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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파'의 시선으로 해방공간 3년 다룬 역사학자 김기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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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자 김기협의 『해방일기』는 일제의 항복 조짐이 시작된 1945년 8월 1일부터, 분단 건국이라는 비극적인 역사 사건에 이르는 1948년 8월 14일까지 3년 동안의 역사를 일기체로 써내려간 책이다. 모두 10권으로 분량만 무려 18,210장에 달한다. 매일 12시간씩 꼬박 4년이 걸렸다. 중국사 전공자이자 '역사에세이' 라는 새로운 장르로 그간 폭넓은 저술활동을 해온 저자가 다룬 해방공간에는 우리가 그간 놓쳤던 무언가가 있었다. 분단과 전쟁의 원인이 강력한 외세의 작용 때문이었다는 '외인론(外因論)'의 입장에서 저자는 중도 인사 '안재홍'을 내세워 당시를 바라보았다. 

 

왜 안재홍일까. 해방공간을 말할 때 흔히 떠올리게 마련인 김구, 이승만, 김일성, 박헌영 같은 인사가 아닌 안재홍이었던 이유는 『해방일기』의 작업 이유와도 맥이 닿아있다.


"지금 현재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시점인가, 하는 것을 진지하게 파악하려는 노력이 있어야 과거에 대해서도 겸손한 자세를 취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는 저자는 "잃어버렸던 나라를 바로 세우는 올바른 노력"이 '중간파'에 있었다고 보았고, 바로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선인들의 뜻'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해방공간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은 지금 우리 사회를 정확히 이해하는 시발점이다. 완전히 청산되지 않은 과거의 그늘이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가를 더듬다 보면 많은 부분 뜨겁고 치열했던 당시 상황이 모습을 드러낸다. 아직도 피 흐르는 역사의 상흔이 어떤 의도에 휩싸여 진행되었는지를 보려면 이 시기를 좀 더 입체적으로 읽어야 할 필요가 있다. 때문에 그간 많은 사람들이 놓쳤던, 지극히 원칙적이고 상식적인 노선을 주창했던 '중간파'의 가르침을 자세히 들여다봐야 하는 것이다. 김기협의 『해방일기』는 기울어지지 않은 역사의 한 갈래로 우리를 안내하고 있다. 

 

한국 현대사 3부작


『해방일기』 10권을 완간하셨습니다. 엄청난 작업이셨어요. 집필을 시작하실 때와 완간하시고 난 지금, 생각에 어떤 변화가 있으신가요?


바뀐 게 없다면 헛일한 거죠.(웃음) 『해방일기』만이 아니라 『망국의 역사 조선을 읽다』, '냉전 이후'(프레시안 칼럼 연재)와 함께 말하자면 '한국 현대사 3부작'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1900년대를 다룬 망국의 역사 조선을 읽다』, 1940년대를 다룬 『해방일기』, 또 '냉전 이후'에서 1990년대를 다뤘습니다. 한국 현대사에 대해 나름의 관점을 얻기 위해서였죠. 많이 하는 말로, 역사학을 '과거와 현재 사이의 끝없는 대화'라고 하지 않습니까? 저는 사실 그 말을 한 E.H.카 자신도 진지한 대화를 위한 자세가 안 되어 있었다고 봅니다. 근대인의 오만, 진보에 대한 믿음인데요. 현재가 과거보다 진보된 시기기 때문에 과거의 미개한 것들을 낮추어 보는 그런 시선에서 카도 자유롭지 않았거든요. 61년에 카의 그 (『역사란 무엇인가』)이 나왔고, 제가 68년에 사학과로 전공을 잡으면서 제일 처음 읽은 책 중 하나입니다. 그 책에서 생각을 많이 얻었어요. 그런데 그로부터 40여 년이 지난 지금 와서 보면 말이죠. 두 사람이 얘기를 하더라도 서로 존중하는 마음이 있어야 의미 있는 대화가 되잖아요? 과거를 깔보는 그런 마음에서 카도 벗어나지 못했고, 그에 영향 받은 나도 벗어나지 못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중국 전근대사를 전공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지금 현재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시점인가, 하는 것을 진지하게 파악하려는 이러한 노력이 있어야 과거에 대해서도 겸손한 자세를 취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어요. 그런 의미에서 한국 현대사 작업을 5년 간 해온 것입니다. 그 결과 현대사 쪽에서 내가 뭘 밝혀 낸 것 못지않게 개인적으로 중요한 부분이 과거를 보기 위한 현재의 의미를 마음속으로 정리할 수 있었던 거라고 하겠죠.

 

무엇보다 중도 인사 안재홍을 내세워 가상인터뷰로 맥을 짚으신 것이 특징적입니다. 특별히 안재홍과의 대화 형식으로 말씀하고 싶으셨던 건 무엇이었나요? 집필을 시작하실 때부터 중도의 시선을 강조하시기도 하셨잖아요.


전체적으로 일기 형식을 취한 것은 통상적인 역사서술에 비해 스토리텔링, 내러티브 쪽으로 가고 싶었던 거고요. 대화 형식 역시 그런 의미에서 무게 잡고 과학적으로 확실한 위치에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지 않고 추측도 마음껏 하면서 서술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결국은 독자들에게 생각을 보여주는 거니까 될 수 있는 대로 자유롭게 보여주기 위한 방법으로 일기 형식, 대화 형식을 취했어요. 안재홍 선생을 모신 이유에 대해 말하자면 전체적으로 봤을 때 우리 선인들의 지혜와 노력을 나도 배우고 싶고, 이 사회의 많은 사람들이 '중간파'에서 많이 배웠으면 하거든요. 당시 해방된 조선의 현실 속에서 중간파의 입장이 잃어버렸던 나라를 다시 제대로 세우기 위한 올바른 노력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때는 여전히 외세가 너무 강하기 때문에 외세에 등 댄 사람들에게 밀려서 현실적인 작용에서는 좌절되고 말았어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선인들의 힘이 아니라 선인들의 뜻입니다. 그렇게 볼 때 좋은 뜻을 세웠던 사람들에게 집중적으로 배우고 싶은 마음에서 중간파, 그 중에서 안재홍 선생을 모셨죠. 안재홍 선생은 다른 분들에 비해서 기록을 많이 남겼어요. 또 역사 연구자였고요. 내가 그 분의 생각을 아무리 추측한다 해도 너무 많이 지어내기는 부담스럽죠. 그렇지만 그 분의 많은 논설, 저술을 보면서 파악할 수 있고, 또 역사학도로서 내 입장, 역사를 생각하는 마음을 이입할 수 있으니까 그런 뜻에서 안 선생을 택하게 된 거죠.

 

전통의 회복을 많이 말씀하셨는데요. '선인들의 힘'이 아니라 '선인들의 뜻'을 본다는 말씀이 같은 맥락에서 통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망국의 역사 조선을 읽다』에서 망국의 의미를 다시 새겨보자고 했을 때, 이것이 왕조의 멸망 보다는 이민족의 지배를 받게 된 그 부분에 변화의 의미가 더 큰 거였어요. 그것보다 더 큰 의미는 문명 전통의 단절이라고 책에서 얘기를 했었는데요. 저는 전체적으로 문명 전통의 좌절과 단절을 지금까지도 계속 되고 있는 문제로 보거든요. 지금 이민족 지배는 벗어났잖아요. 미국을 숭상하는 사람들 보면 마음으로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구나, 싶기는 하지만 그게 모든 사람에게 강요된 상황은 아니고요. 이민족 지배는 벗어났지만 아직까지 문제를 겪고 있는 이유는 문명 전통을 회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보는 거죠.

 

앞서 E.H.카를 말씀하셨지만 근대가 더 우월하고, 중세와 같은 과거가 미개하다는 시선이 말씀하신 문명 전통의 단절을 가져오기도 한 것 같아요. 그런 부분에 대한 안타까움을 말씀하신 거군요.


크게 보면 문명 차원에서 문제를 일으킨 게 '서세동점(西勢東漸)' 현상인데요. '서세동점' 현상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에 대해서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동아시아에는 19세기 중엽에 닥쳤어요. 제가 희망을 가지는 근거는 그로부터 150년이 지난 현시점에 '서세동점'이 퇴조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현재는 '자본주의 이후'라는 제목을 내걸고 '서세동점'의 퇴조라는 명제를 분명히 밝히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망국 때나 해방 때, 좋은 뜻을 가진 선인들이 많이 있었음에도 비참한 역사를 피할 수 없었던 것이 세계정세가 불리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저는 제일 기본적인 문제로 봅니다. 그 힘이 너무나 압도적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상황으로 보는데, 지금 그 상황이 바뀌고 있다는 거예요. 정신을 제대로 차리면 조상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역사를 다시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지금 맞고 있어요. 기회를 잘 받아들이는 데 내 작업이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에요. 기본적으로는 먹물의 공부지만 현실적으로도 이것이 보람을 거둘 수 있었으면 하는 소망이 없지 않죠.

 

서양중심주의를 벗어야


지금 일어나는 일들 중에서 후대에 가장 비판 받을 역사적 사건에 대해 생각하신 것이 있으신가요?


어려운 질문인데.(웃음) 역사학도의 입장에서는 사회가 역사의 흐름을 잘 읽어서 그 흐름에 순조롭게 어울려가길 바라는 마음이 제일 앞서죠. 이완용을 욕설의 대명사처럼 말하지만 그런 성향의 사람이 그 상황에서 그럴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도 들거든요. 그에 비해 헌법재판소에서 관습헌법 이야기 나왔을 때 내가 하도 화가 나서 칼럼을 쓰면서 '이완용 못지않은 놈들이다' 이렇게 욕을 했어요(관련기사 보기: 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97701). 그랬다가 지난 연말에 통합진보당 해산 판결 나오는 것 보고는 '이완용 보다 더 나쁜 놈들'이라고 욕을 고쳐서 했죠. 지금 생각하니까 '이완용한테 미안하다' 그러면서(웃음). 이완용은 고종이 맡겨놓은 총리대신으로서의 역할을 팔아먹은 건데, 이 여덟 명은 누가 맡겨주지도 않은 권한을 팔아먹었으니까 말이에요. 이완용이 국가 절도범이라면 이건 완전히 국가파괴범이다, 그렇게 욕을 했습니다. 이완용 시대에 그 상황에서 그런 행동을 한 건 어느 정도 이해가 가요. 또 해방 때 못마땅한 행동이라도 그런 상황에서는 이해가 가요. 미국 헤게모니가 퇴조하고 있다는 얘기는 서양에서 70년대부터 나왔고, 이제 어느 정도 자본의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은 사람들 입장에서는 상식으로 통하는 얘긴데, 지금 이 시점에서 그것을 붙잡고 민주 정책부터 시작해 모든 희생을 무릅쓰고 이거에 매달리는 건 이완용이나 과거의 못난 사람들보다도 더 한심한 거죠.

 

'서세동점'이 물러나고 있는, 그런 지금 시점에 대한 역사적인 이해가 전혀 없는 발걸음들이 있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세계관에서부터 완전히 이용당하는, 정복당하는 사회의 멘탈리티가 내면화 되어 있는 거예요. 학술 분야, 당장 역사학만 하더라도 그래요. 카의 얘기라든지 그런 차원의 얘기에 대해서 나 역시도 대학에 그냥 있었으면 그만한 의심도 갖기 어려웠을 지도 몰라요. 그게 여기서 교수노릇 잘해서 명예교수 되고, 학술원 회원 되고, 그런 길에서 함부로 의심을 품으면 별로 유리한 길이 아니잖아요. 죽고 사는 문제도 아닌데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지, 이런 식으로 지내기가 훨씬 쉬웠겠죠. 역사학은 그래도 나은 편이고, 사회과학 쪽은 미국에서 공부해 온 사람들이 다 쥐고 있어서 더욱 문제예요. 세계체제론이라든가 유럽중심주의, 서양중심주의에서 벗어나자는 그런 노력에 대해서도 아마 우리만큼 외면하고 있는 동네가 별로 없을 거예요.

 

우리나라만큼 엘리트, 지식층이 거의 없는 나라도 드물다고도 하셨어요.


엘리트의 자격기준 중, 도덕성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스스로 엘리트를 자처하는 사람 중에 엘리트의 자격에 도덕성을 거론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여기서는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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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속성이 내면화된 사람들


해방공간은 참 독특한 시기입니다. 국가 이름 정하기 일화에서 보듯 지금 지대한 영향을 주는 많은 것들이 그 시기에 어떠한 방식으로 결정되었는지 알 수 있었어요. 이 시기를 정확히 아는 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1945년 상황은 지금에 비해서 종속성이 덜 내면화 되어 있었어요. 35년 일제지배를 겪기는 했지만 그때는 친일파라고 하면 인근 동네에서 누구, 누구 전부 이름을 꼽을 정도로 분명히 드러났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 비해 종속성이 일반적으로 강해요. 자기의 우월한 위치를 정당화 시키는 기준이 대개 종속성을 배경으로 해서 설정됐기 때문에 그렇다고 봐요. 말하자면 미국 박사를 받아왔다, 하면 떠받들어주는 게 있고, 그 속에 이미 종속성이 들어있는 거거든요. 한 사람, 한 사람이 나는 종속적이다, 우리 사회가 종속적이어야 한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지 않아도 그걸 자신의 기득권, 근거로 삼으려고 하는 마음에는 종속성이 깃들어있는 거거든요. 그런 내면화의 정도가 그때는 훨씬 덜했기 때문에 갑남을녀들도 이 사회가 어디로 가야 하느냐, 하는 방향에 대해 지금 사람들에 비해 훨씬 잘 통했다는 걸 이번 작업에서 확인할 수 있었죠.


인상적인 것이, 1946년 8월에 군정청 여론국에서 여론 조사를 했어요. 길 가는 사람들 팔천 몇 백 명을 대상으로 했으니까 아마 해방공간에서 한 여론조사 중에는 제일 규모가 큰 여론조사 중 하나였을 겁니다. 문항 중, 어떤 체제를 원하느냐고 물었는데 사회주의가 70%, 자본주의가 14%, 공산주의가 7%, 아무거나 좋다가 8% 이렇게 나왔다는 거예요. 사회주의를 사회과학자들이 규정해 준 명확한 개념으로써 생각한 것은 아니었어요. 공산주의와 자본주의가 극단이니까 절충적인 노선이라고 본 거죠. 자본주의는 소유권을 절대시하는 체제고, 공산주의는 소유권을 부정하는 체제인데 이것은 소유권을 적정선에서 인정해주는, 생산 수단만 개인 소유권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든가 하는 절충적인 노선이라고 봤던 거예요. 그런데 그 정도 개념의 사회주의라면 그 상황에 맞거든요. 자본주의는 산업화가 된 국가한테 유리한 체제였고, 공산주의는 문명 수준이 어느 이상 되는 복잡한 사회에서는 시행에 문제가 있는 체제였죠. 문명 수준이 있으면서 산업화가 되지 않은 그런 사회로서는 사회주의가 정답 맞아요. 당시 사람들이 그걸 잘 알고 쉽게 판단할 수 있었던 거예요. 지금은 그런 질문이 주어졌을 때 대답이 명쾌하게 나오질 못하겠죠. 

 

당시보다 훨씬 자본주의가 내면화 된 상태기 때문인가요?


어떤 면에서 문화가 된 거죠. 그 당시에는 입장이 친일파들과 일반인들 외에는 근본적인 이질감이 없었는데요. 지금은 경상도, 전라도 사이의 이질감을 비롯해서 강남 주민과 어디 주민 사이에 어떤 이질감을 일상생활에서 다들 느끼잖아요.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 나왔을 때가 분기점이었던 것 같아요. 그 전에는 내가 살던 명륜동도 같은 골목 안에 부잣집 있고, 가난한 집 있고, 다 어울려서 살았거든요. 같은 가게 이용하고요. 근데 지금은 자기 계층 사람이 아닌 사람들을 그저 동네의 종업원들 빼고는 접하지 않고 사는 사람들이 인구의 대부분이 됐죠. 그런 것을 포함해서 사회 문화 현상이 여러 조건에 의해 진행되어 그게 사회 전체의 진로를 놓고 얘기를 할 때도 자기가 속한 집단 정체성에 의해서 흐려지는 거예요.

 

역사의 새로운 팩트를 찾는 과정에서 '가정'이 중요하다고 하셨는데요. 해방 이후 경찰 개혁에 대한 아쉬움이 곳곳에 읽혔는데 구체적으로 무엇이 문제였고, 만일 제대로 경찰 개혁이 있었다면 어떻게 바뀌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시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경찰이 그렇게 커지면 안 되는 거였어요. 치안 유지를 위한 무력으로 일단 미군이 있지 않습니까? 심지어 경찰 인원이 1945년 8월 당시에 비해 1948년 8월까지 세 배가 늘어났단 말이에요. 그 문제가 가장 단적으로 드러난 게 제주도였죠. 당시 기존 인원의 몇 배가 늘어났는데 몇 배 늘어난 숫자가 그것이 질서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하지 않고 질서를 파괴하는 역할을 했던 거죠. 제주에서 4.3 사태로 해서 극단적으로 드러났잖아요. 그런 것처럼 극명하게 드러난 사건이 아니어도 그로 인한 여러 가지 현상이 일어났던 거예요.

 

그런 문제가 쌓이고, 왜곡 되고 하면서 지금까지도 경찰조직에 대한 불신에 영향을 준 것 같은데요.


물론이죠. 이 정도 규모의 국가에서 국립 경찰이라는 것이 이렇게 대규모라는 게 말이 안 되는 거죠. 문명국이라고 할 수가 없죠. 이런 대규모의 경찰을 일원 조직으로 운영한다는 것이 문명국가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어디 가 봐요. 우리나라 경찰의 10분의 1 규모 되는 경찰이나마 일원 조직으로 운영하는 곳이 어디 있는지 말이에요.

 

그것이 도리어 권력의 손, 발이 돼서 오히려 국민들의 자유나 권리를 억압하는 도구로 사용이 되잖아요.

그럼요. 61년 이후는 군사독재라고 하는데 60년 이전은 경찰독재였거든요. 그때는 여순 반란 사건이라든지 제주 4.3사태라든지 이런 것을 보면 군대는 경찰 앞에서 전혀 힘을 못 써요. 그렇게 경찰이 판을 치다가 6.25 때 군대가 커졌지만 군대는 미국의 컨트롤을 받았기 때문에 정치에 이용되는 데 한계가 있었죠. 경찰 규모는 상대적으로 군대에 비해 작아졌지만 계속해서 권력 운용의 수단으로 이용이 됐어요. 61년 이후를 군사독재라고 하지만 결국은 유사 경찰, 기본적으로 경찰의 성격을 가진 조직에 의해서 권력이 유지가 됐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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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은 변하고 있어요


독도폭격연습 사건 말인데요. 당시 민족의 공분을 샀지만 속 시원히 해결되지는 않았습니다. 현재 우리가 처한 현실과 비교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작게는 주한 미군 범죄에서부터 전작권 관련한 문제까지 아직 미군과의 관계는 현재진행형이에요.


왜 자꾸 욕을 시켜요?(웃음) 사실 그 못지않게 억울한 일 일본놈들한테 많이 당했잖아요? 1910년 이전부터 20세기 내내 겪어온 일이니까요. 그래도 명목상의 주권 국가가 되면서 그래도 좀 그런 폐단의 범위는 줄어들었다고 볼 수 있는데요. 미선이 효순이 사건처럼 21세기에 들어와서까지 계속 되고 있죠. 지금은 눈에 보이는 그런 일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불평등 관계에 대한 건 엄연히 계속 되고 있어요. 거기서 일어나는 문제들, 강정 해군 기지 문제라든지, 나토 배치 문제라든지, 조금만 따져보면 명백히 국익 내지 민익에 배치되는 그런 것이 미국과의 관계 때문에 계속 되는 일이잖아요.

 

이런 문제를 어떻게 타파해야 할까요?


한국의 대외경제 의존도가 미국에게 2000년도까지 압도적으로 높았고 그 때문에 IMF 사태까지 당하고 그랬죠. 하지만 그런 상황과 대외 경제 관계가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거든요. 지금은 중국이 몽니 부리면 그게 더 무서워요. 미국이 예전 같은 장난질 이제 못해요. 중국이 쐐기를 박을 수 있으니까요. 상황은 변하고 있어요. 상황을 직시하기만 하더라도 우리의 진로에 대해서 새로 생각할 것들이 많아요. 거기에는 우리 사회의 많은 분들의 노력이 은연중에 쌓인 측면도 있고요. 그런데 특히 지식층의 의식이 그렇게 미개한 상태에 머물러 있어서 '이제는 뭐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런 상황이 되고도 말하면 안 되는 줄 알고(웃음).

 

친일파에 대해서 말인데요. 올림픽 참여라든지 초창기 체육계 이바지했던 이상백의 사례처럼 뛰어난 능력이 있어도 수완을 발휘한다는 자체가 후세의 눈에 일본과 타협 내지는 충성을 했기 때문에 성공한 게 아니냐고 할 수 있잖아요. 그 내용을 다룬 경향신문은 친일파로 매도되기도 했다는데 이런 복잡한 역사의 다중성을 어떻게 봐야할까요? 

지금 돌아보면 이상백 씨가 살아있을 때 손가락질이 끊이지 않았던 것 같아요. 해방 전에 어떤 식으로 놀았는지 다들 아는데 손가락질 받던 그런 얘기를 그 뒤에는 자랑스럽게 주변 사람들이 '훌륭한 분이었다' 그러니까요. 내가 아마 기사를 인용했을 거예요.(228~230쪽) 일본에 가서 호탕하게 월세가 얼마라도 좋다고 하며 집을 구했다는 이야기요. 여기서 소작인들이 뼈골 빠지게 바친 돈을 가지고 거기서 그렇게 거들먹거리고, 그것으로 영향력을 발휘한 거죠. 본인이 잘나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조선인들의 피와 땀을 뿌려서 얻은 결과잖아요. 그걸 자랑스럽게 내놓는 이후의 상황이 문제예요. 장택상이나 조병옥이나 행적을 살피는데 작업이 쉬웠던 것이, 창피한 줄도 모르고 문제 되는 행동들을 자랑스럽게 전기 같은 곳에 막 찍어 냈거든요. 그러니까 이것들이 무슨 짓을 했지, 조사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어요. 만약 그 사이에 사회 분위기가 그 말도 안 되는 인간들, 이런 식으로 제대로 비판하는 분위기가 있었다면 다들 감춰서 내가 조사하기가 어려웠을 거예요.(웃음)

 

앞서 잠깐 언급하셨는데요, '자본주의 이후'를 다루려고 하신다고요. 그 외에 앞으로 다루고자 하는 시기가 있으신가요?


일단 자본주의에 대해서는 간단히 '서세동점'의 퇴조를 분명히 밝히기 위해서 하고 있어요. 서양중심주의, 유럽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이 여러 방면에서 나왔거든요. 내 경우에는 과학 기술사의 관점에서 이게 막장에 왔다, 는 판단을 하게 됐고요. 세계체제론의 경우 경제면에서 비슷한 의견이 있었고, 포스트모더니즘에서는 학술 사상 면에서 또 비슷한 의견이 있었죠. 서로 다른 경로에서 비슷한 결론에 이르렀다면 그건 개연성이 굉장히 높은 거예요. 세계체제론이나 포스트모더니즘이나 다른 경로에서 비슷한 결론이 어떻게 서포트되고 있는가 하는 것을 보아야죠. 그것을 분명히 중국에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많이는 아니라도 그런 방향에 맞는, 중국 자신의 눈으로 세계를 보려고 하는 그런 경향이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그것도 함께 소개해서 '서세동점의 끝' 이걸 분명히 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건 금년 말까지 1년 정도 하려고 해요.


그것보다 더 큰 일은 나의 원래 놀던 동네, 중국사로 돌아가서 일단 '자치통감'을 다시 읽어보려고 해요. '자치통감'을 전에 읽을 때는 카의 눈으로 읽었었거든요. 다시 유럽중심주의에서 벗어난 눈으로 읽어보려고 합니다. 중국인들도 20세기 들어오자마자 노신이라든지, 신문화운동 일으킨 그런 것들이 전통을 두드려 패면서 서양 사상을 받아들이는 일환이었어요. 그 이후로 학술계, 역사학계에서도 중국 역사를 서양인의 눈으로 보는 것만 통용되어 왔거든요. 맑시스트 사관이든, 자본주의 사관, 진보주의 사관이든 중국인들조차도 다 서양의 눈으로 읽었어요. 이제 중국인들도 다시 봐야겠어, 하는 시선이 틀림없이 나올 거예요. 지금 한국에서 내가 그럴 필요를 느끼고 있는데 당연히 나오겠죠. 그런데 중국인의 눈으로 중국을 보는 것과 중국이 주도하는 천하체제에 속해 있던 한국인의 눈으로 보는 것 사이에는 또 어떤 상당한 편차가 있겠죠. 그래서 새로운 시각을 빨리 제시할 경우에 새로 형성되는 관점에 공헌을 하면서 영향을 끼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도 합니다. 그러니까 앞으로 유럽중심주의에서 벗어난 중국인들의 세계관 속에서 한국의 비중을 키운다든가 그런 효과도 지금 우리 할 나름이거든요. 여태까지 미국이 우리를 잘 봐줬으면, 해서 많은 노력들을 했잖아요? 나에게 친중파라고 해도 좋고, 사대주의자라고 해도 좋은데 나는 그게 필요한 일이라고 봐요.

 

『해방일기에서 다룬 3년의 역사 중에, 극도의 정치적 혼란기였던 당시 상황에서 가장 아쉬웠던 점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1945년 말, 반탁운동의 시작이 마음 아픕니다. 반탁 운동의 주류는 미국의 힘에 기대어 기득권을 지키려는 친일파 집단이었지요. 민족주의의 상징인 김구 선생이 여기에 말려듦으로써 민족주의가 해방공간에서 제 몫을 못하게 되었다고 봅니다. 저는 민족 수난사의 주된 원인이 민족 사회 내부의 결함보다 외부의 국제정세에 있었다고 보는 '외인론(外因論)'에 기울어진 관점이지만 김구의 반탁운동 한 가지는 변명할 길 없는 민족 사회의 오류라고 인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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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일기 10권 : 해방을 끝장낸 분단 건국김기협 저 | 너머북스
“대한민국을 ‘권력의 시장’으로 만든 이승만” - 해방일기 10권 개요 1948년 5월 10일 총선거로 대한민국 건국과정이 본 궤도에 들어섰다. 한독당과 중도우익 정당들은 5. 10 선거를 보이콧했고, 남북협상을 주도한 민족주의자들은 분단건국의 길 위에서 방향을 잃었다. 한민당과 독촉은 힘을 합쳐 이승만을 제헌국회 의장으로 밀었고, 김구도 김규식도 없는 국회 안에는 다른 대안이 없었다. 그런데 ‘공공의 적’을 따돌리고 나자 이승만과 한민당은 ‘지분’ 싸움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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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이 털어놓는 책 사람 그리고 세상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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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여행』의 이야기를 시작하며 정여울 작가는 고백했다. “나는 모든 존재가 드리우는 그림자에 매혹된다.” 그녀에게 있어 그림자는 있는 그대로의 존재의 모습이다. 검고 두루뭉술한 형상 속에는 욕망과 상처와 무의식이 뒤엉켜있다. 치장할 수도 떼어낼 수도 없는 우리의 진짜 모습인 것이다. 그렇기에 작가는 말한다. “그림자를 온전히 끌어안을 때 우리의 영혼은 강해질 수 있다.” 강인한 사람은 스스로의 그림자를 외면하지 않는다. 자신의 맨 얼굴을 바라보는 것이 두렵더라도, 그 자체를 받아들이는 것이 외롭더라도, 그림자를 바라봄으로써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 나간다.

 

이번 책에는 정여울 작가가 지난 5년간 발표한 에세이 50편과 그녀를 사로잡았던 여행지의 순간이 담긴 50장의 사진이 수록되어 있다. 그 안에서 독자들이 듣게 되는 것은 삶과 사람과 세상을 이야기하는 작가의 목소리다. 삶에서 쫓게 되는 것과 그 결과 잃게 되는 것, 때로는 상처의 이름이 되기도 하고 또 때로는 치유의 이름이 되기도 하는 사람들, 그리고 세상이 우리에게 남긴 것과 우리가 세상에 남겨야 할 것에 대해 말한다. 담담하게 이어지는 고백을 들으며 깨닫게 되는 사실은, 그녀에게도 끌어안아야 하는 그림자가 어리어 있다는 것이다. 어떤 것은 가지지 못했고 어떤 것은 하지 못했다. 어떤 것은 지킬 수 없었고 어떤 것은 부지불식간에 다시 찾게 됐다. 그것은 사람과 사랑일 때도 있었고, 꿈과 나 자신일 때도 있었다. 그래서 우리는 또다시 깨닫는다. 그녀의 그림자가 우리의 그것과 다르지 않음을.

 

결국 『그림자 여행』은 진정한 나를 데리고 함께 가는 여정이다. 이 이야기를 두고 작가는 ‘나를 지켜주는 것들’에 대한 것이라 말한다. 그림자가 자신을 괴롭게 만드는 존재만은 아니고, 그렇기에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를 열망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림자에 드리워져있는 어둠과 슬픔이 더 많은 사람들과의 소통을 가능하게 했던 순간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 모든 순간들이 모여 자신이 만들어졌음을 알기에 그녀는 그림자에 대한 이야기가 곧 스스로를 지켜주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정여울 작가는 “나를 지켜주는 것들이 여러분도 지켜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바람을 전해왔다. “그것은 사랑하는 친구나 가족일 수도 있고, 내가 읽었던 모든 책일 수도 있고, 나 자신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녀의 바람대로 『그림자 여행』에는 작가 정여울을 존재하게 하는 책과 여행과 사람과 세상에 대한 이야기가 고스란히 담겼다. 책이 전해준 가르침과 그것을 읽고 쓰는 삶의 의미에 대해 말하고, 여행을 떠나는 이유와 일상에 마법 같은 순간을 선사해주는 사람들에 대해 들려준다. 그 모두를 위해 세상을 향해 안부를 묻는 것도 잊지 않는다. 그래서 “마음 깊은 곳에 한 땀 한 땀 자수를 놓듯 한 글자 한 글자 새겨가며” 『그림자 여행』을 읽다보면 정여울의 세계가 보인다. 우리와 같은 공기를 나누고 있는 그 세계는 하나의 거대한 거울이다. 오랫동안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그러나 언제나 우리 뒤에 꼬리처럼 매달려 있었던 그림자를 비춰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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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여행』작가로서의 정여울을 보여주다


『그림자 여행』에서 작가님의 내밀한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을 열어 보인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은데요.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을 채널예스에 연재하면서 나를 주어로 하는 글쓰기, 나를 많이 드러내는 글쓰기가 재미있다는 걸 알게 된 것 같아요. 쓸 때는 굉장히 힘들지만 그에 비해서 훨씬 더 큰 보람이 있더라고요. 저를 꾸밀 필요도 없고요. 문학 평론을 할 때는 많은 것들을 생각하면서 언어를 객관화시켜야 하거든요.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신경 써야 하는 부분도 있고요. 그런데 에세이는 그냥 나를 보여주면 되는 거니까 훨씬 자유로운 글쓰기라고  할 수 있죠. 그게 제가 조금 더 원하는 글쓰기였다는 걸 깨닫게 됐고, 보다 솔직하게 써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마음의 서재』『내가 사랑한 유럽 TOP 10』을 쓰는 과정에서도 느끼셨던 부분인가요?


『마음의 서재』는 원래 신문에 연재하던 서평이었기 때문에 그 틀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었어요. 그런데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에서는 완전히 제 이야기만 가지고 쓸 수 있게 됐죠. 내가 사랑한 유럽 TOP 10을 쓸 때는 완전히 어깨에 힘을 뺀 것 같아요. 평소에 사용하는 구어체에 가까운 말들도 많이 쓰게 됐고, 사진에 대한 글을 쓰면서 많이 바뀌기도 했어요. 제가 직접 찾아가서 무언가를 느낀 곳의 사진을 두고 글을 쓰기 시작한 거죠. 『그림자 여행』에서도 주를 이루는 건 글이지만 그것의 그림자 역할을 하는 건 사진이에요. 어떻게 보면 저를 제일 많이 보여준 에세이인 것 같아요. 제 모습이 너무 많이 담긴 것 같아서 빼고 싶은 글도 있었는데요(웃음). 함께 실으면서 더 솔직해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만큼 『그림자 여행』이 가지는 의미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이번 책은 제가 정말 쓰고 싶은 글들로 구성하면서 저와 이승원 작가가 직접 찍은 사진들을 수록했잖아요. 그러면서 ‘작가로서의 정여울’은 거의 다 보여드린 것 같아요. 글 쓰는 사람으로서 제가 어떤 사람인지, 지금까지 어떤 글을 쓰고 싶었고 앞으로 뭘 하고 싶은지, 거의 다 들어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될지 겁이 나고 고민될 때는 『그림자 여행』을 다시 보면서 생각하게 될 것 같고요. 이 책에서는 그냥 저의 그림자를 더 많이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독자들이 제 그림자를 보고, 그것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면 작가로서 가장 큰 기쁨일 거예요.

 

작가님 자신을 보여주는 작업이 재미있었다고 말씀하셨는데요. 많은 경우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줄 때 주저하잖아요. 상대가 어떻게 생각할지 걱정되니까요. 그런 고민은 없으셨나요?


완전히 그럴 수는 없는데요. 이렇게 될 때까지 20년 정도 걸린 것 같아요(웃음). 보통 스무 살 무렵에 많이 걱정하는 부분이잖아요. 저 역시 그때부터 타인의 시선과 계속 투쟁해 온 것 같아요. 그래서 굉장히 약해지기도 했어요. 타인과의 관계나 다른 사람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너무 상처를 받으니까, 관계 맺음 자체를 회피하려던 시간들도 있었죠. 그게 제 인생의 그림자일 거예요. 그런데 성숙하기 위해서는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걸 인정해야 돼요. 내가 가장 숨기고 싶은 어떤 면을 인정하는 거죠. 인정하기 시작하면 치유는 이미 시작되는 거예요.  어떻게 보면 나의 그림자는 다른 사람의 눈에 더 잘 보이는 것 같아요. 나의 단점이나 트라우마를 어떻게든 숨기려고 하니까요. 그 사실을 인정하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그림자 여행』에 들어있는 것 같아요. 그걸 깨닫게 해준 사람들과 여행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저는 다른 사람의 그림자를 통해서 제 그림자를 인식하는데요. 아마 독자들도 저의 그림자를 통해서 자신의 그림자를 비춰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러기를 바라고요.

 

“독자들의 잃어버린 그림자를 꿰매줄 수 있는 다정한 손길이 되었으면”좋겠다고 적으셨습니다.


그림자를 꿰맨다는 의미는 단순히 상처를 봉합한다는 의미가 아니고요. 세상에 드러내는 나의 모습과 무의식에 잠재되어 있는 부분이 조금씩 같아지길 바라는 거예요. 무의식의 가능성을 끌어올려서 잠재적인 능력을 실현하는 것처럼, 예전에 아팠던 상처를 치유하지 못한 콤플렉스도 수면 위로 끌어올려서 의식하려고 한다면 분명히 좋아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에게는 글쓰기가 꿰매기의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사실은 진짜 내성적인 사람이라서 마지막 자기표현의 수단으로 글을 쓰기 시작한 거거든요. 예전에는 사람들에게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두려웠어요. 말하기가 저의 그림자였죠. 그런데 글쓰기를 통해서 말하기만의 희열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지금도 말하기라는 그림자를 글쓰기라는 바느질을 통해서 극복하고 있는 중인 것 같아요. 여러분도 자기 안의 그림자가 있다면, 그림자를 꿰매는 다른 사람의 모습을 통해서 상처를 봉합하는 기술을 배울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당신이 생각하는 모습은 내가 아닙니다


『그림자 여행』에서 글을 쓰며 살아가는 삶에 대해 이야기하셨습니다. “글쓰기는 고통이지만 고통스러운 희열이기도 하다”고요. 그 희열은 독자들이 있기에 생겨나는 것 아닐까요?


저는 ‘독자들이 없다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매일 해요. 그럴 때면 두렵죠. 그 두려움은 저를 밀고 나가는 힘이기도 해요. 제 책과 글을 읽어주는 사람이 한 두 명이라도 있다면 아예 없는 것과는 전혀 다르거든요. 일단은 감사하죠. 읽어 주시는 분들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요. 그 감사를 어떻게 표현해야 될지 잘 모르겠어요. 감사하다는 말로는 충분히 전해지지 않죠. 그런데 독자들이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아도, 제 글을 좋아해주시는 분이 있다는 걸 느낄 때가 있어요. 그런 알 수 없는 공간에서의 소통은 아마 대부분의 작가들이 느낄 거예요. 누군가 내 글을 읽어주는구나, 라고 알 수 있고 그게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인지를 알 수 있죠.

 

『그림자 여행』을 읽다보면 우리가 잊고 있었거나 외면했던 문제들을 상기하게 됩니다. “나는 나인데, 왜 내가 나를 나라고 증명해야 한단 말인가?”라는 질문 앞에서도 그랬고요.


요즘 자존감이라는 단어가 유행하는데요. 사실 90년대까지만 해도 많이 안 썼던 단어인데 2000년대부터 많이 쓰이기 시작한 것 같아요. 자꾸 자존감에 상처를 받으니까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자존감이 지켜지고 있을 때는 자존감이라는 단어를 쓸 필요가 없잖아요. 『그림자 여행』에는 ‘누군가 나를 지켜주지 않아도 내가 나의 그림자와 더불어 자존감을 지킬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들이 담겨있어요. 저는 여행을 하면서도 그 문제를 생각하게 됐어요. 저도 모르는 사이에 말이죠. 저 사람들은 어떻게 자존감을 지키면서 살아가고 있는지 지켜보게 되는 거예요. 실제로 그런 사례들을 많이 보게 됐어요. 우리가 볼 때는 별 거 아닌, 정말 평범한 공간에서 사소한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도 얼굴에서 빛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자존감이라는 게 대단한 일을 하고 돈을 많이 벌어야 지켜지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됐죠.

 

“내가 누구인가를 뜨겁게 깨닫는 순간은 ‘너는 이런 사람이야’라는 타인의 규정에 저항하고자 할 때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칭찬을 받았다거나 결과가 좋다고 해서 가질 수 있는 감정이라면, 그건 자존감이 아니라 만족감과 성취감인 것 같아요. 자존감은 내가 나를 지켜야 돼요. 내가 나를 평가하는 일인 거예요. 다른 사람이 아무리 뭐라고 해도 나는 당신들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라고 말을 할 수 있어야 하죠. 그러려면 일단 너무 많은 욕심을 버려야 될 것 같아요. 계속 잘해야 된다는 생각, 계속 이겨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 자존감이 지켜질 수 없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정말 사랑하는 존재가 있어야 돼요. 그 사랑을 지키기 위해서 강해질 수 있기 때문이죠. 나만 사랑한다면 사랑을 지키는 게 어려워요. 자기 안에서만 돌고 도는 사랑이니까요. 굉장히 외로운 거죠. 그런데 나처럼 사랑할 수 있는 존재 혹은 나보다 더 사랑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인간은 강해질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자존감을 지킬 수 있는 길은 성공이나 경쟁이 아니고 타자에 대한 사랑이에요. 내가 아닌 존재를 향한 사랑이요. 그리고 다른 사람이 나에게 뭐라고 하더라도 ‘당신들이 평가하는 모습이 내가 아니고, 내가 평가하는 모습이 나다’라는 걸 잊지 않는다면 자존감을 다치기 전에 마음에 예방주사를 놓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욕망하는 자신으로부터 나를 보호해야 한다는 말씀도 들려주셨습니다. 욕망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는 작가님만의 방법이 있나요?


아주 힘들죠(웃음). 욕망이란 걸 매일매일 느끼니까요. 상품의 소비를 향한 욕망은 어느 정도 절제할 수 있는 것 같다. 그것으로 인한 대가가 너무 크기 때문이죠(웃음). 절제한다는 게 처음에는 쉽지 않지만 작은 시도부터 해보면 될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상품을 향한 소비의 욕구를 시간과 공간을 향한 소비로 바꿔보는 거죠. 산책을 나가서 사람들을 구경한다거나 음악을 듣는 걸로 대체하는 거예요. 그런 식으로 소유하는 기쁨이 아닌 향유하는 기쁨, 다른 시간과 공간을 누리는 기쁨으로 바꿔보면 이게 훨씬 좋다는 걸 깨닫게 돼요.

 

욕망의 방향을 틀어야 한다는 깨달음은 어떻게 얻게 되셨나요?

 

베를린에서 ‘Protect me from what I want’ 라고 쓰여 있는 엽서를 봤는데요. 그때 어쩌면 내가 원하는 것이 나를 공격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에는 내가 원했지만 점점 그것이 내 시간을 잡아먹잖아요. 그걸 중심으로 모든 걸 생각하다 보면 다른 생각을 못하게 되고요. 그러니까 욕망이 나를 공격하게 내버려 두면 안돼요. 욕망과 대화를 해야죠. 정말 내가 널 원하는지, 네가 있는 삶과 없는 삶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 대화를 계속하다 보면 협상 가능한 지점이 있어요. 그것이 없어도 나는 괜찮다고 생각해 보는 거죠. 욕망과의 대화를 통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나의 그림자는 무엇인지 알게 되는 경우도 있어요. 대부분 우리가 소비의 욕구를 느낄 때는 결핍이나 콤플렉스 때문이거든요. 욕망에 자극이 주어질 때는 무조건 받아들일 게 아니라 우리의 지성과 감성의 방패로 한 번 걸러내고 대화하는 과정을 거쳐야 할 것 같아요. 욕망의 거울을 통해서 나를 바라보는, 욕망의 자극을 통해서 나의 그림자를 비춰보는 일이 필요하죠. 그런 시간들을 통해서 나를 성숙시킬 수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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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선택한 책들


『그림자 여행』의 곳곳에서 책 읽기의 즐거움과 의미에 대해 이야기하셨습니다. “책이 내 영혼을 향해 진짜 제대로 된 질문을 던져줄 때, 그 책에게 자발적으로 선택당한다”고도 하셨는데요. 어떤 책들이 작가님을 선택했나요?


특별히 말을 걸어오는 책은 제 그림자 또는 저의 결핍을 건드리는 책들이겠죠. 그 책의 그림자가 저의 그림자를 선택한다고 할 수 있을 거예요.『그림자 여행』에 나온 책들은 대부분 저를 선택해준 책들인 것 같아요.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제가 그 책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게 기회를 준 거잖아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저자 중의 한 명이 ‘이반 일리치’인데요. 그 분의 책을 읽으면 항상 영감을 얻어요. 단지 ‘이런 글을 써야 되겠다’가 아니라 ‘정말 이렇게 살아야 되겠다’는 영감이요. 너무 소중한 책을 읽을 때면 글을 쓰는 게 정말 두려워요. 제가 잘못 전달할까봐, 너무 자의적으로 해석할까봐, 겁이 나는 거죠. 이반 일리치는 그 정도로 좋아하는 작가인 것 같아요. ‘야마오 산세이’도 그렇죠. 야마오 산세이의 책들은 항상 나를 지켜보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네가 쓴 글만큼 너는 살아야 돼’라고 말해주는 것 같죠. 제가 쓴 글에 비춰보면 저는 항상 부끄러운 것 같다. 글에서 많은 다짐들을 했는데 그걸 다 지키기가 힘든 거죠. 그래서 내 글들을 향해서 그리고 나를 선택해준 책들을 향해서 부끄럽지 않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돼요.

 

이론적 작가님께서 최근 선택당한 책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그림자가 항상 활성화되어 있는 건 아니에요. 어떤 그림자들은 평소에 짓눌려 있다가 시간이 많이 지나면 튀어 오르죠. 요즘 페미니즘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페미니즘이 저의 그림자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페미니즘을 심정적으로 좋아하면서도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페미니스트에 대한 정형화된 모습이 싫어서 페미니스트라는 말을 못하고 있었던 거더라고요. 페미니즘과 관련해서는 『빨래하는 페미니즘』이라는 좋은 책이 있어요. 여성들이 읽으면 정말 많은 도움이 될 거예요. 우리사회에서 여성들은 너무 많은 의무감 때문에 고생하고 높은 유리 천장에 가로막혀 있잖아요. 그래서 『빨래하는 페미니즘』을 읽으면서 ‘한국 여성들이 페미니즘이 무엇인지에 제대로 알아야 되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이론적인 접근이 어려울 때는 어떤 책을 읽어야 할까요?


고전 중에도 좋은 책이 있어요. 『작은 아씨들』이에요. 어른이 되고 나서 다시 읽어봤더니 페미니즘의 보물창고더라고요. 네 딸과 엄마가 겪어왔던 여성에 대한 차별,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성으로서의 자존감을 지키고 자기 안의 해방과 자유를 얻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진짜 감동적이에요. 우리가 아직 이뤄내지 못한 걸 이 시대의 여성들이 먼저 깨닫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우리는 여자들끼리도 그런 이야기를 잘 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여성들이 서로의 재능을 일깨워주고 서로의 그림자를 돌봐주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남성인데도 여성에 대해서 알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사회의 다른 부분들도 좋아질 수 있을 것 같아요. 나와 다른 존재에 대해서 계속 고민한다는 건 지적인 성숙함이거든요. 문학을 계속 읽어야 되는 이유도 거기에 있죠. 우리가 타인의 마음을 알 수 있는 통로가 많지 않거든요. 무의식의 깊은 곳까지 낚시를 드리워서 영혼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심해어들까지 건드릴 수 있는 건 문학이라고 생각해요.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그리워할 때마다, 글을 쓸 때마다, 강의를 할 때마다 조금씩 변해가는 나를 느낀다”고 적으셨습니다. 『그림자 여행』은 작가님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다주었나요?


『그림자 여행』을 쓰면서 예전의 글들을 다시 들춰서 먼지를 털어서 오늘의 생각으로 변신시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5년 전, 10년 전의 나와 더 가까워졌죠. 변신이 꼭 미래를 향한 것만은 아니거든요. 예전에는 용서할 수 없었던 내가 지금은 안쓰럽기도 하고, 이제는 내가 스스로 다독거려야 될 것처럼 생각되는 변신도 있었어요. 글이 책으로 태어나기까지의 변신은 굉장히 드라마틱해요. 디자인이나 표지 등 결정해야 하는 요소들도 많고, 단어나 문장처럼 달라지는 부분들도 있죠. 그런 많은 과정을 거쳐서 글이 책으로 나오면 조금 더 오랫동안 독자들과 만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거예요. 설사 독자들을 많이 못 만나다 하더라도 세상에 더 오래 남을 수 있는 길이 되는 거고요. 저에게는 이 책이 타임캡슐이겠죠. 글이 책으로 변신하는 과정은 나만의 모스부호를 누군가 이해해 주기를 적극적으로 기다리게 되는 과정인 것 같아요.


독자들과 나누고 싶은 것은 ‘치유의 경험’


작가님께 ‘여행을 떠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하실지 궁금합니다.


조금씩 나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점점 더 여행이 좋아졌던 것 같아요.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스스로가 규정한 모습도 고정불변의 것은 아니더라고요. 그리고 여행에서 많은 영감을 얻기도 해요. 내 나라에서 편안하게 있을 때는 상상하지 못했던 것들을 고생하면서 얻게 되는 거죠. 사실은 집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게 가장 편안하고 안전하지만, 억지로라도 저를 밖으로 끄집어내서 세상 속으로 던져야 새로운 걸 배울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을 많이 이해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일부로라도 떠나는 것 같아요. 예전의 저는 그냥 좋은 글을 쓰고 싶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독자들에게 조금이라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이야기꾼이 되고 싶다는 욕망이 생긴 거죠. 책에서 읽은 것이 아닌 제가 체험한 것들을 전해드리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여행을 통해서 좌충우돌 해보고 자존심도 다쳐보는 거예요. 그래야 배우는 게 있다는 걸 알았거든요.

 

『그림자 여행』에서 들려주신 영국 여행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어학연수의 목적을 가지고 떠나셨지만 난관에 부딪히셨다고요.


그 글을 쓰면서 정말 재미있었어요(웃음). 예전에는 정말 창피해서 쓸 수가 없는 얘기였거든요. 저의 단점이 다 드러나니까요. 지금은 그렇게 쓰면 독자들이 더 재미있어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저의 단점을 솔직하게 얘기하면 더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시더라고요. 그래서 조금 더 망가지는 제 자신을 많이 보여줄 수 있는 경험을 하고 싶고, 그 이야기를 글로 쓰고 싶어요.

