자유보다 소중한 게 출구다. 계속 공부는 하고 싶고, 돈은 없다. 대학 교수가 되면 좋겠지만, 내가 고를 수 있는 자리도 아니고. 그렇다고 대학이 앎을 생산하는 데 좋은 자리라는 확신이 안 섰다. 그런 가운데서 살 길을 찾았다. 비슷한 생각을 하는 동료와 밥 같이 먹고 공부한다. 다만 이런 이야기는 하고 싶다. 


대학은 지식을 축적하는 데 월등히 유리하다. 대학은 어마어마한 자료를 갖고 있다. 우리는 논문 하나 받으려 해도 ID가 없다. 두 번째 차원인 일깨움에서는 우리가 유리하다. 대학에는 비슷한 종류의 사람, 비슷한 문화, 특정한 아비투스를 공유하는 사람이 모여 있다. 그곳에서 깨지는 경험을 하기가 쉽지 않다. 대학이 세속의 먼지와 소음으로부터 떨어지면서, 지식을 축적하는 데는 유리한 조건을 구성했는지 모르지만 일깨움이라는 차원에서는 스스로 충격으로부터 자신을 고립시키고 봉쇄한 측면이 있다. 


대학에서 많은 논문이 나오지만 세상에 별 일이 안 일어난다. 대학, 연구하는 사람에게도 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대학이 우리 사회에 유익한가 아닌가를 떠나서 대학이 공부하는 사람에게 공부하기 좋은 곳인가, 하는 의문을 던져보지 않으면 연구자에게도 안 좋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시장터로 나가야 하는 건 아니지만 두 가지가 적절하게 필요하다. 대학은 위기다. 돈이 안 들어와서 위기가 아니라, 두 번째 앎의 차원에서 위기다.

 

지식의 습득만을 보장해주고 인식 주체로 하여금 길을 잃고 방황하도록 도와주지 않는 그런 지식욕이란 무슨 필요가 있을까. (133쪽)

 

인문학의 한계, 무력함을 생각해야


강신주를 대중철학자로, 고병권을 거리철학자로 비유한 칼럼이 있었다. 

 

과장이다. 나도 길거리에 있지 않다. 여기(수유너머R)에 있다. 『살아가겠다』는 책을 내면서 그런 호칭이 생긴 것 같은데. 강신주 선생님에게 팬도 많지만 안티 팬도 많은 듯하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와 강신주 선생님이 공부하는 내용이 얼마나 다를까 싶다. 얼마나 다르게 쓸 수 있을지,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인문학에 복잡한 감정을 느낀다. 인문학이 학과가 없어지는 등 안에서는 죽고 밖에서는 뜬다. 인문학이나 철학이 전문 분야로 고립되어 가는 것도 좋아 보이진 않는다. 다만 두 가지 생각이 든다.


인문학이라는 담론이 대개 가족주의, 단란한 가정을 상정한다. 중산층 위주다. 인문학이 원래 그런지, 아니면 우리 인문학의 문제인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다른 한 가지. 인문학은 해석학이다.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세계관이 나온다. 프로이트 이야기를 하면, 소녀를 진단해서 신경증이라고 진단하고 정신분석으로 치유했다고 생각했는데 돌아가자마자 6개월만에 죽었다. 알고 보니 실제 종양이 자라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듯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해석학 때문에 앓는 병도 있지만, 실제로 종양이 있을 수 있다. 이럴 때는 해석학적 처방이 아니라 생리적 처치를 받아야 한다.

자신의 한계, 유약함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지 않으면 인문학은 쓸데 없는 학문일 수도 있다. 오히려 무력함, 한계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인문학은 원자폭탄보다 위험할 수도 있다. 철학, 종교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나.

 

1980년대가 사회과학의 시대고, 1990년대 넘어오면서 인문학이 각광 받는 것 같다. 원래 전공이 사회학인데, 점점 인문학자로 자리매김하는 느낌이 든다. 시대적 변화에 적응한 것일까?
 
그런 구분은 무의미하다. 사회과학이냐 인문학이냐 이런 걸 염두에 두지는 않는다. 최근에 나온 『살아가겠다』, 『언더그라운드 니체』그리고 『철학자와 하녀』까지 해서 인문학스러운 책이 나왔지만 『점거 새로운 거버먼트』『민주주의란 무엇인가』는 사회학적 성격이 강하다. 사회과학이 인기 없어진 건 사실인 듯하다. 그럼에도 『세상물정의 사회학』같은 책이 인기를 끌기도 하고, 이렇듯 사회학에도 또다른 무엇인가가 있을 거라 생각한다. 1980년대가 사회과학의 시대라고 했지만 동시에 문학의 시대이기도 했다. 굉장히 많은 사람이 철학 공부를 하기도 했고.


나 개인으로 보면 화학에서 사회학으로 이동했고, 사회학에서는 철학에서 다루는 니체를 읽었다. 화폐로 논문을 쓰기도 했고, 니체로 쓰기도 했다. 궁금한 걸 따라서 일관되게 왔다. 화학에서 사회학으로 왔던 친구가 있었는데 원래 화학과로 돌아갔다. 니체 공부했던 사람 중에서도 몇몇은 그만 뒀다. 끊어진 사람은 내가 아니라, 그 사람들이었다. 분과학문 체계에 갇히면 궁금한 것이 끊어진다. 모든 질문에 분과학문마다 저마다 답이 있겠지만 대화할 수 있다.


딱 잘라 구분할 수는 없겠지만 인문학, 사회과학 이렇게 두 부류의 책을 냈는데 독자 반응은 어떤가.


분야에 상관 없이 앞에는 잘 팔리고 최근에 낸 책일수록 잘 안 팔린다. (웃음)


이번 책에서 니체를 언급하며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다루기도 했다. ‘가치의 전도’일 텐데. 우리사회에서 전도된 가치는 무엇인가.


어느 시대나 모든 사유의 과제는 가치 전도다. 우리 사회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있을 것이다. 이걸 시험해 봐야 한다. 우리 사회는 자본주의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이름이 있다는 건 가치체계가 있다는 뜻이다. 우리가 새로운 사회, 삶을 살고 싶다면 가치 체계를 전도하는 것과 관계 있다. 우리 사회에 뭐가 제일 중요한지를 물어보면, 모르겠다.


니체는 ‘모든 것의 가치전환’이라는 표현을 종종 썼는데, 한마디로 말하면, 우리에게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이 반대로 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는 지혜로운 자는 저렴한 비용으로도 잘살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세상 사람들이 비싸게 치는 것을 그는 별로 높이 보지 않고, 그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세상 사람들은 소홀히 하니, 아주 저렴한 비용으로도 귀중한 것들 것 쉽게 모을 수 있다는 것이다. (102-10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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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유너머가 오래 버틸 수 있었던 이유


칼럼에서도 썼지만, 수유너머가 10년을 넘게 버텼다. 어떻게 오랜 시간을 유지할 수 있었을까.


아까 말했듯, 삶의 출구였다. 각자 직업이 있고 수유너머가 하는 활동 중 하나였다면 오래 못 갔겠지. 안 할 수가 없었다. 안 하면 살 길이 없기에. 갈 데가 없고 살아갈 수 없고 훌륭한 동료를 만날 수 없었다. 별 수 없다, 어쩔 수 없다는 말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가 좌절이고 또 하나는 포기조차 사치스럽다는 뜻이다. 수유너머는 어쩔 수 없는 사람이 많았다. 이곳이 출구였던 사람이 대다수였다. 대학개혁, 인문학의 전파, 이런 대의를 위해서였다면 아마 3년 안에 다 박살 났을 것이다. 여기가 자기구원하는 곳이고, 자기구원의 방식을 사회와 연결하며 출구로 삼았기에 오래 가지 않았을까. 2009년에 없어졌지만 다시 비슷한 걸 만들었다. 


수유너머N과 수유너머R은 어떻게 다른가?


가장 큰 차이는 스타일이다. 사상이 다르면 함께 살 수 있다. 사상은 전향하면 되니까. 레프트가 뉴 라이트가 될 수 있다. 물론 사상 전향도 비전향 장기수에서 보듯 어렵긴 하다. 그렇지만 진짜 바꾸기 어려운 게 스타일이다. 새벽형은 올빼미형과 살 수 없다. 밥 같이 먹고, 공부 열심히 하는 건 비슷하지만 스타일은 저마다 다르다. 흥미로운 건 N은 밤에 사람이 많고, R은 낮에 많다. 상대적으로 N은 좀 더 학문적 활동에 관심이 많고 R은 여기 근처에 살면서 아기도 같이 키우고, 이게 스타일 차이다. 약간 방점이 다르다. N과 R은 친하다.


세월호를 대하는 우리의 윤리적 자세


세월호를 둘러싸고 의제가 많다. 신자유주의, 종교 부패, 국가의 무능 등 시간이 흐르면서 의제도 바뀌고 새로 등장하는 이슈도 있다. 어떻게 보나.


솔직히 잘 모른다. 다만 이 사건에 대한 윤리적 태도에 대해 말하고 싶다. 우리가 감당 못할 사건을 겪으면 강력한 고통, 불쾌를 겪는다. 이것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그래서 이 감정의 원인을 빨리 찾으려 한다. 선장, 해경, 그리고 대통령까지 갈 수 있다. 하지만 빨리 가면 안 된다. 겪어내야 한다. 더 끄집어 내야 한다. 빨리 찾아내서 덮으면 못 볼지도 모른다. 세월호 사건은 워낙 예외적이지만, 예외적 사건 속에서 우리 사회를 다 본 거다. 예외가 아니라 정상을 봤다. 예외적 시공간 속에서는 일상의 연속성이 깨지는 순간 얼마나 깊이, 멀리 갈 수 있느냐에 따라 사회가 이동할 수 있다. 문제를 극소화해서는 안 된다.


『살아가겠다』를 쓰면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삶의 영역, 생명의 영역이 위태로워졌다는 걸 느꼈다. 2000년대 이후 등장한 구호가 ‘해고는 살인이다’, ‘여기 살고 싶다’ 등으로. 평화, 생태, 생명을 강조하는 구호가 많아졌다. 이 시기에 촛불집회에도 여학생이 많이 등장한다. 생명 영역이 위험에 빠져 있으니까. 생명이 원래 여성 영역이다. 외주화, 상품화해선 안 될 영역이 팔려가고 있다. 우리가 얼마나 위험해졌는지를 깨달아야 한다. 다만 자칫하면 이런 사건으로 911을 겪은 미국이 재난부터 테러까지 대처하기 위해 비대한 감시 기구를 만들었듯, 우리도 그렇게 될까 봐 걱정스럽다. 이 문제에 관해 깊이 생각해 보진 않았다.


서구사회에서는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 담론이 있지 않았나.


울리히 벡이 단순하게 말하진 않았겠지만 위험사회 담론의 문제는 안전에 구원이 있다고 착각하게 한다는 점이다. 안전이 대안은 아니다. 안전을 강조하면서 이제 테러와 자연재해를 구별할 수 없게 돼버렸다. 이 두 가지를 함께 다룬다는 점에서 재난과 테러가 정치화된다. 불안을 매개로 해서 권력이 어마어마하게 커질 수도 있다.


곧 지방선거다. 민주주의를 고민한 지식인으로서 한 마디 부탁한다.


우리나라나 세계적으로 봐도 생활 이슈, 정당 정책을 제대로 반영하는 선거는 없었다. 지금 구조는 인기 투표다. 이런 구조에서 인기 투표 하면 안 된다고 하는 건 허망한 이야기다. 시선을 역으로 돌렸으면 좋겠다. 누가 뽑히느냐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어떤 거번먼트냐가 중요하다. 거번먼트가 삶의 한 영역일 뿐인데 지금은 너무 중요해졌다. 사람 한 명을 잘못 뽑으면 사회가 아작 난다. 이상이겠지만 정치인이 크게 뭔가를 할 수 없는 사회가 좋다. 제도를 어떻게 바꾸고 어떤 세력이 권력을 차지할지도 좁은 의미의 정치이지만 우리 현실을 우리가 어떻게 꾸릴 것인가가 정치다.


솔직히 세월호 사건 없었으면 안전 이슈도 없었을 것이다. 민주당이 집권했으면 잘했을까? 아니다. 이런 사건을 겪을 때 멘탈리티, 기본 심성이 시프트 한다. 그래서 이런 사건은 소중하다. 그런데 패러다임 시프트에 관심이 없다. 이 영역에 관심이 중요하다. 비전을 정책과 제도로 어떻게 번역해야 할까를 고민하는 사람이 정치가다. 변화를 이끌어내고 어떻게 실행하는 건 시민이다. 이것을 개념으로 풀어쓴 사람이 철학자다. 각각의 사건을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정치가가 제일 중요하진 않다. 시민도, 철학자도 중요하다.


민주주의는 다양한 스타일이 공존할 수 있는 체제


많은 책을 냈다. 주제도 다르고 글쓰기 스타일도 다르다. 어떤 스타일의 글, 주제를 좋아하나.


지금까지 낸 책이 11권이더라. 『언더그라운드 니체』는 굳이 말하자면 학술적이다.『살아가겠다』는 약간 사회학적이다. 『철학자와 하녀』는 좁은 의미에서 대중적이다.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를 쓰면서 진짜 중요한 게 스타일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학술진흥재단에서 연구비를 받은 연구 글인데, 결론을 쓸 때 결론에 반대하는 게 민주주의라고 생각했다. 


학술글 포맷이 답답하고 반민주적이라 갑갑하더라. 결론을 바꾸기 시작했다. 여러 스타일을 시도했다. 민주주의는 사상의 문제이기 이전의 스타일의 문제다. 여러 다른 스타일이 함께 있을 수 있다. 스타일에 다수와 소수가 없다. 모두 소중하다. 카프카의 단편처럼 짧은 이야기도 써 보고, 선문답 형태로도 써 보고, 아이를 위한 동화로도 써 봤다. 학술 서적인데도 없는 책도 인용했다. 왜냐하면 민주주의는 현행이 아니라 도래하는 것에 대해서도 개방적이니까. 노인, 아이, 동물을 등장시켰다. 민주주의는 남녀노소, 인종을 넘어서야 하기에.

정해진 스타일은 없는데 앞으로도 내 스타일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요즘 부러워하는 스타일은 루쉰의 짧은 산문. 그게 안 될 것 같다. 글을 그렇게 쓰려면 그렇게 살아야 하는데 흉내낼 수 있는 글이 아니다. 참고로 원래 스타일이란 말이 라틴어로 단검에서 유래했다. 펜이 칼보다 강한 게 아니라 원래 펜이 칼이다. 루쉰의 글이 그렇다. 루신의 문장에 맞으면 아플 것 같다. 니체와 루쉰이 통하는 점이다. 피로 쓴 걸 먹으로 가릴 수 없다는 공통점이 그것. 지식과 깨우진 진리는 차이가 난다. 그런 면에서 책을 너무 많이 읽으면 성냥개비 같은 사상가가 된다. 누가 머리를 그어주지 않으면 타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최신 사상, 최신 사상가를 좇으려는 노력이 고병권의 글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듯하다.


요즘은 오히려 오래 전으로 떠났다. 18세기, 19세기로. 최신 사상가가 틀렸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들에게 소중한 문제의식이 있다. 동시대인이고 살아 있는 사람이니까. 게다가 요즘은 한국에도 오고 이메일로 대화할 수 있다. 동시대인과 대화하는 건 소중하다. 확실히 해둘 사실에는, 사상에는 국경이 없고 세상에 좋은 말은 부족하지 않다는 점. 체험되지 않은 사상은 훌륭한 말로 시작해서 훌륭한 말로 끝난다. 피와 살이 안 된다.


니체, 화폐, 민주주의 등 관심사가 많은데 최근에는 어디에 관심이 있나.


마르크스다. 계급, 이데올로기, 역사, 비판 등 마르크스로부터 온 단어가 많다. 이 단어에 익숙하지만 그것을 두들겨 보고 싶었다. 마르크스가 말한 의미를 내가 제대로 이해했느냐가 아니라, 마르크스의 개념을 비틀어 보고 싶다. 역사보다는 비역사, 가치보다는 무가치에 관심이 있다. 그러면서 프로이트로부터 많이 얻고 있고 최근에 칸트가 좋아졌다. 작업이 언제 끝날지 모르겠지만, 좀 오래 걸릴 듯하다. 그 동안은 사회로부터 조금 거리를 두려고 한다. 지금은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하고 모호하다. 생각의 싹 같은 게 핀 것 같은데 죽을지 살지 잡초인지 뭔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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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와 하녀고병권 저 | 메디치미디어
철학은 ‘새로움’의 공부다. 자기계발과 위로의 인문학이 체제에 편입하기 위한 공부라면, 철학은 나의 생각을 점거했던 체제와 이데올로기를 부수는 공부다. 준비가 필요 없는, 당장 시작하는 공부다. “공부를 위한 공부는 필요하지 않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이 책은 36꼭지 글을 통해서, 철학으로 개인과 사회의 삶을 어떻게 바꿔나가야 할지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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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범신 “노작가가 쓸 수 없는 파격 소설?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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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작 은교를 펴낸 뒤, 박범신 작가는 자신의 고향인 충남 논산으로 내려갔다. ‘홀로 가득 차고 따뜻이 비어 있는 집’이라는 집필실에서 ‘홀로’ 글을 쓰고 있다. 주말에는 아내가 있는 서울 집으로 올라오지만, 대부분의 일상은 논산의 고요함과 함께한다. 박범신은 논산을 배경으로 한 전작 『소금』을 쓰고 난 뒤, 더 이상 쓸 이야기가 없다고 생각했다. 작가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다는 건, 가장 절망적인 일. 박범신은 은퇴를 생각해 볼만큼 고통스러웠다. 갑자기 할 말이 없어진 느낌이 들어, 나날이 늙어가는 걸 체감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박범신은 서울 부암동의 한 식당 간판 ‘소소한 풍경’을 만난다. 불현듯 말하고 싶은 것들이 떠올랐다. 명확하진 않지만 분명한 단상이었다.

 

문단 데뷔 41년을 맞은 박범신의 41번째 장편 소설 『소소한 풍경』은 한 남자와 두 여자, 즉 세 남녀의 사랑을 다룬 작품이다. 이들의 관계는 삼각관계와 같은 평범한 감정이 아니다. 하나의 ‘덩어리’로 이뤄진 사랑, 누구도 구속하지 않는 상태의 세 사람의 동거는 현실에서는 불가능할 것으로 여겨지는 사랑이다. 사랑일지, 욕망일지, 좀체 정의 내릴 수 없는 세 사람의 이상한 사랑에 독자들은 혼란스럽다. 동시에 호기심을 갖는다. 모호한 이들의 관계는 과연 무슨 감정일까. 작가는 “『소소한 풍경』은 사랑에 대한 갈망이 가득한 소설”이라고 말했다.

 

5월의 어느 날, 평창동 한 카페에서 박범신 작가와 마주했다. 젊은 사람들이 즐겨 신는 스니커즈를 신고 나타난 박범신 작가. “직접 사셨어요?”라고 물으니, “어떤 아가씨가 선물해줬어”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작가는 인터뷰 내내 “나도 이 소설을 잘 모르겠어”, “독후감을 많이 듣고 싶어”, “노작가가 쓸 수 없는 소재라고 말할 순 없지”라며, 작품에 대한 애착을 드러냈다. 언제까지나 위태로운 작가이고 싶다는 그는 노련한 화자인 동시에 영원히 늙지 않는 감성을 툭툭 내던졌다.

 

만나고-박범신

 

사랑에 대한 갈망이 가득한 소설

소소한풍경


2012년 겨울 『소금』을 쓰고 난 뒤, 좌초했다고 밝혔다. 소설 쓰기를 아예 그만둘까를 생각하기도 했다. 그렇게 지난한 시간을 보낸 후 쓰게 된 작품이 『소소한 풍경』이다.


절필하고 소설을 다시 쓴 게 1996년이다. 그간 다양한 소설을 썼지만 일관되게 가지고 있었던 문제는 인간의 존재론적 번뇌였다. 은교도 그렇지만, 등산 이야기인 『촐라체』도 결국 인간의 본원적인 갈망에 대한 이야기다. 『고산자』도 김정호 이야기이지만 사회정치적인 환경 속의 김정호만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번뇌, 그리움을 그렸다. 15년간 나는 존재론적 이야기에 갇혀 있었고, 이후 새 출발을 하는 마음으로 『비즈니스』, 『나의 손은 말굽으로 변하고』, 『소금』을 잇달아 썼다.

 

세 작품은 전작들과는 다르다. 자본주의 폭력성에 대한 사회비판이 많이 담긴 소설이었다. 이렇게 연달아 쓰고 났더니, 웬만한 이야기는 다한 것 같아서 갑자기 할 말이 없어진 느낌을 받았다. 절실하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없으면, 작가는 글을 쓸 수 없다. 고통스러웠다. 논산에서 시간은 남는데, 절실하게 해야 할 말을 찾지 못하니 괴로웠다. 더 이상 할 말이 없으면, 은퇴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무렵, 서울에 와서 밥을 먹으러 부암동을 갔는데, ‘소소한 풍경’이라는 음식점 간판을 봤다. 간판을 읽고는 불현듯 말하고 싶은 게 떠올랐다.

 

‘소소한 풍경’이라는 단어가 준 단상은 무엇이었나?


명백하지 않지만, 아직 내 안에 할 말이 남아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야말로 나를 회생시킨 거다. 세상에 대해 할 말이 있는 한, 사람은 늙지 않는다. 부르짖고 싶고 하소연하고 싶은 게 있으면, 육체는 늙어도 영혼은 생생하다. 나날이 늙는 것 같아 우울하던 찰나였는데, 구체적인 이야기는 떠오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깊은 우물 밑에서 물방울이 포르르르 올라와서 수면 위에서 팡 터지는 느낌을 받았다. 노화가 정지된 느낌이었다.

 

제목은 따뜻한 느낌이지만, 소설은 파격적인 사랑 이야기다.


‘소소한 풍경’에서 신호는 받았지만,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바로 알지 못했다. 다시 논산에 내려가서 쓸쓸하게 누워있다가, 삶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에너지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 봤다. 자본주의적 욕망 말고, 어떤 에너지가 있을까? 자문해보니, 사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은 사랑에 대한 욕망으로 삶을 운영하는 게 아닐까? 그렇게 『소소한 풍경』이 시작됐다. 근원적인 사랑의 갈망이 우리를 살게 하지만, 살아 생전에는 가질 수 없는 그런 사랑에 대한 슬픔을 말하고 싶었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독특한 사랑을 한다. 삼각관계로 보이지도 않고, 서로를 구속하지도 욕망하지도 않는다. 이것이 사랑일까? 의심을 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서로를 사랑한다고 생각하고 결혼을 하지만, 구체적인 사랑을 완성했다는 느낌은 없다. 사랑은 갈망 속에 있을 뿐인지, 현실 속의 사랑을 완성했다고 하는 건, 불가능한 꿈이라고 생각했다. 『소소한 풍경』이 시작된 이유다. 완전한 사랑에 대한 강력한 갈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 속에서는 사랑을 이루지 못하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이 소설은 어쩌면 사랑에 대한 갈망이 가득한 소설이다. 매 순간 우리가 갖지 못하는 사랑의 불모성에 대한 고변일지도 모른다. 사랑의 불모성에 대한 저항을 뒷받침해주는 건, 삶의 유한성이다. 영원히 살 수 없다는 것이 사람을 변하게 한다. 우리는 모두 죽기 때문에 스스로를 제한할 수밖에 없다. 이 소설의 밑바닥, 백그라운드에 ‘죽음’이 있는 까닭이다.

 

『소소한 풍경』이 사랑의 불완전성에 대한 고발이라고 생각해도 되나?


그렇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을 거다. 이 소설을 쓰기까지 세 개의 탑을 쌓아 올렸다. 죽음, 사랑의 불완전성에 대한 고발, 일대일과 다자관계. 우리 사회는 결혼이라는 사회제도를 통해 일대일 관계를 유지한다. 인간은 유약해서 사랑을 끝내 지켜낼 만한 용기가 없으니까, 결혼이라는 제도에 의탁한다. 하지만 정신적인 일대일 관계는 이미 끝났다. 이미 결혼한 부부들의 머릿속에서도 일대일 관계는 이미 깨졌다. 각자에게는 파트너가 있지만, 다른 사람을 마음에 품을 때도 많지 않나? 일대일 관계가 50년씩 원만한 부부로 지켜져 갈 때, 너무나 많은 희로애락의 억제가 필요하다. 이건 폭력일 수 있다. 일대일 관계는 윤리로서의 억압이 필요하다. 인간 본연의 관점에서 보면 폭력적일 수 있다. 폭력 말고 좋은 말이 있으면 좋겠는데, 모르겠다.

 

만나고-박범신

 

언제까지나 위태로운 작가이고 싶다


“내가 그동안 수십 권의 소설을 썼으니 얼마나 플롯에 질렸겠냐 (중략) 작가가 자유로운 상상력을 갖고 있다고 여기는 건 단순한 생각이야. 작가들은 관리자에 가까운 표정을 갖고 있어”(94쪽) 등, 작품 속에서 플롯에 대한 이야기가 종종 등장한다. 자연스레 작가의 얼굴이 떠올랐다. 『소소한 풍경』에서 보여준 플롯의 파괴에서 작가의 욕망과 의도가 읽혔다.


현대소설은 철저히 인과론에 의해서 쓰여진 작품이다. 막장 드라마는 인과론도 없지만. 엄격하게 노벨이라고 부르는 작품에 있어서는 인과론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소설 쓰기도 삶이랑 같다. 논리를 부여하지 않으면 삶을 이어나갈 수 없다. 모든 관계에도 플롯을 부여해야 한다. 나 역시 평생 소설가로 살았으니, 의미를 만들어내고 구조를 만들어냈는데 플롯으로부터 벗어나고 있는 욕망이 지금도 나를 사로잡고 있다. 『소소한 풍경』은 사랑을 플롯으로 보지 않으려는 욕망으로 가득한 소설이다. 반항적인 느낌으로 읽어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는 이유다. 우리는 현실에서 어떤 사람을 나의 애인으로 정하면, 다음 날 아침 사랑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아도 상대를 보러 가야 한다. 본질적인 사랑의 불꽃을 플롯에 의탁하고 사는 거다. 플롯조차 없으면 일주일도 어렵다. 시간을 연장하는 비겁한 방식일 수 있다.

 

작품 속에서 충분히 플롯을 벗어났다고 생각하나?


깨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스스로는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플롯을 완전히 벗어나서는 쓸 수가 없었다. 내밀한 플롯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형식에 대한 욕망은 지금도 여전하다.

 

이전 소설을 쓸 때와는 다른 쾌감을 느꼈을 것 같다.

쾌감도 있었지만 매 순간 당황스러웠다. 어떻게 쓸지 모르겠어서. 소설집이 나오고 기자들이 두 가지를 지적하더라. 첫째는 나이. “당신 나이가 일흔이 다 됐는데, 소재나 주제가 늙은 작가가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건 잘못된 생각이다. 늙은 작가가 어디 있나? 작가에게는 나이가 없다. 젊은 작가, 늙은 작가 그런 건 없다. 나에게는 강력한 문학 순정주의가 있기 때문에, 나이에 합당한 소설을 써야 한다는 한국식 정서에 굴복할 마음이 전혀 없다. 나는 언제까지나 위태로운 노인으로 살고 싶다. 작가니까.

 

두 번째 지적은 무엇이었나?


일흔을 앞두고 있는데, 형식을 파괴하고 싶은 욕망이 아직도 있냐는 것. 이것도 우문이다. 청년작가이기 때문에 내게는 당연한 거다. 영원한 거다.

 

문장에 대한 감수성은 여전히 젊다.


감수성은 늙는 게 아니다. 나이에 합당한 어떠한 권위를 갖고 싶은 생각은 없다. 여전히 내가 늙지 않고 있는 건 사실이다.

 

만나고-박범신

 

작품이 작가에게 주는 예언적 기능


소설 속 주인공은 “권태야말로 살인자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작가에게도 권태는 절대악이지 않나?


『소소한 풍경』을 쓰기 전, 약 2년간 원고가 나오지 않을 때 그런 생각을 했다. 원고를 안 쓰면 나를 죽일 것 같았다. 권태를 느끼면 가출도 해보고, 술도 마시고, 산도 가보고 다양한 시도를 한다. 논산으로 거처를 옮긴 것도 삶의 안락에서 벗어나기 위함이었다. 권태로우면 자학이 온다. 자학의 밑바닥에는 거대한 우울이 있다. 자기 학대를 하지만 그것이 자신을 완전히 죽이지는 못한다. 그 때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는 게 있으면, 원고를 쓰게 된다.

 

주인공의 스승은 “글을 쓰다 보면, 다가올 인생을 미리 알고 있다는 서늘한 느낌을 받는다”고 말했다. 작가도 그러한가?


작가 스스로에게도 작품이 주술적으로 작용할 때가 있다. 『은교』를 쓰기 전에는 늙어가는 고통이 나를 온통 사로잡고 있었는데, 그 고통의 정체를 몰랐다. 매일 울고 싶고 매일 화나고, 소리 치고, 사춘기 소년 같았다. 마치 폭탄주를 30잔 정도 마신 것 같은 정서였다. 늙어가는 그런 슬픔을 견디다가 『은교』를 쓰고 내가 누구였는지를 알게 됐다. 늙어가는 문제를 어떻게 맞닥뜨려야 할지 알게 됐고, 완전하진 않지만 마음이 편해졌다. 『은교』를 쓴 후, 내가 어떻게 늙어가겠다는 걸 알았다. 극복했다는 것보다는 내가 늙음을 어떻게 맞이하고 대응하겠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니, 어찌 보면 작품이 예언적 기능도 있는 거다. 『소금』은 늙은 아버지를 변호한 것 같지만 결국 나를 변호한 것이다.

 

『소소한 풍경』을 쓰고 나서, 깨달은 바가 무엇이었나.


이 소설의 정체가 뚜렷하진 않지만, 내가 죽을 때까지 사랑의 불완전성에 대한 슬픔을 극복하지 못할 거라는 사실은 확실히 알게 됐다. 알기 전까지는 내 안에 꽃피고 있는 사랑의 불꽃을 실현하려고 했다면, 이 소설을 쓰면서 사랑은 죽을 때까지 완성할 수 없고 꿈꾸는 것들은 헛것에 불과하다는 걸 깨달았다. 내 앞날에 사랑의 불완전성에 대한 슬픔이 가득하겠구나, 싶었다. 하지만 이미 알았기 때문에 그 슬픔으로 나는 죽지 않을 거다. 알고 가는 것과 모르고 가는 것은 다르다. 그 슬픔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쓴 게 아니라 쓰면서 알게 됐다.

 

논산에서 살지 않고, 서울에서 살았더라면 이 소설을 쓸 수 있었을까?


소설 속 배경인 ‘소소시’는 공주를 생각하면서 쓴 거다. 거기서 홀로 쓸쓸하게 있던 기억들을 모티프로 따왔다. 주인공들이 사는 집도 격리된 외딴집 아니었나? 논산에서 혼자 살지 않았다면, 쓸쓸하고 가난한 밥상을 경험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안 썼을지도 모를 소설이다.

 

만나고-박범신

 

위태로운 작가로 살고 싶다


소설이 3개 챕터로 이뤄졌다. ‘혼자 사니 참 좋아’ ‘둘이 사니 더 좋아’ ‘셋이 사니 진짜 좋아’. 더좋다고 말하지만 동시에 같게 느껴지기도 하다.


혼자 살아도 사랑을 완성할 수 없고, 둘이 살아도 완성할 수 없고, 셋이 살아도 결코 완성할 수 없으니 슬픈 거다. 독자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지만, 셋이 살아도 결국 사랑을 완성하는 건, 불가능한 꿈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한다.

 

작가는 이중 생활을 하고 있지 않나? 논산에서는 혼자, 서울에서는 아내와 함께. 어떤 삶이 더 자유로운가?


평일에는 논산에 있고 주말에는 서울에 간다. 사흘 정도 논산에 있으면 정말 좋다. 자유롭고. 서울에서는 아내와 둘이 지내는데, 아내가 나를 제한하는 건 없지만 그래도 맞춰서 살아가야 하는 부분이 있지 않나. 하지만 논산에서 며칠 있다 보면 밥도 제대로 못 먹고 고독하니까 아내에게 오고 싶다. ‘둘이 사는 게 역시 좋아’ 이런 생각이 든다. 사람은 누구나 그런 것 같다. 나는 지금 혼자 사는 삶과 둘이 사는 삶을 갈팡질팡 왔다 갔다 하는데, 작가의 내적 긴장을 높이는 데는 좋은 것 같다. 상상력의 동력이 될 수 있다.

 

최근 인터뷰에서 “사랑 없는 존경보다 존경 없는 사랑을 받고 싶다”고 말했다. 나이가 들면 존경에 대한 욕망도 들지 않나?


존경과 사랑이 전혀 다른 감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진실한 사랑에는 진실한 존경이 있다. 우리 사회에서 존경이라고 하는 것에는 권위에 따른 존경이 너무 크다. 나이 많은 사람,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그 권위에 따른 합당한 존경을 받으려고 하는데, 사랑을 받으면 존경도 받고 있다고 느낄 거다. 나는 40년을 오직 소설만 써온 작가라는, 그런 식의 나이에 합당한 존경은 원치 않는다. 사랑, 존경 두 가지를 모두 갖고 싶지만 굳이 한 가지를 선택하려면 사랑이다. 진실한 사랑에는 존경이 있으니까.

 

1970, 80년대 최고 인기작가였지만, 1993년 돌연 절필을 선언하고 에베레스트, 안나푸르나 등 히말라야를 여섯 차례 다녀왔다. 3여년의 절필 기간이 없었더라도 지금까지 소설을 쓸 수 있었을까?


아마 쓸 수 없었을 가능성이 많다. 인기작가 시절의 질주를 따라갔으면 좌절했을 거다. 절필은 자기 죽음에 대한 선언이었다. 그 선언을 통해서 작가로 새로 태어났다고 느낀다. 현실적인 기득권은 잃었지만 내 인생에서 좋은 선택이었다고 믿고 있다. 절필한 건 아니었지만, 『소금』을 쓰고 난 후의 2년간은 내게 절필 시간과 같은 느낌이었다.

 

만나고-박범신

 

사회적 존재로서의 자아와 작가로서의 자아가 충돌할 때는 없나?


내게는 두 개의 사람이 있는 것 같다. 사회적 자아, 정치적 자아, 아버지로서 갖는 책임으로서의 자아와 창조적인 자아. 사회적 자아에 대한 책임감은 크다. 내 삶에서 개인사가 잘 여민 건, 사회적 존재로서 내가 갖고 있는 성실성, 책임감에 의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걸로 나의 문학적 세계를 포장하는 문제에 있어서는 강력한 저항감을 갖고 있다. 예술적, 창조적 자아로서는 삶의 어떤 양식을 깨뜨려서 가고 싶고, 매우 위태로운 작가로 살고 싶다. 양다리를 걸친 사람? 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앞서 “할 말이 있지 않는 한, 늙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금 마음속에 갖고 있는 할 말은 무엇인가.


작가의 말에도 썼듯이, 삶의 비밀스러운 밑바닥을 그려보고 싶다. 『소소한 풍경』은 내가 썼지만, 나조차도 이 소설을 다 알고 있지 못한 느낌이다. 어떤 문장들은 분명히 내 밑바닥에서 가져온 예시를 갖고 썼지만, 해설을 잘하지 못한 문장이 있음을 느낀다. 때문에 해석의 여지가 많은 작품이다. 말은 애매하지만, 관리자에 가까운 작가의 마음으로 쓰겠다는 것이 아니다. 우리 자신도 모르는 우리의 문제들, 삶의 가장 본연적인 비밀에 대해 쓰고 싶다. 그게 나의 소망이다.

 

작가에게 지금 한 권의 『소소한 풍경』이 있다면, 어떤 사람에게 선물하고 싶은가?


소유라는 욕망으로 자기 사랑을 해치는 사람. 아마, 대부분의 사람이 그럴 거다.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그 사랑으로 자기 감정을 해치고 있는 사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자기 사랑을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이 읽으면 좋지 않을까. 소유라는 감정은 사랑의 최대 적이자 에너지다. 잘 쓰면 좋지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오히려 사랑을 해친다. 어린 아이에게 장난감을 주면 모두 부숴버리지 않나? 젊은 이들도 마찬가지다. 사랑을 주면 다 부숴버린다. 우리에겐 본질적으로 이런 것을 넘어서려고 하는 욕망이 있으니까. 이런 욕망을 느끼는 사람이 읽는다면, 가깝게 다가오지 않을까.

 



소소한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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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풍경박범신 저 | 자음과모음(이룸)
도대체 이런 사랑도 가능한 것일까. 한 남자와 두 여자가 있다. 정확히는 한 여자와 한 남자 그리고 또 다른 여자가 있다. 이 셋이 서로를 사랑한다. 한 여자와 한 남자가, 한 남자가 다른 여자와, 한 여자가 다른 여자와 그리고 셋이서 함께. 삼각관계도 아니고 파트너를 추가하거나 맞교환하는 게임도 아니다. 그렇다면 그 사랑은 도대체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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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엽 “고도성장 끝난 한국 사회에 필요한 건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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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글 쓴 사람은 잊히고, 문장만이 남을 때가 있다. “노무현 정부는 왼쪽 깜박이를 켜고는 줄곧 우회전해왔다”도 그런 문장 중 하나다. 이 말을 누가 최초에 했는지는 아는 사람보다는 모르는 사람이 많고, 아는 사람 중에서는 서강대 손호철 교수가 한 말로 기억하는 이도 있다. 사실 이 문장은 2004년 9월 23일 <한겨레>에 김종엽 한신대 교수가 최초로 썼다. 좀 더 정확히 쓰자면, 원문은 “내 보기에 노무현 정부는 왼쪽 깜박이를 켜고는 줄곧 우회전해왔다”이다.

 

사회학이라는 다소 건조한 학문을 연구하면서도 김종엽 교수의 문장에는 무릎을 탁 치게 하는 수사가 넘친다. 그의 문장은 수십 년간 여러 매체에 사회 현상을 분석하면서 단련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좌충우돌』은 2003년부터 2012년까지 써온 칼럼을 묶은 책이다. 이 시기는 일반적으로 좌로 분류하는 노무현 참여정부와 우로 분류하는 이명박 정부가 집권한 때이기도 하다. 제목이 ‘좌충우돌’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월호 사건으로 시끄럽고 지방선거를 앞둔 5월, 한신대 연구실에서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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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건에서 유념해야 할 것


어떻게 지냈나.


강의도 중반 이후로 넘어갔고 날씨도 포근해서 평화로운 일상이어야 하지만 세월호 때문에 심란하다. 돈을 조금 보내고, 분향소 들렸다. 그외에는 일반인이 할 수 있는 게 없다. 사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글을 써 보자 해서 썼고 관련 자료를 찾아보고 있다.


나중에 물어보고자 했지만, 말이 나온 김에 질문해 보겠다. 세월호를 둘러싸고 의제가 바뀌는 것 같다. 사기업의 잘못, 국가의 대처, 이제는 종교 문제까지 나왔는데 사회학자로서 어떻게 보고 있나.


언급했던 의제 모두 일리 있다. 다만 학자가 이런 경우에 조심해야 한다. “거 봐라, 내가 말한 게 맞았지?” 이런 태도다. 사태를 이해하는 데도 문제를 해결하는 데도 도움이 안 된다. 신자유주의를 비판한 사람 관점에서 보면, 선령 제한을 철폐한 신자유주의적 조치 때문이라고 할 것이다. 관료개혁을 요구한 사람이라면 관피아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참여정부 인사라면, 청와대 재난관리 시스템을 이명박 대통령이 없애고 박근혜 대통령이 제대로 복원 안 한 것에서 원인을 찾을 것이다. 맞는 지적이긴 한데 지식인이 이 사태로부터 배우는 게 더 중요하다. 아직 이야기되지 않은 부분을 밝히려 노력해야 한다. 결론이 쉽게 나더라도 들쳐 보면, 간단하지 않다. 가령 선령 제한 철폐도 그렇다.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리다. 선령을 제한하는 나라가 그리 많지 않다. 선령 제한을 지난 정권이 풀었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검사가 안 되는 상황이 더 문제였다. 이렇게 좀 더 복잡하게 봐야 한다. 비정규직 문제도 그렇다. 이준석 선장이 계약직이고, 계약직이 충성심이 약하다는 지적인데. 비정규직 문제가 중요하지만, 세월호에서는 비정규직인 사람이 헌신적으로 구조하다 죽기도 했다. 이것 때문이라고 몰아서 이야기할 수는 없다. 공부하는 사람은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책에 실린 내용 중에서 사회학이 폭로의 깊이가 깊다(231쪽)고 했는데.


사실 사회학이 전문적인 학문으로써 능력은 다소 떨어진다. 세월호를 다시 예로 들어보자. 사회학자가 배를 전문적으로 알지는 못한다. 대신에 기술적이거나 제도적 차원을 넘어서는 큰 문제를 짚어낼 수 있는 학문이다. 또 한 가지는 사회학자가 돈이나 권력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다. 한국은 특수한 분야 전문가, 지식인이 국가와 기업에 포섭되어 있다. 이번 세월호에서 특징적인 게 커뮤니케이션 수준에서 정부가 전문가 집단을 잘 통제했다는 사실이다. 정부가 언론을 통제하려는 시도는 있었으나 성공하지는 못했다. 통제가 무너진 건 언론사가 가진 특종과 보도를 향한 본능 때문이다. 잘 찾아보면, 박근혜 정부에 옹호적일 거라 짐작되는 언론도 불리한 사실을 밝히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성공하는 게 전문가 커뮤니케이션이다. 사건 초기에 몇몇 전문가가 TV에 출연했지만 자취를 감췄다. 외국에 있는 전문가를 찾아야 하는 상황까지 왔다.


왜 그런가.


구조적인 요인이 있다. 굉장히 많은 연구비가 기업과 국가로부터 나온다. 대부분 전문가가 교수 아니면 연구원이다. 연구비가 없으면 개인의 수입이 줄어드는 게 아니라, 연구팀의 존속이 어렵다. 이공계는 더 심하다. 이런 구조적인 원인 때문에 입을 닫는다. 찾아보면, 각종 규제 완화와 관련해서 유수한 대학에서 보고서를 냈다. 이른바 선박전문가, 해양전문가라는 사람이 세월호 원인이 되었던 규제 철폐를 지원해주는 보고서를 썼다. 논문에 최소한 도망갈 구멍과 양심을 지키는 구절이 남아 있긴 했다. 사회학이 여기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 사회학이 전문성 떨어지는 학문처럼 보이지만 전문성에 매물되지 않고 큰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다.


지난 10년간 쓴 글을 모아 낸 이유


『좌충우돌』은 10년 동안 쓴 칼럼을 모은 책이다. 책을 엮으면서 학자로서의 삶과 칼럼니스트로서의 삶을 되돌아봤을 것 같다.


서문에서도 썼듯 유통기한이 지난 글이다. 재고 정리하는 기분도 들었고. 그리 매력적인 책은 아니다. 이런 책을 내야 하나, 내고 싶은가, 하고 스스로 확신도 없었다. 이렇게 미루다 보니, 지난번에 낸 칼럼집으로부터는 12년 만에 냈다. 그럼에도 책으로 낸 건 자신을 정리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특히 작년 대선이 끝나고 비판적 시민으로 어떻게 살았는지를 되돌아보고 싶었다. 연구논문이나 강의로는 비판적 시민으로의 삶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칼럼을 묶어 보니 10년을 무슨 생각하면서 살았는지 드러났다. 나를 되돌아보는 데 좋은 수단이 됐다. 모아놓고 보니, 너무 지난 일이라 출판사가 안 내 줄 것 같았다. 출판사에 미안하기도 해서 손을 보겠다고 결심했다. 어떤 방향으로 손을 볼까 고민하다 '돌아보기'라는 식으로 현재성을 불어 넣어봤다. 개인적으로는 책이 작년에 나오길 바랐다. 만으로 50이 되기 전에 내고 싶었다. 출판 일정이 마음대로 되진 않았다.


유통기한이 지났다곤 해도 칼럼에서 제기했던 여러 문제가 아직 우리 사회에서 풀리지 않은 듯하다. 교육 문제도 있고 세월호 사건과 천안함 사건의 유사함을 지적하기도 한다.


중고등학교 교육은 패턴은 비슷해도 풍경이 많이 바뀌었다. 좋아졌는지는 모르지만 끊임 없이 변천했다. 대학은 10년 전과 비슷한 문제를 계속 반복하고 있다. 천안함에 대해서 많이 쓰진 못했지만 세월호와 유사한 면도 있고 다른 면도 있다. 천안함은 국가기구 안에 있는 사람이 많이 희생됐다. 그 상황에서 국가에 책임을 묻기가 어려웠다. 국가 자신이 크게 손상을 입었으니까. 일부 사람이 사고라고 주장했고 정부는 북한이 했다고 결론 내렸다. 군대 내부에서 슬픔, 고통을 유발한 원인을 적으로 돌리고 싶은 열망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에 비해 세월호는 국가가 방치해서 사람이 죽은 모양이다. 구조적으로 유사한 면이 있더라도 정서적으로 파장이 컸다.


