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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체어샷 “음악은 멤버들 간의 화학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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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인디 음악계에서 주목할 만한 팀을 꼽아보면 그 중에는 아시안 체어샷이 빠지지 않을 것이다. 꾸준히 발표해왔던 비정규작들에서 느껴지던 범상치 않은 기운들이 최근 공개된 첫 정규작< Horizon >에서 더욱 만개한 덕분이다. 현재 평단과 팬들에게 호평을 받으며 순항 중인 아시안 체어샷을 이즘이 만났다.

 

첫 앨범을 발표하고 페스티벌과 공연 등의 바쁜 일정을 이어나가는 와중에 짧지만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어두운 노래와 음울한 가사 때문에 무거워 보일 것만 같았던 이미지와 이들은 많이 달랐다. 오히려 아시안 체어샷은 '무식해서 성공한 것 같다'는 농담도 던지는 겸손한 밴드였다. 시종일관 대화를 부드럽게 이끌어가는 인터뷰이 덕분에 한 시간 가량 진행된 대담은 이들의 음악만큼이나 순조롭게 흘러갔다.

 

아시안체어샷

아시안체어샷

 

첫 정규 앨범에 대한 주변 반응이 궁금합니다. 지금까지 평단이나 팬들에게 호평을 받아왔는데요, 앨범에 대한 만족도는 어느 정도인가요?


황영원: 아직까지는 어떤 평들이 나왔는지 잘 듣지 못했어요. 다른 밴드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좋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원래 다른 밴드들은 좋다고들 이야기해주니까요. 저희끼리는 잘 나왔구나 생각이 들긴 하는데 다른 분들도 동감하실 지는 좀 더 두고 봐야죠.


박계완 : 지인이나 주변 분들은 음악에 대한 평보다도 정규 1집이 나왔다는 사실 자체에 좋은 이야기를 해주시고 있어요.

 

황영원 : 일단 아트워크나 세부적인 부분들이 맘에 들어서 개인적으로 합격점을 주고 싶네요.


프로듀서로 참여한 스매싱 펌킨스(Smashing Pumpkins) 제프 슈뢰더(Jeff Schroeder)와의 인연이 궁금합니다. 어떻게 작업을 같이하게 되었나요?


박계완 : 인터뷰하면 많이 듣는 질문이기도 하지만 정말 고마운 분이라 앞으로도 더 많이 들었으면 하는 질문이에요. 작년 서울 국제 뮤직 페어(뮤콘) 등에서 우연히 저희의 라이브를 보고서 좋은 인상을 받은 듯해요. 그러면서 우연히 술자리에서 동석할 기회도 생겼고 다음 공연 일정도 이야기하면서 좋은 관계를 맺었지요. 그러던 중에 음반을 제작할 시기가 왔는데 그러려면 프로듀서가 있어야 하잖아요. 그래서 멤버들끼리 반 장난으로 제프 슈뢰더가 프로듀서를 맡아주었으면 좋겠다 그런 이야기를 했거든요. 조심스레 프로듀싱을 해주십사 연락을 드렸더니 흔쾌히 수락하셔서 같이 작업을 하게 됐습니다.


아시안 체어샷이라는 밴드 자체가 본연의 색이 확실히 있는 팀이라 제프 슈뢰더와의 작업에 우려를 한 팬들도 많았을 듯 합니다. 그런 문제에 대한 고민도 있었는지요?


박계완 : 사실 외국인이기도 해서 통하지 않는 부분이 있을까봐 많이 고민을 했어요. 그런데 한국인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우리 음악도 많이 알더라고요. 그러다보니 우리의 한국적인 정서가 제프 슈뢰더의 도움으로 빛을 잃기 보단 오히려 시너지를 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덕분에 별 걱정 없이 잘 작업했던 것 같아요.


손희남 : 기타 사운드에서도 많이 배웠어요. 덕분에 아밍 같은 스킬의 재미도 알았고요. 배우기도 많이 배웠는데 그 쪽에서 우리 사운드를 가져가기도 했어요. 아마 다음 스매싱 펌킨스 음악에서 저희와 비슷한 기타 소리를 들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드네요.


그렇다면 다음 작업에서도 제프 슈뢰더와의 협업을 기대할 수 있는 건가요?


박계완 : 좋은 기억을 남겨준 프로듀서라 현실적인 문제만 맞는다면 더 작업을 해보고 싶어요.


황영원 : 작업에 있어서는 합이 무척 잘 맞았어요. 막상 저희 쪽에서 영어가 잘 안 돼서 그렇지.

 

아시안체어샷

▶박계완

 

< 탈 >때와 다르게 이번 정규 앨범에 들어서 팝 성향이 강한 앨범으로 변모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멜로디도 훨씬 좋아졌고요. 원래부터 밴드에게 팝 적인 감각이 있었다고 보시나요? 아니면 신보를 내면서 변화하고자 한 부분이 있었나요?


박계완 : 멜로디는 예전부터 (황)영원이가 써왔는데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성향인 것 같아요.


황영원 : 작곡을 할 때는 통기타로 계속 노래를 부르면서 시작하다가 합주나 편곡 과정에서 계속 아이디어를 더하거든요. 그런 과정이다 보니까 두 측면 모두가 있어요. 작곡 과정에서 내재된 성향이 나왔다가 같이 모여 작업하는 과정에서 의도된 방향대로 이끌어가고. < 탈 >같은 앨범은 뭔가 해보고 싶은 걸 다 해봐야겠다는 느낌이 강했어요. 정규 앨범은 정규작인 만큼 의도적인 곡이나 전작들과의 접점이 되는 곡도 있고요. 결과적으로는 양쪽의 색을 해치지 않는 앨범이 나온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 앞으로의 변화에 대해서는 이렇다 결론을 내리기 어렵고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지금까지의 부분에 대해서는 만족해요. 비슷한 맥락에서 < 탈 >의 수록곡을 신보에 싣고 싶기도 했는데 비정규도 엄연히 앨범이니까 고유의 가치를 잃고 싶게 하지 않아서 그러지 않았어요. 그렇게 양쪽의 색과 감각을 살리는 과정에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일출의 순간에서 시작해서 일몰까지 이르는 과정을 모티브로 삼았다고 들었습니다. 일출의 순간은 직선적이고 힘찬 반면 일몰의 순간은 황망하고 우울해요. 알 수 없는 세계에 대한 기대감이 마지막엔 결국 현실에 갇혀버리는 이미지가 떠올랐는데요. 앨범의 전체적인 구성에 대해 어떤 해석을 할 수 있을까요?


황영원 : 일출과 일몰의 이미지를 담으려한 부분이 있는데 마지막엔 세 멤버들이 우울한 것을 즐기는 성향이 반영된 듯해요. 처음엔 나름 희망차게 만든다고 했는데 정신차려보니 다시 원점이더라고요. 사실 가사들도 보면 지질하잖아요. 그런데 또 그런 게 사람들의 본성이기도 하고요.


박계완: 저희가 곡을 만들 때 가졌던 의도나 생각만큼이나 앨범 발표 이후 여러 곳에서 듣게 되는 해석을 통해 만들어지는 가치도 중요한 것 같아요. 저희가 그런 해석을 들으며 오히려 더 공감하는 부분도 많고요.


황영원 : 곡 자체는 저희의 이야기가 많아요. 자장가도 상대에게 잘 자라고 불러주는 노래지만 막상 불편하잖아요. 그런 묘한 모순적인 마음을 개인적으로 담아낸 거예요. 이렇게 살면서도 어쨌든 해는 다시 뜨지 않는가, 그런 마음들이 곡에 담기는 거죠. 그런 면에서 반지하제왕같은 노래가 확실히 저희에게 맞는 노래예요. 그 전에는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고 그랬는데 반지하제왕을 하면서 확실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았다고 느꼈거든요.


어찌 보면 다소 강박이라고 느껴질 정도로 음악과 가사에서 동양적인 색채를 내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곡을 쓰시는지, 보통의 곡 작업은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나요?


황영원 : 저희가 동양적인 색채를 넣으려고 하는 건 분명히 있어요. 이걸 빼면 우리에게서 남는 것이 없을 것 같단 생각이 들어서 일부러 염두에 두는 편이예요. 지금도 그 색을 잃지 않으려고 하고 있고. 그런데 동양적인 느낌을 꼭 깔아두려고 한다기보다는 뭔가 곡의 기본이 되는 베이스가 없으면 곡 작업이 자신도 없고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 때가 많아요. 그 베이스라는 것이 꼭 동양적인 이미지가 아닐 때도 많아서 딱히 규정할 수 없지만, 저희다운 무언가를 기본으로 확보한 상태에서 작업을 하려고 해요.


베이스가 보컬을 겸하고 있는 밴드인데도 막상 음악을 들으면 베이스를 치며 노래한 곡이라고 생각되지 않아요. 라인이 단순하지도 않고 변주도 많고요. 노래 박자나 베이스라인을 만드는 특별한 방식이 있나요?


황영원 : 베이스를 집중해서 듣지 마세요.(웃음) 제가 처음부터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아니었어요. 순수하게 베이스로 시작했고 이 팀을 하면서 노래를 시작했거든요. 그런 상황이라 지금은 처음 아시안 체어샷을 시작했을 때보다 베이스 라인을 쉽게 만들려고 하고 있어요. 그렇다고 해서 작곡이나 편곡 과정에 노래를 중점으로 작업을 하거나 하지는 않아요. 개인적으로는 앞으로 베이스에 좀 더 중심을 두고 싶기는 해요.

 

아시안체어샷

▶황영원

 

아시안 체어샷의 음악을 듣다보면 어떤 곡들에서는 퀸즈 오브 더 스톤 에이지의 향취가 깔려있기도 하고, 이번 앨범의 「Today」나 「응어리」 같은 트랙은 지금의 아시안 체어샷과는 약간 동떨어져 있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렇게 점점 음악적인 스펙트럼이 넓어지고 있는데 아시안 체어샷을 가장 잘 대변하는 곡이 있다면 어떤 곡이라고 생각하나요?


박계완 : 「반지하제왕」이요. 아마 가장 처음으로 저희다운 색을 낸 첫 곡이일거예요. 작업 당시에 아무 것도 없는 상황에서 한 시간도 안 되어서 만들어진 곡이었어요. 가사도 금방 나왔고요.


황영원 : 저는 이번 앨범의 「날 좀 보소」가 제일 취향에 맞아요.


손희남 : 저는 「탈춤」이요. ('탈춤'이 수록된) < 탈 > 앨범은 언젠가 다음에 한번 세련된 스타일로 다시 만들어보고 싶어요.


아시안 체어샷 이전에도 각자의 음악 활동이 있었어요. 멤버가 각기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박계완 : 사실 저는 음악을 잘 몰랐어요. 그냥 드럼이 멋져보여서 밴드를 시작했거든요. 근데 너무 재미없더라고요.(웃음) 잘못된 선택이었어요. 보컬이나 프론트 맨을 했어야 했는데...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돌아갈 수는 없잖아요. 지금은 밴드가 너무 재밌어서 음악을 계속하고 있어요. 주찬권이나 송골매 같은 선배님들의 연주를 좋아해요. 단순한 듯 쉽게 따라 하기 힘든데 그래도 계속 시도를 해보고 있어요.


황영원 : 저는 여자 꾀려고 했던 거 같은데...(웃음) 어릴 적에 어디 수련회나 행사 같은 데를 가면 악기 연주라고는 기타 연주자 하나 정도뿐일 때가 많았어요. 그런 상황에서 우연히 드럼을 쳤는데 갑자기 그 다음 날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폭발한 거예요. 그런 우쭐했던 기억이 계기가 되었던 것 같아요. 막상 드럼은 사람이 많이 몰릴까봐 기타를 치다가 나중에 베이스로 서클 활동을 시작했어요.


손희남 :저는 원래 음악 같은 건 잘 모르고 그냥 가요들만 듣다가 중학교 때 영국 음악을 듣게 되었어요. 라디오헤드를 좋아하게 되면서 이런 음악이 하고 싶어서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지요.


적지 않은 해외 공연을 하셨어요. 해외 공연 도중 얻은 에피소드가 있나요? 같은 로큰롤이지만 전혀 다른 질감의 음악인데 해외 관객들의 반응은 어땠는지도 궁금합니다.


손희남 :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놀고 뛰는 무대를 좋아하는데 영국은 무언가 전체적인 것을 보는 것 같아요. 노래 자체가 좋다는 말보다는 사운드 혹은 곡 구성이 좋다는 이야기를 더 많이 들었거든요.

황영원 : 저희가 사이키델릭한 사운드가 많은데 그런 것을 좋아하더라고요. 저희는 영국에 가면 특이한 노래들을 많이 만날 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익숙한 음악들이 더 많았어요. 유행을 따르는 경향도 강해서인지 관객들이 저희에게 반대로 신선함을 느낀 것 같았어요. 무대 오르기 전에는 분명히 얕잡아보는 눈들이 있거든요. 근데 무대를 내려오면 다들 놀라워하고 좋다는 반응을 보여줘서 기분이 좋더라고요.


6월에 일본에서 음감회를 하기도 했어요. 어떤 연유로 하게 된 것인가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커먼뮤직 관계자 분께서 직접 해주셨다.)


커먼뮤직 : 아시안 체어샷이 일본에 공연을 갈 계획을 가지고 있어요. 지금 음반이 나오기도 했으니까 일단 뮤지션 없이 음악관계자들끼리만 음악을 듣는 기회를 가졌던 거예요.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서 놀랐어요. 몇 번의 기회를 통해 계획을 구체화할 예정이에요. 최근 영국이나 싱가포르 등 해외 공연을 다녔는데 막상 일본에는 손이 미치지 않아서 쉽게 접근하려는 방안을 만들어보고 있습니다.

 

아시안체어샷

▶손희남

 

아시안 체어샷도 그렇고, 잠비나이나 술탄 오브 더 디스코 등 오히려 외국에서 반응을 보이는 음악들이 적지 않게 출연하고 있어요. 주객전도 되었다는 느낌이 강한데 유독 국내에서 록 음악들이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손희남 : 사실 모두가 잘 알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유독 록 씬이 약하잖아요. 대중음악이 강하고 외국에 비해 다양한 음악을 가진 풍토도 아니고요.


황영원 :음악을 넓게 들어보신 분들은 저희를 좋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일반 대중에게 저희 노래가 쉽지 않은 건 사실이죠. 외국은 시장규모도 다르고 비주류 음악에 대한 관심도 깊은 것 같아요. 사이키델릭한 사운드는 국내에서는 주목을 받기 힘든데 외국에서는 이런 스타일을 선호한다고 그러더라고요. 오히려 외국은 음악자체가 이미 나올 만큼 나온 상태라서 자국 내에서는 새로운 것이 나오기 힘들다고 해요. 그래서인지 외국 밴드들에게 더 자극을 받는 면도 있어요. 그래서 저희 같은 경우는 무식하니까 성공한 것도 있는 것 같아요. 해외의 주목과 국내 대중의 인정을 동시에 받는 우리나라 거물밴드가 아직은 없는데 빨리 그런 밴드가 나왔으면 해요.


박계완 : 아직 록의 진짜 모습이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아요. 여전히 학생들에게도 록은 가죽 재킷이나 부활의 김태원 선배님 혹은 반항의 상징, 이런 이미지들이 강하잖아요. 그런 면에선 선배 음악가들도 록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고착된 시선을 유지하는 것 같아요. 록도 다양한 밴드가 많은데 말이에요.


황영원 : 다양하고 멋진 밴드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저희도 많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고요.


마지막으로 이즘의 공식질문입니다. 각자의 최고의 음반과 뮤지션을 꼽는다면요?


박계완 : 제 인생 최고의 뮤지션은 손희남과 황영원이에요. 진심으로요.


황영원 : 영향을 받은 음악가라기보다는 스쳐지나가듯이 듣는 좋은 노래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예전의 신중현과 엽전들의 들으면서 시대를 뛰어넘는 세련된 사운드에 놀라기도 했고요. 너바나(Nirvana)도 너무 좋아했어요. 저희 때는 너바나가 최고였죠. (박)계완이 형 덕에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도 많이 들었고, 좀 익숙하지만 비틀즈(Beatles)도 좋아해요.


손희남 : 저는 라디오헤드나 핑크플로이드요. 사실 저희가 한국적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데 다른 두 멤버는 모르겠지만 저는 그런 성향이 많이 없어요. 음악은 멤버들 간의 화학작용이라고 생각해요. 만약 셋 모두가 한국적이었다면 뻔한 음악이 나오지 않았을까요?

 

 

인터뷰 : 신현태, 황선업, 이기선
사진 : 이한수
정리 : 이기선 (tomatoapple@naver.com)


낙서 수집이 취미인 청춘, 도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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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골목의 담벼락, 학교 화장실, 도서관 책상. 이런 곳은 낙서를 발견하기 쉬운 곳이다. ‘우리 사랑 이대로’, ‘로또 1등’ 등 자신의 욕망을 드러낸 낙서부터 음담패설, 특정 정치인 욕까지 낙서의 범위는 끝이 없다. 흔하고 흔해서 주의해서 본다면, 일상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지만 대부분은 그냥 지나친다. 낙서는 쓰는 사람에게도, 보는 사람에게도 그런 존재니까.

 

낙서를 수집하는 사람이 있다고? 그래, 있을 수 있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사니까. 그런데 낙서를 모아서 책까지 냈다고 한다. 서점에서 일하는 필자로서는 호기심이 생겼다. 주인공은 도인호. 그가 낸 책은 『청춘의 낙서들』이다.

 

한국말 ‘의’는 다양한 뜻을 함의한다. ‘청춘의 낙서들’도 마찬가지. 청춘이 쓰는 낙서, 청춘 시절에 쓴 낙서, 청춘이 발견한 낙서 등 다양한 뜻으로 읽을 수 있다. 이 책은 저자가 힘들었을 때 위안을 받았던 낙서를 모았다. 낙서, 하면 으레 음담패설을 떠올릴 수 있으나 이 책에 실린 낙서는 따뜻하고 포근하다. 그렇다곤 해도, 이런 낙서, 왜 모았을까. 저자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자.

 

도인호

 

식목일에 태어난 꽃집 아들, 낙서에 빠지다


첫 책입니다. 채널예스 독자에게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저는 도인호입니다. 1986년 식목일에 태어났습니다. 꽃집 아들이에요. 잠깐 꽃집을 창업했다 처참하게 실패하고, 그전부터 취미로 모아놓은 낙서를 소재로 실패한 청춘 이야기를 책으로 냈어요. 지금은 책 홍보도 하고, 블로그도 하고,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 책은 어떤 책인가요?

 

요상하지만 취미생활처럼 낙서를 모으기 시작했어요. 사업 실패하고 나서, 위로하는 글을 블로그에 쓰기 시작했죠. 처음에는 장난 같은 낙서를 소개하면서 시작했는데, 가면 갈수록 실패한 젊은 시절의 이야기가 많이 나오더라고요. 이 책은 그런 식으로 낙서를 소재로, 제 젊은 시절을 주제로 쓴 책입니다. 화장실의 낙서를 발견한 것처럼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 심심할 때 한 번씩 읽으면 재밌는 책이에요.

 

낙서를 수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군대 가기 전, 잠실 인근 화장실에 오래 앉아 있었는데요. 화장실에 으레 있는 야한 낙서가 있었어요. 제대하고 나서 보니 그 자리에는 성소수자 이야기가 보이더라고요. 흥미로웠죠. 2006년보다 2008년에 성수자 담론이 더 많았거든요. 이걸 보면서 낙서가 시대를 반영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이런 생각을 하던 중에 집 앞에 있던 낙서가 지워졌어요. 낙서가 시대를 반영하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하구나, 해서 사라지기 전에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취미가 됐죠.
 
모든 공간에서 낙서를 수집할 수는 없잖아요. 낙서를 모으기 위해 돌아다닌 공간은 주로 어디였나요.

 

홍대 근처나, 이태원 쪽이에요. 술집이 많은 데에 낙서도 많죠. 요즘은 카페도 일부 허용하는 곳이 있고요. 화장실은 예전에는 많았는데 없어지는 추세입니다. 돌아다니는 공간마다 유심히 보는 편인데, 문화가 다양한 곳이나, 오래된 곳에 낙서가 많죠.

 

화장실 낙서는 왜 없어질까요?

 

첫째로는 스마트폰 영향이 아닐까 싶어요. 예전에는 펜 있고 심심하면 화장실에 낙서했는데, 지금은 스마트폰 보잖아요. 둘째로는, 화장실이 전반적으로 깨끗해지니까, 낙서할 생각을 못하는 거죠.
 
본인도 낙서를 하나요?

 

어렸을 때 이후로는 안 했어요.

 

모든 낙서를 수집하진 않을 듯한데, 낙서를 모을 때 기준은?

 

홍대에 그래피티가 많은데, 거리 예술이라 생각해서 안 모으는 편이고요. 낙서는 심심할 때, 뭔가를 끄적이고 싶을 때 쓰는 건데요. 이런 식으로 나온 낙서를 좋아해요. 제가 봤을 때, “이 사람 정말 심심하구나” 하고 느낄 만한 게 좋죠.


일단 착한 낙서 위주로, 19금 낙서는 나중에

 

화장실 낙서를 보면 음담패설이나 욕설도 많은데, 책에 실린 낙서는 대체로 선량합니다.

 

실제로 제가 수집한 낙서도 음담패설이 훨씬 많은데요. 나중에 19금으로 한 번 내볼까, 생각은 하지만 이번 책에는 독자가 불쾌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걸렀죠. 너무 야한 낙서나 정치적으로 치우친 낙서는 사람에 따라서 불쾌하게 느낄 수 있잖아요. 『청춘의 낙서들』은 우선은 재밌게 읽히면 좋겠네요.

 

낙서가 인터넷으로 보면 익명성이 보장된 댓글과 비슷하기도 한데요.

 

둘 다 공통점은 배설의 욕구가 아닐까요. 책에 실리진 않았지만, 정치적 낙서나 음담패설을 보면 익명성에 기대 감정을 배설하려는 욕구가 보여요. 인터넷 댓글창에 보이는 지저분한 댓글과 낙서가 비슷하죠. 그래서 둘 다 시대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죠.

 

청춘의낙서들.jpg 

 

월간 <잉여>에 기고하기도 했는데요. 낙서는 잉여일까요?

 

관점이 여러가지가 있겠죠. 경제적인 관점에서는 확실히 잉여죠. 낙서를 쓰는 사람은 심심해서 쓰고, 수집하는 사람은 재밌어서 하는 거니까요. 다른 쪽으로 생각해 보면, 어디엔가 누군가의 글이 남겨져 있고, 남겨진 글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다면 언젠가는 지워져도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낙서가 시대를 반영한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는데요. 이런 관점에서 보면 잉여가 아니라 의미 있는 기록이 아닐까요.


사업 실패했던 기간을 3년 정도로 알고 있는데요. 그런데 책에는 사업 실패 이야기가 없습니다.


평범하게 실패한 이야기라 딱히 더 할 이야기가 없었고요. 그렇지만 사업 실패에 관한 이야기는 따로 책으로 내고 싶기도 해요.


평범한 실패라면?


동업은 하지 말아야겠다? (웃음) 제가 사회에 나가기 위한 준비가 충분히 안 돼 있었어요.


요즘 청춘, 어렵다


책에서 실패를 많이 이야기했는데, 기성세대가 풀어놓는 청춘 담론과 다른 느낌 같기도 하네요.


청춘에 관한 책을 나이가 있는 분이 쓰다 보니, 독자보다 스펙도 좋고 좋은 일을 많이 하신 분이잖아요. 제 책은, 읽는 독자보다도 스펙도 없는 사람이다 보니, 기존의 청춘 책보다는 진정성 있고, 위로 받듯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낙서가 시대를 반영한다고 했는데, 낙서로 봤을 때 지금 시대 청춘은 어떤 것 같아요.


어떤 시대나 그렇겠지만, 요즘 청춘은 빡빡하고 힘들게 살고 있는 듯해요. 열심히 일해도 자신의 힘으로 결혼을 한다거나, 집을 마련한다거나, 이런 게 불가능하잖아요. 매우 힘든 상황이에요. 이런 상황을 정면으로 받았던 사람이라, 사람들은 재밌게 읽지 않을까요.


낙서 모으면서 겪은 황당한 사건도 있나요.


남산에서 사랑의 낙서를 찍고 있었어요. ‘철수 영희 우리 사랑 이대로’ 이런 낙서죠. ‘사랑 영원할 줄 아냐’ 이런 것도 있었고요. 제가 찍는 걸 보고 중국인 관광객들이 함께 찍으시더라고요. 전혀 명소가 아닌데 중국말을 몰라서, 말은 못 드렸네요.


이번 책에서는 주로 서울에서 수집한 낙서를 담았는데, 앞으로 전국 편을 기대해도 될까요.


책 쓰는 게 힘들어서 당분간은 계획에 없고요. 활동 영역이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재밌는 낙서를 모을 수 있지 않을까요.


조경학을 전공했는데, 글쓰기에 빠진 계기는?


뭐를 해야 하나, 고민스러웠던 시기였어요. 조경학을 전공했는데, 인턴 생활을 잠깐 하면서, 이건 진짜 아니다, 하면서 학교로 돌아갔죠. 여러 가지로 혼란스러웠어요. 그때 '예술과 미학'이라는 수업을 들었는데, 에세이로 1주일에 A4 한 장씩 써야 했죠. 글을 쓰니 위로가 되더라고요. 그때부터 힘든 시기에 일기 쓰듯, 썼어요.


원래부터 책을 좋아했던 것 같은데, 최근에 읽은 책 중 인상 깊었던 게 있다면.


책보다는 영화를 좋아하지만, 책도 좋아해요. 요즘에는 『반 고흐 인생 수업』이 좋았어요. 반 고흐가 생각했던 것보다, 찌질한 부분이 있더라고요. 그럼에도 위대한 작품을 만들어냈어요. 그런 반 고흐의 인생에 맞춰 저자 자신의 사연을 더해서 설명해준 책인데, 재밌었습니다.


앞으로 발견하고 싶은 낙서가 있나요?


“당신은 무엇을 하는 사람입니까”라고 홍대 편의점 앞에 있었던 낙서인데요. 그 낙서를 보고 묘하게 위안을 받았어요. 제가 찍었던 낙서 모두를 그렇게 받아들였어요. 청춘의 시련이라고 받아들였죠. 사정이 나아지면, 낙서가 변한다기보다는 제가 거리의 낙서들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끝으로 채널예스 독자에게 한 마디 해 주세요.


이 책에서 발생한 수익은 저의 생계 유지비로 이용되니, 많이 많이 사 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요즘 너무 힘듭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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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낙서들도인호 저 | 앨리스
그는 스펙 쌓기에 매진하는 여느 20대와는 달리, 낙서를 수집하는 조금은 평범하지 않은 청춘으로, 이 책에서 그간 모은 낙서를 매개로 자신의 삶과 고민을 풀어놓는다.『청춘의 낙서들』에 담긴 낙서들의 빛깔은 다채롭지만 이 책의 지은이가 계속해서 고민하는 것은 ‘이 청춘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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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근 주세희 “악동뮤지션이 탄생할 수 있었던 결정적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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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스타> 심사위원이었던 가수 박진영은 “악동뮤지션 부모님이 책을 쓰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밝힌 적이 있다. 자연에서 톡 튀어나온 것 같은 악동뮤지션의 음악 가운데는 몽골의 푸른 초원도 있겠지만, 부모의 남다른 교육관도 영향을 미쳤을 거라는 짐작 때문이었을 것이다. 모두가 궁금해 했던 악동뮤지션의 이야기는 올해 4월, 악동뮤지션의 1집 <PLAY>와 함께 출간된 에세이『목소리를 높여 high!』를 통해 어느 정도 해소가 됐다. 하지만 부모 독자들은 악동뮤지션의 엄마, 아빠 이야기를 더욱 듣고 싶어 했다. 여러 요청 끝에 이성근, 주세희 씨가 ‘찬혁, 수현의 부모’라는 이름으로 『오늘 행복해야 내일 더 행복한 아이가 된다』썼다.

 

2008년 5월, 몽골로 이주해 선교사 부부로 살아온 이성근, 주세희 씨는 ‘행복발전소’라는 가족명을 쓰며,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을 최고의 목표로 삼아왔다. 출판인으로 10여 년간 일을 하다 선교사가 된 아빠 이성근 씨와 오랫동안 교회에서 학생부 교사를 맡으며 사춘기 아이들과 소통했던 엄마 주세희 씨. 이들이 악동뮤지션의 부모로서 가장 잘한 일은 “아이들을 믿고 기다려준 일”이다. 누군가 홈스쿨링을 했다고 하면, ‘부모의 열정이 대단하네’라고 치부할지 모르지만, 이들이 몽골에서 홈스쿨링을 시작한 건 학비의 부담과 아이들의 영어 스트레스 때문이었다. 악동뮤지션은 “홈스쿨링을 하지 않았더라면 <K팝스타>에 도전하지 못했을 거고, 악동뮤지션도 없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성근, 주세희 씨는 “진짜 홈스쿨링이 시작된 건, 아이들이 하고 싶은 대로 자유를 주기 시작한 때부터”라고 말했다.

 

누군가가 재능은 심심할 때 나온다고 했다. 아이들이 할 게 없으니까 딴짓을 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뭔가 튀어나온다는 것이다. 찬혁이가 처음 노래를 만들었을 때 우리는 찬혁이의 재능 발견에 초점을 맞추었다기보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는 새로운 모습에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한 우리의 반응에 찬혁이는 물 만난 물고기가 되어 자신도 모르게 재능을 쏟아냈다. 그때 우리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거나, ‘뭘 그깟 것 가지고 호들갑 떨어”라고 했다면 지금의 악동뮤지션은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이들은 에너지 덩어리이기 때문에 언제 어떤 것에 반응을 보일지 모른다. 아이가 어제와 다른 모습을 보일 때, 부모가 예상하지 못하는 행동을 할 때,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잘 잡아낸다면 아이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도 있다. ( 『 오늘 행복해야 내일 더 행복한 아이가 된다』 262~263쪽)

 

만나고-악동부모님

 

정말 너희들이 하고 싶은 걸 해봐


올 봄에 악동뮤지션의 저서『목소리를 높여 high!』가 출간된 후, 책 작업을 시작했다고 들었다. 찬혁, 수현이의 책을 먼저 읽은 부모로서의 소감이 궁금하다.


이성근: 몽골에서 찬혁이가 노래를 만드는 걸 보면서, 이 아이가 어떤 경험을 통해 무슨 생각으로 노래를 만드는지가 궁금했다. 찬혁이가 지금은 말을 잘하지만, 자신의 생각을 잘 표현할 줄 아는 아이가 아니었다. 그렇기 때문에 글로 한 번 써보면 좋지 않을까, 싶었다. 판매는 못 되더라도 책을 만들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좋은 기회가 생겨 아이들이 책을 내게 됐다. 악동뮤지션의 책을 준비하는 동안에는 우리 부부의 책은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아이들의 글을 읽으면서 “이 내용은 이렇게 써야 하지 않을까? 아빠가 생각할 때, 그 때 너는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은데”라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런데 아이들의 생각은 우리와 달랐다. 부모와 아이의 이야기가 이렇게 서로 다를 수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아이들은 아이들 생각대로, 우리는 우리의 생각을 담는 책을 써보고 싶었다.

 

찬혁, 수현이가 “몽골에서 홈스쿨링을 하지 않았더라면 <K팝스타>에 도전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해 ‘홈스쿨링’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주세희: 반드시홈스쿨링을 했기 때문은 아닌 것 같다. 책에도 썼지만 홈스쿨링을 처음 시작한 1년 반은 굉장히 힘들었다. 수업 준비도 벅찼고 스케줄도 많이 빡빡했다. 아이들도 부모도 힘든 시기였다. 1년 반이 지났을 무렵, 홈스쿨링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있었는데 그 때 이후로 아이들을 풀어줬다. 포기하는 것처럼 “너희 마음대로 해”가 아니라, “정말 너희들이 하고 싶은 걸 해보라”고 자유를 줬다. 공부하라는 말을 하지 않고 원하는 걸 할 수 있게 했는데, 그 때부터가 진짜 홈스쿨링이 아니었나 싶다. 홈스쿨링을 했기 때문에 이런 재능이 나왔다기보다, 하고 싶은 대로 풀어줬기 때문에 재능이 드러난 것 같다.

 

수현이는 어릴 때부터 일찌감치 노래에 재능을 보였는데, 찬혁이는 뒤늦게 음악에 관심을 갖게 된 경우다.


주세희: 찬혁이는고등학생이 되기 전까지는 음악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작곡을 하면서 갑자기 터져 나온 거다. 자신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곡이 터져 나왔는데,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해보라”고 말해줬기 때문에 드러난 것 같다. 갑자기 찬혁이가 음악에 관심을 갖고 노래를 만들기 시작했을 때, 우리는 ‘얘가 왜 갑자기 안 하던 짓을 하고 그러지?’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간섭하지 않고 그냥 놔뒀다. 한국 교육의 현실은 아이들의 재능을 쉽게 발견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 아이의 재능이 마음껏 발휘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지지 않는다. 공부해야 하고 학원을 가야 하니까. 무척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 거다. 본인조차도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악동뮤지션이 몽골 생활을 하지 않고 한국 학교를 다녔더라면, 달라졌을까?


이성근: 만약 한국에 있었다면, 아니 몽골에서도 여유가 있고 아이들이 영어 스트레스가 크지 않았더라면 학교를 보냈을 것 같다. 하지만 우리 부부는 애초부터 아이들에게 억압적으로 공부를 시키고자 하는 마음이 전혀 없었다.

 

주세희: 기본적으로 남편과 같은 생각이 아이들이 반드시 대학에 갈 필요가 없다는 점이었다. 너희들의 공부 목표가 대학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 “가도 되고 안 가도 되는 곳이 대학이고, 너희가 살면서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가는 곳이 대학”이라고 말했다. 대학을 가야 하는 시기도 꼭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때가 아닌, 나이를 먹어서도 충분히 갈 수 있다고 이야기해줬다.

 

아이들의 몽골 생활이 굉장히 자유로웠을 것 같은데, 의외로 엄격한 규칙이 많았다. 가요를 듣지 못하게 했다는 점은 놀랍다.


주세희: 규칙만 있었던 게 아니고 자유도 있었으니까, 아이들이 잘 따라와줬다. 어릴 때부터 식당에서는 뛰지 않아야 하고, 어른들께는 존댓말을 사용하고 언제나 인사를 먼저 해야 한다는 그런 습관들을 일찌감치 갖게 했다. 아이들이 어려도 할 수 있는 것들은 대부분 시켰다. 규칙만 있는 집안이었다면 힘들어했겠지만, 반대로 사랑 표현을 굉장히 많이 했고 부모로서 해줄 수 있는 많은 것을 하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아이들이 ‘우리 집은 힘든 집’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우리 집은 재밌는 집’, ‘엄마 아빠가 우리를 무척 사랑한다’라고 생각했다.

 

이성근: 규칙을 정할 때, 아이들에게 이 규칙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 충분히 설명해주고 아이들 스스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했다. 아이들에게 자주 했던 말 중 하나가 “아빠를 설득해 보라”는 말이었다. 무조건 반대하는 게 아니라, 원하는 걸 들어보고 그것이 타당하면 아빠가 양보하겠다고 말했다. 찬혁이 같은 경우에는 자신의 요구를 말로 표현하는 게 익숙한 아이가 아니라서 오히려 힘들었을 거다. 아빠를 설득하는 게 아니라 아예 말하는 걸 포기해버린 경우였는데, 당시에는 내가 찬혁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던 거다. 그래서 찬혁이가 사춘기를 겪을 때, 나와의 갈등의 시간이 꽤 길었다.

 

대개 사춘기를 보내는 자녀를 둔 부모들은 ‘기다림의 미학’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기다려주는 것이 과연 최선인가?


이성근: 아내와 나는 조금 다르다. 아빠 입장이 있고 또 엄마 입장이 있으니까. 또 남자의 성향, 여자의 성향도 다르기 때문에 대처했던 방법이 좀 달랐다. 아내는 무작정 기다리는 편인데, 나는 인내심이 부족한 편이고 또 적극적으로 소통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내 생각을 이야기하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간과했던 게, 찬혁이의 성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거다. 찬혁이가 고개를 끄덕이니까 내 생각을 받아들였다고 생각했는데, 찬혁이는 아빠랑 대화하는 걸 포기했던 거다. 이건 나의 실수였다. 다행히 지금은 찬혁이가 많이 달라졌고 나 역시 많이 기다려주려고 노력한다.

 

만나고-악동부모님

 

성형 수술은 절대 반대했다


악동뮤지션의 <K팝스타> 출연이 가족에게도 많은 영향을 끼쳤을 텐데.


이성근: <K팝스타>는 찬혁이와 수현이가 부모의 도움 없이 스스로 성취한 대단한 사건이었다. 아이들을 응원하고 지지했지만 부모로서는 걱정이 많이 됐던 게 사실이다. 방송은 우리가 접근할 수 없는 영역이었으니까, 멀리서 지켜봐야 하는 입장이었기 때문에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프로그램을 계속 지켜보면서, 그동안 찬혁이에 대해 잘 몰랐고 과소평가한 부분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후 찬혁이를 대하는 내 태도가 완전히 변했다. 특히 아이들이 쓴 책 『목소리를 높여 high!』를 읽고 깨달은 것 중 하나가 찬혁이가 아빠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더 열심히 곡을 만들었다는 점이었다. 아빠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고 소통하길 원했다는 걸, 책을 보면서 뒤늦게 깨달았다.

 

<K팝스타> 우승을 한 후, YG엔터테인먼트와 계약을 했다. 아이들과 다시 몽골 생활을 이어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을 텐데, 아쉬운 마음이 들지 않았나? 갑자기 연예계 생활을 시작하게 된 아이들이 많이 염려스러웠을 텐데.


이성근: 그동안은 항상 내가 먼저 가본 길을 아이들에게 가르쳤는데, 연예계 생활은 내가 가본 길도 아니었기 때문에 걱정이 많았다. 우리에겐 상당한 모험이었다. 차라리 우승을 하지 않았더라면, 시간이 지난 후에 아이들에게 맞는 기획사를 천천히 선택하고 또 몽골에 가서 홈스쿨링도 다시 할 수 있었을 텐데, 3사 기획사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입장이 되니 정말 고민이 많았다. 그런데 막상 YG엔터테인먼트와 계약하고 회사의 방침을 보니 안심이 됐다. 다행히 엄마와 함께 생활할 수 있도록 여건을 보장해줬고, 정해진 커리큘럼이 아닌 먼저 아이들이 원하는 걸 물어본 다음에 마음껏 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해주더라. 우리의 걱정이 기우였다는 걸 깨달았다. 아이들이 1집을 내고 데뷔하는 모습을 보고, 좀 놀랐다. 이전보다 더 아이들다운 모습이라서. 찬혁이와 수현이가 갖고 있는 성격이나 기질이 그대로 드러나서, 이제 안심해도 되겠다는 마음이다.

 

YG엔터테인먼트에게 특별히 요구했던 사항은 없었나?


주세희: 성형 수술은 안 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다(웃음).

 

이성근:우리가 연예계를 잘 몰랐기 때문에 기획사에게 전권을 줘야 하는 줄 알았다(웃음). 성형 수술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더니, 기획사에서도 “우리도 시킬 생각이 없다”고 하더라. 우리가 기독교 신앙인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교회활동을 하는데 있어서 자율권을 줬으면 좋겠다고 했고, 너무 화려한 무대만 서는 게 아니라 아마추어일 때 섰던 거리공연이나 작은 공연도 함께 병행했으면 한다는 말했는데, 고맙게도 긍정적으로 피드백을 받았다.

 

악동뮤지션의 노래 중에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무엇인가.


주세희: 「작은별」을 좋아한다. 처음 이 노래를 딱 들었을 때, 가사가 무척 마음에 들었다. 아이들 나이에 제일 잘 맞는 것 같고, 청소년이 듣기에도 부모들이 듣기에도 모든 연령대가 불러도 좋은 노래인 것 같다. 「인공잔디」도 좋아하는데, 찬혁이가 이 노래를 만들었을 때 정말 놀랐다. 멜로디는 경쾌한데, 가사를 곰곰이 읽다 보면 그렇게 경쾌한 내용은 아니다. 들으면 들을수록 메시지가 뇌리에 박히고, 마음이 아프다고 해야 하나. 아련해지는 그런 느낌이 있다.

 

나에게는 해도 물도 필요하지 않아
그런 거 없이도 배부르게 살 수 있으니까
나에게는 시들 걱정 필요하지 않아
밟히고 뭉개져도 내 색을 잃지 않으니까

 

모든 게 좋아 보여
All things I have are looking good
하지만 내가 행복하지 못했던 이유는
You know why?

 

나도 숨 쉬고 싶어
비를 삼키고 뿌리를 내고 싶어
정말 잔디처럼
정말 잔디처럼

 

- 악동뮤지션 「인공잔디」

 

이성근: 나에게는 「안녕」 이라는 노래가 특별하다. 몽골에 있을 때, 아이들과 아침마다 성경을 묵상하고 기도를 했는데, 당시 한국 청소년들이 왕따나 성적 비관으로 자살하는 뉴스를 많이 접했다. 기사를 보면서 마음이 너무 아파서 아이들과 한국 청소년들을 위한 기도를 종종 했는데, 그때는 아이들이 얼마나 이 이야기에 공감했는지 몰랐는데, 찬혁이가 「안녕」을 만들었을 때 가슴이 아리고 눈물이 많이 났다. 찬혁이가 평소에는 무관심하게 넘어가는 것 같은데 이렇게 마음에 담고 있었구나, 새롭게 깨달았다. 왕따를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슬퍼하기보다는 좀 더 담담하게 현실을 그려낸 것을 보고 많이 놀랐다.

 

안녕 나는 너를 아는데
너는 나를 모르지
그 동안 말도 하지 않고 매일
저 만치서 어울리고 있는 너희를 바라보고

 

다가갈까 말까 말 걸어볼까 말까
이런 인사가 나을까 이런 날 반겨줄까
오늘도 생각만 하다가 기회는 떠나가

 

혼자라는 게 얼마나 외로운지 아니

날 피하는 게 보일 때 얼마나 서운한지 아니

 

날 멀리 두지 말아줘
날 여기에 이대로 두어줘
그저 너희가 있는 자리에
함께 있는 것만으로
내겐 안심이 될 테니

 

- 악동뮤지션 「안녕」

 

만나고-악동부모님

 

부모가 과도한 책임감을 내려놓았을 때, 아이들에게 일어나는 일


찬혁이는 올해 19살이 됐다. 대입을 준비하고 있는지.


주세희: 현재로서는 아직 계획이 없다. 대학을 가고 싶어 하긴 하는데, 본인이 원할 때 마음 편하게 생각하라고 말했다.

 

이성근:예전에 찬혁이가 대학을 가고 싶어한 건, 친구들이랑 놀아야 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지금은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이 생겼기 때문에 대학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이 없다. <K팝스타>가 끝나고 막연하게 “대학에 가면 실용음악을 전공할까요? 작곡을 전공할까요?”라고 물어온 적이 있는데, 지금은 기획사에서 이미 다 배우고 있으니까. 대학에서 다른 걸 배울만한 일이 없어졌다. 열심히 곡을 만들고 악기를 배우는 걸 더 재밌어 한다.

 

엄마는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지만, 아빠는 몽골로 돌아가 선교사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아빠 입장에서는 서운하고 외로운 마음도 많을 것 같다.


이성근: 초기 6개월 정도는 정말 힘들었다. 몽골에서는 언제나 집에서 바글바글하게 아이들과 함께 지냈는데, 이제는 정적이 흐르니까(웃음). 익숙하지가 않고 너무 외롭고 공허하더라. 그래도 지금은 많이 적응됐고, 원하면 아이들을 볼 수 있는 환경도 열렸으니 예전만큼 외롭진 않다.

 

이제 본인의 이름보다 ‘악동뮤지션의 엄마, 아빠’라는 타이틀로 더 많이 불리지 않나?


이성근: 내 이름이 없어졌다(웃음). 예전에는 이성근 선교사라는 타이틀이 나를 나타내는 수식어였는데, 지금은 무조건 ‘악동 아빠’다. 썩 반가운 일만은 아니다(웃음). 이제는 내 자리도 다시 찾아야겠다고 생각한다.

 

부모로서 아이들에게 이것만은 참 잘했다고, 스스로에게 칭찬을 한다면 무엇이 있을까.


주세희: 친구 같은 엄마가 되어준 일인 것 같다. 아이들의 엄마지만 늘 친구처럼 대하려고 노력했다. 지금도 찬혁이나 수현이가 속 이야기를 많이 털어 놓는다. 다섯 살이면 다섯 살처럼 놀아주고, 나이에 맞게 친구가 되어준 게 가장 잘한 일인 것 같다.

