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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하는 사람 곽정은이 하고 싶은 말 『혼자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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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하는 사람’ 곽정은이 『내 사람이다』를 펴낸 지 3년 만에 새로운 책을 출간했다. 제목은 『혼자의 발견』. 책은 연애, 우정, 사랑, 일, 섹스 등 인생 전반을 소재로 쓴 통쾌하면서도 따뜻한 글로 가득하다. 두 문장으로 이루어진 짧은 글도 있고, 5~6쪽 정도 분량인 글도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호흡이 짧은 글로 채워졌다. 분량은 길지 않지만 책 안에 담긴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

 

소재는 다양하나 책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하나로 요약할 수 있다. 자신에게 당당해질 것! 지금껏 그녀가 방송에서 말했던 주장이기도 하고 책 제목을 『혼자의 발견』으로 정한 까닭이기도 할 테다. 그렇다고 책 속에 있는 글이 처음부터 끝까지 ‘세게, 강하게!’만을 외치지는 않는다. 강해 보이기만 하는 곽정은도 때로는 부끄럽고 때로는 힘들 때도 있다는 사실을 책을 읽은 독자는 깨달을 것이다. 그녀의 문장이 더 큰 울림을 주는 것은 이렇듯, 그녀의 솔직함 덕분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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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 지내기가 연애보다 더 중요해

 

요즘 어떻게 지내셨나요.

 

예전 직장생활할 때는 직장에서 한 일, 한 말, 관계, 성과를 바탕으로 하루의 성과를 측정하거나 기분을 느꼈어요. 조직에 속하지 않은 지가 10달이 되었는데요. 10달 동안 어땠느냐는 질문이라면, 딱히 큰 일이 없고, 안 좋은 소리를 하거나, 원하지 않은 일을 받거나 한 적이 없기 때문에 대체로 잔잔했다고 답할 수 있겠네요. 오늘은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과 먹고, 제 책에 대한 평가를 들었어요. 여백의 미를 잘 느낄 수 있는 하루하루인 듯해요. 때로는 직장에 다닐 때보다 치열하게 산 하루도 있고요. 그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아요.

 

책 제목에 ‘혼자’가 있습니다. 곽정은 하면 커플, 관계가 먼저 떠오르는데요.

 

연애에 관해서 많이 말하는 사람이 된 건 사실이지만 강연에서는 혼자의 의미를 열심히 이야기해왔어요. 방송, 칼럼이라는 특성상 연애할 때는 이렇게, 유혹할 때는 저렇게, 등등 방법론을 많이 말해왔지만요. 그런데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나 혼자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아는 것이 연애를 잘하는 것보다 더 중요해요. 혼자 잘 지낼 수 있어야 연애도 행복할 수 있다는 걸 많은 사람을 취재하면서 느끼기도 했고 스스로 연애하면서 깨달았던 부분이었죠. 어떻게 보면 진짜 하고 싶었고 제 삶을 관통하는 이야기였어요.

 

저는 다만 관계, 커플 이야기를 해오긴 했지만 그래서 어쩜 누구보다 더 혼자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인지도 몰라요. 『혼자의 발견』은 혼자이냐 아니냐, 이런 것과는 상관 없이 그냥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죠.

 

시기적으로는 언제부터 언제까지 쓴 글인가요?

 

제목과 주제를 정해서 책으로 써야겠다고 해서 쓴 건 아니에요. 2년 전쯤에 생각한 글도 있고, 어딘가에 기고했던 글도 있고, 트위터에 끼적인 글을 다시 쓴 글도 있어요. 언제부터 써서 언제 완성했느냐에 대한 정확한 대답은 못할 것 같아요. 몇 년 전부터 책 내기 얼마 전까지 머릿속에 있는 거의 모든 생각을 다 풀었다는 생각은 들어요. 자연스럽게 떠오른 단상을 정리하고, 주제에 관해 글 쓰는 게 습관이 된 사람이다 보니 모든 게 소재가 되었죠. 예를 들어 ‘돌아보지 마’는 누구나 겪을 상황이에요. 엑셀을 밟고 있는데, 뒤에 짐을 실었는지 궁금할 때가 있어요. 뒤가 너무나 궁금한데 마침 신호는 안 걸리죠. 내가 어디까지 왔는지 확인하고 싶다면 멈추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달려야 해요. 이런 감정을 무의식 중에 느꼈을지 모르지만 문자화, 언어화하지 못한 사람이 많을 거예요. 이렇게 누군가에게는 놓친 상황이지만 언어로 표현해서 전해주고 싶었어요. 저는 우월한 사람이거나 굉장한 사유를 가진 철학자가 될 수는 없지만 놓친 걸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는 있을 것 같아요.

 

자동차 핸들을 잡고 뒤를 돌아보는 일이 허락되는 건
브레이크를 완벽히 밟아 멈추어 서 있을 때뿐.
조금이라도 차가 움직이고 있을 때 뒤를 돌아본다면
비틀비틀 쿵,
사고를 내고야 말 것이다.

그러니까 돌아보고 싶다면 멈추는 것이 먼저.
달리기로 마음먹었다면 돌아보지 않기. (207쪽)

 

『혼자의 발견』은 인쇄술에 감사하게 만든 책

 

지금까지 4권을 내셨는데, 지금 책은 작가님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내 이야기가 울림을 줄 수 있게 해준 인쇄술에 감사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나의 일부분을 이해받고 싶은 욕구와 독자의 이해받고 싶은 욕구가 만났을 때 우리가 종이 한 덩어리로 만나는 거잖아요. 지금까지는 그 개념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번 책으로 알았어요. 글은 잘 써서 쓰는 게 아니라, 누구나 이해받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 쓰는 것 같아요. 독자가 책을 읽어서 자신의 내면을 이해받고 ‘나는 행복한 사람이네, 좋은 사람이네’를 느끼면 이 일이 얼마나 아름다운가요. 책 만드는 것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된 책이라고 할 수 있죠.

 

쓰면서 이렇게 써야겠다, 라고 염두에 둔 점은?

 

지금 『주역강의』를 읽는데, 어려워요. 쉽게 풀이했다고 한 책인데도 그래요. 아무리 좋은 이야기도 피곤하게 살아가는 현대인이기에, 바로 스며드는 글이 아니면 흡수되기 힘들 수도 있어요. 사람들 시간을 아껴주고 싶어서 내가 쓸 수 있는 가장 쉬운 이야기를 쓸 수밖에 없었어요. 마음을 수면으로 비유하자면, 수면 위에 작은 돌멩이 하나를 얹는 있는 느낌을 주고 싶었죠.

 

『혼자의 발견』에서 책 고르는 방법을 소개해주셨는데, 지금 읽는 책이 『주역강의』라니 약간은 예상 밖이네요.

 

책방에 자주 가요. 아무 생각 없이 서점에 가서, 그날 분위기와 제 기분에 따라 손이 닿는 책이 있죠. 서점에서 책을 살피다 다른 책에서 『주역』 이야기가 나왔는데, 마침 주역을 공부하고 싶었던 과거 기억이 떠올랐어요. 바로 『주역』이 있는 코너로 갔죠. 그중에 가장 쉬워 보이는 책을 골랐어요. 이렇게 어떤 목적을 가지고 책을 선택하는 것보다는 아무 생각 없이 산책하다 책을 고르는 것도 좋을 듯해요. 책 한 권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다른 책으로 확장될 수 있는 책이면 좋겠고요.

 

제 책도 숱한 가르침을 받았던 많은 책의 영향이 있었기 때문에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혼자의 발견』에도 되게 새로운 내용은 없어요. 혼자 잘 지내야 결혼 잘한다, 혼자 잘 지낼 줄 있어야 소모하지 않는 연애를 한다, 당연한 말이죠. 비슷한 말을 다양한 방법으로 말할 수 있는 건 저 역시 여러 사람에게 영향을 받아서죠. 그게 공포소설일 수 있고, 유명한 인문학자일 수도 있고요. 저는 취재하면서 연애 실용서도 많이 읽었거든요.

 

『주역』은 점치는 책으로 많이 알려졌지만, 제가 보는 책에서 주역은 『탈무드』, 『동의보감』같은 책으로 봐요. 마흔을 앞두고 있고 어쩌면 앞으로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적다고 생각하기에, 하루라도 지혜롭게 살고 싶어요. 요즘 독서의 포커스는 ‘지혜롭게’입니다. 말 한 마디를 하더라도 후회하지 않도록, 덜 떨어진 행동 안 하도록, 행복한 하루를 만들려면 지혜로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여성 독자가 좋아할 만한 내용이 많았어요. 성별에 따라 이 책을 활용할 방향이 달라질까요?

 

제가 치열하게 살아온 직장 여성 중 한 명이었기 때문에 여자라면 제가 쓴 글을 확인하는 순간 느끼는 쾌감이 있을 거예요. 남자는 ‘여자들이 이런 생각 하는구나’ 정도로 생각할 수 있겠죠. 그런데 책 속에 딱히 여자라서 느낀 내용은 그렇게 많지는 않아요. 혼자에 남녀가 중요한가요. 물론 한국 여성이기 때문에 남자들은 전혀 상상 못할 공포가 일상에 있죠. 예를 들어, 이사 때문에 중고나라에 소파를 올려놨는데, 직접 보고 결정하겠다고 해도 사람을 들일 수 없어요. 남자친구가 옆에 있어 주겠다고 해도 ‘넌 안 무서워? 칼 대고 들어서면 어떡해?” 하면 대부분 남자는 코웃음을 치죠. 저는 코웃음 치는 남자도 사귀어봤고, 공감해주는 남자도 사귀어 봤어요. 어떤 남자면 좋을까 스스로 질문을 던져 본 적이 없는 독자라면, 글을 읽으면서 한번 생각해 볼 수는 있을 거예요. 제 책이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 구조를 볼 수 있는 계기가 되면 좋죠. 『혼자의 발견』이 사소하지만 저에게는 중요한 걸 담은 책이라는 생각은 들어요.

 

책 만들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에피소드는 무엇이었나요?

 

그 질문은 마치 대충 지나쳐야 하는 글은 무엇인가와 똑같아요. 어떤 이야기든 내가 경험했던 관계로부터 나온 이야기라 중요한 이야기 하나를 꼽기는 어렵고, 저는 모두 다 소중하게 읽어봐주셨으면 좋겠어요. 굳이 꼽으라면, ‘바람’ 편이요. 많은 사람에게 적용 가능한 이야기 같아요.

 

여럿에게 관심받아도 배고팠던 이십대를 지나
둘이어서 행복한 삼십대를 보내고 있다.
혼자여도 충만한 사십대였으면 한다. (19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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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하는 사람 곽정은

 

힘들었을 때 남산에 가셨다고 했잖아요. 당당해 보이는 작가님에게도 힘들 때가 있나요?

 

방송을 1년 남짓한 시간 동안 하면서 섹슈얼한 이슈에 대해 당당하게 말하는 역할을 부여 받았어요. 왔던 일과 맞아떨어졌기에 자신을 속이는 일 없이 즐겁게 방송을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가진 스펙트럼이 1부터 10이라면, 방송은 3에서 4까지 영역을 보여주는 일이에요. 저는 외향적인 사람이 아니고, 낯가림도 심해요. 처음 기자 생활을 시작할 때는 인터뷰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고, 그런 공포로부터 빠져나온 지도 몇 년 되지 않았어요.

 

곽정은은 만날 싸우듯 당당하게 야한 이야기하고, 시비 거는 사람이 겁나도록 항변할 것 같지만, 힘들 때는 저도 힘들어요. 감성이 남보다 더 예민하기 때문에 글을 쓸 수 있듯, 그런 예민한 감성을 가졌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울지 않을 때 울기도 하고요. 타격을 안 받을 만한 일에 타격을 많이 받죠. 그런 내가 싫지 않기 때문에 이런 모습을 유지할 수 있고요. 직장 상사가 말도 안 되는 걸로 해코지하고 질투할 때가 있어도 아무렇지 않게 버티는 건 일이 소중해서잖아요. 제게 방송은 일이고 잘해야 합니다. 그 안에서 자신의 존엄성을 해치지 않는다면 무조건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책 마지막에는 직장 이야기가 자주 나오는데요. 패션지에서 오래 기자로 활동하셨는데, 여성들에게 패션지 잡지는 어떤 로망을 주는 것 같습니다. 실제는 어떤가요.

 

조직의 나사가 아니라 자기 이름을 걸고 프로듀서가 되고 기획자가 되어서 하나의 섹션을 굴리고 하나의 결과를 매달 만들어내서 세상 천지에 보낼 수 있는 직업이 잡지 기자만한 게 있을까요. 신문이나 방송은 돈을 많이 받을지는 몰라도 출입처가 제한적이죠. 우리는 온 세상이 출입처였어요. 기자라는 직업이 대통령에서 거지까지 만나지 못하는 사람이 없다고는 하지만, 잡지 기자는 이걸 한 달만에 경험할 수 있거든요. 그런 기회를 가지기 위해서는 엄청난 육체노동, 정신노동 플러스 알파가 필요해요. 일반 직장에 있는 사내권력 관계가 다 있고, 일반 직장에 없는 것도 다 있어요.

 

환상을 가질 법하지만, 그 꿈이 실현되고 즐거운 직장생활이 이어지기 위해서는 어마어마한 소모가 기다리는 것도 사실이에요. 한 달에 주말이 4번이라 치면 8일이 휴일이지만, 이쪽에서는 4일밖에 없어요. 마감 앞두고는 12시 전에 집에 못 가는 상황이고요. 가족이 죽지 않는 한 자리를 비우면 안 되죠. 갔다가도 와야 하고요. 명절도 당일만 쉬죠. 일반 직장인에게는 부여되는 일상이 없어요. 그만큼 드라마틱하고 익사이팅한 취재 경험은 누릴 수 있어요. 책에는 상사와 부딪친 이야기, 후배와 부딪친 이야기를 썼어요. 쓰면서 기쁜 일도 있었지, 슬픈 일도 있었지, 추억하게 되며 너그럽게 바라볼 수 있게 됐어요. 여전히 치열하게 권력 관계 안에서 일하는 사람에게는 힘이 되는 글이지 않을까 생각해요.
 
곽정은 기자에서 <마녀사냥> 곽정은으로 불리고 있어요.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정체성은?

 

마녀사냥 곽정은은 언론에서 좋아하는 타이틀일 수밖에 없어요. 유명한 분이 같이 나오는 프로그램이고 시청률도 높으니까요. 그렇지만 저의 정체성은 <마녀사냥>은 당연히 아니에요. 글을 쓸 것이고, 글이 좋아서 기자가 되었고, 취재 경험이 많아져서 책을 쓸 수 있게 된 거고, 그 결과 방송을 하게 되었어요. ‘표현하는 사람’ 이 정도가 적당하지 않을까요?

 

방송, 책, 강연 중에서 어떤 게 제일 친근해요?

 

아무래도 방송이 제일 불편하죠. “남자 3명을 동시에 만났어요. 그렇지만 영혼의 굶주림은 해소가 되지 않았죠.”라고 말하면 방송에서는 “남자 3명을 동시에 만났어요”만 나가고 나머지는 편집돼요. ‘네가 그 얼굴에 무슨 3명’ 이런 엄청난 댓글이 양산되죠. 방송에서 놀라고 불편한 지점인데, 악의적으로 편집된 게 아니라 방송이라는 특성상 잘리는 부분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강연이나 책에서는 다시 풀 수 있어요. 방송도 방송대로 좋은 점이 있죠. 재미있든 없든 영원히 데이터로 남잖아요. 많이 알려지면서 인구에 회자되는 건 방송 아니면 불가능하죠.

 

2014년은 방송과 강연으로 너무 많은 걸 쏟아낸 한해였다면 2015년은 책을 좀 더 많이 쓰려고 해요. 책 쓰면서 성장하는 부분도 있고, 쓰기 위해서 다시 취재하는 부분이 있기에, 그렇게 늘려가는 작업이 의미있는 작업이 될 거 같아요. 인풋을 향한 배고픔은 있지만 『혼자의 발견』 은 제가 지금 쓸 수 있는 최고의 책이라는 건 확실해요. 그렇지 않다면 책을 내면 안 되죠. 책이 나오고 나서 하루에도 몇 번씩 뒤적여요. 자꾸 자꾸 보고 싶은 결과물을 하나 만들었다는 것만으로 저의 37살은 아름답게 기억되겠죠.

 

곽정은을 멘토로 여기는 여성이 꽤 많은 걸로 알고 있어요. 이들에게 한 말씀.

 

저에게는 정작 멘토가 없어요. 재밌는 건, 똑같은 말을 했는데 어떤 사람은 저를 멘토로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심한 말로 비난하기도 해요. 멘토이건 마녀이건, 저를 통해 정답을 찾거나 오답으로 규정하거나 그러지 말았으면 합니다. 그저 아, 저런 생각도 가능하지, 저런 생각도 필요해, 하게 만드는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제 강연을 들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강연에서 저는 이렇게 하면 망하고, 이렇게 하면 헤어집니다, 어떻게 하시겠어요, 정도로 말합니다. 정답은 각자 깨지면서 배우는 거지 누가 알려준다고 해도 자신의 정답이 될 수 없어요. 멘토라는 말이 지금처럼 유행하지 않았을 때는 스스로 마음 안에 있는 빛을 찾아서 갔다고 생각해요. 멘토라는 말이 생기면서, 엇갈린 기대감이 있고, 이 말로 장사하는 사람도 생겼죠. 진짜 멘토는 자신의 마음 안에 있는 빛이에요. 그 빛을 발견하게 되는 건, 어떤 상처를 받는 일도 두려워하지 않았을 때, 자기가 당당하고 떳떳하게 옳다고 믿을 때죠.

 

한국 사회에서 이혼이 여전히 어두운 칼라로 채색되어 있는 게 사실인데 저는 이런 경험도 해 봤고. 심심하신 분의 공격도 많이 받아봤어요. 인생에서 힘든 일 슬픈 일 겪을 때 오히려 마음 속 빛을 발견하게 됐고, 낯가림이라는 것도 극복하게 됐죠. 실패를 많이 하고, 이게 인생의 재료가 되어서 저를 단단하게 해서 좋았어요.

 

제가 일대일 상담을 안 하는 이유가, 제 말대로 했다가 그 사람이 망하면, 제가 책임져줄 수는 없잖아요. 자기는 자신만의 오답노트를 써야 하는 사람이고 그 용기가 없다면 누가 하라는 대로 할 거고, 그렇게 살아서 후회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일 걸요? 우리 함께 스스로만의 오답노트를 써가는 게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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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의 발견곽정은 저 | 달
그와 나는 그린라이트일까 아닐까. 모든 연애가 그 작은 상자처럼 명료한 초록색 불빛을 뿜어낸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지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그러하듯 사랑 또한 아름답지만은 않다. 뭉근하고 저릿하고 아리송한 사랑. 이토록 복잡미묘한 사랑과 사랑하는 사람들에 관하여 수많은 많은 명언들을 쏟아낸 칼럼니스트 곽정은. 그녀가 패션지에서 10년간 일하며 만난 1,000여 명의 사람들에 대한 에세이 『내 사람이다』를 펴낸 지 3년 만에 새로운 책을 출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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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수경 “남편 이윤석과 함께 먹는 착한 밥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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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세를 기점으로 확 늙었다는 생각이 드는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살이 쪘다, 피부가 나빠졌다 등의 이야기에 30대 중반을 넘은 독자들은 대부분 고개를 끄덕일 것 같다. 모든 것이 예전 같지가 않다. 소화력은 떨어지고 드물게 나타났던 알레르기는 이제는 스치기만 해도 나타난다.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건강검진을 받아도 큰 이상이 없다고만 말한다. 분명히 내 몸은 달라졌는데 별다른 뾰족한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것을 김수경 한의사가 『착한 밥상』에 속 시원히 설명해준다.

 

똑똑한 연예인으로 유명한 개그맨 이윤석은 김수경 한의사의 남편이다. 그런데 그는 사실 ‘발이 땅에 안 붙어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건강을 챙기거나 현실적인 문제에 약하지만 철학적이고 낭만적이다. 이윤석은 예전 모 프로그램에서 ‘식스팩만들기 프로젝트’로 6-8주동안 몸매 관리를 한 적이 있다. 사람들은 ‘결과적으로’ 이윤석의 몸이 좋아졌다고만 여겼고 필자 또한 그렇게 생각했다. 사람들은 운동을 많이 하고, 채소와 닭고기, 단백질 파우더를 먹으면 건강해진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 프로젝트의 이면까지 함께한 저자는 과도한 운동과 영양소 섭취가 어떤 악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 설명해준다. 체력적으로 젖산을 분해하지 못하거나 소화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오히려 노폐물이 더 쌓이게 되고 건강이 악화된다.


이렇게 소화되지 않은 음식물을 장기간 먹으면 노폐물이 쌓이고 그 독소를 배출하고자 비염이나 피부염 증상, 아토피 피부염, 알레르기 천식, 두통, 잦은 감기, 관절 통증으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33쪽)


실제로 사람들은 평균 30세을 기점으로 소화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췌장의 기능이 떨어진다. 또한 과음이나 과식, 건강하지 못한 음식을 많이 섭취하면 소화력이 떨어지고 여러 병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이런 몸의 신호를 느꼈다면 『착한 밥상』에서 말하는 것을 따르고 지켜보면 어떨까. 이 책에서는 기존의 영양지침서에서 가르쳐 주는 내용과는 다른 이야기를 담는다. 우리가 흔히 먹어서 몸에 좋다고 믿고 있는 과일은 지방간을 부르며, 살찐다고 피하는 돼지고기는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춰준다고 한다. 위장장애가 있으면 눈(시력)에 문제가 있을 확률이 놓고, 술 마신 다음에는 라면이나 면은 절대 피해야 한다. 사소하지만 나쁜 습관을 바꾸고, 책에 나온 간단한 레시피대로 끼니를 챙기면 다시 건강해 질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가져본다. 저자는 표지에 이렇게 말한다. “음식으로 낫지 않는 질병은 없다”고.

 

실제로 몸이 바뀌면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자신감과 긍정의 에너지가 샘솟거든요.
몸이 불편해서 우울하고 매사에 자신감이 없다면,
알레르기 질환을 앓고 있다면,
만성 소화 불량으로 화장실 가는 게 힘들다면
하다못해 만성 피로와 어깨 결림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면,
밥상을 바꿔 보세요.
매일 먹는 한 끼 식사가 건강을 지킵니다. 신체적 건강은 정신적 건강의 기본이기도 합니다. 이 책이 몸과 마음이 튼튼해지는 데 작은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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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가 알려주는 건강한 밥상


큰 사고로 인한 터닝포인트는 읽으면서도 아찔하게 느껴졌습니다. 정말 힘든 경험이었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그 일이 전화위복이 된 거네요. 그럼 책을 쓰게 된 계기가 이 일인가요?


책을 쓴 계기는 제가 블로그를 하고 있어서 올해 2-3월 정도에 출판사에서 제안이 들어왔습니다. 주간님께서 책으로 내면 좋겠다고 적극적으로 추천해주셔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일하시면서 집필하기 힘드셨을 것 같습니다.


책을 쓰기 시작 전에는 블로그나 강의 준비, 환자에게 말을 하는 것에 대한 연장선상이라고 생각하며 시작했는데 막상 시작해보니 전혀 달랐습니다. 다른 글에 비해 호흡이 훨씬 길어서 제가 하고 싶은 말을 어디에서 끊어야 할지 몰라 숨이 차게 초고를 썼던 것 같습니다. 책은 일맥상통하는 흐름 위에서 이야기를 풀어 나가야 해서 그것에 맞는 이야기만 쓰다 보니까 (블로그나 칼럼에 다룬 부분 중) 맞지 않는 부분은 뺐고 또 새로운 부분을 덧붙였습니다.


책을 준비할 때 이윤석님께서 외조를 해주셨나요?


남편에게 처음 초고를 보여주자 다시 쓰라고 하더군요. 따끔한 조언이 저를 잘되게 하려는 것이기도 하지만 상처도 받았습니다. 나름 열심히 했는데 가족으로서 너무 솔직히 말해줘서 의기소침해졌죠. 그래도 결국에는 자양분이 된 것 같습니다. 사실 남편도 『웃음의 과학』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그 때 처음 초고를 출판사에 가져갔더니 이런 글은 안 팔린다고 거절당했대요. 아무래도 사람들 모두 남의 글에 대해서는 말하기 쉬운가 봐요.


55쪽에 나와있듯이 소화효소는 정말 고갈되나요? 그럼 젊었을 때 과식을 많이 하면 나이가 들어 소화가 힘드나요?


우리 몸에 효소는 대사효소와 소화효소 두 가지가 있습니다. 대사효소는 몸을 고치고 피로를 회복하며 면역력과도 관계됩니다. 소화효소는 소화에 관련됩니다. 애초에 태어날 때 (효소들을) 많이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술, 담배를 해도 백 살까지 장수할 수 있습니다. 그런 분들이 100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가정한다면, 태어날 때 20정도만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분들을 상대적으로 소화가 힘드니 어릴 때 좋은 음식을 먹어서 소화 효소를 늘려주면 좋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의 소화효소는 30세를 정점으로 점점 줄어듭니다. 그 효소의 양을 유지해 주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소화효소는 잠을 잘 때나 (좋은)음식을 먹을 때 생성되기도 합니다. 과식을 하게 되면 소화효소가 소모되는 것뿐만 아니라 대사효소 또한 줄어들게 됩니다. 건강해질 수가 없는 겁니다. 인체는 음식을 소화해 에너지를 얻으니 소화 기관이 튼튼한 것이 중요합니다. 소화력이 떨어진 사람들 중에 건강한 사람이 없습니다.


그럼 어린아이들은 어떻게 소화효소를 늘릴 수 있나요?


만 6세는 소화기관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췌장이 완성되는 시기입니다. 영양소를 조금밖에 흡수하지 못하는 아이들은 6세가 되면 더 이상 늘릴 수가 없습니다. 그 시기에 에너지를 많이 담을 수 있는 몸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어릴 적 식습관이 가장 중요합니다.


제 한의원에도 식욕부진으로 찾아오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아주 천천히 먹거나, 밥을 먹는 양이 매우 적은 경우입니다. 그런 아이들은 소화 효소가 워낙 적게 태어나서 음식을 먹으면 소화가 잘 되지 않아 장에 가스가 많이 찹니다. 위장이 붙어있는 부분에 가스가 차니까 위가 더 이상 늘어나지 못하니 밥을 많이 먹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많이 먹으면 토악질로 나오기도 합니다.


소화효소를 늘리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인데요 가장 좋은 영양소는 필수지방산입니다. 필수지방산은 돼지고기나 오리고기에 많이 들어있습니다. 물론 단백질도 같이 섭취하게 됩니다. 또한 한번에 많은 양을 먹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아이들이 흡수할 수 있는 고기는 한 끼에 10-20g 밖에 안됩니다. 한 조각이라도 매 끼니마다 꾸준히 먹는 것이 중요합니다. 한약을 먹어서 소화액이 잘 나오게 되어 잘 먹는 아이들은 약을 먹지 않으면 소화액이 줄어 다시 먹지 않게 됩니다. 평소에 식습관이 가장 중요합니다. 얼만큼 소화효소를 만들 수 있는 재료를 넣어 주느냐가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엄마의 욕심대로 고기를 한꺼번에 많이 먹이게 되면 소화의 균형이 더 깨지게 됩니다. 기다려 주어야 합니다. 아이가 밥과 고기를 잘 안 먹는다고 빵이나 과자같이 달고 짭짤한 것들을 주면 안됩니다. 탄수화물 위주의 간식이 되면 뇌에서는 일차적으로 탄수화물을 에너지로 쓰기 때문에 에너지가 충분하다고 착각을 해서 입맛이 떨어집니다. 그래서 그런 어머니들께 꼭 말씀 드립니다. 탄수화물 위주의 간식은 절대 안되고 차라리 밥을 네 끼 먹이라고요.

 

약과 독의 차이는 없다


과일은 지방간을 부른다(95쪽)는 것은 보통 사람은 생각도 못한 일이네요. 그럼 요즘 유행하는 해독주스나 디톡스주스 같은 것 중에 과일이 다량 들어간 것들이 많잖아요. 이걸 많이 마시면 오히려 안 좋을까요?


젊은 분들 중에 팔다리 마르고 배만 볼록 나온 마른 비만인 분들 중 과일을 많이 드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과일을 많이 먹게 되면 내장에 지방이 쌓이게 되면서 지방간 같은 질병이 생기기도 합니다. 과일은 식후에 입가심정도로만 먹는 것이 좋습니다. 비타민과 미네랄은 채소로 섭취하는 것이 좋습니다.


디톡스 주스는 (식사에 비해) 칼로리가 낮긴 합니다. 만약 식사를 하지 않고 주스만 섭취한다면 살이 빠지는 건 맞습니다. 그렇지만 단백질과 지방이 없이 살을 빼게 되면 근육양의 손실이 있게 되고, 문제가 생기게 되겠죠. 살은 빠르게 빼려고 하면 안됩니다.


물론 몸에 주스가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프로골퍼 최경주씨께서는 중요한 경기가 있을 때 시작 전에 과일, 야채, 견과류를 갈아서 마신다고 합니다. 4-6시간 라운딩을 해도 배가 고프지 않고 맑은 정신이라고 하세요. 탄수화물은 이렇게 써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저도 만들어 마셔보았는데 잘못 알고 3일치 양을 한번에 마셨습니다. 그러자 밤새 잠이 안 오고 머리 쪽으로 열이 나 두 시간밖에 못 잤지만 다음 날 개운하게 출근했습니다. 탄수화물의 열량이 다 소모가 안 되다 보니 오후에는 피부에 트러블이 올라오고 눈이 충혈되더군요.


탄수화물이 독은 아닙니다. 어떤 컨디션에서 그것을 약으로 사용할 것인지 독으로 사용할 것인지가 중요합니다. 쓰려는 사람의 용도에 따라 차이가 있기 때문에 한가지 음식이 효능이 있는 건지는 개개인마다 다릅니다. 즉 약과 독의 차이는 없는 것입니다. 같은 음식이라도 어떤 사람에게는 약이 되기도, 다른 사람에게는 독이기도 합니다.


우유에 대한 이론은 매우 다양하죠. 106쪽에 우유에 대해서도 언급해주셨습니다. 아이들은 그럼 우유를 따로 마시지 않아도 되나요?


예전에 어려웠던 시절에는 분명히 우유는 약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지금은 영양이 충분히 공급되기 때문에 포화지방을 더 섭취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유에 들어있는 카제인이라는 단백질이 위장에 들어갔을 때 과하게 응고됩니다. 예전에는 저산증 환자가 많아서 이게 약이 되었을 겁니다. 지금은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아이들이 소고기 조금 더 먹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영양섭취가 됩니다.


좋은 식초는 소화제(132쪽)라는 이야기도 재미있었습니다. 생각해보면 이탈리아 남부 쪽에서는 소화를 돕기 위해 식후에 아주 신 리몬첼로 라는 술을 한잔 마시기도 합니다. 레몬즙 같은 신맛이 나는 것도 비슷한 작용을 해주나요?


신맛 자체가 소화액을 자극하는 건 맞습니다. 그런데 제가 말하는 식초는 발효식초입니다. 신맛으로 위산을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편안한 소화제 역할을 합니다. 


 치즈도 마찬가지로 오랜 기간 동안 숙성되면 안 좋은 사슬들이 모두 끊어지면서 몸에 좋은 성분이 남듯이 식초가 발효되는 과정에서 아미노산 등 여러 가지로 분해가 되면서 생겨난 좋은 성분을 섭취할 수 있습니다. 양조식초같이 단기간 숙성하는 식초들은 이런 역할을 하지는 못합니다. 전통방식으로 만든다는 표시가 있는 식초나 흑초 같은 걸 섭취하면 됩니다.


선생님께서 생각하시기에 식초 섭취는 어떻게 하면 될까요?


소화가 아주 많이 안 되는 분들에게는 처음에는 1/10로 희석해서 식전이나 식후에 마시도록 합니다. 익숙해진다면 1/5로 희석해서 마시도록 권합니다.


『동의보감』에서 인용해주신‘술을 마신 후 면을 금하라(144쪽)’도 인상 깊었습니다. 보통 술 마신 다음에 라면 같은 것을 찾게 되고, 미국에서는 햄버거나 피자도 먹습니다. 그럼 빵이나 피자 같은 밀가루 음식도 다 좋지 않은가요?


 

술의 영양 성분은 탄수화물이기 때문에 술을 마시게 되면 포도당이 급격히 상승합니다. 그리고 몸은 그것을 급격히 내리려고 하기 때문에 저혈당 구간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면 몸이 (당이 부족하다는) 착각을 하고 당을 원하게 되어서 라면이나 밥, 빵을 찾게 됩니다. 문제는 탄수화물을 아주 많이 먹은 상태에서 또 면 같은 탄수화물을 먹게 되면 열에너지가 과잉섭취 되어 문제가 됩니다. 피부가 열을 발산하기 위해서 얼굴이 빨개지고 코끝이 빨개지게 됩니다.

 

술을 먹은 다음 가장 좋은 건 필수지방산이 풍부한 생선회나 열을 내릴 수 있는 오이즙 같은 것을 먹는 것이 좋습니다. 해산물은 필수지방산이 아주 풍부한 식품입니다. 그러나 변성이 잘 되는 성분이어서 고등어 같은 등 푸른 생선은 가열이 되었을 때 알러지 반응을 유발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생선류는 회로 먹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정말 내조의 여왕이 될 수 있는 주옥 같은 이야기들이었습니다. 남편이 술 마신 다음 날에는 면 금지, 돼지 족발탕과 오이즙 등은 명심해두어야겠어요.


아니에요. 신랑들은 그냥 라면 끓여주는 걸 가장 좋아합니다(웃음). 저희도 신랑이 늦게 술자리 후에 오면 라면을 끓이고 저는 잔소리를 하죠.


어떤 조건으로 얼마 동안 먹느냐에 따라 그 성분이 독이 될 수도 있고 약이 될 수 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환자들은 ‘맞다’, ‘아니다’라고 명쾌한 답을 주기를 원한다. 이렇게 약재를 맹신하는 사람들한테는 몸에 무리가 없는 선에서 “한 달만 복용하세요.”라고 답할 때가 가끔 있다. 단독 한약재와 한약 처방은 완전히 다른 세계의 이야기다. 식재료와 요리도 같은 원리다. 그래서 사실 요리는 정말 어렵다. 입에서도 즐겁고 몸에도 좋은 조합을 찾기란 힘들지만 굉장히 아름다운 작업이다. (11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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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할 수 있는 간단한 레시피


156쪽부터 음식 레시피를 소개해주셨습니다. 간단한 요리들이었는데요, 혹시 전문적으로 요리를 배우신 적이 있으신가요?


친정 어머니께 가장 많이 배웠습니다. 외할머니께서는 궁중요리부터 못하는 요리가 없으셨고요. 어머니도 (재능을 이어 받아) 아주 잘하세요. 앞으로도 요리는 제대로 배워보고 싶습니다. 제가 언젠가 아주 좋은 음식점에 갔었습니다. 시중에서 파는 초밥은 설탕과 식초를 사용해서 만드는데요, 그 음식점에서는 좋은 쌀과 좋은 소금만 있으면 설탕을 넣지 않아도 단맛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합니다. 그 초밥을 먹고 나면 속도 편하고요. 사실 맛이 없으면 소화액이 잘 안 나옵니다. 맛을 맞추면서 몸에 좋은 것만 넣는다는 건 대단한 거죠. 제 책의 레시피는 일단은 양념 자체를 많이 안 쓰는 요리여서 어려움이 크진 않았습니다.


전부 평소에 해서 드시는 음식인가요?


손이 많이 가는 메밀가루나 건강한 재료를 이렇게 사용할 수 있다는 예를 보여드리려고 담은 한두 가지 음식을 빼고는 모두 평소에 자주 해먹는 음식입니다. 특히 돼지 채소 탕을 매일 먹고 있습니다. 돼지로 탕을 끓이면 이상할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맛있습니다. 일본에는 돼지뼈로 국물을 낸 라면도 있고요, 돈지루라고 일본 된장국도 있습니다.


이윤석님께서도 이런 저염식을 좋아하시나요?


남자들은 대부분 건강한 음식보다는 먹고 싶은 걸 드시려고 합니다. 한의원에도 몸이 많이 안 좋은데도 치료를 못하겠다는 분들이 많습니다. 남자들이 애기고 챙겨줘야 한다는 말이 있듯이 남자는 쾌락주의라고 할까요. 여자들이 (절제가 덜 되니) 잘 챙겨줘야 하는 것 같아요.


선생님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책은 무엇인가요? 독자 분들께 추천 부탁 드립니다.


『오래된 연장통』이라는 책은 진화 심리학에 관련된 내용으로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진화 심리학은 사람들이 왜 이렇게 밖에 공포를 느낄 수 밖에 없는지, 왜 이렇게 진화할 수 밖에 없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 교수님께서 쓰신 책인데 일반인들이 읽을 수 있게 쉽게 쓰여져 있습니다.


이과사람들이 대부분 그런 건 아니겠지만, 저는 실질적인 것을 좋아하고 철학적인 것에 약합니다. 신랑을 만나서 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같은 것들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그 책을 통해 남편이 공부하는 것을 알게 되었고, 신랑을 이해하는 도구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것들이 새로운 세계에 대한 생각을 일깨워 주었습니다. 만약 제가 신랑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철학적으로 생각할 기회가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희 남편은 저와는 반대로 발이 땅에 안 붙어 있는 사람입니다. 예를 들면 육아, 부동산, 건강, 요리 등 현실에 딱 붙어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고 가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부분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못한다면 일상에 있어 제대로 살아가기 힘들겠죠. 저는 남편을 만나서 세상을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구나 느꼈습니다. 만약에 남편이 (본인과) 비슷한 사람을 만났더라면 노후가 굉장히 불안정했을 것 같아요.(웃음)


저희는 2인1조라고 합니다. 서로 반대인 사람이 만나서 보완이 되는 겁니다. 남편은 건강에 대해 관심이 없었는데 저를 만나서 좀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서로 좋은 시너지를 얻는 것 같아요. 그 과정에 있어서는 물론 진통이 있긴 했지만 지금은 많이 감사합니다. 사람마다 다 다른 관점을 가지고 살고, 그런 시야를 넓혀준 사람입니다. 저희 둘 중에 하나가 없으면 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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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밥상김수경 저 | 넥서스BOOKS
이 책은 대한민국 사람의 식생활 문화를 기반으로 하여 저자가 직접 경험한 음식 치료법에 전문적인 한의학 이론을 더한 건강법만을 소개한다. 우리가 막연히 알던 건강 정보를 원리와 사례를 들어 정확하고 알기 쉽게 소개하여 일상에서 느끼는 불편한 건강 증상 등을 해소할 수 있는 실용적인 건강 노하우를 배울 수 있다. 또한 진짜 착한 먹거리를 소개하고, 꼭 먹어야 한다면 이롭게 먹을 수 있는 방법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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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가수 이장혁 “늘 어둡지는 않아요. 작품은 제 일부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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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혁의 음악은 현실적이다. 소외되고 외롭고 서로 의도치 않은 상처를 남기는 인간 세계를 포장 없이 직시한다. 그래서 어둡다. 아픔에 눈감지 못해 우울하고, 고통의 근본적인 돌파구를 찾지 못해 낙담한다. 그는 환상이 제거된 예술을 한다. 그래서일까 그의 음악을 들을 때면 늘 어떤 각오가 필요했다. 우울을 끌어안고 마음을 편치 않게 둘 수 있는 용기 같은 것.

 

그 음악적 정서에 압도된 탓일 것이다, 인터뷰를 준비하면서도 마음의 각오가 필요했던 것은. 왠지 까다롭고 예민할 것 같은 이 예술가에게 우리의 질문은 어느 지점까지 다가설 수 있을까. 그러나 이는 기우고 편견이었다. 직접 만난 이장혁은 꽤 소탈하고 분명하며 유연한 사람이었다. 단답과 서술을 오가며 틔운 이야기는 이리로 구르고 저리로 흐르며 6년 만의 신보를 넉넉히 설명하고 있었다. 노래답지 않게(!) 밝고 편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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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곡 「스무살」도 그렇고, 전작들이 청춘에 대해 노래했다면 이번 앨범은 나이가 좀 든 느낌이다.

 

그때는 아무래도 청춘에 가까웠으니까 그런 거고 지금은 청춘에서 멀어졌으니까요.(웃음)(그렇다고 꼰대는 아니지 않냐고 묻자) 꼰대같아요 저. (웃음)

 

과거에도 이장혁은 청춘을 마냥 밝고 긍정적으로 포장하는 가수가 아니었다. 그 접근법은 변함이 없으나 이번에는 나이 든 분들의 아픔까지도 함께 그리는 노래로 다가왔다.

 

첫 곡 「칼집」 가사가 좀 그런데, 늙어가는 몸뚱아리를 녹슨 칼집에 비유해서 쓴 거예요. 칼집이 녹슬면서 칼을 꺼내지 못하는 상황, 칼을 빼내지 못하니 결국엔 칼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었다는 뜻인데요. 나이 들면서 많이 느낀 게, 제가 좀 욱하는 스타일인데 나이가 드니까 그런 걸 꾹꾹 눌러야 할 때가 많아지더라고요. 그런 생각들 묶어서 노래로 만들었습니다.

 

타이틀 「불면」에서는 고양이 이야기가 나온다. 이장혁의 가사에는 고양이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1집 앨범이미지도 고양이가 나오고 특별한 의미가 있나?

 

사실은 고양이보다 개를 더 좋아하는데.(웃음) 동네에 길냥이가 많다 보니 오다가다 자주 보게 되는데, 그러다 보니 감정이입을 더 많이 하게 되는 거 같아요. 「불면」은 좀 많이 어두운 노래인데요, 가사에 드러난 것보다 더 많이 어두운 곡이에요. 맨 마지막에 고양이가 등장하는 것도, 고양이가 로드킬 되는 걸 많이 봤어요. 그래서 그런 내용이 좀 섞여 있는데... 더 말씀드리면 안 될 거 같아요.(웃음)

 

곡 중간에 연주곡이 들어간다.

 

「코끼리 무덤」은 예전에 만든 곡인데, 이 곡을 앨범 제일 처음으로 배치할까 라고도 생각했어요. 나중에 칼집을 만들고 보니 그게 인트로 격으로 더 어울리겠다 싶어서 지금의 리스트가 되었고요. 가사를 넣을 생각은 원래 없었어요. 베이스 라인에다가 사운드 쌓으면서, 그냥 코끼리 생각하면서 만든 곡이에요.(웃음)

 

「코끼리 무덤」 때문인지 이번 앨범은 베이스가 전보다 살아난 느낌이다.

 

베이스는 믹싱하면서 많이 올라온 거 같아요. 잘 된 건데, 다른 앨범보다는 베이스가 많이 두터워진 느낌이 있죠. 그 노래는 제가 베이스라인부터 만들어놓고 작업한 거예요. 그 위에다 하나씩 쌓는 작업을 했죠. 마음에 들어요.(웃음)

 

이미지를 생각하면서 곡을 만드는 스타일인가?

 

네. 저는 굉장히 많이 생각해요. 무슨 곡을 만들든 간에 계속 상상해요. 「노인」 같은 곡도 마찬가지예요. 계속 이미지 떠올리면서 작업했어요. 이미지를 떠올리면서 그걸 서술한다고나 할까. 그렇게 가사를 쓰고 대부분의 작업을 해요.

 

「노인」의 가사는 어떻게 쓰게 되었나.

 

예전에 신문 편집 디자이너를 할 때 청량리 쪽 회사를 다녔는데, 몇 년 전 이른 봄 출근길에 갑자기 비가 쏟아진 적이 있었어요. 잠시 비를 피해 있는데 제 옆에 노인 한 분이 비를 맞아 옷이 젖은 채로 서 계시더라고요. 소나기가 그치기 기다리면서 거리를 계속 바라보시는데,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여러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 생각들을 노트에 적어놨다가 한 2년인가 3년 뒤쯤 노래로 만들어서 바로 그 다음날 공연에 처음 불렀어요. 보통을 몇 달 동안 묵혀 놨다가 부르는데, 그때 불러서 이 앨범까지 오게 됐네요.

 

이장혁씨는 노인이 아닌데 노인의 마음에 이입을 할 수 있었나?

 

많은 상상을 했죠. 사실 그 노래는 거의 상상이고요. 처음에는 제 시점으로 시작해서 노인의 시점으로 이동을 하는데, 잘 만든 거 같아요.(웃음) (담담하게 이야기해서 더 슬프게 들렸다고 하자) 멜로디가 단조가 아니라 장조라서 더 그런 거 같아요.

 

「매미」도 이미지를 많이 느낄 수 있는 노래인 것 같다. 매미는 좀 빨라서 그럴까 그동안의 음악과는 색다른 느낌을 받았다.

 

모르겠어요.(웃음) 「매미」는 사실 2집에 들어갈 뻔 했던 곡이에요. 가사 빼고 거의 모든 걸 다 만들어 놓았었는데 가사를 다 못써서 넣질 못했고요. 작년인가 재작년에 가사를 다 쓰게 돼서 이번에 싣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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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혁 음악은 쉽진 않은데 난해한 게 없다. 들으면 그냥 그 이미지가 떠오른다.

 

네. 저는 난해한 게 없어요. 저는 절대 어렵게 곡 안 만들어요. 연주도 사실 어려운 게 없고 코드도 단순하게 가는 편이고, 단순하게 가는 게 좋아요. 어렵게 못 해서요 사실은.(웃음) 그래서이기도 하지만, 굳이 어렵게 할 필요가 없는 거 같아요, 제가 볼 때는. 꼬지 않는 게 좋은 거 같아요.

 

그렇다고 음악이 그렇게 또 단편적이진 않지 않은가?

 

그건 가사가 끼어들어서 그런 거 같아요. 저는 작업할 때요, 세션들에게 처음 곡을 들려줄 때 타이트하게 짜지 않는 편이에요. 단순한 코드랑 특정 라인만 잡아주면 세션들이 만들어오는 식이죠. 그러면서 라인이 복잡해진다거나 그렇게 되는 면도 있고, 제가 단순하게 줬지만 세션들이 세밀하게 만들어오면 그게 음악적으로 타이트하게 되는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앨범에서 연주 비중이 커져서 밴드가 필요할 시점이 아닌가 싶었다. 밴드를 다시 할 생각은 없나?

 

사실 필요한 시점이에요. 그렇지만 밴드는 힘들 거 같아요. 지금도 공연 때문에 첼로, 드럼 같이 하고 있는데 활동하는 게 너무 힘들어요. 다들 바쁘니까 스케줄 맞추기도 어렵고. 제가 만약 밴드를 하면 앨범도 더 빨리 나올 거 같아요. 공통된 목표를 향해 가야하니까. 혼자하면 힘들고 그만큼 결과물이 늦게 나오더라도 솔직히 이게 편해요. 밴드 하는 맛도 있고 혼자 하는 맛도 있죠 물론.

 

1,2집과 다른 3집만의 차이가 있다면 무엇일까?

 

3집을 만들면서 색을 어떻게 잡아야겠다고 의도한 건 없어요. 이번 앨범은 어느 기간 동안 만들어진 걸 쭉 배치를 한 다음에 낼 생각이었는데 그렇게 하고 보니 1집과 2집의 중간쯤이 된 거 같아요. 1집은 좀 밴드스타일이고 보컬도 로킹했다면, 2집은 어쿠스틱한 느낌이 많은데 이번 3집은 딱 그 중간의 앨범 같아요.


일단은 사운드 면에서 1,2집에 비할 바가 아닐 만큼 확 좋아졌어요. MP3로 들으면 잘 못 느끼실 거예요. 근데 시디로 들으면 굉장히 차이가 나요. 믹싱과 마스터링의 차이인데요. 1집 때는 믹싱과 마스터링에 신경을 많이 못썼어요. 근데 이번에는 회사에서 투자를 좀 해 주셔서 믹싱도 공들여서 했고, 그러다 보니 사운드가 많이 좋아진 거 같아요. 그리고 나머지는... 글쎄요. 저는 2집에 비해 3집이 더 낫다고 생각해요. 2집은 멜로디가 좀 심심하고 밋밋했다고 생각하는데 3집은 멜로디도 괜찮게 들어간 거 같아요.

 

가사의 측면에서는 어떤가? 나이가 들어 낸 앨범인데 2,30대 때와는 다른 변화는 없나?