두 사건의 가장 큰 공통점은 전문가가 완전 포섭되었다는 사실이다. 그때도 문제 제기를 한 학자가 재외학자였다. 캐나다, 미국에 있는 한국인 학자가 문제제기를 했다. 사회학자가 문제제기를 해도, 사회 관계를 이야기할 순 있어도, 전문적인 사실을 말하는 건 해당 분야의 전문가의 몫이다. 국내 많은 지식인이 입을 다물었다. 이번에도 전문가가 침묵한다. 진상조사 위원회가 어떤 식으로든 꾸려질 텐데, 유가족은 국가 중심으로 이루어지면 곤란하다고 말한다. 이런 문제가 있어서다.


책이 다루는 세월이 10년이다. 10년 동안 어조나 논조가 점점 격해진다는 인상을 받았다.

 
노무현 정부 때는 양가감정이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매력적인 인물이다. 정책적으로는 심하게 화나는 부분도 있고, 실망도 있었다. 정권을 이명박 정권에 내준 데 대한 분노도 있었다. 이런 감정이 글에 많이 실렸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로 왔다.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항상 발견했던 건 기대수준이 낮았는데도 그보다 훨씬 더 심각한 일을 저질렀다는 점이다. 싸워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이 험해졌다. 박근혜 대통령에게도 격하게 썼다. 당시 반새누리 정서를 가진 지지자 중에서도 박근혜 대통령이 이명박 대통령보다 나을 거라고 생각한 사람이 있었다. 나는 안 그렇다고 생각했다.


세월호 사건이 이명박 정부 때, 노무현 정부 때 일어났으면 어땠을까라는 가정을 하는데 이런 질문에는 현 정권에 면죄부를 주려는 심리가 있다. 문재인이 대통령이었다고 해도 생겼을 수 있다. 지금보다 낫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최소한 언론보도를 이런 식으로 내진 않았을 것이다.


언론 보도라 함은 사건 발생 초기부터 수백 명의 잠수부를 투입했다는 등의 과장 보도 말인가?


그런 것도 있고 오보도 있었지 않나. 의제를 호도하기도 했고. 심한 경우 막말까지 했다. 정부가 여러 가지 정보를 관리하려 하는 부분은 이해할 수 있다. 언론에 폭격을 맞아서 정부가 일을 할 수 없을 지경이 될 수도 있으니까. 그래도 사실 관계는 분명히 파악해야지. 조금 더 조심스럽지만, 다른 정권이었다면 은폐나 조작을 시도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물론, 김대중 정부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정권 교체 없이 20년간 이어졌다면 비슷한 일이 일어났을 것이다. 그래서 한국사회에서 가장 합리적인 건 5년마다 정권을 한 번씩 바꿔주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번에 안 바꾼 건 국민 입장에서는 실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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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성장 끝난 한국사회에 필요한 건 연대


뒤르켐을 전공했다. 뒤르켐에게서 어떤 매력을 느꼈나.


원래는 보다 큰 스케일로 논문을 써 보려고 했다. ‘사회 이론과 도시’ 이런 주제였다. 베를린과 짐멜, 빈과 프로이트, 파리와 뒤르켐을 고민하다 축소했다. 프로이트에 관해서는 조그마한 책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과거에는 사회학에서 이론을 많이 다뤘는데 요즘은 양적 방법론, 경험적 연구가 주를 이룬다고 들었다. 리오타르가 말했던 ‘거대서사의 종말’이 사회학에도 적용되는가?


사회학에서 큰 담론은 꾸준히 있어 온 편이다. 20세기말의 유명한 지식인들은 1차대전과 2차대전 사이의 사람이다. 예컨대 하버마스는 1928년생이다. 지금 주도적인 사람들은 1940년대 초반 생들이다. 울리히 벡이 그렇다. 다만 1950년대, 1960년대 태어난 사람에게서 거대 담론이 나올 수 있을까. 가능성은 있겠지만, 줄어들지 않을까 싶다. 사회학 자체가 위축됐고 사회학 외에도 기초 학문이 사라져가고 있다. 그러니 점점 더 배출하기 어려워진다. 한국에서도 사회학과 폐과하고 있고. 전 세계적으로도 그렇다. 그런 면에서는 낙관하기는 어렵다.


뒤르켐 하면 ‘연대’가 떠오른다. 한국사회에는 아직 ‘연대’가 생소한 것 같은데.


한국 사회에 연대가 없다. 뒤르켐을 연구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뒤르켐이 살았던 시대에 프랑스 사회가 연대가 넘쳤을까? 프랑스 사회도 어려웠다. 뒤르켐이 살던 시대 프랑스에는 연대주의 운동이 있었다. 뒤르켐은 정치운동이자 사회운동 진영의 중요한 이론가였다. 프랑스식 복지 국가로 이동하는데 이 연대주의 운동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우리사회도 이전에는 사회적 연대 없이 굴러왔다. 지금은 한계에 부딪쳤다. 박정희 시대에는 내가 다른 사람과 연대감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잘 살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나보다 더 잘된 사람도 있지만, 어쨌든 각자는 어제의 자신보다 나아졌다. 당시에는 현재의 불만을 시간 속에 펼쳐서 긴장이나 갈등을 없애는 식이었다. ‘100만 불 수출’ 이런 걸 정해놓고 우리 사회가 저기로 가면 모든 걸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하려면 경제성장이 계속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는데 이제 안 되는 상황이다.


박정희 후반과 전두환 집권기는 대략 10% 성장했는데 지금은 1~2% 성장하고 있다. 가계 부채에 의한 성장을 제외하면 제로 아니면 약간 마이너스다. 가계부채가 늘어나는 건 미래를 당겨다 쓴다는 뜻이다. 과거엔 개인의 기대수준과 현재 처지간의 간극을 성장을 통해서 메웠다. 즉 미래의 성취에 대한 기대로 현재를 견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미래를 약탈함으로써 해소하려고 한다. 그게 부채이다. 이제는 그런 간극을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성장은 덜 해도 사회적 유대와 재분배로 해결한다거나 자원을 더 사회적으로 순환시키는 방식이 필요하다. 그래서 연대가 중요하다.


뒤르켐에게 ‘연대’가 한 축이라면, ‘열광’도 한 축이다. ‘열광’ 하면 곧 있을 월드컵이 생각난다.


지금을 2002년 월드컵과 비교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때 효순이 미선이 사건이 있었다. 월드컵이 열리던 도중에 벌어졌고 잊혔다. 월드컵이 끝나고 가을이 지나고부터 폭발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했다. 왜 사후에 폭발력이 생길 수 있었을까? 월드컵이 끝난 다음 무심했다는 죄의식이 사람들에게 굉장히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열광과 관련해서 우리가 이해를 달리 해야 하는 게 열광이 즐거운 일에만 일어나는 게 아니고 슬픈 일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사실이다. 축제가 꼭 기쁨의 축제만 있는 게 아니라 슬픔의 축제도 있다. 세월호를 둘러싼 추모도 일종의 열광 상태다. 끓어오르고 격앙돼 있고 커뮤니케이션이 폭발하고 있다. 이게 먼저 있고 월드컵이 있는데 월드컵이 훨씬 차분해지지 않을까 예상한다. 사람들이 월드컵으로 세계인과 즐기는 것과 세월호의 슬픔을 적절하게 조율하려 할 것이다.


2002년과 2014년 차이 중 하나가 SNS일 것 같다. SNS로 즐기는 모양새도 달라질 것 같은데.


커뮤니케이션과 관련해서 보면 SNS가 분산적이다. 그런데 눈사태 효과가 있다. 예를 들어 파워트위터리언은 팔로어가 몇 십 만이다. 커뮤니케이션 지형이 많이 변했다. 사회를 많이 바꿀 것 같기도 하지만 국정원 댓글 조작 사건에서 드러났듯, 조작하는 것도 가능하다. 상당히 많은 돈과, 그것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이 특정한 키워드로 방향을 갖고 전략적으로 홍보하면 조작 가능하다.


2014 지방선거는 투표율 올라갈 것


오늘이 5월 21일이다. 지방선거는 어떤 분위기로 치러질까.


슬퍼서 행동하고 싶은 욕구가 있을 것이다. 내게도 고등학생 딸이 있는데,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 애가 그 배를 타고 수학여행을 가다 9시, 10시쯤에 “아빠 배가 기울어”라고 전화가 왔다면 뭐라고 했을까. 네가 판단해야 한다고 했을지, 방송에서 말하는 대로 선실에 있으라고 했을지, 무조건 밖으로 나오라고 했을지, 답이 안 떠오른다. 답이 안 떠오른다는 의미는 어떤 답도 정답이라고 할 수 없다는 뜻일 텐데 이런 세상에서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고통스럽더라. 리본 달고, 성금 내고 추모하는 자리에 가고 그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이런 상황에서 선거가 있다.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투표를 선택하려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투표율이 올라가면 새누리당이 불리해질 것이다. 전체적으로 새정치민주연합이 유리하겠지만 300명이 죽어야 야권이 유리해지는 이 구조라면 야권도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실제로 야권이 한 건 없지 않나.

 
칼럼에서 김대중, 안철수 등 인물평을 썼는데 적확하면서도 재밌던데, 인물평을 써 볼 생각은 없나. 앞으로 어떤 글을 쓸 계획인지.


인물론 쓰면 책 잘 팔린다. 그런데 흥미로운 인물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래서 쓸 생각은 없고. 앞으로 분단체제론에 관해 써보고 싶다. 지금까지 분단체제 하면 분단 문제 중심으로 이해했지만 이제는 분단체제 속에서 살면서 사람이 가지는 생활양식, 가치관, 아비투스 이런 것에 관심을 가져보려 한다. 분단체제 속에서 우리 사회에 어떤 특이한 삶이 나타나는가, 이런 걸 써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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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김종엽 저 | 문학동네
『좌충우돌』은 노무현정부의 출범으로 이명박정권이 막을 내렸던 10년간 여러 지면의 칼럼과 논평을 통해 우리 사회의 문제를 분석하고 진단해온 사회학자 김종엽의 글을 묶은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지난 글을 묶어내는 데 그치지 않고 글 쓴 시점과 사건의 변화에 따라 현재의 시점에서 다시 한번 사건들을 적극적으로 점검하는 피드백의 글쓰기를 시도해, 그때와 지금이 어떻게 같고 또 다른지 새롭게 되새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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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양윤선 이소영 “투표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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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난보다 더 무서운 게 무관심이다. 올해 지방선거가 있지만, 여전히 정치 혐오증이 만연하다. 뽑을 사람이 없다, 그 나물에 그 밥이다, 투표로 세상이 바뀔까, 이런 무력함을 느끼는 사람이 많을 테다. 그럼에도 우리가 투표를 해야 하는 이유라면, 투표가 대의민주주의에서 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정치 행위이기 때문이다.


한국에는 크게 3가지 선거가 있다. 대통령을 뽑는 대선,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 그리고 올해 있을 지방선거. 이중에서 가장 흥행하는 선거는 대선이다. 아무래도 대통령이 가진 권한이 센 사회이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국회의원을 뽑는 총선이 국민에게는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대통령은 행정부의 수반이지만, 국회의원은 국민의 뜻을 대신해서 법으로 발의한다. 정작 우리는 국회의원이 어떤 사람인지, 국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잘 모른다. 그래서 <국회TV>의 두 기자가 힘을 합쳤다. 


『나를 위한 최소한의 정치 상식』은 국회에서 수년간 의정활동을 가까이서 지켜보고 취재하며 보도한 두 기자가 함께 쓴 책이다. 두 저자는 국회에서 벌어지는 일을 입체적으로 썼다. 고등학교 정치 교과서처럼 딱딱하게 설명하지 않고 독자가 흥미를 가질 수 있는 소재를 많이 다뤘다. 국회의사당이 여의도에 자리잡기까지 역사, 선거를 둘러싼 속설, 국회 안의 다양한 장소, 국회의원의 패션, 국회의 의원실 배치 기준 등이 그렇다. 특히 국회의원, 입법 공무원, 의전 통역관 등 국회 안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사람을 묘사하는 대목에서 두 기자의 따뜻하면서도 미래 지향적인 시선이 느껴진다. 양윤선 기자와 이소영 기자를 국회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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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영 기자(좌) 양윤선 기자(우)


맨얼굴 그대로의 정치를 보여주기 위해 낸 책


어떻게 두 사람이 책을 내기로 했나요?


양윤선(이하 양) : 정치부 기자로 일하면서 질문을 자주 받아요. 국회방송 기자가 어떤 일을 하는지, 국회의원은 어떤 사람인지, 국회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더라고요. 책을 내서 이런 질문에 답변하면 어떨까, 해서 책을 쓰게 됐죠.


이소영(이하 이) : 처음 국회방송에 입사할 때가 20대 중반이었고 어느덧 30대가 됐는데요. 그때와 지금을 비교해 보면 생각의 깊이나 정치를 대하는 태도가 많이 달라졌어요. 이 책은 현실 정치에 염증을 느끼는 제 세대 젊은이를 위해 썼어요. 젊은 세대에 만연한 현실 정치 혐오증을 어떻게 하면 개선할 수 있을까 고민했습니다. 비판은 좋지만 알고 비판하자는 취지로 국회, 국회의원, 정치권 전반에 관해 상세히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이 책은 균형과 공정성을 제일의 가치로 하는 국회방송 기자들이 공동으로 저술했습니다. 그래서 어떠한 정치색도 입히지 않은 맨얼굴 그대로의 정치를 보여주는 안내서입니다. 


국회방송은 다른 방송사나 신문사 등 매체와 비교하자면 어떤 점에서 같고, 어떤 점에서 다른가요?


: 우선 상업광고가 없으니 시청률에 연연하지 않아요. 국회방송은 3가지가 없습니다. 상업광고, 편집, 해설 이렇게 3가지가 없는 방송이죠. 물론 편집과 해설이 허용된 몇 가지 프로그램이 있긴 합니다만 기본적으로는 의정 중계가 국회방송의 설립 목적이라 있는 그대로 전달하죠. 그런데 의정 중계를 몇 시간 동안 그대로 하다 보면 시청자가 보기에 다소 지루할 수 있어요. 복잡한 사안은 이해하기 어렵기도 하고요. 이걸 정리해서 사실을 전달하는 팀이 보도팀이고 그 역할을 기자들이 합니다. 국회방송 기자는 의정전문 기자인데요. 다른 기자는 사회부, 문화부, 정치부 이렇게 순환 근무를 합니다. 반면 국회방송 기자는 국회 안에서 다년간 오랫동안 깊게 연구를 하고 깊게 취재를 하니까 그만큼 전문성이 갖춰지죠. 출입처나 취재 활동은 다른 매체 기자와 비슷합니다. 


두 분 다 다른 매체에서도 기자 활동을 했습니다. 국회방송에서만 느낄 수 있었던 쾌감이 있다면?


: 정치가 생물이라고 이야기하는데요. 생물이라는 건 살아있다는 의미인데요. 그만큼 역동적이었어요. 사이클은 분명해요. 4년마다 총선거가 치러지고. 20년에 한 번씩 대선과 총선이 겹치죠. 하지만 작년과 같이 되풀이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매년 달랐어요. 이번 지방선거만 해도. 세월호가 등장했어요. 지방 선거 결과도 몰라요. 정치가 현안, 사건에 따라 가장 영향을 많이 집는 집단이다 보니 이런 게 가장 재밌어요. 이렇게 일하다 보니 한 번도 지루해지거나 쳐진 적이 없었어요.


: 거의 비슷해요. 저도 20대 중반에 시작했는데요. 치열했어요. 역사의 현장에 함께 하고 있다는 느낌도 벅찼고 국가 전체를 뒤흔들 만한 큰 이슈 한가운데 기자로 서 있다는 것. 여기서 얻는 희열은 말로 표현할 수 없죠. 항상 깨어있고, 살아있음을 느껴요.


국회 안에서 근무하고 국회의원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바라본 기자들이 쓴 책이라는 점이 눈에 띄는데요. 기자라는 직업을 선택한 이유는?


 : 직업에 관해 물어보는 학생, 후배가 있는데요. 어떻게 준비하면 된다고 과정을 설명하기보다는 기자가 왜 되고 싶으냐고 물어봐요. ‘왜’라는 물음에 선뜻 자기 생각을 제대로 답변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아요. 마이크 들이대는 모습이 멋져 보여요, 이렇게 답하기도 하고요. 멋있어 보이는 부분은 빙산의 일각이에요. 기자가 월급이 많은 직업도 아니고 사회적으로 아주 지위가 높지도 않잖아요. 그럼에도 제가 기자를 하는 건 사명감이 있기 때문이에요. 기자의 또 다른 이름은 역사가입니다. 제가 쓴 기록을, 역사를 후대가 읽는다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 아주 어렸을 때부터 꿈이 기자였어요. 매체가 국회방송이 될 거라곤 생각은 못 했지만요. 그래서 언론정보학을 전공했고요. 잘하고 있느냐는 물음에는 이제 “네”라는 대답에 자신감이 생기는 연차가 됐습니다. 무엇보다 꿈을 이루고 내 기사에 만족하고 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드림워커(dream walker)라고 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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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을 바꿀 가장 확실한 도구, 정치


정치란 OO다, 라고 한다면?


이 : 정치는 내 삶을 바꿔줄 가장 확실한 도구에요. <여우와 신포도>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 거예요. 길을 가던 여우가 높은 담장에 달린 포도를 보고 먹고 싶었지만, 여우의 능력으로는 딸 수 없었죠. 그래서 그 여우는 포도가 맛없을 거라고 정신 승리하며 포기했다고 하죠. 누구나 살아가면서 저런 경험을 해봤을 거예요. 에이 이건 내 능력으로는 안 될 일이야, 저건 원래부터 저럴 거야, 하면서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원래부터 그런 건 없습니다. 어떻게든 되겠지 생각만 하면 바뀌는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직접 나서서 해결하고 살기 좋은 방향으로 바꾸는 것, 이게 정치입니다.


책을 함께 쓰면 힘든 점도 있을 텐데요. 책 쓰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 사전에 치밀하게 기획하고 꼼꼼하게 시장조사를 하는 점이 가장 어려웠고 공을 많이 들인 부분이었습니다. 책 쓰기 전에 시장조사를 했는데요. 유사한 책이 드물었어요. 국회 출입했던 기자가 쓴 책은 몇 권 있었습니다. 약간 뒷담화 형식의 책이었죠. 그런데 정보 전달을 목적으로 하면서도 칼럼 식으로 쓴 『나를 위한 최소한의 정치 상식』 같은 책은 없었어요. 그래서 반드시 필요한 일을 우리가 해냈다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책에도 언급하셨지만 국회에는 국회의원 외에도 다양한 사람이 일하고 있습니다. 매력적인 사람을 꼽는다면?


: 아무래도 국회의원이죠. 막내 기자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이 국회의원의 일정 조사입니다. 어떤 회의가 열리는지, 의원끼리 어떤 모임을 하는지, 또 어디서 어떤 세미나가 열리는지, 아무리 작은 모임일지라도 조사를 합니다. 그렇게 조사해보면 하루 일정이 어마어마해요. 그것을 다 소화하는 사람이 국회의원이거든요.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보좌관이 써준 걸 그대로 읽고, 선거 때만 잠시 바쁠 것 같지만 사실 그분들이 국민들의 선택을 받은 사람들이고 민의를 대변하기 위해 아침부터 밤까지 의정활동에 매진해요. 당시 막내기자로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은 국회의원의 첫번째 자질은 강인한 체력이라는 것을 느꼈어요. 


: 국회 건물 안에 국회의원 300명만 있는 줄 알지만, 국회에는 다양한 사람이 있습니다. 입법 지원하고 국회를 운영하는 입법부 공무원도 있고요. 그중에 특이한 직업군이 통역관이에요. 외교부나 국방부 같은 곳에도 통역관이 있긴 하지만 그 규모가 각 부처에 한두 명 정도입니다. 국회에는 한 팀이 꾸려져서 영어, 일본어, 프랑스어 등 다국어로 지원해요. 국회의장이 해외순방할 때 지원 나가기도 하고요. 세계 각국의 귀빈이 국회에 왔을 때 통역과 자료 번역을 담당하죠. 실제로 들여다봤을때  그분들의 업무 강도가 정말 셌어요. 통번역에만 쓰는 고급 단어를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고요. 의전도 함께 수행하거든요.


우리가 꼭 투표해야 하는 이유


국회 여러 장소를 소개했습니다. 어떤 장소를 가장 좋아하세요?


: 의원동산을 좋아해요. 그곳에 사랑재라고 예쁘게 지어놓은 건축도 있고요. 숲길도 예뻐요. 


: 후생관이요. 안경점 있고, 약국 있고, 서점 있고. 필요한 게 다 있어요. 국회 안의 작은 백화점이죠. 


국회의원들도 국회 내 후생 복지시설을 자주 이용한다고 하던데요.


: 특히 여성 국회의원이 미용실을 많이 이용해요. 국회가 지리적으로 보면 조금 고립되어 있어요. 미용실은 여의도역까지 가야 있고요. 그러다 보니 국회 안에서 모든 걸 해결하려 하죠. 국회의원이 바빠요. 분 단위 일정을 소화해야 하고. 그리고 얼굴이 알려진 사람이다 보니 밖에서 뭔가를 하기가 꺼려질 수도 있어요. 


이번 주 수요일에 지방선거가 있습니다. 7월에는 재보궐선거도 예정돼 있고요. 우리가 왜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할까요?


: 지방선거니까 더 와 닿을 거예요. 국회의원은 4년 임기 내 얼굴을 몇 번 보겠어요. 지방선거는 풀뿌리 민주주의로 내가 사는 시를, 구를 운영할 사람을 뽑잖아요. 교육감도 뽑고요. 내 삶과 더 밀접하게 연관돼 있거든요. 내가 안 뽑아도 누군가 뽑겠지, 그리고 누군가가 뽑히겠지 하다 보면 우리 삶이 삶의 질이 하락해요. 적극적으로 나서서 내 권리를 대변해 줄 사람을 뽑는 게 국민의 역할이에요. 투표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죠. 


: 법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게 많아요. 세월호도 법이 미비했기에, 막을 수 있었는데 참사로 드러난 거죠. 법이 우리 생활에 밀접해요. 당장 소득공제가 그렇고요. 이게 다 국회에서 정하잖아요. 국회에서 어떤 법을 추진하는지 관심을 가지면 가질수록 우리 생활에 도움이 많이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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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위한 최소한의 정치 상식양윤선,이소영 공저 | 시공사
365일 국회 안에서 숨 쉬어온 국회 기자들이 들려주는 대한민국 국회, 정치의 모든 것을 담은 책이다. 이 책은 먼저 1부 ‘국회, 대한민국 정치의 시작’에서 국회와 국회의원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어떤 과정을 통해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는지, 또 국회와 정부의 관계는 어떠한지 등을 전반적으로 살펴본다. 2부 ‘국회 들여다보기’에서는 국회를 이루는 국회의원들의 생활을 좀 더 자세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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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중국 칭화대 엘리트, 왜 유가경전에 주목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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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건국되며 유가사상은 건국이념이자 통치의 근간이 됐다. 하지만 조선 역시 518년의 왕조를 끝으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고, 한반도는 일제강점기와 전쟁 등 혹독한 시련을 보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유가사상은 망국의 사상으로 그 위상이 격하되고 고루한 옛 것으로 치부됐다. 하지만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현대에 이르러 유가사상이 재조명되고 있다. 황폐화된 국토를 재건하고 맨손으로 시작해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거듭난 우리나라는 물론 최근 20년간 개혁개방정책을 통해 다시금 국제사회에 강대국으로 등장하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중국이 그렇다. 두 나라의 공통점을 찾자면 과거에는 선비와 대인으로 대표되는 사회지도층을 중심으로 유가경전에 입각한 국가경영이 이뤄져 왔다는 점이다.

 

만나고-팡차

 

자본주의가 불러온 공허함

나를지켜낸다는것


한국과 중국, 두 나라는 비슷한 시기에 정수를 무시한 채 권력으로 얼룩지고 왜곡된 유가사상이 쇠퇴했다는 공통점도 있다. 이후 근현대사는 격변의 연속이었다. 혼돈의 시대에서 재도약의 시대로 넘어갈 즈음 쇠퇴한 유가사상의 빈자리를 채운 것은 자본주의였다. 정신적 가치관이 물질적 가치관으로 대체된 셈이다. 돈과 명예가 중시됐으며 한동안 그것은 사회구성원들을 자극하는 적절한 동기부여로 작용하며 발전의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두 나라는 모두 자본주의 도입 후 급격한 발전을 이어가며 그 폐해에 대한 대비를 미처 하지 못했다. 대자본의 횡포와 중소기업의 몰락, 실업자의 증대와 빈익빈부익부 심화 등이 그것이다. 물론 제대로 된 자본주의는 그러한 문제들을 바로잡을 기능을 가지고 있다. 시장의 힘과 작동원리를 바로잡아 소외 계층을 배려하는 ‘창조적 자본주의’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압축성장의 후유증은 자본주의의 정도(正道) 대신 투기적 금융자본과 탐욕이 결합된 ‘카지노 자본주의’라는 병폐를 낳고 말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돈과 명예는 더욱더 사회적 계층을 구분하는 잣대가 됐으며, 도덕과 윤리보다 능력이 우선시되는 풍조가 만연해졌다. ‘1등이 아니면 누구도 기억해주지 않는다’는 강박은 자라나는 세대의 숨통조차 옥죄었다. 그 결과 배움의 기준은 호기심과 깨달음의 과정이 아닌 성적과 점수라는 결과로 대체됐다. 이제 대부분의 사람들이 청소년기에는 좋은 대학을 위해 공부하고, 대학시절에는 좋은 직장을 위해 공부하고, 사회에 진출한 뒤에는 높은 연봉과 안락한 삶을 위해 야근을 불사하며 인정받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러한 노력으로 채워지지 못하는 그 무엇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유가사상의 새로운 역할


출세와 성공지향적인 것의 맹점은 끝이 없다는 것이다. 자신보다 없는 사람, 낮은 직위의 사람을 굽어보기보다 끝없이 위를 바라보며 더 많은 돈과 자리를 탐하게 된다. 때문에 우리사회의 소위 엘리트 계층이라 불리는 이들의 삶은 꽤나 피곤하다. 추월 당할 것을 염려하는 조바심과 끝없는 경쟁에서 오는 피로감을 못 이긴 이들 중에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있다. 자리와 직을 목표로 할 뿐, 직업에 대한 사명감과 책임의식은 실종된 지 오래다. 이 같은 문제 해결을 위해 내 놓은 정치인들의 해법이란 실천 없는 공염불로 반복되고 있다.
 
최근 일어나고 있는 유가사상의 부활은 우연이 아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근간으로 한 유가사상안에는 자본주의의 폐해를 극복할 답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단지 압축성장의 과정에서 잃었던 정신적 가치를 되찾는 과정일 뿐이다. 최근 이러한 시도를 통해 많은 현대인들이 공허함을 떨쳐버리고 삶의 진정한 목표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만나고-팡차

 

아시아가 겪는 혼란에 답을 제시하다


칭화대학교는 중국의 각 자치단체에서 1등이 아니고는 입학할 수 없다는 명문대학이다. 최고 중의 최고만을 모아놓은 곳에서 무려 10년간 인기를 이어간 강의가 <유가경전입문>이다. 중국의 최고 엘리트들이 유가경전에 주목한다는 점은 중국 역시 자본주의체제 도입 이후 겪은 폐해가 심각함을 반증하고 있다. 이 강의를 이끌어 온 인물이 바로 팡차오후이 교수다.

 

그는 하버드를 비롯해 우리나라의 서울대학교, 대만의 포광대학교에서 중국사상사를 연구하고 강의한 유가사상 전문가다. 헌대 이력이 독특하다. 사실 그의 젊은 시절 연구 대상은 서양철학이었다. 박사까지 마친 후 돌연 연구 주제를 중국사상사로 전환하며 동,서양의 철학과 정신사상을 모두 아우르는 전문가가 됐다. 그의 <유가경전입문> 강의가 오랜 인기를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도 유교와 도교, 불교는 물론 서양철학까지 아우르며 현대인이 겪고 있는 마음의 문제에 접근했기 때문이다. 팡차오후이 교수가 자신의 저서 『나를 지켜낸다는 것』을 들고 우리나라를 찾았다. 바쁜 일정을 앞두고 마주한 자리지만 그 표정만은 평온해 보였다. 
        
한국에는 자주 오시는 편이신지요. 교수님께서 생각하시는 한국에 대해 말씀해주신다면?


2008~2009년 사이 1년 정도 한국에 머문 적이 있습니다. 그 후에도 꽤 여러 번 한국을 방문했죠. 한국은 역사적으로도 중국과 오랜 교류가 있었던 나라입니다. 그렇다보니 한국에 대해 친숙함이 남다릅니다. 많은 중국 사람들이 한국을 좋은 형제의 나라로 인식하고 있죠. 
 
방문 기간 중에 다양한 일정이 잡혀 있을 듯한데요. 


많은 일정이 잡혀있죠. 하나하나가 모두 중요하고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이런 인터뷰나 방송출연 역시도 새로운 경험이고요. 특히 방송출연은 이번이 처음이라(그는 인터뷰 당일 <SBS 지식나눔 콘서트 ‘아이러브[人]> 녹화를 앞두고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꽤 큰 도전이네요(웃음). 한국에서도 최근 인문학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중국은 개혁개방을 하기 이전까지는 인문학이 그리 중시되지 못했습니다. 경제발전 이후 현대화가 이뤄지면서 더욱 그랬죠. 그 결과 중국은 최근 20여년간 높은 경제성장을 이루며 물질적인 부분의 성공은 이루었지만, 정신적으로는 크나큰 공허함에 직면했어요. 그것을 채우는 것이 인문학이었죠. 기업가나 부자들이 돈은 많지만 행복감은 느끼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에요. 그들 역시 인문학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는 중이죠. 그래서 최근 들어 인문학에 대한 지원과 관심이 높아지고 있어요.

 

교수님께서는 젊은 시절 서양철학을 전공해 박사 졸업 후 중국사상사로 연구주제를 전환하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문득 공자의 말씀 중 ‘온고지신(옛것을 알고 새것을 알면 남의 스승이 될 수 있다)’이 떠오릅니다. 그 계기를 말씀해주신다면? 


박사학위 과정을 마친 이후에도 채워지지 않은 것이 있었어요. 우울증과 개인적인 아픔들이 있었죠. 그런 문제는 서양철학에서 답을 찾을 수 없었어요. 그래서 중국사상사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했죠. 그런 과정을 통해서 마음의 평화와 위로를 얻게 됐어요. 많은 사람들이 서양의 사고방식과 동양의 사고방식은 다르다고 알고 있습니다. 오랜 역사를 통해 쌓인 사유의 정수가 철학이라고 했을 때, 과연 동서양철학은 그 근본조차 다른 것인지, 아니면 삶 속에 적용시켜 나가는 과정에서 차이가 있었던 것인지 궁금합니다.


서양철학 자체가 이성을 강조하며, 지식을 얻기 위해서 호기심을 바탕으로 배움을 추구하는 것이에요. 동양철학의 경우는 나와 세상의 관계를 생각하고 있죠. 내가 이 순간 이 자리에서 어떻게 살아야하나, 어떻게 보내야하는가를 생각하는 학문이에요. 동양 사람의 입장에서는 서양철학을 봤을 때 우리 삶 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두 해결하지 못하는 한계를 느껴요. 서양철학으로 동양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는 없다는 말이죠. 물론 어느 게 더 낫다는 것은 아니에요. 각각의 장점이 있죠. 무엇이 더 우월해서 대체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중국은 장기간 자본주의 경제를 ‘끝없이 탐욕을 부리며 돈에 눈이 멀어 염치라고는 하나도 없는’ 그림으로 묘사했습니다. 이 때문에, 어느 날 중국이 자본주의 시스템을 도입했을 때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끝없이 탐욕을 부리며 돈에 눈이 멀어 염치라고는 하나도 없고 의리를 분별하지 못하는 행위를 당연하게 생각하게 됐습니다. (중략) 유가에서 말하는 수신의 학문은 원래 명리, 즉 돈과 명예를 거절하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돈과 명예에 대해 정확하게 대면하고 분별심을 갖도록 요구했습니다.”  (『나를 지켜낸다는 것』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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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아시아, 특히 한국을 비롯한 중국, 일본 등은 압축적인 성장을 이뤘습니다. 특히 한국과 중국이 그렇습니다.『나를 지켜낸다는 것』중 ‘5강’ ‘치심’에서 자본주의 경제를 ‘탐욕을 부리며 돈에 눈이 멀어 염치라고는 없어도 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중국인들이 문제를 언급하셨는데, 한국 역시도 그런 문제가 없지 않습니다. 해법은 무엇일까요?


자본주의에는 두 가지 논리가 있어요. 첫 번째는 돈과 권력이 모든 것을 다 압도한다는 거죠. 서양에서는 이런 권력과 돈의 어두운 이면의 문제들을 종교와 자유주의를 통해 해결해 왔어요. 아시아 역시 서양의 종교와 자유주의에 버금가는 것이 바로 전통입니다. 오랜 역사와 전통을 통해 고양된 정신문화를 오늘날 문제에 접목해 새로운 가치관을 만들어 나갈 수 있죠. 전통적인 철학에서 오늘날의 문제를 풀어나갈 열쇠를 찾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나는 동양철학에 대한 갈증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우리 세대가 영혼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진정성 있게 자신을 고민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마음 깊은 곳에서 괴로움과 아픔을 겪게 될 것이라 믿게 됐습니다. 누가 우리의 영혼을 구해줄 수 있을까요? 이것이 바로 우리가 심각하게 반성해야 할 문제이며, 우리 시대에 가장 되돌아볼 만한 가치가 있는 근본적인 문제의 하나입니다. 전통을 잃기 시작한 순간부터 우리의 영혼은 뿌리부터 뽑혔고 생명의 정원도 갈가리 찢기고 말았습니다. ‘수신(修身)’을 알지 못한 우리는 바싹 말라버린 대지 위의 풀처럼 고통스럽게 발버둥치다가 절망에 빠진 뒤에야 후회하곤 합니다.”  (『나를 지켜낸다는 것』中 )


한국에서는 명문대를 가기 위해 어릴 때부터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하고 대학에 가서는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 공부하고, 사회에 나가서는 명예와 돈을 추구하는 것이 일반적인 패턴이 됐습니다. 중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알고 있는데요. 

 
동양의 사상이나 정서적인 면은 가정을 중시하고 자식에 대한 기대가 크죠. 그래서 모든 열정과 돈을 자식에게 쏟아 붓는 경향이 있고요. 역사적으로 중국은 물론 한국 역시 ‘과거제도’를 통해 인재를 선발했습니다. 가정 중심의 문화와 ‘과거제도’의 전통이 오늘날까지 영향을 미처 명예와 돈을 추구하는 현상이 이어지고 있는 거죠. 중국의 많은 학자들이 그런 문제, 즉 돈과 명예를 추구하는 경향에 대해 반대하고 있고, 저 역시도 제자를 양성하는데 다른 방식을 적용하며 바꿔보려 노력해 오고 있어요. 한국도 그런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고 알고 있고요.

 

인문학적인 가치관이나 윤리가 이젠 교과서에만 존재하는 교육의 문제도 있지 않을까요?


오늘날 한국, 중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서양의 교육방식이 보편화 돼 있어요. 하지만 서양의 교육체계를 받아드릴 때 좋은 것을 받아들이지 못한 게 문제죠. 서양의 교육의 장점은 창의력과 호기심을 키우고 선택의 폭이 넓다는 거예요. 단순히 좋은 성적이나 등수만을 추구한다면 호기심은 억제되고 자아발전은 등한시하게 되는 거죠.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추후에도 많은 인재를 발굴하지 못하게 되고 결국은 국가적인 손실이 될 거에요. 한 통계를 보면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은 연구개발에 어느 유럽국가보다 더 많은 투자를 했어요. 하지만 유럽이나 미국보다 노벨상 수상자는 많이 배출하지 못하고 있죠. 원인은 결국 앞서 언급한 사고방식의 차이 때문이에요. 한국과 중국, 다른 아시아 국가들이 모두 가지고 있는 문제죠. 
  

만나고-팡차


‘나를 지켜낸다는 것’에서 말하는 유가의 수신(수정, 존양, 자성, 정성, 치심, 신독, 주경, 근언, 치성)은 스스로를 돌아보게 합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를 따른 삶을 추구하면 대부분의 사람은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수신을 추구하기란 참 어렵지 않을까요?


먼저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목적이 무엇인가를 깨달아야 해요. 많은 사람들이 눈앞의 이익에 급급해 자신을 돌아보지 못하는 삶을 사는데, 그런 삶은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없죠. 두 번째 수신을 하게 되면 진정한 자신을 알게 되고 그것을 통해 내게 적합한 삶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어요. 그것을 깨닫게 되면 수신을 실천하는 것이 잃는 것보다 얻는 것이 더 많다는 것도 자연스레 알게 됩니다. 제 경우 대학시절 전공이 화학이었어요. 좋은 직업을 얻기에는 좋은 전공이었죠. 하지만 인문학을 선택하지 않고 그대로 전공을 따라가는 삶을 살았다면 전 행복하지 못했을 거예요.

 

그 이후에도 제가 세 번 정도 전공을 바꿨죠. 물론 바꿀 때마다 스트레스가 컸어요. 전공을 바꾼다는 것은 그때까지 배운 것이 쓸모없어진다는 의미기도 하고, 그 분야에서 형성한 인맥을 잃게 된다는 의미였으니까요. 또 만약 제가 서양철학 박사학위를 따고 그대로 서양철학을 했다면 역시 좋은 대학에서 강의하며 편안한 삶을 살았을 거예요. 서양철학을 할 때는 주변에 따르는 이들도 많았죠(웃음). 그래서 제가 동양철학으로 방향을 전환했을 때 만류하는 이들도 많았고요. 하지만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이 길을 가고 있는 것은 제가 좋아하는 것을 꾸준히 찾아왔기 때문에 가능한 거예요. 현대사회에서 수신을 실천하는 것은 손해라는 생각은 성급합니다. 정작 실천해 보면 생각한 것 이상의 행복을 얻을 수 있고, 나를 정확하게 앎으로서 스스로의 잠재력을 더욱 잘 끌어 올릴 수 있거든요. 지금 동양철학을 연구하고 있다는 것이 너무 행복합니다. 

 

한국에서는 얼마 전 온 국민을 슬픔에 빠지게 한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습니다. 비윤리적인 기업인을 비롯해 사명감 없는 선장, 무책임한 관료들로 인해 벌어진 일이었는데요. 소위 인재라고 부르는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예전에 중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최근 터키에서도 수백 명이 숨지는 탄광 참사가 있었죠? 모두 이해관계자들이 눈앞의 이익만을 추구하고 도덕과 윤리를 잊은 상황이라는 점이 비슷합니다. 정부의 관료 역시도 개인적인 권력과 명예, 지위만을 추구했죠. 자본주의의 문제가 이런 부분에서 나타나고 있는데요. 저는 오랜 세월 동안 이런 문제를 바꿔오려고 노력해 왔습니다.

 

오래 전 침몰한 타이타닉 호는 선장과 승무원들이 도망가지 않고 끝까지 배와 함께하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그에 비춰 최근의 참사들을 봤을 때 직업적인 윤리의식과 사명감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유가사상에서 ‘충(忠)’이라는 것이 있어요. ‘충(忠)’은 단순히 충성한다는 의미 외에도 직업적인 윤리와 사명감을 뜻하기도 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자신의 목숨을 다해서, 성심을 다해 해야 한다는 거죠. 개인의 이익과 공적인 이익이 상충될 때 목숨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다수를 위한 공익을 선택하는, ‘충(忠)’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세상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이상향이 아닐까요?  
 
『나를 지켜낸다는 것』을 읽는 한국의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한국의 독자 분들께서 이 책을 읽으시고 저와 함께 수신을 하는 기회를 얻으셨으면 좋겠어요. 그로 인해 자신을 되찾고 행복한 삶을 추구하시기를 바랍니다.


 



나를지켜낸다는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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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개팡차오후이 저/박찬철 역 | 위즈덤하우스
저자가 2000년대 초반부터 10년 동안 강의했던 칭화대 인문 강의 〈유가경전입문〉을 정리한 책으로, 가장 오래된 자기계발의 코드라고 할 수 있는 수신修身에 대해 유가의 선인들이 성찰한 아홉 가지 덕목을 소개한 책이다. 책이 소개한 수신의 기본 요소들은, 우리가 백전백패할 수밖에 없었던 내외부의 다양한 공격을 이겨낼 수 있도록 돕는 정신의 병법과도 같다. 직장생활에서의 무기력과 가정에서의 외로움을 느끼는 직장인이라면, 이 책을 통해 자신을 지키는 진짜 자기계발의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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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로, 어떤 이유로든 나를 매혹시킨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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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이로

 

한 번도 인용된 적 없는 문장들을 말하다


나는 서점, 도서관, 헌책방에서 책을 고를 때 책을 꺼내는 행동에 주목한다. 엄지와 검지로 책등을 움켜쥐어 빼거나 검지로 책의 윗부분을 잡아당길 때 나는 그 순간이 어떤 이의 집에 초대되어 벨을 누르고-문이 열리고-악수를 나누는 순간과 닮았다고 느낀다. (『책등에 베이다』10쪽)

 

이어질 목록은 날 베고 간 책등의 이름들이다. 두꺼운 책등에 베이다니, 그럴 수 있나. 물론 뻔한 과장이요, 지극한 수사다. 하지만 다시 생각한다. 기록하고, 이야기하고, 말하고 싶은 책을 처음 발견하고 책등을 향해 손을 뻗었던 그때, 나는 이미 의미로서 베이고 감정으로 홀렸다고. (『책등에 베이다』11쪽)

 

단언컨대 『책등에 베이다』는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 중에서 가장 묘한 책이다. 독자들에게 책을 소개하는 친절한 안내서도 아니고, 자신과 책의 인연을 줄줄이 읊는 감상문도 아니다. 대체 이 책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채널예스>와 만난 자리에서 작가 이로는 ‘연결고리’에 대해 말했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보다 잘 이어줄 수 있는 문장들을 책 속에서 뽑아냈다는 것.

 

“『책등에 베이다』에 인용될 문장을 고를 때, 기준이 조금 달랐어요. 독자들에게 ‘이 구절은 정말 훌륭하지 않나요?’라고 얘기하고 싶은 욕망은 조금도 없었어요. 인용문을 통해서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더 잘 연결시킬 수 있겠다고 생각했을 뿐이죠. 한 편의 에세이를 만드는 부품들로써 인용문을 가지고 온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책등에 베이다』에 언급된 책들은 엄청나게 훌륭할 필요도 없었고, 굉장히 아름다운 문장을 품고 있을 필요도 없었어요. 어떤 이유로든 저를 매혹시킨 책이라면 된 거예요.”

 

이로써 『책등에 베이다』의 정체는 한층 명확해졌다. 책에 대해 말하면서도, 결국 그 이야기들이 한 데 모여 펼쳐 보이는 것은 작가가 가진 작은 세계인 것이다. 그래서일까. 『책등에 베이다』의 책장을 덮었을 때 기억 속에 남겨진 것은 작가가 소개한 수많은 문장들과 그것을 품고 있는 책들이 아니라, 그 안에 실려서 날아든 작가의 생각과 감성이다. 이러한 사실은 당혹스러울 만큼 놀라운 것이다. 불규칙하고 무질서해 보이는 이야기들 틈에서 ‘하나의’ 세계를 구축해 보여주기 때문이다. 사실 『책등에 베이다』에 언급된 25권 책들은 공통된 키워드를 찾기 힘들 정도로 서로 다른 분야의 내용을 담고 있다. 『내 여자의 열매』 『그대 다시는 고향에 못 가리』 와 같은 소설부터 『빈 방의 빛』 『자코메티의 아틀리에』같은 예술사에 대한 책, 그리고 『캠핑의 즐거움』『조선 기술 : 배 만들기의 모든 것』 과 같은 실용서 까지도 한 데 담겨 있는 것이다. 자신이 어떤 책들을 읽어오면서 컸는지 진솔하게 펼쳐 보이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을 떠올려 보면, 이 ‘무질서의 질서’를 이해하기란 어렵지 않을 것도 같다.

 

그럼에도 의문은 남아 있다. 작가가 읽고 매혹된 책들이 일반 독자들에게는 생소한 것이기 때문이다. ‘한 번도 인용된 적 없는 문장’으로 자신의 세상을 가득 채우기 위해서 그는 얼마나 많은 문장들과 만났던 걸까.