 

이성근: 내가 잘못한 일이 있을 때, 아이들에게 사과하고 용서를 구한 일이다. 아빠로서 아이들이 잘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한 행동이었겠지만, 나 역시 실수가 많은 아빠다. 내 실수라는 걸 정직하게 인정하고 아이들에게 용서를 구한 게, 가장 잘한 일 같다. 특히 찬혁이가 사춘기를 겪었을 때 거리가 멀어졌는데, 내 실수를 인정하고 나니 다시 가까워질 수 있었다. 요즘 흔하게 하는 말로 ‘신의 한 수’였던 것 같다(웃음).

 

주세희: 그런데정말 잘못을 깨닫고 해야지, 말로만 하는 용서는 효과가 없다. 아빠가 진심으로 사과를 했기 때문에 아이들과의 관계가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다.

 

제목부터 느껴지는 게 참 많다. 어떤 독자들에게『오늘 행복해야 내일 더 행복한 아이가 된다』를  추천하고 싶나?

 

이성근: 사실 이 책에는 아빠의 반성문이 포함되어 있다. 요즘 부모들은 아이들이 잘되도록 성공할 수 있도록 길을 잘 닦아줘야 한다는 ‘과도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는데, 『오늘 행복해야 내일 더 행복한 아이가 된다』는 그 과도한 책임감을 내려놓았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다. 자녀교육에 부담을 많이 갖고 있는 부모들이 읽으면 좋은 참고가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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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행복해야 내일 더 행복한 아이가 된다이성근,주세희 공저 | 마리북스
이 책은 결코 넉넉하지 않은 선교사 가정에서 자존감과 충만감이 가득한 아이들로, 아이의 재능을 발굴해서 실력 있는 뮤지션으로, 건강한 자아를 가진 아이들로 키울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때로는 친구처럼 재미있게, 때로는 아이들의 절대적인 지지자인 든든한 응원군으로, 때로는 절제를 품은 신앙인의 엄격한 자세로! 그 살아있는 이야기들을 들으며 언제 어디서나 ‘기본’이 얼마나 소중한지도 부모로서의 자신도 되돌아보게 할 것이다. 저자들은 “많은 아이들과 부모들이 내일이 아닌 오늘 행복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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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애 “나를 관찰하는 습관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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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CD 국가 중 행복지수 최하위, 세계에서 손꼽는 자살률, 노동시간은 많지만 생산성은 떨어지는 국가.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끊임없이 성공을 동경하고,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발버둥친다. 물론 개중에는 종종 ‘포기’를 떠올리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대부분은 다시금 밝은 미래를 기대하며 자신을 부여잡는다. 어찌 보면 숨 막히는 압박감과 부담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김진애 박사는 그런 그들에게조차 ‘더 독해지라’고 권한다. 그녀의 삶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어리둥절한 권유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김진애라는 사람이 어떤 길을 걸어 왔는지, 그녀가 어떻게 ‘김진애너지’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는지를 알아가다 보면 어리둥절함은 곧 사라진다. 비로소 ‘독해지라’는 의미에 함축된 응원과 위로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서울공대의 살아 있는 전설, MIT 건축 석사 및 도시계획 박사, <타임>지 선정 ‘21세기 리더 100인’ 중 유일한 한국인…. 김진애 박사를 수식하는 말들 뒤에 숨어있는 것은 남다른 호기심과 열정을 바탕으로 한 엄청난 노력이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절대 놀라운 능력의 소유자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그뿐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들과 똑같이 시련에 힘겨워하고 슬럼프를 겪고, 때론 도망치고 싶은 충동이 있었음을 고백한다. 남들처럼 그녀의 삶 역시, 크고 작은 괴로움과의 무수한 전투였다. 그녀라고 그 와중에 비겁해지고 싶은 순간이 없었을까? 회피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을까? 그에 대한 답은 한 권의 책 속에서 얻을 수 있다.『한 번은 독해져라』는 그녀가 지난 삶 속에 직면했던, 그리고 오늘도 직면하고 있는 무수한 흔들림, 그리고 그 흔들림에 어떻게 대처하는지에 대한 고백이자 일종의 인생특강이다. 인생에서 직면하는 다양한 상황과 갈등에 대처하는 그녀만의 비결은 과연 무엇일까? 이제부터 알아보자. 

 

만나고-김진애

 

스스로 독해진다는 것

 

'한 번은 독해져라'라는 제목이 인상적입니다. 책에서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 이라는 의미를 포함해 다양한 의미가 있음을 말씀해주셨는데요. 한편으로 박사님의 삶 자체를 의미하는 말이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맞아요(웃음). 김진애니까 쓰는 거죠. 어떤 서평을 보니 ‘제목보다는 다정한 책’이라고 하더군요. 사실 제가 이 책을 쓰면서 머릿속에 가지고 있던 제목은 ‘왜 나는 나를 괴롭힐까’ 였어요. 대부분의 고통이나 괴로움들은 다 자기 스스로를 괴롭히는 것이잖아요. 사실 남들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거든요. 결국 그것을 이겨내는 법은 ‘스스로에게 약속을 만들고 지키는 것 외에는 없다’는 것이 제 평소의 소신이에요. 요즘은 트렌드가 힐링, 치유, 위로 같은 것들이잖아요. 그런데 전 그런 부분에 대한 아쉬움이 있어요. 솔직히 힐링을 하는 것도 스스로 독해지지 않으면 안 되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좀 강도 높은 메시지로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것이 제 삶의 메시지이기도 하고요.

 

한편으로 점점 더 살기 어려워지는 사회에서 발버둥치며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더 독해지라’는 것이 너무하다 싶기도 한데요.


사람에 대한 정, 기존에 질서에 관련된 생각들, 시간에 관련된 것들 등 우리의 삶 속에는 무수한 유혹이 있어요. 그런 것들로부터 자기 자신을 지켜낸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죠. 그래서 스스로 독해져야 한다고 얘기한 거예요. 우리사회가 굉장히 나약하다고 봐요. 자기 자신을 위해서 독해질 수 있는 능력이 있느냐를 봤을 때는 아직도 상당히 약한 편이라고 생각하죠. 우리 사회는 체면. 특히 남들한테 정상으로 보이기 위해 들이는 노력, 비정상적으로 보이지 않기 위해 들이는 노력 등 쓸데없이 구애 받는 게 너무 많아요. 사회가 무한 경쟁이나 치열함 같은 것들을 요구할수록 이런 것들에 구애받지 말고 강해져야 만이 흔들리지 않는 힘이 생기거든요.

 

박사님께서는 '일을 한다, 일을 잘한다, 일을 즐긴다'라는 좌우명을 가지고 계시다고 알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10가지 상황대처법은 모두 일을 잘하기 위한 방법인 듯도 한데요. 그럼으로써 박사님께서 추구하는 목적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좌우명은 그 외에도 많아요(웃음). 어쨌든 그 목적은 당연히 재미있게 사는 것, 스스로의 의미와 뜻을 느끼고 사는 거죠. 솔직히 일에 대한 강박증은 제 스스로 인정하는 바에요. 그리고 저는 일이 없으면 삶의 의미가 없다고 생각을 하는 편에 속하고요. 하지만 ‘일’은 유한한 존재로서의 인간이 스스로의 의미를 확인하는 중요한 수단 중 하나라고 봅니다. 일을 하지 않고 살 수 있나요? 누구나 일하지 않으면 살아가기 어려워요.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는가’가 많은 사람들의 고민들이죠.

 

책의 서두를 보면, 과거 집필하셨던 『사람으로 자라기』를 바탕으로 썼다고 밝히셨는데요. 그때가 40대셨다고 하셨습니다. 60대로 접어든 지금 달라진 것은 무엇인가요?


『사람으로 자라기』를 썼을 당시 역시 나름대로 산전수전 다 겪고 한창 활동의 중심에 섰을 때였어요. 그 외에도 『매일매일 자라기』,『사람으로 자라기』를 출간하며 ‘자라기 3부작’을 집필했어요. 그런데 제가 지금 느끼는 것은 그 때보다 더 힘들면 힘들었지 하나도 달라진 게 없다는 거예요. 그렇게 많은 노하우를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자신을 괴롭히고 있구나’ 그리고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은 괴로움들이 세상에 생겨났구나’하는 생각을 하죠. 그래서 더 안타까워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만큼 노하우를 가진 사람들 역시 더 많아졌다는 생각도 듭니다. ‘스스로 독해지는 것’의 가장 큰 노하우는 스스로를 객관화시켜 보는 거예요. 자신에게 거리감을 두고 객관적으로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 자신의 괴로움을 객관화 시켜 보는 거죠. 요즘은 그런 사람들이 예전에 비해 많아져서 동질감을 느끼기도 해요. 물론 그런 노하우를 아직도 습득하지 못한 사람들이 더 많죠. 세상에서 지우는 온갖 부담에 너무 치여서 사는 사람들을 보면 참 안타까워요.

 

만나고-김진애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


도망가고 싶고, 스트레스를 받고, 슬럼프에 직면하고, 일에 치이고, 자신감을 잃고, 외로움을 느끼는 등의 감정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언젠가는 직면하게 되는 흔들림이다. 김진애 박사는 책을 통해 그 모든 상황에서 독해지는 법, 흔들리지 않는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언뜻 보기에는 강한 어조로 다그치는 듯하지만, 문장 하나하나를 곱씹어보면 공통된 메시지를 짐작할 수 있다. 바로 ‘당신만 그런 것이 아니다’이다.

 

책에서 반복적으로 강조하시는 것이 '나만 그런 것이 아니다' '당신만 그런 것이 아니다'인 듯한데요.


가까운 사람들에 의해 위로를 얻는 연대감과는 조금 다른 의미의 연대감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사실 아주 가까운 사람들이 우리를 더 흔들리게 할 때가 은근히 많은 거 아세요? 개인을 옥죄고, 책임감이라는 말로 자유를 구속하기도 하죠. 저는 그보다는 조금 떨어진 상태에서 연대할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봐요. 그게 우리가 살아가는 맛을 순간순간 느끼게 해 주거든요. 하지만 우리 사회는 그런 연대가 너무 부족해요.

 

단순하게 얘기하면 제가 인생에서 바라는 무수한 것 중에 하나가, 길거리에서 다른 사람하고 우연히 앉아서 자연스럽게 어떤 문제에 대해 토론을 하는 것이에요. 대화의 주제가 사회적인 이슈든, 아니면 노년의 문제든, 사랑의 문제든 간에 한 30분 동안 낯선 사람과 그런 얘기할 수 있는 것이 일종의 연대가 될 수 있는 거죠. 저는 외국에서 그런 경험을 해 봤어요. 영어를 잘하지 못했음에도 그것이 가능했다는 것은 인간으로서 통했다는 말이에요. 조금은 넓게, 그러면서도 진솔하게 자기의 속을 드러내면서 자기의 생각을 얘기할 수 있는 맛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항상 자신감 있어 보이던 보스가 어느 우연하게 자신의 흔들림을 얘기하면 조금 더 존경스럽고 인간다움을 느끼잖아요. 그처럼 다른 사람들의 속을 들여다보고 자신의 속내를 털어 놓으며 통한다는 것은 사람이 살아있는 순간들에 맛을 더하는 방법이에요.

 

글에서 강약, 혹은 리듬이 느껴졌다고 할까요? 뭔가 혼을 내고 다그치는 듯하면서도, 한편으로 위로를 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밖에서는 저를 굉장히 카리스마 있는 사람으로 보지만, 한편으로 저도 엄마거든요. 나약한 점도 있어요(웃음). 또 어떤 사람들은 저를 두고 콤플렉스가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사실 엄청나게 콤플렉스를 겪어온 사람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일을 할 때나 아이를 키울 때 다독일 때도 있고, 채찍질을 하거나 무섭게도 해요. 때론 유쾌하게도 대해주죠. 아마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면 제가 여러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밀고 당기는, 힘을 가지고 조절하는 훈련을 많이 했기 때문일 거예요.

 

‘나쁜 스트레스를 좋은 스트레스로 바꾼다'는 부분이 와 닿았습니다. 음악을 듣는 것을 참 좋은 방법이라고 제시하셨고요. 박사님께서는 어떤 음악을 즐겨듣는지, 궁금합니다.


(웃음)저는 이른바 DJ시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사람이에요. AFKN도 많이 들었죠. 덕분에 영어 귀가 틔기도 했고요. 솔직히 저는 온갖 종류의 음악에 감동을 잘하는 편이에요(웃음).  어떤 이들은 나이든 사람들이 요즘 노래를 싫어한다고 하지만 전 좀 달라요. 가령 싸이가 처음 ‘새’라는 곡을 불렀을 때 전 싸이를 천재라고 얘기했거든요.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를 들을 때면 ‘아 인간은 대단해’라고 느끼기도 하고, <별그대>에 나오는 효린의 ‘안녕’이란 노래도 정말 좋아하고요. 아, 노래 이야기를 하니까 스팅의 ‘Shape Of My Heart’는 꼭 손꼽고 싶네요. 제가 그 노래를 워낙 좋아하거든요. 그 노래를 듣고 있자면 스팅이라는 사람이 인생의 뜨거움과 쿨함을 제대로 알고 있다는 걸 느껴요. 그래서 음악이 정말 좋아요.

 

만나고-김진애

 

끝 모를 열정의 비결


김진애 박사는 1990년에 서울포럼을 설립하며 처음 책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그 후 농담처럼 했던 ‘1년에 책 1권씩 내겠다’는 말이 지금까지 지켜지고 있다. 스스로 가장 독해질 수 있는 새벽 시간에 주로 글을 쓴다는 그녀. 책을 통해 독자들을 직접 만날 수 있고, 자신의 생각을 가감 없이 전할 수 있다는 확신은 지금도 그녀로 하여금 다양한 주제의 글쓰기를 이어가게 하고 있다.  

 

다양한 책을 집필해 오셨습니다. 그 많은 호기심의 근원은 무엇인지 궁금한데요.


사실 제 책의 주제는 사람, 인생, 도시건축 이 세 가지에요. 단지 사람과 인생이라는 주제가 엄청나게 넓은 분야고 쓸 거리가 많기에 그렇게 보이는 거겠죠(웃음). 호기심을 잃지 않는 비결이라, 저도 가끔은 어떻게 끊임없이 새로운 주제가 나오는지 궁금할 때가 있어요. 사실 제게는 앞으로도 쓸 책의 목록이 있거든요. 컴퓨터 파일로도 저장해 놓고 있고, 작은 수첩에도 적어놨죠(웃음). 하지만 유독 제가 호기심 굉장히 많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저 뭔가를 실천해 보고 싶다는 동기부여가 강한 편이죠. 그리고 굳이 이야기한다면 감동하는 능력이라고 할까요. 감동에도 여러 가지가 있어요. 제가 이야기하는 감동은 지적인 감동, 영적인 감동이죠. 이런 감동을 느낄 수 있는 능력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크다고 생각해요. 그 능력을 키우는 것이 바로 공부죠. 저는 그런 감동이 좀 많은 편에 속하는 거고, 그걸 실천하고자하는 의지가 맞물려 호기심을 갖고 책을 쓰는 일들을 이어가고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어쩌면 우리사회란, 호기심을 잃게 하는 사회가 아닐까도 생각되는데요. 무엇이 문제라고 보시는지요?


호기심이라는 건 근본적으로 ‘왜’잖아요. 그런데 우리사회는 ‘왜’라는 질문을 하지 못하게 하죠. 제가 어렸을 때 ‘너 참 이상하다’라는 소리를 많이 듣고 살았는데 순전히 어린아이의 호기심을 표현했다는 이유 때문이었어요. 어린 나이에는 물어볼게 얼마나 많아요. 그런데 어른들은 귀찮으니까 이상하다는 식으로 억눌러버린 거죠. 저는 어른들하고 얘기하면 상처받는 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았어요. 그래서 더욱 책으로 도망가곤 했죠. 그 때 제가 결심한 것이 ‘내가 크면 말을 못해서 답답해하는 상황은 절대 안 만들리라’ 였어요. 그게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도 모르고 한 결심이었죠(웃음). 호기심이란 눈덩이와 같아요. ‘왜’라는 게 한번으로 끝나는지 않고 계속 다음 단계로 가거든요. 그게 가능해지는 사회가 현 정부가 이야기하는 창조사회인데, 사실 그렇지 못한 게 문제죠.

 

앞으로 쓸 책의 목록은 무엇이 주제가 될지 궁금한데요?


장기적으로 쓰고 싶은 건 두 가지에요. 하나는 어린이들을 위한 건축 이야기고 하나는 추리소설이죠. 특히 어린이들을 위한 건축 이야기는 죽기 전에 꼭 써야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왜냐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공간에 대한 감각이 굉장히 뒤떨어져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공간에 대한 감각은 상상력에 굉장히 중요한 밑바탕이거든요. 자라나는 세대들은 어린 시절부터 그런 훈련이 됐으면 좋겠어요. 상상력은 삶을 훨씬 더 행복하게 해주죠. 그 외에 ‘사랑’이라는 주제도 생각하고 있어요. 김진애가 사랑에 대해 쓴다면 그래도 조금은 세상이 달라지지 않을까 싶어요(웃음).

 

『한 번은 독해져라』는 세대를 막론하고 이 시대의 힘겨움에 직면하고 있는 사람들 모두에게 필요할 듯합니다. 독자들에게 꼭 강조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자기 자신을 관찰하는 습관을 꼭 가지라고 하고 싶어요. 그걸 통해서 스스로를 객관화 시켜보는 습관을 키웠으면 해요. 또 그와 함께 자신의 패턴을 봐야죠. 사람의 패턴은 저마다 다르거든요. 자신의 패턴을 파악하고 있으면 흔들릴 지라도 완전히 가라앉지는 않아요. 오히려 그 흔들림이 더 새로운 자신을 만들어 내죠. 그 다음으로 자기 자신을 위해서 독해진다는 것이 어떤 뜻인지를 생각했으면 해요. 아마도 그 뜻은 사람들마다 조금씩 다르게 다가갈 거예요. 그 답을 스스로 찾으려는 노력이 정말 필요합니다. 항상 강조하는 것이지만 삶은 자신이 사는 거예요. 자기 스스로를 위해 사는 것이거든요. 그러니 자신에 대한 생각들을 좀 더 당당하게 했으면 좋겠어요. 

 

김진애 박사는 이야기의 말미에 다시금 연대의식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현 시점을 ‘우리 뿐 아니라 세계가 새로운 모델을 찾아야 하는 때’라고 정의했다. 물론 그 답은 그녀조차 아직 정확치 않다. 어쩌면 정답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것이 더 맞을 듯하다. 다만 그녀는 “인간이 자신의 자존심과 존엄을 잃지 않고 사는 것, 행복하고 멋지게 살아가는 것”이 바람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녀는 내내 우리에게 ‘독해지길’ 권하나 보다. ‘스스로를 위해 독해지는 것’은 저마다의 고민과 결심을 필요로 한다. 어쩌면 김진애 박사는 아직 ‘독해지지 못한’ 이들에게 일종의 화두를 던진 셈이다.

 

자, 당신은 어떻게 할 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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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독해져라김진애 저 | 다산북스
『한 번은 독해져라』는 다양한 분야와 영역을 넘나들며 전방위 활동을 펼쳐온 김진애 박사가 일과 인생 사이에서 자신감을 잃고 흔들리는 이들을 위해 쓴 책이다. 도망가고 싶을 때, 무슨 일을 해야 할지 혼란스러울 때,내가 너무 하찮게 느껴질 때, 외로울 때, 당신은 어떻게 하는가? 김진애 박사는 독하게 스스로를 단련시킬 줄 아는 프로로서, 인생 선배로서 시원시원한 충고와 현실적인 조언들을 우리에게 들려준다. 나 자신만의 시간과 공간을 만드는 법, 나를 성장하게 만드는 주목의 법칙, 등 때론 섬세하게, 때론 대범하게 스스로 독해져보는 원칙과 방법들이 이 책에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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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정 “치맥 먹을 때 이 정도는 알고 먹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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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치킨 공화국이다. 아니, 치맥 공화국이다. 치킨과 맥주는 한국 사람이 가장 흔하게 찾는 메뉴다. 찾아가서 먹기도 하고 배달시켜 먹는 메뉴로도 치킨의 위세는 높다. 『대한민국 치킨전』은 이런 치킨을 다룬 책이다. 제목만 본다면, 대한민국의 유명 치킨집을 탐방한 맛집 기행 같기도 하지만 이 책은 본격 치킨 사회학을 지향한다.

 

저자인 정은정은 대학에서는 사회학을 전공하고, 지금도 농촌과 농업 문제를 고민하는 학자다. 그녀의 주된 관심사는 먹거리 산업화. 음식이 산업화되면서 나타나는 여러 문제에 관심을 두기에, 치킨은 정은정이 낸 첫 책의 주제가 되었다. 저자는 치킨 하나로 고용, 자영업, 프랜차이즈, 축산업, 농촌, 청년 노동, 맥주 회사 등 한국사회의 여러 모습을 분석해냈다. 양념치킨은 달콤하지만, 『대한민국 치킨전』이 그려내는 한국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쓰고 텁텁할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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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으로 보는 한국 사회의 어두운 단면


치킨에 주목한 계기가 궁금하다.

 

우선 한국 사람이 좋아하고 많이 먹는다. 나만 해도 안 먹으려 해도 아이 키우다 보면 먹게 된다. 술자리 있으면 먹고. 학생들이 정말 좋아해서 치킨집으로 가게 된다. 이런 치킨에는 농업, 산업, 기업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얽혀 있다. 치킨 하나로 사회의 여러 면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닭을 영어로 하면 치킨이지만, 치킨을 한국말로 풀면 닭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치킨의 한국적인 특수성이 있다는 말일 텐데. 책에 KFC가 한국에서 고전하는 이유를 분석하기도 했다.
 
KFC가 맥도날드와 더불어 대표적인 글로벌 프랜차이즈다. 동남아시아나 중국에서 인기가 많은데 한국에서는 힘을 못 쓴다. 한국의 토착화에 실패한 까닭이다. 문화, 맛 다 놓쳤다. 첫째, 한국은 집 안까지 배달해주기를 바란다. 둘째, 맥주와 함께 먹는 게 치킨인데 KFC는 주류를 취급하지 않는다. 셋째, 1997년도가 결정적이었다. 원래 치킨집이 많았는데 IMF 전후로 창업을 할 수밖에 없었던 사람이 쏟아져 나왔다. 동네 곳곳에 여러 치킨집이 생기면서, KFC를 먹으러 굳이 시내까지 갈 필요가 없어졌다.

 

책에서 중요한 비중으로 다룬 게, 한국의 고용 문제인데.

 

치킨에서 보고 싶었던 건 한국에서 외식을 중심으로 하는 자영업이 과하게 팽창된 현상이었다. 치킨이 아니라. 김밥, 떡볶이를 대비해도 무방할 것이다. OECD 국가 중에서 자영업자가 높다는 건, 고용 안정성이 떨어진다는 의미다. 공공 부문이 흡수하지 못해서 자영업으로 내몰리는 사람이 많다. 치킨은 한국의 불안정한 고용 상황을 보여주는 중요하면서도 대표적인 사례다.
 
연구자가 사회 문제를 연구하면서 가장 내리기 쉬운 결론이 가장 나쁜 누군가를 지목하는 것일 텐데. 이 책은 그런 어조는 아닌 듯하다. 치킨집 점주, 프랜차이즈 본사, 양계업계, 소비자 등 다양한 주체의 현황을 보여주면서 입체적으로 문제를 그려낸 것 같다. 그럼에도 가장 나쁜 주체는 누구일까?

 

아무래도 독점을 강화하는 육계회사가 가장 문제가 아닐까. 시장자본주의라고 한다면 수요와 공급이 맞게 돌아가야 하고, 이게 시장자본주의를 정당화하는 유일한 원칙일 텐데. 육계회사가 많이 침해한다. 또 한편으로는 일부 메이저 프랜차이즈 본사. 취재하면서 점주에게 하는 폭압적인 행태에 분노를 많이 했다. 두 주체는 상당히 큰 반성을 해야 한다. 그런데 반성을 스스로 할까. 사회가 감시해야 하겠고. 감시를 하기 위해서는 정보를 알아야 한다. 그 정도의 작은 역할을 하려고 이 책을 냈다.

 

반성해야 할 업체로 양계업을 먼저 꼽았는데, 양계산업과 조류독감 인과관계는 어떻게 보나.

 

조류독감 원인은 여러 가지일 테고, 정부에서는 철새라고 말한다. 밀식사육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내가 관심을 갖는 건, 조류독감이 터지면 누군가에는 악재가 되고 누군가에는 호재가 된다는 사실이다. 처음 조류독감이 발견됐을 때는 치킨집과 육계회사는 모두 악재였다. 조류독감에 적응이 되면서, 시장 공급 능력과 시장 장악 능력이 있는 회사에는 조류독감이 호재다. 육계회사 주식이 오른다. 이게 작년 연말 현상이었다. 반대로, 양계 농가 중에서 한 분은 자살했다. 극단적인 모순을 본 거지. 사회적 불행이 닥쳐도, 그 불행을 좋은 기회로 삼아서 이익을 얻는 집단이 있고, 어려운 집단이 있다. 호재인 집단은 극소수, 돈도 많고 잘나가는 기업이다. 치킨집 하는 사람이나 양계업자는 어려운 상황에 놓인다.

 

경기불황이 일부 대기업에는 호재가 될 수 있듯, 조류독감은 일종의 구조조정으로 볼 수 있나.

 

닭이 과잉생산된다는 건 다 안다. 그래서 닭값이 올라가지 않는다. 조류독감이 발생하면 도살처분 해서 공급량이 조절된다. 이런 사실을 일반 소비자는 잘 모른다. 다 같이 힘들 거라 생각하지만, 실제로 육계회사는 좋다. 그들은 인정 안 하겠지만.

 

조류독감의 원인을 철새에서 찾는 게 경제불황이나 사회불안을 이주노동자 탓으로 돌리는 발상과도 유사한데.


실제로 원인이 철새에 있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양계환경이라든가 구조적인 원인이 있는데도 그걸 다 외면하고 해결책을 아웃소싱하는 거다. 철새 때문이니 어떻게 할 수 없다고 하는데, 비겁한 핑계다. 사육 두수 조절해야 하고, 환경 개선해야 한다.

 

스마트폰으로 이용할 수 있는 배달음식 주문 앱에 관한 지적도 새로웠다. 앱에서 수수료를 떼가니, 앞으로 닭 가격이 올라갈 것 같다.

 

가격이 올라가면 좋겠지만 가격은 올리기 어렵다. 소비자가 치킨에 지불할 수 있는 가격은 마지노선이 있다. 게다가 치킨집이 워낙 많고 경쟁이 치열하니 가격은 올리기 쉽지 않다. 그러니까 운영하는 점주 입장에서는 원가 압박이지. 피해 보는 사람은 치킨을 튀겨서 파는 자영업자들이고. 두 번째는 소비자가 될 것이다. 원가를 맞추려고 하다 보면 싼 식재료를 쓴다거나 하는 식이 될 거니까. 물론 소비자한테는 앱이 편하다. 없애야 한다고는 말할 수 없고, 수수료는 낮춰야 한다. 현재 앱 시장은 준독점인데, 수수료만 13~16퍼센트에 이른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부 앱이 수수료를 낮추겠다고는 했으나, 실제로 낮췄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건 공론화시킬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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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값, 적정한가?


맥주도 중요한 비중으로 다뤘다.

 

한국에서는 치킨만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치맥을 이야기해야 한다. 재밌는 건, 프라이드 치킨은 공급자가 엄청나게 많은 완전 경쟁 시장에 가깝다. 그런데 맥주는 하이트, 카스 딱 두 개다. 롯데 클라우드가 진입했지만 시장 점유율이 아직은 낮다. 해방 이후부터 맥주시장은 독점이었다. 치맥은 완전경쟁과 독점이 만난 거지. 한국 맥주가 맛없다고 하는데. 회사가 두 개밖에 없으니 맛의 다양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가장 궁금해하는 내용일 텐데, 치킨값 적정한가? 소비자들은 비싸다 생각하고 공급자들은 싸게 공급한다 생각한다. 직접 취재하면서 어떻게 느꼈나.

 

소비자 입장도 이해 간다. 롯데마트 통큰 치킨으로 5천 원으로 가능하다는 걸 깨달았다. 실제로 전통시장이나 재래시장에서는 그 가격으로 살 수 있다. 집에서 시키는 프랜차이즈 치킨은 그보다 비싸다. 그런데 거기에 숨은 비용이 엄청나게 많다. 본사에서 공급하는 닭값은 정해져 있다. 아무리 닭이 많아져도 닭값은 안 떨어진다. 양계회사가 반독점이라 가격 조절하니까. 치킨점주가 조절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또 중요한 게 부동산 가격. 한국 음식의 가장 큰 특징인데, 김밥도 그렇지만 치킨에도 부동산 가격이 포함돼 있다. 롯데마트는 자기들의 자산 공간에서 이뤄지는 거니까 이 가격은 뺄 수 있다. 그리고 인건비라든지 점주가 이야기하는 운영비, 이런 걸 다 고려하면 치킨은 마진율이 상당히 상당히 낮은 메뉴다. 소비자는 닭집이 많고 경쟁이 심하니, 더 싸져야 하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구조다.

 

듣다 보니, 치킨은 커피와 비슷한 상황 같다.

 

커피가 더 어려운 걸로 안다. 나도 커피집을 했었는데, 치킨 창업하려는 사람들도 하고 싶은 게 따로 있다. 대표적인 게 카페. 술도 취급 안 하고, 덜 고생스러울 것 같아서 하고 싶지만 커피집은 퇴출비율이 90% 정도다. 치킨은 70% 정도이고. 커피가 더 무서운 시장이다. 인테리어 싸움이다 보니 커피가 치킨보다 창업 비용이 많이 든다. 그런데 객단가는 떨어진다. 한 잔 팔면 마진이 별로 없다. 카페 현상도 한국의 독특한 현상으로, 주목해야 한다.

 

퇴출비율이 높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카페가 생기고 치킨집이 생기는데, 이유는 역시 좋지 않은 고용 상황 때문일까.

 

노골적으로 말하면, 할 게 없어서다. 취재 다녀 보면 점주들도 구직 노력 많이 한다. “화이트칼라 출신이라 이런 일 못 해.” 이렇게 눈이 높아서가 아니다. 정말 뽑아주는 곳이 없어서 버티고 버티다 창업의 길로 들어선다. 그리고 그 마음이 크다. “나는 잘할 수 있다, 혹시 나는 괜찮지 않을까.” 이런 생각. 사회적 통계가 있어도 예외를 보고 싶어 한다. 게다가 창업 설명회를 가면, 컨설턴트나 본사에서는 유혹적인 이야기를 많이 한다. 잘된 사례만 이야기하니까.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상황에다, 나는 예외일지 몰라, 하는 기대감이 섞여서 악순환이 반복된다.

 

스스로도 커피집 차렸을 때, 상위 10~30%에 들 거로 생각했나.

 

조금 다른 카페이긴 했다. 사회적 기업을 준비하면서 7명이 공동으로 지역 카페를 차렸다. 시작할때 고민이 있었다. “지역 사회 활성화를 시키고, 공정무역 커피를 알리려고 했는데 돈을 너무 많이 벌어 타락하면 어떡하지?”하는 행복한 고민이었는데. 아니라는 걸 깨닫는 데는 얼마 안 걸렸다. 3년 내내 적자였다. 그때의 경험이 이 책 쓸 때 도움이 됐다.


치킨 배달시킬 때, 두 가지는 지키자

 

치킨을 배달시켜 먹는 경우도 많은데, 배달은 청년 고용 문제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나.
 
그것보다는 노동 환경에 관해 말하고 싶다. 배달이 취업 시장에서 진입 단계로 보면 가장 낮다. 배달업 특징이 남학생이나 청년 노동자 위주인데, 그 친구들은 한국이 아무리 학벌을 안 따진다고 해도, 진입할 수 있는 곳이 배달이나 주유소 정도밖에 없어 그 일을 한다. 요즘은 고용 계약서를 쓰는 분위기라 하지만, 여전히 고용 계약서를 정식으로 쓰는 것도 아니고. 서로 안다. 사장님도 얘는 잠깐 있다 갈 사람. 얘네도 내가 평생 배달업으로 승부를 봐야지, 이런 장기적 비전으로 하는 게 아니다. 고용이 불안하면서도 환경이 위험한 노동 시장이다. 점주들이 점점 어려워지니까 평일에는 남편이 배달하다 주말 정도만 한시적으로 고용하기도 하고. 사고가 날 위험도 높다.

 

배달 대행사도 있던데. 개인적으로는 배달 대행업체가 있는지 처음 알았다.

 

소비자들을 잘 모르더라. 수도권이나, 지방 대도시 중심으로 있다. 배달 아르바이트를 고용해도 안정적이지 않다. 나왔다 얼마 안 있어 관두고 하니까. 장사 잘됐다가 안됐다 하니 상시 고용이 점주에게는 부담스럽다. 그래서 틈새시장을 비집고 온 게 배달 대행업체인데, 월 15~20만 원 회비를 내고 건당 수수료를 준다. 한 건당 2,500원, 3,000원 이런 식. 집에 배달 오는 사람은 외주 파견 배달 노동자가 오는 거지.

 

이 책에 치킨을 먹으면 건강에 안 좋다, 이런 건강 담론도 있을 거로 예측했는데 없었다. 일부러 뺀 것 같기도 하다.

 

그 이야기는 나 말고도 많은 사람이 했다. 치킨 많이 먹으면 비만 위험이 있다는 이야기. 이런 담론은 많이 먹을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 개인의 행동을 요구하는 거라, 관심 분야는 아니었다. 치킨을 먹지 말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한국은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는 환경일까?

 

취재하면서 인상 깊었던 사연이 많았을 것 같은데, 소개한다면.

 

치킨집 사장님도 단골 치킨집이 있다. 자기가 튀기는 게 너무 지겨워서 딴 데 가서 드시는 분이 꽤 된다. 미담도 있다. 동네 치킨집이 많으면 경쟁 관계이기도 하지만 서로 처지를 잘 안다. 가게 오픈하면 서로 한 마리씩 오픈빨 받으라고, 시켜서 드신다. 정말 뭉클하다. 물론 같은 브랜드가 아닐 경우에 그렇다.

 

연구하다 보면 해법도 고민할 텐데. 해법이 있을까.

 

연구자는 활동가가 아니니 “이게 대안이다!”라고 하면 그 사람은 꼰대다. 이 책에서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다는 걸 펼쳐 보이고, 질문이나 고민하는 자리를 만드는 게 목표였다. 그럼에도 대안이라 한다면, 한국에는 치킨집이 정말 많고, 이들을 안정적으로 퇴출하는 거겠지. 퇴출이라 해서 치킨집에서 떡볶이집으로 돌리라는 건 아니다. 육식문화도 되돌아봐야 한다. 우리가 너무 많이 고기를 튀겨 먹는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사료 공장이 너무 많아서다. 사료로 이득을 내려면 소, 돼지, 닭 많이 키워야 하는 구조다. 이런 독점화된 축산시장을 깨야 한다. 식품정책, 축산정책은 많이 비판받아야 할 거다. 이 책에서는 미시적인 차원에서 분석했지만 거시적인 차원에서는 다른 독자들도 함께 많은 상상력을 발휘했으면 좋겠다. 고용 안정성에 관해 지금까지는 개인에게 너무 떠맡겼다. 어떤 정권이든, 이 문제를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책에서 현실적인 실천 방법도 제시하긴 했는데, 치킨을 어떻게 즐기면 좋겠나.

 

제일 어렵고 힘든 질문이 대안인데, 내가 대안을 가진 사람이 아니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 시간강사가 발언권이 크지 않다. 그럼에도 인간이라면 구조적이고 거시적인 차원을 고민하면서도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것도 중요하다. 기부 행위가 구조적인 해결이 아니라며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을 싫어한다. 비록 기부가 근본적인 해결이 안 된다고 비판하면서도 유니세프 등지에 기부하며 실천하면서 노력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

 

가장 을은 치킨집을 창업한 점주이고, 사 먹는 사람도 돈 많은 사람은 아니다. 을들끼리 작은 연대가 필요하다. 다 안 먹고 버릴 거면서 치킨무를 많이 달라고 하지 마라. 치킨무도 400원이다. 그리고 앱을 이용해 시켜 먹으면 수수료가 빠지니, 좋아하는 치킨집 번호를 저장해서 직접 전화로 시켜 먹어야 한다. 앱을 이용하는 게, 사람 대면하기 싫어서인데, 이렇게 될수록 점점 사회가 매몰차지고 무서워진다.

 

학문적 관심사가 농촌, 농업인 계기가 궁금하다.

 

어머니 아버지를 비롯한 친인척이 모두 농사지으신다. 지금도 농촌에 계시고. 서울에서 자라긴 했지만, 시설 재배하셨다. 농사일을 하면서 컸다. 어머니, 아버지가 작물 갈아엎는 걸 보니 답답하더라. 처음에는 아버지 능력이 부족한 건가 생각했는데 어느 지역을 가든 한국 농촌 농업 현실이 열악하고 척박했다. 연민에 기반을 두고 학문적 주제로 잡았다.

 

먹거리 산업화가 주된 관심인데, 음식이 산업화되면 어떤 문제가 발생하나.

 

첫째, 먹거리를 몇몇 기업이 장악한다. 닭 시장을 어떤 기업이 장악해서 가격을 잡고, 생산자는 정작 제대로 챙겨갈 수 없는 구조를 만든다. 둘째, 문화적으로 천편일률적인 걸 먹는다. 음식이 100가지면 100가지 맛과 이야기와 사연이 있을 거다. 그만큼 감각이 다양해진다. 10가지만 먹으면 10가지 생각밖에 못한다. 점점 더 재미없는 사회가 된다. 치맥과 돼지고기에 소주도 우리의 기호라기보다는, 한정된 예산 안에서 손쉽게 먹을 수 있으니까 단골 메뉴지. 우리가 돈이 많다면 제대로 된 셰프가 만든 걸 먹겠지만, 예산은 정해져 있다. 2만 원, 이 정도 예산으로는 프랜차이즈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 프랜차이즈는 싸게 농산물을 수급하는 방법을 안다. 그리고 가장 싸게 가공해서 내놓는다. 우리가 지금 그렇게 먹고산다. 이 문제에 관심이 많다. 이게 해결되지 않는다면, 농업 농촌 문제 해결이 안 된다.

 

지금 관심 두는 분야는?

 

이번 책처럼 하나의 음식으로 사회의 경제 정치적 문화를 보려 한다. 다음은 불량식품이 될지, 김밥이나 떡볶이, 순대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2만 원 이하의 음식일 것이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 콘텐츠가 될 것 같다.

 

다소 암울한 이야기만 한 것 같다. 어쨌든 지금 한국에서는 치킨을 먹을 수밖에 없는 구조인데, 치킨을 먹으면서 따뜻함을 느낄 수 있도록 훈훈한 한 마디 부탁한다.
 
치킨은 가난한 시절에도 고기 중에 먹을 수 있었던 대표적인 음식이었다. 돼지고기나 소고기는 비쌌으니까. 치킨 정도는 한국에서 운동회, 소풍, 생일, 상장 타온 날, 이렇게 좋은 날 가족들이나 절친한 사람들, 직장 동료와 함께 먹을 수 있었던 음식이다. 이런 문화는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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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치킨전정은정 저 | 따비
조촐한 회식자리의 만만한 메뉴이자 독신자들의 끼니로 자리 잡은 치킨이지만, 한 마리의 치킨이 소비자의 입으로 들어가기까지는 수많은 사람들의 눈물과 땀, 그리고 마케팅이 복잡하게 작용하고 있다. 치킨 프랜차이즈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이상적인(?) 완전경쟁 시장이다. 브랜드 인지도 1위의 치킨 프랜차이즈조차 시장 점유율 10퍼센트를 겨우 차지하는 것이 치킨시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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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한 “고양이의 세계를 존중해주는 나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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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이용한

 

무릎냥이와 접대냥이의 나라


『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를 시작으로 『명랑하라 고양이』『나쁜 고양이는 없다』에 이르는 이른바 ‘안녕 고양이 시리즈’를 발표하면서 ‘고양이 작가’가 된 시인 이용한. 독자들은 그가 들려주는 길고양이의 삶과, 그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고양이 춤>을 통해 우리 곁의 작은 존재를 ‘발견’하게 됐다. 늘 가까운 곳에 있었지만 제대로 눈맞춤조차 해본 적 없는 그들, 길고양이의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이용한 작가는 길고양이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가 크고 작은 오해에서 비롯되었음을 깨닫게 해주었다. 고양이가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찢는 것은 도시의 생활환경이 그들의 사냥터와 먹이를 뺏었기 때문이라는 사실도, 그 행위를 멈추기 위해서는 뚜껑이 달린 통 안에 음식물 쓰레기 봉투를 넣어두기만 하면 된다는 사실도, 작가는 친절하게 알려준 것이다. 이렇듯 길고양이들의 대변인을 자처한 작가 덕분에 우리는 비로소 바라보게 되었다. 사람들의 오해와 편견 때문에 멸시와 천대 속에서 힘겹게 생을 이어나가야 했던 수많은 생명들을.

 

각박한 현실은 언제나 ‘행복의 나라’를 꿈꾸게 한다. 이용한 시인의 ‘고양이들의 천국’을 찾아 나선 이유다. 지난해 출간된 『흐리고 가끔 고양이』 안에서 고양이가 행복하게 사는 마을을 찾아 서울에서 제주도까지, 국내의 곳곳을 누볐던 작가가 이번에는 더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났다. 많은 여행자들이 고양이의 천국으로 손꼽는 모로코와 터키를 비롯해서 일본, 대만, 인도, 라오스 등 6개국 30여 곳을 직접 찾아 나선 것. 그곳에서 만난 고양이들은 사람을 두려워하지 도 않았고, 그래서 도망가거나 숨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이곳의 고양이들에게는 당연한 일이 그곳의 고양이에게는 필요 없는 일이었던 셈이다.

 

당당하게 거리를 활보하고 당연한 듯 식당 한켠에 자리를 잡는 그들과의 만남은 낯설고도 기분 좋은 시간으로 기억됐다. 그 매력에 취해 5년이라는 시간 동안 꼬박 80일을 그들 곁에 머물렀다. 『여행하고 사랑하고 고양이하라』에는 그 순간의 ‘찌르르한’ 감정들이 기록되어있다. 그것은 때로 설렘이었고, 감동이었으며, 어느 순간에는 슬픔이었다. 지구 반대편, 사람들을 두려워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존재들에 대한 연민 때문이었다. 그들에게도 천국은 가까이에 있을까. 『여행하고 사랑하고 고양이하라』가 우리에게 묻는다.

 

갈 때마다 공원의 고양이들은 아무 곳에나 널브러져 낮잠을 자거나 장난을 치고 있었다. 옆에 사람들이 있거나 없거나 신경 쓰지도 않을뿐더러, 있다고 더 조심스럽게 행동하지도 않았다. 몇몇 고양이들은 스스럼없이 사람에게 다가와 부비부비를 하고 무릎냥이가 되어 주었다. 용감한 고양이들은 처음 보는 여행자들의 가슴에 스스럼없이 안겼다. 아무렇지 않게 여행자와 하이파이브를 시도하는 고양이도 있었다. ( 『여행하고 사랑하고 고양이하라』 116쪽)

 

‘고양이들의 천국’으로의 여행은 언제부터 계획하신 건가요?


처음 계획했던 건 6년 전이에요. 고양이에게 관심을 갖게 되고 얼마 후에 아내와 라오스의 루앙프라방을 여행한 적이 있었어요. 가는 곳마다 고양이가 눈에 띄더군요. 식당 의자 앞에도 고양이가 앉아있고, 사원마다 고양이가 있고, 스님들은 고양이에게 밥을 주고 있었어요. 그때부터 사진을 찍고 기록하게 됐죠. 당시에는 책을 쓸 생각은 없었고, 여행 온 김에 이곳의 고양이를 같이 기록해보자는 생각이었어요. 그 전부터 여행가로 여행 에세이를 많이 썼지만 고양이에 대해 알지도 못했고 관심을 두지 않았었죠. 루앙프라방은 고양이에 대한 관심이 생긴 뒤에 첫 번째로 떠난 여행지였어요.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자연스럽게 사람들 무릎 위에 올라가 있는 고양이들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의 고양이 현실은 어떨까’라는 궁금증이 생겼죠.

 

『여행하고 사랑하고 고양이하라』에 소개된 6개국을 선정하는 데에는 고민이 없으셨나요?


