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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진기 “일본 미스터리와 경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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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사람이 없다고 하지만 그 중 소설, 그 중에 추리소설, 그 중에서도 한국작가의 추리소설을 읽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추리소설의 팬층은 단단하니 거칠게 비교할 수는 없을 터. 그렇지만 이들이 향유하는 작품은 대개 일본 작품에 집중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이미 대중적인 브랜드가 되었거니와 미야베 미유키, 요코미조 세이시, 시마다 소지, 교고쿠 나츠히코 등 ‘읽어야 할 추리소설’ 목록에는 대부분 일본 작가들이 포진해 있다. 떠오르는 국내 작가가 있나? 떠오르는 국내 탐정 캐릭터라면? 척박하기만 한 한국 추리소설 토양에 꾸준히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작가가 있다. 이른바 ‘도진기 월드’를 자신 있게 펼치고 있는 작가 도진기.

 

작가 도진기는 2010년 『붉은집 살인사건』을 시작으로 ‘어둠의 변호사’ 고진이 등장하는 시리즈를 이어가고 있으며, 최근 펴낸『가족의 탄생』에서는 이전 작품에 등장한 새로운 탐정 캐릭터 ‘진구’가 다시 등장해 고진과 두뇌 싸움을 벌인다. 『정신 자살』에서 시작된 이탁오 박사와 고진 변호사의 최후 대결을 가리키듯 섬세하게 짜놓은 힌트도 『가족의 탄생』을 통해 만날 수 있다.

 

무엇보다 작가의 이력이 특이하다. 현직 부장판사로 지내고 있는 작가는 40대에 늦깎이 데뷔를 했는데, 시간이 아깝다는 듯 짧은 기간 많은 작품을 쏟아내며 필력을 과시하고 있다. 역시 추리작가로서 가장 먼저, 크게 느낀 벽은 국내 추리소설의 현실이었다.

 

“본격 추리라는 말로 일본 작품만 소개하는 그런 환경인데 우리나라 작품을 들고 일본에 가서 한국에도 이런 작품이 있다는 걸 알리고, 거꾸로 임팩트를 줄 수 있으면 해요. 10여 년 전만 해도 K-POP의 영향력이 미미했잖습니까? 일본 음악에 비해 형편없다는 평가를 받았었는데 10년 만에 뒤집어졌거든요. 그런 게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도진기 월드는 재미있다. 생생한 캐릭터와 잘 짜여진 트릭이 추리소설의 재미를 하나도 놓치지 않는다. 작품들끼리 섬세하게 연결되어 있는 점도 큰 매력이다. 추리소설은 무엇보다 재미가 아닌가. 그렇다면 역시 도진기를 읽지 않을 이유가 없다.

 

국내 탐정 캐릭터를 만들고 싶었다


데뷔 5년, 장편 소설 7권 출간. 엄청난 작업 속도입니다. 잘 알려진 대로 현직 판사신데, 소설 쓰는 시간은 언제인가요?

 

주말에 써요. 골프 같은 건 안 하고, 드라마 같은 것도 안 보고, 주말에 시간이 좀 있더라고요. 글을 쓰는 게 스타일의 문제인데 제가 좀 빨리 쓰는 스타일이에요. 써보니까 그렇더라고요. 문장 하나하나에 신경 써서 쓰려고 해보니 맞지도 않고, 좋은 게 나오지도 않았어요. 어떤 영감이나 발상이 떠올랐을 때, 정신없이 타자를 두드려야 하는 그런 스타일이더라고요. 그래서 더 빨리 나오는 거고요. 특별히 다른 노하우나 그런 건 없습니다.

 

드라마도 안 본다고 하셨는데, 소설이 굉장히 영상적이거든요. 공간에 대한 묘사도 구체적이고, 캐릭터도 살아있고요. 의외네요. 영화도 잘 안 보세요?


주로 개봉 끝나면 다운 받아서 그렇게 봅니다. 드라마는 몇 년 전까지 미드나 일드 같은 걸 많이 봤고요. 국내 드라마는 좀 안 봐요. 러브 스토리가 많은데 취향에 안 맞아서요.(웃음) <나인> 같은 건 재미있게 봤거든요. 지금은 안 본다고 하지만 오래 살았지 않습니까? 젊은 작가들에 비해서요. 그동안 누적되었던, 읽은 것이라든지 본 것이라든지 많이 쌓여 있겠죠. 만화도 많이 봤고요.

 

소설을 처음 쓰게 된 건 어떤 이유에서였나요?


마흔 좀 넘어서 시작했는데요. 법원 일상이 다람쥐 쳇바퀴처럼 지루하더라고요. 법원 업무라는 게 새로운 걸 만들어내는 업무가 아니라 누가 기존의 것을 가장 잘 적용하느냐 그런 업무이기 때문에 개인의 개성이나 창의성, 상상력이 발현될 여지가 거의 없는 일이에요. 물론 뜻 깊고, 의미 있는 업무이긴 하지만요. 그런 부분에 있어 조금 답답하고 권태 같은 것이 있던 차에 나만이 할 수 있는 것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가졌던 시기였어요. 그 무렵 전철 출퇴근을 하면서 우연히 일본 추리소설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짧은 기간에 많이 읽었어요. 읽으면서 어렴풋이 나도 추리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생겼던 것 같아요. 구체화된 계기가 걸작을 보며 따라하고 싶단 생각은 전혀 아니었고요. 허접한 작품들이 있더라고요.(웃음) 일본 미스터리라는 브랜드 가치만 등에 업고 출간된 정말 함량 미달의 작품들을 몇 개 읽으면서 배알이 틀린다고 할까? 이런 걸 우리나라 독자들이 돈 주고 사봐야 하나, 이런 생각이 들면서 ‘내가 써도 이보다 잘 쓸 수 있겠다’는 오기도 생겼어요. 그렇게 시작하게 됐죠.

 

그 이전에 또 다른 이유가 있는데요. 전에 해외 연수를 간 적이 있어요. 스페인과 유럽 쪽에요. 해외에 나가보니 우리나라와 일본의 위상 차이를 확실히 몸으로 느끼겠더라고요. 자존심이 상하더라고요. 그런 차에 일본 미스터리 소설과 문화를 접하면서 감탄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일방적으로 수용하는 게, 안 그래도 자존심 상한 판국에 배알이 틀려서 한 번 경쟁하고 싶다, 도전하고 싶다, 그런 생각이 바탕에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도 그런 생각에는 변함이 없고요. 더 구체화되고 강해졌다고 볼 수 있죠.

 

일본을 말씀하셨는데, 추리소설가로서의 목표가 있다면요?


영미에는 셜록 홈스라든지 에르퀼 푸아로, 미스 마플(애거서 크리스티 작품의 탐정 캐릭터)처럼 멋진 캐릭터들이 있고요, 일본만 해도 긴다이치 코스케(요코미조 세이시 작품의 탐정 캐릭터)라든지 김전일, 코난 같은 캐릭터들이 있죠. 우리나라에는 하나도 없단 말이에요. 물론 옛날 추리 작가들이 만든 유불란 탐정이라든지 이런 분들이 있긴 있는데, 아무도 모르죠.(웃음) 그런 우리나라에 탐정 캐릭터를 좀 만들어보고 싶었고, 대중들이 알만한 탐정 캐릭터가 우리나라에도 있다고 내세울 만한 걸 알리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또 일본 작품과 경쟁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본격 추리라는 말로 일본 작품만 소개하는 그런 환경인데, 우리나라 작품을 일본에 들고 가서 한국에도 이런 작품이 있다는 걸 알리고, 거꾸로 임팩트를 줄 수 있으면 해요. 10여 년 전만 해도 K-POP의 영향력이 미미했잖습니까? 일본 음악에 비해 형편없다는 평가를 받았었는데 10년 만에 뒤집어졌거든요. 그런 게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생각하고요.

 

한국추리소설 작가로서 국내 독자들에게 바라는 점이 있을 것 같아요. 


해외에서 느꼈던 것이 우리나라 물건이나 문화가 일본보다 못하지 않은데 일본이라는 브랜드 가치가 쌓아온 프리미엄이 있는 거예요. 우리나라는 코리아 디스카운트(Korea discount)라는 게 작용을 합니다. 똑같은 물건, 문화라 할지라도 말이에요. 지금 우리나라 독자들이 어쩔 수 없이 그런 인식을 가지고 있거든요. 우리나라 작품이 괜찮다고 느끼고, 재미있게 읽었어도 그에 대해 평가하는 단계에 이르면 그런 부분이 작용하는 거예요. 서평처럼 평을 내릴 때 항상 디스카운트가 작용하는 거죠.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거죠. 재미있다고 느끼지만 먼저 나서서 뛰어나다고 했다가 ‘일본에 비하면 별 거 아니야’이런 식의 직격타를 맞을 수도 있으니까요. 누가 나서서 좋은 평 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아쉽죠. 선입견, 일본 프리미엄, 코리아 디스카운트 이런 것들이 어쩔 수 없이 있는데 그걸 깨기가 정말 어렵더라고요. 오래 시도하지는 않았지만 굉장히 절감하고 있거든요. 속칭 계급장 떼고 같은 선에서 평가를 해줬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영화를 평할 때도 저런 할리우드 영화를 우리는 왜 못 만드느냐 할 때, <타이타닉>이나 <아바타>를 들고 이런 걸 왜 못 만드느냐고 하지 스티븐 시걸의 액션 영화를 들고 와서 따지진 않거든요. 평균적으로 우리 영화 중에 스티븐 시걸의 영화보다 나은 것들이 많이 있단 말이에요. 그런 것처럼 미스터리도 일본의 우수한 걸작들을 가져와서 비교하면 아직 못 미치겠지만 평균은 우리나라 작품들이 많이 올라가지 않았나 그런 생각을 좀 하고 있습니다.

 

소설 쓰기가 저자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궁금해요.


처음에는 취미의 성격이 강했거든요. 시작하고 나서도 주변에서는 저 사람이 일은 안 하고 소설을 쓴다는 반응이었어요. 사실 주말에 쓰는 건데 말이에요. 다른 사람들이 골프치고, 술 마실 때 글을 쓰는 건데 이런 사람이 없단 이유만으로 그런 오해를 받을 소지가 있겠더라고요. 해보니까 개인적인 만족감도 굉장히 크지만 소설 쓰는 과정에서 거꾸로 법원 업무에 도움이 되는 부분이 많다는 걸 느꼈어요.

 

첫째, 책을 많이 읽게 됩니다. 둘째, 오로지 법 이론적인 시각에서만 사건을 보다가 그 외적인 시각으로 볼 수 있는 그런 가능성이 생겼어요. 셋째로는 굉장히 만나는 폭이 좁았는데 좀 더 다양한 사회와 사람을 접할 수 있다는 점, 그런 점에서 굉장히 큰 도움이 되고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고요. 개인적으로 판사로서의 직업적 만족감과 작가로서의 만족감은 종류가 좀 다른데요. 판사로서는 사실 굉장히 마음이 무겁거든요. 보람은 있고, 뜻은 있지만 스트레스가 무척 크거든요. 작가로서 생활인으로 사는 만족감과 행복감, 직업인으로서의 만족감은 이쪽이 더 큰 것 같고요. 그러면서 판사들이 너무 재미없게 살고 있구나,(웃음) 별로구나, 그런 생각이 오히려 들더라고요.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리는 것뿐


전작 『정신 자살』에서 고진이 판사를 그만두고 음지에서 활동을 시작하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고진의 그 당시 심리가 작가 개인의 경험도 담겨 있는 건가요?


처음 고진이라는 캐릭터를 구상할 때 제 내면에 있던 발현되지 못한 그와 같은 욕구를 기반으로 만들어 낸 부분도 분명히 있어요. 그런데 곧바로 캐릭터가 제 갈 길을 갔고 지금은 저의 분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전혀 아니에요. 출발은 그런 점에서 시작을 했고, 아마 대부분의 작가들이 처음에는 그렇지 않을까 싶어요. 자기 내면에서 어떤 것을 끄집어내는 거겠죠. 진구도 마찬가지죠. 제 내면에서 끄집어낸 일면을 가진 캐릭터일 수 있죠.

 

인간의 악함, 이기적 본성을 끝까지 파고드는 작품들이기 때문에 오해도 많이 받을 것 같거든요. 특히 『가족의 탄생』의 경우 유산을 둘러싸고 어떤 가족애도 없이 움직이는 가족의 모습을 그리셨어요. 소설을 쓰고 나서 가장 많이 받는 오해나 감상평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가장 많이 받는 오해는 주인공이 당신의 분신 아닌가 하는 그런 부분들인데요. 말씀드렸다시피 처음에는 약간 참조한 부분이 있지만 지금은 별개의 캐릭터라고 얘기할 수 있고요. 그밖에 제 작품 속에 담긴 대상을 냉정하게 보는 시선들은 어찌 보면 제가 기질적으로 그런 면도 있긴 하지만요. 판사 일을 하면서 조금 더 그런 시선을 강화하게 된 것 같아요. 주로 깨진 상태에서 법정에 사람들이 오니까요. 기본적으로 그런 시선을 가지고 있어요. 사실상 문학 작품이나 문화 산물에서 보여주는 인간의 모습이라든지 그런 것들이 좀 미화되어 있지 않나 해요. 저는 있는 그대로를 그리기 때문에 사람들이 너무 가슴이 서늘해진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지만 그게 현실이라는 거죠.

 

현실은 사실 어떤 픽션보다 잔혹하잖아요. 상상을 뛰어넘는 일들이 벌어지고요. 그런 의미에서 판사라는 직업이 추리소설 작가와 의외로 가까운 거리, 접점이 있는 것 같은데 실제로 직, 간접적으로 본 진짜 사건이 있나요?


처음에는 담당했던 사건에서 힌트를 얻지 않느냐는 얘기도 들었는데, 전혀 아니에요. 직업윤리 상 있을 수 없는 일이고요. 말하자면 다른 작가나 독자와 소스에 있어서는 똑같습니다. 저도 똑같이 신문을 보고 그 사건에서 힌트를 얻을 수는 있지만 제가 담당했던 사건에서 소재를 가져온다든지 하는 일은 전혀 없어요. 다만 직업적으로 갖고 있는 전문적인 지식이라든지 그런 것들은 작품 속에 가져올 수 있죠. 사건 자체를 샘플로 가져온다든지 그런 경우는 없습니다.

 

어디서 영감을 받으세요?


제일 큰 소스는 역시 책입니다. 그런데 역시 걸작과 범작의 차이가 거기서 느껴지는 게, 걸작을 읽다가 영감을 얻는 경우가 꽤 있거든요. 그런데 평범한 작품을 읽다가 영감을 얻는 경우가 거의 없고, 얻었다 하더라도 별 것 없어요. 걸작과 범작의 차이가 거기서 나오는 것 같더라고요. 최근 몇 년 간은 정말 일본 소설에서 책을 읽다가 영감을 얻은 적이 거의 없는 것 같아요. 다른 출판사들에 죄송한데, 요즘 번역되는 일본 소설들은 너무 질이 떨어지는 것들이 많이 들어와요. 일본 브랜드에 대한 수요가 있으니까 수입은 되어 오는데 좋은 건 다 들어왔고, 질이 떨어지는 것이 들어오는데도 일본 작품이라는 것 때문에 읽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 작가들 중에 괜찮은 책이 있어도 그래도 일본 것을 본다는 대중들의 의식이 안타까운 거예요. 평균적으로 비교하면 우리나라 작품이 더 나은 것들이 있을 수 있는데 허접한 작품도 팔리는 걸 보면 많이 아쉽죠.

 

다른 분야의 책도 많이 읽으세요?


다른 분야의 책을 읽다가 영감을 얻는 경우도 꽤 있거든요. 추리 소설만 읽다가 얻는 영감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법률도 마찬가지고요. 재판하면서 법리만 가지고 사건을 판단하면 한계가 있고, 외부적인 것을 열린 시선으로 보는 시도를 하는 게 굉장히 큰 도움이 되듯이 마찬가지예요. 추리 소설 쓴다고 추리 소설만 파고 읽는다면 얻을 수 있는 영감과 발상 자체에 한계가 있죠. 논리학 책이라든지 인문 교양서, 미술, 음악도 그렇고 그런 것들을 넓혀가는 게 도움이 되지 않나 생각해요.

 

장면을 생생하게 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분야를 알아야 할 때가 있잖아요. 아이돌 음악까지도 말이에요.


취약점이 나이예요. 젊은 세대들이 제 책을 읽어주시는데 세대가 조금 지나서 그쪽 문화를 자세하게 모른단 말이에요. 될 수 있으면 젊은 분들과 많이 만나고 대화하려고 노력은 합니다. 나이 많은 분들은 굳이 노력 안 해도 많이 만나니까 됐고요.(웃음) 젊은 분들, 다른 분야에 있는 분들 많이 만나서 얘기도 하고, 집에 돌아와서 그 대화를 기억도 하고 그런 노력을 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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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진기 월드’의 핵


작품을 보면 배경에 대한 자세한 묘사가 인상적이거든요. 현장 취재를 하시는 거죠?


쓰는 장소를 가능하면 가보려고 합니다. 가보지 않고 쓰는 것과 경험해보고 쓴 글은 확실하게 차이가 나거든요. 부산도 4년 근무한 적이 있고, 최근에 다시 가본 적이 있어서 쓰기가 수월했어요. 『순서의 문제』의 <티켓다방의 죽음> 같은 경우 충북 영동이 무대거든요. 하루 날 잡아서 답사를 구석구석 다녔습니다. 그래서 좀 자세하게 쓸 수 있었던 것 같고요. 차기작 법정 추리물의 일부 무대가 러시아에요. 러시아도 다녀왔습니다. 일종의 취재차죠. 휴가를 내서 러시아도 직접 갔다 오니까 글이 풍성해지는 거예요. 사진도 찍고, 동영상도 찍어 와서 그것을 보면서 묘사도 하고요. 건질 수 있는 게 몇 줄에 불과해도 그것이 확실한 디테일의 차이를 주니까요. 또 우리나라 미스터리의 좋은 점이 우리에게 익숙한 부분이라는 점인데요. 제가 상상해서 써버리면 그 장점이 사라지지 않겠습니까. 

 

모든 작품에 캐릭터들이 살아있어요. 캐릭터에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 실제 모델을 두기도 하나요? 어느 경우가 그랬는지?


완전히 가공의 캐릭터도 있지만 실제 인물에서 가져온 경우도 상당히 있죠. 물론 실제 인물을 모델로 해서 창작을 많이 가미하지만요. 그러고 보니 구체적인 인물을 참고한 경우가 지금까지는 좀 적었네요. 많은 분들이 구체적인 모델을 물으니까 오히려 거꾸로 그랬었나 생각하게 된 경우가 많았고요. 다음 작품으로 법정 추리물을 쓴 게 있는데 그건 실제 모델들을 많이 참고 했어요. 제 세대 인물들이 등장하는 작품이라서 제 친구들, 주변 사람들을 모델로 많이 삼은 부분이 있어요. 지금까지는 그렇게 많지 않았던 것 같아요.

 

인간의 본성이 선하다고 생각하세요, 악하다고 생각하세요? 


성악설도 성선설도 아니고요. 자연 그대로인데, 선이나 악이라는 개념 자체도 인간의 사고로 만들어 낸 개념이기 때문에 태어난 기질, 본성이 한쪽으로 들어맞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요. 항상 갇혀있는 거겠죠.

 

사건이 해결된 후 해미가 진구에게 말해요.“오빤 사건을 만드는 데 관심이 있지, 사건의 진상엔 관심이 없어 보인다고.”(434쪽)이 말이 진구라는 캐릭터에 부여하고 싶은 부분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맞습니다. 진구는 선악의 판단이라든지 윤리라든지 그런 잣대에 대해 큰 관심이 없이 살아온 인물이고요. 다음 책에서 진구라는 캐릭터를 과거와 함께 낱낱이 밝힐 수 있을 거예요. 그것도 써놓긴 했는데 내년이나 돼야 출간할 수 있을 것 같네요.(웃음) 진구는 도덕지진아랄까요. 수학, 논리, 무색무취한 부분들에는 굉장히 영민하지만 사회 규범이라든지 인간과 인간 문제에 대해 서툰 인물이에요. 도덕이나 윤리를 왜 지켜야 하는지 자신이 납득하지 못하면 따르지 않는 그런 친구죠. 사실 진구도 나무랄 수 없는 것이 인간이라는 것이 사회가 만들어놓은 도덕이라든가 하는 것들을 배제하고 난다면 왜 우리가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그걸 답해줄 수 있는 사람이 없거든요. 그런 것을 근본적으로 회의하는 친구인 거죠.

 

이탁오 박사가 진구에게 한 말, “고진 변호사가 자넬 보는 시선이, 마치 내가 예전 고진 변호사를 보던 시선과 비슷하지 않을까”(443쪽)라는 대목에서 결국 ‘도진기 월드’의 핵은 이탁오였다는 사실을 발견했어요.


앞으로도 이탁오 박사는 모리어티 교수(셜록 홈스의 숙적)처럼 숙적으로 등장할 겁니다. 고진과 진구가 어중간한 회색지대에 있다면 이탁오 박사는 철저하게 윤리, 규범을 완전히 초월한 그런 인물로 설정 했으니까요. 최종 완결편에 이탁오 박사와 고진의 대결이 벌어질 겁니다. 구상은 다 되어 있거든요. 그 큰 틀 안에서 지금 작품들을 써나가고 있는 겁니다. 완결편에서 갑자기 이탁오 박사의 계획이라든지 그런 게 드러나는 것도 뜬금없으니까 지금부터 조금씩 독자들에게 알려드리는 거죠.

 

구상이 끝났다고 하셨는데 최후의 대결은 언제쯤 보여주면 좋겠다고 계획하고 계세요?


시리즈를 마무리 지을 때쯤이니까 불확정 상태겠죠. 사실 마지막 장면은 써놨어요.

 

그 결말을 다수의 독자들이 좋아하지는 않을 거라고 하셨잖아요.


욕을 바가지로 먹을 각오를 하고 있어요.(웃음) 애거서 크리스티도 마지막에 욕 많이 얻어먹었잖아요. 각오를 하고 하는 겁니다. 『정신 자살』의 결말을 왜 안 좋아하시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사실 에도가와 란포류를 무척 좋아하고 그런 풍의 스토리를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읽으면서 오싹해지고 머리가 하얗게 비는 그런 결말을 쓰고 싶어요.

 

『가족의 탄생』앞, 뒤에 이탁오 박사 에피소드를 넣으셨는데요. 최후 결말을 위해 독자에게 조금씩 알려주는 것이라고 하셨지만 독자 입장에서는 굉장히 유혹적인 미끼입니다.


그런가요?(웃음) 성공했는데요. 꼭 판매를 노린 것은 아닌데요. 독자들이 저와 같이 살아가면서 이 사람들의 스토리에 동참할 수 있으면 하는 그런 바람이기 때문에 단 권으로 끝나지 않고 시리즈로 한 거죠. 시리즈물에 그런 특성이 또 있으니까요. 저와 같이 독자가 늙어가면서 이 사람들의 모험에 같이 동참하는 그런 거예요.

 

처음에 봤던 고진과 『가족의 탄생』에서 본 고진도 변화했거든요.


『붉은 집 살인사건』에서는 약간 1인칭 적인 부분도 있었는데요. 사실 나중에 손을 보려고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때는 제 내면의 것을 참고한 부분이 짙게 있기 때문에 그 색채를 지우려고 해요. 지금은 완전히 별개의 캐릭터니까요. 제 개인적인 취향이 반영된 색채를 지우고 싶어요.

 

그런 부분을 좋아하는 독자도 있을 텐데요.


아, 그러면 재고를 해봐야겠습니다.(웃음)

 

『가족의 탄생』은 좀 더 진구 중심으로 진행되는 것 같은데, 그렇기 때문에 고진의 내면이 거의 드러나지 않고 사건을 게임하듯 즐기는 모습이 많아요. 사실 고진은 고민하기도 하는 캐릭터고 그런 부분에 독자들이 감정적으로 설득당하는 부분도 분명히 있잖아요.


고진은 이탁오와는 그런 부분에서 구분되는 캐릭터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계속 이탁오와 대결이 벌어지는 것이고요. 고진은 기본적으로 중년에 접어든 나이지만 굉장히 순수함을 가지고 있고, 인간에 대한 믿음을 바닥에 깔고 있는데요. 세상과 사람에 대한 실망, 기대치에 못 미치는 그런 일들 때문에 빗나가버린 사람이랄까요? 그런 일들로 내면의 뒤틀림을 가지고 있어요. 이탁오처럼 아예 타고나기를 그런 것에 대해 초월해버린 사람과는 차별이 있는 사람이죠.

 

도진기의 꿈


작년에 출간된 『유다의 별』은 영화화 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작품을 쓸 때 영화화를 염두에 두는 경우도 있나요?


유일하게, 처음으로 약간 염두하고 썼던 게 『유다의 별』이에요. 쓰다보니까 나름대로는 힘을 기울여 쓰는데 마니아층을 넘어서 대중적으로 확산되지 않는 것이 안타깝더라고요. 그래야 일본과 붙어보기라도 할 텐데 말이에요. 마니아들만 보시고 대중들은 아예 존재조차 모르니까요.(웃음) 유일하게 대중적으로 알리는 방법이 해외에서 히트를 쳐서 역수입되는 방법, 아니면 영상화에 기댈 수 있는 방법, 이 두 가지 밖에 출구가 없는데요. 해외로 가는 건 지금 너무 먼 방법이고 영상화에 기대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조금은 염두에 뒀지만요. 타협은 하지 않는 게, 영상화를 생각했으면 그런 본격적인 트릭 같은 건 뺐어야 해요. 영상화에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죠. 그렇다고 팬들을 져버리고 할 수는 없기 때문에 타협은 하지 않았습니다. 조금 영상적 요소를 도입하려고 하는 노력은 있었죠.

 

시리즈로 연결되는 부분이 있으니까 또 영상화 될 거라 생각하는 작품이 있을 것 같아요.

 

법정 추리가 우리나라에서 수요가 있잖아요. 제작비도 덜 들고요.(웃음) 그런 건 어울리지 않을까 해요. 법정 추리는 또 전문가가 쓰는 경우가 거의 없으니까요. 이런 말은 미안하지만 법정 영화를 보면 너무 틀린 부분이 많아서 민망한 경우가 있어요. 대중들은 모르고 넘어갈 수 있으니 괜찮은데 심하게 보기 불편한 것들이 있긴 있거든요. 자문을 구한다 하더라도 대중적 재미를 위해 무시하고 쓰는 것들도 많아서요. 실무를 하는 입장에서 장점이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하고 있습니다.

 

추리소설 자체가 주는 즐거움도 물론 있지만 다루고 싶은 사회문제나 주제가 있나요?


물론 가장 우선순위는 재미고요. 어떻게 보면 희극 안에 메시지를 담을 수 있는 거잖습니까? 비극이나 심각함을 작품에 표현하고 나서도 결과를 못 이루는 경우도 많고요. 희극의 틀 안에서 굉장히 큰 울림, 메시지를 주는 작품들이 많이 있죠.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주성치의<서유기>같은 경우 코미디로 봤는데 굉장히 감동적으로 끝이 나지 않습니까. 그런 걸 하고 싶어요. 추리 소설인 줄 알고 봤는데 큰 울림이 있다고 할 수 있는 작품이요. 기본적으로 쓰고 싶은 주제가 있다면 ‘자유’예요.

 

천부권으로서의 자유인가요?


자유권이라면 기존 체제에 대한 투쟁의 의미에서 이해되는 부분이 있는데요. 그런 의미도 있겠지만 인간은 원래 필요한 것들도 많지만 거추장스런 규범, 불필요한 껍데기들에 구속당하는 부분들이 있거든요. 그런 걸 깨버리는, 그런 걸 줄 수 있는 작품을 써보고 싶어요. 우리나라도 21세기고, 개화되었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낡은 부분들이 있지 않나 생각해요. 그런 메시지를 은연중에 보내고 싶은 그런 생각도 있습니다. 물론 그건 굉장히 후순위고요. 1순위는 어디까지나 추리 소설로서의 재미죠. 그런 것들이 제가 의도치 않더라도 작품에 많이 녹아있지 않나 생각하고요.

 

등장인물의 이름이 사건의 열쇠가 되는 경우도 있었잖아요. 작명 규칙이 있으세요?


『해리 포터』의 조앤 K. 롤링도 이름을 쓰는 게 제일 힘들었고, 가장 시간을 많이 소모했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마찬가지로 이름 쓰는 게 너무 힘듭니다.(웃음) 주변 사람들 이름에서 적당히 바꿔서 쓰기도 하고 그래요. 그렇지만 캐릭터에 딱 들어맞는 이름이어야 해서 어렵죠. 이탁오라는 이름도 중국의 유학자거든요. 그래서 이탁오 박사도 원래 본명이 있는데 개명한 것으로 설정을 했습니다. 마음에 드는 이름을 쓰기 위해서 그런 설정을 했는데요. 굉장히 힘든 부분이 이름 짓는 부분이에요.

 

좋아하는 작가가 있으세요?


시마다 소지의 작품을 읽고 많이 감탄을 했으니까요. 최종적으로는 일본에 진출해 대중적으로 알리고 싶긴 하지만 시마다 소지의『점성술 살인사건』을 미스터리 역사상 최고의 트릭이 아닌가 하는 평가를 하고 있고요. 그것과 경쟁할 수 있는 작품을 쓰고 싶다, 그게 또 다른 목표입니다. 그 작품의 임팩트가 굉장히 컸죠. 이런 소설을 써야 한다.(웃음)그랬어요. 처음에는 어떻게 이런 걸 쓸 수 있지, 생각했는데 나중에는 도전하는 심정으로 바뀌었어요.

 

2013년에 드라마 <너의 목소리가 들려> 일부 에피소드가 단편 『악마의 증명』을 표절했다는 내용으로 뉴스가 됐는데요. 분야를 초월해 표절의 문제는 심각하고 민감하죠. 이에 대해 혹시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요?


작가는 알거든요. 당시, 쌍둥이 소재가 많지만 그 에피소드를 보는 순간 바로 느낌이 왔어요. 여러 정황으로 봤을 때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로맨스 쓰는 작가가 사건 몇 개를 참관해서 쓸 수 있는 건 절대 아니니까요. 제가 갑자기 로맨스 소설을 쓴다고 해도 국내 로맨스를 참고하고 경험도 하고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지, 갑자기 그런 소설이 나올 수 있는 것이 절대 아니거든요. 특히 이런 전문 분야를 국내 몇 안 되는 법정 추리 작품을 쓰는데 안 읽고 썼다, 그런데 너무 흡사한 게 나왔다,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쓸 수 없다고 생각을 하고 있고요. 그때 사람들은 그러더라고요. 재미있는 걸 보고 있는데 왜 초를 치느냐고요. 저도 예전에는 사실 그랬거든요. 그런 부분은 표절에 대한 사람들의 의식이 높아지면 자연적으로 해결될 문제지 않을까 해요. 지금은 전반적으로 의식 수준이 얕은데, 표절에 대한 유혹이 생기는가 봐요. 솔직히 지금 다시 분쟁을 일으키고 싶진 않은데, 그때는 소송으로 가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죠. 하지만 제가 나이가 있지 않습니까. 남은 인생을 싸움, 투쟁에 소모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 얼마 안 되는 시간을 생산적이고 가치 있는 일에 쓰고 싶다는 생각에 그런 생각을 지워버렸어요. 창작에 몰두하기로 한 거죠.

 

표절 문제는 우리가 조금 더 엄격하게 의식을 재고할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해요. 다들 표절에 대해서 관용적이고 방만한데 작가들만 정신 차리고 하자는 것도 현실적이지 않은 거니까요. 문화의 문제인 것 같기도 해요. 할리우드 같은 경우는 대략 비슷하기만 해도 바로 판권을 사지 않습니까. 우리나라는 그런 점에서 아직 약하지 않나 생각하고 있어요.

 

표절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도 매우 엄격하다고 알고 있어요.


당시 출판사에서 저작권 전문 로펌에 의뢰를 해서 22군데가 같다는 의견서를 받아서 배포했는데요. 하나도 보도가 안 되더라고요. 안 되겠구나, 생각했죠. 제가 그것을 통해서 돈을 얻자는 게 아니라 사과라든지, 참고했다는 그런 정도만 해줘도 좋았을 텐데 그런 식으로 해결이 안 됐고요. 제가 접었죠.

 

그 일뿐 아니라 이후에도 계속 비슷한 일들이 일어났거든요. 웹툰과 같은 분야에서도 그런 문제가 최근에 있었고요. 


표절이라는 게 법적으로 그렇습니다. 사실을 알고 의도해서 쓴 것만 표절이 아니라 객관적으로 유사한 요소가 있으면 작가가 몰랐다 하더라도 표절로 판정되는 부분이거든요. 그런 것들을 아신다면 조금 더 조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지금 사람들은 표절이라는 게 작품을 의도적으로 베껴야만 표절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법적 의미에서 표절은 훨씬 넓은 개념이거든요.

 

작품을 쓸 때는 몰랐지만 표절이라고 할 만한 부분이 있었다면 그걸 인정해야 하는 거군요?


그건 사실 억울하겠죠. 그것보다는 쓰기 전에 조금 더 노력해야 되는 거죠. 이것과 혹시 비슷한 소재가 있지 않나, 있다면 해결을 하고 시작해야 한다는 거예요. 저 같은 경우도 시간이 없지만 일본의 허접한 추리 작품도 읽으려고 하는 이유가 있어요. 혹시라도 비슷한 이야기를 내놓게 되면 완전히 누가 되는 거니까요. 명예에도 금이 가는 거고요. 혹시 비슷한 게 있을까 싶어서 최대한 읽는 부분들이 있어요. 그렇다고 제가 다 캐치하지도 못하겠지만요. 그런 노력들이 조금은 있어야 하지 않나 생각해요. 구상했다가 만화라든지 일본 작품에서 유사한 발상을 발견하고 폐기한 것도 몇 개 있거든요. 사람들이 동시대를 살면서 비슷한 사고를 한단 말입니다. 작가들도 비슷하고요. 겹칠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걸 최대한 필터링하려는 노력은 기울여야 하지 않나 해요.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진구의 과거가 아버지를 따라 중국 사막에 가서 벌어지는 일들이 현재의 사건과 맞물리면서 진구의 과거와 진구의 캐릭터, 진구의 카운터 파트너라고 할 인물도 등장할 겁니다. 그 다음 사건까지 구상은 되어 있거든요. 진구 시리즈는 캐주얼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쓰기가 사실은 편하고 조금 빨리 쓸 수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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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탄생 도진기 저 | 시공사
상속 재산의 향방을 결정짓는 마지막 장면에서 법의 허점을 오히려 완벽한 방패로 만들어 판도를 뒤엎는 진구의 선택에 독자는 통쾌해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당황스러울지도 모른다. 또한 진구는 어둠의 변호사로 알려진 고진과 서로 반대편에서 치열한 두뇌싸움을 펼치는데, 각 시리즈에서 불패의 기록을 경신해온 두 남자의 대결은 이 작품에서만 볼 수 있는 즐거움이다. 본작에서는 반가운 얼굴이 또 한 명 등장한다. 고진의 숙적으로 《정신자살》에서 등장한 바 있는 이탁오 박사가 외전에서 진구와 만나는데, 독자는 진구와 고진의 첫 대결 외 이탁오 박사가 평생을 두고 꾀하는 궁극의 계획까지 살짝 엿볼 수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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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뮤지션 임달균의 변화와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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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초 임달균은 한국 재즈의 새로운 기대주였다. 1997년 미국으로 건너가 6년 동안 본격적으로 재즈를 연마한 그는 정통 하드 밥(Hard Bop)을 구사하는 테너 색소폰 주자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 2005년 자신의 오중주단으로 발표한 첫 음반< 또 다시 혼자(Alone Again) >는 당시 꿈틀대던 한국 재즈의 새로운 에너지를 상징하는 앨범이었다. 하지만 2007년 그는 대학에 몸을 담게 되었고 그로부터 그의 활동은 점점 뜸해지기 시작했다. 그 후로 긴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얼마 전 그가 돌아왔다. 새로운 음반< 친구(Friends 'n' Swing) >와 함께. 첫 음반을 발표한지 정확히 10년만이다. 그 사이 그의 악기는 색소폰에서 트럼펫으로 바뀌었고 심지어 그는 스윙 느낌이 넘치는 노래마저 구사하는 게 아닌가. 10년의 세월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엄청난 변신이었다. 그가 공연을 하고 있는 이태원의 재즈클럽 '올댓재즈'를 찾아갔다. 1부 무대를 마친 그와 마주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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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연주를 거의 안 하는 걸로 알고 있었다.


학교 일로 바쁘지만 클럽 연주를 하지 않으면 재즈 연주자로 끝장 날 것 같아서 정기적으로 연주하려고 한다. '올댓재즈'에서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꼴로 연주하고 있다. 이렇게 한 지 한 5년 된 것 같다.

 

아까 무대를 보니 마일스 데이비스나 쳇 베이커의 레퍼토리를 연주하던데 색소폰 주자일 때부터 연주하던 곡목이었나?


색소폰을 연주하든 트럼펫을 연주하든 재즈 스탠더드 넘버를 연주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아무래도 트럼펫으로 전향 한 후 레퍼토리가 조금 변하긴 했다.

 

대학에 몸담은 뒤 어떻게 지냈나?


경희대 전임교수로 온 뒤 부터는 수업을 비롯해 학교 일에 매달렸다. 소속되어 있는 예술 디자인 대학이 위치한 수원 근처로 이사했고 그 사이에 결혼도 하고 이제는 두 아이의 아버지가 됐다.

 

얼마 전 < 또 다시 혼자 >를 다시 들으니 그때로서는 정말 앞서 나간 음반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에 재즈팬들은 계속 음반을 발표하며 활동하길 기대했었는데 조금 아쉽다. 혹시 공을 들여 음반을 발표했지만 재즈에 대한 주위의 냉담한 반응 때문에 좌절했던 것은 아닌가?


물론 그런 서운함도 조금 있었다. 하지만 더욱 실망했던 것은 나 자신이었다. 유학 가기 전부터 그토록 열심히 불었고 유학 시절 그리고 다녀와서 죽으라고 연습했지만 결국 앨범으로 나온 성과가 그 정도였을 때 자신에게 실망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연주자로서 포기하거나 의욕을 잃었던 것은 아니다. 학교에 들어오니 예상보다도 일이 훨씬 많았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다 시피 하니 연주 활동은 자연히 줄어들었다.

 

혹시 영화 < 위플래쉬 >는 봤나?


봤다.

 

교수로서, 교육자로서 그 영화를 어떻게 생각하나?


영화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온라인 상에서 여러 이야기를 하는데 그 중에서 나는 칼럼니스트 원종우씨가 쓴 글에 제일 공감했다. 그 분은 <딴지일보>에서 파토라는 필명으로 많은 글을 써 온 분인데 외계문명과 UFO에도 관심이 많은 분이다. 내가 좋아하는 글쟁이다. 어쨌든 그는 플레처 교수와 그 영화에서 벌어지는 여러 사건들을 일종의 메타포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니까 실제로 그러한 성격에, 그러한 교육법을 가진 교수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단지 그의 존재는 음악을 공부하고 연주하고 있는 사람들이 거의 모두다 마음속에 갖고 있는 심리적 압박감의 상징이라는 게 원종우 씨의 해석이고 나도 그 점에 동감이다. 그러한 입장에서 영화를 봤을 때 영화의 내용은 보다 현실적으로 느껴지고 사건의 개연성도 높아진다. 음악인들이라면 누구나 심적인 압박을 느낀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을 괴롭히며 수업하지 않는다. 단지 대학이라는 곳에서도 종종 기본적인 의욕이나 열의가 부족한 학생들을 보게 되는데 그땐 정말 맥이 풀리지만 말이다.

 

의욕, 열의 이야기가 나왔으니까 말인데, 어떻게 하다가 색소폰에서 트럼펫으로 악기를 바꿨나? 보통 열의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 색소폰은 마우스피스에 붙인 리드(reed)를 울려서 소리 내는 목관악기고 트럼펫은 입술을 진동시켜서 소리 내는 금관악기이니까. 악기의 종류, 구조 자체가 완전히 다르다.

 

그 어려운 일에 왜 도전했는가? 트럼펫이 그 만큼 좋았는가?


