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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대범 편집장 “허재가 NBA에 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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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동안 오로지 한 길만을 걸어온 손대범 편집장. 그가 걸었던 길에는 늘 농구가 함께했다. 지금도 손대범 편집장이 하는 일은 농구와 관련된 게 대부분이다. 농구에 관한 기사나 칼럼을 쓰고, 농구 해설을 하며 최근에는 NBA 스타를 소개하는 책을 썼다. 바로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농구스타 22인』이다.

 

손대범 편집장의 글을 읽으면 마치 영상을 보는 듯한 착각이 든다. 그가 직접 찍은 사진과 책에 실린 방대한 정보가 어우러져서다. 덕분에 르브론 제임스, 코비 브라이언트, 팀 덩컨 등 살아있는 전설과 스테판 커리, 앤서니 데이비스 등 앞으로 전설이 될지도 모를 NBA 스타의 면면을 책 한 권으로 들여다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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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A 스타의 공통점, 근성과 화려함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농구스타 22인』이 편집장님에게는 6번째 책인데요. 이전 책과 비교한다면 어떤 의미가 있나요?
 
이전에는 우리끼리 내고 즐거워한 책이라면, 이제는 정식 계약에 의해 냈다는 점이 다릅니다. 2009년에 내고 5년 만에 나온 책인데, 그 사이에 많은 게 바뀌었어요. 농구를 보는 관점, 글 쓰는 스타일이 변했는데 이런 점이 반영되었다는 데 의미가 있겠죠.


농구를 바라보는 관점이 어떻게 바뀌었나요.


NBA 선수는 잘하는데 KBL은 못한다는 식으로 예전에는 무조건 비판적이었어요. 바뀐 계기가 있었습니다. 2009년 5월에 허리 수술한 뒤 재활 기간을 오래 거쳤어요. 정말 힘들었어요.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선수들은 부상을 달고 뛰는데, 어떻게 견디지? 참 존경스럽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해설하면서 저의 한 마디 때문에 땀 흘린 가치를 훼손하지 않도록 조심스러워졌죠.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농구스타 22인』에도 선수가 이룬 결과보다는 이루는 과정까지 어떤 시련이 있었는지에 초점을 뒀어요. 어떤 독자는 너무 드라마틱하게 띄운 거 아니냐고 하는데, 선수들이 겪은 과정 자체는 사실이었거든요. 과거에는 스타 선수 위주로 많이 봤어요. 최근에는 본질적인 걸 이해하려고 해요. 스타 선수만이 아니라 팀플레이까지 깊게 들어가게 됐죠.


책에 실은 선수들의 공통점을 꼽아 주신다면.


첫 번째는 근성입니다. 대부분이 어릴 때 가난했고, 과소평가 받기도 했는데 포기를 안 했습니다. 큰 부상을 당했는데도 본인이 성공하겠다는 의지와 노력으로 극복한 선수도 있고요. 두 번째는 화려함. 대부분 직접 본 선수들인데 그 선수들의 플레이가 정말 화려합니다. 신계와 인간계가 있다면 이 선수들은 신계에 있죠.
 
네이버 연재와는 구성이 달라졌는데요. 처음으로 등장하는 선수가 카멜로 엔서니입니다.


다른 의도는 없어요. 엔서니 선수가 A니까 앞으로 넣었습니다. 2013~2014시즌으로 선수를 배치했는데, 지금 썼다면 빠졌을지도 모르겠어요. 올 시즌이 기대 이하라서요. 처음 이 책에 들어간 선수는 30명이었는데, 분량이 너무 두꺼워져서 누락된 선수가 있죠. 괜찮은 사진이 없는 선수를 빼기도 했고요.


22인 선정 기준을 물어보시곤 하는데요. 제가 최대한 많이 봤고, 이야기 많은 선수 위주로 넣었어요. NBA 매니아 중에서는 제레미 린이 들어가서는 안 될 선수라고 평가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이 책이 1년만 읽히고 끝날 게 아니라면 아시아인으로 NBA스타에 근접한 선수가 있다는 걸 남기고 싶었어요.


허재가 NBA에 갔다면


제레미 린과 김선형 선수를 비교하기도 하는데, 책 끝에 실린 인터뷰에서는 KBL 선수 중에 NBA에 근접한 선수가 없다고 말씀하셨는데요.


김선형 선수는 호리호리한데 제레미 린 선수는 직접 보면 밸런스가 잘 잡혀 있어요. 몸이 탄탄하고요. 어렸을 때부터 흑인과 부딪쳐와서 흑인과 대결에 주저함이 없습니다. 두 선수 모두 슛이 부족하지만 제레미 린은 NBA 선수 사이에서 드리블 치고 올라가서 슛을 성공할 능력이 있어요. 김선형 선수는 그 수준은 아니라고 봐요. 미국 고등학교 농구를 취재하기도 했는데, 이들은 한국과 완전 달라요. 한국 선수가 NBA 혹은 유럽리그에서라도 뛰려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직접 가서 뛰는 게 필요해요. 상대하는 선수의 탄력, 팔길이, 농구 문화가 다 다른데 성인이 되어서 적응하기는 쉽지 않거든요.


올드 팬 중에서는 허재가 NBA에 갔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하기도 합니다.


성공 기준을 어디 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허재가 갔다면 주전은 못하더라도 식스맨으로 5~10분 정도 뛸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어요. 몸이 탄탄했고, 천재성과 근성 자존심을 겸비했습니다. 이런 게 국제무대에서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도전할 자리가 더 이상 없었으니까 노력했다면 그 선수의 천재성이 좀 크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좋아하는 선수로 코비 브라이언트를 꼽았습니다.


코비 외에도 책에 실린 선수 중에는 싫어하는 선수는 없어요. 제가 싫어하는 기준은 명확해요. 게으른 선수는 싫어합니다. 코비는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참 좋아하게 됐죠. 남들이라면 일생에 한 번 가질까 말까 한 기회인 NBA에서 자기관리를 제대로 못하는 선수는 보면 화가 나죠. 그런데 NBA 스타 중에서는 게으른 선수가 거의 없어요. 다 노력을 했으니 스타가 된 거죠. 숀 캠프 같은 예외도 있긴 하지만요.


올 시즌 코비의 모습이 좋지 않았어요.
 
참 안타깝죠. 스타일 자체는 변화가 필요하다 생각해요. 그걸 하려는 순간 부상을 당했는데 제가 고등학교 때 코비가 고졸신인이었고, 쭉 봐온 선수이니 더 애틋해요.


NBA 스타 중에는 성장환경이 불우한 경우가 많았는데요. 왜 그럴까요?

 
백인 스타 중에서는 불우했던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어요. 아버지가 교사, 농구 선수 등 적절히 중산층이었습니다. 흑인 선수 중에서 어렵게 자란 사람이 많은데요. 대표적으로 지미 버틀러가 어렸을 때 어머니에게 버림받았죠. 이런 절박함 속에서 운동했기에 더 뛰어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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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구 아시안게임에서 우승했으나


책이 실린 사진 중에서는 편집장님이 직접 찍은 사진도 있던데요.


회사가 넉넉하지 않다보니 (웃음). 챙길 건 다 챙겨요. 카메라, 모노포드, 핸드폰 카메라, 녹음기 등. 고생을 많이 하죠. 미국에서는 기자도 크더라고요. 비집어 들어가서 녹음기 켜 놓고 까치발 해서 찍고 영상도 녹화하고, 나중에 보면 뭘 찍었는지 모를 사진도 많아요. 중국이나 일본 기자를 보면 부럽죠. 그들은 보통 한 매체에서 4~5명 와서 각자 할 일만 하거든요. 인터뷰 때도 한국은 자주 안 오니까 제일 안 좋은 자리를 줘요. 사비 들여서 가기도 하는데, 저뿐만 아니라 <점프볼> 기자들은 대개 그래요. 농구를 좋아하니 사비 들여서 취재할 때도 잦아요.


잡지가 살아남기 정말 어려운 한국인데요. <점프볼>이 장수할 수 있는 비결은?


농구인이 많이 도와주셨어요. 오랫동안 전통 있는 유일한 농구 잡지였고요. 어떤 감독님은 사비 들여서 50권씩 사서 경기장에서 관중에게 나눠주시기도 했고요. 구단도 많이 도와주셨고요. 저 혼자 힘이면 못 살았죠. 경영하면서 위기도 많이 있었지만 이길 수 있는 건 팬, 농구인들 덕분입니다. 저희 원칙은 한국에서 벌어지는 모든 농구 경기 현장에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작년에도 초등부터 어머니 농구대회까지 다 갔어요. 그렇게 견디다 보니까 독자들이 인정해 주시고 많이 봐 주시죠.


아시안 게임 이후로 농구 붐이 다시 일 거라는 예측도 있었는데, 지금 한국농구는 어떤가요?


오히려 지금 최악이죠. 저는 아시안게임에서 우승하는 장면을 보고 눈물을 흘렸어요. 아, 됐다, 이제 농구가 뜨겠구나. 현실은 별다를 바가 없어요. 농구 콘텐츠가 힘을 잃었습니다.  10년 넘게 농구에 관한 글을 썼고 농구 관련한 방송도 나갔지만, <우리동네 예체능>에 몇 초 나간 게 더 효과가 좋았으니까요. 서장훈 씨도 그런 이야기를 했었죠. 농구 자체에 대한 인지도가 너무 떨어졌습니다. 아시안게임이 해결해줄 거라 생각했지만 전혀 안 됐습니다. KBL 자체의 매력이 떨어져서가 아닐까, 근본적으로 바꿔야 하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플레이 자체가 재미가 없고 팬 서비스가 좋은 것도 아니니 경쟁력이 많이 떨어졌다고 봐요.


저 세대는 농구대잔치가 끝나면 나가서 경기하고, 이충희 슛 따라해 보는 분위기였어요. 물론 문화 콘텐츠가 많이 생기기도 했지만, 낮에도 밤에도 농구장이 텅텅 빈 걸 보면 KBL에서 농구적 영감을 못 얻는 사람이 많다는 거죠. 사회인 농구 하는 분도 KBL을 안 본다고 말씀하시니까요. 아쉽죠.


예전 꿈은 리그 총재였다고 하셨는데요. 지금은 어떤 역할을 맡고 싶으신지.


농구가 재밌다는 걸 전파하고 싶어요. 스타 플레이어를 만들고 싶고요. 예전에는 선수가 홍보대사면 저는 영업사원이라고 생각했어요. 필요할 때는 제품을 비판하면서 개선하겠다고 할 수 있는 영업사원?


손대범이 글을 쓰는 이유


방송 활동도 하시고, 편집장으로서 후배 기자도 챙겨야 하잖아요. 그럼에도 끊임없이 책을 쓰고,기사를 쓰는 원동력은?


기본적으로 저는 글을 쓰는 사람입니다. 방송은 2001년에 처음으로 시작했는데, 그때 주객이 전도되지는 말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제가 글을 쓰고 지식이 많아서 섭외된 거지, 말 잘하고 잘생겨서가 아니라는 거죠. 죽을 때까지 글쟁이고, 현장에서 글 쓰는 게 우선입니다. 글 쓰는 것, 책 쓰는 것. 방송을 잡으려고 애를 쓰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와이프가 방송 출연료 신경 쓰지 말라고 금액을 안 알려줘요. 그렇다고 들어오는 방송을 마다하진 않습니다. (웃음)


15년 넘게 한 우물만 팠다는 점이 대단합니다. 청춘 멘토로 초빙하는 자리도 많이 올 것 같은데요. 그럴 때 어떤 말씀을 하시나요.
 
조언하기가 참 애매한 게 농구가 장사 안 되는 종목이잖아요. 저처럼 한 길을 쭉 걸으라고 했는데, 안 되면 어떡해요. 할 거면 제대로 하고 아니면 남들 사는 대로 살라고 말해요. 제가 존경하는 사람이자 추천사를 써 주신 최연길 해설위원도 그런 말씀을 해요. 제대로 공부를 하라고요. 농구를 알려면 스타 프로필만 외운다고 되는 게 아니라 룰, 제도, 전술, 문화, 농구 자체를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저도 틈나는 대로 공부를 많이 했어요. 지금은 아기가 생겨서 다 못 볼 때도 있지만 한동안은 그날 열린 경기를 모두 다 보기 전까지는 안 잤어요. 밤샌 적도 많았고요. 후배들에게 밤샘을 강요하는 것 같아 미안하기는 하지만, 이왕 좋아해서 할 거면 제대로 하자고 말을 해요. 좋아한다고 들어와서 농구를 훼손시키면 안 되잖아요. 저는 스무 살 때 잠시 음악에 미쳤던 적 빼고는 이후로 딴생각 안 하고 쭉 농구만 봤어요. 다만 프리랜서 하면서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때는 여름에는 농구 경기가 없으니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마라톤잡지, 애견잡지 이런 데 기고한 적도 있긴 해요. 그래도 끝까지 농구를 놓지는 않았습니다.


실제로 농구를 많이 하시나요.
 
지금은 많이 못해요. 예전에는 틈나면 농구했죠. 잘은 못합니다. 실제로 저와 농구한 사람은 실망하는 경우도 있어요. 허리 디스크가 심해져서 요즘은 거의 안 하죠.


혹시 팀을 맡는다면 어떤 팀을 만들고 싶은지.
 
저는 감독보다는 경영자가 되어야죠. 시원하게 달리고, 팬 서비스 화끈하게 하는 팀을 만들고 싶어요. 그래도 결국에는 수비로 가지 않을까 싶어요. 속공도 리바운드와 수비가 잘되어야 가능하니까요. 말은 쉽지만, KBL에서 감독이 수비 농구하고 패턴 농구하는 게 어쩔 수 없어요. 선수 개인기가 좋으면 다 맡기겠죠. 그럴 수 없으니 감독이 하나하나 지시하게 되는 건데, 어쨌든 제가 단장이 된다면 주구장창 달리고, 성적 신경 안 쓰고, 유니폼도 사고 싶게 만들고, 여러 가지를 해 보고 싶어요.


해설과 글 중에서 편한 건 역시 글인가요?


해설은 엄청나게 힘들어요. 말이. 말하는 게 어려운 게 아니라 농구가 어려워요. 보면 볼수록 헷갈리고 어려워요. 해설하는 사람이 저거밖에 모르냐, 그런 말이 나올까 봐 겁도 나고요. 실수 안 하려고 보면 말도 버벅일 때 많고요. 선수 땀의 가치를 훼손 안 하기 위해서는 진짜 잘못된 것만 지적하자고 마음먹고 들어가도 생각대로 안 될 때도 있죠. 글은 썼다 수정할 수 있지만 말은 주워담을 수 없으니 되게 힘들죠. 지금이 예능의 시대잖아요. 해설을 재밌게 해야 하는 시대라서, 그 부분도 어려운 것 같아요. 다른 분 해설하는 것도 들어보고, 왜 PD님이 나를 기용했을까를 역으로 고민해보기도 해요.


기자 생활하면서 가장 힘든 점은 어떤 점이었나요.


일을 많이 벌렸어요. 매니아 같은 성격이 있어서, 중요한 장면만 보면 되는데, 보다 보면 경기 전체를 다 보게 돼요. 관련 기사 모두 찾아보고 하다 보면 밤새기도 하고. 남들 퇴근할 때 저희는 출근하잖아요. 잠든 시간에 기사를 써야 하고요. 농구가 9월에서 시작해 4월까지 하는데, 공교롭게도 가족 이벤트가 많은 기간이에요. 설, 크리스마스뿐만 아니라 와이프 생일과 아기 생일도 그때거든요. 저는 그때가 제일 바쁘니 미안하죠. 저 혼자 라스베이거스에 출장간 적이 있었는데요. 비용을 아껴야 하니 허름한 모텔에서 잤는데, 거기서 수영장 풀에서 가족끼리 노는 게 보였어요. 갑자기 눈물이 나더라고요. 아기가 보고 싶어서 아내에게 전화해 미안하다고 했더니, 인제 와서 무슨 소리냐고. 그래도 농구팬이라면 누구나 만나고 싶은 스타를 만날 수 있으니까 미안하면서도 좋은 거죠.


KBL 편은 쓰려고 생각해 보셨나요? 앞으로 나올 책을 알려주신다면.


지금 준비하는 책은 농구 자체를 설명하는 글이에요. 시청자가 농구를 보면서 해설을 들어도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을 수 있어요. 이런 부분을 최대한 쉽게 설명해서 에세이 형태로 풀어내려고 합니다. 2009년부터 글쓰는 방식을 조금 바꿨습니다. 기자다 보니 제 글은 좀 딱딱했어요. 육하원칙 생각하고, 팩트 중심으로 써야 하니까 어쩔 수 없었는데 바꾸려고 소설이나 수필을 많이 읽었어요. 오쿠다 히데오 글을 좋아하고 영감도 얻었고요. 닉 혼비 책도 봤어요. 5년 정도 연습하면서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글을 쓰려고 노력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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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농구스타 22인 손대범 저 | 원앤원스타일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농구스타 22인』은 미국프로농구(NBA)에서 활약하며 전 세계 농구팬들을 흥분하게 만들고 있는 농구스타들에 관한 심층적이고도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준다. 온ㆍ오프라인에서 NBA를 보며 정보와 감정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이제 막 관심을 가지고 챙겨보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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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12월, 긴 침묵을 끝내고 돌아온 신윤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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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 Life Is Strange >는 대한민국 록 시장을 경도했다. 굳건한 록 오직 하나로 무장한 서울전자음악단의 총천연색 세상에 흐릿한 가짜 밴드들의 음악은 힘없이 들통 나버리고 말았다. 쏟아지는 호평과 한국대중음악상의 인정. 그들은 말 그대로 최고였다. 그리고 그 후 야속하게도 해산을 선언했다. 서울전자음악단의 음악은 그렇게 전설 속의 록 토템으로만 남아있는가 싶었다.

 

한 해가 다 가기 전, 모두가 각자를 정리하고 새로운 해를 맞을 준비를 하는 시기인 12월, 긴 침묵을 끝내고 이들이 돌아왔다. 기대에 부합하듯< 꿈이라면 좋을까 >는 여전히 서울전자음악단의 뚝심과 고집, 그리고 신선한 창의력으로 무장한 늦깎이 수작이었다. 부활의 기지개를 켠 서울전자음악단의 리더, 대한민국 레전드 패밀리의 일원, 신윤철과의 인터뷰를 통해 5년간의 공백과 향후의 미래를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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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전자음악단이라는 이름으로는 활동이 늘 격조합니다. 2014년 발매한< 꿈이라면 좋을까 >는 2009년 이후 5년 만의 새 앨범인데요. 해산과 재결성 등 나름의 굴곡이 많았습니다. 멤버도 바뀐 상태에서 다시 서울전자음악단의 이름으로 돌아온 계기가 있다면요?


원래는 제가 리드하는 '신윤철밴드'같은 형식으로 활동하고 싶었어요. 이를테면 '신윤철과 시기상조' 같은… 지금 멤버인 이봉준 씨와 손경호 씨는 2000년쯤 원더버드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했는데, 그때부터 같이 서울전자음악단이라는 이름으로 음악 하고 싶었어요. 회사 계약 때문에 다른 이름으로 바꿔 내기 어려워 원더버드로 활동했지만 말이죠. 장난스러운 프로젝트보다는 오리지널 서울전자음악단의 멤버들과 함께 본래 이름으로 돌아오고 싶었습니다.

 

한 해가 가기 전, 작년 말에 앨범을 발매했습니다.


좀 더 일찍 발매하고 싶었죠. 지난여름부터 앨범 계획을 짜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EP 형태로 네다섯 곡 정도 수록하려 했던 게 하다보니까 녹음을 많이 하게 되서 곡이 쌓였고, 앨범이 나왔죠. 원래 계획보다 늦어지다 보니 12월에 발매하게 되었네요.

 

전작 < Life Is Strange >가 성공을 거뒀고, 2011년 솔로 작품 역시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후속작에 대한 부담은 없었나요?


부담이야 있었죠. 신인 밴드처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상황인데 서울전자음악단이라는 이름이 있었으니까요. 그래도 음악 제작 과정에서는 크게 의식하지 않았어요. 전혀 다른 스타일이더라도 전작의 유사함을 바랐다면 부담이 되었을 텐데, 레코딩 방식이야 같다 하더라도 좀 더 라이브 느낌이 나게, 잼(Jam) 스타일로 만든 앨범이기 때문에 막상 큰 부담은 아니었어요.

 

레코딩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서울전자음악단은 여러모로 원 테이크, 아날로그 테이프 등 시대를 거스르는 레코딩 방식을 채택합니다. 이런 어려운 방식을 고집하시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사실 저보다도 다른 멤버들이 아날로그 방식을 고파해요. < Life Is Strange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처음에 저는 컴퓨터로 하자고 했죠. 아날로그 녹음기도 없었고 장비도 구하기 힘들었던<볼륨을 높여라>는 컴퓨터 프로툴로 만들었거든요. < 꿈이라면 좋을까 >같은 경우는 테이프 가격이 비싸져서 멤버들이 자비로 구매하고, 회사에서 진공관 프리앰프를 구비해주셨죠. 그래도 컴퓨터로 하다 테이프 결과물을 들어보면 놀라게 돼요.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가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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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에너지틱하다기보다는 음산한 기운이 먼저 듭니다.


일부러 의도를 한 건 아니고 잼을 위주로 하다 보니 그런 스타일이 나왔어요. 전작의 경우 제가 제작 과정에서 '이 부분에서는 이렇게 연주해라' 등 많이 지적했는데요, 이번 작품에서는 일부러 작곡 데모에 베이스 리듬을 없애기도 하면서 연주의 자율성을 강화했어요. 알아서 연주하게. 그러다 보니 곡 분위기의 자체도 처음 생각했던 부분보다는 즉흥적인 차원에서 달라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1960년대나 1970년대 유명 블루스 아티스트들의 부틀렉 앨범같기도 한데요.


크림(Cream)이나 킹 크림슨(King Crimson)이 모티브가 됐죠. 특히 저는 1969년부터 1979년대까지의 킹 크림슨을 참 좋아해요. 1973년부터 75년까지 네 명의 멤버가 있는데 (로버트 프립, 존 웨튼, 빌 브루포드, 제이미 뮤어), 공연의 반 이상을 즉흥연주로 채웠던 시절이었죠.< Bible Black >이라는 앨범은 반 정도가 실황이고, 나머지는 다 즉흥연주일 정도에요. 특히 몇 년 전부터 멤버들에게 킹 크림슨 앨범을 많이 들려줬어요.

 

타이틀 트랙인 「꿈이라면 좋을까」에서는 아내 장재원 씨가 보컬과 가사를 맡았습니다. 평소에 부인분과 음악 작업에 대해서 많이 논의하시나요?


「꿈이라면 좋을까」는 원래 드라마용으로 만든 노래였어요. 평소에도 아내와 함께 가사나 멜로디 등 많은 부분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요. 특히 가사를 잘 써주죠.

 

앞으로도 장재원 씨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건가요.


기회가 된다면, 얼마든지요.

 

전작의 「나무랄 데 없는 나무」, 「고양이의 고향노래」에 이어 「삶은 계란」까지. 소소한 위트의 배경이 궁금합니다.


(웃음) 대단한 건 아닌데… 가사를 쓸 때 '지금부터 가사를 써야지'하고 쓰는 경우는 없어요. 생각이 나지 않을 때는 이리저리 일상 속을 거닐다가 그때그때 기록해놓는 경우가 많아요. 가사도 그렇고, 문장 하나만 생각하더라도 다 기록을 해놓곤 하거든요.

 

사실 서울전자음악단의 음악뿐만 아니라 신윤철씨의 솔로 앨범도 절판되어 시장에서 구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지금까지의 앨범에 대한 재발매를 바라는 팬들이 많은데요.


재발매하면 좋죠. 그런데 여러 문제가 많더라고요. 솔로 작품 같은 경우는 전속으로 계약을 했는데 복잡한 판권 문제가 있고… 또 10년도 더 된 과거 앨범을 그대로 똑같이 내는 것도 좋은 생각은 아니라고 봤어요. 노력한지는 10년도 더 됐는데 아직까지는 어려워요.

 

약간 음악과는 상관없는 질문이지만, 개인 페이스북 계정을 보면 비틀즈 관련 이야기가 흥미롭습니다. 특히 폴 매카트니 가짜 설은 상당히 논리정연한 데요.


(크게 웃으며) 하하, 사람들이 그걸 가장 많이 묻곤 해요. 제가 만약 그 사람 가짜다 이렇게 얘기하면 팬들이 봤을 땐 이상하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고.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거의… 가짜가 아닐까요? 어렸을 때부터 이상하게 생각해왔거든요.

 

이유를 살짝 공개해주신다면?


비틀즈 음악을 워낙 많이 듣기도 했고. 제가 실용 음악을 가르치다 보면 노래하는 친구들을 많이 보게 되는데, 비틀즈 음악을 듣다 보면 초기부터 1966년과 그 이후 폴 매카트니 목소리가 너무 달라요. 그 외에도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고, 앞뒤도 안 맞는 게 많아요. 근데 뭐…. 잘 모르겠어요. (웃음)

 

얼마 전 < 라디오스타 >에서 하세가와 요헤이씨가 출연해 한국 최고의 기타리스트로 윤병주 씨와 신윤철 씨를 꼽았습니다.


기타 연습 좀 더 해야겠다,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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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철이 꼽는 기타리스트가 있다면?


우리나라엔 기타 치는 사람들이 헤비메탈 계열인 경우가 많아요. 저희 세대나 저희 형(신대철) 세대가 특히 도드라지죠. 한쪽으로 너무 쏠려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최고의 기타리스트라면… 대학교 때 들국화의 최구희 형님과 친했었는데 그분의 기타 소리만큼 듣고 싶어지는 기타 소리가 드물어요. 하세가와 요헤이씨가 기타를 연주할 때도 '와, 이런 사람도 있구나.'하고 놀랐고요. 이런 분들이 많아져야 한다고 봅니다.

 

한양대학교 실용음악과에서 학생들을 지도하는 교수시기도 합니다. 학생들에게 음악을 전달하는 나름의 방식이 있을까요.


우선 음악을 먼저 들려줘요. 저번 학기부터는 가끔 LP도 가져가고, 같이 듣고 음악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아날로그가 생경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오히려 신기해하면서 좋은 반응이더라고요. 건반이나 드럼 연주하는 친구들은 실용음악과 들어가면 재즈 쪽으로 빠지는 경우가 많은 편이지만 기타 치는 친구들은 안 그래요. 재즈 하는 친구들은 재즈하고, 록과 블루스 좋아하는 친구들도 많아요. 음악을 많이 들려주는 쪽으로 지도하고 있습니다.


솔직하고 진솔한 인터뷰 감사합니다. 끝으로 이즘 공식 질문입니다. 신윤철이 추천하는 뮤지션과 앨범이 있다면?


예전에 듣지 않았던 음악을 주로 다시 찾아서 듣는 편이에요. 1967년대까지의 음악은 특히 새로운 게 많이 나오고, 히피 무브먼트가 변화하던 시대라 아무거나 다 사도 좋아요. 몇몇을 꼽자면……. 헤비메탈의 원형이라고 하는 블루 치어(Blue Cheers), 스테판 모건 피셔(Stephan Morgan Fisher)가 중심이 된 모건(Morgan). 3~40년이나 지나서 알려진 밴드라 사람들이 잘 몰라요. 더 유나이티드 스테이츠 오브 아메리카(The United States Of America)라는 밴드도 추천합니다. 아, 킹 크림슨이나 크림은 두말할 필요도 없죠. 특히 킹 크림슨의< Black Bible >,< Red >, < USA >는 강력히 추천합니다.

 

서울전자음악단이라는 이름에 비춰보면 이번 앨범은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갔습니다. 앞으로의 계획과도 연결되어있나요?


전작은 전작 나름의 배경이 있었어요. 그때 당시 좋아하던 음악들이 비틀스 등 영국 밴드들이었고, 우리만이 할 수 있는 어떤 것들을 해보자는 주의였죠. 지금은 좋아하는 음악도 많이 달라졌고, 여러 다른 생각들도 많이 생겨났죠. 음악은 하는 사람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저는 노래를 만들고 발표하는 과정이 오래 걸려요. 사실 이번 앨범도 몇 년 전에 만들어놓은 노래들이 꽤 많았죠. 앨범 제작하며 항상 다음 앨범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번 경우는 그 과정이 오래 걸렸을 뿐이에요.

 

곧 새 앨범을 만날 수 있는 건가요.


잘은 모르겠지만, 최대한 이른 시일 내일 겁니다.

 

 

 

 

인터뷰 : 신현태, 김도헌, 서건호
정리 : 김도헌
사진 : 이한수
2015/02 김도헌(zener1218@gmail.com)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힘든 워킹맘에게 전하는 육아 비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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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경단녀’는 결혼과 출산, 육아 등의 이유로 사회 경력이 단절된 ‘경력단절여성’을 뜻한다. 청운의 꿈을 안고 사회생활을 시작한 여성들은 머지않아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가정이냐 회사냐. 그것이 문제다. 화제의 드라마 ‘미생’에서 많은 워킹맘들이 선차장의 어려움에 깊이 공감한 이유기도 하다. 쏟아져 나오는 각종 육아지침서들은 아이의 성장과 정서적 안정감을 위해 반드시 엄마가 곁에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후에 겪는 여러 어려움이 엄마의 부재 때문이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그러니 워킹맘들은 갈등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의 꿈을 위해 아이를 망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죄책감에 늘 시달린다.

 

반드시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까?『난 육아를 회사에서 배웠다』의두 저자 김연정과 정인아는 ‘아니다’라고 말한다.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는 말인지 의아했다. 회사에서 육아를 배운다는 얘기도 설득력 있게 들리지 않았다.

 

주목할 것은 이들의 실험이다. 저자들은 초등학생인 자녀들에게 실제로 회사에서 배운 방법론을 적용한다. 아이들이 잘 따라올지 걱정이었지만, 했다. 결과는? 효과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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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아(좌) 김연정(우) 


한 마리 토끼를 잡았는데 두 개가 해결되더라

 

직장생활을 하시면서 이런 책을 내야겠다고 생각하신 건 언제부터인가요? 책을 구상하게 된 동기가 궁금합니다.

 

김연정(이하 ‘김’): 육아에 관한 책을 써야겠다는 생각은 재작년부터 하게 됐어요.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면서 너무 힘들어지더라고요. 이전과는 다른 느낌으로요. ‘도대체 이게 뭐지?’할 정도로 완전히 다른 세상이더라고요. 그때 결심을 하게 됐죠. 그간 회사에서 사용한 툴을 아이에게 적용해보니 참 좋더라고요. 책이 같은 고민을 하는 부모에게 나눌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저희는 오랜 친구이자 선후배이자 동료예요. 차를 마시다 우연히 책을 쓰자는 얘기를 하다 제가 이 제목을 툭 던졌는데 마음이 맞아 같이 하기로 한 거죠. 그동안 굉장히 많이 만났어요. 이메일도 많이 주고받았고요. 엄청나게 토론을 많이 했어요. 저희가 오랫동안 광고, 마케팅 업계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성격이 강해요. 아시잖아요.(웃음) 서로 부딪칠 일이 많을 줄 알았는데 토론이 되더라고요. 참 행복한 과정이었어요.

 

정인아(이하 ‘정’):저는 동화를 쓰고 있었어요. 책을 내겠다는 생각은 늘 있었죠. 그 와중에 얘기를 하게 된 거예요. 살면서 육아 고민은 항상 하잖아요. 아이를 어떻게 잘 키울 수 있을까에 대해서 말이에요. 그런데 제목을 듣는 순간, 이런 책이 있었다면 좀 더 현명한 육아를 할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딱 들었어요. 목차를 함께 이야기하고 글을 쓰면서 그런 생각이 더욱 견고해진 거죠. 늘 생각하던 것들이 함께 쌓이니까 딱 시너지가 나더라고요. 물론 의견이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죠. 그런데 그건 싸움이 아니라 토론이었어요. 토론이 되면서 궁극적으로 합이 이루어지는 거예요. 참 놀랐어요. 힘들지만 정말 좋은 과정이었어요.

 

두 분의 관계, 라이벌이면서 함께 책을 쓴 관계가 독특합니다.

 

김: 2008년에 제가 아디다스코리아에 들어갔고요, 언니가 2007년에 나이키에 먼저 들어갔어요. 시간차가 있긴 하지만 3년 정도 경쟁 관계에 있었죠. 포지션도 같은 일을 하는 거였어요. 당시 제가 언니에게 전화를 하면 ‘얼른 끊어’(웃음) 그랬어요. 업계가 좁아서 저희 관계를 서로의 회사에서도 알았어요. 행여 전략이나 이런 부분을 알게 될 수 있으니까 회사도 경계를 했고요. 조심해야했죠. 그래도 연락은 계속 했죠. 아이 연령도 비슷하고요. 함께 아이 키우는 얘기를 늘 했어요. 관계라는 게 끊어질 수가 없더라고요. 업계에서 프로패셔널하게 만났다가, 엄마로서 만났다가, 잠시 경쟁자로 지냈다가, 다시 도우미 구하는 문제로 만나고요.

 

정: 회사에서도 저희가 친한 것을 알았고 혹시 이야기 도중에 회사에 관한 얘기가 나올 수도 있으니까 경계를 하더라고요. 그때 좀 소홀할 수밖에 없었죠.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고요. 저는 제일기획에 다니다가 나이키코리아로, 처음 외국계로 옮긴 거였는데 외국계 회사는 그런 부분이 훨씬 철저하더라고요. 좀 놀랐었죠. 항상 인생을 같이 산 것 같아요. 남의 문제에 대해서는 객관적일 수 있고 아무래도 상담하기도 쉽잖아요. 서로 문제가 생기면 서로에게 상담하고요. 고민과 충고의 반복이었어요. 그러면서 책까지 쓰게 됐어요.


다른 육아서와 다른 점이 있을까요?

 

김:일하는 엄마들은 불안하잖아요. 그래서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육아서를 엄청 읽었거든요. 그런데 그런 책들이 너무 부담을 주는 부분이 있어요. 하면 좋지만 할 수 없는 것들이었어요. 남들은 다 하고 있는데 나만 못하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잖아요. 책을 쓸 때 원칙을 하나 정하자고 했던 것이 부담스러운 제안은 하지 말자는 것이었어요. 부담스러운 제안이 들어갔을 때는 과감하게 빼고요. 썼다가 뺀 부분도 굉장히 많아요. ‘회사 그만두고 이렇게 해야 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다 무너지는 거니까요. 저희는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다는 자부심,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하고 싶었어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게 아니라 하나를 잡았는데 두 개가 해결될 수 있다는 걸 느낄 수 있게 하고 싶었어요.

 

엄마들, 이미 잘하고 있어요

 

‘워킹맘의 육아는 완벽하지 않다’고 하신 맥락이네요. 그런 의미에서 많은 엄마들에게 응원이 될 것 같습니다. 

 

김: 그렇죠. 그걸 인정해야 돼요. 자기가 완전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면 다른 사람에게 도와달라고 하게 돼요. 그 부분이 포인트지만 엄마들이 놓치는 거죠. 다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래야 능력 있고 인정받는다고 생각해요. 그건 능력 있는 게 아니라 자신을 갉아먹는 거예요. 저는 상담까지 받았어요. 그때 상담사 분이 해준 말에 정말 힘을 얻었어요. 이미 잘하고 있다는 말을 독자들에게도 전하고 싶어요.

 

정:노력하다 안 되면 자괴감에 빠지고요. 자기 자신을 계속 볶는 거죠. 워킹맘의 육아에는 남편의 도움도 많이 필요한데 많이 안 도와주는 게 현실인 것 같아요. 그런 개념이 바뀌어야 해요. 책에서도 얘기했지만 조금이라도 행동의 변화가 있다면 정말 기쁘겠죠.

 

양육과정에 부부의 갈등이 역시 큰 어려움인 것 같습니다. 

 

김:2부에 있는 내용은 엄마뿐 아니라 부모가 같이 해야 하는 내용이에요. 엄마들만 하게 되면 또 다른 부담이 되니까요. 사실 아빠들이 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이 있어요. 아이와 대화를 하다보면 어른도 깜짝 놀랄 얘기들을 하거든요. 거기에 대해서 그냥 짧게 대답하고 끝내지 말고 대화를 구성하는 거예요. 그걸 일기로 쓰고요. 대화를 잘 하면 내용이 기억에 잘 남고 글감도 생기고 글의 질도 완전히 달라져요.

 

책 끝날 때쯤 남편들에게 피드백을 받았더니 남편들이 감동받았다고 하더라고요. 반성하고, 공감하게 됐다고요. 회사에서 만나는 여자 동료를 자신의 아내가 겪는 어려움이 있는 사람으로 보게 됐다는 거였어요. 왜 야근도 하지 않고, 회식에도 빠지는지 백안시했던 것들이 달리 보인다고 하더라고요. 남편 부분이 사실 짧게 나오는데 그것만으로도 공감이 됐다는 것을 보면서 이 책이 워킹맘뿐 아니라 워킹대디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전업맘들에게도 마찬가지고요.

 

정: 맞아요. 이 책이 워킹맘들이 활용할 수 있는 책이지만 전업맘들에게도 가능한 내용이에요. 전업맘들의 피드백도 받아봤거든요. 2부에서 제시한 활용사례를 실제로 적용해보기도 하더라고요. 쉽게 할 수 있으니까요. 그것이 바로 저희가 원했던 거예요. 아시겠지만 책을 읽고 행동으로 옮기기가 굉장히 어렵잖아요. 쉬워야 할 수 있어요. 또 연습해야 하고요. 행동을 일으킨다는 면에서 책의 장점이 있는 것 같아요. 

 

구체적인 사례들이 함께 있으니 보다 유용한 것 같습니다. 쪽지 대화 아이디어도 무척 참신하게 느껴지고요. 이런 아이디어는 어디서 얻었나요?

 

김:대부분 우연히 하게 된 거예요. 숙제하는 시간을 그냥 보내고 싶지는 않고, 아이가 예쁘니까 동영상을 찍었는데 그게 발표 연습이 되더라, 이런 거예요. 쪽지 대화도 사실 우연히 했어요. 목이 너무 아파서 이야기를 나누기 힘드니까 종이를 펼쳐서 대화하자고 했죠. 그랬더니 아이가 정말 좋아하는 거예요. 아이가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를 털어놓게 되는 거예요.


늘 아이와 같이 있는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을 했어요. 항상 같이 있지 못하니까요. 어찌 보면 워킹맘들이 그런 고민을 더 많이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시간이 별로 없잖아요. 짧은 시간이라도 두 가지를 한꺼번에 획득하면 좋겠기에 읽기 숙제도 엄마와의 소통 도구로 쓰는 거예요. 그렇게 일상의 발견들을 한 거죠.

 

정:쪽지 대화 아이디어를 듣고 해봤죠. 저희는 남동생이 아기라 매일 울었거든요. 큰딸은 얌전한 편인데도 동생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더라고요. 쪽지 대화를 시도해보니까 대화를 할수록 좋았어요. 대화가 끝날 때쯤에는 알아서 기분을 풀더라고요. 그때도 역시 남동생은 울고 있었는데도 말이에요. 효과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이 방법을 신봉하게 됐죠. 지금도 하고 있어요.

 

저는 아이들의 학교 숙제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에요. 읽기 숙제도 그 순간 아이들에게 프리젠테이션 연습을 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잖아요. 그런데 대부분 엄마들이 놓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기본에 충실한 게 가장 좋은 것 같아요. 동영상을 찍어주면서 아이와 함께 숙제를 하는 것처럼 조금 귀찮더라도 아이를 위해서 좀 더 노력하면 될 것 같아요. 아이의 실력이 느는 걸 눈으로 볼 수 있어요. 

 

수업시간에 몰래 쪽지를 주고받으면서 굉장히 친해지잖아요. 그런 효과가 있었네요?

 

김: 쪽지가 아이들에게 굉장히 중요해요. 대화라는 게 말도 있지만 글도 있죠. 회사에서도 소통을 강조하잖아요. 그걸 집으로 들여온 거죠. 아이와의 소통이 잘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학원을 보낸다손 치더라도 잘 성장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인성을 많이 얘기하지만 그래서 어떻게, 어떤 식으로 할지 물어보면 잘 모르잖아요. 이렇게 대화하는 방법, 글 쓰는 방법을 사용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인성이 꽃피는 거예요. 저희는 회사에서 배운 방법으로 소통의 중요성을 잘 알고, 말과 글 같은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는 거죠.

 

정: 목적이 있을 때도 좋은 것 같아요. 엄마와의 관계에도 좋지만 아이에게 풀리지 않는 것이 있을 때 ‘어제 어떻게 된 거야?’라고 글로 쓰면 말과 다르게 얘기를 하더라고요. 재미있었던 게, ‘리더엄마, 보스엄마’(33쪽) 나오잖아요. 아이들에게 설명을 잠깐 해주고 그림으로 그려보라고 했는데요. 아이들이 이해를 하고 그리더라고요. 신기했어요. 이 내용을 주변 엄마들에게 보여주니 다들 ‘나는 보스엄마야.’라고 하더라고요.(웃음) 그러면서 반성을 하고요. 엄마들이 아이들에게 이렇게 해야겠구나, 생각할 수 있도록 터칭을 해주었다는 것이 뿌듯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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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이해하고 변화해요

 

“당신도 회사에서 보스보다는 리더를 원하고 있지 않은가. 같은 원리다. 가정에서도 당신의 아이는 당신이 보스가 아닌 리더이기를 바랄 것이다.”(35쪽)라고 하셨죠. 직장에서 배운 리더십을 엄마의 역할에 적용하셨어요.

 

김: 사실 제일 애착 가는 콘텐츠가 ‘보스엄마, 리더엄마’예요. 엄마들의 태도를 바꾸게 하는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거든요. 엄마들이 착각하는 게, 자기가 다 옳다고 생각하는 경우예요. 내 아이를 잘 안다고 생각하는 거죠. 회사에서도 팀장과 팀원의 관계에서 팀장은 팀원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하잖아요. 직원들에 대해 잘 알고 있고, 잘 가르쳐 주고 있는데 직원들이 못하는 거야, 이렇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어요. 집에서도 마차가지죠. 엄마는 너무 아이를 잘 알고 있고, 아이에게 방향 제시를 다 하는데 아이가 안 따라오는 거야, 아이가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 하는데요. 그게 아니라는 거죠. 사실은 저희도 똑같았어요. 저도 보스엄마였죠.

 

정: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있어요. 엄마들은 내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잖아요. 그렇게 생각할 수 있죠. 하지만 다시 한 번 돌이켜 생각해 보자는 거죠. 너무 아이를 끌려고 하지 않고 대화를 통해서 아이와 함께 하면 장기적으로 시너지가 나거든요. 요즘 저희 딸이 그래요. 제가 조금만 화내면 “엄마는 보스엄마야!”라고 해요. 책을 봤다고 이 단어를 사용하더라고요. 개념이 생긴 거예요. 아이들이 이해한 거죠. 재미있더라고요.

 

회사에서 사용하는 개념을 아이에게 적용하기 쉽지 않을 것 같았는데요.

 

김: 저희는 실험을 한 거였어요. 처음엔 아이들의 그림이 없었어요. 그렇다고 일러스트를 그리게 하자니 너무 딱딱하고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하나씩 그리게 하자고 생각했어요. 그림이 나왔는데 ‘이거 너무 재밌다’했어요. 아이들이 이해를 하더라고요.

 

목표설정이나 새해 다짐 같은 경우는 회사의 원리에서 왔어요. 연말이면 다음 해에 뭐할까, 항상 숫자 가득한 목표 설정을 하잖아요? 어려운 것들은 빼고 아이들에게 목표를 설정하는 원리를 가져와서 적용한 거죠. 자칫 오해하실 수 있어요. 집은 회사와 다르다고 하실 수 있고요. 그렇지만 저희가 쓴 사례들을 보면 이해하실 거예요. 힘들 것 같지만 아이들에게 적용해보면 의외로 쉽게 받아들여요. 또 그것에 대해 즐거워하고, 달성한 것을 칭찬해주면 좋아하고요. 무겁지 않게 아이에게 적용하는 거예요. 

 

정:아이들이 이해를 하고 변화하는 거예요. 개념의 정의를 알고 있더라고요. 그에 따라 행동을 하고요. 아이 스스로도 리더가 좋다는 것을 알고 대화하려고 더 노력해요.

 

회사에서 사용하는 툴이 쓸데없는 게 아니잖아요? 진짜 필요한 것이고 매일 확인하잖아요. 중요한 것들을 설명하고 가르쳐주는 거죠. 숫자나 그래프를 사용하는 게 아니라 개념을 가르쳐주고 아이들이 생각할 수 있도록 하는 거예요. 아이의 수준에 맞게 하고 싶은 것을 쓰고, 실천사항도 자기 스스로 쓰게끔 했어요. 그랬더니 정말 지키려고 노력하더라고요. 목표 설정을 아이와 엄마가 함께 했어요. 피드백도 서로 하고요. 해보니까 저 역시 다짐을 새로 하게 되고 아이 역시 엄마와 자신의 목표를 보며 새롭게 다짐할 수 있어서 좋더라고요.


프리젠테이션도 마찬가지죠. 발표 잘하는 학원도 보내고 그러잖아요. 이런 것도 쉬운 방법을 사용하면 돼요. 아이가 그린 그림에 대해 설명할 때 휴대전화로 동영상을 찍으면 아이도 좋아해요. 따로 시간 투자할 필요 없이 순간순간 놀다가 이야기할 수도 있는 거고요.

 

흥미로운 점은 아이를 고객, 조직원으로 바라보는 시선이었어요. 아이를 소유물이 아닌 부모와 동등한 인격체로 보라는 의미였는데요, 이러한 수평적인 관계 설정이 중요한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김: 저는 아이가 친구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은 그러면 엄마의 권위가 없어서 아이가 따르지 않지 않느냐고 하는데요. 그런 생각 자체가 잘못된 거예요. 아이를 그 자체로 인정해주면 말을 듣게 돼있는데 엄마가 위에서 지시를 하니까 말을 안 듣죠. 그러니까 모든 프로세스들이 다 동등한 위치에서 하는 거예요. 아이도 엄마에게 피드백을 주고요.

 

정:아직 아이가 어려서 잘 모르지만 주변에서 얘기를 많이 들어요. 아이가 크면 엄마나 아빠 중에 아이와 잘 통하고 아이를 위해주는 존재가 꼭 있어야 한다고요. 그러면 평생 정서가 안정되고 가족과 끈끈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거죠. 그런데 대화가 안 되고 공부만 시키고 그러면 사춘기가 무척 힘들대요. 엄마의 노력이 많이 필요한 것 같아요. 지금부터 아이와 신뢰를 쌓는 거예요. 난 널 이해해, 너와 친구야, 하는 마음을 지금부터 쌓아야 할 것 같아요. 그러면 사춘기를 쉽게 넘길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실 저도 잘 안 돼요. 바쁜데 말시키면 조용히 해, 라고 할 때도 있고요. 책을 쓰면서 스스로도 많이 정화를 했어요. 아이 말을 들어주려고 한 번 더 다짐을 해요.

 

부모와 자녀의 관계가 본격적으로 흔들리는 시기가 또한 사춘기잖아요.

 

김: 이 책이 초등학생 자녀에게만 적용하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에요. 사춘기 얘기를 하셨는데 중학생이 되면 위기가 오잖아요. 그걸 지금 다져놓지 않으면 안 돼요. 학습도 좋지만 이렇게 대화할 수 있고 소통하는 관계가 되어 있으면 중학교 때 힘을 안 빼도 되는 거잖아요. 나중에 덜 힘쓰려면 지금 힘을 써야 해요. 그런 사실을 깨달으니까 초등학교 1, 2학년을 절대 놓칠 순 없더라고요. 그렇지만 워킹맘들은 그때가 가장 중요한 시기잖아요. 팀장이나 간부급으로 가는 기로예요. 그때가 아이에게도 중요한 시기니까 사이에서 너무 갈등하게 되는데요. 그러지 말고 회사에서 하는 노력을 그대로 집으로 가져오면 된다는 거예요. 우리가 상사나 부하 직원에게 함부로 하지 않잖아요. 집에서는 아이에게 이것저것 시키고, 강요하고 그래요. 책도 안 읽으면서 책 읽으라고 하고요. 그러지 말고 하고 있는 것을 그대로 아이에게 하도록 하고, 아이가 동료이자 친구의 수평적인 관계로 대하면 결국 좋은 결과로 이어진다는 거죠.

 

정: 사람들이 흔하게 그런 말을 해요. 아이 키우느라 곧 회사 관두게 생겼다, 숙제 안 하고 선생님에게 면담 요청 오고 힘들다고요. 저는 제일 좋아하는 말이 사람은 경험한 만큼 안다는 말이요. 경험은 어디 버려지는 게 아니더라고요. 회사에서 배운 것도 충분히 육아에 적용할 수 있어요. 내가 꼭 안 해도 돼요. 물론 나의 태도와 관점은 무조건 바뀌어야 하지만 실천하는 건 아빠, 보육자, 할머니 등 누구나 할 수 있어요. 책을 남편과 같이 읽었으면 좋겠어요.

 

책에서 제시한 방법들을 실제로 하시면서 아이의 변화가 많이 있었나요?

 

정: 시간 계획을 짤 때 놀랐어요. 예전에는 시간 순으로 짜다가 김연정 이사의 아이디어로 달리 해봤어요. 아이 스스로 중요한 목록을 쓰고, 순서를 매기게 하라는 내용을 실험한 거죠. 아이가 싫어할 줄 알았는데 재미있게 하더라고요. 하고 나서 스스로 실천을 하고요. ‘받아쓰기 두 번 했으니까 일기 쓸까?’하는 식으로요. 완벽하게 일정을 통제하는 건 아니지만 예전처럼 뭐할지 계속 물어보지 않았어요. 한 번만 해도 자기 주도로 하더라고요. 몇 번 할수록 더 익숙해지고 속도도 늘어요. 또 아이들이 시간에 대해 알까 싶으면서도 한 번 적어보라고 했는데 아이가 정말 재미있게 질문도 쓰고, 시간에 대해 고민을 하고, 그림도 그려보면서 서서히 시간 개념을 가지더라고요. 제 아이에게 직접 경험해보고 효과가 있다는 것을 보니까 다른 엄마들도 이렇게 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김:부끄러운 고백인데 저희 아이가 시간을 잘 안 지켰어요. 이대로는 안 되겠어서 어느 날 아이에게 시간에 대해서 생각해보자고 했어요. 책에 나온 것처럼 아이가 시간에 대한 질문을 쭉 쓰고요. 아이가 아침에 매일 지각을 하니까 지각 했을 때 좋은 점과 하지 않았을 때 좋은 점에 대해 대화를 나눴죠. 그런 얘기를 하고 "그걸 일기로 쓸래?" 해서 일기를 쓴 거예요. 그랬는데도 시간이 흐르니까 다시 제자리였어요. 그래서 언니와 토론을 했어요. 회사에서 쓰는 것처럼 우선순위 쓰는 것을 해본 거죠. 계속 하니까 되더라고요.