많은 여행가들이 모로코, 터키, 그리스 3개국을 고양이 천국으로 꼽아요. 그 중에서 그리스와 터키는 분위기가 비슷한 것 같아서 저는 터키와 모로코를 가보자고 생각했고요. 대만과 일본도 마찬가지예요. 말씀드렸다시피 라오스는 고양이를 염두 해 두고 떠난 여행은 아니었죠. 인도 역시 고양이 여행을 위해서 찾은 건 아니었는데, 사람과 어울려서 살아가는 고양이의 모습을 보게 됐어요. 빈민촌 같은 곳에 살면서 하루 한 끼밖에 못 먹는 가난한 사람들이 시장에서 닭 내장을 구해 와서 고양이를 먹이고 있더라고요. 자신도 굶어가면서 말이죠. 그 모습들 보면서 감동을 받았어요. 그 이야기도 『여행하고 사랑하고 고양이하라』에 기록해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고양이들의 천국’으로 떠나기 전에 기대한 것들이 있었을 텐데, 현실은 어땠나요?


제가 모로코에서 본 모습은 고양이가 자유롭게 길거리를 돌아다니고, 그걸 보고 해코지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거예요. 고양이의 영역과 세계를 존중하는 거죠. 식당에서 밥 먹을 때 자기 앞에 고양이가 앉아있어도 그걸 가지고 뭐라고 하는 사람이 없어요. 그리고 자기가 먹는 걸 자연스럽게 나눠주죠. 그런 일이 일상이 되어있어요. 그 모습이 고양이의 천국 같아 보였어요. 특별히 고양이를 위하거나 고양이를 위한 특별한 대책을 세우지 않는데도요. 실제로 모로코에는 길고양이 숫자를 제한하는 대책(TNR)도 없어요. 그런데도 사람과 고양이가 행복하게 어울릴 수 있는 건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고양이에 대해서 인정을 하기 때문이에요.

 

어떻게 보면 그냥 방치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겠죠. 고양이의 세계를 간섭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고요. 고양이를 정말 좋아하고 관리 대책에 대해서 부르짖는 사람들은 ‘그건 방임의 수준이고 천국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들의 방식 하에서 고양이가 사회 문제가 된 적도 없고 사람들이 불편을 호소한 적도 없다면, 우리와 다른 세계라고 볼 수가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 자체가 보기 좋았고 그것이 오히려 천국다운 모습이 아닌가 싶었어요.

 

이슬람 사회에서 고양이에 대한 사랑은 신앙의 일부와도 같다. (중략) 심지어 이런 우스갯소리도 있다. “여기선 사람도 아무 때나 모스크에 출입할 수가 없어요. 하지만 고양이만큼은 언제든지 모스크를 드나들 수 있죠.” 모로코에 와서 더욱 놀랐던 점은 이것이다. 현대식 체인형 호텔이 아닌 모로코식 전통 호텔의 경우 상당수가 반려동물과 동반 입실이 가능하다는 사실이다. 모로코에서는 반려동물의 절대다수가 고양이인 만큼, 이는 곧 고양이와 함께 숙박할 수 있다는 걸 의미하는 거였다. 모로코를 여행한 외국 여행자들이 입을 모아 모로코를 ‘고양이의 천국’이라 부르는 이유에는 바로 그런 여러 가지 요인들이 숨어 있었다. ( 『여행하고 사랑하고 고양이하라』 26~28쪽)

 

터키에 오는 여행자들 중에는 저처럼 고양이 여행을 온 사람들이 더러 있더라고요. 모로코에서는 고양이 사진을 찍는 사람을 본 적이 별로 없거든요. 그런데 이스탄불에서는 고양이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곳곳에 있었어요. 휴대폰으로 인증샷을 찍는 사람들도 정말 많고요. 고양이가 많은 술탄 아흐메트 공원에서는 일부러 먹는 걸 나눠주고 20~30마리의 고양이가 주변에 모여든 모습을 즐기는 사람도 많았어요. 그리고 터키라는 나라는 길고양이 급식소도 따로 두고 있어요. 엄청나게 많은 숫자는 아니라서 저도 여행하며 만나기 어려울 정도로 드문드문 있었지만, 어쨌든 공식적으로 운영하는 급식소가 존재해요. TNR 대책이 있다는 점도 모로코와 다른 점이고요. 사람에 따라서 모로코의 모습이 더 좋을 수도 있고 터키의 모습이 더 좋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저는 모로코는 모로코 나름대로, 터키는 터키 나름대로 좋았어요. 

 

만나고-이용한

 

고양이가 꿈꾸는 천국이란…


대만의 고양이 마을과 일본의 고양이 섬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호우통의 고양이 마을은 오래 전에 광산촌이었던 곳이에요. 폐광이 되면서 사람들이 다 떠나가고 먹고 살 길이 막막해질 무렵에 ‘동네에 고양이가 많은데 어떻게 활용해볼까’ 라는 생각으로 마을 사람들이 고양이에게 집을 지어주고 사료를 먹이기 시작하면서 고양이 마을이 됐죠. 그러자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찾아와서 사진을 찍고 인터넷에 알리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주말이면 300명 넘는 관광객이 올 정도로 대만에서도 알아주는 관광지로 변모했죠. 고양이가 지역 경제를 살리는 효자 노릇을 하게 된 거예요. 그리고 단수이에 가면 고양이 거리도 있어요. 고양이가 많은 지역을 자연스럽게 고양이 거리로 지정한 곳이에요. 하지만 대만에도 서울에 비해서 고양이 숫자가 많지는 않아요. 대만에도 우리나라처럼 TNR 대책이 있어서 길고양이 개체 수를 조절해 가면서 사람과 고양이가 어우러진 풍경을 만들어가는 거죠.

 

일본에 갔을 때는 서점에 고양이 책 코너가 따로 있다는 사실에 놀랐었어요. 고양이 잡지만 하더라도 앉은 자리에서 찾은 것만 세 종류였어요. 후쿠오카뿐만 아니라 히로시마 등 고양이 섬이 굉장히 많다는 것도 놀라웠고요. 반면에 우리나라는 『흐리고 가끔 고양이』에도 썼듯이 고양이 섬이라고 부를 만한 곳이 욕지도의 한 마을 정도거든요. 그것도 저 혼자 고양이 섬이라고 이름 붙인 거고 누구도 그렇게 부르지 않아요. 우리나라는 섬 지역일수록 고양이에 대해서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오히려 더 해코지하려고 하거든요. 생선 같은 걸 말릴 때 고양이가 훔쳐가니까  피해만 준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거죠. 그런데 일본에서는 고양이를 풍어신이나 바다의 신으로 떠받들기도 해요. 그래서 섬일수록 고양이에게 우호적이죠. 우리나라는 말 그대로 생선을 훔쳐가는 ‘도둑’ 고양이 취급을 하는 거고요. 고양이에 대한 인식이 상대적으로 안 좋은 건 그런 이유인 것 같아요.

 

‘고양이들의 천국’이란 어떤 곳일까요?


모로코와 터키가 적절히 조화된 모습이 이상적인 고양이 천국이겠죠. 각각의 장점이 있으니까요. 한국의 입장에서 본다면 고양이 천국은 요원한 꿈일 수도 있고, 실현 불가능한 바람일 수도 있을 거예요. 저는 모든 사람들이 고양이를 위해서 밥을 내어주고 우호적인 손길을 내밀지 않아도 좋아요. 다만 위협적인 발길질이나 몽둥이질, 돌팔매질 같은 해코지만은 하지 말아달라는 거예요. 해코지나 위해를 가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천국의 모습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고양이들의 천국’에서 한국의 고양이들을 떠올렸을 때 착잡한 기분이 들지는 않으셨나요?


대만의 고양이 마을을 갔을 때나 일본의 고양이 섬에 갔을 때, 터키와 모로코에 갔을 때도 그랬죠. 그곳의 국가들은 전체적으로 고양이에게 우호적인 분위기인데, 우리나라에서는 불가능한 일이잖아요. 우리나라의 지자체에서도 대만의 고양이 마을을 모델로 삼을 만 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쉽지는 않겠죠. 많은 사람들이 그러한 사례가 있는지조차 알지 못하잖아요. 알려고 하지도 않는 사람들도 있고요. 그들에게는 고양이가 중요하지도 않죠. 제가 사는 동네만 하더라도 동네의 할머님들이 놓은 쥐약 때문에 해마다 길고양이들이 죽어가요.

 

도시의 현실도 다르지 않죠. 고양이가 조금의 피해만 입혀도 쥐약을 놔서 죽이거나, 해코지를 하거나, 뉴스에 나온 것처럼 잔혹하게 죽이기도 해요. 물론 그런 끔찍한 사건들은 고양이에 대해 우호적인 나라에서도 가끔 한 두 건씩 일어나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그 빈도가 높다는 거죠. ‘왜 이렇게 삭막하고, 못살게 굴고, 우리가 가진 건 조금도 내놓지 않으려고 하는 걸까’ 싶은 생각이 들어요. 옛날 우리 조상들을 보면 콩을 심을 때도 세 알을 심어서 한 알은 새에게 주고, 한 알은 벌레에게 주고, 나머지 한 알만 거둬들이겠다고 생각했잖아요. 까치밥을 남겨서 새에게도 먹을 것을 남겨줬고요. 그런데 왜 그 후손들은 고양이만 보면 잡아먹으려고 하고 죽이려고 하는지... 안타까워요.

 

근본적인 원인은 ‘함께 살아가는 존재에 대한 인간의 배타성과 오만함’이 아닐까요?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 중에서도 잘못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더라고요. 자신의 의지대로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예전에 TNR 대책과 관련해서 한 캣맘을 보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어요. 그 분의 말이 ‘이 도시에 있는 고양이를 다 잡아들여서 중성화수술을 시켜가지고 거리에 고양이가 한 마리도 없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캣맘으로 활동하면서 먹이를 주는 거예요. 계속 중성화수술을 시켜서 고양이의 씨를 말리려고요. 그건 인간의 이기주의인 거지 절대로 고양이를 위한 생각은 아니잖아요. TNR 대책도 고양이의 개체수 조절에 목적을 두어야지, 고양이의 씨를 말리는 걸 목적으로 해서는 안 되는 거죠. 고양이와 사람이 행복하게 공존하는 세상을 위해서 TNR이 필요한 거죠.

 

누군가는 ‘왜 고양이인가’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인간의 배타성과 오만함 때문에 고통 받는 존재는 고양이 말고도 많다’는 논지일 텐데요. 그런 질문을 받으면 어떤 대답을 들려줄 것 같으세요?


우리나라에서 고양이의 위치를 생각해 보면, 개나 다른 동물에 비해서 훨씬 많은 손가락질을 당하고 훨씬 많은 욕을 먹고 있어요. 인간이 공격적인 배타성을 가장 많이 드러내는 동물이 고양이인 거죠. 개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부분들을 많이 가지고 있어요. 사람에게 복종하고 심부름도 할 수 있는, 사람의 뜻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되는 거죠. 그런데 고양이는 통제가 잘 안 되는 동물이다 보니까 ‘쟤들은 있어봤자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런 이유로 다른 동물에 비해서 더 많은 공격성이 고양이에게 몰리는 경우도 있죠. 그리고 고양이는 다른 모든 동물들에 비해서 소외된 존재잖아요.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기도 하고요.

 

작가님께서 들려주신 고양이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에게 생겨난 변화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독자들이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건『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예요. 영화 <고양이 춤>이 상영됐을 때도 『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를 통해서 자신이 바뀌었다고 말한 독자들이 많았고요. 그 책을 읽고 캣맘이 되었다는 독자들도 있었고, 실제로 한국고양이보호협회의 핵심 멤버 중 한 분은 그 책을 읽고 활동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어요. 광주의 한 학생은 자신의 언니가 암 투병을 하다가 눈을 감으면서 『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를 건네줬대요. 그 책을 읽고 자신도 언니처럼 캣맘으로 살고 있다고 했더라고요. 
 
『여행하고 사랑하고 고양이하라』는 어떤 반응을 이끌어낼 것으로 기대하세요?


이 책을 읽은 많은 분들이 ‘고양이의 세계를 이렇게 존중해주는 나라도 있구나, 고양이가 이렇게 자유롭게 살아가는 나라도 있구나’하고 생각하면서 우리나라의 현실을 직시해 봤으면 좋겠어요. 그 나라들에 반해서 우리나라는 어떤지, 우리가 그런 세계로 옮겨가기 위해서는 어떤 단계까지 인식을 끌어올려야 되는지, 그런 고민을 해준다면 좋을 것 같아요. 다른 나라들처럼 모범적인 모습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부끄러운 모습은 보이지 않는, 고양이와 공존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그걸로 족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만나고-이용한

 

바닷속에 사는 고양이를 만날 수 있는 곳


고양이를 만나기 전부터 다수의 여행 에세이를 써오셨는데요. 고양이가 중심에 있는 여행과 그렇지 않은 여행은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고양이를 알기 이전에 쓴 여행 책에는 고양이가 등장한 적이 없어요.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포커스를 맞추지 않았던 거죠. 그런데 고양이를 알게 되면서 관심이 생기니까, 자연스럽게 고양이에게 초점을 맞추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굳이 고양이 여행에 대한 이야기 아니더라도, 여행 에세이 중간 중간에 고양이가 등장을 하게 됐어요. 고양이를 알게 되면서는 저의 관심 주제가 자연스럽게 고양이로 옮겨온 것이 아닌가 싶어요. 예전에는 풍경과 사람과 사물이 여행의 일단락이었다면, 지금은 그 전체가 고양이와 같은 비중으로 존재하는 거죠. 그래서 지금은 여행 가서 고양이가 보이면 반드시 사진을 찍게 돼요.

 

시인으로 등단한 후에 처음으로 출간한 책이 『사라져가는 오지 마을을 찾아서』였어요. 그때의 관심사는 때 묻지 않은 자연 환경, 순박한 사람들, 한적한 시간, 오래된 풍물 같은 거였죠. 이후 10년 가까이『꾼』『장이과 같은 이야기를 썼어요.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고양이를 알게 되면서 고양이 세계로 옮겨오게 된 거예요. 어떻게 보면 운명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만약 고양이를 만나지 않았다면 아직도 그 세계를 이야기하고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 세계도 나름의 의미가 있고 개인적으로 자부심과 철학도 가지고 있었지만, 그 모든 걸 고양이가 블랙홀처럼 빨아들인 측면이 있죠. 그게 고양이의 매력이라고 할 수도 있을 거예요.

 

『흐리고 가끔 고양이』에서 “사실 고양이와 아무 상관없던 내가 고양이와 함께 여기까지 오게 된 건 어떤 연민 때문이었다”고 하셨습니다. 처음 고양이에 빠져든 이유가 ‘연민’ 때문이었다면, 고양이 이야기를 계속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감정은 무엇일까요?


고양이를 바라보는 입장은 일단은 측은지심이에요. 거대한 도시 생태계에서 이 연약한 존재가 살아가는 방식이라는 건 쓰레기통을 뒤져서 먹고 사는 것인데, 그걸 인간은 허락해 주지 않고 오히려 해코지하고 학대하고 죽이잖아요. 그렇게 소외받고 탄압받는 밑바닥 묘생을 보면서 또 다른 어떤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소외받는 사람들 같기도 하고, 핍박받으면서 항상 당하고만 사는 존재가 오버랩 되기도 하고요. 그렇게까지 생각하는 건 오버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런 측면이 없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양이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개선되는 과정을 통해서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거죠.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출간되면서 예전보다 인식이 좋아졌다고 느끼기도 하는데, 잔인한 고양이 학대 사건이 어김없이 발생할 때는 절망스럽죠. 얼마 전에도 압구정의 한 아파트에서 지하실에 고양이를 가뒀던 사건이 있었잖아요. 그럴 때마다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이 드는데, 고양이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모여서 그것이 거대한 힘으로 바뀌면 변화할 거라고 기대하고 있어요.

 

시를 쓸 때 작가님의 감정과 언어는 고양이 이야기를 할 때와 사뭇 다른 것 같습니다. 황인숙 시인도 칼럼을 통해 「흑산도 서브마린」(『안녕, 후두둑 씨』에 수록)을 소개하면서 “『안녕 고양이는 고마웠어요』로 이용한을 기억하는 독자에게는 뜻밖인 어두운 정서다”라고 말했는데요. 의도적으로 차이를 두신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의도한 건 아니고 「흑산도 서브마린」을 쓸 때는 고양이에 대해 알지 못했던 거예요(웃음). ‘고양이 이야기를 쓸 때는 문체를 달리 해야겠다’는 계산은 없었어요. 저의 시적 정서는 전반적으로 우울하다고 할 수 있어요. 출구 없는 삶, 꽉 막힌 도시에 사는 답답한 인생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루어서 우울하고 어두운 이야기들이 주로 나오거든요. 그런데 제가 이야기하는 문학 세계와 고양이 이야기가 같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제가 가진 문학적인 감정들, 개인적인 감성들이 우울하고 절망적인 정서라고 해서 굳이 그걸 고양이 책에서 이야기할 필요는 없다는 거죠. 저의 에세이와 본격적인 문학은 사실 이분화 되어 있어요. 한 사람들은 전혀 다른 인간으로 생각하고 있죠(웃음). 그리고 시를 쓸 때의 정서를 가지고 고양이 이야기를 쓰는 일이 어렵기도 하고요. 두 얼굴의 사나이 같은 느낌이 있는 거죠(웃음).

 

만나고-이용한

 

『여행하고 사랑하고 고양이하라』에 소개된 고양이들 중에서도 유독 잊을 수 없는 아이가 있을 텐데요.


모로코에 갔을 때 탕헤르라는 도시의 항구에서 만난 고양이 한 마리가 생각나요. 회색 고양이었는데 다리 하나가 없는 고양이였어요. 다리가 하나 없다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해코지를 당하고 사람만 보면 도망갈 법도 한데, 그 아이는 처음 보는 저에게도 달려와서 몸을 부비고 밥 달라고 빤히 쳐다보더라고요. ‘이 아이는 사람한테 해코지 당한 경험이 없구나’ 라는 걸 느꼈어요.

 

책에도 썼듯이 그 날 나이든 할아버지 캣대디를 만났어요. 근처에서 만난 경찰에게 얘기를 들어보니까 매일 우유 두 통을 들고 와서 고양이에게 준다고 하더라고요. 그 중에 한 통은 언제나 다리가 하나 없는 아이의 몫이라고 해요. 우유를 줘도 몸이 불편한 그 아이는 다른 고양이들에게 밀려서 먹지를 못하니까 발을 쿵쿵 굴러서 다른 아이들을 내쫓더라고요. 그러고 나서 몸이 불편한 아이부터 먹이는 거예요. 그 할아버지를 보면서 ‘저 나이 많은 할아버지가 한 마리의 고양이를 위해서 매일 우유 한 통을 들고 오는 마음은 무얼까’ 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저는 기껏해야 그 고양이에게 크림치즈 한 조각을 준 게 전부이지만, 아직까지도 그 고양이의 눈빛이 생각나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눈빛, 사람을 믿는 눈빛. ‘너는 나에게 도움을 주고 우유를 주는 존재야’ 라는 따뜻한 눈빛. 아직까지도 그 눈빛을 잊을 수가 없어요.


그리고 일본의 히메지마라는 고양이 섬에 갔을 때 만났던 고양이들도 기억나요. 숙소와 가까운 곳에 있는 방파제에 20여 마리의 고양이가 머물고 있었는데, 그곳에 3일 동안 머물면서 반찬으로 나온 생선을 그 아이들에게 나눠줬어요. 어떤 날은 부슬비를 맞으면서 먹이를 먹는 아이들을 보는데, 슬퍼 보이기도 하고 기특해 보이기도 하고 참 낯선 느낌이 들었어요. ‘한국의 양평에서 온 고양이 작가가 내려놓은 생선 반찬을 히메지마의 고양이들이 먹는 풍경, 이건 뭘까’ 라는 생각을 하면서 고양이를 바라봤던 기억이 나요. 그 아이들은 먹이를 주는 사람이 없으면 바닷물에 발을 적셔가면서 파도에 떠밀려 오는 물고기 사체를 먹어야하거든요. 그 광경을 보면서 마음이 짠해지기도 했죠.

 

작가님께서 보셨던 그 풍경과 느끼셨던 감성을 좇아서 고양이 여행을 떠나는 독자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추천해 주고 싶은 여행지는 어디인가요?


개인적으로는 모로코의 쉐프샤우엔을 추천하고 싶은데요. 표지 사진으로도 나왔지만 도시 전체가 파란 곳이죠. 길도 파랗고 벽도 파랗고 지붕도 파랗고. 그렇다 보니까 바닷속 같기도 하고 때로는 하늘을 걷는 것 같기도 해요. 그런 골목골목마다 고양이가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 자체로 그림이죠. 문제는 모로코가 너무 멀다는 거죠(웃음). 한국에서 가장 가기 쉬운 곳을 추천하자면 대만의 고양이 마을을 추천하고 싶어요. 타이페이 시내에서도 한 시간 반 정도면 갈 수 있으니까 접근하기도 쉽거든요. 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고양이와 직접 대면하고 쓰다듬거나 안고 싶어 할 텐데, 그런 모든 요건을 충족시켜주는 곳이 대만의 고양이 마을이라고 할 수 있어요. 커다란 야외 고양이 카페라고 생각하면 돼요.

 

국내 여행지는 어디가 좋을까요?


국내는 욕지도도 좋지만 제주도를 추천하고 싶네요. ‘김녕 미로공원’에는 열댓 마리의 고양이가 있는데, 제주도에서는 보기 드물게 모든 고양이들이 사람 친화적이에요. 만질 수도 있고 가까이에서 사진을 찍을 수도 있죠. 무릎에 올라오는 고양이들도 많고요. 또 한 곳을 추천하자면 애월에 가시면 ‘곤밥 보리밥’이라는 식당이 있어요. 『흐리고 가끔 고양이』에서 소개했던 곳인데요. 그곳에는 식당 주인 아주머니가 돌보시는 길고양이 20여 마리가 있어요. 몸 전체가 하얗고 꼬리 또는 귀에만 노란 점이 있는 정말 예쁜 아이들이죠. 저도 식당에 밥 먹으러 들어가다 말고 아이들이 너무 예뻐서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나요.

 

『여행하고 사랑하고 고양이하라』에 실린 사진도 모두 직접 촬영하셨는데요. 그렇게 가까운 곳에서 절묘한 순간을 포착할 수 있는 노하우도 알려주세요.


고양이를 촬영하는 작가들도 그렇겠지만, 고양이와 오랫동안 연대감을 쌓으면 자연스러운 장면을 찍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자신이 밥을 주는 고양이를 촬영할 때는 자연스럽게 그 관계가 형성되죠. 그런데 우리나라를 여행하는 동안에는 그런 사진을 찍기가 어려워요. 처음 만나는 사람이니까 도망가 버리거든요. 그래서 제대로 된 사진을 찍기까지 오랫동안 기다려야 되고 실패율도 높죠. 『흐리고 가끔 고양이』를 2년 반 동안 작업했던 이유도 그 때문이에요. 낯선 사람을 보면 도망가고 숨어버리니까요. 한 장소를 여러 번 찾아간 끝에 찍은 사진도 많아요. 그런데 외국의 경우에는 별 다른 촬영 노하우가 필요 없다고 말할 수 있어요. 누구든지 그곳에 가면 저보다 더 잘 찍을 수 있을 거예요. 특히 모로코나 터키에 가면 고양이의 일상을 사진찍는 데 어려움이 없다고 볼 수 있어요.

 

다음에는 또 어떤 고양이의 이야기를 들려주실지, 벌써부터 궁금해집니다.


다섯 살 난 저희 아들이 열한 마리의 고양이들과 함께 괴산의 처가에서 지내고 있어요. 처음에는 길에서 구조한 고양이 세 마리가 전부였는데 그 아이들이 새끼를 낳고, 또 다른 유기묘들을 입양하다 보니 어느덧 열한 마리가 됐죠. 저희 아들은 태어날 때부터 고양이를 봤기 때문에 지금 열한 마리의 고양이들과도 친구처럼 지내요. 같이 자라고 있는 거죠. 그 성장기를 책으로 써보려고 준비하고 있어요. 지난 2년 동안 사진으로 기록해뒀죠. 아마 내년 즈음에는 독자 분들께서 만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지금 아내와 제가 살고 있는 집에도 다섯 마리의 고양이가 함께 사는데요, 그 이야기는 제가 아닌 아내가 쓸 계획이에요. 관찰자의 입장에서 아내가 바라 본 저와 고양이들의 관계에 대해서 쓰게 될 것 같아요. 그 외에는, 개인적으로는 이전에 여행 작가로서 했던 작업도 계속하고 싶고요. 더 늦기 전에 세 번재 시집을 내고 싶은 소망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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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하고 사랑하고 고양이하라이용한 저 | 북폴리오
『안녕 고양이』 시리즈와 『흐리고 가끔 고양이』를 잇는 이용한 작가의 최신 고양이 에세이. 시인이자 여행가인 저자는 세계 도시와 섬, 구석구석을 떠돌아다니며 고양이를 만난 반짝이는 순간들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담았다. 누구나 인정하는 고양이의 천국 모로코와 터키, 무심한 듯 느긋하게 공존하며 살아가는 일본의 고양이 섬, 그리고 대만, 인도, 라오스까지 고양이는 고양이라서 행복하고 사람들은 고양이가 있어 행복한 6개국 30여 곳의 묘생을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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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젊은 신부가 느낀 프란치스코 교황 – 진슬기, 임의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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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월, 가톨릭교회의 제 266대 교황으로 선출된 프란치스코 교황의 파격적인 행보가 연일 화제다. 그는 첫 강론에서 가난한 자들을 위한 교회를 선언했고 자신의 생일에는 노숙자들을 불러 아침식사를 함께했다. 또 110년 관행을 깨고 교황 관저가 아닌 게스트하우스 ‘성녀 마르타의 집’을 거처로 정했고, 가난한 나라의 주교를 추기경으로 임명했다. 작고 오래된 소형차, 금제 십자가 목걸이 대신 흰색의 성직자 예복과 소박한 검정 구두, 은제 십자가를 착용한 것도 눈길을 끌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282년 만에 탄생한 비유럽권 출신 교황이자, 최초의 라틴아메리카 출신 교향, 최초의 예수회 출신 교황이다. 이러한 타이틀에 앞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버스를 타고 다니는 검소한 추기경’,  ‘낮은 자세로 가난한 이들을 찾아다니는 목자’의 모습으로 전 세계인에게 기대와 감동을 안겨주고 있다.  

 

교황의 방한은 1989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방문 이후 25년 만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제6회 아시아청년대회’가 열리는 한국을 첫 번째 아시아 방문국가로 선택했다. 지난 3월, 교황의 방한 소식이 전해진 후로 대한민국은 종교인, 비종교인 구분할 것 없이 큰 기대감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을 기다려왔다. 출판계 역시, 교황의 방한을 책으로 반겼다.  『교황의 편지』 『교황님의 트위터 『복음의 기쁨』 등이 출간됐고, 특히 『뒷담화만 하지 않아도 성인이 됩니다』는 최근 2주 동안 예스24에서 약 400권이 판매되며 큰 인기를 얻었다. 

 

『뒷담화만 하지 않아도 성인이 됩니다』진슬기, 임의준 신부가 프란치스코 교황이 사람들에게 전한 가르침을 편안한 문체로 번역한 책이다. 진슬기 신부는 로마 교황청립 그레고리오 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하던 중, 프란치스코 교황의 영상을 접하고 혼자 보기에는 아쉬운 마음에 번역을 하기 시작했다. 진슬기 신부가 SNS에 올린 프란치스코 교황의 영상은 교계를 넘어 빠르게 전파됐고, 교황의 방한을 맞아 책으로 묶이게 됐다. 임의준 신부는 평소 특기를 살려 따뜻한 삽화로 프란치스코 교황의 메시지를 전했다. 두 사람이 책을 펴내며, 기대한 바는 단 하나다. 종교를 떠나 많은 사람들이 교황의 진실된 의중을 알기를 바랐다.

 

제발 부탁 드립니다. 삶을 발코니에서 관망하지 마세요. 여러분은 도전들이 있는 그곳에 뛰어들어야 합니다. 삶을 살아가고자, 좀 더 발전시키고자 애쓰는 이들이 여러분께 도움을 청하는 ‘그곳’ 말입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위한 투쟁, 빈곤을 타파하려는 몸부림, 참된 가치들을 위한 고군분투, 매일 직면하게 되는 이러한 삶의 투쟁에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 『뒷담화만 하지 않아도 성인이 됩니다』 135~136쪽)

 

 

만나고-진슬기,임의준

임의준, 진슬기 신부(오른쪽)

 

Coraggio avanti(용기를 가지고 앞으로)!


프란치스코 교황(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의 방한으로 전국이 들썩이고 있다. 지난 1989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방문 이후 25년 만의 교황 방한이다. 교계에서 바라보는 입장, 신부로서 교황을 맞이하는 마음이 특별할 것 같다.


임의준: 개인적으로 교황님이 오시는 것에 대해 두근두근 거리는 마음이랄까? 이번에 책을 만들면서 교황님을 깊이 있게 알게 됐고 궁금해지는 부분이 있었는데, 우리가 너무 지나치게 기대하면 우리가 기대하는 방향과 다를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너무 큰 생각을 갖기보다는 환영하는 마음으로 교황님을 맞이하고 싶다.

 

진슬기:먼발치지만 로마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뵌 적이 있다. 지난 4월, 교황님이 로마 그레고리안대 신학생들을 교황청에 초청했는데, 교황님 앞에서는 사제들도 일반 시민들과 다르지 않다. 손 한 번이라도 잡고 싶어 하는 마음이랄까(웃음). 우리는 사제이면서 또한 신자이기 때문에 가장 큰 교회의 어른이 우리를 만나기 위해 온다는 것에 대한 감사함, 기대감이 분명히 있다. 임의준 신부의 말처럼, 밝고 긍정적인 감사와 함께 염려하는 마음도 없지 않다. 지나치게 열광하고 과열되는 분위기랄까. 지금 한국 사회에서 가톨릭을 보는 시선이 마냥 따뜻하지만은 않은데, 단순히 보여지는 행사로만 그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있다.

 

한국에서 ‘제6회 아시아청년대회’가 개최되면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이 아시아 최초로 이뤄졌다.


진슬기: 아시아에서 가톨릭이 가진 위상이나 영향력은 유럽이나 남미에 비해서는 무척 미미하다. 하지만 한국 교회가 아시아 내에서 나름 활력 있고 미래가 밝아 보이는 가능성이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방한이 이뤄진 게 아닐까 싶다. 또 유일하게 남북이 분단되어 있어 화해와 평화라는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힘을 실어준 게 아닐까? 감히 초짜 신부의 생각이다.

 

이번 방한 때, 프란치스코 교황을 직접 만날 기회가 있나?


임의준: 공식적으로 따로 만날 기회는 없을 것 같다. 오는 16일에 열리는 광화문 시복식에 많이 참여하는데, 방송사 자문위원으로 파견되어서 TV로만 교황님을 뵐 수 있을 것 같다. 진슬기 신부는 아버님이 많이 편찮으셔서 유학 중에 잠시 귀국한 거라, 따로 행사 참여는 어려운 상황이다.

 

『뒷담화만 하지 않아도 성인이 됩니다』를 쓰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진슬기: 2년 전에 이탈리아 로마로 유학을 가게 됐다. 말을 배워야 하는데 단순히 문법책으로는 안 될 것 같았다. 선배들이 “네가 좋아하는 영화나 영상을 반복해서 듣다 보면 귀가 트일 것”이라고 말해줬는데, 영화는 너무 말이 빨라 도저히 이탈리아어를 들을 수가 없더라. 그러다 우연히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영상을 보게 됐는데, 굉장히 쉽고 천천히 말하셔서 귀에 박혔다. 강세나 뉘앙스 같은 게 마치 할아버지가 사랑스러운 손자에게 말하는 것 같았다. 내용도 무척 좋아서 혼자 듣기에는 아까워서, 자막을 입혀 영상을 SNS에 올리기 시작했는데 많은 분들이 반응을 보여줬다. 열심히 청취를 하던 한 선배가 책을 내보는 건 어떠냐고 제안을 줬다.

 

전문 번역가가 아니기 때문에 어려움도 있었을 텐데.


진슬기: 이탈리아어를 완벽히 아는 것도 아니라서, 처음에는 거절했다. 미루고 미루다, 올해 6월에 아버님의 병환이 깊어져 귀국을 했는데, 그 찰나에 교황님의 방한이 확정되면서 책을 만들게 됐다. 교황님의 인기 때문에 어록들이 많이 돌아다니지만, 맥락이 빠진 한 문장으로는 본뜻을 제대로 전하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황님 이야기를 풀 버전으로 하는 책이 있으면, 좋은 감동을 선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임의준 신부는 그림으로 책에 참여했다. 그간 『기도의 ABC』, 『성경 읽는 재미』의 삽화를 그린 이력도 있다.


임의준: 내 나름대로 교황님에 대한 애정 표현이랄까. 실제로 내 그림을 보면 심심한 그림일 수 있는데, 내가 잘하는 것으로 교황님의 방한을 환영하고 싶었다(웃음).

 

만나고-진슬기,임의준

 

서로에게 가장 인상 깊었던 그림, 글은 무엇이었나?


진슬기: 신자 분들은 바로 알 텐데, 못 자국이 난 예수님의 손을 그린 그림이 있다. 바닥에 있는 손은 그 누구의 손일 수도 있다. 삽화가 완성되기 전에 이 그림을 보게 됐는데, 마음이 따뜻해지는 걸 느꼈다. 다른 어떤 스킨십보다 따뜻함, 든든함이 느껴졌다. 이런 마음을 갖게 하는 게 신앙이고, 교황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임의준: 책의 머리말에도 나오는데, “Coraggio Avanti(용기를 가지고 앞으로)!”라는 교황님의 유행어를 듣고 용기를 많이 얻었다. 사실 전문적으로 번역이나 그림을 전공하지도 않은 젊은 신부가 책을 낸다는 게, 어떻게 보면 도드라질 수 있는 행동이라는 생각에 부담감이 있었다. 하지만 교황님의 이 말씀을 듣고 용기를 얻었다. 우리의 순수한 의도를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고, 교황님의 유행어 중에 가장 마음에 든다(웃음).

 

교황님의 이야기를 기록한 책인데, 제목을 읽고는 약간 놀라웠다. 친근하면서도 조금 가벼운 표현이 아닐까? 하는 염려가 있었을 것 같다.


진슬기: 실제 교회 내에서도 말이 많았다. 이렇게 가벼운 용어를 써도 되냐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뒷담화’의 뜻을 사전에서 찾아보니 평이한 표준어였다. 책 속 QR 코드를 통해 영상을 볼 수 있는데, 그 맥락을 보면 좋겠다. “뒷담화만 하지 않아도 성인이 됩니다”라는 말은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실제 하신 말씀이다. “여러분들, 뒤에서 험담하시면 안 됩니다”라고 말한 게 아니라, “성인이 되는 가장 쉬운 방법 하나 알려줄까요? 뒷담화만 하지 않아도 성인이 됩니다”라고 하셨다. 공식석상에서 풀어서 이야기를 하실 수도 있었지만 실생활에서 확 다가오는 말로 표현하셨다. “험담하지 마세요”라는 말보다 이런 식으로 직역하는 게 더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임의준:이 책은 교황님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지만, 교황님의 사진이 한 장도 실리지 않았다. 모두 그림으로 표현했다. 좀 더 친근하게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으로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교황님에 대한 책이 정말 많이 나왔는데, 책들을 보면 다 무겁다. 정자세로 읽어야 하는 책들이 대부분인데, 『뒷담화만 하지 않아도 성인이 됩니다』는 그냥 편하게 가방에 아무렇게나 넣고 시시때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꼭 신자가 아니더라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인 것 같다.


진슬기: 신앙이나 교황님이라는 존재가 그래야 한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신앙이라는 맥락 안에서, 교회의 수장으로서의 교황님은 권위를 가져야 하고 어떤 가치로서 고귀해야 하지만, 그 고귀함이 실생활과 단절된 것이라면 의미가 없다. 언제든지 손쉽게 이해할 수 있고 살아낼 수 있어야, 가치가 있다. 이 책은 처음부터 볼 필요도 없고 정독할 필요도 없다. 꼼꼼히 읽는 정독((精讀) 말고, 느끼는 것으로써의 정독(情讀)을 하면 좋겠다.

 

번역을 하면서 가장 와 닿았던 말씀은 무엇이었나?


진슬기: 책에‘사자후’라는 챕터가 있는데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사르데냐섬에 찾아가서 하신 말씀이다. 최근 사르데냐는 섬 인구는 4천 5백 명인데 비해, 난민이 무려 5만 명이나 된다. 이탈리아가 최근 경기 침체로 힘들어하는데 이집트, 리비아 등 아프리카에서 난민들까지 이렇게 몰려오니 낙천적인 이탈리아 사람들이라도 힘들어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 곳을 찾은 교황님은 “용기를 내라며 공직자들이나 교회의 성직자들이 그저 따뜻하게 미소만 지으면 안 된다. 우리 모두의 지력을 합하여 연대감을 갖고 이 역사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직접 한 가정의 가장처럼 행동하길 원하는 말씀이 마음에 깊이 와 닿았다. 말로만 “힘내세요”라고 하는 게 아니라 먼저 움직이고자 하는 교황님의 마음에 감동 받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보에 있어서 가장 감명을 받았던 일은?


진슬기: 말이 아니라 행동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고 생각하는데, 교황님이 ‘세계 병자의 날’에서 병자 한 명 한 명을 다 만져주고 안아주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큰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모자를 선물하니까, 그걸 바로 쓰시면서 “내 모자는 너 줄게”라고 하시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나의 자리 때문에 ‘내가 이 자리에서 이러면 안 되겠지?’라고 지레 겁을 먹는데, 교황님은 “왜 안 되는데?”라고 반문하는 것 같다. “너 왜 못하는데?”가 아니라, “다들 힘들구나”라고 생각하면서 본인이 먼저 본을 보여주신다.

 

임의준: 어릴 때 학교에서 뜀틀 뛰기를 하면, 가까이 갈수록 뜀틀이 너무 크게 느껴졌다. 내가 넘을 수 있을까? 걱정을 하다가도, 선생님이 시범을 보여주면 할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교황님의  글을 읽으면 단순한 삶의 지혜인데도 그것이 단순하게 여겨지지 않고 생명력이 있게 느껴지는 건,  정말 그 분이 자신의 말대로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나도 해보리라’는 용기가 생긴다.

 

만나고-진슬기,임의준


임의준 신부는 2007년, 진슬기 신부는 2011년에 사제품을 받았다. 신부가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임의준: 초등학생 때부터 성당에 다녔는데, 미사 때 성체라고 예수님의 몸을 나누어 먹는 의식이 있다. 신자들이 먹는 건 5백 원짜리 정도 크기의 빵인데, 신부님은 멀리서도 보여야 하기 때문에 두 세배 큰 크기의 빵을 드신다. 어린 나이에 그게 탐이 나서 신부님께 “나도 그걸 먹고 싶다”고 했더니, “그럼 신부가 돼라”고 말씀하셨다. 그 때 이후부터 신부에 대한 마음이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다(웃음). 다른 직업들도 상상해봤지만 결국 신부가 되는 걸로 통합이 됐다. 멋있는 빵집을 만들고 싶기도 교사가 되고 싶기도 했는데, 신부가 하는 일을 보면 다르지 않다. 우리는 매일 빵을 쪼개고 강론을 하고 있으니까(웃음).

 

진슬기: 고등학교 2학년 때 영세를 받았으니 가톨릭계에 입문한 게 꽤 늦은 나이였다. 당시에는 가족들이 한 명도 신앙을 갖고 있지 않았다. 영세를 받으면서 무작정 신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는데, 지금 보면 신부의 제의가 기사 망토처럼 보이기도 한 것 같다. 나풀거리는 제의를 입어보고 싶은 마음과 함께 사제로 사는 게 그냥 막연하게 좋았는데, 중요한 건 그런 마음이 변치 않았다는 거다. 신부가 되기로 결심을 하고 신학교에 지원했는데, 당시 영세를 받은 지가 오래되지 않아서였는지 입학 원서를 받아주지 않았다. 일반대학을 들어가서 마음이 바뀌지 않으면 졸업하고 다시 오라고 대답을 받았는데, 성질이 급하고 마음이 자주 변하는 편인데도 신부에 대한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웃음). 군대까지 다녀왔는데도 마음이 변하지 않아서 ‘나 같은 사람도 정말 불러주시는 구나’ 싶었다.

 

진슬기 신부는 현재 로마 교황청립 그레고리오 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있다. 유학은 어떻게 가게 되었나?


진슬기: 관할주교님이 ‘너 어디를 가라’하면 우리는 따라야 한다. 첫 사제품을 받고 본당에 나가서 신나게 보좌 신부를 맡고 있었는데, 공부를 더 하고 오라고 하셨다. 일곱 살 때부터 계속 학교를 다니고 있는데(웃음) 또 다니라고 하셔서 공부하고 있다.

 

임의준 신부는 천주교 서울대교구 직장사목부에 있으면서, 태릉선수촌 성 세바스티아노 성당 담당 사제다. 태릉선수촌의 미사는 어떨지 궁금하다.


임의준: 강론을 길게 하면 선수들이 힘들어 한다. 새벽 6시부터 운동을 하고 오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 항상 경쟁에 노출되어 있는 선수들 아닌가. 힘든 생활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대부분 신앙이 하나씩 있는 경우가 많다. 성적이나 등수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기 때문에 따뜻하고 인간적인 관심이 필요한데 신앙을 통해 위로를 받는 것 같다.

 

만나고-진슬기,임의준

 

비종교인이 가톨릭에 대한 잘못 이해하고 있는 편견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임의준: 오해는 무지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잘 알지 못해서 생기는 오해에 대해서는 책임이 쌍방에게 있다. 우리도 그만큼 알려주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부터 반성해야 한다. 이번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방한을 계기로 그동안 제대로 알려주지 못했던 것들이 많이 알려지고 바로 세워졌으면 좋겠다.

 

진슬기:한 가지는 분명히 했으면 좋겠다. 우리나라에서만 유독 ‘기독교’라는 용어를 개신교를 지칭할 때만 사용하는데, ‘기독교’는 ‘그리스도’에서 파생된 말을 한자로 바꾼 단어다. 다른 나라에서는 개신교나 천주교, 성공회 등을 모두 포함한 단어로 사용하는데 우리나라만 다르다. 가끔 방송을 보다가 놀랄 때가 있는데, 성당을 소개하면서 개신교 용어로 다 바꿔서 프로그램을 만든다. 단순히 우리 것을 써야 한다가 아니라, 존중하는 마음이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나라 언론, 출판계에서 자신의 신앙을 떠나서 기준을 잡아줬으면 좋겠다.

 

교회가 점점 부자가 되어가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어떤 의견인가?


진슬기: 우리가 속한 가톨릭교회가 가난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세계의 많은 난민들이 굶주리고 죽어가고 있는데, 신부, 목사가 굶어 죽었다는 이야기는 어디에도 들리지 않으니까.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건, 현실에서 최선을 다하면서 이상을 좇아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가 부자라고 한다면, 잔고액이 많다고 한다면, 줄이는 게 핵심이 아니라 그 돈을 필요로 하는 곳에 잘 쓰도록 하는 게 옳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임의준:뭔가 목적을 갖고 돈을 모을 때, 어느 순간에 그 돈을 써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게 가장 어려운 일 같다. 좀 더 모으면 더 중요한 곳에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머뭇거리는데, 모으는 것도 중요하지만 쓰는 것도 중요하다. 조금 더 모아서 더 좋은 일에 쓰자고 생각하다 보면, 타이밍을 놓치게 된다. 우리가 좀 더 움직여야 하고, 돈을 움직이는 게 아니라 마음을 주는 게 더 중요하다. 마음을 주려면 먼저 사람이 가야 한다.

 

어떤 독자들에게 『뒷담화만 하지 않아도 성인이 됩니다』를 추천하고 싶나?


임의준: 2주 전, 캄보디아에 살면서 선교를 하고 있는 신부님 가족들 만났다. 마침 책이 나온 타이밍이라 선물로 드렸는데, 무척 좋아하셨다. 이 분처럼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일하고 있는 누군가가 읽더라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책이다.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선물하고 싶다.

 

진슬기: 교황님의 이야기니까 너무 종교적이지 않을까? 생각하는 분들이 있을 텐데, 오히려 신앙인이 아니더라도 급박하게 돌아가는 세상에 살면서 ‘나는 왜 잘 안 풀리지?’라고 실망하고 낙담하는 분들이 읽으면 큰 위로가 될 것 같다. 교황님의 말씀은 “너희들은 이걸 더 해야 해”가 아니라, “너 지금 잘하고 있어. 그런데 힘들지? 나도 같이 갈 테니까 조금 더 힘내 보자”다. 시대의 어른으로부터 위안을 받을 수 있는 책이다. 많은 독자들이 토닥토닥 어깨를 두드려주는 교황님의 마음을 느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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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담화만 하지 않아도 성인이 됩니다프란치스코 교황 저/진슬기 역/임의준 그림 | 가톨릭출판사
《뒷담화만 하지 않아도 성인이 됩니다》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사람들에게 직접 전한 가르침을 모은 책이다. 그래서 이 책에 담긴 이야기들은 우리 삶과 직결된 이야기들이다. 연인들에게 하는 이야기, 가족들에게 하는 이야기, 가난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하는 이야기들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 책에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말을 걸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내용은 어렵지 않고 이해하기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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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진 “딴짓의 고수? 그런 생각 안 해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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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개집까지 모으냐?”는 소리를 듣고, ‘행주’에 집착하는 남자,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를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7평 남짓한 연구실은 온갖 잡동사니(?)로 발 디딜 틈이 없다. 학생 시절 파리의 허름한 다락방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이불 한 채 들고 건너간 일본의 대학에서 7년을 머물렀던 이기진 교수. 그는 과거와 현재가 만나는 공간 ‘벼룩시장’을 탐닉하게 됐고, 누구에게는 쓰레기로 치부될 지 모르는 보물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장안동 고미술상가에서는 이빨 나간 백자를, 아프리카 튀니지에서는 호랑이 조각을, 지난달 다녀온 낭트에서는 오래된 부엌용 조리 기구를 보물처럼 모셔왔다.