재즈를 좋아하고 특히 하드 밥을 좋아하는 사람 중에 트럼펫 안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거다. 물론 나는 색소폰으로 재즈 연주를 시작했지만 항상 트럼펫 소리에도 호감을 느꼈다. 뭐랄까. 남성적이면서도 한 없이 섬세한 소리를 갖고 있는 악기가 트럼펫이다. 그래서 유학 마치고 막 한국에 왔을 때 주한이 형(트럼펫 주자 이주한)을 만나 트럼펫 좀 빌려달라고 해서 일주일 간 계속 불어봤다. 그런데 소리도 나지 않더라. 그래서 트럼펫 돌려주고 난 저 악기 안 되나보다 하고 포기했었다. 그러고서 한 참 지나 아마 2011년이었을 것이다. 클럽에서 트럼펫 주자 김진영과 함께 연주했는데 그날 그의 트럼펫 소리가 너무 아름답게 들렸다. 그가 솔로 하는 걸 옆에서 쳐다보면서 이제 더 이상 늦추면 난 저 악기를 절대 불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서는 트럼펫 한 대를 구해 죽으라고 불었다.

 

그땐 금세 소리가 나던가?


아니다. 얼마 만에 소리가 났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아무튼 학교에 출근해서 하루에 최소한 네 시간 씩 시간 잡아 놓고 계속 트럼펫만 불었다. 그러다가 드디어 소리가 나자 너무 기뻐서 한 음만 하루에 다섯 시간 씩, 지겨운 줄도 모르고 계속 불었던 것 같다. 소리 나고 나서도 한 옥타브를 정확히 부는 데 6개월 이상 걸린 것 같다.

 

그러면 소리 내고 한 옥타브 부는 데 거의 1년 소비했다고 치자. 그 뒤로 지금까지 4년 정도 밖에 시간이 안 흘렀는데 벌써 이렇게 분단 말인가? 정말 빠르다.


아직 멀었지만 그 뒤로는 조금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색소폰을 통해 쌓아 놓은 재즈 이론과 기술들을 계속 트럼펫으로 이사시키고 있는 중이다.

 

그러면 역시 트럼펫을 연마할 때 가장 힘들었던 것은 소리를 내는 것 그 자체였나?


아니다. 연주를 하고 나니 내게 트럼펫 음색에 대한 명확한 이미지가 부족하다는 걸 알았다. 재즈를 그렇게 많이 들었는데 내가 연주하면서 색소폰 음색에 대해 가지고 있던 구체적인 상이 트럼펫에는 아직 없더라. 어떻게, 어떤 소리를 내야겠다, 내겐 이런 소리가 어울리고 잘 낼 수 있다, 라는 개념이 서야 하는데 그것을 형성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고 지금도 만들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왜 색소폰을 병행해서 연주하지 않나? 지금까지 뛰어난 테너맨으로 인정도 받았는데 아깝지 않나? 해외에서도 트럼펫과 색소폰을 함께 연주하는 연주자는 거의 없다. 그 희소성만으로도 주목 받을 것 같은데.


힘들게 트럼펫을 시작했는데 여기까지 왔으니 어느 수준에 올라 갈 때까지는 끝장을 봐야 하지 않나. 그런데 색소폰을 계속 연주하면 안이한 생각이 들 거 같았다. 트럼펫 안 되면 다시 색소폰으로 돌아가지 뭐, 하는 식의. 그래서 색소폰을 아예 손에서 놓기로 했다. 한 동안은 연주 때 두 악기를 모두 들고 다녔는데 2년 전 부터는 트럼펫만 들고 다닌다. 도망 갈 곳이 없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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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균 씨는 둥글둥글하고 웃는 인상에 사람 좋아 보이는데 실은 매우 독한 거 같다.


그런가? (웃음)

 

그런데 어떻게 하다가 본격적으로 노래도 부르게 되었나? 전에도 무대 위에서 간간히 노래를 불렀나?


아니다. 무대 위에서 노래 부른 적은 없다. 단지 연습실에서 혼자 불렀다. 색소포니스트 시절에는 노래 부르는 게 영 어색하더니 트럼펫으로 바꾸고 나서는 노래가 더 자연스러워 지더라.

 

트럼펫 연주하면 노래가 편해지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글쎄.......정확히는 모르겠다. 루이 암스트롱, 쳇 베이커 등 트럼펫 주자들이 보컬도 겸하는 전통 때문인 거 같기도 하고. 아무튼 트럼펫을 연주 한 뒤로는 무대에서 간간히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보컬 비중이 높은 이번 음반을 내는 건 본격적인 도전이 아닌가?


그렇다. 무대에서 색소폰을 치우고 오로지 트럼펫만 연주하던 시절이었는데 클럽무대에서 몇 곡 노래를 부르자 객석에 있던 재진이 형(테이크원 뮤직의 이재진 대표)이 “야, 너 노래도 하는구나. 우리 음반 한 장 녹음하자.”고 제안했다.

 

그러면 보컬지도를 따로 받았나?


음반 녹음할 때 재진이 형에게 받은 것이 전부다. 앨범에 담긴 「친구」, 「설레임」, 「커피 커피」 등을 모두 재진이 형이 작곡, 작사했기 때문에 노래 분위기, 창법 등에서 많은 지도를 받았다.

 

이재진 대표와는 어떻게 인연이 닿았나.


버클리 음악원 유학 시절에 그곳에서 만났다. 그때 재진이 형도 유학을 생각하고 있어서 학교를 방문했다가 그곳에서 한국인 학생이었던 나를 만난 것이다. 그리고 한국에 들어갈 때마다 연락해서 서로 만났다. 재진이 형도 색소폰 연주자다.


맨 처음 이재진 대표로부터 곡을 받았을 때 느낌이 어떠했나?


노래도 노래지만 지금까지 내가 해오던 재즈와는 많이 달라 당황했다. 내가 연주해 온 하드 밥은 남성적이고 전투적인 곡이 많았다. 하지만 이번 앨범은 훨씬 대중적이고 여성들도 좋아할만한 곡들이며 사랑에 관한 노래들이 많다. 이걸 어떻게 소화해야 하나, 정말 이런 노래를 부르면 사람들이 많이 좋아하는 걸까, 생각이 많았다. 하지만 계속 연습하면서 노래에 적응했고 서서히 감정이 실리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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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노래가 전문 보컬리스트의 느낌은 아니다. 목소리에 섬세히 공을 들인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스윙이 그 누구보다도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들린다. 오히려 남성적으로 툭툭 뱉는 창법이 멋지게 들린다.


고맙다. 아마도 스윙은 오랫동안 재즈연주를 하면서 몸에 배인 것 같다.

 

특히 즉흥적인 스캣(scat)이 일품이었다. 진짜 트럼펫 주자만이 부를 수 있는 스캣처럼 들렸다.


(쑥스러운 웃음)

 

「친구」에서 맨 처음 소절, “친구야.......” 부르는 대목이 재미있다.


맨 처음에 그 부분을 부르는데 재진이 형에게 지적 많이 받았다. 진짜 친구를 부르는 것처럼 불러 보라고. 아마 수 십 번 녹음 했을 거다.

 

반면에 「후회」, 「되돌아오지 않는」, 「숲의 노래」 등 임달균 씨가 직접 쓴 노래들은 쓸쓸함, 삶에 대한 반성 같은 것들이 느껴졌다.


어떻게 곡을 쓰다 보니 그렇게 됐다. 「숲의 노래」는 먼저 세상을 떠난 동생에게 바친 노래다. 「후회」를 완성하고서 아내에게 들려줬더니 아내가 “이제 오빠가 내 영향을 받았네.” 하더라.

 

아내도 음악을 하나?


건반을 치며 노래하는 싱어-송라이터다. '레이디버드'란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얼마 전에 앨범도 냈다.

 

지난 3월 20일에 있었던 앨범 발매 기념 콘서트에 갔었다. 그런데 확실히 무대에서 노래 부를 때는 시선 처리를 비롯해서 조금 쑥스러워 하는 것 같더라. 트럼펫 연주할 때는 당당하던데.


아무래도 관중들 앞에서 노래 부른 지 얼마 되지 않으니 긴장도 되고 어색했다.

 

확실히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특별한 끼, 그러니까 조금은 배우 같은 기질이 있어야 한다고 느꼈다.


그런데 그 점은 연주자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얼마 전에 드러머 T.S. 멍크가 쓴 글을 봤는데 연주자들도 옛날 재즈의 황금시대처럼 자신만의 카리스마로 관중들을 끌어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동감한다. 무대에 서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그 점이 필요할 것이다.

 

음반에서는 녹음 상의 문제 혹은 비용 문제 때문에 빅밴드 편성의 곡을 각 파트 별로 한 사람이 여러 번 오버더빙을 했다. 하지만 실제 공연에서는 풀(full) 빅밴드가 연주했다.


그렇다. 단원들 중 다수가 경희대 제자들이나 졸업생들이었다.

 

연주가 놀랄 만큼 좋았다. 리허설을 여러 번 했나?


아니다. 그렇질 못했다. 하지만 피아니스트 이지영 씨의 편곡이 좋았기 때문에 금세 좋은 앙상블이 나왔다. 아울러 국내 재즈 연주자들의 수준이 그만큼 성장한 것이다. 10년 전이라면 관악기 주자들의 숫자가 모자라 빅밴드 결성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다.

 

반면에 음향 기술의 문제는 여전히 불만이었다. 한국 음악계의 고질적인 문제인 것 같다.


아, 그랬나? 보컬 마이크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나도 안다. 녹화화면을 보면서 그 점은 정비해 보겠다.

 

새로운 앨범을 내고 바라는 점은 무엇인가?


사람들이 재즈를 많이 듣는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작년 미국 음악 시장 통계를 보니 전체 시장의 1.4%를 차지해 여러 장르 중에서 꼴지를 기록했다. 국내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페스티벌도 가고 주말에 재즈클럽에도 많이 가지만 음반을 사거나 단독 콘서트에 오는 사람들은 극소수다. 재즈에 대한 실수요는 매우 적은 것이다. 미국 통계도 1.4% 나왔지만 대중적인 보컬 재즈를 제외하면 진짜 하드코어 재즈는 그 중에서 0.4% 이하 일 것이다. 국내 상황도 별반 다를 게 없을 것이다. 앨범 < 친구 >를 통해 재즈에 대한 문턱을 많이 낮추고 싶다. 국내 음악에는 마이클 부블레처럼 스윙하는 보컬음악이 없지 않은가. 그런 음악이 있으면 대중들이 본격적인 재즈에 훨씬 쉽게 다가갈 것이다. 앞으로는 클럽 공연에서도 앨범에 담긴 곡들을 더 많이 연주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번 음반을 준비하면서 체중도 많이 뺀 것 같다.


대중들 앞에 서야 하는데 그래도 보기가 좀 좋아야 하지 않나. 다이어트 많이 했다.

 

역시 독한 사람인 거 같다.


(웃음)

 

그러면 이전 같은 하드 밥은 연주하지 않을 건가?


아니다. 트럼펫을 더 연마해 레퍼토리를 늘리면 다시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악을 시작할 것이다. 대중적인 보컬 재즈와 병행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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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무대 시간이 가까이 오자 임달균은 인터뷰 틈틈이 벌써 버징

(buzzing: 금관악기 주자들이 입술을 진동시키며 푸는 행위)을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지금 무대에서 함께 연주하고 있는 주자들을 소개해 달라.


테너 색소폰에 김지석, 드럼에 이종원. 모두 나와 오랫동안 함께 연주해 온 연주자들이다. 피아노의 이지영은 이번 음반에서 편곡까지 담당한 일등 공신이다. 베이시스트 신동하는 내 제자인데 매우 똘똘한 친구다. 앞으로 기대가 촉망된다.

 

 

인터뷰, 정리: 황덕호
사진: 김명기(테이크원 뮤직)
2015/04 황덕호(saturnman2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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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 PD 남규홍이 알려주는 TV 방송 뒷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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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규홍PD님01.jpg

 

생소한 단어였던 ‘애정촌’을 한국사회에 널리 알린 SBS 교양프로그램 <짝>. 이 프로그램은 6박7일 동안 애정촌에 모인 여성과 남자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과정을 담았다. 연예인이 아니라 일반인이 출연한다는 설정, 정해진 대본이 없다는 점, 6박 7일이라는 긴 촬영 기간 등으로 프로그램 제작이 쉽지 않았을 테지만 남규홍 PD는 <짝>을 2011년 방송계 대표 프로그램으로 만들어냈다.

 

남 PD는 <짝>을 만들기 전 <그것이 알고 싶다>를 비롯한 다양한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했다. 특히 <인터뷰 게임>은 그가 기획 및 제작 전반을 책임진 프로그램이었다. 출연자가 자신의 고민을 풀기 위해 주변인을 심층 인터뷰한다는 형식으로 구성된 이 프로그램은 2009년 한국방송PD협회에서 시상하는 제21회 한국방송PD대상 실험정신상을 수상했다. 『TV 방송 기획 생각대로 된다』는 남 PD가 여러 방송을 만들며 얻은 깨달음을 소개한다.

 

『나도 짝을 찾고 싶다』에서는 남 PD가 <짝>을 연출하며 인간에 관해 느낀 점을 담았다. 그가 촬영하며 만난 사람만 677명이고, 면접까지 하면 6천여 명을 봤다. 처음부터 관심사가 인간이었다는 남 PD에게 애정촌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를 탐구할 수 있는 좋은 무대였다. 남 PD의 인간관이 궁금하다면 『나도 짝을 찾고 싶다』에 실마리가 있다.

 

<짝>과 <인터뷰 게임>은 새의 날개

 

『나도 짝을 찾고 싶다』『TV 방송 기획 생각대로 된다』라는 책 두 권을 동시에 냈습니다.

 

성격이 다른 책이라 두 권으로 나눠냈어요. 두 책 모두 신경 쓰긴 했지만, 『TV 방송 기획 생각대로 된다』가 좀 더 애정을 갖고 쓴 책이에요. 방송 쪽 일하는 사람에게 참고될 만한 책이 많지 않거든요. 그런 책을 만들어 보고 싶었어요. <짝>, <인터뷰 게임>을 만들면서 이제는 방송 프로그램 제작에 관해 말하는 데 부끄럽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도 짝을 찾고 싶다』는 방송 바깥에서 바라본 <짝> 이야기를 쓴 책이에요. 방송으로 보이는 건 일부분이잖아요. 책으로 방송으로 다 보여주지 못했던 내용을 다른 느낌으로 전달할 수 있겠다 싶어서 썼어요. 마침 가을 정도에 <짝>을 관둬서 쓸 시간도 있었어요.

 

남규홍 PD, 하면 역시 <짝>이 떠오르는데요. PD님에게 <짝>은 어떤 프로그램이었나요.

 

제 자식이고 분신이에요. <짝>은 ‘애정촌’이라는 이 세상에 없던 말을 만들어냈죠. 이 프로그램은 제가 창조했잖아요. PD에게 창조는 숙명인데, 전문가를 비롯한 누구나 인정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기는 쉽지 않아요. 특히나 프로그램을 기획해서 처음부터 만들어가는 행운은 모든 PD가 누리는 건 아닙니다. <짝>은 다행히도 남들에게 내세울 수 있는 굉장히 잘난 자식이라고 생각해요.

 

불명예스럽게 끝났다고도 할 수 있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짝>은 이런 프로그램이었고 이런 과정으로 만들었으며, 이런 의미가 있는 프로그램이었다고 제대로 이야기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죠. 글을 쓸 때는 <짝>이 폐지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는데, 쓰고 나니 책이 그런 역할을 한 것 같아요.

 

책을 읽어 보니 PD님은 <인터뷰 게임>을 <짝>보다 더 애틋하게도 여기시는 듯했습니다.

 

양쪽을 비교할 수는 없어요. 두 작품은 새의 날개죠. 좌우 날개가 있어서 새가 날 수 있듯, 두 작품도 그렇죠. 두 작품이 성격이 달라요. 어쩌면 <인터뷰 게임>이 모든 인간의 문제, 고민을 담았다는 점에서 심오하고 깊이 있는 프로그램이었는지도 몰라요. 도중에 좌절되어서 아쉬움이 있죠. 그런 감정적인 아픔이 책에 담긴 거죠. <짝>은 3년 정도 했으니까, 평가받을 기회가 있었고 인정받았어요. 1차 목표는 달성했다고 봐요.

 

『TV 방송 기획 생각대로 된다』가 이론이 아니라 방송 제작의 실제를 담은 책입니다.

 

제가 의도한 대로 잘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방송 제작을 하면서 오랫동안 축적한 노하우를 썼습니다. 특히 <짝>은 제가 캐스팅부터 촬영과 편집, 그리고 방송 끝나고까지 시시콜콜한 것까지 모두 관여했습니다. 나레이션, 자막도 제가 최종으로는 다 고쳤거든요. 이런 과정에서 겪은 크고 작은 성공, 실패를 이야기했습니다. 이 책에는 성공한 기록만 있는 건 아니에요. <인터뷰 게임>은 PD들에게는 인정 받았지만 빨리 폐지됐죠. 9만 리를 가야 성공인데, 90리까지밖에 못 간 거죠. 그렇다고 이 책이 성공과 실패를 다루지는 않았고, 콘텐츠를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를 생각하면서 쓴 책이니까 방송일 하는 사람이나 꿈꾸는 사람에게 실제로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공감할 수 있으면 교양도 예능과 경쟁 가능해

 

요즘은 예능이 대세인데요. <인터뷰 게임>도 그렇고 <짝>도 일반인을 섭외한 프로그램입니다. 일반인 섭외를 고집한 이유는?

 

<한밤의 TV 연예>를 하기도 했지만, 저는 교양 PD거든요. 교양 프로그램이 연예인을 다루는 일은 별로 없죠. 그 당시에 제게 화두는 인간이었어요.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방송으로 다루는 것만큼 재밌는 게 없어요. 연예인이 인간을 대표하지는 않아요. 그들은 다른 세계에 사는 존재라, 연예인으로 인간의 문제를 풀면 오류가 생기기 쉬워요. 방향을 달리 잡아서 재미를 추구한 프로그램을 만들겠다면 그렇게 할 수 있었겠지만 정보나 의미를 전달하는 데에는 일반인이 연예인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저에게는 인간이 아닌, 동물이든 식물이든 대화할 수 없는 상대는 재미가 없어요. 시청자가 ‘아 저게 내 문제구나.’ 이것만 있으면 경쟁된다고 생각해요. 공감 포인트만 있으면 교양 프로그램도 예능과 비교해서 시청률에서 절대 뒤떨어지지 않아요. 실제로 제 프로그램 시청률이 예능보다 높았고요.

 

PD에게 특히 창의력이 중요할 듯합니다.

 

창의력은 사람마다 다 달라요. 창의력은 방송만 아니라, 모든 곳에 필요해요. 여기 카페만 해도 인테리어 등 모든 부분에 아이디어가 필요하죠. 저도 스스로 제 창의력을 높이 평가하지만 한계를 엄청 느껴요. 베토벤도 그랬고 모차르트도 그랬을 거예요. 한계에서 어떻게 할까, 고민해 볼 문제인데요. 점점 더 우리 사회는 창의력을 많이 요구할 거예요. 어떻게 계발하고 써야 할지는 철학으로 들여다볼 문제죠.

 

창의력을 키우기 위한 PD님의 방법은?

 

PD는 물리적 시간이 부족하니 여유롭게 뭔가를 보기는 힘들어요. 남들이 다 보는 TV 프로그램, 인터넷을 챙기기는 힘들어요. 저도 되돌아보면 항상 바빴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러다 보면 TV나 인터넷보다는 생활 속에서 보이는 문제, 인간을 관찰하게 되죠. 보통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보내는 시간이 2~3시간이라고 하던데요. 저는 5분, 길어야 30분 정도만 해요. 사실 인터넷에 떠도는 화제는 2~3시간 봐봤자 뻔한 이야기거든요. 지금 뭘 만들어야 할까를 고민하는 사람에게는 인터넷이 그렇게 도움은 안 되는 것 같아요. 

 

책도 많이 읽으셨다고요.

 

<그것이 알고 싶다> 시절에 1년에 100권 정도 읽었어요. 교양 PD가 책 읽을 시간이 없어요. 먹고 자고 나머지는 편집만 하기도 바쁘거든요. <그것이 알고 싶다> 때는 기다리는 시간이 많았어요. 잠복 같이 대기하는 시간에 책을 봤죠. 그런데 촬영 편집에만 하루를 써야 하는 PD는 책 읽는 시간 내기가 쉽지는 않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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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이 정직할 수밖에 없는 이유

 

『나도 짝을 찾고 싶다』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책에서 자주 반복되는 메시지 중 하나가 사랑에는 학력, 재산, 외모가 중요할 거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인데요. 애정촌을 관찰하시면서 사랑에서 가장 중요한 건 뭐라고 느끼셨나요.

 

정답은 없어요. 복합적이죠. 외모가 뛰어나지만 성격이 좋지 않다면 매력이 오래가지 않아요. 외모만큼 부서지기 쉬운 것도 없잖아요. 잘 생겨도 계속 보면 질리죠. 조건이 좋거나 똑똑하다고 유리할 수는 있지만 전부는 아니에요. 결국은 인간적인 매력이 뛰어난 사람이 상대방을 자기 사람으로 만들어요. 애정촌을 떠나서도 인간적인 매력이 일관되게 유지될 때 성공할 거고, 카메라가 떠났다고 180도 바뀐다면 뻔한 인간이에요. 책에 쓴 내용은 애정촌에서 본 것을 본 대로, 느낀 대로 쓴 주관적인 해석이에요. 책 내용에 딴죽을 건다거나 오류를 잡는다거나 하는 목적으로 읽을 책은 아니에요.

 

<짝> 에피소드 중에 『나도 짝을 찾고 싶다』 에 실린 건 일부인데요. 어떤 기준으로 선정하셨나요.

 

제가 마지막으로 한 게 59기일 거예요. 59기에서부터 거꾸로 써나갔어요. 초기에 했던 방송은 너무 먼 이야기라 쓰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해서요. 그러다 보니 초창기 게 빠져서, 대표적으로 8기를 넣었어요.

 

<짝>이 재밌었던 보분이 일반인이 보여주는 의외의 모습이었는데요. 이런 돌발 상황은 촬영할 때 의도적으로 만드나요. 아니면 편집할 때 캐릭터를 잡아서 특정 인물을 강조하는지요.

 

재미를 위해서 살짝 왜곡할 수도 있냐는 질문일 텐데, 그럴 수 없어요. 캐릭터는 인터뷰할 때 보입니다. 12명 중에서 중복되지 않게 뽑아요. 중복되면 가장 센 사람 한 명이면 충분하거든요. 애매하게 2등이 붙어봤자, 그 사람에 좋을 게 없으니까요. 그렇지만 이들이 어떻게 할지는 모르죠. 직장인 면접 볼 때를 생각하시면 돼요. 면접 볼 때는 맡겨만 달라고, 모두 잘한다고 하지만 그 사람이 막상 일을 잘하는지는 모르잖아요.

 

방송이 출연자를 왜곡할 수 없어요. 출연자가 왜곡했다고 항의하면 엄청나게 시끄러워집니다. 책에서도 썼지만 가장 좋은 방법은 제작진, 출연자, 시청자 등 모든 사람이 이러쿵저러쿵하지 못하게 가장 정직하게 방송하는 것이에요. 정직하게 방송해야 한 사람이 떠들어도, 함께 방송한 사람이 있으니 떳떳할 수 있어요. 저는 기자들에게 한 사람의 의견으로 대서특필해서 프로그램 비판하지 말고 다른 출연자, 스텝 취재하고 쓰라고 했어요. 필요하면 대질신문도 하라고요. 그런데 그렇게 해서 기사 쓴 기자는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짝> 출연자 면접을 진행하면서 정말 많은 사람을 보셨는데요. 20분 안에 사람을 파악해야 하잖아요. 주로 어떤 질문하셨나요.

 

신상명세서를 보고 하는 일이 뭔지를 알지만, 질문에서도 무슨 일을 하는지 물어요. 외모야 보면 나오고, 성격은 면접에서 알 수 없어요. 일을 중심으로 이 사람이 어떤 일을 하고, 어떤 계기로 하게 됐는지를 들어보면 어느 정도 파악이 되죠. 면접에서는 솔직한 사람이 최고예요. 약간 과장을 한다든지, 거짓말을 한다든지 하는 것도 어느 정도 보여요. 그리고 재밌는 사람이 좋죠. 재미없는 질문을 던져도 재밌게 답하는 사람이 있어요. 이러면 면접이 1시간 이어진 적도 있었고요. 그리고 사랑에 관해서도 많이 물었어요. 지금 왜 이성이 없는지, 어떻게 해서 만나고 헤어졌는지 물어보면 사랑관이 보입니다.

 

인간이란 불완전한 존재

 

PD님 관심사가 결국 인간인데, 인간이란 어떤 존재일까요?

 

짧은 시간에 캐스팅하고 1주일 촬영하면서 숨겨진 면을 많이 봤어요. 사람과 관계, 그 속에서 이루어지는 행동과 대화를 관찰하고, 방송이 끝나고 나면 피드백도 받아요. 여러 장면을 보면서 사람에 관해 많은 생각을 했는데요. 애정촌에서 완벽하게 보였던 사람이 차츰차츰 불완전하게 변하는 모습을 자주 봤어요. 특히 애정촌에서는 불완전함이 많이 보일 수밖에 없죠. 이성 문제니까요. 그 친구들도 다른 공간에서였다면 달라질 수 있었겠죠. 세상에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런 점에서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
 
PD님이 출연하셨다면 도시락은 몇 개 받았을 것 같아요?

 

저는 혼자도 잘 먹어요. 못 받았다고 크게 마음 상하고 하지는 않았을 텐데요. 한 명 정도는 오지 않을까요. 통하는 사람이 한 명 정도는 있을 것 같아요. 제가 많은 사람과 통할 것 같지는 않아요.

 

장인형 PD로 계속 갈 수 있고, 조직에서 관리자로 활동할 수도 있잖아요. PD님은 앞으로 어떤 길을 택하실지 궁금합니다.

 

저는 사회 생활을 못해요. 절대 관리자는 아니고요. 프로그램을 안 했다면 저는 퇴보됐겠죠. 프로그램을 계속 만들 수 있는 PD가 좋아요. 잘 안 돼도 후진 거라도 만들면서 먹고 살아야죠.

 

PD를 꿈꾸는 사람이 많습니다. 지망생에게 한 말씀 부탁합니다.

 

『TV 방송 기획 생각대로 된다』는 PD 지망생에게 필요한 책이라 썼어요. 책 많이 읽고 방송을 이해했으면 좋겠고, 제 나름의 철학이 있는데 함께 공유했으면 합니다. 공중파 PD만 생각한다면, 벽이 높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하지만 PD는 누구나 될 수 있어요. PD 되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어떤 프로그램을 만드느냐가 훨씬 중요하죠. PD는 작은 프로덕션 가서 잠시 아르바이트로도 할 수 있어요. 요즘 출발할 수 있는 방법은 많아요. 거기서 능력을 발휘하면 다른 곳으로 스카우트되기도 하고요. 공중파 시험 봐서 들어가는 경우는 정말 소수고, 지금도 많은 PD가 나름의 꿈을 펼쳐 가고 있어요.

 

자신의 능력이 떨어진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가 없어요. 저는 PD가 되려는 사람에게 굳이 창의성을 고민하지 말라고 이야기해요. PD는 인간 관계에서 많은 도움을 받거든요. 다른 사람 능력을 잘 활용하는 사람이 훌륭한 작품을 만들 수 있어요. 다만,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으려면 PD 본인이 인간이 되어야겠죠. 사악하고 나쁘고 뒤통수 칠 사람에게 누가 도와주겠어요. 물론 모든 걸 돈으로 산다고 하면 다른 문제지만 한계가 있어요. 정말 중요한 건 양심, 정직이죠. 그런 PD가 만드는 프로그램이 훨씬 좋을 거예요. 가장 큰 문제는 PD가 되어서 이상한 프로그램으로 시청자를 암흑으로 이끌어가는 거죠. 이렇게 되지는 말았으면 해요.

 

마지막으로 강조하자면, 하고 싶은 분야를 영상으로, 글로 표현하면 프로그램이 됩니다. 프로그램은 내가 생각하는 대로 만들어집니다. 내 능력이 부족하다고 하면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서 완성해 나가면 되고요. PD는 개인적인 특출한 능력보다는 오케스트라 지휘자처럼 전체적인 걸 보면서, 자기 생각을 구현하는 게 중요합니다. 결국 생각대로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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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방송기획, 생각대로 된다남규홍 저 | 예문사
이 책은 창조가 화두인 세상에서 교양 프로그램에 예능적인 요소를 묘하게 섞어낸 SBS 화제작 『짝』의 최초 기획자이자 연출자인 남규홍 PD가TV 프로그램 『짝』과 『인터뷰 게임』의 제작 과정과 창작 비결을 공개한 것이다.이처럼 창의력이 숨 쉬는 두 프로그램의 제작 과정을 통해 저자 남규홍 PD는 크리에이티브의 힘은 어떻게 길러지고, 그로 인한 결과는 무엇이며, 또순수 창작인 ‘최초 진입자’류 프로그램은 어떻게 만드는 지, 남 PD만의 프로그램 창작 비결을 아낌없이 풀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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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짝을 찾고 싶다남규홍 저 | 예문사
이 책은 SBS 남규홍 PD가 애정촌을 꾸며 놓고 『짝』이라는 TV 프로그램을 천 일 동안 기획 연출하면서 느꼈던 남자와 여자 그리고 인간에 대한 감상이다. 애정촌은 진실한 사랑을 찾아 인간 본연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펼쳐진 곳이다.짝 PD인 저자는 천 일 동안 애정촌에서 펼쳐진 수많은 러브 스토리 중 인상적이었던 13개 기수 이야기를 중심으로 짝을 찾는 남자 여자의 진솔한 연애 심리와 그 안에 숨겨진 인간 내면의 생각을 솔직하게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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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워킹대디 정우열 “엄마들이 육아 우울증에서 벗어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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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만 느끼는 육아감정』아빠 육아 마스터가 들려주는 엄마의 마음


육아 전쟁의 현장에서 엄마들은 오늘도 천국과 지옥을 오간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내가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을 해내고 있나’ 새삼 감탄하면서도 ‘왜 조금 더 잘하지 못했을까’ 하고 자책한다. 좋은 엄마가 되는 방법을 알려주겠다고 나서는 이들은 많다. 서점에도, 인터넷 세상에도, 차고 넘친다. 그런데 어디에서도 나와 딱 맞는 경우는 찾기 어렵다. 설령 찾는다 해도 그대로 실천하기란 쉽지 않다. 머리와 가슴의 거리가 이다지도 멀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되는 것.

 

어쩌면 엄마들에게 진짜 필요한 건 육아에 대한 ‘지식’이 아니라 ‘공감’이 아닐까. 상황이 달라도 비슷한 감정들을 나눌 수 있는 어떤 존재가 필요한 것 아닐까. 엄마들만을 위한 엄마들만의 커뮤니티가 존재하는 건 그래서일 것이다. 가끔씩 현실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도, 때로는 아이와 남편이 한없이 미워 보이는 것도, 모든 엄마가 겪는 일일 뿐 너무 괴로워할 필요 없다고 다독여주기 때문이다. 『엄마만 느끼는 육아감정』이 독자들에게 건네는 이야기도 이와 다르지 않다.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면, 엄마가 느끼는 복잡한 감정들이 어떻게 시작되는지, 그리고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해설’을 들려준다는 것이다.

 

『엄마만 느끼는 육아감정』의 저자인 정우열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이자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워킹 대디’다. 그는 출산 후 직장에 복귀한 아내를 대신해 주양육자로서 아이들을 돌봐왔다. 매 순간 생소한 순간들과 감정들을 마주하면서 ‘엄마들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아빠’가 되었고, 블로그 ‘육아빠의 정신 있는 블59’와 책 『아빠가 나서면 아이가 다르다』를 통해 자신의 경험을 함께 나눴다. ‘이렇게 엄마의 마음을 절절하게 느끼는 아빠가 또 있을까’라는 놀라움은 『엄마만 느끼는 육아감정』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저자는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알고 있는 육아의 실상(!)에 대해 들려줌으로써 엄마들의 공감을 이끌어낸다. 오늘은 아이에게 화내지 말아야지 다짐하면서도 그 바람이 허망하게 무너져 내리는 걸 보면서 죄책감을 느끼고, 아이를 누구보다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미워하기도 하는 자신이 엄마로서 자격이 부족한 것은 아닌지 두렵고, 그렇게 온탕과 냉탕을 오가는 엄마 때문에 아이가 혼란스러워하지는 않을까 염려하는 것이 엄마의 시간이다. 저자 역시 그 순간들을 오롯이 견뎌냈다. 덕분에 『엄마만 느끼는 육아감정』에는 육아 전투의 현장이 생생하게 담기게 됐다.

 

그러나 저자 정우열은 단순한 공감을 보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정신의학과 전문의로서 자신이 들려줄 수 있는 조언을 세세하게 덧붙인다. 자신의 애착 경험이 아이에게 대물림 될까봐 걱정하는 엄마들에게, 스스로의 감정을 조절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엄마들에게, 아이가 겪는 모든 일들이 자신 탓인 것만 같아 불안해하는 엄마들에게, 남편과의 사이에서 또는 직장 내에서 갖은 문제들에 부딪히는 엄마들에게, 상황별 맞춤 처방을 내려준다.

 

언뜻 엄마들만을 위한 이야기로 보이지만 『엄마만 느끼는 육아감정』이 담고 있는 감정은 보다 보편적인 것이다. 마음먹은 대로 실천하지 못해서 좌절하고 자괴감을 느끼는 것이 엄마들만의 일은 아닌 까닭이다. 내가 얼마나 힘든지 알아주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아 서운한 감정이 드는 것도 마찬가지다. 지난 날 부모에게서 받은 상처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도, 내 감정조차 어쩌지 못하는 자신에게 화가 나는 것도,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는 일이 아니던가. 그래서 『엄마만 느끼는 육아감정』은 육아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누구나 겪는 감정에 대한 이야기다.

 

 

육아가 힘든 진짜 이유는 ‘감정 조절의 어려움’

‘육아하는 아빠’를 선택한 계기가 있었나요?


미리 계획했던 건 아니었어요. 유달리 아이를 좋아했던 것도 아니고요. 우연히 시기가 맞았던 거죠. 제가 직장을 옮기려고 했을 때 첫째 아이가 태어났거든요. 그래서 아내와 함께 산후조리원에서 지내면서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돌봤고, 자연스럽게 육아 방법도 터득하게 됐어요. 보통의 엄마들과 똑같죠. 미리 예습을 한 후에 엄마가 되는 건 아니잖아요. 아내가 출산휴가를 마치고 직장에 복귀한 후에는 9개월 정도 혼자 양육을 맡았어요. 어머님이나 베이비시터에게 아이를 맡길 생각도 했었지만, 보통 엄마들이 고민하는 것처럼 쉬운 일은 아니더라고요.

 

지금도 아이들의 주양육자는 작가님인가요?


네. 한 번 시작하면 끊을 수가 없어요. 아이가 저를 엄마처럼 여기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저 역시 보통의 엄마들과 같은 마음으로 아이를 대하거든요. 제가 직장을 옮긴 후에도 1년 정도는 주 3일 근무를 하면서 나머지 시간에는 아이를 돌봤어요.

 

아빠로서 들여다 본 엄마의 세계, 육아의 세계는 어땠나요?


처음에 혼자 아이를 돌봐야 했을 때는 불안했죠. 그런데 걱정이 너무 컸던 탓인지, 막상 시작해 보니까 괜찮더라고요. 아무래도 아빠가 엄마보다 체력적으로 더 강하니까 수월한 측면도 있었어요. 그렇게 교만한 마음으로 한 달을 지냈죠(웃음). 그런데 아이와 하루 종일 집에만 있고, 친구들도 만나지 않고 일도 하지 않다 보니까, 육아 우울증 비슷한 게 오더라고요. 외롭기도 했고 ‘내가 왜 사서 고생인가’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아이를 키운다는 게 어떤 건지, 본질적인 질문도 하게 됐어요. ‘이게 육아 우울증이구나, 이런 느낌이구나’ 하고 이전에는 머리로 알던 걸 마음으로 느끼게 된 거죠.

 

작가님께서 찾으신 해결책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의사로서 엄마들한테 권유했듯이, 외출을 많이 했어요. 사실 아이를 데리고 외출을 하려면 챙겨야 할 것들이 정말 많거든요. 그런데 귀찮더라도 그렇게 준비를 해서 몇 시간이라도 밖에 머물다 오는 게 좋더라고요. 저는 점심은 꼭 밖에서 먹자고 생각했고, 아이랑 같이 나가서 점심을 먹고 산책한 후에 돌아오는 패턴을 지속했어요. 그랬더니 금방 회복되더라고요.

 

그럼에도 여전히 힘든 순간들은 있었을 텐데요.


대부분의 엄마들이 그렇잖아요. 저녁 때 남편이 퇴근해서 돌아오면 아이를 맡기고 자신만의 시간을 갖는 게 필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하지는 못해요. 남편이 아이를 잘 돌볼지 불안하고, 아이와 떨어져 있는 게 미안하니까요. 저도 그런 마음이 있었지만 극복하려고 했어요. 아내가 못미더워도 아이를 맡기고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운동하러 다녔죠. 그랬더니 아내도 아이와 더 친해지고 육아에도 익숙해지더라고요. 저도 혼자 있는 시간 동안 재충전이 돼서 아이를 더 잘 돌보게 됐고요.

 

연년생 자녀를 두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둘째가 태어난 이후에는 육아가 더 힘들어지셨을 것 같아요.

둘째가 태어난 후에는 완전히 달라졌죠. 첫째 아이를 돌볼 때는 자신감이 충만했고, 육아가 생각보다 쉽다고 느껴지기도 했거든요. 제가 들었던 바로는, 아이 둘을 키우면 하나를 키울 때보다 두 배 더 힘든 게 아니라 열 배가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들으면서도 크게 와 닿지는 않았었는데요. 직접 경험해 보니까 열 배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다섯 배는 힘든 것 같아요(웃음).

 

어떤 부분이 가장 힘드셨나요?

감정 조절이 어렵다는 거였죠. 아이가 한 명일 때는 제가 아는 이론을 고수하려고 했는데, 둘째까지 돌봐야 하니까 그게 안 되더라고요. 마음이 조급해지고 예민해지고요. 수면시간도 줄어들면서 감정 기복도 심해지는 걸 경험했어요. 그렇게 복잡한 감정을 경험해야 한다는 게 육아에서 제일 힘든 부분이더라고요. 그 사실을 깨달아서 『엄마만 느끼는 육아감정』을 쓰게 된 거죠.


죄책감 느끼는 엄마여도 괜찮아요


『엄마만 느끼는 육아감정』에서 말씀하셨듯이, 많은 엄마들이 죄책감 때문에 괴로워하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도 죄책감을 느끼는 엄마들을 만나면 죄책감 느끼지 않아도 괜찮다고, 쓸데없는 죄책감을 느끼는 건 아이에게도 독이 된다고 이야기했었어요. 그런데 제가 직접 경험해 보니까 그게 어쩔 수 없이 가지게 되는 감정이더라고요. 육아하는 아빠로 살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죄책감을 느끼는 거예요. 머리로는 그러지 말아야 된다는 걸 알면서도 마음으로 느끼는 건 또 다르다는 걸 알게 됐죠. 그래서 엄마들을 대하거나 상담할 때 많이 바뀌었어요. “죄책감을 가지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죄책감을 느끼는 건 당연한 겁니다”라고 말하는 거죠. 죄책감을 갖는다는 사실 때문에 감정적으로 더 힘들어지는 것보다는 왜 그런 감정을 경험하는지를 아는 게 더 낫더라고요.

 

이번 책에서 죄책감과 함께 분노에 대해서 설명하고 계신데요. 두 감정은 어떻게 연결되어 있나요? 