 

방법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고요, 너무 힘드니까 고민을 많이 하다가 시도해본 거였어요. 여러 아이들에게 적용해보면서 가능하다는 걸 알게 됐고요. 그런 식의 발견들을 의미 있게 했어요. 문제는 엄마들이 아이들이 못할 거라고 생각한다는 거예요. 아이들은 다 할 수 있어요. 원래 창의적이고요. 그런데 창의력을 키운다고 이것저것 하다가 창의력이 없어지는 경우가 더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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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력의 세 가지 요소

 

창의력을 위해 백지가 필요하다는 말에 대해 조금 더 설명해주세요.

 

김: 저희가 제시하는 창의력의 세 가지 요소가 물리적 백지 시간적 백지, 관념적 백지예요. 우선 그냥 빈 종이를 아이에게 줘요. 아이들은 심심하기 때문에 종이와 연필을 주면 그림을 그리게 돼 있어요. 또한 아이들에게 시간이 있어야 하는데 엄마들은 시간을 잘 안 주잖아요. 멍 때리기 대회도 화제였는데요. 그게 시간적 백지예요. 아이들에게 잉여 시간이 있을 때 백지를 주면 머리에서 난리가 나요. 친구도 그리고 엄마한테 편지도 쓰고요. 세 번째는 아이가 아니라 엄마의 문젠데요. 엄마들이 고정관념을 갖고 있어요. 아이가 질문을 하면 확 열어줘야 하는데 답을 딱 줘버려요.(웃음) 답이 없는 상태에서 계속 얘기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해요. 사실 엄마들이 얼마나 동의할지 잘 모르겠어요. 아이들이 해야 할 것이 많고 심지어 시간이 없어서 못한다고 하니까요. 엄마들은 백지가 생기면 아이가 뒤쳐진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아이들이 생각할 시간을 다 빼앗는 거예요.

 

정: 무엇을 더 해줄까를 생각하지 말고 무엇을 덜 해줄까를 생각하자는 얘기예요. 잉여 시간을 주고, 생각할 여유를 주자는 거죠. 약간의 결핍도 필요하고요. 결핍이 나쁜 것도 아닌 것 같아요. 그 시간에 뭔가 생산할 수 있게 잉여 시간을 준다면 결핍이 또 새로운 에너지가 될 수 있는 거죠. 계속 백지 상태를 주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 최소한 7, 8세라도 이렇게 둬야 창의력이 생길 것 같아요. 그러면 나중에 바빠지더라도 스스로 자기 시간을 만들게 되는 거죠.

초등학생과 이야기 나누어볼 만한 철학동화(261쪽) 목록이 실려 있어요. 독서 교육 이야기는 많은 부모들의 고민이에요.  

 

김: 사실『질문의 공부법, 하브루타』에서 시작이 됐어요. 이건 원래 탈무드로 하는 거예요. 근데 탈무드로만 하부르타를 하는 게 아니라 모든 책으로 할 수 있어요. 책에도 예시로 나왔지만, 우리가 어떤 커피숍에 가서 ‘왜 이 커피숍에 왔지?’ 질문하는 거죠. 다른 커피숍을 가지 않고 왜 이곳에 왔는지 질문을 쓰고 답을 써 봐요. 조용해서, 넓어서, 책상이 커서 등등. 쓰다가 또 질문이 나올 수 있는 거고 확장할 수도 있는 거예요.

 

이 실험을 남자 아이 둘, 여자 아이 둘 섞어서 해봤어요. 먼저 읽기 연습을 시켰고요. 그 후에 질문을 하라고 했더니 예상 외로 질문을 잘해요. 학년, 나이 상관없이요. 그리고 질문에 대해 스스로 해결하도록 했어요. 책과 아이패드를 주면서 찾아보라고 했죠. 그것을 발표하고 토론하는 다섯 가지 단계였어요. 실험 끝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아이가 도우미 이모에게 골품제도가 뭔지 아느냐고 질문을 하더라고요.(웃음) 자기가 이제 안다는 거죠. 

 

정: 아이들과 하부르타를 실험하면서 저도 역사에 대한 어려운 얘기들이 정말 기억이 잘 되는 거예요. 황룡사 구층 석탑, 김춘추 같은 이야기들에 대해서요. 아이들에게 골품제도 얼마나 어려워요. 옷 색깔이 다르고, 뭐가 다르고 하는 것들이요. 그것에 대해 질문하고 인터넷으로 찾아보고 하는 과정을 통해서 질문의 힘을 느꼈어요. 생각하면서 기억하게 돼요. 실험 끝에는 생각나는 것을 다 적으라고 해서 빙고 게임을 시켰어요. 재미있으니까 아이들이 더욱 기억을 잘하더라고요. 그중에서도 자기가 배운 것보다 가르친 게 더 기억에 남는 것 같더라고요. 김연정 이사 아이는 골품제도를 물었다는데 저희 아이는 황룡사 9층 석탑에 대해 정말 잘 알게 됐어요. 자기가 고민하고 질문했던 것들이 더 생각이 잘 나는 거죠.

 

연습을 해야 돼요. 저희 아이는 질문 노트 쓰는 게 처음에 안 되더라고요. 독서록은 쓰는데 질문을 던지는 건 어려워했어요. 질문을 한다는 건 생각을 열 배는 더 해야 하는 거더라고요. 힘드니까 하다가 안 되면 포기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렇지만 이것도 연습을 해야 해요. 자꾸 해보고, 한 줄 써보고, 차근차근 하다보면 생각이 늘고 확장되는 경험을 하게 되는 거죠. 처음에 해보고 안 된다고 포기하면 안 될 것 같아요.

 

자율성과 창의성을 주로 이야기 합니다. 사실 이것들은 기다림과 인내심이 수반되어야 하는 것들인데요. 워킹맘으로 살면서 이런 여유와 인내를 갖기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정: 해보지 않으면 그럴 것 같아요. 그런데 발표도 일단 엘리베이터에서 인사하는 것부터 해보면 돼요. 인사 잘하는 것 하나면 인생이 바뀐다고 생각하는데요. 인사를 잘하면 칭찬을 받아요. 자기도 모르게 상대방을 공경하는 마음도 생기고요. 그렇게 한 발짝 나가면 다른 것도 할 수 있는 거죠. 식당에서 주문할 때 부모가 하지 않고 아이에게 시키고요. 몰라서 그렇지 해보면 결코 어렵지 않은, 쉬운 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되실 거예요. 시간을 따로 투자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요. 처음에 자리에 앉는 건 힘들 수 있겠죠. 시간도 없고요. 하지만 그 정도 노력은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워킹맘들은 계속 같이 할 수 없으니 보육자에게 알려주어도 충분히 할 수 있는 방법들이에요.

 

김: 초등학교 1학년 때는 못하는 게 없어요. 불가능한 게 없고 제한이 없어요. 언제까지 엄마들이 아이의 모든 것을 해줄 수 없잖아요. 아이를 빨리 독립시키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고요. 지금 들이는 인풋이 나중에 큰 효과가 나는데, 그것이 곧바로 좋아진다기 보다 어느 순간 눈에 띠게 좋아지는 식이에요. 아이들에게 한 번 습관이 들면 말이죠. 아이들은 자기 시간 소중한 것도 알아요. 습관이 들기 전에 방법을 몰라서 못하는 거죠. 이때 아이에게 시킨다고 하지 말고 같이 한다는 말을 꼭 해야 해요. 엄마가 목표 설정할 때 아이가 같이 만들면 돼요. 인사할 때 같이 하면 되고요. 책 읽을 때도 같이 읽어요. 아이에게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하지 말고 함께 하자고 하는 거죠.


한 번에 되지는 않겠죠. 쉽게 된다면 모두가 습관의 왕이겠죠. 꾸준히 습관들이는 계기를 초등학교 1학년 때 만들어 주라는 거죠. 생각을 스스로 할 수 있는 나이가 1학년인 것 같아요. 처음 사회생활을 하는 나이고요. 그 속에서 아이에게 자율성을 주면 스스로 방법을 찾게 돼요. 엄마가 방법을 다 갖추고 시키면 그것밖에 못하는 거죠.

 

가족회의(62쪽)를 하자고 하셨는데요, 이런 소통의 시간이 처음에 잘 구축이 되면 가족의 습관이 될 것 같아요. 

 

정: 가족회의도 사실 아이들이 처음에는 말을 안 할 것 같았어요. 그런데 관심 있는 주제로 대화를 하니까 하더라고요. 처음에 했던 건 이거였어요. 감기로 며칠 아팠다가 나아서 오랜만에 외식을 하려는데 뭐가 먹고 싶은지 발표를 해보라고 했어요. 관심 있는 주제니까 얘기를 잘 하더라고요.

 

김: 저희는 칭찬이 습관 돼서 하루만 안 해도 왜 안 하냐고 해요. 칭찬 릴레이가 정말 좋은 게, 형식이 생기니까 뭐라도 칭찬거리가 돼요. 아이들은 오히려 감사를 잘 하고요, 어른들이 어려워요.(웃음) 요즘 감기가 유행인데 감기 안 걸려서 감사하다는 말도 해요. 단순한 거에서 찾는 거예요.

 

페이스북코리아 주간 보고에는 감사리스트가 있다(56쪽)던데 칭찬릴레이 역시 회사에서 가져온 방법이잖아요?

 

김:페이스북도 그렇고 외국계 회사 근무 경험을 돌이켜보면 어떤 일을 하고 나면 꼭 감사를 하는 문화가 있어요. 예를 들어 어떤 프로젝트가 잘 됐다고 하면 그와 관련된 이름을 다 넣어서 땡큐 메일을 보내요. 누구는 뭐가 감사하고, 누구에게는 뭐가 감사하고 이런 내용을요. 혼자 하는 일이 없잖아요. 전부 협업이니까요. 그런데 아이가 부모에게 감사할 줄 모르면 끝까지 모르게 돼요. 당연한 줄 알고요.

 

정:광고회사의 경우에 항상 촬영이 많고 늦어지기도 하잖아요. 싸우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결과는 항상 ‘고맙습니다’로 끝나요. 아무리 사소한 일이더라도요. 그런 것이 습관이 되는 것 같아요. 그런 식으로 일하면서 많이 배웠죠. 저는 회사 생활하면서 제일 많이 한 얘기가 ‘감사하다’는 말이었어요. 감사하다는 문화가 없는 회사에 다닐 때도 저는 매일 감사하다고 인사를 많이 했어요. 감사하더라고요. 광고회사는 무조건 ‘감사’예요. 우리도 아이에게 건강하게 커주면 감사하잖아요. 아이도 부모에게 감사할 줄 알아야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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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하고 원만한 친구관계가 곧 리더십

 

"상사에게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해 면담을 요청하는 것도 리더십이고, 동료들 사이에서 조화롭게 어울리는 것도 리더십이다"(121쪽)라고 하셨어요.

 

김: 리더십, 도전정신, 창의력 이 세 가지 콘텐츠를 제일 강조하고 싶어요. 엄마들이 많이 간과하는 문제가 친구관계에 관한 문제를 리더십과 연결시키지 못하는 부분인 것 같아요. 친구관계가 잘 되면 리더십이 좋은 거예요. 회사에서 CEO나 팀장급 리더들을 많이 보는데 좋지 않은 리더들의 모습이 많아요. 사실 그런 사람들은 리더라고 부르면 안 되죠. 내가 깃발 꼽고 가면 따라와야 하는 것이 리더십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엄마들 사이에서도 있는 것 같아요. 주장이 뚜렷하고 놀이도 자기가 주도하는 게 리더십이라 생각하고 그런 아이들의 평가를 잘해주는데, 그게 아이들 사이에서 문제를 일으킬 때가 있어요. 그런 아이들이 협업을 잘 안하기도 하거든요. 리더십은 다양한 친구들과 사귀고 자신과 다른 아이들도 친해질 수 있는 능력이거든요. 문제는 우리 엄마들이 단짝 친구만 만들어주고 안심하는 거예요. 그러면 다른 아이들을 알아볼 기회도 없이 끝나요. 이후에는 다른 아이를 사귈 능력이 안 되고요.

 

정:리더십이 좀 어렵게 느껴지는데 그렇지 않아요. 내가 먼저 하겠다고 하는 것, 남의 말 잘 들어주는 것, 이런 거예요. 힘든 일을 먼저 하겠다고 하고요. 회사 생활을 하면서 만난 분이 있는데요. 그분이 남의 말 끊는 걸 본 적이 없어요. 항상 웃고요. 결국 대표가 되셨어요. 그런 리더의 기본자세가 어렸을 때 안 되면 안 되더라고요. 가족 문화인 것 같아요. 엄마가 아이의 말도 듣고 할 얘기도 하면 좋은데 리더야 돼야 한다면서 참지 말고 네 주장을 강하게 해라, 이러면 나중에 그런 사람이 되는 거죠.

 

책을 통해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을까요?

 

김:절대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는 게, 저희가 아이를 잘 키웠다고 사례를 얘기하는 게 아니에요. 정말 고민하다가 힘드니까 하게 됐고, 해보니까 그게 정말 좋고, 이걸 같은 고민을 하는 부모들에게 공유해서 실천했을 때 변화가 있다는 걸 알았으면 한다는 거예요. 우리 아이들 잘 키웠으니까 이대로 해보세요, 그런 건 절대 싫어요. 제가 우연히 발견하게 된 방식들이 다른 아이들에게도 적용이 되는지 많이 해봤어요. 그게 가능하다는 걸 검증하고 쓴 거예요. 우리 아이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우리의 아이디어이긴 하지만 다른 아이들에게도 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었어요. 절대 저희가 아이를 잘 키웠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저희 아이들은 아직 어리고 우리가 계속 노력하려고 책을 쓴 거예요. 우리도 아직 궁금한 게 많고, 아직도 보스엄마 기질이 남아 있기 때문에 스스로 리더엄마가 되기 위해서 계속 노력하고 있어요. 같이 손잡고 가자는 거예요.

 

"엄마 스스로가 꿈꾸지 않는 경우가 많다."(92쪽)고 하셨는데 모든 엄마들에게 중요한 지점인 것 같습니다. 두 분의 꿈, 엄마로서의 꿈이 뭔가요? 

 

정: 아이들을 꿈꾸게 할 수 있는, 꿈을 쓰는 동화 작가가 되고 싶어요. 계속 동화도 쓰고 있었거든요. 이 책이 시발점이 돼서 계속 작가로서의 길을 가고 싶은 바람이 있어요. 세상에 도움을 주는 책을 쓰는 것이 제 단기 목표죠. 궁극적으로는 아이와 친구 같은 엄마, 아이들에게 꿈도 심어주고 행복하게 지내도록 하는 엄마가 되고 싶어요. 저희 딸과 아들이 늘 꿈을 꾸는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키우고 싶은 마음이에요. 제가 꿈꾸는 모습도 보여주고요. 함께 꿈꾸는 거죠.(웃음)

 

살면서 느낀 건데,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꿈꾸는 것만으로도 이루어지는 것 같아요. 포기만 하지 않으면요. 꿈을 갖고 있는 게 중요하고, 될 거라는 희망을 갖고 있는 게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러면 기회가 됐을 때 잡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 제 꿈은 사실 이루어졌어요. 거창한 꿈이 아니라 꿈 목록에 갖고 있던 것들을 지난해에 이뤘고요. 앞으로는 워킹맘으로서 더 성장할 수 있다면 계속 성장하고 싶고요. 글로벌 단위로 더 나가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그 꿈에 물론 아이가 포함되어 있고요. 또 저는 엄마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어요. 기회가 된다면 아이 리더십 센터 같은 부분을 세우고 싶은 생각도 있어요. 엄마와 아이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그런 곳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제 아이디가 ‘더놀자(TheNolja)'예요. 잉여, 백지가 거기에서 온 건데요. 노는 게 생산성으로 이어지는 거고 놀면서 창의력도 생기는 거니까요. 노는 게 부정적인 게 아니라 잘 놀자는 거죠. 사는 것도 노는 거라고 생각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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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육아를 회사에서 배웠다김연정,정인아 공저 | 매일경제신문사
이 책은 워킹맘의 시각으로 쓰였음에도 불구하고, 전업맘들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아이디어와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자녀의 나이대로 볼 때 4~10세 사이의 자녀를 둔 부모라면 누구나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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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미 "함께 사는 삶이 진짜 살아가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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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아빠가 그랬다. 힘이 약한 존재들은 그렇게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거라고. 짝을 찾지 못한 한 살배기 까치들도 가을이 되면 자기들끼리 무리를 지어 매서운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며 겨울을 난다고. 언제나 혼자보다 여럿이 나은 법이라고. 작은아빠는 어디로 가야 할지 길이 안 보일 때,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면 땅과 하늘의 다른 생명들로 눈을 돌린다고 했다. (322쪽)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고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 마르지 아니한다'고 했었나.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데 지금 우리네 삶은 도저히 그런 것 같지 않다. 각자의 삶은 짧게 분절되어 있기만 하다. 내 것, 나의 울타리 안에만 집중하다 보니 주변을 살피지 못한다. 불안하게 휩쓸려 떠다니곤 한다. 숫자로 대변되는 SNS 지인들은 뜬구름처럼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중요한 것을 잃었다. 불필요한 것을 꽉 움켜쥐고 놓지 않느라 진짜 삶을 흘려보내고 있다. 아이들은 병들고 사회는 기괴한 신음을 낸다. 뿌리 약한 나무들은 약한 바람에 이리저리 휘날리고, 조금만 가물어도 샘은 제 바닥을 드러낸다. 경계, 불신, 배타와 고립이 정녕 인간의 삶이 되어버린 걸까.

 

도시의 팍팍함을 떠나 농촌으로 가는 사람들. 그들의 발걸음은 아마 이런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좀 더 인간답게 살고 싶어 농촌행을 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그들이 꿈꾸던 '전원일기'는 곧 치열한 '체험 삶의 현장'으로 바뀌기 일쑤다. 작가 김중미가 '농촌을 아름답게만 그릴 수 없는 현실'에 대해 말하는 이유다. 


작가가 농촌으로 갔다. 어느 덧 농촌 생활 13년이다. 작가는 강화에 정착해 농촌에서의 삶을 몸으로 느꼈다. 훨씬 절실하게 다가오는 공동체의 삶, 그곳에서 '함께' 한다는 것의 진짜 의미를 생각했다. 유정의 작은 엄마가 할아버지에게 배운 그대로였다. "꿍어, 꿍안, 꿍떰" (194쪽)

 

『모두 깜언』에서 '깜언'은 '고맙다'는 의미의 베트남 말이다. 그리고 주인공 유정이가 소설 말미에서 하는 말이다. 유정이가 '모두에게 고맙다'고 한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유정이가 우리에게 던지는 그 인사의 진짜 의미는 무엇일까. 유정이와 할머니, 작은아빠와 친구들, 이들이 뿌리 내린 농촌에서의 삶을 통해 작가는 농촌의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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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농촌은 아름답게만 그릴 수 없어

 

제목이『모두 깜언』입니다. 베트남어로 고맙다는 뜻인데요. 특별히 고마움, 감사를 이야기한 이유가 있으셨던 건가요?

 

거창한 건 아니고요. 유정이가 장애를 갖고 태어나 시골에서 성장하는 과정 자체가 혼자 자란 것이 아니고 자연, 함께 살아가는 이웃들, 가족에게서 영향을 받은 거예요. 처음에는 자존감 같은 것들이 없었지만 주변에서 사랑을 받고, 인정받고, 함께 나누며 살아가면서 스스로 배워가잖아요. 그렇게 성장하는 내용이기 때문에, 함께 살아가는 존재들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하는 것을 말하려고 했어요.

 

“우리 비엣남 사람들 꿍어, 꿍안, 꿍떰 중요해.”(194쪽) 작은 엄마의 할아버지가 늘 가르쳤던 것도 ‘함께 살고, 함께 먹고, 함께 일한다’는 것의 중요함이었습니다. ‘연대’에 대해 말씀하셨어요.

 

아주 단순한 진리이긴 하지만 저는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다는 생각을 해요. 함께 살아가는 삶이 가난하거나 불편해도 그게 진짜 살아가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사람이 살아가는 가장 좋은 길이잖아요. 요즘은 그런 세상이 아닌데요. 저는 공동체로 살고 있고 가난한 삶을 살다가 농촌으로 가서 생활하고 있어요. 관념적으로 알고 있던 농촌 생활의 '함께 하는 삶'이라는 게 그곳에서 살다보니 더 절실하게 다가오는 거죠. 동물, 식물들이 겨울을 나는 방법 같은 것들이 머리로 아는 것과 실제 살면서 경험으로 아는 것과는 좀 다르더라고요. 사람을 키우는 일이나 작물을 키우는 일이나 거의 똑같은 거죠. 애를 태우게 되고, 모든 노력과 마음을 쏟아 부어야 하고요. 사람도 교육을 하거나 자녀를 키우거나 할 때 사실은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잖아요. 농사도 똑같거든요.

 

어르신들이 그런 말씀을 하세요. 농사는 어차피 하늘하고 나눠지는 것이라고요. 이 이야기를 제주 강정에서 들었는데요. 농사를 오랫동안 지어온 사람들은 그런 마음이 있는 거죠. 올해 흉년이고, 내년에 또 흉년이고, 작년에 흉년이었어도 포기할 수 없는 거죠.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아이들을 만나는 것들에 대해서 다시 되돌아보게 됐어요. '사람은 혼자 살면 안 되는구나, 함께해야 하는구나.'라고 생각했어요. 공동체 식구들이 계절별로 와서 울력을 할 때도 굉장히 즐거워요. 공동노동을 통해 관계 역시 더욱 돈독해진다고 할까요? 그런 느낌들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이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소설의 배경되는 덕정산과 진강산 골짜기는 시골의 풍경을 그대로 담고 있으면서도 버스로 신촌도 갈 수 있는 곳입니다. 멀지 않은 곳에 도시와 완전히 다른 삶이 있어요. 농촌이라는 공간에 대해 물리적 거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먼 심리적 거리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지금의 농촌은 아름답게만 그릴 수 없는 현실이에요. 농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은 어떻게 하면 여길 빨리 떠나느냐가 핵심이거든요. 농업 한다는 것 자체를 인생에서 패배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니까요. 논농사를 한다면 이만 평 이상은 지어야 연봉 4~5천 정도가 나와요. 그렇지 않으면 대부분 가족농 형태로 하는데 무척 힘들고요. 국가 정책은 계속해서 자본의 논리에 따라 농업의 몸을 불리고 황금작물을 키워서 돈이 되는 것에만 관심을 가져요. 실제 농촌 생활이나 전통적으로 내려왔던 공동체 삶을 유지하고 친환경적으로 살아가는 것에는 별로 안중에 없고요. 농사로 먹고 살려면 정책이라는 것에 쫓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거든요.

 

농촌을 아름답게 그리고 싶었던 건 아니고요. 도시 사람들과 농촌 사람들의 삶의 거리를 좁혀야겠다거나 하는 의도를 갖고 했던 것도 아니에요. 농촌 역시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한 부분이고 어찌 보면 굉장히 중요한 자리잖아요. 삶의 방법이기도 하고요. 아직까지도 이걸 위태롭게 지켜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정도,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예요.

 

국가의 농업 정책이 이장님 입을 통해 나오고, 패배주의적인 말이 동네 아저씨들에게서 나와요. 농촌의 현실을 자세히 알지 못하는 입장에서는 농촌을 아름답고 전원적으로만 인식하지만 실은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귀농을 했다가 다시 도시로 돌아오는 사람들도 많다고 하고요.

 

시골의 텃세이야기를 하는데요. 텃세라는 게 외부 사람들에 대해 반응을 하는 거잖아요. 도시의 삶은 들고 나는 게 일상이기 때문에 서로에게 관심도 없고 어떻게 살든 상관없지만, 농촌에 계신 대부분의 나이 드신 분들은 삶의 방식이 다르니까요. 저희는 친환경 농사를 하고 싶었지만 농사는 그냥 어른들에게 관행농으로 배우고, 남편이 동네 어르신들 쫓아다니면서 배웠어요. 그게 먼저라고 생각해요. 제가 농촌 생활 13년차인데 저희 동네도 한쪽에는 펜션 단지가 있고, 처음과 너무 많이 달라졌어요. 산언저리는 거의 전원주택이거나 펜션이거든요. 대안학교도 들어오고요. 그런데 주민들과 유리돼서 살아요. 도시에서 온 사람들은 눈이 와도 안 쓸고요. 어른들이 보기에는 못마땅하죠. 마을에서 회의한다고 이장님이 방송을 해도 아무도 안 오고요. 귀촌이라는 말도 요즘 있잖아요. 저희는 귀농을 한 거니까 그런 방식과는 다르죠.

 

마을 어른들 중에 뚝뚝한 사람들은 10년을 인사해도 안 받아주는 분들도 계세요. 그렇지만 그런 분은 어디에나 있죠. 도시 생활이 더 삭막한데 사람들은 농촌은 텃세가 더 심해, 이렇게 말해요. 물론 강화사람들이 대가 세고 그런 건 있죠. 역사적인 측면이 있는 것 같아요. 존댓말과 반말 사이 같은 강화 사투리도 좀 애매하죠.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받아들이고 가야해요. 도시가 아닌 다른 곳에서 하나가 되려면 바뀔 수밖에 없는 거예요.

 

유정이네 마을도 작은 아빠의 막내 유경이가 태어난 게 3년 만의 일이었어요. 선생님 계신 곳도 아이들은 거의 없겠죠?

 

없죠. 아기가 태어나는 일은 거의 없어요. 도시에서 자녀들이 아이를 낳고 맡길 데가 없으니까 할아버지 할머니 계시는 곳에 놓고 나가는 경우는 있죠. 그런 아이들이 유치원에 다니는 거고요. 귀농하는 사람들이 아이를 데리고 귀농하는 경우는 없어요. 저희 동네에 하루 일곱 번 버스가 들어오는데요, 아침 7시에 타고 나가요. 저희 딸이 마지막이었던 거예요. 농어촌 기숙학교라고 해서 기숙학교에 들어가 있는 친구들도 있고 그러니까요. 살다보니 버스 운영도 걱정이 돼요. 딸이 졸업하면 여기는 버스가 장날만 설 텐데 '제 시간에 들어올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들고요.

 

"소쩍새 울면 참깨 심고, 꾀꼬리 울면 고추 모 심고, 뻐꾸기 울면 콩 심고, 보리 베고, 모 심고, 피 뽑고 그러다 보만 여름 가고, 가을 오고, 겨울 오고." (33쪽)

 

할머니의 농사에 대한 몸의 감각, 양봉채집가들의 삶, 베트남 식재료 반찬트럭 등 잘 몰랐던 사실이 많이 있었어요.

 

검정콩을 심어보고 싶었어요. 남편이 어느 날 '콩 심을 때가 언제지?' 이러는데 남편 선생님 중에 민재 할아버지라고 계시거든요. 할아버지에게 물어봐야겠다고 하고 남편이 물어본 거예요. '콩은 언제 심어요? 할아버지?' 그랬더니, '꾀꼬리 울 때 심지'(웃음)하셔요. 우리는 꾀꼬리가 대체 언제 우는지도 몰랐던 거죠. 또 남편이 처음 논을 빌려서 부지런히 다니니까 어르신들이 지금 잘하고 있다고, '작물들은 주인 발소리 듣고 큰다.' 이런 얘기를 해주시는 거죠. 그렇게 배우는 게 정말 다른 거죠. 아마 책에서 우리도 봤을 거예요. 삶으로 다가오지 않았던 거죠. 어르신들은 계절 보는 것도 달라요. 정말 놀라운 게 어촌에 가면 바람 맞는 걸로 심지어 아이들까지도 '오늘 바람은 북서쪽에서 불어오는 거야.'하는 걸 알거든요. 하늬바람이니, 이 바람이 불 때는 뭐가 나니, 하는 것들을 다 알아요.

 

그러고 보면 도시의 삶이 자연과 거의 유리된 삶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무감각해요. 내가 누구랑 같이 사는지를 자각하지 못하는 거죠.

 

책에 담긴 이야기들이 직접 동네 어르신들에게서 듣고 경험하신 거였군요?

 

네. 그런 이야기들은 콱 박히니까요. 도토리들이 나는데 할머니들이 유난히 많이 다니시는 해가 있어요. 그러면 그 얘기를 하시는 거죠. 들이 흉년이면 도토리가 풍년이라고요. 그렇게 배운 거죠.

 

그런 어르신들을 만나지 못하는 세대들은 이런 이야기를 몰라요. 거의 잃어버릴 위기인데요. 이 책을 통해 이와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는 사실이 소중하게 느껴져요.

 

저희도 안타깝죠. 일제 강점기를 거쳐, 한국 전쟁 때 피난오고 이런 1세대 분들이 돌아가실 때마다 굉장히 안타까웠어요. 어쩌면 이분들이 돌아가시면서 역사도 사라지는 거고요. 자녀들은 다 외부에 있고 말이에요. 정말 오랫동안 여기서 태어나고, 자라고, 마을을 정말 잘 알고, 농사짓는 분들은 이미 7, 80대거든요. 그분들이 돌아가시면 너무 안타깝죠. 단절인 거예요. 정말 그분들을 따라갈 수가 없거든요. 여름에 보면 진짜 놀라는 게 할아버지들의 근육이에요. 운동해서 만든 근육이랑 달라요. 70대 중반, 후반의 할아버지들이 지게지고 하시면서 만들어진 근육들이 참 아름다워요. 그런 것을 보면 많이 안타깝죠.

 

그런 면에서 광수가 농업 고등학교에 진학한 것은 주목할 만해요.

 

강화에서도 농업고등학교는 거의 안 가요. 제가 아는 아이는 농업 고등학교 갔다가 군대 다녀와서 다시 자동차 기술 배워 카센터에서 일하는데요. 농업학교도 요즘은 특성화학교라고 해서 조금 달라지기는 했지만 가공 식품 만드는 과 같은 경우나 조금 높고 나머지는 안 그래요. 강화 아이들은 아직까지 고등학교는 농업고등학교를 가지 않지만 농수산대학이라고 3년제는 가는 친구들이 간혹 있어요. 그렇게나마 이어가면 어쨌든 좋은 거겠죠. 하지만 어른들, 부모 스스로 '농사짓지 마라, 내가 이렇게 고생했으니 너는 대학 보낼 거다, 하지 마라' 이렇게 말하는 상황이니까요. 이것저것 해도 안 돼서 농사짓는 것과 처음부터 내가 좋아해서 하는 것과는 다르죠. 저희 딸 친구들 중에도 공부는 못하지만 정말 농사일 잘하고 좋아하는 친구들이 있어요. 지지를 받거나 존중 받지는 못하는 거죠. 결국 떠밀려 도시로 가서 빌빌 거리고 살아야 하는 거잖아요. 때문에 광수를 일부러 좀 그런 모습으로 그리려고 했어요. 정말 일 잘하는 애들이 있거든요. 대부분 존중받지 못하지만요.

 

취약한 존재들끼리 함께 살아가는 것이 중요해

 

흥미로운 것은 등장인물 모두에게 어떤 결핍이 있다는 점입니다. 하나같이 결핍이 있어요. 할머니는 물론이고 심지어 완벽해 보이는 우주까지도 말이죠. 작가님께서는 꾸준히 결핍에 대해 이야기하고 계시는 것 같은데요.

 

요즘 부모님들은 자녀를 키우면서 내 아이에게 결핍을 주고 싶어 하지 않아요. 사실 그 안달과 불안감이 아이들에게는 더 큰 상처를 주잖아요. 엄마나 사회가 정한 목표까지 아이를 키워야 하고, 계속 성공해야 하고요. 아이들은 다 다른데 거기에 아이들을 끼워 맞추려다 보니까 문제가 생겨요. 결핍을 있는 대로 인정하고 다른 사람이 채워도 되는 거잖아요. 일단 사람 하나만 봐도 저는 그렇게 가는 게 맞다는 생각이에요. 저는 사람이 결핍이 없으면 성장하지 못한다고 생각해요. 그 결핍이 어떤 것이든 간에요. 경제적인 결핍이든 뜻하지 않은 상황에서 받게 되는 결핍이든 결핍을 경험하거나 이해하는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는 깊이가 다를 수밖에 없죠. 사회적인 측면에서도 마찬가지고요.

 

취약한 존재들끼리 함께 살아가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강화에 가서 3년 정도 지났을 때였는데, 길에 까치 한 마리가 죽어있었어요. 그 곁에 다른 까치 한 마리가 계속 왔다갔다해요. 저희가 장을 보러 나갔다 들어갈 때까지 계속 있는 거예요. 그때 까치가 궁금해서 찾아봤어요. 11월쯤 되면 들판에 까치와 까마귀가 함께 있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저는 그게 이상했어요. 찾아보니까 그 해 태어나 겨울 전까지 짝을 맺지 못한 독신 총각, 처녀들은 그렇게 무리를 지어서 겨울을 난대요. 저렇게 사는 거구나 생각했어요. 저는 가난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빈민 지역에서 살아왔지만 그건 자기가 인식해서 실천하려고 계속 노력하는 거잖아요. 근데 자연 속에서는 이미 그렇게 자연스럽게 살고 있는 거잖아요. 그런 것들이 저에게는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이 들어요.

 

자녀분들에게도 결핍이 있겠죠?

 

저는 저희 아이들을 키울 때도 결핍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가난하게 살아도 결핍이 뭔지 모를 수 있잖아요. 부모의 사랑을 받고 안전하게 지내니까요. 그러면 인위적으로라도 결핍을 겪게 해요. 소비를 통제하거나 그렇게 하는 거죠. 어떨 땐 아이들이 불만을 갖기도 해요. 불만을 가질 땐 함께 토론하고 다시 생각해봐요. 그러면 아이들 스스로 통제하는 힘이 생겨요. 내가 이걸 가져도 되는지에 대해 다시 생각을 하게 되고요. 저희 아이들이 모두 여자애들인데 얘네가 자기들을 표현하기를 구제녀래요.(웃음) 계절 바뀔 때마다 광장시장 가서 훑어보거든요. 저는 그것도 몰랐죠. 시킨 것도 아니고요. 어려서부터 그런 결핍과 소비에 대한 자기점검이 있어서 그게 돼요. 휴대전화도 3년 약정해서 끝날 때까지 절대 안 바꾸거든요. 저희는 그 규칙을 지켜야 해요. 만약 우리가 이런 소비사회에서 남들과 똑같이 했다면 경험하지 못했겠죠. 남들과 똑같이 하고 다니고 떠먹여 주는 걸로 대학가고 이러면 아쉬움이나 역지사지의 마음도 모르고요. 억지로라도 결핍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엄마 땜에 나 다문화 됐잖아. 엄마 창피해."(중략)


"용민아, 그렇게 말하는 애들이 진짜 무식한 거야. 나도 못 가 봤지만 베트남도 우리나라랑 똑같대. 우리나라에도 도시에는 높은 빌딩 있고 화려하지만 우리 마을만 해도 별로 그렇지 않잖아. 우리 담임선생님이 그러는데 용민이 엄마 아빠가 결혼한 호치민은 굉장히 예쁘고 역사도 오래되고 유명한 도시래. 우리 선생님은 대학교 다닐 때 한 달이나 배낭여행 했는데 엄청 좋았대. 그래서 누나도 대학생 되면 꼭 베트남으로 배낭여행 갈 거야. 그리고 베트남은 우리나라랑 무역 같은 것도 되게 많이 한 대. 누나 생각에는 용민이가 베트남 말 배우면 좋겠는데?" (206~207쪽)

 

동생 용민이가 엄마가 베트남 사람이라 창피하다고 투정부릴 때 유정이가 정말 어른스럽게 잘 가르쳐요. 유정이처럼 심지가 단단한 아이가 드문데요.

 

'요즘 이런 애들이 어디 있어?' 이렇게 생각하실 수 있어요. 그건 사실 어른들이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다르거든요. 저희 아이가 반쯤 읽다가 '이거 우리 얘기잖아, 소설 보는 것 같지가 않아' 이러고 덮어버렸거든요.(웃음) 저희는 공동체 생활을 하니까 알잖아요. 친구들이 그런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면 저희 딸들이 친구들을 붙들고 계속 그런 얘기를 해요. '요즘 아이들이 어디 그래?'라는 말은 도리어 어른들의 무책임인 거죠. 아이들은 아주 어린 아이들도 설명해주고 이야기하면 돼요. 지적인 것은 막 집어넣고 이해할 거라고 생각하면서 다른 가치는 아이들이 못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아요.

 

1월 초에 오체투지 시위할 때 공동체 자녀들을 데리고 갔어요. 유아들하고 중고등학교 애들까지 같이 갔는데 고등학교 아이가 오더니 '사진 찍는 기자가 아무것도 모르는 애들을 데리고 이런 데 왔다고 뭐라 그래.' 라면서 화가 난 거예요. 그러니까 초등학교 2학년 올라가는 남자 아이가 '어? 나 오체투지 왜 하는지 아는데?' 이렇게 얘기를 해요. 아이들도 다 아는 거죠. 아저씨들이 민복을 입고 기어가는 게 굉장히 힘든 일이고, 그러나 부당한 일이라는 것을 말이에요. 초등학교 아이들은 더 잘 알고요. 지금 낮은 사람, 가장 약한 사람이 저 아저씨들이고 저 사람들을 보호하는 게 사회의 역할인 거죠. 물론 아이들 따라 다르죠. 관심사도 다르니까요. 하지만 사람이기 때문에 알아요. 약한 게 어떤 거고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말이에요. 고등학교 입학할 정도 되면 애어른처럼 느껴질 때도 있고 아는 것도 있고 놀라울 때가 있거든요. 예전에는 다 그렇게 자랐잖아요. 그걸 안 하는 거죠.

 

"유정아, 이 벼도 말이지, 주인의 발소리를 달아듣거든. 이렇게 밤에도, 이른 새벽에도 또 한낮에도 논에 내려와서 주인 발소리를 들려주면 벼가 아, 내 주인이 나를 이렇게 사랑하는구나 하면서 쑥쑥 자라는 거야. 뭐든 살아 있는 건 말이지, 사랑이 가장 중요해." (116쪽)

 

작은아빠의 살아있는 교육과 유정이만 아는 밤길 산책의 호젓함에는 특별함이 있습니다. 이는 역설적으로 밤늦도록 공부하고 흔히 사람들이 똑똑하다고 말하는 우주는 모르는 것들이에요.

 

우주가 계속 대학 이야기를 하는데 요즘 애들이 그렇거든요. 아이들도 연애 많이 하잖아요. 중학생 애들도요. 그럴 때 걔들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들이 사실 어른들 생각들이거든요. 우주랑 광수를 대비하고 싶었던 거예요.

 

동네에 가끔 부모님을 따라 오거나 잠깐만 오는 아이들이 있어요. 내신 잘 받으려고 들어오는 경우도 있고요. 과학고나 예술고 가려고 오는 경우도 간혹 있고요. 강화는 개신교의 뿌리가 굉장히 깊어서 목사 아들도 물론 있고요. 그런 애들은 때깔부터 다르죠. 매일 보는 애들과 다르니까 여학생들의 마음이 당연히 설레요. 그런데 저는 그런 아이들이 항상 뭔가 하나 빠진 것처럼 보이거든요. 그래서 우주라는 아이를 만들었어요. 

 

우주만 놓고 생각하면 정말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알 수 있는 것들이 훨씬 많은데 모르고 지나가는 아이들이요. 칼럼니스트 김규항 씨가 '농사짓는 것과 같이 아이들에게는 때가 있다. 어린 아이들은 놀아야 한다'고 했는데, 그걸 못하니까 아이들이 망가지는 것 같아요.

 

요즘 아이들이 다 그렇게 뿌리가 없잖아요. 한 곳에 살지 않고 목적에 따라 옮겨져요. 그 아이들에게 강요되는 건 지식이나 미래에 대한 것뿐이고, 지금 여기 아이들의 삶에 대한 배려는 없어요. 어떤 친구들을 만나고 어떻게 뿌리 내리는지에 대한 무관심이죠. 당연히 아이들이 불안할 수밖에 없죠. 반면 유정이나 광수 같은 경우는 거기서 나고 자랐잖아요. 거기가 태어난 곳이고, 늘 보는 사람들이고요. 심적인 뿌리가 다르죠. 당연히 세상에 나가서 어떤 일에 부딪칠 때도 다를 수밖에 없는 거죠. 사람에 대한 믿음이나 그런 것 역시요. 도시에 나가 어리바리 할 수는 있지만 근성 같은 게 있을 수 있어요. 사실 아이들에게는 그런 것들이 필요한 거죠.

 

하지만 우리는 다들 우주 같은 아이들을 좋아해요. 예의 바르고, 찔통 안 부리는 아이들이요. 아이들은 당연히 찔통을 부려야 하고, 잘못된 길로 가기도 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유정이가 착한 것 같지만 화도 내고 고집도 부리잖아요. 그런 과정들이 없이 크면 나중에 언젠가 터진다고 하잖아요. 지랄 총량의 법칙, 그거 진짜거든요. 그걸 청소년기에 안하고 장년기에 하면 진짜 끝난다고 하잖아요.(웃음) 그런 시기가 필요한 거죠. 광수 같은 경우도 그렇게 찔통을 부리니까 나중에 철이 들 수도 있는 거고요.

 

사회나 커뮤니티가 조금만 더 유연하면 그런 모습을 수용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는 것 같은데, 도시에서는 빽빽하게 스케줄이 짜여 있고 조금만 비뚤어지면 그대로 벼랑 끝이잖아요. 아이들은 항상 초조하고요. 유정이가 갖는 안정감이라는 게 전혀 없는 것 같아요.

 

진짜 아이들이 자랄 수 없는 환경에서 자라는 거잖아요. 저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굉장히 안타까운데, 가족끼리 함께 밥을 먹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는 말이요. 저희 딸이 기숙사를 간다고 했을 때도 반대했어요. 기숙사 자체도 나쁠 뿐 아니라 아이가 고등학교에 가면 가족들과 밥 먹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 아침인데 그걸 빼앗기는 건 가족 간의 중요한 시간과 유대를 빼앗기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기러기 가족 제일 나쁘다고 생각해요. 가족은 가족이 필요한 시기가 있잖아요. 아이들이 스무 살 이후가 되면 가족에서 벗어나는 거니까 그 전까지는 같이 있어야죠. 꼭 피를 나눈 가족이 아니라도 말이에요. 요즘 아이들이 자라는 환경이 정말 사람이 살 수 없는 환경이라고 생각해요. 아이들 불쌍하잖아요. 또 너무 착하잖아요. 그런데 마음이 착한 게 아니라, 이렇게 살아야 최소한 우리 엄마 아빠처럼 살 수 있다는 생각이 애들 머리에도 이미 있는거죠. 얼마나 많이 갖고 얼마나 소비하고 살 수 있는지가 관심사다 보니까 아이들 스스로 조바심을 낼 수밖에 없는 거잖아요. 세상이 온통 불안하죠. 뿌리 없이 둥둥 떠다니는 거죠. 

 

목소리 커서 이득 본 사람 없다는 할머니와 이에 반발하는 작은 아빠 대화를 생각해봤습니다. 일제와 독재를 거친 우리 현대사적 경험이 그런 것 같아요. 이 부분에 대해서 조금 더 말씀해 주세요.

 

농사를 짓다보면 어른들도 화날 때가 있죠. 저희 동네만 해도 저희가 갔을 때는 버섯 농장이 많았어요. 느타리버섯이든 팽이버섯을 하려면 내내 온도를 유지해야 하거든요. 그걸 석유로 해야 하는데 유가가 오르면 점점 유지하기가 힘들어져요. 처음에야 대부분 정부나 농촌진흥청에서 장려하느라 시설장비 같은 경우 무이자로 해주거나 이런 시스템이었어요. 초기에 돈이 많이 들지 않으니까 대부분 시작을 하셨죠. 그런데 유가는 올라가고, 뒤늦게 시작한 사람들에게는 처음과 달리 자기 자본도 더 들고, 나중에 보면 너나 할 것 없이 다들 그 작물만 키워서 가격이 폭락하고, 계속 그런 악순환이 됐어요. 그런데도 어른들은 나라에서 하는 일인데 뭐라고 하느냐, 이렇게 나오는 거예요. 불만이 있지만 나아지지 않는 거죠. 농촌만이 아니라 다른 것도 마찬가지잖아요. 목소리 내봤자 나만 타깃이 된다는 피해의식들이 있죠.

 

강화는 특수해서 그런 부분이 더 많아요. 강화 같은 경우 일제 강점기부터 한국 전쟁까지 국가 폭력의 경험이 많으니까요. 교동도, 보도연맹까지 학살당한 경험도 많고요. 잘 안 드러났지만 그런 피해의식들이 좀 많이 있는 편이에요. 예를 들면 쌀 문제로 전국에서 농민들이 서울에 가서 시위한다고 해도 강화 사람들은 거의 안 나가고요. 그러다보니까 똑같은 거죠. 그런 현실을 드러내고자 했던 거예요.

 

작은 아빠로 대변되는 비교적 젊은 세대들의 움직임으로 성공할 수는 없을까요?

 

성공할 수 없겠죠. 계속 그럴 수밖에 없고요. 저희 동네에서 농사짓는 사람들 중 저희가 제일 어린 세대예요. 후배 하나 있는 정돈데요. 다른 마을에는 토박이지만 친환경 농업 하는 사람들의 영향을 받아 친환경 농사를 하는 젊은이들이 있어요. 도시 사람들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그런 애들은 끝까지 농업을 유지하면서 살겠죠. 여자가 없어서 문제죠. 결국 결혼하려면 동남아로 가야 하는 거니까요.

 

실제로 농촌에 이주 여성들이 많이 있나요?

 

많아요. 저희 면에도 좀 있고요. 그게 싫어서 마흔 중반이 됐는데도 장가 안 가는 친구들도 있어요. 그런데 결혼을 하려면 어쨌든 가야해요. 정말 그 방법 밖에 없어요. 어느 면 같은 경우 그렇게 결혼해서 잘 살았다, 하면 그 동네에는 유난히 더 많고 그런 게 있어요. 베트남이나 캄보디아가 가족 중심이고 그러니까 연결, 연결해서 오는 경우도 있고요.

 

다양한 형태의 결혼이 증가하는 만큼 구조적인 준비도 돼야 하고 문화적으로도 좀 더 쉽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게 당연하지만 이상적인 이야기인데요, 현실은 너무 달라요.

 

아주 시골 같은 경우는 인력이 많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주 여성들이 와서 적응하는 경우도 있지만 수도권 쪽으로는 그렇지 않아서 이주 여성들이 겪는 문제들이 사실 굉장히 많이 있어요. 그런데 지원이라는 것은 한글 공부 정도고요. 강화에도 이주가족센터가 있지만 국가 정책이 겉으로 드러나는 일들만 하는 거고요. 같은 나라 여성들끼리의 모임도 자신들의 삶을 변화시킬만한 동력을 가질 수는 없는 거죠. 이주 노동이나 이주 여성들을 위한 민간 NGO 활동들도 있지만 지역별로 난립하고 있고요.

 

어려운 이야기이긴 한데요. 그런 단체들이 열악하게 각자 활동을 하는 거예요. 그런데 이주 노동자들은 한 곳에 매여 있고, 4년 있으면 다시 돌아가거나 혹은 불법체류자가 되기 때문에 구심력을 가질 수가 없거든요. 그렇다면 이주 여성들이 이주민들끼리의 커뮤니티를 형성하거나 좀 더 활동을 하게 되면 좋은데 대부분 가난하니까 열악한 상황에 있어요. 농사일에 매여 있거나 공장에 다니는 거죠. 그것들을 단체들 간에 연대의 틀을 만들어서 함께 변화해 나가면 좋은데 그게 안 돼요. 그러니까 지원이 가능한 관에서 운영하는 곳에 가서 한글 공부를 하는 정도에 그치는 거죠. 그래서 가정 폭력 같은 것에도 더 대처하기가 힘들고 아이들에 대한 것도 시혜적인 것만 있는 거예요.

 

다문화 특성학교라는 게 있어요. 교육청에서 지정을 해요. 다문화 엄마들을 불러서 예절 교육 시키고, 김장도 같이 하고요. 이렇게 프로그램, 이벤트 중심으로 가요. 성공 여부도 그저 개인의 성격에 맡기는 거죠. 한국 문화에 빨리 적응하는 사람은 잘하고 안 그러면 힘들어지고요. 그런 게 없어져야 해요. 다문화라는 걸로 또 다른 벽을 만드는 거예요. 저는 다문화라는 게 너무 싫거든요. 예전처럼 혼혈이니 튀기니 이런 말도 업신여긴다고 했는데 다문화라는 건 또 다른 블록이 되어버렸어요. 다문화라는 말 자체가 다시 놀림의 대상이 되었어요.

 

지금도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는 피해 사례들이 엄청나게 많을 것 같아요.

 

도시에도 많아요. 결혼 이주 여성들이 시골에만 있는 건 아닌데요. 일단 언어 문제가 있으니까요. 심지어는 중국 동포인 경우도 그래요. 농촌이나 어촌은 폐쇄적인 공동체잖아요. 그런 사람들이 왔을 때 그 공동체 안에 잘 녹아들지 않아요. 문화도 다르고, 자기들 스스로도 위축되고요. 공동체 안에는 그 사람들과 같이 할 여력이 없고요. 대부분의 농촌 공동체들이 피폐해져 있으니까요. 문제예요. 자녀들 역시 언어문제 등으로 학교에서 공부하는 게 어렵고, 그것이 자기 안에 열등감으로 자리 잡아요. 중국 동포와의 결혼은 꽤 오래 됐고 그 자녀들이 벌써 20대거든요. 그런데도 엄마가 한국 문화에 대해서 잘 모르고 하는 부분에 대한 열등감들이 다 있더라고요. 엄마와의 갈등도 있고요. 안쓰러움과 연민이 뒤엉켜 있어요. 또 어떨 때는 터미널에서 술 취한 남자가 아기 엄마를 막 끌고 가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 피해 사례가 엄청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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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버티는 힘은, 혼자가 아니라는 것

 

인형극을 올리시기도 하고, 기차길옆작은학교 활동가 등으로 많은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이런 사회 참여 활동이 작가님의 작품에 영향을 끼치는 건가요?

 

끼치겠죠. 제가 살아가는 방식이 옳다는 게 아니고요. 이런 방식이 저에게 맞는 방식이고 이렇게 살아서 이만큼 만족하고 서로 의지가 되고요. 이렇게 살면 내 아이들뿐만 아니라 지역의 아이들도 그렇게 성장하더라, 이런 경험이 있는 거예요. 함께 살아가는 삶의 방식에 대해서요. 그런 부분이 작품 속에 반영이 되겠죠.

 

이 작품을 완성하는 데 얼마나 걸리셨어요?

 

이 작품은 원래 중단편 모음집『조커와 나』에 넣으려고 했어요. 중편으로 썼었어요. 그러다가 출판사에서 장편으로 만들어봤으면 좋겠다고 해서 장편으로 내게 됐어요. 또 강화로 가서 10년이 넘어서야 이 이야기를 쓰게 됐어요. 잘 모르니까요. 제가 모든 걸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머릿속에서 나온 이야기로는 어려울 것 같았어요. 아이들은 거의 비슷하지만 시골 아이들과 도시 아이들도 약간 결이 다르거든요. 그걸 제가 느껴야 했고, 사람들의 이야기가 겉돌지 않으려면 시간이 필요했죠.

 

아이들이 어떤 사회에서 살길 바라세요?