 

변화하는 거 없어요. 변해 봤자 「칼집」 정도고요. 사실 나머지 곡들은 거의 사랑노래예요. 「빈집」도 그렇고. 그런데 그런 거 나이 들어도 많이 변하나? 모르겠네요. 솔직히 사랑노래라고 해봤자 결국엔 어둡게 가기 때문에.(웃음) 저는 솔직히 그렇게 어둡게 못 느껴요. 제가 어둡게 쓰는 게 편해서요. 일단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노래긴 한데, 예를 들어 길을 가다가 내가 예전에 사귀던 사람과 자주 오던 곳이면 기억들이 살아나고 그 기억이 자극이 돼서 끄적이고 나중에 노래로 만들게 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 게 그렇게 어렵지 않는... 음, 나이가 들었다고 해서 음악적으로 변한 건 모르겠어요.


나이 들어서 힘든 건 있어요. 노래 쓸 때 뭐랄까. 예전에는 딱 쓰면 이거 괜찮다고 딱 느낌이 올 때가 많은데 지금은 그게 드물어졌어요. 한 번 더 의심하게 되고, '아 이거 나만 이렇게 느끼는 거 아닌가?' 이런 생각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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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을 쓰면 좋은 곡이구나 하는 느낌이 한 번에 오는 편인가?

 

예전에는 그게 자주 있었어요. 10개 정도 그러면 그중 2개 정도 건지거든요. 그런데 요즘에는 이게 좋은지 나쁜지 모르니까 한참 더 보게 되는 거 같아요. 「노인」이라는 곡이 특별한 이유가 만들자마자 그럼에도 좋아서 특별하게 여겨지는 거고요. 나머지는 길게는 1년 짧게는 몇 달? 계속 모니터를 하게 되는 거 같아요. 사실 「에스키모」도 만든 지 한참 됐지만, 2년 전에 만약 앨범을 냈으면 지금이랑 좀 달랐을 거예요. 특히 코러스 멜로디가 마음에 많이 안 들었는데 그걸 올해 초에 바꾸면서 마음에 들게 됐어요. 만약 올해 초에 냈으면 굉장히 후회했을 거 같아요. 바꾼 게 다행히 더 맘에 들어서 이번 앨범에 쓰게 됐고요.

 

이장혁 음악은 상처받는 사람들에게 더 다가오는 음악 같다.

 

공연하거나 할 때 제 팬들의 특징을 살펴보면 내성적인 분들 많은 거 같아요. 제 홈페이지 글을 남길 때도 대부분이 비공개 글을 남기시더라고요. 그래서 '아, 혼자 지내기 좋아하는 분들이 제 노래를 많이 좋아하시는구나'라는 생각을 많이 했고요. 공연 보러 오셔도 사인만 받고 딱 가시는 분들 많아요. 그래서 그런 분들이 제 노래를 좋아해주시는구나 라는 것만 제가 캐치하고 있어요.

 

실제 성격도 좀 어두운가? 작품과 본인은 얼마나 닮아 있나?

 

솔직히 작품은 일부일 뿐이에요. 재능이 어두운 쪽으로 향해 있기 때문에 그쪽으로 적합하게 음악이 만들어지는 것이지 저는 친구들이랑 술 마시면서 웃고 떠드는 거 좋아하거든요. 장난 아닌데.(웃음) 그런 것도 일부고 이런 것도 제 일부죠. 그런데 저는 어쨌든 음악으로 대중과 만나니까, 대중에게 드러나는 것은 어두운 부분이니까, 사람들이 이게 전부인 줄 알고 저한테 접근하는 경우가 있는데 안 그렇거든요.(웃음) 이게 좀 더 내밀한 제 일부죠. 일기장에 쓸 만한 것들이 가사로 주로 되니까. 어쨌든 두 가지 다 제 모습이에요. 저는 사람들 모인 자리에서 우울한 거 정말 싫어해요. 사람들 많으면 분위기 좋고 그런 게 좋지, 제가 가서 분위기 깨고 그런 거 정말 싫어해요. 특히나 제일 싫어하는 게 분위기 깨는 거!

 

 

이장혁과 따뜻한 친구들  

장르
콘서트 
일시
2014.12.31~2014.12.31 
장소
에반스라운지
등급
만 15세 이상 
문의
070-8867-1825 
관람시간
총150분(2시간30분) 
예매하기 

 

 

 

 

 

 

 

 

 

 

 

 

 

 

인터뷰 : 김반야, 윤은지
사진 : 이한수
정리 : 윤은지

2014/12 윤은지 (theotherso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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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에 명화 배달하는 아트메신저 이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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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 바쁜 일상에서 위로를 받는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책, 영화, 음악, 커피, 산책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명화’가 있다. 명화라니, 미술관 가야 볼 수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생각보다 명화는 멀리 있지 않다. 미술관에 가서 직접 보는 게 제일 좋겠지만, 짬이 나지 않는다면 책으로 명화를 접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이소영 저자가 쓴『출근길 명화 한 점』은 입문자가 읽기에 좋은 책이다. 입문서 중에서도 미술사조와 미술사 중심으로 써진 책은 다소 어렵기 마련인데 이 책은 전혀 그렇지 않다. 명화 에세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저자가 독자에게 건네는 말은 친근하면서 쉽다. 저자의 일상을 공개하기도 하고, 편지와 일기 형식의 글쓰기도 시도했다.

 

그렇다고 이 책을 입문자만 읽을 필요는 없다. 저자의 개성이 반영되어 주류 미술사조에서는 벗어나서 소외되었던 예술가도 소개한다. 덕분에 편히 읽을 수 있되, 다른 입문서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생소한 작품을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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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춤형 명화 소개가 인기 비결

 

처음으로 쓴 책입니다. 책이 나오고 난 뒤 어떤 느낌이 들었나요.

 

일단은 신기했고 뿌듯했죠. 블로그와 포스트에 명화 일기를 쓰던 중에 제안이 들어와서 책으로 만들게 됐어요. 책으로 나온 뒤 동생이 읽고는 자기 검정고시 보고 나서 아픔을 딛고, 좋은 대학 갔는데, 검정고시 이야기만 써놓았다고 삐쳤더라고요. 이렇게 솔직하게 써도 되느냐고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제 기록이니까 괜찮았어요.

 

블로거의 글이 책으로 나오는 경우가 드물지는 않은데요. 『출근길 명화 한 점』은 블로그를 시작하고 1년도 안 돼 책으로 나온 점이 특별하네요.

 

블로그보다는 포스트덕분에 나온 책이죠. 블로그보다 포스트 구독수가 10배는 많아요. 블로그가 개인적이라면 포스트는 책처럼 발행하는 건데요. 좀 더 책같은 느낌이 강하죠. e북같이 출판 형태니까요. 시작은 올해 4월부터 했는데 몇 가지 시리즈를 열심히 했어요. 책이 나올 줄 생각은 못했고요. 알고 있는 명화 이야기를 쓰는 것이 재미나서 매일 매일 했어요. 지금도 매일 올리고 있고요.

 

운영한 지 1년도 안 된 기간에 인기를 끈 비결은 역시 독특한 콘텐츠 덕택일까요.

 

명화를 시즌에 맞게 소개했어요. 비오는 날에 어울리는 명화, 눈오는 날에 어울리는 명화. 그리고 고 신해철 분이 돌아가셨을 때는 천국을 주제로 한 명화를 다뤘어요. 특히 비오는 날 명화가 유독 인기가 많았죠. 비오는 날이 되면 사람들이 좀 더 감성적이 되어서 그런가 봐요. 그때는 하루에도 구독자 수가 몇천 명 늘었어요. 운도 있었고요.

 

책에 그러한 장점이 있을 것 같네요.『출근길 명화 한 점』이 다른 미술 입문서와 다른 점은?

 

저는 일반인과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치잖아요. 성인들은 작품을 보고 자신의 감상평을 말하지못해요. 틀릴까 봐 무서운 거죠. 그래서 대개 “이게 맞는지 모르겠는데…”로 말을 시작해요. 사실 예술에는 답이 없는 건데요. 사조를 알아야 말할 수 있고, 화가의 생애를 아는 사람만 비평할 자격이 된다고 생각하는 현실이죠.

 

『출근길 명화 한 점』에는 딱딱한 내용이 전혀 없어요. 저도 미대를 나왔지만 제가 보기에 좋은 그림, 제 기억과 만나는 그림을 솔직하게 쓴 편이어서 다른 입문서에 비해 무게로 치면 훨씬 가벼울 수 있겠죠. 왜 가볍게 썼느냐면, 제 삶도 무거워서 저 역시 무거운 책을 안 보게 되더라고요. 명화를 일기 쓰듯, 쉽게 편하게 소개하고 싶었어요. 이 책을 읽고나서는 명화를 볼 때 기존의 해석이 아니라 자신만의 해석을 할 수 있는 주체적인 감상자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실제로 친구나 대학원 동기들도 일기를 쓰듯 시작했다는 친구도 있다고 들었어요.

 

 

『출근길 명화 한 점』은 처음과 끝이 없는 책

 

요일별로 감상하는 명화로 구성했습니다. 이렇게 구성한 이유는?

 

현대인이 시간이 많이 없잖아요. 휴가가 아니라면 책 한 권을 쭉 읽기가 쉽지 않아요. 저도 소설을 좋아하지만 중간에 끊기면 계속 읽기가 어려워요. 그래서 처음과 끝이 없는 책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요일별로 나눠 놓으면 수요일에 시간이 나면 수요일을, 일요일에 시간이 나면 일요일 부분을 읽을 수 있겠죠.

 

생각하시기에 명화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뜻만 보면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는 작품’이라는 의미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명화는 다른 사람이 좋다고 말해도, 내 기준에 감상하는 것이 어려우면 명화가 아니에요. 마음에 드는 그림이 있고, 그 그림이 힘들 때 생각난다면 그게 명화라고 생각해요. 모나리자나 고흐의 해바라기같이 유명한 작품이 아니더라도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나에게 위로를 주고 영감을 준다면 명화죠.

 

다른 작가는 대개 한 번 등장하는데 고흐를 여러 번 다뤘어요.

 

고흐를 특별히 좋아한다고 생각 안 했는데 짝사랑했나 봐요. 고흐의 삶 자체가 드라마틱하죠. 사람들이 고흐, 하면 보통 권총자살시도(자살을 시도했는데 실패하고 후에 얼마 지나지 않아 죽어서 권총자살시도라도 해야할 것 같아요. 고흐가 팬이 많아서 이거 잘못 이야기하면 말이 많아요. (웃음) 이야기를 하잖아요. 그런 걸 쓰고 싶지는 않았어요. 고흐가 좋아했던 책, 연인, 카페, 이런 내용을 다뤘어요. 사실 고흐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사랑도 많이 했던 사람인데, 이런 부분은 잘 알려지지 않았거든요. 이런 부분을 조명하려고 했어요. 제가 좁고 길게 들어가는 걸 즐겨요. 몇 년에 태어나서 몇 년에 죽었다가 아니라, 특정한 시기에 여행지에서 어떤 걸 그렸다, 이렇게 좁고 깊게 다루는 걸 좋아합니다.

 

고희 외도 좋아하는 작가는

 

책에 다룬 화가는 다 좋아해요. 그중에서 두 명만 꼽으라면 라울 뒤피와 피에르 보나르요. 미대를 나오면 특이한 그림을 좋아할 것 같지만, 저도 정서적으로 환기되는 작품을 좋아해요. 어렵게 파고드는 게 아니라 보기만 해도 좋아지는 그림을요.

 

『출근길 명화 한 점』도 어떻게 보면 미술 평론집이잖아요. 그림을 글로 설명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을 듯합니다.

 

어렵죠. 한때 꿈이 미술 비평가였어요. 어떻게 하면 미술평론가가 될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평론을 보는데, 미대 출신인 제가 보기에도 정말 어렵더라고요. 글의 80퍼센트 이상이 한문이고요. 학문적으로 필요한 평론이 있고 사람과 가까워야 하는 평론이 있다면 제게는 후자가 더 좋았어요. 이 책이 평론치고 너무 가볍지 않냐고 하는데 평론도 시대에 따라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전문가가 보는 평론도 있어야겠지만, 단순한 소개말이상이면서도 일반인이 볼 만한 평론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래서 ‘아트메신저’라는 말이 마음에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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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명화를 보면 세상 보는 눈이 푹신해지지 않을까요

 

우리가 명화 작품을 감상해야 하는 이유는?

 

아직 아이가 없는데 아기가 태어나면 어떤 직업을 갖든 명화를 볼 줄 아는 어른으로 만들고 싶어요. 명화를 보는 사람이 세상을 더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라 생각해요. 세상에는 나쁜 일도 많고 삭막해져가지만 화가가 남겨놓은 명화를 보면 누구든지 그 순간만큼은 감성적으로 변해요. 좋아하는 명화가 한 편 정도 있으면 힘들 때 위로가 되죠. 요즘 기업에서는 감성 리더, 감성 마케팅 이런 이야기도 하는데, 혁신의 밑바탕에는 감수성이 있어요. 스티브 잡스도 창의적, 감성적이 되려면 예술을 좋아하라고 했잖아요. 어떤 자리에 있든 한 가지 지식만이 아니라 예술적 지식과 문화가 바탕이 되어야 하죠. 매일, 주기적으로 명화를 보며 생각하면 뇌가 말랑말랑해지고 세상 보는 눈이 푹신해지겠죠.

 

미술작품을 쉽게 접할 수 있는 팁을 알려주신다면?

 

우리나라에서 명화라고 하면 비싸고 외국에서 빌려온 전시회를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동시대 살아온 사람 작품을 명화라 생각 안 하죠. 그런데 찾아보면 곳곳에 작품이 있어요. 청계천만 해도 미국의 올덴버그의 스프링과 같이 길거리에서도 조형작품을 찾아볼 수 있고요. 현대 작가의 작품은 시립미술관 등에서 쉽게 접할 수 있어요. 『출근길 명화 한 점』을 보셔도 좋고요. (웃음) 우리나라 전시문화에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외국 유명 작가의 작품을 보려고 사람들이 몰리니까 줄 서서 본다든지 들어가도 빨리 나와야 한다든지 하는 것이죠. 프랑스에서는 전시장에서 모작해도 아무 말 안 하거든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빨리 들어가서 줄 서서 보고 나와야 하는 분위기가 자주 형성이 되기도 해서요. 모작은커녕 천천히 보기도 쉽지 않죠.

 

언제부터 미술을 좋아하셨어요?

 

어머니가 미술을 전공해서 어렸을 때부터 좋아하게 됐죠. 국문과와 미대를 고민했지만 미대를 가서 글을 쓰기로 했어요. 미대를 안 가면 평생 후회할 것 같았어요. 미대에서 학부는 금속디자인을 전공하며 쥬얼리도 만들고 큰 조형물도 제작했어요. 몸으로 작업하다 보면 이론적인 것에 목이 말라서 미술교육대학원에서는 미술사를 집중적으로 공부하게 됐죠. 교육대학원에 입학하면서 동시에 시립 미술관의 도슨트로 합격해서 전시해설에 참여했어요. 도슨트 하면서 점점 더 현대미술과 미술사를 좋아하게 됐고요.

 

 

이 세상에 안 좋은 책은 없어

 

책읽기도 즐긴다고 들었어요.

 

하루 10분, 20분이라도 책 읽는 시간을 만들어요. 카페에 들러서 본다거나, 일부러 지하철을 타서 책 보는 짬을 냅니다. 제가 워낙 극단적이라 모르는 분야는 잘 몰라요. 정치, 물리, 경제 이런 분야의 책을 몰아서 사기도 하고요. 다 읽지 않아도 쌓아놓고 좋아하죠. 젊은 사람일수록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특히 요즘은 SNS 영향으로 글도 짧아지고 그래서 생각도 깊지 않잖아요. 이 세상에 안 좋은 책은 없는 것 같아요. 좋은 독자가 좋은 책을 만들 듯, 안 좋은 책이라도 좋게 보려는 마음이 있다면 배우는 게 있어요.

 

최근 재밌게 읽은 책 소개 좀 부탁드립니다.

『돈보다 운을 벌어라』에서 감동받았던 구절이 밖에 나가서 사람을 만나야 운이 생긴다는 문구였어요. 운을 믿는 사람에게 행운이 오지. 행운이 없다고 생각하면 행운은 영원히 없다는 내용도 좋았고요. 제목이 웃긴 책인데『9할 : 걱정하는 일의 90%는 일어나지 않는다』는 모든 근심과 스트레스가 안에 있다고 말해요. 사실 이런 내용은 완전 새롭지는 않죠. 심지어 제 책에도 있을 걸요. 하지만 사람들이 잊잖아요. 세상 모든 책이 공통으로 하는 말이 있지만, 잊지 말라는 의미에서 매일 어떤 책이든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20대는 여행과 사랑에 매진했다고 책에 쓰셨는데요. 지금은 30대입니다.

 

30대는 미술과 관련한 일에 좀 더 매진하려고 해요. 글 쓰는 일도 그 중 하나고요. 20대는 방황하면서 진짜 좋아하는 일과 평생 해야 하는 일에 관해서 방향을 잡았어요. 여행하면서도 미술관을 많이 봤어요. 여행가는 목적이 미술관 보기였으니까요. 20대는 가난하니까 한 번 미술관에 가면 나오기가 아깝잖아요. 아침부터 밤까지 보면서 그때 깨달았던 게 돈을 좀 못 벌더라도 미술 공부하면서 하는 일은 재밌겠다 싶었죠. 30대 길은 더 좁혀진 거죠. 지금 고민은 저도 결혼했으니, 육아입니다. 어떤 엄마가 될 것인가가 미리 공부한다고 될 일은 아니겠지만 엄마라는 역할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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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길 명화 한 점이소영 저 | 슬로래빗
네이버 포스트 인기 연재, 『출근길, 명화 한 점』과 『아침, 명화 배달』을 한 권으로 엮은 책으로, 명화로 일상을 사유하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아트 메신저 ‘빅쏘’의 명화 힐링 에세이를 담았다. 저자는 하루하루 경쟁을 강요당하는 우리에게 ‘달려라! 뛰어라!’ 채근하지 않고 본연의 모습으로 잘 살아갈 수 있도록 따뜻하게 어깨를 다독여주고, 부모님, 형제, 연인, 배우자 등등 항상 곁에 있는 소중한 이들을 다시금 돌아보라고 가슴에 속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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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구 “지금을 놓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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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가. 누군가에게는 돈일 것이며, 다른 누구는 사회적 지위와 명예를 꼽을 수 있다.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든 간에 자신의 행복이 지금이 아닌 미래에만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이 있다. 돈을 모아야만, 사회적 지위가 높아야만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으며,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을 망각하는 것이다.

 

지난 12월 8일부터 방영된 KBS 인간극장 <사랑은 아직도> 5부작에서는 아내와 사별 후 기자 일을 그만둔 후 ‘주부 아빠’가 되기로 한 강남구 작가의 이야기를 담았다. 방송 기자로서 사회적 인정을 받으며 성실하게 살아가던 그에게 어느 날 갑작스레 다가온 아내의 죽음은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삶의 의미가 다름 아닌 “사랑하는 사람을 지금 꼭 안아주는 ‘시간’”임을 깨달은 그는 아내와의 이별에 대해 담담하게 써 내려가는 한편, 그리고 그 이후 아내의 병원 기록지를 뒤지며 의료 분쟁에 직접 뛰어들면서 그 자신과 가족의 행복에 대해 생각하고 찾아가기 위해 노력한다.

 

『지금 꼭 안아줄 것』을 읽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페이지를 잠시 접고 숨을 고르고 있을지 모른다. 이는 어쩌면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한 번쯤 만나게 될 죽음이라는 존재 때문일 것이다. 죽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였을 때, 즉 우리의 삶이 유한하다는 것을 알 때 지금 이 순간의 삶을 살 수 있다. 살아 있는 지금 이 순간의 소중함과 행복을 이야기고자 하는 강남구 작가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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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부 기자에서 주부 아빠가 되기까지

 

아들 민호와는 즐거운 시간 많이 보내고 계세요?

 

요즘 제 삶의 모토가 놀이로 바뀌었어요. 여기서 논다는 건 하고 싶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과 같이 하는 것이에요.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음식을 만드는 모든 게 놀이가 될 수 있는 거죠. 억지로 해야 하는 일이라서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제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하는 느낌이에요.

 

우리는 돈을 많이 벌고, 승진한 다음에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해서 지금을 희생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실 그때까지 기다리면 우리 다 죽을 수도 있거든요. 오랫동안 사회부 기자 생활을 하면서, 공직에 계신 50~60대 분들을 많이 봤어요. 그런데 이분들이 나중에 은퇴를 하실 때 보면 가족과 가깝게 지내지 못하는 경우가 있죠. 대화할 때를 놓쳐버린 거예요. 어떻게 보면 이 책에서 하는 이야기가 아이와 제가 나누는 개인적인 시간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의 행복한 삶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지난 2년은 떠난 아내의 빈자리를 확인한 시간이기도 했지만, 그 빈자리에 아이가 들어온 시간이기도 했다. 새벽에 일어나 아이가 걷어찬 이불을 덮어주고, 유치원 버스에서 내리는 아이를 맞이하고, 간식을 먹이고, 도서관에 가고, 가끔은 놀이방을 찾고, 어떤 날은 수영장을 동행한다. 자전거를 구르는 아이 뒷모습을 따라가며 조심하라고 외친다. 저녁을 먹을 땐 항상 아이 앞에서 밥먹기 시합을 하고, 저녁을 먹고 나서도 과일을 함께 먹는다. 잠자기 전에는 책을 읽고 책을 읽기 전에는 이를 닦아준다. 주변의 모든 자리를 아이가 차지하고 있었다. 아내는 떠났으나 아이가 찾아온 것이다. (280쪽)

 

책을 쓰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책을 내야겠다고 생각하고 글을 시작하지는 않았어요. 제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항상 뭔가를 보면 습관적으로 쓰게 됐습니다. 처음에는 아내가 병원에서 보냈을 시간이 궁금했어요. 책에도 나오지만, 아내가 병원에 있는 동안 면회 시간이 짧아서 함께 하지 못한 시간이 후회됐거든요. 그래서 아내의 진료 기록지들을 하나씩 살펴보면서 풀어갔죠.

사실 글을 쓰는 내내 울었던 것 같아요. 진료 기록지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속상하고 마음이 아팠거든요. 이때 힘들었다고 물어보셨는데, 아뇨. 이상하게도 글을 쓰면서 점점 스스로 치유 받는 기분을 받았습니다. 이게 아내를 위해서 제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일까요. 이 순간 사랑하며 살아가라는 메시지는 제 아내가 남긴 선물이었어요. 이걸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어서 블로그에 옮겼는데, 이것이 자연스럽게 관심을 끌면서 출간으로 이어지게 됐죠.

 

죽음은 삶과 아주 가까워

 

이전에는 기자 생활을 하느라, 상대적으로 가족과 함께 보낼 시간이 많이 없었죠?

 

저 역시 아내를 떠나 보낸 후에야, 내가 지금까지 무엇을 하고 있었나 돌이켜 생각해 볼 수 있었어요. 무엇 때문에 일을 했는지, 누가 나를 이렇게 만든 것이지, 나는 또 왜 그렇게 이끌려 갔던 것인지 혼란스러웠어요.

 

그래서 오랜 고민 끝에 기자 생활을 그만두고, ‘주부 아빠’가 되셨어요. 그동안 많은 고민을 하셨을 것 같아요.

 

경마공원에 있는 경주마하고, 숲 속에 사는 야생마 중에 어떤 삶을 선택하겠느냐고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숲에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야생마를 택할 거에요. 하지만 망아지가 있다면, 그 선택은 달라질 수 있거든요. 할 일만 하면 안락한 보금자리와 먹을거리를 얻을 수 있는 경마공원에 사는 경주마의 삶도 나쁘지 않다고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나 평가를 과연 포기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2년 6개월 여간 고민했어요.

 

그런데 만약 이 질문을 내 삶의 끝에서 접했다고 생각하면 답이 명확해지더라고요.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그것을 마치 자기 죽음인양 경험하게 된다고요. 아내 일을 겪으면서, 죽음이 사실 삶의 아주 가까이에 와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는 죽음을 외면하거나 감추려고 하는데, 사실 현대 사회 이전만 해도 죽음은 굉장히 일상인 행위였거든요. 내일 당장 어떻게 되는 것은 아니지만, 내가 살고 있는 시간이 유한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중요한 것들이 무엇인지를 볼 수 있어요. 그것이 제겐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었고, 숲 속에서 햇살을 만끽하면서 흙을 밟고 사는 삶을 사는 게 낫겠다 싶었어요.

 

그렇지만 무엇을 먹고 살 것인가에 대해서는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었죠. 아내를 통해 느끼게 된 것이 해야 하는 일보다 하고 싶은 일을 하라는 것이었는데요. 해야 하는 일은 기본적으로 나이, 지위에 따라 할 일을 사회의 평가에 따라 정해놓은 것이잖아요. 그러한 경쟁 구도에서 벗어나서 하고 싶은 일을 찾고 나아가서 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잘하는 일을 찾고자 했어요. 그때 제게 독서 논술 강사 제안이 들어왔고, 20여 명의 학생이 처음으로 수강 신청을 했죠. 기자로 생활하던 때와 비교하면 불안정한 생활인 것은 맞지만 그것을 포기함으로써 제가 쓸 수 있는 행복한 시간이 늘어나고 하고 싶은 일이 많아졌다는 점은 좋아요.

 

사회부 기자로 다양한 일을 경험했지만, 실제로 의료분쟁을 겪으면서 놀라고 당황하셨을 것 같아요.

 

줄곧 관찰자의 역할에 서 있다가, 당사자가 돼 보니 확실히 느낌이 달랐죠. 의료분쟁의 병원 측 대표자들은 악의가 있는 분들은 하나도 없었어요. 다만 충실히 자신이해야 할 일을 하는 분들이었죠. 이 때문에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가족들이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을 수 있는가는 배제한 것 같아요.

 

인간극장이 방영될 때 의료분쟁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많은 분들이 어떻게 알고 제게 관심을 갖고 질문을 하더라고요. 그중에는 의료분쟁을 겪으면서, 상처를 받은 분들이 적지 않았어요. 저는 제 책이 그들을 위한 하나의 사례가 되고, 도움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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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이 함께 하는 순간의 소중함

 

특별히『지금 꼭 안아줄 것』을 읽었으면 하고 바라는 분들이 있다면요?

 

책의 앞부분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제가 아내에게 했던 일들이 많이 생각나더라고요. 다시 나을 것이란 기대 때문에 그날 하루하루의 의료 수치에 대해서만 궁금해했는데, 제가 만약 환자 입장이라면 함께 하고 있는 순간의 소중함에 대해 말하는 것이 더 좋았을 것 같아요.

 

최근에 대학 수학 능력 시험이 끝났잖아요. 수험생들이나 수험생 가족들, 그리고 취업 준비생들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점수가 몇 점인지, 취업이 되었는지를 묻기 전에 ‘너와 함께 해서 좋다’ 같은 말이 지금 당장 필요한 말인데, 너무 먼 미래의 이야기만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어느덧 연말이 다가왔네요. 앞으로 ‘주부 아빠’로서의 계획을 알려주세요.

 

저는 민호와 저를 동일시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그건 굉장히 위험한 생각이거든요. 잘못하면 아이를 자신의 아바타로 만들 수 있으니까요. 민호가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응원해주려고 해요.

 

또한 제가 해왔던 일 때문인지 몰라도,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과의 소통이 늘 저에겐 소중한 일이었어요. 이 책을 통해 더 많은 분들과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고, 기회가 된다면 강연이나 대화를 이어갈 생각이에요.

 

『지금 꼭 안아줄 것』을 읽게 될 독자들에게 한 마디 해주세요.

 

저는 좋아하는 문장이나 이미지에서 글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아요. 최근에는 “삶의 소중한 것은 끝이 있기 때문이다” 라는 카프카의 말이 기억에 남아요. 어떤 것이 정말 소중하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아마 끝이 있어서일 거에요. 그 끝을 항상 생각하면서 자신의 삶을 감사하게 여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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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꼭 안아줄 것강남구 저 | 클(퍼블리싱컴퍼니클)
아내를 잃은 뒤 기자 일을 접고 어린 아들의 ‘주부 아빠’로 살아가는 전직 방송기자 강남구의 자전적 에세이. 2012년 봄, 저자 강남구의 아내는 재생불량성 빈혈 판정을 받고 혈액을 이식받던 도중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그동안 집안일은 아내에게 맡겨두고 취재현장만 뛰어다니던 사회부 기자이자 뉴스앵커인 저자의 곁에는 다섯 살 어린 아들만 남은 것이다. 그는 더 이상 미래를 위해 소중한 사람과 함께하는 지금의 행복을 흘려보내지 않기로 결심하고는, 회사를 그만두고 아내에게 못다 전한 사랑을 아이에게 실천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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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근 “인문학 공부한 사람이 동양사상에 편견 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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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이어진 사상이라고 해서 영향력이 강한 건 아니다. 한국에서는 대표적인 게 바로 유교와 불교다. 두 가르침 모두 한때 국가의 지배이념이자 생활 윤리였지만 지금은 예전만큼 강한 영향력을 미치지 못한다. 종교의 영향력 쇠퇴라는 점으로 보자면 근대로 오면서 기독교의 영향력도 줄긴 했다. 동아시아에서는 그 정도가 심한데, 아무래도 주체적으로 근대화를 추진하지 못한 원인이 클 것이다.

 

서구 지식인 사회에서는 동양은 정체된 사회라는 도식이 유행했고, 이런 관점은 동양 지식인도 내재화했다. 동양이 정체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로 동양 사상의 보수적인 면모가 강조됐다. 도전과 저항적 요소는 없고 현실 유지에만 급급했다는 비판이 정설로 굳혀졌다. 이런 생각은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쓴 막스 베버의 관점이기도 했는데, 현대인도 여기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많지 않다.

 

여전히 동양사상이라고 하면 시대에 뒤쳐졌다 생각하는 경향이 존재한다. 동양사상에 관심을 두는 사람 중에서도 심신 수양이 목적인 경우가 많다. 원래는 사회적으로 혁명적이고 도전적이었던 사상이 수양론 관점에서 접근되기도 한다. 신정근 성균관대 교수가 쓴 『동양철학 인생과 맞짱 뜨다』는 그런 오류를 바로잡으려는 시도다. 동양사상을 수놓았던 수많은 혁명적인 사상가가 원래 모습 그대로 실렸다.

 

이 책을 접하면 동양사상의 굵직한 흐름은 다 이해했다고 할 정도로 수록된 사상가가 많다. 공자, 맹자, 동중서, 주희와 같이 유학자로 분류되는 학자뿐만 아니라 이지와 같은 비주류 학자와 노자, 장자 등도 등장한다. 그외에도 맹자가 극복하려 했던 묵적과 양자 등 제자백가 대부분이 다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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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문명에도 도전과 모험은 있었다

 

‘동양철학 인생과 맞짱 뜨다’는 제목에 담은 의미가 궁금합니다.

 

문명, 문화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동아시아문명은 1,000년 넘게 장구한 세월을 이어져 왔는데요. 한 개인도 아플 때, 우울할 때, 잘 나갈 때가 있고 반대의 상황도 있어요. 그 안에 기존의 흐름을 고수하고 수호하려는 사람도 있겠지만 문제가 있을 때 도전하고 모험 떠난 사람이 있었기에 2천 년, 3천 년 지속할 수 있었겠죠. 동양철학 하면 효도, 어른에 대한 공경, 수양, 절제, 얌전하다 이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많아요. 그래서 동아시아 문명을 정체된 문화라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인문학을 공부한 분일수록 편견이 더 심해요. 여기에 반론을 제기하고 싶었습니다. 


물론 동아시아 문명에서 절제를 강조하는 흐름이 있었죠. 그렇다고 동아시아에 모험, 도전이 없었다고 하면 그것도 분명한 거짓말입니다. 지금까지 동양철학에서 잘 드러나지 않았고 무시되었던 도전의 문화를 밝히려고 했습니다. 철학자 개인에게 초점을 맞추면서 자기가 살아가는 시대와 어떻게 대결했느냐를 썼어요.
 
많은 책을 내셨는데요. 『동양철학 인생과 맞짱 뜨다』는 선생님의 인생, 학문적 여로에서 어떤 의미일까요.

 

동양철학을 좋아하고, 오랜 시간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사석에서, 강의하면서 질문을 많이 받아요. 동양철학이 서양과 다른 점이 무엇이냐, 동양문화에 도전이 있냐, 이런 질문이죠. 개인적으로 대답했던 걸 책을 쓰면서 정리해냈다고 생각해요. 저 말고도 동양철학 전공하는 사람이 이런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를 고민할 거예요. 이런 사람에게 제가 찾아낸 나름의 사고가 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특히 저와 다른 방향에 있는 사람, 서양이 우월하다 생각하는 사람에게 던지는 대답이죠. 질문과 대답을 이론화하는 출발점이라는 의미가 이 책에 있겠네요.

 

책에 수많은 사상가가 등장하는데요. 책 제목에 가장 어울리는 인물을 꼽는다면?

 

고대와 근대 한 명씩 뽑자면 근대와 가까운 사람 중에서는 이지를 꼽을 수 있겠네요. 인간은 주체적으로 살아간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관습이나 부모로부터 들은 이야기, TV나 책으로 들은 이야기를 자기 생각이라 생각하는 경향이 많죠. 이지는 이런 상황을 개에 비유했습니다. 개 한 마리가 짖으면 다른 개들도 따라 짖는 것처럼, 이미 누군가가 말한 걸 내가 되풀이할 뿐입니다. 내가 진정으로 말하는 게 무엇인지를, 어디서부터 왔는지를 근본적으로 회의한 사람이죠.
 
고대 인물로는 장자입니다. 장자가 등장했던 시대는 제국이 개인에게 끊임없이 의무를 부과하는 상황이었죠. 이 포위망에서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을까를 장자는 고민했습니다. 그물에 갇힌 물고기처럼 그 안에서의 자유에 만족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그물을 찢고 밖으로 나갈 수 있는가를 사유한 사람이 장자입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 모두가 도전한 사람이지만 고대는 장자, 근대에 가까운 사람은 이지가 가장 강렬하게 도전한 사람입니다.

 

이탁오는 50세이 이르러 진리를 이해하기도 전에 그대로 믿어왔던 지난날의 사상 관습에 제동을 걸기 시작한 것이다. 자신이 지금까지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믿고서 안다”고 한 것이니 결국 아무 것도 “모르고 안다”고 한 것이다.


그는 이를 앞집의 개가 짖으면 뒷집의 개도 덮어놓고 따라서 왈왈 짖는 형국에 비유하고 있다. 이러한 사상 관습은 사정을 모르면 행복하지만 알고 나면 진저리칠 정도로 무섭다. (305쪽)

 

한국도 우리 삶에 밀접한 앎의 재생산이 필요

 

한국사상가도 틈틈이 등장합니다.

 

서양인물, 한국인물도 등장하긴 하지만 『동양철학 인생과 맞짱 뜨다』의 초점은 중국에 있어요. 여건이 된다면 한국 편을 이어서 쓰고 싶습니다. 단군신화, 5천 년 역사다, 이런 역사의 장구성을 신화적 사고로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학문적으로 탐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말 5천 년이 있었다면, 극복할 수 없는 부분을 어떻게 극복했고, 시대에 따라서 변혁이 어떻게 이뤄졌는지에 관한 탐구는 절실히 필요하죠.

 

책에는 신채호를 잠시 언급했어요. 신채호는 우리나라가 자체적으로 이끌어나갈 이념, 방향을 설정하지 못해서 결국은 일제 제국주의 식민지 상황으로 떨어졌다고 판단합니다. 그는 우리 삶의 문제를 자생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이념, 가치를 과연 우리가 생산해내는가를 근본적으로 질문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공자가 들어오면 우리나라의 공자가 되는 게 아니라 우리나라가 공자의 나라가 되잖아요. 우리 삶에 밀접한 앎의 재생산이 필요하다는 면에서, 우리 세대가 이에 대한 답을 찾아서 제시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지 않나 싶습니다. 한국 편도 절실하게 필요해요.

 

요즘 시대의 문제는 무엇일까요. 느끼기에는 양자의 위아설이 시대정신이 된 시대 같습니다만.

 

한국의 근현대사를 간단히 살펴봅시다. 『경국대전』에서 보듯 조선시대는 건국에서부터 유교국가를 만드는 걸 목표로 했어요. 조선시대가 유교 나라 만드는 걸 표방했지만 자생적인 근대화를 못하고 식민지가 됩니다. 그 이후에 근현대사가 진행되다 보니, 유교가 근대적인 새로운 국면을 만들지 못한 원인으로 지목됩니다. 유교에 대한 차분한 비판이라기보다는 도매금으로 모든 원인이 유교에 있다고 해버렸죠.

 

서양에서는 기독교가 고대와 중세, 근대로 오면서 생명력을 상실할 때마다 종교개혁으로 그 시대와 호흡할 수 있는 새로운 종교로 탈바꿈했어요. 유교도 마찬가지로 그 시대와 맞거나 어긋나는 면이 있었죠. 유교가 역할을 못하니까 한국은 이념적으로 진공상태, 여백상태가 되면서 삶을 살아가는 기준을 개인에 다 맡겨버렸습니다. 국가적인 보호가 없는 상황에서 개인은 모든 걸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하고, 본인의 욕망을 우선으로 둬야 하는 했죠. 개인이 각자의 삶을 위해 분투해온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현대로 진입하면서 성찰의 필요성이 생기고, 요즘 와서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생겨나는 원인도 여기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공자의 가르침 중 ‘예(禮)’가 많은 비판을 받는 듯합니다.
 
예 때문에 번거롭고 귀찮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번거롭고 귀찮은 걸 안 하기 위해서 예가 존재해요. 우리가 처음으로 본 사람을 만나거나 낯선 곳으로 찾아갔다고 생각해 봐요. 모르니까 자신감이 떨어지고 망설이게 되죠. 이럴 때 필요한 게 예입니다. 내가 나 아닌 것에 어떤 방식으로 다가가는 것이냐를 규정하죠. 처음 본 사람과 만남에서는 악수, 정도가 적당하겠죠. 그런데 죽은 줄 알았던 친구가 10년만에 돌아왔다면 악수는 예가 아니겠죠. 힘껏 껴안는 게 좀 더 적절할 거예요.

 

앞세대 사람이 고민해서 내놓은 답이 예인데, 내용은 시대에 따라 바뀌어도 상관없어요. 과연 우리 삶에서 예가 없어야 할까요? 예가 없다면 사람 사이를 조율하는 공동의 문법이 없는 거예요. 무례한 사람이라는 표현에서도 보듯, 예가 없으면 오히려 불편할 거예요. 예는 쌍방에 도움 주는 공동 문법, 윤활유죠.

 

오늘날의 젊은이들은 연애를 할 때 밸런타인데이나 만난 지 100일째 되는 날 등을 그냥 넘기지 않는다. 많은 돈을 들여서라도 특별한 날을 보통 때와 다르게 보내는 행사를 치른다. 이것이 바로 고대인들이 치렀던 예와 같다. 고대인들은 사람을 만나고, 시간을 보내고, 장소에 들어서는 과정에서 ‘그냥 함부로’가 아니라 ‘절차에 따라 정중하게’ 치러야 한다고 보았다. 그것이 바로 예다.


이렇게 보면 예는 쌍방이 대칭적인 관계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상호 존중의 정신을 담고 있다. (117쪽)

 

그럼에도 조선으로 오면서 성리학이 교조화됐다는 비판이 있지 않나요.

 

문명을 받아들일 때 학습하는 시기는 피할 수 없습니다. 주희가 어느 날 갑자기 집대성한 게 아니에요. 북송오자라고 말하는 다섯 사람의 토양을 흡수하고 그 당시에 있었던 모든 학문의 흐름을 흡수한 끝에 주희가 나왔어요. 그런데 이게 조선으로 넘어오면 형성 과정이 없고 완제품 세트로 들어옵니다. 한국에서 형성되지 않은 외부 학문이 들어오면 이해하고 학습하는 데 일정 기간 시간이 필요해요. 지금도 마찬가지죠. 들뢰즈를 잘 이해했느냐, 잘못 이해했느냐로 싸우잖아요. 18세기가 되면 양명학도 생기고 실학도 생겨요. 그렇지만 학습 시기가 길게 보이니까 외국 사람이 보기에는 조선에서 나온 게 뭐 있느냐, 주희 베끼기 아니냐, 이런 인식을 하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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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를 존경하는 이유

 

본받고 싶은 사상가가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책으로 가장 많이 쓴 공자입니다. 공자가 머리가 아주 좋아서 뛰어난 천재였다면 롤모델이 못 됐을 거예요. 저 자신도 그렇게 뛰어나지 않으니까 공자가 제 롤모델이죠. 오늘날에서야 공자가 성공한 사람, 위인으로 평가하지만 실제 공자는 실패했어요. 나이 많은 아버지와 어린 엄마 사이에서 태어나서 아버지가 3살 때 죽어요. 먹고 살기 어려우니 이사도 자주 했고 하수도 처리라든지 가축을 쳐서 생계를 이었어요. 미래가 불투명한 사람이었죠. 그럼에도 학문적 관심이 있었어요.

 

학무상사(學無常師)라고 공자에게는 일정한 선생은 없었지만 궁금하면 잘 아는 사람에게 찾아가서 물어봤어요. 공자에게는 모든 사람이 선생님이자 학교였습니다. 이상을 실현하려 했지만 모두 실패했고 15년이나 망명했어요. 공자가 했던 말이 왜 간단하고 사람들이 읽으면 울림이 있느냐 하면 공자가 실패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책 읽기도 결국 미끄러지기입니다. 『논어』만이 아니라 다른 책도 단박에 의미가 파악되지는 않아요. 이해했다고 생각했는데, 다음 날 다른 구절이 연결이 안 되기도 하고요. 공자가 했던 것처럼 실패를 계속 하면서 텍스트 이해로 나아가는 거예요.

 

신인문학 운동은 무엇인가요.

 

지금 한국사회에서 인문학 열풍은 무시할 수 없는 사회적 현상이지만 이런 열풍 속에서도 대학에서 인문학과는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인문학 재생산 시스템이 붕괴되고 있어요. 인문학에 종사하는 많은 분이 정부에 책임을 묻고 이의제기를 해요. 저도 정부의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지 않다고는 생각 안 합니다. 하지만 인문학 위기를 극복하려면 인문학 스스로 노력을 해야 하죠.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게 신인문학 운동입니다.

 

실마리를 찾은 곳은 곳이 예술이에요. 예술은 초기에는 귀족과 왕정에 의존했습니다. 근대 이후에는 지원이 없어지니까 시장으로 나왔어요. 표를 사기 위해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승부를 걸었죠. 그렇게 살아남은 예술 장르가 많아요. 인문학도 마찬가지죠. 정부 지원은 인문학 발전의 좋은 물적 조건이겠지만 외부 지원에만 기대서 살아갈 수는 없어요.

 

신문학 운동의 구체적인 모습이 궁금합니다.

 

인문학은 기본적으로 말과 글, 언어적 행위입니다. 인문학은 언어에 의존하다 보니 치명적인 약점이 있죠. 긴 시간을 집중해서 듣고 읽어야 무슨 말인지 알 수 있어요. 영화는 장면 장면마다 사람의 관심을 끌 수 있습니다. 영화를 포함한 예술이, 사전 준비가 필요 없는 사람들의 관심을 붙들어 맬 수 있는 매력이 있어요. 언어가 가지고 있는 무게,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하면 지금의 인문학 열풍은 오래 지속 못해요. 인문학은 일정 정도 수준을 넘어가면 이해하기 어려운 단계에 가는데, 학교가 아니라 시민 강좌에서 어려운 내용으로 갔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이 참여하겠어요? 매번 입문만 할 수밖에 없어요. 같은 내용은 아무리 재밌더라도 반복하면 실증 나죠.

 

한계를 극복하려면 인문학이 인문예술, 인문영상과 결합해야 합니다. 문자 해독에 부담감을 가질 사람도 인문학에 관심을 가질 기회라고 봐요. 신인문학은 언어적 소통의 한계와 장점을 인정하며 예술의 다른 장점을 결합하는 거예요. 영상, 음악, 무용 등의 즉흥성과 결합한다면 지금 인문학 열풍이 한층 업그레이드되면서 좀 더 많은 사람이 공유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금도 도서관과 연합해서 공연도 하고, 강연도 하고, 다양한 퍼포먼스가 어울리는 식으로 진행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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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철학 인생과 맞짱 뜨다신정근 저 | 21세기북스
‘동아시아 사상’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쉽게 ‘수양’이나 좌선’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이를 바탕으로 “역동적인 변화가 없는 정체된 문화”라는 판단을 내린다. 이 말의 진리치가 얼마나 되는지 따져보지 않고 사람들은 “꿈과 모험으로 가득 찬 서구 문화, 복종과 인내를 말하는 동아시아 문화”라는 이분법을 도출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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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깡 “술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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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꾼’에 ‘도시’와 ‘처녀’라는 노골적이면서도 착 감기는 제목의 웹툰 『술꾼 도시 처녀들』은 올해 4월 연재를 시작할 때부터 눈길을 끌었다. 요즘 웹툰 트렌드와는 달리 펜 자국이 살아있는 그림체는 마치 친구가 그려 건네준 것만 같이 친근하다. 태블릿으로 작업하지 않고 한 장 한 장 직접 그림을 그리고 색칠하여 스캔한 정성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더 눈에 더 띄고, 친근하고, 술 맛이 배어나는 것 같았다.


작가 미깡은 ‘술꾼’을 다룬 만화에서 그저 ‘술’만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세 명의 여자 주인공을 통해 30대에 들어선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30대의 삶은 누구에게나 녹록치 않다. 세대차이, 여성에 대한 편견 등을 작가는 대놓고 비판하기 보다는 술과 함께 웃어 넘긴다. 나 대신 마셔주고, 취해주고, 그러고 나서 또 다시 하루를 살아볼 만하다고 말해준다. 또한 30대가 되어 비로소 할 수 있게 된 인생의 묘미까지 빼놓지 않았다. 이런 이야기를 4컷 안에 잘라주는 작가의 실력은 첫 작품이라는 것이 놀랍기만 하다. 아마추어 게시판에서 연재를 하다가 정식 연재를 시작하고는 그때까지 연재했던 작품을 모두 다시 그렸기 때문에 그 맛이 더 녹아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얼굴을 공개하지 않아 궁금할 독자에게 살짝 밝히자면, 꾸미처럼 동안이고, 정뚱처럼 날카롭기도, 리우처럼 순수하기도 했다. 또한 피부가 굉장히 좋아 비결을 여쭈자 술 덕분이라고 거침없이 대답하시는 센스까지 지녔다. 친구 같은 캐릭터를 합쳐놓은 모습 때문인지, 솔직하고 담담한 대답 때문인지 나도 모르게 친구와 나누는 수다처럼 인터뷰를 마쳤다. 언젠가 꼭 한번 술 한잔 하고 싶다고 덧붙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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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에 그리는 웹툰

 

다음에서 4월부터 연재하신 것 처음부터 잘 봤습니다. 이런 만화가 한국에 있다니, 감탄했습니다. 혹시 나노미아 토모코씨의 『음주가무연구소』를 보셨나요?


아 감사합니다. 그렇게 생각해주시니 기쁘네요. 『음주가무연구소』도 읽어보았습니다. 아마 저도 그걸 보고 은연중에 한국에도 술을 다룬 만화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이 들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만화를 그리기 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일반 직장인 생활을 10여년 하다가 그만 두고 프리랜서로 전환하여 인터뷰하고 글 쓰는 일을 해왔습니다. 계간지여서 보통 두 달 열심히 일하고 한 달은 쉬기 때문에 작업을 해보다가 이렇게 되었습니다. 꾸미처럼 문예창작과를 졸업했고 관련된 일을 했었습니다. 다음에서 정식 연재를 시작하고 나서는 만화만 그리고 있습니다.


처음 시작하실 때는 파격적으로 주 3회 연재를 하셨죠.


제가 아마추어 게시판에 연재를 하다가 정식 연재 제안을 받았습니다. 그 때는 그림을 깨끗하게 다시 그리는 일만 있었기에 주 3회를 할 수 있었습니다. 주 2회부터는 스토리를 짜면서 진행했었습니다.