분노는 죄책감과 연결돼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본성이 있는데, 사회화가 되는 과정에서 억누를 수밖에 없게 되거든요. 공격성과 성적 본능이 대표적이에요. 그 중에서도 공격성은 엄마가 되면서 더 억누르게 되죠. 사실 본능이라는 건 억누른다고 없어지지 않거든요. 적절하게 표현해야 해소되고 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갈 수 있어요. 그런데 엄마라는 페르소나, 즉 자신에게 강요되는 사회적인 인격이 강해지면서 압박감을 느끼면 자연스럽지 못하게 돼요. 과도하게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는 거죠. 아이에게는 항상 웃어줘야 할 것 같고 좋은 모습만 보여주어야 될 것 같잖아요. 그러면서 오히려 부자연스러워지는 거예요. 점점 진짜 자기 감정과 멀어지고 표출하지 못한 분노가 쌓이게 되고요.

 

감정 조절을 어렵게 하는 또 다른 원인이 있나요?


감정을 억누르다가 그것이 너무 힘들어지면 방어체계가 무너져버려요. 그런데 엄마의 삶은 감정 조절이 무너지기 쉽죠. 제대로 잠을 잘 수도 먹을 수도 없으니까요. 어떤 사람이 감정적으로 힘든 상태인지 알 수 있는 두 가지 지표가 수면과 식사거든요. 실제로 우울증이 심한 분들은 수면장애를 겪고요. 음식을 섭취하는 데 있어서도 폭식을 하거나, 입맛이 없어서 체중이 줄기도 해요. 그 반대의 경우도 있는데요. 잘 자고 잘 먹지 못해서 신체 리듬이 무너지면 심리적으로 취약해지는 거예요. 엄마의 삶이 딱 그렇죠. 아이가 태어나면 못 먹고 못 자는 거예요. 그게 반복되면 심리적으로 취약해져서 우울증도 오고, 감정 조절도 어려워지고, 평소에 억눌렀던 분노와 공격성도 더 표출되는 거죠.

 

때 느끼는 분노가 아이에게 향하게 되면 엄마는 죄책감에 사로잡히는 걸까요?


공격성이 자신에게 표출될 때 느끼는 감정이 죄책감이에요. 스스로에게 ‘너는 나쁜 엄마야, 네가 잘못했어’ 라고 비난하고 공격하는 거죠. 반대로 공격성이 다른 사람에게 향하면 아이한테 분노하게 되는 거고요. 이성적으로 감정 조절이 잘 될 때는 화내지 않을 일인데도, 이럴 때는 아이에게 화를 내게 돼요. 그 대상이 아이가 아니라면, 가장 가까운 사람인 남편한테 분노를 드러내게 되죠. 남편도 힘들다는 걸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으로는 화가 나는 거예요. 남편 역시 아내의 감정을 머리로만 이해하죠. 자신이 직접 경험해 보지 않았으니까요. 별 것 아닌 일에도 짜증을 내는 아내를 보면서 예전과 다르게 이상해진 것 같고, 저런 마음으로 아이를 키우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아내에게 짜증을 내기도 하고 집 밖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기도 하는 거죠.

 

‘완벽한 엄마’가 되어야 된다는 의무감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엄마라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돼요. 저도 그렇더라고요. 상담실에서 만난 분들에게 완벽할 필요 없다고 많이 얘기해왔는데도 말이죠. 그런 감정은 스스로 조절 불가능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게 더 빠르다는 걸 알게 됐어요. 엄마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갈등으로 상담 받는 분들을 보면, 완벽주의를 추구하거나 도덕적 가치 기준이 높거나 이상적인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심리적인 갈등이 많아요. 페르소나라고 하는 사회적인 인격에 맞춰서 살다 보니까 완벽하고 바람직하고 이상적인 걸 추구하는데, 사람들이 자신에게 거는 기대가 클수록 오히려 자신의 본능과는 멀어지거든요. 사람은 누구나 페르소나가 있어요. 반대로 그림자도 있죠. 그림자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어두운 면이에요. 스스로 바라보기조차 싫은, 무의식에 깔려 있는 어두운 면이죠.

 

타인이나 사회의 기대에 맞추어 살다보면 내 안의 그림자와 충돌하는 경우가 생길 텐데요.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페르소나만 바라보다 보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자연스럽고 인간적인 감정에서 멀어져요. 그럴수록 그림자는 점점 더 외면하게 되고요. 그렇게 갈등이 생겨나면 나중에는 그림자가 조금만 드러나도 쉽게 사로잡히죠. 엄마들이 작은 분노나 죄책감을 떨쳐버리지 못하는 것도 마찬가지 경우인데요. 융은 페르소나와 자신을 구분하라고 이야기해요. 그림자도 자신의 일부일 뿐이고 페르소나도 나와 조금 다른 모습이라는 걸 인정하라는 거죠. 거기에 갇혀서 살 필요도 없고 버릴 필요도 없어요. 적절히 구분하면 되는 거예요. 페르소나와 그림자를 인정하고 사는 것과 그것에 사로잡혀 사는 것은 전혀 달라요. 나의 분노와 죄책감을 인정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죠. 무의식적으로 억누른 것을 의식화해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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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주문을 걸어보자 “나는 이 아이의 엄마가 아니다”


『엄마만 느끼는 육아감정』“적당히 좋은 엄마가 되면 된다”고 말합니다. 100점 엄마가 아닌 80점 엄마를 목표로 삼으라는 의미인데요. ‘나는 충분히 좋은 엄마다’라고 스스로에게 이야기하기가 쉽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렇죠. 그것만으로도 왠지 모를 죄책감을 갖게 되고, 뻔뻔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죠.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자신에게도 아이에게도 그 편이 더 바람직해요. 저 역시 스스로에게 괜찮다고 말하곤 해요. ‘그래도 나는 아이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80점짜리 아빠로는 충분하다’ 이렇게 계속 생각하면서 극복하는 거죠.

 

“매일 5분씩 내면에 있는 아이와 마주하라”고 조언하기도 하셨어요.


순수한 감정 그대로를 느끼라는 이야기인데요. 아이는 사회화가 되지 않은 상태잖아요. 논리적이지도 않고 다른 사람을 신경 쓰지도 않죠. 자신의 행동 이후에 닥칠 일을 생각하지도 않고 사회적인 위치도 고려하지 않아요. 그걸 5분이라도 생각하라는 거예요. 내면 아이인 내가 무슨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진짜 속마음을 들여다보라는 거죠. 너무 화가 난다, 그냥 도망가고 싶다, 여행을 떠나고 싶다 등등 어떤 생각이라도 좋아요. 엄마로서 아내로서 상상도 못했던 그대로의 감정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어요. 페르소나와 그림자 사이의 괴리로 인한 갈등이 적어지거든요. 그러면 감정적으로 안정이 돼요. 마음만 편해져도 생각이 조금 더 객관적으로 연결되죠. 5분 동안 감정에 충실하다 보면 생각이 객관적으로 바뀌는 거예요.

 

아이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방법으로 소개하신 ‘마인드 쉬프트’는 생소한 개념입니다. ‘저 아이는 나의 아이가 아니다’라고 생각해 보라고 하셨죠.


페르소나와 그림자 사이의 간극을 줄이기 위해서 순간적으로 페르소나를 버리는 거라고 할 수 있죠. ‘나는 이 아이의 엄마가 아니다’라고 생각하면 엄마라는 페르소나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거예요. 내 아이의 경우라면 예민해질 일도 남의 아이의 일이면 편해지는 부분이 있잖아요(웃음). 그렇게 잠깐 남의 아이처럼 여겨도 문제될 건 없어요. 오히려 분노의 감정이나 갈등에서 잠시나마 자유로워지죠. 말씀드렸다시피 감정이 편해지면 객관적으로 생각하게 돼서 아이가 제대로 바라볼 수 있어요. 그러면 또 나의 감정도 편해지고요. 자신은 모성애가 없는 것 같다고 고민하는 엄마들도 많은데요. 이 경우에도 엄마라는 페르소나에 강하게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그 페르소나는 너무 이상화되어 있고 너무 완벽하거든요. 그것이 곧 내가 아니라는 걸 인정해야 해요.

 

육아 과정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것 중 하나가 자녀로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양육 경험인데요. 부모와 나의 관계를 되돌아보고 이해하는 것이 아이를 키우는 데 있어서 꼭 필요한 일일까요?


어렸을 때 부모와의 애착 관계가 힘들었던 경험이 있거나 불안정한 감정이 남아있으면, 그것이 아이한테까지 영향을 미치면서 더 힘들어져요. (양육을 하는 동안) 부모와의 사이에서 해결되지 않은 부분들이 무의식적으로 떠오르거든요. 그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그럴 수도 있다’라고 생각하면 힘들지 않을 텐데요. 어렸을 때 부모와의 관계가 불안정했던 사람들은 당시와 관련된 생각 자체를 차단해요. 아마도 『엄마만 느끼는 육아감정』에서 그런 내용을 마주한다면 ‘이건 내 이야기가 아니야’라고 부정하면서 회피하게 될 거예요.

 

부모와의 애착 관계를 대물림하고 싶지 않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객관적으로 부모와 나의 관계를 바라보고 ‘우리 엄마아빠도 이런 감정들을 똑같이 느꼈고 완벽하지 않았다, 우리 엄마는 대체로 좋은 엄마였지만 순간순간 힘들었던 경험들도 있었던 거다’라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 애착 관계가 잘 되어 있다고 할 수 있어요. 그렇게 통합이 되지 않고 갈등이 남아 있으면 극단으로 치닫죠. ‘우리 엄마는 나쁜 엄마다’라고 생각하거나 ‘우리 엄마는 완벽한 엄마다’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이럴 때는 스스로 마음의 문을 열고 ‘나도 그럴 수도 있다’ ‘아이한테까지 대물림하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 그런 이야기들을 조금씩이라도 접하는 게 좋아요. 상담을 받거나 책을 읽으면서 갈등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도 있고요.

 

아빠 육아를 원한다면 ‘육아의 맛’을 보여줘라


육아 우울증의 위험성에 대해서 설명해 주세요.


우울증의 가장 큰 증상은 의욕이 없어지고 무반응하게 된다는 거예요. 엄마가 아이에게 기본적으로 해줘야 하는 것은 정서적으로 상호작용하고 신체적 성장을 돕는 것인데요. 상호작용을 한다는 건 결국 애착을 형성하는 거죠. 애착의 3요소는 민감성 반응성 일관성이에요. 민감성은 아이가 원하는 것을 표정만 봐도 알 수 있는 것인데, 엄마의 마음이 힘들면 집중이 되지 않겠죠. 아이를 봐도 요구하는 걸 알 수 없는 거예요. 당연히 이해해줄 수도 없고요. 우울증에 걸려서 의욕이 없어지면 아이가 원하는 걸 알아채기도 힘들지만, 그것이 가능하더라도 반응을 해줄 수 없죠. 일관성이라는 건, 처음부터 거대한 가치관을 잘 세워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지켜나가는 게 아니에요. 감정에 따라서 이랬다저랬다만 하지 않으면 돼요. 그런데 우울증에 걸리면 감정 기복이 심해지거든요. 감정대로 일관성 없이 양육을 할 수밖에 없는 거죠.

 

『엄마만 느끼는 육아감정』에서 조언해 주신 육아 우울증의 예방법은 무엇인가요?

기본적으로 엄마들은 잘 자거나 잘 먹을 수 없고 감정적으로 힘들기 때문에 우울증에 취약하기는 해요. 그렇지만 육아 우울증에 걸리기 쉬운 사람들이 있어요. 조사 결과에 따르면 예전에 우울증을 앓았거나, 너무 어린 나이에 임신을 했거나, 원하지 않는 임신을 했거나, 아이의 기질이 까다롭거나 등등 여러 가지 경우들이 있다고 해요. 그런데 이렇게 이미 주어진 상황들은 바꿀 수 없잖아요. 유일하게 바꿀 수 있는 한 가지는 ‘가족들의 지지’인 거죠. 그 중에서도 엄마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사람은 남편이에요. 남편이 공감을 잘 해주지 않는다면 정말 치명타라고 할 수 있죠. 반대로 잘 공감해주고 지지해주고 도와주면 정말 많은 도움이 돼요. 그렇게 육아를 분담하면서 육아 우울증이 예방되는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거죠.

 

“공감 스킬 자체에 집착하지 말자”는 이야기도 눈에 띕니다.


엄마들은 마음이 불안하고 조급하기 때문에 스킬만 익히기가 쉬워요. 인터넷의 많은 팁들을 외워서 그대로 하는 거죠. 그런데 그것 자체는 본질이 아니에요. 공감의 본질은 상황 이해인데, 이해하려면 관찰해야 하거든요. 아이가 말하지 않아도 표정과 행동과 주변 상황을 통해서 마음을 유추하면서 이해해 주는 거예요. 이것 역시 감정 조절이 되어야 가능한 일이죠. 엄마가 우울하면 집중도 안 되고 의욕도 없으니까, 관찰도 이해도 할 수 없어요. 객관적으로 상황을 제대로 바라보려면 감정이 편안해야 하는데, 공감 자체에 얽매여서 조급해진 감정으로는 관찰이 불가능해요. 그래서 감정을 잘 다스려서 평상심을 유지하기만 해도 아이와 상황이 객관적으로 보이는 거예요.

 

워킹맘들의 경우에는 육아와 일 모두를 완벽하게 해내지 못한다는 생각으로 힘들어하는데요. 『엄마만 느끼는 육아감정』에 소개된 연구 결과를 보면 워킹맘들이 직장에서 더 높은 생산성을 보인다고 합니다. 많은 워킹맘들에게 힘이 되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연구 결과라는 건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지만, 엄마들에게 위로를 전하고 싶어서 소개했어요. 많은 분들이 이런 연구 결과도 있다는 걸 알게 되면, 떳떳하게 당당해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아이가 어릴 때는 워킹맘이 직장 생활을 하는 게 힘들 수 있어요. 하지만 아이가 조금 더 자라고 나면 마음도 안정되고, 아이를 양육해야 한다는 책임감도 생기기 때문에 열심히 일할 수 있죠. 그러니까 ‘길게 봤을 때 나는 이 직장에서 꼭 필요한 존재이고 더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다’라고 생각하셨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마음이 편해지면서 직장에서 일도 잘하게 되고, 일이 잘되면 더 마음이 편해져서 집에 돌아와서 아이도 더 잘 돌볼 수 있을 거예요.

 

“아빠 육아의 최대 수혜자는 아이도 아니고 엄마도 아니고 바로 아빠”라고 하셨습니다. 그야말로 경험에서 우러나온 이야기 같은데요. 어떤가요?


저도 직접 깨달았고요. 『엄마만 느끼는 육아감정』에도 썼듯이 그 사실을 뒷받침해주는 연구 결과도 있어요. 제가 아빠들의 커뮤니티나 육아 모임에서도 활동하는데, 같은 이야기를 하시는 분들도 많았고요. 아빠들이 일단 ‘육아의 맛’을 보면 굳이 엄마가 시키지 않아도 해요. 제 경우만 보더라도, 우연한 기회에 육아를 시작하게 됐는데 아이와 애착관계와 친밀감을 형성했더니 육아를 놓을 수가 없더라고요. 일과 병행하면서 힘들 때도 많았는데도 불구하고요. 사실 엄마들도 마찬가지예요. 육아가 힘들다고 말하면서도 아이에 대한 주도권을 남편에게 넘겨주지 않으려는 면이 있거든요(웃음). 아이가 나만 바라보고 나를 더 찾을 때 느껴지는 친밀감이 있기 때문이에요. 그걸 나눠주기 싫은 마음을 느끼는 건 아빠도 똑같죠. 그러니까 엄마 입장에서는 아빠에게도 그 느낌을 나눠줘야 해요. 그러면 아빠는 자발적으로 육아에 참여하게 될 거예요. 이미 ‘육아의 맛’을 알게 됐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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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만 느끼는 육.아.감.정정우열 저 | 팬덤북스
저자는 엄마들이 힘들어 하는 고민을 사례로 제시해, 그 감정에 대해 심리적으로 알려주면서 충분히 인지하게 하고, 왜 육아하면서 그런 감정이 들 수밖에 없는지 분석하고, 그 감정의 이면에 숨어 있는 진짜 감정에 대해서 알려준다. 그리고 그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간단한 솔루션을 제공해 엄마들이 육아하면서 느끼는 감정에 조금 유연해지도록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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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11회 세계문학상 대상 김근우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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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소설이든 문학이든 소설이라는 것 자체가 대중을 위한 것이고 따라서 재미가 있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했다. 재미있는 소설, 재미없는 소설, 잘 쓰지 못한 소설은 있어도 진짜, 가짜는 따로 없다고도 생각했다. 굳이 진짜, 가짜를 따지자면 진짜 재미있는 소설, 진짜 잘 쓴 소설, 진짜 재미없는 소설, 진짜 잘 쓰지 못한 소설이 있을 뿐이었다. (44~45쪽)

 

제11회 세계문학상은 진짜 재미있는 소설을 추구하는 김근우 작가의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를 선택했다. 소설 속 주인공인 나는 소설가. PC 통신 시절에 판타지 소설로 책을 내긴 했지만 후속작이 연거푸 망하면서 지금은 벌이가 없는 백수다. 통장 잔고와 갖고 있는 현금을 모두 합쳐 전재산이 4,264원인 나는 우연히 구인 전단을 본다. 일당 5만 원, 젊고 건강한 사람을 우대한다는 그 일은 오리를 찾는 것이었다.

 

일을 의뢰한 노인은 자신이 아끼던 고양이 호순이를 잡아먹은 오리를 잡겠다는 일념으로 주인공에게 불광천에 있는 오리 사진을 찍어오라고 말한다. 조작하기 쉬운 디지털 카메라 대신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쥐어주면서 성공 수당으로 1,000만 원을 제시한다.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가 실재하는지는 모르지만, 황당한 일을 받아들인 건 주인공만이 아니었다. 금융업계에서 일하다 투자 실패로 빈털터리 백수가 된 여성도 불광천의 오리를 찍느라 여념이 없다. 여기에 노인의 손자까지 가세하며 식묘 오리를 찾으려는 소동이 커진다.

 

소설 속 주인공은 김근우 작가와 닮았다. 실제로 오리를 찍는 아르바이트를 한 적은 없지만, 그 역시 판타지 소설을 쓴 작가였다. 『바람의 마도사』를 시작으로 장르 소설을 몇 편 썼고, 최근 3년간은 여러 문학상에 도전해왔다. 마침내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로 제11회 세계문학상 대상을 거머쥐었다.

 

불광천 오리를 보고 아이디어 얻어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로 1억 원 고료 11회 세계문학상을 받았습니다.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 어떤 기분이었나요?

 

처음에는 말 그대로 꿈 같았었죠. 전화 받았을 때 믿어지지 않아서 “정말입니까?”를 몇 번이나 되물었는지 모르겠어요. 시상식 전까지도 계속 꿈꾸는 것 같았어요. 시상식 끝나고 나서야 제대로 실감이 나네요. 솔직히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는 우수상 정도까지는 기대했는데 대상까지는 생각 못했어요.

 

세계문학상을 받기 전까지 문학상에 3년 정도 투고하고 떨어지고를 반복했다고 들었습니다. 장르문학에서 순문학으로 전향하는 과정이 힘들지는 않았나요.

 

떨어져서 힘들었다기보다는 다른 작가도 그렇겠지만 글 쓰는 일 자체가 힘들어요. 그런데 글 쓰는 일 말고도 다른 일도 다 힘들지 않습니까? 전향이라고 표현하셨는데, 전향까지는 아니고요. 원래 글은 형식과 장르 상관없이 다 좋아했습니다. 자유롭게 쓰는 게 제 소원이었어요. 저는 아직 문학이 무엇인지 모르고 많이 무지한 사람입니다. 다만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에서 썼던 대로, 저는 그저 재밌는 소설, 잘 쓴 소설이 있다고 생각하고 그런 소설을 쓰고 싶었습니다. 이것이 굳이 말씀하자면 제 문학관이죠.

 

떨어졌을 때는 어떤 기분이었나요.

 

아쉽지는 않았어요. 예심에서 다 탈락했고 제가 봐도 그럴 만했어요. 지금 그 작품은 없습니다. 저는 가망이 없다 생각하면 그냥 지워버리거든요.

 

이 소설은 많지 않은 등장인물로도 이야기를 재밌게 끌어나갑니다. 소설을 구상할 때 어떤 점을 염두에 두었나요.

 

역발상으로 소재를 잡았어요. 원래라면 고양이가 오리를 잡아먹어야 하는데, 오리가 고양이를 잡아먹은 이야기니 독자의 관심을 끌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불광천에 가면서 오리는 늘 봤습니다. 개를 산책하는 분은 정말 많은데, 가끔이지만 고양이를 산책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개보다는 고양이가 더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고양이와 오리를 연결한 거죠.

 

결국 모든 걸 다 잃고 마는 게 인생

 

대한민국의 현재를 묘사한 작품이기도 합니다. 돈은 좀 있지만 쓸쓸한 노년과 몸은 건강하지만 돈은 없는 청년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하셨습니다. 한편으로는 서울의 변두리를 다룬 공간사이기도 한데요.

 

그렇게 시사적으로 읽어 주시는 것도 좋습니다. 의도한 바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가장 큰 바람이라면 독자가 즐겁게 읽어주시는 겁니다. 저는 은평구에서 거의 30년째 살고 있어요. 지금은 지하철 6호선도 들어섰고, 아파트가 많아졌지만 예전에는 거의 단독주택이었어요. 서울이지만 서울 아닌 듯한 변두리 정서가 강했고요. 좋은 의미로 발전했다고 볼 수 있지만, 어떤 면에서는 삭막해졌다는 느낌도 받습니다. 그런 걸 소설에 담았어요.

 

변두리라고 말씀하셨는데, 작가님은 문학이란 가지지 못한 자의 이야기를 써야 한다는 쪽인가요?

 

글쎄요. 특별히 어떤 계층을 다뤄야 한다는 생각은 없습니다. 그런 소명 의식도 의미가 있겠지만, 저는 세상 전체를 폭넓게 넓은 시선으로 묘사하는 게 더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야기가 『모비 딕』오마주잖아요. 노인도 『모비 딕』의 에이허브 선장에서 모티브를 얻은 인물이라고 하셨고요. 에이허브 선장이나 이야기 속 노인의 모습을 보면 이 작품도 결국은 인생이란 무엇인지를 묻는 질문 같은데요. 작가님은 인생이란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너무 어려운 질문인데요. 제가 감히 정답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굳이 말씀드리자면 시간에 의해서 하나하나 다 빼앗기고 결국은 모든 걸 다 잃게 되는 게 인생이 아닌가 합니다. 소설 속 노인도 그렇죠.

 

아버지와 아들 사이가 주요 갈등 축입니다. 작가님의 자전적인 경험일까요.

 

문학이든 영화든 어디에서나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갈등은 흔한 소재죠. 저도 그러한 클리셰를 활용했고요. 아버지와 아들은 숙명적으로 적대 관계가 아닐까요.

 

재밌는 소설 많이 써야겠죠

 

김근우 작가는 어릴 때부터 하반신이 불편해 거동이 편하지 않았다. 여러 차례의 수술을 받았고 중학교도 도중에 관둬야 했다. 그를 보듬은 건 어머니.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어머니 사연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어릴 때부터 몸이 불편하셨는데요. 그런 불편함이 글쓰기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요.
 
역시 어려운 질문인데요. 일단 사람들이 타고난 조건에 따라서 영향받는 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태어날 때부터 팔이 없는 사람과 있는 사람이 똑같은 경험을 했다고 말할 수 없죠. 그렇다고 몸이 불편한 게 글쓰기로 이어졌다고는 확실을 하지 못하겠습니다. 어릴 때부터 밖에 잘 나가지 못하니까 집에서 혼자 공상을 한다든가 책을 읽는다든가 하는 경험이 글쓰기에 바탕이 된 건 사실인데요. 글쓰기라는 특정 분야에 영향을 주었다기보다는 제 인생 전반에 영향을 줬다고 말하는 게 정확하겠죠.

 

『바람의 마도사』를 쓴 게 언제였죠?

 

처음에 책 낸 게 17살이었거든요. 제가 잘 나서가 아니라 PC통신에 연재한 글을 출간하는 게 유행이었어요. 이런 표현이 좀 그렇지만 그때는 정말 개나 소나 출판을 했거든요. 저도 그 개나 소나 중의 하나였는데요. 주제를 모르고 17살 때 책을 내니까 대단한 재능이 있는 줄 알아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뻗었죠.

 

그 뒤로 19년 동안 글을 썼는데 슬럼프가 온 적은 없나요.

 

슬럼프가 ‘내가 왜 쓰고 있지?’라고 생각하는 거라면, 계속 슬럼프죠. 지금도요. (웃음) 글이 잘 안 될 때나 스트레스 많이 받을 때는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나 할 정도예요. 예전에는 진심으로 관둬야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글쓰기밖에 없어서 그만두지 못했죠. 예전에는 줄담배를 피우면서 속으로 삭였고요. 담뱃값이 오른 뒤로는 끊고 나서는 스트레스 못 풀고 컴퓨터 앞에서 끙끙 앓죠.

 

책도 많이 읽으시잖아요.

 

자랑할 정도로 많이 읽는 편은 아니고요. 중국 고대사에 관심이 많아서 어릴 때부터『열국지』는 많이 읽었고요. 춘추전국시대에 관한 책도 좋아해요. 서양 철학으로는 플라톤의 『대화』,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 정도? 가장 열심히 읽는 건 소설이에요. 스티븐 킹, 히가시노 게이고, 미야베 미유키, 무라카미 하루키, 도스토옙스키, 이승우, 조정래, 황석영, 박민규, 김애란 등 나라와 장르에 상관없이 두루 읽습니다.

 

다른 곳에서 한 인터뷰를 보니 작가님께서 어머니 자랑 많이 하셨더라고요.

 

어머니는 강인하고 낙천적인 분이에요. 어려운 환경에도 굴하지 않고 언제나 성실하게 할 일을 다하십니다. 저는 게을러서 성실하지 못한데, 어머니가 존경스럽죠. 일단 어머니에게 제가 가장 큰 짐이었을 테고요. 잘 아시겠지만, 한국에서 장애인 자식을 키운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니까요. 경제적으로도 어려웠고 나중에 건강도 안 좋아지셨어요. 고생 많이 하셨죠.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는 어머니가 엄청나게 기뻐하셨습니다.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쓰고 싶나요?

 

소설이 원래 대중적인 장르이니 재미를 추구하는 건 당연합니다. 그렇다고 소설의 다른 가치를 부정하는 건 아닙니다. 다 의미가 있겠죠. 저는 재미를 추구하면서도 제 세계를 넓혀서 포용하고 소화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도서관을 소재로 한 장편소설을 쓰고 있습니다. 무당, 바리데기 이야기도 관심이 많아서 언젠가는 써보고 싶고요. 특별히 앞으로 몇 권을 써야겠다는 생각은 없고, 먹고 살려면 열심히 써야겠다는 생각은 해요. 책이 안 팔리는 작가라서 저는 많이 써야 할 것 같아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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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김근우 저 | 나무옆의자
『미실』(김별아), 『아내가 결혼했다』(박현욱), 『내 심장을 쏴라』(정유정), 『스타일』(백영옥), 『살고 싶다』(이동원) 등 개성 넘치는 문제작들을 발굴해왔던 세계문학상이 2015년 제11회 수상작으로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를 선보인다.서울 변두리 개천인 불광천을 배경으로 88만원 세대인 두 남녀와 남자아이가 아르바이트를 하며 서로를 알게 되고, 그들의 고용인인 노인이 등장한다. 작가는 이들을 중심으로 가짜와 진짜 사이에 갇힌 것들이 혼재하면서도 양립되어지는 과정을 그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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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에서 시작한 이야기, 오세영의 『대왕의 보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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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김양상은 후에 선덕왕이 된다. 하지만 작가는 이 사실을 『대왕의 보검』에서 밝히지 않았다. 1973년 발견된 황금 보검을 찾아가는 여정에 집중하기 위해서였다. 대체 이 칼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작가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보물로 지정된 이 황금 보검은 그 양식이 이국적이어서 많은 학자들의 관심을 받았었다. 국내외에서 다큐멘터리로 다뤄지기도 했다. 그것이 작가의 상상력을 자극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한 장의 사진에서 시작된 그의 작품 『베니스의 개성상인』처럼 말이다. 하지만 이야기가 곧바로 나오지는 않는다. 이야기가 될 때까지 작가 안에서 쌓이고 쌓인다. 『대왕의 보검』을 집필하는 데 걸린 기간은 1년 반 남짓. 이를 작가는 빵에 비유했다.

 

“빵을 만드는 데, 밀과 씨를 뿌리는 것까지 걸리는 시간과 반죽과 숙성을 해놓고 걸리는 시간은 같을 수가 없으니까요. 제 경우 숙성까지 해놓은 상태에서 빵을 구운 거니까 1년이 좀 넘었다고 얘기하는 거죠.”

 

이야기는 중엽 신라의 풍경으로 시작된다. 당과 연합해 삼국을 통일하고, 왕과 귀족은 태평성대를 누리지만 백성의 생활은 빈곤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귀족은 왕좌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정치 싸움을 벌인다. 그 과정에 누명을 쓰고 신라 땅을 쫓겨나게 된 김양상을 따라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경주에서 출발한 김양상의 궤적은 장안, 사막 등을 거쳐 콘스탄티노플까지 다다른다. 이 궤적을 따라가는 것도 큰 즐거움이지만 그 가운데 등장하는 당시의 풍경, 지명도 쏠쏠한 재미를 준다. 도서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작가의 철저하고 폭넓은 자료 조사 덕이다. 김양상이 여정하는 과정에서 만나는 역사적 인물을 찾아보는 것도 큰 즐거움인데 그러고 보니 『대왕의 보검』은 작가가 주는 종합선물세트가 아닐까 싶어진다.

 

이야기가 만들어지기까지


중엽 신라에서 시작해 콘스탄티노플까지 그야말로 엄청난 대장정이에요.


제 책이 다 스케일이 커요. 넓은 데서 잘 뛰니까요.(웃음) 『베니스의 개성상인』도 한복 입은 남자의 사진 하나에서 시작했듯이,『대왕의 보검』 역시 칼에서 시작한 거죠. 칼이 1973년에 발견되었고 1978년 보물 635호에 지정돼요. 그 칼에 대해 학자들이 입을 모아 6세기 즈음이라고 얘기했어요. 먼저 다큐멘터리 작가들이 뛰어요. 학술적인 접근을 하죠. 생김새로 시대 추정을 하고, 탄소연대 측정을 한다든지 해서 조각을 맞춰나가요. 하지만 지하철로 말하자면 역만 있고 노선은 없는 셈이죠. 논픽션에서는 그 이상 진행이 안 돼요. 그 부분을 메우는 게 작가의 역할이죠. 알려진 것 중에 역사적으로는 벗어나지 않으면서 픽션의 세계에서는 허용이 되는 스토리를 짜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책에서는 밝히지 않았는데, 주인공 김양상이 신라 선덕왕이에요. 진덕여왕이 죽고 성골대가 끊기면서 김춘추로 넘어오고 무열계로 바뀌었거든요. 김춘추가 유명한 친당파 아닙니까. 삼국 통일 이후 대동강 이북은 다 넘어가고, 신라도 한때 계림도독(나당연합군이 백제를 멸망시킨 뒤, 663년(문무왕 3) 당나라가 신라에 계림대도독부를 설치하고 노골적으로 신라를 지배하려고 함)이 되었다 김유신이 겨우 되찾았죠. 그 다음부터는 친당 드라이브 정책으로 나가서 계속 그 정책이 유지돼요. 이후 성덕왕, 김양상이 왕이 된 후에는 실제로 당나라에 공격을 합니다. 거기에 포인트를 잡은 거예요.

 

특별히 이 시기에 집중한 이유가 있었나요?


어느 한 순간 딱 ‘이거다!’ 하진 않고요. 칼을 보는 순간 뭔가 있다, 는 생각이 든 정도였어요. 다른 일을 하면서 흉노와 경주 김씨와의 관계라든지, 흉노와 아틸라의 관계라든지 별개 사안이 떠돌았어요. 몇 년인지는 나도 모릅니다. 자연스럽게 스토리가 되면서 시작되었죠. 『베니스의 개성상인』도 마찬가지예요. 사진, 기록에 남아있는 조선인 사람, 이태리에 남아있는 꼬레아 사람이 개별로 떠돌았죠. 이 세 가지를 직접 연결해주는 고리는 없어요. 저마다 주장이 있는 것이고요. 저는 왜 그 사람이 그곳에 있느냐 하는 것을 스토리로 이은 것이죠. 『대왕의 보검』마찬가지에요. 강하게 각인되어서 따로 있던 것이 스토리로 올라가 연결시킨 거죠.

 

그 이야기들이 모여서 본격적으로 작업하신 기간은 얼마나 걸리셨어요?


두 권 분량인데요. 제 기준으로 따지면 1년이 좀 더 걸리거든요? 하지만 부연설명이 필요하겠네요. 빵을 만드는 데, 밀과 씨를 뿌리는 것까지 걸리는 시간과 반죽과 숙성을 해놓고 걸리는 시간은 같을 수가 없으니까요. 제 경우 숙성까지 해놓은 상태에서 빵을 구운 거니까 1년이 좀 넘었다고 얘기하는 거죠. 마침 거의 탈고를 할 때, ‘황금의 나라 전(展)’이 크게 열렸어요. 전시되었던 황금관이라든가 고옥이라든가 이런 것에 대해서는 분명히 신라가 중국과는 상관없이 대륙과 통한 것이고, 그래서 각광을 많이 받았어요. 하지만 그것으로 끝인 거예요. 이어진 자료가 없으니까요. 그렇다면 신라와 실크로드를 통한 서역과의 직접 교류, 그 다음에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 황금 칼을 포함한 각종 금관이라든가 팔찌에 대해서 스토리를 입혀보자, 하게 됐죠. 8세기 중엽에 있었던 역사적 사실들도 넣어서 말이에요. 혜초부터 시작해서 고선지 장군도 있을 테고, 양귀비도 직접 나오진 않지만 그 시기에 있었거든요. 바그다드의 왕자도 실존인물이에요. 그런 역사적 사실을 끌어들이면서 우리나라 역사 소설의 외연을 넓힐 필요가 있겠다, 그렇게 생각했죠.

 

이야기에 녹아 있는 역사적 사실들


당시 풍경에 대한 섬세한 묘사가 현장감을 살려줍니다. 도서관에서 작업하시는 것으로 유명하시지만 자료만으로 이런 묘사가 가능할 것 같지 않은데요. 


도서관에서 살죠. 요즘은 인터넷에서 자료 조사하기도 좋아요. 예를 들어 전차 경주하는 장면 같은 경우는 영화 <벤허>에 그런 장면이 잘 나오죠. 독자 중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어요. 주인공이 돌아와서 어떻게 됐느냐고요. 황금 보검에 대한 것을 밝히는 쪽으로만 일단 한 것이고요. 날이 지기만 하면 싸웠다는 김지정이니 김주원이니 하는 사람들을 통합한 사람이 김양상이에요. 그 얘기도 재미있을 거예요. 하지만 일단은 칼을 찾는 과정, 거기에 비중을 뒀어요.

 

지명도 무척 눈에 띕니다. 사료 부족이라든지 작업에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역사 소설이 종류가 많거든요. 근세사라든지 자료가 많은 시기가 있어요. 그런 부분을 잘 쓰는 작가가 있고,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이야기가 많죠. 조선시대의 경우도 자료가 많으니까요. 반면 그렇게 자료가 많으면 상상력이 끼어들어갈 틈이 없잖아요. 그건 제 전공이 아니고요. 이 책처럼, 또는 『베니스의 개성상인』처럼 살짝살짝, 사실의 뒤편에 숨어 있는 것을 살피는 것, 그런 부분이 제가 전공을 한 부분입니다. 미스터리한 역사 속에서 끄집어 낸 것, 그런 부분에 특별히 매력을 느껴요. 

 

실존했던 역사적 인물들(혜초, 고선지 등)을 되살리면서 가장 염두에 두었던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일단 실존인물이 조연으로 슬쩍 출연하는 건 제 스타일이에요. 보통의 경우 그 사람들이 주역을 맡습니다. 제 작품에서는 슬쩍 그 사람들이 나와 시대 배경을 맞춰주고 빠지거든요. 일장일단이 있어요. 새롭다는 건 장점이고, 낯설다는 건 단점이겠죠. 작가로서는 단점보다는 장점을 살리는 게 우선이니까 그쪽에 치중을 합니다. 혜초가 슬쩍 나왔다가 간만 보고 빠진다든지 하는 식으로요. 고선지 장군도 마찬가지죠. 낯설게 느낄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받아주시리라 믿고 씁니다.

 

실존 인물들의 등장이라는 점이 훨씬 이야기를 풍성하게 해주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세상에 새로운 건 없죠.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했습니다. 월탄 박종화 선생의 『자고 가는 저 구름아』같은 걸 중학교 때 읽었어요. 그때는 작가가 될 생각은 안 했지만요, 이런 세계도 있구나 싶어서 전공도 역사학을 했죠.(웃음) 학문적으로 접근하는 것보다 스토리텔링으로 없는 걸 만드는 쪽에 능한 것 같다고 스스로 생각했어요.

 

지평을 넓히고자 했다는 말씀도 하셨고, 다큐 등은 팩트를 다루니까 나갈 수 있는 부분에 한계가 있다고도 하셨는데, 이런 스토리텔링은 역시 작가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잖아요.


방금 언급한 월탄 박종화 선생의『자고 가는 저 구름아』같은 경우 인조반정 이야기를 다룬 건데요. 송강 정철이라든지 선조나 광해군이 나와요. 거기 강아(江娥)라는 기생 출신 여자가 나오는데, 송강 정철이 왕세자 책봉 때문에 싸우다가 귀양을 가는데 강아라는 여자가 거길 찾아가는 걸로 시작되거든요. 아, 월탄 박종화 선생도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구나 했는데 강아라는 기생이 진짜 있더라고요. 최근 드라마 <화정>에도 ‘김개시’라는 여자의 역할이 확 커지면서 김가희라고 나오죠. 이 사람이 실존인물인가 아닌가 굉장히 궁금했는데 김개시라는 상궁이 있었더라고요.

 

역사적 사실과 이야기가 잘 어우러지면 놀랍도록 풍성해져요.


요즘은 우리가 아는 역사가 얼마나 진실인가에 대해서 고민해요. 역사란 후세 사람이 만든 게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예요. 밝혀진 것만 해도 그래요. 사마천의 『사기』도 지금은 바이블입니다. 그런데 사마천이 만들어 쓴 것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학자도 있고, 그 안에 사실관계가 틀린 것도 있어요.『플루타르크 영웅전』도 지금은 정설로 알려져 있잖아요. 사실 플루타르크는 소설가예요. 세상에 알려진 일화들도 그래요. 조지 워싱턴이 도끼로 나무를 다치게 했는데 거짓말을 못해서 아버지에게 칭찬 받았다는 이야기 유명하잖아요. 그건 전기 작가가 지어낸 거라고 딱 밝힌 거거든요. 에디슨이 닭을 품었겠느냔 말이에요. 나는 믿어지지가 않아요.(웃음)

 

그래서 말이죠. 소설을 책임을 가지고 써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스토리를 만든다고 썼지만 이것이 전달될 때마다 사실로 되어버리는 수가 있으니까요. 예전에는 작가의 말에 ‘팩트와 픽션을 구별해내는 건 독자의 몫으로 남긴다. 그 또한 재미일 테니.’라고 썼는데요. 지금은 좀 달라요. 선덕왕이 김양상이라는 것을 굳이 밝히지 않은 것도 픽션에 무게를 두려고 했기 때문이죠. fiction based on the fact 해야겠다는 거죠. 그것이 제가 잘하는 것이고요, 나름대로 책임이 있겠다 싶어요.

 

픽션과 팩트를 구별하는 것이 독자의 몫이라고 생각했다가 지금처럼 생각이 바뀌게 된 계기가 어떤 사건들을 관찰하면서부터였나요?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실제 사건 때문이라기보다는 자료를 보고 공부하면 할수록 생각을 바꾸게 되더라고요. 공부를 하다보니까 이것이 원래 사료에 접근한 게 아닐 수도 있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거예요. 클레오파트라와 카이사르가 만날 때를 그린 자료들이 웃겨요. 볼 때마다 클레오파트라가 옷을 덜 입고 나와요.(웃음) 그래야 관심을 끄니까요. 원사료 쓴 게 다르고 그 다음에 쓴 게 다르게 되는 거예요. 사실 자체는 분명하겠지만 후세에 이야기가 가미되었으리라는 거죠. 적어도 제 책을 읽은 독자라면 구별할 수 있게 쓰겠다, 그렇게 된 거죠.