 

우리는 죽으면 끝이잖아요. 버텨야 하는데요. 버텨야 하는 몫을 전부 개인에게 떠맡겨놓은 상태라 문제죠. 저희는 버티겠죠. 버틸 수 있는 힘은, 저희는 혼자가 아니라는 건데요.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의 삶의 방식은 각개전투인 거잖아요. 우리는 각개전투를 포기하고 함께 가기로 선택한 거죠. 사람들은 그렇게 살면 손해를 많이 볼 거라고 생각해요. 대부분 사람들이 그렇게 살면 힘들지 않느냐고 말하고요. 물론 물질적으로 누릴 수 있는 것들은 줄어들 수 있겠죠. 자유롭지 않겠죠. 여럿이 있어 덜 누릴 수도 있고, 제가 누릴 수 있는 자유가 때로는 적어질 수도 있고, 더 많이 신경 써야 할 것도 있지만요, 그래서 얻는 것들이 더 많아요. 사람들은 경험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손해 볼 것 같아, 영역이 깨질 것 같아, 하면서 불안감을 갖고도 지금 삶 역시 만족하지 못하죠.


때로는 치고 나갈 필요가 있어요. 우리 사회는 모험을 못하게 하잖아요. 했다가는 데미지가 너무 크고요. 그런데 여럿이 함께 있는 공동체 안에서는 한 둘이 삐져나가도 복원력이 있잖아요. 그 사람이 다시 왔을 때 받아줄 수도 있고요. 그런 작은 공동체들을 넓혀 가는 것, 그게 꿈인 거죠. 유일한 대안일 것 같아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사람답게 살 수 없는 사회잖아요. ‘사람답게’라는 걸 어떻게 기준을 두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요. 저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선의를 믿거든요. 함께 살아가고,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는 마음이 기본적으로 있어요. 이기적인 아이들도 있지만 아이들 안에는 함께 살아간다는 생각이 있어요. 어쨌든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요. 그걸 더 키워주는 게 예전의 사회였는데 지금은 그걸 완전히 닫아버리고 남들은 짓밟아도 나 혼자 가라고 얘기를 해요. 그걸 바꾸는 수밖에 없어요. '나 혼자 죽어도 못 가'라고 해야죠. 혼자는 못 가잖아요. 다 해고되고 나 혼자 남았다, 그럼 내 자리가 얼마나 남아 있겠어요. 사람들은 그 생각을 하기가 싫은 거죠. 지금 내가 잡고 있는 이것만 있으면 끝까지 간다고 믿고 싶은 거죠. 아닌 거 알면서도요. 아닌 걸 인정하려면 혼자는 안 될 것 같아요. 여러 사람들이 공동체에 모여 있으면 덜 불안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요? 그걸 만들어가는 게 핵심인 것 같아요.

 

아이들에게 다른 방식의 삶도 가능하다, 다른 가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는 어른들이 더 많이 필요할 것 같아요. 어른들을 대상으로 한 작품을 쓰실 계획은 없으신가요?

 

대상에 대해 크게 의미를 두진 않는 것 같아요. 처음 가난한 동네에 들어가 공부방을 열기 전에, 창비아동문고를 보면서 이런 걸 아이들에게 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읽히려고 보니까 애들이 못 읽는 거예요. 한글을 뗐다 하더라도 활자로 책을 보고 이야기를 이해하는 게 어려웠어요. 그 아이들과 십 년 넘게 지내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것이 이 아이들의 이야기가 있으면 했던 것이거든요. 이 아이들의 마음을 담은 그런 이야기가 있으면 좋겠다고만 계속 생각을 했던 거고요. 『괭이부리말 아이들』을 처음 쓸 때도 누구를 대상으로 뒀다기보다 저희 아이들에게 희망과 위로를 주고 싶은 마음이 더 컸던 거예요. 가난과 세상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던 것도 있었고요.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또 저는 글이 쉽게 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누구나 다 읽을 수 있어야 한다고요. 대상을 먼저 정한 게 아니고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어렵지 않은 책이 필요한 거였어요. 그 후에는 주제나 소재가 더 중요하지 대상은 중요하지 않아요. 어떤 이야기를 하느냐가 중요하고 더 먼저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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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깜언김중미 저 | 창비
『괭이부리말 아이들』 『조커와 나』의 작가 김중미의 신작 장편 『모두 깜언』이 창비청소년문학 64권으로 출간되었다. 강화도 농촌에 사는 여중생 유정이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김중미표 성장소설로, 서로 연대하고 고마워할 줄 아는 농촌 공동체 속 인물들의 따뜻한 매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자신의 삶과 글쓰기를 일치시켜 온 작가 김중미는 『모두 깜언』에서 다문화 가정 문제, FTA, 구제역 등 농촌 사회의 여러 이슈를 사실적으로 담담하게 그려 낸다. 그러면서도 시종일관 유쾌한 분위기를 잃지 않으며 청소년 주인공의 시선에서 희망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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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훈 저자와 나눈 이야기를 정리하면서 깨달은 사실이 있다. 지금 우리는 과유불급의 세상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손 안의 작은 기기를 통해 전 세계와 만나게 되었지만 오히려 마음속에는 손바닥만한 작은 공간조차 남지 않은 것 같다. 어떠한 소리도 없는 공간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머무는 것은 더없이 어색한 일이 됐다.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 인터넷으로 물건을 산다고 하지만, 사실은 오프라인에서 쇼핑할 때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끝없이 이어지는 제품 리스트를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버겁기 때문이다. 비싼 값을 주고 산 휴대전화는 수십 가지의 기능을 자랑하지만 정작 사용하는 것들은 얼마 되지 않고, 밥솥은 더 이상 밥만 하는 기계가 아닌 까닭에 밥 한 번을 하기 위해서 몇 번의 버튼을 눌러야 한다.

 

결국 우리는 필요한 것들보다 불필요한 것들에 둘러싸여서 진짜 중요한 것을 찾기 위해 그 사이를 헤집고 다녀야 한다. 보다 더 단순해질 수는 없을까.『단 單 : 버리고, 세우고, 지키기』(이하『단』)은 바로 그러한 생각에서 시작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더 큰 채움을 위해서는 비워야 한다”는 이치와 “최고의 실력은 단순함으로 발휘된다”는 믿음으로 단순함의 가치를 힘주어 말한다. 저자는 다음의 세 가지로 단순함을 정의한다. “불필요한 것을 모조리 제거하고 오직 핵심만 남겨 놓은 상태, 더 이상 뺄 것이 없는 궁극의 경지” “중요하지 않은 것에 맞서 중요한 것에 집중하는 것” “남의 기준이나 가치를 걷어내고 나만의 가치를 세우는 것”이다. 그리고 단순함에 이르기 위한 공식으로 ‘버리고 세우고 지키는’ 방법을 제시한다. 중요한 것을 위해 덜 중요한 것을 ‘버리고’ 사명과 정체성과 가야할 길을 ‘세우고’ 그것을 어떤 유혹과 고난에도 굴하지 않도록 오래도록 ‘지키라’는 것이다.

 

『단』은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단순함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주고, 그 끝에서 다시 찾게 되는 삶의 중심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케아, 무인양품, GE 등 세계적인 기업들의 CEO와 유수의 석학들이 들려주는 경험담이 담겨 있는 것이다. <위클리비즈>의 편집장으로서 그들과 직접 만나고 동료 기자들을 통해 이야기를 전해들은 저자는 그 안에서 ‘단순함의 가치를 몸소 보여주는 삶’을 발견했다. 그리고『단』안에 담아냈다. 버리고 세우고 지킴으로써 단순함을 추구하라는 그의 조언은 개인적인 삶의 균형을 회복하기 위해서도, 기업의 혁신과 성장을 위해서도, 지구적 차원에서 새로운 생존 방법을 모색하기 위해서도 귀 기울여 볼 만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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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자키 하야오가 무성 영화를 만든 까닭


지금의 우리에게 ‘버리고 세우고 지키는’ 방식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우리는 많은 제품과 정보, 규칙과 관습에 둘러싸여서 너무 복잡하게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더 단순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 가지 맥락에서 단순함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개인적 차원, 기업적 차원, 지구적 차원이에요. 개인적 차원에서는 너무 바쁘게 살면서 점점 중요한 걸 놓치고 있죠. 그래서 행복하지 않은 게 아닌가 싶어요. 제품, 정보, 커뮤니케이션이 늘어났다고 해서 그것이 행복을 담보해 주지는 않는 거죠. 기업적 차원에서도 이제는 무엇을 더 많이 주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고객이 필요로 하는 것을 잘 골라서 주는 게 중요한 시대인 것 같아요. 큐레이션이 필요한 거죠. 그리고 지구적 차원에서 볼 때 언제까지나 생산을 지속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이야기잖아요. 지구는 유한하기 때문에 이제는 임계점에 와 있다고 봐요. 이런 시대에는 삶의 가치를 바꿔야 하죠. 추구해야 하는 것은 ‘더 많이’가 아니라 ‘나만의 가치’예요.

 

단순한 삶에 대해 생각하도록 영향을 준 인물이 있었나요?


『총, 균, 쇠』를 쓴 재레드 다이아몬드를 통해서 ‘삶이란 이런 거구나’라는 걸 많이 느꼈어요. 그 분을 인터뷰한 제 후배가 이야기하길 재레드 다이아몬드의 연구실에는 컴퓨터가 없다는 거예요. 책상 위에는 컴퓨터 대신 구식 녹음기와 공 테이프만 놓여 있더래요. 그래서 책은 어떻게 쓰시냐고 여쭤봤더니,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녹음을 한다고 하셨대요. 테이프를 들으면서 타이핑을 하는 건 비서의 몫이고요.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그 방식이 아주 효율적이라고 이야기했는데요. 그 이유는 인터넷을 하는 동안 불필요한 광고를 볼 필요도 없고, 모든 이메일에 일일이 답장을 해줄 필요도 없어진다는 거예요. 비서를 통해서 중요한 내용만 전달 받으면 되니까요. 그 분은 집에서도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는데, 그렇게 해서 남는 시간 동안에는 책을 읽고 아들들과 이야기를 나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처럼 저에게 감명을 준 이야기가 없었어요. 삶에서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었죠.

 

『단』에서 들려주신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이야기도 인상 깊었습니다.


그 분은 2D 영화만 만드시잖아요. 기술력으로는 충분히 3D 영화를 만들 수 있을 텐데도 불구하고요. 그래서 이유를 물었더니 일부러 안 만든다고 하시더라고요. 미야자키 하야오의 개인 미술관에서 상영하는 단편 영화 중에는 무성영화가 있대요. 계속해서 군더더기를 빼다 보니까 목소리까지 빼게 된 거죠. 그걸 보고 나서 미야자키 하야오는 너무 후련하고 좋았대요. 지금의 일본 문화는 너무 많은 게 문제라는 거예요. 그러면서 ‘너무 많은 양이 오히려 질을 훼손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하셨는데, 그 말이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질을 위해서 양을 포기하겠다는 거잖아요. 그게 단순함이죠.

 

IT업계의 대가들은 어땠나요?


『유리감옥』『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의 저자인 니콜라스 카도 그렇고 <와이어드>의 전 편집장인 케빈 켈리도 마찬가지인데요. 우리가 생각할 때는 컴퓨터 기기에 둘러싸여서 지낼 것 같은데, 직접 찾아가 보니까 산 속에서 살고 있었어요. 세계적 경영 석학인 짐 콜린스도 인구 10만 명밖에 되지 않는 작은 도시에 살고 있었고요. 그들이 IT 문명과 스스로 거리를 두는 이유는 생각할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예요. 특히 짐 콜린스는 자신이 하루에 소비하는 시간을 모두 기록해 놔요. 짐 콜린스의 연구실에 직접 갔을 때 그것들이 적힌 칠판을 보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어요. 하루를 ‘생각하고 공부하는 시간’ ‘강의하고 인터뷰하는 시간’ ‘그 외의 시간’으로 구분해 놓고 각 항목별로 얼마나 시간을 보냈는지 기록해 놓았더라고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생각하는 시간을 확보할 수 없기 때문이에요.

 

그 분들에게서 공통적으로 관찰된 것이 있다면 무엇이었나요?


제가 만난 많은 대가들은 진정 중요한 것을 위해서 중요하지 않은 것을 줄일 줄 아는 지혜가 있었어요. 가장 중요한 건 가족이고 그 다음으로는 생각하는 시간, 그리고 깊이 있는 만남 같은 것들을 중요하게 생각했죠. 우리가 너무 바쁘게 살다 보니까 잊어버린 것들이죠.

 

“개인적 차원의 단순함이란 ‘중요하지 않은 것’을 덜어냄으로써 ‘중요한 것’을 지키는 것”이라고 하셨는데요. 작가님께서 무엇을 덜어내고 무엇을 지키려고 하시나요?


앞서 이야기한 분들과 다르지 않아요. 진정으로 중요한 것을 위해서 다른 것들을 줄였죠. 예를 들면 모임도 줄이고 술도 덜 마시고요. 어떻게 하면 더 단순하게 살 수 있을까 고민해요. 책상 위에 올려놓은 것도 일체형 컴퓨터, 스탠드, 연필꽂이가 전부예요.


버려진 천으로 만든 가방을 사는 이유


기업적 차원에서 단순함을 추구한 사례로 프리미엄 오디오 브랜드 ‘보스’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보스는 50년 전부터 ‘어떻게 하면 버튼 한 번만 눌러서 음악을 체험을 할 수 있을까’에 중점을 둔 회사예요. 현재 보스의 CEO인 밥 마레스카를 만났을 때도 감명을 받았는데요. 그 분 말씀이 창립 이래 지금까지 보스의 목표는 고객한테 음악적 경험을 들려주는 것이지 좋은 기술적 경험을 주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대부분의 기업들은 자신의 기술을 자랑하기 바쁘잖아요. 그런데 소비자들은 그 회사가 기술이 얼마나 많은지 돈을 얼마나 벌었는지는 관심 갖지 않거든요. ‘나의 불편을 얼마나 해소해줄 수 있는가’ ‘나의 결핍을 얼마나 채워줄 수 있는가’에만 관심이 있죠. 보스의 경우에는 고객이 가장 편하게 쓸 수 있도록 기술을 큐레이션 했다고 볼 수 있어요.

 

고객이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제품을 단순화하는 데 주력했군요.


복잡성 보존의 법칙이라는 게 있어요. 기업과 소비자의 관계에서 복잡함의 총량은 정해져 있고, 기업이 복잡함을 끌어안는 만큼 고객은 편하다는 거예요. 그런데 복잡성 보존의 법칙보다 한 발 더 나아간 것이 ‘대교약졸’이에요.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말인데, 큰 재주는 오히려 서툴러 보인다는 뜻이죠. 지금은 그런 정신이 필요한 시대라고 생각해요. 기업이 가진 기술을 과시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줄이고 줄여서 고객이 설명서 없이도 바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하죠.

 

지구적 차원에서 단순함을 추구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글로벌 금융위기는 자본주의의 한계를 충분히 보여줬어요. ‘더 많이’를 외치면서 하면서 계속 성장하는 것은 불가능해요. 그렇다면 성장을 재정의 할 필요가 있는 것이죠. 우리는 GDP 라는 것에 목을 매고 있잖아요. 그런데 감옥을 짓거나 전쟁을 하는 것도 GDP에 포함되거든요. 하지만 우리가 삶에서 누리는 만족은 포함되지 않아요. 돈을 적게 벌더라도 친구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고 책을 보면서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그런 것들은 GDP와는 무관하단 말이죠. 그런 가치들을 성장의 지표에 반영해서 성장의 의미를 재정의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표라는 건 우리의 인식을 지배하기 때문에 중요해요. 만약 GDP가 아닌 다른 것을 지표로 삼는다면 우리 삶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도 달라지겠죠. 물론 빈부 격차를 해소하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 하고요.

 

『단』에서 ‘자연 역시 자본의 하나’라고 바라보신 관점도 새롭습니다.


우리는 보통 공장이나 기계만을 자원이라고 생각하잖아요. 사실 자연도 자본이에요. 희소하기 때문이죠. 옛날에는 자연이 풍부했어요. 오히려 자연으로부터 인간을 보호하기 위해서 문명이 싹텄다고 볼 수도 있죠. 그런데 지금은 그 단계가 아니고 인간이 자연을 지배하면서 자연이 희소해졌어요. 누릴 수 있는 맑은 공기,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마음의 위안, 가족들과 함께 자연에서 느낄 수 있는 만족과 같은 것들이 갈수록 희소해지고 있죠. 자본이라는 관점에서 봤을 때 자연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겨야 해요. 그것이 지구적 차원의 단순함에서 이야기하는 바죠.

 

지구적 차원의 단순함을 실현하는 기업으로 ‘파타고니아’를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미국의 아웃도어 의류업체인 ‘파타고니아’는 환경을 최고의 기업 이념으로 내세우면서, 이 재킷을 사지 말고 헌옷을 수선해 입으라는 캠페인을 벌이기도 한다고요.


파타고니아는 친환경을 표방하는 대표적인 기업이죠. ‘러쉬’도 마찬가지예요. 자연에서 얻은 재료로 모든 제품을 만들고 제품을 포장하지도 않죠. 날 것 그대로 파는 건데 오히려 사람들이 좋아해요. 포장지가 없기 때문에 제품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물성이 드러나게 되는 거죠. 향기도 맡을 수 있고 왠지 시장에 온 것 같은 느낌도 주잖아요. 환경도 살리면서 고객도 만족시킨 거니까 좋을 수밖에 없죠. 이렇게 창의적이면서도 회사에 도움이 되는 방식을 택한 기업들이 많아요. 프라이탁이라는 회사도 그렇죠. 이 회사의 제품에서는 소독약 냄새가 나요. 폐방수천으로 만든 가방이기 때문에 소독 과정을 거쳐야 하거든요. 이런 가방을 왜 비싼 돈을 주고 사야 하나 생각되지만 프라이탁의 가방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같은 디자인이 없었어요. 유일무이한 제품인 거죠. 이렇게 친환경적인 기업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프라이탁은 기업의 정체성을 지킨 대표적인 사례이기도 합니다.


사실 세우고 지킨다는 것이 굉장히 힘들죠. 특히 우리 사회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체성이나 개성을 드러내기 힘들기 때문에 더욱 그렇죠.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이야기도 있잖아요. 그런데 지금처럼 획일화된 제품이 넘쳐나고 스펙 좋은 사람도 너무 많은 시대에는 오히려 개성을 조금 더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인간에게는 누구나 자기만의 향기가 있잖아요. 그걸 자신 있게 드러내는 것이 ‘세우기’의 핵심이에요. 그리고 자기만의 것이 있으면 어떤 유혹이 있어도 ‘지켜야’ 하죠. 프라이탁의 정체성은 업사이클링이에요. 리사이클링을 해서 제품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죠. 결국 재활용, 환경 친화적 제품이 그 회사의 DNA인 거예요. 물론 유혹도 있다. 폐방수천은 우중충한 색깔 일색이잖아요. 다채로운 색깔의 방수천을 직접 주문해서 만들자는 생각이 들 법도 하죠. 그래서 저희가 프라이탁을 직접 찾아갔을 때 물어봤어요. 그런 유혹에 빠질 때가 없냐고요. 그런 유혹은 항상 있대요. 하지만 버텨야 된다고 하더라고요. 폐방수천으로 가방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회사의 모든 것이고 고객과의 약속이기 때문에, 그걸 버리는 순간 모든 걸 잃게 된다는 거죠. 그건 기업뿐만 아니라 개인들에게도 필요한 자세라고 생각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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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양품의 매뉴얼에 감춰진 비결


‘세우기’의 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나’를 세우는 것만큼이나 ‘왜’를 세우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곧 기업의 이윤 창출로 이어진다고요.


일례로 파타고니아 같은 회사의 직원들은 자신이 하는 일이 굉장히 보람 있다고 생각해요. 환경에 도움도 주면서 회사의 이념에도 부합하니까요. 기업의 경우 ‘왜 일하는가’라는 질문의 대답은 창업 이념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 이념에 얼마나 충실한가를 끊임없이 직원들에게 상기시켜 주어야 하는데 대부분은 쉽지 않죠. 창업가들은 그런 생각으로 회사를 만들었다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다 보면 무엇이 주이고 무엇이 종인지 모르게 돼요. 성장률과 이익에 목매다 보면 창업 이념과 위배되는 일을 하는 경우도 많죠. 한 개인에게 ‘내가 왜 사는가’가 중요한 것처럼 기업에 있어서도 ‘우리 회사가 왜 존재하느냐’를 찾는 게 중요해요. 이때 ‘왜’의 시각은 고객의 입장에 선 것이어야 하고요. ‘어떻게 하면 고객의 고통을 끌어안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고객의 결핍과 고민을 해결해줄 수 있을까’를 생각하다 보면 자신의 일이 좋아지는 거예요. ‘내가 의미 있는 일을 하는구나’ 라고 생각하는 것과 ‘나는 회사의 목표 성장률를 달성하기 위해서 일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확연하게 다르죠. 일을 대하는 자세부터 달라요.

 

개인적 차원에서 ‘왜’를 세우는 것이 가지는 의미는 ‘총소리와 떨어져서 행진하라’는 에드워드 윌슨 교수의 말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에드워드 윌슨 교수와는 작년 이맘때쯤 하버드 대학에서 만났어요. 팔순의 노인답지 않게 너무나 생각이 명쾌해서 감탄했던 기억이 나요. 특히 ‘총소리와 떨어져서 행진하라’는 말씀이 인상적이었죠. 윌슨 교수는 세계적인 개미 연구가이자 진화생물학자로 어렸을 때부터 개미를 연구했는데요. 당시만 해도 개미를 연구하는 사람은 세계적으로 열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였대요. 윌슨 교수는 그 일을 너무 좋아해서 시작했는데 나중에 보니까 그게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했어요. 연구자가 적다 보니까 자신이 하는 모든 연구가 새로웠고, 그래서 학술 저널에도 계속 소개가 되었다는 거죠. 그 분이 하시는 말씀은, 군대에서는 보통 ‘총소리에 맞춰서 행군하라’고 하는데 과학의 경우에는 오히려 ‘총소리와 떨어져서 행군해야 한다’는 거예요. 개인뿐만 아니라 기업에도 해당되는 이야기죠. 지금의 기업들은 타 회사의 것을 모방하는 게 일상이잖아요.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거든요. 조금이라도 남과 다른 것이 있어야 하고 그것으로 어필을 해야 하죠.

 

효율적으로 기업의 몸집을 줄이기 위해서 점검해 봐야 할 사항에 대해 알려주세요.


이케아의 창업자인 캄프라드 회장이 쓴 책 『작은 이케아 사전 A Little IKEA Dictionary』를 보면 관료주의라는 항목이 있어요. 회사가 복잡한지 판별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하고 있는데요. 회의를 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쓰지는 않는지, 중요한 결정을 하기 위해 모이는 인원이 10명 이상인지, 직접 관리하는 직원이 15명 이상인지 등을 점검해 보라는 거죠. 조금 더 조직적으로 말하면 복잡성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전략, 제품, 조직, 프로세스의 부분들을 하나하나 점검해 봐야 하죠. 쉽지 않은 일이지만 CEO의 차원에서 전권을 가지고 할 필요가 있어요. 일례로 GE는 작년부터 단순화를 굉장히 강조했는데요. 가장 가시적으로 나타난 성과는 서류의 숫자가 줄었다는 거예요. 30%~40% 정도 감소했죠.

 

단순하게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든 기업으로 모스버거, 무인양품, 이솝을 예로 들기도 하셨는데요. 그 중 가장 성공적인 변화를 이뤄낸 기업은 어디인가요?


무인양품의 경우에는 회사의 태생 자체가 ‘심플’이잖아요. 디자인과 매장 모두 단순함을 지향하는데, 어느 순간 복잡해지기 시작했어요. 경기가 어렵다 보니까 유혹에 빠진 거죠. 다채로운 컬러의 다양한 제품도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일탈을 한 거예요. 초기에는 매출이 상승했어요. 그런데 점차 사람들이 ‘내가 굳이 무인양품에 올 필요가 없다, 다른 곳과 비슷해졌다’ 라고 생각하게 됐죠. 결국 더 많은 고객이 떠나면서 정체성을 잃어버렸어요. 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변하는 것 못지않게 변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한 시대라는 걸 보여주는 사례죠. 그래서 무인양품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고요.

 

무인양품이 단순함을 지킬 수 있었던 비결이 궁금합니다.


지키기 위해서 중요한 것은 구조를 만드는 거예요. 회사의 정체성은 말로만 이야기한다고 해서 지켜지는 게 아니죠. 직원들이 저절로 지킬 수 있는 분위기와 구조를 만들어 줘야 해요. 그것이 기업 문화가 될 수도 있고 매뉴얼이 될 수도 있는데요. 무인양품의 경우에는 매뉴얼을 잘 만들었어요. 매뉴얼이라는 게 사람을 구속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오히려 사람을 편하게 하거든요. 쓸데없는 데 시간을 낭비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무인양품의 매장 매뉴얼에는 마네킹에 옷을 입힐 때 실루엣의 형태를 어떻게 해야 할지, 옷에 들어가는 색깔은 몇 가지로 제한해야 하는지에 대한 규정이 나와 있어요. 실제로 필요한 것을 간단하게 매뉴얼로 만들어 놓으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고, 그걸 고민할 시간에 조금 더 창의적인 일을 할 수 있게 되죠. 『무인양품은 90%가 구조다』라는 책에서도 이야기하는 건 결국 구조라는 거거든요. 회사 구성원들의 상태를 알고 그에 맞게 구조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거죠.


바꿔라, 그러면서 바꾸지 마라


차별성과 혁신 사이에서 ‘아니면’이 아니라 ‘그리고’를 택해야 한다고 적으셨습니다. 그러면서 <태양의 서커스>를 예로 드셨죠.


제가 제일 좋아하는 말이 있어요. 자동차 회사 포르쉐의 디자인 모토인데요. ‘바꿔라, 그러면서 바꾸지 마라(Change it, but do not change it)’라는 말이에요. 핵심은 유지하되 껍질은 바꾸라는 거죠. 포르쉐의 디자인은 늘 바뀌지만 그래도 디자인의 일관성은 남아있어요. <태양의 서커스>도 늘 새로운 쇼를 만드는데 똑같은 버전이 하나도 없어요. ‘오’ 쇼는 물을 소재로 하고 ‘카’ 쇼는 불을 다루죠. 라스베가스에서 동시에 7개 정도의 공연을 진행하면서도 모두 달라요. <태양의 서커스>는 ‘늘 고객들에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한다’는 모토와 ‘동물 서커스는 하지 않는다’는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변화를 시도한 거예요.

 

결국 지킨다는 것은 ‘장기적인 시각을 갖고 미래를 내다보는 일’과 같다고 이야기하셨습니다. 어떤 의미인가요?


단기적인 시각에 휘둘리면 지키기가 쉽지 않아요. 이윤이나 성장률을 달성하는 게 1차적인 목표가 되면 정체성을 지키기가 쉽지 않죠. 유혹에 쉽게 빠져요. 길게 보면 크게 잃는 길이죠. 지금 조금 힘들더라도 정체성을 지켜나가는 게 필요해요.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이유 중의 하나도 기업들이 너무 단기 성장에 목을 맸기 때문이에요.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돈에 눈이 멀어서 리스크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거죠. 『단』에서는 비상장 기업 중 성공한 사례를 많이 소개했는데요. ‘보스’나 ‘카길’ 같은 회사들이죠. 비상장 기업이 가진 단점에도 불구하고 상장을 하지 않는 이유는, 상장을 하다 보면 주주들의 요구사항 때문에 장기적으로 내다보는 일이 어려워지기 때문이에요. 제가 상장을 하지 말자고 주장하는 건 아니에요. 장기적인 마인드가 중요하다는 얘기죠.

 

『단』을 추천하고 싶은 독자들이 있다면 어떤 이들인가요?


경영인들에게만 읽히기보다 젊은이들한테 꿈을 주는 책이었으면 좋겠어요. 힘들게 지친 젊은 사람들이 책을 보고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고요. 나의 향기를 드러내면서 단순한 삶을 살아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고, 총소리와 떨어져 행군해도 괜찮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요. 제가 주로 경영인들을 만나다 보니까 『단』에도 경영 분야의 소재가 많이 실려 있지만, 사실 경영이란 것이 사람과 떨어져서 존재할 수 없거든요. 경영이라는 게 결국은 사람들이 모여서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하는 활동이에요. 사람과 뗄래야 뗄 수 없고 인문학과도 뗄래야 뗄 수 없죠. 이 책에 소개된 경영 대가들도 경영에 대해서만 이야기한 게 아니에요. 결국 인생을 대하는 태도를 이야기한 거죠. 경영과 사람이 떨어져 있을 수 없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젊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저와 비슷한 연배에 있는 분들, 너무 복잡하기 때문에 심플해지고 싶다는 생각을 하시는 분들도 좋아하시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피곤하고 복잡한 데 질린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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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훈 저 | 문학동네
저자는 위클리비즈를 통해 만난 『총, 균, 쇠』의 저자 재러드 다이아몬드부터 이본 슈나르 ‘파타고니아’ 회장, 마크 콘스탄틴 ‘러쉬’ 창업주, 드루 휴스턴 ‘드롭박스’ 창업자, 경영 구루 짐 콜린스, 스티븐 그린블랫 하버드대 교수, 진화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까지 수많은 대가들의 인터뷰에 더해, 예술과 문학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드는 자료 조사를 통해 단순함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보여준다. 그리고 ‘참을 수 없는 세상의 복잡함’에 맞서기 위한 ‘단의 공식’을 제시한다. ‘버리고, 세우고, 지키기’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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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 역사 교육 시작할 땐 『용선생의 시끌벅적한 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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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선생의 시끌벅적한 한국사』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초등학생 자녀를 둔 학부모에게 『용선생의 시끌벅적한 한국사』시리즈(전 10권)는 참 고마운 책이다. ‘우리 아이 역사교육,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되어주는 까닭이다. 『용선생의 시끌벅적한 한국사』의 첫 번째 이야기가 출간되었을 때부터 그 반응은 뜨거웠다. 2007년부터 바뀐 교육과정으로 학생들과 학부모 모두 적지 않은 혼란을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아이들은 초등학교 6학년부터 한국사 통사를 배웠다. 4학년과 5학년을 거치면서 문화재와 생활사를 통해 차근차근 역사를 알아갈 수 있는 기회도 가졌다. 그러나 개정된 교육과정은 이 모두를 5학년 사회 교과서 안에 넣어놓았다. 한국사에 대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는 시점은 빨라지고 준비할 시간은 줄어든 것이다.

 

교육현장에서도 “단어 뜻풀이를 하다 시간을 다 보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 “5학년 아이들이 1년 안에 이걸 다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터져 나왔다. 학부모들은 비상이 걸렸다. 정규 수업이 시작되기 전에 혹은 그와 병행하여 읽어야 하는 또 다른 역사책이 필요해진 것이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이야기를 들려주면서도 균형 잡힌 시각을 잃지 않는 역사서여야 했다. 『용선생의 시끌벅적한 한국사』는 그 해답이 되어주었다. 게다가 지난해 교육부가 2017년도 수능에 한국사가 필수과목으로 지정된다는 발표를 한 후부터, 일찌감치 역사 교육을 시작하려는 움직임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용선생의 시끌벅적한 한국사』의 인기가 덩달아 높아졌음은 물론이다.

 

『용선생의 시끌벅적한 한국사』는 2013년과 2015년 ‘학부모가 뽑은 교육 브랜드 대상’에 선정되었고, 2012년에는 48개 출판사 대표들의 모임인 ‘책을 만드는 사람’에 의해 ‘올해의 책’으로 뽑히기도 했다. 그 밖에 크고 작은 단체들과 언론사에 의해 주목받은 횟수는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다. 단지 쉽고 재미있게 읽힌다는 이유만으로, 성적과 입시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만으로 설명하기에는 어려울 만큼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 이면에는 학부모는 물론 우리 사회 전체가 통감하는 역사 교육의 필요성, 그에 따라 높아지는 ‘제대로 된 역사서’를 찾는 목소리가 감춰져있다.

 

그 바람과 기대에 응답하기 위해 『용선생의 시끌벅적한 한국사』는 치밀한 조사와 노력을 마다하지 않았다. 선사시대부터 근대에 이르는 10편의 이야기를 완성하기 위해 자그마치 8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시대별로 연구자들을 섭외해 정확성을 검토 받고 ‘전국초등사회교과모임’으로부터 개정된 교과 과정이 충실하게 반영되었음을 확인받았다. 학부모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직접 찾아 나서기도 했다. 기획 단계부터 조언을 구하는가 하면 출간에 앞서 샘플북을 제작해 반응을 살피고 수정에 참고했다. 미래의 독자들을 이해하기 위한 시간도 가졌다. 초등학생들과 1년 동안 수업에 같이 참여하면서 아이들의 눈높이를 체득한 것이다. 이러한 숨은 노력들은 많은 이들이 『용선생의 시끌벅적한 한국사』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말해준다.

 

금현진 작가는 손정혜 작가, 이우일 일러스트레이터와 함께 『용선생의 시끌벅적한 한국사』를 탄생시킨 주역이다. 열 살 난 딸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그녀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역사 교육의 필요성을 통감하며 집필에 참여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아이를 이해하듯 초등학생 독자들을 이해하려 노력했고, 아이들이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고 느끼는지 알아나갔다. 학부모의 한 사람으로서 그녀는 아이와 부모 모두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어쩌면 그것이 『용선생의 시끌벅적한 한국사』가 이토록 많은 사랑을 받는 이유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금현진 작가는 글과 책의 곁을 오래도록 지켰던 사람이다. 서울대학교에서 국어교육학을 전공하고 예스24와 월간 <우리 교육>에서 근무했다. 글줄로 된 통사책을 지향하는 『용선생의 시끌벅적한 한국사』가 매끄러운 이야기의 전개를 자랑하는 비결이기도 하다.

 

채널예스는 지난 11일, 금현진 작가와 만나 『용선생의 시끌벅적한 한국사』와 우리의 역사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용선생의 시끌벅적한 한국사』에 담긴 작가의 마음이 드러날수록 다른 책들과 차별화되는 ‘용선생 시리즈’만의 장점이 더욱 부각됐다. 아울러 ‘우리 아이 역사교육,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라는 고민은 점차 옅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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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책을 골라줄 때 “흔들리지 마세요”


엄마가 되신 이후부터 어린이 책 쓰는 일에 관심을 가지게 되셨다고 들었습니다.


아이를 낳고 자연스럽게 관심이 옮아가는 과정에 우연히 어린이 책을 쓰게 됐어요. 그 전에<우리 교육>이라는 잡지에서 근무하면서 배운 것들도 정말 많았죠. 좋은 선생님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으면서 책에 대한 관심, 교육에 대한 생각들이 많이 성장했다고 할까요. 그때부터 청소년 책에 대한 관심도 생겼어요. 우리나라 도서 시장에서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책들은 상대적으로 시장이 넓은 편이고 수요도 꾸준하잖아요. 반면에 청소년은 입시 문제가 크게 자리 잡고 있어서 그런지 차지하는 위치가 애매한 것 같아요. 청소년 시기에는 가치관이 형성되는 중요한 시기이고 더 흔들릴 일도 많고 고민해야 될 것도 많은데, 그걸 도와줄 만한 책은 그 무렵부터 실종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청소년 관련 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거죠.

 

아이가 생긴 이후 책을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지셨을 것 같습니다.


<우리 교육>에서 서평을 담당하면서 그림책을 계속 보기는 했어요. 그때는 어른의 눈으로 봤다면 엄마가 된 후에는 아이의 눈으로 보려고 하죠. 아이가 읽을 책을 골라주고 읽어줄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러면서 그림책이나 어린이 책에 재미를 느끼게 되더라고요.

 

자녀가 읽을 책은 어떠한 기준으로 고르시나요?


다 마찬가지일 텐데요. 아이에게 맞는 책을 고르게 되죠. 아이의 관심사와 발달 단계를 고려하는 거예요. 사실은 엄마가 아이를 제일 잘 알거든요. 아이가 필요한 게 무엇인지 엄마의 판단을 믿고 뚝심 있게 선택하면 돼요. 아이가 관심이 있는 분야의 책을 건네주되, 거기에만 너무 빠지는 것 같아서 균형을 맞춰주고 싶다면 가이드를 해주면 되요. 그런데 ‘그러면 안 좋대, 좋은 책은 따로 있대, 이 시기에는 과학책 시작해야 된대’ 이런 말들이 너무 많으니까 마치 지금까지 아이를 방치한 몹쓸 엄마가 되어버린 것 같은 생각이 들 때도 있죠. 그런 말들에 너무 흔들리지 말고 엄마가 아는 대로 안내해 주면 될 것 같아요.

 

『용선생의 시끌벅적한 한국사』의 이야기들은 어떤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진 건가요?

 

회의를 정말 많이 했어요. 각 권마다 해당 시대의 전공자 분들을 찾았고요. 초고가 완성되면 내부에서 검토한 후에 전공자 분들과 다시 한 번 검토와 수정을 거쳤어요. 감수도 따로 받았고, 독자가 될 분들에게도 보여드려서 반응을 살폈죠. 그걸 반영해서 또 고치고요. 제 경우에는 역사를 전공한 사람도 아니고 아는 바도 없으니까 공부를 많이 했어요. 출판사에서 추려서 보내주는 참고 서적이나 논문을 빠짐없이 읽으면서요.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은 새롭게 추가되거나 수정되기도 하고, 사실만큼이나 관점도 중요한대요. 이와 관련해서 『용선생의 시끌벅적한 한국사』가 세운 원칙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현대사는 자료는 많지만 그만큼 이견의 여지도 많죠. 새로운 시각이 들어올 가능성도 높고요. 그런데 고대사에도 덩치가 큰 이견들과 논쟁거리들이 계속 있어요. 현대사와 고대사 사이의 시간들도 마찬가지고요. 깊이 파고들면 굉장히 민감한 문제들도 있어요. 『용선생의 시끌벅적한 한국사』는 중간 입장에서 양쪽의 주장들을 다 살피면서 어느 한 곳에 치우치지 않으려고 했지만, 해석할 수 있는 여지는 남겨두고 싶었어요. 조심스러운 이야기이지만, 저의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역사책이 회색이 되면 안 될 것 같거든요. 역사를 충분히 보고 이해가 되면 자기 해석이라는 것이 생겨날 것 같아요. 그런 여지를 주지 않는 책이라면 역사서로써 제 역할을 다 한 게 맞는지 의구심이 남는 거죠. 어린이를 대상으로 해도 제대로 된 역사책이라면 그 책만의 관점과 색깔은 있는 것 같아요.

 

『용선생의 시끌벅적한 한국사』는 ‘3~4학년부터 읽을 수 있는, 글줄로 된 통사책’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그 시기에 아이들이 읽을 책이 없는 거죠. 중요한 시기임에도 불구하고요. 책 읽기 훈련이 잘 되어 있거나 똑똑한 아이들은 청소년 도서를 읽기도 하지만, 그게 모든 아이들이 해야 하는 일은 아닌 것 같아요. 그리고 역사는 쉽게 시작하지 않으면 갈수록 어렵게 느껴지잖아요. 그래서 ‘3~4학년 때 읽기 시작할 수 있는 책, 엄마나 선생님이 따로 해설해 주지 않아도 혼자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있으면 좋겠다는 게 처음의 계획이었어요. 저도 그 뜻에 동의하면서 집필을 시작하게 됐고요.


스토리로 흐름을 잡는 역사책 『용선생의 시끌벅적한 한국사』

 
바뀐 교과 과정과의 연계를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도 눈에 띕니다.


마침 교육과정이 바뀌면서 만드는 입장에서는 조금 힘을 받은 면도 있어요. 꼭 해야겠다, 빨리 선보여야겠다는 생각이 든 거죠. 당시에 많은 엄마들이 어쩔 줄 몰라 했다고 들었어요. 한국사 교육이 너무 어렵게 시작되니까요. 그래서 ‘이건 힘들다고 중간에 그만둘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에 힘들기도 했어요(웃음). 독자들로부터 출간을 기다리고 있다는 말씀도 많이 들었고요. 그래서 『용선생의 시끌벅적 한국사』는 교육과정을 배려하면서 만든 측면이 있죠. 초등 교과서부터 고등 교과서까지 전부 봤는데요. 여러 종의 교과서 중에도 공통된 내용이 있고 일부 교과서에는 빠져 있는 내용도 있잖아요. 그것들을 분석해서 담고 고등 교과서는 참고용으로 살펴봤어요.

 

아이들이 학교에서 역사를 배우기 전에 『용선생의 시끌벅적 한국사』와 먼저 만나면 좋겠다고 생각하셨나요?


네. 교과서가 사실 너무 어려워요. 교과서만 읽고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어요. 어려운 용어를 풀이한 경우도 많이 있지만 풀이가 더 어려운 경우도 있거든요. 풀이에 써있는 말을 몰라서 또 찾아야 되는 경우도 있고요. 그래서 아이들이 학교에서 역사를 배우기 전에 읽거나 같이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다행히도 『용선생의 시끌벅적한 한국사』가 수업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다는 이야기들이 있었고, 한국사 검정 시험을 준비하는 데에도 도움이 됐다고 하시더라고요.

 

아이들이 역사 공부를 하는 데 있어서 가장 어려워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지금 자신이 보는 사람들과 세계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 펼쳐지잖아요. 그런데 옛날이야기처럼 편안하게 들으면서 재미만 느껴도 되는 것도 아니고요. 어떤 스토리가 있는 게 아니라 역사적인 사실이 들어오니까 어려운 건 당연한 것 같아요. 심지어 모르는 말로 쓰여 있기까지 한 거죠. 그러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재미를 느끼기가 쉽지 않잖아요. 그래서 『용선생의 시끌벅적한 한국사』에서는 어려운 말도 많이 풀어주고 싶었고요. 무엇보다 역사를 재미있게 배울 수 없도록 가로막는 벽을 하나씩 없애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어휘 풀이나 여러 가지 사전들을 본문 옆에 빼 놓으면서도 그게 너무 많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죠. 본문 안에서 최대한 풀어주되 이해하기 힘든 말들은 없게 하자, 그래도 안 되면 사전을 보고 이해할 수 있도록 수록하자, 고 생각했어요.

 

말씀하신 ‘스토리’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역사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흐름과 맥락을 아는 것이니까요.


『용선생의 시끌벅적한 한국사』가 이야기를 풀어서 설명해주는 방식을 택한 이유이기도 하죠. 그렇게 한다면 조금 더 쉽게 전달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기획 단계에서부터 고민했어요. 물론 스토리 라인이라든가 구성적인 측면이 너무 비중이 커지면 산만해질 수 있죠. 역사에 집중해야 하는데 다른 재미가 더 커져버리면 안되잖아요. 그래서 균형을 잡는 데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어요. 재미는 역사 안에서 찾아가도록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죠. 말씀하신 것처럼 스토리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는 커요. 역사는 흐름을 잡는 게 중요하니까요. 같은 시대에 일어난 사건들을 어떤 순서로 이야기하는 게 좋을지, 그리고 비슷한 연대의 사건들은 어떤 스토리 안에서 녹여내는 게 좋을지 고민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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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역사책을 고르는 방법


『용선생의 시끌벅적한 한국사』에는 다른 교과와 관련된 내용들도 실려 있습니다. 역사가 시대별 예술과 생활상을 이해하는 데 기초가 된다는 점에서 중요한 부분인데, 동시에 일반적인 역사서들이 간과하는 부분이기도 하죠.


그렇죠. 역사 영역에 조금 더 집중하려다 보니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 다른 분야의 이야기 안에도 역사가 다 들어있고, 역사 안에서 다 나온 것이잖아요. 그런 이야기가 전부 빠져버리면 역사가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특히 아이들에게는 더 그렇죠. 일례로 조선시대의 각 분야를 조금씩은 이해해야만 조선이라는 모습이 그려지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다른 분야의 이야기들을 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물론 한정된 지면 안에서 역사에 집중해야 하니까 많이 다룰 수는 없지만 용선생의 시끌벅적한 한국사』에서는 최대한 많이 다루고 싶었어요. 처음 집필을 시작할 때부터 생각했던 부분이에요.

 

『용선생의 시끌벅적한 한국사』를 집필하시면서 역사에 대한 관점이 달라지기도 하셨나요?


한 번 정리된 역사는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바뀌었죠. 최근의 역사는 해석의 여지가 많고 특히 공과가 드러나기 위해서는 지켜봐야 되는 측면들이 있으니까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요. 그보다 오래된 시대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잘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역사학자 분들을 만나서 말씀을 듣고 공부를 하면서, 예전의 역사들도 계속 흐름에 따라서 변하고 있다는 걸 많이 느꼈어요. 역사에 대한 해석, 역사를 정리하고 기술하는 방식이 지금 우리의 현실에 따라서 바뀌어 가고 있는 거죠. 그것이 당연하다는 생각도 들었고, 재미있으면서도 좋았어요. 이건 욕심이긴 하지만, 아이들이 이런 책을 두어 번 정도 읽고 흐름을 이해하고 나면 그런 느낌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역사라는 건 뭐지?’라고 질문해 보는 거죠. 그건 결국 인류가 살아왔다는 것이 무엇이냐 라는 거시적인 질문이기도 하잖아요. 그런 걸 크게 조망할 수 있는 느낌을 가지면 좋을 것 같아요.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2017년부터 한국사가 수능 필수과목으로 지정됐습니다.

 

교육 정책이란 건 바뀔 수 있는 일이기는 하지만 역사가 비중이 떨어지는 과목이면 안 될 것 같아요. 실제로 그런 일도 없을 것 같고요. 역사를 배워야만 하는 게 큰 흐름인 것 같거든요. 근현대사 이후에 풀지 못한 문제들도 있고, 지금까지와 달리 이제는 외면할 수 없는 시기가 더 다가오는 것 같아요. 그래서 역사는 더 중요해지지 않을까 싶어요. 전 세계에서 지켜보는 문제이기도 하고 큰 나라들이 연관되어 있는 문제도 있잖아요. 그래서 역사는 더 중요해질 것이고 더 잘 배워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입시 대비라는 이유를 차치하고서라도, 역사를 배우고 알아야 할 이유는 늘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시험을 위해서 역사를 공부한다는 게 아름다운 방식이 아니긴 하지만 중요한 일면도 있는 것 같아요. 역사를 잘 몰랐던 세대가 있고, 그 중에는 근현대사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어떻게 보면 정책의 피해자인 거죠. 그래서 정책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현재 일본에 머무르고 계신데요. 한국 사람들이 우려하는 것처럼 극우화가 심각하다고 느끼시나요? 실제로 일본의 청년 세대가 역사에 대해 많은 부분을 모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네. 학교에서 많이 가르치지 않으니까 잘 몰라요. 우리 사회에도 왜곡된 역사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있고, 평범한 정도의 상식을 가진 사람이 그들을 볼 때는 ‘제정신을 가진 사람이야?’라고 생각되잖아요. 그런데 어느 사회건 ‘어떤 지식을 어떤 시기에 어떤 방식으로 접하느냐’에 따라서 충분히 가능한 일이에요. 그래서 역사가 중요한 것 같아요. 일본의 어른들 중에도 학교에서 역사에 대해 많이 가르치지 않으니까 역사를 모르는 경우도 있어요. 메이지 유신 시대처럼 일본의 중요한 시기나 선전하고 싶은 시기를 전후해서 멋진 나라가 되었다고만 이야기할 뿐, 그 뒤의 이야기는 많이 생략해서 가르치는 방식이죠. 그 방식에도 왜곡이 많고요.

 

『용선생의 시끌벅적한 한국사』를 집필하시면서 ‘아이들에게 한국사를 잘 가르쳐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나름의 답을 찾으셨을 것 같습니다.


 

답이라면 좋은 책을 주는 거죠(웃음). 사실 부모님이 아이들에게 역사를 가르치기가 쉽지 않아요. 저도 이 책을 쓰지 않았다면 아이가 묻는 역사적인 질문에 잘 대답하지 못했을 거예요. 그래서 아이에게 좋은 책을 다양하게 주고, 가능하면 부모도 함께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처음에는 쉬운 역사책을 권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어휘력이 앞서가는 아이들은 청소년도서를 읽으면서 재미를 느끼기도 하지만, 그건 첫 단계는 아닌 것 같아요. 처음에는 흐름을 잡을 수 있는 쉬운 책을 읽히면 좋을 것 같고요. 꼭 아셔야 하는 건, 아이들이 쉽게 선택해서 끝까지 읽는다고 해서 쉬운 책은 아니라는 거예요.

 

그렇다면 쉬운 책을 고르는 방법이 있을까요?

 

역사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의 도서들도 마찬가지일 텐데요. 캐릭터가 있고 스토리가 재미있고 말이 쉽다고 해서 충분하지는 않죠. 아이들은 성장 단계별로 개념화와 추상화를 배워 가요. 그 단계에 맞춰서 훈련시키면서 다음 단계로 이어지게 만드는 책이 쉬운 책이죠. 엄마가 아이에게 줄 책을 고를 때 ‘아이가 좋아하겠다, 끝까지 읽겠다’라는 기준만 가지고 쉬운 책이라고 판단하지 말고 ‘아이가 내용을 잡아가는 데 훈련을 시킬 수 있는 책인가, 책을 통해서 개념화를 스스로 해 나갈 수 있는가’를 고려하셨으면 좋겠어요. 저 역시 『용선생의 시끌벅적한 한국사』를 집필하면서 딸아이에게서 팁을 얻었어요. 그 시기의 아이들에게는 어떤 방식으로 설명해줘야 개념화시키고 이해시킬 수 있는지 알게 된 거죠.

 

작가님의 다음 작품은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아이들에게 꼭 필요하지만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은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요?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쉬운 책은 출간되지 않은 분야가 많은 것 같아요. 그렇지만 제가 그걸 다 쓸 수는 없고요(웃음). 책을 만드시는 분들이 더 심혈을 기울여 주실 것 같아요. 저는 아이들의 가치관을 잡아주면서 재미도 있고 마음을 울리는 책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요. 쉽지 않은 이야기이지만, 우리 아이가 그런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그 책의 주제가 무엇이 될지, 어떤 구상으로 할 수 있을지, 제가 과연 할 수 있을지, 지금은 잘 모르겠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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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선생의 시끌벅적 한국사 9권 세트김우택,금현진 공저/이우일 그림/세계로 기획 | 사회평론
이 책은 서울대 대학원의 젊은 역사학자들과 학계 각 시대 각 분야의 권위자들이 수차례 글과 구성을 검토하고 다듬었습니다. 그동안 비판 없이 반복되던 낡은 사관과 오류를 바로잡고, 최신 연구 성과를 빠짐없이 반영했습니다. 우리 역사를 과장하지도 않고 깎아내리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려 노력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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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믿고 듣는 ECM 앨범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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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 재럿, 팻 메시니부터 비제이 아이어까지. ECM은 프로듀서 ‘만프레드 아이허’를 주축으로 다양하고 아름다운 음악을 우리에게 전해주었다. 클래식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깊이 있는 연주와 사운드, 다양한 변주가 유럽을 지나 이곳까지 날아온 것은 많은 국내 음악 애호가들에게 진정 축복이었다. ECM만의 풍성하고 완벽에 가까운 사운드는 ‘ECM’이라는 이름을 ‘믿고 듣는’ 레이블로 만들었다. 2013년에는 ECM으로서도 드물게 전시와 페스티벌을 한국에 개최하며 더 많은 사람들에게 ECM을 알렸고 정명훈과 신예원 등 국내 뮤지션들의 음반이 ECM에서 발매되며 더 가까이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다.