 

작가님만의 독특한 여행방법도 눈에 띕니다. 카프카의 무덤이나 브론테 자매의 고향을 찾아가기도 하셨잖아요.


책을 읽으면서 배경이 되는 공간을 머릿속에서 그려보잖아요. 그러다 보면 너무 궁금해지는 거예요. 사진 같은 걸로는 만족이 안 되는 거죠. 저로 하여금 여행을 떠나게 만드는 가장 큰 원동력은 문학작품에 나오는 장소와 작가에 대한 호기심인 것 같아요. 떠나지 않으면 미칠 것 같은 내부의 고민과 좋아하는 작가에 대한 호기심이 합쳐져서 떠나면, 그 여행은 멋진 대도시보다 훨씬 더 특별한 기억으로 남더라고요.

 

가장 알찬 여행 준비 중 하나로 ‘좋아하는 작가의 고향을 고른 뒤 작품을 읽는 것’을 꼽으신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행을 떠날 때 그 도시에 관련된 문학작품을 읽는 게 힘들다고 느끼실 수 있어요. 예를 들어서 『레미제라블』은 너무 길잖아요. 그런데 다섯 권 중에 한 권이라도 읽고 가시면 파리가 다르게 보이실 것 같아요. 그리고 카프카는 단편을 읽어도 되니까 프라하를 가시기 전에 카프카의 작품을 몇 편 읽고 가시면 프라하가 달라 보일 거예요. 최근에는 사람들이 예전만큼 문학작품을 많이 읽지는 않으니까 ‘문학이 살아가는 일과 별로 상관없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도 드실 텐데요. 문학과 삶을 상관있게 만드는 건 우리 자신인 것 같아요. 이미 우리가 겪고 있는 많은 문제들에 대한 해답이 문학작품 속에 있거든요. 그런데 읽지 않기 때문에 좋은 답들을 모르게 되는 것 같아요. 문학 속의 보물들을 그냥 내버려두고 방치하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제가 문학을 좋아하는 것과 여행을 좋아하는 건 똑같은 일인 것 같아요. 타인의 삶에 대한 관심이고, 타인의 그림자에 대한 관심이고, 제 그림자에 대한 연민인 거죠. 『그림자 여행』에서의 여행은 단순한 투어보다는 무의식의 그림자를 향해 떠나는 구도의 길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졌으면 좋겠어요. 장소만을 향한 여행이 아니라 마음을 향하는 여행이 되었으면 좋겠고요.

 

『그림자 여행』이 독자들에게 어떤 이야기로 다가가길 바라시나요?


‘내가 조금 더 유치하고 멍청해 보일지라도 나의 진짜 내면과 더 맞닿은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한다면 좋겠어요. 나의 그림자와 더 많이 닮아있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거죠. 그러다 보면 그림자가 그렇게 어둡지만은 않다는 걸 알게 되거든요. 그림자를 자꾸 꺼내보면 처음에는 끔찍했다가, 나중에는 불쌍했다가, 점점 그림자가 아니게 돼요. 그게 치유의 과정이에요. 저는 글쓰기를 통해서 제 그림자를 치유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그 효과를 다른 사람들과 같이 나누고 싶어요. ‘제가 많은 곳을 다녀보고 많은 책을 읽어보고 많은 글을 써보니까 그림자를 치유하는 데 효과가 있더라고요, 여러분도 같이 해보면 어떨까요’라고 묻고 싶은 거죠. 제 글이 여러분의 고통을 단순히 진정시켜주는 게 아니라, 고통스러운 원인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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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아은 “잠실은 서울의 현재이자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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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소설이 그렇지만 정아은 소설가의 작품은 특히 현실에 바탕을 둔다.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인 첫 작품 『모던 하트』는 헤드헌터로 활동하는 한 여성의 삶을 생생하게 묘사하며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을 그렸다. 실제 헤드헌터로 일한 소설가의 경혐이 녹아든 만큼 촘촘한 표현이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정아은 작가는 그 작품으로 현대 여성의 일과 사랑 그리고 관계를 적당히 경쾌하면서도 적당히 진지하게 탐색해냈다.

 

『잠실동 사람들』 역시 지극히 현실적인 작품이다. 잠실이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살아가는 다양한 인물을 내세워 대한민국 현실을 밀도 있게 구성해냈다. 작품을 관통하는 두 가지 큰 축은 집과 교육이다. 집은 다른 말로 하면 부동산일 텐데, 부동산과 교육은 대한민국을 이해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다.

 

제목의 ‘사람들’처럼 이 소설에는 정말 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학부모, 어린이, 학교 선생님, 과외 교사, 어학원 상담원, 파견 도우미 등등 주연이라 할 수 있는 사람만 열 손가락을 넘긴다. 그렇다고 이야기가 전혀 산만하지 않다. 등장인물 모두가 잠실이라는 공간사와 교육이라는 두 가지 끈에 매달린 사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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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은 서울 그 자체

 

2013년 『모던 하트』로 한겨레문학상을 받고『잠실동 사람들』은 두 번째 작품입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상 받기 전에는 소설 쓴다고 당당하게 이야기 못하고, 주위 사람에게 미안해하며 책 보곤 했어요. 상을 받고 나서는 책 보고 글 쓰는 게 ‘일’이 되니 정말 좋더라고요. 음지에서 기생하다 양지로 나온 기분? 등단까지 6년 정도 걸렸어요. 그때 쌓였던 열등감이나 질투심으로 남의 작품을 봐도 제대로 못 봤는데, 이제는 그 작품과 순수하게 마주할 수 있는 상태가 된 것 같아요. 그동안 실컷 읽고 실컷 썼죠.
 
요즘 소설이 청년 백수, 비정규직 등 비주류 이야기를 많이 다루는 것 같습니다. 그에 비해서 작가님의 작품에는 완벽한 주류라고는 할 수 없지만 주류에 근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는 것 같아요. 첫 번째 작품에도, 두 번째 작품에도 중산층 이상의 삶이 주로 묘사가 되었는데요. 이렇게 쓰시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대부분 루저를 다룬 소설이 많죠. 그렇지 않은 문학이 없어서 내가 써야겠다, 이렇게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작가는 경험한 걸 많이 쓰게 되죠. 제가 헤드헌터의 삶을 경험했잖아요. 헤드헌터 자체가 주류는 아니지만, 헤드헌터가 쫓아다니는 사람은 주류 혹은 주류에 가까운 사람이 많았어요. 헤드헌터를 고용해서 직업을 찾을 정도면 고위직이 많거든요. 서민의 삶처럼 주류의 삶에도 애환이 있어요. 위선과 모순도 있지만 아름다운 점도 있고요. 그런 걸 찾아서 썼죠.

 

잠실이라는 공간은 첫 번째 작품에도 등장했고 『잠실동 사람들』에서는 본격적으로 전면에 나옵니다. 잠실은 작가님에게 어떤 의미가 있나요?

 

첫번째로 잠실은 제가 6년 동안 거주한 곳이고요. 두 번째로 잠실은 소설로 나타내기에 재미있는 색이 많은 곳입니다. 한국전쟁 이후 잠실은 두 번 상전벽해를 겪습니다. 원래는 두 개의 섬이었던 지역을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이 강남 개발하면서 육지로 만들고 5층짜리 주공 아파트를 지어요. 2000년대 들어서는 기존의 아파트를 싹 밀어버리고 고층아파트를 세웁니다. 잠실은 처음에는 부촌이 아니었어요. 대단지 4곳 입주가 겹쳐서 전세도 쌌고요. 초반엔 그랬지만 교통이 좋으니 전셋값이 계속 올랐죠. 그와 함께 거주하는 사람들과 거주양식도 많은 변화를 겪었고요. 물론 잠실지역이 모두 그랬던 건 아닙니다. 신축 고층아파트 단지들 건너편에는 재래시장이 있고 과거와 현재가 공존해 있죠. 어떻게 보면 강남보다 더 강남 같지만 또 어떻게 보면 강남 같지 않은 곳이기도 하고요. 여러 층위의 모습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공간입니다. 또한 잠실은 서울 그 자체이기도 하죠.

 

잠실이 서울이라는 말씀이 인상적인데요.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신다면.

 

잠실이 대표성을 띈다고 생각하는 게, 아직까지 서울에 이렇게 고층 아파트 단지가 밀집한 곳이 없어요. 제2롯데월드까지 들어오면서 스카이라인이 환상적으로 높아졌죠. 현재 타지역에서 재건축 예정인 오래된 아파트들은 대부분 30~50층짜리 청사진을 내놓고 있습니다. 분담금을 낮추려면 15층 이하로는 안 되거든요. 은마 아파트도 50층으로 올린다는 말이 있잖아요. 이런 면에서 잠실은 서울의 현재이자 미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17명이 주인공인 소설

 

『잠실동 사람들』에는 다양한 인물이 등장하는데요. 억지 질문이지만 이 작품에서 굳이 주인공을 꼽아 주신다면?

 

주인공이 따로 없어요. 등장인물 17명이 모두 주인공입니다.

 

그렇다면 잠실이라는 공간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인물은 누구일까요?

 

고층아파트로 상징되는 해성 엄마 장유미겠죠. 개인적으로 애착이 가는 인물은 원래 계획에 없었는데 쓰는 도중 자생적으로 생겨난 인물이에요. 어학원 상담원 지윤서가 대표적인 경우죠.

 

초등학교 교사 김미하의 자살 시도를 읽으며 최근 한 아파트에서 있었던 경비원 분신 사건을 연상하는 사람도 있을 듯합니다. 실제로 상관 있었나요?

 

꼭 경비원 사건을 보고 쓴 건 아니에요. 실제로 교사 중에 자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선생님이라는 존재가 예전처럼 편한 자리가 아니라서 선생님들이 굉장히 힘들어하셔요. 교권은 떨어졌고 아이들의 사고방식은 예전과 판이하게 달라졌는데 수직적이고 획일적인 학교문화는 그대로잖아요. 이런 걸 모두 교사가 헤쳐나가야 하는 상황이에요. 우리사회에 이런 일이 많죠. 경비원 사건도 그런 일들 중 하나고, 그게 합쳐져서 소설 속 장면으로 나왔어요.

 

전작에 이어 사교육, 학벌이 주요한 주제잖아요. 

 

『모던 하트』가 계층이 정해진 성인들의 이야기라면『잠실동 사람들』은 그 이전, 그러니까 계층이 나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처음에는 교육이 테마였는데, 쓰다 보니 공간의 역사가 더 재미있어졌어요. 현재 부촌이라 일컬어지는 강남이나 삼성동이 허허벌판이었던 시절을 따라가보면서 입맛을 쩍쩍 다셨죠. 이런 걸 소설에 녹여보고 싶었어요. 그렇게 이번 소설이 교육과 공간사라는 두 가지 축을 갖게 됐습니다.
 
소설에 등장하는 엄마들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례였어요.

 

제 자신, 어떤 때는 아이에게 온갖 사교육을 다 시키다가 어떤 때는 어릴 때는 놀아야지! 하면서 마음껏 놀게 해주는 일관성 없는 엄마입니다. 나는 왜 이렇게 줏대가 없지? 고민하면서 둘러보니 제 주위에 있는 엄마들이 다 저와 비슷하더라고요. 우리 아이들이 가는 길의 끝에는 결국 ‘입시’라는 철벽이 있잖아요. 그 철벽이 건재하는 한, 대한민국의 어떤 부모도 소신 있게 아이를 키우지 못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만났던 부모 중에서 ‘난 미치도록 공부만 시킬 거야’라고 생각하거나 ‘난 사교육 절대 안 시키고 실컷 놀게만 할 거야’라고 말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 전방위적인 사교육 마케팅의 덫에 걸려 아이들을 몰아붙이면서도 마음 한켠으론 죄책감을 갖고 가는 거죠. 그렇게 부모와 아이 모두가 불행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물론 상위권 대학 졸업장만 있으면 남은 인생이 완전히 보장되었던 구시대 패러다임은 신자유주의의 돌풍에 밀려 지나가버렸지만, 그럼에도 뚜렷한 대안이 안 보이니까 부모들이 과거의 패러다임에 매달려 기를 쓰고 사교육을 시키게 되는 거죠.

 

결말이 직설적이지 않고 상징적인데요. 어떤 의미를 담으셨나요.

 

지환은 동물과 식물을 좋아하는데, 그 엄마는 아이에게 다른 애들은 해리포터 원서로 보는데 넌 왜 달팽이나 보느냐며 답답해합니다. 지환이야말로 강하고 현명한 건데 어른이 그걸 모르는 거죠. 생명에 대한 친화력이 진정한 힘임을 자각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겁니다. 과외 교사가 문책하듯 질문을 던질 때에도 아이는 끈질기게 자기가 좋아하는 것만 생각하고 답하죠. 저는 결말을 밝게 그렸다고 생각해요. 우리 사회가 끔찍한 상태에 있는 건 사실이지만, 우리 안에 있는 멀쩡한 정신, 생명력, 선한 본성 또한 그대로 살아 있습니다.

 

독자들이 어떻게 이 소설을 읽으면 좋을까요?

 

바람이라면 우리의 주거 문화, 아파트로 쏠려 있는 주거 문화를 이 소설을 읽음으로써 되돌아봤으면 좋겠어요. 관광 서울, 디자인 서울이라고 말들을 하던데 도대체 뭘 보여주겠다는 건지 모르겠어요. 동서남북, 어느 쪽을 봐도 아파트만 있는데, 관광객 유치가 가능할까요? 스위스 같은 나라는 살고 있는 집만 찍어도 그대로 그림이 되잖아요. 이대로 계속 가면 대한민국은 국토 전체가 모두 아파트로 덮일 겁니다. 우리의 편리주의적인 가치관 때문에 아파트로 상징되는 주거 문화가 생겼고, 마구마구 쌓아 올린 콘크리트가 문화, 교육, 가치관까지 잡아 먹고 있습니다. 교육도 결국 여기서 나온 문제죠. 내 옆집이 얼마에 팔렸는지를 바로 알 수 있고, 사는 곳을 돈으로 평가하며 서로 경쟁하게 만드는 게 아파트잖아요. 잠실동 사람들』이 이에 대한 문제 의식을 갖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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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정아은의 과거 그리고 미래

 

바로 소설을 쓴 건 아니잖아요. 중간에 일도 했고, 번역도 했는데 소설을 쓰기로 결심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가장 많이 했던 것, 봤던 것, 들었던 것을 결국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소설을 쓰게 될 거란 생각은 안 했지만 어릴 때부터 소설을 많이 읽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소설을 쓰게 된 듯 합니다.

 

어릴 때부터 소설을 좋아한 것은 누군가 영향도 있었을 듯해요.

 

저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었는데요. 제가 등단한 뒤에 아버지와 아주 가까웠던 지인분이 연락을 해오셨어요. 오랜 이야기 끝에 지나가듯 ‘너희 아버지도 소설을 쓰고 싶어하셨다’, 라고 말씀 하시더라고요. 아버지가 원래는 독문학을 하셨는데 나중에는 윤리학과 철학쪽으로 전공을 바꾸셔서 전 아버지가 소설에 관심이 있으셨는지 몰랐거든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성향이 이어진 게 아닌가 싶어요.

 

아직 많은 작품을 발표하신 건 아니지만, 감히 작가님에게 문학이란 무엇인지 여쭤 봐도 될까요.

 

저는 문학의 덕을 많이 보고 살아왔어요. 문학작품에는 못난 사람 이야기가 많이 나오잖아요. 그런 걸 보는 게 좋았어요. 관계에서 오는 좌절과 상처로 고통 받을 때마다 문학 작품을 읽으면서 동병상련을 느꼈죠. 아, 나처럼 못난 인간이 또 있구나! 인간은 원래 못났구나! 덕분에 용기를 가지고 살 수 있었어요. 제 개인적으로는 그렇고요. 제가 문학으로 하고 싶은 건 불씨나 이미지 하나를 심는 것이에요. 지금 문학이 누군가를 당장 행동하게 할 수 있다고는 생각 안 해요. 우리는 매일매일을 살지만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는 보지 못하잖아요? 그걸 보여주는 게 문학이라고 생각해요. 아, 내가 이렇게 살고 있구나! 깨닫고 그걸 마음에 불씨로 담는다면, 다른 계기를 만났을 때 그 불씨가 변화로 타오르지 않겠어요?
 
전작에서는 일하는 여성의 모습을 담았고 이번에는 주로 엄마의 모습을 그렸는데요. 일과 육아 사이에서 많은 여성이 힘들어하는데, 작가님은 어떤가요.

 

막 등단했을 때는 많이 읽고 많이 쓰고 싶은 욕심에 아이 키우는 게 짐스럽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까 생각이 달라지더라고요. 소설 쓰기는 외로운 작업이잖아요. 혼자 벽 보고 나를 다독이며 쓸쓸하게 쓰다 보면, 있지도 않은 환상의 세계를 완성하기 위해 진짜 인생을 외롭고 지질하게 보내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모든 게 싫어질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유치원에서 돌아온 눈이 반짝반짝한 아이가 “엄마, 나 무릎꿈치가 아파” 라고 말 하면 외롭던 마음이 축축해지면서 아, 아이가 내게 짐이 되는 게 아니라 아이가 나를 살게 하는 거구나! 생각하죠. 아이는 팔이 팔꿈치니까 무릎도 꿈치라고 생각해서 말한 건데요. 제가 공상의 세계에서 펼쳐나가는 복잡한 인간세계와는 정반대되는 순수한 세계이고, 어른이 못 보는 걸 보는 막강한 힘이죠. 요즘엔 아이 키우는 일상을 많이 긍정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아이를 현명하게 키울 수 있을까요.

 

부모가 시대의 흐름을 잘 읽어야 할 텐데, 쉽지 않죠. 우리나라는 힘센 몇몇이 다 가져가는 구조잖아요. 일단 교육쪽을 보면, 시골 초등학교의 자잘한 사항들도 대부분 교육부에 결정 권한이 있죠. 그 시골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나 아이들의 부모를 한 번도 만나보지 않았고 그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그 학교에 대한 많은 것을 결정하는 겁니다. 교육자치라고 해서 교육감 제도가 도입됐지만 마지막 단계에서는 결국 교육부에서 결정을 번복하잖아요. 결국 교육분야도 중앙 거대 권력이 결정권을 가지고 있고, 정치도 마찬가지죠. 중앙, 특히 서울의 권력이 막강해요. 지방 국회의원 뽑을 때도 서울 정치권과의 연고를 가장 먼저 내세우잖아요. 자원은 또 어때요. 원자력 발전소는 모두 서울과 멀리 떨어진 지방에 있지만 그 사용량의 대부분은 서울에서 소비되잖아요. 기업도 대기업이 모든 분야를 독식하고 있고, 유통업도 거대 마트가 지방상권을 다 포식해버렸고, 이 이상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지독한 승자독식구조인데 이런 구조라면 결국엔 무너질 수밖에 없어요. 학벌사회도 인구 때문에라도 지금 체제를 지탱하지 못할 거고요. 엄청난 패러다임의 변화가 올 겁니다. 이런 흐름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할 거 같아요. 그런데 부모가 그런 흐름을 보지 못하도록 눈을 가려버리는 게 사교육 마케팅이죠. 이런 데 안 먹히려면 부모가 많이 공부해야죠. 책도 많이 읽어야 하고요.

 

앞으로 어떤 작품을 쓰실지 알려주세요.

 

사회의 여러 문제를 따라가다 보면 늘 만나게 되는 벽이 있어요. 분단이죠. 잠실동 사람들』을 쓰면서도 그랬어요. 해방 이후 우리 교육이 근본적으로는 하나도 변하지 않았잖아요. 왜 그랬을까, 주욱 따라가보니 그 끝에 분단이라는 거대한 난제가 버티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분단에 관한 소설을 구상하고 있어요. 그런데 한 켠으로는 달달한 사랑 이야기를 써보고 싶단 생각도 들어요. 그동안 사회 비판적인 소설을 연달아 냈잖아요. 그래서 두 쪽 다 초안을 잡았는데, 아직 어느 한 쪽이 확 튀어나오지 않았어요. 한쪽이 확실하게 튀어나오길 기다리면서 양쪽 다 조금씩 써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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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실동 사람들 : 정아은 장편소설정아은 저 | 한겨레출판
전작이 서른일곱 헤드헌터의 일상을 통해 학벌이 계급으로 작동하는 사회를 그렸다면, 신작 잠실동 사람들은 계급을 상승시킬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인 ‘교육’을 좇는 부모들과 ‘교육’으로 먹고사는 학교 선생님, 원어민 강사, 과외 교사, 학습지 교사, 어학원 상담원 들이 벌이는 분투기, 더불어 불공정한 출발선이 시작되는 공간사까지 아우르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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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분노 사회에서 충돌을 줄이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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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뮤얼 헌팅턴이 쓴『문명의 충돌』은 여러 지엽적인 부분에서는 논란을 불러일으켰으나 큰 틀에서는 세계 정세를 유효하게 분석했다. 즉 탈냉전 시대 충돌 양상은 다양해지리라는 전망이 그것이다. 충돌 원인이 꼭 문명인 것은 아니다. 경제적 동기 역시 중요할 텐데 어쨌든 세계 각지에서 충돌은 끊이지 않고 있다.

 

『우리는 왜 충돌하는가』는 충돌 원인과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지점을 가장 기초적인 곳에서 찾는다. 즉, ‘자아’다. 저명한 두 문화심리학자는 ‘독립적 자아’와 ‘상호의존적 자아’의 개념을 정의하고 이 두 개념을 바탕으로 동양과 서양, 여성과 남자, 인종, 계층 간 갈등 양상과 극복 방법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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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가 이데올로기 충돌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그 충돌의 양상이 더욱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현재 지구촌의 가장 심각한 갈등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최근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심각한 갈등 중에서 상당 부분이 사회경제학적 충돌의 양상을 띠고 있습니다. 즉, 엄청난 부와 소득을 지닌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사이의 충돌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인구가 71억 명을 넘어서고 자원은 점점 더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사회경제적 충돌은 이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퓨 리서치 센터의 발표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사회 계층 간의 갈등을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지 않았던 미국인들조차 지금은 빈부 격차를 사회적으로 가장 심각한 갈등 중 하나로 꼽고 있습니다.


이 책은 ‘독립적 자아’와 ‘상호의존적 자아’의 두 개념을 통해 세상의 주요한 갈등과 해결방안을 모색하는데요. 사실 한국인은 미국인에 비해 ‘자아’에 대한 인식 자체가 희미한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각종 사회 갈등을 자아의 충돌로 해석하기보다 주변 환경이나 사회의 문제로 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나 혹은 타인의 자아를 인식하고 들여다보는 것이 왜 중요한지 말씀해 주신다면?

 

한국인들이 갈등의 원인을 개인적, 심리적 차원이 아니라 사회적, 환경적 차원에서 발견하고자 한다는 사실은, 한국 문화가 상호독립적인 자아를 강조하고 있다는 우리의 연구 결과와 일치하는 대목입니다. 자, 한번 생각해 봅시다. 모든 사람들은 두 개의 자아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상호독립적인 자아는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유사하고, 전통과 지역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독립적인 자아는 따로 떨어져 있고, 고유하고, 전통과 지역으로부터 자유롭게 살아갑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문화적 배경들의 고유한 조합에 따라, 사람들은 둘 중 특정한 하나의 자아를 기반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런데 독립적인 자아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상호독립적인 자아로 살아가는 사람들과 접촉할 때, 종종 갈등이 벌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동시에 문화적 배경과 그 배경들이 자아를 형성하는 방식을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이러한 충돌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은 두 자아를 모두 지혜롭게 활용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이를 위한 방법을 몇 가지 알려주신다면?

 

충돌이 빚어지는 경우, 가장 먼저 우리는 상호의존성에 주목해야 합니다. 상호의존적 자아를 끄집어낼 때, 우리는 상대방에 주의를 기울이고, 서로의 공통점을 발견하고, 상대의 욕구에 부응하고자 노력하게 됩니다. 이러한 태도는 우리가 ‘왜’ 충돌하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 충돌을 해소할 것인지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줍니다. 하지만 상호의존성이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할 때, 우리는 독립성으로 눈길을 돌려야 합니다. 독립적인 자아는 자신의 주장을 드러내고, 현재 상태에 도전하고, 그리고 “상자 밖에서 생각”을 합니다. 독립성은 특히 부조리를 해결하고, 참신한 해결책을 발굴하는 과정에 도움이 되지만, 상호의존성을 중심으로 공통의 기반을 마련하고 난 뒤에야 최고의 효과를 드러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두 가지 자아를 비탕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자원을 두 배로 확충할 수 있습니다.


책 속에서 『타이거 마더』의 저자 에이미 추아의 사례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자녀 교육에 특히 관심이 많은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독자들에게 자녀 양육에 대해 조언해 주신다면?

 

우리의 연구 성과들은 독립적 자아와 상호의존적 자아를 똑같이 능수능란하게 활용하고, 그리고 언제 어떤 자아를 끄집어내야 하는지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21세기의 성공을 차지하게 될 것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독립성을 더 중요하게 여겨왔던 미국인들은 지구가 점점 더 좁아지고 뜨거워지면서, 자녀들에게 더 많은 상호의존성을 주입함으로써 그들이 더욱 협력적으로 움직이고, 서로를 존경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반면, 한국에서는 많은 교육자와 부모들이 종종 창조성과 혁신의 원천으로 각광받고 있는 독립성의 가치를 배워가고 있습니다.


비록 미국 내 인종 갈등에 대한 비판이 있지만, 미국만큼 다민족 국가를 잘 이뤄낸 사례도 없을 것 같습니다. 한국도 점점 다문화 사회로 가고 있는데, 이런 한국을 위해 조언을 해 주신다면?

 

많은 다문화 사회들이 공통적으로 저지르고 있는 한 가지 실수는, 다양한 배경으로부터 온 사람들이 다르지 않고, 그리고 문화는 별로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고 애써 강조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많은 미국인들이 “인종은 중요하지 않다”, 혹은 “피부색깔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라고 말하고 있으며, 우리는 이러한 모습을 일종의 “색맹”으로 설명합니다. 이러한 “색맹”에 걸린 사람들은 비록 선의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문화, 인종, 민족, 성, 사회 계층, 지역 등의 요소들 속에 포함되어 있는 커다란 에너지를 부정하려하며, 바로 이러한 태도는 사회적으로 큰 피해를 입힐 수 있습니다. “문화적 색맹”이라고 부르는 이러한 사고방식은 차별을 제거하기보다, 오히려 차별이 계속해서 사라지지 않도록 방치합니다. 또한 다양성의 힘을 발휘해야 할 사람들의 놀라운 능력을 위축시킵니다. 어쨌든 다양한 문화적 배경으로부터 온 사람들은 다양한 힘의 원천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러한 놀라운 에너지를 외면하고 썩혀둔단 말입니까?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와 관련하여 우리가 드리고 싶은 조언은, 다문화주의를 극복해야 할 과제라기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감사해야할 슈퍼파워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최근 유럽과 중동지역에서 벌어진 테러사건 등 IS 문제가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책에도 이슬람교를 둘러싼 갈등의 양상으로 덴마크 <율랜츠포스텐>의 만평 사례 등이 소개되었습니다만, IS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십니까?

 

 IS 사태는 어떤 점에서 서구 사회의 독립성과 중동 지역의 상호의존성 간의 충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편에서, 독립적인 서구 사회는 개인의 권리, 표현의 자유, 그리고 사회적 기관의 권한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상호의존적인 중동 지역은 가족 관계, 공동체 기대에 대한 부응, 그리고 종교적 단체의 권위를 우선시합니다. 이 두 가지 접근방식 모두 문화를 가동하는 실질적인 기반입니다. 그러나 IS는 극단적인 상호의존적 접근방식을 취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독립성의 유입에 대해 극단적인 경계 태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가장 몸살을 앓는 충돌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경제적 격차와 정치적 분열입니다. 간단한 문제는 아닙니다만, 점진적으로라도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요?

 

『우리는 왜 충돌하는가』에서 우리는 어떤 문화적인 여정도 고정되어 있거나 필연적인 것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문화는 구성원들을 형성하지만, 구성원들 또한 문화를 형성합니다. 실제로 우리 모두는 매일 다양한 문화들을 창조하고 변화시켜나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차원에서 한국 사회의 정치적, 경제적 분열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의 심리적 차원(한국적 사고와 감성, 그리고 행동), 그리고 두 가지 외부 문화적 차원(사회적 규범 및 언론과 한국인들의 일상적인 관계를 포함하는 상호작용의 차원, 그리고 한국의 정책과 법률을 포함하는 제도적 차원) 모두에서 변화를 시도해야 합니다.


책에서 다룬 주요한 소재 중 하나가 여성과 남성이었는데요. 20세기 이후 페미니즘의 활약에도 여전히 많은 나라에서 가부장제가 공고합니다. 한편 최근 한국에서는 페미니즘을 왜곡하여 매우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문제가 생겨나고 있는데요. 남녀 갈등에 대해 조언해 주신다면?

 

한국 여성들은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은 교육을 받고, 더 많은 조직을 운영하고,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변화에도 불과하고, 아직도 많은 여성들이 소위 “유리 천장”에 가로막혀 있습니다. 즉, 기업, 교육, 정부 조직에서 동등한 자격을 갖춘 남성들이 올라설 수 있는 높이만큼 올라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유리 천장은 여성들을 좌절시킬 뿐만이 아니라, 조직 전반을 불구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오늘날 더 많은 여성들이 리더의 자리에 있는 조직일수록 혁신적으로, 재정적으로 더 큰 성공을 거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단지 여성을 도와주려는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 우리는 한국 남성들이 여성들에 대해 상호의존성을 더욱 확장해나갈 것을 촉구합니다. 다시 말해서, 조직 내에서 여성들의 승진 기회를 확대하고, 여성들이 이룩한 성취를 언론 및 직장 내에서 보다 긍정적인 차원으로 알리고, 그리고 여성들의 아이디어에 더 많이 귀를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좀 가벼운 질문 드리겠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일상생활에서 겪는 충돌 중 가장 스트레스 받는 것이 무엇인가요? (가족, 직장 동료, 친구, 일 등등)

 

동료들은 우리에게 보다 상호의존적 자아를 중심으로 연구를 추진해야 한다고 조언을 합니다. 이 말은 비록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상호의존성을 연구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자아에 아직까지 그리 익숙하지 못하다는 뜻일 겁니다. 번역하자면, 아마도 이런 뜻이겠죠. ‘더 적게 말하고, 더 많이 들어라.’


끝으로 한국 독자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21세기 다문화 시대의 주인공은 독립적인 자아와 상호의존적인 자아를 모두 잘 활용할 줄 아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북미 지역의 사람들은 잘 개발된 독립적인 자아를 갖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을 드러내고,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고,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는 방법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반면 한국 사람들은 잘 발달된 상호의존적인 자아를 갖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귀를 기울이고, 조화를 이루고, 그리고 다른 사람과 주변 환경에 적응하는 방법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인과 미국인은 서로에게서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비즈니스를 포함한 다양한 분야에서 한-미 협력관계는 그 미래가 대단히 밝다고 하겠습니다.

 

*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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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충돌하는가헤이즐 로즈 마커스,앨래나 코너 공저 | 흐름출판
스탠포드대학 문화심리학의 권위자인 헤이즐 로즈 마커스 교수는 이 같은 충돌의 원인과 해법을 찾아내기 위해 글로벌 규모의 연구를 진행했다. 신간 《우리는 왜 충돌하는가》(원제: CLASH!)에 그 결실이 담겼다. 그런데 저자인 마커스 교수가 이 복잡하고도 심각한 충돌 문제의 원인으로 지적한 것이 다소 의외다. 그는 ‘서로 다른 자아’의 갈등이 이 세상의 온갖 문화적 충돌을 일으키는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다루는 문제는 사뭇 심각하고 큰데, 문제를 풀어내는 방식은 일상적이고 흥미롭기까지 하다! 결국엔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것이야말로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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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한국 이제라도 3D 프린팅 산업 따라잡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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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미국의 로컬모터스는 3D 프린팅으로 만든 전기 자동차 스트라티(Strati)를 공개했다. 차체를 3D 프린터로 찍어내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단 24시간에 불과하다. 이렇게 제작 시간을 단축한 것은 기존 자동차 부품 수를 획기적으로 줄인 덕택이다. 스트라티는 1년 안에 상용화될 예정이다.

 

3D 프린터가 만들 수 있는 것은 차뿐만이 아니다. 피규어에서부터 총, 로봇팔 등 그 목록은 끝이 없다. 이렇다 보니 일반인에게 3D 프린터는 마법을 부리는 기계같이 보이기도 한다. 이런 잘못된 시선을 바로잡고자 오랫동안 3D 프린팅 기술에 관심을 가져온 김영준 한국3D프린팅비지니스코칭센터 대표가 『3D 프린팅 스타트업』을 썼다.

 

3D 프린터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만능키는 아니다. 여전히 산업용 3D 프린터는 수천만 원이 넘어가고 유지 보수 비용도 만만치 않다. 개인용 3D 프린터는 저렴한 대신 아직 개선해야 할 점이 있다. 이러한 현실적인 이유를 제외하더라도 사용자가 3D 프린터를 이용해 무엇을 만들 것인지에 관해 비전이 없다면, 3D 프린터는 무용지물일 뿐이다. 이 책은 3D 프린팅 산업의 현황과 트렌드 등을 소개하고, 개인이 창업할 때 알아야 할 점 등을 알려준다.


3D 프린터에 대한 책을 쓸 정도로 몰입하시게 된 개인적인 계기가 있었나요?

 

3D 프린터는 시제품 제작 등에 사용되는 중요 도구 중의 하나입니다. 신제품 아이디어 창출, 설계, 개발을 18년 넘게 해 온 저로서는 사실 ‘3D 프린터’에 대한 아무 감흥이 없었습니다. 심하게 표현하면 나무를 자를 때 필요한 도구가 ‘톱’인 것처럼, 머릿속의 아이디어를 현물로 구현하는 도구 중 하나로 여기고 지내 왔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한 계기로 강의를 의뢰받았습니다. 소상공인 CEO를 대상으로 3D 프린팅에 관해 강의를 해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별 생각 없이 아는 내용을 준비해서 강의를 갔는데, 강의에 참석하신 분들의 집중도와 열의에 깜짝 놀랐습니다. 모두들 이미 중소/중견 기업의 CEO이건만 자신의 분야에 응용하려는 의지가 정말 강했습니다.

 

강의를 마치고 돌아와 인터넷을 뒤져보고 자료도 찾아보니 너무나 허황되고 비현실적인 이야기와 현실적인 이야기를 혼재해 놓은 정보들이 정말 많다는 걸 알았습니다. 또한 강의를 하시는 분들 중 상당수의 강사들이 3D프린터와 직간접 관련이 없는 분들이 강의를 한다는 것을 보고 한 번 더 놀랐습니다. 이에 3D 프린터를 활용하시는 분들께 제대로 된 정보를 전달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되어 책을 쓰기로 했습니다.


한국에도 3D 프린터에 관한 책이 속속 나오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3D 프린팅 스타트업』은 어떤 부분을 특히 중점적으로 다루셨나요.

 

제 책은 3D프린터를 비즈니스 관점에서 바라보았습니다. 기존에 나와 있는 책들은 3D프린터가 ‘3차 산업 혁명을 일으킨다.’, ‘수평적 협업 시대를 연다.’는 등 막연한 구호를 외치거나, 3D 프린팅 산업의 현황을 나열해 놓았거나, 3D 모델링 하는 방법, 3D프린터 사용 방법, 3D프린팅 노하우을 알려주는 책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3D프린팅의 한계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이 없고 또한 사용법 위주의 책이었습니다. 실제 오프라인 교육에서도 강사의 대부분이 시중에 나와 있는 책과 유사한 내용으로 뜬구름 잡는 이야기와 3D프린팅, 3D모델링, 후가공을 어떻게 해야 되는지에 대해 교육이 상당히 많습니다. 이런 책과 교육이 불필요하다는 뜻이 아니라, 3D프린터가 비즈니스적으로 왜 중요한지,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향후 실질적인 전망은 어떤지에 관해 다루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에 제 책은 앞서 언급한 부분에 중점을 두어 실제 사례 중심으로 집필하였습니다.


얼마 전에 3D 프린터로 만들어진 자동차가 화제가 되었는데요. 그렇다 보니 일반인은 3D 프린터라면 뭐라도 뚝딱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인상을 받습니다. 3D 프린터를 다루기 위해서 이 책을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까요?

 

우선 제 책을 읽으시면 3D 프린팅에 대한 올바른 비전을 수립하실 수 있을 겁니다. 막연한 환상도 아니고 실질적인 미래상과 창업 사례를 보실 수 있습니다. 3D프린팅을 아예 모르시는 일반인들은 막연하게 어려운 기술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또한 이미 3D프린팅 교육을 받으신 분들 중에 상당수가 3D 프린팅에 대해 안 좋은 생각을 갖고 계십니다. 제대로 된 활용법과 비전을 갖지 못했기 때문이죠.

 

3D프린터를 일상으로 접해온 전문가들은 3D프린터에 대해 왜들 호들갑인지 모르겠다는 식으로 3D프린터를 바라봅니다. 3D프린터에 대해 잘 모르시는 일반인이든, 이미 교육을 받으시고 활용하지 못해 쳐다도 보지 않는 분이든, 3D프린터에 아무 감흥이 없는 전문가이든 제 책을 통해 3D프린팅에 대해 올바른 비전을 수립하실 수 있을 겁니다. 회사건 일인기업이건 반드시 필요한 게 비전입니다. 3D프린팅이 왜 중요한지 확인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그 후에 내 사업과 내 분야에 어떻게 접목할지 고민하는 게 순서입니다. 뜬구름을 잡거나 사용 방법만 알아가지고는 3D프린팅을 어떻게 활용할지에 대한 감을 잡을 수 없습니다. 제 책과 함께 3D프린팅에 대한 명확한 비전을 수립하시면 흔들림 없이 앞으로 나가실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창업, 하면 생각하는 게 바로 비용인데요. 다른 창업에 비교해서 3D 프린터를 사용하는 창업은 비용적으로 어떤 이점이 있을까요.

 

물론 규모 있게 산업용 3D프린터를 갖추어 창업하시면 비용이 많이 들어갑니다. 산업용은 수천만 원 이상입니다. 하지만 작게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 하는 일에 살짝 숟가락 하나 얹는다 생각하고 시작하는 게 가장 좋습니다. 예를 들면 이미 유통업을 하고 계시면 3D프린팅 소재나 프린터 판매 유통도 같이 시작하는 겁니다. 3D프린팅 생태계가 커지고 있음을 염두에 두고 적정 판매처를 하나 둘 확보하는 거죠. 가장 쉬운 예이기에 실제 창업을 한다면 더 깊이 있는 생각이 필요합니다. 이미 학원을 하고 계시다면 3D프린팅 교육도 검토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미국에는 3D프린팅 교육 받은 학생 수가 10만 명이 넘습니다. 당장 주변에 없다고 등한시하기보다는 앞으로 트렌드가 뭐고 이게 왜 이렇게 이슈인지를 알아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나라는 아직 3D프린팅 생태계가 무르익지 않았습니다. 3D프린팅 전반에 대하여 잘 알고 있다면 모르겠지만 간단한 교육을 마치고 무작정 3D프린팅 창업으로 올인하는 것은 무모합니다. 소상공인이라면 작게 시작하시고, 이미 기업체를 운영 중이시라면 숟가락 하나 더 올리는 방법에 대해 검토해보시면 좋겠습니다. 가장 큰 이점은 트렌드이고 생태계가 점점 커진다는 데 있습니다.


한국의 3D 프린터 산업이 다른 나라보다 뒤쳐졌다고 하셨는데요. 지금 어떤 상황인지, 그리고 앞으로는 3D 프린터 산업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우리나라가 FAST FALLOW가 확실히 맞다는 생각이 3D프린팅 산업에서도 증명되었습니다. 경기가 점점 안 좋다 보니, 소상공인은 확신이 서는 사업에만 투자하고, 기업들은 이미 있는 기업을 인수하는 데 몰두합니다. 불확실한 곳에 돈과 시간을 낭비하지 않겠다는 뜻이죠. 하지만 3D프린팅을 도구로서 아주 잘 활용하고 있는 미국과 유럽은 FDM 3D프린터 특허가 풀리자 곧바로 오픈소스를 이용한 3D프린터 제작과 판매가 활성화되었습니다. 필요한 부분이 있다고 여겨지면 누군가 하지 않았더라도 먼저 도전하는 문화가 만들어져 있습니다. 해외는 검증되지 않은 제품이더라도 의도가 좋고 결과물이 좋을 것으로 예상되면 투자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현재의 우리나라 분위기에서는 새로운 시도를 하는 사람이 바보 취급 받습니다.

 

물론 막무가내 창업을 부추기는 것은 아닙니다. 가만 생각해보면 우리나라는 제조산업은 국내에서 어렵다는 게 정설처럼 받아 드려지고 있습니다. 중국, 베트남에 밀려 가격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겁니다. 하지만 개인용 3D프린터는 현재까지 분명 미국과 유럽의 완승입니다. 이들 국가에서 3D프린터 문화를 만들어 내고 있으며 중국은 이제 막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3D프린팅 산업을 따라잡아야 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더불어 3D프린팅 분야만 아니라 산업 전반에 도전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합니다. 고부가가치는 산업이 발생해서 생태계를 갖추어 갈 때 발생합니다. 우리나라도 이런 맥락으로 접근이 되었으면 합니다.


비즈니스 관점으로 3D 프린팅을 바라본 책이고, 단순히 물건을 만드는 것 이상의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고 강조하십니다. 마케팅, 교육 응용 등 다양한 이야기를 책에서 하셨는데요. 추가로 사례를 들어주신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이제 ‘3D 데이터 공유의 시대’가 올 겁니다. 이 말은 제가 지어낸 말입니다. 지금까지 글, 사진, 동영상이 SNS 공유의 핵심이었다면 향후는 SNS 뿐만 아니라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분야까지 포함하여 ‘3D 데이터 공유의 시대’가 올 겁니다. 머지않아 3D 데이터를 이용한 마케팅, 3D 데이터의 오픈소스화, 3D데이터를 이용한 마켓이 활성화 됩니다. 해외도 ‘3D데이터 공유의 시대’가 완벽히 열린 상태는 아닙니다. 해외도 아직 ‘마케팅’적으로나 ‘3D 데이터의 오픈소스화’ 측면의   접근은 부족한 면이 있습니다. 하지만 ‘3D데이터를 이용한 마켓’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발달해 있습니다. 이는 개인용 3D프린터의 보급이 우리나라보다 많이 앞서 있기에 그렇습니다. 생태계가 우리나라보다 커져있으니 관련 비즈니스가 많은 거죠.


책에 언급이 있습니다만 앞서 말씀하신 ‘3D 데이터의 오픈소스화’는 매우 중요한 개념으로 보입니다.

 

스마트폰 OS를 예로 설명하겠습니다. 안드로이드나 iOS 의 소스를 일반인에게 공개하는 이유는 일반인들이 신규 어플을 만들면 안드로이드와 iOS를 만든 구글과 애플이 더 큰 돈을 벌기 때문입니다. 카카오톡, 트위터, 페이스북을 통해 사람들은 자신의 주장과 사진 등을 공유하며 SNS를 즐깁니다. 이는 카카오톡, 트위터, 페이스북이 돈을 벌게 해주는 생태계를 말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3D 프린터의 보급으로 인해 3D 데이터를 활발히 이용할 수 있는 시대가 오고 있습니다. 엄청나게 큰 생태계입니다. 책에서 사례를 참조하시면 도움이 되실 겁니다.


프린터가 여러가지 방향으로 응용 가능한 도구라는 점을 강조하시고 아이디어가 더 중요하다고 언급하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스타트업 아이디어를 도출하면 좋을까요?

 

앞서 유사한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자신의 분야에 3D프린팅을 이용하는 게 가장 현명하고 확실한 방법입니다. 아직 3D프린팅이 보편화되어 있지 않기에 이렇게 시도하시면 설사 실패를 하더라도 자신만의 스토리를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남들이 다 가는 길로 가면 실패를 해도 얻는 것이 없습니다. 실패를 하라는 뜻이 아니라, 앞서 언급한 해외에서 3D프린팅 산업이 앞서가는 이유처럼 우리나라도 건전한 도전 문화가 발달해야 되겠습니다. 3D프린팅의 생태계가 무르익지 않은 우리나라이기에 작은 시도라도 신선한 시도를 한다면 그 자체로 마케팅이 됩니다. 충분히 무르익어 출혈 경쟁을 하는 분야보다는 성공 확률이 훨씬 높을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끝으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3D프린터를 부담 없이 접해보시기를 권합니다. 너무 어렵게 생각기보다 부담 없이 접하시면 그로부터 좋은 아이디어가 나오고 발전이 있을 것입니다. 간단한 교육을 받은 상태에서 무리하게 스타트업을 하는 것은 사자가 넘실대는 정글로 뛰어드는 것과 같습니다. 3D프린터에 문외한이신 분이라면 체험도 해보시고 만져도 보시면서 접해보십시오. 하나둘 관심을 늘리시다 보면 남들보다 빨리 3D프린팅의 활용을 깨우치실 수 있을 겁니다. 요즘 키덜트들이 많습니다. 프라모델 사서 만들던 분들이 하나둘 3D프린터에 관심을 갖기 시작합니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내가 마음껏 형상을 만들 수 있어서입니다. 물론 모델링 등 어려운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수요가 늘면서 다루기 쉬운 소프트웨어와 무료 공개 3D 데이터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일단 책을 보시고 3D프린터를 접해보시면 가장 빨리 그리고 가장 정확히 3D 프린터를 알아가는 길이라고 감히 자부하면서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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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D 프린팅 스타트업김영준 저 | 라온북
이 책은 국내에 출간된 그 어떤 책보다 실용적이다. 3D 프린터 작동 원리부터 아이디어 하나로 10억을 만드는 돈이 되는 스타트업 아이템으로서의 3D 프린팅까지 3D 프린팅에 대한 모든 것을 알려준다. [3D 프린팅 스타트업]과 함께 가장 넓고 깊은 블루오션인 3D 프린팅의 세계로 들어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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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병일 “의료사고를 막기 위해서는 인문학적 사유가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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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떤 학문이든 완벽한 가르침은 없다. 근대의 분과 학문 체계가 드러낸 한계가 두드러질수록 다양한 학문 간 융합이 절실해지고 있다. 의학도 마찬가지다. 과학기술만 발전하면 인류는 질병에 승리할 수 있으리라는 장밋빛 예상도 있었지만 에볼라 바이러스 등 인류를 위협하는 병은 건재하다. 간간이 발생하는 의료사고 역시 의학이 완전하지는 않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그렇기에 의학에도 주변 학문과의 통섭과 융합이 필요하다. 『의학, 인문으로 치유하다』의 저자 예병일 교수는 그러한 작업을 계속 진행해 온 학자다. 그는 미국 텍사스대학교 사우스웨스턴 메디컬센터에서 전기생리학적 연구 방법을,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의학의 역사를 공부했다. 저자의 관심사에서 드러나듯 『의학, 인문으로 치유하다』는 의학을 역사, 예술, 문화와 사회, 윤리와 법, 첨단과학 등과 관련지어 바라봐야 한다고 말한다. 결국 의학은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학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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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과 인문학을 접목해야겠다고 결심하신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요?

 

학창시절부터 역사에 관심이 많아서 취미 삼아 역사책과 의학역사책을 들여다보곤 했습니다. 17년 전에 교수가 된 후 철학에 관심이 많은 선배 교수님으로부터 “역사나 철학이나 같은 인문학에 속하고, 사람과 인생을 논하는 철학이나 모든 걸 종합하는 역사는 따로 뗄 수 없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공감하면서, 역사라는 작은 분야에서 벗어나 더 넓은 인문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의학은 흔히 과학이라 하지만 이건 틀린 말이고 “과학적 방법을 이용하여 크게 발전한 학문으로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만큼 사람에 대한 공부를 하는 인문학과 사람이 속한 사회학이 함께 어우러진 학문”입니다. 의학과 인문학을 접목한다기보다, 의학과 인문학 모두 공통적으로 사람을 대상으로 하므로 관심을 공유할 수밖에 없는 학문입니다.