 

가장 그리기 어려웠던 장면, 특별히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비교적 사료가 많았던 것이 탈라스 전투, 탈라스 강 유역에서 나흘 간 싸웠던 전투에 대한 것은 좀 수월했죠. 그 외에는 아무래도 스케일이 큰 장면이 어려웠어요. 마지막에 다뉴브 강에서 찾아가는 장면은 사료가 많이 없어요. 그 장면을 종결해야 스토리가 마무리 되는데 그 부분이 좀 어려웠던 것 같아요. 아틸라라는 사람에 대한 자료도 많이 없습니다. 다뉴브 강 속에 있다는 말이 전해 내려오는데 없어요. 산 넘는 장면도 쉽진 않았죠. 설표범이 나오는 부분 말이에요. 어차피 다 내 머릿속에서 나온 거니까요. 그러다보니까 주인공이 슈퍼맨이 될 여지가 많았단 말이에요. 그 또한 마음속으로는 경계심을 갖고 쓴 부분이에요. 판타지 소설을 쓴 건 아니니까요.

 

환술 설정이 작품에 주요한 장치로 사용이 됩니다. 이 구상은 어떻게 나오게 됐나요?

 

농환(弄丸)이니, 하는 전문용어가 나오잖아요. 예전에는 아라비아 사람이 장안에서 그렇게 살았거든요. 궁파사((窮波斯)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파사’가 페르시아니까, 밑바닥 일을 한 사람들이겠죠. 그런 게 있기에 좋다고 생각해서 넣었어요. 구체적인 장면은 요즘 하는 것들을 참고 했어요. 사람이 사라지는 건 거울을 사용하거든요. 커다란 코끼리가 무대에서 없어져버리잖아요. 거울을 이용한 것들은 현대 마술에서 힌트를 얻었어요.

 

석연당이 죽는 장면에서 특히 로마 군사들의 거울 트릭이 굉장한 긴장감을 주잖아요.


실제 19세기 말이 아마 마술에서는 세계적으로 전성기였는데요. 당시는 컨저링(conjuring)이라고 했어요. 마술을 사람이 진짜라고 믿고 보겠습니까? 아닌 걸 알면서도 재미로 보는 거죠. 연기를 하는 거거든요. 그런 게 아주 발달해서 인형이 체스를 두는 것도 있고 그래요. 사람이 태엽 인형처럼 움직이는 것도 있고 그런 마술들이 있더라고요. 그것에서 힌트를 얻어서 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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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동서 교류에 깊은 관심 있어


신라 중엽이 혼란했던 시기고, 귀족과 왕족의 정치 싸움이 많이 펼쳐집니다. 당시 시대를 보여줌으로써 말하고 싶었던 부분은요?


그 시기에 귀족들이 녹봉이 아니고 녹읍으로, 땅에서 얻은 것을 바치고 월급으로 받는 게 아니고, 알아서 먹고 일정량을 주겠다, 이게 굉장히 심했거든요. 귀족들이 당나라풍으로 사치를 일삼았고요. 안정적인 사회가 되면 빈익빈 부익부가 나타나게 되거든요. 당시도 마찬가지죠. 문제가 터지기 직전에 인물이 나오는 거죠. 그런 상황이었어요. 이때 왕은 대중을 끌어들여서 귀족을 견제하거든요. 정찰(貞察)하는 사람이 문무백관을 규찰한다고 나와있는데, 당연히 개혁에는 기득권 세력의 저항이 있게 마련이죠. 나중에 김양상이 둘 다 물리치게 되죠. 무열계를 대표하는 김주원을 물리치고, 귀족을 대표하는 김지정을 물리치면서 성덕왕이 되고요. 왜 그 시기를 시대 배경으로 잡았느냐고 물을 수 있겠는데요, 혼란 시기를 바로잡기 위한 도구로 사용했다고 할 수 있겠죠.

 

김양상의 영웅적 면모와 불의를 못 참는 계산적이지 않은 모습도 흥미롭습니다.


캐릭터가 완벽하고 철미하면 매력이 없어요. 주인공 김양상은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욱하기도 하죠. 그래야 공감도 가고, 걱정도 돼요. 어쩌려고 이러나 할 정도의 일을 저지르는 면이 있어야 하거든요. 인간의 본성이 차가운 것도, 뜨거운 것도 있겠지만 뜨거운 쪽을 강조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시대를 이끌어가는 사람은 그래요. 나중에 안정된 시대를 지키는 사람이 또 따로 있고요. 혁명가들, 창업을 하는 사람들은 공통점이 있다고 해요. 별명이 다 뻥쟁이에요.(웃음) 박영효가 김옥균에 대해서 그랬잖아요. 혁명가는 그런 면이 좀 있어야 돼요. 낙천적이고, 자기 좋을 대로만 생각하고, 걱정하지 말라고 하고요. 이런 사람이 리더가 되고 혁명가가 되지, 치밀하게 계산하고 이런 사람은 2인자는 될지언정 앞에 나서는 매력적인 캐릭터는 못 돼요. 

 

우리가 몰랐던 그 시기 풍속 중 인상적인 장면이 또 있나요? 자료 조사를 하시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무덤에서 발견된 것들이 많아요. 장안에서 발견된 태자 무덤에서는 신라 사람과 동로마 사람이 같이 있는 그림이 있어요. 신라에서 콘스탄티노플까지 실제로 간 사람이 있을지도 몰라요. 혜초가 신라 사람인데 인도에 갔다가 돌아왔잖아요? 기록에 남은 사람만도 인도까지 다녀온 승려가 15명이거든요. 15명 중에 10명은 도중에 죽거나 돌아오지 않고 인도에 살기로 하고, 5명은 돌아왔는데 그 중 혜초 포함 3명은 그곳에서 생을 마쳤고, 두 명만 끝까지 경주로 돌아왔는데요. 그 정도 여정이면 콘스탄티노플도 갔을 거예요. 바다를 통한 길이 또 있잖아요. 당나라 때 이세민(태종)이 딱 막아버렸거든요. 초원으로 가는 길이 사라져버리니까 바다의 길이 더 활발하게 열려서 많이 다녔을 거예요. 예수의 열두 제자 중 도마도 인도에서 죽었다고 하잖아요. 당시 기록을 보면 로마에서 인도까지 배의 시간표가 다 있어요. 그만큼 활발하게 오갔다는 거죠. 급행, 완행이 다 있더라고요. 우리가 아는 동서교류는 옛날 사람이 훨씬 활발했구나, 싶어요. 동서 교류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어요.

 

사람들이 사는 모습도 훨씬 자유분방한 것 같아요.


우리가 알고 있는 옛날이라는 것은 조선이죠. 조선 중에도 칠거지악이니 남녀칠세부동석, 이런 거는 후세기의 일이지 고려 시대도 각종 가실이니, 쌍화점도 보면 굉장히 자유롭거든요. 발견된 토우(土偶)도 보면 정신이 번쩍 들 것 같은 것도 많잖아요. 조선도 그래요. 어우동이라든지, 세종의 며느리도 굉장히 자유부인 아닙니까. 그런 풍이 있었어요. 고려는 활달했고, 이혼도 많았잖아요. 여자에게 상속도 했고요. 조선이 폐쇄된 사회죠. 그나마 전반기 명나라 때는 사대라도 했지만 청나라가 된 후부터는 폐쇄된 사회로 있었던 거죠. 아는 게 조선이라 여자는 궁중 암투만 하고 칠거지악만 찾죠. 안 그래요. 훨씬 활발했죠.
 
신라시대에 대해서는 사실 자세한 건 나와 있지 않아요. 직접 기록한 것도 없는데요. 그렇지만 열린 사회였다, 개방적인 사회였다는 건 분명한 사실이죠. 출토되는 유물로도 그 사실을 발견할 수 있고요. 헌화가라든지 노래로도 알 수 있어요. 뒤집어보면 수로부인이라는 여자가 외간 남자를 만났다는 얘기잖아요. 서동요도 자유로운 풍경이고요. 처용가도 그렇잖아요. 다른 남자랑 누워있는 걸 봤다는 것인데, 조선시대 같으면 감히 노래를 싣지도 못했겠죠.

 

속칭 미드, 영드 라고 하는 외국 드라마가 인기입니다. 로마 역사가 대중적으로 친근함을 주기도 했어요. 드라마, 영화 등에서 우리 역사에 대한 수요도 많이 있고 다양한 시도가 있는데요. 역사 소설을 꾸준히 작업해오시면서 아쉬웠던 점이나 앞으로 기대하는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많죠. 우선 제가 하는 건 외연을 넓히겠다는 뜻이 가장 크고요. 지금 한류라고 해서 많이 나가잖아요. 제일 먼저 노래가 나갔죠, 그 다음 드라마가 나갔고, 이어서 웹툰이라든지 게임도 나간다고 하고, 음식도 나간다고 하는데요. 그 와중에 소설이 나간 게 뭐가 있느냐는 의문이에요. 있다면 소개 차원에서 지원 받아서 나간 정도겠죠. 싸이, 소녀시대 같이 상업적으로 성공한 사람은 없잖아요. 우리나라에 일본 소설 엄청나게 들어와요. 히가시노 게이고 같은 사람 작품은 융단폭격을 해버리잖아요. 아사다 지로, 요시모토 바나나 등 수도 없이 들어왔는데, 한국 작가는 그렇지 않죠.

 

때문에 되레 소설이 영상에 기대게 되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미디어셀러니 하는 말도 나오는데요. 작품 자체가 번역이 되어 나간 게 있느냔 말이에요. 두 가지 방법이 있어요. 우리 것은 좋은 것이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해서 나가는 방법이 있고요. 아니면 문화적인 것을 줄여서 별 부담 없이 나가는 게 있는데요.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하기에는 한국이 많이 알려졌어요. 저는 포지셔닝을 다시 할 수 있겠다는 기대를 갖고 있어요. 책이 안 팔린다고 하는데, 팔릴만한 책이 없다는 얘기도 많이 듣거든요. 불경기라고 하지만 천만 넘는 영화는 다 불경기 때 나오잖아요. 어차피 콘텐츠는 각개각층이니까요. 백만 부 팔리는 게 있는가 하면 만부 팔리는 것도 있고요.

 

특별히 관심을 두고 있는 역사적 시대가 있나요?


고려를 특화할 생각입니다. 조선은 너무 사료가 많고, 정형화되어 사람들의 머릿속에 있으니까 제가 할 필요는 없을 것 같고요. 고려가 어느 정도 알려져 있지만 알려지지 않은 것도 많아서 발굴의 여지가 많아요. 정설로 접근한 것은 많아요. ‘무신의 난’이라든지 ‘천추태후’ 같은 경우가 그런데요. 그것 외에도 새로운 면이 많다는 거예요. 사람들이 활달하고 개방적이었거든요. 남녀상열지사라고 해서 조선시대에 다 없애버리는 바람에 찾기가 어렵지만, 살아남은 것들, ‘쌍화점’ 같은 게 있잖아요. 자유분방함, 그런 인간성을 살리면서 이야기를 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현대 독자가 볼 때는 훨씬 공감하기 쉬울 수도 있어요. 조선시대에 자유연애 했다고 하면 이상할 테니까요. 걸림돌도 많고요. 팩트에 바탕을 두고 픽션을 쓴다고 하는데 팩트가 작가의 운신의 폭을 좁히는 경우도 많아요. 저는 사실을 벗어나지 않고 쓰겠다는 사람이니까 그래서 하려고 하는 게 고려 이야기예요.

 

더불어 앞으로의 계획을 들려주세요.


쓰다보면 다른 분야도 하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왜 없겠어요? 현대물이라든지, 아니면 역사에서도 실존인물에 접근하는 게 아니라 시대만 따와서 쓰는 것 등등 하고 싶은 부분이 없진 않아요. 구상해본 것도 있는데요. 늘 찾는 기분으로 하려고 해요. 전에 한 인터뷰에서 한 얘기인데요. 우리나라 고전 중에 제일 마음에 드는 게 <운영전>이에요. 유일하게 슬픈 결말로 끝나는, 강렬한 인상을 주는 게 있거든요? 거기 실존 인물인 안평 대군도 나오고요. 구성도 현대식으로 되어 있어요. 선조 때 쓰인 것 같은 작자미상의 작품인데요. 그런 스토리텔링을 살리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1925년인가에 영화로 만들어진 적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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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의 보검 1오세영 저 | 나남
보검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떠난 길은 욕망과 고난으로 점철된다. 안갯속 황금보검의 정체를 더듬던 신라왕족 김양상은 드디어 콘스탄티노플에 다다른다. 온몸을 던져 황금보검의 비밀을 밝혀내는 김양상과, 그를 둘러싼 탐욕스런 무리들이 펼치는 전대미문의 활극을 펼친다. 타클라마칸 사막-바그다드-페르시아 등 광대한 유라시아 대륙에서 펼쳐지는 장대한 스펙터클, 숨 막히는 클라이맥스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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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내한공연 15초 매진 기록, 스파이에어(SPYA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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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한 매체들이 모두 참여해 릴레이 형식으로 진행된 이날의 인터뷰. 비록 짧은 시간이었기에 준비했던 것을 전부 물어보지는 못했지만, 공연 후 이들의 소감을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뜻깊은 시간이었다. 아래는 인터뷰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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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이 세 번째 단독 내한공연입니다. 이제 좀 익숙해지셨으리라 생각되는데요. 한국 팬들만을 위한 별도의 세트리스트를 준비했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지난 라이브와 비교해, 어떤 점에 더 중점을 두셨는지요?

 

MOMIKEN : 먼저 반드시 해야 하는 곡들이 있었고 그리고 역시 한국 팬들은 크게 따라부르는 이미지가 상당히 강해서 기본적으로 팬 여러분들이 같이 불렀으면 좋을만한 곡이나 같이 부를 수 있는 곡들을 준비했습니다.

 

IKE : 저희 곡들 중에 「Are you champion? Yeah!! I'm Champion」은 전에 한국에서의 공연이 계기가 되어 만들어진 곡이어서, 팬들과 함께 노래하는 것을 마음속으로 굉장히 기대했습니다.

 

티켓이 15초 만에 매진이 되었는데, 이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느낌이 어떠셨나요?

 

MOMIKEN :먼저 놀랐습니다. 놀라고 그렇게 기다려준 분들이 계시다는 사실에 감동하기도 했고요. 같이 있을 때 그 소식을 들어서, “와 굉장한데?”라고 연발하면서.(웃음)

 

지금 한국에서 굉장한 인기를 얻고 계신데요, 한국어 버전으로 노래를 해보실 생각은 없으신지요?

 

IKE : (과거 공연 때)가장 마지막 앵콜곡을 한국어 버전으로 부른 적이 있었는데요, 그땐 가사를 보면서 노래를 불렀었는데 좀 부끄러웠었죠.

 

작년 이케씨의 목상태가 별로 좋지 않았는데, 지금은 괜찮으신지요?

 

IKE : 지금은 덕분에 상태가 좋아졌습니다.

 

작년 밴드 내에서 여러 가지 힘든 일들이 있었는데, 어떻게 극복을 하셨는지요?

 

MOMIKEN : 후지산 올라갔던 거(웃음).


IKE : (웃음) 좀처럼 의욕이 나지 않았을 때, 유지가 “올라가볼래?”하고 권유해 후지산 등산을 했었는데요. 내려왔을 때 굉장히 힘을 얻었습니다.

 

과거에 5년간 인디신에서 활동을 하신 경험이 있는데요, 라이브 하우스에서 관객을 기다리는 것이 아닌 먼저 찾아가는 콘셉트로 노상 라이브를 많이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었나요?

 

MOMIKEN : 보컬과 베이스가 한여름에 자주 실신해서 쓰러졌었어요.

 

UZ :노상 라이브 졸업 겸 마지막 라이브를 했었는데, 보컬이 초능력으로 날씨를 조종해 마지막 곡에서 엄청난 비를 내리게 했어요. “여러분! 축복의 비가 내리네요!”라며 굉장히 무대를 달아오르게 했었어요. (웃음)

 

IKE :역시 여러 가지 트러블이 생겨요. 장비가 망가지거나, 저희가 (더위에) 쓰러지거나, 술 취한 사람이 시비를 걸거나 하는 많은 일들이 벌어지게 되는데요. 그래도 그런 것들이 즐거워요. 그게 바로 노상 라이브의 묘미가 아닌가 생각 됩니다.

 

그런 경험을 하고 메이저 데뷔를 하게 되셨는데요, 가장 크게 변화 한 점이 있다면?

 

UZ : 인디 시절에는 멤버 4명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활동을 했었는데, 메이저 데뷔 후부터는 멤버 4명과 더불어 많은 스텝들과 동료들이 생긴 덕분에 더 큰 밴드로 만들기 위한 협력을 할 수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변화가 아닐까 싶네요.

 

오늘 라이브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MOMIKEN :모든 팬들이 큰 목소리로 함께 노래를 불러 준 거요! 그리고 “I Love”했을 때 “Spyair!”하고 외쳐줬던 것도 기억에 남네요.

 

작년 베스트 앨범을 발표하고, 올해 첫 싱글 「Rockin' out」을 발표 했는데요,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MOMIKEN :작년 활동을 중지하고 다시 재개 했을 때, 우리가 무엇을 할까를 생각했을 때, “다시 록을 해 나아가자” 라는 의지를 담아 만들게 되었습니다.

 

곡 작업을 하실 때, 유지씨가 먼저 곡을 만들고 모미켄씨가 나중에 가사를 붙이신다고 들었는데요, 유지씨가 상상했던 가사와 가장 이미지가 달랐던 곡이 있다면?

 

MOMIKEN :잠시만요. 뭐더라. 뭐가 있었지? (웅성웅성)

 

잘 생각이 안 나시면 반대로 곡의 이미지와 가장 잘 맞았던 가사가 있었다면요?

 

UZ : 곡의 파워를 더욱더 불러 일으킨 곡은 「虹(무지개)」 라고 생각합니다. 가사를 보고 감동받았었죠. 그리고 깜짝 놀랐던 곡은 「Are you champion? Yeah!! I'm Champion」. 그런 내용을 쓰리라곤 상상도 못했어요.

 

스파이에어가 추구하는 록은 무엇인가요?

 

IKE : 열심히 곡을 만들고 공연을 하고, 2년 전에 한국에서 참여 했던 록페스티벌처럼 큰 야외무대에서 라이브를 하는 것이 저희가 지금 목표로 하는 것들입니다. 그런 것들이 크게 동기 부여가 되는 것 같아요.

 

 

 

질문 작성 : 조아름, 황선업
통역 : 윤주웅
정리 : 윤주웅, 황선업
2015/04 황선업(sunup.and.down1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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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사회에서 전생이 더 중요해진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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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오전 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는 전생을 기억하는 소년 루크가 소개되었다. 방송에서는 전생을 기억하는 사례를 3,000건 이상 수집해온 짐 터커 교수를 조명하기도 했다. 이처럼 원래 전생, 환생, 카르마, 업이라는 개념은 인도 세계관의 핵심이지만 다른 문화권에서도 전생 이야기는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소재이다.

 

『당신, 전생에서 읽어드립니다』는 15년 동안 전생 상담을 해온 박진여 전생 상담가가 쓴 책이다. 책에 실린 이야기는 상담했던 사람의 사례도 있지만 그녀 자신의 이야기도 실었다. 대학에서 임상병리학을 전공하던 저자는 환자의 혈액 채취 실습을 하던 중 특별한 경험을 한다. 이후에 지금의 스승인 법운 선생을 만났고, 현생에서 고민하는 많은 사람에게 전생을 들려주며 상담을 진행해왔다.

 

전생에서의 업이 현생을 결정한다는 게 윤회인지라, 전생을 운명론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저자의 생각은 다르다. 박진여 상담가는 운명이 현생을 결정하는 부분도 있지만, 선업을 하는 건 전적으로 자유의지라고 말한다. 실제로 어떻게 하면 현생에서 선업을 많이 쌓을까에 관한 책이 『당신, 전생에서 읽어드립니다』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자기 수행에 관한 책

 

선생님은 어떤 사람이었나요.

 

저는 독특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신기한가 봐요. 보통 전생을 본다고 하면 무속, 신내림을 떠올리잖아요. 저는 신내림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어린 시절 독특한 영적 경험을 하긴 했지만 대체로 평범하게 살았고요. 어느 시기에 지금 스승님을 만나면서 다른 삶을 살게 되었는데요. 평범하게 살았지만 독특한 영적 재능을 표현하는 사람이 저라고 생각해요. 제 일상은 매우 단순해요. 저 자신도 내면의 본질을 알기 위해 하루하루 기도하며 살고 있습니다. 
 
신내림 전통보다는 선생님은 수행 전통 쪽인데, 지금은 어떤 수행을 하시나요.

 

다양한 수행을 했지만, 저는 절수행을 주로 해요. 인간은 육체로 구성됐잖아요. 물질적 욕망이 누구에게나 있죠. 그래서 안락한 삶을 살고 싶은 그런 욕망을 정화하는 게 수행입니다. 여러 종교에서 저마다의 수행법이 있지만, 저는 욕망을 해소하는 데 고통만한 게 없다고 생각해요. 절수행을 하면 힘들지만, 욕망이 정화되는 느낌을 받아요. 상담할 때도 항상 끝에는 수행하라고 말씀 드립니다. 책에서는 자세히 안 썼지만 정말 중요한 게 스스로의 수행이거든요. 위빠싸나 수행을 많이 권해드리지만, 대부분은 그 사람이 가진 종교적 신앙심에 맞는 공부 방법을 알려드리죠.

 

『당신, 전생에서 읽어드립니다』를 쓰기로 결심한 계기를 말씀해주세요.

 

전생상담을 15년 정도 했습니다. 지금의 시대는 영성이 깊어지는 시기에 와 있습니다. 15년 전과 지금 분위기가 많이 다르거든요. 예전에는 기복적인 내용에 관심이 많았다면 요즘에는 본질을 깨닫고 스스로 각성하려고 오시는 분이 많아요. 수행, 깨달음을 위해서 자신이 어떤 전생을 살았는지에 대해 궁금해하시는 거죠. 전생을 알면 이런 영적인 공부에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즉 전생과 현생에서의 균형을 위해 다른 생에서 살았던 자신의 삶의 이야기를 알면 자기를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저라는 사람의 경험도 중요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제 개인적인 이야기도 책에 담았죠.

 

이 책에서 강조하는 것은 자기 기도, 자기 수행(성찰)이에요. 많은 사람을 상담했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전생에서의 영적 메시지를 그 사람의 마음에 들게끔 다 전할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제 전생 리딩은 내담자가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이는가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내용이 와 닿지 않는 사람에게는 전생 리딩이 성공하지 못했다고 볼 수도 있죠. 결국 중요한 건 자기 마음입니다. 이 책으로 많은 독자가 스스로 명상과, 기도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15년이면 많은 사람을 상담하셨겠네요. 그중에서 어떤 기준으로 책에서 담을 사례를 정했나요.

 

대략 15,000건 정도 했어요. 많은 사람이 평범한 일상을 살 듯, 전생도 대부분은 평범합니다. 다만 책에서는 독특한 사례 위주로 담았어요. 현생에서 정말 정신적으로 지독하게 아팠던 분도 전생을 이해하고 나아진 사례가 있거든요. 독자들이 이런 사례를 보고 위로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전생을 이해하면 자신의 삶도 나아질 수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전생을 알지 않아도 나은 삶이 가능한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하고 계속 힘든 사람도 있거든요. 카르마가 현생의 나만이 아니라 조부와 나의 자식 그리고 전생에서의 인연들과 모두 얽혀 있기 때문이죠. 전생에 각자가 했던 역할을 앎으로써, 현생에 전개되는 삶의 전체적인 흐름을 알고 더 나은 삶을 만들어 갈 수 있는 계기가 된 사례들을 담아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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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을 읽을수록 착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실제로는 어떤 사람이 전생 상담을 받으러 오나요.

 

다양해요. 자신의 영적 단계를 알기 위해서 오시는 사람도 있고, 삶이 너무 고단해서 위로 받기 위해서도 오시고요. 정말 단순하게 호기심 때문에 오시는 분도 있어요. 자기 전생이 뭔지 그냥 궁금해서 오기도 합니다.

 

이런 분이 있었어요. 현생에서 비교적 편안한 삶을 살고 있어서 전생에도 괜찮은 삶을 살았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리딩에서 살펴 본 전생이 안 좋았어요. 그런 사람들은 전생 이야기를 듣고 제게 강력하게 불만을 표현합니다. 순간 매우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불만을 이야기해주면 고맙기도 해요. 하는 상담마다 좋게 끝나면, 어느 순간 저도 모르게 자신도 교만해질 수 있잖아요. 불만이든 조언이든 상담을 하면서 저도 많이 배우고 되돌아보고 생각하게 되죠.

 

전생 하면 운명론으로 기우는 것 같은데, 책에서 쓴 자유의지와 카르마의 울타리라는 말의 차이는 어떤 의미로 설명될 수 있습니까?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자유의지는 나쁜 카르마의 간섭을 받지 않는 상태에서의 범위를 말합니다. 전생에서 선업을 많이 쌓은 사람은 자유의지를 많이 가지고 태어난다고 할 수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카르마의 간섭으로 인해 만들어진 울타리 운명을 가지고 태어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자유의지는 말 그대로 자신만의 것이지만, 운명이나 숙명은 카르마의 벽을 넘어야 하는 숙제를 가지고 있지요.

 

책에도 쓴 사례인데요. 무속인 성향을 타고났지만 의사가 된 사람이 있어요. 무속인과 의사 중에 어떤 게 더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일반적인 사회 통념상 의사와 무속인은 신분의 차이가 있잖아요. 책에 나온 이 분은 병원에서 인턴, 레지던트 할 때 한숨도 잘 수 없었대요. 병원을 떠도는 영 때문에요. 그럼에도 이겨내기 어려운 시련을 자신에게 남아있는 한줌의 자유의지로 극복했어요. 그러니까 누구라도 노력으로 자기 삶과 주변을 바꿀 수 있다고 할 수 있어요. 이런 경우를 보면 자유의지가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느냐를 다룬 게 『당신, 전생에서 읽어 드립니다』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생을 볼 때 맑은 영혼과 탁한 영혼 사이에 차이가 있다고 하셨잖아요.

 

맑은 영혼은 빛이 나요. 아주 맑은 봄날 따뜻한 햇살을 받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이런 분은 전생 리딩도 편하고 명료하게 진행됩니다. 그에 비해서 탁한 영혼은 전생도 잘 안 보여요. 욕심과 교만이 많으면 영혼도 탁해지는데요. 이런 탁한 영혼을 리딩할 때는 안개가 껴서 아무 것도 안 보이는 도로를 운전할 때처럼 힘들고 몸이 무거워져요.

 

책에서 언급한 부분 중에 서양인의 전생을 이야기한 부분도 흥미로웠습니다.

 

영혼은 그 사람의 전생의 습(習)에서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습기習氣는 그 사람의 기억, 습관에서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영혼도 그런 생물학적 환경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죠. 서양인 전생은 동양인보다 명료하게 리딩 되죠. 그 사람 본인 외에 개입된 인연법이 많지 않은데, 한국이나 중국, 일본과 같은 동양 문화권에서는 서양보다 가족의 영적 유대감이 많이 개입돼 있어요. 전생을 보면 그 사람이 가진 영적 환경의 주변이 많이 보이죠. 어떤 문화권이 좋다 나쁘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문화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는 차이가 있습니다. 동양은 정착생활을 하는 농경사회였고, 유교 영향으로 조상을 받드는 분위기가 강했으니까요.

 

전생이 있다면, 한 번의 전생이 아니라 여러 번의 전생이 있을 텐데요.

 

사람에게는 자신의 영적 진화를 위한 수백 수천 생이 있다고 하면, 제가 리딩하는 것은 그 사람의 현생의 삶에 가장 영향을 많이 미치는 전생입니다. 전생이야기는 마치 시-소와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삶과 삶들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서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된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죠. 예를 들어, 지금 고민이 많고 어려움이 많아서 자신의 노력으로 그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야 할 사람에게, 이생에서 경험하는 일들이 그때 생과의 균형을 위해 스스로 선택하고 온 삶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전생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제게는 소중한 질문인데요. 모든 것이 기회의 시간으로 꽉 차있다는 것을 매순간마다 느껴요. 그래서 정말 착하게 살아야겠구나, 진짜 착하게 살아야겠구나, 라는 생각이 가장 많이 들어요. 그래서 오히려 불편할 때가 있어요. 혹시나 제 작은 행동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까 해서요.

 

나쁜 짓 해도 벌 안 받는 것 같지만

 

책을 읽는 행위도 선업에 도움이 될까요?

 

독서가 선업 자체라기보다는 선업을 만드는 지혜를 갖게 하죠. 과학적으로도 책을 많이 읽으면 뇌신경 세포가 활발해진다고 하잖아요. 영적으로도 책을 많이 읽으면 생각이 깊어지겠죠. 명상이나 수행과 똑같아요. 책을 많이 읽는 만큼 세계를 받아들이는 시선이 넓어지기 때문에 선업에 관한 지혜가 깊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불교, 인도 세계관에서는 카르마를 끊는 게 해탈이잖아요. 선생님 목표를 해탈로 볼 수 있을까요?
 
감히 해탈을 바랄 수 있을까요? 해탈을 하겠다는 생각 자체가 저에게는 큰 욕심입니다. 숭산 큰스님도 오직 모를 뿐이라고 말씀하셨잖아요. 해탈하겠다는 마음보다는 하루하루 이 순간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다짐으로 살아갑니다. 이런 자세가 해탈하겠다, 윤회에서 벗어나겠다는 것보다 저에게는 소중해요.

 

혹시 전생 리딩하면서 해탈한 분의 흔적도 보시나요. 대승불교에서 보살이라는 존재는 해탈했으나, 대중 구제를 위해 피안으로 가지 않은 존재인데요.

 

해탈한 분은 흔적이 없어요. 일반적으로 생각하기에 해탈하려면, 주로 악업을 쌓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나쁜 일을 안 하면 된다고요. 그런데 윤회를 하지 않으려면 악업, 선업을 떠나서 인연 자체가 없어야 합니다. 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아야 한다는 뜻이죠. 누군가를 도와줬다면, 그 도움을 다시 받기 위해 환생을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완전한 해탈을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래서 수행자들이 모든 속세의 인연을 끊고 은둔하죠. 그러다 마지막 순간에는 곡기도 끊고 미련 없이 몸을 벗지요. 말이야 쉽지 이렇게까지 하기는 참 힘든 거 같아요.

 

해탈에 관해서 돈오점수냐 돈오돈수냐 하는 논쟁이 있습니다. 전생 상담하며 느낀 건, 돈오점수에 더 많은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한 시절에 대오각성을 하더라도, 그 이전에는 무수히 많은 인연법이 있었어요. 수행을 하면 그 시간 동안 수많은 인연의 빚이 생기거든요. 부처님도 수행하실 때 여인이 바친 우유를 마셨잖아요. 그런 인연의 빚을 정리해야 하는 게 점수이지 않을까요. ‘해’, ‘탈’ 이렇게 단 두 글자로 표현할 수 있지만 실은 해탈은 굉장히 어려워요.

 

전생이 있다고 가정해도 이런 이야기가 가능하지 않을까요. 전생에 내가 남을 이용해서 잘 살아서 다음 생에 고통받는다고 해도, 현생의 내가 다음 생의 나라는 기억으로 이어지지 않으니까 상관 없다고요. 혹은, 나쁜 일 해도 벌 안 받더라, 이런 이야기도 있잖아요.

 

아니에요. 요즘은 카르마 순환이 정말 빨라졌어요. 통신망, 교통망의 발달과도 영향이 있는데요. 이전 시대에는 농경 사회여서 한 사람이 한 곳에서 태어나 쭉 거기서 살았어요. 그때에는 경험치도 단순하고, 만나는 사람도 적었어요. 인과관계가 단순하겠죠. 지금은 과거에 100번의 생에서 만났던 인연을 한번에 다 만날 수 있는 시대에요. 그만큼 업이 빨리 정리되죠. 나쁜 일을 했지만 잘사는 것처럼 보여도, 이제는 그 사람이 현생에서 대가를 다 받는 경우가 많아요. 다음 생까지 가지 않아도 돼요. 자신에게 혹은 자신의 가족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긴다거나 하는 식으로 카르마의 흔적이 연결됩니다. 그러니까 지금이야말로 자기 중심이 바로 서지 않으면 더 쉽게 흐트러질 수 있는 시대에요. 착하게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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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전생에서 읽어드립니다박진여 저 | 김영사
전생을 읽는 신비한 능력. 단 1분이면 당신의 전생 정보를 읽어들인다. 15년 동안 1만 5천 명의 전생을 읽고 상담해온 박진여 선생의 진정한 삶을 위한 메시지. 지금 당신의 문제는 지금 당신이 만든 것이 아닐 수 있다. 사랑, 결혼, 건강, 직장, 가족과 인간관계, 당신의 질문에 전생은 어떻게 조언하고 있는가. 이번 생에 온 이유, 더 나은 삶의 길, 전생을 아는 것으로 도움 받을 수 있다. 우리의 인간관계와 선택의 기준, 삶의 목적에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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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신용한 “스펙보다 직무 역량이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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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의 신용한 위원장이 청년들을 위한 두 번째 해법을 제시했다. 『청춘 1교시』에 이어 『대한민국 청년 일자리 프로젝트』를 출간한 것. 취업이라는 거대한 장벽에 가로막혀 헤매고 있는 청춘들을 위한 생생한 조언은 이번 책에서도 어김없이 이어진다. 기업인 출신 행정가로서 저자가 들려주는 현장의 정보들 역시 빛을 발한다.

 

『대한민국 청년 일자리 프로젝트』는 청년들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는다. “꿈과 비전을 말하는 것은 너무 한가한 소리라는 것”을 인정하고 “취업이 안 되는 이유는 청년들보다 기성세대의 몫이 크다”는 사실도 받아들인다. 그렇기에 신용한 위원장은 ‘지금 우리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오랫동안 고민해왔고, 자신이 찾은 해결책을 『대한민국 청년 일자리 프로젝트』 안에서 들려주고 있다.

 

취업이라는 좁은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갖추어야 할 것은 무엇인지 알려주는가 하면, 취업만이 꿈을 이루는 유일한 방법인지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기도 한다. 인문계 대학 졸업생의 90%가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대기업의 신입 채용 비율은 전체 구직자의 8.7%에 불과하며, 평균 근속 연수는 (대기업 기준) 10년에 그치는 것이 현실이다. 저자는 각종 통계 자료를 통해 이러한 사실을 보여주면서 ‘상황이 변했다면 우리의 계획에도 수정이 필요하지 않은가?’ 하고 조심스럽게 묻는다.

 

그는 개인적 차원의 변화를 요구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구조적 차원의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안내한다. 취업을 위해 전략적 사고와 야성을 가지고 자신의 능력과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한편 ‘준비된 당신을 위한 각종 지원책들이 마련되어 있다’고 귀띔해 주는 것이다. 『대한민국 청년 일자리 프로젝트』는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 중소기업청 등을 비롯해 여러 지자체에서 시행중인 국내외 취업?창업 지원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소개하고 있다. 그 정보들에만 귀 기울여도 현실을 타개할 방법을 모색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 청년 일자리 프로젝트』을 통해 신용한 위원장이 건네고자 한 것은 위로와 격려만이 아니었다. 현재의 상황에 대해 면밀히 분석한 결과를 들려주었고, 그 안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선택에 대해 알려주었다. 청년들이 힘겹게 맞서고 있는 현실은 어떤 모습인지, 우리 사회는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말하고 있는 것이다. 냉철한 인식과 따뜻한 응원이 담긴 저자의 이야기는 <채널예스>와의 인터뷰에서도 계속 이어졌다.

 

힐링보다 솔루션을 전하고 싶다


청년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해 다양한 곳에서 활동하시면서 많이 바쁘실 것 같습니다. 그런 와중에도『대한민국 청년 일자리 프로젝트』를 쓰기로 결심하신 동기가 궁금합니다.


현장에서 청년들을 만나보면 정보가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항상 듣습니다. 정보가 넘쳐나는 세상이지만, 자신에게 맞는 정확하고 적확한 정보는 부족하다는 의미일 테지요. 그래서 청년들에게 실질적이고 구체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들을 정리해 보고 싶었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힐링에 대한 이야기들이 참 많았는데, 그것이 솔루션으로 이어지지는 않았거든요. 힐링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고 존재해야 하는 것이지만, 그것보다 더 청년들에게 필요한 건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해결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10년째 멘토링 운동을 해오면서 경험으로 터득하게 된 것이 있습니다. 큰 줄기를 잡아주고 현실을 직시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자신의 스타트라인을 제대로 알고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으니까요.

 

위원장님께서는 전문경영인이자 청년창업멘토링협회 총회장이시기도 합니다. 청년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저 역시 대학을 다니면서 가치관의 혼란을 겪었습니다. 그래서 기회가 된다면 많은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조금이라도 시행착오를 줄이고 압축적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말이죠. 그러다가 30대 초반의 나이에 사장이 됐고 생활도 안정됐어요. 그래서 청년들을 위해 봉사하고 싶은 마음에 JA코리아(Junior Achievement Korea)를 찾아갔습니다. 당시 민족사관고등학교와 서울여상 등에서 경제 교사로 봉사했는데, 조교처럼 저를 도와줬던 대학생 자원봉사자들이 있었습니다. 그 친구들과 매달 같이 만나고 대화하다 보니까 자신의 친구들을 데리고 오더라고요. 처음에는 12명이었던 인원이 자연 발생적으로 늘면서 25명 이상이 됐어요. 점점 그 아이들을 포기하면 안 될 것 같은, 그러면 뭔가 죄를 짓는 것 같은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같이 엠티를 가서 밤샘 토론을 하기도 했죠. 그렇게 시작된 만남들이 이제는 포기할 수 없는 무언가가 되었어요.

 

청년들과 소통하는 비결이 있으신가요?


첫 번째는 절대적으로 비밀을 지키는 겁니다. 그렇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를 전하게 되면, 더 이상 청년들이 마음을 열지 않으니까요. 두 번째는 충고를 하지 않고 오직 경험만을 공유하는 건데요. 대부분의 경우 좋은 이야기를 들려주다보면 가르치려고 들고 자기 생각을 강요하게 돼요. 그러면 아무리 좋은 분의 이야기라 하더라도 잔소리로 느껴지기 시작하면서 마음의 문이 닫힙니다. 결론은 스스로가 내리도록 해야 해요. 그럴 때 함께 나눈 이야기가 솔루션이 되어서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단체로 토론을 할 때는 마지막에 3분 동안 침묵하는 시간을 갖고, 자신이 생각한 바를 한 단어로 정리하게 합니다.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 친구가 무엇을 느꼈는지 알 수 있어요.

 

10년 동안 멘토링 운동을 지속해 오신 만큼, 남다른 시각을 갖고 계실 것 같습니다.


멘토링은 멘토와 멘티가 끊임없이 상호 교감하면서 함께 성장해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멘토링이라고 하면 멘토가 일방적으로 무언가를 주어야 할 것처럼 느끼는데, 제가 해보니까 전혀 그렇지 않더라고요. 함께 커 나가는 거죠. 그래서 저는 멘티들에게 ‘너희 덕분에 내가 성장한다’고 말하곤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멘토링의 개념을 정확히 알고 말하는 사람이 많지 않죠. 불특정 다수에 대한 멘토링이라는 건 없습니다. 불특정 다수와 어떻게 상호 소통할 수 있겠어요? 한 사람 한 사람과 가슴으로 나누는, 그런 움직임이 생겨났으면 좋겠습니다.

 

기업의 변화, 스펙 아닌 직무 역량을 요구하게 될 것


『대한민국 청년 일자리 프로젝트』에서 청년 실업을 해결할 다양한 방법을 알려주셨습니다. 정부 차원의 다양한 지원책도 소개해 주셨는데요. 어떤 내용들이 있나요?


