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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지연 “지극히 오락적인 프로그램, 도전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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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앵커 생활 덕분일까. 백지연은 말을 할 때 좀처럼 간투사를 쓰지 않는다. 적확한 단어 선택은 물론, 불필요한 감탄사나 짧은 침묵도 없다. 정답만 말할 것 같은 인상, 이성과 논리로만 이야기를 끌어갈 것 같지만, 『나 너』를 읽은 후 백지연을 대하면 편견이 깨질지 모른다. 『나 너』는 백지연의 글과 사진작가 Kenny I.K의 사진이 담긴 책이다. 그간 『크리티컬 매스』, 『뜨거운 침묵』, 『무엇이 되기 위해 살지 마라』등을 펴내며 저자로서도 사랑 받아온 백지연은 새로운 감성으로 독자의 마음을 두드린다.

 

백지연이 포토 에세이를 선택한 건, 짧은 글의 위력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장문의 글을 읽어도 언제나 기억에 남는 건 한두 줄의 글귀. 몇 백 쪽의 책을 읽어도 밑줄을 친 문장이 없다면, 그 책은 기억에 남지 않는다. 백지연은 “『나 너』는 독자들에게 미리 언더라인을 그려준 책”이라고 말했다. 한여름이 찾아오는 6월의 한 낮에 이태원에서 백지연을 만났다. 방송을 쉬고 있는 까닭에 늦잠을 즐긴다는 요즘, 매우 편안하고 여유로워 보였다. 명확하고 간결한 말투는 여전했지만 공기는 유독 따뜻하게 느껴졌다.

 

세상은 따뜻하기보다 차가울 때가 있고 우리 삶은 넉넉하기보다 팍팍할 때도 있지만 내가 서 있는 세상이 어떤 모습이든, 나의 상황이 어떻든 결국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는 내 안에, 그리고 ‘나’와 ‘너’ 사이에 놓여 있습니다. 살면서 겪는 ‘문제’로 총칭되는 모든 것들은 결국엔 나, 그리고 ‘나’와 ‘너’ 사이에 놓인 문제로 귀결되기 때문이죠. 이 책은 나를 들여다보고 나와 너를 이해해보기 위한 생각을 옮겨놓은 것입니다. 나와 너를 위해. (『나 너』 8~9쪽)

 

만나고-백지연

 

관계에 대한 사색이 책을 쓰게 만든다


포토 에세이 『나 너』는 전작 『크리티컬 매스』, 『뜨거운 침묵』과는 자못 다른 느낌의 책이에요.


간혹 짧은 글을 쓸 때가 있어요. 좋은 글귀가 생각나면 메모를 할 겸, 트위터에 올렸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냥 버리기는 아깝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기존에 썼던 글을 조금 다듬은 글도 있고, 새롭게 쓴 글도 넣었어요. 보통 아무리 좋은 책이라고 해도 기억에 남는 내용을 정리해보면 한 두 페이지로 정리될 때가 많잖아요. 많은 분량은 머릿속에서 지워 지죠. 짧은 글의 위력에 대해 생각해봤던 것 같아요. 언젠가는 짧은 글을 모은 책을 쓰고 싶었는데 이번에 기회가 됐죠.

 

책 속 사진을 찍은 Kenny I.K 작가님과는 어떤 인연인가요? 글과 어울리는 사진은 직접 골랐나요?


오래 전부터 알던 작가에요. 제가 사진을 찍을 능력은 되지 않고, 좋은 사진을 글과 함께 매치했어요. 평소 나무 사진을 좋아하는데, 이번 책에 나무 사진이 유독 많아요. 41쪽 사진, 110쪽 사진도 좋고, 150쪽 두 사람이 바닷속에서 마주 보고 있는 사진도 마음에 들었어요. 강렬한 햇빛 때문에 작은 여백이 생겼는데, 그 안에 글을 넣으니 더 분위기가 있더라고요. 기억에 남는 사진이에요.

 

제목이 독특해요.『나 너』는 무슨 의미인가요?


나의 이야기, 너의 이야기로 나눠 보았는데, 여기서 나와 너는 단수일 수도, 복수일 수도 있어요. 너는 yourself일 수도 있고요. 나와 또 다른 나, 너와 또 다른 너를 만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살면서 매번 느끼지만 우리는 관계 속에서 가장 힘들어하잖아요. 제목은 ‘나와 너’지만 결국은 우리에 대한 책이에요.

 

“말이 생방송이라면, 글은 녹화방송”이라고 쓴 글을 읽었어요. 방송인 백지연으로서 말할 때와 글을 쓸 때의 차이점이 있을까요?


저는 말하는 일을 직업으로 갖고 있지만, 책도 많이 쓴 편이에요. “말이 생방송이라면, 글은 녹화방송”이라고 표현한 건, 말이 글보다 어렵다는 뜻은 아니에요. 말의 중요성에 빗댄 말이에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말로 인해 상처를 받고 설화를 겪어요. 말 실수는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동시에 나에게도 타격이 커요. 글은 썼다가 지울 수도 있고, 다시 읽어볼 수도 있지만 말은 툭 하고 뱉어버리면 끝이잖아요. 글을 쓸 때 우리가 신중해지는 것처럼, 말할 때도 신중할 필요가 있어요.

 

말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평가할 때, 소위 입만 산 사람이 있고, 자신이 원하는 내용을 상대방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정확하게 전달하는 사람이 있잖아요. 후자를 두고 말을 잘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때, 이런 분들은 대개 글도 잘 써요. 그런데 글을 잘 쓰는 사람치고, 말을 잘하는 사람은 드문 것 같아요. 정말 말을 잘하는 사람은 자신이 생각한 걸 즉석에서 잘 정리해서 표현하는 사람인데, 그런 경우에는 글도 잘 쓸 수밖에 없죠. 모두들 말을 잘하고 싶어 하고, 글을 잘 쓰고 싶어 하는데 쉽지가 않잖아요. 결국, 끊임 없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아요.

 

시간에 대한 글이 유독 많이 보였어요. “긴 호흡으로 살아라”, “혼자 있는 시간을 많이 갖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가 눈에 띄었어요.


긴 호흡으로 인생을 맞으라는 건, 젊은 친구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은 내용이에요. 사람들이 우스갯소리로 하는 말이, 시간은 나이 곱하기 2의 속도로 간다고 말하잖아요. 10대는 너무 늦게 갔고, 20대는 적당히, 30대는 빠르게, 40대는 휙 지나간다고. 불안해 하는 세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었어요. 20대는 시간이 빨리 간다고 여겨지진 않지만, 너무 성급해도 너무 게을러도 안 되는 시기인 것 같아요. 인간에게는 기억의 편견이 있어서, 즐거웠던 시간은 짧게 느껴지고 힘들었던 시간은 길게 여겨지잖아요. 긴 호흡으로 인생을 바라보는 게, 삶의 지혜라고 생각해요.

 

좋은 인연에 대한 글도 인상 깊었습니다. 나이가 들면 새로운 관계를 맺는 일에 머뭇거려질 때가 많은 데요. 변화가 있나요?


인생을 겪으면 겪을수록 관계에 있어서는 진정성만큼 중요한 게 없어요. 오늘 오전에 지인과 통화를 했는데, 40년 친구였던 초등학교 동창에게 실망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40년간 알았던 친구의 모습이 다 허상이었다고, 지인이 큰 충격을 받았더라고요. 하소연을 듣고, 제가 이렇게 말해줬어요. “좋은 사람 한 명 만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요. 삶에 있어서 진실은 몇 가지 안 된다는 말이 있잖아요. 옛 성현들의 말을 들어보면 정말 고개를 끄덕일 때가 많아요. 사람 인생에서 정말 좋은 사람 하나 건지기가 쉽지 않아요. 관계가 제일 어렵죠. 좋은 사람, 한 둘만 건져도 굉장히 행복한 인생을 살 수 있어요. 하지만 그게 너무나 어렵기 때문에, 그런 관계 속에서 나온 글이에요. 이게 모두 상대가 나쁜 사람이기 때문인가? 생각해보면 그렇지 않거든요. 그 안에 나도 포함되어 있는 거죠. 『뜨거운 침묵』부터 관통하는 주제가 나를 먼저 돌아보고, 서로를 이해하고 나를 찾아가자는 거예요. 나 자신을 분석하지 못하면 타인도 이해할 수 없는 것 같아요.

 

만나고-백지연

 

편견을 버리는 것, 좋은 인터뷰어의 자세


1987년 MBC 공채 아나운서로 데뷔해, 지금까지 방송 펑크를 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들었습니다. 아침 잠이 유독 많은 편이라고 하셨는데, 프로의 근성인가요?


아침 잠도 많고 저녁 잠도 많아요(웃음). 아침에 늦게 일어나도 밤 11시, 12시가 되면 꼭 자요. 특별한 일정이 없을 때는 늦잠을 많이 자는 편이에요. 여름이 되면, 조금 일찍 일어나고요. 해가 떴을 때, 일어나는 그 느낌이 좋아서요. 최근에는 새벽예배를 가기 시작해서 2,3주 정도는 일찍 일어났네요. 하루를 값지게 살 수 있는 시간이에요. 나하고 가장 가까운 시간, 조용한 시간이라 좋아요. 지각을 하지 않은 건, 할 일이 있으면 반드시 하는 성격이라(웃음) 기어코 일어나죠.

 

지난해까지 방송된 <백지연의 피플 인사이드>가 큰 사랑을 받았어요. 수백 명의 인터뷰이를 만났는데, 주인공들의 자료를 철저히 공부한 일화 때문에 ‘인터뷰어 백지연’의 능력이 다시 한 번 재평가되는 기회가 되기도 했죠. 프로그램을 하면서, 꼭 지키려고 했던 것은 무엇이었나요?

 

50년 넘게 인터뷰어로 활약한 바바라 월터스가 최근에 은퇴를 하셨죠. 비록 은퇴를 했지만, 그 분은 90세가 넘어 인터뷰를 진행했더라도 진화하셨을 거예요. 70세에 인터뷰를 했던 모습과 80세에 인터뷰를 한 모습이 다른 것처럼, 사람은 죽을 때까지 진화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 역시 <백지연의 피플 인사이드>를 4년 넘게 하면서, 초창기와 후반기의 저는 진화했다고 봐요. 초반에는 제작진이 프로그램에 대한 기대가 컸기 때문에 잘 살려보자는 마음이 컸어요. 인터뷰어로서 인터뷰이의 자료를 철저히 공부하는 건, 정말 당연한 기본적인 자세에요. 제가 자료를 철저히 봤다는 것이 회자되는 게, 사실은 우스운 일이에요. 너무나 당연한 일이니까요. 그런데 많이들 그렇게 하지 않기 때문에 회자가 된 거죠. 자랑할 일도 못 돼요. 그 자체가 모순이죠.

 

종종 인터뷰이가 될 때도 많잖아요.


인터뷰어인 동시에 인터뷰이가 될 때도 많죠. 방송 생활을 하면서 아주 황당한 인터뷰어를 자주만났어요. 책을 내고 인터뷰를 하면, 책을 당연히 읽고 오는 게 예의잖아요. 그런데 책을 읽고 오는 사람이 10%가 안 돼요. 이제는 웬만하면 인터뷰어가 후배인데,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는 거죠. 저는 인터뷰어로 오래 일했기 때문에 상대의 입장을 잘 알아요. 인터뷰어가 대충 준비를 해오면, 입을 싹 닫게 돼요. ‘얘도 대충했는데, 나도 대충해야지’ 이렇게 되는 거죠. 저 사람이 얼마나 준비를 했는지는, 5분만 이야기하면 알 수 있어요.

 

인터뷰를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마음가짐이 있을 것 같아요.


편견을 갖지 말자는 거예요. 인간은 편견 덩어리에요. 편견이 있으면 상대방을 그대로 비쳐주지 못해요. 인터뷰어는 인터뷰이의 거울이거든요. 이 사람의 거울에 비쳐서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건데, 거울에 얼룩이 끼면 제대로 보여줄 수가 없죠. 때로는 인터뷰이가 주는 것 없이 예쁠 수도, 주는 거 없이 호감이 아닐 수 있어요. 하지만 내가 비호감이라고 비호감으로 인터뷰할 순 없는 일이죠.

 

편견을 버리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에요. 특히 대중에게 잘 알려진 사람에 대한 편견은 더욱 심하죠. 곧 방송생활 30년을 맞이하게 되는데, 백지연 씨에게도 대중들이 갖고 있는 편견이 많지 않나요?


많죠. 그런데 어느 정도 익숙해졌어요. 또 어느 정도는 그 편견이 사실일 거라고 생각하고요. 완벽하다는 이야기를 싫어하지만, 일할 때는 차갑게 몰두해요. 말투도 그렇고. 제가 들어도 ‘정말 내 말투는 차갑다’ 싶을 정도니까요. 하지만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의 제 모습과 일상생활에서의 제 모습은 달라요. 그렇다면 어느 한 가지는 가식이냐? 아니죠. 모두 제 모습이에요. 어떤 사람은 목소리는 차갑지만 모습은 유순한 사람이 있는데, 저는 목소리도 모습도 차가워 보이니까 더 그렇게 보이는 것 같아요.

 

<백지연의 피플 인사이드>에서 인상 깊었던 인터뷰이를 꼽는다면.


사실 프로그램에 기분 좋게 출연한 사람들이면 다 좋아요. 다만 20, 30대에게 꼭 보라고 말하고 싶은 주인공은 장한나와 윌 아이 엠이에요. 장한나 씨는 두세 번 인터뷰를 했는데, 할 때마다 성숙해 있더라고요. 젊은 사람들에게는 이 두 사람의 인터뷰는 꼭 찾아서라도 보라고 말해줘요.

 

만나고-백지연

 

다양한 경험을 많이 하는 사람이 결국 승자


현재 커뮤니케이션전략과 명성관리 컨설팅을 하고 있는데,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커뮤니케이션을 잘하는 사람들의 특징을 발견했을 것 같아요.


커뮤니케이션을 잘하는 건, 정말 어려워요. 한두 가지가 필요한 게 아니라, 다섯 가지의 팩트가 있다면 그것들이 모두 유기체적으로 조합이 되야 훌륭한 커뮤니케이션이 될 수 있어요. 하나만 이야기 하라고 한다면, 콘텐츠에요. 콘텐츠가 꽉 차 있는 사람은 결국 그 콘텐츠가 빠져 나와요. 말이 어눌하고 사투리를 쓰고 억양이 이상하고 불안증세가 있더라도, 콘텐츠가 강하면 누구도 이 사람을 이길 수 없어요. 그래서 전 항상 ‘콘텐츠 지상주의’라고 주장해요. 자기가 말하는 주제에 대해 콘텐츠가 꽉 차 있으면, 훌륭한 커뮤니케이터가 될 수밖에 없어요. 극명한 예를 들자면, 스티븐 호킹 박사는 말을 정말 못하잖아요. 하지만 그 사람의 책과 강연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집중하고 있어요. 그 사람의 주장이 옳고 그름을 떠나서,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콘텐츠의 힘이에요.

 

요즘 가장 재밌게 수다를 떨 수 있는 주제는 무엇인가요?


제가 전혀 모르던 걸 보게 하는 사람을 만날 때, 기분 좋아요. 이를 테면 저는 아침에 클래식 음악을 듣는데, 힙합만 듣는 사람을 만나 이야기를 들으면 재밌어요. 삶은 가능한 다양한 경험을 많이 해보고 떠나는 사람이 승자인 것 같아요.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것, 돈을 많이 버는 것에서 승자와 패자가 결정되는 게 아니라, 죄가 아니라면 가능한 많은 사람을 만나보고 경험한 사람이 승자라고 생각해요. 지구별 여행자라는 말도 있잖아요. 우리는 지구라는 별에 아주 짧게 있다 가는 여행자 아닐까요? 가능한 많은 것을 보고 싶어요. 새로운 것을 접하는 게 흥미로워요.

 

올해 또는 내년에 도전하고 싶은 새로운 일이 있다면.


내년부터는 그동안 안 해본 것만 하는 걸로 마음먹었어요. 오토바이를 탈 수도 있을 거고요. 그간 항상 앉아서 글을 썼다면, 여행을 하면서 책을 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여행하고 싶지 않은 나라 중 하나가 ‘인도’인데, 이런 편견을 버리기 위해 1년간 인도 여행을 떠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요즘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 섭외가 오면 거절한다고 들었습니다. 만약, 프로그램의 기획부터 제작, 진행을 모두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어떤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나요?


지극히 오락적인 프로그램을 해보고 싶어요(웃음). ‘백지연’ 하면 시사 교양인데, 당분간 시사, 토론, 뉴스는 안 하고 싶어요. 최근에도 몇 가지 섭외 요청이 왔는데, 다 시사더라고요. 감사했지만, “저 1년만 안 해볼게요”라고 했어요(웃음). 그 쪽에서도 막 웃더라고요. 예능 프로그램 한 번 해보고 싶어요.

 

토크쇼, 버라이어티 중에 어느 쪽에 관심이 가나요?


토크쇼, 버라이어티는 이제 그만 해야 하지 않나요? 방송사 PD들을 보면 안타까울 때가 있어요. 새로운 시도를 하긴 해야 하는데, 반응이 없을까 봐 걱정이고. 버라이어티를 버리기 힘들겠지만 새로운 시도를 했으면 좋겠어요. 요즘 유행하는 건 관찰 다큐, 유아 다큐잖아요. 이제 차기작을 준비해야 할 때가 아닐까요? 언제까지 저희가 남의 집만 들여다 보고 있겠어요.

 

<꽃보다 누나> 같은 프로그램에서 섭외가 온다면요?


남동생이 누군지에 따라서 결정을 하지 않을까요?(웃음)

 

만나고-백지연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은 무엇인가요?


아, 딱 한 가지를 꼽아야 하나요? 그렇다면 아들을 낳은 일이요.

 

엄마가 된 삶이 행복하다는 뜻인가요?


엄마가 된 거랑은 좀 다른 것 같아요. 엄마가 된 건,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건데, 아들을 낳은 건 그 아이 중심에서 본 거니까요. 아들을 낳은 일은 행복을 넘어서는 문제인 것 같아요.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어요. 행복을 주는 대상, 그 차원을 넘어서는 존재가 제겐 아들이에요. 아들이 저에게 어떤 존재로 다가왔다는 것, 그거 하나인 것 같아요. 아들은 저 자신을 재해석하게 만들어요.

 

아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말이 있나요? 엄마로서 갖는 바람, 소망이 있을 텐데요.

“하고 싶은 대로 해. 하고 싶은 대로 다 해” 이런 말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아이에게 뭘 바라고 그렇게 되길 바라는 부모들은 정말 용감하다고 생각해요.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게, 가장 중요하지 않나요? “네가 이렇게 됐으면 좋겠어” 이런 말은 안 해요. 전공도, 직업에도 관여하지 않을 거고요. 대학에 갈 때, 복수 추천은 하겠지만 최종 결정은 아이에게 맡길 거예요. 당연히 그래야 하는 거고요. 다만, 결혼에는 100% 관여할 거예요(웃음).

 

『나 너』를 읽게 될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생각을 많이 정리해서 쓴 책이라서 누구든 조용한 자리에서 일독하는 게 어렵지 않을 거예요. 많은 분들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 앞 부분으로 돌아와서 다시 읽게 된다고 하더라고요. 항상 옆에 두고 또 읽어보고, 덮어보고, 그럴 수 있는 책이 아닌가 싶어요. 책을 읽을 때, 밑줄을 치기 마련인데 이 책은 언더라인을 이미 쳐드린 책이니까요. 편하게 읽으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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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너 : 백지연 포토 에세이백지연 저/Kenny I.K 사진 | 알마
『크리티컬 매스』『‘무엇’이 되기 위해 살지 마라』 이후 2년 만에 출간하는 포토에세이『나, 너』에서 백지연은 그동안 이룬 놀라운 성취와 성공의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자신의 삶의 철학을 보여준다. 신인 사진작가 Kenny I. K.와 함께 작업한 이 책에서 백지연은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 우울한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20~30대 청년들에게, 그리고 큰 아픔을 겪으며 방황하는 청소년들에게 조심스럽게 다가선다. 평범한 한 인간의 모습으로, 삶과 부딪치며 얻은 깨달음을 진심을 담아 전하는 인생 선배의 모습으로 말을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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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호스트 유난희가 말하는 된장녀와 명품녀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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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유난희

 

‘명품 전문 쇼호스트’가 사랑하는 화장품, 니베아


쇼호스트 유난희와의 만남은 ‘편견’에서 시작해 ‘파격’으로 끝났다. 『여자가 사랑하는 명품』과의 첫 만남부터 그랬다. 명품 전문 쇼호스트가 들려주는 ‘여자와 명품의 이야기’라니, 책을 읽기도 전에 모든 내용을 알 것 같은 ‘오만한 편견’에 사로잡혔다. 그런데 역시나, 뚜껑을 열어보니 달랐다. 18세기부터 연필을 만들어오고 있다는 독일의 필기구 회사 ‘파버 카스텔’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사춘기시절 누구나 한 번쯤 써봤을 법한 화장품 ‘니베아’(상큼한 파란색 깡통에 담긴 그 니베아가 맞느냐고? 물론이다)에 보내는 찬사로 이어졌다.

 

뿐만 아니다. 어린 시절 동경의 대상이었던 마론 인형 ‘바비’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가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이름조차 들어본 적 없는 피렌체의 작은 가죽 장갑 가게 ‘마도바’와의 인연을 소개하기도 한다. 물론 그녀는 ‘위블로’와 ‘돔 페리뇽’과 ‘버버리’와 ‘샤넬’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그러나 이들 모두가 ‘유난희의 명품’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던 이유는 ‘가격’이 아닌 ‘가치’에 있었다. 이때 ‘가치’의 동의어는 ‘의미’다. 『여자가 사랑하는 명품』에서 저자는 “자신에게 가치 있고 의미 있는 물건이라면 그것이 곧 명품”이라고 말하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명품의 기준은 탄생 시기를 떠나 품질 좋고 보기에도 아름답고 사용하면 기분 좋은 물건이다. 가끔은 사용하기 아까울 때도 있다. 비싸지 않더라도 남에게 선뜻 줄 수 없고, 낡았지만 쉽게 버리지 못하는 귀중품 같다. 남들에게는 가치 없어 보여도 나에게는 특별한 스토리와 애틋한 추억이 있으면 그 어떤 것보다 소중한 명품이 된다. ( 『여자가 사랑하는 명품』 50~51쪽)

 

유난희 쇼호스트와 만난 지난 6월 25일, 편견은 또 한 번 부서졌다. TV에서 봤던 모습처럼 명품으로 치장한 차도녀를 만나게 될 거라 예상했지만, 눈앞의 그녀는 ‘그렇게 비싼 가방은 못 사요’라고 말하며 사람 좋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태국의 오가닉 스파 용품 브랜드 ‘판퓨리’의 비누를 처음 살 때 혼잣말로 비싸다고 중얼거렸다는 책 속의 일화가 떠올랐다. 바자회에서 ‘조나단 워드 런던’ 향초의 가격을 깎기 위해 흥정을 했다는 이야기도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소탈한 그녀인데, 물론 그랬을 것이다.

 

두 번의 ‘파격적인 인식의 전환’을 경험한 후 『여자가 사랑하는 명품』이 전하는 진짜 이야기를 듣게 됐다. 책 속에서 유난희는 다음과 같이 묻고 있는 것 같았다. ‘비싼 가격 때문에 가질 수 없을 때 열병을 앓는 당신, 그 물건에 얽힌 역사와 추억 때문에 너무 갖고 싶어서 몸부림친 적도 있나요?’라고. 유난희를 설레게 하는 것은 물건의 가격이 아니다. 때로 그것은 브랜드의 역사이고, 그것과 함께한 그녀 자신의 역사다. 특별한 순간 혹은 잊지 못하는 사람과 함께했던 기억 때문에 명품이 되는 물건도 있다. 그래서 유난희는 『여자가 사랑하는 명품』 안에서 각 브랜드들의 역사와 업적, 특징을 두루 소개하고 그 위로 자신의 이야기를 덧댄다. 그렇게 잘 짜여진 한 권의 책은 명품에 대한 견고한 선입견을 뒤흔든다.

 

디자이너 칼 라거펠트는 “당신이 구입할 수 없다고 해서 그런 게 존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대단히 못난 생각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렇다. 내가 가질 수 없다고 해서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사치품이라고 말하는 것은 오만한 질투다. ‘나에게만 명품인 물건’도 있고 ‘누구에게나 명품인 물건’도 있다. ‘쉽게 접근할 수 없는 고귀한 것’도 있고 ‘손쉽게 가질 수 있는 대중적인 것’도 있다. 나는 명품에 관한 다양한 의견을 모두 존중하고 싶다. ( 『여자가 사랑하는 명품』 6쪽)

 

만나고-유난희

 

억대 연봉 쇼호스트 “300만 원 넘는 가방은 사지 않아요”


『여자가 사랑하는 명품』에서 이야기하는 명품이란 무엇인가요?


아무리 싼 물건이라도 나의 이야기가 담겨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함부로 줄 수 없다면, 그건 명품이죠. 반대로 굉장히 비싼 가방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고 누가 달라고 했을 때 쉽게 줄 수 있다면, 나에게는 명품이 아닌 거죠. 그런 의미에서 명품은 가격과는 상관없는 것 같아요. 나의 스토리가 담겨있고, 품질도 좋고, 귀하게 여기면서 아끼고, 쉽게 버리거나 누구에게 줄 수 없는 물건이라면 명품이죠. 만약 굉장히 비싼 물건이라면 ‘언젠가는 꼭 갖고 싶다’는 욕심이 나는 물건이 명품이고요. 꼭 물건이 아니더라도 공연이나 그림 같은 예술작품, 또는 사람도 그렇죠.

 

‘명품은 비싼 물건’ 이라는 선입견이 강하다보니 사람들이 ‘명품 전문 쇼호스트’로서 유난희에게 가지는 편견도 있을 것 같습니다.


많은 분들이 저에 대해서 ‘사치스러울 거다, 도도할 거다, 건방질 거다, 깍쟁이일 거다’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그런데 직접 만나면 생각보다 털털하다고 놀라시더라고요. 저는 와인만 마실 것 같다고 하시는데 사실 와인보다는 맥주나 막걸리를 좋아해요(웃음). 다만 직업적으로 명품을 소개하다 보니까 그 수준에 맞춰서 말하고 행동하려고 노력하는 거죠. 그 모습이 도도해 보일 수도 있을 거예요(웃음). 그런데 저를 위한 게 아닌 물건을 위한 태도예요. 그 과정이 스스로 재미있기도 하고요.

 

『여자가 사랑하는 명품』에서 비싼 가격 때문에 구입을 망설였던 경험을 들려주셨습니다. 의외의 모습에 놀라기도 했습니다(웃음).


생각하시는 것보다 저는 많은 명품을 갖고 있지 않아요. 비싸서 못 사는 게 너무 많거든요. 에르메스 가방이나 위블로 시계도 없어요. 위블로는 정말 가지고 싶은 시계이지만, 너무 비싸서 저는 못 사요. 브레게도 마찬가지죠. 『여자가 사랑하는 명품』에 썼다시피 쁘띠 트리아농에 갔을 때 브레게와 마리 앙투아네트의 에피소드가 그려지니까 관심이 생겼던 거죠. 브레게는 제가 살 수 없는 시계예요. 그런데 알고는 있어야 돼요. 만약에 브레게 시계를 찬 사람이 나타나면 정말 좋은 시계를 착용하셨다고 한 마디 칭찬해 줄 수는 있어야 하니까요. 그래서 명품에 대해 공부하는 거예요. 그 물건을 사기 위해서가 아니고요. 저는 ‘300만 원 이상의 가방은 내 돈 주고 사지 않는다’라는 기준이 있어요. 500만 원짜리 가방을 보면 ‘저 값이면 1인당 10만원의 식사를 50명과 먹을 수 있는데, 5만 원 뷔페를 100번 갈 수 있는데’라는 생각이 들죠(웃음).

 

최초로 연봉 1억을 돌파한 쇼호스트로 유명하신데요. 너무 검소한 소비생활을 하시는 것 아닌가요?(웃음)


워낙 사람을 좋아해서 같이 맛있는 음식 먹고 즐기는 데에 많이 지출하는 편이에요. 제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 가장 비싼 건 리스로 쓰고 있는 자동차예요. 차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이 많아서 투자한 거라고 할 수 있죠. 그 외에는 화장품도 비싼 건 쓰지 않고, 옷도 브랜드 따져가며 사지 않아요. 지나가다가 예쁜 옷 발견하면 사는 거죠. 그래서 어떤 브랜드 옷을 좋아하냐고 물으면 대답을 하기가 어려워요. 동네 옷가게나 동대문에서도 사고, 백화점에 갔다가 마음에 드는 옷을 봐도 너무 비싸면 못 살 때가 있거든요. 오랫동안 명품을 소개하다보니까 제가 가진 모든 물건이 비싼 줄 아는 분들이 계세요. 그런데 그렇지 않아요. 명품을 많이 보고 시장조사를 하다 보니까 예쁜 걸 골라낼 줄 아는 눈이 있는 것뿐이죠.

 

『여자가 사랑하는 명품』의 제목만 보고 선입견을 갖는 독자들도 있을 텐데요. 그 부분이 걱정되지는 않으셨나요?

 

어떤 PD 분께서 이 책을 읽고 나서 전화를 주셨어요. ‘읽어보니 명품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가치에 대한 이야기이고, 좋은 물건을 이해하게 해주는 스토리와 생활에 대한 이야기더라’ 라고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책 제목 때문에 오해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대요. 사실 모든 것이 겉모습만 보고 판단하면 안 되는 거죠. 명품도 그래요. 비싸다고 다 좋은 건 아니고 싸다고 나쁜 것도 아니죠. 만약『여자가 사랑하는 명품』의 겉모습만 보고 뻔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서 지나친다면, 가치를 재발견하거나 인식을 전환시킬 수 있는 기회를 잃어버리는 거예요. 자신이 쓰고 있는 니베아가 좋은 물건인지도 모르고 평생 비싼 화장품만 쓰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죠. 그렇지만 선입견을 버리고 보여 지는 게 다가 아니라는 생각으로 책 속을 들여다보면, 지금까지 명품에 대해 가졌던 생각을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실 거예요.

 

만나고-유난희

 

명품 구매하기 전, 가격의 상한선을 정할 것


생애 첫 명품은 무엇이었나요?


저를 굉장히 설레게 하고 잠 못 자게 한 물건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여자가 사랑하는 명품』에서도 소개했는데, 어렸을 때 아버지가 사다주신 미키마우스 시계예요. 초등학교 4학년 때였을 거예요. 그때는 시계를 찬 아이들이 많지 않았죠. 시계 찬 친구를 보면 부잣집 애라는 생각을 하곤 했으니까요. 그런데 아버지가 미키마우스 시계를 사 오신 거예요. 미키마우스의 두 팔이 시침과 분침 역할을 하면서 움직였었는데, 너무 신기하고 좋았어요. 게다가 야광 시계였거든요. 오빠랑 이불을 뒤집어쓰고 시계를 가지고 놀던 일이 잊히지 않아요. 그때는 저한테 그 시계가 그렇게 귀한 물건이라는 걸 몰랐어요. 그래서 잘 보관하지 못하고 잃어버렸지만, 제 기억 속에 남아있는 가장 아깝고, 귀하고, 설레게 하고, 잠 못 들게 했던 물건은 바로 그 시계예요. 브랜드도 없는 시계였지만 ‘지금까지 간직했다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과 미련이 크게 남아요.

 

‘나를 설레게 하는 물건, 너무 갖고 싶고 아끼는 물건’이 곧 명품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생각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명품을 많이 접하고 쓰면서 생각이 바뀌었어요. 저도 예전에는 명품은 비싼 수입 브랜드 제품이라고만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방송과 책을 통해서 명품을 소개하고 공부를 하면서 점점 많은 브랜드를 접하게 됐어요. 그러면서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볼 때는 너무 좋은 물건인데 사람들은 명품이 아니라고 하는 것들이 있는 거예요. 그들은 백화점에서 판매하는 물건이어야 명품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왜 명품의 기준이 백화점이 되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너무 안타까웠어요. 정말 좋은 물건인데도 백화점에서 판매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장인들의 손끝에서 탄생한 물건임에도 불구하고 ‘명품을 소비하는 사람들은 모두 사치하는 정신 나간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그런 모습들이 안타까웠고, 결국은 좋은 물건에 대한 인식을 바꿔줘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명품을 바라보는 시각이 변해도 여전히 변치 않는, 명품의 고유한 특성은 무엇일까요?


여전히 명품은 제가 갖고 싶은 것이죠. 저는 동네 슈퍼마켓이나 외국 여행지에서 니베아의 파란 통을 보면 너무 설레고 기분이 좋아져요. 그 물건이 너무 좋거든요. 니베아 특유의 블루 컬러조차 너무 아름다워요. 좋은 물건이란 건 그런 것 같아요. 나를 설레게 하고 미치게 하고, 값을 떠나서 갖고 싶고,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거죠. 에르메스의 버킨 백 같은 경우는 누구나 꿈꾸는 좋은 명품이지만, 저에게는 아직까지 가지지 못한 값지고 귀한 물건이에요. 언젠가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위시 리스트에 올려놓은 물건이죠.

 

올해 구입하고 싶은 명품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없어요. 저는 아직까지 에르메스의 버킨 백을 써보지 못했는데요. 짝퉁은 구입해서 써봤어요. 진짜 버킨 백은 너무 비싸서 못 사니까요. 그런데 짝퉁을 써봐서 그런가 봐요. 사람들이 왜 버킨 백을 쓰는지 알 수 없더라고요. 그래서 나중에 진짜 에르메스의 버킨 백을 쓰면 기분이 어떨지 궁금하기는 해요. 예전에 명품을 공부하기 위해서 다른 브랜드 제품을 진짜와 가짜 모두 써본 적이 있어요. 물론 결론은 ‘그래도 진짜를 쓰자’는 거였죠. 하지만 천만 원짜리 가방을 써보고도 ‘그래도 진짜를 쓰자’라는 생각이 들지, 아직은 알 수 없어요. 100만원 미만의 가방이라면 그렇게 할 수 있겠지만요(웃음). 그래서 ‘사람들이 왜 버킨 백을 원하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한 번 써보고 싶은 생각은 있어요. 그렇다고 올해의 위시 리스트에 있지는 않고요. 언젠가 정말 돈을 많이 벌어서 천만 원짜리 가방을 쓸 수 있는 여유가 되면 한 번 경험해 보고 싶어요.

 

만나고-유난희

 

당신은 명품입니까?


명품을 구매하기 전에 스스로에게 질문해봐야 할 것이 있다면 조언해 주세요.

 

명품을 무조건 쫓아서 사다보면 카드 빚에 허덕일 수 있어요. 그래서 자신의 능력에서 살 수 있는 가격의 상한선을 정해둬야 해요. 가방의 경우에 제가 가지고 있는 기준은 200만 원대예요. 그 가격을 훨씬 넘어가는 가방이라면 ‘이걸 사야할까’ 다시 한 번 생각하죠. 옷도 마찬가지예요. 자기만의 기준을 만들어 놓고 그걸 초과하면 무조건 다시 생각해봐야죠. 만약 며칠 동안 생각해봤는데도 너무 갖고 싶다면 자신이 갚을 수 있는 능력 내에서, 무이자 10개월로 나누어서 내더라도 살 필요는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 전에 한 두 번은 반드시 재고해야죠.

 

명품을 구입하기 전에 확인하시는 부분은 어떤 건가요?


저는 기본적으로 트렌드를 쫓아가지 않아요. 남들이 산다고 해서 따라서 사지는 않는 거죠. 사람마다 어울리는 명품이 있거든요. 사실 저는 200만 원대가 넘어가는 가방은 사지 않다 보니까 명품브랜드 중에서는 살 수 있는 가방이 없어요(웃음). 그래서 그냥 홈쇼핑에서 판매하는 10만 원대 가방이나, 길가다 우연히 본 예쁜 가방을 사요. 가격을 떠나서 나한테 어울리는 걸 사는 게 중요하거든요. 예를 들어서 B 브랜드의 가방은 굉장히 심플한데요. 어떤 사람은 그 가방이 지적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저한테는 어울리지 않아요. 그래서 저는 사고 싶지 않아요. 핸드메이드 제품이고, 수백만 원을 호가하면서도 없어서 못 사는 가방이라 하더라도요. 각자 자신한테 어울리는 브랜드의 이미지가 있거든요. 나한테 어울리는 물건을 찾아내는 방법은 트렌드를 쫓지 말고, 사람들이 다 가지는 명품이라고 해서 사지 말고, 내가 정해놓은 가격 내에서 구입하는 거예요.

 

명품을 너무 갖고 싶지만 살 수 없는 사람이 있다면, 나중에 사라고 말해주실 건가요?


그렇죠. 요즘 제가 쇼호스트 외에 시작한 일이 있어요. ‘가치 스타일리스트’라는 건데요. 가치를 재발견하는 일이에요. 명품이기 때문에 가치를 부여하는 게 아니라, 좋은 물건이기 때문에 가치를 부여해서 사람들이 명품으로 인식하도록 노력하는 거죠. 요즘에는 10만 원짜리 가방이나 몇 만 원짜리 티셔츠도 예쁜 게 너무 많아요. 저는 그런 물건에 가치를 부여하고 있어요. 색감이 너무 예쁘고, 바느질도 너무 잘 되어 있고, 그에 비해 가격이 너무 저렴한 10만 원 하는 가방을 찾았다면, 굳이 200만 원짜리 가방이 필요하지 않은 거예요. 저도 실제로 그런 가방을 들고 다녀요. 300만 원 하는 가방보다 더 큰 가치를 부여한 30만 원짜리 가방이죠.

 

『여자가 사랑하는 명품』을 쓴 이유는 ‘이런 명품 브랜드를 사라’고 얘기하고 싶어서가 아니에요. 모르고 구입하는 것과 알고 구입하지 않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예를 들어서 제가 니베아를 선물한다면 누군가는 ‘뭐 이런 걸 선물로 주나, 나도 살 수 있는 건데’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 물건에 대해 알고 나면 ‘참 소중한 물건을 줬구나’ 라고 생각할 거예요. 책에도 나와 있다시피 고가의 피부 재생 크림보다 니베아가 주름 관리에 더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잖아요. 그걸 알고 있다면 가격을 떠나서 고마운 마음으로 선물을 받겠죠.

 

좋은 제품이 아무렇게나 취급당하는 건 무지 때문이에요. 제가 책을 통해서 브랜드에 대해 알리는 이유도 그것 때문이고요. 귀한 물건을 선물 받았을 때 감사를 표현할 수 있고, 귀한 물건을 가진 사람을 향해 칭찬을 해줄 수 있는 게 교양 아닐까요. 저는 샤넬 가방을 들었다고 교양이 있는 게 아니라 ‘좋은 가방을 들었네요’라고 칭찬해줄 수 있는 게 교양이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교양을 갖춘 사람이 명품이 되는 것 아닐까 생각하고요. 『여자가 사랑하는 명품』 안에 담아놓은 이야기도 다르지 않아요.

 

<오페라의 유령>을 명품으로 소개하기도 하셨습니다. 책 중에서 명품을 꼽으신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제인 오스틴의『오만과 편견』과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정호승 시인의 산문집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를 이야기하고 싶어요. 특히 저는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를 너무 좋아해요. 서점에 가서 볼 때마다 ‘이 책 너무 좋다’라고 하면서 사와요. 이미 읽었다는 걸 잊어버린 거죠(웃음). 그래서 집에 세 권이나 있어요. 저는 『내 인생에 힘이 되어준 한마디』를 보면서 마음의 위안을 얻어요. 그래서 주변 사람들한테 많이 선물하기도 했죠.

 

시집 『외로우니까 사람이다』도 좋아하고요. 『위대한 개츠비』는 피츠제럴드 본인의 이야기라는 말도 있잖아요. 저도 읽으면서 사실적인 느낌을 받았는데 그래서 더 감동적이었어요. 순애보적인 개츠비를 보면서 ‘이런 남자가 명품 같은 남자겠다’는 생각이 들었죠(웃음). 『오만과 편견』을 쓴 제인 오스틴은 당시로서는 시대를 앞서갔던 여성인데, 외롭게 살다가 일찍 세상을 떠났죠. 저는 그녀가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서 인간 내면을 볼 수 있는 소설을 썼다는 것이 대단하게 생각돼요. 『오만과 편견』을 보면 결국 편견을 가진 사람이 오만하잖아요. 그래서 ‘편견을 가지면 안 되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많은 감동을 받았던 작품이에요.

 

저자님이 생각하시는 ‘명품 같은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합니다.


물건의 가치와 스토리를 알고 쓰는 사람이 명품이 된다고 생각해요. 비싸니까, 유명하니까, 누가 가지고 있으니까, 그런 이유로 소유하면 된장녀죠. 하지만 그 물건을 써야 할 이유가 있고, 자신에게 가치와 이야기가 있는 물건을 쓴다면 명품 같은 사람이에요. 명품은 만들어진 순간에 명품이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 물건을 명품으로 대하는 사람의 손에 갔을 때 명품으로 완성되는 거죠. 샤넬 백이 누구에게나 명품 가방이 되는 건 아니에요. 돈이 아주 많은 사람이 수많은 가방들 중 하나로 샤넬 가방을 사서 아무렇게나 다룬다면, 명품을 산 게 아니라 단지 비싼 가방을 산 거예요. 반대로 20~30만원을 주고 가방을 샀어도 너무 좋아하고 아낀다면, 그 가방은 주인을 만나서 명품 대우를 받는 거죠. 진정한 명품은 명품 같은 사람을 만나서 완성돼요. 그래서 사람이 먼저 명품이 되어야 하죠.

 

『여자가 사랑하는 명품』이 저자님께 가지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또 독자들에게는 어떤 의미로 남기를 바라는지 말씀해 주세요.


쇼호스트 20년차에 쓴 책인데요. 그래서인지 첫 번째 두 번째 책보다는 글 쓰는 실력이나 지식이 나아진 것 같아요(웃음). 그리고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잖아요. 예전보다 생각의 폭이 넓어진 만큼 풍부한 브랜드들을 엄선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명품 골라주는 여자』를 쓸 때만 해도 ‘마도바’나 ‘브레게’에 대해 알지 못했어요.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여자가 사랑하는 명품』에서 넓어진 경험의 폭을 정리할 수 있었어요.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책은 ‘명품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어요. 독자들이 가지고 있었던 브랜드나 명품에 대한 생각을 바꿀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이 책을 읽으신 후에 자기만의 명품 리스트를 만들어보셨으면 해요. 꼭 비싸거나 유명한 물건이 아니더라도 리스트에 적을 수 있는 건 많을 거예요. 스토리가 있고 버리지 못하는 귀한 것이라면 모두 좋은 브랜드니까요. 그렇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명품은 무엇이 있는지’ ‘앞으로 갖고 싶은 명품은 무엇인지’ 리스트를 만들어보는 자체가, 물건을 다른 각도에서 새롭게 보는 발상의 전환이에요.

 

그러면 내가 명품이 되죠. 편견도 오만도 없어지면서 내적으로 풍성해지니까요. 그리고 독자들이 책 속에서 아직 써보지 않은 물건을 간접 경험하면서 지식이 풍부해졌으면 좋겠어요.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편견은 더 없어질 테니까요. 그렇게 『여자가 사랑하는 명품』이 좋은 물건에 대한 독자들의 인식을 전환시킬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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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사랑하는 명품유난희 저 | 넥서스BOOKS
『여자가 사랑하는 명품』은 이처럼 여자들에게 손길을 내미는 작은 사치의 즐거움을 담은 책이다. 작은 사치의 즐거움은 꼭 제품을 소유하지 않아도 향유할 수 있다. 프랑스 최고 상류층들에게 사랑받았고, 마리 앙뚜아네트, 나폴레옹, 빅토리아 여왕 등 역사적인 인물들이 이용해 명예를 높인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시계에 대한 스토리는 읽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경험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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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홍렬 “환갑잔치, 왜 하면 안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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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이홍렬

 

무려 416페이지. 개그맨 이홍렬의 신간 『60초』를 읽고 나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참 많았구나” 싶었다. 하기야 어떤 기자는 이홍렬 인터뷰 기사에 “이홍렬의 입을 틀어막고 싶었다”고 적었다. 이유인즉, 말이 너무 많아서. 이홍렬은 인터뷰에 앞서 “저한테는 생각 잘하시고, 질문하셔야 해요”라고 겁을 줬다. 웬만하면 말이 끊기지 않는 성격에 장시간의 인터뷰가 될 수 있다고, 필자에게 부담을 안겼다. 요리조리 질문을 한 결과 다행히 적절한 시간에 인터뷰를 마쳤다.

 

“요즘은 워드로 글을 쓰지만, 옛날에는 다 원고지를 썼잖아요. 제가 썼던 책의 원본을 다 가지고 있어요. 누가 ‘정말 네가 썼어?’라고 물어보면 증거를 보여주려고요.” 많은 연예인들이 대필작가를 두고 책을 내는 까닭에 이홍렬은 간간히 오해를 받았다고 한다. 이번 책 역시, 홀로 책상에 앉아 글을 썼는데 무척 매끄러운 문장 탓인지(?) 몇몇 사람이 착각을 했다.

 

“그래도 조금은 출판사에서 다듬어주실 줄 알았어요. 조금은 기대를 하기도 했고. 그런데 이홍렬 씨 특유의 톤을 살리고 싶다면서, 정말 그대로 내시더라고요.” 이홍렬은 5년 전부터 에세이를 쓸 계획을 가지고 있었고, 출판사에게 먼저 『60초』 출간을 제안했다. 제목부터 프로필 내용까지, 꼼꼼히 직접 챙긴 이홍렬. 책을 읽다 보면 이홍렬이 60년을 얼마나 충실히 살아왔는지 새삼 놀라게 된다.

 

이제 한 번쯤, 살아온 나날들을 되돌아보고 싶다. ‘돌아본다.’는 말은 마무리가 아니라 다시 한 번 멋지게 한발 내디뎌 보자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제 새로운 그 길을 한 시대를 같이 살아오면서 내가 정말 좋아서, 또는 옆에서 좋아하니까 덩달아 나를 지지해 주신 분들과 함께 가고 싶다. (중략) 100세 시대에 나이 60세는 어디 가서 명함도 내밀 수 없다. 아니, 우리야말로 명함을 내놓고 싶지 않아서, 뭔가 새로운 시작을 하자고 외치는 것이다. 그런데 아직도 청춘인데, 이 사회는 자꾸 명함을 내밀라고 한다. 이제 또다시 시작하는 이 나이에 함께하는 여정을 멋지게 엮어 나가자고 손 내밀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을 내가 먼저 실천하면서 큰 희망을 품고 함께 가자고 손잡고 싶다. (『60초』 4~5쪽)

 

만나고-이홍렬

 

60세, 새로운 시작이 될 수 있는 나이


지난주에 북 콘서트를 열었습니다. 출판기념회와 환갑잔치를 함께한 자리였는데, 소감이 남달랐을 것 같습니다.

 

5년 전인가요? 전유성 선배의 환갑잔치를 갔는데, 자그마한 쇼크를 받았어요. 요즘 환갑잔치를 누가 합니까? 칠순도 잘 안 하는데요. 그래서 웬 환갑잔치? 라고 생각하고 갔는데, 다른 잔치와는 다르더라고요. 원래 연예인들은 이런 잔치에 가면 돈 내고 노래를 부르는 행사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전유성 선배는 일체 연예인들을 무대에 올라가지 못하게 하고, 그저 즐길 수 있게 공연을 보여줬어요. ‘아휴 저 무대에 올라가야 하는데’가 아니라, 정말 편안함을 가지고 잔치를 즐겼죠. 그 때 나도 5년 후에 정말 의미 있는 환갑잔치를 열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정말 재밌는 책을 내서 오신 손님들에게 나눠드리고 싶었어요.

 

의미 있는 책을 선물할 수 있어 더욱 값진 시간이었겠네요.


5년 전에는 북 콘서트 같은 게 없었잖아요. 출판사에서 ‘북 콘서트’를 제안해줬을 때, 느낌이 참 좋게 다가왔어요. 제가 북 콘서트에서 끝인사로 한 말이 “60세가 돼서 이 자리에 서보니까 누구에게 감사해야 하는지 또렷하게 알 것 같다”는 말이었어요. 70세 생일잔치는 아무래도 손님들이 더 적을 거 아니에요. 80세가 되면 누가 왔는지 기억도 제대로 못할 거고. 80대가 300만 시대라고 하지만 그 때까지 산다는 보장도 없고, 내가 정말 초대하고 싶었던 분들이 세상을 이미 떠났을 수도 있고요. 그런 차원에서 보면 60대가 가장 좋은 것 같아요.