 

ECM 앨범 33장을 소개한 『ECM TRAVELS』의 저자 류진현은 『오리건(Oregon)』을 처음 듣고 ECM에 완전히 빠져들었다. 일찍부터 음악을 좋아했지만 ECM이 들려주는 소리에 반해 지금은 ECM을 한국에 소개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다. 아름다운 선율은 물론이고 예상치 못한 악기와의 만남까지 ECM의 도전과 완벽에 가까운 소리는 저자를 늘 매료시켰다. 한 국내 뮤지션이 커버만 보고 음반을 구매한 적이 있다고 할 정도로 감각적인 음반 커버 또한 ECM 감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언젠가 ECM의 모든 카탈로그를 수집하는 게 목표라고 말하는 저자 류진현, 그가 꼽은 ‘ECM의 명반 33’이 기대되는 이유다.

 

ECM 음악이 주는 특별한 느낌


우리 문화적 토양이 참 협소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새로운, 좋은 음악에 대한 욕구는 있지만 이런 계기가 아니면 접하기 힘든 부분이 많아요. 먼저 ECM에 대해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 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ECM은 쉽게 얘기하면 독일에서 탄생한 재즈와 클래식 음악 레이블입니다. 세계적인 뮤지션들, 예를 들어 키스 재럿이나 팻 메시니 같은 분들이 앨범을 내면서 레이블이 서서히 성장을 해왔고요. 현재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아 있으면서 가장 유명한 대형 레이블입니다. 한국에서도 많은 분들이 좋아하시지만 아직 그렇게 대중적이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최근 국내 전시 등으로 더 많이 알려진 것 같던데요?


네이버에 음원 소개가 되고 유희열 씨 같은 분들이 코멘트를 하면서 조금 더 한국에 소개가 됐고요. 저는 ECM 음악을 80년대부터 알았는데 사실 그 전부터 굉장히 많은 분들이 좋아하시던 레이블입니다. 안타깝지만 국내 라디오에서 팝이나 재즈 프로그램이 거의 사라지고 다른 데서 접할 곳이 없어요. 해외에서는 아직도 생명력 있게 활동하는 레이블인데 한국에서는 왠지 모르게 애호가의 전유물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음원을 배포하면서 한 번 소개가 됐고요. 독일을 제외하고는 얼마 없는 일인데, 2013년 한국에서 전시, 페스티벌을 하게 되면서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주시고 있습니다.

 

전시가 흔한 일은 아닌가 보군요?


작은 규모로 동호회 사이에서 펼쳐진 적은 있었지만 ECM에서 공식적으로, 허가를 받아 전시를 한 건 거의 한국이 두 번째 아니면 세 번째인 것 같아요. 당시 정명훈 선생님이 ECM과 계약을 하면서 다른 ECM 아티스트들도 소개할 수 있는 작은 페스티벌을 해보자고 처음에 얘기를 했었습니다. 부속 행사로 ECM을 이야기할 수 있는 전시회를 해보자고 생각 했던 것이고요. 그런데 한국에서 전시를 맡게 된 GLINT 분들께서 오히려 더 생각을 많이 하셨죠. 아예 새로운 것을 만들어 보자는 생각으로 전시를 시작하게 돼서 2013년에 성공적으로 행사가 진행된 것 같습니다.

 

가장 선물하기 좋은 앨범으로 키스 재럿의 《The Melody A Night, Without You》를 꼽으셨어요. 이 앨범의 어떤 면이 대중들에게 편안하게 전달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ECM 음악은 정적인 것들이 많고 멜로디라기보다는 면에 가까운 그런 느낌인데요. 키스 재럿 같은 경우 트리오와 즉흥연주를 하는 솔로 콘서트가 있습니다. 솔로 콘서트 같은 경우 어떤 것은 20~30분짜리 한 곡으로 앨범이 이어져있고 그러다보니까 처음 들으시는 분들이 따라가기는 힘들어요. 반면 이 앨범의 멜로디는 다르죠. 키스 재럿이 등이 상태가 안 좋아요. 공연에 항상 마사지사가 동행했습니다. 공연 시작 전, 쉬는 시간, 끝난 후에 계속 마사지를 받고 그러면서 아픈 몸으로 공연을 하는 거예요. 이 앨범을 내기 전 3년 간은 등이 아파 공연을 못했습니다. 《The Melody A Night, Without You》는 이 사람이 휴식하면서 자기 집에 있는 스튜디오에서 무리하지 않고 만든 앨범이에요. 20~30분 연주해야 한다는 강박이나 이런 게 없지 않을 수 없잖아요. 아무리 천재고 그냥 음악이 나오는 사람이라도 말이죠. 그런 강박 없이 본인이 좋아한 스탠다드 곡 같은 것들을 편안하게 아름답게 연주한 거라 다른 음반들에 비해서 듣기 편한 부분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키스 재럿 하면 굉장히 창조적이고 즉흥적인 연주를 떠올리고 그런 걸 더 좋아하지만요, 키스 재럿은 피아노 음을 굉장히 예쁘게 내는 사람이에요. 똑같은 멜로디를 쳐도 이 사람 손끝에서 나오는 게 음의 울림이나 그런 것들이 굉장히 차이가 나요. 이 앨범도 사실 그냥 들으면 뉴에이지 피아니스트가 쳐도 비슷하겠다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걸 조용히 듣고 있으면 음을 치면서 울려 나가는 느낌이 굉장히 특별한 느낌을 주죠. 

 

키스 재럿의 《The Koln Concert》는 개인적으로 두통약으로 쓸 정도라고 하셔서 특히 관심이 갑니다. 저자에게 단연 특별한 앨범인 것 같아요.


쾰른은 굉장히 특별한 앨범인데요. 일단 피아노 솔로 앨범으로 제일 많이 팔린 앨범이기도 하고요. 물론 그 전에도 피아노 솔로가 있었지만 그렇게 피아노 솔로로 한 공연을 녹음해서 앨범을 내려는 시도는 없었어요. 공연 당시 컨디션도 안 좋았고, 피아노 상태도 안 좋았고, 온갖 악조건을 뚫고 나온 판인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게 굉장히 명곡이 됐습니다. 음악 안에 그런 기(氣) 같은 게 담긴 것 같아요. 안 좋은 상황에서 뭔가 더 쌓아 올려가며 더 아름다운 작품으로 만들어가기 위한 힘 같은 게 담겨 있어서 말이죠. 꼭 그런 이유는 아니겠지만 개인적으로 이걸 쭉 듣고 있으면 머리가 아픈 걸 잊어버려요. 음악에 너무 빠져들다 보니까요. 그러다보면 낫고요.(웃음) 머리 아플 때마다 듣는데 기분이 굉장히 상쾌해지고 그렇더라고요. 그래서 요즘도 그러고 있어요.

 

 

 

형식은 전혀 중요하지 않아


책에 등장하는 뮤지션들의 면면을 보면 출발이 클래식인 경우가 종종 있더라고요. 아무래도 그런 음악적 영향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죠. 어떻게 보면 유럽과 미국에서 재즈를 대하는 느낌에 차이가 많이 났던 부분도 그런 부분입니다. 미국 재즈 같은 경우 1900년대 전반에 성장을 하면서 정규교육을 받은 연주자들보다는 어린 나이에 피아노를 쳐보고 클럽에 뛰어들면서 몸으로 하는 재즈가 체득이 된 경우가 많아요. 그에 비해 ECM을 대표하는 여러 연주자들은 클래식을 배운 이후에 재즈를 접한 것이기 때문에 어찌 보면 기본기가 상당히 잘 돼있다고 할 수 있죠. 미국 재즈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그런 면에서 미국 재즈가 주는 예상치 못한 스윙감 같은 느낌이 덜 하다고 하기도 합니다. 대개 ECM 뮤지션들이 굉장히 안정적고 음악을 전개해 나가는 게 상당히 클래식적인 감성을 많이 담아내는 것 같아요.

 

찰리 헤이든은 특이해요. 정부를 비판하고 저항가요를 연주했거든요. 음악을 통한 사회참여라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이들이 재즈 연주자, 음악인이기 전에 한 사람의 세계 시민이니까요. 사실 그런 생각을 가진 연주자들이 굉장히 많은 편입니다. 특히 찰리 헤이든 같은 경우는 70년대 초부터 Liberation Music Orchestra라는 팀을 만들었습니다. 60~70년대에 미국 정부가 라틴 아메리카에 개입을 많이 하면서 그쪽 좌익 정권을 쓰러뜨리는 데도 참여를 했잖아요. 뮤지션들, 특히 찰리 헤이든이 이런 부분을 옳지 않다 생각해서 라틴 아메리카의 문제를 고발하는 음악을 하게 된 거죠. 곡 역시 찰리 헤이든이 작곡한 곡들도 있지만 원래 라틴 아메리카에서 부르던 혁명가요라든가 민중가요 같은 게 있어요. 그런 곡들은 아무래도 재즈하고는 많이 다른 멜로디죠.

 

ECM 음악의 가장 큰 미덕이라면 무엇보다 ‘자유로움’일 것 같아요. 형식에 있어서도 이국적인 악기 사용, 보컬의 악기적 표현 등 경계가 없는 것 같습니다.


프로듀서이자 창립자가 만프레드 아이허인데요. 재즈나 클래식 이런 것들이 그분한테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고 해요. 형식 보다는 누구와 누가 만났을 때 어떤 음악이 나올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한다고 해요. 재즈 뮤지션이니까 누구와 만나면 크로스오버가 되고, 이런 건 절대 생각 안한다고 하더라고요. 단지 자기가 들었을 때 ‘이 음이 누가 연주했던 음악과 정말 잘 어울릴 것 같은데?’ 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한 번 만들어보는 거죠. 연주자들은 아무래도 가까운 사람과 연주하는 게 편하고 항상 해오던 사람들도 있고 그렇잖아요. 그게 오래 쌓이면 너무 똑같은 것만 하는 느낌이 있을 수 있습니다. 만프레드 아이허란 프로듀서는 늘 이걸 형식과 상관없이 재미있게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을 하고, 그렇게 만들었던 것들이 실제로 상당히 반응도 좋고, 그러다 보니까 이 레이블 전체에 활성화가 된 거죠.

 

만프레드 아이허의 존재감이 엄청난 것 같아요.


사실 ECM보다 중요한 이름이 만프레드 아이허입니다. ECM을 이 사람이 처음 만들 때 이 사람은 돈도 없고, 콘트라베이스를 연주하면서 레코딩 프로듀서로 일한 경험 정도 있었을 뿐이에요. 당시 유럽에는 아직 재즈를 찾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재즈란 음악이 1910, 20년대에 대중음악으로 시작을 했고 당시 미국에 다른 대중음악은 없었어요. 엘비스 프레슬리 등장과 더불어 50, 60년대에 재즈가 비교적 예술적인 음악이다 이렇게 됐지, 사실 30년대를 보면 대중음악은 거의 스윙재즈입니다. 그러니 재즈 뮤지션들이 굉장히 많았는데 비틀즈, 엘비스 프레슬리가 등장하고 이러면서 이 사람들이 어려워졌어요. 그러면서 많은 재즈 뮤지션들이 유럽으로 갔습니다.


또 미국에서는 60년대 말부터 퓨전 재즈, 그러니까 록과 재즈를 섞은 음악들이 성공하기 시작해요. 미국의 유명 재즈회사들이 다 그런 쪽으로 하게 됐죠. 키스 재럿 같은 사람도 그런 요구를 받다 보니까 차라리 ECM과 같이 일하는 게 낫지 않겠냐라고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유럽에서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고유의 정체성을 가진 재즈를 만들어 보자는 만프레드 아이허의 아이디어에 키스 재럿, 칙 코리아 같은 이름 있는 연주자들이 동참을 한 거죠. 만프레드 아이허는 ECM의 거의 모든 앨범을 프로듀서 했습니다. 하나도 다른 사람을 시키질 않아요. 녹음, 마스터링, 커버까지 CD가 완전히 나올 때까지 모든 걸 다 합니다. 디자이너가 말하기를 어떤 판은 400번 이상 컨펌 받은 적도 있다고 해요. 글씨의 위치, 크기 하나하나에 모든 정성을 다 쏟는다고 합니다. 그러니 좋은 것들이 많이 나올 수밖에 없고 음악적으로나 커버나 퀄리티가 계속 유지되는 거죠. 저희가 농담처럼 이야기하는 게 만약 이 사람이 죽으면 어디로 갈 것이냐(웃음)고 해요. 죽지 말고 100세까지 열심히 해주시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어요.

 

열정도 대단한 분인 것 같네요. 


한국에 왔을 때도 그런 모습을 봤어요. 그분이 불교나 선 문화에 관심이 많다고 들어서 일주일 넘게 있었으니까 한국에 오면 가까운 절이라도 구경갈 줄 알았어요.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면 무조건 전시장으로 나와요. 인터뷰를 하거나 전시장 돌아보고, 온종일 있다가 오후 되면 공연장 가서 사운드 체크하고, 끝나면 아티스트들과 저녁 먹고 호텔로 오고, 그런 생활의 반복이었어요. 관광, 쇼핑 이런 건 전혀 관심 없어요. 어떻게 ECM이 한국에서 좀 더 정확하게 알려지냐 그런 것밖에는 말이죠. 제가 독일에 갔을 때 주말에 한 번 ECM 사무실에 갈 때가 있었는데 회사에 있는 사람은 그 사람밖에 없었어요(웃음). 녹음하러 갈 때만 사무실에 없다고 해요. 아픈 것도 없고, 쉬는 것도 없고, 휴가도 없고 무조건 사무실 아니면 녹음, 둘 중 하나라고 하더군요.

 

경영자와 음악가가 완전히 분리된 레이블에 대해서도 잠깐 언급했는데요. 장단점이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재즈는 굉장히 자유로운 음악이기 때문에 뮤지션들이 하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하는 게 제일 좋지 않으냐는 얘기도 있습니다. 그래도 이런 부분은 있는 거죠. 본인이 하고 싶은 음악을 자유롭게 해도 누군가 거기에 대해 좋은 제안을 해줘서 더 좋은 성과가 나올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걸 만프레드 아이허가 하는 거예요. 어떻게든 가이드를 해줬더라면 더 좋은 음악이 나오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연주자들도 몇 명 있어요. 이름을 말할 순 없지만 어떤 유럽 연주자는 본인이 프로듀서를 하는데, 피아노도 잘 치고 멜로디도 정말 잘 만들지만 그간 낸 앨범 다섯 장 컨셉이 전부 왔다 갔다 하는 경우가 있어요. 어떤 앨범은 괜찮다가 다른 앨범은 뭘 하려고 한 건지 의아하고요. 만약 ECM에서 가이드를 받고 음악적 방향을 설정했더라면 지금 있는 위치보다 더 성숙하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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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FFRAMP> 앨범 커버 이미지

 

“ECM 앨범의 감상은 항상 커버를 보는 것으로 시작한다”(143쪽)라고 하실 정도로 커버아트가 특징적입니다. 책에서도 많이 언급하셨지만 ECM만의 커버아트 철학이랄까, 일관된 정체성이 있을까요?


‘음악과 어울리는 커버를 만들자’고 능력 있는 디자이너들께서 노력하는 건데요. 만났을 때도 이야기를 하시는 게, 디지털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음악은 커버를 보고, CD를 꺼내고, 속지를 읽어보면서 곡을 살피는 모든 게 다 음악 감상인 거지 단순히 컴퓨터를 틀고 음악이 나온다고 그게 음악 감상은 아니라는 거예요. 특히 자신들이 만들어낸 작품들은 모두 의미가 있는 거지 괜히 어떤 것을 끼워 넣은 게 아니라고도 했어요.


ECM 커버에 변화가 있었는데요, 처음 69년에 나타났을 때는 LP시대였잖아요. 그때는 그림을 많이 썼어요. 80년대 후반, 90년대에 LP를 그만하기 시작하면서는 디자인의 중심이 좀 바뀐 거죠. 작은 CD 커버에 옛날에 LP에 넣었던 그림을 담으려니 느낌이 아무래도 달라지니까요. 예전에는 커다란 회화였는데 세밀화가 되어 버리니까요. 그래서 방향이 바뀐 거죠. 가장 최근에는 사진 등을 사용해서 레이블의 정체성을 표현하고 있는 거죠.

 

사진을 말씀하셨는데, 책 커버 역시 ECM의 느낌을 잘 반영한 것 같아요. 안웅철 작가님의 사진인데요.


안웅철 작가님이 워낙 ECM을 좋아하세요. 그분이 찍은 사진이 ECM 커버로도 사용됐고요. 작가님이 ECM에 대해서 무척 애정을 가지고 계시고 저희 쪽과도 잘 알고 그래서 한국에서 공연할 때는 항상 안웅철 작가님께 부탁을 했었습니다. 그런 부탁 없어도 외국에 나갔을 때 ECM 공연이 있다고 하면 어떻게 가서든 찍으시더라고요. 언젠가 그분과 ECM 아티스트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첩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커버도 그래서 안 작가님 사진 중에서 골랐어요. 이런 느낌의 사진들이 ECM에서도 많이 있어요. 하늘과 땅을 담은 사진들이요. ECM에서도 좋아하는 느낌의 사진이라 사진 자체는 ECM 앨범에 그대로 실어도 무리가 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책도 책이지만 ECM의 정체성과 가장 어울린다고 생각해서 이 사진을 골랐어요.

 

일본의 월광다방을 설명하면서 ‘언젠가 완벽한 카탈로그를 완성하는 것이 목표’라고 하셨어요.

 
십 년만 일찍 태어나으면 하는 생각을 해요. ECM 앨범들이 한국에 많이 들어올 때가 80년대 초반인데 그때 제가 너무 어렸어요. 중학교 들어가고 할 때라 수입 앨범들을 사 모을 형편이 못 됐거든요. CD로 나온 것들은 대충 다 가지고 있는데 70년대에 나온 ECM 앨범 중에 CD화가 안 된 작품들이 있어요. LP로만 있는 작품들은 진짜 고가의 중고판을 뒤져서 사 모아야 하죠. 지금도 어디 갈 때마다 살피긴 하는데 저도 직장이 있는 몸이니까 남는 시간 쪼개서 하나 두 개씩 사 모으고 있습니다.


월광다방 사장님은 정말 별 걸 다 모으셨더라고요. 70년대에 방송국에 보도자료로 썼던 비디오테이프 같은 것들까지 다 모으셨더라고요. 이걸 어디서 구했냐 했더니 돈 많이 썼다고 하시더라고요.(웃음)

 

가지고 계신 희귀앨범이나 앨범을 찾아 헤맸던 추억이라든지 들려주실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제일 찾아헤맸던 게 ‘sun bear concert’라고 있어요. CD는 여섯 장 짜린데 LP는 열 장짜리거든요. 한국에서 구하기 힘들어서 일본에서 열심히 뒤졌죠. 우연히 공연이 있어서 요코하마에 갔다가 근처 중고음반점에서 적당한 가격에 파는 걸 발견했어요. 상당히 무거웠지만 기쁘게 사왔죠. 전시하면서 ECM에 요청도 했는데 ECM 본사에도 없는 앨범들이 많았어요. 본사에 모든 게 하나씩 꽂혀 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더라고요. 아직 젊으니까 언젠가 모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웃음)

 

LP와 CD가 얼마나 다른가요?


아날로그 LP의 느낌이 있어요. LP를 CD로 만들면 담을 수 있는 정보량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폭을 줄여요. 그 부분은 사람이 들을 수 없는 소리거든요. 가청범위를 넘어가는 것들이니까 잘라도 아무 영향이 없다고 이야기를 해요. LP를 아주 괜찮은 느낌의 시스템에서 들으면 그게 들리는 건지는 몰라도 느낌이 달라요. 음을 이야기하는 게 굉장히 힘든데요. 이론상으로는 파일로 들어도 아무런 상관이 없죠. 못 듣는 소리니까요. 하지만 좋은 공간에서 좋은 기계로 들으면 정말로 확연 느껴지는 게 있어요. 아무래도 CD로 들을 때는 좀 따뜻한 느낌 같은 것들이 없어지고 심플해지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자연스러운 사운드가 특히 MP3로 하면 아무래도 좋지 않겠죠. 사실 CD로만 들어도 괜찮을 것 같아요. 저는 디지털로는 안 듣습니다. 편하긴 하지만 좋지는 않은 것 같아서요.

 

추운 겨울 차가운 바람에 얼어버린 하늘의 별들이 모두 내게로 쏟아져 내려오는 듯했다. 가바렉이 직접 연주한 영롱한 키보드에 마주르와 카체의 야성적인 타악기 연주가 가세한다. 여기에 가바렉의 트레이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고음의 매끄러운 색소폰이 하늘을 가로지른다. 마치 열두 개의 달에서 뿜어나오는 빛의 고리가 어두운 하늘을 가로지르는 모양이다. (97쪽)

 

사운드에 공을 많이 들인다는 느낌입니다. 공연실황 사운드에도 깜짝 놀랐어요.


내한공연 당시 세종문화회관에서 솔로 콘서트 녹음을 한 적이 있어요. ECM은 공연 녹음을 할 때 꼭 관객석 2층 위에서 마이크를 내려 거기서도 소리를 잡아요. 보통 천장에 꽂는 게 있어야 하는데 세종문화회관에는 꽂는 게 없었어요. 한국 엔지니어들이 대안으로 2층에 마이크를 세워서 녹음을 하자고 했는데, 키스 재럿과 같이 온 엔지니어가 그건 죽어도 안 된다고 하는 거죠. 300미터짜리 줄을 구해서, 밑에서 들고 올라와서, 천장에 연결해서, 거기서 내려서 녹음을 했습니다.(웃음) ECM은 원하는 사운드를 구현하기 위해서 녹음할 때 타협이 없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 경험한 바대로 제일 좋았던 걸 해야지 마이크대를 세워서 위치 똑같이 하면 어떻겠느냐 하는 건 말도 안 되는 거예요.

 

ECM이 굉장히 독특한 게 프로듀서부터 일하는 사람들, 뮤지션들까지 다 생각이 그래요. 돈을 좀 버릴 수 있고 그렇다고 해도 타협이란 게 없는 거죠. 만프레드 아이허가 처음 레이블을 만들 때부터 레이블을 만들어서 돈을 벌겠다 생각을 했으면 이렇지 않았을 겁니다. 사무실이 뮌헨인데 항상 녹음하러 오슬로까지 가거든요. 그럴 필요가 없잖아요. 그냥 뮌헨 아무데서나 녹음하면 되죠. 이 사람은 처음부터 큰돈을 모을 생각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냥 이 앨범을 녹음해서 다음 앨범을 녹음할 수 있을 정도의 돈만 벌 수 있으면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생각으로 작게 시작한 게 1,500장까지 나올 수 있게 된 거고요. 항상 똑같은 퀄리티를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안 되면 될 때까지 하고 말이죠.

 

음악을 국가나 지역에 따라 구분하거나 거기에서 차이를 찾는 건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는데요, 이탈리아의 관현악 경향을 이야기하시는 걸 보면 아무래도 경향성이라는 게 있긴 한 것 같습니다.


이탈리아는 유명한 게 성악이잖아요. 유명한 성악가도 많고요. 그러다보니 피아노 보다 목을 쓰는 악기들, 트럼펫, 트럼본, 이런 것들이 아무래도 좀 더 발달을 한 것 같습니다. 노르웨이 같은 데는 해가 별로 없어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밝은 느낌 보다는 어두우면서 서정적인 느낌이 많이 들어가는 음악을 해요. 프랑스는 너무 크니까 여러 가지 측면이 있지만 그곳은 전통 자체가 집시 재즈의 영향을 받아서 다른 데보다 집시 재즈 스타일의 음악을 하고요. 독일은 재미있는 게, 너무 클래식이 강해서 그런지 몰라도 재즈 쪽에 유명한 사람들이 별로 없어요. 독일은 일단 잘한다 싶으면 클래식 쪽으로 가는 것 같아요. ECM은 독일 레이블인데 독일 연주자들이 별로 없어요.(웃음) 뉴시리즈 통해서 발표하는 클래식 연주자들은 종종 있는데 재즈 쪽에는 그다지 많지가 않더라고요.

 

앞서 잠깐 언급하셨지만 미국과 유럽의 재즈 양상에 좀 차이가 있었다고 하셨잖아요? 현재 미국 출신 뮤지션들은 얼마나 있나요?


70년대 초반에는 미국 연주자들이 굉장히 많았어요. 그때와 지금이 비슷한 상황이에요. 지금도 소위 메이저 레이블들이 재즈 연주자들을 다 잘라냈어요. 블루노트도 유니버설이랑 합쳐져서 조금 올라가고 있지만 워너 재즈는 아예 없어졌고요. 미국의 재즈 음악 시장이 예전보다 작아지니까 좋은 연주자들이 유럽으로 와서 많이 활동을 하는 편입니다. 70년대도 똑같았잖아요. 한창 록, 메탈 전성시대로 가는 시기에 재즈가 돈이 안 되니까 연주자들이 유럽 레이블에서 많이 발표를 한 거거든요. 70년대 중반까지 ECM에서 미국 연주자들이 많이 작품을 냈다가 다시 미국 재즈 시장이 살아나면서 미국으로 돌아간 거죠. 70년대는 유럽 연주자들이 오히려 많지 않았어요.


ECM 안에서 유럽 연주자와 미국 연주자의 차이를 둘 수도 있겠지만 더 나타나는 차이는 ECM에서 내는 연주자와 그렇지 않은 연주자의 차이입니다. 왜냐면 다른 레이블에서 내는 미국 연주자들은 미국에서 할 때와 똑같은 음악을 하니까 굉장히 흑인풍의 음악을 하는데요, ECM은 그런 음악 중에서도 더 진지하고 생각할 수 있고 아방가르드한 음악들을 주로 하거든요. 그런 부분에서 느낌이 다른 것 같아요.

 

사실 ECM을 떠난 뮤지션들에 대해서도 ECM 시절을 더 많이 기억하는 부분도 있잖아요?


대표적인 게 팻 메시니인데 그분은 ECM 떠나서도 잘 됐으니까요(웃음). 이 이야기를 다시 해야 하는데요. ECM을 떠난 연주자들은 결국은 본인이 프로듀서를 하잖아요. ECM에 있을 땐 만프레드 아이허가 프로듀서를 하고요. 그 차이가 좀 있습니다. 그런 불만 때문에 떠났을 수도 있어요. 나가서 한 음악도 나쁘지 않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요. 음악에 우열이 있나요. 팻 메시니 같은 경우도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죠. ECM, 유럽 레이블에서만 활동하기에는 너무 위상이 높아졌으니까요. ECM에서 마지막으로 낸 세 장이 모두 그래미를 받고, 미국 쪽에서 오퍼도 더 좋은 걸 불러오고, 음악도 더 자유롭게,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한 거죠. 근데 저는 사운드는 확실히 이쪽 것이 좋아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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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음반 더 소개하고 싶어


33개의 앨범을 소개하셨는데 아쉬움이 있으실 것 같아요. 

 

33개 앨범은 제가 제일 좋아한 앨범을 골랐습니다. 처음 계획은 세 파트로 나눠서 열한 장 씩 맞추자고 했었는데요, 하다 보니 한쪽에 더 소개해야 하는 앨범들이 생겼어요. 편집자께서도 그런 부분을 이해해주시고 제일 중요하고 좋은 앨범들을 싣자고 해서 지금의 구성이 됐습니다. 그래도 아쉬워서 뒤쪽에 간략하게 더 넣었고요. 마음 같아서는 100개 하고 싶지만 33개 쓰는 것도 힘들어서 100개를 쓰는 건 너무 힘들 것 같았어요(웃음).


만프레드 아이허가 처음에는 재즈를 중심으로 했죠. 목표한 게 재즈 음악을 클래식 녹음 방식으로 다루자고 했던 거니까요. 그러다가 아르보 패르트라는 작곡가를 알게 됩니다. 아르보 패르트가 지금처럼 유명하지는 않은 상황이었는데 이 사람을 소개하려니까 지금 ECM이 가진 재즈라는 틀에서 벗어나야겠다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뉴시리즈가 탄생했습니다. 이것도 평범한 사람이라면 ‘ECM 클래식’이라고 이름 붙였겠죠. 그러나 아이허 생각에 뉴시리즈는 클래식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어요. 이런 음악을 들으면서 누가 클래식이라고 하겠어요. 그렇지만 재즈와 클래식을 나누는 게 그 사람에게는 의미가 없는 거죠. 뉴시리즈는 기존의 재즈가 아니라 새로운 음악이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ECM의 가장 큰 매력은 뭘까요?


어떻게 보면 재즈 연주라는 게 그냥 들어보면 똑같은 음악이 계속 나오는 느낌이 있잖아요. 물론 재즈 연주에서 제일 중요한 건 거기서 어떻게 연주를 잘하느냐, 즉흥 연주를 어떻게 하느냐 이런 것도 중요하겠지만 말이죠. ECM은 여러 가지 새로운 느낌들을 가미해요. ECM이 아니면 별로 들어볼 일이 없었던 그런 음악들을 끊임없이 들어볼 수 있으니까 그게 굉장히 매력적인 부분입니다. 여러 재즈 레이블을 듣고 있지만 ECM만큼 이렇게 다양한 음악을 내면서도 퀄리티는 유지하는 곳이 많지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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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M TRAVELS 새로운 음악을 만나다류진현 저 | 홍시커뮤니케이션
최고의 아티스트, 최상의 프로듀싱과 레코딩, 예술작품으로 인정받는 앨범 아트워크가 빚어낸 아름다운 걸작들의 탄생 스토리. 이 책은 그가 고른 명작 음반 33선에 대한 산문이며, 그가 만나고 경험한 ECM의 모든 것들(아티스트, 프로듀서와 엔지니어, 공연과 녹음 현장) 사이에 존재하는 아름다운 비밀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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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죽음을 맴도는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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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장례기획전문가입니다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 일들이 있다. 세월이 지나도 경험이 쌓여도 매번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 이별이 꼭 그렇다. 아픔이 무뎌지지 않는 까닭에 언제나 무너져 내리기 일쑤다. 그 중에서도 가장 절망적인 것은 기약 없는 이별이다. 살다보면 우연히 스치는 날도 있겠지, 라는 막연한 기대마저 무색하게 만든다. 그래서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한다. 죽음만큼 확고한 이별의 전언은 없기 때문이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몸서리치고 입 밖에 내는 일조차 두려운 이유는 그래서일 것이다.

 

『불리한 청춘은 있어도 불행한 청춘은 없다』의 저자 이정훈은 죽음의 곁을 맴도는 사람이다. 추모의례전문기획사 ‘중앙의전기획’의 대표로서 그가 하는 일은 다른 이의 죽음을 기획하고 연출하는 것이다.

 

“저희 회사를 장의사나 상조회사로 오해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세요. ‘장례기획전문가’라는 직업이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아요. 상조회사와 다른 점이 있다면, 저희 일은 ‘대상자’가 임종한 이후부터 시작되지 않습니다. 아직 살아계신 분이기 때문에 ‘고인故人’이라고 지칭하지 않고 ‘대상자’라고 이야기하는데요. 보통은 돌아가시기 수개월 전부터 준비를 시작하고 그보다 더 긴 시간이 소요될 때도 있어요. 회사 차원에서 장례를 치르는 ‘회사장’ 같은 경우가 그렇죠.”

 

이정훈 저자와 인연을 맺는 대상자들 대부분은 기업의 경영자, 배우, 공직자 등 유명인이다. 이른바 ‘VIP’라 불리는 사람들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것인데 여타의 상조회사들과 가장 차별화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VIP를 대상으로 하는 장례 사업이 별도로 존재한다는 사실은 조금 씁쓸한 기분을 안겨주기도 한다. 죽는 순간까지도 불평등한 현실을 떠올리게 되는 까닭이다.

 

“성공과 부와 명예를 가진 사람만이 VIP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런 것들 없이도 훌륭한 삶을 사시는 분들이 많이 계시잖아요. 저에게는 그분들 모두가 VIP예요. 그래서 그분들이 세상을 떠나실 때 더 준비된 모습으로 의미 있는 시간을 가지면서 배웅해 드리고 싶어요. 실제로 관련 단체들과 연계해서 그런 분들을 위한 장례를 기획하고 있기도 하고요.”

 

저자의 손끝에서 탄생하는 VIP 장례는 ‘고인다움’이라는 네 글자로 요약된다. “한 인물의 이름 석 자에 담긴 그만의 색깔을 찾아 주는 고인다움이야말로 장례기획의 본질이자 핵심”이라는 의미다. 장례를 준비하며 그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대상자에 대한 생애 조사다. 어떤 과정을 거치고 무엇을 선택하며 지금에 이르렀는지 살펴보면 대상자가 가진 고유의 결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 안에는 하나의 존재로서 대상자가 지닌 의미가 들어있다. 그것은 그를 떠나보내야 하는 남은 자들에게도 위안이 될 뿐만 아니라 대상자의 빈자리를 대신할 기억이 된다.

 

내 일의 정확한 정의는 ‘한 사람의 인생을 다시 쓰는 작업’이다. 존경 받고 살아온 한 사람의 인생은 남겨진 자들에게는 그 자체가 교훈이자 배움이다. 그러한 사람의 품격에 맞춰 고인답게 표현해 내는 것이 바로 내 직업의 정체성이다. -『불리한 청춘은 있어도 불행한 청춘은 없다』 218쪽

 

성공과 부와 명예를 가진 사람만이 VIP는 아니라는 저자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실제로 중앙의전기획은 다수의 순직 경찰과 소방공무원의 영결식은 물론 애국지사와 위안부 피해 할머니의 영결식, 민족대표 33인의 추념식을 기획했고 천안함 추모 문화제에 참여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국가적으로 큰 슬픔이었던 세월호 참사 이후 안산에 합동 분향소를 설치했다.

 

“세월호 사건은 워낙 갑작스러운 일이기도 했고 전 국민이 슬픔에 잠겼던 만큼 저 역시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 합동 분향소를 마련하고 그곳에 머물면서 안타까웠던 건, 유족들이나 조문하기 위해 찾아오신 시민 분들의 심신이 많이 지친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잠시 쉴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거예요. 개인적인 고통이 있었다면 비탄에 빠진 사람들의 곡소리를 며칠씩 듣다 보니까 장례가 끝난 뒤에도 한동안 괴로웠어요. 하지만 그런 부분 때문에 일을 하면서 힘들지는 않아요. 그 순간에 오히려 마음껏 우실 수 있도록 도와드리는 게 제가 할 몫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저자가 이야기하는 ‘VIP를 위한 장례’에 대해 들으면서 그가 추구하는 것은 ‘새로운 장례 문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런 준비 없이 사랑하는 이의 임종을 맞고, 어떻게 그를 떠나보내고 기억해야 하는지 모른 채, 3일이라는 주어진 시간을 그저 견뎌내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작별일까. 이곳에 남아있는 사람들이 조금 더 빨리 마음을 추스르고 그 시간을 조금 덜 아프게 견디도록 도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가 실천하고 있는 변화가 대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아직 함께할 수 있을 때 그의 삶을 되돌아보고 죽음의 의미, 떠나는 것과 남겨지는 것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 나눈다면 조금은 고통을 덜 수 있을지 모른다.


죽음을 통해 삶의 의미에 눈뜨다

 

이정훈 저자는 ‘VIP 장례’라는 새로운 사업 분야를 발굴해 냈고 ‘국내 VIP 장례기획 분야 1위’라는 명성도 얻게 되었다. 그러나 그의 성공은 희망이 아닌 절망에서, 가능이 아닌 불가능에서 싹을 틔웠다. IMF를 눈앞에 둔 1996년, 대학에 갓 입학한 그는 집안의 몰락을 지켜봐야 했고 그 여파를 온몸으로 감당해내야 했다. 빚 독촉에 시달리다 자취를 감춰버린 아버지를 대신해 어머니가 생계를 책임졌다.

 

“그때 저는 군대에 있었어요. 대학교 1학년을 마치자마자 자원입대를 했거든요. 사실 아버지 사업이 어려워지기 전에는 장남으로서의 책임이나 의무 같은 걸 크게 느끼지 못했어요. 그런데 군대에서 휴가 나와서 집에 가보니까, 어머니와 제 동생이 난방유가 없어서 차가운 방에서 지내고 있는 거예요. 당시 저희 집에는 수억 원의 빚이 있었고 저는 아직까지도 그 빚을 갚고 있지만, 그래도 쓰러지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가 있다면 그 날의 기억 때문일 거예요.

 

『불리한 청춘은 있어도 불행한 청춘은 없다』에서 저자는 당시를 회상하며 다음과 같이 적었다. “나는 스스로 야생초가 되었다” 비틀거릴지언정 쓰러지지 않고 돌아서서 눈물을 훔칠지언정 자식 앞에서는 미소를 보여주던 어머니가 계셨기에 선택한 일이었다. 그는 돈을 벌기 위해 일본으로 떠났고 고된 노동을 견뎌내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그리고 현지 취업을 목표로 동경디자인스쿨에서 실내디자인을 공부하며 일과 공부를 병행했다.

 

하지만 희망은 잡힐 듯 잡힐 듯 멀어져갔다. 학비를 위해 모아 두었던 돈을 유학생 친구에게 사기당하고 현실로부터 도망치듯 한국으로 돌아온 것이다. 운명은 더 예측할 수 없는 방향으로 그를 이끌었다. 한국에서 취직한 후 오사카 주재원으로 일본을 다시 찾았고 가까운 곳에서 죽음을 목격하게 되었다. 타국에서 동고동락하며 의지했던 동료가 스스로 세상을 등지고 떠났다. 저자에게는 “태어나 죽음을 처음 대면한 순간”이었다. 긴 방황과 악몽이 이어졌다. 그 끝에서 발견한 것은 “‘산다는 것’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었다.

 

“동료의 죽음을 경험한 후 직장을 그만뒀어요. 한국으로 돌아와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찾기 시작했죠. 그때 아버지께서 장례 일을 하고 계셨는데 같이 해보자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아버지께서 장례 업을 시작하게 되신 건 IMF 때부터예요.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시면서 염을 하게 되셨는데 그 일을 업으로 삼으신 거죠. 처음에는 저도 장례 일에 거부감을 갖고 있었어요. 그런데 나이 서른에 직업도 없이 번역 아르바이트만 하면서 지내는 게 부끄러우니까 곁에서 도와드리면서 일을 시작하게 됐죠.”

 

2007년, 본격적으로 시작한 장례사업은 순풍을 만나지 못했다. 직원은 저자와 아버지 두 사람뿐이었고 회사라는 명칭을 붙이기 머쓱할 정도로 영세한 장의사였다.

 

“상조 회사들이 자리를 잡아가는 시기였어요. 작은 규모의 장의사를 찾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죠. 두 달 동안 일이 끊기기도 하고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신문을 보다가 하단의 부고란을 보면서 이런 생각이 든 거예요. ‘이런 장례는 어떤 회사가 맡아서 치르는 걸까’. 그리고 예전에 아버지께 들은 이야기가 떠올랐어요. 대한항공 조중훈 회장님의 영결식에 참여하신 적이 있다고 하셨거든요. 그때부터 VIP를 대상으로 하는 장례사업을 추진하기로 결심했어요.”

 

중앙의전기획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성장하기까지, 그의 오늘을 예측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수많은 일들 중에서 장례 업을, 게다가 젊은 사람이 무슨 이유로 시작하려 하냐고 만류하는 사람들뿐이었다. 그들이 보여준 편견에 대해서는 저자 역시 잘 알고 있었다. 한 때는 그 자신도 장례를 업으로 삼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사업을 시작한 초기에는 몇 년 동안 지인들과의 교류를 단절했을 정도다. 그러나 떠나는 이들의 마지막을 배웅하며 “삶과 죽음은 둘이 아닌 하나”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러자 죽음의 곁을 맴돌면서도 점차 또렷해지는 것은 살아있는 지금의 삶이었다.

 

죽음은 오늘도 나에게 말을 건다. 하루 더 가까워졌다고. 죽음을 인정한 순간부터 시간은 눈으로 보이는 것, 손으로 만져지는 것이 되었다. 그 덕에 내 삶은 늘 뜨거울 수 있었다. -『불리한 청춘은 있어도 불행한 청춘은 없다』 34쪽

 

죽음을 목격한 이후 나는 삶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되었다. 차가운 겨울을 지내는 동안 여름에 대한 갈망이 커지듯, 죽음이란 사건을 통해 살아 있음의 생생한 의미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불리한 청춘은 있어도 불행한 청춘은 없다』 219쪽


죽음을 알면 삶이 아름다워진다


이정훈 저자가 걸어온 길 위에는 고정관념과 편견이라는 이름의 돌들이 곳곳에 깊이 박혀 있었다. 그러나 그는 피해가지 않았다. 스스로가 정한 방향을 바꾸지 않았다. ‘불리한 청춘’으로 시작했지만 ‘불행한 청춘’으로 끝을 맺지 않은 것은 바로 그 뚝심 때문이다. 물론 배경에는 저자가 힘겨운 20대를 보내며 대가로 얻은 깨달음들이 자리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가장 힘든 시기를 보낸 일본 유학 당시의 경험들은 지금의 그를 있게 한 동력이 되었다.

 

학업과 일을 병행하느라 쉴 틈 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저자를 보며 집주인 할머니는 “열심히만 살아서 부러진” 청춘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바쁘게 사는 것이 열심히 사는 것은 아니라네. 진짜는 천천히 열심을 내서 사는 거네”라는 가르침과 함께. 동경디자인스쿨 재학 시절, 은발머리의 교수는 창조의 의미를 알려주기도 했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 유에서 하나가 더해진 유를 만드는 것이 창조라는 것. 

 

“와타나베 할머니는 ‘열심히만 살면 부러진다’는 걸 알려주셨죠. 유연한 사람이 되라고 당부하셨어요. 덕분에 천천히 살면서도 충분히 뜨거울 수 있다는 걸 알게 됐고, 그래서 저는 사람만은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게 됐어요. 주위를 돌아보는 여유를 갖게 된 거죠. 동경디자인스쿨에서 실내디자인을 전공할 때는 스트레스를 정말 많이 받았어요. 미술을 공부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었거든요. 그런데 교수님께서 ‘세상에 천재는 1% 밖에 되지 않는데, 나머지 99% 에 속해있으면서 없는 재능을 구하는 건 시간낭비다’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창조는 이미 있는 것에서 하나만 더해서 바꾸는 거라고, 밖에 나가서 많은 것들을 보고 베껴보라고 조언도 해주셨고요. 제가 기존의 장례 업과는 다른 분야를 생각해낼 수 있었던 것도 그런 가르침의 영향이죠.”

 

『불리한 청춘은 있어도 불행한 청춘은 없다』에서 저자는 일본 유학 생활 중 체득한 네 가지 생존 철학을 공개한다.

“첫째 생각은 짧게 하고, 둘째 행동은 그 즉시하며, 셋째 언제든 실패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전제하고, 마지막으로 결과에 대해 반드시 반성의 시간을 가지는 것”이다.

 

“어떤 일을 시작하려 할 때, 처음에는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요. 그런데 생각을 계속 할수록 그 일을 해낼 수 없을 것 같은 이유들이 생각나거든요. 그래서 생각을 짧게 하고 즉시 행동하라는 거예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두 가지를 비교하잖아요. 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이유와 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이유를 놓고 저울질해요. 저는 후자의 확률이 더 높다고 해도 일단 행동으로 옮겨요. 실패하더라도 재기가 가능한 범위 내에서 도전하면 되는 거거든요. 언제든 실패할 수 있다는 걸 기억하라는 말은, 상황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라는 거예요. 그리고 실패를 했다고 해도 반성의 시간을 가진다면 실패는 기회가 될 수 있어요. 이 방향으로 가면 안 된다는 걸 알고 다른 길로 갈 수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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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성공에 다다르기까지 먼 길을 돌아와야 했던 그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기다리고 돌아가는 길이 옳은 길이라면, 사실 그 길이 가장 빠른 길임을 지금의 나는 지난 경험들을 통해 확신한다”. 당장 눈앞에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포기를 떠올리는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이정훈 저자에게는 목적지의 코앞까지 간 날보다 그 흔적조차 짚을 수 없는 날들이 더 많았다. 가세는 기울었고, 등록금은 사기 당했으며, 회사 동료의 죽음으로 그는 회사를 떠났다. 하지만 끝이 보이지 않던 길은 그를 지금의 자리로 데려다 놓았다.

 

그가 장례사업을 시작하기 전에 꿈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어쩌면 결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이십 대를 돌아보면 유학 시절도 직장 생활도 오로지 목표만을 좇던 시간이었다”고 자평하는 그는 “나의 착오는 목표와 꿈을 동일시 한 것이다”라는 뼈아픈 고백을 들려준다. 그리고 ‘불리한 청춘’을 향해 조언한다. “꿈이란, ‘나’라는 존재가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이다. 그리고 이유 있는 삶을 이루기 위해 밟고 올라서는 과정들이 바로 목표이다”. 지금 당신이 열망하는 바는 무엇인가. 꿈을 이루는 것인가, 목표를 이루는 것인가. 『불리한 청춘은 있어도 불행한 청춘은 없다』가 묻고 있다.

 

지금껏 ‘죽음을 알면 삶이 아름다워진다’는 믿음을 의심해 본 적이 없다. 나에게는 이 한 문장이 진실이고 내 삶의 철학이자 끝까지 ‘일’을 통해 구현해 나가야 할 가치이다. -불리한 청춘은 있어도 불행한 청춘은 없다』 2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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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리한 청춘은 있어도 불행한 청춘은 없다 이정훈 저 | 느낌이있는책
특별한 한 사람의 ‘죽음’을 기획하는 별난 직업을 선택해 8년 만에 VIP '장례기획‘ 분야 1위에 오른 삼십 대 청년사업가 이정훈, 그가 불공평한 세상에 한숨짓는 청춘들에게 외치는 특별한 강의! 대한민국 1%의 죽음을 기획?연출하는 장례기획자로서 세상에 없던 특별한 직업을 만들어 내고 사람들 앞에 나서 강연을 하게 되기까지 누구보다 험난한 여정을 걸어야 했던 저자는, 젊은 청춘들에게 필요한 것은 남과 다르게 살 수 있는 용기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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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사 모리스 스즈키 “북한에서 다시 가고 싶은 곳을 꼽으라면 금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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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가기 힘든 곳은 어디일까? 기준에 따라 다르겠지만 적어도 대한민국 사람에게 가장 가기 힘든 곳은 북한일 테다. 금강산 여행이 아직 재개되지 않은 시점에서 보통 사람이 합법적으로 북한에 가기란 불가능하다. 그런 면에서 북한을 직접 다녀 온 사람이 쓴 기록은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질 만하다.

 

『길 위에서 만난 북한 근현대사』는 오스트레일리아 국립대학교 태평양아시아학부 교수인 테사 모리스 스즈키가 북한을 직접 방문하고 쓴 여행기다. 동북아 정세에 관심을 둔 학자가 쓴 기록이기에 단순한 여행기라기보다는 무게가 있다. 특이할 점이라면, 그녀가 밟은 길이 100년 전 에밀리 조지아나 켐프의 그것과 유사하다는 사실이다. 비록 분단으로 캠프가 걸은 길을 똑같이 따를 수는 없었지만 『길 위에서 만난 북한 근현대사』는 동북아시아의 과거와 현재를 통찰력 있게 분석해낸 수작이다. 특히 북한 부분을 읽다 보면 한국에는 너무 멀게 느껴진 북한이 조금은 가깝게 다가오는 느낌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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켐프의 여정을 따라 여행을 가기로 한 생각은 언제 어떤 계기로 하셨나요.

 

유럽이나 미국 사람들의 한국과 중국 방문기는 많이 읽어봤습니다. 에밀리 켐프는 한국이 일본에 합병되던 바로 그 해에 한반도를 방문했다는 점에서 다른 여행기보다 흥미롭게 다가왔습니다. 또 한 가지, 방문지를 대하는 켐프의 태도가 내게는 중요했는데요,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다른 영국인 여행객들과 비교해 보면 켐프는 대단히 열린 사람이었습니다. 특히 여행 중에 만난 여성들에게 각별한 관심을 가졌더라고요.

 

금강산 이야기로 책이 시작되고 있으며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도 금강산입니다. 금강산에 실제로 다녀와 보시니 감상이 어땠나요.

 

저는 금강산에 깊이 매료되었습니다. 실제로 보니 아주 인상적이었고, 과연 장관이더군요. 금강산에 깃든 역사의 깊은 의미도 무시할 수 없지요. 물론 제가 방문한 곳은 금강산의 주변부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시 가서 미처 볼 수 없었던 다른 지역도 꼭 가보고 싶습니다. 특히 보덕암과 재건된 신계사는 언젠가 꼭 가볼 기회가 있었으면 합니다.
 
켐프를 따르는 여정을 따르면서 가장 힘들었던 적은 언제인가요. 분단으로 길(개성에서 서울까지, 부산에서 원산까지)이 단절되었던 것일까요?

 

그렇습니다. 여행의 난관은 모두 한반도의 분단과 관련된 문제였습니다. 평양에서 서울까지 열차로 한 번에 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북한에서 압록강을 건너 중국으로 건너가려 할 때가 가장 긴장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신의주 역에서 한 북한 행정관이 열차에 올라 제 카메라에 찍힌 사진들을 검사하려 했던 것입니다. 그 사람의 신경에 거슬리는 사진이 혹시 있을까 봐 긴장되었습니다. 행정관은 아무 말 없이 넘어갔지만, 잠시 후 같은 칸에 타고 있던 북한 사람 한 명이 어깨를 툭 치더니 “따라오라”고 했습니다. 순간 너무 놀랐지만, 그 사람은 그저 우리에게 기념품 가게를 구경시켜주려는 것이었답니다.

 

앞으로 역사적 주제와 관련해 한반도에서 가고 싶은 곳, 장소나 유적이 있나요?

 

앞서 말했듯이, 금강산을 꼭 다시 가보고 싶습니다. 잠시 지나치며 볼 수밖에 없었던 원산 일대도 매력적이었던 기억이라 다시 가보고 싶고요.

 

한국 독자가 가장 궁금해 하는 것이 북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한국 독자들은 북한과 가장 밀접한 지역에 살지만 북한에 대한 정보를 얻기 가장 어렵습니다. 많은 한국 사람들이 북한은 낙후되었고 무척 가난하다고 알고 있는데요, 선생님 책을 보면 평양은 그래도 그럭저럭 살 만한 지역처럼 느껴졌습니다. 북한에 도착했을 때 첫인상이 어땠으며, 여행을 하고 난 뒤 인상은 어떻게 달라졌나요?

 

북한을 방문하기 전에는 저도 남들처럼 그곳이 음산한 기운이 가득한 가난한 전체주의 국가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제 여행은 북한의 일부에 한정되어 있어 제가 보지 못한 것들이 많다는 점을 전제하고 말하면, 북한이 매우 가난하다는 제 생각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평양 사람 중 일부가 중산층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는 있지만, 북한 사람들 대부분은 물질적으로 궁핍합니다. 정치적 억압도 물론 심하고 때때로 전횡적이지요. 하지만 제가 북한에 대해 놀랐던 것은 북한이 빼어나게 아름다운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관광객에게 친절했습니다. 사람들은 또한 경제적 어려움에 수완 좋게, 창의적으로 대처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북한 사람들의 신념체계에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주체사상이 북한의 지배 이데올로기이기는 하지만 민간신앙과 전통적 사고, 심지어 영적 믿음까지도 복합적으로 공존하는 것 같습니다. 북한의 평범한 사람들의 생각과 문화에 대해 더 알아야 할 것들이 아직까지 너무 많다고 느껴집니다.