취업, 창업, 해외 진출에 대한 정부의 정책과 제도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들이 실려 있습니다만, 저는 큰 방향에 대해서 꼭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청년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취업이고, 취업에 있어서 제일 불만을 가지고 있는 건 스펙인데요. 지난 1월에 저희가 30대 그룹 인사 담당 임원들을 상대로 간절하게 호소한 바 있습니다. 소위 스펙이라고 일컫는 요소들을 모두 배제하고 직무 역량 위주로 채용해 달라고 말씀드린 거죠. 이러한 노력들이 정부 차원에서 계속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 어떤 법적 제도보다 중요한 것이죠. 우리는 앞으로의 기업 채용이 반드시 직무 역량 위주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전 세계적으로 경쟁이 이루어지는 상황에서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스펙의 비중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청년들은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조언해 주세요.


스펙이 아닌 직무 역량 위주로 변화한다는 걸 믿고 불필요한 스펙을 쫓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청년들 입장에서는 각자 다른 채용 방식을 가진 기업들을 모두 만족시킬 수는 없죠. 그렇다고 하나의 기업만을 목표로 준비하는 것도 불안하고요. 그러니까 거꾸로 자신의 킬러 콘텐츠, 킬러 스킬, 킬러 애플리케이션은 무엇인지 파악해야 합니다. 내가 어떤 존재인지를 파악하고 전면에 내세우는 게 더 빠른 길이라는 거죠.

 

청년 실업 문제 원인 중 하나로 한국의 대학 현실을 꼽으셨습니다. 앞으로 대학 구조 조정은 어떻게 이루어질까요?

 

교육 역시 산업체에서 요구하는 직무 능력 위주로 바뀌어 나갈 겁니다. 물론 순수학문 이외의 일반적인 부분에서 이루어질 거고요. 산업 현장에서 요구되는 수위에 맞게 교육이 변화할 거라는 이야기입니다. 지금의 현실에서는 졸업 후에 재교육을 받아야 현장에 투입될 수 있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까. 전경련 발표에 따르면 재교육에 드는 비용이 6100만원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처음부터 직무 역량에 맞는 교육을 하자는 것이고, 현재 커리큘럼 자체를 바꾸어 나가고 있습니다. 완전히 자리를 잡는 데까지는 시간이 걸리는데요. 작년까지 1900개 회사를 대상으로 했고 올해에는 3,000개, 그리고 2017년까지 1만개 회사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시간은 걸리지만 직무 역량 위주로 교육도 바뀌어 간다는 걸 믿고, 자신을 개발하는 쪽으로 노력해도 괜찮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사회 구조적으로 변화가 필요한 부분도 있는데요. 청년위원회에서는 어떤 노력들을 기울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청년들의 일자리는 구조적으로 꼬여온 부분이 있죠. 취업을 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는 경우가 있고, 반면에 일자리는 있지만 청년들이 좋아하는 일자리가 아닌 경우도 있습니다. 지금도 구인을 하고 있는 일자리가 26만개 정도 있습니다. 그런데 청년들이 가지 않습니다. 좋지 않은 일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발전시켜서 청년들이 원하는 일자리를 만들어 달라는 목소리를 내고 있고요. 노사정이 사회적 대타협을 이루어서 새로 진입하는 청년들에게 기회를 줘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일례로 대기업 정규직과 중소기업 비정규직의 임금은 3배 정도 차이 납니다. 이런 격차를 줄여달라는 사회적 호소도 계속 하고 있어요. 일부 어른들은 청년들에게 왜 대기업만 바라보냐고 말씀하시는데, 격차가 크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는 거죠. 이런 구조적인 부분들을 혁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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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높이를 낮추지 말고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라


창업을 지원하는 방안들은 무엇인가요?


현 정부 들어서 창업에 대한 마중물을 열심히 부은 덕분에 분위기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코스닥과 코스피 시장에 불이 붙기 시작했죠. 그리고 제도적으로 준비된 창업을 계속 강조하고 있습니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창업을 망설이는 사람들이 많은데요. 그래서 3자 연대보증을 해소하는 일들을 했고, 실패했을 때 자신 있게 재도전할 수 있도록 재기 창업자 펀드를 국가 단위에서 확충하고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취업이 어려우니 창업으로 눈을 돌리라는 이야기가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취업이 어렵다고 등을 떠미는 게 아닙니다. 새로운 시각으로 도전하라는 의미죠. OECD 선진국 대부분이 국민소득 2만 달러에서 3만 달러로 넘어갈 때 창업으로 돌파구를 마련했습니다. 우리나라도 지금까지는 제조업 경쟁력을 기반으로 세계 시장에서 살아남았는데 이제 한계에 부딪혔습니다. 전 세계 500대 시가총액 기업 중에 대한민국 기업은 3개뿐이에요. 지난 해 6개에서 절반으로 줄어들었죠. 반면에 중국 기업은 20개에서 46개로 증가했습니다. 이제는 제조업을 기반으로 경쟁력을 확보하는 게 쉽지 않은 것이죠. 경쟁력이 있다고 해도 인건비가 싼 나라에 공장을 건설하다 보니 일자리나 공존 경제의 개념으로 볼 때 한국과 맞지 않습니다. 그러니 창업이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은 창업을 통해서 매년 300만 개의 신규 일자리가 생깁니다. 대한민국도 그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고, 가야만 합니다. 그래서 창업에 대해 강조하는 거고요.

 

최근 청년들의 해외 진출을 독려하는 움직임도 있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상대적으로 양질의 일자리도 많이 있다는 부분에서 해외 진출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카타르 항공에는 약 2,100명의 승무원이 있는데, 그 중에 무려 1,000명이 한국 사람입니다. 반면에 카타르에는 북한 사람들도 2,500명이 있는데요. 월드컵 경기장을 짓는 노동자들이에요. 북한은 일용직 노동자들을 보내고 있고, 우리는 승무원을 보내고 있는 겁니다. 질 높은 서비스업으로 눈을 돌려서 보자는 의미죠. 그러니까 해외 진출에 대한 독려를 곡해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영점 조절 실패에 대해 지적하신 부분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많은 구직자가 대기업을 원하지만, 실제로 대기업에서 고용할 수 있는 규모는 한계가 있는데요. 지금 청년 실업 문제가 심각한 원인 중에서 구직자 쪽의 문제는 무엇일까요?


취업에서 자주 이야기되는 것이 ‘미스 매칭’입니다. 그런데 구직자의 눈높이, 즉 기대 심리와 와 사회적 기준의 차이가 미스 매칭이 아닙니다. 자신의 준비된 상태와 사회적 기준의 차이가 미스 매칭인 거죠. 그런데 자신이 어디까지 준비되어 있는지를 모른다면 어떻게 미스 매칭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최우선 되어야 할 것은, 자신의 위치가 어디인지를 알아야 하는 겁니다. 현실에서 내가 어느 지점에 속해 있는지를 봐야 하죠. 많은 사람들이 대기업, 공공기업, 공무원을 선호합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대기업에서 1년 동안 채용하는 인원은 100명 중에 8.6명이에요. 계열사까지 포함해서 말이죠. 그리고 그 비율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내가 100명 중 10명 안에 포함되는가를 생각해 봐야 하는 거죠.

 

영점을 조절한다는 건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는 일이군요.

 

물론 국가는 청년들이 선호하는 일자리의 채용 비율을 늘리기 위해 당연히 노력해야 하지만, 당장 취업을 눈앞에 두고 있는 입장에서는 현재 상황을 간과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영점 조절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스타트 라인을 정확히 알자는 말과 같습니다. 영점 조절이 되지 않은 총으로 아무리 사격해 봤자 목표물을 맞힐 수 없으니까요. 이건 눈높이를 낮추라는 의미가 아니에요. 어쨌든 자신이 속해 있는 판에서 승부를 볼 수밖에 없는데, 그러려면 지극히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것으로 승부를 해야 한다는 거죠.

 

청년은 보호나 동정의 대상이 아니다


창업을 목표로 하고 있다면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요?


현재 창업자의 63% 이상이 준비되지 않은 창업을 합니다. 평균 준비 기간은 8.7개월이고요. 창업이라는 게 고용인(employee)에서 고용주(employer)가 되는 어려운 작업인데, 불과 몇 개월의 생각과 아이템으로 하려고 한다면 성공 확률은 분명히 떨어집니다. 실패할 확률은 이미 나와 있죠. 벤처 창업 기업 100개 중에 5개 정도만 성공한다는 통계가 있어요. 그렇지만 실패 확률이 높다고 해서 도전을 회피할 필요는 없습니다. 성공하는 5% 안에 자신이 포함되어 있으면 되니까요. 성공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철저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결코 아이템이나 아이디어만으로 승부를 보려고 하지 말라는 이야기예요. 평소에 차곡차곡 준비를 해 놓아야 하죠. 창업자가 되려면 기본적인 매니지먼트에 대한 지식들이 있어야 합니다. 전문가가 될 필요는 없지만, 전문가에게 맡기더라도 기본적인 것을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거든요. 그래서 창업 준비를 철저히 하라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다행히도 우리나라에서는 창업 준비에 있어서 거의 대부분 무료로 교육 훈련을 받을 수 있어요. 서울 벤처 인큐베이팅 센터, 창업진흥원, 중소기업청의 창업사관학교를 비롯해서 각종 지자체에서 실시하고 있는 교육들이 거의 무료입니다. 미국에서는 창업을 준비하는 데 2만 달러 이상이 든다고 해요.

 

창업을 배울 수 있는 가장 좋은 학교는 직장이라는 말씀도 하셨습니다.


직장에서 일하다 보면 수익을 창출하는 방식을 배울 수 있고, 아이템의 적합성 여부도 판단할 수 있습니다. 그런 생각으로 직장 생활을 하면서 창업을 준비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성공 확률은 현격하게 차이가 나죠. 그래서 직장은 최고의 창업 스쿨이라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조언은, 비즈니스 아이덴티티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왜 창업을 한 것인지, 그 목적이 무엇인지, 계속 고민을 해야 슬럼프나 매너리즘에 빠지는 것을 줄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세요?


결코 청년을 보호나 동정의 대상으로 바라보지 말아 달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청년들을 보호나 동정의 대상으로 보면 우리가 그들에게 베풀어 준다고 생각하게 되고, 청년들에 대한 지원을 사회 비용으로 인식하게 되거든요. 청년에 대한 지원은 미래 세대의 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투자’라는 관점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청년 세대의 문제를 곧 부모 세대의 문제로 생각하고, 청년 문제는 백년지대계라는 관점으로 접근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각종 연금에 대한 논의들만 봐도, 청년들이 취업을 못하면 나중에 부모님 세대에게 어떻게 연금을 지급할 수 있겠습니까. 주거비용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청년들의 78.9%가 주거비를 부모님께 받아서 지불하고 있습니다. 청년들의 문제가 곧 부모님 세대의 문제가 아닌 부분이 없어요. 그러니 청년들을 도와준다는 생각이 아니라,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투자로 생각하고 기회를 열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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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청년 일자리 프로젝트 신용한 저 | 가디언
공무원 준비 중인 많은 청년들, 수없이 많은 이력서를 써서 내고, 부모님께 손 내밀어 용돈 타는 게 죽을 만큼 미안한 청춘, 틈틈이 아르바이트를 하지만 언제까지 해야 할지 막막한 청춘들을 위한 현실적인 팁과 조언들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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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수경 “아들과의 연애는 이제 끝내는 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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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뭐 이래?” 남자 독자들이라면 이런 생각을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엄마’라는 타이틀로 이 세상을 살고 있는 독자라면, 누구라도 수긍할 제목이다. 김수경 저자는 어쩌다 『아들과의 연애를 끝내기로 했다』를 쓰게 됐을까. 가능하지도 않은 일을 시도하겠다는 것인데, 과연 성공했을까?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잡지기자, 편집장으로 살아온 김수경 저자는 “나를 위해, 아들을 위해 이제는 연애를 끝내야겠다”고 다짐하고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 속내를 살펴보면 아들을 다른 방법으로 사랑하겠다는 결심이다.

 

책 만드는 일에 미쳐 워킹맘으로 23년을 살아온 김수경 저자는 “우리 아들은 늘 부재 중인 엄마,아빠 덕분에 매우 자유롭게, 자기 마음대로 컸다”고 말한다. 치맛바람은커녕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성적표를 한 번도 보지 않았다는 그녀는 스스로를 ‘천하에 둘도 없는 바보 천치 엄마’라고 칭한다. 때문에 세상의 엄마들을 향해 무슨 대단한 교훈을 남기고자 책을 쓴 게 아니다. “나 같은 엄마도 있다고. 이렇게 허술하게 키웠는데도 아이는 잘 컸다고. 당신은 잘하고 있다”고 다독이고 싶어서다.

 

이런 엄마가 되어야지, 그랬었다. 아이랑 한편 먹어주는 엄마. 공부 좀 해라, 이다음에 뭐가 되려고 그러느냐, 너는 대체 꿈이 뭐냐 하면서 묻거나 따지지 않는 엄마가 되는 걸로! 가뜩이나 살기도 어려운 세상, 엄마까지 그러면 아이는 누굴 믿고 사나. 그래서 나는 그냥 아이가 편히 기댈 수 있는 소파 등받이 해주고, 아이랑 한편 먹고 놀아주는 친구처럼 해주자, 결심했었지. (63~64쪽)

 

내버려둬도 자기 세계에서 견디는 법을 깨닫는다


책의 시작이 특별하다. 아들이 엄마가 차려준 밥을 제대로 먹지 않자 화가 나서 싸우다가, 가출을 한 후 쓴 책이다.

 

사실이다(웃음). 어느 날 아들이 학교 급식을 못 먹겠다면서 도시락을 싸달라고 하는 거다. 그래서 그동안 일을 하느라 시간이 없어서 못해줬던 걸 다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보상심리였던 것 같다. 아들이 먹는 밥에 목숨을 걸었다(웃음). 사람들이 나보고 미쳤다고 할 정도였다. 다른 식구들은 아무 거나 챙겨주면서 아들 밥은 임금님 상처럼, 잡지에 나오는 음식처럼 차려줬다. 그런데 번번히 아들이 못되게 구는 거다. 어제 먹은 게 소화가 안 됐다는 등. 나는 몸이 부서지도록 자기 밥을 차리는데, 아들은 너무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것 같았다. 책에도 썼지만 나의 집착이 부른 짝사랑의 쓴맛을 본 거다. 이제는 그 사랑에서 벗어나야 내가 살 수 있고 아이가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니, 아들이 부럽더라. 주인공이 된 실제 아들은 책을 읽었나?


내심 읽어주기를 바랐는데, ‘내 이야기를 내가 어떻게 읽냐?’면서 안 읽겠다고 하더라. 뭐 내가 안 볼 때 혼자서 읽었을 수도 있지만(웃음). 아들들은 정말 멋이 없다. 책을 읽으면, ‘내가 왜 이렇게 자기 밥을 차리면서 유난을 떨었는지’ 눈치를 챌 수 있을 텐데 말이다.

 

출간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독자들의 반응이 뜨겁다. 벌써 2쇄에 들어갔다고.


책을 다 쓰고 막 인쇄에 들러가려던 찰나에 ‘도저히 책을 못 내겠다’고 생각했었다. 괜히 출판사에 민폐를 끼치는 거 아닌가 싶어서. 걱정이 돼서 잠이 안 왔다. 결국 내긴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쓰길 잘한 것 같다. 잘 읽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공통점이 “책 읽고 나서 울었다”, “내 부모를 생각하게 됐다”는 말이었다. 인상적인 리뷰도 하나 있었다. “나보다 이렇게 아이한테 못한 엄마도 있구나. 내가 저자보단 아이한테 잘해준 것 같다.”는 이야기였다(웃음). 뜨끔했다. 내가 희생을 해서 그 분이 위로를 받았으니, 나 또한 고마웠다(웃음).

 

서문의 글이 인상 깊었다. “이 원고가 다 끝나갈 무렵이면 ‘그렇게까지 사랑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찾게 되지 않을까?”라고 썼다.


정말 그렇게까지는 사랑하고 싶지 않아서 쓰기 시작했는데, 책을 쓰다 보니 정리가 됐다. 지금 아들이 스물 셋이다. 몇 년 후면 나와는 정말 멀어질 텐데, 내 입장에서는 사랑해서 잘해주는 거지만 아들 입장에서는 간섭을 받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더라. 몇 달 전, 아들 친구들이 집에 놀러 왔는데 정말 실감이 났다. 벌써 저렇게 큰 아이들인데, 지금 내가 애들한테 “맥주를 그만 마셔라”라고 말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더라(웃음).

 

29세에 결혼하고, 워킹맘으로는 23년을 살았다. 아들이 대학교에 갈 때까지 성적표를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했는데, 갑자기 아들에게 잘해주기 시작했을 때, 아들이 당황하진 않았나?


다행히 어색해하진 않았다. 그럴 수 있었던 게 같이 있는 시간은 많이 부족했지만, 서로 끊임없이 대화를 했다. 진지한 이야기는 안 하고 항상 쓸데없는 이야기만 했던 것 같다. 대화는 잘하는 편이었으니까, 엄마의 갑작스러운 변화를 낯설어하지 않았다. 도시락을 싸주기 시작할 때,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너에게 지금부터 잘해 줄거라”라고. 그랬더니 아들이 “그러던가”라고 하더라(웃음). 되게 자연스러웠다.

 

매달 철야를 해야 했던 잡지기자 엄마, 3살 때까지 홀로 유학생활을 한 사진학과 교수인 아빠 밑에서 자랐는데 아들이 꽤 모범생 기질이 있는 것 같다.


나도 그게 참 신기하다. 아들 말로는 “엄마가 시시콜콜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했다면, 나는 삐뚤어졌을 거야”라고 하더라. 자율의지를 주고 그냥 놔뒀던 게 오히려 아이에겐 나은 방법이었던 것 같다. 아이를 너무 엄마가 좋아하는 그림으로 이끌다 보면, 아이도 고달프지만 엄마도 고달프다. 아이들은 그냥 내버려둬도 자기 세계에서 견디는 법을 깨닫는 것 같다. 이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서도 책을 썼다.

 

시간이 없다는 게, 때로는 약이 되기도 한다


아이에게 많이 방관한 편이지만, 그래도 아이를 보는 눈은 엄마에게 있지 않나?


아들을 보면 문과적인 성향이 다분한데, 아들은 극구 아니라고 한다. 나는 아들이 정말로 대학에 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어릴 때부터 본 바로는 아들이 넥타이를 매고 어디를 출근할 스타일이 아니었다. 자유분방한 아이라 그렇게 살 수는 없을 것 같아서 틀 속에 매이지 않았으면 했다. 그냥 사진기를 하나 들고 전세계 여행을 해도 좋고, ‘어떻게 해야 한다’를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했다가 아들한테 맞아 죽는 줄 알았다(웃음). 아들 말이 요즘 아이들은 다 꿈이 없단다. 공부를 하느라 꿈을 못 찾아서, 대학에 가서 찾아야 한다고 하더라. 그래서 난 속으로 생각했다. “그 길은 거기서 안 찾아질 걸”하고(웃음).

 

아이를 키우는 최고의 방법이란, 없는 것 같다. 부모가 무조건 아이와 같이 있는다고 다 좋은 것만이 아닌 것처럼.


시간이 없다는 게, 때로는 사는 데 약이 되기도 한다. 시간이 너무 많으면, 서로에게 기대고 바라는 게 많아진다. ‘나는 너랑 뭔가를 같이 하고 싶은데, 왜 너는 같이 해주지 않아?’라고 불만을 갖게 된다. 그런데 시간이 없으면 그런 걸 요구할 상황이 안 된다. 우리 부부 관계는 조금 독특했던 것 같다. 나도 사는 게 바빴고 남편도 바빴다. 엄마들은 주말에 날씨가 좋으면 아이랑 아빠랑 나들이를 가고 싶어 하지 않나? 나 역시 그랬다. 그런데 남편이 바쁘다고 못 간다고 하면, 다른 엄마들은 화를 내겠지만 나는 그냥 아들이랑 둘이 나가곤 했다. 모든 걸 다 같이 해야 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게 결국 아이, 남편에게 적용된 것 같다. 그래서 관계에 있어서 트러블이 적었다. 알콩달콩한 면이 조금 부족하긴 했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내가 그러지 않았다면 머리 뜯고 싸웠을 것 같다(웃음).

 

책을 읽으면서, 자녀들도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 엄마들을 좀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그런데 아이들이 이런 책을 읽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웃음).


대학생, 중학생 조카들이 이 책을 읽고는 “읽기에 괜찮았다”고 하더라. 책을 내고 나서 여동생들이랑 이런 이야기를 했다. “애들이 이 책 읽고 나서 괜히 엄마를 너무 배려하고 그러면 어떡하지?” 그런데, 애들은 읽었을 때 잠깐 뿐이지, 지금은 아무 생각도 안 한다(웃음). 책을 읽지 않았을 때보다는 조금 생각은 하겠지만, 애들은 애들이다.

 

밑줄을 그은 문장이 있었다.“나를 아껴주지 못했던 것도 미안하다. 울 엄마 아빠에게는 나도 참 귀한 딸일 텐데… 나는 내 아들만 생각하느라 나를 내팽개치고 살았다. 걔한테 좋은 엄마가 되겠다는 생각만 하느라 그랬을 것이다.”(276쪽)아들을 생각하면서 이 책을 읽다가 내 엄마가 생각났다.


오랫동안 나랑 같이 일하는 후배들이 요즘 나를 보면 그렇게 놀라워한다. 예전에는 정말 화장도 안 하고 선머슴처럼 하고 다녔기 때문에, 내 변화를 낯설어 한다(웃음). 언젠가 엄마 생일날 온 식구들이 모였는데, 여동생들은 정말 예쁘게 차려 입고 왔는데 나만 화장도 제대로 못하고 왔더라. 나도 우리 엄마에겐 귀한 딸인데, 뭘 그렇게 다 팽개치고 살았나 싶었다.

 

책 속에 명언들을 많이 소개했다. 지금, 가장 와 닿는 글귀는 무엇인가?


파블로 피카소가 한 말이다. [엄마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네가 군인이라면 넌 장군이 될 거야.” “네가 수도승이라면 넌 교황이 될 거야.” 나는 화가였고, 피카소가 되었다.]정말 감동이었다. 나처럼 뒤늦게 후회하지 말고 아이의 최고의 응원자가 되어주라고 말해주고 싶다. 잘 못해도 잘하고 있다고 이야기해주고, “너는 잘할 수 있을 거야”라고 말해주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다.

 

아이에게 화가 날 때, 어떻게 대처하는 게 가장 현명할까?


일단 화가 나는 순간에 잠깐 숨을 멈추고 자리를 피하는 것밖에 없는 것 같다. 물리적인 방법을 써야 한다. 소리를 지르고 싶은 순간에 잠깐만 장소를 벗어나야 한다. 나는 다행히 아이와 하루 종일 붙어있지를 못했으니까 가능했다. 화가 나는데 제어를 해야 한다고 싶으면, 일단 뒤를 돌아서 숨을 한 번 고르는 게 필요하다. 물론 이게 정말 힘든 일이다(웃음). 하지만 조금씩 연습하고 훈련하면 조금은 나아질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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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노릇을 너무 잘하려고 하는 엄마들에게

 

요즘은 엄마 블로거들이 대세다. 매일매일 아이의 성장일기를 기록하는 엄마들도 많다. 가끔은 너무 과하다 싶을 정도의 애정을 표현하는 엄마들도 많은데, 지켜보는 입장에서 어떤 마음이 드나?


과하다는 생각이 아주 안 드는 건 아니지만, 그냥 그게 엄마들을 살게 하는 힘인 것 같다. 내 아이가 가장 예쁠 때, 그 순간을 담고 기록하는 게 엄마들에게는 숨 쉬는 시간이 아닐까 싶다. 내가 이런 걸 진짜 못해서 정말 부럽고 아쉽다.

 

워킹맘들이 특히 이 책에 많이 공감할 텐데, 어떤 말을 해주고 싶나?


죄책감을 갖고 집에 들어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엄마도 바깥에서 충전을 해야, 집에 들어가서도 불만 없이 살림을 하고 아이를 돌볼 수 있다. 아이 것은 부족함 없이 사주면서, 자기 옷은 하나도 안 사는 엄마들이 많다. 제발 그런 바보 같은 생각은 하지 말라고 전해주고 싶다. 나를 위한 소비도 하고 나를 위한 시간도 보내야, 불만이 좀 가신다. 그래야 육아도 잘할 수 있다.

 

『아들과의 연애를 끝내기로 했다』를 꼭 읽었으면 하는 독자들이 있다면.


엄마 노릇을 너무 잘하려고 하는 엄마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제목을 보고 아들 둔 엄마들만 읽어야 하는 책이 아닌가? 싶은 분들이 혹시 있을지도 모르겠다. 전혀 아니다. 아들 키우는 엄마나 딸 키우는 엄마다 다 똑같은 심정일 거다. 이 책을 읽었다고 당장 육아에 대한 부담이 덜어지진 않겠지만, 엄마들에겐 끊임없는 위로가 필요하다. 계속해서 “잘하고 있는 거야.” “괜찮아, 잘 클 거야.”라고 속삭여줘야, 그 말들이 하나하나 모래알처럼 박혀있다가 정말 너무 힘들어서 죽고 싶을 때, 다시 살아보려는 힘이 생기지 않을까 싶다.

 

현재 책을 만드는 기획사 ‘에프북’ 대표로 일하고 있다.『리넨이 좋아』,『작은 집이 좋아』, 『살림이 좋아』, 『수납이 좋아』등 ‘좋아’ 시리즈를 기획했는데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우리 나름대로 ‘책 짓는 구멍가게’라고 말한다. 마음이 맞는 여자들이 모여 책을 만드는 곳이다. 같이 일하는 직원들이 대부분 기자 출신인데, 거의 엄마가 됐다. 그래서 출퇴근 시간을 따로 두지 않았다. 마감하는 날 며칠을 빼면 회사에 출근해서 같이 놀기 바쁘다. 맛있는 밥도 지어 먹고 수다도 많이 떤다. 일은 두 세시간 집중하면 할 수 있다. 겉에서 보면 노는 것 같은데, 놀면서 하는 모든 이야기가 책의 기획이 된다. 돈은 많이 못 벌지만, 돈을 많이 벌어야만 행복하다는 생각을 안 하니까. 지금에 만족하니까 되게 좋다(웃음).

 

아들과의 연애는 평생 못 끝낼 것 같지만, 그래도 조금 열정이 식는다면. 어떤 연애를 새롭게 시작하고 싶나?


나와의 연애를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집에서 살림을 하는 엄마들을 만나면, 일 하는 엄마들을 되게 부러워하는데 꼭 그렇지 만도 않다.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서 뜨개질만 잘해도 전문가가 될 수 있고, 옷 정리만 잘해도 책을 낼 수 있다. 꿈꾸면 다 되는 것 같다. 나 역시, 직장을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일할 때 ‘두 평도 좋고 세 평도 좋으니 나 혼자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면 아무 것도 바랄 게 없을 것 같았는데, 이렇게 기획사를 차려 책을 만들고, 그 책을 독자들이 좋아해 주고 있으니 정말 감동하지 않을 수 없다. 불과 10년 전에는 꿈 같은 일이었는데, 지금 이렇게 회사를 차리고 책을 내고 있으니 말이다.

 

끝으로, 이 땅의 엄마들에게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가 하나 있다면.


아이가 태어나는 순간, 나라는 사람이 없어지고 이 아이의 엄마로 평생 살겠다는 그런 마음 때문에 엄마들이 힘들어하는 것 같다. 엄마들을 보면 자신을 위해서 보냈던 시간들을 다 미안해 한다. 왜 더 잘해주지 못했는지를 후회한다. 그럴 필요 없다. 엄마들은 충분히 최선을 다하고 있다. 미안한 마음을 갖지 않아야, 가뿐한 육아를 할 수 있다. 또 세상과 단절됐다고 생각하지 말고, 사회에 다시 나갈 수 있는 끈을 놓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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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과의 연애를 끝내기로 했다김수경 저 | 포북(forbook)
이 책은 엄마 얘기다. 대한민국에서 내 새끼 대학 보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아는, 그래서 안절부절못하는 가여운 엄마들의 속사정이다. 그 ‘엄마’도 사실은 누군가의 딸로 태어나 정성껏 키워졌던 자식이었음을, 웃었다 울었다 하면서 돌이키게 하는 따뜻한 가족 얘기다. 때때로 좋은 엄마가 아니라는 반성이 든다거나, 내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정답을 찾아 헤매며 고민하고 있거나, 괜찮은 여자로 나이 들고 싶은 바람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에서 실낱같은 희망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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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열, 음악을 듣듯 중국어를 배우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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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 음악처럼 들으면 귀가 열리고 입이 트인다


‘이제 중국어는 대세입니다’라는 말처럼 익숙하게 들어온 한 마디가 있다. ‘중국어 학습은 시작이 어렵다’는 이야기다. 우리나라에서 쓰이는 한자와는 다른 ‘간체자’를 외워야 하는 데다, 그 발음을 표기한 기호인 ‘병음’을 읽는 방법도 익혀야 하고, 특유의 억양과 리듬인 ‘성조’까지 체득해야 하니, 시작부터 넘어야 할 산이 많은 것이다. 실제로 이들 장벽에 가로막혀 중국어 공부를 도중에 포기하거나 처음부터 도전할 엄두를 내지 못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딱히 뾰족한 수가 없었던 것도 사실이다. 『자동암기 중국어』가 출간되기 이전까지는.

 

『자동암기 중국어』는 성조, 병음, 한자를 몰라도 중국어 공부를 시작할 수 있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듣기만 해도 귀가 열리고 입이 트인다”고 이야기한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 싶지만 원리는 의외로 간단하다. ‘음악을 듣듯 중국어를 듣고, 노래를 익히듯 중국어를 익힌다’는 것. 중국어 특유의 리듬과 비트가 음악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는 사실에 착안해서 만들어 낸 학습법이다.

 

『자동암기 중국어』가 제공하는 음성 파일을 듣다 보면, 배경에 깔린 음악의 리듬과 비트에 맞춰진 중국어 표현이 노래 가사처럼 느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반복 청취를 통해 표현이 익숙해지면 그 리듬까지 자연스럽게 외워진다. 이 과정은 음악을 들으면서 따라 부르게 되는 방식과 놀랍도록 닮아있다.‘봄바람 휘날리며 / 흩날리는 벚꽃 잎이 / 울려 퍼질 이 거리를 / 둘이 걸어요’라는 문장만 보고도 저절로 리듬이 떠오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한 마디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중국어의 성조를 체득하게 되는 것이다. 점차 다양한 표현으로 이어지는 학습 과정은 한자와 병음에 대한 이해도도 높여준다.

 

‘노래하듯 중국어를 배운다’는 개념만큼이나 생소한 또 하나의 사실은 『자동암기 중국어』의 저자가 영어 강사로 유명한 문단열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음악적 요소를 활용한 『자동암기 중국어』의 학습법은 우리에게 이미 익숙한 ‘문단열 스타일’이기도 하다. 영어 강의를 할 때도 줄곧 리듬과 억양을 강조해왔던 그이기 때문이다. 영어 강사 문단열을 대중적으로 알린 프로그램이었던 EBS의 <잉글리시 카페>만 떠올려 봐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당시 그는 무대 위에 라이브 밴드를 등장시키고 음악에 맞춰 영어 문장을 말하도록 유도했다. 어디에 악센트를 주어야 하고 어떤 리듬으로 말해야 하는지, 머리로 외우지 않고 몸으로 익히게 한 것이다. 그 비결은 『자동암기 중국어』안에도 고스란히 담겨있다.

 

문단열과 함께 『자동암기 중국어』를 집필한 최윤진 저자는 중국 CCTV 아나운서 출신의 중국어 전문가다. 현재 음성콘텐츠 전문기업 ‘펠루’의 대표를 역임하고 있는 그녀는 ‘날씨아나’라는 일기예보 앱 서비스로 유명한 Voicetainer(Voice Entertainer)이기도 하다. 목소리를 통해 정확하고 효과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인물인 것이다. 결국 『자동암기 중국어』는 문단열 저자가 가진 외국어 교육의 노하우와 최윤진 저자가 가진 아나운싱 노하우가 만나 탄생했다고 할 수 있다.

 

『자동암기 중국어』를 들어보면 (그렇다. 이 책은 ‘읽는’ 대상이 아니라 ‘듣는’ 대상이라 할 만하다) 두 저자가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을 청취하고 있는 듯 한 착각에 빠진다. 경쾌한 음악 위에 얹혀 전해지는 문장들은 아침을 깨우는 짤막한 영어 강의 프로그램을 연상시킨다. 『자동암기 중국어』를 활용하는 데에는 딱 그만큼의 시간, 그와 같은 방식이면 충분하다. 긴 시간 놀라운 집중력을 발휘하지 않더라도 ‘꾸준히 하기만 해도 좋다’는 생각으로 반복해서 듣기를 권한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귀에 익은 문장과 리듬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물론 『자동암기 중국어』에는 더 많은 학습의 원리들이 숨어 있고 그것들을 십분 활용할 수 있는 방법도 많지만, 세세한 이야기는 아껴두기로 한다. 이어지는 인터뷰에서 문단열 저자가 직접 전해줄 것이므로.

 

『자동암기 중국어』 문법 아닌 성조를 각인시키는 학습법


‘유명 영어 강사 문단열’이 중국어 교재를 출간했다는 소식을 듣고 의아해하는 분들도 많으실 텐데요. 『자동암기 중국어』를 집필하게 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중국어 공부를 시작할 때 많은 분들이 어려워하시는 게 한자, 병음, 성조예요. 병음과 한자는 시간을 들이고 계속 노력하면 배울 수 있는데, 성조는 귀가 인식을 하지 못해서 어려운 거거든요. 그래서 성조라는 벽에 부딪혀서 중국어 공부를 포기하는 분들도 많아요. 중국어에 소질이 있고 공부를 지속할 수 있는 사람인데도 포기하는 경우가 있는 거예요. 그럴 때 참 안타까웠어요. 그 고비를 넘길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는 사명감에서 『자동암기 중국어』를 썼다고 할 수 있어요.

 

20대 후반에 중국으로 어학연수를 다녀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중국어는 언제부터 공부하신 건가요?


92년도에 6개월 정도 어학연수를 다녀왔어요. 그때 중국으로 가기 전에 두 달 동안 치열하게 공부했죠. 중국에 머무는 동안에는 중국 문화에 더 관심을 가지면서 중국어를 깊이 있게 공부하지는 못했고요. 한국에 돌아와서 공부를 계속 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어학 공부가 늘 그렇듯이 조금씩 미루다가 끝내 하지 못했죠(웃음). 그런데 요즘의 분위기를 보니까 더 이상 공부를 미룰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지난 해 초부터 공부를 시작했어요. 『자동암기 중국어』 출간을 앞두고 더 열심히 했죠(웃음).

 

직접 중국어를 공부하시면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저는 언어를 공부할 때 음악적으로 외우는 습관이 있어요. 영어도 그렇게 공부했고요. 중국어는 음악적 성격이 더 강한 언어니까 성조 때문에 힘들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문법이 어렵더라고요. 중국어 문법은 정밀하게 나눠져 있지 않거든요. 글자의 순서나 악센트의 위치를 바꾼다든지 끊어 읽는 곳을 바꾸면서 임의로 의미를 조절해요. 그러니까 초보자들의 눈으로 문장을 봤을 때는 문법이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 거죠. 문법이 너무 정밀하고 복잡해서 어려운 게 아니라, 너무 뭉뚱그려져 있고 애매해서 어려운 거예요. 그래서 문법에 맞춰서 원어민처럼 말하는 게 제일 어려웠던 것 같아요.

 

『자동암기 중국어』가 다른 중국어 교재들과 차별화되는 점은 ‘언어와 리듬과 비트의 결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음악을 활용할 때의 장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결국 성조는 높낮이와 박자예요. 우리가 음악의 이론을 몰라도 듣고 따라 부를 수 있듯이, 중국어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책 속의 활자나 그래픽만으로 설명하기에는 부족하다는 거죠. 특히 중국어는 어느 부분에 악센트를 주고 박자를 어떻게 바꾸느냐에 따라서 의미가 완전히 달라지거든요. 그래서 중국어를 가르쳐주는 가장 좋은 방법은 들려주고 따라하게 하는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도 그냥 중국어만 들려주는 것보다는 음악을 활용하는 게 효율적이죠. 그리고 이렇게 오감을 자극하면 재미도 있지만 쉽게 잊어버리지 않아요.

 

음악을 통해 배움으로써 성조도 자연스럽게 외우게 된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효과인 것 같습니다.


『자동암기 중국어』의 홍보영상에 실린 노래가 제가 직접 만든 건데요. 실제로 그 노래를 가지고 학원 학생들에게 테스트를 해봤어요. 노래만 듣고 하룻밤 만에 성조를 다 익힐 수 있는지 지켜본 거죠. 그런데 다음 날 다 외워왔더라고요. 성조에 대해 알지 못하는데도 단어의 음을 외운 거예요. 무의식 각인이 된 거죠. 문법이라는 건 하늘로 올라가는 사다리 같은 거예요. 올라갈 때는 이용해야하지만 올라가고 난 뒤에는 버려야 하죠. 원어민처럼 말한다는 건 문법을 생각하지 않고 말한다는 의미거든요. 그래서 『자동암기 중국어』에서 문법을 각인시키려고 하지 않았어요.

 

음악 덕분에 더 집중하게 되는 측면도 있지 않나요? 기존의 어학 테이프들은 시간차를 두고 표현들만 반복하니까 흥미와 집중력을 잃게 되잖아요.


『자동암기 중국어』에는 희소성과 의외성이 있어요. 사람들은 예상하지 못했던 의외적인 상황이 벌어지면 재미를 느끼거든요. 『자동암기 중국어』에는 배경음악이 있는데다가 그 비트에 맞춰서 랩처럼 말을 해요. 그 희소성과 의외성이 계속 집중해서 듣게 만들죠. 그런데 그것만 가지고 교육을 할 수는 없어요. 의미적으로 듣고 싶게 만들어야 하죠. 아무리 말하는 방식이 지루하더라도 그 내용이 자신에게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집중해서 듣잖아요. 그래서 전체적으로는 중국어가 얼마나 필요한지에 대해 설득했고요. 부분적으로는 지난번 수업 시간과 이번 수업 시간의 내용들이 얼마나 쉬운지, 당신이 얼마나 잘할 수 있는지, 용기를 주면서 쌓아나갔죠. 그때그때 해당 표현을 배워야 되는 이유를 설명하는 거예요. 이렇게 두 가지 차원이 동시에 포함되어 있어야 듣는 사람을 집중시킬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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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가 달라도 마스터의 비결은 같다


『자동암기 중국어』에 수록된 문장들도 눈에 띕니다. 실용 회화만 추려서 담은 것이 아니라, 숙어를 알려주는 방식처럼 구성되어 있더라고요.


실제로 언어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문형 자체의 구조를 이해하는 것이 첫 번째가 되어야 하는데요. 실제로는 하나의 문장을 완벽하게 외워도 직접 사용하기가 쉽지 않아요. 우리의 뇌는 확신을 가지기까지 세 번의 과정을 거치거든요. 그러니까 같은 문장 구조 안에서 단어를 바꿔 가면서 세 번 정도 반복해야 그 표현에 확신을 가지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문장 틀을 각인하고 단어를 갈아 끼우기 훈련을 할 수 있도록 했어요.

 

문장 구조를 기억하게 만드는 또 다른 비결이 있을까요?


기억이 나지 않을 문장을 쓰면 안 되겠죠. 흥미로운 문장을 보고 웃게 되면 더 기억에 남게 되잖아요. 그래서 약간 비틀어 놓은, 그래서 재미있는 문장도 필요한 거예요. 『자동암기 중국어』에는 “나는 탕웨이야” “당신 선생님이야?” 같은 표현들이 있는데요(웃음). 실제로 사용할 일은 없더라도 기억에 오래 남겠죠. 보통의 어학 책들이 재미없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 하나는 예문이 너무 착하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나는 매일 밤 여덟 시에 숙제를 해요’라는 문장은 얼마나 재미가 없어요? 그런데 만약 영어 책에 ‘나는 세상에서 영어가 제일 싫어요’라고 쓰여 있으면 재미있겠죠(웃음). 이런 문장들은 재미의 한 축이기도 하지만 재미를 위한 재미에 그치는 건 아니에요. 기억하고 말할 수 있게 하려는 거죠.