 

책 제목『60초』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는데요. 우선 이홍렬 씨가 60세가 됐다는 걸 대부분의 독자들이 눈치채지 않았을까요?


처음에 출판사에서 제목을 열 개 정도 뽑았더라고요. 여러 차례 고민했는데, ‘60’이란 숫자를 굳이 표현하고 싶진 않았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니 60이라는 숫자에 ‘시작’이라는 의미가 들어가면 좋을 것 같더라고요. ‘60초’라는 말에서 분초도 있지만 시작 초(初)의 의미도 있잖아요. 60초가 한 바퀴 돌아가면 새로운 시간이 시작되기도 하고. 그런 의미에서 60세라는 나이가 시작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나이든 게 자랑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굳이 감출 것도 없는 것 같아요. 사실 자기 나이 이야기를 한다는 건, 굉장히 조심스러운 일이에요. 나이 값을 해야 하니까요. 어쩌면 스스로에게 책임감을 부여하는 일이기도 해요.

 

『60초』의 출판계약금을 이홍렬 씨가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는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 기부하셨죠? 계약금에 얽힌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고 들었는데요.


(웃음). 5년 전부터 책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더라고요. 일부러라도부지런한 상황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죠. 작년 이 맘 때쯤인가, 이제 정말 1년밖에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까 급해졌어요. 하지 않으면 안 될 틀을 만들어야 할 타이밍이었죠. 그래서 출판사를 직접 찾았어요. 지인한테 마음의숲 출판사를 소개받고 대표님을 만났는데, 제가 당시에는 방송활동을 하지 않고 있었는데도 흔쾌히 계약을 하자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계약서를  써야 내가 부담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고 했죠. 그런데 계약금이 생각보다 크지 않더라고요. 아, 이런 말씀 드리기 좀 그렇지만, “이 금액으로는 내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고 말씀 드렸어요. 대표님이 “그럼 얼마를 원하시냐”고 물으셔서, 쭈뼛쭈뼛하면서 액수를 이야기했어요. 아 그런데, 깎아달라고도 협상이 들어오는 게 아니라 선뜻 승낙하시더라고요. 마음의숲이라는 곳이 정말 고마운 면에서 마음의 부담을 많이 주는 곳이구나, 생각했죠.

 

계약금을 받고 나니, 책이 잘 써지던가요?


일부러 계약금을 현금으로 찾아서 돈이 보이게끔 비닐에 넣어서, 책상 위에 올려놓았어요. 게을러지면 돈을 보면서 마음을 다잡고 컴퓨터 앞에 앉았죠. 에피소드는 늘 저장해놓았기 때문에 쓰는데 어렵지는 않았어요. 내용이 많아서 추리는 게 오래 걸렸죠.

 

처음부터 후원을 생각하고 높은 계약금을 부르신 건가요?(웃음)


그렇진 않고요. 읽으셔서 아시겠지만, 『60초』뒷부분에 초록우산어린이재단 이야기가 많잖아요. 벌써 28년 인연이 됐는데, 글을 쓰다 보니 이 돈이 내 돈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내가 어린이재단 덕분에 마음의 병이 들지 않고 좋은 이야기를 쓸 수 있는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북 콘서트 때, 초록우산어린이재단에 후원금으로 드리기로 했죠. 출판사 대표님이 조금 더 생각해보시라고 하더라고요(웃음). 이걸 후원하면, 책이 1만 권은 팔려야 이홍렬 씨에게 돈이 갈 수 있다고. 그런데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북 콘서트를 끝내고 오신 분들 앞에서 큰절을 했어요.

 

만나고-이홍렬

 

안 해본 일에는 환장하는 개그맨


책을 쓰고 좋은 일들이 줄줄이 생기셨죠? 최근에 MBC <코미디의 길>로 코미디 프로그램에 복귀했는데, 후배 개그맨들과의 촬영은 어렵지 않나요?


3월쯤인가, 책 작업이 거의 마무리될 때였는데 예전에 <귀곡산장>을 같이 했던 이응주 PD한테 연락이 왔어요. <개그콘서트>처럼 후배들하고 꽁트를 하라고 하면, 정중히 거절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방송국에 갔죠. 그런데 이게 ‘페이크 다큐’라는 거예요. 이게 뭐지? 제가 안 해본 일에 대해서는 환장하는 사람이거든요(웃음). 내가 아직도 안 해본 게 있었구나, 싶어서 바로 수락했어요.

 

방송에서 후배 개그맨들에게 눈칫밥을 먹는 선배 캐릭터잖아요. 아무리 페이크 다큐라도 찍다 보면 화 날 때도 있을 것 같은데요.


맞아요. 이게 연기인데도 기분이 나빠요. 설정인데도 찍다 보면 혼동이 와요. 얘네들이 나를 진짜 무시하는 거 아냐? 싶기도 하고(웃음). 만약 이게 진짜였으면 진작에 문을 박차고 나갔을 거예요. 아직 착각하는 시청자 분들도 있는 것 같아요. 이게 대본인가? 진짜인가? 혼동하시더라고요. 즐겁게 촬영하고 있어요.

 

환갑의 나이에 후배들과 함께 작업할 수 있는 것도 큰 행운 아닌가요?


감사하죠. 이런 놀이터가 마련된 것 자체가 감사해요. 지금은 뭐든지 감사할 나이잖아요. 신앙생활을 하면서 오래 전부터 감사하는 것이 습관이 되긴 했지만, 살아갈수록 점점 감사할 것 투성이에요. <코미디의 길>을 불러준 PD가 <귀곡산장>을 같이 했던 이응주 PD인데, 22년 만에 만난 거예요. 저를 정말 잘 아는 제작진이라서 더 감사했죠.

 

이응주 PD의 추천평을 보면, 이홍렬 씨가 엄청난 완벽주의자라 사람들을 힘들게 하곤 했다고 써있던 데요.


맞아요. 젊었을 때는 지금보다 더 했죠. 깐깐하고 완벽주의였고. 이응주 PD가 책에 저를 정말 신랄하게 썼잖아요. 저를 잘 모르면 이렇게 적나라하게 말을 못하죠(웃음). 나이가 들어도 성격은 정말 변하지 않아요. 조금 다듬어지긴 하지만 본성이나 기질 같은 건, 표범의 얼룩 무늬 같아서 바뀌지가 않죠. 다만 내 성격 때문에 남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되니까, 그건 조심해야죠. 살다 보면 내 장점, 내 단점을 제대로 파악하는 눈이 생기잖아요. 단점이 아무리 많아도 나 자신을 내가 먼저 사랑하지 않으면, 행복하게 살 수가 없어요. 받아들여야죠. 가끔은 우리가 어쩌면, 너무 불성실하게 살고 있어서 사고가 나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어요. 배가 가라앉고 다리가 무너지는 일들이 너무 얼렁뚱땅 일을 해버리니까 일어나는 일이잖아요. 완벽주의가 스스로를 힘들게도 하지만, 꼭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죠.

 

후배들에게도 무서운 선배였나요?


무서웠죠. 야단도 많이 치고. 정도 이상으로 많이 쳤던 것 같아요. 개그맨들은 무대 위에서 가벼운 행동을 하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실생활에서는 더욱 바른 모습을 보여줘야 해요. 유머는 변하지 않되, 생활에서는 진정성 있는 모습을 보여줘야 가치가 올라가죠. 그런데 간혹 이 두 가지를 구별하지 못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좀 안타깝죠.

 

주례 이야기도 인상 깊었습니다. 매번 거절을 하다가 수락하기 시작했는데, 부부에게 한 가지 약속을 받는다고요. 첫 주례는 개그맨 한민관 씨의 결혼식이었죠?


아직 주례할 때는 아닌 것 같아서 계속 거절을 했어요. 그러다 간곡히 요청하는 후배가 있어서 수락을 했는데,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의 어린이 후원자가 되어주는 조건이었어요. 다들 흔쾌히 좋아하더라고요. 이건, 저 스스로를 칭찬해주고 싶은 일 중 하나에요. 이 아이디어를 접목시키지 못했을 때는 무조건 꺼렸는데 이제 무조건 오케이에요. 9월에는 친구 아들 주례를 해주기로 했어요.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은 무엇인가요?


두 가지에요. 첫째는 아내와 결혼한 것. 모든 아내들이 “나 아니면 당신하고 살아줄 사람 없어”라고 말하잖아요. 꼼꼼하고 유별난 제 성격 때문에 아내가 고생이 많았죠. 아내가 이 책의 인세 30%는 자기 몫이래요. 자기를 소재로 한 내용이 많다고(웃음). 두 번째는 아무래도 초록우산어린이재단과 28년을 함께 걸어온 일이고요. 만약 어린이재단 활동을 하지 않았으면, 내가 개그맨 생활 36년을 해놓고도 뭐가 남았나? 고민을 많이 했을 것 같아요. 나눔과 봉사의 기쁨을 일찌감치 깨달은 게 저에겐 행운이고 감사죠.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을 통해 기부특강도 80차례나 하셨죠. 기부자들에게 무엇을 강조하나요?


나눔과 봉사는 언제 해도 늦지 않다는 걸, 꼭 말씀 드려요. 가끔 저도 사람들을 만나면 슬쩍 기부를 권하고 싶을 때가 있거든요. 그런데 부담이 안 가게 권유를 해야지, 무조건 후원하라고 그러면 반감이 생겨요. 사실 후원을 시작하면 죽을 때까지 해야 하거든요. 후원이 끊기면 한 아이는 또 다른 후원자를 찾아야 하는데,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마음이 열릴 때까지 기다려야 해요.

 

만나고-이홍렬

 

슬럼프 겪을 때, 잠시 한국을 떠나보는 것도


2000년대 초에 일본, 미국 유학생활을 떠난 것도 지금의 이홍렬이 있기까지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 같습니다. 당시에는 개그맨의 유학이 이색적으로 보였는데요. 한국에 복귀하자마자 <귀곡산장>으로 인기를 얻었어요.


아이들 교육 때문에 간 것도 있었지만, 좀 넓은 세계를 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어학공부, 휴식도 필요했고요. 확실히 여행과 조금이라도 살다 오는 건 다른 것 같아요. 여행은 겉을 둘러보고 원하는 정보를 얻기 위해 간다면, 사는 건 새로운 땅에서 먹고 배설하는 일이란 말이에요. 전기세, 수도세도 다 내야 하고. 이런 생활을 해보는 건, 정말 달라요. 국어책에서 배웠던 나라사랑을 절절히 깨달아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죠. 일본에 있을 때, 빼곡히 일본 사람들로 가득한 지하철에서 최인호의『잃어버린 왕국』을 읽었어요. 얼마나 박진감이 넘치던지. 한국에서 읽었다면 이런 기분을 못 느꼈겠죠.

 

연예인들은 방송이 뜸해지면 슬럼프를 겪고 힘들어하잖아요. 이럴 때, 잠깐이라도 새로운 세계를 접하는 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상황이 많이 어렵지만 않다면 해외에 나가서 공부를 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꼭 석사, 박사를 따고 오는 게 공부가 아니잖아요. 새로운 땅에 가면 내가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것을 볼 수 있으니까요. 롱런하고 싶다면 이런 침체기를 휴식기로 바꾸는 지혜도 필요해요.

 

첫째 아들이 “아빠는 내가 제일 닮고 싶은 사람”이라고 문자를 보내준 적이 있다고요. 이건, 진심이 아니면 할 수 없는 말인데. 아빠로서 이홍렬은 어떤 사람인가요?


(웃음). 뭐 워낙 완벽주의였으니까 잔소리도 많이 했는데, 이제는 아이들이 다 컸으니까요. 그렇게 간섭하지 않아요. 다만 “우리 얘기를 많이 하자”고 해요. 요즘 가족들을 같이 밥을 먹고 있어도 말을 안 하잖아요. 연인들은 옆에 앉아 있으면서도 계속 스마트폰만 들여다보고 있고. 식구들끼리 카톡을 자주 해요. 밴드도 하고. “내가 글 10개를 올릴 때, 1개만 올리라”고 말해요(웃음). 스티커도 좀 붙여주고. 마주보고 이야기를 하면 더없이 좋지만, 요즘 애들이 얼마나 바빠요. 그나마 SNS라도 없으면 속을 알 수가 없죠.

 

결혼기념일이 되면, 동네 사진관에서 아내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는다는 이야기도 하셨어요. 벌써 꽤 많은 사진이 쌓였겠습니다.


27장 찍었죠(웃음). 가끔 좋은 기회가 생기면 스튜디오에서도 찍고, 기본적으로는 동네 사진관에서 찍죠. 최근 사진만 액자에 걸어놓았고 다른 사진들은 컴퓨터,, 휴대폰에 넣어놓고 가끔 보고 그래요. 괜찮은 추억이 되는 것 같아요.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도 알 수 있게 되고요.

 

『60초』를 어떤 독자들에게 선물하고 싶나요?


10대, 20대들이 봐도 좋을 것 같고요. 특히 중년을 맞이한 사람들, 맞이할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아요. 요즘은 40대가 되면 우울해지기 시작하잖아요. 명예퇴직을 해야 하는 나이가 되기도 했고. 50대가 넘으면 몸의 증상들이 나타나면서 의기소침해지기 쉽고요. 제 나이 또래인 독자 분들에게, 지금이 다시 시작이 될 수 있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어요. 제가 실천하면서 같이 권유하고 싶고, 용기를 주고 싶어요. 그런 분들이 읽으시면 분명 공감하실 내용이 있을 거라 생각해요.

 

개그맨 이홍렬의 후반전은 어떻게 계획하고 있나요?


제가 펌프가 되어서, 다른 사람들을 끌어주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지금 TV, 라디오를 하나씩 하고 있는데요. 프로그램은 언젠가 막이 내리겠지만, 그렇다고 제가 서 있을 자리가 없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restart’라는 단어를 좋아하거든요. 여기서 ‘re’가 ‘Lee’가 될 수도 있어요. 이홍렬의 시작, 이 책의 의미이기도 한데요. 독자 여러분들께서도 늘 시작이 될 수 있다는 마음을 가지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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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초이홍렬 저 | 마음의숲
『60초』는 2014년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에 게재된 코미디언들의 이름을 열거하며 시작된다. 유명 스포츠인이나 정치인들의 이름을 많이 아는 것도 좋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웃음을 주려는 개그맨들의 이름이나 유행어를 많이 알수록 많이 웃게 되듯이 이홍렬은 살아가면서 가능하면 웃음이 많은 사람을 만나고, 미소 짓게 만드는 일을 찾아 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는 메모해서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해 보고, 어떤 상황에서도 유머 감각을 발휘하는 연습을 하라고 한다. 자기 웃음은 자기가 찾는 것, 그것이 결국 스스로 즐거운 인생을 만드는 법이라고 말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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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대철 “음원시장 변해야 생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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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가들이 프레임 전쟁에서 지니까요. 다른 사람들이 설정한 프레임 안에서 살려고 하니까요. 그걸 바꾸려는 생각을 하기 어려웠죠. 그걸 지금부터 해야죠.”

 

시나위의 신대철이 추진하는 '바른음원협동조합'이 다가오는 16일 정식으로 출범한다. 지난 4월부터 바른음원협동조합 추진위원회를 발족해 활동을 시작했고 같은 달 30일, '음원 창작자 권리, 어떻게 지킬까'라는 의제로 국회토론회를 열며 지속적으로 논의를 이끌어냈다. 각고의 노력이 이제 조금씩 빛을 보려한다.

 

기억을 더듬어볼까 한다. 인터뷰는 지난 4월 말에 가진 만남이었다. 유독 더웠던 날이었음에도 멀리서 다가오는 신대철의 복장은 한눈에 봐도 길고 또 두꺼웠다. 가까이서보니 안색도 그리 좋지 않았다. 목소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제부터 몸살이 났어요.” 인터뷰, 괜찮을까. 걱정으로 운을 떼니 요즘 밤늦게까지 공부하느라 상태가 안 좋아졌다는 답이 돌아온다. 그러고서는 현 음원 시장 상황에 대한 설명이 바로 이어졌다. 한 시간 반 동안 쏟아진 말들 속에는 많은 고민과 연구, 그리고 적잖은 분개가 자리했다. 행동하는 분노의 지식인. 그날의 신대철은 시나위의 기타리스트가 아니었다.

 

현 음원 시장 상황이 어떻습니까.


전체 음원 수익 구조를 보면 로엔(멜론)이 반 이상, 54%를 차지해요. 모든 가격 정책을 로엔에서 먼저 정해놓고 나머지 업체가 그걸 따라가는 상황이죠. 말 그대로 대기업 자본 논리입니다. PLC(Product Life Cycle; 제품 수명 주기)가 한 기업에서 나오고 있잖아요. 음원 산업은 다른 콘텐츠 산업에 비해 굉장히 불리한 구조를 갖고 있다고 보면 돼요. 타파해가려면 스스로 자생하는 길밖에 없죠.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하는 구조로 말입니다.

 

스트리밍 중심의 소비 방식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스트리밍이 보통 디지털 음원을 사용하는 대표적인 방식으로 굳어졌어요. 엄격히 말하면 이건 대여업입니다. MR방식(Monthly Rental; 월 정액제 방식의 대여)이라는 렌탈의 일종이죠. 어렸을 때를 생각해보면 우리는 항상 음악을 소유해왔잖아요. LP를 쓰거나 CD를 쓰거나 하는 식으로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소유하지 않고 대여해서 듣는 방식이 생겨났어요. 그때 나온 게 스트리밍입니다. 2000년대 초에 광통신 고속인터넷이 깔리면서 냅스터나 소리바다처럼 무료 배포 방식이 많아졌을 때, 현상을 막기 위해 MR방식을 택하면서 지금의 스트리밍이 등장했어요. 산업 관계자들이 그렇게 주장을 하죠. 틀린 주장은 아니에요.

 

틀린 주장이요?


2004년 이후에 음원이 0원이었던 시장을 2000억 시장으로 만들었다는 얘기가 있어요. 뭐, 그런 업적이 분명 있겠지마는 문제는 분배방식이에요. 위탁 서비스를 하면서 40%를 가져간다고 하잖아요. 유통 수수료가 40%예요. 마진도 없이 말이죠. 게다가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보면 한 달에 100곡 듣는 사람도 있고 200곡, 300곡 듣는 사람도 있잖아요. 많이 사용할수록 음원 제작자에게도 많이 돌아가야 하는데 정작 그 혜택이 어디론가 사라져버리죠. 왜 음악에는 정가가 없을까요. 세상 모든 물건에, 하다못해 이 종이컵에도 정가가 있는데. 이마트나 롯데마트 같은 대형마트도 마진율이 25%를 안 넘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대여만 하는데도 40%. 상업적으로 있을 수 없는 사회죠. 거의 착취에 가까워요. 이걸 이번 (지난) 4월 30일 국회 공청회에서 얘기할 예정입니다.

 

비합리적인구조가 된 원인을 어떻게 보시나요.


우리나라 음악시장이 굉장히 빠른 속도로 변했어요. 1990년대 후반, 그러니까 IMF 이전과 이후가 판이하게 다릅니다. 이전이라고 한다면 굉장히 전통적인 방식의 시대죠. LP나 CD, 기존에 우리가 듣던 것들의 시대고, 그 이후라면 시장이 붕괴되면서 IT 산업이 발전하고 인터넷도 발전하면서 들어온 시대입니다. 통계를 보니까 1999년에 벌써 인터넷 사용자가 천만이 넘었고 불과 몇 년 후에 또 이용 가구 수가 천만에 달했어요. 기하급수적인 발전이죠. 여기에 음원을 MP3로 전환하는 기술이 생겼고 또 P2P로 공유할 수 있는 기술도 들어왔죠. “어? 음악을 공짜로 들을 수 있네?” 비슷한 시기에 냅스터가 나온 겁니다. 메이저 레이블들도 망하기 직전이었어요. 그 쯤, 2003년에 스티브 잡스가 아이팟 갖고 나오면서 아이튠즈를 소개했잖아요. 거기 시장에는 어느 정도 음원 정가가 자리 잡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 대해 구체적으로 듣고 싶습니다.


우리나라는 모바일 시대로 넘어갔죠. 다들 휴대폰을 갖게 되고 벨소리랑 컬러링들 많이 이용했잖아요. 온라인 시장이 오프라인 시장을 가볍게 넘기더라고요. 여기에 도토리로 음악을 사고 팔던 싸이월드도 있었죠. 음반 산업이 전통적으로 갖고 있던 가치가 온라인 시장으로 훅훅 넘어가더랍니다. 그때부터 종속되기 시작한거예요. 블루코드라고 싸이월드에 음원을 공급하던 업체가 있었어요. 그 회사가 도레미(미디어)를 현금으로 인수하더라고요. 우리나라 오프라인 음반 기업 중 가장 큰 규모였던 도레미를. 그런 변화가 일어난 거죠. 지금은 스마트폰들 쓰잖아요. 컬러링, 벨소리 급격하게 사라지고 싸이월드도 없어지고. 그쯤 이동통신사에서 부가서비스 산업으로 만들어낸 게 음원산업이에요. 이젠 완전히 종속돼버린 거죠. 디지털 음원을 폰에서도 듣고 컴퓨터에서도 듣고. 여기에 발맞춰서 스트리밍이 활성화됐어요. 음원을 갖지 않고도 바로 들을 수 있게끔 대여해서 들으라는 거죠. 여기에 자사 상품 50% 할인해주면서 한 달 이용료 3천원에 모든 음원을 들을 수 있게도 만들고.

 

음악계가 제대로 예측하지 못 한 건가요.


모든 수요가 저희 예측을 앞질렀죠.

 

스트리밍 시스템을 시행한 지도 꽤 됐잖아요.


아무도 얘기를 안 합니다. 오히려 소비자가 잘못했다고 얘기해요. 너희들은 왜 CD 안사, 왜 다운로드 안 받고 스트리밍해, 하면서 따지는 거죠. 그러면 안 된다는 겁니다. 소비자가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소비자는 죄가 없습니다. “싸게 나온 제품이 있어서 산 거다, 내가 내 돈 내고 내가 하는 거다“라고 말하는 데 무슨 잘못이 있어요. 소비자는 선한 사람들입니다. 여기다 대고 뭐라 그러면 안 되죠.

 

신대철

▶지난 4월 30일 국회토론회


바른음원유통협동조합에 대해 얘기해보겠습니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하는 협동조합의 사례가 있었나요.


유례를 찾기 힘들죠. 음악 산업 현장에 있어 음원 협동조합을 하기도 힘들고. 아마 따지고 보면 처음 있는 사례일 것이라 생각해요. 우리나라의 특수한 사회적 상황 때문에 이런 방식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어요. 음악이란 게 사실 소비자가 없잖아요. 공감을 하는 수단이니까. 이용자가 없다면 음원을 만들어봐야 소용이 없죠. 결국은 뮤지션과 함께 해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같이 갈 수밖에 없어요.

 

음원시장의 창작자권리도 같이 보장하는 활동인가요?


저작권은 관련 협회들이 있으니 그 문제는 그분들이 중점적으로 다뤄야하고요. 제가 말하고 싶은 건 지금의 퍼센티지로 나눠 갖는 건 문제가 있어요. 정가가 없잖아요. 왜 우리나라 모든 산업에는 정가란 게 있는데 음악에는 왜 없을까요. 우리가 성공한다면 (저작권협회 측에서) 20년 동안 못 해 온 걸 하는 겁니다. 저작권협회 규모가 상당히 큼에도 불구하고 창작자권리 보장이라는 일을 여태껏 못 해왔잖아요. 게다가 신탁단체가 세 개나 있는데.

 

어떤 배경으로 실시하게 되었나요. 최근 SNS에서의 글들을 보면 오래 전부터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문제점에 대해선 오래전부터 생각을 해왔어요. 어디서부터 이런 구조가 생긴 것일까. 시장은 계속 커진다는데 실제로 뮤지션에게는 왜 이리 적게 돌아올까. 동반성장은 없고 왜 회사만 커질까. 그 안을 들여다보니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구조더라고요. 이걸 바꾸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어요. 공정성의 문제기도 하고요. 여기에는 철학적인 접근도 필요하고 다른 산업과의 비교분석도 필요하죠. 음악의 가치와 원가의 필요성도 당연히 제기해야하고요. 돈을 들여서 우리가 만들었는데 왜 우리가 가격결정을 못한 채로 팔고 대여해줘야 하죠?

 

신중현 선생님께서 “디지털이 음악을 죽였다”고 말씀하셨죠. 이 발언은 언제쯤인가요.


그렇게 오래전은 아니고. 최근입니다.

 

활동 계획이 궁금합니다. 애플리케이션(앱)을 개발한다는 소식이 있던데요.


앱 개발로 가야죠. 온라인보다 모바일이 커지는 추세니까요. 이왕 앱을 만들 거 쿨한 앱을 만들자고 우리 모두 생각하고 있어요. 다른 음원 사이트 앱을 보면 상당히 구리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진짜 퀄리티도 높고 심플하면서도 쿨한 앱을 개발해보자는 겁니다. 재밌는 기능들을 많이 넣을 예정이에요. 아이디어들도 많고 연구도 많이 하고 있죠. 대기업 앱에서는 볼 수 없을 기능들일 겁니다. 그곳들은 워낙 비대해서 못해요. 기동력이 없으니 결재서류 다 넣어야하고 개발, 제작에 시간이 많이 소요되죠. 앱을 통해 하나의 새로운 놀이문화를 만들어보자 하고 있어요. 내용을 잘 말씀드리긴 어려워요. 개발단계, 개발이라기보다도 구상하는 단계이기 때문에 아이디어가 새나가면 안 되거든요. 하여간.

 

말씀하신게 우리라고 하셨잖아요. 어떤 사람들이 함께 하고 있습니까.


그것도 아직 밝히긴 어려워요. 발기인은 있고요. 많이 모아서 할까하는 생각도 하고는 있는데 그러면 움직이긴 불편하잖아요. 지금은 여덟, 아홉 명 정도 있죠. 참가하려는 분들도 굉장히 많아요. 조금 자제하고는 있죠. 각계 전문가도 있고 정치계 쪽에 계신 분도 있어요. 협동조합을 운영하시는 분도 있고요. 이름을 얘기하면 대충 아실 분들도 있고 하니 밝히기 아직 어려워요. 보안상 어떤 장면이 나올 수도 있기 때문에... 물 흐리기를 할 수도 있고 발기인만 천 명 모은다 하면 나쁜 마음먹고 삼백 명 심을 가능성도 있죠. 여러 요소들 때문에 지금은 최소 인력으로 움직이고 있어요.

 

제작 기간은 얼마나 두고 있나요.


앱 개발하는 게 최소 3개월이더라고요. 우리가 만들려는 건 굉장히 쿨한 것이기 때문에 사실 좀 더 길게 두고 정말 멋진 걸 만들고 싶어요. 시간이 좀 더 걸려서 만들겠다는 욕심도 있어요. 음악 산업은 1,2년짜리가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해야하고 또 음악가들의 권익을 최대한 보장해줘야 하기 때문에 음악을 재생산할 수 있게끔 하자는 겁니다. 지금 상황에서는 수익을 창출해서 다음 작품을 위한 재투자가 가능한 선순환 구조가 전혀 마련될 수 없어요. 엄청난 악순환이에요. 황당한 얘기 하나 해드릴게요. 디지털 싱글 두 곡을 발표한다고 하면 저는 이제 계산이 딱 나와요. 그전엔 몰랐다가 이제 아는 거죠. 도저히 답이 안 나오는 거예요. 주위에서 왜 뮤비도 안 찍고 돈 천만 원 들여 홍보도 안 하냐고 하는데, 그 순간 천만 원 빚이 생겨요. 시나위도 수익 얼마 안 나요. 방송 3사에 홍보하고 뮤비 찍고, 이건 못할 짓이에요. 계속 다음 빚만 늘어나는 실정입니다.

 

음원 판매 방식도 궁금합니다. 네다섯 단계의 현 음원유통과정을 과정을 축소시키는 건가요.


줄일 수도 있겠고요. 직판장의 개념으로 하려 해요. 음원 직판장. 미니홈피 같은 방을 하나 내주고 자기가 만든 음악을 올리면 바로 판매가 되게끔 하려 하죠. (사운드클라우드처럼요?) 네. 일종의 그런 셈이죠.

 

그럼 아티스트들의 참여여부가 중요할 텐데, 독점계약 방식으로도 운영할 생각이신지.


아뇨 그런 건 없어요. 오픈 마켓이에요. 주위 둘러보면 많은 마켓이 있잖아요. 이마트니 뭐니 하면서. 그런 식으로 하나 더 만드는 거예요. 여기다가도 납품하고 저기다가도 납품하고. 그러다 마진이 많이 남는 마켓이 하나 생기는 거죠.

 

음원마다 가격이 다를 수도 있겠군요.


그럴 수도 있어요. 자기가 만들었으면 자기가 가격을 정할 수 있어야 해요. 무료로 판다고 하면 무료로 파는 거죠. '이 음악만큼은 500원 정도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면 500원에 파는 거예요. 최소한 그 정도는 정할 수 있는 거 아니겠어요? 노동력의 대가를 왜 대여업체 쪽에서 맘대로 정합니까. 말이 안 되는 거죠.

 

현행 40%의 수수료를 내리겠다고 하셨습니다.


갑자기는 못해요. 일단은 20%, 장기로는 10%만 가져가려 합니다. 지금은 유통 단계 수수료로 40%를 가져가고 있잖아요. 진짜 고혈 짜는 겁니다. 자기들은 손해 보는 게 하나도 없어요. 그냥 가져가는 거예요.

 

스트리밍은 아예 생각을 안 하시는지.


사실 세계 각국에서 시작하는 추세에요. 우리가 거꾸로 가는 거죠. 스트리밍은 세계적인 추세입니다. 가격이 높아지면 안 들을 거다, 불법 다운로드를 하게 될 거다라고들 하는데 다 개소립니다. 이런 얘기들은 온라인 음원서비스 업체들이 자신들을 보신하기 위해 하는 협박이에요. 요즘은 모바일로 알아서 변환해서 모바일로 다운로드하잖아요. 사람은 돈을 조금 내고서라도 짜증이 안 나는 방법을 찾습니다. 접근성이 안 좋으면 짜증이 나기 때문이에요. 결국 착한 소비를 하게 되는 거죠. 이용해왔던 방식들보다 더욱 좋은 모델이 있으면 말이죠. 스트리밍은, 기본적으로 해야겠죠. 조금 다른 방식으로 할 겁니다. 지금 말하기는 어렵고 아직 연구 단계기도 해요. 스트리밍을 전혀 하지 않을 수는 없죠. 다만 장기적으로 다운로드를 유도하려 하는 겁니다. 저쪽(대기업)과는 반대예요. 저쪽은 스트리밍으로 유도하는 거고 우리는 다운로드해서 가져가게 하는 거죠.

 

중요한 시점에 시작하셨습니다. 경쟁을 어떻게 할 생각인가요.


사실은 경쟁이 안 되죠. 경쟁이 안 되고. 사람의 성선설에 기댄다고 할까요. 이런 거예요. 커피 얘기를 해볼게요. 공정무역을 하고 노동력을 착취하지 않는 착한커피가 나온다고 해도 사실 스타벅스가 없어지진 않잖아요. 착한커피를 먹는 사람이 스타벅스에 가기도 하죠. 그러면서도 '그래도 난 꽤 좋은 사람이기도 하구나'하고 생각하기를 바라는 거예요. 저도 많은 대형 커피숍에 가지만 조금씩 죄책감을 느껴요. 어떤 업체라 애기할 순 없어도 '여긴 노동력을 많이 착취한다던데 다음에 누구 만날 땐 여기 말고 다른 데서 보자고 해야겠다'하고 생각하는 거죠. 윤리의식에 완전히 기대겠다는 건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개념을 이야기한다면 거기서부터 시작하지 않을까 싶은 거죠.

 

신대철

▶지난 4월 30일 국회토론회


시장 점유율도 따져야 할 텐데요.


우리가 당장은 뭘 시작한다 해도 시장점유율 측면에서는 상당히 크기가 작을 거예요. 일단은 5%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5%를 점유하고 시작한다면 굉장히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판단하고 있어요. 나중에 음악 하시는 분들, 콘텐츠 생산하시는 분들이 보시면 알 겁니다. 95%를 점유하는 업체들에게서 받는 정산금액이랑 5%의 우리에게서 받을 정산금액이랑 비교하시겠죠.

 

곡당 가격이 영미권은 1000원대, 일본은 3000원 가까이도 올라간다고 들었습니다. 반면 우리는 비싸야 500원이죠. '500원의 타성'에 익숙해져있지 않을까요.

 

인식을 없애긴 어렵죠. 아까 말씀드렸듯 멜론 사용자가 어느 날 느낀 죄책감에 기대하는 거니까요. 그래도 알려 나가야죠. 일종의 계몽이 필요합니다. 이런 거죠. “당신이 산 가격에서 당신이 사랑하는 아이돌 오빠한테는 얼마나 가는지 아느냐” (웃음) 이런 식으로요.

 

매체 변화를 현 상황의 큰 원인으로 지목하셨습니다. 매체 변화에 따른 음악의 변화도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의미 있는 음악가가 덜 나오고 있어요. 미래를 본다면 문제가 있는 거죠. 서태지 같은 사람이 나올까요. 힘들다고 봐요 저는. 음악을 잘 만들고 못 만들고의 문제가 아니라. 자생능력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계속 대형기획사 제작 위주의 기획 상품만 나오는 거죠. 수억, 수십억을 투자해 오디션 보고 작곡가들 투입하고 춤, 노래, 연기 트레이닝 시켜 만든 사람들만 나오잖아요. '난 알아요'는 서태지 자기 혼자 기획해서 만든 거예요. 돈 가져다 스튜디오 렌탈하고 세션 가져다 만들었어요. 이제 그런 게 나오기 힘들죠. 확실해요. 최근의 경우라면 장기하 정도? 스스로 나온 건 장기하 정도가 유일하지 않을까.

 

오랫동안 록 신에 계셨죠. 록 신의 상황은 어떻다고 보시는지.


우리나라엔 장르음악이 없어요. 그런 게 어디 있어요. 다 척 하는 겁니다. 시장이 있어야 장르 음악이 있는 거지. 여기엔 다 이유가 있어요. 대형 유통업체에서 다 북 치고 장구 치고 하다보니까, 왜 요즘에는 음원 서비스만 하던 업체들이 돈 크게 버니 제작까지도 하잖아요. 그럼 84%를 가져가는 거예요.

 

현 인디 신은 어떻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태동기부터 봐왔잖아요. 사람들이 홍대 신을 어떻게 만들어왔는지 알잖아요. 일본에는 음반 100만 장을 파는 인디 밴드가 있어요. 우리나라 규모에서는 100만 장까지는 어렵죠. 그래도 만 장 팔면 성공한 겁니다. 발표했을 때 만 장은 팔아줄 수 있는 팬들이 있다는 거죠. 홍대 신 그 카테고리에는 나름 자생력이 있다는 소리예요. 그런 사람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대형 기획사 위주로 움직이는 시스템엔 병폐가 많아요. 창조적인 사고나 융합을 기대하기 어려워요. 우리나라에선 인정받지 못 하는 독특한 음악이 유럽에선 '이게 뭐지' 싶을 정도로 엄청 좋은 반응이 있을 수도 있잖아요. 현재로는 거기까지 가는 경로가 없어요. 열어줘야죠. 여러 측면에서 봤을 때 그런 것까지 연구하고 길을 자꾸 만들어가야 할 것 같아요.

 

사실 이런 일들이 소수일수록 정부 지원이 필요하죠. 정부가 나서야할 일이 있다면 어느 부분일까요.


창작자를 보호하지 않으면 문화콘텐츠 산업에 가치가 없죠. 자격도 없고요. 콘텐츠 만드는 사람이 제일 중요하고 원 소스 만드는 사람들이 제일 중요하잖아요. 그들의 가장 밑에서부터 제일 보호해주고 제일 지원도 많이 해줘야하는데 그 위에 있는 기업에만 해주니까 문제죠. 아니, 열심히 만들어놓고 가게 주인한테 “진열대에다 놓고 팔아주세요”라고 했더니 원작자가 가져갈 이윤을 다 가져가버리면 내가 만들 이유가 뭐가 있어요. 눈으로 잘 안 보이는 거라 인식이 어렵죠.

 

창작자, 실연자가 받는 금액이 잘해야 30원, 40원 선이죠. 이것저것 떼고 남는 이익입니다. 다음 음반을 내고 홍보, 뮤비까지 찍는다면 곡당 수익이 최소 얼마 정도 되야 하나요.


정가제가 시행돼야 합니다. 몇 퍼센트 정책으로 따지고 들어가는 것보다 최저 가격을 보장하는 게 우선이에요. 음원도 음원정가제가 있어야합니다. 법적으로 보호받아야 해요. 이것도 국회에서 얘기하려고 합니다. “당신네들이 법 좀 만들어주쇼.”하고요. 여기에는 사회적 협의가 있어야겠죠. 열 곡짜리 음반 한 장을 만원이라고 쳐봅시다. 이것저것 다 빼고나면 곡당 600원 정도, 거기다 제작비까지도 제하면 400원 정도가 남아요. 저는 400원에서 500원 정도로 원가를 보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이제 여기다 이윤 붙여서 팔게끔 해야죠. 이게 정당한 거 아닌가요?

 

SNS에 남긴 말 중 “계란으로 바위를 치면 악취라도 날거다”라는 문구가 있었죠.


무모한 도전이기도 합니다. 주위에선 다들 미친 거 아니냐고 그러죠. 대부분 반응이 다 그래요. 다만 바라는 것은 나와서 봐야한다는 점. 이쪽에서 저쪽을 보고 저쪽에서 이쪽을 보면서 뭐가 잘못됐는지를 봐야 해요. 그 안에 갇혀있으면 아무것도 안 보여요. 매트릭스죠. (웃음) “이거 먹을래? 아니면 이거 먹을래?

 

앞선 말씀 중 계몽을 언급하셨습니다.


소비자는 적이 아닙니다. 동반자예요. 팬이 없는 음악은 없어요. 관계를 만들어 나갈 수 있게 움직여야죠. “양질의 음악을 듣고 싶으세요? 여기 있습니다. 짠!”하면서. (웃음)

 

올 가을쯤 그럼 제대로 만나볼 수 있는 건가요.


처음에는 가을쯤 되지 않겠어했는데 이제 5월도 되고.. 정말 잘 만들려고 해요 시간이 걸리더라도 정말로. 내가 써보고 내가 화딱지 나면 안 되잖아요. “이거 씨, 뭐야 이게.” (웃음) 이게 아이디어 싸움이고요.

 

최종 목표가 무엇입니까.


음악가들에 자생력을 주는 것. 우리나라의 음악 시장을 바꾸는 것. 최소한의 원가를 보장해줄 시스템을 구축하면서 목표를 달성해야죠.

 

오래 생각을 했을 텐데요. 이제 해야겠다는 생각은 언제쯤 들었나요.


작년부터. 이젠 안 되겠다 싶었어요. 나는 평생 음악을 만들 직업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수익이 안 나면 뭘 더 만들 수 있겠어요. 이걸 팔아서 다음 걸 만들어내죠. 도서며 영화며 다 이게 가능한데 현재 음악은 불가능합니다.

 

여러모로 현 상황에서 가장 적합한 인물이 일어나지 않았나합니다.


누가 좀 해줬으면 좋겠는데... 하고 있었죠. (웃음)

 

 


인터뷰 :김반야 이수호 전민석
정리 : 이수호
사진 : 전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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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 “백석은 시를 못 쓴 뒤 오히려 행복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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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 시인이 쓴 「너에게 묻는다」는 국민 시라고 불릴 만큼 널리 알려졌다. 그래서인지 시인 안도현이 낸 책, 이라고 하면 으레 ‘시집’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이번에 안도현이 낸 책은 평전이다. 평전의 주인공은 그가 공공연하게 사부라고 말했던 백석 시인. 백석 시인의 작품은 교과서를 통해 많이 읽혔지만, 그의 생애에 관해서는 그리 알려지지 못했다. 전쟁 이후 백석은 북으로 돌아갔고, 북에서의 삶에 관해서 우리가 아는 바가 그리 많지 않다.

 

백석이 1963년 북한 문단에서 종적을 감춘 뒤, 한때 숙청설과 사망설까지 떠돌았다. 최근에야 그가 1996년 85세로 생을 마쳤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백석 평전』은 1912년 평안북도 정주군 갈산면에서 태어나 1996년 삼수군 관평리에서 눈을 감을 때까지 84년의 세월을 다룬다. 비록 1963년에서 1996년까지 30여 년의 세월은 알려진 자료가 없기에 공백으로 남겨뒀지만, 안도현 시인이 재구성해낸 백석의 삶을 따르다 보면 그의 문학 작품과 문학관은 물론 굴곡 많았던 한국 근현대사를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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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잃어버린 북방 정서를 백석 시에서 찾을 수 있어 


최근에 어떻게 지냈나요?


늘 하던 대로 학생 가르치고. 상반기에는 『백석 평전』내는 데 온전하게 매달렸습니다.


이번에 낸 책이 시집이 아니라 평전입니다. 『백석 평전』을 낸 계기가 궁금합니다.


백석 시를 처음 본 게 34년 전, 대학 1학년 때였어요. 「모닥불」이라는 시였죠. 그때부터 백석에 빠지기 시작했어요. “백석은 사부다”라고 공공연하게 이야기할 정도니까요. 백석은 일제 강점기, 분단, 전쟁을 거치면서 우리 문학사에서 없었던 시인이었는데요. 시를 읽으면 읽을수록, 새로 발굴되는 시를 만날 때마다 작품과 백석이 살아온 삶과 여정을 정리하고 싶었어요. 작품을 이해하는 것과 생애를 따라가는 일이 종합적으로 이뤄져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물에 관한 이야기로는 평전보다는 소설이 재미도 있고 친근할 텐데요. 평전을 써야 했던 이유가 있을까요?


평전이 촌스럽죠. 출판사에서는 처음에 소설에 가까운 책으로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자료를 준비하다 보니, 백석에 관해 잘못 알려진 게 많았어요. 우선은 백석 생애에 관한 표준이 필요할 것 같았어요. 이 책을 바탕으로 소설이든 동화든 나오면 좋겠네요.


백석 작품에 관한 평론도 평전에서 소개했습니다. 현대 독자들은 백석의 시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우리는 순수시와 참여시로 나누어서 시를 이분법으로 이해하는 잘못된 습관이 있어요. 세상에 모든 게 칼로 자르듯 나눌 수 없어요. 특히 시야말로 다양한 관점으로 봐야 합니다. 백석의 시는 순수와 참여라는 이분법을 뛰어넘는, 뭉개버리는 역할을 하죠. 그런 면에서 백석 시를 좋아해요. 현대 독자가 방언 이해에서 막힐 수는 있는데요. 백석 시에서 눈이 얼마나 내리는가를 찾아보는 것도 재밌을 거예요. 눈 이미지를 포함해서 백석 작품에는 북방 정서가 있어요. 백석의 시를 읽으면 분단 이후에 우리 시에서 멀어졌던 정서를 회복할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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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은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을 껴안았던 천재 시인


평전에는 시뿐만 아니라 산문도 실었는데요.


시는 여러 책을 통해 독자에게 알려졌지만, 산문은 그렇지 않아요. 그래서 가능하면 전문을 다 수록하려고 했어요. 산문으로 백석이 살아온 시간을 더듬을 수 있죠. 스키장 탐방기라든지 양을 키우면서 쓴 산문을 보니 역시 백석은 천상 시인이에요.


어느 해’볕 따사로운 이른 봄 산 밑 감자밭에 두엄을 내노라고 소발구를 몰고 가던 나는 엄지들을 따라 방목지로 나온 수많은 새끼양들이 즐겁고 발랄하게 뜀질을 하고, 개닥질을 하고, 또 엄지들의 흉내를 내여 마른 풀’입사귀를 뜯고, 풀뿌리를 들추고 하는 것이 눈에 띄였다. 나는 이 때 나도 모르게 소를 내버리고 방목지로 달려 갔다. 그러자 매애애 소리치며 놀라 달아나는 새끼양들을 붙들어 안아 보고, 그 볼에 내 볼을 가져다 비비고, 등을 쓰다듬고...... 이렇듯 감격에 잠겼던 것이다. 그것들은 바로 내가 태’줄을 끊은 것들이며, 그것들은 바로 내가 구정물이 채 마르지도 않은 것을 안고 따스한 난로’가를 찾아 갔던 것들이다. 나는 이 새끼양들이 어서 무럭무럭 자라기만 간절히 념원하며, 그것들의 자지러진 울음 소리에 온 조합의 산과 골짝과 최’둑과 밭들이 한결 더 밝아 오는 것을 깨닫는 것이였다. (『백석 평전』 370쪽에서 재인용)


시집 『사슴』은 발간 당시에도 화제였고 문학사적으로 의의가 있는데요. 어떤 의의가 있을까요?


1936년에 한정본으로 나온 시집이었죠. 그 시기는 문학적으로 좌우가 갈등했던 때였어요.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이 부딪치던 무렵이었는데,『사슴』은 어느 한쪽에 들지 않으면서 둘을 다 껴안았습니다. 물론, 책이 나온 당시에는 모더니스트는 호평하고, 리얼리스트는 깎아내렸어요. 이건 겉으로 드러난 현상이고, 한설야만 하더라도 백석을 굉장히 높게 평가했어요. 한설야는 해방 이후에 김일성 오른팔로, 북한 문단을 장악했던 사람이거든요. 여기서도 보듯, 문단에서도 그랬고 독자들도 『사슴』이 나온 뒤로 백석에 굉장히 기대를 겁니다. 그 뒤로는 시들이 띄엄띄엄 발표됐고, 1948년에 을유문화사에서 시집이 나올 뻔한 적은 있었죠. 안타깝게도 전쟁이 나고 그 원고가 어디 갔는지 모릅니다.


무의미한 가정이겠지만, 백석이 서울에 남아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가정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오지 않았을 것이에요. 왔다면, 해방 정국에서 굉장히 괴로워했겠죠. 친일했던 정치인, 문인이 서울에서 활개를 치고 다녔을 텐데 백석이 바라보면서 속상했을 것이고요. 서울에 있었다면 할 수 있는 게 학생을 가르치는 일, 아니면 기자였을 텐데요. 해방 공간에서는 미국에 어떤 태도를 가졌을지는 궁금하네요. 북에 남아서 정치적으로 괴로웠지만, 서울에 있었어도 괴로웠을 거예요


백석이 매력 있는 시인입니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았는데요. 당시에 흔한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당시에는 어떤 한쪽을 택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는데요. 백석은 그러지 않았죠. 그게 백석다운 거예요. 백석 시가 해방이나 독립을 적극적으로 외치지는 않았어요. 그렇다고 현실도피 시라고 볼 수도 없고요. 자연만 노래한 시라고도 볼 수 없고 친일시라고는 더욱 볼 수 없어요. 회색이라는 의미가 아니고 시로 중용을 구현한 게 아닐까 싶어요. 시인의 길이 그랬어야 했겠죠.


자야 여사와 연애담도 빼놓을 수 없는데요.


우선, 백석은 잘 생겼어요. 자야여사뿐만 아니라, 최정희. 모윤숙 같은 모던 걸이 궁금해하던 대상이었죠. 연애사는 과장된 면이 있어요. 백석의 연애사는 자야여사가 『내 사랑 백석』을 내면서 알려졌는데요. 사랑하면 데리고 살아야지, 부모가 기생이라고 반대한다고 포기했으니 배신감을 느꼈겠죠. 화가 났는지, 3번 결혼하고 돌아왔다고 썼는데 아무리 읽어봐도 2번이에요. 2번 결혼하고 돌아왔다는 것도, 증언할 사람이 자야여사밖에 없어요. 자야여사와 연애를 인정은 하겠지만, 결혼 횟수는 2번으로 줄였어요. 평전에 쓴 대로는 백석이 4번 결혼했어요. 제가 궁금했던 건, 박경련과 관계에요. 박경련이 이화여고에 있었고 백석은 조선일보에서 일했는데, 적극적으로 고백할 기회는 있었거든요. 그런데 왜 적극적으로 하지 못했을까요.


만주에서 기록은 많지 않아 백석의 생활을 상상하게 하는데요. 그렇게 청결을 중요하게 여기던 백석이 만주에서는 어떻게 살았을까, 하는 궁금증도 듭니다. 백석은 어떤 생각으로 만주로 향했을까요.