작업은 힘들지 않았나요?


저는 타블렛으로 작업하지 않고, 밑그림 그리고 물감 칠하고 스캔하는 옛날 방식이어서 손이 많이 갑니다. 친오빠가 미술을 하는데 제 그림을 보더니 타블렛으로 하는 것보다 물감으로 손맛을 내는 편이 더 좋을 것 같다고 해주었습니다. 초창기에는 정말 잘 몰라서 A4용지에다가 그려도 보고, 종이도 울고, 여러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습니다. 포탈사이트에서 정식 연재를 시작하고 나서는 전부 다시 그려서 일정한 질을 맞췄습니다.


필명인 미깡은 혹시 밀감의 제주방언 맞나요? 어떻게 미깡으로 붙이게 되셨나요?


대학 때 아마 술 먹고 게임하다가 지은 별명인 것 같습니다. 누군가 미깡이라고 부르고 어감이 신선해서 엄청 웃었던 것 같습니다. 아 물론 제가 귤도 좋아하고요.


보통 주종이 맥주파, 소주파 등으로 나뉘는데요 작가님은 어느 파인가요? 캐릭터들은 가리지 않고 다 마시는 걸로 보이던데요.


다 좋아합니다. 많이 마시려면 저렴한 것으로 마셔야 해서 소주, 맥주 좋아하고요, 다른 주종은 기분 낼 때 마십니다. 비싼 건 없어서 못 먹습니다. 참 그렇지만 폭탄주는 안 좋아합니다.


매 편마다 진짜 안주 사진을 곁들여 주셔서 군침을 흘렸었습니다. 모두 작가님께서 다녀오신 곳인가요? 책에는 어느 곳인지 정보도 주셔서 정말 좋았습니다.


전부 다 제가 직접 가서 먹어본 곳이고, 사진도 모두 직접 찍었습니다. 연재할 때 댓글로 어떤 곳인지 문의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자신 있게 권할 수 있는 곳 30곳을 엄선해 올렸습니다.


어느 곳이 가장 추천하고 싶으신 곳인가요?


30곳은 메뉴별로 괜찮은 곳으로 꼽아 모두 추천할 만 합니다. 요즘 날씨에는 훠궈가 좋겠네요. 아주 따끈하니 추위에 좋겠습니다. 참 디자이너 분께서 아이디어를 주셔서 음식 옆에 어울리는 술들도 함께 추천해두었습니다.


예술가들 중 음주 시에 작품을 많이 하신다고 하던데요. 혹시 음주 중에 그리신 작품도 있으신가요?


아니요. 없습니다. 이걸 그리는 동안에 술을 한 방울도 안마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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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꾼 도시 유부녀?!


한 방울도 안마셨다는 말에 여러 추측과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쳤다. 그러나 제목에 ‘처녀’라는 단어 때문인지 작가가 유부녀일 거라는 건 꿈에도 생각을 못했다. 그건 필자뿐만이 아니라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렇다고 대답하면서 작가는 말문을 다시 열었다.

 

“임신한 것을 밝히지 않고 연재를 하니까 당연히 제가 싱글일거라 생각을 하고 인터뷰를 하거나 일이 들어왔었습니다. 배신감까지 느끼시는 분들도 있고요. 괜히 속이는 것 같아 지난번 인터뷰 때에는 먼저 애기 낳고 왔다고 선언을 하자 다들 이게 너무 충격이어서 다른 내용이 들어오지 않는다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나중에 말씀 드리려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제가 술 마시면서 주 2-3회씩 연재한다고 생각해주셨지만 아마추어 게시판 연재 때만 마실 수 있었고 정식 연재 때에는 이미 마실 수 없었습니다. 책 속에 임신부 에피소드가 있어요. 그건 알고 보면 제 스스로에 대한 칭찬이기도 했습니다.”

 

그럼 지금은 다시 술을 드실 수 있나요, 주량은?


네. 지금은 조금씩 마시고 있습니다. 첫 술 때 자기 주량이 안 나온다고 하는데 저는 다행히 괜찮네요. 제 주량은 컨디션 따라 다르지만 보통 소주 1-2병이 적당한 것 같아요. 상황에 따라 더 마시기도 하고요.


마치 주변에 친구들에게 있는 일 같이 느껴졌습니다. 제 주변은 30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주량이 확연히 줄어들었는데요.


주량이 줄지는 않았는데 회복만 좀 느린 것 같긴 합니다. 다행히 제 주변 분들은 아직도 간이 튼튼한 것 같습니다.


주인공들이 99학번이던데요, 혹시 작가님도?


네. 학번은 다르지만 나이가 비슷합니다. 저희는 술을 한참 마시는 세대의 끝자락인 것 같아요. 요즘 세대는 거의 안 마시는 것 같더라고요. 실제로 『술꾼 도시 처녀들』도 30대에게 가장 인기가 좋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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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미 정뚱 리우 = 미깡


각기 다른 캐릭터의 세 여자가 등장하잖아요. 왜 세 여자를 주인공으로 잡았나요?

 
아무래도 한명인 것 보다는 직업이나, 성격, 환경 등 다양한 것이 이야기도 많으니 여러 명을 생각했습니다. 두 명보다는 세 명이 구성이 다채롭기 때문에 세 명으로 했습니다. 만화 구상을 할 때, 우리나라에는 술꾼에 대한 만화도 없지만 30대 중반 여성에 대한 이야기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스다 미리 처럼 30대 여성을 다룬 이야기여서 남자 캐릭터는 넣지 않았습니다. 중간에 남자친구같이 필요할 때 등장하도록 했습니다.


정뚱, 꾸미, 리우라는 이름도 독특합니다. 그 중 두 명의 본명도 고명과 심미한으로 독특하던데요. 모델이 있나요?


세 여자에 대한 모델은 없습니다. 저는 안경이나 예전 머리스타일이 꾸미와 가장 닮아 있습니다. 그렇지만 꾸미의 촐랑대고 나불거리는 성격과는 좀 다릅니다. 저의 까칠한 면은 뚱이를, 순수하게 술을 좋아하고 여성스러운 면은 리우에게 적절히 나눴다고 보시면 됩니다.


캐릭터도 나이에 따라 변화는 없나요?


나이에 따라 서서히 변화되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합니다. 뚱이가 연예를 하고 있지만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에 대해서는 고민 중입니다. 어떤 이야기든지 재미있게 진행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무서운 동화작가 여자친구가 있는 술집은 실제로 존재하는 곳인가요?


바는 세 명을 나란히 앉혀놓기 위해 편의상 만든 공간이었어요. 그렇지만 주인의 여자친구인 무서운 동화작가 박우령은 실제로 저와 아주 친한 친구를 모델로 했습니다. 직업은 다르지만 무서운 외모와 사람을 지리게 만드는 눈빛, 이름도 비슷하게 그려냈습니다. 주변에 친구들이 이걸 보면 싱크로율 100%라고 해요.


실제로 겪은 일을 바탕으로 에피소드를 만드시나요? 개인적으로 어느 에피소드에 가장 애착을 갖고 계시나요?


경험담이 대부분이지만 각색을 많이 해서 들어갑니다. 4컷안에 반전과 재미가 있어야 하니까요. 개인적으로 가장 애착을 갖는 에피소드로는 꾸미가 혼자서 바에서 맥켈란 한잔을 마시면서 20대때에는 못했는데 지금은 괜찮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그게 많이 재미있는 내용은 아니지만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 같습니다. 또한 제가 이 만화를 통해서 독자들에게 제안하고 싶은 것이기도 합니다. 왁자지껄 마시는 것도 좋지만 혼자서 즐겨보는 것도 좋다고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처음에는 여성 공감과 술꾼 공감을 같이 다뤘다면 이제는 술꾼에 대한 공감에 대해 더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몇 회가 목표이신가요?


아이를 키우다 보니 주 1회인데도 힘이 듭니다. 일단은 지금 하고 있는 시즌에 충실해서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해보려고 합니다.


앞으로 또 계획하시는 새로운 만화나 작품이 있나요?


구체적인 건 없습니다.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있지만 먼저 지금 이 작품 연재에 충실 하려고 합니다.


좋아하시는 작가나 책이 있다면 한 권 추천 부탁 드립니다.


제가 짧은 4컷만화를 그리는 것도 단편을 좋아해서 그렇습니다. 체호프부터 레이몬드 카버, 엘리스 먼로 같은 단편작가를 좋아합니다. 좋아하는 책은 너무 많아서 최근에 읽은 만화책을 한 권 들겠습니다. 『기계장치의 사랑』『자학의 시』를 그린 일본 작가의 작품인데 찡한 느낌이 참 좋습니다.


어떤 독자 분들이 읽어주기를 바라시나요?


공감만화다 보니까 가장 잘 공감해주실 30대 여성분이 먼저 생각이 납니다. 또한 아직 30대가 되지 않은 20대뿐아니라 남자도 여자들의 삶을 엿볼 수 있지 않나 싶습니다. 또한 술을 좋아하신다면 모두가 봐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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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꾼 도시 처녀들 미깡 글,그림 | 예담
만화는 술에 대한 예찬으로만 그치지 않는다. 지긋지긋할 정도로 지질해지는 술자리 후일담, 그럼에도 욕망하고야 마는 술에 대한 애증을 솔직하게 그린다. 또한 30대 중반 여성을 압박하는 사회 편견을 맥주처럼 속 시원하게 풀어주는가 하면 그들의 말 못할 속앓이는 소주처럼 속 깊게 보듬는다. 심장 쫄깃한 공감과 침샘 가득한 술꾼들의 생활 속으로 함께 푹 빠져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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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사랑에 아플 땐 『제인 에어』 자존감을 회복할 땐 『레베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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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필요할 때』의 첫 장을 펼치기에 앞서, 독자들은 스스로에게 묻게 될 것이다. ‘소설을 찾게 되는 순간은 언제일까’. 펑펑 눈물을 쏟고 싶은 우울한 날일까, 가슴 뛰는 설렘이 그리운 무료한 날일까. 현실의 복잡한 문제들 같은 건 잠시 잊고 싶을 때일까, 그 모두를 통렬하게 깨부수고 싶은 욕망이 꿈틀대는 때일까. 이렇다 할 ‘사건’이 없다고 해도 소설은 여전히 우리 곁을 맴돈다. 오랜만에 찾아온 한가로운 휴일에, 멀리 떠나는 여행길에, 일상의 출퇴근길과 잠들기 전 짧은 순간에도 우리는 소설책을 향해 손을 뻗는다.

 

소설을 찾는 순간이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에 놀랄 즈음, 아마도 독자들은 두 번째 질문을 던질 것이다. ‘수많은 소설들 가운데 지금 나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소설이 필요할 때』는 바로 그 의문에 응답하는 책이다. 오랫동안 문학치료사로 활동해 온 두 명의 작가, 엘라 베르투와 수잔 엘더킨이 당신의 상황에 꼭 맞는 소설들을 추천해준다. 알랭 드 보통이 설립한 인문학 아카데미 ‘인생학교’에서 문학치료 교실을 운영하고 있는 이들은 『소설이 필요할 때』에서 400여 가지의 ‘소설 처방전’을 소개한다.

 

삶의 희망을 잃었을 때, 자존감이 낮을 때, 꿈이 좌절되었을 때 겪는 실존적인 문제들부터 가장 친한 친구와 사이가 틀어졌을 때, 가족에 맞설 때, 사랑 때문에 가슴이 찢어질 때 등 관계에서 비롯되는 문제들까지 두루 살핀다. 심지어 발가락을 찧었을 때, 두통이 올 때, 감기에 걸렸을 때에도 소설이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그들의 치료 방식은 참신하기까지 하다.

 

당신을 힘들게 하는 일이 스스로에게서 비롯된 것이든 타인과의 관계나 직장에서 비롯된 것이든, 그 고통이 정신적인 것이든 육체적인 것이든 『소설이 필요할 때』가 제안하는 치료 방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당신과 비슷한 상황이나 고민, 또는 반대되는 상황이나 고민에 사로잡힌 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일례로, 그들은 죄책감에 괴로워하는 이들을 위해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처방한다. “잘못을 인정해서 죄책감의 뿌리를 뽑고, 원인을 분석하고, 제대로 사과하거나 합당한 처벌을 받고 나면 당신은 홀가분하게 앞으로 나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겁쟁이가 된 이들을 위한 소설로는 “문학 역사상 가장 배짱 두둑한 인물들”이 등장하는 작품을 추천하는데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는 그 중 하나다. 엘라와 수잔은 『앵무새 죽이기』의 주인공 애티커스가 보여준 진정한 용기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겁을 먹더라도 겁쟁이가 되지 마라. 무슨 일을 앞두고 있든 그 두려움을 안고 나아가라”고 덧붙인다.

 

이처럼 『소설이 필요할 때』는 독자들에게 ‘그토록 찾아 헤매던’ 소설과의 만남을 주선한다.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가 그 소중한 인연을 지속할 수 있는 방법까지도 알려준다. 이른바 ‘독서질환’에 대한 처방전까지도 챙겨주는 것인데, 두 작가는 ‘바빠서 독서할 시간이 없을 때’ ‘책이 너무 두꺼워서 독서를 자꾸 미룰 때’ ‘독서 취향을 잘 모를 때’ ‘세상에 책이 너무 많아 기겁할 때’에도 변함없이 소설과 만날 수 있는 묘책을 알려준다. 또한 각 상황별, 분야별로 베스트 작품들을 추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눈물바람이 될 소설 베스트 10’ ‘병가를 낸 날 읽으면 좋은 소설 베스트 10’ ‘판타지 소설 베스트 10’ ‘오디오북 베스트 10’ 등을 참고해 소설과의 첫 만남을 시작해 보아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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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의 ‘인생학교’에서 시작된 문학치료


소설이 가진 치유의 힘을 전파하는 두 작가, 엘라 베르투와 수잔 엘더킨을 만난 것은 지난 16일 중앙대학교에서였다. 중앙대학교 영어영문학과의 초청으로 한국을 찾은 이들은 학생들을 위한 ‘문학 치유’ 워크숍을 진행하는 한편, 채널예스와의 만남을 통해 『소설이 필요할 때』에 담아낸 문학치료사로서의 경험을 들려주었다.

 

‘인생학교’에서 문학치료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엘라 : 수잔과 저는 캠브리지 대학교에서 함께 공부했어요. 그곳에서 처음 만났고, 소설을 통한 치유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됐죠. 시간이 흐르면서 수잔은 소설가가 되었고 저는 화가가 되었는데, 그동안 문학치료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고 서로 좋은 소설을 추천해 주기도 했어요. 힘든 일이 있을 때 치료책으로 소설을 권유해 주고요. 그러다보니 주위의 친구나 가족에게도 종종 소설을 권해주게 됐어요. 그 경험들이 쌓이면서 ‘살면서 어떤 문제를 겪든 소설이 참 효과가 좋은 치료약이구나’ 하고 생각하게 됐죠.


알랭 드 보통 작가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엘라 :알랭 드 보통 작가도 캠브리지 대학교 출신으로 우리는 그와 안면이 있는 사이였어요. 그러다가 그가 ‘인생학교’를 연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고, 수잔과 제가 문학치료를 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했죠. 보통도 좋은 생각이라면서 제안을 받아들였고요.


문학치료는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나요?


엘라 :우리의 치료는 질문지, 면담, 처방의 세 단계로 진행돼요. 먼저 질문지를 만들어 고객에게 보내는데 주로 독서와 관련된 습관이나 취향, 그리고 현재의 상황과 겪고 있는 문제에 대한 질문들이 포함되어 있어요. 그 다음에는 ‘인생학교’에서 또는 전화 통화로 다양한 질문들을 던지죠. 이 과정은 40분에서 1시간 정도 이어지는데, 고객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그리고 어떤 책을 처방해야 할지 알아보기 위한 거예요. 처방은 그 이후에 이루어져요. 어떤 책을 추천해 주어야 할지 충분히 고민한 다음에요.


처음 소설에 매혹되었던 순간을 기억하시나요?


수잔 :어렸을 때 읽은 동화책『사자와 마녀와 옷장』이 기억나요. C.S.루이스의 소설인데 옷장 안의 모피 코트를 밀어젖히고 들어가면 전혀 다른 세계로 연결되는 이야기예요. 그 작품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어요. 제게 소설은 스토리를 결합하는 매우 특별하고 독특한 방법을 의미하는데, 한편으로 소설은 두 세계가 만나는 좋은 장소이기도 하죠. 이런 모든 것들이 모여서 소설은 인간이 무엇인지를 이해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되는 것 같아요.

 

엘라 : 제가 어릴 때 부모님께서 토베 얀손의 작품을 읽어주셨는데, 무민트롤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그들은 핀란드의 숲에서 마치 마법과도 같은 삶을 살죠. 모든 것이 안락하고 안전해요. 크고 작은 해프닝이 일어나지만 무민 가족은 어떻게든 극복해 내죠. 그 이야기를 이제는 제 아이들에게 읽어주고 있어요. 아이들 방에 무민을 직접 그려주기도 했고요(웃음).


『소설이 필요할 때』안에서 소설이 우리를 치료하는 방식은 무엇일까요?

 

수잔 :문제가 다양한 만큼 그에 접근하는 방식도 다양한데요. 일단, 소설을 읽으면서 지금 자신의 상황과 공명하는 부분이 있을 수 있어요. 그럴 때는 등장인물이 상황에 대처하는 모습을 보면서 ‘아, 나도 이렇게 하면 되겠구나’ 하고 영감을 얻을 수 있죠. 때로는 소설이 에너지와 활력을 주기도 하는데요. 『소설이 필요할 때』에서는 ‘월요일이 두려울 때’는 『댈러웨이 부인』을 ‘무기력할 때’는 『돈키호테』를 추천하고 있어요. 또 다른 중요한 치료법은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거죠. 심각한 우울증으로 고통을 받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처럼 우울증으로 고통 받는 인물이 등장하는 소설을 처방해 주는 거예요.

 

엘라 :『소설이 필요할 때』나오는 증상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어요. 바로 감정적, 신체적, 상황적인 증상이죠. 감정적 증상은 우울증, 실연으로 인한 가슴앓이, 부끄럼을 많이 타는 것, 툭하면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는 것 등이 있고요. 상황적인 증상은 휴학을 하거나 이혼을 하는 것, 신체적인 증상의 예로는 다리가 부러졌을 때 등이 있죠. 소설이 부러진 다리를 붙게 할 수는 없지만 은유적인 방식으로 치료를 도울 수는 있어요. 『소설이 필요할 때』에서  ‘다리가 부러졌을 때’에 소설 『클리브』(Cleave, 니키 케멀)를 추천한 이유죠. 한편으로는 강한 충격을 주는 것이 치유에 효과적일 때도 있는데요. ‘이봐, 상황을 좀 다른 각도에서 보면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어’라고 얘기해 주는 거예요. 이렇게 각기 다른 처방을 하는 건 모두의 상황이 똑같을 수는 없기 때문이에요. 고객이 어떤 성향의 독자이냐에 따라서 치료책을 달리 처방하고 그 상황에 가장 적합한 책을 고르기 위해 고민하죠.

 

수잔 :예를 들어서 『소설이 필요할 때』에서는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에게 대프니 듀 모리에의 『레베카』를 추천하는데요. 소설의 주인공 레베카는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의 예로 안성맞춤이기 때문이에요. 그녀를 보고 있으면 왜 저렇게 자신을 비하하나 싶고, 자존감이 낮은 게 어떤 건지 한눈에 알 수가 있어요. 반대로 자존심이 강하고 대담한 사람을 보여줄 때는 배리 하인즈의『케스 매와 소년』을 추천해요. 이 소설은 주인공이 자존감을 찾아가는 과정을 잘 보여주는 뛰어난 작품이에요. 이렇게 한 가지 증상에도 두 가지 방식으로 접근할 수가 있죠. 사람들은 모두 다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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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때문에 가슴이 찢어질 때는 『제인 에어』


가장 잊을 수 없는 소설 치료의 사례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엘라 : 뉴욕에 사는 30대 남성을 치료한 적이 있는데, 그는 첫 아이의 출산을 앞두고 자신이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있을지 걱정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저는 니콜슨 베이커의 『Room Temperature』라는 소설을 추천해 줬죠. 이 소설은 한 아버지가 쇼핑센터에서 아이를 돌보면서 우유를 먹이기도 하고 아이가 어떻게 자랄지 상상하기도 하는, 철학적이면서 평화롭고 따뜻한 이야기예요. 이 책을 읽고 그 남성은 자신도 곧 아버지가 된다는 사실에 흥분과 행복을 느끼게 됐어요.

 

수잔 : 우리에게 조언을 구하는 사람들 중에는 연인과 문제를 겪고 있는 사람들이 무척 많아요. 그럴 때마다 우리가 추천하는 소설은 앤 패쳇의 『벨칸토』예요. 벨칸토는 성악 창법을 의미하는데, 이 소설의 주인공은 아름다운 오페라 가수예요. 그녀가 음악회를 여는 곳이 테러리스트에게 점령당하게 되면서 청중들과 함께 인질이 되죠. 그 중에는 그녀를 흠모하는 일본인 사업가도 있어요. 두 사람은 예술을 매개로 만나 서로에 대해 하나씩 알아가게 되죠. 『벨칸토』는 문화적인 힘과 사람들이 왜 사랑하며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아름다운 작품이에요.


『소설이 필요할 때』에 실릴 소설들은 어떻게 선별하셨나요?


엘라 : 우리가 알고 있고 좋아하는 수많은 소설들 가운데 일부만을 골라야 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과정이었어요. 『소설이 필요할 때』를 쓰기 위해서 우리가 가진 지식과 책들을 모두 동원해야 했고, 그동안 문학치료를 해온 경험을 되살려야 했죠. 무엇보다 실제로 고객에게 처방했던 책들을 소개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문학치료를 할 때와 마찬가지로) 증상에 맞는 해결책을 지닌 책들을 골랐어요. 그러니까『소설이 필요할 때』에 실린 작품들은 우리가 정말 좋아하는 것들이고, 실제로 처방을 해서 좋은 효과를 거둔 것들이에요.

 

수잔 :‘사랑 때문에 가슴이 찢어질 때’ 읽어야 할 소설로『제인 에어』를 추천했는데요. 이 작품은 연인과 헤어지고 가슴앓이를 할 때 정말 좋은 소설이다. 비록 사랑을 잃었지만 자존감 지키고 상황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만들죠. 간혹 어떤 증상들은 딱 맞는 치료책을 찾아내기 어렵기도 해요. 그럴 때는 『안나 카레니나』가 무척 도움이 되죠. 이 소설은 정말 다양한 문제들을 품고 있거든요. 『안나 카레니나』를 통해서 질투를 이야기할 수도 있고 불륜을 이야기할 수도 있어요. 엄마가 되는 법 또는 되지 않는 법에 대해서도 이야기할 수 있죠. 얼마나 다양한 시각으로 접근이 가능 하느냐 하면 ‘이가 아플 때’에도 이 작품을 읽으라고 추천했을 정도예요.


『소설이 필요할 때』의 독자들이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이야기한 처방전은 무엇이었나요?


수잔 :어니스트 헤밍웨이의『노인과 바다』는 분노를 가라앉히는데 큰 도움이 돼요. 아주 힘든 시기를 겪고 있고, 감정적으로 몹시 날카로워져 있고,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에게 이 작품을 추천하곤 하는데요. 그런 상황에서 이 소설을 읽으면 무척 위안이 되기 때문이에요. 사람들의 마음을 다독여주고 조급한 마음을 가라앉혀 주거든요.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노인과 바다』를 읽고 마음이 편안해졌고 위로를 구했다고 말했어요. 직장생활이 순탄치 않고 상사와의 관계도 몹시 안 좋았는데 퇴근해서 이 작품을 읽은 후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고 이야기한 사람도 있었고요. 긴장이 스르르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고 하더라고요.

 

엘라 :은퇴 후 삶이 지루해진 사람에게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책으로 『원스 어 러너』(Once a runner, 존 L. 파커 주니어)라는 소설을 추천해요. 1마일 달리기 선수에 관한 이야기인데요. 이 소설을 처방받은 사람은 큰 영감을 받고 매일 달리기를 하고 싶어졌다고 해요. 그리고 이 작품을 읽고 난 후부터 나쁜 음식을 끊고 몸을 건강하게 돌보기 시작했대요.

 

수잔 : 『소설이 필요할 때』를 쓰기 위해서 자료를 조사할 때 우울증에 대해서도 조사했어요. 그 과정에서 우울증 환자가 주인공인 소설이 무척 많다는 사실에 놀랐고, 그런 인물을 통해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놀랐어요. 아마도 자신처럼 깊은 우울증에 빠져 있는 사람을 보면서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에 큰 위안을 받는 것 같아요. 밀란 쿤데라의『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나 실비아 플라스의『벨 자』같은 작품들이 좋은 예죠.


이번 책에서는 사랑과 이별에 대한 문제 역시 여러 장에 걸쳐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현명하게 사랑하기 위해서 읽어야 할 소설도 있을까요?


수잔 :호주의 소설가 셜리 해저드가 쓴 『금성의 통과』를 소개하고 싶어요. 이야기는 호주 출신의 자매가 2차 대전 직후 독립적인 삶을 살기 위해 런던으로 건너오면서 시작되는데요. 언니는 전업주부가 되지만 동생은 자신의 일을 갖고 독립을 하죠. 결혼을 하지 않고도 직업을 갖고 독립적인 삶을 사는 여자들의 1세대라고 할 수 있어요. 소설의 주인공인 동생은 약혼녀가 있는 남자와 불륜을 저지르게 되는데요. 그는 상대에게 충실하지 않고 언제나 배신을 하는 반면 그녀는 강인하고 지혜로운 사람임에도 남자를 떠나지 못해요. 아마 이 소설을 읽으면 주인공이 나쁜 남자와 지금의 삶을 떠나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라게 될 거예요. 앞서 이야기한 『레베카』 역시 사귈 가치가 없는 사람과의 관계를 끊지 못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 거예요.

 

엘라 : 사랑하는 이를 잃었지만 폐인이 되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는 아일랜드 출신의 작가 니얼 윌리엄스가 쓴 『천국에 있는 것처럼』을 추천해요. 이 소설에 등장하는 남자는 교통사고로 아내와 딸을 잃었어요. 그렇지만 서서히 인생의 의미와 새로운 사랑을 찾게 되죠. 사랑하는 이를 잃고 비탄에 잠긴 사람이 이 소설에서 힘을 얻을 수 있는 이유는 등장인물과 함께 슬픔을 표출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동시에 새로운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희망도 찾을 수 있죠. 등장인물과 함께 슬픔을 토해내면서 해피엔딩을 맞게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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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맞으며 읽어야 할 소설 『래그타임』 『토끼와 함께한 그해』


타인과의 관계에서 비롯된 상처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소설이 필요할 때』에 소개된 작품들 중, 작가님의 상처를 치료해 주었던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엘라 : 제게 도움을 주었던 소설은 탐 로빈스의 『지터버그 향수』예요. 제가 무척 좋아하는 책이고,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저의 롤 모델이에요. 이 소설을 읽으며 뭐든 가능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죠. 관계에 대한 도움을 얻는 또 다른 책은 패트릭 게일의 『전시회에서 온 메모들』이에요. 이 소설에는 네 명의 자녀를 둔 화가 엄마가 등장해요. 저도 같은 직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어요. 일과 가정을 오가면서 모두 충실하게 해내는 모습을 보면서 지혜를 얻었죠. 부모 자녀 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는 소설이에요.

 

수잔 :남녀 관계에 있어서는『하이 피델리티』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소설은 나이를 불문하고 영국 남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무척 많은데요. 일종의 남자들의 ‘칙릿(Chiclit)’이라고 할 수 있죠. 주인공은 여자 친구에게 갓 차인 남자예요. 그는 과거에 자신을 찼던 여자 친구들을 만나서 사과하기로 결심하죠. 그 과정에서 실제로 그녀들과의 관계가 어땠는지, 자신은 어떤 사람이었는지 조금씩 깨닫게 돼요. 여자 친구들이 자신을 떠나갔던 이유도 알게 되고요. 실연을 당해 괴롭다면 이 소설을 읽는 동안 잠시나마 아픔을 잊을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자신을 더 이상 피해자라고 생각하지 않게 될 거고요.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되는 소설 속 인물은 누구인가요?


수잔 :모든 소설을 통틀어서 우리가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인물은 두 사람이에요. 한 명은 『앵무새 죽이기』의 애티커스 핀치인데요. 그는 억울한 누명을 쓴 흑인을 위해 싸우는 변호사예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신념을 위해서라면 온 세상과도 싸울 사람의 표본이죠. 홀로 아이들을 키우는데, 부자간의 관계도 매우 훌륭하게 유지해 나가요. 사람들의 롤모델로 손색이 없죠.

 

엘라 :『노인과 바다』의 노인은 절대 자신의 목표물을 놓치지 않아요. 자신이 잡으려고 마음먹은 그 물고기를 어떻게든 지키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이에요. 그는 바다에서 온갖 악천후와 고난을 겪는 동안에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존경스러워요. 그는 도덕적인 사람이고 소설의 마지막에서도 존경스러운 모습은 변함이 없죠. 그래서 우리는 힘든 시기를 지나고 있는 사람에게 『노인과 바다』를 권해요. 앞서 수잔이 말한 것처럼 이 작품은 분노를 가라앉히는 데에도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목적을 잃고 방황하는 사람에게도 많은 도움이 될 거예요.


『소설이 필요할 때』에서 크리스마스에 읽으면 좋은 소설로 『크리스마스 캐럴』을 추천하셨습니다. 새해 계획을 세우느라 마음이 분주한 이들에게는 어떤 소설을 추천해 주고 싶으세요?


수잔 : 미국소설로 고전의 반열에 오른 E. L. 닥터로의『래그타임』이라는 작품이 있어요. 1899년에서 1900년으로 넘어가는, 20세기에 막 진입하는 시기를 배경으로 하는데요. 여기에는 새로운 시대에 반응하는 두 가지 태도가 나와요. 첫 번째는 과거를 희구하면서 잃어버린 것을 그리워하는 거죠. 다른 하나는 당시 미국에서 벌어지는 변화를 포용하는 태도예요. 당시 미국은 새로운 발명품이 속속 등장하고, 대륙을 횡단하는 철도가 깔리고, 새로운 마술도 등장했어요. 그에 따라 과거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새 시대를 반기는 사람들도 있죠. 이 소설은 창의성과 변화의 긍정적인 면을 보고 그것을 적극 수용하는 과정을 보여줘요. 그런 점에서 새해를 맞이하며 읽을 소설로 적합하다고 생각돼요.

 

엘라 : 아르토 파실린나의『토끼와 함께한 그해』에 대한 이야기도 덧붙이고 싶은데요. 이 소설에는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우연히 토끼를 다치게 한 남자가 등장해요. 그는 토끼를 치료해주고 핀란드의 숲으로 들어가 함께 지내기 시작해요. 그 뒤로 1년 동안 온갖 괴상한 모험을 거듭하는데, 그러면서 긍정적인 힘을 얻게 되죠. 평범한 기자의 삶을 살았지만 사실은 삶에 회의를 느끼고 있었거든요. 이 이야기는 동물과 함께 생활하는 이상한 남자의 이야기인 것 같지만 정말 흥미롭고 재미있어요. 한국 독자들도 이 책을 좋아할 것 같아요.


독자들이 『소설이 필요할 때』를 효과적인 활용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세요.


수잔 : 처음부터 끝까지 순서대로 읽어나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소설이 필요할 때』는 ‘다음에는 어떤 소설을 읽을까’ 고민할 때 무척 도움이 되는 책이죠. 당신의 삶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책을 찾는 데에도 도움을 줄 거고요.

 

엘라 : 소설이 필요할 때』에 실린 증상들 중에서 자신에게 맞는 것을 골라서 처방책을 재미있게 읽어주면 좋겠어요. 소설 처방이 필요한 주변 사람들에게 추천해줘도 좋고요. 해당되는 증상을 찾아 읽으면서 뭔가를 깨달을 수도 있을 거예요. 관련된 증상을 따라가는 것도 좋고요. 이런저런 증상을 찾아보면서 관련사항을 따라가며 읽는 것도 이 책을 즐기는 또 다른 방법이죠. 『소설이 필요할 때』에는 ‘독서 질환’에 대해 다룬 코너도 있는데요. 이런 독서 질환들을 살펴보는 것도 중요해요. 집안일이 많아서 책을 못 읽거나, TV와 인터넷에 주의를 빼앗겨 책이 잘 안 읽히는, 그런 문제들을 다두고 있어요. 누구다 하는 경험들이잖아요. 이럴 때 우리는 독서기록장을 작성하거나 오디오북을 듣는 방식으로 해결하라고 조언하고 있어요. 독자들이 『소설이 필요할 때』를 통해서 새로운 독서법을 찾고 책을 더 많이 읽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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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필요할 때엘라 베르투,수잔 엘더킨 공저/이경아 역 | 알에이치코리아(RHK
『소설이 필요할 때(The Novel Cure)』는 세계적인 유명 작가 알랭 드 보통이 런던에 설립한 인문학 아카데미 인생학교(The School of Life)에서 2008년부터 문학치료 교실을 운영하고 있는 엘라 베르투와 수잔 엘더킨이 공동 집필한 책이다. 의사가 환자에게 약을 처방하듯이, 문학치료사인 이들은 소설을 처방한다. 「인디펜던트」에서 책 추천 코너의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면서, 전화나 온라인을 통해 전 세계의 다양한 의뢰인들에게 일대일로 소설을 처방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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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사인 박찬일을 처음 알게 된 건 청담동의 유명한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였다. 작은 골목 어귀에 위치해 있어 찾기 힘들었지만 연일 자리가 없었고, 겨우 예약을 해서 찾아가 보니 신기한 메뉴 이름에 전부 다 먹어보고 싶은 그런 곳이었다. 스타 셰프라는 개념조차 없었을 때도 박찬일 셰프가 가로수길의 레스토랑으로 옮기면 그곳 또한 사람이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양식이라면 소고기 스테이크 같은 것밖에 없던 시절, 문어요리나 돼지고기 스테이크 같은 정통 이탈리안 요리에 한국식 재료를 사용했기에 무척 인기가 좋았다.


셰프는 원래 직업이었던 글쓰기 또한 병행했다. 이탈리아 음식 이야기부터 와인까지 다양한 이탈리안 음식 관련 글로 군침을 돋구었다. 이탈리아에서는 개도 파스타를 먹는다는 말에 이탈리아행 비행기 표를 끊고 싶은 충동을 참느라 혼났다. 채널예스에도 <보통날의 와인>이라는 칼럼을 연재했었다. 칼럼을 읽을 때마다 와인이 마시고 싶어져 곤란했던 기억이 난다. 결국 책으로도 구입해서 와인을 마시며 단숨에 읽어내려 갔다.


그런 이탈리아 셰프가 이번에는 한국음식에 관련한 책을 냈다. 그것도 오래된 식당, 즉 노포만 다룬 책으로 제목도 『백년 식당』이다. 아이러니 한 것은 이 책에는 한 곳도 백 년이 넘은 곳은 없다. 게다가 표지에는 셰프가 냉면을 먹고 있다. 이상할 법도 한데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그는 이탈리아 셰프이기 전에 한국인이니까. 그리고 궁금해졌다. 그가 읽어주는 한국인의 맛은 어떤 맛일지. 이 책 역시 읽는 내내 우래옥은 언제 갈지, 청진옥은 언제 갈지를 생각하게 만들어 주었다. 특히 역사가 녹아내려 있는 그의 책은 단지 오래된 맛집의 소개가 아닌 매식의 역사서이자 새로운 시각에서 보는 오래된 것들에 관한 이야기다.


안 되는 식당은 음식이 맛없기 때문이다. … 맛있어서 오래된 식당, 그것을 우리는 노포(老鋪)라고 부른다. 그야말로 세계에서 식당 제일 많고 그만큼 제일 잘 망하고 그만큼 맛없는 식당이 많은 대한민국에서 수십 년을 버틴 식당이다. 그 세월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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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이자 요리사. 절박한 미각의 세대


처음 시작이 궁금합니다. 기자생활을 하다가 요리를 공부하러 이탈리아로 떠나셨습니다. 기자생활은 어떻게 하게 된 건가요? 원래 글쓰기를 좋아하셨나요? 


먹고 살려고 잡지사에서 근무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요리로 전직을 하게 된거죠. 요즘에는 전직이 흔하지만 예전에는 드물었습니다. 그 당시 잡지사는 급여도 좋았고 안정적이어서 사람들이 그만두니 이상하게 생각했었어요. (하지만 저에게는) 먼저 적성에 안 맞았고, 오래 할 만한 일이 아닌 것 같고, 스트레스가 너무 심했습니다. 글을 써서 먹고 사는 걸 하지 말자고 생각했었죠.


요리를 선택한 데 굳이 이유가 있다면, 저는 사먹는 음식에 매우 까다로웠습니다. 직장이 있던 여의도에 식당들이 많았지만 맛도 별로 없고, 성의 없고, 손님을 사람 대접 안 하는 것이 싫었습니다. 레스토랑 어원의 뜻은 음식을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휴양을 얻기 위한다는 뜻이잖아요. 원기를 얻어서 다시 일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하는데 내 돈 내고 스트레스 받는 게 불만이었습니다.


영화감독 트뤼포가 말한 ‘영화광의 삼단계’가 있지요. 그 중 마지막 단계인, ‘자기가 직접 만든다’가 된 것 같습니다. 음식을 좋아해서 블로그 같은 것을 하다가 음식점 하는 사람 꽤 있습니다. 그런 케이스와 비슷하지만 저는 취미가 아니라 생존이었습니다.


그럼 그 전에는 요리를 안 하셨었나요?


회사 다니느라 할 시간이 없었습니다. 참. 어머니께서 요리하실 때 요리’행위’를 도와드린 적은 있습니다. 칼을 쓰는 본격적인 ‘행위’ 말고 콩나물 다듬기라던지, 마늘 까기 등 아주 소극적인 참여를 했습니다. 관찰하고 요리에 대한 생각을 하면서 흥미롭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먹는 일’에 대한 갈망이 많은 세대입니다. 제가 자라던 시기는 궁핍에서 벗어나는 때로, 음식이 에너지로 존재했죠. 지금처럼 나라에서 쌀을 대주지도 못했고, 겨우 먹고 살아갔습니다. 생존, 절박한 미각이었죠. 맛있다고 느끼기 전에 일단 배가 불렀어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는 지금도 굉장히 빨리 식사를 합니다. 형제들보다 더 먹으려면 그럴 수 밖에 없었죠. 물론 우리시대에도 부자고, 잘 먹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대부분 먹는 것에 미각을 느낄 겨를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래서 제 글이 저와 유사한 체험을 한 독자들에게 공감을 받고, 저의 해석이 생명력을 가진다고 봅니다. 오히려 결핍이 생명력을 가지고 온 거죠.


먹는 걸 좋아하셨나요?


네. 좋아했죠. 요즘 세대 아이들도 그렇겠지만, 자랄 때 많이 먹잖아요. 없어서 못 먹었죠. 저의 미각이 형성되는 과정을 보면 거친 음식을 먹고 자랐습니다. 나폴레옹 제과점의 롤케이크처럼 진짜 맛있는 빵은 조금 전에 페이스북에도 올렸습니다만, 어릴적에는 동네 가게에서 파는 크림빵, 보름달빵 같은 걸 먹고 자랐습니다. 그런 기억들에 대해 글을 쓰게 되었고요.

 

요리와 글은 둘 다 매우 어렵고 전문적인 일이지요. 요리를 하면서 글도 쓰는 사람은 많이 없는 것 같습니다. 박찬일님께서는 어떤 일이 더 재미있으신가요? 어떤 쪽에 더 많은 시간을 쓰시나요?


글 쓰는 것과 요리 모두 잘 하려고 해서 잘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깜냥, 즉 능력과 시간 안에서 되는 일입니다. 글 쓰는 사람이 취미로 요리를 하는 경우가 있기는 한데요, 저는 모두 취미가 아닌 전문적으로 하려고 합니다. 둘 다 잘하려고 노력하는 단계입니다.


둘 중에 더 애정이 가는 것은 글쓰기입니다. 그런 만큼 더 부담감도 있고요. 예를 들자면 엄마가 둘인 경우이죠. 원래 엄마는 투박하고 새엄마가 좀더 좋지만, 원래 엄마에게는 좀 더 본능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글쓰기도 어렵지만 제가 가진 깜냥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직업으로써의 기간은 요리사가 훨씬 길어졌습니다. 기자로 일을 했던 것은 8년이지만 요리사로서는 16년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요리는 아직도 어색하고, 가끔 내가 요리사가 맞는가라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외국어를 배울 때 나이 들어 배우면 어색하고 표가 나고 10대 때 배운 외국어는 좀 더 자연스러운 것처럼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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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포에서 인생을 맛보다


책을 처음 받고 표지를 보았을 때 의아했습니다. 이탈리안 셰프님이 냉면을? 『백년 식당』이라 노포 기행은 어떻게 시작하시게 된 건가요?


저는 이탈리아 요리를 만드는 사람이지만 본질적으로 한국 사람입니다. 한국 음식에 대한 소견이나 태도, 관심이나 의견은 더 많습니다. 요리사이기 때문에 더 프로페셔널한 태도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리는 모두 대동소이합니다. 이를테면 스테이크와 설렁탕은 형제입니다. 물리적이나 공학적으로 제조 과정을 보면 형제입니다. 다만 스테이크는 덩어리 고기를 지져서 소스를 곁들여 내는 거고, 설렁탕은 소스를 물에 타고 고기를 더 잘게 썰어 물에 담궈 먹는 차이인 것입니다. 영양적으로 스테이크가 좀 더 고영양이겠죠. 설렁탕은 밥을 말아 먹기 때문에 탄수화물이 더 많고요. 그러나 사실 모두 형제인 음식입니다.


서양요리를 공부하면서 동양요리에 대해 다르게 보는 능력이 생긴 것 같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출판사에서 제안이 있었습니다. 요리사가 되기 전부터 알고 지낸 후배인 사진작가 노중훈씨, 기획자와 함께 이야기를 하다가 오래된 식당을 탐방하는 이야기가 나온 것입니다.

 

이탈리안 요리에 관련된 책을 쓰는 것과는 또 다른 여정이셨을 것 같습니다. 어떤 차이점이 있으셨나요?


이탈리아 요리는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아서 소개하는 글을 주로 썼습니다. 음식 한가지 단품부터 음식 문명에 대한 글까지 씁니다. 그런데 그건 외국인이 바라보는 이탈리아 음식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이탈리아 사람이 만약 제 글을 본다면 색다른 시각에서 보는구나 하겠죠. 서양음식에 대한 글은 그것을 수용하는 사람이 훨씬 적습니다. 제가 독특한 의견을 표명하더라도 반박할 사람이 훨씬 적고 관심을 갖는 사람도 적습니다. 그런데 한국 음식에 대한 저의 시선 자체는 대부분 (한국 사람들에게) 동의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대체로 제가 하는 이야기는 설렁탕이 언제 탄생했을 것이며, 만드는 법, 음식에 대한 태도, 먹는 이들의 감정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야말로 오천만을 대상으로 하는 글입니다. 그렇기에 글을 쓰는 것이기에 무척 어렵고 긴장되고 살 떨리는 작업이었습니다. 얼마나 엄중한 글쓰기였겠어요.


『백년 식당』이라는 제목은 어떻게 정하신건가요?

백 년 된 식당은 우리나라에는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백년 식당』이라는 제목은 뻥입니다. 백 년 넘은 식당이 하나도 안 나옵니다. 백이라는 숫자가 그저 아주 긴 시간이라는 뜻으로 쓰인 거죠. 


왜 우리나라에는 백 년 된 식당이 없을까요?

결정적으로 우리 정치의 역사와 식당의 역사, 즉 매식의 역사가 짧아서 그렇습니다. 자본주의로 이행하는 시작 자체가 늦었고요. 레스토랑의 형태 자체가 자본주의일 수 밖에 없습니다. 유럽 산업의 태동기에 시민 계급이 성장하면서 이동을 하고, 자야 할 곳이 생기고, 돈이 생기니 돈을 쓸 곳을 만들었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파는 곳이 필요해진 거죠. 우리나라는 그것을 못하고 식민지가 되어버렸습니다. 그 와중에 외세의 영향으로 조금은 생겨났지만 결국은 구한말, 개항, 식민시대를 거쳐왔습니다. 그 때 미미한 시작이 태평양 시대부터 한국전쟁까지 겪으며 살아남기 힘들었습니다. 한국전쟁의 시기는 식당의 공백기라고 봅니다. 피난을 해야 했고 그러면서 식당이 영업을 못했지만 그것은 기간에 치지 않습니다.

그래서 백년 식당이라면 지금 2014년이니 1915년에 생겼어야 하는데 그때 있었던 식당들은 전쟁을 견디지 못하고 무너진 거죠. 30년대에 생긴 식당이 거의 최초라고 봅니다. 심지어 식당들이 자기 역사를 헷갈려 합니다. 자료도 남아있지 않고, 그걸 보존해야 한다는 생각자체가 없었습니다. 잼배옥은 30년대에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당시 상공회의소에 등록된 이름으로 잠배옥이 있습니다. 같은 곳이라고는 하지만 증언할 자료가 없습니다.

이제야 겨우 3-40년된 식당들이 역사를 지키기 위해 자료를 모으고 있습니다. 사람들도 오래된 식당의 중요성을 이제야 생각하게 된 거죠. 우리는 역사를 지키는 것에 굉장히 형편없었습니다. 사진 또한 없어지거나 안 찍어서 없는 곳도 많습니다. 세무서에 식당들이 등록하게 된 것이 60년대부터 입니다. 심지어 서서갈비는 해방 전후에 생겨났지만 세무서에는 70년대나 되어서 등록되었습니다. 이건 그 식당의 잘못이 아니라 우리의 관점이 잘못된 거였습니다. 규모가 아주 크고 돈도 잘 버는 삼성그룹 같은 대재벌도 70년대 후반에나 역사를 정리하면서 자료를 모았습니다. 그러니 식당은 어떻겠어요. 먹고 사느라 바빴죠. 취재하면서 정말 신기했습니다. 아 우리는 역사의 가치를 소중히 생각 안 하는 민족이구나 하구요.  


백 년이 될 수 있는 식당은 어떤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나요?

우선 맛있어야 겠죠. 대중의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사술이 없어야 합니다. 주인이 그 업을 뚝심있게 지켜야 해요. 그 업을 좋아하거나 싫어하고는 관계 없습니다. 왜는 중요하지 않아요. 사장이 돈 좀 벌었다고 외제차 끌고 돌아다니면 그 식당은 오래 못 갑니다. 


백년 식당이라는 건 굉장히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결과론이지만 가장 오래된 식당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를 보면 되는 겁니다. 대중의 기호가 맞아야 하고, 또한 사장이 덕이 있어야 합니다. 직원들이 눈치 안보고 오래 있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게 정말 좋은 조직 아닐까요? 월급을 다른 곳보다 더 주던지, 정년퇴직이 없다면 여긴 정말 좋은 곳이구나.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할 것 같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러한 식당들은 반자본주의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본주의는 해고를 비교적 자유롭게 할 수 있고 이걸 미덕으로 보는 관점도 존재하잖아요. 오래된 식당들은 그것의 정반대에 있습니다. 뭔가 시사하는 바가 있는 거죠. 75세 노인이 모는 택시를 타면 불안한가요? 그냥 재미있게 타고 안전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전 그래서 회사도 그런 노인들이 있으면 더 잘될 것 같습니다.

사람들이 『백년 식당』을 읽으면서 오래된 것의 가치를 발견해주었으면 합니다. (식당뿐만 아니라) 사람도 말입니다. 책에서 ‘오래된 식당’을 화석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왜 오래된 것이 좋은 것인지, 왜 가치가 있는 것인지 봐주면 좋겠습니다. 심지어 일하는 사람도 노인입니다. 노인복지를 담당하는 분들이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게 나가야 합니다. 노인 쓰는 게 돈도 더 잘 벌고, 일도 더 잘합니다. 그런데 (정년이 넘어가면) 최저 임금도 못 받습니다. 노인들은 지혜가 있는 게 아니라 노동 능력이 있습니다. 


저도 취재를 하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노인이란 무엇인가 생각하면서 여러 가지 관점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출산율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노인이 일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노인 인구가 늘어났는데 그들 때문에 국가의 활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하면 안됩니다.