 

“굉장한 독서가도 아니고 책을 수집하는 사람도 아니에요. 이런 취향은 『다시 파리에 간다면』을 출간한 제 아내가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죠. 그녀가 수집한 책들 사이사이에서 발견한 희귀한 책들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책등에 베이다』에 썼듯이 장편소설이나 대하소설 같은 긴 글을 잘 읽지 못해요. ‘책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을 읽으면서 독자들은 오래된 고전이나 누구나 알 만한 책, 혹은 마니아들 사이에서 인정받은 책이 언급되기를 기대할지도 몰라요. 저자의 입장에서는 그런 책들을 내세움으로써 자신의 한 번 더 포장하거나 자신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모습으로 스스로를 끌고 갈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읽지 않은 것을 거짓으로 말할 수는 없잖아요. 유명하고 훌륭하다고 인정받은 책들이 『책등에 베이다』에서 소개되지 않은 이유는 그 때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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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울하고 외로운 책들’에 눈길이 머물다


저자 이로는 아내인 작가 모모미와 함께 독립출판물 전문책방 ‘유어 마인드’를 운영하고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소량으로 제작, 판매되는 독립 출판물에 대한 작가의 애착을 대부분의 사람들이 읽고 사랑하는 책은 읽지 못하는’ 그의 성향과 관련지어 이해하려는 시도를 한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읽는 책은 읽지 말자고 생각하는 건 아니에요. 다만 ‘유어 마인드’에 있다 보면 이런 생각을 계속 하게 되죠. 분명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그 안에 여러 가지 각도로 봤을 때 발견되는 다른 지점들을 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읽히지 않고 얘기되어지지 않은 책들이 굉장히 많다는 생각이요. ‘유어 마인드’에 있는 책들 중에도 대형서점에서 판매될 가치가 충분한 책들이 있어요. 대형서점에서 판매 중인 책들보다 더 나은 책들도 있죠. 그런데 독립 출판물이라는 태생적인 이유로 독립 출판물 서점에만 존재하면서 소수의 독자들만을 만나게 되는 거예요. 그 모습들을 계속 보다 보니까 ‘책의 입장에서는 너무 억울하고 외롭겠다, 자신을 인용해 주길 바라는 책들이 얼마나 많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저한테는 그런 책들이 ‘인용의 바다’가 되는 거고요. 그 중에서 한 문장씩만 골라도 ‘모험하는 인용’ 같은 책을 쓸 수 있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이로 작가는 굉장한 역사를 만들어낸 책보다는 ‘억울할 정도로 사람들에게 얘기되어지지 않은’ 책에 눈길이 간다고 말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는 대상보다 그 주변의 것들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 그의 성향은 『책등에 베이다』에 실린 『오즈의 마법사』이야기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펭귄북스에서 ‘펭귄 스레드’라는 이름의 시리즈로 발간한 이 책의 ‘뒷면’에 대해 말한다. “드라마의 뒷면, 아름다움의 그림자 속에 살면서” 꿈을 꾸는 우리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일개 사병이 무더기로 죽어가거나 약골 약혼자가 영문도 모른 채 버려질 때, 나는 바로 깨닫는다. 나는 영웅이나 새로운 환상을 완성할 인물이 될 수 없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자유를(Freedom!)”이라 외칠 기회도 없다. 그나마 내가 영화라는 판타지에 개입할 수 있다면 CG처럼 죽어간 병사에 가장 가까울 것이다. 120분 동안 단점만 잔뜩 나열한 채 엔딩에는 나오지도 못하는 약혼자가 될 것이다. 어쩌면 그마저 사치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전쟁에 나가지 못하거나, 버림받는 조연조차 되지 못한다. 혹은 파병을 극구 거부하다 그제야 본보기로 공개 처형될지도 모르지. 나는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드라마가 없는 삶을 산다. (『책등에 베이다』151쪽)

 

저자는 “자수를 가짜로 표현한 표지”에 매료되어 『오즈의 마법사』를 구입한 뒤 표지의 뒷면을 한참 바라봤다. 그곳에는 색색의 실이 뒤엉킨 자수의 뒷면 그대로를 그려 놓은 그림이 있었다. 그 그림을 통해서 작가는 ‘앞면을 완성하는 불규칙하고 무의미한 뒷면의 존재’를 떠올렸다. 『오즈의 마법사』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전쟁 영화와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조연 혹은 엑스트라들에 대한 이야기로, 다시 주변부의 우리 삶으로 전개되는 이유다. 이렇게 『책등에 베이다』의 이야기는 잠시 방향을 잃은 채 엉뚱한 곳으로 나아가는 듯 싶다가도 곧 제 자리를 찾아 되돌아온다. 그래서 소설가 김중혁은 『책등에 베이다』에 대해 “미로 같은 책”이라고 평했다.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것 같을 때 또 다시 길이 이어지는 책이면서 “오히려 길을 잃고 싶다는 마음에 어울리는 책”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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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가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


『책등에 베이다』는 두꺼운 책등에 의해 “의미로서 베이고 감정으로 홀렸다”는 고백으로부터 시작된다. 그 고백은 채널예스와의 인터뷰에서도 계속 이어졌다.

 

“책방을 운영하다 보니, 어떤 사람들보다 책등을 자주 보게 되죠. 그래서 저한테 남아있는 책의 이미지는 그것을 펼쳤을 때보다 ‘서있는 책들의 이름들의 연속’이었던 것 같아요. 책등을 기준으로 책이 가진 내용이나 의미에 대해서 깊게 얘기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었던 것 같고요. 『책등에 베이다』에서도 의미로써 저를 베고 간, 그렇게 남은 상처 때문에 평생 기억할 수밖에 없는 책들에 대해서 쓴 거죠. 저는 책등이 가지고 있는 요소가 정말 재밌어요. 책등은 솔직할 수밖에 없는 공간이잖아요. 얇은 책등 안에 쓸 수 있는 거라고는 제목과 작가, 출판사명 뿐이죠. 광고 문구라든가 추천사, 그림이나 사진은 넣을 수 없어요. 가장 기본적인 정보만 담아 놓은 거예요. 그래서 뭔가 명찰 같아 보이기도 하고, 명함 같아 보이기도 해요. 그렇게 정보가 적다 보니까 상상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기죠. ‘이 책이 어떨 것이다’라고 예상하게 되고 기대하게 되잖아요.”

 

“모든 책이 기립한 공간이 주는 긴장 속에서 그때 나를 홀리는 것은 바로 책등이다”(33쪽) “세로로 긴 수많은 이름들 사이에서 분류와 번호를 따라 내가 부를 이름을 찾는, 환상과도 같은 때가 온다”(36쪽)고 작가는 말했다. 한 세계에 들어서기 전부터 ‘문패’만 보고도 매혹을 느끼는 그라면, 한 권의 책에서도 셀 수 없이 많은 순간 사랑에 빠질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저를 매혹시키는 책들은 책등이라는 초인종 혹은 문패를 봤을 때 제가 기대했던 바를 너무 충족시켜주거나, 아니면 반대로 저의 예상을 완벽하게 배신해서 전혀 다른 세계로 인도해주는 책들인 것 같아요.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르네 고시니의 『꼬마 니콜라』를 그대로 베껴낸 김모세, 이규성의 『꼬마 니꼴라』같은 경우에는, 책등만 봤을 때는 확신이 안 드는 거죠. 르네 고시니와 장 자크 상페의 『꼬마 니콜라』와는 무엇이 다른지 모르는 상태로 뽑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책등을 보고 뽑아냈을 때의 예상은 완전히 무너지고, 거기에 새로운 게 채워지는 이상한 책이죠. 물론 책등을 봤을 때 기대했던 바를 넘어서서 채워주는 책들이 더 좋은 것이지만요.”

 

‘책등’에 관한 고백을 뒤로 하고 『책등에 베이다』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는 ‘롱프르’에 대한 것이다. ‘롱프르’는 펜싱 경기에서 “다시 한 번 찌르기 위한 후퇴”를 일컫는 용어다. 후퇴를 말하며 작가는 “나는 무덤가에 살고 있다”며 서늘하게 읊조린다. 그리고 시간을 되돌려 ‘인문학의 죽음’이 이야기되던 시기에 대학에 입학해 ‘문학의 죽음’이 진단 내려진 시기에 국문학도로 살았던 시절에 대해 들려준다. 그리고 지금 ‘서점의 위기와 출판의 죽음’을 말하는 시대에 책방을 운영하고 있다는 말도 덧붙인다. 모두가 사지(死地)라 일컫는 곳으로 스스로 걸음을 떼었던 그의 시간이 궁금했다. 그래서 시간의 순서대로 차근차근 짚어나가자고 생각했다. 먼저, 그 스스로가 문학을 말하는 것이 “나의 스포츠였다”고 회상한 시절에 대해 물었다.

 

“대학 시절에 저는 소설 창작 동아리에 속해 있었어요. 기성 작가들의 소설을 읽고, 저희가 직접 소설을 쓰기도 하고, 함께 모여서 각자의 소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죠. 그때 저는 문학이 최상의 것이고, 가장 멋지고 소중한 것이고, 다른 모든 것을 버리는 한이 있어도 반드시 지켜야 하는 정수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제 몸에 문학의 기운을 가득 달고 다니는 걸 훈장처럼 여겼던 자칭 문학청년이었어요. 면밀하게 파악하지도 못했으면서 아는 체 하고 싶어서 여러 작가의 이름과 작품, 수상내역을 머릿속에 입력해 놓고 자랑하듯 펼쳐놓는 걸 좋아했던 때였던 것 같아요.

 

지금의 제가 그때의 저를 보면 너무 안쓰러워요. 문학을 하나의 환상으로써 갖고 있었던, 어렸을 때죠. 문학이 세상의 본령이고 유일한 가치라고 시야가 매몰되어 있던 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확실히 그때보다 시야가 더 넓게 흩어진 것 같아요. 소설만을 탐독하던 제가 여러 가지 다른 책들을 제 안에 보관하게 된 게 그 증거죠. 그래도 그 시절이 없었다면 ‘유어 마인드’를 시작하지도 못했을 거고 『책등에 베이다』도 세상에 나올 수 없었을 거예요. 당시에 어설프게 혹은 과장해서 부르짖었던 이상한 생각들이 원동력이 되어서 지금까지 오게 된 거죠.”

 

만나고-이로

 

나의 말과 생각이 담기지 않은 ‘나의 책’


이로 작가가 소설가를 꿈꾸었다는 사실은 조금도 놀랍지 않았다. 『책등에 베이다』 곳곳에서 심심치 않게 발견되는 유려하고 감각적인 문장들을 보면서 ‘왜 조금 더 일찍 작가가 되지 않은 걸까’ 궁금할 정도였으니. 실제로 그에게는 소설가 등단을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던 시간들이 있었다. 도전의 패기가 실패의 절망감으로 되돌아오는 일이 반복됐고 ‘나는 왜 좌절할 수밖에 없는지’ 고민이 짙어졌다. 그러나 그는 곧 깨달았다. 자신에게 ‘등단이 되느냐, 마느냐’의 선택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자신의 글을 직접 출간하면 된다는 인식의 전환도 이루어졌다. 그래서 독립 출판물을 직접 제작했고(이로 작가는 1인 잡지 <수상한 M>을 비롯해 다수의 독립 출판물을 발행했다), 이러한 잡지들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곳이 필요하다고 느껴 ‘유어 마인드’를 열었다.

 

“지금 저희 세대나 그보다 앞선 세대도 그렇지만 다음에 이어질 세대들 역시 너무 풍요로운 때를 만나지는 못할 것 같아요. 이건 저의 확신이 아니라 저보다 훨씬 더 경제를 면밀하게 파악하는 분들이 예상하는 바예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는 이상 90년대 즈음의 문화적인 풍요로 다시 돌아가기는 어려울 거라는 거죠. 창작 활동을 통해서 삶의 기반을 닦을 수 있는 때는 지나가 버렸고, 앞으로 그런 시절과 더 멀어질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이제는 저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자기만의 장인정신으로 각자의 길을 갈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각자의 생존법이 따로 있어야 하는 때가 오는 거죠. 나의 범위 안에서 성공하려면 내가 제조해낸 방법, 법칙, 기준으로만 승부를 봐야 되는 것 같아요. 그게 『책등에 베이다』 서문에서 얘기한 ‘후진하는 방법-롱프르’였던 것 같고요. 거창한 목표를 향해서 검을 빼들고 돌진하는 때가 이미 지났다고 생각하거든요. 이제는 크게 지르면 한방에 훅 가는 때가 왔잖아요(웃음). 그러니까 작게 지르면서도 그 안에서 의미를 찾고 전진할 수 있으려면, 조금씩 뒤로 가거나 그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방법들을 개발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책등에 베이다』도 그런 방법 중에 하나인 것 같기도 해요.”

 

그는 『책등에 베이다』가 독자들에게 불러일으키길 기대하는 ‘작용’에 대해 말했다. 이로 작가의 롱프르 『책등에 베이다』가 독자들에게는 안겨줄 ‘일보 후퇴 뒤의 일보 전진’은 어떤 모습일까.

 

『책등에 베이다』에 인용된 책을 읽어봤으면 좋겠다는 독자들의 반응도 너무 감사하지만, 그것보다는 ‘이것에 해당하는 나의 책은 무엇인가’라고 자기 책장을 하염없이 바라봤으면 좋겠어요. 그 안에서 자신만의 방법론이 나올 거고, 자신만의 책들이 나올 거고, 사람들이 멋있다고 하지 않지만 나한테는 소중한 뭔가가 나올 거예요. 그것으로써 사람들한테 얘기하기 시작하면 ‘이렇게 살아야 된다’는 다른 사람의 말들과는 다른 것들이 계속 생길 수 있죠.

 

『책등에 베이다』를 통해서 제 이야기를 인용을 통해 들려주었듯이, 독자들도 자신만의 방법에 대해 새롭게 생각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나의 말을 쓰지 않으면서도 내 글을 쓸 수 있구나’하고 생각해볼 수도 있을 테고 ‘내 생각이 담기지 않은 내 책이 있을 수도 있겠구나’하고 생각할 수도 있을 거예요. 또는 ‘다른 사람들의 문장을 레고처럼 조립해서 나의 작품을 만들 수도 있겠네’라고 새로운 발견을 할 수도 있겠죠. 그렇게 다양한 변주들이 생겨났으면 좋겠어요.”

 

만나고-이로

 

소설가 등단을 준비하던 문학청년이 독립출판물 책방의 주인이 되고 ‘자신의 것이 아닌 문장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는’ 작가가 되기까지, 작가 이로는 남들은 ‘이미 막이 내렸다’고 말하는 무대에 스스로 오르기를 계속했다. 그 여정에 대해 들었으니, 이제는 이유에 대해 물을 차례다. 문학의 무대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계속해서 ‘너는 끝났다’ 라거나 ‘너는 죽었다’ 라거나 ‘이제 거기에선 무엇도 나오지 않는다’ 라는 선고를 받은 분야이지만 저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것들이었기 때문에, 그것 이외에 뭔가를 한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거예요. 대체 불가능한 것이었죠. 그러면서 이런 고민을 하게 됐죠. 지금 각광받는 ‘핫한’ 공간이나 문화, 분야로 옮겨 다니기만 하는 삶은 과연 행복한 삶인가. 혹은 자신에게 진솔한 삶인가. 제게 소중한 이 분야는 여전히 ‘이제 그곳은 더 이상 각광받지 않고 9시 뉴스에는 죽어도 안 나올 거야’라는 선고를 받지만, 저에게는 그런 선고가 아무런 관련이 없는 거예요. 무덤가에 살고 있다고 해서 이 곳을 포기하고 더 화려한  어떤 곳으로 옮겨야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는 어떤 문화에 푹 젖어서 세 번이나 끝났다고 선고를 받은 무덤가에 살고 있다면, 또 그럴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면, 제가 고민해야 되는 건 ‘여길 어떻게 벗어날까’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 무덤가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뭔가’라고 고민해 봐야 하는 거죠. 이 분야가 끝났다고 해서 당장 저 역시 끝나고 죽을 게 아니라면, 최대한 소리쳐서 이 무덤가에서도 다양한 소리들이 나오고 있다는 걸 알릴 수 있으면 매몰되는 것만은 막을 수 있을 것 같고요. 그것이  이 안에서 살 수밖에 없는 운명을 깨달은 제가 할 수 있는 활동일 거라는 생각도 들어요.”

 

소설가 김중혁에게 『책등에 베이다』가 “미로 같은 책”이었다면, 시인 이제니에게 『책등에 베이다』는 “먼지들의 세계”였다. 그녀는 독자들에게 이 책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이 내면의 공간은 화창한 한낮의 햇살 아래 떠다니는 작디작은 먼지들의 세계이다. 먼지는 빛난다. 고유하게. 드높게. 이 먼지의 빛 속에서 그는, 한 사람의 개인이 온전히 그 자신으로 존재하기 힘든 이 시대에, 왜 결국 자신이 자기 자신이어야만 하는지, 왜 자신이 자기 자신일 수밖에 없는지를 역설적으로 말한다. (시인 이제니의 추천평 중에서)

‘미로’와 ‘먼지’. 작가 이로는 이 두 개의 단어가 『책등에 베이다』의 정체성을 말해주는 완벽에 가까운 단어라고 말했다.

 

“김중혁 작가님께서 미로라고 이야기하신 건 『책등에 베이다』가뚜렷한 동선이나 노선이 없는 책이라는 의미일 거예요. 그리고 어떻게 하라고 얘기해주지 않는 책이라는 뜻일 테고요. 저도 모순되어 있는 사람이고 작가인데 그걸 『책등에 베이다』에서 일관성 있게 포장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러지 않으려고 최대한 노력한 책이죠. 그렇기 때문에 책 속의 이야기들 사이에 사소한 모순이나 분열이 생긴다고 해서 의도적으로 어떤 부분을 삭제하지는 않았어요. ‘나는 뚜렷한 하나의 노선을 가진 작가여야 한다’는 욕심이 없었기 때문이죠. 그것이 제가 생각하는, 미로라는 말에 해당하는 이 책의 정체성이고요.『책등에 베이다』가먼지라는 이야기는 하찮은 개인으로서의 책이라는 의미죠.”

 

“책날개에 적힌 제 소개를 보면 ‘무명에 쓰는 사람’이라고 되어 있잖아요. 저는 그 말을 고칠 마음이 전혀 없어요. 만약 『책등에 베이다』가 베스트셀러의 상위권에 오른다고 해도요(웃음). 왜냐하면 저에게는 언제나 하찮은 한 명으로서의 역할이나 마음, 기준, 생각이 있거든요. 그렇게 조연으로서 엑스트라로서의 하찮은 먼지 같은 사람이 한 권의 책을 통해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는지 저도 궁금했어요. 만약 『책등에 베이다』의 독자들 역시 먼지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면, ‘나는 먼지니까 뭔가 표현하고 발화하기가 꺼려진다’고 생각했다면, ‘먼지로서의 개인도 이런 얘기를 할 수 있구나’라고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저에게는 그것이 『책등에 베이다』의 가장 핵심적인 정체성이에요.”

 

『책등에 베이다』라는 롱프르 뒤에 이어질 작가의 ‘전진’에 대해 물었을 때, 그는 주춧돌에 대해 말했다. 작가 이로에게 『책등에 베이다』는 하나의 기준점이 되는 주춧돌이 될 거라는 이야기였다. 이 돌 위에 다른 돌을 하나 더 얹게 될지, 그 옆에 케이크 한 조각을 놓아두거나 텐트를 펼쳐놓게 될지, 아직은 알 수 없다는 재치 있는 답변이 돌아왔다. ‘알 수 없다’고 말했지만 그는 불확실성 때문에 불안해하지는 않았다.『책등에 베이다』를 통해 자신과 독자들에게 생길 변화들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하는 작가의 얼굴에서 기분 좋은 설렘이 읽혔다. 그의 다음 책은 ‘이로의 언어들’로 채워져 있을까. 아니면『책등에 베이다』가 그러했듯이 ‘다른 이의 언어들’로 가득 차 있을까. 분명한 것은 그 안에 흐르고 있을 ‘작가 이로의 감성과 목소리’가 벌써부터 기다려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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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등에 베이다이로 저| 이봄
저자는 서교동에서 작은 책방 ‘유어마인드’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이 책의 저자이지만, 동시에 수많은 책들의 충실한 독자이기도 했다. 저자는 롤랑 바르트가 『저자의 죽음』에서 이야기한 “작가의 죽음의 대가로 우리가 얻는 것은 독자의 탄생이어야 한다"는 말에 충실하다 .저자는 롤랑 바르트의 말에 기대어 이 책을 쓴 것이 아니지만,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아주 훌륭한 “독자의 탄생”을 목격하게 된다.“독자의 탄생”은 책에서 저자가 아닌 ‘텍스트’만 따로 떼어와 자기 식으로 이야기를 상상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 책의 저자는 자기만의 글쓰기를 시도한 것이다. 진정한 “독자의 탄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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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한강 “벌 받는 기분으로 책상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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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는 한강의 여섯 번째 장편소설이다. 2011년 전작 『희랍어 시간』을 펴내고, 작가는 삶의 눈부신 이야기를 후속작으로 쓰겠다고 마음먹었다. 유년시절을 떠올리며 가장 찬란했던 파편들을 모으려 했지만, 여느 때와 다르게 속도가 나지 않았다. 아니, 진척조차 되지 않았다. 이유가 무얼까, 꽤 오랜 시간을 묵묵히 기다리던 끝에 작가는 ‘5.18 민주화운동’과 만났다. 1980년 5월 18일, 광주에서 일어난 열흘간의 민주화운동. 1970년 광주에서 태어난 한강 작가는 가족과 함께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나기 몇 달 전, 서울로 이사했다. 이후 명절 때마다 친척들이 ‘그 사건’에 대해 수군거리는 것을 들었다. 잊혔다고 생각했지만 작가에게는 해가 갈수록 또렷한 단상으로 남았다. 1994년 등단한 한강 작가는 작품을 쓸 때마다, ‘내가 왜 인간에 대해 이토록 의문을 갖고 있을까’를 생각했다. 소설과 시를 쓰면서 질문은 더욱 선명해졌다. 결국 훼손되어서는 안 될 것들이 무너진 1980년 광주의 기억을 더듬었고, 새로이 찾기 시작했다.

 

만나고-한강

 

2013년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창비문학블로그 ‘창문’에서 연재한 『소년이 온다』는 중학교 3학년 소년 ‘동호’가 친구 ‘정대’의 죽음을 목격한 후, 도청 상무관에서 시신들을 관리하는 일을 돕게 되면서 시작된다. 1980년 5월 광주를 배경으로 당시 상황과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참혹한 광주의 역사는 지난 34년 동안 많은 소설, 영화에서 다뤄졌다. “5월 광주에 대한 소설이라면 이미 나올 만큼 나오지 않았느냐”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소년이 온다』추천사(“이제 더 절실한 것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응징과 복권의 서사이기보다는 상처의 구조에 대한 투시와 천착의 서사”)가 해답이 될 수 있다.

 

소설이 출간되고 열흘이 채 지나지 않은 날, 사당의 한 카페에서 한강 작가를 만났다. 때이른 무더위가 갈증을 불러왔지만 어찌 보면 갈증의 원인은 날씨 탓이 아니었다. 34년 전 광주의 모습이 여전히 우리 사회 속에 보여지는 까닭에서였다. 작가는 요즘, 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학교는 안산에 있다. 『소년이 온다』의 마지막 교정을 볼 즈음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고, 작가는 안산에서 학생들을 마주할 때마다 소설 속 동호의 얼굴과 겹쳐졌다.

 

가장 찬란한 이야기를 쓰려고 했지만, 광주가 있었다


3개월간 출판사 블로그에 연재된 소설이다. 단행본으로 출간되기를 많은 독자들이 기다렸다.


연재하고 나서 많이 고쳤다. 5장을 완전히 새롭게 썼다. 책으로 묶어진 게 세 번째 버전이다. 편집자는 괜찮다고 했지만, 마음에 차지 않았다. 인물에 많이 다가가지 못한 느낌이었다. 충분히 더 가깝게 다가갈 때까지 쓰고 싶었고 많이 노력했다. 감정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건 2장이다. 죽은 소년의 목소리가 너무 참혹해서, 가장 많이 고통을 느꼈던 것 같다.

 

취재를 하면서 소설을 준비한 시간까지 합하면 1년 반을 『소년이 온다』와 함께했다. 소설을 쓰면서 벌 받는 느낌을 받았다고 고백했는데.

 

실제로 있었던 일들을 배경으로 하니까 내가 누가 되지 말아야겠다는 책임감이 컸다. 인간으로서 마주하기 어려운, 인간의 가장 어둡고 참혹한 지점을 계속 들여다봐야 했기 때문에 그게 어려웠다. 현실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잔혹했다. 잔인한 것도 더 많았지만 사실만큼 못 썼다. 소설로 쓸 수 있는 한계였다. 더 잔인한 이야기를 쓰는 게 작가로도 힘들었겠지만 독자가 수용하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다. 소설에 모든 걸 쓰진 못했지만, 작품 때문에 읽어야 했던 수많은 자료를 봐야 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

 

34년이 지난 지금, 광주 이야기를 다시 꺼낸 건 어떤 이유에서였나?

 

원래 쓰려던 소설이 있었다. 인생의 가장 밝은 파편들을 모아 놓은 소설이었다. 그래서 내가 살아온 여러 삶 속에 들어가서 찬란했던 기억들을 끄집어내려고 했는데, 진척이 되지 않았다. 인생을 껴안을 수 없다는 의심이 들었고, 무언가가 내 앞을 막아 선다는 느낌을 받았다. 왜 이럴까? 오랫동안 생각을 했는데, 들여다보니 그 안에 광주가 있었다.

 

어린 시절을 광주에서 보낸 까닭이었을까.

 

‘5.18 민주화운동’이 일어나기 몇 달 전, 우리 가족은 아버지가 중학교 교사를 그만두시며 광주를 떠났다. 당시에 광주에는 없었지만 광주에 있던 친척으로부터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인간으로서 상상할 수 없는 일들, 끔찍한 폭력성을 가진 인간을 마주하게 됐다. 밝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인간의 어두운 면을 끄집어내지 못한다면 결국 밝은 소설도 쓸 수 없다고 생각했다.

 

만나고-한강

 

소설이 6장으로 이뤄졌는데, 각 장의 화자와 시점이 다르다.

 

장에 따라 느낌을 약간 다르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일단 소년이 나와야 하니 소년의 이야기를 썼고, 다른 인물들을 생각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한 달 정도 고민하면서 배열을 구성했다. 오래 생각해서 그런지, 결정이 난 건 한 순간이었다. 2장까지는 죽은 소년의 이야기니까, 3장에서는 그래도 숨을 쉬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은숙이도 고통을 받긴 하지만, 고문을 겪거나 그러진 않았으니까. 어쩌면 우리랑 가장 가까운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에 잠깐 숨을 돌리고 가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은숙’은 여고 3학년 때, 5.18을 겪었다. 이후 작은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는데, 담당 원고의 검열로 경찰서에 끌려가 ‘일곱 대의 뺨’을 맞는다. 지금은 검열이 사라졌지만, 여러 형태의 검열은 아직도 남아있다.

 

그렇다. 오래 전의 일이 아니다. 어릴 때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가 아버지가 어떤 잡지에 투고를 하면, 글이 실려서 와야 하는데 잡지랑 같이 원고가 다시 배달되는 경우가 있었다. 뭔가 시국에 대한 이야기를 한 글이었지만, 아버지가 그것들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분이 아니셨는데도 검열을 두려워하는 편집자가 1차로 검열을 한 거다. 어릴 때부터 이런 경험을 가까이에서 했기 때문에 상상할 수 없는, 비현실적인 일이라고 여겨지진 않았다. 이 나라에 존재했고 최근까지 있었던 일이니까.

 

편집자로 일했던 경험도 있는데.

 

작가로 데뷔하기 전에 출판과 잡지 편집 일을 2년 정도 했다. 그래서 검열의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더 실감이 났다. 최근에 한 선생님이 검열을 겪었던 시절에 대해 말해준 적이 있다. 모든 출판물이 검열과를 거쳐야 했는데, 먹선으로 그어진 원고를 보면 마음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고 했다. 『소년이 온다』나온 것처럼, 어떤 특정한 책을 유난히 싫어해서 나중에는 롤러로 밀어서 원고 뭉치가 이렇게 부풀어져서 다시 가지고 온 적이 있었는데, 오는 길에 계속 눈물을 흘리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만나고-한강

 

여름의 동호, 애쓰지 않고 그냥 있으려고 한다

 

3개월간 광주에서 취재를 했다. 소설과 현실이 어느 정도 일치하나?

 

사건 자체는 현실에 기반하고 있지만, 인물이 일대일로 대응되진 않는다. 동일방직 사건은 현실에 있었던 일이지만, 소설에 등장하는 ‘선주’가 광주에 있었던 건 아니다. 친동생이 광주에서 3년 정도 살았는데, 마지막 1년 동안에 내가 『소년이 온다』를 쓰면서 동생 집에 자주 묶었다. 만약 80년대, 90년대에 이 작업을 했더라면 힘들었을 테지만, 여러 단체에서 정리를 많이 해놓아서 자료를 찾는데 어렵지 않았다. 여러 사람들을 만나 물어도 보고, 묘지도 몇 번 다녀왔다. 글을 쓰다 잘 안 써지면 찾아가고, 종교는 없지만 기도도 하고 그랬다.

 

실제 광주에서 ‘5.18 민주화운동’을 겪고 지금도 광주에 사는 사람들을 만나,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나.

기회가 될 때마다 물어봤다. 기억에 남는 한 분은, 지금은 너무 많이 퇴색되고 왜곡돼서 광주에서조차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지 않은 분위기가 더 크다는 이야기를 해줬다. 착찹하게 “이제는 뭐 그런 마음 같은 거 없어졌지 않냐”고 말씀하시더라.

 

집필하면서 가장 쓰기 고통스러웠던 장면은 무엇인가.


한 장을 끝날 때마다, ‘아 이제 그만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각 장마다 힘든 순간들이 늘 있었다. 1장에서는 정대가 총을 맞는 장면은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집단으로 총이 발포돼서 수많은 사람들이 쓰러져 있는데, 시체라도 구하자고 맨몸으로 뛰어드는 사람이 수없이 많았다고 한다. 군인 측 증언에 따르면, 계속 총을 쏘는데도 불구하고 동료를 데리고 가기 위해 주저 없이 달려드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 경험을 평생 못 잊는다고 하더라. 정대 이야기를 쓸 때는 ‘오늘은 이만큼 써야지’하고 작업실에 갔다가, 세 줄 이상 못 쓰고 그대로 돌아오는 경우가 많았다. 몇 시간 동안 아무 것도 안 하고 있어야 할 때가 많았다.

 

‘소년이 온다’라는 제목이 독자에게 주는 여운이 크다.


가장 마지막에 나온 제목이다. 처음 생각한 건 ‘여름의 당신’이었다. 봄이 지나고 여름이 왔지만, 소년이 건너가지 못한 여름을 말하고 싶었다. 소설에서 소년을 계속해서 ‘너’로 부르지 않나. 여름이라는 계절이 생명의 계절이기도 하지만, 잔혹함이 있으니까. ‘당신’으로 말하고 싶었는데 너무 낭만적으로 보일 것 같고 성격이 전혀 다른 소설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아, 제목을 다시 생각했다. ‘여름의 동호’라는 제목도 생각했는데 출판사에서 거절했다(웃음). 나는 동호가 누군지를 아니까 ‘당신’보다 더 애틋하고 가까운 느낌이지만, 독자들은 ‘동호’를 모르는 상태에서 소설을 읽게 되니까. 며칠 밤을 고민해서 ‘소년이 온다’로 결정했다.

 

『소년이 온다』 최종 교열을 볼 때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 안산에 있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터라, 마음이 더 무거웠을 것 같다.


안산에 사는 것도 아니고, 수업이 있을 때만 잠깐 다니러 가는 거였지만. 마음이 무거웠다. 또래 아이들을 보면 ‘동호’가 생각나기도 했고. 소설을 쓰고 나서는 한동안 벗어나기 힘든데, 이번 소설은 벗어나는 게 미안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벗어나려고 애를 쓰다가, 요즘은 그냥 포기하고 좀 있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벗어나려고 애쓰지 말고 그냥 있자, 이런 마음이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은 “어떤 소재는 그것을 택하는 일 자체가 작가 자신의 표현 역량을 시험대에 올리는 일일 수 있는데, 한국문학사에서 ‘80년 5월 광주’는 여전히 가장 그러한 소재”라고 말했다. 이미 많은 작가가 광주 이야기를 작품화했는데, 그에 따른 부담감은 없었나?


부담감보다, 광주를 다뤘다고 하니 뭔가를 고발하는 소설일 거라고 사람들이 생각할까봐 걱정했다. 물론 증언하는 내용도 들어있지만, 증언함과 동시에 온 힘을 다해서 애도하고 응시하는 그런 소설이었으면 했다. 아직 많은 독자들의 이야기를 듣진 못했지만, 다행히 그렇게 많이 읽어주신 것 같다. 며칠 전 “고발하는 소설일 것 같아서 안 보려고 했는데 읽어보니까 소년이 가깝게 느껴졌다”는 리뷰를 읽었다. 내가 바란 게 바로 이거였는데 다행스러웠다. 『소년이 온다』는 내가 쓴 소설 같지가 않고 소년이 쓴 것 같다. 다른 인물의 이야기도 소년이 대신 쓰고, 다른 사람이 또 오면 이어서 쓰고. 그렇게 6장까지 쓰다가 7장(에필로그)만 내가 건네 받은 느낌이다. 2014년을 살아가고 있는 건 나 자신이니까, 나로부터 독자까지는 더 가까우니까, 동시대 사람이니까. 그렇게 느껴주길 바랐는데 가깝게 느껴주신 것 같아 다행스럽고 감사했다.

 

만나고-한강

 

사랑에서 출발했고, 또 다시 사랑에서 출발한다


북 트레일러도 인상 깊었다. 작가가 직접 기획했다고 들었다.


한희정 씨가 음악을 무척 잘 만들어줬다. 처음에는 원고를 3장까지만 줬는데, 곡을 쓰려면 모든 장을 읽어야 쓸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더라. 임솔, 임정환 두 감독이 영상을 찍었는데, 촬영현장에는 가지 않았지만 소설의 느낌을 잘 살려줄 거라는 생각이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생이 주인공인데, 영상과 딱 어울리는 친구가 지원을 해줘서 바로 촬영에 들어갔다고 한다.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99쪽).” 소설 속에서 검열이 된 희곡에 나오는 문장이 영상의 내레이션으로 사용됐다.


처음부터 이 글귀를 영상에 넣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소설 속 연극의 대사이지만 정말 하고 싶은 말이기도 했다.

 

당신들을 잃은 뒤, 우리들의 시간은 저녁이 되었습니다. 우리들의 집과 거리가 저녁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 어두워지지도, 다시 밝아지지도 않는 저녁 속에서 우리들은 밥을 먹고, 걸음을 걷고 잠을 잡니다. (『소년이 온다』 79쪽)

 

 

유독 ‘저녁’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등장한다. 동호는 햇빛을 좋아했는데, 우리에겐 저녁밖에 없는 삶이 됐다. 지난해 11월 출간된 첫 시집도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다.


간혹 장편을 쓰면서 시를 쓰면 그 분위기가 들어온다. 『소년이 온다』을 쓰면서 시도 함께 썼다. 이 소설을 쓸 때 「저녁의 소묘」를 썼다. 그래서 저녁 이야기가 두 작품에 겹쳐졌다. 「거울 저편의 겨울」 연작에 ‘학살을 기억하는 나는, 신도 인간도 믿지 않는 너를 기억하는 나는’이라는 내용이 있는데, 이 소설과도 연결된다. 보통 소설과 소설 사이에 시를 쓰지만, 잠깐 시가 써질 때가 있다. 『채식주의자』를 쓸 때는 「피 흐르는 눈」 연작을 썼다.

 

『소년이 온다』가 영화화가 된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광주를 제대로 응시할 수 있지 않을까.


<화려한 휴가>나 <26년>과는 다른 분위기로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사건 중심보다는 인물의 내면을 따라가는. 영화화 제안이 온다면 흔쾌히 수락하고 싶다.

 

가장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다룸으로 인해, 작가로서 또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거란 생각도 들 것 같다.


이 소설을 쓰면서 인간의 훼손돼서는 안 되는 것들이 훼손됐던 시간들을 들여다보며 고통을 많이 느꼈다. 나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울기도 많이 했는데. 최근 한 번역자가 쓴 글을 읽었다. 걸프전이 일어났을 때, 폭격이 일어나 수많은 민간인들이 죽었다는 뉴스를 듣고 버스를 탔는데 계속 눈물이 났다고. 이 눈물의 의미가 뭘까? 생각해봤는데, 인간에 대한 사랑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이 글이 나에겐 최근에 들은 어떤 말보다 위로가 됐다. 『소년이 온다』를 쓰면서 느낀 고통이 ‘인간에 대한 사랑이구나’를 느꼈다. 다시 소설을 쓴다면 여기에서부터 시작하지 않을까 싶다. 예전에 쓰려던 소설은 못 쓸 것 같다. 아직 형태는 없지만, 사랑에서 출발하는 이야기를 쓰게 될 것 같다.

 

만나고-한강

 

작품을 마쳤지만 아직 벗어나지 못했으니, 지금이 더 힘들 때가 아닌가?

 

작품과 작품 사이가 힘들 때가 있다. 뭔가에 몰두해서 계속 그 생각을 진척시킬 때는 그것이 생활의 중심을 잡아주니까 흔들리지 않고 잘 살 수 있는데, 쓰지 않을 때는 뭘 써야 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느껴지는 괴로움이 있다. 장편일 때는 빠져나간 자리가 더 크게 느껴질 수 있으니 많이 흔들릴 수가 있다. 지금의 내가 그런 것처럼. 아직 내 삶의 중심에는 이 소설이 있는데, 시간이 지나면 어떨지 모르겠다. 그래서 작가는 자신을 기억하기 위해서 일기를 써야 한다는 말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작품을 쓰다 보면 자신을 잃어버리게 되고, 소설이 완성되고 나면 ‘내가 어떤 사람이었지?’ 되묻게 된다. 그런 걸 기억해야 하는 시기가 오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소설을 출간하고 독자를 만나는 일은 어떠한가?


책을 자주 내진 않으니, 많이 만나진 못하지만 뵐 때마다 좋다. 뭔가 진짜 내 편이 다 와 있다는 느낌이 든다. 불특정 다수가 아닌 내 소설을 아는 사람들이니까. 내 이야기라면 뭐든지 다 들어줄 것 같다는 마음이 들어 행복하다. 아픈 것도 다 나을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애정이 간다.

 

어떤 독자들이 『소년이 온다』를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나?

 

젊은 독자, 어린 독자들이 많이 읽어주면 좋겠다. 광주가 이제 점점 언급이 안 되고 있다. 교과서에도 자세한 정황이 나오지 않고 교육되지 않으니 자연스럽게 모두가 모르게 된다. 유년시절에 조금이라도 경험을 했으면 그래도 알 텐데, 지금 사회는 이런 걸 알리려는 분위기 자체가 아니니까. 왜곡된 이야기를 듣기 쉬우니까 자라나는 세대가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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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한강 저| 창비
『소년이 온다』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에 맞서 싸우던 중학생 동호를 비롯한 주변 인물들과 그후 남겨진 사람들의 고통받는 내면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당시의 처절한 장면들을 핍진하게 묘사하며 지금 "우리가 '붙들어야 할' 역사적 기억이 무엇인지를 절실하게 환기하고 있다(백지연 평론가)." "이 소설을 피해갈 수 없었"고, "이 소설을 통과하지 않고는 어디로도 갈 수 없다고 느꼈"다는 작가 스스로의 고백처럼 이 소설은 소설가 한강의 지금까지의 작품세계를 한단계 끌어올리는, "한강을 뛰어넘은 한강의 소설(신형철 평론가)"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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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추자 “디바보다 노래 잘 부르는 가수로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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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년 만에 세상 밖으로 내딘 그의 발걸음은 여장부처럼 위풍당당했다. 1969년 「늦기 전에」로 데뷔해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님은 먼 곳에」 「거짓말이야」 등을 히트시키며 가요사에 한 획을 그은 김추자가 노래처럼 더 '늦기 전에' 우리 곁으로 다시 돌아왔다. 다음주면 발매될 정규 6집과 6월28,29일로 예정된 콘서트를 앞두고 5월27일 종로의 한 호텔에서 열린 컴백 기자회견에서 그는 “오래 기다려 준 팬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는 말을 거듭했다. 자리에는 소속사 이에스피 엔터테인먼트 박의식 대표와 대중음악평론가 임진모씨가 함께했다.

 

만나고-김추자

 

1970년을 풍미한 김추자는 당시 하나의 현상이었다. 트로트와 스탠다드 팝이 국내 음악계를 주도하던 시대에 록과 소울, 사이키델릭을 결합하고 실험하는 신중현 작곡 김추자 노래의 음악은 대중에게 기존에 없던 완전 새로운 경험을 안겼다. 수줍음이라고는 없는 파격적인 퍼포먼스도 시대를 앞선 것이었다. 임진모 평론가는 “김추자는 한국 댄스음악 최초의 아이콘”이라며 “우리나라 최초로 엉덩이를 흔들었다. 당시 시대배경을 고려하면 큰 도발이었다”고 말했다.

 

이번에도 댄스가 필요한 곡에서 과거처럼 엉덩이를 흔들 거냐는 질문에 “당연히 흔들어야죠”라고 대답하는 김추자. 신보에 수록된 신중현 작곡의 「가버린 사람아」, 「몰라주고 말았어」, 「고독한 마음」, 그리고 고(故) 이봉조의 곡인 네오 트로트 「하늘을 바라보소」를 감상하는 순간에도 그의 표정은 노래에 젖어 있었고 몸은 작게 그러나 한껏 템포를 타고 있었다. 이야기 도중 노래의 한 대목을 거침없이 부르고, 음악에 대한 애정과 생각을 가식없이 전달했다. 어떻게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음악 활동을 쉴 수 있었는지 의아할 만큼 강렬한 열정과 자신감이었다.


33년 만의 컴백입니다. 오래 기다린 팬들에게 인사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를 오랜 세월 동안 한결같이 사랑해 주시는 팬들의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 더 늦기 전에 무대 위로 다시 돌아온 김추자입니다. 30년 이상을 평번한 아내로 엄마로 살다가 무대에 다시 선다고 생각하니 감회가 새롭기도 하고 설레는 마음도 들고 흥분이 되기도 합니다. 그동안 새로운 앨범 제작에 심혈을 기울여 왔습니다. 가수로서 좋은 노래를 불러 팬들에게 나서고 싶은 마음은 당연하니까요. 준비한 앨범이 올해 나와 다시 노래를 하고 무대에도 설 예정입니다. 긴 세월 동안 잊지 않고 끊임없이 저를 찾아준 팬들에게 멋있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무대 위에서 팬들과 즐거운 마음으로 만나고 싶습니다. 기대해 주세요.

 

김추자

자녀분은 어머니의 가수 복귀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이던가요?


아이가 어릴 때부터 신중현 선생님이나 김희갑 선생님이 집에 와서 노래를 가르쳤기 때문에 '엄마는 왜 노래를 안 부르냐고' 그랬어요. 친구들이 유튜브로 엄마 노래를 알게 되면서 자기가 엄마 대신 대접을 받고 다녔대요.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도 엄마 노래 한번 부르는 거 보고 싶어 하지 않았냐기에 제가 “나는 늦었다, 나가려면 일찍 나갔어야지” 했더니 딸이 늦지 않았대요. 엄마 늙지 않고 주름도 없다고요. “엄마 노래해, 그 좋은 재주 아끼면 뭐해, 엄마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노래 안 들려주는 것도 나중에는 잘못이라고 뉘우칠 거야”라더군요. 그래서 언제부턴가 하려고 했었는데 살림만 하다 오랜만에 나오려니 이런저런 게 달라져서 적응이 잘 안 되더라고요. 그래도 내년이면 더 늦어지니 1년이라도 빨리 나오는 게 좋지 않나 해서 나왔습니다.

 

타이틀 곡 「몰라주고 말았어」를 제외하고 유독 애착이 가는 곡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고독한 마음」, 그리고 「태양의 빛」. 「가버린 사람아」도 괜찮죠. (동석한 이에스피 엔터테인먼트 박의식 대표는 신중현 작곡의 「태양의 빛」이 가사 등 곡 자체가 세월호 피해자에게 힘을 주는 곡이라고 판단해 이미 다 만들어놓은 곡을 다시 편곡하고 녹음했다고 덧붙였다. 세월호 침몰로 김추자의 음반 발매와 공연은 예정보다 연기된 상황이다.)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는 에너지가 놀랍습니다. 자기 관리는 어떻게 하셨나요?


노래연습이나 춤 연습을 별도로 하진 않았고 항상 제 곁에는 부엌에도 응접실에도 라디오가 있어요. 다른 채널의 라디오들을 계속 틀어놓죠. 그래서 음악은 고루고루 들어요. (집에서는) 사람이 사는 곳이라 혼자 노래를 소리 높여 부를 수 없고, 노래를 위해 산꼭대기에 가서 부를 수도 없어서, 노래를 듣고 음미를 하죠. 요즘 트렌드는 이렇구나, 이 가수는 노래를 잘하네 하면서 밤낮없이 하루종일 그러고 있어요. 그렇게 음악을 듣기 위한 무질서한 생활을 한 10, 20년 했어요. 가족들이 음악에 미친 모양이라고.(웃음) 그래서 지금 현역 가수들, 하다 중간에 그만둔 가수들, H.O.T, 이후 걸그룹들 등 변천사를 다 알고 있어요. 신보 들으면서 제 나름대로 채점을 매겨요. 이 노래는 여기를 잘 살렸다 혹은 어디서 많이 듣던 노랜데 표절했구나 하는 것도 혼자 알게 됐고요. 누구를 딱히 꼬집으려고 하는 건 아니고, 그렇게 음악을 접하면서 한국음악과 외국음악의 다른 점들을 파악하는 거죠.