책에도 썼듯, 두 가지가 있었겠죠. 우선. 여기가 지겹고 싫으면 저기로 가고 싶은 욕망이 사람에게는 누구나 있어요. 그 당시 경성에서는 조선말로 시를 발표할 수 없었죠. 살려면 친일 단체에 발을 들여놔야 했고요. 첫 번째는 도피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두 번째는 새로운 문학을 해보려는 마음이었어요. 그 당시 만주는 신천지였죠. 만주 이주를 장려했어요. 그런데 가봤더니 그곳도 일본이 지배하는 곳이었죠. 「북방에서」, 「허준」이라는 시를 보면 만주에서의 괴로움, 원래 있던 곳을 그리워하는 정서가 느껴져요.


1962년 이후로 시인으로 활동은 끝났지만, 자유를 누렸을지도 모른다고 썼는데요.


평론의 결론이에요. 우리는 백석을 시인으로 보는데요. 그런데 제가 만약 어떤 상황 때문에 시를 못 쓰게 됐다고 하면 불행하지 않을 것 같아요. 오히려 인간적으로는 좀 더 행복한 시간을 보내지 않았을까요? 해방 후 문학을 한다는 의미는 정치적 활동이었죠. 개인의 상상, 창작 자율성이 전혀 보장되지 않는 상황이었어요. 그러니 오히려 행복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본과 만주를 누비는 백석의 행적을 표시한 책 끝에 있는 지도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백석이 특이한 게 아니고. 분단 이전에는 누구나 그랬어요. 38선이 나누기 전에는 누구나 그랬죠. 요즘 젊은 친구에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분단되기 전과 후, 지금 우리 문학에는 북방 정서, 대륙 정서가 없어요. 그냥 섬이죠. 그렇다고 일제 때가 좋았다는 의미는 아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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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 시는 중소도시형 시


백석 시 작품 중 제일 좋아하는 작품은?


「흰 바람벽이 있어」에요. 만주에서 쓴 시인데요. 혼자 고독하게 지내는 남자가 여러 가지를 돌아보죠. 어머니도 생각하고. 자기를 버리고 간 여자도 생각하고요. 시집에서 썼지만. 가난하고 외롭고 높고 쓸쓸하니 살아가도록 태어났다고 말하는 작품입니다.


백석이 평안도 방언을 자주 썼고. 일본어로 쓰지 않았는데요. 안도현 시인에게도 애착이 가는 시어, 포기할 수 없는 시어라는 게 있나요?
 
제 시는 시골이나 농촌도 아니고. 서울 같은 대도시도 아닌 중소도시형 시에요. 중소도시라는 게, 과거와 현재가 반반 섞여 있는 상태죠. ‘초가집’이라는 말도 싫어하고 ‘빌딩’도 싫어해요. 대신 ‘슬레이트 지붕’은 좋아합니다.


그런데 한국에는 중소도시가 사라져가고 있지 않나요.


많은 사람이 대도시를 지향하죠. 편하려하고 많은 걸 가지려고 하고 더 맛있는 거 먹으려 하고요. 그게 현대의 욕망인데요. 시가 있어야 할 자리는 욕망 채우려는 현실에 약간은 어깃장을 놓는 게 아닐까 해요. 빨리 가는 사람에게 천천히 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하고 많이 가진 사람에게 적당히 가지면 되지, 라고 말하는 게 시의 역할이죠. 


백석 시에는 ‘작고 하찮은 것’을 향한 애착이 있는데요. 안도현 시인에게도 작고 하찮지만 소중한 것이 있을까요.


어느 순간부터 제 시도 작고 하찮은 것에 관한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더라고요. 넓게 보면 백석 시인의 영향이겠죠. 아니, 영향이라기보다는 백석에게 배웠어요. 시는 모름지기 빛나고 높은 것보다는 작고 하찮은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이게 시인의 자세이기도 하죠.


구체적으로는?


백석의 「모닥불」에 등장하는 닭의 깃, 터럭, 이런 게 작고 하찮은 것에 해당합니다. 제 시에는 남들이 잘 거들떠보지 않는 풀꽃, 하찮은 벌레들, 연탄, 이런 것이죠.


절필 선언을 했는데요. 앞으로도 시는 쓰지 않을 예정인가요.


1년 전쯤에 당분간 쓰지 않겠다고. 했는데, 그게 절필 선언으로 언론에서 보도됐죠. 잠시 휴식이에요. 시를 안 쓰면서 1년을 보내니, 굉장히 편안해요. 놓아버렸을 때 느끼는 자유, 해방감이라고 할까요. 덕분에 『백석 평전』같은 책을 쓸 수 있었죠. 당분간은 시 쓰지 않을 거예요.



백석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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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 평전안도현 저 | 다산책방
당대의 많은 시인들을 매료시켰으며, 해방 이후 후대의 시인들에게도 절대적이고 폭넓은 영향을 끼친 백석의 생애를 담은 『백석 평전』이 출간됐다. 스무 살 무렵부터 백석을 짝사랑하고, 백석의 시가 “내가 깃들일 거의 완전한 둥지”였으며 어떻게든 “백석을 베끼고 싶었다”고 고백하는 안도현 시인은 “그동안 백석에게 진 빚을 조금이라도 갚기 위해”, “그를 직접 만나는 방식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백석의 생애를 복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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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쁜 일상 속에 아침은 거르기 일쑤, 그나마 점심 정도 제대로 먹을까? 저녁이면 온갖 모임과 술자리로 부른 배를 주체하지 못하며 잠자리에 든다. 불규칙적인 식습관과 영양의 과잉섭취는 우리 몸의 저장 시스템을 더욱 자극해 배와 엉덩이, 허벅지 등을 하루가 다르게 키워 놓는다. 물론 이 과정에서 우리가 하는 운동이란 숨쉬기와 채 1만보도 안 되는 걷기 정도가 전부다. 그나마 자가용 운전자의 경우는 걷기조차 포기하는 셈이다. 이는 대부분의 현대인들이 처한 현실이다. 스트레스와 더불어 바닥을 친 체력은 이제 현대인들에게 일상생활조차 힘겹게 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피톨로지 아주라 대표는 ‘더 이상 간과할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상태’에 처해있는 현대인들에게 일상생활이 가능한 최소한의 체력, 즉 ‘생존체력’을 이야기하고 있다. 

 

 

만나고-아주라

 

바닥을 친 뒤 깨달은 운동의 필요성


한 여름의 열기가 서서히 달아오르는 오전, 약속 장소에 도착했지만 아주라 대표는 자리에 없었다. 전화를 해 보니 “일찍 도착한 터라 주변을 한 바퀴 돌고 있다”며 곧 오겠다고 한다. 곧 마주한 그녀는 첫인상으로 진정한 건강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고 있었다. 밝은 표정만큼이나 몸 상태는 최상인 듯했다. 책을 통해 자신의 지난 어두운 과거(?)를 낱낱이 털어놓은 덕분에 예상했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그녀는 한때 국제적인 행사를 기획하는 기획자였다. 오랜 기간 외국에서 공부를 했고 누가 보더라도 나쁘지 않은 삶을 살았다. 단 한 번의 실패도 없던 삶, 하지만 그것이 그녀의 약점이 될 줄은 그 누구도 몰랐다. 프랑스 유학에서 첫 좌절을 겪은 뒤 그녀는 와인이 없으면 버티지 못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귀국을 했고, 아무런 목표도 목적도 없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한 것이 불과 몇 년 전이다. 그랬던 그녀가 얼마 전 피톨로지라는 이름으로 Klesa(불교 용어로 번뇌라는 의미)와 함께 책을 냈다. 『생존체력, 이것은 살기 위한 최소한의 운동이다』였다.

 

Klesa(K)는 꽤 오래전 잃어버렸던 강아지를 찾아주는, 우연한 계기로 알게 된 동생이다. 그녀가 피폐한 채로 한국에 돌아왔을 때 작가를 꿈꾸던 Klesa 역시 극심한 요요현상과 자포자기한 생활로 신체 균형이 무너져 있는 상태였다. 오랜만에 재회한 날, 두 사람은 하염없이 한강 길을 걸었다. 하지만 그 후 그녀의 삶은 다시금 새로운 목표를 찾게 됐다.

 

“비릿한 강바람과 덜 풀린 봄볕에 흐느적거리며 걷다 보니 술 생각이 거의 나지 않았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K는 내색은 않는데 힘들어 보였다. 덩치가 두 배는 된 놈이 이상하게 더 작고 초라해 보였다. 그 초라함에 내 비참함이 묻히는 기분이라 죄책감 비슷한 안도감이 들었다. 세상에 나만큼 절망적인 인간이 없는 줄 알았는데 여기 또 하나 있었다. …중략… 뻣뻣해진 다리가 몹시 욱신거렸지만, 맨 정신으로 하루를 버티고 있다는 안도감을 놓치기 싫었다. 해가 완전히 떨어지고 나서야 집에 돌아왔다. 불이 꺼진 집에 들어가자마자 나는 옷도 못 벗고 그대로 침대 위에 쓰러져 잠이 들었다. 취하지 않고 잠이 든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토하지도 않았고 울지도 않았고 꿈도 꾸지 않았다.”  -(생존체력, 이것은 살기 위한 최소한의 운동이다』17쪽 )

 

이후 그녀는 뛰기 시작했고, 러너스 하이(적당한 강도의 운동을 지속했을 때 느끼는 행복감)를 경험했다. 주저하지 않고 집 근처 PT샵에 등록했고 곧 트레이너를 넘어섰다. 갈증을 채우지 못한 그녀는 그 이후부턴 본격적으로 트레이너 공부를 시작했다. 필라테스 강사 자격증, 마사지 자격증까지 쇼핑하듯 자격증을 따나갔다. 그렇게 그녀는 최상급 트레이너로 삶의 반전을 이뤄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서로 최고의 효과를 보장한다는 수많은 다이어트 비법이 상업성과 결부되어 있음을 깨달으며 회의를 느끼게 된 것이다. 결국 그녀는 잘못된 운동 지식이 넘쳐나는 현실을 바꿔보고자 피톨로지를 만들었다. 피톨로지는 피트니스(fitness)에 생각(-ology)을 더한, 생각하는 운동쟁이들의 콘텐츠 공장소이다. 이들은 몸을 만드는 운동이 아닌 생존체력을 기르는 운동을 이야기하고 있다. 콜라병 몸매와 매끈한 근육질을 약속하지도 않는다. 단지 일상생활을 허덕이지 않고 거뜬히 해 낼 수 있는 생존체력을 약속할 뿐이다.

 

“하루에 두 시간씩 헬스클럽에서 되지도 않는 운동을 할 바에는 잠이나 더 자자. 피로에 찌든 당신의 미래를 위해서는 그 편이 낫다. 몸이 예쁘면 당연히 좋겠지만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건 체력이다. 직장에서 졸지 않고 버틸, 도서관에 늦은 시간까지 앉아 있을, 아이를 안고 너끈히 장을 볼 수 있는, 그러니까 일상을 버티는 체력 말이다. 당신의 직장과 당신의 생존에 도움이 안 된다면 몸매는 나중으로 미뤄두어야 한다. 묵직한 돌직구로 달려드는 일상을 쳐낼 체력이 생긴다면 이 책을 냄비받침으로 쓰든 화장실 휴지로 쓰든 상관 않겠다” - (『생존체력, 이것은 살기 위한 최소한의 운동이다』5쪽)

 

 

 

 만나고-아주라

 

프랑스 유학, 힘겨운 20대의 방황


아주라 대표가 책을 통해 밝힌 자신의 이야기를 정리해보자면 이렇다. 잘나가는 인생, 실패 없었던 삶이었지만 프랑스 유학에서 첫 실패를 맛봤고 20대를 후반부를 피폐하게 마무리 했다. 하지만 운동을 통해 새로운 삶을 얻게 됐다는 정도다. 무슨 심보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왠지 그 이면의 이야기가 더 궁금해졌다. 과연 굳이 그런 이야기를 털어 놓은 이유가 뭘까? 소위 책장사(?)를 하기 위한 꼼수로 여겨지지는 않았다. 그녀는 ‘내가 원래부터 타고난 몸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생존체력을 기르기 위한 운동법이 핵심 내용이지만, 같은 류의 다른 책들과 달리 남다른 사연이 담겨 있는 것이 독특한데요. 책이 나오기까지 고민이 적지 않았을 듯합니다.  


전 원래 기획하던 사람이에요. Klesa는 작가 지망생 이였죠. 그런데 둘 다 몸이 정말 안 좋았어요. 저는 현재 몸에서 10~15kg이 빠진 상태로 계속된 빈혈 때문에 고생했어요. 이유도 모른 채 휘청휘청 거리면서 살았고, 운동을 통해 몸 많이 좋아지면서 ‘이걸 어떻게 알릴까’를 생각했죠. 최대한 그 사람 눈높이에서 그 사람이 원하는 얘기를 해줘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종의 간증(?) 형식을 적용하게 된 거예요.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운동하는 사람들은 원래 몸이 좋고 나빠져 봤자 좀 살이 쪘다’ 정도라고 생각하거든요. 전 제 상태가 목숨이 위태로울 정도였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자기 파괴와 자학의 시간이었죠. 그것을 가감 없이 털어놓은 것이 공감대를 얻는 길이라고 생각했어요. 

 

언제부터 외국 생활을 했던 건지 궁금하네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계속 유럽에서 유학생활을 했어요. 정치 분야, 지금과는 전혀 무관한 정공을 했고, 국제적인 회의 진행을 맡기도 했어요.

 

나쁘지 않는 삶이었을 텐데, 왜 그런 슬럼프를 겪었는지 의문인데요? 어쩌다 와인이 없으면 안 되는 지경에 까지 이르렀는지, 무슨 사건이 있었나요?


그 이전까지는 기고만장하게 살았어요. 프랑스에서 공부하는 동안은 딴 짓은 하지 말고 그야말로 공부에만 미쳐야 했지만, 그러질 못했어요. 제가 갔던 학교는 프랑스 안에서도 공부 잘하는 학생들만 모아놓은 곳이었어요. 그 친구들처럼 하려면 밤을 새며 해도 모자랐는데, 그 친구들 정도로만 했으니 떨어질 수밖에 없었죠. 난 잘났고 똑똑하고 천상천하 유아독존인 줄 알았다가 결국 첫 실패를 겪고 자존감이 완전히 무너져버렸어요. 다시 일어날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그냥 무너진 다음 수습을 못했던 거죠.

 

귀국할 당시의 심정을 ‘그냥 확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했는데요. 그런 상태를 극복하고  다시 삶에 목표를 갖게 된 과정이 참 드라마틱했습니다. 


죽고 싶었죠. 하지만 죽을 용기는 없어서 자기 파괴적인 행동들을 하면서 있을 뿐이었어요. 그러다 막상 몸이 너무 아프니까 햇볕도 쬐고 싶고, 살고자하는 생존본능이 고개를 내밀더군요. 어느 순간 걷다가 상쾌한 기분에 뛰다 보니까 1km가 넘는 거리를 그냥 달리게 되더라고요. 숨이 터질 것 같은 순간에 러너스 하이를 경험하면서 다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대표님의 사례도 극단적인 경우지만, Klesa 씨 역시 많은 사람들이 경험한 요요, 체중의 변화를 직설적으로 설명하는 사례가 아닐까 싶은데요. 그래서 더 자포자기한 사람들의 심정을 잘 아실 듯해요.


우리가 더 밑에 있었죠. 이해를 하기보다 밑에서 ‘아 당신들을 이해해’가 아니고 ‘우린 여기까지 내려와 봤거든’인 심정인 거예요. 누구나 다 자기가 처한 상황이 최악이라고 생각하잖아요. 다시 말해서 우리 역시 처음부터 이렇게 건강한 사람들이 아니었고 당신들보다 더하면 더하지 덜하진 않았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어요.

 

만나고-아주라

 

다이어트 안 되는 이유, 인생 전체를 제고해야


주위를 보면 다이어트 한 번 안 해본 이를 찾기 힘들다. 사실 그들의 다이어트는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하지만 눈길을 끄는 몸매는 TV 속에서만 볼 수 있을 뿐이다. 어쩌다 생사를(?) 넘나드는 고통을 감내하며 강도 높은 운동으로 다이어트에 성공했다고 해도, 유지하기는 더 힘들다. 다시 찾아 온 요요는 결국 많은 이들을 무장해제 시키고 자포자기 하게 만든다.

 

과도한 체중으로 인한 고민, 음식을 자제하지 못해 생기는 고민은 그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현대인들의 가장 큰 스트레스가 아닐까 생각되는데요. 이 책을 통해 그럴듯한 다이어트법, 식이요법의 함정에 돌직구를 날렸습니다. 대표님이 생각하기에 다이어트를 반복하면서도 실패하는 현대인들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가요?


실패하는 이유를 찾으려면, 다이어트만 국한해서 생각하지 말고 인생 전체를 제고해야 해요. 예를 들어 누구나 다 영어를 잘하고 싶어 해요. 하지만 영어를 제대로 하는 사람은 드물어요. 뭔가 목표는 있지만, 그 목표를 제대로 잡는 사람은 드물다는 말이에요. 다이어트 자체도 ‘내가 연예인처럼 되겠다’라는 생각을 한다면 그 자체가 어불성설이죠. 영어를 잘 하려면 일단 알파벳을 먼저 배우고 be동사를 배우고 순서대로 해야지, 무작정 CNN을 보고 타임지를 펴봤자 그건 그냥 시간 낭비거든요. 운동 역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초과정을 생략하고 CNN, 타임지 같은 그럴 듯한 것만 찾아요. 그 와중에 제대로 가르쳐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요. 왜냐면 그래야 돈이 되거든요. 굳이 실패의 이유를 찾는다면 상업성과 결부해 잘못된 방법을 알려주는 트레이너들과 허황된 목표를 갖게 하는 매스미디어 탓이라 할 수 있어요. 물론 실패하는 본인의 잘못도 크고요.

 

바쁜 회사생활이나 불규칙한 스케줄로 몇 개월 운동을 해 살을 빼 놓고 운동을 하지 못하면 다시 살이 불어나는 악순환에 지쳐 포기하는 이들도 적지 않은데요. 


애초에 목표를 세우지 말라고 해요. 할 수 있는 것만 하라는 거죠. 정말 진지하다면 지금 밥 한 숟가락 더는 것부터 시작하세요. 그게 한두 달 지켜지면 그때 그 다음 단계를 생각하면 되요. 일단은 목표를 낮추고 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 조차 버리고 다이어트를 해야 된다는 생각도 버리는 거예요. 우선은 자기 주변의 생활을 정리하는 것이 필요해요. 가소로울 정도로 쉬운 것들부터 정리하는 거예요. 예를 들면 일주일에 한 번만이라도 지하철 에스컬레이터 대신 계단을 이용하는 거예요. 그것이 익숙해지면 매일 계단을 이용하는 거죠. 그것도 힘들면 다이어트 얘기는 안 꺼내는 것이 좋아요.

 

『생존체력, 이것은 살기 위한 최소한의 운동이다』에서 이야기하는 F2S(Fit to Survive)도 끈기와 인내가 뒷받침 돼야 할 텐데요. 평소 운동법을 지도할 때 사람들에게 자극을 주는 말이 있다면?


‘그렇게 하려면 집에 가’(웃음). 전 세게 얘기하는 편이에요. 그렇다고 뭘 먹지 말고 강도 높은 운동을 하라고 하는 건 아니에요. 저 역시도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먹는 걸 좋아하거든요. 저는 굉장히 많이 먹고 피자건 뭐건 몸에 안 좋다고 하는 것도 다 먹어요. 맛있으니까요. 다만 그걸 어느 정도 절제를 하느냐에 문제죠. 당장 어떤 음식을 3개월 혹은 6개 안 먹는다고 하는 다이어트는 의미 없어요. 평생 안 먹을 자신이 없으면 차라리 먹는 게 나아요. 그리고 매일 1시간~2시간 강도 높은 운동을 하는 것도, 평생 그렇게 할 자신이 없으면 그렇게 하면 안 돼요. ‘지금부터 3개월 만에 10kg을 빼주겠다’, 말은 쉬워요. 하지만 그 후에 그 사람 인생은 어떻게 하죠? 인생은 길게 봐야 해요. 급작스러운 변화는 정신적으로도 그렇고 장기적으로도 인체에 굉장한 무리를 줘요. 왜냐면 우리 몸은 항상성이 있거든요. 몸은 이 상태를 유지하려고 있는데 갑자기 10kg를 빼고 다시 요요현상이 오면 10kg이 불어나 버리잖아요. 엄청난 부담이죠. 

 

그러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좀 친절하게 조언을 해 주신다면?


식사 조절은 앞에서도 이야기했듯 살이 찐 사람은 자기가 먹는 양에서 한 수저씩 더는 것부터 시작하세요. 마른 사람들은 한 수저 씩 더 먹는 것부터 시작하고요. 또 기본적으로 사람의 기초체력이라는 것은 심폐지구력을 기준으로 하거든요. 생존체력 운동을 2주 정도 하다보면 몸이 적응을 하며 좋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죠. 단계적으로는 한 달에서 3개월 정도면 달라지는 것을 느껴요. 이것은 어떤 운동이든 다 똑같아요. 문제는 재미가 없으니까 현실이라는 장벽에 가로 막혀 포기하는 거죠. 생존체력 운동은 헬스장에도 갈 필요 없고 샤워하기 전에 10분만 투자해 간단하게 끝낼 수 있어요. 

 

만나고-아주라

 

체질에 따라서는 평생 운동을 해야 하는 사람도 있고, 아무리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사람도 있으니 세상 참 불공평하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살이 찌지 않는 체질이라고 해도 운동은 필요할 듯한데, 각각 체질에 맞는 운동법이 있을까요?


체질에 맞는 운동법은 없어요. 다만 운동의 효율은 체질이나 체격 같은 조건보다 멘탈에 좌우돼요. 예를 들어 정말 운동하기 싫을 때는 1분도 하기 싫어요. 그런데 몸 상태가 정말 안 좋아도 본인이 의지만 있으면 1시간 넘게 운동을 할 수 있어요. 마음가짐, 그날의 컨디션이 중요하죠. 가령 애인과 헤어졌는데 운동이 되겠어요? 운동은 자기 의지를 먼저 점검하고 컨디션을 살핀 다음에 하는 거예요. 사람들은 몸무게나 체질량, 지방에 대해 강박관념을 갖는데 사실 그건 그다지 중요하지 아니에요. 자기가 진짜 운동을 제대로 할 수 있는 마음상태인지를 확인하고 멘탈적인 강인함을 길러야죠. 길게 봐야 해요. 스트레스를 받으면 운동도 하기 싫거든요.

 

요요가 오고 나서 다시 운동을 할 때는 그 전보다 더 힘겨움을 느끼는 사람도 많은데요. 심리적으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실제 몸이 느끼는 부담도 큰 것인지 궁금합니다.


더 힘든 게 사실이에요. 몸이 받는 부담도 훨씬 크고요. 살을 빼 놓은 상태에서 몸은 자신이 변한 상태를 체크하고 원상복구하려고 해요. 문제는 제일 축척하기 쉬운 지방으로 채운다는 거죠. 우리의 몸은 인류가 시작하면서 그렇게 디자인 되어 왔어요. 가장 효율적인 에너지 저장 시스템을 가지고 있죠. 그런데 현대 사회에 와서는 그것이 심각한 요요의 원인이 되죠. 그렇게 살을 빼고 나서 원래 몸으로 돌아가느니 차라리 살을 안 빼는 것이 나아요. 사람들이 알고 있는 상식이나 정보는 대부분 그런 보이지 않은 함정이 숨어있는 경우가 많아요.

 

피톨로지에서 지향하는 것이 생존을 위한 체력을 만드는 운동이라고 하지만, 몸매를 만드는 것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더구나 이제 7월입니다. 늦어도 휴가를 8월에는 가야 할 사람들 중에는 몸매에 대한 고민이 많을 텐데, 1달 안에 효과를 볼 수 있는 몸매 보정 운동은 없나요?    


정말 살 빼고 싶다면 가장 속성으로 살을 빼고 몸매를 만드는 방법이 없진 않아요. 10분 동안 버피(군대 갔다 온 사람은 PT 4번이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하다) 100개씩 하면 되요. 몸이 죽지 않으려고 지방을 빼 냅니다. 살을 뺀다는 개념보다 뇌를 괴롭힌다고 보시면 되요. ‘몸이 가벼워지지 않으면 넌 엄청나게 힘들어질 거다’라는 신호를 주게 되면 지방이 빨리 빠지기 시작하죠(웃음). 
 
책을 접하는 독자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한 마디?


몸매보다는 지금 당신의 저질 체력을 극복하는 게 우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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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체력, 이것은 살기 위한 최소한의 운동이다피톨로지 저 | 위즈덤하우스
『생존체력, 이것은 살기 위한 최소한의 운동이다』는 시간도 여유도, 그리고 하루를 버텨줄 힘도 없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식스팩과 에스라인이 아니라 ‘생존체력’이라고 역설한다. 피곤에 찌든 몸뚱이를 몸짱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은 오히려 치명적인 독이 되고, 그나마 희미하게 남아 있는 체력마저 고갈시키고 만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몸짱’이 아닌 ‘체력짱’이라고 외치며, 매일같이 ‘힘들다’고 푸념을 늘어놓는 사람들을 위한 특급 처방전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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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교수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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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조국

 

7평 법대 교수의 연구실은 생각보다 무척 작았다. 국립대의 교수 연구실은 평수가 정해져 있다고 하니, 고개가 끄덕여졌다. 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주말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간을 연구실에서 지낸다. 그는 연구실을 빗대어 “이 작고 견고한 성은 나에게 즐거운 탐구의 시간과 고독한 성찰의 시간을, 동시에 뜨거운 참여의 시간을 허락해준다”고 말했다.

 

그간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위하여』,『형사법의 성편향』, 『성찰하는 진보』, 『배신』, 『진보집권플랜』, 『조국, 대한민국에 고한다』등 주로 사회과학서를 집필한 조국 교수가 자기계발서로 분류되는 신간 『왜 나는 법을 공부하는가』를 펴냈다. 출간 제안을 받아들인 까닭은 딱 하나, 주제가 ‘공부’였기 때문이다. 소위 사람들이 이해하는 학과, 입시 공부 범위를 벗어나 ‘자신을 아는 길’로써의 공부 이야기를 꺼내 들었다. 서울대 교수가 ‘공부’에 대해 말하는 것이 누구에게는 식상하고 따분한 이야기일 수 있다. 하나, ‘만 16세 서울대 법대 입학, 만 26세 당시 최연소 교수’라는 타이틀을 잊고『왜 나는 법을 공부하는가』를 읽다 보면, 공부를 ‘왜’ 하는가에 대한 물음에 답을 꺼내놓게 된다.

 

『왜 나는 법을 공부하는가』는 조국 교수의 맨 얼굴을 볼 수 있는 책이다. 특이한 이름에 얽힌 어린 시절 에피소드부터 법학을 선택하게 된 계기, 교수가 되자마자 감옥에 가야 했던 사연 등을 낱낱이 공개했다. 집필 기간만 무려 2년이 걸렸다. 류재운 작가가 조국 교수를 인터뷰해 초고를 완성했고, 조국 교수가 원고를 추가 집필해 5차례 이상의 수정을 거쳤다. 지난 6월 출간된 『왜 나는 법을 공부하는가』는 벌써 4쇄를 준비 중이다. 표지에는 조국 교수의 얼굴이 작게 들어갔지만, 그를 가장 잘 알 수 있는 책이 바로 『왜 나는 법을 공부하는가』이다.

 

책들만 빼곡히 자리한 대학 연구실에서 조국 교수를 만났다. 한 한문학자는 조국 교수를 두고 ‘상산 조자룡’으로 비유했다. “전투력도 강하고 머리가 좋다. 조용히 공부만 하는 사람 같지만, 싸우는 버릇이 들면 본색이 드러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한 시간 남짓한 짧은 시간에 저자의 본색을 파악하긴 어려웠지만, 그가 조금이라도 겉치레하는 모습이 없는 사람이라는 건 눈치챌 수 있었다.

 

공부란 자신을 아는 길이다. 자신의 속을 깊이 들여다보며 자신이 무엇에 들뜨고 무엇에 끌리는지, 무엇에 분노하는지 아는 것이 공부의 시작이다. 공부란 이렇게 자신의 꿈과 갈등을 직시하는 주체적인 인간이 세상과 만나는 문이다.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해, 그리고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공부를 해야 한다. 이 점에서 공부에는 끝이 없다. ( 『왜 나는 법을 공부하는가』 8쪽)

 

만나고-조국

 

호기심이 좋은 공부의 길을 이끈다


표지가 눈에 띕니다. 정의의 여신 디케의 현대 버전인 것 같은데요. 조국 교수의 얼굴이 더 크게 들어가야, 독자들이 더 주목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표지 사진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놀라고, 놀립니다(웃음). 너무 세련되고 젊은 여성의 사진이라. 어디에서 이미 찍은 사진을 가져온 거겠지요? 사진 덕분에 사람들이 책에 대한 호기심을 더 갖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웃음).

 

2년 전에 집필 제안을 받았는데 ‘공부’를 주제로 한 책이라 수락하셨다고요.


‘공부 이야기’ 시리즈로 나온 책인데요. 건축가 김진애 저자의 『왜 공부하는가』를 인상 깊게 읽었는데, 이런 식으로 써보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공부 이야기를 하면서 법 이야기를 넣으면 더 좋을 것 같았고요. 그런데 막상 책으로 내려고 하니까, 뭘 써야 할지 고민이 많이 되더라고요. 결국 사적으로 내가 어떻게 공부했는지도 넣게 됐는데, ‘나 공부 잘했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아니라 공부라는 개념 자체에 대한 접근을 하려고 했습니다.

 

최근 ‘공부법’ ‘공부’에 관련된 책들이 다수 출간되고 있는데요.


갑자기 많이 이야기 된다는 것에는 사회적 맥락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책에서도 말했지만, 공부라는 단어를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죠. 공부 이야기를 하면 대개 학과 공부만을 떠올리니까 지긋지긋하죠. 최근 몇 년부터 공부를 다르게 보는 시각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고미숙 저자의 책을 시작으로 공부 관련 책들이 많이 등장했습니다. 공부란 것이 반드시 학과, 입시 공부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는 걸 이야기하는 사회적 필요가 있는 거죠. 방향을 틀어 보려는 시도들이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공부를 즐겁게 하기 위해서는 ‘호기심’과 ‘노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셨는데, 요즘은 호기심조차 강요 받는 시대 아닙니까? 어릴 때부터 아이들에게 생각하고 고민할 여지를 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


특정 분야에 대한 호기심만 인정 받는 사회가 됐습니다. 호기심이란 원래 독립된 인간으로서, 어릴 때부터든 성인이 되어서든 자기가 하고 싶은 것에 대한 감정, 생각을 갖고 실행하는 것인데요. 교육자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공식적으로 호기심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내용으로 들어가 보면 특정 방향의 호기심을 선택하도록 강요하고 있습니다. 다른 호기심은 제거해야 하는, 억압되어야 하는 것으로 취급하는 게 문제죠. 그건 진정한 의미에서의 호기심이라고 보긴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교수님이 법을 공부하게 된 것도 호기심에서 시작되었죠?


그렇죠. 호기심은 자기 내면에서 나오는 힘인데,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내면이 좋아하는 걸 해야 오래갑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어느 정도 지적 능력이 있고 체력이 있고 성실하면, 일정하게 성장하게 됩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확 꺾이는 사람이 있는데, 그건 자기 내면이 원치 않는 노력을 했기 때문에 성취도가 떨어지고 흥미가 없어지는 겁니다. 돌잔치로 비유하자면, 부모들이 아이의 손에 가까운 곳에 돈이면 돈, 연필이면 연필을 선택하도록 배치합니다. 아이가 실제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알려면, 아이를 내버려 놓은 상태에서 막 놀게 하다가 뭔가를 잡게 해야 합니다. 그런데 부모들은 자신이 원하는 상황을 만들어놓고 선택을 강요합니다. 이건, 진짜 호기심을 억압하는 행동이죠.

 

근본적으로는 입시 문제가 얽혀 있지 않습니까?


제가 서울대 교수이기 때문에 욕을 먹을 수도 있지만, 서울대를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행복한가요? 절대 보장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과거에 대학 진학률이 적었을 때는 대학을 졸업했다는 것 자체만으로 어느 정도 신분상승이 보장됐지만 지금은 달라졌습니다. 상대적으로 좋은 조건을 갖긴 하지만, 명문대에 나와서 자동적으로 잘되는 시대는 이미 끝났습니다. 전체 고등학생 숫자 중에 소위 SKY에 들어간 학생들을 이야기한다면, 퍼센트로도 매우 적습니다. 5%라고 한다면, 95%는 그 작은 수치를 강요당하고 있는 거죠. 나라건, 학부모건, 학교건 95%가 행복하고 호기심을 갖는 사회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나고-조국

 

<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들> 보고, 법학 선택하게 돼


또래보다 2년이나 먼저 초등학교에 입학하지 않으셨습니까? 영재라서가 아니라, 동네에서 같이 놀던 형들이 학교에 가니까 심심해서 학교를 보내 달라고 부모님을 조르셨다고요. 학교 생활에 적응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어리다고 무시 당할 수도 있는데.


새로운 학년에 올라가면, 다들 저에게 “야, 너 형이라고 불러”라고 그랬어요. 저는 “내가 왜 그렇게 불러야 하냐?”고 따졌죠. 다행히 공부를 잘했기 때문에 무시를 안 당한 거죠. 체구가 작지도 않았고. 왕따를 시킬 수도 있었는데 그런 건 없었어요.

 

뺑뺑이 세대라는 게, 자랑스럽다고 밝히셨는데요. 일반고교에서 다양한 환경을 가진 친구들과 함께 공부하는 것이 좋았다고요. 지난 지방선거 때, 전국 17개 시,도에서 13곳의 진보교육감이 탄생하지 않았습니까? 지금 우리나라 교육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는 무엇으로 보고 있나요?


모두가 공교육 붕괴에 대해 말합니다. 이번에 교육감이 많이 바뀌면서 서울시는 혁신학교를 활성화하겠다고 밝혔는데, 정부 차원에서 무조건 공교육 중심으로 가야 합니다. 이번에 왜 대부분 진보교육감이 이겼을까요? 그건 아이를 키워보면 압니다. 공교육 체제에 대한 불만이 엄청납니다. 모든 아이들을 입시로 집어넣고 90% 이상을 패배자로 만들고 있는데, 우리나라가 OECD 국가 가운데 경제 성장은 높을지 몰라도 교육은 야만 수준입니다. 우리나라 예산의 상당수를 공교육에 투자해야 합니다. 우리 부모들이 어쩔 수 없이 개인 돈을 써가면서 사교육을 하고 취미활동을 시키지 않습니까? 다른 OECD 국가의 수준처럼 보장해줘야 합니다.

 

예비 초등학생을 자녀로 둔 부모들이 사립과 공립 중에 갈등합니다. 안전한 사립초교를 보내고 싶어 하는데 등록금이 만만치 않죠.  


사립학교를 없앨 수는 없습니다. 필요하다고도 생각하고요. 그건 자유입니다. 다만, 전 제 자녀들을 모두 집에서 가까운 공립 초,중학교에 배정을 받아 보냈는데 어릴 때는 무조건 공립학교가 좋다는 소신 때문입니다. 사실 사립초교를 보내면 일단 시스템이 안전하기 때문에 아이가 안전해집니다. 계층이나 문화 수준, 재산소득 수준이 비슷하니까 아이나 부모도 동질감을 느끼고 편안함을 느끼죠. 선생님 숫자도 많고 체계가 잘 잡혀 있다는 장점이 있으니까요. 그런데 제가 사립초교를 선택하지 않은 건, 다른 걸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공립학교에 들어가면 여러 상황의 아이들이 있습니다. 어릴 때 아이들이 뭘 알겠어요? 하지만 ‘저렇게 사는 경우도 있구나, 나와 다르게 사는 사람이 있구나’라는 걸, 어린 시절에 경험시켜야 한다고 생각해요.

 

만 16세 서울대 법대 입학, 만 26세 당시 최연소 교수 등 조국 교수라는 이름 앞에는 ‘엄친아’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습니다. 이런 타이틀이 부담스럽거나 꺼려지진 않나요?


이름도 특이하니 타인에게 기억이 잘 되는 편인데, 처음에는 이런 이미지가 피곤하다고 해야 하나, 부담스러운 게 없진 않았죠. 미국 철학자 존 롤즈가 <정의론>에서 “사람은 누구나 각각의 자연으로부터 받은 복권이 있다”고 말했잖아요. 저는 그저 공부를 조금 잘하는 복권을 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에게도 자주 이야기하는데, 우리 모두에게는 가슴에 각각의 별이 하나 있는데 그 별은 다 다르거든요. 크기가 다를 수도 있고 성격이 다를 수도 있고요. 장미꽃 같은 사람이 있고 난초 같은 사람이 있듯이, 내 속에 있는 꽃이 무엇인지를 잘 알아서 키우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엄친아’라는 건 스펙적 관점인데, 저는 일찌감치 내가 운동에는 소질이 없고 공부가 적성에 맞는다는 걸 깨닫고 노력을 한 거죠.

 

고등학교 시절, 외화 드라마 <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들>을 보다가 공부에 대한 로망이 생겼다고 하셨는데, 법학을 선택하게 된 가장 큰 계기였나요?


그렇죠. 제 고등학교 시절은 머리를 완전히 빡빡 깎고 일본식 교복을 입던 시대였습니다. 지금보다 주입식, 암기식 교육이 심했던 시절이죠. 그런데 <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들>을 보니까 완전히 다른 모습인 거예요. 토론식, 소크라테스식 교육방식이었는데 교수가 학생들에게 답을 가르쳐주지 않고 질문을 계속해요. 질문하고 답을 하는 과정을 한 시간 정도 거치면, 마지막에 자연스럽게 답을 알게 되는 거죠. 드라마를 보면서 우리의 주입식 교육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걸 느꼈어요. 무척 부러웠죠. 저런 공부를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공중파에서 방송했던 드라마죠? 제목이 얼핏 기억이 납니다.


주인공이 아마 ‘하트’였을 겁니다. 머리가 꼬불꼬불한 친구였죠(웃음). 하버드 로스쿨 안에서의 협력, 경쟁이 나오는데 그 당시 제가 처해 있던 고등교육, 한국 대학이랑 무척 달랐어요. 입시 시절이었는데도 방송을 빼놓지 않고 봤어요. 로스쿨이 배경이니까, 법을 이야기할 거 아닙니까? 당시 우리 사회의 법은 겁나는 것, 경찰서에 잡혀가는 것이었는데, 드라마에서는 법이라는 게 뭔지를 보여주더라고요. 독재와 민주의 차이는 문제가 발생하면 주먹으로 해결하냐, 말로 해결하냐 아닙니까. 과거에는 강한 사람이 주먹으로 해결했는데 요즘은 그게 쉽지 않으니까 말로 논쟁을 벌이죠. 법도 지배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들>에서는 분쟁 해결의 도구로서 법이 등장해요. 여러 가지 사례를 다루면서 논리를 갖고 토론을 하면서, 어느 쪽이 맞는지를 확인하고 승복하죠. 나중에는 영화로도 개봉된 걸로 알고 있어요.

 

드라마를 보기 전에는 법대에 진학할 생각을 하지 않았나요?


막연히 생각은 했죠. 당시에는 누가 공부를 잘한다고 하면 법대에 간다고 으레 생각했잖아요. 저도 ‘그렇구나’ 생각했었고. 최종적으로 고등학교 3학년을 마치고 지원서를 넣을 때, 1지망은 법대를 넣었지만 2지망은 역사학과를 넣었어요. 학창시절에 역사책도 많이 봤고 법학, 역사 양쪽에 관심이 있었는데 결정적으로 법학 쪽으로 저를 당긴 건, 그 드라마였죠.

 

담임 선생님이 육사에 가면 좋지 않겠냐고, 추천도 하셨다고요.


선생님이 육사를 추천하신 건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당시 권력의 핵심을 육사가 쥐고 있었으니까요. 공부 잘하고 체력도 나쁘지 않고 더욱이 영남 출신이니(웃음), 육사에 가서 열심히 하면 자연스럽게 출세가 보장된다고 생각하셨죠. 그런데 전 ‘육사’라는 말을 듣는 순간, 너무 싫었어요. 일단 제복을 입기 싫었거든요. 6년간 입은 교복도 싫은데 또 제복이라니. 단순한 걸 수도 있는데 머리도 기르고 싶었고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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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 사법시험 보지 않고 대학원 선택


고등학생 때까지 무난하게 학창 시절을 보냈는데 대학에 가면서 방황을 시작하셨어요. 학부, 대학원 시절의 인연과 활동이 문제가 돼서 사회주의노동자동맹(사노맹) 관련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된 경험이 있으시죠. 형사법 전공학자로서 형사절차의 전 과정을 '현장실습'하는 행운(?)을 누리셨습니다. 학업에 정진하다가 노동야학에 참여하는 등 사회활동을 시작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나요?


박종철 열사가 고등학교, 대학교 후배에요. 종철이가 고문치사를 당해서 죽었는데, 당시 어린 저에게는 정말 큰 충격이었죠. 누가 간첩이 돼서 죽은 일은 신문에서 볼 수 있었지만, 내 옆에 있던 사람이 죽은 거랑은 너무 다른 거예요. 충격이 너무나 컸고 그 연장선상에서 활동을 하게 됐어요. 학생운동에 관여하고 사회참여활동을 하는 것도 근원적으로 들어가면 종철이가 있어요. 수용생활의 뿌리가 있다고 하면 그것도 종철이죠. ‘종철이가 살았더라면, 이런 일을 했을 것 같다’, 내가 대신 해야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해요. 일종의 부채의식일 수 있는데, 종철이가 바랐던 세상에 대해 일종의 기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죽을 때까지 그래야 하지 않나, 해요. 제가 민주열사박종철기념사업회 이사를 맡고 있는데, 지금도 1월이 되면 종철이를 생각해요. 종철이가 올해는 몇 살이지? 생각해 봐요.

 

법대 교수라면 논리와 이성이 강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머리와 가슴이 충돌할 때, 가슴을 따르라고 말하셨어요.

 

저는 이성적으로 훈련이 잘된 사람 중에 하나일 거예요. 법학이 전공이니 실제 일어난 사건들을 수없이 검토해야 하는데, 이성이 필요하죠. 그런데 사건들을 접하다 보면 세상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돼요. 극단적으로는 사람을 왜 죽이냐는 거예요. 살인마가 사람을 죽이기도 하지만, 아주 보통의 사람이 격분해서 살인을 저지르기도 하잖아요. 많은 사람들이 이성적으로는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해요. 그러면서 감정을 억압하도록 교육 받아왔다고 생각하죠. 현대인은 이성의 독재 하에 있어요. 억지로 감성을 억압했다가 나중에 왜곡된, 극단적인 행동을 드러내요. 그렇기 때문에 자기 안에 있는 감성을 키우는 훈련을 해야 하고, 충족시켜 줘야 해요.

 

법학계에서는 조국 교수를 두고, 감성적인 사람이라고 평가하지 않나요? 최근 교수님이 쓴 한 시인의 산문집 추천사를 읽었는데, 필력이 상당하시던데요.

 

감히 시인의 글에 추천사를 썼는데, 부끄럽죠. 평소에 법을 공부하면서 다른 분야들도 많이 보려고 애를 써요. 문학을 보고 영화, 미술도 접하면서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이성 과잉일 거예요. 다만, 상대적으로 법학계 내에서 보면 감성적인 사람일 수 있죠. 예술가들과 비교하면, 아주 이성 과잉일거고요(웃음).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은 무엇인가요?


대학생 때로 보자면 사법시험을 보지 않고, 대학원을 간 일인 것 같아요. 2학년 때 친구들 앞에서 일종의 선언 비슷하게 “나는 대학원에 가겠다”고 말했어요. 그 때는 대학원이 뭔지도 잘 모르는 상태였는데. 사법시험을 본다는 것과 법학 대학원을 간다는 건, 똑같이 법을 공부하지만 접근이 달라요. 존재하는 법률과 법의 판례를 잘 정리하는 일이 있는가 하면, 대학원에서는 현재 판례와 법률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능력을 키우는 공부를 하니까요. 물론 현재 판례를 존중하고 많이 보고 있습니다만, 하나의 틀에 있지 않는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법학을 하지만 인접 학문을 공부해서 그 성과를 가져오려고 노력하고 있고요.

 

최근에 한 선택 중에는 무엇이 현명했다고 보시나요?


공적으로 말한다면 지난 대선에 깊숙이 관여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엄청난 공격을 받을 거라는 예상이 있었고, 실제로도 그랬고, 위험한 선택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뭐 지금도 온갖 소리를 듣고 있고요(웃음). 하지만 당시에는 정권을 바꿔야겠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제가 정치인이 아니지만, 정치인이 아닌 사람이 발언했을 때 더 효과가 있는 면이 존재할 거라고 생각했고요. 대선만으로 보면 제 선택이 졌지만, 어쨌든 잘한 선택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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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를 보면, 야구선수 최동원 이야기가 나옵니다. 인생에서 좌절할 때마다 롯데자이언츠를 떠올린다고요.

 

야구를 좋아합니다. 최동원 씨 같은 경우는 초등학교 선배인데, 그 분이 공을 던지는 걸 실제로 보고 자랐죠. 당시 야구 글러브를 갖는 일이 꽤 힘든 일이었는데, 부모님을 졸라서 글로브를 하나 받았어요. 아마, 인조가죽이었을 겁니다(웃음). 지금도 아주 소중한 선물이죠. 저를 잘 아는 친구들이 하는 말이 “조국이 출마하라는 말은 안 들어도, 롯데자이언츠 구단주를 제안하면 바로 교수직을 그만둘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웃음).

 

야구 칼럼을 쓸 생각은 없으신가요?


쓰려면 쓸 수는 있겠지만, 실제 야구전문가들이 쓰시는 게 더 낫죠. 저는 팬 수준이라서 욕 먹는 일이 될 겁니다(웃음).

 

『왜 나는 법을 공부하는가』를 학생들이 봐도 좋지만, 부모들이 읽어도 좋을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특히 어떤 독자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으신지 궁금합니다.


일단 법 이야기를 했으니까, 법대를 가고 싶거나 법에 관심이 많은 청소년, 젊은 사람들이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싶어요. 법 이야기를 떠나서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지?’ ‘내 아이가 실제로 무엇을 좋아하지?’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읽어도 좋을 것 같아요. ‘서울대 교수가 말하는 공부 이야기’라는 타이틀 때문에 혹 해서 책을 집는 분들도 있을 텐데, 이 책이 공부에 대해 지금까지 갖고 있었던 편견, 관념을 깨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학과 공부가 지긋지긋한 사람들이 봐도 흥미로울 수 있겠고요.

 

곧 4쇄를 찍는다고 들었습니다. 꼭 넣고 싶었는데 빠진 내용이 있나요?


율곡 이이가 13세에 과거에 응시해 진사에 뽑혔고 그 후 아홉 번의 모든 과거를 장원 급제했습니다. 조선시대에서는 최고의 기록이죠. 우리나라 학부모들은 어릴 때부터 내 아이가 율곡 이이처럼 아홉 번, 모두 장원급제를 하는 일을 상상합니다. 그건 0.1%만 가능한 일인 데도요. 곧 영화를 개봉한다고 하는데, 이순신 장군은 28세인가 되던 해에 무과에 떨어지고 32세에 겨우 합격했습니다. 무과 등수는 무려 12등이었고요. 그런데 나라를 구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사람들은 등수를 너무 많이 말합니다. 공부 잘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노래를 잘하고 운동을 잘하는 사람이 있는 건데요. 옛날에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영화가 나왔지만 바뀐 건 별로 없죠. 부모나 학교, 사회에서 “공부 안 하고 미술하겠다, 음악하겠다, 딴 짓을 해보겠다”는 아이를 환영하지 않고 구박을 하는데, 이런 생각이 바뀌어야 합니다. 수석 합격자 이야기만 꺼내 놓는 언론도 바뀌어야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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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는 법을 공부하는가조국 저/류재운 정리 | 다산북스
이 책에는 ‘엄친아’로만 보였던 조국 교수에 대한 이야기가 풍성하게 담겨 있을 뿐 아니라 ‘공부’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다. 책은 ‘호모 아카데미쿠스(공부하는 인간)’ ‘호모레지스탕스(저항하는 인간)’ ‘호모 쥬리디쿠스(정의로운 인간)’ ‘호모 엠파티쿠스(공감하는 인간)’으로 이어진다.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 매순간 치열하게 고민했던 흔적을 총 4부로 나누어 구성한 것이다. 저자는 공부란 ‘자기 자신을 아는 길’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지금도 주말을 제외하곤 언제나 공부하는 일이 그에게는 여전히 즐겁다. ‘우리는 왜 공부해야 하는가’ 그 근본적인 물음에 대한 답을 저자의 삶을 통해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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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남충식 “스티브 잡스, 윤종신, SM, 모두 경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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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들에게 끊임없이 따라 붙는 숙제가 바로 ‘기획력’이다. 회사는 언제나 새로운 기획을 원하고 직원들은 퍼뜩 떠오르지 않는 아이디어에 한숨을 쉰다. 어떤 분야보다 창의적이어야 할 광고계에서 14년을 기획자로 산 『기획은 2형식이다』 저자 남충식은 “사색은 없고 검색만 있는 지금 시대에 우리 한국 기획자들은 지나치게 심각하고 진지하다”고 지적한다. 기술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기획력이 없으면 제자리걸음이다. 기획자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심플의 미학’. 『기획은 2형식이다』에서 저자는 ‘2개의 본질 코드’ P코드, S코드로 ‘기획’을 말한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졸업 후, TBWA KOREA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남충식 저자는 현재 이노션(INNOCEAN) 더캠페인랩 팀장으로 재직 중이다. SK텔레콤, 소니, 피자헛, 모토로라, 네슬레, 팬택, 현대자동차 등 다양한 마케팅 커뮤니케이션 프로젝트를 기획했고 신세계, 이마트, 삼성전자, UNITAS CLASS, 서울디자인재단 등 기업체 및 교육기관에서 ‘플래닝 코드’적 창조기획을 전파하고 있다. 뮤직 프리젠테이션 〈썸네일 프로젝트thumbnail project〉의 인디 뮤지션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남충식 저자는 “‘기획’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대한민국의 모든 김 과장들을 위해 『기획은 2형식이다』를 집필하게 됐다”고 말했다.