 

의학이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학문인 만큼 인간생활과 가까울 수밖에 없지만, 인문학과 나란히 놓고 보면 두 학문은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책을 쓰시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이미 오랫동안 “의학은 과학”이라는 말이 잘못된 표현이라 생각하시는 학자들과 많은 토론을 해왔고,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설명하여 동의를 얻은 바 있으므로 크게 어려운 점은 없었습니다. 근대에 ‘과학(science)’이라는 용어가 탄생한 것은 독립된 학문이 나타나서가 아니라 학문을 하는 새로운 태도에 의해 물리학, 화학, 생물학 등 걸음마 단계에 있던 학문이 크게 발전한 시대상황을 보여줍니다. 고등학교에서 문과와 이과로 구분하여 교육하는 탓에 우리나라에서는 과학을 과학이 아닌 학문과 구별되는 다른 학문처럼 여기는 경향이 있지만  사회과학이라는 표현에서도 볼 수 있듯이 과학은 어느 학문 분야에서나 필요로 하는 학문적 태도를 가리키는 용어로 보아야 합니다. 근대 이후 그 이전과 다르게 관찰과 실험을 중시하는 새로운 학문 태도가 나타났고, 이것이 학문 발전에 큰 기여한 분야에 대해 ‘과학’이라고 한 것이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독립된 학문처럼 잘못 받아들여진 것입니다. 과학 속에도 인문학적 태도가 들어 있고, 인문학이나 사회학속에도 과학적 태도가 들어 있다고 해야 옳은 표현입니다.

 

책에서 프랑스의 의학은 ‘생각하는 의학’이고 영국의 의학은 ‘경제적인 의학’이라고, 여러 나라 의학의 특징을 설명하셨는데요, 한국 의학의 특징과 장단점은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20세기 후반 약 반세기 동안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의 후진국에서 거의 선진국에 들어갈 만큼 경제가 빠르게 발전하다 보니 많은 것들이 아주 역동적으로 바뀌었습니다. 그 결과 우리나라의 의료환경도 많이 바뀌어왔고, 지금도 바뀌어가는 중입니다. 장점이라면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의료에 대한 접근성이 아주 좋다는 것이고, 단점이라면 의사를 한 번 만났을 때 환자가 원하는 만큼 충분한 대우를 받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도래할, 정보기술(IT)을 도입한 의학에 관해서도 많이 얘기하셨습니다. 정보기술을 갖춘 미래의 의학을 앞두고 개인적 또는 사회적으로 유념해야 할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제가 정보기술 전문가가 아니지만 떨어져서 보기에 정보기술은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울 만큼 큰 파급효과를 가진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를 효과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의학 지식과 기술, 의료 행태에 도움을 받는 건 아주 큰 도움이 되겠지만 개인정보 유출에 의해 피해가 발생하는 것처럼 잘못 사용되면 해가 될 수도 있으므로 의학 분야에 도입할 경우 신중하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서 사용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원격진료의 경우 혹시라도 발생할 수 있는 의료사고에 대한 대처법과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지 않고 시작하면 큰 혼란이 일어날 것입니다.

 

의료기술과 이론이 발달하지 않았던 옛날에는 말할 것도 없고 오늘날에도 의료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데요,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또 이와 관련해서 환자 또는 의사가 가져야 할 가장 바람직한 태도는 어떤 것일까요?

 

세상이 발전하면 더 복잡해지므로 사고는 늘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의료사고도 마찬가지입니다. 의료기술이 발전하면 섬세한 기술이 더 많이 요구되므로 인체에 해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아지고, 인권의식이 증가하면서 ‘사고’에 해당하는 일도 많아지는 것은 당연지사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의사와 환자 사이에 존중과 신뢰감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말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생활화가 되어야 합니다. 의사는 진심으로 환자를 위해 헌신하고 있음을 보여주어야 하고, 이런 모습을 통해 환자는 의사를 믿고 따르는 문화가 형성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의학에서 인간 중심의 인문학적 사유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책에서 결핵과 에이즈에 대한 한국 사회의 전반적인 인식과 그로 인한 문제점을 설명하신 부분이 명쾌했습니다. 이외에도 에이즈처럼 오해를 받거나, 아니면 오늘날 의학지식과 기술의 발전으로 새롭게 인식해야 하는 또 다른 병이 있을까요?

 

혈우병은 성염색체 열성유전을 하므로 여성에게는 발생하지 않고 남성에게만 발생한다고 잘못 알려져 있습니다. 2011년에 상영된 영화<통증>에서 여자주인공이 혈우병 환자로 나오자 인터넷상에서 “어떻게 여성 혈우병 환자가 있을 수 있느냐?”며 감독과 작가의 무지를 탓하는 글이 많이 올라온 걸 봤는데, 혈우병은 여성에게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아주 오래전에 혈우병 중 가장 많은 원인인 8번 혈액응고인자 결핍증이 발견되었을 때는 여성 혈우병 환자가 없었지만 혈우병은 8번 이외에 9번과 11번 혈액응고인자 결핍 시에도 발생할 수 있으며, 8, 9번과 다르게 11번은 성염색체가 아닌 보통염색체에 유전자가 들어 있으므로 여성도 혈우병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의학이 발전하여 질병에 대한 새로운 지식이 알려지더라도 일반인들은 이를 잘 알지 못해 오해하는 수가 있는데 의학 분야에 종사하는 분들이 올바른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 더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감기처럼 적은 비용이 드는 질병에 대해서는 보장이 잘 되어 있지만 희귀난치병과 같이 비용이 많이 드는 질병에는 보장이 부족하다는 것이 한국 건강보험제도의 문제점이라고 지적하셨습니다. 이러한 문제의 해결책으로는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결국은 비용 문제입니다. 보험료를 많이 받고 보장을 많이 해주는 게 합당하겠지만, 그러면 보험료 지출이 많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의료보험료를 꼬박꼬박 납부하는 국민의 입장에서는 조금이라도 더 많은 보장을 받기를 원하겠지만 보험을 관리하는 건강보험공단 입장에서는 적절하게 보장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보험료와 의료보장이 어느 정도가 ‘적절’한가에 대해서는 서로 합의점을 찾을 필요가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희귀난치병에 대한 보험료 지급을 늘리고, 많은 이들에게 발생하지만 비싸지 않은 건강 문제에 대해서는 보험료 지급을 줄이는 게 지금보다 더 낫겠다고 생각하지만 다수에게 보장되는 걸 줄이고 소수에게 보장을 하자는 주장을 받아들이려면 정치적 고려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의과대학에서 16년간 생화학교수로 일하시다가 2014년부터 의학교육학으로 전공을 바꾸셨는데, 그렇게 전공을 바꾸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20년 전만 해도 의과대학 내에 의학교육학이라는 부서를 별도로 운영한 학교는 국내에 거의 없었습니다. 의료환경의 변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의학교육에 많은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면 과학 중심의 의학교육에 인문학적 지식과 사유를 함양할 수 있도록 하거나, 강의 중심의 수업에서 벗어나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방법이 도입된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교수생활 초창기부터 인문학에 관심이 있어서 뜻이 같은 분들이 모여 함께 공부할 기회를 가졌는데 이것이 의학교육과정의 변화가 생기면서 새로운 과목을 맡게 됐고 급기야 전공을 바꾸어 의학교육 전반과 인문학 교육에 전념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책에 담긴 여러 분야에 관한 이야기를 보면서 갖고 계신 지식과 관심이 정말 다양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최근에 가장 관심을 갖고 몰두하시는 일 또는 분야는 무엇인가요?

 

의학을 공부하면서 취미 삼아 역사에 관심을 가진 것이 점점 다양한 분야로 관심이 퍼지나가는 바람에 깊이 있는 공부를 한 것은 아닙니다. 지금도 관심 분야에 경계가 없을 정도로 이리저리 옮겨다니다 보니 한 분야의 지식이 다른 분야로 연결되는 경험을 하면서 ‘융합’ 또는 ‘통섭’이 공부하는 기쁨을 많이 전해주고 있습니다. 요즈음은 과거에 공부를 하다 어려워서 포기한 양자역학과 정보기술에 대한 관심이 커져서 다시 공부하게 되었는데 전보다는 이해가 쉬워져서 또 공부하는 기쁨을 느끼고 있습니다.

 

연세대학교 원주의과대학에서 의학도들을 길러내고 계시는데, 미래 의사를 꿈꾸는 의학도들과 의학 전공을 준비하는 중고생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한마디가 있다면?

 

흔히 의사라면 환자를 돌보는 임상의사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나 요즈음 매스컴에서 의사면허를 가진 의학전문 기자를 흔히 볼 수 있듯이 의사는 환자 한 명을 돌보는 것 외에도 할 수 있는 일이 많습니다. 의사를 꿈꾸는 청소년들은 환자 한 명을 돌보는 의사를 꿈꾸는 것도 좋지만, 의학을 공부한 후 이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얼마나 다양한지에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합니다. 그러면 사회를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질 수 있으며, 자신의 미래를 더 다양하게 그려볼 수 있을 것입니다.

 

 

*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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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 인문으로 치유하다 예병일 저 | 한국문학사
현재 연세대학교 원주의과대학에서 의학도들을 길러내고 있는 저자는 이러한 취지의 일환으로 의학이 지닌 다양한 측면을 소개하면서, 의학이란 학문을 이해하는 방법과 그것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융합과 통섭의 지식 콘서트’ 네 번째 책 『의학, 인문으로 치유하다』는 다양한 분야와 관련된 의학을 소개함으로써 실험실 속에 갇혀 있는 의학이 아니라 무엇보다 인간 삶에 밀착된 의학이란 학문을 좀 더 가깝게 느끼도록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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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신중현 산울림 한국 록을 사랑한 양평이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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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오는 일을 할 뿐”이라는 대답이 묵직하고 산뜻하게 돌아왔다. 양평이형은 정말로 ‘계획이 없었다.’ 한국에서 록을 하며 산지 20년인데,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무어냐는 질문에 “여전히 계획하지 않는 것이 저의 계획”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간결하고 진정성 있는 답이었다. 그 답에 매료돼, 어디서 비슷한 질문을 받는다면 그런 답을 내놓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말았다.

 

“여흥 수준”으로 시작해 강한 인상을 남겼던 밴드 ‘곱창전골’부터 ‘장기하와 얼굴들’로 활동을 하기까지, 하세가와 요헤이(양평이형)의 한국 록 사랑은 그대로 그의 삶이 되었다. 신중현, 산울림을 듣고 충격을 받아 무작정 한국에 왔고, 밤새 술을 마셨어도 눈을 뜨면 청계천으로 가 오래된 음반들을 뒤졌다. 숨겨진 음반을 찾아냈을 때는 전율했다. 김추자, 펄시스터즈, 장현부터 다섯손가락과 팝송, 키보이스, 히식스, 김태곤 등 다 나열하기도 어려울 목록들이 그렇게 쌓인 음반들이다. 그저 좋아하는 일을 묵묵히 하다 보니 자신의 영웅을 만나고, 함께 음악을 하고, 음악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양평이형의 록 스피릿이랄까, 그가 삶을 대하는 태도는 어딘지 독특하지만 참 매력이 있었다. 

 

불안했으리라. 이 길이 맞는지 왜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겠나.


“그래서 멀리 가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지름길이었다는 생각을 해요. 때문에 그때의 나에게도 지금 그대로 하면 된다, 너는 이대로 하면 언젠가 지금 음악을 듣고 있는 그 형님들과 만나게 될 것이다, 라고 이야기를 해주고 싶죠.”
이것이 그의 진심이다. 앞으로도 이대로 살고 싶은 굵직한 이유다.

 

양평이형이라는 이름으로 대중에게 알려진 건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 그러나 그의 역사는 꽤 깊었다. 『고고! 대한 록 탐방기』는 그의 역사에 대한 증명이자, 그가 안내하는 한국 록 이야기다. 음악을 사랑한, 누구보다 삶을 사랑한, 양평이형의 ‘한국 록 탐방기’, 그가 들려주는 김양평의 흥미진진 “인생사 중간보고”가 차곡차곡 쌓여있다.


하세가와 요헤이가 양평이형이 되기까지


먼저 일본에서 책이 출간되었다고 들었습니다. 한국에도 책을 소개하게 되셨는데요. 소감이 남다를 것 같습니다. 서문에서 ‘인생사 중간보고’라고 표현하기도 하셨어요.


이 책을 내고 나서 잊고 있던 사실을 생각하게 됐어요. 일본판을 다시 봤는데 소울스케이프의 마지막 한 마디가 이렇게 쓰여 있었어요. “이런 책이 한국에도 나왔으면 좋았을 텐데.” 그걸 딱 보니까 뭔가 이어갔다는 느낌이 들어서 ‘이 책은 이런 운명이었나 보다.’라는 생각을 좀 했어요. 일본에서 냈을 때 했던 마지막 한 마디가 한국판에 대한 예고가 됐었다는 그런 생각을 했어요.

 

원래 책으로 내려는 기획은 아니었던 것 같던데요?


그렇죠. 처음에는 오오이시 씨가 다른 책 때문에 오셨던 거예요. 한국 인디에 대한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아는 분을 통해서 연락이 왔었어요. 그때 오오이시 씨와 부인을 만났어요. 부인이 사진 찍으신 분이고요. 거의 가족들이 만든 책 같은 느낌인데요.(웃음) 그렇게 해서 인터뷰, 촬영을 마치고 술 마시러 갔는데요. 술 마시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더니 하는 얘기가 ‘너무 재미있다, 이런 얘기를 담은 책이 나오면 좋을 것 같다’고 했어요. 사실 저는 그냥 있던 일이고 아마 재미없을 거라고 했어요. 책 얘기도 그냥 술자리에서 나온 얘기인 줄 알았었거든요. ‘나중에 하죠.’이러면서요. 그런데 몇 달 있다가 구체적인 안이 왔어요. 그때부터 책을 내는구나, 생각했었죠.

 

오오이시 씨도 음악에 대한 지식이 굉장히 많으신 것 같더라고요.


이 분은 일단 음악을 좋아하고요. 아시아권 음악을 굉장히 좋아해요. 영미권 음악은 당연한 거지만 제3세계도 그렇고, 브라질 이런 쪽도 좋아하세요. 그런 의미에서도 신뢰가 갔던 부분이 있어요.

 

각주를 보니 ‘김양평’이라고 적어두셨던데, ‘하세가와 요헤이’와 ‘양평이형’ 둘 중 어느 이름으로 불리는 게 좋으세요? 사실 ‘하세가와’라는 이름을 한국에서는 많이 모르기도 한데요.


만약 편하게 부르는 게 ‘양평이형’이라면 저는 둘 다 상관없어요. 신경 쓰고 그러는 것보다 편하게 부르는 게 제일 좋죠.

 

‘김양평’에서 ‘김’은 어디에서 온 거죠?


김창완 선생님이요. ‘하세가와’를 한자로 쓰면 ‘長谷川’이잖아요. 그래서 처음에 ‘장양평’이냐, ‘하양평’이냐 이런 얘기를 했었어요. 그때 김창완 선생님이 “당연히 ‘김’이지.” 하셔서 ‘김양평’이 된 거죠. 그런데 지금은 ‘김양평’이라고 쓰는 것보다 ‘양평이형’이라고 훨씬 많이 아시니까요. ‘김’이고 ‘이’고 간에 ‘양평이형’이 되었으니까요(웃음). 그러면 그렇게 해야죠.

 

‘김양평’이라니, 산울림에 대한 애착이 느껴집니다. 또 산울림이 형제 밴드이기도 하니까요. 산울림 밴드에 참여한 것이 스스로에게 무척 의미 있는 기간이었을 것 같아요.


그렇긴 하죠. 책에도 썼지만 그것을 작정하거나 예상하거나 그렇게 해서 한국에 온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더욱 그렇죠. 이만큼도 예상한 것이 아니었어요. 뭐라고 할 수 없는데, 저로서는 참 있을 수 없는 일이었어요.

 

항상 동경했었고, 그 음악을 들으면서 지냈던 입장에서 그들과 함께할 수 있게 된 그 순간의 전율이 읽는 사람에게도 느껴졌어요.


처음에는 감이 안 왔어요. ‘내가 할 수 있을까?’이런 것보다 ‘왜 나한테?’라는 생각, 이게 어떤 건지 아예 감을 못 잡았어요. 이건 무슨 의미일까? 한참 고민했어요. 과연 내가 해도 될까, 이러면서 말이에요. ‘하는 거야, 안 하는 거야?’ 라고 물어서 ‘당연히 하죠.’ 라고 답했고, 그렇게 하게 됐어요. 선곡표를 받았을 때가 가장 마음에 와 닿았던 것 같아요. ‘와! 이 노래들을 하는 거야? 이 노래를 연주하는구나.’ 이런 생각을 했죠.

 

막상 산울림 밴드로 참여하실 때는 그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오는 어려운 점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선배라고 하기엔 좀 더 나이가 많으시고 하니까요. 그런 면에서 신경을 많이 썼죠. 선생님이시기도 하고요. 편하게 뭔가를 말할 수 있고 그런 건 아니었고요. 다만 여기서 나를 보여주자, 나를 보여주기 위한 자리다, 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김창완 선생님 손이 두 개뿐이니까 세 번째, 네 번째 손이 되는 정도의 역할이라 생각하고 시작했었죠.

 

멀리 가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지름길이었다


한솥밥 먹는 한국 문화에 위화감이 없었다고도 하고, ‘계획을 세우면 계획에 지기 쉽다’(32쪽)고도 하신 것을 보면 삶에 대한 태도가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산울림 밴드에 참여하시면서 가졌던 생각도 같은 맥락인 것 같고요. 예민하지 않은 편인가요?


그때는 예민했었죠. 저는 사실 예민한 사람이 맞는데요. 지금에 와서 그때 나를 생각하면 어렸구나, 하고 생각하게 돼요. 자존심으로도 부딪치고, 싸우기도 하고 그랬거든요. 친구든 여자 친구든 말이에요. 지금은 이상하게 상대가 왜 화를 내는지, 뭐가 불만인지 보이는 것 같아요. 그래서 어른이 됐구나, 생각하게 돼요. 아직 완전한 어른이 되지 못했다고 느끼는 순간도 있어요. 상대가 왜 그렇게 느끼는지 내가 알고 있다는 걸 그대로 말해버리는 거예요. 너는 이래서 화가 났구나, 이런 식으로 말을 하면 당연히 더 화가 나잖아요. 그걸 참고 있어야 하는데 그걸 아직까지(웃음). 보면 왜 화가 나거나 싸우는지 하는 걸 알 것 같아요. 아직 어려서 불타고 있구나, 이런 생각도 해요. 자신이 없구나, 라는 생각도 하고요. 희한하게 언젠가부터 자신이 생기고 인생을 즐겁게 살자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진짜 즐겁게 살자, 이런 말하기 정말 싫지만요.

 

왜 싫으세요?


그걸 굳이 말을 해야 하나? 싶어져요. 괴롭게 살기 위해 사는 거 아니잖아요. 당연히 즐겁게 살고 싶어서 사는 거니까요. 계획을 세우는 것도 그렇고, 이런 말하는 것도 그렇고, 무엇을 하자, 무엇을 합시다, 이런 건 적어도 저에게는 좀 안 맞아요. 여러 가지 면에서요. 해야 할 때는 당연히 해야죠. 그런데 너무 강박감을 주거나 받는 건 별로 안 좋아요. 

 

결국 좋아하는 것을 끝까지 밀고 가 삶으로 꾸리게 되셨잖아요. 내공도 대단하신 것 같고요. 계획도, 예상도 못한 일들이었다고 하셨고, 오히려 목표했다면 이르지 못했을 거라는 이야기도 하셨는데 다시 어렸을 때로 돌아가도 그때와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


내공이 대단하다고 하셨지만 내공이 정말 대단하면 지금 아내가 있겠죠.(웃음) 저도 아는 거예요. 그런 역량이 없기 때문에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포기해야 된다는 생각을 해요. 한 가지를 추구했다는 건 정말 좋은 이야기지만 다른 것을 버렸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것까지 욕심을 냈다면 기둥이 흔들렸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만큼밖에 역량이 없다고,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생각했던 거예요. 특히 젊었을 때 그랬어요.


한국에 감사할 일이 있다면 제가 이곳에 와서 정말 어른이 된 거예요. 제가 좋아하는 밴드가 있는 런던, 뉴욕, 혹은 리버풀에 있는 비틀즈를 생각하면 그곳은 너무나 높은 산이고 너무나 높은 별들이에요. 당연히 그곳까지 갈 수 없고, 인공위성을 탈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했을 때, 내 길을 가야한다고 생각했어요. 높은 산을 올라가는 것도 좋지만요, 조금 창피하더라도 자기의 산을 쌓아서 보여줄 입장이 되는 게 조금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해요. 좋게 말하면 선택한 거고, 나쁘게 말하면 포기한 거죠. 좋은 뜻의 포기를 한 거예요. 그러다보니 희한하게 그쪽에서 다가와요. 런던에 정말 좋아하는 밴드가 있었는데 그 분과 만나게 되고, 얼마 전에 런던에 갔을 때는 같이 밥도 먹고, 음악에 대해서도 가족처럼 얘기를 하게 됐어요. 뉴욕에 있는 밴드와 얼마 전에 함께 공연도 했고요. 과연 그것을 목표로 런던이나 뉴욕에 무작정 가서 음악 활동을 했다면 만날 수 있었을까? 그런 생각을 오히려 지금 하게 됐어요. 멀리 가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지름길이었다는 생각을 해요. 때문에 그때의 나에게도 지금 그대로 하면 된다, 너는 이대로 하면 언젠가 지금 CD를 듣고 있는 그 형님들과 만나게 될 것이다, 라고 이야기를 해주고 싶죠.

 

참 부러운 삶이에요. 의도하지 않았지만 가던 방향대로 가다 보니 모두 그곳에서 만난 거잖아요.


그렇죠. 거기 있는 걸 누가 알았겠어요? 그래서 거기 갈 때까지 너무나 괴로웠죠. 계단을 하나씩 올라가면서도 어디까지 올라가야 하며, 계단 중간에는 무엇이 있을 것이며, 하는 것들이 도무지 예상이 안 되는 거예요. 이 계단이 맞는지도 알 수 없고, 산꼭대기가 있는지도 모르겠고요. 그냥 계단을 올라가는 수밖에 없었어요. 그게 물거품이 될 수도 있는 거였죠. 하지만 어느 순간 지나온 곳을 돌아보니 좋은 경치도 보이고, 이렇게 높이 올라 왔구나, 느끼게 됐어요. 아래를 보며 올라가는 거예요. 그게 계획 없는 삶이죠. 계획 있는 사람들은 위만 보며 올라가는 거잖아요. 어느 정도 가면 무엇이 보일 것이고, 거기에 가면 밥을 먹을 수 있을 거고, 쉴 수 있을 거고, 할 텐데요. 저는 정말 아래만 보고 넘어지지 않게 올라가는 거였어요.

 

위만 보고 오르다가 계획했던 것이 나오지 않으면 더 지칠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럴 수도 있죠. 위를 보면 기대를 하니까요. 그런데 밑에만 보고 올라가니까 갑자기 이런 곳이 있었네? 쉬었다 가자, 할 수도 있는 거고. 이쪽에 지름길이구나, 이럴 수도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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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인디밴드만의 개성


1995년 처음 한국을 찾았다고 하셨는데요. 당시는 경제 호황기였고 지금과도 분위기가 많이 달랐을 것 같습니다. 책에서도 변화에 대한 아쉬움 같은 걸 느낄 수 있어요. 무엇이 가장 아쉬운가요? 또 아직 변하지 않은 소중한 것이 있다면요?


시대 흐름 따라 달라지는 건 어쩔 수 없어요. 지금 홍대를 보고 그때가 더 좋았네, 이런 식으로 아저씨처럼 말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그때 홍대도 좋았죠. 하지만 지금도 나쁘지 않아요. 다만 정보가 많아져서 여러 가지 공부나 노력 없이 조금 더 쉽게 하는 것 같긴 해요. 쉽게 하는 걸 좋다고 생각하기도 하는데 저는 그렇지는 않은 것 같거든요. 쉽게 하면 쉽게 포기하게 되기도 해요. 96, 97년 인디음악을 들었을 때 그런 노력이 보였어요. 정보가 없기 때문에 더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정말로 자신의 작품에 자기를 표현하려는 노력을 더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나온 음반들이 정말 개성 있었어요. 지금은 세계 각국의 인디밴드 중에 한국 인디밴드, 이렇게 됐지만 그때는 정말로 세계 어디에도 없는 음악이었어요. 왜 이렇게 음악이 나왔지? 하게 만드는 그런 한국 인디밴드만의 개성이 강하게 있었어요.

 

그런 개성이 아마 한국 록에 매료되었던 이유가 아닐까 싶어요.


정보가 아니라 예상해서 만들었던 부분이 많았던 것 같아요. ‘이렇지 않을까?’라는 부분. 그것이 사실 창작이잖아요. 정보를 얻어서 하는 건 창작이 아니잖아요. 이렇지 않을까, 그래야하지 않을까, 하는 부분에서 창작이 일어난 것 같아요. 인디 문화뿐 아니라 그 당시 그 특이한 감성이 곳곳에 있었어요. 책에는 안 썼는데 ‘편의방’이라는 것도 그렇고요. 편의방이라는 게 있었는데요. 당시에 12시 이후에는 술을 팔면 안 됐어요. 불법이었죠. 술을 편의점에서 살 수는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넓은 공간을 얻어서 구석에 편의점을 만들었어요. 나머지 공간에 의자와 탁자를 놓고요. 편의점에서 술을 사서 그 옆 탁자에서 먹는 거예요. 그러면 법에 걸리지 않는다, 이런 거죠. 그런 게 상상력이잖아요. 정보에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이렇지 않을 경우는 이렇게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이렇게 하면 괜찮지 않나? 하는 짐작으로 말이에요.

 

아쉬운 것으로 ‘우짜집’을 말씀하실 줄 알았는데요.


아, 우짜집 좋아요. 문을 닫은 이유는 모르지만 노부부가 운영하셨었는데, 새벽까지 영업하니까 아무래도 부담이 되지 않았을까 해요. 거기 참 맛있었어요. 또 처음에 한국 왔을 때 깜짝 놀란 게 있었는데요. 여자분들 입술이 다 시커멓던 거였어요. 어디에도 없는 화장이었어요. 그게 또 인상적이었죠. 그것도 한국만의 창작이 있었겠죠. 압구정 가면 오렌지족이 있었고 그랬었으니까요.

 

한국을‘펑크가 태어날 만한 나라’(108쪽)이라고 하셨어요. 어떤 면에서 그렇게 느끼셨나요?


그런 창작 때문에도 그럴 수 있고요. 사람 안에 뭔가 폭발할 만한 느낌이 있었어요. 억압이라고 해야 할까요. 예를 들어 나라 시스템이나 사람, 인간관계의 어려움 같은 건 어느 나라나 있겠지만 특히 한국은 그런 느낌이 강했어요. 사실 12시 이후에 술을 마시면 안 된다는 것만으로도 그렇고요. 듣기로 그 전에는 나가면 안 된다는 법도 있었다고 하던데 말이죠. 억압이 생길 수밖에 없는 거잖아요. 그래서 ‘펑크가 태어날만한 나라네.’라고 생각했었던 거죠. 위에서 안 된다고 하면 밑에서는 그러면 하겠다, 하는 반발심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 반발심이 또 펑크니까요.


일본은 뭐든 해도 됐었죠. 밴드만 해도 60년대, 90년대 이렇게 밴드 붐이 있었어요. 보통 밴드면 부모님들이 반대하잖아요. 돈도 안 되고, 하지 마라, 하는 게 보통인데요. 90년쯤에 일본에 아주 큰 밴드 붐이 있었는데 그게 가능했던 건 그 세대의 부모 세대가 1차 밴드 붐 세대였기 때문이었어요. 자식이 기타를 치고 밴드를 하겠다고 해도 해라, 나도 했었다고 허락하는 분위기가 있었던 거죠. 한국은 그렇지 않잖아요. 밴드는 돈도 안 되고, 군대 다녀오면 취직 생각하고, 돈 벌어서 살아라, 이런 건데요. 이런 것들도 여러 가지 펑크가 태어날만한 나라의 이유기도 하죠. 밴드 한다는 자체가 반발심을 만들어주는 그런 게 있으니까요.

 

최근 ‘응답하라’시리즈 나 무한도전의 ‘토토가’처럼 1990년대를 재조명하는 문화적 분위기가 많이 있잖아요. 양평이형의 『고고! 대한 록 탐방기』 역시 시기가 비슷하게 겹쳐요. 하지만 이 둘 사이에는 간격이 조금 있습니다. 록에 대한 낮은 관심이 아쉽기도 하실 것 같아요.


록은 지금 어느 나라를 가도 메인 스트림이 아니죠. 그걸 인정하고 가야 하는 거니까요. 록이 메인 스트림이었던 60년대 중후반은 다 사라진 거고요. 70년대 말까지 펑크가 있었고 그때만 해도 중심이었지만, 그곳에 산업이 들어가고, 빌보드 차트나 MTV가 들어가면서 록이 밀려나게 되는 셈이고요. 전통적인 록이 그때부터 사라지게 된 거니까요. 그런 시대 흐름을 봐서도 록이 지금 시대에 대세는 아니 게 확실하고, 그걸 알면서 하는 거예요. 이걸로 많을 걸 보여주고 싶다거나 메인 스트림으로 다시 어떻게 하겠다, 이런 게 아니라 이런 세계도 있다는 걸 확실히 남겨야 하지 않느냐는 거였어요. 저는 90년대에 한국에 있었지만 당연히 모든 면에서 얘기를 더 잘할 수 있는 건 한국 분들이에요. 그러면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고 한 게 이 책이었거든요. 저는 직접 기타를 치고 같이 어울려서 여기까지 왔기 때문에 평론가와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이 있었고요. 구멍이 있었던 거죠. 그 구멍을 메울만한 책을 낸다는 그런 차원이었어요.

 

앞서 잠깐 언급하셨지만 책 후반부에 실린 소울스케이프와의 인터뷰에서 디스크 가이드북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나왔었는데요. 이 책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신건가요?


한국에서 내는 것보다 일본에서 낸다는 것을 먼저 생각했었으니까요. 한국에 어떻게 알린다기보다 일본 사람들이 한국의 록이 뭔가, 했을 때 이런 일들이 있었고 이런 움직임이 있었다, 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어요. 지금 K-ROCK이라고 하면 K-POP 안에 있는 K-ROCK을 먼저 접하게 되고, 흥미 있는 사람들이 인터넷을 뒤지면 들을 음악을 찾을 수 있잖아요. 그러나 인터넷에도 없는 정보들, 어떤 움직임이 있었는지에 관한 역사를 조금이라도 알고 싶을 때 가이드가 될 수 있을만한 책이면 좋겠다고 해서 만든 게 저희 책이라고 보시면 돼요. 출판사 쪽에서도 아주 많이 팔리지 않아도 한국 록에 흥미가 있는 사람이 꼭 사게 되는 책을 만들게 된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었어요.

 

그도 그럴 것이, 요즘 유튜브에 들어가면 원하는 음악을 얼마든지 들을 수 있잖아요. 하지만 어떤 음악을 검색할 것인가 하는 부분에 대한 정보는 다시 필요하니까요.


한국 친구들이나 한국 분들보다 일본인이 봤을 때 한국 록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 앞에 제가 생각하기에 이런 부분이 많았고 이런 면이 있었다는 것을 제시하고 싶었던 것뿐이에요. 어떻게 보면 저는 외부 사람이 아니잖아요. 한국에서 록을 하는 사람으로서 일본에서 조금만 알고 오해가 될 만한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그렇지 않다, 이런 것이다.’ 라고 제시하기 위해 낸 것도 있어요. 오해하지 말라는 뜻도 있었거든요. 다른 사람이 잘 모른다고 해서 조금만 알아도 적당히 쓰는 사람 많거든요. 그런 것들이 싫었어요. 그것이야말로 한국에서 밴드를 하는 사람으로서의 자존심이라고 할 수 있죠. 내가 이렇게 해왔고, 내가 직접 봤는데 네가 뭐라고 말할 수 있냐, 하는 책이라고 해야 할까요. 외부사람들, 어떤 평론가가 이러이러하다고 쓴 것에 ‘아니다, 너는 직접 보지 않고서 그런 말 하지 말아라.’ 라고 말할 권리를 얻을 수 있는 명함이자 증명서 같은 게 이 책이라고 생각해요.

 

신중현과 엽전들 1집!


어려운 질문이겠지만, 가장 좋아하는 앨범이 있다면요?


어려워요. 그건 진짜 어렵네요.

 

정말 많이 들었던 앨범은요?


그래도 고르자면 ‘신중현과 엽전들 1집’이 아닐까요? 처음에 제일 충격을 준 음반이었으니까요. 제가 지금까지 한국에 와서 지냈던 20년의 입구라고 해야 하나, 뿌리라고 해야 할까요? 처음 한국에 이런 록이 있더라 해서 카세트 테이프를 재생했을 때 나온 노래가 ‘미인’이었어요. 이게 뭐지? 라고 생각했던 게 이 노래였어요. 그 카세트 테이프 A면 첫 곡이 ‘미인’이었고 B면 첫 곡이 산울림의 ‘아니 벌써’였어요. 그것도 충격이었어요. 어떻게 보면 가장 진한 정수가 있었던 부분이에요.

 

첫 밴드 ‘곱창전골’이야기가 궁금해요. 이름은 어떻게 지으신 거예요? 

 

제가 리더가 아니었기 때문에 잘 모르지만요. 당연히 한국은 불고기나 갈비가 유명하다고 알려져 있어요. 곱창전골의 리더가 되는 그 사람이 한국에서 갈비를 시켰는데 그곳이 곱창전골이 맛있는 곳이었나 봐요.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 빨간 국물이 있는 음식을 먹고 있더래요. 물어봤더니 저것은 곱창전골이라고 했어요. 아, 다들 이렇게 먹는 것을 보니 한국인들이 곱창전골을 그렇게 좋아하는구나 했던 거죠. 일본에서도 갈비, 김치, 비빔밥 이런 것들은 다 알고 있었지만 곱창전골이라는 건 모르는 거였어요. 낯설었죠. 이걸 이름으로 지으면 좋겠다고 해서 정했던 것 같아요.

 

곱창전골의 한국 공연을 둘러싼 극적인 이야기가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그때 이야기를 좀 더 해주세요.


 

저희도 조심성이 없었던 게 관광비자로 그냥 왔어요. 공연장 관계자도 편하게 생각했던 거고요. 한국 록을 한국말로 노래하고, 아무리 일본인이라고 해도 아마추어고, 뭐가 문제냐 했던 거예요. 매상이 생겨봤자 얼마 되지 않았고요. 전단지 같은 걸 붙여서 압구정에서 공연한다는 사실을 알렸죠. 그런데 공연 리허설 직전에 전화가 온 거예요. 일본 밴드가 공연을 하느냐, 안 된다, 만일 하는 경우에는 모두 추방시키고 가게 영업 정지를 시키겠다, 했던 거예요. 일본 아마추어가 우리말로 노래하는데 뭐가 문제냐? 한국 밴드곡을 커버하는데 왜 문제냐? 물어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허락을 받지 않은 이상 법적으로 그렇게 된다, 통보를 받았죠. 가게 주인이 여기까지 왔는데 너무 미안하게 됐다고 했어요. 그런데 저희는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실망하지 말자고 생각했었어요. 기왕 여기까지 왔으니 가게 점원들 앞에서 연주나 하자, 고 리허설을 했죠. 리허설을 들은 가게 주인이 연주가 좋다며 꼭 보여줘야겠다면서 고민을 하더라고요. 결국 영업을 안 하고, 불을 끈 상태에서 공개 리허설 형태로 공연을 한 거예요. 돈도 안 받고요, 부를 사람만 부르고요. 그렇게 했죠.

 

일본에서도 그 일이 많이 알려졌다면서요?


그 일이 있고 도쿄에 있는 한인 타운에 가서 식사하러 갔는데, 거기 주인이 괜찮냐고, 너무 고생하셨다고, ‘정말 대단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면서요?’ 하는 거예요. 왜냐고 물었더니 온갖 신문에 소식이 나왔다는 거예요. 일본 밴드가 한국에 가서 공연 하면 안 된다 하는 일이 있었다고요. 저희는 그때 알게 됐어요. 오히려 그게 선전이 됐죠. 이런 밴드가 있었다고요.

 

곱창전골의 가장 반응이 좋았던 커버곡은 무엇이었나요?


유명한 노래들이죠. ‘미인’이나 ‘아니 벌써’나 ‘커피 한잔’같은 곡들이요. ‘님은 먼곳에’이런 노래들 연주하면 사람들이 다 좋아했어요.

 

여러 밴드에서 수많은 공연을 하셨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이 있나요? 책에서 언급한 SBS 기쁜우리젊은날 공개방송 일화가 아찔하지만 기억에 남을 것 같은데요.


그날은 정말 망한 날이죠. 놀이 기구를 타고 나서 정말 힘들었어요. 보기에는 전혀 문제가 없어보였는데 옆으로 도는 놀이기구, 그게 엄청 났어요. 처음에는 힘으로 이기자고 해서 버텼는데 어느 순간부터 끈이 완전히 끊어진 거예요. 너무 기분이 안 좋아지고 계속 어지러운 거예요. 김C는 왜 그러냐고 하고요. 기타줄까지 끊어져서 나비효과라는 친구한테 그것도 너무 미안한데 기타를 빌려서 연주했는데, 기타도 익숙하지 않아서 잘 못했죠. 너무 힘들었어요.

 

계획하지 않는 것이 계획


책에 수록된 사진들이 재미있어요. 주로 거리에서 찍으셨던데요. 재미있는 일이 많았을 것 같아요. 하루에 다 촬영 하신 거죠?


그래서 다 같은 옷을 입고 찍었어요.(웃음) 오오이시 씨가 얼마 못 있어서 사진은 하루 만에 다 끝냈죠. 인터뷰도 거의 이틀 안에 다 끝냈을 거예요. 굉장히 빡빡한 일정이었어요. 청계천에서 사진 찍고 싶다고 해서 갔는데 오랜만이었죠. 놀랍게도 그때 발견한 게 ‘Runaway’(배철수의 밴드 ‘활주로(Runway)의 오타로 제작된 초기 앨범)’였어요. 뭐가 있었구나 했어요. 정말로 오랜만에 갔는데 ‘Runaway’가 있는 거예요. 진짜 오랫동안 찾았던 건데 말이에요. 가격을 물으니까 만 원만 달라고 하더라고요. 거기 있는 사람은 ‘Runaway’를 모르니까요. 그래서 오오이시 씨에게 얘기했죠. 10년 동안 찾았던 음반을 지금 발견했다고요. 그래서 ‘돌레코드’봉투 들고 찍은 사진이 있는 거예요. 그 안에 ‘Runaway’가 있어요.

 

“전날에 아무리 술을 많이 마셨어도 무조건 아침 9시 전에는 벌떡 일어나 청계천으로 갔습니다”(126쪽)라고 하셨는데, 참 대단한 열정이었던 것 같아요. 아직도 구하지 못한 음반이 있을까요?


돈을 많이 주면 살 수는 있어요. ‘Runaway’도 만 원에 설마 구할 수 있을 줄이야, 생각했었는데. 그건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만요. 가장 흥분했었던 순간이 뭐냐면 ‘GOLDEN GRAPES’음반인데요. 이걸 만 원 정도에 샀어요. 앨범 이름 밑에 ‘즐거운 GOGO 파티’라고 쓰여 있는데 가게 주인 분이 이걸 뽕짝 코너에 두신 거예요. 그쪽에 낡은 판이 쫙 있었거든요. 여기에도 뭔가 있겠지 해서 봤는데 이게 딱 나오는 거예요. 가격을 물으니까 주인이 ‘글쎄, 이건 신중현이니까 비싸’해서 또 비싸다는 말이 나오는구나, 했는데 ‘만 원?’ 하는 거예요. 바로 샀죠.


지금은 비싸게 주고 구해야 하는 음반들이 많아요. 그게 너무 안 좋아요. 음반이라는 게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어야 좋은 건데 말이에요. 오천 원, 만 원 주고 산 사람으로서 그건 안 좋다고 생각해요. 저는 천 원만 주고 사겠다고 하면 한 장 더 가져가 이런 일이 있었는데 지금은 너무 비싸졌어요.

 

리스너로서의 정체성이 가장 강하다고 하셨지만 '사생결단 OST'도 하셨고 여러 가지 다른 역할을 할 기회가 앞으로 점점 많아질 것 같아요.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여전히 저는 오는 일을 하는 것뿐이고, 뭘 하겠다고 하는 계획을 하지 않는 것이 제 계획이기 때문에요. 오는 일을 그냥 하나씩 하고 가는 거죠. 사적으로는 여행을 좀 더 하고 싶어요. 아시아 쪽을 많이 보고 싶어요. 인도네시아나 태국이나 이런 곳을 간 적이 없어서 가보고 싶고요. 그런 것 외에 나머지는 별로 다른 생각 없어요. 지금처럼 살면 될 것 같아요. 저는 갖고 싶은 것도 별로 없고요. 결혼은 어떤 느낌일까 조금 궁금하기도 해요.

 

이제는 좀 여유가 생기셨나봐요.


그런 것 같아요. 남의 인생까지 책임질 수 없다는 생각을 했었죠. 자신이 조금 생긴 것 같아요. 서로 책임질 수 있는 그런 게, 나눌 수 있는 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지금은 해요. 그런 경험을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다른 것을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하고요. 그런데 결혼을 한 사람들은 다 하지 말라고 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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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 대한 록 탐방기하세가와 요헤이(a.k.a.양평이형) 저/오오이시 하지메 편/신혜정 역
이 책은 하세가와 요헤이 개인의 역사이자, 외국인의 시선에서 바라본 1970년부터 2014년까지 ‘한국 록의 역사’이기도 하다. 오랜 시간 현장에서 활동하며 한국 록에 대한 애정을 지켜온 그의 20년, 200여 매에 달하는 희귀한 한국 록 레코드와 양평이형의 논평, 그리고 장기하(장기하와 얼굴들), 김명길(데블스), 신윤철(서울전자음악단) 등 한국 음악계의 개척자들과 나누는 유쾌한 대담도 함께 만나볼 수 있다. 신중현, 산울림부터 장기하와 얼굴들까지. 심장을 뜨겁게 달구는 록의 향연이 이 책에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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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시간과 인내를 겹겹이 쌓아 돌아온 로로스(Lor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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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집< W.A.N.D.Y >는 ‘We Are Not Dead Yet’의 줄임말이다. 1집 < Pax >가 초현실적인 공간을 부유했다면 ‘6년’ 만에 발매된 2집은 현실을 향해 한 발 내딛는다. 환상적인 연주 안에 메시지와 목소리를 담아 하나의 스토리도 만들어 냈다. 시간과 인내를 겹겹이 쌓은 결실은 실제로 한국대중음악상이나 평단에서 독보적인 찬사를 받고 있다. 

 

밖이 밤인지 낮인지 분별할 수 없는 안락한 밴드의 단골집에서 다리를 쭉 뻗고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스케줄 때문에 두 기타리스트는 만나지 못했지만 인터뷰 내내 멤버간의 신뢰와 신념이 느껴졌다. 앨범의 후일담을 들은 후 < W.A.N.D.Y >가 조금 더 선명하고 생생하게 들려온다. 이 놀라운 경험이 당신에게도 꼭 전해지길 바란다.

 

6년 만에 2집이 나왔습니다. 작업에서나 결과물에서나 1집과의 가장 큰 차이점이 있다면요.


복남규 : 1집은 진짜 쓱쓱 만들었던 것 같아요. 스케치 하듯이. 밴드 작업실에서 합주하고선 곡 다듬고 바로 넘기고 그랬죠. 반면 2집을 작업할 때는 재명이가 군대에 가는 바람에 공백이 길어졌고 돌아와서 다시 적응하는 데에도 시간이 걸렸죠. 서로가 다 바빠져서. 대신에 어느 정도 더 디테일하게 작업할 수 있다는 점은 좋았어요. 전과 달리 시퀀싱 작업도 많이 하고요.


작업 기간이 정말 오래 걸렸네요.


도재명 :남규 형이 말했다시피 작업 시간이 많이 걸렸고 의견 조율할 시간도 부족했어요. 작업하다보면 꼭 한명씩 바꿀게 생기잖아요. 그거 교체하다보면 다른 곳에서 또 조정할 게 생기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길어졌죠. 그렇다고 중간까지 해놓고 예전 작업 방식으로 가기엔 상황이 많이 온 상태라 그냥 해야겠구나 싶었죠. 시간을 인내하는 게 제일 힘들었어요.


전작과 달리 가사가 많아졌어요.


도재명 :1집에서는 보컬 녹음이 녹음실 한 프로(3시간 30분~4시간)에 끝났어요. 그 때 가사를 보면 단순하게 영어 단어를 반복하는 경향이 많았고요. 이번에는 의도적으로 그런 걸 피하려 했어요. ‘이젠 가사를 써보자’하고 했을 때는 좋았는데 막상 부르면서부터는 어렵더라고요. 발음이나 소리 같은 측면에 있어서. 내가 노래를 못하는 구나 싶었고요. (웃음) 조언도 많이 구했죠.


남녀 보컬의 역할이나 캐릭터가 있나요? 누가 부를지는 어떻게 나누나요?


제인 : 감으로. 느낌으로. 「U」의 경우는 딱히 의미를 붙인다기보다 순간 캡처의 느낌으로 했어요.

 

도재명 :곡에 따라 다른데 「Monster」는 역할극처럼 보컬 파트를 분배했어요. 제가 약간 자아가 붕괴된 괴물을 연기한다면 제인은 멀리서 지켜보는 역할을 맡았죠.


제인은 주로 초현실적인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복남규 : 목소리 때문에 그런 거 같은데요. 톤이 되게 독특해요. 보컬에 대해 조금 더 애기해보자면 재명이의 그 담담한 창법이 사실은 어려운 보컬이에요. 저게 어느 정도 경지에 올라야 할 수 있는 보컬인데 그건 자기도 알고 있죠. 어렵다는 걸. 1집과 비교했을 때 분명 더 힘들어졌어요. 그 읊조림에 조금 더 판타지의 느낌을 붙여주는 게 제인이에요. 톤 자체가 좋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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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에 분명한 스토리와 구성이 있는 것 같아요. 곡의 배치도 그렇고요?


도재명 :트랙 리스트를 정할 땐 신중해요. 디지털 싱글과는 다르게 앨범은 순서들 그게 있어야 하거든요. 저희끼리 짜놓고 얘기해요. “우리가 이렇게 모여서 춤을 추다가 마지막엔 송가“ 이런 식으로요. (웃음) 첫 트랙 「W.A.N.D.Y」는 멤버들에 대한 얘기에요. 6년 간 각자가 살아왔던 스토리를 음악으로 푸는 게 좋겠다 싶어서 첫 소개, 인트로 격으로 넣었어요. 그러면서 우리가 만나 현실을 얘기하다보니 우울해져서 「춤을 추자」는 맥락으로 빠지죠.

 

「Undercurrent」는 우리를 둘러싼 사회를 비판하다가 「Homo Separatus」는 그러한 비판들을 내면화합니다. 내 속에서 곪은 게 터지는 「Monster」, 다시 이상을 꿈꾸는 「Babel」, 옛 시절을 꿈꾸는 「Homevideo」로 이어지는 전개도 넣었고요. 「Senna」는 죽은 드라이버 아일톤 세나 (Ayrton Senna)에 관한 곡이에요. 관련된 영상물을 보면서 상금, 명예보다는 순수하게 운전을 즐기는 챔피언으로부터 우리가 지향하는 모습을 만났어요. 그렇게 한번 파이팅하고서는 이제 안녕하는 ‘송가’가 나오죠.

 


사회 비판에 대한 얘기를 했는데 이런 가사를 쓰는 데 부담은 없었나요?


도재명 :거창한 발언을 해야지 싶은 마음은 없어요. 사실 저랑 석이만 있어도 그 만남은 사회가 되거든요. 이런 우리의 삶을 이야기하다보니 자연스레 그런 주제를 담은 음악이 나오더라고요. 멤버들끼리 얘기를 하면서도 저절로 이런 저런 이슈로 얘기가 흘러가요. 그렇다고 해서 ‘이런 부분에 있어선 입을 조심해야지’하는 것은 또 아녜요. 받기 싫은 오해를 피하는 정도에서 은유를 하죠. 현재 사회가 욕의 대상이 될 수도 있고 과거나 미래의 사회가 욕의 대상이 될 수도 있어요. 모이면 그런 얘기들을 정말 많이 해요. 격렬하게 얘기할 때도 있고 농담식으로 꺼낼 때도 있고요. 이런 저런 기사들 보다가 웃겨서 같이 웃기도 하고요.

 

복남규 : 사실 제일 웃긴 기사가 정치 기사긴 해요.


「송가」는 왠지 여타의 노래와는 다른 느낌이 나기도 합니다. 개인적인 경험이 많이 묻어나는 느낌이랄까요.