읽어보면 음식점의 비법 같은 자세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렇게 자세히 취재하시기 힘드셨을 것 같은데요.

신기하게도 비결을 감추는 집이 한곳도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모두들 여유가 있는 겁니다. 베낀다고 되는 게 아니거든요. 저도 레시피를 물어보면 다 알려줍니다. (그대로 한다고 해도) 절대 그대로 안 나옵니다. 비결을 숨기는 건 꼼수가 있을 때 숨깁니다. 어떤 집은 미원을 쓰면 쓴다고 하고, 안 쓰면 안 쓴다고 합니다. 사람들의 관점 자체가 미원에 민감하니까 언급을 안 했지만 정말 솔직히 다 알려주십니다. 기술은 있겠지만 모두 비밀이 아닙니다. 취재할 때 갑자기 들어갔는데도 부엌이 아주 깨끗하고 사술이 없었습니다. 


비결이라면 굉장히 단순합니다. 좋은 재료와 오랜 노하우를 바탕으로 압축된 공정입니다. 예를 들어 설렁탕을 끓일 때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검증된 압축된 작업을 합니다. 좋은 재료로 간단하게 만드는 것이 비결이라면 비결입니다.  


맛은 절대 가치가 없다. 꿩 잡는 게 매다. 어떤 맛이 인이 박인 채 기억에 저장되면, 사람들은 그 맛을 최고로 친다. 맛은 보수적이다. 각자의 어머니 손 맛이 전부 최고가 아닐 텐데도 사람들은 어머니의 맛을 찾는다. 익숙한 것에 대한 안심이다. 그런 원리가 할매 국밥에도 적용된다. 사람들이 좋아하던 맛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 더 잘하려고 생각하지 않는 것. 그 욕망을 억제하는 것! 김 씨의 말에 그 요체가 들어 있다. (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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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18곳을 다루어 주셨는데요 평양 냉면이 2곳, 갈비가 2곳, 탕(육개장, 국밥, 설렁탕) 등이 7곳으로 가장 많네요. 탕(국물요리)를 선호하는 한국인의 식습관을 보여주는 건가요?

네. 예전부터 탕을 만드는 집이 많았고 거의 다 한식입니다. 탕이 오래 살아남은 건 조리 공정이 단순하기 때문일 겁니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많이 먹었고요. 나이가 들면 탕을 먹기 때문에 새로운 손님들이 계속 창출이 되었겠죠.

밥을 국물에 말아서 먹는 탕이라는 음식을 즐기는 건 세계적으로 우리나라가 유일합니다. 우리처럼 탕문화를 붙들고 많이 먹는 나라는 없습니다. 일본과 중국은 매우 적고 기타 아시아 국가도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이 변하면서 옛날만큼 인기는 못합니다. 요즘에는 먹을 것들이 많아지고 새로운 음식이 대체합니다. 예를 들어서 예전에 기자 생활 때 마감을 하고 나면 청진동에 가서 해장국에 소주를 먹었습니다. 편의점 같은 게 없었죠. 그런데 요즘은 야식 먹자고 하면 편의점가서 사발면이랑 소시지 같은 거 사다 먹습니다. 편의점이 탕을 밀어낼 줄이야 누가 알았겠어요. 청진옥에게는 사발면이 적인겁니다. 여기에서 먹거리 역사의 변천을 볼 수 있는 겁니다.


집필을 하면서 가장 많이 드셨던 음식점은 어느 곳인가요?

우래옥에 대여섯 번은 갔네요. 취재하러 간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먹으러 갔습니다. (부산에 있는) 할매 국밥을 네 번이나 갔고 취재를 가장 많이 했습니다. 아무래도 저에게는 돼지국밥이 생소하기 때문에 그 문화를 보기 위해 더 많이 가게 되었습니다. 


연남 서서 갈비에서 굳은 살에 대한 이야기에서 찡한 경외감이 전해졌습니다. 다른 분들도 비슷한 굳은 살이나 흔적이 있으셨나요?

저도 다시 생각해봐도 찡하더군요. 책에 담지 않은 이야기도 많습니다. 서서갈비 사장님께서는 정말 힘든 어린 시절을 보내셨었습니다. 부산의 할매 국밥 할머니는 너무 피곤해서 항상 화장이 떠있고, 눈이 너무나 슬펐습니다. 일년에 나흘- 추석 이틀, 설날 이틀만 쉬십니다. 아침에 나가서 오밤중에 집에 가는 게 그 분의 삶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삼분의 일은 일을 하고, 삼분의 일은 내시간을 보내고, 나머지는 잡니다. 그런데 할머니는 삼분의 이를 식당에 있고 나머지 삼분의 일 동안 자기 일을 하고 잠도 잡니다. 식당이 그 분의 삶인 겁니다. 사람들은 자기 것이니 그러겠지 라고 쉽게 말할지 몰라도 그분은 그냥 다른 것을 할 줄 모르는 겁니다. 그분을 볼 때 가슴 아팠고 미안했습니다. 우래옥의 김지억 전무님께서는 아직도 지팡이를 짚으시고 자리를 지키고 계십니다. 독자들에게 그분이 계실 때 우래옥에 한번이라도 더 가는 것이 살아있는 역사를 목격하는 거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11시 반에 리셉션 하시는 태도. 꼭 보시면 좋겠습니다.

이 책을 어떤 분들이 읽어주길 바라시나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책도 있지요. 이것과도 상통하는 것이 있습니다. 노인의 나라는 있더군요. 노포입니다. 노인이 잘할 수 있는 노동이 진짜 많습니다. 서양에서는 노인이 합니다. 접객도 여든살이 넘은 웨이터들이 하구요. 많은 사람들이 노인의 가치를 재발견 하기를 바랍니다. 노인복지에 관련된 일을 하시는 분들도 보시면 좋겠습니다.


젓가락으로 먹는 이탈리안 요리


새로운 보금자리 <몽로>는 어떤 곳인가요? 독자들께 설명 부탁 드립니다.

<몽로>는 부담 없이 친구들과 밥도 먹고, 술도 먹고, 아무나 올 수 있는 곳입니다. 격식도 없고요. 양식하면 대부분 부담을 가지고 심리적으로 불편하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음식도 이탈리아식 음식이지만 가급적 한국식 재료를 사용해서 편안하게 젓가락으로도 먹을 수 있습니다. 포크와 나이프 같은 도구가 사람을 억압하기도 합니다. 젓가락으로 먹으면 왜 안되나 생각했습니다. 서양의 비프커틀릿, 슈니첼이 일본에서 돈까스가 되어 젓가락으로 먹듯이 그런 양식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새로운 음식 문화를 자기 마음껏 경험하면 좋겠습니다. 젓가락으로 파스타도 먹고 어떤 양식을 먹어도 이상하지 않은 유일한 레스토랑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는 모두 개인적이며, 일방적인 존재다. 그건 음식에 있어서도 그렇다. 당신이 사랑하는 음식에 대해 자부하라. 필자는 그렇게 말한다. 음식은 한 사회의 반영이다. 거기에 선과 악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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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식당박찬일,노중훈 공저 | 중앙m&b
백년식당에서는 맛에 대해 엄격한 두 남자가 고단하지만 기꺼운 발품으로 찾아낸 우리의 100년 식당을 소개한다. 아직 100년은 안됐지만 100년 동안 그 맛이 지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셰프와 여행작가가 맛깔스런 이야기와 미각을 자극하는 사진으로 소개한다. 단순한 식당 이야기에서 더 나아가 역사와 문화와 향수가 있는 음식보다 더 맛있는 이야기로 자리매김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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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혜 “제가 동심을 강조하는 이유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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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정원』을 만나기 전까지 컬러링북이 뭔지 몰랐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컬러링북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는 휴대폰 컬러링이 먼저 생각났다. 컬러링북은 휴대폰과 별로 상관이 없다. 작가가 그려놓은 그림이 있고, 독자가 그 그림을 색으로 채워나갈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게 컬러링북이다.

 

컬러링북이 많은 독자로부터 호응을 얻으면서 시중에 나온 종류도 많다. 그중에서 송지혜 작가가 그린 컬러링북 『시간의 정원』은 몇 가지 특별한 점이 있다. 첫째, 스토리가 있는 컬러링북이다. 둘째, 원래 존재했던 작품을 책에 넣어서 작품 완성도가 높다. 셋째, 책에 있는 그림을 직접 만나볼 수 있다.

 

『시간의 정원』 이야기는 복잡하지 않다. 부엉이 시계를 선물받은 소녀가 밤에 부엉이의 안내를 받아 시계 속을 여행한다는 줄거리다. 송지혜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이 들어간 설정이면서도 어렸을 때 누구나 한 번쯤은 상상해봤을 법한 이야기다.

 

송지혜 작가는 2009년부터 작품 활동을 시작하면서 섬유 아티스트로서 여러 차례 전시를 해왔고『시간의 정원』은 첫 책이다. 이번 책에 들어간 작품을 실제로 만나 볼 수 있는데, 전시는 1월 4일까지 빌라수향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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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 해소에 좋은 컬러링북

 

스토리가 있는 컬러링북, 신선한 형식입니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뒷이야기를 공개해주세요.

 

컬러링북과는 상관 없이 옛날부터 동화책을 내고 싶었어요. 2009년부터 조형작품을 만드는 작가 생활을 해왔는데, 제 작품의 주제는 언제나 동심이었어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스토리가 계속 연결되는 작품을 만들어 왔죠. 출판사로부터 컬러링 북을 만들자는 제의가 들어왔고, 현재까지 해왔던 작품 이미지들을 모아서 도안으로 풀어낸 것이 『시간의 정원』이에요.

 

요즘 컬러링북이 많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컬러링북의 매력은?
 
동화책은 독자들이 읽고 느끼고 감동하는 데서 끝나잖아요. 컬러링북은 거기서 한발 더 나아가서 독자들이 직접 칠함으로써 자기 걸로 승화해서 재해석할 수 있어요. ‘인터렉티브 아트’라고 작가와 관객이 소통하며 함께 작품을 만들어나가는 분야가 있는데, 컬러링북도 그런 종류의 하나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해요.

 

컬러링북의 장점으로 안티-스트레스, 그러니까 스트레스 해소에 좋다는 의견도 있던데요.

 

작업을 하는 것이 저에게 명예나 물질적인 풍요로움을 가져다 주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계속 작업을 해올 수 있었던 이유는 ‘몰입’으로부터 오는 쾌감 때문이에요. 작업에 빠지다 보면 아침에 시작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면 밤이 될 만큼 집중하게 되요.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작품을 완성하고 나서 얻는 쾌감도 크고요. 컬러링북이 ‘안티-스트레스’라는 이름으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을 수 있는 이유가 작가들만의 전유물이었던 창조적인 행위로부터 오는 쾌감을 일반인들도 부분적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스토리 있는 컬러링북 『시간의 정원』

 

『시간의 정원』이 다른 컬러링북과 다른 점은?

 

제가 처음 컬러링북 작업을 시작할 때는 시중에 책이 몇 권 없었는데, 지금은 70여 종이 나왔더라고요. 제 책만이 가지고 있는 특징이 확실했기 때문에 굳이 다른 책을 의식하지는 않았어요. 다른 컬러링북들은 자잘한 패턴 위주로 그려져 있어 지루할 수 있다면 『시간의 정원』은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이루어진 게 가장 큰 장점이에요. 동화책처럼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길 때 마다 주인공 소녀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연결되는 컨셉이죠. 또한 제가 작품활동을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오랜 시간 공들여 만들어온 그림들이기 때문에 유행따라 급하게 찍어낸 컬러링북보다는 조금 더 완성도가 있지 않을까 싶고요. 책 속에 나오는 도안들이 실제 조형작품으로 존재하는데, 가로수길 ‘빌라수향’에서 1월 4일까지 전시하고 있으니 『시간의 정원』의 동화 속 세상을 전시장에서 직접 체험해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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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라수향에서 전시 중인 작품

 

소녀가 시계 속으로 들어가서 여행한다는 이야기인데요. 이런 이야기를 생각한 구체적인 사건이 있었나요?

 

어렸을 때 했던 유치한 공상들로부터 영감을 받고 있어요. 어렸을 때는 어른들로부터 분리된 자기만의 공간을 만들고 놀기도 하잖아요. 집 구석구석에 있는 소품을 보면서, 엄지 공주가 되어서 작은 소품 안으로 들어가 나만의 은신처를 만드는 상상을 했죠. 어느 날 아버지가 이국적인 뻐꾸기 시계를 사서 오셨어요. 어린 소녀의 눈에는 정말 신비롭게 보였죠. 어떻게 작동하는지가 궁금했어요. 저 안에 태엽을 감고 있는 요정이 있을 거라는 상상을 했던 기억이 나요. 이런 기억으로부터 시작하여 시계를 컨셉으로 잡게 되었어요. ‘뻐꾸기’ 시계였지만, 밤을 상징하는 부엉이를 대신 등장시켰어요. 그렇게 해서 자정이 울리면 부엉이가 소녀를 찾아와 함께 시계 속 세상으로 여행하는 이야기가 펼쳐지게 되었죠.

 

이야기 배경이 이국적인데요. 미국에서 보낸 어린 시절 경험이 반영된 걸까요.

 

아버지가 여행을 좋아하셔서 한 달에 한 번 꼴로 여행했어요. 어렸을 때 많은 곳을 돌아다니며 시야를 넓힐 수 있었지만 다른 데보다 제가 살았던 샌프란시스코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파스텔빛 빅토리아풍 목조 건물들이 아기자기하고 예뻐서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부족함이 없었죠. 책에 나오는 소재는 어린 소녀의 눈으로 봤던 샌프란시스코에 관한 추억들로 가득해요. 피어39, 기라델리 초콜릿 공장, 케이블카, 회전목마도 그렇고요.

 

동화책에는 잘 보이지는 않지만, 찾아내면 재밌는 요소가 있기도 한데요. 이 책에도 그런 요소가 있는 듯합니다. 독자가 좀 더 재밌게 읽고 색칠할 수 있도록 힌트를 주실 수 있나요?

 

앞뒤 페이지 간의 연결고리들이 있어요. 앞 페이지에서는 소녀가 시계를 들여보는 장면이 있다면, 바로 다음 페이지에는 시계 내부가 나온다는 식으로요. 또 페이지를 넘기면 건물 내부와 외부가 연결되기도 해요. 이런 의도를 알고 칠하면 더 재밌지 않을까 싶어요.

 

작가님이 독자라면 어떤 색을 칠할 것 같아요?

 

제가 좋아하는 색을 칠하겠죠. 도안 전체를 연하게 파스텔 빛으로 칠하는 분들이 많은데, 비비드한 색을 포인트 포인트에 넣어주면 더 효과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어요. 너무 욕심내서 전체를 강하게 칠해도 부담스러울 거예요. 색연필 종류는 많지 않아도 좋아요. 저도 36색을 쓰는데, 색연필도 물감처럼 색을 섞어서 쓰면 더 풍부한 색감을 낼 수 있거든요.
 

 

어른으로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동심을 유지해야

 

전시는 오래 했지만 책은 처음이잖아요. 첫 책이 나오니 느낌이 어때요?

 

작업만 하는 것도 벅찰 때가 많은데 저 스스로 제 작품을 알려야 하는 것이 힘들었어요. 홍보를 잘하는 젊은 작가들이 많지만 저는 그런 면에서는 부족했던 것 같아요. 제가 원했던 것은 대중과의 소통이었는데 많은 사람들에게 제 작업을 보여주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어요. 그런데 책을 내고 보니 짧은 기간에도 파급효과가 어마어마한 것 같아요. 막혔던 소통의 구멍이 뻥 뚫린 듯한 느낌이에요. 각종 SNS에 올라오는 많은 대중들의 리뷰를 보면서 제 작품 내용도 더 발전시킬 수 있을 것 같아요.

 

작품에서 '동심'을 많이 강조하잖아요. 작가님이 동심을 강조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물론 지금이 어릴 때보다는 성숙하고, 지식도 조금 더 많죠. 발전한 건 인정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편견이 생겨요. 어느 순간 제가 기성세대가 되어 가고, 가르치는 학생들로부터 꽉 막혔다는 소리를 듣기도 하고요. 어렸을 때는 커튼이 쳐져 있는 창문 넘어의 세상을 보는 눈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 시야를 잃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때 그 무궁무진했던 다채로운 시야를 잃어버리지 않고 유지하는 게 어른으로 행복하게 사는 데 중요하다 생각해요. 그래서 작품으로 동심을 자극할 수 있는 요소를 계속 찾으려 노력하죠.

 

어떤 계기로 미술을 좋아하셨나요.

 

어릴 때부터 그림밖에 그릴 줄 몰랐어요. 어머니 아버지는 싫어했죠. 제가 미국에서 살다 왔기 때문에 두 분은 제가 영어로 대학을 갔으면 좋겠다고 하셨지만 고집을 부렸어요. 어렸을 때 겉돌았는데, 예체능으로 대학을 보내준다면 열심히 하겠다고 해서 설득했어요. 대학 가서까지도 제가 밤새 작업하고 고생만 하는 모습을 보시고는 부모님은 마음에 안 들어 하셨어요. 첫 개인전 때 제 작품이 팔리는 걸 보고 그때서야 아버지가 처음으로 눈물을 흘리셨어요. 금융가인 아버지는 이윤 창출이 안 되는 직업을 싫어하신 분인데, 그림으로도 제가 자립할 수 있다는 사실에 뿌듯해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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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에 섬유를 많이 쓰는 게 특징인데요. 스스로 섬유 아티스트라고 표현하셨잖아요. 섬유 아티스트에 관해 구체적으로 알려 주신다면.

 

요즘은 점점 재료에 대한 경계가 허물어져 가고 있기 때문에 ‘섬유 예술’을 한 분야로 말하기 힘들 수도 있어요. 과거로 치면 자수, 직조, 염색과 같은 것을 섬유 예술이라고 했는데 지금은 기법에 한정시키지 않고 더 폭넓은 의미로 접근하려고 해요. 사실 제가 하는 작업은 서양화가가 하는 일과 별반 다르지 않아요. 제 머릿속에 있는 상상들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거죠. 단지 특징이 있다면, 섬유적 요소를 그림 안에 흡수시킬 수 있다는 점이죠. 섬유는 기본적으로 따듯한 느낌이 있고, 가변성이 있어요. 딱딱하지 않고 움직이는 특징이 있어서 표현하기가 즐거워요. 패인팅만 하는 것보다 천을 융합하면 훨씬 더 재미있는 효과가 나오는 것 같아요. 단점이라면, 기법적으로 봤을 때 공이 훨씬 많이 들어간다는 것?

 

작가님의 예술관을 말씀해주신다면.

 

현대미술은 가면 갈수록 더 심오한 시각적 자극을 추구하고 있어요. 점점 웅장해지고 복잡해지는 가운데 신선한 것을 찾기 위해 예술가들은 파격적이고 충격적인 행위들도 서슴지 않아요. 이러한 사조에 따라 예술은 점점 어려워지고 일반 사람이 공감하기가 쉽지 않아요. 저도 미술을 전공하고 미술사학도 공부했지만, 현대미술을 읽어내는 게 쉽지 않아요. 이러한 시대 가운데 저는 많은 사람들이 쉽게 공감할 수 있고 마음 속에 푸근하게 새길 수 있는 조형언어를 찾고 싶어요. 동심의 세계는 누구나 한 번씩 겪어 봤기 때문에 현재는 그 주제에 집중하고 있어요. 저는 아직 지식과 경험의 한계가 있는 젊은 작가이기 때문에 표현의 난관에 부딪칠 때가 많아요. 50대에는 좀 더 성숙한 조형언어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2015년 계획은?

 

여태까지는 주로 작업실에 홀로 앉아 작업에만 몰두해왔어요. 소통을 원했지만 막상 그것을 하기 위한 구체적인 시도들이 부족했어요. 이번 책을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제 작품이 알려지게 되었고 독자들로부터 그림에 대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었어요. 저의 취향이 강하게 배인 작품만 고집해온 것 같은데 이번 기회에 다른 사람들의 동심의 세계에 대한 눈이 조금 열리게 되었어요. SNS를 통해 좀 더 적극적으로 세상과 만나고 표현에 대한 시야를 넓힐 계획이에요. 그러다 보면 2015년에는 동화책 한 권 낼 수 있는 기회가 오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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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정원송지혜 저 | 북라이프
어른들의 색칠 공부가 지친 현대인의 마음을 치유하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건강한 취미 생활로 자리 잡으면서 다양한 컬러링북이 서점가에 쏟아져 나오고 있다. 꽃, 나무, 벌레, 동물 등을 모티브로 한 패턴 위주의 단순한 색칠놀이에 지루함을 느꼈다면, 이제는 예술가의 작품과 동화적 감성이 만난 국내 최초 스토리텔링 컬러링북 《시간의 정원》을 만나 볼 차례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피곤한 일상을 잠시 접고, 다채로운 색감을 이용해 《시간의 정원》을 완성해보면서 잊고 있던 동화적 감수성을 깨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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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책으로 만나는 이동진 김중혁의 빨간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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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책방 카페 문을 완전히 닫고 난 자정 무렵, 아무도 없는 3층 의자에 앉아 책읽기에 골몰하다가 문득 정적을 의식하고서, 빈 공간에 흐르던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의 <사일런스 앤 아이(Silence and I)> 가사를 훑어본다. 우린 서로 닮아 있어요. 침묵과 나. 우리는 계속 이야기를 해야 해요. 그 밤의 작고 서늘한 평화를 당신께 보낸다. 우리 함께 읽어요. -이동진

 

책을 다루는 콘텐츠는 많다. ‘책에 관한 책’은 물론이거니와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책에 관한 방송 역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었다. 여전히 베스트셀러와 유명인 추천 도서들은 중요한 이야깃거리다.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도 자주 만난다. 허나 그와 무관하게 책 읽는 인구는 더 늘어나지 않는 것 같다. 읽을 시간이 없다고,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고도 한다. 바쁜 사람들에게 어떤 책을 읽으면 좋은지 어떤 책이 어떻게, 왜 좋은지 친절하고 재미있게 알려주는 곳 어디 없을까. 혹시 이런 고민을 하고 있거나 하는 지인이 있다면 먼저 이곳을 소개해주기 바란다. 책에 대해 심도 있으면서도 유쾌하게 이야기하는 단연코 핫한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책방’.

 

팟캐스트를 이야기할 때 ‘이동진의 빨간책방’을 빼놓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매회 평균 15만(이상) 다운로드 기록, 104회 방송(2014년 12월 현재), 소개된 책 베스트셀러 진입 등 그 외에도 다양한 수식어가 있겠으나 워낙 많이 이야기된 내용이니 생략한다.

 

『우리가 사랑한 소설들』은‘이동진의 빨간책방’에 소개된 책들 중 소설 일곱 편을 골라 실은 책이다. 청취자에게 큰 호응을 얻었던 외국 소설 일곱 편을 엄선했다. 이언 매큐언에서 밀란 쿤데라까지 소개된 책 목록 하나하나가 주옥같다. 두 저자 이동진과 김중혁은 책에서(그리고 방송에서) 마치 ‘책 읽는 방법’을 독자에게 전수하는 듯하다. 소설의 구조, 인물의 성격, 대사 하나하나에서 의미를 찾고 검증한다. 문장을 곱씹고 의미를 되새겨 마침내 작품의 숨은 의미가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치열하게 이야기한다. ‘내가 뽑은 문장’으로 자신이 읽은 책에 그은 밑줄을 들어 보여주기도 하고, 소설을 넘어 영화와 소설 이론 혹은 작가의 뒷얘기까지 들려주며 이야기를 풍성하게 한다.

 

“샐린저가 세상을 떠났을 때도 이런 일이 있었대요. 많은 사람들이 샐린저를 추모하는 의미에서 각자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는 장면을 영상으로 찍어서 유튜브 같은 데 올린 거죠.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각자의 홀든 콜필드를 읽는 장면을 떠올리면 뭉클해져요. (198쪽)”

 

『우리가 사랑한 소설들』은 말과 글 사이 어디쯤에 있는 책이다. 때문에 영화평론가이자 자타가 공인하는 애서가 이동진과 소설가이자 다양한 칼럼으로 독자를 만나고 있는 작가 김중혁, 이 둘이 만들어내는 환상의 호흡이 더욱 생생하게 느껴진다. 

 

말로 발화한 소재들을 글로 다듬고 보충하는 과정에서 저자들은 새로운 경험을 했다고 말한다. 독자들이 책을 통해 그들의 경험을 함께 느꼈으면 좋겠다고도. 사인회와 공개방송을 앞둔 빨간책방 카페에서 ‘빨책’의 안주인, 영화평론가 이동진과 소설가 김중혁을 만났다. 방송만큼이나 화기애애하고 유쾌한 대화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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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가 참 마음에 드는 책

 

책이 참 예쁩니다. 콘텐츠도 중요하지만 책이라는 물성이 주는 매력이 분명히 있는 것 같습니다. 책이 마음에 드는지요?

 

김중혁(이하 ‘김’) : 전반적으로 화이트에, 미니멀한 느낌의 그런 모던한 모습을 잘 표현한 것 같고요, 괜찮은 것 같아요(웃음). 책을 봤을 때, 이 계단을 둘 다 좋아했습니다. 처음에는 계단인 줄 모르고, ‘카메라 렌즈인가? 아니면 책을 쌓아 놓은 건가?’ 하고 이야기하기도 했어요. 계단이라는 것이 함축적이에요. 거기에 의미 부여를 하자면 이것이 우리가 밟아온 계단 같기도 하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만족했습니다. 그리고 흰색이라서 좋은 것 같습니다. 빨간색이 아니라서 좋은 것 같아요.

 

빨간색은 왜요?

 

김 : 김은주 편집자가 강력하게 주장을 했어요. ‘빨간책방’인데 빨간색이 들어가면 안 된다, 절대. 그런 센스가 있는 분이라서(믿었고요), 잘 나온 것 같아요. 특히 녹색을 정말 잘 쓴 것 같아요. 여기서 빨간색 썼으면 별로였을 텐데, 녹색을 정말 잘 쓴 것 같아요. 
 

팟캐스트 방송이 무려 100회가 넘었습니다. 소개된 책들이 새로 베스트셀러로 오르는 일도 있었고요. 팟캐스트 ‘빨간책방’의 인기비결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이동진(이하 ‘이’) : 신뢰도요. 100회 넘게 하고 있는데요. 사람들이 들으면서, 최소한 ‘이 사람들이 사(私)가 있는 사람들은 아니구나, 다른 속셈이 있어서, 사실 다른 이유가 있는데 그걸 책으로 위장해서 말하지는 않는구나, 정말 그 책을 좋아해서 자기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하는구나.’라는 것은 대부분 믿어주시는 것 같아요. 그것은 굉장히 큰 미덕이라고 생각합니다.

 

김 : 일단 균형 같아요. 균형이라는 게 한쪽으로, 극단적으로 몰아붙이지 않고 중앙에서 좌우를 보려고 노력한다는 것이잖아요. 그런 점에서 편안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신뢰도 더 쌓이는 것 같고. 그리고 그런 편안함 때문에 들으면서 많이 주무시는 것 같아요(웃음). 
 
이 :저희 궁극적인 목표입니다(웃음).


책은 팟캐스트로 들을 때와 또 다른 매력이 있습니다. 청취자와 독자로서의 태도도 완전히 달라지는 것 같고요. 두 분 다 책도 쓰셨고, 방송도 하고 계신데 이야기를 할 때와 글을 쓸 때 어떻게 다른가요? 어떤 쪽이 더 어려운지 궁금합니다. 
 
김 : 저는 말을 잘 못하는 사람인데요. 서문에도 썼지만 제가 말을 잘할 수 있었던 것은 구 할이 이동진 선배 덕이에요. 정말 농담이 아니고요, 이끌어주시는 걸 잘하세요. 방송에서 제가 잘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잘해 보이는 면이 확실히 있습니다. 제가 진짜 혼자 말을 하라면 잘 못하거든요. 강의 같은 거 해보면 혼자 동분서주하고 이상하게 다른 얘기만 하다가 ‘어?’ 이러고 끝이 나요. 그러다보니 확실히 곁에서 이끌어주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방송에서 이동진 선배는 끌어주면서 정돈을 하고, 저는 흐트러뜨리는 역할을 하는데 그런 게 서로 잘 맞는 것 같아요.

 

이 : 저는 상대적으로 좀 더 분석적인 면이 있어요. 중혁 작가님은 통찰이 담긴 이야기를 하시고요. 저는 어쨌거나 아웃사이더, 외부자의 시선으로 보잖아요. 제가 작품을 쓴 건 아니니까요. 반면에 중혁 작가님은 내부자의 시선으로, 동료들의 시선으로 보게 되는 거니까, 그런 점은 차이가 있습니다.

 

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글 쓰는 게 힘듭니다. 백 배 쯤 힘들 거예요. 글은 문장을 다듬는 것부터 시작해서 단어 사용, 문장의 흐름과 리듬 이런 걸 다 생각해야 하니까요. 저희가 팟캐스트 방송에서 대략 약간의 메모들을 준비는 하지만 말을 하는 건 다 즉흥적인 거예요. 말을 하다가 무언가 격발이 되지 않으면 그건 안 해도 되는 말이고요. 생각하지 못했던 말이 나올 수도 있어요. 하지만 글이란 건 그렇지 않잖아요. 말을 할 때는 농담도 많이 하고 그렇지만요. 말은 내가 백을 준비했을 때 삼십만 해도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뭐가 전달된다고 생각하는데 글을 그렇지 않아요. 글은 정말 사력을 다해서 써야죠. 에세이든 소설이든 영화평론이든 말이에요. 그래서 글 쓰는 건 보람도 크지만 굉장히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저는 그래서 중혁 작가가 놀라워요. 이분은 글 쓰는 게 즐겁대요.


이동진 작가님은 책이 나올 때만큼 좋을 때가 없다고 하셨는데. 그런 의미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힘들게 작업한 책이 나왔을 때의 만족감은?

 

김 :글을 쓰는 것은 고통스럽죠. 말하는 게 훨씬 쉬워요. 그렇지만 만족도는 훨씬 덜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글을 쓰고 나면 굉장히 힘들지만 끝내고 난 후의 만족도가 말하고 났을 때보다 훨씬 커요. 말은 자책하게 되는데 글은 절대 자책하지는 않습니다. 그런 차이가 있어요. 그래서 말하는 게 늘 두려운데 그 두려움을 잘 커버해주시니까 좀 편하게 하는 거죠. 제가 어떤 말을 해도 받아주고 컨트롤 해주시니까요. 그런 점에서 믿고 말을 할 수 있는 상대가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저는 책을 낼 때 좋기도 한데 반반인 것 같아요. 책을 딱 받으면 정말 좋은데, 심란하게 돼요. 여러 번 책을 내다보면 둔감해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늘, 언제나 그렇더라고요. 딱 받아들면 기쁜 마음과 함께 ‘심란하다, 몇 번째 책이지?’ 이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이 : 저는 첫 책, 두 번째 책 이렇게 나올 때는 부끄러웠거든요. 근데 점점 뻔뻔해지면서, 좋아요. 그게 잘 썼다는 것이 아니고 ‘아, 그래도 내가 헛살지 않았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거예요. 정말 글을 쓰고 싶지만 글 쓰는 것을 힘들어하거든요. 그런데 어쨌건 ‘결과물이 또 이렇게 눈에 보이는 결실로 나왔구나.’생각하면 좋습니다. 이런 면에서 책 나온 순간이 정말 좋아요.


“소설을 쓰면서 우연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해요. 사실 우연이라는 말이 겁나요. 현실에서는 더 심한 우연이 있기도 하지만 소설에서 ‘지나친 우연 아니야?’라고 지적받는다면 그 우연을 쓸 수 없거든요. 소설은 필연성이 중요하니까. 다시 말해서 우연을 최대한 필연적인 것처럼 만들어 보이는 게 소설 쓰기죠.”(99쪽)

 

김중혁만 생각했다

 

김중혁 작가가 소설을 쓰는 입장에서 책을 읽어내는 대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것을 또 이동진 평론가가 잘 정리해주시고. 그런 점이 듣는 사람들, 이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더 매력적이지 않을까 싶어요. 

 

이 :다양하게 이런저런 활동을 하다보면 상대방이 굉장히 훌륭한 사람이라도 궁합이라는 게 있어요. 능력의 궁합이라는 게. 제가 갖고 있는 능력이 제가 1이고 그 사람이 1일 때 어떤 사람을 만났을 때 합쳐서 1.4 쯤 되는 궁합이 있고요, 똑같은 1인데 어떤 사람을 만나면 4.5쯤 되는 엄청난 궁합이 있어요. 근데 이 궁합은 후자 쪽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본적으로 저와 굉장히 다른 사람이에요, 중혁 작가님은. 제가 절대 가질 수 없는 것들을 갖고 계시고요. 대화를 할 때 같은 얘기를 두 사람이 나눠 하는 게 아니라 다른 얘기를 서로가 쌓아가는 느낌이거든요. 제가 X축으로 간다면 (김중혁 작가님은)Y축으로 가서 그 좌표평면 안에서 재미있는 그림이 그려지는 식으로요. 그렇게 누구도 의도하지 않은, 그런 대화하는 재미가 있어서 방송을 백회가 넘도록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현재까지는 매너리즘이 없어요. 그만해야겠다,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어요, 현재까지는. 

 

김 : 책 읽을 때 처음에는 열심히 읽고 그랬었는데요, 자료도 찾아오고요. 그 재미도 물론 있지만, 요즘은 읽다가 어떤 부분을 딱 만나면 이제 이동진 선배를 좀 아니까, ‘이거 어떻게 얘기할까?’ 그게 굉장히 궁금해져요. 이 부분에서 뭔가 나와 의견이 다를 것 같다든지, 색다른 의견을 얘기할 것 같다든지, 이 부분과 이 부분을 어떻게 정리할까에 대해서 궁금해 하면서 오게 됩니다. 그걸 듣는 재미가 있으니까 저도 일단은 지겹지가 않은 것 같아요. 말을 하면서 오히려 청취자 입장에서 듣고 있는 느낌이 들 때가 있고 그런 면에서 재미있는 것 같아요.
 
굉장히 이상적인 관계입니다.

 

김 :말을 하니까 이상적으로 보이지. 사실 잡음도 많고, 술자리에서 싸우기도 하고 그렇습니다(웃음). 

 

이 :사실은 퀴퀴하죠. (웃음)


팟캐스트를 함께 하기로 했을 때 이렇게 궁합이 잘 맞고 말이 잘 통하리라고 예상했나요?

 

이 : 처음 할 때 2차, 3차 생각 안하고 중혁 작가님만 생각했었어요. 안한다고 하면 어떻게 할까에 대한 대비책도 없었어요. 더 웃긴 건, 당시 중혁 작가를 잘 몰랐어요. 그냥 독자로서만, 중혁 작가의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로서만 알고 있었고, 방송 한 번, 술자리에서 지나가면서 한 번, 그렇게 본 게 전부였거든요. 그렇지만 그때 받은 사람의 느낌이라는 것도 있잖아요. 그렇게 했는데 제가 운이 굉장히 좋은 거죠.

 
『우리가 사랑한 소설들』은 방송에 소개했던 책들 중 일곱 권을 실었어요. 이 작품들을 꼽은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 일단 말씀 드리면, 빨간책방에서 다루는 모든 책은 이동진 선배가 고릅니다. 출판사도 관여를 안 하고 저도 관여를 안 해요. 모든 선택을 혼자 해서 이 책들이 이렇게 방송하는 자리로 나왔던 거예요.『우리가 사랑한 소설들』을 낼 때는 반응이 좋았던 것들을 고려해서 상의한 후 의견을 나눠서 싣게 됐습니다.


그렇다면 제일 먼저 소개한 『속죄』는요?

 

이 :제 뜻이기도 하고. 출판사 담당 편집자 뜻이기도 해요.

 

김 :제일 반응이 컸으니까요.


『속죄』는 두 분이 굉장히 작품에 매료돼서, 좋아해서 소개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김 : 책 따라 운명 같은 것도 있는 것 같은데요. 『속죄』는 말하기 좋은 책이기도 했어요. 책이 워낙 좋았고, 그 책에 대해서 말하기도 좋았고요. 둘의 의견이 갈리기도 하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죠. 다른 책들도 그만큼 좋았지만, 어떤 책들은 좋은 것에 비해 말을 덜할 수밖에 없는 책들이 있었거든요. 『속죄』는 책의 질과 이야깃거리들이 잘 맞아서 시너지가 난 것 같습니다.

 

이 :우리가 다룬 모든 책 중에 『속죄』가 최고의 소설은 아니에요. 물론 굉장히 훌륭한 소설이고 저는 이 작품이 걸작이고 명작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여기 명작 아닌 소설이 어디 있겠어요? 그런데 예를 들어『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다룬다고 해봅시다. 사실 그 책은 문학적인 평가가 끝난 책이잖아요? 이미 고전이 된 책이고요. 쿤데라 같은 훌륭한 작가의 가장 많이 읽힌 베스트 책이라고 흔히 이야기하잖아요. 그것에 우리가 아무리 새로운 이야기를 해봤자 발견의 느낌 같은 건 없겠죠. 다만 다르게 볼 수는 있겠지만요. 그런데 『속죄』 같은 경우는, 이언 매큐언이 굉장히 훌륭한 작가지만 상대적으로 젊은 작가고, 국내에서 그리 명성이 있는 작가가 아니었어요. 그런 상황에서 『속죄』라는 소설에, ‘아니 이렇게 좋은 소설이 있었단 말이야?’ 하는 느낌을 사람들에게 줬던 것 같아요. 『속죄』는 굉장히 이성적인 사람이 쓴 소설이에요. 그런 면에서 말로 풀기가 상대적으로 쉬운 소설이었어요. 굉장히 깊은 반면에요. 타이밍이 맞은 거죠. 그렇게 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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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 추가하고 싶은 작품이 있나요?『우리가 사랑한...』리즈로 계속 나와도 좋을 텐데요.

 

이 :저는 항상 양으로 승부하는 사람이라 이번에 일곱 개가 적다고 느꼈어요. 우선 더 보충하고 싶었어요. 『속죄』가 대략 60페이지라고하면 더 늘려서요. 사실 내용이 많이 빠진 거예요. 덜 중요한 것들은 빼서 굉장히 잘 압축이 됐지만 저는 다, 낱낱이 말하고 싶어 하는 타입이거든요. 그러니까『속죄』만 해도 예를 들면 150 페이지 쓰고 싶은 거예요. 그런데 현실적으로 그렇게 하면 『속죄』를 보지 왜 그 책을 보겠어요?(웃음)  또 이 책이 작품을 열다섯 개 정도 다루면 좋았겠죠. 저는 그랬어요. 그런데 상업적인, 책의 부피라는 게 있을 테고 그러려면 책마다 내용을 반씩 줄여야 되잖아요. 저는 그건 또 못 보니까 일곱 개밖에 못 들어간 거예요. 그렇게 치면 이 책은 당장이라도 세 권 더 나올 수 있어요.

 

소설만 해도 못 다룬 책이 얼마나 많아요. 『개구리』도 못 다뤘죠. 이 작품은 반응이 상대적으로 덜 좋았거든요. 하지만 이 소설도 훌륭한 소설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중국 소설을 안 읽어서 그렇지, 중국 현대문학 수준이 상당하다는 걸 보여주는 소설이에요. 노벨문학상도 받았고요. 또 한국 소설이 못 들어갔어요. 예를 들어 이번에 한 『칼의 노래』라든지, 오늘 다루게 될 『당신들의 천국』이라든지 이런 작품들 넣고 싶거든요. 너무 많죠. 쿤데라의 『무의미의 축제도 있는데 쿤데라 작품을 두 개 넣을 수는 없었으니까요.

 

김 : 저는 사실은 이게 이야기의 베스트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는데요. 오히려 다른 것들이 조금 더 드러났으면 좋았겠죠. 말한 것처럼 『다섯째 아이』그런 작품이 사실은 상대적으로 사람들이 덜 좋아했지만 이야기가 더 깊었던 것도 있거든요. 그런 부분도 약간 아깝기도 한데, 내자면 다 낼 수도 없죠. 하지만 그런 상업적 고려는 안하고 있기 때문에, 저희가 책을 내기 위해서 이걸(방송을) 하고 있는 게 아니니까 방송에 충실하고 있어요. 책이 나오는 건 부차적인 문제라서요. 저는 그냥 코앞에 닥친 방송만 걱정할 뿐이지 책으로 어떻게 묶일지는 편집자들의 몫이겠죠.

 

처음에 사실은 이 기획에 반대했었어요. 말로 다 한 것들을 굳이 책으로 내야 하느냐, 그것에 대해서 반대를 했었는데요. 여러 가지 얘기를 하다 일단 해보자, 고쳐나 보자고 고쳤죠. 그런데, 이상한 게 있었어요. 말로 한 것들을 글로 고치니까 날아가려고 하는 말들을 붙잡아서 묶어 놓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참 희한한 작업이었어요. 이런 작업을 한 적이 없었으니까요. 물론 고치고 싶은데 고치지 못하는 것들도 있어요. 방송에 남아 있기 때문에 고치지 못하는 것들, 하지만 그래도 고쳐야 되는 것들,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서 말과 글이 얼마나 다른지 한 번 느꼈어요. 그리고 ‘생각보다 괜찮구나. 이렇게 묶어 놓으니까 내가 생각했던 그런 책은 아니구나.’를 느껴서 충분히 낼만한 책이었다고 나중에 생각하게 됐어요.


그런 뒷이야기가 있었군요.

 

이 : 이 책은 말과 글의 경계선 상에 있는 거예요. 기본적으로 말이라는 머테리얼(material)이 있었고, 그 머테리얼은 우리가 글이 될 거라고 처음에는 생각 안했던 머테리얼입니다. 그래서 저도 사실은 책이 나왔을 때 어떨까 궁금했어요. 이 책이 얼마나 훌륭한 책인지, 이 책이 얼마나 가치가 있는 책인지는 독자들이 평가해 주시겠죠. 다만 저희가 보기에는 충분히 보람이 있는 그런 작업이었어요. 사실 말을 그대로 옮겨서 풀어쓴 게 아니에요. 재구성 됐다고 말할 수도 있고, 보완한 부분도 있어요. 그렇지만 완전히 새로운 걸 창작해서 넣을 수는 없죠, 말이 기본적으로 있으니까요. 그런 면에서 굉장히 흥미로운 작업이었어요. 게다가‘우리가 사랑한 논픽션들’도 해야 하잖아요? 예를 들자면 말이에요. 그런 식으로 이 책이 어느 정도 반응이 있으면 개인적으로 저는 내고 싶은 생각이 있죠.


“저는 소설 속 조르바만 놓고 보면 문학사상 손꼽힐 만큼 잘 만든 캐릭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현실에서 그런 사람을 만난다면 정말 하루도 못 견딜 것 같아요. (249쪽)”

 


소개된 책 일곱 권 중 무려 네 권이 영화화된 작품입니다(『속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파이 이야기』, 『그리스인 조르바』). 또 『호밀밭의 파수꾼』처럼 영화화는 되지는 않았지만 영화적으로 책을 읽은 대목도 눈에 띄고요. 아마 콘텐츠의 힘이겠죠. 이 외에 영화화를 기다리는 소설이 있나요?

 

이 :중혁 작가 소설들이죠. 저는 중혁 작가의 몇몇 단편들이 굉장히 영화적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좀 더 느슨한 각색으로 영화화되면 좋겠죠. 왜냐면 문학은 문학의 영역이 있으니까요. (영화화)하면 굉장히 좋을 것 같은 작품들 많아요. 『1F/B1 일층, 지하 일층』만 해도 그런 단편이 여러 개가 있고요, 최근에 나왔던 구동치 장편도(『당신의 그림자는 월요일』) 잘되면 프랜차이즈도 될 거예요. 계약 잘하셔야 될 걸요(웃음). 한국 영화 쪽에 계신 분들이 책을 잘 안 읽으세요, 솔직히. 그러니까 그 분들이 읽으면 한국 소설 중에서도 영화화될 것들이 많이 있어요. 웹툰이 굉장히 많이 영화화되는 이유 중 하나는 사람들이 소설을 안 보고 웹툰만 보고, 영화 제작자들이 소설을 안 보고 웹툰을 보기 때문이에요. 그것이 중요한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데요, 영화 쪽에 계신 분들 중 한국의 문학들을 계속 팔로우업 해서 보는 분들의 퍼센티지가 얼마나 되겠어요? 있겠지만 말이죠. 근데 그 분들 중에 웹툰을 계속해서 보는 분들(의 퍼센티지)은 또 얼마나 높겠어요? 그러다보니까 웹툰으로써 함량 미달인 것들을 심지어 고치지도 않고 그대로 영화화해서 문제가 되는 경우도 생기잖아요? 품질 면에서요. 굉장히 안타깝죠. 영화화되기 좋은 텍스트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중혁 작가 책, 아직 한 번도 영화화된 적이 없어요. 저는 굉장히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김 : 내년 4월에 단편집이 나옵니다. 거기에 좋은 단편들이 있어요(웃음).


저자들은 시종일관 화기애애했다. 방송 같은 공적인 만남 때문이 아니라 정말로 서로에 대한 신뢰와 호감이 크다는 사실이 느껴졌다. 그래서 인터뷰 도중 이런저런 농담도 자연스럽게 나눌 수 있었을 것이다. 사인회를 앞두고 진행된 인터뷰라 시간이 넉넉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것은 두 사람이 쌓은 오랜 시간이 바탕에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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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싫은 사람, 예의 없는 사람

 

정말 찰나지만 계속 되뇌고 싶은, 무한반복하고 싶은 순간들이 누구에게나 있겠죠.”(39쪽, 김중혁) 라고 했습니다. 두 분에게 혹시 그런 순간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김 :기본적으로 무한 반복되는 거 싫어요. 그냥 빨리 빨리 지나가버리는 게 좋아요. 아무리 좋은 기억이라도 무한 반복되는 건 지옥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반복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반복하고 싶은 거지 반복되는 건 아닌데요, 반복해서 생각하려고 하는 것들은 있겠죠. 예를 들면 초심?(웃음) 자기가 놓치지 말아야 할 어떤 순간들에 대한 것들을 반복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반복되진 않죠. 늘 반복하려고 할 때마다 다른 의미일 테고요. 그런 의미에서 말을 했던 거예요. 저는 반복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뭐든지 간에. 아마 고통스럽겠죠.

“어떤 사람이 좋아하는 것보다 싫어하는 것을 알면 그 사람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쪽이에요.”(179쪽, 이동진)라고 하셨는데요. 그 부분이 우디 앨런의 영화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에 나온 스칼렛 요한슨의 대사(“저는 좋아하는 건 없고 싫어하는 것만 많아요.”)도 떠오르게 했어요. 두 분이 싫어하는 건 무엇인가요? 독자들에게 두 분을 좀 더 잘 알 수 있는 기회를 주세요.

 

이 : 싫어하는 것은 너무 많아요. 책 한 권, 브리태니커 같은 거 쓸 수 있어요(웃음). 그런 거 차치하고 사람으로만 얘기하면, 꼬인 사람. 꼬인 사람을 너무 싫어합니다. 그 사람이 똑똑하건 아니건 관계없이 꼬인 사람은 일상에서 절대 만나고 싶지 않아요. 그런 사람들 너무 많이 만났어요.

 

김 : 저는 예의 없는 사람이요. 비슷한 얘긴데, 예의 없는 사람 굉장히 싫어해요. 예의라는 게 광범위한 얘기긴 한데요. 이기적인 사람이 예의 없는 사람일 수도 있고요. 또 상대방에 대한 배려가 없는 그런 사람들이 싫어요. 그런 사람들에게 굉장히 화가 나서 갑자기 욱할 때가 있어요.

 

이 : 그런 면에서는 둘이 비슷하네요.


두 분 모두 굉장히 섬세하게 책을 읽는다 느낌이 들었습니다. 책 읽을 때 특별한 습관이 있나요? 책을 많이 읽지 않는, 보통의 사람들에게 주는 팁 같은 게 있을까요?