 

만나고-남충식

 

아이돌 음악 아닌, 조규찬 음악 같은 책


책이 독특하게 편집됐다. 여백도 많고, 문장 배열 형식도 평범하지 않다.


기존에 나온 크레에이티브에 관한 책과는 다르게 쓰자고 생각했다. 편집에도 신경을 많이 썼고. 현재 강의하고 있는 제목이 ‘플래닝 코드’인데, 책의 제목으로 쓰기엔 난해할 수 있어서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기획은 2형식이다’를 제목으로 정했다.

 

‘기획’에 대한 책은 꾸준히 나오고 있다. 광고인이 썼기 때문에 아무래도 마케팅 관련 종사자들이 관심을 가질 것 같은데, 『기획은 2형식이다』의 주 타깃은 어떤 독자인가?


책을 준비하면서 북 트레일러도 함께 만들었는데, 맨 처음 나오는 카피가 ‘대한민국의 모든 김 과장님에게’다. 대한민국 보통의 기업에서 5년 정도 일을 하면 과장이 되는데, 어느 정도 조직생활에 적응해가면서도 기획에 대한 부담감은 여전한 것 같다. ‘난 왜 이렇게 기획을 못하지?’ 이런 분들이 읽으면, 피와 살이 되는 이야기를 담았다. 아이돌 음악보다는 조규찬 음악 같은 책? 이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다(웃음). 대학생들에게는 조금 어려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지난주에 있었던 대학생 포럼에서 소개했더니 의외로 재밌어 하고 반응도 좋았다. 기획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흥미롭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책의 핵심은 ‘기획은 심플해야 한다’인 것 같다. 아이디어가 많은 것보다 본질에 집중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는데.


생각이 많은 건 좋지만, 복잡하게 생각하는 건 쥐약이다. 일을 하다 보면 생각을 너무 복잡하게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러면 늘 결과물이 통상적이다. 기존의 성과를 답습하는 결론이 나와 버린다. 고수일수록, 크리에이티브한 사람일수록 의외로 심플하다. ‘심플’은 기획의 원리가 아니라, 인생의 원리일 수도 있다. 이 책을 쓰면서 스티브 잡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이 사람의 모토도 ‘심플’이다. 심플하려면 본질에 집중해야 한다. 군더더기, 부수적인 것은 많이 버려야 하는데 사람들이 그것들을 포기 못하니까 본질에서 벗어나 버린다.

 

기획의 본질 코드로 ‘P코드’ ‘S코드’를 말했다. P는 ‘문제problem’, S는 ‘해결solution’이다.


기획의 고수들이 복잡한 정보 속에서 기회를 알아보는 비결이 바로 P코드와 S코드다. 두 개의 통찰 코드를 늘 안경처럼 쓰고 다니기 때문에 해결의 기회를 찾을 수 있다. <양심 냉장고> 김영희 PD도 ‘시청자들이 쉽게 공감할 만한 공익 소재’를 찾다가 새벽에 귀가하던 중, 문득 빨간 신호등을 발견하고 프로그램 아이디어를 생각해냈다. 그가 본 건 빨간 신호등이 아니라, ‘해결의 기회’였던 거다. 『미생』 윤태호 작가도 ‘직장인들의 삶의 이야기를 어떻게 표현하지?’라는 문제를 생각하다가 점심시간에 똑같은 흰색 와이셔츠를 입고 쏟아져 나오는 샐러리맨을 보고 『미생』을 쓰게 됐다. ‘똑같은 그들을 각자 다른 색깔의 의미 있는 인생들로 채색해보자’고 결심한 거다. 이들이 복잡한 생각을 했던 건 아니다. 문제와 해결, 단 두 개의 기획의 근본을 생각하고 있었을 뿐이다.

 

기획을 잘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을까?


우선 태도가 다르다. 열정, 진정성 등으로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떠한 프로젝트를 해결하겠다는 열정과 태도가 기획의 8할이고, 나머지가 기획의 원리다. 기획을 잘하는 사람들을 지켜보면 특히 관찰을 많이 하고 겸손하다.

 

노력해도 센스가 잘 생기지 않는 사람도 있지 않나? 무조건 노력하면 기획력도 생기나?


상대방이 보기엔 센스가 없을 수 있지만, 중요한 건 당사자가 센스를 기르기 위해 노력할 태도와 준비가 되어 있느냐다. 만약 그 사람이 센스가 떨어지지만 바꾸고 싶은 열정이 있다면 나는 같이 일하고 싶다. 하지만 “저는 원래 그래요”라면서 포기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으면 그건 나아질 가능성이 없다. 태도가 중요하다.

 

만나고-남충식

 

본질을 건드리는 책을 읽어야 기획력이 생긴다


광고회사에서 AE로 첫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처음부터 기획력이 뛰어나진 않았을 텐데, 어떠한 노력을 했나?

 

나는 완벽히 트레이닝으로 기획력을 쌓은 케이스다. 회사에서 철저하게 훈련 받았다. 많은 사람들이 기획력은 타고나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철저하게 후천적인 것이 ‘기획력’이다. 예전에 선배들이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으면 책상 앞에 앉아 있지 말고 그냥 퇴근하라고 했다. 이를 꽉 깨물고 다른 생활을 하고 놀다 보면, 언젠가 떠오른다고. 몸의 힘을 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도 마찬가지다. 잘 부르려고 노력하면, 긴장해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심사위원들도 힘을 빼는 도전자들에게 후한 점수를 준다. 한국의 경직된 조직문화에서는 쉬운 일이 아니지만, 긴장을 풀어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

 

최근 ‘6.4 지방선거’가 끝났다. 광고인으로서 인상 깊었던 공약이나 캐치프라이즈가 있었나?


아쉽게도 이번 선거에는 눈에 띄는 기획이 없었다. 메시지가 너무 많아 본질을 꿰뚫지 못했다. 대중들에게 강렬한 임팩트를 못 준 것 같다. 2012년에 한 정치인이 ‘저녁이 있는 삶’을 내세웠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 때 많은 사람들이 감정적인 터치를 받았던 것 같다.

 

‘아이디어 발상법’, ‘아이디어맨 되기’와 같은 책은 읽지 말라고 조언했다.


절대 읽지 말라는 게 아니고, 이런 책들이 본질이 아니라는 말이다. 대개 스킬 같은 건 배울 수 있겠지만, 본질적으로 기획력을 신장시키기 위한 통로가 될 수는 없다. 본질을 건드리는 책을 읽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된다. 추천해주고 싶은 책은 『생각의 탄생』, 『틀 안에서 생각하기』등이다.

 

그렇다면『기획은 2형식이다』도 본질을 건드리는 책인가?


물론(웃음). 본질을 건드리고 싶어서 쓴 책이다. ‘기획’에 관한 책은 오래 전부터 많이 나왔는데, 그런 책보다 내 책이 더 좋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기획을 보는 관점이 다르다. 보통의 책에서는 기획을 가르치려고 하는데, 기획은 절대 가르치는 게 아니다. 기획자 안에 창조의 거인은 이미 존재한다. 내가 하고 싶고, 해야 할 몫은 그 창조의 거인이 있다는 걸 일깨워주는 자극을 주는 거다. 책 제목을 작게 쓰고, 판형을 독특하게 작업한 것 모두가 창조에 대한 자극을 주기 위해서다.

 

올해로 광고인생 14년차다. 지금까지 해온 프로젝트 중에서 가장 만족스러웠던 것은 무엇인가?


지금 ‘2014 브라질 월드컵’이 한창인데, 나의 첫 광고주가 SK텔레콤이었다. 붉은악마의 ‘대한민국’ 박수를 가지고 캠페인을 벌였는데, 반응이 매우 좋았다. 원래 있던 박수였지만, 광고가 나가기 전까지는 사람들이 잘 알지 못했다. 우리가 한 것은 발견해서 알려준 거다. 이처럼 창조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고, 몰랐던 것을 발견해서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것이다. 또 예전에 ‘레이저’를 출시하면서 했던 ‘모토로라 캠페인’도 기억에 남고, 팬택의 ‘베가’는 내가 이름을 짓기도 했다. 규정하는 걸 좋아해서 네이밍에 관심이 많다. 현대자동차 ‘벨로스터’를 출시하면서는 기존의 평범한 론칭쇼에서 벗어나서 ‘벨로스타 클럽’을 지어서 론칭쇼를 했는데 큰 주목을 받았다. 현대차 프로젝트에서 4D 극장 광고를 제작한 것도 재밌는 작업이었다.

 

기획자가 된 후부터 생긴 습관이 있을 것 같다.


두 가지인데, 남들이 보면 “미친 놈 같다”고 말하기도 한다(웃음). 소설가 앙드레 지드는 “시인의 재능은 자두처럼 하찮은 것에도 감동할 줄 아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기획자도 다르지 않다. 시인(poet)의 어원을 찾아보면, ‘새롭게‘ 만들어 내는 사람’ 즉 ‘창조자(poein)’ 라는 말에서 나왔듯이, 크리에이티브도 그렇다. 지금 내가 삼다수 물병을 보고 있는데, 이 물병 하나로도 한 시간 동안 여러 가지 이야기를 꺼낼 수 있다. 이런 짓(?)을 해보는 게 정말 도움이 된다. 지하철을 타고 한강을 지날 때, 그냥 ‘물이 넘실거리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양하게 자기 관점으로 보는 사람도 있다. 두 번째 습관은 갑자기 어떤 생각이 났을 때, 사람들에게 질문하는 버릇이다. 예전에 ‘기저귀 프로젝트’를 할 때는 젊은 엄마들을 이해하려고 놀이터에 한참을 앉아 있다가, 엄마들에게 가서 “아이 기저귀를 실제 차본 적이 있냐?”고 물어서 뺨을 맞기도 했다(웃음). 처음 보는 사람이 대뜸 황당한 질문을 하니까, 다들 어이없어 했다(웃음).

 

만나고-남충식

 

가수 윤종신의 ‘월간 윤종신’ 프로젝트를 최근 문화계에서 본 최고의 기획으로 손꼽았다. ‘월간 윤종신’에서 발견한 P코드는 ‘불규칙한 음악 발표 주기’라는 문제였고, S코드는 ‘윤종신의 디지털 월간 음악 잡지’라는 솔루션이다.


‘월간 윤종신’은 최근 5년간 봐왔던 모든 카테고리 중에서 최고다. 모든 면에서 완벽했고 탁월하다. 기획에는 카테고리 구분이 없다. 김태호 PD, 스티브 잡스, SM엔터테인먼트의 아이돌 기획자도 우리의 경쟁자가 될 수 있다. 기획에서 이론은 20%에만 해당된다. 나머지는 태도, 목적의식, 열정이다. ‘월간 윤종신’은 가수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새로운 해결책이었고, 음악인의 열정에서 나온 자구책이다. 윤종신은 우리에게 기획력은 ‘능력’이 아니라, ‘태도’라는 걸 다시 한 번 상기해줬다. 우리가 기획자 윤종신에게 배워야 할 본질은 ‘월간 잡지’라는 포맷 아이디어나 ‘다양한 작가와의 콜레보레이션’ ‘홍보 전략’ 등 S코드적 화두가 아니라, ‘가수 윤종신으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P코드적 사고와 그것을 실천해나가는 열정과 끈기, 결국 P코드다.

‘월간 윤종신’이 처음부터 큰 반응이 있지는 않았다. 골수 팬들만 반응했다. 꾸준함이 지금의 결과를 가져온 것 같다.


2010년 4월부터 지금까지 발행하고 있으니, 웬만큼 부지런하지 않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한결 같은 꾸준함이야말로 정말 대단한 점이다. 사실 기획은 실현했다고 해서 바로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다. 내가 비염 때문에 병원에 가서 수술을 했는데, 수술하고 나니 바로 숨이 쉬어졌다. 그런데 3개월 반 만에 다시 도루묵이 됐다. 어쩔 수 없이 이번에는 한의원을 찾아갔는데 치료 기간이 오래 걸렸지만 결국 치료가 됐다. 기획도 마찬가지다. 일시적으로 뭔가 해결되는 게 아니고, 시간이 갈수록 기획이 발전하면서 성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많이들 오해하는 게, 기획이 좋으면 반응이 바로 올 거라는 착각이다. ‘월간 윤종신’ 역시 점점 발전하고 꾸준했기 때문에 더 나아진 거다.

 

마흔은 두 번째 스무살


개인적인 질문을 해보자.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건, 광고인이 되기 위해서였나?


고등학교 1학년 때 신문에 광고인에 대한 기사가 크게 났는데, 굉장히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광고를 하고 싶은데 “뭐를 전공하면 좋냐?”고 물으니, 어른들이 “광고가 마케팅 아냐? 그럼 경영학과”라고 하더라. 그래서 경영학과에 들어갔다. 경영도 여러 분야가 있지만 난 마케팅만 생각했고 졸업 후 입사할 때도 광고회사만 지원했다. 그런데 광고계의 다른 동기들은 그렇지 않다. 그 때 나는 외골수라 ‘광고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좋은 선택만은 아니었다. 광고가 세상의 전부인 것도 아닌데, 좀 더 다양한 가능성에 대해 고민하고 시도해보는 게 좋은 것 같다. 인생은 장기적인 게임 아닌가? 대학생들을 만나는 자리에서도 늘 강조하는 게, 여러 가능성을 생각해보라는 점이다.

 

〈썸네일 프로젝트thumbnail project〉의 인디 뮤지션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음악은 취미 활동인가?


중학교 1학년 때, 무한궤도가 우상이었다. ‘88년도 대학가요제’를 보고 ‘이거다’ 싶었다. 대학에 간 이유가 ‘대학가요제’에 출연하기 위해서였다(웃음). 스윗소로우 인호진과 중학교 친구인데, 같이 대학가요제에 나갔다가 최종 예선에서 아쉽게 떨어졌다. 호진이는 ‘유재하음악경연대회’에서 대상을 타면서 가수로 데뷔했고. 살면서, 음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버린 적이 없다. 광고에 흥미를 갖게 되면서 두 가지 중에 무얼 선택할까 고민하다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은 취미로 갖고, 두 번째로 좋아하는 광고를 직업으로 택했다.

 

만나고-남충식

 

‘연애도 기획’이라는 말도 했다. 두 딸의 아빠인데, 남다른 프러포즈로 아내의 마음을 얻었는지 궁금하다.


아쉽게도 특별한 프러포즈는 없었다(웃음). 아내와는 사내 커플이었다. 최근에 한 후배가 좋아하는 여자가 있는데, 여자가 이 후배를 남자가 아닌 오빠로만 생각한다고 하더라. 어떻게 고백하는 게 좋겠냐며 조언을 구하길래, 우선 편지는 절대 쓰지 말라고 했다. 편지는 거절할 수 있는 명분을 너무 많이 준다. 남자로 여기지 않는다고 하니, 직접적인 고백을 하는 것이 훨씬 남자다워 보일 수 있다. 남자들은 대개 풍선, 촛불, 뮤지컬 등 이벤트를 펼치는 걸 여자들이 좋아할 거라 생각하는데, 케이스마다 다르겠지만 뭐든지 문제를 진단하는 게 우선이다. 여자가 왜 나에게 마음을 열고 있지 않는지, 그 문제에 따른 해결방안을 찾는 게 현명한 기획이다.

 

올해 마흔이다. 마흔을 ‘두 번째 스무 살’이라고 여긴다고 헸다.


팀원들에게도 지겹게 이야기한다. 33세 후배에게 “넌 아직 태어난 게 아니다”라고, 38세 후배에게는 “인생의 시작은 마흔”이라고 말한다. 지금은 100세 시대 아닌가? 곧 120세 시대도 찾아올 거고. 마흔이 인생의 진짜 시작을 열 수 있는 나이인 것 같다. 조금 철이 든 게 스무 살이고, 좀 더 철이 든 나이가 마흔인 것 같다.

 

스스로를 ‘싱어송 아이디어 라이터’라고 부르고 있다. 어떤 의미인가?


요즘은 카피라이터를 ‘아이디어 라이터’라고 부른다. 나는 기본적으로 내 생각을 글로 쓰는 걸 좋아한다. 그게 가사이든 기획서이든. 여러 가지 툴은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내 생각을 어떤 형태로든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게 여전히 흥미롭다. 직업이란 형태로 규정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인생의 모토로 삼는 글귀가 있나?


비틀즈의 앨범 가운데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명반 <화이트 앨범(The Beatles)>에 좋아하는 곡이 있다. 일명 ‘원숭이 노래’라 불리는 이 곡은 소위 펑크록의 효시로 알려진 신나는 노래다. 이 가운데 한 소절이 내가 말하고 싶은 플래닝 코드의 비밀을 말해 주고 있다. “The deeper you go the higher you fly, The higher you fly the deeper you go.” 나는 절대 가볍고 싶지 않다. 화려한 것을 좇지 않고 언제나 본질적인 것, 기본적인 것에 집중하려고 노력할 거다. 그래야만 멀리 점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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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은 2형식이다남충식 저 | 휴먼큐브
창조가 화두인 시대. 창조경제, 창조경영, 창조과학 등 ‘창조’라는 단어를 우리는 쉽게 접할 수 있다. ‘창조경제’로 대표되는 시대의 트렌드에서 우리는 무엇을 깨닫고 생각해야할까?『기획은 2형식이다』의 저자인 광고회사 이노션(INNOCEAN)의 남충식 부장은 말한다. 사고력이 우선되지 않고선 ‘창조’는 무의미하고 공허하다고. 크리에이티브한 업종의 최전선인 광고업계에서 일하는 저자는 수년간 고민하고 경험한 것들을 이론으로, 강연으로 차곡차곡 쌓아왔다. 그 결과물이 바로 [플래닝코드]이고 그 이론을 집대성한 것이 이 책, 『기획은 2형식이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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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정호승 “당신이 없는데 어찌 내가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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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산문집은 맑은 장국 같다. 화려한 색을 뽐내지 않지만 어떠한 맛보다 진하고 정직하다. 때때로 많은 글을 읽으면 소화 불량이 찾아온다. 하나, 정호승 시인의 글은 읽고 있노라면 금세 마음이 건강해지는 것 같다. 올해로 등단 41년, 11권의 시집을 펴내면서 시인은 틈틈이 독자들에게 산문집을 선물했다. 시로 담기 어려운 이야기, 놓친 마음들을 성실한 관찰을 통해 산문으로 전했다.

 

『당신이 없으면 내가 없습니다』는 정호승 시인이 지난 2년 반 동안 <동아일보>에 ‘정호승의 새벽 편지’라는 제목으로 연재한 칼럼에 새로운 글을 더해 엮은 책이다. 제목만으로도 선물이 되고, 위안이 되는 책. 정호승 시인은 “어둠 속에는 빛이 있다. 빛이 있기 때문에 어둠이 있고 어둠이 있기 때문에 빛이 있다”며, “우리도 마찬가지다. 내가 있기 때문에 당신이 있는 게 아니라, 당신이 있기 때문에 내가 있다”고 말했다.

 

고통 또한 인간의 본질이자 숙명이다. 비를 피하기 위해 황급히 어느 집 처마 밑으로 들어갔다고 해서 하늘에서 비가 오지 않는 것은 아니다. 비가 오는 것은 원래 하늘의 본질이다. 하늘이 늘 푸르기만 하다면 그것은 하늘의 본질이 상실된 것이다. 내가 고통이 없기를 바라듯 하늘이 푸르게 개어 있기를 바라는 것일 뿐, 지금 하늘이 맑게 개어 있다 해도 언젠가는 또다시 바람이 불고 비가 오게 마련이다. 바람이 없으면 내 인생이라는 연을 날릴 수 없다. 내 인생이라는 연을 날리기 위해서는 강한 고통의 바람이 필요하다. 연을 제대로 날리기 위해서는 바람이 강하게 불어와주어야 한다. 지금도 내 손엔 어릴 때 연을 날리며 강한 바람과 맞서던 연줄의 팽팽한 기운이 다시 솟는다. ( 『당신이 없으면 내가 없습니다』 365쪽)

 

 

만나고-정호승

 

내가 사랑을 선택하며 살아왔는가

 

일간지에 ‘정호승의 새벽 편지’를 연재할 때, 많은 독자들이 작가님의 글을 여러 번 곱씹어 보게 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편집자 분께 들은 이야기인데요. 어떤 독자 분은 칼럼을 복사해서 가까운 사람들에게 나눠줬다고 하더라고요. 고마운 일입니다.

 

작가님은 집필실 책상 위에 ‘토성에서 본 지구’ 사진을 붙여 놓으셨다고요. 고통스러울 때마다 그 사진을 보면 마음이 한결 편안해지신다고.


그 사진을 볼 때마다 마음의 위안을 얻어요. 우주의 크기를 생각하면 지구는 얼마나 작고, 그 지구 속에 사는 나는 얼마나 또 작은가, 그러니 욕심내지 말고 주어진 상황 속에서 잘 받아들이며 열심히 살겠다는 생각을 해요. 욕심이 적으면 적을수록 고통도 적어진다는 평범한 사실을 깨닫게 하죠. 인터넷에서 검색해보면 금세 찾을 수 있어요.

 

최근에 새롭게 붙인 사진은 없나요?


렘블란트 그림 중에 ‘돌아온 탕자’라는 작품이 있어요. 용서에 관한 그림이죠. 성서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에 관한 그림인데, 헨리 나우웬이 쓴 책 『탕자의 귀향』 표지 사진이기도 해요. 이 책 첫 페이지를 보면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요. “관계가 힘들 때, 미움을 선택하지 말고 사랑을 선택하라”는 말을 하죠. 우리는 누구나 관계 속에서 살잖아요. 관계가 설정되지 않는 삶은 없죠.

 

『당신이 없으면 내가 없습니다』도 결국 관계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맞아요. 제목에서 알 수 있겠지만, 모두가 내가 있기 때문에 당신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반대죠. 제가 한 산사의 처마 끝에 풍경을 달고, 「풍경 달다」라는 시를 쓴 적이 있어요. 바람이 부니까 풍경 소리가 무척 아름답게 나더군요. 풍경이 과연 누구 때문에 이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었을까요? 바람 때문이죠. 바람도 자기 존재에 있어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었던 건, 풍경이 있어서 입니다. 이처럼 풍경과 바람의 관계는 사랑의 관계에요. 관계가 힘들 때마다 ‘내가 사랑을 선택하며 살아왔는가’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내가 풍경이라면, 바람이 없이는 아름다운 소리를 내지 못할 것을 생각해보면 무엇을 소중하게 여겨야 할지를 깨닫게 돼요.

 

제목만으로도 누군가에게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책인 것 같습니다.


책에도 썼지만, 인도 출신 예수회 신부 앤서니드 멜로가 쓴 우화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남자가 연인의 집을 찾아가 문을 두드렸더니, 연인이 “누구냐”라고 대답했습니다. 남자는 “나야 나”라고 답했는데 여자는 “돌아가라, 이 집은 너와 나를 들여놓는 집이 아니다”라고 했죠. 남자는 몇 달 동안 연인의 말을 곰곰 생각하다가 다시 문을 두드리고는 같은 질문에 “너야 너”라고 답합니다. 그러자 금세 문이 열렸죠. 너와 나의 관계는 하나지, 둘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당신이 있기 때문에 내가 있는 것, 구분되는 관계가 아니라 하나라는 걸 의미하죠. 우리는 어둠을 보면서 빛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항상 빛 속에는 어둠이 있고, 어둠 속에는 빛이 있죠. 우리가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관계가 사실 하나의 통합된 관계라는 걸, 독자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만나고-정호승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에 대한 깊은 성찰


우리는 인생을 말할 때, 흔히 마라톤 경주로 비유합니다. 끝은 가봐야 안다는 거죠. 일등이 끝까지 일등이 되라는 법도, 꼴등이 꼭 일등이 되지 못하라는 법도 없습니다. 그런데 작가님은 인생은 결국 ‘여행’과 같은 것이라고 말하셨습니다. 우리는 인생이라는 길을 걸어가는 산책자나 여행자라고요.


인생을 마라톤에 비유했을 때는 “나중 되는 자가 먼저 될 수 있다”는 교훈을 가져다 줍니다. 맞는 이야기이고 좋은 교훈이죠. 하지만 마라톤은 결국 경주이고, 경주라는 건, 서로 순위를 다투는 거죠. 저는 또 하나의 마라톤의 의미를 생각해보길 권합니다. 인생은 시합이 아니니까요. 인생이 시합이라면 경쟁이 되고 이겨야 하는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건 어떻게 가느냐의 과정입니다. 목표지향적인 삶이 아니라 경로지향적인 삶이 중요한 까닭이죠. 경쟁을 해야 하면 우리는 쉬지 않게 됩니다. 지름길로 가려고 하고 타자에 대한 배려도 하지 못하죠. 사랑이 부재된 승리지향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하지만 과정을 지향하면 일단 시합을 안 합니다. 여유를 가지고 쉴 수도 있고 되돌아갈 수도, 다시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어디를 누구와 함께 가느냐가 중요하지, 가야 할 그 곳이 중요한 것이 아니지요.

 

인생에서 가장 길고 지난했던 시간은 언제였나요?


보통 20대가 시간이 가장 안 간다고 말합니다. 누구에게나 그럴 거예요. 그건 인생을 준비하는 기간이기 때문이에요. 대개 20대 때 인생을 준비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는데, 20대 때 준비가 부족하면 30대, 40대가 힘들어집니다. 왜냐면 30대, 40대는 책임이라는 게 생기는 나이이기 때문이죠. 사람의 본질 속에는 책임이 있는데, 준비가 부족하면 자신이 책임져야 할 존재에 대한 두려움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산문집에 러시아로 떠나는 아들에게 쓴 편지를 담기도 하셨는데요. 20대 때, 가장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에 대한 깊은 성찰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남이 한다고 해서 따라갈 필요는 없어요.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하고 싶은지, 무엇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준비하는 기간이 길다고 너무 초조해 할 필요는 없어요. 다만, 어떤 시점에서는 준비의 기간이 끝나야 하죠. 무엇을 하기에 충분할 만큼 완벽할 때는 없기 때문에 어느 시점에서는 행동을 해야 해요. 이 행동이 어떤 사람에게는 30대가 될 수도 있죠. 인생에서 속도는 큰 의미가 없어요. 특히 20대 때는 더욱이 의미가 없죠. 기성세대로서 젊은 세대를 볼 때, 안타까운 건 방향을 제대로 찾지 못하는 모습을 볼 때에요. 새들은 바람이 가장 강하게 불 때 집을 짓지 않습니까? 20대는 고통스러워도 기초공사를 짓는 기간이기 때문에 그 고통, 힘듦을 잘 견뎌야 해요. 내가 하고 싶은 것에 대한 깊은 성찰이 있으면, 그 고통이 고통으로만 다가오진 않을 겁니다.

 

요즘 유독 많이 생각하는 것들은 무엇인가요?


나이 들어가고 있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어요. 물리적인 나이를 먹어 가면서, 인생은 정말 시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리적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시간이잖아요. 물리적 시간을 내가 어떻게 절대적인 시간으로 만들어가느냐, 이것이 저의 과제입니다. ‘내가 얼마나 노력을 하면서 살았냐’를 생각해보면 후회되는 부분이 많아요. 남은 인생의 시간이라도 절대적인 시간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후회가 되는 일이 많나요?


많죠(웃음). 담배를 피운 일도 후회가 되고 또 열심히 더 공부하지 못한 것, 책을 더 열심히 읽지 못한 것도 후회가 됩니다. 더 깊게, 넓게 생각하지 못하고, 남을 많이 사랑하지 못하고 나를 너무 많이 사랑한 일도 그렇고. 후회되는 일은 많죠.

 

그렇다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은 어떤 결단이었나요?


시로부터 버림 받지 않으려고 열심히 매달리면서 살아온 일이죠. 사실 내가 시를 선택한 건 아니에요. 시가 나를 선택해서 시인으로서의 삶을 살 수 있었는데, 무척 감사한 일입니다. 시와 산문을 쓸 수 있는 기회와 능력이 주어진 것만큼, 더 큰 감사는 없어요.

 

만나고-정호승

 

결국 시를 쓰는 것도 노력하는 일


어릴 적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호승이는 시인이 되면 시를 잘 쓰겠다”는 칭찬을 받은 일이 있다고 하셨는데요. 시인이 된 일에 있어 큰 계기가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깊게 남았죠. 선생님의 칭찬이 계기가 돼서 교내 백일장에도 나가게 됐고요. “우리 반에서는 누가 백일장을 나갈까?” 선생님이 물었을 때 아이들이 모두 저를 추천해줬어요. 선생님의 칭찬을 반 친구들이 다같이 들었으니까요. 사실 저는 중학교 2학년 때까지만 해도 백일장이 뭔지 잘 몰랐어요. 백일 동안 어디를 가는 건 줄 알았죠(웃음).

 

선생님의 칭찬 한 마디가 인생의 새로운 길을 열어줬다고 생각해도 될까요?


그렇죠. 선생님의 한 마디가 없었다면 제가 시에 재주가 있다는 걸 몰랐을 겁니다.

 

요즘은 스승과 제자 사이의 교류가 과거에 비해 줄어들었습니다. 멘토 열풍이 다소 꺾이긴 했지만, ‘지금 세대는 멘토를 돈으로 사고 있다’는 이야기도 하고요. 학교에서 이뤄지는 사제 간의 끈끈한 정이 예전 같지만은 못한 것 같습니다.


우리사회에 많은 직종이 있는데, 초중고등학교 교사라는 직종은 그 가운데서도 정말 소중한 자리라고 생각해요. 어떤 부분에서는 성직과 같은 부분이 있다고 이야기할 수 있죠. 교직은 아이들의 맑은 영혼을 책임지는 일이에요. 부모가 집에서 돌봐줄 수 없는 사회성, 인간관계를 학교에서 배우잖아요. 선생님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이 한 학생만이 지니고 있는 놀라운 개인성을 발견해주고 칭찬해줘야 한다는 거예요.

 

‘가장 아름다운 체벌’이라는 제목으로 신문에 기사가 나기도 했죠. 전남 광주의 한 중학교 선생님은 지각생들에게 벌을 주는 대신, 시를 외워오라는 숙제를 내줘서 감동을 주기도 했습니다.


네. 그것도 국어과 교사도 아니고 사회과 교사시더라고요. 선생님들은 본의 아니게 학생들에게 체벌의 형태를 갖춰야 할 때가 있는데, 그 선생님은 매를 드는 대신 시를 외우게 하는 벌을 주셨죠. 저도 늘 생각합니다. 꼭 국어 교사가 아니더라도 아이들에게 시를 많이 읽게 하고 외우게 하면 참 좋겠다고요. 지금 중고등학교 학생들을 만나보면 시를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될 시기에 학교에서 정지용, 윤동주, 김소월의 시를 경험하게 해야 하는데, 6학년 때까지 동시 세계에만 갇혀 있다가 중학교에 가서 갑자기 한국 현대시를 시험의 방법으로 만나니까 시와의 만남이 불행해요. 한국문학을 더 많이, 깊이 있게 경험해야 아이들이 언어영역에서 자기를 표현하고 드러낼 수 있는 능력들이 발전하지 않을까, 싶어요.

 

작가님께서는 국문과 말고 다른 전공을 생각해본 적이 없으신가요?


대구에서 학창시절을 보냈는데 고3이 됐을 때, 서울에 있는 대학에 다니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가정형편이 서울로 유학을 보낼 상황이 아니었죠. 그런데 마침 경희대학교에서 전국고교생현상모집으로 문예대학생을 뽑았어요. 한 번 도전이나 해봐야지 싶어, ‘고교문예의 성찰’이라는 제목으로 평론을 썼는데 당선이 됐습니다. 당시에 발간된 문예지를 계속 읽고 있었으니까, 평론이 무엇이냐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이해는 있었죠. 제가 작가로서는 글을 쓸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고등학생이 쓴 시를 가지고는 써볼 수 있을 것 같아 평론을 쓴 거죠. 그래서 무시험으로 총장장학금을 받고 입학할 수 있었어요.

 

올해로 등단 41년을 맞이했습니다. 시가 잘 쓰여지는 순간이 있나요?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는 “시가 내게로 왔다”고 고백했죠. 물론 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도 그런 경험을 간혹 합니다. 하지만 결국 시를 쓰는 것도 노력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아무리 메모를 많이 하고 가슴속에 시가 많다고 해도, 시를 쓰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시가 될 수 없습니다. 흔히들 “내가 살아온 인생을 소설로 쓰면 책 몇 권을 써도 모자라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것이 소설입니까? 직접 쓰지 않고서는 소설이 될 수 없죠. 시를 쓰는 일도 사는 일과 똑같습니다. 노력을 해야죠. 내가 시를 찾아가는 일이지, 시가 나에게 찾아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삶도 그렇습니다. 나에게 어떤 긍정적인 인생의 길이 한 번에 주어지진 않습니다. 찾아가다 보니, 또 다른 길이 생기고 인생의 좋은 행로를 만나게 되는 거죠. 시도 마찬가지입니다. 계속 고쳐 쓰다 보니까, 내가 생각하지 못한 어떤 한 행이 나에게 선물로 주어지는 거예요. 하지만 그건 주어졌다기보다는 내가 찾아간 거죠.

 

만나고-정호승

 

내 인생에서 무엇이 가장 가치 있는가


결국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행복과 불행의 총량은 같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나 행복을 잘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같은 일을 겪어도 덜 행복해 하고 더 불행해 하는 사람이 있는데요.


똑같은 고통을 당해도 어떤 사람은 그 고통 속에서 희망을 바라보고, 다른 어떤 사람은 고통 속에서 절망을 바라보죠. 고통은 동일하나 고통을 느끼는 건 동일하지 않은 거죠. 그래서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진다”는 이야기가 있는 거죠. 저는 행복을 생각할 때, 꽃 향기를 떠올립니다. 라일락 향을 좋아하는데, 길을 걷다 라일락 향이 나면 발걸음을 늦추고 향을 맡습니다. 그렇게 오래 있다 보면 어느 순간 향이 나지 않습니다. 왜 향이 안 나냐? 생각해 보면, 향이라는 건 한 순간 스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계속 좋다고 해서 계속 향을 맡으면, 그건 냄새가 되고 질립니다.

 

 행복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순간에 내가 느끼는 것이지 계속 주어지는 건 아닙니다. 제가『당신이 없으면 내가 없습니다』를 냈을 때, 기쁘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그 기쁨이 계속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제가 첫 아이를 품에 안았을 때, 얼마나 더 기뻤을까요? 지금도 그 순간을 잊지 못하지만, 그 순간의 기쁨이 평생 지속되면 저는 감당할 수 없을 겁니다. 그 지속되는 기쁨 때문에 죽을지도 모르죠. 기쁨은 그 순간 사라지기 때문에 나에게 존재할 수 있는 겁니다. 사라지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 거죠. 그 순간의 기쁨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냐, 하지 않느냐의 차이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과 해야만 하는 일, 하고 있는 일이 일치하는 사람이라고 하셨는데요. 작가님도 해당되는 것 같습니다.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제가 하고 싶은 일은 시인으로서의 삶을 사는 거예요. 현재 글을 쓰면서 시인으로서의 삶, 넓게는 작가로서의 삶을 살 수 있고 살고 있으니까 저는 행복한 사람이죠.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하길 원하지만, 모든 사람이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저도 인생의 어느 한 순간에 과감한 결단을 했습니다. 직장생활을 열심히 하다가 40대 초반에 시인으로 살겠다고 결심했죠. 그 때는 무척 두려웠습니다. 또 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고생도 했어요. 하지만 그런 결단을 하게 해준 운명적 존재에 대해 감사합니다.

 

작가님이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이 당선되었을 때, 고 최인호 작가님이 격려를 해주며 “시인이 소설가가 되려면 열심히 쓰는 수밖에 없다”고 말씀하셨다고요. 다시 한 번 소설을 집필할 계획은 없나요?


소설은 못 쓸 것 같아요. 동화를 쓰고 싶어요. 아이들이 읽는 동화도 좋겠고 어른이 읽어도 좋은 동화도 쓰고 싶어요. 산문은 시 정신의 연장선에서 이뤄지는 하나의 결과물인데, 이번 책과 같은 산문과 동화, 동시도 쓰고 싶어요. 서사구조가 필요한 소설이라는 장르는 아마 제 인생의 시간이 부족해서 쓰기는 어렵지 않을까 생각해요. 시를 좀 더 바람직하게 쓸 수 있는 그런 능력과 시간이 부여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미리 쓴 나의 버킷리스트’도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서울을 무작정 떠나는 일을 해보고 싶다고 하셨는데, 혹시 시도를 하셨나요?


(웃음). 아직 실행하지 못했어요. 그 글을 쓰고 나서 보니까 굉장히 관념적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구체적으로 썼지만 사실은 관념적이지 않나, 쓰면서도 반성을 했어요. 아마, 버킷리스트를 다시 써야 할 것 같습니다. 누구에게도 공개할 수 없는 개인적인 버킷리스트를 써보려고 해요.

 

독자들이 다양한 동기로 『당신이 없으면 내가 없습니다』를 읽게 될 텐데요. 어떤 마음으로 이 책을 대하면 좋을까요.


내 인생에서 무엇이 가장 가치 있는지에 생각해보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어요. 법정스님이 “사람은 때때로 홀로 있을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하셨는데요. 고독의 영역, 자기 혼자만의 시간이 정말 소중하다는 걸 알고, 조용한 가운데서 이 책을 한 번 펴보면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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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없으면 내가 없습니다정호승 저/박항률 그림 | 해냄
이 책은 《동아일보》에 연재한 「정호승의 새벽편지」원고 일부에 새로 쓴 산문을 더하여 총 71편의 글과, 자연을 통해 내 안의 자아를 바라보는 교감의 순간을 한 편의 시처럼 그림에 담아내는 화가 박항률 화백의 그림 29점이 함께 실려 있다. 삶이라는 큰 주제를 시인의 눈으로 바라보도록 만든다. 가게 주인의 짧은 인사말에 따스한 이웃의 정을 찾아내는 「당신은 어떻게 사랑하고 있는가」에서는 우리가 아직 사랑하며 살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준다. 「가장 소중한 선물」에서는 선물을 사 오지 못해 미안해하는 형에게서 그저 곁에 있어주어 감사한 마음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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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숀리 “하루 15분만 투자하면 몸매가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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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 싫은 등살, 파묻힌 쇄골, 늘어진 팔뚝 살. 여성들의 고민은 반드시 체중 감량만이 아니다. 균형 잡힌 몸매에서 찾을 수 있는 ‘옷 맵시’를 꿈꾼다. 운동을 하고 싶지만, 피트니스 센터에 갈 상황도 아니고 다이어트 식단에만 모든 걸 맡길 수 없다면? 대한민국 대표 트레이너 숀리가 제안하는 ‘3분 운동법’에 귀를 기울여보자. 3분씩 총 5회, 하루 15분만 투자하면 하루 운동량이 완성되므로 운동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핑계는 통하지 않는다.

 

『숀리의 3분』은 상체편, 하체편, 복부편으로 출간되어 자신의 신체 고민에 맞게 운동을 배울 수 있다. 책에서 소개하는 숀리의 3분 운동법은 현재 자신의 체중을 기준으로 체지방과 근육량을 조절해 내 몸에 가장 알맞은 비율의 몸매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총 4주간의 프로그램은 운동의 난이도에 따라 크게 1-2주차, 3-4주차 운동법으로 나뉘어 있으며 운동의 강도는 점점 높아진다. 단기간에 체중 감량을 원하는 사람들을 위한 ‘숀리의 4주 집중 다이어트 식단’도 소개되어 있어, 하루 3끼를 먹으면서도 다이어트에 성공할 수 있다.

 

“몸의 아름다움은 어느 특정 부위의 뛰어남보다 전체 비율에 비롯된다. 따라서 트레이너로서 체중 관리에 대한 조언을 할 때도 체지방을 몇 퍼센트까지 줄이라거나 근육량을 얼마큼 높이라는 등의 말은 하지 않는다. 내가 사람들에게 심어주는 진짜 목표는 타고난 자신의 체형에서 지방과 근육 그리고 각 신체 부위가 적절하게 균형을 이룬 몸을 만드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몸에 딱 피트되는 옷을 입었을 때 옷맵시가 근사한 그런 몸매를 말이다.” ( 『숀리의 3분』 6쪽)

 

만나고-숀리

 

식사 전에 3분만 운동해라


『숀리 다이어트』, 『숀리의 남자 몸 만들기』에 이은 『숀리의 3분』은 여성들을 위한 집중 운동법을 소개한 책이다. ‘3분 운동법’을 간단히 소개한다면?


오랫동안 다이어트를 원하는 사람들을 트레이닝하면서 3분이라는 시간이 운동에 가장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라는 걸 깨달았다. ‘3분 운동법’은 하루에 3분씩 5번을 운동하는데, 3분 운동을 한 후 3분간 쉬어야 한다. 이렇게 일주일에 3회를 하는데, 하루 3끼를 먹으면서도 가능한 운동법이다. 실제 트레이너들도 효과를 많이 봤고, 숀리바디스쿨에서 운동하는 분들도 변화가 있었다. 책에서 소개한 운동법은 2006년 미국에서 PROPTA(미국 캘리포니아에 본부를 두고 있는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퍼스널 트레이닝 단체) 자격증을 취득하면서 쌓은 노하우를 바탕으로 개발했다.

 

‘3분 운동법’ 영상이 큰 화제를 모았는데, 정말 이 운동 만으로 150칼로리를 소모할 수 있나?


사람마다 다르다. 누구는 더 소모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칼로리를 계산해서 운동을 하는 건 꾸준히 운동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은 아니다. ‘3분 운동법’은 무조건 식사를 하기 전에 실행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 최소 3분이라도 운동을 하고 식사를 하면 몸이 달라진다.

 

3분 운동법의 가장 큰 장점은 전문 트레이너나 기구의 도움 없이 혼자서 어디에서든지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매력은 전신 운동, 근육 운동을 따로 해야 하는 불편함을 없앤 ‘유산소성 근력 운동’이라는 점이다. 특정 부위의 살을 빼려고 할 때 흔히들 그 부위만 자극하는 운동을 한다. 하지만 한 부위의 살만 골라 빼주는 운동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전신 운동으로 체지방을 줄이는 동시에 탄력과 라인을 완성하고자 하는 부위의 근력 운동을 추가해야 효과적으로 살을 뺄 수 있다.

 

3끼를 모두 먹으면서 운동하는 건, 다이어트 효과를 감소시키지 않나.


1일1식이나 원 푸드 다이어트 등 과학적으로 효능이 입증되지 않은 다이어트는 일시적으로 체중을 줄일 수 있지만, 장기간 지속하면 위 질환, 탈모, 피부 탄력 저하 등이 일어날 수 있다. 단식과 절식은 그만두는 순간, 빠른 속도로 요요 현상이 온다. 3끼를 먹되, 거르기 쉬운 아침을 꼭 챙겨 먹어서 점심과 저녁 식사량이 많아지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하루 1.2~2L의 물을 마시는 게 다이어트에 좋다고 하는데, 많이 마실수록 좋은 건가?


양만 채워 마신다고 해서 효과가 있는 건 아니다. 한 번에 다 마시는 것보다 조금씩 나누어 마시는 게 좋다. 천천히 물을 마시면 지속적으로 체내에 수분을 공급할 수 있고 노폐물 배출에도 도움을 준다. 단 식전과 식후 30분에는 물을 마시지 않는 게 좋다. 이때 물을 마시면 인슐린 분비를 촉진하고 소화를 방해해 살찌기 쉬운 체질이 된다.

 

만나고-숀리

 

체형에 맞는 운동법을 찾아라


내 몸에 맞는 운동법, 다이어트법을 찾는 것도 중요하다.


최근에 유행한 간헐적 단식을 시도했던 분들이 많다. 실제로 단식을 해본 후에 실패하고 바디스쿨에 찾아온 분들도 있었다. 나도 궁금해서 해봤는데, 나랑은 맞지가 않았다. 16시간 공복을 견디면서 시간을 체크하면서 식사를 했는데, 근육량이 감소하면서 더 스트레스를 받았다. 유행한다고 무조건 따라 하는 건, 시간 낭비다. 내 체질이나 성향, 상황에 맞는 다이어트를 하는 게 현명하다. 몸매가 역삼각형 체형인 여성의 경우에는 대부분 몸에 열이 많다. 이런 체형은 상체의 지방은 줄이고 하체의 근육량을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 배드민턴처럼 팔과 어깨를 이용해 라켓을 휘두르는 운동이나 허리를 틈틈이 돌리는 스트레칭이 효과적이다.

 

하체 비만으로 고민하는 여성들이 가장 많다.


보통 스푼형 체형이라고 말하는데, 하체의 근육량이 현저히 적거나 부종이 나타난다. 빠른 속도의 러닝이나 자전거 타기 같은 고강도 유산소 트레이닝을 통해 지방을 태우는 게 효과적이다. 운동 기구를 이용하기보다는 런지나 스쾃 같은 맨몸 근력 운동이 적합하다.

 

여성들이 운동할 때, 흔하게 하는 실수는 무엇인가?


종종 강의를 나가서 여성 분들에게 스쿼트를 해보라고 하면, 백 명이면 백 명, 모두 11자 자세를 취한다. 여성들은 와이드로 해야지, 허벅지 안쪽 살이 빠진다. 11자 자세를 취하다 보면, 알만 배긴다. 허벅지 안쪽의 셀룰라이트를 없애고 싶으면 스트레칭 효과가 강한 운동을 해주는 게 포인트다. 또 운동할 때 여성들은 화장을 지우지 않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화장을 한 채 운동을 하면 모공이 막혀 땀 배출을 방해하고 피부 트러블을 유발한다. 조깅할 때도 반드시 클렌징을 한 뒤 로션 정도만 가볍게 바르는 게 좋다.

 

『숀리의 3분』은 여성을 대상으로 한 운동법이다. 남성이 따라 하게 되면 효과가 없나?


남성들보다는 여성들을 타깃으로 만든 운동법이기 때문에 남성들에게는 『숀리 다이어트』, 『숀리의 남자 몸 만들기』를 추천하고 싶다.

 

만나고-숀리

 

여러 다이어트를 시도하는 사람들은 실패할 확률이 크다


숀리의 일상을 궁금해 하는 독자들도 많다. 운동이 일이겠지만, 체력관리는 어떻게 하고 있나?


2004년부터 2011년까지 머슬 마니아 대회에 나가느라 운동을 심하게 했지만, 그 후로는 트레이닝과 음식 연구를 주로 하고 있어서, 따로 몸을 키우는 운동은 하지 않는다. 주 5회 정도 오전 10시경에 약 40분 정도 웨이트 트레이닝을 한다. 아침 식사를 하고 나서 소화를 시킨 후에 운동을 시작한다.

 

1996년 캐나다 유학시절, 덩치 큰 흑인들과의 농구시합에서 신체적 열세를 실감하고 몸을 키우기로 마음먹었다. 2004년 북미에서 개최된 '머슬 마니아 캐나다'에서 동양인 최초로 우승을 거머쥐면서 인생이 바뀌었는데, 가끔 과거를 회상하나?


(웃음). 멸치 시절에는 체중이 58kg 정도 나갔다. 키 180cm에 60kg이 넘지 않았으니, 정말 허약했다. 방송 때문에 일부러 몸을 불러서 115kg이 나간 적도 있지만, 지금 몸을 유지하는 게 나에게는 최선인 것 같다.