 

영어뿐만 아니라 일본어, 중국어, 프랑스어까지 회화가 가능하시다고 들었습니다. 다양한 언어를 마스터하신 비법이 궁금한데요. 언어마다 특색이 있다고 하더라도,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공부의 원리가 있는 걸까요?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자신이 제일 많이 하는 이야기부터 말할 수 있게 마스터하면 된다고요. 내가 어떤 말을 제일 자주 하는지를 생각해 본 다음에,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해당 언어로 찾아내는 거예요. 실제로 사람들이 매일하는 이야기는 생각보다 다양하지 않아요. 영어에도 30만개의 단어가 있지만 많이 쓰는 단어는 500개 내외고요. 물론 말하는 사람의 지적 수준에 따라 다르겠지만, 많아봤자 3000개 정도예요. 그러니까 자신이 가장 자주 하는 말들을 감지해 내야 해요. 다른 사람이 정해주는 단어나 문장 말고요.

 

새로운 언어를 공부할 때마다 작가님께서 사용하시는 방법인가요?


저는 언어를 공부할 때 두 가지만 생각해요. 첫 번째는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이고 두 번째는 ‘내가 이걸 하고 싶은 욕망이 있나’예요. 언어를 공부할 때는 명확한 욕망의 포커스가 있어야 돼요. 지나가는 중국 사람에게 말을 걸어보고 싶다든지, 중국어를 배워서 고소득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다든지, 어떤 것이든 상관없어요. 목표가 뚜렷하면 공부할 때 자신에게 필요한 표현은 눈에 쏙 들어오게 되어 있어요. 자신과 연결된 고리를 찾으면 기억이 나지 않을 수가 없죠. 리딩도 마찬가지인데요. 자신이 관심이 있고 좋아하는 콘텐츠를 중심으로 읽으면 실력이 늘고요. 스피킹에 있어서도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빨리 규명하고, 누구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지 생각해 보고, 그 리스트를 만들어서 배우고 싶은 언어로 옮기면 가장 짧은 시간에 마스터할 수 있어요.

 

자주 하는 말과 하고 싶은 말을 문장으로 만들어서 외우면 응용하기도 편할 것 같습니다. 사람들마다 자주 사용하는 표현은 한정되어 있으니까요. 단어만 바꾸어 가면서 계속 이야기를 이어갈 수 있겠죠.


그게 최고 좋은 방법이에요. 그 단계를 지나고 나면 중급에 들어서게 되고, 중급이 되면 화제를 넓히고 싶어지거든요. 화제를 넓히고 나면 추상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어지고요. 나와 주변과 세계로 넓어지는 동심원이 생기는 거예요. 어학의 길은 멀고도 험하지만, 처음의 동심원은 정말 열심히 하면 3개월에 마스터할 수 있어요. 두 번째 동심원은 1년 정도 시간을 들여야 하고, 그 이후에는 평생 공부하는 거죠.

 

『자동암기 중국어』를 더욱 알차게 활용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조언해 주세요.


중국어에 두려움이 있다면 책부터 읽지 마시고 MP3 파일부터 들으시길 권해드려요. 그렇게만 해도 점차 표현들이 귀에 익으실 거예요. 출퇴근 시간에 졸면서 들으셔도 좋아요. 듣다 보면 우리말과 중국말이 반복돼서 나오는 걸 알게 되실 텐데요. 그게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에요. 중국말만 들으면 특유의 느낌은 알게 되더라도 무슨 뜻인지 모잖아요. 한국말 설명이 너무 많으면 실력이 늘지 않고요. 그런데 우리말과 중국말을 반복해서 듣게 되면 자기도 모르게 입력이 돼요. 그때 조금만 더 귀 기울이려고 노력하면 듣기가 고통스럽지 않으실 거예요. 그 다음에 책을 펼치는 게 훨씬 더 쉬우실 거고요. 『자동암기 중국어』에서 책은 보충교재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많이 MP3 파일을 들으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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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암기 중국어 2권 세트최윤진,문단열 공저 | 길벗이지톡
《자동암기 중국어》는 중국어라는 언어와 리듬과 비트라는 음악적 요소를 결합시켰다. 팝송을 들으며 영어를 공부하듯 플레이 버튼만 누르고 비트와 리듬이 살아있는 ‘마성의 mp3 CD’를 듣기만 하면 쉽게 중국어의 문턱을 쉽고 재미있게 넘을 수 있다. 교재에만 있는 재미없는 상황, 재미없는 예문으로 공부한 것은 오래 기억에 남지 않는다. 《자동암기 중국어》는 ‘재미있으면 빠르게 배우고 오래 기억한다’는 우리 뇌의 특성에 맞게 고안되었다.



 

 

 

 

 

 

[추천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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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오찬호 “지금 대학생은 굉장히 억울해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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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기억으로는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대학은 상아탑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말을 신문 지면이나 TV에서 종종 들었던 듯하다. 상아탑이라는 세 글자는 세속적 이익과는 무관한 학문을 연구하는 태도를 가리켰다. 때에 따라 약간의 비판적인 뉘앙스도 섞인 말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대학을 논할 때 이 말은 자주 사용되지 않는 것 같다. 모든 대학이 취업, 이윤, 실용을 지향하는 지금 사회분위기에서 상아탑은 파괴된 지 오래다.

 

『진격의 대학교』의 부제는 ‘기업의 노예가 된 한국 대학의 자화상’이다. 전작인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에서 20대 청춘의 불안을 파고든 오찬호 저자는 이번 책에서는 대학의 문제에 집중했다. 이 책은 현재 대학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진풍경을 증언한다. 저자가 기록한 대로 현재 대학은 민주주의 시민으로서 살아갈 지혜가 아니라 취업하는 기술을 배우는 곳이 되었고, 대학은 스스로를 기업이라 생각하고 행동하며 이윤 추구를 노골적으로 추구하고 있다.

 

대학의 기업화가 진행될수록 피해는 고스란히 대학생으로 향한다. 취업 3종 세트는 옛말, 9종 세트를 갖춰야 하고 경영 경제 복수 전공은 필수. 그럼에도 대학은 청년 실업 문제를 전혀 해결하지 못했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민주 시민으로서 사고할 수 있는 능력을 대학에서 전혀 키워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대학이 경쟁을 당연시하고, 경쟁에서의 성패를 전적으로 개인 몫으로 돌리면서 뒤쳐진 자를 향한 차별과 멸시가 정당화되는 분위기가 굳어지기 때문이다.
 
대학 시험 문제가 엘리베이터 상사 마중법

 

2022년 서울대를 마지막으로 이땅에서 사회학과가 사라지고, 2045년 청와대에서는 ‘자살의 사회적 책임’을 이해하는 관료가 한 명도 없다는 픽션으로 시작하는 책입니다. 이렇게 허구로 책을 시작한 이유는?

 

『진격의 대학교』와 유사한 책은 있었죠. 한국 대학의 문제는 심각한 주제이고 많은 사람이 알아야 하는데, 이전에 나온 책이 안 읽혔어요. 어떻게든 빨리 읽히도록 해야겠다고 해서 신경 써서 쓴 픽션이죠.

 

저술 동기를 말씀해주신다면.

 

이 책은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2탄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거기서 요즘 대학생들이 서로 차별을 당연시하는 원인 중 하나가 대학이 자기계발만 강요하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조금 다뤘습니다. 이번 책은 그 부분만을 확대해서 쓴 거예요. 이 주제에 집중해서 학생과 토론했습니다. 얼핏 아는 이야기지만, 저도 어느 정도인지는 몰랐는데, 상상 이상의 사례가 나왔습니다. 조금 더 늦어지면 체념만 커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서둘러 책을 써나갔어요.

 

다양한 사례를 쓰셨는데요.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책을 쓰기로 마음 먹게 했던 사례였습니다. 충격이었죠. 충격 받은 뒤에는 검증하는 사례였고요.  강의 중간에 화장실 가는 시간이 있잖아요. 화장실에 가면서 한 강의실에 띄워둔 PPT를 보는데 너무 놀랐습니다. 기차를 탈 때 상사의 위치, 나비 넥타이 메는 법, 엘리베이터에서 상사 마중법, 상사에게는 반론하지 말라, 이런 내용이었거든요. 마침 제 수업 듣는 학생 중에서도 그 강의를 듣는 사람이 있어서 교재를 볼 수 있었어요. 그 내용으로 시험도 친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또 하나를 이야기하자면, 홈쇼핑 모델이 와서 하는 강의가 있었는데 강사 휴게실에서 그 분이 제 옆에 앉아 있었어요. 홈쇼핑 모델이니까 딱 봐도 저 같은 강사와는 옷차림이나 외모가 많이 다르죠. 참 대학이 정말 많이 변했구나, 하는 느낌이 왔어요. 책에 있는 내용은 제가 느낀 대학의 풍경이기도 합니다. 이런 대학에서 제 강의를 하면 어느 순간부터 죄짓는 듯한 기분도 들고요. 제 강의는 취업에 도움되는 것이 아니니까요. 같은 강의료를 받는데, 그 강의와 제 강의의 간격이 엄청 넓었죠. 어이 어이 없음을 느끼기도 했고요. 그렇다고 학생들에게 그 강의 듣지 말라고 할 수가 없는 시대이고요.

 

초반부에는 대학이 취업 사관학교가 된 풍경을, 중반부에는 영어 강의를 묘사하셨는데요.

 

진격대 지방대 캠퍼스만 보면 이 책이 구조조정을 정당화하는 논리가 될 수도 있어요. 그러나 이 책은 구조조정을 옹호하는 게 아니라 비판하고 있습니다. 유명 대학의 영어 강의 풍경을 넣은 이유죠. 기업화되었다는 점에서는 지방대든 서울의 유명 대학이든 똑같죠. 대학이 취업에 목메는 추세는 인서울이 지방대보다 늦게 왔을 뿐이지, 이미 서울로 올라왔고요.

 

기업화라는 게 단순히 대학이 삼성, LG를 좋아한다 의미가 아니죠. 대학 구성원이 기업 이사실처럼 생각한다는 게 더 큰 문제입니다. 기업 이사실에서는 안건을 판단할 때 가장 먼저 이익을 생각하죠. 이익, 관리, 등 지금 대학이 이런 가치에 익숙해요. 사람들이 50보 100보는 거기서 거기라고 생각하지만, 엄연히 두 배 차이입니다. 최근 대학의 기업화는 더욱 노골화되었어요.

 

경영학과 는다고 청년 취업 해결되나

 

인문학, 자연과학 등 취업률이 저조하다는 이유로 기초 학문이 폐과되고 학생들은 경영학과로 몰리고 있는데요. 청년 실업을 해소하는 데 별 도움이 안 됐습니다.

 

자유롭게 복수전공을 선택할 수 있는, 한 대학에서는 인문사회 계열의 60퍼센트 이상이 경영학과를 택합니다. 그 학교에 25개 전공이 있는데 말이죠. 책에서는 ‘경영학과의 눈물’이라는 기사를 인용했는데요. 취업이 바늘구멍처럼 좁아졌는데 경영학과 학생이 많아졌다고 해서 청년 실업이 해결되지 않아요. 취업 안 되는 이유가 인문사회대 학생이 많아서가 아니잖아요. 경영학과 많아지면 취업문 넓혀준다는 그런 것이 아니잖아요. 경영학과를 전공한 학생은 늘었지만, 취업 3종 세트는 9종 세트로 늘었을 뿐이에요. 대학은 청년실업에 관해서 아무 것도 해결하지 못했어요.

 

그러다 보니 경영학 이외의 학문을 전공하는 사람은 소외되고요.
 
인문학, 기초과학 하기 어렵다고 해도 찾아보면 길은 있어요. 오히려 문제는 공부하고 싶은 학생이 스스로 낯설어하는 기분이 든다는 거죠. 충격적인 사례인데, 철학과로 간 학생에게는 “거기 왜 갔어? 점수 맞춰서 갔지?”라는 질문부터 시작해요. 대학 철학 수업을 문화센터 시민 강좌 정도로 이해하기도 하고요. 학문이 권력을 잃으니까 학문을 조롱하는 분위기가 된 거예요. 학과 선택만이 아니라, 수업을 들을 때도 비슷해요. ‘시민 혁명사’ 이런 수업을 들으면 친구가 물어보죠. 점수 잘 주는 과목이냐고. 아니라고 답하면 왜 듣냐고 또 물어봐요. 이런 분위기니까 공부하고 싶은 학생도 ‘아, 지금 내가 가는 길이 맞나?’ 이런 느낌이 들죠.

 

가끔 초등학생인 제 딸의 친구 학부모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가 있는데요. 제가 사회학을 전공했으니 사회비판하고 그럴 때 있잖아요. 그러면 이분들이 “국회로 가시겠네요.” 이렇게 약간 조롱 섞인 말을 해요. 어른들조차 사회를 비판하거나 그러면 오글거린다, 진지 빤다, 이렇게 생각해요. 자식이 철학과 대학원 간다고 하면 이분들은 졸도할 거 아닙니까. 이런 사회성에 노출될수록 공부하는 친구들이 스스로 나는 희소한 존재라는 기쁨을 가졌으면 합니다. 주눅 들지 말고요. 압박 들어올 때 명쾌해져야 해요. 무장하는 게 중요하죠.

 

인문사회 쪽에서는 후기 구조주의 이후로는 눈에 띌 만한 사상이나 사상가가 안 나타나는 현상도 대학의 기업화와 관련 있을까요?
 
인지도 문제겠죠. 학자도 자주 노출되는 게 중요합니다. 우리사회에서 요즘 영향력 있는 사상가가 없다는 인식이 있다면, 예전보다 지금 학자가 못해서가 아니라 학문이 권력을 잃은 거라고 봐야겠습니다. 학문이 존재한다고 의미있는 건 아니에요. 권력을 가져야죠. 지금도 경영학, 경제학 쪽으로는 유명한 학자 많잖아요. 문제는 경영경제가 70이라면 20~30은 다른 학문이 권력을 갖고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20~30도 취업 안 된다면서 점점 줄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인문학적 사유가 있으면 비즈니스에 유리하다, 이런 거짓 인문학도 유행이잖아요.

 

그게 거짓 인문학이라고는 할 수 없고요. 인문학의 쓰임새 중에 하나일 수 있어요. 그렇게 사용될 필요도 있다고 보고요. 실제로 학문적으로 애플 기기에 있는 인문학적 가치를 분석하기도 하거든요. 그렇다고 그게 인문학의 전부는 아니에요. 상품성이 있어서 인문학이 살아 남았다고 하기보다는 상품화된 세계에서 상처받는 이유, 개선 방향을 제시하는 게 인문학의 본질이니까요.

 

한국사회 지잡대라는 단어의 등장은 무엇을 의미할까

 

1902년에도 미국에서 존 듀이가 돈을 좇는 대학을 비판했는데요. 이런 분위기가 어제 오늘 일도 아니고,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합니다. 한국적 특수성이 있을까요.

 

미국, 유럽 다 그런 분위기가 있죠. 정도와 속도의 차이라고 할까요. 한국에서 끊임없이 구분하려는 차이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습니다. 예전부터 SKY라는 말은 있었지만 지잡대라는 말은 최근에 생겼어요. 기업 면접에서 지방대 출신에게는 왜 편입 준비 안 했느냐고 묻는다고 해요. 조롱과 멸시를 하는 거죠. 여러 가지 이유로 대학에 경영학과 많아지고 자본의 논리에 빠지는 풍토는 세계적인 추세지만 우리 사회는 주류가 아닌 것에 철퇴를 가하고 낙인을 찍어서 안 좋은 존재로 만들어 세상으로부터 고립시키는 정도가 심하다고 봐요.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정규직 비정규직 문제도 마찬가지에요. 비정규직이 정규직 전환 요구하면, 일확천금을 달라는 게 아닌데도 절대로 받아들이지 못하잖아요. 너가 노력 안 해서 그렇게 됐는데 사회가 왜 도와야 하느냐는 반박이 바로 나오잖아요. 우리사회에는 상처받는 사람이 너무 많죠. 계속 이렇게 해도 되느냐는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차별이 노골화된 시기를 1997년으로 많이 말하잖아요.

 

숫자 1만큼 차이가 있으면 1만큼 멸시가 있고, 10만큼 차이가 있으면 10만큼 멸시가 있을 텐데요.불평등 정도가 1997년 기점으로 로켓처럼 올라가죠. 잘사는 사람, 못 사는 사람 차이가 벌어집니다. 못 살수록 범죄가 증가할 수는 있어요. 그런데 여기서 원인과 결과를 혼동해서 결과론적으로 해석해버립니다. 불평등이 심해져서 범죄가 늘어난 게 아니라,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원래 추하고, 못 됐고, 게으르니까 못 사는 거야, 하는 식으로 아래를 바라보는 시선이 합리화됩니다. 대학도 그래요. 지방과 인서울이라는 결과를 보고 그 결과로 차별해도 정당하다고 생각해버리죠.

 

이 책은 대안을 이야기하는 책은 아니라고 하셨어요.

 

예전 대학생에게도 진로, 취업 문제가 있었지만 지금 정도는 아니었어요. 취업률을 적절하게 유지한다든지 해서 대학이 청춘에게 주는 게 있었죠. 고등학생과 30대와는 다른 낭만, 사회에 대한 객기가 대학생에게는 허용됐습니다. 지금은 고등학교 때까지 문제집만 풀다가 대학에 와서까지도 비싼 등록금을 내고 학원 다니는 꼴인데요. 이전 대학생은 누렸던 것을 지금 대학생은 못 즐기니까 굉장히 억울해해야 해요. 지금 대학생이 얼마나 억울한 존재인가를 알아줬으면 하는 게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이고요.

 

사회구조적으로 취업문을 넓히지 않는 이상, 아무리 경영학 전공자가 많아지고 스펙을 쌓는다고 한들 전체 고통받는 수는 동일할, 아니 더 늘어날 겁니다. 이 책으로 청년실업을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이야기할 수는 없겠죠. 다만 학생들이 실업으로 자학하지 말고 스스로 행복할 권리가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행복할 권리가 있다면 사회적으로 요구해야겠죠. 그 요구를 바탕으로 조금씩 사회가 바뀔 겁니다. 사회가 한꺼번에 좋아지지는 않아요. 대학이 중세 시대처럼 학문의 전당으로 귀환한다고 해서 해결되지도 않을 테고요. 그렇기에 스스로라도 권리를 챙겨야 해요. 상처를 덜 받으려면 경영학이라는 하나의 학문만 배울 게 아니라 다양한 인문학적 스펙트럼을 갖춰야 합니다. 세상은 그런 사람을 무시하지 못할 거고, 무시하지 못할 때 세상이 조금씩 바뀝니다.

 

그럼에도 대안을 찾아 봐야 할 텐데요. 대학은 어떻게 가야 할까요.

 

대학이라면 최소한 실패한 사람들, 진입장벽에서 넘어진 사람들의 상처와 슬픔을 어쩔 수 없는 결과처럼 합리화하는 정서를 가르쳐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사람이’ 아프다고 이야기하는데 “경제 성장했다, 스마트폰 보급률 높아졌다, 자동차수 많아졌다”며 지표가 좋아졌다는 반론을 들을 때가 있어요. 그런 지표도 의미는 있겠죠. 하지만 사람들이 아프다고 할 때 경제적인 논의를 가져오면 안 되잖아요.

 

세월호가 충격적이었는데요. 대학에서는 사람의 생명 앞에서 그 무엇도 함부로 하면 안 된다고 배워야 하는데요. 대학은 오히려 다른 걸 가르쳐요. 인양할 돈이 얼마다, 내수 침체로 발목 잡는다, 이런 논리죠. 물론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대학에서는 다른 생각을 가지는 비율이 높아져야 하지 않을까요. 대학은 자본주의 사회의 완충제, 옴부즈맨 역할을 했습니다. 비판, 감시 역할을 하는 집단이 있으면 전체적으로도 좋잖아요. 대학이 그런 자부심을 갖고 살면 좋겠는데, 이런 덕목은 대학 평가에서 아무도 봐 주지 않죠. 오히려 철퇴 사유죠.

 

대학평가가 격차를 부추기고 있다고도 지적하셨습니다.

 

지잡대라는 말에서도 보듯, 밑을 향한 멸시가 많아요. 한국사회는 평가를 하면 잘하는 사람을 칭찬하려고 하지 않고 못하는 사람을 걸러내려고 해요. 평등이란 최소한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려는 노력입니다. 평가를 하면 할수록 평등이 없어지죠. 무시 당하는 사람이 많아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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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시민으로 살기 위한 근육 키워야

 

에필로그에서는 민주주의에 관해서도 쓰셨습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으로 살기 위해서는 그것을 느낄 수 있는 근육들을 키워야 합니다. 책 한 권 읽는다고 되는 게 아니거든요. 끊임없이 그것이 중요하다는 사회에 노출되어야 하는데, 대학이 역할을 못하고 있어요. 지난 정부의 민간인 사찰, 국정원의 대선 개입에 대해서 대학생과 이야기를 해 보면 이런 사건이 민주주의를 훼손했다는 점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하지만 진심으로 가슴이 아픈 사람도 없어요. 살 2kg만 쪄도 진심으로 슬퍼하면서 다이어트 하려는 학생은 있지만요.

 

다시 세월호 이야기인데요. 많은 사람이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세월호 선장이 나빠서 아이들이 죽었다, 불쌍하다, 그런데 신자유주의, 개발 독재 유산 때문이라고까지 하는 건 음모론이라고요. 이럴 때 대학은 음모론을 구체화시켜서 가설이 맞고 틀리고를 적극적으로 토론해야 하는데, 지금은 아무 것도 안 하고 있어요. 민주주의는 훼손되고, 경제제일주의로 가는 거죠.

 

음모론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연예인 스캔들을 사회학자 시선으로 본다면 어떤가요. 정부가 사건을 덮기 위해 터뜨린다, 이런 분석이 나오잖아요.

 

연예인 스캔들만이 아니에요. 많은 사람이 일부 언론의 선동 형태를 비판합니다만, 사실 기자들은 독자가 원하는 기사를 쓸 뿐이에요. 대중이 각성되어 있다면, 뭘 덮으려고 하더라도 못 덮겠죠. Wag the Dog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꼬리가 어떻게 몸통을 흔들겠어요. 꼬리가 몸통보다 더 똑똑하니까요. 대중은 각성되어 있을 때 힘이 셉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각성하려면 주말에 책 한 권 읽는다고 되는 거 아니거든요. 몸짱 되기 위해서만 해도, 얼마나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노력합니까.

 

다이어트를 향한 열정에 비하면 우리 사회는 책을 읽으려는 노력은 미미한 듯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죠. 아빠가 책 사 준다고 하니까 아이가 이런 말을 한대요. 왕따 당하기 바라냐고. 책 읽는 게 유난 떠는, 진지 빠는, 오글거리고 어색한 사회가 되었다는 데는 이 사회만의 독특한 사회 철학이 있는 거죠. 어떤 의미에선 사회 철학이 없다고 할 수 있고요. 서구에서는 어떤 행동이 마이너가 되었다고 해서 함부로 바라보지 않는 시선이 있어요. 그들은 역사적으로 책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학습했으니까요. 하지만 우리나라는 책 덮고 공부하는 사회였고, 예전에는 언어영역 대비한다고 책 읽기라도 했는데 지금은 사교육이 완전 장악해버렸죠.

 

스마트폰 때문에 책 덜 읽는다고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겠죠. 저녁이 있는 삶이 히트를 쳤잖아요. 걱정거리 없고 여유가 있어야 책을 읽을 수 있을 텐데, 한국사회는 너무 일이 많고 걱정 많고 쪼들리고 하니까 자기계발 책만 좀 읽지 다른 책은 읽을 엄두를 못 내죠. 책 읽으려는 노력을 하기가 참 힘든 사회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 관심사는?

 

공무원 시험 준비하는 청춘이 굉장히 늘었다는 게 지난 15년 정도의 추세인데요. 요즘은 나이 든 사람도 공무원 준비를 많이 하고요. 그 친구들에게도 꿈이 있었을 텐데, 어떤 순간이 꿈을 잃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지 여러 사연을 채집하고 한국사회를 드러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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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격의 대학교오찬호 저 | 문학동네
지금은 아무도 대학을 학문 탐구와 지성의 요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렇게 말했다가는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으로 보이기 십상이다. 대학이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상 자체가 예전과는 크게 달라졌다. ‘효율’이라는 잣대로 끊임없이 이루어지는 평가에서 살아남기 위해 대학은 기업(의 자본)에 종속되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기업이 요구하는 부단한 ‘개혁(!)’의 과정을 통해 아무런 고민 없이 취업의 전초기지가 되는 길을 택했다. 하지만 대학이 한 사회의 최고 교육기관인 이상 대학의 문제는 그곳만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대학은 기본적으로 ‘시민’을 배출해야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와 같은 문제의식 아래 이 책에서 현재 대학의 실상을 가감 없이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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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남정미 “왜 이렇게 잘난 척하고 어려운 글 쓰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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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정미 셀렉사진 이 세개 사진 본문에 넣어주세요 (3).jpg

 

북카페에서 만난 개그맨 남정미의 가방 속에는 소설가 박상륭의 『죽음의 한 연구』가 들어 있었다. “어려운 책 읽으시네요?”라고 물으니, 그녀는 “한글로 되어 있는 책인데 원서를 읽는 느낌”이라며 화통하게 웃었다. 2003년 SBS <웃찾사> ‘비둘기 합창단’으로 데뷔, MBC <개그야> ‘명품남녀’로 큰 인기를 얻은 남정미는 요즘 ‘웃기는 서평가’로 통한다. 남정미는 방송을 시작하면서 세 가지 꿈을 품었다. 첫째는 코미디언으로 상을 받아 보는 것, 둘째는 이름을 건 라디오 진행자가 되어보는 것, 셋째는 책을 쓰는 일이었다. 일찌감치 두 가지 꿈은 실현했고, 올해 4월 출판평론가 김성신과 함께 쓴 『북톡카톡』으로 마지막 꿈을 이뤘다.

 

『북톡카톡』은 김성신과 남정미가 실제 모바일 메신저 서비스인 ‘카카오톡’으로 주고받은 ‘수다 서평’을 모은 책이다. 기존 서평의 틀에 벗어나 가벼운 대화체로 책 이야기를 나눈다. 책에 대한 엄숙주의를 탈피한 두 사람은 시트콤처럼 재밌는 대화를 통해 책을 소개한다. 15년차 노회한 출판평론가와 30대 개그맨의 만남.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시시콜콜 그들의 수다가 담긴 『북톡카톡』을 읽고 있으면, 책에 소개된 146권의 책들을 모조리 읽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다. 두 사람의 대화가 코미디처럼 재밌기도 하거니와 각 분야의 양서만 골라냈기 때문이다. 봄, 놂, 앎, 변함, 깨달음 등 5가지 챕터로 책을 소개하면서, 챕터마다 ‘뭔가로 만들어주는 책 10 1’을 실었다. 남정미는 “『북톡카톡』은 책 146권에 대한 지도라고 생각하면 쉽다. 좋은 책을 소개해주는 기쁨이 이렇게 큰 줄 몰랐다”며, “100% 실제 입말 서평을 담았다. 비속어, 저렴한 외국어 등이 난무하지만 그만큼 솔직하고 재밌다. 웃긴 책, 하지만 뭔가가 남는 책을 읽고 싶으면 『북톡카톡』을 지하철노선표처럼 가지고 다니길 추천한다.”고 말했다.

 

 

『북톡카톡』은 지하철노선표 같은 책


얼마 전에 『북톡카톡』북 콘서트를 했다고 들었다. 트롯가수도 초대했다던데?


(웃음) 맞다. 특이하게 하려고 했던 건 아니었는데 이런 북 콘서트는 지금까지 없었다고 하더라. 우리 아버지가 안동에서 미나리를 키우고 있는데, 오신 분들에게 모두 미나리를 대접했다. 무대에 나와서 인사를 한 마디 하셨는데, 내 자랑은 안 하고 미나리 자랑만 하셨다. “미나리 열심히 키웠다”고(웃음). 내가 방송에 나왔을 때도 좋아하셨지만 책을 내니까 더 좋아하시더라.

 

그동안 ‘웃기는 서평가’는 없었다. 출판계에서 남정미의 등장을 매우 기뻐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북톡카톡』을 내고 칭찬을 많이 받긴 했다. 좋은 책들을 많이 소개해줬으니까. 재밌고 가벼운 대화체로 책 이야기를 풀었지만, 소개된 책들이 결코 편안한 책들만 있는 건 아니다. 나도 책을 잘 안 읽었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쉬운 서평이 가능했던 것 같다.

 

카카오톡으로 서평을 시작한 계기가 궁금하다. 책은 김성신 평론가와 함께 선정을 한 건지.


김성신 선생님이 괜찮은 책들을 5권 정도 추천해주시면, 내가 그 책들을 읽고 이야기를 나눴다.  선생님한테 “이거 이해하기 되게 어려운데 왜 그래요?”라고 물으면, 저자가 어떤 의미로 이런 글을 쓰게 됐는지 정통서평가 입장에서 조근조근 설명해주셨다. 『북톡카톡』첫 챕터 ‘봄’에 소개한  『100명 중 98명이 틀리는 한국 맞춤법』을 읽고 나서는 별다방에 갔을 때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여자들의 수다가 마치 듣기평가처럼 들리더라. 이런 에피소드를 선생님한테 이야기하면, 그들이 왜 그런 단어를 사용하게 됐는지를 설명해주는 그런 방식이었다.

 

제목은 가벼운 느낌인데, 소개된 책들은 가볍지만은 않다. 고전도 들어가 있고.


신간을 주로 소개했지만, 평소 같았으면 읽어보지도 못했을『논어』도 들어가 있다. 선생님이랑 책 수다를 떨다 보면 어려운 책도 금방 소화가 되더라. 잘못 생각하고 있었던 것들은 바로 잡게 되고. 『북톡카톡』을 하나의 지하철노선표, 그러니까 책노선표라고 생각하면 쉽다. 3호선을 타고 이 역을 가봤으니 저 역도 가봐야지, 그런 느낌의 책이다.

 

실제 카카오톡으로 대화를 나눈 건가?


물론이다. 칼럼이 신문에 실리기 전 날, 밤 9시에 각자 집에서 카카오톡을 했고 김성신 선생님이 우리 대화를 정리했다. 원고를 신문사에 보내면 담당기자님이 지면에 맞게 분량을 조절해줬다. 처음에는 주간지 <M25>에서 연재를 시작했는데 지금은 <스포츠경향>에서 연재하고 있다. 처음에는 휴대폰으로 대화를 하느라 3,4시간 정도 걸렸는데 요즘은 카카오톡 PC 버전이 나와서 한 시간 반 정도로 끝난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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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을 하려면 굉장히 정의로운 사람이어야 한다


코미디 서평’의 문을 연 계기가 궁금하다. 책은 원래 좋아하는 편이었던 것 같은데.


좋아하긴 했지만 많이 읽지는 못했다. 나는 망가지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 개그맨이었던 것 같다. 개그맨이 어떤 코너로 인기를 끌었으면 더 큰 캐릭터를 만들어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내 예쁜 몸을 사용해야 할 때도 있는데, 나는 ‘뼈그맨’은 아니었다. 개그맨 생활이 결코 녹록하지 않았다. 2003년에 데뷔를 하고 2008년부터 이런 생각을 갖게 됐고, 조금씩 방송에 노출이 안 되다 보니 사람들에게 잊혔고. ‘나 개그맨 안 하면 뭐하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한국경제TV <줌마렐라의 도전>에 게스트로 출연하면서 김성신 선생님을 만났다. 그 때 선생님이 ‘북앤트립’이란 코너에서 여자들이 읽으면 좋을 책을 소개해줬는데, 셰릴 샌드버그의 『린 인』을 읽어보라고 주셨다. 책을 읽고 “셰릴 샌드버그도 그렇고 마크 주커버그도 그렇고 벌레들이 참 일을 잘하네요”라고 했는데, 선생님이 “이렇게 피드백이 온 게 처음”이라고 하셨다. 그리고는 말을 접으셨다. 또 며칠 후 책을 몇 권 더 주셔서 읽은 소감을 이야기했더니 “정미 씨, 짧은 시간에 그 책들을 다 읽으셨군요”라고 하셨다. “할 일이 없어서 읽었어요”라고 대답했더니, “서평을 코미디 쪽으로 해보면 어때요?”라고 제안을 주셨다.

 

『북톡카톡』의 공저자 김성신 평론가가 개그맨 남정미의 새로운 길을 개척해준 셈인가?


(웃음) 그렇다. 그 때부터 김성신 선생님을 따라다녔다. 선생님이 출판계 분들을 많이 소개해주셨는데, 맨 처음 우리나라 1세대 출판평론가이신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님께 나를 데리고 가셨다. 서평하는 분들을 많이 만났는데, 모두들 굉장히 환영해 주셨다. 본인들이 읽는 책들을 소개해주시면서 어떻게 읽으면 좋을지를 알려주셨다. 개그맨들은 밥그릇 싸움이 심하지 않나? 내가 가진 아이디어를 꽁꽁 싸매서 PD들한테 짜잔 하고 보여줘야 하는 직업인데, 출판계는 그런 게 없더라. 이것도 알려주시고 저것도 알려주시고. 뭔가 내가 할 수만 있다면 여기에 팔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서평가 선생님들에게 들은 이야기가 궁금하다.


선생님들을 처음 만났을 때, 내가 했던 질문이 있다. “왜 이렇게 잘난 척하고 어려운 글 쓰세요? 서평을 읽다 보면 어려워서 책에 손을 못 대겠어요.” 그랬더니 선생님이 “서평 지면이 크지 않기 때문에 주어진 분량에 맞춰 쓰다 보니, 경제적인 단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하시더라. 깊게 들어가면 재밌게 쓸 수 있는데, 짧은 글에 핵심을 넣어야 하니 어려운 단어들을 쓰게 된다고 하셨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조언이 있나?


김성신 선생님이 해준 말이다. 나보고 대뜸 “정미 씨, 가난해요?”라고 묻더라. 그래서 “부자는 아니죠. 그런데 먹고는 살아요”라고 답했다. 선생님이 강조하신 말씀은 “그 어떤 출판사하고도 돈을 받거나 소개를 위해서 밥을 먹으면 안 된다. 서평을 하려면 굉장히 정의로운 사람이어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이 말을 듣고 되게 좋았다. 더 이 일을 하고 싶은 느낌이 들더라.

 

실제 서평가로 활동하기 시작했을 때, 많은 출판사들의 러브콜을 받았을 것 같은데.


책을 보내주시긴 하는데, 따로 만나거나 부탁을 받는 경우는 없었다. 항상 김성신 선생님이랑 다니니까(웃음) 따로 접촉할 기회가 거의 없다. 출판사에서 책을 받으면 선생님께 “이런 책 받았다”고 말씀 드린다. 처음에는 어떻게 인사를 해야 하나 싶었는데, 선생님이 “감사히 잘 읽겠다고 하고, 읽고 나서 책이 좋으면 소개하면 된다”고 하셨다. 또 “홍보비가 많이 없어서 마케팅을 잘 못하는 작은 출판사들이 많으니까 그런 책들도 관심을 많이 갖고 봐야 한다”고 말씀해주셨다.

 

책에서 강준만의『갑과 을의 나라』를 소개하면서, 개그감이 떨어진다고 걱정을 하던데. 서평가가 되기 전과 지금을 비교해보면 어떤가? 개그감이 많이 떨어졌나?


(웃음) 대신에 책을 읽는 사람은 훨씬 더 많이 웃길 수 있게 된 것 같다. 지금 격주간지 <기획회의>에 원고를 쓰고 있는데 책 읽는 셀럽에 대한 이야기다. 가장 먼저 개그맨 전유성 선배님을 소개했고 배우 소유진 씨, 이번 달에는 아나운서 최희 이야기를 썼다. 피아니스트 진보라도 만났다. 예전부터 알고 있던 분들인데 평소에 책을 많이 읽는 분들이다. 최희 씨는 요즘 철학에 꽂혔다고 했다. 그런데 산 책들이 너무 어려워 잠시 쉬었다가 읽을 생각이라고. 이렇게 읽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책을 샀다고 무조건 끝까지 읽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쉬엄쉬엄 읽어도 된다. 사람들에게 책 읽기가 무겁고 심오한 취미가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 싶다.

 

지금 박상륭의 『죽음의 한 연구』를 읽고 있는 중인가?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닌데.


요즘 박상륭 작가의 책을 많이 읽고 있다. 어렵긴 하다. 한두 장 읽고 덮어놓을 때도 있다(웃음). 책 읽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한지가 조금 지났으니까, 이제 게임 ‘테트리스’에서 말하는 하수, 바보 단계는 벗어난 것 같아서 ‘이 정도 책은 읽어도 될 거야’라고 생각했다. 서평을 하다 보니, 확실히 나에게 맞는 책을 추리는 시간은 훨씬 짧아졌다.

 

집에 책이 꽤 많겠다.


아빠가 며칠 전에 집에 오셔서 책장 구석에 철근을 대주셨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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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명환, 정찬우, 김태균 선배에게 고마워


코미디 서평가가 됐다고 하니, 주변의 반응은 어떤가?


나한테 책을 소개 받고는 “사기 당했다”고 한 분들이 조금 있다(웃음). 내가 수다를 떨면서 쉽게 설명을 해주니까 쉬운 책인 줄 알고 봤는데, 막상 읽어보니 어렵다는 거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다시 김성신 선생님한테 SOS를 친다. 우리 수준에 맞게 해석해주시면 그 이야기를 전해준다.

 

책 마지막 장에 ‘감사한 사람들’ 이름을 적었는데, 인맥이 대단하다.


연예인 분들은 많이 없다. 내가 살면서 신세를 진 분들, 한 번이라도 밥을 사주셨던 분들에게 고마운 마음으로 표시하고 싶었다. 고명환 선배 이름도 썼는데, 내가 가난하고 배고팠을 때 맛있는 걸 사주기 이전에 서점에 데리고 가준 오빠다. 당시 오빠 집에 봉천동이었는데, 서울대 근처 지하서점에서 책을 이만큼 사줬다. 너무 무거워서 낑낑대고 있으면 집에 데려다 주지는 않고 차를 타고 쓩 가버렸다(웃음). 근데 정말 되게 감사했다. 공지영 작가의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를 비롯해 정말 많이 받았다. 또 내가 컬투패밀리에 8년 동안 있었는데, 정찬우, 김태균 선배님한테 많이 배웠다. “왜 컬투패밀리는 가난한가요?”라고 하면, “돈 맛을 알면 사람의 가치적인 코미디를 못하고 건전한 코미디를 못한다”고 하셨다. 이를테면 누가 “남정미 씨, 용감한 시민상 받았다면서요? 미니스커트 입고 나가서”라고 말했을 때, 상처 받는 사람이 있으면 그건 건전한 코미디가 아니라는 말이다. 선배들은 성대모사를 해서 사람을 웃기지,, 누군가를 상처 주는 개그를 하지 않는다. 내 코미디의 평생 지론을 배운 곳이라서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북톡카톡』의 일러스트를 그려준 뚜루는 예스24 블로그를 통해 책을 출간한 작가다. 지금도

 

<채널예스>에서 지금도 카툰을 연재하는 걸로 알고 있다. 재밌게 읽고 있는 중이다. 작가님이 우리 책에 삽화를 그려주셔서 되게 영광으로 생각한다. 예전에 뚜루 작가님 책이 나왔을 때, 북콘서트 사회를 본 적이 있어서 얼굴을 뵌 적이 있다. 엄청나게 책을 많이 읽는 대단한 분이다. 뚜루 작가님이 그림으로 독자에게 다가갔다면 나는 수다로 독자들에게 다가가려고 한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물론, 안 좋아하는 사람도 『북톡카톡』을 재밌게 읽을 것 같다. 특히 이 책을 추천해주고 싶은 독자층이 있나?


내가 좋아하는 분들이 20대 후반부터 할머니까지, 여성 독자들이다. 나처럼 그동안 책을 많이 읽진 않았지만 관심은 갖고 있는 분. 그런 분들이 읽으면 좋을 책이다.

 

앞서 세 가지 꿈을 이뤘다고 했다. 앞으로의 꿈이 있다면.


우선 사람들에게 책 이야기를 재밌게 전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혼자 읽고 마는 게 아니라 책으로 대화의 장을 열어봤으면 좋겠다. 당장은 쉽고 재밌게 책을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10년쯤 하다 보면 나도 전문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두 번째 책 출간을 기대해도 좋을까? 


