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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가 김범 “행복한 가족에서 시작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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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줄로만 알았던 할머니가 나타났다. 그것도 60억을 갖고. 할아버지는 길길이 날뛰었다. 가족 버리고 제 살 길 찾아간 할머니를 용서할 수 없다고 했다. 고모도 거들었다. 할머니는 가족에게 남길 재산이 있다고 했다. 자그마치 60억이나. 그 뒤로 상황은 역전. 모든 가족이 할머니에게 잘 보이려고 기를 쓴다. 소설 『할매가 돌아왔다』의 설정이다.

 

드라마 내용과 비슷하지 않은가? 맞다. 60억이라는 설정만 빼면 최근 SBS에서 방영 중인 <떴다! 패밀리>와 닮았다. 이상할 게 없는 게 <떴다! 패밀리>의 원작 소설이 『할매가 돌아왔다』이다. 이정현의 국내 복귀작으로 화제가 된 <떴다! 패밀리>는 할머니의 유산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소동을 유쾌하게 풀고 있는 작품이다. 원작에서 소소하게 달라진 설정은 있으나 드라마와 소설 모두 가족의 소중함을 강조한다.

 

원작 소설가 김범은 소설가로서는 다소 드문 길을 걸어왔다. 1963년에 태어나 등단한 해는 2009년. 우리 나이로 마흔일곱에 소설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다소 늦게 등단한 점도 특이하지만 그의 작품은 서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에서 눈여겨볼 만하다. 단편 중심에 주제와 심상을 중시하는 풍토에서 김범은 재미있는 이야기를 강조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영화화, 연극화 논의도 활발하다. 이미 드라마화된 『할매가 돌아왔다』를 비롯해 앞으로도 그의 작품을 영화관, 소극장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김범의 소설이 재밌기만 한 건 아니다. 감히 한국의 오쿠다 히데오라는 평이 있듯, 그의 작품에는 굴곡 많은 한국 근현대사와 구조에서 벌어지는 폭력, 그걸을 향한 해학적인 시선이 함께한다.『할매가 돌아왔다』역시 시대적 배경은 현재이지만 일제 식민지와 미군정, 민주화 운동 등 20세기의 굴직한 근현대사를 만날 수 있다. 동석이라는 작가의 분신 같은 인물의 시선을 통해서 말이다.

 

김범작가님04-사본.jpg

 

드라마 보며 배우 연기에 감탄해

 

『할매가 돌아왔다』가 드라마 <떴다 패밀리>로 방영 중인데요. 드라마화로 많이 바쁘셨을 것 같 같은, 어떻게 지내셨나요.
 
소설 공부 시작한 지는 오래됐으니, 주변에서 제가 소설 쓰는 사람이라는 정도는 알고 있었죠. 그렇지만 무엇을 쓰는지에 관심 가지는 사람은 드물었는데, 드라마로 나온다고 하니 제가 아는 모든 분이 연락을 해와요. 열심히 보고 평을 말씀해 주세요. 대중적인 매체가 힘이 크다는 걸 새삼 느끼면서 제가 쓴 것을 지인과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게 즐겁네요.

 

드라마든 영화든 원작인 소설이 다른 방식으로 표현될 때 피할 수 없는 게 변형인데요. 어떻게 드라마를 보셨나요.

 

소설이 드라마나 영화로 갈 때 작가로서는 주제가 훼손되는 게 두렵죠. 처음에는 드라마 대본을 봤을 때, 원작에는 없던 다양한 에피소드와 인물에 당황했어요. 그분들 말씀이, 장편소설은 드라마로 모두 에피소드를 다뤄도 10부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해요. 20부작이니 다른 인물, 에피소드가 추가될 수밖에 없었죠. 소설과 드라마는 주제를 표현하는 방식이 다른 걸 이해했습니다.

 

또 하나는, 원작 자체에 과장된 면이 많은데 대본에서도 그런 과장이 많았어요. 그래서 좀 어색하면 어쩌지, 했는데 1, 2회를 보고 걱정이 없어졌어요. 우리나라 배우들이 정말 연기를 잘한다는 걸 느꼈죠. 박원숙 선생님도 그렇고, 진이한의 연기에 감탄했습니다.

 

소설에서는 한국 근현대사가 한 축이라면, 가족 이야기가 한 축인데요. 두 가지 축에서 드라마에서는 후자가 좀 더 두드러진 것 같습니다. 원작자로서 드라마와 소설을 감상하는 팁을 주신다면.
 
저 역시 시청자의 한 사람이라 팁을 드릴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소설에서는 개인적인 이야기와 사회적 배경이 얽혀서 이야기를 풀어야 많은 독자의 공감을 얻을 수 있어요. 소설가는 내일을 위해서 쓴다고 생각해요. 내일 무엇에 가치를 두며 살 것인가를 생각하며 쓰다 보면 개인사가 사회적 배경과 얽힐 수밖에 없겠죠. 드라마에는 그런 부분이 조금은 생략돼요. 사회적 배경을 축소하면서도 어떻게 독자에게 공감을 이끌어낼지는 저도 굉장히 궁금해요. 드라마에서는 배경이 축소되고, 가족 이야기에 좀 더 몰입하지만, 단순히 유산을 노린 소송극으로만 끝나지 않을 거로 생각해요.

 

좀 가벼운 질문 드리겠습니다. 소설에서는 할머니가 가진 돈이 60억으로, 드라마에서는 200억으로 나오는데요. 작가님께 이런 할머니가 나타난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소설에서 60억 설정할 때, 주변에 소설 쓰는 친구들은 ‘우와’ 했습니다. 드라마로 가면서 200억이 되었죠. 역시 소설보다는 드라마가 훨씬 부자구나, 이런 생각은 들었어요. (웃음) 실제로 저는 이북 출신의 가족이고 할머니를 사진으로밖에 못 봤어요. 혹시 돌아가신 할머니가 60억이 아니라 10억 이상 유산을 갖고 오셨더라도, 동석이랑 같았겠죠.

 

소설 쓰기를 중단하셨겠네요.

 

저에게 소설은 연애에요. 아무리 급해도 연애는 짬짬이 했겠죠.

 

최동석에는 자전적 체험이 들어가

 

『할매가 돌아왔다』는 청춘의 잉여적인 모습을 세밀하게 묘사했습니다. 피씨방에서 보내는 풍경이라든지, 집에서 종이접기에 몰두하는 모습 등이 그렇습니다. 실제 작가님의 연령대와는 좀 거리가 있는 모습 같은데요. 어떻게 이런 묘사가 가능했을까요.

 

청춘의 잉여적인 모습에는 저의 모습이 많이 들어갔어요. 저는 사회적으로 자랑할 만한 게 별로 없습니다. 오히려 여러 번 낙오했죠. 실제로 피씨방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적도 있었고요. 종이접기는 아내가 좋아합니다. 종이가 참 약하잖아요. 그게 아름답게 변하는 모습을 보고 종이 공예를 특별히 좋아하게 됐죠. 드라마에서는 종이 공예가 아니라 그림 그리는 걸로 설정이 바뀌었습니다만, 앞으로 제 작품에서 종종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피씨방에서는 동석처럼 고스톱을 치셨나요.

 

소설 시작하면서 20대 때 좋아했던 노름과 낚시는 다 끊었어요. 좋아했다기보다는, 그 시절에는 놀이 문화가 없으니까 동창을 만나면 할 수 있는 게 고스톱 정도였죠. 피씨방에서는 소설을 썼어요. 소설을 쓸 데가 없었거든요. 쓰다 보면, 옆에서 컵라면 드시면서 고스톱 치는 분을 많이 보죠. 그런 모습을 소설에서 표현했어요.

 

『할매가 돌아왔다』에는 개성 강한 인물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중에서 특별히 애틋한 존재는?
 
10년, 20년, 30년이 지나도 『할매가 돌아왔다』는 절대 잊을 수 없는 작품일 거예요. 제 첫 소설이고, 정말 열심히 썼던 작품이니까요. 지금도 열심히 쓴다고는 해도 그때만큼 열심히 쓸 수는 없거든요. 소설화되기 이전부터 이미 거기 나오는 캐릭터는 제게 굉장히 소중한 사람이에요. 제 아버지, 친구 모습이 다 들어가 있죠. 그중에서 한 명을 꼽으라면 역시 최동석입니다. 제 모습이 많이 반영된 인물이에요. 쓰면서 스스로 만족했던 점은 동석이가 크게 성공하지 않는다는 결말입니다.

 

저는 삼류의 당당함을 소설로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루저들, 낙오한 사람, 실패한 사람이 물리적으로 성공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꼴찌 자리에서도 스스로 정신적으로 당당함을 보여주는 게 사회에서도 중요해요. 그런 의미에서 와이프의 구박을 받으며 설거지를 하고 있을 우리 사회의 모든 동석이에게 애정을 품고 있습니다.

 

아직 많은 작품을 내지는 않았지만,『할매가 돌아왔다』『공부해서 너 가져』를 보면 작가님께서 쓰고자 하는 게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 같은데요. 작가님의 문학적 관심사가 궁금합니다.

 

무엇을 쓸 것인가에 대해서 제 스승님은 ‘자신의 꿈을 쓰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생각해 봤죠. 제가 정말 바라는 꿈은 무엇인가. 제가 바라는 세상은 궁극적으로는 폭력이 없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제 글의 주제는 항상 폭력이죠. 저에게, 제 자녀에게, 친구에게, 주변 사람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결국 우리나라 근현대사와 떨어질 수가 없어요.

 

제가 어렸을 때 가장 많이 봤던 게 여성들이 당하는 폭력이었어요. 『할매가 돌아왔다』도 제 어머니뻘 되는 분이 남편에게 폭력을 당하고, 마당에서 <금발의 제니>를 부르는 장면을 목격하면서 쓴 거예요. 두 번째 소설인 『공부해서 너 가져』는 첫 아이의 중고등학교 시절을 보면서 썼어요. 잘 아시겠지만 그 나이에 주변에는 너무 많은 폭력이 있는데, 제가 어느 것도 해결할 수 있는 게 없더라고요. 소설로라도 쓸 수밖에 없었죠.

 

작가님 이야기의 주제 중 하나가 가족입니다. 작가님께 가족이란?

 

저는 결혼이 두려웠습니다. 불안정한 사람이라 가족이 고생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있었죠. 서른넷이 될 때까지 결혼을 못 했어요. 막상 결혼하고 가족이 생기니까 달라졌어요. 글쓰기부터 24시간 동안 하는 제 모든 활동의 목적은 사랑하는 부모님을, 아내를, 자녀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저에게는 가족은 큰 행운이고 축복이고 모든 열정의 뿌리입니다. 학교 다닐 때 교과서에서 배웠잖아요. 행복한 가족이 행복한 이웃을 만들고, 행복한 사회를 만든다고요. 어른들이 하신 말씀은 안 좋아하지만, 그 말은 맞는 것 같아요. 정치적, 사회적 문제를 떠나서 가족에서 시작해야 한다, 이게 제 신념입니다.

 

작가님 작품에서는 ‘이주’라는 설정이 문학적으로 중요한 장치 같습니다. 작품에 ‘이주’를 넣는 이유를 듣고 싶습니다.

 

의식하고 쓰지는 않았는데, 질문을 듣고 깨달았네요. 실제로 7년 동안 외국 생활을 했습니다. 작품에서 왜 이주를 도구로 쓸까를 생각해 봤는데, 지금 틀에서 벗어나서 상황을 바라보기 위한 장치로 사용한 거 같아요. 현재의 틀 안에서는 정확한 삶을 표현하거나 보기가 쉽지 않잖아요. 워낙 경쟁 심한 상황에서 간신히 줄을 잡고 살아가죠. 올바르게 등산하는지 모르고 앞사람의 뒤통수만 보고 쫓아갑니다. 미국, 일본 등 장소가 어디냐는 중요하지 않아요. 낙오했을 때, 이탈했을 때 이 무리가 어디로 가는지 보인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이주의 의미일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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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오쿠다 히데오가 아니라 열심히 좋은 글 쓰는 김범

 

한국의 오쿠다 히데오라는 평에 대해서는 만족하시나요.

 

전혀 동의하지 못합니다. (웃음) 출판사에서 김범이라는 사람이 『공중그네』처럼 재밌고 유쾌한 소설을 쓴다는 걸 알리기 위해서 필요했던 문구 같습니다만, 감히 제가 오쿠다 히데오에 비교되는 것 자체가 그분에게 죄송스럽고요. 열심히 좋은 글을 쓰는 김범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이 영화화된 게 많잖아요. 마찬가지로 작가님의 글을 영화, 드라마 작가들이 탐내는데요. 이유를 생각해 보셨나요.

 

대선배, 동료, 후배에게 제 의견을 개진하거나 강요할 생각은 없지만요. 저는 우리 문학이 조금 더 서사에서 재밌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지금은 흔히 소설 읽는 인구를 3만 명 정도로 보고, 1만 부가 팔리면 베스트셀러인데 과거에 유명 작가의 작품은 100만 부씩 팔렸어요. 돈 문제가 아니라, 그만큼 많은 사람이 소설을 읽었다는 의미입니다.

 

왜 요즘은 소설을 읽지 않을까요? 다른 매체와 비교할 때 재미가 떨어진다고 생각해요. 소설가들이 재미있게 쓰면, 주제가 흔들릴까 두려워하는 면이 있고요. 소설가가 좀 얕게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는 거 같아요. 자주 이야기합니다만, 저는 쉬운 작가가 되는 게 목표입니다. 누구나 제 책을 읽고 어려움을 느끼지 않고, 언제든지 제게 질문하고 이야기 나누는 게 목표입니다.

 

제 소설은 서사가 강한 이야기이기에 어떤 매체와도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어차피 교류하려고 쓰는 거잖아요. 독자와 교류도 중요하지만 매체와 교류도 재밌습니다. 저는 모든 매체와 쉽게 소통할 수 있는 재밌는 글을 쓰는 게 옳다고 생각하고 글을 쓰고 있고 앞으로도 쓸 거예요.

 

다소 늦은 나이에 등단하셨는데요. 소설을 쓰기로 결심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이 대답을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가, 솔직히 말하기로 했습니다. 소설은 쓰고 싶었지만 용기가 없었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쓰고 싶었죠. 글 쓰는 게 재밌고, 제 글을 읽고 좋아해주는 사람이 좋았고요. 대학 때도 여학생에게 잘 보이려고 썼던 거 같아요. 부모님은 글을 쓰면 배곯는다, 가족에게 폐를 끼칠 수 있다고 반대하셨죠. 글을 쓰지 못했어요.

 

외국에서 생활할 때 친한 친구가 “넌 뭐든지 열심히 하는 게 없니”라고 말하면 저는 습관적으로 “사실 나는 글을 써야 하는 사람이야”라고 답했어요. 그 친구가 그렇다면 글을 쓰라고 말해요. 글을 써서 한 소설가분에게 보냈죠. 지금은 돌아가셨는데, 친절하게 글 쓰지 말고 열심히 일하라는 답장이 오더군요. 그래서 좌절하고 안 썼죠. 그러다가 제 나이 서른여덟에 경제적으로 낙오했습니다. 그때까지는 사회에서 낙오하지 않고 안정적으로 사는 게 유일한 목적이었던 거 같아요.

 

낙오했으니 죽는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여전히 해가 뜨고 바람이 불고 똑같은 밥을 먹었어요. 낙오라는 게 별 거 아니구나, 수치스럽고 불편하고 어렵지만 생각했던 것만큼 두려운 게 아니구나, 그렇다면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자, 해서 서른아홉 때 다시 소설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늦게 된 건, 등단하는 데 8년이 걸렸어요. 80번 넘게 떨어졌어요. 최종심까지 13번을 갔는데, 떨어지더라도 그때는 이미 등단하고 성공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글을 쓰는 게 정말 재밌었어요. 저는 그게 열정이라 생각해요. 열정으로 글을 썼습니다. 저에게는 서른아홉이 열아홉이에요. 지금이 쉰셋인데, 저는 글 나이로 치면 서른셋이죠.

 

지금 쓰고 계신 작품은?

 

역시 폭력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성형 폭력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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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매가 돌아왔다 김범 저 | 웅진지식하우스
『할매가 돌아왔다』는 돈이 전부인 이 세상에서 자신의 일생을 인정받기 위한 제니 할머니의 투쟁을 유머러스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일본 군인과 눈이 맞아 남편과 자식을 버리고 도망쳤고 세상에 원래 없었던 사람처럼 완전히 잊혀졌던 할머니. 그런 그녀에게, 할아버지, 아버지, 고모 등은 너나 할 것 없이 무슨 낯으로 이제야 돌아왔냐며 당장 나가라고 야단이다. 하지만 그때 내뱉는 할머니의 한 마디. “너희에게 줄 유산 60억이 있다.” 그러자 다들 자신도 모르게 바뀌는 표정을 숨길 수가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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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희 시인 “살아 있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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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직 시인이고 싶었습니다


시인의 숨결로 호흡한 지 45년, 미당의 극찬을 받으며 등단한 ‘천재 문학 소녀’는 어느덧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다. 그러나 문정희 시인은 여전히 젊은 작가다. 새롭게 거듭나기를 갈망하는 열정, 스스럼없이 자신을 드러내는 목소리를 지녔기 때문이다. 늙음이 아닌 낡음을 경계하며 살아왔기에 그녀는 오늘도 ‘생애 가장 젊은 날’을 맞고 있다.

 

“45년 동안 시를 써왔지만, 저는 오늘 등장한 시인이 제 라이벌이라고 생각해요. 시의 연조가 깊어졌다는 건 시의 계단이 높아졌다는 뜻과는 별개잖아요. 잘못하면 상투적이거나 낡아빠질 수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위험할 수도 있죠. 그나마 한 가지 자부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썼다’는 거예요. 좋은 작품이었건 실패작이었건 일단 썼다는 점에서 성공했다고 생각해요. 한 번도 붓을 멈추거나 쉬지 않았으니까요.”

 

『살아 있다는 것은』 안에서 시인은 “오직, 순간만이 나의 전부다”라고 말한다. 지나간 시간도 다가올 시간도 아닌 지금의 순간을 살아냈기에, 신선한 시선과 생동하는 감성을 노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살아 있다는 것은』에는 모든 순간이 숫처녀였던 생의 비의에 대한 이야기가 있어요. 어떤 순간도 이전의 경험으로 인해 익숙해지지는 않잖아요. 그런 점에서 인생은 철저히 처음인 것이고, 다시 반복할 수 없는 단 한 번의 순간인 거죠. 다행히도 그 사실을 어린 시절부터 선험적으로 알았기 때문에 45년 동안 시를 이어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살아있다는 건 순간순간 파도치는 것이고 그 파도는 영원히 다시 반복할 수 없다는 걸 알았던 거죠.”

 

‘살아 있다는 것은 / 파도처럼 끝없이 몸을 뒤집는 것이다 / 내가 나를 사랑하기 위해 몸을 뒤집을 때마다 / 악기처럼 리듬이 태어나는 것이다’(「살아 있다는 것은」). 이번 책에 실린 시와 수필들은 문정희 시인이 탄생시킨 리듬의 조각들이라 할 수 있다. 그 소리들을 따라가다 보면 시인의 지난 시간과 만날 수 있다. 그곳에는 “젊은 날의 나의 슬픔과 상처, 그리고 나의 사랑과 절망”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노라고, 시인은 고백한다.

 

“제가 이미 떠나온 기억에 대해서 낡았다고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아요. 기억은 생명을 이루는 나이테처럼, 진액처럼 여전히 제게 묻어있기 때문이에요. 그 진액이 흘리는 피 때문에 지금 제가 살아있는 것이고요. 『살아 있다는 것은』을 읽으면서 다소 간지럽고 창피한 순간도 많았어요. 그런데 어차피 지나온 것들을 다시 반복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그렇게 생각하니까 즐겁게 읽을 수 있더라고요. 자칫하면 수다 정도로 끝나버릴 수도 있는 이야기들인데, 다행히 글로 남은 덕분에 후배들과 소통할 수 있게 됐잖아요. 그것만으로도 얼마나 좋아요?”

 

문정희 시인은 책의 서문에 “나는 오직 시인이고 싶었습니다”라고 적었다. 시라는 모국어로 자신을 혁명하고 싶었기에 가능하면 산문도 피해왔다는 것이다. 시의 호흡에 방해가 되지는 않을까 염려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시인의 걱정과 달리 『살아 있다는 것은』에 수록된 수필들은 그녀의 시 세계를 보다 깊고 넓게 조명해준다. 시 안에 담긴 감성과 시간들을 또 다른 호흡으로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등단 후 20여 년 동안은 수필집을 출간한 적도 많았어요. 그때는 시라는 틀 안에서 다 이야기하지 못한 격정이나 젊음의 에너지가 많이 있었거든요. 시대도 그걸 요구했고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다 보니까 시로써 얘기하지 못할 것이 없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나는 시인이었으니까 시로 끝까지 한 번 가보자’라는 생각으로 산문을 자제했죠. 자신이 빼든 칼에 대한 철저함이야말로 목숨을 가장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것 아니겠어요? 그것이 설령 많은 명예나 돈을 가져다주지 않고 세상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는 칼이라 하더라도 말이죠. 『살아 있다는 것은』에는 시와 산문이 함께 어우러져 있는데, 그 모두가 문학이라는 호흡 속에서 태어난 것이기 때문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요.”


자유라는 이름의 공기, 고독이라는 이름의 음식


문정희 시인에게 있어 시는 자신을 존재하게 하는 가장 본질적인 호흡이었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하이데거의 말을 빌려 스스로를 시의 집에 살고 있는 존재라 정의한 그녀는 ‘이보다 더 최상의 삶을 살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수긍이 가고도 남을 만한 이야기였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그 호흡에 이끌려 시의 공간으로 들어섰던가.

 

문정희 시인은 국내의 각종 문학상을 수상하며 대중의 사랑까지 한 몸에 받았을 뿐만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큰 주목을 받았다. 2012년 프랑스 퀼트르(France Culture)의 인기 프로그램에 번역 시선집 『찬밥을 먹던 사람』이 소개되었고, 최근에는 프랑스의 예술전문방송 아르테 텔레비전이 <기적을 이룬 한국>이라는 5부작 프로그램을 제작하며 그녀를 취재하기도 했다. 시가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가 낯설지 않은 현실 속에서도 문정희 시인은 자신만의 영역을 성공적으로 구축해 낸 것이다.

 

“시는 광장의 장르가 아닌 밀실의 장르죠. 밀교와도 같은 거예요. 그러나 모든 사람 속에는 시를 갈망하는 원시림이 있다고 봐요. 다만 그 원시림을 깨우지 못한 사람들이 있을 뿐인데, 조금의 촉매를 주는 것만으로도 그들 안에 잠들어 있는 욕구를 살아나게 할 수 있어요. 어떻게 보면 시가 대중화 되지 않은 현상에는 시인의 잘못도 크다고 할 수 있죠. 너무 암호 같은 이야기를 한다거나, 육화되지 않은 소리로 괴성을 지르면 사람들이 귀를 기울이지 않는 거예요. 진정으로 인간 본래의 좋은 숨결을 내뿜어 준다면 사람들이 시를 멀리할 이유가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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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와 함께 고독을 화두 삼아 시를 지어온 작가로 평가받는 문정희 시인. 그녀가 들려주는 삶의 고독에 관한 이야기는 『살아 있다는 것은』안에서도 이어진다. 시는 고난의 산물이고 시인은 고통과 깊이 손잡고 있는 존재라는 독백을 들려주는 것이다. 시인으로서 살아가는 이에게 어쩌면 고독은 숙명과도 같은 것이었을지 모른다.

 

‘요즘 내가 즐겨 입는 옷은 쓸쓸이네 / 아침에 일어나 이 옷을 입으면 / 소름처럼 전신을 에워싸는 삭풍의 감촉 / 더 깊어질 수 없을 만큼 처연한 겨울 빗소리/ 사방을 크게 둘러보아도 내 허리를 감싸 주는 것은 / 오직 이것뿐이네 // (중략) // 이윽고 옷을 벗고 무념의 이불 속에 / 알몸을 넣으면 / 거기 기다렸다는 듯이 / 와락 나를 끌어안는 뜨거운 쓸쓸’ (「쓸쓸」)

 

“고독하지 않으면 시혼 같은 것이 사라지는 것 같아요. 고독을 섭취하지 않으면 포만해져서 짐승같이 된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리고 철저히 자유로워야 하죠. 자유라는 건 인간으로 태어나 당당히 마셔야 할 공기 같은 것이라고 생각해요.”

 

‘여성’ 역시 문정희 시인의 시 세계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화두다. 제도와 전통의 틀에 얽매인 여성의 몸, 자본에 치우친 여성의 몸, 에로스의 몸, 아이를 낳는 생산자로서의 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각도에서 여성의 존재를 고찰해 온 시인은 ‘여성적 생명주의’를 대표하는 작가로 손꼽혀 왔다.

 

그러나 지난해에 시집 「응」을 발표하면서 그녀는 “그동안 피지배자로서 억압받은 여성의 삶을 많이 노래했는데 여성성이라는 문제에 너무 오래 집착하는 것도 굴레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제는 ‘야성의 목소리로 생명을 품고 키우는 대지로서의 여성성’에 대해 노래하겠다며 새로운 영역으로 옮겨간 것이다.

 

“한국 현대시의 역사를 보면 근본적으로 여성호흡이에요. 김소월, 한용운, 서정주, 박목월, 정지용, 모두가 그렇죠. 그것은 좋다 나쁘다로 이야기할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에요. 여성 호흡을 차용할 수밖에 없었던 전통적이고 현대사적인 이유가 있었으니까요. 그렇지만 세계에 한국 문학을 내놓으려면 많은 것들 중의 하나가 아닌 유일하고 가장 좋은 것이어야 하잖아요. 그리고 글로벌한 감성 속에서 여성 호흡으로만 이야기하는 것은 제게는 견딜 수 없이 지루해요(웃음). 제 내면에 여성과 모성마저 벗어버리고 싶은 야성이 있기도 하고요. 시집 「응」에서 이야기한 여성성은 남녀의 틀 속에 갇힌 것이 아니에요. 여성이 가진 생명 본래의 창조성에 대해 말한 거죠. 자신 있고 당당하게 하늘 아래에 여성을 내놓는 거예요.”


최선을 다해 파도치는 삶


또한 문정희 시인은 “오늘날 남자를 통과하지 않고는 제대로 된 시를 쓰기 어렵다. 남성을 이해하고, 남성의 원형질을 살려주는 것도 시의 역할”이라고 말한 바 있다. 남성을 배제한 채 여성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시집 『남자를 위하여』에 수록된 시 「사랑하는 사마천 당신에게」에서 진정한 남성성을 찾던 그녀의 목소리는 『살아 있다는 것은』 속에도 녹아있다.

 

‘요새는 왜 사나이를 만나기가 힘들지 / 싱싱하게 몸부림치는 / 가물치처럼 온몸을 던져오는 / 거대한 파도를 // 몰래 숨어 해치우는 / 누우렇고 나약한 잡것들뿐 / 눈에 띌까, 어슬렁거리는 초라한 잡종들뿐 / 눈부신 야생마는 만나기가 어렵지 // (중략) // 불꽃을 찾아 온 사막을 헤매이며 / 검은 눈썹을 태우는 / 진짜 멋지고 당당한 잡놈은 / 멸종위기네’ (「다시, 남자를 위하여」)

 

“시 안에서 남성을 말할 때 가장 큰 부담은 문학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저는 문인이지 여성학자나 여권운동가가 아니잖아요. 문학성을 획득한 작품으로써만 남성을 노래해야죠. 그것이 제일 어려웠어요. 문학성이 있는 작품을 생산해서 감동이든 충격이든 변화든 끌어내야 하니까, 많은 고민을 했죠. 남성도 한 존재로서 보면 가엾고 예쁘고 사랑스럽잖아요. 그래서 남성도 타인으로만 보이지 않았어요. 다만 어린 여자를 찾거나 돈이나 힘으로 성을 취하는 것이 사내다움인 양 오해하는 것은 문제가 있죠. 그건 사회가 잘못 기른 것이고 교육에 의해서 고쳐질 수 있다고 봐요.”

 

문정희 시인과의 만남은 『살아 있다는 것은』이 담고 있는 그녀의 순간들을 되짚는 것으로 시작됐다. 그 과정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시인이 짓고 허물고 다시 짓기를 반복한 시 세계였다. 그리고 이야기는 다시 ‘순간’으로 돌아왔다. 한 번 뿐인 순간에 충실하기 위해 살아온 시간들이 시인의 세계를 떠받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생명이라는 것이 너무 소중한 거니까 순간순간을 시시하게 보내서는 안 되죠. 저는 매일 스스로에게 물어요. 지금을 충실하게 살아내고 있느냐고요. 그리고 항상 같은 대답을 하죠. 나는 시 한 편이면 된다고요. 살아가는 일이 생명이 가진 존귀함 그대로 숨 쉬는 것이었으면 좋겠어요. 어떤 존재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존재잖아요. 인생은 축구 게임이 아니에요. 모든 판결에서 이겨야 되는 게 아니라는 거죠. 최선을 다해서 파도치면 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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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다는 것은문정희 저 | 생각속의집
《살아 있다는 것은》 이 책은 올해로 등단 45년을 맞은 문정희 시인의 주옥같은 시와 에세이를 엮은 것이다. 이 책에는 시에 목숨을 걸 듯 치열하게 살아온 문정희의 뜨거운 시(詩) 인생이 아낌없이 펼쳐져 있다. 그는 끊임없이 질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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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R&B를 넘어 가요 전반에 성실했던 신인, 크러쉬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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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정규앨범에서 흑인 음악을 탁월하게 펼쳐놓았음에도, 더할 것이 없나 손에 쥔 카드를 뒤적거렸다. 무대에서 보여주고자 댄스에도 열중했고, 드라마 OST나 토이 앨범에 참여해 보컬리스트로서의 재능을 뽐냈다.

 

앨범을 마무리 한 뒤 그가 가진 생각, 1월 말쯤 발매한다는 자이언티와의 콜라보 음반 얘기도 듣고 싶었다. 이름을 알리기 위해 R&B를 넘어 가요 전반에 성실했던 신인, 올해 스물넷이 되는 크러쉬(Crush)를 홍대에서 만났다.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연말 공연하시느라 바쁘시죠.


최근에는 자이언티 형이랑 같이 앨범 만드는 데에만 몰두하고 있어요. 작업할 때는 거기에만 집중해야 하니까 여유가 없는 상황이죠.

 

힙합 신 밖에서도 섭외가 많이 들어오겠네요.


엄청 많죠. (당당하게 자랑하는 크러쉬의 대답에 전원 웃음) 대형 기획사에서도 많이 오고요.

 

어떻게 보면 데뷔하자마자 잘 된 거고, 성공의 시기가 빨리 왔잖아요. 부담감도 있을 텐데요.


부담보다는 앨범을 내고 난 후에 공허함이 있었어요. 에너지를 쏟아내서 마무리 한 뒤 여유가 생겼을 때 텅 비는 느낌, 그런 게 한꺼번에 오더라고요.

 

앨범을 만들면서 힘든 점은 없었나요? 프로듀싱도 직접 하시니까요.


그 때는 육체적으로 힘들었죠. 제작 과정에 많이 참여하다보니까 체력이 부족하더라고요.

 

그 과정에서 얻은 것도 있을 것 같아요.


정규 앨범을 처음 만들었고, 완성했다는 것이 소중해요. 세부적으로는 트랙을 배치하는 순서, 자켓 커버를 만들면서 음악 외적 것들도 많이 배웠어요. 공연을 하면서 관객과 재밌게 놀 수 있는 노하우도 생겼고요.

 

음악방송에서 퍼포먼스와 노래를 같이 했는데, 평소 표정이나 춤을 연습하셨나요?


데뷔 전부터 춤을 좋아하긴 했지만, 곡에 맞는 안무를 더 잘 하고 싶어서 따로 배우면서까지 꼼꼼히 했어요. 잘 하지는 못해도 퍼포먼스로 제가 할 수 있는 얘기를 더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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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앨범 얘기를 좀 더 해볼게요. 연말 결산에도 많이 뽑혔고, 전체적으로 성과가 좋았는데 스스로도 만족하나요?


아직까지 성공했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만족했다기보다는 당시 제 음악 정체성을 대변해주었다고 생각해요. 크러쉬라는 브랜드를 알리기 위해 흑인음악을 다채롭게 펼쳐서 할 수 있는 것들은 다 담아냈고요. 누구나 되돌아보았을 때 아쉬운 점은 있겠지만 큰 후회는 없어요.

 

아쉬운 점이 적은 편이라고 하셨지만, 있다면요. 예를 들면 가사나 곡의 흐름 등에서요.


음, 주제에서 더 폭이 넓어질 수 있었지만 사운드 흐름에 맞지 않으면 제외를 했는데, 감상 후기를 찾아서 읽어보면 사랑얘기에만 집중되었다는 비평도 있더라고요. 또 의욕에 넘친 나머지 처음부터 끝까지 꽉 채운 건 아닌가라는 약간의 아쉬움이 들고요.

 

그래서 이후에 발매한 싱글 「Sofa」에서 담백해진 모습을 보여주려 한건가요?


네. 확실히 힘을 빼고 불렀고 안무도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표현하려 했고요. 분위기를 바꿔보겠다는 의도보다 1집을 낸 뒤로 파급력을 이어가는 의미로 작업을 하게 되었어요.

 

그럼 자이언티와의 콜라보 얘기로 넘어가보죠. 어떻게 둘이 뭉치게 되었나요.


서로 동기부여를 받아요. 이후에 찢어져도 각자 열심히 하자는 취지 같고요. 자이언티 형이 '양화대교', 제가 「Sofa」 이렇게 하나씩 내고 둘이 합치면 더 효과가 나겠다는 얘기도 했죠.

 

어떻게 보면 부담에 대한 해결책으로 작업을 시작하게 된 거군요.


음, 저는 그래요. 저는 1집을 끝내고 슬럼프가 있었고, 어떻게 돌파할까 고민하는 중에 자이언티 형이랑 콜라보를 진행하게 되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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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분 모두 비비드 크루이기도 하고, 아메바컬쳐에 소속되어 있어서 같이 하게 된 것도 있겠네요.


그런 점도 있죠. 그것보다 예전에 제가 자이언티 형을 만났을 때 나중에 둘이 함께 할 수 있는 상황이 되면 해보자고 약속한 적이 있었어요. 제 앨범이 나오고, 그 상황이 조금 빨라진 거죠.

 

「no more」 리믹스 녹음을 할 때도 그레이가 크러쉬의 슬럼프를 풀어주려 했다고 들었어요. 원래 여럿이서 작업하면서 과제나 고민을 해결하는 타입인가요?


그런 거 같아요. 혼자 있으면 이런 저런 생각도 많이 들고, 파트너와 얘기하다보면 자극을 받을 수 있어서 좋아요.

 

그러면 자이언티와의 콜라보 음반은 어떻게 진행하고 싶나요.


최대한 자유롭게 하려고요. 둘이 제일 잘 할 수 있는 음악적 색깔로 채우는 동시에 새로운 시도들도 넣으면서요.

 

「양화대교」에서 자이언티는 전보다 톤이 다운되었고, 크러쉬도 「Sofa」에서 은은해졌어요. 최근 이런 흐름의 변화가 콜라보 앨범에도 포함되나요?


그렇죠. 둘이 머리를 맞대고 아이디어를 짜고 있기 때문에 더 다양한 주제들이 나올 수도 있는 거고요.

 

앨범은 언제쯤 공개되나요?


1월 말이나 2월 초쯤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트랙 수는 3,4곡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데, 싱글일지 미니앨범인지는 고민하고 있습니다.

 

두 분이서 얘기하면서, 우리는 2인조 팀 누구처럼 해보자 생각해둔 롤모델이 있다면요.


딱히 롤모델을 잡고 하는 건 아니지만 플라이 투 더 스카이를 얘기한 적이 있었어요.

 

되게 의외네요. 듀스나 다이나믹듀오 같은 힙합 쪽이 나올 줄 알았어요.


듀스, 다이나믹듀오 선배님들도 엄청 멋있죠. 그런데 저나 형은 플라이 투 더 스카이 되게 좋아하거든요. (웃음)

 

둘 사이의 호흡은 어때요? 슬럼프가 해결되고 있다거나 좋은 영향을 받고 있는지.


그럼요. 항상 형이랑 할 때 자극 받아요. 반대로 작업하다가 산으로 가는 경우도 많고... 한 번은 형이 편곡을 하는 도중에 갑자기 랩을 하고 싶다는 거예요. 그리고 힙합플레이야 자유녹음 게시판에 익명으로 올려서 반응을 살펴보자고.

 

(전원 웃음) 그 목소리에요?


이름은 GTA로 하자고 했어요.

 

다른 비비드 크루 식구들은 어떻게 지내나요. 얼마 전에 로꼬가 데뷔 앨범을 냈는데, 엘로의 앨범은 언제쯤 나오는지도 궁금해요.


다들 날라 다니고 바쁘죠. 엘로 형은 곧 나오지 않을까요. 요즘은 작업했을 때 말고 서로 모이기가 힘들어서요.

비비드 크루랑 같이 해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요?


단체 곡에서 우리 얘기를 해보고 싶어요. 어떻게 모이게 되었고, 앞으로 활동하고 싶은 계획 등, 한 곡에 다 담아낼 수 없다면 컴필레이션 앨범처럼 내보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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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러쉬 2집에 대해 생각해둔 것이 있는지요.


2집은 다양한 피드백과 제가 살아가는 방식에 따라 바뀔 거 같고, 그 전에 믹스테잎을 내고 싶어요. 완전 오리지널 믹스테잎을 미디어 파이어나 사운드 클라우드에 무료로 올리려고요. 제가 쟁여놓은 것들이 많아요. (반짝이는 크러쉬의 눈빛에 전원 웃음)

 

아메바컬쳐가 허락을 해줄까요?


제 포부는 이렇지만 어느 정도 타협할 것은 해야겠죠. 특히 유통 관련해서는요.

 

리듬파워 < 월미도의 개들 >도 믹스테잎으로 내려했는데 회사에서 반대해서 앨범으로 하게 된 거잖아요.


음, 그럼 싸워야죠. (크러쉬의 자신만만한 표정에 전원 웃음) 앨범에 들어갈 수는 없는 Side-B 트랙들을 그냥 버리기 아깝잖아요. 알앤비가 아니더라도 클럽튠이나 완전 힙합 베이스 곡도 많아서.

 

같은 소속사 리듬파워는 팟캐스트 < 빽 스테이지 >를 하고 있고, 다이나믹 듀오는 < 인간의 조건 >을 했고요. 크러쉬도 음악 말고 다른 창구로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 있나요?


그런 기회가 있으면 좋죠. 음, 저는 방송보다 아이콘 티비 아세요? 직접 영상 올릴 수 있고 운영 가능한, 그런 독자적인 공간을 만들어서 자유롭게 하고 싶어요. 아직도 크러쉬하면 보컬리스트 이미지가 많이 강해서, 메이킹 영상으로 저도 편곡까지 다 참여한다는 것도 알려드리고 싶어요.

 

회사가 뮤지션들이 하고 싶은 활동에 호의적인 것 같아요. 개코 씨도 솔로앨범 발매했을 때 전시회를 열었잖아요. 앨범 제작할 때도 강압이 없나요?


음악적인 부분에서는 아메바컬쳐에서 아예 개입을 안 해요. 앨범 방향, 타이틀 선정도 강제가 없고, 관여를 했다면 「Give it to me」 같은 19금 트랙들은 나오지도 못했겠죠.

 

< 괜찮아 사랑이야 > OST도 스스로 흔쾌히 참여하고 싶어서 한건가요?


회사 쪽에 먼저 제안이 왔어요. 제가 노희경 작가님 팬인데, '작가 노희경, 배우 공효진, 조인성 출연' 이것만 보고 하겠다고 했어요. 그리고 저 드라마가 잘 되면 중국까지 수출될 거고. (전원 웃음)

 

그렇게 생각하니까 되게 큰 기회였네요.


그럼요. 피처링 할 때는 소모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어느 정도 입지가 생기면 이름을 알릴 수도 있고, 프리미엄이 될 수도 있는 거죠. 그런데 드라마의 인기도 있었고, 곡이 완전히 제가 즐겨하는 스타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1위를 했을 때 마냥 기쁘지만은 않더라고요.

 

그럼 작업을 선택하는 기준도 명확하겠네요.


최대한 제 것을 지킬 수 있도록 해요. 하기 싫은 피처링은 거절한 경우도 많았고요.

 

토이 앨범은 어떻게 진행되었나요. 피처링을 할 때도 크러쉬는 곡, 가사를 직접 쓰니까요.


먼저 유희열 형님께서 해보고 싶은 곡이 있다고 연락해주셨어요. 무조건 하겠다고 했죠. 영광이라고. 보내주신 멜로디에 제가 가사를 만들고, 가이드 보컬도 직접 했어요. 이후에 녹음실에서 같이 얘기 나누면서 수정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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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함께 작업해보고 싶다는 상대가 있다면요.


음, 글쎄요. 저도 평소에 계속 고민하던 건데, 누구랑 하면 좋을까요?

 

콜라보 상대는 열려 있는 거네요.


생각해 보니까 더 콰이엇 형이랑도 안 해봤네요. 어떻게 보면 이 팀들도 토이감성과 연결되는데, 제가 노리플라이, 페퍼톤즈도 좋아해요.

 

의외네요. 크러쉬는 1970년대 소울이랑 잘 어울려서요.


가요도 좋아하지만 어릴 때부터 도니 헤더웨이, 마빈 게이 같은 흑인음악을 많이 들었어요. 프린스도 좋아해요. 제가 디안젤로를 엄청 좋아했는데 디안젤로가 프린스에 영향을 받았다고 해서 찾아듣고 그랬죠.

 

그럼 크러쉬가 살아오면서 '인생 음반' 3장을 꼽는다면요.


곡 목록 좀 봐도 될까요? (자신의 플레이리스트를 넘기며) 일단 첫 번째는 도니 헤더웨이 콜렉션 앨범이에요. 아 아니다, 콜렉션 앨범은 없어 보일 수 있으니까요. (매우 신중한 크러쉬에 전원 웃음) 도니 헤더웨이의< Everything Is Everything >, 뮤지크 소울차일드 3집 < Soulstar >, 보이즈 투 맨 < Evolution >, 이렇게요.

 

유쾌하고 솔직한 인터뷰 감사합니다. 올해 잘 보내신 것 같으세요?


네. 무엇보다 앨범이 나왔으니까요.

 

2015년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올해보다 일도 많이 해서 더 바쁘게 보내고 싶어요.

 

 

 

 

 

 

 


인터뷰 : 김도헌, 전민석, 정유나
사진 : 정다울
정리 : 정유나
2015/01 정유나(enter_cruis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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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장사꾼 김윤규 “열정을 맛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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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 홈페이지에서 신간을 둘러보던 중, 독특한 표지에 왠지 들어본 듯한 제목의 책이 눈에 띄었다. 『청년장사꾼』이라는 정부 프로젝트에서 본 듯한 제목의 책은 알고 보니 혜성처럼 나타난 인기 맛집인 경복궁역 <열정감자>의 대표였다. 다녀오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지인의 추천에 무척 궁금한 곳이었다. 왜인지 이름이 <감자집>으로 바뀌었다는 소문도 들었기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어서 책을 읽고 싶었다.

 

청년장사꾼은 <감자집>을 하기 이전부터 5명이 모여 만든 단체다. 노점부터 시작해서 1호점은 이태원 우사단길에 커피전문점으로 시작했다. 평균연령이 24.8세! 이제는 35명인 이 단체는 11개의 매장을 운영하는, 하나의 기업과도 같다. 책 속에서 만난 그들은 ‘열정’으로 시작해서 도전하고, 부딪히고, 또 하루를 열심히 살아간다. 읽고 있는 내내 번뜩이는 아이디어에 감탄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에 에너지를 얻으며 동시에 내 삶도 반성하게 되었다.

 

인터뷰는 경복궁 매장이 아닌, 작년 11월에 새롭게 오픈한 열정도에서 이루어졌다. 용산구 남영역 근처의 주상복합 뒤쪽 골목에 낮은 건물들 사이로 6곳의 매장들이 모여있었다. 매장입구를 지나 들어가면 벽면에 왠지 낯이 익은 듯한 그림들에 활기 넘치는 청년들이 반갑게 인사를 했다. 재미와 활기를 주는 그림은 1호점의 인연으로 알게 된 작가님이 그려주셨다고 한다.

 

“이태원 매장에서 마을 프로젝트를 하면서 만난 이종환 작가님으로 JYJ앨범자켓 디자인도 하시고 왕성하게 활동하는 분입니다. 일하면서 굉장히 다양한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보통 외식업을 하면 다양한 사람을 만나긴 하지만 저희는 동네 분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또 다르게 만나는 분들이 많습니다.”


김윤규 대표는 예의 있게 인사를 나누며 인터뷰 내내 질문마다 정성껏 대답해주셨다. 이런 성실한 태도와 열정이 지금의 그를 이 자리에 있게 한 것이 아닐까. 이런 청년들의 모습에서 사람들은 기운을 받고 희망을 얻어 가는 것 같다. 고된 하루 끝에 활력을 얻고 싶을 때 열정도에 들러 한 잔 하면 참 좋겠다.

 

우리는 가장 최근(2014년 11월 25일)에 ‘열정도[島]’라는 이름을 붙여 6개의 매장을 용산구에 동시 오픈했다. 사람도, 가게도, 일터도 하나둘 떠나가고 있는 용산 원효로 1가, 고층 빌딩 사이에 섬처럼 둘러 쌓인 곳, 바로 그 골목에 우리가 가진 열정을 쏟아 상권을 만들고 활성화시켜보자는 취지로 시작한 프로젝트다. 음식점 자체가 거의 없던 거리에, 우리는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메뉴의 매장(밥집, 고깃집, 철판ㆍ와인집, 찜닭집 등)들로 꽉 채웠다.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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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연결 시켜주는 일이 좋은 장사꾼

 

책 서두에 어릴 때부터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 남들과는 좀 다른 인생을 살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어릴 적 꿈이 궁금해지던데요.


대통령이 되는 게 꿈이었습니다. 반에서 늘 반장, 학생회장을 하면서 리더쉽을 꿈꾸었습니다. 학창시절 반장을 하면 반 친구들에게 먹을 것을 나눠주어야 했습니다. 저는 소보루빵을 준비했는데 옆 반 반장은 L사의 라이스버거를 나눠주자 친구들 반응이 달랐습니다. 저도 아버지께 햄버거를 사달라고 말씀 드리자 엄청 혼만 났습니다. 그정도로 넉넉하지는 못했거든요. 그 부족함이 저에게 동기가 되었고 돈을 진짜 많이 벌어야겠다는 마음을 어릴 때부터 가지게 되었습니다.


‘죽어라 공부해서’ 서울에 대학을 오셨다고 했습니다. 대학에서 어떤 전공을 하셨나요? 적성에 맞지 않았나요?


책 속에 나온 세 명처럼 전공이 전자전기공학부이고 현재 졸업을 위해 다시 다니고 있습니다. 저는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사람과 관계된 일을 좋아한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국토대장정, 아프리카 해외봉사, 대기업 기자단 등 여러 활동들을 하면서 사람 만나는 것이 좋아 영업 아니면 장사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대학생들에게 대표님께서 하신 활동을 추천하시고 싶나요?


남들이 하니까 같이 하는 것은 추천하고 싶지 않습니다. 어떤 활동이든 목표를 가지고 참여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당장 무언가를 하려고 하지 말고 길게 봐야 합니다. 먼저 목표를 정하고 단계별로 거꾸로 내려오다 보면 무엇을 해야 할지가 보입니다. 예를 들어 저 같은 경우에는 사람을 연결시켜 주는 일을 좋아하고 그 일을 하려면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하겠죠. 어떤 직업이 있을까 생각해보니 남 앞에서 이야기 하는 것을 잘하니 사람도 많이 만나는 강연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면 강연가가 되려면 전문 분야가 있어야 하는데 어떤 분야를 가장 잘할 수 있는지 생각했죠. 가장 자신 있는 일은 남 앞에 나서서 물건을 파는 것이었고 그래서 노점을 시작했어요.

 

이렇게 거꾸로 생각해서 정하지 않으면 그저 흘러가는 대로 살게 됩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남들 가는 회사에 가고, 결혼을 하고 결국에는 스스로 불행하다 느끼게 됩니다. 물론 거꾸로 내려오려면 오랜 시간 동안 아주 많이 노력해야겠죠. 여행도 다녀오고, 책도 많이 읽으면서 자신을 잘 알아야 합니다.

첫 장사였던 무릎담요 판매는 7분 36초만에 ‘완판’을 했다는 멋진 추억은 재미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음식장사를 했나요?


제일 처음 무릎담요를 팔았을 때는 21살 때였습니다. 그때는 강연가나 다른 일을 생각하지 않고 그냥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시작한 일입니다. 실제로 도전해보니 장사가 재미있었어요. 청년장사꾼은 군대를 다녀와서 목표가 생겼고, 뜻이 맞는 친구들과 함께 적은 돈을 모아서 시작해본 것입니다. 장사라는 것은 품목에 관계없이 내가 가지고 있는 물건에 조금 더 나은 가치를 부여해서 판매를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굳이 물건을 팔지 않아도 되고, 우리가 가장 오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았습니다. 외식업은 경기에 따라 어려워질 수도 있겠지만 더 큰 테두리인 외식산업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했죠.

혹시 다섯 멤버 중 요리를 하는 분이 있으셨나요?


1호점인 커피전문점은 멤버 한 명이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해본 경험으로 시작했어요. 무작정 해본 거죠. 2호점은 한가지 단품 메뉴를 정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스몰 비어라는 용어도 없었습니다. 뉴욕에 폼므프릿츠라는 집을 보고 영감을 얻었죠. 한국에서 구할 수 있는 감자튀김을 종류별로 다 사보고, 기름도 종류별로 다 사보고 실험을 해보았습니다. 그 중 가장 맛있는 감자튀김을 팔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군요. 정말 ‘열정’이란 단어가 어울립니다. 책 출간은 어떻게 하시게 되었나요?


언론에 나오고 나서는 여러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죠. 처음엔 정말 쓸 시간도 없고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해 모두 거절했습니다. 그런데 다산북스에서 꾸준히 가게에도 방문해주시고 저희를 믿어주셨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처음에는 인터뷰어를 붙여서 썼는데 막상 보니 우리이야기가 아닌 것 같았어요. 계약을 파기하고 돈도 모두 손해를 보더라도 처음부터 다시 직접 썼습니다. 거의 1년 가까이 걸린 것 같고, 정말 힘들었습니다. 청년장사꾼도 계속 새로운 프로젝트를 기획해서 조금씩만 더 첨부하다 마지막으로 열정도 프로젝트까지 넣고 끝내자고 마음먹고 마무리 지었습니다. 정말 힘들게 썼어요. 새로운 프로젝트에 학교도 다시 다니고, 결혼도 하고, 아이까지 생겼습니다. 표지에 나온 감자살래 연석형이랑 오단이라는 친구와 함께 정말 열심히 썼습니다. 정말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출간이 된 후에는 누군가 읽어준다는 것이 부끄러웠지만, 관심을 가져 주셔서 놀랍고 또 많이 감사합니다.

 

직원 35명 평균 연령 24.8세

 

‘청년장사꾼’이라는 단체가 흥미롭습니다. 처음 다섯 명이 모였을 때부터 같은 이름을 사용하신 거죠?


네 맞습니다. 저희는 정말 돌직구로 ‘청년’이고, ‘장사’를 하고, 보통사람보다 더 잘한다고 뒤에 ‘꾼’을 붙인 겁니다. 시대적 상황과 잘 맞아 떨어지고 정부에서도 창조경제와 함께 청년의 장사에 대해 주목해주셨습니다.


 

대통령 직속 청년 위원회에도 소속되어 있으시던데요, 일에는 지장이 없나요?


굉장히 도움이 많이 됩니다. 좋은 정보를 많이 얻기도 하고, 또 저희 문제와 바로 직결됩니다. 청년장사꾼 멤버는 모두 청년이에요. 평균 연령 24.8세의 직원 35명이 모여서 모든 청년의 문제를 갖고 있습니다. 중졸, 고졸, 대졸부터 대학원 준비하는 친구까지 있고, 저처럼 대부분이 지방에서 올라왔습니다. 저희 단체만큼 청년에 대한 이슈와 잘 맞고, 그런 부분을 잘 대입하며 발전할 수 있는 곳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로고 디자인이 참신합니다. 혹시 이것도 멤버 중 한 분이 한 건가요? 그리고 책 맨 마지막 쪽에 멤버들을 한 명씩 소개하면서 디자인이 눈에 띕니다. 이 디자인은 누구 작품인가요?


저희 팀에 디자이너가 있습니다. 사실 저희 같은 단체에 디자이너가 있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저희는 이게 여러 매장이 어우러지는 단체니까 가능한 겁니다. 정식 디자이너이지만 디자인도 같이하고, 현재 매장 일도 같이할 정도로 만능인 분입니다.


첫 매장 오픈 준비하면서 이름을 정하기 위해 페이스북에서 투표를 한 계정은 처음부터 만들었었나요?