 

식사 조절은 어떻게 하나?


단백질을 많이 챙겨 먹으려고 노력하는데, 식사 약속이 있으면 크게 메뉴를 상관하지 않고 먹는다. 평소보다 조금 많이 먹은 날은 다음 날 꼭 운동을 한다. 평상시에 어느 정도 체력을 유지하면, 음식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도 된다.

 

최근에 ‘KBS 조충현 아나운서의 몸짱 프로젝트’를 트레이닝했다. 10주 만에 19kg 감량에 성공했는데, 성공을 예상했나?


사실 처음에는 실패할 줄 알았다. 조충현 아나운서가 음식 먹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서(웃음). 그런데 의외로 식단을 잘 지켰다. 아나운서 회식이 있을 때도 본인 도시락을 챙겨가서 먹었다. 다이어트에 있어 식단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나 역시 다시 깨달았다. 조 아나운서가 약속을 지켜준 게 고맙다.

 

다이어트에 실패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여러 새로운 다이어트를 시도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실패할 확률이 크다. 트렌드에 휩쓸려서 웬만한 나라별 다이어트를 다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최종적으로 성공한 사람은 본 적이 없다. 원 푸드 다이어트의 경우는 2주 동안은 성공하지만, 그 후에는 분명히 요요 현상이 온다. 우리 한식을 조금 싱겁게 먹으면서 운동을 하면서 빼는 게 최선이다.

 

다이어트를 하다 보면, 정체기가 오는데 그 때를 견디는 게 힘들다.


오히려 정체기가 오는 게 다행이다. 계단처럼 빼는 게 중요하다. 정체기를 즐기면서 해야 한다. 방송에서는 빨리 효과를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극단적으로 실행하는 경우가 많은데, 어느 정도 빼고 나서 정체기를 갖고, 또 다시 몸무게가 줄어드는 게 가장 바람직한 패턴이다.

 

숀리바디스쿨에는 다이어트를 계획하고 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인가?


몸매 관리를 위해 오는 사람도 있지만 다이어트를 원해서 오는 사람들의 비중이 가장 크다. 사람들이 강남의 대형 피트니스 클럽에 가면 운동을 못 하겠다고 말한다. 다들 몸짱인 사람들만 오니까, 부담스러워서 못 가겠다고 한다. 그걸 깨고 싶었다. 자신의 몸을 자랑하기 위해 오는 게 아니라 비만인들도 자기들끼리 소통하고 이해하면서 운동을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다.

 

출산 후, 급격히 몸매가 망가져서 오는 여성들도 많은가?


적잖게 있다. 출산을 한 경우에는 100일이 지난 후부터 운동을 시작하는 게 좋다. 처음부터 무리하게 운동을 하면 몸에 무리가 갈 수 있다. 가벼운 유산소운동을 하는 게 효과적인데, 출산 100일이 지난 여성들에게도 ‘숀리의 3분 운동법’을 추천하고 싶다.

 

바디슬리밍 제품이 유행하고 있다. 실질적으로 효과가 있나? 다이어트 보조식품의 허와 실이 궁금하다.


바디슬리밍 제품은 마사지 효과가 있기 때문에 혈액순환이 되면서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살이 빠지고 몸매가 좋아지진 않는다. 요즘에는 운동하기 전에 마시면 살이 빠진다는 음료를 많이 마시는데, 당분도 적잖게 들어 있어서 나는 절대 권하지 않는다. 단백질 쉐이크 같은 경우는 운동 후 먹으면 도움이 되는데, 운동 전에 먹는 건 좋지 않다. 차라리 커피를 연하게 타서 한 잔 마시는 게 훨씬 낫다.

 

올 봄에 재능 기부 프로젝트 ‘숀리의 도전! 다이어트킹 파이널 쇼’를 열었다. 참가자 10명이 뺀 살만 총 381kg이라고 들었다. 어떻게 기획된 프로젝트인가?


방송을 통해 많은 사랑을 받았고, 다이어트로 고민하는 사람들의 문의를 많이 받다 보니까 우리가 조금이라도 더 힘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 환원 프로젝트라고 말하기는 부끄럽다. 프로젝트를 열면서 많은 분들이 면접을 봤는데, 실질적으로 트레이닝을 할 수 있는 사람은 10명 정도였다. 올 가을에 또 모집할 계획인데, 이번에는 조금 숫자를 늘려 보려고 한다.

 

선발 기준은 무엇이었나?


혼자서 운동할 수 있는 능력이 안 되거나, 상황이 안 되는 분들을 위주로 뽑았다. 면접을 보면서 안타까운 분들이 많았는데, 정말 노래 실력이 뛰어난데 살이 많이 쪄서 어디를 가도 합격이 되지 않는 분이 있었다. 뚜렷한 의지가 없는 분들도 있었는데, 그런 분들은 우리가 못 도와 드린다. 여러 트레이너들과 함께 최종 10명을 선발했는데 모두 의지가 강해 성공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만나고-숀리

 

  

숀리의 생활 속 3분 스트레칭

 

 

(버스에서) 다리 뻗어 발가락 당기기


의자에 앉아 허리를 곧게 펴고 발을 바닥에 붙인다. 한쪽 무릎을 펴 다리를 쭉 뻗고 발가락을 최대한 몸 쪽으로 당긴 채 10초간 유지한다. 종아리 부종과 허벅지 지방 제거에 효과적이다.

 

(사무실에서) 의자에 앉아 몸 앞으로 숙이기


척추기립근과 엉덩이뼈를 길게 늘이는 동작이다. 의자에 앉아 허리를 곧게 펴고 양발을 어깨너비보다 약간 넓게 벌린다. 등을 둥글게 말아 아랫배가 다리에 닿을 정도로 천천히 상체를 숙인 채 10초간 유지한다. 손은 자연스럽게 발끝에 붙이는 것이 좋다.

 

(화장실에서) 다리 옆으로 들어 올리기


양치질할 때 칫솔을 잡은 반대쪽 다리를 90도까지 옆으로 곧게 차올린다. 몸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들어 올렸다 내렸다 10회 반복한다. 배 안쪽 근육과 척추 근육 강화, 허벅지 안쪽 살을 제거하는 데 도움이 된다.

 

(소파에서) 발가락 가위바위보 하기


소파에 앉아 허리를 곧게 펴고 양 발을 어깨너비로 벌린다. 먼저 발가락 전체를 꽉 오므려 둥근 모양이 되게 해 10초간 유지한다. 그 다음 발가락을 쫙 펴 모든 발가락 사이가 벌어지도록 해 10초간 유지한다. 발과 종아리 근육을 풀어 줘 냉증 해소에 좋다.

 

(침대에서) 무릎 꿇고 엎드리기


무릎을 꿇고 발등이 바닥에 닿게 앉는다. 양팔을 앞으로 죽 뻗으며 손과 이마가 바닥에 닿을 정도로 천천히 숙인 채 10초간 유지한다. 휘어진 척추를 바로잡고 골반을 시원하게 풀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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숀리의 3분 다이어트숀리 저 | 삼성출판사
홈 트레이닝의 원조남, 숀리가 돌아왔다.여자들이여, 살 한 번 확실하게 빼 보자. 살 빼주는 데 이보다 더 믿음직스러운 사람이 있을까? SBS 스타킹에서 도전자를 최고 50kg 감량 시키더니, 최근에는 가수 빅죠 150kg 감량, 개그맨 김기리의 화난 등 근육 등 무시무시한 기록으로 화제가 된 숀리 트레이너가 여자들만을 위한 운동법을 들고 찾아왔다. 전작 숀리 다이어트, 숀리의 남자몸 만들기를 히트시킨 경험을 토대로 운동을 해 보지 않은 사람들도 누구나 알기 쉽게 꼼꼼한 사진과 설명으로 프로그램을 제안하며, 운동법은 한결 쉽고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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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동진 “히말라야, 아마존, 다음에 도전할 곳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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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이동진

 

아마존 정글을 달린 힘은 ‘절박함’


히말라야 5800m 고지에 오르고, 222km의 아마존 정글을 달렸으며, 100만 원도 안 되는 돈으로 미국 횡단에 성공했다. 『당신은 도전자입니까』의 이야기다. 일생에 한 번도 해내기 어려운 ‘도전’들을 연이어 이뤄낸 그의 이름은 이동진. 아직 서른도 채 되지 않은 청년이다. 짧은 시간 동안 굵직한 기록들로 자신의 ‘도전 리스트’를 채운 그의 앞에서 ‘나는 도전자입니다’라고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러나 그는 ‘여러분은 모두 도전자입니다’라고 말한다. “기존의 내가 하기 어려웠던 일을 해내려고 하는 것은 뭐든 도전이 될 수 있다고”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에게는 히말라야 정상에 오르는 일과 지각하는 습관을 고치는 일의 무게가 다르지 않다. 다 똑같은 도전일 뿐이다.

 

그의 첫 도전 역시 거창하지 않았다. 1년간의 재수 생활이 시작이었다. ‘죽기 살기로 해보자’는 마음으로 뛰어들자 스스로도 기대하지 않았던 결과를 얻게 됐고, 그래서 알게 됐다. 나도 몰랐던 가능성이 사실은 내 안에 잠자고 있었다는 것을. 그렇게 이동진은 ‘잠든 고래를 깨우는 즐거움’에 눈을 떴다. 그 즐거움을 좇아 종횡무진하다 보니, 어느덧 그의 무대는 히말라야가 되었고 아마존이 되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자신은 어제의 이동진이 아니었다. ‘새로운 나’를 만나는 기쁨을 알게 되자 ‘변화에 대한 절박함’이 다음 도전을 부채질했다. 그 모든 여정이 기록된『당신은 도전자입니까』안에서 저자는 말한다. 재수는 자신의 인생에 전환점을 만들어준 사건이었고, 지금까지의 모든 도전은 절박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절박함을 변화로 이끈 또 다른 원동력은 ‘액션’이었다. 그는 생각하기보다 행동하기를 선택했고, 할 수 없는 이유들을 생각하는 대신 할 수 있는 방법들을 고민했다. 그리고 자신이 찾은 방법들을 ‘3스텝’으로 단순화시켰다. 실제로 그는 해병대에 지원할 때도 ‘어떤 일들이 펼쳐질까? 내가 버틸 수 있을까?’와 같은 걱정에 매여 있지 않았다. 대신 ‘포털사이트에서 해병대를 검색하고, 해병대 홈페이지에서 지원하기를 클릭하고, 지원서를 제출하는’ 3단계를 행동으로 옮겼다. 이후의 모든 도전들의 과정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가슴이 뛰는 대로 행동하며 사는 그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가장 먼저 미디어가 반응했다. 아시아나항공은 그를 TV CF 모델로 섭외했고, CBS 프로그램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은 그를 강연자로 초청했다. 최근에는 EBS 스페셜에서 타클라마칸 사막으로 떠난 그의 이야기를 방송하기도 했다. 왜, 지금, 그들은 이동진의 도전에 주목할까. 그 이야기가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뭘까. 바로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채널예스>는 『당신은 도전자입니까』와 함께 이동진을 만났다.

 

우리는 모두 가슴속에 고래 한 마리를 품고 살아간다. 그 고래는 절대 해낼 수 없을 것 같은 일에 무모하게 덤빌 때, 두려움을 피하지 않고 맞설 때 나타난다. 그게 얼마나 사소한 것이든 기존의 나를 넘어서려고 노력하면 내 안에서 아주 작은 변화의 싹이 트고, 그런 경험들이 쌓이면 내가 뭘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내 안에 어떤 잠재력이 있는지를 알게 된다. 그 순간, 당신 안에 잠들어 있던 고래가 깨어나기 시작한다. ( 『당신은 도전자입니까』 10~11쪽)

 

만나고-이동진

 

진짜 나의 상태는 내 정신력이 말해준다


『당신은 도전자입니까』를 통해서 책을 쓰는 일에 새롭게 도전하셨습니다. 어떠셨나요?


처음에는 개인적인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 쓰려고 했는데 『당신은 도전자입니까』를 쓰면서 배운 게 있어요. 책은 자신을 위해서 쓰는 게 아니라, 세상과 독자를 위해서 쓰는 거라는 걸 알게 됐어요. ‘그렇다면 내 안에 있는 것 중에 다른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건 뭐가 있을까’ 고민하게 됐죠. 그러다보니 시작은 저를 위한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제가 가진 것을 독자들에게 주는 책을 쓰게 됐어요.

 

최근에는 EBS 스페셜 프로젝트 <극한 환경에서 살아남기>를 통해 타클라마칸 사막에 다녀오신 이야기가 방송됐습니다.


『당신은 도전자입니까』 원고를 다 쓰고 일주일 동안 다녀왔어요. 처음 출연 제의를 받은 건 CBS 프로그램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에 출연할 때였어요. EBS 작가 분께서 프로그램에 어울리는 출연자를 찾으려고 강연장에 오셨다가 저를 보게 되신 거죠. <극한 환경에서 살아남기>는 성찰에 대한 다큐멘터리였다고 생각해요. 20대인 제가 극한 환경에서 어떤 생각을 할지를 지켜보고, 현실과 다른 문제에 부딪혔을 때 제3자의 입장에서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관찰하는 게 포인트였거든요. 그런 고민이 담겨있는 다큐멘터리였던 것 같아요.

 

‘지금까지와는 다른 나’가 되고 싶어서 도전을 선택했다고 하셨습니다. 아마 모든 사람들이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겠지만, 누구나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하는데요. 책에서 말씀하신 ‘될 대로 돼라 정신’이 없어서일까요?


‘될 대로 돼라 정신’이 있다고 해서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그와 함께 ‘절박함’이 있어야 하죠. 변하고 싶지만 노력을 못하겠다면, 아직은 살만 한 거예요(웃음). 현재의 모습이나 상황이 부족하고 답답하기는 하지만, 그것 때문에 자괴감에 빠지거나 절망하지는 않는 거죠. 다시 말해서 절박하지 않고 잘 살고 있는 상황인 거예요. 지금에 만족하면서 조금 더 우위에 서고 싶은 거죠.

 

저자님의 도전을 가능하게 한 절박함은 무엇이었나요?


10대 때 저는 가끔씩 거울도 보지 못했어요. 말주변도 없고, 굉장히 소심하고 우유부단했어요. 그런 제 자신을 때려눕히고 싶을 정도로 싫었죠. 친구들이나 주변 사람들이 보는 저는 멀쩡해보였지만 속은 달랐어요. 나를 죽이고 새로 태어나고 싶었어요. 사춘기 때 집안이 경제적으로 어려웠었는데 그것도 제가 소심해진 하나의 이유였던 것 같고요. 『당신은 도전자입니까』에 쓴 것처럼 초등학생 때 친구들에게 괴롭힘 당했던 경험의 영향도 있는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겉으로는 당당한 척 했지만 속은 곪아가고 있었던 거죠.

 

그런데 대학 입시에 실패하고 재수를 하게 되면서 ‘나라는 놈도 되는 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서울 소재의 대학은 못 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경희대 건축공학과에 장학생으로 뽑혔으니까요. 태어나서 처음으로 스스로에게 증명했던 것 같아요. 이동진도 뭔가를 할 수 있다고요. 그래서 대학에 들어갔을 때는 저에게 기회를 주자고 생각했어요. ‘20대의 10년은 남들을 따라가지 말고 나의 기준에서 나를 바꾸는 데 투자하자’고 마음먹었죠. 사람들 앞에 서서 말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뮤지컬 동아리에 가입했고, 체력을 길러보고 싶어서 마라톤 대회에 참가했어요. 처음 마라톤을 완주하고 나서 이건 기적이라고 생각했죠. 내가 해냈다는 게 믿기지 않는 거예요. 그 후에 해병대에 자원했는데, 전역한 후부터 나를 강하게 몰아세울 수 있는 힘이 생겼던 것 같아요.

 

자신을 뛰어넘는 경험은 해병대에서 충분히 하셨을 것 같은데요(웃음). 계속 새로운 도전을 이 나가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성취감을 맛보고 나니까 내가 분명히 더 성장할 수 있다는 걸 알겠더라고요. 지금의 상태가 곧 나는 아닌 거예요. 10대 때의 저는 소심하고 나약한 모습이 저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된 거예요. 나의 머릿속에 있는 정신력이 내 상태더라고요. 그때와 마찬가지로 저는 여전히 왜소하고 돈도 없지만, 이제는 자신이 있어요. 내 삶을 일으켜 세울 수 있다는 자신, 무슨 일을 하든 최선을 다해서 잘 해낼 수 있다는 자신이 생긴 거예요. 어떤 분은 저에게 왜 육체적인 도전만 했냐고 물으실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 경험들에서 모든 걸 배운 것 같아요. 누군가는 책을 읽으면서 경험한다면, 저는 눈으로 본 게 아니라 피부로 배운 것 같아요. 그렇게 직접 부딪히면서 자신의 한계에 계속 도전했던 거죠.

 

『당신은 도전자입니까』 속의 표현에 따르면 ‘잠자는 고래를 깨우는 일’을 경험하신 거군요.


고래는 원래부터 제 안에 있었는데 저는 없다고 생각했던 거예요. 모든 사람들이 그렇죠. 자신이 어마어마해질 수 있는 상태인데 그걸 모르거나 거부하는 것뿐이에요. 그걸 알아가는 과정부터가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3스텝’도 결국 시작하는 법이에요.『당신은 도전자입니까』를 보고 당장 마라톤을 신청했다는 독자 분들도 많아요. 책에 나와 있는 대로 인터넷 켜고, 등록하고, 결제하는 3단계를 실천했다는 거죠. 그게 시작이에요. 그리고 마라톤을 완주한 후에 자기를 알게 되면 모든 분들이 저와 같은 과정을 거치실 수 있어요. 그런데 모두가 저와 똑같은 과정을 밟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마라톤을 뛰고 아마존에 가는 건 저의 욕망이지 그 분의 욕망은 아니니까요. 자신이 가고 싶은 길을 따라서 시스템을 맞춰야 하잖아요. 지금 내 안에 있는 욕망에 맞는 ‘3스텝’을 시작해야죠.

 

내 안의 고래를 깨우기 위한 첫 번째 방법은 행동하는 것이겠네요.


그렇죠, 일단 시작하는 거예요. 우리가 시작이 어렵다고 말하는데, 사실 시작하면 더 큰 어려움이 있거든요. 그런데 그건 시작한 사람들만이 아는 거죠.

 

만나고-이동진

 

두 번 다시 하고 싶지 않은 도전은…


도전을 멈추지 않게 만드는 열정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걸까요?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걸 하는 것뿐이에요. 사실 대학교 4학년이 되면서 취업에 대한 생각도 많이 했어요. 앞으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집을 사고, 그런 일들을 생각해 보니까 지금까지 꿈꿨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현실이더라고요. 어릴 때는 꿈을 좇았지만 결국은 남들과 똑같은 길을 가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그때가 되면 그렇게 따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저에게 도전은 가정보다 중요하지는 않거든요. 그런데 지금 저는 결혼도 하지 않았고, 책임져야 할 가정도 없잖아요. 누군가는 취업을 준비해야할 때라고 말하겠지만, 조금 늦춘다고 해서 제 인생이 10년씩 미뤄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일들, 지금이니까 가능한 일들을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도전을 해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가정이 생긴 뒤에도 상황에 맞춰서 또 다른 도전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가족과 함께 도전할 수도 있을 거고, 더 큰 도전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어떻게 포기하지 않고 성공했는지’ 믿기지 않는 도전이 있나요?


포기하고 싶은 순간들은 항상 있었어요. 사실 모든 도전들이 ‘어떻게 했나’ 싶죠(웃음). 두 번은 못할 것 같아요. 아마존에서는 악어가 살고 있는 강을 건너기도 했고 손바닥만 한 거미가 있는 숲속을 달리기도 했어요. 미국 횡단을 할 때는 다른 무엇보다 사람이 제일 무서웠죠. 저 사람이 나를 해치지는 않을까 싶었어요. 그리고 독도까지 수영할 때는 죽을 뻔 했던 적도 여러 번 있었어요. 해병대에서는 적응하는 데 1년이나 걸렸고요. 『당신은 도전자입니까』를 쓰면서도 반복해서 원고를 수정하는 게 정말 힘들더라고요. 그런데 ‘한 번만 더 해보자’라고 생각하면서 고치다 보니 책이 완성됐어요.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였어요. 잘 곳을 구해야 하는데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거절하는 거예요. 그러다가 해가 지고 진짜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서 지나가던 차를 세웠는데, 함께 가자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사람들은 제가 지금까지 많은 도전을 했으니까 앞으로의 도전은 쉽게 해낼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마라톤을 100번 뛰었어도 101번째 마라톤은 또 힘든 거잖아요. 조금 더 익숙해졌을 뿐이지 근육의 고통은 여전히 느껴지거든요. 그런데도 참고 하는 거죠. 지금 저도 새로운 도전을 하기 위한 발판이 없지만, 시도해보는 일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편안하게 도전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다시 한 번 도전해보고 싶은 일은 하나도 없다는 말씀이신가요?(웃음)


정반대의 생각을 한 적은 있어요(웃음). 제가 히말라야에서 고산병에 걸렸었거든요. 그때 옷을 여섯 겹 껴입었는데도 ‘여기서 잠들면 죽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때 ‘돌아가면 두 번 다시 히말라야에는 오지 않겠다’고 스스로와 약속했어요(웃음). 저는 5,800m 밖에 안 갔는데 8,000m 가신 분들은 정말 목숨을 걸고 가시는 거예요. 5,800m에서도 숨을 내쉴 때 피가 온몸을 채 한 바퀴도 못 돌거든요. 피가 돌다가 멈추는 게 느껴져요. 한 발자국을 내딛기 위해서 호흡을 세 번씩 해야 되죠. 그렇게 힘든 환경에서 무 산소 등정을 하시는 분들은 정말 대단하신 것 같아요.

 

도전하기 전에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내 인생에서 또 다시 이걸 할 수 있을까’하고 자신에게 물어봐요. 그 질문에 대해서 머리가 아닌 가슴이 ‘정말 하고 싶다’고 대답하면, ‘지금 할 수 있을까, 나중에 할 수 있을까’를 물어보죠. 언제 도전하는 것이 좋을까를 생각하는 거예요. 그 일에 도전함으로써 포기해야 하는 것들을 가늠해보고, 지금 포기해야 하는 것이 더 적다면 도전하기로 결정하는 거죠.

 

만나고-이동진

 

좋아하는 사람에게 고백하는 것도 도전이죠


취업을 앞두고 있는 대학생으로서『당신은 도전자입니까』안에서 꿈에 대한 질문을 많이 던지셨습니다. 또래의 친구들과 후배들에게 ‘취업 후 자신의 삶의 목표는 무엇인가?’라고 묻기도 하셨고요. 저자님께서는 답을 찾으셨나요?


제 삶의 목표는 가슴 뛰는 일을 계속 하는 거예요. 지금은 조종사라는 직업을 꼭 갖고 싶고요. 제가 욕심 부리는 건 딱 두 가지예요.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과 사랑하는 사람들과 사는 거예요. 나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일을 하면서 살다보면 내가 바뀌고, 주변의 사람들이 바뀌고, 그러다 보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제가 해온 도전들은 모두 가슴 뛰는 일을 했던 것뿐이에요. 그런데 어느 순간 제가 소년원에서 강연을 하고 있더라고요. 그때 만난 친구들이 이제는 자신의 삶을 살겠다고 편지를 보내와요. 그걸 보면서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한 것뿐인데 누군가가 변하고, 그렇게 세상이 바뀌어가는 걸 느꼈어요. 저희 부모님과 누나도 예전에는 취업 준비하라고 이야기했지만 이제는 제가 가는 길이 맞다고 말해주고요. 이미 취업을 한 친구들이 자신도 꿈을 갖고 싶다면서 저를 찾아오기도 해요.

 

『당신은 도전자입니까』의 끝에는 저자님과 아홉 명의 청춘들이 나눈 대담이 실려 있습니다. 별도로 지면을 할애하신 이유가 있으실 것 같은데요.


함께 토론한 친구들은 모두 20대이기는 하지만 서로 다른 직업군에 속해 있어요. 대학생, 대기업 사원, 작가, 취업준비생 등 다양하죠. 모두 저의 지인인데 서로 만난 건 처음이었어요. 그 자리를 마련한 이유는,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그 안에서 제 생각을 보여주고도 싶었고요. 제가 가진 생각과 가치가 현실적인 상황 안에서는 어떻게 작용하는지 보여드리고 싶었고, 그 친구들은 『당신은 도전자입니까』의 시선과는 다르게 저를 바라볼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 이야기를 보면서 독자들이 ‘그러면 나는 어떤 사람인가’를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갖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우리는 꿈을 찾으라는 조언은 많이 듣지만 그만큼 잘 잊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저자님께서도 『당신은 도전자입니까』에서 그 부분을 걱정한다고 밝히셨죠. 독자들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책장을 덮은 후에 어떻게 해야 할까요?


습관을 바꾼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죠. 제가 도전을 하면서 저를 변화시키고 그 이야기를 책으로 쓸 수 있었던 건, 앞서 말했다시피 ‘절박함’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만약 『당신은 도전자입니까』의 책장을 덮은 후에 자신을 바꾸지 않는다면, 변화가 절박하지 않은 거예요. 그런 분들에게는 아직은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저는 절박함의 깊이가 인생 역전의 깊이라고 생각해요. 절박할수록 바꿀 수 있는 부분도 많다는 거죠. ‘아직은 못 바꾸겠다’라고 생각한다면 그만큼 덜 절박한 거예요.

 

하지만 변화가 절박하다면 결핍에 집중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럴 때는 ‘내가 못하는 걸 어떻게 잘할 수 있게 바꿀까’를 고민하는 것부터 시작하면 될 것 같은데요. 그것에 포인트를 두고 ‘3스텝’으로 나아가면 돼요. 제가 소심함을 버리기 위해서 뮤지컬을 시작했듯이, 혼자 밥을 못 먹는 사람은 혼자 밥 먹기를 시도해 보는 거예요. 이성에게 고백을 못하는 사람은 용기내서 고백을 해보고요.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하는 거예요. 지금 아주 작은 걸 시작할 수 있다면 이미 다 이룬 거라고 생각해요.

 

만나고-이동진

 

『당신은 도전자입니까』에서 ‘도전자로 살기 위해 맞서야 하는 것들’에 대해 설명하셨는데요. 그 중에서도 독자들이 반드시 행동으로 옮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태도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가장 첫 번째는 자신이 하고 있는 것이 도전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사람들은 가치가 어마어마한 일이라 하더라도 모두가 하는 일은 도전이라고 말하지 않아요. 그리고 특별한 사람들을 보면서 박수를 치거나 높이 치켜세우죠. 제가 영국에 갔을 때 이런 일이 있었어요. 어떤 사람이 제가 했던 도전에 대해서 듣고 난 뒤에 ‘그게 뭐가 대단해? 나는 그 시간에 책 읽고 차 마시면서 인생을 돌이켜보고 가족과 시간을 보냈어. 나한테는 그게 더 큰 도전이고 행복이야’라고 말하는 거예요.

 

제가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이 깨지는 순간이었죠. 그때 알았어요. 주변과 세상이 만든 틀 속에서 잘난 사람과 못난 사람이 있는 것이지, 그 기준이 바뀌어버리면 잘난 사람도 못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걸요.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의 기준과 그에 따른 평가를 신경 쓰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내가 하고 있는 일 자체가 도전이니까, 그것에 대한 긍지를 갖고 당장 시작해서 ‘3스텝’을 밟으면 되는 거예요.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는 일은 모두 도전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준비하고 있는 다음 도전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장기적인 도전 목표도 갖고 계신가요?


예전부터 정말 멋있는 조종사가 되고 싶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 꿈을 1~2년 미루더라도 세상을 더 많이 알고 많은 것들을 경험해 보고 싶어요. 저는 조종사가 서로 다른 세상을 이어주는 커넥터라고 생각하거든요. 세계를 이을 수 있는 가장 빠른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많은 경험을 하고 많은 사람을 만나면 깊이가 다른 조종사, 바라보는 시야가 다른 조종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의 20대는 고정관념 없이 세상을 바라보고 그것들을 융합시킬 수 있도록 준비하는 시기라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제가 한 도전들은 멋있는 조종사가 되기 위한 준비의 하나이기도 했어요. 조종사가 되면 단독 비행으로 세계 일주를 하고 싶고요. 1년 동안 세계 일주를 하면서 내셔널지오그래픽이나 디스커버리 같은 채널과 같이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싶어요. 그때 저를 알리기 위해서는 무언가 필요할 것 같아서, 대학 졸업 전의 마지막 방학인 지금은 또 다른 도전을 준비하고 있는데요. 몽골에서 말을 타고 2700km를 달리면서 영화를 촬영하는 거예요. 불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시도는 해보고 싶어요. 지금은 스폰서를 찾기 위해 제안서를 보내고 답변을 기다리는 상황이에요. 그리고 함께 영화를 제작할 감독님을 찾고 있죠.

 

이동진 저자는 “여러분이 모두 도전자입니다”라는 이야기를 꼭 하고 싶다며 인터뷰를 마쳤다. 아울러 그는 ‘살아가는 것 자체가 도전’이라는 울림 있는 한 마디를 남기고 갔다. 그는 『당신은 도전자입니까』의 독자들이 도전과 꿈과 삶에 대해 스스로 정의 내려 보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우리도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모두 도전자입니다”라는 해답을 얻게 될까. 섣불리 예단할 수는 없다. 다만 “당신도 도전자”라고 말하는 이동진 저자의 이야기를 전한다. 아마도 이 이야기가 자고 있던 당신 안의 고래를 꿈틀대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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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도전자입니까이동진 저 | 다산3.0
27살 청춘 챌린저 이동진은 시작 전 늘 재고 따지고 망설이는 청춘들이 원하는 것을 당장 시작할 수 있도록 힘을 불어넣어주고자 이 책을 집필했다. 그는 소심하고 우유부단한 10대 시절을 보냈으나 대학 낙방이라는 첫 실패를 겪으면서 본격적으로 ‘자기변화 프로젝트’를 실행한다. 히말라야 등정, 울진-독도 릴레이 수영, 아마존 정글 마라톤, 자전거 미국횡단, 3대륙 11개국 세계일주 등 불편한 상황으로 자신을 내던지면서 ‘일단 하고 보는 실행력’, ‘선택한 것을 끝까지 해내는 추진력’ 등을 온몸으로 익히고, 결국 ‘2012 대한민국 인재상 대통령상’을 수상하는 용기 있는 청년으로 거듭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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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건웅 “김근태 이야기, 그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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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의 시간』을 그린 후유증일까. 만화가 박건웅의 손톱 가장자리는 마치 물을 들인 것마냥, 새까맣게 변색되어 있었다. 그간 노근리학살, 제주 4.3 항쟁, 비전향 장기수 등 주로 역사적 사실을 소재로 만화 작업을 해온 박건웅은 2년 전, 고 김근태의 저서 『남영동』을 읽고 그저 부끄러운 역사로 여겨졌던 ‘고문’의 실상을 바로 알게 됐다. 그는 생각했다. ‘김근태는 왜 회상조차 끔찍한 고문의 기억을 책으로 썼을까’ 그것은 1985년 12월 19일, 김근태가 법원에서 밝힌 남영동 고문의 실상보다 더 잔혹하고 혹독했고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역사였다.

 

1호선 남영역에서 고개만 들면 볼 수 있는 회백색의 건물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 지금은 경찰청 인권 보호센터로 운영되고 있지만, 1985년 그곳에서는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끔찍한 고문이 벌어졌다. 28년 전, 박건웅 작가는 고등학생이었다. 우연히 내리게 된 남영역에서 그는 정체를 모를 건물을 보며, 참 멋진 건물이라 생각했다. 극악한 고문이 벌어지고 있다는 건,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누구는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을 때, 누구는 동물 같은 취급을 받으며 고문을 받았다. 그로부터 28년 후, 박건웅 작가는 정체를 알게 된 건물 안으로 들어가 김근태가 견뎌 낸 ‘짐승 같은 시간’을 마주했다. 민간인 사찰과 간첩 조작 사건이 벌어지는 가운데, ‘고문’이 되살아나지 않은 것은 김근태 덕이다. 박건웅은 김근태가 겪은 남영동 22일간의 기록을 가감 없이 그려내며,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이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질 것인가.”

 

만나고-박건웅

 

아프게만 받아들이면 작품을 완성할 수 없다


고 김근태의 저서『남영동』을 읽다가 『짐승의 시간』집필을 결심했다고 들었다.


2년 전에 김근태 전 의원이 돌아가시고 나서 『남영동』을 읽게 됐다. 남영동 안에서 고문을 당했던 이야기가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었는데, 많은 생각이 들었다. 과거 고문을 당한 사람은 많았지만 실제로 고문을 직접적으로 증언한 사람은 많지 않다. ‘왜 그럴까’ 생각했는데 고문에 대한 트라우마, 심리적인 압박감 때문에 상기하는 게 쉽지 않다고 했다. 고문을 경험한 사람들은 자다가 쇼크로 깨어나기도 하고 일상 속에서 그 트라우마가 계속 나타나 일상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다. 『남영동』을 읽으면서, 그 압박감을 감내하면서 야만적인 고문을 증언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용기라고 생각했다. ‘고문’이란 단어를 들으면, 뉴스의 단신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많은데, 고문을 생생하게 묘사한 이 책을 보면서 정말 충격이 컸고, 어떻게든 전달하는 역할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고문 장면을 그림으로 옮기는 일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독자들이 불편해 할 수도 있고.


고문의 어떤 직접적인 묘사가 사람들에게는 불편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 개인적인 삶을 고문실 안의 이야기와 연결했다. 현재가 밖의 이야기라면, 과거는 안의 이야기다. 안과 밖의 이야기를 나눠서 풀어내고자 했다.

 

상처를 남지 않게 고문을 가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다. 장면이 너무 끔찍해서 한 번에 책을 다 보지 못했다는 독자들도 있더라.


상처를 남기면 고문의 흔적이 남으니까, 극악의 고문이지만 상처를 만들지 않으려 했다. 고 김근태 의원이 발뒤꿈치에 생긴 딱지를 증거로 삼기 위해 모았는데, 그것을 압수하려고 했다는 것 자체도 코미디 아닌가? 우리가 고문에 대해 익히 알고 있는 것과 실상은 많이 다르다. 상처를 내서 고문하는 게 아니라, 상처를 내지 않기 위한 고문을 자행하는 것, 정말 충격적이었다.

 

고문을 겪은 사람들이 다시 현실로 나왔을 때, 그 괴리감은 엄청나다.


아는 사람으로부터 들은 이야기인데, 고문자들이 사람들을 발가벗긴 상태에서 벽을 기고 올라가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평평한 벽은 도저히 올라갈 수 없지 않은가? 미끄러져도 계속해서 올라가야 했는데, 결국 못 올라가면 “거봐, 네가 꿈꾸는 세상은 네가 올라갈 수 없는 세상이야”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이런 말을 들으면 평생 머릿속에 맴돈다. 패배감, 절망감 속에 미치다가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사람이 되는 거다. 정말 무서운 건, 고문을 받고 밖으로 나온 사람들이 과연 어떤 삶을 살았을까 하는 문제다. 그 고통에서 쉽게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가장 그리기 힘들었던 장면은 무엇인가.


물고문 장면이었다. 고문을 처음 당했을 때, 그 황당함이 얼마나 컸을까. ‘설마 나를 고문하진 않겠지’라고 생각했다가, 여지없이 인격적인 것들이 파괴되어 나갈 때, 얼마나 충격이 컸을까를 생각해보면 정말 끔찍하다. 고문 장면은 직접적으로 보여지는 방식이 아니라 은유를 쓰거나, 개구리에 비유하거나 화면에 아무 것도 그리지 않는 등 추상적인 표현을 병행했다.

 

물고문은 까만 배경으로, 전기고문은 아무 것도 그리지 않는 방식으로 표현한 것과 같은 맥락인가.


만화를 보는 사람들이 고통의 깊이를 스스로 상상할 수 있게 표현하고 싶었다. 추상적인 그림을 따라가다 보면, 내 안에서 어떤 아픔이 찾아오는지를 느낄 수 있을 거다.

 

그림체에서 목판화 느낌을 받았다. 흑백의 강한 대비는 의도한 바인가.


붓으로 그렸는데, 80년대의 어떤 분위기를 맞추다 보니까 목판화 느낌이 난 것 같다. 과거와 현재의 이야기를 함께 말하고 있는데, 시대를 구분하고 싶지 않았다. 과거와 현재가 다르지 않지 않은가? 동시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통일된 느낌으로 그렸다. 독자들도 과거와 현재를 구분해서 볼 필요가 없다.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28년 전 이야기가 우리 주변의 어떤 평범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만나고-박건웅

 

그간 사회고발, 풍자만화를 많이 그렸지만『짐승의 시간』만큼 힘들었을 작품도 없었을 것 같다.


주변에서 많이들 걱정해줬는데, 너무 가슴 아픈 일이지만 아프게만 받아들여서 작품을 완성하면 온전하게 그림을 그릴 수 없다. 또 다른 감정이 존재해야 하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아야 한다. 고통 받고 외면 받은 이야기지만, 재해석해서 지금의 사람들에게 새롭게 보여주는 게 나에게는 의미 있는 작업이다.

 

만화에도 등장하지만, 저자도 실제 군대에서 조사를 받을 적이 있다.


대학에서 학생운동을 하다가 군대에 갔는데, 조사를 받았다. 조사를 받은 과정에서 나로 인해 누군가 피해를 입었을지 모른다는 공포감, 죄책감이 시간이 갈수록 커졌다. 사람의 죄책감, 죄의식. 이런 것들이 별 것 아닌 것처럼 여겨질 수 있지만 평생을 갈 수도 있다. 눈에 보이지 않게 존재하는 것들이 더 무서운 법 아닌가. 내가 아는 누군가는 군대에서 누구를 지목했는데, 그 사람이 수배를 당하고 큰 고초를 겪다가 자살기도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했다. 독재 시대의 이런 문화적 환경들이 보통 일반 사람들에게도 주어질 수 있는 모습이라는 생각을 하면 끔찍하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게 스며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끔찍한 고문을 가한 사람들은 우리가 흔히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자식한테 전화가 오면 대학등록금을 걱정하고, 시험에 합격했다고 자랑하는 평범한 일상을 사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이 남영동 안에는 고문을 한 거다. 독재 환경도 있었지만, 그 사람 입장에서는 조국을 위해 빨갱이, 간첩을 잡아 나라에 충성한다는 애국이었던 거다. ‘사람이 잘못된 제도 안에 놓이게 되면, 어떻게 잔인해질 수 있는가’를 남영동 사건이 보여주고 있다.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도 다르지 않다. 평범하게 살아가면서 어떤 식으로는 잘못된 정부와 잘못된 정치인을 뽑아주고, 잘못된 법을 만들어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지 않은가.

 

만나고-박건웅

 

『짐승의 시간』이 던져주는 고민


취재 과정이 궁금하다. 현재는 경찰청 인권보호센터로 운영되고 있는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도 다녀왔을 텐데.


두 번 정도 다녀왔다. 개방은 되어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오가진 않는 것 같았다. 작년 여름에 갔을 때, 올해 몇 분 정도 왔는지 물어보니 2,3명이 왔다고 하더라. 방명록을 기록하는 걸 보면, 방문자들의 동향 파악도 하는 것 같다. 지금은 경찰청 인권보호센터로 쓰여지고 있다는 게 놀라왔다. 고 박종철 열사가 고문 당했던 방만 빼고, 리모델링이 되어 있어서 깨끗했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고문의 역사를 알기 전, 남영동 건물을 본 적이 있었나?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에서 고문이 벌어질 때, 바로 옆 남영역에서는 지하철이 지나다녔다. 사람들은 일상적인 삶을 살았고, 이 건물 안에서 어떤 끔찍한 고문이 벌어지는지 알지 못했다. 나 역시, 고등학교 때 우연찮게 남영역에 내려서 건물을 올려다본 적이 있었다. 무슨 용도로 지어졌는지는 몰랐지만 무척 멋진 건물이라고 생각했다. 비슷한 생각을 했던 사람들이 많았을 거다. 저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지 못한 채 궁금해 하기만 하다가, 고문이라는 역사를 알게 됐을 때 어떤 감정을 느낄지. 『짐승의 시간』이 던져주는 고민이기도 하다.

 

남영동 치안본부 대공분실은 천재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했다. 어디로 올라가는지 알 수 없는 원형 계단과 층수를 적지 않은 승강기, 맞은편 방을 볼 수 없게 만든 문의 구조 등 처음부터 고문을 위해 만들었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는 건물이다.


지금도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훌륭한 작품들이 전국에 있다. 그의 건축가적 능력은 탁월했지만 모든 걸 떠나서, 사람을 파괴하는 고문실을 만들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 안에서 고통을 당하고 정신이상을 겪고, 자기의 삶이 망가진 사람들을 생각해보면 그 분의 업적도 새롭게 조명되어야 하지 않나 싶다. 어떻게 보면 인간의 양면성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고 김근태 의원의 아내, 인재근 의원은 『짐승의 시간』을 보고 어떤 이야기를 하던가.


작업을 시작하기 전에 연락을 드렸는데, ‘이렇게 작업해달라’라는 말은 없었고 편하게 하라는 말만 하셨다. 세월호 참사가 터지면서, 특히 물고문 하는 장면을 힘들게 보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실 소중한 가족의 아픈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것이 힘들고 불편한 일일 수 있기 때문에, 나 역시 망설인 부분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사건들이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지금 시대에서 더욱 알려져야 할 이야기가 아닌가 싶었다. 고통스럽지만, 의미 있는 일이기 때문에 끝까지 할 수 있었다.

 

만나고-박건웅

 

만화는 끊임없는 실험이 가능한 매체


대학에서는 회화를 전공했는데, 만화를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원래 만화를 할 생각은 없었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연작 화집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보자고 생각했는데, 그 이야기를 몇 장의 그림으로 담기가 어려웠다. 관계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너무나 복잡해서 하나의 이야기로 그릴 수 없어서 적당한 매체를 찾다 보니 만화였다.

 

한국 현대사를 다룬 장편 만화 『꽃』이 그 작품인가?


맞다. 한국전쟁으로 인해 비극적인 삶을 살게 된 사람들과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고 싶었다. 군대에서 시나리오를 잡고 시작하려고 했는데, 원래는 영화도 해보고 싶어 영화아카데미도 기웃거렸다. 콘티를 그리면서 잠깐이나마 현장을 경험했는데, 사람들을 통제하면서 하는 일들이 만만치 않겠다 싶었다. 나랑은 맞지 않겠다 싶어 여러 매체를 떠올리다가 만화를 찾았다. 만화는 우연찮게 다가왔던 것 같다. 사실 순수회화 쪽으로 가보고 싶었는데, 어느 날 보니 만화를 하고 있었다(웃음).

 

본격적으로 만화를 그리기 시작한 건, 군 제대 후부터다. 풍자만화를 그리게 된 계기는 광우병 촛불집회 시위를 하면서 겪은 일 때문이라고 들었다.


촛불집회에 나갔다가 얻어 맞고 뇌진탕을 당했다. 그 전까지는 지나간 역사, 한국전쟁에 대한 이야기를 소재로 한 장편만화 위주로 작업을 했는데, 그 일을 당하고 ‘오늘을 사는 나도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과거의 역사도 중요하지만 지금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절실하게 와 닿는다는 걸 알았다. 뇌진탕을 경험하고 반년 정도 작업을 못했는데, 그림을 그리려고 하면 머리가 아프고 졸리고 무기력해졌다. 사람들이 뇌진탕 후유증이라고 했다. 좀 쉴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어느 날, 꿈을 꿨는데 재밌는 이야기를 발견했다. 천국과 지옥이 뒤바뀌었다는 이야기인데, 이 내용을 경향신문 블로그에 연재했고 『삽질의 시대』로 출간됐다.

 

만화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단순하게 볼 매체가 아닌 것 같다. 만화는 어떤 이미지와 이미지의 충돌에 의해서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방식인데, 무한한 것을 담을 수 있다. 만화 안에서는 끊임없이 실험을 할 수 있다. 영화 필름처럼 한 시간 동안 지속해서 쭉 보는 게 아니라, 각자의 머릿속에서 영상작업을 거쳐 충돌하면서 받아들여지는 게 만화다. 결국 내가 나한테 이야기를 하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만화를 따로 배우진 않았나?


배우진 않았다. 독학으로 했고, 유럽의 대안만화 작품들을 많이 보면서 영향을 받았다.

 

지금 작업 중인 작품은 무엇인가.


소설가 최용탁 선생님의 『어느 물푸레나무의 기억』이라는 책이다. 국민보도연맹 사건을 다룬 이야기인데, 어떤 골짜기에 있던 나무가 사람들이 그 골짜기에서 학살 당하는 장면을 목격하면서 그 상황을 차분하게 전하는 작품이다.

 

시인 69명이 참여한 세월호에 관한 시집이 나왔다. 그간 세월호를 소재로 만평을 그리기도 했는데, 장편만화를 그릴 계획은 없나.


조금의 시간이 지난 후, 추스른 다음에 이야기를 만들어갈 생각이 있다. 처음 세월호 참사가 터졌을 때, 만화를 그리는 것 자체가 맞는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 누구의 초상집에 가서 문화재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진실을 자꾸 가리려는 세력이 등장하면서, 유족 분들도 그렇고 많이들 알려달라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가장 무서운 건, 잊히는 일이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모든 것들이 조용해지는 것 자체가 가장 무서운 일이다.

 

아직까지 웹툰으로 연재한 작품은 없다. 출판만화를 지향하기 때문인가?


지금 웹툰의 환경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한국만화가 잘 되려면, 인터넷 매체의 환경에 맞게 발전해 나가야 하고, 그래야 가능성이 높아질 거라고 본다. 웹에서 만평을 하고 있지만, 웹툰 연재를 굳이 안 하는 건 아니고 아직까지 출판만화가 가진 재미, 책을 넘길 때의 느낌이나 맛은 웹툰이 아직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다. 책이라는 형태로써의 만화가 아직은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자기가 하는 이야기 자체가 어떤 매체에 더욱 알맞은가를 생각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인 것 같다.

 

전작『삽질의 시대』가 2012년에 출간됐다. 지금은 어떤 시대인 것 같나.


<개그콘서트>에 ‘닭치고’라는 코너가 생겼더라. 요즘은 무엇이든 잘 잊는 시대인 것 같다. 방금 있었던 일에 대해서도 문제점을 반성하지 않고 다 잊어버리고, 새로운 일이 벌어지는 데에 있어서도 낯설어 하지 않는다. 이번 인사참사도 분명한 반성을 통해 원인과 책임을 따져야 하는데, 재반복만 되고 있을 뿐이다. 이런 정치 사회적인 환경 자체가 개인의 삶에도 영향을 줘서, 스스로 잘 잊는다. 잘못된 것에 대해서는 따끔하게 이야기를 하고 질책해야 하는데, 침묵하고 방관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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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의 시간박건웅 글,그림 | 보리
민주화운동청년연합을 결성하고 우리 나라 민주화를 위해 힘쓰고 있던 김근태는 1985년 9월 4일 남영동에 끌려 갔다.1985년 12월 19일, 법원에서 김근태는 고문자들이 몸과 머리에 각인 시켜 놓은 고문 트라우마를 벗어던지고, 남영동에서 있었던 고문의 실상을 모두에게 고발했다. 《짐승의 시간》은 김근태가 남영동에서 강요받았던 ‘짐승 같은 시간’을 만화로 기록한 책이다. 작가 박건웅은 누군가가 시키는 대로, ‘직업’으로 고문을 행하는 자들의 폭력적인 몸과, 고문을 가하며 때로는 희열을 느끼는 얼굴 표정까지 놓치지 않고 표현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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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버렛츠, 인디 신에서 가장 핫한 걸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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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 있는 데뷔 음반 < 바버렛츠 소곡집 #1 >으로 2014년 상반기를 멋지게 마무리했다. 3인조 팀 바버렛츠는 근래 국내 인디 신에서 가장 핫한 걸 그룹이다. 인디 팬들에게는 이미 유명 인사들이며 인디 음악에 크게 관심 갖지 않던 사람들에게도 적잖이 알려져 있다.

 

뜬금없이 등장한 이 훌륭한 걸 그룹에게 우리 이즘도 궁금한 게 참 많았다. 1950년대, 1960년대를 표방한 음악 스타일과 복고에 맞닿아 있는 패션에서부터 셋이 만나게 된 동기, 작업 방식, 심지어는 다음 음반 콘셉트까지, 알고 싶은 것들이 머릿속에서 무한히 떠올랐다. 이리저리 갈팡질팡하는 질문들이었음에도 친절하게 답을 해준 바버렛츠였다. 쾌활하고 밝은 셋 덕분에 인터뷰도 즐거운 공기 속에서 잘 진행될 수 있었다. 글로서는 당시의 발랄한 분위기를 채 전달할 수 없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바버렛츠

바버렛츠


굉장히 반응이 좋습니다. 실감을 하시는지 궁금한데요.