 

이 :원래 저는 잡생각이 많고, 분석적으로 생각하는 편인 것 같아요. 제가 평론가로, 기자로 ‘영화’라는 텍스트를 20년 정도 다뤘는데요, 그러다 보니까 상대적으로 느슨하게 ‘아, 좋다’로 끝내지 않는, ‘왜 좋을까’를 스스로 계속 물어보는 그런 작업을 계속 해왔어요. 경우는 다르지만 그런 태도 자체는 책에 대해서도 다르지 않거든요. 스타일 자체가 책에 메모를 많이 한다거나 동그라미를 쳐놓는다거나 이런 식의 것들을 많이 해요. 그렇지만 메모를 어디 쓰려고 하는 것도 아니에요. 그냥 떠오르는 대로 적어요. 옛날에는 그렇게 하지 않았거든요. 옛날에는 책을 깨끗하게 봤어요. 그런데 요즘은 책을 완전히 학대하면서 보고 있네요. 제가 읽는 책을 보여드리고 싶은데. 그런 식으로 생각이 뻗어나가는 것을 스스로 컨트롤 하지 않아요. 그게 제 말이나, 책에 쓰여 있는 것을 언급하는 방식에서도 제 독서법을 따라가는 거겠죠.

 

김 :저도 책 지저분하게 봐요. 예전에는 사실 그렇게 꼼꼼하게는 안 봤어요. 방송을 하면서 꼼꼼해진 게 있습니다. 꼼꼼하게 보지 않으면 말을 못하니까 메모를 계속 해야 해서 책에다 메모하는 습관이 생겼고요. 책은 역시 지저분하게 봐야 하는 것 같아요. 예쁘게 보는 것보다는 메모도 하고 접기도 하고 그게 좋은 것 같아요. 소설을 사실 잘 안 사게 되잖아요. 그런데 소재 같은 것도 떠오르는 것들을 책에다 적고 이러면 굉장히 좋거든요. 자기가 떠오르는 것들을 막 적어놓으면 그게 확장돼서 다른 일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전 최대한 지저분하게 봤으면 좋겠어요. 지저분하게 보고, 지저분해져서 또 사고.


2014년을 마무리하는 시기입니다. 올해의 책 세 권을 꼽는다면요?

 

김 :저는 소설리스트(http://sosullist.com/)에 했습니다. 다른 분들의 목록도 있으니 와서 봐주세요(웃음). 제가 꼽은 올해의 소설 세 권은 『무의미의 축제』, 『성소녀』, 『언더 더 스킨』입니다.


이 : 저는 너무 많아서 못 꼽겠네요. 진짜 어려운 일이에요. 김중혁 작가님 꼽으신 거 좋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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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한 소설들이동진,김중혁 공저 | 예담
이번에 예담에서 출간한 우리가 사랑한 소설들은 그동안 [이동진의 빨간책방]에서 메인 테마 도서로 다루었던 80여 권의 책 중 청취자들에게 가장 큰 호응을 얻었던 외국 소설 7편을 엄선하여 방송 내용을 다시 글로 옮겨 정리하고 보충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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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최인석 소설가가 그리는 22세기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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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노동은 1년 단위도 길다고 생각하여, 1달 단위로 계약된다. 핵폐기물이 유출된 서해는 죽음의 바다이다. 의식주를 보장하는 SS 울트라돔에서 주인은 시민이 아니라 거대 감시체제다. 이렇듯 『강철 무지개』가 그리는 22세기 대한민국은 통일 한국이라는 설정 외에는 모두가 어둡다. 통일 한국이라는 설정도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는 정도의 설정으로, 희망적인 징후와는 거리가 멀다.

 

『이상한 나라에서 온 스파이』, 『연애, 하는 날』의 저자 최인석이 12번째 작품을 발표했다. 제목은 『강철 무지개』. 이육사 시에서 따온 말이다. 이육사를 옥죈 게 현실이었다면, 소설가 최인석을 갑갑하게 한 것도 역시 현실이다. 그러한 갑갑함은 미래를 그린 소설로 탄생했다. 최인석 작가에게 던져진 화두는 “지금 추세가 계속되면 22세기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이 될까”였다고 한다. 그만큼 『강철 무지개』는 SF적 요소를 띄면서도 현실참여적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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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이야기에 집중하고 싶었다

 

한국에서 중견작가가 SF소설을 쓴다는 게 흔하지는 않습니다. SF소설을 쓰기로 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처음부터 SF 소설은 아니었습니다. 처음 이 이야기를 구상한 건 아마 10여 년 전일 겁니다. 두 배달부 얘기였어요. 중단편이었고요. 이들이 배달하는 물건 중에 가끔은 신장이라거나 간, 특수혈액 같은 것이 있고, 이런 일은 대개 시간을 다투고, 그러니 앞뒤 볼 여유 없이, 신호등 같은 거, 교통법규 같은 거 위반하면서 날아다녀야 하고, 그러다 보면 사고도 생기고, 다툼도 생기고…… 뭐 이런 얘기를 구상했지요. 아직 막연했지만 그런 얘기를 통해서 당대의 세계가 동시대인에게 요구하는 어떤 물질적인, 폭력적인 삶의 방식, 같은 것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었고, 그것이 각인에게 반성적인 인식이나 자의식 같은 것이 거의 없이 우리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그런 얘기를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런저런 다른 일이 생기고, 또 뭔가 찜찜한 생각도 있고, 해서 미뤄뒀지요.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이들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가 좀더 구체화되었습니다. 그 결과가 『강철무지개』라 할 수 있겠네요.

 

SF를 도입한 것은 이야기를 좀 단순화시켜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오늘날을 시간적 배경으로 이야기를 전개하려면 남북 문제라거나, 이명박 박근혜 정부 문제라거나, 노동문제, 특히 비정규직 문제 등을 어떤 식으로건 정리해야겠는데, 그래선 이야기가 난삽해지거나 지루해지고, 게다가 내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집중하기가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야기 속의 세계를 다소 단순화시키기 위해 SF를 도입했습니다. 물론 내가 예언자나 점쟁이는 아니니까 미래를 얘기하려 한 것은 아니고요. 오늘날의 세계, 이 추세가 지속된다면 어떤 지경에 이르게 될 것인지를 다소 극단화시켜 이야기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12번째 작품인데요. 이 작품은 소설가님의 문학 여로에서 어떤 의미인가요.

 

본격적인 SF를 하나 구상하고 있다면 좀 입빠른 얘기가 될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목표로 본다면 징검다리라 할 수 있을 겁니다. 이 소설 가운데 사기꾼이 엉터리 우주선에 승객을 태워 날려버리는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승객의 생사에는 아무런 관심없이 우주여행을 상품으로 그런 사기를 치는 거지요. 사실 오늘날 우주 개발이니, 우주 탐험이니 하는 것들이 어떤 지점에서는 이런 사기와 비슷한 지점이 있다고 보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인류가 달에 간 적이 없다는 음모론이 있지요. 물론 타당성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만, 그런 얘기가 끈질기게 사람들을 사로잡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겁니다. 우주개발이나 연구가 결국은 우주무기 경쟁, 그리고 장차는 우주의 분할점령, 지구가 겪고 있는 온갖 재난을 우주로 확대재생산하는 전초전 같은 것으로 전락하고 있지는 않은지 하는 걱정이나 불안감 같은 것들 아닐까요. 우주 개발의 명분과 실제, 우주 개발의 이면에 자리잡은 어마어마한 무기산업, 그것이 인류에게 초래할 재앙 같은 것, 이런 우려가 그 음모론의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과학의 발전이 1% 외의 99%에게는 상대적 박탈감과 좌절감을 안겨주고 있다는 사실도 지적해야겠군요. 그 가운데 우주 개발 같은 것이 가장 대표적이고요. 과학과 그 발전이 일부 계급, 일부 국가가 이익을 취하기 위한 방법으로 동원되는 한 그런 우려나 불안감은 계속되지 않을까요. 사적 이익이 아니라 인류 공동의 이익을 위한 과학이 되고 발전이 된다면 그런 우려는 절로 사라지게 되리라 봅니다.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이를테면 타임머신을 개발한들 인류 공동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몇몇 사람만이 그걸 이용할 수 있게 되면 그들은 이익을 위해, 아마도 어마어마한 이익을 위해 자신들의 과거, 그리하여 미래를 더 교활하게, 더 섬세하게 조작하고, 나아가서는 인류 공동의 과거까지도 조작하고 왜곡하는 짓을 망설이지 않을 것 같지 않습니까.

 

하늘을 날아다니는 자동차, 비행기 엔진까지 찍어낼 수 있는 3차원 프린터, 옥수수로 연료를 만들어내는 기술 같은 것들, 물론 재밌고 유익하겠지요. 하지만 그것이 인류를 위한 과학인지, 이익을 위한 과학인지를 우리는 살펴봐야 합니다. 옥수수로 연료를 만들어내는 기술이야말로 오늘의 과학기술의 정체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재미있는 사례일 겁니다. 물론 기술 자체는 신기할 수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 유용하기도 할 겁니다. 이를테면, 중동의 석유를 마음대로 이용할 수 없게 되는 경우, 미국의 선택으로 말이지요. 하지만, 세계적으로 10억을 넘나드는 굶주린 사람들에게 그 기술은 과연 무엇일까요? 그 굶주린 사람들에게 곧 끓여 먹을 수 있는 옥수수를 짓이겨 자동차 연료를 만들어내는 기술이 과연 반갑고 신기하기만 할까요? 과연 이런 기술, 이런 과학, 이것이 인류를 위해 기여하는 것일까요? 어떤 사람들이 얘기하는 대로, 이것이 과연 우선순위의 문제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요? 항생제 몇 알 때문에 죽어가는 사람들을 외면한 채 인간의 수명을 연장하기 위한 DNA 조작이나 줄기세포 연구 같은 데 쏟아붓는 엄청난 투자 같은 것이 진정 우선순위의 문제인가요?

 

우선순위가 아니라 이익이 문제겠지요. 이익이 있느냐 없느냐, 얼마나 있느냐. 하지만 거기에 초점이 맞춰지는 한 인류에게는 과학이 아니라 과학의 할아버지가 나타난다 할지라도 그것은 신기한 재앙에 지나지 않을 겁니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하여 막연하게 구상 중인 작품이 있긴 하지만, 언제 쓸 수 있게 될지는 아직은 짐작도 내놓기 힘듭니다.

 

『강철 무지개』를 쓰며 어려웠던 점이 무엇이었나요.

 

문학은 죽었다, 는 얘기가 오래 전부터 입 가진 사람은 다 숟가락 하나씩 올릴 정도로 유행이 되었지요. 그 유행마저 한 물 빠진 셈입니다. 소설이 현실의 총체성을 담기 위한 장치로는 이미 무의미하다는 얘기도 있고요. 하지만 아주 소박하게 보더라도 소설이 인간에 대한 이야기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겁니다. 인간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그가 살아가는 이 세계에 대해 이야기해야 할 것이요, 세계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이 세계의 생김생김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것을 총체성이라 부르느냐 현실주의라 부르느냐, 총체성을 담을 수 있느냐 없느냐 따위의 논의도 이 소박한 사실을 외면할 수는 없을 겁니다.

 

인간이 없는, 인간이 사는 세계가 보이지 않는 문학에 대한 선호는 출판 시장에 만연되어 있습니다. 그런 점으로 인해 나를 포함하여 많은 글 쓰는 이들이 어려움을 겪는 것은 사실일 겁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이 오늘날, 이 신자유주의 세계에서 살아가면서 지불해야 하는 작은 세금이라 생각합니다. 그보다 더 엄청난 세금을, 목숨을, 생존을, 자존심을, 삶의 모든 것을 세금으로 내면서도 오직 눈물과 고통과 절망만을 겨우 받아드는 이들이 무수하다는 것을 나는 압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질문에 대답하자면, 어려웠던 점 없습니다. 어려운 점이 있었다면 이 아둔하고 지루한 상상력 때문이었을 겁니다.

 

넌덜머리 나는 현실, 인간으로 살기가 불가능해

 

미래를 어둡게 그린 이야기입니다. 선생님의 현실 인식과도 관련이 있을 거 같습니다.

 

요즘 특히 넌덜머리가 나는군요. (웃음) 젊은이 대부분이 비정규직으로 내몰리는 형편입니다. 현실이 불안정하여 연애도 못할 정도라는 얘기도 들립니다. 젊은 시절에는 모름지기 하루도 쉬지 않고 연애를 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만, 요즘은 연애도 스펙이라는 소리까지 들리는 걸 보면 정말 영문을 알 수 없습니다. 연애 역시 시장에서 벌어지는 사업이 되고 말았다는 것인지……. 지금 최저임금이 시간당 얼마던가요? 생각만 해도 지긋지긋하지 않아요? 세월호 침몰, 소름끼치지 않아요? 남과 북에서 벌어지는 협잡과 거래와 다툼, 욕 나오지 않아요? 금융장사꾼들의 협잡, 그놈들의 사치스러운 파티 비용, 휴가 갈 때 타고 다니는 전세 제트기 비용을 전세계의 가난한 사람들이 빚 내고 집 팔아 지불한 셈입니다. 화나지 않아요? 석유 때문에, 세계 제패를 위한 전략적 지정항적 고려 때문에 학교에, 시장에, 거리에 미사일을 쏘고, 테러를 하고, 콜래트럴 대미지라 떠벌이는 게 아무렇지 않은 세계의 꼬락서니, 무시무시하지 않아요?

 

자본과 권력은 틈만 보이면 거기에서 장사를 하고 세금을 걷습니다. 장사를 위해, 이익을 위해 전쟁이라도 벌입니다. 그들 사이의 결탁은 점점 더 완강하고 철저해질 겁니다. 인간은 그들에게는 돈 조금 주고 일 시켜먹는 존재, 노동이나 하고 소비나 하는 존재에 지나지 않습니다. 애국이니 민족이니 하고 선동하여 총 하나 쥐어주고 전쟁터로 몰아낼 때는 또 애국전사가 되기도 하구요. 그 이상의 인간을 그들은 원하지 않습니다. 인간을 노동하고 소비하는 기계로 진화, 또는 퇴화시키려고 작정을 한 듯 보입니다. 전투까지도 이제는 봉급 주고 시켜먹습니다. 노동처럼 죽이고 노동처럼 피살당합니다. 그렇게 변해가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인간으로 살기가 점점 힘들어집니다. 불가능에 가까워집니다. 인간, 가장 소박한 의미에서의 인간 말입니다. 홍익인간, 이라 할 때의 인간, 사람이 곧 하늘이다, 할 때의 사람, 멀리 갈 것도 없이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라 할 때의 인간 말입니다. 연애하는 젊은 인간, 어떻습니까? 그마저도 어려워지는 형편이라니, 도대체 무슨 재미로 인간 하라는 겁니까?

 

독일 작가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에 보면, 오스카가 태어나기 싫다고 뻗대는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이런 놈의 세상에선 태어나기도 싫고 살기도 싫다는 겁니다. 이러다 정말 인간 하기 싫다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나타나지 않을지 걱정입니다. 농담이지만 단순한 농담이 아닙니다. 그렇게 되면 이곳은 인간 세상이 아니라 동물들의 정글, 아니면 노예들의 수용소가 되겠지요.

 

넌덜머리가 안 나는 세상이 되기를 바라서 하는 얘깁니다. 아침에 깨어나면 전철 시간표가 아니라, 주차장에 엉망으로 뒤엉킨 차들 사이를 속히 빠져나갈 궁리 같은 것부터 걱정하는 게 아니라, 내일모레까지 요금 내지 않으면 끊겨버릴 전기와 전기요금을 떠올리는 게 아니라, 옆에서 자는 아내ㆍ남편의 숨소리, 옆 방에서 자는 아이의 이마에 달라붙은 머리칼, 어제 서운한 낯으로 헤어진 여자친구ㆍ남자친구의 심사, 이런 게 먼저 궁금하고, 보고 싶고, 그렇게 사는 세상 말입니다. 이게 욕심인가요? 이게 게으른 건가요? 아닙니다. 이걸 게으르다 하고, 이걸 욕심이라 하는 자들은 틀림없이 이 세계를 동물 농장이나 노예 수용소로 바꾸고 싶어하는 자들입니다. 내가 구상 중인 작품 가운데에서 한 인물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아닙니다.) "인간이 그런 자들하고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하나뿐이다. 싸우는 것이다.”

 

등장인물 이름이 영어가 많은데요. 세계화가 극한으로 실현된 세상을 예견한 걸까요.

 

그에 대해서는 두 가지 얘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는 지금 말씀하신 대로 세계화, 다른 하나는 더 이상 자기정체성, 일관성을 유지한 채 살아가는 것이 불가능해진 세계의 면모를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산업사회에서 각인에게 요구하는 바는 노동자와 소비자로서의 존재입니다. 인간에게는 그 외에도 무수한 면모와 성격, 생각과 정서 등이 존재하지만, 극단적으로 산업화가 진행되고 인간이 객체화되고 나면, 노동자와 소비자로서의 기능 외에는 무용지물로, 귀찮은 것으로, 어쩌면 범죄적인 것으로 취급되지 않을까, 하는 상상을 해봤습니다. 어쩌면 노동자ㆍ소비자에게서 이름조차도, 성별조차도 제거하고자 하는 날이 오지는 않을까요? 그런 세계에서 각인의 정체성이란 무엇일까요? 그 정체성이 성가신 것, 무의미한 것, 보잘것없는 꼬리뼈 같은 것으로 취급된다면 아마도 자신의 촌스러운 본명을 버리고 세련된 가명 또는 예명을 선호하는 영화배우들, 연예인들처럼, 사람들은 기꺼이 멋진 다른 이름을 지니고 싶어하게 되지 않을까요? 어제까지 공장에서, 또는 편의점에서 일할 때의 불쾌감, 슬픔, 절망을 다 지워 없애버리는 심정으로 머리칼을 자르듯, 샤워를 하듯, 이름을 바꾸는 거지요. 또는 새로운 직장에서 새로운 제복으로 갈아입듯이 새로운 이름과 새로운 자아를 배급받는다고나 할까요. 직업을 바꿀 때마다, 셋집을 바꿀 때마다, 어쩌면 화장을 바꾸고 옷을 갈아입을 때마다, 또는 날씨가 바뀔 때마다 새로운 이름을 만들고 새로운 자아로 탈바꿈한다면, 더구나 세상이 그것을 요구한다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이미 출판된 작품에 대해서도 누군가 저작권법으로 걸면, 판매가 금지되고, 도서관에서는 열람이 금지돼요. 책 일부에 먹물이 칠해지거나, 철편으로 책장이 봉쇄되거나.”


환경보호법 역시 검열을 위한 중요한 장치였다. 종이책 제작이 환경파괴의 원인이라는 사실을 근거로 2067년 환경부는 출판을 심의하고 허가하는 권한을 갖게 되었다. 얼마 후에는 이유 없이 출판이 방해받는 것을 막는다는 취지로 출판진흥부가 그 권한을 나눠 갖게 되었다. 이들이 무엇을 근거로 출판을 허가하고 불허하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333쪽)

 

미래의 책을 묘사하는 대목이 재밌었습니다. 소설가는 일반인보다 독서의 형태를 더 고민할 것 같아요. 미래 어떻게 될까요?

 

제1세계에서 저작권법을 운영하는 방식은 지극히 위험해 보입니다. 저작권 자체가 나쁜 것이라고는 할 수 없겠으나 그것을 운영하는 사람들, 조직들이 독점과 최대이윤 추구라는 목적으로 저작권법을 악용하거나 왜곡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저작권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라고 하기에는 과도한 제약이 가해져서 오히려 세계의 지적 창의적 발전을 방해하고 왜곡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거지요. 아마 앞으로도 저작권법은 더 배타적으로 운영되리라고 보이는데, 그렇게 되면 어쩌면 검열 못지 않은 장치, 오히려 창조적 발전이나 자연스러운 발전을 제약하는 장애가 되지나 않을지 걱정스럽습니다.

 

아리엘 도르프만이라는 희곡작가가 쓴 『독자들』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그 작품에서 작가는 환경 독재라는 재미있는 발상을 통해 검열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아주 재미있는 작품인데, 우연한 기회에 제가 그 작품을 번역한 적이 있고, 출판사 <창작과비평>과 한국작가회의의 초청으로 아리엘 도르프만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그 작품이 한국에서 초연되는 것을 같이 본 적도 있습니다. 그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 몇 해 전이었다고 기억됩니다. 『강철무지개』에서 출판과 검열에 대한 에피소드 가운데 일부는 그 작품에서 시사받은 바가 적지 않다는 것을 기꺼이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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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세계의 관계가 늘 고민거리

 

노동, 소외가 어쩌면 거대 담론인데요. 요즘 문단에서는 다소 드문 거대 담론 같아요. 요즘 젊은 작가의 작품을 보는 편인가요?

 

물론 봅니다. 거대담론이라는 말 자체를 참 오랜만에 듣습니다. 그만큼 작가들의 관심이 다양해졌다고 할 수 있을까요? 문학에 대한 계몽주의적 태도는 박정희와 전두환의 폭압적 독재시기를 거치면서 당당한 명분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표현의 자유를 포함한 모든 자유가 억압되어 있는 상황에서 문학은 어쩌면 언론의 역할까지 도맡아야 했습니다. 사실주의, 요즘은 현실주의라는 말도 쓰는 것 같습니다만, 아무튼 사실주의적 문학이란 사실상 무한히 사실주의적이 되고 보면 역사가 되고 말 것이요, 그렇다 하여 역사로부터 멀어지고 또 멀어지기를 거듭하면 그때는 덧없는 공상적 헛소리가 되고 말 거라는 얘기를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글쟁이들은 모두 그 중간 어딘가에 서 있는 셈이지요. 그러니까 거대담론이냐 미시담론이냐는 관점은 어쩌면 현실을 이해하는 데에 오히려 방해가 될지도 모릅니다. 거대담론과 미시담론이 딱 둘로 나뉘어 있는 것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거든요.

 

다만, 아까도 잠깐 얘기된 것 같은데, 문학이 시장에 너무 가까워지고, 출판사가 시장에 예속되고, 매몰되고, 그렇게 해서 문학 자체가 선별 과정을 통해 왜곡되거나 기형적으로 과장되는 일이 잦고, 그런 일이 제법 오래 계속되고 있는 것이 걱정스럽기는 합니다만, 그러나 크게 걱정하지는 않습니다.

 

해외여행이 자유화되고 여행할 기회가 흔해지면서, 외국에 대한 이야기, 해외에서 벌어지거나, 제가 보기엔 별로 필연적 동기가 없는데도, 공간적 배경을 외국으로 삼아 전개되는 이야기들이 많아지고 있는데, 그 자체, 나쁠 것이야 없지요. 하지만 어디서건 결국은 문학이란 사람의 이야기,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야기, 그들이 몸 담고 살아내야만 하는 이놈의 세상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여행기나 진기명기 같은 걸 쓸 생각이 아니라면 말입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을 저는 더 젊은 작가들, 작가 지망생들의 작품에서 발견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신춘문예나 소설 공모의 심사를 하면서도 종종 느끼는 일인데, 젊은 작가들, 작가 지망생들은 꾸준히 오늘날 그들이 처한 세상에 대해 탐구하고 있습니다. 그 탐구 방식은 아직 다소 서투를지라도 그 탐구의 정신을 놓치지 않는 한 그들의 시야에서 새로운 문학, 새로운 이야기들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또는 학교를 떠나서 세상에 나서는 젊은이들의 대다수가 비정규직이라는 덫에 빠지고 마는 이 낯설고 잔인한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그런 난감함을 나는 자주 발견합니다. 당연한 일이지요. 해방 이래 이 나라에 이처럼 많은 직장이 생긴 적이 없었을 겁니다. 동시에 이처럼 많은 비정규직, 시간제 일자리가 생긴 적도 없을 겁니다. 사실 이 나라가 처음 경험하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비슷한 일은 이 나라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전세계의 젊은이들이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으니까요. 어쩌면 그것이 그 세대의 화두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 또래의 작가들에게 계몽주의가 헤어날 수 없는 화두였듯이 말입니다. 그 가운데 그들은 질문자가 얘기한 동시대의 노동과 소외를 발견할 것이요, 자신들의 화법과 이야기를 찾아낼 겁니다.

 

지금까지 작품이 현실과 문학의 경계를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였습니다. 지금 작가님의 주된 고민은 무엇인가요.

 

늘 인간이지요. 인간과 세계의 관계이고요. 세계라 할 때 그것은 때로는 독재이기도 했고, 자본이기도 했고, 혁명이기도 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우리 또래 작가들에게 자아는 한때 역사와 세계의 지평으로 확대되어야 했습니다. 우리 세대에게 거대담론이나 계몽주의가 자연스럽고 당연했던 것은 우리의 자아가 그처럼 확장되어 있었기 때문이지요.

자본의 공격은 거세지고 있는데, 한국만이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좌파는 보잘것없이 수세에 빠져 쩔쩔매고 있는 형국입니다. 가라타니 고진이라거나, 들뢰즈, 지젝, 임마뉴엘 월러스틴 같은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물론 그들의 지혜에 감탄하면서도, 아직은 여전히 암중모색의 지경이라고 여겨지고요.

 

인간과 인간관계의 영역은 지속적으로 점점 좁아지고 그 자리를 자본, 시장, 폭력, 선전, 그리고 욕심과 절망이 야금야금 차지해 들어오는 중입니다. 인간이 쫓겨날 때마다 그 자리에 들어서는 것은 늘 거대한 소외, 거대한 욕망, 막강한 기형이지요. 온갖 무리를 무릅쓰고 잠실에 들어서는 중인, 한국에서 가장 높고 가장 막강해질 작정이라는 거대 쇼핑몰 건물 같은. 그런 공허, 그런 기형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글을 좋아하게 된 건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책 읽는 게 좋았습니다. 초등학교 시절에 신장하고 폐가 약해져서 2년 동안 학교를 아마 대여섯 달이나 갔을까요? 그래도 다행히 입원은 하지 않고 집에서 누워 지냈어요. 그때 부모님이 스물네 권짜리 어린이 문학전집을 사주셨는데, 그걸 정신 없이 읽은 것이 최초의 강렬한 독서 체험이었어요. 며칠 사이에 그걸 다 읽었을 겁니다. 그 뒤부터는 눈에 띄는 건 다 읽었어요. 읽을 게 떨어지면 아무도 안 보는 백과사전까지 뽑아 읽었어요. 특히 사람이나 동식물 사진이 붙어 있는 항목을 골라 읽었지요. 거기 보면 그 인물의 일생 같은 것이 요약되어 있거든요. 그거 재미있더라고요. 중고등학교 시절 무척이나 반항적이었는데, 선생님, 부모, 세상의 모든 것들을 다 포함하여, 그때 나를 설득할 수 있었던 유일한 것이 책이었고, 날 위로한 유일한 것이 책이었어요. 성경, 외경, 불경, 영문판 바가밧기타, 그런 것까지 그 시절 다 읽었습니다. 지금까지도 그래요. 책은 평생 지긋지긋하게 읽으며 삽니다. 평생 읽기나 하고 살았더라면 정말 속편하고 좋았을 것을 괜히 쓰겠다고 나서서 이 꼴입니다. (웃음)

 

창작 중간에 어떤 방법으로 머리를 식히나요.

 

걸어다니는 걸 좋아해요. 산에 가는 걸 좋아하고요. 한 동네, 정하고 무작정 걷기 시작하여, 일주일, 때로는 보름, 골목까지 돌아다닙니다. 가장 최근에는 창신동 언저리를 한 일주일 돌아다녔지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다르고 매일매일이 다르거든요. 걷다가 피곤해지면 어디 들어가 맥주 한 잔 마시고, 맥주집 구경하고, 사람들 구경하고, 허름한 동네 식당 들어가서 백반 한 상 먹고. 또 나와서 걷고. 피곤하면 또 아무데나 들어가 커피 한 잔 하며 구경하고. 그게 은근히 재미있습니다. 가장 재미있는 게 사람 구경입니다. 젊은이들의 변화, 특히 놀랍고 재미있지요. 슬프기도 하구요. 나도 베냐민처럼 서울 둔촌동 아케이드를 쓸 수 있을지 모릅니다. 거기서만 이십오 년을 살아서. (웃음) 영화도 좋아하고 음악도 좋아합니다. 바흐, 평생 듣습니다.

 

다음 작품은?

 

앞에서 얘기한 지점의 연장인데요, 이런 기괴하고 험악한 세상에서 한 여자를 지극히 사랑하는 한 남자와 무수한 남자를 조금씩 사랑하는 여자, 그런 사람들 이야기를 구상 중입니다. 하지만 그 역시 머리 속의 일입니다. 머리 속으로는 아무리 궁리해봐야 사실 쓰기 전엔 다 쓸데없는 짓입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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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 무지개최인석 저 | 한겨레출판
첨예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견고한 작품 세계를 축적해온 중견작가 최인석의 열두 번째 장편소설. SS 울트라마켓의 계산원 '지니(차지연)'와 서울클라우드익스프레스의 화물 배달기사 '제임스(윤재선)', 세상을 바닥부터 경험하며 분노와 복수로 살아온 '멜라니(안영희)'와 어떤 상황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간호사 '아이리스'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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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 “진보 정당이 추구하는 사회는 북유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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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4월 15일 제17대 국회의원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은 정당 득표율 13%를 기록했다. 10년이 지난 지금, 정의당을 비롯한 다른 진보 정당을 모두 합쳐도 5%를 넘지 않는다. 노회찬 전 국회의원은 이런 상황을 ‘백척간두’라고 표현했다. 백 자 높이의 장대 위에 올라선 모양처럼 위태롭다는 의미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의 출간 시점을 주목할 만하다. 대개 정치인이 쓴 책은 선거를 앞두고 나오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당면한 선거를 유리하게 끌고 가려는 의도가 깔렸다고 볼 수 있다. 그에 비해 『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는 당장 선거와는 상관 없는 시기에 나온 책이다. 실제로 노회찬 저자는 책에서 선거를 포기하더라도 진보 정치를 새롭게 세우자는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목표를 제시한다.

 

이 책은 구영식 기자와 노회찬 전 국회의원의 대담을 재구성했다. 두 사람이 다루는 주제는 다양하지만 진보 정치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로 요약된다. 세부적으로는 한국의 근현대사, 정치, 노동, 기업, 민주주의, 복지 등을 아우른다. 마들연구소에서 노회찬 전 국회의원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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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정당이 왜 여기까지 내몰렸을까

 

보통 정치인 책은 선거 전에 많이 나오는데요. 『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는 선거와는 무관한 시기에 출간됐습니다.

 

대개 정치인 책은 자기 홍보용인 경우가 많죠. 도서로서의 가치보다는 정치인이 선거를 앞두고 책을 냈구나, 이런 식으로 서로 양해하고 넘어가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이 책은 개인 홍보용은 전혀 아닙니다. 이른바 출판기념회용으로 만든 책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저의 입지나, 정치적 이해 타산을 위한 용도로 만들어진 책이 아니에요. 다가오는 선거와는 무관하게 진보 정당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성찰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졌습니다. 현재 진보 정당은 백척간두에 서 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는가를 성찰하고, 어떤 길로 가야 하고, 길이 있기나 한 것인지를 함께 고민하자는 취지에서 냈습니다.

 

백척간두라고 표현하셨는데, 왜 진보 정당이 이렇게 내몰렸을까요.

 

진보 정당이 출발했을 때보다 후퇴하는 모습을, 출발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지리멸렬한 상태를 못 벗어나는 걸 보면서 사람들은 희망이 없는 것 아닌가, 이제 그 정도 실험해봤으면 실험도 다 끝난 거 아니냐는 비관적인 평가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거기에 저는 생각을 달리합니다.

 

상황을 분석할 때 객관적인 조건과 주체적인 상태를 구분하는데요. 먼저 객관적인 조건을 보자면, 처음 길을 떠날 때보다는 상황이 좋아졌습니다. 의석을 만들었던 2004년보다 2014년에 국민이 진보정당을 보는 태도가 좀 더 좋아졌다고 봐요. 다만 주체 세력에 문제가 있죠. 10년 됐음에도 국민의 마음 속에 뿌리내리지 못했습니다. 운동방식, 의제 설정, 정당 운영 방식에서 오류와 한계, 문제점을 많이 드러냈어요. 국민은 더 마음을 열었지만, 정당은 오히려 과거보다 많은 문제를 드러냈기 때문에 거기서 오는 실망감, 불신이 쌓였습니다. 운영하는 사람의 리더십, 표방하는 적확성이라거나 국민들과 함께하려는 활동 방식에서 많은 부분 부족함이 있었습니다.

 

이 책이 국민과 함께하려는 일환에서 나온 거라고 볼 수 있는데요. 책이 다소 어려워요.

 

저는 어려운 언어로 활동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활동하는 사람끼리 나누던 이야기를 시간과 공간을 달리하는 독자에게 털어놓는 책이다 보니, 기본 지식이 없으면 이해하기 힘든 점도 있긴 할 겁니다. 이 점은 개정증보하는 과정에서 약간은 보완해야겠죠. 다만 실제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사상한 채 쉬운 이야기만 해서는 문제에 접근할 수 없기에 불가피했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책이 어려워진 이유 중 하나가 진보정당의 역사가 복잡해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흔히 진보는 분열로, 보수는 부패로 망한다는 이야기도 있는데요. 이런 말이 21세기 대한민국 정치에 유효하다고 볼 수 있을까요.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얘기는 참 인정하기 힘든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많은 사람에게 그렇게 비춰지고 있기에 그런 인식 자체를 존중할 필요는 있죠. 엄격하게 말하면, 부패와 분열상은 양쪽에 다 있습니다. 다만 진보는 상대적으로 부패 문제가 덜하죠. 아무래도 높은 도덕적 기준과 청렴한 가치를 중시하는 분위기니까요. 상대적으로 보수에 부패가 많아요. 부패 때문에 보수가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이는 경우가 왕왕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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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열도 양쪽에 다 있어요. 거칠게 구분하자면, 진보는 가치 지향적이고 보수는 현실 추구적입니다.진보가 이상 추구형이라면 보수는 이익 추구형이거든요. 진보는 분열하면 손해인데도 자신이 옳다는 걸 굽히지 않음으로써 늘 분열적 상황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보수는 이해 관계를 주로 따지니, 굳이 노선으로 싸우는 건 별로 없어요.

 

서로의 약점이겠죠. 보수에 부패가 약점이고, 진보는 늘 아슬아슬한 대립으로 보입니다. 보수는 부패하지 않기 위해 어떤 장치가 필요한가가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고, 진보는 따지고 싸우더라도 분열까지는 나아가지 않도록 하는 리더십, 조직 문화가 필요합니다.

 

선거 포기하더라도 진보를 새롭게 세워야

 

2016년 총선이나 2017년 대선은 다 포기하자. 대신 진보를 새롭게 세우자. 그러지 않고 2016년 선거에서 우리 정파의 세력을, 우리 정당의 세력을 조금이라도 유지하고 보존하려 덤벼든다면, 국회의원 한두 명은 살아남을지 몰라도 그 의미는 지금보다 더 없지 않을까 싶다. (169쪽)

 

책에서 가장 과감한 선언이 선거 포기하자는 말이었습니다. 그보다는 진보의 세속화가 우선이라고 이야기했는데요. 진보의 세속화, 어떤 의미인가요.

 

지금도 강령을 보면 신념과 이상을 표현한 게 많아요. 나름대로 소중하지만, 신념과 이상으로 사람을 설득할 수 없거든요. “너네(진보 정당)가 집권하면 우리 가족이 어떻게 나아지는데?” 이 질문에 대한 구체적인 답변 없이 국민이 지지할 수는 없겠죠. 현실정치라는 말 자체를 봅시다. 정치가 이상주의적인 설정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현실의 제반 조건 속에서 움직인다는 의미입니다. 그간 진보 정치가 왜 이렇게 벽에 부딪쳤는가를 보자면, 여러 면에서 가치를 실현하는 계획이라든지 활동 방식에서 현실성이 떨어졌습니다. 당연히 현실을 돌파하는 힘이 약하죠. 세속화란 중의적인 표현인데요. 말을 풀면 세상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의미죠. 세상의 때를 묻힌다는 의미이기도 하고요.

 

진보 정당은 전통적으로 반기업적이라는 이미지도 있지 않나요. 기업과 관계 설정도 세속화 중 하나가 아닐까 싶은데요.
 
요즘 땅콩회항이 화제인데요. 땅콩회황은 기업주의 일탈 행위, 이거야말로 반기업적 행위입니다. 이런 것은 반대해야죠. 그렇지만 진보 세력이 기업 자체를 부정하거나 반대하는, 기업 역할을 무시하거나 과소평가한다고 이해한다면 오해입니다. 우리는 노사 대립 속에서 약자를 감싸안으려 하고, 약자니까 정부나 공공 체제가 배려해야 한다 생각하지, 노사가 함께 일하는 일터와 생산의 장으로써 그리고 가치 창출 체제로써 기업을 부정하거나 무시하지 않습니다. 아니, 기업 없이 어떻게 생산이 이뤄져요. 아무리 노동자가 주인이라 해도, 기업 없는 노동자는 실업자일 뿐이잖아요.

 

기업이야말로 인간의 노력과 창의력이 실현되는 현장이라면, 기업 환경이 중시되어야 합니다. 그 기업이 어떻게 하면 높은 생산성과 좋은 효율성을 유지하면서 참여하는 사람들의 보람과 만족 수준을 높일 수 있는가가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런 생각은 있죠. 기업 내 강자인 사람과 기업 내 약자인 노동자가 부딪치면 노동자가 많이 당하다 보니, 지금까지의 기업 운영 방식에 대한 저항은 있어요. 그렇지만 이것도 잘못된 것에 대한 시정이어야지 기업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책에서 노동을 중요한 비중으로 다뤘는데요. 한국 노동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선진국을 보면 노동자를 동반자로 삼았기 때문에 그 사회의 생산성이 발전하고 결국은 복지사회로까지 가지 않았나요. 자본주의가 발전하는 방법이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노동자를 더 많이 쥐어짜서 부를 창출할 수 있습니다. 노동자를 동반자로 삼으면서 서로가 동반성장해나가는 발전 방식도 있습니다. 자타공인 선진 복지 국가라 하는 나라들에서는 노동자의 조직화율, 노동조합의 힘, 노동조합의 사회적 영향력이 커요. 노동을 동반자로 삼고 왔다는 걸 입증하죠. 노동자를 쥐어짜서 복지국가까지 간 사례는 역사상 아예 없어요.

 

우리 현재 처지는 정치 민주화가 많이 이뤄진 반면, 사회경제적 민주화에서는 여전히 1987년 이후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습니다. 사회경제 민주화의 핵심이 노동에 있어요. 이미 대한민국은 비정규직이 가장 많은 편에 속하고, 정규직과 임금 격차나 처우, 근로 조건 격차가 큰 나라입니다. 차별이 멀쩡하게 허용되고 있고요. 노동을 동반자로 함께 커나가는 정책이 아니라 노동의 희생으로 자본이 커가는 잘못된 전략을 취하고 있어요. 이 전략으로 선진국으로 간 선례가 없습니다.

 

최근에 비정규직이 문제 되니까, 노동 내에서 상대적으로 나은 정규직에 양보하라고 하는데, 전체적으로 보면 노동의 하향평준화죠. 노동자보다 훨씬 강자인 자본과 경영의 양보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이번에도 박근혜 정부가 세금을 다루는 걸 보면 조세 부담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세금을 깎아줘요. 법인세는 오히려 줄였잖아요. 담뱃세는 더 높였고요. 이런 방향으로는 정의와 평등이라는 차원이 아니라 한국 경제를 살리는 데도 도움이 안 됩니다. 대다수 국민의 가처분소득, 구매력을 떨어뜨리는데 어떻게 경제 회생이 되겠어요.

 

진보 정당이 해야 할 일

 

김대중 정권, 노무현 정권도 못해낸 일인데 진보 정당이 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존재합니다.
 
김대중 정부는 남북 관계의 혁신적 개선 틀을 마련했다는 데서 역사의 성과를 남겼습니다. 그렇지만 두 정권의 한계가 있죠. 노무현 대통령도 퇴임 후에 스스로 평가하고 반성하고 후회한다고 했던 부분이 경제 민주화였어요. 문제의식과 철학, 추진할 수 있는 계획이 준비되지 않았던 게 아닌가 싶어요. 서민 대통령이라 해서 기대를 많이 걸었지만, 결과를 봐도 그렇고 노무현 대통령의 고백으로 봐도, 하려고 했지만 잘 안 된 게 아니라 여러 면에서 부족했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다음에는 사회경제 민주화를 할 수 있는 세력이 더 커져야죠. 새누리당에 기대하는 것은 언감생심이고 새정치민주연합도 당 전체 방향이 그런 쪽은 아닌 것 같아요. 필요성을 느끼는 사람이 없지는 않지만요. 지금 힘은 가장 적지만 진보 세력이 그 임무를 옮겨야 합니다. 진보 세력은 힘이 없지 않냐고 말하는데, 태어날 때부터 힘을 갖고 태어나는 세력이 어딨나요. 오히려  이런 일을 제대로 한다면 힘이 제대로 붙지 않을까요. 국민이 뭘 원하는지를 제대로 짚고 대응한다면 국민의 지지가 더 커질 것이고, 커진 지지는 당연히 정책을 관철하는 힘이 될 겁니다.

 

정당의 노력도 필요하겠지만, 국민도 자신의 욕구를 정확히 파악해야겠습니다.

 

저는 이 문제는 좀 더 냉정하게 말하고 싶은데 국민과 정당 양쪽이 다 문제입니다. 상호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비극이기 때문이죠. 우리가 흔히 많이 듣는 이야기로 ‘손가락 자른다’는 말이 있어요. 투표를 잘못해서 후회한다는 표현인데, 이런 일이 한 번이 아니라 계속 되풀이되고 있어요. 일단 정당이 분명한 차별성을 못 내고 있습니다. 영남에서는 새누리가 싹쓸이, 호남에서는 새정치민주연합이 싹쓸이하는 것만 봐도 정책이 아니라 다른 게 작용한다는 의미죠. 선거 제도가 이런 구도를 조장하고 있어요. 1등 이외의 표는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는 현행 선거 제도의 문제 때문에 양당이 정치권력의 90퍼센트를 가져가는 상황입니다. 이런 현실에서는 극한적으로 상대방에 대한 반대만 있을 뿐입니다.

 

유권자는 유권자대로 진보 정당을 찍고 싶어도, 양강 체제에서는 자신의 표가 사표가 될 거 같으니까 다른 정당을 찍어버려요. 정당은 양김시대의 낡은 정당이고 유권자는 유권자대로 이런 상황에서 선택을 강요받고 있습니다. 늘 국민은 뜨거운 정치 열기로 선거에 참여하지만, 선거 끝나고 나서는 자기가 뽑은 사람을 불신하고 미워하는 이런 상황이 되풀이되는 현실입니다. 한 가지로 모든 걸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우선 선거 제도를 개편해야 합니다. 이걸 생략하고 다른 개선을 추구했을 때는 효력이 별로 없을 거예요.
 
책에서 ‘우리는 이석기가 아니다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말씀하셨는데요. 그렇다면 뭐가 더 필요할까요.

 

정치적 목적에 의한 재판을 받고 있기 때문에 내란 음모로 구속된 데 대해서는 비판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왔고요. 그렇다고 아무 문제도 없느냐? 그건 아니죠. 이석기 의원만의 문제도 아닙니다. 이 사건으로 드러난, 감추기 힘든 문제 의식이 표출된 거잖아요. 이런 상황에서 일부 사람이 말조심하고 말실수 안 하면 된다는 태도는 아니라고 봐요.

 

결국 진보가 뭐냐, 진보의 정체성이 뭐냐, 진보가 집권하면 우리 사회가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이 질문에 국민이 의심하고 불신하는 상황이니까 ‘우리는 빨갱이가 아니다’와 같이 네거티브 접근이 아니라 ‘우리는 이렇다’는 포지티브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누구다, 우리는 이런 걸 하겠다, 우리가 바라는 사회는 이렇다, 이런 식으로 나가야 합니다. 이제까지 진보 정당이 노력을 안 한 바는 아니지만, 그 노력이 아직 국민들의 마음에 들 정도로 현실성 있고 귀를 기울일 만한 설득력 있는 대안으로 제시되지 못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진보정당이 집권한다면 다가올 세상

 

그렇다면 진보정당이 집권하면 어떤 세상이 올까요.

 

진보정당이 꿈꾸는 건 희한한 세상이 아니에요. 꿈과 현실을 모두 소중히 여겨야 하지만 어차피 현실은 현실입니다. 진보 정당이 만들고자 하는 현실은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같은 나라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그 나라와 한국은 조건이 다르다고 말하죠. 물론 다르죠. 날씨부터 다르고 언어도 달라요. 그런 다른 점을 본받자는 게 아니라, 진보 정당이 추구하는 모습은 이런 겁니다. 스웨덴은 GDP의 57%를 함께 써요. 프랑스만 해도 51% 정도이고요. 우리나라는 28%를 나눠 씁니다. 우리는 계속 이대로 가야 할까요. 아니면 1년에 1퍼센트씩 올려서 스웨덴 같은 나라로 가야 할까요. 반대도 있겠죠. 28%도 많으니 줄여나가자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의료민영화, 자사고 늘리는 정책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국민소득 3만 불, 4만 불로 가도 이 방식으로 살 것인지, 높일 것인지 떨어뜨릴 것인지는 누가 집권하든 어차피 정책적으로 선택해야 합니다. 진보정당이 약속할 수 있는 건 40퍼센트 사회로, 더 나아가서 50퍼센트를 향하는 방향입니다. 2014년에 태어난 아이가 2033년이 되어서 대학 들어갈 나이가 되었을 때 대한민국은 어떤 사회가 될 것인가, 향후 19년 동안 대한민국의 변화를 위해서 어떤 고용 정책과 조세 정책, 교육 정책, 의료 정책을 쓸 것인가를 제시하고 진보 정당이 평가받고, 국민의 지지를 받은 진보 정당이 집권으로까지 나가야겠죠.
 
한국이 출산율이 낮은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출산율 낮은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먹고 살기 힘드니까요. 이대로 가면 더 힘들어질 게 뻔하기 때문에 출산율 높이기 위한 획기적인, 적극적인 출산 정책을 써야 합니다.

 

전통적으로 청년은 진보 경향이 강했잖아요. 일베로 상징되는 일부 청년층의 극우화는 어떤 징후로 보시나요.

 

병리적 현상이 아닌가 싶어요. 건강한 보수라고 보기도 어렵잖아요. 일부 지역과 여성을 혐오하는 발언을 보면 시대를 역행하는, 가치 전도 현상을 보이는데요. 모든 사회 현상에는 행위자가 얻는 게 있습니다. 예를 들면, 파업을 막음으로써 나아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파업을 함으로써 나아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대립을 조정하기 위해 나온 게 노동3권이고요. 그런데 다른 지역을 비하하고 여성을 혐오하면 본인이 나아지나요? 나아질 게 없어요. 나아질 게 없는데도 하니까 병이죠. 자신의 처지를 향상시키기 위한 계층적 이해관계의 발로가 아니라는 거죠.

 

IMF 이후 양극화 문제, 취업도 힘들고, 희망도 점점 없어지니까 이런 분노를 해소하기 위해 다른 희생양을 요구하는 겁니다. 반말, 욕설 등 인격을 내걸고 할 수 없는 일탈 행위를 배설물처럼 쏟아내잖아요. 그런 면에서 사회 양극화와 물신만능, 희망 없음이라는 지금 세태의 그늘에서 자라는 버섯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회 자체가 병이 든 거죠. 병든 사회의 그림자라고 봐요.

 

좀 가벼운 질문 드리겠습니다. 노유진의 정치카페라는 팟캐스트를 하시잖아요. 만약에 세 분이 선거에서 만났다고 가정한다면, 누가 1위를 할까요.

 

팬클럽은 역시 유시민 선수가 저보다 훨씬 강합니다. 제게는 도도히 흐르는 지하수 같은 세력이 있습니다. 문제는 유시민 작가는 은퇴를 해서 겨뤄볼 기회가 없겠죠. (웃음)

 

강연, 정치 활동으로 굉장히 바쁘실 텐데 책을 많이 읽으시잖아요. 독서는 언제 어디서 주로 하시나요.

 

책은 마음의 양식이잖아요. 그러니까 언제 어디서 독서를 하냐는 질문은 그렇게 바쁜데도 밥은 먹느냐는 질문과 같아요. 먹어야 사는 것처럼 책을 읽어야죠. 고등학교 때부터 사춘기 지나고 사회에 눈을 뜨면서부터 책으로 많은 걸 이해했습니다. 직접 만나는 사람은 제한되니, 책으로 무수히 많은 사람을 만났고요. 그것이 제 인생관이나 세계관을 형성하는 데 큰 역할을 해왔어요. 책을 많이 접하는 건, 습관화되었어요. 과거에 비해 시간적 여유가 안 나긴 하지만요.