 

 요즘은 음악이, (과거에는) '님이 오실 때까지', '님이 아니면 못산다 할 것을', '님 그리워 우는 밤' 이러지만 (요즘에는) '니가 나를 어떻게 하려면 하고 말려면 말고', '니가 없으면 난 죽음이야' 식의 단어를 쓰죠. 어떻게 보면 사랑의 농도가 짙다고 할까? 후배 가수들에게 작곡을 의뢰하면 가사가 대개 인스턴트예요. (관계에 있어) 역사적인 게 없이, '너는 내게 말했지만, 난 네게 줄 수 없어' 등의 마치 꼬시기 작전의 노래 같은.(웃음) 작업송이 많은 것 같아요. 그게 저와는 안 맞지만, 멜로디 자체는 악기가 주는 이상한 향기와 소리가 나요. 그러면 서슴지 않고 밤이고 낮이고 춤을 춥니다. 템포가 좋으면, 작업송이든 뭐든 뜻에는 크게 의미를 두지 않고 멜로디에만 충실해서 춤을 춰요. 그러면서 스스로 체크를 많이 했어요. 거울을 보면서. 집에 거울이 참 많습니다.(웃음) 물론 음악이 그렇게 하라고 시키니까 하죠. 그러면서 다음에 무대에 나가면, 이런 리듬이 나오면 이렇게 부르면서 더 애절한 눈빛과..., 또 거기에는 신발과 모든 것이 다 갖춰져야 노래가 나오니까 코디도 잘해서 (무대에) 나가야지 하는 생각을 했죠.

 

라디오를 계속 들으셨으면 그간 가요계 흐름을 쭉 보셨을 텐데, 특히 눈에 띄는 후배 뮤지션이 있었나요?


TV를 보면 전부 다 춤을 추며 빠른 템포의 노래를 부르는데, 다들 열심히 하고 '너 죽고 나 살겠다' 하기 때문에, 천편일률적으로 다 그래서 누가 제일 좋다 그렇게 말할 수는 없어요. 얘가 좋으면 비슷한 애들이 또 막 나와요. 다들 잘 하는데, 얘네들은 쟤네들이랑 좀 달라, 달라서 좋아 그런 건 느끼지 못했어요. 머리도 화장도 다 비슷해서 어떤 때는 얼굴도 잘 못 알아봐. 그런데 다들 열심히 하더라고요.

 

오랜만의 녹음에 어려움은 없었나요? 특히 「하늘을 바라보소」 같은 트로트는 예전에 하지 않았던 장르인데요.

 

노래할 때 어려움은 없었어요. 옛날에 했던 것이고, 말씀 드린 대로 그동안 음악을 떨어트리지 않고 항상 옆에 두고 살았기 때문에 다시 부른다는 게 어색하지 않았습니다. 트로트도 제가 원래 창을 했기 때문에, 「늦기전에」에서 '(해당 소절을 부르며) 다시는 찾을 수 없어요' 이것도 창이잖아요. 사이키델릭에 창이 들어가는 게 참 이상하거든요? 근데 신중현 선생님이 한국식 록을 새롭게 도입한 거죠. 뽕을 부르는 건, 솔이나 록을 부르는 것만큼, 더 멜로디식이에요. 록이나 솔은 지르는 거지만 이거는 휙 감는 거 아닙니까. 꺾기. 야시시하게 잘 꺾어지더라고요.(웃음) 그게 '창'덕인 거 같아요. 그런데 원래 노래의 기본이 솔도 한이고 뽕짝도 한이거든요. 설움을 얘기하거든요. 다 한을 얘기하는 거니까 상통하는 게 있어요. 엔카도 부를 기회가 있으면 판 한번 낼 겁니다. 뽕은 이렇게 부르는 거야 하고. 마냥 여리게만 부르는 게 아니라. '미소라 히바리' 보십시오.(그의 노래 한 소절을 부른다) 참 강합니다. 우리나라 엔카와는 달리 앙칼지고 휘어잡는 게 있어요. 움직이지 가만있질 않더라고요. 아무튼 다른 분들은 「거짓말이야」 같은 옛 노래의 빠른 템포에 많이 익숙해지셔서 뽕은 잘 못 부를 거라 하지만 숨은 재주가 있답니다 제가.(웃음)

 

1981년에 결혼생활을 시작하면서 활동을 중단했는데, 그때는 어떤 결심을 하신 건가요?


연예계 생활할 때 간첩이다 뭐다 그런 이야기 너무 많이 들어서 연예계 생활이 하기 싫더라고요. 1969년에 춘천 좁은 데 살다가 넓은 데 와서 히트라고 쳤는데, 간첩이다 CIA가 왔다갔다 그러는데 그때는 정말 노래하고 싶지 않더라고요. 오히려 결혼생활이 제게는 참 행복한 시간이었던 거 같아요. 다시 마음먹은 건 이젠 그런 것도 다 소화할 수 있으니까 더 늦기 전에, 목소리 더 망가지기 전에 들려주고 싶은 생각인 거지 다른 뜻은 없습니다.



 

긴 공백기 동안 과거 김추자에 대해서도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셨을 것 같습니다. 과거 활동할 때 이런 건 좋았다, 이런 건 좀 아쉽다 하는 부분이 있다면요?


무대에서 공연할 때가 가장 좋았고요. 관객들도 박수 쳐 주고 같은 마음으로 공감하고 환호해 주고 그런 게 가장 즐거웠던 거 같아요. 그런 맛에 노래를 부르지, 맨날 간첩이라 그러면 노래를 부르겠어요?(웃음) 나가면 김추자 나왔다고 좋아하셔야 저도 좋은데 간첩이라 그러니 제가 노래를 할 수가 없었죠. 신중현 선생님도 말씀했듯이 노래는 몸을 움직여야 소리가 나온다고 보디랭귀지라 그러는데 그런 것도 팬들에게 어필이 됐을 거 같아요. 제가 노래만 부르는 게 아니라 그 노래를 가지고 표정이나 연기를 하니까. 그렇게 하려고 그런 게 아니라 저는 영화배우가 연기하듯 노래를 불러야 노래가 나오더라고요. 그게 그렇게 보기 싫지는 않았던 거 같아요. 제가 봐도 「저무는 바닷가에」 그러면서 팔 벌리는 게 왜 이렇게 덜떨어지고 웃기지가 아니라, 꽤 잘했네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선생님에게 있어 신중현 선생님은 어떤 의미입니까?


신중현 선생님은 제 음악과 제 음성과 저의 어떤 소리가 제일 미성인지, 어떻게 곡을 쥐어줘야 하는지 아시는 분입니다. 저와 제일 잘 맞는 베스트 콤비죠. 선생님도 그걸 잘 알고 계시고요.

 

이번 컴백을 가장 반긴 분도 신중현 선생님이었을 것 같은데 어떤 격려의 말씀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선생님이 다치셨다는 소리를 듣고 입원하신 병원으로 찾아뵀어요. 침대에서 맨발벗고 내려와서 두 손을 잡아주시더라고요. 노래 다시 부른다니 마음대로 불러, 좋은 대로 해, 나오면 좋지, 일 안하던 사람이 일 하면 좋지, 그러시더라고요. 잘 해 보라고. 그래서 녹음 되면 그거 갖고 집에 한번 찾아가기로 했어요.

 

현재 중장년층 남성들에게는 첫사랑이자 로망으로 기억되고 있으신데 거기에 대한 부담감은 없으셨나요?


중장년층이 좋아하는 건 애들도 좋아할 걸요. (신중현) 선생님의 곡이 다 감성적인 노래니까. 그만큼 곡을 감성적으로 뽑아내는 사람이 있나? 너무 다 즉흥적이고 폭발적인 노래를 하지......, 그런 거 젊은 애들도 좋아하죠. 요즘 젊은 애들도 지혜도 많고 명석하니까. 꼭 중장년층만 좋아하는 것도 아닌 거 같더라고요.

 

오랜만에 앨범을 내셨는데 어느 정도의 결과를 기대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저는 결과를 기대하고 부르진 않아요. 제가 노래를 잘 불렀으면 결과가 좋을 것이고 노래가 잘 못 불렀으면 결과가 안 좋을 테죠. 이번 앨범은 잘 불렀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저는 공연 위주로 활동하고, 좋은 무대가 있으면 할 참이에요. 그렇다고 여기저기 다니는 것보다 좋은 무대가 있으면 준비를 좀 해서 하고 싶어요. 했던 거 계속 우려먹지 않고, 준비를 좀 해서요.

 

영화나 뮤지컬 제작 이야기도 있었는데 추후에 작업을 진전하려는 계획은 없으신가요?


이현승 감독이 (저를) 영화화해서 우리나라의 계보적인 것, 이런 가수가 지금에서부터 시작되어 그 다음에도 어떤 가수로 이어져 역사가 된다는 걸 그리려고 했는데 영화판도 블록버스터니 뭐니 하다 보니 제작비가 커지고, 그래서 제가 돈 많이 들여서 할 거 뭐 있냐고 했어요. 이 감독은 아직 개인적인 라인업에 제가 들어 있다고 말해요. 이준익 감독도 < 님은 먼 곳에 > 한다고 애썼죠.

 

김추자 선생님에게 따라붙는 '원조 디바'라는 수식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는 디바 소리가 별로 좋지 않아요. 전설의 가수 누구, 국민적인 가수 그런 말. 제일 듣기 싫은 게 '국민적인 가수, 디바'라는 거예요.(웃음) 외국 사람들은 그렇게 이야기하면 디바가 영어기도 하고, 억양과도 맞아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디바 그러면 좀 어색하고 맞지 않는 거 같아요. 다 디바야.(웃음) 그래서 딸한테 그랬어요. “나는 그냥 김추자라 그랬으면 좋겠어.” 디바, 국보적인 존재, 우리의 전설, 이런 말은 빼 줬으면 좋겠어요. 나는 그냥 김추자. 김추자고, 그게 좋아요. 디바라고 하지 말고 그냥 우리나라 말을 써서 '최고의 가수다' 그러면 되는 건데. 저는 그냥 한국에 노래 잘 부르는 김추자다. 그렇게 부르면 좋겠어요.

 

글/ 윤은지 (theotherso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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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윤, 라디오 PD로 일하며 만난 사람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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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생존만을 목적으로 할 때, 도대체 이 존재는 여타의 다른 생명체와 무엇이 다를까. 아마 이 질문의 역사는 수천, 수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것이다. 최초의 인간을 시작으로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이들이 같은 질문을 반복했을 것이고 그 질문의 숫자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많은 해답들이 뒤따랐을 것이다. 그 모든 이야기들을 알 수는 없다. 하지만 분명하게 알 수 있는 단 한 가지가 있다. 분명 그 안에는 이상향에 대한 이야기가 끼어있을 거라는 사실이다.

 

‘그저 살아지는 대로’ 사는 데 그치지 않고 ‘살고 싶은 대로’ 살고자 바라는 것. 그 바람을 위한 몸짓을 그치지 않는 것. 바로 그것이 인간을 인간답게 한다는 생각은 어제 혹은 오늘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다. 그리고 그 생각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언제나 우리 곁에 있어왔다. 정혜윤 작가의 표현에 따르면 “그들은 주목받지 않고 한 점처럼 있기 때문에” 눈에 잘 띄지 않을 뿐이다. 또한 작가는 말한다. “그렇지만 그 삶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소중하다”고.

 

결국 그녀는 작게 빛나는 그들의 삶에 사로잡혔다. 그 이야기를 따라가자 ‘살고 싶은 대로’ 살 수 있는 힘을 발견하게 됐다. 작가는 그것을 ‘마술’이라 불렀다. 마술을 끊임없이 속삭이는 라디오가 그들의 마음속에 존재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마술 라디오』안에 담긴 것은 바로 그 ‘마술 같은 삶’에 대한 이야기다.

 

만나고-정혜윤

 

꿈꾸는 대로 살게 하는 ‘마술’의 힘


“살고 싶은 삶, 여전히 가능성으로만 있는 삶은 쉽게 포기하게 되어 있어요. 그 일이 힘들어 보이고 불가능해 보이니까요. 그렇게 포기하는 것이 슬프기는 하지만 어렵지는 않아요. 그래서 쉽게 포기하는 거죠. 그런데 우리가 어렵다고 쉽게 포기하는 삶을 진짜로 사는 사람들이 있어요. 저는 그런 삶을 봤고, 그것이 우리를 조금 더 마술적으로 만든다고 생각해요. 이때 마술이라는 건 믿는 거예요.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다고 말하면서 살고 있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믿음이죠. 동시에 우리도 그쪽으로 옮겨갈 수 있음에 대한 믿음이에요.”

 

『마술 라디오』 안에서 정혜윤 작가는 라디오 PD로 근무하며 자신이 만난 사람들-누군가는 포기하는 ‘살고 싶은 삶’을 진짜로 살아내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이야기의 주인공들은 우리가 한 번도 만나본 적 없는 낯선 사람들인 동시에, 누군가에는 아침저녁으로 인사를 주고받는 친근한 이웃이다. 그들은 바다의 어부이고 산골의 촌부이며 시장의 상인이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사람이 아닌, 이름만 대면 아무도 몰라보는 사람들이 주인공인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고기를 낚으며 자유를 말하고, 산속에서 나무에 글자를 새기며 이상을 말하고, 시장에서 야채를 팔며 변화를 말한다. 어떻게 해서 그들은 고행과도 같은 삶을 살면서도 이상을 놓치지 않는 ‘마술’을 부리게 된 걸까. 그리고 그 건너편에 있는 누군가는 왜, 어떤 이유로 마술을 잃어버리게 되었나.

 

 

“『여행 혹은 여행처럼』은 시를 쓰는 할머니의 이야기로 시작돼요. 농사짓는 할머니가 밤에 불을 켜고 늘 시를 쓰는 거예요. 상상하기 힘들지만 실제로 그렇게 살고 계세요. 우리에게는 자신이 살고 있는 삶이 실제 원했던 삶과 달라서 괴로워하는 순간이 있어요. 그럴 때 이런 저런 진단을 해보죠. 그리고 결국에는 ‘그냥 이렇게 살아야 될 것 같아’하고 현실에 짓눌려 버려요. 그리고 자신이 내린 엄격한 진단에 따라서, 현실에 맞춰서 행동하죠.

 

그렇게 하면 삶은 절대 변하지 않아요. 그냥 살게 돼요. 동시에 굉장히 수동적으로 일을 하게 되죠. ‘하루를 열심히 살자’고 말할 때 그 말에는 직장에서 열심히 일한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잖아요. 그렇다고 하루의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수입과 소득의 문제, 소득과 지출의 문제만 있는 건 아니에요. 그 가운데 내가 좋아하는 세계를 창조해 보는 것이 포함되어 있어야 해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는 시간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거예요.”

 

지금 우리의 삶은 어디에 매여 지탱되고 있나. 혹시 소득과 지출의 밧줄에 매달린 채 살고 있지는 않은가. 정혜윤 작가는 그것들과는 다른 제3의 밧줄이 필요하다는 생각에서 『마술 라디오』를 쓰게 됐다고 말했다. 소득과 지출 외의 세 번째 밧줄. 누군가는 그것이 학벌이었을지도 모른다. 또 누군가에게는 야합이었을 수도 있다. 작가는 ‘마술’이라는 이름의 밧줄에 삶을 걸어놓기로 했다. 그리고 독자들에게 묻는다. 지금까지 매여 있던 제3의 밧줄 말고 ‘진짜 우리를 살게 하는 게 무엇인가’를 물어봤을 때 떠올릴 수 있는 나의 이야기가 있느냐고.

 

“『마술 라디오』는 이야기책이에요. 우리는 의견을 많이 말하는 시대에 살고 있잖아요. 저는 의견 말고 이야기의 힘을 믿는 것 같아요. 의견은 본의 아니게 나를 설명해야 하고 방어해야 하는 말들이지만, 이야기 안에 들어가면 다른 인간과 나 사이에도 마술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내가 전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어떤 사람을 만남으로써 조금은 알게 될 것도 같은 생각이 드는 거죠. 아무것도 없었던 두 사람 사이에 이야기를 나누면서 무언가가 조금씩 채워지는 거예요.”

 

그리고 작가는 자신의 마술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느 순간 자신은 완전히 사라져버리는-‘나’를 잊게 만드는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 그 모두가 그녀에게는 마술이었다.

 

“어딘가에 맞서 싸우고 저항하는 이야기보다 사랑하는 이야기를 굉장히 좋아해요. 최근에 출간한 쌍용 자동차 해고 노동자 르포(『그의 슬픔과 기쁨』)도 사실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예요. 우리 형님을 사랑하고, 그 형님의 형님을 사랑하고, 형님의 등판과 흰 머리칼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거죠.

 

저는 책을 읽으면서 ‘내 마음을 움직이는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알게 됐어요. 제가 정말 좋아하고 읽었을 때 행복감에 휩싸이는 이야기들은 서로가 좋아하는 이야기더라고요. 서로가 최고의 모습을 끌어내는 이야기죠. 제가 생각하는 마술도 다르지 않아요. 진짜 최고의 마술사들은 자기도 변신하지만 다른 사람도 변신시키죠. ‘비비디바비디부’ 하면서 변신시키잖아요(웃음). 우리가 함께 지내는 동안에 서로에게 최고의 것을 끄집어내는 것들, 같이 있는 시간 동안에 서로의 힘을 얻는 것, 훨씬 더 좋은 사람 쪽으로 가는 것, 이 모든 것들이 마술이라고 생각해요.”

 

만나고-정혜윤

 

좋은 책과의 만남은 ‘사건’이다


정혜윤 작가는 자신이 책의 마술에 홀려있는 사람임을 고백했다. 책은 그녀에게 인생에서 소중한 것, 우리가 정말 기억하고 살아야 되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주었다. 그리고 현실에 짓눌리지 않을 방법에 대해서 가르쳐주었다. 그래서 그녀는 말한다. “모든 글들은 현실에 짓눌리지 않게 하는 어떤 것들에 관한 이야기”라고.

 

“책은 계속해서 저를 끌어당기고 있어요. 지금도 그 마술에 빠져 있어서, 늘 읽고 존중하고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죠. 그러면서 책에서 본 아름다운 세계들을 현실에서도 봤어요. 그게 왜 아름다운지 계속 생각해 왔고, 그것을 나누려했어요. 책을 읽으면서 제가 따뜻하고 아름다운 이야기에 끌리는 사람이라는 알게 됐듯이, 이번에 『그의 슬픔과 기쁨』을 쓰면서 인간은 여전히 나에게 설레는 존재라는 걸 확인했어요.

 

환멸과 실망의 순간보다 참 좋다고 생각하면서 힘을 내는 순간이 많았어요. 그런 이야기에 훨씬 더 많이 끌리는 이유, 그런 이야기가 가슴에 더 강하게 박히는 이유는 실망하지 않아서가 아니에요. 체념하지 않아서가 아니에요. 그 모든 걸 극복할 만큼 인간이 더 좋은 거죠. 그래서 왜 그렇게 인간이 좋은지에 대해서 계속 말하고 다니는 거예요. 보고 들은 바를 말하고 기억하고, 그걸 현실 생활과 접목시키려고 하죠. 그러면서 나는 서서히 사라져요. 이 모든 게 저의 마술적인 행동이고 실천인 거죠.”

 

그녀에게 한 권의 좋은 책을 만나는 건 사건이라고 했다. 자신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믿기 어려울 정도로, 책을 읽는다는 건 ‘강렬하게 다가오는 사건’이라는 것이다. 정혜윤 작가에게 책은 자신을 ‘존재’하도록 만들어주고 스스로를 믿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무엇이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 한다’고 하잖아요. 저는 여기에 존재하고도 싶고 생각도 잘하고 싶어요. 그렇다 보니까 내가 생각을 잘 하고 있는지 ‘내 생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 하냐고’ 묻어볼 대상이 필요했죠. 그래서 사람에게 묻기도 했지만 책에게 물어보기도 했어요. 저에게는 읽고 듣는 것이 생각하기 위한 전제조건인 거예요. 그래서 저는 ‘나는 읽는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 한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혼자서는 그냥 그런 사람이지만 ‘책의 세계에 속한 나’로서는 조금 더 노력해볼 수 있을 것 같다는 믿음이 생겨요. ‘나는 하나로서는 자신이 없지만 읽고 듣는 도움을 받고 있는 나로서는 생각이란 걸 해 볼만 하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나를 믿을 수도 있다’라고 생각하는 거죠.”

 

『마술 라디오』안에서 라디오 PD로 일하며 작가가 만난 사람들에 대해 들려준다고 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누구나 다 아는 유명인의 이야기이겠거니’ 쉽게 짐작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했듯, 그녀는 많은 이들에게 ‘이름 한 번 불려본 적 없는 사람들’에 대해 말한다. 

 

“볼테르는『깡디드』에서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된 세계가 최선의 세계다’라고 말했잖아요. 우리가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지만, 굉장히 큰 영향을 미치고 살 게 틀림없단 말이죠. 존재할 수 있는 최선의 세계는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존재, 연결된 존재라는 걸 아는 세계예요. 모두가 성공하려는 세상에서 ‘나는 성공하고 싶지 않아’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는 필시 우리가 모르는 깊은 정신세계가 있다고 봐요. 그리고 그들은 그런 삶을 당당하고 멋지게 살아내죠. 저는 그런 삶이 우리의 미래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흐릿하고, 희미하고, 점점이 흩어져있지만 너무나 소중한 사람들이 있다는 거죠.”

 

“다들 세상은 변해야 된다고 말하면서 하나의 직선 코스를 걷고 있어요. 그 사이에서 ‘이건 내가 믿고 있는 바와 다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가치는 어마어마한 거죠. 저는 모두가 가는 길에 문제제기를 하고, 그것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면 순진하다 못해 아둔할 정도로 자신이 믿는 길로 가는 사람들이 우리의 희망이라고 생각해요. 그 사람이 사회적으로 어떤 삶을 살든지 그들은 우리 사는 것을 더 괜찮게 만들어줘요. 그런 사람들은 우리가 덜 실패하고 덜 실수할 수 있게 해주죠. 우리를 성공하게 도와주는 게 아니라, 인간으로서 차마 그런 짓까지는 안 하게 도와주는 사람들인 거예요. 저는 그렇게 ‘인간이 더 인간이게, 사람이 더 사람이게 해주는 사람들’에게 시선이 가는 거고요.”

 

만나고-정혜윤

 

정혜윤 작가에게는 ‘이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무엇인가요?’와 같은 질문은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모든 이야기의 모든 주인들, 그들의 삶을 보듬는 그녀의 온도가 하나같이 뜨겁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술 라디오』를 읽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의미 없는 질문인 줄을 알면서도 물을 수밖에 없었다. 책에 담긴 ‘마술 같은 삶’의 단면을 보여주고픈 욕심 때문이었다. 그 어리석은 마음을 알면서도 작가는 흔쾌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녀가 ‘나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친, 나를 만든 목소리’라고 말하며 들려준 이야기는 제주도의 낚시꾼에 대한 것이었다.

 

그에게는 세 아들이 있다. 첫째 아이는 자폐 2급, 둘째는 자폐 1급 판정을 받았고, 막내아들은 비장애인이다. 그 중에서도 둘째 아들은 하도 도망을 잘 다녀서 ‘빠삐용’이라는 별명을 갖게 됐다. 낚시꾼은 지금까지 빠삐용을 백 번쯤 잃어버렸다. 아들을 찾아 나설 때마다 휴가를 쓰기가 미안해서 직장도 그만뒀다. 이 이야기를 듣고 사람들은 생각할 것이다. 그의 삶은 얼마나 고단할 것인가. 얼마나 그 삶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을까. 그러나 빠삐용의 아버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다르다.

 

제일 나쁜 건 제가 장애인의 아버지란 게 아니에요. 제일 나쁜 건 저에게 둘러댈 만한 확실한  핑계거리가 있다는 거죠. 이 애는 내 삶이 힘들다는 언제나 편리하게 내세울 수 있는 핑계일 수 있다는 거죠. 얘를 보면 누구나 내가 힘들 거라고 쉽게 생각하니까. 저는 힘들면 아들 때문이라고 하면 되는 거죠. 그럼 간단하죠. 그러나 애가 아니어도 사는 건 어차피 힘들어요. 애 때문이 아니라 나 때문에 힘들 때도 많아요. 사는 건 복잡하고 까다롭게 제멋대로이고 엉망진창 뒤죽박죽이죠. 그렇지만 태어난 것을 생각하면 변함없이 낯설 정도로 까마득하게 신기하기만 해요. (『마술 라디오』 89쪽)

 

아들을 자신의 고단한 삶의 핑계로 삼고 싶지 않다는 그의 말은 우리를 부끄럽게 만든다. 그의 삶에 연민을 느끼고 값싼 동정을 보내는 이들은 고개를 숙이게 된다. 그렇게 작지만 강한 울림을 준 빠삐용의 아버지를 위해 작가는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주여, 저를 주의 도구로 삼으시되 (그건 알아서 하시고)
빠삐용을 저의 도구로 삼지 않게 해주소서.
그에게서 살과 뼈를 싹싹 발라내 내 그림자로 삼지 않게 해주소서.
그를 살과 뼈로 여기게 해주소서. (『마술 라디오』 91쪽)

 

“‘빠삐용을 저의 도구로 삼지 않게 해주소서’라는 문장은 지금도 저를 만들고 있어요. 우리는 때때로 누군가를 나의 도구로 삼잖아요. 그런데 빠삐용의 아버지는 빠삐용을 자신의 도구로 삼지 않게 해달라고 해요. 그런 이야기에서 배우는 거죠. 빠삐용의 아버지를 위한 기도문은 제가 써놓고도 스스로에게 배우는 거예요. 저는 그 문장이 너무 마음에 들거든요. 그러면 그대로 살아야죠. 이 문장이 옳다고, 아름답다고 생각하면 그대로 살아야 되는 거예요.”

 

『마술 라디오』의 주인공들은 빠삐용의 아버지처럼 가슴 속에 깊은 상처와 가볍지 않은 사연들을 담고 살아간다. 좀처럼 꺼내 보이기 쉽지 않은, 어쩌면 그들과 매일 마주치는 이들조차 알 수 없을 이야기들이다. 어떻게 그들은 처음 본 작가에게 그 내밀한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었던 걸까.

 

“인터뷰의 기술은 대화의 기술과 다르지 않아요. 어떤 사람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상대가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서 말의 의미가 더 분명해질 때가 있어요. ‘그렇게 반응하니까 내가 굉장히 중요한 얘기를 한 것 같네?’ 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는 거죠. 그걸 알아볼 수 있어야 해요. 그리고 남의 말을 듣는 것도 다른 일처럼 훈련이 필요해요. 단순한 말도 깊다는 걸 알기 위해서는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써봐야 하죠. 아무렇지 않게 하는 한 마디 말에도 정말 깊고 다 이해할 수 없는 세계가 펼쳐져 있다는 것에 대해서 마음을 열어야 해요. 다른 사람을 쉽게 규정하는 실수를 해서는 안 돼요. 인간만큼 알기 힘든 건 없으니까요. 한 사람의 어투, 어미, 눈빛, 몸동작도 모두 말이라는 걸 알아야 하고, 자신이 상대에게 어떻게 보이는지를 너무 잘 아는 사람이 되면 안 돼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아야 인터뷰를 할 수 있죠.”

 

만나고-정혜윤

 

당신의 라디오 주파수는 몇 번입니까?


『마술 라디오』는 누구나 가슴속에 라디오를 품고 산다고 이야기한다. 이때의 라디오란 자신의 안에서 반복적으로 들려오는 목소리라고 작가는 말한다. 혼자 있는 시간, 잠이 오지 않아 뒤척이는 순간 찾아드는 생각들은 나만의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이야기라는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각자의 라디오가 있어요. 『그리스인 조르바』의 작가인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화학공장이라고 표현했죠. 우리가 비슷한 걸 먹고 비슷한 걸 들으며 살아도 서로 다른 존재인 이유는 가슴에 화학공장이 있어서 그렇다고 생각한 거예요. 가슴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다는 거죠. 저는 사람의 가슴에 라디오가 있다고 생각해요. 라디오 방송국이 있어서 쏟아져 들어오는 수많은 이야기 중에서 어떤 것들은 밖으로 송출하는 거죠. 자신의 라디오에서 반복적으로 흘러나오는 소리를 들어보면 자기가 보여요. 내가 혼자 있을 때 제일 자주 하는 생각이 뭔지, 남에게 제일 자주 들려주는 이야기가 뭔지 생각해 보세요.”

 

그렇다면 내 마음속의 주파수는 어떻게 찾아야 할까. 진짜 내가 생각하고 원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주파수는 몇 번일까.

 

“우리는 때로 어떤 이야기를 할 때 굉장히 방어적이 되거나 감정적으로 반응하게 돼요. 상대가 무슨 말을 하든 반박부터 하려고 할 때도 있어요. 그건 자기 주파수, 즉 자기 목소리를 찾지 못해서 그런 거예요. 내 안에 있는 주파수와 맞는 이야기들은 마음을 열리게 해요. 동의하게 만들고 더 듣고 싶게 만들어요. 저의 경우에는 서로 사랑하는 이야기, 살면서 배우는 이야기에 주파수가 열리죠. 그런 주파수를 찾고 그쪽으로 가자는 거예요. 자기 목소리, 자기 주파수를 찾는다는 건 자기가 살 방법을 찾는 것과 같아요.”

 

작가는 자신의 마음속에 두 개의 라디오가 있다고 말했다. 스스로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라디오 외에, 라디오 PD로서 품고 있는 라디오가 한 대 더 있다는 것.

 

“일로써의 라디오는, 그걸 빼놓고는 제가 설명되지 않을 정도로 저의 정체성과 관련이 있어요. 어떻게 보면 저는 라디오적 인간이에요. 라디오 PD의 가장 큰 특징들을 전부 몸에 가지고 있죠. 이를테면, 라디오 프로그램은 카메라로 보여줄 수 없으니까 제가 본 걸 같이 보자고 호소해야 돼요. 그런데 저의 문체가 그렇죠. ‘여러분도 상상해 보세요’라고 끊임없이 말해요. 상상력은 눈앞에 없는 걸 있는 것처럼 그려볼 수 있는 능력이에요. 생명력이고 곧 마술이죠. 그것이 저에게 구현되어 있고, 또 시간에 대한 감각도 구현되어 있어요. 이렇게 세세하게 라디오의 특징을 이미 몸 안에 가지고 있는 거예요. 그것이 공중파 라디오가 저에게 미친 영향이죠.”

 

만나고-정혜윤

 

공중파 라디오가 정혜윤 작가에게 미친 영향에 대해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 그녀 안에 ‘붙잡고 싶다’는 감성을 심어준 것이다. 하루에 한 번씩 자신의 열정과 노동, 그 모두가 배어있는 시간이 허공으로 사라져버리는 ‘작은 소멸’을 경험해야 했던 까닭이다. 붙잡고 싶은 감성이 발달할수록 그녀는 고민했다. 그렇다면 무엇을 붙잡아야 할까. 하루보다 길게 남겨놓고 싶은 건 무엇인가.

 

“적어도 하루보다는 영원한 것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그 무엇은 굉장히 좋은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인간에게 하루 이상 지속되는 것보다 더 소중한 건 뭘까, 덧없는 아름다움과 영원한 아름다움을 동시에 사랑하는 방법은 뭘까’에 대한 고민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어느 날 바우만의 책에서 ‘현대만큼 무병장수가 온갖 관심이었던 시절은 없었다. 그런데 그것이 주요 관심사가 되면서 잃어버린 것은 우리가 죽은 다음에 벌어지는 일에 관한 것이다’라는 말을 보면서 생각했죠. ‘아마 나는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그건 나의 삶이 전하는 어떤 것으로 계속될 것이다’라고요. 사실은 그게 저의 마술이었어요.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제가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방식, 이야기하는 것, 더불어 살아가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될지를 조금씩 생각하기 시작한 거죠.”

 

작가는 자신이 들려준 모든 이야기가 결국 ‘현실에 짓눌리지 말자’는 하나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말했다. 현실이 아니라 희망을, 성공이 아니라 삶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그녀에게 『마술 라디오』는 자신이 빠진 마술과 일상을 접목시키는 고민 끝에 탄생한 산물이었다.

 

이렇게 묻고 듣고 다니면서 알게 된 것이 있어. 인간은 어떤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아니란 거야. 확신에 가득 찬 사람이 아니라 의심하고 동요하면서도 찾고 추구하기를 멈추지 않는 사람만이 생생하게 살아 있었어. 인간은 어떤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사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야. ‘인간은 대답을 추구하는 질문’이란 말이 있어. 대답이 아니라 질문이 살게 하고 움직이게 하고 이것이 삶의 형태를 만들어. 누군가는 말했어. 인생은 자신의 ‘질문’을 찾는 과정이라고. 자신이 풀어야 할 질문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잘 알고 있었어. (『마술 라디오』 48~49쪽)

 

정혜윤 작가는 ‘최고의 위대한 작품은 독자다’라는 말에 기대어 “책이 누구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알 수 없음이 신비롭다. 알 수 없기 때문에 무한하다”고 말했다. 그렇기에 『마술 라디오』안에 감춰진 ‘마술’을 찾는 일은 독자들의 몫으로 남겨놓았다. 그러나 독자들이 들어설 길목에 이정표를 세우는 것만큼은 잊지 않았다.

 

“『마술 라디오』를 읽으면서 ‘내가 어떤 힘으로 살아왔는지’ 돌아보는 순간이 있을 거예요. 그리고 ‘나를 살게 하는 것들은 무엇이었는지’ 돌아보게 될 거고요. 스스로에게 그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에게는 이 책이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인생 전체를 하나의 질문으로 보는 모험을 떠나려는 사람들이 『마술 라디오』와 만났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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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 라디오정혜윤 저| 한겨레출판
20년 동안 라디오 PD로 일하며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온 정혜윤이 만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 『마술 라디오』를 내놓았다. 이 책은 그들을 만나서 보고 들은 이야기들, 잘했건 아쉽건 자랑스럽든 후회되든 반복적으로 혹은 기습적으로 생각나는, 정혜윤 자신과 그녀가 만났던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가 어우러져 있다. 그녀는 언젠가 라디오에 대해서 쓰고 싶다고 오랫동안 생각해왔다고 한다. 그 바람이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제작 뒷이야기가 아니라, 방송을 하는 사람과 방송을 듣는 사람 모두 가슴이 깊어지게 만드는 삶의 이야기들로 묶여 『마술 라디오』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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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서민 교수 “나처럼 못생긴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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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서민

 

인터뷰집의 대상자를 인터뷰하는 건 어찌 보면 우스운 일일 수 있다. 웬만한 질문은 책에 모두 나와 있는데, 또 물을 말이 뭐 그리 많을까. 다만, 끊임없이 궁금한 질문이 나오는 대상자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서민의 기생충 같은 이야기』의 주인공, 서민 단국대 교수 같은 인물일 경우에 말이다.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가 글을 쓴 『서민의 기생충 같은 이야기』는 ‘기생충’ 같은 이야기이기도 하면서 그렇지 않다. ‘기생충’의 정의를 어떻게 내리는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데, 징그럽게만 여겨지는 ‘기생충’이 질병을 낫게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서민의 기생충 같은 이야기』의 표지에 실린 기생충은 크론씨병을 치료할 수 있는 기능을 가진 ‘착한 기생충’ 돼지편충이다. 생각보다 징그럽지 않은, 아니 어떻게 보면 퍽 아름다운 모습을 가졌다.

 

어릴 때부터 “못 생겼다”는 말을 지겹게 들어온 서민 교수는 거울을 자주 보던 소년이었다. 삐딱한 성격으로 자라진 않았지만 말도 더듬고 틱 장애도 겪어, 20대까지는 잿빛 인생을 보냈다. 그러다 도저히 이렇게 살면 안 될 것 같아, 유머 감각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독학으로 깨우친 유머는 글쓰기에도 영향을 미쳤고, 인간관계도 폭넓게 만들었다. 더욱 중요한 건 서민 교수가 ‘절세 미녀’라고 자부하는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한 것이다. 물론, 결혼을 할 수 있었던 건 두 사람이 모두 상위 0.1%에 해당하는 소문난 애견가였기 때문이다.

 

서민 교수를 만나서 가장 묻고 싶은 건, “교수라는 분이 이렇게까지 솔직하게 사생활을 알리는 이유가 뭡니까?”였다. 책 속에서 어느 정도의 해답은 찾았지만, 스스로나 타인에게 이토록 ‘편견’이 없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자신의 블로그에 방송인 김제동과 찍은 사진을 올리며 ‘김제동보다 눈이 작습니다’, ‘저는 못생겼습니다’라고 고백하는 서민 교수는 42세에 두 번째 결혼을 해 지금의 아내를 만났고, 위암 투병을 했으며, 지금은 강아지 세 마리와 함께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 지난해 MBC <컬투의 베란다쇼>에 패널로 출연해 인기를 얻었고, <경향신문> 누리집에 ‘윤창중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라는 칼럼으로 큰 화제를 모았다.

 

얼마나 못생겼는지도 궁금했고, 얼마나 솔직한지도 궁금했다. “책 재밌게 읽었다”고 인사를 하니, 서민 교수는 몸 둘 바를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쑥스러워했다. 그러나 인터뷰를 시작하자, 달변가였다. ‘상대가 이 대답을 어떻게 해석할까?’를 고민하지 않고 여과 없이 대답을 이어나갔다. <컬투의 베란다쇼>덕에 ‘카메라 마사지’를 많이 받아서, 자신의 트레이드마크인 ‘부끄러움’이 사라져서 고민이라고 말하는 모습은 ‘교수’라는 타이틀을 잊게 했다. 어찌 하다 보니, 외모 이야기를 하다 외모로 끝나는 인터뷰가 됐다. 하기야, 서민 교수는 『서민의 기생충 같은 이야기』를 쓰게 된 주요한 이유 중 하나로, “외모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들이 저를 통해서 위로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라고 말했다.

 

만나고-서민

 

못생겨서 유머감각을 터득했다


외모에 자신이 없다고 하면서, 책 띠지에 사진을 넣었다. 출판사의 의도인가? 유명세에 대한 자신감인가?


(웃음). 출판사에서 의도적으로 가장 못 나온 사진을 넣은 것 같다. 지난해 4월에 찍은 월간 <인물과사상> 표지 사진인데, 나는 새로 사진을 찍을 줄 알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이걸 그냥 쓰더라. 표지 사진을 보고 ‘내 피부가 이 정도인가?’ 싶었다. 너무 심각한 것 같아서 성형외과 친구에게 가서 조금 만졌는데, 전혀 반영이 안 돼서 아쉽다. 그래도 책의 콘셉트와는 맞는 것 같다. 어떤가? 지금은 좀 나아진 것 같지 않나?

 

실물이 더 낫다. 우선 키도 훤칠하고. 남자에겐 외모보다 키가 더 중요하지 않나?


키라도 커서 정말 다행이다. 정말로. 작년인가 대전MBC에서 ‘외모가 그 사람의 전부가 아니다’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는데, 청중들이 나를 보고 “실제로 보니 못생기지 않았다”며 같이 사진도 찍고 그랬다. 취미 중 하나가 포털사이트에 내 이름을 검색해보는 건데, 어느 날 그 강연에 왔던 사람이 후기를 남겼더라. “서민 교수 진짜 못 생겼더라. 우린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거다. 정말 기생충처럼 생겼더라. 잘생긴 사람이 웃겨야지, 못생긴 사람이 웃기니까 재미 없다”고(웃음). 난 하나도 서운하지 않았다(웃음).

 

오래 전부터 ‘기생충학의 대중화’를 위해 여러 매체에 칼럼을 써왔고, 지난해 7월에는 기생충의 생존기에 관한『서민의 기생충 열전』을 펴냈다. 이번 책은 인터뷰집이고 개인적인 이야기가 많이 들어있다. 부담이 됐을 법도 싶은데 인터뷰 대상자가 된 계기는 무엇인가.


평소 내 삶이 대단하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지금도 마찬가지고. 방송도 1년 밖에 안 했고 그렇게 유명하지도 않다. 몇 개월을 계속 거절했는데, 출판사가 계속 하자고 했고 나를 책의 세계로 이끌어준 출판사이기 때문에 결국 하기로 마음먹었다. 또 내 과거를 숨기고 있는 것에 대한 마음의 부담감이 있었다. 다 풀어버리자는 마음도 있었다.

 

교수가 사생활을 굳이 솔직하게 고백해야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가끔 사람들이 “결혼이 왜 이렇게 늦었냐?”고 물을 때가 있다. 그 때마다 거짓말을 해야 하는 게 나를 속이는 기분이랄까? 불편했다. 솔직하게 진실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지난해 <한겨레>에 실린 인터뷰를 보고, 가족의 항의를 많이 받았다고 들었다. 이번 책은 더 솔직한 과거사가 들어있는데, 괜찮을까?


주변에 책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안 해서 지인들이 아직 안 읽었다. 어머니도 모르고 있고. 아내는 조금 읽다가 말았다. 불편해서 안 읽는 게 아니라, 나중에 읽겠다고. 내 과거사에 대한 이야기는 쓰겠다고 미리 허락을 받았다.

 

책이 나오고 나서, ‘이 내용은 빼는 게 낫지 않았을까’ 하고 후회한 부분은 없었나?


사생활 같은 건 꼭 넣어달라고 해서 넣은 거다. 그런 일로(?) 병원에 입원하는 경우는 잘 없으니까. 이런 특이한 일은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런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독자들이 책에서 확인할 거라 생각하고. 또 하나 궁금한 건, ‘이렇게 솔직할 수 있는 게 사실은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점이다. 저자 지승호가 서민 교수를 두고 한 평가가 인상적이었다. “겸손하지만 그 안에 자신감이 가득한 남자, 그 자신감을 갖추기 위해서 처절하게 노력하는 남자”라는 평이다.


나의 어디에서 그런 자신감을 봤는지 모르겠다. 지금까지 내 인생에서 자신 있게 산 적이 없다. 숨어서 사는 걸 좋아했고, 방송 덕분에 부끄러움은 많이 없어졌지만 여전히 나에게 세상은 무섭다. 책에도 말했지만, <한겨레> 인터뷰가 나가고 나서 많은 분들이 공감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많이 놀랐다. 나처럼 자신감 없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알고 보면 상처가 있지 않나? 나처럼 못생긴 사람에게 희망을 주고 싶었다.

 

그런데 정작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대시도 여러 번 받았다고 들었는데.


그러니까 그게 유머로 일가를 이루고 난 이후다. 그 전까지는 많이 어려웠다. 20대 초반까지는 여자들이 남자의 외모를 많이 보지 않나? 나에게 관심이 전혀 없었다. 지금의 아내를 20대에 만났으면 당연히 차였을 거다. 나이가 많아지면 여자들이 초조해져서, 얘라도 잡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그 때부터 인생이 핀 거다. 예전에 휴대폰도 없을 때는 바람을 자주 맞아서, 혼자 쓸쓸히 스테이크를 먹고 집에 온 일이 굉장히 많았다.

 

부족한 외모의 대안이 유머감각이었던 건가? 유머는 어떻게 배웠나? 공부한다고 되는 것만도 아닌데.


지옥훈련을 했다. 유머가 안 되는 사람은 없다고 본다. 10년 넘게 노력을 안 했을 뿐이다. 보통 1,2년만 하고 때려 치는데 길게 봐야 한다. 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꾸 구사를 하니까 주변 사람들에게 구박을 받고, 그걸 못 견뎌서 그만두는 사람들이 많은데, 어떤 구박이 있어도 좌절하지 않아야 한다. 어떤 상황이 있을 때, 속으로 ‘나라면 이렇게 말하겠다’라고 시뮬레이션을 많이 했다. 지금은 <개그 콘서트>도 있고 재밌는 프로그램도 많으니, 개그 공부하기가 훨씬 편하다.

 

잘생겼더라면 이렇게 유머감각을 공부하지도 않았을 텐데, 그래도 못생겼기 때문에 얻은 유익도 있지 않나? 글로 인기를 얻고 싶어 열심히 글을 썼고, 유머감각 덕분에 친구들도 많이 생겼고.


얻은 것도 많지만 지금까지 오느라 너무 힘들었다. 다시 돌아간다면 이렇게 될 자신도 없고, 잘생긴 게 훨씬 더 좋은 것 같다. 지금처럼 성형시대였더라면 아마 수술을 했을 거다. 예전에 학생들이 강의평가를 하면, “교수님, 눈 좀 맞춰주세요”, “왜 바닥만 보고 수업을 하나요?”라고 했다. 그 때는 사람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다시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못생긴 학생들이 상담을 하러 오기도 하나?


이상하게 그런 상담은 안 하더라. 책에도 썼지만, 내가 제기차기를 엄청 잘했다. 혼자 할 수 있는 게임이었으니까. 2,500개쯤 차니까 대회도 나갔는데, 전부 나처럼 생긴 아이들이 나왔더라. 제기란, 외로운 스포츠구나 싶었다. 대학에 왔을 때, 우리 과가 200명 정도였는데 나보다 못생긴 애들이 약 10명 정도 있었다. 한 명은 확실하게 나보다 못생겼다. 그 친구도 죽도록 공부했겠구나, 싶었다.

 

 

만나고-서민

 

기생충, 실제로 보면 징그럽지 않다


어떤 학생이 서민 교수의 강의를 듣고 후기를 남겼는데, “기생충을 전공하려는 학생이 없으니까 후학을 양성하려고 ‘기생충 전도사’ 역할을 하고 있다”고 평했다.


외부 강의를 할 때는 주로 고등학생이 타깃이다. 기생충학을 전공하길 바라는 건 아니고, 이걸 매개로 과학에 관심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누가 기생충학을 한다면 나라도 말릴 거다. 모두가 교수가 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크게 미래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니까.

 

기생충학은 비주류, 비인기 과목이다. 대학 때, 의대 졸업자라서 우대를 받았다고 하던데.