김은혜: 실감하고 있고요. 특히 댓글이나 페이스북 같은 걸로요. 또 만나면 좋은 이야기들 해주시죠.

 

음반 제작할 때도 어느 정도 반응을 예상하셨나요?


김은혜 : 하고 만들지는...(웃음)
안신애: 별 기대는 안 하고 했는데, (웃음) 그게 어떻게 될지 몰랐죠. 저희끼리는 재밌었어요.

 

계기가 궁금합니다. 원래는 다 각자 활동하고 있었죠?


박소희 :제의를 받았어요. 신애 언니 주축으로 하모니 음악 연습 같은 걸 해보지 않겠냐면서요. 처음엔 동호회 식이었다가 공연도 하고 여기까지 오게됐어요.

 

제의 승낙이 어렵진 않았는지요.


김은혜 :되게 쉬웠어요.(웃음)
박소희 :쉬웠어요.
안신애: 그냥 취미로 만든 그룹, 스터디 그룹이었어요. '일주일에 한 번씩 해볼래?'하고 하다가 점점 커져서 여기까지 왔어요.

 

화음스터디는 왜 만들었나요?


안신애 :코뎃츠의 「Mr. Sandman」이라는 노래를 하고 싶었는데 혼자서 부를 수는 없으니까요. 그렇게 하게 됐어요.

 

바버렛츠라는 이름은 어떻게 지은 건가요?

 

박소희 :이발소 언니라는 뜻인데 재즈 아카펠라 음악 중에 바버샵이라는 장르에서 착안했어요. 거기서 바버를 따고 코뎃츠나 로네츠 같은 1950,60년대 보컬 그룹처럼 뒤에 엣츠(-ettes)를 붙였죠.

 

세 명이다보니 팀 내에서 각자의 역할이 있지 않을까요? 예를 들자면 술 담당이나.


안신애 : 술 담당 누구야.
박소희: 언니가 운전을 하지?
김은혜 : 운전, 프로듀싱, 리더 기타, 우쿨렐레 거의 다 신애언니가 하죠.
박소희: 거의 다 하고 있고.
김은혜 : 나머진 우리가 (웃음)
안신애 : 전 곡을 쓰고 전체적인 지휘를 해요. 소희 씨는 베이스 같은 역할. 음악 기둥처럼 중심을 잡아줘요. 톤이나 표현방식에 차분하게 잡아주는 색깔이 있어서 그렇게 된 거 같아요. 팀 분위기 측면에도 그렇죠. 저희가 정신 못 차리고 있으면 잡아주는 편이에요. 그리고 은혜 씨는 음색이 되게 에너제틱하고 바버렛츠의 색을 가장 많이 만들어주고 있어요. 높은 소리도 그렇고 파이팅 하는 느낌이 있거든요. 분위기 메이커기도 하고요.

 

의상이나 동작이나 콘셉트나 복고풍이잖아요. 이유가 있나요.


안신애 :제일 많이 물어보시는 게 그건데, 사실 별 생각 없었어요. (웃음) 항상 옛날 영화나 옛날 문화에 흥미로운 콘텐츠들이 많아서 그런 거 같아요. 컴퓨터 배경화면도 당시 이미지로 해놓고 있고 소품을 사더라도 핀업 걸 같은 거 그려져 있는 걸 많이 사요. 그러다보니 좋아하는 콘셉트로 흘러가게 되더라고요. 음악도 그렇고 영화도 그렇고. '대한늬우스' 이런 거.

 

사실 복고가 키치한 유머코드로 많이 사용되잖아요. 그럼에도 바버렛츠는 진지하고 능숙하게 표현해내는 능력이 있는 것 같아요. 현대적인 감각에도 맞고요. 센스랄까요.


안신애 : 일단 저희 같은 경우는 조금씩 노래 공부를 한 사람들이에요. 소희 씨나 저나 학교에서 공부를 했고 은혜 씨도 재즈 싱어로 활동을 했고요. 보통 재즈 보컬 이야기를 해보면 1950년대 이전을 뛰어넘는 가수가 나오지 않잖아요. 엘라 피츠제럴드나 빌리 홀리데이, 사라 본 이후로. 그 느낌과 녹음 방식과 사운드가 지금까지도 계속 고전 팝, 재즈로 흘러내려오고 있고 지금도 그 사람들을 대체할만한 누군가가 없으니까요. 이런 것들에 대한 영향을 많이 받아들인 것 같아요. B급이나 키치한 콘셉트는 사용하고는 있지만 재미를 위한 거죠.

 

음반에 들어가는 색감으로는 음악적인 요소에서 많이 영향을 받지 않았나 해요. 어떤 분들은 꺾기, 뽕짝 기교라고도 하시는데, 맞는 얘기죠. 그런데 이난영 선생님 음반을 들어보면 뽕짝이 아니라 완전 재즈예요. 그런 꺾기 같은 경우는 사라 본이나 엘라 피츠제럴드도 그렇게 부르거든요. 뽕 같기도 하고 재즈 같기도 하고. 그런 부분들을 연구했던 것 같아요. 따라하겠다고 하기보다는 계속 듣다보니 자연적으로 재료들이 하나씩 모였고요. 그런 요소들이 추가되면서 마냥 B급 컬러만은 아니게 된 것 같아요.

 

바버렛츠-안신애

바버렛츠 안신애


기본적으로 재즈의 영향이 가장 크네요.


안신애 : 재즈는 1960년대까지만. 그 이후의 재즈는 잘 몰라요. 여러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겠지만 1960년대 이전의 재즈는 장르로서의 재즈가 아니라 팝 음악, 대중음악이었던 거 같아요.

 

곡들이 다 화음위주로 이어집니다. 구조가 그런 곡들은 애초에 작곡할 때 어렵지 않나요.


안신애 : 아 잠깐만요. (웃음) 저희가 단독 공연 때 쓸 영상을 편집하고 있어요. 이거 진짜 최초공개인데. 저희가 연습하면서 아이폰으로 녹음을 해요. 그 중에서 재밌었던 걸 모아서 동영상으로 만들고 있는데 진짜 웃긴 걸 보여드릴게요.

 

작업실에서 노트북을 하나 가져와 음원 파일을 틀었다.

 

안신애 : 차에서 썼던 거예요. 「가시내들」 만들 때. 이런 식으로 작업해요. 운전하다가.

 

운전하며 휴대전화 녹음기를 이용해 녹음한 음원들이었다. 젊은 보컬이 불렀다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걸쭉한 목소리가 흥을 타고 있었다. 흡사 우리 어르신들이 부르는 타령 같기도 하고 선 하우스가 손뼉 치며 부르는 블루스 같기도 하다. 우리에게 들려준 서너 곡 외에도 더 많은 파일들이 있다고 했다.

 

할머니께서 가시다가 '허리가 아퍼'하시면서 부르는, 약간 그런 느낌이네요.


김은혜 : (일동 웃음) 아 얼굴 아파.
안신애 : 2년 동안 녹음했더라고요. 쓰려다가 까먹은 곡도 있고.

 

대부분의 곡들을 다 이런 식으로 만드나요.
 

안신애 : 많이 이렇게 했던 거 같아요. 그러고나서 제가 멤버들한테 보내주면 듣고 또 같이 불러도 보고요.

 

로네츠의 「Be my baby」를 커버한 영상도 화제가 됐고 비치보이스의 「Barbara Ann」 커버 버전도 인기가 상당했죠. 이런 곡들은 어떻게 고른 건가요. 하고 싶은 걸 하는 건지요.


안신애 : 메가데스에 있었던 마티 프리드만이 저희를 만나러 왔어요. 같이 작업하고 싶다고. 그 친구가 오기 전에 메일로 대여섯 번 얘기하면서 해봤으면 하는 커버 곡 목록을 뽑아봤는데 다 괜찮더라고요. 저희가 듣고 좋아서 먼저 해봤어요.

 

메인보컬도 곡마다 다릅니다. 어떻게 정하나요.


김은혜 : 그때마다 어울리는 사람으로 해요.

 

음반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타이틀 곡이 「가시내들」이죠. 타이틀 곡 선정에 이유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김은혜 :공연하러 다니면 '가시내들, 가시내들' 하는 부분에 꽂혀서 많이 기억해주시더라고요. 사실 고민을 많이 했어요. 뭘 할지. 많이 기억해주시는 곡을 우선으로 선정한 거 같아요.
안신애 : 저희를 제일 잘 표현해주는 곡 같아요. 원래는 「쿠커리츄」였는데 바꿨어요.

 

왜 「가시내들」인가요.


안신애 : 경상도에서 가스나들이라하고 전라도, 충청도에선가가 가시내들이라고 했던 거 같은데. 그게 또 스토리가 있어요.
박소희 : 시인 김용택 선생님이 생일잔치에 초대를 받아간 일이 있었는데 저희 팀 이름이 외래어라 뭔가 어렵잖아요. 그때 '가시내들아'하고 불러주셨어요.

 

가사들이 재밌습니다. 옛 느낌도 나고요. 가사들은 어떻게 적었는지.


안신애 : 아까 들려드렸다시피 막 던져요. 빨주노초파남보 라임 맞추려다가 홍명보도 나왔어요. (웃음) 남정네 얘기 꺼내는 부분은, 저희가 각자 다닐 땐 몰랐는데 다 같이 모여 다니니 남자들 어텐션이 쫙 오더라고요. 그런 모습을 그리면서 만들었고요. 그전에는 공연한다 하면 기껏해야 친구들만 보러오고 그랬는데 이제는 모르는 분들도 응원해주시고 또 공연하고 술자리가면 같이 했던 남자 팀들이 와서 같이 자리하고 하니까 신기했어요. 저희도 그런 걸 좋아하고. 마음 설레여오네 하는 가사들도 자연스럽게 나오고.

 

1960년대 정취가 느껴져요. 신애 씨 감성까지도 그런가요.


안신애 : 1970년대 들어오면서 음악도 현대화됐잖아요. 그 때 음악도 정말 훌륭하고 좋은데 그쯤부터는 어려워지는 거 같아요. 직전까지는 (음악과) 주고받는 과정이 직접적이었다면 이후부터는 그 과정이 조금 꼬인 거 같아요. 이해해보면 재밌긴 하지만 저는 단순한 걸 좋아해서요. 알앤비 같은 경우도 1970년대 이전이 더 좋고요. 그 다음부터는 가사도 어려워지고 전자음도 많아졌죠.

 

은혜 씨 취향은 어떻습니까.


김은혜 : 지금은 두루두루 다 듣고 있고요. 사실 신애 언니를 만나기 전까지는 하모니 위주의 걸 그룹은 잘 찾아 듣지 않았어요. 저는 힙합. 지금도 좋아하고 많이 들어요.

 

힙합이요? 의외인데요. 가장 좋아하는 아티스트라면.


김은혜 : 어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 좋아해요.

 

바버렛츠-박소희

바버렛츠 박소희

 

소희 씨는요.


박소희 : 저도 다양하게 많이 접하긴 했는데 만나기 전엔 50년대 음악이다 이렇게 찾아 듣진 않았던 거 같아요. 에이미 와인하우스 같은 레트로 음악 좋아했어요.
김은혜 : 신애 언니한테 음악적으로 많이 배우고 있어요.

 

쿠커리츄는 영어로 된 버전과 우리말로 된 버전이 있죠. 영국 싱어송라이터에게 곡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영어 버전이 원곡일 텐데 한국어로 옮길 때 불편한 점은 없었는지.


안신애 : 원래는 한국 버전 먼저하고 영어 버전 하려했는데... 코 프로듀서 B.A.윌러 저 외국인 친구가 바로 화음을 만들어주더라고요. 아무래도 영어니까 바로 오는 게 있겠죠. 그렇게 영어 버전을 먼저 했고요. 영어 버전을 먼저 하고 난 후 아무런 경계 없이 대충했더니 한국 버전도 재밌는 결과가 나왔어요. 처음 한국 버전 만질 땐 녹음 초기여서 좀 잡기도 하고 그랬거든요. 여기저기.

 

트랙 맨 마지막에 배치한 이유에 대해서도 알고 싶습니다.


안신애 : 중복되면 좀 그러니까요. 맨 마지막에 보너스트랙처럼 넣었죠.

 

「비가 오거든」은 어른들이 부르는 전통 음악 같기도 해요.


안신애 :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 (웃음) 사실 그런 게 음악적으로 분석해서 접근할 필요가 없는 사람의 본능적인 소리잖아요. 블루스의 탄생도 그랬고요. 그걸 이제야 분석해서 블루스다, 노동요다, 붙이는 거죠. 요양원 같은 데서 할머니께 노래해보시라 부탁드려봐요. 그 감성이 그대로 있잖아요. 김대중 씨 「요양원 블루스」도 진짜 잘 들었어요. 거기서 영향 받은 것들도 있어요. 그런 감성들과 연결돼있죠.

 

그 곡엔 로큰롤 리듬도 가미됐죠. 어떻게 나온 기획입니까.


안신애 : '삘'이죠. 그 노래 1절이 되게 짧아요. 왜 「Summertime」 같은 옛날 노래들도 보면 A절, B절, 코러스 같은 식이 아니라 노래 한 덩이 한 덩이로 이뤄져 있잖아요. 아리랑도 그렇고요. 기본적으로는 그런 방식을 택하면서 앨범에 넣었을 때 심심하지 않게 끝내기 위해 하다보니 그렇게 나왔어요.


아이디어가 나오게 된 과정도 듣고 싶습니다.


안신애 : 안국동에 만요 같은 옛 노래를 전문으로 재현하시는 최은진 씨라고 계세요. 그때 「봄맞이」의 이난영 씨나 김해송 씨 음악 접하면서 그런 게 만요라는 장르라는 걸 처음 알았어요.

 

「봄맞이」는 음질도 독특하죠.


안신애 : 디지털 플러그인을 이용했어요. 옛 느낌 내려는 의도도 있지만 「봄맞이」라는 노래 자체가 제 생각엔 제일 덜 커머셜한 느낌이 있었거든요. 전체적으로 추상적으로 해보고도 싶었고 보컬에 이펙터를 많이 넣기도 했어요.

 

바버렛츠는 프로젝트성 그룹인가요? 모두 계속 하실 의향이 있으신지.


안신애 : 어떻게 생각하세요. (웃음) 얘기하세요.
박소희 : 재미없을 때까지 계속할 생각이에요.
안신애 : 너는?
김은혜 : 아 (웃음) 저도 뭐.
안신애 : 2집은 나올 거 같은데.
김은혜 : 지금 만들어 놓은 게 정말 많아요. 만들고 싶은 것도 있고. 지금이 제일 재밌어요.
안신애 : 기본적인 바버렛츠의 색깔을 억지로 유지해야하는 게 아니라면 아직은 되게 재밌어요. 기본적인 콘셉트로 아직 못 해본 것도 많고.

 

리메이크 곡 위주의 음반도 좋을 거 같아요.


김은혜 : 그게 다음 기획이에요.

 

바버렛츠-김은혜

바버렛츠 김은혜

 

< 헬로루키 >에서 “걸 그룹이라는 색을 뺐을 때 남는 바버렛츠의 색은 뭐냐”는 질문을 받으셨죠. 그에 대한 답을 찾았나요?


안신애 : 그게 뭘까. 우리가 찾은 답이.
김은혜 : 저희 셋이 답인 거 같아요. 우리 셋만이. 여기서 한 명 빠지면 바버렛츠가 아니듯이 여기서 더 발전시키면 그게 우리 색깔이겠죠. 이번 앨범에서 잘 표현한 거 같아요.

 

음반 만족도는 어떻습니까?


안신애 : 믹싱을 대부분 제가 하고 기본믹싱, 소리작업은 다 같이 했어요. 「사랑의 마음」 작업이 최종이었는데 그 곡 마지막 부분을 하다 갑자기 울었어요. 그때 정말 신나서 '잘되든 안 되든 여한이 없겠다'는 생각이었거든요. 다행히 잘 돼서. 만족스럽게 나온 거 같아요. 정말 많은 분들에게 도움을 받기도 받았어요.

 

어떤 분들이 있었는지요.


안신애 : 늘 저희 안부 묻고 어디 있냐 물으시면서 밥 사주신 강승원 아저씨도 있었고 또 저희 제작팀 분들 중 문대현 씨라고 1980년대에 「광야에서」 작곡하신 분 계세요. 그분도 물심양면으로 계속 봐주시고. 노영심 언니도 조언 많이 해주셨어요. '너희가 이걸 재현에서 끝낼 게 아니라 뉴에이지를 끌어내야한다. 너희 게 있어야 한다'고 하시면서요. 처음엔 몰랐다가 하다 보니 알게 되더라고요. 선우정아 씨도 편곡에 대한 아이디어나 사운드 소스에 관해서 진짜 많이 도와줬고. 홍대 엘피 바 세븐티스 사장님. 저희는 선생님이라 부르는 분인데 '너희가 꼴려서 하지 않으면 재미가 없다'고 귀가 박히게 들었어요. 우린 잘 하고 있는데 왜 자꾸 그러시나 싶을 때도 있었죠. 그때마다 따끔하게 '너네 그러다 오래 못 한다, 너네가 소녀시대냐, 걔네보다 연습 많이 하냐' 이런 충고들 해주셨어요. 인디 공연 하러 다니면서 저도 모르게 나도 이제 뭔가 된 거 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었거든요. 그 때 정말 도움 많이 됐죠. 특히 노는 것과 음악 하는 것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려 할 때도 그랬고요. 개인적으로는 복 받았다고 생각해요.

 

정말 많네요.


안신애 :우리 세대의 싱어송라이터들에게 제일 모자란 게 있다면 옆에서 조언을 해줄 누군가가 없다는 거예요. 제대로 해보고 잡아주고 조언할 수 있는 세대가 단절됐다고 생각해요. 소통이 어려워요. 되게 건방진 얘기죠. 음악도 수직사회예요. 저도 예대 실용음악과 나오고 엄격한 위계질서, 세션, 코러스, 작곡가 분들 밑에서 일하면서 그 위계가 몸에 뱄더라고요. 팀 이끌어가면서 극복하느라 힘들었던 부분이에요.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벗어나기 어려웠고요. 뭐 음악을 하거나 녹음을 하거나 그럴 때. 이런 단점을 유연하게 바꿔준 게 외국 뮤지션들이었어요. 모든 것에 다 오픈돼 있어요. '이거 해봐, 이거 해보자' 아까 말씀드렸던 마티 프리드만도 그랬고요.

 

수직 위계질서가 음악 하는 데에 큰 방해가 돼요. 우리나라에서는 모든 걸 빨리해야 하잖아요. 녹음실 시간도 맞춰야하고 작업한 거 넘겨줘야하고. 외국인 친구들이 한국 와서 조금 힘들어하는 것들 중 하나가 데드라인이에요. 빨리 해서 맞춰달라니까요. 그래놓고 받으면 그 건들을 취소하기도 하죠. 세계 어디를 가도 프로 세계에선 이런 일들이 많을 거예요. 하지만 우리 주변을 보면 창의적인 부분을 너무 막고 있는 일들이 많은 거 같아서. 저 친구(B.A.윌러)도 주위에서 많이 주목하는 프로듀서예요. 장기하 앨범도 하고 있어요.

 

자유롭다는 인디 신에서도 그런 일들이 많은가요.


안신애 : 인디의 딜레마라고 할까요. 사실 여기 분위기가 되게 자유롭잖아요. 라이프스타일이 그렇다보니 안 좋은 쪽으로 흘러가게 되면 매너리즘에 빠지기 쉬워요. 그럴 때 멘토라는 사람들이 많이 도움 되는 거 같아요. 다만 우리나라에서는 이게 조금 힘들 수도 있는 게, 사실 멘토와의 관계가 위계질서로만 엮이는 것은 아닌데도 위아래의 관계 형성에 대한 부담감이 있는 게 사실이에요. 어렵죠. 다행히 제 주위 멘토 분들은 그런 게 없어요. 정말 친구처럼 해주세요. 어떻게 보면 정말 쳐다보지도 못 할 선배님들인데, 저희는 완전 절해야하는 수준의 막내들인데, 그런 분들이 저희를 후배로서 대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0%예요. 오히려 친구로, 그분들 스스로도 '친구야'라고 말씀해주셨어요. 전 그런 게 충격이었어요. 바버렛츠 내에서도 한 때 그런 것들이 문제가 된 적이 있었는데 이걸 해소하고 나니까 음악이 훨씬 좋아지더라고요. 비결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정의하자면 자유로움인가요?


안신애 : 자유로움인데 마냥 자유로운 게 아니라... 말로 표현하기 어렵네요. 수직관계가 아닌 멘토 시스템. 수직적인 게 과거에는 불편한 게 아니었잖아요. 격변을 빨리 맞으면서 불편해진 거잖아요. 사회는 빠르고 편리한 걸 추구하는데 관계는 아직도 수직적이에요. 그러다보니 병들고 창의력같은 게 무시되죠. 그런 것들이 나아질 수 있는 분야가 있다면 그 첫 계층이 아마 음악, 미술과 같은 예술계일 것 같아요.

 

좋은 말씀들입니다. 감사합니다.


안신애 : 오늘 입 터졌어요. (웃음) 사실 얼굴을 마주보고 했던 대화라 말이 편하게 나와서 그렇지, 조금 셌던 것 같아요.
김은혜 : 헤드라인 뜰 수도 있어요. '바버렛츠 수직사회에 일갈! 바버렛츠 선배뮤지션에 일침!' 이런 식으로.

 

저희 이즘 공식질문으로 인터뷰를 마무리할까합니다. 각자가 꼽는 인생의 음반. 궁금하네요.


모두 : 어려워요.

안신애 : 리키 리 존스의 < Pop >앨범이요. 그냥 정말 잘해서. 녹음도 잘 됐고요. 하나만 더 꼽으면 돌리 파튼. 돌리 파튼의 「I will always love you」 들어있는 앨범인데 < Jolene >이었나요. 아무 격의 없이 좋아서 만든 음반 같아요.
김은혜 : 저는 카니예 웨스트 < My Beautiful Dark Twisted Fantasy > 앨범 닳도록 듣고 있고요 어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 캐스트 두 번째 앨범 < The Low End Theory >도 할게요.
안신애 : 아 힙합 돼? 전 그럼 리키 리 존스 빼고 티엘씨< CrazySexyCool >할래요.
박소희 : 전 조안나 왕이요.
안신애 : 아 다시! 돌리 파튼 빼고 엘라!(피츠제럴드)

 

 

인터뷰 : 김도헌 김반야 이수호
정리 : 이수호
사진 : 이한수
이수호 (howard1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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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예다은 “당신도 여행작가를 꿈꾸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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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대부분 비슷한 생각을 하지만, 다른 인생을 산다. 이유가 있다면, ‘생각으로 멈추는 인생을 사는가’ 아니면, ‘잘 저지르는 인생을 사는가’다. 『올라! 스페인』의 저자 예다은은 명백히 후자다. 생각이 많은 편이지만 그만큼 잘 저지른다. “생각한대로 실행하지 않으면 마음이 불편해진다”는 저자. 2012년, 그녀는 잘 다니고 있던 IT기업을 2년만에 관두고 10개월의 세계여행을 떠났다.

 

여행을 떠나서는 안 될 이유는 많았다. 꼬박꼬박 월급을 주는 안정적인 직장, 매달 갚아나가야 할 은행 대출금, 결혼 적령기를 향해 들어가고 있는 나이. 그럼에도 여행을 하기로 결심했다. 아직 가슴이 뜨거울 때, 다른 삶과 세상을 보며 혼란을 겪어보기 위함이었다. 지금 이 젊음이 모든 어리석은 방황과 실수에 면죄부가 되어주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10개월의 세계여행이 책으로 이어질 거라는 상상은 하지 못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적은 일기들이 아까웠고 글들을 정리하다 보니, A4 80페이지 분량이 됐다. 그녀의 여행기를 궁금해 하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말로는 전할 수 없는 이야기들도 많았다. 평소 글 쓰는 삶을 동경했기에 자연스레 든 생각. ‘투고를 해볼까?’ 책이 반드시 되리라는 보장은 없지만 우선 문은 두드리고 보는 법. 수십 법의 퇴고를 거쳐 출판사에 원고를 보냈다. 몇 주 후, 답 메일이 도착했다. 손꼽아 기다리던 출판사였다.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모험의 시작이기 이전에 익숙한 일상과의 작별이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살던 집과 가진 짐을 정리하고, 가족과 친구들에게 작별인사를 해야 한다. 회사를 다닐 때는 평생 이렇게 일만 하며 살아야 할까봐 두려웠고, 회사를 그만둘 때는 다시는 그렇게 살 수 없을까봐 두려웠다. 새로운 것을 시작하는 것보다 오래된 것을 떠나 보내는데 더 큰 용기가 필요했다. 영영 떠날 작정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돌아올 날을 정해둔 것도 아니었다. 알량한 통장 잔고가 바닥이 나면 돌아올 생각이었다.” ( 『올라! 스페인』 5쪽)

 

만나고-예다은

 

떠나서는 안 될 이유가 많았지만


첫 책이다. 프로필에 보면 ‘글 쓰는 사람을 동경한다’고 썼다. 평소 여행작가를 꿈꿨나.


여행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구체적으로 한 적은 없다. 2012년 가을부터 지난해 여름까지, 10달 정도 세계 여행을 했는데 혼자 떠난 여행이라 기록할 시간이 많았다. 평소에 글 쓰는 걸 좋아해 꾸준히 일기를 썼는데, 한국에 돌아오니 글을 좀 더 다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2달 정도 집에 콕 박혀서 여행기를 정리했고, 책을 내도 좋을 것 같아 투고를 했다. 여러 곳 투고를 했는데, 북노마드와 좋은 인연이 되어 책을 내게 됐다.

 

완성된 책을 본 소감은 어땠나? 책이 꽤 묵직하다.


신기했다(웃음). 내 책이라는 게 우선 신기했고, 다른 책들과 서점에 나란히 놓여 있는 걸 보니, 가슴이 벅찼다.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해 언제나 책들 속에서 기웃거렸는데, 그 안에 내 책이 한 자리를 차지하는 걸 보니 설레기도 하고 낯설기도 했다.

 

직장생활 2년차에 일을 관두고 세계여행을 결심했다. 스스로 ‘떠나서는 안 될 이유가 많았다’고 고백했다.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나?


아주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다. 일단 나 스스로 인생 경험이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를 다니다 보니 긴 휴가를 내기도 어려웠고, 직장생활을 하면 할수록 더 바빠지겠다는 생각을 들어, 지금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좀 더 젊을 때, 경험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던 것 같다. 나이가 들면 더 내려놓지 못할 것 같았다. 지금은 가진 게 별로 없으니까, 더 쉽게 떠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혼자 떠난 여행은 처음이었나?


대학생 때 일본, 인도를 다녀왔고 1년 정도 미국에서 인턴 생활을 했다. 그 때도 조금씩 여행을 했지만, 장기간 혼자 여행을 한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예전 여행은 갈 곳도 있고, 가서 만날 사람도 있었지만 이번 여행은 혼자 알아가는 여행이었다. 혼자 여행을 하다 보니,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많았다. 동행자가 있으면 장소만 바뀌었지, 한국과 똑같은 상황들을 많이 만나는데, 혼자 하는 여행에서는 모든 걸 뒤에 놓고 가기 때문에 일탈이 된다. 신경 써야 할 사람이 없으면, 느끼는 것도 더 풍부해지는 것 같다.

 

27개국 중에 스페인, 포르투갈 여행기를 쓰게 된 건, 가장 좋았던 여행지였기 때문인가?


원래 5개국 정도 이야기를 써서 출판사에 보냈는데, 스페인이 가장 재밌고 요즘 독자들이 많이들 궁금해 한다고 해서 스페인, 포르투갈 여행기를 내게 됐다. 나에게도, 가장 인상 깊고 매력적인 여행지이기도 했다.

 

스페인이 특별히 좋았던 이유로 화창한 날씨, 피카소와 미로, 축구와 플라멩코를 비롯해 ‘시에스타(siesta, 낮잠)을 꼽았다.


달콤의 오후의 시에스타를 즐길 수 있었던 것이 무엇보다 행복했다. 한국에서는 누릴 수 없었던 자유와 여유를 온몸으로 체험했다. 스페인 여행을 하면서 친구 마리오와 함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하기로 뜻을 모으고 레티로 공원을 간 적이 있었는데, 공원 초입에는 작은 천막 아래 책 수레가 놓여 있고 사람들은 그 앞에 서서 헌책들을 넘겨보고 있었다. 호숫가를 따라 젊은 부부는 유모차를 밀며 산책을 하고 중년의 여자는 벤치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그 풍경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마치 천국에 온 느낌이었다(웃음).

 

<꽃보다 할배>를 통해 ‘스페인’으로 떠나는 국내 여행객이 많아졌다. 스페인 여행자가 본 <꽃보다 할배>는 어땠나?

책을 준비할 시기에 방송이 시작했는데, 일부러 본방을 보지 않았다. 왠지 보고 나면, 내가 여행지에서 느낀 감정이 아닌데 마치 내가 경험한 것처럼 글을 쓰게 될 것 같았다. 원고를 1차 마감하고, 교정을 보는 단계에서 찾아봤는데, 마냥 즐겁고 신나기보다는 뭐랄까. 애틋한 느낌이었다. 할배들처럼 나이가 들어 하는 스페인 여행도 참 좋을 것 같았다. 멋있기도 하고 애틋하고, 뭔가 묘한 감정이 들었다.

 

스페인을 다시 여행하게 된다면, 좋은 가이드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이서진 씨만큼은 못할 것 같다(웃음). 혼자 하는 여행과 일행이 많은 여행은 다르니까.

 

만나고-예다은

 

바르셀로나, 발렌시아, 세비아, 그라나다를 추천


최근 한국에도 스페인 전문 레스토랑이 많이 생기고 있다. 스페인 요리라고 하면 타파스, 토마토를 주재료로 한 음식들이 유명한데 가장 맛있었던 음식은 무엇이었나?


한국에 오니 빠에야도 많이 생각나고 여러 타파스 요리가 생각나더라. 집 근처에 스페인 식당이 생겨서 한 번 가볼 참인데, 스페인에서 맛본 것과 얼마나 비슷할지 기대된다(웃음). 스페인도 맥주가 유명해서 하루의 피로를 씻는 기분으로 맥주를 많이 마셨는데, 아마 하루도 빠짐없이 맥주나 와인 한 두 잔을 마셨던 것 같다(웃음). 과음을 한 적은 없지만 가히 물을 마시듯 술을 마신 건 사실이다. 포르투갈에서 유명한 양조장 ‘샌드맨’에 가서 와인을 시음했는데, 2유로만 내면 두 잔의 포트 와인을 맛볼 수 있었다. 인심이 넘치게 와인을 따라줬는데, 라벨을 읽어보니 도수가 무려 19도였다(웃음). 마시자마자 볼이 발갛게 물들었던 기억이 난다.

 

스페인 사람들은 보통 밤 9시를 넘긴 시간에 저녁식사를 한다고.


스페인 사람들의 시간 개념은 우리의 시간 개념과는 너무 달랐다. 느긋하게 저녁식사를 마치고 밤 10시가 넘어 자리에서 일어날 무렵, 이제야 저녁식사가 한창인 사람들로 레스토랑은 만석이었다.

 

기억에 많이 남는 도시는 어디였나? 스페인 여행을 계획하는 사람들에게 3개 도시를 추천한다면?


바르셀로나, 발렌시아가 좋았는데, 특히 발렌시아가 더 기억에 남았다. 발렌시아는 구시가지와 신시가지가 정말 다르다. 예전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구시가지의 매력과 마치 SF영화에 나올 것만 같은 건물들이 즐비한 신시가지의 매력을 이렇게 가까이에서 동시에 느낄 수 있다는 게 새로웠다. 발렌시아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뭐랄까, 정말 스페인스럽다고 할까. 꼭 가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바르셀로나와도 멀지 않기 때문에 접근성도 좋다. 그리고 안달루시아 쪽으로 내려간다면, 세비아와 그라나다를 추천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스페인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피카소의 게르니카도 아니고 레알 마드리드의 축구 경기도 아닌 발렌시아의 오렌지나무”였다고 말했다.


지금껏 수없이 많은 오렌지를 까먹으면서도 단 한 번도 나무에 매달린 오렌지를 상상해본 적이 없었다. 오렌지라고 하면, 대형마트에서 팔고 있는 주황색 망 속의 과일이었다. 들판 위에서 자라나는 순수한 자연물로 이어지지 않았는데, 발렌시아 세우광장 앞 오렌지 공원에서 본 오렌지나무는 내가 얼마나 자연으로부터 멀어진 인생을 살았는지를 깨닫게 했다. 얼마나 편리하고 부자연스러운 소비자로 살고 있었는지, 나와 자연 사이에 놓인 거리를 실감했다.

 

여행지에서 읽은 책은 더욱 특별한 기억으로 남는 법이다. 스페인을 여행하면서 읽었던 책은 무엇인가?


하루키의『먼 북소리』도 좋았고, 다시 읽은 『돈키호테』도 기억에 남는다. 손미나 작가의 『스페인, 너는 자유다』,『달과 6펜스』, 『파이 이야기』도 몰입해서 읽었다. 종이책도 좋았지만, 아무래도 가방을 가볍게 하기 위해 한국에서 e북을 많이 담아 갔다. 이동하는 시간에도 읽고 숙소에 들어가서도 읽고. 휴대성이 있으니까 편리했다.

 

작가 프로필에 김애란의 단편소설을 좋아하고,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과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를 여러 번 읽었다고 밝혔다. 또 좋아하는 저자가 있다면.


김화영 선생님의 『행복의 충격』을 좋아한다. 오래 전에 출간된 책인데 2년 전에 재출간 됐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읽었는데, 문학적 깊이와 유려한 문장이 인상적이었다. 프랑스에서 유학을 하면서 여행한 이야기를 쓴 책인데, 지금은 누구나 쉽게 여행을 갈 수 있지만 30년 전에는 쉬운 일이 아니지 않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공간에 처음 갔을 때 느끼는 감정은 과거와 지금이 별반 다르지 않다는 걸 느꼈다. 정말 좋아하는 책이다.

 

참고로 했던 여행서는 없었나?


오소희 작가님의 책도 많이 읽었고, 이하림 작가님의 『그 여자의 여행가방』도 재밌게 읽었다. 한국 작가들의 책도 많이 참고했다. 『올라 스페인』을 쓰면서 노력했던 건, 에세이도 들어있지만 여행 정보도 틈틈이 담으려고 했다. 독자가 책을 읽으면서 여행하는 느낌이 많이 들었으면 했다.

 

만나고-예다은

 

한 번 더 여행한 느낌으로 쓴 책


여행서, 여행 에세이가 많이 출간되고 있고 여행작가를 꿈꾸는 사람들도 무척 많다. 여행서를 내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첫 책을 낸 초보작가라 조언을 하긴 부끄럽지만, 꼭 책을 내야겠다는 마음으로 글을 쓰는 것보다 내가 정말 좋아서 쓰는 게 더 중요한 것 같다. 사실 글을 쓰면서 책이 될 거라는 확신은 없었다. 몇 십 번을 고치다 보니, ‘이렇게 썼는데 책이 안 된다면 내 한계가 여기까지’라고 생각했다. 한계치만큼 써서 투고를 했고, 많이 기대하진 않았다. 내가 책을 만들려고 글을 썼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만족감이 있었다. 정리가 된 느낌, 한 번 더 여행한 느낌이었다. 만약 출판이 되지 않았더라도 계속 글은 썼을 것 같다.

 

여행지 사진은 많이 담았는데, 정작 저자의 얼굴이 찍힌 사진은 하나도 싣지 않았다.


여행서를 읽을 때, 저자의 사진이 많이 들어있으면 누군가의 여행기를 본다는 느낌이지 내가 여행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더라. 누가 나를 본다는 느낌보다는, 내가 그 사람이 되어서 새로운 세상을 만날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싶었다.

 

어떤 사람들에게 특히 ‘스페인 여행’을 추천하고 싶나?


여유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정말 만족할 여행지다. 보통 유럽을 여행할 때는 짧게 짧게 여러 나라를 둘러보는 경우가 많은데,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적어도 일주일은 스페인에 머물러 보라고 말하고 싶다. 스페인은 다른 유럽에 비해 아시아적인 정서가 많다. 가족을 챙기는 문화나 음식 문화 등 동양과 많이 다르지 않아 유럽을 처음 여행하는 사람들에게도 쉼을 선물할 여행지다.

 

에세이와 함께 스페인, 포르투갈에 대한 정보도 많이 수록했다. 스페인으로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독자들에게 여행 팁을 소개한다면.


사실 준비를 많이 하고 떠난 여행은 아니었다. 항공권이랑 1주일치 정도의 숙소만 예약하고, 웬만한 건 현장에서 그때그때 알아보면서 다녔다. 애매하지만, 너무 완벽하게 준비하고 떠나는 여행은 유연함을 찾기 어려운 것 같다. 너무 완벽하게 계획을 세우면 무조건 뭘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오히려 강박이 생긴다. 너무 빡빡하게 계획을 세우지 않는 게, 오히려 팁이라면 팁이 되지 않을까. 여행서적을 미리 읽어보는 것도 좋은데, 여행지의 관광안내소를 많이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최신 지도를 얻을 수 있고 현지인들의 추천도 얻을 수 있다. 나는 가이드북을 아예 들고 다니질 않았다. 관광안내소의 정보가 훨씬 유용했다.

 

만나고-예다은

 

여행을 싫어하는 사람들, 떠나기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여행은 특별한 사람들만이 하는 게 아니다. 삶의 다른 면을 만날 수 있는 가장 최적의 시간이 아닐까, 싶다. 우리가 책에서 보는 세계랑은 다른, 정말 생생한 삶을 볼 수 있는 기회다. 이번에 여행을 하면서, ‘내가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는 국가에 태어난 것도 정말 감사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을 할 수 있다는 것 자체를 하나의 기회로 생각했으면 좋겠고, 그 기회를 한 번이라도 쓰면 좋지 않을까?

 

여행 후, 스스로 달라진 모습이 있는지 궁금하다.


한국에서 생활할 때는 사람들의 나이, 직업과 같은 외향적인 면을 많이 봤다면, 여행지에서는 그 사람이 어떤 걸 좋아하고 관심이 있는지, 취향을 많이 보게 됐다. 사람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정보가 그 사람의 프로필이 아니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다.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나 스스로도 편견을 버리게 됐고, 다양한 시각을 갖게 됐다.

 

다음 책은 어떤 나라를 염두에 두고 있나?


프랑스, 동남아시아 이야기를 쓰고 싶은 생각이 있는데 아직은 잘 모르겠다. 조금 더 고민해봐야겠지만, 책은 꾸준히 쓸 생각이다.

 

올해 휴가 계획, 10년 후의 여행 계획은 세웠는지.


추석 연휴에 캄보디아, 베트남 배낭여행을 가볼까 생각 중이다. 가고 싶은 여행지는 쿠바다. 남미 여행을 떠나보고 싶다. 30대 후반이 되면 20대에 갔던 여행지를 다시 가보고 싶은 생각이 있다. 10년 전과는 또 다른 감동, 새로운 것들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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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 스페인 HOLA! SPAIN예다은 저 | 북노마드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향해 한 발짝 더 다가선다! IT 기획자로 일하던 저자는 자신의 젊음과 현실을 저울질하지 않겠노라 다짐하며 스페인을 향해 떠난다. 그곳에서 저자는 모두에게 처음인 ‘오늘’을 새로운 마음으로 바라보고 마주하는 방법을 깨닫는다. 모든 것을 처음 겪어보는 소년 소녀처럼 기쁘게 하루를 맞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눈앞에 펼쳐진 것들에 감사해하며 말이다. 그렇게 될 줄 알았다며, 인생이란 원래 그런 거라며 삶을 쉽게 평하고 단정 짓고 포기하는 어른이 되는 대신, 오늘을 기쁘게 맞이할 줄 아는 청춘으로 남기를 선택한다. 또한 ‘무엇이 필요한지’보다 ‘무엇이 필요 없는지’를 고민하며 스스로의 삶을 심플하게 비워가는 여행의 과정 또한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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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3억의 수장,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자진 사임했다. 베네딕토 16세는 라칭어 추기경 시절 가톨릭 교리 수호에 앞장섰고, 2005년부터 교황으로 보수적인 행보를 계속해왔다. 교황의 자진 사임은 베네딕토 16세를 포함하여 교황청 역사상 딱 두 번밖에 없었다. 1415년 그레고리오 12세 사임 이후 598년 만이었다.

 

다음 교황은 프란치스코 교황이었다. 아르헨티나에서 베르골리오 추기경으로 가난한 자의 편에 섰던 교황은 예수회 소속이기도 했다. 교회는 모름지기 가난한 자의 편에 서야 한다고 주장한 해방신학에도 익숙했다. 자연스레 프란치스코 교황 이후 가톨릭에서는 개혁적인 분위기가 감지된다. 어쩌면 지금 우리는 거대한 변혁의 가운데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13억 가톨릭을 이끄는 교황이 이전 교황과 전혀 다른 성향인 까닭이다.

 

『교황과 나』는 프란치스코 교황 등극의 의미를 조명한 책이다. 저자인 김근수는 한국의 대표적인 해방신학자다. 해방신학으로 다시 읽은 신약 복음서 해설서인 『슬픈 예수』, 『행동하는 예수』를 쓰기도 했다. 책 제목처럼 교황과 교황청을 조명하되, 한국의 종교 상황도 분석했다.

 

김근수

 

프란치스코 교황으로 교체가 상징하는 것


『행동하는 예수』이후로 반년도 안 됐다. 숨도 안 고르고 책을 쓴 느낌이다.


그런 건 아니다. 작년 성탄절 전에 이미 쓰려고 했다. 그때는 교황이 한국에 온다는 보장이 없었다. 오면 적시타고, 안 와도 좋은 책 만들자는 취지로 썼다. 1월부터 책 읽고 3월 말부터 집필에 들어갔다. 5월 중순에 원고를 끝냈는데, <경향신문>에서 로마에 가서 특집 기사를 써 보자는 요청이 있었다. 현장감이 중요해서 6월 하순에 로마에 다녀왔고, 원고를 조금 수정했다.

 

『교황과 나』에서 베네딕토 16세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으로 바뀐 의미를 설명했는데, 어떤 의미인가.

 

베네딕토 16세와 프란치스코는 노선이 다르다. 정치로 쉽게 말하면, 베네딕토는 16세는 박정희 대통령, 프란치스코는 노무현 대통령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 차이를 모른다. 왜 모르느냐 하면 이 차이를 설명해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그러니까. 교황이 바뀌었다는도 일반인도 그렇고 신도들도 사실 별로 감흥이 없다. 이런 차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책을 썼다.

 

정치적으로 개혁 세력은 굉장히 어렵게 집권하는 경우가 많은데, 베르골리오 추기경(현 프란치스코 교황)은 콘클라베에서 압도적으로 승리했다. 당시 교황청은 어떤 분위기였나.

 

요한 바오로 2세와 베네딕토 16세가 다 보수적인 교황이었다. 두 분이 합쳐서 36년을 통치했다. 베네딕토 16세 통치 중 말년에 교회에 불미스러운 일이 생겼다. 일부 성직자의 아동 성추행이 폭로됐다. 교황청 은행 부패 의혹과 함께 교황청 비밀문서가 밖으로 유출되었다. 바티칸 내부에서는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고, 36년간 집권해온 보수파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 와중에 베네딕토 16세가 책임을 지고 사퇴했으니, 애초에 후임은 보수파에서 나올 수 없었다. 그래서 승부가 쉽게 났다.

 

프란치스코 교황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베네딕토 16세를 먼저 다뤄보자. 책에서는 위대한 교황인 걸 늦게 알아차렸다(96쪽)고 썼다.

 

베네딕토 16세가 해방신학자를 힘들게 해서 불신이 많았다. 그런데 그분에게 놀란 게 두 가지다. 첫째, 교황을 그만뒀다. 생각해 보라. 면장, 군수도 스스로 관두기 어렵다. 13억을 대표하는, 본인뿐만 아니라 자신이 임명한 수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물러나는 거다. 그리스도교 2천 년 역사에서 자진해서 관둔 게 한 번밖에 없었다. 죽어야 임기가 끝나는 거로 생각했는데 ‘무능하다’고 하면서 관뒀다. 무능을 인정하는 것도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둘째, 80대 중반이 넘었는데도 『나사렛 예수』라는 책을 3권으로 펴냈다. 전문적인 책이다. 은퇴해서 시간이 많아서가 아니다. 교황 하면서도 엄청나게 바쁜데 책을 놓치지 않고 책을 썼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교황 자리를 포기할 수 있는 용기와 겸손, 학구열, 이 두 가지 몰라서 죄송하다고 책에서는 썼다. 그러나 해방신학자를 탄압한 건 섭섭하다.

 

현대 순교란 돈의 유혹에 굴복하지 않는 것


해방신학은 왜 홀대받았을까.

 

라칭어 추기경(베네딕토 16세)이 신앙교리성 장관일 때가 미국에는 레이건, 영국에는 대처 등 신보수주의, 신자유주의, 신자본주의가 위력을 발휘하던 때다. 동유럽 공산주의가 무너지려고 할 때이기도 하다. 해방신학이 동시에 탄압받았다. 왜? 첫째, 교황은 해방신학이 마르크스주의의 사촌이라고 오해했다. 동유럽이 몰락했으니 해방신학도 자연히 몰락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둘째, 해방신학이 남미에서 나왔는데, 남미에서는 군부 독재 탄압으로 해방신학자가 수백 명 죽었다. 이때 교황이 해방신학자 편을 들면 교화와 국가 사이에 엄청난 갈등이 생길 판이었다. 희생을 막기 위해서 교황청은 교회를 보호하는 쪽을 택한다. 일반 신도도 해방신학이 마치 사회주의의 조카, 친척처럼 생각했다. 정부가 싫어해, 부자가 싫어해, 교회의 권력자가 싫어해, 해방신학은 왕따처럼 30년 정도를 지냈다. 그런데 교황이 바뀌니 복권된 거지. 그래서 나 같은 해방신학자도 입도 벌리고 책도 낼 수 있다. (웃음)

 

해방신학, 민중신학. 엄밀하게 차이가 있나?

 

거의 없다. 민중신학, 해방신학 비슷하다. 해방신학은 남미에서, 민중신학은 한국에서 나왔다. 한국 개신교에서는 민중신학이라 하고, 해방신학은 가톨릭 쪽 색채가 많다.

 

순교의 현대적 의미를 책에서 비중 있게 이야기했다.

 

예전에는 종교를 탄압하는 정치권력에 맞서는 게 순교였다.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특정 종교를 예전처럼 탄압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일부 국가에는 있지만 적어도 한국에는 없다. 그렇다면 지금 순교는 뭘까? 돈이 신앙을 유혹하는 데 저항하는 게 순교다. 예전에는 박해했는데 요즘은 유혹한다. 예전에는 박해하면 저항했는데, 지금은 유혹하면 굴복해버린다. 유혹에 당당해져야 한다. 이게 순교다. 그러니 가난한 교회가 필요하다. 부자 교회는 유혹에 굴복했다. 원래 그리스도교가 돈 모으려고 출발한 게 아니다. 돈 모으는 건 기업이다. 교회는 그러면 안 된다.

 

한국 교회가 당면한 과제로 신자유주의, 여성사제, 종교 간 대화를 꼽았다.

 

신자유주의는 우리 시대 처음 있는 일로 규제받지 않는 자본주의다. 지금 신자유주의는 너무 잔인한 경제 체제다. 열심히 일해도 왜 가난한가? 여기에 그리스도교가 대응하고 해답을 줘야 한다. 이 문제를 비켜 나가면 종교는 사람을 속인다. 여성사제를 반대하는 신학적 이유는 없다. 교회법적 규칙이 있는 까닭인데, 나는 여성사제를 찬성한다. 진즉 허용해야 했다. 그래도 2천 년 늦었다. 가능하다. 가톨릭이 교회법을 바꿀 수 있다. 영원불변 법칙 아니다. 적절한 시기에 허용해야 한다는 게 내 주장이다. 여성사제를 허락하지 않는 건 인류의 절반을 무시하는 처사다. 빨리 고쳐야 한다.

 

그리고 종교 간 대화. 그리스도교와 이슬람 문제가 가장 중요한 문제다. 시급하다. 불교와 그리스도교 대화는 한국에서 중요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아르헨티나 추기경 할 때 개신교, 유대교 랍비와 굉장히 대화를 많이 했다. 한스 퀑이라는 학자가 이야기했다. 종교 간 대화가 없으면 세계 평화가 없고, 종교 간 연구가 없으면 종교 간 대화가 없다고. 대화를 하려면 서로 연구해야 하고, 연구하려면 존중해야 한다. 적어도 전쟁만은 막아야지. 지금 이스라엘 봐라.