 

네. 2012년에 처음 단체를 만들었을 때 같이 만들었어요. 또한 저희 우사단마을 계정도 크게 있습니다. 좋아요가 1만4천 정도 되는데 이것도 저희가 관리하고 있죠. 이 모든걸 오단이라는 초창기 멤버가 다 관리해주고 있습니다. 재주가 정말 많고 재미있는 걸 좋아하는 친구입니다.


다양한 이벤트도 굉장히 재미있습니다. 이런 아이디어는 어떻게 만들어 내게 되었나요?


모두 멤버들의 아이디어입니다. 저희는 매일 일을 마치고 새벽 두 세시쯤에 사무실에 다같이 모여 회의를 해요. 또한 각 매장 별로 매일 일지도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 곳에서 일해도 나머지 10개의 매장이 어떻게 운영되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서로 배우고 아이디어를 공유하게 됩니다. 함께 공유한 많은 아이디어 중에 반응이 좋은 아이디어를 실천해봐요.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본인의 아이디어가 채택되어 기쁘고, 아이디어가 실제로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확인하게 됩니다. 슈퍼바이져, 점장, 직원들 모두 서로 배우고 도움을 주고 받습니다

 

우리 매장만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 다시 오고 싶은 재미있는 매장으로 키워나가는 것, 이는 누가 뭐라 해도 우리 청년장사꾼 멤버들이 가장 잘하는 것이라 자부한다. 그리고 바로 이 점이야말로 우리가 장사로 돈 버는 가장 확실한 지름길이기도 하다. (135쪽)

 

일한 만큼 돈을 주는 “학교”

 

‘청년장사꾼’ 단체 가입 조건이 있나요?


엄청 까다롭습니다. 처음에는 아는 사람들로 시작해서 합숙도 같이하고 모였지만 지금은 교육 프로그램이 따로 있습니다. ‘체험형 교육 프로그램’으로 2주동안 참여한 후, 2주동안 지켜보며 성격이 욱하는 성격이거나 너무 힘들어하는 친구는 자연히 빠지게 됩니다. 2주 후 멤버 모두가 투표를 해서 만장일치가 되면 인턴이 되고, 10주간 인턴기간을 마쳐야 정직원이 되죠. 총 3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멤버 모두에게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점점 들어오기 힘듭니다.

 

벌써 45기나 된다니 놀랍습니다. 한 기당 몇 명인가요? 비용은 어떻게 되나요?


이제는 49기 진행을 하고 있습니다. 기수당 인원수는 다 다릅니다. 보통 방학 때 좀더 많은데 이번 기수는 책도 나오고 늘어나서 6명이 하고 있습니다. 보통 교육이라고 하면 교육비를 받는다고 생각하실 텐데요 저희는 오히려 일한 만큼 돈을 줍니다. 그래서 손해가 막심하지만 더 좋은 친구를 한 명 더 뽑을 수 있다면 그 비용이 아깝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합숙생활(214쪽)은 정말 모든 멤버가 꼭 해야 하는 일인가요?


35명 중에 24명이 합숙을 하고 있습니다. 합숙 비용과 교통비도 저희가 모두 부담합니다. 숙소가 5곳이 있고 방만 11개가 있습니다. 교육생들도 원한다면 숙소에서 함께 지내게 해줍니다. 다만 가스비 같은 고정비용은 같이 사는 멤버들끼리 돈을 모아서 내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154쪽에 모두가 사장의 마음으로 일한다고 자부하셨습니다. 모든 기업의 과제가 이렇게 일하는 사원일 텐데요. 어떻게 이런 ‘사장정신’을 갖게 만드셨나요?


청년장사꾼을 처음 설명할 때 항상 이 업의 본질에 대해 말씀 드립니다. ‘장사’라는 것은 모든 시장경제의 근간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총, 균, 쇠』라는 책에서도 언급되었듯이 초기에 물물교환 형태조차 모두 장사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들을 잘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장사는 정직합니다. IT기업처럼 적은 인원이 많은 수익을 내기 어렵습니다. 100만원 팔려면 3명, 200만원 팔려면 6명이 있어야 합니다. 이곳에서 잘하지 못하면 독립해서 개인사업도 어렵습니다. 모든 매장들이 전쟁터처럼 일을 하니, 우리도 살아남으려면 정말 열심히 해야 한다고 몸으로 느끼고 배웁니다. 그래서 스스로 내 가게라고 생각하고 다양한 이벤트도 생각해보고, 그걸 회사의 지원을 받아 시도해보는 겁니다.

 

간판깨기(191쪽)만의 특별한 장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저희 청년장사꾼 매장은 프랜차이즈가 아니라 모두 다른 형태의 음식점입니다. 이 모두 다른 아이템은 거의 다 간판깨기에서 나온 겁니다. 다양한 자료를 모으면 굉장히 도움이 됩니다. 멤버들은 해외에 나가서도 간판깨기를 해서 돌아옵니다. 이번에도 우수사원 2명을 회사지원으로 오사카 도톤보리에 다녀오게 할겁니다. 여기서도 자료를 모아올 것이고, 이런 것이 쌓일수록 엄청난 자료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꾸준히 계속 이어나가려고 합니다.

 

2호점 열정감자는 입소문으로도 엄청난 인기를 끌었었죠. 저도 지인들에게 칭찬을 들었었습니다. 그런데 이름을 바꾸셨더군요.


아 칭찬 감사합니다. MBC시사매거진에 출연한 것이 실시간 검색어 1위를 할 정도로 반응이 좋았습니다. 그런데 그날 상표브로커가 상표등록을 해버렸습니다. 특허처럼 상표권이라는 것이 따로 있는지 몰랐었죠. 저희 사업자 등록증, 영업 허가증, 간판 모두 열정감자인데도 쓸 수가 없다고 하더군요. 값비싼 수업료 냈다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이런 것뿐만 아니라 처음에 운영할 때 세금 이슈도 있었습니다. 첫 해에는 현금으로 하면 가격이 낮다고 하니 모두 현금으로 드렸습니다. 그러자 연말 정산에 매출 대비 비용 증빙이 되지 않으니 세금을 엄청나게 냈습니다. 그때의 수업료로 이제는 멤버들에게 알려줄 수 있는 겁니다. 보통 점장만 할 수 있는 일을 저희들은 모두에게 알려줍니다. 매출부터 회계자료까지 공개해서 모두가 운영에 관한 전반적인 내용을 알게 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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멤버들에게도 교육도 많이 하시나요?


이번 주부터는 토요일 점심에 모두 매장 문을 닫고 교육을 하기로 했습니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4시까지 꾸준히 하기로 했습니다. 토요일 매출도 상당하지만 그 돈을 포기하더라도 장기적으로 봤을 때 더 성장해 나갈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쉽게 말해 학교라고 보시면 됩니다. 멤버들 모두 장사를 자기 가게를 갖기 전까지 학교처럼 공부하고 배우는 공간이면서, 재미있게 지내는 가족이지만 굉장히 수직적인 회사이기도 합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자영업을 꿈꾸고 그 중 특히 외식업에 많이 진출합니다. 그런 분들에게 기초적인 것들 - 장소, 부동산 계약, 메뉴 선정 - 부터 토탈 솔루션을 우리가 잘 갖춰놓으면 잘 결합해서 좋은 모델이 나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까지 하시고 2세도 생기셨다니 진심으로 축하 드립니다. 앞으로는 또 어떤 미래를 꿈꾸시나요?

 

개인적인 목표는 ‘좋은 아빠 되기’ 입니다. 제가 장사를 시작한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합니다. 좋은 아빠가 되려면 시간적인 여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금전적인 여유도 필요하구요. 저희는 대기업에 다니는 회사원에 비해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편이거든요. 요즘은 삼포세대라고 하잖아요. 저희는 반대로 세가지를 포기하지 말자라고 합니다. 첫 번째는 여자친구, 두 번째는 건강, 마지막으로 가족은 절대 포기하지 말고 그에 관련된 일이 있다면 어떻게든 도와줍니다. 빈자리는 서로가 대신할 수 있도록 시스템이 잘 되어 있습니다.

 

회사의 목표는 원래는 매장을 내는 것을 목표로 세웠었지만 그렇게 되니 매장에만 집중하게 되어 다른 것을 놓치게 되었습니다. 매장을 내는 것보다 우리 멤버들이 청년장사꾼에서 결혼하고 애를 가질 수 있게 되는 회사가 되길 바랍니다. 그것이 현재 저희들의 목표입니다. 또한 매달 직원 모두에게 손편지를 써서 가족에게 전달합니다. 있었던 일들을 적어 가족에게 전달하면 만족도도 높아지고 신뢰가 쌓입니다. 부모님들께서 응원해주실 때 일의 능률은 전혀 다릅니다. 회식을 하거나 어설프게 생일 선물을 주는 것보다 그렇게 신경쓰는 것이 훨씬 낫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저희는 책도 무제한으로 사서 읽을 수 있게 지원해줍니다. 무제한이다 보니 악용을 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합의를 도출해서 잘 맞춰나가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이 이 책을 읽어주시기 바라시나요?


제일 먼저 장사를 시작하시려는 분들께서 읽어주시면 좋겠습니다. 두 번째는 대학생들이 읽고, 외식업을 프랜차이즈가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서 잘하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좋겠습니다. 자본도, 갖춰진 조건이 부족하더라도 저희가 극복해가는 모습을 보시면서 사고의 전환이 있기를 바랍니다.


군대에서 책을 많이 읽으셨었죠, 가장 인상적이었던 책을 꼽아 주신다면?

 

진중문고라고 군대에 들어가는 책은 거의 다 읽었습니다. 가장 좋아했던 책은 신영복 선생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으로 책장이 낱낱이 떨어질 때까지 읽었어요. 감옥에서 엽서를 쓴 것을 모은 것인데 저는 아마 군대를 감옥으로 생각하며 읽었던 것 같습니다.

 

최근에 읽었던 책 중에는 최인호 작가님의『상도』있습니다. 장사를 하시지 않더라도 경영과 경제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꼭 한번 읽어보시길 추천합니다. 총 3권으로 거상 임상옥이 주인공으로 ‘상즉인’을 강조하죠. 그는 ‘장사는 즉 사람을 남기는 일’로 장사를 통해 사람을 남기는 것이 가장 큰 이윤이고, 사람에게 신용을 얻는 것이 가장 큰 자산이다 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상즉인’의 사람이 고객을 뜻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고객들에게 굉장히 잘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멤버들은 지치고 고객들은 기대치가 올라갔습니다. 그 때 멤버들을 챙겨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러면서 조직문화가 바뀌고 복지에 신경을 쓰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또 더 나아가 자기 스스로를 챙길 줄 알아야 한다고 느꼈습니다. 자기 스스로를 챙기고 자존감이 생겨야 더 남을 챙길 수 있고 더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고객에서 우리 멤버, 그리고 마지막으로 스스로를 잘 남겨야 한다고 깨닫고 이것이 저희 슬로건처럼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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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장사꾼김윤규,청년장사꾼 공저 | 다산북스
『청년장사꾼』을 출간한 청년장사꾼의 김윤규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 시대에 필요한 적응력을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 나는 ‘장사꾼’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장사를 하며 환경에 따라 다르게, 아이템에 따라 다르게, 손님에 따라 다르게 변화하고 대응하며 생존력을 키우고 있고, 무엇을 하더라도 살아남을 수 있는 근력을 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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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박솔뫼 “『도시의 시간』에서 표현하고 싶은 건 소녀적인 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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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솔뫼 소설가는 현재 한국 문단에서 주목 받는 젊은 작가다. 문지문학상과 김승옥 문학상을 수상하고 5년 동안 네 권의 책을 냈다. 네 권의 수상 작품집(2012년 웹진문지문학상 수상작품집, 2013년 웹진문지문학상 수상작품집, 2013년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2014년 문지문학상 수상작품집)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민음사의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 5번째로 나오는『도시의 시간』은 그녀의 새로운 장편소설이다. 대구를 배경으로 네 사람이 만나고 헤어지고 대화하고, 대화가 끊기는 장면이 반복된다. 등단작 『을』이 그랬듯, 『도시의 시간』도 서사보다는 분위기가 중요한 작품이다.

 

나, 우미, 우나, 배정 네 청춘은 모두 학교를 다니지 않는다. 배정은 재수학원에 다니나 열심히 공부하지는 않으며 나도 마찬가지. 우미와 우나는 일본에서 살다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황. 이들 네 청춘은 도시를 배회하며 과거와 미래에 얽매이지 않고 현재를 살아간다. 어쩌면 이 작품의 주제는 책 뒤 표지에도 나왔던, 나의 독백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나에 대해 별생각이 없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에 대해서도 어떻게 되겠지라고 생각했다. 정작 뭐가 되어 가는 것은 없었다. 뭐가 될 리가 없었다. 시간은 흐리고 나는 지금처럼 살아갈 것이다. 지금 같은 대학생이 직장인이 될 것이다. 그마저도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시간이 지날 것이다. 그 이후는 알 수 없다. (4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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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시간』은 소녀적인 작품

 

어떻게 지내셨나요?

 

특별한 일 없이 그냥 있었어요. (웃음)

 

『도시의 시간』은 2011년에 연재했던 작품인데 3년이 지나 나왔는데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특별한 이유는 없고 책 내는 일정이 좀 꼬였어요. 첫 번째 책인 『을』은 수월하게 냈지만 두 번째, 세 번째 책은 내면서 이런 저런 일이 생겼어요. 내는 게 쉽지는 않았죠. 사실 이 작품이 책으로 안 나올 수도 있겠다 생각했는데, 이렇게 나왔네요. 이제 정리한 느낌이어서 이제는 홀가분하네요.

 

등장인물이 모이긴 모이는데, 이들 사이에 특별한 사건이 없다는 점에서 첫 작품이었던『을』『도시의 시간』이 비슷한 느낌이 들어요. 시끌벅적하기보다는 조용하다는 점에서도 비슷하고요.

 

비슷한 시기에 써서 비슷한 느낌은 있는 것 같아요.

 

『을』도 그렇지만『도시의 시간』이 잉여와 청춘을 그린 것 같습니다.

 

글쎄요. 청춘, 잉여 이렇게 작품을 보는 평론가도 있겠지만 이 작품에서는 그런 모습보다는 소녀적인 면을 그리고 싶었어요. 소녀적인 게 어떤 거냐고 묻는다면, 우리가 ‘소녀’라고 했을 때 떠올리는 이미지 그대로에요. 결이 고운, 그런 모습이요. 원래 제게는 소녀적인 면이 있는데 『을』에서는 그런 모습이 없었거든요.

 

작품 후반부에 나오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어요. 쇼핑센터가 새로 생겨서 기대하고 갔는데, 막상 가 보니 살 게 없어 그냥 돌아오는 장면이요. 이 작품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대변하는 장면 같았습니다. 인생에 별 게 없다, 이런 느낌을 독자로서 받았는데요. 작품에 담으려 한 정서가 있다면?

 

『도시의 시간』에서 표현하려고 했던 정서가 그런 건 아니었고요. 등장인물이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굳이 말하면 청소년이에요. 유년기라고 할 수 있는 이 시기에는 이상한 걸 잘할 수 있을 때입니다. 저도 자세히 기억은 안 나지만 예민하게 느끼거나 볼 수 있거나, 이상한 걸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었어요. 보통 많은 사람에게 있는 시기인데, 아주 짧죠. 길어야 2년 정도 이어지는, 그런 면을 극대화해서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은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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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 있는 게 참 좋아

 

“무슨 생각 해?”
“아무 생각 안 해. 너는 무슨 생각 해.”
“나도 아무 생각 안 해.”
“나는 사실 무슨 생각 했어.”
“무슨 생각 했는데?”
“어, 정이 배정이 우미를 만날 거라고 했어.”
“그 생각 했어?”
“아니 사실 그 생각 안 했어. 그거는 방금 생각났고 아까 전에 한 생각은 네가 준을 만나면 좋을 거라고 생각했어.” (133쪽)

 

부조리극을 연상하는 대화가 재밌었습니다. 실제로 작가님은 주로 무슨 생각하시나요?

 

인터뷰에서 아무 생각 없다는 말을 많이 해서 이제는 좀 안 하려고요. (웃음) 대부분 스위치가 꺼져 있다가 집에 있을 때나 혼자 있을 때, 혼자 놀 때 스위치가 퍽 하고 올라가요.

 

스위치 터질 때 주로 뭐하시나요?

 

가만 있어요. 가만 있는 게 참 좋은 거구나, 마음 깊이 기뻐하죠. 가만 있는 게 좋다고 생각하고 극장도 가고, 걷기도 하고 밖에 나가기도 해요.

 

사람 만나는 걸 별로 안 좋아하시나 봐요.

 

그런건 아닌데 얼마 전에 친구들과 속초에 갔어요. 맛있는 게 많더라고요. 친구 중에서 글쓰는 사람은 많진 않고요. 맛있는 거 먹으러 가고, <무한도전> 함께 보는 친구들이 많아요. 책이 나오면 주긴 하는데, 어색하고 미안한 마음도 들어요. 사는 것도 피곤한데, 읽으라고 하는 것 같아서요. 그래도 기념품처럼 주긴 해요.

 

문지문학상과 김승옥 문학상 등을 수상했고 5년 동안 4권의 책을 출간하신 촉망 받는 한국의 젊은 작가입니다. 이렇게 평단에서 환영 받는 이유를 스스로 생각해 보셨나요?

 

별로 환영 받지 않는데요. (웃음) 감사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가졌던 기회 자체에 대한 감사는 분명히 있지만 내가 어떻다는 식의 의미를 부여하지는 않아요. 그냥 멀리 보면서 가고 싶어요.

 

일과 창작을 병행하신다고 들었는데, 요즘은 언제 쓰시나요.

 

하루 하루에 조금씩 써요. 마감 있을 때 열심히 쓰고, 끝나면 좀 놀고요.

 

작가님 문장은 건조한 것 같아요. 단문도 많고, 현재 시제도 많은데요. 실제 작가님은 어떤 사람인가요?

 

무심한 편인 것 같기는 해요. 좋아하는 것에 감정적이 되긴 하는데. 많은 부분에 무심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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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은 꿈, 계속 쓰고 싶어

 

작가님의 작품은 서사보다는 분위기를 중요하게 여기시는 듯해요. 인물과 인물 사이의 사건보다는 인물 자체를 묘사하시는데요. 이런 글쓰기를 하기까지 영향 받은 문인이 있나요.

 

너무 많이 이야기하기는 했는데 다카하시 겐이치로를 좋아하고요. 볼라뇨도 좋아합니다. 최근에는 레이몽 루셀의 로쿠스 솔루스가 정말 재미있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좋아하고 훌륭하다고 생각하고 그런 사람들과 저는 긴장감을 계속 갖고 싶습니다.

 

중고등학교 때도 문학소녀였나요?

 

읽는 건 좋아했는데 쓴다는 생각은 안 했어요. 일기도 안 썼으니까요.

 

여름과 바다 좋아하시잖아요.

 

네. 저는 추운 게 싫어요. 신진대사가 확 떨어지니까. 가을까지는 괜찮아요.

 

작가님의 작품을 보면 성장이 멈춘 시대의 성장소설, 이런 느낌이 드는데요. 고도성장이 끝난 한국을 반영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예전에 이런 이야기 들으면, ‘이 분은 이 분의 이야기를 하시는구나’ 하고 넘겼는데요. 요즘은 정말 그런 면이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1960년대에 태어났다면, 저도 지금이랑은 다른 글을 썼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향후 20년 정도는 한국의 젊은 작가가 그렇게는 쓰기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지금 『태백산맥』을 젊은 작가가 쓴다고 하면 그럴리가 싶은 생각이 들잖아요.  힘든 시대를 살지만 제 동료들이 서로 잘하면서 에너지를 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성장이 정체된 시대, 작가님의 글쓰기는? 창작관이 궁금합니다.

 

이런 질문에 다른 작가들은 말 잘 하면서 끝내던데요. (웃음) 저는 나름대로 힘을 내서 제 존재를 드러내려고 하고 있어요. 계속 쓰고 싶고요. 이게 저의 창작관? 꿈 같은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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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시간박솔뫼 저 | 민음사
『도시의 시간』은 박솔뫼 문체의 매력과 사회문제에 대한 예민한 의식은 여전한 가운데, 친구 관계에 있는 네 인물 사이의 미묘한 감정 선을 따라 진행되는 서술의 힘, 그 사이사이 드러나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감각적 사유가 돋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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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세현 “굶거나 운동 많이 해서 살 찔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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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빼기는 금주나 금연, 저축과 함께 신년계획으로 수위를 다툴 만큼 만인의 희망 사항이다. 살을 빼기 위해 먹던 양을 줄이고, 헬스장에 등록한다. 그런데 이런 방법이 오히려 살을 더 찌울 수도 있다고 한다. 덜 먹고 운동을 열심히 하면 지방은 줄일 수 있겠으나, 살의 정체가 지방이 아니기 때문이다.

 

『제3의 살』은 살을 재정의한 책이다. 많은 사람이 살을 지방으로 생각한다. 실제 살은 지방을 포함하여 더 복잡한 구조로 구성되어 있다. 김세현 린클리닉 원장은 셀룰라이트를 알아야 살을 제대로 볼 수 있다고 말한다. 지방이 쌓여서 살이 될 수 있지만, 지방을 둘러싼 바탕질이 망가지면 변성이 되는데 이게 셀룰라이트다. 지나친 운동과 잘못된 식습관은 셀룰라이트를 악화시킨다. 잘못된 식습관에 굶기가 포함되는 건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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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은 지방 덩어리가 아니다


『제3의 살』이라는 책 제목이 인상적인데요. 어떤 내용을 담았나요?
 
이 책은 셀룰라이트에 관한 책이에요. ‘제3의 살’이라는 것은 우리가 ‘살’이라고 했을 때 떠올리는 근육과 지방에 이어 셀룰라이트라는 살도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 것입니다. 셀룰라이트라는개념은 일반인들에게는 물론이고 의사들에게도 아직 정확하게 안 잡혀 있어요. 이런 상태에서 환자들에게 셀룰라이트에 대해 이야기하려니 어려움이 많았죠. 제가 방송을 많이 했지만, 셀룰라이트를 주제로 방송하자는 요청은거의 없었어요. 다루더라도 비만, 다이어트를 다루면서 1~2분 정도 이야기하고 넘어가는 식이었죠. 책을 검색해도 거의 없어요. 『셀룰라이트 진단과 치료』라는 번역서가 한 권 있는데 그 책도 제가 번역한 것입니다. 원래는 책을 쓰려고 참고자료를 찾아보다 번역까지 하게 된 거죠. 그래서 2014년에 책이 두 권 나온 거예요.
 
이 책은 어떤 책인가요?
 
셀룰라이트 치료는 병원에서 치료 받으면서 환자가 해야 할 게 있어요. 이 책은 그런 환자를 위한 책이죠. 여기 있는 내용을 환자에게 교육해야 하는데, 모든 환자마다 자세하고 꼼꼼하게 이야기해 드릴 수는 없잖아요. 그런 면에서 교육 자료라 생각하고 만들었죠. 또한 셀룰라이트는 예방이 중요한데 이 책을 통해 셀룰라이트의 정체를 알게 되면 예방하는 데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셀룰라이트라는 말이 생소한 사람이 많을 듯합니다. 셀룰라이트는 뭔가요? 제목과 연관지어 본다면 살의 일부분인 것 같은데요.
 
살이라고 하면 보통 지방덩어리라고 생각하죠. 살이 쪘으니, 빼야 한다 이런 생각을 많이 해요. 비축해놓은 거니 쓸 수 있는 부분이 살이고 운동하면 뺄 수 있다고 말하죠. 그런데 축적된 게 아니라 노폐물로 쌓여 있는 부분도 살이에요. 피하지방층이라는 게 피부 아래의 조직을 말하는데, 지방이 쌓여서 살이 될 수도 있지만, 지방을 둘러싼 물질인 바탕질이 망가지면 변성이 됩니다. 이 같은 변성으로 살이 커지거나 붓거나 하게 되는데 이게 셀룰라이트입니다.

살 찌는 게 지방 문제라고 생각해서 굶는다든지, 운동을 많이 해서 살을 빼려고 하죠. 그런데 살이 안 빠지는 이유는 셀룰라이트에 있을 수 있어요. 오히려 셀룰라이트는 너무 안 먹거나 운동을 너무 많이 해서 생기기도 하거든요.
 
생소한 개념이라 잘 감이 잡히지 않는데요. 바탕질이라는 표현이 모호합니다.
 
뭘로 번역할까가 굉장히 어려웠어요. 영어로는 인터스티셜 매트릭스(interstitial matrix)이기 때문에 간질(間質)이라는 말도 생각해봤는데, 너무 어려운 것 같아 그냥 바탕질로 쓰기로 했어요. 바탕질은 세포를 둘러싸고 있는 물질인데, 예를 들자면 물고기에 있어서 물과 같은 존재입니다. 공기가 보이지 않는다고 중요하지 않은 게 아니듯 바탕질이 중요해요. 어항을 생각해 봅시다. 어항이 넘쳤어요. 물고기가 자라나 몸집이 커져서 물이 넘칠 수도 있지만 누군가 어항 속에 물을 많이 부어 넘칠 수도 있지요. 여기서 물고기는 지방세포이고 물은 바탕질, 그리고 어항이 넘치는 것은 살이 찌는 것을 의미합니다. 


셀룰라이트는 어항 속에 지저분한 물이 많아지는 현상을 말하는 것이지요. 셀룰라이트(cellulite)라는 말이 재밌어요. cell은 세포, -ite가 라틴어로 염증이라는 뜻이에요. 결국은 세포의 염증이라는 의미인데, 이 말에도 문제가 있어요. 세포의 염증이 아니라, 세포 사이에 있는 바탕질의 염증이거든요. 셀롤라이트 정식 명칭은 진행성 섬유부종이에요. 이 단어만 봐도 지방의 변성이라는 뜻은 없어요. 바탕질을 포함한 살 전체의 문제로 봐야지 지방으로 생각해선 안 됩니다.


지방이 증가했을 때도 바탕질이 변성될 수 있지만 지방과 상관없이도 발생한다. 바탕의 변성이 일어나면 살찐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바로 근육과 지방에 이어 제 3의 살이라고 할 수 있는 ‘셀룰라이트’ 즉 ‘바탕살’이다. 단순히 지방이 늘어나서 생긴 것이 아니라 바탕이 되는 부분의 변성을 동반하여 생긴 살이므로 당연히 굶는다거나 운동을 해서는 빠질 리가 없다. 오히려 굶거나 잘못된 운동을 하면 바탕질의 변성은 더 악화되기 쉽다. 해결 방법은 바탕 그 자체의 변성을 바로 잡는 것이다. (3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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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이상 여성이 셀룰라이트 문제 심해


셀룰라이트가 살의 노화, 결국 항노와도 관계가 있을 텐데요. 이 책은 어떤 연령대의 독자에게 특히 도움이 될까요?
 
이 책이 확 와 닿는 연령은 30~40대 이상일 거예요. 바탕질이 변성된다는 것은 살이 노화되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특히 바탕질의 변성은 근육의 손상으로 인한 만성염증 때문인 경우가 많아요. 나이 들수록 셀룰라이트는 생기기 쉬어지는 것이지요. 요즘은 그 대상이 내려가는 느낌도 들어요. 스마트폰의 영향으로 20대 중에서도 셀룰라이트 문제가 심한 사람이 보이거든요. 스마트폰은 컴퓨터보다 더 치명적인 게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하잖아요. 스마트폰을 할 때는 웅크린 자세로 몸 곳곳에 힘이 들어갑니다. 이런 경직된 자세가 지속되면 근육에 무리가 가고 손상을 가져오는 거죠. 꼭 엄청나게 힘들거나 과격한 운동을 해야 근육에 손상이 가는 것이 아니에요. 처음에는 어깨가 나빠지고, 그게 허리까지 내려가고, 손목도 나빠지고, 다시 어깨가 더 나빠지고… 결국 온몸이 나빠지는 거죠. 그리고 근육의 손상은 바탕질을 만성염증 상태로 만들어 셀룰라이트를 만들게 되는 것입니다. 


남성보다 여성이 셀룰라이트 문제는 더 심해요. 남자는 남성호르몬이 근육을 보호해주거든요. 여성분들 중에서 워킹우먼들이 심한 게 하이힐을 신잖아요. 다리 근육이 혹사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직장 여성 중에서 말랐다고 하는 사람도 허벅지에 셀룰라이트가 많은 사례를 자주 보죠. 다른 사람은 ‘말랐는데, 엄살이냐’ 동감 못하지만 정말 그 사람은 셀룰라이트가 많아요.
 
나이 들어 보이는 얼굴의 실체도 셀룰라이트일 수 있다고요.
 
노안의 문제를 피부라고 생각하잖아요. 피부를 우리말로 하면 살갗, 살의 거죽인데 우리나라 말이 정확해요. 나이 들어 보이는 것의 정체는 과연 피부일까요, 살일까요? 살을 포함한 피부입니다. 107쪽 그림을 보시면 이해하기 쉬울 거예요. 중요한 건 쇼윈도우의 안쪽인데, 안을 치우지는 않고 유리창만 닦는 게 피부관리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동안이 되고 싶으면 셀룰라이트를 치료해야죠. 병원에 몇몇 연예인 분도 오시는데, 그분들은 저희 병원에 오는 이유가 스킨케어가 아니라 셀룰라이트 치료에요. 


 
107p 그림.png
107쪽 ⓒ강상훈


지방 흡입과 지방 분해 주사 등의 지방 치료와 셀룰라이트 치료는 어떤 점에서 다른가요?
 
지방이라는 표현이 붙었잖아요. 지방 흡입과 지방 분해 주사는 지방을 치료한 거예요. 살이 쪘다라고 했을 때, 지방이 문제라면 상관없지만 대부분 지방인지 살인지 생각하지 않고 지방만 치료하려 하잖아요. 지방 치료하면 지방은 조금 빠질 수 있겠죠. 그런데 지방 치료하면서 살이 오히려 상할 수 있습니다. 지방 흡입 하면 흔히들 버블티 빨아들이듯 지방이 쉽게 쏙쏙 빠져나갈 것처럼 생각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아요. 흡입하는 과정에서 상처가 날 수 있거든요. 살이 상하면 그 결과가 살이 불거나 딱딱해지거나, 울퉁불퉁해지거나, 땡땡해지거나 하는 여러 형태로 나타나요.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우려는 꼴이 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제가 수술 안 하는 의사로 유명한데, 이건 제가 단순히 수술을 선호하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에요. 치료법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는 환자가 가진 문제가 지방이냐 셀롤라이트냐를 구분하는 게 더 중요하죠. 셀롤라이트 치료는 본래 무조건 비수술적 치료입니다. 만약 셀룰라이트 치료인데 수술했다면? 그건 셀룰라이트 치료라고는 했지만 알고 보면 지방 치료일 수 있어요. 


제일 좋은 방법은 셀룰라이트 주변 조직의 기능을 되살려서 셀룰라이트 살이 자연스럽게 흡수되게 하는 것이다. 필자는 충격파와 고주파를 이용해 셀룰라이트 조직을 가능한 재빨리 효율적으로 누그러뜨리고, 거의 동시에 그 부분의 근육기능을 되살리는 운동을 권장한다. 미세 근육 교정을 위한 특수 운동은 걸음걸이와 자세 교정이 병합되어야 한다. 걸음걸이 교정은 의식적으로 노력하면 생각보다 쉽게 고칠 수 있다. 하지만 오랫동안 잘못 사용해 온 근육 기능들을 하나하나 찾아 교정하기까지는 수개월이 걸릴 수 도 있다. 그러나 비록 시간이 걸리더라도 치료와 동시에 발목 셀룰라이트의 원인을 찾아 하나씩 풀어나가려고 노력하면 근본적으로 셀룰라이트가 안 생기게 방지할 수 있다. (58쪽)


본인에 맞는 운동과 올바른 식습관 유지해야


셀룰라이트가 생기는 주요 이유로 운동을 말씀하셨는데요.
 
흔히 운동은 무조건 몸에 좋은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본인에게 맞지 않는 운동은 많이 하면 할수록 안 좋아요. 아까 근육의 손상이 살에 만성염증을 일으켜 셀룰라이트를 만든다고 설명한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뱃살 뺀다고 복근 운동을 하는데, 안 좋을 수 있습니다. 한 시간 운동해서 안 되니까 세 시간을 하죠. 그럼 근육 손상으로 인한 셀룰라이트의 생성 속도는 더 빨라지죠. 그래서 오히려 헬스장 가서 망가지는 사람도 있어요. 근육을 아껴 써야 해요. PT는 재활 개념이어야 하는데, 한국에서 PT하면 더 힘든 운동을 시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어요. 이렇게 힘들게 운동할수록 살이 더 생길 수 있습니다.

 
비만인 경우도 섭취량, 사용량 원리로 설명이 안 되는 경우들이 종종 있는데, 셀룰라이트의 경우에는 이 상관관계가 훨씬 멀다. 셀룰라이트는 만성 염증성 질환이므로, 치료시 오히려 ‘잘 먹고 잘 쉬고’가 필요한 경우가 많다. 게을러서가 아니라 몸의 피로가 쌓여서 기진맥진할 지경이라 셀룰라이트까지 악화된 것이다. 섬유성 셀룰라이트는 근막통증증후군, 장누수증후군, 만성 염증, 노화 현상 등이 복합적으로 동반되는 일종의 증후군이라 어떤 경우건 굶었을 때 좋아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 (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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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환자와 고객 사이를 헷갈리는 경우가 좀 있는데요. 특히 미용시술이나 수술 이쪽이 심한 것 같아요. 책에서는 이런 현상을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병원에서 고객님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죠. 참석했던 한 세미나에서는 어떤 발표자가 “이 손님의 경우에는”이라고 말할 때도 있었어요. 그런데 고객과 환자를 헷갈리면 안 됩니다. 병원도 서비스업이다 보니 환자에 대한 고객서비스를 강조하면서 나타난 긍정적 현상으로도 볼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병원의 상업주의가 깔려 있습니다. 이런 현상이 환자들로 하여금 ‘미용시술은 쇼핑하듯 내가 원하는 데로 골라서 받을 수 있다’라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기도 합니다. 병원은 서비스 기관이기에 앞서 의료기관입니다. 의료인의 책무는 환자가 해달라는 대로 해주는 것이 아니라 진정 환자에게 필요한 치료를 행하는 것이죠. 의외로 환자들은 본인이 환자라는 걸 아는데 의사가 그렇게 깨닫고 있지 못한 경우도 있어요. 저는 환자가 본인이 환자임을 인식하고 있지 못한 경우에는 그 부분부터 바로잡고 치료를 시작합니다.
 
집에서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식이요법을 소개해주셨는데요. 셀룰라이트 악화를 막기 위해서 할 수 있는 방법을 몇 가지만 알려주신다면.
 
우선 셀룰라이트가 여러 가지 이유로 생길 수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합니다. 설탕을 먹지 말아라, 이런 책은 너무 많잖아요. 그런 이야기를 제가 굳이 또 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요. 책에는 뭘 어떻게 먹어야 하고 뭘 먹지 말아야 하는지를 꼼꼼하게 써놨어요. 그 부분을 꼼꼼히 읽으시면 좋겠습니다. 요즘에는 워낙 정보가 많으니까 전문가들이 충분한 설명 없이 한두 가지만을 말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거든요. 이런 식이에요. ‘과일에 당이 많으니까 많이 먹지 말되, 씹어서 먹으라’고 말합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사람은 말린 과일을 조금씩 먹어요. 그것도 씹어 먹는 거니까요. 그런데 말린 과일에는 변형이 있고, 당이 응축된 거니 조금 먹었다 하더라도 안 좋을 수 있죠. 그러니까 제가 단순하게 콕 집어서 이것 하고 저것만 하라, 이렇게는 말 못 드리겠네요. 그래도 말씀 드리자면, 가급적 탄수화물을 피하고 단백질 식품을 먹되 채소, 견과류 등과 골고루 먹자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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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살김세현 저 | 알에이치코리아(RHK)
근육을 제1의 살, 지방을 제2의 살이라 한다면 셀룰라이트는 제3의 살로서 바탕질의 변성으로 생긴 병들고 늙은 살을 일컫는다. 저자는 셀룰라이트를 만드는 네 가지 원인(비만, 근육 과사용, 여성호르몬, 새는 장 증후군)을 제시하면서 셀룰라이트는 단순히 살을 빼는 문제에만 관련된 것이 아니라 라이프스타일과 평소 습관, 건강 전반과 관련된 개념임을 강조한다. 이 책이 제안하는 셀룰라이트 해결법은 유별난 식이요법, 운동, 수술과 같은 마법적 도식과는 무관하다. 근본적인 라이프스타일의 개선 없이는 어떤 의료적 행위이든 일시적일 효과를 가져 올 뿐임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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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은실 “1980년대는 변두리 인생을 살 수 있었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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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부산의 한 섬에서 자랐다. 다녔던 초등학교 근처에는 바다가 있었다. 외지인은 아름다운 바다를 보고 감탄하며 돌아갔지만, 현지인에게 그곳은 치열한 삶을 살아가는 작업장이었다. 살기 위해 갯벌에 나가기도 했고, 배를 타기도 했다. 그러다 도시화의 물결에 휩쓸리면서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다. 육지로부터 바다와는 무관한 일을 하는 많은 사람이 들어왔다. 우리 가족 역시 마찬가지였다.

 

초등학교가 아니라 국민학교였던 시절의 이야기다. 학교에서 부모님 직업을 조사했다. 아버지의 직업을 ‘어부’라고 쓴 아이를 향해 다른 아이들이 ‘짠내’ 난다고 놀리는 일이 있었다. 그 아이는 울면서 담임선생님을 찾았지만, 그 사건으로 졸업할 때까지 다른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지 못했다. 이런 변두리에서의 경험은 소설『변두리』를 읽으면서 내내 생각이 났다.

 

장편소설『변두리』는 1980년대 서울의 변두리를 그렸다. 마을 근처에는 도축장이 있다. 주인공 수원과 수길 남매는 소의 피비린내가 깔린 곳에서 산다. 이들은 아침마다 선지, 양, 간 등 부산물을 얻으러 다닌다. 이런 두 남매를 향한 사회의 시선은 차갑다.

 

“애들이 저런 걸 사다 먹나 봐. 불쌍해라.”
“동네가 후지니까 출근길에 별걸 다 보네.” (49쪽)

 

아이들에게 삶은 녹록하지 않지만 이들을 품어주는 건 공동체다. 대표적인 존재가 서울부산물 아줌마다. 1980년대 변두리는, 넉넉하진 않았지만 공동체가 살아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개발 논리에 공동체는 무너지기 시작한다.『변두리』가 보여주는 시기도 바로 이 무렵이다. 변두리 인생이 가능했던 시점에서, 불가능해져가는 시점을 유은실 작가가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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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는 변두리 인생이 가능했던 시대

 

근황을 말씀해 주세요.


『일수의 탄생』이후 『변두리』에 몰두해 있었어요. 2013년 가을 부터 문예창작학과에서 아동문학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작년 봄에 수료한 지 12년 만에 석사 논문을 썼습니다. 올해 3월부터는 조선대 문예창작학과에서 학생들과 만납니다.

 

『변두리』를 완성하기까지 오래 걸렸다고 들었어요.


스물다섯에 처음으로 생각한 이야기고, 100매짜리 단편으로 써둔 건 스물일곱. 그러니까 15년 만에 장편으로 나왔어요. 단편이 책의 1장 도살장까지 분량이었고, 대학원 수업시간에 합평했던 작품이었죠. 그때는 제가 동화와 소설을 함께 쓰는 사람이었어요. 어느 순간부터 동화가 더 좋아졌지요. 2004년 12월에 동화작가로 데뷔했어요.

 

많은 작가가 비슷할 텐데, 몇 년에 한 번씩은 글 무덤으로 들어간 원고를 보고 거기서 건져내는 일을 해요. 『변두리』는 도저히 버리지 못했어요. 함께 대학원을 다녔던 이들 몇이, 단편 「변두리」 얘기를 하더라고요. 제가 동화작가가 되어서 좋지만, 그 단편을 장편으로 만나지 못한 게 아쉽다고 말하더라고요. 제 지도교수님이었던 박범신 선생님도 『변두리』는 장편으로 써 보라고 하셨고요. 몇 명 안 되지만 독자의 바람이 있었던 거죠. 그리고 ‘분노’가 있었어요.

 

분노라고 한다면 무엇을 향한 분노였나요.


1980년대는 변두리에서 변두리 인생을 살 수 있었던 시대였어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변두리 인생이 점점 더 외곽으로 떠밀려요. 그것을 향한 분노였습니다. 저는 힘겹게 변두리가 삶의 중심이라는 걸 받아들였어요. 엄연한 제 역사였는데, 그것을 덮으려는 시도가 싫었어요. 명백하게 분노한 게 구로공단을 구로디지털단지로 개명했을 때였어요. 구로공단이 뭐가 부끄러운가를 세상을 향해 묻고 싶었어요. 구로 공단 노동자가 뭘 잘못했죠? 무슨 죄를 짓고 살았어요? 저임금 노동자로 국민 소득 향상에 기여했지요. 제 고향 이름을 누더기로 만든 데 대한 분노가 생겼어요. 그 분노가 문학적으로 정당하다고 생각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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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변두리에 공동체는 있었다

 

제목의 ‘변두리’는 어떤 의미인가요.

 

말 그대로 변두리죠. 서울 외곽이라는 공간적인 의미이고요. 이 책에 나오는 인물이 청소년인데, 청소년이 변두리에 선 존재이잖아요. 이중적인 의미를 담아서 이 책을 썼어요.


주로 어린이 책을 쓰셨는데, 청소년 책은 처음인데요. 쓰시면서 염두에 둔 점은?

 

수위를 생각해요. 동화는 독자에게 얼만큼 보여줄 것인가를 창작 과장에서 염두에 두는 유일한 장르죠. 예를 들어 『마지막 이벤트』는초등학교 5~6학년 주 독자로 상정한, 장례식을 소재로 한 동화입니다. 할아버지 죽음이 소재인데, 염하는 순간을 클라이맥스로 하고 그 이후는 안 보여줬어요. 청소년 소설이라면 화장터에서 한 줌의 재로 바뀌는 장면까지 그렸겠죠.

 

『변두리』가 청소년 책이 아니었다면, 닭장집 같은 데서 사는 젊은 부부가 여름에 더우니까 문을 열어놓고 섹스를 하는 장면처럼 비참함을 썼을 거예요. 사춘기인 제가 그 장면을 볼 때 정말 처절한 슬픔이었거든요. 이런 장면 선택을 고민했어요.

 

청소년 소설이 뭐냐고 물어본다면 가장 정확한 대답은 ‘자의식’일 거예요. 작가가 청소년을 주 독자로 상정하고 쓰는 자의식. 청소년이라는 존재에 관해 고민하고, 이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게 청소년 소설입니다. 어린이 책을 쓸 때는, 제 어린 시절 사진을 놓고 써요. 이번에 청소년을 쓸 때는 지나가는 청소년 얼굴을 많이 봤어요. 그들을 떠올리며 썼습니다.


작가님의 어린 시절이 많이 들어간 듯해요. 자전적 체험이 소설의 근간이라 볼 수 있나요?

 

어떤 작가가 한 말인지 모르겠는데, 이런 말이 있어요. 모든 소설은 자전이고 어떤 소설도 자전이 아니다. 여기 나오는 첫꽃날은 완전 픽션이에요. 책에는 황룡동으로 나오지만 배경으로 삼은 동네는 독산동인데, 독산동에도 이런 문화는 없었죠. 수원이가 저보다 한 살 많은데, 정말 제가 겪은 일은 아니지만, 심리적인 진실이라고 할까요. 그런 모습이 들어가 있어요.


영화 <국제시장>을 두고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감동적으로 그려냈다는 평과, 과거를 너무 아름답게 포장한다는 평이 함께했는데요. 『변두리』도 ‘앞선 세대는 이렇게 힘들었는데, 지금이 뭐가 힘들다는 거야?’ 이렇게 읽힐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절대로 옛날 사람들이 이렇게까지 고생했다는 걸 그리려는 의도는 없었어요. 1980년대를 쓰면서 염두에 둔 부분은, 그때까지만 해도 변두리에는 공동체가 있었다는 사실이에요. 기미 낀 민얼굴로 서로 기대고 살았어요. 당시 1980년대 서울 변두리가 지금보다 낫죠. 우리 골목에서 성실하게 살았던 언니 오빠는 공고나 상고를 가면 고3 때 정규직으로 취직했어요. 여상을 가면 3학년 2학기에 은행원이 되고, 공고에서 성실하게 하면 기아 자동차의 정규직이 되어요. 상고나 공고 졸업만 시키면 한집안에 정규직 한 명이 나왔죠. 이렇게까지 전월세 보증금이 급등하던 때도 아니었고요. 적지 않은 제 친구들이 셋집 살았지만 그 셋집을 10년씩 살았어요. 가난한 사람이 가난하게 살 수 있었던 시대였어요. 더 나은 세상을 꿈꿀 수 있었고요. 동시에 그게 안 되기 시작하던 시점을 그렸습니다. 소설 후반부로 가면 공동체가 점점 파괴되잖아요. 아이가 아무렇지도 않게 뛰어놀던 공간을 돈을 내야 들어갈 수 있고요. 신자유주의가 본격적으로 서민을 파고들던 때를 그렸어요.

 

또 하나는, 삶을 있는 그대로 살아내려는 사람들의 갈등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수원이가 그러하듯, 사람들 대부분은 겉으로는 멀쩡하게 살아가요. 속으로는 가난한 엄마 아빠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환상 속에서 부자 부모를 지어내지만요. 그런 환상이 무너지는 순간을 대면하면 인간이 성장하죠.

 

온실 속으로 아이를 가두는 시선을 제공하는 모든 장르의 문학은 아이를 모욕한다고 봐요. 인생은 일일연속극의 마지막 회가 아닙니다. 저는 초등학교 강연을 가면 “문제는 끝없이 지속됩니다. 그럼에도 찬란한 순간이 있고 살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라고 말을 해요.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이야기하는 건 사기죠. 크리스티네 뇌스틀링거라는 현존하는 최고의 아동ㆍ청소년 작가는 환상을 깨기 위해 동화를 쓴다고 이야기해요. 환상은 빨리 깨지는 게 좋아요. 그녀의 작품은 환상을 깨면서도 보이지는 않지만, 커다란 모성으로 작품을 감싸고 있거든요. 아동ㆍ청소년 문학은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요. 성장하는 존재의 아픔과 아름다움을 마음 깊이 사랑하고 아파하는 존재가 지독한 현실을 그리는 것이 청소년 문학이 아닌가 싶어요.


문학을 루저의 이야기라고 하는 데 동의하시나요.


변두리에 선 존재를 쓰는 게 문학이죠. 문학이 중심을 이야기하기는 힘들잖아요. 슬픔을 그리는 게 문학이겠죠. 우리가 천국으로 생각하는 복지국가에서도 작가는 경계에 선 존재에 관해 이야기하겠죠? 저에게 오스트리아는 천국하고 상당히 가까운 곳 같은데, 뇌스트링거는 끊임없이 소외된 자를 그리고 있거든요. 경계에 선 경험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 작가라는 데 동의하고, 그렇게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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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ㆍ청소년 자살률 높은 나라에서 아동 작가로 산다는 것

 

아동 작가들에게 2014년은 특히 슬펐을 것 같습니다. 세월호 사건이 있었죠.
 

세월호 터지기 전에『변두리』 1차 퇴고를 마쳤는데요. 그렇지 않았다면 못 썼을 거예요. 세월호 사건이 터지고는 반년 동안 퇴고만 했어요. 새로 쓰지는 못했죠. 이 땅의 아이들이 불쌍해요. 저희는 OECD 국가 중에 아동ㆍ청소년 자살률이 제일 높고, 아이가 가장 불행하다 느끼는 나라의 아동ㆍ청소년 작가잖아요. 이 지독한 현실을 사는 아이들에게 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분노를 작가의 자리에서 어떻게 건강한 힘으로 바꿀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하죠.  2015년에 나올 아동, 청소년 작품이 적을 거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작가들이 세월호 참사 이후 글을 못 써서요. 너무 빨리 정신을 차리고 있나 하는 죄책감도 있고요. 다 관두고 1인 시위를 해야 하나, 그런 생각도 했어요.

 

가족 중 한 명이 “너는 세상에 대한 꿈이 많아서 마음이 많이 다친다. 더 나은 세상은 오지 않을 테니 세상에 대한 희망을 접어라.”라는 말을 했어요. 제 결론은, 그래도 세상에 왔으니 아동ㆍ청소년 작가로서 덜 나쁜 세상을 위해 헌신하는 거예요. 이제 저에게 더 나은 세상에 대한 희망은 없어요. 데뷔했을 때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갈 아이를 위해 작품을 쓰고 싶었어요. 사람들이 공감하고 서로 이해하고 예술에 대한 감수성이 높아지면 세상이 더 나아지지 않을까, 희망이 있었습니다. 사회주의적 리얼리즘 시대는 아니지만, 희망이 있었는데 안일했죠. 지금은 덜 나쁜 세상을 꿈꾸며 살아요.

 

글을 쓴 계기가 궁금합니다.

 

저는 스물넷이 될 때까지 작가를 향한 꿈을 안 꿨어요. 어릴 때도 책을 안 읽어서 엄마가 걱정할 정도였고요. 상상하거나 이야기 엿듣는 건 좋아했어요. 원래는 식품영양학과를 졸업하고 요리 학원 강사로 일했어요. 갑자기 많이 아팠어요. 직장 다닐 수 없는 건강 상태가 되면서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저와 대면하는 시간이었죠. 멍하니 할 게 없는 순간이었는데, 글이 쓰고 싶었어요. 그게 1997년 3월이었고 1998년 명지대 문예창작학과로 학사 편입을 했어요.

 

그때도 작가가 되리라고는 상상만 했지 확신은 못 했어요. 문예창작학과에 40명이 입학하면 데뷔하는 사람이 10%고, 그 안에 들어갈 수 없을 것 같았어요. 식품영양학과 나왔으니 요리잡지에서 글을 쓰는 사람 정도로 살 수 있지 않을까, 막연하게 생각했죠. 그랬는데, 완전히 빠져 버렸어요. 몇 년 지나니, 돌아갈 다리가 저절로 타서 없어진 느낌이 들었어요. 아르바이트하면서 6년 동안은 정말 열심히 썼어요. 차에서 자는 시간이 대부분일 정도로 잠을 안 잤을 때도 있고, 정신적으로 치열했어요. 그럴 수 있었던 게 열정 더하기 불안이었어요. 돌아갈 수 없으니까요.


그렇게 해서 오랫동안 작품을 꾸준히 내고 계신데요. 많은 작가가 첫 번째 작품을 내고 두세 번째 작품 내기가 어렵다고 하던데,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데뷔했을 때 떨어진 작품이 많았어요. 데뷔하자마자 이미 후속작 준비가 된 거였죠. 창비 어린이에서 『나의 린드그렌 선생님』이 책으로 만들어지는 동안에 다른 단편을 써서 달래요. 보통 다른 작가들은 한 편 정도 줬을 텐데 저는 폴더째로 줬어요. 떨어진 작품 중에서 퇴고해서 언젠가는 단편집으로 내려고 했거든요. 그때 출판사 편집자가 조금 놀라더라고요. 이런 일을 겪으면서 작가들이 후속작이 준비된 채로 데뷔하는 게 좋겠다는 걸 깨달았어요. 작품 하나로 반짝하는 것보다는 두 번째, 세 번째까지 주목 받으면 작가로서 생존 가능성이 높아져요.

 

야구 선수 푸이그 보셨어요? 대충하는 듯하면서도 잘하잖아요. 저도 푸이그같이 폼을 재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밤새서 공부해놓고 나 별로 공부 안 했어, 이렇게 하는 것처럼. 실상 저는 열심히 하는 것 같아요.


폴더로 모을 정도의 작품이라고 한다면, 정말 열심히 오래 쓰셨을 텐데요. 주로 언제 어디서 쓰셨어요?

 

지하철 2호선에서도 많이 썼어요. 시간 날 때 닥치는 대로 썼죠. 작가 지망생 시절에는 학원 강사도 하고 과외도 했는데, 수업을 월화수로 몰고 목금토에는 집에 틀어박혀서 썼어요. 글쓰기 수업하는 아이들에게 4번째 책까지는 읽어줬어요. 아이들에게 이해 안 되는 문장은 바로 고치고 하는 식으로, 그 아이들이 퇴고까지 도와준 거죠.


2015년에 나올 작품은?