도재명 : 그렇게 들으셨다면 놀라운데요. 사실 「송가」는 입대 전에 개인 앨범을 낼 생각을 하면서 만든 노래에요. 저도 갈 줄 몰랐던 군대에 갑자기 가게 되면서 묻어뒀죠. 한참 뒤에 2집 작업을 하면서 뭔가 작품을 마무리하는 곡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싶었는데 문득 매장해둔 개인앨범 곡들이 생각나더라고요. 애초에 멤버들 생각을 안 하고 썼는데 다시 들어보니 같이 해도 되겠다 싶어서 모두에게 들려줬어요. 그렇게 나온 곡이에요.

 

제인 :다니던 대학교의 교수님께 음반을 보내드렸는데 「송가」를 자주 들으신다고 해요. 최근에 아내가 돌아가신 분인데 곡 들으면서 많이 치유가 된다는 얘기를 해주셨고요. 그 분은 한국어를 전혀 모르는 분이라 신기했죠. 가사라는 게 분명 있지만 음악은 그 자체로도 전달이 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로로스는 악기 하나하나의 밀도가 높은데 합쳐지면 더 좋은 색깔을 냅니다. 밴드간의 화학작용이 잘 맞는 게 아닐까 싶은데요?


김석 : 밴드가 정확히 같은 곳을 보고 있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곡 안에서 각자 어딜 보든 어딘가 보고만 있다면 잘 맞는다고 생각해요.

 

제인 :저는 재명이가 곡을 쓰면 그게 무슨 의미인지 오랫동안 애기하는 시간이 필요해요. 제 시선으로 계속 볼 수도 있겠지만 저는 다른 사람의 시선으로 보는 것도 재밌거든요.

 

복남규 :뼈대 단계에서 서로 시작하는 시점을 같이 두는 건 좋아요. 다만 제 생각과 쟤 생각이 같은 지점에 있다고 생각하진 않죠. 그러면 정말 평범한 음악이 나올 수밖에 없거든요. 자기 개성, 스타일을 살려주는 게 가장 좋아요. 저는 드럼을 맡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메시지를 가장 중요히 생각해요. 2집은 특히 그게 더 중요했어요. 어떻게 흐름을 만들어가겠다 생각을 해놓고 여기에 석이 생각, 제인 생각을 한 층씩 더하는 과정이었으니까요. 그걸 섞는 데에 무게가 크게 쏠렸어요. 어떻게 조율하느냐죠. 재명이가 믹스를 하는 데 고생을 많이 했어요. 팀의 리더라는 자리에서 여러 의견들을 받아들이면서 조그만 부분도 놓치지 않으려 해요. 한 부분을 살리다보면 다른 한 부분은 줄여야하잖아요. 그런데도 재명이는 일단 다 받아놓고 어떻게든소화시키려고 노력했죠.

 

모두의 의견을 받고 그것을 하나로 소화를 시키는 게 오히려 더 힘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자칫 산으로 갈 수 있는 위험이 있기도 하고요?


도재명 : 사실 산도 여러 번 갔죠.

 

김석 : 또 하다보면 나오더라고요.

 

복남규 :예를 들어, 재명이가 막 제대할 때쯤 일이에요. 군에서 딱 나오고 나면 얼마나 음악을 하고 싶은 상태겠어요. 합주하는 꿈을 꿀 정도로. 그런데 군대에서는 듣는 음악이 한정돼 있잖아요. 특히 신나는 음악 많이 찾아듣고. 이번 앨범 곡 중 「춤을 추자」가 원래 버전이 다섯 개가 있어요. 처음엔 펑크였어요. 재명이 제대 후 첫 합주 때 영상을 찍어놓은 게 있는데 그걸 다시 보면 그때 애들 표정이 ‘아 우린 끝났다.’ (웃음) 그러다가 그 곡에 변화가 왔어요. 갑자기 이상한 라틴 사운드가 들어가는 거예요. 네이버 온스테이지 영상에는 그 버전으로 나갔어요. 그거 빨리 지워야하는데.

 

도재명 : 군대에는 아무래도 피아노가 없다보니... 기타만 갖고 들어갈 수 있잖아요. 만들었던 노래들이 죄다 기타 곡들이었어요. 저도 인정 안 하려했는데요. 군대라는 곳의 영향이 있긴 있나봐요.

 

복남규 : 정말 기대 많이 했었는데. 제인도 오래 기다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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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같은 경우는 현대음악작곡을 전공했는데.. 밴드 음악을 하는 게 어렵지는 않았나요?


제인 : 개인적으로 어려운 부분도 있고 스스로 적응해야할 부분도 있어요. 대학교 때 트리오를 했었는데 1년 동안 한 곡만 연습하더라고요. 그것도 두 시간 동안 한 마디만 연주하는. 사실 클래식 음악에서는 현악기 하나에 붙는 소리가 그리 많지 않거든요. 게다가 트리오에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만 있다 보니 소리 자체보다는 프레이징 같은 것들에 대해 집중을 많이 했죠. 그런데 밴드를 하다보면 한두 악기의 톤 변화에 다 같이 맞춰야 하잖아요. 소리가 얼마나 드라이한지 아닌지. 그런 부분에서는 많이 복잡함을 느꼈죠. 처음엔 나무 첼로를 쓰면서 생기는 하울링서부터 미안했어요. 게다가 합주도 합주지만 저는 미국에서 자라 왔다보니 한국 문화에 조금 어색한 게 있더라고요. 그 쪽 사람들이 그런 것처럼 저도 처음에는 직설적이었는데, 밴드를 거치면서 멤버들한테 참을성을 많이 배웠어요.

 

도재명 : 처음에는 첼로라는 악기에 대한 이해도가 막연하다보니 힘든 점이 많았어요. 그냥 현악기가 쓱쓱 그려줬으면 좋겠다 싶어서 합주했더니 시작서부터 첼로에 마이킹이 안 되는 문제에 마주쳤어요. 서로 힘들었죠.

 

복남규 : 밴드를 하면서 다들 많이 성장한 것 같아요. 다들 성격이 있는 친구들이에요. 그러다보니 사이에서 트러블도 많이 있었죠. 저는 사람이 하고 싶은 말을 쉽게 하는 걸 잘 못 보는 스타일이거든요. 그 때마다 화도 많이 냈어요. 저만 생각하기도 하고요. 쭉 살아오면서 그런 문제로 끝났던 밴드를 돌이켜 생각할 때면 아쉬워요. 내가 왜 그랬을까 하는 마음에. 저도 그렇고 다른 멤버들도 그렇고 많이 자랐어요. 이렇게 길게 밴드 하는 건 다들 처음이에요.


전작의 마스터링을 미국에서 진행했는데 이번 앨범의 믹싱과 마스터링은 국내 엔지니어가 했네요?


도재명 : 오혜석 엔지니언데 거의 또 다른 멤버라고 생각할 정도로 신경써주고 얘기도 많이 해줬어요. 저희가 했어야하는 부분을 해주기도 하고. 계속 전 사운드를 전담해주는 엔지니어의 필요성에 대해 얘기해요. 외국 밴드들 보면 그렇게 같이 작업하는 사람이 꼭 있잖아요. 혜석이 형은 정말 든든해요. 스튜디오에서는 무조건 따르게 되고요. 정말 고맙다고, 이 지면을 통해 강조해서 얘기하고 싶네요. 사랑한다고.

 

김석 : 음반 받고 조그마한 스피커로 틀었는데 처음에 탁 듣자마자 엔지니어 해준 혜석이 형이 떠오르는 거예요. 바로 문자 보냈죠. 고맙다고. 저는 또 배우기도 많이 배웠어요. 이제는 귀찮을 거예요. 볼 때마다 막 이것저것 물어보니까.

 

제인 : 편안했어요. 녹음할 때와 믹싱할 때의 느낌도 비슷했고요, 이런 저런 생각을 많이 할 수 있게 코칭도 많이 해줬어요. 아이디어도 여러 번 내줬고요.

 

복남규 : 그런데 인간미가 없어요. (웃음) 집에서 녹음 생각하다가 자기 얼굴에 왁스 바르고. 심지어 잘생기기까지 했어요. 휴머니즘이 제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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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프랑스 칸에서 열리는 음악 박람회 ‘미뎀(MIDEM)’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해외 활동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요.


도재명 :고맙게도 알아봐주시고 같이 일해주시고 연락해주시는 분들이 많은데 올해는 사정 때문에 미루기로 했어요. 많이 아쉽죠.

 

복남규 : 뉴욕 CBGB 놀러갔던 형이 얘기해주는데 세팅 시간이 한국보다 훨씬 빠르다고 해요. 그만큼 체계가 잘 잡혀있는 곳이죠. 각자 드럼 셋도 갖고 다니고요. 잘 발전된 시장에 나가려는 것만큼 준비가 더 필요하지 않겠나 싶어요. 장비도 포화상태에요. 심지어 재명이는 건반을 세 대나 써요. 맥북에 따로 쓰는 장비들도 있고. 이제는 자기가 하나로 정리한대요. 그런 날이 빨리 오길 기대해야죠. 사실 처음 재명이를 앞에서 보면 장비들 때문에 위압감이 느껴지긴 해요. 그런데 보컬이잖아요. 상단 건반 때문에 얼굴이 안보여요. 돈 생기면 악기에 올인하니까. 이제 좀 어려운지 정리하려나 봐요. (전원 웃음)


로로스가 데뷔한지도 10년이 되었습니다. 오랜만에 인디씬에 돌아온 느낌은 어떤가요?


도재명 :저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밴드를 시작해서 일찍 홍대에 오게 된 셈이에요. 그때랑 중간 시점이랑 다르고 중간 시점이랑 지금의 홍대랑 또 많이 달라요. 일단 시스템에서 많이 차이를 보이죠. 이건 홍대 뿐 아니라 음악 시장 전체가 그래요. 이번에 음반 내면서 초판으로 2천 장 찍겠다고 하니까 관계자 분들이 되게 놀라셨어요. 그렇게나 많이 내냐시면서요. 저희는 오래 쉰만큼 양보해서 2천 장 하겠다고 한 거였거든요. 주변에 물어보니 요즘엔 5백 장 정도 찍는다고 하더라고요. 음반을 사는 사람이 없다 보니 그렇게 됐죠. 그 전에 일찌감치 시장은 음원 중심으로 넘어갔고. 제 스스로에게 버틸 때까지 버텨보자는 말을 많이 해요. 그런데 점점 그 버티는 주기가 짧아져요. 음악이 변하는 속도도 마찬가지에요. 전에는 신에 노는 형들도 많았는데 이제는 각박해지고 돈 냄새도 많이 나요. 쇼케이스를 열면 기자들을 불러서 음원 공개를 하고요. 그게 또 곧 대세가 될 것 같아요. 홍대가 많이 체계적으로 변했어요. 자연스레 놀면서 음악을 하는 게 아니라. 그 흐름에 적응하는 팀들만 되겠구나 싶기도 하죠. 분명 힘들어졌어요.


각자 추천곡이나 추천 앨범을 뽑아주세요.


도재명 : 처음 돈 주고 샀던 비틀즈의 < Let It Be >랑, 이제 음악을 진지하게 해야겠다고 만들어준 류이치 사카모토의 < 1996 >, 그리고 첫 밴드를 그만뒀을 때 쯤 남규형이 제게 들려줬던 시규어 로스의< Agaetis Byrjun >. 밴드란 그런 거구나 하는 개념이 막 생겼을 무렵 신기해하면서 시규어 로스 음반을 들었던 것 같아요. 라디오헤드의 < In Rainbows >는 가장 오랜 시간동안 재밌게 들었던 앨범이에요. 들을 때마다 어떻게 말을 못 하겠더라고요.

 

제인 :제 첫 시디도 라디오헤드의< The Bends >였어요. 살면서 16살까지는 클래식만 들었던 거 같아요. 중독자정도로. 막 악기별 연주곡대로 분류하는 일도 되게 좋아해요. 그러다가 인터넷 모뎀으로 하던 시절에 에이펙스 트윈(Aphex Twin) 많이 들었고요.

 

복남규 :전 스매싱 펌킨스의 < ellon Collie And The Infinite Sadness >. 고등학교 때 돈 없을 대 알바해서 처음 산 수입반이었어요. 그리고 펄 잼의< Ten >. 사실 펄 잼 앨범은 다 좋아해요. 밴드 이상형이죠. 멤버도 안 바뀌고 멋있게 오래 가잖아요. 하날 더 꼽자니 어려운데, 근래 앰비언트에 관심이 많이 생겨서요, 크리스티안 페네즈(Christian Fennesz)와 류이치 사카모토가 같이한 < Cendre > 꼽을게요.

 

김석 :인생을 놓고 강력하게 받은 영향은 다 지금 아내가 추천 해 준 음악들에서 온 것 같아요. 스모그의 < Red Apple Falls >요. 그 사람 음반은 다 좋은 것 같아요. 대표적으로 이 앨범 뽑을게요. 그리고 피쉬만즈랑 샤벳츠. 샤벳츠 중에서는 < Vietnam 1964 >. 그리고 로로스의 < W.A.N.D.Y. >요.

 

복남규 : 아내 이야기는 이렇게 해야 하는구나. 이것 때문에 맨날 싸워요. 분노조절이 안 돼, 막. 아내도 진짜 음악 좋아하는데 아내가 추천해준 건 다 구려요. 사실 계기가 있어요. 저희가 쓴 것들 집에서 작업하고 있으면 다 별로래요. 그래서 저도 “네가 듣고 있는 거 나도 다 싫어”하면서 받아치는 거죠. (웃음)

 

인터뷰, 정리 : 김반야, 이수호
사진 : 이한수

2015/03 김반야 (10_b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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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열정에 기름붓기 “하고 싶은 일 하면서도 당당하게 살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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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은 인간이 누릴 수 있는 권리이나 많은 사람이 노동에서 행복함을 얻기보다는 고통을 받는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핵심적인 이유로,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할 일이 다르기 때문이다. 어떤 일을 선택할 것이냐는 물음은 특히 청춘에 중요하다. 일부는 하고 싶은 일을 좇지만 여러 사정으로 포기하기도 한다.

 

88만 원 세대라는 담론 이후 대한민국의 청춘은 의기소침하게 그려진다. 많은 청춘이 대기업 취업을 위해 스펙을 쌓거나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려고 노량진으로 향했다. 그런 가운데 이와는 다른 길을 걷는 청춘도 존재했다. 18만 명이 넘는 사람이 구독하는 페이스북 페이지 ‘열정에 기름 붓기’는 꿈을 좇는 청춘을 응원한다.

 

‘열정에 기름붓기’가 전하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얼핏 보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지만, 글과 이미지가 결합된 20여 장 내외 분량의 이야기는 깊은 울림을 줬다. 이 페이지는 기업 계정도 아니고, 페이스북을 전문으로 운영하는 회사도 아니었다. 치열하게 진로 고민을 하는 평범한 청춘 4명이 만들어간 페이지다. 자본 면에서나 인력 면에서 소소했지만 그들이 만든 콘텐츠가 좋다는 입소문이 꾸준히 퍼지면서 1년 만에 팬 수가 기하급수로 늘었다.

 

그리고 책이 나왔다. 천년의상상에서 나온 『열정에 기름붓기』는 이재선, 표시형, 박수빈, 김강은 4명이 만든 페이스북용 콘텐츠가 담긴 책이다. 기존 페이지에 올려진 글과 함께 정여울, 진중권, 고병권, 장석주 등 이 시대의 유명한 인문학자 4명의 ‘청춘론’도 함께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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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강은 표시형 박수빈 이재선 (왼쪽부터)

 

술자리에서 오간 말이 페이스북 페이지로 탄생


네 사람은 어떻게 함께하게 되었나요?


이재선 (이하 ‘이’) : 표시형 씨는 한 학번 차이 선후배 사이였어요. 술 친구였죠. 작년 2월에 페이스북 페이지를 시작했는데, 페이지가 좀 커지다 보니 이미지 쪽으로 디자이너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웹진에서 에디터로 활동하다 알게 된 박수빈 디자이너를 설득했습니다. 저희의 비전을 보여줬고 흔쾌히 합류했죠. 블로그까지 범위를 넓히면서 블로그 운영할 친구를 찾다가 김강은 씨가 마지막으로 들어왔고요. 강은 씨는 수빈 씨 친구인데, 원래 전공은 판화로 순수미술을 공부한 친구에요.


비전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어떤 비전에 감동 받았나요?


박수빈 (이하 ‘박’) : 거창하게 비전이라기보다는 하고 싶은 걸 하자는 말이 와닿았죠. 하고 싶은 걸 하면서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메시지를 장문의 메신저로 새벽에 보내왔는데, 보면서 저절로 웃음이 나오더라고요. 하고 싶은 거 하자, 함께 하자, 이 말이 비전이였죠.


어떤 계기로 페이스북 페이지를 열었어요?


이 : 시형 군과는 술 친구니까 술을 자주 마셨어요. 외모, 성격, 취향 모두 다르지만 술 마시면 서로 통했던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스펙, 대기업 취업에만 연연하는 건 청춘이 아니지 않냐는 말이었는데요. 스펙을 외치는 세상에 대한 반감이 컸고, 바꾸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기로 했어요. 지금은 자체 제작 콘텐츠가 많아졌지만, 시작했을 때만 해도 페이스북 페이지는 대개 방송 짜깁기가 많았고, 내용도 웃긴 거 아니면 선정적인 게 대부분이었죠. 인스턴트 공간처럼 느껴졌어요. 우리는 자극적으로 가지 말고 청춘에 동기 부여를 할 수 있는 콘텐츠를 직접 만들어 보자 해서 한 달 정도 준비했어요. 그렇게 해서 스토리가 있는 콘텐츠가 나왔어요. 주변 친구에게 보여줬더니, 콘텐츠는 좋은데 페이스북에서 보기에는 길고 지루하는 평이 많았습니다. 저희도 동의하는 부분이었지만 이걸 키워서 뭔가를 해 보겠다는 생각이 없었어요. 반응이 없어도 그냥 올리자, 해서 올렸어요. 다행히도 피드백이 좋았고, 지금까지 커왔네요.


표시형 (이하 ‘표’) : 사실, 전 될 거 같았어요. 어떤 의미에서는 페이스북에서 보기에는 동영상보다 슬라이드 형식이 더 통하리라 생각했습니다. 동영상은 빨리 돌린다든지 천천히 하는 게 제한적이지만 슬라이드는 보는 사람이 속도를 통제할 수 있는 형식이니까요. 내용만 좋으면 충분히 통할 것 같았어요.
 
동기 부여와 힐링은 다르다


“인생은 힘들지만 그래도 희망을 가져라”는 메시지는 지금까지는 교수님이나 스님들이 많이 하셨는데요. 열정에 기름붓기가 이런 메시지를 채택했습니다.


표 : 힐링은 마약이라고 생각했어요. 지치고 힘들지만 괜찮을 거라고 말하는 게 힐링일 텐데, 현실에 존재하는 부정적인 문제를 의식하지 못하게 하잖아요. 저희가 생각한 독자는 지쳐서 포기하고 안주하는 사람이 아니라, 사회에서 뭔가를 하고 싶고 누구보다 열심히 사는 사람이었어요. 이들을 응원해주는 게 목표였죠. 그 사람들이 우리가 만든 콘텐츠를 보고 힘내서 계속 갈 수 있다면, 그게 우리가 사회를 바꾸는 방법입니다. 동기 부여 콘텐츠를 만들게 된 이유입니다.
 
이 : 열정 페이처럼 기성 세대, 구조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많죠. 그런데 청춘 문제가 비판만으로는 바뀌지 않아요. 문제를 해결하려면 세 가지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 분위기, 사회 제도, 개인의 노력 이 세 가지가 맞물려야지 문제 제기만으로는 바꿀 수 없어요. 청춘이 도전을 많이 하고, 그렇게 된다면 우리 사회도 도전에 관대한 분위기가 되겠죠. 이렇게 사회 분위기를 형성한 다음에는 사회 제도가 바뀔 겁니다. 저희의 역할은 동기 부여를 심어줘서 사회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이죠.


콘텐츠 하나 하나에 공을 많이 들인 것 같은데, 만드는 과정이 궁금해요.


이 : 완전히 분업화된 구조는 아니고요. 한 명씩 돌아가면서 글을 써옵니다. 그걸로 넷이서 피드백을 강하게 주고 받아요. 완벽하게 만족스러운 글이 나올 때까지 다듬습니다. 그렇게 글이 나오면 글을 쓴 사람이 이미지 작업을 하죠. 그 이미지를 다시 네 명이 손을 봅니다.


팬 수가 18만 명이 넘었잖아요. 인기 비결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이 : 의아한 건, 자기계발서를 비판하는 사람 중에서도 ‘열정에 기름붓기’는 좋아하는 독자가 있어요. 자기계발서는 가르치려 하고,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라고 자기계발서를 안 읽는 청춘이 있거든요. 자기계발서에서 주는 메시지와 ‘열정에 기름붓기’가 어떻게 다른지 궁금해서 물어보기도 했는데요. ‘열정에서 기름붓기’는 항상 저희 고민에서 시작했다는 점이 달랐어요. 자기계발서는 달리고 있는 청춘이 아니라 달려서 이미 높이 올라가 내려다보는 사람이 쓴 게 많잖아요. 그렇다 보니 가르치려는 느낌도 들고요. 저희는 구독자와 같은 입장이죠. 그래서 오히려 공감을 얻어낼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김 : 저도 비슷하게 생각해요. 글을 쓸 때는 남을 생각해서가 아니라 우선은 저의 고민을 다잡기 위해서 저에게 하는 말을 써요. 또 한 가지는 이미지와 글이 결합되면서 드라마틱한 구성이라 울림이 있어요.
 
박 : 저희가 응원만 하는 건 아니에요. 다그치기도 해요. 다그치는 글에 독자들이 친구에게 태그를 많이 해요. 너 꼭 이거 봤으면 좋겠다, 이렇게 많은 댓글이 달리죠.


표 : 솔직한 제 고민, 저를 위한 글이면서도 성공한 사람의 사례나 명언을 소개한 것도 도움이 됐다고 봐요. 아무리 공감 가는 이야기라도 근거가 없다면 신뢰가 안 가겠죠.


페이지 운영자가 청춘이라는 점을 밝혔을 때 어떤 반응이었나요?


이 : 처음에는 저희를 숨기려고 했어요. 조언하고 다그치는 메시지가 많다 보니 구독자 나이와 운영자 나이가 비슷하다는 걸 공개했을 때, 실망할 수도 있잖아요. 하지만 구독자가 저희 페이지를 좋아하는 이유가 공감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부터는 저희를 조금씩 노출하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굳이 저희를 숨기려고 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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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한 번만 읽고 친구에게 넘기길


페이스북 페이지와 책은 다른 매체인데요. 책을 내야겠다는 결심은 어떻게 나왔나요.


표 : 책은 꿈이었어요. 작년에 교통사고가 나서 병원에 있었는데요. 시간이 많으니 생각은 많아지는데, 할 일은 별로 없어요. 그 때 ‘열정에 기름붓기’를 다시 봤습니다. 그때도 책을 내자는 이야기는 있었지만 진행은 더딘 상태였는데, 병원에 있다 보니 책을 빨리 내야겠더라고요. 저처럼 병원에 있는 사람이 읽으면 좋을 것 같았습니다. 병원에 있으면 의욕이 떨어지기 마련인데, 저는 페이지를 보니까 힘이 났거든요. 병원에 있는 사람이 모두 페이스북을 하지는 않을 테니까, 이왕이면 책이 나오고 그 책을 보고 힘을 냈으면 하는 바람이 강해졌어요. 재선이 형에게 전화해서 우리 빨리 책을 내자고 재촉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책이 빨리 나왔죠.


이 : 책을 내자는 제안은 몇 곳에서 받았어요. 천년의상상에서 내기로 한 건, 저희의 페이지와 출판사가 닮아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책을 많이 내진 않지만 한 번 낼 때마다 좋은 책을 내고 전 직원이 다 달라붙어서 하는 모습이 비슷했습니다.


김 : 천년의상상이 주로 인문학 쪽 책을 냈는데, 저희가 주는 메시지도 인문학적인 고민이 들어갔거든요. 그런 부분도 어울렸죠.


 ‘Feat. 정여울, 진중권, 고병권, 장석주’는 어떻게 나오게 됐나요.


표 : 출판사 아이디어였습니다. 책을 내는 건 좋았지만 고민은 있었습니다. 원래 페이스북 콘텐츠로 만든 거라 책으로 나왔을 때는 너무 빨리 읽힐 수 있잖아요. 페이스북보다 책은 좀 더 깊이 있는 매체이니, 우리의 콘텐츠에 인문학자가 쓴 깊이 있는 글이 어울리면 적당한 무게감을 유지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 싣게 되었죠.


이 책의 활용법이라고 해야 할까요. 어떤 독자가 어떻게 읽으면 좋을까요?


표 : 군인이 읽었으면 좋겠어요. 삶에서 중요한 게 근거 없는 희망 같은데요. 군인 때 그런 게 없었던 듯해요. 이 책을 읽으면 아무 이유도 없으면서 뭔가 될 거 같은, 그런 벅차 오르는 순간이 있어요.


박 : 한 번만 읽었으면 좋겠어요. 이 책이 이야기하는 주제는 비슷해요. 결국 실행하라는 거죠. 책만 보고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어요. 보고 실행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책은 다른 사람에게 넘겨줬으면 좋겠어요. 나 혼자 노력한다고 되는 건 없거든요. 내 친구, 다른 사람도 함께 해야죠. 그리고 나 혼자 꿈을 좇으면 지쳐요.
 
김 : 살다 보면 심각해질 때가 있잖아요. 본인의 성격과는 별개로 상황이 안 좋으면 안 좋은 생각만 하게 되고요. 그럴 때 이 책을 읽어줬으면 좋겠습니다. 해답은 아니더라도 마음을 다독일 수 있을 거예요. 저도 그런 순간에 이 책을 읽어야겠죠.


달관 세대? 어이없다
 
청춘에 대한 담론은 언제나 있었는데 최근에는 달관 세대, 사토리 세대라는 말이 유행인데요. 당사자가 느끼기에는 어땠어요.
 
표 : 처음에는 이렇게 볼 수도 있겠구나 하다가도 나중에 화가 나더라고요. 지금은 문제가 많은 시대이고, 그런 현실에서 희망과 욕심 갖지 않고 즐길 수 있는 사람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청춘 모두를 그렇게 정의해버리면 안 되지 않을까요? 이렇게 되는 이유가 있을 건데, 문제를 고치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달관 세대 틀 안에 가두려는 프레임 같아요. 스스로 체념하게 만들면 안 되잖아요.


이 : 달관이라는 표현이 참 어이가 없죠. 마치 청춘이 스스로 깨달아서, 욕심 안 부리고 살 수 있고 거기에 행복이 있다는 말처럼 들리는데, 단어를 참 잘 만들었네요. 달관보다는 체념이겠죠. 주변에 달관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어요.


표 : 달관이라는 말과 함께 열정페이도 문제입니다. 열정페이, 분명 반대해야죠. 그런데 열정페이를 문제 삼으면서 정말 열정만 갖고 하는 사람마저 바보로 만드는 분위기로 몰아가는 게 아닌가 걱정됩니다. 지금 돈이 안 되어도 정말 좋아서 하는 사람이 있거든요. 저희 같은 사람들도 그렇고요. 그런데 열정페이를 잘못 적용하면, 돈과 상관 없이 좋아서 하는 일은 멍청한 행위로 비춰질 수 있는데 청춘의 도전을 막는 부작용도 있을 듯해요.


박 : 안정 지향으로 살려는 사람도 있겠지만 주위를 보면 자기 이야기를 하는 청춘이 많아졌어요. 달관세대다, 안정 지향이다 이렇게만 세대를 비관적으로 바라볼 필요는 없을 듯해요. 다르게 사는 청춘도 많으니까요.


창업을 택하셨는데요. 그 전에 페이지를 사겠다는 제안도 많이 받으셨을 거 같아요.


이 : 있었죠. 회사 직원으로 들어와달라, 콘텐츠 사겠다, 페이지를 팔라는 말도 들었고요. 그렇게 되면 우리의 목적이 수단으로 변질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저희가 선택한 게 창업이었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저희가 만든 콘텐츠를 더 많은 사람이 볼 수 있게 하기 위해 지금 달리고 있습니다. 가끔씩 A4 1장 분량으로 페이스북 메시지로 고민을 보내요. 굉장히 내밀한 고민인데 본 적도 없는 사람에게 보내는 걸 보고, 그 사람들이 우리 페이지에서 힘을 얻는다는 걸 알게 되면서 이 일을 계속 해야겠다고 다짐했죠.


앞으로 계획을 말씀해주신다면?


이 : 저희를 공개한 이상, 좋은 메시지를 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메시지처럼 살아야겠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도 얼마든지 대한민국에서 살 수 있다는 걸 증명하는 팀, 회사, 개인이 되고 싶습니다. 저희 페이지에서는 고민을 털어놓는 사람이 조언을 하기도 하고, 조언하던 사람이 고민을 상담하기도 하는데요. 이렇게 서로 조언하면서 행동으로 이어지는 데 더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많은 청춘이 꿈에 다가가는 과정을 공유할 수 있는 플랫폼이 목표입니다. 저희 회사는 일상에 숨어 있고 싶어요. 지금은 다이어리를 만들고 있는데, 독자들이 잠들기 전에 이 다이어리에 적고, 침대 위에서 『열정에 기름붓기』책을 읽고, 아침에 일어나서는 페이스북 페이지를 보면서 동기 부여 받고, 이렇듯 일상 속 모든 과정에 숨어 있고 싶습니다.
 
표 : 공감하고요. 회사에게 바라는 게 있어요. 반항심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항상 비뚤어진 시선으로 바라보고 부정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해요. 그리고 ‘아니다’는 의견을 다른 사람에게 설득할 수 있는 회사가 됐으면 합니다.
 
김 : 두 이야기에 동의합니다. 저는 개인적인 바람을 말할게요. 원래 전공이 순수미술이었으니, 이 일을 하면서도 계속 그릴 수 있는 화가가 되고 싶어요.


박 : 저는 회사라기보다는 독자에게 바라는 건데요. 가장 중요한 게 소통이거든요. 저희가 구독자로부터 얻는 게 많아요. 구독자가 계속 저희를 바라봤으면 합니다. 감시라고 표현할 정도로 봐주셔도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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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에 기름붓기이재선 표시형 박수빈 김강은 공저 | 천년의상상
‘천년의상상’이 20대 저자들과 함께 혁신적인 물성을 지닌 《열정에 기름붓기》(이재선 표시형 박수빈 김강은)를 발간하였다. 페이스북 17만 회원을 가진 인기페이지를 책이라는 미디어로 탄생시킨 작품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인문학을 가능하게 하는 놀라운 함돈균의 사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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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목록을 잘 살펴보자.

 

"구둣주걱, 반지, 대야, 부채, 넥타이, 손수건, 담배, 신호등, 주사위, 벽..."

 

이 '사물'들에 대해 얼마나 이야기를 풀 수 있을까. 사물에 대해 생각을 끝까지 밀고 간 경험이 흔한 것은 아니니 아마도, 얼마 못가 하던 생각을 내던지고 말 일이다. 고가도로에서 미장센을 읽고, 레고에서 우주의 본질을 찾고, 시스루에서 욕망을 발견하는 일이 가능하다고는 이 책 『사물의 철학』

을 만나기 전까지는 크게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저자 함돈균은 문학평론가다. 그간 한국 문학에 대해 평론을 해온 그가 '사물'에 대해 '생각의 생각을 계속해 생각의 끝까지 밀고 가'는 '사물의 철학'을 한지 어느 덧 2년이 훌쩍 넘었다. 저자는 말한다. "이렇게 사나워진 세상에서는 사람이 아니라 오히려 일상의 평범한 사물들과 지극하게 만나는 시간이 필요할지 모른다."(7쪽)고. 


누구나 곁에 두고 흔하게 사용한 적 있는 사물에 대한 저자의 생각은 무척 효과적이다. 가령, 건강의 차원에만 머물렀던 '담배'에 대한 그의 생각을 좇다 보면 "담배라고 하는 건 단순히 건강에 관해서만 얘기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인문학적 사고란 이처럼 어떤 대상에 대해 '다층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다. 이면에 숨은 의미를 찾고, 복합적으로 사고하는 것. 사나운 세상, 이분법적인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반드시 필요한 생각의 힘이 아닐까.

 

절박한 마음으로 한 글쓰기


『사물의 철학』은 새로운 형태의 글쓰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주로 한국 문학에 대한 글을 많이 쓰셨으니까요. 이 글을 쓰신 계기가 있을까요?


작가들의 스펙트럼이 넓은 것처럼 문학 평론하는 사람들도 자신의 성격에 따라 다른 글쓰기를 하거든요. 저는 문학 평론을 하는 사람들 중에도 조금 사변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에요. 문체가 건조한 글을 쓰는데, 추천사 써주신 신형철 선생님과는 대조되는 스타일이죠. 신형철 선생님은 문장이 맛있고, 화려하고, 에로틱함을 가지는 굉장히 부러운 글쓰기를 하세요. 저는 그것과는 다른 형태의 문체로 철학적인 글쓰기를 많이 하는데, 그런 글쓰기는 대체로 독자들이 읽기에는 어려워요. 문학 평론도 몇 가지의 목적이 있는데, 독자를 위해 잘 소개하는 문학 평론을 하시는 분도 있고, 작가를 위해서 어떤 해설을 내주시는 분들도 있고, 작품 자체가 가지고 있는 생각의 바닥까지 가서 그것 자체를 드러내는 데 목적을 두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 사람들은 그 자체에 올인하는 경향이 있어서 크게 독자를 염두에 두고 그렇진 않아요. 제가 그런 글쓰기를 하는 사람이에요.


그런 것에 비해 이 책은 굉장히 다른 형태의 글쓰기였어요. 작정하고 독자들과 대화하기 위해서 쓴 본격적인, 최초의 시도거든요. 에필로그에 자세한 이야기를 썼는데요. 한국 사회가 물질적으로는 단기간에 놀라운 일을 해왔지만 사회가 가지는 생각의 깊이나 정신의 두께를 생각하면 개탄스러울 정도로 얕아요. 생각과 정신의 층위가 굉장히 납작한 사회라고 할 수 있고, 안타까운 면이 좀 있습니다.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거의 듣지 않으려고 하고, 자기의 존재 긍정을 타자의 부정을 통해서 획득하려고 하는 부분이 있어요. 어떻게 보면 타자 생각의 부정 자체가 자신의 긍정성을 획득하게 만든다고 하는 착각 같은 걸 하고 있는 사회거든요. 마침 신문 연재의 기회를 갖게 됐는데 글은 짧지만 굉장히 절박한 마음을 가지고 글쓰기에 임했다고 보면 됩니다. 보기에는 경쾌하고, 접근 방법이 가벼워 보이지만, 사회의 생각이 얕고 공격적이고 타자 부정적인 것들에 대한 실천적 개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했고, 그런 의미에서 쉽게 대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어요.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100여 가지의 사물을 관찰하고 사유를 이어오셨어요. 왜 사물이었을까요?


앞서 말씀 드린 것처럼 우리 사회는 어떤 현명한 현자가 훌륭한 이야기를 한다 하더라도 당신은 정치적으로 무슨 파다, 누구 찍은 사람이니까 그렇게 얘기하지, 라고 하면서 어떠한 이야기도 그것을 순수하게 듣지 못하는 위험한 사회거든요. 아예 듣지 않는다면 아무리 좋은 이야기를 해야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글쓰기 방법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요. 사회나 정치를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 않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선입견을 직접적으로 주지 않고 말이에요. 가능한 많은 사람이 같이 공유할 수 있는 대상을 말하는 거예요. 어린 아이부터 노인까지, 공부를 많이 해본 사람이나 안 해본 사람이나, 시장에서 물건 사시는 분이나, 시골 사람이나 강남사람이나, 보편적으로 모두가 그것에 대해 만만하고, 그것에 대한 경험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생각해보고 이야기해볼 수 있는 공통거리를 가지고 얘기해보자, 해서 공통 대상을 찾은 것이고요. 연필, 생수에 대해서도 얘기를 했는데요. 연필은 아이들도 잡고 있는 거고, 물은 시골 사람들도 먹는 거잖아요. 보편적인 이야깃거리를 가지고 이야기 바탕을 시작해보자라고 생각했어요. 그것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제가 사회, 정치 등에 대해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아도 되고, 읽는 분들도 그런 형태의 선입견을 갖지 않고 읽을 수 있으니까요. 방어 본능을 해제해야 이야기가 되거든요. 그런 방법론을 고민했던 거죠.

 

사물을 계속해서 관찰해오셨으니 일종의 습관 같은 것도 생겼을 것 같습니다.


습관이라기보다는 뭘 찾아야 된다는 강박이 있는 거죠.(웃음) 이것도 일종의 평론이잖아요. 사물에 대한 평론인데요. 평론은 자기 얘기를 직접 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에 대해 이야기하는 글쓰기거든요. 평론하는 모든 대상이 새로운 대상이기 때문에 새로 출발하는 거거든요. 평론은 지식이 아니에요. 대상이 가지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잘 보는 눈이지 내가 가지는 어떤 지식을 가지고 덮어씌우는 건 좋은 평론이 아니거든요. 3년 정도 쓰고 있는데 능력치가 키워지는 게 아니라 매번 허둥대고 마감 10분 전에 보내요. 힘이 드니까요. 글쟁이로서 저는 세상에 책도 많고, 정보들이 많기 때문에 비슷한 얘기를 하면 안 된다는 강박이 있어요. 글쓰기 하는 사람으로서의 최소한의 직업적 윤리거든요. 그렇게 한 결과가 뭐냐고 하면 결과는 신통치 않아요. 완전히 새로운 얘기를 할 수는 없지만 완전히 비슷한 얘기를 하고 있다, 이런 짓을 하면 안 된다는 강박이 너무나 심해서 그게 힘들죠. 힘들어요. 

 

이번 책을 쓰면서 특별히 주안점을 둔 부분이 있다면요?


일단은 보편적 사물을 가지고, 같이 생각해볼 수 있는 그런 사물을 택한 거예요. 우리가 생각한다고 하지만 대체로 생각하지 않아요. 생각이라고 하는 건 깨달음을 태어나게 한다는 말이거든요. 굉장히 능동적인 말이에요. 그러나 우리가 대체로 생각한다고 할 때의 생각은 대체로 어디서 들었던 것, 책에서 봤던 것, 충분히 정확하게 검토하지 않고 그냥 관성적으로 알게 된 어떤 풍문적 사고들의 집합을 의미해요. 그렇긴 해도 사회가 가지고 있는 수준에 따라서 관성적이고, 정확하지 않은 풍문적인 사고, 자동화된 사고의 방식으로 사는 퍼센티지가 적은 사회가 있고, 상당히 높은 사회가 있거든요. 지금 한국 사회는 그것이 상당히 높은 사회예요. 때문에 책의 주안점은 사고의 자동화, 이런 것들을 중단시키는 것이었어요. 문학도 자동적으로 사고하는 것들을 중단시키는 것이거든요. 시가 어려운 이유는 사고의 자동성을 중단시키려고 하기 때문이에요. 시가 너무 쉽게 읽히면 약간 이상한 거예요. 연필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지만 시인은 낯설게 설명해요. 연필 아닌 것을 설명하는 게 아니라 못 보던 연필을 설명하는 것이죠. 이 책에서 접근하는 방식도 제가 시에 대한 평론을 하는 것처럼 만들어져 있는 사물들에 대해 같은 방식의 발견을 하고, 사고가 자동화되어 있던 것들을 중단시켜 다른 부분을 보여주는 노력이었어요. 그렇게 본다면 사실은 되게 이상한 짓을 한 건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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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견을 위해서는 오래 머물러야


우리 사회가 어떤 대상에 대해 충분히 소화시키지 못하고 있고, 생각이라는 것도 어느 곳에서 빌려온 것이나 찾아온 것이 대부분이라는 것인데요. 이런 것들의 가장 큰 적은 무엇일까요?


문명론적 차원에서 보면 세상의 속도가 너무 빨라진 것이 큰 문제가 돼요. 우리가 어떤 것을 발견하려고 하면 거기에 많이 머물러야 하거든요. 인간에 대해 이해하려고 하더라도 가까이 있다고 해서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오래 머물러야 하죠. 사물에 대해서도 그렇고요. 머물러야 하는데 생각이 머무를 수 있는 여유를 세상이 주지 않아요. 『소크라테스, 예수, 붓다』라는 책도 있지만요, 지금으로부터 2,500년 전에서 2,000년 전 사람들이 인간이 이를 수 있는 가장 전위적이고 현명하며 인간을 넘어서는 사유들을 이미 다 했거든요. 사람들은 휴대전화가 나오고, 비행기가 날아다니고, 자동화되고 하니까 굉장한 착각을 해요. 그건 정말 착각이에요. 저 시기 이후부터는 인간의 사고 자체가 어떻게 보면 계속 후퇴한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제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고전 읽기를 가르치는데, 매 학기 빠지지 않고 제일 중요한 커리큘럼으로 다루는 것이 그리스 비극이에요. 소크라테스 시대인데요. 인간이 가지고 있는 고민이 실은 무척 오래 됐고, 잘 제거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죠. 그것에 대해 얼마나 이 사람들이 깊이 생각했는지 보면, 현대적인 것들을 완전히 뛰어 넘을 정도로 대단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동화 된 사고를 하는 퍼센티지가 좀 낮은 사회와 높은 사회의 차이는 어떻게 나느냐하면요. 문화를 성숙시키려고 하는 개별적인 노력들은 각자 이루어져야 하거든요. 그런 부분이 교육이라고 생각을 하는데요. 가령, 우리나라 사람들이 미국을 수용하는 것에 양가성이 있죠. 리퍼드 대사 사건처럼 미국에 대해 적대적인 느낌을 가지고 있는가 하면 미국이라고 하면 난리를 치면서 식민지처럼 하는 사람들도 있고요. 중간이 없는 사회거든요. 그런데 사실 미국사회를 관찰해보면 생각보다 사회가 다층적이에요. 제가 시민행성이라고 하는 인문 공동체를 하는데 함께 시작했던 조성택 선생님의 강의 중에 인상 깊었던 대목이 있어요. 오바마 이야기예요. 대선 당시, 이라크 전쟁 중이었어요. 오바마의 표를 깎기 위해 TV토론 중에 공화당 진영에서 이라크 전쟁을 찬성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대요. 오바마가 전쟁을 찬성하는 사람들에 대해 비토를 놓으면 그 사람들의 표가 깎여 나가는 거고, 그렇다고 이라크 전쟁을 옹호하기도 어려운 딜레마적인 질문이었죠. 그의 대답은 "이라크 전쟁을 찬성하는 사람도, 반대하는 사람도, 모두 미국을 사랑하는 사람이다."였어요. 한 번 더 어려운 질문을 했던 게, "하나님은 지금 미국의 편이냐?" 고 물었더니, 거기에 오바마가 일초도 생각하지 않고 바로 대답이 나오더래요. "당신 질문이 잘못 되었다. 하나님이 우리 편이냐고 물으면 안 되고, 우리가 하나님의 편에 있는지를 생각해야 한다."고 얘기했다는 거예요. 조성택 선생님이 그것은 미국 교육의 힘이라고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우리도 엘리트는 많아요. 그런데 그렇게 대답하는 정치인을 본 적이 없단 말이죠. 오바마의 대답은 국민을 포용하는 대답이면서 철학적인 질문을 다시 던지는 것이죠. 우리는 정의의 편에 서 있는가 하는 부분을 말이에요. 저는 그런 오바마의 시선 자체가 교육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그 대답은 가짜, 신을 참칭하는 얘기가 아니라 인간이 가지고 있는 사고의 수준을 한 정치인이 굉장히 높은 차원에서 업그레이드 시키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얕은 형태의 분별을 지적한 것이에요. 장자는 그걸 와각지쟁(蝸角之爭)이라고 했거든요. 막 싸우는데 알고 보면 달팽이 뿔 위에서 싸우는 그런 굉장히 웃긴 것이다, 라는 얘기를 했어요. 그러한 시선은 정치가의 시선이기 전에 인문적인 거예요. 그런 형태의 사고의 깊이를 확보하는 교육이 지금 한국 사회에서 이루어지고 있는가, 그 문제가 크다고 봐요.

 

'인문정신'이랄까 이런 부분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시는 것 같은데요. 지금 시대에 필요한, 혹은 부족한 정신이나 사유에 대해 말씀하신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인문이라는 것은 무늬를 얘기하는 것이거든요. 문양이요. 옛날에 천문이라고 하면 하늘에 무늬가 있어서 주역 같은 경우 점을 치면, 문양이 보인다고 했어요. 점이라는 게 하늘이 가지고 있는 기운을 받아서 문양을 해석한다, 그런 거거든요. 인문이라고 할 때 무늬는 단순히 인간의 무늬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점을 칠 때 하늘과 연결되어 있는 기운이나 신의 표정을 알 수 있는 것처럼, 인간이 가지고 있는 좁은 것들을 벗어나서 이 세계의 넓고 깊이 있는 관점에서 확인한다는 것이에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시야의 좁은 것들을 탈락시키고 반성하게 하는 사고거든요. 간단히 말해 사고의 관점의 깊이를 확보하는 일이죠. 오바마 같은 경우가 그런 관점의 깊이, 다양한 관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죠. 좀 더 보편적으로 얘기하면 사람이 가지고 있는 좁은 이해관계, 이데올로기, 관념, 선입견을 초월해서 더 큰 보편적 눈을 우리가 가질 수 있느냐에 대한 반성이에요. 그건 굉장히 인문적인 시각이죠.

 

객관적으로 사물에 대해 사색하는 듯해도 읽을 때는 사물에 대한 호불호가 느껴졌어요. '아도르노'도 말씀하셨는데 '삶의 구체성에 대한 파악'이 사회의 빠른 속도 때문에 분리된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고요.


일단 이 책에서 말한 사물 중에는 아날로그적 사물이 많아요. 현재까지도 전자 기기와 관련된 사물은 대체로 선택을 안 해요. 그 사물에 대해서 단순히 부정적이어서 그런 건 아니에요. 두 가지 이유인데요. 전자 기기에 관련된 사물들은 보편적이지 않죠. 시골 분들은 전자 기기를 잘 사용하지 않잖아요. 누구나 얘기할 수 있는 걸 가지고 이야기해야겠다는 생각에서 그랬고요. 또 디지털 기기들이 가지고 있는 가능성이 무엇인지에 대해 제가 아직 파악이 되지 않아요. 가령, 제일 많이 들고 다니는 게 휴대전화인데 이 핸드폰에 대해 말하지 않았거든요. 휴대전화가 무엇인지 아직 잘 모르겠어요. 원고 5, 6매가 양은 적어도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판단은 있어야 하잖아요. 아직 이 사물들이 어떤 형태의 것들을 이 세계에 만들어낼지 판단이 잘 들지 않아요. 뭔지 잘 모르겠어요.


인터넷의 경우, 인터넷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 인터넷이 전자 기기로 출현한 것 같지만 굉장히 철학적인 관점, 문학적 관점이 있었다고 하는 부분을 이야기한 것이에요. 보르헤스를 들었는데요, 보르헤스가 그걸 인터넷이라고 얘기한 바는 없어요. 다만 제 독서의 느낌으로는 보르헤스가 묘사한 끊임없이 확장되는 도서관에 대한 발상이 인터넷에 영향을 주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도서관이 옆으로 확장되기도 하고, 안으로 확장되기도 하고, 책장과 책장 사이에 무수한 책장들이 나오기도 하고, 한 단어는 한 단어와 연결되어서 무수한, 이런 것들이 나오는 그런 형태의 문학적 영감에 대해 얘기한 속내가 그것이에요. 인터넷 자체, 디지털 기기에 대한 얘기를 하기 보다는 말이죠. 괴상하고 추상적이고 이해할 수 없는 사변적인 공상처럼 보이는 한 작가의 소설적 발상들이 인터넷을 처음 완성한 사람들에게 영감을 줬으리라고 봐요. 디지털 얘기할 때 그런 차원에서 얘기하는 거고 일부러 아날로그에 대해서 많이 얘기를 했죠.


호불호는 없습니다. 사물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능성의 측면에서 얘기하는 거죠. 내비게이션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었어요. 지금 내비게이션이 없으면 힘들죠. 저는 모더니스트거든요.(웃음) 주로 평론하는 것도 모더니즘 문학이에요. 박사학위 논문도 이상 같은 사람을 했고요. 기본적인 감각은 현대성에 대한 매료가 있고, 현대성을 좋아하고 그래요. 현대성에 매료됨과 동시에 현대성이 가지고 있는 위험에 대한, 이것이 가지고 있는 문제도 같이 생각하는 것이죠. 양면을 봐야 하는 그런 측면이 있는 것 같아요. 디지털 기기에 대한 호불호가 있는 건 아니에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가능성을 다 염두에 둔 거죠.