기생충 연구를 하면 평생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겠다 싶었다. 개업의 선배를 보면 재미 없어 하는 경우도 많았고. 학생 때 우수하지도 않았고 기생충학 성적도 그리 좋지 않았는데, 의대 출신자가 부족하다 보니 교수님들이 반겨줬다. 지금 기생충을 연구하는 것에 나는 100% 만족한다. 야생동물의 기생충 질환, 우리가 더불어 사는 다른 동물의 기생충이 사람에게 끊임없이 넘어오고 있다. 개인적으로 동물의 기생충도 연구하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고, 혹시 있을지 모르는 기생충 질환에 대처할 수 있도록 한 학교에 1명씩 정도는 기생충학 교수가 있으면 좋겠다.

 

최근 13세 남자아이 몸에서 3.5m 기생충이 나와 충격을 가져다 줬다. 기생충학자로서 ‘기생충’에 대해 대중이 갖고 있는 가장 큰 편견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해롭다, 징그럽다는 편견이다. ‘연가시’만 봐도 귀엽진 않지 않은가? 3.5m 기생충 사건을 놓고도 사람들이 ‘역시 기생충은 나쁜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아이들이 기생충을 실제로 보지 못해서 이런 편견이 큰 것 같다. 기생충박물관을 짓고 싶은 이유 중 하나가 보고 나면 징그럽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기생충학이 필요한 이유를 간단히 설명한다면?


루게릭병은 빈도가 10만 명에 하나 나올까 말까 한 드문 질환이다. 그런데 정말 열심히 연구한다. 하지만 1백만 명 이상의 감염자가 있는 기생충을 가르치지 않는다는 건, 말이 안 되는 거 아닌가?

 

방송, 외부 강연도 열심히 했지만 논문도 열심히 써왔다.


올해는 지금까지 4편을 썼다. 작년에 방송을 하면서 돈을 벌고 나니까, 왠지 돈을 계속해서 벌어야 할 것 같아서 외부 강연을 많이 뛰었다. 그러다 보니 논문을 쓸 시간이 없더라. 올해부터는 자제하고 내 삶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기생충을 이 정도 홍보했으면 된 것 같고, 교수로서 논문을 쓰는 게 급선무다.

 

로또는 지금도 계속 사고 있나?


물론이다. 기생충 박물관을 짓고 싶은 꿈은 여전하다.

 

 

다시 읽기 시작하니, 독서가 가장 중요한 취미


책 이야기를 해보자. 서른이 넘어서야 독서에 취미를 갖게 됐는데. 어릴 때, 책을 읽으면 아버지에게 혼났다는 이야기가 사실인가? 책 읽는 자식을 혼내는 부모는 흔치 않은데.


아버지가 굉장히 무서웠다. 아버지의 말은 곧 법이었다. 책 읽다가 걸려서 얻어 맞고 그랬다. 공부하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독서실에서 12시까지 공부하고 싶었는데, 10시까지 집에 들어오라고 했다. 내가 하는 건 그냥 뭐라도 싫으셨던 것 같다.

 

강준만 교수의 저널룩『인물과 사상』을 읽고 책에 눈이 떴다. 강준만 교수를 만나기 전과 후로 나눠진다고 말할 정도라고.


1997년쯤부터 사회에 관심을 많이 갖게 됐다. 공중보건의를 하던 시절, 신문지에 실린 <인물과 사상> 광고 ‘정권교체가 뭐가 그리 무서운가?’에 호기심을 갖고 읽게 됐다. 강준만 교수의 저서들이 많은 영향을 줬고. 교수님이 쓴 대부분의 책을 거의 다 읽었다. 그 때 소설도 다시 읽기 시작했는데, 내 속에 잠자고 있던 유전자를 발견했다. 이렇게 재밌는 걸 왜 지금까지 읽지 않았지? 책 나오기만을 기다리곤 했다. 책을 다시 읽기 시작하니까, 책이 가장 중요한 취미가 됐다.

 

글을 쓰기 시작한 계기는 무엇인가?


오래 전부터 글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여자를 사귈 때도 그렇고, 웬만하면 말보다는 글로 해결하는 습관이 있다. 30세에 내가 쓴 책이 있는데, 그걸 보면 책을 안 읽고 쓴 책이 얼마나 재앙이 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인생에서 최초로 인정을 받은 게, 대학 동아리 회지에 글을 썼을 때다. 갈고 닦은 유머를 접목해 글을 썼는데, 사람들이 꽤 좋아했다. 그래서 자신감을 얻어 책을 쓰게 된 거고. 책을 읽으면서 글 쓰는 게 점점 나아졌고, 작년에 쓴 『서민의 기생충 열전』은 20년간 내가 노력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중앙 언론지의 1면이 허락된다면, 어떤 내용의 글을 쓰고 싶나?


건강보험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 ‘건강보험을 사랑합시다’라는 제목을 크게 적고 싶다. 건강보험료가 올해부터 1,500원이 올랐다. 사람들은 허리가 휜다고 하는데, 물가상승률이 비교하면 턱 없다. 사람들이 건강보험에 애정이 너무 없다. 해외유학생들도 다 우리나라에 와서 치료를 받고 있지 않은가? 미국에 가면 엄청난 치료비에 놀라고. 민간의료보험료를 1년에 십 몇 만원씩 내면서 건강보험료에는 너무 인색하다. 건강보험료가 올라가면, 예를 들어 국민 1인당 한 달에 3만 원씩만 더 내면, 민영의료보험 필요 없이 완전히 건강보험료로만, 병원에 가서 우리가 최고로 많이 내야 1년에 100만 원을 내는 그런 시대가 온다고 믿는다.

 

만나고-서민

 

스마트폰은 그만 보고 책을 읽자


요즘 가장 수다스러워지는 순간은 언제인가?


한국 남자들의 치사함, 이런 주제로 이야기할 때. 나쁜 남자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흥미롭다. 군대에 다녀왔다는 이유로 집안일 하나 거들지 않고 사는 남자, 시어머니한테 학대 당하는 며느리 이야기에 유난히 관심이 많다. 예전에 영화 <여배우들>을 상당히 재밌게 봤다. 내 몸에 여성성이 꽤 많은 것 같다. 지하철 막말녀 같은 사건이 터지면 굉장히 흥분하고, 여성들이 당하는 걸 보면 분개한다.

 

못생겼지만 예쁜 여자를 좋아한다고 밝혔는데, 못생긴 여자들을 볼 때는 어떤 생각이 드나?


10년 전부터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내가 탁월한 능력이 있어서 하루에 두 명씩 외모를 예쁘게 바꿔주는 기술이 있으면 좋겠다는. 못생긴 여자들을 보면 마음이 너무 아프다. 난 남자니까 이 정도로 그쳤지, 여자라면 더 힘들지 않았겠나? 이런 소설을 쓴 적이 있다. 내가 능력자라서 한 사람을 두 시간 동안 예쁘게 고치고 나면, 쓰러져서 하루 종일 잠을 자고, 다음 날 또 다른 사람을 찾는다는 이야기. 나는 성형수술에 관대하다. 남자들이 치사하게 예쁜 여자를 좋아하면서 성형한 사실을 알면 싫어하는데, 일관성이 없다. 이해할 수 없다.

 

본인 칼럼에 스스로 댓글을 달고, 대댓글도 자주 단다. 그동안 충격적인 댓글은 없었나?


원래 안티 팬을 거느리는 걸 열망했다(웃음). 누가 나를 두고 욕하면 기분 좋다. 고맙다고 말하긴 그러니까, 미안하다고 “앞으로 기생충처럼 잘 살겠다”고 말한다. 심한 악플을 보면 기분이 나쁘지 않냐고들 하는데, 화나지 않는다. 아마 나의 진정한 약점을 건드리지 못했기 때문일 거다. 어떤 사람이 “내가 너의 과거를 아는데 이런 글을 쓰고 있냐?”고 글을 남긴다면 무서워 떨겠지만, 외모에 대해서는 어떤 욕을 들어도 아무렇지 않다.

 

다른 사람들의 비판을 개의치 않는다는 건, 자신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옛날에 내가 쓴 책을 가지고 욕을 하면 움찔한다. 지금 생각해도 쓰레기 같은 책이니까. 하지만 『서민의 기생충 같은 이야기』를 두고 욕하면,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다. 내가 재밌게 쓴 책이고, 내가 인정하는 책이니까. 조금 서운할지 몰라도, 스스로 판단해서 인정한 것에 대해서는 믿음을 갖는다고 할까?

 

못생긴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고 말했는데, 못생겨서 연애가 풀리지 않은 사람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특기, 필살기를 하나 만들어서 10년 이상 꾸준하게 노력하면 된다. 지금은 어렵더라도, 서른 중반이 지나면 다른 인생이 펼쳐질 수 있다. 남자가 35세가 넘으면 외모가 그렇게 큰 무기가 되지 않는다. 나 역시, 전과가 있는 마흔 살인데, 절세 미녀를 얻지 않았나? 선을 보면서도, ‘이렇게 괜찮은 여자들이 왜 나한테 갑자기 잘하지?’ 의문이었다. 여자들이 결혼할 시기를 놓치면, 못생긴 남자들도 쳐다봐준다. 못생겼을수록 늦게 결혼하면 길이 열리는 것 같다.

 

만나고-서민

 

애견인으로 통해서 아내와 결혼에 골인했는데, 개를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만나면 연애가 쉬울까?


개를 좋아하는 건, 유전자가 타고나야 하는 것 같다. 우리 부부는 상위 0.1% 안에 드는 극우 애견가다. 전생에 개였을지도 모르고. 우리는 개 치료비가 2억 원이 나오면, 당연히 아파트를 판다. 다른 사람들은 100만 원만 나와도 개를 버리질 않나? 그런 건 노력으로 되는 건 아니다. 유전자가 타고나야 한다.

 

인터뷰어가 된다면, 어떤 인물과 집중 인터뷰를 하고 싶나?


클라라를 만나고 싶다. 작년에 클라라가 <컬투의 베란다쇼>에 출연했는데, 내가 클라라랑 사진을 찍기 위해 스마트폰을 샀다. (서민 교수는 지금까지 2G폰을 쓰고 있다. 스마트폰은 카메라와 이메일 기능만 사용한다)클라라를 인터뷰하고 싶은 이유는 예쁘고 빨리 떠서 욕을 많이 먹는 연예인 중 한 명인데, 그 고충을 나누고 싶다. 사람이 한 순간에 떠서 하루에 수십 개 방송을 하고 인터뷰를 하다 보면, 앞뒤 말을 다르게 할 수도 있는데, 대중들은 그걸 너무 곡해하는 것 같다.

 

포털 사이트에 ‘서민 교수’를 검색하면, 연관검색어로 ‘기생충박사’라고 뜬다. 다른 연관검색어를 상상해 본다면?

 

글의 마술사? 농담이고(웃음) ‘유기견’이 어떨까. 지금은 후원만 하고 있지만, 유기견에 대해 할 말이 많다. 사람들이 너무 쉽게 개를 키우고 있는데, 개를 입양하는 사람을 까다롭게 심사하는 법이 생기면 좋겠다.

 

대학생들을 상대로 ‘자유 주제’ 강연을 펼친다면, 어떤 주제를 선택하고 싶나?


어릴 때 책을 많이 읽는 건 그다지 좋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스무 살이 넘어서는 책을 많이 읽는 게 도움이 된다. 다른 길을 만날 수 있는 게 바로 ‘책’이다. 스마트폰은 그만 보고, 책을 좀 읽었으면 좋겠다.

 

어떤 독자가 『서민의 기생충 같은 이야기』를 읽으면 가장 좋을까.


살아가면서 자신감이 별로 없는 사람들이 읽으면 좋겠다. 누구나 약점은 있는데, 그 약점을 너무 크게 생각하고 ‘나는 안 돼’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그런 분들이 읽으면 위로가 되지 않을까. 나이가 많은 사람보다는 젊은 사람들이 보면 좋을 것 같다. 못생겼으니까 뭐라도 해야겠다, 그런 용기를 얻었으면 한다.

 

 




서민의기생충같은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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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의 기생충 같은 이야기서민,지승호 공저 | 인물과사상사
지승호와 서민은 홍대 앞 카페에서 한 잔의 커피를 시켜놓고 6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는 식으로 수차례 만났다. ‘소심함’과 ‘유머’라는 공통의 태도로 똘똘 뭉친 두 사람의 호흡은 아주 잘 맞았고, 기존 매체에서는 접할 수 없었던 서민의 내밀한 이야기까지 끌어낼 수 있었다. 누군가의 남편이자 아들이자 친구로서의 서민, 같은 시대를 사는 시민으로서의 서민, 개를 지극히 사랑하는 ‘개 아빠’로서의 서민까지……. 지승호는 물었고, 서민은 답했다. 덕분에 우리는 “월세 밀린 세입자처럼 조용히” 그러나 할 말은 하는 보기 드문 사람, 서민을 더 가깝게 느낄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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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민영 “되어선 안 될 팀장, 신입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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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와 고등학교 때, 좋아하는 수업과 그렇지 않은 수업이 있었다. 체육이나 음악을 수학이나 물리보다는 좋아했지만, 과목 특성보다도 더 중요한 게 있었다. 바로 수업을 진행하는 선생님. 대개 고리타분하면서도 잔소리가 많고, 엄한 선생님이 가르치는 과목은 인기가 없었다. 학생들은 시간표에 그 수업을 형광으로 표시해 두고, 수업 시간이 무탈하게 지나가면 안도의 한숨을 쉬곤 했다. 그리고는 이렇게 생각했다. 학교만 졸업하면, 사람 한 명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일은 없겠지?

 

아니었다. 군대에서 수직적인 상하 관계로 힘들어하는 경험이야 징병제 국가에서 받아들일 수 있다고 쳐도, 직장에서도 고문관 한 명(혹은 여럿) 때문에 겪는 고민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 직장에서 스트레스 받는 요인으로 연봉이나 업무가 아니라 ‘대인관계’를 꼽는다는 사실은 이제 더는 새로운 뉴스도 아니다. 6월 5일 한 취업포털에서 발표한 설문 결과에서도 업무로 받는 서러움보다는 인간관계에서 오는 서러움이 더 크다고 나왔다.

 

학교에서 싫어하는 선생님이야, 잦아야 1주일에 4시간 정도를 마주할 뿐이다. 그런데 직장에서 싫어하는 사람은 하루의 절반은 맞닥뜨려야 한다. 그런 면에서 그 어느 곳에서의 인간관계보다 중요한 게 직장에서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웹툰 『미생』에서도 이런 말이 나온다.


“’회사 간다’라는 건 내 ‘상사’를 만나러 가는 거죠.” - 『미생』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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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때 싫어했던 선생님과 회사에서 잘 지내지 못하는 상사 사이에는 묘한 공통점이 있다. 대개 학생과 선생님 사이에 세월의 벽이 높을수록 거리가 멀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세대 차이는 소통을 방해하는 여러 가지 원인 중 중요한 요소다. 기업 교육 전문가인 이민영 원장(T&D 파트너스 커뮤니케이션)은 많은 팀장과 사원을 만나면서 세대 차이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절실하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온 책이 『당신 없는 회사에 가고 싶다』이다.

 

여기서 ‘당신’은 팀장일 수도, 신입사원일 수도 있다. 신입사원만 팀장 때문에 괴로워한다고 생각한다면 오산. 요즘은 팀장도 말 안 듣는 신입사원 때문에 가슴앓이한다. 뭐가 문제일까. 이민영 원장은 두 세대 간 차이를 이해하고, 서로 조금씩 변화하려 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팀장님을 이해할 수 없어요, 나도 너희를 모르겠어


강의하면서 자주 받는 질문 중에서 10년 전과 지금을 비교한다면?


가장 큰 차이는 10년 전에는 교육생들이 질문을 안 했죠. 일단 일방적으로 강의를 듣는 식이었으니까요. 요즘은 팀장들이 고민을 많이 털어놓죠. 밑에 있는 사람이 말을 안 듣는다는. 고분고분하지 않다, 내 말을 듣지 않는다, 자기 마음대로 한다, 이런 거죠. 시대가 바뀐 거죠. 모 기업에서 이러한 시대 변화에 대해서 교육을 했어요. 위에 있는 기성세대가 교육을 의뢰했지만 정작 받은 사람은 아래 세대였어요. 젊은 직원들에게 해 줄 수 있는 이야기는 ‘선배들을 이해하고 존경해라’예요. 맞는 말이긴 한데요. 기성세대도 함께 교육받아야 하죠. “우리 회사의 미래는 신세대 사원들이다. 그들이 일하기 좋은 조직 문화를 만들어줘라.”라고 말이죠. 


젊은 세대가 말을 안 듣는 게 고민이라고 하지만, 안 듣는 게 아니고 영리해서 더 좋은 생각을 하고 있을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하죠. 그들도 조직에서 승부를 내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일한 맛 나는 조직이기를 간절히 원하는 거죠. 만약 그들이 원하는 조직문화가 조성이 된다면 누구보다도 더 열정적으로 일하게 될 팀원이에요. 


직장에서의 소통, 행동 등을 다룬 책이 여러 권 있었는데요. 그와 비교해서  『당신 없는 회사에 가고 싶다』는 어떤 책인가요.


소통에 관련한 책이 있었죠. 넓게 다루는 책이 많았고요. 저는 그중에서 특히 세대 갈등에 관해 다뤘어요. 조직은 20에서 60대까지 한 공간에 모여서 일해야 하는 곳이거든요. 집에서도 자녀들이 엄마 아빠와 소통이 잘 안 되는 경우가 많은데요. 조직에서도 소통 안 되는 게 당연하죠. 가족은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싸우고 회복이 되지만 조직은 관계가 회복되기 전에 퇴사한다거나 왕따가 된다거나 하는 일이 벌어져요. 조직을 조직이라 부르는 건 조직적으로 일하기 때문인데요. 그 안에서 세대 갈등 없이 일 잘하려면 세대에 대한, 상대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소통할 수 있어요.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공감되는 부분이 많다고 이야기해요. 팀장님이 그랬어, 신입사원이 그렇더라, 이런 공감을 끌어내기 위해 책을 썼다기보다는 공감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윗사람들은 수용하고 아랫사람은 위에 있는 사람들을 존경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썼어요. 세대 간 소통은 한쪽에서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요. 위, 아래에서 만나는 지점이 있어야 하는데, 바로 그 점을 기대하며 이 책을 썼어요.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가 공존하는 곳이 회사인데요. 지금의 리더는 40~50대일 테고, 20~30대가 한창 일하는 사원과 대리일 것입니다.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 어떤 점에서 차이가 날까요?


가장 큰 차이는 경험의 차이예요. 40~50대가 성장할 때는 대한민국이 가난한 때였어요. 기성세대들, 이중에서는 임원 분들도 있겠죠. 이분들은 어렸을 때 형제가 많았어요. 형제 모두가 대학 교육을 받을 수 없었죠. 대학 교육을 받았다면, ‘너가 성공해야 우리 집안이 잘 된다’는 말을 자주 들으면서 컸을 거예요. 그러다 보니 책임감, 의무감이 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죠. 또 그 시대 분들은 거의 외벌이였잖아요. 회사에 집중할 수밖에 없죠. 가장이 직장을 잃게 되면, 가정이 무너질 수 있으니까요.


그에 비해서 20~30대는 잘사는 대한민국에서 성장했어요. 형제도 1~2명이죠. 부모님도 예전 세대보다 더 교육받았죠. 가정에서 희생을 강조하기보다는 “엄마 아빠 걱정하지 말고 즐거운 일 찾아서 해”, 이렇게 이야기해요. 집에서 밀어주고 나라가 잘 사니까 개인주의 성향이 강해요. 외국여행도 다녀 봤고, 인터넷으로 정보도 쉽게 얻으면서 많은 걸 경험하니까 회사에 들어갔을 때 위에 있는 사람을 보니까 답답하고 고리타분해 보여요. 당연히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거죠.


젊은 세대가 보기에 답답한 팀장님이 그들의 부모님 세대이기도 하잖아요.


가장 큰 문제죠. 기성세대가 신입사원을 욕하면서도 자기 자식을 그렇게 키워요. 저도 그래요. 우리 애가 한 명인데요. 양가의 첫째이니까 어른 여섯이 얘를 키워요. 이런 성장 배경 때문에 이타주의적 생각보다는 개인주의가 강합니다. 엄마 아빠가 나를 이해해주고 위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회사라는 곳은 함께 일하는 곳이죠. 조직은 조직적으로 일해야 하잖아요. 혼자 잘한다고 성과가 나오지 않아요. 게다가 조직원들은 부모님처럼 나를 이해해 주지 못하죠.


기성세대가 신입사원이 말을 안 듣는다고 속상해 하지만 정작 자식이 아프면 회사에 대신 전화해서 월차 써야 한다고 말해요. 부모를 탓해야 할까요? 세태가 이렇게 흘러간 것이기 때문에, 기성세대가 신세대를 이해하는 수밖에 없어요. 내 자식도 이렇게 컸는데, 하고 생각해야죠. 그리고 아랫사람들은 지금의 직장생활은 나의 이력서에 고스란히 남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해요. 커리어의 연장이므로 절대적으로 내 행동에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면접 볼 때, 소개팅할 때, 최선을 다하듯 지금 함께 일하는 팀장님과 팀원에게 최선을 다해야 하거든요. 윗세대는 부모 같은 생각으로 아랫사람을 대하고요. 그들의 조직에 적응을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고요, 젊은 세대들은 선배들 덕분에 내 직장이 존재한다는 마음으로 존경을 담아 최선을 다해야 해요.


되어선 안 될 팀장, 신입사원


실제로 직장 생활도 겪었는데요. 신입사원일 때는 어땠나요.
 
저도 신입사원일 때는 윗분들이 밥 먹자고 할까 봐 저를 쳐다만 봐도 일어나서 먼저 나가버리곤 했어요.  한 번은 점심시간 때 조금 늦게 들어왔어요. 부장님이 물어봐요. 왜 늦게 왔느냐고. 그래서 백화점 갔다 왔다고 대답했죠. 부장님이 미쳤냐고 말해서 그 자리에서 미치지 않았다고 이야기했어요. 화장품이 필요한데, 사러 갈 시간이 없다고 대답했죠. 그랬더니 부장님이 화를 버럭 내는 거죠. 그 뒤로 한달 간 서로 말 안 하고 지냈어요. 이런 경험이 있기 때문에 젊은 세대에게 “너희 행동이 이해는 가지만 그러면 안 돼.”라고 이야기해 줘요. 저도 당시에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고마웠을 거예요. 언니들에게 이야기하면, 그 언니도 맞장구 쳐줬거든요. 뒷말을 함께 했죠. 하지만 직장선배라면, “조직은 원래 그런 거야”라고 이야기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어요.


집에서도 똑같았어요. 부모님께 말했더니, 속상하면 그만두라고까지 말씀하셨어요. 만약에 엄마 아빠가 사회에서 딸이 성공하기를 바랐다면, “조금만 참아라.”라고 이야기하는 게 좋았을 텐데요. 지금도 예전과 비슷해요. 사원이 고민을 말하면 조언해 줄까요? 그 반대로 뒷말을 함께 해 줄 거예요. 지금은 신입사원일 때 했던 행동 중 일부를 후회하죠. 혹시라도 그분들이 내 책을 볼까 봐 두려워요. (웃음)


지금은 리더입니다. 신입사원일 때의 경험과 느낌, 리더로서의 경험과 느낌을 말씀해 주세요.


밑에 사람을 많이 데리고 있진 않지만, 가끔 답답해요. 나는 저럴 때 안 그랬는데, 하는 생각이 많이 들죠.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 해요. (웃음) 내가 한 마디 던졌을 때 못 알아듣는 사람을 보면 속이 터져요. 알려 주면 되지만, 기준이 내 기준이 되는 거죠. 정작 밑에 있는 사람은 배운다고 생각 못하고 다른 사람 일을 도와준다고 생각해요. 함께 일하면서 배운다는 사실을 모르죠. 그 자리에 있으면 그 사람 말이 맞아요. 그 사람도 옳고, 나도 옳아요. 이해하려고 많이 노력하지만 쉽지는 않죠.


이렇게 하는 팀장이 좋다, 이렇게 하는 신입사원이 좋다는 건 다소 추상적일 수도 있는데요. 그래서 질문을 좀 바꿔 보겠습니다. 되어선 안 될 신입사원, 되어선 안 될 팀장에 관해 말씀해 주세요.


몇 년 전부터 나온 말인데요. 파랑새족이라는 말이 있어요. 주기적으로 회사를 옮기는 사람이죠. 회사 옮기는 건 괜찮은데요. 잘하고 옮겨야죠. 성의를 다 하지 않고 옮겨요. 자기 할 일만 하고 쏙 빠지는, 얄미운 깍쟁이 같은 사람들이 있어요. 이런 사람들에게는 조직에서 선배가 일을 가르쳐 주고 싶지 않아요. 그리고 조직에 융화하지 않는 사람도 되어선 안 될 신입사원이죠. 일은 조금 못해도 예의 바르고 열정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해요. 어차피 조직에서도 신입사원이 일을 잘해야 한다고 생각 안 하거든요.


되어선 안 될 팀장은 동기 부여를 못 하는 사람. 팀장이 하는 일은 직원들이 일을 잘할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하는 거죠. 잘한 걸 칭찬하면 동기 부여가 되는데, 혼내기만 하는 팀장이 있어요. 팀장급을 대상으로 커뮤니케이션 교육할 때 코칭기법을 많이 다루는데요, 긍정적인 피드백을 해 주라고 하죠. 팀장들이 뭐라고 하느냐면, “칭찬하면 나를 뛰어 넘으려 하고, 버릇 없어진다.”라고 해요. 요즘 젊은 사람들은 혼내면, 아예 하고 싶어 하지 않아 해요. 그들은 하고 싶은 일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하거든요. 그러니까 하고 싶게 만들어야죠. 그리고 부하직원에게 일 시키고는 그 일을 자기 성과로 만드는 팀장도 되어선 안 될 팀장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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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영 원장은 조직에서 인간 관계에 관해 강의도 하지만, 취업 관련 강의나 상담도 자주 한다. 취업, 구직자의 마음가짐은 조직에서의 인간관계와는 또다른 주제다. 그에 관해 물어봤다. 더불어, 워킹맘으로 회사 생활을 할 때 유의할 점도 들었다.


구직자가 유념해야 할 것


취업 관련 강연도 많이 하는데요. 강의, 상담하면서 느끼는 구직자의 문제는?


목표가 다 대기업이에요. 대한민국 직장인 중에 85%는 중소기업에 재직하고 있어요. 15%만 대기업에 다니죠. 대학생이 굉장히 많이 있는데, 그 안에서 10~15%만 대기업에 갈 수 있다는 뜻이에요. 사촌 동생이나 후배를 보면, 그 회사(대기업)를 가기 위해 재수를 하고 삼수하는 것까지 봤어요. 1년이라는 기간이 그냥 지나가 버리는 거죠. 내가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회사 네임 밸류만을 좇는 건 아닌지에 대한 고민을 해 볼 필요가 있어요.


사회생활을 30년 넘게 할 텐데요. 하고 싶은 일을 먼저 찾고, 직장을 찾아서 경력을 쌓았으면 해요. 대기업에 취업한 친구가 부럽다고 해서 직장을 택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중견기업에 교육 다녀 보면 뽑을 사람이 없어서 못 뽑는다고 해요. 일할 수 있는 곳이 없지만은 않아요. 이상을 낮추라는 게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을 찾다 보면 폭이 넓어질 거라는 이야기에요.


워킹맘이기도 한데요. 육아와 사회생활을 어떻게 균형을 맞추나요?


전체를 100이라고 했을 때, 50을 육아에 쏟고 50을 회사에 쏟으면 둘 다 반쪽이죠. 낙제 직장인 낙제 엄마예요. 다 잘하려고 생각하기보다는, 잘할 수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춰 보고 다른 쪽은 도움을 구하는 게 바르다고 봐요. 저도 당연히 아이를 사랑하지만,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바가 크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일을 하게 됐고요. 친정 부모님께서 아이를 길러 주시는데 물리적으로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는다고 해서 사랑하지 않는다는 건 아니에요. 전화도 있으니 중간 중간에 연락할 수 있고요. 살림은, 잘 하지 않고 살아요. 밥도 간단하게 하고, 청소를 깔끔하게 하진 못하죠. 출장이 많아서 물리적으로 시간이 많지 않아요. 상황에 따라 시간이 주어지면 하는 거죠. 워킹맘으로 모든 걸 잘하려고 하지 말고, 도움을 구할 수 있으면 도움을 구해요. 그리고 남편과 타협을 하는 게 가장 중요하죠. 가사 도움을 받을 수 있어도 좋지만, 저 같은 경우는 저를 이해해 주는 것만으로도 심적으로 위안을 많이 받거든요. 


종신고용,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사라지면서 회사원들이 동기 부여하기 참 어렵잖아요. 스스로 동기 부여는 어떻게 할 수 있나요.


아까도 잠깐 이야기했듯, 직장생활이 여기서만 끝나지 않아요. 내가 40대 초반인데. 120살까지 산다고 해요. 돈을 버는 경제활동이 아니어도, 사회생활을 해야 해요. 앞으로 40~50년은 네트워크 쌓고 소통하고 활동해야 한다는 의미죠. 나의 이력은 평생 따라가요. 일 안 하면서,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나가버리면 내가 살아가는 데 아무런 도움이 안 돼요.


매 순간 최선을 다하고 그래서 성과가 나야지, 그 성과로 더 좋은 데로 옮기잖아요. 만약에 이 글을 읽는 사람이 부모라면,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아이에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 주세요. 엄마가 밖에서도 일을 열심히 하는 모습에 아이가 동기부여를 스스로 할 수 있게 돼요. 예를 들어서 제가 아이에게 “교재 만들어야 하니까, 옆에 있을래?” 라고 하면 아이도 공부방에서 함께 무언가를 해요. 그런데 퇴근하고 돌아와서 힘드니까 방에 들어가 TV를 보면 아이도 슬그머니 들어와서 같이 TV를 봐요. 부모를 보고 따라 하죠. 에너지가 아이에게도 전달돼요. 동기는 스스로 만들어야지, 팀장이 나에게 시켜서 한다는 건 좋지 않아요. 매 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고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하루하루가 되겠다는 마음을 먹는다면 동기부여는 자연스럽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외국계 기업에서도 일해 봤잖아요. 한국 기업의 강점과 약점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한국 기업에는 정이 많아요. 외국계 기업은 개인주의 성향이 약간 있어요. 제가 직장생활을 할 때 아버지가 편찮으셔서 병원에 입원하신 적이 있어요. 이런 걸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요. 조직에서는 일만 하고 성과를 내야 하죠. 그때 사장님이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안 됐긴 하지만, 그래도 네 인생이다, 네가 간다고 아버지 병세가 나아지냐?”, 따지고 보면 맞는 말이긴 하죠, 이런 정이 외국 회사에는 없어요. 특히 저는 외국인 사장님이셔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요. 저희 사장님은 비즈니스 미팅이 아니면, 점심도 늘 혼자서 드시러 가셨어요.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셔야 한다면서요. 


반면 한국 기업은 가족과 비슷해요. 한국 기업에서는 사석에서 언니, 형님 이렇게 부르잖아요. 외국계 기업에서는 ‘언니’라고 불렀더니 회사에서 쓰지 말라고 해요. ‘언니’, 영어로 sister는 관계를 의미하는 말이니 공적인 장소에서 쓸 호칭이 아니라는 거죠. 한국 기업의 약점이라면, 정에 이끌린다는 것? 인사평가할 때도 정에 이끌려서 친하면 끌어주는 게 오히려 약점이죠. 하지만, 때로는 강점이기도 하고요. 강점, 약점을 가르기보다는 한국 기업과 외국 기업 간에는 분명 차이가 있어요. 친구나 후배들이 여성들이 조금 편하게 직장생활 할 수 있는 외국계 기업으로 이직을 하고 싶어 해요. 하지만 해 주고 싶은 말은 꼭 그렇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는 거예요. 외국계기업에서도 나의 사수는 한국인일 수 있는데, 그럼, 한국과 별반 다르지 않을 수 있어요. 그런 것처럼 조직생활은 비슷한 것 같아요.


일부 팀원에게 회식이 고통이 될 수도 있는데 T&D 파트너스 커뮤니케이션 회식 문화 어떤가요?


외부 강의가 많기에, 서로 점심에 만날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아요. 함께 먹는 시간이 많지 않고 어쩌다 마주치는 거니까 좋아하죠. 지방을 많이 다니다 보니, 회식에서 술을 마신다는 것 자체가 없어요. 새벽에도 강의가 있고 주말에도 많거든요. 그러니 저녁에 술을 마시는 회식은 못 하죠. 대신 점심을 간단히 먹는다거나, 연극이나 영화를 봐요. 영화는 조조를 보고요. 주변에 보면 회식 때 재미없는 농담 하는 팀장 있잖아요. 별로 안 좋아해요. 스트레스 안 주려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아요. 영화만 보죠. 영화 볼 때도 각자 자리 따로 앉아서 볼 때도 있고요. 푸드코트 갈 때도 먹고 싶은 거 각자 먹어요. 자유롭게 하는 편이에요.


앞으로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지금과 같은 일이죠. 조금 넓게 말한다면 긍정적인 멘토가 되고 싶어요. 여성들의 멘토가 되고 싶기도 하고요. 여성뿐만 아니라 남자들에게도, 저를 따르는 남자 후배들 몇몇 있는데, 그들에게도 여성으로서 해 줄 수 있는 이야기들이 많이 있더라고요. 조직 내 여직원들과의 인간관계의 어려움에 대해서 조언을 구하곤 하죠. 그런데 거창한 꿈을 갖기보다는 매일 매일이 너무 바쁘다 보니 건강관리를 잘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고 건강할 때까지 지금 하는 일을 계속 하는 게 제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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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없는 회사에 가고 싶다이민영 저 | 라이스메이커
직장 내 관계 문제로 고민하고 있는 대한민국 직장인들을 위해 기업 교육 전문가인 이민영 소장이 나섰다. 그녀는 직장 내의 관계 문제는 제대로 된 ‘소통’을 못하는 데에서 오는 결과라고 설명하며, 어떻게 하면 이 멀고도 먼 사람들의 입장 차이를 이해하고 서로의 다름을 성숙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알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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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충식 “스티브 잡스, 윤종신, SM, 모두 경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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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들에게 끊임없이 따라 붙는 숙제가 바로 ‘기획력’이다. 회사는 언제나 새로운 기획을 원하고 직원들은 퍼뜩 떠오르지 않는 아이디어에 한숨을 쉰다. 어떤 분야보다 창의적이어야 할 광고계에서 14년을 기획자로 산 『기획은 2형식이다』 저자 남충식은 “사색은 없고 검색만 있는 지금 시대에 우리 한국 기획자들은 지나치게 심각하고 진지하다”고 지적한다. 기술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기획력이 없으면 제자리걸음이다. 기획자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심플의 미학’. 『기획은 2형식이다』에서 저자는 ‘2개의 본질 코드’ P코드, S코드로 ‘기획’을 말한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 TBWA KOREA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남충식 저자는 현재 이노션(INNOCEAN) 더캠페인랩 팀장으로 재직 중이다. SK텔레콤, 소니, 피자헛, 모토로라, 네슬레, 팬택, 현대자동차 등 다양한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프로젝트를 기획했고 신세계, 이마트, 삼성전자, UNITAS CLASS, 서울디자인재단 등 기업체 및 교육기관에서 ‘플래닝 코드’적 창조기획을 전파하고 있다. 뮤직 프리젠테이션 〈썸네일 프로젝트thumbnail project〉의 인디 뮤지션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남충식 저자는 “‘기획’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대한민국의 모든 김 과장들을 위해 『기획은 2형식이다』를 집필하게 됐다”고 말했다.

 

만나고-남충식

 

아이돌 음악 아닌, 조규찬 음악 같은 책


책이 독특하게 편집됐다. 여백도 많고, 문장 배열 형식도 평범하지 않다.


기존에 나온 크레에이티브에 관한 책과는 다르게 쓰자고 생각했다. 편집에도 신경을 많이 썼고. 현재 강의하고 있는 제목이 ‘플래닝 코드’인데, 책의 제목으로 쓰기엔 난해할 수 있어서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기획은 2형식이다’를 제목으로 정했다.

 

‘기획’에 대한 책은 꾸준히 나오고 있다. 광고인이 썼기 때문에 아무래도 마케팅 관련 종사자들이 관심을 가질 것 같은데, 『기획은 2형식이다』의 주 타깃은 어떤 독자인가?


책을 준비하면서 북 트레일러도 함께 만들었는데, 맨 처음 나오는 카피가 ‘대한민국의 모든 김 과장님에게’다. 대한민국 보통의 기업에서 5년 정도 일을 하면 과장이 되는데, 어느 정도 조직생활에 적응해가면서도 기획에 대한 부담감은 여전한 것 같다. ‘난 왜 이렇게 기획을 못하지?’ 이런 분들이 읽으면, 피와 살이 되는 이야기를 담았다. 아이돌 음악보다는 조규찬 음악 같은 책? 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다(웃음). 대학생들에게는 조금 어려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지난주에 있었던 대학생 포럼에서 소개했더니 의외로 재밌어 하고 반응도 좋았다. 기획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흥미롭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책의 핵심은 ‘기획은 심플해야 한다’인 것 같다. 아이디어가 많은 것보다 본질에 집중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는데.


생각이 많은 건 좋지만, 복잡하게 생각하는 건 쥐약이다. 일을 하다 보면 생각을 너무 복잡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러면 늘 결과물이 통상적이다. 기존의 성과를 답습하는 결론이 나와 버린다. 고수일수록, 크리에이티브한 사람일수록 의외로 심플하다. ‘심플’은 기획의 원리가 아니라, 인생의 원리일 수도 있다. 이 책을 쓰면서 스티브 잡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이 사람의 모토도 ‘심플’이다. 심플하려면 본질에 집중해야 한다. 군더더기, 부수적인 것은 많이 버려야 하는데 사람들이 그것들을 포기 못하니까 본질에서 벗어나 버린다.

 

기획의 본질 코드로 ‘P코드’ ‘S코드’를 말했다. P는 ‘문제problem’, S는 ‘해결solution’이다.


기획의 고수들이 복잡한 정보 속에서 기회를 알아보는 비결이 바로 P코드와 S코드다. 두 개의 통찰 코드를 늘 안경처럼 쓰고 다니기 때문에 해결의 기회를 찾을 수 있다. <양심 냉장고> 김영희 PD도 ‘시청자들이 쉽게 공감할 만한 공익 소재’를 찾다가 새벽에 귀가하던 중, 문득 빨간 신호등을 발견하고 프로그램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그가 본 건 빨간 신호등이 아니라, ‘해결의 기회’였던 거다. 『미생』 윤태호 작가도 ‘직장인들의 삶의 이야기를 어떻게 표현하지?’라는 문제를 생각하다가 점심시간에 똑같은 흰색 와이셔츠를 입고 쏟아져 나오는 샐러리맨을 보고 『미생』을 쓰게 됐다. ‘똑같은 그들을 각자 다른 색깔의 의미 있는 인생들로 채색해보자’고 결심한 거다. 이들이 복잡한 생각을 했던 건 아니다. 문제와 해결, 단 두 개의 기획의 근본을 생각하고 있었을 뿐이다.

 

기획을 잘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을까?


우선 태도가 다르다. 열정, 진정성 등으로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떠한 프로젝트를 해결하겠다는 열정과 태도가 기획의 8할이고, 나머지가 기획의 원리다. 기획을 잘하는 사람들을 지켜보면 특히 관찰을 많이 하고 겸손하다.

 

노력해도 센스가 잘 생기지 않는 사람도 있지 않나? 무조건 노력하면 기획력도 생기나?


상대방이 보기엔 센스가 없을 수 있지만, 중요한 건 당사자가 센스를 기르기 위해 노력할 태도와 준비가 되어 있느냐다. 만약 그 사람이 센스가 떨어지지만 바꾸고 싶은 열정이 있다면 나는 같이 일하고 싶다. 하지만 “저는 원래 그래요”라면서 포기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으면 그건 나아질 가능성이 없다. 태도가 중요하다.

 

만나고-남충식

 

본질을 건드리는 책을 읽어야 기획력이 생긴다


광고회사에서 AE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처음부터 기획력이 뛰어나진 않았을 텐데, 어떠한 노력을 했나?

 

나는 완벽히 트레이닝으로 기획력을 쌓은 케이스다. 회사에서 철저하게 훈련 받았다. 많은 사람들이 기획력은 타고나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철저하게 후천적인 것이 ‘기획력’이다. 예전에 선배들이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으면 책상 앞에 앉아 있지 말고 그냥 퇴근하라고 했다. 이를 꽉 깨물고 다른 생활을 하고 놀다 보면, 언젠가 떠오른다고. 몸의 힘을 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잘 부르려고 노력하면, 긴장해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심사위원들도 힘을 빼는 도전자들에게 후한 점수를 준다. 한국의 경직된 조직문화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지만, 긴장을 풀어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

 

최근 ‘6.4 지방선거’가 끝났다. 광고인으로서 인상 깊었던 공약이나 캐치프라이즈가 있었나?


아쉽게도 이번 선거에는 눈에 띄는 기획이 없었다. 메시지가 너무 많아 본질을 꿰뚫지 못했다. 대중들에게 강렬한 임팩트를 못 준 것 같다. 2012년에 한 정치인이 ‘저녁이 있는 삶’을 내세웠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 때 많은 사람들이 감정적인 터치를 받았던 것 같다.

 

‘아이디어 발상법’, ‘아이디어맨 되기’와 같은 책은 읽지 말라고 조언했다.


절대 읽지 말라는 게 아니고, 이런 책들이 본질이 아니라는 말이다. 대개 스킬 같은 건 배울 수 있겠지만, 본질적으로 기획력을 신장시키기 위한 통로가 될 수는 없다. 본질을 건드리는 책을 읽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된다. 추천해주고 싶은 책은 『생각의 탄생』, 『틀 안에서 생각하기』등이다.

 

그렇다면『기획은 2형식이다』도 본질을 건드리는 책인가?


물론(웃음). 본질을 건드리고 싶어서 쓴 책이다. ‘기획’에 관한 책은 오래 전부터 많이 나왔는데, 그런 책보다 내 책이 더 좋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기획을 보는 관점이 다르다. 보통의 책에서는 기획을 가르치려고 하는데, 기획은 절대 가르치는 게 아니다. 기획자 안에 창조의 거인은 이미 존재한다. 내가 하고 싶고, 해야 할 몫은 그 창조의 거인이 있다는 걸 일깨워주는 자극을 주는 거다. 책 제목을 작게 쓰고, 판형을 독특하게 작업한 것 모두가 창조에 대한 자극을 주기 위해서다.

 

올해로 광고인생 14년차다. 지금까지 해온 프로젝트 중에서 가장 만족스러웠던 것은 무엇인가?


지금 ‘2014 브라질 월드컵’이 한창인데, 나의 첫 광고주가 SK텔레콤이었다. 붉은악마의 ‘대한민국’ 박수를 가지고 캠페인을 벌였는데, 반응이 매우 좋았다. 원래 있던 박수였지만, 광고가 나가기 전까지는 사람들이 잘 알지 못했다. 우리가 한 것은 발견해서 알려준 거다. 이처럼 창조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고, 몰랐던 것을 발견해서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것이다. 또 예전에 ‘레이저’를 출시하면서 했던 ‘모토로라 캠페인’도 기억에 남고, 팬택의 ‘베가’는 내가 이름을 짓기도 했다. 규정하는 걸 좋아해서 네이밍에 관심이 많다. 현대자동차 ‘벨로스터’를 출시하면서는 기존의 평범한 론칭쇼에서 벗어나서 ‘벨로스타 클럽’을 지어서 론칭쇼를 했는데 큰 주목을 받았다. 현대차 프로젝트에서 4D 극장 광고를 제작한 것도 재밌는 작업이었다.

 

기획자가 된 후부터 생긴 습관이 있을 것 같다.


두 가지인데, 남들이 보면 “미친 놈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웃음). 소설가 앙드레 지드는 “시인의 재능은 자두처럼 하찮은 것에도 감동할 줄 아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기획자도 다르지 않다. 시인(poet)의 어원을 찾아보면, ‘새롭게‘ 만들어 내는 사람’ 즉 ‘창조자(poein)’ 라는 말에서 나왔듯이, 크리에이티브도 그렇다. 지금 내가 삼다수 물병을 보고 있는데, 이 물병 하나로도 한 시간 동안 여러 가지 이야기를 꺼낼 수 있다. 이런 짓(?)을 해보는 게 정말 도움이 된다. 지하철을 타고 한강을 지날 때, 그냥 ‘물이 넘실거리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양하게 자기 관점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두 번째 습관은 갑자기 어떤 생각이 났을 때, 사람들에게 질문하는 버릇이다. 예전에 ‘기저귀 프로젝트’를 할 때는 젊은 엄마들을 이해하려고 놀이터에 한참을 앉아 있다가, 엄마들에게 가서 “아이 기저귀를 실제 차본 적이 있냐?”고 물어서 뺨을 맞기도 했다(웃음). 처음 보는 사람이 대뜸 황당한 질문을 하니까, 다들 어이없어 했다(웃음).

 

만나고-남충식

 

가수 윤종신의 ‘월간 윤종신’ 프로젝트를 최근 문화계에서 본 최고의 기획으로 손꼽았다. ‘월간 윤종신’에서 발견한 P코드는 ‘불규칙한 음악 발표 주기’라는 문제였고, S코드는 ‘윤종신의 디지털 월간 음악 잡지’라는 솔루션이다.