『길 위에서 만난 북한 근현대사』 5장에서, 지금 북한의 상황이 1970년대 남쪽의 박정희 대통령 시절과 닮았다는 지적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한국은 박정희 정권 때와 비교해서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많은 발전을 이룩했는데요, 북한은 앞으로 어떻게 진행되리라 보시나요.

 

몇십 년 뒤엔 확실히 북한도 많이 변화할 것입니다. 이미 여러 면에서 급변하고 있고요. 만약 정치체제가 변하지 않더라도, 사회와 문화는 본디 아래에서부터 변화합니다. 변화하는 과정은 분명히 남한의 역사와는 아주 다를 겁니다. 새롭고 열린 체제로 평화롭게 이행할 것인지, 아니면 폭력적인 격변을 겪을 것인지는 예측할 수 없습니다. 다만 남과 북 양쪽의 사람들을 위해서, 그것이 전자의 방식이기를 기원합니다.


켐프는 근대 문물이 가져다준 혜택을 긍정적으로 보면서도, 전통이 사라져가는 것을 아쉬워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가졌다고 하셨습니다. 교수님께서 인식하는 전통과 근대의 문제, 그러니까 어떻게 하면 인류가 아름다운 전통을 간직하면서도 좀 더 나아질 수 있을까요?

 

전통과 근대가 반드시 갈등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예컨대 새로운 기술은 오래된 예술품을 보존하는 데 쓰이거나 그런 전통예술을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는 데 쓰일 수 있습니다. 제 생각에는 근대 자체보다 모든 사회적 관계를 이윤의 원천으로 환원시키는 기업화된 시장경제의 폭주가 오늘날 더 큰 문제이지 않나 싶습니다. 사회 내의 가치 있는 것을 보존하려면 시장경제를 제자리로 돌려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비합리적으로 규제한다기보다는 그것이 인간이라는 존재의 구석구석에 침입해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막는 방법을 찾아야겠지요.

 

책에서 일본, 러시아, 중국, 한국이 20세기 초반 서로 얽히고설켰던 역사를 다뤘습니다. 동북아 4개국은 경제적으로 많은 협력을 하면서도, 20세기 초반 역사를 둘러싸고 정치?외교적으로는 갈등이 많이 일어납니다. 일본의 역사적 사과와 책임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셨는데요. 현재 아베 내각의 우경화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현 일본 정부의 입장을 보면 심히 유감스럽습니다. 1990년대에는 사과와 화해를 향한 긍정적인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1993년에는 고노 관방장관이, 1995년에는 무라야마 총리가 ‘위안부’ 문제에 대해 사과한 바 있습니다. 아마도 더 중요하게는, 일본의 여러 풀뿌리 단체들이 일본의 역사적 책임 문제를 제기한 사실을 들 수 있습니다. 21세기 초반 일본에서 유행한 ‘한류’ 열풍도 풀뿌리 한일관계에 무시할 수 없는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현재 아베 내각은 지난 20년간 이루어놓은 진보를 무산시키고 있습니다. 어느 때보다 협력이 필요한 지금 일본은 동아시아 각국 간 마찰을 유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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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시아의 패권이 중국에서 일본으로 넘어가는 시기 이 지역이 전쟁에 휘말렸다고 하셨습니다. 책에서 쓰셨듯이 이제 다시 동북아시아의 패권이 일본에서 중국으로 이동하는 시기인데 동북시아에서 전쟁이 다시 일어날까요?

 

그렇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랍니다. 21세기 동북아시아에 전쟁이 일어난다면 관계된 모든 나라가 절대적 파국으로 치달을 것입니다. 동북아시아 국가들은 현재의 긴장 국면을 극복하고 정세 균형의 변화에 평화롭게 대처하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지역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공통의 경제적 관심사와 함께 여타 사회문제, 환경문제 등을 공유하고 있으며, 그 문제들은 협력을 통해서만 극복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군사적 광기가 치솟는 것을 방지하는 데 사람들의 이런 자각이 도움이 되기를 기원하고 있습니다.

 

동북아 정세에 관심이 많으신데, 현재 교수님께서 가장 관심 있게 지켜보시는 주제(혹은 사건)는 무엇인가요.

 

현재 다른 연구자 5명과 함께 동북아시아의 여러 풀뿌리 공동체가 오염, 삼림파괴, 복지체제 붕괴 등의 심각한 사회문제, 환경문제에 대처하는 방식을 연구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우리 프로젝트는 일본, 중국, 대만, 몽골, 북한, 남한의 사례연구를 포함합니다. 지역적 관점에서 이런 운동을 연구함으로써 우리는 동북아시아의 풀뿌리 활동의 공통성과 이들 간 협력의 가능성을 찾아볼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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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만난 북한 근현대사 테사 모리스 스즈키 저/서미석 역 | 현실문화연구(현문서가)
『길 위에서 만난 북한 근현대사』는 현지를 여행하면서 사람들과 직접 대화하고 그 지역 고유의 자료와 사료를 발굴함으로써 국가와 지역의 틀을 초월한 역사를 새롭게 조명했다. 그 덕분에 이 책에서는 김정일과 김일성뿐만 아니라 돌 깨는 인부들과 감 농장의 농부들과 시중호의 어부들이 역사의 주인공으로 호출되며, 도도하고 거대한 역사의 격랑과 그 격랑 속에서 흔들리면서도 끈질지게 살아남는 민중들의 고난한 삶이 풍부하게 드러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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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사 박정윤 “평생 끝까지 함께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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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TV 토크쇼에 유명 연예인이 출연해 '동물이 살기 좋은 세상이 사람이 살기에도 좋은 세상'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고 그와 같은 감수성을 가진 사람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동물이 사는 세상을 생각하는 감수성이라면 빛에 가려 필연적으로 생기게 마련인 세상의 그림자를 보듬을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탓이다. 살펴보면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았으나 동물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개를 좋아한다면서 품종을 줄줄 읊지만 한 마리도 끝까지 책임지지 못하는 사람, 시장 골목에서 상인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잘 지내던 유명 길고양이를 '냥줍'하는 사람, 돈벌이를 위해 품종견 새끼를 분양하는 사람... 저 활동적인 강아지를 좁은 방 안에 가둬두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학대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아파트에서 함께 지내기 위해 개에게 짖지 못하게 하는 훈련을 시킨다는 말도 공포스럽게만 들렸다. 동물 권리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는 하나 아직 저들이 살기에 좋은 세상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수의사 박정윤은 동물을 좋아해서 어려서부터 동물을 키웠고 자연스레 수의사가 되어 동물병원을 차렸다. 좋아하는 일을 하며 돈을 벌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만큼 동물 권리에 대한 투철한 의식 같은 것이 특별한 편은 아니었다. 그런데 병원에서 만난 '행복하지 않은' 동물들을 보며 괴로워지기 시작했다. 무책임한 사람들이 싫어질 정도였다. 이제 그녀는 사람과 동물을 모두 좋아해야 한다는 것을 안다. 사람마다 동물을 사랑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었음을, 주기적으로 미용을 해주고 돈을 들여 대단한 것을 해주지 않아도 나름의 방식대로 최선을 다해 동물과 함께 하는 방식이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스티로폼 박스에 이불 하나 깔고 바보 똥개 '뽀삐'를 키우던 할아버지를 만났을 때도 그랬다. 오래 살지 못할 거라는 그녀의 진단 앞에서 '얼굴 벌개진 채 눈물을 흘리'(15쪽) 던 할아버지는 최선을 다해 강아지를 사랑했다. 그 사랑에 누가 손가락질 할 수 있을까.

 

무엇을 얼마나 잘 해주느냐가 아니라 누구와 어떻게 행복하게 지내느냐가 핵심이라는 수의사 박정윤. 그녀가 동물과 함께하며 겪었던 일들, 생각했던 것들을 책에 담았다. 그녀가 들려주는 동물들의 이야기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사랑하는 존재를 떠나보내는 사람들부터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들, 그리고 '사랑'을 모르는 사람들까지. 어쩌면 동물은 우리의 거울일지도 모르겠다. 다시 한 번, '동물이 살기 좋은 세상이 사람이 살기에도 좋은 세상'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평생 끝까지 함께 하기를


무엇보다 당부의 말이 많았습니다. 그만큼 동물들의 삶이 고되다는 뜻이겠지요.


책을 내면서 제일 우려했던 건, '잔소리가 많지 않을까?' 하는 부분이었어요. 원래 책의 시작이 한겨레 토요판에 칼럼 쓰던 내용들을 발췌한 거였어요. 칼럼이 3년 정도 되다 보니까 꽤 양이 많았는데요. 의료적인 내용은 빼고 사람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내용들을 추렸고, 제가 겪었던 일들을 같이 엮어서 쓰게 됐어요. 칼럼 형식 바탕이라 계속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하지 마라'하는 식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출판사에도 너무 잔소리 한다고 느끼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을 했었어요. 조금 무거워 보이지 않을까 생각도 했는데요. 그만큼 중요한 말이기도 했어요. 두 가지였어요. 첫째, 동물을 키운다는 게 정말 어렵다는 것, 그렇지만 정말 즐거운 일이라는 것과 두 번째, 대단한 걸 해주는 게 아니라 오직 하나 '평생 끝까지' 하라는 것이요. 그걸 계속 강조하면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당부하는 내용이 많았던 것 같아요.

 

동물들이 살아가는 이런 환경에 대한 안타까움이 많이 느껴졌습니다.


동물을 좋아하긴 했지만 처음부터 엄청 투철한 동물 애호가는 아니었어요. 그저 동물을 좋아해서 강아지, 병아리 키우고 해왔죠. 동물에 대해 대단히 지식이 있거나 하지도 않았고요. 임상하기 전까지도 별 생각이 없었어요. 진짜로 동물 좋아하니까 동물병원을 차려야지, 정도의 생각을 했었어요. 내가 좋아하는 일로 평생 돈을 벌 수 있다면 좋겠다, 정도로요. 막상 일하면서 보니까 아닌 거예요. 너무 힘들어요. 화나고, 속상하고요. 특히 동물자유연대와 함께 하면서 그곳에서 만난 동물들, 병원에 오는 별별 사람들을 만나면서 처음에는 너무 충격이었어요. 사람들 다 이상하다, 이랬는데요(웃음). 입장이 달랐던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됐죠. 저도 한 때는 보호자였으니까요. 돌아보니 내가 좋은 보호자는 아니었구나, 라고도 생각했고요. 그런 부분이 많이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오히려 처음부터 동물을 끔찍하게 생각했더라면 약간 한쪽으로만 봤을 거예요. 그렇지 않은 사람에 대해 굉장히 엄격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에요. 그런 면이 수의사들 사이에도 꽤 있거든요. 저희에게는 일이고 늘 동물 편에 서있다 보니까 조금이라도 저희 원칙에 어긋나는 것처럼 보이면 보호자를 쉽게 평가하게 돼요. 그런 부분이 큰 문제이겠다고 생각했어요. 소통에 큰 단절을 가져오는 건 아닐까 생각했던 거죠. 보호자로서의 경험이 없었다면 절대 이해할 수 없었을 것 같아요. 각자의 입장에서는 알 수 없는 부분이죠. 

 

반려동물을 사랑하는 방식에 있어 사람마다 차이가 있기 마련이잖아요. 그런 발견을 담은 부분도 있었는데요.


직업이다 보니까 저희도 사람을 상대할 때 판단해야 하는 거예요. 치료에는 돈이 들잖아요. 검사를 어느 정도까지 할 수 있을지, 얼마나 잘 따라올 수 있는 보호자인지 판단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사람을 자꾸 판단하고 나름대로는 잘 판단한다고 생각했는데 몇 번 그런 선입견이 깨진 경험이 있었죠. 책 제목을 '바보 똥깨 뽀삐'라고 지었던 그 일화도 저는 정말 충격이었어요. 할아버지가 정말 강아지를 사랑하셨거든요.


동물을 좋아하는 거라 일을 시작했는데 중간에는 사람이 싫어졌어요. 그런데 이 일을 계속 하려면 사람이 싫어지면 안 될 것 같아요. 누구보다 사람을 좋아하지 않으면 이해하기 싫잖아요. 귀찮으니까 말을 안 하는 거예요. 사람을 상대하는 데 지쳐서요. 사람을 좋아하면 좀 낫지 않을까, 제 나름으로는 해결책을 찾아 본 거죠.(웃음) 실제로 '동물농장' 할 때, 사람들이 너무 많이 알아보고 몰려오는데 워낙 다양한 분들이 오니까 지치는 거예요. 일이 하기 싫었었어요. 좀 쉬고 그러다가 나름으로 찾은 해결책은 사람을 좋아해야 수의사를 하는 거다, 라는 거였어요.

 

동물 이야기가 나오면 눈을 반짝이며 앞장서 얘기하고, 개나 고양이 품종이나 습성에 대해서는 박식하며 훈련이나 육아법도 꿰고 있는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 무심코 생각해보면 정 많고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이 실제로는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알 수 있다. 심지어 그런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뻔뻔하고 잔혹한 사람인지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240쪽)

 

끝까지 함께할 수 없으면 차라리 반려 동물과의 생활을 시작하지 않았으면 한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동물과 끝까지 함께 한다는 인식도 낮고, 동물을 소비재나 상품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여전히 너무 많은데요.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237쪽)부분에서 말한 내용이 그거였어요. 너무 많이들 놓치는 부분이에요. 진짜 그런 분들이 많으시거든요. 동물을 정말 좋아한다고, 푸들도 알고, 말티즈도 알고, 다 키워봤다면서요. 개의 평균 수명이 15년이라고 했을 때, 열 가지 종류 이상을 키워봤다고 한다면 걔네들은 다 어디로 갔느냐는 거죠. 거꾸로 말하면 모두 버렸다는 얘기예요. 흔히 선물로 동물을 주는 경우도 많은데요. 어느 누구도 동물을 키우기 시작할 때 20년 뒤를 생각하지 않아요. 털이 빠지고, 하얗게 되고, 잘 걷지도 못하고, 귀도 먹게 됐을 때를 짐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거예요. 그것까지 예상을 해야 해요. 동물은 나보다 먼저 떠날 거기 때문에 제가 책임을 져야 하는 거죠. 책을 읽고 그런 말씀 많이 하세요. '동물은 절대 쉽게 키우면 안 되는 거군요'라고요. 개인적으로 동물을 많이 키우시길 바라진 않아요. 수의사면 동물 키우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가장 가슴이 아프고 무력하게 느낄 때가 버려진 동물들을 볼 때예요. 저희 병원에도 열 마리 이상 있는데요. 불쌍하니까 거두지만 불안한 마음이 있어요. '병원을 그만두면 얘네는 어떡하지?' 이런 생각이 있기 때문이죠. 저는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의식이 없으면 안 키우셨으면 좋겠어요.


호주에서 연수를 했는데 하숙집 주인 분이 동물을 무척 좋아하셨어요. 제가 수의학과 다닌다고 하니까 나도 동물을 너무 좋아하는데 돈이 많이 들어서 나는 키울 엄두가 안 난다고 하셨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게 정말 현명한 거란 생각을 해요. 그들은 책임과 관심을 동시에 인식하고 있는 거예요. 사는 건 참 쉽지만 키우는 데 돈이 안 들 수가 없어요. 그런 부분을 생각하고 포기하는 거거든요. 저는 그게 더 맞다고 생각해요.

 

쉽게 돈을 주고 동물을 살 수 있는 시장 자체도 문제인 것 같아요.


요즘은 동물 권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EBS같은 곳에서 프로그램도 많이 나오고, 동물단체에서도 많은 캠페인을 하는데요. 사람들이 어렵게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채식은 못해, 이렇게 생각하니까요.(웃음) 동물 보호하는 사람 다 채식하고, 구조해야 하고,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도 많으신데요. 진짜 동물 보호의 시작은 나의 개를 끝까지 잘 키워주는 거예요. 그것만 해주면 유기견, 유기묘도 없어질 거예요. 동물 보호라는 것을 쉽게 전달하고 싶었어요.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있구나, 나도 참여하는 거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 다음에 이런 일이 생겼을 때 훨씬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들을 거니까요. 책 내용이 에피소드잖아요. 주변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이기 때문에 좀 더 이해하시기 쉬운 것 같아요.

 

'동물을 사랑하는 사람이 사람도 사랑할 수 있다'(32쪽) 고 하셨어요. 약한 존재에 대한 연민의식, 동정심, 배려 같은 것들을 말씀하시려고 했던 것 같아요.


제일 많이 배우는 것 중 하나가 동물을 예전부터 키우시던 분들보다 처음 키우시면서 변화하는 모습을 볼 때예요. 어떤 분이 동물을 키우는데 그 전에는 동물에 관심이 없으셨대요. 키우는 고양이가 정말 예쁘지만 더 입양할 자신은 없다고요. 그렇지만 밖에서 고양이 소리가 나면 한 번 더 쳐다보게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다가 간식을 주문하면서 받은 사은품들을 모아 단체에 보냈대요. 또 동물뿐 아니라 불쌍한 아이들에게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해서 아프리카 아이들 후원도 하게 되고요. 회사 사람들과 연말에 고아원이나 요양원에 봉사활동도 가게 된다는 거예요. 전에는 내 몸 치장하는 데에만 관심 있었는데 반려 동물을 통해 내 삶이 변화 되더라, 하면서 진심으로 고맙다는 얘기를 하셔요. 그런 분들에게 많이 배웠죠.


동물들은 말을 못하고 계속 챙겨줘야 하니까 보호자분들이 다른 것에 대해서도 이해를 많이 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참고, 이해하고, 배려하는 게 터득 되는 거예요. 그게 심지어 아이를 키울 때도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책에서 하시는 이야기들이 동물에 국한되지 않고 사람에게도 통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물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동물을 키우지 않는 사람들도 공감할 수 있는 종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동물 좋아하시는 분들은 그런 분들대로 이웃집 분들과 많이 싸워요. 길고양이 문제로도 많이 싸우고요. 산책 갔다가 개 때문에 싸움이 나서 소송을 하기도 하는데요. 동물을 키우지 않거나 좋아하지 않는 분들이 봤을 때 동물 키우는 사람들이 배려 없다는 얘기를 하잖아요. 저는 그것도 맞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조금씩 발전해 나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동물에 관심 없는 사람들에게 동물 들이대면서 '얼마나 예뻐' 하는 건 아니거든요. 저는 동물을 키우는 사람이라면, 종(種)이 다르고 말도 안 통하는 동물을 키우는 사람이라면 사람도 배려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먼저 배려하자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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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이해해야 하는 직업


동물을 통해 선입견이 깨지는 경험도 많이 있으실 것 같아요.


저는 동물병원이 사적인 영역이라고 생각해요. 아픈 환자는 동물이지만 돈을 내는 건 사람이거든요. 보호자의 가치관이나 사고가 느껴지는 경험도 많아요. 가족 심리 상담소처럼 반려 동물을 둘러싸고 부부 문제, 부모 자식 간의 문제가 많이 엉켜있어요. 저희는 그런 얘기까지도 들어줘야 하는 거죠. 책에는 쓰지 않았지만 요크셔테리어를 키우는 아주머니가 있었어요. 보호자가 강아지에게 너무 집착을 하셨어요. 그분과 강아지 모두 비만이었거든요. 강아지의 심장병이 심한데도 간식을 못 끊는 보호자를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어요. 식이조절을 해야 하는데 밥을 여덟 가지 종류를 먹였어요. 미국에 갈 일이 있어 개를 위한 퍼스트 클래스를 끊어서 데리고 갈 정도로 과도한 태도가 있었는데요. 우연히 그분의 신분증을 보게 됐는데 엄청난 미인이셨더라고요. 자신의 아름다운 시절을 아는 게 이 강아지뿐이었던 거예요. 그러니 그런 태도가 어느 정도 이해가 되더라고요.


사람은 동물을 대하는 데 일관적이지 않아요. 자신의 과거, 현재, 트라우마 등이 모두 동물을 대하는 데 투영되거든요. 부부 관계가 너무 안 좋은데 그나마 키우는 동물 핑계로 이야기를 하는 분들도 굉장히 많아요. 그렇게 동물로 마음을 치유하는 건데요. 동물을 대하는 보호자의 태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분들의 가정사까지 다 알아야 하는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이 사람을 참 많이 이해하게 되는, 또 이해해야 하는 직업이구나 생각해요.

 

동물에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투영이 된다니 생각지 못한 부분이에요.


재미있어요. 제가 가끔 이야기하는데 성형외과랑 비슷한 것 같다고 해요. 자신의 사적인 고민과 욕망이 성형외과에 나타난다면 이곳은 그런 부분이 있는 거죠. 결혼했는데 배우자가 동물을 좋아하지 않아 동물을 밖에서 키워야 한다, 시어머니가 동물을 좋아하지 않고 동물은 시어머니만 보면 문다, 그 관계를 자신이 해결할 수 없으니까 다른 방법을 찾으려고 병원에 오시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렇게 그 상황을 이해하고 그 사람을 이해하고 나면 저희가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돼요. 보호자와 병원이 소통 안 되는 이유를 살펴보면 그런 부분들이 아닐까 생각이 들죠.

 

'사랑은 감염력이 강하다'(120쪽) 고 하셨어요.


사랑을 하는 건 즐거운 일이잖아요. 지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물론 힘든 일이고 책임감이 따르는 일이지만요. 사랑이라는 건 감염력도 있고 그만큼 내가 행복한 게 겉으로 드러나고 많이 전달되는데요. 좀 즐겼으면 좋겠어요. 특히 동물을 여러 마리 키우면 벅차고 버거워져서 사람과의 관계는 단절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요. 오시는 분들 중에도 스무 마리 정도 키우시는데 오히려 사람들과는 교류가 없어요. 관심은 있지만 키울 준비가 안 되어 있거나 조금만 가르쳐주면 더 잘 키울 수 있는 사람들한테 그걸 전파했으면 하는 거죠. 그런 분들은 간혹 무슨 일이 나면 아예 손을 놓거나 자기 자신까지 놓는 경우가 있어요. 동물에 대해서는 관심을 끊거나 말이죠. 때문에 이런 부분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동물을 키우는 건 사람에게도, 동물에게도 행복한 일인데 그걸 좀 편안하게 즐겼으면 좋겠다는 것 말이에요.

 

지나치게 경직된 자세, 완벽하게 책임지겠다는 태도가 오히려 방해가 될 수도 있겠네요.


그렇죠. 아이를 키우는 것도 똑같다고 생각해요. 가령 하루 네 번 안약을 넣어주라고 하면 어떤 분은 정확하게 네 시간을 맞춰서 넣으시는 분들이 있어요. 전에 한 번은 3년 동안 암치료를 받고 약도 하루 몇 번을 열 가지 넘게 먹여야 하는데 그에 관련한 두꺼운 파일을 만들어 오신 분이 있었어요. 3년을 표로 매일 기록하신 거예요. 잠도 못 주무세요. 두 시간에 한 번 씩 새벽에도 깨서 약을 넣어주어야 하니까요. 정성이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만 저는 그분에게 이건 병원에 맡기시고 이제 그만하시라고 말씀드렸어요. 어차피 평생 관리해야 하는 거면 조금 여유를 가지셨으면 좋겠다고요. 그건 동물들도 바라지 않을 거예요. 동물이 점점 나이가 들면 어떻게 하면 건강하게 지낼 수 있을까 생각하시는데요, 그것도 중요하지만 함께 얼마나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까, 얼마나 오래가 아니라 얼마나 잘 지낼 수 있을까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야 그 동물을 보낸 후에 다시는 못 키우겠어, 가 아니고 다시 한 번 키울 수 있게 될 거예요. 진짜 불쌍한 동물들이 많거든요. 잘 키우신 분들이 하나를 더 키워주셔야 된다고 생각해요. 좋은 분들이 너무 많이 지쳤기 때문에, 그리고 힘들었던 기억 때문에 다시는 못 키우겠다고 하시는 분들이 많으세요. 저는 그게 가장 슬퍼요.

 

동물자유연대와 어떻게 만나게 되신 건가요? 지금도 함께 하고 계시죠?


지금도 일 년에 한 번 씩 병원 문 닫고 '입양동물의 날'에 참여해요. 동물자유연대에서 입양한 동물들이 보호자들과 모여 운동회를 하는데 거기에 항상 같이 가요. 저희와 같이 사는 동물들에게도 연중행사가 되고 있어요. 올해 10년 되었어요. 책에 소개한 80마리 시츄,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동물을 좋아하지만 어떤 단체가 있는지도 모르고, 수의사지만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였어요. 봉사활동을 다니긴 했는데요. 우연히 뉴스를 보게 됐어요. 한겨레신문에 났던 사진은 진짜 슬펐어요. 불쌍한 강아지들 사진이 있고 한 마리가 비둘기가 밥을 먹고 있는데 뒤돌아 사진기자를 쳐다보는 그런 모습이었거든요. 제가 워낙 시츄를 좋아해서 별 뜻 없이 시작한 거예요. 수의사인데 도와드릴 게 없느냐고 대뜸 연락을 걸었는데 그쪽에서도 이런 경우가 처음이었다고 하더라고요(웃음). 그렇게 갔는데 시츄 모두가 전염성기관지염에 걸린 거예요. 밀집 사육을 하는 곳에서 유행처럼 번지는 독감인데 한 곳에 모여 있다 보니까 죄다 걸려 버린 거죠. 그것 때문에 계속 치료를 하고 도우면서 인연이 되었어요.


'나나'가 동물자유연대에서 식용농장에서 구조한 개였어요. 뱃속에 여덟 마리 새끼가 있었는데 수술해 달라고 왔었고, 그래서 저희 병원 개원할 때부터 함께 있었어요. 동물자유연대를 통해 만난 동물들은 정말 많아요. 지금 병원에 있는 동물들도 전부 그렇게 만났고요. 임시보호를 가장해 여기 눌러 앉아 있지만요(웃음). 지금도 쟤네는 입양 갈 곳을 찾고 있어요. 사람들이 가끔 말해요. 병원에 있는 게 행복하지 않겠느냐고요. 안 그래요. 선생님들이 휴가나 이럴 때 데리고 가시기도 하거든요? 거기서 3, 4일 있다가 오면 눈빛이 달라요. 굉장히 가고 싶어하고요. 아무리 저희가 병원 바닥을 일부러 나무처럼 하고, 지하에 방을 만들어서 바닥을 따뜻하게 해놓아도 집은 다른 거예요. 병원을 거쳐 간 동물들도 꽤 있는데요. 걔네들이 여기서 몇 년을 살았어도 오면 하나같이 아는 척을 안 해요. 한 달 정도 입양을 전제로 임시보호를 보내기도 하는데 정말 잘 지냈던 동물들은 절대 옆에서 안 떨어져요. 저희와 3년을 살았어도 그 집에 2주 있었던 시간이 정말 행복해서 불러도 눈을 안 마주치고 눈을 피하는 거예요. 당황스럽긴 하지만요(웃음).

 

입양과 파양의 반복, 핑퐁개 문제


동물에게도 감정이 다 있는 것 같아요.


네. 동물을 이해하면 사람도 이해하기가 쉽고 사람을 잘 이해하시는 분들은 동물도 이해하기 쉬울 것 같아요. 동물과 사람이 다르지 않거든요. 계속 하고 싶었던 얘기가 이런 건데요.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같은 프로그램에 나오는 아이들과 똑같아요. 문제견이 있으면 반드시 문제 보호자가 있어요. 아이들도 마찬가지잖아요. 아이들의 문제 행동에는 부모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요. 똑같아요. 학대견, 유기견 문제도 그렇고요. 집을 잃었거나 파양이 여러 번 됐던 동물들은 모든 행동이 굉장히 과잉되어 있어요. 잘 보이고 싶고, 이곳에 행복한 만큼 불안해해요. 시선을 끌기 위해 막 긁는다든가, 전에 있던 동물을 제치고 자기만 봐달라고 한다든가, 물어버린다든가 하는 식으로요. 그런 동물들에게 인내를 바로 요구할 수는 없거든요. 그걸 이해해주셔야 하는데, '왜 이래?' 하고 다른 곳으로 또 입양 보내고 그런 것이 반복되면 안 좋죠. 그런 개들을 '핑퐁개'라고 해요. 입양과 파양을 반복하는 개들을 뜻해요.


입양을 할 때는 불쌍하다는 마음으로 하시면 절대 안 돼요. 완전히 책 한 권 정도는 읽고, 단체든 병원이든 상담을 충분히 하고, 어떤 문제가 있을 수 있겠다는 것을 인식하고 준비를 한 후 입양하시면 좋겠어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죠. 불쌍한 동물 거뒀다고 생각하시는 경우도 무척 많고요. 입양을 해서 키우는 순간부터는 입양한 개가 아니에요. 고아원에서 데려온 아이를 '우리 아이는 고아원에서 데려온 아이예요' 라고 말하는 경우는 없잖아요. 그것과 같은 건데 7, 8년 키우셨는데도 유기견이었다고 말씀을 하세요. 안쓰러울 때가 있죠.

 

분양업소나 수의테크니션, 동물명예보호감시원 등 구조적인 문제를 언급하셨어요. 아직도 너무 초보적인 단계에 있는 것 같습니다.


대만에 가서 가장 놀랐던 건, 공사장에 개가 있어도 눈치를 보거나 하지 않고 덩치 큰 황구들이 그냥 누워있는 거였어요. 그렇게 있으면 아저씨들이 밥을 주시고요. 길에서 고양이가 다녀도 누구 하나 거슬려하지 않고, 심지어 고양이가 아무 집에나 들어가서 밥을 달라고 요구를 해요(웃음). 만화처럼 말이에요. 그러면 '들어와서 먹을래?' 이런 게 자연스러운 거죠. 그곳은 경마, 쇼동물이 없어요. 그것들의 기본이 된 것은 식용금지고요. 저는 개 식용에 대한 찬성이나 반대가 문제가 아니고 제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떤 제도가 되든지 분명히 한동안은 굉장히 시끄럽겠죠. 그렇지만 제도가 정착되고 나면 의식이 바뀔 거거든요. 우리나라는 특히 개의 위치가 애매해요. 수의법규나 이런 것들을 보면 가축도 아니거든요. 가축은 잡아먹을 수 있는 동물로 되어 있기 때문에 개가 그 안에 속해있지 않아요. 그렇다고 다른 데 속해있지도 않으니까 붕 떠있는 거예요. 개들을 보호해줄만한 동물 보호법도 아직은 잘 되어 있지 않고요. 애매한 개의 위치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식용 금지가 되는 게 맞는 거죠. 어느 섬에서 할아버지가 드시는 걸 말릴 수는 없지만요. 요즘은 네 가구에 한 가구가 개를 키우는데, 꿋꿋하게 개를 먹는 동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닭을 먹는 것에 대해서는 부자연스럽지 않은데 개에 대해서는 그런 의식이 점점 많아지기 때문에 사실은 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동물 학대 사건이 발생했을 때만 잠깐 분노하고 관심을 갖지만 이후에 근본적인 대책으로 이어지지는 않잖아요. 단발적이고, 분절되어 있어요. 제도적인 방법들이 필요할 것 같아요.


일차적으로는 동물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하는데, 그러러면 첫째가 식용 금지가 맞다고 생각해요. 내 마음대로 때리거나 죽일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야죠. 애매하잖아요. 동물 보호법에 동물을 못 때리게 되어 있는데 내가 잡아먹으려고 때리는 건 상관이 없는 상태예요. 이상해요. 때문에 반발이 있더라도 식용 금지가 되어야 하고 그런 후에는 자연스럽게 나머지 부분이 정리될 거라고 생각해요. 이런 부분에 대해 관심을 갖는 정치인들이 별로 없어요. 유기견 불쌍한 건 알지만 식용견 문제는 또 다르게 보고요. 개가 가축이 되어야 하냐, 가축에서 제외되어야 하냐 이런 논의가 88년도 즈음부터 아직까지 제자리예요. 이것이 확실히 정립이 되면 좋겠죠.

 

분양업소의 불법진료도 잠깐 언급하셨는데 실태가 얼마나 심각한가요?


지금도 흔하긴 한데요. 접종을 당연하게 하죠. 물백신이라고 하는데요. 백신이 보기엔 작은 약병에 들어있긴 하지만 균을 넣어둔 거잖아요. 보관하는 방법이나 유통과정에서 철저하게 온도를 맞춰 두어야 해요. 동물 병원 같은 곳은 온도가 딱 정해져 있고요. 그런데 업주 분들은 자기네들이 약품 가게에서 백신을 싸게 사서 그냥 놓는 거죠. 그건 거의 말릴 수 없는 수준이에요. 이렇게 많은 동물을 키우는데 어떻게 일일이 병원을 가느냐, 말도 안 된다고요. 그건 둘째치고라도, 이건 제가 직접 들은 이야기인데요. 종견을 키우는 곳에서 있었던 일이에요. 까만 개였는데 가슴팍에 살짝 흰 털이 있었대요. 그 흰 털 때문에 개의 값어치가 떨어지는 거죠. 그래서 직접 개의 생살을 안으로 넣어서 꿰맨 거예요. 흰 털만 보이지 않게요. 경악했죠.


더 심한 경우도 있어요. 아직도 단이(斷耳), 단미(斷尾)가 있어요. 꼬리를 자르거나 귀를 자르는 품종들이 있는데요. 병원에 오는 개 중에 어렸을 때 너무 불쌍하게 온 개가 있어요. 도베르만인데 인터넷으로 사서 고속버스 택배로 받았대요. 강아지가 밥도 잘 안 먹고 이상하더래요. 봤더니 단이를 했더라고요. 흰 옷걸이를 삼각형으로 만들고 청테이프로 옷걸이를 감아서 판처럼 만든 거예요. 거기에 맞춰서 귀를 자르고 본드로 붙였더라고요. 잘라낸 나머지 귀를 붙였어요. 귀를 세워야 하잖아요. 도베르만이나 미니핀 같은 경우는 좀 더 용맹스럽게 보이기 위해서 단이를 한 적이 있어요. 요즘은 동물 학대라고 많이 안하는데요. 귀를 잘라서 바짝 서게 하는 거예요. 사실 귀가 접혀 있거든요. 어릴 때 연골 부분만 남기고 자르는 거예요. 잘라낸 부분은 하얀 색 이불실로 꼬매두고요. 염증이 심해서 밥을 못 먹었던 거죠. 그래서 한 2주 심하게 치료했었어요.


단순히 돈벌이로 생각하는 경우가 너무 많아요. 아무나 동물을 키워서 분양하는 것 자체가 없어지지 않는 한 방법이 없어요. 식용 문제도 있지만 분양 문제를 가장 먼저 시급하게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신고제가 아니라 허가제로 만들고, 적절한 규모를 맞추고, 교육을 받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진짜 경악할 만한 일은 엄청나게 많이일어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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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이 끝난 후가 걱정


디자이너도 그 말씀도 하셨고요.


미국에서 실제로 엄청 유행하고 있어요. 인터넷으로 '코카두들' 이런 식으로 검색하면 진짜 많이 나와요. 문제는 그 유행이 끝나고 난 뒤에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점이에요. 과시하기 위해서 동물을 키우다 보면 반드시 문제가 생겨요. 예전에 우리나라에서 허스키, 말라뮤트 진짜 유행했었어요. 그 개들 모두 중국에 있는 식용 농장으로 팔려 가요. 둘 곳이 없잖아요. 유행했을 때 태어난 개들이 컸다면 지금 열 살 안팎이 됐을 텐데, 없어요. 7, 8년은 잘 키워요. 그런데 10년 넘도록 잘 키우는 분들이 많지 않아요. 지금은 동물도 수명이 늘어나서 최소 20년은 생각하고 키우셔야 해요. 저는 동물 처음 키우는 보호자분들에게 꼭 적금 들으시라고 얘기해요. 돈이 많이 들거든요. 열 살까지는 아플 일이 거의 없죠. 그러다 열 살 되면 사람 나이로 62살 정도인데 그때부터 관리를 해주셔야 해요. 만 원 씩 10년짜리 적금 하나, 1년짜리 적금 하나 이렇게 드시라고 권해요. 평균적으로 동물을 키우는 데 한 달에 최소 20만 원에서 30만 원이 드니까요. 그런 부분을 예상하고 준비하셔야 해요.

 

관심 있는 독자들은 하이디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 할 것 같습니다.


지금은 방송도 많이 타고 일본에서 워낙 유명하시긴 하지만 무척 순박하세요. 그분이 동물과 진짜 대화가 가능하냐, 아니냐는 잘 모르겠어요. 어쨌든 동물에 귀를 기울인다는 건 정말 맞는 것 같고요. 이분을 만나기 전까지 저는 동물을 그저 아기처럼 대했던 것 같아요. 어른이라는 생각을 '꽃님이' 이전에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그게 저와 병원 식구들에게는 가장 큰 변화였어요.


제가 세인트버나드를 키운 적이 있어요. 여덟 살쯤 됐을 때 다른 곳에 위탁을 맡겼어요. 병원에 두려니 샘이 많아서 곁에 있는 동물들을 물어서 함께 둘 수가 없었거든요. 그렇게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왔다 갔다 했는데요. 대형견들은 위 역전이라는 게 간혹 일어나요. 위가 갑자기 한 바퀴 꼬여서 응급상황이 되는 거예요. 위탁 맡긴 집에서 개가 이상하다고 연락이 왔는데 병원까지는 한 시간 이상이 걸리는 거리였어요. 근처에는 갈 수 있는 병원도 없었고요. 우여곡절 끝에 병원에 와서 수술을 했는데 결국 떠나게 됐어요. 불과 얼마 전에 가죽 목걸이를 바꿔줬는데 그렇게 된 거거든요. 제가 그때 너무 힘들었어요. 일이 있고 2주 정도 지나서 하이디를 만났는데 하이디가 제 주변에 동물이 많이 보인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 얘기는 할 수 있는 거니까 고맙다고 답하고 넘어갔는데요. 큰 세인트버나드도 보인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미안하고 보고 싶다고 전해달라고 했더니 괜찮다고 답한다는 거예요. 그리고는 하는 말이 다크 브라운 목걸이가 있는데 그걸 간직해줘서 고맙다고 했다는 거예요. 웃으면서 이야기 나누다가 그 말을 듣고 눈물을 엄청 쏟았어요. 저한테는 정말 충격이었어요.


사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게 좀 조심스러워요. 동물을 제일 잘 아는 건 함께 사는 가족이거든요. 하이디 역시 동물과 소통하는 건 피아노와 같다고 얘기를 하더라고요. 누구나 할 수 있고 열심히 연습하고 관심을 두면 하게 된다고요. 그게 맞는 말인 것 같아요.

 

'정답은 없다'고 고민하는 대목이 많아요. 아직도 그러실 것 같은데요. 요즘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인가요?


저희 동물들이 이제 아파요. 나이가 들어가니까요. 다 13살 이상이에요. 다들 심장약 먹고, 서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요. 지금 제일 고민되는 건 선생님들과 어떻게 조화롭게 병원에서 잘 지내느냐예요. 책 마지막에도 썼지만 어쨌든 병원을 저 혼자 하는 게 아니잖아요. 전에는 그냥 내가 마음 가는대로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병원비도 많이 깎아주기도 했고요. 그렇지만 결국 병원이 잘 돼야 동물 진짜 좋아하는 좋은 후배들이 더 많아질 수 있잖아요. 저희 병원에 수의사가 여덟 명이거든요. 그 친구들 보면 정말 대단해요. 퇴근하고 나서도 동물들을 계속 붙들고 있고요. 그런 친구들이 이곳에서 월급도 잘 받고 그러려면 저는 수의사보다 원장으로 역할을 더 해야 하는구나 하고 처음으로 생각하게 됐어요. 진짜 양심껏 동물을 돌봐주면서도 잘 되는 모범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식구를 더는 늘리지 않겠다는 마음으로요(웃음). 저희 병원에 고양이가 열 마리, 강아지가 여섯 마리예요. 혹시 병원 문을 닫게 되면 얘네들이 갈 곳을 다 정해두었어요. 그런데 둘이 또 들어왔어요(웃음). 지금 최대 고민은 쟤네를 빨리 입양시키는 것이겠네요. 오시는 분들에게 잘 보여서 빨리 입양을 가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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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 똥개 뽀삐 박정윤 저 | 엔트리
차가운 바닥에 피투성이로 누워 있던 황구 한 마리를 구하기 위해 허겁지겁 뛰어온 박정윤 수의사. 당시 그녀의 눈물과 떨리던 손은 많은 시청자들의 가슴을 울렸다. 『바보 똥개 뽀삐』는 수의사 박정윤으로서 만났던 동물과 사람, 그리고 그들의 함께 사는 이야기를 담은 첫 에세이로, 그녀가 우리에게 덤덤하게 건네는 이야기는 언제나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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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과 류성룡 어떻게 봐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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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영화 <명량>에 이어 2015년 KBS 드라마 <징비록>에 이르기까지 임진왜란은 한국에서 가장 사랑 받는 역사적 소재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임진왜란은 전쟁 기간으로 보나 피해 규모로 보나 가장 규모가 컸던 전쟁인 데다 이순신과 권율, 곽재우 등 명장의 활약으로 드라마틱한 요소도 많아서다. 이순신은 임진왜란만이 아니라 한국사 전체를 놓고도 가장 인기 있는 역사적 인물이다. 그런데 임진왜란을 이야기할 때 이순신과 함께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으니 바로 류성룡이다.

 

전쟁과 전투를 구분한다면 이순신은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고, 전쟁을 총괄한 사람은 류성룡이었다. 조선과 명나라 연합군과 일본 사이의 강화 협상을 지휘한 사람이 류성룡이고, 전쟁으로 피폐해진 백성의 민심을 다독인 것도 그였다. 『류성룡 7년의 전쟁』은 이러한 류성룡의 모습을 실감 나게 묘사한 작품이다. 특히 처음과 끝은 1인칭 시점을 차용해서 인간 류성룡의 고뇌를 생생하게 그려내기도 했다.

 

책을 쓴 저자 이종수는 학부에서 국문학을, 대학원에서 미술사학을 공부했다. 미술사를 강의하며 인문과 예술을 결합한 글쓰기를 시도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그림문답』, 『벽화로 꿈꾸다』, 『심심 남매, 우리 그림에 빠지다』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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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의 매력

 

지금까지는 미술에 관한 글을 많이 쓰셨습니다. 류성룡과 『징비록』은 미술 관련 주제는 아닌데요. 『류성룡 7년의 전쟁』을 쓰기로 한 계기가 있었나요.

 

정말 많이 들은 질문이죠. 심지어 가족도 전공을 바꾸냐고 물을 정도였고요. 그런 건 아니고요. 재작년에 나온 책인 『그림문답』을 쓰면서 처음으로 류성룡에 관한 자료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조선을 대표하는 그림 6개를 키워드로 다루는 책인데, 류성룡에 흥미가 생긴 건 초상화를 남기지 않아서였어요. 공신이 되면 충헌부가 화사를 파견해서 공신 초상을 그리게 하거든요. 하지만 류성룡은 화사를 돌려보내죠. 결코 쉬운 결정은 아닙니다. 『그림문답』에서는 한 꼭지로 다뤘지만 언젠가는 평전으로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어요.


『징비록』의 매력은 어떤 점일까요?


우리나라뿐 아니라 일본이나 중국에서도 임진왜란 서사를 구성하는 데 기본적인 텍스트입니다. 전쟁을 직접 체험한 사람이 썼다는 사실도 중요하지만 구성이 좋아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야욕을 그리면서 시작해서 전투가 끝난 다음에 이순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강조하면서 드라마틱하게 끝나는 구성이에요. 중간에도 교묘하게 재배치를 했고요. 조선이 이긴 전쟁을 더 강조한다든지 하는. 또 단순하게 나열만 하지 않고 인과관계를 분석하려고 했어요. 그만큼 전쟁을 잘 꿰뚫고 있었다는 의미죠. 우리 산문 문학에 새로운 전형을 열었다고 평가하기도 해요.


임진왜란 두고 많은 책이 나왔는데 『류성룡 7년의 전쟁』은 어떤 특징이 있나요?


임진왜란에 관한 책으로는 소설도 많을 거예요. 이 책은 소설은 아니고, 다른 역사서와도 달라요. 임진왜란에서 콘트롤타워였던 류성룡이라는 인물 시각에서 봤다는 점, 전투사가 아니라 전쟁사라는 점에서 다릅니다.


보통 평전이라고 하면 어린 시절부터 죽을 때까지를 다루는데요. 『류성룡 7년의 전쟁』에는 주로 임진왜란 이야기가 나옵니다.
 
서문에 ‘느슨한 평전’이라는 표현을 썼는데요. 우리가 왜 류성룡에 관심을 두는지를 생각해 보면, 4살 때 글을 배워, 8살 때 맹자를 읽어서는 아닐 거예요. 그 사람 이름을 세우게 한 중요한 시기가 있었는데, 그게 바로 7년 전쟁이죠. 그래서 임진왜란에 집중했습니다.


책이 나온 뒤에 드라마 <징비록>이 방영되고 있는데요.


『그림문답』이후로 류성룡 평전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드라마화 소문이 들리니까 서둘렀죠. 드라마보다 뒤에 나와서는 안 되는 거잖아요. 드라마에서 어떤 류성룡의 모습이 보여질지 저도 궁금합니다. 드라마도 잘 되고, 책도 잘 되면 좋죠. 다양한 류성룡의 모습이 있습니다. 잘못을 솔직히 말하는 게 쉽지는 않은데, 류성룡은 잘못을 인정했던 영의정이었어요. 류성룡의 남다른 점이었고요. 열심히 일하기도 했지만 뒷마무리가 깔끔한 재상이었어요. 이런 모습이 드라마에서도 잘 보였으면 합니다.


『징비록』의 또 다른 주연이 이순신인데요. 선생님은 누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임진왜란은 류성룡 이순신이 투톱이었고 이원익 이덕형 이항복이 잘 보좌해서 그나마 이 전쟁을 견딜 수 있게 한 전쟁이라고 평가하죠. 마이너스 요소가 큰 게 선조였고요. 아무래도 이순신 등 무신의 활약이 눈에 보여요. 류성룡 같은 정치인은 덜 보이고요. 하지만 두 명 중 한 명만 꼽으라면 류성룡이겠죠. 7년 중 4년 이상은 큰 전투 없이 강화 협상만 합니다. 이걸 견디는 건 정치력이었고요.


선조를 쓰시면서 안타까움도 느꼈을 것 같습니다.


책에서는 선조를 그나마 좋게 쓴 거예요. 실제로 실록을 보면 속 터지면서도 안쓰러운 모습이 많죠. 선조가 아주 좋았던 시절에 왕이 되었다면, 크게 욕 안 먹는 왕이었을 거예요. 시도 잘 짓고 그림도 잘 그렸거든요. 공부도 열심히 했고요. 선조는 적자인 대군이 아니었을 뿐 아니라, 장자도 아니었어요. 그런데도 많은 군 가운데서 뽑힌 건, 공부를 열심히 하고 성품이 좋아서였어요. 물론 외척이 없다는 정치적 고려도 있었지만요. 그런데 전쟁을 맞닥뜨렸을 때 어울리는 군주상은 아니었죠.


임진왜란은 어떤 전쟁이었나


한국인에게 인기 있는 역사적 소재가 임진왜란입니다. 그런데 임진왜란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보통 임진왜란 하면, 일본이 쳐들어와서 7년 동안 줄기차게 싸웠다고 생각하잖아요. 실제로는 큰 전투는 많지 않았고 지루한 강화 협상이 이어졌는데, 실제 임진왜란과 기억 속 임진왜란의 차이는 왜 생길까요?
 
조선이 이긴 전쟁이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지만 그럴까요. 물론 일본이 이긴 전쟁은 아니었죠. 목적했던 걸 얻지 못하고 퇴각했으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백성의 절반 이상이 죽고, 농지가 황폐해진 이런 전쟁을 이겼다고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큰 전투 중에서 이긴 전투 위주로 우리는 기억하는 거 같아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아픈 역사니까요. 이긴 기록 위주로 교육도 이뤄졌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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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이라는 말이 적절하지 않다는 비판이 있잖아요.


용어 문제는 늘 학자 사이에서 있죠. 최근에는 동아시아 삼국 전쟁이 힘을 얻고 있는데, 전쟁 초반부터 명군이 참전했고 후반에는 명과 일이 싸우는 양상이 되어서 말은 됩니다. 그렇지만 전쟁 당사국이자 최대 피해자가 조선이라는 사실이 잘 안 드러나는 느낌도 있어요. 저도 조일전쟁 정도가 적당한 것 같지만 아직은 일반적으로 임진왜란으로 많이 쓰니까 책에서는 임진왜란으로 썼어요. 과거에는 6ㆍ25동란으로 표기했지만 요즘은 한국전쟁으로 하는 것처럼 토론과 합의를 통해서 바뀔 수 있어요. 한중일 세 나라가 한 용어를 썼으면 좋겠는데, 쉬울 것 같진 않아요.


임진왜란을 두고 용어 문제도 있지만, 여러 가지 이슈가 있잖아요. 실은 원균이 충신이었다는 주장도 있고요.


근거의 하나로 드는 게 선조가 피난 갔을 때 원균이 적을 섬멸해야 한다고 오버하는 장면이 있어요. 하지만 실제로는 싸울 군사가 없었죠. 그리고 전쟁 끝나고 공신 선정할 때 원균이 1등 공신이었어요. 장군 중에서는 이순신, 원균, 권율 세 사람이 1등 공신입니다. 원균도 1등 공신에 올랐으니까 뭔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주장인데요. 공신 선정은 선조 주관이 많이 반영됐죠. 특히 무장 중에서는 전장에서 죽으면 다 공신으로 추증됐어요. 탄금대 패배로 조선을 궁지에 몰아넣은 신립도 영의정에 추증되거든요. 이런 맥락을 봐야겠죠. 물론 이순신을 너무 영웅화하니까 다각도로 보자는 의미는 있겠죠. 제가 봐도 이순신은 정말 존재하기 힘든 인물 같아요. 어떻게 저런 대단한 사람이 태어났을까, 하는 마음이 들거든요.


이순신의 죽음을 두고도 논란이 많죠. 전사한 사람이 십여 명밖에 안 됐는데, 장군이 죽었다는 상황이 다소 이해하기 어렵잖아요.
 
스스로 선택할 수도 아닐 수도 있는데요. 개인적으로는 스스로 선택하지 않았나…. 장수에게 좋을 게 없는 상황이었죠. 전쟁 끝나는 건 이순신도 알고 있었고 류성룡은 탄핵받아 떠나야 하는 소식도 들었으니까요. 많은 생각을 했을 것 같아요. 일부러 죽으려고 하지는 않았겠지만, 전투를 피하지도 않은 거죠.
 
의병을 두고는 충을 너무 강조한 국가주의적 해석이 아닌가 하는 지적도 있습니다.