 

예전에는 하루에도 책방에 두 번 간 적이 있어요. 사온 책을 다 읽어서 서점이 문 닫기 전에 갔더니 주인이 돈 안 받고 바꿔 주시더라고요. 요즘은 그 정도는 아니라도 정치를 하기 때문에 너무 한쪽으로 사고가 쏠리지 않도록, 젊은 사람의 새로운 사고와 문화적 현상을 알기 위해서는 책을 자꾸 볼 수밖에 없어요.

 

정치를 안 했다면, 어떤 일을 하셨을까요.

 

하고 싶은 일이야 많았죠. 그래서 뭘 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제가 생물을 참 좋아했어요. 생물반도 하고, 채집하고 분류하는 걸 좋아했어요. 좋아하는 책 분야 중 하나가 식물과 동물 생태를 연구해서 인간 생활 사회에 접목시키는 것인데요. 생물을 미세하게 관찰해서 그것에서 원리나 습관을 읽어내고 우리 인간 살아가는 방식과 연결하는 책을 즐겨 읽습니다. 제가 그런 일을 했을 수도 있죠. 아니라면, 부산 출신이니 좋아하는 바다에서 좋아하는 고기를 잡으며 어부가 되어서 열심히 건강하게 살 수도 있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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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노회찬,구영식 공저 | 비아북
. 낡은 진보의 재조립을 깨끗이 포기하고 새로운 ‘판’을 짜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까지 흘러온 과정에 대한 냉철한 평가와 반성으로부터 시작해서 이제부터는 무엇을 할 것인지, 새로운 진보는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를 국민 앞에 떳떳이 밝힌다. 이 책은 노회찬이 온몸으로 겪은 (노동운동, 진보정당운동 등) 대한민국 진보의 역사부터 야권개편, 개헌론 등 최근의 이슈, 그리고 진보가 나아갈 미래에 대한 전망까지 망라해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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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최고은의 과거, 현재, 미래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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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이 불면서 본격적인 겨울을 알리던 어느 월요일 오후 싱어송라이터 최고은을 만났다. 4년 만에 발표한 첫 정규 앨범 < I Was, I Am, I Will >이 이전의 그에게 없던 새로운 모습을 보이며 한창 기대감을 높여가던 차였다. 추운 겨울 만난 최고은은 앨범에서 우직하고 때로는 어두워 보이던 그 목소리와는 또 다른 분위기의 사람이었다.

 

인터뷰는 첫 앨범 제목< I Was, I Am, I Will >을 따라 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물어보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최고은 스스로가 자신의 모습을 꾹 눌러 담아낸 앨범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 넓었다. 때로는 준비한 질문들과 예상한 대답 사이의 경계마저도 넘어서버려, 내내 만족스러우면서도 이를 어떻게 정리해야할지 걱정이 되는 인터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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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as]


음악가로서 이력이 독특합니다. 어린 시절에 국악을 배운 경험부터 대학교 때는 하드코어 록 밴드에 몸을 담고 있었고요. 계속 음악과 같이하는 삶을 살던 셈인데 개인적인 음악사를 들려주실 수 있나요?


국악은 초등학교 때 방과 후 활동을 하면서 시작했어요. 재미도 있었고 입상도 하면서 대학을 국악으로 가기로 마음을 먹었어요. 그렇게 가야금 병창으로 진학을 준비하다가 막상 낙방을 하고서는 이걸 계속하는 것이 좋을지 고민이 들더라고요. 국악을 평생 취미로 하는 것도 좋겠다 싶어서 일반 대학에 진학을 하게 되었어요. 그러다 1학년 때 학교 오리엔테이션에서 교내 동아리 밴드 공연을 봤는데 그게 너무 멋있어서 지원하고 활동을 하게 되었고요. 그게 들어가고 나서 보니 하드코어 밴드였는데 하드코어 장르를 잘 모르니까 1학년 때는 많이 헤매다가 나중에 즐겁게 하게 됐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음악을 하자는 생각은 아예 없었고요. 다만 친구들한테 종종 음악을 선물하는 습관이 있었는데 그런 노래들을 모아서 우연히 EP를 내게 되었고 지금에 이르게 된 거죠.


당시 하드코어 밴드를 할 때는 지금과 스타일이 달랐나요?


달랐죠. 창법이 완벽하진 않았어요. 남자 노래를 부르는 경우도 많다 보니까 그로울링 같은 창법을 사용한 것도 아니고요. 엑실리아(Exilia) 구아노 에이프스(Guano Apes) 에반에센스(Evanescence) 커버를 많이 했고 인기가 많았던 건 롤러코스터나 넬 같은 음악이었어요. 저는 완전 센 노래뿐만 아니라 발라드도 하고 팝도 부르고 그랬던 것 같아요. 당시 동아리 분위기가 그렇긴 했는데 또 지금 학번들은 완전 하드코어 스타일으로 알고 있어요.


대학시절에는 여성학 전공을 했어요. 학업에 계속 뜻을 두다가 음악을 시작했고요. 학업을 계속할 생각은 이제 없나요?


그렇다고 봐야죠. 그래도 공부라는 걸 놓지는 않고 있어요. 사람이 자기 이야기를 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 우물을 파는 식의 공부가 아니더라도 꾸준히 책을 읽는다든지 하면서요. 삶에서 인문학적인 생각들을 계속하고 그런 지식들을 화법과 행동으로 끌어내기 위해서라도 공부는 필요한 것 같아요. 학위를 위한 공부 생각도 막연하게나마 해요. 어디를 목표로 하는 공부는 아니지만 강의나 세미나에 다닌다는 식으로 작게 실천을 하고 있어요. 저는 제가 직접 가사를 적잖아요. 공부를 함으로써 관점이 달라지고 화법에도 그렇게 살이 붙는 거죠.


다양한 이력에 비해 첫 데뷔는 의외로 포크 음악이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원래 노래 부르는 것만 좋아했지 기타 연주 같은 건 잘 몰랐어요. 다만 제가 어렸을 때부터 가야금을 했고 피아노도 배웠기 때문에 혼자 배우기가 크게 어렵지 않았어요. 독학을 할 때도 코드나 노래로 배워간 것이 아니라 제가 내고 싶은 음을 찾아서 연구하고 쳐보고 그랬고요. 어디서 작곡을 따로 배운 적은 없다보니 이론적으로 굉장히 얕은 대신 좋아하는 소리 위주로 만들고 거기에 가사를 얹는 식이었던 거죠.


진지하게 음악을 해야겠단 생각은 언제였나요?


두 번째 EP때였어요. 처음으로 단독 공연을 가졌는데 내 공연을 사람들이 돈 주고 온다는 것 자체가 처음이었거든요. 그런 사실들이 상당히 부담스러웠고 음악에 하는 것에 대해 겁을 먹기 시작했어요. 앞으로 앨범을 내도 멜로디나 가사만 바뀔 뿐 다 똑같은 음악일 것 같았거든요. 제 이름을 걸고 공연하는 것의 의미 자체도 잘 모를 정도였어요. 그 때를 기점으로 생각을 바꾸자고 마음을 먹었지요. 바꾸지 않는다면 음악적으로는 더 나아질 것이 없겠구나 싶었고요. 지금은 음악을 하자는 마음에 흔들림은 없어요. 부족함은 있지만.(웃음)


작년 유럽 투어를 떠났고 그 경험으로 작은 라이브 앨범< Real >을 만들었습니다. 어떤 계기로 투어를 진행하게 되었나요?


독일에 있는 송스 앤 위스퍼스(Songs & Whispers)라는 음악 네트워크에서 아시아 음악시장에 관심이 있어서 제게 연락을 준 것이 계기가 되었어요. 당시 거기에는 한 달에 두 팀 정도를 초청해서 공연을 기획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마침 그곳 인턴으로 한국 분이 계셨거든요. 그 때 그 분이 저를 선택하신 거예요. 그렇게 연락을 받았고 1년 정도 준비를 해서 투어를 했어요.


투어 동영상 당시 발매된 앨범을 보면 공연장이나 라이브 분위기가 일상적이라는 느낌이 많이 들어요. 특별히 투어를 하면서 의도한 점이나 콘셉트가 있었나요?


공연장은 그 쪽에서 잡아줬는데 일상적으로 문화를 소비하는 공간에는 다 갔던 것 같아요. 커피숍, 극장, 클럽, 공연장 등등. 일상적인 곳에서 녹음을 하자는 아이디어는 유럽투어 이전부터 나왔던 이야기였어요. 라이브 앨범이랑 유럽 투어를 따로 진행하기에는 너무 비용이 커서< Real >앨범의 콘셉트와 유럽 투어를 같이 합치게 된 거죠.


글래스톤 베리에서도 공연했습니다. 어떤 계기로 다녀왔나요? 특별한 에피소드들이 있었는지요?


뮤콘같은 국제 음악 박람회가 에이팜이라는 이름으로 울산에서도 열려요. 그곳은 성향이 월드뮤직에 가까워요. 거기서 제가 공연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중에 한 분이 CD를 듣고 싶다고 해서 인사를 나누게 되었어요. 그 분이 글래스톤 베리 실버 헤이즈 존의 책임자 말콤 헤인즈(Malcolm Haynes)였어요. 그렇게 연락이 닿아서 무대에 오를 수 있었어요.

 

제가 공연했던 시간은 정규 타임테이블이 시작도 하지 않은 정말 첫 타임이었거든요. 아침 10시, 11시 정도의 시간이었어요. 그래도 끝나고 나서 피드백을 주고받는데 같이 했던 무대 스태프들에게서 즐거웠다고 그날의 손꼽힐 만한 공연이었다는 칭찬도 들었어요. 그래도 사실 관객들 호응 측면에서는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키기가 어려운 시간이었죠.

 

에피소드라고 한다면 제가 공연한 구역에서만 240팀 정도가 공연하는데 서로서로 인지도가 낮잖아요. 근데 저는 그런 점들이 오히려 좋더라고요. 일단 거기선 전기사용이 어려웠고 물 사용도 까다로워서 샤워도 신중하게 해야 하는데 아티스트나 관객이나 그런 상황을 불평 없이 즐기면서 공연을 한다는 것이 좋았어요. 그런 불편함이 저는 처음이라서 그런지 기꺼이 견딜 수 있는 성격의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만큼 어린이부터 장애인, 노년층까지도 다 함께 참여하는 공연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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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이제 지금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요. 첫 앨범이 나왔는데 주변의 반응이 어떤가요?


여태 나왔던 앨범들보다는 반응이 많은 편이에요. 기존의 앨범에 비해 달라졌다는 반응이 많은데 그 달라졌다는 걸 나쁘게 보는 게 아니라 발전하려고 노력했구나 생각해주는 내용이 많아서 다행이었어요.


이런 저런 음악활동을 한지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정규 앨범은 처음이에요. 이렇게 늦어지거나 더뎌진 이유가 특별히 있나요?


정규앨범이라는 것이 어쩌면 낡은 생각일 수도 있지만 미니앨범과 싱글과는 다르게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풀어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보니 첫 정규 앨범은 뭔가 명찰을 차고 저를 소개하는 느낌처럼 해야 한다고 느꼈고요. 그런 마음을 담을 수 있도록 저희만의 녹음의 방식을 찾는데 시간이 걸렸고 그 방식에서 한 곡씩 자연스럽게 분만하는데 4년이 걸렸어요. 시간이 점점 지나서 이젠 나올 수밖에 없는 시간이 되어서야 나온 것이 < I Was, I Am, I Will >인 거예요. 4년은 그런 의미에서의 시간이었고 돌아보면 긴 것 같은데 겪어오던 시간은 짧았던 시간이었죠.


녹음에 있어서도 차이가 보입니다. 어떤 차별점이 있었나요?


모두 원테이크로 녹음을 했어요. 저한테는 원테이크가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제가 연주나 노래 모두 보컬과 기타를 유기적으로 연주하기 때문에 기타를 치지 않으면 보컬에서 강약을 조절하기가 힘이 들더라고요. 여운 처리라든가 분위기 전달에도 이질감이 있었고요. 두 번째 EP때 원테이크라는 방법을 찾아서 계속 쓰기로 마음먹은데다가 밴드 구성의 곡들을 따로 따로 연주하면 그 느낌도 달라져요. 실시간으로 서로 들으면서 같이 플레이 할 때 뭔가 에너지의 흐름이 생기거든요. 저희가 스스로 2년간 회의를 하고 특별한 얻어낸 녹음 방식인 셈이죠.


편곡에도 공을 들였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주안점을 두고 편곡에 임한 것이 있나요?


밴드 곡 같은 경우는 편곡을 다 같이 했어요. 제가 기타와 멜로디를 가져가면 멤버들이 그걸 듣고서 자기 나름대로 색깔을 넣거든요. 그러다보니 각자 스스로의 색이 분명하게 드러난 거 같아요. 저희가 서로 직언을 해주는 타입이라서 밴드의 분위기가 굉장히 열려 있어요. 저를 빼면 그래도 다들 10년 20년씩 음악하신 분들이라 딱 얘기하면 다 알아듣고 하죠.


평소에 좋아한다고 밝힌 적 있던 김소연 시인의 시를 가사에 인용했습니다. 개인적 취향 외에도 시를 인용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타만네가라」라는 시는 김소연 시인의 시인데 타만네가라라는 인도네시아 밀림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모두 겪으면서 쓴 시예요. 저도 계속 순환하는 사람으로서 저의 이전 모습(I was)이 의지(I will)를 가진 개인이 되고 또 그런 의지가 다시 시간이 지나면 과거가 되는 이미지를 그리고 싶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제가 언제라도 처음 시작할 때의 마음과 자세로 돌아올 필요가 있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런 마음을 담아내는 데 이 시가 적격이라는 생각이 들어 사용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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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 Was, I Am, I Will >이라는 제목이 모든 것을 말해주는 앨범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스스로의 경험을 주제로 써나간 듯한 앨범 구성도 눈에 띄고요. 어떤 연유로 이런 구성을 취했습니까?


앨범의 주제가 전반적으로 I 예요. 수록곡들도 이 한 음반을 위한 노래들이 아니라 4년간 활동하면서 자연스럽게 품어낸 곡들이었고요. 제 경험과 고민 정성을 담으려고 한 음악이었어요. 자연스럽게 대중성이 낮다는 이야기도 많은데 저는 저의 이야기를 제 방식으로 풀어내고 그리고 그런 것을 좋아하게 되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된다면 그런 것이 또 대중성이 된다고 봐요. 대중성이라는 건 유동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런 결과물에 내가 없고 그게 그저 이전과 같다면 저는 그저 남의 노래를 취미로 듣는 것만으로 충분해요. 제가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받고 지금까지 걸어온 삶을 음악으로 표현했을 때 사람들이 멋지다고 해주면 그게 대중적인 거고 좋은 것이 아닌가 생각해요. 그렇게 고른 20여 곡 중에서 신곡 위주로 덜어내고 최대한 담다보니 지금의 앨범이 나오게 되었어요. 또 그렇게 담아낸 노래라서 서로 다른 장르들이 섞여있어도 저라는 이름 아래에 일관성을 가질 수 있었다고 생각하고요.


< Real >이후로 차츰 한글가사에도 익숙해지는 모습이 보입니다. 가사는 어떤 식으로 쓰시나요?


지금도 그렇지만 가사에 있어서 직접적인 화법보다는 간접적인 화법이 더 편한 것 같아요. 그래서 직접적인 이야기의 부끄러움을 피하려고 처음엔 영어가사를 썼던 거고요. 그러고 나니 한글 가사라는 게 참 부끄럽더라고요. 가사를 써놓고 보면 제가 말하는 수준이 이것 밖에 안 되는 건가 싶기도 하고요. 그런데 아까도 말했듯이 저는 계속 공부를 해야 하는 사람이고 결국에는 가사가 그런 결과물들의 이미지를 전달해야 하는데 한글과 영어는 같은 단어라도 뉘앙스가 너무 다르잖아요. 그래서 표현을 찾을 때 영어가 표현에 더 맞는다면 영어로 가사를 쓰는 거고 한글이 더 낫다면 한글로 가사를 쓰고 있어요. 그러면서 수정을 많이 해요. 기타로 멜로디를 만들면서 생각나는 풍경이나 형태를 떠올려 단어들을 채집하고 그 표현들을 모두 끌어올려보는 식으로 가사를 써요.


국악을 소재로 한 곡들도 눈에 띕니다. 곡들에 대한 설명을 부탁하자면?


「뱃노래 (Sailor`s song)」 같은 노래는 자연스럽게 나왔어요. 기타 연주를 하고 있는데 멜로디에 뱃놀이 가사가 잘 붙더라고요. 게다가 당시 < 캐리비안의 해적 >을 보던 때라서...(웃음)

 

어딘가 모르게 저에게 체화되어 있는 과거 국악의 경험들이 필요하단 생각이 들어서 다시 민요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아리랑 (Arirang)」은 저번처럼 저희가 다음에 해외에 나가게 된다면 언젠가는 필요한 곡이 아닐까 생각도 들어서 만들게 되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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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ill]

 

이번 앨범의 덕분인지 앞으로 어떤 음악을 해도 별로 이상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다음 음반은 어떤 모습이 될까요?


< I Was, I Am, I Will >은 저의 4년이란 시간을 정리하는 앨범이었는데 결국 왜, 그리고 어떻게 음악을 하는가를 계속 물은 것 같아요. 어떻게라는 측면에서 저는 장르보다 최고은 스스로에게 초점이 맞추어지는 음악을 하고 싶어요. 라디오헤드가 1집과 8집의 모습이 서로 다르지만 톰 요크(Thom Yorke)라는 사람의 모습 아래 하나의 이미지로 잡히는 것처럼 제가 말하고 싶은 바를 어떻게 이야기하느냐가 계속 바뀔 것 같아요. 그리고 그게 가장 큰 숙제가 아닐까 싶어요. 아까도 말했듯 저는 원점으로 돌아오고 싶은데 똑같은 저로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경험과 풍경을 보고 온 최고은으로서 돌아오고 싶은 거죠.

 

앨범에서 보여준 다양한 모습과는 별개로 여성 싱어송라이터라는 분야는 천편일률적으로 보이기 쉬운 위치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런 비슷한 이미지 속에서 스스로의 존재감에 대해 어떤 고민을 하시나요?


저는 특별히 고민을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냥 들으면 좋고 그걸 저와 비교하지는 않아요. 저는 음악을 들어도 그냥 한 부분이 좋으면 좋다고 생각이 들어서요. 저는 제가 다른 여성 싱어송라이터 분들과 다르다는 이야기를 들어도 저는 잘 모르겠어요. 멀리서 보면 다 비슷해 보이는 분들이라도 실제로 다가가서 만나면 다 다르거든요.


공연과 앨범 중 어느 쪽에 더 주안점을 두세요?


저는 공연처럼 앨범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고 공연이 앨범 같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원테이크를 선호하기도 하고요. 사실 앨범 수록곡들도 많은 레코딩을 한 편은 아니에요. 저는 특히나 조금 틀려도 티가 확 나는 목소리거든요. 그런 것들을 고민하면서 계속 원테이크에 맞도록 연습을 한 것도 있어요. 그래도 앨범과 공연이 다른 점이라면 앨범은 공연과 달리 이미지 없이 듣기만 하잖아요. 그래서 앨범을 눈 감고 들었을 때에도 연주하는 모든 에너지나 집중력이 잘 전해져야 한다고 생각하죠.


가장 좋아하는 앨범 혹은 노래를 세 개만 꼽아주세요.


아비샤이 코헨(Avishai Cohen)의< At Home >랑 라디오헤드(Radiohead)의< OK Computer >좋아하고요. 국내에서는 롤러코스터 음악을 좋아해요.

 

 

 

 

인터뷰 : 김반야, 신현태, 이기선
사진 : 이한수
정리 : 이기선
2014/12 이기선(tomatoapple@naver.com)

가슴 뛰는 여행을 위한 아홉 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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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떠나는 이유에 대해 우리는 다음과 같이 물을 수 있다. ‘그곳에 무엇이 있기에, 당신이 지금 찾는 것은 무엇이기에 떠나려 합니까’ 라고. 이에 『떠나는 이유』는 아홉 개의 단어로 대답한다. 행운, 기념품, 공항과 비행, 자연, 사람, 음식, 방송, 나눔, 기록. 이것들은 작가 밥장이 여행지에 만나고 매료된 모든 것인 동시에 여행이 끝난 후 그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모든 것이다. 일러스트레이터인 작가는 여행 큐레이터로서 EBS의 <세계테마기행>과 다수의 다큐멘터리 취재에 동행하며 세계 곳곳을 누볐다. 『떠나는 이유』는 그 시간들과 공간들의 기록이다.

 

그림에 갇힐 뻔했던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행을 떠났다는 작가의 말은 깊은 공감을 이끌어낸다. 지금 발 디딘 이곳에서 ‘떠나는’ 행위 자체가 위안이 되는 순간이 누구에겐들 없을까. 그러나 밥장의 여행기에는 ‘낯설기에 새로운’ 모습들이 가득하다. 빼곡한 일정들로 채워진 여행을 지양하면서 우연히 만나게 될 행운을 기대하고 “카페에서 슬쩍한 메뉴판, 설탕 봉지, 냅킨”과 같은 소소한 물건들로 여행을 기억하며, 사진이 아닌 그림과 손 글씨로 순간을 기록하는 방식들이 그러하다.

 

먼 곳에서 만난 인연에 부여하는 의미도 남다르다. 작가에게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은 잠시 스쳐 지나가는 존재가 아니다. 보이지 않는 끈으로 우리와 연결된 채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이들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카미니토에서 만난 ‘탱고 할아버지’는 또 다른 여행자를 통해 소식을 전해왔으며,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만난 독립운동가의 후손은 한국인이 아닌 한인으로서 살아가는 많은 이들의 삶에 눈뜨게 해줬다. 그렇게 작가는 다른 곳에서의 삶이 이곳의 삶과 무관하지 않음을 깨닫게 되었고, 그 생각은 자연스럽게 나눔으로 이어졌다.

 

초록우산 어린이재단과 함께 남수단의 보르 지역을 찾아 아이들에게 그림으로 꿈을 가르쳐주고 학교의 벽화를 그려주기도 했다. 이후 발생한 내전으로 학교는 반군의 기지가 되었고 벽화에는 총알이 박혔지만, 그 슬픔으로 작가는 멀리 떨어진 곳의 비극이 자신에게도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행운에서 나눔에 이르기까지 『떠나는 이유』안에 담긴 여행의 단면들이 다양한 이유는 밥장 작가의 떠남이 개인적인 이유에만 국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행 큐레이터 유성용의 웃음에 이끌려 그와 같은 길을 걷게 되었다고 고백한 작가는 덕분에 새로운 방식의 여행을 시작하게 됐다. <세계테마기행>의 촬영을 위해 떠났던 인도네시아에서는 야생 오랑우탄과 코모도왕도마뱀을 만났고, 유럽의 경제위기에 대한 다큐멘터리 촬영을 위해 방문한 도시에서는 희망이 사라져버린 시대의 자화상과 마주했다.

 

이렇듯 다채로운 빛깔의 여행 이야기를 만난 적이 있었던가, 하고 생각에 잠길 무렵 밥장 작가를 만났다. 그가 직접 ‘믿는 구석’이라 이름붙인 작업실에서 이루어진 만남이었다. 주인을 닮아 감각적이고 유쾌한 분위기를 간직한 그 공간에서는 시간도 공간도 의미를 잃는 듯 했다. 밥장 작가가 직접 애용하면서 나눔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도 한 몰스킨의 노트들은 지난 여행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고, 그 길 위를 다시 걷는 우리의 대화는 시간과 공간의 경계를 허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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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서 뜻밖의 행운을 만나는 방법


『밤의 인문학』에서도 들려주셨던 여행 이야기를 이번 책에서 더욱 본격적으로 들려주셨는데요.『밤의 인문학』을 집필할 때부터 『떠나는 이유』의 출간을 계획하셨던 건가요?


『밤의 인문학』이후에 다음 책을 고민하다가 여행 이야기를 새롭게 써보자고 생각했어요. 기존의 여행 책은 장소 위주로 구성되어 있잖아요. 그런데 요즘은 사람들의 여행 방식이 바뀌고 있는 것 같아요. 어떤 여행지를 가든 자신이 어떻게 보고 받아들이느냐에 중점을 두는 거죠. 그런 관점에서 여행의 장소가 아닌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 중심이 되는 이야기를 써보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여행자가 느끼는 감정들 혹은 주제들로 재구성을 해본 거죠.

 

여행에 관한 책은 오래 전부터 구상하셨을 것 같습니다.


<세계테마기행>이나 다큐멘터리 촬영을 통해서 많은 여행지를 방문했는데, 혼자 다닐 때와는 많이 다르더라고요. 혼자 여행을 갔을 때는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나 가볼 수 없었던 장소와 만나게 되는 거죠. 그런 부분들이 저에게 너무 많이 도움이 됐어요. 프로그램으로 제작된 부분 외에 그곳에서 제가 느낀 것들을 모아보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떠나는 이유』는 “가슴 뛰는 여행을 위한 아홉 단어”로 여행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는 무엇이었나요?


‘행운’이에요. 작년에 <세계테마기행> 촬영차 인도네시아를 갔을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오랑우탄과 만난 건데요. 오랑우탄의 서식지에 간다고 해도 가까이 다가가는 일은 불가능해요. 그야말로 야생이기 때문에 오랑우탄에게 가까이 다가가거나 먹이를 주면 위험하다고 주의를 받거든요. 그런데 열심히 취재하고 살갑게 대하니까 오랑우탄이 먼저 저에게 다가왔어요. 함께 촬영하던 PD가 이런 게 초심자의 행운이라고 얘기하더라고요. 처음 여행을 간 사람의 마음으로 호기심을 가지고 바라보면 예상치 못한 행운이 따라온다는 거죠. 그 ‘초심자의 행운’이라는 말이 너무 와 닿았어요. 예전에 갔던 여행지에서도 그런 경험이 있었는지 생각해 보게 됐고요. ‘초심자의 행운’처럼 여행을 생각할 때 마음을 움직이는 키워드가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 보니 나머지 8개의 단어도 떠올랐죠.

 

여행마저 익숙해져버린 사람들은 만날 수 없는 행운이 있는 거군요.


그렇죠. 우리는 여행을 갈 때 여지를 많이 두지 않으려 하잖아요. 호텔도 정확하게 예약을 해야 하고, 프로그램도 미리 짜놓고, 몇 시에 어디에서 무엇을 먹을지 식사 일정까지도 빡빡하게 정해 놓죠. 그렇다 보니까 때로는 주변에 더 좋은 곳들이 있는데도 그냥 놓쳐요. 우연히 들른 음식점이 너무 맛있고 누군가를 만났다면 그곳에서 하루를 보내도 좋잖아요. 그런데 다음 일정을 위해서 성급히 떠나는 거예요. 결국 행운이 끼어들 자리가 없는 거죠. ‘그렇다면 여행은 왜 가는 걸까’ 라는 의문이 생기더라고요. 여유를 누리고 분위기와 호흡을 바꿔보고 싶어서 갔는데, 똑같은 호흡으로 일하는 방식처럼 시간을 보낸다면 느닷없는 행운을 만날 기회를 스스로 줄이는 거라고 볼 수 있죠.

 

방송 외에 개인적으로 여행을 떠날 때는 계획 없이 떠나는 편이세요?


저도 처음에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패키지여행부터 시작했어요. 그런데 조금씩 바뀌어가고 있는 거죠. 여행을 바라보는 방식 자체가 진화한다고 할까요. 『떠나는 이유』에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도 그런 거예요. 저 역시도 보통 사람들처럼 똑같이 여행을 시작했고, 거기에서 느끼는 아쉬움들을 개선하면서 발전한 거라는 거죠. 그리고 여행에도 다양한 방식이 있다는 것, 자신이 생각하기에 따라서 새로운 여행이 될 수 있다는 걸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지금의 저는 어떤 기회로 여행을 떠났든 많이 관찰하려고 해요. 부딪혀 보고, 물어 보고, 섞여 보는 거죠.

 

여행지를 고르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발 닿는 대로 가요. 여행하는 데 있어서 진짜 중요한 건 여행지가 아닌 것 같아요. 같은 장소를 가더라도 서로 다른 장소를 경험할 수 있는 거잖아요. 여행지보다 중요한 건 ‘과연 내가 이번 여행을 왜 가느냐’ ‘어떤 관점으로 갈 것이냐’ ‘무엇을 느낄 것이냐’를 생각하는 일인 것 같아요. 그리고 그곳에서 경험하는 일들을 많이 남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돼요. 대부분 사진을 많이 찍는데, 당시에는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촬영해도 나중에는 찾아보지 않게 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제 경우에는 그 시간에 뭔가를 적어서 이야기와 에피소드를 남기는 게 더 와 닿더라고요. 저는 여행을 떠날 때마다 몰스킨 노트를 가지고 가서 그림도 그리고 메모도 하고 비행기 티켓이나 안내 책자, 레스토랑의 메뉴판 같은 것들을 붙여놓기도 하는데요. 이런 기록들을 보기만 해도 그때의 느낌이 생생하게 다시 떠올라요. 사진으로만 찍으면 그 느낌이 덜하더라고요.


‘여행’과 ‘나눔’의 거리는 생각보다 가깝다


그렇게 카메라를 내려놓고 연필로 기록을 해 오셨는데 “다음에는 그저 조용히 앉아 있어보려고” 한다고 적으셨어요.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은 거죠. ‘여행은 이런 거다’라고 스스로 규정짓는 순간 재미가 없어지는 것 같아요. 같은 여행지라 하더라도 다시 찾아 갔을 때는 분명히 다른 점이 있을 거예요. 저도 변했을 테니까요. 이렇게 변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 상대도 호기심을 갖고 제 이야기를 들어줄 것이고, 스스로도 여행에 대한 동기부여가 되는 것 아니겠어요? 그래서 새로운 방식으로 여행해 보고 싶다고 적은 거예요.

 

여행지를 느끼고 그것을 새기는 작업에서도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시는 거군요.

 

그렇죠. 결국 그 순간이 쌓여서 저의 시간이 되는 거잖아요. 일상에서는 너무 익숙하다 보니까 스스로 동기부여하기가 어렵죠. 하지만 낯선 환경에 있으면 자연스럽게 되는 부분이 있잖아요. 원해서 그런 부분도 있지만 원치 않아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환경도 찾아오게 되고요. 그게 또 여행의 맛이기도 하죠. 그런 경험을 하다 보니까 여행을 갈 때는 새로운 방식과  테마를 잡고 가보자는 생각이 들어요. 같은 장소를 다시 가더라도 휴양으로써의 여행, 취재로써의 여행, 생각 혹은 책읽기를 위한 여행, 그렇게 나름대로 색다른 방식을 시도해 보는 거예요.

 

여행 큐레이터의 길을 걷게 된 이유가 “유성용 씨의 웃음을 잊을 수 없어서”라고 하셨어요.


그 분은 여행지에서 굉장히 잘 스며드는 것 같아요. 저도 촬영을 앞두고 여행 프로그램 모니터링을 많이 했거든요. 방송에 나온 여행 큐레이터들이 어떤 식으로 역할을 하는지 봐야 하니까요. 그런데 유성용 씨만큼 여행 장소나 사람들한테 잘 스며드는 사람이 없는 것 같더라고요. 그곳의 문화를 체험할 때 하는 척만 하거나, 어설프게 하거나, 나는 관광객이고 당신은 현지인이라는 선을 긋지 않는 거죠. 현지인이 느끼는 감정을 자신도 공감할 수 있게끔 잘 끄집어내시더라고요. 무엇보다 그 순간을 본인이 즐기고 있다는 게 보였어요. 그래서 ‘나도 저렇게 스며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일이 되어버린 그림에 갇힐 뻔해서 “숨통 틔울 다른 길을 찾아” 떠났다고 하셨는데, 여행이 어떻게 일상에 숨통을 틔워줬나요?


여행을 다녀보면 우리가 굉장히 잘 살고 있다는 걸 느끼게 돼요. 일상에서는 나보다 잘 사는 사람들, 더 앞서 있는 사람들만 보다 보니까 불행하다는 생각이 들잖아요. 우리가 많은 걸 누리고 있다는 사실을 잘 모르는데, 떠나보면 알게 되죠. 그리고 세상은 참 넓다는 것, 모두가 연결이 되어 있다는 걸 깨닫게 돼요. 먼 나라의 얘기가 우리와 전혀 무관하지 않다는 걸 느끼게 되는 거죠. 어려운 이웃들을 도와야 한다거나 기부해야 한다는, 말로만 느꼈던 것들을 직접 체감하게 돼요. ‘세계 속의 우리나라 사람’이라는 말도 그렇죠. 조선족, 연변 사람, 고려인, 이렇게 나누는 건 우리가 대한민국이라는 틀에 너무 갇혀있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한 발 떨어져서 바라보는 사람들은 자신을 한인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국적이 다를 뿐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런 분들을 여행을 통해서 만나고 이야기를 듣다 보니까 일상에 대한 생각, 한국에 대한 생각, 세계에 대한 생각도 조금씩 바뀌었어요.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눔’에 대한 생각도 하게 되셨나요?


아프리카 사람들을 돕는 일을 꾸준히 했었지만 피상적으로 알고 있었어요. 실제로 현장이 어떤지는 몰랐던 거죠. 그런데 가보니까 우리가 왜 그들을 도와야 되는지, 이런 일에 왜 전문가가 필요한지 알겠더라고요. 제가 하는 기부 활동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알게 됐고요. 이런 내용을 사람들한테 제대로 알려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됐어요. 저도 여행을 통해서 배웠기 때문에『떠나는 이유』에도 나눔에 대한 이야기를 실은 거죠. 저뿐만 아니라 요즘에는 많은 분들이 실제로 자신이 후원하는 곳으로 가셔서 직접 현장을 보시더라고요. 그런 여행을 다녀오면 편안한 관광지에 가서 누리는 것보다 느끼는 게 훨씬 더 많을 거예요. 그 강렬함을 다른 것과 바꾸고 싶지는 않을 거고요. 그런 여행에 대해서도 알려드리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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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이유』 통해 재미있는 사람으로 기억되었으면


냉장고 자석부터 편의점 쿠폰까지 다양한 기념품을 간직하고 계신데요. 이들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일상에서 식당의 냅킨을 보면 그냥 흔한 냅킨이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여행지에 가면 달리 보인단 말이죠. 그게 여행의 매력인 것 같아요. 서울을 찾는 외국인들의 경우에도 색다른 시각으로 우리 일상을 바라보잖아요. 그러면 서울이 더 매력적으로 보이기도 하고요. 그러면서 일상에 또 다른 색이 입혀지는 것 같아요. 저도 여행을 가면 무료하고 재미없는 공간을 다채롭게 만드는 데 일조하는 거죠. 그곳의 사람들은 평범하던 일상을 새롭게 바라보면서 ‘이게 특별한가? 의외로 재미있네’라는 생각을 하겠죠. 특히 저는 그림을 그리고 표현하는 사람이니까 그런 과정을 통해서 새로운 시각으로 뭔가를 발견하는 훈련이 되는 것 같아요. 기념품으로 만들어서 판매한다고 해서 그 물건이 나에게 기념이 되는 건 아니잖아요. 내가 특별하게 느꼈기 때문에 특별한 물건이 되는 거죠. 지금 우리는 내 시간이 없이 살고, 누군가가 짜 놓은 일정대로 살게 되니까 일상이 스트레스가 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기념품마저 정해진 대로 사는 건 정말 재미없지 않나요?

 

‘자연’이라는 키워드를 통해서 박쥐들만 살고 있는 섬, 거대한 파랑으로 기억되는 파타고니아의 빙하에 대해 들려주기도 하셨습니다. 가장 강렬하게 이끌렸던 곳은 어디였나요?


아르헨티나는 나라가 굉장히 크고 또 세로로 길기 때문에 기온의 변화가 뚜렷해요. 이과수 쪽은 끈끈하고 후끈한 한 여름 날씨인데 북쪽 지역으로 가면 겨울 날씨가 펼쳐지거든요. 한 나라에 안에서 푸른 녹지대와 파란 빙하를 모두 볼 수 있는 거예요. 왼쪽 지역으로 가면 붉은 사막 지대가 펼쳐지고요. 그렇게 자연을 색으로 한 번에 볼 수 있었던 건 기막힌 경험이었어요. 특히 빙하 같은 경우는 압도된다는 느낌을 받았는데요. 자연의 숭고함, 저항할 수 없는 자연 앞에서 작아지는 느낌이 확실히 있더라고요. 빙하의 스케일이 너무 크니까 규모가 가늠도 되지 않았어요. 떨어지는 빙하 조각의 크기가 다세대 건물 5충 높이 정도 되는데 상상하기도 어렵죠. 그리고 떨어질 때 천둥과 같은 소리가 나요. 빙하의 색이 가짜처럼 느껴질 정도로 새파랗기도 하고요. 그 모든 풍경이 너무 강렬했죠.

 

코모도왕도마뱀과의 만남은 어떠셨어요?


코모도왕도마뱀을 찾으러 가는 건 원래 촬영 스케줄에 없었는데, 일정이 바뀌는 바람에 가게 됐어요. 제가 PD에게 적극 추천한 거였죠. 예전에 더글러스 애덤스와 마크 카워다인의 책 『마지막 기회라니?』를 읽은 적이 있거든요. 세계의 멸종 동물을 찾아가는 여정에 대한 이야기인데, 그 첫 번째 주인공이 코모도왕도마뱀이에요. 만약 제가 그 이야기를 영상으로 봤다면 그림만 기억될 텐데 책을 읽으면서 상상을 하다 보니까 너무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었어요. 코모도 섬까지 가는 여정도 엄청났지만 섬의 풍광도 정말 독특했죠. 직접 만난 코모도왕도마뱀의 인상도 정말 강렬했고요. 코모도왕도마뱀의 침에는 바이러스와 독성분이 있어서 물리면 피가 응고되지 않아서 죽는다고 하잖아요. 섬에 가보니까 진짜로 도마뱀에 물린 사슴이 있었는데 다리를 절뚝거리더라고요. 코모도 섬에서는 정말 모험을 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떠나는 이유』에서 음악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셨습니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음악’이라는 이름으로 별도의 장을 마련하셨죠.


중간에 쉬어가는 코너로 기획한 페이지예요. 여행지에서 음악을 들으면 감칠맛이 나잖아요. QR 코드를 첨부해서 『떠나는 이유』를 읽으면서 음악을 듣는 재미도 느낄 수 있게 했죠. 무엇보다 음악 자체에도 스토리가 있는 것들이 많잖아요. 예전에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만든 조지 해리슨의 다큐멘터리를 봤는데요. 조지 해리슨이 정말 대단한 뮤지션이더라고요. 특히 「Here comes the sun」은 그가 굉장히 힘들 때 만든 곡이라고 하는데,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니까 노래가 새롭게 들리더라고요. 알아봤더니 그 곡이 NASA의 무인 탐사선 ‘보이저 1호’에 실릴 뻔한 음악이었다고 해요. 결국 저작권 문제로 실리지는 못했지만요. 이런 사례들을 보면서 음악에도 이런 스토리가 있다는 걸 알게 됐고, 그런 부분이 여행과도 잘 맞는다고 생각돼서 소개한 거예요.

 

‘기록’이라는 키워드 안에서 “기록으로 기억되는” 일에 대해 이야기하셨습니다. 작가님의 경우에는 『떠나는 이유』라는 기록을 통해서 어떻게 기억될 것 같으세요?


재미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너무 진부한 이야기인 것 같지만, 산다는 건 허무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과연 그 허무함을 달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면 돈이나 물질은 아닌 것 같고요. 그 상태를 그냥 남겨 놓는 것이 할 수 있는 전부가 아닌가 싶어요. 그러면서 나름대로 의미를 찾아가고 부여하고 궁금해 하는 것, 그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답이 없는 질문을 물으면서 살 수밖에 없는 것이 일상인데, 그런 상황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건 남기고 생각하고 기록하는 일인 것 같아요. 그렇게 해야 흘러가고 있는 시간 안에서 그나마 스스로 위안을 삼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이건 저만의 얘기가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공통의 과제잖아요. 독자 분들도 나름의 답을 찾으려고 애쓰고, 생각하고, 뭔가를 남기려고 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되면 우리가 늘 고민하는 문제들, 가령 ‘나는 누구인가, 왜 나는 불행할까’하고 생각할 때 작은 위안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자신만의 답을 찾을 수도 있을 거고요. 저는 그저 작은 팁을 하나 던져 놓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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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는 이유밥장 저 | 앨리스
여행으로 삶을 촉촉하게’를 기치로 여행에 필요한 아홉 단어를 중심으로 밥장 식 여행을 풀어간 책이다. 밥장이 여행에서 늘 강조하는 것은 기록이다. 그는 보기보다 담기, 찍기보다 쓰기 그리기를 권한다. 사소한 것도 내 느낌을 간직하고 기록하다 보면 여행 작가 태원준의 말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흘려버리는 순간”도 새로운 여행이 될 수 있고 “카페의 냅킨 하나로도 새로운 여행이 시작될 수 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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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광주에 이어 인혁당 그린 권여선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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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대부분이 세상과의 갈등을 그린다. 권여선 소설가의 작품 역시 마찬가지다. 특별한 점이 있다면 그녀가 그리는 갈등은 스케일이 크다는 사실이다. 개인 사이에서 일어나는 갈등도 존재하지만, 권여선 작가는 국가 폭력과 인간이 어긋나는 지점을 묘사해왔다. 장편소설『레가토』가 그랬다. 이 작품에서는 거대한 국가 권력 앞에서 무장해제되어가는 인간을 담담하게 그려냈다.

 

2014년 11월에 출판된 『토우의 집』도 소재는 국가폭력이다. 전작과 다른 점이 있다면 『레가토』에서 1980년 광주가 이야기의 전면에 등장했다면, 『토우의 집』에서는 역사적 사건이 배경으로 은은하게 깔린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사전 지식이 없다면 『토우의 집』이 어떤 역사적 사건을 쓰고 있는지도 소설이 끝날 때까지 모를 독자가 꽤 있을 것이다.

 

소설에서 주인공은 아이들이다. 원과 은철은 삼벌레고개에 산다. 고개로 난 산복도로 근처에 사는 사람은 주로 서민들. 세상물정에 아직은 밝지 않은 아이들은 마을 사람을 관찰하며 그들만의 세상을 만들어나간다. 고도성장기의 변두리를 정겹게 묘사하는 듯하던 소설은 원의 아버지가 감옥에 갇혔다는 소문이 돌면서 요동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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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우의 집』은 어린 아이가 당하는 비극적인 이야기

 

『토우의 집』이 책으로 나왔습니다. 어떻게 지내셨나요.

 

바쁜 일 없이 조용하게 지냈는데, 책이 나왔으니 사인도 하고, 인터뷰도 하고 외출할 일도 생기네요. 이 시기가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어요. (웃음)

 

사람 만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오늘 인터뷰도 나오시기 부담스러웠을 것 같아요.

 

아니요. 사람 만나는 건 좋아하는데, 인터뷰나 강의처럼 공식적으로 만나는 걸 안 좋아할 뿐이에요. 술자리나 식사자리에서 만나서 얘기 나누고 상대의 매력을 만끽하는, 그런 사적이고 편안한 자리는 무척 좋아합니다.

 

그럼에도 채널예스의 인터뷰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웃음) 소설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레가토』에 이어『토우의 집』도 국가폭력을 다루셨습니다.

 

80년 광주 이야기를 처음 접했을 때가 대학 1학년 때였는데 굉장히 충격을 받았어요. 작가가 된 다음에 언젠가는 써야겠다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엄두가 안 나서 미뤄오다 몇 년 전에『레가토』라는 장편에 썼어요. 2차 인혁당 사건도 처음 그 얘기를 들었을 때,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놀라웠죠. 언젠가 써야겠다고는 생각했지만 어떻게 써야 될지 모양새가 잘 나와주지 않아서 고민을 오래 했죠.『레가토』에서는 광주를 성인, 그것도 지식인의 입장에서 정면으로 다뤘는데, 인혁당 사건도 그렇게 쓸까 하다가 그러면 그 시대를 겪지 않은 사람에게는 보편적 호소력이 부족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사건 자체를 전면에 내세우기보다 한 가족, 구체적으로는 한 개인들에게 가해지는 고통을 중심에 놓고 쓰게 됐죠.『토우의 집』은 가족 중에서도 특히 어린 아이들이 영문도 모르고 당하는 비극적인 이야기입니다.

 

『토우의 집』이 나온 시기가 미묘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공교롭다는 생각은 했어요. 인혁당 사건이 박정희 대통령 때 있었던 일이고, 지금은 그 딸이 대통령이 되었죠. 그런데 그때 희생된 가족의 아이들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모르잖아요. 소설을 쓰다 보니까 자꾸 현재의 시점으로 넘어오고 싶은 욕망이 강했습니다. 프롤로그나 에필로그에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되는 모습을 보는 은철의 가족 얘기를 넣어 보기도 했지만 결국은 뺐어요. 제가 메시지를 주기보다는 가족을 잃는다는 것, 난데없이 불운이 닥쳐온다는 것에서 개개인이 얼마나 크나큰 고통을 느낄 수밖에 없는지에 집중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또 하나 공교로운 것은 작년에 벌어졌던 세월호 역시 사람들이 난데없이 가족을 잃게 된 사건이었다는 점이죠.

 

『레가토』 주인공이 성인이라면,『토우의 집』에는 아이가 주인공입니다.

 

『레가토』도 그렇고, 이전에 썼던 운동권 소설에서 주인공은 주로 학생이나 지식인이었고, 지식인이 아니라도 성인이긴 했어요. 성인은 스스로 무언가를 선택하고 받아들였기 때문에 고통을 겪는데, 아이들은 다르죠. 아무 죄도 없고 아무 잘못도 하지 않은 아이가 당하는 고통이 훨씬 더 독자의 마음을 뒤흔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지금도 어떻게 써야 사람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흔들어 놓을 수 있을까, 그런 소설이 가능한가 고민을 많이 합니다. 중요한 화두죠.

 

잊지 말아야 할 건 우리는 사람이라는 사실

 

정면으로 다루지는 않았지만, 깔린 배경이 정치사회적인 사건입니다. 동시대인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하셨을 것 같아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토우가 되지 않아야겠죠. 몸에 따뜻한 피가 흐르는 사람들이 절대 권력이 행하는 공포 앞에서는 곧바로 굳어버리고, 진흙 인형처럼 변합니다. 다른 사람을 보듬거나 공감하는 능력을 상실해요. 토우는 자기 안위만 염려하고 자기 가족만 챙기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고개도 돌리지 않는 경직된 인간상태에 대한 알레고리입니다. 그러니까 어떤 상황에서든 우리가 모두 토우가 되지 말아야 하는 거죠. 진시황 무덤 속의 그 많은 토우들을 보면, 예나 지금이나 절대 권력을 가진 독재자들은 백성을 자기 무덤의 부장품처럼, 진흙 인형으로 만들고 싶어하는구나 하는 느낌이 들어요.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기계적인 사물이 아니라 어느 순간에도 우리가 사람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요. 사람다운 게 뭔가에 대한 답은 없겠지만, 끊임없이 고민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저녁 내내 순분은 자꾸 새댁이 아니라 새댁 남편 생각이 났다.  -『토우의 집』 p. 323

 

소설집 『처녀 치마』가 다시 나왔습니다. 이 단편집의 의미는?

 

첫 단편집이라 개인적으로 의미가 깊었죠. 그리고 제일 아픈 손가락이기도 해요.『푸르른 틈새』라는 장편으로 서른두 살에 등단했을 때, 저는 소설에 관해 정말 아무것도 몰랐어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단편 쓰는 법을 몰랐죠. 등단작이 처음 쓴 장편인데, 일기 쓰듯 쓰다 엉겁결에 당선됐거든요. 등단 직후에는 제법 청탁이 들어왔는데, 단편을 너무 못 쓰니까 1년 반 정도 지나서 청탁이 끊겼습니다. 그렇게 8년 이상을 잊힌 작가로 살았어요.