<기획회의>에 연재하고 있는 ‘책 읽는 셀럽’에 대한 이야기가 책으로 나올 것 같다. 책 이야기는 언제나 재밌고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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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톡카톡 : 읽다 떠들다 가지다 김성신,남정미 공저 | 나무발전소
코미디언과 출판평론가! 세상에서 가장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이 만났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오직 독서를 즐긴다는 것 뿐. 하지만 그들은 곧 의기투합하여 전혀 새로운 서평을 시도한다. 이른바 ‘수다서평!’의 탄생이다. 신간 [(읽다 떠들다 가지다) 북톡카톡]은 오늘날 가장 대중적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자리 잡은 카카오톡을 두 사람이 실제로 활용하여 펼친 책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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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성용, 월급을 많이 주면 애사심도 높아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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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내 회사에 필요한 컨설팅이 무엇인가?


『잘되는 회사, 평범한 회사, 곧 망할 회사』를 펼쳐들기에 앞서 떠오르는 세 가지 생각이 있다. 첫째, 어떤 회사이든 ‘잘되거나 평범하거나 곧 망하거나’ 셋 중 하나라는 것. 둘째, 내가 소속된 회사 역시 이 분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 셋째, 모두가 바라는 회사는 단 한 곳, 잘되는’ 회사뿐이라는 것. 생각이 이에 미치자 강렬한 호기심이 생겨난다. 회사의 운명을 결정짓는 건 뭘까. 평범하거나 곧 망할 회사가 되지 않으려면 어떤 것을 선택해야 하고, 어떤 것은 선택하지 말아야 할까. 이러한 질문은 『잘되는 회사, 평범한 회사, 곧 망할 회사』의 첫 장을 펼치게 한다.

 

“당신의 회사를 바꿀 65가지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잘되는 회사, 평범한 회사, 곧 망할 회사』는 경영에 필요한 정보를 다섯 가지 주제로 나누어 소개한다. 마케팅과 고객관리, 한국 경제계 전반, 리더십, 인재관리, 경영전략에 대한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 저자인 이성용 베어앤드컴퍼니 서울사무소 대표는 25년 이상 컨설팅을 하며 쌓아온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한다. 이번 책은 저자가 다수의 매체에 기고했던 칼럼을 엮은 것으로, 현실에 대한 냉정한 진단과 결과를 예측하는 예리한 통찰력이 드러난다.

 

“‘불특정 다수의 회사를 상대로 컨설팅 업무를 수행한다’는 생각으로 작성”했다는 저자의 말처럼, 책에 담긴 경영의 이론들은 보편적으로 적용 가능한 것들이다. 하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다. 신규 고객을 유치하는 것보다 기존 고객의 이탈을 막는 것이 더 경제적이라거나, 혁신을 위해서는 회사 자체의 성장에 앞서 시장 자체의 규모를 키워야 한다는 이야기는 많은 기업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들을 짚어준다. 임원들의 리더십을 유형별로 나누어 각각의 특징을 소개하는가 하면, 직원들의 충성도를 높이기 위한 방법들을 제시하기도 한다. 누구나가 조언할 수 있을 법한 틀에 박힌 이야기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이렇게 유용한 팁들이 짧은 글 안에 간결하고도 명확하게 담겨있으니, 독자 입장에서는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잘되는 회사, 평범한 회사, 곧 망할 회사』를 만나기에 앞서 준비해야 할 것은 한 가지 뿐이다. “지금 나와 내 회사에 필요한 컨설팅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끝까지 놓지 않는 것. 그것은 이성용 저자가 독자들에게 건네는 첫 번째 조언이기도 하다. 맞춤 진단과 처방을 찾아 나설 준비가 되었다면 책 속으로 걸어 들어갈 차례다. 경영과 인재의 관한 다양한 유형들을 살피다 보면 자연스레 해결책도 알게 될 것이다.

 

신규 고객보다 단골 고객이 더 중요하다


‘불특정 다수의 회사를 상대로 컨설팅 업무를 수행한다’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궁금합니다. 어떤 경우든 통용되는 경영의 원리라도 있는 걸까요?

 

기본적인 경영의 이론이나 기법은 항상 비슷한 것 같아요. 회사의 규모가 크든 작든 필수적인 부서들은 다 갖추고 있잖아요. 물론 회사의 규모가 크면 복잡성이 증가하기는 하죠. 그 복잡성을 관리하려면 조금 더 내부에 집중하게 되는 측면도 있고요. 그래도 궁극적으로 경영의 기본은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신규 고객 유치에 심혈을 기울이는데요. 대표님께서는 기존 고객의 이탈을 막는 데 더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조언하셨습니다. 이유가 무엇인가요? 


새로운 고객을 얻는 것보다 기존 고객을 지키는 것이 더 경제적이니까요. 신규 고객을 유치하는 데 드는 비용은 기존 고객을 지킬 때보다 5배~7배 정도 더 많아요. 기업들이 신규 고객 유치에 집중하는 건, 그랬을 때 회사가 더 커지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인데요. 그 사이에 기존 고객이 계속 떠난다면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과 마찬가지죠. 고객이 오래 머물러 있는 것이 중요한 거예요. 물론 쉬운 일은 아니죠. 장기 고객일수록 기대치가 높아지거든요. 그렇다 하더라도 고객의 이탈률을 막는 게 더 중요해요.

 

『잘되는 회사 평범한 회사 곧 망할 회사』에 따르면, 기존 고객은 신규 고객보다 상품을 추가 구매할 가능성도 높다고 합니다.


재구매 확률이 확실히 더 높아요. 그리고 오래된 고객은 시간이 갈수록 회사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주위 사람들에게 선전해주죠. 자신이 만족하고 이용하고 있으니까 나쁘게 이야기하지도 않고요. 반면에 새로운 고객은 만족스럽지 못한 상황이 생기면 쉽게 떠나요. 해당 기업이나 제품, 서비스에 대해서 좋지 않게 말하게 되고요. 그런 점에서도 오래된 단골 고객을 지키는 게 중요한데요. 현실적으로는 많은 기업들이 자신들의 단골 고객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어요.

 

책에서 ‘순추천지수’에 대해 설명하신 이유인 것 같습니다. 충성도 높은 고객을 파악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소개하셨죠.


많은 회사들이 CSI(고객만족지수, Customer Satisfaction Index)를 사용하는데요. 고객의 만족도가 항상 충성도를 의미하는 건 아니에요. 만족하고 있지만 떠나는 고객들도 있거든요. 그리고 CSI 측정값만으로는 고객만족지수의 상승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파악하기 힘들어요. 순추천지수(NPS, Net Promoter Score)를 조사하는 질문은 간단해요. ‘우리 기업을 당신의 지인과 가족에게 추천하고 싶은지’ 묻는 거예요. 사람들은 자신과 친한 사람에게는 허위 광고를 하지 않죠. 그래서 친한 사람에게 추천을 받은 사람은 믿고 쓰게 돼요. 가까운 사람에게 추천을 한다는 건 굉장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거죠.

 

충성고객의 이탈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새로운 고객에게 더 많은 혜택을 줄 때 충성고객은 박탈감과 소외감을 느껴요. 예전에 이동통신사들이 고객 유치 경쟁을 할 때, 신규 고객에게 또는 가입을 달성한 영업점에 많은 혜택을 줬는데요. 오래된 고객 입장에서 보면 자신에게서 얻은 이윤을 신규 고객에게 주는 것처럼 느껴지겠죠. 오래된 고객일수록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거예요. 회사가 고객을 이해해주면서 지속적으로 관계를 쌓는다면, 고객은 다음에도 그 회사의 제품을 구매할 거예요. 그런데 실제로는 그런 경우가 거의 없죠. 내가 물건을 구매했던 영업점에 가도 나를 기억하지 못해요. 그 사이 직원들도 다 바뀌었으니까요. 내가 어떤 물건을 사용하는지도 모르는 거예요. 그렇게 고객의 정보를 활용하지 못한다는 건 정말 안타깝죠. 지금처럼 IT가 발달한 상황에서 전화번호만 입력해도 다 알 수 있는 내용들이잖아요.

 

책에서 눈에 띄는 생소한 개념이 또 있습니다. ‘나쁜 이익’이라는 건데요. 이익이라면 모두 기업에게 도움이 되는 것 아닌가요?


돈을 버는 것 같지만 궁극적으로 보면 고객의 가치를 갉아먹는 이익이 있어요. 그게 바로 나쁜 이익이죠. 책에도 적은 것처럼 다양한 예들이 있는데요. 한 항공사의 경우에는 고객이 비행기 티켓을 자주 분실한다는 데 착안해서 티켓의 재발급 비용을 비싸게 책정했어요. 새로 티켓을 발급받는 게 더 저렴할 정도로요. 어떤 렌터카 업체는 연료 리필 서비스 요금을 많이 부과했죠. 차를 반납할 때 주유하는 걸 깜빡하는 고객들이 많으니까, 대신 채워주면서 비싼 금액을 받는 거예요. 그런 경우에 고객은 얼마나 기분이 나쁘겠어요? 다음부터는 이용하지 않겠죠. 회사 입장에서는 눈앞의 이익 때문에 장기적으로 내다보지 못한 건데, 이런 게 나쁜 이익이에요. 기업의 전체 이익 중에 약 20%~30%를 차지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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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업의 임원들, 기업가 정신이 필요하다


현재 한국의 경제상황에서 필요한 것은 ‘신경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경제’란 무엇인가요?

 

지금 우리나라의 문제는 ‘생산성은 올라가고 회사는 잘 되는데 고용창출은 안 된다’는 거죠. 경제의 약 70%가 수출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 공장지대에 가보면 사람을 볼 수가 없어요. 다 컴퓨터를 이용해서 공장을 운영하고 있는 거죠. 생산성만 올라간 거예요. 이럴 때 고민해야 하는 건 ‘어떻게 하면 고용을 활성화시킬 수 있을까’라는 것이고, 그래서 신경제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된 거죠. 신경제는 ICT(Information and Communications Technologies)를 기반으로 하는데, 생산성을 높일 뿐만 아니라 저변을 넓히는 거예요. 많은 사람들이 고용될 수 있게 하려는 거죠.

 

말씀하신 것처럼 ‘고용 없는 성장’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대표님께서는 기업들을 향해 ‘외부 혁신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고 조언하셨는데, 그러한 움직임이 고용 창출로 이어질 수 있을까요? 


보통 혁신이라고 하면 기존에 있는 것을 빨리 싸게 효율적으로 만드는 걸 생각하지만, 제가 말하는 혁신은 달라요. 가장 좋은 예가 커피인데요. 커피 시장을 크게 만든다고 하면, 많은 사람들은 커피 소비량이 늘어나야 한다고 생각하죠. 커피를 마시는 사람은 더 많은 양을 마셔야 하고, 커피를 마시지 않던 사람도 커피를 마시게 되어야 한다고요. 그런데 커피 시장이 성장한 과정을 보면 그렇지 않거든요. 스타벅스가 생기면서 커피를 패스트푸드처럼 소비할 수 있도록 하면서, 즉 테이크아웃도 할 수 있고 이동하면서도 즐길 수 있게 하면서, 가격도 높게 책정했어요. 그러면서 커피 인구가 늘어났고, 커피 머신이나 캡슐 커피에 대한 수요도 생겨난 거죠. 시장이 엄청나게 커진 거예요. 그런 게 외부 혁신이죠.

 

신경제가 ICT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면, 정보통신 분야에서만 혁신이 가능한 건가요?


그렇지 않아요. 구경제에서도 혁신이 일어나죠. 풀무원의 경우를 예로 들 수 있을 거예요. 사실 두부를 만드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풀무원은 깨끗한 생산과정으로 포장두부를 만들었고, 그 제품을 비싼 가격에 판매하는 데 성공했어요. 두부의 가치를 몇 배 더 높인 거죠.

 

임원들의 리더십을 6가지-전략적, 전술적, 병참학적, 관계적, 기업가적, 전문가적 유형으로 분류하셨습니다. 이중에서 한국의 기업 임원들에게 가장 요구되는 스킬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가장 필요한 건 기업가 정신이라고 생각해요. IMF 이후에 새로운 대기업이 나오지 않고 있는 이유는 기업가 정신이 부족해서가 아닐까 싶습니다. 예전과 달리 한 사람이 경영을 주도하던 시대는 지나갔어요. 임원들 중에 기업가 정신을 가진 분들이 나와야 하죠. 그런데 여러 가지 이유로 그러지 못하는 것 같아요. 저는 직원들이 기업가 정신을 발휘해서 외국의 신흥 마켓에 서 실력을 발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대부분 미국에 가서 일을 하라고 하면 좋아하는데, 인도나 아프리카나 중동은 기피해요. 하지만 미국에 가서 성공하기란 쉽지 않거든요. 굴지의 기업들이 이미 자리를 잡고 있어요. 또 신흥 마켓에는 젊은 직원들을 보내려는 경향이 있는데 노하우가 많은 사람이 가야 하죠.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가 시장이 진출할 때 성공할 확률이 25%~27% 정도 밖에 안 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직원들의 기업가 정신이 필요하고, 노하우가 많이 쌓인 직원들이 필요한 거예요. 그런 역할을 수행하고 돌아왔을 때 보상해 주는 회사의 방침도 필요하고요.

 

기업의 CEO와 최고 경영진이 할 일은 ‘스킬 유형별 임원들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때 가장 최악의 경우는 병참학적 임원이 너무 많은 상황일까요?


꼭 그렇지는 않은데요. 병참학적 인원이 많은 곳은 공무원 조직처럼 되어버리곤 해요. 계획과 절차 자체를 고객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거예요. 병참학적 인원이 아니더라도 같은 스킬을 가진 사람이 너무 많으면 문제가 되는 것 같아요. 추진자형 임원이 많으면 주장은 많은 반면 결정하고 실행하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분석자형 임원이 많은 곳에서는 분석만 많이 하고요. 안 되는 이유만 계속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래서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지 말고 골고루 구성하는 게 중요해요. 그러려면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도 받아들이고 함께 공존하려는 사회 분위기가 마련되어야 하고요.

 

효과적으로 커뮤니케이션하려면 어떤 훈련을 해야 할까요?

 

『잘되는 회사 평범한 회사 곧 망할 회사』에서 다섯 가지를 설명했는데요. 첫 번째는 말하기(Speaking)보다 이야기하기(Telling)를 연습하라는 거예요. 입에서 나오는 대로 이야기하지 말고,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고 말할 내용을 정리하라는 거죠. 두 번째는 경청하는 것이고, 세 번째는 쓰기처럼 말하기를 연습하는 거예요. 쓰기를 하다보면 글을 쓰듯이 말을 하게 되거든요. 네 번째는 비언어적인 신호에 주목하는 겁니다. 보디랭귀지는 굉장히 파워풀한 언어예요. 그리고 마지막은 짧고 간단하게 말하라는 건데요. 이런 내용들이 쉬운 것 같아 보이지만 체화되기까지는 굉장히 힘들어요. 하지만 커뮤니케이션만 잘해도 비즈니스 능력을 두 배는 끌어올릴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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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을 많이 주면 충성도가 높아질까?


고임금과 직원 충성도의 관계’는 많은 경영인들이 궁금해 하는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책에서 ‘직원 충성도는 아무리 많은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다’고 하셨는데, 그렇게 판단하시는 이유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한동안 IT 업계에서 가장 많은 돈을 벌었던 기업이 마이크로소프트였어요. 그런데 직원들은 더 열심히 일을 하지도 않았고, 많은 직원들이 떠나가기도 했죠. 그와 반대로 도요타의 경우에는 ‘다시 태어나도 도요타에서 일할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직원의 비율이 40% 정도예요. 그 충성도는 임금으로 인해 결정된다기보다는, 회사가 얼마나 직원들에게 혜택을 주고 자부심을 부여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아요. 은퇴한 직원을 다시 일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겠죠. 회사를 광고하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광고의 최대 수혜자는 고객이 아니라 직원이거든요. 주변 사람들이 회사 광고를 보고 나를 인정해주면 충성도가 생기는 거예요. 그렇게 작은 부분들에서도 충성도가 생겨요. 물론 임금이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죠. 동종업계의 다른 회사보다 적게 준다면 문제가 될 거예요. 그렇지만 임금이 직원의 충성도를 결정짓는 전부는 아니에요.

 

인재를 기업에 남아있게 하려면 복지제도의 마련도 중요하지 않을까요?


입사하는 직원에 대한 대우보다 떠나는 직원에 대한 대우가 더 중요해요. 회사를 그만두는 직원에 대한 대우에 따라 남아있는 직원들의 생각이 달라지거든요. 이곳에서 계속 일할 가치가 있다고 느낄 수도 있고, 빨리 떠나는 게 낫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거예요. 의외로 한국의 회사들은 떠나는 직원에게 잘해주지 못해요. 수십 년 씩 근무하다가 퇴직하는 임원이 있을 때, 동료들이 송별해주는 경우는 있지만 회장이 참석하는 경우는 드물죠. 심지어 문자로 통보하고 마는 곳도 있어요. 그 모습을 보면서 남아있는 직원은 어떤 생각을 할까요? ‘나는 살아남아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남의 일이 아니다, 다른 직장을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죠.

 

『잘되는 회사 평범한 회사 곧 망할 회사』에서 ‘시나리오 경영’에 대해 소개하셨습니다. 시나리오 경영이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시나리오 경영은 발생할 수 있는 상황들에 따라서 말 그대로 시나리오를 미리 준비해 놓는 거예요. 그래서 시장의 흐름에 맞춰서 움직일 수 있죠. 위기 상황이 왔을 때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 방법을 알려줄 수도 있고요. 미리 대처 방안을 알려주지 않고, 문제가 발생했을 때 누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규명하는 데에만 집중하면 안 되잖아요. 그건 마치 운전할 때 룸미러로 뒤만 쳐다보는 것과 같아요. 앞을 봐야 하는데 지나간 일에만 집중하는 거죠. 시나리오 경영은 전방을 주시하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하는 거라고 할 수 있어요.

 

대표님께서는 뛰어난 통찰과 분석으로 많은 주목을 받아 오셨는데요. 어떻게 하면 그렇게 현상을 꿰뚫고 멀리 내다볼 수 있는지 경영인들에게 노하우를 들려주세요.


제가 컨설팅을 하면서 경험한 바에 따르면, 경영이나 영업 실패의 원인을 한국의 정서나 회사의 문화에서 찾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그런데 영업이 부진한 이유는 제품이 좋지 않아서가 아니에요. 가격 경쟁력이 없어서도 아니고 경쟁 회사의 제품이 너무 뛰어나서도 아니죠. 영업을 못하기 때문이에요. 경영에 실패하는 이유도 한국 특유의 정서 때문이 아니라 경영을 못하기 때문이고요. 자본이 부족한 회사는 자본만 있으면 경영을 더 잘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돈이 더 필요한 이유는 경영자 본인이 그렇게 만들기 때문이에요.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필요한 것 같아요. 그러고 나서 자신의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노력을 해야 통찰력이 생기겠죠. ‘어떻게 하면 통찰력이 생기는지’ 물어 오시는 분들이 많이 계신데, 저는 책을 많이 읽으면 자연히 생긴다고 대답하곤 해요. 경영인들이 많은 책을 읽고 배울 필요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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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되는 회사, 평범한 회사, 곧 망할 회사이성용 저 | 매일경제신문사
《잘되는 회사, 평범한 회사, 곧 망할 회사≫는 세계 최고의 컨설팅회사로 불리는 베인앤드컴퍼니 서울사무소의 대표 이성용이 매주 매일경제신문에 기고한 칼럼을 모으고 정돈하여 낸 책이다. 이 책은 크게 다섯 가지 프로젝트(주제)로 나뉘어 있다. 마케팅과 고객관리, 한국 경제계 전반, 리더십, 인재관리, 경영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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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혁 “『왜란종결자』는 세계관에 기초를 잡은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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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 류성룡, 이순신, 곽재우, 임진왜란… 이 시기에 대한 관심이 최근의 것은 아니지만 임진왜란을 전후한 조선에 관한 이야기들이 유독 많이 회자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작년, 엄청난 사랑을 받았던 영화 <명량>과 더불어 현재 방영중인 드라마 <징비록>까지, 이 혼란한 시기를 살았던 영웅들과 세상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로운 소재다.


‘임진왜란’을 다룬 창작물 중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작품이 있다. 『퇴마록』을 통해 한국 판타지의 새 지평을 연 작가 이우혁이 우리 역사를 통해 ‘우주 8계’의 커다란 세계관을 보여준 작품 『왜란종결자』가 그것이다. 어린 은동의 성장, 800년 도를 닦은 흑호와 범접할 수 없는 능력의 환수 호유화, 저승사자 태을의 넘치는 도력을 지켜보는 것은 그 자체로 엄청난 재미다. 그렇지만 이것만으로 『왜란종결자』를 설명할 수는 있을까. 『왜란종결자』가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소설인 만큼 작가 이우혁은 어느 하나 소홀히 다루지 않는다. 임진왜란 당시 왜군의 선봉장이었던 고니시 유키나가부터 의병 곽재우와 명장 이순신까지 시대를 풍미했던 인물들이 등장하고, 알려지지 않았던 내면의 이야기와 그들이 시대를 보는 시선까지 섬세하고 실감나게 그려낸다.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이야기인지 분간하기 힘들만큼 이우혁의 이야기는 완벽에 가까운 짜임새로 독자를 사로잡는다.

 

무엇보다 이우혁의 작품은 쉽게 읽힌다. 가볍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야말로 쉽게 읽을 수 있다. 그가 다루는 거대한 이야기에 비하면 놀라울 정도로 가독성이 뛰어나다. 바로 이 대목에서 작가 이우혁이 빛난다. 그는 “사람들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쓴다는 것에 대해서는 조금도 변함이 없지만 내용의 깊이를 그 안에 숨겨두겠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말로 자신의 글쓰기를 설명했다. 작가가 들려준 거대한 세계관을 다 기록할 수 없었지만 앞으로 나올 그의 새로운 작품에 대해서는 ‘기대해도 좋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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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책이 더욱 중요한 것


개정된 『왜란종결자』에 대한 소개 먼저 부탁합니다.


『퇴마록』과 더불어 개정 작업을 다 했어요. 생각보다 까다로웠어요. 마음대로 다시 써버릴까도 생각했어요. 20년 전 글과 지금은 다르니까요. 그렇지만 완전히 뒤집어 버리면 전에 작품을 읽은 많은 분들에 대한 방해가 되죠. 어느 선까지 개정을 하느냐 고민이 많았어요. 설령 문체가 투박해도 남겨두기로 했습니다. 뉘앙스는 살리고 방해되지 않는 선에서 고쳤어요. 제 나름대로 생각이 있었던 것이지만 대중적 선호와 달라서 아쉬워하셨던 부분은 좀 더 보강을 했고요. 『퇴마록』같은 경우 제가 마음에 안 드는 부분들, 문장에 악습이 있었는데 그런 걸 고쳤고, 명확하지 않은 부분을 보강하는 작업을 했어요. 개정판을 읽은 분들에게 반응이 괜찮았던 것 같아요. 『왜란종결자』도 뒷부분에 자세한 내용을 원하는 분들이 있어서 더 썼죠. 많은 분들이 아쉬워하셨던 성성대룡과의 대결이나 마지막 싸움 등이 그렇습니다. 이 작품은 제가 갖고 있는 세계관에 기초를 잡은 작품 같은 건데요. 세계관에 어긋나지 않도록 세부적인 부분을 맞췄어요. 「유계정벌기」가 추가되었는데 그것이 바로 세계관과 이어지는 맥락이 되는 부분이죠. 카피에 써서 살짝만 얘기하자면 그게 ‘온’이에요. 엄청나게 대작이 될 가능성이 있어요.

 

잠깐 말씀하셨지만 역시 『퇴마록』얘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요.


『퇴마록』쓸 때는 스스로 작가라는 생각조차 없었어요. 4~5년 후에야 작가라는 말을 비로소 쓸 정도였어요. 전업 작가가 될 생각이 없었거든요. 많은 분들이 오해하시는데 실상은 전혀 달라요. 다른 사람들은 소설가가 되기 위해 오랫동안 경험을 쌓고, 준비하는데 저는 어느 날 갑자기 소설가가 되어버렸어요.(웃음) 그때부터 따라잡아야 하는데, 이런 부분은 다른 분들은 상상도 못하는 고충이에요. 흔히 좋겠다고 말씀하시지만 다음 작품의 수준이 전작에 비해 너무 떨어지면 끝장이기 때문에 항상 어려웠죠. 처녀작이라면 다음에 올라가면 되지, 하겠지만 한 번 올라가놓으면 그게 없어요. 저는 처녀작에, 공부도 안 해봤는데 그렇게 쓴 것이 엄청난 사랑을 받으니까 힘든 면도 그만큼 있었어요. 물론 좋은 면도 많았지만요. 좋기는 하지만 엄청나게 난감해요.(웃음) 글쓰기 공부를 그때부터 한 거예요. 그래서 초기작품이 투박한 것은 저도 인정해요. 그래도 아예 떨어지는 수준으로 쓰지는 않았거든요. 천재적인 작가들에 비교해서 그렇다는 거죠.


말씀은 그렇게 하셔도 그토록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고 읽었던 데에는 그만큼 작품 자체가 가진 매력, 힘이 있다는 뜻이잖아요.

일단 죽을 때까지 대표작으로 『퇴마록』이 따라붙을 테고, 이 작품은 이미 내 힘으로 어떻게 안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작품의 파급력 때문에라도 어쩔 수 없는 거라고요. 그런 부분은 두고 여러 길을 찾자고 마음먹었어요. 퇴마록 시리즈만 계속 썼다면 돈은 정말 많이 벌었을 거예요. 하지만 제가 거부했거든요. 다른 분야의 것들을 하겠다고 한 거죠. 지금도 계속 새로운 길을 모색하면서 하고 있고요. 사람들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쓴다는 것에 대해서는 조금도 변함이 없지만 내용의 깊이를 그 안에 숨겨두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하다 보면 알아봐줄 날이 있겠죠.


영감을 얻는 특별한 것이 있나요? 대단히 넓은 이야기들이기도 하고, 다양한 이야기를 하기도 하시는데요. 


15년 걸렸어요.(웃음) 공부도 엄청나게 했죠. 『퇴마록』을 보고 책 많이 읽었겠다고 하시는데, 그건 비교도 안 돼요. 그때는 회사 다니면서, 글 쓰면서 틈틈이 본 것이었고요. 다행히도 제가 책을 엄청나게 빨리 봐요. 통사적으로 주제를 잡고 기억하는 능력이 남들과 좀 다른 것 같아요. 주변에서 보시고 그런 얘기를 많이 하시더라고요. 저는 책 찾을 때 고민한 적이 없어요. 또 어려서부터 책 읽는 것을 무척 좋아했어요. 이 점에 대해 이 자리를 빌려 얘기하자면요. 사람들이 보통 책을 많이 읽었다고 했을 때 이해하는 범위가 저와는 좀 다른 것 같아요. 100권 단위를 많이 읽었다고 생각하시기도 하는데요, 몇 천 단위, 심하게는 몇 만 단위로 가거든요. 구체적으로 세어보진 않았지만 규모가 좀 달라요. 읽은 것이 어느 정도 바탕에 있어야 창작을 하는 거니까요. 그건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독서하라는 건 너무 고리타분한 이야기처럼 생각될 수 있겠지만 엄청나게 중요합니다. 언어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책이 더욱 중요한 것이거든요. 읽어서 완성된다고 말하기도 했는데요. 한 권을 읽어도 제대로 읽은 사람이 대충 천 권 읽은 사람보다 낫거든요. 제일 나쁜 사람이 인덱스(index)만 읽은 사람이에요. 제가 많이 쓰는 말인데요, 모르는 건 죄가 아닌데 모르는데 아는 척 하는 순간부터 죄가 돼요. 그건 죄예요.(웃음)


그런 생각이 있기 때문에 작품을 쓸 때도 훨씬 다른 태도를 가지고 계실 것 같아요. 


초발심을 유지하려고 해요. 제 초발심이 학문으로 접하는 것과 비슷하게 됐었기 때문에 그래요. 내용은 쉽게 많은 분들이 알아보게 쓰지만 쓰는 태도는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논문 교정하는 정도의 마음이 더 컸어요. 궁극적으로는 대하는 자세의 문제더라고요. 좀 부담스럽긴 해요. 저보다 잘 쓰는 분들이 많으니까요.(웃음) 날이 갈수록 그런 쪽으로는 암담한 마음이 있어요. 천재들은 당할 수가 없어요. 노력만 가지고는 안 되거든요. 저도 몇 가지 분야에서는 천재성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자부하기도 하지만, 글을 쓰는 것에 천재로 태어난 사람들을 보면 어쩔 수가 없어요. 은희경 작가 같은 분은 짧게 원고 쓴 것만 봐도 할 말이 없는 거예요.(웃음) 아우라가 확 나오더라고요. 그런 것을 따라할 수도 없고, 가르쳐줄 수도 없죠. 자기의 확고한 세계가 있는데 억지로 넣어주려고 해도 안 들어가요.


스스로 작가라고 말하게 된 것이 『퇴마록』이 나오고 4~5년 지나서라고 하신 것도 그런 맥락이었겠네요. 


그때 그런 생각을 했어요. 쓰는 법이나 나만이 가진 것을 정립하자고요. 이런 부분은 선천적으로 생기는 게 아니라 제가 생각해서 하는 거니까요. 저도 자료 조사하는 방법을 가르쳐달라고 하면 방법이 없어요. 타고난 부분이 있거든요. 『퇴마록』자료를 어떻게 찾았느냐고 하는데 저는 미술사에서 찾았어요. 그냥 거기 있을 것 같았어요. 아마 구성을 저처럼 복잡하게 하기는 쉽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적어도 생각하는 방법, 구성을 어떤 식으로 따라가는가, 그런 것들은 제가 정립한 것을 남길 수 있겠죠. 


쓴다는 행위가 작가에게 굉장한 의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거의 표출이라고 표현을 해요. 옛날부터 그런 생각을 했어요. 예술, 창작은 항상 창작심이나 자기 안에 덩어리가 있는데 이것을 무엇으로 끌어내느냐 하는 것이라고요. 화가는 그림으로 표현할 것이고, 음악가는 음악으로 끌어내고, 요리사는 맛으로 끌어낼 수 있는 거죠. 개념을 끌어내는 것은 언어밖에 없어요. 개념으로 정의될 수 있는 것은 보편성을 가지기 때문에 조금 희박하고, 개개인의 자의적 해석이 가능하기도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중요한 거예요. 아들러, 라캉, 데리다 모두 그랬죠. 언어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강력한 수단이라고요. 아주 공감하는 입장인데요. 언어란 개념을 전달하는 것이기 때문에 소통이 되냐 안 되냐의 차이고요. 글자로 고정화시켜놓은 보편타당한 선에서 얼마만큼 끌어들일 수 있느냐가 작가의 역량이에요. 문체도 전달하는 수단이잖아요. 그래서 문체에 대해 저는 일부러 버리고, 간결하게 하는 쪽을 택했어요. 저는 글의 목적이 ‘얼마만큼 끌어들일 수 있느냐’ 거기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에요. 재미있게 하려면 계속 버리는 게 맞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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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혁의 세계관


‘시투력주’는 ‘과학’이나 ‘문명 기술’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며 환상적 요소들과의 조화를 이루는 데 아주 유용하게 사용돼요. 미래의 기술이나 과학에 대해 많은 얘기를 하지 않지만 꼭 필요한 내용이었을 것 같은데요. 


그 장치는 신계의 가호로 만든 거죠. 그렇게 따지면 역사가 정해져 있다는 흐름이 돼요. 좀 더 큰 세계에서 말씀 드리면요. 이게 진짜 역사는 아닌 거예요. 그렇다는 것이 소설에도 나와요.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보는데, 예측된 미래는 창조된 미래예요. 과거에 만들어진 미래인 거죠. 이런 부분은 실제 물리학에서도 검증이 됐거든요. 미래를 추측할 수는 있지만 미래를 봤다고 하는 건 완벽한 거짓말이에요.


뇌옥, 유계 등 필연적으로 종교적으로 읽히는 부분들이 많아요. 종교적 요소를 의도적으로 사용하신 건가요? 어떻게 사용되었나요? 


종교적이지만 종교에 얽매이진 않죠. 당연히 의도적으로 사용한 부분이고요. 예를 들어 ‘뇌옥’이나 ‘저승’ 같은 경우 불교 세계의 저승과 비슷하거나 우리 민담의 저승이죠. 『왜란종결자』‘유계정벌기’에 보면 서양 사신 나오잖아요. 서양의 상상 그대로의 모습이죠. 낫을 들고 있고요. 그런 식인데요. 종교라는 것이 현대에 너무 의미가 퇴색된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좋은 가르침이 많은데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문제예요. 가르침에 대해서는 조금도 틀린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그걸 가지고 온갖 짓을 다 하죠. 회교(回敎, 이슬람교)도 굉장히 좋은 종교예요. 아주 겸손하고요. 다른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하는 게 회교예요. 지금 IS 같은 게 나오는 걸 보면 정말 문제죠.


하지만 쓸 때는 종교의 율법에 얽매이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조금 더 인간적인 부분을 써야죠. 세상에 널려있지 않으면 어떤 것도 진리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미처 깨닫지 못하거나 실행 못하는 게 진리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관점에서 종교적인 내용이나 이런 것들을 다뤄야죠.


은동은 거의 대도가 되어서도 끝까지 고민하는 존재입니다. 영웅적인 면모라기보다는 훨씬 보통의 인간형에 가까운데요. 이렇게 캐릭터 설정을 한 이유가 있나요? 


보통 사람만이 자격이 있거든요. 평균 지성만이 자격이 있는 거예요. 엄청나게 특출난 괴물이 나오는 게 아니라요. 진짜 대표자의 자격은 가장 평균일 수 있는 보통 인간이어야만 되는 것이에요. 은동이 그래요. 엄청난 힘을 얻었지만 정신까지 초탈해버리면 인간의 대표가 될 자격이 없는 거예요. 굉장히 특수하고요, 어떻게 보면 불우한 캐릭터죠. 후반부에서 은동이 ‘알았다’고 하면서 살짝 우는데, 그것 때문에 그래요. 은총과 엄청난 책임감 같은 것들을 보통의 사람으로서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에요. 인간의 범도 내에서 초월적인 힘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죠. 책임감과 더불어 자신의 운명도 깨닫는 거예요. ‘나’로 계속 될 수가 없거든요. 스스로 없어져야 해요. 그래서 슬퍼하고, 정을 끊고, 아들을 한 명 남기는데요. 그런 장면이 많은 걸 암시해요. 은동이라는 개인에게 초점이 맞춰지는 것은 이 작품이 마지막이에요. ‘온’으로 가면 그냥 ‘그’가 돼요.


역사적 사실들과 이야기가 톱니바퀴처럼 연결이 되어 있어서 더 많은 독자들이 좋아하는 작품이 아닐까 해요. 섬세하게 역사적 사실을 담기도 했고요. 


사건 하나하나는 쓸 때마다 머리에서 짜낸 거예요. 물론 큰 흐름이라는 건 있죠. 이순신에 대한 이야기, 엔딩 같은 것들이 그래요. 저는 엔딩은 꼭 정해놓고 써요. 엔딩을 바꾼 경우는 거의 없어요.


시놉시스만 A4로 70장


『퇴마록』의 영화화 소식에 많은 팬들이 열광했는데, 이 작품 역시 그러해요. 계획이 있나요? 바라는 점이 있다면요? 


많은 분들이 기대하셨는데요. 『퇴마록』의 영화화 작업은 구체적인 진행이 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에요. 『왜란종결자』역시 은근히 이야기가 나오는 건 있는데 제가 거의 안 한다고 소문을 내놓은 상태고요. 제 작품이 영화로 만들기 사실 무척 어렵거든요. 그래서 차라리 시나리오를 제가 직접 하겠다고 하는데 그건 진입을 못하게 하기도 해요. 지금은 차근차근 애니메이션 시나리오 작업부터 하고 있어요. 그 분야에서 시나리오 작업이 자리를 잡으면 소설가라고 진입벽을 높이는 부분은 좀 줄어들겠죠.(웃음)


애니메이션 시나리오 작업에 대해 좀 더 말씀해주세요. 


예전에 방영 한 번 했고요, 이번에 ‘로보텍스’라는 작품이 방영돼요. 아이들을 대상으로 했지만 어른들이 봐도 괜찮을 만큼 공을 들였어요. 엄청 힘들었어요. 복잡한 얘기를 하니까 제작하시는 분들이 수정요청을 하셔서요. 컷트도 많이 당했는데요. 그래도 이 정도로 제 세계를 방어해낸 것만으로 다행이라 생각해요. 일본, 북미권까지 방영이 다 될 예정입니다. 관심 있게 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애니메이션 작업도 계속 하게 될 것 같아요. EBS와도 계약이 되어서 내년 말 경에 소개할 수 있을 거예요. 


소설과 시나리오 작업 어느 쪽이 더 어려우세요? 


시나리오가 더 편해요. 소설은 묘사가 들어가니까요. 시나리오 작업을 하면서 협업의 어려움은 조금 있지만요. 제가 못하는 영역이 분명히 있으니까요. 살면서 보니까 각자 전문 분야라는 것에는 이유가 있더라고요.


작가님의 또 다른 세계를 기다릴 많은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온’에 대해 아직 구체적으로 말씀 드릴 수는 없습니다. 다만 구상하는 데만 15년 쯤 걸린 것 같아요. 간략하게만 말씀드리면, 시놉시스만 A4로 70장입니다.(웃음) 엄청나게 힘들었어요. 4, 5년 전쯤에는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었을 정도로요. 지금은 골격이 많이 드러난 상태예요. 전혀 다른 세계, 다른 시대의 다른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가 쭉 엮여서 연대기가 구성되는 형식이에요. 『바이퍼케이션』은 2부가 올해 나올 예정이고요. 이번이 완결입니다. 1부가 완결이 아니에요.(웃음) 가을쯤에 『퇴마록: 외전』 3권 계획이 있어요. 논의 중인데요. 여러분이 상상하시는 결말을 모두 포괄하는 새로운 결말이 될 겁니다. 소설 개정 작업은 거의 다 끝났고, 『파이로매니악』 하나 남았는데요. 테크노스릴러인데 시대가 많이 흘러서요. 주인공은 같지만 사건, 내용은 완벽하게 새로 씁니다. 내년에 작업할 생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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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란종결자이우혁 저 | 엘릭시르
전쟁통에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를 찾아나선 은동, 알 수 없는 이유로 사라지기 시작한 혼들을 추적하는 저승사자 태을, 800년간 도를 닦은 호랑이 흑호, 우주 팔계를 통틀어 상대할 자 없는 환수 호유화. 조선이 건국된 지 200년, 후에 임진왜란으로 기록되는 기나긴 전란 속에서 왜란 종결자를 찾아 천기를 바로잡기 위해 분투하는 네 사람의 치열한 싸움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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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시덕 “한반도는 변방으로 살 길 고민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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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는 예전부터 지금까지 해양 세력과 대륙 세력이 충돌했던 지정학적 요충지였다. 지정학적 요충지에서 터전을 일군 탓에 한민족은 외세의 침입을 많이 받아왔다. 하지만 한민족은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었기에, 주로 침략을 당했지 다른 민족을 공격하지는 않았다. 이런 식의 이해가 한국사를 이해하는 주류 관점이었는데, 과연 사실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공정성을 잃은 다분히 민족주의적인 관점이다.

 

김시덕 교수가 쓴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는 우리의 민족주의를 거둬내고 이 지역의 역사를 바라본 책이다. 그는 국제전쟁으로서의 임진왜란을 중심으로 16~20세기 동부 유라시아 지역의 전쟁사를 연구해온 문헌학자이자 역사학자이다. 이 책은 그러한 저자의 연구 분야를 충실히 반영한다. 고대사에 관해서 짧게 설명이 나오기도 하지만 이 책이 주로 다루는 시간대는 임진왜란에서 시작해 태평양전쟁까지다. 공간적으로는 러시아로부터 일본을 포함했다.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를 읽으면 우리가 비교적 잘 안다고 생각했던 임진왜란에 관해서도 새롭게 알게 되는 내용이 적지 않다. 또한 러시아, 대만, 오키나와처럼 한국과 가깝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공간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다. 더불어 문순득처럼 잠시 잊혀졌지만 새롭게 조명되는 인물을  만나게 될 것이다. 조선의 천주교 박해처럼 아팠던 역사도 우리가 외면하면 안 될 엄연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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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를 다뤘지만 결국 한국을 이야기하는 책

 

책은 제목과는 달리 동아시아보다 다루는 범위가 넓습니다.