‘월간 윤종신’은 최근 5년간 봐왔던 모든 카테고리 중에서 최고다. 모든 면에서 완벽했고 탁월하다. 기획에는 카테고리 구분이 없다. 김태호 PD, 스티브 잡스, SM엔터테인먼트의 아이돌 기획자도 우리의 경쟁자가 될 수 있다. 기획에서 이론은 20%에만 해당된다. 나머지는 태도, 목적의식, 열정이다. ‘월간 윤종신’은 가수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새로운 해결책이었고, 음악인의 열정에서 나온 자구책이다. 윤종신은 우리에게 기획력은 ‘능력’이 아니라, ‘태도’라는 걸 다시 한 번 상기해줬다. 우리가 기획자 윤종신에게 배워야 할 본질은 ‘월간 잡지’라는 포맷 아이디어나 ‘다양한 작가와의 콜레보레이션’ ‘홍보 전략’ 등 S코드적 화두가 아니라, ‘가수 윤종신으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P코드적 사고와 그것을 실천해나가는 열정과 끈기, 결국 P코드다.

‘월간 윤종신’이 처음부터 큰 반응이 있지는 않았다. 골수 팬들만 반응했다. 꾸준함이 지금의 결과를 가져온 것 같다.


2010년 4월부터 지금까지 발행하고 있으니, 웬만큼 부지런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한결 같은 꾸준함이야말로 정말 대단한 점이다. 사실 기획은 실현했다고 해서 바로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다. 내가 비염 때문에 병원에 가서 수술을 했는데, 수술하고 나니 바로 숨이 쉬어졌다. 그런데 3개월 반 만에 다시 도루묵이 됐다. 어쩔 수 없이 이번에는 한의원을 찾아갔는데 치료 기간이 오래 걸렸지만 결국 치료가 됐다. 기획도 마찬가지다. 일시적으로 뭔가 해결되는 게 아니고, 시간이 갈수록 기획이 발전하면서 성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많이들 오해하는 게, 기획이 좋으면 반응이 바로 올 거라는 착각이다. ‘월간 윤종신’ 역시 점점 발전하고 꾸준했기 때문에 더 나아진 거다.

 

마흔은 두 번째 스무살


개인적인 질문을 해보자.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건, 광고인이 되기 위해서였나?


고등학교 1학년 때 신문에 광고인에 대한 기사가 크게 났는데, 굉장히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광고를 하고 싶은데 “뭐를 전공하면 좋냐?”고 물으니, 어른들이 “광고가 마케팅 아냐? 그럼 경영학과”라고 하더라. 그래서 경영학과에 들어갔다. 경영도 여러 분야가 있지만 난 마케팅만 생각했고 졸업 후 입사할 때도 광고회사만 지원했다. 그런데 광고계의 다른 동기들은 그렇지 않다. 그 때 나는 외골수라 ‘광고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좋은 선택만은 아니었다. 광고가 세상의 전부인 것도 아닌데, 좀 더 다양한 가능성에 대해 고민하고 시도해보는 게 좋은 것 같다. 인생은 장기적인 게임 아닌가? 대학생들을 만나는 자리에서도 늘 강조하는 게, 여러 가능성을 생각해보라는 점이다.

 

〈썸네일 프로젝트thumbnail project〉의 인디 뮤지션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음악은 취미 활동인가?


중학교 1학년 때, 무한궤도가 우상이었다. ‘88년도 대학가요제’를 보고 ‘이거다’ 싶었다. 대학에 간 이유가 ‘대학가요제’에 출연하기 위해서였다(웃음). 스윗소로우 인호진과 중학교 친구인데, 같이 대학가요제에 나갔다가 최종 예선에서 아쉽게 떨어졌다. 호진이는 ‘유재하음악경연대회’에서 대상을 타면서 가수로 데뷔했고. 살면서, 음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버린 적이 없다. 광고에 흥미를 갖게 되면서 두 가지 중에 무얼 선택할까 고민하다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은 취미로 갖고, 두 번째로 좋아하는 광고를 직업으로 택했다.

 

만나고-남충식

 

‘연애도 기획’이라는 말도 했다. 두 딸의 아빠인데, 남다른 프러포즈로 아내의 마음을 얻었는지 궁금하다.


아쉽게도 특별한 프러포즈는 없었다(웃음). 아내와는 사내 커플이었다. 최근에 한 후배가 좋아하는 여자가 있는데, 여자가 이 후배를 남자가 아닌 오빠로만 생각한다고 하더라. 어떻게 고백하는 게 좋겠냐며 조언을 구하길래, 우선 편지는 절대 쓰지 말라고 했다. 편지는 거절할 수 있는 명분을 너무 많이 준다. 남자로 여기지 않는다고 하니, 직접적인 고백을 하는 것이 훨씬 남자다워 보일 수 있다. 남자들은 대개 풍선, 촛불, 뮤지컬 등 이벤트를 펼치는 걸 여자들이 좋아할 거라 생각하는데, 케이스마다 다르겠지만 뭐든지 문제를 진단하는 게 우선이다. 여자가 왜 나에게 마음을 열고 있지 않는지, 그 문제에 따른 해결방안을 찾는 게 현명한 기획이다.

 

올해 마흔이다. 마흔을 ‘두 번째 스무 살’이라고 여긴다고 헸다.


팀원들에게도 지겹게 이야기한다. 33세 후배에게 “넌 아직 태어난 게 아니다”라고, 38세 후배에게는 “인생의 시작은 마흔”이라고 말한다. 지금은 100세 시대 아닌가? 곧 120세 시대도 찾아올 거고. 마흔이 인생의 진짜 시작을 열 수 있는 나이인 것 같다. 조금 철이 든 게 스무 살이고, 좀 더 철이 든 나이가 마흔인 것 같다.

 

스스로를 ‘싱어송 아이디어 라이터’라고 부르고 있다. 어떤 의미인가?


요즘은 카피라이터를 ‘아이디어 라이터’라고 부른다. 나는 기본적으로 내 생각을 글로 쓰는 걸 좋아한다. 그게 가사이든 기획서이든. 여러 가지 툴은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내 생각을 어떤 형태로든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게 여전히 흥미롭다. 직업이란 형태로 규정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인생의 모토로 삼는 글귀가 있나?


비틀즈의 앨범 가운데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명반 <화이트 앨범(The Beatles)>에 좋아하는 곡이 있다. 일명 ‘원숭이 노래’라 불리는 이 곡은 소위 펑크록의 효시로 알려진 신나는 노래다. 이 가운데 한 소절이 내가 말하고 싶은 플래닝 코드의 비밀을 말해 주고 있다. “The deeper you go the higher you fly, The higher you fly the deeper you go.” 나는 절대 가볍고 싶지 않다. 화려한 것을 좇지 않고 언제나 본질적인 것, 기본적인 것에 집중하려고 노력할 거다. 그래야만 멀리 점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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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은 2형식이다남충식 저 | 휴먼큐브
창조가 화두인 시대. 창조경제, 창조경영, 창조과학 등 ‘창조’라는 단어를 우리는 쉽게 접할 수 있다. ‘창조경제’로 대표되는 시대의 트렌드에서 우리는 무엇을 깨닫고 생각해야할까?『기획은 2형식이다』의 저자인 광고회사 이노션(INNOCEAN)의 남충식 부장은 말한다. 사고력이 우선되지 않고선 ‘창조’는 무의미하고 공허하다고. 크리에이티브한 업종의 최전선인 광고업계에서 일하는 저자는 수년간 고민하고 경험한 것들을 이론으로, 강연으로 차곡차곡 쌓아왔다. 그 결과물이 바로 [플래닝코드]이고 그 이론을 집대성한 것이 이 책, 『기획은 2형식이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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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선미 “사교육보다 책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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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육아가 쉬웠던 적은 없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공동체가 느슨해지고 육아의 몫이 오롯이 부부, 특히 엄마에게 주어지면서 부담은 늘어났다. 그나마 국가 차원에서 보육 제도를 탄탄하게 구축해 놓은 일부 유럽 국가에서는 사정이 낫지만, 한국은 아니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 감동은 잠시, 만만치 않은 현실이 엄마를 기다린다. 아이는 보채고, 울고, 잘 자다가도 깨고, 수시로 대소변을 본다. 엄마는 이런 아이에 24시간 바짝 붙어 있어야 한다. 유지해왔던 대인관계는 끊기고, 수면 부족과 만성 피로, 근육통에 시달린다.

 

그런데 많은 육아책에는 이런 내용이 없거나, 무미건조하게 다뤄진다. 아이가 울 때는 이렇게 해 보세요, 하는 식이다. 마치 육아책에서 제시한 답안을 성실히 실천하면 아이가 무럭무럭 클 것 같다. 『닥치고 군대 육아』를 쓴 하은맘, 김선미 저자는 다르게 육아책을 만들었다. 특유의 거칠고도 해학적인 문장으로 육아의 고난을 설명하고 이에 대처하는 엄마의 자세를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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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군대’가 들어갔지만 이 책이 다루는 범위는 0세에서 3세까지인 영아기에만 한정되지는 않는다. 영아기와 유아기를 넘어 길게는 초등까지 적용할 수 있는 육아 방법을 소개했다. 저자가 소개하는 육아 방법은 간단하다. 책육아, 배려육아, 놀기육아. 많은 엄마가 불안한 마음에 비싼 장난감과 교구를 사고 사교육에 아이를 맡기는 현실에 하은맘은 불만이 많다. 그것도 엄청나게 많이.

 

만나면 비교하고. 통화하면 확인하고. 모임 나가면 애 잡는 전자동 시스템이 항상 가동되기 때문이라는 거지. 그것 때문에 숱한 밤을 후회하고 미안해서 가슴 쥐어뜯어 봤잖니. 그만하자. 그냥 내 애만 바라보며 가자. 제발. 내 자식의 눈빛만, 몸짓만, 야물 거리는 사랑스런 입매만 바라보며 키우자. 양 눈가에 널빤지 대고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처럼, 잔다르크처럼 혼자서 가자. (107쪽)


사교육보다 책육아


『지랄발랄 하은맘의 불량육아(이하 불량육아)』로부터 1년 반이 지났는데요. 육아 책을 한 번 더 내야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있나요?
 
더는 책을 안 내려고 했죠. 책 내는 작업이 어렵거든요. 초등학생 아이도 키우고 있으니 시간도 없고요. 우연히 지인이면서 친하게 지내는 친구가 제 캐릭터를 일러스트로 그려줬어요. 이 일러스트들이 제가 하려는 말과 정말 일치돼서요. 일러스트와 함께 제가 쓴 글을 책으로 묶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블로그를 통해 책 한 권 더 내 달라는 요청도 거셌고요. 때마침 저를 지켜봐 왔던 에디터분이 책을 같이 내보자고 해서 결심하게 되었죠.
 
제목이 『닥치고 군대 육아』입니다. ‘3년만 빡세게 육아하라’는 메시지의 ‘3년’을 0~3세로 생각하는 독자들도 많을 텐데요.
 
아니에요. 제가 강조하는 배려육아, 책육아, 놀기육아는 시작하는 시점이 3세든 6세든 12세든 상관없어요. 다만 빠르면 빠를수록 아이가 잘 받아들이긴 하죠. 클수록 장난감, TV, 휴대폰 등에 노출되니 책이라는 재미없는 장난감을 싫어할 수는 있어요. 엄마들이 낙담하면서 화가 날 수 있죠. 이럴 때 전문가를 붙여 볼까 생각하는데요. 책육아와 사교육 양다리를 걸치게 되죠. 그런데 책은 시간이 많아야 볼 수 있어요. 사교육 시키면 책육아가 뒤로 밀리죠. 이런 원리를 유념하고 시간을 널널하게 잡고 눈 맞추면서 책육아를 할 필요가 있어요. 스무 살 이전이라면 어떤 아이라도 시작할 수 있습니다.

 
기존 육아책을 많이 봐왔을 텐데, 기존에 나온 책을 보면서 마음에 안 들었던 점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우선 기존 육아책은 어려워요. 작가 본인의 이야기를 해 주면 와 닿을 텐데 상담 사례, 외국, 논문 사례를 이야기해주니 와 닿지도 않고요. 정답을 ‘가르치려’ 해요. 정답대로 해 보는데, 안 돼요. 계속 안 돼요. 그래서 저는 육아책에 실패담이 많이 나오면 좋겠어요. 어디서 들은 내용 말고 본인의 실패담을요. 어떻게 극복했는지도 나와야죠. 아주 쉽게, 얇게, 가볍게, 민간인의 언어로 이야기해야죠. 쉬운 말로 쓰여 있어야 엄마들이 아기 업고 밥하고 똥 기저귀 갈면서도 한 쪽이라도 볼 수 있잖아요. 잠깐 짬 내서 봐도 눈에 확 박히게, 마음을 후벼 파게. 너무 어렵고 두꺼우면, 읽다 말죠. 책이 어려우니 스마트폰 보잖아요.

 

책육아에 돈이 든다는 오해도 많이들 하는 것 같아요. 하은맘이 권장하는 책 권수가 많기도 하고, 책값도 만만치 않잖아요?
 
돈이 많이 드는 건 브랜드 전집을 세트로 한꺼번에, 몇 백만 원씩 사서예요. 하지만 새 책이든 중고 책이든 요즘은 저렴하게 살 수 있어요. 굳이 세트로 들이라고 하는 이유는, 아기가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죠. 60권을 사도, 10권 정도만 아이가 봐요. 그리고 네 질을 사도 세 질은 아이가 잘 안 보려 할 수도 있고요. 하지만 절대 다 읽히려고 전집을 사는 건 아니에요. 그런데 단행본으로 한 권씩 사려면, 엄마가 정말 많이 조사해야 해요. 그러면 책 찾는 과정부터 피곤해지죠. 그러니 전집 한 질을 사서 아이가 5~6권을 골라 반복해서 읽도록 하는 거예요. 그럼 한 달에 10~15만 원 정도인데 그리 비싼 금액은 아니죠.

 

안 써야 하는데 써서 문제


한국의 사교육 문화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이 이번 책에서도 이어지고 있는데요.
 
엄마들이 너무 불안해해요. 예전에는 사교육을 모두 안 시켰는데, 지금은 모두 다 시키잖아요. 하지만 진짜 육아를 하려면 안 시키고 안 사야 해요. 아이를 놀게 해 줘야 하는 데 사회가 엄마를 흔들어요. 사교육 시장, 교구가 불안을 연료로 삼아 엄마들을 자꾸 자극하잖아요.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 이거 사 주면 괜찮다, 이렇게요. 그러면 엄마들이 울면서 지갑을 열어요. 돈 없어도 마이너스 통장 써 가면서요. 이렇게 썼는데도 효과가 안 나오면 더 크게 울면서 더 쓰게 되죠. 쓰는 엄마끼리 뭉치고 안 쓰는 엄마에게 공격해요. 그러면 안 쓰던 엄마도 흔들리고요. 안 시키는 게 정답이라는 걸 엄마들이 믿었으면 좋겠어요.
 
책에 쓴 문장이 격한데요. 실제 생활에서도 격한 표현을 자주 쓰나요?
 
전혀요. 모태 신앙 크리스천이고요. 도덕주의, 바른생활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눈치만 보는 소심한 사람이었어요. 심지어 ‘기집애’라는 말조차 안 했죠. 욕하는 사람을 교육 못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정도로요. 욕을 하기 시작한 건 지금으로부터 6~7년 전, 육아로 받는 분노를 풀지 못하고, 스트레스를 참다 보니 사소한 일에도 화내게 되더라고요. 아이가 울거나 넘어지면 아이에게 막 쏟아 부어요.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서, 아이가 아닌 다른 데 풀었죠. 강의할 때 풀고, 블로그에 풀고. 욕을 해도 욕에 악의가 없고요. 알고 있는 사람에게만 하죠. 평소에 욕 거의 안 해요.
 
책육아는 아이가 싫어해도 밤을 새워서 책을 읽어주는 육아를 말하나요?
 
억지로 하면 안 되죠. 마음껏 놀리다, 자기 전이나, 밥 먹을 때라도 책을 근처에 두고 접하게 해 주면 말하지 않아도 아이가 책 읽어 달라고 가져와요. 아이에게는 책도 장난감인 것이죠. 단, 아이가 원할 때만 엄마가 읽어 주면 돼요. 나머지 시간은 놀게 놔두세요. 보통 6살이나 9살, 이렇게 다소 늦게 시작하는 엄마들이 안 재우고 책만 읽혀야 하느냐, 억지로라도 읽혀야 하느냐, 문의하는데요. 책육아는 2주, 3주만 해봐도 알아요. 억지로 할 수 없다는 걸.
 
불량육아, 군대육아에서 아빠의 역할은 잘 느껴지지 않는 것 같아요.
 
제가 말하는 육아에서 남편은 아들이에요. 남편에게 동반자, 어른 역할을 기대하고 도움 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자꾸 실망해요. 남편 입장에서는 결혼했는데 아내가 자식에게만 관심을 두고 사랑을 쏟으니 자식에게 질투도 나고 시샘도 나죠. 남편은 어리디 어린 아이예요. 그러니 어른의 범주에 넣지 말고, 남편을 아이 범주에 넣으면 언젠가는 동반자 자리까지 오게 돼요. 군대육아로 가장 많이 성장하는 사람은 나, 그다음이 아이, 그리고 남편이죠. 이렇게 하다 보면 진짜 군대처럼 팀워크가 이루어져요.
 
육아, 특히 어떤 시기가 가장 힘들었나요?
 
0~3세를 영아라고, 3~6세를 유아라고 한다면 유아라고 하는 이 시기가 가장 힘들었죠. 육체적으로는 영아가 어렵죠. 하지만 아이가 말을 트고 생각하고 고집부리고, 하지 말라는 것을 위험한데도 하는 시기가 유아기거든요. 이때, 엄마가 욕심을 부려요. 뭔가를 더 해 줘야 한다는 중압감이 생기죠. 아웃풋이 나오기 시작하니까요. 엄마의 뻘짓이 꽃을 피워요. 이때 제일 하지 말아야 하는데도요. 아이를 잡기 시작해요. 이 시기에 잘 따라오는 아이가 오히려 위험할 수 있어요. “몰라, 안 해!” 하면 엄마가 포기할 텐데 잘 따라오면 계속 시키거든요. 아이를 영재로 만들고 싶은 욕심 때문에 아이에게 화를 많이 냈죠. 저도 이 시기에 영국 편지를 많이 썼어요. 이 시기에는 엄마가 아이를 놓아야 해요. 까꿍이(0~3세) 때는 아이 곁에 붙어서 눈 마주치고 씻어주고 먹여주고 재워주고, 피부접촉만 하면 돼요. 3세부터는 약간 손을 놓아야 하고 초등 이후부터는 그냥 아예 놔줘야죠. 그런데 엄마 대부분이 아이가 7~8세 때 그만두고 매니저 역할을 하려고 하는데요. 아이와 엄청 싸우죠. 그때는 차라리 일을 하든 공부를 하든 해야 덜 싸워요.


평소에 책을 안 보다, 육아하면서 책을 많이 읽었다고 들었습니다.
 
육아가 너무 힘든데, 물어볼 데는 없고 답답해서 미칠 것 같았죠. 인터넷에는 의미 없는 정보가 너무 많잖아요? 이러다 죽겠다 싶어 책을 읽었어요. 화 안 내려고, 애 잡지 않으려고, 살고 싶어서 읽었죠. 육아책을 읽고 도리어 화가 날 때도 있었어요. 책에 나오는 부모는 다 잘하는 것 같은데 나만 못하는 것 같아서요. 그렇게 육아책을 멀리한 때도 있었지만, 결국 답은 책에 있었어요. 난독증까지 있었던 제가 책에 포스트잇을 붙이고, 노트에 메모하면서 읽다 보니 책 읽는 촉도 발달하고, 취하고 버릴 걸 알게 되더라고요. 독서가 편해지고 재밌어졌어요. 하은이도 덩달아 열심히 책을 보게 되고요. 책으로 인생이 바뀐 대표적인 인물이 저예요. 인간 극장에 나가도 될 거예요. (웃음) 성인에게도 책육아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걸 말하고 싶어요. 제가 책육아의 산 증인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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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지 말자


전작을 본 독자도 있을 테고, 안 본 사람도 있는데요. 각자 어떻게 읽으면 좋을까요?
 
이 세상에 모든 엄마들은 아이를 잘 키우고 싶어 하죠. 그런데 육아가 힘들어요. 힘든 육아 시기를 현명하게 견뎌내고 싶을 거예요.『불량육아』를 읽은 엄마는 제가 강조한 책육아와 배려육아를 시도해요. 시행착오도 겪고 실패도 하는데요. 이럴 때 이해받고 위로받고 싶어 합니다. 이 책은 『불량육아』를 낸 뒤 받은 수많은 질문에 대한 답이에요. 좀 더 실용적이면서 구체적인 사례를 다뤘죠. 그래서 전작을 읽었던 독자라면 좀 흐트러진 결심을 다질 수 있는 계기가 될 거예요. 전작을 안 읽은 엄마라면 이 책으로 육아책에 입문할 수도 있겠네요. 육아에 관한 정보를 인터넷에서 많이 접하겠지만, 인터넷에는 너무 많은 정보가 있어요. 그렇다고 의사 선생님에게 매번 물어볼 수 없고, 시엄마에게 물어볼 수도 없잖아요. 이럴 때 간단하게 답을 주면서 또 다른 육아책으로 진입할 수 있을 거예요.
 
강의에서 자주 받는 질문이 있나요?
 
강의에 오는 엄마들은 제 책을 읽고 오는데요. 블로그나 메일, 쪽지로 받는 질문 중에서는 제 책을 정독하면 답이 있는 질문이 많죠. 지금 엄마들이 공교육과 함께 사교육으로 큰 세대잖아요. 시키는 일은 모범적으로 잘해요. 하지만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하고 진행하는 건 육아가 처음이거든요. 그러니 불안하죠. 육아도 누가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시키면 잘할 거예요. 하지만 지시해주는 사람도 없고, 있다고 해도 의미가 없어요. 아이마다 성격과 기질이 다양하기 때문에 그 방법이 안 먹히거든요. 그래서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이거예요. “제가 잘하는 건가요? 맞는 건가요?” 저는 그때마다 잘한다, 맞다고 답하죠. 흔들리지 말라고요. 흔들려서 애 잡지 말라고요.
 
하은이는 책을 보고 어떤 반응이었나요.
 
재밌다고 해요. 네 이야기가 많아서 괜찮겠냐고 물었더니 솔직하게 썼으니 괜찮다고 해요. 그리고 책 마지막 부분인 기자회견 하는 대목이 특히 웃겼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약간, 아주 약간 엄마를 자랑스러워하는 것 같아요.


이번 책의 인세를 전액 기부한다고 들었습니다.
 
책을 내서 물질적으로 얻고자 하는 게 없어요. ‘희망 옹달샘’이라고, 불치병 앓는 사람들에게 인세를 기부할 예정이고요. 그리고 개인적으로 돕는 데도 있어요. 책 나왔으니 사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게 책으로 아픈 아이를 돕고 어려운 친구를 도울 수 있어서죠. 그래서 엄마들에게 떳떳하고 당당하게 책을 사라고 말할 수 있는 거예요. 돈이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부터는, 돈에 욕심이 없어졌어요. 이것도 독서로 깨달은 점이죠. 책을 읽다 보면 꽂히는 작가가 있거든요. 강신주, 박웅현 등. 그분들의 삶을 보면 모두 독서가 있고, 자연과 함께 가고, 그리고 기부도 다 하시더라고요. 기부할 때 느껴지는 행복은 돈을 썼을 때 생기는 행복과 차원이 달라요. 정말 행복해요. 기부나 나눔이 최고의 육아이기도 해요. 나누는 엄마 아래에서 아이가 삐뚤어질 수 없구나, 하고 느꼈죠. 그래서 아이에게 “엄마 괜찮지?” 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기고 아이도 이걸 보고 자라니까요.

 

하은이가 초등학생인데 최종적으로는 어떤 어른으로 컸으면 하나요?
 
요즘 1등을 하는데도 불안해하는 아이가 많잖아요? 진짜 자신이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는 아이로 자라면 좋겠어요. 하고 싶은 걸 주도적으로 찾는 사람. 직업, 학력에 상관없이 진짜 행복한 게 뭔지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죠. 서른이 됐든 마흔이 됐든 아흔이 됐든 죽는 순간까지 오늘 행복하고 내일을 기다리는 사람이 됐으면 해요. 넘치는 사랑을 남에게 베풀 줄도 알았으면 좋겠고 착하고 모범적인 것보다는 반대로 똘끼 충만하더라도, 심지어 미쳤다는 소리를 들어도 하고 싶은 걸 뜨겁게 할 수 있는 행복한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책 많이 읽다보면 동화 작가가 되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나요? 앞으로 계획을 말씀해 주세요.
 
아니, 절대로요. 전 제대했어요(웃음). 강의 들어오면 강의하고 엄마들 열심히 상담하면서 이대로 계속 살 거예요. ‘스타 강사’는 익숙해졌지만 아직도 ‘작가’라는 타이틀은 어색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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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치고 군대 육아김선미 저 | RHK
100만 어뭉들의 뒷목을 후려쳤던 리얼 버라이어티 근본 없는 자백 육아서 [지랄발랄 하은맘의 불량 육아]로 육아계의 판도를 뒤흔들었던 저자 하은맘이 이전보다 더 강력한 메시지를 담아 두 번째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1,000만 엄마들의 폭탄 지지를 받으며 ‘네티즌 선정 올해의 책’으로 뽑혔던 전작에 이어 다시금 블록버스터급 공감 쓰나미를 불러일으키게 될 그의 육아 메시지는 이름 하여, 군대 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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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박상 “웃기고 싶은 욕구는 변하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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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예테보리에 가고 싶다


이게 뭐니, 작가의 말 재도전

솔직히 예테보리가 어디에 존재하는 도시인지
모름.
솔직히 도시인 줄도 몰랐음.
내가 모르는 곡물인 줄 알았지 뭐요.
솔직히 쌍쌍바를 안 사먹은 지도 좀 됐음.
그래서 소설 제목을 이렇게 하면 딱 좋겠다며
양팔을 발딱 세웠던 거요.

소설이란 쌍쌍바 같은 건지도 모름.
마음먹은 대로 딱 떨어지질 않음.
아마도 정확하게 쪼개지면 재미없을 거요.

어쨌거나 타조는 날지 않아도 괜찮음.
꽤 빠르잖소?


아니 젠장 다시, 작가의 말 3차 도전


벌판에네번째책을올려놓소삼년공백이있었소그동안스뽀오츠정신이라곤없었소소주를많이마셨소
갈수록개판이되는소설가는안멋지잖아웃기면다된다고믿으면안웃기잖아술주정을일삼았소
면상이고펜이고세울수없는처량한처지였소소설로부터마구달아났소

(230~232쪽)

 

본문보다는 ‘작가의 말’을 먼저 읽으면 소설 감상하는 데 도움될 때가 있다. ‘작가의 말’에는 소설가의 개성이 드러나기 마련이고, 그 개성은 이야기에 투영된다. 위에 인용한 글은 『예테보리 쌍쌍바』에 수록된 ‘작가의 말’이다. 평범함을 거부하는 문장에서 보듯, 박상은 특이한 작품을 써왔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실험’을 해온 셈이다. 소설집 『이원식 씨의 타격폼』, 장편소설 『15번 진짜 안 와』에서도 이런 실험은 계속 이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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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3년이 흘렀다. 『15번 진짜 안 와』이후 3년 동안 그는 소설을 쓰지 않았다. 썼다고는 해도, 발표한 작품은 없었다. 『예테보리 쌍쌍바』는 긴 침묵 끝에 세상에 나온 작품이다. 공백 동안 소설가의 심경에 변화가 있었다고 한다. 실험은 계속 하겠지만, 좀 더 지능적으로 하겠다는 것. 파격을 추구하되, 그 전에 격부터 알아야겠다는 말을 소설가는 했다.

 

그래서인지 이번 작품은 가장 박상스럽지 않은 작품일지도 모른다. 유쾌한 문장은 여전하지만, 기존의 박상 작품과는 다른 점이 나타난다.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의식과 이를 형상화하려는 장치는 기존 소설의 문법에 충실하다. 현재와 과거가 교차해서 묘사되는 서술 방식은 여타 소설도 즐겨 쓰던 방식이었다. 그리고 묘사도 좀 더 탄탄하게 했다. 결정적으로, 소재다. 일하는 사람을 주인공으로 설정하고 주된 이야기를 일에 맞췄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다수가 일하며 살아간다는 점에서, 좀 더 많은 독자와 이야기로 소통하려는 작가의 의지가 드러난다.
 

아직도 소설 쓰는 사람이 있긴 있구나


『예테보리 쌍쌍바』가 3년 만에 나온 작품입니다. 어떻게 지냈나요.

 

먹고살아야 하니까 일을 이것 저것 했어요. 하나를 오래 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여러 일을 했죠. 그런데 일을 하면 소설 쓸 시간이 없더라고요. 퇴근하고 나면 녹초가 되니 못 쓰고, 다음 날 또 출근해야 하고요. 주말에 써야지, 했는데 주말 되면 놀아야죠. 소설로만 먹고 살 수 없으니, 일을 관둘 수도 없고요. 둘 사이를 왔다 갔다 했습니다. 돈 좀 벌면 글 쓰고 돈 떨어지면 일하고, 그렇게요.

 

소설가가 면접 보는 장면, 쉽게 상상할 수 없는데요.

 

머리가 짧으면 소설이 안 써져서 머리를 기르는데요. 면접 때는 머리도 짧게 하고 수염도 깎죠. 그러면 박상이 박상 같지 않아요. 이력서 쓸 때나 면접 볼 때 소설가라는 이야기는 안 합니다. 이야기했더니 안 뽑아줘요. 소설가라고 하면 꼴통이겠지, 또라이겠지, 하는 생각이 깔렸나 봐요.

 

나중에라도 회사에서 알게 된 적은 없나요?

 

있었죠. 아직도 소설 같은 걸 쓰는 사람이 있긴 있구나, 하는 표정을 짓던데요. 상사들은 “근무 중에는 쓰지 마”, 이렇게 말하는데, 사실 못 쓰죠. 근무 중에 집중 안 되는데 어떻게 써요. (웃음)

 

3년이라는 공백이 있었는데, 작품을 내지 않은 특별한 이유라도 있을까요.

 

『15번 진짜 안 와』 이후로 갑자기 문학이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걸 꼭 내가 해야 하나, 내가 쓴 이야기가 다른 사람에게 의미 있게 들릴까, 이런 고민을 하니까 모든 게 두렵고 안 쓰기 시작했죠. 소설이 버릴 수 없는 꿈이라 다시 쓰게 됐습니다. 다만, 다른 방식으로 접근했습니다.

 

다른 방식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소설을 읽기 전에 독자가 알아두면 좋을 ‘일독 설명서’라는 게 있다면.

 

그전에는 제 얘기만 했다면 이제는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던져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매번 특이한 소설만 고집한다거나 실험만 한다면, 다른 사람 삶과 상관이 없잖아요.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공감을 받을 수 있는 소재를 택했어요. 그래서 직업인들을 스포츠 '선수’로 비유했는데요. 독자들에게 조촐한 위로 혹은 해법을 건네고 싶었습니다.

 

제목에 관해서는 후기에도 썼지만, 설명 부탁할게요.

 

예테보리에는 가 본 적 없고 어디 있는 도시인지도 몰랐고요. 쌍쌍바도 안 먹은 지 오래됐는데요. 예테보리라는 도시 출신의 록 밴드가 많아요. 주로 고딕, 멜로딕 메탈 밴드들이죠. Dark Tranquillity 같은. 소설 내용에서 록 사운드와 같은 스피드를 추구하니, 이 작품에 어울리겠다 싶더라고요. 그리고 쌍쌍바는 갈라 보면 딱 갈라지지 않잖아요. 소설이 딱 떨어지는 게 아니니까. 제목을 이렇게 지었더니, 너무 궤변이지 않으냐고 하더라고요. (웃음)

 

재미를 못 찾으면 아저씨가 된다


소설 속에서 ‘아름다움’, ‘노동’, ‘승부’, ‘스뽀오츠’ 등이 소설 속 중요한 단어입니다. 이번 소설을 꿰는 키워드를 꼽는다면?

 

결국은 아름다움이죠. 사람 사는 모습이 다양하죠. 직업도 다양하고, 인생관도 다양한데요. 이것들을 하나로 꿸 만한 게 뭐가 있을까, 고민해 보니까 아름다움이더라고요. 스포츠나 승리욕 등은 남자에게는 잘 어울리는데 여성까지 포괄하지는 않는 것 같고요. 누구나 아름답게 살고 싶은 욕망은 있잖아요. ‘아름다움’으로 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박상 작가에게 아름다움이란?

 

무엇이든 열정적으로 하는 사람이 아름답잖아요. 그리고 다른 사람이 하지 못한 걸 해내는 것도요. 이 둘이 합쳐지면 매우 아름다워지죠.

 

아름다움에 대비되는 존재로 아저씨를 묘사했습니다.

 

제가 사회생활하며 만난 아저씨마다 유난히 매너가 없고, 좀 더럽고 안 웃기더라고요. 농담해도, 쌍팔년도 감각이고요. 화이트칼라 직종 아저씨들은 어떨지 모르겠네요. 크게 다르진 않을 것 같아요. 대한민국 아저씨들은 피곤하고 지쳐 있고, 재미없고, 좋아하는 것도 없는 것 같아요. 책임과 의무 때문에만 산다면 점점 그렇게 변해갈 수밖에 없다고 봐요.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다 귀찮고 싫은 거죠. 인생이 재미없으면 아저씨가 된다고 소설에 썼는데, 저는 아저씨가 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끝까지 재미를 찾으려고 합니다.

 

최근에 찾은 재미는?

 

디아블로 3요. 그런데 이것도 거의 끝나가요. 더는 먹을 아이템이 없어서. 아, 최근엔 수영을 배우고 있는데 너무 재미있어요.

 

소설가, 일 그리고 다른 활동도 다양하게 했잖아요. 재미를 추구하는 과정의 일환이었나요?

 

네. 하고 싶은 건 일단 해봤죠. 야구 좋아해서 사회인 야구 리그에서 뛰었는데 저야 재미있었지만 너무 못하니까 계속 벤치 신세고, 한두 번 안 나가다 보니 계속 안 나가게 되더라고요. 팀에서 나오라는 연락이 와서 후반기부터는 나갈까 싶기도 하네요. 밴드 활동도 했었는데, 원래는 메탈을 하고 싶었는데 제 연주 수준이 모자랐어요. 메탈을 하려면 실력이 받쳐줘야 하겠더라고요. 글 쓰는 사람끼리 모여서 취미 삼아 했던 밴드라서, 제 실력이 형편없는데도 끼어있을 수 있었죠. 밴드도 잘하면 재미있었을 텐데 못하니까 재미없더라고요. 한번은 장기하 밴드가 서는 데서 공연을 했는데 실력이 너무 크게 비교가 되니까 쪽 팔렸어요. 최근에는 주로 집에서 술 마시고 놀아요. 동네 친구랑 농담하고 떠드는 게 너무 재미있어요.

 

작품 속에 작가를 닮은 사람이 한 명 정도는 있는데요. 이번 소설에서 주인공의 삶과 소설가의 삶이 비슷한 것 같기도 합니다. 소설가가 되기 이전에 주인공처럼 여러 가지 일을 했다고 들었는데요.

 

소설가가 되기 전에도 그랬고, 소설가가 되고 나서도 여러 가지 일을 했어요. 3년 동안 글쓰기 공백이 있었는데, 이때 했던 일이 다 블루칼라 직종이었죠. 소설 속 주인공과 제 삶이 비슷할 수밖에 없어요. 주인공 신광택이 했던 일들, 살아가는 모습이 제 삶이기도 했고요. 자기가 아는 경험을 이야기할 때 전문적으로 들어갈 수 있기도 하고요. 그럼에도 소설 속 주인공은 인공적인 인물입니다. 일례로 주인공 신광택에게는 속도가 중요한데요. 실제 저는 보시는 대로 느긋합니다. 약속에 늦을 때만 좀 급해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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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가 되면 자기 자신은 지킬 수 있지 않을까


전작인 『말이 되냐』, 『15번 진짜 안 와』, 『이원식 씨의 타격 폼』에 등장했던 이원식이 이번 소설에서도 등장하는데요. 박상에게 이원식은 어떤 존재인가요?

 

이원식이라는 이름이 여기 저기 갖다 붙이면 어디에나 잘 어울려요. 이번 소설에서는 세차장 주인으로 나오죠. 개똥 철학 창시자이기도 하고요. 원래는 친구 이름이에요. 정말 소설 잘 쓰는 문예창작과 친구였는데, 그 친구도 먹고살아야 하니까 소설을 못 쓰게 됐죠. 소설을 쓰려면 일 멈추고 써야 하는데, 일 안 하고 쓰는 게 힘들잖아요. 저는 그 친구에 비하면 되게 못 썼어요. 누군가의 꿈과 재능이 먹고사는 문제 앞에서 처참하게 무너져도 되는가, 싶더라고요. 그런 이원식을 최소한 소설에서라도 기념을 하자, 이렇게 쓰기 시작했습니다. 앞으로도 캐릭터가 맞으면 계속 쓰려고 합니다. 어떤 작품에서는 모든 인물을 이원식으로 쓰기도 했어요. 재미는 있었는데 헷갈려서 못 읽겠다는 평을 들었죠.


모든 소설의 주제이기도 하고요. 『예테보리 쌍쌍바』가 던지는 물음이기도 할 텐데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워낙 팍팍해진 세상이죠. 특히 우리나라는 구조적으로 문제가 많고 개인은 무력한 존재죠. 블루칼라 직종에선 십 년 전 월급이나 지금 월급이나 똑같아요. 물가가 그렇게 올랐는데도요. 이런 시대에서, 어쨌든 알아서 극복하고 자기가 하는 분야에서 딴 사람보다 뛰어난 사람이 ‘선수’일 텐데요. 다른 사람과 경쟁에서 이기는 게 아니라 자신을 업그레이드 하는 게 선수라는 용어의 의미가 되면 좋겠습니다. ‘선수’가 되면 지금의 불합리한 구조에서도 자기 자신의 가치를 지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듣고 보니 이런 생각이 드네요. 콘텐츠 소비하는 인구는 정해져 있는데, 소설의 경쟁 상대가 다양하잖아요. 영화, 드라마뿐만 아니라 요즘에는 웹툰도 있고요. 소설은 이런 것과 경쟁하지 말고 소설 자체와 경쟁하자, 이렇게도 들리네요.


어려워졌죠. 소설 읽는 인구가 많이 줄었고요. 저만 해도 웹툰 애독자이고요. 웹툰 수준도 높아졌어요. 소설은 다소 고답적인 형식이죠. 무기라고 해 봐야 활자의 힘밖에 없으니까요. 하지만 활자문명은 오래전부터 지금까지 계속 살아남았으니 조금 축소되더라도 싹 없어지진 않겠죠. 책에도 썼듯,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 한 명만 있어도 소설 쓰는데 의미는 있어요.


박상 소설가에게 고정 독자가 꽤 있지 않나요? 특유의 B급 정서를 좋아하는, 그런 독자요.


없어요. (웃음)


B급 하면, 주성치가 떠오르는데요. 주성치 좋아하세요?


네. 제가 좋아하는 개그가 딱 주성치 식의 개그인데요. 전 주성치라는 이름만 들어도 터져요.


혹시 B급을 두고 경쟁자로 삼는 소설가가 있나요?


경쟁자가 있을까요? 그런 걸 좋아하는 작가가 별로 없을 텐데요. 더구나 문단에선 제가 인지도 면에서 말단인데요. “박상이 누구야?” 하는 마당에 경쟁자라니요. (웃음)


결말이 첫사랑인데요. 박상에게 첫사랑은?


첫사랑은 뭐, 역시 여자죠. 소설 속의 현희란 이름도 첫사랑 이름이에요. 첫사랑이라는 느낌 자체가 좋지 않나요? 처음으로 좋다고 느꼈던 강렬한 감정은 한참 지나도 기억이 나요. 영원히 기억에 남는 격한 순간, 이런 게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데, 많지는 않죠. 첫 월급, 첫 여행, 이런 느낌이요. 여전히 기억에 남아요.


작가의 말을 무려 4번 썼습니다. 쓰는 데 시간 많이 걸렸을 것 같은데요.


1주일 고민했어요. 첫 번째로 ‘예테보리에 가고 싶다’라고 썼는데, 분량이 너무 모자라지 않나, 해서 다시 썼어요. 그렇게 쓰고, 또 쓰고 했죠. 나중에 읽어 보니 도전이라는 소설의 주제랑도 부합되는 것 같고 재미있겠더라고요. 그래서 다 넣었죠.


웃기고 싶은 욕구는 포기할 수 없어


창작관, 문학관에 관해 물어볼게요. 20세기 소설과 21세기 소설이 약간 다르잖아요. 20세기 소설은 진지하고, 어느 정도는 정해진 서사 법칙을 따르고,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의식이 있죠. 이른바 ‘순수문학’이라고도 할 수 있겠는데요. 그에 비해서 21세기에 등장한 소설, 소설가 중에서는 이런 경향에서 벗어나려는 움직임도 꽤 있었습니다. 박상 소설가의 작품도 그렇게 볼 수 있을 듯한데요. 지금 시대 소설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써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매우 어려운 질문이네요. 출판사에서 책 띠지에 ‘한국문학의 이단아’라고 썼는데요. 한국문학의 교리가 엄숙주의라면, 제가 그 교리를 위반하는 건 맞아요. 박민규 작가가 이단옆차기를 제대로 날렸다면, 저는 자동차 기어로 치면 1단 정도 되지 않을까요. 그러니 이단아가 아니라 일단아 정도겠죠. 제 작품이 관습이나 규범을 거부하려는 모습은 있죠. 순수문학의 엄숙한 느낌도 좋지만, 다양하면 좋겠다 싶은 생각이 많았죠. 그래서 남들이 안 썼던 문장도 쓰고, 남들이 안 했던 이야기도 해보고 싶기도 하고, 다양하게 실험을 했는데요. 시도하는 건 좋지만 격이 떨어지면 아웃사이더도 못 된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파격을 추구하지만, 요즘은 격부터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4권째 책을 냈으니, 이제는 마음대로 쓰면 안 될 것 같아요. 첫 번째, 두 번째 때야 처음이니 넘어갈 수 있겠지만, 이제는 포용 받기는 힘든 상황이에요. 실험하더라도 지능적으로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실험하고 싶은 욕구는 넘치지만 이단옆차기를 날리더라도 확실하게 날릴 수 있게, 많이 준비하고 있어요.


그런 생각을 하던 와중에 『예테보리 상쌍바』가 나왔는데요. 이 작품을 가장 박상스럽지 않은, 하지만 앞으로 박상스러운 작품이라 이해해도 될까요?


네. ‘박상스럽다’는 말이 ‘말도 안 되는 말장난’, 이런 거라면 이제 새로운 걸 하려고요. 여러 번 했는데 별로 재미없었거든요. (웃음)


등단 이후에 소설 쓰면서 가장 변한 것이랑, 절대 변하지 않은 게 있다면.


많이 변한 건, 일단 점점 늙어가고 있고 나이를 먹었죠. 하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정신 쪽에, 뇌 쪽에 뭔가 영역이 넓어져요. 예전에 안 보이던 게 보인다든지, 모르던 게 이해된다든지 하는. 이런 점이 소설에도 반영돼요. 예전 작품에서는 묘사도 잘 안 했거든요. 진술을 던지고 ‘내가 이렇게 느꼈으니 너도 느껴!’, 불친절했죠. 이번 작품에서는 묘사를 꼼꼼하게 해 봤어요. 안 하던 걸 하려니 정말 어렵더라고요. 그런데 묘사한 문장이 진술한 문장보다 힘이 있어요. 절대 안 변하는 건, 웃기고 싶다는 참을 수 없는 욕구. 웃겨야 해! 이게 일반적인 개그본능이라기보다는 소설의 재미, 소설을 끌고 가는 힘이 되어야겠죠. 독자가 끝까지 읽을 수 있도록 하는 장치로써 유머, 이건 안 변할 것 같아요.


『예테보리 쌍쌍바』에 이동수단이 많이 등장하고, 『15번 진짜 안 와』도 한국을 떠나, 영국에 체류하면서 겪은 경험을 쓴 작품인데요. 박상과 노마디즘에 관해 한마디 한다면.


나 자신이 워낙 유목민처럼 살았죠. 여기저기 떠도는 걸 참 좋아하고요. 『예테보리 쌍쌍바』주인공도 많이 움직이는 직업을 선택해야 속도로 승부할 수 있겠다고 봤어요. 주인공이 추구하는 게 일단 속도여야 한다는 점에서 어울리는 직업이 중국집 배달원, 운전기사, 세차장직원만 남더라고요. 배달원이나 운전기사는 다소 중복되기도 하지만, 속도를 추구하는 면에서는 남는 직업이 이것밖에 없었어요.