 

어린이 논픽션으로 도서관 사서 이야기를 썼어요. 그게 올해 나올 거예요. 7,8세가 읽을 책 ‘웃는 코끼리’ 시리즈가 있는데 『나도 편식할 거야』, 『나도 예민할 거야』에 이어 세 번째 책이 나올 것 같아요. 저는 저학년 동화, 그림책 원고를 좋아해요. 작가가 점점 더 아래 독자로 내려갈수록 확장되는 거거든요. 연령이 아래로 갈수록, 어린아이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독자가 넓어지잖아요. 더 어렵기도 해요. 학생들 가르칠 때 제일 먼저 습작하는 게 고학년이고 그 다음에 밑으로 내려갈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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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두리유은실 저 | 문학동네
서울 변두리 동네를 배경으로, 지난하고 절망적인 삶 속에서도 서로 의지하며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일곱 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은 황룡동 사람들의 터전인 도살장과 부산물 시장을 무대로 한다. 황룡동 골목골목에서 만나는 가난하고 척박한 이들의 삶은 어찌 보면 한 편의 비극에 가깝지만, 소설 속 인물들은 때론 억척스럽게 때론 천연덕스럽게 그 삶을 받아들인다. 저마다 꿈을 품고 성장을 겪으며 서로를 껴안고 살아간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읽는 이에게 묵직한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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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만 오세진이 알려주는 음양오행으로 소통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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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 중에는 너무 자주 사용되어서 의미가 모호해지는 게 있다. 소통도 그런 단어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이곳 저곳에서 소통이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정작 소통이 무엇을 의미하지를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책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소통을 다른 책 중에서도 소통하는 기술을 다룬 책은 많지만, 소통의 본질을 논하는 책은 상대적으로 드물다. 기술도 중요하지만, 본질을 아는 게 우선이지 않을까

 

유영만 교수와 오세진 대표가 함께 쓴 『커뮤니데아』는 소통의 본질에 주목한 책이다. 책 제목에도 그러한 지향이 들어가 있다. 커뮤니데아는 커뮤니케이션과 이데아가 합쳐진 뜻으로, 이데아는 플라톤이 정의했듯 순수형상, 원형, 본질이다. 

 

『커뮤니데아』의 다른 특징은 원형을 음양오행에서 찾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NBTI, 애니어그램에 기초하여 소통법을 소개하는 시도는 있었지만, 동양의 전통적인 가르침에서 소통법을 찾아내려는 시도는 거의 없었다. 평소에 음양오행에 관심이 많았던 두 저자는 동양의 가르침이 서양의 심리학보다 오히려 더 체계적이고 과학적일 수 있다고 주장하며, 목화수금토 유형별로 소통법을 소개한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음양오행이 숙명론과는 다르다는 점이다.

 

소통은 마음속에 있는 의중을 의도로 담아 의지를 갖고 의사를 교환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소통은 의사소통이다. 의사가 소통이 잘된다는 것은 속마음이 무엇인지 의사표명을 하지 않아도 상대가 알아서 배려해준다는 의미다.


특히 한국 사람들은 하고 싶은 말을 직설적으로 하는 서구 사람들과 다르게 간접화법이나 은유법 또는 속마음과 다른 말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말한 사람의 속마음이 담고 있는 진의가 무엇인지를 꿰뚫어보는 게 중요하다. (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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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데아』는 음양오행으로 소통의 본질을 다룬 책

 

책이 나왔습니다. 소감을 말씀해주세요.

 

유영만 (이하 ‘유’) : 72번째 책인데요. 어느 책이 제일 좋은 책이냐고 하면 “다음에 나올 책”이라고 피터 드러커가 얘기했듯, 늘 책을 내면 아쉽기도 하고 더 잘 써야 했는데 하는 느낌은 있는데요. 요즘 화두가 소통ㆍ공감ㆍ창조라 시의적절한 책이 될 것 같은, 저자 입장에서 불길한 예감이 듭니다.

 

오새진 (이하 ‘오’) :이런 쪽으로 강의는 계속 하고 있지만 그동안 했던 것을 집약하는 게 이 정도로 어려운 거라고 생각 못 했거든요. 첫 작품이라 신경도 많이 쓰고, 교수님이 워낙 많이 도와주셨어요. 저 역시 현장에서 느꼈던 내용을 책에 최대한 녹여내려고 했죠. 강의에서 느꼈던 아쉬운 부분을 독자에게 좋은 처방전 주듯 노력을 많이 했어요. 많은 분에게 읽혀서 사랑받으면 좋겠다, 이런 마음밖에 없는 것 같아요.

 

책 제목이 독특합니다. 신조어 같은데요.

 

오 : 신조어죠. 커뮤니케이션과 이데아의 합성어이기도 하고요. 소통에 관한 강의, 소통에 관한 책이 많이 나와있지만 본질이 아니라 기술적인 부분, 스킬 위주의 책이 많아요. 음양오행이라는 동양철학과 플라톤이 말했던 이데아를 접목해서 본질적인 부분에 접근하고 싶었어요. 소통에 대한 기본과 자세를 담아낸 제목이죠. 커뮤니토피아, 이런 제목도 생각했지만 유 교수님이 마지막에 이걸로 가자고 결정해주셨어요.

 

유 :책을 참 많이 썼는데, 가장 어려운 게 제목 정하기에요. 제목을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컨셉이 달라질 수 있죠. 커뮤니데아라는 말이 어려운데, 어려우면 호기심을 줄 것 같기도 했어요. 『넛지』처럼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지만 자꾸 쓰면, 커뮤니데아도 다가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커뮤니이데아는, 커뮤니케이션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도 있어요.

 

음양오행이 젊은 세대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개념인데요. 어렵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오 :어렵게 생각할 수 있으나 우리가 타로라든지 사주카페 가서 자주 보잖아요. 혈액형에 따른 소통을 유추하기도 하고요. 음양오행도 사람을 이해하고 파악할 수 있는 한 가지 도구라고 생각하면 어렵지 않을 거예요.
 
유 :음양오행, 동양고전, 사주팔자를 터부시하는 분위기가 있죠. 원래는 세상 모든 게 음양으로 구분됩니다. 밝음이 있으면 어둠, 남자가 있으면 여자, 태양이 있으면 달이 있어요. 음양이 만나서 걸어가는 다섯 가지 행보가 오행입니다. 오장육부는 오행이 우리 몸에 박혀 생긴 거거든요. 이런 걸 조목조목 따지다 보면 오히려 젊은 사람에게 호기심을 자극하지 않을까 싶어요.

 

각 장의 앞에는 5명의 캐릭터가 등장해서 이야기를 이끌어나갑니다. 소설 같은 느낌도 드는데요.이 장은 다른 장과는 다소 다른 분위기입니다. 어떤 목적으로 쓰셨나요.

 

오 : 고봉, 거지 이런 단어는 강의할 때 썼던 표현이에요. 어렵지 않게 접근하려다 보니, 캐릭터를 살려서 풀어내려고 했죠. 한자 뜻은 좋지만 어감 자체가 반감을 살 수 있기에 빼야 한다 말아야 한다 말이 많았어요. 빼는 건 아쉬워서 좀 더 재밌게 풀어보자고 해서 오히려 내용이 풍부해졌어요. 지인분들도 인상적인 부분이 그 부분이라고 좋게 말씀해 주세요.
 
유 :음양오행이 어려울 수 있다고 했잖아요. 논리로만 풀면 사주팔자 보는 책일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젊은 사람이 이해하기 쉽게 하는 방법이 캐릭터 만드는 것이거든요. 마지막에는 이들이 캐릭터 변신을 시도하면서 반전도 주죠. 이 캐릭터로 오프라인과 온라인 교육 프로그램도 만들 계획입니다.
 
미국식 자기계발서는 무너질 것

 

두 분은 어떻게 함께 책을 내기로 생각하셨나요.

 

오 :소통에 관한 강의를 많이 해왔어요. 청중 중에서는 자발적으로 참여하려는 의지 없이 교육장에 와서 듣는 사람이 있어요. 들어야 해서 오는 건데, 귀를 막고 마음을 막아버려요. 내용보다는 재미를 많이 원하시죠. 이렇다 보니 그분들이 두 번 세 번 들어도 변화가 없는 거예요. 이런 데 안타까움을 느꼈고, 좀 더 재미있으면서도 본질을 다루고자 해서 소통에 체질과 음양오행을 접목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서양에는 애니어그램, NBTI가 있지만 동양에는 이런 시도가 없잖아요. 좋은 내용을 많은 분에게 알려주고 싶고, 강의했던 내용을 집대성하고 싶어서 책을 쓰기 시작했는데, 처음 책을 내니 힘들었어요. 유 교수님과 밴드 활동을 하면서 연습이 끝나고 간단히 이야기를 나눴죠. 함께 써 보자고 제안 드렸어요. 마침 교수님도 음양오행에 관심이 있고, 세계최초로 시도하는 것 같아 함께 쓰게 됐습니다. 제가 손을 내밀고, 교수님이 잡아주셨어요.

 

유 :공저로 낸 책이 손으로 꼽을 정도이고, 연구년에 낼 책을 4~5권을 꼽아놓고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계획에 없던 책이 가장 먼저 나왔네요. (웃음)

 

음양오행에 끌린 계기가 궁금합니다.

 

오 :원래부터 인문학에 관심이 많았어요. 저희 집안이 4대째 한의학 가문이었고요. 어렸을 때부터 체질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듣다 보니 관심을 두게 됐어요.

 

유 :제 전공이 잡학이다 보니 기업문화에 관해서도 쓰고, 철학책도 썼어요. 원론으로 들어가 보면 제 관심은 늘 학습과 지식의 문제였습니다. 어떻게 학습해서 지식을 만들어낼까, 사람을 변화시킬까를 고민하면 관련이 없는 학문은 없는 것 같아요. 앞으로 추세가 미국식 자기계발서는 무너지는 거잖아요. 1억 버는 몇 가지 방법, 이런 게 유행했지만 이제는 깊은 사유를 하면서도 현대적 감각에 맞게 재해석하는 책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맥락에서 평상시 주역에 관심이 있었어요. 앞으로 주역 64괘에 맞는 학습 64괘를 만들고 싶기도 하고요. 요즘 관심은 몸에 관한 것입니다. 철학적으로 들어가면 메를로퐁티 현상학까지 들어가는데, 몸에 관심을 갖는 학문이 그리 많지 않았어요. 뇌과학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뇌도 몸이 건강해야 하죠. 음양오행, 오장육부에서 소통까지 연결된 거죠.

 

만나면 바로 이심전심으로 통하는 공감과 화통의 방법은 없을까? 그 답이 음양오행에 있다. 음양오행은 우주의 순환원리이자 우주 속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가 에너지를 주고받으며 소통하는 이치이다. (71쪽)

 

두 분은 어떤 유형인가요?

 

오 : 저는 토(土)와 금(金)이 강해요. 소통 방식에서는 목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무의식적 부분이 토가 강하다 보니 생각하는 걸 쉽게 드러내지 않아요. 반면 교수님은 목과 화가 강한데, 교수님 속도를 따라가기가 힘들었어요. 처음에는 불통이었는데, 책을 쓰면서 서로를 이해하게 되었죠.
 
유 :평소 일하는 스타일은 화(火)가 강해요. 막 뻗어 나가는 스타일이죠. 아이디어도 직관적으로 내고 책도 순식간에 막 써요. 목화 기질이 강하긴 한데, 원래 내면은 태음인이에요. 태음은 오행으로 치면 수입니다.

 

『커뮤니데아』를 읽기 전에 이 정도는 알아야 한다, 이런 사전적 지식이 있을까요?

 

오 : 사주보다 관상이, 관상보다 심상이 중요합니다. 마음이 얼굴에 드러나는 게 심상인데, 심상보다도 중요한 게 본인의 의지에요. 각인되어서 타고난 오행이 있지만 사람과 관계 속에서 다르게 활용될 수 있습니다. 내 생각의 주인은 나라고 생각하면 운명을 재창조할 수 있어요. 음양은 절대적인 개념이 아니라 상대적이에요. 불은 양, 물은 음이라고 하지만 같은 물이라고 해도 뜨거운 물은 양이고 차가운 물은 음이겠죠? 음양은 상대적인 개념이라는 정도만 알면 됩니다. 음과 양이 만나 걸어가는 다섯 가지 걸음이 오행입니다. 계절에 비유하자면 양은 봄과 여름, 음은 가을과 겨울이겠죠. 오행으로 치면 봄은 목, 여름은 화, 간절기는 토, 가을은 금, 겨울은 수입니다. 

 

유 : 사주가 연월일시, 네 가지 기둥입니다. 태어날 때 어떤 기질을 타고나느냐로 내 기운이 달라진다는 의미인데, 이런 사주를 무시할 수는 없어요. 그런데 믿어버리면 책에서는 더 할 말이 없잖아요. 팔자소관이 아니라 팔자주관입니다. 생각의 주인이 되면 언제든지 운명을 바꿀 수 있어요. 어떻게? 소통을 통해서요. 그 방법이 책에 나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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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보는 것은 위안을 얻고 싶어하는 행동

 

음양오행이 숙명론처럼 인식되기도 하는데요.

 

유 : 사람들이 동양학의 사유 체계를 점치는 미신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죠. MBTI는 과학적 진단인데 오행은 미신 아니냐, 이렇게 사회가 대해왔어요. 그게 아니라는 걸 새롭게 깨닫게 해 주는 게 우리의 미션이기도 하고요. 서양의 심리학처럼 단편적인 학문보다는 오히려 과학적이에요. 우주, 자연, 인간을 관통하는 오랜 역사적 축적의 지혜가 집약된 것이니까요. 그래서 오행을 알면 지금까지 알던 심리학적 체계가 단편적 앎이었다는 깨달음을 주지 않을까 싶어요.

 

점보는 행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유 :믿는다, 안 믿는다기보다는 근본적으로 관심이 없습니다. 점을 치는 행위 자체는 인간 본능이에요. 미래가 불안하니까요. 잘못된 건 없죠. 다만 운명을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데, 거기에 연연해서 인생의 젊은 청춘을 허비하는 것은 안타까워요. 책에도 썼듯, 타고난 팔자는 어쩔 수 없는데 어쩔 수 없는 걸 고민해봤자 해결될 게 없어요. <쿵푸팬더>에도 나오는 대사죠. “Yesterday is history. Tomorrow is a mystery. Today is a gift. That’s why we call it the present.” 인간은 흘러간 과거를 바꿀 수 없어요. 수없이 강조하지만 지금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행동을 할 것인가로 얼마든지 운명을 재창조할 수 있습니다.

 

오 : 덧붙인다면 점을 보는 건 위안을 받고 싶어서입니다. 너무 안 풀려서 점을 보러 가요. “당신은 부모 운이 없어서 힘들다.”라는 말을 들으면, 내 탓이 아니라 부모 운이구나, 하면서 조금은 위안을 받을 수 있어요. 그런데 노력하지 않고 그저 주저앉아버린다면 안 되겠죠. 사주는 사주(思主)입니다. 오늘 현재를 열심히 살다 보면 미래를 충분히 바꿀 수 있어요. 저는 책에서 제시한 5가지 핵심 가치대로 움직이고 있는데, 그거대로 움직이면 운명은 재창조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점은 위로가 필요할 때 가끔 재미로 볼 수는 있겠죠.

 

시대적 상황에 따라 소통 방식이 달라질 텐데요. 요즘 시대 소통의 특수성은?
 
유 : 시대에 따라 바뀌는 건 당연하죠. 태어날 때 깨끗하게 태어난 사람도 시대가 울화통이 터지게 강요하게 하면 인성이 나빠질 수밖에 없겠죠. 인성이 인간성인데, 시대적, 역사적, 사회적 관계의 산물이거든요. 소통의 기본은 안 바뀌지만 기술은 바뀝니다. SNS라는 기술의 발전이 시대상의 반영인데, 꼭 소통의 효율을 높이긴 하지만, 효과를 높였을까요?

 

요즘 소통, 하면 SNS가 떠오르는데요. SNS에서의 소통을 어떻게 보시나요.

 

: 저는 SNS를 많이 활용하지는 않아요. 한때 페이스북에 강의 관한 글을 많이 올렸는데 거기 신경 쓰느라, 정작 주변 사람과 나 자신과 대화할 시간이 부족해졌어요. SNS에서 소통하면 할수록 고독해지는 느낌도 들고요. SNS에서는 활발하지만 실제는 정반대로 내성적이거나 마음 닫는 분도 많죠. 접속이 아니라 접촉이 인간다워요. 가까이서 하는 대화보다 힐링 시켜 줄 수 있는 건 없다고 봐요.

 

유 :불특정 다수와 소통하는 빈도는 높아지는데,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과는 불통되어 간다고 봅니다. 레스토랑에 가서 보면 사람 앉혀 놓고 서로 휴대폰 만지고 있어요. 엄지손가락은 굉장히 빨라지고 있지만 접촉이 없죠. 접촉 없는 접속은 참을 수 없는 인식의 가벼움이 될 수 있어요. 페이스는 없고 부킹만 일어나고 있는데, 페이스는 집어치우고 책을 읽으라고 제 페이스북에 쓴 적이 있어요.

 

교수님은 오랫동안 학생을 가르치셨는데, 대학생과 소통은 어떤가요?

 

유 :무개념 신입사원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무개념 신입사원 이전에 무개념 대학생이 있고, 무개념 대학생 이전에 무개념 학부모가 있습니다. 원류가 다 있어요. 개념이 없는 학생들이 옛날에 비해 많아졌죠. 개념이 없다는 말이 뭐냐면 자신만을 중심으로 생각한다는 뜻이에요. 나를 낮추고 상대방을 높이고 배려하려는 노력보다는 나의 이익을 전면에 드러내는 성향이 강해요. 머리는 똑똑하지만 가슴은 따뜻하지 않은, 영혼 없는 수재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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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소통 키워드

 

직장에서 소통이 참 중요한데요. 소통 비법을 한 문장으로 표현해 주신다면?

 

오 : 직장생활 하다 보면 가슴 속에 있는 표현을 못 할 때도 잦아요. 자기다움을 잃고 상대방에 맞추려고 하죠. 오죽하면 “나는 여러분이 원하는 사람이다.”라고 이야기하기도 하고요. 자기 본질을 잃어가면서 타자에 맞는 대화를 하다 보니 행복하지 않아요. 따뜻함이 없고 겉도는 대화를 많이 해요. 그래서 저는 가장 나다운 소통법을 찾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 방법이 책에 나와 있기에 책을 통해 많은 걸 얻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나다운 소통이 중요합니다.

 

유 : 상대방과 대화를 통해서 지식을 습득하고 깨닫는 것도 소통이지만, 소통은 비움입니다. 내가 먼저 자세를 낮추고 선입견과 편견을 없애버리고 비운 다음에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 새로운 소통의 물꼬가 트기도 할 거예요. 소통 안 되는 중요한 장본인 중 하나가 자기 선입견으로 먼저 판단하고 이야기를 들으려 하는 것입니다. 이야기가 왜곡되죠. 의도를 잘못 파악하게 되고요.

 

2015년의 소통 키워드를 꼽아 주신다면?

 

유 : 소통이 잘 되는 사람은 문제가 안 됩니다. 입장이 다르고 의견이 충돌하는 사람 사이에 문제가 생기죠. 올해 소통 키워드는 ‘상극도 내 편으로 만드는 궁극의 소통법’입니다. 상극을 어떻게 상생 파트너로 만들 것인가, 이게 키워드가 되지 않을까요.

 

오 : 소통의 키워드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한 가지로 표현하면 ‘앎’입니다. 나를 알고 타인을 알아야겠죠. 소통이 불통 되는 이유 중 하나가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일방적 주장을 하기 때문이에요. 알아야 안아줄 수 있다고 하죠. 상대방을 알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올해 계획은?

 

오 : 커뮤니데아를 바탕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 중입니다. 더 많은 독자가 이 책을 보고 소통의 본질에 다가갔으면 좋겠어요. 두 번째 계획은, 이번에 책을 내면서 배운 걸 바탕으로 혼자서 책을 내려고 합니다. 역시 소통에 관한 책으로요.

 

유 :‘나는 배웠다’ 시리즈를 패러디해서 시집을 내려고 50편을 써 둔 게 있어요. 500장 정도 손글씨로 써둔 게 있고요. 자기계발서보다는 다양한 깨달음을 줄 수 있는 책을 기획 중입니다. 8월까지 연구년이니, 여행도 다니려고 해요. 사하라 사막에서 마라톤도 뛰어보고 안나푸르나도 올라봤으니 이번에는 킬리만자로에 가고 싶어요. 『그리스인 조르바』를 필사 중인데, 필사가 끝나면 그리스로 가 볼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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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데아유영만,오세진 공저 | 새로운제안
이 책은 커뮤니데아란 무엇이며, 원활한 소통을 위해서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불통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상극을 만났을 때 소통법 등을 은둔거사 5인의 스토리텔링과 다양한 인문학적 사례를 통해 쉽게 설명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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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스트 이애경 “그냥 떠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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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란 절대 변하지 않을 것 같지만 아주 사소한 계기로 완전히 달라지기도 한다. 우리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일상의 환기, 새로운 경험에의 갈구 혹은 변화에 대한 막연한 희망. 때문에 사람들은 길을 떠난다. 길 위에 오른다. 길 위에서 진짜 세상을 만나고 특별한 일들을 만든다. 그곳에서 조금 달라진 자신을 찾는다.

 

『떠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의 저자 이애경에게 여행은 ‘그리움의 몸짓’이다. ‘열정의 몸짓’이다. 일상에 익숙해지고 마음에 감기가 걸렸을 때,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소중한 열쇠다. ‘떠나고 싶을 때는 주저하지 않고 떠나야 한다는 걸 지금까지의 여정이 증명해주었’다. 그래서 더 많은 사람들이 주저 없이 ‘떠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을 때는 떠났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여행에 들인 돈으로 집을 사고도 남았을 거라고 친구들이 말하지만 저자 이애경은 움직이며 길을 내는 게 더 좋다. 자신을 온실 속에 두고 싶지 않다. 잡초처럼 세상을 맛봤으면 좋겠다. 내가 어디까지 경험할 수 있을지, 얼마나 더 견딜 수 있을지 궁금하다. 세상 속에서 만난 사람들이 얼마나 아름답고, 낯선 곳의 풍경이 얼마나 감동적인지 알기 때문에 머물 수 없다. 전 세계 30여 개 나라를 다니면서 얻은 소중한 깨달음으로 그녀의 일상은 넉넉해졌다.

 

여행을 다닐 때 다소 감상적이 된다고 여겨지는 것은 굳게 다잡고 있던 마음의 끈이 풀어져서가 아니라 아이처럼 단순하고 무능력해진 나 자신을 고스란히 밖으로 드러내야 하기 때문이 아닐까. (중략)그래서 혼자서도 잘 해내는 내 안에 감추어져 있던 아이의 본성이 만족되자 돌연 나는 행복감에 휩싸였다. (8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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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으로 저도 모르는 자신을 찾게 돼요

 

에필로그에서 북유럽 여행을 다녀온다고 하셨어요. 가장 최근 여행일 텐데, 어땠어요?

 

어두웠어요(웃음). 세 시에 해가 져요. 해가 일찍 지니까 할 게 없어서 ‘호텔로 들어가자, 잠이나 자야겠다.’ 그렇게 됐어요. 북유럽이라고 해서 기대하고 갔었는데 생각보다 해가 너무 늦게 뜨고 일찍 져서 많이 아쉬웠죠.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이 한 네 시간 정도밖에 안 됐어요.

 

얼마나 다녀오셨어요?

 

열흘 정도 갔다 온 것 같아요. 북유럽은 처음이었고 물론 좋긴 좋았는데 너무 어두운 게 흠이었던 것 같아요. 점심 먹고 디저트 먹고 돌아보면 어두워지는 거예요. 놀라서 ‘어? 저녁 먹어야 하나?’ 하고 시계 보면 네 시 밖에 안 됐어요. 그러니 그냥 숙소 들어가서 있다가 다시 나와 저녁 먹고 들어와서 자고 그랬어요. 아침도 깜깜할 때 먹고요. 북유럽 쪽이나 이런 곳의 음악들이 약간 싸이키델릭한 트랜스 음악들이 많은데 이런 음악이 왜 나오는지 알겠더라고요. 이렇게 음(陰)하니까 겨울에 그런 음악 만들어 내는구나(웃음). 그런데 분위기는 좋았어요. 정말 예쁘고 아름답고요. 마침 크리스마스 시즌이어서 진짜 예뻤죠. 액세서리나 인형 같은 것도 많이 있었고요. 사진도 엄청 많이 찍었어요. 재미있었어요.

 

사진 말인데요. 함께 수록된 사진이 글을 더욱 감성적으로 읽도록 돕더라고요. 사진 찍는 활동이 글을 쓰거나 여행을 다니는 것에 어떤 즐거움을 주나요?

 

책에 수록된 사진은 70% 정도 제가 직접 찍은 거예요. 무엇보다 새로운 것을 잡아내기에는 사진이 제일 좋은 것 같아요. 저는 여행을 다니면 첫날 많이 찍는 편이에요. 첫날 느껴지는 감정이 ‘새롭다, 익숙하지 않다’하는 느낌이 많잖아요. 그 다음날만 되어도 벌써 익숙해져서 그냥 지나치게 되는 것들이 많으니까요. 사실 컬러감이나 분위기를 말로 형용하기가 힘들잖아요. 사진을 찍다보면 그것에 맞는 생각들이 떠오를 때가 있고 그러면 글도 쓰고 그런 식으로 작업을 하는 편이에요. 가장 안타까운 건 사진을 찍었을 당시 느꼈던 감동을 고스란히 사진으로 내놓지 못한다는 건데요. 어떤 때는 사진이 그 장면을 실제로 봤을 때보다 조금 더 아름답게 표현되는 경우도 있거든요. 그럴 때는 스스로가 ‘오, 멋있는데!’이러기도 해요(웃음). 정말 좋아요. 

 

글을 쓰고 음악을 만드는 직업을 가지고 계시는데, 여행이 직업에 어떤 영향을 끼쳤나요?

 

글은 소재가 참 중요하잖아요. 인생을 에피소드라고 생각할 때, 제가 여기서 그냥 살았으면 에피소드들이 그리 많을 것 같지 않아요. 직장 다니고 사람들 만나고 친구들이나 만나는 사람들이 정해져 있고 그러면 말이에요. 그런데 여행을 가게 되면 그게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지는 것 같아요. 이야깃거리도 많아지고 할 얘기도 많고 그러다보면 쓸 수 있는 아이템들도 많아져요. 여행과 글쓰기가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내게 되는 것 같아요. 또 저도 모르는 자신을 보게 되는 것 같아요. ‘나한테도 이런 면이 있었네?’이런 때가 있어요. 가끔 이런 짓을 하는데요(웃음). 한국에서는 사실 외출할 때 메이크업을 하고 다녀야 하잖아요. 그런데 일본 같은 경우에, 온천하고 나서 곧바로 전철 타고 시내 돌아다니고 이러거든요. 그럴 때 묘한 쾌감도 느껴요. 안 해본 것들을 하는 경우도 참 많고, 못 겪어 봤던 것들을 겪는 경우도 엄청 많으니까 새로 에피소드를 만들 수 있어서 그런 것들이 좋죠.

 

여행 외에 특별히 즐기는 취미가 있다면요? 음악, 글, 사진처럼 좋아하는 것들이 많으신 것 같은데요.

 

좋아하는 건, 떡볶이를 진짜 좋아하고요, 맛있는 거 먹는 걸 엄청 좋아해요.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음식에 대해서는 굉장히 까칠해요(웃음). 맛있는 거 먹으러 다니고, 영화 보거나 드라마 보거나 이런 식으로 남의 인생 보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책도 많이 읽지는 못하지만 소설 보다는 위인전이나 사람의 일생, 일대기가 담긴 에세이 류를 많이 보는 편이에요. ‘저 사람은 무슨 생각하고 살지?’ 이런 것들이 궁금해요. 제가 기자 출신이다 보니까 그런지‘저 사람은 어떤 생각하고 살까? 저 사람은 어떻게 이런 고난들을 극복해 나갔을까?’ 그런 게 참 궁금해요.

 

한켠에 서서 춤추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는데 누군가 내게 말을 걸었다. 나보다 한참 어려 보이는 청년이었다. 동양 여자를 처음 본 것인지 그가 신기한 눈으로 나에게 물었다. “몇 살이에요?”(중략)나는 그의 얼굴에 대고 “Yes!”하고 소리친 뒤 밖으로 나왔다. 그 기분을, 열여덟 살이 된 그 기분을 밤의 번잡함 속에 잃지 않고 싶어서였다. 별빛이 달처럼 도드라진 밤길을 따라 민박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언니와 함께 깔깔대며 웃었다. 그곳에서도 오롯이 빛난 나의 청춘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62~63쪽)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지가 있다면? 

 

아무래도 쿠바가 제일 기억에 남아요. 혼자 가기에는 좀 위험한 도시였다는 걸 나중에 알았어요. 처음에 갈 때는 몰랐고 ‘가면 되지.’ 했어요. 캐나다에 있었거든요. 캐나다에서 쿠바 가는 비행기 표를 끊기가 쉬웠어요. 그래서 그냥 갔는데 다녀오니까 사람들이 큰일 날 뻔했다고 그런 식으로 얘기를 하더라고요(웃음). 쿠바는 음악도 워낙 좋았어요.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이라는 영화 있었잖아요? 거기에 감명 받고 간 도시라서 더 기억에 남아요. 헤밍웨이가 자주 드나들었던 바에 가서 앉아서 있으면 할아버지들이 진짜 그런 음악을 하는 거예요. 제가 유일하게 아시안이다보니 길거리를 지나가면 사람들이 모두 저를 쳐다봐요. 정말 제가 연예인이나 된 것처럼 사람들의 눈동자가 다 따라와요(웃음). 그것이 어떤 면에서 저는 오히려 안전하다고 생각했어요. 사람들이 다 지켜보니까요. 또 그곳 사람들의 자유로움도 참 좋았고 음악과 함께 하는, 음악이 있는 삶도 좋았어요. 생활수준이 그렇게 고급화되거나 이러진 않잖아요. 소득도 좀 낮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이지 아름답게 살아가는 거예요. 제가 퍼커션을 배우고 싶다고 해서 어느 집에 간 적이 있는데요. 부부가 단칸방 같은 데 사는 거예요. 방 한쪽 구석에는 부탄가스 같은 것으로 화덕을 만들어 놓고 여기는 식당, 다른 쪽은 침대, 이쪽은 의자를 두고 거실, 이런 식으로 꾸려놓았어요. 진짜 조그만 방에 말이에요. 그렇게 살면서도 무척 즐겁게 사는 모습을 보면서 ‘행복이란 게 별 거 아닌데. 너무 많은 걸 원하면서 갖지 못하니까 그것 때문에 불행해지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쿠바는 진짜 다시 꼭 가고 싶고 그래요.

 

저 역시 쿠바 트리니다드를 언급한 부분이 가장 마음을 당겼습니다. 가보고 싶어지는 곳이더군요. 얼마나 계셨던 건가요?

 

일주일 정도 있었던 것 같아요. 간지 십 년 정도 됐어요. 벌써 그렇게 됐네요(웃음). 사실 물가가 엄청 비싸긴 해요. 이중 과세처럼 외국인에게 다른 시스템을 적용하거든요. 현지인들에게는 예를 들어 코코아가 백 원 정도 밖에 안 되는데 외국인들에게는 육천 원 정도, 육 달러 정도를 받아요. 그런데 저는 환전을 해서 현지인들이 쓰는 돈을 가지고 살았었어요. 밥 한 끼를 먹어도 이백 원, 삼백 원이면 한 끼가 해결이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되게 좋았죠(웃음). 지금은 가능한지 모르겠어요.


사람들이 정말 스스럼이 없어요. 매일 동네에서 노는 거예요. 하루를 끝냈으니 사우나 하고 들어가는 것처럼(웃음). 다들 순박하고요. 지금은 개발이 많이 됐다고 하는데 어떤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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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일상의 연장

 

가끔 럭셔리함이 필요하다(232쪽), 눈에 여러 번 밟히는 것은 사야한다(236쪽), 일본여행 둘째 날에는 염색을 한다(238쪽)같은 나름의 규칙이 재미있습니다. 다른 것도 있다면 몇 가지 더 들려주세요.

 

보통은 여행을 간다는 게 일상과 동 떨어진 일탈의 행위를 하고 온다는 식의 생각을 하잖아요. 저도 그랬고요. 그런데 여행을 계속 하다보니까 여행이 일상의 일부인 거예요. 연장인 거죠. 여행을 일상에서 동 떨어진 것이라고 해버리면 좀 멀어지는 것 같은데요. 일상의 연장이라고 하니 같이 아우를 수 있는, 좀 더 넓게 포용할 수 있는, 그런 생각이 들어요. 예전에는 기념품을 사오는 횟수가 많았었는데 요새는 집에 와서 쓸 수 있는 것들을 사와요. 예를 들어 어느 곳 잼이 맛있다하면 잼을 사온다든지요. 그 나라에 가서 생활에 좋은 것들을 찾으면 그걸 가져오게 되는 거예요.

 

이곳 생활 속에 끼워 넣을 수 있게요. 그러다보니까 여행지에서 하는 행동도 일상의 행위가 되는 거죠. 염색을 하게 된 계기도 그래요. 어차피 염색할 건데 여행 가서 예쁜 색, 우리나라에 없는 색 있는지 가서 한 번 체크해보자 하고 봤어요. 마침 정말 예쁜 색이 있는 거예요. 그래서 하게 됐죠. ‘우동 먹으러 삿뽀로 갔다’하잖아요(웃음). 그 정도는 아니지만 제 생활을 채워주는 요소가 어느 나라의 어떤 곳에 있는 거죠. 그게 굉장히 재미있고 쏠쏠한 것 같아요.

 

크리스마스 선물을 여러 사람들에게 할 때가 있잖아요. 그걸 여행 간 김에 미리 다 사는 거죠. 한 달이든 두 달이든 남겨 놓더라도요. 독특한 선물을 구하기가 힘든데 선물에 대해 고민하기보다 여행지에 갔을 때 ‘이걸 크리스마스 때 줘야겠네.’하고 쟁여 놓았다가 주고 그래요. 받는 사람들도 엄청 좋아해요. 여행지에서 나를 생각했구나, 하는 특별함이 있으니까요. 가방이 무겁죠(웃음).

 

즐거울 때와 힘들거나 슬플 때 어느 쪽이 여행에 더 좋으세요?

 

힘들고 머리 아파서 떠나는 여행은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되도록 혼자 있으면서 생각들을 비워내고 그래요. 그렇지만 여행하면 저는 에너지가 많이 나거든요. 사람들과 함께 다녀보면 알아요. 제가 돌아다니는 속도나 페이스를 사람들이 잘 못 쫓아와요. ‘안 피곤하니?’하고 다들 물어봐요. 아직 반나절 밖에 안 됐는데!(웃음) 저는 새로운 것을 접하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요. 여행 다녀오면 엄마가 ‘그래, 너는 피부도 좋아졌다.’ 항상 그러세요(웃음). 공항 갈 때부터 좋아요. 공항버스 타거나 이럴 때부터 기쁘고 정말 좋아요. 

 

‘그’에 대한 기억이 남다르게 느껴졌습니다. 사랑에 힘들어하는 2,30대 여성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으세요?

 

연애를 하고 헤어지고 하는 일들이 사실 흔히 있는 일들이잖아요. 최소한 한 번 씩은 겪고 지나가는 그런 아픔이자 즐거움일 텐데요. 문제는 나만 힘들고, 나만 아프고, 나만 죽을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제가 언젠가 인생의 고민들을 꼽아본 적이 있어요. 그런데 카테고리가 만 개, 십만 개 이렇게 다양하지 않아요. 대략 열 개 안에 다 있어요. 예를 들면 학업, 취직, 연애, 자식, 건강, 돈... 또 뭐가 있을까요? 결국 크게 다르지 않아요. 그런데도 우리는 내 고민이 가장 힘들고 아플 거라고 생각하게 되는데요. 여행을 다니면 ‘다들 이런 고민을 하고 사는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돼요. 그런 차원에서 이별의 아픔을 가지고 여행을 할 때 가장 처음으로 드는 생각은 ‘세상은 넓다, 남자는 많다.’(웃음)
 
연애를 하다보면 갇혀 있게 되잖아요. 여행을 하면 틀을 깨게 되는 일들이 생기는 것 같아요. 한 사람만 바라보고 한 사람에 집중하던 시각을 조금 떨쳐버리고 다른 것들을 볼 수 있게 만드는 게 이별 후 여행의 좋은 점이죠. 여행을 가면 내가 좋은 것만 하잖아요. 남들 신경 안 써도 되니까요. 어떻게 보면 가장 이기적으로 나 자신을 사랑해주고 나 자신을 위해서 뭔가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거죠. 그러다보면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 용기 낼 수 있을 것 같아’ 이렇게 정리가 되는 것 같아요. 이별 후의 여행이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좀 더 준다고 할까요? 물론 ‘그’에 대한 생각, 헤어진 애인에 대한 생각은 계속 나겠죠. 어떻게 칼처럼 자르듯이 하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생각을 품으면서도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깨닫게 되는 것 같아요.

 

이기적이라고 말씀하셨지만 여행지에서야말로 가장 효율적으로 나 자신을 위한 선택과 집중을 하게 되는 거군요. 

 

나를 자꾸 보게 되는 거예요. 뭘 먹더라도 내가 좋은 것을 먹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요. 나한테 집중하게 되니까 시각 자체를 변화시킬 수 있죠. 연애를 하다보면 여자분들 대부분 상대방 배려하고 상대방만 생각하고 그러시잖아요. 우리를 생각하다보면 내가 희생하게 되는 부분이 참 많은데요. 그 시각에서 벗어나서 나만 바라보는 시간이 되는 거죠.

 

여행지에서의 로맨스도 있을 것 같은데요?

 

(웃음)없어요. 로맨스를 꿈꿨다면 꿨을 수도 있겠지만...(웃음)

 

정말 용감한 사람은 자신의 상처를 깊이 들여다보고 가까이 다가가 치유하고 보듬을 줄 아는 사람이다. 과거의 상처를 끌어안고 힘들어하는 나를 위로하고, 내게 상처를 준 사람을 기꺼이 용서하고, 어리석었던 자신을 용서할 수 있는 그런 마음을 지닌 사람. 이런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 우리 시대의 진정한 워너비가 되었으면 좋겠다. 자기의 과거와 상처를 인정하고, 극복해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우리 마음속에도 ‘나도 그렇게 되고 싶다’는 희망이 피어날 테니까. (200쪽)

 

‘용기’에 대해 언급 하셨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용기(34쪽), 익숙한 것들을 내려놓을 줄 아는 용기(98쪽)처럼요. 우리는 왜 이렇게 많은 ‘사소한’ 것들을 하기 위해서까지 용기가 필요하게 됐을까요? 붙들고 있는 것들이 너무 많기도 한 것 같아요.

 

맞아요. 제가 손에 가지고 있는 것을 놓는 연습을 하기 시작한 건 기자 그만 두면서 가장 크게 했던 것 같아요. 얻는 것도 많고, 내 손에 들어오는 것들이 여러모로 많은 직업이었어요. 제가 일할 당시에는 그랬어요. 다들 기자님, 기자님 이렇게 불러 주시고, 초청해주시고요. 혜택이 굉장히 많았었는데 그것을 딱 놓는 순간 모든 것이 다 사라지는 거거든요. 선배들도 많이 얘기를 하셨었어요. 기자 그만 두고 나니까 누구 씨 누구 씨 이렇게 부르더라, 속상하더라 이런 얘기를 많이 하셨는데요. 그게 저한테는 큰 도전이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몰라, 그냥 내려놓아보자.’그랬어요. 어차피 원래 저한테 없었던 거잖아요. 이런 일을 하고 타이틀을 다니까 나한테 왔었던 것이고요. 없어지면 어때, 하고 딱 내려놨어요. 내려놓으니 확실히 다르긴 다르더라고요. 그렇게 나름대로 큰 결정을 하고, 오던 것들이 다 떠나가는 경험을 하고 나니까 그 다음부터는 내려놓는 게 별로 어렵지 않아요. 가지고 있다가 내려놓아도 ‘내 것이면 오겠지, 아니면 말고’ 이런 식의 생각이 저한테 확실하게 잡혔다고 할까요? 사람들이 힘든 건 손에 쥐고 있는 걸 내려놓지 못해서 힘든 거거든요. 새로운 걸 잡으려면 손에 있는 걸 놓아야 잡을 수 있는 건데, 아무것도 놓지 못하면서 다른 걸 잡으려고 하니까 힘든 거예요. 애를 두 배나 써야 하고요.

 

한 번 해보면 쉬운 거죠. 근데 한 번 하기가 사실 참 어렵죠. 좋은 것을 가지고 계신 분일수록 아마 힘들 거예요. 좋은 직장, 내가 여기 정년퇴직할 때까지 다녀야 되겠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으면 내려놓기 어렵죠. 

 

그 도전이 상당히 큰 용기였을 것 같습니다.

 

그렇죠. 월급이(웃음). ‘아, 내가 뭐해서 먹고 살아야 하지?’ 라는 고민, 생존의 고민부터 시작을 해야 되는 거잖아요. 근데 뭐, 어떻게든 되겠지 생각하고 그냥 했던 것 같아요. 아주 무모하다 싶게요.

 

비행기가 연착된 에피소드가 하나의 글이 됐어요. 여행이란 사실 예측하지 못한 일들의 연속일 텐데요. 가장 황당했던 에피소드가 있다면요?

 

제가 『그냥 눈물이 나』때 한 번 책에 쓴 적 있는데요. 파리에서 소매치기 당한 적이 있어요. 제 남동생을 보디가드로 데려갔는데 제 역할도 못하고(웃음). 끈으로 잡아서 매는 가방이 있었어요. 그걸 매고 갔는데 누가 저를 툭 치고 지나가서 ‘뭐지?’ 이러고 말았는데 나중에 느낌이 이상해요. 가방을 둘러봤더니 그 순간에 손을 넣어서 지갑만 싹 빼가지고 간 거예요. 정말 프로였어요(웃음). 그 와중에 지갑을 어떻게 딱 잡는지 몰라요. 지갑 안에 정말 많은 게 있었거든요. 현금, 각종 상품권, 쿠폰... 액수가 진짜 컸었는데 어쩔 수 없이 프랑스에 기부했고요(웃음). 재미있었던 건, 그 일을 당하고 나서 경찰서에 신고하는데 정말 잘생긴 프랑스 경찰이(웃음) 있었어요. 너무 잘생겨가지고 정말 기분이 좋았던 그런 에피소드였어요.

 

여행지에서 아프거나 그런 적은 없으세요?

 

그렇게 아픈 적은 없었어요. 가끔 감기는 걸릴 때 있는데 그 때는 약 먹으면 싹 나아요. 그리고 저는 여행 다닐 때마다 공항에서 홍삼을 꼭 사서 먹어요. 에너지를 써야 하니까 그렇게 준비를 하죠. 아무래도 걷는 양이 많잖아요. 거의 일 년에 걷는 걸 여행 가서 다 걷는 것 같아요. 가서 아프면 아무것도 못하고 돌아오는 경우가 많고 안타깝잖아요. 그래서 최대한 컨디션을 최상으로 지키는 노력을 해요. 홍삼과 각종 영양제(웃음)를 챙겨가요. 가기 전부터 마음과 몸을 준비하죠. 걷기 편한 상태를 만들고요. 이건 비밀인데, 5일 정도 어디 가잖아요? 그러면 옷 두 벌 갖고 가요(웃음). 매일 새로운 사람 만나니까요. 짐이나 옷을 많이 가져갈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혹시 문제가 되면 사면 되고요. 비워서 갔다가 채워서 와요.

 

제가 슈퍼마켓 가는 걸 엄청 좋아해요. 현지에 가서 그 나라 사람들은 어떤 과자들을 먹는지, 어떤 것들을 구비해놓고 있는지 그런 것들을 많이 봐요. 제가 우유를 되게 좋아해서 우유를 꼭 마셔보고요. 다른 나라 우유 맛있어요(웃음). 일본 우유도 맛있고요. 그리고 과일 꼭 사먹어요. 어떨 때는 과일로 배를 채우는 때도 있어요. 밥을 먹을 시간이 어디 있어요? 망고 먹어야지(웃음). 제가 좋아하는 과일 중에 두리안이라고 있어요. 냄새 나는(웃음). 태국 가면 그걸 먹는데 한 덩어리 정도 먹으면 엄청 배부르거든요. 밥 먹을 시간이 없죠. 

 

나는 소설 속의 인물을 보듯 사에코를 바라보았다.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묘한 경외감과 새로 난 생각의 길이 내 머릿속에 잠겨 있던 어떤 문으로 이어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영화같이 산다는 건 저런 거구나. 수만 평의 숲에 둘러싸인 아름다운 고성에 살지 않아도, 개발해낸 플랫폼이 히트를 쳐 재산이 수조 원에 달하는 부자가 되지 않더라도 멋진 인생을 갖는다는 건 가능한 일이었다. (128쪽)

 

여행에 크게 매료되는 사람들이 많아요. 생활 방식이 여행을 중심으로 돌아갈 정도로 말이지요. 많은 사람들이‘중독’처럼 여행을 떠나게 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저는 저를 계속 잡초처럼 밖에다 내놓는 스타일인 것 같아요. 자꾸 바람 맞고, 비바람 맞으면서 쌩쌩해지게 스스로를 단련시켜요. 고정된 환경에 있으면 그냥 이렇게 살다 죽는 거잖아요. 그건 별로 재미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자꾸 저를 어디로 내놓는 거죠. 추운 나라에 내놨다가 뜨거운 나라에 내놨다가 치안이 별로 좋지 않은 나라에 내놨다가(웃음). 저는 그렇고요. 대부분의 분들은 아마 일상이 너무 재미없고 뭔가 새로운 걸 하고 싶은데 그런 게 없으니까 여행을 가시는 게 아닐까 싶어요. 저는 좀 동적인 걸 좋아해서 스노우보드도 타고, 암벽등반도 하고, 등산도 하고 좀 그래요. 그런 것도 용기고 도전일 수 있잖아요. 재미있지 않아요? 가끔‘남극에 가서 살아볼까?’ 이런 생각도 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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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킷리스트를 만들고 싶지 않아요

 

많은 사람들이 이제는 너무 늦었고, 시간도 없고, 할 것도 많고, 하는 갖가지 이유로 안주하거나 도전을 계속 미루고 지연시키잖아요. 그러다 결국 못하게 되기도 하고요. 그렇지 않은 삶을 사는 입장에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버킷리스트를 만들고 싶지 않아요.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실천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예전에 누군가가 나이 들고 할아버지 할머니 되면 유람선 타고 해외를 돌아다니고 싶다는 말을 한 적 있어요. 그런데 그 때는 되게 힘들거든요(웃음). 소원이 있으면 ‘지금하면 안 되나? 그냥 지금해도 될 텐데.’생각해요. 저는 지금 하는 사람들에게 박수를 많이 쳐주는 편이에요. 사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여행이 힘들거든요. 비행기 오래 타는 것도 쉽지가 않고요. 그러니 지금, 더 젊었을 때, 빨리 많이 다녀야겠다, 이런 생각을 해요. 

 

여행 초보자나 여행을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곳이 있나요?

 

글쎄요. 아무래도 같은 아시아권이 가장 편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덜 이질적이기도 하고, 한문을 같이 쓰니까요. 일본이나 중국 같은 곳을 추천해 드리고 싶고요. 조금 더 문화적으로 이질적인 것을 느끼고 싶다면 대만, 필리핀, 홍콩 이런 곳도 괜찮고요. 여행이 너무 부담스럽다고 생각하시면 편하게 쇼핑하러 가신다고 생각하고 홍콩이라든지 싱가폴이라든지 가셔서 분위기를 좀 느껴보셔도 될 것 같아요. 여행마다 많이 다르지만 처음 여행할 때는 저는 좀 많이 돌아다녀보라고 추천해드리고 싶어요. 그래야 내가 여행에 어울리는 사람이다, 아니다를 좀 알 수 있고, 어떤 여행이 어울리는지 알 수 있어요. 리조트 가는 건 결혼해서 신혼여행으로 가시고요(웃음), 계속 많이 걸으시면 좋겠어요. 걷는 게 자신을 좀 더 잘 알게 하니까요.

 

30대 여성들에게 응원의 한 마디 부탁 드려요.

 

책 제목처럼 떠나고 싶은 생각이 들면 그냥 떠나보시는 게 좋지 않을까 해요. 상황이 된다면 말이에요. 여행은 스스로를 굉장히 자라게 하고 나의 또 다른 모습을 보게 되고 성장하게 되는 지름길인 것 같아요. 자신을 온실 안에 그냥 두지 않고 자꾸 내놓아버릇하면 좀 더 달라진 나의 모습을 볼 수 있으니까요. 열심히 떠나시고 열심히 성장하셔서 아름다운(웃음) 삶을 누리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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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이애경 저 | 북라이프
전작들에서 ‘눈물’이라는 단어로 서른 즈음에 겪는 불안과 심리를 감각적이고 솔직하게 그려냈다면, 이번 책은 ‘떠남’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이야기를 풀어냈다. 일상에 지치고 삶이 버거워질 때면 주저 없이 여행을 떠났던 작가는 전 세계 30여 개국의 길 위에서 만나고, 보고, 겪으며 기록해둔 소중한 순간들과 단상들을 모아 다시 한 번 ‘서른 썸싱’의 그녀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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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림 “엄마의 꿈을 응원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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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커서 어른이 된다. 그리고 엄마가 된다. 엄마가 된 어느 날 그녀를 향해 아이가 물었다. 엄마는 꿈이 뭐냐고. 귀엽기만 했던 질문은 이내 뇌리에 박혔다. 나는 나의 엄마에게 꿈을 물은 적 있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엄마의 꿈이 무엇일까. 왜 한 번도 꿈을 물어보지 않았을까. 엄마가 되어서야 뒤늦게 깨달았다. 엄마도 사람이라는 것을, 엄마도 꿈이 있다는 사실을.

 

신은 모두를 돌보지 못해 대신 우리에게 엄마를 보냈다고 했던가. 그러나 그것은 엄청난 오해인지 모른다. 엄마도 그저 한 사람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평범한 여자가 엄마가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련과 어려움이 있었겠는가. 다시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왜 엄마를 엄마로만 생각했나. 엄마에게도 엄마가 필요하다. 모두에게는 엄마가 필요하다. 이 당연한 사실을 너무 간과하고 지냈다.

 

엄마라서 겪는 외로움과 고민을 들어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방송인 박경림은 그래서 엄마들을 만나러 갔다. 겉으로 보기에 화려하고 단단할 것만 같았던 엄마들은 놀랍게도 우리와 똑같은 고민을 하고, 힘겹게 싸우고, 버텨내고 있었다. 그 안에서 주어진 행복에 기꺼이 감사하고 있었다.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 핸드볼 감독 임오경, 영화제작자 심재명, 배우 채시라...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쟁쟁한 여자들이 주인공이기에, 그들이 겪은 눈물과 땀이 아로새겨진 소중한 이야기가 펼쳐졌다. 책 『엄마의 꿈』은 세상 모든 엄마들의 눈물과 희망의 발자취다.

 

다행이다. 엄마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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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도 꿈을 갖고 있을 거예요

 

‘엄마가 얼마나 사람인지’라는 말이 참 찡합니다. 저 역시 ‘엄마의 꿈’을 물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엄마의 꿈’이 궁금해지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인가요?

 

엄마는 언제나‘엄마’로만 알고 있었던 것 같아요. 제가 인터뷰 하면서 공통 질문을 드렸거든요. ‘당신 엄마의 꿈은 무엇입니까?’라고 했을 때 인터뷰이들의 공통적인 대답이 다 ‘모르겠다.’였어요. 모두 당황하셨어요(웃음).

 

엄마의 꿈이 궁금해진 건요. 제 아이, 민준이가 갓 네 살 됐을 때였어요. 엄마들 다 그렇잖아요. 아이의 꿈에 관심이 많잖아요. 얘가 나중에 커서 뭐가 될까, 이로운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하는 게 당연한데요. 그런데 반대로 아이가 저의 꿈을 궁금해 해줬다는 것이, 그때는 잘 몰랐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굉장히 신선했어요. 그리고 엄마한테 미안했고 엄마의 삶을 생각하게 되었어요. 제가 4남매 중 막낸데요, 찬찬히 엄마의 삶을 생각해보니 저를 낳았을 때도 엄마는 저보다 어린 나이였는데, 엄마는 뭘 알고 계속 엄마였을까, 아무것도 몰랐을 텐데 얼마나 힘들었을까, 근데 나는 왜 엄마의 신음소리조차 듣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보니까 지금도 엄마가 꿈을 갖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엄마들을 만나게 됐어요. 지금 엄마로 살아가는, 또는 딸로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한테 이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었다는 생각도 함께 들었고요.

 

인터뷰를 통해 새로 깨달은 것도 많고, 삶의 새로운 에너지도 많이 얻었을 것 같습니다.

 

특히 제일 좋았던 건, 정답이 없다는 점이었어요. 저마다 다르다는 사실이요. 사람들이 그렇잖아요. 나는 이렇게 하고 있는데 누가 저렇게 하고 있다고 하면 내가 왠지 잘못하는 것 같고요. 근데 그게 아니었다는 것, 각자의 방식이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돼서 좋았어요. 또 하나는 인터뷰를 하면서 같이 울고 웃고 공감이 되는 것도 많았지만 제가 그러면서 위안을 얻었던 건, ‘누구나 힘들구나, 나만 힘든 게 아니었구나, 나만 모르는 게 아니었구나.’ 그런 점들이 굉장히 큰 위안이 되더라고요. 나는 방법도 몰랐고 힘들었는데, 저 사람은 잘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런 게 아니라 ‘저 사람도 똑같은 그냥 힘든 엄마였구나, 극복해 내는 거구나.’ 라는 게 저한테 굉장히 큰 위안이었던 것 같아요. 