 

이기진 교수는 그간 동화책을 포함해 열 권이 넘는 책을 펴냈다. 어린이들에게는 동화를 통해 교훈적인 이야기를, 청소년들에게는 물리학 지식을 전달했다. 하지만 『나는 자꾸만 ‘딴짓’하고 싶다』에서는 그런 진지한 면을 찾아볼 수 없단다. 이기진 교수는 이 책을 두고 “날리는 깃털처럼 가벼운 행동과 이야기뿐”이라고 말했다. 때로는 지독히도 가벼워 보이는 것들에서 영감을 발견하기 마련이다. 이기진 교수는 괴짜 교수도 달변가도 아니었지만, 세상살이의 재미를 아는 듯한 표정으로, 짧고 굵은 답변을 꺼내놓았다. 그의 책을 편집한 에디터의 말처럼, 물리학자에 대한 고정관념, 취미에 대한 편견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만나고-이기진

 

취미생활은 연애와 같다


프롤로그가 재밌다. 지금까지 딴짓을 하고 살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는데, 편집자가 책 제목을 ‘나는 자꾸만 딴짓하고 싶다’로 정해서 가져왔다고.


(웃음). 제목이 정말 이렇게 정해질지는 몰랐다. 제목을 받아 들고 ‘아, 이게 딴짓이구나’ 생각했다. 그냥 나에겐 내 생활인데, 다른 사람들이 보기엔 ‘딴짓’일 수 있겠다 싶었다.

 

책에 실린 각종 보물, 즉 수집품의 사진들을 직접 촬영했다고 들었다.


대부분 연구실에 있었던 물건이고, 집에 있던 물건도 가져와서 아이폰으로 촬영했다. 흰색 배경지만 깔아 놓고 찍었다. 특별한 순서 같은 건 없었다. 내 주변에 있는 것부터 찍고 쓰기 시작했다. 네 꼭지 정도 쓰면 출판사에 보내고 그랬는데, 그만 쓰라고 해서 그만 썼다. 원래 짧은 글을 주로 썼던 터라, 이번 책은 좀 힘들었다. 많이 긴 꼭지는 아니었지만 쓰다 보니 괴롭더라.

 

수집품에 대한 즐거운 추억을 떠올렸을 텐데, 괴로웠다니.


처음에는 쉽게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정리하는 단계에서 고통스러웠다. 처음 느낀 것 같다. 내용은 즐겁지만, 내가 전문작가가 아니니(웃음). 아직 훈련이 덜 된 것 같다. 사실 지금도 배우고 있는 단계다.

 

새 학기가 돼서 학생들이 연구실에 찾아오면, 이 어지러운(?) 광경에 조금 놀랄 것 같은데.


당황한다. 나는 그런 생각을 안 하는데, 애들은 당황한다(웃음). 면담을 하러 오면 애들이 집중을 못하는데, 이런 걸 노린 거다(웃음).

 

인터뷰를 하는 지금도 자꾸만 시선이 다른 곳으로 간다(웃음). 아끼는 물건인데 누군가 달라고 하면, 주는 경우도 있나?


진정성이 있으면 주기도 한다. 그런데 가져가봤자 그 친구에게 의미가 크지 않으니까. 뭐 로보트인형 같은 건 좋아하면 준다. 몇 가지 못 주는 게 있긴 하다. 채린(씨엘)이가 쓰던 그릇이나 사발 같은 것들. 그런 건 나중에 딸한테 줘야 할 것 같다.

 

집도 이렇게 어수선한가?


(웃음). 집은 깔끔한 편이다. 서촌에 작업실도 있으니까, 연구실에 못 두는 물건들은 작업실에 둔다. 연구실은 나에게 가장 익숙한 공간이다. 원고 청탁을 받을 때도 언제나 연구실에서 글을 쓴다. 밖에서는 쓸 수가 없다. 밖에 나가면 놀아야 하니까. 연구실 아니고서는 글을 쓸 수 없는 폐단(?)이 생겼다. 기분 좋을 때, 연구실에 앉아 글을 쓰면 딱 알맞다.

 

만나고-이기진

 

서촌 작업실은 어떻게 꾸미게 되었나?


일본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후, 한옥 단칸방에서 한 달간만 지내보고 싶다는 소망이 생겼다. 창호지로 된 문을 열어 하늘을 내다보고, 처마 밑 툇마루에 앉아 책을 읽고 맥주를 마셔보고 싶었다. 그러다 한번은 정말 북촌 한옥을 알아봤는데, 마음에 들었던 한옥이 고민을 하던 와중에 팔렸다. 그 후 북촌 집값이 내가 쳐다볼 수도 없는 가격으로 올라, 서촌으로 눈을 돌렸다. 어쩌면 서촌의 허름한 분위기가 나와 더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서촌 작업실에서는 지인들을 자주 만난다. 갤러리 비슷하게 작은 전시장도 꾸몄다. 건물이 낮으니까 하늘의 공간이 달리 느껴진다. 공기도 좋고 조용하고. 하늘이 가깝게 느껴진다는 게 가장 좋다.

 

취미생활은 연애와 같다고 말했다. 어떤 의미인가?


애정과 관심에 따라 취미의 깊이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조금 눈길을 멀리하면 토라져 버리고, 만남이 뜸해지면 헤어짐의 아픔을 겪기도 한다. 또 물질적으로 투자를 하면 급격하게 친밀해지기도 한다. 가끔은 삼각관계에 휘말리기도 하는데, 둘 중 한 사람을 버려야 하는 불편한 상황처럼 애지중지하던 취미를 멀리하고 새로운 관심사로 갈아타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최선의 취미는 무엇일까?


쉽게 할 수 있는 취미를 즐기는 게 가장 좋지 않을까? 첫사랑을 찾기 위해 먼 길을 떠나는 것보다는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서 애정을 찾는 게 더 나은 것처럼. 그런 의미에서 내가 찾은 취미는 그림을 그리는 일이다. 사실 어릴 적에는 빈센트 반 고흐처럼 유화를 그리고 싶었다. 그런데 집안의 반대가 심해서 포기하고 찾은 방법이 책상 위에서 남몰래 연애편지 쓰듯이, 컴퓨터로 그림을 그리는 일이었다. 내 그림은 사인펜과 컴퓨터만 있으면 그릴 수 있다. 

 

“그림을 그리는 데 제일 중요한 것은 그리는 문제가 아니라 그림을 봐줄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취미생활도 마찬가지 아닐까. 컬렉션을 혼자만의 취미로 만족한다면 수집하는 일에서 끝나겠지만, 이렇게 책을 내는 건 누군가와 공유하고 싶기 때문이다.


좋은 것을 보고 같이 공감해 주는 사람이, 물건을 모으는 열정보다 더 중요하다는 걸 나중에 깨달았다. 거창한 취미, 그림, 컬렉션보다 중요한 건 취미를 공유해 줄 사람이 곁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리학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보는 사람의 시점이 본질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물리적 증거가 되기 때문에 관찰자가 더 중요할 수 있다. 태초에 빅뱅이 있었다는 사실보다도 그 빅뱅을 보고 증거가 되어 준 사람이 더 중요한 것처럼.

 

최근에 구입한 수집품은 무엇인가?


프랑스 낭트 대학에 한 달 정도 있었는데, 벼룩시장에서 주방기구를 샀다. 요리를 좋아하는 편인데, 요즘 필이 꽂힌 게 독특한 양식이 있는 부엌가구, 주방기구다. 주방기구는 요리할 때 당장이라도 쓸 수 있으니까 좋다. 보통의 남성들은 시계, 자동차에 열광하는데 그건 끝이 없는 것 같다. 교수 월급으로 가능한 일도 아니고(웃음). 나는 글 쓰고 그림 그리고 요리하면서 집안에 있는 것에 만족한다.

 

만약 물건을 수집하는 취미가 없었다면, 다른 취미를 가졌을까?


다른 취미를 가졌더라면 또 그 안에서 재밌게 놀지 않았을까. 사실 수집을 한다고 이것만 하는 게 또 아니다. 그림을 그리는 것도 다 연관이 되는 일이고.

 

만나고-이기진

 

요리책, 웹툰도 그리고 싶어


딴짓을 즐기지만, 본업은 ‘물리학자’다. 고등학교 물리 선생의 칭찬 한마디에 진로를 정했는데, 물리를 선택한 것에 만족하나?


물리학은 어떻게 보면 내가 존재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물리학은 내 직업이고 이 직업을 통해 나는 모든 걸 해결한다. 수업을 하고 연구를 하고 또 글을 쓰고, 사람도 만나게 해준다. 물리학 연구가 즐거워서 한다고 하지만, 고통스러울 때도 많다. 뭔가를 만들어내야 하고, 학생들이 있으니까 연구비도 마련해야 하고. 피 흘리는 작업일 때가 많다. 그렇지만 물리를 하지 않았다면, 다른 모든 걸 얻기 힘들었을지 모른다. 나는 내가 물리를 하려는 것과 24시간을 함께한다고 생각한다.

 

물리학자, 대학교수로서의 이기진은 어떤 모습인가?


학생들에게는 지식을 가르치지만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수업에서 보이는 성실성이다. 수업할 때는 진지하게, 놀 때는 잘 놀고. 가끔 학생들에게 농담처럼 하는 이야기가 있는데, “너희들이 지금 가장 아름다운 시간을 보내고 있으니 충분히 즐겨라”라는 말이다. 사실 물리학 학점을 A를 받는다고 다 잘되는 것도 아니고 훌륭해 지는 것도 아니다. 정해진 시간에 얼마만큼의 진정성을 갖고 좋은 시간을 만들어내는 게 중요하다.

 

20,30대 제자들이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건가요?”라고 물으면, “무모하게 그냥 살면 되지 않을까”라고 답한다고.

 
내가 정답을 줄 수도 없는 문제고, 자신이 진정성을 갖고 사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없다는 생각이다. 나 역시 완성된 인생을 살고 있는 것도 아니고 항상 불안해하고, ‘뭘 해야 하지?’ 늘 고민하는 입장이다. 우리는 모두 똑같은 입장이다. 지금까지 내 삶에 있어서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면, 나는 가장 앞에 있는 걸 선택했던 것 같다. 가장 먼저 답변이 오는 곳을 선택했다. 빨리 선택하고 뒤를 돌아보지 않는 성격이다. 사실 어느 길이든 가지 않고는 모르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지금까지 한 선택 중에 가장 잘한 선택은 무엇인가?


글쎄. 공부를 하기로 결정한 일? 결혼? 어떤 일을 결정하고 난 다음에는 잘한 건지, 못한 건지 금방 알 수는 없다. 나는 결정하면 뒤를 보지 않는 편인데, 일단 선택한 일에 있어서는 앞만 보고 달려 간다. 끊임없이 에너지가 있을 때, 가는 거다. 어떤 것에 크게 의미를 부여하는 성격이 아니다. 서로 행복하게 살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면서 사는 것, 이게 나에겐 최선이다.

 

2004년 동화책 『박치기 깍까』를 시작으로 거의 매해, 책을 냈다. 글쓰기의 매력은 언제 느끼나?


항상 ‘어떤 글을 써야 할까?’에 대한 생각을 품고 산다. 청탁을 받으면, 그간 생각했던 것들을 정리하게 된다. 나에게 이런 것들이 없었다면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았을까? 라는 생각도 든다. 한 권의 책을 마무리하면, ‘다음 글은 이걸 써봐야지’하고 생각한다.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녹음을 할 때도 있다. 책을 낸다고 하는 건, 나 혼자 글을 쓴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 여러 사람이 움직여야 책이 나올 수 있는데, 어떻게 보면 저자는 배우일 뿐이다. 편집장의 코치를 받으며 쓰게 되니까. 이 책이 흥행이 잘됐으면 하는데, 나 혼자서만 만든 게 아니기 때문이다. 책을 낼 때마다, ‘잘 써야 하는구나’, ‘잘해야 하는 구나’를 깨닫는다.

 

요리책, 웹툰을 그리고 싶다는 소망을 비친 적이 있다.


웹툰은 항상 생각하고 있다. 빨리 시작해야 하는데, 아직 진척이 안 됐다. 웹툰을 그리려면 체력이 가장 중요한 것 같고, 정해진 시간을 확보하는 게 필요하다. 일이 겹치게 되면 집중력이 생기지 않으니까. 언젠가 그런 시기가 오지 않겠나 생각하고 있다.

 

웹툰을 연재한다면 어떤 주제를 다루고 싶나?


물리학을 중심으로 물리학자의 어떤 삶에 대해 그려보고 싶다. 그림을 그릴 때가 가장 행복하다. 글을 쓰는 건 괴로울 때가 있는데, 그림은 시간도 얼마 안 걸리고 자유롭다. 막 그리니까.

 

어떤 이슈에 대해 이야기할 때 가장 수다스러워지나?


특별한 거리는 없다. 후배들이랑 영화, 노래, 요리,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할 때가 즐겁다. 요즘은 나와 비슷한 연배 사람들은 잘 안 만난다. 고리타분해서(웃음). 주로 사람들을 만나는 건 낮 시간대에 많이 한다. 학교 수업을 마치면, 체육관에서 한 시간씩 꼭 운동한다.

 

나를 가장 편안하게 만드는 순간은?


책을 읽을 때? 글이 안 써진다던가 감정이 드라이해질 때, 책을 본다. 오랫동안 몰두해서 읽는 건 아니고, 그 때 그 상황에서 발견된 책들을 읽는다. 뭔가 작은 영감이라도 얻게 된다.

 

만나고-이기진

 

욕심은 버리고 딴짓은 늘리자


첫째 딸 씨엘(채린)은 아빠의 어떤 성격을 닮았나?

 

자기가 좋아하는 일, 취향에 대한 열정? 그런 것들에 끝없이 파고들고 확장시키는 성격이 닮은 것 같다. 좋아하는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일. 거기에 빠져 사는 게 아닐까.

 

두 딸이 어렸을 때, 아빠로서 자주 했던 말은 무엇이었나?


아이들이 굳이 하기 싫어하는 일에 대해서는 억지로 시키지 않았다. 꼭 공부를 해야 할 이유도 없다. 떡볶이를 만들더라도 자기 자신이 행복하고 재밌게 만들면 충분히 즐겁게 살아갈 수 있다. 내가 선택한 것들 속에서 자존감을 갖고 행복을 느끼고, 주위 사람들 사이에서 어떤 존재감을 느끼면서 살아가는 게 인생의 전부가 아닐까.

 

『나는 자꾸만 ‘딴짓’하고 싶다』의 카피가 ‘나이 먹는 남자일수록 몰입할 딴짓이 필요하다’이다.


중년이 되면 고독이라는 걸 받아들일 때가 된 거다. 혼자서 뭔가 재미있게 살 수 있는 방법을 깨달아야 할 나이가 중년이라고 생각한다. 50대 정도가 되면 알아야 하지 않을까. 욕심을 버릴 수 있는 나이인 것 같다.

 

새롭게 구상하고 있는 ‘딴짓’은 없나?


정년이 되면 엔틱샵 같은 걸 열어보고 싶은 생각이 있다.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다. 계속 일만 하고 싶진 않다. 어쩌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들이 준비 작업일 수도 있다. 은퇴를 하면 지금과 같은 삶을 밖에서 꾸려나가지 않을까. 
 
어떤 독자들에게 『나는 자꾸만 ‘딴짓’하고 싶다』를 추천하고 싶나?


혼자 만의 어떤 시간을 갖는 건 굉장히 중요한 일인 것 같다. 우리가 일만 하고 살 수는 없지 않나. 어차피 사무실에서 나가면 뭔가를 해야 하는데, 자기만의 생활, 밤이 있는 생활을 잘 누리는 게 중요하다. 낮에 일을 한다면, 밤에는 스스로를 위한 시간으로 썼으면 좋겠다. 어떠한 취미를 갖는 게 중요하다기보다, 연애하듯이 즐거운 마음으로 무언가를 시작하고 싶은 분들이 읽으면 좋겠다. 누구나 이런 책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블로그를 할 수도 있고, 책을 쓸 수도 있다. 내 취향을 가다듬으면서 생활을 하다 보면, 뭔가를 이야기하고 싶지 않을까? 이 책이 조그마한 영감을 줄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책으로만 만났을 때는 수다스러울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웃음). 말할 때, 사족을 붙이는 법이 없다.

 

(웃음). 원래 말을 잘 안 한다. 듣는 입장일 때가 많은데, 또 모른다. 술 마실 때는 말을 많이 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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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자꾸만 딴짓하고 싶다이기진 저 | 웅진서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하며 거기서 승부를 보기도 하고, 이것저것 하고 싶은 일을 다 해보면서 재미나게 살아볼 수도 있다. 서강대학교 이기진 교수는 물리학자로서 매일 연구에 빠져 고리타분하고 단조로운 삶을 사는 사람이다. 그러나 실험실 문을 닫고 나오는 순간부터 온갖 상상의 날개를 펴면서 뭔가에 미친 사람처럼 딴짓에 빠져든다. 대다수 사람들이 가장 화려하게 신경 쓰고 남의 눈치를 보며 성취하고자 하는 현실을 오히려 절제하고 단조롭게 유지하면서 살기에, 그 나머지 삶을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깊이 몰입하면서 ‘딴짓’을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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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해인 수녀와 백지혜 화가가 부르는 밭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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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인 수녀의 동화책이 나왔다고 했을 때 반가움이 앞섰다. 그도 그럴 것이 채널예스가 이해인 수녀를 만났을 때는 암 투병이 한창이던 2011년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3년이 흘렀다. 인터뷰가 이뤄진 바로 전날에 독자와 만남에서 무려 500여 명에게 사인을 해줬다고 한다. 피곤할 법도 한데, 이해인 수녀는 여전히 건강하고 밝은 모습으로 채널예스 취재진을 대했다.


⇒ 2011년 이해인 수녀 인터뷰(http://ch.yes24.com/Article/View/17240)

 

이번에 나온 그림책 『밭의 노래』는 수도원에서 텃밭을 가꾼 이해인 수녀의 경험이 담겼다. 밭에는 감자, 배추, 오이 등의 식물과 나비, 벌 등의 곤충이 함께 산다. 도시생활에 익숙한 현대인이 보기에는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자연을 그리워하는 건 인간의 본능. 아이는 물론이고 어른도 이 동화책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이해인 수녀가 노래한 동시를 그림으로 옮긴 건 백지혜 화가. 첫 번째 그림책 『꽃이 핀다』에서 전통 채색 기법으로 화제를 모았던 그녀는 이번 책도 마찬가지로 우리의 전통 색으로 밭을 표현해냈다. 특히 집 앞 마당에서 직접 식물을 가꿔가며 세심한 관찰을 바탕으로 밭을 자연에 최대한 가깝게 그렸다.  

 

이해인백지혜

 

두 분의 근황을 말씀해 주세요.

 

백지혜 화가(이하 백) : 작년 가을부터 올여름까지『밭의 노래』 책 작업을 진행했어요. 책 출간과 동시에, 출간 기념회를 겸해서 그림책에 들어간 원화전을 지난주에 열었고요. 지금은 잠시 휴식을 취하는 중입니다.

 

이해인 수녀(이해 이) :백지혜 화가의 그림과 함께한『밭의 노래』를 보고 수녀원 밭을 유심히  관찰하면서 쉬기도 했고요. 자연과 함께 즐기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두 분이 어떻게 그림책을 만들게 되었나요?

 

: 출판사로부터 소개받았죠. 마무리할 때쯤 만났어요. 백지혜 화가가 어떤 그림을 그리는지 미리 봤습니다. 좋은 인상을 받아서 믿고 맡길 수 있는 화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출판사가 맺어준 인연이죠.

 

실제로 책으로 나왔을 때 기분이 어땠어요?

 

: 책 속에 묻혀 있던 단어가 그림으로 확 살아오는 느낌이 들었어요. 가지, 호박, 오이, 참외와 같은 단어가 실제 모습으로 튀어나오는, 생생한 느낌? 생명력을 부여받는 느낌, 이라고 할까요. 참 좋았어요.

 

이번 동화책 주제가 '자연'입니다. 실제로 텃밭도 가꾸고 있는데요. 아이들이 자연을 가까이해야 하는 이유를 말씀해 주신다면.

 

: 청소년 범죄가 부쩍 늘고, 순수함을 잃어버리는 게 흙을 멀리하고 자연과 가까이 있지 않은 데서 오는 게 아닐까 싶어요. 매일 인터넷 게임하는 시멘트 문화에 길들어져 있잖아요. 밭이 주는 생명의 노래, 생명의 기쁨 같은 걸 접할 기회가 없으니까요. 시골에서 자라는 사람은 마음이 악해질 수 없는 것 같아요. 아파트에 살더라도사각 궤짝에 상추를 가꿔본다든지, 하는 의도적인 노력을 아이에게 해 주면 마음이 좀 순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백 :마당에 있는 집에서 태어나서 계속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아왔는데요. 식물이나 꽃과는 친숙했으나, 밭에서 자라는 작물과는 이 책을 그리기 위해 공부하면서 처음으로 친하게 됐어요. 올봄부터 책에 등장하는 가지, 방울토마토, 딸기를 마당에서 키우기 시작했는데요. 비가 오면 비가 와서 걱정이고, 해가 뜨면 식물이 목마를까 걱정이다 보니 스스로가 부지런해져요. 책임감도 생기고요. 생명 옆에서 봉사해야겠다, 작은 것이 가진 소중함, 이런 점을 책을 준비하면서 느꼈죠.

 

밭의노래 

 

아이에게는 교재이고, 어른에게는 위안을 줄 수도 있을 듯한데요. 요즘 사회가 전반적으로 가라앉은 느낌입니다. 독자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주신다면?

 

: 위로, 희망 메시지 주는 게 어렵네요. 우리 심성에 잠들어 있는 선한 마음, 착한 마음을 계속 끄집어내는 노력을 하지 않아서 악한 일이 생기지 않나, 싶어요. 인내심이 부족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언어적 폭력, 사람을 죽이기도 해요. 마음 하나를 선하게 길들이지 못하는 데서 사회악이 빚어지는 것 같은데요. 마음을 맑고 선하게 하는 노력으로는 자연과 가까이하는 것도 있고, 좋은 책을 읽거나 좋은 음악을 들을 수도 있겠죠. 착하고 좋은 말을 주고받는 것도 있고요.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되지 않고, 가정과 사회가 함께 착해지려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으면 점점 악한 쪽으로 갈 것 같은 염려가 생겨요. 위로라기보다는 걱정이 많이 돼요. 기도만으로 안 되구나, 어쩌면 좋지, 하는 마음이 저를 힘들게 하는 때에요. 위로도 사실 잘 안 나오네요.

 

시도 계속 쓰시나요.

 

이 : 계속 써요. 이상하게 시라는 것이 평화로울 때보다는 걱정 많고 불안하고 괴로운 일이 있을 때 잘 써져요. 어떤 분이 시는 안 쓰고 그림책만 내느냐고 했지만, 그림책을 많이 낸 것도 아닌데요. 그림책으로 나오니까 눈에 띄나 봐요. 그림책은 문학과 미술이 어우러진 것으로 나름의 의미가 있죠. 남녀노소가 함께 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림책 장점도 있고요.

 

백지혜 화가는 이번 책을 그리는 과정이 남달랐다고 들었는데요.

 

백 :『밭의 노래』제안받았을 때, 걱정됐던 부분은 서울에서 태어나서 서울에서 자라서, 밭에 관해 알고 있는 지식이 많지 않았다는 점인데요. 다행히 인터넷으로 알게 된 지인분께서 발달장애청소년들을 위한 농장을 운영하고 있었죠. 거기 가서 밭을 취재했어요. 마을 분위기도 좋아서, 한 번 더 가서 며칠 머물며 아침부터 밤까지 밭에서 스케치했거든요. 그때 제가 그려야 하는 대상이 마음에 와 닿았던 경험을 했습니다. 올봄에는 책에 등장하는 몇 가지 작물을 마당에서 직접 기르면서 스케치를 하고 사진을 찍는 등의 준비를 했죠.

 

기법도 궁금해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첫 번째 책 『꽃이 핀다』도 그렇고 이 그림도 전통 진채화, 전통 채색화라고 분류합니다. 한국화가 재료와 기법상으로는 크게 수묵화와 채색화로 나뉘는데요. 수묵화는 많이 알려졌듯이, 화선지에 먹으로 그려진 산수화나 문인화 같은 그림들을 말하는데, 상대적으로 채색화라는 장르는 덜 알려진 것 같아요. 하지만 채색화도 전통이 오래됐어요. 고려 시대 불화, 조선시대 초상화, 또 많이 알려진 신사임당의 초충도, 이런 그림들이 진채화에요. 저는 조선시대 초상화를 공부 했는데, 그때 공부했던 기법과 물감 재료로 그림책 작업을 하고 있어요.

 

이번 책은 바탕이 춘포였는데요. 춘포라는 천은 비단과 모시가 같이 짜여져서 가로세로의 실들이 교차하는 질감이 잘 보여요. 밭이 가진 느낌과 천이 가까이 닿아 있는 게 아닐까 해서 택했고요. 가능한 자연의 색을 살리기 위해 천연 물감을 많이 썼어요. 기존에 나온 밭에 관한 책 많은데요. 그런 책과 다르게 만들고 싶어서 시 한 줄 한 줄이 갖고 있는 잔잔한 감동을 최대한 표현하려 애를 썼어요. 동양화 화가이니, 동양화에서 많이 얘기되는 여백을 많이 살리려고도 했고, 어떤 장면에서는 화훼화나 초충도 같은 느낌이 들게 구성 했어요.

 

밭에 다양한 생물이 사는데요. 특별히 애정이 있는 종류의 채소, 생명이 있을까요?

 

: 수녀원에서 밥 먹을 때, 가끔은 상추나 쑥갓 같은 여러 쌈을 주줍니다. 사람들이 냄새난다고 쑥갓을 안 먹어요. 저는 좋아해요. 노란 쑥갓 꽃이 예쁜 거예요. 약간의 향기가 있고, 정겹죠. 가끔 노란 쑥갓 꽃 핀 여름이라든지, 쑥갓을 찬미하는 시를 쓰기도 합니다. 가지도 좋아하고요. 감자, 홍당무도 좋지만 그중에서는 쑥갓에 애정이 갑니다.

 

백 :가지요. 가지는 새싹이 자라날 때부터 열매 맺을 때까지 봐 왔는데요. 가지 꽃 자체가 갖고 있는 아름다움도 있고, 가지가 자라는 과정을 지켜봐서 애정을 더 많이 쏟는 것 같아요. 가지는 두 번 그렸는데요. 그렇게 나온 두 번째 그림이 마음에 들어요.

 

 이해인백지혜

 

수녀님은 10년 전 인터뷰에서 수도원 40년 소회를 말씀하셨는데, 50년을 되돌아본다면?

 

이 :10년 전에는 병에 안 걸렸죠. 10년 사이에 환자가 되어서 암으로 6년째 투병을 하고 있어요. 크게 달라진 건 없어요. 더 많은 고통을 경험하면서, 더 많이 감사하고 사물을 보는 시선이 긍정적으로 변했다고 할까요.“사랑은 더 애틋해지고, 기도는 더 간절해지고, 감사는 더 깊어졌습니다.” 제가 한 말을 신문에서 타이틀로 썼는데, 제가 한 말이지만 좋아서 외웠어요. 이게 지난 50년 동안 제 삶을 축약해주는 게 아닐까 합니다. 언어로 쓰는 시도 중요하지만 내 삶을 시로 채우기 위해서는 욕심과 이기심을 버리고 절제되고 간결한 삶을 사는, 존재 자체로 한 편의 시가 되어야겠구나, 결심하게 되더군요. 지상의 소임을 마치고 하늘나라로 이사갈 날이 머지않은 이 시점에서 이 나이에서는 그런 고백을 하게 됩니다.

 

⇒ 2004년 이해인 수녀 인터뷰(http://ch.yes24.com/Article/View/12857)

 

백지혜 화가도 그림 그리는 세월이 점점 쌓여가는데요.

 

:대학 생활을 포함하면  그림 그린 지 벌써 20년이 되었네요. 저도 깜짝 놀랐죠. 특히 이번 책이 두 번째 책인데, 첫 번째 책은 7년 전에 나왔으니“아, 그만큼 시간이 많이 지났구나.”라고 느꼈어요. 그림을 포기할 뻔했던 적도 있었고, 어려움도 되게 많았어요. 아직도 힘이 되는 기억은, 인사동에서 처음으로 개인전을 열었을 때에요. 아침 10시 반에 갤러리 문을 열자마자 어떤 아주머니가 들어오셨어요. 그림을 30분간 찬찬히 보고 나가셨거든요. 이른 시간에 오신 것도 눈에 띄었고, 보통 5분이나 10분 정도 쓱 보고 나가시는데, 그렇게 오래 머문 게 기억에 남았어요. 1시간 후에 오셔서 비닐봉지를 전달하시는 거죠. 그 안에는 오미자차가 포장되어 있었어요. 그분이 말씀하시길, “너무 마음이 우울해서 눈앞에 보이는 갤러리로 들어왔는데, 그림을 보고 마음에 위안을 얻었다.”

 

지금도 어떤 그림을 그리고 싶으냐고 질문을 받으면 사람들의 마음에 힘을 줄 수 있는 그림, 위로를 줄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고 이야기해요. 제가 그렇게 마음을 먹으면 그런 그림을 그릴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림책 작업도 일환이에요. 갤러리에서 그림을 발표하는 건, 짧으면 1주일 길면 열흘 정도 기간과 그림을 볼 수 있는 대상이 한정적일 수 밖에 없지만 그림책은 그 그림책을 사서 보는 모든 이를 대상으로 하거든요. 어떻게 보면 제가 생각하는 그림의 의미와 그림책이 맞닿을 수 있겠구나,싶어요. 그래서 그림책을 시작하게 됐고요. 꼭 어린이를 위해서만 아니고 어머니나, 아이가 있지 않은 사람이라도 내 마음을 쉬고 싶을 때 책을 보고 휴식을 취해주시면, 하는 마음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이해인 수녀님은 교황 관련해서 글도 썼는데요.교황에게 기대하는 게 있다면?

 

: 국민적인 우울증, 의기소침, 침울하고 다운되는 분위기인데요. 반짝 특수, 이런 거 말고 진정한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왜 우리가 좌절과 절망을 딛고 일어나서 희망을 품고 살아야 하는지를 교황님의 자연스럽고 따뜻한 모습에서 각자가 깨달았으면 합니다. 그래서 각자 삶의 질이 좀 더 고상해지고 우아해지면 좋겠어요. 교황님이 다녀가신 후에, 삶에 활기를 찾고 이웃을 배려하고 이기심에서 빠져나와 새 삶을 사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멋있는 분이네, 잘 가시오.” 이런 반짝 특수가 아니라 교황님이 일상생활과 결부되는 하나의 촉매제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에요.

 

많은 독자가 수녀님의 시집, 산문집을 기다릴 것 같은데. 다음 작품은?

 

: 시 전집까지 나왔기 때문에, 시집이 안 나와도 되겠구나, 생각했는데요. 글은 계속 써지니까, 단상이건 시집이건 그림책이건 아직도 살아 있다면 몇 권 더 나올 수도 있겠구나, 싶어요. 그렇지만 구체적으로 언제 뭘 내겠다는 건 안 정했어요.

 

백지혜 화가의 차기작은?

 

백 :상반기는 그림책에 매진하느라 해왔던 작업에서 잠시 손을 놓았는데요. 내년 봄에 개인전이 잡혀 있으니 본업으로 들어가서 전시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다른 책을 준비 중인데요. 집에 사는 사람에 관한 에세이입니다. 지금 오래된 동네에 작은 집을 짓는데, 점점 주택에서 사는 사람이 적어지고 있잖아요. 그 기억을 갖고 있는 사람도 줄어들고 있고요. 어렸을 때부터 마당에서 살았던 경험, 기억을 바탕으로 집을 지으면서 살게 되는 이야기까지를 쓰고 있어요. 언제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준비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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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의 노래이해인 글/백지혜 그림 | 샘터
《밭의 노래》는 이해인 수녀의 시로 만든 첫 그림책입니다. 이해인 수녀는 어른들을 위한 시로 많이 알려졌지만, 처음 발표한 시는 ‘동시’입니다. 1970년 어린이 잡지《소년》에 동시 하늘, 아침 등이 추천되어 시인으로 등단했지요. 밭노래라는 시는 생전에 동화작가 정채봉 씨가 이해인 수녀의 동시 중 가장 좋아하는 동시로 꼽았던 것으로, 밭에 나가면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채소와 식물, 곤충들을 정겹게 그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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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면, 배우와 뮤지션 두 마리 토끼를 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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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누비던 이들이 다양한 이유로 음반을 발매한다. 박준면도 그런 경우다. 그는 배우로서 흔치 않게 빚까지 내면서 음반을 만들었다. 완성도가 그 사실을 입증한다. 금전적인 투자보다 놀라운 것은 그의 노력이다. 모든 곡의 멜로디를 짜고 가사를 붙였다. 그랬다는 그 사실을 넘어 그 실력에서 진정성이 느껴진다.

 

콘서트 리허설이 끝나고 우리에게 다가왔다. 연주자들은 무대 쪽에서 식사를 했고 인터뷰는 관객석에서 진행되었다. 이번 음반 그리고 연기와 음악에 관해 30분 정도 이야기를 나눴다.

 

만나고-박준면

 

이번 음반에서 블루스, 사이키델릭 그리고 아트록적인 성향이 느껴졌습니다. 원래 그런 감성이신가요?


특별히 장르를 염두에 두고 쓴 건 아니에요. 제가 음악을 전공한 사람도 아니고요. 그냥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된 거에요. 곡을 냈더니 그렇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좋아하시는 음악으로는 백현진과 어어부 프로젝트를 꼽으셨었습니다.

 

네 좋아하죠. 재즈도 좋아하고, 록도 좋아하고요. 안 가리고 많이 듣는 편이에요.

 

곡을 쓰실 때, 자유롭게 흘러나오는 대로 작곡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과정을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평소에 저도 모르게 끄적끄적, 메모를 해둬요. 작곡을 해야지 하고 하는 게 아니라, 피아노로 놀다가 걸리는 코드가 있어요. 딱 걸리면 전체적인 음악의 각을 짜고 어울리는 메모를 골라 가사를 썼죠. 전문적으로 하려고 한 건 아니에요.

 

편곡적인 부분에서는 하몬드 오르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네 고경천 씨가 연주하셨죠. 제가 피아노를 쳤던 두 곡 빼고 거의 모든 편곡을 고경천 씨가 맡아주셨어요. 세션들 각각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분이시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대화도 많이 했어요.

 

연주하시는 분들이 대단한 분들인데, 어떤 인연으로 함께하게 되었나요?


제가 홍대에 산 지 8년 정도 되는데요. 8년간, 배우임에도 뮤지션들과 술을 많이 마셨어요. 저희 집에서 바로 내려오면 단골 술집이 있거든요. 거기서 뮤지션을 하나, 둘 만나게 된 거죠. 모두 그곳 술친구들이에요. 결정적으로 강산에씨가 “너 곡이나 한 번 써봐라” 그렇게 해서 재미로 시작했다가 일이 된 거죠. 아주 재미있게 시작했어요.

 

그럼 언제쯤부터 시작하신 거죠?


그게 2012년 봄이에요. 2년 전에, 제가 정신적으로 힘들고, 배우로도 잘 안 풀리고, 여러 가지가 복잡하고 그럴 때에 작곡을 우연히 권유받았어요. 배우지 않았는데에도 곡이 써지더라고요. 그래서 '이렇게 하면 되는 구나'하고 하나 둘 쓰기 시작했어요. 치유도 받고, 위로도 받고, 스트레스도 풀고. 2012년에서 2013년, 1년은 틈틈이 곡을 쓰면서 보냈어요. 촬영이 끝나고 작업실 와서 쓰면 뭐가 막 나왔어요. 그때는 앉으면 뭐가 막 나왔었어요. 그렇게 나온 곡들이 「아무도 없잖아」, 「오던지 말던지」, 「취한밤」이에요.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다른 인터뷰에서도 본인의 천부적인 음악성에 대해 이야기하셨었습니다.


앗, 오해에요! 제가 타고났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음악'이 아니고 '노래'에요. 학교 다닐 때 매번 친구들이 시켰었던 걸 보면 잘 했었나 봐요. 그래서 노래는 타고났다고 얘기를 한 거 에요. 제가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고 있기도 하고요. 음악은...(어림도 없다는 표정) 절대, 그런 얘기 하면 큰일 나요. 나 욕먹어요.(전원 웃음) 음악은 말도 안 돼... 내가 말한 건 노래! 노래! 가창!(전원 웃음) 노래를 좋아하다보니깐 많이 찾아서 듣게 되고, 뮤지션 친구들이 많아지면서 음악에 노출이 되긴 했죠. 흥얼흥얼 대던 것을 구체적으로 악보로 쓰고, 가사를 붙이다보니 작곡이 된 거죠.

 

곡마다 흐름이 극적이에요.


네, 아무래도 제가 배우다보니까요.

 

「아무도 없잖아」가 가장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런 드라마는 의도된 것인가요?


의도한 것은 아니에요. '아무도 없잖아'를 쓴 날, 아마도 <신의 퀴즈 시즌3> 촬영을 하고, 작업실에 12시쯤 들어갔을 거예요. 곡 쓰고 싶지가 않아서 그냥 피아노에 앉아있는데 그 곡이 나온 거예요. 되게 금방 나왔어요. 사무치는 외로움 있잖아요. 외로움의 끝. 죽고 싶은 거예요. 막 자살하고 싶고... 다른 말이 필요 없더라고요. 그냥 「아무도 없잖아」... 상황은 옛날 어느 모텔 방의 제 모습이에요. 애착이 가는 노래 중 하나에요.

 

만나고-박준면

 

원래 곡의 80%가 경험담이라고 들었어요.


거의 100%죠. 제 연애 얘기, 이별 얘기, 사랑 얘기, 차인 얘기... 다 제 얘기죠.

 

본인의 이야기를 다루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게 제일 진실하게 나오지 않나 싶어요. 그게 제 이야기고 제 색깔이니까, 독특한 것 같기도 하고요. 앞으로도 제 연애얘기가 계속 나올 거예요. 어쨌든 저는 배우로 출발한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항상 자기 자신하고 마주보는 게 익숙해요. 지금의 감정에 대해서 메모를 많이 해둬요. 누구에게 차였다든지, 사랑이 시작되었다든지... 예를 들자면 「오던지 말던지」는 클럽 빵에서 쓴 노래에요. 비가 올 듯 말 듯, 비가 오던 날이었어요. 엔지니어하시는 여자 분이 감기가 걸리셨는지 코를 풀면서 음악을 틀고 있었고, 관객은 5명? 아무도 음악을 듣고 있지 않았어요. 그때 떠오른 영감으로 쓴 곡이 「오던지 말던지」에요.

 

안 그래도 그 곡 가사가 알듯 말듯해서 질문 드리려고 했어요.


네, 빵에서 쓴 거고요. 「낮술」같은 경우에는 지하철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을 쓴 거예요. 거의 다 제가 본 것들, 제가 느낀 것들이에요.

 

그럼 가사는 그때그때 떠오르는 걸 적나요?


평소에 적어두었던 것들을 확장시키는 방식이에요.

 

그런 습관이 원래 연기자들의 습관인가요?


그렇죠. 저희는 대본주면 그 인물에 대해서 분석하는 훈련이 되어 있잖아요. 만약에 갈매기의 아르까즈나를 한다면 아르까즈나는 언제 태어났고, 아르까즈나는 여기서 왜 눈물을 흘렸으며 그런 걸 써오라고 숙제를 내주셨어요. 별것도 아닌 장면에 A4용지 10장 써오라고 그러시거든요. 어렸을 때부터 그런 인물 탐구에 훈련이 되어있었죠. 이렇게 지금 인터뷰하는 장면도 나중에 가사로 나올 수 있어요.(웃음) 이런 식으로 상황을 재미있게 보는 편인 거죠.

 

배우과 뮤지션의 교집합에 속해 있는 입장에서 음악과 연기의 연관성에 대해 알려주세요.


저 같은 경우에는 연기를 할 때 음악에서 에너지를 받아요. 그건 저의 방법이에요. 다른 배우들은 운동을 한다든지, 휴식을 취한다든지 각자의 빌드업 방식이 있어요. 저는 음악을 들으면서 쉬고, 음악을 들으면서 흥분하고, 음악이 내 벗 같고... 왕따 왕따(전원 웃음) 혼자서 음악을 듣는 편인데, 그 에너지를 가지고 연기를 하다 보니... 음악하고 연기하고 서로 주고받는 관계에요. 어딘가에 저장된 음악의 좋은 에너지를 끄집어서 연기에 쓰기도 하고요. 음악을 할 때는 연기를 했을 때 저장해둔 것들을 사용하는 거죠. 서로 뗄 수 없어요. 음악은 멜로디로 얘기 하는 거라면, 연기는 말로 얘기하는 거죠.

 

서로 도움이 되겠네요.


네, 엄청 도움 되요. 그래서 저는 다른 배우들보다 음악을 많이 찾아서 듣는 편이에요.

 

연기자임에도 음악에 대한 사랑이 엄청나네요. 음반도 빚을 내면서 발매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처음엔 조금만 빌릴 생각이었는데, 하다 보니 끝이 없더라고요.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고... 혼자 감당하기엔 커졌어요. 처음엔 이럴 생각이 아니었는데, 쉽지 않더라고요. 제가 음악을 정말 좋아하니까, 대충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끌어다 쓰게 되었죠.(웃음)

 

그렇다면 다음에 낼 앨범에도 생각해 둔 욕심이 있나요?


욕심은 없어요. 앞으로도 2집을 내게 된다면, 아마 이번처럼 내게 될 거예요. 내가 쉴 때, 위로 받고, 치유 받으면서 쓴 곡들이 모이면 내는 거지, 2집 내려고 욕심내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그러면 아마 안 될 거예요. 자연스럽게 내고 싶어요.

 

뮤지컬에서도 노래를 부르시는데 이번 음반 속 노래들과는 어떻게 다른지 설명해주세요.


뮤지컬에서는 제가 캐릭터가 있잖아요. 주로 조연을 하는데, 저는 조연하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해요. 왜냐하면 늘 치고 빠져야 되는 거예요. 노래도 쫙 부르고 빠지고. 독창, 아리아가 별로 없어요.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거죠. 나올 때 임팩트 주고요. 음반에서는 치고 빠질 필요가 없잖아요.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하죠. 조연할 때는 얘기를 듣게끔 만들어야 하거든요. 그런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음반 냈을 때 주위 분들의 반응은 어떻던가요?


그냥 뭐... 요즘에는 음반 내는 게 쉽다 보니까. 별다른 반응 없었어요. 단지 저는 어설프게 하기 싫었어요. 그래서 돈이 들었죠. 홈레코딩 거의 없고, 다 스튜디오 녹음, 리얼 악기 연주하고... '대충해서 배우가 냈다' 이런 꼬라지가 싫은 거예요. 나는. 이왕할거면 흉내 내지 말고 진정성 있게 하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내가 그런 사람이 싫으니깐. 나 지금 뮤지컬 배우로 여태 먹고 살았고, 상 두 번이나 받았는데, 아이돌 애들이 와서 발 하나 걸치면 정말 싫거든요.

아이돌 애들이 유명하다는 이유로 주인공하고 이런 일 정말 싫어하기 때문에, 똑같이 제가 음악 신에 와서 그럴 수 없었던 거예요. 그래서 더 많이 하다 보니 깐깐하다, 완벽주의다, 너무 요구한다. 오히려 이런 쪽으로 욕을 먹었었어요.(전원 웃음) 저는 그게 민폐 일까봐 신중하게 했던 거예요. 뮤지컬할 때 내가 느낀 그 감정들을 뮤지션들이 느낄까봐 조심했어요. 또 열심히 했더니 호응을 많이 해주시더라고요.

 

만나고-박준면

 

앨범 자켓이 신기해요. 양경렬 작가님의 작품이라고 들었습니다.