영국에는 큰 목적 없이 갔어요. 여행 갔다가 여기 분위기 괜찮은데 눌러앉을까, 했는데 마침 일자리가 구해졌어요. 돈을 버니까 오래 살아보고 싶었고, 온 김에 뭔가 배워야겠다고 결심했는데요. 물가가 세니까 투잡을 뛰어도 생활비 빼면 남는 게 없었어요. 그래서 그냥 문화를 즐기기로 했죠. 할 게 워낙 많았거든요. 개인 소장 박물관이나 미술관이 공짜예요. 자기들 게 아니고 빼앗아 온 거니까요. 그런 데만 찾아다녀도 시간이 모자라요. 2년 동안 있으면서도 못 가 본 데가 많았어요. 일 하느라 고생도 좀 했지만 문화적인 측면을 많이 배우고 즐겼으니 좋았죠.


한국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갈 계획은 당분간 없나요?


이제 여기 가만히 있으면서 좀 열심히 쓰려고 해요. 외국 가면 안 써져요. 가만히 숙소에 있기 싫으니까요. 지금은 써야 할 글이 많이 밀렸어요. 에세이도 준비하고 있는 게 있고요.




예테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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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테보리 쌍쌍바박상 저 | 작가정신
한국 문단의 이단아 박상의 신작 장편소설『예테보리 쌍쌍바』가 출간됐다. 세상과의 승부, 종국에는 자기 자신과의 승부에서 모든 것을 걸고 승부를 펼치는 한 ‘선수’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소설은 우리들에게 “당신은 일반인인가? 아니면 선수인가?”라고 묻는다. 박상의 사전에서 선수란 “단순한 투지와 경쟁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걸 걸고 멋진 승부를 펼치는 사람들”을 뜻한다. 이 소설에는 주인공이 “재미도 없고 공평하지도 않은 이 세상”을 다르게 살아보기 위해 선수가 되어 일반인과는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다른 ‘속도’로 움직이는 과정이 역동적으로 펼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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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엘라 “누구나 예술적 삶을 꿈꿀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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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책이 큰 사랑을 받았던 만큼, 두 번째 책에 대한 부담감이 컸어요. 하지만 그만큼 설렜던 것도 사실이에요. 1권에서는 사랑과 감정에 초점을 두었다면 2권에서는 죽음과 진리에 대해 더 많이 다루고 있어요. 1권이 나오고 4년이란 시간이 흐르는 동안 저도 많이 성장했고, 렉처 콘서트를 통해 많은 사람들을 만나오면서 우리가 본질적으로 고민하는 소재에 대해 함께 고민해 왔어요. 그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들이 자연스레 2권에 녹여진 것 같아요.” 

 

만나고-노엘라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노엘라는 『그림이 들리고 음악이 보이는 순간』후속작을 쓰며 적잖은 부담감을 가졌다. 2010년 출간된 첫 책『그림이 들리고 음악이 보이는 순간』이 중국어로 번역 출간되고 8쇄까지 찍으며, 큰 인기를 누렸기 때문. 미국에서는 한국인으로, 한국에서는 미국식 사고방식을 가진 이민 1.5세대로, 정통 클래식계에서는 아웃사이더인 양 살아온 노엘라는 작품 활동을 할수록 ‘예술 내에서의 융합’은 필연적인 일이라고 생각했다. 5세에 바이올린을 시작, 국내 최초 뉴에이지 바이올린 음반 <샤이닝 클라우드(Shining Cloud)>를 발매한 노엘라는 2009년부터 동시대를 산 미술가와 음악가의 작품 및 삶을 비교한 칼럼 ‘음악과 미술의 하모니’를 쓰며, 칼럼니스트로도 주목 받고 있다.

 

『그림이 들리고 음악이 보이는 순간 2』는 동시대를 살아간 미술가 20명, 음악가 20명의 삶을 그들의 작품과 짝을 맞춰 소개한 책이다. 1권에서 주로 고전 작품을 다뤘다면, 2권은 현대 작품을 비롯해 현재 왕성히 활동하고 있는 예술가들과 그들의 작품을 소개했다. 노엘라 저자는 “같은 시대를 살아간 예술가들이라면, 장르가 다를지라도 당시의 시대적 흐름이 작품 속에 반영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저자는 스승으로부터 구입한 바이올린을 두고 피카소의 작품 「바이올린」을 떠올리고, 피카소가 아프리카 가면을 작품의 모티프로 삼은 「아비뇽의 처녀들」로부터 원시 부족 이야기를 소재로 한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을 연결 지었다. 또 비슷한 운명을 살다간 오귀스트 로댕의 뮤즈 ‘카미유 클로델’과 앤디 워홀의 뮤즈 ‘이디 세즈윅’을 같은 시선으로 바라봤다. 우리에게 익숙한 예술가 샤갈과 차이코프스키, 고흐와 라흐마니노프의 작품을 재발견하는 즐거움은 독자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진다.

 

“이제 난 더 이상 외롭지 않다. 같은 감정을 누구는 미술로, 누구는 음악으로, 누구는 춤으로, 글로 표현하듯 인간은 누구나가 고민하고 해답을 구한다. 그 해답을 예술에서, 종교에서, 철학에서, 자연에서, 어머니에게서 또는 일상에서 발견할 수 있거나 또는 없을지라도, 그리고 이제 나는 안다. 그림과 음악이 통하듯 다른 모든 것들도 결국엔 서로 통하리란 사실을. (『그림이 들리고 음악이 보이는 순간 2』, 14~15쪽)

 

만나고-노엘라

 

그림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면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됐다


최근 직접 쓴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제작한 단편영화를 접목시킨 공연 <My Dinner with Noella>를 성황리에 올리셨습니다 그림, 음악, 영화를 결합한 공연이었는데요. 어떻게 기획된 공연인가요?

 

예술이란 그리 어려운 것도, 우리와 동떨어져있는 것도 아님을 전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작품에 대한 설명을 충분히 들려줄 수 없는 독주회 형태의 무대가 과연 관객들에게 충분한 감성을 전달해줄까?가 의문스러웠죠. 이 생각으로부터 일방적으로 제 연주를 들려주는 무대보다는 ‘관객이 공감하고 함께 즐길 수 있는 무대를 만들자’는 기획으로 이어진 것 같아요.

 

‘단편영화’라는 장치를 통해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더욱 세밀하게 전달하고 싶었던 거군요.


가장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발견한 게 ‘영화’였어요. 공연에서 연주자의 친구들 역을 맡은 배우들의 입을 통해 그들의 일상, 고민, 감정을 나누고 듣는 과정에서 내가 가진 아픔과 감정이 인간의 보편적인 화두라는 것을 관객들에게 말하고 싶었어요. 또 이런 감정들을 자연스럽게 예술작품으로 이어지게 해, 예술이 특정계층을 위한 전유물이 아닌, 우리가 보편적으로 느끼는 감정의 표현임을 공감할 수 있게 하고 싶었어요.

 

남편 분이 공연을 올리기까지 많은 도움을 주셨다고 들었어요.


공연을 기획함에 있어서 많은 도움을 받았어요. 클래식 무대에 대한 고정관념이 어느 정도 자리잡혀 있는 저로 하여금, 새로운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었죠. 실제 총 기획 연출을 맡은 사람도 남편이고요.

 

저자님을 두고 ‘콜라보이레이션 무대의 선두주자’라고 말합니다. 예술에 있어서 융합, 결합의 장점은 무엇인가요?


‘극대화’ 내지는 ‘시너지’라고 할까요? 더 나아가서는 ‘소통’일 수 도 있고요. 모든 예술은 결국 내면을 상징화 하는 작업이에요. 그것을 표현하고 이해하는 데 있어 한가지의 표현방식만이 있을 필요는 없는 거죠. 가령 ‘가슴 아픈 사랑’을 이야기할 때 누구는 글로 쓸 수도, 누구는 그림으로 그릴수도, 또 누군가는 음악으로 노래하고, 다른 누군가는 몸짓으로 표현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이런 것들이 함께한다면 그 이해와 공감대가 더 많이 형성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생각해요. 단순히 융합을 하고 결합을 한다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좋은 것이 만들어지는 것은 당연히 아닐 거예요. 그것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함께 조합하느냐가 더 중요하죠. 비단 예술분야만의 얘기는 아니고요.

 

결국 관객들과 더 가깝게 소통하기 위해, ‘렉처 콘서트(lecture concert)’를 기획하게 된 거군요.


예술이 특정인들을 위한 전유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예술가들이 먼저 대중에게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자세한 설명과 이야기가 동반되어야겠죠. 예술을 통해 제가 느낀 바를 대중에게도 전달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이 모든 것들이 결합된 ‘렉처 콘서트’를 진행하게 된 것 같아요.

 

『그림이 들리고 음악이 보이는 순간 2』에 소개한 예술가들은 어떤 기준으로 택하셨나요?


소위 ‘끌리는 대로’ 라고 말해야 할까요?(웃음) 제가 예술가들을 택했다기보다 그들이 저를 택했다고 해야 할 것 같아요. 제가 작업하는 방식은 여러 화가들의 작품이 있는 그림책을 한 장 한 장 넘기면서부터예요. 그림들을 대하다 보면 자연스레 제 마음이 머무는 작품이 있어요. 동시에 생각나는 음악이나 작곡가가 있고요. 어떤 특정한 감정이 느껴지고, 거기서부터 출발해 저는 좀더 깊이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작풍의 배경을 공부해요. 그러다 보면 그 안에서 서로의 공통점을 발견하죠. 하지만 시대가 예술에 영향을 끼친다는 기본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동시대라는 큰 틀에서 최대한 벗어나지 않으려 노력했어요.

 

책 속에 등장하는 작품 중, 가장 애틋하고 특별한 추억이 있는 작품은 무엇인가요?


샤갈의 「에펠탑의 신랑신부」를 꼽고 싶어요. 저는 렉처 콘서트의 모든 엔딩에서 샤갈의 그림과 함께 「눈부신 날에」라는 곡을 연주해요. 샤갈의 동화같이 순수한 그림 뒤에 숨겨있는 애절함에 늘 끌렸는데요, 제 결혼식이 이 그림을 테마로 이루어졌어요. 꽃으로 장식된 에펠탑 앞에 저희 부부가 마치 샤갈의 그림에 등장하는 신랑신부처럼 구성되었거든요. 그때의 감동을 잊지 못해 그때 연출을 맡았던 아트디렉터 료한 씨와 플라워 아티스트 앤드류 씨께 이번 공연 <My Dinner with Noella>에도 함께 참여하도록 콜라보를 제안한 것이기도 하고요. 

 

『그림이 들리고 음악이 보이는 순간 2』를 읽는 팁이 있다면?


끌리는 대로 읽으시라고 말씀 드리고 싶어요(웃음). 내 마음을 끌지 않는 작품을 억지로 이해하려거나 좋아하려고 애쓰지 말고 자연스럽게 나를 이끄는 작품을 먼저 대하시라고. 그렇게 읽다 보면 공감대가 생기기도 하고 때론 거부감이 생길 수도 있겠죠. 그 감정을 토대로 자신만의 작품에 대한 개인적인 해석과 감정을 가지셨으면 좋겠어요. 제가 말하는 게 정답은 아니잖아요. 개인마다의 예술에 대한 사적인 감정을 발견하시면 그보다 더 좋을 순 없다고 생각해요.  

 

 만나고-노엘라

 

처한 상황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는 작품, 「4분 33초」


5세에 바이올린을 시작해, 박사 학위까지 받으셨어요. 어릴 때부터 음악에 몰두한 삶을 살았는데, 그림에 관심을 갖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어릴 적 영향이 큰 것 같아요. 아버지가 아마추어 화가인 동시에 미술품 수집가시거든요. 어려서부터 집에는 그림이 많았어요. 아버지는 자주 화가들 이야기를 해주셨고요. 그렇게 그림은 제게 자연스럽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바이올린을 전공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너무 어렸기 때문에 정확하게 기억하지는 못해요. 하지만 언니가 먼저 시작한 바이올린이 너무 부러웠던 기억이 있어요. 피아노도 배웠지만 피아노보다는 바이올린에 훨씬 더 끌렸던 기억도 있고요. 어떤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그냥 무작정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중 3때, 바이올린을 공부하기 위해 볼티모어에서 홀로 유학을 했는데, 유학 생활은 어땠나요?


유학생활은 밤을 새도 얘기 못해요(웃음). 한마디로 ‘혼란의 연속’이었다고 해두죠. 

 

바이올리니스트가 되지 않았더라면, 어떤 일을 했을까? 상상해본 적이 있나요?


많이 상상해보았죠. 한때는 세상의 모든 직업을 나열해놓고 '뭘 해볼까?' 란 생각을 한 적도 있어요. 저는 지금 바이올리니스트지만 칼럼니스트이기도 하고 강연을 하는 연사이기도 해요. 가끔이지만 때론 작사를 하기도 하고요. 제가 바이올린을 하지 않는다 해도 나머지 직업들은 계속 하겠죠. 또 새로운 것에 도전할 수 도 있을 거고요. 제 성향이 어디 가겠어요? (웃음). 바이올리니스트가 되었건 되지 않았건, 저는 지금처럼 아마 여러 가지를 했을 것 같아요. 직업을 하나만 가져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가장 좋아하는 예술가를 꼽을 수 있나요?


글쎄요. 놀라실 지 모르지만 없어요. 정확히 말하면 그때그때 달라져요. 상황마다 제가 처한 감정에 따라 끌리는 작품들이 있어요. 어떤 작품들은 아무리 유명하고 좋은 작품이라도 대하기 싫을 때가 있죠. 사람의 감정이 늘 한곳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존 케이지’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예술가는 아닐지 모르지만 제일 좋아하는 작품을 만든 예술가입니다. 그 작품은 다름아닌 「4분 33초」에요. 이 작품은 단 한번도 같은 음악일 수가 없는 음악이에요. 제가 처한 상황에 따라 다 다르게 들리죠. 웃으실지 모르지만 정말로 제가 제일 좋아하는 작품이에요(웃음). (「4분 33초」는 작곡가가 무대에 등장해 4분 33초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곡이다)

 

만나고-노엘라

 

나 자신을 파악하는 일이 먼저


바이올린 공부를 중단하고 친언니의 비즈니스 파트너로 IT회사에서 일하게 됐는데, 바이올린을 포기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바이올린을 포기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포기’라는 단어보다는 ‘이별’이라고 해야겠죠. 제가 진짜로 바이올린을 포기하려고 했던 때는 석사를 마치고 나서였어요. 처음 유학 길에 올랐을 때 제 목표는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한국에 돌아오는 것이었죠. 아니, 제 스스로가 정한 목표라기 보단 클래식 계에 보편적으로 정해져 있는 목표라고 해야 할 거예요. 저 역시 그렇게 정형화된 길을 가려던 학생이었죠. 그런데 유학생활 바이올린에 대한 회의가 조금씩 들기 시작하면서 석사를 마치고는 정말로 그만두고 싶어지더라고요. 그때 들은 생각이 ‘목표한 바만 이루고 나서’였어요. 그때 그만두면 정말로 포기가 될 것 같더라고요. 그 오랜 시간 버텨왔는데 이제 와서 포기하고 싶진 않았어요.

 

그래서 선택한 것이 ‘박사 학위’였나요?


맞아요. ‘목표했던 바는 이루고 그만 두자’란 생각에 박사과정에 들어가 남들보다 두 배 가량 빠른 속도로 박사과정을 마쳤죠. 남들은 제가 그만큼 음악에 뜻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겠지만 사실 정 반대였던 거죠. 박사과정을 마치고 학위 논문 발표만을 남기고 귀국 후 바이올린과 이별하고 비즈니스 필드에 뛰어들었어요. 그곳에서 처음으로 음악이 아닌 다른 세상을 보고 경험하게 된 거죠. 그러면서 사회, 경제, 문화, 모든 것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 보게 되었고, 또 한 가지 생각만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것도 깨달았어요. 그러니 자연스럽게 바이올린을 떠날 필요도 없다는 걸 역으로 알게 된 거죠.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1집 앨범을 발매했어요. 그리고 이내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하게 됐고요.

 

진로를 바꾸거나, 새로운 일에 뛰어들고 싶어 하는 젊은 독자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


진로를 바꾸는 것보다 우선적으로 해야 할 것이 바로 자신을 파악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다각도에서 자신을 객관화해서 뜯어보고 살펴보는 거죠.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내가 진짜로 되고 싶은 게 무엇인지, 내가 진짜로 느끼고 싶은 게 무엇인지. 사회가 정해놓은, 부모님이 말씀하시는, 친구들이 부러워하고 남들이 인정해주는 모습이 아닌 스스로가 만족하고 행복해질 수 있는 모습이 무엇인지를 탐구하는 거죠. 그것이 우선시 되었을 때 비로소 자신이 선택한 길에 대한 확신과 헤쳐나갈 힘이 생길 것 이라고 생각해요. 

 

2009년부터 칼럼리스트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글쓰기에 대한 관심은 언제부터 있었나요?


어렸을 때부터 일기를 썼어요. 그때그때 떠오르는 생각이나 감정들도 거의 다 메모를 해 두었죠. 지금도 메모장이 휴대폰 중 가장 많이 쓰는 기능인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글 쓰는 것이 거의 습관처럼 되어있어요. 유학 생활 동안 답답하거나 외로운 순간들엔 늘 글을 썼어요. 속상하거나 아픈 기억들은 일기보다는 함축된 시를 썼고요. 구구절절이 아픈 기억들을 기록하고 싶진 않았거든요. 그렇게 글에 쏟아내고 나면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곤 했어요. 영감은, 주로 생활 속에서 얻는 것 같아요. 주변의 사람들, 반려동물들과 같은 일상에서요.

 

예술은 우리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나요?


우리로 하여금 내면을 들여다보게 한다고 생각해요. 인간의, 아니 내 자신의 내면을 접하다 보면 삶의 답이 보인다고 해야 할까? 인간이기에 누구나 가질 수 밖에 없는 감정들, 생각들을 찬찬히 마주하다 보면 삶에 대한 본질에 좀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외부적인 요소들에 많이 치우쳐 있는 우리들의 삶 속에서 잠시나마 본질에 가까지 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할까요? 그런 의미에서 예술은 우리 삶을 더욱 농밀하게 만드는 듯해요.

 

앞으로 꿈꾸고 있는 소망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것 역시 이상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꿈’은 없어요. 목표 정도는 있죠. 전 그저 순간순간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고 그 의미를 공유하고 싶을 뿐이에요. 그 순간이 모여 인생이 될 수 있다면 그것이 꿈이겠죠.

 

『그림이 들리고 음악이 보이는 순간 2』는 어떤 독자들이 읽으면 특히 좋을까요?


예술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이해하고 싶은 사람, 정도로 해 둘까요? ‘예술가’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예술적’ 삶을 살수 있다고 생각해요. 자신 안에 숨겨진 예술성을 발견하고 끌어내서, 독자들 모두가  ‘예술적 삶’을 이루어가시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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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이 들리고 음악이 보이는 순간 2노엘라 저 | 나무수
사랑과 욕망, 삶과 죽음, 그리고 도전. 이러한 불변의 화두들을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칼럼니스트인 저자가 예술가들의 작품 및 삶에서 끄집어낸다. 특히 서로 동시대를 살면서 삶의 다양한 감정과 가치를 표현해 낸 미술가와 음악가 각각 20명을 짝 맞추어 소개하고 있다. 예술가들이 살았던 삶과 에피소드를 들려주면서 닮은꼴인 이들을 찾아 연결 짓고, 주제와 의도가 유사한 작품들, 혹은 서로가 똑같은 작품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시킨 또 다른 작품 등을 짚어 준다. 그리고 예술가들의 인생과 작품을 이야기하면서, 저자 개인의 삶을 자연스럽게 녹여 낸 이야기로 우리의 삶까지 따뜻하게 보듬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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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일본 록을 이끄는 밴드, 래드윔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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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음악을 다루는 필자에게 있어서도 첫경험이었다. 동시대의 제이팝이 이 정도의 파급력을 일으키는 모습을 목격한 것은. 라이센스 앨범 초판의 품절, 예매만으로 매진된 티켓 등 어느 정도 열기의 조짐이 보이긴 했지만, 이날 보여준 한국 팬들의 환호성은 예상했던 데시벨을 한참 웃돌고 있었다. 흠잡을 곳 없는 밴드의 퍼포먼스와 이에 화답하듯 아낌없는 성원과 합창을 보여준 관객들 간의 교감. 그것은 분명 오랜 기다림에 대해 찍을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종지부였다. 더할 나위 없이 만족했다는 관계자들의 전언과 공식 사이트에 올라온 멤버들의 메시지까지. 공연 다음날, 그 흥분이 가시기도 전에 만난 이 일본의 록스타는 차분하게, 또 친절하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타케다 유스케는 개인 일정 상 인터뷰에 참여하지 못했음을 알려드립니다.)

 

만나고-이즘


어제 공연 얘기부터 시작하고 싶은데요. 굉장히 뜨거웠는데요. 어제 어떠셨나요?


노다 요지로(이하 노다) : 해외에서 라이브 하는 것 자체가 처음이라, 어떻게 될지 상상은 하지 못했어요. 어쨌든 압도당한 기분이었습니다.

 

쿠와하라씨는 한국어 굉장히 잘하시던데요. 어디서 배우신 건가요?


쿠와하라 아키라(이하 쿠와하라) : 한국 친구로부터 배웠어요. 한번 일본에서(어학원 같은 곳으로) 배우러 간 적도 있어요.

 

첫 아시아투어인데요. 어떤 계기에서 기획하게 되셨나요?


노다 :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시기가 좋기도 했고... 조금씩 한국 분들이 저희 음악을 듣고 있다는 소식은 전부터 접하고 있었는데요. 사실 어느 정도 저희들을 알고 계실지 예상하기 힘들었는데, 이번에 공연 와서 굉장히 놀랐습니다. 이 정도의 분들이 듣고 계시는 줄은 몰랐거든요.

 

일종의 모험이었네요.


노다 : 대모험이었습니다.(웃음)

 

어제 관객 중에 10대 여학생들이 굉장히 많았어요. 저희가 예상하기로는 20대, 대학생 이상의 팬들이 많을 거라고 예상했었는데.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전원 : (웃음)


야마구치 사토시(이하 야마구치) : 저희들도 놀랐어요.


노다 : 공연 할 때는 잘 몰랐는데, 그랬나요? 나 몰랐어.(웃음)


쿠와하라 : 거꾸로 묻고 싶은 게, 지금 한국의 젊은 세대 중에 일본 음악에 대해 특별히 흥미를 가지고 있는 세대가 있나요?

 

그렇게 많지는 않아요.


노다 : 그럼 어떤 음악이 인기가 있죠?

 

역시 아이돌이죠. 10대들에게는.


노다 : 그렇군요. 지금 일본에서도 투어를 하고 있는데요. 저희도 놀란 게 관객 중에 2, 30대가 더 많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반 이상이 10대였거든요. 일본에 있는 동안에도 그렇고 이번 투어에서도 젊은 세대가 많아서 왜 그럴까 하며 좀 놀랐어요. 새로운 세대가 저희 음악을 계속해서 들어주고 있다는 것은 역시 기쁘네요.

 

앨범 이야기로 들어가 보죠. 신작의 테마는 무엇인가요?


노다 : 주제를 특별히 정하고 진행한 건 아니었어요. 굉장히 빠른 속도로 곡을 만들어서. 1년 반 정도 걸렸는데요. 창조적인 발상이 멈추질 않아서. 아 이런 것도 하고 싶고 저런 것도 하고 싶어. 이런 느낌이었어요.


이미 6장이나 앨범이 나온 상태라 아이디어가 고갈될 만도 한데, 아직도 창작력이 계속 샘솟으시나요?


노다 : 앨범마다 접근법이 달라서요. 3년에 걸쳐 만든 탓에 '너무 시간이 많이 걸렸는데' 싶은 것도 있고, 반면에 한 번에 만들어지는 곡도 있고요. 굉장히 고통스럽게 완성한 노래가 있는 반면 만들자마자 바로 발표한 노래도 있어요. 아마 10년 동안 같이 해왔기 때문에, 이렇게 체계가 잘 잡히지 않았나 싶네요.

 

이번 앨범 중 가장 힘들게 완성한 곡이 있다면요.


야마구치 : (한참 생각한 후) 「實況中繼(실황중계)」 같아요. 처음 아이디어로부터 발전시키는 게 굉장히 오래 걸렸었잖아.


노다 : 음, 그런 거 같네. 3년 반인가 4년 걸렸어요. 가사가 이야기이기도 했고, 그 이야기성과 음악이라는, 약 3분에서 4분 정도 되는 시간을 결합시켜 하나의 곡으로서 두 가지가 양립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하고 생각했어요. 하나의 이야기로서도 완성시키고 싶고, 하나의 음악으로서 가사를 신경 쓰지 않고도 재미있게 즐길 수 있도록 하고 싶었거든요.

 

가사 완성에도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들었어요.


노다 : 그러네요. 쓰기 시작해버리면 괜찮은데요. 신이 있고, 부처가 있고 이런 이야기를 그려나가고 있었는데 어떻게 끝날지 상상할 수가 없어서. 그래서 반 년 정도 머릿속에 그냥 내버려 뒀어요. 그러다 2011년 후쿠시마 대지진이 있었을 때 어떻게든 답을 내릴 수 있겠다고 생각이 들어서. 그 혼란스러움을 아무렇게나 한 번 써보고 싶어졌고, 그러다 좋은 방향성이 나와서 완성시킬 수 있었습니다.



 

뮤직비디오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시각적으로도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쓴 것 같더라고요.


노다 : 기쁘네요.


쿠와하라 : 10명 정도의 후보가 있었어요. 모두 다른 환경에서 각자 체크를 했는데요. 전원 일치하는 쪽으로 정했죠. 실제로 만나보고 나서 이 사람 굉장한 것 만들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노다 : 새롭고 창의적인 발상을 하는 사람과 만나기 때문에 저희가 꼭 묻는 것이, 지금까지 해본 적 없는 게 뭐냐는 거예요. 해보고 싶었는데 거절당했다던가 하는 게 있으면 우리들과의 작업에서 나타내주기를 바랐죠. 메이저 필드에서 일을 하는 이상, 의외로 그런 사람들이 상업적인데서 살아남지 못하거나 서투르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계기가 됐으면 했어요. 머리가 이상한 사람이라든지(웃음), 좀 재미있는 사람들이요.

 

연주 측면에서 좀 더 신경 쓴 점은 무엇인가요?


야마구치 : 리듬 면에서 말하자면, 실제 드럼 소리와 먼저 컴퓨터로 만들어 놓은 리듬 루프 음원을 동시에 나열한 곡도 있는데요. 이번 앨범에서 처음으로 도전해 본 거예요. 두 개의 리듬이 확실히 하나로서 들리도록, 하나의 밴드 안에서 성립될 수 있도록 말이죠. 즐거운 도전이었어요.

 

쿠와하라 : 기타, 베이스, 드럼뿐만 아니라 다른 악기를 넣어보기도 하고, 멤버 전원이 프로툴을 배워서 데이터를 집에서 작업해 스튜디오에 가지고 가서 사용하거나 했어요. 지금까지 하지 않았던 방식이었지요. 베이스로 기초 작업을 한 음원을 서로 보내 작업하거나, 리허설 스튜디오에서 모두 함께 연습 하면서 만든 곡도 있고요. 컴퓨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거나 다른 악기를 넣은 게 여태까지와는 달랐던 점인 것 같습니다.

 

말씀하셨듯이 작업을 위해 프로툴을 배웠는데, 어떤 도움이 되셨나요?


쿠와하라 : (노다) 요지로가 원래 프로툴을 활용해서 곡을 만들고 있었어요. 하지만 기껏해야 거기에 기타를 넣는다든지, 혹은 요지로의 기타가 들어있으면 그걸 빼거나 하는 정도였어요. 이번에는 전부 (프로툴을) 다룰 수 있게 되었으니까, 기타를 없애고 자기 기타를 넣는다든지, 드럼도 마찬가지로. 그런 점을 원활하게 할 수 있게 됐어요.


노다 :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아무래도 스튜디오에서만 몇 시간이고 작업을 해도 진전이 없으면 솔직히 정신적으로 한계가 왔었어요. 그런데 스튜디오가 아닌 곳에서도 멤버 각자의 아이디어를 자신의 타이밍에 자신의 방법으로 만들 수 있었다는 점에서 큰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사실 잘못 생각하기 쉬운 게, 기술적으로 굉장한 걸 할 수 있게 된 건 아니에요. 단순히 자기가 넣고 싶은 소리를 넣을 수 있게 된 정도죠.

 

가사를 좋아해서 팬이 된 사람들이 많아요. 표현이나 스토리가 발군인데, 어디서 영감을 받으시나요?


노다 : 매일 살아가면서 듣는 언어가 가사가 되는 거 같아요. 음.. 책을 잘 읽는 편도 아니고.. 좋아하는 작가라고 해도 모리 히로시(森 博嗣, 1996년 데뷔하여 그해 제 1회 메피스토 상을 수상했음) 정도.. 언어나 말을 좋아해요. 말로 인한 발상 같은 거요. 좋아하는 사람이나 싫어하는 사람이 생길 때 느끼는 감정의 구조는 어디서 오는 걸까 같은 걸 생각합니다. 제가 워낙 깐깐해서 싸우면 그 끝을 보는 성격인데, 멤버들은 힘들겠지만 이로 인해 제 자신은 몇십 킬로미터 앞을 더 바라볼 수 있죠. 다른 사람들이 멈추는 곳에서 저는 멈추지 않기 때문에 그런 가사가 나오지 않나 싶어요.

 

초기와 달리 가사가 애매하고 이해하기 어려워졌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노다 : 저 자체는 전혀 그런 의식이 없어요. 계속 똑같은 것만 할 수 없다는 성격이에요. 항상 그 순간순간 느끼는 가장 자연스러운 발상이나 취향이 가사가 되죠. 지금까지 써온 노랫말을 좀 깐깐하게 보자면 항상 같은 말만 하고 있다고 볼 수 있겠지만, 그래도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살아가는 기간 동안 느끼는 것들을 찾아서 쓰고 있습니다.

 

만나고-이즘

 

어느덧 2000년대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밴드가 되었습니다. 그런 입장에서 자신들이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하는 것들, 그 양쪽을 어떻게 조정해가고 있는지요. 다시 말해 본인들은 하고 싶은 것만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나요?


노다 : 네. 말할 수 있네요. 그것이 저희 존재 의의니까요. 이상할 정도로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있어요. 사실 일본 밴드 중에서도 그렇지 않은 밴드들이 많아요. 저희들은 어떤 곡을 만들어라, 어떤 식으로 해라라는 식의 말을 데뷔 이후 단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어요. 오히려 저희가 외롭다고 느낄 정도입니다. 아무도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으니까요. 그래도 이렇게 해올 수 있었던 건 저희를 지켜주신 분들이 계신 덕분이죠. 젊은 세대 밴드들도 많아지고 있는데, 음악이 좋은데도 돈이 되지 않아 계약이 끊기는 팀들도 많아요. 적어도 저희는 우리의 음악을 하면 된다는 느낌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최근 원 오크 록(ONE OK ROCK)이나 사카낙션(サカナクション) 같은 대중성과 작품성을 겸비한 밴드가 록의 부흥을 이끌고 있긴 하지만, 반면에 최근 일본의 록이 무게감을 잃었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오랫동안 몸 담아온 신의 일원으로서 요즘의 일본 록 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보시나요?


노다 : 요즘 좋은 밴드들이 많이 늘어났어요. 다들 기술도 가지고 있고, 인터넷이 있으니까 다양한 음악들을 들어오면서 정보도 많이 얻을 수 있었을 거예요. 다들 근면하기도 하고.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면서 활동하고 있어요. 자주 라이브하우스에 가는데, 그 중에는 정말 뛰어나다, 저 정도면 아레나에서 공연해도 될 텐데하고 생각할 정도의 팀들도 많습니다. 이런 밴드들이 사람들에게 잘 알려졌으면 좋겠고요. 지금부터가 승부라고 생각해요. TV에 나오는 이들이 주류를 점하고 있어 쉽게 인정받지 못하고 있지만, 듣는 사람이 귀를 크게 열고 이런 팀들을 찾아낼 수 있는 후각을 길러줬으면 해요. 그 점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더 즐거운 나라가 될 것 같아요.

 

영향 받은 뮤지션이라던가, 아니면 추천하고 싶은 일본 뮤지션을 소개해 주신다면요.


노다 : 선배들은 엄청 많고요. 앞에서 이야기한 요즘 밴드들도 괜찮나요? 플렌티(plenty), 키노코테이코쿠(きのこ帝?), 파스피에(パスピエ) 추천 드리고 싶어요.


이번 앨범 구성하면서 아쉬웠던 점, 그리고 기회가 온다면 해보고 싶은 게 있다면요?


야마구치 : 아쉬운 점이라(웃음). 아쉽다고 하긴 좀 그렇고요. 앨범이라는 패키지를 정리할 때에는 아무래도 곡이 좀 더 많아요. 20여곡 정도. 거기서 10여곡을 고르는 건데, 선택되지 않은 곡 중에서도 좋은 곡들이 많기 때문에 이걸 들려줄 수 있는 타이밍이 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싱글이나 다음 앨범으로 이어질 수도 있고요. 거의 다 완성된 곡들도 있고 멤버들끼리의 반응도 무척 좋았거든요.

 

한국 팬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와 어떻게 자신의 음악들을 들어주었으면 하는지 마지막으로 한마디씩 부탁드립니다.


쿠와하라 : 어제의 라이브 하기 전에 함성을 들으니 청량하다고 할까 열정이 느껴져서 텐션이 올라갔어요. 좀 더 빨리 올걸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진짜 즐거웠어요. 다시 꼭 오고 싶습니다.


노다 : 라이브 행복했어요.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행복했고요. 이렇게 한발자국 가까이 온 것만으로도 굉장히 다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공연을 하면서 기재에 조금 문제가 있었어요. 그 부분이 마음에 좀 남아있는데, 그래서 꼭 돌아오고 싶어요. 특히 이 경험이 우리가 만들 음악에도 반드시 영향을 미칠 거예요. 만들면서 '아, 한국 라이브에서 (이 곡을) 하면 엄청 즐겁겠지' 분명 그런 풍경을 틀림없이 떠올리며 라이브를 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다 같이 노래 불러주겠지 하고요. 정말정말 감사했습니다. 큰 사랑 감사드립니다.


야마구치 : 저도 어제 라이브 굉장히 놀랐달까, 감동했습니다. 한국에서 티켓이 매진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뭔가 현실성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한국에 와서 직접 보니까 진짜 일어나고 있는 일이구나 라는 걸 직감하고 굉장히 놀랐습니다. 여태까지 한국의 팬들을 의식하지 않고 활동하는 동안 이 곳에서도 우리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기뻤고요. 앞으로 살아가면서 이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살아갈 것 같습니다.

 

야마구치상이 잘 정리해주셨네요.


야마구치 : 앗, 그랬나요.(전원 웃음)

 

 

인터뷰 : 조아름, 황선업
통역 : 윤보배
정리 : 황선업

 

글/ 황선업(sunup.and.down1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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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성미 “간증계의 이효리? 내가 기억되고 싶은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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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 낳는 것보다 힘들 던데요.” 『사랑하며 살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를 펴낸 이성미의 소감이다. 2005년 자녀의 유학기 『아들아 너는 세상을 크게 살아라』를 쓰고 9년 만에 두 번째 책을 출간한 이성미는 유방암 투병 후, “덤으로 사는 삶 같다”며 소감을 밝혔다. 10년간 세 아이와 함께 캐나다에서 생활하다 4년 전, 한국으로 돌아와 다시 방송 활동을 시작한 이성미는 요즘, 매일이 행복이고, 감사다.

 

이성미가 만족스러운 캐나다 생활을 접고 귀국한 건, 후배 연예인들의 잇따른 자살 소식을 들으면서부터다.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지는 확신이 서지 않았지만 그들 곁에서 손을 잡아주고 싶었다. 이성미가 주축이 돼 4년째 진행되고 있는 연예인 연합예배는 현재 250여 명이 참석하고 있다. 신인부터 중년 연예인들까지, 신앙의 깊이와는 관계 없이 모두가 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다. 하루하루를 ‘축복’이라고 고백하는 이성미는 1년간 『사랑하며 살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를 직접 쓰며, 눈물을 흘리기보다 머금으려고 노력했다. 유방암 투병을 겪으며 힘든 시간을 보냈기에, 특별히 아픈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마음으로 글을 써내려 갔다.

 

션, 노사연, 하희라, 김지선, 신보라 등 동료 연예인들은 이성미를 두고 ‘작은 거인’이라 칭한다. 이성미가 책 추천사를 부탁하기 위해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전화를 걸었을 때, 그들은 모두 흔쾌히 마음을 보탰다. 배우 유호정은 “한 사람의 삶을 들여다본다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은혜가 넘쳐날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을 읽으며 깨달았다”고 말했다.

 

만나고-이성미

 

고난을 이겨내는 삶이 축복이다


김남국, 조정민 목사를 비롯해 많은 연예인 동료들이 추천사를 써줬습니다. 추천사만 읽어도 이성미라는 사람의 품성이 보였습니다.


추천사가 은혜죠? (웃음) 사실 감동이었어요. 제가 이런 부탁, 참 못하는 사람인데???. 정말 모기만한 목소리로 “좀 써줄 수 있어?”라고 했더니, 모두 흔쾌히 수락해줬어요. 앞으로 이 은혜들을 갚아야 하는데, 어떻게 갚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어요. 김남국, 조정민 목사님은 성경공부를 인도해주시는 멘토 목사님이라 더 감사했어요.

 

자녀들의 유학기 『아들아 너는 세상을 크게 살아라』를 쓴 후, 9년 만의 책입니다. 두 책을 비교해본다면 느껴지는 게 많이 다를 것 같아요.


예전 책은 제가 인터뷰를 하고 다른 사람이 써줬어요. 제 안의 이야기보단 캐나다 생활 이야기가 주된 스토리였죠. 이번에 쓴 『사랑하며 살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는 제가 인생을 살아낸 이야기라서, 저 스스로도 읽어 보면서 ‘내가 이런 인생을 살았구나’ 되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어요. 고난도 축복이라는 걸 말하고 싶었고,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희망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에요. 병이 꼭 나아야 응답이 아니고, 그걸 이겨내는 하루하루의 삶이 축복이라는 메시지가 전달됐으면 좋겠어요.

 

책을 쓰면서 “아이를 낳는 것보다 더 힘들었다”고 고백했는데, 무엇이 가장 어려웠나요?


너무 과하지도 않아야 하고, 읽는 사람들이 부담스럽지 않게 써야 하니까 수위 조절을 하는 게 힘들었어요. 쓰고 다시 또 고치고를 여러 번 반복했죠. 단어 하나하나를 선택할 때도 고민이 많았어요. 직접 쓰느냐, 마느냐도 오래 고민했는데, 직접 써야 제 느낌을 그대로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간증을 할 때도 눈물을 흘리는 것보다 머금을 때, 더 전달이 잘 되잖아요. 정말 애 낳는 것보다 더 힘든 기분이었어요.

 

10년간의 캐나다 생활이 무척 만족스러웠기 때문에, 귀국하기까지 고민이 많았을 것 같아요.


일단 하나님의 마음을 알려고 노력했어요. 내가 이 일을 결정해서 만약 실패를 하더라도, 후회하지 않는 선택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어요. 우리는 어떤 결정을 하고 나서도, 뒤를 돌아보면서 ‘그 때 다른 길로 갈 걸’하고 후회하잖아요. 누구도 내 삶을 대신해서 살아줄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누가 저를 보고 “왜 이런 결정했어?”라고 묻는다 하더라도 제 선택에 후회하고 싶지 않았어요.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나요?


당시 연예인 자살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고, 한국에 혼자 있는 남편에 대한 마음이 있었어요. 아이들이 잘 크고 있었지만 아빠와 거리가 생긴 걸 보고는 같이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때는 무언가 저를 한꺼번에 밀어붙이는 느낌이었고, 가야겠다는 확신이 생겼어요. 캐나다에 살면 사실 좋은 게 많죠. 하지만 한국에 와보니, 결정을 잘했다는 생각이에요.

 

10여 년 만에 방송에 컴백했는데, 방송환경이 많이 바뀌었잖아요. 적응하기 어렵지는 않았나요?


같이 일했던 PD들이 다 원로가 되었더라고요(웃음). 지금은 첫째 아이보다 조금 나이가 많은 스태프들이랑 일하고 있어요. 아무래도 선배 입장이 되다 보니까, 후배들을 볼 때 안타까울 때가 있어요. 살아내고 이겨내라는 말을 자주 하죠. 여러 말보다 그냥 옆에 있어주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저도 다시 적응하기까지는 쉽지 않았어요. 혼돈이 왔지만, 신인으로 돌아가자는 생각이 컸어요. 살면서 재건축을 해야 할 때가 있는데, 재건축이라는 게 정말 힘든 작업이잖아요. 차라리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스스로 세우는 게 편할 때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다 때려부수고 다시 시작했어요. 왕년에 잘나갔던 때를 생각하면, 나 자신과 싸워야 하는데, 내가 정말 싸워야 할 것은 따로 있었으니까요. 소모할 필요가 없었죠.

 

인터넷, SNS 환경이 발달하면서 방송에서 한 마디만 잘못해도 오해를 받는 경우가 많아요. 데뷔 초창기 때보다 방송을 진행하는 게 더 힘들지 않나요?


그런 거 신경 쓰면 말을 못하니까요. 말하고 나서 찝찝하면 그냥 편집해달라고 말해요. 요즘은 절묘한 편집으로 사람을 죽였다, 살렸다 하잖아요. 저 역시도 많이 달라졌다고 하지만, 제 안에 칼 같은 성격은 여전히 있어요. 좋게 이야기하려고 노력하지만 성향이 아주 바뀌진 않았죠. 그래서 자꾸 저를 죽이려고 해요. 안 그러면 날카로워지고 뾰족해지니까요. 그렇다고 어른으로서 해야 할 말을 안 하는 것도 옳지 않으니까, 수위를 조절하려고 하죠. 그게 참 어려워요.

 

선배로서 조언을 해줘야 하는 입장도 있을 텐데요.


선배가 되면 말을 줄여야 하는 것 같아요. 후배들에게 정말 필요한 건, 들어주는 선배에요. 안아주고 어깨를 두드려주면서, 잘할 수 있다고 말해주는 격려가 무엇보다 중요해요. 어떤 방향을 제시해주는 것보다 “네 결정에 나는 박수를 보낸다. 네가 어떤 길을 가든지 나는 응원해줄게”라고 말해주는 것이 더 힘이 돼요.

 

방송이나 일을 결정할 때, 어떠한 기준으로 선택하나요?


너무 오버하지 않아도 되는, 무리수를 두지 않는 작품을 하려고 해요. 어떤 일이 주어지든 기쁨으로 일하겠다는 마음이 있어요. 다만, 제가 너무 드러나지 않게, 긴장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어요.

 

만나고-이성미

 

사랑으로 키운 아이가 사랑을 나눈다


세 자녀들의 이야기도 곳곳에 보입니다. 특히 ‘아이들을 키우면서 지키는 원칙’을 인상 깊게 읽었어요. 아침에 일어날 때는 기분 좋게 깨운다는 이야기부터, 손편지 쓰기, 자주 표현하기 등. 자녀교육 때문에 힘들어하는 부모들이 읽어도 좋을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 경우는 첫째 아들이 롤 모델이 된 케이스에요. 그 아이를 통해 둘째, 셋째는 거저 키웠어요. 큰 아이한테는 미안하고 또 고마워요. 아이는 내 뜻대로 키우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에요. 아이를 키울 때, 부모들이 자신의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야단을 치고 “넌 왜 그렇게 사니?”라고 추궁하는데, 이게 옳은 방법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어요. 사랑만 주기에도 정말 시간이 부족하다는 걸, 철저하게 알았죠. 사랑으로 키운 아이가 사랑을 나누더라고요. 이 결정을 한 후로부터는 아이들을 키우는 게 훨씬 쉬워졌어요.

 

아이들에게 딱히 공부를 시키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아이들이 원하는 것만 지원해주신다고요.

싫다는 건 굳이 강요하지 않아요.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자고 결심했죠. 점점 아이들이 부모의 욕심으로 규격화가 되어가고 있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 아이가 공부를 잘해야 하고,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는 생각으로, 현명함과 지혜로움을 가르치기보다는 지식 만을 쏟아 붓고 있으니까요.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나눌 수 있는 사람,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컸으면 하는 소망이에요. 아이들도 엄마는 다른 엄마들이랑 많이 다르다고 말해요. 잘 커줘야 하는데, 그건 또 아이들 몫이라고 떼어 놓았어요.

 

주변 엄마들의 극성을 보면, 위기감이나 걱정이 들기도 할 텐데요.


엄마들이 너무 남의 엄마 이야기를 많이 듣는 게 문제인 것 같아요. 다른 아이들이 좋은 학교에 간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듣고 있으니, 아이들을 다그치게 되는 거죠. 내 아이를 내 방식대로 키우겠다는 것, 아이를 인격체로서 존중해 주는 게 중요해요. 부모들은 아이가 잘못된 길을 가면 끄집어 댕기는데, 그것보다 잘못된 길을 가더라도 돌아올 수 있도록, 언제든지 문을 열어놓는 게 부모의 몫인 것 같아요. 문제아는 문제 부모가 만든다는 생각을 하죠.

 

경쟁사회도 문제지만, 비교의식이 점점 심해지는 것도 부모들의 큰 문제입니다.