지위를 막론하고 엄마가 되는 순간 모든 게 엉망진창이 되잖아요. (웃음) 계획이 다 무너지잖아요. 자기 계획대로 유일하게 안 되는 게 자식이라면서요. 내가 A라는 질문을 하면 B라는 답이 나올 거라 생각하고 물었는데 아이가 Z를 말해버리면 그때부터 멘붕이 오거든요. 그때부터 뭔가 포기하는 습관, 내려놓고, 인정하는 연습이 자연스럽게 되는 것 같아요.

 

인터뷰어로서도 그렇고 라디오 진행자로서 가장 중요한 건 상대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일 텐데요, 그런 점에서 박경림 씨의 친근함, 공감능력이 큰 도움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인터뷰 하시면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감사해요(웃음). 인터뷰하면서 가장 중점을 둔 건 오롯이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었어요. 비단 엄마뿐 아니라 사회생활을 하는 모든 사람들이 힘든 상황에 처해있을 때 자신의 얘기를 누군가 들어주는 것만으로 참 좋잖아요. 해결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그냥 내 얘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요. 어차피 해답은 내가 찾아야 되는 것이니까 누군가 이야기를 들어줌으로써 해소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은데요. 이번 인터뷰도 그랬던 것 같아요. 그녀도 제가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 좋고, 저도 이야기를 들으면서 좋았고, 제 이야기에 비춰서 함께 이야기 나눠서 좋았고요. 

 

옛날에는 어떻게든 제가 튀어야겠기에(웃음) 토크박스 이런 데 나가면 제 위주로 얘기를 해야 되잖아요. 항상 제 얘기, 내 것이 재미있어야 하고 그랬었는데요. 점점 나이가 들면서 상대방의 이야기를 빛나게 해주는 게 저의 역할인 것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지금도 그렇고요. 그래서 이번 인터뷰는 정말 친구끼리 수다 떠는 느낌의 인터뷰였던 것 같아요. 또 하나 달랐던 건, 제가 이 엄마들보다 초보 엄마라는 점이 많았기 때문에 배운다는 마음, 내가 오늘 뭐 하나라도 배워간다는 마음가짐이 있었던 것 같아요.

 

인터뷰라는 게 질문을 잘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잖아요?

 

그렇죠. 그것도 훈련인 것 같아요. 상대의 눈을 보면서 이야기를 듣다보면 이분이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지 알게 돼요. 인터뷰는 사실 상대방이 하고 싶어 하는 얘기와 내가 듣고 싶은 얘기로 계속 싸움이 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결국은 상대방이 하고 싶은 얘기를 하게 해주는 게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다보면 거기서 또 내가 듣고 싶은 얘기가 생기고요. 계속 들으면서 질문을 유도하는, 그런 노력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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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모두 같은 고민

 

책에서 만난 ‘꿈꾸는 엄마들’은 각자의 분야에서 성공한, 이른바 ‘알파맘’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들을 보면서 아직 꿈으로 가는 첫발조차 내딛지 못한 엄마들이 용기를 얻을 것 같습니다.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구나 생각하면서요. 그런 분들에게 특별히 전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흔히 ‘저 사람은 나와 다를 거야, 그녀는 다를 거야.’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을 책을 통해 보시면 결국 모두 똑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 많이 느끼실 거라고 생각해요. 저도 그걸 느꼈거든요. 여자의 삶 또는 엄마의 삶은 각자 다르지만 또 교집합으로 모이는 게 있다는 느낌을 책을 읽으신 분들이 받게 될 것 같아요. 누구든 아는 사람에 대해서는 고정관념이라는 게 있잖아요. 내가 그려놓은 그녀의 이미지들이 있으니까요. 그런 것이 아니라 ‘나와 네가 똑같은 엄마다, 똑같은 여자다.’라는 생각으로 이 책을 접한다면 그녀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되고, 그녀를 통해서 나를 보게 되고 이럴 수 있을 것 같아요. 많은 분들이 공감해 주셨으면 좋겠어요(웃음).

 

인터뷰이의 자녀들이 부모의 직업을 따르거나 따르고 싶어 하는 모습이 흥미로웠습니다. 역시 부모는 자식에게 과연 엄청난 영향을 주는 존재가 아닐까 싶은데요. 

 

맞아요. 절대적이죠. 그만큼 어렸을 때 환경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환경에 놓였느냐에 따라 새로운 꿈을 꿀 수도 있는 거고요. 저 역시 부모님이 제가 방송인이 되는 꿈을 말렸다면 못했을 수도 있겠지만 부모님은 제게 마음껏, 도와줄 수는 없지만 네가 한 번 찾아보라고 하셨어요. 밥상머리 교육이 정말 중요하다고 하잖아요. 황연정 기장님도 밥 먹을 때 아이들과 비행용어 같은 걸 쓴다고 했는데요. 그런 것들이 아이들한테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면서 내 부모가 그 일을 열심히 해내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저 일을 해야지.’ 하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어릴 때 보고 듣고 하는 게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방송을 직업으로 하는 부모로 산다는 건 박경림 씨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잘 살아야 될 것 같아요. 진짜로요. 어떻게 보면 대중에게 인정받는 것보다 가족들에게 인정받는 게 훨씬 더 힘든 일일 거예요. 모든 직업이 그렇겠지만요. 방송일이 대중을 상대로 하고, 많은 사람을 상대로 하지만 정해진 시간에 방송을 하는 것보다 평소 생활에서 가족들과 부딪히는 게 훨씬 많잖아요. 제일 안쪽에 있는 것을 다 보여줄 수 있고요. 방송인으로서도 그렇고 엄마, 아내, 며느리, 딸로서도 잘 살아가야 하죠. 이 두 가지 모습이 달랐을 때 가족들이 받을 충격은 훨씬 클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방송이 제 생활 같고 생활이 방송 같게 하려고 참 노력을 많이 해요. 그게 중요한 것 같아요. 가족은 가장 가까이서 보는, 솔직한 대중이기 때문에 저는 항상 가족도 시청자, 청취자라고 생각을 해요. 이들에게 모습이 다르고, 대중에게 모습이 다르면 얼마나 배신감을 느끼겠어요.

 

앞으로 아이가 클수록 이런 부분이 더 고민되실 것 같아요.

 

환경에 따라서 아이의 꿈이 바뀐다고 했는데요. 저는 아이가 원하는 거면, 본인이 해서 행복하고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이면 절대적으로 하라고 할 것 같아요. 그러나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정신적으로 힘들 수도 있고, 이겨내고 극복해야 될 일들이 있잖아요. 그러니까 대중의 평가라든지 악플이라든지 이런 것까지도 네가 극복해낼 수 있는 정신력을 갖췄을 때 해라, 그러면 얼마든지 좋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이 일은 보여주는 게 끝이 아니잖아요. 평가를 계속 받는 직업이기 때문에요. 물론 어떤 일이든 다 그렇죠.

 

책에서도 육아 프로그램 제안이 많이 오지만 아이 스스로가 선택할 수 있을 때까지 지켜봐주고 싶다고 말씀하셨어요.

 

부모의 가치관이나 생각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누가 옳고 그르다는 건 없지만요. 저는 일단 아이가 이런 환경을 보고 정말 좋을 것 같아서 ‘엄마, 하고 싶어요.’ 그러면 반대할 생각은 없는데요. 내 필요에 의해서, ‘얘가 나한테 좀 도움이 되겠다.’(웃음) 그렇게 해서 아이가 혹시 피해를 받을 부분이 생기면, 그런 것에 대해서는 조금 더 시간을 두고 아이 선택에 맞춰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지만 육아 예능을 해서 굉장히 친근하고, 사랑을 받은 긍정적인 분들이 많잖아요. 저도 정말 좋아하고요. 또 그 자체가 아이에게 정말 좋은 추억도 될 수 있고, 그런 건 그분들의 선택이니 존중하고요.

 

저도 그렇지만 남편과 일단 상의를 해야 하는데 제 남편은 그래요. 본인은 성인이 돼서 박경림이라는 사람을 자신이 선택했잖아요. 마음의 준비를 하고 선택한 거니까 노출이 되고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하는 부분을 자기가 감수해야 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하는데 아이는 그렇지 않지 않느냐고 해요. 아이의 의견이 있을 때까지는 지켜봐야 하지 않느냐고 얘기를 하더라고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부모님께서 박경림 씨가 방송을 하겠다고 했을 때 수용적으로, 포용적으로 대했던 양육태도를 그대로 자녀에게 하시려고 노력 중인 거군요.

 

네. 제가 그렇게 컸고요. 누가 봐도 이 길은 잘못된 길이다, 정말 안 되는 거라고 하면 당연히 부모가 잡아줘야겠죠. 그게 아니라 본인이 찾고 무언가를 원하고 갈구하고 갈망하고 이런 건 굉장히 좋은 거라고 생각해요. 사람에 따라선 부모가 풍족하게 해주는 것도 좋다고 생각하겠지만 저는 궁핍이 주는 뭔가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스스로 찾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환경은 만들어주겠지만 다 먹여줄 수는 없잖아요. 사랑하는 방법이 다 다르겠지만 저는 그 방법을 별로 택하려고 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아직도 매일매일, 어느 날은 얘가 힘들 것 같으니까 ‘도와줘야겠다.’ 하고 어느 날은 ‘아니야, 강하게 해야 돼.’ 그러고 있어요(웃음). 그렇지만 핵심은 분명하죠.

 

아픔 없이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그것이 때로는 무엇보다 강한 위로가 된다. (47쪽)

 

‘포기하고 싶을 때’, ‘후회되는 것’ 같은 질문을 하셨는데요, 그런 시기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있었죠. 모든 엄마들이 다 똑같은 경험을 했을 텐데요. 아이가 20개월 안팎 즈음해서 세 돌까지는 정말 안 떨어지려고 해요. 아이 낳고 한동안 쉬다가 못했던 일을 다시 시작했을 때였어요. 저는 다시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나갈 때 매일매일 문 앞에서 전쟁이었어요. 안 떨어지겠다고 울고불고 ‘가지 마세요.’ 그러면 그때 혼란이 오는 거죠. 내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게 가정의 행복이고, 가장 중요한데, 또 아이를 책임져야 하는 엄만데, 일보다 아이인데, 내가 무엇을 위해서 이러고 있나, 그만 둬야 하나, 아이 곁에 있어줘야 하나, 이런 혼란을 매일 겪었던 것 같아요. 힘들었죠. 일을 잠시 내려놓아야 하나 그런 생각도 많이 했었던 것 같아요. 실제로 일을 많이 줄였고요. 이때 아이 옆에 없으면 평생 아이에게 미안해하면서 살아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죄의식도 있었고요. 왠지 아이가 기억할 것 같고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드는 거예요. ‘엄마 그때 내 옆에 없었잖아요.’이럴 것 같고 말이에요. 분리 불안이 생길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고요. 힘들었어요.

 

아이가 우는데도 출근해야 했던 사연(84쪽)을 책에서도 언급하셨습니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 고민을 것 같은데요. 일과 육아의 균형을 어떻게 잡으려고 노력하시나요?

 

인터뷰이들 중 절반은 ‘그때 있어줘야 한다.’ 해서 진짜 일을 그만 두신 분도 계시고, 아이를 다 키워놓은 다음 일을 시작하신 이영희 선생님도 계시고, 참 다양해요. 반면 ‘아니다 그래도 일을 해야 된다.’ 하는 분도 계셔요. 엄마마다 다 다르고 정답이 없는 거겠죠. 다만 저 같은 경우는 일을 조금 줄이면서도 일을 놓진 않았어요. 최윤영 아나운서 같은 경우 아이 때문에 사표를 냈지만, 사표를 내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절대 그러지 말라고 얘기를 하시잖아요. 자신의 경험에 의해서 힘들지만 이겨내야 된다고 말씀하시는 분도 있고요. 각자의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것 같아요. 제가 찾아낸 방법은 주중에는 하고 있는 일을 최선을 다해서 하고, 주말에는 되도록 정말 특별한 일이 아니면 일을 안 잡고 아이와 놀아주는 거예요. 그런데 아이 입장에서, 주중에 전혀 못 보다 주말에 이러면 혼란스러울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주중에는 일 위주로 하지만 일찍 들어가는 날이나 빨리 끝나는 날이면 되도록 아이와 이야기를 많이 해요. 생각해 보니까 제 삶이 없네요. (웃음) 주중에도 그렇게 주말에도 그렇고요. 제 삶도 생기겠죠. 처음부터 다 가질 수 없고 서서히요. 나중에는 제 삶을 갖기 싫어도 제 삶만 있을 수 있잖아요. 아이가 안 놀아주고 아무도 안 찾아주면요. (웃음)

 

모두 다르지만 독자들 역시 책을 보면서 각자의 균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럼요. 결국은 다 찾게 돼요. 혼란스럽고 힘들고 한동안 그렇지만 그래도 하루하루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찾을 수 있게 돼요. 하루는 친정에 맡기고, 하루는 시댁에 맡기고 하면서요. 심재명 선배님 인터뷰에서 나왔지만 아이 하나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하잖아요. 결국은 찾게 돼요. 이게 굉장히 책임감 없는 이야기 같지만 그렇게 다 버텨나가고 그러면서 사는 것 같아요. 서로 도와주고 그러니까요. 저도 예전에는 식당에서 애가 울거나 말거나 자기 밥 먹는 엄마 보면 ‘너무 했네.’ 이런 생각 했는데요. 지금은 너무 이해가 가요. ‘그래 엄마도 먹어야지, 얼른 먹어야 달래주지.’ 이런 생각이 드니까요. 애들 뛰어 다니고 그러면 옛날엔 왜 저렇게 정신없게 그러나 했는데 지금은 ‘아이는 뛰어 다녀야 아이지.’ 이런 생각이 들고요. 엄마와 눈 마주치면 ‘제가 아이 좀 안아드릴까요? 식사 하실래요?’그게 되는 거죠. 잘 아니까요. 자기 삶이 없어요. 밥을 입으로 먹었는지 코로 먹었는지도 모르는데요. (웃음)

 

‘아이를 키우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정말 맞는 것 같아요. 요즘은 엄마 혼자 육아를 담당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많아요. 게다가 그래야 한다는 분위기도 있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고 서로가 돕고 그러면 좋을 것 같아요. 사실 어른들이 아이를 정말 잘 보시잖아요. 풀어놓아 주시고요. 울면 ‘아이고 노래 잘한다.’(웃음) 그러시고요. 기저귀를 갈아줘야 하거나 젖을 물려야 하거나 이런 일이 아니고서는 편안하게 아이들이 느끼고 스스로 하게끔 하시는 여유가 있으시잖아요. 경험은 절대 무시할 수가 없는 것 같아요.

 

엄마도 숨통은 트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어떻게 보면 밖에 나와서 일하는 게 감사하게도 숨통이 트이는 부분인 거죠. 사람들과 소통하고, ‘그 집은 그렇습니까? 우리는 이래요.’ 이렇게 얘기할 수 있다는 것이 참 감사해요. 그렇지 않은 엄마들이 정말 많거든요. 어디 가서 내 얘기 할 데도 없고요. 저는 시부모님과 같이 사니까 편하게 일하러 나와 있을 수도 있는 거니까 더욱 다행이죠. 진짜 아이를 어디에 맡길 데 없는 엄마들이 많거든요. 라디오에도 사연 정말 많이 와요. 엄마들이 힘들죠. 게다가 아이만 키우는 게 아니라 살림도 함께 하는 것이 너무 힘들잖아요. 저는 아마 명함도 못 내밀 거예요.

 

힘들었던 경험이 나를 또 강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저도 예전에는 많이 불안해하기도 하고 많이 흔들리고 그랬어요. 지금은 그냥 내가 마음을 다잡고 내가 중심을 잡아야 나를 지켜보는 사람들도 편안하고 그렇다는 걸 알게 됐죠. 아이에게도 나의 불안함이 다 보일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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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는 누군가의 ‘엄마’들을 인터뷰하고 싶다

 

책에 소개한 엄마들 외에 추가로 인터뷰 하고 싶은 분야의 엄마가 있다면요?

 

이번에는 이름 들으면 다 알 만한 분들이 정말 감사하게도 인터뷰에 모두 흔쾌히 응해주셔서 그렇게 됐고요. 저는 우리 주위의 엄마들, 각 분야에 일하는 엄마들 인터뷰를 해보고 싶어요. 다른 하나는요, 저는 엄마가 누군가를 믿어준다면 그 힘이 엄청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누가 믿어주는 것보다 말이에요. 엄마는 그런 힘이 있잖아요. 저 역시도 부모님이 믿어주셨고요. 그래서 우리가 아는 누군가의 엄마들을 인터뷰 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어요. 우리가 아는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의 엄마요. 운동선수나 기업인, 어떤 분야든지 상관없어요. 그들의 엄마가 어떻게 자식을 믿어줬는지 듣고 싶어요. 엄마의 역할이 참 다양하겠지만 저는 가족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믿어주고 말해주고 이런 역할이 굉장히 크다고 생각하거든요. 우리가 가진 힘을 100배 1,000배 크게 해줄 수 있는 존재기 때문에 누군가의 엄마들을 만나보고 싶어요.

 

인터뷰를 하고 싶었지만 섭외가 여의치 않았던 경우도 있었나요?

 

한 두 건 정도 있었지만 스케쥴이 안 맞아서였어요. 섭외는 됐지만 저와 시간이 안 맞아서 못한 분이 한두 분 계셔요. 그렇지 않고서는 정말 감사하게도 다 됐어요. ‘생각해볼게요.’ 이러지도 않으셨어요. 감사하게 다들 좋다고 하셨어요. 모두.

 

아직까지도 엄마로서의 박경림보다 방송인으로서의 박경림이 훨씬 익숙합니다. 엄마가 되고 나서 일이나 삶에 대한 태도가 달라졌다면 어떤 점이 있을까요?

 

일단 엄마가 되고 나서 중심이 많이 선 것 같아요. 예전에도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고 늘 생각하면서 살았지만요. 지금은 믿어주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추가된 것 같아요. 엄마로서 책임감이 생기니까 믿어줘야 되겠다는 생각을 해요. 또 엄마가 되고 나니까 엄마들을 알게 된 것이 있어요. 이제 아이를 7년 키워봤기 때문에 다 알지는 못하지만요.

 

우리네 엄마들은 팔 남매, 육 남매 막 이렇게 키우셨잖아요. 바람 잘 날 없고 이 아이가 잘 되면 이 아이는 잘못되고 힘든 일들을 겪으신 것에 비하면 제가 아직 부족하지만, 제가 엄마가 되고 나서 느낀 건 딱 하나예요. 엄마는 위대하다, 엄마는 엄마가 없는 사람에게도 정말 필요하다. 인터뷰에서 박은혜 씨도 그런 말씀 하셨고 신은정 씨도 그런 말씀을 하셨는데요. 엄마가 돌아가신 분들도 계시고 사정상 엄마와 함께 하지 못하는 분들도 있지만 엄마라는 존재는, 엄마는 꼭 필요한 것 같아요. 꼭 낳아준 엄마가 아니더라도 엄마라는 존재는 인간의 삶에 있어서 꼭 필요한 존재가 아닌가 생각해요. 서로서로가 많은 사람의 엄마가 되어줘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아버지야말로 또 대단하신데, 제가 아버지의 삶을 살아보지 못해서요. (웃음) 저는 딸로 태어나서 살다 아내, 며느리가 되고 엄마가 되는 삶을 살았기 때문에 제가 느끼는 것에 대해서는 얘기할 순 있지만요. 엄마가 낳은 아들들, 또 아버지가 되는 과정도 정말 대단한 것 같아요.

 

“주변 사람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희망을 말하고 싶다(130쪽)”고 하셨어요. 엄마가 될 많은 젊은 여성들에게, 엄마가 되는 것이 두려운 젊은 여성들에게 건네는 희망의 말을 전해주세요. 

 

엄마가 될, 미래의 엄마들, 지금의 딸들에게 제가 감히 말씀을 드리자면요. 엄마가 될 것을 준비하고 엄마가 되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웃음) 저 역시도 어떻게 하다 보니까 엄마가 됐고, 하루하루 너무나 서툴고 부족하고 그래요. 그러면서 점점 엄마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딱 하나는 분명한 것 같아요. 엄마가 되면서, 그리고 엄마가 되어 가면서 책임감도 많이 생기고 더 두려워지는 것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가 있으니 존재하는 누군가가 또 있다는 것 말이에요. 그리고 그에게 힘을 줄 수 있는, 위대한 존재가 될 수 있는 우리 미래의 어머니들에게, 멋진 엄마가 되어 주시기를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어떤 것을 이루고 안 이루고 보다 중요한 건 품느냐 안 품느냐인 것 같아요. 그 꿈, 품으시고요. 엄마가 되는 것도 꿈일 수 있겠네요. 멋진 꿈 이루실 수 있게, 품으실 수 있게 제가 같은 엄마로서 항상 응원하겠습니다. 미래의 어머님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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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꿈박경림 저 | 문학동네
박경림은 이 책에서 18명의 엄마에게서 듣고 깨닫고 배운 것들을 각각 18편의 에세이로 풀어내며 ‘엄마의 꿈’을 완성해냈다. 그녀 스스로 일찌감치 자신의 꿈을 결정하고 엄마가 된 이후에도 육아를 병행하며 그 꿈을 완성하기 위해 노력해온 한 사람의 ‘꿈꾸는 엄마’로서, 재기발랄하고 똑부러지는 ‘네모공주’가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가면서 맞닥뜨린 여러 가지 문제와 고민들을, 동시대 엄마들과의 소통과 공감으로 풀어가는 과정은, 우리 시대 엄마와 여성들에게 가슴 뜨거운 응원과 희망의 메시지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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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세에 800km 국토종단, 67세에 4,200km 국내 해안일주, 산티아고, 네팔, 홍콩, 몽골, 동티베트, 아이슬란드, 시칠리아 등 50개국 여행, 75세에 여덟 번째 지리산 화대종주 완주.


이 압도적인 기록의 주인공은 그러나 소녀 같은 미소와 차분함, 매순간 작은 것에 감동 받는 높은 감수성의 소유자다. 그녀는 꽃 한 송이, 나무 한 그루가 눈물 나게 아름답다. 책 읽기와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한다. 나이가 들었어도 남편은 절대로 곁에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 그녀가 말한다. “많이 살고 싶어요.”라고. 

 

초등학교 선생님이던 저자 황안나는 쉰여덟의 어느 날 학교를 그만두기로 한다. ‘나를 찾기 위해서’ 내린 선택이었다. 그리고 길을 떠났다. 열정 넘치는 도보여행가의 탄생이었다. 사람들은 그녀에게 너무 늦었다고 말했지만 늦은 일이란 없었다. 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사진도 배웠고, 체력도 훨씬 좋아졌고, 어렸을 때 꿈이던 작가의 꿈도 이뤘다. 길이 그녀에게 건넨 수많은 선물들을 생각하면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무엇보다 매순간이 참으로 소중하게 느껴진다.

 

삶을 막아서던 혹독한 시련과 뜨거운 욕망을 묵묵히 견뎌내지 못했다면 일상의 고마움을, 저 들꽃 한 송이의 고마움을 알 수 있었을까. 숱한 시간을 견디며 조금씩 삭혀온 늙은 가슴속엔 잔잔한 평화가 깃들었다. (177~178쪽)

 

사람들이 도전을 망설이는 것은 상상 탓일지도 모르겠다. 해보지 않은 것은 어렵게 느껴지기만 한다. 그러나 일단 한 걸음 내딛으면 도전은 더 이상 근접 불가의 영역이 아니게 된다. 내 생활 안으로 들어온 단단한 현실일 뿐. 도전 앞에서 저자 황안나는 스스로에게 말한다. “하는 데까지는 해보자.”

 

네 번째 책이다. 저자는‘책이 부끄러워요!’하며 수줍게 웃었다. 책으로 내려고 쓴 글이 아니라 그저 매일의 단상을 블로그에 끼적인 글들이라 누가 책을 샀다고 하면 부끄럽고 미안하다고 하며 가만히 웃었다. 그 웃음이 가을하늘처럼 맑고 청명해서 가슴이 시원하고 또 훈훈해졌다. 열정이 가득한, 청년 못지않게 젊은 삶을 살아가고 있는 도보여행가 황안나. 그녀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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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순간이 정말 소중하다 

 

매일 새벽 5시 40분에 헬스장에 다녀오신다고 하셨어요. 오늘도 운동하고 오셨어요? 게을러지고 싶으실 때도 있으실 것 같은데요.


14년째 다니고 있어요. 새벽 6시 정각부터 두 시간동안 해요. 특별한 일 있을 때는 운동량을 좀 줄이기도 하고요. 사람들이 저더러 ‘오래 살려고 운동하느냐?’ 하는데 그건 아니에요. 다른 이들처럼 다이어트 하려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요. 제가 원하든 원치 않든 백 세 시대라고 하는데 사는 날까지는 제 힘으로 움직이다 죽어야겠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운동은 꼭 해요. 지난 1일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 숲을 갔다 왔는데 동행했던 사람이 그러더라고요. ‘선생님, 역시 나이 앞에 장사가 없군요.’라고요. 전에는 매일 선두에서 날아다녔어요. 칠십대 초반까지도 훌훌 날아다녀서 늘 선두에 섰는데요. 올해는 일흔여섯이 됐잖아요. 이번에는 중간 그룹 뒤쪽에서 갔어요. 이렇게 서서히 힘이 빠지는 거죠. 그래도 다니면서 ‘내가 일흔다섯까지는 다니겠지.’ 했는데 어쨌든 일흔여섯에도 시작은 했어요. 이제 나이가 있으니까 어딜 가든 여기가 이번에 온 게 내가 마지막일지 모른다고 생각하고 다녀요. 꽃 한 송이, 나무 한 그루도 눈물 나게 아름다워요. 다른 사람들이 느끼는 것보다 배로 더 감동이 오죠.

 

풍경 하나하나에 집중하고 야생화 같은 작은 것에도 감동하는 모습이 참 좋았습니다. 자연, 풍광, 이런 것들이 선생님께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


사람들은 제가 풍경에 감탄사를 너무 남발하니까 주책 할머니로 보일 텐데요. 감동이에요. 어딜 가든 말이죠. 전에는 사진도 아름다운 것만 찍었는데 지금은 눈밭에 앉은 새 한 마리 같은 것도 눈물 나게 다가와요. 그러니까 그런 걸 많이 찍게 되죠. 다른 사람들은 경치 좋은 거 찍을 때 나는 삭아가는 나뭇잎이라든지 하는 것들이요. 보는 것, 듣는 것마다 정말 소중해요. 순간순간이 정말 소중한 거예요. 어떤 분들은 농담처럼 소녀 같다고 하는데 좋게 말해서 그렇지 주책이겠죠. 너무 심하게 감동 받으니까요(웃음). 남들이 우리보고 닭살 부부라고 하는데요. 젊은이들이 보는 그런 기준의 닭살 부부가 아니라요. 함께 고생도 많이 했고, 함께 이 나이까지 살아왔고, 앞으로 함께할 날이 얼마 안 남았잖아요. 그러니까 어딜 가든 손잡고 다니는 거예요. 

 

애칭이라는 ‘오볍씨’를 보고 저도 모르게 미소 짓게 됐습니다. 요즘은 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도 많잖아요. 즐겁고 건강한 관계를 오래도록 유지하는 비결이 있을까요?


며칠 전에 남편이 그러는 거예요. “여보, 나도 책을 한 권 내야겠어.”라고요. 웃지도 않고 워드도 안하는 사람이 뜬금없이 책을 낸다니 의아해서 바라봤더니 “내가 제목을 다 정했어.”그래요. 제목이 뭐냐고 물으니까 “여보 어디가?”래요(웃음). 그래서 한참 웃었죠. 한참을 웃다 보니 그 다음에는 가슴이 아프더라고요. 늙은 남편을 집에다 혼자 두고 얼마나 내가 많이 다녔는지 말이에요. 저는 거의 30년 가까이 절대빈곤으로 살았어요. 그러다 어느 날 60살을 코앞에 두고 나니 그동안 살면서 나는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슴 속에 한이 너무 많이 서렸던 거예요. 아마 그대로 노년을 맞았으면 한이 너무 많았을 거예요. 그런데 나는 길 위에서 다 풀어냈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즐겁게 사는 거예요. 해안길 4,000km가 넘는 길을 사 개월 걸려서 걸었거든요. 두 번을 그랬어요. 예순일곱 살에 한 번 걸었고 일흔셋에는 되나 안 되나 궁금해서 걸었죠. 궁금한 건 해봐야 하잖아요. 나는 길을 걸으면서 다 풀었어요. 다 풀고 나니 삶이 정말 즐거운 거예요. 한풀이로 길을 걷다 보니 이제는 길중독이 돼서 걸핏하면 배낭 메고 나서거든요. 게다가 최근 몇 년은 방송, 강연, 결혼 주례, 인터뷰 같은 것들로 계속 나갔어요. 그러니까 우리 남편이 아침에 눈 뜨면 ‘여보 오늘은 어디가?’하더니 글쎄 ‘여보 어디가’로 책을 내겠대요. 나를 아는 사람들은 내가 그 얘기를 하니까 전부 뒤집어지게 웃어요. 그래서 올해는 일을 좀 정리하고 남편과 보내는 시간을 많이 가질 생각이에요. 영화도 보러 다니고 하려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획이 또 생겨요(웃음). 근데 어떻게 다 욕심을 내겠어요. 


50대 후반 쯤 되면 부부지간에도 그냥 소 닭 보듯 하게 되더라고요. 저는 강연 가면 아무리 의(義)가 좋은 부부라도 때로는 좀 떨어져 있어야 한다고 말해요. 함께도 해야 하지만 따로도 있어야 된다는 얘기를 하는데요. 장기 도보여행을 하면서 혼자 모든 걸 해야 하니까 연애 시절처럼 애틋하게 남편이 보고 싶고, 남편의 좋았던 점이 떠오르면서 ‘내 남편이 참 괜찮은 남편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고 사무치게 보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그런지 다른 부부들보다는 각별하게 지내는가 봐요. 집에 있을 때는 최선을 다해서 남편에게 삼시 따끈따끈한 밥 해줘요.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좋아하는 건 해주려고 노력해요. 근데 사람들이 깜짝 놀라는 거예요. 그렇게 다니면서 어떻게 다 하냐고요. 그렇게 해야 하기 때문에 평소에 일을 참 많이 해요. 저는 그렇게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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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누릴 줄 아는 사람의 몫

 

‘행복은 누릴 줄 아는 사람의 몫’이라는 말씀을 여러 번 하셨어요. 선생님이야말로 누구보다 삶이 주는 기쁨을 감사하게 누릴 줄 아는 분 같습니다. 긍정적인 태도가 선생님의 삶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나요?


나는 오래 살고 싶진 않아요. 많이 살고 싶어요. 저는 다른 사람의 하루보다 활동 시간이 많아요. 한 달에 책을 열 권 이상 보거든요. 영화도 한 달에 네 편에서 다섯 편 가량 봐요. 요즘은 블로그를 좀 게을리 하지만 야후 블로그 때는 많이 들어오면 이삼만 명, 제일 안 들어오면 칠팔천 명은 들어왔어요. 초등학생부터 70, 80대 노인까지 다양하게요. 야후 하면서 해외에 사시는 교수님들 그런 분들을 많이 사귀어서 초등학교 선생 출신 할머니가 사귀고 지내는 분들이 참 많아요. 대학생 친구도 많고요. 주로 내가 가서 밥 사줘야 해요(웃음). 걔네들이 사회 나와서 결혼한다고 해서 주례도 섰고요. 남들보다 많이 사는 거 맞죠?


맨 처음 나간 책에 쓴 말이 ‘행복은 누릴 줄 아는 사람의 몫’이라고 했는데요. 제가 동대문 달동네 살 때예요. 사글세방인데 부엌도 없는 문간방이었어요. 연탄아궁이 하나 있었어요. 거기에 사과 궤짝 하나 놓고 스텐 공기 네 개 놓고 살았죠. 그래도 양은 주전자에 물 끓여 스텐 공기에 커피를 타고 냉방이다시피 한 방에서 이불 뒤집어쓰고 앉아 있으면 행복했어요. 근데 안채에 세 들어 사는 할머니가 툇마루에 앉아서 나를 보고 이러는 거예요. ‘우리 딸이 사위가 돈 못 벌어온다고 싸워서 내가 애기 엄마 얘기를 했다. 그렇게 사는 여자도 있는데 뭘 그러냐.’고요. 처음에는 기분 더럽더라고요. 나를 보고 이렇게 사는 여자도 있다고 하니까요. 그래도 누군가에게 위로가 된다면 그것도 괜찮다고 생각했는데요, 사실 그때 나는 그렇게 불행하지 않았어요. 희망이 있으니까요. 이불 둘러쓰고 앉아 깨진 라디오를 들으면서 ‘참 좋다.’ 그랬거든요. 그러니까 제가 그런 말이 나온 거예요. 행복이 누릴 줄 아는 사람의 몫이라고요. 엄청 많이 가진 친구가 나만큼 안 행복하더라고요. 저는 긍정적으로 살았어요. 퇴근길에 떨이 장미를 사서 소주병에 꼽기도 하고요. 연탄도 한꺼번에 들여놓질 못해서 새끼줄에 몇 개 구해서 살 때인데도 괜찮았어요. 하도 밝게 사니까 친구가 나중에 그러더라고요. 제가 좀 나사가 빠진 줄 알았대요. 그러고도 실실대고 웃었으니까요. 

 

걷기가 성격도 변화시켰다’고 하셨잖아요.


제가 아주 내성적이에요. 노래방을 죽어도 안 가요. 음치도 아니고, 음악 시간에 애들 음악 지도도 하고 그랬는데 이상하게 노래는 죽어도 안 부르려고 그래요. 그런 성격이에요. 체육 시간도 싫어했어요. 우리 반 아이들 앞에서 뜀틀 넘는데 실수를 해서 아이들이 웃으면 어떡하나 고민하는 이런 성격이에요. 그런데 걸으면서 아주 활달해졌어요. 아마 하느님께서 제 그런 성격을 고쳐주시느라고 그런 시련을 주셨나 봐요. 공부를 좀 잘했으니까 공부 못하는 친구들 좀 깔봤어요. 잘난 척을 좀 했고요. 그런데 그런 게 전부 없어지고 모난 성격, 까다로운 성격도 좀 둥그러지고요. 인내심도 생겼고요. 많이 변했죠.


식성도 그래요. 김치하고 밥 외에는 먹는 게 없었어요. 절대빈곤으로 오래 살다보니까 신김치만 밤낮 먹고 살잖아요. 30년 가까이 그러니까 뷔페에 가서도 저는 김치 먹었어요. 근데 길을 걷다 보니까 달라졌어요. 4개월 씩 해안일주 걸을 때인데요. 비수기의 바닷가는 슈퍼도 문을 닫았어요. 피서철, 봄에서 가을까지만 하고 음식점도 닫아놓은 데가 많아서 고생을 많이 했죠. 굶다가 식당에 들어가면, 게다가 혼자 들어가면 혼자라 싫어하지만 아무거나 편한 거 달라고 했어요. 라면을 안 먹었는데 걸으면서 라면도 먹고요. 그러니까 성격, 식성이 걸으면서 다 바뀐 거죠.

 

대단한 열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무엇이 계속 선생님을 길에 오르게 하는 걸까요?


몸살 기운이 있어서 아프다가도 배낭만 메고 길 위에 서면 정말 자유스러운 거예요. 현대인들은 시간에 쫓겨, 시간의 부림을 받고 살잖아요. 그런데 일단 길 위에 서면 그 시간들을 내 맘대로 할 수 있어요. 먹고 싶은 거 먹고 그만 걷고 싶으면 그만 걷고 더 걷고 싶으면 더 걷고요. 오늘은 밥 먹기 싫다, 그냥 걷자 하면 안 먹어도 되고요. 시간을 내 마음대로 부리니까 그것 때문에 자유스럽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또 나이 들어가니까 자연과의 만남이 정말 좋아요. 짜증나고 스트레스 받고 했던 걸 다 잊어버리게 되니까요. 그래서 자꾸 나서게 돼요. 길 떠나면 고생이라고 하는 말이 오죽하면 있어요. 더군다나 혼자 길 걷는 건 말도 못하죠. 그래도 그런 자유스러움, 편안함이 좋아요.


나는 남달리 호기심이 많아요. ‘저 모퉁이를 돌아가면 어떤 마을이 있고 어떤 사람들이 살까?’ 이러니까 자꾸 나서서 걷게 돼요. 세상이 얼마나 무서워요? 그래도 이 세상은 살아볼 만해요. 좋은 사람들이 더 많아요. 길에서 만난 좋은 사람들에게서 또 많이 배웠고요. 부끄러웠고요. 그러니 자꾸 나서게 돼요.

 

그렇게 다닐 수 있는 것도 가족의 응원이 있으니 가능할 것 같아요.


자다가 남편 등이 만져지잖아요? 근데 어제 저녁에는 문득, 우리 남편이 건강이 많이 약해져서 함께 할 날이 얼마 안 남았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어느 날, 내가 먼저 갈지도 모르지만 남편 떠나고 나서 한밤중에 아무것도 안 잡혀질 때를 생각하게 됐어요. 슬픔을 가불해서 엊저녁에는 좀 질금댔어요. ‘여보 당신 아프지 말고 내 곁에 오래오래 있어줘야 돼.’했어요. 자다가도 어떤 때는 괜히 잠자는 남편 손을 끌어다가 만지기도 해요. 그게 닭살 차원으로 보고 웃을 얘기가 아니라, 혼자 남을 날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해야 되는데요. 남편 가고 나서 만약에 그때까지도 체력이 있다 해도 남편 없는 빈집에 들어올 자신이 없어서 나는 못 걷겠구나, 이런 생각을 해요. 아니면 길을 떠났더라도 집에 들어갈 용기가 안 나서 마냥 걸을지도 몰라요. 그래서 요즘 슬픔을 가불한다니까요. 그러다 보니까 남편한테 짜증나고 화나는 일이 있어도 금방 수그러들고 남편 다독이게 돼요. 어제는 피곤해서 제가 오후 네 시쯤 잠이 들었어요.

 

소파에서 책 보다가 잠이 들었는데 자다보니까 남편이 이불 갖다 덮어주고, 작은 난로 인형을 데워서 이불 속에 넣어줬더라고요. 그런 하나하나가 눈물겨운 거예요. 언젠가 나 혼자 남았을 때 그런 거 해줄 남편이 없다는 걸 생각하면요. 다른 할머니들이 이상하다고 해요. 할머니의 오복이라고 하잖아요. 건강할 것, 돈이 있을 것, 딸이 있을 것, 친구가 있을 것, 남편이 없을 것(웃음). 근데 난 절대로 아니에요. 난 남편이 있어야 해요. 아파서 누워있어도 있어야 돼요. 누워있는 남편이라도 얘기할 상대가 있잖아요. 그래서 나는 죽는 날까지 남편이 있어야 된다고 하는데 친구들이 닭살이라고 하거든요. 아마 내가 안 걷고 그냥 살았으면 저 사람 때문에 내가 고생을 너무 많이 했다는 원망의 마음 같은 게 남아 있을 거예요. 그렇지만 지금은 진짜 고마워요. 그만큼 내가 하자는 대로 다 해주니까 무슨 한이 있겠어요. 아내가 나가서 도보여행을 하고 올 테니까 4개월 동안 혼자 밥 해먹고 빨래하고 있어라 하면 어느 남편이 좋아하겠어요. 걸을 때 진도에서 만났던 어떤 할아버지는 나한테 삿대질을 막 하면서 야단치더라고요. 시퍼렇게 화를 내면서 우리 마누라 같으면 난 당장 이혼이라고 해요. 내가 강연에서 회사원들에게 오늘 저녁 집에 가서 부인들이 4개월 동안 나가있겠다고 하면 허락할지 생각해 보라고 하면 전부 나가 자빠져요. 손을 흔들면서요. 근데 우리 남편은 걱정하지 말고 두 번 씩이나 갔다 오라고 해줬어요. 그뿐이에요? 스페인 산티아고 갔을 때는 70일이나 있었어요.참 고맙죠.

 

지치고 힘들 때도 있으실 텐데 정말 대단하네요.


일흔여섯 살짜리가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 숲 눈길을 올라가는데 칼바람이 불어서 목덜미가 얼더라고요. 그래도 찬바람에 두 뺨이 빨갛게 상기가 되고 코끝에 칼바람이 들어오는 게 정말 상쾌했어요. 재작년 겨울에 홍천강을 걷는데 너무 추우니까 강이 얼어서 얼음장이 쩡쩡 갈라지는 소리가 나요. 그날은 늦어서 밤까지 걸었어요. 달밤에 강물 언 얼음이 쩡쩡 갈라지는 소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남들은 추워서 못 간다고 하는데 저는 비오는 날 등산도 진짜 좋아해요. 우산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그 어떤 음악보다도 상쾌하게 들려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전천후로 다녀요. 어떤 때는 사과 넣어간 게 얼어서 이가 안 들어갈 정도로 그렇게 추울 때도 걸었어요.


지금이야 나이만큼 아프죠. 일흔여섯에 아무 데도 안 아프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고요. 비명소리 지를 만큼 아프지 않는 것뿐이지 기분 나쁘게 아파요. 근데 나오면 진짜 즐거워서 잊어버려요. 사람들은 내가 무슨 철인인줄 알지만 아픈데도 불구하고 나오는 거죠. 확실히 걷기 이후로 지금까지 감기 한 번을 안 앓았어요. 현직에 있을 때는 여름에도 감기를 앓았는데 말이에요. 나도 모르게 걷기 전도사가 됐어요. 저처럼 건강한 할머니도 없죠.


2년 전 KBS 생로병사의 비밀 특집에 나갔거든요. 종합병원에 가서 건강진단을 받았는데 신체 나이가 48세라고 나왔어요(웃음). 물론 저도 척추가 다른 노인들처럼 안 좋아서 재작년에 척추 수술을 받았어요. 근데 의사가 그 다음날로 병원 복도를 아무것도 안 짚고 걸어 다니니까 막 혼내더라고요. 처음 봤대요. 오죽하면 간병인이 할 일이 없어서 한 번도 나를 부축한 일이 없어요. 그게 다 걷기 덕이죠. 근육이 많이 생기더라고요. 다리가 단단해요. 그러니까 수술을 해도 근육이 감싸고 있으니까 지탱을 한 거죠. 퇴원해서 40일은 안정하라고 그랬는데 퇴원해서 20일 만에 박범신 문화여행을 따라갔어요. 그게 다 걷기가 준 선물이에요. 걷다가 보니까 건강해지고 성격 변하고 인생관 달라지고 그랬어요. 스트레스 받는 게 없어요. 전부 긍정적으로 생각을 하니까요.

 

인생 후반전은 걷기로 시작

 

걷기를 시작할 때 이런 삶을 상상하셨어요?


나는 교사될 생각은 없었고 작가가 되고 싶었어요. 서점에 가면 내가 대학교를 가서 작가가 되고 내 이름 적인 책을 여기 꽂아야지 생각했어요. 십 대 때 내 꿈이 그거였거든요. 근데 아버지 철도 공무원 월급으로 동생들이 다섯이나 있으니까 교사의 길로 들어설 수밖에 없었고, 아버지 쓰러지시고는 동생 다섯을 학비를 댔어요. 그렇게 살았죠.


그런데 내가 등단 작가는 못 됐지만 십 대 때 꿈을 예순다섯 살에 이뤘어요. 서점에 가서 내 책을 봤는데 어떤 아저씨가 내 책을 세 권이나 들고 계산대로 가요. 쫓아가서 내가 돈 내고 싶더라고요(웃음). 인생 65년 만에 자신에게 감동 받아보기는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딸 노릇, 어미 노릇, 언니 노릇, 누나 노릇 하느라 내가 없었잖아요. 그러다가 65세에 서울 대형서점에 내 책이 매대에 쌓여 있는 걸 봤을 때, 그때처럼 나 자신에게 감동한 날이 없어요. 주부들 만나면 가족이나 부모, 형제들에게 소홀히 하라는 게 아니라 다만 올인하지 마라, 나에게도 시간을 투자해라, 내 책상이 없으면 어떠냐, 그렇게 말해요. 나는 부뚜막에 앉아서도 책 봤어요. 나중엔 책도 못 사겠으니까 종로 서적에 들러 계단에 앉아서『토지』를 다 봤어요. 그런데 글쎄 예순다섯 살에 서점에서 내 책을 보았으니 정말 엄청나게 감동이었어요. 그런데 이게 네 권 째 나온 책이네요.


모든 게 걸었으니까 얻게 된 거잖아요. 나의 제 2의 인생이 시작된 건 정말 걷기예요. 삶 자체가 바뀌니까 책을 낼 만큼 할 얘기도 많았고요. 어느 날 보니까 내 이름 앞에 ‘도보여행가’라고 붙더라고요. 처음엔 아주 민망했지만요. 제 인생 후반전은 걷기로 시작됐어요.


느린 걸음으로나마 나는 여행을 계속할 것이다. 무엇이든 겁먹지 않고 시도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일흔다섯 할머니도 화대종주를 해낼 수 있다는 걸 보고 많은 분들이 용기를 내었으면 좋겠다. (111쪽)


도전을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시작이 반이라고도 하는데, ‘시작’에 도움이 될 만한 선생님만의 비법이 있나요?


얼마 전에 번지점프를 다 했다니까요. ‘남들은 다 하는데 내가 뭐가 어때서 못해? 정 무서우면 설마 죽겠어?’ 그렇게 생각해요. 나는 나를 극한 상황에 올려놓는 걸 해보려고 해요. 그러니까 100km를 잠 안 자고 밤새도록 걷는 거예요.

 

 미쳤죠. 잠 안자고 250리를 걷는 거예요. 그걸 두 번을 했어요. 한 번은 스물두 시간 만에 들어가고 한 번은 열아홉 시간 만에 들어갔어요. 그것도 미친 짓이잖아요. 그런데 남들이 모두 못한다고 하면요, 나는 꼭 성공하겠다고 하는 게 아니에요. ‘못하지, 그만 둬야지.’ 그게 아니라 ‘어디까지 가서 못하게 되나 보자. 하는 데까지는 해보자.’ 그렇게 생각하고 나서요. 50km가 넘어서니까 어쩌면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고요. 나중에는 뭐 감각이 없어요. 그냥 왼발이 나가면 오른발이 나가는 식으로 아무 생각도 없이 걸은 거예요. 음식점에 들어가는데 계단에 발이 안 올라가요. 그만큼 아주 진을 다 빼고 걸은 거죠. 그때도 제가 최고령이었어요. 매스컴들이 전부 난리 났었죠(웃음). 나 자신에 대한 오기인지도 몰라요. 그런데 이렇게 늙었으니까 이제 그런 짓 하지 말아야지 생각해요. 남들이 볼 때는 이걸 도전으로 보는 게 아니라 노욕으로 볼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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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길도, 고려산, 굴업도, 화암사처럼 잘 몰랐지만 책을 통해 알게 된 훌륭한 국내 여행지가 많습니다. 여행지에 대한 정보는 어떻게 얻으세요?


신문이나 뉴스를 통해, 혹은 SNS에서 보고 메모를 해요. 누가 어디 간다고 하면 그걸 보고 메모를 해요. 2월에는 지심도, 두미도를 가려고요. 지심도는 2월에 가면 섬 전체가 동백이에요. 섬도 자그마해서 한 바퀴 돌아보는데 두 시간 밖에 안 걸린대요. 근데 거기를 여태 못 갔네요.


아들, 며느리가 함께 여행 책을 많이 냈어요. 서로 정보 제공을 해요. 지난여름에 시칠리아를 다녀왔는데요, 아들, 며느리가 출판사와 협찬을 받아서 유럽 여행 중에 이태리를 간다고 하면서 시칠리아를 안 간다는 거예요. ‘거기 시칠리아 무슨 해변은 빼놓으면 안 돼.’ 그렇게 제가 말해서 거길 다녀왔죠. 아들은 내가 구례에 왔다 하면 ‘엄마 구례를 가셨으면 사성암을 가보세요.’라고 하고요. 저는 또 ‘전봉산을 갔더니 곰배령에 야생화가 한참 폈다. 해 넘어갈 때 찍어야 야생화 색이 아름답다.’ 알려주고 그래요.

 

자가용을 이용할 때,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여행의 느낌이 완전히 다릅니다. 하물며 도보여행은 어떨까요. 도보로 해안길 4,200km를 걸으셨는데 도보여행이 다른 여행과 다른 점이 있다면요?


기차나 비행기나 승용차 타고 하는 여행도 정말 많이 다녔죠. 남편하고도 많이 다녔고요. 승용차를 타고 동해안 역시 수십 번을 다녔어요. 그런데 이걸 내 발로 걸었죠. 최대한 바닷가로만 걸었어요. 군사 지역이나 절벽이 가로 막혔거나 이러면 할 수 없이 국도로 나가서 걸었지만 말이에요. 걸으니까 놓친 것들을 많이 봤어요. 차로 다니면 유명한 곳, 이름난 곳만 보게 되잖아요. 길가에 꽃 한 송이 피어 있는 것, 이런 건 걸어야 봐요. 그래서 요즘은 도보 여행을 많이 해요.


제가 전적으로 공감 했는데요 니체도 그런 말을 했더라고요. ‘걷기를 시작하면 사색도 흐르기 시작한다.’멈췄던 사색도 흐르기 시작한다고 했어요. 저는 길은 스승이라는 말도 해요.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갈등이잖아요. 선택의 연속이죠. 산다는 게 견디는 거니까요. 저는 부부싸움을 하거나 기분 나쁜 일이 있으면 부평 공원이라도 걸어요. 한 시간이나 두 시간 이렇게 걷다 보면 자연히 생각도 하게 되잖아요. 화가 나서 나갔지만 ‘내가 이렇게 했으면 싸움이 안 됐을 텐데 나도 잘못했구나.’ 이런 생각이 들고요. 원고가 전혀 안 써질 때도 나가서 걷다 보면 떠오르기도 하고 그래요. 해답이 생겨요. 일거양득이에요. 생각도 정리가 되고 건강에도 좋고요.

 

‘책에 묻혀 사는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 하셨는데, 최근에 읽은 책 중에 기억나는 책 추천해주세요.


밤을 꼬박 새워서 책 읽는 건 십 대, 이십 대가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나는 밤 꼬박 새워 책 읽는 것도 많이 해요. 저녁 밥 먹고 나서 읽기 시작해서 책장 딱 덮고 나면 다섯 시가 돼요. 그럼 우리 영감 아침밥을 해줘야 하고 나는 헬스장 가고 그래요.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도 밤 꼴딱 새워서 봤어요. 재미있어요. 그 작가 요나손이 쓴 『셈을 할 줄 아는 까막눈이 여자』 그것도 봤죠. 요즘은 종교, 철학, 인문 골고루 다 봐요. 강신주, 고미숙 작가도 좋았고요. 『책은 도끼다』박웅현 그 분 책도 다 사서 봤고요. 


곧 이사를 가요. 이제는 다 버리고 가야 하잖아요. 제가 책이 얼마나 많은지 방에 문 여는 곳만 빼고 사면을 꼭대기부터 방바닥에 이르기까지 책장을 짜 맞췄어요. 그것도 모자라서 다른 방에는 인문학 책만 다 있고요. 근데 어느 날 우리 아들, 며느리가 오더니 책을 다 보관하래요. 걔네가 은퇴 후에 지리산 어디쯤, 하동이나 함양이나 이쪽 가서 살겠대요. 그곳에 가서 동네 사람들에게 책사랑방 같은 것, 쉼터 같은 걸 제공하고 싶다고 책을 모아두라는 거예요. 그래서 이사를 가야 하는데 정리를 못하고 책을 끌고 가려니 짐이 엄청 많아졌어요. 요즘은 너무 바쁘다 보니까 안 읽은 책이 있어요. 제가 책에도 썼지만 적독(積讀), 사놓고 쌓아만 놓고 못 읽는 책들인데요. 그것만 봐도 흐뭇해요. 제가 예스24에 돈 진짜 많이 들였어요(웃음).

 

‘사전장례의향서’(184쪽)기록해 두신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내용 또한 검소하고 간결한 것을 원하셨어요. 막연하게 생각하시는 분들은 있겠지만 흔하게 작성하는 게 아닌데요.


누가 물어보더라고요. 만약에 비석을 세운다면 비문을 뭐라고 쓸 거냐고요. 화장할 건데 비석을 무엇하러 세워요. 그렇지만 만약에 그러면 뭐라고 할 거냐고 하기에 일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을 했어요. ‘이만하면 됐다’(웃음).


화장할 건데 왜 관을 비싼 걸 하고 수의는 또 몇 백만 원짜리 수의를 하나요. 모두 태울 거잖아요. 내가 친구들 보다 먼저 죽을지 나중에 죽을지 몰라요. 하지만 벌써 내 친구들이 힘들어서 못 다녀요. 백세시대라고 하지만 칠십은 칠십이야. 못 다녀요, 내 친구들이.