제가 한때 유화에 빠져서, 배웠었는데, 그때 양경렬 작가님이 제 선생님이셨어요. 자켓도 유화로 하고 싶어서 선생님께 부탁드렸죠. 저의 음반을 위해서 새로 그려주신 그림이 그 그림이에요.(웃음)

 

그 그림이 거꾸로 봐도 말이 되죠?


네, 그게 양경렬 작가님이 하시던 <반사적 선택>이라는 작업의 일부에요. 이렇게도 말이 되고, 저렇게도 말이 되는 시리즈를 제작중이셨는데, 제가 이런 시리즈에 맞춰서 그려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럼 만약에 양경렬 작가님이 개인전을 하면 거기서도...) 볼 수 있겠죠. 제가 비싸게 팔라고 했어요.(전원 웃음) 앨범 자켓 얘기는 많이들 하시더라고요.

 

앨범이 완성되었을 때, 만족감이 어떠셨나요?


막상 냈을 때는 실감을 못했어요. 2년 동안 촬영하면서, 공연하면서, 여기에다 부어가면서(웃음) 만들었잖아요. 만드는 과정에 있어서는 최선을 다했어요. 그래서인지 나왔을 때는 그냥 '나왔구나...' 담담했어요. 그러고 나서 기획사와 계약할 때 실감이 나더라고요. 아무것도 없이 내려고 했는데, 3호선 버터플라이의 김남윤 씨가 듣고는 바로 다음 날, 칠리뮤직 측에서 전화가 왔어요. “계약합시다. 우리가 프로모션 해주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계약을 했는데, 그때 실감했죠.

 

이즘의 공식 질문입니다. 좋게 들으셨던 세 장의 음반, 꼽아주세요.


발음이 어떻게 되는지 모르겠는데, Jacqui Dankworth라는 재즈 가수가 있어요. 우연히 알게된 앨범인데... 그리고 레드 제플린의 「The song remains the same」이 수록된 음반.(< Houses Of The Holy >) 또 하나는 빌 에반스요. 이것도 앨범 제목이 생각 안 나는데... 그냥 그렇게 세 뮤지션이요. Jacqui Dankworth는 피아노주자와 함께한 앨범이 있어요.(< Live To Love >) 너무 좋아요.(웃음)

 

인터뷰가 끝나자 공연을 꼭 보고가라며 티켓을 쥐어줬다. 식사를 하고 돌아왔을 때에는 인터뷰를 하던 라이브 클럽에 사람들이 가득 차있었다. 작곡을 권유한 강산에와 <신의 퀴즈 시즌4>를 함께하는 레인보우의 재경도 보였다. 박준면이 등장했고 굉장히 행복해보였다. 벅차올랐는지 공연이 끝난 뒤에 술자리를 갖자는 얘기를 계속하며, 콘서트를 진행했다. 뛰어난 성량과 몰입도로 관객을 이끌었다. 그 뿐 아니라 화려한 세션들의 연주도 빛났다. 그 순간은 배우가 아니라 분명 뮤지션이었다.

 

 

인터뷰 : 이수호 전민석
정리 : 전민석
2014/08 전민석(lego9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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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윤영호 “당신은 어떻게 죽고 싶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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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윤영호

 

호스피스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사람이 죽을 때 가장 비참한 나라를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대한민국이라고 말할 것이다.”

 

『나는 한국에서 죽기 싫다』에 담긴 저자의 목소리는 지금 우리의 죽음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그리고 두 가지 질문을 던져준다. 당신은 이상적인 죽음의 순간을 목격한 적이 있는지, 당신이 목격한 모습대로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지. 해답을 찾고 싶다면 반드시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한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죽음이란 무엇인가. 가족들보다는 의료진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병원에서, 거추장스러운 의료 장비를 온 몸에 부착한 채, 나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정확하게 알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그저 죽음을 기다리고 싶은가? 아마 그런 죽음을 꿈꾸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현실이다. 아프지만, 사실이다. 그래서 의사 윤영호는『나는 한국에서 죽기 싫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할 수 없는 걸까. 각자가 꿈꾸는 모습대로 죽어갈 수 있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나는 한국에서 죽기 싫다』안에 담긴 것은 바로 그 질문들에 대한 윤영호의 대답이다. 그는 준비된 죽음을 저해하는 요소들로 죽음에 대해 이야기는 것을 금기시하는 문화, 사망 선고를 전하기 두려워하는 가족, 연명치료를 끝까지-그것이 무의미해진 순간에도-고집하는 태도, 통증관리에 소극적인 일부 의료진 등을 꼽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으로 호스피스 완화의료를 제시한다. 더 이상의 연명치료가 효과 없는, 죽음이 예정된 환자에게 필요한 것은 ‘고통을 최소화시켜 주고 삶을 마무리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이는 의사로서 오랜 기간 환자들의 죽음을 목격하면서 얻은 깨달음이었다. 그리고 의사이기 이전에 소중한 사람들을 떠나보내야 했던 평범한 한 사람으로서 느꼈던 죽음의 의미가 투영된 것이었다.

 

그는 24세 젊은 나이에 위암으로 세상을 떠난 누이의 죽음을 통해 의사가 되기를 결심했고, 대학 시절 의료 봉사활동을 통해 만난 환자가 유언처럼 남긴 한 마디, 암을 치료하는 의사가 되어달라는 부탁을 받고 암 전문의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의사가 된 후에는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인공호흡기를 부착한 채 마지막 말조차 남기지 못하고 떠나는 이들을 보아야했다. 그래서 그는 국립암센터로 터전을 옮겨 ‘삶의질향상연구과’를 만들고, 한국호스피스?완화의료학회의 설립위원으로 활동했다. 말기 환자들이 겪는 통증과 간병 부담, 연명의료 중단에 대한 문제들, 그리고 호스피스와 가족들의 삶의 질 등에 관한 연구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가정의학과로 전공을 선택한 건 네 가지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지속적인 치료를 이어간다는 점, 신체적 치료에 그치지 않고 사회적이고 영적인 돌봄까지도 병행하는 전인적인 치료를 한다는 점, 환자와 가족을 함께 돌보는 가족 중심의 의료라는 점, 그리고 휴머니즘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었죠. 하지만 제가 대학에 다닐 때만 해도 호스피스에 대해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호스피스를 하기 위해 가정의학과에 지원했다고 하자 다들 웃었어요. 당시만 하더라도 호스피스는 성직자들이 주도하는 종교의 영역이라는 인식이 일반적이었던 거죠.”

 

원래 호스피스는 중세 유럽 여행자와 순례자에게 숙박을 제공했던 작은 교회를 의미했다. 그런데 여행자가 병이나 건강상의 이유로 여행을 떠날 수 없게 되는 경우, 그대로 그곳에서 치료 및 간호를 받게 되면서 이 수용시설 전반을 호스피스라고 부르게 됐다. ‘Hospice’의 어원은 주인과 손님 사이의 따뜻한 마음을 표현하는 장소인 ‘Hospitium’에서 유래됐다. 교회에서 간호를 맡는 성직자의 헌신과 환대를 ‘Hospitality’라고 불렀으며 여기서 오늘날 병원을 일컫는 용어인 ‘Hospital’이 나왔다. ( 『나는 한국에서 죽기 싫다』 258쪽)

 

『나는 한국에서 죽기 싫다』에서 저자는 “죽음을 앞두고 있는 말기 환자들에게 극심한 신체적 고통 뿐 아니라, 정신적?사회적?심리적?영적인 측면 등 여러 고통에 대한 돌봄을 제공하는 것이 호스피스다”라고 정의하고 있다. 무의미한 연명 치료를 중단하고 통증을 최대한 경감시켜주는 것이 의료진의 몫이라면, 환자와 가족이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심리적이고 영적인 도움을 주는 것은 종교인과 봉사자, 심리치료사들의 몫이다. 아울러 경제적 또는 정책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사회사업가나 사회복지사가 함께 돕는다.

 

“호스피스는 죽음에 대해, 인생에 대해 배우는 겁니다. 그 사람의 삶을 통해서 배우는 교훈이 있죠. 그리고 호스피스는 교감입니다. 삶을 주고받는 거예요. 죽음을 맞게 되는 순간 그를 영영 떠나보내는 게 아니라, 그의 삶이 내 삶으로 이어지는 겁니다. 그래서 임종이 중요한 거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마지막 순간을 가족과 함께하고 싶어 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떠나는 이의 삶이 남겨진 이의 삶으로 이어지는 순간인 거죠.”

 

만나고-윤영호

 

존엄사 아닌 ‘품위 있는 죽음’을 지향한다


우리나라에서 호스피스나 완화의료를 제공하는 데 가장 큰 심리적?문화적 장애는 이에 접근하는 것이 생명을 포기하고 죽음으로 걸어 들어간다는 인식이 자리한다는 점이다. ( 『나는 한국에서 죽기 싫다』 41쪽)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은 의사가 무의미한 연명 치료의 중단과 호스피스 기관으로의 입원을 권유하면 절망감이나 분노를 느낀다. 마치 사망선고를 받는 것과 같이 여기기 때문이다. 윤영호 저자가 처음 호스피스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던 때에는 이와 같은 부정적인 인식이 더 짙게 깔려있었다. 그 스스로도 ‘환자들이 나를 저승사자처럼 생각하지는 않을까’ 우려했을 정도였다.

 

“환자들을 만나면서 왜 이렇게 같은 고통이 되풀이되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환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하면서 연구한 끝에 두 편의 논문을 발표했죠. 암 진단을 받았다는 사실을 환자 본인에게 알려야 할 것인가에 대한 것이 첫 번째였고, 말기 암 환자의 3차 의료 기관 입원에 대한 문제점에 대한 것이 두 번째였어요. 그 과정에서 관련 법과 보험 정책이 만들어지고 재정적인 지원으로 시설이 세워져야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국립암센터에 관심을 갖게 된 거예요. 처음 제가 ‘삶의질향상과’를 만들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 이름을 재차 물었어요. 뭐 하는 곳인지 모르겠다는 거죠(웃음). 제가 그곳에서 가장 처음 한 일은 통증 관리에 대한 지침을 만든 거였어요. 말기 환자들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통증입니다. 너무 아프니까 다른 생각을 할 여유가 없죠. 그래서 통증 관리에 필요한 약물의 생산을 촉진하고, 통증 관리 캠페인도 진행했습니다.”

 

그는 호스피스 기관을 마련하고 그에 대한 재정적 지원을 끌어내기 위해 관련자들과 함께 일본과 대만 등을 방문하며 시범 사례를 목격했다. 그 결과 말기 암 환자 전문 기관 지정과 보험수가 마련을 내용으로 하는 정책 발표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이렇듯 죽음의 질을 높이기 위해 애쓰는 동안 언론이 그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EBS 프로그램 <명의>의 제작진이 출연 요청을 해온 것.

 

“처음 제작진이 찾아왔을 때 프로그램의 컨셉과 제가 맞지 않는 것 아니냐고 물었어요. 명의라고 하면 사람을 살리는 의사를 이야기하는 건데, 저는 사람들이 잘 죽도록 도와주는 의사잖아요(웃음). 제작진도 많은 고민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한 번은 다뤄야 할 이야기인 것 같아서 찾아왔다고 하더군요. 참 좋은 생각이라는 들었어요. 저도 한 번은 이야기하고 싶었고요. 호스피스가 어떤 것이고, 실현하고자 하는 목표가 무엇인지, 그리고 아직까지 남아있는 숙제는 무엇인지 전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얘기했죠.”

 

저자는 호스피스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고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호스피스에 대해 제대로 알리기 위해, 학술적 연구를 지속하는 한편 언론을 통해 그 이야기들을 전해왔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은 존엄사와 안락사의 개념을 혼동하고 있고, 그들과 호스피스를 연관 지어 잘못 이해하기도 한다,

 

“존엄사를 주장하는 게 아니라, 품위 있는 죽음을 맞기 위해서는 부적절한 치료를 중단해야 한다고 말하는 거예요. 말기 환자가 되면 우리는 갈림길에 서게 됩니다.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서 계속 치료를 할 것인지, 아니면 남은 기간을 의미 있는 시간으로 보내기 위해서  필요한 의료를 선택할 것인지 선택해야 하죠. 그때 호스피스를 선택하면 연명 치료를 중단하게 되고요. 존엄한 죽음이라는 건 불필요한 것을 하지 않고 필요한 서비스를 제공 받는 거니까요. 하지만 의미 없는 치료를 중단한 뒤에도 환자에 대한 돌봄은 계속되어야 하잖아요. 무의미한 연명 치료는 받지 않지만 고통과 경제적 부담을 줄여주고, 가족들과의 삶을 완성시켜주는 서비스를 제공해줘야죠. 그런 것 없이 연명 의료만 중단하는 존엄사는 반대한다는 겁니다.”

 

호스피스에 대한 오해를 줄이기 위해 저자는 존엄사 대신 ‘품위 있는 죽음’ ‘아름다운 삶의 마무리’라는 용어를 쓸 것을 제안했다. 흔히 존엄사라고 하면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까닭에 안락사와 그 의미를 혼동하기 때문이다. 그는 죽음의 여부가 아니라 ‘연명 치료를 중단하는 기술적인 부분’과 ‘적극적인 의미에서의 아름다운 삶의 마무리’로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만나고-윤영호

 

 

한국의 ‘죽음의 질 지수’ 40개국 중 32위


“그런 측면에서 보면 우리는 아직 준비가 안 되어 있어요. 삶의 마무리를 잘할 수 있으려면 첫 번째로 말기 환자라는 사실을 본인이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의사소통을 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고통을 줄일 수 있는 통증 관리가 병행되어야 해요. 정서적인 지원을 통해 가족과의 문제를 해결해 주어야 하고, 사회 복지적인 측면에서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도 필요하죠.

 

 마지막으로 삶의 의미를 완성시켜주는 영적인 차원의 돌봄이 있어야 합니다. 죽음 이후의 자신의 삶에 대해서 생각하는 것은 종교와 관계없이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모든 준비를 도와줄 수 있는 전문가가 필요한데, 그게 바로 호스피스 완화 의료 팀인 거예요. 그런데 한 편에서는 연명 의료에만 초점을 맞추니까 제대로 진행이 되고 있지 않죠. 호스피스 안에서 자연스럽게 연명 의료를 중단하는 건 맞지만,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는 상태에서연명 의료를 중단하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국립암센터에서 근무하던 2004년부터 4년마다 대국민조사를 통해 우리 국민들의 품위 있는 죽음과 호스피스?완화의료에 대한 인식을 조사해왔다. 2008년에도 ‘품위 있는 죽음에 대한 대국민 인식 조사’를 코리아리서치에 의뢰해 성인 남녀 1,006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조사 결과 국민의 87.5%가 품위 있는 죽음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84.6%는 말기 환자가 된다면 호스피스?완화의료를 이용하기를 원했다. 2004년 57.4% 보다 무려 30% 가까이 증가했다. ( 『나는 한국에서 죽기 싫다』 38쪽)

 

호스피스 의료 시설에 대한 국민적인 관심과 요구는 증가하고 있지만 현실은 그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나는 한국에서 죽기 싫다』를 통해 저자가 제시한 조사 결과를 보면, 현재 호스피스?완화의료 병상 수는 인구 대비 필요 병상 수의 35.2%에 그치는 수준이다. 또한 의료 기관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86.0%가 국내 호스피스 정착이 어려운 이유로 재정부족을 꼽았다.

 

“환자가 사망하기 전까지 연명 치료를 위해 부담하는 비용이 호스피스 운영비용의 세 배 정도 됩니다. 제가 주장하는 건, 그 비용을 연명 치료에 쓸 게 아니라 호스피스 의료를 위해 쓰자는 거예요. 세계적으로도 완화 의료로 전향했을 때 비용이 절감된다는 연구 결과가 많이 나와 있습니다. 정부 입장에서 보험수가를 충분하게 주더라도 건강보험 재정의 적자 요인이 되지는  않는다는 얘기죠. 기존의 연명 치료가 고가의 검사나 약재에 비용을 지출한다면, 호스피스는 환자를 돌보는 인력 확충에 지출을 하게 됩니다. 말기 상황이 되면 환자를 더 집중관리 해줘야 하기 때문에 중환자실에서 환자를 돌보는 정도의 의료진이 필요할 수 있거든요. 또 중환자실과 다르게 사회복지사, 심리치료사, 종교인의 인력이 필요하죠. 연명 치료에 들어가던 비용으로 더 새로운 일자리도 만들어낼 수 있는 거예요.”

 

『나는 한국에서 죽기 싫다』에는 충격적인 지표 한 가지가 소개되어 있다. ‘죽음의 질 지수’를 나타낸 이 보고서는, 2010년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 산하의 연구소인 EIU가 OECD 회원국을 포함한 40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하여 작성한 것이다. 조사의 목표는 ‘임종을 앞둔 환자가 얼마나 품위 있게 죽음을 맞이하는지’를 살펴보는 것. 우리나라의 죽음의 질 지수는 40개국 중 32번째였다. 1위는 영국, 2위는 호주가 차지했다.

 

“캐나다는 국회가 주도해서 ‘캐나다인의 권리’를 선언했습니다. 그 내용을 번역해서 『나는 한국에서 죽기 싫다』에 소개했는데요. 국회가 나서서 연방 정부로 하여금 ‘말기 환자 관리의 5개년 계획’을 세우게 하고 매년 보고하게 한 거예요. 미국은 메디케어라는 제도가 84년부터 마련됐어요. 이미 70년대에 카터 대통령이 11월을 ‘호스피스?완화 의료의 달’이라고 선언하기도 했고요. 그 전통이 지금까지 계속 이어져서 클린턴 대통령이나 오바마 대통령도 호스피스에 관한 발표를 이어가고 있죠. 그만큼 대통령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거예요. 우리나라도 대통령이 움직이거나 국회가 법안을 만들고 재정을 지원하는 게 빠른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현실을 고발하고 풀어나가야 할 문제들을 이야기 해보고자 이번 책의 제목도 도발적으로 쓴 거예요. 『나는 한국에서 죽기 싫다』고요.”

 

윤영호 저자는 호스피스 의료 서비스를 확충하기 위해 필요한 것으로 제도적, 경제적, 인적 지원과 함께 ‘적극적인 통증 관리’를 강조했다.

 

“어떻게든 통증을 관리해야 된다는 생각이 필요합니다. 마약성 진통제에 의해서 부작용이 생길까봐 혹은 내성이 생길까봐 주저하는 부정적인 생각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통증 관리를 해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자세를 가진 의료진이 있어야 해요. 말기 상황이 되면 통증뿐만 아니라 아홉 가지에서 열세 가지 정도의 증상이 생깁니다. 그 증상에 대해서도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을 갖춰야 하죠. 물론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어야 찾아낼 수 있는 부분이에요. 기본적인 훈련을 통해서 그러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 의료진이 필요한 거예요. 말기 환자가 겪는 고통을 가족처럼 돌봐줄 수 있는 간호사도 있어야 하고요.”

 

만나고-윤영호

 

죽음은 삶의 끝이 아닌 완성


『나는 한국에서 죽기 싫다』는 많은 부분을 할애해 죽음에 앞서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죽음의 순간이 다가올 때 준비해야 하는 것들은 무엇인가, 가족을 떠나보내야 할 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와 같은 이야기들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잘 사는 것만큼이나 잘 죽는 것, 즉 웰다잉에 대해 이야기하는 저자에게는 호스피스 의료 활동도 그것을 위한 하나의 준비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한국에서 죽기 싫다』에서 의미 있는 날을 제정하자는 이야기를 했는데요. 죽음을 생각하는 날이 아니고 삶을 생각하면서 자연스럽게 죽음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날을 정하자는 거예요. 삶의 의미를 이야기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죽음의 문제도 이야기하게 되거든요. 그리고 바람직한 죽음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임종 장소에 대해, 그리고 임종 과정에서의 고통을 어떻게 줄일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죠. 이제는 국민들을 위해서 대통령이 품위있는 죽음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고, 그를 위해 국가가 해야 할 일을 정리해서 제도적으로 만들어 내겠다는 선언을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그에 맞는 진로 지침과 법, 정책, 보험수가, 필요한 교육과 기금이 마련되니까요. 국회가 나서든 대통령이 나서든 반드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자는『나는 한국에서 죽기 싫다』의 독자들에게도 사고의 전환을 주문했다.

 

“말기 상황이라고 해서, 죽음을 앞두고 있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는 게 아니라는 걸 이야기하고 싶어요. 사실은 할 일이 정말 많거든요. 정말 중요한 것들을 할 수 있는 시기인 거예요. 화룡점정의 시간이라고 할 수도 있어요. 삶을 완성하는 시간이 되니까요.『나는 한국에서 죽기 싫다』를 읽은 독자들이 ‘죽음을 어떻게 바라보고 무엇을 준비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사회적 차원에서는 함께 변화를 요구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요.”

 

죽음만큼 확실한 미래는 없다. 누구나 그 사실을 알고 있고, 모두가 자신의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 순간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네가 바라는 죽음에 대해 알지 못하고, 너는 내가 꿈꾸는 죽음을 알지 못한다. 그러는 사이 간곡한 한 마디의 부탁도 남기지 못한 채 떠나간 생명들이 너무나 많다. 우리 곁의 소중한 이들이 행복한 마무리를 짓길 원한다면, 나 역시 만족스럽게 떠날 수 있기를 원한다면, 지금부터라도 ‘잘 죽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 그 변화를 준비하는 이들에게 『나는 한국에서 죽기 싫다』는 분명 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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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국에서 죽기 싫다윤영호 저 | 엘도라도
연일 죽음이 화두인 사회. 수많은 대형사고와 참사로 얼룩진 암울한 분위기 속에서 ‘죽는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게 만드는 책이다.  이 책은 병원에서 25년 동안 삶의 끝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지켜봐온 저자가 우리 사회가 애써 외면하고 있던 죽음의 현실적인 ‘민낯’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는 책이다. 다만 “죽음이 눈앞에 있다면”이라는 전제가 붙을 뿐이다. 아무도 제대로 물어본 적 없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모두의 고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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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정철 “부디 천천히, 그것보다 이것이 소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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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정철

 

카피라이터 정철은 “글은 손이 아니라 눈으로 쓰는 것”이라는 표현을 즐겨 쓴다. 글을 쓰는 사람이기에 남들보다 종이와 펜을 많이 쓰지만, 정작 세상을 관찰하는 일에 더 많은 시간을 쏟는다. 그에게 글은 곧 사람이고, 관찰은 곧 만남이다. 카피라이터 인생 30여 년. 1993년 첫 책 『이빨』을 펴냈고, 2009년 『내 머리 사용법』을 시작으로 매년 생각을 뒤집어보는 짧은 에세이를 쓰며 베스트셀러작가가 됐다. 본업은 카피라이터지만 작가, 강연가로 지내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고 있단다. 그러나 그는 오늘도 광고쟁이로 살아남기 위해 잔머리를 굴리느라, 수염을 깎지 않는다.

 

정철이 스스로 ‘가장 정철답다’고 말한 책 『한글자』를 읽기 위해서는 먼저 가이드라인을 봐야 한다. 5초에 읽을 수 있는 글을 5분 동안, 하루에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씩만 토막 내서 읽는 게 가장 좋단다. 저자 정철은 “작가가 활자화하지 않고 행간에 넣어둔 이야기를 꺼내어 읽어 달라”고 독자에게 주문한다.

 

느림보가 될 수 있는 사람만이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책 『한글자』. 정철은 왜 한 글자 단어에 탐닉했을까? 소탈한 차림으로 스튜디오에 성큼 걸어와 호방한 웃음을 지은 카피라이터, 정철. 그는 “책에 대한 엄숙주의를 탈피하고 싶다”며, “현명한 삶이란,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는 삶이 아니라 오늘을 즐기는 삶”이라고 말했다. 『한글자』를 가장 선물하고 싶은 대상은 중고등학생이란다. 지식만 넣느라 굳어만 가는 학생들의 머릿속에 작은 충격을 주고 싶기 때문이다.

 

(벼)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이고 사람은 읽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42쪽)


(헛) 헛인사, 헛수고. 단체 문자 그만. 모두에게 하는 말은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는다. (47쪽)


(하) 남을 잘 웃기는 사람 곁에 열이 모인다면 남의 말에 하하 잘 웃어 주는 사람 곁엔 스물이 모인다. 배려가 가면 사람이 온다. (89쪽)


(팁) 아이디어 팁 하나.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땐 아이만 남기고 디어를 지우개로 지우세요. 아이 생각으로 돌아가세요. (198쪽)


(써) 글을 잘 쓰는 방법은 글을 쓰는 것이다. (216쪽)

 

만나고-정철

 

느리게 읽으면 잘 소화시킬 수 있는 책


제목부터 튄다. 『한글자』라는 책을 어떻게 기획하게 되었나?

 

작년 여름 즈음인가. 출판사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문득, ‘한 글자만 가지고 책을 만들면 상당히 독특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당시 『인생의 목적어』를 쓰고 있는 단계라서 이 책을 마무리하고 나서 쓰기 시작했는데, 쓰는 나부터도 재밌었던 책이다.

 

1년에 한 권씩 책을 내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는데, 계획대로 가고 있는 것 같다.


『내 머리 사용법』이 나온 지가 5년쯤 된 것 같다. 처음에는 내 책을 내줄 출판사가 있을까? 팔릴까? 라는 고민도 적지 않았다. 다행히 출판사들이 손을 내밀어줬고, 내가 게으름만 피우지 않으면 1년에 한 권은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본질적으로 내가 쓰는 책은 짧은 에세이다. 작년에 쓴 자기계발서 『머리를 9하라』가 유일하게 다른 성격을 띈 책인데, 내가 아무래도 가장 잘하는 건 짧은 글쓰기니까. 『한글자』는 내 색깔을 온전히 드러내는 책으로 쓰고 싶었다.

 

『한글자』가 정철의 색을 가장 온전히 드러낸 책인가?


지금까지 낸 책들과 완전히 다르진 않지만 가장 정철다운 책이다. 짧고 군더더기가 없고, 역발상을 꺼내놓은 책. 내가 잘하는 것 중 하나가 언어유희인데, 그런 색깔들이 가장 잘 드러나있는 글들의 묶음이다. 『한글자』를 쓰면서 책 자체를 묶는 형태도 달랐으면 했다. 정작 한 글자 단어는 책 끄트머리에 작게 표기해서 독자들이 글을 읽으며 자기만의 단어를 상상하길 바랐다. 내용뿐 아니라 형식에 있어서도 지금까지 이런 책은 없었던 것 같다.

 

글을 풀어낸 과정이 궁금하다. 단어를 먼저 택한 후, 글을 썼는지.


한 글자만 가지고 생각을 쭉 찾아가다 보니, 400개 이상의 단어가 모였다. 책에 실린 단어가 총 262개인데, 중간에 탈락된 것도 많다. 300개 이상의 단어에 대해 정리했는데, 글이 마음에 들지 않은 것들을 일차적으로 뺐고, 추린 단어들을 가지고 편집자와 상의를 했다. 종합적으로 40, 50개 정도가 탈락한 것 같다.

 

카피라이팅의 생명은 축약 아닌가? 글을 쓸 때 수정을 많이 하는 편인가.


굉장히 많이 한다. 벽이면 벽, 물이면 물. 하나를 가지고 수십 번 반복해서 썼다가 지우기를 반복했다. 모든 글이 완벽히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책이 최종적으로 인쇄되기 전까지 수백 번을 읽었다. 책을 쓸 때, 그때그때 메모한 글로 엮는 경우도 있지만 『한글자』의 경우에는 처음부터 큰 틀의 설계도가 있었다. 설계도를 갖고 바닥공사 천장공사를 해나갔는데, 압박이 될 수도 제한이 될 수도 있었지만 반대로 ‘이것만 하면 되니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나씩 쓰다 보면 고지가 보이는 순간이 있으니까. 아주 근거 없는 자신감이지만, ‘이건 나밖에 못 쓸 거야’라는 생각을 가지고 열심히 썼다.

 

독자들에게 “5초에 읽을 수 있는 글을 5분 동안 읽어 달라’고 주문했다. 사실 『한글자』는 속독해버리면 소용 없는 책일 수도 있다. 여러 번 읽어야 나만의 특별한 의미를 얻게 될 것 같다.


예전에 쓴 『내 머리 사용법』, 『불법사전』이 꽤 반응이 좋았는데, 어떤 분이 이런 리뷰를 하신 적이 있다. “한 시간 만에 금방 다 읽었다. 그런데 며칠 지나니까 하나도 생각이 안 났다”고. 읽는 순간에는 재밌게 읽고 공감했는데, 가슴에 남는 건 많지 않았다는 이야기인데. 내 모든 책이 그렇듯 줄거리보다는 표현 방식에 의미를 둔다. 그렇기 때문에 글 하나를 읽더라도 좀 여유롭게 생각을 해보고, 여백에 메모도 하고, ‘나는 반대로 이렇게 생각하는데?’라고 의심도 해보면. 책을 다르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느리게 읽으면 좀 더 잘 소화할 수 있는 책이라, 억지로(?) 천천히 읽으라고 강조를 했다(웃음).

 

책을 내면서 작가도 성장하는 부분이 있을 텐데, 정철의 글은 5년 전과 비교하면 어떻게 달라졌나?


글이 달라졌다기보다 내가 조금 달라진 것 같다. 과거에는 좀 더 많이 막 저질렀다면, 이제는 내가 책에 쓴 말도 있으니까 그 말에 맞게 살려고 노력하는 부분이 있다. 이렇게 살라고 말해놓고, 내가 그렇게 살지 않으면 안 되는 일 아닌가. 사람에 대한 생각, 삶에 대한 생각도 5년이라는 텀을 두고 보면 조금 부드러워졌다고 할까. 날카롭고 강했던 부분이 약간은 무뎌진 것 같다. 날카로움을 잃었다기보다는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 유연해진 것 같다.

 

만나고-정철

 

사람, 세상 문제도 카피라이터가 쓰면 다르지 않을까


언제나 ‘소통’을 강조한다. 블로그, 트위터를 통해 독자들과도 가깝게 소통하는 저자들 중 한 명이다.

 

2년 전까지만 해도 모든 글에 댓글을 달았다. 그런데 이제는 지쳐서 못하겠다(웃음). 블로그만 했을 때는 가능했는데, 페이스북을 시작하다 보니 힘이 부친다. 페이스북을 시작한 건, 아무래도 즉시 소통할 수 있다는 장점과 더 넓게 퍼뜨릴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었는데 솔직히 매일 글을 업데이트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MB정부 때도 그랬지만 지금도 정치권에서 제대로 된 소통을 하지 않는다. 소통을 안 한다고 지적하면서 내가 안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열심히 꼬박꼬박 답변을 달았는데, 지금은 어느 정도 현실성 있는 방안으로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다. 결론은 아직 못 내렸다.

 

2012년 『나는 개새끼입니다』를 펴냈을 당시, 강의가 취소되고 광고도 잘 들어오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여파가 지금까지 이어지진 않았나?


2012년은 정말 중요한 해였다. 『나는 개새끼입니다』를 내기까지는 여러 가지 우려가 많았다. 끝까지 낼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는데, 딱 한 권만 내자고 결심했다. 내가 정치, 사회 이슈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한다면 그건 2012년이 맞다고 생각했다. 젊은 독자들이 대한민국에 대해서 좀 깊이 생각해보고 투표장에 나왔으면 하는 소망이 있었다. 1년간 문재인 의원의 카피라이터를 하면서 일종의 외도를 했는데, 카피라이터로서 도움을 주고 싶었다. 어느 정도 각오한 일이라 크게 힘들었다는 생각은 안 한다. 지금은 그런 것들과 관계 없이 강연이 많이 들어온다.

 

정치 카피는 어떻게 다른가?


정치 카피를 쓰는 사람이 따로 있는 건 아니다. 정치도 사람 광고니까. 술, 담배 광고와 다르지 않다. 특별히 정치 카피를 잘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내 경우에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팬이 되고 나서부터 정치 카피를 쓰기 시작했는데, 사실 정치광고는 다른 광고에 비해 부담스러운 게 사실이다. 그래서 큰 광고대행사에서는 정치 카피를 하지 않는다. 보좌관 출신으로 정치 카피라이터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력 있는 카피라이터들이 많이 참여하면 좋은데 부담스러운 면이 적지 않으니 이해도 간다. 나야 일찌감치 부담을 떨쳐버린 경우고,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참여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카피라이터의 수명이 짧다는 이야기도 많이 한다. 직업으로서의 수명도 짧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직업이라 수명(壽命)도 짧다고 한다.


우리나라가 특히 그렇다. 40대가 넘어가면 일이 줄어든다. 대행사에 있어도 카피를 쓰지 않는 직책으로 물러나게 된다. 내가 프리랜서로 독립한 건, 카피라이터의 수명을 딱 1년만 늘이자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 누군가가 1년을 늘리고 또 다른 누군가가 1년을 늘리면, 60대까지도 카피를 쓸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카피라이터가 프리랜서로 독립하는 이유는 딱 두 가지다. 하나는 돈을 더 벌기 위해. 두 번째는 카피를 못 쓰면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1년 동안 카피를 못 쓰면 카피가 마려워서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 같은 경우에도 원로 카피라이터로 대접을 받다 보니 경쟁PT를 하는 자리에서 자연스레 밀려나게 되더라. 프리랜서로 독립한 후, 50세가 넘어간 지금. 광고 일은 많이 줄은 게 사실이다. ‘절반은 카피라이터, 절반은 작가’로 생활하고 있는데, 시간적인 면에서 보면 무게 중심이 후자로 많이 옮겨간 상태다.

 

카피라이터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항상 하는 말 중 하나가 ‘관찰을 열심히 할 것’, ‘연애를 하라’는 이야기다. 광고 책을 여러 권 읽는 것보다 현장 체험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인가.


광고 관련, 글쓰기 책을 많이 읽는 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몸으로 느끼면 1,2년만에 알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기본적인 문장력 정도는 있어야 한다. 글을 가지고 밥을 먹고 사는 사람이니까.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그대로 전달할 수 있을 정도의 문장력 정도는 있어야 한다. 광고는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것이다. 그 사람에게 말로 공감을 얻어내고 설득해서 우리 기업에 관심을 갖게 만들어야 하는 사람이 카피라이터다. 결국엔 사람을 많이 만나는 일이 중요하다.

 

100명의 사람을 만나면 100명 모두에게 배울 점이 있다. 사람을 자꾸 만나서 그 사람들 마음속으로 들어가 보는 게 중요하다. 여행하듯, 사람여행을 많이 하면 따뜻한 캠페인 광고를 만들 수 있다. 책상 앞에 앉아서 공식을 외우는 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진하게 연애도 해보고 실연도 당해보고, 감정의 농도의 편차를 많이 느껴본 사람이 공감 가는 말을 많이 걸 수 있다.

 

만나고-정철

 

관찰은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나?


프로가 되기 위해서는 치열해져야 하는데, 여기서 가장 좋은 방법이 관찰이다. 사물을 그냥 쓱 보지 말고, 이 사물이 나에게 뭔가를 줄 때까지 끝까지 관찰해야 한다. 나는 『한글자』를 쓰면서 400개 단어를 벽에 붙여놓고, 끝없이 단어를 관찰하고 고문해서 자백을 받아냈다. 이런 관찰을 경험해보는 게 좋다.

 

대학에서는 경제학을 전공, 우연한 기회에 ‘카피라이터 공모’ 포스터를 보고 광고인이 되기로 결심하고 지금까지 한 길을 걷고 있다.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이 광고를 선택한 일인가?


일반기업을 가지 않고 광고쟁이가 된 일, 독립해서 프리랜서가 된 것도 결과적으로는 잘한 선택인 것 같다. 지금 정철이라는 사람이 조금이라도 사람답게, 사람냄새가 나게 산다고 치면 그 계기가 된 건 2002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라는 사람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그 전까지 내가 살고 있던 광고 세계는 정말 누군가가 죽어야 사는 게임이었다. 정말 치열한 경쟁 속에서 정신 없이 살다가, ‘내가 이렇게 살아도 되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는데, 결정적인 계기는 ‘노무현’이라는 사람을 만나고부터다. 조금 다르게 살아야겠다고 결심했고, ‘왜 내가 카피만 쓰지? 다른 걸 쓸 수도 있는데’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사람 문제, 세상 문제도 카피라이터가 쓰면 다르지 않을까? 누가 반 농담 식으로 ‘국민이 광고주인 카피라이터’라고 했는데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 후부터 책을 쓰기 시작했는데, 글의 방향이 달라진 것. 이 변화가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짓인 것 같다.

 

『한글자』를 중고등학생들이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요즘 우리나라 학생들은 책 자체를 읽을 시간이 없다. 돈이 없는 게 아니라, 성적에 도움이 되는 책만 읽고 있으니까. 지식을 쌓아가는 게 아니라 머리를 굳게 만들고 있다. 중고등학생 나이는 인생 중에 가장 머리가 활발하게 돌아가는 때다. 이런 걸 누르고 있는 게 제도권의 공부인데, 대부분의 아이들이 학교를 졸업하면 정신 없이 사회생활에만 파묻히게 된다. 공부는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더라도, 가끔 새로운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 몇 페이지만 읽어도 상관없다. 아이들에게는 낯선 충격을 주는 책이 필요한데, 『한글자』가 그런 책이면 좋겠다. 중고등학생들 외에도 생각을 깊게 안 하고 행동이 먼저 나가는 사람들이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니, 그런 면에서는 이 책이 국민도서가 되면 좋지 않을까? (웃음)

 

카피라이터 정철에게 지금 가장 중요한 단어는 무엇인가?


‘재미’라는 단어가 소중하다. 한 글자로 표현한다면 ‘큭’이 될 수도 있는데, 『한글자』를 쓰면서 더 그런 생각을 한 것 같다. 뭐랄까. 우리나라 책들은 너무 근엄하다. 진중하게 책을 읽어야 할 때도 있지만 안 그래도 될 책도 많다. 엄숙주의가 독서 인구를 줄이는 데 한 몫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한글자』같은 책은 의미를 담으려고도 노력했지만 재미있게 읽혔으면 하는 바람으로 만든 책이기도 하다. 좀 노는 글, 튀는 글? 독자들에게 그렇게 다가갔으면 한다. 사는 것도 마찬가지다. 책에서 ‘것’이라는 한 글자에 대해 “그것보다 이것이 소중하다”, ‘곳’이라는 단어에 대해서는 “그곳보다 이곳이 소중하다”고 썼는데, 인생도 마찬가지다. 내일을 위해서 오늘을 희생하지 말고, 지금 행복한 걸 선택하고 즐기는 게 현명한 삶을 사는 방법이다.

 

짧은 글이 아닌 긴 글, 또는 문학에 도전해볼 생각은 없나?


나에게 맞는 글은 ‘카피’였고, 그걸 만난 것에 대해 감사한다. 소설은 조정래 선생님 같은 분이 쓰는 게 맞는 것 같다(웃음).

 

염두에 둔 후속작이 궁금하다.


오랜 숙원인데 카피라이팅에 대해 쓰려고 한다. 카피라이터를 30년 이상 했으니까 내 나름대로의 인생을 정리하는 책을 써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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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자정철 저 | 허밍버드
언제나 ‘사람’을 먼저 이야기해 온 베테랑 카피라이터 정철이 사람 사는 세상, 우리네 인생을 오로지 1음절 글자들에 비추어 읽고 또 썼다. 삶이 그러하듯, 인생을 담고 있는 글자들도 꼭 진지하거나 멋지지만은 않다. ‘똥’, ‘헉’, ‘꽝’ 같은 예상외의 글자도 있고, ‘A’, ‘B’, ‘C’ 등 알파벳부터 ‘1’, ‘2’, ‘3’과 같은 숫자들도 포함한다. 유쾌 통쾌한 역발상과 언어유희로 독자들을 사로잡는 그에게 세상은 우리가 보는 모습과 또 달라 글 한 편, 한 편이 모두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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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순 “악한 사람은 결국 약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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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순

 

임성순 소설가와 만나면서 처음 건넨 말이 “이번 소설은 참 많이 달랐다”였다. 그도 그럴 것이 개인적으로 읽은 임성순의 첫 소설이 실험으로 충만했던 『문근영은 위험해였다. 이 작품에 비한다면 최신작 『극해』는 정통 소설에 충실한 편. 정통 소설이 뭔지에 관해서는 답하는 게 쉽지 않겠지만, 현실에 바탕을 둔 허구이며 등장인물이 있고, 그 인물을 엮는 사건이 존재하며, 이야기에는 소설가가 품은 주제의식이 담긴다면 정통 소설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극해』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1년 전 태평양을 배경으로 한다. 일본의 식민지였던 조선에서 많은 사람이 징용되었다. 군인으로 징용된 사람도 있지만, 선원이나 공장 노동자 등으로 차출된 사람도 많았다.『극해』중심에는 배를 타게 된 조선인이 있다. 이들이 탄 배 유키마루는 처음에는 고기를 잡는 어선이었으나, 전세가 기울면서 군 작전에 투입된다. 선원들 사이에 불만이 높아지고, 피로는 쌓여만 간다. 특히 약자였던 조선인을 향한 일본인의 폭력이 심해진다.

 

이 부분까지만 읽은 독자라면, 영화 <명랑>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 억압받는 우리 민족을 구원할 영웅이 나타나겠지, 하는 기대감이 책을 읽는 동안 커진다. 이런 예측은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렸다. 선상반란이 일어나며 조선인을 억압하던 일본인을 처치하는 데는 성공하지만 소설의 후반부는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후반부가 궁금하다면, 책에서 확인하시라.

 

소설가 임성순은 제6회 세계문학상수상작『컨설턴트』로 이름을 알렸다. 이후에 『문근영은 위험해』, 『오히려 다정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를 발표했다. 『극해』는 그가 발표한 4번째 장편소설. 바다를 배경으로 한 바다비린내와 피냄새가 가득한 후각적인 소설이다.

 

폐쇄된 공간에서 인간은 어떻게 약해지나

 

 

작가의 말에도 썼지만, 이 책 쓴 계기가 있던데.

 

『컨설턴트』를 쓰고 나서였다. 상 받기 전이었다. 여러 사람에게 초고를 보여줬다. 그중 한 명이 안권태 감독이었다. 소설 배경이 90년대이니, 자연스레 90년대 이야기를 하게 됐다. 그때 감독님이 원양어선에서 벌어진 사건을 이야기해주더라. 한국 사람들이 중국 교포 선원을 심하게 대하니까 선상반란을 일으켜 한국인을 죽인 사건이었다.

 

사건이 워낙 인상적이어서 그 사건을 찾아봤다. 영화에서 바다가 나오면 100억이 넘으니, 영화로는 무리겠다 싶더라. 그 사건을 잊고 지내다 『오히려 다정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를 쓸 때였다. 신문에서 우리나라 선원이 제소당했다는 걸 읽었다. 뉴질랜드에서 조업하던 중에 필리핀 선원에게 끔찍한 일을 했더라. 유사성행위를 시키고, 공구로 머리를 때리고, 잠도 안 재웠다. 감금, 임금체납도 했고. 필리핀 선원이 못 견디고 탈출해서 경찰서에 신고했다. 경찰이 조사하기 시작하니, 배 한 두 척이 아니라 전반적인 문제였다. 그렇게 해당 배 선장과 선원이 뉴질랜드 법정에 섰다.

 

국제적 망신이었는데, 놀라운 건 네티즌의 댓글이었다. ‘바다에서 인권이 뭐가 중요하냐, 잘못하면 죽는데’ 이런 댓글이 달리고, 심지어 그 댓글이 베스트 댓글이었다. 인권을 버리려고 돈 벌러 간 게 아니지 않나. 바다가 위험하다는 이유로 성폭행을 당해야 할 이유도 없고. 글로 써야겠다 생각한 게 『극해』다.

 

배 위에서의 이야기니 아무래도 취재도 많이 했을 것 같다.

 

배를 탄 분이 부산에 몇 분 있어서 그분들에게서 원양어선 이야기를 들었다. 제한된 공간이라 오래 타다 보면 비정상적인 게 당연하게 느껴진다더라. 권태로우니까 윤리적인 개념보다는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일이 생기면 나쁜 일이라도 즐기게 되고. 듣다 보니 군대랑 약간 비슷한 느낌이었다. 나도 전방부대에서 군 생활을 했으니,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았다. 폐쇄된 사회라 거기만의 룰이 있고, 그 룰이 일반사회의 룰과 달라도 합당하게 받아들이는 공간이다. 조업이 어떻게 진행되고, 사람 사이 관계는 어떻고, 어떻게 지루함과 답답함을 극복하는지를 많이 들었다.

 

말이 나온 김에 물어보자. 군대에서는 어떤 선임이었나.

 

스스로 자랑스러운 게, 군대에서 아무도 안 때렸다. 내가 잘해서는 아니었고 운이 좋았다. 한창 군기를 책임져야 할 상병 때, 갈등은 있었다. 위에서는 때리라고 하고, 나는 때리기 싫었다. 그러던 중에 옆 중대에서 폭행 사건이 터졌다. 헌병대가 오고 매주 일이병 소원수리를 받았다. 그 다음부터는 중대 분위기가 바뀌었다. 내가 군기를 잡을 일이 없어졌다. 만약, 저 사건이 안 터졌다면? 솔직히 (끝까지 안 때릴 거라는) 자신은 없다.