 

"'인문학'은 사람 '인(人)' 자로 되어 있다. 이 '사람 인'을 옛날이라면 동물이나 자연과 구별되는 말로 이해할 수 있겠지만, 오늘날 관점에서 보자면 기계와 구별되고, 기계가 되지 않으려는 노력과 능력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핵심은 사람으로서 '도덕적 판단능력'을 갖는 일이다."(222쪽)

 

"철학도, 예술도 우리가 의지해 사는 확고한 상식이 실은 별 근거 없는 관성의 법칙에 불과할지 모른다는 의심에서 시작된다."(176쪽)고 하셨어요. 이 글이 책의 핵심이 아닌가 싶었는데요. 또 "진지성으로부터 일탈"이나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 대한 얘기도 계속 하셨는데 이런 계속된 질문이 말씀하신 인문정신의 실천이었나요?


먼저 오해하시면 안 되는 것은, 가벼움이라는 자체는 나쁘지 않습니다. 사회는 무거움과 경쾌함, 진지함과 가벼움이라는 것이 같이 섞여 있어야 하죠. 문명에는 예나 지금이나 두 가지 진지한 층위가 다 있었다고 봐요. 최근에 쓴 사물은 바둑알인데, 공자를 인용했거든요. 공자가 그런 말을 하죠. '밥 먹고 배부른데 아무것도 할 일 없으면 그것도 힘든 거다. 바둑이나 두지 않겠니.' 번역을 굉장히 가볍게 해놨어요. 논어 번역을 보면 '했는가', '하지 않겠느뇨' 이런 식으로 되어 있잖아요. 저는 그 어투를 진짜 '바둑이나 두면 얼마나 재미있겠니', '이렇게 해봐' 처럼 번역했어요. 저는 공자가 그런 사람이었을 거라고 봐요. 제자들이 인(仁)에 대해 물어보면 제자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에 따라서, 기질에 따라서 다르게 대답하거든요. 예수가 사랑에 대해서 랍비가 얘기할 때, 사마리아인이 얘기할 때, 다 다른 방식으로 대답을 하는데요. 대답은 다르게 하는데 번역투는 다 무겁게 되어 있어요. 사실 그건 공자에 대한 약간의 오해가 있다고 봐요.


어떤 면에서 한국 사회는 그 진지함과 무거움을 선한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건 일종의 기분이죠. 선과 악이라는 내용으로 얘기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그걸 선과 악이라는 내용으로 접근하는 것이 한국 사회에서는 공부를 많이 한 사람에서부터 많이 하지 않은 사람, 무식한 사람부터 유식한 사람, 심지어는 작가들 사이에서도 그런 게 다 있어요. '스냅백'에 대해 쓴 부분이 있는데요. 진지한 사람들이 보면 불량한 모자예요. 모자가 구부러져 있지도 않고, 올라가서 쓰기도 하고, 거꾸로 뒤집어쓰기도 하고요. 하지만 젊은 사람들은 경쾌해야 하는 거죠. 어느 시대나 젊은 사람들은 다 경쾌했을 거라고 봐요. 그게 젊은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가벼움에 대해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도 인문적인 사고는 아니라고 봐요. 관점의 깊이가 없는 거죠. 이것 역시 다른 관점을 확보하지 못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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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방향성


많이들 문학과 인문학의 위기를 말하는데, 그렇다면 이 시대 인문학의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저는 인문학이 중요하고, 중요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인문학은 정치나 경제, 사회 등 어떤 특정 분야를 가리지 않고, 시선의 편 가르기 없이 포괄할 수 있는 관점을 확보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것 같아요. 그런 차원에서 한국 사회에서 인문학 열풍이 있었죠. 그것에 대한 아쉬움이나 어떻게 방향이 조정되어야 하느냐고 물으면 저는 '인문학의 방향성'을 말합니다. 서울시에서 하는 서울시민강좌를 하나 위탁을 받아서 하는데 사물의 철학으로 하거든요. 그것 역시 글을 쓰게 된 이유와 관련되는 거예요. 시민행성이란 인문 공동체를 하면서도 그런 형태의 토론을 굉장히 많이 했는데요. 지금 한국 사회의 인문학은 방향성이 없다는 거예요. 그걸 '무중력의 인문학'이라고 얘기를 했어요.

 

인문학에도 방향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주 원론적으로 얘기하면 관점의 깊이를 확보하는 거죠. 관점의 깊이가 없으면 이런 일이 발생하는 거예요. 가령 담배를 '이데올로기로서의 숭고한 대상'이라고 썼는데요. 슬라보예 지젝이라는 사람이 쓴 얘기예요. 이데올로기의 숭고한 사물이라고요. 그런 관점에서 보면 담배가 그렇습니다. 우리는 흔히 건강의 문제로 담배에 접근하고, 정부는 세금을 걷는 방식으로 치사하고 비겁하게 접근을 하죠. 국가가 세금을 당연히 걷어야 하지만 공평하면서 품위가 있어야 해요. 담뱃값을 올린 것은 공평하지도 않고, 품위도 없죠. 그런 게 문제가 되는데요. 이 사람들이 대의명분으로 내세운 게 건강이고,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합의된 이야기처럼 되어 있기 때문에 그걸 내세우면 뚫고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하지만 담배라고 하는 건 단순히 건강에 관해서만 얘기할 수는 없어요.


지금 인문학의 유행에서 아쉬운 것은 그런 관점의 깊이를 확보하는 '인문 정신'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고 교양적 지식의 사회적 확산으로 생각 하는 부분이거든요. 지식이라는 것은 그것이 바탕이 되어 몸과 일체가 되어야 해요. 대학이 인문학의 보고처럼 되어 있지만 사실은 대학이 그런 인문적 관점과 정신, 우리 몸에 실제 살아있는 체험으로써의 인문 정신을 키워주지 못했어요. 그런 것에 대한 반대급부, 하나의 사회적 요구에 의해서 바깥에서 인문학 단체도 생기고 정부도 그런 걸 하는데 이걸 하는 방식 역시 방향이 없어요. 시민행성 같은 경우 시민인문학이라는 것을 내세웠어요. 공동 공간에서 필요한 최소한의 인문적 정신을 자기 안에 흡수하고 체화하고 그걸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같이 살 것이냐에 대한 최소한의 도덕의 지점을 생각하는 것이죠. 그 도덕을 지식으로써의 규율이 아니고 체득된 형태의 지행일체가 되는, 그런 방향이 우리에게 필요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담배'나 '자동문'처럼 생각을 확장시키는 사물들이 역시 인상적이었습니다.


다른 신문에 얼마 전에 '담배 휴머니즘'이라는 칼럼도 썼는데요. 한국 예술의 거물 시인인 김수영 시인이 쓴 글 중에 보면, '릴케'에 대한 시에 대해 얘기하면서 시라고 하는 것이 결국 신의 입김이 인간의 입김을 통해서 나오는 소리는 아니냐, 이런 얘기를 해요. 그러면서 뜬금없이 담배 얘기를 합니다. 작가들에게는 그게 단순한 농담은 아니에요. 어느 유명한 작가 분이 담배를 끊고 나서 시가 그렇게 안 써지신대요. 글을 쓴다고 하는 건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관성적 사고가 아닌 다른 사고를 갖게 되는 것이죠. 멋있게 얘기하면, 지금 사는 현실이 아니라 다른 현실로 가는 과정이 필요한 거거든요. 근데 이 현실에서 다른 현실로 바로 넘어가게 되지 않아요. 그게 되면 미친놈이죠. 갑자기 딴 소리하는 거니까요. 다른 현실, 다른 사유로 넘어가려면 굉장히 메마른 감정의 골짜기를 건너가는 과정이 필요해요.

 

 그때는 약간 미쳐요. 신경증에 걸리는 거죠. 어떤 사람은 술을 먹어야 하기도 하고요. 그런 과정에서 작가들에게는 담배가 중요한 사물이 되기도 해요. 글에도 있지만 군대 다녀온 사람들에게 담배라는 건 유일한 휴식시간이 돼서 약간의 일상의 틈새를 내요. 건설현장 인부가 새벽부터 출근해서 일을 하는데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쉬어야 하거든요. 관리자가 보고 있기 때문에 갑자기 쉴 수가 없어요. 그때 담배를 피워요. 단순히 담배를 피우는 게 아니라 기계적인 어떤 것에 틈을 내면서 사람이 시선의 억압으로부터 방어막을 치는 것이죠. 그런 것을 개방하는 게 담배의 시간이라고요. 제가 대학 다닐 때는 여학생들이 일부러 담배를 피웠어요. 사회가 남녀평등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세상은 남녀평등이 아니고, 그런 실질적 불평등에 대해서 남자들이 주로 하는 것에 대한 반대급부로서의 심리적인 저항도 있는 거거든요. 이 담배라고 하는 것은 사실은 건강이라는 하나의 층위로 볼 수 없는 굉장히 많은 삶의 다른 관점들을 확보할 수 있는 사물이에요.


자동문 얘기도 그런 거잖아요. 문이 열고 나가는 것으로만 생각하면 자동문이라는 것은 편리하죠. 그러나 삶의 경험이라고 하는 건 그냥 나가고 여는 것만이 아니에요. 안에 아기가 자면 천천히 열고, 배가 고프면 신나게 빨리 열고, 지각 했으면 미안한 마음 때문에 늦게 열고 하면서 열고 닫는 도구적 목적 외에 찌꺼기로써의 세계가 있는 거거든요. 그런 걸 통해서 삶의 깊이가 확보되는 것이고, 그게 인문적 사고의 깊이라는 거예요.

 

'시민행성'의 올해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여러 가지 프로그램이 있는데, 처음 '시민행성'이 만들어졌을 때 우리의 모토는 '인문정신으로 사회를 디자인한다.'는 것이었어요. 강의만 하는 게 아니고 프로그램을 통해 사회에 제안하고 저희가 발명하기도 하는 것인데요. 우리가 인문적 관점을 갖게 된다면, 사회의 여러 제도라든가 각 영역에서 어떤 방식이 이루어졌을 때 우리가 어떻게 프로그램화 할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해 그 모토를 썼던 것입니다. 이제 2년 되었는데요. 올해 내세우는 건 '생각할 때 시민이다'는 것이에요. 그건 생각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는 뜻이겠죠. 시민이라고 하는 것은 서울이라는 공간에 산다고 부여되는 네이밍이 아니라는 것이고요. 생각을 할 때 우리는 시민이 됩니다. 조성택 선생님은 '시민은 백성이 아니라는 것을 자각하는 사람'이라고 했거든요. 제가 연등에 대해서도 쓴 게 있는데요. 불교에서는 중생이라고 하는데 그 중생이라는 게 짐승이라는 말에서 온 거예요. 기본적으로는 사람이 그냥 짐승이라는 거죠. 짐승이 꼭 나쁜 건 아니고 짐승을 모독하는 것도 아니지만요.(웃음) 자기 안에 생각을 갖게 되고 각성된 정신을 갖게 됐을 때 불교에서는 중생이 아닌 보살이라고 하고, 보살이 깨닫고 완료된 형태가 되면 부처가 된다고 하는데요. 조성택 선생님의 그 말은 시민이라고 하는 건 결국 중생이 보살이 되는 것처럼, 백성이라는 노예적 정신이나 관성적 사고가 아니고, 자기 안에 주체성을 획득하고 능동적 사고를 하게 되면 결국 시민이 아니냐 하는 것이었어요. 연등에 대한 이야기에서도 그런 식의 사고가 들어가 있죠.

 

쓰시면서 특별히 새롭게 생각하게 된 사물이 있었나요? 물티슈도 재미있게 읽었어요.


아무래도 많이 사용하시니까요.(웃음) 전체적으로 어떤 사물에 대해 썼을 때 선악과 미취에 대한 판단은 없어요. 다만 객관화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그것이 뭔지를 알고 그 곁에서 그것을 사용하자는 거죠. 그렇게 얘기해도 물티슈를 쓸 사람은 써야 하는 거고 그걸 보면서 안 쓰는 사람은 안 쓰는 건데요. 평론이라고 하는 건 굉장히 간단해 보이는 것에서 예민한 징후를 보는 거거든요. 어떤 사람은 기침을 열 번 정도 해야 감기 든 것을 아는데, 기침을 두 번 정도 하는 것만 보고 감기 들었구나, 병들었다, 하는 걸 파악하는 해석이 평론이에요. 그보다 앞서 더 예민한 것은 시인이죠. 작가들, 소설가들이에요. 시인이 먼저 그런 걸 알아챘으니까 그 바탕에서 저희가 그런 얘기를 하는 거고요. 그걸 제일 예민하게 보는 건 문학과 예술이죠.


물티슈, 포스트잇 같은 사물들이 하나의 그럴싸한 거짓말입니다.(웃음) 그럴싸한 거짓말이 그럴싸하게 들린다면 설득력을 갖는 거죠. 맞고 틀리고는 없어요. 그럴싸한 거짓말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거예요.

 

독자들이 이 책을 어떻게 읽었으면 하시나요?


아유, 그런 건 없습니다.(웃음) 마음대로 보시는 거고요. 글쓰기 수업할 때, 좋은 글쓰기에 대해 이렇게 얘기하거든요. 책을 그냥 통째로 한 권 쓸 생각을 한다거나, 문단을 통째로 쓴다고 생각한다거나 아니면 어떤 테마에 대해 한 편의 논문을 쓴다고 생각하면 글을 못 쓴다, 좋은 글을 쓰려고 하면 문장 단위로 써야 한다고 항상 얘기를 해요. 문장에만 집중하면 문장과 문장에 허튼 문장이 없이 촘촘한 문장들로만 이어지게 되거든요. 저는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할 때도 문장처럼 너무 추상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해야 좋은 생각을 한다고 말을 해요. 인문학, 인문적 사유, 굉장히 거대하고 힘들어 보이는데 이 책은 우리가 손에 들고 있는 물통 하나 가지고도 생각을 끝까지 이어나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줘요. 뭔가를 너무 거대하게 생각할 게 아니고, 거대하고 대단하게 생각하는 것도 손 안에 쥔 생수 하나 안에서도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에요. 또 짧잖아요. 논문이나 책을 보지 않아도 원고 5, 6매의 짧은 글 안에서, 구체적인 것에서 보편적인 생각을 할 수가 있는 거죠. 사소한 것에서 중요한 생각을 할 수도 있고요. 특수한 것에서 추상적이고 보편적 사고들이 가능합니다. 이런 것을 생각할 수 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것 같아요. 이렇게 읽혀지면 좋겠어요. 이런 식의 사고방식이 가능하다는 것을 말이에요.


근대 철학의 아버지 데카르트가 사고하는 방식에 대해 네 가지 규칙을 가르쳤거든요. 첫 번째는 방법적 회의를 말하죠. 의심하라, 이렇게 얘기하고 두 번째는 복잡한 것을 간단하게 자르라고 얘기해요. 사물이든 뭐든 세계는 복잡하게 얽혀있거든요. 그것을 단순한 요소로 잘라라. 세 번째는 가장 쉽고 간단한 것에서부터 출발하라, 마지막은 검토해라. 이런 규칙이 있는데요. 간단하게 만들고, 쉬운 것에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연암 박지원도 비슷하게 얘기한 게 있거든요. 최고의 문장가고 정말 사고가 전위적이었던 사람인데 간단한 데서 출발하라고 해요. 간단한 데서 출발할 수 있다는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어요. 우리에게 여러 가지로 용기가 부족하잖아요. 많이 배운 사람만 뭘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그렇기 때문에 자기 문제를 주체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누구에게 가서 들으려고 해요. 그래서 힐링이 유행하기도 하고 멘토들도 많아졌고요. 제일 좋은 멘토들은 사실 책이거든요. 예수, 부처, 소크라테스, 이런 분들이 훌륭한 얘기는 다 해놓으셨는데 너무 쉽게 하려고 하는 게 있어요. 내 문제, 우리 시대의 문제를 우리가 해결할 수 있다고 하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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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철학 : 질문으로 시작하여 사유로 깊어지는 인문학 수업함돈균 저 | 세종서적
이처럼 사물에 대한 기존의 정의를 넘어서는 발상은 단지 저자의 직관적 분석에 의지하여 탄생하는 것이 아니다. 역사와 문화의 맥락에서 종합적으로 파악한 사고의 결과물이며, 무엇보다 철학적 성찰이 그 기저를 이룬다. 예를 들면, 굴러가는 자전거의 바퀴에서 저자가 알아차린 것은 바퀴와 바퀴 사이의 빈 공간의 운동이며, 여기에서 저자는 노자의 ‘무용지용(無用之用)’을 연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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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미움 받을 용기』 당신의 상실을 슬퍼할 사람이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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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 받을 용기』정답이 아닌 질문을 남기다


『미움 받을 용기』와의 만남은 당혹감에서 시작된다. 책의 제목을 보고 강한 이끌림을 느낄 때 ‘그동안 사랑받기 위해 몸부림치느라 많이 지쳤다’는 내면의 소리를 듣게 되기 때문이다. 예고 없이 찾아온 이 감정은 책장을 덮을 때까지 계속 이어진다. 말랑말랑한 위로의 이야기를 기대했다가 냉철한 성찰의 이야기와 맞닥뜨리게 됨으로써, 기존의 사고를 완전히 뒤집는 주장들로  충격에 사로잡힘으로써, 거듭 놀라게 되는 것이다. 그 끝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정답도 아니고 개운한 뒷맛도 아니다. ‘당신이 생각하기에 따라 삶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메시지가 귓전에 맴돌면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앞으로, 정말, 나의 세계는 달라질까. 그럴 용기가 나에게 있을까. 책의 감수를 맡은 심리학자 김정운은 바로 이 점이 『미움 받을 용기』의 미덕이라 말한다. “책을 덮고도 계속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은 여타의 자기계발서와는 다르다. 주체적으로 생각하게 하는 책이 좋은 책이다. 이 책은 좋은 책이다”라는 것.

 

“세계는 아주 단순하며, 인간은 오늘이라도 당장 행복해질 수 있다”고 주장하는 철학자에게 어느 날 한 청년이 찾아온다. 그는 출신이나 학력, 외모에 관해서 심한 열등감을 느끼며 다른 이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경향이 있었다. 청년에게 세계는 “혼돈과 모순으로 가득한 곳”이었고, 그의 눈에 비친 철학자는 그저 ‘괴짜’일 뿐이었다. 그렇기에 “선생님의 지론을 철회하도록 할 생각”이라며 호기롭게 대화를 청해 온 것이었다. 두 사람은 세상과 삶과 인간관계를 인식하는 방법에 대해 긴 시간 대화를 이어갔고, 그 과정을 『미움 받을 용기』안에 기록해 놓았다.

 

철학자는 자신이 오랫동안 탐구해 온 그리스 철학과 아들러의 심리학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이어간다. 정신의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아들러는 프로이트, 융과 함께 ‘심리학의 3대 거장’으로 일컬어지는 인물이다. 그러나 프로이트나 융만큼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은 까닭에 아들러의 이론은 우리에게 생소하게 다가온다. 특히“인간은 과거의 원인에 영향을 받아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정한 목적을 향해 움직인다”는 주장(목적론)은 프로이트의 주장(원인론)과 완전히 배치되는 것이어서, 적지 않은 혼란을 야기하기도 한다. 청년이 철학자를 향해“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있으면 “트라우마는 존재하지 않아, 환경도 관계없어, 모든 것이 자업자득이고, 네가 불행한 것도 다 네 탓이야”하는 것 같아서 단죄당하는 느낌이라고요!”하고 외치며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는 것도 무리는 아닌 것이다.

 

물론 철학자는 “오히려 아들러의 목적론은 “지금까지의 인생에 무슨 일이 있었든지 앞으로의 인생에는 아무런 영향도 없다”라고 말해주는 거지”라고 오해를 바로잡지만, 쉽사리 수긍할 수 없는 주장들은 계속 이어진다. 이를테면 ‘누군가를 싫어하는 이유는 그에게 용서하기 힘든 결점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를 싫어한다는 목적을 세운 후에 결점을 찾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하거나‘타인의 기대는 만족시킬 필요가 없으며 궁극적으로 ‘나’를 생각하며 살면 안 될 이유가 없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렇듯 신선하다 못해 충격적인 시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앞으로의 삶은 과거의 상처와 관계없이 달라질 수 있다고, 타인의 기대를 만족시키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다고, 그러므로 세계는 단순한 곳이라고, 믿어도 되는 걸까. 심리학자 김정운이 예단한 대로 『미움 받을 용기』는 결코 가볍지 않은 질문을 남겼다. 그렇기에 두 명의 작가-철학자와 청년의 실제 모델인 기시미 이치로와 고가 후미타케에게 묻고 싶은 이야기도 많았다. ‘아들러조차도 간과한 현실적인 문제들이 있다’며 반론을 제기하려는 마음은 책 속의 청년과 같았다.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상대의 주장이 틀렸음을 입증하는 데 목적을 두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아들러의 시선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 그 과정에서 만난 장애물들을 뛰어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 조언을 구한 것이었다. 두 작가가 들려준 이야기는 명쾌하거나 위로가 되거나 더 깊은 성찰을 요했다. 『미움 받을 용기』가 그러했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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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가 후미타케 “트라우마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 믿기 힘들었다”


『미움 받을 용기』가 한국의 독자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소감이 어떠신가요?


기시미 이치로 :나라를 넘어서, 그리고 문화의 차이를 넘어서 한국에서도 이렇게 수용이 되고 있다는 것을 매우 기쁘고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고가 후미타케 : 지금까지 일본에서는 아들러라는 심리학자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못했습니다. 한국에서도 비슷한 상황이었다고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이렇게 한국에 아들러가 소개될 수 있게 되어서 굉장히 기쁩니다.

 

이렇듯 큰 사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미움 받을 용기』라는 제목에서부터 강한 공감대가 형성되는 것 아닐까요?


기시미 이치로 :미움 받을 용기』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닌 어쩌면 여러분이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내용들을 조금 더 분명하게 이야기함으로써, 내 안에 무언가 막혀있던 것이 뚫리는 것 같은 느낌으로 다가섰기 때문에 인기를 얻게 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책의 제목은 미움을 받고 계속 살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미움 받을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살아나갔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입니다. 타인에 맞춰서 살아가는 삶을 사는 한 자신의 진정한 삶을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고가 후미타케 :일본에서도 책의 제목이 굉장히 충격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는데요. 아직 책을 읽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제목을 보고 놀랐다는 것 자체만으로 이미 독자와의 대화는 시작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미움 받을 용기』는 철학자와 청년이 나누는 대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러한 방식을 택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기시미 이치로 : 철학자와 청년의 대화를 그대로 세상에 알리고 싶다는 차원에서 이와 같은 구성을 생각했습니다.

고가 후미타케 :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제 스스로 아들러의 심리학에 대해 이해가 부족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책 속의 청년처럼 실제로 기시미 선생님 댁을 수차례 방문하면서 질문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그 과정을 그대로 책 안에 담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책에 실린 대화는 실제 두 작가님 사이에 오간 이야기와 얼마나 닮아 있나요?


고가 후미타케 :지금까지 철학과 심리학 관련 책들을 많이 읽어왔는데요. 잘 납득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예를 들면 프로이트 책을 읽을 때 재미있다고 느끼면서도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혹시 아들러라면 이에 대한 해답을 찾아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고요. 그 과정에서 기시미 선생님을 만나 뵙고 여러 가지 질문을 많이 해왔습니다.


기시미 이치로 : 고가 선생님께서는 자신이 가진 의문에 대해서 타협 없이 질문을 하셨고요. 때로는 날카롭다고 느껴질 정도여서 제가 곤란했던 적도 있었습니다(웃음). 제가 강의를 했다기보다는 우리 두 사람이 이야기를 하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어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가 후미타케 : 물론 기시미 선생님께서는 저보다 연장자이시고 어떻게 보면 스승과 같은 존재이시지만, 한 사람의 친구로서 대등하게 대해주셨습니다.

 

대화를 시작하기에 앞서 고가 후미타케 작가님께서 갖고 계셨던 굵직한 질문들은 무엇이었나요?


고가 후미타케 : 저는 프로이트의 심리학을 읽고 자란 세대입니다. (프로이트와 달리) 아들러는 트라우마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그 부분을 가장 믿지 못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것이 가장 주된 의문 사항이었습니다.

 

프로이트의 ‘원인론’이 아들러의 ‘목적론’보다 더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진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기시미 이치로 :자신의 책임을 더 애매하게 만드는 데 유효한 도구로 (프로이트의 이론이) 쓰일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탓이 아니야, 어쩔 수 없는 일이야’ 라고 생각하기가 더 쉬웠던 것이죠.

 

고가 후미타케 작가님께서는 아들러 심리학을 만나기 이전에 프로이트파나 융파의 이론이 왠지 불편했다고 밝히셨습니다.


고가 후미타케 : 프로이트나 융의 이론은 과거 혹은 어린 시절에 발생한 일 자체를 중요시하고 있는데요. 그 부분에서 저는 ‘과거는 바꿀 수 없는 것인데 그렇다면 나는 그 영향으로 나머지 인생을 불행하게 살아야 되는 건가’라는 의문을 가지게 됐습니다. 동시에 ‘그렇다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잖아’라고 생각돼서 마치 손발이 묶여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어딘가에 또 다른 해법이 있지 않을까’라는 의문을 품게 됐습니다.

 

『미움 받을 용기』의 청년처럼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으면서 다른 이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런 상태는 지극히 평범한 것일까요?


고가 후미타케 : 저 역시 책 속의 청년처럼 10대와 20대 때는 타인의 시선을 신경 썼습니다. 어느 정도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어떻게 하면 타인의 시선을 개의치 않을 수 있을까’를 생각했을 때 아들러의 사상은 그 방법을 찾아주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시미 이치로 : 어렸을 때 저는 키가 작다는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친구에게 그런 얘기를 했더니 쓸 데 없는 생각을 한다고 말하더군요. 제게는 그 말이 참 힘이 됐습니다. 키가 작다는 것 자체가 나의 존재에 대한 평가나 가치와는 전혀 상관없다는 걸 알게 되면서, 굉장히 큰 힘을 얻게 됐고 그때부터 많이 달라진 것 같습니다.


철학자의 말에 따르면, 우리는 관계를 끝내고 싶다는 결심을 한 후에 그 구실을 찾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관계를 끝내고 싶다고 결심하게 된 원인은 상대의 과실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기시미 이치로 : 만약 어떤 사람에게 호의를 느낀다면 그 사람이 잘못을 해도 그럴 수 있지, 라고 생각하고 넘어갈 수 있습니다. 반면 그 사람을 싫어하면 나쁘게 생각하게 됩니다. 내게는 자상하게 느껴지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는 우유부단한 사람으로 비춰질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믿음직한 사람으로 보이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지배적인 사람으로 생각될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들은 원인이 있기 때문에 결과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이 사람은 이렇다’라고 결심을 하고 그 바탕 위에서 이유를 찾아내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결심에 따라서 구실을 찾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이치에 맞다고 생각합니다.


고가 후미타케 :남녀의 관계를 보더라도 연애 초기에는 컵의 물을 엎질러도 귀엽다고 받아들여지는데, 시간이 흐르면 같은 행동이라도 감정이 다르게 느껴지고 오히려 화를 낼 수가 있습니다. 상대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가 아니라 내 자신이 어떤 관계를 갖고 싶은지에 따라서 감정이 따라온다고 할 수 있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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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미 이치로 “존재 가치 느끼려면, 자신을 있는 그대로 수용해야 한다”


“인간의 고민은 전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고민이다”라고 단언한 아들러는 자신의 과제와 타인의 과제를 분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그 선택이 가져온 결과를 최종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누구인가?’를 생각함으로써 과제를 구분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미움 받을 용기』에서 철학자는 바로 이 개념-‘과제의 분리’를 이해하게 되면 모든 인간관계의 카드를 자신이 쥐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고 말한다. 변하는 것은 자신일 뿐, 상대가 어떻게 될지는 아무도 모를지라도 말이다. 상호작용 없이도 관계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이야기는 사실일까.

 

좀처럼 의문이 가시지 않는 부분은 또 있었다. 아들러는“인간은 자신이 가치 있다고 느낄 때에만 용기를 얻는다”고 말했고 철학자는 “인간은 ‘나는 공동체에 유익한 존재다’라고 느끼면 자신의 가치를 실감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무엇’을 기여했느냐가 판단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경계했다. 존재의 차원에서 생각했을 때 모든 사람은 “여기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타인에게 도움이 되고 가치가 있다는 이야기였다. 누구라도 듣고 싶은 말이었고 믿고 싶은 말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마음처럼 쉽지만은 않다는 것도 모두가 아는 바였다. ‘과연 나는 존재만으로 가치 있는 사람인가’라고 자문하는 순간이 적지 않은 까닭이다. 그때마다 머뭇거리게 된다는 것 역시 알고 있는 까닭이다. 이럴 때 우리가 떠올려야 하는 것은 무엇일까.

 

『미움 받는 용기』가 전하는 마지막 메시지는 ‘지금, 여기’를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철학자는“인생이란 지금 이 찰나를 뱅글뱅글 춤추듯이 사는, 찰나의 연속이라고. 그러다 문득 주위를 돌아봤을 때 “여기까지 왔다니!” 하고 깨닫게 될 걸세”라고 조언한다. 춤춘 결과 어딘가에 도달은 하겠지만, 목적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도 말한다. 그의 말을 믿고 순간순간 춤추며 살고 싶은 마음도 들지만, 목적지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 발목을 잡는다.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곳으로 향하는 길이라 하더라도 ‘지금’ 몸이 이끄는 대로 향하면 그만인 걸까. 철학자는“여행객들이 북극성에 의지해 길을 나서듯 우리 인생에도 ‘길잡이 별’이 필요”하다고 “‘타인에게 공헌한다’는 길잡이 별만 놓치지 않는다면 헤맬 일도 없고 뭘 해도 상관없”다고 말하지만, 그래도 괜찮은 걸까.

 

『미움 받을 용기』에서 철학자는“타인의 기대 같은 것은 만족시킬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데요. 모두가 자신이 바라는 모습대로 살고 타인의 기대는 개의치 않는다면, 공동체에 혼란을 가져올 수도 있지 않을까요?


기미시 이치로 : 내 삶은 타인의 삶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 원리는 타인에게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내 만족을 위해서 그 사람이 살고 있는 것은 아닌 것이죠. 이런 전제 하에 같이 살아간다면 문제가 발생했을 때 하나씩 조정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공동체에 무엇이 유익한가’를 생각할 수도 있게 되고요. 그렇게 된다면 우려하시는 바와 같이 많은 충돌이 일어나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고가 후미타케 :아들러는 여행자가 여행을 할 때 북극성을 바라보고 방향을 잡는다고 합니다. 그것은 결국 자유를 행사하려고 할 때 별을 보고 자유롭게 따라가는 것이죠. 『미움 받을 용기』에서는 ‘길잡이 별’로 표현되었는데요. 모두가 ‘길잡이 별’을 바라보고 타자 공헌을 위해서 걸어가게 된다면, 스스로의 자유도 누릴 뿐만 아니라 사회의 조화를 이루면서도 살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는 상태란 타인의 평가를 괘념치 않는 상태일까요?


기시미 이치로 :타인의 평가나 인정을 받고자 하는 사람은 결국 타인에게 의존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공동체에 대한 공헌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인정 욕구는 자연히 필요 없게 됩니다.


고가 후미타케 : 예를 들어서 부모의 말에 순종하면서 산다거나 회사를 위해서 산다고 했을 때, 당장 내일 부모님께서 돌아가실 수도 있고 회사가 문을 닫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후의 인생은 자기 스스로 걸어가야 하는데요. 누군가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서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언젠가는 내 힘으로 살아가야 할 때가 반드시 오게 된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내 발로 내 삶을 걸어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변한다면 상대가 변하지 않더라도 관계가 달라질 수 있을까요?


기시미 이치로 :다른 사람을 바꾸기 위해서 내가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바뀜으로 인해서 타인이 바뀔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내가 변화되고자 하는 것은 스스로가 결정하는 문제인 것이고요. 대부분의 경우 (내가 바뀌면) 타인도 많이 바뀌는 것이 사실입니다만, 그것을 목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죠.


고가 후미타케 : 자신이 다니는 회사에 매우 권위적이고 지배적이면서 걸핏하면 화를 내는 상사가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아들러 심리학을 이해하게 되면 그 상사가 왜 그런 행동을 취하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바로 열등감 때문입니다. 그는 일에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에 늘 화내고 다른 부분에서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것입니다. 일종의 속임수를 부리는 건데요. 아들러 심리학을 통해서 그 부분을 간파하게 된다면 더 이상 그의 행동을 신경 쓰지 않게 될 수 있습니다.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자신이 가치 있다고 느끼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이들에게 어떤 조언을 들려주고 싶으신가요?


기시미 이치로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는 출발점에서 시작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입니다. 공동체 감각이나 공헌감을 가지는 데 동기가 필요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아이가 태어났을 때 그가 살아있는 것만으로, 태어나서 존재하는 것만으로 기쁘게 생각하지 않습니까. 그렇듯이 타자 공헌에 대한 감각을 느낄 때 우리는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라고 느껴집니다. 그것이 출발선이 된다는 것입니다. 간혹 이런 경우가 있습니다. 특별히 잘한다는 소리를 듣고 싶어 하는 아이가 있는데 굉장히 성적이 우수해요. 그러다가 성적이 떨어지게 되면 갑자기 돌변해서 ‘그럼 난 나쁘게 살래’ 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잘났다 못났다의 차원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자기의 모습을 수용하는 것부터 시작을 해야 됩니다.


고가 후미타케 :만약 당신이 내일 세상을 떠난다면 당신을 위해서 슬퍼해줄 사람, 당신이 없음으로 인해서 눈물을 흘려줄 사람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당신의 존재 자체가 그들을 위해 공헌하고 있다는 것이죠. 죽음을 맞았을 때 단 한 명이라도 눈물을 흘리며 슬퍼할 사람이 있는 한, 당신은 존재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미움 받을 용기』는 ‘지금, 여기’에 충실한 삶을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 결과로서의 삶이 만족스럽지 못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기시미 이치로 :만약 그 도착점이 자신이 생각했던 곳이 아니라고 생각되면, 거기에서부터 다시 또 다른 ‘길잡이 별’을 보고 걸어가기 시작하면 되지 않을까요. 불안한 분들은 목표를 세워도 좋습니다. 그런데 그 목표가 실현되지 않았다고 해서 ‘내 탓이야, 나 때문에 잘못됐어’라고 할 것이 아니라 목표를 다시 새롭게 만들어 나가면 됩니다.


고가 후미타케 : 목표만을 생각하는 인생은 내비게이션 화면만 바라보고 운전하는 것과 같습니다. 현실은 (내비게이션 화면이 아니라) 눈앞에 펼쳐져 있는 길인 것이죠. 자신 앞에 펼쳐져 있는 길을 보지 않고 내비게이션 화면만 보고 간다면 사고가 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비게이션에 의지하지 말고 눈앞에 펼쳐진 현실의 길을 보다가, 내비게이션에서는 직진이라고 얘기해도 ‘오른쪽으로 가면 뭔가 재미있는 일이 있을 것 같다’고 느껴지면 핸들을 오른쪽으로 꺾으면 됩니다. 내비게이션 화면이 아닌 내 앞에 펼쳐진 길을 바라보고 걷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미움 받을 용기』는 정답을 남기는 이야기가 아니기에 반갑다. 책 속에서 청년과 철학자가 주고받은 질문이 책 밖의 나에게 안착한다는 것이 고맙다. 그 결과 우리는 과거의 그늘에서 자유로워질 것이고, 타인의 시선이 아닌 자기 안의 목소리에 집중하게 될 것이며, 매 순간 스스로를 가치 있는 존재라고 여기면서, 춤을 추듯 단순하게 삶을 살아나갈 수 있을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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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받을 용기 :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위한 아들러의 가르침기시미 이치로,고가 후미타케 공저/전경아 역/김정운 감수 | 인플루엔셜
그런데 우리는 모두 변화를 원한다. 지금보다 더 자유로운 삶, 지금보다 더 행복한 삶, 지금보다 더 성공적인 삶. 하지만 우리는 쉽게 핑계를 대고, 쉽게 포기한다.용기’가 필요하다. 자유로워질 용기, 평범해질 용기, 행복해질 용기, 그리고 미움받을 용기.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원하는 당신,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용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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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1% 초저금리 시대 현명한 투자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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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금리 인상 움직임이 관측되는 가운데 한국의 금리 인하를 설마 설마 하며 지켜본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실제로 한국은행은 지난 3월 12일 금리인하를 단행했다. 경기 부양을 위해 어쩔 수 없었다는 분석과 가계 부채를 부추길 우려가 있다는 비판이 팽팽하게 맞섰지만 어쨌든 한국에도 금리 1%대 시대가 시작된 것은 사실이다.

 

『거꾸로 즐기는 1% 금리』는 이러한 저금리 시대 일반인이 어떻게 경제생활을 해야 하는지를 제시한 책이다. 중앙일보시사미디어 본부장인 김광기 기자 외 3명이 함께 쓴 이 책은 저금리 시대에 적절한 연 수익률을 5%로 본다. 5%라는 현실적인 수치가 증명하듯 『거꾸로 즐기는 1% 금리』는 비밀스러운 묘법을 알려주는 게 아니라 많은 일반인이 바로 할 수 있는 방법을 전달한다.

 

본격적인 투자 방법을 알리기에 앞서 이 책은 왜 세계가 저금리 기조로 갈 수밖에 없는지를 세계자본주의 차원에서 진단했다. 그런 흐름에서 한국도 예외가 아니며, 앞으로는 일확천금을 얻을 기회는 없다고 말한다. 아울러 부동산보다는 주식이나 펀드 위주로 포트폴리오를 관리할 것을 조언한다. 가급적 한국 증시보다는 세계 증시 전반을 볼 것을 덧붙였다.

 

한편 김광기 기자는 서울대 무역학과를 졸업한 뒤 중앙일보에서 25년간 경제 전반을 취재한 경제 전문 기자다. 중앙일보 편집국 부국장, 중앙선데이 경제에디터, 경제연구소 부소장을 거쳐 현재 중앙일보시사미디어 본부장으로 활동 중이다.

 

책이 나온 뒤 실제로 한국도 기준금리 1% 시대가 열렸습니다. 책에서 예상한 게 사실이 되었는데요. 지켜보시면서 어떤 느낌이었나요.

 

책 서문에서도 언급했듯이, 금리 1%시대가 열린 것은 한국 경제가 그만큼 힘들어졌다는 방증입니다. 더구나 이런 현상은 오래 지속될 것입니다. 국가 경제를 걱정하기에 앞서 우리들 각자가 살아남을 방도를 적극 모색해야 합니다. 이 책이 그런 고민을 하는 분들께 큰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1%금리 시대가 되고 보니 5% 수익이 상당히 어렵게 느껴지는데요. 5%는 어떻게 나온 숫자인가요.

 

세계적으로 금융시장과 부동산시장에서 중위험의 중수익은 5%로 수렴하고 있습니다. 5% 아래로 내려가면 돈을 불리기가 좀처럼 쉽지 않기 때문에, 반드시 사수해야하는 재테크의 마지노선이기도 합니다. 위험 관리만 잘하면 얼마든지 달성 가능한 현실적인 목표치이기도 하고요.

 

한국 경제가 저성장, 저물가, 저고용, 저소비, 저투자, 저금리라는 신6저에 진입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하셨는데요. 많은 사람이 경제 불황을 정권 탓으로 돌리기도 하는데, 이런 신6저의 근본적 이유로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복합적인 현상입니다. 우리 경제가 성숙기를 넘어 급속히 고령화하는 측면, 기업들의 혁신 역량이 떨어지는 측면, 정부의 안일한 대응 등이 겹쳤습니다. 아울러 글로벌 경제 환경 또한 우리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지금 세계는 어느 나라나 투자와 일자리가 잘 늘어나지 않는 구조적 문제에 노출돼 있습니다.

 

 '1%대 초저금리'는 곧 디플레이션의 증거라고 하는데, 한국도 일본처럼 잃어버린 20년에 접어들었다는 견해에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그리고 이 불황의 늪에 개개인은 어떤 경제 전략을 세워야 할까요?

 

앞으로 몇 년 허송세월하면 일본처럼 될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구조조정을 통해 경제의 체질을 서둘러 개선해야 합니다. 개개인은 가계 자산의 구조조정을 통해 과도한 부동산 비중을 줄이는 한편, 현금 흐름이 잘 나오는 투자형 금융자산들을 늘려야 합니다. 아울러 우리보다 상황이 좋은 해외 시장의 자산을 취득해 투자 포트폴리오를 다양하게 꾸려나가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집값을 걱정하는데요. 바닥이라는 의견과, 추가 하락이 있을 거라는 의견이 공존합니다. 기자님께서는 어떤 의견인지요.

 

앞으로 1년 정도는 집값이 조금씩 더 오를 겁니다. 전셋값이 워낙 높다보니 떠밀려 오르는 것이지요. 하지만 소득과 인구, 금리 재상승 우려 등을 감안할 때 집값은 다시 떨어질 위험에 노출될 것으로 예상합니다. 서울 강남의 재건축 아파트들이 본격 입주하는 2018년이 중대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집값에 상관없이 나는 지금 사는 곳이 좋다면 뭘 걱정하겠습니까? 하지만 빚이 과해서, 노후 준비가 덜 돼서 집을 팔거나 줄일 필요가 있는 사람이라면 2016년 내에 집을 파는 게 바람직해 보입니다.

 

책에서는 그래도 주식, 펀드가 답이라고 하셨습니다. 개인 투자자에게 부동산보다 주식, 펀드가 더 유리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부동산은 아무래도 초기 투자비용이 많이 들고 대출을 받는 경우도 있지요. 개인에게는 부담이 따르고, 판단을 잘못했다가는 전 재산을 날릴 위험도 따릅니다. 부동산 투자도 펀드를 통해 간접적으로 하는 게 좋습니다. 주식은 초저금리시대에 가장 좋은 투자 대안입니다. 단순이 시세차익을 먹는다는 관점에서 보면 안 됩니다. 불황에도 강한 세계 초일류 기업의 주인이 되어서 그 성장의 과실을 정당하게 나눠먹는다는 생각으로 접근하는 게 바람직합니다. 그래야 인내심을 갖고 장기 투자할 수 있고, 더 큰 수익을 안정적으로 얻을 수 있습니다. 주식을 사면 단 돈 몇 십만 원으로도 1등 기업의 주인, 즉 자본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미국은 관련 자료들을 구할 소스가 많지만, 중국은 개인 투자자가 소식을 알아보기에 좀 폐쇄적인 면이 있습니다. 기자님은 중국에 관한 자료를 어디서 찾아보시나요?

 

중국에 대한 자료도 증권사의 분석 보고서나, 해외 저널, 이를 소개하는 국내 신문 잡지 등을 통하면 필요한 정보를 얼마든지 얻을 수 있습니다. 세상에 정보는 넘칩니다. 잘 분석하고 이해하는 게 중요하지요.

 

투자라는 게 그래도 종자돈이 있어야 가능한데, 양질의 일자리가 없는 대한민국에서는 특히 청년들은 투자는커녕 생존도 쉽지 않아 보입니다. 종자돈이 부족한 사람은 어떻게 미래를 기획해야 할까요.

 

청년들의 고통을 왜 모르겠습니까. 그래도 자포자기하면 안 됩니다. 10만 원이라도 매월 저축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특히 주식이나 적립식 펀드에 투자하면 자연스럽게 경제 공부를 하는 부수적 효과를 얻을 수 있습니다. 더 좋은 일자리를 찾거나 창업을 할 때, 주식 투자에서 큰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용기를 잃지 마세요.

 

*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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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즐기는 1%금리 김광기,서명수,김태윤,장원석 공저 | 메디치미디어
한국에도 닥쳐온 1% 금리 현상, 여기서 살아남을 생존법은 과연 무엇일까? 이 책은 전에 우리가 알던 경제 세계와 완전히 달라진 1% 금리 시대 재테크의 기반을 담고 있다. 초저금리를 감안하지 않은 재테크는 필패할 수밖에 없다.다년간 축적해온 데이터와 실제 투자 사례를 바탕으로 1% 금리시대 세계경제가 도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심도 있게 분석하고 투자 방향을 제시하는 '초저금리의 경제학 교과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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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혜란 “결혼 안 해도 괜찮지만 이왕 할 거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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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결혼했을까’, ‘왜 이혼 안 했을까’, ‘결혼해서 좋은 게 고작 아이 낳은 거라고?’... 『결혼해도 괜찮아』의 중제목과 소제목이다. 이처럼 이 책은 박혜란 저자 특유의 거침없는 입담으로 채워진 책이다. 결혼 45년차를 맞는 저자가 결혼생활의 민낯을 공개한 이 책은 저출산 고령화 사회에서 결혼 장려를 할 것처럼 하지만, 그렇지는 않다. 결혼하지 않아도 괜찮지만 이왕 할 거라면 좀 더 현명하게 하라는 조언한다. 결혼생활에서 맞닥뜨릴 힘든 점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럼에도 결혼생활을 하는 이유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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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해도 괜찮아』라는 제목을 보면 요즘 결혼을 망설이는 젊은 세대들에게 결혼을 장려하는 내용일 거라는 추측을 하게 하는데, 읽어보니 혼자 살아도 괜찮다는 내용도 담겨 있네요. 제목에 담고 싶은 의미는 무엇이었나요?

 

한 세대 전만 해도 결혼은 인생의 통과의례로서 누구나 해야 하는 걸로 받아 들였지만 요즘은 미혼남녀의 40퍼센트 이상이 ‘결혼은 안 해도 괜찮다’ 고 생각하는 시대입니다. 또 결혼을 하고 싶어도 심각한 취업난이나 주택난 육아난으로 지레 결혼을 포기하는 이들이 점점 늘고 있죠. 내가 느끼기에 결혼을 하고 싶어하는 젊은이나 혼자 살겠다는 젊은이나 자기선택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모두들 불안해하는 게 현실이에요. 뿐만 아니라 이미 결혼은 했지만 생각했던 것과 너무나 다른 결혼의 현실 때문에 당혹스러워 하는 이들도 많아요. 그들 모두에게 나 역시 수많은 갈등을 겪었던 선배로서 행복은 결혼을 했느냐 안 했느냐에 따라서 갈리는 게 아니라 자신이 얼마나 행복하게 살기 위해 노력하느냐에 달렸다는 말을 하고 싶었죠. 결혼해도 괜찮고 혼자 살아도 괜찮아요. 인생은 결국 자기가 생각한 만큼 사는 거다라고.

 

대학시절에 만난 남편과 45년을 해로하셨는데 남편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많이 공개하셨습니다. 이를테면 결혼 전 남편이 아는 척하지 않고 과묵해서 멋있어 보였는데 막상 살아보니 워낙 아는 게 없어 과묵했다거나, 신혼시절 한입 먹어보란 말도 없이 혼자서만 갈치구이를 다 먹어치웠다거나 하는 내용인데요. 책이 나온 후 남편의 반응은 어떠셨나요?

 

책을 쓸 때 경험한 것과 생각한 것 이상의 것을 풀어내는 재간이 없어요. 결혼에 관한 책을 쓰려고 마음먹었을 때 미리 남편에게 어차피 당신 이야기가 나올 수 밖에 없을 테니 각오하라고 엄포를 놓았죠. 나중에 정 억울하면 반박하는 책을 쓰면 되지 않느냐고. 내심 꽤 걱정이 됐던지 출간되자마자 읽은 후의 독후감은 이랬어요. “완전 나만 묵사발이 됐군.” 혹시 명예훼손으로 고소하지 않을까 했는데 그냥 넘어가기로 한 것 같아요. 아마도 공개한 에피소드는 빙산의 일각이라는 걸 남편도 잘 알기 때문이겠죠.

 

배우자를 선택할 때 대체로 남자들은 상대방의 외모, 여자들의 경우 상대방의 경제적 능력을 우선시하는 것 같습니다. 배우자 선택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가치관입니다. 좀 추상적으로 들리지만 성격이나 습관이 다른 것은 서로 차이를 인정하고 조정해 나가면 되지만 가치관이 다르면 평생 괴로워요. 예컨대 돈이 수단이라고 생각하는 사람과 돈을 목적 자체로 생각하는 사람이 함께 산다면? 성공하면 행복이 따른다고 믿는 사람과 행복해야 성공이라고 믿는 사람이 평생을 함께 산다면?