내가 생각하는 젊음은 외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자세에 있다. 이십 대라도 꿈과 열정이 없다면 노인과 다름없지만, 육십 대라도 열정을 가지고 꿈을 이루고자 열심히 살아간다면 굳이 사무엘 울만의 ‘청춘’을 거론할 것도 없이 분명한 청춘이다. (9쪽)

 

‘젊음은 살아가는 자세에 있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런 면에서 선생님은 청춘이세요. 하지만 우리 시대 젊은이들은 점점 더 시들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진로에 대해 고민하는 손녀에 대한 안타까움도 쓰셨는데, 그들에게 응원의 말씀을 전해주세요.


사회적인 책임도 너무 많아요. 요즘 젊은이들의 목표가 정규직이 됐잖아요. 젊은이들이 꿈이 없는 거예요. 손녀딸도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하면 되는데 취직부터 머릿속에 있어가지고는 힘들어해요. 더군다나 고민이 더 많겠죠. 조소과거든요. 취업하기가 진짜 힘든 거잖아요. 그게 너무 안타까워요. 요즘은 연애도, 미팅도 못한대요. 돈이 없어서요.

 

 나아가서 결혼도 안하고, 애도 못 낳고 그러다 보니까 40대만 돼도 얼굴에 어떤 활기라든지 그런 게 없어요. 다 지친 모습들로 40대에 벌써 시들었어요. 제일 걱정은 꿈이 없는 젊은이들이에요. 늙었어도 꿈이 있어야 하잖아요. 하고 싶은 일이 있어야 그걸 하느라 움직이게 되는데요. 손자가 대학을 어디가야 좋을지 아주 낙심천만이 돼서 웃지도 않고 어깨가 축 늘어져서 그러는데 하나마나한 얘기겠지만 대학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고 말해줬어요. 흔해 빠진 얘기라 도움은 안 되겠죠. 그래도 오죽하면 그래요. 왜 취직에 네 인생을 매다냐, 즐겁게 하다보면 길이 보인다고요. 어학연수를 가잖아요? 근데 나는 좀 다른 얘기를 했어요. 나가는 목적을 순전히 어학연수에다가만 두지 말고 너는 이태리나 유럽 쪽을 가서 건축물이나 조각물 관광을 하고 다녀라, 그런 것을 좀 보고 안목을 높여라 하고요. 어학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해외 유학 가는 목표를 어학연수에만 두지 말라는 얘기를 해요. 그렇지만 사실 꿈을 가지라는 말을 하기도 미안해요. 하지만 이것만은 확실해요. 할머니인 나도 꿈이 있으니까 밥을 굶을 적에도 빵 하나, 물 한 병 들고 운동화 신고 산에 다닌 거예요. 자기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즐거움을 찾아야 되잖아요. 앞날이 무궁무진하게 창창한 젊은이들이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아무런 꿈도 없이 사는 걸 보면 참 안타까워요. 젊은이들이 연애도 하고 젊음을 좀 즐겨야 되는데 말이에요.


젊은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하고 싶은 거 하라는 거, 꿈을 가지라는 거, 아주 흔한 얘기죠. 그런 말하기도 미안해요. 무슨 꿈을 어떻게 가져요, 우리 현실이 힘든걸요. 그저 안됐기만 하죠. 요즘 젊은이들한테 감히 내가 무슨 말을 하겠어요. 힘내라고 등이라도 한 번 두드려 줄까? 할 말이 없어요. 팔자 좋은 할머니가 참 꿈같은 얘기를 한다, 이럴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여튼 인생을 좀 멀리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한 번 뿐인 삶인데 어떻게 그렇게 삭막하게 살다가 인생을 마쳐요? 내가 하고 싶은 걸 해야죠. 근데 어려운 얘기예요. 젊은이들한테 한 말씀 해주세요, 난 그게 제일 힘들어요. 정말 가엾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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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은 즐기고 보련다황안나 저 | 예담
우주나이에 지지 않고 용감하게 자신이 가고 싶은 길을 향해 나아가는 그녀가 지난 17년간 걸어온 ‘두 번째 인생’ 이야기를 담아 『일단은 즐기고 보련다』라는 에세이집을 펴냈다. 이 책에는 지난날의 추억과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들, 그리고 우리나라 곳곳과 세계 각지를 걸어서 여행한 이야기 등 그녀만의 유쾌한 삶의 방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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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양성욱 “신의 직장은 없다, 직장 스트레스는 비슷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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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취업포털 사람인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입사 후 3개월 안에 퇴사하는 비율이 40%에 달한다. 구직자가 든 주요 퇴사 사유는 ‘기업 중복 합격’과 ‘다른 회사 구직’이었고, 기업이 밝힌 퇴사 사유는 ‘책임감 및 인내심 부족’과 ‘연봉 불만족’이었다. 신입사원과 회사의 생각이 다르지만, 확실한 사실은 입사하더라도 오래 회사 다니는 게 녹록하지 않다는 것이다. 


어쩌면 당연하다. 회사에서 주어지는 업무는 학교에서 해야 할 과제보다 훨씬 많고, 그에 따른 책임이 크다. 학교에서는 평등한 관계에 익숙했겠지만, 회사에서는 본인이 가장 막내다. 업무에서 오는 스트레스, 관계에서 오는 고통이 월급을 비롯한 다른 성취보다 클 때, 신입사원은 주저 없이 사표를 던진다.

 

그런데 알고 맞는 매가 덜 아플 수 있다. 피하지는 못하더라도 요령껏 고통을 최소화할 수 있어서다. 그런 맥락에서 신입사원이 회사에서 마주할 수 있는 고비와 대처법을 파란만장 선배 양성욱이 공개한다. 『파란만장 선배의 신입사원 상담소』저자 양성욱은 언론사와 청와대, 공기업과 사기업을 두루 거쳤다. 각기 다른 직장 문화였지만 그가 내린 결론은 직장에서 만나는 스트레스는 대부분 비슷하다는 것.

 

이 책은 업무, 관계, 이직, 자기계발 등 신입사원이 고민하는 것을 주제별로 분류했다. 스스로 겪은 다양한 경험과 주변 사람의 이야기가 어우러지면서 직장 생활을 생동감 있게 묘사했다는 점도 이 책의 장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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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직장은 없다,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어디나 비슷해

 

언론사, 청와대, 공기업, 사기업 등 정말 다양한 조직에서 직장 생활을 하셨는데요. 각 조직별로 같은 점, 다른 점을 꼽아주신다면.

 

성격이 전부 다릅니다. 일단 언론사는 촌각을 다투는 일이 많고, 기자 한 명 한 명이 곧바로 상품이에 기자 개인의 능력이 매우 중요합니다. 물론 함께 일할 때도 있지만 그보다는 기자 개인의 능력에 따른 편차가 기사에 드러납니다.

 

청와대는 아무래도 국정의 컨트롤 타워다 보니, 여러 실무 부서의 의견을 다 들어봐야 하는 등 일종의 coordinator 기능이 중요해요. 저 같은 언론사 출신도 있지만, 주로 공무원 출신이 많다 보니 공무원 조직의 특성도 강합니다.

 

공기업은 일 자체는 루틴하게 돌아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새로운 혁신이나 경쟁력을 요구받지는 않으나, 안팎의 통제가 상상 이상으로 강합니다. 내부 감사는 물론 외부 감사, 상급 기관의 감사, 언론의 주목도 등이 높습니다.


사기업은 워낙 환경이 다양하기에 일괄적으로 뭐라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대체으로 치열한 경쟁과 격무가 뒤따르는죠. 대기업은 급여나 복지후생이 비교적 잘 갖춰져 있다는 공통점이 있겠고요.

 

공통점이라면, 이 모든 직장들 역시 ‘직장’이라는 점입니다. 신의 직장, 신이 숨겨둔 직장은 없을 거예요. 일이 있고, 목표가 있고, 사람이 있다 보니 거기서 받는 스트레스는 어디든 비슷합니다. 그 형태만 다를 뿐이죠. 기자였을 때나 청와대 국장 시절이나, 공기업 팀장시절이나, 지금 민간기업에서나 받는 스트레스는 결국 따져보면 엇비슷합니다.
 
이 책은 업무, 관계, 이직, 자기계발 등 직장생활의 모든 걸 담았습니다. 시중에 이런 책이 드물지 않게 나와있는데요. 다른 책에 비해서 이 책이 갖는 특징은? 어떤 점을 염두에 두면서 쓰셨나요.

 

제 입으로 제 책을 소개하는 것 같아 조금 쑥스럽기는 한데요. 읽어보신 분들이 주로 하시는 말씀이 읽기가 굉장히 수월하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학계 전문가나 인사전문가가 쓴 교과서 같은 서적이 아니라, 제 스스로 혹은 주변 분들이 겪었던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글을 쓰다 보니 독자들께서 공감하기가 쉬운 것 같습니다. 기존에 나와 있는 책의 저자 분들에 비해 비교적 다양한 경험을 했고, 그 다양한 경험이 담겨있기에 독자들과 공감의 접점을 찾기 쉽지 않나 싶기도 해요.

 

입사하기 위해 면접을 통과하는 법, 이런 주제로 책을 쓰실 수도 있었을 텐데요. 신입사원이 되었다면 이렇게 하라는 내용을 쓴 계기가 있을까요?
 
제가 막내라 조카가 많아요. 친척들 모이면 이런 저런 고민을 제게 많이 털어놓죠. 큰 기대는 안 하고 털어놓는 건데, 그래도 삼촌이니까 조언을 해 줘야 하잖아요. 조카들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저 때와는 다른 고민을 많이 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답하면서 저도 고민하다가, 이런 걸 일회성으로 넘기지 말고 글로 정리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에는 민음사 블로그에 매주 한 편씩 올리기 시작했어요. 그게 책으로까지 나온 거죠.
 
친구, 조카 등 다양한 지인의 사연을 들으면서 특히 인상적인 에피소드가 있었다면?

 

여름 휴가도 거른 채 월차를 모아서 가을에 장기 해외 배낭여행 떠나려던 신입 사원 이야기가 가장 인상적이면서도 마음 아팠습니다. 이 에피소드의 주인공은 결국 팀장한테 찍혔고, 그 후유증을 극복 못해 1년도 안돼 회사를 이직했다고 하더군요. 저 역시 신입 사원 시절, 가을에 열흘 가량 휴가 내서 미국 동부로 배낭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당시 회사 선배들의 레이저 광선 때문에 뒤통수가 따끔거렸던 기억이 나네요. 당시에는 후배의 장기 휴가를 못 마땅해하는 선배들을 이해 못했는데, 제가 그 연차가 되고 보니, 왜 그때 선배들이 그런 생각을 했는지 이해가 갑니다. 어느 직장이나 그렇지만, 성수기와 비수기가 있어요. 신입사원 시절에는 언제 회사가 가장 바쁜지 잘 몰라요. 그래서 징검다리 휴일을 껴서 연차를 내기도 하고 하는데, 팀장은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은 시기에 공백이 생기니 난감하죠.
 
끈기 없어 보이는 신입사원은 구조적 문제

 

직장 생활 17년차에 접어드셨으니, 신입사원을 많이 보셨을 듯합니다. 예전과 비교해서 지금 신입사원은 어떤가요? 조직별(언론사, 공기업, 사기업 등)로 다른 점이 보이나요?

 

저 뿐 아니라 제 또래 많은 직장인들이 공감할 것 같아요. 요즘 워낙 스펙이 좋아요. 어학이면 어학, 컴퓨터면 컴퓨터, 이색 경력이면 이색 경력, 뭐하나 빠지는 게 없는 후배들이 참 많아요. 아마 지금 제가 다시 입사 시험 치르라고 하면 무조건 떨어졌을 것 같습니다. 조직별로 차이를 논하기는 힘들 것 같고, 대체적으로 보면, 과거에 비해 끈기는 조금 부족하지 않나 싶어요. 어떤 어려움이 닥쳤을 때, 그 어려움을 파헤치고 뛰어넘기 보다는 ‘어디 더 좋은 직장 없나’ 하며 쉽게 포기하는 후배를 꽤 여럿 본 것 같습니다.

 

‘무개념 신입사원’이라는 말도 있었는데요. 
 
개념의 차원이라기보다는 구조적인 문제입니다. 제가 1971년생입니다. 여자 동기 중에서는 1990년대 중반부터 직장생활을 시작하기도 했어요. 그때는 평생 직장 개념이 있었죠. 어디 취직했다고 하면, “정규직이야 비정규직이야? 계약은 몇 년이니?” 이렇게 묻지 않았잖아요. 딴 옵션이 없다 보니 들어가서 상사의 지시를 들으며 잘 다니면 됐어요. 지금은 아니죠. 정규직이라고 해서 안심할 수 없고요. 그런데 스펙은 정말 좋아졌으니, 입사까지가 힘들어 그렇지 입사하고 나면 다른 선택지가 많아요. 
 
신입사원이 직장에서 마주치는 대표적인 스트레스가 상사와 관계인데요. 신입사원이 보기에 안 좋은 상사가 꼭 성공하는 것 같아요. 부하의 성과를 자신의 것으로 포장한다든지 등등. 오랫동안 직장 생활하며 지켜 보기로는 어떤가요?

 

안 좋은 상사가 성공하는 게 아니라, 성공하는 상사 중에 일부 안 좋은 상사가 끼어 있을 뿐입니다. 좋은 상사들에 대해서는 뒷말이 별로 없지만, 그 나쁜 상사에 대해서는 이런 저런 ‘뒷담화’들이 생기다 보니 존재가 부각되고, 그러다 보니 마치 ‘독하거나 나쁜 사람이 성공한다’는 것으로 보일 뿐이죠. 직장 생활 하다보면 ‘뭐 저런 거지 같은 사람이 하필 내 상사인가’라는 불만이 튀어나오는 경우가 있겠죠. 지인 중에서는 직장 상사와 하도 트러블이 심하게 되자 용하다는 점쟁이까지 찾아가 점을 보더군요.

 

중요한 것은, 그런 상사를 보면서 그냥 욕만 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행여 나 역시 후배들 눈에는 그런 상사로 비줘지지는 않는지, 내가 나중에 그 자리로 올라설 때 남들이 나에게 그런 흉을 보지 않도록 잘 살고 있는지 등을 늘 되돌아봐야 합니다.
 
신입사원 시절 가장 힘들었던 기억은?

 

수습기자 때가 육체적으로 가장 힘들었어요. 저랑 아내랑 누가 더 힘들었는가로 가끔씩 이야기를 하는데, 아내는 6시에 출근해서 2시간 OJT를 받고 끝나고 술고문 당했다는 말을 해요. 그럼 저는 딱 한 마디로, ‘그래도 집에는 갔잖아’라고 말하죠. 수습기자 시절은 6개월 동안 경찰서에서 살아야 하거든요. 저희들끼리 종종 말하는데 절대 꾸고 싶지 않은 두 가지 악몽이 군대 다시 가는 거랑, 수습 기자 다시 하는 거예요.

 

직장 생활을 하며 고비가 오면 걷는다고 하셨는데요. 이런 고비는 어느 주기로 찾아왔나요? 가장 큰 고비는 언제였는지?

 

수시로 찾아와요. 회사 업무라는 게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문제가 발생하기 일쑤기 때문에, 꼭 꼬집어 ‘몇년 단위로 위기가 오더라’라고 표현하기는 힘드네요. 가장 큰 고비는 과거 언론사를 떠날 당시였습니다. 학창시절부터 언론인을 꿈꿔왔고, 실제 언론인의 길을 걸으면서 천직으로 알고 있었는데, 여러 사정상 언론계를 떠나야 할 상황이 되면서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던 기억이 납니다. 
 
회식을 묘사한 장면도 재밌었습니다. 꼴 보기 싫은 팀장도 있지만, 꼴 보기 싫은 신입사원도 있잖아요. 신입사원, 이것 만큼은 하지 말자, 이런 게 있을까요?

 

꼴보기 싫은 것까지는 아닌데, 꼭 한잔 더, 2차, 3차 가자는 후배들을 보면 사실 부담돼요. 덧붙이자면, 지나치게 아부하는 후배들의 모습도 좋아 보이지는 않아요. 물론 상사에게 공손하게 대하고, 긍정적인 태도까지는 좋지만, 그렇다고 그게 상사들에게 아부를 하라는 의미는 절대 아닙니다. 뭐든지 중도를 가라는 말처럼, 남들 하는 것만큼 평범한 선에서 윗분들 기분 맞춰주는 방식이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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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이직 웬만하면 하지 마세요

 

청년에게 도전하라고 부추기는 분위기가 있는데요. 창업, 창작가를 꿈꾸는 사람에게 ‘하지 마’라고 하셨습니다.

 

성공 확률이 100% 보장된다면, 당장 저라도 뛰어나가서 사업을 하겠고, 전업 작가로 나서겠죠. 노래에 재능이 있다면 가수로 데뷔하면 되고요.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독자 여러분 스스로도 매우 잘 알고 계실 거로 생각합니다.

 

언론은 평범한 길 대신 남들이 안 가는 독특한 선택을 해서 성공한 사람을 자주 기사화 합니다. 얼마 전에도 젊은 친구 몇몇이 취업대신 창업을 해서 성공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어요. 모든 창업이 이런 성공 스토리로 귀결된다면 좋으련만 그 반대 경우가 훨씬 더 많고, 한국 노동시장이 아직 유연성이 부족하기에, 한번 실패한 사람에 대한 패자부활이 쉽지 않습니다. 언론이 저런 스토리를 소개하는 것은, 역으로 그만큼 귀한 사례라는 의미입니다. 만일 누구나 창업해서 저런 성공 스토리를 써내려간다면, 굳이 언론에서 기사로 쓰지도 않겠죠. 이런 엄혹한 현실을 종합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일단 현재 직장에 다니면서, 훗날을 차분하고도 면밀하게 준비하는 게 순리입니다. ‘나가서 이런 것 하면 잘 될 것 같은데...’라는 막연한 자신감은 정말 곤란합니다.
  
이직 고민을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언제 이직을 해야 할까요?

 

저 역시 3번 이직을 해 봤어요. 그때마다 정말 고민을 많이 했죠. 이직 하려는 이유를 분석하는 게 가장 기초면서도 중요합니다. 사람이 싫어서 떠나는 것인지, 월급이 적어서인지, 업무량이 너무 많아서인지 등등 이직 사유를 차분이 따져보길 바랍니다. 그리고 본인이 이직한 후에도 후회 안 할 자신 있으면 그 때 실행하면 됩니다. 긴가민가한 상태에서의 이직은 절대 안됩니다.

 

이직 이유를 분석했으면, 이직하려는 회사에 관한 정보를 충분히 얻어내야 합니다. 예컨대 업무량이 너무 많아 이직을 했는데, 알고 보니 그쪽 직장도 업무량이 만만치 않으면, 굳이 옮길 이유가 없습니다. 급여도, 특이한 경우가 아니라면, 이직을 통해 상승하는 급여가 연간 단위로 보면 얼마 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가 생각하는 내 연봉과 근로소득원천영수증에 나와 있는 급여가 차이 나는 경우도 있고요.

 

요즘은 기업 내부 문화를 알 수 있는 방법이 다양하죠. 현직자들이 자기 회사 분위기를 올려놓은 사이트도 많고, 그런 사이트를 부지런히 살피면서, 헤드헌터한테는 듣지 못한 내부 분위기 파악을 열심히 해야 합니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18쪽)이라고 쓰셨는데요. 혹시 저자님께서는 드라마 <미생>을 보셨나요. 보셨다면 어떤 느낌이 드셨는지.

 

사실 회사 업무가 바빠서 본방 당시에는 띄엄 띄엄 봤고, 최근에야 다시보기로 정주행중입니다. 하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많은 사례들이 미생에 등장하는 장그래, 장백기, 안영희같은 신입사원이라면 누구나 겪을 법한 일이고, 책 추천사 역시 미생 오과장님(이성민씨)이 써 주셨어요. 이래 저래 미생과는 인연이 있는 듯합니다. 여담이지만, 미생 무대배경인 원인터내셔널이 실제로는 D사인데 아내가 실제 신입사원 시절을 D사에서 보낸 터라 저보다 오히려 아내가 광분하면서 시청했어요. 묻지도 않았는데 자기 신입 시절의 스토리를 열심히 들려줬습니다. 드라마를 보면서 다시 한번 ‘나만 힘든 신입시절 보낸 것 아니구나’라는 사실을 새삼 느낄 수 있었고, 한 가정의 소중한 아들 딸들이 사회 첫발 디디면서 혹독한 성장통을 겪을 수 밖에 없다는 현실에 마음이 먹먹해지더군요.
 
오과장님에게는 어떻게 추천사를 받으셨나요. 평소 친분이 있었나요?
 
책이 나온다고 하니, 언론사 시절 선배가 추천사를 받아 주겠다며 누구를 원하는지 말하라고 해요. <미생>에 나오는 배우 중에서, 이왕이면 오과장이면 좋겠다고 하니까 걱정하지 말래요. 큰 실수를 한 거죠. 처음에 이성민 씨는 절대로 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알지 못하는 사람의 책에 추천사를 써 줄 수 없다고 해요. 그리고 본인은 작은 역할을 맡은 사람이라 <미생>을 대표해서 나설 주제가 아니니 쓴다고 해도 <미생>과 ‘오과장’이라는 표현은 쓸 수 없다고 했습니다. 중간에서 선배가 죽도록 고생했죠.

 

계속 부탁하니까, 써 주시겠다며 원고를 보내 달라고 해요. 어차피 써 주기로 한 거, 책을 읽고 쓰시겠다는 거죠. 책 안 읽고 추천사 써 주시는 분도 많은데, 이성민 씨는 배역으로도 멋있더니 실제 생활도 멋있었습니다. 직접 뵌 적은 없고, 만난다면 술 한 번이 아니라 정말 거하게 감사를 표하고 싶습니다.

 

자기 계발 방법으로 신문 읽기를 꼽으셨습니다. 실제로는 신문 읽는 직장인이 많이 없잖아요. 직장인이 신문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나무 대신 숲을 봐야 합니다. 당장 자기 업무에 직접적 도움 안된다고 신문을 멀리하는 것은 스스로 정보의 창고를 멀리하는 거예요. 현대 신문에 하루치에 실리는 정보량은 중세 인류의 10년치 정보량보다 더 많다는 분석도 있어요. 이런 정보의 보고를 안 읽어야 하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네요.
  
신입사원 못지 않게 팀장을 비롯한 리더도 고민이 많은데요. 혹시 ‘파란만장 선배의 팀장 상담소’도 있을까요?

 

미처 생각지 못했던 부분인데, 듣고 보니 중간 관리자들도 수많은 고민이 있을 거예요. 신입사원이 주로 본인의 업무 미숙이나 환경 적응으로 인한 고민이라면, 팀장급은 아무래도 한 조직을 이끌어야 하는 분들이니 또 다른 차원의 고민이 많을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중간 관리자기 때문에 이런 저런 고민이 많은데요. 기회가 된다면 좋은 사례들 열심히 모아 또다른 상담소를 오픈하는 것을 고려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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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만장 선배의 신입사원 상담소양성욱 저 | 민음인
저자는 신문사, 청와대, 공기업을 거쳐 현재 대기업에 근무하고 있는 17년차 직장인으로, 그간의 내공을 바탕으로 새내기 직장인에게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을 들려준다. 뜬구름 잡는 교훈이나 훈훈한 미담은 사절이다. ‘하늘 아래 먹고 살기 쉬운 자 없고, 그래서 모든 평범한 삶은 비범하다’는 모토 아래, 때로는 비겁하고 비굴하게 보일지라도 지금 이 순간 신입사원에게 가장 도움이 될 만한 얘기들을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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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레다 “오늘 힘들면 내일도 힘들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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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레다’라는 닉네임으로 일상을 블로그에 기록한 최민정 작가. 그의 그림 에세이『내 마음 다치지 않게』가 출간됐다. 이번 책에도 주인공은 그가 만들어낸 설토(설레다 토끼)다. 이전 책과 다른 점이라면 고독이나 고통 등 마음의 그늘에 좀 더 집중했다는 사실이다. 부정적인 감정을 다뤄서인지 책에 등장하는 그림은 다소 어둡다. 때로는 피를 흘리기도 하고, 때로는 팔과 다리가 잘리기도 한다.

 

이런 그림을 그린 이유로 설레다 작가는 “근거 없는 희망을 그리고 싶지는 않았다.”라고 말한다. 굳이 불교의 가르침을 들지 않더라도, 삶은 고통이다. 힘든 삶을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은 근거 없는 낙관보다는 어쩌면 수긍과 공감일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설레다 작가가 그린 그림은 힘들어하는 다른 사람의 사연에서 시작된 작품도 많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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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중 즐거운 날이 하루라면 살아갈 수 있어

 

『설레다 설레다 설레다』에 비한다면 『내 마음 다치지 않게』는 고독, 외로움 등 마음의 그늘에 집중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책을 기획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인생에서 고독, 외로움, 즐거움은 섞여 있어요. 전작에서는 밝은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다면 『내 마음 다치지 않게』에는 현실에 가까운 내용을 담으려고 했어요. 제 생각에 우리는 10일 중에서 7~8일은 아무 느낌이 없고, 하루나 이틀은 되게 힘들고, 하루가 딱 즐거우면 그걸 발판 삼아 살아가는 것 같아요. 이게 보통 사람의 삶이고 현실이죠. 무조건 밝은 날보다는 혼자 있는 모습, 고독 느끼는 일상을 보여줘서 공감대를 넓게 하고 싶었습니다.

 

아파 본 사람만이 타인의 아픔에 진정으로 공감하고 진심으로 위로할 수 있다는 말이 있듯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진정성을 많이 느꼈는데요. 혹시 아픔을 겪었던 시기가 있었는지요?

 

직장인이나 저 같은 작가 모두 마찬가지일 텐데, 누구에게나 생활이 어려운 순간은 있을 거예요. 어쩌면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제가 생활비가 없어 아르바이트하는 게 힘들게 보였겠지만, 그 경험은 고통스럽지는 않았어요. 당연히 해야 했던 절차였고요. 그보다는 처음에 그림을 그렸을 때, 제 그림을 알아주는 사람이 많지 않았어요. 거기서 오는 좌절감 때문에 힘들었던 때가 있었죠. 지금은 이 그림만 7년째 그리고 있어요. 이제는 그림으로 책을 낼 수 있고,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수 있죠.

 

이 책은 ‘다 잘 될 거야’ 식의 무책임한 위로, 거품 같은 희망, 막연한 환상을 강요하지 않는다고 하셨는데요. 책 쓰면서 조심했던 부분이 있나요?

 

그림 에세이는 대개 예쁘고 포근해요. 세상살이가 너무 힘드니까, 이 책을 읽을 때만큼은 세상이 따뜻하다 이거 읽을 때만큼은 세상이 따뜻하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 이런 걸 느꼈어요. 저까지 그런 책을 만들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어요. 개인적인 성향이지만, 저 자신이 그런 식의 위로를 못 느끼는 편이거든요. 그보다는 세상은 잔혹하다 생각하고, 저처럼 생각하는 사람도 많을 것 같았어요. 공감이 안 되는 원론적인 말보다는 직관적으로 보여주면 오히려 더 많이 공감하실 것 같았어요.

 

이 책을 만들 때는 근거 없는 희망을 그리지는 말자는 게 철칙이었어요. 오늘 힘들었으면, 내일도 힘들고, 오늘 힘든 경험으로 내일을 살아갈 방안을 찾아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메시지를 담으려고 했습니다. 색도 예쁘고, 만만한 캐릭터가 나오지만 발도 잘리고 피도 흘리는 장면은 그렇게 해서 나왔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그림 에세이 중에서 이렇게 피가 많이 나오는 건 처음 본다고 해요.

 

어디서 얼마나 얻어맞았는지 피멍에 코피까지 흘리면서도 괜찮다며 상대부터 걱정하는 사람… 그 모습에 우리는 가슴이 아프면서도 화가 납니다.


‘울어도 되는데… 아프다고, 누가 나를 이렇게 많이 때렸다고 하소연해도 되는데… 왜 참니!’


누군가에게 위로를 건넬 때 나의 가슴팍에 안겨서 솔직하게 눈물을 쏟아내는 이가 있는가 하면, ‘씨익’ 웃으며 이쯤은 아무렇지도 않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오히려 상대를 다독여주는 이가 있지요? 아픔의 무게에 따라 다르겠지만, 저는 차라리 전자처럼 눈물, 콧물 쏟아내며 풀어내는 이가 반갑습니다. 후자의 경우는 아픔이 두 배, 세 배로 전해져서 위로하는 사람까지 휘청이게 하거든요. 끝까지 버티려고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보기가 더 괴롭더라고요. (1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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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밤에 혼자 방구석에서 읽어야

 

독자들이 이 책을 어떻게 읽었으면 하나요.
 
밤에 혼자 방구석에서 스탠드 켜놓고 읽었으면 좋겠어요. 어떤 책이든 책과 독자, 이렇게 둘만 존재하게 놔두면 그 책이 어떤 책인지 알 수 있어요. 혼잡한 카페에서 봐도 좋겠지만, 그런 환경에서는 피상적인 것만 볼 수 있어요. 그리고 우울하다는 걸 막연하게 느끼지만 그 감정을 어떻게 감지하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설토에 감정이입하면서 읽으면 좀 낫지 않을까 싶어요. 이 책을 냈을 때 가장 바랐던 반응은 “예쁜 책 잘 봤어요” 이런 게 아니라 “이 책 보고 울었어요”인데요. 정말 큰 찬사 같아요.

 

혹시 작가님은 다른 작가의 책을 보며 울어본 적이 있나요.

 

글쎄요. 제가 그리면서 운 적은 있어요. 블로그나 메일로, 쪽지로 사연 주는 분들이 가끔 있어요. 친구나 가족에게 이야기하기는 쑥스러운데, 털어놓고 싶으니까 완전 타인인 제게 말하는 거죠. 짠한 사연이 많아요. 그런 사연은 그리다 보면 눈물이 나죠. 떠도는 글이나, 소설로 볼 때는 괜찮지만 실제 사연을 접하면 정도가 다르거든요. 특히 부모님 사연은 짠하죠. 아침에 엄마랑 다퉈서, 나가서 친구와 놀다 왔더니 엄마가 병원에 입원해 계시는 이야기, 이런 걸 그릴 때는 저도 울고 공감하는 독자도 많아요.

 

설토는 어떻게 탄생했나요. 많은 동물이 있는데 토끼로 정한 이유는?

 

참 많이 듣는 질문인데요. 동물로 캐릭터를 잡을 때는 토끼, 개, 고양이, 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요. 그 당시에 끌린 게 토끼예요. 초창기부터 보신 독자 중에서는 아는 분도 있는데, 유심히 보면 설토의 귀가 짝짝이에요. 설토는 영화 주인공처럼 완벽한 캐릭터가 아니에요. 종종 실수도 하고, 헤매기도 하고 갈등도 많이 하는 평범한 캐릭터죠. 그런 모습을 설토의 어떤 부분으로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 귀를 비대칭으로 그렸어요.

 

책에 ‘유년의 나’라는 장이 등장합니다. 유년시절 작가님은 어떤 사람이었나요?

 

어릴 때는 소심하고 말이 많지 않았어요. 대학에 들어가서 성격이 많이 바뀌었어요. 비싼 등록금을 주고 공부하는데, 공부가 재미없어요. 뭘 해야 할지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할지 고민하면서, 성격도 외향적으로 바뀌었습니다. 작가라는 직업은 표현을 많이 해야 해요. 표현할수록 자신도, 작품도 확산되니까요. 대학 때 생긴 성향으로 글도 쓰고 그림까지 그릴 수 있었어요.

 

작가님에게 그린다는 의미는 무엇인가요.

 

질문하기에는 쉽게 던질 수 있는 물음일 텐데요. 대답하기는 참 어렵습니다. (웃음) 그림을 안 그려도 먹고는 살죠. 그런데 안 그리면 그냥 생존하는 느낌이에요. 먹고 자고 먹고 자고 하는 삶의 반복이겠죠. 그림으로써 사람답게 사는 느낌이 들어요.

 

작가님께서 많이 쓰는 색이 노란색인데요. 노란색에는 어떤 의미가 있나요.

 

특별한 의미는 없어요. 처음으로 그림을 그린 데가 노란 포스트잇이거든요. 시각적으로 좋았죠. 좀 더 설명을 덧붙이자면, 심리학적으로 노랑은 치유의 색이라고 해요. 노란색을 보면 무조건 치유가 된다는 의미는 물론 아니고요. 해석에 따라 노랑은 상처, 이별, 아픔, 결핍을 의미 할 때도 많습니다. 그래서 치유의 노란색의 의미는 이런 다양한 감정을 보듬어 준다는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실제 노란색으로 채워 진 책을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진다는 말씀도 많이 듣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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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늘고 길게 오래오래 생존하는 게 바람

 

노란색 말고 다른 색을 시도할 계획은 없는지요.

 

파란색을 써 볼까 해요. 사회생활을 표현하려고 합니다. 사회생활이 치열하잖아요. 질투, 암투도 많고. 잔인하다고 할 만큼 강한 내용을 다루려고 해요.
 
회사생활도 하셨나요?

 

3년 2개월 정도 했죠. 인턴부터 시작해서 대리까지 하고 관뒀어요. 조직 안에서 안정감 있게 능력을 발휘하는 분도 있지만, 저는 그런 성향은 아니어서 그만했죠.

 

전시도 많이 하시잖아요. 기억나는 에피소드는?

 

유일무이한 사건이 있었어요. 액자로 전시를 하지 않고, 그냥 메모로 붙여놨는데 절반 이상이 없어졌어요. 보시는 분들이 떼어 가신 거죠. 얼마나 공감했으면 가져갔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작품이 사라진 것이기도 하니 아쉬운 마음도 컸죠. 사라진 작품들 모두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위안이 되어줄 것이라 생각하고 있어요.

 

요즘 관심사는? 앞으로 어떤 활동을 계획하고 있나요.

 

드로잉, 페인팅도 함께 하고 있는데요. 이번에 책이 무사히 나와서, 이 책은 꾸준히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고 있습니다. 그 외에 다음 책과 전시를 기획 중입니다. 별개의 이야기인데요. 스토리가 있는 웹툰 형태를 바라는 독자도 있지만, 저는 하나로 압축하는 게 좋아요. 기승전결로 만들어서 컷을 구분해 이끌어가는 성향은 아니거든요.

 

작가님의 꿈은 무엇인가요.

 

꿈은 좀 거창한 것 같고 바람이 있다면 가늘고 길게 오래오래 생존하기에요. 어떤 분야든 치열한데, 자기만의 노력만으로는 안 되는 게 많은 듯해요. 노력도 중요하지만 일하는 사람과도 맞고, 환경도 잘 맞아떨어져야 오래갈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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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 다치지 않게설레다 저 | 알에이치코리아(RHK)
미술심리치료사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저자는 그림 한 컷이 가진 치유의 힘을 설토를 통해 알게 되었고, 그녀의 메모는 혼자이고 싶지만 혼자이고 싶지 않은 사람, 남의 행복을 쉽게 질투하는 사람, 작은 것에 상처받고 오래 가슴에 두는 사람들에게 입소문이 나게 되었다. 이 책은 그 760여 장의 메모 중에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만한 가장 보편적인 감정을 담은 100장을 추려 짧은 글과 함께 엮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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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외수가 전하는 고통 멈추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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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은 없습니다


첫 번째 대담집 『마음에서 마음으로』 이후 1년여 만에 이외수와 하창수, 두 작가가 다시 마주 앉았다. 이전의 이야기가 작가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이외수가 지닌 세계를 보여주었다면, 이번에는 그와 별반 다르지 않은 ‘우리들의 세계’ 속으로 걸어 들어왔다. 현실과 이상, 사랑과 이별, 성공과 실패, 진실과 거짓, 자아와 타인, 삶과 죽음 등 누구나 한 번쯤 던져보았을 법한 질문들이 오고갔다. 이야기가 쌓일수록 점점 또렷해지는 형상이 있었다. 그것의 이름은 욕망일 때도 있었고 두려움일 때도 있었다. 종종 그것은 우리를 갈림길로 이끌었다. 길의 끝에서 마주하는 것은 환희이거나 절망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두 작가는 『뚝,』이라 속삭였다. 눈물도, 슬픔도, 고통도, 이젠 뚝, 그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뚝’이라는 말, 생각할수록 참으로 묘하다. 이제 그만 멈추라고 다그치는 것 같으면서도 결코 차가운 온도로 기억되지는 않는 말이다. ‘뚝’이라는 말의 뒤에는 언제나 감추어진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이제 괜찮다고, 다 괜찮아질 거라고, 다독이는 손길이 함께였던 것 같다.『뚝,』에 담긴 두 작가의 마음과 손길은 그때의 기억을 환기시킨다.

 

마지막 교정을 보기 위해 원고를 훑던 내 귓속으로 “뚝,”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건 부드러우면서도 단호한, 칭얼거리는 아이의 울음을 단숨에 그치게 만드는 명약 - 오래전 엄마로부터 듣던 그 소리였다. 이 소리는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모든 불만과 회의와 우울을, 아픔과 슬픔과 회한을 한순간에 “뚝,” 끝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묘한 감회에 젖는다. 『뚝,』 p. 297

 

독자들을 뚝, 그치게 만드는 작가들의 처방은 우는 아이를 달래기 위한 엄마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때로는 정신이 번쩍 들 만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때로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차원의 이야기로 주의를 환기시킨다. 그때마다 이외수 작가 특유의 해학과 풍자, 지혜와 통찰력이 빛을 발한다.

 

“부자들은 죄를 짓고도 쉽게 풀려나는 세상의 불합리를 없앨 수 있을까요?”라고 묻는 하창수 작가의 질문에 “우선 마스크와 휠체어를 없애야 합니다”라고 거침없이 답하는가 하면,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된 연인을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는 고민에는 “사랑은 계속 솟아나는 샘물과 같은 겁니다”라고 이야기한다. “떠나가려는 사랑은 떠나보내고, 새로이 샘솟는 사랑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다.

 

가벼움과 무거움, 한숨과 미소 사이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그 이야기들은 이따금씩 죽비가 되어 마음을 내리친다. “현실을 지나치게 중시하는 분들은 가끔 이상을 중시하는 분들을 비웃곤 하지요. 그러나 인류는 이상을 중시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발전을 거듭해왔습니다”라는 고요한 한 마디는 현실과 이상을 저울질하는 이들을 뜨끔하게 한다. 하창수 작가와 『별주부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무심히 덧붙이는 말도 예외가 아니다. “그나저나 의료민영화 되고 나면 용왕도 용궁을 팔아야할 겁니다” 순간, 책장을 넘기던 손길은 잠시 갈 길을 잃는다.

 

예상컨대 독자들이 『뚝,』 안에서 찾고자 하는 것은 자신이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한 정답일 것이다. 두 작가의 머릿속에 쌓인 ‘지식’과 가슴속에 쌓인 ‘지혜’에 기대어 정답을 찾을 수 있으리라 기대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뚝,』의 이야기는 시작부터 당혹감을 안겨줄 것이다. “정답은 없습니다. 답은 무한입니다”라는 말로 독자들을 맞이하는 이외수 작가와 만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뜻밖의 감정은 연이어 찾아온다. 정답은 없다는 그의 말이 이상하리만치 반갑게 느껴지는 까닭이다.

 

이것만이 정답이라고, 당신이 찾아 헤매던 정답을 내가 가르쳐 주겠노라고, 확신에 찬 목소리를 드높이는 멘토들은 너무나 많이 봐왔다. 어쩌면 그 모든 이야기가 정답이었을 수도 있고, 그 중 어느 것도 정답이 아니었을 수 있다. 단 하나 확실한 사실이 있다면, 그들의 정답이 반드시 나의 것과 일치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나의 이야기가 정답은 아니다’라고 말하는 멘토를 만나기 어려웠다. ‘나 역시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한다’는 인정의 목소리는 듣기 힘들었다.

 

그에 반해 『뚝,』의 작가들은 스스로를 멘토라 자청하지도 않고, 유일한 정답을 내세우지도 않는다. “정답은 없습니다. 답은 무한입니다”라는 이야기에서 알 수 있듯이, 그들은 정답이라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도 않는다. 『뚝,』이 가르쳐 주는 것은 정답이 아니다. 『뚝,』은 독자들로 하여금 ‘내가 찾는 정답은 무엇인가’를 스스로 묻게 한다. 자신만의 정답을 찾아 나서기로 마음먹은 독자들이 있다면, 그 곁을 묵묵히 지키며 조언을 들려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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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젊은이들을 안아주고 싶다


이외수 작가와 하창수 작가를 만나기 위해 춘천으로 떠나던 날, 마음은 무거웠고 발길은 좀처럼 떨어지지 않았다. 위암 투병을 시작한 이외수 작가가 3차 항암 치료를 앞두고 있었다. 20여 년간 그와 교분을 쌓아 온 하창수 작가 역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는『뚝,』의 출간을 준비하던 중에 이외수 작가의 발병 소식을 들었다고 했다. 두 작가가 버티고 있는 시간의 무게는 가늠하기조차 힘들었다.

 

취재진이 찾아갔을 때, 하창수 작가는 이외수 작가의 작은 그림첩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선뜻 안부조차 묻지 못하는 취재진에게 이외수 작가가 먼저 그림첩을 건네주었다. 고통이 찾아드는 순간마다 그림을 그리며 견디고 있다고 했다. 작가로 하여금 펜을 들게 한 고통은 그림 속에 없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선은 간결했고 색감은 밝고 따뜻했다. ‘존버 정신’이 무엇인지 몸소 보여주고 있는 듯했다. 인터뷰가 이어지는 동안 줄곧 보여주었던 차분함과 온화함은 소리 없이 그 정신을 외치고 있었다. “어쩌면 인생 전체가 통증인지도 모릅니다”라고 덤덤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던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그 곁을 지키고 있는 하창수 작가에게서도 초조함이나 불안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고통도 이제는 뚝, 그칠 거라는 두 작가의 이야기는 현실이 될 것이다.

 

함께 대담을 나눌 분으로 이외수 작가님을 선택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창수 : 대학교 다닐 때부터 선생님의 작품을 좋아했어요. 아마도 한 작가의 작품 전체를 본 경우는 이 선생님이 유일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러다가 제가 춘천으로 이사를 하게 되면서 작가가 아닌 인간으로서 선생님께 다가갈 수 있게 됐고요. 24년 가까이 뵈었는데 그 사이에 수많은 이야기들이 오고갔죠. 『마음에서 마음으로』 출간 제의를 받았을 때 속으로 쾌재를 불렀어요. 그동안 나눴던 얘기들 중에 (혼자만 알기에는) 아까운 것들이 많거든요. 선생님의 소설만 읽었던 독자들 혹은 단편적인 인터뷰를 통해서 선생님을 알았던 분들에게 조금 더 깊이 있고 진솔한 얘기들을 전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대담을 나누면서 또 다른 깊이의 대답들을 얻게 됐고요.

 

『마음에서 마음으로』와 마찬가지로『뚝,』의 제목도 이외수 작가님께서 직접 지으셨나요?


이외수 :제목을 무엇으로 할까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어요. 왜냐하면 『하악하악』을 쓴 후에 장염 때문에 수술을 했거든요. 그래서 ‘하악하악’했죠. 그 다음에 『쓰러질 때마다 일어서면 그만,』을 쓰고 나서 암으로 쓰러졌단 말이에요. 그래서 이제부터는 제목을 좀 바꿔야 되겠다고 생각했죠. 저는 글이라고 하는 것이 충분한 주술적인 능력도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마치 대중가요 제목들이 가수의 운명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은 것처럼요. 소설도 산문집도 똑같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번에는 긍정적인 제목을 정하려고 고민하고 있었는데, 옆에 있던 문하생이 ‘뚝, 어때요?’ 그러기에 마음에 쏙 들어가지고 좋다고 했죠. 호랑이도 우는 아이를 달래지 못하는데 곶감은 해내잖아요. 그래서 나도 곶감 같은 글 하나를 내보고 싶다고 생각했죠. 『뚝,』 은 곶감처럼 생각하시고 맛있게 드시면 될 것 같습니다.

 

두 권의 대담집을 준비하시면서 이외수 선생님의 또 다른 면을 보게 되셨을 것 같습니다.


하창수 :『뚝,』의 질문들은 대부분 제가 고민했던 것들이기도 한데요. 제가 대답하게 되면 장황해지고 진지한 것이 지나쳐서 지루해질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이라 하더라도 대답하시기가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질문을 드려보면 거의 대부분 대답에 망설임이 없으셨어요. 더구나 그 안에는 선생님이 그동안 유지해 오셨던 유머가 그대로 살아있죠. 진지한 질문에 진지한 답이 나오는 건 당연한 일인데, 그 안에 유머가 실린다면 우리한테 녹아드는 정도가 훨씬 더 빠르겠죠. 더 깊이를 가질 것이고요. 그러리라고 생각은 했지만 실제로 듣고 나니까 굉장히 놀라웠어요.

 

『뚝,』의 질문을 뽑는 과정에서 독자들의 이메일을 많이 참고했다고 하셨습니다. 공통된 고민들은 무엇이었나요?


하창수 :『마음에서 마음으로를 읽었던 독자들이 저에게 보내준 질문들이 있었어요. ‘다음에 기회가 있다면 이런 질문들을 물어봐 주십시오’라고 하면서요. 그리고 제가 출판사 측에 요청해서 일반인들이 궁금해 하는 문제들을 모으기도 했고요. 그 질문들을 받고 느낀 건, 제가 하는 고민의 태반이 세상 사람들이 하는 고민이라는 거였어요. 이 질문의 대답은 가슴에서 지식이 발효되어서 지혜가 된 어른들에게서 얻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고요. 실제로 선생님으로부터 그야말로 발효된 대답들을 얻었다고 생각해요.


이외수 :저의 유년시절이나 청년시절의 고민에 비하면, 지금 젊은이들이 안고 있는 고민은 훨씬 더합니다. 나는 지금의 젊은이들은 정말 다 안아주고 싶어요, 한 명 한 명. 희망이 없잖아요. 이건 어른들이 잘못된 가치관을 심어줬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류 대학 나와서 대기업에 취업해야만 잘산다는 생각, 물질이 정신보다 우선하는 가치관, 이런 것들이 지배하고 있는 사회는 희망이 없는 사회입니다. 얼마든지 적은 돈으로도 큰 기쁨을 얻을 수 있고, 아주 작은 일이라도 얼마든지 큰 행복을 느낄 수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잘못된 가치관에 의해서 젊음이 거의 질식 직전에 있다시피 하잖아요. 이건 불행한 젊음이지요. 가치관을 수정하는 일은 특히 사회의 어른들이, 또 지도층들이 보여줘야 됩니다. 반성과 함께 새로운 패러다임을 보여줄 필요가 있고, 젊은이들도 스스로 가치를 수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외수 작가, 나를 두렵게 만드는 것은…


하창수 작가님께서 “모든 질문은 정답을 가지고 있습니까?”라고 물으셨을 때, 이외수 작가님께서는 “정답은 없습니다. 답은 무한입니다.”라고 답하셨습니다. 『뚝,』 안에 실린 작가님의 답변이 정답이 아니라면, 무엇일까요?


이외수 :사실 수많은 이름들과 사건들과 현상들은 존재 자체가 질문이고 해답입니다. 그러니까 하나의 이름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묻고 있는 질문이면서, 우리가 가지는 의문에 대한 대답이기도 하죠. 그리고 그것들은 모두 다 무한과 연결되어 있어요. 우주와 직결되어 있고요. 그 무한을 우리가 특정 대답으로 받아들이거나 정답으로 받아들이기는 어렵죠. 그것들이 갖고 있는 수없는 의미와 현상들은 실제로 우리를 ‘알고 느끼고 깨닫게’ 만드는 존재들이 됩니다. 나 또한 수없는 질문이면서 해답이기도 하다는 거죠.

 

‘이건 맞는 대답일 수도 있고 틀린 대답일 수도 있다’는 답변을 들으셨을 때, 인터뷰어로서 하창수 작가님께서는 어떤 생각이 드셨습니까?

 
하창수 :우리가 어떤 의문을 가졌을 때는 아마 나름대로 답까지 가지고 있을 것 같아요. 들려오는 대답이 자신의 것과 일치하지 않을 때는 실망을 하겠지만, 어떤 대답은 실망을 넘어서는 경우가 있어요. ‘이 세상에는 정답만 존재하는 게 아니고, 어떻게 보면 정답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라는 깨달음이 일어나는 답을 받을 때가 있죠. 그럴 때는 가슴 안에서 뭔가가 팍 터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마음에서 마음으로』도 마찬가지였지만 『뚝,』을 준비하면서 특히 그런 것들을 많이 느꼈습니다.

 

하나의 예를 들어주실 수 있을까요?


하창수 :제가 선생님께 “달마는 왜 동쪽으로 갔을까요?”라고 여쭤본 적이 있어요. 조주 선사와 젊은 스님이 나눈 유명한 화두죠. 그때 조주 선사께서는 “뜰 앞의 잣나무니라” 라고 대답하시거든요. 선생님께서는 어떤 대답을 하실까 궁금했어요. 굉장히 짓궂은 질문일 수 있죠. 그때 선생님께서는 “달마가 가는 곳은 우주의 중심”이라고 하셨어요.

 

 그 대답을 듣는 순간에 제가 가장 크게 깨달았다고 할 수 있을 거예요. 의문을 가지는 건 좋은데 그 의문이 하나의 문제만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이라면 그건 절대로 온전한 답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거죠. 전체를 포괄하지 않는 답은 답일 수 없다는 것을요. 이것은 우리가 질문을 던져야 되고 답을 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면서, 세상에는 정답이 없고, 정답을 찾았다고 생각하는 건 잘못 찾은 거라는 걸 알려주는 이야기죠.

 

이외수 작가님께서는 『뚝,』에서도 사회 문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들려주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논란의 중심에 서는 것이 두려워 이야기를 안으로 삼키기도 하는데요. 작가님은 그런 것을 두려워하지 않으시는 것 같습니다. 작가님을 두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요?


이외수 :나를 두렵게 만드는 건 부조리예요. 부조리, 부패, 그리고 진실의 부재. 인간답지 않은 것이 나를 가장 두렵게 만듭니다. 인간이 인간답지 않다는 것은 짐승 같다는 것 아닙니까. 내가 짐승하고 살면 두렵죠. 그 중에 맹수도 있을 텐데.

 

“정글의 법칙이니 생존경쟁, 약육강식 같은 말은 동물계에서 하는 얘깁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인간이라고 덧붙이셨고요. 인간을 동물과 구별되는 존재로 만드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외수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사랑입니다. 우리는 인간을 만물의 영장이라고 이야기하는데, 가장 지능이 뛰어난 생물체라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 중에서 만물을 사랑할 수 있는 가슴을 가진 건 인간밖에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은 결국 사랑입니다. 사랑은 어쨌든 자기중심은 아니죠.


하창수 :살아가면서 어쩔 수 없이 정의를 깨야만 되는 상황들에 대해서 질문 드린 적이 있어요. 아마 저라면 일정 부분 눈 감는 것을 지혜로 생각했을 거예요. 그런데 선생님은 ‘이미 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는 게 잘못됐다는 걸 알고 있다, 그러면 하지 말아야지’ 라고 단호하게 이야기하세요. 사실은 이 단호함이 유일하게 가지고 있는 마지노선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만 가지고 있으면 정의나 불의에 대해서 고민할 바가 없죠. 역으로 얘기하면 지금 불의를 저지르고 있는 사람들은 갈등 속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마지막 마지노선 자체를 가지고 있지 않은 거거든요. 그들에게 ‘정의로운 일이 어떤 것이냐, 정의롭지 않은 일이 어떤 것이냐’ 아무리 많이 얘기해 봐도 (그들은) 불의한 일을 할 수밖에 없는 거죠. 결국 그건 사랑의 부재와 연결된다고 생각합니다. 정의의 문제가 결국은 사랑과 연결된다는 거죠. 사랑이 없는 사람은 정의롭지 못한 사람이라고 얘기를 해도 지나치지는 않을 것 같아요.


독자 없는 소설가의 고독


하창수 : 노아의 방주에 소설가 한 명을 태우게 한다면, 누구를 추천하겠습니까? 이미 세상을 떠난 소설가까지 포함해서요.


이외수 :노아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노아, 소설은 그대가 쓰시오!” 노아로 하여금 독자 없는 소설가의 고독을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겁니다. 배 안엔 짐승들밖에 없을 테니까요.
-『뚝,』 p. 20~21

 

“독자 없는 소설가의 고독”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작가님에게 독자란 어떤 존재인가요?


이외수 : 일부 독자들은 우리집을 독자 천국이라고까지 얘기합니다. 절대적이에요, 독자가. 식구들도 그렇게 생각하고요. 독자가 없는 작가만큼 고독한 존재는 없죠. 저 같은 경우에는 요행히 다른 작가에 비해서 독자가 많은데, 그건 저만의 문제로 논의할 건 아니라고 봅니다. 대한민국엔 독자가 거의 없어요. 책을 가장 안 읽는 국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런 부끄러운 수준에 머물러 있죠. 제가 트위터에 180만의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는데 도루묵이나 감자 판매에 나서면 완판입니다. 내 책만 안 팔려(웃음). 사실 책을 안 읽는다는 것은 나뭇잎도 안 읽는다는 말과 같아요. 저는 나뭇잎 한 장에 책 수만 권이 들어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책을 열심히 읽는 분들은 다른 사물에도 그만큼 관심을 가지게 되고, 의식이 진보하고 발효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외국에 비해서 우리나라 독자들이 부끄러울 정도로 책을 안 읽는다는 건 제 책임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 수치스럽죠(웃음).