 

임성순

 

브레이크 없는 민족주의는 제국주의

 

『극해』 배경이 2차 세계대전이고, 이 시기는 보통 일본이 조선을 수탈하고, 조선은 억압당한 때로 본다. 소설에서 그리는 상황은 갈등의 층위가 복잡하다. 이 시기를 어떻게 인식하나.

 

2차대전이 일어난 이유가 제국주의 때문이다. 제국주의 기반에는 민족주의가 있다. 독립운동하는 분들이 훌륭한 일을 많이 했지만, 재밌는 건 우리를 괴롭힌 반대도 똑같은 논리였다는 점이다. 우리 동족의 위대함으로 시작하는 논리로 억압하고 억압당했다. 2차대전이 끝나면서 제국주의를 내세운 나라가 망하고 우리가 독립했다. 독립한 나라는 민족주의로 국가형태를 강화하기 시작한다. 긍정적인 면도 많은데, 너무 과하다 보니 이상해지기 시작한다. 대표적인 게 이스라엘이다. 2차대전에 당했던 논리와 똑같은 논리로 팔레스타인을 대한다.

 

민족주의는 국가적으로 권장하는 선한 논리지만, 어떤 선을 넘을 때 위험해진다. 이걸 보여주는 시기가 어딜까, 고민하다 선택한 게 2차대전이었다. 『극해』를 읽은 독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한국사람이 일본인에 당할 때는 “저 나쁜 놈들” 하면서 감정이입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막상 똑같은 논리로 약한 사람을 대할 때는 아이러니를 느낄 것이다. 우리나라가 일본을 그렇게 싫어하지만 일본에서 안 좋은 면도 많이 배웠다. 민과 군의 안 좋은 결탁, 다른 민족을 열등하게 보는 우익의 논리도 그렇고.

 

등장인물이 많다. 써놓고 많이 쳐냈을 것 같다.

 

2,500매까지 썼는데. 사라진 내용이 많다. 원래는 등장인물의 과거 이야기도 많았다. 조업 과정도 자세히 써놨는데 다 덜어냈다. 쓴 뒤에 읽으면서 서사 진행에 도움되는 최소한만 남겼다.
 
등장인물이 극 후반으로 갈수록 폭력적으로 변해간다. 결국 인간에 관한 소설인데, 인간의 어떤 모습을 다루고 싶었나.

 

평범한 사람들이 스스로 판단하지 않고 시대의 가치를 맹종했을 때, 얼마나 쉽게 악해질 수 있을까를 그리고자 했다. 최근 윤 일병 사건도 그렇다. 군대에서 생활하면 누구나 아는 가치가 있다. '군기'. 그런데 스스로 개인이 윤리적 판단을 안 하면 브레이크 없이 극단으로 치닫기 쉽다. 정확히 말하자면, 인간의 악한 면이 아니라 약한 면을 보여주고 싶었다. 동시에 자연과 인간의 관계도 다루고 싶었다. 자연과 인간 관계가 인간이 약자에게 대하는 것과 같다. 자연을 가치 판단 없이 돈벌이 대상으로 봤을 때 어떻게 되나. 아무 생각 없이 몇백 마리 물개를 쏴 죽인다. 여기에 아무런 윤리적인 느낌을 받지 않는다. 등장인물 중 포수는 처리하지 못할 만큼 잡아서 버리는 걸 자랑까지 한다. 이것도 인간 안에 있는 약한 모습이다.

 

불법조업 문제와도 연결될 것 같다.

 

조사하면서 놀랐는데, 우리는 중국 어선이 한국 영해에서 불법조업하는 것만 안다. 사실 대한민국이 불법조업으로 악명이 높더라. 소말리아가 지금 무정부 상태다. 소말리아가 무정부 상태가 되니, 원양어선들이 소말리아 영해에서 물고기를 마구 잡았다. 원래는 돈을 내고 조업증을 끊고 허가된 양만큼만 잡아야 하는데, 정부가 없으니까 선진국 원양어선이 일제히 가서 물고기 씨를 말렸다. 여기서 악명 떨친 나라 중 하나가 대한민국이다.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을 수 없으니 소말리아 어민들은 해적이 됐다. 소말리아뿐만 아니라 다른 데서도 악명이 높으니 EU에서 불법조업국가로 한국을 제소한 상태다. 한국은 여기에 항소해서 7월에 심사를 받았지만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모른다.

 

임성순

 

약자를 괴롭히고 쥐어짜는 논리, 돈

 

똑같은 사람이라도 모든 사람이 악한 사람, 약자가 되지는 않지 않나?

 

어떤 시대든 약자는 존재할 수밖에 없다. 약자를 어떻게 대하느냐가 문제다. 예를 들어, 청년기 이전이나 노년기 이후는 약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6, 7살에게 총 쥐여주고 내보내는 사회도 있고 혼자 된 고아를 데려다 국가에서 훌륭한 교육을 시키는 사회도 있다. 군 생활을 잘 못하는 친구에게 편한 보직을 줄 수 있지만 어떤 사회는 “군기가 빠졌구나, 맞아야 정신 차리지” 하고 때릴 수 있다. 어떤 시스템을 만드느냐가 문제다. 사람들의 일반적 특성인지, 우리 문화의 특징인지는 모르겠지만 강한 자에 감정이입 하기를 좋아한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학교에서 왕따 당했을 때 피해자가 신고하면 학교 선생님이 와서 아이에게 와서 말한다. 우리 학교의 명예와 신고당한 아이의 장래를 위해서 신고를 철회해달라고. 또, 이런 경우도 있다. 어떤 회장님이 아들에게 상속을 하기 위해 주가조작을 했다. 반응이 이렇다. 아들에게 오죽 물려주고 싶으면 저러겠느냐, 라고. 주가조작으로 피해 봤을 소액주주는 생각 안 하는 거지.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에 감정이입 하는 사람이 많다.

 

바다에 관한 소설이고, 쓰는 와중에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다. 심정이 착잡했겠다.

 

한창 소설을 마무리할 무렵에 세월호 사건이 생겼다. 내가 쓰고 있어서 이런 사건이 생겼나, 하는 죄책감도 들었다. 소설 속 학도병 태우는 배가 침몰하는 장면이 세월호와 유사하다. 세월호는 사람 생명보다 돈을 중시하는 사회가 만들어낸 사건인데 내가 이야기하는 주제와 닿아있는 부분이기도 했고. 이걸 내야 하나, 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하는 한편 정말 잘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듣고 보니, 소설 속에서 선장이 파산을 각오하고 배를 돌렸으면 비극이 일어나지 않았겠다.
 
약자를 괴롭히고 쥐어짜는 논리가 결국은 돈이다.

 

전작 이야기를 해 보자. 이번이 4번째 장편인데, 이전 작품은 어떤 이야기였나.

 

『컨설턴트』, 『문근영은 위험해』, 『오히려 다정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는 회사 3부작이다. 회사에 관한 이야기다. 애초에 구상할 때, 묶어서 쓰겠다고 결심했다. 상투적이지만, 자본주의를 이야기하려 했다. 『컨설턴트』는 관료화된 자본주의가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어떻게 약자들에게 폭력을 행하는가를 이야기했다. 『문근영은 위험해』는 블랙코미디이면서 메타소설이다.『컨설턴트』를 쓴 소설가가 회사에 들어와서 겪는 황당한 이야기를 그렸다. 『컨설턴트』와 같은 소설조차 상품이 되는,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게 상품이 되는 상황을 묘사했다. 시뮬라시옹, 이미지가 실재를 붕괴시키는 황당하게 들릴 수도 있는 소설이다.

 

『오히려 다정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극해』와 연결 선상에 있다. 그렇다면 자본주의에 갇히고, 끝내야 할까? 자본주의의 근간을 이루는 건 나쁜 논리는 아니다. 어쨌든 자본주의에는 공리가 있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과 같은 공리. 이런 공리가 옳은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자 해서 쓴 작품이다. 자살하고 싶어하는 사람에게서는 장기나 조직을 얻고 그걸 팔아서 필요한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의사가 있고, 정반대에 신부가 등장한다. 이 두 인물을 충돌하게 해서 질문하는 소설이다.

 

임성순

 

천재가 아니라 소설가가 됐다

 

『컨설턴트』로 상 받았을 때 기분이 어땠나.

 

당시 담당기자도 똑같이 물었다. 안 기쁘냐고. 담담했다. 실감이 안 나기도 했지만, 개인적 사건으로 정신적으로 지쳐 있을 때라 별 느낌이 없었다.

 

글은 왜 쓰게 됐나. 인상으로 봐서는 성직자나 수학자나 물리학자도 어울릴 법한데.

 

내가 천재였으면 수학이나 물리를 연구했을 것이다. 세상의 근본적인 원리에 관심이 많다. 다만 천재가 아니라서. 예전부터 상상하는 걸 좋아했다. 장편소설은 세계를 창조하는 일인데, 이런 일이 재밌고 좋다. 어머니 영향도 있다. 어머니가 소설 쓰는 걸 좋아하셔서, 내가 군대 있는 동안 '창조문예'라는 기독교계 문예지에 등단하셨다.

 

영화 시나리오 작업도 하고 있지 않나. 영화인으로서 임성순과 소설가로서 임성순, 어느 정도 다른가?
 
쓰는 동기, 접근이 다르다. 영화 시나리오는 영화 제작을 염두에 두고 쓴다. 대자본이 필요하다. 대자본을 투자받아서 그 이상의 이익을 거둬야 하니, 상업적 측면을 배제하고 쓸 수 없다. 소설은 이런 제약 없이 쓴다. 『극해』도 영화화되기 힘들 거라 소설로 썼다. (웃음) 쓰는 방식도 다르다. 영화 시나리오는 샷, 앵글을 고려하면서 쓴다. 시각적이고 청각적으로는 어떻게 할 건지도 생각한다. 이런 기법을 소설에서 차용할 때도 있긴 하다. 그렇지만 기본적으로 소설 쓸 때는 샷이나 앵글을 생각하지 않고 철저하게 상황에 들어가서 쓴다.

 

장편만 쓰는 이유가 있나.

 

이유는 없고, 일단 단편 청탁이 안 온다. (웃음) 써야 하는 장편이 늘 있고, 청탁 안 오는 단편을 쓸 필요가 없다. 장르 쓰는 사람은 임성순이 문단에 있다 생각하고, 문단에 있는 분은 나를 장르로 분류하는데, 이런 시선에 크게 상관은 하지 않는다.

 

차기작은?

 

지금까지 했던 이야기에서 벗어난 다른 쪽 이야기를 하려 한다. 하드코어 SF가 될 것이다. SF이다 보니, 수학이나 물리학적 이론이 받쳐줘야 한다. 그래서 지금은 수학, 물리학을 공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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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해임성순 저 | 은행나무
이 소설은 누구도 앞날을 예상할 수 없는 전시 상황을 배경으로 태평양 위를 표류하는 포경선 유키마루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생존 전쟁에 관한 이야기다. 끊임없이 꼬리를 무는 사건과 흥미진진한 서사를 바탕으로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이 어떻게 생존을 갈구하며 모멸을 견디는지, 살아남은 약자가 어떻게 사악한 존재로 변하는지를 보여주며 나약한 존재로서의 인간 본성을 적나라하게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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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갑수 “당신을 미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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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김갑수

 

김갑수는 시인, 문화평론가라는 타이틀을 갖기 훨씬 전부터 클래식애호가, 컬렉터였다. 마포에 있는 그의 작업실 ‘줄라이홀’에는 3만여 장의 LP와 CD, 20여 조의 진공관 오디오 기기가 오래된 식구처럼 자리해 있다. 음악을 듣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 웬만하면 저녁 약속을 잡지 않는 김갑수. 그와 이야기를 나누려면 작업실을 찾는 것이 훨씬 빠르다.

 

언젠가 황지우 시인은 그에게 말했다. “우리나라 사람 중에 말을 잘하면서 글도 잘 쓰는 사람이 딱 두 명 있는데, 한 명은 이어령 선생, 다른 한 명은 문화평론가 김갑수.”라고. 김갑수는 글맛 못지않게 입심도 뛰어난 말꾼이다. 『어떻게 미치지 않을 수 있겠니?』는 미치지 않을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는 김갑수가 스스로를 미치게 만든 ‘클래식’과 ‘세상’에 대해 이야기한 책이다. 1부 ‘추억의 음악, 일상의 음악’에서는 인생과 음악에 대한 단상을, 2부 ‘레알 작곡가 뒷담화’에서는 베토벤, 에릭 사티, 리스트 등 다양한 음악가들의 흥미로운 비화를, 3부 ‘죽이는 연주가들’에서는 독보적인 명연주가들과 지휘자, 성악가들을 소개했다.

 

클래식을 사랑한 한 남자의 40년 열정이 400쪽 분량에 고스란히 담겼다. 단순한 클래식 길라잡이로 이 책을 집어 들었다면, 방대한 이야기 분량에 놀랄 것이다. 또 좀체 지루할 틈이 없어 당황할지 모른다. 김갑수는 세계적인 지휘자 세르주 첼리비다케를 소개하며 ‘총으로 쏘아죽이고 싶었던 지휘자’라는 타이틀을 넣고, 앙드레 프레빈을 두고 ‘한국인이 애틋해 할 바람둥이’라고 말한다. 클래식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퍽 호기심이 이는 제목이다. 껄렁껄렁한 태도로 한 페이지를 열었다가 훅을 맞았다. 저자가 미친 이유를 눈치챌 수밖에 없었다.

 

떠나간 열차가 아름답게 미화되는 현상이 책에 녹아 있다. 나는 오늘의 이 21세기가 참 재미없다고 느낀다. 청년기를 보냈던 지난 20세기는 광분의 시대였다. ‘어떻게 미치지 않을 수 있겠니?’라는 제목이 그래서 나왔다. 광분의 20세기적 감흥을 떠올리며 그 음악에 ‘어떻게 미치지 않을 수 있겠니?’라고. 또한 여러 면에서 돌아버릴 것 같은 21세기 오늘의 현실을 생각하면 ‘어떻게 미치지 않을 수 있겠니?’라고. 이 상반된 미침의 양다리를 공감할 사람이 많으리라 믿는다. 미치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 세상 벗들에게 다시 또 말을 건넨다. 어떻게 미치지 않을 수 있겠니? ( 『어떻게 미치지 않을 수 있겠니?』 7쪽)

 

제목만 읽고는 클래식에 관한 책인지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지금까지 펴낸 모든 책의 제목을 직접 지었다고 알고 있는데, 『어떻게 미치지 않을 수 있겠니?』는 다소 파격적이다.

 

이 책은 에세이집 같기도 하고, 잘 보면 클래식 책이고. 모호할 수 있다. 제목을 지을 때는 ‘어떻게 하면 독자들에게 인상적으로 기억될까?’를 고민하게 되는데, 생각을 하다 보면 끝이 없다. 나는 책 제목을 지을 때, 내 심중의 생각을 넣는 편이다. 정말 음악이 좋을 때가 있지만 언제나 늘 좋은 건 아니다. 살면서 사람들이 미칠 것 같은 열정을 느끼는 순간이 있는데, 이건 종목별로 다른 거다. 맛있는 것을 먹을 때 희열을 느끼는가 하면, 누군가와 데이트를 하면서 최고의 행복을 느낄 때도 있다.

 

나에겐 어떤 음악과 교감되는 순간이 다른 어떤 것과 필적할 수 없는 시간이다. 미칠 수밖에 없는 거다. 또 글을 쓰면서 21세기 오늘의 현실을 생각했을 때, 어떻게 미치지 않을 수 있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지금 퇴행의 시대를 살고 있지 않은가. 책 제목은 글 쓰는 사람의 심중의 집약이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인 클래식 정보를 담은 책이 아닌, 저자 개인의 삶이 녹아 들어있는 클래식 이야기다. 특별히 클래식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흥미롭게 읽을 책이다.


클래식 음악에는 50년, 100년, 200년 시간의 편차가 있다. 바흐, 베토벤을 좋아하게 되었을 때, 우리는 그들의 생애적인 관심, 음악학자의 분석이 아니라 뭔가 한방에 통하는 에센스 같은 요소를 접하게 된다. 물론 주관이 개입할 수밖에 없는데, 내가 그동안 클래식을 좋아하고 들으면서 얻은 경험과 핵심적인 사실들을 녹이면 읽는 사람들도 자기화할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했다. 또 클래식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이상할 정도로 높은 차원의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책이 그 문턱을 조금 낮췄으면 한다.

 

글이 무척 재밌는데 그렇다고 가볍지만도 않다.


내 글이 웃기고 재밌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웃음). 내가 그다지 웃길 줄 아는 사람은 아닌데, 글을 쓰다 보니 갈수록 심각해지더라. 어쩔 수 없이 내가 사는 세상을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내 자신에 대해서도 무거워진 것 같더라. 책을 엮으면서 ‘내가 갈수록 무거운 삶을 살고 있구나’를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만나고-김갑수

 

중학생 때부터 클래식을 즐겨 들었다. 어릴 때부터 고전음악에 눈을 뜨게 된 계기가 있었나?


개인사가 행복하지 않았다. 여러 가지로 힘들었는데 도피구가 필요했던 것 같다. 명확하게 기억나는 건, 초등학교 때 어느 날 친구 집에 갔는데 헤드폰이라는 걸 처음 봤다. 같이 간 친구들은 딱지를 치고 놀았는데 나는 헤드폰을 끼고는 꼼짝 못하는 상태가 됐다. 음악을 들은 건 아니었던 것 같다. 소리를 들은 거지. 정확한 시점을 이야기하긴 어렵지만 꽤 어린 시절부터 음악을 좋아했다. 하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좋아할 줄은 몰랐다. 대학에 가서 소위 유흥을 접하게 됐는데도 음악에 대한 마음이 식지 않았다.

 

LP, CD는 아직도 수집하는지.


한 달에 300, 400만 원 정도 쓰는 것 같다. 예전에는 회현동에서 주로 샀는데, 요즘은 예스24와 같은 온라인몰에서 주로 구입한다. 작업실 외에 집에도 베란다에 음반이 가득 쌓여 있다. 나에겐 수집이라는 개념이 아닌데, 한 아티스트의 앨범을 들으면 그 아티스트가 다른 연주가와 작업한 음악을 듣고 싶은 거다. 그러니 구해야 할 대상이 한도 끝도 없다.

 

작업실에서 만나는 약속 외에는 사람들을 잘 만나지 않는다고.


한 달에 한 번이나 있을까 말까 하다. 대게 밖에서들 만나니까 이제 아무도 안 불러준다(웃음). 어제도 방송 촬영 끝나고 뒤풀이를 잔뜩 갔는데, 나는 그냥 나왔다. 성격이 이상해서 그런 건 아니다(웃음). 술을 별로 좋아하질 않는데, 음악을 듣는 사람들은 사람들과 자주 어울리면 제대로 음악을 들을 수 없다. 두 명이 넘어버린 모임은 파티다. 음악에 집중할 수가 없다. 난 오전이나 낮 시간이 많은 사람인데, 그 시간에는 음악에 집중이 안 된다. 어쩔 수 없이 밤에 음악을 들어야 하기 때문에 유일한 방법이 저녁 약속을 잡지 않는 거다. 그렇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 취미가 많은 사람들은 제대로 하는 게 하나도 없다. 야생풀에 대해 알려고 해도 10년을 공부해야 한다.

 

1999년에 『삶이 괴로워서 음악을 듣는다』, 2009년에 줄리아홀 이야기를 담은 책 『지구 위의 작업실』을 펴냈지만, 클래식을 본격으로 다룬 건 『어떻게 미치지 않을 수 있겠니?』가 처음이다. 저자에게도 특별한 의미를 지닐 것 같다.


책을 쓰는 건, 흩어진 것을 집약해나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김갑수라는 사람의 음악 듣기가 클래식 영역에 집약된 이유가 있을 거다. 아주 쉬운 말로 하자면, 이게 굉장히 근사한 일이라는 거다. 한 사람의 인생 40년을 바친 일 아닌가. 스스로에게만 충족되어도 될 일인데, 사람이라는 게 그렇지 않다. 타자들과 뭔가를 공유하고 싶고 피드백을 받고 싶은 열망이 있다. 클래식의 세계라는 게, 너무 근사한 세계니까 누구에게라도 전하고 싶다. 전통적인 감상의 행위는 사람의 삶을 가치 있게 한다. 인생의 내용을 상상 이상으로 깊이 채워줄 수 있는 도구다.

 

클래식 감상을 취미로 두는 일에 대해 상당한 부담을 갖는 사람이 많다.


클래식에 관심이 있다면 부디 음악 파일을 찾기 말고 CD를 사라고 말하고 싶다. 요즘은 CD가 아주 저렴하다. 구하기도 쉽다. 자기 돈을 투자해야 그게 소중해지고 집중하고 몰두할 수 있다. 최소한 물체가 있어야 하는데, 파일은 물체가 아니다. 허무하게 와서 허무하게 흘러간다. 카오디오로 클래식을 듣는 것도 좋다. 음향학자가 음악이 있는 공간에 대해 분석해서 낸 책이 있는데, 차 안에 뜻밖에 굉장히 좋은 콘서트홀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어느 날 한적한 시간에 자유로를 달리면서 클래식을 들어봐라. 잘 듣다 보면 달리 들리는 수가 있다.

 

흔한 질문이겠지만, 클래식 초심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


있다. 꼭 하고 싶은 말이다. 그동안 “저는 음악을 아무 것도 몰라요”라는 소리를 정말 많이 들었다. 미칠 지경이다. 그런데 음악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음악을 지고한 교양이라고 생각해서 특별한 식견이 있어야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결코 그렇지 않다. 중학교 3학년 때까지 음악 수업을 들은 상식이라면 더 이상 지식으로써 익혀야 할 건 없다. 다만 익숙해져서 늘어나는 건 있을 거다.

 

“초보자는 뭘 들어야 좋을까요?”라는 질문도 많이 하는데, 그런 거 생각하지 말라고 답한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음식이 다른 것처럼 클래식 감상에도 절대 단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가령 어떤 사람은 굉장히 복잡한 현대음악에 빠져드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가볍고 귀여운 베토벤의 「엘리제를 위하여」를 좋아한다. 어려운 음악이란 없다. 어려운 음악을 쓰려고 작곡하는 사람도 없다. 어렵다고 느껴지는 건 음악으로 들어가는 계단이 조금 복잡할 뿐이다. 단계는 절대 존재하지 않는다. 핵심으로 바로 들어가서 우선 듣자. 약간 건방진 감정을 갖고 듣는 것도 좋다. 난 지금 멋진 행위를 하고 있다고.

 

만나고-김갑수

 

특히 어떤 독자가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나?


오후 시간이 공허한 아줌마들, 특히 30, 40대가 읽으면 좋을 것 같다. 그들의 딱한 모습을 많이 본다. 적어도 20대까지는 이것저것을 하느라 자동적으로 몸을 움직여야 하는 일상을 보냈는데, 그 다음 단계가 되면 삶이 공중에 뜬다는 느낌을 갖더라. 그래서 뭔가를 배우러 다니는데, 뭐 좀 배우지 말았으면 한다. 학원, 동호회, 소모임. 이런 걸 하는데 어떠한 것에 관심을 갖게 하는 계기는 만들어줄 수 있지만, 그 경우의 수가 희박하다. 나도 가르치는 입장이기 때문에 안다. 강사가 아는 걸 상대방에게 쏟아 붓는 걸로 끝날 때가 많다. 스피노자가 말했던가. “자기 인생의 내용물은 혼자 가만히 있는 상태”는 말이 있다. 가만히 있는 상태가 견디기 힘들면, 독서와 음악 감상에 시간을 투자해봐라. 그것만큼 인간의 공허함을 채워주는 게 없다.

 

시는 많이 썼지만 시집 출간을 꺼리고 있는 이유가 “모든 예술가에게 진정한 작품은 데뷔작 하나뿐이라는 생각 때문”이라고 이야기했는데.


오래 전부터 해온 이야기인데, 시인이라는 건 사람 자체가 시여야 시를 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어떤 인간인가에 대해 가장 투명해지는 순간이 있었는데, 그게 시였다. 나는 중학생 때부터 시를 썼는데 나 나름대로의 엄숙주의가 있었다. 시를 쓸 줄 아는 게 하나도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데, 다만 시를 쓰는 사람처럼 살아야 한다. 이야기를 하자면 구구한 말들이 될 텐데, 내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어느 시점부터 나는 시인처럼 살고 있지 않으니까 시집을 펴낼 수 없다. 간혹 모든 걸 때려치우고 시인으로 살자는 다짐을 한다. 하지만 그 결심이 3일을 채 못 간다. 이 수많은 음반들을 없애야 가능한 일인데, 물건들이 나를 덮어 씌우고 있기 때문에 포기한다. 아마 잘 안 될 것 같다. 청탁을 받으면 간혹 시를 쓰긴 한다.

 

“음악은 상당히 게으르고 무책임해야 즐길 수 있다”고도 말했다.


예전에 중부시장 멸치골목에 있었던 바흐 스튜디오를 자주 갔었다. 그 시절에는 원하는 걸 하기 위해서는 걸어 다녀야 했고 담배를 줄이고 점심 메뉴는 최고로 싼 걸 먹어야 했다. 바흐 스튜디오 양차열 사장이 정말 재주가 좋았던 사람인데, 미군부대에서 넘어온 진공관 오디오 같은 걸 그렇게나 잘 고쳤다. 스튜디오에 모이는 사람들은 대게 한갓지게 사는 사람들이었다. 자기 인생을 성공적으로 만든 유형이 아니었다. 그런데 언제나 지긋지긋할 정도로 음악의 뒷담화를 펼쳐나갔다. 처절하고 궁상스런 이야기들도 많이 했는데, 지금 제법 나이가 들고 식견이 쌓이고 그 때를 되돌아보니, 우리가 했던 이야기들의 상당 부분이 제대로 된 이야기더라. 음악평론가 노먼 레브레히트가 한 이야기와 다르지 않더라는 거다. 그 시절 멸치들이 했던 이야기와 특별히 다른 냄새가 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어떤 사람들과 음악을 들을 때, 충만한 기분이 드나?


작업실 손님의 99%는 특별한 의미 없이 그냥 온다. 그런데 가끔 음악을 오래 들은 선수들이 온다. 그러면 상황이 확 달라진다. 내가 늘 생각하는 것 중 하나가 무언가를 오래 했다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다는 거다. 선수들하고 자리를 함께 갖게 되면 다른 상황이 벌어진다. 음반이 꽂혀 있고 오디오가 있을 뿐인데 빛이 난다. 똑같은 음반을 들어도 내가 들을 수 있는 함량이 많이 늘어난다.

 

만나고-김갑수

 

아무렇게 살아 버려도 괜찮다


대학에서는 국문과를 전공했다. 음악에도 빠져 살았지만 먼저 탐닉한 건, 문학이었다. 어떤 책을 발견할 때, 희열을 느끼는지.


책을 읽는 이유는 세 가지로 꼽을 수 있다. 감동, 재미, 그리고 지식. 그 셋이 교차할 때 우리는 기쁨을 얻는다. 웃기는 방식으로 이야기하자면, 작가가 어떤 걸 감춰 놓았는데 ‘다른 사람들은 모를 것 같은데 나는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역설적인 쾌감이 있다. 영화에서는 홍상수 감독이 그렇지 않은가? 감독은 시작부터 끝까지 ‘알만한 사람만 알아도 된다’라는 생각으로 영화를 만든다. 도처에 깔린 수많은 메시지를 관객이 제 능력껏 보면 되는 거다. 책도 마찬가지다.

 

저자와의 교감이 중요한 건가?


이제 나도 나이가 들어 대부분의 저자들과 비슷한 연배, 혹은 더 나이가 많은 사람이 됐다. 특별한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세계에서 쓰는 게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안다. 결국 저자가 어떤 맥락에서 이야기를 하고 독자에게 어떤 도움, 즐거움을 주는지가 핵심인데, 일종의 저자와 독자와의 다이얼로그가 활발히 이뤄지는 책이 좋은 작품이라는 생각이다.

 

글을 쓰다 보니, 스스로가 무거워졌다고 이야기했는데. 요즘 많이 하는 생각은 무엇인가?


농담이 될 수도 있지만 농담이 아닌 말인데, 아무렇게 살아 버려도 괜찮다는 거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게 뭔지에 대해 생각해보면, 도덕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압박, 성공해야 한다는 압박인 것 같다. 둘이 결합된 걸로는 타인의 시선에 잘 보여야 한다는 압박도 있다. 내가 성공 따위에는 관심 없이 살았다고 말하면 허세가 되는데, 지금까지 내 삶의 방식은 성공과는 무관했다. 그런데 아직까지 멀쩡히 살아있고 당분간 거지가 될 것 같지는 않다. ‘사람들이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것에 그래야 할 필요가 있는가’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한다. 돈이 많아야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은 환상이다. 삶의 충족도는 돈의 높낮이와 정말 상관 없다. 인간은 무엇을 하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니다. 최소한의 편의를 위해 국가 시스템을 만든 건데, 사람이 그것을 위해서 살 수는 없는 거다. 언젠가 이 문제에 대해 정교하게 다듬어서 글을 한 편 쓰고 싶다.

 

시인, 문화평론가, DJ, 칼럼니스트, 방송인 등. 타이틀이 많은 사람으로 사는 삶은 어떠한가?


(웃음) 뭐 하나 변변한 게 없다는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분명하기 때문에 다른 타이틀이 붙지 않는 거다. 나는 그래서 가끔 비탄한 감정에 빠진다. 나는 왜 무엇이 되지 않지? 생각해보면, 이유는 있다. 나는 무엇이 되기 위해 전력을 기울인 적이 없다. 할 수 있는 것들, 다가온 것들을 했을 뿐이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이 말을 잘하긴 어렵다고 한다. 물론 예외도 있는데, 저자가 그런 경우다.


마이크 앞에 서면 편안해진다. 오히려 마음이 복잡해졌다가도 마이크 앞에 서면 뽀얗게 흩어진 것들이 정리된 느낌이다. 한 번도 따로 연습을 하거나 훈련과정이 없었다. 덜컥 방송을 시작해서 지금까지 이어온 거다. 만약 말을 아주 잘했더라면 대중강연 강사로 좋은 아르바이트 자리를 얻었을 거다. 내 경우는 말을 잘한다기보다는 수다스럽다는 게 맞을 거다. 집중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은 말을 잘 못한다는 편견이 있는데, 이유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말과 글이 어째서 분리될 수 있을까? 생각한다. 나는 어떤 원고를 쓰든 내 뇌에 있는 생각을 가지고 막 이야기를 한다. 그게 문어체일 때도 마찬가지다. 글 쓰는 행위가 말하는 행위와 결합될 수 없다는 게 이해는 안 가는데, 현실에는 많이 보인다.

 

말하는 나와 생각하는 나, 두 자아를 분리하는 게 쉬운 사람이 있고 어려운 사람이 있을 텐데.


내가 지금 선생 앞에 있는데, 이건 온전한 상태로 있는 게 아니라 말을 하고 있는 또 다른 자아에게 지시하는 상태다. 모든 사람들은 그런 상황 속에 놓인다. 최소한 두 개, 혹은 그 이상의 분열된 자아가 동시에 구현된다. 말하는 상황이라는 건, 말하는 나를 의식하는 또 다른 자아가 쳐다보는 상황이 만들어지니까. 그 분리가 잘 되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글을 쓰면 비교적 온전한 하나의 자아로 어떤 행위를 하게 되니까.

 

간혹 강연을 할 기회가 있지 않은가. 젊은 사람들, 청춘들에게 하는 말은 무엇인가.


답이 뻔한데, 뻔한 답을 귀 기울여 듣진 않으니까 나로서는 궁리를 한다. 내 답은 하나다. 당신의 나이가 몇 살이든, 지금이라는 시점에서 자기가 잘 알고 있거나 흥미로운 걸 계속 하라는 말이다. 뭘 하나를 오랫동안 집중적으로 하는 것 이상의 인생에서 더 중요한 일은 없다. 그 대상이 특별히 가치가 있을 필요는 없다. 인생은 좋은 결과물을 낳기 위해 사는 게 아니니까. 대단히 함량이 높고 근사한 것을 10년간 몰두하는 것과 하찮아 보이는 것에 10년간 몰두하는 것의 결과물은 다르지 않다. 집념을 가지고 어떠한 한 세계에 한 발 더 들어가는 게 중요하다. 이것저것 말고 하나를 오래 하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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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미치지 않을 수 있겠니?김갑수 저 | 오픈하우스
시인?문화평론가 김갑수의 신작 《어떻게 미치지 않을 수 있겠니?》가 오픈하우스에서 나왔다. 미쳐 돌아가는 21세기의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떻게 미치지 않을 수 있겠니?’라며 그가 안내하는 탈출구는 놀랍게도 ‘클래식 음악’이다. 마포의 어느 고깃집 지하에 위치한 작업실에 3만여 장의 음반과 수많은 오디오 기기들을 구비해놓고 저자는 하루도 빠짐없이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고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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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일 스님 “석가모니 외 다른 가르침에는 관심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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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지만, 산은 산이 아닐 수 있고 물도 물이 아닐 수 있다. 마찬가지로 불교도 불교가 아닐 수 있다. 이는 다른 종교도 마찬가지인데, 종교 가르침이 변하지 않는 진리 같지만 모든 게 그러하듯 시간이 닿으면 변하기 마련. 종교 가르침도 같다. 기독교는 가톨릭, 개신교, 그리스정교로 갈리고 유교도 시기에 따라 성리학, 양명학, 고증학 등 주류는 변했다.

 

부처님의 가르침인 불교도 그렇다. 부처님 사후, 다양한 부파불교를 거쳐 크게 상좌부불교와 대승불교로 갈렸다. 한국은 인도에서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중국으로 전래한 대승불교를 받아들였다. 『반야심경』, 『금강경』등은 대표적인 대승경전이다. 대승불교는 유식학과 공사상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고, 중국에서는 화두와 선수행을 강조하는 선불교가 발전하기도 했다. 그래서 한국에서 불교를 공부할 때는 부처님 가르침과 함께 이러한 가르침도 함께 배운다.

 

그런데 이러한 모습을 이상하게 여긴 스님이 있다. 바로 범일 스님이다. 불교는 부처님의 가르침이니, 부처님 가르침으로 충분하지 않으냐는 의구심. 불교에는 다양한 경전이 있고, 그 경전들은 성립 시기가 천차만별이다. 그중에서 『아함경』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가장 원형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고 평가된다. 산스크리트어가 중국으로 건너가 한자로 번역된 게 『아함경』이고 팔리어본은 『니까야』다. 범일 스님이 정리한 『수트라』『아함경』『니까야』만 참고해서 불교의 가르침을 정리한 책이다.

 

범일스님

 

『수트라』는 불교 입문서이자 완성본

 

『니까야』,『아함경』은 어떤 경전인가?

 

한국불교에서 많이 읽는 경전은 대승불교 경전이다. 나도 처음에 출가해서는 절에서 읽는 경전을 따라 공부했다. 의문이 들더라. 과연 부처님이 직접 설한 내용인가, 하는 의문. 경전을 비교하면 내용이 일관되지 않는다. 한 사람이 말한 게 아닌 느낌이다. 그러던 중에 부처님이 설한 내용을 기록한 초기 경전인 『아함경』을 알게 됐다. 산스크리트어로는 아가마인데, 중국사람이 아함으로 음역했다. 추측건대, 아감으로 번역했는데 소리가 바뀌면서 지금은 아함이 된 게 아닐까 싶다.
 
부처님이 설한 내용이 산스크리트어만이 아니라 팔리어로도 기록됐다. 팔리어본은 스리랑카로 전래했다. 이게 『니까야』다. 『니까야』는 중국이나 한국에 전래된 적이 없고 최근에야 한국에 소개됐다. 마침 『아함경』을 공부할 때 각묵스님 대림스님이 한글로 풀이해서 『니까야』도 출판되기 시작했다. 두 개를 비교하면서 공부했다. 『니까야』『아함경』이 같은 건지 다른 건지를 일본 불교학계에서 먼저 연구했고, 거의 일치한다고 판단했다. 물론 일부는 대응하지 않는 부분도 있지만, 같은 내용을 다른 언어와 다른 길로 전래했다고 본다.

 

『수트라』『아함경』에 기반을 둬서 이해하는 불교 교리 입문서로 보면 되나.
 
불교 입문서라기보다는 불교 완성본이다. 다른 불교책을 보완하려고 쓴 게 아니다. 출가하고 불교 공부하면서 갑갑했던 게, 여러 가지를 공부해도 일관된 게 없더라. 나중에 『아함경』이 부처님이 직접 가르친 내용을 기록했다는 사실을 알고 다른 건 배제하고 『니까야』『아함경』만 교재로 삼았다. 이 안에 어떤 내용이 들어가 있는지를 뽑아서, 연결하고, 일목요연하게 엮어서 배열했다. 다른 불교 책과 다른 점이라 하면, 석가모니 가르침에만 한정했다. 불교에는 석가모니 가르침 외에도 많은 가르침이 있다. 하지만 『수트라』에는 포함하지 않았다.

 

경전마다 일관되지 않은 이유가 뭔가?

 

아무 의미 없이 넣지는 않았겠지만 역사적으로 필요에 따라 추가한 것이 시간이 쌓이다 보니 일관성이 없어진다. 그 역사가 흐르고 나면 사정이 달라져야 하는데, 우리는 과거 2,500년 가르침을 전부 배우려고 한다. 나는 역사적으로 추가된 가르침에는 관심이 없고, 석가모니에만 관심이 있다.

 

한국에서는『반야심경』, 『금강경』등 대승경전 많이 배우지 않나. 대승경전과 『아함경』이 많이 다른가?

 

초기 부처님이 설한 내용과 대승경전이 다르다. 아주 사소한 예를 들어보겠다. 『금강경』에서는 뗏목을 비유하는 장면이 나온다. 강을 건너기 위해 뗏목이 있고, 강을 건너면 뗏목을 버리라고 한다. 여기서 뗏목은 비법(非法)이다. 정법도 버려야 하거늘 비법이야 말해서 뭣하리, 라고 표현한다. 반면, 『금강경』보다 오래된 『니까야』는 이렇다. 일반 사람들이 부처님 가르침을 바르게 이해할 때 사견에서 정견으로 건너간다고 표현한다. 저편에 도달해서도 사견을 유지하면 뗏목을 머리에 이고 가는 사람과 같다고 말한다. 하지만 여기서 정견을 버리라는 말은 없다.

 

또 하나 예를 더 들겠다. 선불교에서 많이 쓰고, 지금도 한국에서 쓰는 ‘줄탁동시’라는 표현이 있다. 병아리가 알 속에서 깨고 나올 때, 안에서는 병아리가 쪼고 밖에서 닭도 쪼아야만 병아리가 알을 깨고 나온다고 해석한다. 거의 화두처럼 쓰인다. 병아리는 중생, 닭은 선지식이다. 선지식이 “탁!” 하고 깨는 건데, 선지식에서 '할'을 하고 주장자로 탁 치는 행동이 많이 발전한다. 이 구절과도 관련이 있다. 『니까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바르게 이해해서 공부해나가면 닭이 부리로 알을 쪼개지 않아도 저절로 때가 되면 알에서 새끼가 부화하듯 깨우친다고 나온다. 의도적으로 변형된 거지. 이런 식으로 미묘하게 다르다. 가르침을 이렇게 이해해야 한다, 라고 주장하면 논란이 되겠지만 이런 식으로 변형된 예를 찾으면 둘 사이의 차이가 명료하게 나타난다.
 
그래서 일본 불교학에서는 대승비불설(대승불교는 불교가 아니다)도 있었지 않나.

 

일본에서 『니까야』가 전래될 때, 학계에서 논란이 있었다. 『아함경』이 불설이라면 대승경전은 비불설이라는 뜻인데, 그 논란이 어떻게 정리가 됐는지는 모르지만 충분히 논란이 일어날 수 있다. 『수트라』를 독자가 읽으면, 대승불교 운동을 이해할 수 있다. 우리는 대승불교가 재가자 중심으로 인도에서 불교를 부흥시키기 위해서 일으킨 운동이라고 알고 있지만 그 부흥이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를 모른다. 그 당시의 고대 인도 사회와 종교 구조를 이해하면 대승불교의 정체를 알 수 있다. 왜 부처님 가르침이 대승경전에서 조금씩 변형이 되었을까? 내가 쓴 책을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유식학도 마찬가지인가.

 

나는 유식을 안 좋게 본다. 부처님 가르침이 전해져 오다 부파불교에서는 지수화풍에 관한 논의를 많이 한다. 지수화풍이 공(空)하다고 해서 공관학파가 이들을 흡수하고, 공 자리에 식(識)이 들어가면서 유식학이 나온다. 지수화풍공식, 이게 육대다. 유식학 다음에는 밀교이고. 유식학파는 원래있던 6식에 제7식과 제8식을 만든다. 부처님이 안이비설신의를 발견했는데, 2개를 추가했다. 이게 무슨 소리일까? 부처님 말씀은 잘못됐다, 부족하다는 의미다. 부처님 가르침을 훼손했다고도 볼 수 있다. 이들이 어떻게 훌륭한 사람일까? 그런데 대승불교에서는 용수보살이니 세친보살이니 해서 높게 본다. 내가 보기엔 부처님 가르침을 엎은 사람이다. 부처님이 가르친 여섯 개를 이해 못해서 추가로 만들었다. 육식은 내입처, 외입처, 그러니까 인과 연으로 해서 과가 나온 식이 6개다. 안이비설신의, 색성향미촉법 이렇게 대응한다. 7식과 8식은 어떻게 설명하나? 7내입처와 7외입처가 없는데, 어떻게 7식이 생기나? 8식도 마찬가지다. 

 

범일스님

 

바르게 이해할 수는 있어도 쉽게 공부할 방법은 없다

 

그렇다면 남방불교가 좀 더 부처님 가르침에 가깝나.

 

남방불교도 많이 변형됐다. 어떤 불교가 더 가까운가 아닌가는 의미가 없다. 이미 변형이 됐다. 다만 복원할 수 없다면 끝났겠지만, 복원했다. 『니까야』『아함경』이 있어서.

 

상대적으로 기독교 성경은 불교 경전보다 정리가 잘 된 것 같은데, 불교 경전 정리가 어려운 이유가 무엇일까.

 

기독교는 신의 가르침에 의지하는 종교다. 신의 가르침에 손대면 죽는다. 누군가에 의해 신의 가르침이라고 정형화하면, 변형하고 고치려고 하면 죽임을 당한다. 결정되면 손댈 수 없다. 그 뒤로 쭉 내려오는 거지. 거기에 손대면 신성모독이니까. 여기에 재해석을 하면 이단이 된다. 이단 전후 종교는 서로 전쟁한다. 구약성서를 재해석해서 신약성서가 나왔고 이게 예수님이다. 500년 뒤에 재해석해서 마호메트가 등장하고 코란이 나온다. 문선명 목사가 동양사상을 넣어서 통일교를 만드는 식이다. 재해석을 한 사람은 메시아가 되거나 죽임을 당하든지 둘 중 하나다.

 

불교는 좀 다른 종교다. 가르침을 누구든지 재해석을 할 수 있다. 다양성이 더 많다. 부처님 가르침을 일목요연하게 정리를 왜 안 했느냐? 양이 너무 많다. 『아함경』만 해도 구전하려면 수백 명이 필요하다. 예전에는 구전전승해서 기록으로 남겼는데, 그 기록을 초기불전연구원에서 대림스님과 각묵스님이 완간했다. 읽어보라. 중간쯤 오면, 이전 내용을 다 잊어버린다. 그렇게 많다. 어떻게 체계적으로 분류할 수 있겠나. 게다가 예수님은 30대에 돌아가셨지만, 부처님은 80대까지 많이 말씀하셨다. 못해왔지만, 지금은 인쇄술이 발전해서 경전을 인쇄해 한꺼번에 볼 수 있고, 색인도 잘 만들어놨다. 컴퓨터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고.
 
십이연기, 팔정도, 사성제, 삼법인 등 불교 교리를 보면 외울 게 많다. 어리석은 질문이지만, 불교 공부를 쉽게 할 방법이 있을까?

 

쉽게 공부하는 방법은 없다. 다만 바르게 이해하는 방법은 있다. 바르게 이해하면 가르침이 이어진다. 굳이 숫자로 외울 필요가 없다. 따로 12개, 4개, 8개를 외워야 하니 어렵다. 연기든 사성제든 어떤 가르침부터 시작하는 게 중요하지는 않고, 뭘 시작하든 다 이어져 있다.

 

개인적으로는 연기법이 어렵던데.