의병을 조직한 게 대부분 재지사족이었습니다. 자기 고향 기반이 튼튼한 사람들이었죠. 고향이 무너지면 자기 재산이 다 무너져요. 조선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기 근거를 지키는 것도 중요했을 거예요. 한편으로는 국가적 충을 너무 강조한 거 아니냐고 하는데, 조선 시대는 유교 사회였어요. 충, 효가 당연한 사회였죠. 충과 효가 한 몸인 유교 국가이니 지금 잣대로 보면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어요.


명군은 별로 도움이 안 됐다고 평하기도 하는데요.


폐해가 컸지만 명군이 도움이 안 됐다는 평에 대해서는 아니라고 봐요. 『징비록』에 나오는 표현인데, 왜군은 얼레빗 명군은 참빗이라는 말이 있죠. 이 정도로 폐해가 많았어요. 국가적 자존심도 말이 아니었고요. 왕인 선조가 명의 하급 벼슬아치에게 무릎 꿇었으니까요. 이건 선조에도 문제가 있었어요. 꼭 그렇게 할 필요까지는 없었거든요. 그래도 명군이 없었다면 전쟁 결과는 장담할 수 없었어요. 왜군을 막을 조선군의 숫자가 없었고 대비할 시간도 없었으니까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남해안에서 버티려고 했던 건 명군이 부담스러워서이지 조선군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명군이 나쁜 짓을 많이 했지만 도움이 안 됐다고 할 수는 없어요.


임진왜란에서 우리는 뭘 배워야 할까


임진왜란을 한중일 세 나라 시점에서 보자면?


명은 망하고, 일본도 정권 교체가 이뤄집니다. 잘 된 건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기이하게도 가장 많은 피해를 본 조선만 버티게 되죠. 독특한 현상인데요. 중국처럼 호시탐탐 노리는 이민족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일본처럼 무사들이 경쟁하던 사회도 아닌 조선은 안정된 사회였어요. 전쟁이 끝난 다음에는 제도적, 정치적으로 극보수화됩니다. 호란을 두 차례 거치면서 더 남의 말을 안 듣고요. 이런 점이 임진왜란이 남긴 정말 부정적인 모습이죠.


전쟁이 끝나고 농지가 줄어드니 상속에서부터 장자를 중시하는 가부장적 질서가 공고해졌다는 지적도 있는데요.
 
어느 정도의 과장은 헤아려 받아들여야겠지만, 농지가 1/3 정도만 남았다는 기록도 있어요. 멀리 생각할 것도 없이, 어렵던 시절에 큰아들 한 명에게만 몰아주는 분위기가 있었잖아요. 이런 현상이 있을 수 있죠.


여남 차별을 조선 성리학으로 탓으로 돌리는 데 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어느 정도 책임은 있겠죠. 하지만 왜 중국보다 조선에서 심한 차별이 있었을까요? 원래 보수도 정말 극하게 가는 사람은 최상류층이 아니에요. 최상류층을 추구하는 사람이죠. 조선에 그런 면이 있었어요. 유교가 책임을 질 부분도 있지만, 유교를 잘못 적용하고 고지식하게 받아들였던 사람 책임이 아닐까 싶어요.


임진왜란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이덕형의 부인이 임진년에 죽는데, 자살이었죠. 이덕형은 왕을 수행해야 하니 엄청 바빠요. 부인이 시아버지를 따라 산골로 피난 갑니다. 그 산골에 왜군이 들어온다는 소문이 와요. 몸을 더럽힐까 봐 자살하는데, 알고 보니 그건 소문이었어요. 여종도 자살 안 하고 그녀만이 스스로 죽었어요. 아버지가 이산해, 남편이 이덕형이니 아버지와 남편에게 누가 될까 그런 결정을 한 거예요. 이렇듯 소문만으로 죽어야 했던 게 조선사회였어요. 그게 지금까지 이어진다면, 조상 탓을 할 게 아니라 우리 자신을 돌아봐야죠. 아직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스펙이 남자라는 말이 있잖아요.


임진왜란과 지금 현재 동북아 정서가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네. 동북아 정세가 서로 얽혀서 복잡하기는 그때보다도 더하겠지요. 징비록이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것도 현재의 이런 상황 때문이기도 한 것 같습니다. 같은 어려움이 닥쳤을 때를 대비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책이니까요. 왜 지금 이 시대에 이순신, 류성룡 같은 역사 속 이름들이 주목받고 있는가도, 한번 물어야 할 문제라 생각해요. 그런 이들에게 무엇을 기대고 싶은가를 짚어봐야겠죠. 그런데 지금은 조선시대와는 달리, 정치할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국민들이 직접 뽑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제일 앞에서 책임져야 할 이들이 선출직이라는 겁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 모두에게 무언가 할 수 있는 힘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거죠. 책임질 수 있는 인물로서 류성룡을 떠올리고 그에 삶을 읽게 되었다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아울러 돌아볼 수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제 자신이 류성룡 평전을 쓰게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앞으로 관심사는?


여러 가지 있는데 조선 인물 이야기를 느슨한 평전 식으로 계속 쓸까 생각 중이고요. 그림과 역사의 어우러짐에 대해서도 계속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올해도 바빠야죠. 젊을 때 놀아서 열심히 살아야 합니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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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성룡 7년의 전쟁이종수 저 | 생각정원
저자 이종수는 류성룡의 삶을 재조명하면서 전 생애가 아닌, 그를 ‘류성룡’으로 기억하게 해준 임진왜란에 집중했다. 선조를 대할 때마다 가슴 아파했던 마음의 거리, 당파가 달랐지만 이덕형을 향한 깊은 신뢰, ‘그의 바다’를 지킨 이순신을 향한 마음, 무엇보다 전란을 가장 고통스럽게 견디는 백성들에 대한 연민…. 이 책은 류성룡이 징비록에서 차마 다 말할 수 없었던 그 마음의 전쟁을 따라간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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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권리 “『상상범』 은 자유를 박탈당한 익명의 존재를 그린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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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다양한 소설이 있다. 우선 오랫동안 반복되어온 주제를 대중에게 친숙한 방식으로 풀어가는 이야기가 있다. 그 반대편에는 문장이나 구성 혹은 주제 면에서 전혀 새로운 무언가를 독자에게 던지는 이야기도 있다. 둘 중에 무엇이 더 좋으냐는 물음에 대한 답은 없다. 확실한 사실은 권리 소설가는 후자라는 점이다. 소설을 쓸 때 가장 먼저 고려하는 게 유일함, 즉 세상에 나온 적이 없는 이야기여야 한다고 말하는 그녀가 4번째 장편소설을 냈다. 『상상범』이 바로 그 작품이다.

 

이전에 발표한 세 작품 『싸이코가 뜬다』, 『왼손잡이 미스터 리』, 『눈 오는 아프리카』에 비해 신작 『상상범』은 환상적 요소를 극대화했다. 전작이 현실을 배경으로 하되 환상적 요소를 넣었다면 이번 소설은 배경부터 미래다. 이름부터 재밌는 우라질(URAZIL : United Repulblic of Asian Z-land) 정부는 범죄가 없는 곳이다. 국민이 착해서가 아니라 정부가 모든 범죄를 합법화했기 때문이다. 단 상상을 제외하고. 특히 창조적 상상은 처벌 대상이다.

 

소설 속 주인공인 요철은 연극배우인데 창조적 상상을 했다는 이유로 법정에 선다. 도대체 무엇을 잘못했는지 알 길이 없는 그는 차마 자신이 피고인으로서 법정에 섰다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그저 연극 속이라고 생각하며 혼신을 다해 연기한다. 시간은 흐르고 요철은 점점 궁지에 몰리지만 탈출구는 없다. 아무런 이유 없이 사회 구조가 합법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박탈한다.

 

살인 이하의 죄를 저지른 자를 전부 석방하는 안이었다. 즉, 강간, 살인 청부, 사기, 상해, 인명 피해가 없는 테러 행위 등을 자행한 자는 무고한 시민이 될 자격이 있었다. 이 법은 범죄자 처벌 및 감금에 연간 80조 우라(ura)가 넘게 들어가는 예산을 줄이기 위한 획기적인 방안이었다. (중략) 로텍파 의원들은 범죄에 대한 희귀하고 독특한 타개책을 내놓았다. 그들은 범죄란 언제나 일상의 평온함을 깨부수고자 하는 상상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14~15쪽)

 

이렇듯 인간의 자유에 관해 진지하게 탐색하는 소설인 『상상범』의 저자 권리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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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 사건과 『상상범』

 

오랜만에 나온 소설입니다. 어떻게 지내셨나요.

 

3년 정도는 다양한 공부를 했고요. 슬럼프가 좀 길어서 우울했어요. 그러다 보니 시간이 훌쩍 갔는데 중간에 낸 에세이로부터 잡아도 3~4년 정도 쉬었네요. 특별한 일은 없었어요.
 
오랜만의 복귀작인 만큼 소재 선택에 더 민감하셨을 것 같아요. 『상상범』이 상상이 죄인 시대에서의 사법 살인이라는 소재를 다뤘습니다. 이런 소재를 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아주 처음으로 가면 어렸을 때 읽은 무라카미 류의 『69중에 ‘상상은 죄가 아니다’는 말이 기억나요.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도 있었고 소설 쓰는 도중에 <인셉션>이 개봉하기도 했고요. 환상적 리얼리즘 영향도 받았습니다. 다른 인터뷰에서도 말했듯, 2009년에 우리나라에서는 이상한 일들이 많이 일어났잖아요. 작가의 말에서는 용산 사건만 말했지만, 실은 미네르바 사건이 줬던 영향이 더 컸어요. 책 속에 나오는 사건번호도 미네르바 사건과 같죠. 그 때 개인적으로 어려운 일도 많이 있었는데 여러 가지 일이 섞이면서 『상상범』이 나왔어요.

 

미네르바 사건을 말씀하셨는데, 퇴고하시면서 세월호 사건과 통진당 사건 등도 있었습니다. 이 사건 역시 법정에서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이들 사건의 영향은 없었나요.

 

특별히 없었어요. 문학이라는 게 굉장히 느린 매체입니다. 『상상범』도 2009년 사건을 이제 와서 꺼내는 거죠. 세월호 사건은 지금 쓰기는 힘든, 민감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안타까울 뿐이었죠.

 

법정 장면이 인상적이었는데요. 쓰시면서 따로 취재하셨나요.

 

피고인으로 재판에 참석한 적은 없고요. 집 앞에 지방법원이 있어요. 시간 날 때마다 봐서 봤어요. 가서 방청객에 앉아 있으면 이상한 느낌이 들어요. 한 편의 연극을 보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피고인 중에서 울분을 토하면서 우는 사람도 있고 다양한 모습을 보여요. 포박당해 있든 그렇지 않든 어쨌든 그들은 더는 자유롭게 문 밖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공판에 참여하는 어떤 방청객은 흥분해서 판사에게 “네가 신이야?” 이렇게 욕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그 사람은 그 사람의 역할을 하는 거예요. 재판관의 역할은 정의의 실현보다는 법이 적절히 적용되었는지 살피는데 그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그곳에서는 현실이 아닌 것 같은 묘한 느낌도 들어요.

 

미네르바 사건의 본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표현의 자유를 억압한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즈음에 PD 수첩 사태도 있었어요. 방송국 소속도 아닌 프리랜서인 작가의 이메일을 열람했다는 데 놀랐어요. 일반인을 검열할 수 있는 사회인 거죠. 『상상범』에서도 익명의 존재를 그리고 싶었습니다. 소설 마지막에 등장하는 해골이 바로 그러한 익명의 존재를 상징해요. 『왼손잡이 미스터리』의 주인공도 가만 놔두면 알아서 잘 살 수 있는 익명의 존재인데, 외압으로 자유를 잃어버리는 이야기였어요.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모바일 메신저도 쉽게 할 수 없잖아요. 자신의 자유가 억압당하는데도 더이상 충격받지도 않는 세상이에요. 어떤 사람은 정말 젊어진 것 같다고 이야기하더라고요. 30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다고요. (웃음) 조지 오웰이 『1984』를 썼을 때 그 작품이 고전이 될지 몰랐을 거예요. 하지만 여전히 유효해요. ‘자유’의 문제가 중요합니다. 용산 사건도 수사하지 않고 법적으로 바로 갈 수 있다는 게 놀라운 발상이었잖아요. 결국에는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이미 결정내린 걸 여러 절차를 거치는 것처럼 보였을 뿐이에요. 사법적인 살인이 공공연히 자행되고 있고 지금도 현재 진행형입니다. 이런 여러 문제가 섞여서 이야기가 좀 복잡해졌어요.

 

현실과 초현실 사이

 

등장인물 이름이 재밌어요. 『싸이코가 뜬다』에서는 오난이, 『상상범』에서는 요철은 그런데요. 등장인물 이름 붙일 때 어떤 점을 먼저 생각하시나요?

 

이름을 무난하게 지어서 리얼리티를 살리고 싶어하는 작가도 있을 텐데 저는 연극적인 걸 좋아해요. 이름에서부터 초현실적인 느낌이 나도록 지어요. 살바도르 달리를 좋아하는데, 현실감이 없으면서도 희한하게 흥분을 불러 일으키게 하는 그런 게 좋아요.

 

독자로서 저는 대심문관을 연상하게 하는 율리의 고백 부분이 인상적이었는데요. 작가님께서는 가장 재밌게 쓴 부분을 꼽아주신다면.

 

글을 쓰는 작가에게는 ‘율리의 고백’ 같은 부분은 알면서 먹는 독 같은 거죠. 주제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다 보니 화려하게 쓸 수도 있지만 분량을 최대한 적게 하고 싶었어요. 저는 요철이 자기 재판인 줄 모르고 연극으로 들어간다고 생각하는 장면이 그로테스크하면서도 재밌다고 생각해요.

 

S경제연구소가 발표한 2321년 정책평가보고서에 따르면, URAZIL(United Repulblic of Asian Z-land) 정부는 작년에 세 가지 위대한 일을 했다.
첫째, 인류의 미래를 위협하는 환경 파괴의 주요 원인이 되는 음식물쓰레기에 의한 환경오염에서 벗어나기 위해 국민의 식사를 하루 한 끼로 줄이는 운동을 시작했다. (정부는 그 한 끼를 미래의 식량난을 예방할 수 있는 고단백 곤충식으로 할 것을 권장했다.)
둘째, 소가 뿜어내는 이산화탄소의 양이 자동차의 그것보다 훨씬 많다는 이유로 소의 사육을 중지하고 힌두교도의 소 신격화 제도 도입을 추진했다.
셋째, 첫째와 둘째 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예산이 든다는 이유로 제도 도입을 반려했다. (12쪽)

 

작가님 글을 보면 블랙 유머가 곳곳에 등장하는데요. 『상상범』도 그랬고요. 실제 작가님은 어떤 사람인가요.

 

제가 많이 어설퍼요. 숨만 쉬어도 웃기다고 하기도 하고 행동 하나 하나가 재밌다고 하는데, 왜 웃긴지는 잘 모르겠어요. 저는 언제나 진지하거든요. 다만 글을 쓸 때는 원래 블랙 코미디를 많이 좋아해서 소설에서 많이 담으려고 하죠. 미국 작가 중에서 커트 보네거트를 좋아하고요. 영국식, 미국식 블랙코미디를 되게 좋아해요. 우리나라에서는 구사하는 사람이 잘 없는 것 같아요. 한국에도 따뜻한 웃음은 많은데, 차가운 웃음이 부족해요. 저는 ‘아프니까 환자다’ 이런 유머가 재밌게 다가오는데 이런 쪽은 영국이 굉장히 발달했고 그 영향을 받은 게 미국이거든요. 소설에서 유머를 쓴다면 쉽게 한 번 웃고 마는 걸 쓰고 싶지는 않아요. 유머의 어원이 눈물인데, ‘웃으면서 왜 눈물이 나지?’ 이런 느낌의 유머를 쓰려고 합니다.
 
결혼 후로 창작에 변화가 있었나요. 관심사가 가족으로 향한다든지 하는 변화 말이죠.

 

그럴 일은 없을 거 같아요. (웃음) 제가 나이 들어서 인지 능력의 저하가 온다면 그럴 수 있을 것 같은데, 모르겠어요. 아이를 낳으면 모성애가 생길 수도 있는데. 주제는 별로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아요. 주제, 구성, 문체가 있다면 저는 항상 문체 위주거든요. 기사 쓰는 기자 입장에서는 주제를 다루는 게 제일 쉬우니까 권리 하면 대부분 ‘사회비판적’ 이런 이야기가 나오지만 작가로서 제가 가장 신경 쓰는 건 문체입니다. 『상상범』은 처음의 문체를 끝까지 유지는 못한 듯해서 조금 아쉬워요. 뒤에 진지하게 빠진 것 같아서요. 저는 문체와 형식을 중시하는 문체주의자이자 형식주의자예요. 추리소설 같은 플롯이 아니라 에스허르의 그림처럼 형식이 내용을 대변하듯, 문체에 치중하면서 표현 자체가 하나의 내용처럼 보이는 작품을 쓰고 싶어요. 『싸이코가 뜬다』도 주제보다도 문체로 간 소설이었고 그쪽으로 회귀하고 싶은 생각도 있어요.

 

작가님 말씀을 듣다 보면 앞으로 작품도 쉽지만은 않겠습니다.
 
퇴고하기 전에 주변에 보여줬더니 너무 어렵다고 해요. 플롯을 짜내려고 하다 보니까 어려워진 거 같아요. 앞으로는 플롯 생각 안 하고 떠오르는 대로 쓰려고요. (웃음) 

 

문학은 느린 장르 독자층이 두꺼워졌으면

 

구성도 구성이지만, 권리 소설에서는 형이상학적 주제가 나오잖아요. 이번 작품에서는 인간의 자유가 그러했습니다. 내용 면에서도 권리의 소설이 어렵게 느껴질 수 있을 듯해요.

 

고민이라고 생각해요. 이렇게 스마트폰을 많이 보는 시대에서, 두세 번 읽어야 하는 소설을 써야 하는 건 고민인데요. 그래도 독자층이 단단해진다면 저 같은 소설가의 작품도 봐주는 사람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일본, 프랑스에 가면 부러운 게 독자가 많아요. 베스트소설을 봐도 우리가 순수문학이라고 말하는 작품이 있습니다. 그런 작품이 꼭 노벨상을 받아서가 아니라 독자가 많이 읽다 보니 베스트셀러가 된 거죠. 한국은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이런 걸 쓰는 게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생각은 들어요.

 

그럼에도 계란으로 바위치기를 하시는 이유는?

 

『싸이코가 뜬다』를 이야기하자면, 거기서 싸이코는 싸이코패스가 아니라 남들은 다 옳다고 할 때 혼자 아니라고 하는 사람을 가리켜요. 좋게 말하면 자발적 아웃사이더고 나쁘게 말하면 왕따죠. 자기만의 취향이 있는 사람이 있는데, 사회가 이들을 무시하거나 싫어할 수는 있어요. 분명한 사실은 존재한다는 점이죠. 제 생각에는 많으면 10퍼센트 정도라고 봐요. 어떻게 보면 저도 마이너 취향이라고 할 수 있고요. 동시에 메이저 취향도 갖고 있죠. 제가 약간 마이너 취향이 있긴 하지만 지향하는 게 아니라 결과일 뿐이고 세상에 없는 걸 쓰는 게 목표입니다.

 

글을 쓸 때는 이 소설이 이세상에 나와야 할 필요가 있나를 먼저 생각해요. 제가 쓰고 싶은 건 두 번째입니다. 제가 쓰고 싶더라도 이미 남이 썼다면 쓸 필요가 없어요. 어떤 책이든 세상에 효용이 되어야 하는 부분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죠. 아름답고 감동적인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도 있지만 저처럼 약간 삐딱한 시선을 꿋꿋하게 유지하는 소설가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세상의 노선에서 벗어난 게 아닌가, 이렇게 망설일 때 제가 쓰는 소설을 보면서 위안을 받을 독자가 있다면 좋겠고요.

 

지금은 안 읽지만 시마다 마사히코를 좋아한 적이 있었는데 그 작가가 이상한 소설을 써요. 지하철에서 독자가 본인을 우연히 만나면 모른 척하지 않을까 하고 걱정한 걸 읽은 적이 있는데요. 제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도 몰래 몰래 읽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할 때도 있어요. 음악에서도 홍대 음악이 많이 많이 활성화되었잖아요. 그런 것처럼 문학도 워낙 느린 장르다 보니까 앞으로 독자층이 두꺼워지면 좋아지지 않을까요.

 

문체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하셨지만 발표하는 작품마다 사회적으로 민감한 주제를 다루셨는데요. 요즘 관심을 두고 관찰하는 현상이 있나요?


워낙 개판이라 뭘 먼저 말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여당과 대통령 지지율이 역전되는 시기가 임기가 끝나기 1년 전인데 벌써 왔잖아요. 가장 큰 문제는 국민들이 정말로 원하는 것을 정부 당국이 모른다는 거예요. 세월호가 결정적인 사건이었어요. 굉장히 복잡한 체계에 의해 돌아갈 것 같던 정부의 실상이 아주 별볼일 없다는 것을 보여줬죠. 믿고 있던 정부가 저러고 있으니까 국민들은 불안한 거죠. 개인의 생존은 각자가 알아서 챙겨야 한다는 의식이 확대된 것 같아요. 총체적인 불신이 들 수 밖에요.


앞으로도 사회에 대한 관심은 글에 꾸준히 담을 거예요. 평소에도 기사에서 많은 영감을 얻지만 기사와 소설은 엄연히 다르니까 표현방식도 달라지겠죠. 구성은 더욱 단순하게, 주제는 더욱 모호하게, 문체는 더욱 신랄하게 가고 싶어요.

 

예전 채널예스 인터뷰 때는 나이가 들수록 화가 많이 줄었다고 했잖아요. 요즘은 어때요?

 

예전에는 항상 화가 나 있었죠. 열등감이 많았던 시기였던 것 같아요.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욕심을 많이 버려서이기도 하고요.

 

다음은 어떤 작품을 구상 중인가요?

 

선악이나 죄의식, 인간의 미묘한 감정에 대한 문제를 다루고 싶어요. 그 동안 너무 거시적인 문제만 다룬 것 같아서요. 알고 보니 ‘인간은 별 거 없더라’라는 게 주제예요. 또 단편집을 아직 한 번도 안 냈는데 이제는 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앞으로는 좀 더 자주 쓸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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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범권리 저 | 은행나무
권리의 육 년 만의 신작이다. ‘작가의 말’에서도 밝혔듯이 “육 년 만의 장편소설, 십 년간의 유목작가 생활의” 결과물인 셈이다. 기존의 작품들이 현실에 대한 통렬한 경멸과 두려움을 통과하는 젊은 세대들의 자화상에 집중했다면, 이번 신작에서는 2322년 미래를 무대로 상상하는 행위 자체가 범법 요소가 되는 어느 한 세계를 조명하고 있다. 상상이 범죄가 되는 시대, 그 거대한 딜레마에 빠진 사람들의 우스꽝스러운 사회학적인 문제들을 한 편의 블랙코미디 연극 형식에 빗대어 그려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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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디토리움 김정범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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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범은 ‘푸딩’, ‘푸디토리움’으로 활동하며 클래식과 재즈를 넘나드는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이다. 이윤기 감독의 < 러브토크 >, < 멋진하루 >의 음악 작업은 물론이고 하정우 감독과 < 577 프로젝트> , < 롤러코스터 >, 그리고< 허삼관 >까지 함께 하며 ‘영화 음악 감독’으로서  분명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 허삼관 >은 가족을 위해 피를 파는 한 남자의 고단한 삶을 풍자와 해학으로 그려냈다. 누군가를 위해 ‘피’를 뽑는다는 것, 그리고 그 피로 무엇인가가 생명을 얻는다는 건 ‘영화’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음악감독 김정범과 함께 그의 정신적인 피가 흐르고 있을 < 허삼관 >의 음악 그리고 ‘영화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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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음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2005년 미국 유학시절이었어요. 소속사에서 전화가 왔는데< 여자, 정혜 >라는 영화를 만든 이윤기 감독님이 영화 예고 음악에 푸딩의 음악을 삽입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당시에 영화감독들이 < TV문학관 >이라는 프로그램을 연출하는 프로젝트가 있었는데요. 이윤기 감독님이 은희경 작가의 『내가 살았던 집』을 만드셨어요. 감사하게도 그 드라마에도 푸딩의 음악을 쓰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운명처럼 제가 미국에서 한국에 도착한 날 드라마가 방영이 됐어요. 그리고 다음 영화< 러브 토크 >에서 함께 하면서 영화음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됐어요.

 

이윤기 감독이 왜 푸딩의 음악에 그토록 관심을 가졌을까요? 이야기 들으신 게 있나요?


지인 차에서 우연히 ‘푸딩’ 음악을 들었다고 해요. 처음에는 외국 뮤지션인줄 알았고 굉장히 나이가 많은 뮤지션이라고 생각했대요. 그런데 한국 사람인 걸 알게 되어 바로 연락을 하게 됐다고 하더군요.

 

현재 이윤기 감독과 하정우 감독의 작품을 주로 맡고 계신데요. 하정우 감독과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요?


이윤기 감독님과 인연이 하정우 감독까지 이어졌어요. 이윤기 감독의 < 멋진 하루 >에서 주연 배우였던 하정우씨를 만났어요. 그런데 촬영 당시에는 자주 보지는 못했어요. 어느 날 제가 치과에서 신경치료를 받고 너무 아파서 눈물을 막 흘리고 있는데 전화가 한 통 왔어요. 바로 하정우 감독님이었죠. 지금 본인은 유럽에서 영화 < 베를린 > 촬영하고 있는데 <577 프로젝트>음악을 좀 맡아달라고 하더군요. 
 
<577 프로젝트>, <롤러코스터>이번에 <허삼관>까지 하정우 감독과의 작업이 세 번째네요.


< 허삼관 >같은 경우는 시나리오 단계 전부터 이 영화도 같이 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그 때부터 원작을 찾아보고 했죠. 일반적으로 영화 음악은 편집이 끝나고 만들기 시작하는 후반작업의 일환이죠. 저는 시나리오가 나오기 전부터 회의에 계속 참여를 하는 편이에요.

 

후반작업인데 미리 참여를 하는 이유가 있나요?


영화가 만들어지는 시작부터 참여를 하는 이유는 처음부터 캐릭터 분석이나 상황을 파악하려고 하는 거죠. 이 작업을 미리 해놓으면 오히려 편집이 나왔을 때는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어요. 

 

하정우 감독과는 어떤 식으로 작업을 하나요?


하정우 감독님은 자신이 생각한 음악을 들려주기도 하고 함께 이야기를 많이 나눠요. 하지만 음악을 들려준다고 해도 왜 이 부분이 좋다고 생각하는지 알수가 없죠. 좋아하는 포인트도 사람마다 다르니까요. 그래서 저는 감독님들께 질문을 많이 해요. 왜, 어떤 부분이 좋나요? 하고 디테일하게 물어보는 편이에요. 하정우 감독님의 경우는 내가 설명을 잘 못하는 것 같다는 걱정을 많이 하는데 어떤 이야기든 거리낌 없이 무조건 던져보라고 이야기를 해요. 그럼 그 이야기를 다 기록을 해서 참고를 하죠. 그리고 영화는 편집이나 촬영 같은 부분이 계획과 달라지는 경우도 생기더라고요. 계속 영화 작업에 참여를 하면 감독의 의도와 거리를 줄일 수 있고 무엇보다 기계처럼 찍어내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음악을 본격적으로 만드는 작업은 기간이 짧을 수 있지만 음악을 만들기 전에는 계속 영화의 호흡을 쫓아가는 거죠. 이번에 < 허삼관 >같은 경우는 상업영화다 보니까 많은 변수가 있었는데 그 변수를 쫓아갈 수 있는 방법도 최대한 감독을 이해하고 왜 바뀌었을까를 추적해나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상업영화 음악은 처음인데.. 그동안의 영화 작업과 어떤 차이가 있었나요?


이번에 < 허삼관 > 작업을 하면서 상업영화에 대해 처음 인지를 한 것 같아요. 개인 앨범의 경우는 제 음악을 좋아하는 취향을 가진 분들이 들어주시잖아요. 그래서 이런 음악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게 강요를 할 순 없죠. 그런데 상업 영화는 많은 사람들, 다양한 계층들이 보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설명이 되는 보편적인 음악을 만들자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래서 그런가요? 이번 앨범은 재즈 보다는 클래식이나 오케스트라 음악이 많이 쓰인 것 같은데요?


네, 영화 전반부의 음악은 1980,90년대에 나오던 미국 할리우드 홈드라마나 블록버스터 음악들의 방식을 따랐어요. 그래서 이번< 허삼관 >음악의 큰 축은 오케스트라였어요. 물론 그 외에 집시 재즈, 탱고도 있긴 합니다. 하지만 가장 큰 중점이 오케스트라다 보니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그리고 영화에 어떻게 배치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 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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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케스트라 음악은 아무래도 많은 사람들이 움직이기 때문에 어려움이 컸을 것 같은데요?


한국에서 잘 알려진 오케스트라 곡은 대부분 현 중심이 많아요. 최대한 클래식 음악과 가깝게 만들고 싶어서 현 보다는 목관 악기나 금관 악기 같은 클래식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악기 구성을 쓰고 싶었어요. 그렇게 하려면 일단 편곡의 방법이 다양해지고 각 파트의 오케스트레이터들을 어떻게 컨트롤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생기죠. 실제로 제가 몇 마디를 쓰고 편곡으로 또 피드백을 받으면서 다양한 테스트를 거쳤어요. 녹음 때도 체코 내셔널 심포니 오케스트라 스튜디오에서 연주를 하면 뉴욕에 있는 오케스트레이터 마크와 서울에 있는 엔지니어 강효민씨 이렇게 모두 실시간으로 함께 작업을 했어요.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작업을 하는 독특한 경험이었어요.

 

체코 내셔널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작업을 했는데... 특별히 이 오케스트라와 작업을 한 이유가 있나요?


일단 체코 내셔널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규모가 맞았어요. 그러니까 악기 편성이 금관, 목관 악기가 다 있고 인원도 60명이었고요. 여기가 엔니오 모리꼬네(Ennio Morricone)와 작업도 하고< 호빗(The Hobbit) >같은 할리우드 음악을 많이 해서 녹음 홀도 크고 연주의 합도 잘 맞았어요.

 

오케스트라와 소통은 어떻게 했나요?


일단 오케스트라는 악보가 중요해요. 악보가 정확하면 말이 필요가 없죠. 큰 규모라 전문 카피스트 분도 계셨고 디렉터와 이야기 할 때도 결국 중요한 건 악보였어요. 악보에 모든 키가 달려있는 거죠.

 

푸딩 시절에도 다른 나라 아티스트와 작업이 많았잖아요. 이번에도 한국, 체코, 미국, 브라질 프랑스, 이탈리아 총 6개국 분들이 참여하셨네요.


다른 나라 아티스트와 작업을 하는 이유는 간단해요. 이런 사람과 이런 음악을 만들고 싶은데 원하는 그 사람이 뉴욕에 있고 프라하에 있고 이런 식이라 제가 그 나라로 갈 수 밖에 없었어요. 섭외나 의뢰는 사전에 메일을 보내고 일정을 잡았죠.

 

영화를 보면 집시 음악이나 탱고도 있는데 OST 앨범에는 오케스트라 곡들이 위주인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OST를 들었을 때 영화 안에 있으면 좋은데 앨범으로 나오면 안 좋은 경우가 있더라고요. 영화 안에서 역할을 다하면서도 음반이 됐을 때도 감상이 잘 되는 곡들을 묶으면 좋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러려면 한 톤을 유지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계속 음악들을 통일시키고 있습니다. 그래서 < 멋진 하루 > OST는 재즈 톤으로, 이번에는 오케스트라와 피아노곡을 위주로 했어요.

 

오케스트라 오버 더빙도 없었고, 녹음 방식도 할리우드에서 사용되는 ‘5.1 트래킹’으로 했어요. 사운드에 대한 고집이 많이 느껴집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사운드에 대한 집착이 없는 편이라고 생각해요. 음반용은 더 세밀하게 믹스를 하는 거죠. 영화용 음악과 음반용 음악은 조금 다른 것 같아요. 조금 더 세밀한 터치들이 필요하죠. 타협보다는 기본은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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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음악을 하다 보니< 허삼관 >영상을 많이 보셨을 것 같은데 어떤 장면이 좀 기억에 남았나요?


대사를 거의 외울 정도로 많이 봤어요. 어떤 때는 처음과 편집이 달라졌네 하는 사소한 부분까지 찾기도 하고요. 하지만 음악을 만드는 영화는 특별히 인상적이고 재밌거나 슬프거나 그런 부분이 없어요. 이 장면에 어떤 음악을 붙일까도 고민을 하게 되니까 오히려 영화를 감정적으로 반응할 틈이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영화 음악은 어떻게 보면 이성적인 작업이 아닌가 싶기도 해요. 장면 하나 하나를 철저히 분석을 해야 하는 거니까 감정적으로 빠지면 음악을 만들 수 없을 때가 많아요.

 

특히 작업이 힘들었던 곡은 어떤 것이었나요?


이번 수록곡 중에 「매혈기」라는 곡이 있어요. 첫째 아들 일락이가 쓰러지고 뇌염이라는 판정을 받아 돈을 빌리러 다니는 장면에서 나오는 곡이죠. 어떻게 보면 상당히 중요한 위치에서 나오는 음악이에요. 그런데 계속 음악이 영상과 맞지 않고 제가 원하는 결과도 나오지 않아서 그럼 곡을 다시 써보자 싶었죠. 곡이 왜 안 나오는 지 원인을 알면 고칠 수 있지만 그 방법을 모르니까 극한까지 가서 다시 리셋을 했죠. 이 곡은 4번을 다시 썼어요.

 

앞으로 어떤 영화음악을 만들고 싶으신가요?


개인적으로< 이터널 선샤인 >의 음악을 만든 존 브라이언(Jon Brion)을 좋아해요. 지적이고 세련됐죠. 뭔가 푸디토리움 김정범의 색깔이 들어있되 영화에 흡수도 잘되고 퀄리티도 높은 그런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이윤기 감독님의 다음 작품 < 남과 여 > 사운드 트랙을 맡았어요. 거의 촬영이 끝나가서 기쁜 마음으로 음악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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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빵이 묵직하다면 대구빵은 세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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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주 중에 안 중요한 게 어딨겠느냐만 요즘은 가장 관심을 갖는 것은 아무래도 ‘식’인 듯하다. 먹방, 맛집, 레시피 등은 이 시대 인기 있는 대표적인 키워드다. 그렇다 보니 특색적인 맛집 탐방도 많은데, 『경상 빵집』도 그 중 하나다. 이 책은 베이커리 문화가 풍부한 영남의 이름난 빵집을 소개했다. 유명한 빵집 중에서도 지하철 근처에 있어 접근성 좋은 곳을 선정했다.

 

책을 쓴 이슬기 저자는 전작 『카페 부산』에 이어 두 번째 책에도 부산을 많이 다뤘다. 20대에 들어서야 부산에서 살기 시작했지만, 10여 년 넘게 부지런히 부산과 대구의 빵집을 다니다 보니 원주민보다 이 분야에 더 밝게 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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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부산』에 이어 두 번째 책을 내셨는데요. 첫 번째 책에 비해 두 번째 책을 낼 때 달랐던 점이 있다면?

 

『카페 부산』이 정적이었다면, 『경상 빵집』은 조금 더 동적이예요.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일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그런 면이 들어갔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출장이 잦은 편이라 1년에 대구에 머무는 기간이 두세 달은 훌쩍 넘어가더라고요. 퇴근길에 출출해 들른 부산의 빵집, 출장 길에서 놓치지 않은 대구의 빵집, 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마산의 빵집까지. 그 모든 시간이 합쳐져 나온 책이 『경상 빵집』이에요. 그러니 저를 조금 더 두근거리게 하는 무언가가 있죠.

 

첫 책에 이어 두 번째 책도 주된 장소는 부산이 중심인데요. 작가님께 부산이라는 공간은 어떤 의미인가요? 

 

부산에 산 지 올해로 10년을 넘어갑니다. 연고도 없는데 말이에요. 전 그냥 이 도시가 좋았어요. 어디든 30분이면 바다가 있고, 투박한 듯 이야기해도 진심인 부산 사람도 좋고요. 사랑도 했고, 이별도 했지요. 20대의 울고 웃었던 모든 시간을 온전히 부산에서 보냈어요. 미운 정 고운 정 다 든 남편 같다고 할까요. 저는 이제 부산을 떠날 수 없을 것 같아요.

 

이번 책에는 부산과 함께 대구, 그외 지역도 실렸는데요. 서문에도 쓰셨지만 부산과 대구 지방색이 미묘하게 다르잖아요. 이런 게 빵 문화에서는 어떻게 나타나나요.

 

부산이 네모라면, 대구는 사다리꼴이예요. 멀리서 보면 똑같은데 천지 차이고, 그 중에서도 대구는 조금 더 세심한 면이 있어요. 그건 빵에서도 그래요. 부산은 원래 가지고 있던 본연의 맛과 느낌을 잃지 않으려 하는 것 같고, 대구는 조금 더 다듬어가기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사투리로 '깔롱부린다' 고 표현해도 될까요. 부산은 묵직하고, 대구는 그 중 세련미가 조금 더 있고요.

 

이 책에 실린 집이 대개 소문난 집들인데요. 그래서 취재하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다든지 하는 어려움이 예상되는데요. 혹시 취재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알려주신다면.

 

전 부산 당리에 있는 '오공팔도너츠'를 잊을 수 없어요. 하루에 두 번, 빵이 시간 맞춰 나오는 빵집인데 10분 늦었더니 메뚜기떼라도 지나간 양 진열대가 깨끗해졌더라고요. 같은 부산이지만, 해운대쪽에 사는 저와는 끝과 끝이라 몇 번이나 도전을 했던지. 너무 튕겨서 도너츠랑 썸탈 뻔 했어요. 그래도 너무 맛있어서 마음이 눈 녹듯 녹았죠. 매력적인 빵집이에요.

 

빵집에 가서 판단할 때 기준이 ‘단팥빵’이라고 하셨는데요. 이유가 궁금합니다. 최고의 단팥빵을 꼽는다면?

 

전생에 팥이었나 봐요. 전 팥을 정말 좋아합니다. 단팥빵 없는 빵집이 없잖아요. 그만큼 흔한 것이 단팥빵이지만, 저는 그 흔한 빵을 맛있게 만드는 집이 좋아요. 가장 많이 찾는 빵에 공을 들이는 빵집은 기본적으로, 찾아오는 손님을 깊게 생각한다고 믿거든요. 전 대구 '정환철베이커리'의 단팥빵을 으뜸으로 이야기하고 싶어요. 오랜 시간 숙성하고 팥을 직접 쑤어 만드는 집인데, 한 입 먹어보고는 그날 만나는 사람들 갖다 주러 주섬주섬 빵을 담았어요. 혼자 먹기 아까워서 내 가게 아닌데도 마구 자랑하고 싶어지는 단팥빵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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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평상시에 작가님께서 편히 가시는 장소가 있나요. 있다면 공개를 해 주세요.

 

부산역 앞 '신발원'에 참 자주 가요. 제게 부산역과 신발원은 동의어예요. 기차 타는 날 무조건 가는 곳이고요, 평소에도 생각나면 먼 길 마다하지 않고요. 중국식 콩국이랑 빵, 과자를 파는 곳인데 사실 오늘도 갈까 싶거든요. 부산은 오늘 비가 와서, '신발원' 따뜻한 콩국 한 그릇 먹고 꽈배기 한 봉지 사와야겠다 싶어요.

 

카페상시여행자라는 닉네임으로 네이버 파워 블로거로도 오래 활동하셨는데요. 카페얼리비지터로서, 블로거로서 활동은 어떤 계기로 시작하셨나요.

 

사실 블로그는 '친구가 하길래 재미있어보여서'라는 특별하지 않은 이유로 시작했습니다. 부산에 나와 사니 혼자 밥 먹을 것이 막막하고, 그러니 조금 편하게 뭔가를 먹을 수 있는 카페를 찾아간 것이 먼저였고요. 원래 토박이가 자기 동네를 더 모르잖아요. 전 여기가 좋아 살게 되었으니, 곳곳으로 여행하듯 찾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더라고요. 그런 좋은 날을 기록해서, 오래 오래 기억할 수 있는 것이 블로그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마음은 이십대인데 어느덧 서른이 되었다고 쓰셨는데요. 20대와 30대의 마음은 어떻게 다를까요.

 

지금도 마음은 20대와 별 다르지 않아요.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꼭, 마음이 달라져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는 지금도 섭섭하면 금세 울컥거리고, 좋은 일 있음 금세 싱글벙글인 그 때와 별반 다른 것이 없어요. 다들 그렇지 않은가요. 모두, 사실 항상 청춘이잖아요.

 

앞으로 쓰실 책은?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쓰고 싶어요. 맛있는 이야기가 있으면 더 좋고요. 소개라기보다는 함께 있는 듯, 함께 먹고 마시는 듯, 그런 도란도란한 이야기를 계속 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혼자 먹는 것보단 같이 먹는 게 맛있잖아요. '함께' 보다 더 맛있는 조미료는 없으니까요.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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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빵집 : 지하철로 떠나는 경상도 빵투어이슬기 글,사진 | 북웨이
《경상빵집》은 우리나라 최적의 빵투어 지역인 경상도 중심의 빵투어 가이드북이다. 베이커리 문화가 풍부한 경상 지역의 도시 중 특히 대중교통 접근성이 좋은 부산과 대구를 중심으로, 그 지역을 관통하는 지하철을 타고 빵투어를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기름 값 아껴 맛있는 빵을 하나라도 더 사 먹자는 게 이 책의 기본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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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문학상을 받지 않아도 루슈디는 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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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이후 많은 사회가 유럽의 모더니티를 받아들이며 표현의 자유를 누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어떤 사회도 완벽하게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필화 사건도 끊이지 않았는데, 20세기 가장 유명한 필화 사건을 꼽으라면 아마도 살만 루슈디의 『악마의 시』를 두고 선포된 파트와일 것이다. 이란의 지도자 호메이니는 『악마의 시』가 이슬람을 부정적으로 묘사했다며, 전 세계에 그를 죽일 것을 지시한다. 이후 루슈디는 오랜 시간을 숨어 지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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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othy Greenfield-Sanders 

 

『조지프 앤턴』은 루슈디의 자서전으로, ‘조지프 앤턴’이라는 이름은 그가 도피 생활 때 정체를 숨기기 위해 썼던 가명이다. 제목에서 느껴지듯, 이 책에는 주로 도피 생활의 경험과 단상이 실렸다. 800쪽이 넘는 긴 분량이라 쉽지 않았을 번역을 맡은 것은 분노』, 『한밤의 아이들』  등을 번역한 바 있는 김진준 번역가다. 그와 루슈디와 『조지프 앤턴』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분노』, 『한밤의 아이들』등 루슈디 작품을 번역해 오셨는데요. 선생님께서 생각하시기에 루슈디의 매력, 루슈디 작품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살만 루슈디는 빈틈없는 작가입니다. 작품의 스케일이 크고 복선과 곁가지가 많아 얼핏 산만한 듯싶지만 나중에 보면 모두 그럴 만한 이유가 있더군요. 곳곳에 묻어놓았던 복선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차근차근 풀어가는 과정을 유심히 살펴보면 그저 경이로울 뿐입니다. 엄청난 상상력, 기억력, 결벽증, 완벽주의, 게다가 유머감각까지 겸비했습니다. 장편소설 작가에게는 모두 크나큰 장점이죠. 엉뚱한 소리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제가 보기에는 『롤리타』의 작가 나보코프를 많이 닮았습니다.

 

루슈디의 작품세계는 현실과 초현실, 사실과 허구, 역사와 상상을 한 그릇에 버무린 마술적 사실주의를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런 조합이 전혀 낯설지 않습니다. 서로 치밀하게 맞물리며 조화를 이뤄 자연스럽다 못해 필연적이라는 느낌까지 주거든요. 마술적 요소를 진심으로 받아들일 줄 아는 독자에게 루슈디의 소설은 이 세상의 다른 현실을 내다보는 맑은 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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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번역하는 것과 자서전을 번역하는 것은 느낌이 남다를 것 같습니다. 선생님께서 『조지프 앤턴』 번역을 시작하셨을 때 어떤 기분이었나요. 흥분, 설렘 같은 감정도 느끼셨을 법한데요.

 

오랫동안 소설 작업만 한 터라 처음에는 좀 망설였습니다. 그런데 책을 읽다가 저로서는 적잖이 신기한 경험을 했습니다. 살만 루슈디라는 사람을 알면 알수록 작품이 더 잘 보이고, 작품을 알면 알수록 사람이 더 잘 보이더군요. “작가”가 아니라 “사람” 말입니다. 번역가인 저도 루슈디와 그의 작품에 대해 궁금한 점이 아주 많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당연히 설렜죠. 저도 애독자니까요. 물론 작업은 쉽지 않았습니다. 논픽션의 번역은 사실관계가 정확해야 하는데 이 책에는 실존인물이 1,200명 이상 등장하고, 크고 작은 역사적, 문화적, 개인적 사건이 끊임없이 거론되거든요.


제목에서 느껴지듯, 이 자서전에서는 어린 시절의 이야기도 있지만 숨어 살아야 했던 시절을 비중 있게 다루는데요. 이런 점을 포함해서 『조지프 앤턴』에서 독자가 염두에 두면서 읽어야 할 점이 있을까요?

 

20세기 최대의 필화 사건에 대한 기록입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자주 했습니다. “만약 나였다면 이럴 때 어떻게 했을까?”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 친지, 동료들의 목숨까지 위협받는 상황에서 루슈디가 겪는 온갖 마음고생, 그리고 심적 변화의 과정을 유심히 지켜보시길 권합니다.


3번 질문과도 관련 있는 질문 같습니다. 루슈디의 소설은 환상적인 요소가 있는데요. 자서전에서는 그런 요소는 없는 대신 루슈디가 그를 ‘나’라고 하지 않고 ‘루슈디’라고 지칭하며 객관화하는 부분이 특별했습니다. 소설과 자서전에서의 문체, 어떤 부분이 다를까요.

 

일단 소설에 비하면 평이하게 쓰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입니다. 그리고 실제 사건을 정확히, 객관적으로 묘사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도피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꾸준히 썼던 일기장이 중요한 역할을 했겠죠. 그러나 문체가 크게 달라졌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루슈디 특유의 표현방식과 유머도 고스란히 살아 있어 반가웠습니다. 소설가의 논픽션은 이런 점이 다르구나, 생각했어요. 예를 들자면, “부칠 수 없는 편지”(로빈슨 크루소 귀하. 하느님께, 종교에게) 같은 장치는 여전히 루슈디답죠.


저는 ‘오전 씨와 오후 씨’에서 출산 장면이 가장 인상적이었는데요. 번역하시면서 가장 인상적으로 보신 부분을 꼽아 주신다면.

 

800쪽이 넘는 책 속에서 굉장히 많은 사건이 일어납니다. 그 중에서 제가 독자로서 또는 번역가로서 인상적으로 읽은 장면을 몇 개만 골라보자면, “육즙소스 테러사건”, 아버지의 죽음, 어마어마한 대가들의 시시한 신경전과 말장난, 그리고 루슈디의 실수담, 그중에서도 거짓 신앙고백에 대한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읽었습니다.

 

인용 할만한 문장도 많지만 요즘 자주 생각나는 대목은 이렇습니다.

 

“자신의 책이 불타는 광경을 바라보며 루슈디는 자연스럽게 하이네를 떠올렸다. […] ‘책을 불태우는 나라는 결국 사람도 불태우기 마련이다.’나치가 화톳불을 피우기 백여 년 전 『알만조어Almansor』 실린 이 예언적인 구절은 나중에 나치가 책을 불사른 베를린 오페라 광장 바닥에 새겨지기도 했다.”

 

그리고 이 대목.

 

“그는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이 싸움에서 목숨을 잃을지도 모른다. 네가 지키려 하는 것들이 정말 목숨을 걸 만큼 소중한가?’ 그는 단호하게 대답할 수 있었다. ‘그렇다.’ 카멘 칼릴이 ‘그 망할 놈의 책’이라고 불렀던 것을 위해 꼭 필요하다면 죽을 각오까지 했다.”

 

그리고 악마의 시를 출간한 죄로 총격을 받아 중상을 입은 노르웨이 출판인 빌리암 뉘고르의 말.

 

“방금 대량으로 증쇄를 찍으라고 지시했다네.”

 

책 전체에서 제가 특히 눈여겨본 것은 창작과정에 대한 설명, 그리고 작가의 삶과 작품 내용이 겹치는 부분들입니다. 예컨대 아버지와의 관계는 『한밤의 아이들』『악마의 시』 등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자전적 요소입니다.

 

그리고 참, 글쟁이들에게는 절대로 반감을 사지 말아야 한다는 새삼스러운 교훈을 얻었습니다. 기억력 좋은 글쟁이라면 더 말할 나위도 없겠지요.


 악마의 시와 관련해서 역자, 출판인 등 테러로 피해를 입은 사람이 있었는데요. 선생님께서는 그런 테러 위협에 시달린 적은 없었나요.


이 책의 마지막 장면에서 루슈디 경호팀이 완전히 철수하는 날이 2002년 3월 27일입니다. 제가 『악마의 시』를 번역한 것은 2000-2001년이니까 파트와가 일으킨 긴장감도 많이 완화된 뒤였습니다. 그래도 출판사는 당시 제 신변에 대한 정보를 철저히 지켜주었습니다. 제가 그때 죽었다면 그 책은 단숨에 밀리언셀러가 되었을 텐데 말이죠.

테러 위협을 받은 적은 없지만 무슬림에게 파트와가 어떤 의미인지 실감한 적은 있습니다. 출간 소식을 듣고 당장 출판사로 달려가 따끈따끈한 새 책을 받아올 때였죠. 전철을 타고 자리에 앉자마자 책을 꺼냈습니다. 한참 동안 정신없이 뒤적거리는데 옆에서 누가 불쑥 물었어요. “이렇게 나쁜 책을 왜 읽습니까?” 깜짝 놀라 돌아보니, 언제부터 거기 있었을까, 아랍계 남자 하나가 뒤표지에 실린 작가 얼굴을 손가락으로 쿡쿡 찌르더군요. “아주 나쁜 사람이에요.”


살만 루슈디 작품 중에서 다른 역자가 번역을 한 작품, 혹은 번역 안 된 작품 중에서 선생님께서 번역하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탐났던 작품을 하나만 꼽는다면 아찔하도록 강렬했던 『광대 샬리마르』.그러나 훌륭한 번역서가 이미 있을 때는 번역가로서 별다른 의욕을 못 느낄 때가 많습니다. 재번역보다는 국내초역이 좋죠. 다만 제가 번역한 『악마의 시』는 언젠가 다시 손보고 싶습니다.

 

지금 번역 중인 작품도 루슈디 소설이고, 아직 출간되지 않은 신작 소설도 미리 읽어보는 중인데 느낌이 꽤 좋습니다. 물론 제 손에 떨어질지는 미지수지만요. 저에게 루슈디는 그렇게 늘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감을 주는 작가입니다. 그가 과거를 되돌아보는 일을 끝냈으니 더욱더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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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아무래도 노벨문학상만큼 문학 쪽에서는 화제가 되는 상이 없는데요. 루슈디도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 중에 한 명인데요. 노벨문학상 수상 가능성을 어느 정도로 보시나요.