 

평균적인 결혼연령이 점점 높아지고 있는 추세입니다. 예전에 비해 결혼적령기를 따지는 사람들이 줄어들고 있긴 하지만 무시하기도 힘든 게 현실인 듯합니다. 이 점에 대해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으신가요?

 

결혼적령기가 따로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제 경험으로는 세상이나 이성에 대해서 너무 많이 알게 되면 결혼을 안 하거나 못하게 될 확률이 높아지지 않을까 싶어요. 단 아이를 꼭 낳고 싶다면 여성의 가임기 안에 결혼해야 할 거예요.
 
싸우지 않고 결혼생활을 유지하기는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현명하게 싸우는 방법, 화해의 기술에 관해서 말씀해주신다면?

 

단순한 식성의 문제를 상대방 집안의 수준문제로까지 비약시키는 식으로 작은 싸움을 큰 싸움으로 몰고 가지 말 것. 그 날 싸움은 그 날로 끝낼 것. 화해의 제스처를 부끄럽게 생각하지 말 것. 화가 머리끝까지 올랐을 때는 숨을 고를 시간을 가질 것.

 

결혼한 사람이라면 ‘알았으면 절대 안 했다’라는 소제목에 크게 공감할 듯합니다. 하루에 열두 번씩 후회하며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결혼하지 않았으면 절대 배울 수 없는 것들, 얻을 수 없는 것들은 무엇일까요?

 

결혼이 행복을 덩굴째 가져다 주지 않는다는 것, 행복은 내가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 자신이 얼마나 유치한 인간인지 처참할 정도로 깨닫는 것. 인간은 끊임없는 갈등과 화해의 과정을 통해서 조금씩 성장해간다는 것. 이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네요.

 

‘20년 결혼정년제를 허하라’는 다소 파격적인 제안을 하셨습니다. 어떤 계기로 이런 생각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결혼 30년을 넘길 즈음부터 나 자신이 신기하고 대견하게 생각되면서, 비록 이혼은 하지 않았지만 만약 결혼정년제가 있었더라도 지금의 남편과 이렇게 오래 살았을까라는 의문이 들었어요. 잉꼬같은 결혼생활을 하는 걸로 소문난 비슷한 또래의 여성에게 이런 이야길 하니까 100퍼센트 동감이라고 해서 내가 오히려 놀랐죠. 결혼정년제가 있다면 아마 남편 쪽에서 훨씬 긴장할 것이 분명합니다. 따라서 아내를 좀 더 배려하고 존중하지 않을까요.  
 
책 말미에 나오는 남편을 향한 감사일기를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만약 남편이 선생님에게 감사일기를 쓴다면 어떤 내용일까요.
 
감사일기를 쓸 당시 남편에게 당신도 내게 감사일기를 써주면 같이 싣겠다고 제안했으나 한 마디로 거절당했어요. 처음엔 쑥스러워서 그랬거니 내 맘대로 넘겨 짚었지만 나중에 생각하니 아내한테 감사할 게 전혀 없었던 게 아니었나 싶기도 해요. 그 깊은 속을 내가 어찌 알겠어요.
 
연애와 결혼을 포기하는 청춘이 늘고 있는 지금, 선배로서 마지막 한 마디 부탁 드립니다.

 

결혼까지는 모르겠고 연애는 열심히 하라고 권하고 싶네요. 연애하는 동안의 그 설렘과 충만감 그리고 불쑥불쑥 찾아오는 불안과 초조감을 또 어디서 맛보나요. 돈 없으면 연애도 못하나요? 옛날 얘기해서 미안하지만 우리시대에도 ‘재건데이트’라는 게 있었어요. 찻값도 차비도 없어서 둘이 하루 종일 같이 걸어 다니는 것. 걸으면 대화도 넘쳐나고 건강도 좋아집니다. 그렇게 가난한 연애를 하다 보면 가난한 결혼도 하고 싶어질지 모르죠. 우리 시어머니 말씀에 따르면 ‘건강하고 부지런하면’ 무서울 게 없다고 합니다.

 

*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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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해도 괜찮아
취업 출산 결혼을 포기했다고 해서 ‘삼포세대’라는 말이 생기고, 결혼하는 사람보다 이혼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세상에 ‘결혼해도 괜찮다?’ 올해로 결혼 45년차 여성학자 박혜란은 결혼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할까? 이제는 이적 엄마로 더 많이 알려진 베스트셀러 저자 박혜란은 특유의 유쾌한 글쓰기로 결혼을 비틀기 한다. 지금부터 결혼이라는 유쾌한 진흙탕에 빠져 한바탕 놀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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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배우 이천희는 왜 가구를 만들기 시작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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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다'

 

사전을 찾아본다. ‘노력이나 기술 따위를 들여 목적하는 사물을 이루다’란다. 노력을 들여 무언가 만드는 행위에 대해 생각한다. 조개껍데기를 화폐로 사용했던 순간부터 인간은 계속해서 무언가를 만들며 살았다. 동물의 가죽으로 옷을 지어 입었고, 뼛조각을 엮어 목걸이를 만들었다. 어느 재주 좋은 연예인이 무인도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뚝딱뚝딱 만들어내기도 하거니와 비행기를 만들고, 스마트폰까지 만들어 낸 지금, 인간이 만들지 못할 것은 거의 없어 보인다. 하지만 개개인으로 시선을 전환하면 결코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을 금방 깨닫는다. 만들 수 있는 것이 없다. 손수건, 양말 한 짝도 만들지 못해 돈을 주고 산다. 만들기에 필요한 상상력도 무척이나 빈곤한 수준이다. 손을 사용해 자신의 쓸모를 위한 물건을 만드는 행위, 그 행위를 거의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배우 이천희는 만든다. 일찍부터 만들기에 빠졌다. 군대 제대 후 방 한 가득 공구를 모아두고 이것저것 만들었다. 친구들은 그더러 미쳤다고 했다. 모델 활동을 하고, 배우가 되었어도 만들기에 대한 관심은 끝나지 않았다. 아니, 더 커졌다. 투박하지만 자신의 스타일로 테이블을 만들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나자 아이를 위한 하나뿐인 침대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자신의 쓸모대로 취사선택한 ‘아빠표 침대’가 그렇게 완성됐다.

 

“만드는 과정이 그 가구만의 스토리가 된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내가 사용하는 의자를 두고 ‘이거 백화점에서 50퍼센트 할인하기에 옳다구나 하고 샀어’라고 이야기하는 것과 ‘내가 이걸 만드는 데 한 달이 넘게 걸렸는데, 만들 때 이런 일이 있었어’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다르지 않을까.”(32쪽)

 

만들면서 자연스럽게 태어나는 이야기들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는 엄청난 거리가 있을 것이다. 이야기는 어느 곳에서나 태어나지만 잃어버린 행위에서 태어나는 이야기는 좀 더 특별할 것이다. 때문에 만들기는 매력적이다. 만드는 사람은 매력적이다. 매력적인 사람, 이천희가 솔직하게 들려주는 자신의 삶과 세상에 대한 시선이 가구 만들듯 꼼꼼하게 견고하게 한 권의 책에 담겼다.

 

나무는 제각기 다르잖아요


“나무처럼, 자연스럽게 살고 싶다”(60쪽)고 하셨어요. 일과 생활의 균형을 잡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시나요?


‘나는 이렇게 살고 싶어’라고 말하거나, 어떻게 살기 위해서 아등바등 하지 않으려고 해요. 만들어나가는 삶이라고 생각하고요. 목표를 정하고, 계획을 짰다가 안 됐을 때 좌절하거나 힘들어하는 게 아니라 이 모든 것들을 한 흐름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요. 되려면 되겠죠. 안 되면 안 되는 거고요. 나무처럼 흐름대로, 흘러가는 대로 살고 싶어요. 내가 흘러가다 보면 그렇게 될 것이고, 내가 계속 신경 쓰고 관심을 갖다 보면 어떤 위치에 가게 되겠죠. 그렇게 받아들이고 살았어요. 저는 사실 톱스타가 되어야지, 인기를 얻어야지, 하는 마음을 먹고 이 일을 시작한 것도 아니에요. 어떻게 되겠지, 이런 역할을 해보고 싶다, 이런 역할을 하면 열심히 잘 해야지, 하다 보니까 그렇게 하게 됐어요. 어느 순간, 흐름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흘러가는 대로 받아들이면서 사는 게 어떻게 보면 나무가 사는 방식이 아닐까 생각하게 됐어요. 바람이 불면 바람을 맞고,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또 햇볕이 내리쬐면 자라고, 낙엽이 떨어지고, 또 다시 나고, 이런 것처럼 말이에요.


많은 배우가 있고, 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을 모두 나무라고 한다면, 각기 다르잖아요. 어떤 나무는 곧고 높은 나무가 있고, 굵고 옆으로 퍼진 나무가 있고요. 내가 옆으로 퍼진 나무인데 저기 곧은 나무가 있다고 해서 저렇게 살고 싶다고 해도 그렇게 되진 않죠. 같은 나무지만 나는 그 나무가 아니니까요. 나를 그냥 흐르는 대로 두면 커지고, 풍성해지고, 더 멋있어질 거예요. 그래서 저는 뿌리, 이름, 성격부터 그냥 다른 나무야, 라고 생각하자 했어요. 모델을 할 때도 여러 모델들이 있는데 다 각자 나아가는 방법도 다르고, 연기를 받아들이는 느낌도 달랐죠. 그때도 나는 다른 나무야, 스타일이 달라, 나를 저렇게 만들려 하지말자, 이랬었거든요.(웃음) 나무를 만지면서도 그랬어요. 나무마다 다르잖아요. 애쉬, 오크, 월넛 등. 자를 때도 다르고 톱이 들어갈 때 느낌이나 방식도 향도 다 달라요. 만들어놓았을 때 느낌까지 다 다르니까요.

 

사람이 그저 다를 뿐, 틀린 게 아니고 나는 그냥 자연스럽게 ‘흐르는 대로’ 간다는, ‘방향성’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다행히도 지금까지는 그게 잘 먹혔죠.(웃음) 정말 운이 좋은 케이스죠.

 

운이 좋다 하셨는데, 연극하는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도 잠깐 언급하셨잖아요.

 

그런 것 생각하면 정말 그렇죠. 하지만 저 친구들도 다 행복하게 살아요. 즐겁게 살고요. 같이 캠핑도 하고요. 그런 것 보면 우리도 모두 다른 나무인 거죠. 스타일도 다르고요. 어느 부분은 저보다 훨씬 멋있어요. 집도 조금씩 넓혀가고요. 다들 잘하고 있으니까요.

 

그보다 먼저 ‘내가 아는 나와 타인이 아는 나’ 사이의 간극에 대해 말씀하셨어요. 연예인으로 살면서 자연스럽게 그런 차이에 대한 고민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필연적으로 평가가 많은 직업이기도 하고요. 자유로워졌다고 하셨지만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요즘 들어 그런 생각도 많이 해요.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나’라는 것은 결국 내가 만든 내 모습이 아닌가 하고요. 내가 사람들을 불편해하기 때문에, 혹은 저 사람들이 나를 특별하게 생각하겠지, 하는 생각 때문에 사람들이 다르게 받아들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사실 다를 게 없잖아요. 내가 ‘조심해야지, 나는 저들과 달라.’하고 생각하는 순간, 그들도 나를 다르게 볼 거예요. 그냥 이제는 내려놨다고 해야 할까요? 똑같은 같은 시대를 사는 사람으로서 그냥 똑같은 것 같아요. 그 사람이 날 진짜 불편하게 하는 게 아니라 내가 그 사람을 좀 불편하게 생각한 게 아닐까 하고 받아들이니까 좀 많이 편안해졌어요. 결혼하고 혜진 씨와 그런 얘기를 정말 많이 해요. 전에는 그런 얘기를 할 수 있는 상대가 많지 않았고, 주변에는 가족들, 형제들만 있었으니까요. 내가 불편함을 느끼는 걸 이해 못한 부분이 있었는데요. 혜진 씨와는 이런 얘기를 했어요. 이게 불편해도 우리가 행복하려면 이걸 받아들이고 해야 돼, 그렇다면 어떻게 할까, 함께 고민하다 보니 이건 불편한 게 아니었네?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우리가 내려놓으니까 어렵지 않은 거라고 생각하게 된 거예요. 혜진 씨와 이게 잘 맞아서 또 생각이 많이 바뀌는 것 같아요. 아이 키우는 것도 그래요. 유치원 보내는 것이 굉장히 힘든 일인 줄 알았어요. 주변에서 하도 힘들다고 얘기해서요. 근데 막상 마음먹고 보내니까 별 거 아니네, 똑같이 하면 되는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내 분이 어리긴 하지만 직업적으로는 선배기도 하고요, 이런 대화를 많이 한다는 것도 이천희 씨에게는 무척 긍정적인 영향을 준 것 같아요. 덕분에 무척 편안해지셨나 봐요?


그렇죠. 많이 편안해진 거죠. 아내는 천생 배우 마인드예요. 날 때부터 배우였을 것 같은 사람이에요. 흔히 배우들에게서 느껴지는 조바심, 불안함, 이런 게 없어요. 인생은 길고 연기를 계속할 건데, 지금 못한다고 해서 불안할 필요 없다고 생각해요. 하고 싶은 건 똑같은 마음이지만 막 하고 싶어서 안달하고 이런 게 아니라, 참 저 역할 좋네, 나도 저런 거 하고 싶다, 하고 끝인 거예요. 자신감도 있고요. 그런 걸 보면서 많이 느끼죠. 저도 결혼하기 전에는 작품 안 할 때는 조바심도 나고, 잊히는 것에 대한 불안함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아내는 그런 게 없어요. 아내도 있을 수도 있겠지만 크지 않은 거죠. 전 정말 많은 부분에서 도움을 받았어요. 게다가 아내 말을 들으면 항상 좋았어요.(웃음) 어떤 결정을 할 때 아내가 ‘이렇게 하면 좋을 것 같아’해서 그렇게 했더니 진짜 좋았어요. 배울 게 많아요. 진짜 나이가 어린 건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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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나 자신에 집중


어떤 사람이 되려고 노력 중”(18쪽)이라고 하셨는데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신가요?


그냥 느낌인 거예요. 내가 어떤 것이 될 거야, 이런 사람이 될 거야, 이런 배우가 되어야지, 이런 스타가 되어야지, 보다 그냥 하다 보니 어떻게 되어 있는 거예요. 처음부터 목표를 세워서 하다보면 그게 안 됐을 때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을 거예요. 계획이 없다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이번에 여기까지 했으니 다음엔 여기까지 하고, 이런 것은 아주 작은 미세한 계획 정도가 적당하고요. 내가 이런 걸 지켜나가면 이런 사람이 되어 있겠지, 라는 생각이에요.


동생과 커뮤니케이션이 안 되는 부분은요(웃음), 동생은 굉장히 정확해요. 동생은 건축을 하고, 회사 다니는 사람이니까요. ‘그래서, 형이 말하는 어떤 게 뭔데?’ 하면 저는 ‘그런 거 있잖아, 방향 이렇게 갔으면 좋겠는데.’하죠. 정확히 얘기해달라고 하는데 그냥 ‘그런’ 걸로 갔으면 좋겠다고 하는 식이에요. 느낌으로 얘기하니까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연기자들이 연기할 때도 정확히 내 감정은 이거야, 라고 연기하는 게 아니잖아요. 느낌에는 미안함도 있고, 화도 나고, 짜증도 나고, 여러 가지가 있잖아요. 그걸 미안함은 3, 짜증은 2, 이렇게 정확하게는 말할 수 없는 거거든요.(웃음) 그래서 아마 책에서도 그냥 ‘어떤’ 게 아니라 그런 게 ‘되고 싶어서’ 하는 것 같다, 라고 표현한 것 같아요.

 

그 문장에서 ‘어떤 사람’이 아니라 ‘노력 중’에 방점이 있는 거군요.


그렇죠. 어떤 사람이란 멋있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성공한 사람이 될 수도 있고, 그건 자기가 만드는 건데요. 제일 중요한 건 그 사람이 되었다, 안 되었다, 라기 보다는 내가 노력하는 것이죠. 그렇게 노력하며 살다보면 성공할 수도 있는 것이고, 멋있는 사람이 되어 있을 수도 있는 거고요. 됐다, 안 됐다, 를 가지고 한 말이 아니고요. 얼마나 충실히 하느냐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그게 중요한 게 아닐까 생각하는 거예요. 

 

느낌이나 분위기를 말하는 것이 어쩌면 연기자, 예술가의 특징이 아닐까 싶어요. 


저도 처음에는 놀랐어요. 서울예대를 들어갔는데 모든 사람들의 말이 다 그런 거예요. “대사를 극장 저쪽에 던져.”라고 해요. 대체 어떻게 던져요?(웃음) 던지라는 게 확 뱉으라는 얘기구나, 짐작하고 했어요. 그래서 뱉으면 또 “야, 던지기만 하면 어떻게 해? 걸어야지!”해요. 참 난감하죠. 대사를 어떻게 걸어요? 물어보면 “너는 걸지를 않고 후후훅 다니잖아! 야, 여기에 빨랫줄이 있다고 생각하고 대사를 걸어봐.” 하는 거예요. 다 그런 식이니까요. 그 다음부터는 저도 극장에서 말을 할 때 나름의 노하우가 생기더라고요. 나는 저 사람 머리통에 얘기하고 있어, 가슴에 얘기한다, 이런 게 있어요. 처음에는 이해 못했는데 지금은 그런 느낌이구나, 생각하게 된 거죠. 방송도 그렇잖아요. 기술적인 부분이 들어가기도 하지만 모든 게 약간 느낌으로 가니까요.

 

오로지 몸만 쓰는 것, 그 상태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는데, 지금 하신 얘기도 통하는 부분이 있어요. 몸으로 배워야 하는 것이라는 점에서요. 이런 것들이 저자에게 잘 맞는 것 같습니다.


학교 다닐 때도 학점은 중요하지 않았어요. 내가 얼마나 학교를 열심히 다녔느냐는 내가 많이 배웠는가 여부에 있었어요. 교수님께 점수를 많이 받았는지는 저에게 중요하지 않아요. 이번 학기 정말 열심히 다녔다고 생각하면 그걸로 스스로에게 A학점을 주는 거죠. 실제 점수와는 상관없이 말이에요. 과대를 해서 장학금을 받아야 하는데, 학점 미달로 장학금을 못 받았어요. 학과에서도 이해를 못했죠. 열심히 했으니까요. 다들 의아해하는 거예요. 저도 학점을 그때 처음 봤어요. 1.6이 안 넘어서 장학금을 못 받게 됐어요. 교수님들도 다 그러셨죠. 쟤는 뭔가 계속 하는데 티가 안 난다고요. 아침부터 학교에 나와서 무대 일도 하고 하는데 그렇지 않은 친구가 학점이 더 좋은 경우도 있었고요. 저는 그게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냥 뭘 해도 그랬어요.


내가 몸으로, 내 스스로 느끼는 게 중요하고요. 가구 역시 사람들이 이걸 인정해주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어떻게 만들었느냐가 더 중요하죠. 내가 이렇게 만들면 가치를 인정해주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만약 가구 만드는 장인이 오셔서 제가 만든 가구를 보면 ‘어떤 놈이 이렇게 만들었지? 생각은 하고 만들었나?’ 이렇게 얘기할 수도 있지만 저에게 그건 의미가 없어요. 내 만족으로 만들다 보니, 이것도 어떻게 보면 느낌인데요. 저는 그게 좋아요. 이 가구를 만들 때 얼마나 미친 듯이 만들었고, 하나하나 사포질하며 공을 들였고, 그런 부분이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사람들의 시선보다 나 자신에 집중하시는 거네요.


오로지 그거예요. 운동을 해도 그래요. 대학 다닐 때 인라인 하키를 정말 좋아했어요. 국내에 인라인 하키를 하는 사람도 별로 없을 때 혼자 어찌어찌 장비를 구해서 매일 운동장에서 혼자 그걸 했어요. 공을 띄웠다가, 강하게 찼다가, 스케이트 타고 다니고 하면서요. 두세 시간 씩 땀 흘리고 집에 와서 자고, 또 새벽되면 나가서 하고요. 혼자의 기량은 어마어마해졌지만 팀은 없고요.(웃음) 나중에 하키 팀이 와서 저한테 같이 하자고 해서 갔어요. 그런데 사람들과 같이 하고, 연습시간도 맞춰야 하고, 하니까 재미가 없는 거예요. 이것저것 할 것도 많고요. 결국 안 하게 됐어요. 자전거도 한강에서 네 시간 동안 앞바퀴 드는 연습을 했어요. 혼자 타고 있으니까 어느 날 크루들이 있다고 와서 같이 타자고 하셨어요. 그게 또 싫은 거예요. 그 분들 안 나오는 시간에 나가고 그랬죠. 혼자 즐길 수 있는 상태가 좋아요.

저는 다 만들고 싶은 거예요


가구 제작 작업은 얼마나 자주 하세요?


요즘은 예전보다 많이 못하죠. 회사를 하는 건 하는 거고, 공방을 분리시킬까 고민 중이에요. 뭘 만들러 가면 직원들이 작업을 하고 있어요. 주말에는 아내, 아이와 함께 있어야 하니까 못 나가고요. 그래서 큰 건 못 만들고 잠깐 가서 조그맣게 할 수 있는 것들만 겨우 만들어요. 최근에 만든 건 휴지걸이에요. 며칠 전에는 아내가 그림 전시를 하는데 벽을 세워달라고 해서 그런 거 만들고요.(웃음)


회사에서 하는 작업은 저는 이제 안 하고, 진짜 일손이 없을 때 도와주는 정도만 해요. 할당량을 맡아서 하진 않아요. 예전에는 스케이트보드 같은 건 다 제가 했었는데요. 촬영 들어가면 제가 못하니까 다 동생들이 만들죠. 저는 요즘 그냥 개인적인 것만 하고 있어요.

 

만든다는 것이 이토록 매력적이라는 사실에 대해 새롭게 느꼈어요. 할 수 있는 것이 훨씬 많아지기도 하고요. 사실 이런 소비사회 이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왔는데 말이죠. 저자가 생각하는 만듦의 매력은 뭔가요?


사람들은 모두 각자 자기 인생을 만들고 있잖아요. 사람들이 사는 방식, 느낌, 형태는 다 다르죠. 그런데 타는 차는 다 똑같고, 집도 똑같잖아요. 저는 그런 것에 좀 답답함을 느껴요.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거지 내 스타일은 아니야, 라고 생각했어요. 아파트가 제일 편하니까 편안한 방식으로 만들어놓은 건데 그대로 살다보면 누군가 만들어놓은 환경에 내가 맞춰 사는 것뿐이잖아요. 이게 날 위해서 만들어진 건가? 그런 생각을 해요. 별로 매력이 없다는 생각도 많이 들고요. 저는 다 만들고 싶은 거예요. 가구가 됐든 집이 됐든 말이죠. 차도 그렇고 제 주변에 있는 것들을 자꾸 만들려고 해요. 만든다는 게 내가 거기에 맞추는 게 아니라 그것을 나에게 맞춘다는 느낌이에요. 집도 내 스타일에 맞추는 거고, 차도 내가 필요한 용도에 맞추는 거죠. 다 다르잖아요. 차도 그저 이동수단인 사람이 있고, 짐차의 역할이 필요한 사람이 있고요. 자기에게 필요한 역할만 하면 되는 게 차인데 사람들은 차는 이걸 타야할 것 같아서 그저 똑같이 타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나는 매일 바닷물에 젖어서 시트가 다 젖는데 새 차를 타봤자 의미 없죠. 저는 남들이 어떻게 보든 나에게는 이게 맞는 차 같다는 생각을 해요. 집도 그렇고요. 사는 방식이 다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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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가 분명한 삶은 잘 안 맞는다”(135쪽) 고 하셨는데, 역시 좋아할 수 있고, 즐길 수 있고, 스스로 설득이 되어야 하는 분 같네요. 고집이랄까? 깊은 심지가 느껴지기도 하고요.


며칠 전에 TV를 보다가 ‘다행히 나는 잘 살고 있구나’라고 한 게 있었어요. 알리바바(중국 e커머스 사이트)의 마윈 대표가 자기가 성공할 수 있는 비결을 얘기했는데요. 첫 번째가 돈이 없었다, 두 번째가 기술이 없었다, 세 번째가 계획이 없었다, 였어요. 그 셋 다 저와 맞는 거예요.(웃음) 제가 대단한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고, 돈이 많은 것도 아니잖아요. 계획도 없고요. 이제 성공만 하면 되는구나, 나는 이제 마윈처럼 되는 거야, 했어요.(웃음) 계획이 없다는 게 누가 보면 너무 위태로워 보일 수도 있어요. 어떤 연기자들은 작품 끝나면 잠시 쉬었다가 또 무슨 작품을 할지 계획하고, 책도 계획이 있어서 언제쯤은 책을 쓰고, 무슨 영화를 찍고, 이렇게 하는 분도 계세요. 저로서는 정말 3년 전만 해도 책은 생각도 못했던 거예요. 어떻게 하다 보니까, 이것도 어찌 보면 흐르는 대로 가는 것 같아요. 불안해하고, 계획이 없어서 어쩌지, 하는 것도 계획대로 살아야 한다는 세상의 환상에 맞춰서 사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런데 저보다 계획 없는 사람이 전혜진 씨거든요.(웃음)

 

“그러니까 침대를 만드는 과정은 단순히 가구를 만드는 일이라기보다 아빠로서의 마음을 다잡는 계기였던 것 같다. 지금껏 가구를 만들 때 가구를 쓸 사람의 성격이나 취향을 고려했다면, 아기 침대를 만들 때는 아이에게 어떤 아빠가 되고 싶은지를 고민했다.”(76쪽)

 

아이의 침대를 만들면서 ‘아빠로 마음잡는 계기’가 되었다고 하셨는데, 삶의 중요한 순간에 가구가 있더라고요. 회사를 차리기까지 했으니 이천희 씨에게 가구란 참 큰 의미일 것 같습니다.


가구를 안 만들었다면 저도 그냥 제 방식을 지켜나가지 못했을 것 같아요. 중요한 순간에 가구가 있었다기보다는 그게 내 스타일이구나, 생각해요. 군대 제대 후 모델을 하면서도 많은 모델들처럼 했던 게 아니라 내 스타일대로 이런 것을 만들었어요. 그때도 저는 차를 프라이드 국방색을 타고 다녔는데요. 친구들이 미쳤다고 해도 그게 내 스타일이야, 하고 타고 다녔죠. 그때부터 가구도 만들고요. 친구들이 방에 놀러 와서 공구들을 보면서 놀라고, 뭐라 해도 그게 내 스타일이다, 그런 것들이 나를 알리는 도구, 나라는 사람을 알리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신기한 건요, SBS <패밀리가 떴다>에 나왔을 때 사람들이 저를 보고 웃는데 모델 시절 같이 했던 친구들은 그게 하나도 안 웃겼대요. 쟤 원래 저런데, 이게 웃기냐는 거죠.(웃음) 강동원 씨도 ‘형, 형을 보면서 웃는 게 이해가 안 가. 형은 원래 저런데.’하더라고요. 그런 거죠.

 

저자의 그런 면들이 가구 만드는 일과도 딱 맞았던 거잖아요.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했던 거죠. 그게 가구가 되었던 것이고, 의자를 만들 수 있었으면 의자를 만들었을 텐데 못 만드니 테이블을 만들었던 거예요. 그나마 내가 자르고 붙이고 할 수 있는 것이 나무다 보니 나무를 선택한 거죠. 만들다보니 그게 어떻게 원목 가구가 되어 있었고요. 제일 처음에 만든 물체들은요.(웃음) 가구의 느낌을 가지고 있는 물체들, TV장, 쇼파, 이런 것들은 합판을 대충 올려놓고 쓰는 형태였어요. 자세히 들여다보면 너무 허술하고 각도 하나도 안 맞고 이런 것 있잖아요. 그렇지만 쓰는 데는 불편함이 없었어요.

 

서핑, 만들기, 캠핑, 집짓기, 연기...

 

좋아하는 것이 참 많은 사람이에요. 목공, 서핑, 캠핑도 그렇고 커피, 담배, 요리, 사진까지 말이에요. 또 매료되는 분야가 있나요?


계속 서핑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요즘은 가구 말고도 다른 것들을 만들어 보는 것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고 있어요. 꼭 내 손을 거쳐서 만드는 것이 아니더라도 디자인을 해서 어떤 금속 물체를 만들어 본다든지 하는 식으로요. 그러면 더 많은 것들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서요. 플라스틱 사출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해보고도 싶고요. 이사를 갔는데 집 근처에 공장들이 많아요. 매일 지나다니다가 대리석이 나와 있으면 그걸로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사출해서는 뭘 할 수 있을까 하면서 보이는 것마다 다 생각해요.(웃음)

 

“하나의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123쪽)이라고 하셨으니까 다양한 것에 관심을 가지시는 것도 자연스러운 것 같아요.


그렇죠. 제가 하는 일이 딱 가구다, 이건 아니기 때문이에요. 동호회도 아닌데(웃음), 그냥 이런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함께, 이걸 좋아하는 사람들의 집단 같은 느낌인데요. 어쨌든 분명히 이걸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을 거예요. 그게 일부 마니아가 될 수도 있고, 자기가 이렇게 살고 싶은데 말을 못하는 사람들도 있겠죠. 저는 그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은 게 있어요. 연기자 외에 인간 이천희로서도 말이죠. 서핑 하는 사람들과 서핑 이야기 하고 싶고, 가구 만드는 사람들과 가구 이야기 하고 싶고, 집 짓는 사람들과 집 짓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다 재미있어요.

 
아, 요즘 또 빠져있는 게 집 짓는 거예요. 목조 주택과 콘크리트 구조물이 섞여있는 집이요. 목조주택이라면 제가 지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다 짓기는 너무 힘들 테니까 어느 정도는 콘크리트로 하고 어느 정도만 목조주택으로 하는 거죠. 옆집 아저씨가 옆에다 집을 지었어요. 매일 보면서 부러워해요. 나도 집 짓고 싶은데, 생각해요. 

 

내가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굉장한 생각의 확장을 일으키는 것 같아요. 집은 당연히 지어져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라 내가 사는 방식대로 취사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 참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마당이 있으면 바비큐 파티를 할 것 같은데 그곳이 부엌과 얼마나 가깝느냐, 그게 제일 중요할 것 같아요. 짐 나르는 게 불편하니까요. 어떤 사람은 바비큐 파티를 전혀 안 하는 사람도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이 살기에 아파트는 괜찮죠. 나는 이 집에서 무엇을 할지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그림 작업을 한다면 그 공간이 있어야 하고요.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을 담을 수 있는 집에 대해 생각해요.

 

캠핑에 대해서도 그런 말씀을 하셨잖아요. 남들이 필요하다고 하는 것들을 전부 구비하고 시작할 필요가 없다고요.

 
예전에 저도 캠핑을 하고 싶은데 용품을 파는 곳 사장님이 다 필요한 거래요. 옆에서 부추겨요, 이런 건 진짜 필요한 거라고요. 믈론 있으면 편하죠. 그런데 몇 번 다녀보면 잘 안 쓰게 되는 것들도 있어요. 버너 중에 티타늄이고, 가볍고, 비싼 것이 있어요. 사람들이 많이 사지만 저는 백패킹이나 이런 걸 안 가는데 가벼워도 되고, 무거워도 되고, 상관없었죠. 마트에 갔더니 큰 버너를 9,900원에 팔더라고요. 그게 저한테는 맞는 거였는데 전에는 몰랐네, 생각했죠. 남들이 하는 것만 보고는 판단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캠핑하면서 많이 배운 건 나한테 이것들이 다 필요하지 않았구나, 제일 필요한 건 무엇이겠구나, 하는 것들이었어요. 그런 것들만 제대로 갖춰놓고 나머지 것들은 없으면 없는 대로 해요. 이불이나 숟가락, 젓가락은 집에서 쓰던 것 가져가요.

 

당연한 질문이겠지만 지금까지의 방식대로, 좋아하는 것들을 하면서, 새로이 좋아하는 것을 만나면 또 즐기면서 사시겠죠?


네. 좋아하는 일을 할 거야, 라는 큰 목표가 있는 건 아니에요. 즐거운 걸 해야지, 재미나게 살아야지, 생각하는 거예요. 한때 선배님들께 욕 많이 먹었던 것이 인터뷰마다 ‘연기도 재미가 없어지면 안 할 거예요.’했던 것이었어요. 재미있으니까 하는 거지, 고통 받으면서 할 거면 연기 안 한다고 했는데요. 오로지 재미 때문에 하는 거고, 연기할 때가 제일 행복하니까 하는 거라고 했다가 혼났어요. 이해 못하시는 거예요. 하지만 재미있으니까 하는 거잖아요. 좋으니까 하고요. 그런데 다른 게 있나? 하는 생각을 해요. 만약 안 맞는데 꾸역꾸역 그걸 한다면 저는 별로예요. 할 이유가 있는지 의문이 들어요. 마지못해 하는 것, 해야 하니까 하는 것이 아니라 재미있는 걸 하고 싶어요. 연기가 됐든, 가구나 집을 만들든 간에요. 그런 것들이 계속 있겠지, 하는 생각도 안 해요. 그냥 생겨요. 갑자기 저거 진짜 재미있겠다, 하고요.

 

그렇긴 하지만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조건에 있는 사람들도 많잖아요. 연기를 예를 들자면 저자는 이미 활동하고 있는 사람이지만 아직 데뷔도 못한 사람들도 있고요.


그렇지만 그 사람들도 연기자가 되기 위해 뭔가를 하고 있을 거잖아요? 작품을 작은 걸 하고 있거나 말이죠. 내가 저 위치에 가고 싶은데 가지 못해서 화가 나고, 나는 연기자로서 못하고 있어, 이렇게 생각하면 재미가 없잖아요. 즐겁게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왜 저 사람보다 역할이 작을까, 드라마에서 왜 이런 걸 하고 있을까, 이 역할 밖에 못하지, 하면요. 저는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 ‘와, 내가 이 역할을 하다니.’했어요. ‘대사가 있어! 포스터에 얼굴이 나와! 이 사람들과 같이 앉아 있어!’ 그랬어요. 그게 늘 즐거웠거든요. 내가 저 사람들보다 못한 게 뭐가 있다고, 이런 생각이 없었어요. 그게 정말 즐겁고,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건가, 내 인생만 이렇게 재미있어서 어떡하지, 생각했어요. 지금도 많은 걸 하다보니 주변에서도 이제 뭐할 거냐고 물을 때가 있어요. 다른 친구들은 한류 스타도 됐고, 누구는 할리우드에 간다고 하고, 천만 배우가 되어 있고, 후배들은 중국 진출 한다고 난리가 났는데 안 부럽냐고요. 저는 걔네가 그게 즐거운가보지, 하는 거예요. 저는 이제부터 나는 일본 진출이다, 하는 순간 행복하지 않을 것 같아요. 내가 너무 재미없을 것 같아요. 포기한다는 게 아니라요. 그건 그들의 즐거움이죠. 어떤 선배님들은 제가 재미없어지면 안 한다고 하니까 그 역할을 못하는 사람들, 노력하는 후배들이 안 보이냐고 하시죠. 물론 보이지만 저도 똑같은 순간이 있었고, 같은 과정이 있었으니까 이게 있는 거지 하루아침에 이게 있었던 게 아니기 때문에요. 저는 그때도 즐거웠어요. 그들도 그걸 즐기면서 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즐겁지 않다면 다른 일을 찾는 게 더 좋겠다, 그런 의미인데 선배님들은 그런 말씀을 하실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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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구 만드는 남자 : 이천희의 핸드메이드 라이프이천희 저 | 달
이 세상 사람 누구라도 어느 한 가지 타이틀로만 한정할 수 없듯이, 우리는 수많은 관계 속에서 살고 있고, 또한 많은 일들을 하며 살고 있다. 하지만 배우 이천희는 정말로 다양한 일과 관계 속에서 더디지만 꾸준하게, 가구를 만들고, 취미를 만들고, 스타일을 만들고, 관계를 만들고, 그 모든 것이 모여 지금의 ‘이천희’라는 삶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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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한국 최고 장난감 수집가 손원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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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토이북』을 펼쳤을 때 가장 인상적인 것은 사진이었다. 굳이 글을 읽지 않아도 이 책이 다루는 범위가 광범위하다는 점을 사진만으로 알 수 있었다. 더 놀라운 점은 책에 실린 사진이 손원경 저자의 작품이라는 사실이다. 가장 먼저 드는 의문은 어떻게 그 많은 장난감을 구할 수 있었을까다. 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손원경 저자는 자타 공인 한국 최고의 장난감 수집가다.

 

몇 점의 장난감을 소장해 봤냐는 질문에 “40만 점인지 50만 점인지 정확히 헤아려 본 적 없어 모르겠다”라고 답할 정도로 그는 수집광이다. 얼핏 생각해도 장난감을 모으기 위해 쓴 노력과 비용이 만만치 않을 테지만 그에게 장난감 수집은 화폐로 환산할 수 없을 만큼 성스러운 취미다. 이런 그가 장난감 사전이라 할 만한 『더 토이북』을 쓴 것은 자연스러운 일.

 

『더 토이북』은 부제인 ‘거의 모든 장난감 이야기’가 말해주듯, 장난감에 관한 책이다. 장난감을 종류별로 분류하고 각각 장난감의 탄생과 성장을 다뤘다. 장난감의 역사란 곧 산업사이자 경제사, 문화사이기도 해서 이 책을 읽으면 19세기부터 21세기 세계 경제의 흐름을 읽을 수 있는 혜안도 생긴다. 중구 정동 경향아트홀에 최근 개관한 토이키노에서 손원경 저자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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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감 역사는 경제사이자 문화사


언제나 바쁘셨지만 특히 토이키노 개관으로 많이 바쁘게 지내셨을 것 같습니다.

 

네. 토이키노 준비와 광주, 마산 전시까지 겹치면서 4개월 정도 집에 못 들어갔어요. 2014년에 했던 전시만 10개가 넘었으니, 정말 바빴죠.

 

그렇게 바쁜 와중에 책까지 쓰셨는데요.

 

원래는 에세이를 쓰다가, 에세이보다는 장난감을 설명하는 책이 먼저 나오는 게 순서일 것 같았어요. 항상 메모를 해서 책 쓸 준비는 되어 있었죠. 책에 실은 사진은 2004년에서 4년 정도 많이 찍어놨는데, 그 때 찍은 게 많죠. 『토이북』은 다양한 장난감을 소개하면서도 사진이 많으니 그림책으로 봐도 손색이 없을 책이에요.
 
장난감 교과서, 참고서 같은 느낌도 들던데요.
 
너무 낯 간지러워서 감히 참고서라고 하지는 못하겠고요. 이쪽에도 숨은 고수가 많거든요. 장난감이 아직은 낯선 사람들에게 교두보 같은 역할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 책은 산업 측면에서 접근했으니 20세기 경제사 같은 성격도 있고요.

 

평소에 알던 내용이지만 책 쓰시면서 자료를 다시 보셨을 것 같은데요. 혹시 자료를 보시다 토이산업에 관해서 놀라웠던 점이 있나요?
 
많죠. 대표적인 걸 하나만 꼽는다면, 초반에 장난감 산업이 태동할 때 시작은 대부분 가내 수공업이었습니다. 레고 창립자도 마찬가지고요. 목수, 약재상, 삽화가 등 중소상인에서 시작해서 지금의 대기업으로 이어지는 모습을 보는 과정이 신기하면서도 대단하게 느껴졌어요.

 

캐릭터 산업은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이 주도했잖아요. 그런 면에서 장난감의 역사는 앞서도 말씀하셨듯 경제사로 볼 수 있을 듯합니다. 그밖에 장난감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키워드가 있다면?
 
장난감의 역사는 20세기 문화사죠. 18세기부터 태동한 근대 미술, 회화, 공학이 20세기에 결실을 맺는 게 장난감 산업이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장난감은 20세기의 총아이자 21세기 미래 산업이죠.

 

키덜트 문화는 어떻게 이해하시나요.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잉여, 퇴행 이런 부정적인 수식어를 붙이기도 하잖아요.

 

잉여는 오히려 다른 제품이 많지 않을까요? 잉여에는 과다 생산이라는 뜻이 있으니 그건 아닌 것 같고요. 퇴행은 어른이 아기처럼 행동하는 것인데 키덜트는 그렇지는 않아요. 어른이 숨겨 놓았던 어린 자아를 끄집어내는 거죠. 긍정적이라고 봐요. 성숙한 어른이 어린 자아를 찾는다는 데는 의미가 있어요. 어른 사회에서 나올 수 있는 폐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면이 있거든요. 쉽게 말해서 동심의 회복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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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원경 저자의 소장품을 전시한 토이키노

 

중학교 때부터 모으던 장난감이 50만 점까지


장난감 수집은 언제부터 시작하셨나요?

 

중학교 2학년 때였어요. 보통 그 또래는 무선조절 자동차, 프라모델 이런 거에 끌리는데 저는 남대문 수입상가에서 본 고무 인형을 보고 1주일을 전전긍긍했어요. 갖고 싶어서요. 처음 산 인형이 가필드였죠. 그렇게 해서 모았어요. 조부님이 엄청난 컬렉터여서 어릴 때부터 사서 모으는 걸 숭고한 취미로 생각했습니다.

 

장난감은 갖고 놀기도 하잖아요. 작가님은 어떤 편이에요?

 

갖고 놀기보다는 디스플레이 해 놓고 감상해요. 처음에는 책상 위에 놓다가, 책장 하나가 가득 차고 나중에는 방이 차고, 그렇게 됐죠.

 

수많은 장난감을 보다 보면 직접 만들고 싶은 생각도 들 텐데요.

 

네, 지금도 캐릭터 만들려고 계획 중이에요. ‘시어러’라는 캐릭터가 있는데 serious에서 나왔고, 한국말로는 ‘시러’랑 비슷해요. 보통 아이들에게는 ‘예, 좋아’를 강요하지만 저는 ‘싫어’라는 말이 좋더라고요. 이 캐릭터에 여러 가지 옷을 입히는 그런 걸 개발 중입니다.

 

장난감 수집 분야에서 한국 최고잖아요. 장난감 박물관도 최초로 만들었고요. 지금도 꾸준히 수집을 하고 있는데, 어떤 기준으로 수집하시나요?

 

다 제 취향이에요. 제가 재밌게 봤던 영화, 애니메이션, 만화 중심으로 모으고 있어요. 어떻게 보면 수집 목록이 세계 전체죠. 장난감 말고도 책, 음반 등도 많이 모아요. 책도 다양하게 읽어요. 인문사회도 보고 동화책도 많이 봐요. 장난감도 결국 인문사회로 이어지는데요. 최근에는 『도시의 역사』를 재밌게 봤어요. 인문사회가 없으면 애니메이션도 없어요. 애니메이션에 인문사회적 통찰력이 없으면 재미가 없어지죠.

 

40~50만 점에서 지금은 20만 점으로 줄였는데 아쉽진 않았나요?

 

40만 점인지 50만 점인지 정확히 세어보진 않아서 수치는 모르겠지만, 아쉽지는 않았어요. 레고,직소퍼즐을 많이 정리했어요. 나이 들어서 조립하고 놀려고 했는데, 나이 들어서도 계속 바쁠 것 같아요. 시간, 물리적 한계 때문에 수집 범위를 좁혔어요.

 

수집을 많이 하다 보면 주변에서 달라고 하는 사람이 굉장히 많을 거 같아요.

 

안 줘요. 제가 필요 없을 때 팔 때는 있어도. (웃음)

 

딱 한 점만 남긴다면 어떤 작품을 고르시겠어요?

 

진짜 힘드네요. 한 점만 남긴다면, 아예 한 점도 안 남길래요. 다 처분하고 새로 모으기 시작하겠죠.


단순한 수집가가 아닌 문화 레시피어

 

삼청동에서 7년, 파주 헤이리에서도 장난감 박물관을 운영하셨고 지금은 정동에 토이키노를 개관하셨는데요. 수많은 전시를 하면서 도난을 당했다든가 하는 어려웠던 점은 없나요.

 

순회 전시할 때는 도난, 분실이 없을 수가 없어요. 이사하면서 잃어버리기도 하고요. 이건 어쩔 수 없죠. 제일 아쉬운 점은 제 건물이 없다는 사실이에요. 작게라도 있으면 옮겨다닐 필요가 없는데 건물이 없으니 계속 임대를 한다거나 동업을 해야 하죠.

 

전국 전시도 많이 하시잖아요. 지방에도 저변이 확대되었으면 좋겠다는 말씀도 하셨는데, 제일 먼저 헤보고 싶은 지역이 있었나요?
 
제 할아버지가 유명한 서예가라서 박물관이 진도에 있어요. 진도에는 진돗개 박물관도 있고요. 몇 번 왔다 갔다 한 적이 있는데, 전시 쪽으로 좀 미흡한 거 같아요. 진돗개 캐릭터도 만들어보고 싶고, 박물관을 크게 해서 관광객이 몰려오게 하고 싶은 마음은 있어요. 진도에는 먹거리도 많고, 삼별초라든지 울들목 등 문화유산이 많은 곳이거든요. 진도 아리랑도 있고 유명한 예술가 집안도 많고요. 그런데 지금은 인구 수가 줄고, 관광하려고 찾는 사람도 많지 않으니 제가 장난감이라는 미끼로 진도에 활기를 좀 불어넣으면 어떨까 생각은 해 봤어요.

 

전시를 위해서는 아이디어도 중요하잖아요. 영감은 어디서 얻으세요?

 

검색 많이 하죠. 외서도 많이 보고요. 서점 가면 제일 먼저 가는 코너가 외서쪽이거든요. 그런데 전시는 아이디어도 중요하지만 예산 때문에 좌우가 많이 되죠.

 

토이키노를 보니 한국의 캐릭터는 많지 않은데요.

 

현실이 전시에도 반영된 거예요. 그쪽에서 고군분투하는 분이 많지만 아직 한국 토이 산업은 미약해요. 한국에도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많이 나왔어요. 라바라든가 타요, 또봇, 카봇이 저연령층을 대상으로 인기를 끌고 있잖아요. 문제는 이런 캐릭터가 어덜트의 사랑을 받느냐에요. 어른의 사랑을 못 받으면 캐릭터가 아니라 토이일 뿐이거든요. 발전하고 있다고는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너무 저연령층을 대상으로 한 장난감이 많은 상황이죠. 어른이 사랑하는 캐릭터가 등장하고, 외국에서도 많이 사랑받는 게 등장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장난감 덕택에 결혼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만.
 
정확히 말하자면, 장난감 박물관을 하면서 이렇게 저렇게 소개 받아 아내를 만났고요. 집사람은 장난감을 그렇게 좋아하진 않아요. 그렇지만 아내는 제가 장난감을 가지고 전시를 기획하고 책 쓰고 사진 작업하는 일을 독려해줘요. 단순한 수집이 아니라 콘텐츠로 용광로에 녹여내는 일을 좋아한다고 할 수 있죠.

 

한 인터뷰에서 밝힌 선생님의 동창회 풍경이 인상 깊었습니다. 잘 나가는 친구들이 외제차에 비싼 옷을 입고 나타났는데, 선생님은 백팩 메고 장난감을 가득 사서 들어갔다고요. 선생님의 가치관을 말씀해주신다면?

 

대리석이 깔려 있는 고층 건물에서 통유리 너머로 강남 한복판을 바라보며 멋진 벽걸이 TV를 바라보는 삶이 있다고 생각해 봐요. 그런 삶은 잠깐 여행가서 하루 정도 누리면 돼요. 삶의 나머지는 사서 모으고, 만들고 글 쓰고 살아야 제가 살아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제게는 뭔가를 만드는 게 땅 사는 것보다 훨씬 가치가 있어요.

 

앞으로 계획은?

 

장난감도 많이 모으고, 전시도 하지만 책을 많이 쓰려고 해요. 장난감에 관한 에세이를 쓰고 있는데, 이번 책이 정보 전달이 위주였다면 나올 책은 정말 재밌을 거예요. 그리고 에세이를 소개하는 책, 동화책을 소개하는 책, 이런 책도 쓰고 싶고요. 바람이 있다면 '손원경의 컬렉션 시리즈'를 계속 써내려가는 거예요. 가능하다면 『토이북』도 재쇄를 찍을 때 ‘손원경의 컬렉션 시리즈 1’을 붙이고 싶어요. 그렇게 해서 음반, 소설, 동화, 영화 등 다양한 이야기를 하려고 해요. 제가 생각하는 제 직업은 문화 레시피어, 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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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토이북 : 거의 모든 장난감 이야기손원경 저 | 매일경제신문사
저자 손원경은 국내 최대의 장난감 수집가이다. 중학교 시절부터 시작하여 마흔 중반까지 수집한 장난감은 현재 소장하고 있는 종수만 20만여 점에 이른다. 장난감에 대한 그의 유별난 애정은 토이키노(TOYKINO) 장난감 박물관이라는 공간을 탄생시켰다. 이 책은 장난감 참고서라 할 수 있다.