 

그러다가 이룸(지금의 ‘자음과모음’)에서 단편집을 내자고 연락이 왔길래 깜짝 놀랐어요. 잊힌 작가의 작품을 왜 내나 싶었죠. 아무튼 내자니까 내기로 하고, 단편을 추려보니 1권 분량이 되어서 그걸 마흔 살에 냈어요. 눈 뜨고 볼 수 없어서 뺀 작품도 있긴 했지만, 묶는다는 데 의의가 있었죠. 단편집이 나오고 나니까, 누군가가 단편집을 읽고 청탁을 했어요. 8년 넘게 안 쓰다 다시 쓰니까 굉장히 떨렸어요. 그런데 떨면서도 내가 이렇게 글을 쓰고 싶어 했구나, 감동이 밀려오더라고요. 그때 쓴 작품이 「분홍 리본의 시절」이죠. 그때는 이 작품이 내 생애의 마지막 단편이 될 거라고 생각하며 썼어요. 그런데 다음에 또 청탁이 들어오고, 또 들어오고, 그래서터 재등단한 모양이 되었어요.

 

『처녀 치마』라는 책을 내지 않았다면, 지금 완전히 잊힌 작가로 살고 있을 거예요. 내용과 별개로 이 책은 제게 의미가 큰 책인데, 이렇게 다시 나오니까 기분이 좋죠. 쓰다가 힘들 때가 있어요. 나이도 있고, 감도 떨어진 것 같고, 내가 봐도 내 문장이 너무 별로인 순간. 이럴 때는 ‘때려치울까’ 하는 마음도 들지만 「분홍 리본의 시절」을 쓰던 때를 생각해요. 그땐 정말 소설을 쓰는 게 얼마나 좋은지, 계속 이렇게 쓸 수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죠. 그때의 절박한 열망을 생각하면 다시 쓰게 되죠.

 

 

『레가토』를 쓰고 나서는 일단 강을 건넜다

 

첫 소설집의 <트라우마>에서도 그렇고 ‘운동권’이라는 장치가 나옵니다. 작가님의 작품에는 운동권이 첫 작품에서부터 근작까지 자주 등장하는데요. 실제로 작가님은 어떤 학생이었나요.

 

저희 때는 많은 사람이 운동권 비슷했어요. 열심히 안 해도, 마음으로 지원하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저는 광주 이후의 학번이니까 자연스럽게 그런 흐름이 있었죠. 대학에 와 보니 고등학교 때까지 배운 내용과 너무 달라요. 광주사태는 폭도가 일으킨 사건이라고 배웠는데 그렇지 않았고요. 이런 게 세상에 너무 많은 거죠. 젊은 나이니까 ‘그럴 수도 있지’ 이렇게가 안 되더라고요. 당장 어떻게 해야 하나 답답하고, 그러면서도 뭘 하려면 무섭기도 하고, 그 사이에서 갈등이 굉장히 많았어요. 후일담 소설들에도 자주 나오는 내용이지만, 정말 훌륭했던 선배들 중에 다치고 죽은 사람들도 많고요, 망가진 사람들도 많아요. 180도 변신해서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속물이 된 사람들도 많고요. 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지만요. 이런 걸 보고 경험하니까, 소설을 쓸 때 자연히 그런 내용이 나올 수밖에 없죠.

 

운동권 이야기를 싫어하는 사람들 쪽에서는 왜 새로운 이야기를 못하고 다 끝난 이야기를 쓰느냐 하는 비판도 하고, 운동권 쪽 사람들은 또 아니 왜 그렇게 찌질한 이야기만 쓰느냐 하는 비판도 해요. 제 작품이 어느 쪽에서도 환영받기 어려운 면이 있죠. 그런데 제 눈에는 그런 것만 보이는데 어쩝니까? 『레가토』를 쓰고 나서는 일단 강을 건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떤 이야기를 쓰더라도 예전처럼 쓰지는 않을 듯해요. 요즘은 지금 제 주변에 있는, 저와 동시대를 사는 사람들 얘기가 궁금해지기 시작했어요. 어쩌면『레가토』를 쓰던 그 즈음에 저도 모르게 제가 진짜 소설가가 된 거 같아요. 자기 것만 들입다 파다가, 이제 세상일에 관심을 갖고 다른 삶들을 보기 시작했으니까요. 글을 쓰면서 사람이 바뀌기도 하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글이 저를 많이 교정했죠. 저는 참 나쁜 사람이 될 수도 있었는데, 글을 쓰면서 최소한 더 나빠지지는 않은 것 같아요.

 

나쁜 사람이라 하면, 구체적으로는 어떤 모습인가요?

 

겉으로 눈에 띄게 사악한 짓을 하지는 않았겠지만, 아마 속에서는 증오, 분노가 들끓는, 아주 오만하고 고약한 인간이 될 수도 있었거든요. 글을 쓰면서 덜 그렇게 된 거죠. 글을 쓰다 보면 제가 좋아하는 것보다 싫어하는 걸 더 잘 쓰게 됩니다. 좋아하면 아 좋다 하고 마는데, 싫어하면 왜 싫지, 왜 이렇게 꼴보기 싫지, 자꾸 생각하게 되고, 부정적 감정에 계속 긁히고 자극이 되요. 그러면 저도 들여다보고 대상도 들여다보게 되죠. 그렇게 들여다보면 대상에게서 이해할 만한 사연을 발견하기도 하고, 저 스스로도 어느 정도 이해나 납득을 할 수 있게 되죠. 그렇게 조금은 관용이 생기고.

 

작가님 작품에서 ‘토’하는 장면이 자주 나옵니다. 최근작인 『토우의 집』에서부터 첫 소설집인 『처녀 치마』에도 토가 등장하는데요. 이런 상징의 의미가 궁금합니다.

 

몰랐는데, 언젠가 제 작품을 꼼꼼히 보는 어떤 평론가 선배가 그런 내용을 지적해서 ‘어, 그러네’ 했던 적이 있어요. 왜 그런지는 모르겠어요. 제가 술을 좋아하고 많이 토해봐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뭔가 심리적이고 정신적인 면의 구토증과 연관이 있는 듯해요. 구토물만큼 혐오를 유발하는 게 없는데, 뭔가를 제어할 수 없는 자신, 표현되지 않고 소화되지 않고 역류하는 뭔가가 있어서 제가 자꾸 제 인물들을 토하게 만드는 게 아닐까 싶네요.

 

작가님의 작품 전반이 늦가을 같은 스산한 분위기인데요. 작품 전반에 담는 정서가 다소 어두운 것 같습니다.

 

막 봄 같지는 않죠.『토우의 의 초반 분위기는 봄인데, 그게 또 읽다보면 뒷부분과 대비되는 장치처럼 느껴지기도 하고요. 실제 삶도 기쁜 일보다는 애잔하고 쓸쓸한 일이 많은 것처럼 제 소설도 밝고 명랑하지는 않아요. 그렇다고 처음부터 끝까지 비극적이라거나, 한 사람의 삶을 다룰 때 계속 비극적인 모습만 그린다고 볼 수는 없어요. 저는 한 인간이 잘 지내다가 갑자기 뒤통수를 맞게 되는 순간을 흥미진진하게 관찰하는 편인데요. 자기 자신의 정체성을 잘 유지하다 뜻하지 않은 일격이 올 때 사람이 석류처럼 툭 터져버리는 방식을 그리는 게 재미있어요. 저도 그럴 때가 많고요. 나는 누구였지? 이렇게 급진적으로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그런 느낌이 있어요. 그러다 보니 스산한 늦가을에 가까운 분위기가 나지 않았나 싶네요.

 

문학이란 뜬구름 잡는 얘긴 지겨워. 문학이란 거 사실 유아 문화 아니니? 어른들이 누가 시를 읽고 소설을 읽어? (「12월 31일」 중에서)

 

『처녀 치마』에 수록된 「12월 31일」에 어른이 누가 시를 읽느냐고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다소 거창하게 말해서, ‘문학의 종언’이라는 진단이 10여 년 전 작품에도 나와서 독자로서 읽기에 흥미로웠습니다. 사회적으로 지금 문학은 어떤 위치에 있다고 보시나요.

 

그때보다 지금이 더 심해졌죠. 그때도 개탄스러웠는데, 지금 보기에는 그 시대가 황금시대로 보일 정도죠. 어쩔 수 없는 거 같아요. 사람들이 다양한 걸 원하니까요. 많은 오락거리, 볼거리가 있는 시대에 문자를 읽는다는 게 쉽지 않겠죠. 각자 선택에 따라 다른데, 글을 읽고 얻는 경험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만이 독서 인구로 남을 거예요.

 

예전에는 작가들이 자신만의 스타일과 개성적인 문체를 자랑스러워했어요. 문학의 발전과 함께가는 소중한 미덕이기도 했고요. 요즘은 그걸로 충분한가, 그런 고민을 해요. 내가 좋아하는 걸 내가 표현하고 싶은 스타일로 쓰는 것도 좋지만, 조금 더 보편적인 호소력을 갖추는 문제도 고민해야 하지 않나 싶어요. 작가 쪽에서 좀더 소통하려는 노력을 하면 독자 쪽에서도 소설을 좀더 읽어주지 않을까 그런 거죠.

 

활자로 사람 마음 흔드는 게 쉽지는 않아요. 드라마는 내용이 막장이라도 연기하는 사람이 울면, 저도 울거든요. 시각적으로 바로 오잖아요. 그런데 소설로 글로 사람을 울린다는 건 정말 힘들어요. 잠깐 눈물이 고이게 하는 것, 그 정도도 힘들거든요. 그런 면에서 글로 사람 마음을 흔들 수 있다면, 그 흔들림은 더 잊을 수 없고 더 오래 가고 더 강력할 거라는 믿음은 있어요. 제가 워낙 극소수 마니아 독자만 있는 작가인데 이제 조금은 외연을 넓히려고 고민할 때가 된 것 같아요. 그렇다고 스타일을 갖다 버릴 필요까지는 없겠지만, 같이 가야죠. 『레가토』를 쓰고 제 글쓰기 인생의 2기가 시작되었다고 말했는데, 2기에는 쓰고 싶은 것만 쓰기보다는 많은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걸 쓰려고 최소한 노력은 해 보려고 해요.

 

많은 작품을 내지 않았지만 이상문학상을 비롯한 여러 상을 타셨습니다. 주제의식도 그렇지만 선생님의 문장력과 주제를 구체화하는 방법을 보면 평소에 엄청나게 책을 많이 읽으실 것 같아요.
 
의외로 독서량이 많지 않아요. 다독하는 스타일은 아니고, 읽은 거라도 잃지 말고 가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요즘 작가들은 어마어마한 이론가들이 쓴 어려운 이론서도 읽고 새로운 이론이나 관념도 빨리 받아들이는데, 저로서는 부럽죠. 저는 읽었던 책을 계속 읽어요. 소설도 그렇고 이론서도 예전에 읽어서 좋았던 책을 여러 번 읽죠. 『전쟁과 평화』는 예전에 나온 세로쓰기 책으로 읽는데, 다 읽으려면 한 달 정도 걸려요. 그래도 몇 년에 한 번씩 다시 읽어요.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도 번역이 참 좋지는 않지만 5~6년에 한 번씩은 봅니다. 이론가 중에서는 벤야민이 그런 존재이고요. 요즘은 제발트가 좋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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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이 없다는 점은 글쓰기의 매력

 

2014년에 모교에서 창작 과정을 맡으셨는데요. 어땠나요.

 

가르치는 일이 의미가 있고, 가르치는 것을 잘하고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렇지 않아요. 평등한 관계가 아니잖아요. 또 소설이 가르친다고 되는 게 아닌 것 같고요. 그럼에도 서울대에서 처음 생긴 창작 강의였기에, 창작을 하고 싶은 학생들의 목마름을 아니까 제가 가지고 있는 선에서는 최선을 다해서 얘기해주고 싶었어요. 딱 한 학기만 하겠다는 조건으로, 시와 소설 반반 나눠서 한다고 해서 맡았어요. 학생들이 의외로 잘 쓰더라고요. 당장 신춘문예에 등단할 정도로 잘 쓴다기보다, 되게 독특하고 이상한 글을 잘 써요. 심사에서는 떨어지겠지만, 학생들의 자유로운 발상과 글쓰기가 신선했어요.

 

뭘 가르쳐야 할지 많이 고민하셨을 듯합니다.

 

결국은 많이 읽고 많이 쓰는 수밖에 없어요. 제가 아는 선에서 다양한 작품을 소개하고 읽혔고요, 읽고 나서는 무엇이 좋고 어디에 끌리는지 이야기하게 했고요, 서로 써온 소설들에 대해서 토론하는 합평회를 했어요. 그런 과정을 거치면 자신이 쓴 문장들이 이렇게 읽히는구나 객관화할 수 있고, 감을 익힐 수 있거든요. 인원이 좀 적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게 아쉬워요. 수업 듣는 학생이 많으니 한 사람당 주어진 발표 시간이 15분씩밖에 없었거든요. 많이 읽고 토론하는 것, 이게 정공법이죠.

 

앞으로 어떤 작품으로 독자와 만날지 알려 주신다면.

 

앞서 말했듯, 제 글쓰기 인생의 2기가 시작됐어요. 조금 더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글을 쓰려고 해요. 감동이라고도 하지만 저는 정동이라는 말을 쓰고 싶네요. 감동은 쓰나미가 밀려오는 느낌인데, 소설로 그런 걸 하는 건 쉽지도 않고 또 바람직한 것 같지도 않아요. 대신 정서가 조금 움직이는, 감수성이 살짝 넓어지는, 새로운 정서적 경험이 생겨나는, 그런 소설을 쓰기 위해 노력하려고 합니다. 아직 방법은 모르겠어요. 잘못 빠지면 신파가 될 수도 있는데, 그럴 값에 일단 고민하는 건 재밌으니까요. 완성이 없다는 점, 그게 글쓰기의 가장 큰 매력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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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우의 집권여선 저 | 자음과모음(이룸)
큰 길 곁으로 골목마다 채국채국 집을 지어 머리를 치켜든 다족류 벌레처럼 보이는 삼벌레고개. 그곳은 사람이 토우가 되고, 토우가 사람의 집에 들어가 살다가, 캄캄한 무덤이 되어버린 ‘토우의 집’이다. 이상문학상, 한국일보 문학상 등을 수상, 고통과 상실의 현장을 정면으로 응시하기를 피하지 않고, 오래토록 간직하는 작가 권여선의 세번째 장편소설 『토우의 집』이 자음과모음에서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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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 치마권여선 저 | 자음과모음(이룸)
작가는 이미 작품이 가지는 의미에 관해 ‘연애’라는 헌사를 붙인 바 있다. 연애가 비로소 연애인 것은 작가의 말처럼 “사랑이란 말처럼 상대방 면전에서 남발되거나 소모될 수 없는” 그만의 정체성을 가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맥락에서 『처녀치마』는 그동안 한국 문단에서 보여준 작가의 정체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작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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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배우 김소현 손준호 “엄마아빠로서 만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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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일을 하고 그 일로 사회적 성공을 거두고 대중에게 사랑까지 받는 삶은 얼마나 축복 받은 삶인지. 그런 삶은 때로 지나치게 빛나서 좀처럼 이 세상의 것처럼 느껴지지 않기도 한다. 대중은 화려한 모습에 열광하지만 그 삶에서 발견된 아주 사소한 티 하나에도 돌아서게 마련이다. 중요한 것은 땅에 발 단단히 딛고 서서 중심을 잡는 것, 정말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잊지 않는 것일 터다. 만일 그 중심에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서로를 응원하는 짝이 있다면 어떨까. 그야말로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뮤지컬 배우 김소현, 손준호. 이들은 뮤지컬과 방송 등 다양한 모습으로 대중 앞에 서고 있다. 워낙 유명한 뮤지컬 배우 커플이긴 하나 많은 사람들이 이들을 '주안이 엄마아빠'로 더 잘 알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방송을 통해 아이가 성장하는 모습이 그려질 때마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즐거워하고 감동한다. 아이만 성장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 곁을 지키는 부모 역시 하루씩 더 성장한다. 어쩌면 무대 위 화려한 배우의 모습이 아니라 평범한 부모로서 좌충우돌하는 그 모습이 그들의 진짜 모습일지도 모를 일이다.

 

이들이 동화책을 펴냈다. 아이에게 필요한 것을 고민하고 주고 싶은 것들을 상상하는 부모의 마음을 그대로 담았다. 책만큼은 뮤지컬 배우나 방송인이 아닌 평범하고 범상한 부모의 마음을 담아내고 싶었다. 이런 마음이 많은 부모들에게 잘 전달되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모차르트와 세계명작』에는 빨간 모자, 호두까기 인형, 피노키오, 브레멘 음악대, 장화 신은 고양이 등 가장 많이 알려지고 가장 많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동화 명작 5편이 수록되었다. ‘세계명작’을 수식하는 ‘모차르트’의 의미는 부록으로 담긴 CD를 보면 알 수 있다. 뮤지컬 배우 부부의 역량을 십분 발휘, 모차르트 소나타를 배경음악으로 동화 구연을 펼쳤다. 이야기와 모차르트 소나타가 절묘하게 어우러져 긴장감과 설렘, 기쁨 등의 감정이 놀랍도록 자연스럽게 펼쳐진다. 덕분에 아이들은 더욱 집중하여 이야기에 빠져든다. 주안이 역시 CD를 통해 들려오는 엄마아빠의 목소리를 무척 신기해하면서 동화에 점점 빠져들었다.

 

클래식이 아이들의 정서 안정과 두뇌발달에 도움을 준다고 알려져 있긴 하나 정작 육아에는 빠져 있게 마련이다. 클래식을 태교음악으로만 생각하는 것이 늘 아쉬웠다는 두 사람. 동화에 클래식 음악을 입혀 더 많은 아이들이 클래식을 즐길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이들의 모습에서 아이에 대한 깊은 사랑이 물씬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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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빠로서 필요해서 만든 책

 

동화책으로 만나다니 의외입니다. 책을 내겠다고 생각한 어떤 계기가 있나요?

 

김소현(이하 김): 정말 제가 필요해서였던 것 같아요(웃음). 저희가 둘 다 너무 바쁘고, 목을 쓰는 직업이다 보니까 반복해서 읽으면 목이 많이 쉬어요. 그래서 생각했던 것이, 아빠의 목소리로 녹음을 해서 아이에게 들려주고 싶다는 것이었어요. 외국에는 스토리텔링 책이 무척 많잖아요? 종류도 많고요. 우리나라에도 물론 있지만 엄마아빠의 목소리로 한 책은 없더라고요. 그래서 ‘한 번 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제가 태교할 때 모차르트를 많이 들었어요. 클래식을 전공해서 좋다는 걸 잘 알고 있었고요. 클래식의 장점과 저희가 뮤지컬에서 했던 연기, 아이를 키워본 엄마아빠의 입장, 그런 것들을 모두 책에 접목시켜 봤어요. 책에 관해 다양한 생각도 많이 했고요. 글자 크기에 대해서도 고민했어요. 엄마아빠들이 활자가 작거나 글자가 많이 들어가 있으면 읽어주기 싫거든요(웃음). 또 그림은 너무 반짝거리지 않게, 아이들 눈부시지 않게 하자는 생각도 했었고요. 회의를 많이 했어요. 저희는 책 분야로는 전혀 전문가가 아니니까 도움도 많이 받았고요. 제가 엄마로서 느꼈던 것들, 해주고 싶었던 것들을 서로 얘기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죠. 독자분들이 이 책을 어떻게 받아들이실지 궁금해요(웃음).

 

CD가 포함되어 있는 점이 가장 먼저 눈길을 끌어요.

 

김: 무대에 선 사람들이라 그런지 저희가 평상시에도 과장된 표현이 있어요(웃음). 주안이에게는 그렇게 읽어주거든요. 어른들이 듣기에는 좀 웃길 수도 있지만 아이들은 그런 거 좋아하잖아요(웃음). 녹음을 잔잔하게도 해봤는데, 역시 아이들의 시선으로 내려가서 마치 그걸 정말 보고 있는 것처럼 해야겠더라고요. 이런 작업물을 통해 엄마아빠 없는 아이들에게도 들려주고, 선물해주고 싶은 책을 만들고 싶었어요.

 

손준호(이하 손):저희가 아이들을 직접 찾아 가서 하기에는 한계가 있잖아요. 음향도 있어야 하고, 마이크도 준비해야 하고요. 여러 가지 조건들이 많이 붙더라고요. 좀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봤어요. 책 작업이 진행되면서 기부도 해보자, 자비로 책을 구입해서 고아원에 보내기도 해보자, 이런 얘기를 계속 하게 됐어요. 책을 통해서 할 수 있는 일이 굉장히 많더라고요. 처음에는 막연했지만 이렇게 책이 나오고, 아이가 그림을 보면서 ‘멍멍이다! 얼룩말! 꼬끼오!’ 하며 가리키고 좋아하는 모습 보니까 저희도 참 좋더라고요.

 

그런 면에서 역시 이 CD 부록을 아이들이나 부모님들 모두 좋아할 것 같습니다.

 

김:아이들은 반복해서 들으면서 단어들이 점점 하나씩 들린다고 하더라고요. 아이들은 또 읽어달란 얘기를 정말 많이 하거든요. 그것을 CD로 들으면 엄마아빠들이 더 수월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손: 아빠들은 다 알 거예요. 대부분 앉아서 아이를 안고 책을 앞에 펼쳐놓고 읽어주잖아요. 처음에는 열의에 불타서 읽어주죠. 하지만 다 읽어도 아이들은 계속해서 읽어달라고 해요. 여러 번 읽다보면 시작할 때와는 다르게 목도 갈라지고 목소리도 쉬고 힘들어지죠. 어른들 수준에 맞는 책이 아니니까 지겨워지기도 하고요. 근데 이렇게 책장 넘기면서 CD 틀어놓고 들려줄 수 있으니까 반복에 대한 부담감도 없고 좋더라고요.

 

‘자장가’와 ‘안녕 별들아’는 김소현 씨가 작사를 하셨어요. 노랫말에서 엄마의 사랑이 듬뿍 느껴집니다. 원래 작사를 하기도 했었나요? 

 

김:전문적인 분들이 녹음, 작사 모두 해주실 수 있지만 저희가 직접 만드는 것이 굉장히 의미가 있었어요. 그래서 부족하겠지만 저희가 다 하려고 했어요. 사실 작사가 처음이에요. 부족하더라도 우리가 다 해보자라는 생각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작사까지 하게 됐어요. 너무 웃겨요(웃음). 가사는 편하게 내 아이에게 들려준다는 생각으로 했어요. ‘자장자장 닌나난나 아루루 랄라라’ 이것들은 자장자장의 다른 나라 말이에요. ‘닌나난나’가 다른 나라 말이고, ‘아루루’가 또 다른 말이거든요. 유치하지만 이렇게 제가 생각한 것들을 썼어요(웃음). 녹음 역시 저희는 전문적인 성우가 아니니까 거칠더라도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하고 싶었어요. 
 
손:정말 엄마아빠가 해주는 것처럼 말이에요. 이것에 대한 전문 지식이 있는 분들이 아니라 엄마아빠가 집에서 읽어주는 것처럼 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클래식과 친숙해져야

 

모차르트를 소개하셨는데요. 그 외에 생활에서 많이 들었으면 하는 음악가가 있나요? 혹은 두 분이 좋아하는 음악가를 소개해주셔도 좋고요.

 

김: 다들 잘 아시겠지만 정말 좋은 곡들이 많아요. 클래식을 전공한 입장에서는 아까운 곡들이 너무 많죠. 그래서 책을 시리즈로 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어요. 다양한 음악을 들으면서 동화도 읽을 수 있도록 말이에요. 클래식을 어렸을 때부터 듣다보면 친숙해지거든요. 동화와 함께 듣기에 베토벤도 좋다고 생각해요. 약간 무거운 음악도 많지만 베토벤이야말로 드라마틱한 음악들이 많으니까 거기에 드라마틱한 동화를 매치해보고 싶어요. 이번에 ‘ㄱ, ㄴ, ㄷ’, ‘a, b, c’처럼 기본적인 동화로 시작했으니 그 다음에는 ‘남자 아이들을 위한 동화’, ‘예쁜 여자 아이들을 위한 동화’ 하는 식으로 만들어보고 싶어요. 오르골도 써보고 싶고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더라고요. 아이디어도 굉장히 많아요(웃음).

 

책을 만들면서 재미있는 일들이 많았을 것 같은데요,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손:녹음할 때요(웃음). 저희 부모님께 들려드려도 보고, 주안이에게 들려주기도 했는데요. 저희 아버지가 어색한지 ‘좀 잘 읽어봐.’ 하시더라고요. 아버지께서 읽어주시기도 했는데 결국 서로 이상하다고 하면서 많이 웃기도 했죠. 너무 어색해서 아내 앞에서도 잘 안 읽으려고 했어요.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마이크에 대한 부담감이 별로 없었던 거예요. 녹음 같은 것을 많이 하니까 연습했던 것과 똑같이 할 수 있었는데요. 그래도 처음에는 한 번 듣기 좋은 음악이 아니라 몇 번 들어도 좋을 평균치를 자꾸 생각하게 되는 거예요. 너무 과하면 처음에는 재미있게 들을 수 있지만 불편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요. 결국 처음 녹음을 동화 하나에 두 시간인가 한 시간 반 정도 했어요. 진짜 진도가 안 나가더라고요. 너무 어색해서 녹음 도중에 나와서 웃기도 많이 했어요.

 

구연동화의 특성을 살리기가 처음부터 쉽지는 않았군요?

 

김: 처음에는 남편이 처음부터 끝까지 역할을 바꿔가면서 여자 역할까지 다 해봤어요. 저는 그것을 원했거든요. 모든 등장인물을 아빠가 구연해서 ‘아빠가 아들에게 주는 책’으로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막상 해보니까 제가 필요하더라고요.

 

손: 혼자 그렇게 하니까 너무 진정성이 없어지는 거예요. 할머니도 해야 하고 엄마도 해야 하는데 제가 ‘얘, 빨간모자야.’ 하면 너무 웃기더라고요. 그래서 아내가 필요하겠다고 생각했어요. 결국 여자나 피노키오 같은 것은 아내가 녹음을 했죠.

 

구연동화와 함께 읽으니 집중도 잘 되고, 더 실감나고 재미있더라고요. 두 분의 의도가 잘 반영된 것 같습니다.

 

김: 어른들도 책 읽는 게 요즘은 쉽지 않잖아요. 매체가 워낙 다양하니까요. 요즘 아이들도 점점 더 책을 안 읽게 되고요. 무엇보다 어렸을 때 습관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아이들이 책에 흥미를 느끼도록 하는 것이 최우선 목표였어요. 아이들은 지루할 틈을 안 줘야 하잖아요? 그런 부분에 포인트를 많이 줬어요. 이 책으로 인해 책에도 흥미를 가질 수 있는 거니까요. 요즘 아이들이 스마트폰을 너무 많이 보고 그런 것들이 좀 걱정도 되고 아쉽기도 해요. 물론 그것에서 또 학습되는 것도 많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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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클래식 듣는 습관이 중요하다고 하셨는데요, 음악에 관한 두 분의 특별한 자녀교육 철학이 있나요?

 

김:저희 어머니 역시 클래식을 전공하셨기 때문에 저는 어렸을 때부터 클래식을 많이 듣고 자랐어요. 클래식 음악은 기본적으로 마음이 편안해지고 정서적인 안정감을 주니까 아이들에게 많이 들려주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고요. 자녀 교육의 시작이 음악이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아이들은 보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귀로 듣는 게 정말 중요해요. 저희 아이도 어렸을 때 제가 모차르트 음악 정말 많이 들려줬었거든요. 방송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모차르트의 작은 벨 변주곡을 정말 좋아했어요. 클래식이 저희 아이에게는 익숙하고 편하고 자연스럽게 일찍부터 받아들여졌던 것 같아요. 모차르트가 좋다는 것은 모두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니까 분명히 이유가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태교만 하고 출산 후에는 듣기를 대부분 멈추잖아요.

 

손: 럴 수밖에 없는 게, 뱃속에 있을 때는 여유가 어느 정도 있어서 아이에게 좋은 것도 찾고 노력도 많이 하는데 막상 출산하고 나면 그런 부분이 없어지잖아요. 육아만으로도 스트레스 받고,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고, 생활이 시작되니까요. 음악을 틀 수 있는 여건이 안 되더라고요. 아이가 크면 어느새 음악 듣는 습관은 점점 사라지고요. 그럴 때 이 책으로 음악을 다시 들려줄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어요.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엄마도 힘든데 억지로 ‘음악을 들어볼까?’ 그렇게 하기 힘들잖아요. 책을 읽어주면서 음악도 들으면 좋을 것 같았죠. 클래식이라는 게 옛날 것이지만 지금까지 사람들이 찾는 데에는 이유가 있을 테니까요. 정서에도 좋고, 음악이 줄 수 있는 긍정적인 부분들이 굉장히 크고요. 또 감성적인 부분도 터치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아무래도 엄마 역할이 컸던 것 같아요. 모차르트를 들려주고 싶다고 계속 얘기를 하더라고요. 음악을 틀어놓다 보면 아이랑 얘기를 같이 해서 음악 감상이 아니라 소음이 되기도 했는데요. 방법을 찾아보자고 생각했어요. 동화를 읽어주는데 모차르트 음악이 뒤에 깔리면 어떨까? 했었죠. 

 

어쩌면 당연하겠지만 아이의 음악적 감각이 확실히 달라요. 언어 능력도 그렇고요.

 

김:민망하지만(웃음). 주안이가 정말 기억력이 좋아요. 모차르트 음악을 정말 좋아해서 영상을 틀어줬던 게 있어요. 20여분짜린데, 끝나면 이어서 abcd 영상이 나와요. 그걸로 abcd를 깨쳤거든요. 따로 한 게 없고, 제가 한 것이라곤 모차르트 음악 들었던 것뿐이에요. 저는 한 명 밖에 안 키워봤으니까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그게 영향이 없다고는 생각이 안 들더라고요. 말도 잘하고요. 뭔가 음악에 영향을 받은 요소가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요.

 

손:저희가 경험한 거니까 ‘영향이 있구나.’ 하고 생각해요. 경험을 했으니까요.

 

어른들이 클래식과 친해져야 아이들도 친해지겠죠. 어른을 위한 입문서 계획은 없으신가요?

 

김: 저는 사실 클래식 선율이 좋은 게 많아서 클래식 선율에 우리나라 가사를 붙여서 음반을 내고 싶었어요. 데뷔한지 오래돼서 그 사이에 생각이 많았네요(웃음). 뮤지컬이 많이 대중화 됐기 때문에 뮤지컬 입문서도 내고 싶었고요. 해보니까 더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 점점 노하우도 생기고 그래요. 우선은 이번에 책 낸 것을 많은 엄마아빠들이 좋아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다양한 활동을 하고 계셔요. 이번에 책까지 내셨고요. 또 도전하고 싶은 분야가 있으세요?

 

김:남편을 만나기 전까지는 도전이 두려웠어요. 도전을 하더라도 제가 생각하는 틀이 있었는데 남편 만나고 많이 깨진 것 같아요. 예능도 전혀 관심이 없었거든요. ‘위대한 탄생’도 아이 낳고 백일도 안됐을 때였어요. 육아 걱정이 앞섰는데 남편이 정말 용기를 많이 줬어요. ‘오마이베이비’도 사실 망설였어요. 저는 SNS에 아이 사진도 안 올렸었거든요. 그런데 남편이 ‘백년손님’이라는 걸 하면서 장인장모와 짧은 기간에 추억을 정말 많이 만들었다는 거예요. 방송을 통해 아이가 가장 예쁠 때 좋은 추억을 남기면 좋을 것 같다는 말을 했고, 그 말을 들으니 정말 그렇단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도 예쁜 영상들이 많이 나와서 못 그만두겠어요. 6개월만 하자 해놓고 벌써 일 년이 다 돼가요(웃음). 실제로 현장에 제가 있었는데도 못 봤던 것들을 PD님이 편집해서 보여주시니까 신기해요. 한 마디도 못할 때 시작했는데 지금은 말도 많이 늘었고요. 게다가 주안이를 정말 많이 예뻐해 주시니까요.


손:새로운 분야에 도전할 게 아니라, 가까이에 있는 것부터 살피자면 다음엔 책을 시리즈로 낼 수 있는 기회가 열리면 좋지 않을까 해요(웃음). 

 

김:정말 엄마아빠로서 필요해서 만든 책이에요. 책을 받아보신 분들은 그걸 느껴주실 것 같아요. 출판사와 저희가 한 마음으로 했거든요. 출판사에 정말 감사해요. 서로 좋은 책 만들어 보자 하는 생각으로 했기 때문에 참 좋았어요.


손준호 씨가 육아 참여를 비교적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아빠 육아의 장점이 있다면요?

 

김: 남편 다섯 살 때 저희 시어머니께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냐고 물으면 좋은 아빠가 되고 싶다고 그랬대요(웃음). 그게 정말 좋더라고요. 일도 일이지만 일단 좋은 아빠가 된다는 것이 모든 일의 시작이잖아요. 그런 점이 참 좋아요. 저희가 연상연하 부부다 보니까 이 사람이 나이가 많을 때 결혼한 게 아니에요. 젊은 아빠잖아요. 그래서 에너지가 넘친다고 할까요(웃음). 그런 면들이 엄마 입장에서 정말 감사하고 좋죠. 제 친구들이 방송 보고 부럽다고 전화가 많이 와요(웃음). 오히려 힘든 건 아빠가 너무 열정적으로 노니까 아이가 저한테도 막 밟고 이래서(웃음) 사실 그게 좀 힘들어요.

 

손: 저는 같이 차면서 놀고 그러거든요. 아이는 엄마가 공연 다녀오거나 그러면 반가우니까 아빠랑 놀듯이 표현을 해요. 근데 엄마는 그게 힘든 거죠. 저는 항상 친구 같은 아빠가 되고 싶었어요. 어렸을 때는 스물넷에 결혼해서 빨리 아이를 낳고 나이 차이 최대한 나지 않는 아빠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었어요. 그 계획은 실패를 했지만요(웃음).

마음이 잘 통했으면 좋겠어요

 

CD를 들어보니, MR로만 실린 부분도 있어서 그 대목에서는 따라 부를 수도 있게 했어요.


김: 일부러 그것도 넣어달라고 했어요. 노래에 익숙해져서 엄마아빠가 직접 불러주면 좋겠어서요. 아이들도 따라 불러도 되고요. 책이 생각한대로 잘 나와서 좋지만 막상 부끄럽기도 해요. 자기가 노래한 거 들으면 약간 부끄러운 그런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손: 이건 더 하죠. 아이들 높이에 맞춰서 자신을 내려놓고 녹음했으니까요(웃음). 어른들이 들으면 웃길 수도 있어요. 하지만 다른 분들도 직접 자녀에게 동화책을 읽어주신다면 저희와 똑같을 거라 생각해요. 그래도 부끄러운 건 사실이에요. 저희 마음이 잘 통했으면 좋겠어요.

 

서로의 어떤 면이 자녀 교육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시나요?


김: 저는 약간 조급해요. 빨리 해야 되고, 어느 정도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최대한 짧은 순간에 많은 것을 해야 한다는 욕심도 있어요. 또 초조하고 불안해하는 면이 있어요. 좀 앞서간다고 해야 할까요? 일을 할 때도, 무대 올라갈 때 무척 긴장하고 떨고 하는데요. 손준호 씨가 엄청 긍정적인 사람이에요. 그것에 좋은 영향을 많이 받았죠. 결혼해서 짧게 살았지만 저도 그런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 아이의 미래를 생각하면 아빠의 긍정적이고 편안한 마음이 아이에게 엄청난 좋은 영향일 것 같아요. 부모로 봤을 때는 그래서 참 찰떡궁합인 것 같아요. 둘이 무척 다르니까요. 훈육할 때 저는 받아주는 스타일인데 아빠는 무섭게 하는 식이고요. 적절히 잘 조화를 시켜야겠죠(웃음).

 

손: 아내는 무척 열정적인 엄마예요. 엄마의 정보력이 아이의 미래다, 하는 얘기 많이 듣잖아요? 그런 부분에 있어서 참 편하고 믿음이 가요. 아내가 아이에게 좋은 것을 주려고 노력하고 몸이 힘들더라도 애를 많이 써요. 저는 몸이 힘들면 ‘괜찮아’ 이런 스타일인데 아내는 그렇더라도 아이에게 필요한 게 있으면 도전해보게 하고, 경험하게 하고, 아이 손에 직접 만져볼 수 있게 하고, 그런 스타일이에요. 그런 부분이 저도 편하고 아이에게도 좋은 것 같아요. 결혼하기 전에는 몰랐어요. 엄마로서의 모습이 예측이 안 되더라고요. 남편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는데(웃음), 아이에 대한 사랑은 백점 만점에 백점 줄 수 있는 엄마예요. 모유수유부터 시작해서 아이 음식 만들어주고 하는 것들 모두 좋은 것을 주려고 많이 노력하고요. 아이에게 주는 사랑도 많아요. 주안이가 엄마아빠의 사랑을 충분히 받고 자라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참 좋아요.

 

저희는 도와주시는 분이 없어요. TV에서 보시고 ‘저거 다 아줌마가 해주는 거야’ 하시는데 전혀 아니에요. 그것이 아내에게 미안할 때도 있긴 하지만 추구하는 게 다른 거니까요. 저희는 다른 사람 손이 아닌 우리 손으로 직접 키우기를 원했어요. 도와주시는 분의 도움을 받기 시작하면 피곤하거나 일이 있거나 여가를 보내고 싶을 때 아무래도 아이보다는 내 여가를 찾게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힘든 부분이 있겠지만 이런 뜻을 아내가 잘 따라주는 것 같아서 정말 고마워요. 요즘 조금 불평불만이 많아지기는 하는데(웃음), 지나가면 또 좋은 추억으로 남을 테고 잘했구나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요.

 

손준호 씨는 자녀교육에 대한 철학이 확실히 있으시네요.

 

손: 저는 제 목표가 최고의 뮤지컬 배우, 노래 제일 잘하는 배우, 이런 게 전혀 아니에요. 바보스러울 정도로 욕심도 없어요. 저는 오로지 목표가 행복한 가정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책도, 내 아이에게 주는 거니까 얼마나 고민을 했겠어요. 이 마음을 같이 다른 부모들과 함께 나누며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생각해보고 싶어요.

 

아이에게 어떤 부모이길 바라세요? 아동학대 예방 캠페인도 하시고, 이 책의 수익금 일부도 기부한다고 하던데 이런 사회활동도 부모기 때문에 더 적극적으로 하실 수 있으시잖아요.

 

김:저는 저희 부모님께서 일을 하시는 걸 보고 자랐는데 그게 굉장히 큰 영향을 끼쳤던 것 같아요. 부모님이 잘해주시고 사랑을 주시는 것도 물론이지만 일을 열심히 하시는 모습에서, ‘아, 나도 저렇게 열심히 해야겠다.’라는 생각을 하면서 자랐거든요. 저희도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이 가장 먼저 따라하는 게 부엌놀이거든요. 엄마가 부엌에서 요리하는 걸 많이 보기 때문에 그것부터 시작을 하는 거예요. 그만큼 엄마아빠가 하는 행동이 중요한 거잖아요. 최대한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제가 그런 경험을 했기 때문에요. 그래서 집에서도 말이나 행동도 조심스럽더라고요. 다들 그러시겠죠(웃음).

 

손: 나중에 주안이가 자식 낳고 이 책을 보면 저희에게 고마워하겠죠. 부모님이 나에게 이런 것도 만들어줬구나 생각하면서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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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차르트와 세계명작손준호,김소현 편/김민하 그림 | amstory
‘뮤지컬 배우 손준호 & 김소현의 『모차르트와 세계명작』’은 뮤지컬 배우 손준호, 김소현 부부의 첫 번째 책으로, 다섯 편의 세계명작동화를 클래식과 함께 엮어냈습니다. 책과 함께 수록된 오디오 CD에는 뮤지컬 배우 손준호, 김소현 부부의 실감나는 구연동화와 이에 맞게 편곡된 모차르트의 음악, 그리고 클래식 창작동요 2곡이 담겨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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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공자가 들려주는 ‘원하는 삶을 사는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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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원하는 삶을 살 것인가』는 강렬한 질문으로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으며 단숨에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올랐다. 2천 년 전 공자가 남긴 삶의 궤적 속에서 오늘날을 살아가는 지혜를 구할 수 있으리라는 우간린 저자의 예상이 적중한 것이다. 단 한 권의 책이 시공을 초월해 만들어내는 진리의 파장을 지켜보며, 저자에게 묻고 싶은 이야기는 점점 늘어갔다. 지금의 우리가 공자의 삶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그가 인생의 고비 앞에서 취한 태도는 무엇이었는지, 어떻게 그의 지혜는 불멸의 생명력을 얻게 되었는지,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의 증인으로 저자는 왜 자공을 선택했는지.

 

끝없이 이어지는 질문들이 쌓여가던 즈음 반가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중국 각지에서 강연을 진행하던 중 잠시 왕징에 머무르게 된 저자가 <채널예스> 취재팀을 초대한 것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원하는 삶을 사는 지혜’를 찾고자 공자의 숨결이 남아있는 곳, 중국으로 향했다.


『어떻게 원하는 삶을 살 것인가』의 저자인 우간린은 중국의 경제학자이자 컨설턴트로 중국 내에서 인재개발 분야의 일인자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국내 독자들에게도 널리 사랑받은 그의 저서 『문제보다 해법이 많다』는 중국에서만 100만 부가 넘게 판매되며 경영 컨설팅 도서 분야에서 최고의 판매기록을 세웠고 ‘중국 10대 경영관리 도서’로 선정되기도 했다.

 

중국의 재정부를 비롯해 유수의 대학과 기업에서 ‘지도력과 경영’에 관한 강좌를 직접 개설해 진행하기도 한 저자는, 삶에 관한 깊은 조언을 들려줄 스승을 찾던 중 공자와 만났다. “2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많은 이의 삶에 큰 울림을 준 스승”으로서 공자에 주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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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는 중국에서 굉장히 큰 영향력을 지닌 인물입니다. 역사적으로 신성화 단계를 거치면서 위대한 인물로 평가받기도 했지만, 문화대혁명 시기에는 추악한 사람으로 비판받기도 했습니다. 저는 『어떻게 원하는 삶을 살 것인가』에서 진실한 공자의 모습을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우간린 저자는 공자가 남긴 삶의 지혜를 찾기 위해 『논어』『공자가어』『사기』『공자집어』 등 수많은 고서들을 살폈고, 그 이야기들을 한 데 엮어 『어떻게 원하는 삶을 살 것인가』 안에 담아냈다. 공자가 남긴 삶의 지혜 위에 인생의 지표를 세운다면, 자신만의 삶을 만들어나가기 수월해질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10여 년 전에 우연히 『공자가어』를 접하게 됐습니다. 그 책을 보면서 진실한 공자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고요. 과거에 중국 사람들은 『논어』를 통해서 공자를 이해했지만 『논어』는 제자들의 관점에서 기록된 공자의 이야기죠. 저는 『공자가어』를 보게 된 후 공자가 마귀도 아니고 신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는 우리 주변에 있는 보통의 선생님들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사랑과 지혜로 가득 찬 선생님이었죠. 그 분의 이야기는 지금의 우리에게도 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원하는 삶을 살 것인가』에 기록된 공자의 지혜는 2천 년이라는 세월을 뛰어넘고, 중국과 한국의 국경마저도 허물며 살아 숨 쉬고 있다. 그의 사상이 가진 보편성과 강한 생명력 때문이다.

 

“공자는 인애(人愛)와 지혜를 함께 강조했기에 우리에게 깨달음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공자의 이야기가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의 독자들에게도 유의미한 이유는 고민의 보편성 때문이죠. 21세기에 우리가 겪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사람으로 인한 것입니다.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지 않습니까. 이렇게 사람의 존엄과 가치가 훼손되는 상황 속에서는 공자의 인애 사상에서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를 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간린 저자는 위대한 사상가로서 공자의 모습을 조명하는 동시에 인간으로서 그가 지닌 면모를 보여주는 데 중점을 두었다고 밝혔다. 인생의 모범을 제시해 주기 위함이었다. 대표적인 예로 그는 공자가 강조한 ‘가치 있는 인생을 살아가는 세 가지 방법’에 대해 들려주었다.

 

“가치 있는 삶은 세 가지 분야에서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자신을 빛내고, 주변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어 주고, 후대의 사람들에게 빛을 비추어 주는 것이죠. 자신을 빛내면 고민이 점차 작아지면서 즐겁게 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주변의 다른 사람이나 후대에 빛을 발해 주면서 방향을 제시해 주면 훨씬 더 삶이 가치 있어 지는 것이죠.”


『어떻게 원하는 삶을 살 것인가』에 기록된 공자의 삶은 빛바랜 시간 속에 남아있지 않다.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독자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로 채우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현대인의 문제 혹은 생활과 연결되어 있는 이야기를 전하겠다’는 원칙하에 지금 시대에 중요한 주제들을 중심으로 공자의 일화를 가려냈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을 보다 생동감 있게 전하기 위해 자공이 스승과의 일을 술회하는 스토리텔링 기법을 선택했다.

 

『어떻게 원하는 삶을 살 것인가』는 현대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방식으로 쓰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야기하는 방식을 빌리게 됐습니다. 현대인들이 가장 쉽게 배울 수 있는 방법은 자신들이 모르는 문제에 대해서 옆에 있는 선생님이 해결해 주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공을 선택한 이유는 그가 공자와 가장 오래 함께하면서 깊은 유대를 나눈 제자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자공은 뛰어난 언변과 탁월한 비즈니스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는 점에서 현대인의 특징을 많이 가지고 있는 인물입니다. 그래서 자공을 선택하면 이 이야기가 현대인과 공감대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자공은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아버지를 따라 장사를 해왔고, 스스로도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장사를 하면서 재물을 쌓아온 인물이었다. 스무 살이 넘어 공자의 제자가 된 그는 스승의 가르침을 행하는 데에도 주저함이 없었는데, 때로는 섣부른 선행으로 꾸지람을 듣기도 했다. 위나라에 끌려가 노예로 전락한 노나라의 백성을 돈을 주고 구해왔을 때였다. 많은 이들이 ‘역시 공자의 제자’라며 그를 추켜세웠지만 공자만은 달랐다. ‘너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생각해본 적 있느냐’며 되물었던 것이다. 결국 자공은 한나절이 지난 후에야 스승의 깊은 뜻을 헤아리게 됐다. 그의 행동이 모범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면 가난한 사람들은 그런 일을 할 수조차 없게 될 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부자들은 그렇게 힘들고 손해 보는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공자가 그의 제자에게 가르쳐 주고자 했던 것은 동기가 좋아야 할 뿐 아니라 결과 또한 좋아야 한다는 이치였다.

 

이렇듯 자공이 기억하는 공자는 늘 새로운 시각으로 가려진 부분까지 볼 줄 아는 스승이었다. 그의 앞에서 제자들이 가진 통념은 흔들리고 부서지기 일쑤였다.

 

“공자는 외면에서부터 내면을 봤습니다. 마치 현재를 보고 미래를 보는 것처럼요. 항상 규칙을 먼저 봤죠. 그래서 다른 제자들보다 뛰어난 지혜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자기를 더 향상시킬 수 있는 선생님을 원합니다. 공자는 그런 본보기를 제공하고 있죠.  문제를 대하는 시각이 제자들과 달랐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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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공자는 흔들림 없이 중심을 잡고 설 줄 아는 인물이었다. 그는 다른 이의 평가나 현재의 상황으로 인해 스스로를 평가하지 않았다. 14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정치적 이상을 펴기 위해 각국을 전전하면서도 자신을 알아주지 않는 세상을 탓하지도, 자신을 폄하하는 시선을 멸시하지도 않았다. “군자는 결코 자신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해서 그 기준을 낮추거나 자신의 마음과 다른 선택으로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구하지 않는다” “밑바닥이라는 생각이 들수록 담담해져야 한다. 인생이 무상할수록 평정심이 필요하다”는 말로 자신과 제자들이 함께 가는 길을 묵묵히 걸어갔을 뿐이다.