 

사람들이 연기법, 인연법, 인과법을 혼동한다. 어떻게 같고 어떻게 다른지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걸 잘 분별해서 이해하면 연기법도 쉽다. 물을 불로 가열해서 수증기가 나오면, 이게 연기법이다. 수증기는 과, 물은 연. 불은 인이다. 모든 현상과 모든 변화를 인, 연, 과로 해석할 수 있다. 연은 인이 작동해야 과로 바뀐다. 중생은 연, 부처가 과라면, 중생이 그냥 부처가 안 된다. 인이 있어야 한다. 이 인이 뭐냐. 수행이지. 그런데 인이 다양한 경우, 연과 과로 설명할 수밖에 없기도 하다. 예를 들어 어제의 내가 있고, 오늘의 내가 있다. 어제의 내가 연이고 오늘의 내가 과라면, 인은 뭘까? 하루 동안 무수히 많은 걸 했다. 먹고, 보고, 말하고, 행동해서 오늘로 바뀌었다. 이때 인은 엄청나게 많다. 그러니 인을 모두 다 서술할 수는 없다.

 

박사 논문으로 불교와 현대물리학을 비교하기도 했다. 불교가 과학적인 종교다, 이런 논의도 있는데.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논문 쓸 당시에는 기독교와 과학은 역사적으로 충돌이 좀 있었는데 여기에 비해 불교는 과학자와 충돌 일으킨 적이 없으니 혹시 불교가 과학적인 종교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논문에는 불교의 세계관과 서양의 자연관을 비교했는데, 일단 불교가 자연을 이해하는 데 목적을 둔 종교가 아니고 수행 부분도 논문에서 빠졌다. 논문을 쓴 당시에 시도는 좋았지만 불교에서 보면 불교의 외곽만 쓰다듬은 거지.

 

범일 스님은 연세대학교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교 물리학과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교 물리천문학과에서 연구원으로 재직 중 한국으로 돌아와 대한불교조계종으로 출가했다. 양산 통도사에서 사미계와 비구계를 수지한 뒤, 서울불교전문강당을 졸업하고 동국대학교 선학과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지리산 인근의 토굴에 머물고 있다.

 

범일스님

 

변하지 않는 진리를 얻기 위해 출가

 

물리학 공부하다 불교 입문한 계기는.

 

사람들은 출가하면 사업이나 연애에 실패하거나 삶에 회의를 느껴서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그렇지 않았다. 물리학 공부할 때도, 교수님이 취직하기 좋은 실험 물리학을 하라고 권했다. 그런 게 하기 싫었다. 이론을 공부하고 싶었다. 직장 구하려고, 교수 되려고 공부한 게 아니었으니까.

 

어릴 때부터 사람이 손에 닿는 것은 다 변하더라. 시간만 주면 다 없어진다. 아무리 인간이 견고하고 완벽하게 만들어도, 사람 손으로 만든 건 없어진다. 그렇다면 사람 손이 닿지 않는 것, 변하지 않는 게 뭘까 고민했다. 지구도 변할 수 있다. 천체를 보기 시작했다. 다른 건 다 변해도 변화하는 걸 둘러싼 우주는 가장 마지막에 변하지 않겠나 싶었다. 우주를 알고 싶어 공부했다. 공부하다 보니, 아무리 알고 싶어도 한계가 있다. 원리적 한계, 라고 표현하는데 머리가 나빠서도 아니고 노력이 부족해서도 아니다. 자연이 가지고 있는 한계성에 의해, 어떤 한계 이상은 절대로 알 수 없다. 똑똑한 사람이 수억 년 연구해도 모른다. 물질의 근원을 공부하는 입자물리학에도 그런 한계가 있다.

 

한계를 벗어날 방법을 찾다 정신적인 세계를 접했다. 졸업할 때 물질적인 진리 이외에도 정신적 진리라는 게 존재할 수 있고, 실제로 존재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때부터 우주와 자연과학이 재미없어졌다. 비물질적, 정신적 세계를 알기 위해 출가했다.

 

출가 뒤 정신적 진리를 구하는 과정은 어땠나.

 

한국불교를 잘 몰랐다. 출가하면, 숲 속에 들어가 이슬 먹고 사는 줄 알았다. 와서 보니 혼란스럽더라. 대학은 시스템이 있다. 물리학 같은 경우는 연구하고 노력하면 그 시스템에 따라 대학을 졸업하고 박사를 따고, 연구를 더 하고 싶으면 연구하는 식으로 마무리된다. 한국불교도 이런 체계가 있을 줄 알았다. 3년, 10년, 이런 식으로 하면 내가 원하는 걸 모두 알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이런 줄 알았으면 출가를 안 하거나, 다른 나라에서 출가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서로가 싸운다. 출가하고 나서 1994년 조계사 사태가 생겼다. 그 현장에 있었다. 계속 중으로 살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헷갈렸는데 결국 내 힘으로 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동국대에 들어갔다. 12년 공부해서 졸업했다. 졸업하고 나와서 지리산 토굴로 들어갔다. 내 문제는 내가 해결해야겠다, 이런 마음이었다. 다른 데 의지하지 않고 『니까야』『아함경』만으로 찾고 있다.

 

많은 산 중에 지리산을 택한 이유는?

 

지리산과 인연이 많고, 현실적으로는 땅값이 제일 싸다. 서울 근처 땅은 비싸다. 지리산 중에서도 쌍계사 있는 남쪽은 비싸고, 북쪽이 싸다. 그래서 지리산 북쪽으로 들어갔다. (웃음)

 

법명이 범일인데, 어떤 의미인가?

 

범천의 태양. 신라 시대 범일국사라고 있다. 신라의 왕자로서 강원도 강릉의 굴산사지가 범일국사와 관련 있는데, 지금도 강원도 사람들은 대관령 산신제보다 범일스님 제를 먼저 지낼 정도로 영향력이 크다. 그분을 보고 이름을 딴 건 아닌데, 우연히 나중에 확인해 보니 같더라.

 

불교에서는 참된 나를 진아(眞我)라고 하고, 참된 나를 모르기에 탐욕이 발생한다고 보지 않나. 21세기 문제가 참된 나를 모르고 살아서인 듯한데.

 

『니까야』를 공부하면서 깜짝 놀랐다. 대승불교에서는 진아, 불성, 견성성불이라고 말하면서, 내 안에 뭔가 찾아야 하는 게 있다고 가르치지만 이게 부처님 가르침이 아니다. 오히려 이런 걸 주장하는 사람은 4가지 사견 중 하나로 떨어진다고 설명한다. 지금 이 시대는 부처님 가르침이 아닌 게 번져 있다. 『니까야』『아함경』이 한국어로 번역되어 있는데, 안 본다. 이런 게 황당하다.

 

질문에 대한 답을 하자면, 현대의 문제는 과거의 문제, 미래의 문제와 똑같다. 인간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같다. 인간으로서 인간의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문제를 안고 살 수밖에 없는 존재다. 해결하려면, 인간이 아니어야 한다. 인간을 벗어나야 한다. 인간에서 인간으로 벗어나는 방법은 무엇인가? 답은 책에 있다. 영화 <혹성탈출>이 있는데, 『수트라』는 인간탈출 가이드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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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트라비구 범일 저 | 김영사
영원히 변치 않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품으면서 성장한 저자는 영원히 변치 않는 것을 찾아 자연과 우주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 대학에서 물리학을 공부하였다. 어릴 때의 의문에 대한 답을 찾을 만큼 대학에서 공부가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여 미국 대학원으로 유학하여 이론천체물리학(우주론)을 전공하였다. 대학원을 졸업할 무렵 자연과 우주의 진리에 대한 원리적 한계를 이해하였고 비물질적 진리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하여 저자는 영원불멸한 진리를 찾아 물질과학의 우주론에서 정신과학의 불교로 탐구방향을 전환하여 출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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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미 “다음 인간은 좀 더 겸손해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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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우리가 사는 지금을 기계문명이라고 말한다. 인간은 기계를 만들고, 기계의 모습은 시대에 따라 달라졌다. 변하는 기계는 인간 생활에 영향을 미친다. 다소 식상한 예지만 스마트폰 등장 이전과 이후의 삶은 상당히 다르다. 이렇게 삶이 바뀌면 인간의 심리적인 면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런데 미래를 다룬 논의 대부분이 기술 변화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인간 삶은 어떻게 바뀔지에 초점을 맞췄을 뿐 심리적인 면을 중점으로 다룬 책은 많지 않았다.

 

이나미 심리학자가 쓴 『다음 인간』은 변화하는 사회가 개인의 심리에 미칠 영향을 자세하게 다뤘다. 미래학 책은 대개 통계를 제시한다거나 학계 권위자의 말을 인용한다거나, 대립되는 논쟁을 소개해서 딱딱해지기 십상인데, 이 책은 다소 다른 접근을 취했다. 단편 소설 같은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다음 인간’에 관해 묘사한다. 독자가 쉽고 재밌게 읽게 하기 위한 배려였다고.

 

책에서 그려지는 ‘다음 인간’은 현대인과 다소 다르다. 성공하려는 욕구가 없고, 관계 형태도 달라진다. 가족 이데올로기는 약해질 것이며, 핏줄 중심의 민족주의도 옅어진다. 기계 문명의 발전으로 ‘소외’가 대두할 수 있으며, 이런 여러 가지 변화에 답을 주기 위해 종교는 다양한 모습으로 변한다. 주목할 점은, ‘다음 인간’이 100년, 200년 후의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삼포세대는 무욕적 인간의 다른 표현이라 할 수 있고, 결혼하는 비율이 줄어드니 가족 이데올로기도 자연스레 약해진다. 외국인 노동자가 늘어나고, 대한민국에서 다른 나라로 이주가 늘어날수록 ‘한국인’ 관념도 바뀐다. 그러니, 『다음 인간』에서 다루는 많은 내용이 현재진행형인 셈.

 

이미 다음 인간이 등장하고 있다


요즘 어떻게 지내셨나요.


저야 늘 같아요. 환자 보고, 책 쓰고. 간간이 방송 출연하고. 그렇게 지내죠.


서문에도 썼지만, 심리학이 개인의 과거에 관심이 있는 학문인데요. 『다음 인간』은 미래를 다뤘습니다.


이전에 쓴 『한국 사회와 그 적들』에서는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문제를 다뤘습니다. 칼 융은 과거에 머무는 걸 안 좋아했어요. 현재의 고통이 미래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보라고 했죠. 그런데 조망이 부족해요. 미래학에서 조망하지만, 주로 정치나 경제 쪽 이야기를 하지 사람들의 심리가 어떻게 변할지를 다룬 책이 별로 없었어요. 한번 써보고 싶었습니다.
 
'다음'이 가리키는 게 5년일 수도 있고 100년일 수도 있는데요. 대략 언제를 염두에 두고 썼나요?
 
2010년에 이 책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때 상상했던 게 이미 등장하고 있어요. 책에도 세계적으로 바이러스가 문제가 된다고 썼는데, 에볼라 바이러스가 그래요. 사람 몸처럼 생긴 인형이 성 파트너가 되는 현상, 화성으로 가는 것 등. 저만 상상한 게 아니라 많은 사람이 상상한 모습이죠. 속도가 워낙 빠르니 이 책에서 다룬 내용이 더 빨리 나타날 겁니다. 책에는 정치ㆍ경제ㆍ환경ㆍ가족 이렇게 나눠서 썼는데요. 각 영역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사람에게는 어떤 심리적 영향을 주는지 상상해 봤어요. 과거가 유럽과 미국 중심이라면 지금은 중국, 중동, 아프리카 등으로 다면화되니 사람 심리도 서구 중심 심리가 아니라 더 다양해지겠죠. 대한민국도 다문화 사회로 가고요. 아프리카 학생이 우리나라 와서 노동할 수도 있고. 우리나라 사람이 베트남 가서 자리 잡을 수도 있어요. 가족이 해체되고 결혼하는 비율이 낮아지겠죠. 결혼하지 않아도 새로운 가족 형태로 구성될 거라 봐요. 이미 셰어하우스 같은 형태가 나타나고 있잖아요.


통계도 인용했지만, 서술 방식이 주로 묘사입니다. 모르는 독자가 책을 펼쳤을 때는 소설책이라는인상도 받을 것 같은데요. 이런 서술 방식은 어떤 목적으로 선택하셨나요.


나 같은 사람은 책을 써야 하고 공부해야 하니까 집중해서 미래학 책을 보지만, 일반인이 그렇게 보진 않아요. 책 쓰는 원칙이 ‘문장은 간결하게, 어려운 걸 쉽게, 기억하기 좋게, 스토리 있게 쓰자’입니다. 에피소드 중심으로 엽편소설처럼 쓰면 독자가 읽기도 쉽고 기억에도 남겠죠. 이 책으로 많은 사람이 미래 인간을 상상해 봤으면 좋겠네요.


책을 읽으면 현재 인간과 다음 인간이 많이 다른데요. 지금 인간이 인간다운지, 오히려 다음 인간이 인간다운지가 헷갈리는데요. 결국,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질문하는 책 같습니다. 선생님은 인간이 어떤 존재라 생각하세요.


인간을 알려면 침팬지나 원숭이를 보면 됩니다. 침팬지나 원숭이를 보면, 외부에서 침범해서 자신의 영역이 부서지면 가족 내 폭력이 많아져요. 가정폭력이죠. 권력, 권위주의가 가부장제나 자본주의 때문이라고 보는데, 사실은 침팬지나 원숭이를 보면 위계질서가 존재해요. 위계질서가 있는 조직이 먹이를 더 많이 쟁취하기도 하고요. 권력은 선하지도 않고 악하지도 않아요. 권력을 갖고 싶은 욕망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있죠. 선하게 쓰거나 악하게 쓰느냐 하는 차이가 있겠지만요. 심리학은 윤리가 아니라 상황을 봅니다. ‘인간은 이렇게 해야 한다’가 아니라 ‘인간은 이렇다’를 보여주죠. 『다음 인간』에도 윤리적인 선언이나 외침은 없어요. 있는 그대로를 보여줄 뿐.


욕망 없는 인간, 재생산은 어떻게?


다음 인간 특징 중 하나가 무욕적 인간, 욕망이 없는 인간인데요. 그렇다면 재생산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요.


끊임없이 팽창해야 잘 살 수 있다는 게 신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요. 100억의 미래, 이런 말을 하기도 하잖아요. 선진국 인구는 정체입니다. 미국은 백인 숫자가 점점 줄고, 20년쯤 후에는 백인이 소수가 될 거라고 전망하죠. 한국민족도 정체할 것이고 그 자리를 이민자가 메우겠죠. 북한에서 온 사람들도 포함해서요. 그렇게 생각하면, 우리나라 인구가 준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일본이 마이너스 성장인데 비해 미국이 그나마 플러스 성장을 하는 건 불법 이민자를 포함한 이민자 덕이기도 해요. 우리나라는 정책이 비교적 미국에 근접합니다. 한민족이 줄어들어도, 한반도는 계속 갈 거라고 봅니다.


전체로 본다면, 지구가 시름하고 있습니다. 토마스 베리를 인용했는데, 인류가 겸손해져야 해요. 지금 인구수가 늘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건 좀 아닌 듯합니다. 특히 선진국 1인당 소비하는 에너지양과 배출하는 쓰레기양이 엄청나거든요. 인류가 저지르는 죄에요. 선진국 국민이 더는 늘면 안 돼요.


무욕적 인간을 긍정적으로 볼 수도 있겠네요.


저는 가톨릭 신자이고 기독교를 좋아해요. 그렇지만 욕망에 관해서는 기독교가 불교나 힌두교처럼 지구 전체로 확장해서 생각하는 면이 없어요. 기독교는 세상이 인류를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욕망에 대한 지나친 신화에는 프로이트 심리학도 일조했어요. 인간의 욕망을 억압하기에 정신병이 생기니, 욕망이 자연스레 표출되어야 한다고 말했으니까요. 욕망 표출도 어느 정도까지 해야지, 지금처럼 심하면 우리나 지구에 해롭습니다. 무욕 인간을 부정적으로 정의한다면 의욕 없이 백수로 사는 것 같지만, 자기 욕망을 자제한다는 면에서는 더 성숙한 인간으로 볼 수도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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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부모들 중 많은 이가 타이거 맘, 몬스터 맘, 헬리콥터 부모, 매니저 엄마 같은 별명을 들을 정도로 열성적으로 자녀들을 뒷바라지한다. 일일이 스케줄을 관리하는 등 모든 것을 간섭하며 오로지 공부만을 강조한다. 이들의 열성은 그러나 역설적으로 자녀들의 삶에 대한 의욕과 회복력을 오히려 떨어뜨렸다. 삶에 대한 열정이 식어버려 무욕 상태에 빠지는 자녀도 적지 않다. (86쪽)
 

무욕적 자식 뒤에는 열성적 부모가 있다고 지적했는데요. 상담하면서 많이 느끼셨나 봐요.


‘에너지 총량의 법칙’이라고 이야기하는데요. 부모가 의욕이 넘치면 자녀 중 한 명은 반대의 삶을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제로 상담하다 보면 욕심 많은 부모와 히피 같은 자녀를 많이 봐요. 어쩌면 삼포시대도 그렇게 볼 수 있어요. 전후세대, 해방둥이라고 하죠. 이들은 못 먹고 못 살아서 냉장고도 가득 차야 하고, 뭘 해도 그악스럽게 악착같이 하거든요. 부동산, 주식 등 욕망 가득한 삶을 살았어요. 그래서 사회가 발전하기도 했지만, 자녀들이 삼포세대가 되기도 했죠.


빌딩주인인 70대 노인이 20대 노숙자에게 죽은 사건이 있었어요. 빌딩주가 20대 노숙자를 계속 쫓아내니까 20대 노숙자가 화나서 할머니를 죽인 거죠. 현대판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인데 제가 어렸을 때 할머니들은 걸인이 오면 밥상을 차려서 줬어요. 물론 밥을 던져 준 사람도 있지만요. 우리 외할머니도 제대로 차려 줬거든요. 이런 정신이 해방둥이에서는 사라졌어요. 물론 그렇다고 20대 노숙자의 행위가 정당화되지는 않지만요. 어쨌든 삼포세대를 만든 책임은 해방둥이와 베이비붐 세대에 있다고 볼 수 있어요. 너무 심하게 조이고, 몰아붙이니 오히려 아이들은 포기해요. 부모들이 그렇게 사는 걸 보니까 지긋지긋한 거죠.


그럼에도 다음 인간에게서 희망을 본다면.
 
아까는 극단적인 예를 들었지만 삼포세대라고 해도 젊은 친구 중에 열심히 사는 사람이 많아요. 예전 386세대는 대학에서는 공부 안 했잖아요. 지금은 중고등학교는 말할 것도 없고 대학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다양한 활동을 해요. 부지런한 젊은이가 많죠. 그런데 이들은 자기 가족이나 가문만 생각하는 과거 세대보다는 가족 이데올로기에서 조금은 자유로운 것 같아요. 가족이 아닌 다른 공동체에서 정체성을 찾고 소속감을 느끼는데요. 예컨대 카페, 동호회, 팬클럽도 그 중 하나겠죠. 나쁘게만은 보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의 부정부패가 상당수는 가족 이기주의에서 나왔거든요. 왜 검은돈을 먹겠어요. 배우자나, 자식을 잘 먹여 살리려고 받죠. 가족이 깨져야 부정부패가 없어질 겁니다. 자식처럼 나와 유전자가 같은 사람을 사랑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어요. 오히려 진화한 인간이라면 자기 핏줄이 아닌 사람도 사랑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정상 가족이 사치재가 됐다는 비판도 있잖아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은 배우자와 자녀로 이루어진 가족이 부유층의 상징이 되는 것일 텐데요. 실제로 지금도 결혼과 양육에 드는 돈이 많이 드니 결혼을 꺼리는 젊은 사람이 늘고 있는데요.


그렇게 되면 굉장히 불행한 일이겠죠. 우리나라에서는 아이가 생산은 못하고 소비만 하는 존재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사고가 전환되어야 합니다. 교육이 변해야겠죠. 지금처럼 아이를 아무 걱정 없이 공부만 하라고 할 게 아니라 아이도 함께 생산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합니다. 독일이나 영국은 우리보다 어린 시절에 생산활동에 들어가요. 10대에 직업학교 가는 비율이 높잖아요. 이렇게 되어야, 고학력 백수가 없어집니다. 우리나라에서 10대가 생산활동 못 하는 이유는, 결국은 중소기업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고졸 취업자 처우도 열악하고요. 기업도 바뀌어야 하고, 정부 정책도 변해야죠. 대학을 안 보내도 되겠다, 이런 사회가 된다면 아이 키우는 데 돈도 덜 들 겁니다.


칼 융은 존경할 만한 학자


이나미 저자는 신경정신과 전문의로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정신의학과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뉴욕 융연구원에서 분석심리학 과정을 공부하고, 유니언 신학대학원에서 종교심리학 석사를 졸업, 뉴욕 신학대학원에서 교수를 지냈다. 현재 이나미 심리분석 연구원을 운영하며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외래 교수와 한국 융연구원 교수를 겸하고 있다.


칼 융을 전공하셨잖아요. 융에 매료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20세기에 활동한 유명한 심리학자가 많습니다. 그 중에서 융은 예외적으로 동양 문화를 깊이 이해한 사람이었죠. 서구 중심주의에서 벗어난 학자였고요. 기계 문명, 대량생산에 반대하고 개인을 중시하는 심리학입니다. 숫자로 따지려 하는 심리학과는 다르게 인간의 무의식을 깊이 들여다보고자 했습니다. 돈을 많이 벌고 사람을 많이 사귀는 게 아니라 진짜 나를 찾는 데 학문의 목적을 둔 사람이에요. 심리학자로 뛰어난 학문적 성취를 했으면서도 존경할 사람이 융입니다.
 
융 하면, 노년에 수년에 걸쳐 집을 지은 에피소드가 떠오르는데요. 선생님께는 그런 장기간에 걸쳐 시도할 계획이 있나요.


제 꿈은 소박해요. 경영하는 능력도 없고 정치나 경제에 밝지 않은데요. 제 능력은 환자 보고, 글쓰는 것밖에 없어요. 아, 또 하나. 밥은 잘합니다. (웃음) 누구든지 나를 써 주는 사람이 있으면, 늙어서는 좀 소외된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어요. 그곳에서 나무나 야생화를 심어 보고 싶네요. 누가 써주려나 모르겠네요.


그리고 한국 신화를 세계적으로 알리고 싶은 마음은 있어요. 가요, 드라마 수출을 한류라고 합니다만, 한국에는 수출할 게 많아요. 그 중 하나가 신화죠. 『융, 호랑이 탄 한국인과 놀다』가 우리나라 민담을 쉽게 해석한 책이에요. 신화는 각 사회 정체성의 근간입니다. 유대인이 야훼부터 시작해서 자기 정체성을 성경에서 찾잖아요. 우리나라도 정체성을 찾으려는 노력은 있었지만 적극적으로 안 했죠. 예전에는 소중화였고 지금은 미국이나 유럽을 닮으려 한다든지 일본을 쫓아간다든지, 이렇게 바깥만 보느라 우리나라 안에 있는 좋은 이야기를 놓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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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인간이나미 저 | 시공사
우리가 흔히 간과하고 있지만, 인간이 만든 기술은 역으로 우리 인간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이 책 『다음 인간』은 기술이 우리 인간의 심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하여 앞으로 나타날 ‘다음 인간’의 모습은 어떠한지 이야기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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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낙서 수집이 취미인 청춘, 도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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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골목의 담벼락, 학교 화장실, 도서관 책상. 이런 곳은 낙서를 발견하기 쉬운 곳이다. ‘우리 사랑 이대로’, ‘로또 1등’ 등 자신의 욕망을 드러낸 낙서부터 음담패설, 특정 정치인 욕까지 낙서의 범위는 끝이 없다. 흔하고 흔해서 주의해서 본다면, 일상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지만 대부분은 그냥 지나친다. 낙서는 쓰는 사람에게도, 보는 사람에게도 그런 존재니까.

 

낙서를 수집하는 사람이 있다고? 그래, 있을 수 있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이 사니까. 그런데 낙서를 모아서 책까지 냈다고 한다. 서점에서 일하는 필자로서는 호기심이 생겼다. 주인공은 도인호. 그가 낸 책은 『청춘의 낙서들』이다.

 

한국말 ‘의’는 다양한 뜻을 함의한다. ‘청춘의 낙서들’도 마찬가지. 청춘이 쓰는 낙서, 청춘 시절에 쓴 낙서, 청춘이 발견한 낙서 등 다양한 뜻으로 읽을 수 있다. 이 책은 저자가 힘들었을 때 위안을 받았던 낙서를 모았다. 낙서, 하면 으레 음담패설을 떠올릴 수 있으나 이 책에 실린 낙서는 따뜻하고 포근하다. 그렇다곤 해도, 이런 낙서, 왜 모았을까. 저자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자.

 

도인호

 

식목일에 태어난 꽃집 아들, 낙서에 빠지다


첫 책입니다. 채널예스 독자에게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저는 도인호입니다. 1986년 식목일에 태어났습니다. 꽃집 아들이에요. 잠깐 꽃집을 창업했다 처참하게 실패하고, 그전부터 취미로 모아놓은 낙서를 소재로 실패한 청춘 이야기를 책으로 냈어요. 지금은 책 홍보도 하고, 블로그도 하고,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이 책은 어떤 책인가요?

 

요상하지만 취미생활처럼 낙서를 모으기 시작했어요. 사업 실패하고 나서, 위로하는 글을 블로그에 쓰기 시작했죠. 처음에는 장난 같은 낙서를 소개하면서 시작했는데, 가면 갈수록 실패한 젊은 시절의 이야기가 많이 나오더라고요. 이 책은 그런 식으로 낙서를 소재로, 제 젊은 시절을 주제로 쓴 책입니다. 화장실의 낙서를 발견한 것처럼 쉽고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 심심할 때 한 번씩 읽으면 재밌는 책이에요.

 

낙서를 수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군대 가기 전, 잠실 인근 화장실에 오래 앉아 있었는데요. 화장실에 으레 있는 야한 낙서가 있었어요. 제대하고 나서 보니 그 자리에는 성소수자 이야기가 보이더라고요. 흥미로웠죠. 2006년보다 2008년에 성수자 담론이 더 많았거든요. 이걸 보면서 낙서가 시대를 반영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이런 생각을 하던 중에 집 앞에 있던 낙서가 지워졌어요. 낙서가 시대를 반영하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하구나, 해서 사라지기 전에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취미가 됐죠.
 
모든 공간에서 낙서를 수집할 수는 없잖아요. 낙서를 모으기 위해 돌아다닌 공간은 주로 어디였나요.

 

홍대 근처나, 이태원 쪽이에요. 술집이 많은 데에 낙서도 많죠. 요즘은 카페도 일부 허용하는 곳이 있고요. 화장실은 예전에는 많았는데 없어지는 추세입니다. 돌아다니는 공간마다 유심히 보는 편인데, 문화가 다양한 곳이나, 오래된 곳에 낙서가 많죠.

 

화장실 낙서는 왜 없어질까요?

 

첫째로는 스마트폰 영향이 아닐까 싶어요. 예전에는 펜 있고 심심하면 화장실에 낙서했는데, 지금은 스마트폰 보잖아요. 둘째로는, 화장실이 전반적으로 깨끗해지니까, 낙서할 생각을 못하는 거죠.
 
본인도 낙서를 하나요?

 

어렸을 때 이후로는 안 했어요.

 

모든 낙서를 수집하진 않을 듯한데, 낙서를 모을 때 기준은?

 

홍대에 그래피티가 많은데, 거리 예술이라 생각해서 안 모으는 편이고요. 낙서는 심심할 때, 뭔가를 끄적이고 싶을 때 쓰는 건데요. 이런 식으로 나온 낙서를 좋아해요. 제가 봤을 때, “이 사람 정말 심심하구나” 하고 느낄 만한 게 좋죠.


일단 착한 낙서 위주로, 19금 낙서는 나중에

 

화장실 낙서를 보면 음담패설이나 욕설도 많은데, 책에 실린 낙서는 대체로 선량합니다.

 

실제로 제가 수집한 낙서도 음담패설이 훨씬 많은데요. 나중에 19금으로 한 번 내볼까, 생각은 하지만 이번 책에는 독자가 불쾌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걸렀죠. 너무 야한 낙서나 정치적으로 치우친 낙서는 사람에 따라서 불쾌하게 느낄 수 있잖아요. 『청춘의 낙서들』은 우선은 재밌게 읽히면 좋겠네요.

 

낙서가 인터넷으로 보면 익명성이 보장된 댓글과 비슷하기도 한데요.

 

둘 다 공통점은 배설의 욕구가 아닐까요. 책에 실리진 않았지만, 정치적 낙서나 음담패설을 보면 익명성에 기대 감정을 배설하려는 욕구가 보여요. 인터넷 댓글창에 보이는 지저분한 댓글과 낙서가 비슷하죠. 그래서 둘 다 시대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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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잉여>에 기고하기도 했는데요. 낙서는 잉여일까요?

 

관점이 여러가지가 있겠죠. 경제적인 관점에서는 확실히 잉여죠. 낙서를 쓰는 사람은 심심해서 쓰고, 수집하는 사람은 재밌어서 하는 거니까요. 다른 쪽으로 생각해 보면, 어디엔가 누군가의 글이 남겨져 있고, 남겨진 글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다면 언젠가는 지워져도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낙서가 시대를 반영한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는데요. 이런 관점에서 보면 잉여가 아니라 의미 있는 기록이 아닐까요.


사업 실패했던 기간을 3년 정도로 알고 있는데요. 그런데 책에는 사업 실패 이야기가 없습니다.


평범하게 실패한 이야기라 딱히 더 할 이야기가 없었고요. 그렇지만 사업 실패에 관한 이야기는 따로 책으로 내고 싶기도 해요.


평범한 실패라면?


동업은 하지 말아야겠다? (웃음) 제가 사회에 나가기 위한 준비가 충분히 안 돼 있었어요.


요즘 청춘, 어렵다


책에서 실패를 많이 이야기했는데, 기성세대가 풀어놓는 청춘 담론과 다른 느낌 같기도 하네요.


청춘에 관한 책을 나이가 있는 분이 쓰다 보니, 독자보다 스펙도 좋고 좋은 일을 많이 하신 분이잖아요. 제 책은, 읽는 독자보다도 스펙도 없는 사람이다 보니, 기존의 청춘 책보다는 진정성 있고, 위로 받듯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낙서가 시대를 반영한다고 했는데, 낙서로 봤을 때 지금 시대 청춘은 어떤 것 같아요.


어떤 시대나 그렇겠지만, 요즘 청춘은 빡빡하고 힘들게 살고 있는 듯해요. 열심히 일해도 자신의 힘으로 결혼을 한다거나, 집을 마련한다거나, 이런 게 불가능하잖아요. 매우 힘든 상황이에요. 이런 상황을 정면으로 받았던 사람이라, 사람들은 재밌게 읽지 않을까요.


낙서 모으면서 겪은 황당한 사건도 있나요.


남산에서 사랑의 낙서를 찍고 있었어요. ‘철수 영희 우리 사랑 이대로’ 이런 낙서죠. ‘사랑 영원할 줄 아냐’ 이런 것도 있었고요. 제가 찍는 걸 보고 중국인 관광객들이 함께 찍으시더라고요. 전혀 명소가 아닌데 중국말을 몰라서, 말은 못 드렸네요.


이번 책에서는 주로 서울에서 수집한 낙서를 담았는데, 앞으로 전국 편을 기대해도 될까요.


책 쓰는 게 힘들어서 당분간은 계획에 없고요. 활동 영역이 넓어지면 넓어질수록 재밌는 낙서를 모을 수 있지 않을까요.


조경학을 전공했는데, 글쓰기에 빠진 계기는?


뭐를 해야 하나, 고민스러웠던 시기였어요. 조경학을 전공했는데, 인턴 생활을 잠깐 하면서, 이건 진짜 아니다, 하면서 학교로 돌아갔죠. 여러 가지로 혼란스러웠어요. 그때 '예술과 미학'이라는 수업을 들었는데, 에세이로 1주일에 A4 한 장씩 써야 했죠. 글을 쓰니 위로가 되더라고요. 그때부터 힘든 시기에 일기 쓰듯, 썼어요.


원래부터 책을 좋아했던 것 같은데, 최근에 읽은 책 중 인상 깊었던 게 있다면.


책보다는 영화를 좋아하지만, 책도 좋아해요. 요즘에는 『반 고흐 인생 수업』이 좋았어요. 반 고흐가 생각했던 것보다, 찌질한 부분이 있더라고요. 그럼에도 위대한 작품을 만들어냈어요. 그런 반 고흐의 인생에 맞춰 저자 자신의 사연을 더해서 설명해준 책인데, 재밌었습니다.


앞으로 발견하고 싶은 낙서가 있나요?


“당신은 무엇을 하는 사람입니까”라고 홍대 편의점 앞에 있었던 낙서인데요. 그 낙서를 보고 묘하게 위안을 받았어요. 제가 찍었던 낙서 모두를 그렇게 받아들였어요. 청춘의 시련이라고 받아들였죠. 사정이 나아지면, 낙서가 변한다기보다는 제가 거리의 낙서들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끝으로 채널예스 독자에게 한 마디 해 주세요.


이 책에서 발생한 수익은 저의 생계 유지비로 이용되니, 많이 많이 사 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요즘 너무 힘듭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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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낙서들도인호 저 | 앨리스
그는 스펙 쌓기에 매진하는 여느 20대와는 달리, 낙서를 수집하는 조금은 평범하지 않은 청춘으로, 이 책에서 그간 모은 낙서를 매개로 자신의 삶과 고민을 풀어놓는다.『청춘의 낙서들』에 담긴 낙서들의 빛깔은 다채롭지만 이 책의 지은이가 계속해서 고민하는 것은 ‘이 청춘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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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종관 “우리는 왜 사랑하지 못해 안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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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봄까지 김종관 감독은 폐간된 영화잡지 <무비위크>에 칼럼 ‘케빈의 섹시한 페이지’를 연재했다. 김종관 감독은 섹스 칼럼을 써달라는 제안을 받고, ‘가상의 이야기를 꽁트화 한다면 재밌지 않을까?’ 생각했다. 1년 반 동안 발칙한 연애담을 썼고, 그 글을 토대로 에세이집 『그러나 불은 끄지 말 것』을 펴냈다. 책은 제목 있는 콩트와 제목 없는 산문, 그리고 사진들로 이루어져 있다. 서른두 편의 이야기 속 주인공은 다르지만, 모든 이야기는 하나의 매듭 ‘사랑과 욕망’으로 이어졌다.

 

여름의 끝자락, 압구정의 한 스튜디오에서 김종관 감독을 마주했다. 과감한 글과는 달리 매우 수줍은 얼굴로 나타난 김 감독. 저자로서는 첫 인터뷰라며 어색함을 감추지 못했다. 우리의 연애, 사랑을 적나라하게 표현했지만 자신의 연애담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궁금했지만 캐물을 수도 없는 노릇. 하지만 정작 그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따로 있었다. 김종관 감독은 연애담을 통해 남녀 관계 안에서 드러나는 내부의 모순, 그 껍질을 벗겨보고 싶었다. 그는 “스스로의 정의만을 가지고 외부의 적을 찾는 사회적인 태도들만 넘치는 요즘, 가장 사적인 이야기와 개인의 욕망을 표현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응당 고개를 끄덕일 이야기였다.

 

계절과 거리와 단지 두 사람만으로, 관계의 이야기들을 만들어보았다. 이야기는 돌고 돌며 끝없이 이어진다. 책장을 넘기는 누군가, 불을 밝히는 여행에 이 책의 용도가 있기를 바란다. ( 『그러나 불은 끄지 말 것』 27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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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이 내 책을 볼까?


독자들이 가장 궁금해할 질문을 먼저 물을게요. 책 속 이야기를 두고 “이것은 픽션이기도 하고 논픽션이기도 하다”고 밝혔는데요. 직접 경험한 이야기가 어느 정도 포함되어 있나요?


(웃음). 글쎄요. 꽁트 옆에 실린 산문은 제가 쓴 산문이니 저의 이야기일 거고요. 꽁트는 가상의 틀 안에서 쓴 글들이에요. 책에 들어간 글에는 모두 저의 솔직함이 들어가 있지만, 사건의 솔직함으로 오해하진 않았으면 좋겠어요. 지나간 추억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도 어떠한 당사자에게는 실례가 될 수 있는 일이니까요. 영화를 만들 때도 마찬가지에요. 제가 겪은 일과 겪지 않은 일들이 섞이면, 그게 사실로써의 용도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구성으로써 존재하잖아요. 결국 사람들에게 어떤 재미를 주느냐, 어떤 정서적인 작용을 일으키냐? 인 것 같아요.

 

사진도 모두 직접 찍으셨다고요.


예전에는 필름 카메라를 좋아했는데 요즘은 아이폰도 워낙 잘 찍혀서요. 반 이상은 아이폰으로 찍은 거예요. 우연히 찍게 된 사진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고요. 사진에는 어떤 기분들이 붙어 있어요. 사진을 찍던 그곳의 날씨와 그 주변의 사람들. 사진을 찍어준 이와 상황들. 때때로 사진에 남은 흔적 속에 해결되지 않는 감정들이 붙어 있기도 해요.

 

영화를 찍을 때와 책을 쓸 때, 어떻게 달랐나요?


원래 글을 쓰던 사람이 아닌지라 많이 서툴지만, 두 가지 모두 저의 창작적인 고민에서부터 나온 이야기잖아요. <폴라로이드 작동법> <조금만 더 가까이>를 찍었을 때보다는 최근에 쓴 작품이니까, 성장의 측면에서는 전에 만들었던 작품보다는 조금 나을 수가 있겠죠(웃음). 『그러나 불은 끄지 말 것』은 가상의 틀 안에서 시작한 글이라서, 즐기는 마음으로 썼어요. 저 스스로 환기가 되는 그런 느낌이 있었어요. 내가 앞으로 뭔가를 만들어 갈 것인가에 대한 동력도 얻었고요. 사람이 뭔가를 쓰기 전까지는 확실히 모르잖아요. 내가 갖고 있는 태도나 어떤 관점에 대해서도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한 독자의 리뷰가 인상적이더라고요. “수줍게 야한 느낌”이라고. 


저도 쓰면서 비슷한 느낌이 있었던 것 같아요. 야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그걸 통해서 정말 하고 싶었던 다른 이야기가 있었으니까요. 애초에 성적인 자극만을 목표로 잡고 쓴 건 아니라서요. 남녀 이야기에는 어떤 욕망이나 욕구도 있고, 사람들과의 관계 맺기에서 생기는 이타심도 있잖아요. 그것들 사이에서 겪게 되는 갈등들이 흥미로우니까요. 그런 부분들을 여러 가지 연애담으로 이야기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독립영화계의 독보적 감성지기’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는데, 『그러나 불은 끄지 말 것』은 감성적이기보다는 과감하고 솔직하고 또 현실적이에요.


꽁트는 그렇게 느낄 수 있을 거예요. 꽁트 옆에 실은 짧은 산문을 연결해서 읽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대부분의 관객들은 극장 안에 들어가면, 웬만해서는 끝까지 영화를 보잖아요. 하지만 독자들은 다를 거예요. 책은 언제든지 책장을 덮을 수 있으니까. 첫 장을 펼쳐서 마지막 장까지 읽는다는 건, 어떻게 보면 저자 입장에서는 굉장히 감격스러운 일이에요. 어떤 사람들이 내 책을 볼까? 하는 궁금증이 있어요.

 

배우 정유미, 윤계상이 연기했던 작품이었죠? 영화<조금만 더 가까이>에 나왔던 대사, “너 때문에 나 연애불구야. 겁나서 사람을 어떻게 만나니?”가 책 속에도 등장해요. 명대사로 유명했는데요.


톤에 잘 맞는 것 같아서, 시나리오를 약간 꽁트화해서 넣어 봤어요. 그동안 제가 단편영화를 주로 작업했잖아요. 큰 예산을 들이지 않고 작업하려면 미니멀한 구성이 필요한데, 한 사람이 나오는 영화는 한계가 있고 두 사람이 되면 관계가 이뤄지니까 여러 가지 이야기를 만들 수 있어요. 그간 제가 만나온 사람들은 영화현장에서 또는 영화감독으로서 만나게 된 경우가 대부분인데, 제가 영화감독이라는 사실을 모른 채 이 책을 보게 될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베스트셀러가 돼야만 가능하겠지만요(웃음).

 

서른두 편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언젠가 하나의 이야기 쯤은 영화로 만들어지는 날이 오지 않을까? 궁금하더라고요.


어쨌든 저는 비주얼적으로 뭔가를 표현하기 위한 글을 쓰는 시나리오 작업을 해왔으니까요. 나중에 영화로 만들어질 가능성이 없진 않겠죠. 「게임」이나 「아침의 강」 같은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지면 아름답지 않을까? 그런 생각은 있어요. 사람들이 재밌게 읽어서 그것이 동력이 돼서 영상작업으로까지 이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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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모순을 발견하는 동기가 되기를


산문을 보면 “20대보단 확실히 지금이 낫다”고 썼어요. 운 좋게 좋은 연애와 좋은 섹스를 할 수 있었다고요. 20대의 연애와 30대의 연애, 많이 달랐나요?


20대 초반에는 연애를 안 했어요(웃음). 나이에 따라 많이 변하는 것 같긴 해요. 어떤 면에서는 안 좋아지기도 했겠지만, 어쨌든 과거에 했던 실수만큼은 하지 않으려고 하니까요. 나이 먹는 것이 겁나는 건 있지만, 실수를 덜하는 측면에서는 좋은 것 같아요.

 

감독님은 어떤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나요?


저도 외적인 취향이 있으니까, 이성을 볼 때는 자극이 있어야 할 텐데요. 그보다 중요한 건, 일단 서로의 대화에서 재미를 느끼느냐예요. 제가 좀 더 편하고 익숙하게 들을 수 있는 말의 음역대도 있을 수 있고요.

 

“자신만만한 것보다 부끄러움이 섹시하다”라는 이야기는 어떤 의미인가요?


저도 즉물적인 남자라서 성적인 사진 같은 걸 보면 섹시하다는 감정을 느껴요. 하지만 외적인 것 외에 다른 게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어떤 면에서 보면 성적인 것도 감정적인 교감이 있을 때 극치가 될 수 있잖아요. 수치심도 마찬가지에요. 나의 어떤 결핍, 못난 부분을 상대방으로부터 발견했을 때 ‘너에게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 얻게 되는 새로운 감정들이 있으니까요. 제임스 케인의 소설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를 참 좋아하는데요. 책 말미에 영화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에 나오는 대사를 옮겨 놓았어요. 이 소설에서 주인공들은 사람이 해서는 안 될 악을 해놓고 서로에 대한 특별한 관계를 얻게 되는데, 그런 부분이 흥미로웠어요.

 

세상에는 연애를 정의하는 말이 참 많아요. 사람마다 달리 생각하겠지만, 공통점이라고 한다면 인생을 배우고 자신의 내밀한 감정을 알 수 있는 기회라는 점이에요.


연애라는 게, 욕망과 이타심 속에 갈등하는 시간이 아닐까 해요. 내 욕망을 챙기면서 생기는 부작용도 있을 거고요. 자신에 대해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되는데, 다른 사회생활을 통해 배우는 것 이상을 것들을 얻을 수 있어요. 연애에 대한 이야기가 재밌는 건, 관계 속에서 서로 상처를 주고 받으면서 자기모순에 대해 눈을 뜬다는 사실 때문이에요. ‘내 안에 이런 선의도 있지만 이런 악의도 있구나, 내 윤리관이 이렇게 무너질 수 있구나’를 깨닫게 되잖아요. 사람은 대부분의 관계에서 욕망과 이타심 사이에 방황을 하게 되는데, 연애는 그 두 가지 사이의 긴장이 가장 두드러진 상태가 아닐까 생각해요. 문제는 상대도 그러한 것이고요 그 둘의 두 가지 감정이 부딪히면서 각기 자기모순적 감정을 느끼는 것이겠죠. 책을 쓰면서도 이런 쪽에 본질을 맞췄어요. 요즘 사람들이 자기모순에는 관심이 없고 사회적이거나 상대방의 모순에 대한 이야기만 많이 하잖아요. 그렇다 보니 자신에게는 쉽게 정의로워져요. 독자들이 책을 읽으면서, 자기모순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은 왜 사랑하지 못해 안달일까요? 왜 사랑 받지 못해 안달할까요?


이런 질문들이 이 책을 만들게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정의를 내릴 수는 없지만, 고민했던 부분들에서 제가 가지고 있었던 질문들을 녹였어요. 소통을 통한 자기완성일 수도, 단 하나의 희망일 수도, 완전한 육체와 정신의 결합을 꿈꾸는 것일 수도 있어요. 이 책에는 우리는 “왜 사랑을 하는가”에 대한 약간은 차가운 대답과 그럼에도 연민할 수 밖에 없는 심정이 들어있기도 해요.