루슈디는 파트와 이전에도 이미 세계적인 작가였습니다. 파트와 이후에는 더욱 유명해졌지만 그 명성은 오히려 독이 되었죠. 문학 바깥의 사건들이 루슈디의 문학적 성취를 덮어버렸으니까요. 한 인간으로서뿐만 아니라 작가로서도 몹시 불행한 일이었습니다. 솔직히 저는 루슈디의 노벨문학상 수상 가능성에 대해 좀 회의적인 편입니다. 정치적 변화가 선행돼야 할 테니까요. 요즘 같은 분위기에서 루슈디에게 노벨상을? 문학적 업적만 따지자면 루슈디의 자격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그는 영원히 정치와 종교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작가가 돼버렸습니다. 자유롭지 못하기는 노벨상 위원회도 마찬가지 아니던가요? 그렇지만 세상에는 루슈디가 노벨문학상보다 큰 작가라고 생각하는 독자도 많을 겁니다. 저를 포함해서요.

 

*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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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프 앤턴 : 살만 루슈디 자서전살만 루슈디 저/김진준,김한영 공역 | 문학동네
1988년 한 편의 소설이 전 세계를 발칵 뒤집어놓았다. 바로 살만 루슈디의 『악마의 시』였다. 이 책은 이슬람교의 탄생 과정을 도발적으로 묘사해 출간 즉시 격렬한 논란을 불렀고, 급기야 1989년에는 이란의 지도자 호메이니가 이 책을 “이슬람에 대한 모독”으로 규정해 작가를 처단하라는 종교 칙령(파트와)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영국 정보부와 경찰의 경고에 따라 루슈디는 기약 없는 도피생활에 들어갔고, 그사이 『악마의 시』와 관련된 출판인, 번역가, 서점, 도서관이 연이어 테러를 당했다. 살해 위협 속에서 자신과 작품을 지키기 위해 루슈디는 그야말로 사투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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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원하는 인생을 살아라』는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민에서 시작된 이야기다. 현재 카이스트 기술경영전문대학원의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가 만난 청년들의 현실과 갈등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는 청년들에게 정답을 제시해 주는 대신 자신이 경험한 시간들을 들려주었다. 그 시간들을 『한 번은 원하는 인생을 살아라』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이 책은 청년들의 질문에서 시작되어 나의 답변을 정리해 완성되었다”고.

 

윤태성 저자는 대학을 졸업한 후 7년 간 다니던 대기업을 그만두고 돌연 유학을 떠났다. “평생 이렇게 일을 하며 사는 게 과연 내가 원하던 삶일까?”라는 익숙한 고민이 그에게도 찾아왔기 때문이다. 서른둘의 나이에 일본 유학을 택한 그는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도쿄대의 교수가 되었지만 또 한 번의 도전에 뛰어들었다. 벤처 기업을 운영하는 경영자로 변모한 것이다. 이후 10년 동안 경영 현장에 머물렀던 저자는 일본, 헝가리 등을 거치며 다채로운 경험을 쌓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평범한 사원에서 교수로, 벤처 경영자로, 그리고 연구원과 유학생으로 스스로 모습을 바꾸며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온 시간들이었다. 그렇기에 청년들을 향해 들려주고픈 이야기들도 많았다. 미지의 세계에 첫 발을 내딛으려 할 때 고민하는 것이 무엇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한 번은 원하는 인생을 살아라』는 무척 평범하고 친숙한 고민들을 담고 있다. “지금 하는 일이 내 일이 맞나?” “나는 왜 오너를 위해서 일하기 싫은가?”와 같은 직장인들의 평생 과제부터 “나는 왜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무너지는가?” “나는 왜 슬럼프에 빠지면 헤어나질 못할까?”와 같은 개인적인 감정의 문제들까지 두루 다룬다. 그 과정에서 저자는 하고 싶은 일과 잘하는 일 사이에서 갈등하는 이들에게 조언을 건네는가 하면, 커리어를 쌓아가는 방법에 대해 귀띔해 주기도 한다. 직접 기업을 경영하며 얻게 된 노하우도 공유한다.

 

“인생은 하나의 산이 아니라 몇 개의 산으로 이루어진 산맥”이라고 말하는 저자는, 일생 동안 올라야 하는 산들 중에서 “한 번쯤은 내가 오르고 싶은 산에 올라야 한다”고 힘주어 말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다섯 가지의 용기가 필요하다고 단언한다. ‘흔들리지 않을 용기’ ‘내 삶을 원하는 대로 디자인할 용기’ ‘한 번쯤 방황할 용기’ ‘행복을 선택할 용기’ ‘더 큰 세상을 펼칠 용기’가 그것이다. 독자들은 자신과 다르지 않은 청춘들의 고민을 통해 스스로에게 필요한 용기가 무엇인지 찾게 된다. 윤태성 저자가 『한 번은 원하는 인생을 살아라』에서 정답이 아닌 고민을 들여다보길 바란다고 전하는 이유다.

 

고민이란 언제나 당사자에게는 절실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크게 의미가 없다. 그러나 다른 사람의 고민을 엿보는 그 자체로 위안이 되기도 한다. ‘아, 다른 사람도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구나. 나의 고민이 유별난 것은 아니었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왠지 안심이 된다. 이 책에서 이와 비슷한 위로를 얻을지도 모르겠다. (『한 번은 원하는 인생을 살아라』프롤로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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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 학생들이 가장 많이 고민하는 문제


“이 책은 청년들의 질문에서 시작되어 나의 답변을 정리해 완성되었다”고 적으셨습니다. 집필 동기가 되었던 질문이 있었나요?


취업을 준비하던 학생이 이런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습니다. “회사를 많이 알아보고 있는데 어떤 회사에서 연봉을 100만원 더 준다고 하면 제 마음이 흔들립니다. 다들 돈은 중요하지 않다고 하지만 저는 연봉만이 크게 보입니다. 이런 제가 잘못된 것입니까?”라고 물어왔죠.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비슷한 고민이 있기 마련이죠. 지금의 학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학년이 바뀌어도 대다수 학생들의 고민거리는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제가 받았던 질문은 더 많지만 『한 번은 원하는 인생을 살아라』에는 많은 청년들이 토로한 47개의 고민을 실었습니다.

 

『한 번은 원하는 인생을 살아라』에서 다른 사람의 고민을 엿봄으로써 위로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학생들이 고민을 이야기할 때 저는 제 경험을 섞어서 답했습니다. 저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가장 설득력 있으니까요. 만약 다른 분이라면 다른 방식으로 답을 하겠죠. 만약 같은 고민에 대해서 다양한 답변이 있다면, 학생들은 그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답을 고르면 됩니다. 그러나 기성세대가 아무리 좋은 말을 하더라도 그것이 청년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답은 아닐 겁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고민에 대해서는 스스로 답해야 하니까요. 누구나 자신의 문제에 대한 답은 스스로 찾아야 하는 것이죠. 『한 번은 원하는 인생을 살아라』를 집필하면서 보람을 느낀 부분은 청년들의 고민거리를 모아보았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도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만 해도 어느 정도는 위안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현재 카이스트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계신데요. 취업을 앞두고 청년들이 가장 많이 고민하는 것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학교 교육에 잘 적응해서 좋은 성적을 거둔 학생들임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내가 원하는 인생은 무엇인가’라는 의문에 답하지 못합니다. 지금까지 주어진 문제에 대해서 정답을 찾는 과정에만 몰두하다 보니, 정답이 보이지 않는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게 됩니다. 자신의 커리어를 어떻게 만들어 가야할지에 대해서도 거의 답을 하지 못하고요.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깊이 생각한 적이 없기 때문에 자신에게 가장 좋은 직장이 어떤 곳인지 모르고, 그 결과 명성을 우선으로 생각하면서 대기업이나 많이 알려진 곳에 취업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50세 즈음이 되면 퇴직을 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미래에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죠. 그 고민을 조금이라도 덜어 주려면 취업에 앞서 커리어디자인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님의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예전의 작가님과 비슷한 고민들도 있었을 테고 전혀 다른 고민들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어떠셨나요?


예나 지금이나 비슷한 고민은 ‘남을 의식하는 태도’입니다. 반면 달라진 시대를 느끼게 하는 고민들도 있습니다. 해외연수나 휴학에 관한 고민들이 그렇습니다. 방학이 되면 관심 있는 해외의 대학에 가서 유학생을 직접 만나고 의견을 듣고 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연애나 결혼에 관한 고민은 거의 듣지 못했습니다. 이런 고민은 친구들하고만 의논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세대와 시대가 달라진 만큼 새롭게 생겨난 고민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부분에서 변화가 생긴 걸까요?


요즘 청년들은 미래에 대한 기대감보다 불안감이 더 커 보입니다. 아마 인터넷으로 너무 많은 정보를 습득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특히 IT 벤처의 성공사례를 많이 접하면서 본인도 빨리 성공하고 싶다는 욕망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30세에 이미 큰 성공을 이루고 현역에서 은퇴한 사람들도 많다고 하니 조급한 마음을 갖는 것도 이해합니다. 그러나 매일 구글이나 페이스북의 성공 사례를 접하고 스티브 잡스를 동경하다보면 너무 성급하고 초조하게 성과를 얻으려고 하게 됩니다.

 

평범한 월급쟁이의 삶을 경험하기도 하셨는데요. 회사 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을 꼽으라면 무엇을 이야기하시겠습니까?


회사를 다니면 하루하루가 바쁘다보니 미래에 대비해서 차근차근 준비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휴일에 불현듯이 나의 미래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면 많이 불안하죠. 그럴 때는 스스로에게 다짐합니다. 내일부터는 독서를 체계적으로 하고 운동도 열심히 하자고요. 그러나 내일부터 시작하겠다는 다짐은 그날 아침 9시가 되면 다 잊어버립니다. 출근과 동시에 밀려드는 업무를 처리하다보면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니까요. 한편으로는 월급날 틀림없이 통장에 입금되는 돈을 보면서 현재의 생활에 만족감을 가지기도 합니다. 이처럼 막연하게 미래에 대해서 불안해하면서도 실질적으로는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고, 그 대신 현재의 생활에 만족해하는 것이 회사 생활의 가장 힘든 점이었습니다.

 

“내가 잘하는 일로 나도 좋고 가족도 좋고 그 결과 세상이 좋아지는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벤처 기업을 창업하실 때는 불투명한 미래 때문에 ‘나는 좋겠지만 가족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하셨을 것 같은데요. 어떠셨나요?


내가 새롭게 하려는 일에 대해서 충분히 설명하고 설득해야겠죠. 이 일을 잘 할 수 있다고 설득하려면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공부를 했다거나 자격증을 취득했다거나 연습을 충분히 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하는 겁니다. 가족은 내가 하려는 일의 최초의 고객이기도 합니다. 가족이 납득한다면 첫발을 내딛기 위한 준비가 제대로 되었다는 증거입니다. 좋은 일이라면 나와 가족과 이 세상이 좋아지는 것이지만, 누가 가장 좋아야 하는지 묻는다면, 당연히 내가 가장 좋아야 합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의 얼굴을 보세요. 얼굴에서 빛이 납니다. 목소리에 활기가 있고 행동이 당당하고 자심감과 신념이 온 몸에 넘쳐납니다. 그러니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인지 아닌지는 가족들이 나의 얼굴만 봐도 금방 눈치 챌 수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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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리어를 디자인하려면 5개년 계획을 세워라


『한 번은 원하는 인생을 살아라』안에서 주체적인 삶을 강조하고 계신데요. 인생의 주인공으로 살 수 없도록 가로막는 요인들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나는 나’라는 의식과 함께 ‘나는 나에게 가장 특별한 사람’이라는 자의식이 필요합니다. 스스로에 대한 존경과 이해는 모든 일을 시작하는 출발점입니다. 내가 나를 믿어주지 않으면 누가 나를 믿겠습니까? 이는 나의 본능을 일깨우는 것입니다. 그러나 능력이 없으면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죠. 큰소리만 치는 허풍쟁이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능력을 길러야 합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약한 자입니다. 약한 자가 하루아침에 강한 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약한 자라는 것을 인정하고 조금씩 매일 실천해야 합니다. 작은 노력이 쌓이면 하나의 형태가 되고, 그것이 점점 커지면서 조금씩 나의 능력으로 변환됩니다. 체증의 효과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단기간에 성과를 얻으려고 하거나 내 의지가 약하다고 한탄만 하고 있으면 안 됩니다. 매일 매일 조금씩 낙숫물을 흘려야 합니다. 

 

‘시간 계획을 짤 때 일하는 시간과 쉬는 시간 사이에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넣어야 한다’고 조언해 주신 부분도 인상 깊었습니다.


가끔씩 멍하니 있을 필요가 있습니다. 저도 일을 하다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으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쉽니다. 우리가 시간 관리를 이야기하면서 가만히 있는 시간을 활용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그런 방식이 과연 올바른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때에 따라서는 혼자 멍하니 있는 시간도 필요한 것이니까요. 시간 관리를 일하는 시간과 노는 시간으로 나누면, 노는 일까지도 효율적으로 하고 싶어 합니다. 일에는 효율이 필요하지만 노는 일에서도 효율을 따져야 할까요? 일을 할 때는 일에만 집중해서 완전히 빠져들어야 하지만, 사람은 오랜 시간 집중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머지 시간에는 쉬기도 하고 아무것도 안 하기도 하면서 적절하게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때때로 나보다 앞서 나가는 사람을 보며 질투를 하게 될 때가 있습니다. 나만 뒤처지는 것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인데요. 『한 번은 원하는 인생을 살아라』“부끄러워하지 말고 질투심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질투를 하지 않는 사람은 동기가 없는 사람이 아닐까요? 우리가 질투를 느끼게 되는 대상에 대해서 잘 생각해 보면, 모든 사람에게 질투를 느끼는 건 아닙니다. 질투를 느낀다는 건 자신이 그걸 원한다는 의미입니다. 그것이 나의 본능인 거죠. 그러니까 질투는 내가 지금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안테나와 같습니다. 저도도 논문을 쓸 때는 논문을 잘 쓰는 사람에게 질투가 생기고, 책을 쓸 때는 좋은 책을 쓰는 사람에게 질투를 느낍니다. 중요한 건 질투를 통해서 자신의 본능을 알았다면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질투하는 이유는 내가 그 사람보다 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강해지려면 능력을 길러야 하죠. 이 승부는 길게 내다보고 지속해야 합니다.

 

인생은 하나의 산이 아니라 몇 개의 산으로 이루어진 산맥이다”라고 말씀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시간이라는 선 위에 놓인 포물선의 곡선이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마치 하나의 산과도 같아 보이는 그 곡선이 인생이라면, 지금 우리가 서 있는 곳은 선의 끝 지점일 겁니다. 앞으로는 위를 향해 선이 뻗어 올라갈지 아래를 향해 추락할지 알 수 없죠. 그 중간 지점에서 또 다른 선을 그려야 합니다. 그것은 곧 두 번째 세 번째 산이 되는 것입니다. 만약 첫 번째 산이 완만하게 이어진다고 해도 어느 순간에는 아래로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두 번째 세 번째의 포물선과 만나면서 산맥을 이루게 되는 겁니다. 물론 세 번째 곡선도 올라갔다가 떨어질 수 있습니다. 사실은 알 수 없는 일이죠. 하지만 중요한 건 지금의 일을 하면서 동시에 두 번째와 세 번째 산맥을 시작해야 한다는것입니다.

 

인생 산맥을 만드는 일이 야구시합과 비슷하다고도 하셨습니다.


야구 시합에 비유하자면 첫 번째 산맥은 선발투수이고 두 번째와 세 번째는 출전을 준비하며 몸을 풀고 있는 선수인 겁니다. 두 선수가 시합에 나가지 못하게 될 수도 있겠지만, 몸을 풀고 있지 않으면 전혀 기회가 없는 것이죠. 그런 의미에서 인생은 산이 아니라 산맥이라고 말한 것인데요.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의 산이 끝난 다음에 두 번째 세 번째 산이 시작되는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서로 연결되며 함께 진행되어야 합니다.

 

인생의 갈림길에서는 두 가지의 계획을 준비해야 한다고 하셨는데요. 이 때 고려해야 할 사항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최상의 상태를 대비하는 ‘플랜 A’와 최악의 상태를 대비하는 ‘플랜 B’가 필요한데요. 고려해야 할 사항이라면, 좋은 일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우리가 택하게 되는 것은 ‘플랜 X’죠. 현실에 맞춰가는 것입니다. 최상의 경우와 최악의 경우 사이의 간격이 너무 크면 자신에게 의미가 없습니다. 둘 사이의 고민을 좁히면 ‘플랜 X’가 어느 정도 현실성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니까 ‘플랜 A’와 ‘플랜 B’가 너무 허황되면 것이면 안 되죠. 결국 자신이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이야기인데, 그래서 『한 번은 원하는 인생을 살아라』는 ‘나는 할 수 있다’가 의미 없다고 말하는 겁니다. ‘나는 하고 있다’가 되어야 하죠.

 

커리어를 디자인하는 방법으로“지금부터 5년까지는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그 후로는 업을 기준으로 해 방향성을 위주로 짜는 것이 좋다”고 조언하셨습니다.


사람이 전망할 수 있는 기간이 길지 않습니다. 무언가 열심히 하면 할 수 있을 것 같은 최대치가 5년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업이 아닌 직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 즉 회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회사 내에서 부서가 바뀌어도 만족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업을 기준으로 삼는다면 회사가 바뀌어도 하는 일이 똑같다면 문제될 게 없습니다. 회사를 옮기더라도 당황하지 않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업을 중심으로 생각하라고 이야기한 거죠.


지금 시작하지 않는다면 평생 할 수 없을 것이다


『한 번은 원하는 인생을 살아라』가 정의하는 커리어 디자인은 ‘인생의 갈림길에서 어느 길을 선택할지 미리 설계하는 것’입니다. 직선도로에서 커리어 디자인을 하려면 스스로 갈림길을 만들어야 한다고도 이야기하는데요. 어떤 의미입니까?


만사가 너무 편한 건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영화를 봐도 태풍이 오기 전에는 고요하고, 사건 사고가 일어나기 전에는 행복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습니까? 그게 인생인 것 같습니다. 만사가 편하다면 큰 변화가 오기 전이라고 생각하면 되는 것입니다. 또한 인생은 바람과 똑같습니다. 바람이 전혀 불지 않는 순간은 태풍이 온다는 뜻입니다.

 

직선도로에서 직접 갈림길을 만드셨던 경험이 있으신가요?


처음에 회사를 그만둘 때 그랬습니다. 어느 날 처음 만나는 거래처 손님이 제 이름을 많이 들었다고 이야기하기에 ‘저 사람이 어떻게 내 이름을 들었을까’ 생각해 보니까 너무 오래 다녔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럴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이 업계에서 자리를 잡아간다는 생각에 뿌듯해하지 않을까요?


그럴 수도 있지만 그 뿌듯함이라는 것도 그렇게 오래 가지 않습니다. 제가 무언가에 안주하는 것을 경계한다고 볼 수도 있을 겁니다. 저는 어차피 안주라는 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강물 위의 배가 한 자리에 머물러 있기 위해서는 계속 노를 저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한 곳에 떠 있는 같지만 사실은 계속 움직이고 있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안주란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움직임입니다.

 

“앞으로도 소중한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얻는 행동을 반복할 것이다”라고 적으셨습니다. 아마도 독자들은 ‘그토록 어려운 일을 어떻게 몇 번 씩이나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지’ 궁금해 할 것 같습니다.


어떤 일을 새롭게 시작해야 할지 말지 고민이 된다면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지금 이 일을 시작하지 않으면 평생 하지 못할 것이다. 만약 하지 못해도 좋다면 이 일은 시작하지 마라. 만약 이 일을 시작한다면 지금 누리고 있는 저 일은 버려야 한다. 그래도 좋다면 시작해라’. 누구나 손 안에 작은 만족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평소에는 이 만족감이 그리 크지 않습니다. 별로 의식할 일도 없죠. 그러나 새로운 것을 잡기 위해서는 지금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놓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새로운 것을 잡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럴 때는 손에 쥐고 있는 만족감과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비교하게 됩니다. 그래서 미래의 기대감이 더 크다면 현재의 만족감을 놓아주는 것이죠. 그런데 현재의 만족감이 없어지고 미래의 기대감이 새롭게 들어올 때 까지는 내 손 안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공허한 상태죠. 이 상태는 사람을 매우 불안하게 합니다. 이 불안감을 이겨내지 못하면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없습니다.   

 

『한 번은 원하는 인생을 살아라』안에서 독자들이 발견하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답을 들으려 하지 말고 다른 이의 고민을 보려고 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결국 답은 스스로가 내려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답을 찾으려고 하지 말고 ‘무엇이 어려워서 이 책을 썼는지’ 문제점을 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도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라는 걸 알 수 있으실 겁니다. 다른 사람들의 상황을 보면 그가 갖고 있는 문제점이 내가 가지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민은 다 비슷하다는 걸 발견하게 됩니다. 답은 각자 다르지만요. 그리고 청년들이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하는 걸 부끄러워하지 말고 서로 고민 자랑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만약 『한 번은 원하는 인생을 살아라』에서 다른 사람들의 고민을 들여다보면서 질투를 불러일으키는 내용이 있다면, 그것이 자신이 원하는 것임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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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은 원하는 인생을 살아라 : 카이스트 윤태성 교수가 말하는 나를 위한 다섯 가지 용기윤태성 저 | 다산북스
『한 번은 원하는 인생을 살아라』는 카이스트 윤태성 교수가 방황하는 직장인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담은 인생강의다. 이 책은 카이스트 학생들의 질문으로부터 시작되어 윤태성 교수의 답변으로 완성되었다.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몰라 답답하거나, 취업을 했는데 사회에 적응하기 힘든, 또 슬럼프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등 청년들의 47가지 질문 속에는 이 시대 월급을 받고 일하는 모든 직장인들의 고민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또한 직장인, 유학생, 도쿄대 교원, ceo, 교수로 변모하며 일본, 헝가리 등 다양한 국제경험까지 갖춘 윤태성 교수의 경험도 생생하게 녹아 있어 일과 인생에 대한 다양하고 양감이 풍부한 해법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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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제이쓴 오지랖 프로젝트는 언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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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쓴이라는 이름 석 자를 알게 된 건 지인을 통해서였다. 셀프 인테리어 쪽으로 유명한 블로거이며『제이쓴의 5만 원 자취방 인테리어』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고 한다. 초등학교 때 국기함을 만들었던 게 그나마 가장 인테리어에 근접했던 활동(?)이었던 필자에게 인테리어는 그렇게 흥미로운 소재는 아니었다. 하지만 유쾌한 문장과 재미난 동물 사진으로 가득한 그의 블로그는 이런 나마저 끌어들이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중에 압권은 오지랖 프로젝트였다. 오지랖 프로젝트는 의뢰인이 자신의 자취방을 단장해 달라고 부탁하면 제이쓴이 의뢰인의 방을 의뢰인과 함께 꾸며주는 일이다. 재료비를 제외한 모든 비용은 무료. 지금까지 진행한 오지랖 프로젝트는 50여 회를 넘었다. 아니 왜 생판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방을 공짜로 꾸며주는 거지? 제이쓴을 향한 호기심이 생겼다.

 

인터뷰를 하고 싶었지만 한 가지가 염려되었다. 블로그 그 어디를 봐도 얼굴을 공개하지 않았다는 점. 역시나, 인터뷰 진행 조건도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로써 제이쓴의 얼굴을 궁금해하는 여러 독자의 호기심을 충족할 수는 없었지만, 책과 오지랖 프로젝트 그리고 그의 삶 전반에 관해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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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집이 아니라 자취방 인테리어인 이유

 

본명보다는 제이쓴으로 유명하잖아요. 제이쓴이라는 이름에 특별한 의미가 있나요?

 

호주에서 생활할 때 외국인들이 제 한국 이름 부르는 걸 너무 어려워해서 지었어요. 한국 이름이랑 비슷하게 제이쓴으로요. 별 뜻은 없습니다.

 

블로그에서는 자유로운 글쓰기를 십분 발휘하셨는데, 책에는 정제된 글만 실린 것 같습니다. 책 만들면서 불편한 점은 없었나요?
 
없었어요. 아쉬운 부분은 있죠. 블로그 문장 그대로 나오면 좀 더 재밌지는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 그런데 그렇게 책을 내려면 독립출판으로 가야겠죠.
 
재미 없으면 안 한다는 게 인생철학이잖아요. 책 내는 작업은 어땠어요, 재밌었나요?

 

솔직히 말씀 드리면 책으로 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책 나오고 나서도 얼마나 책이 많이 팔리는 건 중요하지 않아요. 관심 없고요. 책 나온 것 자체가 좋았어요. 굳이 책으로 나오지 않았더라도 오지랖 프로젝트 자체가 워낙 제게는 뜻 깊은 일이었어요. 의뢰했던 분들과 이야기하는 게 신기한 경험이고 재밌었으니까요.

 

월세나 전세로 사는 자취생들에게는 굳이 인테리어를 해서 방을 꾸며야겠다는 생각이 안 들잖아요. 제이쓴은 어떤 계기로 내 방을 꾸며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대학에 가기 위해 호주에서 한국으로 왔을 때였어요. 집이 천안이고 학교가 서울이니 통학이 힘들잖아요. 방을 얻으려고 둘러봤어요. 처음에는 풀옵션 원룸을 부모님이 말씀하셔서 봤지만 간 데마다 좁았어요. 저는 그런 데서 못 살거든요. 같은 가격으로 다세대주택을 구했는데, 넓긴 했지만 내부는 제 스타일이 아니었어요. 한 번 도전해 볼까 하는 생각, 이게 시발점이었죠. 인테리어 공부를 따로 한 적은 없었어요. 그냥 부딪쳤죠.

 

그러다 오지랖 프로젝트까지 시작했는데요. 오지랖 프로젝트가 싱글족을 대상으로 했잖아요. 신혼부부까지 범위를 넓혀도 될 것 같은데요.

 

신혼집은 재미 없을 거 같아요. 신혼집은 돈 내고 해야지, 왜 제게 부탁해요. (웃음) 오지랖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도 어쨌든 제가 싱글족이잖아요. 당연히 관심사가 싱글족이죠. 대개 싱글족은 20대에 대학을 서울로 와서 혼자 사는 기간이 10년 정도 됩니다. 빨리 결혼해야 서른인데, 그렇다고 이들에게 신혼집 들어가기 전까지는 대충 살라고 하는 건 너무한 일이죠. 특히 이때에는 한창 20대 감성도 있을 테고, 꾸미고 싶은 시기거든요. 큰 비용 들이지 않으면서도 만족하고 살 만한 집을 다들 원해요. 그런데 방법을 잘 모르죠. 오지랖 프로젝트를 시작한 이유가 여기 있죠.

 

오지랖 프로젝트의 본질은 결국 관계

 

블로그가 유명해지면서 프로젝트 문의가 참 많이 오잖아요. 따로 공지까지 올릴 정도인데, 어떤 기준으로 의뢰인을 정하나요?
 
특별한 기준은 없는데 워낙 신청글을 많이 읽다 보니 제 이목을 끄는 사람이 보여요. 예를 들면 그냥 도와 달라는 것보다는 지금 남자 친구와 헤어졌는데 집을 바꿔서 기분 전환해보고 싶다는 사연이라든가 지방에서 처음 와서 갖는 나만의 공간이니 특별하게 꾸미고 싶다 이런 이야기, 제 가치관과 부합하는 사람을 선택하죠.

 

자취방 하면 꼬질꼬질함이 연상되는데요. 실제로 다른 사람의 자취방에 가 보니 어떤가요. 여성과 남자, 성별에 따른 차이가 있나요?

 

요즘 의뢰하는 사람은 남자가 훨씬 더 많고요. 모든 자취생은 똑같아요. 적당히 더럽고 적당히 깨끗하죠.

 

제이쓴은 어때요? 인테리어 좋아하니 깔끔할 것도 같은데요.

 

저는 장난 아니죠. 털털함의 아이콘이에요. 집 들어가면 X판이에요. 요즘은 특히나 치울 시간이 없으니 지저분해요.

 

오지랖 프로젝트 하면서 의뢰인이 너무 무리한 요구를 했다거나 일정이 너무 빡빡했다거나 하는 힘든 점은 없었나요?

 

없어요. 어차피 취미 생활이라 즐겁게 했죠. 제게 정해진 일정이 있다면, 그 중간에 오지랖 프로젝트는 끼워 넣기만 하면 되니까 일정 조절도 힘든 게 없었죠. 이건 초기 이야기인데요. 아직 제 이름이 많이 알려지기 전에는 신분이 확실하지 않으니 불러 놓고 주민 등록증을 보여 달라는 사람은 있었어요. 작업하는 데 TV 보시는 분도 있었고요. 그럴 때는 못하겠다고 말씀드리고 그냥 안 하고 나왔어요. 그런 분들에게는 제가 할 줄 아는 것도 해드릴 수 없어요. 반대로 제 가치관과 맞는 사람과는 제 능력 밖인 일도 해드릴 수 있더라고요.
 
오지랖 프로젝트 하면서 좋았던 점은 뭐에요?

 

별 생각 없이 시작한 블로그가 많이 알려지면서 책으로까지 나왔는데요. 기본은 사람, 관계였어요.저는 지방 사람이라 서울에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어요. 그렇다고 혼자 살 수는 없잖아요. 야학도 하고 소방 대원도 하고 오지랖 프로젝트도 해서 지금은 사람 부자가 되었어요. 오지랖 프로젝트를 하면 그 분들이 제게 많은 걸 말씀해주세요. 인테리어 하면 속옷까지 다 봤으니까, 제게 숨길 게 없잖아요. 이야기하다 보면 시간이 정말 빨리 가요. 아무리 좋은 성장 배경과 좋은 직장을 다녀도 아픔 하나씩은 다 있잖아요. 결혼 엎어진 이야기 등등 저에게 다 해 주시거든요. 본받을 일도 많고요. 왜 그럴까 생각해 봤는데, 어쩌면 저는 주변 사람이 아니고 관계 없는 사람이니까 어떤 이야기를 해도 퍼질 일이 없잖아요. 이상하게 보지도 않을 거고요.

 

그렇게 알게 된 분들은 지금까지 만나기도 하고요. 어느 동네에 가서든 커피 한 잔 사 주세요, 하면 다 나오세요. 이런 관계가 참 좋아요. 그리고 자취방뿐만 아니라 모든 공간이 제게는 도화지에요. 하나가 끝나면 그게 저만의 예술 작품인 거죠. 작품 하면서 힘들 때도 있고 좋을 때도 있지만 좋은 정도가 싫은 것보다 많으니까 계속 해요.

 

가장 기억에 남는 오지랖 프로젝트는?

 

구세군 후생원 프로젝트죠. 그 친구를 위해 200명 넘게 도움을 주셨어요. 제가 거짓말을 할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저를 믿어 주신 거죠. 생필품, 젯소, 페인트 도움 정말 많이 받았죠. 도움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해요. 단순히 돈 벌고 밥 먹고 살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을 도와주고 영향 줄 수 있다는 게 축복 받은 인생이죠.

 

오지랖 프로젝트는 언제까지 할 계획이에요?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가 고민이에요. 제가 만일 돈이 정말 많아서 아무 걱정 없이 살 수 있다면 죽을 때까지 할 수 있겠죠. 그런 게 아니니까요.

 

자취생이 집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할 요소는?
 
채광, 환기가 제일 중요해요. 사람이 햇볕 안 보고 살 수 없거든요. 오지랖 프로젝트에서 하긴 했지만 솔직히 말하면 반지하는 답이 좀 안 나와요. 꼭 반지하에서 살아야 할 상황이라면, 그중에서 도 지반이 높거나, 창문의 2/3라도 지상을 바라보는 그런 곳을 추천합니다.

 

책을 보고 스스로 인테리어에 도전하는 자취생들이 많을 텐데요. 이건 정말 생각보다 쉽다, 제이쓴이 본 책만 보면 된다, 이런 인테리어를 몇 가지 꼽아주신다면.

 

도배요. 그리고 커튼 다는 것도 정말 쉽죠. 디지털도어락 달고 해체하는 것도 쉬워요.

 

결국 인테리어가 창조이고 예술이잖아요. 필요한 영감은 어디서 얻나요?

 

해외 자료 많이 찾아 봐요. 저는 휴대폰은 거의 안 보는 편인데, 주변을 많이 보죠. 절에 가서 앉아서 명상도 하고요.

제이쓴, 이렇게 산다

 

오지랖 프로젝트 외에도 여러 가지 활동을 하시잖아요. 하루 일과가 궁금합니다.

 

아침에 6시에 일어나서 업무 보고, 낮에는 보통 인테리어 자료를 찾아 봐요. 매주 월요일에는 봉사활동 가고요. 의용소방대원 출동할 때도 있고. 당연히 블로그 포스팅도 하고요. 누군가가 그렇게 열심히 포스팅하는 게 안 힘드냐고 묻는데, 제게는 일과에요. 밥 먹는 거 어려워요? 맛있게 먹으면 되잖아요. 포스팅도 즐겁게 하면 돼요. 저는 블로그가 재미 없어지는 순간, 안 할 거예요.

 

이번 인터뷰도 그렇지만, 얼굴 공개를 안 하시잖아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얼굴을 공개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요. 제가 공인도 아니잖아요. 블로그 초반에는 셀프 인테리어 때문에 오는 사람이 많았는데 요즘은 저를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어요. 왜 그렇죠?

 

그럼에도 독자와 만남을 했잖아요. 몇몇 독자는 제이쓴의 얼굴을 알게 되었는데요. 독자와 만남 현장은 어떤 분위기였나요.

 

생각보다 멀쩡하게 생겼다는 말 정말 많이 들었어요.

 

자유로운 영혼을 지향하는 것 같아요. 제이쓴의 가치관이 궁금합니다.

 

며칠 전에도 부모님과 심하게 싸웠어요. 다른 부모님이 그렇듯 자식이 안정적인 직장 얻고 결혼해서 아기 낳고 하길 바라세요. 저는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렇게 사는 데 관심이 없어요. 저는 이기주의자이기보다는 개인주의자이고 행복주의자입니다. 저는 행복한 일 하면서 살고 싶어요. 스펙이라는 단어를 싫어하는데, 좋아하는 것에 몰입하다 보면 사람을 비롯해 모든 게 따라오는 것 같아요. 소위 성공한 사람들이 하는 말 있잖아요. 재밌어서 했다고. 그 말이 거짓말이 아닌 것 같아요. 최고의 영감과 동기 부여는 재미라니까요.

 

재미를 추구하시잖아요. 요즘 새로 도전하고 싶은 게 있다면?
 
딱히 없어요. 지금은 여행 가고 싶어요. 1년에 1번씩은 가려고 했는데, 쉬는 날이 없다 보니 못 가고 있어요. 저는 여행할 때 마음에 드는 곳이 떠오르면 여행지에 관해 알아보지 않고 바로 떠나요. 도착해서 가장 먼저 하는 게 옷 버리고 현지에서 옷을 사서 갈아 입고요. 현지인처럼 생활하죠. 그게 여행이죠.

 

그리고 기숙사 1층 느낌이 나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보통 사람들이 기숙사 1층을 좋게 기억하더라고요. 십시일반 돈 모아서 치킨 시켜 먹고 같이 TV도 보고, 서로 살아온 이야기도 하는 공간이요. 제 집을 시험 삼아 해 보고 싶어요. 작업할 공간이 필요해지니까 작업실 겸 카페로 만들고싶은 마음도 있어요. 향후 5년간 꿈은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1위?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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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쓴의 5만 원 자취방 인테리어제이쓴 저 | 들녘
‘자취방 인테리어 인텔리’ 제이쓴이 제시하는 유니크하고 판타스틱한 ‘자취공간 리노베이션’! 3만 원으로 ‘블랙&화이트’의 모던한 싱크대를 창조하고, 7만 원으로 자취방을 카페로 바꿔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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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명화가 주는 치유의 힘, 삶을 변화시키는 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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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빨간 머리 앤의 등장인물 마릴라 아주머니는, 소풍이며 새로 만날 친구며 무엇에든 애정을 쏟는 앤을 보며 한숨을 내쉽니다. 앞으로 살면서 실망할 일이 많을까 봐 걱정이라면서요. (중략)"린드 아주머니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런 실망도 하지 않으니 다행이지.'라고 말씀하셨어요. 하지만 저는 실망하는 것보다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게 더 나쁘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어른이 될수록, 실망하게 될까 하는 두려움에 애초에 기대를 버리는 일이 많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뭔가를 기대한다는 것이 얼마나 매분 매초를 황홀하게 만드는지, 우리는 잊고 살았던 게 아닐까요? (233쪽)

 

갖은 걱정과 고민에 고개를 푹 숙이고 걷다가 쏟아지는 햇살, 청명한 하늘, 산들바람, 명랑한 새 소리를 듣고 크게 위로받은 적이 있다. 시멘트 틈을 뚫고 올라온 민들레꽃이나 빨갛게 익은 단풍잎을 보면 기특하고 고마웠다. 새 봄을 맞이하는 공간에서 마치 눈처럼 흩날리는 벚꽃을 즐기는 상춘객이 그토록 많은 것을 떠올리면 사람에게 필요한 정서랄까 위로가 되는 환기의 존재가 분명히 있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된다. 이 모든 것들은 사람의 마음을 위로한다. 기운을 북돋고, 등을 토닥이고, 다정한 눈인사를 건넨다. 그 모든 순간을 한 폭의 그림으로 담아낸 명화들 역시 오랜 시간 살아남아 우리에게 말을 건다. 바로 『그림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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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CHA)의과학대학교 미술치료대학원 원장이자 미술치료계의 권위자로 잘 알려진 저자 김선현 교수는 그간의 임상과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가장 효과가 좋았던 명화 89장을 선정하여 소개한다. 삶에 있어 가장 주요한 카테고리에 해당하는 일, 사람 관계, 돈, 시간, 나 자신의 다섯 영역을 제시하고, 여기에 도움을 주는 작품들을 배치해 마음을 위로한다. 그림은 일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완화시키기도 하고, 편안한 관계를 설정하도록 마음을 보듬기도 하며, 울고 싶을 때는 울어도 좋다고 말을 걸기도 한다.


"그림이라는 하나의 매개체를 중간에 넣어서 감정 조절을 해주는 거죠. 이 그림들을 보면서 감동 받고, 울기도 하고, 힘을 얻기도 하고, 공감하는 거예요."


반드시 어떤 그림을 어떤 상황에서 봐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림을 곁에 두는 것만으로 당신의 마음을 위로하는 힘을 느끼게 될 것이다. 붉은 색감이 주는 에너지, 분홍이 주는 행복감과 짙은 푸른색이 주는 씩씩한 젊음, 노란의 편안함처럼 다양한 감정의 변화가 그림을 통해 가능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감정 조절을 잘 하는 능력


명화 89장을 선정하셨어요. 독자들이 이 책을 어떻게 읽으면 좋을까요? 특별히 권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으신가요?


이 책은 미술치료와 상관없이 아주 평범한 사람들, 어린 아이들부터 시작해 노년층까지 다양한 연령대가 볼 수 있게 구성된 책이에요. 특별한 질환이 있어서 보는 것도 있겠지만 그 외에 내가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들, 스트레스나 여러 가지 정서적 변화들을 그림을 통해서 살펴보고 치유하는 방법으로 구성되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책을 '미술치료'라는 좁은 의미로 해석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그림을 보고 마음이 치유되니까 일종의 미술치료라고도 볼 수는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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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데릭 레이턴 <타오르는 6월>


유명한 명화들이 많이 소개되어 있으니 그 자체로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야한 그림이 있어요.(웃음) 오렌지색 쉬폰 스카프 입고 낮잠 자는(프레데릭 레이턴 <타오르는 6월>, 240쪽) 그 그림이 제일 마음에 들거든요. 그런데 야하다고...(웃음)


이 책을 자기계발서로 기획했던 이유가 있어요. 자기 관리 능력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감정 조절을 잘 하는 능력이거든요. 현대인들이 가장 못하는 감정 조절 중 하나가 스트레스 중에서도 특히 분노조절이고요. 어떤 부분에서 자신의 분노가 계속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잖아요. 자신의 예민한 부분인데요. 이것만 건드리면 분노가 터지는 부분이 누구에게나 있을 거예요. 트라우마죠. 이런 것들을 잘 조절하지 않으면 그간 쌓아왔던 것들이 한 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어요. 감정 조절을 잘할 때 성숙한 인물로 성장해가는 과정이 될 수도 있는 것 같아요. 그것들을 그냥 표현하고, 그냥 감정 조절 한다는 건 쉽지 않은 부분이에요. 여기에 그림이라는 하나의 매개체를 넣어 조절을 해주는 거죠. 이 그림을 보면서 감동 받고, 울기도 하고, 힘을 얻기도 하고, 공감하는 거죠. '맞아, 나도 이래, 어떻게 내 마음을 알지?' 그러면서요. 어떤 휴식을 통해서 자신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는 자기계발서라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미술 작품으로 자신을 성장시킨다는 말씀이군요.


또 좋은 건 자기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이에요. 감정에 빠져서 일상에 방해가 되고 여러 가지 문제가 될 경우에 그림이 조금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해요. 직접 참여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지만 그것 역시 일종의 부담이거든요. 그림을 통해서 자신의 감정을 객관적으로 보고, 평가하고, 조절할 수 있는 하나의 중간 매개체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책을 쓰시면서 가장 좋았던 그림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마커스 스톤의 <훔친 키스>라는 그림(151쪽)을 정말 좋아해서 굉장히 감탄을 했는데요. 여자는 잠이 들었어요. 지쳤는데요. 청바지나 반바지가 아니라 정장, 그것도 최고의 흰 색 드레스를 입은 것으로 봐서는 자신의 업무나 집무 등이 있는 상태에서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으로 온 것 같아요. 남자를 만나러 왔는데 너무 곤한 거예요. 옆에는 신이 바라보고 있죠. 신이 주는 평온함, 안정감도 있어요. 뒤늦게 남자가 와서 여자의 자는 모습을 계속 봤을 거고, 키스를 했을 거예요. 이런 쉼이 굉장히 중요한데요. 요즘 많은 사람들의 연애가 오래 가지 못하고 쉽게 깨지는 이유가 그 때문이에요. 한 사람이 뛰고 있을 때 한 사람은 받아줘야 하는데 같이 뛰고 같이 스트레스 받고 같이 싸우게 되거든요. 서로에게 요구를 하고요. 성경에서도 결혼은 서로 돕는, 헬퍼Helper라는 개념으로 말하거든요. 지금은 일방적으로 나의 스트레스를 푸는 대상으로 되니까 서로를 함부로 대하는 거죠. 함부로 때리는 거고, 함부로 욕을 하는 거고요. 저는 이 그림에서 자연의 안정됨과 쉼을 느낄 수 있어서 참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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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커스 스톤, <훔친 키스>

 

책의 구성을 다섯 가지 주제로 분류해서 소개하셨어요.


우리가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부분이 일이라든가 사람관계, 시간, 돈 이런 것들이에요. 그런데다가 돈 부분에 대해서도 재미있게 구성이 되어서 많은 분들이 좋아하시더라고요.

 

그림은 긍정적으로 자기를 해소하는 방법


<줄에 매인 개의 움직임>처럼 '과잉'으로 치료효과를 얻는 경우도 있더라고요. '동종요법'이라고도 하셨는데요. 꼭 반대의 정서를 담은 그림만 치료효과가 있는 건 아닌가봅니다.


동종요법은 증상을 억누르는 것도 있지만 오히려 증상을 건드려서 표현하는 게 좋다는 차원에서 진행하는 거예요. 물론 좋은 방향으로 표현해야 하죠. 계속해서 스트레스 받고 있는데 더하면 안 되겠죠. 울고 싶은 때 뺨을 딱 때리는 것처럼 나쁜 경우가 있을 수 있어요. 그런데 미술이라는 건 긍정적으로 자기를 해소하는 방법 중 하나거든요. 울고 싶은데 그림을 보니까 너무 울음이 나는 거죠.


최근에 카라 꽃을 짊어진 여인(디에고 리베라, <꽃 노점상>, 216쪽)을 보고 많이 울었다고 얘기하시는 분이 계셨어요. 카라라는 꽃은 항상 모든 것의 중심 역할을 하거든요. 안개꽃처럼 보조가 아니라 한 송이만으로도 신부의 부케가 되고요. 당당하고 아름다운, 어찌 보면 최고의 꽃이에요. 꽃과 여인은 보통 같은 감성을 갖는다고 얘기를 하잖아요. 그런데 이 그림에서 여인은 여왕인 꽃을 팔아서 생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어요. 꽃이 짐이에요. 그런데 이 짐이 너무 많아요. 뒤에 누군가 받쳐주는 모습에 위로는 받지만 무게감이 느껴지고요. 얼마나 힘들어요. 내가 어떤 일을 할 때는 물론 좋아서 시작했지만 살아남기 위해서는 인간관계, 돈 문제, 시간, 몸의 피곤함, 이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짊어지고 움직여야만 하잖아요? 그런 삶의 무게라는 게 표현됨과 동시에 꽃의 화사한 색이 참 좋다고 여성분들이 많이 얘기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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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에고 리베라, <꽃 노점상>

 

또 들려주실만한 사례가 있나요?


워킹맘이었는데 아이를 출산하고 복직한 분이었어요. 일을 하고 집에 왔을 때 무척 피곤하잖아요. 그래서인지 여성이 잠을 자고 있는 그림이라든가 키스해주는 모습이라든가 홀로 떨어져서 자연을 바라보는 것, 혼자만의 힐링을 할 수 있는 그림들에서 위로가 많이 됐다고 하시더라고요.

 

한 그림이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주는 치유의 효과가 있는가 하면 사람의 상태나 경험에 따라 그림의 효과가 다르기도 한 것 같습니다.


네, 상황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는 것 같아요. '주변 사람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하다'(108쪽)'에 대해서 어제 또 어떤 분이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나폴레옹이 나쁜 놈인 줄 알았다는 거죠. 정복자의 투지, 에너지가 나쁘다고만 생각했고 조세핀과의 관계만 피상적으로 생각했는데 책 내용을 보니 사람을 달리 볼 수 있구나, 여러 가지 면을 볼 수 있구나, 생각하게 되었다는 거예요. 여성분이었는데, 자신에게 독한 상사가 있는데 결혼도 안 하고, 매일 일을 많이 시키고, 상대를 이해 못한다는 거죠. 그런데 나폴레옹 얘기를 들으면서 사랑하는 여인을 위해 최선을 다한 나폴레옹의 달콤함에 자기도 사람의 다른 면을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림 자체를 보는 게 아니라 그림을 통해 보이는 이면의 것들을 이야기하고 달리 보는 시각이 생기는 거죠.

 

그래서 그림을 보기도 하지만 스토리텔링도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전에 나온 명화에 관한 책들을 보면 그림에 관한 역사적 상황, 미술사적 접근을 주로 했어요. 조금 더 접근한다면 작가의 생애 정도까지만 접근을 했는데요. 저는 임상 기관에 오래 있다 보니까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와서 이 그림을 보고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치료를 하기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위로의 부분을 살펴봤던 것 같아요. 그 부분이 독자 분들에게 공감을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림에 자기 이야기를 덧붙이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이 참 신기해요. 이 그림(로렌스 알마 타데마 <더 묻지 마세요>, 144쪽) 정말 좋지 않아요? 요즘은 사실 사랑 표현이 노골적이잖아요. 이 그림은 일단 배경이 시원하고요. 복장도 너무나 편안해요. 당시는 정말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표현이 손 등에 키스 정도였다고 해요. 이런 키스에 정중함과 내 것을 지키려는 마음과 어떤 애잔함이 다 들어 있잖아요. 온 몸에 퍼지는 전율이 느껴져요. 또 여자의 낯은 발그레 해요. 이런 모든 게 녹아나는 응집된 사랑을 보여주는데요. 이 그림을 보고 굉장히 설렌다는 얘기를 많이 하세요. 남성분들도 좋아하시고요. 이런 표현들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사랑의 개념을 느끼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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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렌스 알마 타데마 <더 묻지 마세요> 

 

충분히 컬러를 즐겨라


'색'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노란색은 희망을, 녹색은 평화로움을 준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색이 주는 치료 효과가 분명히 있는 것이겠죠? 미술치료의 매력은 뭘까요?


일상에서 색이 없이는 살 수 없죠. 너무 색이 많다보니까 인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있는데요. 색은 꼭 이게 어울리니까 이게 필요하다는 목적에 의한 사용도 가능하지만, 나에게 맞는 컬러나 나를 편안하게 하는 컬러는 내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아요.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초록색을 보면 편안해지고요. 불안할 때 '바다를 보고 싶어'라고 하는 것은 파란 바다, 파란 하늘, 바다의 자유로운 형태를 보고 싶어 하는 걸 텐데요. 명화뿐 아니라 컬러는 우리 일상에 굉장히 중요한 것 같습니다.


책 표지인 클림트 작품을 많이 좋아하는 이유는 일단 색의 대비가 많잖아요. 노랑, 빨강, 초록 이렇게요. 빨강의 보색이 초록인데 그러면서도 자연의 색이 정말 잘 어울리기 때문에 이 에너지를 적절하게 받는 것 같아요. 돈을 주제로 소개한 그림들에는 어두운 색을 담은 것들도 많이 나오고요, 죽음에 관한 그림에는 형태도 그렇지만 색도 칙칙하고 어둡고 답답한 이런 것으로 감정을 표현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색에 관한 일화도 있나요?


노인 분이었는데요. 치매 초기셨는데 빨간색 립스틱을 바르고 싶다는 거예요. 왜냐고 물었더니 그걸 바르면 남편이 '쥐 잡아 먹은 것 같다'며 하지 말라는 제약이 많았다고요. 빨간색 코트도 입고 싶지만 입지 못하는 거예요. 그날 숙제가 빨간색 립스틱을 바르고 사진 찍기, 빨간 옷 입기였어요. 색이 주는 에너지가 있는 거예요.


저도 그런 경험이 있어요. 친정어머니가 어느 날 빨간 코트를 입고 오셨어요. 제가 너무 놀라서 이게 뭐냐고, 다른 색도 있는데 이런 색을 입었다고 막 뭐라고 했어요. 그 뒤로 저희 어머님이 제 앞에서는 입지 않으셨어요. 나중에 생각하니 너무 미안했어요. 갱년기 여성이 에너지가 떨어질 때 내가 원하는 색깔을 통해서 힘을 얻는데 왜 그렇게 반대를 했던가, 하는 생각이 들어 참 죄송해요. 에너지가 떨어졌을 때는 빨간색 구두도 신어보고, 빨간색 꽃도 보고, 액세서리도 하고, 때로는 네일아트도 하면서 남에게 피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는 충분히 컬러를 즐기는 게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다른 분야와의 연계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음악을 추천해 주시기도 하셨고요, 심리학자의 말도 인용하셨잖아요. 사람에 대한 관심이 높으신 것 같습니다.