 

사회가 발전할수록 종교의 영향력이 쇠퇴한다는 근대화 테제는 어떻게 생각하나.

 

세속화가 종교 몰락을 의미하진 않는다. 선진국에서는 종교가 역사적으로 지은 잘못도 있고 현대사회에 적절한 대답을 못했다. 그러니 쇠퇴하는 것 같지만, 가난한 나라에서는 종교가 희망이다. 해방신학이 그 증거이고. 가난한 사람을 존중하고 불의에 저항하는 게 종교의 주제라면 종교 영향력은 커질 것이다. 나라마다 사정이 다르다. 제3세계에도 세속화 현상이 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종교 인구가 늘기도 한다. 특히 가난, 억압 문제가 있는 아시아나 남미에서는 종교가 갈수록 해야 할 일이 많아지고 있다. 세속화된 유럽도 인생의 의미와 같은 문제에 대한 답을 돈이나 과학이 줄 수 없다. 진정한 의미의 종교라면 선진국 사람에게도 매력을 줄 것이다.

 

한국은 어떤 상황일까?

 

종교를 바라보는 사람의 눈을 보자. 여러 종교가 있지만, 종교 선택하는 기준으로 교리에 감동해서 종교 택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지금은 신분 세탁하러 간다. 취직, 승진, 일상생활을 엉망으로 산 걸 덮으려는 야심이 있다. 이런 사람이 들어오고, 이런 사람이 모인 종교니, 종교도 야심으로 찬다. 자연히 품질이 떨어지지. 큰 문제다. 한국에는 세속화에다 신도들의 야심이 겹쳐 있다. 한국에서 종교를 나쁘게 이용하려고 종교를 택하는 사람이 늘면서 종교가 사회를 더럽히려는 온상이 된다. 많은 고위 공직자가 성당에 다닌다. 지난 정권에서는 교회에 다녔다. 종교 교리대로 살아보려는 사람은 많지 않고, 종교를 이용하려는 사람이 많다. 안타깝다.

 

그래서 한국의 십일조 운동을 제창했나.

 

내가 말한 십일조는 교회의 현재 재산을 10분의 1로 줄이자는 운동이다. 100만 원 들고 있으면, 90만 원은 날려야 한다. 지출, 수입을 1/10로 줄이자. 왜? 가난한 교회가 예수 정신에 맞다. 천주교만 해도 엄청난 재산이 있다. 지금 교황은 가난한 교회를 외치고 있다. 교황 의견에 찬성한다면 재산 줄이기 운동부터 해야 한다. 가난한 사람에게 주려면 돈을 모아야 한다고 하는데, 재산부터 줄여야 한다. 그래야 종교 안에서 부자의 발언권이 없어진다. 가난한 사람이 멸시당하는 일이 없어진다. 지금은 종교가 돈이 많으니 부자를 비판할 수 없다. 종교 망하는 지름길이 돈 버는 거다. 종교를 살리려면 돈을 버려야 한다. 종교 재산이 줄면 사회가 깨끗해진다. 신도도 는다. 나를 욕하려면 교황을 욕하고, 그전에 예수를 욕하라.


한국 천주교가 교황과 엇박자라는 지적도 있는데.

 

현재 교황은 불의에 대한 저항을 가르치는데, 한국 천주교는 정의구현사제단이나 일부 사제는 그렇게 하고 있지만 한국 천주교의 지도부는 교황의 메시지와 반대로 살고 있는 게 아닐까 싶다. 세월호 문제만 봐도 천주교에서 앞장 서서 세월호 원인 규명을 촉구하면서 앞장 설 의무가 있는데, 지금 안 하고 있다. 교황 방한 행사를 치러야겠지만, 지금은 유가족을 위로하고 원인 밝히는 데 집중해야 하지 않을까. 교황이 가고 난 뒤에는 우리 식대로 살아야 하지 않겠나. 교황에게 우리가 뭘 배울까도 중요하지만, 우리 자신도 교황처럼 똑똑해져야 한다. 내가 또 다른 교황이 될 수 있어야 한다. 정의에 대한 신념, 불의에 대한 저항이 필요하다. 교황 한 명이 훌륭하다 해서 가톨릭이 살 수 없다. 신자가 똑똑해져야지. 국민이 똑똑해야 공무원이 일을 잘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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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신학자 김근수


해방신학이 남미에서 나왔는데. 독일 유학 중 관심을 가졌다. 어떤 계기였나?

 

독일에서 신약성서를 공부했다. 역사, 예수를 공부하는데 예수가 죽기 전에 했던 말씀과 행동을 연구했다. 문제가 생겼다. 예수가 주로 상대한 사람이 가난한 사람이다. 그런데 독일에서 가난한 사람이 많지 않다. 예수의 말과 행동을 연구해야 하는데, 독일에서 공부할 때 느껴지지가 않더라. 예수와 가난한 사람 사이 교류를 느끼기에는 남미가 더 유리하겠더라. 해방신학이 싹튼 곳이고. 후보는 여러 가지였는데 엘살바도르를 택한 이유는 세 가지였다. 첫째, 가난한 사람 편을 들다 군사정권에 희생된 로메로 주교라는 모범적인 성직자가 있었고. 둘째, 해방신학에서 가장 권위적인 책을 쓴 소브리노 교수가 가르치고 있었다. 셋째, 11년 동안 내전이 있었기에 한국과 역사적 경험이 비슷했다. 

 

독일과 엘살바도르에서 연구하면서 김근수만의 예수론을 발전시켰을 것 같은데.

 

예수는 가난한 사람을 위해 목숨 바쳤다. 가난한 사람을 편들었고 가난한 사람을 위해 불의의 세력과 싸우다 희생됐다. 예수는 정치범이다. 당시 십자가형은 정치범이 당하는 처형이고 종교사범은 돌로 쳐 죽였다. 종교논쟁으로 죽은 게 아니라 정치범으로 죽었다는 의미다. 이스라엘 식민지에서 활동하다 로마 군대의 눈에 벗어나서 죽었다. 전세계에 많은 종교가 있는데, 종교 창시자가 정치범으로 처형당한 건 유일하다. 불교도 유교도 없었다. 붓다나 공자는 수십년 활동하고 수천 명 제자에 둘러싸여 존중 당하며 죽었다. 예수는 제자에게 버림받고 죽었다. 또 하나, 가난한 사람 편든 종교 창시자는 없다. 예수처럼 목숨을 희생하지 않았다. 그래서 예수를 존경한다.

 

삼위일체, 동정녀 잉태, 불멸보다도 예수는 가난한 사람 편에 섰다는 게 그리스도교 신앙의 본질인가?

 

그렇다. 신약성서를 보더라도, 천국 이야기나 마리아 이야기 많이 없다. 가난한 사람과 이야기하고 밥 먹고 용기 주고 싸우는 이야기가 주다. 가난한 사람 편드는 게 그리스도교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그런 메시지가 있기에 교황청이 지금까지 건재한 건가.

 

교황청의 힘은 자기반성, 자기 회복, 원상복구력에 있다. 교황청이 잘못도 많이 했다. 그렇지만 잘못하면 개혁했다. 가톨릭의 자기반성 능력은 대단하다. 해방신학이 그렇다. 가톨릭에서 많은 비판받고 억압받았어도, 교회를 버린 사람이 없었다. 나도 교회를 떠난 일이 없다.

 

묘비명을 '해방신학자 김근수'라고 정했는데.

 

나 자신은 해방신학자다. 지금 교황이 자신을 정의하는 대표적인 게 '사제'인데. 나는 해방신학자로 살았고 죽고 싶다. 하나의 단어만 꼽으라면 ‘해방신학자’ 이 단어가 나를 제일 잘 드러낸다.

 

복음 해설서는 계속 쓸 계획인가?

 

내년 가을에 『가난한 예수』가 나올 것이고. 지금까지 두 개 냈으니, 앞으로 2개가 남았다.


해방신학 책을 추천해 달라.

 

소브리노의 유명한 책 『해방자 예수』를 번역하고 있는데, 올해 가을에 나온다. 그 책이 가장 좋은 책이다. 


교황의 한국 방한을 걱정스러우면서도 결과를 기대한다(210쪽)고 했는데.

 

걱정스러운 건, 개혁적인 이미지가 흐려질까 봐. 교황은 신자유주의를 반대한다. 그런데 이런 개혁 메시지가 한국에 와서 윤리 선생님, 도덕 선생님, 친절한 할아버지, 이렇게 확 축소될 수도 있다. 방한일정을 보니 염려스럽다. 가난한 사람 찾는 대신 정부행사에 참석한다든지, 불편하지 않은 곳만 다니는 것 같다. 비유하자면 지금 매니저가 연예인 죽이려고 짠 일정이다. 그래도 불의에 대한 저항, 가난한 사람에 대한 애정, 부패 없애는 것, 이런 이야기를 해서, 한국사회의 부패를 깨끗하게 하려는 사람의 의욕에 손뼉 치고 격려할 게 기대된다.

 

개혁자가 실패하는 경우 많지 않나. 프란치스코 교황의 개혁, 어떻게 전망하나.

 

우리 기대보다 못 미치는 부분도 있겠지. 우리 기대 이상으로 개혁할 수도 있고. 보수파 저항은 있을 것이다. 눈에 띄지 않는, 은밀한 저항이 있어서 개혁이 기대보다 미진할 수 있다. 그렇지만 지금 교황이 나이가 많으니 개혁 정책을 빨리 끝내려고 할 수도 있다. 가톨릭에 개혁의 의미는 가난한 교회로 옮기는 것인데, 엄청난 개혁이다.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다. 그에 비해 눈에 보이는 개혁, 그러니까 교황청 관리 교체 같은 건 금방 할 수 있다.

 

중간에 했어야 할 질문인데, 묘하게도 마지막 질문이 되었다. 교회가 가난한 사람에게 왜 다가가야 하나?


예수에게 답이 있다. 예수가 그렇게 사셨으니까. 가난한 사람 편들고, 가난한 사람 편드는 의미에서 본인도 가난해졌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말하는 것도 똑같다. 돈을 퍼주는 부자로 사는 건 예수 정신에 안 맞다. 예수가 재벌로 안 살았으니, 우리도 예수처럼 살겠다고 했으면 예수처럼 살아야지. 부자되는 건 거짓말이다.

 


 

교황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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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과 나김근수 저 | 메디치미디어
프란치스코가 말하는 교회개혁이란 무엇일까. 그는 교회가 단지 가난한 이들의 편에서 그들을 위로하고, 무료급식을 하는 ‘소승’적인 차원에만 머무르길 원치 않는다. 종교와 사제들이 이제껏 가난한 이들 위에서 누렸던 부와 권력을 과감히 내려놓아야만 진정한 교회개혁, 나아가 사회개혁에 이바지할 수 있다고 말하고 곧바로 행동으로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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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애리 “30대 여성이야말로 공부가 필요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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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공부하는 청춘 김애리가 새 책을 냈다. 책 제목은 『여자에게 공부가 필요할 때』. 책 내용 중 일부는 채널예스에 ‘김애리의 서른 여자 공부법’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되어 인기를 끌었다. 독서, 공부를 지속적으로 강조해온 김애리 저자가 이번에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갈수록 불확실성은 높아지고, 개인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갈피가 안 선다. 힘을 모아 구조를 바꾸는 것도 필요하지만, 개인 차원에서는 가장 효과적인 게 공부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어린 시절부터 입시 위주의 교육 때문에, ‘공부’라고 한다면 시험을 보기 위한 단계,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

 

김애리는 진정한 공부는 평생 배움이라고 말한다. 특히 이 책은 30대 여성 독자를 겨냥해 지금 이 시기의 공부를 강조한다. 물론, 여성이 아니라 남자가 읽어도 좋을 내용이다. 평생 배움의 중요성, 구체적인 공부 실행법, 공부로 자신의 삶을 행복하게 한 사람과 인터뷰 등이 『여자에게 공부가 필요할 때』를 구성한다. 책 출간을 맞아 한 북카페에서 그녀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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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여성에게 필요한 것, 공부


어느덧 7번째 책입니다.

 

제가 책과 함께 성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20대, 꿈의 다이어리』썼을 때는 저도 20대였고요. 『책에 미친 청춘』을 썼을 때는 저도 '방황하는' 청춘이었고, 이번에는 같은 30대 여성을 위해 돌아왔습니다.

 

이번 책을 쓰면서 염두에 둔 점은?

 

이미 시중에 공부에 관한 책은 많아요. 그런데 취업이라든지 승진, 입시에 관한 공부가 대부분이에요.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공부는 ‘평생 배움’이었습니다. 단기적 목표를 이루기 위한 게 아니고요. 특히 여성에게 이런 평생 공부가 필요해요. 대학 졸업한 뒤든, 결혼한 뒤든, 아이를 낳고 나서든 언제든지 공부를 해야 합니다. 저 자신부터 대학을 졸업한 이후에 오히려 공부의 필요성을 더 느끼죠. 책 쓰기 전에 제 주변의 20~30대들에게 설문조사를 해봤는데요. 공부 필요성은 절감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떤 공부를 해야 할지를 몰라 고민하는 사람이 많더라고요. 이런 분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책을 썼어요.

 

책에서 소개한 사람들 인터뷰는 어떤 계기로 이뤄졌나요.

 

알고 지냈던 분도 몇 분 있었고 책을 쓰기 위해서 공부로 인생을 반전시킨 사람을 찾았어요. 주변 소개도 받았고요. 책 안에 나온 여성들 대부분이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인데요. 공통점이 있다면 대학 전공과 무관한 공부로 인생을 반전시켰다는 사실이에요.

 

20대 공부와 30대 공부가 달라야 한다고 말했는데요.

 

20대 공부는 단기적 목표를 성취하기 위한 게 대부분이죠. 중간고사, 기말고사, 토익, 취업, 졸업, 이런 걸 성취하기 위한 공부입니다. 정말 내가 원하는 공부, 평생 나와 함께 할 수 있는 배움은 아니죠. 그 대신 서른 살 공부는 자신이 원하는 게 뭔지, 하고 싶은 게 뭔지에 관해서 시행착오를 거친 뒤에 시작하죠. 그러니 30대부터(나이는 상징적인 거고요. 누군가는 대학졸업 이후 25살부터, 누군가는 군대 제대 이후 27살부터가 될 수도 있죠) 하는 공부가 진정한 공부라고 할 수 있죠.

 

20대 때 김애리와 지금의 김애리를 비교한다면?

 

어렸을 때부터 꿈이 책 쓰는 사람, 책 만드는 사람이었어요. 책 못 쓰면 서점에 취직하고 싶을 정도로 책 옆에 가까이 있고 싶었죠. 20대 목표가 ‘책을 쓰자’였다면 지금은 좋은 책을 쓰고 싶어요. 그리고 이상하게 나이를 먹을수록 하고 싶은 것들, 도전하고 싶은 분야가 늘어만 가네요.

 

남자 독자가 읽어도 될 텐데, 책 제목에 굳이 '여성'을 붙인 이유는?

 

우선 시중에 30대 여성의 공부에 관한 책이 거의 없었어요. 그리고 아직은 여성이 남자보다는 불리하잖아요. 결혼하고 아이 낳으면 경력도 단절되고요. 이럴 때 진정으로 필요한 게 공부죠.


멋있는 사람은 책 읽는 사람

 

어릴 때부터 책을 좋아해서 1,000권 읽어내는 목표도 달성했는데요. 책과 친해진 계기가 있었나요.

 

책 읽는 환경을 부모님이 만들어주셨어요. 아버지가 책을 좋아하셨거든요. 제가 어렸을 때부터 항상 책을 손에 들고 계신 모습을 봤어요. 그 영향이 컸던 것 같아요. 서른 살 되기 전에 혼자 1,000권을 읽자, 이런 목표를 세우고 실행했습니다. 정말 1,000권을 읽었는지 한 권 한 권, 다 세 봤어요. 서평도 썼고요. 서평을 손으로 일일이 썼는데, 노트 10권이 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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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할 수 있는 실질적인 조언도 했는데요. ‘주말을 더는 캔맥주 마시며 밀린 드라마를 10시간씩 몰아보는 시간으로만 보내지 말자.(72쪽)’라고 썼습니다. 사실, 공부하고 싶어도 막상 실행하지 못하는 게 게으름 탓인 것도 같습니다.

 

정말 원하는 공부가 있으면, 시간이 없어도 시간을 쪼개서, 그래도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하게 된다고 생각해요. 억지로 하는 공부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하는 공부일 경우죠. 공부를 생산적인 놀이라고 정의를 하면, 행복하고 즐겁기 때문에 뜯어 말려도 하게 되지 않을까요?


책에도 일화로 소개했는데요. 보육교사로 일하는 사람인데, 주말에는 일본어 번역을 해요. 평일에는 직장에 다니니 공부하는 시간이 한정돼 있죠. 그래서 시간을 벌어야 해요. 약속 시각 30분 전에 먼저 가서 그 동안 번역을 해요. 가방 안에는 항상 번역하는 책이 있죠. 일주일에 약속이 2~3번 있으면 1시간이나 1시간 30분 시간을 벌게 되죠. 이런 식으로 활용하면 시간을 만들 수 있습니다.

 

‘자신감 넘치는 여자들의 백 안에는 언제나 책이 들어있다(112쪽)’고 썼는데요. 지금은 어떤 책이있나요?

 

『여자에게 공부가 필요할 때』가 있어요. (웃음). 신기하게도 사회에서 높은 위치에 있어서 정말 바빠 책 읽을 시간이 없을 것 같은 사람일수록 책을 많이 읽어요. 멋있는 사람이 되어서 책을 많이 읽는 것인지, 책을 많이 읽어서 멋있는 사람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결론은 멋있는 사람 중에 책 많이 읽는 사람이 많아요.

 

배움 중에서도 독서를 강조했고, 지금까지 낸 책 중 상당수가 독서에 관한 것이었는데요. 바람과는 반대로 한국은 점점 더 책을 안 읽는 사회로 가는 것 같습니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만 해도 스마트 폰 쓰고 나서 책 읽는 시간이 줄었어요. 스마트 폰은 자극적입니다. 재밌고. 한 번 빠지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2~3시간씩 집중하게 되잖아요. 독서는 시간을 들여서 읽어내야 하는데, 재미는 없고. 그럼에도 독서가 힘들긴 해도 오로지 책에서만 얻을 수 있는 게 있죠. 책에서 얻는 것과 인터넷, TV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다르잖아요. 아무리 책을 안 읽는 사회가 되더라도, 독서는 언제든 꼭 필요합니다.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가치는 TV나 인터넷으로는 찾기는 힘들 거예요. 독서를 찾을 수 있죠.

 

책을 많이 읽다 보면 변화라든지 유행이 보이지 않나요.

 

글쎄요, 그건 잘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사회적 성공을 바라고 성공하기 위해 공부하자는 책이 나왔다면, 제가 쓴 책은 에세이 느낌이 많이 나는 자기계발서인데요. 성공하기 위해 공부하자가 아니라, 인생을 즐기면서 행복하자는 책입니다. 저만 해도 사회적 성공을 바라는 책은 거부감이 들어요. 억대 연봉과 같은 기준이 성공의 잣대라는데, 성공의 기준은 저마다 다르잖아요. 요새 독자도 똑같이 생각하는 것 같아요.

 

1년 공부해서 10년 써 먹으려면


부제처럼 1년 공부해서 10년 써먹을 수 있는 공부가 있을까요?

 

사실 1년이라는 시간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죠. 어떤 분야든 3년 정도는 진득하게 해 봐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해요. 숫자는 상징적이고요. 그래도 1년 배워서 10년 써먹을 수 있는 공부라면,  자기가 하고 싶은, 미루고 미루어왔던 '그' 공부일 거라고 생각해요. 그게 무언지는 각자 다를 거고요.

 

좋아하는 공부는 어떻게 찾았어요?

 

저는 오지랖이 넓어서 이것저것 다 해 봐요. 말보다는 행동이 먼저 나가는 스타일이라서요. 여행 가고 싶다, 하면 2주 전이라도 표를 끊고 가버려요. 실행력이 뛰어난 편이에요. 뭔가 배우고 싶으면, 일단 발을 담그죠. 프랑스어를 배우고 싶으면 책을 사요. 안 되더라도 시도는 해 봐요. 책에 김진 대표님 사례를 썼는데요. 그분의 공부가 그렇죠. 자기가 원하는 걸 한번씩 다 해봐요. 목공예도 배우고, 최근에는 도자기 배우고. 요리도 전문가에게 배웠고요. 회사를 운영해서 시간이 정말 없는데도 원하는 분야에 관해 조금씩 공부를 계속 하거든요. 안 맞는다 싶으면, 그때 포기하는 거예요. 그 분을 인터뷰하며 저 역시 자극을 많이 받았습니다.

 

올해 공부 목표로 독서치료, 시나리오작법, 중국현황 알기를 꼽으셨는데. 순조롭나요?
 
열심히 하려고 노력은 많이 하는데요. 순조롭진... (웃음) 독서치료에는 관심이 많았어요. 책을 읽다 보니 책에 내면을 치유하는 기능이 있다는 걸 느꼈어요. 물론 좋은 책을 잘 골라서 읽어야죠. 그래서 독서치료에 관심을 두게 됐어요. 연초에 독서심리상담사 자격증도 취득을 했고요. 관련 서적도 계속 읽어가고 있답니다. 중국이라는 나라에는 원래 관심이 많았어요. 중국과 수교하기 전부터 왔다 갔다 했어요. 중국의 과거부터 현재 발전하는 상황을 옆에서 생생하게 봤거든요. 처음으로 낸 책도 중국 관련 책이었고요. 올해 제 삶의 가장 큰 변화는 삶의 터전을 중국으로 옮겼다는 것이에요. 중국을 배우기에 최상의 환경을 갖춰놓았어요. 시나리오도 관심 많아서 나중에 도전해 보고 싶어요.

 

오늘 공부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끝으로 물어볼게요. 김애리에게 공부란?

 

공부라고 하면, 영업 공부, 어학 공부, 학점 따기 위한 공부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진정한 공부는 나를 성장시키는 모든 것이죠. 요리도, 글쓰기도, 독서도, 여행도 공부죠. TV도 좋은 프로그램을 효율적으로 골라서 본다거나, 하면 공부가 될 수 있죠. 그 중에 제일 좋은 건 역시 독서이고요. 학교에 들어가지 않는 이상 가장 빠르게 지식을 얻을 수 있고 장소에도 구애 받지 않죠. 독서와 함께 글쓰기도 그렇고요.
 
공부란 평생 즐겁고 재밌게 살기 위한 필수 아이템이라고 생각해요. 이금희 선생님도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새로운 분야에 발 담근다는 건, 정말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건데요. 평생을 공부한다면 인생이 풍요롭고 나이가 들어서도 혼자 놀 수 있는 방법을 잘 터득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독서도 마찬가지고요.



 

여자에게 공부가 필요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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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에게 공부가 필요할 때김애리 저 | 카시오페아
여자에게 공부가 필요할 때』는 조금 더 나아지고 싶고 성장하고 싶은데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평범한 여자들에게 공부를 통해 더 나은 삶을 사는 길을 알려주는 책이다. 공부가 중요한 건 알겠지만, 바쁘고 당장 필요하지 않아서 시작하고 있지 않은 여자들에게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부터 차근차근 짚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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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강풀 “아빠가 읽을 만한 그림책이 없어 그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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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작가 강풀. 그를 설명하기 위해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순정만화』에서부터 최근작 『마녀』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은 폭넓은 연령대에 걸쳐 사랑을 받았다. 그의 작품을 열거하자면 『아파트』, 『그대를 사랑합니다』, 『26년』, 『어게인』, 『타이밍』등 끝이 없는데,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강풀 작품 하나 정도는 봤을 정도로 웹툰계에서 그의 입지는 확고하다.
 
웹툰계의 조상으로 불리는 강풀 작가가 두 번째 그림책을 냈다. 강풀의 만화는 스토리가 탄탄하기로 유명하다. 자연스레 분량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강풀은 매년 1편씩 연재를 계속해왔다. 웹툰 연재만으로도 벅찰 텐데, 그림책을 만들 힘은 어디서 나왔을까. 여기서 부성의 위대함이 나온다. 엄마도 위대하지만, 아빠도 대단하다. 강풀 작가에게 아이가 생기면서, 그는 한 가지 결심했다. 아이를 위한 그림책을 매년 한 권씩 내기로. 그렇게 나온 첫 번째 작품이 『안녕, 친구야』이다.

 

그리고 1년이 흘렀다. 두 번째 그림책 제목은 『얼음 땡!』이다. 아이와 보낸 시간이 쌓이면서, 작가가 그리는 두 번째 책에 거는 기대가 커서인지 출간과 동시에 화제를 모으고 있다. 『얼음 땡!』은 아버지를 위한 그림책이다. 강풀은 육아하면서 책을 많이 읽어줬다고 하는데, 아버지가 아이와 함께 읽을 그림책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책 속 화자가 거의 엄마였던 까닭이다. 그래서 『얼음 땡!』은 아빠가 아이와 읽어나가기에 좋게 만들어졌다. 강풀 작가의 전매특허인 탄탄한 스토리도 짧은 분량 속에도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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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로서 솔직하게 하고 싶은 이야기


이번이 두 번째 그림책인데, 첫 번째 책이었던 『안녕, 친구야』와 달라진 점이 있나요?


『안녕, 친구야』를 만들 때는 아이가 생겼는데, 첫 애다 보니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태교를 같이 하고 싶어서 태교의 한 방법으로 책을 쓰기로 했어요. 책을 선물하고 싶기도 했고요. 7년 만에 생긴 아이니까 귀한 아이였거든요. 그림 그리는 게 직업이니, 그림책을 그리고자 무조건 시작했어요. 첫 번째 책을 그릴 때는 아이가 태어나면 이런 이야기를 해줘야지, 하는 생각은 들었지만 다소 막연했어요. 정말 기적처럼 『안녕, 친구야』발간일이 1월 14일인데, 아이 생일과 맞아떨어졌어요.

 

『얼음 땡!』은 육아를 1년 정도 한 뒤에 만든 책이죠. “이 아이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지?” 하면서 그리게 됐어요. 『안녕, 친구야』를 그려 보니까 재미가 있더라고요. 매년 한 편씩 내야겠다고 결심을 했어요. 다만 그 기간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그럼 7권이죠.


만약에 둘째가 태어난다면 서운해하지 않을까요.


안 그래도 아내와 이야기를 해봤는데요. 생길지 안 생길지는 모르겠지만, 생겨도 그냥 7권으로 끝내려고요. 14권은 너무 힘들어요. (웃음)


『얼음 땡!』이 골목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인데요. 요즘 아이들은 아파트에서 많이 자라면서, 골목을 접할 기회가 없는 경우도 많을 텐데요. 이야기의 배경을 골목으로 설정한 이유는?


골목이라는 설정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요. 집에서 아이에게 그림책을 많이 읽어주는 편인데요. 아이도 지금은 책을 굉장히 좋아해요. 그런데 책을 읽다 보면 엄마 관점에서 읽을 수 있는 책이 대부분이에요. 아이가 물리적으로 엄마와 보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까 그런 것 같은데, 그러다 보니 아빠가 읽어줄 수 있는 책이 그다지 많지 않았어요. 주변 친구나 형들을 봐도, 아빠가 아이에게 책 읽어주는 걸 굉장히 어색해해요. 그래서 아빠가 아이에게 읽어줄 동화책을 고민하다 보니, 결국은 자기가 어렸을 때 이야기를 하게 되더군요. 다른 아빠들도 이런 이야기라면 아이에게 쉽게 읽을 것 같았어요. 골목에서 얼음 땡 했던 경험을 대부분 갖고 있으니까요. 저희 어렸을 때는 골목도 많았고, 친구와 자주 어울려 놀았잖아요. 이야기가 이렇게 나온 거죠.


동화책에 여러 인물이 등장하잖아요. 공부 잘하고 똑똑한 아이, 달리기 빠른 아이, 키 크고 용감한 아이, 덩치 크고 힘센 아이, 그리고 깍두기까지요. 선생님도 여기 등장하는 많은 아이 중 한 명인가요?


여기서는 완벽하게 나와 닮은 모습이 있지는 않아요. 등장인물은 떠올렸던 친구들이고, 깍두기와 함께 놀았던 기억이 많이 났어요. 보통 깍두기가 나이가 어리거나, 누구 동생이거나, 힘이 약한 애들이잖아요. 저는 물론 그렇게까지 힘이 약하진 않았어요. (웃음) 생각해 보면, 그런 애들을 따돌리지 않고 같이 놀았어요.

 
깍두기가 상징하는 ‘사소한 사람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동화로도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왕따 문제를 에둘러 표현하신 것 같기도 하고요. 아이가 ‘이 이야기의 교훈이 뭐야?’라고 아빠에게 물어본다면 어떻게 답할 수 있을까요.


누구나 소중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깍두기가 결국 아이에게 큰 도움을 주잖아요. 아빠도 어렸을 때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보통 아빠들이 아이에게 이야기할 때 자신의 과거를 멋있게 포장하거든요. 솔직히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제가 나이가 조금 들고 나서는 잘 못 어울렸거든요. 다른 이유는 아니고, 나이가 드니까 놀 때도 돈이 필요하잖아요. 예를 들어 중학생 때 피자가게가 생겼는데 거기 갈려면 돈이 필요한데, 그 당시에 제가 넉넉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못 어울렸던 기억이 나요.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면서 놀란 게 있어요. 어른들이 못 보는 걸 봐요. 놀라울 정도로 잘 봐요. 『얼음 땡!』에 다른 이야기도 숨겨뒀는데 아이는 알아차려요. 책 속에 고양이, 쥐가 있는데 이런 걸 아이들은 다 찾아내고요. 만화를 10년 넘게 했지만, 성인 독자들이 이런 걸 잘 못 찾아내던데, 신기했죠.


아빠가 되었다고 작품이 변하지는 않아


올해 1월에 있었던 『마녀』북토크 때 육아에 전념하고 근황을 말씀하셨는데, 지금은 어떤가요.


오늘도 아이가 새벽 3시에 일어나서 아침 6시까지 안 잤어요. (웃음) 그런데 조심해야 할 말이 뭐냐면 육아를 “돕고 있다”라고 말하면 안 돼요. 함께하는 거죠. 돕고 있다고 말하면 이미 육아가 여자 혼자서 하는 것이라는 게 마음속에 있다는 의미에요. 물론 아빠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미치지 못하는 영역이 있긴 해요. 그건 아이와 엄마 관계가 워낙 절대적이라 그렇죠. 아무튼 아이를 많이 보는 편이에요. 다른 아빠와 다르게, 시간을 낼 수 있는 프리랜서다 보니, 많이 함께 있어요. 재밌기도 하고 힘들죠. 그런데 놀라울 정도로 빨리 커서, 이 시기가 너무 빨리 지나가 가끔은 아쉽기도 해요.


어떤 아버지가 되고 싶어요?


아직 모르겠어요. 아빠 된 지가 2년이 채 안 되어서. 구체적인 목표는 없어요. 지금은 아이와 시간을 함께 보내려고 노력하고 있고요. 다만, 우리 애가 개인적인 애가 됐으면 좋겠어요. 이기적인 아이가 아니라 개인적인 아이요. 다른 사람이 모두 똑같은 이야기를 할 때, 혼자 다른 이야기를 하는 데 대해서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 의견은 확실히 밝히는 아이요. 그렇게 살면 힘든 시기가 올 수도 있을 텐데, 그런 순간에는 제가 도움됐으면 좋겠습니다.


아이가 나온 뒤, 사람이 변하지 않나요. 혹시 작품에도 영향이 있을까요.


만화에는 영향이 없어요. 영향이 없길 바랐고요. 혹시 그림책을 안 그렸다면 영향이 있었을 텐데, 아이가 읽을 책은 따로 생각해요. 나는 나고, 아이는 아이잖아요. 아이가 생겼다고 해서 작품이 바뀌길 바라진 않았어요. 만화가가 변하는 가장 대표적인 게 육아 만화를 그린다는 식인데요. 저도 그림책을 안 그렸다면 그랬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림책을 그리면서 내 일은 내 일대로 할 수 있죠. 만화는 매년 1편씩, 그림책도 매년 1권씩 쓸 거예요.


평소 소신 있는 발언으로 좌풀, 이라는 별명도 있는데요. 아빠가 되면서 이런 쪽에도 변화가 없을까요.


오히려 더 소신이 생기지 않을까요. 아직은 아기가 어리니까 좌빨, 좌풀 이런 말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좀 더 자랐을 때 “아빠가 좌풀로 풀린대, 좌빨로 풀린대” 이런 순간이 오면 소심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긴 해요. 하지만 아이와 대화를 많이 해서 아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요. 두려워하는 건 오해일 텐데, 오해는 이야기를 많이 하면 풀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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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만화, 흥미 위주의 만화 그리고 싶어


순정물, 좀비물, 『26년』같은 사회적인 작품도 있었는데, 어떤 이야기를 가장 좋아하나요.


상업적 만화가 좋아요. 『26년』같은 사회참여적 만화를 그리기도 했지만, 『마녀』라든가 『타이밍』이런 만화를 좋아해요. 의미 있는 것도 좋지만, 재밌고 많이 읽히는 만화를 그리고 싶죠. 사람들이 내 만화를 읽을 때만큼은 딴생각을 안 했으면 좋겠어요. 어린 학생들은 『타이밍』을 가장 좋아했던 것 같아요. 앞으로도 계속 상업 만화, 대중 만화, 흥미 위주의 만화를 그리고 싶어요. 저는 나이가 마흔이 넘어가면서 오히려 더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어떤 작가들은 나이가 들면서 땅에 발붙이는 만화를 그리려고 하는 것 같아요. 『그대를 사랑합니다』가 그랬지만, 오히려 뻥이 심하고 만화라서 할 수 있는 구라 섞인 만화를 그리고 싶어요. 『반지의 제왕』같은 판타지는 아니고, 상상력을 쓸 수 있는 『마녀』, 『조명가게』같은 작품. 이런 만화를 그리면서 즐거웠어요.


강풀의 작품, 하면 탄탄한 스토리가 떠오르는데요. 스케일이 엄청나게 큰 장기 프로젝트는 계획에 없나요.


없어요. 너무 힘들어요. 다만 『아파트』『타이밍』, 『어게인』에 나왔던 양형식 형사라고 있는데 그 주인공은 만화에 계속 나오게 하고 싶어요. 30화를 연재해도 저는 분량을 길게 그리는 편이라 그리고 나면 항상 4권이 되더라고요. 이 이상으로 늘리고 싶은 생각은 없죠.


『26년』에 매료됐던 팬 중에서는 비슷한 작품을 고대하는 사람도 많은데요.


현재로썬 그런 만화를 그릴 계획이 없어요. 저는 만화를 충동적으로 그린 적은 없어요. 오랫동안 고민하고 그리는데, 현재로썬 그런 고민은 없습니다. 가끔은 걱정돼요. 소재 고갈을 고민하지는 않는데, 체력적으로 힘들 때가 있어요. 연재기간에는 정말 죽어나거든요. 연재 기간이 넉 달 반, 30화, 주 2회 쉬는데요. 이 기간에는 작업실에 새벽 4시에 출근해서 11시에 퇴근해요. 하루 20시간 가까이 그리죠. 그러니 이 페이스대로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늘 긴장감이 있어요. 아직 할 수 있을 때는 더 재밌는 만화를 그리고 싶죠. 다른 만화를 하면서 시간 보내는 게 아까워요. 저는 대중만화가로, 최대한 많은 작품으로, 매년 작품을 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가장 재밌는 만화로 『슬램덩크』를 꼽았는데. 스포츠물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은?


그거 언제 다 그려요. (웃음) 사실, 스포츠 제대로 아는 게 없어요. 당구 외에는.


웹툰을 대중화시킨 시초, 장본인이라는 평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요.


웹툰계의 조상, 삼엽충이라는 별명이 있죠. 웹툰을 시작하려 한 건 아니고, 내 만화를 보여 주려고 온라인에 올렸을 때, 마침 한국에서 웹툰이 시작되던 시기였어요. 운 좋게 첫차를 탔죠. 웹툰은 당시에도 누군가가 하고 있었어요. 다만, 웹 장편 만화는 강풀이 처음 아니겠느냐, 하는 게 정설인데요. 저도 확실한지는 모르겠어요. 『순정만화』가 그 작품인데, 역할을 했다면 했죠. 이전까지만 해도 웹에서는 일상적인 만화, 단편 한두 컷짜리였는데 『순정만화』이후로 장편만화가 많이 생겼으니까요. 웹에서도 장편 만화가 먹힌다는 걸 알린 게 아니었을까요. 제가 웹툰에서 할 수 있었던 영향은 이 정도고 나머지는 작가마다 다 알아서 하고 있죠.


인터넷 콘텐츠는 항상 무료와 유료 간 긴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웹툰은 연재 기간 무료, 연재 종료 이후 유료로 가는 흐름 같은데요.


그런 긴장은 지금은 많이 해결됐다고 봐요. 웹툰 유료화하는 데, 선두주자가 저였죠. 허영만 선생님 다음에 제가 했으니까. 웹툰이 무료라는 인식을 준 것도 저였고, 유료화 선두주자도 저인 셈이죠. 웹툰이 유료화된 게 2년이 안 됐어요. 10년 넘는 역사 중 최근의 일이죠. 이게 바르다고 생각합니다. 유료화됐을 때, 정말 욕 많이 먹었어요. 작가가 돈을 밝힌다고 비난하는데, 당연히 밝혀야죠. 작가도 직업인데요. 물론 독자 처지에서 보면 예전에는 돈 없이 봤던 걸, 돈 내고 보라는 건데요. 단어가 ‘유료화’라 그렇지, 연재 당시에는 무료고 종료 후 한 달, 두 달 정도 유예 기간을 두고 유료니까 자세히 알면, 반대할 일도 아니에요. 다음뿐만 아니라 네이버도 이렇게 하고 있고요. 독자 인식도 많이 전환됐어요.


완전 유료화에 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유료 사이트가 많이 생겼고 언젠가는 그런 날이 올 거로 생각하지만, 지금처럼 종료 이후에 유료와 같은 형식이 오래가지 않을까 싶어요. 여기까지 오는 데도 10년 넘게 걸렸거든요. 전 작품 유료화는 아직까지 먼일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준비 중인 작품은?


10월에 연재 들어갈 작품인데, 이것저것 놓고 비교하고 있어요. 아직은 뭘 해야 할지 정확히는 잘 모르겠네요.


앞으로 써야 할 동화책이 5권 남았습니다. 어떤 책이 나올까요.


아무 생각이 없어요. (웃음) 이번 책도 아무 생각 안 했거든요. 다만, 매년 한 권씩 그리겠다고 다짐했고, 두 번째까지는 지켰으니 매년 그림책 한 권, 만화 한 편은 하고 싶어요.

 

얼음 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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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 땡!강풀 글ㆍ그림 | 웅진주니어
강풀 작가는 우리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 만나게 될 한 사람 한 사람과의 관계를 소중하게 여기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얼음 땡!을 쓰고 그렸다. 아이와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기 힘든 아빠들이 편하게 아이에게 들려줄 수 있도록, 아빠가 직접 아이에게 들려주는 구성을 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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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송인수 “아이 인생이 19세에 결정된다는 건,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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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일자리의 기준은 무엇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곳보다 월급을 더 많이 주는 정규직”을 꼽는다. 한국경영자총협회와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뽑은 좋은 일자리 역시, 30대 대기업과 공기업, 금융업이다. 그러나 이 일자리는 한 해에 2만~3만개에 그친다. 한 해에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학생들은 모두 60만여 명. 이 기준에 따르면 90% 이상의 아이들은 좋은 일자리를 얻지 못하는 루저(loser)가 된다. 우리는 10%에 미치지 못하는 좋은 일자리를 얻기 위해 아이들을 입시 전쟁 속으로, 사교육 시장 가운데 집어넣어야 할까?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은 좋은 일자리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기 위해, ‘행복한 진로학교’를 열었다. 지난해 진로학교 강단에 선 주인공은 만화가 윤태호, 하종강 성공회대 교수, 김현수 성장학교 별 설립자, 최혁진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기획관리본부장, 고원형 아름다움 배움 대표, 강도현 카페바인 운영자 등이다.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우리 아이들이 어떠한 목표를 갖고 진로를 결정해야 하는지 쉽게 깨닫게 된다. 마지막 강연자로 나섰던 송인수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대표는 13년간의 교사 생활을 마치고, 좋은교사운동 대표로 활동하다 2008년부터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시작했다. 7명의 강연자 모두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회적 기여를 하고 있다. 돈과 안정성을 따라 선택한 직업이 아니었다. 적성에 맞는 일을 선택해 열심히 하다 보니, 전문성이 생겼고 안정성이 뒤따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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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성, 직업 선택의 기준이 아니라 결과


『하고 싶은 일 해 굶지 않아』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기획한 ‘행복한 진로학교’ 강연자 7명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진로학교를 기획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학부모들이 자녀들의 진로를 생각할 때, 막막해하고 불안해 한다. 진로에 대한 강의를 많이 듣는데, 얻는 정보들이 시원한 마음을 주는 게 아니라 더 큰 갈증을 준다. 예전에는 아이들의 진로가 한 줄 세우기였다면 요즘은 여러 선택이 있다. 한 줄일 때는 정보를 알기 쉬웠는데, 여러 줄이 생기다 보니 부모들이 더 힘들어졌다. 자녀들이 자신의 적성에 따라 좋은 일자리를 갖기를 바라는데, 불안과 연결되다 보니 돈과 안정성을 보장받는 직업을 추천한다. 하지만 사회가 말하는 좋은 일자리인 30대 대기업, 공기업, 금융업은 단 10%의 아이들만 들어갈 수 있는 구조다. 우리가 생각하는 좋은 일자리의 기준은 자신의 적성에 맞으면서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있고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이다. 부유하고 지위가 높은 직업이 좋은 일자리라는 폭력적 기준을 끊어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가 생각한 기준으로 직업을 선택하고 내면화해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했다.

 

『미생』으로 인기를 얻은 윤태호 작가는 꽤 오랜 습작기를 거쳐 만화가가 됐고, 『골목사장 분투기』를 집필한 강도현 ‘카페바인’ 운영자는 펀드매니저로 억대 연봉을 받다가 자본주의 시스템의 폐해를 느끼고 현재 소셜카페 기획자로 일하고 있다. 강연자로 나선 대부분의 사람들이 직업을 바꿨거나 정체기가 있었던 경우다.


7명 강연자들 모두, 처음부터 천직을 찾은 케이스가 아니다. 짧지 않은 시간을 통해 탐색과정을 거쳤고 현재의 삶에 만족하며 사는 사람들이다. 자신의 진로에 변화를 준 것이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이 되었는지를 깨달은 분들이다.

 

저자 또한 13년 동안 교사 생활을 하다, 교육운동에 뛰어들었다. 더 가치 있는 일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내린 결정이었나?


교사생활을 하면서 우리 교육의 문제 가운데, 교사가 잘못해서 생긴 문제들에 대해 응답하는 역할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좋은교사운동에 참여했는데 일이 많아지면서 휴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상황에서 벗어나 퇴직하게 됐다. 어떤 운동이 세상에 영향을 끼치기 위해서는 운동의 깃발을 든 사람이 자기를 헌신해야 한다. 헌신이 없으면 그 속에서 에너지가 팽창될 수 없다. 나는 밖에서 안전하게 있으면서 누군가를 대리인으로 세워서 운동을 하면 누가 힘을 쏟고 투신을 하겠나? 그런 마음으로 시민활동을 하다가, 우리 교육에 있어서 교사를 바꾸는 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입시, 사교육 문제라는 걸 깨닫고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시작하게 됐다.

 

책 서문에서 밝혔듯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직업을 선택할 때 ‘돈’과 ‘안정성’을 좇는다. 적성에 맞는 일을 선택했을 지라도 안정적이지 않는 환경이라면 주저하게 되는 것이다. 청소년들에게 좋은 일자리를 추천할 때도 직업적 안정성을 무시하지 못한다.


진로 선택에 있어서 생활의 안정성이 고려할 가치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좋은 일자리에서 말하는 ‘안정성’을 직업 선택의 조건이라고 생각하는 데 있다. 사람이 살아갈 때, 대부분의 시간을 일을 하면서 보낸다. 때문에 일하는 기쁨을 얼만큼 얻을 수 있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다. 그런데 자신의 적성에 맞는 일을 선택해서 보람을 느끼며 일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전문성을 갖게 된다. 한 곳에서 꾸준하게 자기 일을 성실하게 하면, 전문성이 생기고 그 직종에서 우대를 받는다. <생활의 달인>에 나오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이 일이 재밌어서 더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 보니, 전문성이 생긴 거다. 이처럼 직업 선택의 결과로서 안정성을 생각하면, 자신에게 맞는 좋은 일자리를 선택하게 되고 전문성을 얻어 그 속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 되니 안정성도 당연히 뒤따라 온다.

 

강연자들의 생각 속에 가장 큰 공통점은 무엇이었나?


사회에 대한 공헌의식이다. 자신의 일자리를 이야기할 때, 기본적으로 이 직업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고 싶다는 소신이 있었다. 지금의 우리 사회는 직업을 통해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는 의식이 너무 희박하다. 자신의 이익에 따라 직업을 선택하다 보니, 자기 이익의 확장을 끝내고 나면, 노동의 의미를 찾지 못해 다른 사람들의 이익을 탐한다. 세상에 있는 수많은 직업들 가운데 사회에 역기능을 행사하는 일이 아닌 한, 자신의 일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는 것이 직업이다. 의사라면 환자의 생명을 지켜주는 것이고, 건축가라면 좋은 다리를 만들어 사고를 방지하는 것, 기자라면 진실을 보도해 사회정의에 기여하는 것이다. 직업이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본질적인 특징을 드러내고 그것에 합당하게 일하다 보면, 결국 나에게도 타인에게도 유익한 일이 된다. 강연자 분들은 모두 이런 의식이 자신의 직업 가운데 깔려 있었다.

 

제목 또한 인상적이다. 『하고 싶은 일 해 굶지 않아』. 요즘은 아이들도 돈, 생계에 대한 공포가 굉장히 크다. 돈에 대한 아이들의 생각을 듣다 보면 깜짝 놀랄 때가 많다.

 

대기업에 다니지 않으면 굶어 죽나? 중소기업에 다니면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하나? 그렇지 않다. 적성에 따라 직업을 선택하고 전문성이 생기면 자연스럽게 경제적인 안정성도 찾아온다. 그 안정성이라는 게 월급 1천만 원을 받아야 생기는 게 아니다. 2백만 원을 받더라도 나는 이것으로 독립한다고 생각하면, 이게 독립이다. 사실 독립의 기준은 상대적이다. 남에게 돈을 꾸지 않고 내가 생각한 기준에 따라서 먹고 살면서 자립하면, 독립이다. 독립에 대한 기대 수준이 낮을수록 독립을 잘한다. 꼭 뷔페를 먹지 않고 자장면을 먹어도 만족할 수 있다면, 독립의 가능성은 높다. 자기 삶을 검소하고 소박하게 살수록 독립의 가능성이 높다. 흥미롭게도 자신의 직업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고자 하는 의식이 높은 사람일수록, 공공의식이 있는 사람일수록 검소하고 소박하게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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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약자를 도와주는 일에 몰두하는 순간


청소년 멘토링 사업을 하고 있는 고원형 씨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아이들이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를 “나를 나로서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평가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유교의 체면문화 영향을 많이 받아 왔고, 수십 년 동안 치열한 경쟁사회 속에서 살아 왔다. ‘내 삶을 얼마나 질감 있게 사느냐’에 따라 만족을 하면 되는데, 지인, 친척, 이웃과 비교해서 내가 어떤지, 우리 아들이 어떤지를 따져가며 만족감을 느끼다 보니, 이런 문화가 아이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한 줄 세우기 방식에 적응된 아이들이 그런 마음을 갖는 건, 당연하다. 초등학교 아이들이 학교에서 100점을 맞고 엄마한테 시험지를 가져가면, 엄마들이 꼭 물어보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아나? “너 말고 몇 명이 100점을 맞았니?”다. 아이를 그저 칭찬해주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니지만, 반드시 이 질문을 한다. 아무리 의식 있는 부모들이라도 꼭 묻는다.

 

어릴 때부터 경쟁의식, 비교에 시달리다 보면, 내가 정말 원하는 것에 대한 확신을 얻기 어렵다. 스스로 내 삶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게 중요한데, 어떠한 방법이 있을까.