 

자신을 두고 ‘연애불구자’라고 말하는 사람들, 또는 ‘모태솔로’인 사람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신다면.


연애를 하지 않는 상태에서 어느 정도 행복을 추구하고 있다면, 축하 드릴뿐이에요. 만약 그렇지 않다면, 행복할 방법을 찾아야 하고 그 방법 안에 연애가 있다면, 좋은 만남을 바라야 하겠죠. 좋은 관계를 위해서는 내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성찰도 있어야 하겠지만, 사람의 성격은 관계 안에서 바뀌기도 합니다. 나 스스로가 좋은 사람으로 포지셔닝 할 수 있는 관계를 만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좋은 시기와 좋은 관계가 스스로의 아름다움을 찾아줄 수 있으니까요. 또 연애 외에도 다양한 행복의 추구를 하셨으면 좋겠어요.

 

지금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아름다운 길을 가고 계시다면 축복이 함께하기를 바랄 뿐이에요. 제 이야기는 약간 어두운 샛길로 접어들어 방황하는 이들의 이야기이에요. 그 어두운 샛길로 접어든 적이 있던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길 바라고, 만약 밝고 풍요롭고 넓은 길에 있는 사람이라면 그 옆에 다른 세상을 걷고 있는 연인들에게 이해의 시선이 생기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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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돼 먹은 영화를 하고 싶다


어릴 적부터 영화광이셨죠? 영화학교에 들어간 건 군 제대 후인데, 영화감독이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사람이 무언가를 할 때, 결정적인 계기라는 게 반드시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영화를 좋아했고, 어떤 위기가 왔을 때마다 조금씩 동기부여가 된 것 같아요. 처음부터 용기가 있었던 건 아니었어요. 다른 길을 다 잃었을 때, 내가 하고 싶은 걸 해보겠다고 해서 선택한 게 영화였어요.

 

언젠가 “못돼 먹은 영화를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재밌는 생각이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멜로 영화를 찍는 감독의 소망이라고 하기엔 왠지 낯선데요.


(웃음). 이 책도 어떻게 보면 못돼 먹은 느낌이잖아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생기는 일을 솔직하게 말하려면 선하게만 풀 수는 없는 것 같아요. 깊고 재밌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그게 못돼 먹은 이야기와도 연결될 수 있는 것 같아요. 멜로 외에도 여러 장르에 도전하고 싶어요. 지금은 제가 멜로를 하는 게 유리한 포지션일 수 있어서요. 조금 더 잘할 수 있는 것을 한 다음에 관심 분야를 넓혀가야겠다는 생각이에요.

 

꿈을 많이 꾼다고 하셨는데, 내 영화에 출연했으면 하는 배우가 꿈에 나오기도 했다고요.


(웃음). 최근에 꾼 꿈인데요. 실제로 캐스팅하진 못했네요. 남자 배우였어요. 매일 꿈을 꾸는 건 아닌데, 제가 모든 일을 볼 때 창작을 염두에 두고 있으니까요. 어떤 강박들이 꿈으로 표현되는 게 있어요. 기억을 하려고 노력하기도 하는데, 창작적인 것에 도움이 될 때가 있으니까요. 저라는 사람 자체가 강박이 많은 사람인 것 같기도 해요.

 

영화와 책, 두 장르는 감독님에게는 어떻게 다른가요?


어릴 때 영화를 더 좋아했기 때문에 책을 많이 읽진 않았어요. 글을 쓴 것도 아주 어릴 때부터 시작한 게 아니라, 20대 후반부터 영화를 하면서 자연스레 쓰게 된 거고요. 책은 창작적인 자극을 위해 다양하게 읽으려고 해요. 영화는 제 본업이니까요. 열심히 보고 공부해야 할 장르죠.

 

최근에 인상 깊게 읽은 책을 소개한다면.

 

일본 소설가 나쓰메 소세키의 『그후』를 다시 읽었어요. 서사의 긴장이 느껴지지 않는 소설이죠. 주인공은 주위에 관찰력이 깊고 타인에 대한 비위가 약하고 불만이 가득하나 겉으로 들어내지 않으며 비타협적이고 아무 행동도 하지 않는 남자에요. 주인공은 생의 절실함을 위해 노력하는 건 성실한 가치가 될 수 없다고 이야기하죠. 처음 읽었을 때는 마지막의 전율이 대단했고, 책을 다시 읽으면서는 새삼 아름다움과 책이 가진 균형을 느꼈어요. 정원 안에서 조용히 사색하는 그의 분노와 연민들이, 뜨겁지 않은 사람의 뜨거움에서 주인공의 매력을 읽는 즐거움이 있었어요. 100년 전의 이야기지만 이 시대를 사는 법을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최근에 읽은 줌파 라히리의 『축복받은 집』도 좋았어요.

 

새로운 독자들과 많이 만나고 싶다고 하셨는데요.『그러나 불은 끄지 말 것』을 어떤 독자들이 펼치게 되면 좋을까요.


제 나이 또래인 분들, 사랑에 대한 경험이 많은 사람들, 또 경험이 적은 분들도 읽어주시면 좋겠죠. 창작작업이라는 건, 친구 찾기인 것 같아요. 이 책이 성적인 긴장을 다뤘지만, 저자의 어떤 수치심을 드러내서 그걸로 깊은 관계를 획득하고자 하는 바람도 있을 거예요. 그 수치심을 놀리는 게 아니라, 같이 고민하면서 이야기할 수 있는 독자가 많아진다면 창작작업을 하는 사람으로서는 더없이 행복할 일이에요. 궁금해요. 독자들이 어떤 것을 느끼고 얻을,. 제가 무엇을 얻게 될 지가.

 

영화감독 김종관의 후속작은 언제 볼 수 있을까요?


올 여름 단편 <아카이브의 유령들>을 끝냈고, 그동안 장편시나리오를 세 편 정도 썼는데 그 중에 한 작품을 내년 봄부터 작업하려고 해요. 어떻게 보면 『그러나 불은 끄지 말 것』과 일맥상통하는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책에 “밤길을 걷는 남녀의 성욕은 멋지다”라는 표현을 썼는데, 그런 내용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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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불은 끄지 말 것김종관 저 | 달
이 책은 사랑에 관한 짧은 이야기 서른두 편과 그 이야기에 덧붙인 작가의 자기고백적 단상으로 이루어져 있다. 단편영화 〈폴라로이드 작동법〉과 장편영화 〈조금만 더 가까이〉 등의 작품을 연출했던 김종관 감독이 펴내는 두번째 산문집이다. 평소 세밀하고 정교한 감성을 연출하는 것으로 잘 알려진 그의 글은 그의 영화를 닮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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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용민 “페라리 같은 책을 쓰는 작가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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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장용민

 

욕망이 낳은 인형에 대한 이야기 『불로의 인형』


『불로의 인형』은 기원전 210년, 항우와 유방의 이야기에서 시작된다. 이야기의 한 가운데에는 기괴한 모습을 한 꼽추 인형이 있고, 그 인형은 진시황과 불로초의 비밀을 품고 있다. 영생의 열쇠를 간직한 인형이라니, 도대체 어떤 사연이 감춰져 있는 것일까. 이야기는 전혀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전개된다. 21세기 서울에 살고 있는 큐레이터인 ‘가온’의 손에 ‘불로의 인형’이 들어오게 된 것. 남사당패의 우두머리였던 가온의 아버지는 인형과 함께 이복 여동생 ‘설아’를 지켜야 한다는 유언을 남긴 채 죽음을 맞는다. 그날부터 가온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들에게 쫓기게 되고, 인형 속 잠들어있는 진실에 점차 가까워진다.

 

진시황의 불로초를 찾기 위해 떠났다는 서불(徐?, 혹은 서복徐福)의 전설에서 시작해 현재에 이르기까지, 한중일 삼국을 무대로 장용민 작가가 쌓아올린 이야기는 수많은 시간과 사건들을 끌어안고 있다. 청일 전쟁과 갑신정변 등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 속에서 작가가 감춰놓은 진실의 퍼즐 조각을 찾다보면, 사실과 허구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혼란에 휩싸일 정도. 거대한 스케일로 예측 불허의 상상력을 펼쳐 보이는 작가 특유의 매력이 이번 작품에서도 여실히 드러난 것이다. 간결한 문장과 빠른 전개, 쉴 틈 없이 호기심을 자극해 오는 서스펜스 역시 예외는 아니다.

 

이렇듯 생생하고 속도감 있게 진행되는 ‘장용민표 이야기’의 역사는 상당히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미 1996년 영화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의 시나리오로 한국영화진흥공사가 주최하는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하면서, 기발하고 치밀한 상상력을 가진 이야기꾼의 탄생을 예고한 것. 이후 『운명계산시계』『신의 달력』을 발표하며 한국 추리소설계의 기수로 떠오른 그는 2011년 대한민국 스토리 공모대전에서『궁극의 아이』의 시놉시스만으로 심사위원들의 찬사를 받으며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또다시 1년이 흐른 지금 『불로의 인형』속 장용민 작가의 상상력은 여전히 그 끝을 짐작할 수 없고, 거침없이 달려가는 서사의 힘은 더욱 강력해졌다. 도대체 그 동력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불로의 인형』을 열쇠 삼아 채널예스가 장용민의 이야기 세계로 들어가 봤다.


“진시황 불로초의 비밀은 오래전부터 마음에 방점처럼 찍혀 있던 이야기였다”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그 이야기가『불로의 인형』으로 탄생하게 된 데에는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예전부터 진시황과 불로초 이야기는 한 번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니까 완전히 새롭게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했죠. 서복과 그가 찾던 불로초가 결국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남아있지 않아요. 사마천의 사기에 이야기가 조금 실려 있는데 그것도 거의 남아있지 않죠. 사실 일본에는 서복을 모시는 신사가 있어요. 구전 설화처럼 전해지는 이야기들도 많이 있는데 실제 기록은 없고요. 그래서 서복과 불로초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어느 날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한중일 삼국의 인형극에 대한 이야기를 봤는데, 인형극을 소재로 이야기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딱 들더라고요. 창해라는 가상의 인물을 만들어 내는 일부터 시작해서 1년 동안 준비한 끝에 『불로의 인형』을 완성할 수 있었죠.

 

잘 쓰여진 팩션이 그러하듯 『불로의 인형』에서도 사실과 허구의 경계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만큼 자료 조사에 공을 들였다는 이야기일 텐데요.


거의 반 년 동안 자료조사만 했어요. 인형극이나 역사에 대한 자료도 많이 보고요. 인형극보다는 인형극에 담겨 있는 중국 역사 부분을 조사하는 게 더 힘들었죠. 일본의 경우에는 고대사에 대한 자료가 거의 없기 때문에 분라쿠(일본의 전통 인형극)가 언제부터 시작됐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어요. 한국도 마찬가지인데요. 진시황 시대가 삼한 시대쯤 되는데 그때의 기록은 별로 남아있지 않아요. 삼국유사와 같은 기록도 700년 후에 만들어진 사료니까 ‘실제 사실과 얼마나 일치하는가’라는 문제에 대해서는 역사학자들도 의심스러워하는 면이 있어요. 그렇다 보니 아예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버리자고 생각했죠.

 

‘진시황의 불로초’와 ‘갑신정변’이라는 두 이야기의 연결 고리는 어떻게 만들게 되셨나요?


처음의 시놉시스에는 갑신정변에 대한 이야기가 없었어요. 그 상태로 작품을 다 쓰고 보니까 밋밋하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흥미로울 수 있는 이야기를 고민하다가 갑신정변이 떠올랐어요. 갑신정변에 대한 이야기는 예전부터 써보고 싶었거든요. 팩트만 가지고 이야기를 쓸 생각으로 자료를 조사하면서 공부하고 있었죠. 그러다가 『불로의 인형』 이야기 안에 넣으면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예요. 결국 처음의 초고와는 많은 부분 달라졌죠.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역사적 사실들이 실제로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는 설정인데요. 어떻게 그런 상상이 가능한지 놀랍습니다.


항상 고민을 하죠. 방법이 따로 있는 건 아니에요. 길을 가다가 미녀와 만나는 일과 비슷한 것 같아요. 미녀를 찾아다닌다고 해서 만나는 건 아니잖아요.

 

우연을 가장한 운명인 건가요?


운명이라기보다, 계속 유심히 보다보니까 나타나는 게 아닐까요?

 

만나고-장용민

 

상상력으로 역사의 빈틈을 메우다


발표하시는 작품마다 기발한 상상력으로 호평을 받고 계신데요. 끊이지 않는 상상력의 원천이 궁금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저희 부모님은 무엇을 강요한 적이 없으셨어요.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한 적도 없으셨고요. 그래서 많이 놀고 책도 많이 읽었던 것 같아요. 그때는 비디오가 있는 집이 많지 않았는데 저희 집에 비디오가 있었어요. 그래서 친구들을 불러다가 일본 만화도 많이 보고, 아직 국내에 들어오지 않은 할리우드 영화를 보기도 했죠. 그런 시간들이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어요. 그리고 여러 분야를 경험했던 게 도움이 된 것 같아요. 그림을 그렸던 것도, 영화를 공부했던 것도 그렇죠. 하지만 제가 글을 쓰게 될 줄은 몰랐어요. 

 

영화감독을 준비하면서 처음 글을 쓰게 되신 건가요?


그렇죠. 저는 글을 쓸 줄도 몰랐고 써본 적도 없었어요.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가 영화화되고 있을 때 소설로 출간하자는 제의를 받았고, 그렇게 첫 소설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을 쓰게 됐어요. 먼저 시나리오로 썼기 때문에 이야기는 전부 머릿속에 있는 상태였죠. 친구들한테 얘기해주는 것처럼 재밌게 쓰자고 생각했고 시작했어요. 그렇다 보니 6개월 만에 책이 출간됐어요. 영화 개봉은 그 뒤에 이루어졌죠.

 

상상력을 키우기 위해 특별히 하시는 작업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글을 쓸 때 좋은 영화를 틀어놔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을 좋아해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같은 영화를 틀어놓죠. 글을 쓰느라 화면을 보지는 않지만 ‘저 정도의 이야기는 써야 된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그리고 글이 막히면 좋은 소설 작품을 읽죠.

 

어떤 소설가의 작품을 좋아하세요?


움베르토 에코를 좋아해요. 제가 태어나서 읽은 추리소설이 딱 두 권이에요. 『푸코의 진자』『장미의 이름』그 두 권을 수십 번 읽었어요.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 안에도 『푸코의 진자』에 대한 오마주가 담겨있어요. 『푸코의 진자』에 보면 페이크 역사를 책으로 출간하는 내용이 나오는데요.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에서도 소설을 인터넷에 올리면서 사건이 시작돼죠.

 

상상력에 대한 이야기를 더 이어가보겠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상상이나 공상을 하며 보내는 시간이 많으셨나요?

그게 제가 하는 일이었으니까요. 그림을 그려도 그렇고, 영화를 만들려고 해도 상상을 해야 하잖아요. 제가 쓰는 이야기의 8할은 군대에서 만든 거예요. 영화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도 그때 만들었고, 소설 『신의 달력』『궁극의 아이』모두 군대에서 생각해낸 이야기예요. 

 

역사를 좋아하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상상력 자극에 도움이 되기도 할 것 같습니다. 아마도 역사 속의 ‘빈틈’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요.


그렇죠. 왜냐하면 역사는 관점에 따라서 다르거든요. 정복자의 입장에서 쓴 역사책과 정복당한 자가 쓴 역사책이 전혀 달라요. 일본이 쓴 한국 역사와 한국이 쓴 한국 역사가 다른 거죠. 지금 남아있는 역사책도 실제 있었던 역사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고요.

 

그런 점에서 『불로의 인형』에는 기록되지 않은 이들의 역사가 등장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가온의 아버지가 속해있는 사당패의 이야기가 그렇죠.


사실 사당패에 대해 기록한 사료는 별로 없어요.『불로의 인형』에 적은 것처럼, 안성 남사당패가 공연이 없는 겨울철에 청룡사에서 지냈다는 이야기는 사실인데요. 그들의 기록이 청룡사에 남아있다는 건 상상력으로 만들어 낸 이야기죠.

 

역사를 소재로 한 소설 혹은 인문서도 많이 읽으실 것 같은데, 어떠세요? 


요즘에는 작품을 위해 필요한 책을 많이 읽지만, 예전에는 역사 관련 책들을 많이 읽었죠. 저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책들을 좋아해요. 믿기 힘든 역사 속 사건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 같은 거죠.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도 재밌게 읽었어요. 

 

만나고-장용민

 

페라리 같은 소설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다


『불로의 인형』에서 대표적인 허구의 인물이라면 창애를 꼽을 수 있을 텐데요. 그를 탄생시킴으로써 극대화시키려 한 메시지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불로의 인형』이 욕망을 좇는 인간의 이야기잖아요. 욕망하는 것을 얻으려하는 자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마지막에 그것을 얻게 되는 자는 처음부터 대가를 치르고 태어난 자이기를 바랐고요. 그리고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걸 얻을 수밖에 없는 자이길 원했어요. 그 결과로 마치 숙명처럼 대가를 치르면서 살기를 바랐고요.

 

이전 작품들과 마찬가지로『불로의 인형』에서도 간결한 문체와 빠른 진행이 돋보입니다. 영화감독을 꿈꿨던 지난 이력의 영향이 아닐까요?


소설은 재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루하면 안 되고요. 그건 영화도 마찬가지예요. 충분히 재밌게, 빠르게 진행하면서도 할 얘기를 다할 수 있거든요. 제가 쓴 이야기를 독자들이 막힘없이 읽었으면 좋겠어요. 

 

작가님의 작품은 “문장 하나하나를 그림 또는 영화 장면처럼 생생하게 표현하고 있다”고 평가되기도 합니다.


예전부터 그림을 그렸고 영화를 공부하기도 했으니까, 거기에서 영향 받은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그림을 그리기 위해 미대에 진학하셨는데, 대학 4학년 때 갑자기 진로를 바꿔 영화감독을 준비하셨어요. 


어렸을 때부터 그림을 좋아해서 미대를 꼭 가야겠다고 생각했었어요. 영화를 시작하게 된 건 당시 여자 친구의 한 마디 때문이었는데요. 좋은 영화를 많이 찾아서 보는 친구였어요. 오히려 그때까지 저는 영화를 많이 보지 않았었어요. 그런데 이 친구가 영화를 보고 나면 꼭 저한테 어떻게 봤는지 물어보는 거예요. 어느 날은<야곱의 사다리>라는 영화를 보고 이야기를 하는데 장황하게 설명하는 저를 보면서 ‘영화를 하면 참 잘 할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당시 군 입대를 앞두고 있어서 뭘 해야 될지 고민하던 중이었는데, 그 말을 듣고 난 다음부터는 영화를 더 유심히 보게 됐어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나도 저 정도는 만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그런데 군대에서 시나리오 공부를 하려니까 책을 구할 수가 없잖아요. 영화를 볼 수도 없고요. 그래서 소설을 읽기 시작했어요. 제 이야기가 영화보다 소설에 적합한 이유도 그래서일 거예요. 소설의 서사를 읽으면서 이야기 만드는 법을 배웠으니까요. 영화 시나리오를 쓸 때도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현재 『궁극의 아이』의 영화화가 미국에서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을 포함해서 두 편의 이야기가 영화의 원작이 되었는데요. 직접 연출을 하고 싶은 생각은 없으신가요?


그건 감독이 알아서 하면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직접 하고 싶지는 않아요.

 

“순수문학 위주의 사회와 문학계의 인식도 달라져야 한다”고 이야기하신 바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미국이나 일본과 달리 판타지나 로맨스 같은 장르문학이 주류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지적도 잊지 않으셨고요.


장르 문학이라는 말을 쓰는 나라도 우리나라밖에 없어요. 순문학과 장르문학을 나누는 것도 우스운 일인 것 같고요. 외국은 소위 말하는 장르 소설이 대부분의 출판 시장을 차지하고 있어요. 그래서 장르라고 말하기보다는 재밌는 소설들을 많이 쓰죠. 추리소설도 있고 판타지도 있고요. 그 유산이 깊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소설이라고 하면 그런 이야기들을 떠올리지, 우리나라처럼 순문학적인 소설을 생각하지는 않아요. 제가 볼 때 그 이유는 재밌는 이야기를 만드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에요. 예를 들면 멋진 자동차를 디자인하는 게 피카소 같은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 더 어려운 거예요. 누구나 그걸 보고 직관적으로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게 만들어야 하니까요. 그러려면 기능적인 면이나 기술적인 면이 갖춰져 있어야 해요.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자동차를 디자인하는 사람은 없고 피카소 같은 사람만 많은 것 같아요. 저는 페라리 같은 책을 쓸 거예요.

 

근본적으로는 ‘과연 소설의 본질은 무엇이냐’라는 질문으로 이어질 수 있을 텐데, 작가님의 대답은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재미죠. 소설은 재미있어야 돼요. 감동이 있어야 되고요. 재미있는 책이 나오지 않으니까 독자들이 외면하고 시장이 줄어든다고 생각해요.

 

작가님께서는 소설을 쓸 때 ‘과연 독자들이 재미있어 할까’라는 고민을 많이 하실 것 같습니다.


그럼요. 저도 재미가 있으면 읽지 않아요. 재미도 있어야 하지만 인간적인 감동도 있어야 되고요. 그리고 책은 영화와 달라서 지적인 면에서 충족되는 면도 있어야 하죠. 그렇다고 독자들보다 너무 앞서가도 안 돼요. 반 보 혹은 한 보 정도 앞서서 나아가야지 『푸코의 진자』처럼 너무 어려워도 독자들이 읽지 않아요. 움베르토 에코는 추리소설을 써보지 않겠냐는 말을 듣고 ‘추리소설을 쓰려면 이 정도는 써야지’라는 생각으로 『푸코의 진자』를 썼다고 하는데요. 저는 그 이야기가 마음에 들어서 『푸코의 진자』를 읽기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너무 어려웠는데 스토리만 뽑아놓고 보니 너무 기발하고 재미있더라고요. 성당 기사단이 비밀을 가지고 몇 년에 한 번씩 만남을 가지고, 그레고리력이 퍼져나가면서 만남의 날짜가 어긋나는, 그런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잖아요. 지금도 그 작품보다 멋진 추리소설을 본 적이 없어요.

 

만약 움베르토 에코의 작품을 만나지 않았다면 다른 장르의 소설가가 되셨을 수도 있겠군요.


그럴 수도 있죠. 그 분의 영향을 참 많이 받았어요. 정말 멋있더라고요. 엄청난 인문학적 지식과 그걸 하나로 엮어내는 기발한 상상력, 혀를 내두르게 만드는 그 상상력이 너무 멋지더라고요.

 

만나고-장용민

 

순수문학과 장르문학을 구분 짓는 독자들에게 요구되는 인식의 전환은 무엇일까요?


저는 독자 분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없어요. 재미있는 책이 많이 나오면 그런 경계에 관계없이 작품을 사랑해주실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안타깝게 생각하는 현상은, 추리소설 베스트셀러에 오른 책들이 대부분 일본 작품이라는 거예요.

 

그만큼 한국의 추리 소설 시장이 너무 외면 받고, 그로 인해 성장을 하지 못했다는 이야기 아닐까요?


추리 소설을 어느 수준 이상으로 쓰기가 어려워요. 추리 소설을 잘 쓰기가 쉽지 않다는 얘기예요. 영화 중에서도 SF와 추리 장르가 제일 어려워요. 시나리오를 쓸 때나 연출을 할 때나 마찬가지예요. 그런데 결국 이런 현실은 시장 논리에 의해서 바뀔 수밖에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재미있는 책이 많이 나오면 바뀔 것이고, 또 그 이야기가 어느 정도의 수준이 되어야 하죠. 그렇게 되면 시장 논리에 의해서 알아서 바뀌게 될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계속 재미있는 책을 쓸 거고 해외로 진출할 생각도 하고 있어요.

 

독자들의 선택을 믿는다는 이야기로 들립니다.


그럼요. 돈을 내고 사서 보는 책인데 아무 이유도 기준도 없이 선택하겠어요? 그렇지 않죠.

 

그렇다면 재미있는 소설이란 무엇을 갖춘 이야기일까요?


상상력이 있어야 하고, 창의력이 있어야 하죠. 기존의 것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창의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무언가 자기만의 것이 있는, 상상력이 있는 이야기였으면 좋겠어요.

 

『불로의 인형』 안에서 독자들이 무엇을 발견할 거라고 생각하세요?


제가 기대하는 건, 재미있게 읽으셨으면 좋겠어요. 소설을 다 읽고 난 후에 ‘재미있게 잘 썼네’라는 한 마디를 들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단순히 재미있다는 감상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이후에 어떤 반응이 이어지길 바라실 것 같습니다.


단순한 재미가 아니라, 재미의 층위가 느껴졌으면 좋겠어요. 한 꺼풀 벗길 때마다 또 다른 재미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거죠. 그렇게 쓰려고 노력하기도 했고요. 결국 그 안에는 사람이 있는 건데요. 창애 이야기는 사실 아버지 이야기예요. 가온의 이야기도 그렇죠.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나 욕망에 대한 이야기나, 결국은 사람 이야기죠.

 

『불로의 인형』에 층층이 쌓여 있는 재미들은 무엇인지 알려 주세요.


고대에 있었던 창애의 비밀, 그것을 하나씩 벗겨나가면서 드러나는 담멸의 비밀, 100년 전 있었던 회합에 대한 비밀, 가온의 아버지를 죽인 범인에 대한 비밀, 가온과 아버지와의 숨겨졌던 이야기들. 그런 것들이죠.

 

말씀하신 것처럼 『불로의 인형』의 이야기는 많은 서사들이 얽힌 채 진행됩니다. 혹시 독자들이 이해하기 어려울까봐 고민하기도 하셨나요?

 

그걸 제일 많이 고민하죠. 독자들이 읽고 한 번에 정리가 되어야 하니까요. 아무리 복잡하더라도 사실은 간단한 얘기예요. 모르는 부분을 넘겨도 내용을 알 수 있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실패한 소설이라고 생각해요.

 

현재 구상 중인 작품은 무엇인가요?


두 가지 이야기를 생각하고 있어요. 에디슨이 죽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만들었던 기계-귀신과 통화할 수 있는 기계에 대한 이야기하고, 도서관 사서인 괴팍한 할아버지가 자신의 모든 지식을 동원해서 한 소녀를 구하는 이야기인데요. 어떤 이야기를 쓰게 될지 아직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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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로의 인형장용민 저 | 엘릭시르
일류 큐레이터로 성공 가도를 달리며 살아가던 가온은 남사당패 꼭두쇠인 아버지가 사고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받는다. 아버지의 죽음에 의심을 품고 진상을 파헤치던 가온은 배다른 동생 설아를 통해 아버지가 남긴 알 수 없는 초대장과 꼭두쇠에게만 전해진다는 기괴한 인형을 얻게 되는데……. 인형의 비밀이 한 꺼풀씩 벗겨질수록 믿을 수 없는 사실이 드러난다. 한국와 일본, 중국을 오가며 펼치는 서스펜스와 스릴의 향연! 이천 년에 걸친 인형과 불로초의 비밀, 3국의 역사에 얽힌 사연들이 벼락같은 결말을 향해 치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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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진규 “이보다 더 좋은 직업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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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서진규

 

‘희망의 증거’, ‘희망 전도사’. 아직도 서진규 저자 앞에 따라 붙는 타이틀이다. 경남 동래군 어촌마을에서 엿장수의 딸로 태어나 쉰아홉에 하버드대 박사가 된 서진규. 1999년 첫 책 『나는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다』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강연자의 삶을 살게 된 그가 6년 만에 『희망수업』을 펴냈다. 서진규는 말한다. “이 책의 저자는 나 혼자가 아니”라고.『희망수업』은 서진규와 그의 독자들이 함께 펴낸 책이다.

 

서진규는 16년 동안 받은 수백 통의 편지를 토대로 『희망수업』을 집필했다. 우연한 기회에 출연한 TV 프로그램이 화제가 되면서 하룻밤 사이에 엄청난 유명세를 탔던 서진규. 100여 개의 출판사로부터 에세이 출간 제의를 받고 펴낸 책이『나는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다』였다. 이후 2,200회 이상의 강연을 통해 수많은 독자들을 만난 그는 10년 넘게 자신을 괴롭혔던 C형 간염을 극복할 수 있었다. 지독히도 긴 치료기간을 견뎌야 했고 우울증도 찾아왔지만, 서진규는 ‘희망의 증거’였던 자신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를 지켜보고 있는 수천 명의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희망수업』에는 서진규의 삶을 통해 새 인생을 살게 된 사람들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신문배달을 하던 여고생에서 국제회의 기획사가 된 윤희정 씨, 서진규의 책을 보고 꿈을 갖게 된 김영미 다큐멘터리 PD, 희귀병을 극복하고 육군 장교로 임관한 김세나 소위 등이 그 주인공들이다.

 

내가 약해지려 할 때마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을 내게 들려주며 차마 피할 수 없는 책임을 내게 던져 주었다. 뜻밖에도 그 책임은 내가 살아가는 또 다른 희망이 되었다. 동시에 지난 15년여 세월 동안 강연장에서 만난 이들이 들려준 이야기와, 청중과 독자들이 보내온 편지는 쉽게 거둘 수 없는 해묵은 숙제를 안겨 주었다. ( 『희망수업』 5쪽)

 

만나고-서진규

 

세상에 이렇게 신나는 직업이 있구나


책을 준비하면서 16년간 받았던 편지를 다시 읽어보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감회가 새로웠을 텐데요.


2년 전부터 이 책을 준비했는데, 편지들을 다시 꺼내보니 가슴이 두근두근 거리더라고요. 제 이야기를 듣고 감동을 받아 보내주신 편지들인데, 오히려 그 편지들이 저를 지금까지 있게 만들었어요. 편지를 보내신 분들의 공통점은 다들 정말 어렵고 힘든 과정을 겪고 견뎌내신 분들이었어요. 책에도 썼지만, 한 70대 남자 분은 “지금 내 나이가 70세가 넘었지만 지금부터라도 긍정적으로 열심히 살겠다.”며 운전면허시험에 도전한다는 편지를 보내주셨어요. 이런 편지를 받으면 정말 흐뭇하고 행복했어요.

 

답장을 해준 편지도 많았나요?


출판사를 통해 받은 편지들이 많았는데, 일일이 답장을 다 해주진 못했어요. 하지만 “제 책을 읽고 용기를 얻었다,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는 답장을 썼어요. 그런 마음으로 시도하면 뭐든지 할 수 있거든요. 용기를 주고 싶었어요. 가끔은 정말 대책 없는 편지들도 있었어요. 읽다 보면 제가 더 속상해지는 그런 편지들. 제 책을 읽었다면 어느 정도 해답을 얻을 수 있었을 텐데, 하소연만 하고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 묻는 분들도 있었거든요. 길을 이야기해줬는데 또 물어보면, 이미 이야기를 한 사람 입장에서는 속상하잖아요. 읽으면서 우울했던 편지들도 있었어요.

 

지난해 TV를 통해 독자 윤희정 씨와의 특별한 인연이 소개되기도 했는데요. 여고생 시절부터 저자와 편지를 주고 받았던 사이였다고요.


처음 희정이의 편지를 받았을 때, 희정이가 우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어요. 젊은 시절의 저와 똑 닮아 있어 답장을 쓰지 않을 수가 없었죠. 신문배달을 하던 희정이는 꿈이 많았지만 형편이 너무 어려워서 뭔가 시도를 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었어요. 하지만 1년쯤 지나고 나서, 다시 받은 편지에는 공부를 하기 위해 캐나다로 떠난다는 소식이 있었어요. 악착같이 돈을 모아  꿈을 향해 도전하는 모습이 그렇게 자랑스러울 수가 없더라고요. 희정이는 지금 국제회의 기획사가 되는 꿈을 이뤘어요. 제 답장이 얼마나 큰 힘이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희정이에게는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상대가 필요했을 거예요. 그 상대가 저였다는 게, 저에겐 큰 축복이죠.

 

‘희망의 증거’로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 와중에 C형 간염으로 10년간 투병 생활을 해야 했을 때는 어떤 심정이셨나요?


병을 앓는 와중에 우울증까지 찾아왔어요. 아픈 상황에서는 누구나 자신의 고통이 가장 고통스럽잖아요. 모든 게 허무하고 의미 없이 느껴졌어요. 그저 죽음이 가장 쉽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어느 한 켠에서는 살아야 한다고 버둥거리는 제 모습이 있었어요. 수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말했던 저였잖아요. 사람들에게 전했던 내 삶이 거짓이 되는 건 더 괴로운 일이었어요. 그 때마다 저에게 오히려 희망을 전해준 수많은 사람들을 떠올렸어요. 제가 그들을 구해준 게 아니라, 그들이 저를 돕고 구해준 거였어요. 그래서 고비를 넘길 수 있었어요.

 

우연한 기회에 방송을 통해 유명세를 얻게 되고, 작가와 강연자로서의 삶을 살게 되셨는데요. 이 같은 삶을 예상하거나 꿈꿨던 거 아니셨잖아요.


상상도 못했던 일이죠. 저는 사람들 앞에 서면 물도 못 마실 정도로 잘 떠는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대신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얼결에 강연을 시작하게 됐어요. 처음에는 되게 떨렸는데 하다 보니까 신이 나는 거예요. 여기에 온 사람들이 저를 너무 좋아해 주니까요. 제가 무슨 말을 해도 다 받아주니까, 신이 나더라고요. 내 이야기를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없잖아요. 높게만 느껴졌던 강대상이 이제 너무 편해요. 모든 걸 잊게 만들어요. 강연은 저 한 사람만 좋자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잖아요. 가끔, ‘세상에 이렇게 신나는 직업이 있구나’ 생각해요. 이런 일이 제게 주어진 게 감사하고요.

 

강연 중에 꼭 빼놓지 않고 하는 말은 무엇인가요?


“Declare Your Dreams to the Universe!”란 말을 자주 해요. 꿈은 혼자 간직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특히 실현 가능성이 희박한 꿈일수록 남들 앞에서 선포하는 게 중요해요. “나 (   ) 는 이 시간부로 (   )가 되기로 맹세합니다.” 이 말을 듣고 비웃는 사람들이 있을지라도 그 순간, 그 꿈은 당신의 진정한 목표가 될 수 있어요.

 

만약 강연자로 뛰어들지 않았다면, 지금 어떤 일을 하고 계셨을까요?


박사 학위를 마쳤을 때, 미군부대에 민간인으로 재취업을 할 생각이었어요. 다만 제 이야기를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책을 꾸준히 내고 싶었어요. 1999년 <일요스페셜>을 통해 제 인생이 180도 바뀌게 된 건데, 만약 이 일이 제게 찾아오지 않았다면 제가 이렇게 강연을 잘하는 사람일지 몰랐을 거예요. 잠재능력을 발견하지 못했겠죠. 이 최고의 능력을 모르고 죽었을 거라고 생각하면, 억울했을 것 같아요(웃음).

 

강연자로 청중들을 만나지만, 저자로서도 독자들을 많이 만나시는데요. 글 쓰는 일은 버겁지 않으신가요?


첫 책을 낼 때, 대필작가에게 부탁하려고 했어요. 제가 글을 쓴다는 걸 상상조차 못했거든요. 한글 타이프도 제대로 못 치던 때였고요. 그 때 중국철학을 공부하던 한국계 여학생이 제 룸메이트였는데, 제가 다른 사람한테 책을 부탁한다고 하니까 막 화를 내더라고요. “선배님, 철학을 쓰는 건데 그걸 누구한테 맡기면 어떡하냐고. 못 쓰더라도 직접 쓰고 고쳐달라고 하는 게 맞다”라고 저를 엄청 혼내는 거예요. 그래서 한 번 써보기로 했는데, 시작을 하고 나니 멈춰지지가 않더라고요. 10시간을 내리 쓴 날도 있었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때를 쓸 때는 엉엉 울기도 했고요. 한참을 울고 또 쓰고, 정말 미친 사람처럼 썼던 것 같아요.

 

글을 쓰다 보면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는데요.


놀라운 건, 같은 사건을 두고도 1999년에 돌아봤을 때와 지금 돌아봤을 때의 느낌이 전혀 다르다는 거예요. 같은 사건을 전혀 다르게 해석하는 시선이 생긴 거죠. 사고 자체가 변한 부분도 있고요. 저는 사람들한테 글을 쓰라는 이야기를 많이 해요. 그 글이 일기여도 좋고 편지라도 좋아요. 또 남에게 보여지고 평가 받는다는 생각으로 글을 쓰면 더없이 좋아요.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내가 무엇을 반성해야 하는지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에요.

 

만나고-서진규

 

내 운명은 내가 결정한다


지금 스페인어를 공부 중이시라고요.


사람은 뭔가를 배울 때 설레고 희망이 생겨요. 오늘이 내일이고, 매일 똑같은 삶을 살면 재미가 없잖아요. 내 삶에 무료해지고 무의미해지는 것 같을 때, 뭔가 미래에 대한 투자를 하는 것보다 좋은 건 없어요. 제가 국내에서도 강연을 하지만, 미국 강연을 가면 청중들이 더 열광해요. 아무래도 제 인생이 아메리칸 드림이니까요. 스페인어를 배우면 미국사회에서 여전히 어려운 여건에 있는 멕시칸을 비롯해 히스패닉에게 더욱 가깝게 다가갈 수 있어서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요즘 학원에 다니고 있는데, 젊은 친구들 사이에 껴서 공부하다 보면 다시 젊어진 느낌이에요(웃음). 재밌고 행복해요.

 

딸 성아 양이 “엄마의 복제인간을 꿈꾼다”는 이야기를 했다는 게 인상적이었는데요. 성아 양 역시 하버드대에서 ‘정부, 동아시아연구’를 전공했고, 14년째 미군에서 복무 중이에요.


거의 아빠도 없이 자랐고 저는 군인으로 항상 밖에 나가 있다 보니, 제가 다정하고 살가운 엄마는 아니었어요. 다만 딸을 강하게 키우려고 애를 썼어요. 그게 딸에게 도움이 됐다고 확신해요. 딸의 롤 모델이 되기 위해 저를 다그치기도 했어요. 무한한 애정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주었고 저는 채찍이 되려고 했어요. 딸은 저를 기쁘게 해주는 게 삶의 목표라도 된 듯 열심히 살았어요. 어렵고 힘든 도전을 일부러 찾아서 했고, 목표에 도달하는 열정도 보여줬어요. 성아는 제 인생의 가장 큰 보람이자 가장 친한 친구에요. 이제 곧 엄마가 되는데, 저는 좀 더 여유로운 마음을 가진 할머니가 되고 싶어요.

 

부모로서 어떤 조언을 많이 해주셨나요?


인생은 짧고 또 한 번뿐이잖아요. 성공과 명성만이 인생의 모든 게 아니죠. “미래에만 집중하느라 오늘의 행복을 놓치지 말라. 후회할 일을 가능한 줄이고, 이왕이면 네가 하는 선택이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한 것으로 택하라”는 이야기를 자주 해줬어요.

 

4살에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아들 성욱 군과는 16년 만에 재회하셨어요. 성욱 군은 요리사를 꿈꾼다고요.


성욱이를 다시 만났을 때, 반가우면서도 미안하고 대견하고 고맙고 그랬어요. 여러 감정이 얽히고설켜서 복잡했어요. 엄마로서 어떻게 대해야 할까 고민하고 있을 때, 성욱이가 거리낌없이 저에게 다가왔어요. 성욱이는 대학을 그만두고 요리사를 꿈꾸고 있었는데,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엄마로서 아쉬운 마음이 들었어요. 좀 더 큰 꿈을 꿨으면 하는 욕심이었죠. 그런데 성욱이를 지켜보면서, 사회적 성공이 곧 행복이라는 제 관념이 무너졌어요. 남이 인정할 만한 성공적인 커리어를 갖는 것보다 자기 스스로가 행복을 느끼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실감했죠. 엄마로서 미안한 마음이 한없이 큰데, 건강하고 성실한 청년으로 자라줘서 고마운 마음뿐이에요.

 

만나고-서진규

 

결국엔 모든 사람의 행복과 불행의 총량은 같다는 이야기가 있는데요.


가끔 느껴요. 인생은 참 공평하다는 걸. 분명 태어날 때부터 은수저를 물고 나오는 아이들이 있어요. 하지만 그 은수저가 평생 가나요? 재벌가에서 벌어지는 형제의 난을 보면, 돈이 많으면 뭐하나 싶어요. 반대로 어릴 때는 불행했지만 지금은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도 많아요. 죽을 때까지 돈이 많은 사람들도 있지만, 돈이 많다고 어디 다 행복한가요? 유명하다고, 돈이 많다고 행복한 건 아니잖아요.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어려운 시절이 있었다는 거예요. 나는 원하지 않았지만 살다 보면 고통스러운 순간이 찾아와요. 시험대에 올라서야만 하는 순간도 많고요. 그 안에서 살아남을 수 있느냐는 스스로의 선택인 것 같아요. 어려움을 겪고 성공한 사람들은 절실했어요. 그러니까 최선을 다했죠. 하늘은 이겨낼 수 없는 고통은 주지 않는다고 하잖아요. 큰 고난을 겪고 있는 사람들은 “내가 이 일을 견딜 능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보길 바라요. 최선을 다하다 보면 길이 보이고, 도움의 손길이 분명 찾아와요.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이 허투루 하는 말은 아니에요. 우리에겐 쓰지 않고 버려지는 잠재능력이 엄청 많은데, 공동묘지에 가면 가장 많대요. 안 쓰고 그냥 죽어버렸기 때문인 거죠.

 

인생은 선택과 집중의 연속입니다. 지금까지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선택은 무엇이었나요?


제 인생은 모든 게 6세 때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진짜 최고의 고통이 왔을 때, 저는 가출을 생각하기도 자살을 생각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차마 용기가 없어 시도할 수 없었죠. 온 천지가 절망으로 가득 찼고 피할 방법이 없었지만, 포기하지 않았어요. 그 순간 분노할 줄 알았다는 게 제가 가장 잘한 일이에요. 내가 꼭 성공해서 이 가여운 아이를 이 상태로 살게 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것, 나 스스로를 돕겠다고 결정하고 행동으로 옮긴 일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이 아닐까, 싶어요 아직도 개울가에서 빨래를 하던 제 어릴 때 모습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요. 지금도 많이 힘들 때는 그 장면 속 어린 나를 떠올려요. 내가 구해주려던 아이, 지금 내가 쓰러지면 그 아이를 버리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전 다시금 일어설 수밖에 없어요.

 

이제는 고통을 보는 법이 달라졌나요.


아이고, 저도 한 인간이에요. 보통 사람이에요. 사람은 모두 약한 동물이에요. 가끔 내가 연예인이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요. 수많은 악플을 내가 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면 저는 잠도 못 자고 미쳤을 거예요. 저도 마음이 약해요. 똑같이 외로워하고 슬퍼해요. 다만, 한 가지 무기가 있다면 이왕이면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는 거예요. 모든 것에서 긍정적인 면을 찾으려고 노력해요. 오랫동안 다른 사람들을 설득시키는 일을 하다 보니, 반사적으로 그 힘이 나올 때가 있어요. 노력하려는 것이지, 제가 결코 뛰어난 건 아니에요.

 

힘들 때, 가장 힘이 되는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내 운명은 내가 결정한다”는 말이 제게는 큰 의미로 다가와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도 있잖아요. 모든 건 내 마음먹기에 달려있어요. 같은 물을 마시더라도 그 물을 꿀물로 마시게 될 때가 있는 것 같아요. 같은 현실인데도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느냐가 가장 중요해요. 견딜 수 없는 고통이 찾아왔을 때, 내 안에 엄청난 에너지가 있다고 주문을 걸어 보면 해결책이 보여요. “내 운명은 내가 결정한다”는 말도, 이걸 믿는 마음이에요. 내가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어차피 주어진 인생이라면 내가 원하는 인생을 살아 보는 게 좋잖아요.『희망수업』에 나오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귀를 기울여 들어보세요. 그들의 고통을 생각하면서 ‘내가 이 사람이라면 어떻게 해볼 것이다’라고 상상해본다면, 인생은 엄청나게 달라질 수 있어요. 또 다른 독자들 안에서 서진규를 뛰어넘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이 나올 것을 기대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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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 수업서진규 저 | 알에이치코리아(RHK)
희망의 증거’로 불리는 저자 서진규는 가발공장 직공에서 하버드 박사가 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희망과 관련된 저서만 여섯 권(영문판 포함)에 강연회는 2,200회가 넘었다. 그런 그가 다시 ‘희망’을 이야기하게 된 것은 어떤 연유일까?방황하던 그를 일으켜 세운 건 다름 아닌 독자와 청중의 편지였다. 저자는 자신이 다시 희망을 찾고 일어서는 과정에서 느낀 진정한 ‘희망의 힘’을 이 책 《희망 수업》에 담았다. 자신에게 희망을 전해준 이들에 대한 고마움과 어디에선가 희망을 갈구하고 있을 이들에게 ‘희망의 기적’을 전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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