사람에 대한 관심을 안 갖고 살 수도 있어요. 무시하고, 신경 안 쓰고, 도인처럼 살 수 있죠. 그런 사람을 우린 건드리지 않아요. 그런대로 인정하지만 그 사람에게 내 마음을 던지고 싶진 않아요. 그 사람 독설이 맞고 나에게 자극은 되지만 그 사람에게 가진 않죠. 그냥 내 말을 들어주는 사람에게 마음이 가요. 그런 것처럼 사람을 떠나서 살 수 없기 때문에 사람에 대한 관심이 정말 많아야 하는데요. 그러다보니까 상처를 많이 받아요. 너무 날카로워서요. 하지만 피할 수 없는 길인 것 같아요. 내가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자신에게도 치료적 접근을 하실 때가 있으신가요?

 

저도 많이 그런 편이죠. 많이 알려지지 않았을 때는 정말 삶이 자유로웠어요. 치료 일을 하고 언론에도 조금 알려지게 되니까 나를 다스리는 것, 특히 스트레스 관리에 대해서도 신경을 많이 쓰고요. 사람 관계에 있어서도 물론 잘 지내기는 하지만 상처도 많이 받아요. 아직까지는 그렇게 심한 편은 아니지만 많이 노출되면 더 그렇지 않을까 생각이 들긴 해요.


저는 아이를 키우니까 일어나서 아침 식사를 준비해야 하고, 학교를 보내고 그런 상황이잖아요. 때문에 아침에 눈을 떠서 숨을 고르지 않으면 하루 일을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면 기도를 하고, 창문을 확 열면서 숨을 크게 쉬어서 일상으로 들어가는 거죠. 어떻게 보면 일종의 환기인데요. 그림만 보고 환기하는 게 아니라 일상에 접목시키는 거예요.

 

자신과 만나는 시간


일상을 사는 사람들에게 말씀처럼 일종의 장치는 꼭 필요한 것 같아요. 나를 북돋을 수 있는 장치요. 선생님의 '환기'가 좋은 방법을 제시하는 것 같습니다.


스트레스라는 게 굉장히 중요해서요. 영적인 관리, 이런 것들이 참 중요합니다. 기도하는 시간도 중요하고요. 자신과 만나는 시간이 필요한 거죠. 현실과 만나는 시간 전에 차분하게 자신을 만나고 자신을 점검하는 데 그림들이 사색의 시간을 마련해줄 수 있고 그런 부분을 떠오르게 하는 점이 될 수 있다는 거죠.

 

그림이 정말 신기한 게, 그린 사람의 심리가 보는 사람에게 '전이'된다는 말씀을 하셨잖아요. 어떻게 그것이 가능한 걸까요?


그것이 명화인 것 같아요. 명화의 힘이죠. 미국에서 한 20년 살다 온 어떤 분이 하신 얘기였는데요. 그곳에 있을 때 좋아서 들었던 음악이 한국에 와서 보니 다 히트작이 되어있다는 거예요. 어느 곳에 있든 좋은 음악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구나, 생각했어요. 시, 음악, 그림 같은 것들은 어느 나라 어느 곳에 있든 우리 마음을 감동시키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그것이 명작, 명화라고 할 수 있겠죠. 우리는 클림트를 본 적도 없고 이 화가가 누군지도 모르고, 그 시기에 살지도 않았거든요. 그런데도 그림을 통해서 감정을 느껴요. 이중섭의 그림(<해와 아이들>, 96쪽)은 색을 봐도 와 닿지만 특히 사건들이 와 닿죠. 아내와 아이를 너무 보고 싶어서 그리워하며 그렸던 이야기를 들으면 더 나의 감정도 증폭되는 거죠. 그림을 통해서 나의 과거에 들어가고, 나의 현재를 짚어보고, 나의 미래에 대해서 희망을 갖고 재점검 할 수 있는 게 그림의 힘이에요. 거기에 대해서 누구나 공감을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대부분 서양화를 소개하셨는데요, 동양화와 서양화의 치료효과 차이가 있나요?


우리가 어릴 때부터 미술 교육을 받을 때 대부분 고흐 같은 서양화가를 많이 보잖아요. 그쪽에 많이 노출되다 보니까 서양화에 좀 더 익숙한 것 같아요. 서양 작품의 표현을 더 재미있어 하는 것 같고요. 서양 작품은 비교적 과감하고, 표현력이 확 보이잖아요. 반면 동양화, 특히 한국화는 대부분 자연을 그리고 그림 방식도 수묵화가 많으니까 어색함이 좀 있더라고요. 하지만 노인 분들의 경우 동양화를 좋아하시는 부분도 있어요. 먹의 느낌을 좋아하고 은은한 매화라든가 이런 그림을 좋아하시는데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좀 익숙하지 않아 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트레스 많이 받는 직장인들은 자연을 보면서 쉬고 싶어, 자연에 하나가 되고 싶어,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 자연에 동화되고 싶어, 이런 심리가 있잖아요. 동양화에는 세상과의 단절이나 자연과의 합일 같은 정서가 있으니까 그럴 때 차이가 있을 수 있겠죠. 서양 사람들의 시각은 자연을 정복하고, 자연을 이용하고, 자연을 대상으로 보는 면이 크니까 아무래도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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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을 보는 것만으로 뇌의 변화가 나타나


진짜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사람이 없는 풍경만 봐도 해소가 될 수 있다고 하셨잖아요. 보고 있는 것만으로 뇌에 자극을 줄 수 있는 건가요?


책 표지에 그림 외에는 아무것도 없잖아요. 그림 자체만으로도 치유의 효과를 느낄 수 있다는 거예요. 그림만으로도 내 몸과 마음을 움직이도록 하는 자극 효과를 느낄 수 있어요. 시각적 자극을 통해 몸이 움직이고 마음이 움직이는 것은 사실 뇌가 움직이는 거거든요. 내가 편안하면 뇌도 굉장히 자연스럽게 편안함을 느끼고 안식을 취하고요, 내가 긴장하면 몸도 긴장하지만 뇌는 상당히 긴장하게 되는 거죠. 그림이 좋은 게, 시각적인 효과를 통해서 몸이 반응하고 뇌가 전체적으로 반응하게 한다는 거예요. 좋은 그림을 본다는 자체에서 뇌의 변화가 당연히 나타나요.


모든 감각 중에서 시각이 70%에서 80%까지 차지해요.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다'고 하잖아요. 맛이 어떻든 간에 보는 것 자체에서 식욕을 느끼는 것처럼 그림 보는 것 자체로 뇌가 반응을 한다는 거죠. 본다는 건 굉장히 중요해요. 좋은 그림 많이 보는 것, 좋은 느낌을 많이 갖는 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왕실 식기는 대부분 흰 색에 파란 무늬가 들어가 있잖아요. 파란 무늬는 차분하게 하고 식욕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어요. 반면에 패스트푸드점 보면 빨간색으로 자극을 줘요. 빨리 먹고 싶게 해요. 빨간색은요, 조금만 보고 있어도 시간이 굉장히 많이 지난 것처럼 느끼게 해요. 빨리 먹고 일어나도록 하는 효과가 있는 거예요. 실험 결과가 나왔어요. 똑같은 시간인데 빨간색 방에 비해 파란색 방에서는 시간이 많이 지났다고 느끼지 않는 거죠. 그래서 황실 식기들의 파란색 무늬가 우아하고 천천히 먹을 수 있게 하는 효과를 주는 거예요.

 

아이들을 대상으로도 실험하셨잖아요?


똑같은 방에 똑같은 조건을 두고 실험을 했는데, 빨간 방에 간 아이들은 책은 쳐다보지도 않고 단체로 뛰고 놀아요. 나중에는 싸우기까지 하고요.(웃음) 빨간 방에 있던 아이들에게 '이 방은 어떤 방이야?'하고 물었더니, '노는 방이요, 더워요'라는 대답이 돌아왔어요. 파란 방에 간 아이들은 차분히 옹기종기 앉아서 놀더라고요. 한 명은 심지어 잠을 자고요. 몇 명이 이야기를 나누더니 책을 읽어요. 그 아이들에게도 물었더니 '책 보는 방이요, 시원해요'라고 해요. 색에 대해 잘 알고 적절하게 배치해주는 것도 필요한 부분입니다.

 

세월호 사건의 학생들도 만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그동안 제가 미술치료를 하면서 많은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꾸준히 만나왔는데요. 연평도 포격사건도 있었고, 구제역 살처분에 동원되었던 군인들, 학교 폭력, 성폭력, 치매 환자들 등 여러 사건에 관련해서 심리 지원을 하다가 세월호 사건 학생들도 만나게 됐어요. 벌써 1주기가 다가오고 있죠. 세월호 사건에 대해 주목해 볼 만한 것이, 집단 무의식이 아주 발달한 곳이 한국이라, 이 사건이 전 국민적 슬픔으로 자리하게 됐다는 점이에요. 한국의 장례문화는 다른 나라와 달라요. 누가 죽었다고 하면 다 함께 밤을 새고, 다 함께 해요. 공감해주고, 같이 움직여주고요. 누가 이사 왔다, 아이를 낳았다, 하면 모두에게 떡을 돌리잖아요. 이렇듯 집단으로 움직이는 게 강해요. 세월호 사건이 9.11이나 쓰나미 같은 엄청나게 큰 사건들에 비하면 큰 사건이 아닐 수도 있는데 전 국민이 아파했던 이유 중 하나가 '내 자식'이라는 거였어요. 저도 아이를 키우는 엄마고 고등학생이었기 때문에 마치 내 자식 같았어요. 교복 입은 걸 보면 눈물이 나고 아이의 존재만으로 안심이 됐었어요. 단원고 주변 지역의 세탁소 아저씨도 슬퍼하고, 분식점 아저씨도 슬퍼하고, 자식의 실종을 경험한 다른 사람도 슬퍼해요. 모두에게 전이가 된 거죠. 자기 문제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전 국민이 아무것도 못하고 TV만 봐도 슬퍼했던 사건이었죠.


저는 당시에 생존자들, 단원고 1학년과 3학년 학생들을 만났어요. 2차 트라우마도 무척 중요하거든요. 유가족들 중에서도 특히 언니오빠들, 청소년들이 이런 아픔을 겪으면 굉장히 힘들어져요. 그래서 형제자매들을 만났고요. 유가족들과도 계속 미술치료를 하면서 아픔을 표현하게 하고, 아픔을 같이 한 그런 기회였어요. 조만간 UN초청 강의가 있는데요, 이때 동양과 서양의 다른 점, 세월호 사건을 통해 트라우마와 정신 건강에 대해 되짚어 볼 예정이에요. 특히 이런 사건을 그 자체만이 아니라 그 다음에 지켜봐야 할 게 회복이거든요. 회복 후 성장하는 것, 회복탄력성에 대해서 발표하게 될 것 같습니다.

 

지금 그 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게 뭐였나요?


너무 큰 사건을 겪었고, 혼자서도 많이 울었고, 위로도 많이 받았지만 결국 이들이 극복하고, 회복하는 게 필요하겠죠. 사회 안전망이나 응급의료 시스템, 재난 컨트롤 타워 이런 것들도 국가적 차원에서 중요하고요. 개인적으로는 아픔을 잘 극복해서 남은 삶을 잘 이끌도록 도와야 할 것 같아요. 사람들은 쉽게 얘기하잖아요. '그만 좀 해라, 또 왜 그러느냐'고요. 그렇지만 남은 사람들에게는 상처가 평생 가요. 특히 부모는 자식의 아픔을 끝까지 마음에 가두고 있어요. 예전이 만났던 어떤 분이 아이를 잃어버렸대요. 자기 약을 사러 갔다가 아이가 없어졌는데, 70살이 넘도록 그 조그만 약국 앞을 떠나지 못하는 거예요. 아이가 다시 약국에 오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요. 부모는 정말 죽을 때까지 아이를 잊지 못할 거예요. 너무 눈물이 나더라고요. 사회는 그만하라고 하지만 내 가족이라고 생각한다면, 내 아이라고 생각하면 그럴 수 없을 거예요. 굉장한 슬픔이거든요. 그들의 아픔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거예요. 며칠 뒤에 팽목항에 다시 갈 텐데요, 어떤 이념을 다 떠나서 같은 자식을 둔 부모 입장에서 생각해야 할 것 같아요. 비난하고 이런 건, 아닌 것 같아요.

 

회복탄력성을 말씀하셨는데요. 사람마다 차이가 있잖아요. 회복이 늦는 사람이 있다 해도 끝까지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습니다.


네. 중요한 말씀인데요. 우리는 모든 걸 빨리빨리 접근하니까 '그만 좀 해'라는 말을 하잖아요. 그렇지만 남들보다 예민한 사람이 있어요. 슬픔을 더 오래 간직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걸 일괄적으로 접근하면 안 돼요. 이제는 국가에서도 같이 해줘야 하고요. 사회적인 안전망이 필요한 것 같아요. 사회가 지켜줘야 한다는 거죠. 또 하나는 '너 이상한 거 아니야'라고 말해야 한다는 거예요. 성폭행 피해자들의 특징이 내가 잘못해서 그래, 내가 그 사람을 안 만났으면, 내가 어떻게 했으면, 하는 생각을 한다는 건데요. '아니야, 너는 아무 잘못이 없어, 잘못을 한 건 그 사람이고 그 상황이었던 거야.' 라고 말해주는 게 굉장히 중요한 거예요.


세월호 사건에서도, 아이가 수학여행 가지 않겠다는 걸 이모가 수학여행비를 지불해 준 경우가 있었어요. 얼마나 아름다워요? 그런데 그 이모는 이렇게 생각해요. '내가 왜 그 돈을 대줬던가.' 하고요. 이모 잘못이 아니에요. 조카 수학여행 가라고 돈을 대준 게 왜 이모 잘못이에요? 우리는 본질을 정확히 짚지 않으면 안 돼요. 사고를 당한 거지 누구의 잘못도 아니에요. '네 잘못이 아니야' 라는 말을 계속해줘야 해요. '너는 회복할 수 있어, 도와줄게, 같이 할게, 아픔을 이해해, 같이 아프자.' 이렇게 해주셔야 돼요. 절대 다른 사람의 아픔을 비난하면 안 돼요. 물론 내 의견을 말할 수 있어요. 하지만 아플 때 소금을 뿌리면 안 된다는 거죠. 상처가 아물기 전에 나의 언행을 통해서 상처를 빨리 수술하라고 할 수는 없는 거예요. 마음의 상처는 굉장히 오래 남아요. 이게 뇌에도 영향을 끼쳐서 우리 뇌의 감정을 자극하는 '해마'라는 부위가 쪼글쪼글 해져요. 감각하고, 인지하고, 즐거워하는 일상의 기능들을 못해요. 해마가 움직이지 못해서 옆에서 그 사람을 건드려도 반응이 둔한 거예요. 실제 몸이 반응을 하는 거죠. 정신과 감정을 관장하는 뇌의 부분을 건드려요. 이럴 때 뇌의 활성화를 돕는 데 그림이 작용을 한다는 거죠.

 

두 번째 책을 언급하셨어요. 그도 그럴 것이 다른 주제에 관한 더 다양한 그림을 감상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꼭 다루고 싶은 주제가 있다면요? 


스트레스 중에서도 이 스트레스를 거치지 않으면 안 되는 스트레스가 있어요. 바로 '입시 스트레스'예요. 시험, 면접처럼 아주 단적이지만 반드시 거쳐야 하는 스트레스요. 이런 구체적인 '시험'이라는 것을 주제를 다루어보고 싶어요. 그림을 통해 긴장을 완화하고, 꼭 건너야 하는 강을 자연스럽고 즐겁게 건너도록 도와줄 수 있었으면 해요. 사실 그 과정을 건너야 성장하는 것 아니겠어요? 가능해요. 수험생에게 맞는 음식에 대해서도 나오잖아요. 소화흡수를 돕고, 뇌 기능을 활성화하고요. 수험생에게 맞는 음식, 음악, 자연이 있는 것처럼 입시생들에게 긴장 완화를 주고, 약간의 집중력도 줄 수 있는 그림들을 선별해서 보여주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물론 그림을 통해 성적을 올릴 순 없어요. 책을 다 읽는 학생도 별로 없어요.(웃음) 그렇지만 곁에 두고 가까이 보면서 편안하게 느끼면 좋겠어요. 심리학적인 것도 들어갈 텐데요.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하는 내용으로 그림을 다룰까 하고요. 이것들을 통해 나의 간절함이 어떻게 성취 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지 알게 되셨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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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힘 : 최상의 리듬을 찾는 내 안의 새로운 변화김선현 저 | 8.0(에이트 포인트)
『그림의 힘』은 즐겁게 그림을 감상하며 누구나 그 힘으로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시간을 선사한다. 책에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다섯 가지 영역 - 일, 사람 관계, 돈, 시간, 나 자신 - 을 향상시키는 그림들이 실려 있다. 이 부문 최고 권위자이자 세계미술치료학회장이기도 한 저자는, 이 그림들을 보고 느끼다보면 일의 만족을 높이고, 사람 관계에서 오는 어려움을 덜 수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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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하는 철학자 팀 알퍼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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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하는 철학자, 음식의 현미경으로 삶을 바라보다


『바나나와 쿠스쿠스』는 영국인 철학자가 들려주는 유럽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나 책 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난해하고 심오한 철학적 이론이 아닌, 침샘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국적인 음식들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안에 감춰져 있는 ‘스토리’다. 하나의 음식이 탄생하고 변화하며 사랑받아 온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곧 그것을 향유하는 주체들에 대한 서사이기도 하다. ‘이 음식은 왜,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졌을까?’라는 질문의 끝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유럽 각국의 사람들은 서로 다른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서로 다른 음식들을 만들어냈다. 자신에게 허락된 재료들로 요리를 하기 위해서, 문화적 혹은 종교적인 관습을 지키기 위해서, 새로운 터전에서 기억 속의 맛을 재현하기 위해서, 세상에 하나뿐인 음식들을 탄생시킨 것이다.『바나나와 쿠스쿠스』가 유럽의 음식에 대해 이야기하면서도 그곳의 역사와 문화를 조명할 수 있는 이유다.

 

음식이라는 현미경으로 삶을 들여다보는 철학자인 팀 알퍼는 “순전히 음식을 경험해보기 위해” 유럽으로 떠났다.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영국에서 출발해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스, 스위스, 독일을 거쳐 러시아에 이르기까지 맛있는 탐험을 이어갔다. 『바나나와 쿠스쿠스』에 소개된 25가지의 음식들은 그 시간들의 기록이다. 저자는 특유의 유머를 잃지 않으며 생생한 묘사와 따스한 시선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한편 “음식이야말로 삶과 문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매개체”라는 믿음을 독자들에게 전파한다.

 

『바나나와 쿠스쿠스』안에서 떠나는 유럽 음식 기행은 미처 알지 못했던 세계로 우리를 이끈다. 영국을 대표하는 음식은 ‘피시 앤 칩스’ 뿐이라는 편견은 진짜 영국의 맛을 보여주는 ‘셰퍼드 파이’ ‘당근 케이크’ ‘썸머 푸딩’ 앞에서 사라져버린다. 스페인의 무더운 날씨를 견디는 방법은 ‘시에스타’ 만이 아니라는 사실도 알려준다. 그들에게는 우리의 냉국과도 같은 차가운 음료 ‘가스파초’가 있다. 또한 이 여행은 종종 우리를 황홀경에 빠지게 하는데 ‘열반의 경지에 든 라마승조차 빵으로 향하는 손길을 참아낼 수 없다’는 프랑스의 바게트는 그 맛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을 들뜨게 한다.

 

이미 유럽을 여행한 이들에게 『바나나와 쿠스쿠스』가 소개하는 음식들은 강한 향수를 자극할 것이다. 그리고 아직 만나보지 못한 이들에게는 설레는 상상을 선사할 것이다. 팀 알퍼는 유럽의 음식을 이야기하며 이따금씩 한국의 음식을 떠올린다. 스페인의 가스파초를 냉국에 비유했듯 독일의 ‘사우어크라우트’와 러시아의 ‘마르코브카 파-레이스키’를 김치의 다른 버전으로 소개하는 것이다. ‘짐작조차 할 수 없는 맛’을 ‘상상 가능한 맛’으로 바꿔놓는 이 작은 배려는, 9년째 한국에서 살고 있는 저자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그는 한국인 아내와 결혼한 후 자신이 ‘요리 천국’이라 부르는 한국과 사랑에 빠졌다. 교통방송 PD와 대한항공 기내지 ‘모닝캄’의 기자로 일했고, 각종 매체에 푸드 칼럼을 연재했으며, 아리랑 TV와 올리브 TV 등의 음식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했다.

 

한 나라의 철학은 한 그릇의 음식에 담긴다


『바나나와 쿠스쿠스』가 유럽 음식에 대한 강렬한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듯, 팀 알퍼와의 만남 역시 기대감을 자극했다. 홍어와 청국장과 과메기를 사랑하는 유럽인이라니, 그와 나누는 음식 이야기는 분명 흥미로울 것이라 예감했다.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성장하고 이제는 한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그이기에 대화는 한층 다채로운 빛깔을 띠게 될 터였다. 요리에 대한 경험과 지식은 말할 것도 없다. 여덟 살 때부터 바나나 케이크를 만들고 호텔의 수 세프(sous chef)로 근무하기도 했던 그가 아닌가. 예상했던 대로 그와 함께한 시간은 시종일관 유쾌했고 넓고 깊은 이야기들로 채워졌다.

 

『바나나와 쿠스쿠스』는 유럽의 음식을 통해 삶과 문화를 이야기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책을 집필하면서 제가 원했던 건 음식 문화를 설명하는 것이었어요. 한국 문화를 잘 알고 싶을 때에도 음식 여행을 하면 도움이 되잖아요. 예를 들어서 된장을 만드는 과정에 대해서 알게 되면 한국 사람들이 예전에 어떻게 살았는지 이해하기 쉽죠. 다른 나라의 경우도 마찬가지예요. 그런데 실제로는 그런 경우가 드물어요. 영국으로 여행을 갈 때 ‘피시 앤 칩스’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질문을 하지는 않죠. 그냥 가서 먹어보고 ‘이게 영국 사람들이 많이 먹는 음식이구나’ 하고 끝이에요. 음식을 시작으로 그곳의 역사나 철학을 깊게 이해할 수 있는 데도 불구하고요. 『바나나와 쿠스쿠스에서는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어요. 음식에서 출발하지만 깊게 보면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있죠.

 

유럽 여행을 시작한 이유는 ‘음식을 경험해보기 위해서’라고 하셨습니다. 처음 한국을 방문하신 이유도 음식 때문이었나요?


제가 스포츠 기자로 일할 때 한국 축구를 취재하기 위해서 처음 왔었어요. 그때의 기억이 너무 좋아서 이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한국 음식과의 첫 만남부터가 너무 좋았거든요. 저는 마늘, 매운 음식, 깊은 맛을 좋아하는데 한국 음식에 전부 있는 거예요. 그런 점에서 저와 잘 맞았어요.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한국의 음식을 통해서 한국의 문화를 이해하게 됐죠. 예를 들면 뚝배기는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그릇이거든요. 그래서 왜 한국에서만 뚝배기를 사용할까, 라는 질문이 생겼어요. 김치를 보관하는 장독도 어떤 재료로 만드는지 궁금했고요. 이런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알게 되면서 한국 문화도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어요. 유럽의 음식과 문화를 이해하는 방식도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셨습니다. 음식에 대한 철학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음식 안에 그 나라의 철학이 담겨있어요. 한국의 경우에는 같이 밥을 먹는다는 건 함께 나눈다는 의미예요. 다른 나라에서는 밥을 만든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거든요. 최근 영국의 트렌드도 그래요. 그런데 한국 사람에게는 조금 다른 철학이 있죠. 같이 즐기기 위해서 만드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밥을 남기지 않고 많이 먹으면 좋아해요. 하지만 영국에서는 식사할 때 항상 뭔가 남아야 해요. ‘플레이팅’이니까요. 결국 다른 철학으로 인해서 생겨나는 차이들이죠.

 

유대인 가정에서 성장하셨는데요. 한국의 음식에서 발견한 삶과 문화는 유대인 공동체와 어떻게 다른가요?


유대인과 한국인은 많은 점에서 비슷해요. 유대인들은 매주 금요일에 가족 모임을 갖는데 참석하지 않으면 안 돼요. 가족끼리 모여 앉아 식사하는 걸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에서 한국인과 같죠. 그래서 한국에 와서 놀라기도 했어요. 유대인들만 그런 줄 알았거든요. 이와 달리 영국 사람들은 혼자 먹는 걸 좋아하고 편하게 생각해요. 가족들과 계속 있고 싶은 것보다 자유롭기를 바라는 거죠.

 

여덟 살 때 바나나 케이크를 직접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놀라웠습니다. 작가님께서 음식과 사랑에 빠진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어렸을 때는 그냥 맛있는 걸 많이 먹으면 기분이 좋았어요. 아이들이 다 그렇잖아요(웃음). 그런데 나이를 들면서 다른 사람의 행복 때문에 음식을 만드는 즐거움을 알게 됐어요. 맛집을 소개해 주면서 같이 가자고 권하기도 하고, 집에 초대해서 음식을 만들어 주기도 하면서 기분이 좋아지는 거죠. 내가 만든 음식을 다른 사람이 잘 먹어주면 좋잖아요. 어렸을 때와는 정반대죠. 그때는 ‘맛있는 건 다 내 꺼’ 이런 식이였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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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영국 음식은 런던 밖에 있다


책에서 유럽 각국의 음식을 지역별로 나누어 소개하셨습니다. 각 지방의 음식들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나요?


요즘은 대도시가 많이 생겨서 어느 곳에서나 같은 음식을 먹을 수가 있어요. 패스트푸드 같은 경우가 그 예죠. 한국의 햄버거 프랜차이즈에서 먹은 음식을 영국에서도 먹을 수 있는 거예요. 그런데 아직도 시골에는 오래된 문화가 남아 있어요. 그 지역의 재료와 날씨의 영향으로 만들어진 음식들이 남아있는 거예요. 유럽 남부 지방에는 재료가 풍부하고 하나같이 맛있어요. 그래서 요리 방법도 복잡하지 않죠. 만약 이탈리아에 가서 음식 만드는 모습을 본다면 놀랄 지도 몰라요. 이탈리아 음식을 복잡하게 생각하기 쉬운데 실제로는 너무 쉽게 만드니까요. 재료 자체가 맛있기 때문에 그런 거거든요. 그런데 반대로 스칸디나비아에 가면 요리하는 과정이 조금 더 복잡할 수 있어요. 재료가 많지 않기 때문이죠. 지역 별로 토양이 다르기 때문에 음식이 달라지기도 하고요.

 

여행을 하다 보면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고생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 경험은 없으셨나요?


그런 적은 없었어요. 입맛에 맞지 않는 음식을 만나면 ‘왜 이곳에서 이런 입맛이 생겼는지’ 궁금해졌죠. 그리고 음식이 내 입에 맞지 않는다면 다른 음식을 찾으면 돼요. 그 음식 말고도 다른 음식이 있을 테니까요. 여행을 다니면서 모든 음식이 맛없는 곳은 없었어요.

 

한국 사람들은 어디를 가든 김치나 고추장을 가지고 갑니다. 그래서 낯선 곳의 음식을 경험해 보지 못하는 경우도 생기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한국 사람만 그렇게 하는 건 아니에요. 영국 사람들은 스페인에 많이 가는데, 음식이 입에 맞지 않다고 느끼는 사람은 영국식 과자나 베이크드 빈스를 싸가지고 가기도 해요. 그런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조금 더 고민하고 용감해지면 입맛에 맞는 음식 찾을 수 있을 거라는 거예요.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 중에도 마늘이 들어간 음식이나 매운 음식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어요. 그런데 한국 음식이 얼마나 다양해요? 그 중에 입맛에 맞는 음식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요즘은 인터넷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도 있고요. 『바나나와 쿠스쿠스』도 유럽 여행을 갈 때 도움이 될 수 있을 거예요.

 

맛에 대해 설명한다는 것이 쉽지 않으셨을 것 같습니다. 특히 유럽 음식에는 한국인들이 경험해 보지 못한 맛과 향이 담겨 있으니까요.


비슷한 음식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면 ‘이건 그런 맛이겠구나’하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책에서 독일의 ‘사우어크라우트’를 김치에 비유한 것도 그런 이유죠. 저는 사우어크라우트를 먹어본 후에 김치를 맛봤는데요. 김치를 먹으면서 사우어크라우트를 떠올리지는 않았어요. 사우어크라우트는 아주 시원하지만 아무 맛도 없는 데 반해서 김치는 여러 가지 맛이 나거든요. 사우어크라우트는 거의 소금과 배추 맛 밖에 없어요. 그런데 김치는 생가, 고추, 젓갈처럼 다양한 맛이 있고 경우에 따라서 배나 생선과 같은 맛도 느껴지죠. 두 음식 사이에 비슷한 점은 만드는 과정이에요. 소금에 절여서 만든다는 공통점이 있죠. 그래서 냉장고가 필요 없는 음식이기도 해요.

 

『바나나와 쿠스쿠스』는 음식의 유래를 소개함으로써 흥미를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몽골의 영향으로 사우어크라우트가 생겨났다고 이야기해요. 독일 가까운 곳까지 몽골이 지배했었으니까요. 물론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어요. 하지만 궁금한 거죠. 파스타의 경우도 중국을 여행하고 이탈리아로 돌아온 마르코폴로가 전파했다는 이야기도 있어요.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누군가가 사람들에게 새로운 음식을 보여주고 전파하는 과정이 흥미로운 것 같아요. 감자 역시 원래는 유럽에 없는 재료였죠. 처음에 선원들이 영국인에게 감자에 대해 말해줬을 때 그들은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도 몰랐을 뿐더러 키우는 방법도 몰랐어요. 그런데 이제는 감자 없이 영국 음식을 설명할 수 없죠. 한국에 고추가 유입된 과정도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고추 없는 한국 음식은 상상할 수도 없잖아요.

 

에필로그에서 유대인의 전통 음식 ‘쿠스쿠스’를 소개하셨습니다. 유럽에서 음식이 확산된 과정은 유대인의 역사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고 하셨는데요. 유럽을 여행하면서 그 사실을 직접 느끼신 적도 있나요?


유럽에서 유대인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은 별로 없었어요. 그런데 유럽 곳곳에 유대인들이 있었고 아직도 거주하고 있으니까 흔적들이 남아있죠. 유대인들은 각 지역의 음식들과 자신들의 문화를 조금씩 섞어왔어요. ‘피시 앤 칩스’도 유대인의 영향으로 탄생한 음식이죠. 다른 지역에서 감자튀김과 생선튀김의 조리방법을 배운 유대인들이 영국에서 그 음식들을 팔았던 거예요. 그런 식으로 여러 문화들을 조금씩 섞은 거죠. 이 이야기를 에필로그에 적은 이유는 유럽에 가서 유대인 음식을 드시라고 말하기 위해서가 아니에요. 다른 음식 사이의 관련성과 문화를 이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었죠.

 

영국의 대표적인 음식으로 ‘피시 앤 칩스’만 떠올리는 사람들에게 진짜 영국을 만날 수 있는 음식을 추천해 주세요


영국 음식을 드시고 싶다면 먼저 대도시에서 벗어나세요. 대도시에는 다 똑같은 맛이 있어서 특색 있는 음식을 만나기 어려워요. 인도 커리나 태국 음식, 일본 스시를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식당들은 있지만 영국식 요리는 찾을 수 없죠. 진짜 맛있는 피시 앤 칩스도 바다 옆에 있는 전문점에 있어요. 그 외에도 다른 음식들도 있는데 시골을 찾아가면 맛볼 수 있죠. 그곳의 사람들은 새로운 세계의 음식을 맛본 경험이 거의 없어요. 그래서 계속 자신들만의 음식을 만들어 왔고요. 당근 케이크는 당근이 정말 맛있는 지역에서 생겨났고, 소고기가 맛있는 지역에서는 셰퍼드 파이를 만들었어요. 바다 옆 마을에서는 피시 파이를 만들었고요. 피시 파이가 만들어진 과정을 보면, 어부들은 제일 비싼 생선은 대도시에 팔고 남은 생선으로 요리를 해야 했기 때문에 파이로 만들어 먹었던 거예요. 이 작은 시작에서 큰 문화가 생겨난 거죠. 그러니까 대도시를 벗어나서 호기심을 가지고 찾다보면 맛있는 음식을 발견할 수 있을 거예요.

 

여행지에서 메뉴 선택에 어려움을 겪을 때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 지역의 사람들에게 물어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누구나 자신들의 문화를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테니까 질문하는 걸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어요. 어떤 메뉴가 맛있는지 물어보면 자긍심을 느끼면서 설명해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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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든 램지’로 가득한 영국의 주방


『바나나와 쿠스쿠스』에는 요리 레시피도 함께 수록되어 있습니다. 작가님께서 직접 요리하시는 방식을 소개하신 건가요?


물론 저는 요리하는 걸 좋아하고 요리 칼럼을 쓰기도 했지만, 책 속의 레시피는 한국에서 쉽게 만들 수 있는 방법에 중점을 뒀어요. 그대로 보고 만든다고 해도 아마 현지에서 먹는 맛은 아닐 거예요. 책에 나오는 음식의 맛과 비슷한 느낌을 느낄 수는 있겠죠. 그런데 진짜 그 음식의 맛을 보려면 해당 지역을 찾아가는 수밖에 없거든요. 그 지역에서 나는 재료로 만들어야 같은 맛이 나니까요. 만약 영국에서 김치를 만든다면 한국에서와 같은 맛이 나올까요? 만들기 쉽지 않을 거예요. 한국에서 자란 무 마늘 배추를 구하기도 어렵고 다른 곳에서 재배된 재료는 조금 다른 맛일 거예요. 엄마가 담근 김치의 맛을 느낄 수는 없는 거죠. 그런 이유로 책의 레시피 대로 만든 음식이 현지에서 먹은 것과는 다른 맛일 수 있지만, 아직 먹어보지 않은 음식을 비슷하게 맛볼 수는 있을 거예요.

 

수 세프(sous chef)로 근무한 경력도 갖고 계신데요. 요리를 좋아함에도 불구하고 일을 그만두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16살 때부터 대학교 졸업할 때까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요리를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펍에서 설거지를 했죠. 그러다 조금씩 경험이 쌓이면서 최종적으로는 수 세프의 자리까지 오른 건데요. 요리 공부를 한 적은 없었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계속 요리를 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어요. 그런데 일하면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면서 생각이 달라졌죠. 사실 영국 세프들은 다들 ‘고든 램지’ 같거든요. 지금도 저는 고든 램지를 보면 옛날 생각이 나요(웃음). 요리사로 일하는 게 정말 힘들었어요. 저와 맞지 않았던 거죠. 요리는 취미로 하자고 생각했고, 어렸을 때부터 좋아했던 글쓰기와 부엌에서 배운 경험을 접목시키고 싶었어요.

 

영국인이 바라보는 한국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실 계획은 없으신가요?


그런 내용의 책을 정말 쓰고 싶어요. 한국 사람에게 한국 음식을 소개하고 싶다는 생각은 오래 전부터 했어요. 한국 사람들이 모르고 있는 건 아니지만 생각하지 못한 포인트가 있을 수 있잖아요. 한국 음식에 대한 한국인들의 생각과 저의 생각이 다를 수도 있고요. 기회가 된다면 다른 나라의 음식과 비교하는 작업도 해보고 싶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익숙한 음식이기 때문에 잘 모르는 부분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보통 어렸을 때부터 먹은 음식에 대해서는 많이 생각하지 않죠. 저 역시 그랬어요. 그런데 외국을 여행하면서 비교하다 보니까 영국의 음식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한국 사람들도 김치는 그냥 김치 맛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맛을 몰랐던 외국인들은 질문을 품게 돼요. 이 음식은 어떤 재료로 만들어질까, 그 재료는 왜 넣는 걸까, 이런 궁금증이 생겨나는 거죠.

 

홍어, 과메기, 청국장을 좋아하신다고 해서 놀랐습니다. 한국인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뉘는 음식이잖아요.


청국장이 냄새가 많이 난다는 이유로 먹기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예요. 그런데 치즈의 경우에도 제일 냄새가 안 좋은 치즈가 제일 맛있거든요. 청국장도 같다고 생각해요. 저는 아주 심한 냄새를 풍기는 청국장을 만나면 꼭 먹어야 된다고 생각해요(웃음). 프랑스에도 아주 냄새가 심한 치즈가 있어요. 집 안에 보관하기가 힘들어서 발코니에서 먹어야 할 정도죠(웃음). 그런데 깊은 맛이 나요. 청국장과 비슷하죠.

 

독자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유럽 음식은 무엇인가요?


시간이 허락된다면 남부 지방은 꼭 가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정말 매력 있고 음식이 맛있는 곳이거든요. 프랑스 남쪽이나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는 정말 멋있어요. 그런데 유럽의 음식들을 비교해 보기 위해서는 다른 곳도 가봐야 하죠. 이탈리아와 스페인은 언어도 비슷하고, 음식이 비슷하지는 않지만 재료는 비슷해요. 건물이나 날씨도 비슷하고요. 이 두 곳만 가본다면 유럽은 다 그렇다고 생각하게 될 거예요.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거든요. 영국만 가 봐도 서로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영국과 프랑스는 굉장히 가깝지만 음식 문화는 확연하게 다르죠. 만약 3개국의 음식 문화를 만날 수 있다면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를 추천해 드리고 싶어요.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를 추천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특히 프랑스 음식은 꼭 먹어봐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프랑스 음식은 기술이고 미술이에요. 꼭 한 번은 프랑스의 고급 레스토랑에서 음식을 맛보시길 권해드려요. 『바나나와 쿠스쿠스』에도 썼지만 세계에서 사용하는 요리 용어는 다 프랑스에서 비롯됐어요. 세프, 레시피, 카페, 비스트로와 같은 단어들이 모두 불어죠. 그래서 프랑스에서 직접 그 문화를 체험해 보시길 바라고요. 어쨌든 저는 영국 사람이니까 영국의 음식도 맛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웃음). 그리고 이탈리아에 가보시면 프랑스 음식과의 차이를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프랑스 음식은 만드는 과정이 너무 복잡하고 작은 실수로도 음식을 망칠 수 있거든요. 그런데 이탈리아 음식은 어떻게 그렇게 쉽게 만들 수 있는지 놀라울 정도예요.

 

프랑스 바게트에 대해 극찬하신 부분을 보고 그 맛이 너무 궁금해지기도 했습니다.


어렸을 때 파리에 있는 외가댁에 가면 외할아버지와 아침 일찍 일어나서 빵을 사러 가곤 했어요. 그 일이 제게는 너무 행복했죠. 제일 즐거웠던 기억이에요. 출발할 때는 귀찮다고 생각했지만 빵집에 가면서 빵 굽는 냄새를 맡으면 너무 황홀했거든요. 프랑스 바게트는 오후 5시까지 먹지 않으면 딱딱해져서 먹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매일 아침마다 빵을 사기 위해 줄을 서는데, 이런 문화는 다른 나라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죠. 영국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워요. 이탈리아에서도 독특한 풍경을 볼 수 있는데요. 시골에 가면 동네 할머니들이 다 같이 모여서 파스타를 만들어서 나누어 먹어요. 밀라노의 식당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죠.

 

바나나와 쿠스쿠스』와 만나게 될 독자들에게 전하는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바나나와 쿠스쿠스』는 유럽 여행을 떠나기 전에, 아니면 다녀온 직후에 읽으면 제일 좋을 것 같아요. 여행했던 순간을 기억하고 싶을 때 펼쳐 봐도 좋고요. 특히 ‘이 음식은 안 먹어봤는데 어떤지 궁금하다’ ‘그곳에 가면 이 음식을 꼭 먹어봐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좋을 거예요. 유럽을 가보지 않은 사람이나 갈 계획이 없는 사람도 관심만 있다면 ‘그곳에는 어떤 음식이 있을까’를 생각하면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 같고요. 보통 유럽으로 여행을 떠나면 꼭 봐야 할 크고 예쁜 건물들을 떠올리는데, 그런 것들은 부자들을 위해 만든 것이지 보통의 사람들을 위한 건 아니잖아요. 당시 보통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고 어떤 문화를 가지고 있었는지, 왜 이런 음식이 생겼는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어요. 그리고 책을 읽은 독자들이 현지에 가면 다른 음식을 찾아봤으면 좋겠어요. 책에 소개된 음식을 먹었는데 저와는 또 다른 느낌을 받았다든가, 그 음식의 유래에 대해 다른 이야기를 들었다면 이야기를 들려주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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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와 쿠스쿠스 : 요리하는 철학자 팀 알퍼의 유럽 음식 여행팀 알퍼 저/조은정 역 | 옐로스톤
유럽인이 유럽의 음식을 탐험하는 최초의 맛기행 책으로, 음식이 만들어진 역사와 유래, 저자 자신의 경험 등이 유머와 번뜩이는 비유로 묘사되어 있어 이름이 낯선 음식들에 당황함을 느끼며 책을 펼쳐들 독자들도 어느 순간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낯선 유럽 어느 지역의 카페 한 귀퉁이에 앉아 그 음식을 먹어보고픈 유혹과 그리움까지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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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임진왜란은 금속 때문에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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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게 뭘까? 많은 사람이 의식주라고 답할 것이다. 금속은 의식주 중 하나는 아니지만, 의식주 대부분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친다. 금속 없이 사람이 살아가는 생필품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금속의 중요함을 생각한다면 지금까지 금속으로 역사를 바라보려는 시도가 그리 많지 않았다는 점은 의아하다.

 

김동환 국제전략자원연구원 원장과 배석 박사가 함께 쓴 『금속의 세계사』는 금속이 세계사 전개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궁금해할 독자의 의문을 풀어준다. 이 책은 인류에 중요했던 그리고 지금도 중요한 금속 7가지를 소개하며 연대기순으로 각 금속이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알려준다. 김동환 원장과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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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환 국제전략자원연구원 원장은 남호주대학에서 국제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호주연구소와 호크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남호주대학 국제학과 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다수의 대기업 및 중소기업 해외자원 개발 기업들의 자문과 매일경제 자원정보 자문위원, 국제지역학회 이사 등을 맡고 있다. 중국의 희토류를 활용한 자원민족주의를 연구했으며, 냉전기간 중국과 아프리카의 관계에 관해 연구해 온 중국 외교정책 전문가이다. 대표 저서로 『중앙아시아』, 『희토류 자원전쟁』, 레드 앤 블랙: 중국과 아프리카 신 자원로드 열다등이 있다.


‘금속’이라는 주제에 끌린 계기가 궁금합니다.

 

희토류를 비롯한 금속?광물자원 정책에 대한 연구를 업으로 하고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금속에서 비롯한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를 많이 접하게 되었고, 책을 통해 많은 사람들과 나누어 함께 즐기고 싶었습니다.


책에는 7가지 금속을 소개해주셨는데요. 7가지를 선정한 이유와 배치 순서는 어떻게 정하셨나요.

 

‘고대 금속(Metals of antiquity)’이라고 불리는 일곱 개의 금속들인데 구리, 납, 은, 금, 주석, 철, 수은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인류가 선사시대(先史時代)부터 최초로 사용해 온 금속들이며, 이 금속들에 얽힌 이야기들이 곧 인류 발전의 역사 이야기나 마찬가지입니다. 이 중 구리는 기원전 9500년경 인류가 최초로 사용한 금속으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녔기에 가장 먼저 배치되었습니다. 그 후 순차적으로 납, 은, 금, 주석, 철, 수은을 사용하게 되었기에 책에서의 배치도 인류의 금속 사용의 연대순을 따랐습니다. 


이 책이 다른 세계사 책과 다른 점은?

 

금속이 중심에 있다는 것이죠. 금속은 처음 사용된 순간부터 역사의 중심에 존재해 왔습니다. 변신을 거듭하며 인류의 삶을 통째로 뒤바꿀 만큼 엄청난 발전을 이끌기도 했고, 전쟁이라는 비극을 극대화하고 환경을 파괴하는 무자비한 수단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금속은 역사의 다양한 장면에서 묵직한 존재감으로 언제나 자신의 역할을 수행해 왔습니다만, 안타깝게도 그동안 그 역사성을 제대로 주목받지는 못했습니다. 음식, 의복, 질병, 전쟁, 건축 등 역사를 바라보는 접근법이 매우 다양해졌음에도 말이죠. 아직 많은 사람들에게 금속이란 곧 과학의 영역이라고만 인식되어 왔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그러한 점에서, 이 책은 금속을 통해 바라본 인류의 역사를 본격적으로 다룬 최초의 책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금속에 얽힌 우리의 역사가 다양하게 소개된다는 점이 이 책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책에 임진왜란의 이야기도 등장하는 거로 알고 있습니다. 임진왜란과 금속, 어떤 관계가 있나요.

 

조선 시대, 우리나라에는 세계적인 수준의 은 제련법인 ‘단천연은법’이 있었습니다. 이 은 제련법은 중국?일본과 같은 주변국에 널리 퍼져나갔습니다. 특히 제대로 된 은 제련법이 없던 일본에 큰 영향을 끼쳤지요. 우리의 은 제련 기술을 받아들여 광산 개발에 박차를 가한 일본은 16세기 후반에 이르자 상당한 양의 은을 생산하게 되었고, 당시 혼란스러웠던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이렇게 생산된 은으로 임진왜란을 일으킬 자금을 마련했습니다. 비극적이게도 우리나라에서 건너간 은 제련법이 일본의 성장과 그로 인해 일어난 임진왜란에 도움을 주게 된 것이죠.


세계사적으로 인류 역사 전개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진 금속을 세 가지 정도 꼽아 주신다면?

 

인류가 지구에 등장한 이후부터의 기나긴 인류 역사를 오로지 세 덩어리로 나누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너무 고민하지 않아도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라는 삼시대법에 따라 인류 역사를 구분 짓는 방식에 익숙해졌을 것입니다. 명불허전이라고, 청동기시대를 연 금속인 ‘구리’와 ‘주석’, 그리고 철기시대를 이끈 금속인 ‘철’, 이 세 가지 금속을 꼽을 수 있지 않을까요. 구리와 주석은 끈질기게도 길었던 석기시대를 종식시켰고, 철은 건축과 교통의 발전을 이끌어 현대 도시문명의 형성이 가능하게끔 만들어주었으니까요.   


로마제국 멸망으로 납 중독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느 정도 사실인가요.

 

로마가 멸망한 이유를 말하자면 또 책 한 권은 더 쓸 수 있을 정도의 이야기가 나올 것 같네요. 그만큼 로마 제국의 멸망 원인 중 하나일 것이라고 추측되는 사건들이 굉장히 많기 때문이죠. 게르만족의 이동 때문이다, 야만족들에게 안보를 맡겼기 때문이다, 천연두 같은 질병으로 인구의 절반이 감소해 군대 유지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등 잘 알려진 이유가 많습니다. 납 중독 또한 로마의 멸망을 불러온 수많은 원인 중 하나에 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로마의 멸망 원인으로 납 중독 가설을 가장 먼저 제안한 사람은 1983년 나이지리아 출신의 지구화학자인 제롬(Jerome Nriagu)이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그의 가설은 상당히 설득력을 얻기도 했으나 현재는 이를 반박하는 다양한 논문과 연구들이 발표됐기 때문에 정설로 인정되지는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납 중독 가설을 반박하는 논문들이 나올 정도이니, 그만큼 사람들이 납 중독 가설에 흥미가 많다는 것을 증명하는 셈이죠.


기술이 발전할수록 새로운 금속이 발견될 가능성이 줄고 있는데요. 새로운 금속의 발견 가능성 어떻게 전망하시나요.

 

아쉬운 이야기지만, 인공적인 핵변환에 의해 생기는 방사성 핵종인 초우라늄원소(우라늄(U, 92)보다 원자번호가 큰 원소의 총칭)를 제외하고는 자연계에서 새로운 금속을 발견하기란 꽤나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실제로 21세기 들어서는 정보기술(Information Technology), 생명공학기술(Bio-Technology), 나노기술(Nano Technology) 등 눈부신 현대 최첨단 과학 시대의 기술력에 힘입어 우주로 나가는 횟수도 늘어나고 있지만, 우주에서 새로운 금속을 발견하는 것도 아직은 먼 이야기가 될 것 같네요.


책을 통해 수은과 납과 같은 금속은 현재 그 위험성 때문에 사용을 점점 제한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금속과 인류의 역사는 어떻게 쓰일 거라고 예상하시나요.

 

기술적으로 대체물을 찾기 어려운 일부 희소금속들이 있어요. 이를 제외하고는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금속이 철인데, 그 사용량은 앞으로 점점 줄어들게 될 겁니다. 수은이나 납의 경우도 마찬가지고요. 아마도 한 두 세기 이후에는 여러 금속들이 역사의 언덕 너머로 사라지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만약 지금처럼 금속보다 저렴하면서도 가볍고 품질도 좋은 신소재 물질들이 계속 개발된다면 인류가 금속으로부터 독립을 찾는 날이 올지도 모를 일입니다. 인류의 역사를 되짚어 보면 항상 변함없는 진리가 있죠. 바로, 영원한 것은 없다는 것. 끝이 없을 것만 같이 수 천 년간 지속되고 있는 현재의 철기시대도 언젠가는 새로운 시대에게 자리를 내어주게 되겠지요.


글 곳곳에서 재치 있는 표현과 능수능란한 입담을 발견한 수 있었습니다. 이런 부분이 책에 흥미를 더하기도 하는데요. 학자 출신으로 이런 방식의 글쓰기가 어렵지는 않으셨나요?

 

이 책을 보시다가 저의 전작을 한 번 보신다면, 아마도 지킬박사와 하이드를 보시는 것처럼 매우 다른 서체의 느낌을 받으실 겁니다. 전문서적과 교양서적의 차이에서 오는 분위기의 전환이랄까요? 순수하게 정치학자의 입장에서만 쓴 이전의 책들과는 달리 이번 금속의 세계사는 옆집 사는 ‘잡학박사’ 삼촌으로 빙의해서 집필한 책이라고 설명해 드리고 싶네요. 금속의 과학적 특성에서 비롯한 인류의 역사 이야기다 보니 과학과 인문의 절묘한 조화를 접근하기 쉽게 풀어나가고 싶었습니다. 책 속에서 약방의 감초 역할을 하는 재치 있는 표현들은 대부분 아내의 아이디어에서 나온 보물들입니다.


앞으로 쓸 책은 어떤 주제를 생각하고 계신가요.

 

정치학자로서의 노선은 지키되, 가끔은 삼천포로 빠져서 번외 편으로 다양한 교양서적을 집필하고 싶은 계획을 갖고 있습니다. 세계사는 이야기가 무궁무진하다 보니 언제나 후보에 올라와 있어요. 특히, 청소년 및 학부모들에게 도움이 많이 될 수 있는 인성이나 기초소양에 관련된 주제들에 관심이 많습니다.

 

*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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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의 세계사 : 인류의 문명을 바꾼 7가지 금속 이야기김동환,배석 공저 | 다산에듀
문명의 탄생부터 현대의 최첨단 산업까지 역사의 모든 곳에는 항상 금속이 있었다. 인류는 금속 물질을 사용하면서 생활에 엄청난 변화를 겪기 시작했고, 금속의 힘을 바탕으로 대규모 전쟁을 일으켰으며, 금속 덕분에 찬란한 문화와 기술을 발전시켰다. 이 책은 인류의 곁에서 언제나 묵직한 존재감으로 자신의 역할을 다해 온 금속을 새롭게 재조명하기 위해, 금속이 만든 세계사를 생생하게 다룬 역사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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