 

“공자가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었던 비결은 두 가지로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첫 째는 독립적인 사고를 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공자가 『역경』을 공부했기 때문입니다. 『역경』은 주로 객관적인 법칙을 설명하는 책입니다. 공자는 『역경』을 공부하면서 객관적으로 사고할 수 있었습니다. 중국의 유명 대학교인 칭화대학은 ‘자강불식 우덕재물’이라는 공자의 말을 교훈으로 삼고 있습니다. 자강불식이 자신과의 관계를 처리하는 문제에 대해 이야기한 것이라면, 우덕재물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잘 처리해야 한다는 점을 이야기하는 것이죠.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예의를 갖추고, 사람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먼저 자신과의 관계를 잘 처리해서 스스로 빛을 발하고, 그리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잘 처리해서 그의 마음이나 사회를 따뜻하게 해줘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공자는 자신의 이상을 유일한 지표로 삼아 나아갔기에 어떤 것에도 미혹되지 않았다. 오히려 “올바른 일에는 상상할 수 없는 고통과 모욕이 따를 수도 있다”며 냉혹한 현실에도 굴하지 않았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일에는 나아감과 물러남이 있는 법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현실을 등한시하는 몽상가와는 거리가 멀었던 것이다.

 

“공자는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꿈을 찾아갈 수 있도록 격려해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는 자신을 구속하는 사람이었죠. 가치 있는 일이라면 그것을 추구하는 일을 격려했지만, 옳지 않은 수단을 통해서 명예나 이익을 쫓는 경우에는 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만약 부정한 수단을 통해서 명예나 부귀를 가지게 되면 뜬구름을 잡는 것과 같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관점은 현재 상업계나 정계에서 배워야 할 점입니다.”

 

『어떻게 원하는 삶을 살 것인가』 안에서 얻게 되는 것은 ‘공자는 어떻게 원하는 삶을 살았는가’라는 깨달음이다. 나아가야 하는 순간과 물러서야 하는 순간, 도전해야 하는 순간과 포기해야하는 순간을 그는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자신을 알아봐 주지 않는 사람들과 시대 속에서 그는 어떻게 포기하지 않고 이상을 지켜낼 수 있었을까. 질문은 곧 ‘나는 어떻게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인가’로 이어진다. 지금 나는 멈출 것인가, 나아갈 것인가. 알맞은 때를 알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공자 대신 우간린 저자를 향해 물었다.

 

“자신이 추구하는 이상이 가치 있는 것이라면 아무리 어려워도 계속 추구하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습니다. 우리 운명이 문이라고 가정한다면, 그 문이 닫혀 있어서 무언가를 할 수 없을 때 다른 문을 열면 훨씬 더 큰 성공을 이룰 수도 있지 않습니까. 공자는 14년 동안 중용이 안 되었지만 그 기간 동안에 자신의 사상을 전파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치 있는 일이라면 아무리 어려워도 계속 하라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이상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 공자에게 배울 수 있는 또 다른 지혜는 유연함을 잃지 않는 것이다. 그는 무엇보다 법도와 원칙을 중요하게 생각한 사람이었지만 자신의 능력과 분수를 넘어서는 일에 대해서는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가장 아끼던 제자 안회가 굶주림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났을 때에도, 형편과 예법에 어긋나면서까지 장례에 돈을 많이 쓰는 것은 옳지 않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지혜는 물과 같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물은 얼음이 될 수도 있고 강물이 되어 흐를 수도 있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외부의 형태가 바뀐 뿐이죠. 지혜라는 것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공자는 물을 바라보기를 좋아했는데, 그래서 물처럼 유연함을 잃지 않을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아무리 다른 형태로 변해도 결국은 물이라는 사실을 알았던 것이죠.”


인터뷰를 마치며 우간린 저자는 “사랑하고 지혜가 있으면 그것이 곧 성공하는 길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인애와 지혜를 잃지 않는 자가 성공에 이르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그는 새해를 맞아 저마다의 목표를 세우고 있을 독자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라고 했다. 당신이 이루고자 하는 바가 무엇이든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과 지혜로써 행한다면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라는 그의 이야기가 축복처럼, 주문처럼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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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원하는 삶을 살 것인가우간린 저/임대근 역 | 위즈덤하우스
우간린은 자신의 삶에 올바른 가치관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인생 멘토’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만일 나보다 앞서 살았던 누군가가 삶에 관한 여러 가지 깊은 조언을 들려준다면, 인생의 지표를 분명히 세우고 나만의 삶을 만들어나기가 한결 수월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구나 인생 멘토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우리 모두는 인생의 멘토를 신중히 선택해야 한다. 우간린이 선택한 인생의 멘토는 공자였다. 2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많은 이의 삶에 큰 울림을 준 스승이라면 그 조언의 깊이는 남다를 수밖에 없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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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트 성공하려면 ‘음식 중독’부터 체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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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음식 중독일까?


국내 최초로 비만 클리닉 진료를 시작한 비만 전문의 박용우 박사는 『음식중독』에서 다음의 여덟 가지 항목을 ‘음식 중독 체크 리스트’로 제시한다.

 

- 음식을 먹을 때면 생각한 것보다 훨씬 많은 양을 남기지 않고 다 먹는다.
- 배가 부른데도 계속 음식을 먹고 있다.
- 가끔 먹는 음식의 양을 줄여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할 때가 있다.
- 하루 중 많은 시간을 과식 때문에 축 처져 있거나 피로감을 느끼면서 보낸다.
- 음식을 지나치게 많이 혹은 자주 먹느라 업무 시간, 가족?친구들과 어울리는 시간, 중요한 약속이나 여가 활동에 지장을 받은 적이 여러 번 있다.
- 음식을 일부러 끊거나 줄였을 때 금단증상(불안, 짜증, 우울감이나 두통 같은 신체 증상)이 나타난다.
- 불안, 짜증, 우울감이나 두통 같은 신체 증상 때문에 음식을 찾아 먹은 적이 있다.
- 특정 음식을 일부러 끊거나 줄였을 때 그 음식을 먹고 싶은 강렬한 욕구를 경험한 적이 있다.

 

이상의 항목들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중독의 기준에 맞춰 박용우 저자가 정한 것으로, 해당 사항이 3개 이상이면 음식 중독이 아닌지 의심해 봐야 한다. 이 내용은 예일대학교에서 만든 ‘예일 음식 중독 문진표’와도 많은 부분 일치하는데, 두 가지의 체크 리스트 모두 ‘스스로 음식을 통제할 수 있느냐’를 파악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물론 정확한 진단은 의사와의 상담을 필요로 하지만 음식 중독의 정의를 이해하는 자료로써 참고할 만하다.

 

음식 중독은 니코틴이나 알콜, 약물, 도박, 쇼핑, 게임 등 우리에게 익숙한 중독 증상들과 그 본질이 같다. 스스로 통제가 되지 않고, 점점 더 자극적인 것을 원하게 되며, 끊었을 때 금단 현상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한 가지 다른 점이라면 모든 음식이 중독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인데『음식중독』에 따르면 “단맛이 강한 초콜릿이나 과자, 밀가루 음식 등 정제 탄수화물이 중독을 일으키는 대표 음식”이다. 이를 영어권에서는 ‘highly palatable food’라고 정의한다. ‘뇌의 보상 시스템을 자극해서 또다시 찾게 만드는 중독성 강한 맛’이라는 의미다. 박용우 저자는 이를 ‘쾌미’라는 우리말로 옮겨왔다. “중독성이 있는 음식은 쾌감을 주는 맛을 가졌다”는 사실을 함의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특정 음식에 중독되는 것일까. 『음식중독』은 신체의 반응 원리에서 해답을 찾는다. 과당과 정제 탄수화물과 같은 ‘쾌미’를 가진 음식이 몸속에 들어왔을 때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신체적, 정신적 반응들을 추적해 나가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실체를 드러내는 것은 음식 중독을 유발하는 원인들이다. 끊임없이 쾌미를 원하도록 만드는 특정한 상황과 물질들에 대해 알게 되는데 그 중에는 설탕과 트랜스 지방, 밀가루와 같은 음식뿐만 아니라 만성 스트레스, 수면 장애 등의 상황적 요인도 포함되어 있다. 여기에 포만감을 자극하는 유전자가 갖게 된 저항성을 낮추고, 체중의 변화에 저항하는 ‘체중의 조절점(세트포인트)’을 낮춰야 하는 문제들까지 복합적으로 얽혀있다. 중독된 음식을 섭취했을 때 강한 만족감과 동시에 더 강렬한 욕구를 느끼게 하는 호르몬의 작용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음식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이 원인들의 연쇄적인 연결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 『음식중독』은 만성 스트레스와 세트포인트를 조절하고 숙면을 취함으로써 신체 조건을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 동시에, 음식을 섭취하는 습관을 바꾸고 뇌의 보상 중추 시스템을 조절할 수 있는 심리적 치료 방법까지도 소개한다. 그리고 음식 중독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사람들을 위해 자가 진단이 가능하도록 유형별 특징을 수록해 놓았다.

 

‘혹시 내가 음식 중독인 걸까’라는 강한 의심에 사로잡혔다면, 전문의와의 상담 없이 섣불리 단정 짓기보다는 『음식중독』을 통해 그 정의와 증상을 정확하게 확인하길 권한다. 그리고 병원을 찾기에 앞서 박용우 비만 전문의가 직접 들려주는 다음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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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적으로 음식을 찾는가? 중독의 전 단계는 습관이다!


음식 중독이란 무엇인가요?


중독은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첫째, 본인 스스로 통제가 되지 않고 둘째, 점점 더 자극적인 걸 원하고 셋째, 금단증상이 있을 때 중독이라고 얘기합니다. 이런 현상을 음식에 대입해 보면, 항상 먹던 음식을 다이어트 때문에 끊었을 때 견딜 수가 없는 거예요. 짜증과 우울이 심해지고 두통, 어지럼증, 매슥거림과 같은 신체적인 증상까지 나타나죠. 끝내 참지 못하고 먹었더니 그런 증상들이 없어지고요. 그렇다면 음식 중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음식에 중독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 뇌에는 보상중추라는 것이 있어서 어떤 일을 했을 때 만족감과 쾌감을 느끼게 합니다. 보상중추를 자극하게 되면 같은 자극을 다시 원하게 돼요. 그런 자극이 반복되면 다음에는 더 강한 자극이 주어져야 즐거움과 쾌감을 얻을 수 있죠. 의학적인 용어로는 내성이라고 하는데요. 음식에 내성이 생기게 되면 더 달고 강한 맛을 찾게 되는 거예요. 그런 음식이 더 이상 들어오지 않게 되면 신체적인 증상이 나타나는 거고요. 설탕이 들어 있는 단 음식, 정제 탄수화물이라고 이야기하는 흰 밀가루 음식들이 대표적이죠.

 

음식 중독에 빠진 사람들의 숫자는 증가하는 추세인가요?


제가『음식중독』을 쓴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어요. ‘이 사람은 음식 중독이야’라고 진단을 내릴 정도로 전형적인 중독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거든요. 5년 전, 10년 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최근 들어서 급격하게 늘고 있습니다. 증상을 조기에 발견하고 치료하면 치료 성공률이 높다는 사실은 모든 질병이 마찬가지예요. 음식 중독도 예외가 아니죠. 자신의 문제점을 빠르게 파악하고 벗어나려고 할 때 치료 성공률이 훨씬 높아집니다. 자신이 음식 중독인지도 모르고 지내다가 ‘혹시 내가 음식에 중독된 거 아냐?’ 라고 생각할 때는 이미 늦은 거죠.

 

음식 중독에 빠지면 어떤 증상들이 나타나나요?


중독의 전 단계는 습관이에요. 만약 스트레스를 받고 났을 때 자신도 모르게 초콜릿이나 과자를 찾는다든지, 밤늦게 무언가를 먹지 않으면 잠을 자기 힘들다든지, 이유 없이 기운이 빠지고 두통이 찾아올 때 달달한 설탕 커피나 초콜릿을 먹으면 다시 기운이 난다든지, 밥이나 면 종류를 평소보다 많이 먹었더니 곧바로 졸음이 몰려오고 기운이 빠진다든지, 이런 증상들이 나타난다면 음식 중독의 전 단계가 아닌지 의심해 봐야 합니다.

 

음식 중독은 아직까지 질병으로 분류되지 않고 있습니다.


『음식중독』에도 체크 리스트를 제시해 놓았고 중독의 유형을 분류해 놨지만 어디까지나 저의 개인적인 분류예요. 아직 학계에서는 음식 중독이 질병으로 인정되지 않고 있습니다. 중독의 실체를 명확하게 규명해 놓지 못한 상태죠. 저는 20여 년 간 비만 환자들과 만나면서 체중 감량에 실패하는 사람들 중에 음식 중독 환자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이미 중독이 되어있기 때문에 머리로는 벗어나야 된다는 걸 알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는 거죠. 담배를 끊어야 된다고 생각하면서도 끊지 못하면 니코틴 중독인 것과 마찬가지예요.


 

음식 중독에서 벗어나는 첫 단계, 충분한 수면을 취하라


음식 중독의 심각성을 절감하게 된 계기가 있으셨나요?


비만 클리닉 진료를 하면서 음식 중독 증상을 보이는 분들을 많이 만났죠. 가장 심각했던 경우는 일주일 만에 체중이 10kg이 증가한 환자도 있었어요. 이론상으로는 불가능한 이야기거든요. 그런데 현실에는 그런 환자들이 존재해요. 물론 증가한 체중이 전부 지방은 아니에요. 그 중의 반은 수분이죠. 쉴 새 없이 달고 짠 음식을 먹게 되니까 몸이 퉁퉁 붓는 거예요. 그런 경우는 매우 드물지만 한 달에 10kg 이상 몸무게가 증가하는 환자들은 많아요. 음식 중독에 빠져서 벗어나지 못하면 한 달에 10kg이 증가하는 일은 어려운 게 아니거든요. 그리고 그렇게 늘어난 체중은 빠지지 않아요. 그러면 더 심한 스트레스와 우울증에 빠지게 되겠죠. 결국 음식중독을 방치하게 되면 더 심한 정신적 질환으로 이어지는 거예요. 뿐만 아니라 비만이 심해지면서 당뇨병이라든지 심장병 같은 질환이 생길 수도 있죠. 그리고 과체중이 되면 면역 기능이 떨어지게 되니까 암이라든지 각종 질환에 걸릴 위험도 높아지고요.

 

“음식 중독의 공론화와 체계적인 연구가 너무도 절실하다”고 말씀하신 이유군요.

 

음식 중독의 극단적인 단계까지 온 사람들은 아직 많지 않아요. 하지만 저는 비만 환자들과 만나면서 ‘저 상태가 계속되면 나중에는 심각한 음식 중독에 빠질 텐데’라고 생각되는 환자들을 많이 보게 되거든요. 그렇지만 짧은 진료 시간 동안 음식 중독에 대해 충분하게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늘 아쉬움이 있었어요. 무엇보다도 그런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약물이나 치료에 대한 정보가 너무 부족해요. 관련 책들이 있다고는 하지만 너무나 교과서적인 얘기만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고요. 물론『음식중독』에도 아쉬운 부분은 있죠. 제 나름대로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실천 가능한 방법을 제시하려고 노력했지만, 이미 음식 중독에 빠진 사람의 입장에서 볼 때는 아쉬움이 있을 거예요. 하지만 ‘내가 음식 중독이구나’ ‘이래서 음식 중독에 빠졌구나’ 라는 걸 알게 하는 것만으로도 절반은 치료됐다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는 『음식중독』이 상당히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음식 중독의 요인으로 만성 스트레스, 수면 장애, 설탕, 트랜스 지방, 밀가루 등 다섯 가지를 꼽으셨습니다.


그 모든 요소들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요. 그래서 어느 하나를 원인으로 지목하기가 어렵죠. 스트레스 받으면 깊은 잠을 못 자고, 깊은 잠을 못 자면 깨어 있는 동안 단 음식을 찾게 되고, 단 음식을 먹다 보면 습관이 되면서 결국에는 보상 중추를 자극해서 중독으로 가는 거예요. 중독이 되면 또 깊은 잠을 잘 수 없죠. 탄수화물 중독이 된 사람들은 밤에도 스트레스 호르몬이 올라가 있고 당이 떨어지는 걸 몸이 못 견디거든요. 그래서 밤에 깊은 잠을 못 이루는 거예요. 계속 악순환이 이어지는 거죠. 『음식중독』에서 스트레스 관리와 운동과 숙면이 중요하다고 반복적으로 이야기하는 이유는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인 거죠.

 

숙면을 취하지 못하면 밀가루처럼 단 시간 내에 열량을 높여줄 수 있는 음식을 찾게 되나요?


그렇죠. 그건 이미 증명 된 사실이에요. 그래서 저는 음식 중독 환자를 만나면 제일 먼저 잠을 푹 자라고 얘기해요. 시간을 정해 놓고 그 시간 되면 불을 전부 끄고 눈 감고 누워 있으라고요. 잠이 오든 말든 정해진 시간에는 자려고 노력하라는 거예요. 뜬 눈으로 밤을 새더라도 그렇게 습관을 다시 들여 놓아야 해요. 그래도 안 되면 수면제를 먹어서라도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하죠. 음식 중독에서 벗어나려면 잠부터 푹 자야 해요.

 


다이어트의 성공과 실패는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음식중독』은 “다이어트의 성공과 실패는 더 이상 의지 문제가 아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살이 찐 건 내 잘못이 아니라는 거죠. 도저히 케이크나 초콜릿을 끊을 수 없는 것도 의지력이 약해서가 아니라는 거고요. 유전적인 요인도 있는 것이고 거기에 환경 요인이 더해지면서 내 몸이 바뀐 거거든요. 날씬한 몸은 초콜릿 먹어도 살이 안 찌지만 이미 뚱뚱해진 몸은 체내의 세트포인트가 달라져 있고 호르몬의 작용도 둔감해져 있기 때문에 초콜릿 하나를 먹어도 다 살로 가요. 그러니까 마른 사람과 뚱뚱한 사람을 동일하게 놓고 비교를 하면 안 되는 거예요. 그런데 대부분의 정보들은 그것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해당되는 것처럼 얘기하잖아요. 그건 잘못된 거죠.

 

『음식중독』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이미 세트포인트가 올라가 있고 렙틴 저항성이 있는 사람들은 건강한 몸과는 다른 상태인 거예요. 그런데 건강한 몸이 하는 방식과 똑같이 체중을 감량하려고 하니 몸이 따라주지 않는 거죠. 망가진 균형을 회복한 다음에 살을 빼야 하는 거죠. 그런데 살을 빼는 과정에서 또 하나의 걸림돌이 음식 중독인 거예요. 렙틴 저항성과 음식 중독도 깊이 연결되어 있죠. 최근에도 많은 연구들이 그 사실을 뒷받침하고 있어요. 렙틴 저항성이 있는 사람일수록 음식 중독에 빠지기가 쉽다고요.

 

세트포인트는 체내에 설정된 체지방량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람마다 그 설정값이 다르고 한 번 올라간 세트포인트는 쉽게 내려오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렙틴 저항성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렙틴 호르몬은 몸의 본능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허기를 느끼게도 하고 포만감을 느끼게도 하죠. 렙틴이 많이 분비되면 포만감을 주기도 하지만 분비량을 줄여서 음식을 찾아 먹게 하기도 해요. 결국 우리의 본능적인 식욕에 관여하는 게 렙틴인 거예요. 만약 배가 부른데도 눈앞에 보이는 케이크에 손이 간다면 그건 렙틴의 작용이 아니죠. ‘예전에 저걸 먹었을 때 달달하고 맛있었는데’ 라는 학습효과에 의해서 음식을 먹는 거니까요. 생리적으로 이제 충분히 배부르다는 렙틴의 신호가 있었음에도 쾌감을 느끼고 보상을 얻는 것에 탐닉하는 건 렙틴을 이겨내는 작업이에요. 그 자극에 지배가 되면 렙틴은 둔감해져요. 그게 렙틴 저항성이에요. 렙틴이 둔감해졌다는 건 포만감 신호를 제대로 보내지 못한다는 이야기고요.

 

말씀하신 것처럼 자극과 보상의 악순환 역시 음식 중독의 주요한 원인인데요. 어떻게 멈출 수 있을까요?


일련의 반응들을 이어지게 만드는 단서자극을 깨달아야 해요.『음식중독』에서도 이야기했지만 파블로프의 개는 종소리만 들려도 침을 흘리잖아요. 몸에서 자동적으로 일어나는 반응인 거예요. 종소리가 들렸을 때는 항상 달고 맛있는 음식이 입에 들어왔기 때문에 몸의 연쇄 자극을 통해서 침이 나오는 거죠. 그러면 단서자극에서 행동으로 이어지는 고리를 끊어야 되는데 이때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단서자극이 들어오면 뇌에서는 충동적으로 그 행위를 하게 만들고, 그 행위를 함으로써 즐거움과 쾌감이 얻게 되면 그것이 뇌에 학습 되고 기억이 됐다가 다음에 또 다시 같은 행위를 하게 만들거든요. 그 과정이 반복되다 보면 습관이 되고, 그러다 보면 의식과 관계없이 중독이 돼버리는 거예요. 습관의 단계에서는 그것을 끊을 수가 있지만 중독 단계에 가면 금단 증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쉽게 끊지 못하죠.

 

『음식중독』은 중독의 유형을 강박형, 충동형, 강박형 충동형, 감정형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음식 중독에 빠진 사람들을 보니 일정한 패턴이 있더라고요. 책에서 강박형, 충동형, 감정형 으로 나누어 놨지만 대부분은 (강박형 충동형처럼) 복합적인 경우가 많아요. 복합적으로 나타나지만 그 중 어느 하나가 특히 강하다고 볼 수 있는 거죠. 유형에 따라서 처방약으로 항우울제를 쓰기도 하고 펜터민이라는 식욕 억제제를 쓰기도 하는데요. 잘못 처방하면 오히려 증상을 더 악화시킬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유형 분류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 거고요. 물론 이 유형들이 학계에서 인정을 받거나 검증된 것은 아니지만, 첫 발을 내딛었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요. 차후에 관심 있는 학자들의 연구를 통해서 더 확실한 유형 분류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자신이 어떤 유형에 해당하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있나요?


강박형은 음식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이고 충동형은 스스로 통제하는 능력이 부족해요. 참아야 된다고 생각하는데 참지 못하고 행동으로 이어지는 거죠. 강박형 충동형의 경우는 음식에 대한 집착도 강하면서 충동을 조절하지 못하는 경우고요. 감정형은 우울하고 가라앉아 있는 감정 때문에 음식을 찾는 경우가 많습니다. 『음식중독』을 통해서 자신의 유형을 알게 되었다면 유형 별로 정리해 놓은 주의할 점을 보고 ‘이런 부분에 특별히 더 신경을 써야 겠구나’하고 알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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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백질은 마음껏 섭취해도 좋다


『음식중독』안에서 가짜 배고픔과 진짜 배고픔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 두 가지는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요?


렙틴이 관여하는 것이 진짜 배고픔이고 도파민이 관여하는 것이 가짜 배고픔이에요. 생리적으로 배가 고프지 않는데도 심리적인 이유 등으로 음식을 섭취하는 것이 가짜 배고픔이죠. 그런 자극이 반복되고 심해지면 조절 기능이 깨지게 돼요. 가짜 배고픔에 길들여지면 배고플 때 먹고 배부를 때 수저를 내려놨던 본능적인 몸의 조절 기능이 영향을 받는 거죠. 조절 기능이 깨져 버리면 그 다음부터는 한 없이 체중이 불게 되고요.

 

음식의 섭취 방법과 식단에 대해 조언하기도 하셨습니다. 그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해 주세요.


하루 네 끼를 먹음으로써 허기를 느낄 틈을 주지 않거나, 어떻게든 수면 시간을 늘려서 하루 12시간의 공복 유지하는 등의 방법을 소개했죠. 아침을 꼭 챙겨 먹으라는 조언과 함께 추천 식단을 소개하기도 했고요. 실제 생활에서 실천해볼 수 있는 지침들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영양제를 먹으라는 이야기도 마찬가지인데요. 몸의 망가진 기능을 회복시키기 위해서 필요한 영양소들은 음식으로 얻는 게 가장 좋지만 하루 세 끼를 직접 요리해 먹는다는 게 쉽지 않잖아요. 자신에게 필요한 영양소들이 무엇인지도 애매하고요. 그리고 우리가 사먹는 음식들 대부분은 가공식품이고 영양소의 함량이 적은 것들이에요. 그렇다면 직접 유기농 재료를 가지고 요리를 해서 먹으라는 말보다는, 아쉽지만 부족한 부분은 영양제를 통해서 채우라는 것이 현실적인 방법이겠죠. 물론 영양제 무용론을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어요. 그렇지만 저는 중독에 빠진 사람이 몸을 회복하는 단계에 올 때 까지는 충분한 영양 섭취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그러려면 영양제로라도 보충을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단백질 음식은 충분히 먹어도 상관없다”고 하셨는데, 마음껏 먹어도 괜찮은 걸까요?


단백질은 폭식할 수가 없어요. 과식과 폭식을 할 수 있는 건 사실 탄수화물만 가능합니다. 고기의 경우에도 지방이 없는 퍽퍽한 살코기를 소금이나 양념장에 찍지 않고 먹으면 많이 먹지 못해요. 계란 흰자도 소금에 찍지 말고 먹으면 폭식이 불가능하고요. 폭식은 지방과 소금과 당분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지, 단백질은 폭식을 할 수가 업습니다.

 

식단을 구성할 때 가장 중요한 원칙은 무엇인가요?


쾌미에서 벗어나야 하죠. 제가 늘 강조하는 건 내가 음식을 지배해야지 음식이 내 몸을 지배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 순간 몸은 망가지니까요. 쾌미라는 건 중독에 빠질 수 있는 음식이잖아요. 쾌미를 주는 음식을 먹지 말라기보다는 일주일에 한 번 두 번 정도 자신이 조절할 수 있는 만큼 먹으라는 이야기예요. 그건 중독이 아니니까요. 그렇지만 어느 순간 그 음식에 중독이 돼서 그 음식 없이는 못 살게 되었다면 끊어야죠. 그 음식을 지배할 수 있을 때까지요.

 

비만 환자들을 치료하는 입장에서 누구보다 엄격하게 체중 관리를 하실 것 같습니다.

저는 따로 관리를 하지 않고요. 쾌미 음식을 줄였어요. 과자나 밀가루 음식은 거의 먹지 않습니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는 없잖아요. 쾌미 음식이라는 건 건강하지 않은 음식인데 건강도 챙기면서 쾌미 음식도 즐기겠다는 건 모순이죠. 쾌미 음식을 먹으면 뇌는 행복하지만 몸은 망가지는 거고 몸을 건강하게 하려면 쾌미 음식을 멀리해야 하는 거예요. 둘 중 하나를 결정해야 하죠. 이미 뚱뚱해진 사람에게 저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제까지 맛있는 음식을 찾고 탐닉했던 즐거움을 누렸으니 이제는 내 몸을 사랑하기 시작했으니까 내 몸이 원하는 음식을 주자고요. 보상 중추가 원하는 음식이 아닌 몸을 건강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음식을 찾자는 거예요. 저는 일부러 식사량을 줄이지는 않아요. 대신 쾌미 음식이 아닌 음식들은 편하게 마음껏 먹습니다. 싱겁게 먹으려고 하고 가급적 양념을 안 하고 먹는데요. 그러면 재료 본연의 맛을 느끼고 즐기게 돼요. 이미 우리는 단맛에 중독이 되어 버렸는데 단맛은 모든 맛을 가려 버리거든요.

『음식 중독』은 “음식 중독에서 벗어나려면 나를 사랑해야 한다”는 이야기로 끝을 맺습니다. 아마도 이 말은 독자들에게 가장 먼저 해주고 싶은 이야기일 것 같습니다.


제가 환자들한테 늘 강조하는 이야기예요. 대부분은 음식 중독에 빠진 걸 자신의 탓으로 생각하거든요. 의지력이 약해서, 식탐이 많아서 그렇다고 생각해요. 그게 아니라 내 몸이 망가져서 그런 거라고 이해해야 해요. 그리고 지금까지 자신을 비하하고 자학했던 것에서 벗어나서 나를 사랑하는 마음을 다시 가져야 하죠. 거기에서부터 다시 출발하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마지막으로 『음식중독』의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시다면 무엇인가요?


가장 최선의 치료는 예방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독자들 중에는 음식 중독에 빠지지 않은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을 텐데, 잠재적인 위험군들이 있을 거예요. 잠이 부족할 때 달달한 음식이 끌리거나 회의할 때 무의식적으로 앞에 놓인 과자를 먹는 사람들이 많이 있잖아요. 지금은 음식 중독이 아니더라도 그런 습관이 중독으로 이어지면 체중이 증가하고 감량도 쉽지 않을 거예요. 저는 음식 중독에 빠진 사람들을 치료하는 일도 필요하지만 ‘내가 지금의 습관을 방치했다가는 음식 중독에 빠지겠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게끔 해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 일에 『음식중독』이 조금이나마 기여했으면 좋겠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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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중독박용우 저 | 김영사
만성 스트레스, 수면 장애, 설탕, 트랜스 지방, 그리고 밀가루 등 몸에 나쁘다는 말로 뭉뚱그려진 다섯 가지 음식 중독의 요인을 밝히고, 과학적ㆍ의학적 근거를 들어 조목조목 설명했다. 습관에서 중독으로, 자신도 모르게 되풀이되는 치밀한 그들의 역학 관계와 의지력으로는 통제할 수 없는 강력한 음식 중독의 메커니즘. 이제 뇌를 자극하는 맛의 역습! 스스로를 통제할 수 없는 음식 중독의 유형과 그 해법을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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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지민 작가님 어떤 동화책을 읽혀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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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되고 나서 바뀐 점이 여러 가지인데 그중 하나가 사는 책의 종류다. 기존에 사왔던 책 분야에 한 가지가 추가되었으니, 바로 동화책이다. 동화책을 사면서 느낀 점이, 어른책 사는 것보다 더 어렵다는 사실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작가나 책 제목을 알아야 살 텐데 이런 정보를 아는 게 거의 없었다.

 

그러던 중에 만난 책이 『엄마가 뽀뽀하는 동화』였다. 영화 <모던 보이>의 원작 소설 『망하거나 죽지 않고 살 수 있겠니』를 쓴 이지민 작가가 육아를 하면서, 동화를 읽어나가면서 쓴 책이라는 점에서 신뢰가 갔다. 이 책은 그림책을 소개하면서도 중심은 그림이 아니라 글에 있다. 이지민 작가의 글에 집중하기 위해 일부러 소개되는 그림책의 이미지를 넣지 않았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소개하는 책은 약 20여 편. 개인적으로 인상 깊게 소개 받은 『종이 봉지 공주』외에도 한편 한편이 읽고 싶은 동화다.

 

동화 소개와 더불어 책에는 이지민 작가의 결코 밝지만은 않았던 어린 시절과 육아를 하면서 느낀 엄마로서의 고충, 가족의 소중함 등이 담겼다. 그런 의미에서 동화를 추천받고 싶어 하는 독자뿐만 아니라 이지민 작가의 글을 좋아했던 독자가 모두 만족할 책이다. 육아와 집필 활동으로 바쁜 그녀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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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쓴 동화책은 왜 드물었을까

 

『엄마가 뽀뽀하는 동화』를 내셨는데요. 어떻게 지내셨나요?
 
둘째를 낳고 나서 소설 작업은 못했어요. 심적 부담감으로 너무 힘들더라고요. 시나리오 작업을 주로 했어요. 그리고 원고 묶어 놓았던 걸로 이번에 책을 냈고요.

 

소설과 영화 시나리오와는 이번 책 성격이 다소 다른데요. 책 쓰시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동화가 분량이 짧잖아요. 짧은 줄거리를 모두 이야기하기보다는 동화를 보며 느낀 점, 영감도 함께 표현하고 싶었어요. 줄거리와 감상 사이에서 조화를 이루는 게 쉽지는 않았죠. 이 책에서 소개하는 동화책 내용이 짐작되면서도, 독자가 동화책을 읽고 싶게 만드는 게 제 의도였어요. 그래서 동화책 그림을 삽입한다든지, 줄거리를 길게 묘사한다든지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최근에 나온 『우리가 사랑한 소설들』처럼 소설 작품을 소개한 책은 드물지 않았는데요. 동화를 소개한 책은 많지 않아요. 그런 면에서 희소성이 있는 책 같습니다.

 

블로그에는 엄마들이 쓴 책 소개가 많아요. 글 잘 쓰시는 분도 많고요. 저도 블로그에서 도움 얻기도 하는데, 작가들이 쓴 책은 많지 않았죠. 책을 쓰려고 생각하니, 블로거들의 책 소개 그 이상을 해야겠더라고요. 작가가 쓴 건 좀 더 달라야 하잖아요. 그래서 책 소개 그 이상으로 제 이야기도 많이 실었어요.
 
작가들이 쓴 동화책 이야기는 왜 없었을까요.

 

아마도 작가 출산율이 떨어지다 보니 그런 게 아닐까요. 예전에 실제로 인터뷰하면서 한 기자가 아이 낳은 작가는 정말 오랜만에 봤다고 이야기하더군요. (웃음)

 

세상에는 세 가지 종류의 동화가 있다. 읽고 나서 아이가 우는 동화, 아이와 엄마 둘 다 우는 동화, 그리고 엄마만 우는 동화. (145쪽)

 

세 가지 중에서 이 책에 실은 작품은 주로 어떤 동화인가요?
 
엄마가 우는 동화죠. 대개 엄마가 좋아하는 책이 많이 팔리죠. 아이들에게는 선택권이 없거든요. 아이들은 엉뚱한 걸 좋아해요. 바자회 가서 아들이 책을 사왔는데, 정말 허름한 책을 사왔어요. 낡은 걸 파는 데서도 그중에서 가장 낡은 책으로요. 이유를 물으니, 정다워 보인대요. 이런 반응을 보는 게 재밌는데 책에서 소개한 작품은 제가 좋아한 동화 위주에요. 『엄마가 뽀뽀하는 동화』는 엄마인 저를 위한 책이기도 하거든요. 저를 되돌아보는 책이기도 하고요.

 

좋은 동화란?

 

작가님이 생각하시기에 좋아하는 동화의 기준이 있을 듯합니다.

 

소설도 마찬가지인데요. 삶과 연결되면서 창의성을 북돋아 줄 수 있는 작품을 좋아해요.『종이 봉지 공주』이야기도 발상의 전환을 이루면서 삶에 영감을 주잖아요. 좋은 동화는 추억을 부를 수 있어야 해요. 흔히 우리가 ‘인생이 동화인 줄 아냐’라고 말하는데, 이럴 때는 동화가 현실과 반대인 것처럼 생각해요. 하지만 동화는 현실의 핵심적인 걸 시적으로 응축하고 있어요. 대대로 전해지는 힘도 여기에 있죠. 아이들에게도 짧은 이야기가 수수께끼처럼 삶에 힌트를 줄 수 있고 어른에게도 지쳐 있는 마음을 풀어줄 수 있어요. 저도 육아에 지쳤을 때 많이 접하기도 했어요. 짧아서 쉽게 이해할 수 있고, 그림이 들어가서 공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장점이 동화에 있죠.
 
육아 하기 전에도 동화를 자주 보셨나요?

 

별로 안 읽었죠. 조카가 책을 읽어 달라고 해도 요리책을 보여주곤 했으니까요. 동화에 별로 관심이 없다가 아이를 키우면서 많이 봤어요. 작가 엄마가 참담할 때가 책을 못 읽는 시간이거든요. 인풋이 있어야 아웃풋도 나오는데, 책 읽을 시간이 부족해요. 동화책은 읽는 데 많은 시간이 안 드니까 그나마 읽은 책이 동화였죠. 읽다 보니 정말 재밌어요. 소설, 인문서적 못지 않게 마음을 충만하게 해 주는 순간도 있고요. 제 어린 시절과 연결되기도 하니 신비롭죠.
 
저처럼 많은 어른이 동화를 잊고 살거든요. 다시 읽어보면 재밌을 거예요. 엄마들은 이미 많이 읽고, 사는 구매층이에요. 책 제목에 엄마가 있지만, 아빠가 많이 읽었으면 좋겠어요. 어쩌면 핸드폰을 놓지 않는 시대에 어울리는 책이 동화가 아닐까 싶어요. 장문을 못 읽는 뇌 구조로 바뀌고 있잖아요. 0세부터 100세까지 읽을 수 있는 책이 동화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보통 동화, 하면 주제가 권선징악으로 단순할 것 같은데 소개해 주신 책을 보니 주제와 소재가 정말 다양했어요.

 

심지어 형이상학적인 내용도 있어요. 무궁무진해요. 동화는 세계적이기도 하죠. 다양한 나라의 작가가 쓰니까요. 그러면서 보편적이기도 해요. 미국에서 1930년대에 나온 동화를 읽어도 지금과 연결되거든요. 손해보지 않는 책 읽기가 동화에요. 시간도 가장 짧게 투자하면서 많은 걸 얻을 수 있죠. 안 알려진 작품 중에서도 주옥 같은 작품이 많아요. 찾아 읽으면 읽을수록 더 많은 보물을 발견할 거예요.

 

작가님의 아이는 첫째가 아들, 둘째가 딸인데요. 동화를 읽어나가는 데 성별로 보이는 반응이 다른가요?

 

둘째가 어릴 때 썼기 때문에 성별로 구분하지는 못하겠어요. 다른 엄마들과 이야기를 해 보면 다르다는 걸 느끼긴 해요. 딸 있는 엄마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인어공주』를 읽으며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린다는 식으로 빠른 아이가 있더라고요. 만화 <마당을 나온 암탉>을 보면서도 느꼈어요. 남자애들은 무서워서 소리 지르는데, 여자애들은 울어요. 한쪽은 액션 스릴러로, 한쪽은 슬픈 성장 영화로 보는 거죠. 뇌 구조가 다르구나, 이런 걸 느꼈죠.

 

똥이나 공룡 등은 보편적으로 사랑받는 소재 아닌가요?

 

똥 관련 책은 동화책 쪽에서 성경이죠. 『누가 내 머리에 똥쌌어』『강아지 똥』 등 스테디셀러가 많아요. 제 아들은 공용에는 의외로 혹하지 않았어요. 그 나잇대에는 장난감에 팔려서 책에 나오는 공룡은 별로 안 좋아하더라고요. 여자애들은 곧장 공주로 가요. 우리 딸은 텔레비전에서 무당이 나오는 것만 봐도 블링블링한 공주님이라고 엄청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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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는 하나일 뿐, 아이는 노는 걸 좋아해

 

많은 엄마가 책육아를 하려고 하는데요. 책육아는 정답일까요.

 

책을 강조하고 싶지 않아요. 책만이 너를 성장시킨다는 믿음을 주고 싶지도 않고요. 책은 하나일 뿐이에요. 엄마나 아빠 책은 없고 아이들 책만 1,000권 있는 집이 있어요. 1,000권 만들기는 쉬워요. 100권 세트를 열 번 사면 되거든요. 그런데 이런 건 아이들 위주이지 조화롭지 않아요. 책만 잡으면 졸더라도 엄마 아빠가 책을 곁에 두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어요. 엄마 아빠가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그걸 보는 것도 아이에게는 공부이자 좋은 추억이 된다고 생각해요. 엄마 중에서는 우리 애가 참 책 좋아한다면서 자부심 느끼며 이야기하는데, 그 아이가 정말 책을 좋아할까요? 책 읽으면 엄마가 좋아하니까 읽는 척할 수도 있죠. 사실 아이들은 노는 걸 더 좋아할 거예요. 아이들은 만화도 봐야 하고 놀기도 해야 하고 운동도 해야 하고 다양한 활동을 해야 하죠. 책 읽기는 그중에 하나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책 많이 읽으면 공부 잘한다, 이런 목적으로 독서를 강조하는 모습이 은연중에 있어요. 대한민국 모든 교육의 목적은 대학을 위해 달려가니까 어쩔 수 없지만, 좋지는 않죠. 책을 싫어하는 아이도 충분히 잘 자랄 수 있어요. 대신 책의 효용이 있죠. 최소한 성인이 되었을 때 전공 서적도 못 읽는 영혼이 되어선 안 되겠죠. 전공 서적 볼 수 있을 정도의 습관을 들이는 게 필요한데 그러려면 책 읽기가 즐거움이 되어야 하거든요. 너무 강요하는 건 안 좋아요.

 

세상의 빛과 어둠을 함께 가르쳐주는 것 역시 부모의 숙제(53쪽)라고 쓰셨는데요. 지금 시대의 빛과 어둠은 어떤가요.

 

언제나 빛과 어둠은 있었죠. 어린 시절, 엄마와 아빠가 과격했어요. 운동권 출신으로 히피 같은 면이 있으셨어요. 아이들 이름을 협동농장으로 지으려고 하셨다는데. 실제로 그렇게 하셨고. 제 이름이 농장이가 될 뻔했지요. 중산층 이상으로 사는 삶, 귀족적인 삶에 대해 경계해야 한다고 항상 말씀하셨어요. 어렸을 때는 그런 이야기가 너무 싫었지만, 제 근간을 이루었어요.

 

아들 이야기를 하자면, 우리 동네 제과점에 빵 이름이 ‘장발장이 훔친 빵’이에요. 이름이 신기하니까 아들이 물어요. 작품 이야기를 해주니까, 빵을 훔친 것만으로 감옥에 오랫동안 갇혀야 하느냐고 비분강개해요. 사회적인 눈이라고 할까, 눈을 뜨기 시작한 거죠. <명량>을 보면서 일본이 나쁘다고 생각하고 국가관도 생기는 듯합니다. 어둠을 이야기할 소재는 많아요. 어떻게 균형 잡힌 시각으로 이야기하느냐, 아니 사실은 균형 잡혔다고 해도 균형 잡힌 게 아니죠. 좀 더 어둠을 볼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서서히 물 흐르듯이 이야기를 해 줘야 할 것 같아요.

 

요즘 아이가 받아들이기 시작하는 나이가 됐어요. 자연스러운 의식화 교육을 동화로 하는 것도 효과적이지 않을까 싶어요. 책 속에서는 '집으로 가는 길'이 그런 역할을 담당해요. 이런 동화가 있으면 토의를 해 보려고 해요. 『인어공주』를 읽고 감상을 이야기하라고 하면 따분해 하는데. 오히려 『집으로 가는 길』같은 동화를 읽으면 발언을 하려고 해요. 느낌은 싫어하는데, 도덕 지수를 드러내는 걸 좋아하더라고요. 깨어 있다는 걸 증명하려 한다는 걸 느낍니다.

 

작가님의 부모님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책에 1970년대 말 아버지가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과거를 털어놓으셨어요.

 

제가 그 이야기를 안 해요. 안 했다기보다는 할 자리가 없었죠. 1990년대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였는데, 지금은 한 바퀴 돌아서 거꾸로 믿기 쉬운 이야기가 되었다는 느낌이에요. 아버지는 1979년 말기에 한창 많이 잡혀가실 때 들어가셨어요. 성장기 때 남들은 안 하는 경험을 꼽으라면 부모님의 부재인데요. 성장기 때는 잊고 살았는데, 내 아이가 그 나이가 되어 보니 내가 그때 어땠을까, 내면이 궁금해지더라고요. 어두웠던 내면을 다시 보는 시간이었죠.

 

『모던보이』를 비롯한 작가님의 문장은 유쾌해서 그런 과거는 전혀 생각해 보지 못했습니다.

 

실제로 저는 중고등학교 때 남들 웃기는 걸 좋아했어요. 많이 까불었고요. 『모던보이』를 쓸 때도 어떤 의식화되고 경직화된 것에 대한 반발 의식이 있었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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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지민에게 글쓰기는 해방

 

장편 네 편과 단편집 한 편을 쓰셨습니다. 2000년에 등단한 뒤로 활동한 세월을 생각하면  작품 수가 많지는 않았는데요. 육아로 바쁘셔서 많은 작품을 쓰지 못했던 걸까요.

 

저는 아직도 소설 애호가로서 소설을 써요. 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소설을 사랑하는 팬심으로 쓰니까 부지런히 단편 쓰고, 모아서 단편집 내는 작가들보다는 속도에서 다르겠죠. 육아 때문에 천천히 늦춰진 것도 있고요. 제 친구에게도 말했는데, 아직 제 소설은 영화로 치면 유성영화로 안 들어갔어요. 무성영화, 자기 이야기를 안 하는 소설인 거죠. 계속 탐색해보고 나름의 시간을 가지면서 제 속도를 맞추면서 쓰고 싶어요. 이제는 유성영화로 들어갈 시점이죠. 3D가 나오기는 멀었고요. 환갑 정도면 남들만큼 작품이 채워질까요? 그때까지만이라도 계속 꾸준히 쓸 수 있으면 좋겠어요.

 

『모던 보이』(출간 당시는 망하거나 죽지 않고 살 수 있겠니)가 나왔을 때는 새로운 작가의 탄생이라고 열광하는 분위기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다기보다는,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만 해도 문학동네 수상 작가가 누군지는 아는 분위기였죠. 당시만 해도 신문의 문학 면이 살아있었어요. 지금은 사람들이 신문을 보지도 않고, 신문에서도 지면이 밀려났죠. 시대는 거스를 수 없게 된 거 같아요.

 

거스를 수 없는 시대에 작가님의 글쓰기는 무엇을 추구하나요?

 

고민을 많이 하죠. 한국문학 문제점이 뭔지를 많이 이야기하는데, 솔직히 저는 문제점을 모르겠어요. 한국축구랑 똑같죠. 항상 스트라이커는 없고 수비는 불안하고, 위기이고 돌파구 없는 거 같지만 어느 정도 잘하잖아요. 문제는 한국문학이 아니라 저에요. 제 글쓰기를 어떻게 발전시켜나갈 것인가가 항상 고민이에요.

 

영화 산업은 분업화, 산업화된 시스템이에요. 글을 써도 나사처럼 굴러가는 게 가능해요. 각본 1명이면 각색 5명이 투입되죠. 저도 그런 시스템에 익숙해졌어요. 소설은 완전히 다른 세계입니다. 영화에서 나사처럼 물려가는 쾌감도 있지만 소설은 그 쾌감에서 벗어나서 쓰는, 다른 즐거움이 있어요.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쓰려는 생각은 없어요. 이미 한쪽 영역에서 많이 하고 있으니까요. 소설은 어떤 사람의 눈치도 보지 않고 쓰는데, 좀 더 부지런하게 써야겠죠. 이미 소설은 잘 쓰는 사람이 많으니 그까지 할 필요는 없는 것 같고, 제 나름의 영역을 확보하고 싶어요. 고민이 있다면, 영화 시나리오 쓰는 테크닉이 소설에도 들어가거든요. 이걸 떨치고 써야 하나, 융합해서 써야 하나, 이런 고민은 있어요. 어쨌든 지금은 좀 더 많이 쓰는 게 필요하죠.

 

저는 제가 쓴 글을 다시는 꺼내보지 않는 유형인데요. 그래도 그 책들이 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해 보면, 그때 그 책을 쓰지 않았으면 견디지 못했을 내 자신이 그 책에 들어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책 속에 그 때의 나를 놓아두었기 때문에 그 해방감으로 또 안타까움과 미련으로 다시 책을 쓰지요. 내가 책 안에 숨은 나를 훔쳐보며 고통과 쾌감을 느끼듯 앞으로는 다른 이들도 제 책에서 스스로를 훔쳐보며 그런 흥분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마지막 질문은 『엄마가 뽀뽀하는 동화』와 관련 있는 질문으로 하고자 합니다. 엄마가 뽀뽀한 아이는 어떻게 자라면 좋을까요?
 
키우면서 하루하루가 다행인 경우가 많기에 욕심내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은 많이 해요. 그래도 욕심이 나죠. 흔히 행복한 아이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하는데, 자기만 행복하면 충분할까 하는 생각은 들어요. 자신은 행복하지만 주위 사람이 불행한 걸 많이 보거든요. 행복만으로 포장하기보다는 자기 내면이 강한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이 책에도 그랬지만 삶에는 행복하지 않은 순간이 많아요. 휘둘리지 않고 자신을 잘 찾아나가는 사람이 됐으면 합니다. 단, 작가는 안 됐으면 좋겠습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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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뽀뽀하는 동화이지민 저 | RSG(레디셋고)
두 아이의 엄마이자 소설가, 시나리오 작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저자는 몸이 두 개여도 모자랄 만큼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엄마들의 고충을 그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 그는 《엄마가 뽀뽀하는 동화》에서 엄마와 아이가 함께 읽으면 좋은 그림책의 서평과 함께 아이와 책을 읽으며 겪었던 에피소드를 풀어놓으며 아이의 감수성과 창의력을 키워 주는 자신만의 독서 노하우를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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