팜므팥알 “연애하려면 일단 많이 만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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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하고 쓸데없는 연구를 해내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영국, 그 나라 연구자들에게 다이어트와 연애는 더없이 좋은 먹잇감이다. (중략) 그 연구들을 보다 보면, 결론이 하나같이 진지하고 어이없어서 실소가 터진다. 결국 모든 연구의 결론은 살찐 사람은 숨만 쉬어도 살이 찌며, 매력적인 이성이라면 똥방귀를 뀌어도 인기가 터진다는 거다. 어쨌거나 그냥 다 유전타 탓이라던데? 그랬구나. 안 빠지는구나. 안 생기는구나. 될 놈만 되는 거구나. 다음 생을 기다려야겠구나. 잘 알았으니까 연구 그만해라, 영국 놈들아. (77쪽)

 

주말, 그 애랑 알콩달콩 데이트하던 그 이틀은 쏜살 같이 지나가더니 월요일 오전은 미친 듯이 더디다. 거지 같은 상대성이론. 슈발, 아이슈타인도 싫어짐, 나쁨. (114쪽)

 

어떤 책을 읽든 적재적소에 등장하는 비속어와 기똥찬 비유를 만나는 경험은 즐겁다. 팜므팥알이 쓴 『연애의 민낯』이 그랬다.『연애의 민낯』은 제목이 알려주듯 연애를 주제로 한 책이다. 근엄하게 무게 잡으면서 이렇게 해야 허니가 생기고 저렇게 해야 버터칩이 생길 거라고 이야기하는 ‘실용’적인 책은 아니고 연애로부터 생기는 다양한 경험과 감정을 시원하게 풀었다.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어색한 술자리에서 정치 이야기도 하고, 경제 이야기도 했지만 무거운 분위기를 누그러뜨린 건 결국 연애 이야기, 딱 그런 느낌의 책이『연애의 민낯』이다.

 

팜므팥알의 지금을 있게 한 건 8할이 연애였다고 말하면 과장일까. 남자친구에게 차인 감정을 글로 승화시킨 결과물로 독립잡지 『9여친 1집』, 『9여친 2집』이 나왔다. 서서히 입소문을 탄 그녀는 <빅이슈>와 <한겨레23>에서 연애 칼럼을 연재 중인 연애 칼럼니스트다. 연애 8할에 글 2할이 보태지면서 팜므팥알은 어느덧 책을 낸 저자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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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봐도 안 생겨요


어떻게 지냈나요.


작년 8월에 『9여친 2집』을 냈어요. <한겨레 21>에 칼럼을 쓰기 시작했는데, 처음으로 고료를 받고 쓴 글이라 기뻤어요. 추석 때 책을 내자는 메일을 받았죠. 또 독립출판으로 내야 하나, 고민하던 찰나여서 “얼씨구나” 좋았어요. 그렇게 책을 썼어요.


제목이 『연애의 민낯』으로 작가님의 똘끼 가득한 문장에 비해서는 수위가 착한 듯해요.


안 그래도 처음에는 편집자가 센 제목으로 가자고 했어요. 그때 제목이 ‘쿨하기는 염병’이었는데,최종으로는 <빅이슈> 연재했을 때 제목으로 정해졌어요. 저는 ‘9여친’을 넣고 싶었는데, 너무 구질구질하다는 의견도 있고 어쨌든 ‘연애의 민낯’으로 나왔네요.


연재를 책으로 낼 때, 구성이 바뀐다든지, 없던 에피소드가 있다든지 하는 재가공이 일어나잖아요. 책으로 낼 때 힘든 점은 없었나요?


‘9여친’ 시리즈처럼 독립잡지는 원고가 있는 대로 내면 되는데 책은 그게 아니잖아요. 단행본 분량을 만드는 게 힘들었어요. 원고지 800매가 필요했는데, 처음에는 400매밖에 없었거든요. 새로 쓰는 게 힘들었죠.
 
독립잡지는 아닐 수도 있는데, 책이라는 건 독자를 염두에 두기 마련인데요. 어떤 독자를 생각하며 썼어요?


딱 제 친구들요. 20대 중반에서 30대 초중반 친구들, 언니들. 책이 나오고 지인들에게 “사라, 그래야 내가 인세로 밥이라도 살 수 있다”라고 강매 문자를 보내곤 하는데요. 그럴 때 몇몇 친구들은 곽정은 작가의 책이 더 사고 싶다고 말해요. 욱하죠. 제 책이 라면 스푸 같은 맛이 있는데 말이죠. 고급스럽지는 않지만 밤마다 생각 날 거예요.


이 책을 읽고 연애를 할 수 있겠구나, 이렇게 생각할 독자는 없겠죠. 책으로 연애하는 방법을 배우겠다면, 그 사람은 결코 연애를 할 수 없을 거예요. 이 책은 그런 용도가 아니라, 술자리에서 친구와 연애를 소재로 이야기하는 그런 느낌으로 읽어줬으면 좋겠어요. 연애 이야기만큼 재밌는 게 어딨어요. 오랜만에 만난 친구끼리 어색하다가도 ‘누구랑 누구랑 사겼대’ 하면 ‘대박’ 이러면서 대화가 끊기지 않잖아요.


최근에 독자 만남도 하셨잖아요.


독자 만남까지는 아니고 거의 다 제 지인이 총출동한 자리였어요. 진짜 독자가 세 분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다 남자였어요. 여성의 심리가 궁금한가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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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는 많은 미친 감정이 모인 것


사적인 질문입니다만 연애 경력을 물어봐도 될까요.


사적인 질문 되게 좋아해요. 막 하세요. 연애 경력은 12년 정도, 4~5번 정도 이별을 겪었어요. 고등학교 때 대학 가겠다고 찬 적 빼고는 다 제가 차였어요. 그런 경험이 없었다면 연애 글을 쓸 생각을 못했겠죠. 제가 글을 쓴 게 아니라, 글이 몸 밖으로 나왔어요. 독립잡지였던 『9여친1집』이 56쪽 정도인데, 그 원고를 1주일만에 다 썼어요. 다 제 이야기였으니까요. 더 잘 써야겠다, 포장해야겠다 이런 건 전혀 없었죠. 너무나 솔직한 책인데, 다행히도 이 책의 존재를 엄마 아빠는 모르죠. 앞으로도 영원히 몰라야 하고요.


보통은 그런 경험이 있더라도 그냥 넘기는데, 글로 남겼잖아요. 원래 글쓰기는 좋아했나요?


부모님이 서점을 하셨어요. 어릴 때부터 책 읽는 걸 좋아했고요. 백일장에서 상을 타면 난 글을 잘 쓰나 보다, 해서 어릴 때 장래희망은 작가라 썼죠. 고등학교 때부터 현실성이 없는 꿈이라는 걸 알았고, 그때부터는 국어 선생님으로 바꿨어요. 그러고선 사범대는 떨어졌기 때문에, 국어선생님은 되지 못했어요. 대학 때는 스펙 안 쌓고 놀았죠. 도서관에서 에세이 읽는 거 좋아했어요. 어떻게 출판사에서 일을 하게 됐고, 저와 글의 인연은 여기서 마무리되겠구나 싶었는데 책이 나와서 신기해요. 어떤 의미에서는 어릴 때 장래희망이 이뤄진 듯하기도 하고요.


연애를 향한 인문사회적 통찰력도 눈부신 것 같아요. 영국에서는 매번 여남의 차이에 관한 보고서가 나온다거나, 교회 오빠라는 존재에 담긴 통찰력은 발군이었는데요. 진화심리학 쪽으로도 관심이 많은 듯한데요.


특별히 관심은 없어요. SNS에 떠도는 뉴스 중에서 연재 쪽이면 한 번씩 눌러 봐요. 저만 그런 건 아닐 걸요? 제 나이 또래는 대부분 한 번씩 볼 만한 콘텐츠니까, 관심의 정도로 따지자면 저는 평범해요.


쓰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하나를 꼽는다면?
 
『9여친 1집』을 써야겠다고 한 결정적인 장면인데요. 구남친이 저를 집까지 데려다 줬는데, 저는 그대로 들어갔어요. 어느 날은 뒤돌아보니 그가 웃으면서 손을 흔들고 있더라고요. 그 장면을 보고 이 사람이 날 정말 좋아하구나, 느끼면서 저도 엄청나게 좋아하기 시작했는데요. 헤어지고 나니 그 장면이 계속 생각났죠.


정치적인 관심이 전혀 없는 남자와의 소개팅 에피소드도 재밌었는데요. 작가님은 어떤 정치적 노선을 걷고 계신가요.


경제 민주화를 외친다는 의미에서 빨갱이 그리고 양성평등을 추구한다는 의미에서 페미니스트? 대한민국에서는 페미니스트라고 하면 이상한 사람처럼 보잖아요. 저는 페미니스트가 양성평등주의자의 동일한 말이라고 생각해요. 그쪽이죠. 그렇지만 저는 기본적으로 여성보다는 남자를 좋아해요. (웃음)


양성평등 관점에서 본 연애는 여성에게 불리한가요?


아뇨. 연애는 여성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고 결혼이 절대적으로 여성에게 불리해요. 연애까지는 여성이 편하죠.


연애란 무엇일까요.


달달하고 따뜻하고 몽글몽글하고 서로 걱정하는 것. 전쟁같이 싸우고 물어 뜯고 그러다가 욕하고 전화 끊고 나면 다시 너무 보고 싶은 그런 감정. 몇 천 개의 미친 감정이 모여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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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므팥알이 알려주는 연애 팁


괜찮은 남자를 선별하는 법을 알려주세요.


일단 많이 만나야 해요. 어디라도 돌아다녀야 하고요. 남자에게서 한 가지라도 좋은 점이 있다면 채가야 해요. 그런데 대부분 그런 남자 곁에는 누군가 있죠. 남자 찾기가 정말 힘들어요. 남자들은 여자들이 잘 안 가는 데에 잔뜩 있잖아요. PC방, 소주 마시는 데, 이런 데 있으니 마주치기가 어려운 거 같아요. 그래도 찾아보면 많아요. 여왕벌 있는 곳은 피하길. 소개팅은 비추에요. 저도 붙잡을 수 있는 게 소개팅밖에 없을 때는 하곤 했지만, 확률은 높지 않아요.


이별에 대처하는 쿨한 자세는?


개뿔, 차이면 쿨할 수 없어요. 차인 걸 잊으려고 자기관리에 몰두한 적이 있어요. 일주일 내내 스페인어 배웠다가 요가 갔다가 별 짓 다 했거든요. 그런데 잘 안 되죠.


삼포세대라는 말, 이제는 좀 식상하기도 한데요. 여하튼 연애를 포기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에게 한 마디 건넨다면?


그 분들은 그 분들 마음대로 하셔야죠. 그런데 제 주변에는 연애를 포기한 사람은 없는 거 같아요. 모태솔로라도 연애 그 자체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어요. 연애를 최고의 가치로 안 둘 수는 있겠죠. 연애, 재밌잖아요. 제 주변은 관심은 다 있는 거 같아요. 어색한 사이에서는 연애를 소재로 하면 분위기도 누그러지고요.
 
팜므팥알이라는 닉네임에는 심오한 의미가 있나요. 액운을 쫓아내는 동지 팥죽이 떠오르면서, 연애로부터 오는 고난을 물리겠다, 이렇게도 읽을 수 있잖아요.


전혀요. 팜므파탈이라고 하려다가, “네 까짓 게 무슨 팜므파탈이야?” 이런 소리를 들으면서 그냥 팥알로 해버렸어요. 팥알, 어감이 귀엽잖아요. 귀여운 건 다 옳은 거니까.
 
글쓰기 철학이 궁금합니다.


웃기면 장땡인 거 같아요. 웃기지 않으면 쓰는 게 즐겁지 않아서 쓰기도 싫어져요. 그리고 단짠단짠이 있어야 하고요. 음식 먹을 때 한 가지 맛만 먹으면 질리잖아요. 단 것, 짠 것 바꿔 가며 먹어야 하듯 글에도 무조건 재밌기만 해서는 안 되죠. 재밌다가, 슬프다가, 화냈다가 그리고 마지막에는 단맛으로 끝나면 좋죠.
 
평소에도 욕을 구수하게 하는 편인가요.


일상에서는 흥분 상태가 아니면 안 해요. 이 책은 흥분 상태로 쓴 거라서요. 구남친을 만나 제 단점을 물어보려고 했어요. 낮만 해도 그 사람이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밤에 구남친의 결혼 소식을 듣고는 친구와 술을 마셨어요. 현장에 있는 친구들은 녹음해두고 싶다고 할 정도로, 망가졌어요. 뭐, 그럴 때는 욕이 문학적으로 나와요. 그 자리가 계기가 되어 글을 쓰기로 한 면도 있고요. 그래도 책은 순화가 많이 된 편이에요. (웃음)


비속어의 적절한 구사를 보면 B급 정서도 느껴집니다.


B라니, 영광이네요. 제 글에 등급을 따지자면 C급 정도 아닐까요?


주성치 좋아하세요?


네, 엄청나게 좋아해요. 그런데 <장강7호> 이후 최근작은 잘 안 봐요. 주성치보다는 동방신기를 좋아하고, 지금은 비스트랑 위너를 사랑하죠.


작가님의 똘끼와 관련해서 물어볼게요. 라이벌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나요.


가장 닮고 싶은 사람은 유병재 씨인데요. 그 정도 똘끼를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해요.


소이 씨는 어떤 인연으로 추천사를 써 주셨나요?


소이 씨가 언리미티드 에디션이라는 독립출판물 오픈마켓에서 『9여친』을 사가셨어요. 인증샷도 트위터에 올리고. 부탁하면 해 주실 것 같았죠. 다행히도 흔쾌히 써 주셨어요.


9여친 3호 발간 계획은?


소재가 연애는 아닐 것 같아요. 연애로 계속 쓰려면 제가 남자를 3~4명 쓰지 않는 이상 소재에서 한계가 있고요. 대신 30대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려고요. 결혼이라든지, 화장이 잘 안 먹는다든지, 직장 이야기라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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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의 민낯팜므팥알저 | RHK
구여친과 비둘기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첫째, 지금 모두 비호감이고, 지금 모두 구질구질하다. 둘째, 아주 예전에는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구여친은 한때 그에게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여자였고, 심지어 비둘기는 평화의 상징이었다. 이 책은 젊은 세대를 드러내는 병맛 코드 글 속에 연애의 시작부터 이별 후의 과정을 재기발랄하게 그려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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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로마 신화 읽다 포기한 적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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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이해하려면 유럽을 알아야 하고 유럽을 보려면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어야 한다는 말에 누구나 한 번은 그리스 로마 신화 정독을 시도해 봤을 것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텐데, 불핀치가 정리한 그리스 로마 신화는 단편적인 묘사 위주라 끈질기게 읽게 하는 힘은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슈바브의 그리스 로마 신화는 따로 존재하는 신화를 재구성해서 하나의 이야기로 읽어나갈 수 있도록 구성했다. 휴머니스트에서 나온 『구스타프 슈바브의 그리스 로마 신화』는 총 3권이라는 방대한 분량으로 이뤄졌지만 읽기에 지루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책을 번역한 이동희 교수는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연구하는 중에 이 책을 완역하기 위해 2년에 걸친 시간을 쏟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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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그리스 로마 신화라고 하면 불핀치 버전을 많이 떠올리는데요. 구스타프 슈바브의 그리스 로마 신화는 어떤 점이 다른가요?

 

우리나라에는 미국 문화 영향 탓인지 주로 불핀치 버전 그리스 로마 신화가 소개되었습니다. 볼핀치 버전은 단편적인 그리스 로마 신화 이야기를 그대로 소개하고 있어, 이것들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는지 이해하기 쉽지 않은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가 토막난 조그만 이야기들이나 에피소드 위주로 소개되다 보니, 불핀치 버전의 책을 읽은 독자들이 그리스 로마 신화에는 사건과 인물이 너무 많이 등장하지만, 이야기가 서로 연결되지 않아 헷갈린다는 말을 많이 하곤 합니다. 불핀치가 여러 원전들을 참조하기 보다는 주로 오비디우스와 베르길리우스에 의존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구스타프 슈바브는 전설, 신화, 그리스 비극 등 여러 원전을 충실하게 섭렵해 그리스 로마 신화 이야기를 마치 대하소설처럼 재구성해 놓았습니다. 그래서 원래 그리스 로마 신화가 가진 이야기의 극적인 긴장을 놓치지 않고 서로 연관되는 이야기의 묘미를 최대한 살려 놓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번역을 위해 현지를 답사했다고 들었습니다. 교수님께서 그리스 로마 신화에 빠진 계기가 있다면?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 번역을 위해 현지를 답사한 것은 아닙니다. 원래 저는 철학전공자로서 철학을 중심으로 해서 고대부터 근대까지 서양 문화 지역을 답사하고 그것에 대한 책을 쓰고자 했습니다. 그런 기획 속에 고대 그리스 지역을 답사하면서 그리스 로마 신화의 중요성을 더욱 깨달았습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를 모르고, 지금 터키에 있는 트로이나 펠레폰네소스 반도에 있는 미케네 지역을 간다면 거대한 돌덩어리의 잔해 밖에 눈에 들어오지 않을 겁니다. 한번은 어떤 분이 그리스 지역을 함께 여행하면서 계속 돌덩어리들만 보니까, 이렇게 한탄을 하더군요. ‘돌만 보니 돌아 버리겠네!’ 돌도 이야기를 알면, 달리 보이고, 흥미롭게 다가옵니다. 그 얽힌 이야기와 의미를 모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그리스 로마 신화를 모르고는 고대 그리스 문화뿐만 아니라 서양문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헤브라이즘과 더불어 유럽 문화를 떠받치는 두 개의 기둥이자, 동시에 예술적 상상력의 보고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현지를 답사하면서 그리스 로마 신화를 알아야 서양문화를 근본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생각에 독일권에서 널리 읽히는 이 책을 번역해 소개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것입니다.


모든 고전은 현대와의 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재해석됩니다. 21세기 대한민국이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배울 수 있는 점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21세기 대한민국이  그리스 로마 신화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은 지금 갈수록 중요해 지는 상상력과 그것을 전달하는 방식인 스토리텔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무한한 상상력의 보고라 할 수 있습니다. 신들과 인간들, 동물들, 심지어는 바람, 강 등 자연 사물들에 대한 무수히 많은 캐릭터들이 등장합니다. 이 캐릭터들이 신화 곳곳에 등장하며 이야기의 극적인 긴장과 재미를 줍니다. 예를 들어 오이디푸스 이야기에서 스핑크스가 등장하지 않는다면, 극적인 긴장이나 재미도 매우 줄어들었을 겁니다. 그러나 캐릭터들이 많이 있다고 하여도 잘 짜인 스토리가 없다면, 그 캐릭터가 제대로 살 수 없었을 겁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아주 잘 짜인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갖는 스토리텔링 방식은 아직도 배울 것이 많다고 봅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그리스 로마 신화 이야기 속에는 시공간을 초월해서 근본적인 인간의 본성 및 인간의 행위와 관련하여 항상 우리에게 이야기해주는 것이 있습니다.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적나라한 인간의 본성과 한계를 그대로 드러내 보여주기도 하고, 감추어진 욕망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것을 신들과의 관계 속에서 항상 조명하고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대부분 신화를 보면, 인간이 초월적 존재들인 신들과의 관계 속에서 겸허한 자기반성과 성찰을 하지 못하면 결국 파국을 맞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이렇게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다 보면, 신들과 인간들이 얽혀 만드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 속에서 인간에 대한 근본적 성찰을 하게 됩니다.


많은 신화 중 특히 그리스 로마 신화가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북유럽 신화나 한중일 신화 등과 다른 그리스 로마 신화만의 특징이 있을까요?

 

그리스 로마 신화는 전 세계인이 애독하는 고전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된 까닭은 서양문화가 세계를 지배하게 되고, 그 영향을 받은 데서 기인하는 것도 큽니다. 서양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리스 로마 신화를 아는 것이 필수적이니까요. 그러나 전 세계인들이 공감할 만한 어떤 보편적인 이야기나 의미 같은 것이 그리스 로마 신화에 없었다면 아무리 강요해도 그것을 읽지 않게 되겠지요. 그리스 로마 신화는 도덕책처럼 교훈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를 통해 사건을 보여주고, 그것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습니다.


고대 게르만족 사이에 퍼졌던 고대 북유럽 신화는 기독교문화와 그리스 문화가 지배하면서 서양을 지배하게 되면서 쇠퇴하게 되었다가 최근에 다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독일에서는 고대 게르만족의 북유럽 신화가 나치와 같은 극단적 민족주의를 조장하는 도구로 쓰일까 조심한 측면도 있습니다. 고대 북유럽 신화에도 토르와 오딘 등 무수히 많은 신과 인물이 등장하고, 흥미 있는 이야기가 들어 있어 그리스 로마 신화와 또 다른 재미와 의미가 있을 겁니다. 마찬가지로 한중일 신화도 풍부한 이야깃거리가 들어 있습니다. 한중일 신화가 계속 발굴되고, 구스타브 슈바브가 했던 것처럼, 좀 더 체계적인 이야기로 만들어져 독자들이 손쉽게 읽을 수 있다면, 그리스 로마 신화와 같은 사랑을 받게 되지 않을까요.


방대한 신화를 번역하셨는데요. 번역 작업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요?
 
제일 어려운 점은 책이 방대해서 번역하는 데 꽤 오랜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했던 점입니다. 2년 동안 날마다 번역을 해야 했습니다. 또한 그리스 로마 신화마다 약간씩 다른 전승도 있고 또 충돌되는 이야기도 있어, 서로 비교하는 작업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교수님께서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가장 좋아하는 신 혹은 인물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가장 좋아하는 신은 프로메테우스입니다. 프로메테우스는 최초의 휴머니스트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프로메테우스는 자기가 만든 인간을 돕기 위해 불을 훔쳐다 주고 그 대가로 매일 밤 독수리에게 간이 쪼아 먹히는 고난을 당합니다. 제우스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의연한 자세를 잃지 않습니다. 인간에 대한 사랑과 불굴의 정신이 프로메테우스 모두에게 들어 있습니다. 이런 모습에 반해 칼 마르크스는 자기의 아이콘으로 프로메테우스를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일반인, 대학생, 청소년 등 그리스 로마 신화를 읽는 독자는 다양합니다. 각 독자들이 효과적으로, 재미있게 책을 읽는 방법이 있을까요?

 

무수하게 많이 등장하는 신들이나 인물들의 생소한 이름들에 당황하지 말고 우선 그리스 로마 신화를 옛날이야기를 읽듯이 쭉 읽어 가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사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수많은 신과 인물과 사건이 얽히며 계속해서 전개되는 극적인 이야기 구조에 그 묘미가 있습니다. 읽다 보면, 이야기에 빨려 들어가는 것을 느끼게 될 겁니다. 흥미 있게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신과 인물에 대해 친숙해 지게 될 것입니다.

 

*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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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프 슈바브의 그리스 로마 신화 1 신과 영웅의 시대구스타프 슈바브 저/이동희 역 | 휴머니스트
1838년 초판이 발행된 이후 전 세계적으로 신화 필독서의 자리를 꾸준히 지키고 있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고전. 독일의 교육자이자 시인인 구스타프 슈바브는 방대한 그리스 로마 신화를 섭렵하고 시간 순서대로 재구성하여 이 책을 집필했다. 고대 시인들의 작품에서 부분적으로 언급되거나 유럽 각 지역에 흩어져 있던 신화들을 모으고 정리하여, 인간을 창조한 프로메테우스에서부터 로마 건설에 이르는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그리스 고전의 내용을 충실하게 전달하면서도 속도감 있는 전개와 극적인 감동까지 생생하게 살려낸 작품이다. 독자들은 대하소설처럼 유려하게 이어지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읽으며 복잡하게 느껴졌던 그리스 로마 신화의 흐름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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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사가 김이나 “제발, 몽상가가 되지 말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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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사가 김이나를 기억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누군가는 아이유의 「좋은 날」로, 또 다른 누군가는 이선희의 「그중에 그대를 만나」로 그녀를 기억한다. 브라운아이드걸스의 「아브라카다브라」로 그녀를 떠올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드라마 <시크릿가든>의 OST 「나타나」를 듣고 그녀를 기억해 내는 사람도 있다. 가인의 「피어나」 「파라다이스 로스트」 엑소의 「Lucky」 이효리의 「천하무적 이효리」 등도 모두 그녀의 작품이다.

 

그래서 그녀의 이름 앞에 붙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작사가’라는 수식어는 조금도 낯설지 않다. 실제로 김이나는 2010년 멜론 뮤직어워드에서 송라이터상을 수상한 이후, 2012년부터 2014년까지 3년 연속 ‘가온차트 K-POP 어워드’에서 올해의 작사가상을 수상했다. 2015년에는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서 저작권료 수입 1위의 작사가에게 수여하는 ‘KOMCA’의 대중 작사 부문 대상의 주인공이 되기도 했다. 인피니트의 「Tic Toc」부터 조용필의 「걷고 싶다」에 이르기까지, 장르와 세대를 뛰어넘으며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만큼 작사가 김이나에게는 많은 질문들이 따라붙는다. 그녀를 동경하는 작사가 지망생들은 ‘작사가로서의 성공 비결’에 대해 묻고, 그녀의 노랫말에 마음을 빼앗겼던 이들은 어떻게 자신의 마음을 꿰뚫어 보았는지 의아해 한다. 질문이 무엇이든 답변은 『김이나의 작사법』안에 모두 담겨있다. 작사가로 데뷔하기까지의 과정들과 차곡차곡 성공을 쌓아올렸던 순간들에 대한 ‘고백’을 들려주는 까닭이다. 한 곡의 이야기가 탄생하기까지 그녀가 보듬었던 삶의 순간들과 감정들, 그 안에서 겪어야 했던 시행착오, 긴 여정을 함께했던 동료 음악가들에 대한 기억들도 슬며시 고개를 내민다.

 

결국 우리는 『김이나의 작사법』안에서 작사가로 살아가는 삶에 대해, 그리고 작사가이기 이전에 음악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김이나의 세계에 대해 엿보게 된다. 그 낯선 세계를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들여다 볼 독자들을 위해, 김이나는 최대한 솔직해지기로 마음먹었다. “한 번도 내가 예술을 한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다만 좋은 일꾼이라고는 생각해왔다”는 고백으로 말문을 열 만큼, 상업성을 도외시한 채 존재할 수 없는 대중음악 작사가의 현실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그래서 영화평론가 허지웅은 그녀를 두고 “김이나는 교활한 작사가다. 그는 창작자로서의 자존감을 경계하는 대신 직업인으로서 산업의 톱니바퀴이기를 자처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이나의 솔직함은 작사가로서 갖춰야 할 면모들과 대중음악 산업의 생리에 대한 조언에만 그치지 않는다. 작품 속에 녹아든 자신의 지난 시간들과 상처까지도 숨김없이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또한 그녀는 대중의 한 사람이 아닌 동료의 입장에 서서 바라보았던 가수들의 진솔한 이야기까지도 담담하게 전한다. 그래서 『김이나의 작사법』을 읽고 나면 그녀의 노랫말이 담긴 음악을 다시 듣고 싶어진다. 그녀의 작품 속에 이 모든 이야기들이 응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3분 안팎의 짧은 노랫말 속에서는 짚어낼 수 없었던 감성과 스토리와 노력들을 『김이나의 작사법』은 조명하고 있다.

 

작사가가 되고 싶다면 “제발, 몽상가가 되지 말기를”

 

“이곳에서의 내 생존기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고 적으셨는데요. 『김이나의 작사법』집필하게 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떻게 하면 작사가가 될 수 있나요?’라는 질문들을 계속 받아왔는데요. 그럴 때마다 모든 걸 설명해 줄 수는 없으니까 아쉬움이 남았었어요. 작사가라는 직업이 생소하기도 하고 그만큼 정보도 희박하잖아요. 그 사이 작사가에 대한 환상은 커져가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정말 작사가가 되고 싶은 사람들에게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어요. 『김이나의 작사법』을 굉장히 솔직하게 쓴 이유이기도 해요. 꼭 작사가 지망생이 아니더라도, 가요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가사 뒤에 감춰진 이야기들을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을 거예요.

 

많은 사람들이 예술에서 순수성을 지향하면서 상업성은 경계하는데요. 작가님께서는 상업적인 측면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작사가의 현실을 솔직하게 이야기하셨습니다.


책 제목을 『김이나의 작사법』이라고 정한 것도, 이건 저의 방식이라는 걸 말씀드리고자 했던 거거든요. 제가 대명사 같은 존재가 됐다는 의미가 아니고요(웃음). 저는 일을 대할 때 상업적인 부분도 고려해요. 하지만 다른 작사가들이 다 저와 같지는 않을 거예요.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우려했던 부분이 있었어요. 독자 분들께서 제 책을 보시고 ‘작사가는 다 그렇구나’ 하고 생각하시는 게 몇몇 작사가 분들에게 누가 될까봐 걱정됐죠.

 

그래서 『김이나의 작사법』에서 ‘상업작사가와 싱어송라이터의 차이’를 설명하신 건가요?


아티스트로서의 글쟁이가 되고 싶으면 싱어송라이터가 되어야 하는 거고, 작사가를 업으로 삼으려면 자신의 이야기만을 쓸 수는 없거든요. 전문 작사가와 싱어송라이터의 영역은 너무 다른데, 많은 분들이 혼동하고 계신 것 같더라고요. 심지어 저도 그 경계에서 계속 선택을 하는 날들을 보내는 것 같아요. 예술성 있는 작업을 하고 싶은지, 아니면 재미있는 대중가요를 만드는 사람으로 남고 싶은지, 선택을 하는 거죠. 저는 대중음악계에서 아티스트라고 불릴 수 있는 사람은 가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아마 저와 같은 생각을 하는 작곡가 분들도 많을 거예요. 본인 음악을 하시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어떤 가수를 위한 곡을 만든다는 마음을 가지신 분들도 있거든요. 저는 후자에 가까운 것 같아요.

 

가사를 완성하기에 앞서 반드시 체크하시는 부분들이 있으신가요?


일차적으로는 가수에 맞는 이야기인지 확인하는 거죠. 그래서 저는 작사 의뢰를 받을 때 가장 먼저 가수가 누구인지 물어봐요. 나이라든지 가수로서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를 확인하는 거예요. 그 다음에는 곡의 느낌을 잘 살릴 수 있는 발음들, 그리고 어떻게 짧은 가사 속에서 임팩트를 줄 것인지가 제일 중요하죠.

 

작사가로 데뷔하신 이후에도 5년 정도 직장 생활을 병행했다고 하셨습니다. “제발, 현실을 버리고 꿈만 꾸는 몽상가가 되지 말기를” 당부하시는 부분에서도 특유의 현실 감각이 눈에 띕니다.


작사가가 되기 위한 준비에만 올인하겠다는 생각으로 다른 일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잖아요. 물론 그렇게 해도 되는 상황이면 괜찮은데,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권하고 싶지 않은 방법이에요. 작사가는 데뷔하기도 힘든데다가 데뷔 한다고 해서 꾸준히 일이 이어지는 게 아니거든요. 밥벌이가 되기까지는 최소한 몇 년의 시간이 걸려요. 그래서 작사가가 되고 싶다면 준비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생계를 책임질 수 있는 정도의 벌이를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게 정말 중요한 것 같고요. 작사 스킬을 갈고 닦는 것만이 노력이 아니라 버티는 힘을 기르는 것도 노력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 밖에 작사가 지망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저 역시 일을 하다 보면 싱어송라이터와 같은 마인드가 생겨날 때가 있어요. 특히 사람들로부터 ‘나는 김이나의 가사가 정말 좋더라’라는 칭찬을 듣게 될 때 그렇죠. 그런데 사람들이 좋다고 이야기하는 건 곡과 가수와 가사가 합을 이루었을 때의 상태거든요. 그걸 혼동해서 ‘내 가사가 정말 특출 난가 봐’라고 생각하면 가사 속에서 나의 자아가 나오기 시작해요. 그때부터 가수한테는 민폐가 되는 것 같아요.

 

『김이나의 작사법』에서 김형석 작곡가와의 첫 만남을 회상하기도 하셨습니다.


김형석 선생님의 콘서트에 간 적이 있었어요. 그때 촬영한 사진들을 제 개인 홈페이지에 올려놨었고요. 직접 인사드린 건 그 이후의 일인데, 사석에서 우연히 뵈었던 거예요. 그때 제가 작곡가가 되고 싶다고, 어떻게 하면 선생님께 배울 수 있냐고 여쭤봤죠. 그랬더니 작곡가님께서 한 번 와서 곡을 들려달라고 하셨는데요. 원래 누구든 배우고 싶다고 하면 기회를 다 주신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선생님을 찾아가서 피아노 연주를 들려드렸을 때는 아직 준비가 더 필요한 것 같다고 하셨었어요. 그래서 알겠다고 말씀드리면서 진심으로 선생님 팬이라고, 얼마 전에 콘서트도 갔었고 제 홈페이지에 오시면 선생님 사진도 많이 있다고 말씀드렸거든요. 그런데 진짜로 직접 와서 보셨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써 놓은 글들을 읽으시고는 가사를 쓰면 잘 쓸 것 같은데 도전해 볼 생각이 있냐고 물으셨어요. 당연히 하겠다고 했죠. 그러고 나서 1년쯤 후에 가사 한 번 써보겠냐고 제의를 해주셨어요. 그 곡이 성시경의 「10월에 눈이 내리면」이었죠.

 

그런가 하면 “작사가로서의 나를 만든 가장 근본적인 계기는 윤상이다”라고 적으셨어요.


한 마디로 취향 저격을 당했던 건데요. 제가 좋아하는 곡들의 작곡가를 확인해 보면 윤상 선생님인 경우가 많았어요. 그래서 ‘정작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화려한 가수들 뒤에 있는 이 분이구나’ 싶었죠. 그때부터 노래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동경을 가지게 됐어요. 지금도 윤상 선생님은 저에게 최고의 가수이자 작곡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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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유, 좋은 이별은 없어”


「10월에 눈이 내리면」을 작업하신 이후에 “첫 곡은 운이 좋아 발표된 것뿐이고, 그 이상의 무언가를 쓸 수 없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고 하셨습니다. 그 시기는 어떻게 견뎌내셨나요?


처음에는 아무 계산 없이 가사를 썼는데 괜찮게 나온 거였죠. 그런 일들이 굉장히 빈번하게 벌어진다고 생각해요. 처음 해봤는데 결과가 잘 나올 때가 있잖아요. 그것 또한 경계해야 되는 것 같아요. 그것만 믿고 있으면 안 되는 거죠. 그때 받는 평가에는 ‘처음치고는’이라는 전제가 깔려있기도 하거든요. 이후에는 제 나름대로 연구를 했는데, 아마 큰 메리트가 없는 가사가 나와서 채택이 안 됐었겠죠. 그렇다 보니까 ‘처음에는 운이 좋아서 채택된 거고 사실은 내가 재능이 없나’라는 생각을 한 동안 했었죠. 그건 피할 수 없는 기간인 것 같아요. 겪어야 하는 시기이기도 하고요. 자신이 정말 잘 쓴다고 착각하는 시간, 하염없이 거절당하는 시간, 하염없이 잘 되는 시간,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가야 되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씀이신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생각해요. 저는 ‘될 때까지 한다’는 주의라서 그렇기도 한대요(웃음). 작사라는 게 시스템이나 멘토가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혼자 잘 해내야지, 누가 나를 위해서 ‘한 번 더 해봐’라고 기회를 주지 않아요. 그래서 자리를 잡을 때까지 혼자서 싸워나가야 하죠.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인이면 기회를 줄 거라고 생각하지만, 가사가 좋지 않으면 당연히 거절을 해야 되는 거예요. 상업적인 일이기 때문에 친분이 있다고 해서 가사를 채택해 주지는 않죠. 그래서 채택된 가사들을 살펴보면서 자신의 가사는 왜 선택되지 않았는지 생각해야 하는 것 같아요. 책에도 썼듯이 ‘채택된 가사보다 내 가사가 더 좋은데, 내가 아직 이름이 없어서 선택받지 못한 거다’라고 착각할 때도 있었어요(웃음). 그런데 그 시기도 다 거쳐야 돼요. 저는 그때도 회사를 계속 다니고 있었기 때문에, 홧김에 포기해 버리지 않고 꾸준하게 도전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해요.

 

A&R(Artist and Repertoire)로 근무했던 경험도 들려주셨어요.

 

A&R로 일했던 건 작사가로서는 신의 한 수였다고 생각해요. A&R을 하면서도 가사를 쓰시는 분들이 꽤 많거든요. 굉장히 많은 것들을 접할 수 있고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있어요. 왜 이 가수에게 이런 가사를 채택했는지를 알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었고요. 프로듀서의 기획에 따라서 어떤 작품들을 원하는지 알 수 있고 자기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도움이 됐어요. 그리고 일하면서 감정적이지 않을 수 있었죠. 가사를 재차 수정해 달라고 해놓고 다른 작사가의 가사를 채택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저는 A&R로 근무해 봤기 때문에 왜 그런 일들이 벌어지는지 아니까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을 수 있죠.

 

『김이나의 작사법』에 이성수 SM 프로듀싱팀 실장과 정병기 울림엔터테인먼트 총괄본부장과의 인터뷰를 싣기도 하셨습니다.


A&R이 생소한 일이다 보니까 독자 분들게 알려드리기 위해서 A&R로서 입지를 굳히신 분들의 이야기를 실은 거예요. A&R로 일하면 작사가가 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었고요. 저도 지금 A&R을 겸하고 있지만, 정말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A&R을 거쳐서 작사가가 되지는 못할 거예요. 책에서 인터뷰한 SM의 이성수 실장님은 작곡도 하시는 분인데 바빠서 곡이나 가사를 쓰실 시간이 없을 정도거든요. 그리고 A&R로 일하기 위해서 특별한 능력이 필요하기도 해요. 저는 A&R을 하면서 배운 것들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싶었고, A&R을 거치지 않더라도 작사가 역시 관련된 부분들을 알고 있어야 된다는 걸 알려드리고 싶었어요.

 

박정현의 「서두르지 마요」 가사에 등장하는 여자가 “가장 애정을 갖고 있는 캐릭터”라고 하셨는데요.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제가 생각할 때 가장 이상적인 사랑을 했거든요. 제가 「서두르지 마요」의 가사를 쓸 때 해뒀던 설정은 모든 게 완벽한 것이었어요. 단지 헤어졌을 뿐이지만, 헤어졌다고 해서 본질이 변하는 건 아니니까요. 상대 남자도 정말 훌륭한 사람이었고, 둘은 너무 좋은 연애를 했고, 절대적인 신뢰를 가지고 있는 사이인 거예요. 그래서 남자가 헤어지자고 말할 때 여자가 별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거죠. 쿨해서가 아니라 둘 사이의 알 수 없는 유대관계 때문에 가능한 거예요. 어떻게 보면 판타지인데, 그래서 더 애착이 가는 것 같아요. 실제로 헤어질 때 가질 수 없는 감정이잖아요. 대부분 억울하고 분하고 미련이 남는데, 노래 속의 여자는 상대를 완벽하게 존중해 주면서 ‘그럼 네 얼굴을 조금만 더 보고 보내줄게’ 라고 말하니까요. 그리고 가수 박정현 씨가 왠지 그럴 것 같다는 상상을 하기도 했어요. 실제로 만나보니까 인간적으로 참 훌륭한 분이시더라고요.

 

「나만 몰랐던 이야기」를 준비하면서 아이유로부터 ‘정말 아름다운 이별은 없는지’ 질문을 받기도 하셨죠. 당시에는 어떻게 대답하셨나요?


그 나이 때는 드라마 속에 나오는 이별을 상상하잖아요. 마치 영화 <러브 어페어>처럼 피치 못한 사정으로 헤어지는 거죠. 상대도 나를 너무나 그리워하고 가슴 아파하지만 섣불리 손을 못 내미는 걸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건 없다고 했죠(웃음). 단지 아름답게 받아들이는 이별은 있다고 했어요. 비극적인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느끼는 좋은 이별은 없다고요. (이별하면) 둘 중 한 사람은 크게 다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두 사람 모두 좋은 이별이었다고 말한다면, 둘 중 하나는 거짓말하는 거겠죠(웃음).


가수와 작사가, 텔레파시가 통하는 순간


가사 속의 캐릭터를 만드실 때 가수가 가진 이미지나 나이, 성별, 성격 등을 고려한다고 하셨는데요. 지금까지의 작품 중에서 실제 가수의 모습과 ‘싱크로율이 가장 높았던’ 노랫말은 무엇이었나요?


실제 모습이란 걸 제가 얼마나 파악하고 있는지 잘 모르기 때문에 답변하기 어려운데요. 브라운아이드걸스의 제아의 솔로앨범에 「그대가 잠든 사이」라는 곡이 있어요. 그 노래를 부를 때 제아가 일적으로 힘든 부분이 있었고 노래도 부르기 힘들었는데요. 연습을 하다가 엉엉 우는 거예요. 감정적으로 무너진 거죠. 그게 꼭 싱크로율 때문에 그런 건 아니겠지만, 제가 제아의 연약한 부분을 소재 삼아서 가사를 썼는데 미안한 감정이 들었어요. 그래서 아직도 그 노래는 편하게 감상할 수만은 없어요.

 

노랫말을 통해서 서로의 마음이 전해지는 순간이 아니었을까요?


그럴 때 좋기도 하고 짠하기도 해요. 쿨의 노래 중에 「프렌즈」라는 곡을 부를 때도 이재훈 씨가 울컥한 적이 있었어요. 그렇게 ‘어느 정도 교감이 이루어졌나보다’ 싶을 때가 있죠.

 

「분홍신」의 가사 중에서 “눈을 감고 걸어도 맞는 길을 고르지”라는 부분은 아이유에게 보내는 최선의 응원이라고 밝히셨습니다. 아이유도 가사를 보고 작가님의 마음을 눈치 챘을까요?


제가 먼저 얘기했어요. ‘너에 대한 내 생각을 담아서 이런 가사를 썼다’고요. 그런데 아이유는 그런 말을 듣는다고 해서 들뜨거나 하지 않아요. 항상 담담하고 일희일비하지 않아요. 그래서 제가 책에서 아이유는 “타고난 그릇이 정말 큰 아이”라고 적은 거고요. 저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데도, 저보다 훨씬 그릇이 큰 아이라는 걸 매번 느껴요.

 

드라마 <궁>의 OST 「Perhaps Love」에 참여하신 후에 지하철, 미용실, 길거리 곳곳에서 직접 가사를 쓰신 음악을 듣게 됐다고 하셨습니다. 그때의 기분은 어떠셨나요?


기분이 좋고요(웃음). 진짜 기분 좋은 건 제가 가사를 쓴 노래를 홈페이지 배경음악이나 휴대폰 벨소리로 지정해 놓은 걸 들을 때예요. 길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최신음악을 무작위로 재생해 놓은 거잖아요. 그런데 개인적으로 그 음악을 직접 선택한 사람들을 만나면, 처음 만나는 사람인데도, 제가 그 사람의 깊숙한 사생활에 관계가 되어있는 느낌이 들어요. 노래는 생필품이 아니잖아요. 단지 좋다는 이유만으로 구매하는 건데, 그럴 때 기분이 묘하기도 하고 마음이 뿌듯하죠.

 

3분 안팎의 노래 한 곡 안에서는 캐릭터의 뒷얘기를 전부 전할 수 없어 갈증을 느끼기도 한다고 하셨습니다. 『김이나의 작사법』을 집필하면서 그러한 갈증이 다소 사라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책에 적힌 이야기들을 모르고 들어도 좋은 곡들이긴 하죠. 그런데 우리가 너무 좋아하는 영화를 보고 나면 메이킹 필름을 보고 싶잖아요. 그리고 메이킹 필름을 보면서도 재미있고요. 그런 것처럼 『김이나의 작사법』에 쓴 가사의 뒷이야기들은, 한 줄의 가사를 조금 더 맛있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거장들과의 작업은 “신기하게도 텔레파시가 통한 것처럼 내가 구체적으로 원하는 느낌이 있는 구간은 그들이 정확히, 또는 그 이상으로 표현해냈다.”고적으셨어요.


제가 생각한 대로 정확하게 나왔다는 건, 예를 들면 호흡 같은 거예요. 이선희 선생님의 「그중에 그대를 만나」에는 “그대라는 인연을 놓지 못하는”이라는 부분이 있는데요. 저는 큰 따옴표 안에 ‘그대’라는 단어를 넣어놓은 것 같은 느낌으로 불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정말 그렇게 표현을 해주셨더라고요. 그리고 간절함의 정도를 배치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차이가 있거든요. 어떤 경우에는 슬픔과 담담함이 표현되는 순간이나 정도가 제 상상과 다르기도 해요.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죠. 그런데 제 바람과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면 어마어마한 쾌감과 뿌듯함이 있어요. 제가 행간에 담으려 했던 것까지도 세심하게 봐주셨다는 생각이 들고요. 가사를 보면서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지 고민하는 가수들은 제가 상상한 모습을 연기해 주더라고요. 「그중에 그대를 만나」에도 마지막 후렴구에 음정이 조금씩 불안한 부분들이 있어요. 그래야 되는 부분이었어요. 완벽하게 잘 부르는 게 필요한 게 아니라, 중심을 잡으려고 노력하지만 어쩔 수 없이 자꾸 흔들리는 부분이었거든요. 이선희 선생님께서 실제로 그렇게 불러주셔서 기분이 정말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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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비밀은 있다」 내 마음을 얘기하고 싶었던 노래


임재범의 「어떤 날, 너에게」의 가사를 쓸 때는『칼의 노래』의 여운이 남아있었다고 하셨어요.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그건 정말 느낌적인 느낌인데요(웃음). 겉으로 고독을 풍기지도 않는, 그럴 정도로 자기 절제가 되어 있는 남자의 이미지 같은 거였죠. 그런 남자가 무너질 때의 모습을 떠올렸던 것 같아요. 『칼의 노래』에서도 그런 장면이 있잖아요. 이전까지 쓸쓸함을 한 번도 표현하지 않던 이순신 장군이 갑자기 소리 내서 우는 장면이요. 그 부분에서 저도 눈물을 흘렸었어요. 마치 아빠가 우는 걸 보는 것처럼, 그 사람이 운다는 건 상상도 못하고 있다가 우는 모습을 보니까 겁나고 무섭고 서글픈 거죠. 그 대목에서 제가 글자로만 느꼈던 느낌과 냄새를 표현해 보고 싶었어요. 그게 제가 상상하는 임재범 씨의 향기와 비슷하기도 했고요.

 

「누구나 비밀은 있다」의 노랫말에서는 ‘아이유와 가인의 캐릭터를 빌려 내 마음을 얘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작사가로서 김이나에 대한 오해나 편견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저에 대한 오해나 편견에 대한 답답함이 아니라, 제가 옆에서 지켜 본 가수들에 대한 오해나 편견에 대한 답답함이었죠. 어떤 가수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말을 하고 숨겼던 모습이 밝혀졌다고 이야기하는 걸 보면서, 사람들은 잘 알지도 못하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가장 신나하고 확신에 차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가수는 모든 의문들이나 소문들에 대해서 적극적으로 해명할 수가 없거든요. 저는 그 아이들이 「누구나 비밀은 있다」처럼 이야기를 해버렸으면 좋겠는데 그럴 수는 없으니까, 노래를 빌미삼아서라도 입 밖으로 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어차피 사람들의 많은 오해 속에서 살 수밖에 없는 게 연예인의 운명인데, 그렇다면 그것 때문에 답답해하거나 속앓이를 하지 말고, 연예인으로서 신비로운 매력 요소로 안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그런데 아이유와 가인은 이미 그렇게 하고 있어요. 저만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거죠(웃음). 오히려 그 아이들은 ‘언니 왜 그런 걸로 신경 쓰고 그래요’하면서 오히려 저를 위로해요.