지칠 줄 모르게 경쟁하는 일이 내면화되면, 결코 행복할 수가 없다. 누가 어떻든 내 삶 자체가 의미 있고 만족하는 게 중요한데, 직업을 통해 사회적 가치를 획득하면 비로소 비교로부터 해방된다. 또 고통 받는 사회적 약자를 도와주는 일에 몰두하는 순간, 직업이 의미 있게 느껴진다. 마음속에 보람, 자긍심이 생기면 남하고 비교할 필요가 없어진다. 이런 감정이 있는 사람들은 친구가 교수든 장관이든, 돈을 많이 벌든 신경 쓰지 않는다. 하지만 사회적 지위로 늘 상대화 시키면 항상 주눅이 들 수밖에 없다. 아이들에게 사회적 기여를 가르치지 않으면, 심지어 적성에 따라 직업을 선택한다고 하더라도 불행해진다. 적성도 적성이지만, 사회에 기여하겠다는 의지, 공공성에 대한 감수성이 삶을 행복하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영국에서는 선행학습을 시험 부정행위보다 더 부도덕적인 일로 취급하고, 독일에서는 취학 전에 글자를 깨우치지 못하게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교육에서도 지켜야 할 공정성이라는 게 있다. 기본적으로 경쟁에 있어서 반칙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사실 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가르칠 내용이 있는데, 아이들이 미리 배우고 학교에 오게 되면 교사로서는 가르치는 권리를 제약 받는 거다. 영화도 스포일러를 다 알고 보면 그것이 재밌는 영화 감상이 될 수 없지 않은가.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아는 걸 배우면 흥미를 잃는다. 교육적 타당상도 없고 경쟁의 공정성에 있어서도 위배되는 일이다. 사교육이 법률로 금지된 해외 사례는 없다.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미 문화적으로 억제가 되고 있고, 어떤 가정에서 이런 일을 하고 있으면 학교에서 엄히 규제한다. 문화적으로 심각하면 법률이 들어가는데, 우리나라가 그런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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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정답을 알려주면 자기 주도성이 떨어진다


저자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지금 아들이 고등학교 3학년인데, 문과에 적성이 있는 걸로 보였지만 아들이 이과를 선택했을 때, 말리지 않았다. 아이의 적성이 눈에 보이는 것 같을 때, 부모로서 조언을 하기 마련인데 어떻게 아들의 선택을 신뢰했나?


아이의 선택이 옳은 선택이라서 기다려준 건 아니다. 미심쩍었지만 허용한 거다. 아이가 오답에 체크했을 때, 부모가 정답을 알려주면 자기 주도성이 떨어진다. 일단 오답이더라도 아이가 이것저것 시행착오를 겪어본 후에 답을 아는 게 중요하다. 결과도 결과지만, 그 과정을 통해 자기 인생의 주인의식을 깨닫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허용한 거다. 결과주의가 아니라 과정주의를 중시한 거다. 부모에게 의존하는 아이는 서른 살이 되어도 위기상황에 대처하지 못한다. 자기 주도성을 가지고 살아야 자신도, 부모도 편하다. 아이에게 더 좋은 선택을 하기 위해서는 시행착오를 겪는 과정이 유익할 수 있다.

 

부모, 자식 간의 관계를 위한 선택이기도 했을 것 같다.


부모가 사춘기를 겪는 아이에게 “너한테 그건 안 맞아”라고 말해 버리면, 관계가 깨져버린다. “이건 사회적으로 안 맞아. 돈이 안 생겨”라고 상위 5%만 가는 그런 자리로 몰고 가면, 아이들은 “나는 그런 능력이 없는데요”라고 말한다. 그러면 부모는 “그러니까 더 열심히 해야지, 학원을 가야지”하는데, 이러면 둘의 관계는 끝장이 난다. 관계가 어긋나서 얻는 게 얼마나 가치가 있을까. 지금 한국사회에서는 부모와 자식 간의 정신적인 관계가 끊어진 경우가 허다하다. 겉으로는 멀쩡해도 속을 들여다보면 모두가 상처투성이다. 아이와의 관계가 끊어지지 않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점수와 등수에 대한 요구를 버리고, 아이가 자신의 길을 스스로 찾아가게 하는 것이 현명하다.

 

부모는 옆에서 지켜봐 주는 것이 최선일까?


관찰을 하면서 지켜봐야 한다. 관찰하지 않으면 정작 개입을 해야 할 때 하지 못한다. 아이가 말을 걸어올 때 이야기를 하는 거지, 부모가 먼저 말하는 건 간섭이다. 아이도 자기 인생의 짐이 무겁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구하고 정보를 얻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 자신을 잘 알면서 자기 인생에 관심이 있고 정보를 알고 있는 사람을 찾을 때, 그 자리에 부모가 있으면 가장 좋다. 반드시 아이가 물어올 때가 있다.

 

저자는 자녀에게 공부하라는 말을 하지 않나?


일체 안 한다. 그런데도 아이는 열심히 한다. 시행착오를 거쳐 자신의 길을 선택하고 나니, 성과를 내가고 있다. 이 성과가 중학교 때부터 막 나오는 게 아니다. 사춘기 시절에는 공부가 눈에 안 들어오다가 모든 게 차곡차곡 쌓이고, 철이 든 다음부터 성과가 나오는 거다. 부모가 조급해 하면 안 된다. 이 조급증의 실체는 “우리 아이의 인생이 19세에 결정된다”는 공포인데, 아이가 스스로 답을 얻지 못하면 부모에게도 아이에게도 손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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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갈수록 부모는 자녀에게 경찰이 아니라, 외교관처럼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모의 역할을 아이에게 바뀌어야 할 것이 있으면 규제하고 간섭하고, 삶의 울타리에 경계를 세워서 유해한 정보를 차단하는 것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아이가 나이가 들고 성장하면 차단할 수 없다. 초등학생 때까지는 가능하지만 중학생이 되면 아무리 부모가 보초를 선다 한들 소용이 없다. 아이는 짜증을 내고 자유를 원한다. 경찰인 엄마가 지키고 있는 가정에는 들어가고 싶지 않은 거다. 그러면 아이한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것 자체가 사라져 버린다. 부모는 이제 내가 감시할 수 있는 영역이 얼마 되지 않는다는 걸 인정하고, 방법을 찾아야 한다. 협상을 해야 한다. 예전에 100을 얻으려고 했다면 40을 원해야 한다. 그러면 아이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여유가 생긴다. 집착, 경쟁이 사라지면 아이에게 전달되는 부모의 시선이 따뜻해진다.

 

아이와의 관계가 끊어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대화해야 할까?

 

독립된 인간으로 존중해줘야 한다. 아이는 사춘기를 겪으면서 변화하고 고집이 생기는데, 그 고집을 꺾으면 생의 의욕도 꺾인다. 아이를 배우자처럼, 친구처럼 인정해줘야지 아이가 말을 걸어 온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평소에 아이와 대화의 끈이 끊어지지 않게 노력해야 한다. 대화의 파이프가 생기면 아이는 아무런 저항감, 경계심 없이 찾아온다. 아이한테 무슨 이야기를 해야지, 이런 이야기는 하지 말아야지. 이런 건 중요하지 않다. 존중하고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아이는 부모의 부족함까지 재료로 삼아, 성장한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부모로서 부족한 면이 많아, 아이에게 미안한 감정을 갖고 있는 부모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올해 ‘행복한 진로학교’ 첫 번째 강사였던 김희삼 박사님 이야기를 하고 싶다. 김 박사님은 늦은 나이에 유학을 떠난 케이스다. 미국 유학 생활 중에 한 성당에서 신부님의 이야기를 듣게 됐는데, 이런 말을 해줬다고 하더라. “여러분 인생 가운데 내가 이것만큼은 성공적이었다라고 생각하는 일들을 한 번 생각해보세요. 그것이 잘 생각해보면, 여러분들이 가장 안 좋았다고 생각한 그 일이 매개가 되어서 지금의 좋은 일이 찾아온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깨달은 바가 있다.

 

우리 아이들은 부모의 허물이 있을 때, 그 허물 때문에 좌절하는 존재가 아니라 그 허물을 딛고 일어나는 존재다. 아이들 가슴 속에는 생명의 힘이 있다. 고난을 뚫고 가는 힘, 어떻게든 살아가고자 하는 역동이 있다. 그 역동이 난관과 싸우다 보면 자기만의 삶의 패턴이 만들어진다. 극도의 가난한 형편 속에서 살아온 사람은 그 가난을 뚫고 나가려는 힘 때문에 철이 일찍 든다. 그래서 남들이 손 놓고 있을 때부터 무언가 열심히 하는 패기, 열정이 생긴다. 나 역시 어렸을 때 무척 가난했고 부모가 최선의 사랑을 주신 것도 아니었다. 10대로는 다시 돌아가기 싫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 시기가 나에게 줬던 자산이 있다. 삶을 단단하게 꾸려갈 수 있는 힘, 약자를 보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다. 부모가 자기 연약함을 알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는데도 남는 연약함은 아이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 연약함을 방치한다면 아이에게 힘이 되지 못하겠지만, 연약함을 인정하고 풀어나가다 해결되지 못한 것들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는 게 현명하다. 아이들은 생명의 힘으로 풍부한 경험으로 그 어려움을 뚫고 나간다.

 

세월호 참사를 통해 부모들도 교육계도 깨달은 바가 크다. 6.4지방선거로 진보 교육감들이 많이 당선됐는데, 사교육걱정없는세상 대표로서 갖는 기대도 있을 것 같다.


세월호 참사로 수백 명의 아이들이 죽는 걸 보면서, 부모들의 각성이 시작된 것 같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서 참으라 참으라 하면서, 때로는 부모가 입시 경쟁의 부담을 전달하는 역할을 했는데, 이번 참사를 통해 미래의 행복보다 지금 우리 곁에 아이들이 있어주는 게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미래의 행복을 위해 오늘의 행복을 유보하는 건 옳은 방법이 아니다. 올해 진보 교육감이 많이 탄생했지만, 교육감이 학교를 바꾸는 게 아니라 시민이 바꾸는 거라고 생각한다. 시민들이 바뀔 때 교육감이 뒤따라온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는 세월호 참사의 시사점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 오는 9월부터 ‘입시경쟁 올스톱 국민운동’을 준비하고 있다. 온 국민들이 참여해서 길을 만들면 정치인들과 교육감들도 따라올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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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일 해, 굶지 않아윤태호,하종강,송인수,강도현 등저 | 시사IN북(시사인북)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기획한 ‘행복한 진로학교’ 두 번째 책이다. 이 책에는 삶과 직업과 돈의 관계에 대해서 요기와 같은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한 7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남 못지않은 학벌과 스펙을 가졌으면서도 마음이 가리키는 방향을 좇아 웹툰 만화가, 노동운동가, 빈민운동가, 생협활동가 등의 가시밭길을 걸어간, 그래서 행복을 찾은 이들의 이야기이다. 한결같이 여유로워 보이는 이들의 얘기를 요약하면 이렇다. ‘돈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데 그리 높은 장벽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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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달 정영선 “요리하면서 마음이 편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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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자에게 베이킹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준 파란달 정영선이 영화에 관해 쓴 책으로 돌아왔다. 『파란달의 작은 홈 카페』, 『파란달의 카페 브런치』, 『파란달의 빵타지아』등 베이킹, 디저트, 카페요리에 관한 책 다수를 낸 파란달이 영화라니, 의의해할 수 있지만 방송작가 시절부터 그녀는 영화에 관심이 많았다. 영화에 관심을 뒀던 시절에 요리를 향한 애정도 함께했다. 그래서 ‘맛있는 영화 이야기’라는 주제로 연재를 한 적도 있다고.

 

이번에 나온 신간, 『파란달의 시네마 레시피』는 그래서 일반적인 영화 책은 아니다. 영화를 소개하되, 영화에 등장하는 요리 레시피를 함께 실었다. 책에 실린 영화 목록을 살펴보면 장르에 관계없이 다양하다. 요리 레시피도 마찬가지. 지금까지는 주로 베이킹에 관한 책을 썼지만, 이번 책에는 순두부라면, 새싹비빔밥, 조개탕 등 집에서도 쉽게 해 먹을 수 있는 요리법을 다수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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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킹 전문가가 영화 책을 낸 사연

 

『파란달의 시네마 레시피』가 벌써 6번째 책이네요. 기존에 냈던 요리 실용서가 아니라 영화ㆍ요리 에세이인데요.

 

이전에 냈던 5권은 요리 실용서였는데요. 그래서 이번에는 다른 책을 내고 싶었어요. 특히 에세이를 쓰고 싶었죠.

 

주제가 영화였던 이유는?

 

방송작가 시절, 그때 주로 교양 프로그램을 맡았어요. 영화를 좋아해서 영화 프로그램을 했죠. 그때도 요리를 좋아했어요. 그래서 영화 ‘맛있는 영화 이야기’라는 주제로 기고한 적도 있었고요. 그게 10여 년 전인데, 그때부터 영화와 요리라는 주제로 책을 내고 싶었는데요. 만약에 책이 그때 나왔다면, 요리가 아니라 영화 이야기가 더 많이 들어갔겠죠.

 

영화를 3가지 관별로 분류했습니다. 분류 기준이 궁금하네요.

 

책을 만들면서 목차를 어떻게 구성할지가 어려웠어요. 영화 위주로 나눌 것인지, 요리 위주로 나눌 것인지부터가 문제였죠. 요리 실용서에 무게를 둘지, 에세이 느낌이 강하게 만들지도 고민이었어요. 저는 독자들이 영화 속 요리를 따라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하면 요리별로 목차를 짜는 게 맞았겠죠. 하지만 요리로 목차를 짤 경우에는, 문제가 영화 속 요리가 다양하지 않다는 점이었어요. 한국영화에는 요리가 자주 등장하지 않고, 외국영화에도 디저트나 음료 정도가 나오는 정도니까요. 그리고 요리영화를 위주로 하면 대개 장르가 로맨스 아니면 드라마니까, 영화도 다양해지지 않았고요. 고민 끝에, 1관에는 제가 예전부터 굉장히 좋아한 영화를, 2관에는 최근에 유행한 영화, 3관에는 요리를 전면에 내세운 영화를 넣었어요.

 

음식 하면, 아무래도<카모메 식당>을 많이 생각할 텐데, 정작 책에는 없었는데요. 책에 넣은 영화는 어떤 기준으로 선택했나요?

 

우선은 제가 좋아하는 영화를 선택했고요. <카모메 식당>같이 많이 소개된 작품은 일부러 뺐습니다. 사실, 요리 영화 하면 요즘은 대부분 일본 영화잖아요.<카모메 식당> 이전의 영화에서 음식은 대부분 욕망, 식욕, 탐욕을 상징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카모메 식당>이후로 음식이 가족과의 화해, 위안, 따뜻하고 위로해주는 장치가 됩니다. 최근 이런 일본 요리영화들이 큰 흐름이 되긴 했지만 전부라고 할 수는 없기에 3관으로 안배를 했습니다. 책을 봤을 때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다양한 영화와 요리들이 등장할 수 있도록 했어요. 
 
좋아하는 영화는 주로 어떤 작품인가요?

 

이전까지는 장르에 관계 없이 잘 만든 영화라고 답했는데, 최근에 결론 내렸어요. SF를 좋아해요. SF라고 너무 공상과학에 치우친 작품은 아니고요. 상처받은 인물이나 문제가 있는 인물이 등장해서 그걸 치유하는 이야기를 좋아하는 편이에요. <이터널 선샤인>을 보면 관계에서 상처받는 사람이 등장하죠. 결핍이 등장하고, 여기에 SF 요소가 가미되면 더 좋아요. 최근 본 작품 중에서는 <그녀Her>가 정말 좋았습니다.

 

왜 파란달이냐고요?

 

주로 베이킹, 디저트, 카페 요리로 책을 냈잖아요. 이번 책에는 삼계탕, 파스타, 라면, 우동, 커리등 다양한 요리가 등장하던데요.

 

베이킹을 좋아하지만, 요리가 한 분야에서 끝나지 않아요. 다른 요리를 알아야 새로운 메뉴가 나오고, 식재료에 관한 전반적인 이해가 없으면 만들 수 있는 게 한정되거든요. 그래서 요리를 공부하는 일은 재밌고 다방면에 관심이 필요해요.

 

영화 보면서는 주로 어떤 요리를 드시나요.

 

음식을 만들어 놓고 먹으면서 영화를 보기보다는 영화가 끝난 뒤에 꼭 만들어 보고 싶은 요리가 있거나 맛이 궁금한 요리가 있으면 만들어 봐요. 최근에 본 영화 중에<아이엠러브>가 있는데, 영화에서 여러 가지 상징으로 등장하는 러시아식 수프가 있어요. ‘우하 수프’인데요. 러시아에서 이탈리아의 상류층으로 시집 온 주인공이 내적 갈등을 겪는데, 이 수프가 여주인공의 정체성을 상징하죠. 궁금하니까 찾아보고 따라 만들어 봤어요.

 

‘문학 속 요리’ 이런 내용의 책도 나중에 나올 수 있겠네요.

 

요즘에 책을 많이 읽지는 못하지만 나중에 기회가 되면 써보고 싶어요.

 

여러 자료를 찾아봤지만, 파란달이라는 닉네임에 관한 사연을 못 찾았습니다. ‘파란달’이라는 닉네임을 쓰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아마 못 찾은 이유가 딱히 별다른 의미가 없기 때문일 거예요. 파란달이라는 닉네임을 쓴 건 오래됐죠. 제 홈페이지가 파란달닷컴이잖아요. 좋아하는 단어끼리 결합한 조어에요. 파랗다는 이미지와 달을 좋아해요. 처음에는 홈페이지 도메인 정하면서 썼는데 지금은 이 이름으로 많은 일을 하고 있어서, 앞으로도 계속 쓰게 될 것 같네요.

 

<카모메 식당>을 기점으로 요리 영화가 많이 나왔듯, 파란달의 책을 기점으로 블로거가 요리책 내는 사례가 많아진 듯합니다.

 

그 당시만 해도 요리에 관심은 있었으나, 요리 블로거는 아니었어요. 밤새가면서 만들고, 망쳐도또 만들고, 이런 걸 블로그에 올렸는데 출판사 편집자가 재밌게 보고 책을 내자고 제안했어요. 그때만 해도 책은 전문가가 내야 한다는 분위기였는데요. 베이킹 쪽 책은 김영모 선생님이 낸 책만 있었고요. 과연 내가 책을 내도 될까, 했는데 전문가 책은 일반 독자가 접근하기 어려우니 저같이 일반 독자보다 많이 알고 있는 사람이 쉽게 전달하면 좋을 것 같다고 해서 책이 나왔죠. 그 뒤로 이런 책이 많이 나와서 신기하면서도 뿌듯해요.

 

블로그를 오랫동안 운영했는데요. 기억에 남는 일이라면?

 

블로그 시작한 계기는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당시에는 싸이월드가 인기를 끌고 있었어요.싸이월드식의 의사소통은 별로라 블로그를 했는데, 파워블로거를 염두에 두고 시작을 한 건 아니었어요. 블로그 서비스 자체에 부침이 있었잖아요. 일부 블로거가 문제가 됐던 적도 있었고. 블로그 서비스가 너무 상업적이 되어 간다는 비난도 있었는데, 거기서 좀 떨어져 있었던 것 같아요. 블로거끼리 모여서 모임을 만든다거나, 공동구매를 한다든가, 블로그 서비스 안에서 일어났던 일이 많았는데 제가 참여한 건 없었어요. 가장 기억나는 건 역시 책을 냈다는 정도?

 

파란달의 요리책, 하면 진솔하면서도 군더더기 없는 문장이 강점인데요. 방송작가 시절 경험이 요리책에도 투영된 것 같습니다. 어떤 글을 좋아하나요?

 

모르는 이야기는, 쓰려고 안 해요. 그리고 조금 아는 것도 안 쓰죠. 내가 아는 것만 쓰려고 합니다. 이점을 글 쓸 때 항상 염두에 둬요. 내가 생각할 때 좋은 글은, 어렵지 않은 글이에요. 어떻게 보면 좋은 영화와 비슷하죠. 너무 어렵다거나 나와 동떨어진 이야기는 상대방이 이해하지 못하잖아요. 이런 이야기는 전문서적이 역할을 해 줘야 할 테고, 저는 아는 말을 알기 쉽게 정확하게 쓰려고 합니다.

 

방송작가에서 요리전문가로 전직을 성공적으로 했는데, 파란달을 롤모델로 삼는 사람도 있을 것 같은데요.

 

예전에 인턴을 한 명 뽑으려고 모집한 적이 있었는데요. 그때 느꼈어요. 전업을 꿈꾸는 사람이 많구나, 하는 걸요. 흔히 말하는 스펙 좋은 사람이 많았어요. 한편으로는 여성들이 참 불안하구나, 하는 생각도 했죠. 요리도 다른 일처럼 비슷한데 왜 요리를 배우려고 하느냐고 물으면 “지금 다니는 직장을 계속 다닐 수 없다.”는 대답을 많이 하더라고요. 자기가 하는 일에 만족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잖아요. 저를 롤모델로 삼고 전업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너무 고민만 하지 말고 일단 도전하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당연한 말이지만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할 때 가장 즐거우니까요. 
 
요리로 마음이 편해지고, 세상 보는 눈이 긍정적으로 변해

 

지금 꿈꾸는 것이 있나요? 카페 창업도 잘 어울릴 것같은데.

 

카페는 언젠가는 해 보고 싶어요. 제가 생각하는 카페는, 여전히 이상적인 편이에요. 북카페이면서, 쿠킹클래스도 진행할 수 있고, 카페이기도 하고. 이렇듯 복합 공간으로 만들 수 있는 날이 오면 해보고 싶죠. 하지만 카페 창업을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이유는, 결국 외식업인데요. 현실적인 문제가 많죠. 아직은 시도하지 않지만, 언젠가는 하게 되지 않을까요. 당분간은 직업을 또 바꿀 생각은 없고요. 하고 있는 일을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

 

여행도 좋아하지 않나요. 선생님에게 여행은 어떤 의미?

 

여행만큼 많은 걸 줄 수 있는 게 없어요. 돈으로 물건을 살 수도 있고 저금을 할 수도 있겠지만, 경험을 살 수는 없잖아요. 여행은 경험을 줘요. 기억도 주고요. 지금도 기회가 되면 여행 많이 가고 싶은데 이번 여름은 아직 계획이 없네요. 가고 싶은 나라는 쿠바인데, 갈 수 있을까요? (웃음)

 

파란달에게 요리란?

 

요리하고, 성격이 좀 변했어요. 예전보다 더 부드러워졌는데요.  왜 그럴까 생각을 했는데, 방송작가를 할 때는 긴장을 많이 하고, 돌발상황도 많고, 내 의견을 갖춰야 할 때가 있으니까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편이었죠. 물론 그만큼의 보람도 있었지만요. 방송작가라는 일에는 여전히 애정이 많지만, 늘 긴장되고 힘든 직업인 건 맞아요. 요리는 나누는 직업이에요. 뭔가를 만들어서 혼자 먹지 않잖아요. 선물하든 누구랑 나눠 먹죠. 그래서 요리를 하면서 마음이 더 편해졌고. 세상 보는 눈도 긍정적으로 바뀌었어요.

 

한 쿠킹클래스에서 요리를 구성하는 게 ‘식재료 50, 도구가 35, 사람의 기술이 15’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선생님은 각각 비중을 어떻게 두는 편인가요?

 

도구는 잘 모르겠고요. 재료는 맞아요. 재료가 좋으면 기본적으로 맛은 보장됩니다. 한식 양식 분야에 상관없이 다 재료가 중요하죠. 도구도 중요하긴 하겠지만, 글쎄요. 서툰 목수가 연장 탓하는 게 아닐까요. (웃음)

 

굉장히 많이 받는 질문일 텐데, 요리를 직업으로 하면 정작 집에서는 요리하기가 싫어지지 않나요?

 

아니에요. 집에서 만드는 걸 굉장히 좋아해요. 만들어보고 싶은 메뉴를 집에서 안 만들면 어디서 만들겠어요. 메뉴 테스트도 여러 번 해야 하잖아요.

 

다음은 어떤 책을 준비 중인가요.

 

다음 책은 다시 실용서를 내고 싶어요. 제가 만든 책이 유용하게 쓰였으면 좋겠어요. 이번 책도, 책을 읽고 영화를 본다거나, 능동적으로 요리를 만든다거나 하는 식으로 이어졌으면 좋겠는데요. 실용서는 그런 면에서 보람이 많아요. 다음 책이 어떤 책이 될지는 구체적으로 아직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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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달의 시네마 레시피정영선 저 | 미호
영화 프로그램 방송작가로 수년 간 활동했던, 지금은 방송이 아닌 요리 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는 파워블로거 파란달은 영화를 볼 때 그 어떤 요소보다 음식을 유심히 들여다본다. 소재의 비중이 크던 작던 그 음식이 지니는 의미를 분석하고 직접 따라 만들어보는 과정은 언제나 그녀를 즐겁게 한다. 이와 같은 취미가 차곡차곡 쌓여 《파란달의 시네마 레시피》라는 책으로 출간됐다. 이 책에는 영화 속 요리를 대하는 그녀의 시선과 그에 따른 레시피가 가득 담겨있다. 오래 된 영화부터 비교적 최신작까지 다양하게 소개하고 있으며 레시피 외에도 영화 속 음악과 장소, 소품 등의 볼거리가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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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우 “신중한 사람을 위로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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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한데 자꾸만 곤경에 빠지는 사람. 이승우 작가가 이번 소설집 『신중한 사람』에서 주목한 인물들이다. 8편의 소설은 읽다 보면 마치 연작으로 쓰여진 것 같다. 작가가 창조해낸 인물들은 현상을 바꿔야 할 때 생기는 시끄러움을 피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고 때로는 비겁해진다. 좀체 감정적으로 일을 저지르는 법이 없다. 현실의 불합리에 고통 받지만 결국은 스스로가 세상의 부조리를 유지시키는 주인공이 된다. 사건보다 현상에 탐닉하는 작가는 이번 소설집을 쓰며, 단문의 폭력성과 마주하게 됐다. 온전하지 않은 문장을 고치려 애를 쓰다, 앞문장을 비틀어 뒷문장을 완성했다. 인물들이 겪고 있는 혼란을 작가 스스로가 먼저 경험했다. 이승우 작가는 “이번 작품이 어떤 독자들에게는 답답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의사소통에 실패해 불안을 겪는 인물들을 지켜보는 게, 곤혹스러운 일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인물들이 나와 다르지 않다고 느껴질 때, 독자는 비로소 작품에 빠져든다.

 

이승우 작가는 신중한 사람이지만 꽤 밝은 어조를 가졌다. 진지한 이야기를 한다고 낯빛이 달라지진 않았다. 6년 만에 펴낸 소설집 『신중한 사람』을 앞에 두고 만난 자리. 소설 속 주인공들의 신중한 성격이 작가에게도 묻어있지 않나 자꾸만 살펴보게 됐다. 작품에서 만난 인물들은 생각이 뒤엉킨듯한 모습이었지만 작가는 청명해 보였다. 주체 못할 이상적인 이야기를 꺼내는 법이 없었다. 평범한 진리를 이야기할수록 작가는 비범해 보였다.

 

세상은 예나 지금이나 힘들고 사람은 여전히 난해하다. 그래서 소설을 쓰지만, 그래서 소설 쓰기가 쉬워지지 않는다. 나는 맷집이 약하고 체력 역시 부실한 편이다. 생각을 너무 많이 하느라 행동하지도 즐기지도 못하는 내 인물들을 보면 언짢고 속이 상한다. 그들에게 미안하다. 나는 그들을 사랑하지만, 사랑하는데도, 그들에게서 세상의 고뇌를 벗겨내지 못했다. 그렇지만 내가 그들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나무라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어쨌든 나는 그들을 내버리고 다른 곳으로 달아나지 않았다, 못했다. 사랑하지 않으면서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어렵지만, 사랑한다고 말하고서 사랑하지 않기는 더 어렵다. 내가 내 인물들을 향해 굳이 사랑을 고백하는, 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다.

( -『신중한 사람』,  작가의 말 )

 

만나고-이승우

 

소설을 쓰며 위로하고 싶었고 반성도 했다


2008년에 소설집 『오래된 일기』를 펴낸 후, 6년 만이다. 그간 장편 『지상의 노래』, 『한 낮의 시선』을 출간했지만 소설집은 오랜만이다. 실린 작품들을 보니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발표한 작품이다.


이번에는 창작집이 꽤 오래 걸렸다. 다른 때에 비해 단편들이 상대적으로 덜 써졌던 시기가 있었던 것 같다.

 

표제작이 「신중한 사람」인데, 다른 작품 속 인물들과도 겹쳐지는 부분이 많다. 마치 연작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우연히 코드에 맞았다. 다른 소설을 쓸 때도 다르지 않지만 이번 작품들을 쓸 때 유독 사람들의 내면의 움직임, 심리적 변화에 관심이 많았다. 바깥에서 일어나는 행동, 사건보다 그것들이 일어난 계기와 동기, 그것에 대응하는 내면의 움직임, 마음에 상태에 대해 많이 생각하면서 들여다보면서 글을 썼다. 연작을 염두에 두고 쓰진 않았는데 인물들이 대개 비슷하다. 너무 머뭇거리고 결정을 잘 못하고, 또 많이 당하고 억울해 하고. 또 그 안에서 자기기만을 통해 현실을 수용하는 인물들이 많이 탄생했다.

 

‘신중하다’는 단어는 대개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한다. 하지만 소설에서 만나는 ‘신중함’은 인물 스스로를 힘들게 만드는 원인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부정적이다.


여러 함의를 넣고 싶었다. 우리는 신중해야 하는데, 너무 신중하지 않게 살고 있다. 느낌만을 강조한 채 행동이 너무 앞선다. 그런데 반대로 신중하기 때문에 피해를 입고 자기 이익을 챙기지 못하는 일들도 상당히 많다. 신중한 성격 때문에 당하는 불이익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고, 신중함을 내세워서 현실과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않고 스스로를 합리화해 자기의 모순을 받아들이는 이중적인 모습을 말하고 싶었다. 세상의 부조리를 용인하기 위한 수단으로 자기합리화를 이용하는 인물의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소설을 썼다. 그런 면에서는 반성적인 글쓰기라고 할 수 있다.

 

「신중한 사람」의 주인공 Y는 신중함 때문에 계속 곤경에 빠진다. 은퇴 후 전원생활을 꿈꿨지만 아내와 딸의 압력에 못 이겨 해외파견근무를 가게 되고, 3년간의 타국 생활을 끝내고 집에 와 보니 낯선 세입자가 들어와 살고 있었다. 이런 어이없는 상황에도 Y는 타협 아닌 타협을 한다. 작가 스스로도 Y와 닮은 점이 있다고 말했는데.


갈등이 생기면 부딪혀 해결하기보다는 그 자리를 뜨는 스타일이다. 오해가 생겨도 ‘오해를 풀어야 해’라는 생각보다는 ‘언젠가는 풀리겠지’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이런 사람들은 이해해서 받아들이는 게 아니니까, 생각을 많이 하기 마련이고 내면의 움직임이 복잡하다. ‘작가의 말’에 쓴 것처럼 생각이 많으면 그 순간을 즐기지 못한다. 즐긴다는 건, 생각이 없는 상태 아닌가? 생각이 빠져버린 상태여야만 즐길 수 있기 때문에 생각을 내려놓아야 한다. 생각만 계속하는 사람은 순간을 즐길 수 없다.

 

생각이 많은 사람은 우유부단한 경우가 많고, 우유부단한 사람은 대개 착하다.


신중한 건 좋지만, 우유부단한 성격 때문에 나쁜 일을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개혁을 하지 않으니 나쁜 구조가 계속 공고화된다. 나쁜 구조와 마주할 때, 갈등하더라고 부딪혀야 변화가 가능한데 비겁하게 회피하니까 그 구조는 공고화된다. 신중한 건 좋은 성질이지만, 그것 때문에 나쁜 구조가 공고화되니까 결국 신중함은 나쁜 것이 되어 버리는, 어떻게 보면 역설이다.

 

“소설 속 인물들을 보면 언짢고 속이 상한다”고 말했다.


그런 인물들에 대한 애정이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억울하게 당하는 사람에 대한 연민이랄까. 그런 사람들을 위로해주고 싶고, 편을 들어주고 싶다. 하지만 그 인물이 나 자신으로 여겨질 때, 반성적인 글도 쓰고 싶었다.

 

어떻게 보면, 현대적인 인물이라고 볼 수 없는 캐릭터다.


사유에 따라 행동이 나타나니 전근대적인 캐릭터라고 볼 수 있다. 현대적인 인물은 몸이 느끼는 대로 움직이는 감각적인 캐릭터지만, 내 소설 속 주인공들은 자기가 그 일을 왜 하는지에 대한 자기설득이 일어난 후 움직이는 인물이다. 아무것도 안 하거나, 못하거나. 의미 있는 대응을 바로 못한다는 점에서는 다소 답답할 수 있다.

 

이번 소설집에서 특히 애틋한 인물이 있었나?


모든 인물이 애틋하다. 「오래된 편지」에 나오는 인물은 자기중심적으로 세상을 받아들이면서 자기 편리에 따라 살아가고, 「딥 오리진」의 주인공은 망상을 통해 자기 내면의 콤플렉스를 극복하는데, 이 두 인물을 제외한 다른 인물들은 타인으로부터 정신없이 휘둘러지고 그것들을 쏟아낼 줄 몰라서 속병이 난다. 「신중한 사람」 주인공 Y는 의사로부터 “환자 분이 병에 적응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심각한 상태인데 적응을 해서 아무렇지 않게 된 거다. 증상으로 나타나지 않은 거다. 얼토당토않은 세상인데도 그걸 용납이 가능한 상태로 적응모드가 형성된 거다. 이런 사람들은 약하고 적극적이지 못하지만, 그렇다고 욕망이 없는 건 아니다. 자기를 과시하지 못하는 성격 이면에는 자기합리화와 비겁함, 우유부단함이 있다. 이런 인물들에 대한 애정이 이 소설을 쓰게 만들었는데, 이 두 가지 이면을 독자들이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만나고-이승우

 

「딥 오리진」의 주인공인 작가는 “모든 사람이 자기 책을 읽고 있다는 터무니없는 착각에 빠진 적이 있다”고 고백한다. 작가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빠져볼 만한 착각 아닌가?


나 역시 첫 소설집이 나왔을 때, 그 기분을 잊을 수 없다. 내 이름을 달고 나온 첫 책이었는데, 책방에 가서 그 책을 봤을 때의 기분이 아직도 생생하다. 책이 쌓여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하나 놓여져 있을 뿐이었는데, 뭐랄까 굉장히 충만한 느낌이었다(웃음). 세상의 모든 독자들이 자신의 책을 읽을 것이라는 착각은 책 3권쯤 쓰면 없어진다는 옛날 이야기가 있는데(웃음). 나는 지금까지 화려한 작가 생활을 한 적도, 내 작품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문학의 중심에 서본 적도 없지만, 30여 년 동안 소설을 써왔다는 어떤 문학적 자의식이 있기 때문에 그런 것들이 관찰된다. 이건 비단, 글 쓰는 작가의 욕망에만 관련된 이야기가 아니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욕망과 실현 가능성 사이에 부딪히는 문제와 갈등이 있다. 이걸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중요한데, 질투심으로 표현되기도, 극단적인 망상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질투의 힘」이라는 시도 있고 영화도 있지 않은가. 인간의 본성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딥 오리진」은 동명의 커피전문점(Deep Origin)에서 벌어진 일로 시작된다. 작가가 주인공인 작품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주인공에 저자를 대입시키게 된다. 카페에서 글을 쓰는 작가들이 많아지고 있는데, 저자 역시 카페에서 글을 즐겨 쓰나?


2009년에 1년 정도 런던에 있을 때, 카페나 펍에서 글을 많이 썼다. 주로 많이 걸어 다녔으니까 카페를 많이 가게 됐다. 여러 카페, 펍에서 책도 읽고 글도 쓰다가 한국에 왔는데, 1년 사이에 한국이 확 변했더라. 우선 카페가 엄청나게 늘었다. 2009년에 런던에 갈 때만해도 이렇게 카페가 많지 않았다. 지금은 동네를 걷고 있으면 모조리 커피전문점이다. 아이패드, 태블릿 같은 휴대용 기기가 빠르게 보급되면서 카페가 일종의 휴대 사무실이 됐다. 이제는 오히려 방에서 글을 쓰면 답답한 느낌이 든다. 집이라는 공간 안에는 식구들이 있고, 아주 작은 소리도 나하고 관련된 소리인데, 카페는 어떤 소음도 나와 관계가 없으니까 시끄러워도 괜찮다. 나를 간섭하는 게 별로 없으니까, 편한 공간이 됐다. ‘딥 오리진’은 실제 우리 학교 동네에 있는 카페다. 원래 제목을 소설의 첫 문장인 ‘그녀는 그가 한 달 열흘 만에 나타났다고 말했다’로 지었는데, 너무 긴 감이 있어서 소설에 등장하는 카페 이름으로 바꿨다. 요즘 이 카페를 자주 못 갔는데, 제목을 빌려 썼으니 책을 한 권 가져다 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웃음).

 

이번 소설집 작품 중에 런던에서 쓴 작품이 있나?


「칼」과 「이미, 어디」를 런던에서 썼다. 한국을 떠나 있어서 그런지, 굉장히 자유롭게 글을 썼던 것 같다.

 

「이미, 어디」는 유독 앞 문장을 조금씩 비틀어 반복하는 문장들이 많다. 비슷한 문장의 반복이 오히려 앞 문장을 곱씹어 읽게 만든다.


내면적인 이유를 꼽자면, 내가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에 관심이 많았다는 증거일 거다. 문장을 하나 쓰면, 이게 충분하게 느껴지지가 않았다. 불완전한 느낌이고, 하나의 문장으로 이 사람의 심리를 드러내는 게 미흡하다고 여겨졌다. 그래서 문장을 더 쓰게 됐다. 그 단계에서 문장을 비틀거나 비슷한 표현을 쓰게 됐는데, 뉘앙스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상태를 드러내는 부분이 많았고, 불완전한 문장에 대한 욕심이기도 했다. 단문이 굉장히 폭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단문은 단언하고 규정하는 거니까. 한 문장을 써 놓고 그 문장을 이해하려고 하는데, 다음 문장이 앞 문장을 부정하게 되고. ‘이게 뭐야?’ 하다가 ‘이거야 말로 진실이 아닌가?’ 싶었다. 아무 말을 하지 않아서 불명료한 게 아니라, 인간 내면에 처음부터 존재했던 복잡함. 자신도 알지 못한 상태에서 일어나고 있는 혼란, 그런 것들을 표현하고자 했다.

 

유머로 느껴지기도 했다. 이승우 작가의 평소 문장과는 달리 느슨한 구조로 쓰여졌다는 생각도 들고.


원래 이야기 구조가 튼튼하게 맞지 않는 걸 무척 싫어하는데, 한국을 벗어나 쓴 작품이라서 그런지, 편안하고 여유로운 상태에서 쓴 느낌이다. 나를 규정하는 것들이 없는 공간이었으니까, 표현이나 구조적인 면에서 강박적이지 않고 자유롭게 간 부분이 있다. 「이미, 어디」는 이미 떠나왔지만 어디에도 오지 않은, 애매모호한 정체성을 가졌다. 선명하지 않고 흐릿한데, 그렇지만 아무 것도 안 하는 것은 아닌, 보이긴 하는데 뭘 하는지 모르겠는. 약간 말장난처럼 느껴진 부분이 있겠지만 나는 진지하고 재밌게 썼다.

 

만나고-이승우

 

소설 쓰는 행위는 일기 쓰는 일과 같다


작가 이승우의 이야기도 궁금하다. 고등학생 때 이청준의 단편 「나무 위에서 잠자기」를 읽고, 어떤 전율을 느껴 문학에 매료됐다고 들었다. 그런데 대학에서는 신학을 전공했다.


가족사적인 복잡한 부분이 있어서 그랬겠지만, 어린 시절의 나는 세상에 대해 굉장히 위축되어 있었고 자폐적인 면이 많았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됐을 때 모든 걸 무아 시키는 종교적인 체험을 하게 됐는데, 그 때 만난 종교가 나에겐 도피처가 됐다. 완전히 그 쪽으로 몰두하게 됐고, 식구 가운데 기독교인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치열한 싸움을 해야 했다. 힘든 싸움을 하면서 결단을 내렸지만, 신학교에 적응을 잘하지 못했다. 교회의 리더에게 요구하는 굉장히 밝고 사교적인 면이 나에겐 없었으니까. 새로운 사람들하고 관계 맺는 일이 어려웠다. 그렇지만 공부를 계속 했는데, 교회라는 공동체 안에서는 내가 쓸모 있는 사람이 못 되니까 지속하기가 힘들었다. 대학에 다닐 때 소극장 운동이 활발했는데, 연극을 열심히 봤고 문학을 놓지 않으면서 작가가 됐다. 중고등학생 때까지 문예반을 줄곧 했고, 신학을 하면서 약간 주춤했다가 휴학하면서 다시 이청준을 만났다. 그의 작품들을 읽으며 등단했다.

 

소설가의 꿈은 뒤늦게 갖게 된 건가?


신학교에 다닐 때만해도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자신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뭔가 글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고등학생 때는 시를 더 많이 썼기 때문에 소설가는 생각도 못했다. 군대를 가려고 신체검사를 받았는데, 폐결핵이 있어서 1년 동안 요양을 하다가 소설을 쓰게 됐고, 그게 등단작이 됐다.

 

수도원을 배경으로 한 『지상의 노래』를 비롯해 '교황저격사건'을 모티브로 한 첫 장편소설 『에리직톤의 초상』 등 신성과 세속, 신과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작품화했다. 신학을 공부한 경험이 소설가가 되기까지,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 것 같다.


어쩔 수 없이 그러지 않았을까. 지금은 넓어졌을지 모르지만, 문학 초기에는 협소한 세계 속의 경험밖에 없었으니까. 문학적으로 많은 빚을 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신학 공부를 안 했으면 어쩌면 소설가가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글을 썼더라도 다른 소설을 썼을 거고. 내 문학을 만든 중요한 요인 중 하나가 신학생 때 읽었던 책들이다.

 

『생의 이면』을 쓰기 전까지는 “고향은 도망가고 싶은 곳, 돌아가고 싶지 않은 곳”이라고 말했다. 대개 작가들은 고향에서 보고 경험한 것들을 자신의 문학세계에 많이 반영하는데.


요즘은 장흥을 자주 간다. 화해라는 말은 이상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고향과 화해한 것 같다. 예전에는 도망가고 싶은 곳이었지만 요즘은 고향 생각을 많이 한다. 어쩔 수 없이 고향의 어떤 부분들이 내 소설에 들어오는 것 같다. 산천을 쓰든, 바다 이야기를 하든, 뭘 쓰든 고향에서 봤던 이미지, 모티프가 들어온다. 한승원 작가가 장흥에 집을 짓고 사는데, 50대 후반에 왔다고 하더라. 나는 몇 년 남았으니까 좀 기다려 봐야지 생각하고 있다(웃음).

 

도시를 떠나고 싶다는 생각은 없나?


나는 도시가 좋다. 뜻밖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난 시골 사람이지만 자연이 힘들 때가 있다. 잠깐 있는 건 괜찮지만 자연은 내게 감당하기 힘들고 벅찬 존재다. 도시는 그래 봤자 사람이 만든 거니까 만만하지 않나? 도시의 골목을 걸어 다니는 걸 좋아하는데, 자연은 좀 힘들다.

 

여행을 즐기진 않나?


그렇게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어디를 가면 열심히 보지만, 어디를 막 가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한다. 어릴 때부터 어디에 가만히 앉아서 뒹굴 거리고 걸어 다니면서 생각하는 걸 좋아했다. 여행을 가서 경이로운 풍경이나 유적에 반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과 음식, 풍물들이 더 인상 깊게 여겨진다. 여행에 대한 갈망은 없는 편인 것 같다.

 

만나고-이승우

 

14년간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가르치고 있다. 요즘은 문청이 점점 적어지고 있지 않나? 요즘 학생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


반짝 반짝하고 맑고 감각적인 친구들이 많은데, 치열함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있다. 문학에 대해 갈급한 아이들도 있지만 대체로 한가하다. 문학에 임할 때는 필사적인 게 있어야 한다. 그래서 수업 시간에도 정신적인 교육을 많이 한다. 마음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뭔가 필사적으로 문학에 몰두하는 게 필요한데, 요즘 아이들은 관심 가져야 할 것도 많고, 스스로를 의미 있게 만드는 것도 많으니까. 아쉬운 마음이 든다.

 

이제 학생들을 보면, 작가의 기질이 있는지 없는지가 쉽게 파악될 것 같다.


대개 3,4학년 때가 돼서 보이는 아이들이 많다. 어느 순간 반짝하면서 어느 지점을 돌파하는 아이들이 있다. 고등학교 때부터 소설을 많이 써보고 준비된 상태에서 대학에 오는 아이들이 있는데, 불완전한 채로 틀만 만들어진 건 좋지 않다. 반대로 이과를 전공하다가 전과를 했는데, 처음에는 엉망이었다가 어느 순간 방향을 제대로 찾는 아이들이 있다. 굉장히 반가운 경우다. 미리 틀을 만들어 놓은 경우가 오히려 좋지 않다.

 

‘22살의 천재’라는 찬사를 들으며 등단해 33년간 작품 활동을 해오고 있다. 2006년에 펴낸 창작론 『당신은 이미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에서 “작가는 여러 권의 책을 통해 한 편의 자서전을 쓴다”고 밝혔는데, 앞으로는 어떤 색깔의 자서전을 쓰고 싶나?


어떤 작품을 쓰겠다는 계획 같은 건 없다. 조금씩은 변하겠지만 변화에 대한 큰 갈망은 없다. 변한다고 하더라도 크게 변하진 않을 것 같다. 문학적으로 탄력성이 있는 친구들이 있는데, 나는 변화에 대한 필요를 느껴서 의도적으로 변하고 싶지는 않다. 시대와 딱 떨어지는 작품을 쓰지 못한다 하더라도, 일부러 그 시대에 맞게 쓰고 싶은 마음은 없다. 소수의 독자라도 소통할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하다. “한 편의 소설은 그 때까지 그 작가의 삶의 총체”라는 말이 있다. 작가에게 작품은 삶의 총체다. 등단 전까지는 일기를 꾸준히 썼지만 지금은 일기를 쓰지 않는다. 나에게 소설을 쓰는 행위는 일기를 쓰는 것과 같다. 소설은 다 허구지만 내 일기와 다르지 않다. 일기를 통해 얻어내는 효용을 소설을 통해 얻고 있고, 내가 사는 이 시점에 내가 하는 생각, 나의 가치관을 소설로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소설가로 사는 게 좋다. 따로 자서전을 쓰지 않아도 되니까 좋지 않나?(웃음). 그 순간,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하자는 주의다. 결과가 늘 그렇지는 않지만, 마음은 늘 그렇다.

 

독자들이 『신중한 사람』을 어떻게 만나면 좋을까?


찬찬히 읽고 찬찬히 만났으면 좋겠다. 스토리가 긴박하게 전개되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답답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인물이 그냥 걸어가는데, 왜 걸어가는지, 어떻게 걸어가는지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읽으면 흥미로울 수 있지 않을까? 가령 1분을 촘촘하게 잘라서 생각하면 굉장히 긴 시간이 될 수 있다. 반대로 1,2시간 단위로 생각하면 1분은 너무 작다. 한 사람의 일생도 한 문장으로 압축할 수 있는데, 시간의 단위를 키우지 말고 시간의 단위를 바꿔서 생각해보면 어떨까, 싶다. 1분도 일생처럼 느낄 수도 있다. 주문이 너무 까다로울지 모르겠지만(웃음). 생각의 흐름을 따라 읽는 사람이라면 재밌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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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중한 사람이승우 저 | 문학과지성사
이번 소설집에서는 죄의식에 대한 깊은 탐구와 더불어 인간 심리의 미로, 욕망의 어두운 지대를 겨냥하고 있다. 물론 그 미로의 맞은편에 자리한 편집증적 망상과 자기기만을 강요하는 막무가내의 부조리한 현실도 지적한다. 이는 『생의 이면』(1993)에서 보여주었던 인류의 원죄 의식이나 『에리직톤의 초상』(1981)이 제기하는 ‘현실 사회에서의 죄의 실체’에 대한 문제적 의문, 「일식에 대하여」에서 인식하는 ‘고귀한 삶이 불가능한 곳’으로서의 현대 사회에 대한 인식 등과도 맞닿는다. 이번 소설집에는 그간 작가가 보여준 문제의식과 세계관이 결집되어 있다고도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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