하창수 :제가 자신을 돌아보건대 독자가 많지는 않은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처음에 시작할 때 독자를 염두에 두지 않았던 것 같아요. 뭔가를 쓰고 싶은 열망 같은 것들만 소설에 반영되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모든 작가들이 마찬가지겠지만, 작가 생활을 하다 보면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내 책을 내 소설을 내 문학을 펼쳐보지 않는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적지 않은 절망감에 빠지게 되죠.


이외수 :그때만큼 고독한 게 없어요. ‘작가적 이중성’이라는 게 있습니다. 어떤 외국 작가가 얘기한 건데요. ‘내 글의 독자는 나 하나면 족하다’ 라는 마음과 ‘그러나 온 인류가 내 글을 읽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 둘 다 진실입니다(웃음). 이걸 작가적 이중성이라고 하죠.


하창수 :‘노아의 방주에 어떤 소설가를 태우고 싶습니까’라고 제가 질문을 던진 건, 선생님의 대답을 듣고 그런 작가가 되고 싶어서였어요. 근데 선생님께서는 ‘노아 자신이 소설가가 되어라, 독자 없는 고독을 느껴보라’ 라고 대답하셨고, 그것이 저한테는 굉장히 힘이 됐습니다. 작가라는 존재 자체가 중요하다는 얘기거든요. 어떤 특정한 작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작가라는 존재 자체가 중요하다는 것으로 저는 해석했습니다.

 

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의미가 있고 중요하다는 말씀이시군요.


이외수 : 그렇습니다. (독자들이) 읽든 안 읽든 스스로 작가라는 존재가 되는 것은 거룩한 일이죠. 비록 독자가 없다 하더라도, 고독하다 하더라도, 작가라는 존재는 거룩합니다.

 

“예술 하는 사람에게 상투적인 건 일종의 암”이라고도 하셨는데요. 상투적인 표현들만 쏟아내는 작가도 거룩할까요?


이외수 :칼라일이 얘기했습니다. ‘태양으로는 결코 담뱃불을 붙일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태양의 결점은 아니다’ 저 역시 같은 답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달빛으로 라면 끓일 수 없다고 달이 무가치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선은 반드시 악을 이깁니까?


“선은 반드시 악을 이깁니까?”라고 여쭈었을 때는 “정의가 반드시 이긴다고 믿고 싶을 뿐이지, 반드시 이긴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라고 하셨어요.


이외수 :선이 과연 선일까요. 만약 어떤 사람이 나를 붙잡고 ‘나흘을 굶었습니다. 국밥 한 그릇만 먹을 수 있게 해주십시오’라고 애원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그래서 내가 주머니에 있는 돈을 털어서 줬어요. 그런데 이 사람이 칼을 사서 강도짓을 했다면, 내가 베푼 건 선일까요? 그러니까 진정한 선이 무엇인가를 먼저 알아야 돼요. 사람들은 누구나 큰 것 안에 작은 것이 들어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작은 것 속에 엄청나게 큰 것이 들어있을 수가 있다는 거죠. 이걸 알았을 때 선으로 진입할 수 있는 겁니다. 작고 소중한 것이 얼마나 큰 가치를 가지고 있는가를 모르면 선할 수가 없어요. 선하면 뭐합니까, 비굴하면 아무 소용이 없잖아요. 실천할 수 없는 선은 진정한 선이 아니거든요. 정의라는 것도 다 사랑으로부터 나오는 것이죠. 사실 안다는 것은 대단치 않습니다. 느끼고 깨닫는 데까지 가야만 진정으로 공부한 것이고, 지혜롭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이죠. 단지 간판만 가지고 우월감을 느낀다든가, 그걸 가지고 힘을 과시한다든가, 타인의 아픔에 대해서 무관심하다면, 정의롭지도 못하고 사랑도 없는 것이 됩니다. 사랑을 바탕으로 하지 않는 한 선도 진정한 선이 못 되는 것이고, 작은 것 속에 큰 가치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한은 아무리 정의를 부르짖어도 진정한 정의가 될 수 없습니다. 특히 이 점은 정치가들이 자각했으면 좋겠어요.

 

작가님께서 도와주신 사람이 강도짓을 했다면, 그때 작가님의 행동은 선일까요?


이외수 :내가 국밥 값을 주는 순간은 선입니다. 그런데 그가 죄를 저지르는 순간 저는 죄에 동참한 것이 되는 것이죠.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는 선을 행했고 악을 행한 것은 그 사람이다’ 라고 분리해서 생각할 것 같습니다.

이외수 :그러니까 (제 말은) 나만의 일은 아니라는 거죠.


하창수:사실 선생님께서 사랑을 굉장히 많이 강조하시거든요. 어떻게 보면 유일하게 내세우시는 게 아마 사랑일 것 같아요. 그런데 사랑은 굉장히 추상적인 거라서 그걸 어떻게 해석해야 될지 모를 때가 있어요. 저는 나름대로 이렇게 해석합니다. 우리는 상대성에 묶여 있기 때문에 하나의 행위도 다른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는 상황들 속에 놓여있어요. 어떻게 보면 고통은 거기에서 발생하는 건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상대성이 모든 세계를 아우르는 어떤 것인가’ 생각해 보면, 아닐 것 같아요. 상대성이라는 가치에 우리가 발을 담가놓고 있으면 결국은 그로부터 비롯되는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어요. 사랑은 그걸 극복하게 해주는 절대성이라는 거죠.


이외수 :우리가 ‘염화시중의 미소’라는 말을 잘 쓰잖아요. 결국은 합일감에 의해서 서로 미소를 지은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부처님이 꽃을 들었을 때 ‘예쁘지?’라고 말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그 꽃을 보고 미소 짓는 이도 ‘예뻐요’라고 말하는 거거든요. 인간은 어떤 경우에도 아름답지 않은 것은 사랑할 수는 없어요. 이건 제 말이 아니고 소크라테스의 얘깁니다. 아름다움에 공감하고 합일하는 것, 저는 이것이 사랑이라고 봐요. 그리고 합일감은 남의 아픔이 내 아픔이 될 때 느낄 수 있는 거예요. 그것이 아름다운 겁니다. 다른 것과 합일하고 그 속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것, 그것이 사랑의 발로가 되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인간은 아름답지 않은 것을 사랑할 수 없다는 건 절대적인 것이죠. 반론의 여지가 없는 거예요.

 

『뚝,』에서 고전에 대한 대담은 별도의 장으로 엮으셨는데요. 그 까닭이 궁금합니다.


이외수 : 우리 문학의 뿌리는 풍자와 해학에 있습니다. 사실 그것은 아주 높은 경지에 이르지 않으면 구사하기 어려운 것이죠. 그래서 우리 책에서 한 번 풍자와 해학의 일면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리고 지금 사람들의 삶이 너무 빡빡하니까 읽으시면서 위안을 삼으시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어요.


하창수 : 알게 모르게 우리 고전이라는 건 마치 하나의 정답처럼 존재하죠. 그런데 이걸 비틀어서 ‘우리가 공고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여기에도 뭔가 빈 구석이 있지 않을까’ 라는 걸 짚어주고 싶었어요. 그걸 통해서 독자들이 자신 안의 공고한 무언가를 무너뜨렸으면 좋겠다는  의미도 포함되어 있죠.

 

먼 산머리 조각구름에 거처가 있습니까?


이외수 작가님께서는 영혼만큼은 늘 자유로웠다고 하셨습니다. 하고 싶었지만 절대 할 수 없었던 것들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요. 우리 스스로가 자유롭다고 판단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요?


이외수 : 나를 없애야 됩니다. 내가 없어야 해요. (그건) 어떤 경우에도 나는 양보하고 빠지는 것이고, 내가 우선은 아닌 거죠. 어떤 때는 아예 없애버리고요. 그걸 불교에서는 ‘방하착’이라고 하죠. 놓아버리는 거예요. 이번에 암 확진 받았을 때도 저는 ‘그래, 가자’ 하고 생각했어요.

 

하창수 작가님께서는 『뚝,』을 집필하시던 중에 이외수 작가님의 투병 소식을 들으시고 삶과 고통에 대한 추가 질문을 준비하셨는데요. 인터뷰어로서 무척 힘드셨을 텐데, 그럼에도 묻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가 있으셨겠죠.


하창수 :그게 아마도 인터뷰어의 숙명일 것 같아요. 인터뷰어가 된다는 건 개인적으로 누군가에게 질문하는 것과는 다르죠. 제 등 뒤에 이 책을 읽었으면 하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조금 거창하게 얘기하면 세계인 전체가 있는 것이고, 그들 대신 제가 질문을 던지게 되는 거니까요. 선생님 개인적으로는 아픔이지만 그 아픔으로부터 뭔가를 얻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어요. 그것이 저뿐만 아니라 제 등 뒤에 있는 세계인에게도 답이 되어줄 거라고 생각했고요. 고통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 얻어야 될 답이 있다면 질문을 던져야 하는 거죠. 그건 인터뷰어의 생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고통 속에 놓여있는 건 모두가 마찬가지라는 말씀이신 것 같습니다. 이외수 작가님께서 지금의 상황을 의연하게 받아들이실 수 있는 것도 ‘고통은 늘 있어왔다’는 생각 때문일까요?


이외수 : 나는 인생을 평생 삼재라고 생각하고 살았으니까요.『뚝,』에서도 얘기했지만 어떤 사람이든, 지위고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인생을 사는 동안에 생로병사 희로애락을 골라 먹은 사람이 없어요. 그럼 포기해야죠, 골라 먹겠다는 생각은.


하창수 : 선생님께서 “봄에 피는 꽃들에는 햇볕을 간절히 그리워한 표정이 나타나 있고, 가을에 피는 꽃들에는 서늘한 바람을 그리워한 표정이 나타나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신 부분이 있어요. 그 말은 고통을 겪고 있는 순간에, 그리고 앞으로 또 고통을 겪어야 될 운명 앞에서 우리에게 단단한 지팡이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외수 : 봄에 피는 꽃들을 보면 ‘얼마나 간절하게 추위 속에서 햇빛을 그리워했는가’가 나타나요. 아무리 작고 하찮아 보이는 꽃이라고 하더라도. 그리고 가을에 피는 꽃들은 대개 목이 깁니다. ‘얼마나 간절하게 시원한 바람을 고대했는가’를 보여주죠. 사실 자연 안에 모든 질문과 해답이 들어있어요.

 

투병이라는 문제에 대한 답을 여쭈었을 때 “먼 산머리 조각구름에 거처가 있습니까?”라고 대답하셨습니다. 투병을 시작하시기 전에도 똑같이 대답을 하셨을 것 같아요.


이외수 : 먼 산머리 조각구름이 어떤 때는 있고 어떤 때는 없는 것이죠. 거처 또한 그렇습니다. 사람이 그와 다르지는 않으니까요.

 

혹시 이외수 작가님의 말씀을 듣고 삶과 죽음의 관계에 대한 생각이 바뀌셨나요?


하창수 :실제로 제가 생과 사의 문제에 대해 여쭤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내심 그런 궁금증이 있었죠. 수술과 투병이라는 힘겨운 일들을 겪으시면서 개인적으로 생각이 바뀌셨을까, 하고요. 그래서 조금 과감하게 질문을 드렸는데 역시나 큰 테두리에 있어서는 전혀 변함이 없으셨어요. ‘먼 산머리 조각구름’의 얘기는 이미 오래 전부터 삶을 관조하시면서 해 오셨고, 이번에 새삼스럽게 확인된 거죠.

 

『뚝,』이 정답을 알려주는 이야기가 아니라면, 이 책에서 독자들은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요?


이외수 :길에 박혀있는 돌멩이라고 생각하시고 걸려서 좀 넘어져 주면 고맙죠. 돌에 걸려 넘어지면 내가 잘못인지 거기에 있었던 돌이 잘못인지 생각할 것 아닙니까. 그런데 돌도 잘못한 게 아니고 나도 잘못한 게 아니잖아요. 그럼에도 걸려 넘어지면 얻는 것은 있습니다, 분명히. 안 넘어진 것보다는 낫다는 얘기죠.


하창수 : 현실적으로 대답하면, 우리가 배가 고플 때 무엇을 주면 배고픔은 금방 해결되잖아요. 그게 정답의 기능이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또 다시 배가 고파져요. 그럼 끊임없이 정답들을 먹어야 되는 상황이 생기거든요. 그런데 이 책은 먹는 게 무엇인가 라는 문제에 대한 어떤 답을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걸 알고 있으면 적어도 먹는 문제가 자신의 결정적 문제가 되지는 않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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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이외수,하창수 공저 | 김영사
신이 내린 가혹한 질문에 대한 이외수의 답은? “삶에서 고통은 반드시 필요한가요? 고통 없이 살 수는 없을까요?” 욕망이 난무하고 꼼수가 판을 치는 세상에 힘차게 떨치고 일어나 외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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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학렬 “부동산 폭락만 기다려서는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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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사회에서 집은 보금자리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주목할 점은 긍정적인 면보다는 부정적인 면이 더 많이 부각된다는 사실이다. 빈부 양극화의 원흉, 투기 상품, 아파트로 상징되는 건조한 공동 주거 형태 등등이 그렇다. 한국에서도 부동산, 하면 떠오르는 게 바로 ‘비싼 아파트값’인데 최근에는 그 비싼 정도가 심해서인지 부동산에서는 대세 하락론이 인기를 끌고 있다.

 

『선대인, 미친 부동산을 말하다』는 대세 하락을 내세운 대표적인 책이었다. 이 책이 나온 게 2013년 11월이었고, 이후에도 꾸준히 많은 독자들에게 읽혔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책이 나온 시점부터 지금까지 폭락이라고까지 할 만한 징후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일부 지역에서는 소폭 상승했다는 소식도 흘러나온다. 앞으로 집값 예측을 쉽게 할 수 없는 시점에서 사람들은 집을 사야 할지 말아야 할지 헷갈릴 수밖에 없다. 
 
『흔들리지 마라 집 살 기회 온다』의 김학렬 저자도 사석에서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이 ‘집 사도 괜찮아?’였다고 한다. 15년간 대형 건설사를 대상으로 부동산 컬설팅을 해오며, 한국갤럽의 부동산 조사본부 혁직 팀장으로 활약 중인 저자는 대세 하락론은 한쪽만의 입장이라고 반박하며 좀 더 입체적인 견해를 가질 것을 주문한다.

 

이 책은 앞으로 부동산을 대세 상승, 대세 하락으로 봐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한국이 미국이나 일본 사례와는 다르다며, 폭락할 가능성도 낮다고 본다. 그렇기에 단순히 집값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리는 것은 현명한 대처가 아니라는 지적. 책에 좀 더 자세한 분석이 있지만, 채널예스 인터뷰에서 현재 한국 집값을 둘러싼 대강의 이슈를 다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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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사야 하나 말아야 하나 망설이는 독자를 위해 쓴 책

 

『수도권 알짜 부동산 답사기』가 실전 편이라면, 『흔들리지 마라 집 살 기회 온다』는 총론 편처럼 느껴지는데요. 각각 어떤 성격인가요.

 

두 책 모두 총론에 가까운 책입니다. 실전 재테크 책은 아니에요. 『수도권 알짜 부동산 답사기』는 입지를 분석하는 기본이 무엇인지 설명한 책입니다. 현재 입지의 모습은 그 곳의 과거에서 온 것이고요, 현재의 모습에서 곧 미래를 예견할 수 있는 것이죠. 이렇게 그 입지의 과거, 현재를 살펴보다 보면 그 입지를 보는 시야가 생깁니다. 그 시야를 바탕으로 서울, 경기, 인천 주요 지역의 과거, 현재, 미래를 다뤘어요. 『흔들리지 마라 집 살 기회 온다』도 같은 연장선이에요.

 

지금은 집을 사야 할지 말아야 할지 판단하기 가장 어려워하는 시점이에요. 2008년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세였다가 최근에는 조금 오른 것도 같다고 생각을 하시거든요. 그래서 2015년은 어떻게 될지 질문을 많이 하는데, 이 문제에 명확하게 답하는 책이 없습니다. 최근에 나온 책이라고 해야 『선대인, 미친 부동산을 말하다』인데, 이 책이 2013년 11월에 나왔거든요. 그리고 이 책은 폭락론을 기저에 깔고 주장을 전개하는 책이라 한 쪽 입장만을 말해요. 그 책을 읽으면 더 혼란에 빠질 수 밖에 없는 시점인 거죠. 그래서 『흔들리지 마라 집 살 기회 온다』를 쓰게 되었습니다.

 

부동산이 모든 대한민국 사람의 관심사일 텐데, 관련해서 책이 안 나오는 이유가 뭘까요.

 

부동산과 관련해서는 경매하는 방법을 다룬 것처럼 특정 분야의 실용서는 어느 정도 나와요. 그런데 현재를 분석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책은 책을 쓰는 분들에게 부담이 많이 되죠. 예측이 틀리면 전문가에게는 치명타니까요. 게다가 책을 낸다고 해서, 돈이 될 만한 책도 아니기 때문에 굳이 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선대인 소장의 폭락론이 균형을 잃었다고 보시는데요. 그렇다면 현재 한국 부동산을 어떻게 봐야 할까요?

 

『선대인, 미친 부동산을 말하다』은 정말 많이 읽힌 베스트셀러입니다. 저도 여러 번 읽었습니다. 제시한 통계 수치는 참 좋아요. 하지만, 수치라는 게 양쪽을 다 봐야 하거든요. 이 분은 통계를 활용하여 한쪽으로 몰고 가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선대인 소장님은 정부가 토끼몰이를 하고 있다는 표현을 많이 쓰시는데요. 정작 선 소장님이 토끼몰이를 하고 계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경제, 특히 부동산 시장 전문가로서 선대인 소장님이나 김광수 소장님은 영향력이 대단히 크신 분들인데, 우리 중산층들이 실제 도움이 되는 말씀을 해 주셨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분들은 한쪽 방향으로만 부동산 시장과 정부를 비판하기만 해요. 집값이 계속 떨어진다,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라고 하시잖아요. 정말 궁금해서 저도 질문한 적이 있어요. 언제까지 떨어질지, 그 때가 되면 사도 괜찮다고 말씀을 해 주실 건지 구체적으로 물었지만, 답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앞으로의 시장은 단순하게 대세 상승, 대세 하락으로 이해하면 안된다고 생각해요. 입지마다 다 상황이 다르거든요. 동시에 오르고 동시에 내리고, 절대 그렇게 시장이 움직이지 않아요. 이런 각기 다른 차이점을 이해하고 개별적인 지역에 맞게 이해하고 활용해야 합니다.

 

폭락은 없겠지만 양극화 심해질 수도

 

폭락론에 동의하지 않고 대신 부동산에서 양극화가 심해진다고 주장하셨는데요.

 

전 폭등론자가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의 입장입니다. 그걸 전제로 해두고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전체적으로 집값이 오르고 내리는 흐름이 있을 수는 있겠죠. 하지만, 사람이 많이 사는 지역들은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인플레이션만큼은 오를 거예요. 반대로 지금 인기 없는 곳은 앞으로도 여전히 인기가 없을 거고요. 책에서도 일본 예를 들었는데, 일본엔 공실도 많지만 도쿄 중심부는 공실은 거의 없고요. 또 여전히 많이 비쌉니다. 물론 일본 정도는 아니더라도 한국 부동산 시장의 양극화는 더 심해질 거예요.

 

폭락론의 근거가 수요에 비해 공급이 많다는 건데요. 이미 주택 보급률은 100%를 넘었고, 인구는 준다는 설명입니다.

 

맞습니다. 그건 실제 팩트입니다. 하지만, 주택 보급률이 100%가 넘었다고 해도 많은 사람들이 살고 싶어하는 입지가 100% 공급되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입지는 한계가 있습니다. 전국의 많은 사람들이 서울에서 살고 싶다고 서울을 물리적으로 확장할 수는 없죠. 이것도 팩트입니다. 인구가 아무리 줄어도 강남에 살고 싶어하는 사람은 여전히 많을 거에요, 그렇다고 모든 사람이 강남에 살 수 없어요. 이렇듯 핵심 지역의 수요는 줄지 않습니다. 인구 감소와 주택 보급률은 단순히 평균적인 의미이지 주택에 대한 개별적인 수요를 모두 충족했다는 의미와는 별개의 이야기라는 말씀입니다.

 

한국의 가계 부채가 많고, 그 가계 부채 대부분이 부동산과 얽혀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대출이자를 감당하지 못해 나온 매물이 가격 하락을 주도할 수도 있다는 시나리오인데요.
 
우리나라는 금융 제도가 다행히 잘 되어 있는 편이에요. 완화 정책을 지속적으로 펴고 있는 지금도, 노무현 정부 때보다 다소 완화되긴 했지만, DTI와 LTV로 대출 한도를 묶어 놓고 있습니다. 과거 부동산 문제가 되었던 일본과 미국은 집의 실제 가치의 100퍼센트 이상을 대출해 줬기 때문에 생긴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요, 아무리 신용이 좋아도 집값의 70퍼센트 이상을 못 받고요. 원리금 상환액이 본인 연간소득의 60퍼센트 이상을 넘지 못합니다.

 

수도권 지역 주택의 경매 낙찰가률이 90퍼센트 전후인데, 이 말은 담보 대출이 문제라면 경매 넘어가기 전에 충분히 팔 수 있다는 뜻이에요. 바꿔 말하면 실제로 집 살 때 대출을 많이 받아서 경매로 넘어가는 경우는 많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아마도 사업 자금이나 생활 자금으로 쓴 대출로, 혹은 연대 보증 등으로 문제가 되어 경매로 가는 게 대부분일 겁니다. 결국 이건 부동산 담보 대출 문제가 아니라 다른 차원의 대출 활용이나 씀씀이가 문제라는 것이죠.

 

한국 부동산은 일본 사례와 다르다

 

그럼에도 부동산 사례를 말할 때 항상 일본이 거론됩니다. 부동산 버블 붕괴와 노령화가 겹치면서 장기 침체로 가는 시나리오요. 이런 예측을 믿는 사람도 많은 것 같습니다.

 

Do you know 시리즈가 있었죠. 김연아, 박지성, 싸이를 아냐고 외국인에게 물어보는 건데요. 외국인들도 김연아, 싸이는 알 수 있겠지만 생각보다 외국에서 한국이라는 나라의 인지도가 낮아요. 인지도 높은 나라는 대부분 경제력이 셉니다. 한국을 일본이나 미국과 직접 비교하는 건 과대 해석이 발생할 여지가 있다고 봐요. 지금도 일본 집값은 비싸지만, 1980년대 일본은 돈이 정말 많았습니다. 도쿄의 일부만 팔아도 브라질의 모든 땅을 다 사고도 남을 정도였다고 하니까요. 당시 일본은 전 국민이 부동산 투기를 했습니다. 은행에서는 부동산 가격이 계속 올라가니까 현 가치 이상으로 대출을 해 주고 부동산 매매를 독려하기까지 했죠. 실제로도 버블이 컸다는 의미에요. 제가 판단하기에는 한국의 비싼 집 값도 이 정도 수준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IMF 때도 버블이라면서 엄청나게 빠졌지만 3년 만에 이전 시세 이상을 넘어 버렸었고요. 이 정도면 버블이 아니라, 경제 사이클 중 한 구간으로 봐야 하지 않을까요.

 

폭락론의 또다른 근거가 소득에 비해 부동산이 너무 비싸다는 견해인데요. 월급쟁이가 몇 년을 모아야 집을 살 수 있다, 이런 이야기 말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한국은 땅이 좁아요. 일본도 좁지만 우리보다는 넓죠. 각 나라 전국의 평균 가격으로 따지면 그럴 수도 있겠죠. 세부적으로 분석해 봐야겠지만 각 나라의 중심, 즉 서울과 도쿄만 놓고 보면 절대로 그런 비교가 안될 거예요. 서울도 비싸지만 도쿄는 정말 비쌉니다. 버블 시절보다 많이 빠졌다고 해도 아직도 엄청나게 비싼 수준이에요.

 

일본과 비교할 필요도 없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한국 집값이 싼 시기가 있었는지요. 집값은 대한민국 역사상 단 한 번도 싼 적이 없었어요. 1980년대 초 대기업 월급이 20만원일 때도, 집값은 몇 천 만원씩 했잖아요. 지금으로 치면 몇 억 이상인 거죠. 집 사는 건 언제나 어려웠어요. 그런데 왜 그때보다 지금이 집 사는 것이 더 어렵냐라고 질문을 하실 수 있겠죠. 그 차이는 다른 곳에 있기 때문이죠. 그때는 입고 먹고 자는 것만 해결되면 돈을 쓸 곳이 많지 않았는데 요즘은 돈쓸 데가 정말 많습니다. 최신 휴대폰 기기값/통신비가 거의 매달 10만 원씩 나오는데, 한 가정에 2~4대 정도 있죠. 자동차도 1대 이상씩 다 있고요. 예전에는 외식은 진짜 연간 행사였잖아요. 1년에 외국여행도 한 번씩 다녀와야 하죠. 그리고 아이 키우는 데 교육비도 정말 많이 들잖아요. 


돈 쓸 곳이 과거와 비교하면 너무 많아요. 이런 지출을 다하면서 집을 사려고 하는데 어떻게 집을 살 수 있겠어요. 이것이 나쁘다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닙니다. 삶의 질을 추구하는 눈높이가 달라졌다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어쩌면 옛날 우리 부모님처럼 의식주 이외에는 안 쓰고 월급 꽉 움켜쥐어서 모은다면 집 사기가 생각하시는 것처럼 그렇게 어렵지 않을 수도 있어요. 게다가 요즘은 과거보다 대출 제도도 더 잘 되어 있잖아요. 이런 생각들은 많은 분들이 거의 안해 보셨을 거에요.

 

부동산에서 세대론도 화두입니다. 베이비부머가 집값을 올려놨는데, 청춘은 가난하니 그 집값을 감당할 수 없다는 분석입니다. 기성 세대를 향한 비난도 느껴지는 분석인데요. 은퇴한 베이비부머 세대가 노후 자금이 없으니 대규모로 매물이 나와서 가격이 떨어질 거라는 시나리오입니다.
 
전형적인 남탓하기죠. 기성 세대가 나쁜 사람인가요? 바로 우리 어머니 아버지입니다. 후손 괴롭히려고 집값 올린 게 아니에요. 논리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말이 안 되죠. 집값 올린 건 시장이지, 그분들이 아니에요. 마찬가지로 향후 집값이 떨어진다고 하면 시장이 떨어뜨리는 거겠죠. 그분들이 열심히 살았기에, 우리 삶의 질이 높아졌다고 봐야죠. 그렇다고 그분들이 비싸게 샀기에, 우리가 비싸게 사줘야 한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그건 철저하게 시장에 맡기자는 겁니다.

 

우리 부모님 시대에는 집이 없었어요.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느는데 공급이 적었죠. 물론 베이비부머가 많았기 때문에 상승시장에 영향을 더 줬을 거에요. 그렇다고 이분들이 은퇴를 한다고 시장에 매물만 쌓이게 된다고는 보지 않아요.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데, 일단 이분들 수명이 과거보다 훨씬 길어졌습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간과하고 있는 점이 있어요. 


더 주목해야 포인트는 그 이후 세대, 즉 2차 베이비부머 인구도 1차 베이비부머 이상으로 많다는 사실입니다. 1971년생 인구가 제일 많아요. 지금 1차 베이비부머 세대가 은퇴한다 해도 향후 10년 이상을 2차 베이비부머가 주도해 갈 거예요. 이 세대 역시 1차 베이비부머에 버금가는 경제력이 있습니다. 그 다음 세대는 1979년 이후에서 1992년에 태어난 에코세대인데 이 때부터는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살펴 봐야 합니다. 이들 중에서도 집을 사는 사람이 있다면 대개 어버이 세대인 베이비부머 세대의 도움 덕분이죠. 이렇게 베이비부머 세대가 에코세대를 지원한다면, 집을 사는 세대는 에코세대까지도 갈 수 있어요. 물론 과거보다 절대적 수요는 줄겠죠. 그렇더라도 폭락론자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모든 세대가 다 무너지는 일은 없을 겁니다. 당연한 거잖아요. 집은 누구든 살아야 하고 살 집은 누군가는 사야 하는데, 폭락론에 따르면 결국 모두 안 산다는 주장이니까요.

 

다른 차원의 이야기일 수 있는데, 최근 동부건설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불안감을 증폭시켰는데요.

 

삼성, 현대, 대림, 대우, GS 등 메이저 건설회사는 국내매출보다 외국매출이 훨씬 큽니다. 대체로 주택 분야보다 플랜트나 토목 쪽의 매출이 더 크다는 말이죠. 그리고, 대부분 건설사 이외에 타 분야의 그룹 계열사가 많고요. 만약 이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대기업 건설회사가 어렵다면 아파트 산업보다는 다른 쪽에서 문제가 생겼을 확률이 높을 겁니다. 동부도 마찬가지일 거고요.

 

다만 건설사 사이에서도 양극화는 심해질 거예요. 래미안, 푸르지오, e편한세상, 자이, 힐스테이트 등 메이저 브랜드는 한국에서 아파트 지어서 분양하는데 거의 문제가 없어요. 이 브랜드 이외의 회사들이 오히려 문제죠. 2군 브랜드부터는 현장 한 곳이라도 분양 경쟁에서 밀리게 되면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런 1군 브랜드 아파트는 시장에서 시세 가치를 유지해 준다고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스스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2군 브랜드 아파트보다 분양가가 평당 100~200만원 더 비싸도 분양이 잘 되죠. 많은 사람들은 이런 메이저 건설회사가 적정 이익 이상을 갖고 간다고 생각할 겁니다. 하지만 적정 이익의 기준이 참 모호해요. 많은 분들이 원가를 생각하시는데, 브랜드로부터 생기는 부가가치를 인정해야 하는지 안 되는지를 따져봐야 하죠. 여기서 대부분 개인적인 평가들을 합니다. 자신에게 유리하면 당연한 것이고, 아니면 부당한 것이 되죠. 전 브랜드 가치는 소비자가 결정한다고 봅니다. 소비자가 브랜드에 대한 추가 비용을 주고 구입한다면 브랜드 가치는 정당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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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선택은 개인의 몫

 

정부는 표심을 의식할 수밖에 없고, 정부가 어떤 쪽도 편들 수 없는 게 절반이 자가이고 절반이 임대이기 때문이라고 진단하셨습니다. 집을 살지 임대로 살지는 결국 개인이 선택할 몫이라고 하셨는데요.

 

정부가 한쪽만을 편든다는 음모론이 있습니다. 물론 그런 음모가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중요한 건 그런 식으로 정부를 욕하기만 한다고 자신에게 혜택이 오는 건 아니에요. 정당한 요구라면 정부에 적극적으로 요청은 해야겠죠. 문제는 우리가 요구하는 대로 피드백이 바로 오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정부가 나를 위해 뭔가를 해 줄 거라 기다리기만 하면 안 되고, 결국은 우리가 직접 결정하고 행동해야 할 일이 대부분이에요. 집을 정말 사고 싶다면, 무조건 떨어질 거라고 믿고 기다리기만 하면 안됩니다.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준비를 해야지요. 임대로 살기로 결정했으면 임대 환경이 좋은 주택을 선택하는 쪽으로 노력을 해야 하는 것이고요. 대책 없이 기다리는 것처럼 무의미한 일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화두가 전세입니다. 폭락론에서는 집을 사지 말고 최대한 전세나 월세로 버티라고 했는데요. 전세가 없잖아요.
 
이런 추세라고 한다면 전세는 사라질 수 밖에 없어요. 전세는 집주인이 시세 차익을 염두에 두고 임대를 주는 형태인데, 폭락론자들의 주장처럼 집값이 계속 떨어진다면 집주인은 전세를 놓을 이유가 없는 것이죠. 결국 매매로 살든지 월세로 살든지를 선택을 해야 합니다. 정부가 매매나 월세로 토끼몰이를 한다고 주장하는 분이 계시죠. 그분에게 다시 묻고 싶습니다. 모든 주택의 전세가격이 정말 다 떨어질까요? 집주인들이 임차인들을 위해서 시세가 떨어지는 주택을 전세로 주면서 가지고 있으려 할까요? 정부가 토끼몰이는 한다고 하는 매매/월세 말고 도대체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기다리면 정말 다 해결이 될까요?

 

그런데 왜 우리는 집을 사야 할까요?

 

무조건 집을 사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집을 사는 것이 사지 않는 것보다 더 효율적이라는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그건 자신만의 주택 소유 여부에 대한 인사이트가 있어야 합니다. 투기 상품으로써의 부동산에 대한 비판은 당연히 있어야 하겠죠. 하지만 의식주의 한 가지인 주는 행복한 가정생활을 위한 보금자리로서의 의미입니다. 실거주 목적이라면 집은 보금자리가 될 수 있어요. 집이 있으면 걱정의 종류가 큰 폭으로 줄어요. 물론 대출 이자가 생활비에 지나치게 부담 주지 않을 정도로 사야 합니다. 기본적인 경제력이 있을 때까지는 열심히 저축을 해야지요. 설사 대세 하락이 된다고 해도, 제 집만 빠지는 게 아니거든요. 다른 집값도 빠지니까, 다른 더 좋은 집으로 갈 수도 있고요. 적정한 수준의 대출은 강제 저축 의미도 있어요. 대출이 있으면 딴 비용을 줄이려고 하니까요. 교체하려던 차를 더 오래 탄다거나, 하와이로 여행 갈 걸 동남아로 갈 수도 있고요.
 

2014년 기준 아파트 한 평당 표준 건축비는 500만 원이 넘는다. 평당 500만 원의 건축비로 계산해서 30평형 아파트는 건축비로만 1억 5천만원이 넘는 비용이 들어간다. 여기에 땅값을 추가로 계산해야 한다. 30평형 아파트의 대지 지분이 보통 15평 정도 하니까 평당 1천만 원만 잡아도 대지비만 1억 5천만 원이다. 따라서 30평형 아파트의 기준 시세는 3억 원이다. 만약 땅값이 평당 2천 만원인 지역이면 4억 5천만 원이 된다. 평당 3천만 원인 지역이면 6억 원이다. 이게 순수원가다. (198쪽)


대한민국이 서울 중심이고, 지방에서 살고 싶지만 일거리가 없으니 수도권으로 올라올 수 밖에 없는 상황인데요. 서울에서 집을 사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돈이 필요할까요. 책에서는 30평대 아파트를 사기 위해서는 최소 3억 이상을 잡으셨는데요.
  

정답이 없죠. 당장 10원이 없어도 서울에서 월세로 살 수도 있고, 돈이 엄청나게 많아도 시골 산골짜기에서 살 수 있으니까요. 그건 선택의 문제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저는 꼭 집을 구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건 아니에요. 경제력과 무관하게 본인의 의지로 임대로 살 수도 있습니다. 각자 경제력이 다르고, 삶의 방식도 다르고, 가치관도 다르니까 자신만의 기준으로 합리적으로 판단하시면 될 거예요. 비싼 도심에 무조건 살아야겠다는 사람은 임대 형태로라도 사셔야 하는 거고요, 쾌적한 환경이 좋다면 산과 물이 가까운 곳으로 가셔야죠.
 
어쨌든 과거처럼 드라마틱하게 오를 거라는 기대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주거 형태에 관한 고민도 있는 것 같습니다. 대표적으로 땅콩집이 그랬는데요. 앞으로 주거 형태는 어떻게 바뀔까요.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가 가장 비싼 주택 상품이라 생각하지만 사실 가장 저렴한 주택입니다. 비용 대비 효용이 크니까요. 부동산은 땅의 가치가 가장 중요합니다. 일정한 면적당 혜택을 누리는 사람들의 숫자를 생각해 보세요. 게다가 관리사무실, 경비실, 각종 커뮤니티 시설에서 누릴 수 있는 게 많아요. 그렇게 보면 단독주택이 가장 비싼 형태죠. 땅의 넓이에 비해 건축물 규모와 쓰는 사람의 수가 작으니까요. 아마도 단독주택을 향한 로망은 누구나 다 있을 거예요. 하지만 서울에서는 현실적으로 경제력이 없다면 살기 힘들죠. 결국 서울은 수요가 줄어들지 않는 이상 아파트 같은 공동 주택 형태가 계속 인기가 있을 겁니다.

 

좀 가벼운 질문 드리겠습니다. 통일이 경제에 도움이 될 거라는 근거로, 부동산 개발을 꼽잖아요. 통일이 되면 어디에 투자하시겠습니까.

 

통일은 대박이 맞습니다. 경제적으로 엄청난 플러스가 됩니다. 부동산 쪽도 마찬가지죠. 개발할 곳이 많은 북한의 주요 도심들도 좋겠지요. 평양, 개성, 신의주 등 일단 북한의 메인지역 들을 우선적으로 봐야겠지요. 하지만 굳이 한 곳을 선택하라고 하시면 그래도 서울입니다. 동독 서독 통일 때도 결국 베를린으로 많이 몰렸습니다. 통일이 되면 서울, 경기, 인천은 더 중요해질 거예요.
 
끝으로, 독자에게 한 말씀.

 

다들 자기 기준에서 볼 수 밖에 없을 겁니다. 집이 없는 사람은 집을 가진 사람이 특별한 이유 없이 미울 거예요. 또 비싸게 분양하는 건설사가 미울 수도 있고, 서민들에게 전혀 혜택을 주지 못한다고 평가되는 정부가 미울 수도 있겠죠. 그런데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해 보세요. 기본적으로 기업체는 이윤 추구가 주된 목적이고, 정치하는 사람은 정권을 유지하는 게 존재 이유입니다. 집주인은 시세 차익이든 임대로 소득을 올리는 게 목적이겠죠. 이것을 단순히 이기적인 목적이라고만 할 수만 있을까요?

 

나 이외의 다른 객체, 즉 정부, 기업, 집주인에게 기대만 하고 무작정 기다리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적극적으로 스스로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결정을 하고 움직이셨으면 합니다. 제 책 『흔들리지 마라 집 살 기회 온다』가 어떤 기준을 가져야 하는지 몰라 흔들리는 많은 분들에게 하나의 방법을 알려 드리게 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Have your own insigh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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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지 마라 집 살 기회 온다김학렬 저 | 북아이콘
이 책의 저자는 바로 이 예측하기 어려운 현재의 부동산 시장에 대한 의사결정 가이드를 제공한다. 정부의 정책에, 일부 지역 부동산 시장의 광기와 황량함에, 경제 전문가들의 서로 엇갈린 주장에, 언론의 호들갑에 흔들리는 일반인들이 스스로 운전해 가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내비게이션 역할을 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대한민국에서 부동산이 어떤 위상을 가지고 있으며, 왜 이렇게 매년 관심과 비판의 중심에 서게 되는지, 또 이런 어지러운 부동산 시장에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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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운 “상처 없는 삶을 꿈꾸는 건 삶에 대한 무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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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철학을, 철학으로 삶을 이야기하다


『철학을 담은 그림』의 저자 채운은 한 점의 그림 혹은 조각을 슬쩍 내밀며 독자들에게 말을 걸어온다. ‘그 안에서 당신은 무엇을 보았습니까’ 묻는다. 앤드루 와이어스의 「크리스티나의 세계」에서는 진한 피로감이 묻어나오고, 오귀스트 로댕의 「키스」 안에는 환상 속의 사랑이 잠들어 있다. 조지프 말러드 윌리엄 터너의 「눈보라」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혼돈을,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의 「론다니니의 피에타」는 미완의 상태로 존재하는 현실을 상기시킨다.

 

결국 저자가 제시한 작품들 속에서 독자들이 보게 되는 것은 자신과 현실의 모습이다. 그 안에는 욕망과 갈등과 고통이 어지럽게 뒤엉켜있다. 왜, 이상은 언제나 먼 곳에 존재하는 것일까. 그곳에 다다르려면 얼마나 더 가야하는 걸까. 그때까지 행복은 미뤄둬야 하는 것일까. 불쑥불쑥 솟아오르는 질문들에 저자는 철학적인 이야기들로 답한다.

 

“지금을 ‘참고 견뎌야 하는’ 시간으로, 혹은 미래를 위한 준비 기간으로 만드는 한 행복은 ‘없는 것’에 대한 헛된 망상에 불과”하다고 일침을 가하고 “인간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결여 자체가 아니라 결여가 만들어내는 감정들, 즉 결여를 채우려는 욕심과 결여 상태에 대한 고통, 결여를 채울 수 없는 데 대한 두려움”이라고 조언한다. 동서양의 철학을 아우르는 그 이야기들은 우리로 하여금 끊임없이 자문하게 만든다. 내가 진정으로 욕망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해 온 자아와 삶의 모습은 무엇에 기인한 것인가.

 

질문의 끝에서 우리는 생소한 감정과 마주한다. 견고하게 버티고 있던 상식과 환상의 성이 조금씩 무너져 내리는 ‘세계의 파괴’를 경험하는 것이다. “환상이 깨지는 순간은 우리 자신의 심연을 만날 기회입니다. 내가 마주하려고 하지 않았던 진실, 환상 속에서 애써 외면했던 삶의 진실이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라는 저자의 말처럼 철학을 담은 그림』은 환상의 성 밖에 실존하는 삶의 진짜 모습에 눈뜨게 한다.

 

그런 이유로 채운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을 때로는 당혹스럽고, 또 때로는 안도감을 느끼게 한다.“어쩌면 ‘상식’에 맞춰 살지 않으면 낙오될까 봐, 손가락질 당할까 봐 두려워 그냥 그렇게 살고 있는 건 아닐까요?” “당신은 정말 당신 자신을 살고 있나요? 아니면 당신이 만들어 놓은 ‘자아의 환상’ 속에서 휘청거리고 계신가요?”라는 날카로운 질문은 애써 외면해 왔던 진실을 들춰낸다. 그런가 하면 “불행과 고통을 피하고 기쁨과 행복만을 바라는 건 일상적인 욕망입니다. 하지만 거대한 환상이죠. 늙고, 죽고, 병들고, 이별하지 않을 수 없는 것, 그게 삶이니까요” “상처 없는 삶을 꿈꾸는 건 삶에 대한 무례입니다”라는 이야기는 가만히 어깨를 다독이는 듯 하다. 계획은 어긋나고, 기대는 빗나가고, 성공의 순간은 멀고, 실패의 순간은 가까운 현실이 ‘문제’가 아니라는 말에서 위안을 얻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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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행복하지 않을까?


『철학을 담은 그림』안에서 그림으로 철학을, 철학으로 삶을 이야기하는 저자 채운. 그녀와의 만남은 고전비평공간 ‘규문奎文’에서 이뤄졌다.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한 후 고고미술학 박사과정을 수료한 저자는 또 다시 새로운 영역으로 배움을 옮겨갔다. ‘규문奎文’의 연구원으로 동서양의 철학과 역사를 공부하면서 강의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녀와의 인터뷰는『철학을 담은 그림』을 함께 되짚는 시간이 되었다. 그 속에서 한층 또렷해진 삶의 실체를 전한다.

 

『철학을 담은 그림』은 자신과 삶의 실체를 바라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조언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신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이곳 ‘규문奎文’에서 많은 분들과 함께 공부하면서 갖게 된 의문이 있는 것 같아요. ‘우리는 모두 안정된 삶을 원하고, 실제로 어떤 사람들은 안정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임에도 불구하고, 왜 별로 행복하지 않을까’라는 것이죠. 돈이나 배움의 양과 관계없이 삶에 대해서 공허함을 느끼는 건 공통점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잘 할 수 있는 이야기인 그림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쉽게 건넬 수 있는 말이 있다면 무엇일까 생각하게 됐어요. 조금 더 쉽고 말랑말랑한 글로써 자신의 자리를 바라보게 해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한 거죠. 

 

‘그림과 철학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작가님의 지난 이력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고고미술학 박사과정을 수료하셨고 현재는 동서양의 철학과 역사를 공부하고 계신데요. 철학과 미술 사이에 어떤 연결고리가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대학원에서 고고미술학을 공부하면서 미술을 너무 양식적으로만 바라보는 것에 의문이 들었어요. 그래서 철학을 연구하는 공간에서 공부를 시작했죠. 만약 미술사만 공부했다면 금방 지겨워졌을 것 같은데, 철학을 같이 공부하면서 새롭게 미술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다 보니까 박사과정을 수료한 이후에 학교에 남아서 공부를 계속하는 일도 시시해졌죠. 학교 밖에서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이어가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근대를 전공하다 보니까 고전이라는 세계와 만나게 됐어요. 근대라는 공간이 묘하게 전근대와 현대가 섞여 있는 공간이잖아요. ‘근대 이전의 시간을 들여다보면 어떨까’ 하고 공부를 하다 보니까 고전의 세계에 다다른 거죠. 여기가 보물창고구나 싶더라고요. 그러면서 점차 공부의 영역에 대한 집착이나 당위가 없어졌다고 할까요.

 

『철학을 담은 그림』에 실린 그림들은 어떠한 기준으로 선택하신 건가요? 각각의 주제에 맞는 미술 작품들을 고르셨나요?


그렇죠. 어떤 이야기는 그림이 너무 좋아서 시작하게 됐어요. 파울 클레의 그림이 그렇죠. 제가 워낙 클레를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대부분은 주제를 정하고 나서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그림은 뭐가 있을까’ 생각하면서 찾았죠.

 

파울 클레의 그림을 좋아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파울 클레는 회화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해요. 사실은 철학 공부를 하다가 우회해서 클레를 마주치게 되는 계기들이 여러 번 있었어요. 그러면서 클레가 남긴 노트북과 그림 같은 것들을 찾아서 오랫동안 봤고요. 완전한 추상도 아니고 완전한 구상도 아니고, 그 사이에서 그림의 기본 요소들을 가지고 자기 돌파를 해나가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철학을 담은 그림』에서 들려주신 파울 클레의 삶 역시 인상적이었습니다. 병을 앓기 시작하면서 아이처럼 단순해지고 깊어진 그림을 그리게 되었잖아요.


무언가를 못하게 된 순간에 그것을 통해서 새롭게 하게 되는 걸 발명한 거죠. 젊은 시절의 클레는 아주 잔 터치들을 많이 했어요. 그러다가 피부가 서서히 굳어지는 병을 앓게 되면서 잔 터치들을 할 수 없게 됐죠. 그러면서 선이 아주 단순해지고 굵어진 거예요. 우리가 뭔가를 할 수 없다고 하는 순간에 누군가는 그 ‘할 수 없음’이 새로운 걸 ‘할 수 있음’으로 돌파한, 에너지의 전환 같은 게 있었다는 거죠.

 

『철학을 담은 그림』에는 망상이나 오해, 환상 등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이 문제들의 공통적이고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요?


제가 몇 년 동안 불교를 비롯한 철학 공부를 해오면서 갖게 된 질문이 ‘사람들은 왜 불행하고 불안하고 두려워할까’라는 거예요. 아주 기본적으로 보면 단순한데요. 물리학이나 세계의 법칙을 우리가 모르지 않아요. 무언가가 생겨났다가 변하다가 사라진다는 아주 단순한 법칙이잖아요. 그걸 알고 있으면서도 사실 우리는 잘 몰라요. 우리의 몸과 이 세계가 겪는 자연스러운 법칙에 반해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죠. 무언가가 영원했으면 좋겠고,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게 쭉 이어졌으면 좋겠고, 안정됐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거예요. 그건 우주의 법칙을 완벽하게 거스르는 것이거든요. 몸이 나아가는 방향과 생각과 마음이 나아가는 방향이 맞지 않는 거죠. 그러면 고통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두려움이나 망상이라는 것도 다 거기에서 비롯된다는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 되는데, 그 법칙을 거슬러서 무언가에 도달하고자 하고 어떤 것을 유지하고자 하기 때문이죠. 『철학을 담은 그림』에서는 그 환상들을 깨나가는 것이 공부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예술은 그것을 즉각적으로 보여준다는 이야기도요.

 

프롤로그에 적으시기를, 이 책을 쓰기로 마음먹은 건 ‘시누이’ 때문이라고 하셨어요.


책을 쓸 때 항상 ‘내가 누구한테 말을 하는 건가’를 생각하면서 독자를 떠올리는데요. 『철학을 담은 그림』은 젊은 30대, 40대의 여성들이나 일반 직장인들이 예술에 대해서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책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올케를 떠올리게 됐죠. 결혼해서 아이를 키우면서 직장생활도 하고 있는 그 친구가 겪고 있는 마음들이, 지금의 많은 사람들이 겪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그 친구와 같은 사람들한테 이야기를 해주면 어떤 식으로 풀어갈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서 쓰게 됐죠.


외로워하지 말고 고독을 선택해라


“사는 게 고통스럽다면 위로와 의지처를 찾아 헤맬 일이 아니라 고통에 대한 다른 감각과 사고를 배워야 한다”고 적으셨습니다. 고통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감각은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요?


영원할 것 같았던 것들도 시간이 흐르면 사라지잖아요. 그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거예요. 인간만 그 법칙에서 벗어날 수는 없어요. 그런데 영원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영원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됐을 때 자기의 생각과 신념들이 무너지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 없는 거죠. 그러니까 어떤 사건 자체가 고통스러운 게 아니라 헤어지고 병들고 실패하는 것이 고통스러운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일 자체를 고통스러운 거라고 단정을 지어버리니까 헤어 나올 길이 없어요. 자신이 생각하는 방식으로 잘 되기 전에는 누구도 행복하지 않은 거예요. 그런데 내가 생각하는 방식으로 잘 된다는 건 세상에 없거든요. 많은 철학자들도 이야기하는 것이, 원래 삶이 그렇다는 거예요. 우리는 그걸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고통스러운 일이 아닌 것을 고통스럽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리고 그 순간에 인과를 잘못 지어요. ‘누구 때문에’ 고통스럽다고 생각하는 거죠.

 

결국 우리를 괴롭게 하는 것은 스스로가 잘못 부여한 판단과 인과 때문이군요.


그래서 우리는 원인이 없어지거나 문제가 잘 극복돼야 행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런데 그렇게 잘 안 되잖아요. 그걸 다 알면서도 지켜볼 수 있는 힘이 없는 거거든요. 힘을 기르기 위해서는 이미 그 모두를 겪은 사람들이 보여줬던 자세를 배워야 해요. 저한테는 그게 공부죠. 누구나 나와 비슷한 일을 겪지만, 그 순간에 보여주는 태도는 다르거든요. 그렇게 다른 태도를 보여준 예술가들과 철학가들이 있고, 그런 것들을 배워 나가면서 사건들을 지켜볼 수 있는 힘이 생겨나는 거죠.

 

고통을 느낄 때 호소하는 감정 중 하나가 ‘외롭다’는 것일 텐데요. 작가님께서는 외로움과 고독을 구분해서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외로움이 아니라 고독”이라고 하셨는데, 어떤 의미입니까?


우리가 흔히 외롭다고 말할 때 뭔가에 의지하고 싶을 때인 것 같아요. 주변에 나를 따뜻하게 사랑해 주는 사람들이 없다는 이야기죠. 그러니까 외롭다는 건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다기보다는 사랑받고 싶다는 감정인 것 같아요. 굉장히 의존적인 감정이죠. 사람을 강하게 하는 건 사랑을 하는 힘인 거지 사랑을 받는 힘은 아니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항상 사랑을 받는다는 것을 더 욕망하잖아요. 내가 누군가를 영원히 사랑하지 않았다고 자학하지는 않으면서, 누군가가 나를 영원히 사랑해 주지 않았다는 것에 대해서는 분노를 느끼죠. 그러니까 외롭다는 감정은 굉장히 수동적인 것이기도 해요. 그래서 외롭다는 감정을 느낄 때 ‘인간이 얼마나 자기 스스로를 수동적으로 만드는가’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고요. 고독이라는 건 그걸 넘어가는 지점에 느끼는 감정이 아닐까 싶어요. 외로움을 받아들이는 순간이 자기 스스로 고독을 만드는 순간인 거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지만 최종의 순간에는 결국 자신의 두 발로 서 있을 수밖에 없음을 아는 것이 고독이죠. 그런 순간에 혼자인 걸 두려워하지 않아야 어른이 된다고 생각해요. 때로는 자신 안에서 낯선 힘을 발견할 때도 있는데 그렇게 스스로가 낯설게 다가오게 되는 순간에 느끼는 감정이 고독인 것 같기도 하고요.

 

『철학을 담은 그림』에서 중요한 키워드 중 하나는 ‘긍정’이 아닐까 싶습니다. 삶이 계획과 어긋나는 상황을 그대로 긍정하고, 삶에서 마주치는 고통도 긍정한다는 건 어떤 걸까요?


지금 있는 그대로 자신을 사랑하면서 사는 건 체념이지 긍정이 아니에요. 그리고 자신이 생각하는 올바름의 상이나 신념 체계에 대해서 집착하는 것도 긍정이 아니죠. 긍정이라는 건, 자기 안에서 발생하는 스스로를 넘어가는 힘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자신과 다른 세계나 생각을 만나게 됐을 때, 스스로가 만들어 놓은 상이 깨지는 경험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거죠. 한편으로는 고통스럽고 불편하지만 그걸 받아들여 가면서 자신의 집착들과 싸워 나가는 과정이 긍정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긍정한다는 건 굉장히 힘든 거죠. 자신의 세계를 바꿔야 되는 문제니까요. 긍정한다는 건 자기 안에 견고하게 구축되어 있는 세계와 싸워 나가는 과정이에요. 자신을 부정할 수 없으면 긍정이라는 건 불가능하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긍정하는 건 곧 ‘삶에서 순간을 응시한다는 것’과도 같다고 하셨어요.