 

에일리의 노래 「저녁하늘」 가사에는 작가님의 트라우마가 감춰져 있다고 고백하셨습니다. 개인적인 상처를 이야기하시는 게 쉽지 않으셨을 텐데, 그럼에도 들려주신 이유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극복이 되었으니까 얘기할 수 있는 거고요. 얘기를 하다 보면 극복이 된다는 건 강력한 치료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어렸을 때 저는 하늘이 어슴푸레해질 때 기분이 극도로 이상해졌었어요. 길을 가다가 그런 순간을 맞닥뜨리면 실내로 들어가서 아예 해가 질 때까지 나오지 않을 정도로요. 어른이 돼서도 그 시간만 되면 불편해 지고 초조해 지기도 했는데, 그 이유를 잘 몰랐죠. 나중에 알고 보니까 심리학에서는 그걸 ‘인지도식’이라고 부른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왜 그런지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그 기분에 사로잡힐 때마다 무의식적으로 떠오르는 그림이 있었어요. 어렸을 때 저희 어머니께서 일본에서 사업을 하시느라 몇 달에 한 번씩 한국에 오셨었거든요. 다시 일본으로 떠나실 때마다 공항에서 어머니를 배웅하고 돌아오면 해가 질 무렵이었어요. 당시의 기억이 잘못된 인지도식으로 인해 트라우마로 남은 거죠. 이유를 알고 나니까 괜찮아지더라고요.

 

「저녁하늘」 가사를 쓰시면서 상처가 치유되기도 하셨나요?


나에게만 슬픔과 아픔이 있다고 생각했구나’라는 걸 알았어요. 저녁 하늘이 왜 슬픈지 사람들은 모를 거라고 생각했던 걸 반성하게 됐고요. ‘나만 이상한 종류의 쓸쓸함을 느끼는 게 아니고, 다들 비슷비슷하게 외로워하면서 살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치유가 되기도 했어요.

 

독자들에게 『김이나의 작사법』이 어떤 이야기로 다가가길 바라세요?


재미있게 받아들여 주셨으면 좋겠어요. 노래를 감상하는 데 있어서 더 재미있는 요소들을 보여드릴 수 있기를 바라고요. 가수들을 더 많이 이해할 수 있는 책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최대한 실용성에 초점을 맞춰서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솔직하게 썼기 때문에, 작사가가 되고 싶은 사람들에게 많은 도움이 됐으면 좋겠고요. 작사가를 꿈꾸지 않는 분들에게도 기분 좋은 느낌을 전해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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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나의 작사법 김이나 저 | 문학동네
『김이나의 작사법―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일상의 언어들』은 작사가 김이나가 작사가 지망생과 음악업계에서 일하길 꿈꾸는 젊은이들은 물론, 글쓰기와 창작을 지망하는 이들, 그리고 지금껏 자신이 작사한 노래를 들어준 수많은 청자들을 향해 쓴 책이다. ‘좋은 일꾼으로서의 글쓰기, 팔리는 글을 쓰기 위해 10년간 분투한 자신의 생존기’를 각 곡의 작사 테크닉, 그리고 아티스트들과의 작업과정에서 일어난 잊지 못할 에피소드들과 함께 솔직하게 써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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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권대웅 시인 “우리는 달빛 아래 만들어진 달의 존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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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해도 파스텔을 선물 받고 싶었던 소년은 후에 파스텔로 달을 그린다. 어느 곳을 가나 달이 따라왔고 환한 달이 그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는 세상 만물이 달을 닮아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꽃씨가 그러했고, 어머니의 둥글고 두툼한 허리가 그러했다. 당신의 이마, 눈썹, 입술, 모두 달을 닮았다. 달을 잊고 여행을 떠나도 그곳에 전에 본 것과 똑같은 달이 둥실 떠 그에게 말을 걸어왔다. 그의 그림은 프라하의 달, 타지마할의 달, 남프랑스에서 만난 라벤더를 담은 보라의 달까지 이어지게 된다. 그는 매일 새로운 달을 그리고, 달항아리를 그리고, 달기타, 달포장마차, 달까지 가는 택시를 그린다.


달 시인 권대웅은 시공간을 초월해 모든 것이 “하나의 긴 달빛 바늘에 꿰어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지금 이 자리를 뛰어 넘는 더 큰 어떤 것을 생각하고 마음에 담은 사람의 넉넉함과 겸허함이 느껴졌다. 그가 ‘그리운 것은 모두 달에 있다’고 말한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달을 보지 않는 사람들, 달이 보이지 않는 세상이라 하더라도 인간은 본능적으로 달을 그리워한다. 우리는 달빛 아래 만들어졌고, 달에게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았던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달은 매일 밤 사람들에게 나를 퍼다 쓰라고 말한다. 그 빛의 소리를 들어라. 달을 베끼고 창조하라. 그렇게 달은 사람들에게 자꾸 쓰여야 한다. 그래야 환해지니까, 마음이 따뜻해지고 착해지니까. 어둠이 무섭지 않아지니까. 달빛처럼 끊임없이 나누어주게 되니까.”(33쪽)

 

달을 그린 지 3년. 길지 않은 시간동안 달은 그에게 많은 것을 주었다. 그것을 느낄 때마다 눈물이 난다. 시인은 그가 느낀 달의 따뜻한 기운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 달이 말을 걸어올 때마다 달시를 쓰고 달을 그린다. 몇 차례 시화전을 했고, 판매 수익금을 ‘착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었다. 달을 노래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을 때 이 세상에 사랑과 여유가 생긴다고 믿는 시인. 그가 본 달과 오늘 밤 떠오를 달이 얼마나 닮아 있는지 궁금하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달을 닮아 있는 것 같아


얼마 전 시화전을 하셨죠?


합정 빨간책방에서 시화전을 했었는데 사람들이 정말 좋았다고 한 번 더 하자고 했어요. 못 온 사람들이 또 하자고도 했고요. 때마침 빨간 책방 전시가 끝난 후 논현 북티크에서 전시를 하자고 하더라고요. 릴레이로 ‘동네 서점 살리기’차원에서 이런 문화 공간을 살리는 그런 활동을 하면서 동시에 홀몸 노인이나 소년소녀 가장 돕기를 하게 된 거죠. 동네 서점에서 전시한 시화 액자들이 팔리면 전액을 환원하는 것으로 기획을 했어요. 이어 상암 북바이북에서도 하고 있고요, 모두 세 군데에서 하고 있죠. 이후에 지방으로 갈까 해요. 전국 순회를 할 예정이에요. 공연과 시화전을 같이 하려고 합니다. 시화전에 온 사람들에게 공연도 볼 수 있게 하려고요.


처음에는 게스트 분들에게 돈을 드렸어요. 뒤풀이는 출판사에서 지원을 하고요. 고마운 게 두 번째는 게스트 분들이 전부 돈을 안 받고 나왔어요. 뒤풀이는 회비들을 내서 충당하고요. 기획하기를 ‘밥’이니까 좀 나눠주자 해서 예담에서 책을 협찬 받았고요, 마음의숲 출판사에서도 협찬을 받았고, 노트까지 해서 오신 분들이 네 권 씩 들고 가실 수 있게 했어요. 오는 사람들도 선물들을 가져왔어요. 어떤 분은 허니버터칩을 세 박스 가져오시고요.(웃음) 제가 여행하면서 구한 애장품들도 내놨죠. 남프랑스에서 산 라벤더 비누, 인도 여행하면서 샀던 청동램프, 영국 귀족이 쓰던 술병, 이런 것들이요. 아끼면서 가지고 있었는데 오랫동안 소장해봐야 소용이 없더라고요. 나만 보고 있다가 이번에 내놓자고 생각했죠. 덕분에 오신 분들은 책과 선물을 가져가실 수 있었어요. 모두들 좋았다고 하시더라고요. 또 춘천에서도 하자고 해서 계속 돌면서 하게 될 것 같아요.


게스트 중에는 기황후 장영철 작가도 있고요, 샐러리맨 초한지 만든 유인식 감독도 있고 그래요. 이런 분들과 함께 동네 서점 살리기와 여러 가지 고민들을 해서 달 시화전을 함께 전국 순회 공연으로 기획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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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화전 사진 첨부 : 권대웅 시인 제공

 

시화전 수익금을 홀몸노인, 소년소녀 가장 등 소외계층에 기부하시는 활동들이 약하고 어려운, ‘착해서 가난한’ 모든 것들에 대한 관심, 또 시인의 달에 대한 관심과도 닿아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달동네에 살았어요. 청년 시절에도 그랬고요. 청년 시절 산동네에 살 때 옆방으로 이사 온 친구가 김연수 작가예요. 김연수 작가 대학교 1학년 때 ‘여기 너무 좋다, 나도 이사 올래’해서 그곳에 와서 시, 소설로 데뷔했어요. 김중혁 작가도 놀러왔고, 문태준 시인도 놀러왔고요. 거의 가족 같은 친구들이었죠. 산동네에서 살면서 가난한 사람들을 많이 봤어요. 지금 사는 곳도 산동네인데 그곳도 폐지 줍는 할머니들 너무 많아요. 어렸을 때 살던 기억도 나고 그래서 이제는 도와야 할 나이가 됐다고 생각했어요.


또 제가 달에 대해 몇 가지 신기한 체험을 했어요. 여행을 하면서도 그랬고요. 한 4년 전에 달이 나에게 말을 건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영국 갔을 때예요. 오래된 영국의 타자기가 있었는데 달빛이 거기에 들어오고 있었어요. 타자기를 쳤는데 활자가 달빛으로 날아가면서 나한테 스쳐지나가는 경험을 했어요. 새벽달이 닭이 우는 소리를 듣고 깨어났다고 얘기를 하지만, 그런 느낌이었어요. 그러다 2년 정도 후였는데 마당에 나가 담배를 피우는데 정면에 달이 떴어요. 철쭉이 환하게 피어 있었는데 그 아래서 달을 보다가 갑자기 울었어요. 달이 얘기를 하는 것 같았어요. 분명히 달의 에너지가 있다고 느꼈어요. 태양은 열매를 주고, 풍성함을 나눠주죠. 하지만 가을이면 다시 거둬들이잖아요. 달은 아낌없이 다 줘요. 온유해요. 또 우리는 밤의 산물이에요. 엄마, 아버지가 밤에 사랑을 해서 태어난 거잖아요. 세상의 모든 것들이 달을 닮아 있는 것 같아요. 눈동자, 이마, 눈썹, 모든 씨앗들도요. 물고기알, 둥지, 새, 전부 다 달의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지구와 가장 가깝게 있는 달의 자력 안에서 모든 것들이 달을 닮아 있어요.


사람들이 너무 살기 어렵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본래 마음에는 달이 있다, 참 밝은 달이다, 그런 걸 느꼈어요. 그때부터 갑자기 달을 그리게 됐어요. 원래 그림을 정말 못 그렸어요. 그림을 배워본 적도 없고요. 고등학교 미술 시간에 선생님이 스케치북을 안 가져왔다고 정강이를 찬 이후로 미술 시간에 안 들어갔어요. 어느 날 달에 대한 생각이 들고, 그 전에 런던에서, 영국에서 봤던 달들이 자꾸 떠오르면서 달을 한 번 그려봤어요. 그렇게 그리게 된 거예요. 그러면서 달시를 썼고요. 달을 그리고 나면 내가 그린 게 아닌 것 같아요. 참 신기해서 공개를 했는데 좋아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정말 많더라고요. 어떤 사람이 사랑을 하다가 너무 힘들어서 죽을 것 같았는데 제 그림을 보고 위안을 얻었다면서 그림을 한 점 달라고 하더라고요. 줬죠. 보니까 한 달 있다가 다른 남자랑 결혼하더라고요.(웃음) 

 

달시를 SNS에 게재하셨고, SNS 활동도 활발하게 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SNS라는 창구를 선택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이제 신문의 시대는 갔다고 생각해요. 포털 역시 일방적으로 보여주기만 하잖아요. 댓글을 달긴 하지만요. 그러나 SNS 같은 경우는 의견들이 서로 오고가는 장소예요. 그런 장에서 이야기가 서로 통하니까 교류가 되고 좋았어요. 이곳을 활용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다른 어떤 채널보다도 소통의 힘이 센 것 같아요.

 

『그리운 것은 모두 달에 있다』는 시집 같기도 하고, 에세이 같기도 하고, 시화집이자 여행기 같기도 합니다. 이 다양한 이야기를 담은 책에 대해 직접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차별화시키고 싶었어요. 달시도 보여주고 싶고, 그림도 보여주고 싶었는데요. 디자인을 할 때 앞부분에 그림들을 넣는 식으로 묶었어요. 요즘은 좋은 글들이 정말 많잖아요. 이렇게 비뚤비뚤한 글씨와 엉성한 그림 이런 것들을 친밀감 느낄 수 있도록 넣으려면 어떻게 할까 고민했죠. 기존에 나온 책들과 달리 글씨와 그림을 넣겠다고 생각하게 된 거예요. 기본적으로 손글씨로 쓴 달시와 그림을 넣으려다 보니 이렇게 됐어요. 또 여행을 계속 하면서 사진을 찍잖아요. 여행하면서 얻게 된 귀한 사진들도 많았어요. 남프랑스에서 깊은 산 속까지 들어가서 찍은 사진도 있거든요. 라벤더는 일 년에 딱 열흘만 피는 꽃이에요. 그때 가서 찍은 것들이니까 이건 보여줘야죠.

 

‘달항아리’에 대해 더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려요. 화가 김환기 선생의 이야기도 하셨어요.


김환기 선생님의 그림이 달항아리에서 영향을 받은 것인 줄은 몰랐어요. 어느 날 자료를 찾아보니까 김환기 선생님이 ‘나의 모든 그림은 달항아리에서 영향을 받았다’라고 했어요. 제가 달항아리를 처음 본 건 작년 전시회 때에요. 작년에 첫 전시회를 인사동에서 했거든요. 제가 수익금을 불우이웃돕기에 사용한다고 했더니 어떤 플로리스트 분이 달항아리를 협찬을 받아서 벚꽃을 꽂아서 정말 아름답게 해놓아 주셨어요. 그때 달항아리를 봤는데 정말 아름답더라고요. 진짜 예뻐요. 그런데 너무 비쌌어요. 제가 여기 취지에 안 맞는다고 했었죠. 그랬더니 협찬 하신 분이 가격을 크게 낮춰줬어요. 그래서 몇 개를 뒀죠. 이후 달항아리를 찾아봤어요. 달항아리가 예쁘기도 하지만 원래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달항아리는 투박하거든요. 어머니의 허리통 같은, 배 같은, 뚱뚱한 아줌마의 몸매 같은 질박하고 투박한 달항아리들이 정말 예쁘더라고요. 그래서 달항아리를 그렸어요. 달항아리에서 들리는 웅웅거리는 소리가 지구에서 들리는 달의 웅웅거리는 소리처럼 느껴졌어요. 제가 느꼈던 달의 비밀들이 저 항아리에 들어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것이 우주의 소리라는 생각 말이에요. 그 소리가 끊임없이 말을 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저것을 쏟아 부어도 끊임없이 에너지가 나오고, 꽃들이 나온다는 느낌이 들어서 그런 모습의 달항아리를 그리기도 했죠.

 

“달이 떴다. 남프랑스의 달이나 서울의 달이나 중세의 달 역시 매양 마찬가지고 하나이고 같다. 그러나 다른 것은 우리가 살았던 곳이다. 당신이 살았던 시대에 바라보았던 달, 당신이 다음 생에도 이 세상에 와서 바라볼 달, 우리가 무언가 간절히 빌며 바라보던 달.”(128쪽)

 

달은 인류의 거울


전기가 없었을 때 어둠은 무서운 것이 아니었다, 쓰는 법을 잃어버렸다, 그래도 본능적으로 달을 그리워한다, 그리운 모든 것은 달에 있다고 하셨어요. 시인에게 ‘달’은 뭘까요?

 

저에게 달은 그냥 밝은 빛의 둥근 달이 아니라 어떤 기운을 주는 존재예요. 우리가 달에게 소원을 빌었다고 하잖아요. 왜 소원을 빌었겠어요. 옛날 사람들은 달에게 소원을 빌면 진짜로 들어준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소원 빌기를 했다고 생각했어요. 그때는 전기도 없었고, 통신 수단도 없었지만 피라미드를 지을 정도의 지식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니까, 달이 주는 기운이나 에너지를 지금보다 더 분명히 알고 있었으리라 생각해요. 제게는 그런 의미에서의 달이에요. 달은 분명히 사람들에게 기운을 주고 있고, 에너지를 주고 있고, 말을 하고 있고, 인간들에게 어떤 것들을 주고 있다는, 그런 의미에서의 달이에요. 분명히 있다는 생각을 해요. 자꾸 이렇게 얘기하면 내가 점쟁이 같아서.(웃음)


『시크릿』이라는 책을 안 읽었는데 그 책에 이런 얘기가 나온대요. 저는 이게 바로 ‘시크릿’이라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달에 매료되고 달 그림을 그리게 된 거예요. 달은 인류의 거울이라고 생각하고 있고요. 언젠가부터 달을 보지 않으면서 거울을 보잖아요. 하지만 예전에는 밤에 달을 보면서 회상했잖아요. 오늘 내가 잘 살았나? 누가 그립다, 하면서 하루를 반추하면서 마음의 거울을 비춰볼 수 있는 시간이 있었는데요. 그런 것들이 없어지니까 여유가 없고, 겨를이 없고, 화가 나고, 분노하고, 싸우고 하는 것들이 많아지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꼭 거울이 아니라 가만히 들여다보는 모든 것들이 거울이 된다고도 하셨잖아요.

그렇죠. 달을 그렇게 가만히 들여다보는 시간이 필요한 거죠. 그렇긴 한데 지금은 달을 잘 볼 수도 없고 아쉽죠.

 

시인에게 중요한 주제는 ‘사랑과 여유’인 것 같습니다. 니스에서 여유를 발견한 대목이나,“첫 걸음을 어떤 마음의 발로 딛느냐에 따라 걸음의 방향이 달라질 것”(41쪽) 이라고 말하면서도 ‘사랑과 여유’를 말씀하셨고요.


남프랑스에서 느꼈는데요. 여유는 교육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나라 교육제도가 잘못 되었다고 생각해요. 그곳에서는 사람들을 만나면 다들 환하게 웃어요. 눈을 마주치면 사람들이 웃거든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눈 마주치면 싸움이 나죠. 남프랑스에서 정말 감동 받았던 게 결혼식에 온 하객들이 모두 함께 춤을 추고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었어요. 그 정겨움이 어디서 오는 것일까 생각했어요. 여유가 어렸을 때부터 몸에 밴 거죠. 공부만 한 것이 아니라 그림도 그리고, 시도 읽고, 하는 마음의 여유가 있기 때문에 제대로 놀 수 있는 거예요. 와서 바쁘게 밥만 먹고 가는 게 아니라 말이죠. 토요일이나 이럴 때보면 가족들이 좁은 식당이지만 와인도 마시면서 두 시간 씩 식사를 하잖아요. 그런 여유가 사람을 다르게 만드는 것 같아요. 문화가 달라요. 우리나라는 무서워요. 여유가 너무 없어서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신적으로도 너무 힘들죠. 이혼율, 자살률 너무 높잖아요. 여유가 없어서인데, 그럴수록 사람들이 여유가 어디 있어, 겨를이 어디 있어, 하고 말해요. 제 글을 본 친구들도 지금 한 발이라도 더 빨리 뛰어야 할 때라고 말을 하니까요. 바쁜 가운데에서도 여유를 찾아야죠. 그렇지 않으면 그냥 바쁘게 살다 가는 거죠.

 

지금은 가만히 생각하는 시간을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이라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있잖아요. 언제부터 이런 부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신 건가요?


저는 늘 시간이 많았어요. 취직이 잘 안 돼서 밤에 산동네에서 달 보면서 소주 마셨고요. 늘 시간이 있었어요. 출판사에 취직하고 다니다가 출판사도 차리게 됐고 바빠졌지만 그래도 항상 아내와 여행을 다녔어요. 유럽 여행을 일 년에 두 번 씩 꼭 갔어요. 여름에만 시간 내면 돼요. 가다보니까 여유가 있고, 달을 보게 되고, 글을 쓰게 됐어요. 여유를 스스로 만들어 찾았죠. 그렇지 않으면 못 가요. 친구들 중에도 아직 한 번도 유럽 여행 못 가본 친구들 많은데요, 제가 이런 얘기 하면 자랑한다고 얘기를 못하게 해요. 그렇지만 어떻게든 찾아서 가면 돼요.

 

우주은행 이야기를 하셨잖아요. 사람들은 미래에 저축하는 셈인데요. 먼 미래보다는 현재에 집중하시는 거군요.


실제로 저희 부부는 적금을 안 해요. 돈이 생기면 떠나요. 작년에는 세 번이나 다녀왔어요. 남프랑스, 프라하 등 계속 다녔죠. 여행비로 많이 쓰고요. 출판사를 하고 있지만 베스트셀러도 없는 출판사고, 직원들도 다섯, 여섯 명 있는데 책이 안 팔리니까 힘들잖아요. 이곳저곳 다 나가고 나면 돈이 없어요. 하지만 묘하게 느껴지는 게 뭐냐 하면요. 밀물과 썰물이 있잖아요. 썰물과 밀물이 오지만 물이 들고 나는 자리는 그대로잖아요. 딱 그 자리인 것 같아요. 결국은 달의 메시지기도 하지만 은행이 저 우주에 있다, 생각해요. 그러니까 좀 더 마음이 편안해지고, 누군가를 도울 수도 있었어요. 도우니까 또 들어오고요. 있으면 쓰게 되고 없으면 들어오게 되더라고요. 마흔 이후부터는 거의 그 수준인 것 같아요.

 

그런 마음 자세라는 것이 물질적으로 부유하다 해도 갖지 못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돈이 많은 사람도 그런 얘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새로운 금치산자 같다는 생각을 해요. 너무 아끼더라고요. 악담하는 게 아니라 그런 사람들이 결국은 나중에 잘 안 되더라고요.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 버려요.


그렇죠. 살아가면서 돈을 써야죠. 모아서 뭐 하겠어요.

 

어느 시인이‘슬픔, 고통까지도 많이 경험한 사람이 부자다’라고 했는데 저자의 경우가 그런 것 같습니다. 물질적으로는 넉넉하지 않을지 몰라도 삶의 경험이라는 측면에서 저자는 부자가 아닐까 싶어요.


아이가 없어서 그런 것 같아요. 우리나라에서 아이가 있었으면 쉽지 않았겠죠. 저는 그래도 그랬을 것 같지만요. 계속 놀러갔을 것 같아요. 우리 회사 사훈이 ‘벌며, 놀며, 쓰며’고 집의 가훈은 거꾸로‘쓰며, 놀며, 벌며’예요. 집은 먼저 ‘써야’해요.(웃음)

 

자꾸 달이 쫓아와요


여행을 “죽음을 연습하는 것”(88쪽) 이라고 하셨습니다. 돌아오지 않는 연습이라고요. 여행을 다니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신 건가요?


제가 5대 독자고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어요.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까지 돌아가시는 것을 제가 다 목격했어요. 죽음에 대한 것들을 목격하다 보니까 제가 지금까지 살아있는 것은 덤이라고 생각해요. 다들 일찍 돌아가셨으니까요. 그러면서 죽음에 대한 생각을 일찍부터 했었죠. 결국 언젠가 우리는 죽을 텐데 무엇을 갖고 있느냐, 내가 덤으로 살고 있는 이때 나눠주고 살자고 생각하고 열심히 살았죠. 여행을 떠나서도 보면 전부 완전히 낯선 곳이잖아요. 아예 다른 곳인데, 돌아오면 다시 이곳이고, 이곳에서 저곳으로 가는 것이 이생과 저생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곳에서 보는 달과 이곳에서 보는 달이 또 한 뼘이고 저승에서 보는 달과 이승에서 보는 달이 한 뼘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면서 떠나는 것은 죽음을 연습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죠. 여행을 한다는 것은 어슬렁거리는 것, 그곳의 문화를 보는 것이죠. 제일 좋은 것은 여행지의 뒷골목을 어슬렁거리는 거예요. 유럽은 맥주가 정말 맛있어요. 맥주 마시고 달을 보면 정말 좋아요. 한 6개월만 안 가면 미치겠어요. 가고 싶어서 울컥해요. 가서도 달에 대한 어떤 게 생겨요. 인도 타지마할을 갔었어요. 그곳은 밤에는 못 들어가요. 경비가 삼엄해요. 보물이 많으니까요. 한 달에 딱 한 번 보름달이 뜰 때 개방을 해요. 저녁 8시 30부터 9시까지요 딱 한 번만요. 갔던 날이 딱 그 날이었어요. 그곳에 들어가려면 아침부터 대사관에 가서 수속을 밟고 이것저것 해야 해요. 다 하고 가서 달을 봤는데 왕비가 타지마할이 아니라 달에 누워 있구나, 생각이 들었어요. 정말 아름다웠어요.

 

여행지에서도 달과 만나셨군요.


프라하에서도 그랬어요. 프라하에 가면 12세기에 지은 수도원 안에 운영하는 호텔이 있어요. 그곳 3층 다락방에 자리를 잡았어요. 첫 날 술 먹고 들어와 방에 누웠는데 그때도 풀문(full moon)이 떴어요. 자꾸 달이 쫓아와요.(웃음)
제가 액자 팔아서 얼마나 돈을 벌겠어요. 달시를 통해서라도 좋은 기운들을 전해주라는 달의 뜻인 것 같아요.

 

공감합니다. 달에 대해서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들을 해주시니 훨씬 더 달에 대한 감정이 증폭되는 걸 느꼈거든요.


북티크에서 진행했던 행사 때는 사람들이 노래도 부르고 정말 재미있게 놀다 갔어요. 도무지 집에 가질 않더라고요. 밤 12시까지도요.(웃음) 사람들도 많이 좋아한다는 걸 알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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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꽃밥 그림 사진 : 권대웅 시인 제공

 

단식하며 ‘달꽃밥’ 그린 이야기를 읽으며 마음이 많이 울렸어요.‘처방 같은 단식’(210쪽) 이라고도 하셨는데요. 단식을 하시면서 특별히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들려주시겠어요?


저는 사실 낭만주의자예요. 운동권도 아니고, 세월호 사건 당시에 문인들이 광화문에서 단식을 했는데 그곳에 가긴 싫었어요. 당시 모든 사람들이 그랬겠지만 너무 슬펐어요. 너무 힘들었는데 거기서 좀 벗어나고 싶더라고요. 내가 스스로 그 심정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단식을 했어요. 3일 단식은 작심삼일이니까 4일로 하자, 아예 발표를 하고 했죠. 아침에 뜨거운 물에 티스푼으로 된장 반스푼 타서 한 잔 마시고, 저녁에 한 잔 마시면서 4일을 했어요. 단식을 하면서 ‘달꽃밥’을 그렸는데 무척 잘 그려졌어요. 나흘을 단식하니까 나 스스로 좀 벗어나서 글도 쓰고 편안해지자 마음먹을 수 있었죠. 자기 위로나 다름없었는데요. 그 아이들에게 달꽃밥을 바치고 저 달에 가서는 꽃밥을 먹고 있어라, 말해주고 싶은 마음에서 그림을 함께 그렸어요.

 

당시의 감정이 그림에 담긴 것 같더라고요. 다른 달시의 그림과는 느낌이 좀 달랐어요.


어떤 분이 그림을 보고 하는 말이, 꽃을 그렸는데 아이들 같다고 해요. 저도 몰랐어요. 꽃이 배에 탄 아이들 같다고 하더라고요. 깜짝 놀랐어요. 분명히 꽃을 그렸는데 거기 아이들이 있는 것 같다고 해서 놀랐죠. 그게 나타났던 것 같아요.

 

놀라운 게, 달을 그리신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에요.


3년 밖에 안 됐어요. 몇 년 동안 달이 나를 쫓아오는 것 같고, 계시를 주고, 말을 붙이는 것 같은 느낌에 대해 궁금해 하고 있었어요. 어느 순간 아까 말씀 드렸던 그런 것들이 확 오더라고요. 달이 나에게 그런 얘기를 하려 했었고, 그것들이 저런 의미가 있었구나 하고 깨달았죠. 그렇게 그린 게 3년 밖에 안 됐고, 그 전에는 그림을 전혀 못 그렸어요.

 

색감을 보면 감각이 남다른 것 같던데 그림을 그린 적 없다니 참 신기해요.


그림 그리는 친구들이 그러더라고요. 어떻게 색을 선택하느냐고요. 모르겠어요. 그냥 꺼낸 거예요. 전부 파스텔이거든요. 파스텔로 그리고, 문지르고, 뿌리고 하죠. 제가 그림은 못 그렸는데 어려서부터 가난하게 살면서도 사람들에게 파스텔을 선물해달라고 하곤 했어요. 묘하게 파스텔의 부드러운 느낌이 좋았고, 갖고 싶었어요. 여행 다니면서도 희한하게 문구류를 많이 샀어요. 펜, 색연필, 크레용, 파스텔. 결국 그런 것들이 여기에 다 쓰이게 됐죠.

 

소원을 빌고 믿는 사람들이 실제로 이룬다


식상한 말이 가장 의미 깊다‘(52쪽)고 하셨는데 ‘달’ 역시 그런 것 같아요. 늘 그곳에 있어 진정한 의미를 모르는 것 말입니다. 이런 것들에 시인은 많이 끌리는 것 같아요.


그렇죠. 가장 단순하고 가장 가깝게 있는 것들이죠. 못 찾고 멀리서 찾고 돌아다니고 하는 것이 아니라 말이에요. 결국은 아까도 얘기했듯이 삶의 시크릿이 바로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소원을 빌고 믿는 사람들이 이루는 것 같아요. 저도 정말 너무 가난하고 그랬지만 지금이야 여행도 가고 돈을 써도 또 허덕이지 않게 와주잖아요. 내가 어떻게 그렇게 했겠어요? 물론 열심히 살았지만요.(웃음)

 

사람들에게 그런 메시지를 전하고 싶으셨던 건가요?


당연히 그래요. 저는 후배들을 만나면 늘 얘기해요. 일단 밥을 사면 부자가 되니까 항상 밥값을 낼 때는 서부의 총잡이처럼 꺼내서 내라고요. 우주와 달에는 정말로 많은 에너지가 있고 그것이 결국엔 네게 긍정적으로 작용하니 주면 돌아온다고요. 무소유의 속성이 주면 얻는 거라고 항상 이야기해요. 법정 스님도 무소유을 말하니까 절이 생겼잖느냐고요.(웃음) 실제로 그래요. 주면 꼭 와요. 후배들에게도 그렇게 얘기를 하고요, 책에도 그런 메시지를 담고 싶었어요. 주면 또 좋아요. 기분이 좋잖아요. 사람들에게 자꾸 주는 사람들이 결국은 주는 입장에 서게 되고 안 그러면 결국 가진 게 없어지더라고요.

 

‘거미줄에 매달린 물방울 같은 것이 삶’(62쪽) 이라는 말하셨는데요. 삶을 바라보는 시인의 다른 시선이 느껴집니다. 시인에게 거미줄은 무엇이고 물방울은 어떤 부분이었나요?


그 문장을 많은 분들이 좋아하시더라고요. 우리 모두가 사실 밥벌이에 사지가 매달려 있잖아요. 거미줄이라는 건 밥벌이처럼 끈끈하고, 끈적한 것이죠. 인간 세상을 사바세계라고 하잖아요. 이 세상은 견디는 세계라는 거죠. 공부를 하는 것도 견디는 거고, 취직을 하는 것도 견디는 거고, 뭐든지 견뎌내야 하잖아요. 힘들어도 견뎌야 하고, 아파도 견뎌야 하고요. 그렇지만 견뎌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견뎌내면서도 고통과 역경 속에서 자신의 품성을, 영혼을 높이는 거죠. 견뎌야 하는 것들이 거미줄처럼 붙어 있지만 이순간이 가장 행복하고 아름다운 순간이라는 걸 느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 삶이 과거에는 없었잖아요. 앞으로는 없어질 거고요. 여름의 눈사람처럼 흔적도 없이 없어질 존재인데 거미줄에 걸린 것처럼 일과 삶과 관계와 여러 가지 조건들에 사지가 딱 붙어 있으면서도 지금 이순간이 물방울처럼 아름다운 순간이 아니냐, 하는 거예요. 힘든 동시에 아름다움을 느끼면서, 모든 과정을 아름답게 여기면서 가자는 의미예요.

 

글에 불교적인 언어나 느낌이 일정 부분 있어요. 불교에 영향을 받으신 부분이 있나요?


원래 종교는 천주교였어요. 미션스쿨을 나왔는데요. 종교는 다 믿어요. 종교 공부를 많이 하지는 않았지만 하다 보니까 불교가 인간과 가장 맞는 것 같았어요. 동양 문화에도 가깝고요. 불교적인 것들이 글을 생각할 때 더 쉽게 이해가 가더라고요. 그래서 불교의 글들을 많이 차용을 해요. 불교는 종교라기보다 철학이라고 보기 때문에요. 제 글과 많이 닿아있어요.

 

1988년 신춘문예로 등단하신 후 시집은 두 권 출간하셨어요. 시집 계획은 없으신가요?


등단하고 나서 시를 열심히 써야 하는데, 너무 가난했었기 때문에 책 만드는 일을 정말 열심히 했어요. 집에 돌아가서도 시를 써야 하는데 책 카피를 고민했어요. 그렇게 하다 보니 제가 근무했던 출판사에서 나름대로 좋은 책들, 베스트셀러도 많이 나왔지만요. 어느 날 생각했어요. 내 삶에서 시는 2순위가 됐구나 하고요. 그런 글을 썼어요. 그걸 본 후배가 ‘시가 2순위가 아니고 0순위야’그러더라고요. 시를 다시 쓰게 된 것은 달시를 쓰면서부터였어요. 달시를 쓰다 보니 감각이 살아나서 다른 시도 70편 정도가 모였어요. 그걸 정리해서 다시 십 년 만에 시집을 내려고 해요.


한 유럽 대사관에서 달시집 책을 내자는 제안을 받았어요. 스웨덴 대사관에 계신 분인데 한국에서 뵌 적이 있어요. 스웨덴에 돌아가서 SNS를 보셨나 봐요. 그분이 이 정서가 동양과 한국의 미를 소개하기 참 좋은 글이다, 번역만 잘 된다면 그림과 시를 묶어 시집을 냈으면 좋겠다 하더라고요. 유럽 사람들이 동양적인 정서를 굉장히 좋아한다고요. 번역이 제일 중요하다고 하는데 제 아내가 동화 번역을 하거든요. 외부에서 번역자를 찾았는데 어느 날 아내가 시를 한 편 번역해주더라고요. 그래서 아내가 지금 하고 있어요.(웃음)

 

달과 달을 노래한 글은 국경을 떠나 공통적으로 주는 감성이 있잖아요. 외국에도 달시가 소개되면 참 좋을 것 같아요.


국경뿐 아니라 시대를 초월하죠. 고려시대, 조선시대 사람들도 달을 바라봤고요. 그것이 하나의 긴 달빛 바늘에 꿰어 연결되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그 눈빛들, 그리움들, 그런 게 달에 비치고 연결이 되어 내려오고, 그것들이 결국 좋은 기운으로 엮여있지 않나,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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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것은 모두 달에 있다권대웅 저 | 예담
주위의 다양한 계층과 끊임없는 소통을 통해 저자는 나만 외롭고 힘든 게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고, 달을 통해 위로받으며 치유해가고 있다. 그 환하고 따뜻한 달의 기운을 어둡고 차가운 별에 사는 이들에게 전하고자 [그리운 것은 모두 달에 있다(예담 刊)]를 책으로 엮어 출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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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츠 최초 여성 익스테리어 디자이너 조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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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쉐에서는 나를 뽑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이상할 만큼, 상처받거나 서운해하지 않았다. 1년에 한 가지도 디자인하기 힘든데 나는 두 가지나 해냈으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중략) 그래서 삶의 모든 것들을 디자인과 연결시키고 그런 삶을 즐긴다. 그러다 보니 디자인뿐만 아니라 다른 부분에서도 프로페셔널, 그 자체다. 그들을 보고 있으면 저렇게 행복하니까 행복한 디자인이 나오는구나 싶었다. (171쪽)

 

노력과 열정과 더불어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필요한 또 한 가지는 긍정적으로 배우는 자세가 아닐까 싶다. 『자동차 그리는 여자』의 조진영 저자는 벤츠 최초 여성 익스테리어 디자이너이다. 그녀라고 실패했던 순간이 없었을 리 없다. 그렇지만 조진영 저자는 그 순간마다 긍정적으로 배워나갔다.

 

그녀는 1986년생으로 한국 나이로 이제 갓 서른이 되었다. 결코 오랜 시간은 아니지만 조진영 저자의 삶은 도전, 열정, 노력으로 촘촘히 채워져 있다. 『자동차 그리는 여자』에는 이러한 저자의 삶이 오롯이 녹아 있다. 유년 시절의 이야기는 짧게 묘사했고 인턴십 및 현재 직장에서의 디자이너로서 삶을 비중 있게 썼다. 책에는 지금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고민하고 노력했던 내용을 담아서 현재 20~30대로서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독자라면 이 책에서 꿈으로 가는 길을 발견할지도 모르겠다.

 

디자이너의 삶, 하면 떠오르는 건 ‘고민’, ‘바쁨’ 등인데요. 많이 바쁘실 것 같은데 책을 쓰기로 결심했던 계기가 궁금합니다.

 

저는 자신의 고민을 혼자 담아두는 것보다 사람들과 거리낌 없이 소통하고 이야기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디자이너의 기본적인 삶의 자세라고 믿어요. 책을 쓰게 된 계기 또한 여러 사람들과 더 소통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에서 시작되었어요. 이십 대 초반에는 목표를 향해 열심히 공부하고, 중후반부터 사회생활을 시작해 삼십 대에는 일에 대한 성과를 맺어가는 것이 일반적이잖아요. 그런데 생각보다 이십 대 후반을 보내고 있는 제 또래의 이야기가 적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이야기는 너무나 많은데, 사회생활 초년기를 보내고 있는 우리들이 꿈을 향해가는 과정에 있어서 헤매고 고민하는 이야기는 많지 않더라고요. 그런 이야기가 많다면 서로에게 용기를 줄 수 있고, 더 많은 정보를 공유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래서 나부터 마음을 열고 나 같은 사람도 세상에 있다고 말해보기로 한 거예요. 그러다 보면 다른 누군가도 마음을 열고 내게 말을 건네 오지 않을까 하면서요. 

 

남자가 많은 직장에서 회사 생활을 하면 힘든 점은 없나요.

 

좋은 점도 많지만 힘든 점도 물론 많아요. 여자로서 힘든 점이 있을 때 같이 이야기하고 이해해줄 수 있는 동료가 없다는 것과, 여자들끼리만 통할 수 있는 수다를 떨 수 없다는 것이 일하는 환경에서 조금은 저를 외롭게 만들 때가 있어요. 여자 직원이 많지 않기 때문에 남자 직원들은 제가 공감을 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것 같기도 해요. 이제는 공감이 안 가도 공감 가는 척하기, 깜짝 놀랐어도 안 놀란 척하기의 마스터가 되었죠. 뿐만 아니라 자동차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는 여자가 ‘잘할 수 있겠어?’ 하는 의심이나 편견과 부딪혀야 하는 경우도 종종 생기고요. 그럴 때마다 힘들고 외롭다고 생각하기보다 그들의 입장에서 당연히 그럴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넘겨버리면 금세 괜찮아져요. 언젠가는 여자 직원들이 많은 곳에서도 한 번쯤 일해보고 싶어요.

 

자동차광은 아니지만 자동차 ‘디자인’에 매료되어 벤츠 최초 여성 익스테리어 디자이너가 되었는데요. 특히 자동차에 끌린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저는 자동차가 단순히 이동이 가능한 기계에 그치지 않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믿어요. 저에게 자동차는 움직이는 예술적인 조형물이 되기도 하고, 타고 있는 사람들의 공간을 만들어주는 움직이는 건축물이기도 해요. 누군가에게는 두 번째 집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는 개성 있는 패션이 되기도, 누군가에게는 놀이를 할 수 있는 장난감이 되기도 하죠. 자동차가 사람에 따라 다른 의미로 변환될 수 있다는 점이 제게는 너무나 매력적으로 다가온 것 같아요.

 

자동차를 디자인하는 과정에 있어서는 이런 관점을 적용해 새로운 콘셉트와 의미를 생각해내고, 순수 회화적인 요소를 많이 가진 스케치 단계를 거쳐, 조소의 요소를 가진 클레이 작업, 공학적인 요소를 가진 디지털 데이터 작업 등 총체적인 디자인 관점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것 또한 제가 자동차 디자인에 끌리게 된 이유 중 하나예요. 미술을 전공하면 상업 예술과 순수 회화 중 한 분야를 택해야 하는데, 그 두 가지를 모두 하고 싶었던 저에게 ‘자동차 디자인’은 정말 매력적인 분아죠.

 

지금까지 나온 자동차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모델이 있다면?

 

자동차 디자이너에게 물을 수 있는 가장 어려운 질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름답다는 기준이 모두에게 너무나 다르니까요. 무조건적으로 화려하고 세련된 디자인을 가진 고급 승용차나 스포츠카만이 아름답다고 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비슷한 가격대로 분류를 한 범위 내에서, 비슷한 차종 내에서만이 무엇이 더 좋은 디자인인지, 어떤 차가 가장 아름다운지 비교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이 비교 또한 주관적인 것이지만요. 그래서 저는 딱 한 가지 모델을 꼭 집어 가장 아름답다고 말하지는 못할 것 같아요. 애스턴마틴의 DB9, 포르쉐 911, 페라리 458 이탈리아, 벤츠 지바겐, BMW i8 정도가 제가 생각하는 아름다운 모델들입니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대와 젊은 소비자 그룹을 타깃으로 한 폭스바겐 up!, 르노 Twizzy, 씨트로앵 Cactus, Fiat 500 또한 굉장히 뛰어난 디자인을 자랑하는 아름다운 차들이라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제가 현재 서울에 살고 있다면 가격대도 저렴하고 멋진 디자인과 훌륭한 성능을 가진 Fiat 500을 탈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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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노동환경은 야근이 없고, 주말은 쉬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작가님 책을 보니, 그곳에서의일도 굉장히 바쁜 것 같았습니다. 어떤가요?

 

야근이 허용되지 않고, 주말에 쉬는 것은 맞아요. 제가 일하는 회사에서는 7시 이후의 작업은 금지되어 있어요. 주말에 일하는 것도 금지되어 있고, 회사 내의 그 어떤 작업물, 종이 한 장이라도 외부로 가져갈 수가 없어요. 외부에서도 마찬가지로 어떠한 것도 반입하지 못하고요. 그러다 보니 집에서 작업을 하는 것은 불가능해요. 원하는 시간에 출퇴근을 자유로이 할 수 있고, 야근이 금지되어 있고, 집에서는 푹 쉴 수 있다는 것만 들으면 일이 굉장히 편안할 것 같지만 해야 하는 작업량만 따졌을 때는 일하는 시간 대비 작업량이 굉장해요.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수 있어요.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많은 것은 사실이긴 하지만, 낭비하는 시간 없이 더욱 효율적으로 일하는 방법을 배워나가는 것 같아 그 점에 대해서는 정말 감사하게 생각해요. 여가시간을 많이 즐길 수 있는 복지 제도에 대해서도 굉장히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작가님의 오늘이 있기까지는 힘든 과정도 있었잖아요. 포르쉐, GM, 현대 등에서의 탈락도 있었고요. 이럴 때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내 길이 아니었나 보다 하고 넘어갔어요. 이 문이 닫혀 있다면 나에게 맞는 더 좋은 문이 열리겠지 하는 마음으로요. 좌절할 일들이 생길 경우 자신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특히 원하는 기업에 취업을 실패했을 때 크게 낙담하는 청년들이 많은데, 그 기업이 자신의 성향과 맞지 않을 수도 있고, 그 시기에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스킬과 내가 할 수 있는 스킬은 다른 방향일 수도 있는 것이고요. 갑작스런 경제 위기로 기업에서 일체 고용을 할 수 없는 시기일 수도 있는데, 그 많은 변수들을 제외하고 오직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여 취업에 실패했다고 생각하면 좌절감만 더 커질 수밖에 없어요. 특히 디자인 분야 같은 경우는 객관적인 정답이 없고 주관적인 견해로 바라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누가 더 뛰어나고 누가 더 부족한 것을 판가름하기가 어려워요. 그래서 저는 뜻대로 일이 이루어지지 않을 때마다 나 자신을 못 했다, 부족했다 자책하는 것보다 ‘꾸준히 열심히 하면 언젠가는 더 잘 될 것이다, 더 큰 문이 열릴 것이다’ 하는 긍정적인 믿음으로 극복을 해왔던 것 같아요. 실제로 그렇게 한 덕분에 일이 잘 풀리기도 했고요.

 

미국, 한국, 영국, 독일 등 다양한 곳에서 생활하셨습니다. 한 곳에 머물기보다는 계속 새로운 도전을 즐기시는 같아요.

 

미국과 한국은 제가 자란 곳이고, 영국과 독일이 제 선택으로 살게 된 나라예요. 한 곳에 머무르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다기보다는 자연스레 제 꿈을 향해가다 보니 다양한 곳에서 살게 된 것 같아요. 여러 디자인의 메카인 영국에서 공부를 하고 싶었고, 일은 자동차 디자인 분야가 가장 강하게 자리 잡힌 독일에서 하고 싶었어요. 나의 젊은 시절을 낯선 것에 두려워하지 않고 최대한 다양하게 경험하며 보내고 싶다는 꿈은 항상 있었죠.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힘든 시행착오 끝에 잘 풀어나갈 때 가장 큰 보람을 느꼈던 것 같아요. 30대에 접어드는 지금부터는 정착하는 삶과 도전하는 삶의 균형을 맞추며 살고 싶습니다.

 

이제 곧 30대에 접어드시는데요. 생각하시기에 20대에 가장 잘한 일을 꼽아주신다면?

 

큰 갈림길에서의 선택들이었던 것 같아요.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대학과 대학원, 그리고 전공 선택을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무엇을 잘할 수 있고 무엇을 원하는지를 어린 나이 때부터 고민하고 방향을 잡아나갔어요. 지금 생각해도 정말 열심히 했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최선을 다해서 홍익대학교 디자인 학부와 영국왕립예술대학원(RCA)에 진학했고, 너무 많은 것을 얻고 졸업을 할 수 있었죠. 무엇보다 너무나 원했던 학교와 전공이었기에 ‘내가 방향을 잘못 잡았나? 적성에 맞지 않은 걸까?’ 하는 회의감 없이 열심히 대학 생활을 했던 것 같아요. 지금 제가 있는 자리까지 자연스레 올 수 있어 감사하고, 20대 초, 중반을 멋지게 보냈던 것 같아 뿌듯함을 느끼죠.
 
이제 갓 20대가 된 여성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
 
어린 나이를 믿고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시간은 너무나 빨리 가고 절대 찾아 올 것 같지 않은 삼십 대도 생각보다 금방 오니까요. ‘아직 스무 살이니까 괜찮아, 아직 어리니까 괜찮아’라는 생각은 자주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힘든 대학 입시 때문에 자신의 삶이나 적성에 대한 고민을 대학에 와서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제 생각에는 거기서 오는 단점들도 많은 것 같아요. 이십 대 초반을 더욱 성숙한 시점으로 바라보고 진지한 고민들, 깊이 있는 공부를 해야 하는 시기로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갓 이십 대가 된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수험 생활에 쏟아부은 열정과 노력의 두 배, 세 배 이상을 대학 생활에 쏟았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인 이십 대 초반에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훗날의 삶이 좌우된다고 믿으니까요. 최대한 다양한 것을 배우려 하고, 보려고 하는 마음가짐으로 부지런한 자신의 상태를 만든다면, 여성이 가장 아름답다 할 수 있는 이십 대 후반, 삼십 대 초반에 더욱 아름다운 꽃이 필 수 있다고 믿어요.

 

*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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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그리는 여자 : 벤츠 최초 여성 익스테리어 디자이너
찰랑거리는 긴 머리카락에 킬힐을 즐겨 신고 화려한 도시에서의 삶을 즐기는 조진영. 그를 처음 본 사람들은 그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알아맞히지 못한다. 조진영은 자동차 업계, 그중에서도 최고로 꼽히는 독일 벤츠 사에서 익스테리어(외관)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그것도 15명이 한 팀으로 이루어진 벤츠 익스테리어 디자인 팀의 유일한 홍일점으로. 『자동차 그리는 여자』는 ‘성공한’이 아니라 ‘여전히 진행 중’인 조진영의 일과 삶, 고민과 생각들을 담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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