그래서 저는 웬만하면 아이들 친구 엄마들을 잘 안 만나요. 고집스러운 게 나쁘기도 하지만, 필요할 때도 있어요. 아이들한테 피아노를 가르치지 않은 것도 집에서 기타를 치니까 그걸로 됐다는 생각이에요. 아이들이 재밌어 하고 좋아하는 것을 더 해주고 싶어요. 셋째가 요리를 좋아해서 빵 굽는 걸 자주 도와주고 있어요. 저는 이게 아이한테 맞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아이들한테도 이렇게 말해요. “대학 안 가고 싶어? 오케이. 네가 좋은 걸로 해. 그런데 네가 나중에 나이가 들어 공부를 하고 싶게 되면, 머리가 굳어져서 힘들어 할 지도 몰라. 하지만 늦지 않았을 때 하면 되는 거야. 대학을 가지 않고 정말 맛있는 빵을 만든다면, 넌 세상에 단 하나뿐인 빵을 만드는 행복한 사람이 될 거야. 네가 그 일을 하며 행복하면 되는 거야”라고. 아이의 기를 살려주는 게 무엇보다 중요해요. 다른 사람들이 뭐라 하는 것들을 듣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자기가 행복한 것에 열중하는 아이로 자라나길 소망해요.

 

바쁜 일상에 대한 미안함은 없나요?


둘째가 서운해 할 때가 종종 있어요. 그러면 엄마가 왜 바쁜지에 대해 설명해줘요. 가끔 일하는 장소에 같이 갈 때도 있고요. 엄마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시간이 비면 가장 먼저 집으로 오는 걸 아이들한테도 자주 말해줘요. 그러면 이해를 해줘요. 아이들하고 대화를 많이 나누려고 노력하고, 가끔 저에 대한 점검도 해요. 아이들한테 물어보는 게 정확할 때가 있거든요. 아이들하고 함께 저녁을 먹고 기도제목을 나누는 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아이들이 엄마가 있어서 고맙고, 다른 엄마하고 달라서 행복하다고 고백할 때, 참 행복했어요.

 

첫째 아들은 신학을 전공하고 있는데, 스스로 학비를 벌고 있다고요.


지금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어서 학교를 쉬고 있어요. 목회를 할지는 아직 결정을 안 한 모양이에요. 제가 바라는 건, 말만 하는 목회자가 되지 않고 삶을 살아내는 목회자가 됐으면 하는 소망이에요. 한 사람을 위한 목사가 되고, 스스로 예배자가 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어요. 둘째는 올해 18살이 됐는데, 진로에 대해 한창 고민하고 있어요. 학교에서는 교사나 카운슬러가 적성에 맞을 것 같다고 하는데, 감각적인 면이 있어서 디자이너가 되어도 좋을 것 같아요. 저는 단지 던져 보는 거예요. 결정은 아이가 스스로 해야죠. 내년에는 세 아이만 여행을 보내 보려고요. 넓은 세상을 경험하고 미래를 결정했으면 해서요.

 

만나고-이성미

 

그 언니는 날 참 많이 사랑했어


“지금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말하셨는데, 언제부터 이런 생각이 들던가요?


제 안에 치유가 일어나면서부터겠죠. 또 암이 걸려 수술을 하고 눈을 떴을 때, ‘내가 정말 행복한 삶을 살고 있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매일매일이 행복한 삶이라는 마음이에요.

 

젊었을 때로 돌아간다면, ‘이건 하지 말 걸’ 후회하는 것은 없나요?


생각해본 적이 많긴 한데, 안 돌아가고 싶어요(웃음). 만약에 돌아간다면, 글쎄요. 지금 이 모습 그대로 가지 않았을까요? 많은 고난이 있었지만, 그 고난이 지금의 저를 만들어줬기 때문에 이제는 감사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간증계의 이효리’라는 별명을 후배 송은이 씨가 지어주셨다고요.


요즘은 간증을 안 해요. 몸이 아프기도 했고, 그만 해야겠다고 생각이 든 때가 있었어요. 제가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하는 직업을 갖다 보니, 어디에 호흡을 넣고 빼야 할지를 잘 알잖아요. 어느 순간부터 이게 익숙해지면서, 순순한 마음으로 했던 모습을 잃더라고요. 간증은 하나님이 제게 해주신 모든 일을 고백하는 시간인데, 이제 너무 익숙해져서 아무렇지 않게 하는 제 모습을 보면서, 이건 하나님도 원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당분간 하지 않으려고 해요. 대신, 간증을 업그레이드 해달라는 기도를 하는 중이에요. 조금 쉬었다 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 암이 걸린 것도 제게는 간증이었어요.

 

만약, 시청률이 가장 높은 방송 시간대에 자유롭게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어떤 방송을 만들고 싶나요?


북한에 대한 방송을 하고 싶어요. 우리가 북한에 대해 관심이 너무 없고, 너무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내 이웃이기 때문에 외면할 수 없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지금도 고민하고 있어요. 이 상태로 통일의 문이 열리면, 우리 쪽이 더 혼돈에 빠질 것 같아요. 잘 사는 사람들이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하는 거잖아요. 물질적인 풍요가 잘 사는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내가 어른이 되어 마음이 넓어져서 많은 사람들을 품을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게 중요해요. 죽음으로부터 건너온 사람들이 남한 땅에 적응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모습을 볼 때, 마음이 너무 아파요. 북한에 대해, 통일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프로그램을 만들면 좋을 것 같아요.

 

만나고-이성미

 

동료, 선후배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 가요?


“그 언니는 날 참 많이 사랑했어”라는 고백을 들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모두가 그럴 수는 없겠지만요. 한 사람에게 맞춰져서 깊이 있는 만남을 갖고, 늘 나누려고 애쓰는 삶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원래 사랑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거든요. 이 모든 게 내가 한 사랑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사랑이라는 걸 전하는 사람이었으면 해요.

 

지금 갖고 있는 가장 큰 기도제목은 무엇인가요?


너무 거창해서 말하기 어렵지만, 저는 가장 중요한 게 나라와 민족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이 나라, 이 민족에 태어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내 나라, 민족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고, 제가 품어야 할 것들에 대해 보는 것마다 기도해요. 이런 이야기를 하면 부끄러워요. 다들 기도하고 있기 때문에요.

 

『사랑하며 살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를 누군가에게 선물한다면, 어떤 분께 드리고 싶나요?


아픈 분들, 특히 암 환자들에게 권하고 싶어요. 인생을 살다 보면 누구나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생겨?”라고 원망할 때가 많아요. 이 책은 제가 몇 명의 친구들을 만나게 되면서 쓰게 된 내용이라서, 그런 분들의 회복을 돕는 통로가 됐으면 해요. 또 지쳐있는 학생들이 부모들에게 이 책을 권해줬으면 좋겠어요. 언젠가 아이가 그러더라고요. “엄마, 사람들이 엄마 간증을 듣고 나면 3일은 잘하는데, 그 이후로는 다시 예전이랑 똑같대”라고. 삶은 매일의 싸움인 것 같아요. 매일 엎드리지 않으면 내가 드러나게 되니까, 힘들 수밖에 없어요.

 

다음 책은 남편과의 회복 이야기를 쓸 예정이라고 들었습니다.


첫째 아이한테 농담 삼아 그랬어요. “다음 책은 ‘비껴가심’을 제목으로 하면 어떨까?”라고(웃음). 언제나 내 생각과 다르신 하나님 이야기를 써보는 건 어떨까? 생각해 봤어요. 아들이 하는 말이 “아빠도, 나도 비껴나갔다고?”하면서 웃더라고요. 아직 마음을 확고하게 정한 건 아니에요. 지금은 이 책 하나만으로도 행복하고 감사하고요. 앞으로는 내가 맡기고 가는 시간인 것 같아요. 내려놓고 나니, 살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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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며 살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이성미 저 | 두란노
어릴 적 이야기로부터, 자녀양육과 캐나다 살이, 그리고 다시 한국에 돌아와 연예인들을 주님의 마음으로 섬기는 이야기가 아름답게 묘사되어 있다. 이성미 씨가 손수 써서 만든 이 책은 그녀의 삶과 마음결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마치 이성미 씨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느낌이다. 특히 큰아들과 주님 안에서 회복되는 장면은 두고두고 가슴에 남아, 많은 크리스천 부모들에게 도전이 되리라 생각한다. 올해 쉰다섯의 그녀는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 무엇을 많이 가져서가 아니라 정말로 사랑할 수 있기에 그렇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도 사랑하며 살기에도 시간이 부족한 행복한 사람으로 살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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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락 “자기계발서 읽고 벤츠를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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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최성락

 

사실, 인간의 삶은 욕망의 연속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배가 고플 때는 음식에 대한 욕망이, 피곤할 때는 수면에 대한 욕망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하나의 욕망이 채워지면 또 다른 욕망이 고개를 쳐들곤 한다. 이러한 인간의 본능이 공공의 선과 상충되는 순간 욕망은 범죄라는 이름으로 바뀌기도 한다. 어찌 보면 법이 만들어지고 종교가 만들어진 것도 한계가 없는, 채울 수 없는 욕망을 절제하고, 다른 방식으로 해소하기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이렇게 공고하게 형성된 욕망에 대한 인식, 내지는 터부가 언젠가부터 바뀌기 시작했다. 적어도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고, 종교적으로도 위배되지 않으면서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정도에서 욕망은 허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테면 과거에는 사치와 허영으로 인식되던 행위들이 이제는 일반적인 것이 되었다고 할까? 하나의 예로 2006년 즈음 밥값과 맞먹는 커피를 파는 전문점이 생겨나며 ‘된장녀’라는 신조어로 희생양이 됐던 여성들을 떠올리면 될 것이다. 어찌됐든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밥값에 상응하는’ 커피를 아무렇지도 않게 즐기고 있고, 또 그것을 두고 뭐라는 이들도 없다. 명품가방이나 외제차 역시 ‘능력이 되면’ 소유할 수 있는 것이고,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

 

다시 인간의 욕망으로 돌아가서 얘기를 하자면, 이러한 현상은 조금 특별한 상황변화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밥값 수준의 커피 값은 그렇다 치더라도 외제차, 명품가방은 소수만이 누릴 수 있는 것, 감히 보통 사람들로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견이 있겠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점점 가격이 올라가는 국산차과 상대적으로 저렴해지는 외제차를 비교했을 때 조금만 더 무리하면 외제차를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다. 무조건 비싸다는 생각 대신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법을 모색하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실제 외제차를 타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향유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인식도 변하게 마련이다. 이는 과거와 현재를 대비해보면 더욱 극명해진다.

 

1980~90년대만 해도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식에는 꽤 이중적인 면이 있었다. 작은 소형가전제품 같은 것에는 소위 일제와 미제라는 것이 프리미엄처럼 여겨지며 소유욕을 자극했지만, 어찌된 이유인지 외제차만큼은 ‘그림의 떡’ 내지는 허영과 사치의 상징으로 치부됐던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도 가진 자들이 누리는 호사에 대해서 부정적인 인식이 완전히 사라졌다고는 볼 수 없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라. 부정적인 인식의 차이는 결국 ‘능력’ 즉 경제력의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 내가 그 입장이 되면, 혹은 될 가능성이 있다면 비난은 긍정으로 바뀔 수 있다는 말이다.

 

만나고-최성락

 

욕망을 전면에 내세우다


욕망에 대한 언급은 이렇듯 아직 조심스러운 면이 있다. 그런데 최근 한 대학교수가 직접적인 욕망 추구와 관련한 책을 세상에 내 놓았다. 게다가 놀라운 것은 욕망과 더불어 찬반의 의견이 분분한 ‘자기계발서’를 함께 엮어 놓았다는 것이다.『나는 자기계발서를 읽고 벤츠를 샀다』는 책 제목 역시 꽤나 직접적이다. 저자인 최성락 교수는 명문대를 졸업하고 박사학위까지 받은 사람이다.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꽤 괜찮은 직업으로 손꼽히는 교수로 살아가고 있다. 과연 그가 이 책을 세상에 내 놓은 이유는 뭘까?

 

“일반적인 상식으로 봤을 때 이 정도 경력이면 경제적으로 잘 살아야 한다. 그런데 내가 살아온 모습은 일반적인 학력에 일반적인 직장을 다니는 보통 사람들과 경제적으로 별 차이가 없었다. 나중에 깨달은 것이지만 소위 명문대 나오고 좋은 직업을 가지는 것이 곡 경제적 부를 담보하는 것은 아니었다. 아니 그러한 조건들은 잘사는 것과 아무런 상관도 없었다.

 

단언컨대, 내 삶에 경제적인 변화를 가져온 것은 자기계발서를 꾸준히 읽은 이후부터였다. 명문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도 살 수 없었던 고급 외제차를 자기계발서가 말하는 대로 살아본 지 2년 만에 구입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일을 겪은 후 경제적으로 부유해지기 위해서는 자기계발서를 꾸준히 읽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나는 자기계발서를 읽고 벤츠를 샀다』中 )

 

최성락 교수의 첫인상은 평범했다. 그가 책에서 이야기했듯, 그 배경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그저 평범한 회사원으로 봐도 무방할 정도. 하지만 그가 쏟아 놓는 이야기들은 놀라웠다. 우선은 그 역시도 몇 해 전까지는 자기계발서를 머리 식히는 정도로 읽는 사람이었고,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들이 실현가능하다고 생각해보지도 않았다는 것. 그러나 한권이 두 권이 되고 수십 권이 되면서 점차 의문이 생기게 됐다. ‘과연 가능할까?’란 의문은 실천으로 이어졌고 그 변화는 놀라웠다고 한다. 그는 현재 외제차를 타고(아내의 독단(?)에 의해 벤츠는 포기하고 같은 가격의 아우디 A6를 샀다) 타워팰리스에 살며 자신의 사무실을 가지고 있다. 불과 3~4년 전에는 모두 없었던 것들이다. 
 
『나는 자기계발서를 읽고 벤츠를 샀다』는 그간 교수님이 ‘벤츠’를 사기 위해 기울였던 노력들을 지켜보던 사람들에게 일종의 결과물을 내 놓은 것이라 생각되는데요. 어떤 반응들을 접하셨는지 궁금하네요.


제가 처음 결심을 했을 때 주위 사람에게는 거의 말하지 않았어요. 아내에게 말한 것이 전부죠. 그 외 사람들에게는 솔직히 ‘내가 어떻게 해서 벤츠를 사겠다’는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한 것 아닐까요? 결국 아우디 A6였지만(웃음), 차를 사게 됐을 때도 그렇고 타워팰리스에 입주 할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런데 나중에 이뤄진 다음에 문제가 되더군요. 아내야 내가 하겠다고 미리부터 예고를 해 놓았던 터라 괜찮았는데, 양가 부모님들은 직접적으로 반대를 하시더군요. 한 마디로 낭비고 사치라는 거죠. 제가 외제차를 사고, 타워팰리스에 들어가게 된 것은 단순히 여유가 있어서가 아니었어요. 자기계발서를 읽고 실천을 하고, 하고 싶다는 목표를 세웠고, 그것이 이뤄진 것뿐이에요. 하지만 역시 우리나라에서 자기가 하고 싶다고 다 하면 부작용이 생기더군요. 저희 부모님은 아직도 외제차 타봤으니 일반적인 차로 바꿔도 되지 않느냐고 말씀하세요(웃음). 

 

아내 분께서 처음 교수님 말씀을 들었을 때도 믿지 않으셨을 듯한데요?


그렇죠. 처음에는 그냥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고 해요(웃음). 사실 저 역시도 처음부터 정말 이뤄지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저 ‘그것이 목적이다’, ‘하고 싶다’는 말을 하고 실천해 본 거죠. 하지만 외제차를 타고, 타워팰리스에서 살고, 토익 시험 900점을 넘겠다는 목표 중에 2개가 이뤄졌어요. 토익 시험은 아직 현재진행 중인 사항이지만 그 와중에 또 다른 목표를 세운 것들도 이뤄냈죠. 확신이 섰던 것은 타워팰리스에 입주할 때 즈음인 것 같아요. 자기계발서에서 이야기하는 것들이 메커니즘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던 거죠.

 

‘벤츠’라는 목표를 세웠고 이뤄내셨던 과정은 놀랍지만, 그 경험을 책으로 쓴다고 했을 때는 또 다른 문제를 고민하셨을 듯 한데요. 자기계발서에 대한 사회인 인식 역시 호불호가 갈리는 상황이기도 하고요.


일단 예전부터 전공과 관련된 책을 쓰는 것은 익숙했기 때문에 집필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어요. 직접적인 계기는 당시에 자기계발서에 대해 ‘쓸데없는 책이다’, ‘사기다’라는 식의 책이 나온 것을 봤기 때문이에요. 그런 의견에 대한 반작용이라고 할까요? 자기계발서의 내용자체는 어렵지 않아요. 사람이 알아야 될 것은 유치원에서 다 배웠다는 말과 같은 것이죠. 중요한 것은 알고 있는 것을 실천하는 것이거든요. 단, 단순히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효과가 있고 이뤄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마음을 여는 것이 중요하죠. 저도 그 이전에는 지식으로는 알고 있어도 실천하지는 않았어요.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죠. 꾸준히 자기계발서를 읽으면서 가능하리라는 믿음이 생겼고 실천을 하고, 진짜로 이뤄낸 거예요. 저 역시도 가능하다는 생각이 없었다면 해내지 못했을 겁니다.

 

“전통적인 자기계발서들은 다들 유사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다. 목표를 설정하라, 목표를 구체화하라, 긍정적으로 생각하라, 실패해도 계속 시도하라, 꿈을 종이에 적어라 등이 가장 공통으로 등장하는 말이다. …(중략)… 그에 대한 나의 대답은 ‘자기계발서의 주요 내용은 과학’이라는 것이다. 충분히 과학에서 논의되고 증명된 것들이라서 과학적 근거가 있다. 목표를 설정하라, 목표를 구체화하라, 실패해도 계속 시도하라 등의 말은 ‘경영학’적이다. 경영학에서 줄곧 이야기하는 말들이다.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말은 심리학에 속한다. 심리학에서 그 효과가 충분히 증명된 말이다. 자기계발서에 쓰인 말은 그저 단순한 격언이 아니다. 경영학과 심리학 교재를 알기 쉽게 풀어쓴 내용들이다.” (나는 자기계발서를 읽고 벤츠를 샀다』中 )

 

만나고-최성락

 

실천하면 바뀐다


믿고 실천하라, 이것은 사실 대부분의 교육과 학습에서 적용되는 진리가 아닐까? 그런데 우리는 그간 자기계발서를 너무 기분전환용으로 대한 것은 아닐까 싶다. 다시 ‘믿고 실천하라’, 이 말이 자기계발서와 결합했을 때 결과는 놀랍다. 실제 최성락 교수가 아니더라도 ‘믿고 실천해서’ 놀라운 목표를 달성하고, 삶의 변화를 이끌어 낸 경험자들이 많다는 사실은 자기계발서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한다.

 

실천을 하고 나서 교수님이 느낀 변화는 무엇인가요?


내적으로는 일단 사고방식이 많이 바뀌었다는 걸 느껴요. 부정적인 측면에서 말하자면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금전적인 부분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됐다고 할까요? 이전까지는 신경 쓰지 않고 살다가 돈이라는 것, 잘사는 것, 그리고 어떻게 하면 가능할까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니 행동 역시도 그 동안 제가 취했던 방식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더군요. 

 

자기계발서에서 이야기하는 것들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희생해야 하는 것들도 적지 않았을 듯한데요. 교수님의 경험에 비춰봤을 때 어떤 어려움이 있다고 생각되시는지요?


일단 시간상으로 희생하는 부분이 있죠. 더 많은 연구 과제를 수행해야하니까요. 하지만 덕분에 시간 이든 무엇이든 콤팩트하게 사용하게 되더군요. 굳이 희생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는 것 같아요. 어려움에 해당되는 건 일단 돈 벌기는 어렵다는 거죠(웃음). 어떻게 해야 돈을 더 버느냐의 문제, 결국에는 그것이 해결돼야 하는 거니까요. 그 과정을 찾고 그걸 계속 시도를 하는 것의 연속이죠. 물론 시도를 계속 해도 성과가 바로 나오는 것은 아니에요. 그 과정에서 오히려 돈이 잃기도 하고, 시행착오가 있죠. 단, 노력과 시간을 기울인다는 것이 자신의 본업에 지장을 주지는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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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 그것이 문제로다


최성락 교수는 욕망에 대한 해법으로 ‘선’과 ‘탄트라’에 대해 이야기했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선’ 스스로의 욕망을 지우고 쓸데없는 욕망이 이는 것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이다. 반면 ‘탄트라’는 욕망을 해소함으로서 욕망에서 벗어나는 방식이다. 완전히 다른 방식이지만 우리사회에서는 이 두 가지가 모두 존재하고 있다. 무엇이 옳다고는 할 수 없다. 문제는 우리 사회에서 대부분이 성공과 돈, 명예와 같은 가치에 이 두 가지 방식을 이중적으로 채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욕망에 대해 말씀하신 부분이 생각나는데요. 욕망을 없애는 방법으로 ‘선’과 ‘탄트라’를 이야기하셨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어렸을 때부터 욕망을 절제하는 것이 옳다고 배워왔는데요.


저 역시 욕망을 추구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터부시된다는 것은 알고 있었죠. 하지만 탄트라의 개념을 보고 놀랐어요. 제가 이해한 바로는 불교에서 욕망을 해소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데, 욕망을 절제하는 것보다 더 상위의 개념이 욕망을 해소하는 것이더군요. 개인적인 생각으로도 욕망을 억제해서 정말 억제가 되면 괜찮지만 사실 그게 아니잖아요. 욕망은 억제된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닌 것 같아요. 대부분 사람들이 억눌려 있고 뭔가 숨어있고 가슴에 남아있는 욕망이 있어요. 그것은 언제든지 표출될 기회가 있으면 다시 나오게 되죠. 그래서 저는 차라리 그럴 바에 ‘탄트라’의 방식이 정신건강에 더 낫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물론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욕망은 억제하는 것으로 교육받아오긴 했지만, 다른 방식도 있다는 것은 알아 둘 필요가 있다고 봐요.

 

“탄트라는 욕망이 발생했을 때 그 욕망을 충족시킴으로써 욕망에서 벗어나는 방법이다. 떡볶이를 먹고 싶으면 떡볶이를 먹는다. 그러면 떡볶이에 대한 욕망이 사랑진다. 마찬가지로 스테이크를 먹고 싶은 욕망이 생기면 그냥 스테이크를 사 먹는다. 이렇게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킴으로써 욕망을 없애고, 그럼으로써 욕망에 대한 콤플렉스도 사라지게 하는 것이 탄트라다.” (『나는 자기계발서를 읽고 벤츠를 샀다』中 )

 

탄트라의 방식을 들으면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무조건적인 욕망의 충족을 말씀하시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선악을 구분할 때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 주지 않는 욕망이라고 봐야죠. 경제학적으로도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에 유무를 중요하게 봐요. 규제의 대상을 정할 때 피해 여부를 판단하거든요. 또 다른 사람들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상대적 박탈감 등 정신적으로 피해가 예상된다고 하면 규제가 필요하죠. 단, 다른 사람한테 피해를 주지 않는 한은 욕망을 추구하는 것이 정당하다고 봐요.

 

인간의 욕망은 끝없다고 하는데, 어떤 이들은 한 없이 더 좋은 것만을 추구하다보면 정신적으로 공허해진다고도 합니다. 그래서 정신적인 가치를 더 중시해야 한다고 하는 의견도 있는데요?


지금 욕망이 있으면서도 욕망을 달성해봤자 소용없고 해서 가만히 있으면 역시 문제가 된다고 생각해요. 욕망을 추구하지 않고 가만히 있을 때 정신적인 평화를 얻느냐하면 그건 또 아니거든요. 완전한 정신적인 평화, 일종의 ‘깨달음’을 얻은 경지라면 또 모르죠. 그러나 대부분 사람의 삶은 하나의 욕망이 생기고 그걸 달성하고 또 그 다음 생기는 욕망을 추구하는 반복의 연속이에요. 욕망을 마음속에 품고 한탄하는 것과 욕망을 추구하는 것, 적어도 추구해서 달성을 한다면 다음 욕망이 생길 때까지 얼마간 달성한 욕망은 해소가 되는 거잖아요. 전 그게 정신적으로도 더 낫다고 생각해요. 외제차에 대한 욕망도 그렇죠. 필요 없다고 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누가 공짜로 준다고 하면 마다할 사람은 없어요. 이 얘기는 어찌됐든 누구나 그 안에는 표출하지 않는 욕망이 존재한다는 것 아닐까요?

 

‘인간과 세상을 이해하려면 인문서를, 꿈을 이루고 성공을 잡으려면 자기계발서를 읽으라’는 말이 와 닿습니다. 헌데 이 말은 인문서가 성공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니라는 말로도 해석되는 듯한데요?


인문서는 인간에 대한 이해는 높아지지만 잘 사는 법을 알 수 있게 하진 않는 듯해요. 물론 잘 산다는 것의 정의는 저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인문학이나 철학을 공부하는 교수들이 그렇게 정신적으로 성숙하고 욕망을 절제하지는 않거든요. 목적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자기가 목적하는 게 있으면, 예컨대 어떤 분야의 자격증을 따고 싶다 그러면 그 자격증 관련 책을 읽으면 자격증을 딸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잘 살고 싶다 거기에 대한 책을 많이 읽어야지 가능성이 있게 되는 것이고요.

 

지금은 인문서로 인정받는 고전 중에서도 당대에는 일종의 자기계발서와 같은 것들이 많다는 생각도 듭니다.


맞아요. 경영학의 목표를 잘 생각해보면 되요. 어떻게 하면 회사가 이익을 얻고 성공하느냐를 연구하는데, 이것의 주체가 개인이 되면 사실 자기계발서에 있는 원칙으로 귀결되거든요.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자기계발서에서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는 다르지 않아요. 다만 세부적인 수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어느 정도 노력해야하나, 몇 개로 정해야 하나’와 같은 부분에서는 차이가 있어요. 저도 수백 권의 자기계발서를 읽고 실천하고 직접 쓰기도 했지만, 그건 책마다 다르더군요. 최선은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방법을 찾는 거라 생각해요. 저 역시 책 한권으로 인생이 바뀐 케이스는 아니거든요. 여러 권의 책을 통해 공통점을 도출해 내고 조금씩 수정해 나갔죠. 제가 하는 말이 꼭 정답은 아니에요. 자신에게 맞는 성공의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하나의 목소리 정도로서 의미만 가져 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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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기계발서를 읽고 벤츠를 샀다최성락 저 | 아템포
책 좀 읽는다는 사람들, 혹은 학자들 중에는 소위 성공학이나 처세 관련 책을 제대로 된 책으로 인정하지 않는 이들이 많다. 그들의 이러한 비판과 타박은 과연 정당할까? 이 책은 이러한 비판에 대해 나름의 답을 정리하고 있다. “인간과 세상을 이해하려면 인문서를, 꿈을 이루고 성공을 잡고 싶다면 자기계발서를 읽어라!” 이 책의 저자 최성락 교수는 자신이 직접 자기계발서를 수년 간 읽고 이후 변화된 자신의 삶을 토대로 자기계발서를 제대로 읽는 법에 대해 쓰고 있다. 경영학 박사이자 현직 대학 교수가 ‘자기계발서 예찬론’을 썼다는 측면에서 신선한 충격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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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태주 “페이스북 덕분에 작가 데뷔,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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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림태주

 

“림태주 시인의 글에는 밥 짓는 냄새, 된장 끓이는 냄새, 그리고 꽃내음이 난다. 그의 글에는 찬찬한 힘과 은밀한 즐거움이 들어 있다.” 조국 서울대 교수의『이 미친 그리움』추천평을 받아 들고, 림태주 시인은 퍽 감동했다. 페이스북으로 인연을 맺게 된 사람들의 소중한 리뷰가 마음을 울렸다. 출판사 대표로서 책을 홍보하기 위해 시작했던 트위터와 페이스북은 이제 ‘영업’의 통로가 아닌 ‘소통’의 공간이 됐다. 페이스북 친구와 팔로워까지 합하면 6천 여명, 지난해 만들어진 ‘림태주 시인 팬클럽’ 멤버는 60여 명이 참여하고 있다. 시집 하나 발표하지 않은 시인에게 “나는 당신의 팬”을 자처하고 나선 페친들은 『이 미친 그리움』출간을 기념해, 구입 인증샷을 저자에게 쏟아냈다. 페이스북 덕분에 책을 쓸 수 있었다고 말하는 림태주 저자. 이 무명의 시인은 어떻게 6천 명의 마음을 얻을 수 있었던 걸까?

 

1994년 계간 <한국문학>으로 등단한 림태주 시인은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출판사 여러 곳에서 편집자, 마케터, 임프린트 대표로 일해왔다. 2010년 출판사 ‘행성:B’를 설립하고 대중교양서를 주로 펴내고 있다. 림태주 시인은 그동안 수많은 저자들을 만나며 그들의 고충을 십분 이해했다고 생각했지만, 자신이 저자가 되어 보니 큰 오산이었음을 깨달았다. 발행인과 저자, 마케터와 저자 사이를 오가며 책을 만든 지금. 녹록지 않은 책바치의 삶을 살며, 어떻게 하면 철들지 않고 만년 소년으로 살지를 궁리하고 있다. 장발을 고수하고 친구들이 선물한 액세서리를 부담 없이 즐기는 중년, 림태주 시인을 만났다.

 

이 책은 온전히 나만의 것은 아니다. 야살스럽고 맹랑하고 허접한 내 글에 같이 웃고 울고, 책을 엮으라고 부추겨준 친구들이 이 책의 실소유권자들이다. 아프고 힘겨운 이런 시절에 나의 사사로운 잡문이 무슨 효용이 있을까 싶어 주자하는 마음이 컸다. 그러나 어눌하고 궁색한 대로 이 책 안에는 어떻게든 이 환멸의 세상을 건너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그리움이라는 연약한 감성으로 이 세상의 작은 일부분이나마 따스하게 변화시켜보려고 애쓴 순정한 사내의 고투가 들어 있다. 함께 아파하고 오열하고 분노한 당신이 있어서 이 책은 세상에 나올 용기를 냈다. (『이 미친 그리움』 318쪽)

 

만나고-림태주

 

콘텐츠를 줄 테니, 우정을 달라


2010년 출판사를 설립하면서 페이스북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책 홍보를 위한 수단으로 사용했는데, 이제는 작가 림태주의 특별한 공간이 됐다. 초기부터 이런 인기를 누리진 않았을 텐데, 어떻게 페친들의 마음을 얻게 되었나?


트위터에서 페이스북으로 넘어온 게 2010년이었다. 책을 좀 홍보하고 싶어서 글을 올렸는데 좀처럼 먹히지 않았다. 왜 그런가 곰곰이 생각해봤더니, 사람과 사람의 마음이 오가지 않는다면 책을 소개하는 것이 의미가 없겠더라. 비즈니스 마케팅도 그렇지 않나? 당장의 마케팅 욕망만 가지고 시작하니까 안 되는 거다. 그래서 내 이야기를 좀 풀어보자고 생각했다. 책을 만들면서 벌어지는 소소한 이야기, 저자를 만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날 그날 내가 느낀 것들, 혼자 라면을 먹은 일부터 신문사에 가서 마음이 안 좋았던 일 등을 솔직히 털어놓았다. 그랬더니, 페친들의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이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친구 신청이 온다(웃음).

 

이제 페이스북은 작가로서의 개인적인 공간이 된 건가?


그렇지 않다. 마케팅도 한다. 나는 이걸 ‘선한 영향력’이라고 부른다. 내가 페이스북을 하면서 기본적으로 하는 생각 중 하나가 “공짜는 없다”는 거다. 페이스북을 하는 사람들은 자기 포지션을 정해야 한다. 내 콘텐츠를 가지고 나를 드러낼 것인가, 아니면 좋은 구독자로 남을 것인가. 난 당신들에게 좋은 콘텐츠를 제공할 테니, 거기에 따른 대가를 제공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대가란, 우정 같은 거다. 댓글을 달아주고 서로 소통을 하고. 나도 칭찬을 먹어야지 글을 쓸 수 있지 않나? 또 내 출판사에서 책이 나오면 친구들에게 책을 사달라고도 한다. 그래야 내가 글을 쓸 수 있는 기반을 만들 수 있으니까.

 

페이스북에 매일 한 편의 글을 올리고 있다. 4년 넘게 매일 글을 올리는 것도 쉬운 일만은 아닐 텐데.

 

아마 책에 실린 분량의 3배 정도의 글이 페이스북에 있을 거다. 페이스북을 하지 않았더라면, 이 책도 없었을 것 같다.

 

프로필 내용을 보니, ‘바닷가우체국에서 공부했음’이라고 쓰여 있다. 어떤 의미인가?


섬진강 근처가 고향이고, 바닷가에서 대학을 나왔다.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뭍에 사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 같은 게 있다. 바다에서 시를 배웠기 때문에 상징적인 표현으로 ‘바닷가우체국’이라 이름 붙였다. 우체국은 결국 편지인데, 편지는 소통이고 내가 그에게 가는 그리움이다.

 

『이 미친 그리움』에 실린 사진들이 모두 페친들이 직접 찍어서 보내준 사진이라고 들었다.


책을 준비하면서 전문가의 사진보다 좀 투박하지만 살아있는 사진을 넣고 싶었다. 이런 생각을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페친들이 2천여 장의 사진을 보내줬다. 내가 반 정도를 추려서 출판사에게 전달했다. 디자이너가 정말 고생했을 거다. 책이 출간되고 나서는 인증샷 이벤트를 했는데, 그 사진들로 6분짜리 동영상을 만들었다.

 

팬클럽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가?


페친 두 명이 발의를 해서 만들어지게 됐다. 내가 조용필이 아니니까(웃음), 페친들이 직접 만들지는 않고 내가 “팬클럽 방을 만들 테니 하고 싶은 분들은 가입해달라”고 했다. 주부, 교사. 의사, 변호사 등 20대 후반부터 60대까지 정말 각계 각층에서 모였다. 처음 오프라인 모임을 했을 때, 70명 정도가 모였다. 작년에는 경남 산청으로 매화 구경을 다녀오기도 했다.

 

책에 실린 산문들은 모두 ‘그리움’을 관통한다. 제목을 ‘이 미친 그리움’이라고 지은 까닭이 궁금하다.


그리움은 낡은 감성이다. 요즘 젊은 친구들에게 그리움을 물으면 ‘그게 뭐야?’라고 한다. 그런데 나와 소통을 친밀하게 하는 40대들은 그리움이 강하다. 주부인 경우에는 아이들을 다 키워놓고 남편 뒷바라지에서 벗어나는 시기인데, 자아를 찾고 싶어하는 욕망이 강하다. 지적인 욕망, 교양에 대한 욕망이 갈급하다. 이 분들을 만나면서 느낀 점이 자기계발 욕구는 강하지만, 자기만족을 할 줄 모른다는 점이었다. 허전하고 외로우니까 보상심리로 무언가를 배우려고 하는데, 내가 논어를 공부하고 주역을 공부한다고 채워지는 것이 아니다. 페이스북을 보면 좋은 글귀들을 인용해 몇 구절을 올려 놓는데, 그게 자기 것은 아니지 않나? 마흔이 되면,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걸 너무 부끄럽게 생각한다. 언젠가 팬클럽 친구들에게 짧은 민중사전처럼, 자기소개서를 올려보자고 했다. 친구들이 글을 올리기 시작하는데, 눈물 겨운 내용도 많고 감격스런 이야기도 많았다.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자기 이야기를 쓰는 것에 부담을 갖는 사람들이 많다. 어떻게 접근하면 글을 쉽게 쓸 수 있을까?


나만 해도 그렇게 외향적인 성격이 아니다. 그런데 글을 보면 내 자랑을 많이 한다. 한국 사람들은 남이 잘난 척을 하면 아니꼽게 생각하고, 안티를 하고 그런다. 난 일부러 내 자랑을 많이 한다. 역겨우면 친구 끊으라고 한다(웃음).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누가 나를 사랑하겠나? 페이스북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먹방 사진만 올리는 사람들이 있고 또 스포츠, 시사 뉴스만 전하는 사람도 있다. 콘텐츠 내용이 서로 다를 뿐이다. 페이스북에 나를 고스란히 드러낼 필요는 없다. 사진은 감춰도 되고 캐릭터로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다. 나도 애매할 때는 꽃님, 하숙생 이런 캐릭터를 설정해놓고 글을 쓰곤 한다. 페이스북에서는 되도록 유쾌한 이야기를 많이 하려고 한다. 한국 사람들의 정서가 약간은 우울하고 비관적인 편이다. 그래서 일부러 좀 명랑하고 재밌는 쪽으로, 진지한 이야기를 하다가도 끝에는 반전을 주려고 한다.

 

책을 만드는 입장에서 직접 책을 쓴 작가가 됐다. 저자로서 책을 대한 느낌이 각별했을 것 같은데.


우선 도움이 많이 됐다. 내가 발행인, 만드는 사람의 입장일 때는 책을 쓰는 사람의 심정이나 애환을 잘 몰랐던 것 같다. 책 만드는 에디터들이 저자와 관계를 맺으며 어떤 점이 힘든지, 절실히 깨달았다. 또한 책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저자가 되지 못한 일종의 콤플렉스 같은 것들이 조금 사라졌다.

 

만나고-림태주

 

영혼을 말랑말랑하게 만들기 위해 책을 읽어야 한다


어릴 때부터 문학청년이었나? 글을 쓰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시골에서 농사 짓는 아버지 밑에서 살았는데 들판을 뛰어다니는 걸 무척 좋아했다. 산으로 들로, 자연스럽게 풀과 꽃, 나무들과 친구가 됐다. 그런 향토적인 정서가 몸 안으로 자연스레 들어온 것 같다. 집에 책이 많지도 않았다. 책을 많이 읽지는 못했는데 생각이 많았다. 상상, 공상 같은 걸 많이 했다. 어릴 때 일기장을 보면, 내가 그 날 했던 일보다 생각한 것들에 대해 적어 놓은 게 대부분이다. 생각하는 힘이 어릴 때 많이 길러진 것 같다. 골목길에 가다가 위험에 처한 여자를 구해주는 상황을 스스로 설정해놓고, 혼자 대사를 치면서 놀았던 기억이 많다(웃음). 그래서 대화체 문장에 강하다. 글을 제대로 배운 적은 없지만 어릴 때 학교 백일장에 나가면 상을 휩쓸었다.

 

군대에 있을 때는 연애편지 대필로 유명했다고 들었다. 림태주 시인이 대필한 연애편지를 받은 애인들은 하루가 멀게 면회를 왔다고.


(웃음). 열심히 써줬다. 그런데 정작 내 편지에는 답장을 받지 못했다. 내 편지를 받으면, 상대가 창피해서 못 쓰겠다고 그러더라. 자기 글 실력이 드러나니까. 그래서 일부러 대충 쓰기도 했다. 내가 편지를 보냈을 때 꼬박꼬박 답장을 보내온 여자가 내 아내가 됐다. 제대하고 복학해서 4년 연애하다 결혼했다.

 

페이스북에 올린 ‘아들, 딸에게 주는 충고’ 글이 많이 회자됐다. 실제 수신자였던 자녀들의 반응은 어땠나?


“좋은 말은 다 있네”라고 말하더라(웃음). 사실 가장 하기 어려운 게 충고다. 내가 아이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 중 하나가 “네 인생을 네 어법으로 살아라”는 말이다. 남의 것을 인용하려고 하지 말고 네가 만들라는 말이다. 학문을 하지 말고 공부를 하라는 말과도 상통한다. 학문은 남이 이미 정한 이론을 그대로 학습하는 것 아닌가? 창의력과는 관계가 없다. 전문가는 될 수 있지만 행복한 삶은 힘들다. 충고라는 건, 아빠의 인생으로 보는 어떤 프레임이다. 나는 네가 이렇게 살기를 원한다고 그 프레임을 아이들에게 주는데, 아이의 생각이 커지면 그 프레임 중에 자기가 받아들일 수 있는 것들이 있고 또 그렇지 않은 것들이 있다. 참고는 하되, 자신만의 정의로 살아가야 하는 게 아이들의 인생인 것 같다.

 

세상에서 가장 무섭지 않은 사람이 ‘책을 읽지 않는 어른’이라고 말했다.


40, 50대가 되면 더 이상 배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지금까지의 배움만 가지고도 살 수 있으니까. 그런데 자본주의 산업사회에서는 당신의 교양은 낡았으니 업그레이드 하라고 그러면서, 기계를 만들어 소위 지식을 업로드하게 한다. 이게 자기 인생에 도움이 될까? 그렇지 않다. 40, 50대가 되면 내 영혼을 말랑말랑하게 만들기 위해 책을 읽어야 한다. 책을 읽으면 자기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걸 받아들임으로 영혼이 말랑말랑해져 아름답게 늙어갈 수 있다. 가끔 나보다도 나이가 많은데, 30분쯤 이야기를 하다 보면 할 말이 없어지는 사람이 있다. 본인 사생활 말고는 이야깃거리가 없는 거다. 자기 콘텐츠가 없는 사람들은 깊게 대화를 나누기 어려워진다.

 

남자의 관능은 ‘자기 세계에 대한 몰입’에서 비롯한다고 말했다. 요즘, 일과 글쓰기를 제외하고 몰입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림 그리는 것과 사진 찍는 걸 좋아한다. 두 개는 꼭 하고 싶어서 강의가 있으면 열심히 쫓아다닌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끊임없이 하는 게 좋다. 바쁘다는 말을 가장 싫어하는데, 요즘 자꾸만 바쁨에 지고 있는 것 같다. 열심히 성실히 살되, 바쁘게 살면 안 된다. 둘은 다른 말이다. 바쁘게 살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게 된다. 투입할 여지를 주지 않고 차단해 버리니까. 부지런하고 지혜롭게 살아야겠지만, 바쁘게 살다가 잃어버린 것들을 다시 찾기 위해 돈을 쓰고 시간을 쓰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만나고-림태주

 

평범함 속에도 탁월함을 만날 수 있다


산문집을 펴냈지만 시인 아닌가? 시집을 내고 싶은 마음도 있을 텐데.


시집을 낼 만큼의 시는 가지고 있는데, 아직 뚜렷한 계획은 없다. 다만 바람이 있다면, 기존 시집들의 포맷을 벗어나서 판형도 크게 하고 사진도 넣고 기념될 만한 시집을 내고 싶다. 시집은 조금만 안 팔리면 금방 절판하는데, 어차피 내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보관하고 싶어서 시집을 사지 않겠나? 적게 찍더라도 좀 다르게, 특별하게 펴내고 싶다.

 

출판사 ‘행성:B’의 모토는 무엇인가?


대중들이 쉽게 볼 수 있는 인문교양서를 많이 펴내고 싶다. 어렵고 전문적인 책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유대인 이야기』, 『지식인의 서재』등이 베스트셀러가 됐는데, 독자들과 편하고 가깝게 소통하는 책을 만들고 싶다.

 

‘인생을 행복하게 사는 법’에 대해 강의를 한다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나?


자뻑이랑 남자의 관능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자기가 자신한테 반하려면 잘하는 게 있어야 한다. 내가 내세울 만한 게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만한 부분이 없으면 사랑 받기 힘들다. 평범한 것도 좋지만, 그 평범한 속에서 탁월한 게 하나라도 있어야 한다. 자기만의 고유한 어떤 특징이 있어야 하는데, 그걸 찾으려면 관심사의 분야를 좁히는 게 좋다.

 

가끔 글쓰기 강의를 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조건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는 게 좋지 않냐?”고 말한다. 소설, 자기계발서, 인문서까지, 많이 읽을수록 좋다고 하는데 나는 반대다. 다양한 분야를 조금씩 섭렵하는 것보다 나를 내세울 수 있는 관심사를 정해서 범위를 좁히는 게 좋다. 생물이면 생물, 사진이면 사진, 진화면 진화. 한 가지를 깊게 파면 단계가 설정된다. 어떤 세계로 깊게 들어가면 그 희열은 말로 못한다. 자기 스스로의 측정이 가능해지고 거기에서 오는 쾌감이 있다. 그것이 조금씩 쌓아질 때, 다른 사람들에게 할 말이 생긴다. 굉장히 재밌는 이야기를 할 수 있고, 의미심장한 이야기도 할 수 있다.

 

조국 교수, 류근 시인의 추천평이 인상 깊었다. 어떤 작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가장 좋은 건 글 잘 쓰는 사람으로 기억되면 좋겠고, 다음으로는 인간적인 작가, 사람냄새가 나는 작가로 기억되면 좋겠다. 사람들의 외로운 감정, 그리운 감정을 어루만져준 사람으로.

 

『이 미친 그리움』은 어떤 독자들이 읽으면 더욱 좋을까?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 자기 자신에 대해 지치고 힘든 사람들, 부모한테 미안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읽으면 좋겠다. 책을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읽어도 편하게 읽힐 수 있을 것 같다. 무료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천천히, 조금씩 읽어주면 바랄 게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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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미친 그리움림태주 저 | 예담
림태주 시인은 그리움은 쌓여서 터져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립기 때문에 흘러가는’ 것이고, 그리워하며 흘러가는 동안이 일생이라고 한다.이 책은 총 5부로 구성돼 있다. 1부 외롭고 그립고 아픈 짓은 ‘그리움’이 주제어다. 2부 남자로 산다는 것에는 ‘가족’이라는 복잡한 단어가 가진 단순한 의미를 전해준다. 3부 바람이 분다, 명랑하자의 주제는 ‘명랑’이다. 4부 책바치는 무엇으로 사는가는 생활인으로 살아가는 책바치와 무수히 많은 을에 대한 이야기다. 5부 지상 여행자의 우수에는 인생과 명상과 아포리즘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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