우리는 때로 어떤 행위를 하고 있는 자신을 받아들이지 않아요. ‘나는 원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할 때가 있는 거죠. 사실은 지금의 결과가 내가 할 수 있는 전부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나는 원래 열심히 하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다는 걸 받아들여야 해요. 지금 하고 있는 것이 나의 전부를 보여주는 거예요. 내가 이상한 짓을 하고 있다면 이상한 짓을 하고 있는 게 나의 전부인 거죠. 만약 지금의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앞으로는 이러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하고 실제로 그렇게 해야 하는 거고, 그때의 자신이 또 존재의 전부인 거예요. 어설픈 이상과 현실의 문제로 환원하면 안 된다는 거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 지금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걸 받아들여야만 자신의 욕망이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알 수 있어요.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도 알게 되고요. 자신을 긍정하는 일도 내가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지를 똑바로 직시하는 것에서 시작돼요. 내가 어디에서 계속 넘어지는지 보고, 다음부터는 그곳에서 뭘 해야 할지를 모색해야죠. 『철학을 담은 그림』에서는 예술가들을 통해서 그 과정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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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와 패배는 다르다


장 뒤뷔페의 「풍경」으로 선택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면서 카를로스 카스타네다의 말을 인용하셨습니다. 그는 은사로부터 ‘이 길에 마음이 담겨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고 하는데요. 길에 마음이 담겨 있다는 건 무슨 뜻일까요?


『돈 후앙의 가르침』에 나온 그 구절을 개인적으로 굉장히 좋아해요. 길에 마음이 담겨 있다는 건 이런 거죠. 내가 가는 길에서 슬픈 일이 생길 수도 있고 길이 바뀔 수도 있지만,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럼에도 이 길을 가는 걸 원망하거나 후회하지 않을 수 있는 거죠. 길 끝에서 막다른 골목에 이르게 되면, 우리는 그때까지 느꼈던 행복들도 다 팽개쳐 버리잖아요. 괜히 이 길에 들어섰다고 생각하고요. 길에 마음이 담겨 있는 사람은 이곳에서 열매를 얻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도 하지 않아요. 진짜 마음이 담겨 있으면 이것이 나에게 가져다 줄 결과에 대해서는 하나도 생각하지 않게 되죠. 막다른 골목이 있다면 그곳에서 생각해 보면 되요. 막다른 골목인데도 계속 갈 것인지, 돌아서 갈 것인지, 샛길로 갈 것인지.

 

루쉰의 말을 인용하기도 하셨죠. 원래 길이란 없었고, 걸어가니 길이 되었다고요.


루쉰은 막다른 골목이 나와도 계속 가보면 된다고 했죠. 그러면 길이 만들어지기도 하는 거라고요. 사실 어떤 길에 무언가가 예정되어 있는 건 아니잖아요. 길에 마음이 담겨 있다는 건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그런데 직장을 다니면서 그렇게 하기가 참 쉽지 않죠. 직장이 내 삶은 아니니까, 의무감은 있을지 모르지만 거기에 마음을 담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그래서 다들 힘들어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직장인들은 안정된 월급 대신 감수해야 되는 게 있는 거죠. 그 부분이 전혀 없는 일은 없어요. 사람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도 많이 벌기를 원하는데, 그런 일은 거의 없죠. 무언가는 감수하면서, 그 일을 할 때 마음을 다하면 되는 게 아닐까 싶어요. 그러다가 이게 아니다 싶으면 다른 걸 하면 되는 거고요. 그런데 우리는 모든 게 좋은 상태를 꿈꾸니까, 그게 문제인 거죠.

 

미켈란젤로의 「론다니니의 피에타」와 함께 드라마 <미생>에 대해 이야기 하셨습니다. 이 시대의 미생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나요?


가끔씩 제게 ‘그림을 어떻게 공부하면 좋겠냐’고 물어오는 분들이 계세요. 그러면 저는 ‘미술관 가서 완성된 작품을 본다고 해서 안목이 생기지 않는다, 그 작품을 위해서 작가가 어떤 습작을 그렸는지를 보는 게 훨씬 더 좋다’고 이야기해요. 습작을 보면 작품을 어떻게 바꾸고 망쳤는지 알 수 있거든요. 그 과정에서 작가가 했던 고민, 그리고자 하는 것과의 만남이 모두 담겨 있죠. 완성작이라는 건 그런 과정을 거쳐서 도달한 하나의 끝일뿐이에요. 만약 완성작이 목표라면 그 후에 더 이상 작품을 할 수가 없겠죠, 그걸 위해서 달려갔으니까요. 우리는 마치 삶도 그렇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어떤 작가도 자신의 완성작에 집착하지 않거든요. 완성작을 보고 뿌듯해하지도 않고요. 삶도 마찬가지죠. 넘어지더라도 배우면서 경험하는 것들이 중요한 거죠. ‘그 결과 어디에 도달했다’라는 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요. 우리는 삶에서 목표가 중요하다고 얘기하잖아요. 과연 목표를 달성하는 경우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있다고 하더라도 목표를 보고 달려가는 삶은 공허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끝이 어떻게 되든 끝은 과정일 뿐인 거죠. 순간순간 내가 어떤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 어떤 마음의 소용돌이를 겪고, 무엇을 배우는지, 그런 과정들만이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런 점에서는 생 자체가 미생인 거죠.

 

실패한 것이지 패배한 것이 아니라는 말씀은 큰 위로가 됐습니다.


어쨌든 완전하다는 건 없으니까요. 공부를 하면 알게 되는 것 중 하나가 알면 알아갈수록 모르는 것도 같이 많아진다는 거예요. 아는 게 많아지면 모르는 건 적어질 것 같은데, 오히려 아는 게 많아지는 것과 비례해서 모르는 것도 많아져요. 그게 참 재미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모든 걸 안다는 게 불가능한 것처럼 인간 자체가 불완전하니까 불완전함 속에서 또 다른 불완전함을 갖게 되면서 살아가는 거죠.

 

에필로그에서 고흐의 자화상과 뭉크의 자화상을 보여주셨는데요. 두 화가가 삶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으셨던 것 같습니다.


결국은 자기 자신을 보자는 이야기를 하려고 했던 건데요. 고흐는 제가 워낙 좋아하는 작가이기도 해요. 사람들은 보통 드라마틱한 삶 때문에 고흐를 좋아하는데, 오히려 그것 때문에 놓치는 부분들이 많죠. 고흐는 삶의 성실성이 전부예요. 죽을 때까지 한 눈 안 팔고, 한 푼도 못 버는데도 끝까지 그림을 그렸죠. 정말 자기를 다 던져서 그림을 그렸고요. 그래서 몇 년 안 되는 시기 동안에 정말 많은 작품을 그렸어요. 한 획 한 획에 정성을 다해서요. 모든 예술가의 예술다움이라는 건 그 한 획에 있는 것이지 완성작에 있는 게 아니라는 것도 보여주고 싶었어요. 뭉크는 엄청난 부침을 겪었으면서도 도스토예프스키의 책을 읽으면서 편안하게 죽음을 맞았죠. 자기의 시대 혹은 자기 삶을 온 몸으로 살아낸다는 게 어떤 이미지일까를 그 두 사람에게서 보고 싶었어요.

 

두 화가는 주위 사람들의 평가로부터 자유로웠기 때문에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갈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항상 타인의 시선으로 자신을 보거나 자기 밖에 못 보잖아요. 내 안에서 여러 개의 시선들을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하는데, 정해 놓은 하나의 타인의 시선에 자기 삶을 맞추고 있죠. 생각해 보면 그것이 자기 삶에서 그렇게 중요한 것도 아닌데 말이에요. 고흐와 뭉크는 거기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기 때문에 부침 속에서도 묵묵하게 자기 길을 갔겠죠.

 

“상처 없는 삶을 꿈꾸는 건 삶에 대한 무례입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상처뿐인 삶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인간은 누구나 불완전해요. 아마 존재하는 것들은 다 그럴 거예요. 불완전하다는 건 결코 나쁜 게 아니에요. 완전하다면 살아야 될 이유가 하나도 없어요. 우리는 불완전하니까 다른 존재를 필요로 하는 것이고, 다른 생각도 받아들여야 하고, 또 불완전하기 때문에 같이 살아갈 수도 있는 거거든요. 그렇게 서로 다른 존재들이 다른 불완전함을 가지고 살아가다 보니까 서로 부딪히고 깨지기도 하는 거죠. 우리는 그걸 상처 받는다고 얘기하죠. 그런데 아이들도 넘어지면서 걸음마를 배우듯이, 그렇게 조금씩 다치고 넘어지고 또 일어나면서 근육도 키워지고 단단해지는 거예요. 사람들은 결점과 상처 없이 행복하게 사는 걸 다 꿈꾸지만, 그래가지고서야 어떻게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겠어요(웃음). 그러니까 넘어지는 건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중요한 건 다치는 게 아니라, 다쳤을 때 새 살이 빨리 생길 수 있는 능력인 거죠. 그런데 우리는 새 살이 생길 수 있는 능력을 만들려고 하는 게 아니라 아예 안 넘어지려고 해요. 그러니까 굉장히 나약해지고 어떤 사건이 벌어지면 그 앞에서 쩔쩔 매게 되는 것 같아요. ‘중요한 건 누구나가 상처를 주고받는다는 사실이 아니라, 각자의 불완전함을 가지고 여러 사람들과 같이 살아갈 수 있는 길을 나름대로 모색해 보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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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을 담은 그림채운 저 | 청림출판
고전부터 현대까지 다양한 미술 작품을 매개로 동서양의 철학적 사유를 통해 삶에 대한 새로운 감각을 이끌어내는 책. 저자는 클레부터 올덴버그까지, 각기 다른 시간을 살았던 예술가들의 작품에서 장자의 사상을, 니체의 철학을 전하며 각자의 삶에 대한 새로운 질문과 해석을 이끌어낸다. 드가의 [벨렐리 가족]을 통해 사랑과 삶에 대한 환상을 깨고, 터너의 [눈보라]를 통해 삶의 혼돈을 긍정하도록 이끌며, 미켈란젤로의 [론다니니의 피에타]를 통해 삶의 태도를 성찰하도록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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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소송전문기자 주진우가 알려주는 ‘소송에서 살아남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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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자의 사법활극』이 기록하고 있는 것은 주진우만의 소송사(訴訟史)가 아니다. 그에게 ‘최고 몸값의 기자(소송가액 기준)’라는 이름을 부여한 사건들을 되짚다 보면, 상식과는 멀고 권력과는 가까운 법의 맨 얼굴을 만나게 된다. 한 사람의 억울함을 하늘은 알아줄지 몰라도 법은 몰라주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래서 주진우 기자가 들려주는 소송의 경험담은 누군가에게는 이미 닥친 일이고,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언제 현실이 될지 모르는 미래다. “당신도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저자의 말을 무심코 흘려들을 수만은 없는 이유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다?’ 그렇지 않다. ‘정의가 승리한다?’ 안 믿는다.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 더 안 믿는다. ‘선이 악을 이긴다?’ 이제 더 이상 순진하지 않다. ‘죄 안 짓고 살면 된다고?’ 무식한 생각이다. 불평등한 법치국가, 불공평한 민주국가에서 내 안전은 내가 지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를 지킬 법률 지식이 필요하다.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는 쟁취하는 것이지, 주어지는 게 아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룰을 먼저 알고 있어야 한다. 당신이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주기자의 사법활극』 (324쪽)


『주기자의 사법활극』을 출간하게 된 이유에 대해 주진우 기자는 “소송을 워낙 많이 당해봐서”라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경찰서와 검찰청, 법원을 오가면서 ‘소송에 휘말려 어찌할 줄 모르는’ 많은 이들을 보게 됐다는 것이다. 어디에서 자문을 구해야 할지, 어떤 변호사와 함께 준비해야 할지, 시작부터 모든 것이 당황스러운 이들이 자신의 권리를 내세우기란 쉽지 않았다. 게다가 그들이 마주하게 될 검사와 판사들은, 주진우 기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와는 다른 ‘종족’이었다. 사용하는 언어, 생각하는 방식, 상대를 대하는 태도까지 달랐다. 이 새로운(?) 군상들 사이에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려면 ‘룰’을 알아야 했다. 그러나 ‘룰’에 통달한 이들은 침묵했다. 그래서 그들만큼이나 많은 시간 동안 소송을 경험해 온 주진우 기자가 직접 나섰다. 이번에도 그를 움직이게 한 이유는 하나였다.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으니까’. 


주진우만이 들려줄 수 있는 소송 이야기에는 소송이 시작되는 시점부터 판결을 받기까지, 모든 과정에서 잊지 말고 챙겨야 할 부분들이 담겨있다. 갑자기 날아든 출석요구서를 받아들고 가장 먼저 해야 할 일, 변호사를 선임할 때 고려해야 할 사항, 검사와 대면했을 때 취해야 할 행동 등 소송을 영리하게 끌고 갈 수 있는 실전 팁을 소개한다. 주진우 기자가 ‘소송의 달인’이 되기까지 겪었던 우여곡절은 물론, 최근까지 이어졌던 ‘박지만 씨와의 명예훼손 소송’에 관한 뒷이야기도 들여다볼 수 있다. 그 이야기들을 미리 만나볼 수 있도록 주진우 기자와 나눈 대화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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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의 편에 서야겠다고 생각할 뿐이에요

 

『주기자의 사법활극』 출간 이후 주변 분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주변 사람들은 다 좋다고 이야기해주는데, 그래서 믿을 수가 없어요(웃음). 최근에 사인회를 하면서 독자들과 만났는데 한 판사분이 오셔서 피고인들한테 주려고 『주기자의 사법활극』을 샀다고 하시더라고요. 어떤 변호사 분은 피고인 입장에서 이해해야 할 부분을 지적해줘서 고맙다고 하시고요. 큰 힘이 됐죠. 그렇지만 대다수의 검사나 판사는 이 책을 싫어할 거예요. 제가 아는 검찰 간부는 검찰 역사상 최악의 책이라면서 어쩌려고 이런 책을 썼냐고 걱정해 주시더라고요. 그런데 힘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한테 잘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저는 계속해서 검사가 말도 안 되는 걸로 기소하면 욕할 거고요. 판사가 말도 안 되는 판결을 내 놓으면 또 욕할 거예요. 기자잖아요


끊임없이 이어지는 소송 때문에 지칠 때도 있을 것 같습니다. 

 

국가나 민족이나 사회를 위해서 내 몸을 던져버리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도 없어요. 단지 약자들 옆에 서 있어야 되겠다는 생각은 어렸을 때부터 해왔죠. 지금도 사회를 바꾸겠다든지 검찰 시스템을 바꾸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다만 우리가 뽑아서 세금으로 월급을 주는 검사와 판사가 우리가 아닌 권력의 편이라는 사실이 굉장히 안타까운 거죠. 그런 사법권이 행사될 때는 약자의 편에 서야겠다고 생각하는 거고요. 소송 때문에 여기저기 끌려 다니면 고달프고 억울하고 피곤하죠. 검사 앞에 가서 철제 의자에 앉으면 기분이 너무 나빠요. 하루가 아니라 열흘 동안 기분이 나빠요. 서초동 쪽은 보고 싶지도 않고 ‘검’자만 들어도 싫어요. 그래도 그냥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소송 때문에 고민하고 있으면 또 다른 소송이 와요. 그래서 앞의 것은 잊어버리고 새로운 소송을 생각하면서 지금껏 살아왔어요(웃음). 


절망감에 빠지거나 공포를 느끼는 순간은 없으세요? 

 

절망하지는 않고요. 기분이 나쁘면 혼자서 삭이다가 연애 소설을 열심히 읽어요. 시도 읽고요. 그러다가 ‘에이, 또 한 판 붙어야지’ 하고 털어내는 거죠. 겁나거나 두려울 때도 없어요. 제가 잘못해서 가는 게 아니잖아요. 제 자존심을 꺾을 수는 없어요. 그래서 항상 당당한 거죠. 저를 감옥에 보내는 건 무섭지 않은데, 주변 사람을 괴롭히거나 더럽히거나 어지럽히는 데 대한 공포는 있죠. 심해요. 그렇지만 끌려가는 건 괜찮아요. 저희 선배들 중에도 잘못하지 않았는데 끌려간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고문당한 사람도 있잖아요. 그 분들 덕분에 우리가 이만큼 살고 있는 거고요. 그런 훌륭한 분들을 많이 봐왔으니까 공포를 느끼지는 않아요. 


‘박지만 5촌 살인 사건 보도’가 『주기자의 사법활극』의 주요 모티프가 되었다고 적으셨습니다.

 

이전에도 소송을 많이 겪었지만 주로 명예훼손이었어요. 제가 사실에 관해서는 치열하게 다투는 사람이어서 형사 재판에서는 한 번도 진 적이 없었고, 돈을 물어내라는 판결을 받는 정도였죠. 그런데 이번 재판은 감옥에 갈 수 있었던 일이었잖아요. 실제로 유치장에도 갔고, 거의 교도소 담장 밑에까지 다녀온 게 두세 번 정도 됐었죠. 그런데 이 사회도 똑같은 것 같아요. 이명박 대통령 시대에는 돈을 내놓으라는 식이었는데 지금은 잡혀갈 수도 있다는 공포가 국민들한테도 와 있는 것 같아요. 시대가 이렇게 어둡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죠. 


마지막 장에서 평범한 시민들이 소송에 휘말린 사례를 소개하셨는데요. ‘시대유감’이라는 한 마디로 요약될 수 있는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책에도 썼듯이 데이트 중에 시위대를 따라갔다가 끌려간 사람들도 있고, 인터넷에 댓글 달다가 끌려간 사람들도 있어요. 어느 쪽은 비방하고 욕해도 되고 어느 쪽은 조금만 이야기해도 끌려가서 범법자가 될 수 있는 상황인 거죠. 사실 그 사람들은 법 없이도 살 수 있었거든요. 그런 사람들한테 권력이 법이라는 무기로 칼을 휘두르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분노하면서 이야기한 거죠. 시대유감이죠. 저는 ‘박지만 5촌 살인 사건’ 기사를 쓰고 구속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어쩔 수 없지 않습니까. 시대가 그렇다면 가야죠. 그래서 얘기했던 거고, 지금도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우리 시대가 이만큼 밖에 안 왔다, 아직은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을 하기 때문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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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니까, 모든 걸 기록해서 남길 겁니다

 

박지만씨와의 명예훼손 재판이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검찰이 대법원에 상고했다는 내용이 보도되었는데요. 이번에도 무죄를 선고받을 거라고 예상하지 않으세요?

 

모르겠어요. 그래도 대법원은 권력이 가장 믿는 칼들이잖아요. 보수와 진보로 나뉜 게 아니라 거의 권력자 편에 있죠. 쌍용차 판결에서도 보여줬잖아요. 경영자가 잘못해서 회사 경영이 어려워졌는데 노동자만 해고하니까 ‘이 사람들을 해고하지 말고 같이 살자’고 했던 사람들이에요. 그 사람들한테 모든 돈을 물어내라고 하잖아요. 파업 진압하면서 경찰이 곤봉질한 비용, 회사의 이미지와 미래 가치에 대한 비용까지도요. 그래서 대법원으로 가면 불리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해요. 만약 운 좋게 무죄가 선고된다고 해도 달라지는 건 없죠. 2년 동안 끌려 다니고, 떨고, 유치장 가고, 수갑도 찼지만 무죄가 됐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잖아요. 권력이 미운 사람을 협박하거나 옥죄는 도구로 법을 사용하고 있는 거죠.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이 나올 수도 있다고 생각하세요? 

 

거기까지 생각은 하고 있어요. 이 정권 안에서 감옥에 갈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해요. 정봉주 처럼요. 대선 전에는 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검찰이 이 싸움을 계속 끌어나가는 건, 책에도 쓰셨듯이, 시간을 끌면서 지치게 하는 데 목적이 있는 걸까요? 

 

일단 그 시간동안 제가 지쳐서 기사를 쓰지 못하니까, 그걸 노리는 거겠죠. 더 크게 노리는 바는 다른 기자들에게 시범 케이스로 보여주고 싶은 것 아니겠어요? 산케이 신문의 가토 지국장을 고소 고발한 이유가 거기에 있지 않습니까. 국제적인 비판이 있더라도 신경 안 쓰잖아요. 그리고 또 다른 이유라고 한다면, 유죄가 나올 수도 있으니까 계속 하는 거겠죠. 힘과 돈이 있는 자들에게는 소송만큼 좋은 게 없잖아요. 검사 판사들이 공권력을 동원해서 자기 편을 위해서 싸워주니까요. 법이 권력을 위해서 칼이 되는 사회이지 않습니까. 어떤 때는 망나니가 되고요. 그러니까 소송을 하죠. 왜 안 하겠어요. 제가 지금 취재하고 있는 사건도 기사로 나오면 또 소송을 걸 거예요. 그래도 해야죠. 저는 소송에 걸릴 기사만 써요. 그게 사회에는 조금 더 보탬이 될 겁니다. 


감옥에 갈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싸움을 피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주기자의 사법활극』에 쓰신 것처럼 훗날 평가받을 수 있도록 기록으로 남기고 싶으신 건가요?

 

저는 사건 사고 사안을 기록해서 국민들한테 알려주는 사람이에요. 기자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권력 기관이 무언가를 잘못하고 있다면 그걸 비판하고 알려주는 사람이에요. 다음 번에는 할 수 없도록 하는 거죠. 그걸 하는 게 저의 몫이에요. 기사로 쓰든 책으로 쓰든, 제가 기자이기 때문에 남겨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주기자의 사법활극』에도 ‘박지만 5촌 살인 사건’과 관계된 검사들의 이름과 제 생각이 나와 있는 거예요. 저처럼 대드는 사람이 있어야 권력 앞에서 춤 춘 사람들이 약간은 위축되거나 크게 할 짓도 조금만 할 거예요. 그게 언론인의 사명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감옥에 가더라도 다 남길 거예요. 제가 어떤 일을 했고 어떻게 되었는지, 다 남길 거예요. 


검사가 기자님을 핑계로 정의로운 판결을 내릴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저한테 무죄 판결을 내리면 보수 언론에서는 감성 판결이라고 얘기하고, 인터넷 기사에는 종북 판사라는 댓글도 달리잖아요. 그런 비난이 있으면 무죄를 줄 사건이라 해도 위축되잖아요. 법대로 양심대로 판결하는 것도 어려운 게 지금 시대예요. ‘박지만이 살인 사건과 연루됐다는 증언이 재판에서 나왔다’는 게 제 기사의 전부예요. 읽어봐도 잘못된 부분이 없어요. 그런데 (있는) 그대로 판결하는 것도 판사에게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인 거죠. 더군다나 출세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대충 유죄 주지’라고 생각하죠. 그런 사람 많잖아요. 원세훈과 김용판에게 무죄 주는 거 보세요. 수천만 건의 댓글을 양산하고 돈을 쏟아 부은 국정원장은 불구속 수사하면서, 저한테는 선거법 위반으로 구속 영장을 청구했어요. 시대가 이러니까 판사도 (있는) 그대로 판결할 수 없죠. 오히려 판사가 무죄를 주면 저도 미안해요. 법대로 했다는 이유로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잖아요. 저하고 친하다는 이유로 좌천되거나 끌려간 사람이 많아요. 저하고 친한 사람들이 해를 입지는 않을까 미안해요. 



『주기자의 사법활극』으로 소송에 휘말릴 수도 있겠지만…

 

“가끔, 이 나라에서 나와 친하게 지낸다는 게 무얼 의미하는지 생각해본다”고 적으신 부분이 생각납니다. 그럼에도 곁을 지키고 계신 분들이 많으신데, 책을 읽어보니 심지어 검찰에도 걱정해 주는 분들이 계신다고 해서 놀랐습니다.  

 

많아요. 예전에 김재호 판사의 기소 청탁 의혹을 보도했다는 이유로 검찰에서 저를 구속시키려고 했었어요. 그때 박은정 검사는 제 말이 사실이었다고 용기 있게 말해줬는데, 그 사람을 대검에서 얼마나 괴롭혔는지 몰라요. 정말 미안하죠. 박 검사는 저한테 그 이야기를 했다는 이유로 외톨이가 되어야 했고 검찰 내부에서 빨갱이로 찍혀야 했어요. 그런 훌륭한 분이 제 주변에 있었으니까 좋은 기사도 쓸 수 있었고 지금도 살 수 있는 거죠. 검사가 피고인을 위해서 그렇게 양심선언을 해 준 경우가 없었죠. 운이 좋았던 거예요.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애국 소년단>을 시작하게 된 것도, 제가 감옥에 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김제동 씨가 소나기를 같이 맞아준 거잖아요. 감사하죠.  


이번 재판을 함께 한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주기자의 사법활극』에 쓰신 바에 따르면 ‘표현의 자유가 억압되어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변호인단을 자처하셨다고요. 

 

언론은 국민의 입이에요. 저는 기자고요. 기자는 국민을 대신해서 사실을 전달해 주고 국민의 의견을 전달해 주는 사람들이잖아요. 이건 표현의 자유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어요. 비판적인 기자 하나를 죽이는 일이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상당히 큰 의미를 가져요. 뉴욕 타임즈, 르몽드, 교토, 아사히 등 거의 대부분의 외신이 한국의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에 대해서 얘기하면서 제 재판과 무죄에 대한 기사를 실었어요. 그런데 우리 언론에서는 제가 징역 3년을 구형받았다는 기사는 전부 실으면서 무죄 받았다는 기사는 거의 안 싣잖아요. 표현의 자유의 문제는 모든 기자의 문제이고 모든 국민의 문제예요. 


다른 분들도 같은 이유로 기자님의 곁을 지키는 걸까요? 

 

인간적인 매력으로 해석해줘요(웃음). 국민참여재판이 끝나고 나서 보수언론에 실린 기사를 보니까 ‘명백히 유죄이고 나쁜 놈인데 배심원들이 주진우가 마이크를 잡자마자 넘어갔다’는 식으로 썼더라고요. 이 정도면 괜찮은 거죠. 얼마나 멋있어요(웃음). 피리 부는 소년이잖아요. 소설 『향수』의 그루누이 같기도 하고.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고요. 제가 매일 당하고 끌려 다니니까 불쌍해 보이나 보죠. 그래서 옆에 와서 서 있어 주나 봐요. 이번에 책 나왔다고 이승환 형이 콘서트도 열어주고, 굉장히 근사하죠. 얼마나 멋진 일이에요.  


기사를 쓸 때부터 소송이 들어오겠다는 직감이 든다고 하셨는데요. 이번 책은 어떠세요? 출간으로 인해서 다시 한 번 소송에 휘말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시나요? 

 

그럴 수 있죠. 괜찮아요. 피하지 않아요. 


그럼에도 책을 내신 건 ‘이런 얘기를 하는 사람이 없으니까’라는 생각 때문이었나요? 

 

법률 전문가들이 책을 많이 냈지만 정작 국민들이 알아야 될 얘기는 하지 않아요. 그런 얘기들은 금기시 되어 있죠. 검사 출신이 쓴 검찰을 비판하는 책을 눈 씻고 찾아봐도 없잖아요. 판사 출신이 쓴 재판과 판사들을 비판하는 책도 없어요. 어떻게 하라고 알려주는 책도 없죠. 그렇게 해서 성역으로 남기려는 그들만의 패거리 주의가 저는 정말 못마땅하고, 약간의 균열이라도 내고 싶어요. 그래서 썼어요. 책에도 썼지만 비판도 달게 받을 것이지만 검사와 판사의 비판은 받고 싶지 않아요. 소송은 피하지 않을 거예요. ‘한 번 해보자’하고 생각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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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란으로 바위를 깰 수는 없지만 더럽힐 수는 있잖아요

 

『주기자의 사법활극』에서 박지만 씨가 증인으로 채택되지 않은 이유를 밝히셨습니다. 최행관 검사가 박지만 씨는 ‘특수 신분에 있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증인 채택을 막았다고요. 법은 만인에게 평등하지 않다는 기자님의 말을 증명해 주는 한 마디가 아닌가 싶은데요. 이번 재판 과정에서 유사한 사례가 많았나요? 

 

많이 있었죠. 박지만 씨는 검찰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고 법률 대리인이 예우를 받으면서 약간의 조사를 받았어요. 본인은 재판에서 증인으로도 한 번 안 왔고요. 반면에 저는 계속 끌려 다녔죠. 형사 소송법 상 검사는 원고 측이 되어서 저를 공격하는데, 검사는 박지만의 외아들인 것처럼 열심히 저를 잡으러 다녔어요. 너무 노력하는 게 보여요. 저는 그 사람들한테 계속 당하다가 겨우 무죄를 받았죠. 그래서 박지만 씨가 잃는 건 뭐죠? 없잖아요. 얼마나 불합리해요? 그런데 권력의 편이면 법이 얼마나 편리해요? (우리가) 이런 시대에 살고 있어요. 


<나는 꼼수다>를 다시 시작하실 계획은 없으세요?

 

생각하고 있지 않아요. <나는 꼼수다>는 한 번 했고, 이제 신선하지도 않고요. <나는 꼼수다>가 생겨나고 인기를 얻은 건, 언론이 워낙 망가지고, 권력의 편에 서서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려 하고, 다른 방향을 가리키기만 하고, 왜곡하는 데에만 힘을 써서 사실을 전해주지 않았기 때문이잖아요. 그런 점에서 <나는 꼼수다>가 인기를 얻은 것이 언론인으로서는 반가운 일만은 아니었어요. 슬픈 일이었죠. <나는 꼼수다>가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면 그만큼 절박하고 암울하고 어둡다는 거잖아요. 우리 언론이 제 자리로 가서 역할을 조금만 더 해주면 <나는 꼼수다>가 필요 없을 텐데, 그게 좋죠.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으실 것 같습니다.  

 

그런 경우도 있죠. 그렇지만 계란으로 바위를 치면 더러워지기는 하잖아요. 그리고 ‘누가 깨졌다, 어지럽혔다’ 이런 얘기를 남길 수도 있잖아요. 특히 저는 기자이기 때문에 그런 기록을 남길 수 있죠. ‘가서 엄청나게 깨졌다, 그래서 아무런 파장도 없었다’ 그것조차도 저희는 기록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싸움을 멈추지 않는 겁니다. 바위를 깨겠다는 게 아니라 ‘잘못됐다, 철옹성 같은 권력과 힘에 대해서 도전한다는 의미가 있었다, 그런 사람이 있었다, 그런 의로움이 있었다’ 이걸 남기고 싶어요.


『주기자의 사법활극』이 어떤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를 기대하시나요? 이런 이야기가 필요 없는 세상이 가까워지기를 바라시나요? 

 

책이 많이 팔리면 그만큼 시대의 어두운 면을 공감하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겠다고 생각했어요. 그건 그다지 행복하거나 건강한 사회는 아니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독자들이 저를 보고 위안 삼고, 누구를 대하든 씩씩하고 밝고 명랑하고 당당했으면 좋겠어요. 시대가 여러분과 저를 슬프게 하고 굴복시킬지라도 당당하게 절망하지 않고 계속 갔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고난과 고비가 있더라도 저를 보면서 ‘저런 놈도 사는데 이건 아무 것도 아니야’ 라고 생각하고 힘을 얻으셨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가다 보면 금방 나아질 거예요. 정말 어렵고 힘든 일도 하루 자고 나면 그 무게가 반으로 줄어들거든요. 그래서 당당하게 자기 중심을 가지고 나아가면 괜찮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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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자의 사법활극주진우 저 | 푸른숲
평생 소송이나 사법기관과는 담을 쌓고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법정 다툼으로 인생이 송두리째 휘말리게 되는 사람, 기울어진 재판정 위에서 중심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사람, 돈이 없고, 법을 잘 몰라서 더 억울한 사람들을 위한 실전 지침이다. 오로지 피의자의 입장에서 피의자를 위해 쓴 그래서 때때로 불경할 수도 있지만 실용적인 ‘서초동법’ 해설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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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강남 엄마 강현정이 거창고에 매료된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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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고등학교 강당 뒤편, 소박한 액자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이 적힌 직업선택 십계가 걸려있다.

 

하나,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둘, 내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을 택하라.
셋, 승진의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을 택하라.
넷, 모든 조건이 갖추어진 곳은 피하고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황무지를 택하라.
다섯, 앞을 다투어 모여드는 곳을 절대 가지 마라.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가라.
여섯, 장래성이 전혀 없다고 생각되는 곳으로 가라.
일곱, 사회적 존경 같은 건 바라볼 수 없는 곳으로 가라.
여덟, 한가운데가 아니라 가장자리로 가라.
아홉, 부모나 아내나 약혼자가 결사반대를 하는 곳이면 틀림이 없다. 의심치 말고 가라.
열, 왕관이 아니라 단두대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라.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이곳에 위치한 거창고등학교는 입시철이면 높은 명문대 진학률로 언론의 주목을 받는다. 거창고에 들어가기 위해 강남에서도 올 정도다. 많은 학부모들이 거창고의 교육에 어떤 비법이 있는지 궁금해 한다. 그런데 거창고의 직업선택 십계를 보면 의아할 따름이다. 생각했던 내용과 많이 다르지 않나. 학부모 입장에서만 아니라 일반인의 눈에도 위의 내용에는 선뜻 수긍이 가지 않는 부분이 많다. 저 내용과 딱 반대로 해야 할 것 같다. 무엇보다 먼저 당장 자녀에게 내용대로 교육해도 괜찮을지가 고민스럽다. 

 

거창고의 직업선택 십계가 말하고 있는 열 가지 이야기는 결국 한 방향을 가리킨다. ‘힘든 선택을 하라.’저자 강현정은 3년 간 거창고 졸업생들과 선생님들을 만났다. 혼나기도 하고 눈물도 흘렸다. 무척 괴롭기도 한 여정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지금, 그녀는 해답이 아니라‘묵직한 질문을 얻은’ 이 상태가 행복하다. 사춘기 자녀들과의 관계가 편안해졌고, 진짜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됐다. 공부를 잘하는 것,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를 얻는 것, 세속적인 성공을 하는 것, 기존에 생각했던 ‘성공’과 ‘성취’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신념에 따라 강직한 걸음을 걷고 있는 사람들, 그들의 이야기와 그들의 뿌리인 거창고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싶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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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 성공보다 더 중요한 가치

 

책을 쓰시면서 얼마간 변화가 있으셨을 것 같아요. 부모의 변화를 자녀들이 느끼던가요? 자녀에게는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궁금합니다.  

 

지난 3년 간 부모가 달라지니 아이도 드라마틱하게 변했다는 대답을 원하실지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뭐가 얼마나 좋아졌는지는 모르겠어요. 다만 구체적으로는, 저희 큰 아이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예전에는 학원 끝나고 데리러 가면 뒷좌석에 탔는데요, 요즘은 반갑게 뛰어와서 옆자리에 앉아요. 그런 식의 관계 변화가 생긴 거죠. 보통은 아이의 인성이 좋아지니 성적도 엄청 좋아지더라 이런 얘기를 원하시겠지만(웃음). 아이 스스로 생각하고 내가 잘해보도록 해야겠다는 마음의 변화가 생긴 건 맞아요. 애써 대화를 하자, 이런 게 아니라도 그냥 같이 있으면 좋고, 별나게 친하게 지내는 건 아니어도 같이 있는 게 불편하지 않은 것이 달라진 점이죠.

 

전에는 가정의 관계가 전부 냉각 됐었어요. 남편은 성적에 관해 대놓고 저한테 뭐라고는 못해도 불만이 가득한 상태로 있었거든요. 그런 공기가 아이들도 알아차릴 만큼 됐으니까요. 아빠가 현관 문 여는 소리가 나면 아이들이 바싹 일어나서 자리에 가고 그랬어요. 서로를 의식해야 될 만큼 굉장히 불편한 관계였죠. 지금은 저희 부부도 자녀의 모습에 대해 너무 남의 시선 의식하려고 하지 않고요. 자녀들도 우리 엄마아빠는 그래도 참 괜찮은 분들이셔, 나를 이만큼 이해해주려고 하셔, 공감하려고 노력하시는구나, 하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진심이 통하니까 서로 오버하지 않아도 되고요. 편안한 관계로의 변화가 제일 큰 변화죠. 그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그게 제일 만족스럽고요.

 

3년의 과정 동안 제가 서서히 변했거든요. 아이보다 제가 변한 게 더 커요. 그걸 아이들이 봐왔기 때문에 제가 이제 와서 아무리 생각해도 안 되겠다, 공부가 중요해, 이렇게 갑자기 돌아가면 아이들이 저를 비웃을 것 같아요. 저도 체면이 있지 그렇게까지 돌아가진 않을 것 같아요(웃음).

 

‘평범한’ 엄마의 고민이 솔직하게 담겨 있습니다. 인터뷰이의 평범한 모습도 인상적이고요. 그런 면에서 이 작업의 진실성이 느껴진다고 할까요? 

 

감사해요. 얼마 전 아이 친구들 엄마 모임에 다녀왔는데 다 책을 읽어봤더라고요. 내용 자체가 세상의 주류 가치에 편승하지 말자는 내용이잖아요. 이 엄마들 그룹이 다 욕심쟁이들이거든요(웃음). 그래서 동의하지 않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느낀 게 너무 많았다는 얘기를 하는 거예요. 어떤 엄마가 그러더라고요. 책을 읽는데 ‘정말 내가 뭐가 잘못됐는지 이런 생각이 들면서 읽는데 눈물이 나더라.’ 하고요. 그러면 됐다고 생각했어요. 글을 잘 쓰고, 좋은 평가를 받고 이런 것은 원하지도 않았어요. 다만 독자들, 나와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는 부모 세대의 독자들이 읽으면서 ‘뭔가 잘못하고 있는 것 같은데?’ 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으면 하는 게 제가 바라던 거였어요. 그래서 그런 반응이 왔을 때 감사하다고 느꼈죠.

 

책에는 거창고 졸업하신 분들을 여섯 분만 소개했는데 서른 분 이상 만났어요. 이야기를 많이 뺐어요. 어쩌면 그것도 욕심을 포기한 부분 중 하나예요. 전체적인 구성이나 구색을 맞추는 차원에서, 직업 십계명이니까 최소한 열 명은 채우고 싶은 것도 출판사 마음이었고요. 또 1장, 3장 모두 여덟 개의 부로 나뉘어져 있고 2장만 여섯 개예요. 두 개 더 채우면 좋잖아요(웃음). 끝내 버린 이유들이 있어요. 깨달은 것은 굉장히 많지만 보호해드리고 싶은 부분도 있었고요. 더 재미있게 하려면 첨가할 수 있는 양념들이 몇 개 있었는데 그것도 사생활을 생각해서 뺐어요. 아주 드라이하게 여섯 분만 들어간 거예요. 타협하지 않고 썼다는 것이 저한테는 제일 큰 만족이에요. ‘더 좋아보이게 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을 텐데 포기한 거 잘했다.’ 그런 만족이 있거든요. 아마 직업십계명도 마찬가지일 것 같아요. 나 스스로에게 정직했구나, 나를 배반하지 않았구나 하는 스스로에 대한 작은 만족 말이에요. 이런 행복이 사실 성공보다 더 중요한 가치라는 것, 직업십계명이 한 얘기인 것 같아요.

 

거창고 출신 졸업자분들의 반응이 제일 궁금하고 조심스러웠거든요. 제가 거창고 출신도 아니면서 이 이야기를 할 자격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그분들이 SNS로 찾아와서 남겨주시기도 하고 문자도 주시고 하셨어요. 울면서 읽었다는 얘기 하실 때 제일 감사하고 다행스러웠죠. 다행이다, 내가 많이 오버하지 않은 덕에 차라리 실수는 하지 않았구나, 하는 마음이었어요.

 

신념을 지키는 것, 순간의 유혹을 이겨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사람은 누구나 유혹이 왔을 때 자기 합리화의 함정에 빠질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첫 발이 중요한 것 같아요. 이 책은 출판사에서 직업선택십계명이라는 거창고의 교육 철학을 주제로 취재 해달라고 제의를 받은 것이었고, 제 얘기가 들어갈 계획이 전혀 아니었어요. 그런데 전성은 선생님께 처음 원고를 써서 드렸을 때는 별로라고 하시더라고요. 인터뷰 기사 쓰듯이 썼고, 저의 언어로 나오지 않았던 거죠. 사실 졸업생들 만나면서 저도 많이 힘들었어요. 상처를 준 시누이도 있었고요. 전성은 선생님의 가르침도 감 잡기까지 일 년 반 이상 걸렸어요. 그러니 전성은 선생님이 시어머니라면 졸업생들은 시누이 같은 느낌이었죠(웃음). 그렇게 2년이 흐르고 선생님이 왜 연락 없었냐 하시는데 ‘선생님 못하겠어요.’하면서 힘들다고 펑펑 울었어요. 내 코가 석 잔데 자신도 돌보지 못하는 주제에 무슨 글을 또 쓰냐는 생각이 들면서 여러 가지로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걸 보신 선생님이 이제 쓸 때가 됐다고 생각하신 것 같더라고요.

 

선생님은 너의 얘기로 나오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쓰다 보니 너무 나는 잘못한 엄마다, 식의 고백이 되는 거예요. 독자들이 이런 사사로운 것에는 관심이 없을 텐데 아무래도 아닌 것 같다 싶어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선생님은 이게 맞다 하셔요. 직업 십계명을 제대로 이해한 사람이라면 제일 먼저 나오는 반응이 자기 고백과 자기 성찰이다, 그게 없는 사람이 이걸 이해했다고 볼 수 없는 거다, 나는 독자들이 너처럼 그렇게 자기반성을 하고 자기를 돌아볼 수 있는 그런 기회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이런 형태로 나오게 됐어요.

 

평범한 사람들의 변화가 더 중요

 

그것을 전성은 선생님은“평범한 일상에서 평범한 사람들에게서 발견하는 위대함이 진정한 위대성(7쪽)”이라고 하셨어요.

 

그렇죠. 우리나라 교육이 잘못됐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얘기잖아요. 우리 세대는 공부 잘하고 명문대 나오면 좋은 직장 들어가서 먹고 살기 편안한 삶이 보장이 됐어요. 그런데 요즘은 아무리 명문대 나와도 취업이 너무 어렵고, 청년들이 너무 아파하잖아요. 세대가 원래 그런 거려니 하는 건 너무 무책임해요. 상황을 알면서도 부모들은 착각을 해요. 남은 좀 힘들겠지만 우리는 치고 나가자, 이런 욕심들을 다 갖고 있어요. 저는 어떤 대단히 뛰어난 교육감이나 교육부장관이 나와서 입시 정책을 확 바꾼다고 우리가 행복해지진 않을 것 같아요. 개인들의 탐욕이 계속 있는 한 절대로, 아무리 좋은 제도가 나와도 달라질 건 하나도 없어요. 작년 경기도 교육청에서 등교 시간을 아홉 시로 늦추자고 얘기가 나왔을 때 어떤 전단지가 돈 줄 아세요? 학원가에서 아침에 매일 한 시간 씩 들을 수 있는 수업이 나왔다고 돌았던 거예요. 아이들의 수면권 같은 건 전혀 생각 안하고 그 시간 아까우니까 그렇게 하겠다는 거죠.

 

평범한 사람들의 변화 없이는 아무리 좋은 정책이 나와도 그걸 넘어서는 또 다른 변칙이 자꾸 나올 수밖에 없는 거잖아요. 결국 교육 정책을 탓하기 전에 내 삶을 돌아보는 게 먼저가 아닌가 생각해요. 그래서 평범한 사람들의 변화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고요. 전성은 선생님이 제일 잘하시는 말씀이 “너나 잘하세요.”거든요(웃음). 부모들이 잘해야, 부모들이 바뀌면 아이들도 달라진다, 이거예요. 

 

많은 사람들이 ‘안정된 직장’을 선택한다는 것은 ‘불안한 사회’에 그 원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삶이 불안하기 때문이잖아요. 이런 상황에 ‘월급이 적은 쪽을 택하라’, ‘아무도 가지 않는 곳으로 가라’ 등의 계명은 지나치게 낭만적으로 들립니다. 이대로 자녀에게 교육하기가 불안하진 않을까요?

 

얼마 전 EBS에서 ‘공부 못하는 아이’라는 다큐멘터리가 방영됐어요. 공부는 지능이 아니라 마음이다, 부모가 불안해할수록 아이 성적은 더 멀어진다, 이런 얘기가 나왔는데요. 그건 100% 경험적으로도 맞는 얘기인 것 같아요. 부모가 현실에 대한 걱정을 당겨 하면서 불안해하고 아이들을 푸시한다고 성적이 오르지 않아요. 마음이 변해야죠. 부모가 걱정하면 할수록 아이는 걱정을 부모한테 싹 밀어버리고 안 해요. 자기의 삶을 자기가 걱정하고 고민하지 않으면 아무 변화가 없어요. 성장하지 않은 채로 몸만 커져가는 거죠. 요즘 부모님들이 아이들한테 제일 우려하는 것도 그거잖아요.

 

얼핏 보면 직업 선택 십계명의 방향이 나만 이 사회에서 도태되게 하는 것 같지만 궁극적으로 보면 사람의 내면을 성숙시키는 길이더라고요. 처음에 생각하면 이건 말도 안 돼, 한 폭의 아름다운 그림이지 뭐, 이렇게 생각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아요. 가령 월급을 백만 원 주는 직장이 있고 오백만 원 주는 직장이 있다면 당연히 오백만 원 주는 곳으로 갈 거 아니에요? 그런데 그곳은 오백만 원을 주는 사람을 위해 싫어도 해야 하고 아닌데 싶어도 해야 해요. 노예가 되는 거죠. 자기를 배반하면서 일을 하고 천만 원 주겠다는 제안을 받으면 또 그리로 가겠죠. 원래 추구하던 것, 하고 싶었던 것, 의미 있는 것은 점점 멀어지고요. 세월이 흘러 ‘저 길은 한 때 꿈이었지.’하겠죠. 반면 백만 원밖에 안 주지만 자신의 기량을 펼칠 수 있는 곳은 자유로움이 분명 있거든요. 거기서 나의 존재감을 발휘할 수 있는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잖아요. 그렇게 이쪽 발걸음으로 가다보면 자신에게 최대한 정직한 걸음을 걷게 되더라고요. 조건에 역행하는 사람에게 오는 자유로움이 분명히 있어요. 그걸 졸업생들을 만나면서 느꼈어요.

 

책에 나오는 장대영 교수가 그런 얘기를 했는데요, 나는 처음부터 공부를 잘하거나 대한민국에서 대단히 잘나가는 그런 사람도 아니었고, 어차피 돈이 많은 걸 보고 선택한 사람도 아니었기 때문에 내가 나를 배반할 일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너무 자연스럽고 평범하게 자기 길을 가는 거예요. 타고 나기를 소신이 있는 사람으로 태어난 게 아니라 그냥 그 길을 가다보니 저절로 소신 있는 사람이 됐더라고요. 그러니까 누구든지 평범한 사람들이 한 발을 먼저 딛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일찍부터 그런 교육을 받고 자랄 수 있었던 거창고 학생들이 부럽네요.

 

맞아요. 시쳇말로 ‘개념이 없다’고 하잖아요? 사실 저도 이 사회가 나한테 부여해준 틀 안에서 살아왔던 것 같아요. 열심히 해서 경쟁에서 앞서가고 높은 자리에 오르면 그게 성공인 줄 알고 살아왔거든요. 그 체제에 순응하는 모범생으로 살아왔어요. 그러다보니 내가 외면하고 살았던 게 너무 많은 거예요. 어느 순간엔가 스스로에게 죄책감이 들고 내가 그 때 외면했던 게 앙금으로 남아있었어요. 마흔이 넘으면서 고민을 굉장히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찜찜한 상태로, 내가 뭔가 잘못하고 사는 것 같은 느낌으로 말이에요. 그 와중에 거창고를 알고 이분들을 만나고 나니까 나도 고등학교 때 여기 나왔으면 이렇게 살지 않았을 거야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웃음). 진짜 부러웠어요.

 

전성은 선생님 외에 거창고 출신의 여러 사람을 만나셨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분은요?

 

다 기억에 남아요. 어느 한 분을 댈 수 가 없어요. 한 분 한 분이 다 보석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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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수록하지 못해서 아쉬운 분에 대해 조금 더 얘기해주실 수 있나요?

 

잠깐씩 언급된 분 중에 표정숙 선생님이라고 있어요. 평교사만 하시다 현재는 은퇴하고 덕유산에 집 짓고 사시는 분인데요. 그분과 어제까지도 문자를 주고받았어요. 선생님이 책을 아껴서 읽겠다고 하시는 거예요. 계속 눈물이 난다고 하시면서요. 어떻게, 어디서 그런 사랑이 계속 나오는지 모르겠어요. 그분은 정말 아무것도 안 해도 좋다고 얘기하세요. 자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려놓을 수 있는 분이시더라고요. 그분도 딱히 뭘 이루었다고 할 만한, 사람들의 호기심을 끌 정도의 업적은 없지만 자꾸 가슴에 남아요.

 

어떤 분은 대구에서 과외선생님을 하세요. 대구가 또 대치동 못지않은 곳인데요, 그런 잘나가는 곳에서도 데려가고 싶어 할 만큼 잘 가르치는 과외선생님이에요. 그런데 아주 가난한 동네에서 조금만 받고 아이들을 가르치세요. 거창고 졸업생들은 사교육 업체에서는 절대 일하지 않을 것 같고 다 NGO활동 할 것 같잖아요? 절대 안 그렇고요, 다만 각자 주어진 상황에서 그 자리를 빛내고 있어요. 거창고 출신 과외선생님은 뭐가 달라도 다른 거죠. 자기의 달란트를 주어진 자리에서 배반하지 않고 정직하게, 너무 나대지도 않고 드러나지 않게 조용히 살아가시는 분들, 그런 분들이 생각나요. 어느 한 분만 거론할 수 없이 모두다 정말 귀했어요.

 

사랑이 강한 것이 아니라 사랑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기울이는 피눈물 나는 노력이 강한 것이다. 사랑이 위대한 게 아니라 사랑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바치는 희생이 위대한 것이다. 인간의 사랑은 약하고 상처받기 쉽고 깨지기 쉬운 유리잔이다. 큰 사랑, 강한 사랑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언제 깨질지 모르는 유리잔이다. (39쪽)

 

신념과 가족 사이에서 고민하는 이종진 선생님의 사례가 인상적이었습니다. 현실적인 고민이기도 해요. 안과 밖, 현실과 신념 사이의 균형을 잡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그렇게까지는 생각 안했어요. 나도 모르게 가슴에 스며든 거예요. 아주 사소한 일상들도 자잘한 선택의 순간들이 이어지는 거잖아요. 선택의 순간에 어느 쪽으로 갈까 할 때 약간 손해 보는 것 같은 길로 가요. 이렇게 배웠으니 해야지 하고 자연스럽게 선택하는 거지 그 사이에서 고민하는 것은 잘 모르겠어요.

 

이종진 선생님 같은 경우에는, 사실 아들이 공부를 되게 잘해요. 공부를 잘하면 욕심을 더 내게 돼 있어요. 그런데 이종진 선생님은 이건 내가 배운 대로 사는 게 아닌데, 하는 얘기를 항상 하시는 거죠. 그분도 아내를 이기진 못하잖아요. 고민만 하고 계신 거예요. 그렇지만 고민도 대단한 거죠. 조금 더 하면 우리 아들 더 좋은 대학 갈 수 있을 것 같은데, 하는 생각을 흔히 하니까요. 이종진 선생님은 나를 죽이는 선택을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아내와의 갈등에서 비록 자식과 관련된 부분을 포기하고 어쩔 수 없이 따라가지만 그래도 주어진 범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해야지, 하고 떼어 놓는 것 말이에요. 다른 활동가처럼 모임이 있을 때마다 나가지는 못하지만 꾸준히 참여하는 것, 그게 나를 버리는 시간, 죽이는 시간이라고 얘기하시더라고요. 작은 발걸음이 사실 정말 중요한 거잖아요. 하루에 한 시간 독서하기처럼 일주일에 한 번은 나를 위한 일이 아니라 남을 위한 일을 해야지, 하고 떼어놓는 거죠.

 

미성년자는 스스로 올바른 선택을 하지 못하리라는 시선에 반발하는 청소년 운동도 있습니다. 이는 청소년 인권과도 연결되어 있는 문제인 것 같아요. ‘자율성’을 강조하는 거창고의 사례가 많은 것을 시사해요.

 

아이들은 경험이 부족하니까 미숙한 결정을 할 거라고 당연히 생각하잖아요. 거창고가 그런 점에서 대단한 것 같아요. 거창고는 매년 봄 소풍을 지리산으로 1박 2일 간다고 해요. 전통처럼 됐더라고요. 그런데 학교에서 어떤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아침에 모여 체조하고 그런 게 아니고 그냥 풀어놓는대요. 사실 학교로서는 굉장히 간 큰 짓이죠. 그러다가 애들이 잘못될 수도 있는 거고, 예상치도 못한 사고가 일어날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아이들에게 자율권을 주면 신기하게도 그때야말로 스스로를 지켜내는 도덕적 성장이 더 큰 폭으로 이뤄진다는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나는 과연 내 자식을 저렇게 믿어줄 수 있나.’ 생각하면 자신 없거든요. 민주적인 부모인 척은 굉장히 잘하는데 그러면서 실눈 뜨고 감시하거든요. 아이들은 그걸 귀신같이 잘 알아챈다고 하더라고요. 믿어준다는 건, 아이가 거짓말하는 걸 뻔히 알면서도 믿어주자고 속아 넘어가는 게 아니고, 아이에게 내재된 하나님의 형상을 믿어준다는 거죠. 신의 형상을 말이에요. 거창고는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서 ‘하나님’이라고 하고요. 모두 성경 말씀에 빗대서 해요. 쉽지 않은 와중에도 그런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책에 자전거 얘기 나오잖아요. 처음에 원고가 들어갔을 때 편집자분도 ‘자전거 부분은 동의할 수 없어요. 얼마나 위험한데요.’ 이랬었거든요. 하지만 금지하는 게 답은 아닌 것 같아요. 허락해주는 대신 발생할 위험성을 충분히 얘기해주고, 헬멧은 꼭 써야한다, 이런 몇 가지 약속을 지키게 하면서 한 단계를 넘어서야 하는 것 같더라고요. 자전거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이 키우면서 그것보다 훨씬 더 허용하기 어려운 일들이 줄줄이 이어지는데 그때마다 안 된다고 하면 아이의 성장이 결국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거죠.

 

그래서 부모는 리더(leader)가 아니라 헬퍼(helper)다, 라고 하신 거군요?

 

그렇죠. 아이가 뭔가 제안해서 치고 나가려고 할 때 안 된다고 하는 게 아니고 이렇게 하자고 도와주는, 서포트 해주는 역할을 해야 된다는 거죠.

 

“자식을 잘 키우려고 하지 마라. 너나 잘 살아라. 아이들을 망치고 싶은가? 부부 싸움을 해라. 아이들을 더 망치고 싶은가? 그렇다면 서로를 비하하라. 무조건 아이에 대해서는 욕심을 버려라. 부모는 그저 이 아이를 열심히 도와주라고 위탁받은 존재에 불과하다.” (147쪽)

 

전성은 선생님의 “자식을 잘 키우려고 하지 마라. 너나 잘 살아라.”(147쪽)라는 말에 많은 분들이 뜨끔하실 것 같아요. 자식에게 완벽한 부모가 되려는 것이 오히려 독이라는 걸까요?

 

거창도 모두 농사만 지으시는 건 아니잖아요. 병원, 약국 하시는 분들도 있고 많이 배우신 분들도 당연히 있어요. 재미있는 게요, 보면 그런 분들일수록 아이들을 더 잘 못 키운대요. 완벽한 조건을 갖춘 부모일수록 말이에요. 오히려 농사짓고 ‘우리 아이가 거창고 들어갔어요, 너무 영광이에요.’ 하면서 동네잔치 열고 이런 집 있잖아요? 그런 집 부모님은 아이를 나중에 어떻게 키우고 싶은지 물어보면 그저 모른다고 할 정도예요. 그런데 그런 분들의 자녀들이 훨씬 더 잘 성장한다는 걸 매해 경험하신대요. 거창고에도 강남에서 사교육으로 무장된 아이들이 꽤 많이 진학을 하는데, 처음에는 강남 출신들이 상위권에 포진 됐다가 6개월 정도 지나면 서서히 내려간다는 거예요. 결국 자율이 있느냐 없느냐의 결과인 거지 강남에 있던 아이가 학원 끊고 가니까 못하는 건 아니라는 거예요.

 

공부는 지능이 아니라 마음이라는 거죠. 존재만으로 귀하게 생각하는 게 믿음이라고요. 매일 칭찬해주라고 한다고 해서 못했는데도 잘했다고 기술적으로 칭찬하는 경우는 오히려 아이가 교만에 빠질 수도 있고 나태해질 수도 있어요. 표정숙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너희는 빛과 소금으로 이미 태어난 존재들이다.’라는 그런 마음, 너무나 귀하게 생각하는 마음이 믿음이라는 거예요. 부모님이 알아서 미리 로드맵 짜고 그러잖아요? 그러면 아이가 자기 일을 생각할 필요가 없거든요. 다 해주니까요. 그런 방식의 부모 역할은 좋지 않은 거죠. 결과도 빤하고요. 자신의 경험을 아이보다 우위에 두는 부모가 그런 거예요. 잘 배운 부모들, 똑똑한 부모들의 딜레마가 있어요. 제 주변에 똑똑한 엄마들일수록 오히려 허당이더라고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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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lf-believing people

 

“최소한 우리 시대의 고민은 알아야 한다”(40쪽)고 하셨습니다. 저자 분이 요즘 생각하는 ‘시대의 고민’은 무엇인가요?

 

고민은 너무 많죠. 해결하지 못하고 뒤에서 꿍얼꿍얼 그래서 그렇지(웃음). 경쟁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과연 무엇 때문일까, 고민하죠.

 

말씀하신대로 이 시대의 사회문제 대부분은 ‘경쟁’이 기저에 있습니다. 거창고 ‘직업선택의 십계’가 어떤 가르침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거창고는 경쟁에서 이기라고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지는 곳으로 가라는 거잖아요. 강함이 약함을 누르는 게 아니라 약함이 강함을 이길 수 있다는 게 거창고등학교 직업 십계명이거든요. 네가 희생하라고, 네가 썩어질 밀알이 되라고 하는 거예요.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지면 당연히 경쟁이라는 건 아무 의미가 없겠죠. 많아지면 정말 좋겠지만 인간의 탐욕 때문에 결국 ‘너희들은 다 지켜, 나는 이 기회에 치고 올라갈 거야.’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겠죠.

 

전성은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이 ‘누구든 부모는 정답을 가지고 있지 않다.’그러세요. 정답을 가지고 있는 듯 확신하는 사람은 다 가짜라고요. Half-believing people 얘기 나오는 것 보면요. 반신반의 하면서, 이종진 선생님처럼 고민하면서 천천히 걸어가는 사람들이 결국은 이 시대의 변화를 불러오는 사람들이지 ‘확실해, 틀림없어.’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은 100% 사이비다, 이렇게 얘기하세요. ‘너 자신 있어? 직업십계명처럼 살 수 있어? 경쟁에서 나는 안 한다고 할 자신 있어?’라고 물었을 때 ‘물론!’ 이라고 답하는 사람들이 사실 제일 배반할 가능성이 많다는 거죠(웃음).

 

"확실한 해답을 얻었다기보다는 묵직한 숙제를 하나 얻은 느낌이다."(219쪽) 라고 하셨는데 독자 입장에서도 그럴 것 같아요. 독자들이 이 책을 어떻게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세요?

 

질문을 얻었으면 성공한 거죠. 웃기네, 하고 끝났다면 그분은 이런 인생관에 동의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리 얘기해도 소용없을 거예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면 자기에게 유익이 있는 선택을 추구하다가도 ‘내가 이래도 되나?’ 하는 반문을 한 번 씩 할 거 아니에요? 그러면 된 거죠.

 

‘직업십계명’ 3년 체험한 지금, 제일 처음에 받았던 질문, "아이가 어떻게 자라길 바라세요?"에 대한 답이 달라졌을까요?   

 

아이가 어떻게 자라길 바라는지... 이럴 때 답이 확 나와야 멋있는데(웃음). 잘 모르겠어요. 그냥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가치 있는 선에서, 욕심대로 살지 않고 의미 있는 일을 향해서 살아갔으면 하는 게 제일 큰 바람이고요. 책 마지막에 저희 엄마 얘기를 실은 이유는, 엄마가 살아계실 때는 내 엄마의 가르침이 좋은 줄 몰랐어요. 오히려 답답하다고 많이 느꼈었거든요. 그런데 돌아가신 후 엄마로 인해 깨달은 게 굉장히 많아요. 그러니 아이가 어떻게 자라길 바라느냐는 질문이 별로 의미가 없어요. 다만 아이들이 훗날 우리 엄마가 이런 걸 가르쳤었지, 삶으로 나에게 이런 걸 보여주셨지, 하고 느껴지는 게 있으면 그걸로 만족인 것 같아요. 무엇을 하고 살든지 어떤 직업에 종사하든지 아이들이 컸을 때 우리 엄마하면 떠오르는 엄마의 잔상이 있잖아요. 내가 지금 나의 엄마에 대해서 느끼는 그런 것처럼 아이들도 그런 걸 느낄 수 있으면 해요. 저는 그걸 제일 바라요.

 

자녀 교육에 있어 늘 불안한 동지, 우리 시대 부모들에게 응원의 말씀 부탁드립니다.

 

사실 이런 묵직한 질문을 받아놓고 약발이 사흘도 안 가요(웃음). 변화를 다짐해도 집에 가서 아이 얼굴 보는 순간, 너희 진짜 오늘 학교 가서 뭐 한 거야? 그렇게 되거든요. 근데 그 사람들이 그렇게 얘기하는 건 개념도 있고 공부도 잘했으면 좋겠다는 두 가지 욕심이 다 있는 거잖아요. 공부 잘하고 개념도 있어서 누구보다 완벽한 경쟁력으로 무장하고 싶은 한 차원 높은 고도의 욕심인 거죠. 사회 구조가 이 모양, 이 꼴인데 나 혼자 잘 되는 건 말도 안 돼요. 그렇게 생각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에요. 개인의 성공만을 향해 달려가는 가치관이 아니라 말이죠. 자기계발서들 있잖아요. 네 1%의 가치를 찾아 상상력을 어쩌고 이런 거요. 그렇게 내 속에 있는 것을 다 소진하고, 나를 소모시킬 생각만 하지 말고, 잔잔하고 소소하지만 성공이 아닌 ‘행복’을 생각하며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그런 바람인 거예요.

 

전에 『타이거 마더』저자 에이미 추아가 일간지 인터뷰한 걸 봤어요. 성공의 정의를 보다 넓게 생각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마찬가지예요. 무엇에 성공했느냐를 생각해야죠. 사회에서 굵직하게 자리 잡는데 성공했느냐가 아니라 너의 행복을 지켜내는데 성공했느냐 라고 물었을 때 미소 지을 수 있다면 그게 성공인 거죠. 13기 동문 선배 아저씨들 모였을 때, 거창고 출신들이 이것 때문에 발목 단단히 잡혀서 돈도 많이 못 벌고 어디 가서 척하니 술도 못 산다고, 아부 떨지 못해서 직장에서 승진하지 못하고 살았다고 투덜대요. 그렇지만 그러면서도 ‘이만하면 만족해.’ 이렇게 얘기하고요. 그런 게 행복이 아닐까요? 그런 만족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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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고 아이들의 직업을 찾는 위대한 질문강현정,전성은 공저 | 메디치미디어
저자 강현정은 휴먼 다큐멘터리를 쓰듯 직업십계명을 3년간 취재했다. 전성은(전 거창고 교장)의 구술이 길잡이가 되었다. 강현정은 거창고를 비롯해 전국 각지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거창고 졸업생들을 찾아 인터뷰했고, 일본까지 건너가기도 했다. 그녀는 이 책을 마무리한 뒤, “거창고를 명예졸업한 기분이다”라고 말하며, 자신의 가치관이 변했고 이를 통해 “사춘기 아이의 인성과 성적이 향상되었다”고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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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사유리 “에 출연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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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내리는 날 횡단보도에서 우산이 없는 나에게 자신의 우산을 내밀고 같이 신촌역까지 걸어 주셨던 이름도 모르는 아주머니, 나에게 인간의 깊이를 보여 주셔서 고마워요. 술집에서 내 머리카락 잡아당기며 일본에 돌아가라고 하셨던 옆자리의 술 취한 아저씨, 나에게 인간의 악함을 알려 주셔서 고마워요. 지하철에서 돈을 빌리는 사람에게 자신의 호주머니에 있는 돈을 꺼내서 준 여학생, 나에게 인간의 희망을 보여 주어서 고마워요. (146쪽)

 

사람들이 환한 빛을 이야기 할 때 그림자를 생각한 사람. 사람들이 자신을 ‘바보’라고 생각하든 ‘개념녀’라고 생각하든 모두 반가운 사람. 방송인 사유리 이야기다. 엉뚱한 매력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녀는 사색가다. 책을 많이 읽고, 사소한 순간에 사소하지 않은 것을 배우고, 인연을 소중히 생각하고, 올라갈 때가 있으면 내려갈 때가 있는 법이라는 사실 앞에 담담하다. 그러니 생각한다. 함부로 누군가를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당연한 얘기지만 방송을 통해 보는 사유리의 모습은 사유리의 전부가 아니다. 글로써 자신의 생각을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모습도, 식당 주인 앞에서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말하는 모습도 모두 그녀다. 그녀가 에세이집을 펴냈다. 그녀는 세상에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사유리의 첫 에세이집 『눈물을 닦고』는 그녀가 자신의 평범한 일상을 통해 생각했던 것들이 차분한 필치로 담겨있다. 사랑과 우정, 용기, 인연 등 개인적인 생각부터 차별과 정의처럼 무게 있는 주제에 대해서도 소신 있게 이야기한다. 놀라운 사건이나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다. 누구나 겪는 일상이다. 그 이야기 속에서 사유리는 삶을 긍정하고 희망을 꿈꾸고 약한 존재인 인간에 대해 생각한다.

 

사유리는 생각이 반짝이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일기를 쓴다. 그녀가 쓰는 일기는 종이에 적는 일기가 아니다. 머릿속에 쓰는 일기, 언제든지 다시 펼쳐볼 수 있도록 꼼꼼하게 기억하는 일기, 매 순간 느낀 것을 깊이 있게 생각하는 일기다. 그 일기가 모여 책이 되었다. 그녀는 계속 일기를 쓰고 싶고, 계속 글을 쓰고 싶다. 오늘도 모든 것을 선생님 삼아 배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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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이 자유로운 사람이 이상형

 

그림이 정말 귀여워요. 직접 그리셨죠? 

 

글을 더 많이 써야 하는데 시간이 없다보니까 그림으로 채우자, 하고 무리하게 했어요. 사실 별로 필요 없었어요. 글을 더 쓰고 싶었는데 부족해서 그림을 넣었어요.

 

어렸을 때 아이들이 밀린 일기 쓰느라고 그림 그리고 했던 그런 거였군요?

 

맞아요. 초딩 그림이었어요.

 

재주가 많아요.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시고요.

 

감사합니다. 여기에 제가 아끼는 친구들이 나와요. 조정치와 정인(223쪽 그림)이에요. 제가 힘들 때나 행복할 때 조정치와 정인을 항상 그려요. 두 사람을 많이 좋아해서요. 휴대폰 메신저 단체방도 있어요. 그래서 정인, 조정치한테 항상 감사하고요. 조정치, 정인한테 말했더니 웃었어요. 또 저도 있어요. 저도 몇 개 나와요. 여기 알파카라고 하는, 라마에 타고 있는 저예요(39쪽 그림). 조정치, 정인이 항상 나와요. 저작권 침해 때문에 언젠가 고소당할 거예요. 똑같이 생겼어요.

 

정신이 자유로운 사람이 이상형이라고 하셨는데 흔치 않죠? 어떤 사람이 정신이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세요?
 
흔치 않은데 찾아보니까 있어요. 한국에서 진짜 정신에 자유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이봉원 씨예요. 이봉원 씨는 때가 안 묻는 것 같아서 이봉원 씨 같은 사람이랑 결혼하고 싶어요.(웃음) 그러니까 그 사람은 자기보다 잘 나가는 사람한테 아부하고 이런 거 전혀 없는 거예요. 정말 그냥 모두에게 착한 거예요. 그런데 그건 노력해서, 어떤 경험이 있어서가 아니라 원래 태어났을 때부터 그런 면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인 것 같아요. 뭘 해도, 어떤 위치에 있어도 때가 안 묻어요. 그걸 박미선 언니한테 말했더니, 박미선 언니도 그렇다고 느낀대요. 정말 제가 그런 사람이랑 결혼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사람이 사업하면 망해요. 그래서 사업 안했으면 좋겠어요. 너무 착해서(웃음).

 

정신이 자유로운 사람이란, 차별이나 편견으로부터도 자유로운 사람인 것 같은데요. 책에서도 차별, 편견에 대해 여러 번 언급하셨고요. 실제로 한국에서 외국인으로 살면서 그런 부분에 대해 생각하는 일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건 ‘외국인이라서’ 라고 하는 것보다 모든 나라 사람에게 있어요. 차별하는 사람이 모두에게 차별해요. 옆집 애 대학교 안 나왔어, 옆집 가족이 그렇더라, 부터 시작하고요. 차별하는 사람이 계속 차별을 해요. 나는 커피 맛있는데 걔는 오렌지 주스 맛있더라, 부터 시작하고요. 차별하는 사람은 한계가 없더라고요. 그런 사람은 어느 나라에도 있고, 인간은 어느 시대도 있는 것 같아요. 

 

여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모성애라고 하는 대목에서 사유리 씨가 여자로서의 정체성을 긍정하는 면이 엿보였어요. 그런데 혹시 여자로 태어난 걸 후회한 적이 없었나요?

 

많아요. 제가 남자라면 화장도 안하고 그냥 비치샌들 신고 밖에 나갈 수 있는데, 여자라서 예뻐야 해요. 특히 한국에서는 어리고 예뻐야 되는 압박감이 더 큰 것 같아요. 외모나 다른 것도요. 남자는 그런 거 별로 없어서 능력만 있으면 받아주거나 그렇잖아요. 그래서 그런 거 생각하면 ‘여자로 태어나 힘들다.’라고 느껴요.

 

그런 부분을 별로 신경 쓰지 않을 것 같았는데요.

 

아유, 신경 써요. 다이어트는 요즘 안하는데요. 강남이 제가 화장 안하면 너무 못생겼다고 TV에서 말했어요. 걔를 죽여야 돼요. 언젠가 걔 복수할 거야. 걔가 요즘 싸가지가 없어요(웃음). 서로 친해요.

 

평소 책을 많이 읽으시는 것 같아요.  

 

요즘 책을 별로 안 읽는 것 같아요. 읽는다고 하면 더 있어 보이는데, 핸드폰 있다 보니까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계속 핸드폰 하게 돼요. 나쁜 습관인 것 같아요. 예전에는 책을 자주 읽었는데 요즘 안 읽으니까 다시 한 번 책을 많이 읽어야겠다고 느꼈어요.

 

어떤 종류의 책을 좋아하세요?

 

저는 다큐멘터리 책만 읽어요. 소설을 사실 안 좋아해요. 초밥 가게 하는데 초밥 안 먹는 사람처럼 제가 소설, 에세이, 특히 어드벤처 이런 종류를 싫어해요. 영화도 러브 스토리 같은 것을 싫어해요. 그런데도 쓰고 싶으니 참 신기해요. TV도 다큐멘터리만 프로그램이 좋아요. <그것이 알고 싶다>와 <서프라이즈>요. 제 꿈이 <서프라이즈>, <그것이 알고 싶다>에 나오는 거였는데 <그것이 알고 싶다>는 범인밖에 못 나와서 포기했어요.

『언씽커블』이나 빅터 프랭클 등이 여러 번 언급되는데 혹시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 있다면요?

 

제가 빅터 프랭클이라고 하는 유대인 박사 책을 다 가지고 있는데 그 사람의 영향 많이 받은 것 같아요. 제가 유대인 사람이 쓴 것, 유대인 사람과 관련된 것, 유대인 교육하는 법, 이런 책들을 무척 좋아해서 많이 읽는 것 같아요. 그런 책에서 많이 배우는 것 같아요. 그냥 선생님 같이 느껴요. 

 

한국에서 아직 여자가 혼자 택시를 타면 위험하다는 인식이 남아 있지만 수많은 택시기사 중에 몇 명이 잘못된 행동을 하면 기사님 전체가 욕을 먹게 되어 안타깝다. 만약 잘못된 행동을 한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택시기사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 잘못한 사람의 직업이 우연히 택시기사였던 것뿐이다. (1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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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에게 배운다

 

택시기사 에피소드에서 사소한 깨달음에 대해 언급한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모든 사람한테 배우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한국에 왔을 때, 한국어 못하니까 한국어 숙제를 하려고 커피숍에 가잖아요? 그러면 옆에 있는 사람 다 선생님인 거예요. 이거 몰라요, 하면 다 가르쳐줘요. 그래서 ‘모든 사람이 저의 선생님이 될 수 있다.’라고 생각해요. 기사님도 전부 한국말도 잘하시고, 오래 사셨고, 좋은 사람 정말 많아요. 그리고 아저씨들이 많이 이야기하고 싶어 해요. 그래서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타다 보면 가끔 이상한 사람들도 있지만, 정말 좋은 사람이 많아요. 저는 도사라고 부르고 싶은 사람도 많이 만났어요. 그런 사람들한테 많이 배우는 것 같아요.

 

또 들려주고 싶은 에피소드가 있나요?   

 

여자 택시기사분이 있었어요. 전화번호도 서로 받았어요. 강아지를 키우신대요. 저도 강아지 키우니까 가끔 문자도 해요. 아들이 엄청 잘 생겨서 연예인 될 수도 있다고 해서 봤는데 그냥 많이 멋있진 않았었어요(웃음). 엄마 눈으로는 장동건보다 멋있다고 저한테 계속 말했어요.

 

방송인이시고, 알려진 사람이라 처음 본 사람에게 연락처 주지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그 아주머니는 TV를 아예 안 보셨어요. 처음에 저를 태웠을 때 중국 사람이라고 생각하셨어요. 상암동 간다고 하니까 상암동 왜 가냐고 물어보셔서 제가 MBC에서 일한다고 하니까 작가라고 생각하실 정도로 아예 몰랐어요. 저를 알고 있다고 해도 괜찮아요. 제가 진짜 사람 보는 눈이 있는 것 같아요. 아무 문제없어요.

 

사유리 씨가 긍정적이고 편안하기 때문에 상대도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플러스의 사슬’(23쪽)이라고 하셨는데, 그런 느낌이네요?

 

제가 긍정적인 사람이라면 사람들도 편하게 되니까 긍정적인 마음을 가질 수 있잖아요? 만약 너무 부정적인 사람 많이 만나면 저에게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만약 사기꾼 같은 사람이 다가왔어요. 그러면 저는 ‘나도 그런 면을 가지고 있는 건가?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라고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것 같아요.

 

사실 제가 엄청 성격이 급해요. 하루 이틀 같이 있으면 사람들이 다 알아요. 커피 시키잖아요? 빨리 빨리 나와야 돼요. 성격이 누구보다 급해서 한국 친구들이 이렇게 급하면 안 된다고 천천히 하라고 해요. 다행히 제 주변 한국 친구들이 한 명도 급한 사람이 없어요. 저를 받아들인 사람이다 보니까(웃음). 성격을 천천히 하고 싶어요. 마음이 커야 되는 것 같아요.

 

“아기가 그네를 탈 때 부모가 아기의 등을 밀어주잖아. 넌 나의 등을 밀어서 그네를 태워 줄 생각은 하지 않아도 돼. 내가 너에게 했던 것처럼 네 자식의 등을 잘 밀어줘야 한다. 사유리, 그 순서를 꼭 지켜야 해. 네 자식도 너에게 잘해 주는 것을 바라고 살지 마라. 네 자식의 아이, 네 손자에게 잘해주는 것을 바라.”(127쪽)

 

부모님에 대한 따뜻한 추억이 많습니다. 참 좋은 부모님을 두신 것 같아 부러웠어요.

 

특히 제가 존경하는 게 우리 엄마예요. 엄마가 저보다 훨씬 긍정적인 사람이라 많이 배우는 것 같아요. 사실 어머니만큼 긍정적으로 살 수도 없어요. 저는 좀 더 예민한 부분이 있어서요. 그런데 엄마 보면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엄마에 대한 순간순간의 기억이 있는데요, 세 살 때부터 기억이 있어요. 그래서 저도 만약 아이가 생기면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해요. 아기니까 모르겠지, 하는 게 없는 것 같아요.

 

어머니에 관한 첫 기억이 무엇인가요?

 

세 살 때 수영장에 갔는데 수영복을 거꾸로 입었어요. 부끄럽다는 마음은 없었는데 불편했어요. 그때가 제일 처음 기억이었어요. 엄마는 별로 신경 안 써줬어요. 바로 잡아줘야 하는데 엄마는 별로 신경 안 쓰니까 약간 불편했던 그 기억이 제일 처음에 있어요. 신기해요.

 

“나에게 주어진 고뇌를 낭비하고 있지는 않은가”(190쪽)라는 대목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세요.

 

제가 미우라 아야코의『빙점』을 읽고, 그 이야기를 보면서 어떤 슬픈 일이나 힘든 일도 낭비할 게 하나도 없는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슬픈 일도 낭비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제가 아무래도 일본식 표현으로 하는 게 있어서 몇 부분은 무슨 말인지 감이 안 오는 사람이 많더라고요. 음식도 그렇잖아요. 모든 음식을 쓰는 사람도 있고, 별로 필요 없다고 버려 버리는 사람도 있잖아요. 저는 다 음식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정말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인생에 낭비되는 게 없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걸 통해서 이유 생기면 시간 낭비, 인생 낭비도 아닌 것 같이 느껴요.

 

“나는 후회도 사랑한다”(198쪽)라고 하신 것과 같은 맥락이네요. 

 

슬픈 일도 이유를 찾아서 가치를 두면 낭비 되는 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해요. 특히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말이에요. 그렇게 생각해서 쓴 것 같아요. 연애도 그렇잖아요. 그 남자와 헤어져야겠다, 잊어버려야겠다, 하면 잊어버리지 못해요. 차라리 평생 좋아하겠다, 라고 하면 사실 그렇게 힘들지 않거든요. 무조건 자기 마음을 강요하면 오히려 그것에 집중하게 돼요. 내버려두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어요. 편안하지 않을 때도 있지만 그럴 땐 무엇을 해도 편안하지 않아요. 힘든 시기 있으면 순간순간 너무 시간이 길게 느껴져요. 자기만 인생에서 가장 힘든 사람처럼 그러는데 지나가면 힘든 시기가 반갑게 느껴질 때도 있어요.

 

그런 힘든 시기가 있으셨어요?

 

특히 남자친구와 헤어졌을 때 항상 힘들었어요. 그런데 이 남자랑 결혼 안 해서 다행이다, 라고 몇 년 후에 알게 됐어요(웃음). 사람도 그렇고 일도 그렇고 모든 것에 인연이라고 하는 게 있는 것 같아요. 만약 고정 이야기가 왔는데 뭔가 잘 안 돼서 못 들어갔어요. 그때는 그냥 인연 아니다, 인연 아닌 걸 무리하게 하면 다칠 수 있다, 라고 생각해서 지나가는 게 더 좋다고 느낄 때가 있으니까요. 인연이라고 하는 게 있어요.

 

혹시 이와 반대로 너무 잘 되고 그럴 때 불안하기도 한가요?

 

오히려 더 불안해요. 왜냐면 내려가고 있으면 올라갈 일밖에 없잖아요. 올라가고 있으면 내려갈 수밖에 없으니까 오히려 그럴 때는 더 조심스럽게 하고 그러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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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많이 칭찬해줘야

 

균형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그것에 가치를 안 두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연예인이 되거나, 인정받거나, 고정 되거나, TV 나오거나, 돈 많이 벌거나, 출연료 올라가면 사람들이 오해해요. 자기가 레벨이 올라갔다고요. 그렇지만 사실 이건 하나의 일이에요. 그것에 가치를 두었다가 자기가 내려가면 자기의 모든 게 내려가는 것처럼 보이게 되잖아요. 내가 어떤 식으로 일을 대하고 어떤 식으로 맞아주는지를 생각하고 살면 그것 자체에 충분한 가치가 있는데도 사람들은 결과만 봐요. 결과만 보고 자기가 만족하지 못하면 무조건 우울하게 돼요. 자기 가치가 떨어졌다고 생각해요. 저는 몇 개월 전에는 일을 많이 했는데 이번 달에 일이 많이 없어요. 옛날이라면 스트레스 받았을 텐데 지금은 그러면 그 사이에 나는 어떤 식으로 해결했는지에 대해서만 가치를 두려고 해요.

 

예전에는 그랬다고 하셨는데 이렇게 변화하게 된 계기가 있으세요? 좀 편안해진 것 같은데요.

 

그냥 시간이 지나면서 편안해진 것 같아요. 혼자 스스로 깨달은 것이에요. 나이가 많아서(웃음). 쓸데없이 나이 먹는 거 아니기 때문이에요.

 

어느 학자는 이야기된 고통은 더 이상 고통이 아니라고 했는데요. 자신의 생각, 아픔과 슬픔, 불안, 혹은 기쁨까지 이렇게 이야기로 풀어낸 사유리 씨는 참 행복할 것 같습니다. 매일 일기를 쓴다고 했는데 그것이 저자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저는 일기를 안 써요. 책에서 일기 쓴다고 한 것은, 종이에 쓴다는 게 아니라 머릿속에서만 쓴다는 거였어요. 어떤 순간, 매일매일 머릿속에서 일기를 쓰고 있는 것 같아요. 머릿속에서 항상 생각하고 그것에 언제든지 들어갈 수 있는 거예요. 잊어버리지 않고요. 어떤 순간에 어떤 느낌을 받았다면 내가 거기에 어떤 식으로 해결을 하고 어떤 식으로 사람들과 대화하고 어떤 행동하는지에만 집중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만약 누가 상처를 줬어요. 사람들은 그 사람이 상처를 어떻게 줬는지에 대해서만 생각하잖아요. 저는 제가 어떤 식으로 대처하고 그 사람한테 어떻게 대화를 하고 어떤 식으로 극복했는지에만 집중해요. 그러면 그렇게 힘든 일이 없어요. 누가 나에게 상처 줬다, 욕했다, 그것만 기억하면 스트레스 받을 수밖에 없어요. 그 이후에 나는 어떤 식으로 대처했다, 이런 식으로 해결했다, 이런 식으로 그 사람에게 지지 않고 극복할 수 있었다, 가 사실 더 중요하고 그것에만 가치를 둬야하는데 말이에요. 자기가 자기를 많이 칭찬해줘야 돼요. 누구한테 말할 필요도 없는 거예요. 그걸 많이 생각하는 것 같아요. 스트레스 안 받는 방법인 것 같아요.

 

이런 생각에 영향을 준 것들이 있나요?

 

힘들었던 시간들인 것 같아요. 책을 읽어도 사실 힘든 일이 별로 없으면 동의할 수 없거든요. 예전에는 셰익스피어 읽고 ‘왜 이렇게 재미없는 게 세계에서 인기가 있지?’ 라고 생각했는데요, 그건 셰익스피어라고 하는 책이 가치가 없는 게 아니라 거기까지 따라갈 수 없는 제가 문제였던 거예요. 그래서 힘든 일이 있을 때 책을 읽으면 책을 깊게 알게 되고 배우게 되니까 힘들었던 시간들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당시에는 화가 나고 그렇죠. 예민하니까요 계속 생각하게 돼요. 그럴 때 욕하고 끝나는 게 복수가 아니라 그 일에 긍정적인 이유를 만들면 제가 이기는 거예요.

 

“악의적인 말과 행동에게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그것을 좋게 받아들이고 감사하는 것이다.”(176쪽)

 

사람들이 저를 어떻게 생각하든 반가워요

 

방송과 책에서의 모습이 사뭇 다릅니다. 대중이 어떤 쪽을 기억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하세요? 

 

사람들이 저를 ‘바보다’라고 생각하든 어떻게 생각하든 반가워요. 어떤 쪽을 봐달라고 제가 강요할 수도 없고, 보여주고 싶은 것도 많이 없는 것 같아요. 느끼는 대로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정말 상관없는 것 같아요. 스캔들 같은 것을 생각해도요, 사실 둘밖에 모르는 일이 많아요. 증거 자료가 아무리 나온다고 해도요. 저는 누가 나쁘다, 아니다, 라고 하지 못하게 되는 것 같아요. 또 못하게 되는 사람이 저는 좋아요. 왜냐면 모르는 것을 아는 척 하면서 말하는 게 사실 어떤 일에서 제일 배우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저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든지 상관없는 것 같아요.

 

마음이 참 건강하신 것 같습니다.

 

건강한 사람이 한 번에 훅 갈 수도 있어요(웃음). 조심해야 돼요. 항상 건강한 사람이 한 번 감기 걸리면 굉장히 아프잖아요. 그래서 항상 조심해야 돼요. 그런 얘기가 있대요. 아우슈비츠에 갔던 사람들 있잖아요? 정말 긍정적인 사람들이 오히려 빨리 죽었대요. 너무 긍정적인 사람이 먼저 죽고, 부정적인 사람이 오래 살았대요. 특히 크리스마스 때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고 해요. 왜 그런지 아세요? 모두 기도하고 크리스마스 때까지는 전쟁 끝난다고 믿고 했었는데 크리스마스 지났는데도 전쟁 안 끝나니까 스트레스 때문에 다 죽었대요. 그러니까 항상 조심하고 부정적인 마음도 가지고 있어야 되는 것 같다고 쓰고 있었는데요. 희망이 오히려 더 그렇게 될 수도 있으니까 그냥 무작정 긍정적이기 보다 이유를 찾아서 사는 게 긍정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의미가 생길 수도 있어요.

 

친구의 죽음을 이른 나이에 경험하셨더라고요. 밝기만한 모습 속에 이런 아픔이 있었다니 무척 놀랐습니다.  

 

드라마에서는 사람이 죽잖아요? 그러면 울고 난리 나는데 사실 그렇지 않거든요. 처음에는 못 믿어요. 죽었다고 하는 자체가 머리에서는 알아도 마음이 안 가는 거예요. 그래서 사실 죽었다고 하고 그 일주일은 잘 모르겠더라고요. 우울증 걸리게 되는 사람도 좋아하는 사람이 죽고 나서 6개월 후에나 반응이 온대요. 그때 가장 조심해야 된다고 들었어요. 자기가 이해를 못하는 거예요. 그러다가 연락 못하고 못 만나고 하면서 알게 되는 거예요. 죽은 친구에게서 일주일 후에 편지를 받았을 때는 정말 ‘이게 천국에서 왔나?’생각했어요. 슬픈 내용도 별로 없었고요. 제가 미국에 있었는데 일본에 있는 그 친구의 남자친구한테 전화를 걸었어요. 죽었다고 한 게 장난한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랬더니 아마 그거 죽기 전에 보낸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정말 저는 장난한 거라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이렇게 담담하게 말씀하시지만 마음에 계속 남아 있을 것 같은데요.

 

제가 라디오를 갔는데 개그우먼 정선희 언니를 만났어요. 제가 “언니, 남자친구 생겼어요? 연애 해봐요.”라고 말했더니 언니가 펑펑 울었어요. 사람들이 절대로 그 얘기를 건드리지 않았대요. 그래서 오히려 더 외로워졌대요. 남자 이야기를 하면 움츠리는 자체가 자기를 너무 차별하는 것 같다고 너무 나쁘다고요. 그걸 처음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보통 사람처럼 대화해주니까 너무 놀랐다고 하셨어요. 그런 게 있는 것 같아요. 아픔이 있으면 오히려 그걸 건드리지 않는 게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상대방이 상처 받을 수도 있어요. 보통 사람처럼 대화를 해주는 게 차별이 아닐 수도 있어요. 배려도 잘 안 되면 차별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아픔 있는 사람한테 상처 주는 것도 안 되지만 너무 배려하는 것도 사실 역차별이 되니까요. 솔직히 저는 아무 마음도 없었어요. 시간이 많이 지났고, 언니는 아름답고, 매력 있고, 똑똑하고, 이렇게 좋은 사람이니까 빨리 연애해요, 이런 느낌으로 얘기했어요. 근데 언니가 울어서 ‘언니가 많이 힘들었구나.’하고 생각했어요.

 

힘든 시기입니다. 힘든 시간을 지나고 있는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이것도 정말 죄송스러운 게, 저는 지금 힘들어하고 있지 않잖아요? 그러면서 힘내라고 하는 게 너무 두려워요. TV에서 PD님이 ‘화이팅’이런 걸 시키기도 하고 좋은 모습도 보여줘야 하겠지만 솔직히 어떻게 해야 되는지 모르겠어요. 대신 제가 아픈 것도 아니라기 때문에요. 항상 옆에서 지켜봐주는 것, 그것 밖에 없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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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닦고후지타 사유리 저 | 넥서스BOOKS
이 책은 방송인 사유리를 넘어 일상인 사유리의 이야기를 담았다. 사유리는 트위터를 통해 글로써 진지하게 사람들과 소통한다. 그녀의 글을 처음 본 사람들은 방송에서의 모습과 달라 당황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내 그녀만의 무심한 듯, 담담한 듯 정직하게 세상을 바라보며 전하는 이야기에서 그녀의 진심을 발견한다. 그녀의 짧은 글 속에서 우리는 나 자신의 일상을, 생각을, 편견을, 오해를, 사랑을, 친구를 찾곤 한다. 너무 무겁지 않지만 때론 독특한 표현으로 전하는 그녀의 이야기가 문득문득 우리의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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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미 “꽃피는 봄은 누군가에게는 헤어지는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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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은 일생에 한 번 받기도 쉽지 않은 문학상을 한 해 두 번이나 받으며 등단한 서유미 작가. 2007년 『판타스틱 개미지옥』으로 문학수첩작가상을, 『쿨하게 한 걸음』으로 창비장편소설상을 거머쥐며 화려하게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당신의 몬스터』에 이르기까지 서유미 작가는 이야기의 힘을 증명했다. 그녀가 쓴 소설은 현실을 향한 비판적 시선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재미있었다.

 

『판타스틱 개미지옥』은 욕망이 집약된 백화점이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다양한 인물을 등장시키면서 추리소설 기법으로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았고 『쿨하게 한걸음』은 별 것 없는 30대 인생을 실감 있게 묘사해 공감대를 이끌어냈다.  『당신의 몬스터』에는 환상적인 요소를 가미하면서 자본주의의 욕망을 속도 있게 묘사했다.


전작이 인물과 인물 사이에 벌어지는 사건에 집중했다면  『끝의 시작』은 사건을 겪어내는 인물의 내면 묘사가 두드러진다. 어머니가 얼마 살지 못한다는 소식을 들은 영무. 그에게 여진은 이혼하자는 말을 건넨다. 한편 20대 취업준비생 소정에게 삶은 고되기만 하다.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그녀를 보는 남자친구 진수의 눈빛도 예전처럼 애틋하지는 않다. 세월은 꽃피는 봄 4월로 향하고 있지만 소설 속 인물들에게 이 기간은 그리 아름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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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얼마나 외로운지, 사랑하고 싶어하는지

 

어떻게 지내셨나요.

 

2013년 2월에 임신한 걸 알았고, 임신 기간 내내 『끝의 시작』을 썼어요. 10월 22일에 겨울호 마감하느라 원고를 보내고 10월 23일에 아이를 낳았어요. 그 이후에는 아기 키우고 틈틈이 에세이 쓰고 새 소설 준비하며 지내고 있어요.

 

이전에 쓰신 장편 3편이 개성 강한 인물이 다양하게 등장하고, 그 인물 사이에 사건이 있었다면 이번 책은 서사보다는 분위기, 정서가 중요한 작품 같습니다. 『끝의 시작』은 다르게 써 보자는 계획이 있었나요.
 

『판타스틱 개미지옥』, 『쿨하게 한걸음』은 서사와 배경, 인물이 중요한 작품이었고 『당신의 몬스터』는 영화 같은 소설을 써 보고 싶어서 상상력을 많이 동원했었죠. 첫 책이 나왔던 2007년 무렵에는 소설에 재미를 요구하는 분위기가 있었던 것 같아요. 저 역시도 재밌는 이야기, 한 사건에 얽힌 여러 유형의 인물들, 이런 쪽에 관심이 많았고요. 빠르게 읽히는 작품을 쓰고 나니까, 이번에는 차분하게 인물 안으로 들어가 보고 싶었습니다. 현실에 바탕을 두면서 좀 더 사람들의 이야기를 깊이있게 다룰 수 없을까 고민하게 되는 것 같아요.

 

4번째 장편입니다. 『판타스틱 개미지옥』이나 『당신의 몬스터』가 어두운 느낌을, 『쿨하게 한 걸음』은 상대적으로 밝은 느낌이었는데 이번 작품은 그 중간에 있는 듯합니다.

 

『끝의 시작』은 어떤 경계에 있는 작품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앞으로는 당분간 인물의 심리, 내면에 관한 이야기를 쓰려고 해요. 제가 서사를 해체하는 걸 쓰는 사람은 아니기 때문에 그 속에 서사가 있고 이야기가 있겠지만 좀 더 인물에 집중하는 이야기를 쓰게 될 듯합니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시작점이 되겠죠.

 

작가님의 작품에는 ‘자본주의와 욕망’이라는 화두가 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판타스틱 개미지옥』에서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욕망을 상징화하는 공간인 백화점이 전면에 등장했고요. 『당신의 몬스터』에서도 욕망으로 부서지는 인간 군상을 묘사하셨습니다. 이번 작품에서는 ‘욕망’보다는 ‘절망’이나 ‘체념’과 같은 정서가 두드러지는 듯합니다.
 

그동안 체제나 세태에 대한 고발과 그 안에서 욕망하는 인간에 대한 얘기를 많이 썼는데, 이번에는 그 인물들이 겪었을 상처, 상실에 대해 생각했어요. 사람들이 관계나 상황 속에서 느끼게 되는 근원적인 절망인 이별, 가난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결국 모두 얼마나 외롭고 사랑하고 싶어하는가 보여주고 싶었어요. 독자가 읽었을 때 ‘이거 내 모습인데?’ 하고 공감하게 만들고 싶었어요. 20대 취업준비생인 소정, 결혼과 일로 고민하는 30대 여성 여진, 딱히 미래를 기대하지 않고 일상을 견디는 40대 영무, 죽음을 앞둔 60대 영무의 엄마 등은 우리와 주변 사람들의 보편적인 모습이죠. 어떤 기자 분이 요즘 한국 소설이 많이 어두운데 그래도 『끝의 시작』은 결말 부분이 희망적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만큼 우리 현실이 어둡고, 현실에 발을 디딘 채 영향을 받는 작가들의 글이 어두워진 것 같아요.
 
4월은 누군가에게 깨지고 헤어지는 때

 

한 인터뷰를 보니 세월호 사건이 있고 퇴고하기가 어려웠다고 말씀하셨던데요.

 
소설을 쓴 건 그 전인데 사고가 터지고 나서 제가 죽음을 너무 피상적으로 그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마지막 부분인, 4월이 지나가는 장면을 많이 만졌습니다. 세월호는 공간적으로는 멀리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우리 일처럼 느꼈잖아요. 슬프고 힘들어하고 아주 힘들게 거기서 빠져나와서 현실로 돌아가는 과정을 저도 겪었어요. 그 과정을 생각하면서 퇴고하다 보니 시간이 오래 걸렸죠.


열린 결말인데요. 분량을 조금 늘리고 싶은 마음은 없었나요.

 
책을 읽은 분들 중에서 소정은 어떻게 되느냐, 영무와 여진은 정말 이혼하느냐, 이렇게 묻는 경우도 있는데요. 그냥 이 소설은 이 정도인 게, 이만큼 보여주고 끝을 맺는 게 좋다고 생각했어요. 소설을 다 읽고 책장을 덮은 뒤 독자들이 저마다 인물의 끝과 시작을 상상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소설에서 그리는 분위기는 어두운데, 시공간적 배경은 4월 여의도 벚꽃축제입니다. 또 4월은 세월호 사건이 발생했기도 하고요.

 

처음부터 벚꽃이 피는 4월에 엄마가 죽고, 연인과 이별하는 이런 밑그림을 그렸어요. 꽃 피는 계절인 봄이 사랑하기 좋은 계절이고, 시작되는 느낌이지만 누군가의 삶에서는 죽어가고 깨지고 헤어지고 끝나는 계절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이런 반대와 역설의 이미지를 잘 그려낼 수 있을까 걱정은 됐어요. 잘 쓰면 상생이 되는데, 안 되면 오히려 이상할 수 있으니까요. 퇴고하면서 그런 부분을 많이 만졌죠.

 

뉴스에서는 여의도 벚꽃 축제가 성황리에 진행 중이라는 소식을 전했다. 주말을 맞아 윤중로를 찾은 사람들이 벚꽃 앞에서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하는 모습이 화면에 비쳤다. 그곳 어디에도 개인의 사연 같은 건 등장하지 않았다. 짧은 영상 안에는 꽃과 거리, 웃는 사람들만 존재했다. 축제란 원래 그런 것이라는 듯. ( 137~138쪽)

 

여의도 윤중로 벚꽃축제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작가님 개인적인 경험이 반영된 장면인가요?

 

개인적으로 여의도를 좋아하진 않습니다. (웃음) 매년 뉴스에 나오니까 호기심이 나서 여의도는 실제로 딱 한 번 가 봤어요. 벚꽃길이 예쁘긴 한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한국전쟁 때 중공군이 밀고 내려왔던 상황이 이런 장면과 비슷했겠구나 싶더라고요.

 

신인 시절과 지금의 글쓰기, 스스로 변했다고 느낄 때가 있나요. 초기 작품도 좋았지만 이번 작품에는 특히 문장이 촘촘하다는 인상을 받았거든요.

 
다른 것도 잘 못하지만, 가장 자신 없는 게 사실 문장이었어요. 아직도 저만의 문장을 찾아가는 중이죠. 전작에서는 상황을 설명하고 서술하는 문장이 많았던 것 같아요. 이번 작품에서는 인물 내면 이야기를 쓰다 보니 필연적으로 문장이 촘촘해졌죠. 다른 작가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저는 예전보다 소설을 쓰는 게 어려워졌어요. 오래 걸리고요. 예를 들어서 노을 지는 장면을 묘사한다고 한다면, 한 번 쓴 묘사를 다시 쓸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작품이 나올 때마다 단어나 문장이 가난해지는 걸 느끼죠.

 

표지가 참 예쁩니다. 혹시 표지에 얽힌 뒷이야기도 있나요.

 

소설에 상처 입은 사람들 이야기가 많다 보니, 처음 표지는 상처받은 여성의 모습이었어요. 그것도 매력적이었지만 너무 그로테스크하게 보이더라고요. 어차피 이야기가 어두운데, 굳이 표지까지 그럴 필요는 없겠다 싶었죠. 지금 표지는 휴양지 느낌이 많이 나요. 상처받은 주인공들에게 꼭 필요한 게 휴양지가 아닐까 해서 이걸로 정했어요. 이전 소설의 표지도 좋았지만, 『끝의 시작』은 다시 이런 표지를 만날 수 있을까 하는 느낌이 들 만큼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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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서유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계속 글을 쓴 게 아니라 졸업하고 직장 생활하신 기간이 꽤 된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계기로 직장을 관두고 전업작가를 결심하셨나요.

 

이 이야기는 예전에는 많이 했는데, 오랜만에 하게 되네요. 국문과에 갔을 때는 작가가 되겠다는 생각보다는 글 쓰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당시는 기자가 각광받는 직업이었고, 실제로 잡지사에 들어가서 3~4개월 생활을 해봤어요. 기자는 글을 쓰기도 하지만 다른 업무가 참 많더라고요. 기자는 안 맞는구나 해서 관뒀어요. 그 뒤로 일을 한번 시작하니 관두기가 쉽지 않아요. 마침 IMF까지 터지고 나니 더 일에 매이게 됐어요.『끝의 시작』의 소정처럼 뭔가를 위해 1년을 준비할 상황도 아니었고요.
 

그 뒤로 이런 저런 회사에 잘 다녔어요. 여름휴가가 오면 휴가 때 많이 읽고 써야지 생각했지만 별로 못 읽고 못 쓰고 다시 일하고, 가을이 지나면서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신춘문예 생각나고, 연초에 당선작을 읽으면 부럽고 이런 생활을 몇 년 했어요. 그러다가 2005년에 관두고 신랑과 원주로 글 쓰러 갔죠. 명절에 늘 들었는데, 그 해 유난하게 걸린 말이 있었거든요. 어른들이 술 드시면 “나도 왕년에 ~을 꿈꿨는데, 내 인생 이렇게 꺾일지 몰랐다. 너희는 지금 너희가 최고인지 알지?” 이런 말씀하시잖아요. 그 말을 들으니, 아 나도 이대로 늙으면 저런 말을 하겠구나 싶더라고요. 만약 인생을 한 번이라도 걸어봤다면 저런 이야기를 할 수 없을 텐데, 저런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신랑도 그런 느낌을 받았나 봐요. 한 번 사는 건데, 한 번 써 보자 해서 원주로 간 거죠. 가진 게 없으니 잃을 것도 없고, 거기서 2년을 썼어요. 원주에서 나온 작품이 『쿨하게 한 걸음』, 『판타스틱 개미지옥』이고 남편도 『굿바이 동물원』초고를 썼고요.
 

2007년에 문학수첩작가상, 창비장편소설상을 수상하셨는데요. 한해에 두 번이나 상 타기가 쉽지는 않잖아요. 그때 어떤 기분이었어요?

 

굉장히 좋았죠. 그때 등단한 뒤로 연차로는 올해가 9년차인데, 장편이 4편이고 소설집이 1편이면 아주 많지도 적지도 않아요. 하지만 첫 두 작품이 2007년, 2008년에 나왔으니까 중간에 공백이 길었죠. 2007년에 상을 두 개나 받으니 ‘이 작가는 얼마나 잘 쓰나, 한번 보자’ 이런 시선도 의식했던 것 같고요. 그 뒤로 롤러코스터 같은 시간이었어요. 자뻑에 빠졌다 자학에 빠졌다 정신을 못 차리다 지금은 어느 정도 평정을 찾은 것 같아요. 2007년의 서유미를 생각한다면, 제가 아닌 느낌? 그 사람 정말 좋았겠네, 옛날에 그런 사람이 있었지, 이런 느낌이 들어요. 

 

어머니가 된 작가의 가장 큰 고민은 책 읽을 시간과 쓸 시간이 없다는 점일 텐데요. 어떻게 해결하시나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지만 신랑과 제가 전업 작가다 보니 육아도 많은 도움을 받게 되는 것 같아요. 바통을 이어받듯 하루씩 번갈아보고 친정어머니도 도와주시고요. 아기만 봐야 하는 다른 작가 엄마보다 자유로운 편이에요.

 

임신과 출산이라는 경험이 창작에 영향을 많이 줄 것 같아요.

 

아직 글 자체가 막 달라졌다는 느낌보다는 사람,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어요. 모든 사람이 엄마 뱃속에서 나온 사람인데, 왜 세상은 점점 악하게 가는지가 고민이 돼요. 세상에 대한 관심이 훨씬 많아졌고요. 그런 시선이 소설에 반영되는 때가 오겠죠. 간혹 소설을 쓰려면 결혼하는 게 좋을까, 아이 낳는 게 좋을까를 묻는 후배가 있어요. 저도 예전에 선배 작가들에게 묻기도 했었고요. 물리적으로는 도움 안 되죠. 결혼도 절대로 하면 안 되고요. (웃음) 읽고 쓸 수 있는 자신의 시간을 확보해야한다는 점에서는 혼자서 자유롭게 쓰는 게 어쩌면 좋을 수도 있어요.

 

어떤 면에서는 좋게 작용할 수 있겠다 생각하는 점은, 시선이 건강해져요. 예전에는 이따위 세상 망하든 말든 무슨 상관이야, 이런 마음이 없지 않았습니다. 세상을 향한 관심도 제가 죽을 시점인 50년 이후까지 만이었죠. 지금은 100년, 200년 이후까지는 세상이 건강했으면 해요. 제 아이의 아이까지 생각하다 보면 나무도 있어야 하고 식량도 있어야 하고 세상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당신의 몬스터』가 나왔을 때 했던 인터뷰에서 깊이와 재미를 놓치지 않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하셨는데요. 앞으로 어떤 작품을 쓰실지 알려 주신다면.


2007년에도 그랬고 『당신의 몬스터』 쓸 때까지도, 영화는 보지만 책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을 책으로 끌어오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어요. 지금은 읽는 사람만이라도 충족시키자는 쪽으로 바뀌었습니다. 좀 체념적인 심정인지도 모르지만 읽는 사람은 계속 읽어요. 한국소설을 읽는 독자도 있고, 외국소설을 읽는 사람도 많고요. 언젠가 카페에 갔는데, 많은 사람들이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을 읽고 있더라고요. 읽고 싶어하는 갈망은 여전히 존재한다는 걸 느꼈어요. 앞으로는 현실을 비판하고 빠르게 가는 작품보다는 깊이 있으면서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써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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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의 시작서유미 저 | 민음사
서유미의 장편소설 『끝의 시작』. 문학성과 다양성, 참신성을 기치로 한국문학의 미래를 이끌어 갈 신예들의 작품을 엄선한 「오늘의 젊은 작가」의 여섯 번째 작품이다. 보통 사람들이 한두 번씩은 다 경험하는 이별의 아픔과 상처 그리고 그것들이 극복되는 예민하고 섬세하고 신성하기까지 한 과정을 특유의 서사성과 서정성 짙은 슬프고 담백한 이야기로 표현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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