 

주간조선에 연재할 때 원래 제목은 ‘한반도와 유라시아 동해안 500년사’였어요. 제 관심사는 북쪽으로는 알류산열도부터 남쪽으로는 필리핀까지 포함한 지역입니다. 동아시아로 한정하지 않았어요. 이 책에서 보여주고 싶었던 사실도 한국인이 활동한 범위가 동아시아로 한정되지 않았다는 점이었고요. 동아시아라는 말이 많은 사람에게 익숙하긴 하지만, 한국과 중국을 주로 이야기하고, 일본마저도 곁다리로 취급하는 면이 있거든요. 그래서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에서도 동아시아라는 말을 거의 쓰지 않았죠.

 

한반도가 해안과 대륙이 충돌했던 지정학적 요충지라고 말하지만, 제가 하려는 말은 정반대입니다. 해안과 대륙이 충돌했던 게 사실이지만, 요충지로서 역할은 끝났습니다. 변방으로서, 그렇지만 예전과는 다르게 힘이 있는 상태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를 고민해야겠죠. 그런데 책 제목 때문에 제가 하려던 말의 반대 반응이 나오고 있어 약간은 당혹스럽습니다.

 

서문에 쓰신 것처럼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진 인명, 지명, 사건을 언급했는데도 청중이 당혹스러워하거나 심지어는 반발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하셨는데요. 글 연재할 때 독자 반응은 어땠나요.

 

제 연재에 관계했던 분이 카프카의  “한 권의 책은 우리 안에 얼어붙어버린 바다를 깨부수는 도끼여야 한다”라는 말을 인용했습니다. 제 글이 도끼 같은 역할을 했다는 의미인데, 연재 때도 충격적이라는 독자들 반응이 많았어요.

 

이 책 주제는 무엇일까요.

 

결국 한국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국가가 아니라 한반도 사람이 어디까지 움직였는가를요. 문순득이 대표적인데, 묻혀버렸지만 지금 필요로 하는 사람 이야기가 이 책에는 많습니다. 문순득은 조선 시대에 가장 멀리까지 가 본 사람이죠. 꼭 역사가 교훈이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지금 미국이나 인도 등 다른 세계에 갈 때 내가 처음이 아니라 조상이 왔다는 걸 알면 불안감이 없어지겠죠.

 

그렇다고 ‘위대한 한민족’을 이야기하자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재야사 쪽의 위대한 한민족 이야기는 경계해야 합니다.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많이 배운 사람들도 대륙이 우리 거라는 식으로 주장합니다. 대륙 삼국설과 대륙 고려설 그리고 대륙 조선설까지 나왔어요. 루즈벨트가 한국민의 우수성을 시기해서 20세기에 대륙에서 한반도로 강제 이주 시켰다는 주장까지 있고요.

 

이런 황당한 주장이 왜 발생했는가를 생각해보면, 고대사에 제대로 대응 안 한 학계 책임도 있지만 아마 열등감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비틀어진 열등감이 우월감으로 전환된 거죠. 중국, 일본에 대한 열등감으로 우리가 그들이 되버리고마는 심리입니다. 작은 한국이 싫다는 건데요. 사실 작지도 않아요. 중간 규모 국가에서 잘 살았거든요. 왜 그걸 무시하려고 하는지, 있는 대로 봤으면 합니다. 문순득처럼 멀리까지 나갔다 살아온 사람도 있었고요.

 

만주가 우리 땅이었다는 시각은 잘못됐다는 말씀이죠.

 

고구려, 발해는 소수의 한민족과 다수의 말갈인이 공존하는 세계였습니다. 소수의 지배층이 한민족이었다는 이유로 만주 영유권을 주장할 수 없죠. 부여에서 고구려와 발해를 거쳐 지금의 한국에 이른다는 역사관은 19세기 러시아 학자들이 처음 제시한 것입니다. 이들은 한민족의 위대함을 입증하려 한 게 아니라 말갈족을 보려고 했습니다. 연해주가 러시아 땅이 됐기 때문인데요. 이런 맥락을 다 잘라버리고 저긴 한국땅이다고 하는 건 위험한 발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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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아야 할 러시아, 대만, 오키나와

 

책에서는 러시아를 다룬 부분도 많습니다.

 

동양사의 범위가 시간적으로는 전근대, 공간적으로는 주로 중국이라고 생각하는 분위기죠. 중국은 남이 아니라 우리의 일부라는 생각도 강하고요. 한국 사회가 무의식적으로 한중일 삼국지적인 관점으로만 보다 보니 많이 놓칩니다. 그래서 일부러 러시아를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책에서도『삼국지 연의』가 아니라 『열국지』나 정비석의 『소설 손자병법』을봐야 한다고 썼는데요.역사를 좀 복잡하게 봐야 합니다. 보르헤스의 『픽션들』의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테르티우스」를 보면, 백과사전을 누군가가 만들고, 그 내용이 서서히 현실로 침투해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저는 한국사회에서 『삼국지 연의』가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한중일, 한미일, 제3당, 이렇게 꼭 3가지를 정립하려고 하는데, 『삼국지 연의』적 세계관은 폐기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책에서 시베리아 이야기를 해주셨는데요. 시베리아가 정말 광활한 영토인데도 역사의 공백 지대 같습니다.

 

역사의 공백지대가 아니라 우리 머릿속의 공백 지대입니다. 우리가 모르는 거죠. 왜 우리 머릿속에서 러시아 역사가 공백인지를 다룬 연구로, 씸비르쩨바 따찌아나의 <19세기 후반 조?러간 국교수립과정과 그 성격 : 러시아의 조선침략론에 대한 비판적 고찰>이라는 서울대 국사학과 석사 논문이 있는데요. 러시아에 적대감이 있는 중국과 일본 영향 받은 게 우선이고, 소련의 공산화와 한국 전쟁 때문에 적대감이 두 번째입니다. 이런 적대감이 무관심으로 이어졌다고 지적해요.

 

러시아가 시베리아를 점령하는 데 50년밖에 안 걸렸다는 게 신기합니다.

 

너무 사람이 안 살다 보니까 가능했습니다. 지금도 많이 안 살아요. 러시아도 처음에 원한 건 영토가 아니라 부드러운 금이라 불리는 수달, 단비의 모피였습니다. 곡물도 필요한데 없으니까 계속 가죠. 시베리아의 강에는 고기가 너무 많아서 발에 밟힐 정도였는데, 생선은 별로 안 좋아하니 곡물을 찾으려고 전쟁하고 네르친스크 조약을 맺습니다. 그런데 거기도 막상 식량이 없으니 북아메리카와 일본까지 계속 가죠.
 
정감록의 정도령과 대만 역사에서 중요한 인물인 정성공이 연결되어 있다는 내용도 신선했는데요. 타이완에 대한 관심도 한국이 높지는 않은 듯합니다.
 
한반도 근처에 있지만 정치적 이유로 지워진 곳이 대표적으로 러시아와 타이완입니다. 대만을 모르는 건 정치 책임이 큽니다. 원래 한국 사회에서 중국이라고 하면 타이완을 의미했습니다. 중국과 수교를 맺으면서 타이완과 단교했는데, 그 과정이 폭력적이었죠. 갑자기 명동 타이완 대사관 철거를 통보했죠. 일본은 그렇게 폭력적으로 끝맺지는 않았습니다. 일본에서는 반공주의자 중심으로 타이완에 의리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도 있었고요. 남한은 의리 없이 끊었지만, 일본은 자기나름의 양면 전략을 취합니다. 한국과 일본, 누가 이득을 볼까요? 타이완을 생각하면 복잡한 심정이 드는데요. 카이로 회담에서 한반도 독립 조항을 넣은 건 장개석(장제스)입니다. 하지만 국민당이 공산당에 패해서 타이완에 가지 않고 대륙에 그대로 남았다면, 남한이 이 정도로 번영하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도 듭니다. 중국이 문화 혁명으로 정체된 사이에 한국이 번영을 누렸죠.

 

류큐왕국, 오키나와 역사도 이 책의 한 부분입니다.

 

역시 잘 안 가르치죠. 기껏해야 홍길동이 건너가 세운 나라다, 고려 적에 삼별초가 활동한 곳이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이렇게 모르는 나라를 접근할 때 우리의 뭔가와 관련 있다고 이해하는 태도는 제국주의적 접근이죠. 물론 오키나와가 한국과 연관성 있는 나라이긴 하지만, 그렇게만 가르치면 안 됩니다. 오키나와는 유라시아 동부 지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많이 했어요. 명이 해금 정책 취할 때 무역 국가로 번성한 나라이고 청일 전쟁과도 관련이 있고요. 우리는 이런 걸 너무 몰라요.

 

오키나와 사람을 만나보면 제주를 제외한 다른 지역의 한국인들이 일본 제국주의를 욕하는 데 공감 못한다고 해요. 오키나와가 보기에는 제주에 했던 한반도의 태도 역시 제국주의적인 거죠. 오키나와를 통해 세상을 보면 많은 게 보입니다. 초기에 위안부 문제가 밝혀진 곳도 오키나와였습니다. 이렇게 오키나와 사람들이 피해를 받은 사람을 향한 관심, 동정이 있거든요. 이런 의미에서도 오키나와가 중요해요. 홍길동이 지배한 나라라는 식의 가짜 역사 때문에 중요한 게 아니라요.

 

책이 태평양전쟁에서 끝나는데요.
 
어쩌다 임진왜란을 전공하게 되었지만 저는 고대를 좋아합니다. 중세 이전, 근세 이후도 다루긴 하지만 너무 현대 이야기는 제가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아요. 그건 정치학의 영역이겠죠.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최종 목적은 조선 아니라 세계 정복

 

영화 <명량>에 이어 드라마 <징비록>까지, 여전히 임진왜란을 향한 관심이 높은데요. 전공자로서 어떻게 이해하시나요.

 

여러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다른 사회에 비해 전쟁사 이해가 한국사회에 없었기 때문에, 이를 메우기 위한 자연스러운 과정이라는 해석이 있고요. 그중에서 납득하기 힘든 게, 박정희 시대가 부활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인데요. 역사는 그런 식으로 반복되지는 않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영화 <명량>이 떴기 때문에 <징비록>도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제까지 늘 이순신에만 주목을 했으니, 이번에는 류성룡에 주목해보자는 거죠. 아직은 드라마 <징비록>이 영화 <명량> 만큼 인기를 끌지는 못하고 있는데요. 징비록은 굉장히 잘 쓰여진 책이기에, 드라마 작가 역량이 충분하지 않으면 류성룡 관점에 휘둘리기 쉽습니다. 기본적으로 자신이 처한 정치적 위기에 대해 분노를 품고 쓴 책이거든요. 독자는 자기 변론이 강한 책이라는 걸 염두에 두고 『징비록』을 봐야 합니다. 사람이 한을 품으면 400년 역사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책이 『징비록』이에요.

 

이 책에서도 임진왜란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데요.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원래 목적이 조선이고, 명을 친다는 건 구실이었다는 게 일반적인 인식입니다. 그런데 책에서는 히데요시의 목적이 처음부터 명이었고 명을 넘어 세계정복까지 꿈꿨다고 소개했습니다.

 

히데요시가 전쟁 도중에 죽었고, 전쟁이 끝나고 전쟁을 주도한 세력이 거의 다 척결되었기 때문에 전쟁의 목적이 무엇이었는지 불확실한 면이 있습니다만, 여러 문서로 종합하면 명을 노린 건 확실합니다. 일본의 세계관을 이해할 필요가 있는데요. 일본이 보기에 중국과 한반도는 ‘진단(震旦)’이라고 해서 서로 구분되지 않는 공간입니다. 한편으로는 조선이 쓰시마의 속국이라는 전도된 인식이 히데요시에게 있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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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유품 목록 <<풍공유보도략>>에 실린 조선의 도자기 그림
흔히 고려다완이라 불린다


일본의 중화 의식도 설명해주셨는데요.

 

고대부터 있었습니다. 천황(天皇)이라는 말 자체가 그렇고, 고대 천황이 중국에 보낸 서간에도 나타납니다. 자기들이 북쪽으로 털복숭이를, 서쪽으로 오랑캐를 정복했다는 주장을 펼치는데, 여기서 서쪽이 삼한이죠. 이게 일본만이 아니라 고려도, 고구려에도 나타납니다. 이성시 선생의 『만들어진 고대』를 보면, 광개토대왕비를 새롭게 해석합니다. 이 비석의 내용에서는 중국의 왕조들을 찾을 수 없는데요. 의도적 감춤이라는 거죠. 이게 소중화 의식입니다. 중국 빼고 내가 세계의 중심이라는 거죠. 힘이 있는 주변 국가라면 누구나 갖췄던 소중화주의가 일본에도 있었습니다.

 

문헌학자이지만 역사학자로서, 사료를 보는 선생님만의 관점이 있을까요?

 

역사가 법칙으로 움직인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이라크를 친 게 IS라는 결과로 이어질지는 아무도 몰랐을 거예요. 역사 결정론자, 운명론자는 미국이 음모를 짠 거라 보겠지만, 인간은 예상하지 않은 형태의 결과를 초래하는 일을 저지르죠. 대체로 한 치 앞만 보고 움직입니다.

 

역사 하면 주로 큰 집단 이야기를 하면서 개개인 이야기가 묻힙니다. 저는 개개인을 보고 싶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역사학자는 아니겠죠. 개개인을 보려는 게 문헌학적 연구 방법일 텐데,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에서는 표류민 이야기가 그런 부분이죠.

 

이 책에 그런 인물이 여럿 등장하는데요. 선생님에게 가장 인상 깊은 인물은 누구인가요.

 

역시 문순득이지 않겠습니까. 21세기 한국이 발견한 한국인이죠. 이 사람이 밝혀진 건 1970년대이고, 해양 문학의 하나 정도로 묻혀 있다가 갑자기 주목을 받기 시작합니다. 왜일까요. 지금 우리가 그곳에 가기 때문이죠. 아직 접근은 못하고 있지만, 지금은 2차대전때 연합군의 일원으로 인도ㆍ버마 전선에 참전한 조선인 광복군에 관심이 있습니다.

 

조선의 가톨릭 역사도 비중 있게 쓰셨습니다.

 

1만 명이 죽었는데도 한국 사회에서 잘 가르치지 않죠. 종교를 떠나서, 인간을 다루는 게 역사라면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가톨릭에서는 우리 종교의 순교자라고 해서 중시하지만, 이 정도 규모라면 종교적 차원을 떠나는 문제죠. 책에서도 썼듯, 종교를 빌려와서 계급해방을 꿈꾼 건데요. 여전히 한국은 학계든 일반인이든 지배 계층에 관심 있다 보니 피지배층을 향한 관심은 약합니다. 자료가 없다는 이유로 연구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주변의 연구자분들께 이런 말씀을 드리곤 합니다. 『한국 노비(문화)사』라는 두꺼운 볼륨의 책이 나오기 전까지 저는 한국학계를 온전히 인정할 수 없다구요.
 
전쟁에 관심이 많아서 저는 선생님이 무기에 관심이 많을 줄 알았습니다.

 

저는 사람 마음을 잘 못 읽습니다. 왜 똑 같은 걸 두고 서로 오해하고 싸우는지가 늘 궁금했어요.전쟁은 서로의 오해, 몰이해가 극단적으로 충돌하는 형태이죠. 그래서 전쟁에 흥미가 많아요. 비슷한 이유로 신흥종교에 관심이 많습니다. 왜 다 큰 어른이 저런 걸 믿을까, 궁금해요. 지금은 무교이지만, 고등학교 때에는 신학대를 가려고 했습니다. 제가 신학대를 갔다면 아마 성서고고학을 공부해서 서아시아 어딘가에서 땅을 파고 있을 거예요. 어릴 때는 실크로드 따라 이란으로 가서 땅 파고 싶은 꿈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책을 들이파고 있네요. 무기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한국이 지정학적 요충지라고 과대 평가하지 말아야

 

한국이 지정학적 요충지라고 여전히 많이 생각하잖아요. 3차 대전은 한국에서 벌어질 수도 있다는 논의가 그런 예인데요. 앞서서 선생님은 이와 반대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우리를 과대 평가하지 말아야 해요. 군사학적으로는 9.11을 3차대전으로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만 이 전쟁은 전면전이 아니라 비대칭 전쟁이죠. 바로 오늘도 중동에서 4차 대전은 벌어지고 있고요. 이런 지역에 비하면 한국은 안정된 사회입니다. 1950년대 이후로 이렇게 전쟁 없는 지역이 어디 있나요. 국내 정치를 결집하기 위해 과장해서 공포를 조장하는 게 효과가 있지만, 그것이 반복되다보면 실제 외교 정책에서 실패를 하게 됩니다.

 

당장 지금만 봐도 시진핑이 우리 편인 줄 알았는데, 아베와 악수하잖아요. 미국과 일본은 더 노골적으로 친해지고 있고요. 미국과 중국 양쪽에서 대한민국을 구애하고 있다? 아니죠. 오히려 줄 잘 서라는 협박을 받고 있다고 봅니다. 다른 나라가 우리의 진심을 알아줄 거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국제 관계는 냉혹하거든요.

 

앞서서 피해적 민족주의를 말씀하셨습니다. 역사를 보면 한국도 침략하기도 했잖아요.

 

최근 베트남 전쟁이 그렇죠. 여전히 학살을 부정하긴 하지만요. 조선시대 여진족을 보면 정말 불쌍합니다. 특히 요동반도 북쪽 건주 여진족에서 유능한 사람이 나왔다 싶으면 조선에서 사람 보내서 죽여버립니다. 우리는 평화 민족이라고 가르치지만, 이게 어떻게 평화 민족입니까. 잘했다 잘못했다 문제는 아니에요. 국가라면 자연스러운 건데요. 지금 미국도 일본의 위안부 문제를 인권 차원으로 문제 제기하지 일본의 조선 점령에 대해서는 아무 말 없잖아요. 조선이 여진족을 죽인 것도 비슷한 맥락인데, 우리는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어요. 여전히 일본 민족주의를 비판하면서 우리 민족주의는 나쁠 리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대한민국이 시장논리로 접근하지 않나요. 저기는 시장이 몇 억이다, 통일은 대박이다, 이런 논의요.

 

한국이 정치적 제국주의를 못하니까 경제적 제국주의로 가는 거죠. 한국에서는 자각을 못하고 있지만, 한국 기업의 “진출”이 마다가스카르의 정권을 뒤집어버린 사건처럼, 외국에서 보기에는 이미 한국은 상당히 제국주의적인 국가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렇게 생각하죠. 어떻게 우리가 제국주의 국가인가, 피해 받은 민족이지. 이렇게 관념이 현실을 지배하면서 현실을 못 보게 만들어요.

 

학자가 아닌 일반 시민은 어떻게 균형 잡힌 관점을 얻을 수 있을까요?

 

세계 뉴스를 많이 봐야겠죠. 영어 외 외국어를 하나씩 더 하면 좋겠고요. 러시아, 중국 미디어가 한국어 서비스를 시작해서 지금은 다양한 정보를 찾으려면 쉽게 찾을 수 있는 시대입니다. 약간만 관심을 더 가지면 학교에서 배운 걸로 끝나지 않고, 질적으로 다른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어요. 좋은 책도 많이 나왔습니다. 한국사회가 책을 안 읽는다고 하지만, 20년 전과 비교하면 지금은 정말 좋은 책이 번역되어 많이 나왔습니다. 책을 직업적으로 볼 필요가 있을 거 같아요. 책을 많이 보다 보니 어느 순간 깨달음이 오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많이 읽어야 합니다.

 

관련해서 책 한 권 추천해주신다면.

 

한국어 책 중에서는 최고로 여기는 김호동 선생의 『몽골제국과 세계사의 탄생』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계는 몽골제국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내용인데요. 몽골제국의 기억이 너무 강력했기 때문에, 언제든 중앙 유라시아에서 새로운 세력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경계심이 대륙 지역의 여러 강대국들의 관심을 대륙으로 향하게 했고, 유럽은 그 틈을 타서 바다로 나왔습니다. 명나라, 조선, 러시아, 무굴 제국 모두 몽골제국의 후예라고 볼 수 있죠. 이런 넓은 시선이 필요합니다.
 
앞으로 연구 주제는 어떤 분야인가요.

 

북이냐 남이냐, 어느 방향을 택하느냐인데요. 근세 일본 역사를 공부하려면 필요한 언어가 몇 가지 있는데 하나가 네덜란드어, 하나가 러시아어입니다. 남쪽이 네덜란드어고 북쪽이 러시아어죠. 이 책을 쓰면서 고민하다 러시아어를 택했습니다. 10년 쯤 뒤에 16-19세기 유라시아 지역에 관한 책을 쓰려고 합니다. 청, 조선, 일본, 러시아 쪽 지역인데요. 러시아어를 10년 정도 배우면 뭔가 나오지 않을까요.

 

지금 당장은 다시 전공으로 돌아갔습니다. 조선비즈라는 매체에서 임진왜란 열전 연재를 시작했는데, 제가 국제적으로 임진왜란을 봤지만 한국사 맥락에서는 덜 봤더라고요. 그런 부분을 메우는 차원에서 한국 자료를 찾아보려고 합니다. 임진왜란은 해석할 때 두 가지가 문제입니다. 첫째, 동인이냐 서인이냐인데 서인이 보기에는 조헌이 굉장한 영웅이죠. 둘째가 북쪽이냐 남쪽이냐인데요. 대표적인 예가 김응서입니다. 출신이 평양이라 남쪽에서는 잊혀졌죠. 이런 예가 북에서도 마찬가지인데, 거기서는 김시민을 몰라요. 그리고 이덕형 같은 인물이 외교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비둘기파는 잊혀지기 마련이죠. 이런 인물을 끄집어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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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김시덕 저 | 메디치미디어
한국은 해양과 대륙 사이에 있는 반도 국가로서 그 역할이 점차 커지고 있다. 21세기 한국에 걸맞은 역할이 필요하다. 대륙 일변의 역사에서 벗어나 해양을 중심으로 동아시아를 본다면, 당신은 오늘날까지 연속하는 해양과 대륙의 패권 대결을 현명하게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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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종일 “사람에게 너무 큰 기대를 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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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많은 곳에 밑줄을 쳤는지 모른다. 더 이상 밑줄을 그으면 줄무늬 노트가 될 것 같아 포기했다. 이건 누구 한 사람의 ‘사소한’ 구원이 아니었다. 『가장 사소한 구원』은 에세이스트 김현진과 한양대 석좌교수 라종일이 주고 받은 편지를 답은 책이다. 두 사람의 인연은 라종일 교수의 전화로 시작됐다. 김현진이 2009년에 쓴 그래도 언니는 간다를 인상 깊게 읽은 라 교수가 만남을 청했고, 김현진이 힘들 때마다 연락하게 되는 사이가 됐다. 엘리트 코스를 거쳐온 탁월한 정치인이자 행정가, 교육가인 라종일 교수와 스스로를 ‘여태껏 진로를 고민하고 있는 날백수’라고 평하는 김현진. 어울리는 구석이라고는 전혀 없는 두 사람은 지난 1년간 32통의 편지로 서로의 생각을 읽었다. 삶에 대해 하소연을 하고 질문을 하는 쪽은 대부분 김현진이었다. ‘어른의 세계에 부딪혀 피를 흘리고 있는’ 김현진에게 라종일 교수는 이렇게 답했다. “이제 아무 걱정 하지 마라. 나는 네 편이다. 글 쓰는 사람은 원래 어느 정도 불행해야 한다. 당신도 그것을 알지 않느냐?”

 

라종일 교수와 편지를 주고 받은 ‘복 많은’ 저자 김현진은 서문에 이렇게 적었다. “그럼에도 부끄러움이 충만한 이 기록들을 세상에 내놓는 것은 선생님의 답장들을 나 혼자 읽기가 너무 아까웠기 때문이다.” 출간이 된 지, 4달이 지난 4월. 뒤늦게 라종일 교수에게 인터뷰를 청한 것도 같은 이유다. 혼자 읽기가 너무 아까웠다. 책 속에서 만난 ‘김현진의 남자친구’ 라종일 교수는 현실에서도 매우 부드럽고 따뜻한 어른이었다. 김현진이 ‘연애 편지’를 빙자하며 따끔한 질책을 받더라도 구차한 이야기를 늘여놓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인터뷰를 읽기보다 책을 꼭 펴보기를 권한다.

 

궁지에 몰린 쥐가 도망칠 틈새를 찾아내듯이,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사소한 구원에 매달렸다. 그것이 선생님과의 서신 교환이었다. 뒤에 나오는 이야기지만, 선생님은 고통을 활자로 옮기라며 단호하게 이야기하셨다. “이야기된 고통은 더 이상 고통이 아니다. 당신이 그 고통들을 글로 쓸 수 있을 때 당신은 비로서 낫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 진실을 알려준 사람을 하소연과 자기비하, 좌절로 가득한 편지의 수신자로 감히 택했던 것이다. 택했기보다는 매달렸다는 표현이 맞겠다. 선생님은 몇 번이나 이 기록들을 책으로 묶어내는 것을 망설이셨다. 그럼에도 부끄러움이 충만한 이 기록들을 세상에 내놓는 것은 선생님의 답장들을 나 혼자 읽기가 너무 아까웠기 때문이다.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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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라는 게 아주 잠깐 아니에요?


출간을 무척 반대했다고 들었습니다. 지금은 생각이 조금 바뀌지 않으셨나 싶어요.


처음부터 이 책이 출판되리라고는 생각을 못했어요. 제목도 반대했어요. 구원이라는 건 엄중한 것인데, ‘사소한 구원’이라는 게 말이 안 된다, 생각했어요. 출판이라는 건 비용도 많이 들고, 다른 사람들의 시간도 뺏을 수 있는 거라서 가볍게 출판해서는 안 된다고 했죠. 김현진 씨가 자꾸 우겨서 내게 됐는데, 이렇게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질 줄은 생각도 못했어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책에 관심을 크게 두지 않는 걸로 알고 있었는데, 북 콘서트에도 많이 오시고 질문도 열심히 하셔서 놀랐습니다.

 

김현진 씨도 책에 썼지만, 두 분이 썩 잘 어울리지는 않아요.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교수님과 반항아였던 김현진 씨의 조합이. 보통 교수님들은 모범생들을 더 좋아하지 않나요?


처음 김현진한테 받은 인상이 현실감각이 아주 날카롭고 글 쓰는 재능이 탁월하다는 점이었어요. 두 번째는 자기관리를 잘 못한다는 점이었고요. 큰 충격은 현실감각이 좋은데 그게 잘못된 방향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점이었죠. “애를 누구 좋으라고 낳냐?”라고 말하는데, 그게 저 같은 사람의 생각에서는 말이 안 되는 소리거든요. 아이가 utility인가요? 물론 사회적인 구조가 중요하지만 사람의 일생이 그것 때문에 운용되는 건 아니잖아요. 지금의 사회구조를 생각하면서 아이를 낳고 안 낳고를 결정한다는 건, 아닐 말이죠. 대통령이 된 사람들을 보면 모두가 좋은 가문에서 자랐나요? 거의 그렇지 않아요. 지금의 사회구조를 생각하면서 아이를 낳고 안 낳고를 생각한다는 게 저에겐 충격이었고, 또 약속을 잘 안 지키고 자기관리를 못해서 더 관심이 갖는지도 몰라요. 관리를 잘하면 좋은 작품을 써서 기여할 수도 있고요. 애를 낳아서 키우는 게 얼마나 위대한 일인데요. 사회비평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어요.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현진은 수긍을 해요. 실천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요(웃음).

 

『가장 사소한 구원』에서 김현진 씨는 끈질기게 교수님의 사적인 이야기를 물어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여쭙는 게 참 재밌게 보이면서도, 실제 궁금했는데요.


별로 할 이야기가 없어요. 되게 평범한 가정에서 살았고 평범하게 가정을 꾸려왔기 때문에 특별한 게 없어요.

 

인터뷰를 요청하면서 거절하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보통 인터뷰나 기고 요청이 오면 대부분 수락을 해주시나요?


제가 공직에 15년을 있었는데요. 웬만하면 시사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말을 하거나 글을 쓰지 않으려고 해요. 일을 맡은 분들이 늘 비판을 받는 일은 좋은 일이지만, 그분들도 힘들거든요. 제가 할 때도 힘들었고요. 모두에게 만족스러운 해결책을 만들기가 정말 힘든 일인데, 전임자가 현직에 있는 사람에게 논평을 하면 그분들에게 부담이 되고 도움은 안 될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건 안 해요. CNN에서 남북한 관계에 대한 인터뷰를 여러 차례 부탁한 적이 있었는데, 거절했어요. 당시 아시아 책임자였던 분이 ‘왜 그렇게 인터뷰를 안 하냐’고 뭐라 하시더라고요. 지금 일을 맡고 있는 사람도 어려운데 전임자가 이러쿵저러쿵 간섭하는 건 옳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백그라운드를 사적으로 브리핑해줄 수는 있지만 신문 같은 데서는 안 하려고 해요.

 

김현진 씨는 “정말 행복해지고 싶다”며, “폭죽 터지듯 화려하고 즐거운 것이 아니라 고요하고 별일 없는 상태가 지속되는 것이야말로 행복”이라고 했고, 교수님은 “행복에 대한 집착이, 그 참기 힘든 가벼운 추구가 사람을 불행하게 만드는 근본 원인”이라고 하셨어요.


행복이라는 게 아주 잠깐 아니에요? 생각하던 일을 흡족하게 처리했을 때, 글을 썼는데 내가 생각한 걸 잘 전달했을 때, 그런 행복감을 느껴요. 그런데 그게 정말 잠깐이에요. 행복이라는 건 믿지 않아요. 사람이라는 존재의 근본적인 모순 하나가 행복하기를 바라지만 행복할 수 없다는 거예요. 지구는 우주의 작은 별에 불과하지만 사람은 자기가 세상의 중심이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발목 아래를 들여다보면 그런 근거가 없어요. 사람의 존재의 모순 중 하나가 만족할 수 없다는 거예요. 조금 행복하면 또 다른 걸 바라게 되고 욕심을 내고. 그렇기 때문에 행복이라는 건 믿지 않아요.

 

사모님과의 관계를 이야기하면서, 결혼생활 초창기에는 ‘사랑하는 사이라기보다 함께 생활을 개척하고 꾸려나가는 동료였다’고 표현하셨어요. 다른 이기적 동기와 관련 없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껴본 건, 사모님의 건강이 좋지 않을 때 대신 아프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을 때라고.


며칠 전에 한 잡지사에서 결혼에 대한 글을 써달라고 연락이 왔어요. 처음 본 잡지였는데 쓸 가치가 있어 보여서 썼어요. 제목을 ‘이브의 침묵’이라고 했어요. 동화책을 보면 왕자님하고 공주님이 결혼해서 둘이 행복하게 살았다는 걸로 이야기가 끝나잖아요. 왜 그런 줄 아세요? 그 다음이 어렵기 때문이에요. 결혼까지 가는 것도 어렵지만 한 후에 부부관계를 잘 지키는 게 더 어렵거든요. 동화에서는 구질구질하고 어려운 걸 다루기 싫어하니까 그렇게 결말을 맺는 거예요. 창세기에서도 아담은 이브가 오니까 좋아서 이야기를 하는데, 이브는 침묵했어요. 왜 말을 안 했겠어요? 결혼생활이 어렵다는 걸 이브가 더 잘 알았기 때문이겠죠. 더 나쁜 건 아담이 이브를 배반한 거죠. 자기 부인이 잘못한 걸 “제가 잘못했습니다”라고 안 하고, “저 사람 때문에 제가 이렇게 됐습니다”라고 했으니. 제가 창세기를 읽으면서 가장 마음 아픈 부분이에요. 이혼이 점점 늘어나는 게 결혼을 쉽게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사랑이라는 건 주관적인 감정이지만 훨씬 더 많은 지혜가 필요한 일이에요. 도덕적인 책임감이 있어야 가능한 건데, 요즘은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책에서 오셀로와 처용 이야기도 하셨죠.

런던에 있을 때 세익스피어극장에서 오셀로를 본 적이 있어요. 너무 안타깝더라고요. 그렇게 훌륭한 사람이 자꾸만 함정에 빠지다가 엄청난 짓을 저지르잖아요. 그러다가 문득 비록 무속의 세계일지라도 벽사진경(僻事進慶)의 상징이 된 ‘처용’이 생각났어요. 간통 현장을 목격하고도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른다는 게 상상이나 돼요? 어쩌면 그는 배신하는 자기 부인을 불쌍하게 여겼는지 몰라요. 오셀로는 왜 그런 생각을 못했을까요? 궁극적으로 그의 함정은 자기 스스로가 만들었기 때문이죠.

 

나이가 들면, 어떤 문제가 터졌을 때 화가 나는지요? 나이가 들면 아무래도 여유가 생기고 관용이 많아지잖아요.


길에서 담배를 피는 사람들을 보면 좀 화가 나요(웃음). 뭐 간단한 거 빼고는 그다지 화가 나는 일이 많진 않아요. 질문을 이렇게 하면 좋을지 몰라요. 나이가 많아지면 화가 난다, 안 난다 그런 문제보다 놀랄 일이 조금 없어져요. 이런저런 경험을 하게 되면 ‘그럴 수도 있구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고 여겨지는 게 훨씬 많죠. 사람이 근본적으로 그렇게 지혜롭고 슬기롭지 않잖아요. 나를 훌륭하게 생각해서 말하는 게 아니라, 사람이 정말 어리석다는 걸 많이 봐와서,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사람을 봐도 ‘사람이 그렇지 뭐’하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사람이라는 건 구부러진 나무라서, 똑바른 재목을 만들 수 없다는 이야기도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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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성공은 전혀 중요한 일로 여겨지지 않았다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보다 우선 부모가 사람으로서 자란다”고 하셨어요. 자녀 분들에게 어떠한 일도 강요를 하지 않았다고 하셨는데, 그래도 중요하다고 생각한 점이 있었을 텐데요.

신앙이었어요. 사람이라는 존재의 여러 가지 차원 중에 가장 최고의 단계라고 생각하니까요. 나중에 선택은 본인들이 하더라도, 어릴 적에는 신앙의 세계에 있도록 하고 싶었어요. 천주교 영세를 네 아이 모두 받았는데, 넷이 다 잘했어요. 지금은 개신교로 간 아이들도 있는데 그것도 좋다고 생각해요. 자신들이 결정하고 선택한 일이니까요. 아이를 키운다는 게, 아이에게 뭘 베푸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한테 엄청 훌륭한 일이에요. 아이를 낳기 전까지는 걱정이 참 많았어요. 기껏 외국까지 와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박사 학위를 못 따면 어떡하지? 그러면 취직도 못할 텐데? 그런 걱정이 많았어요. 시골에서 그렇게 환송을 해줬는데 망신을 당하면 어쩌지? 전전긍긍했는데, 아이가 태어나니까 그런 건 부차적인 일이더라고요. 세상에서 성공하느냐 마느냐, 그런 건 전혀 중요한 일로 여겨지지 않았어요. 차원이 다른 행복을 경험했고 매일 희망과 보람을 느꼈어요. 더 이상 두려운 것도 무서운 것도 참을 수 없는 일도 없어졌어요. 

 

“모범생을 더 좋아했던 태도가 바뀌었다”는 이야기도 인상 깊었습니다.

모범생은 안 돌봐도 되잖아요. 이런 이야기를 하면 조금 그렇긴 한데, 사실 모범생이 인간성이 제일 나쁜 사람이 아닌가 싶어요. 공부를 잘하는 사람은 계산을 잘하는 사람이거든요. 성경에 나오는 탕자, 아시잖아요. 나쁜 짓을 했어도 뉘우칠 수 있다면 그건 훌륭한 사람이에요. 그런데 큰 아들은 얼마나 자기 이해를 잘 따지는 사람이었어요. 동생이 방탕한 생활을 하는데도 오히려 자기 입장에서는 괜찮다고 여겼죠. 이해타산적인 사람이에요. 모범생이라고 반드시 훌륭한 사람은 아니죠.

 

스승의 날을 ‘제자의 은혜에 보답하는 날’로 생각한다는 이야기를 하셨는데.

 
우리나라는 부모의 은혜, 스승의 은혜는 생각하는데, 자식의 은혜, 제자의 은혜는 생각하지 않아요. 학문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얼마나 제자가 중요한대요. 그런 걸 좀 고치고 싶었어요. 그래서 제자의 은혜에 보답한다는 파티를 했어요. 재밌으라고 한 이야기가 아니라, 한번쯤은 제자의 은혜도 생각해야죠. 가르침이라는 게, 일방통행만으로 이뤄지는 게 결코 아니에요. 일방통행으로 은혜를 주고 갚는 건, 나쁘게 말하면 깡패 세계에나 있는 거죠.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건 스승이 가르쳐준 걸 다 잊으라는 소리 아니겠어요? 제자는 스승을 극복할 수도 있어야죠.

 

어떤 사람을 만날 때, 존경스럽다는 생각을 하시나요?


특별히 존경할 만한 그런 분들도 있는데요. 저는 될 수 있는 대로 만나는 사람마다 참 훌륭하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그렇고요. 제가 모르는 것, 좋은 점을 갖고 있어요. 70대 중반까지 살면서 굉장히 많은 사람들을 만났어요. 위로는 역사에 남을 만한 인물도 만났는데, 완벽해 보이고 성인이고 특히 권력을 갖고 있는 사람 중에 자기가 행사할 수 있는 영향력에 필적할 지식, 정보를 모두 갖춘 사람은 못 봤어요. 다 불안정해요. 반대로 아무리 형편 없는 사람을 만나도 훌륭한 점이 있어요. 테러리스트 강민철에 대한 전기를 쓴 것도, 흉악한 살인범이지만 그런 사람에게도 동정이 가기 때문이었어요.

 

2013년에 『아웅산 테러리스트 강민철』을 쓰셨죠?


사실 초고는 출간된 책 분량의 2,3배를 썼어요. 나온 책보다 더 신랄하게 썼죠. 우리 민족이 통일을 바랄 자격이 있나, 그런 이야기도 썼어요. 솔직히 이 사건은 전두환, 김일성 두 사람의 책임이에요. 광주사태를 일으키지 않았더라면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겠죠. 후에 두 사람은 친해지고 비싼 선물도 주고 받고 파티도 했지만, 그러면서도 강민철을 꺼내줄 생각은 안 했어요. 입에 담지도 않았죠. 고 김수환 추기경,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이 죽고는 온 나라가 떠들썩했지만 이 젊은 애가 25년을 감옥에서 살다가 죽었는데, 아무도 관심을 보여주지 않았어요. 책으로라도 그 사람을 살려놓겠다, 싶어 썼어요. 국내에서는 주목을 받지 못했는데, 뉴욕타임스에서는 저를 인터뷰해서 전면에 실었어요. 번역도 되지 않은 책을 소개해줘서 놀랐어요.

 

고 강민철은 결국 간암에 걸려 치료도 받지 못한 채 감옥에서 병원에가던 길 위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 팔이 없는 채로 25년간을 감옥에서 보낸 사람을 우리는 기억하지 않아요. 묘도 쓰지도 못했다고 하더군요. 북한은 혁명열사능이라고 해서 특수 사업을 하다가 죽은 사람들을 모셔놓는데, 강민철은 어디에도 갈 때가 없었어요. 아주 완전히 죽어서도 버려진 사람이에요. 5월에 어린이 날이 있잖아요. 예전에 인권위원회 위원장을 만나는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우리나라는 어린이에 대한 지위가 굉장히 사회적으로 낮았어요. 어린이라는 이름이 나온 것도 얼마 되지 않았고요. 늙은이, 젊은이는 있어도 어린이는 없었죠. 일제시대, 아주 어려운 시대 때 마해송, 방정환 선생님이 어린이라는 이름을 만들었는데 그런 이야기를 알려야 한다고. 어린이인권상을 만들던지, 방정환상, 마해송상을 만들어야 한다고요. 반영이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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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이 잘되는 걸 보고 싶다


교수님께서는 고민이 많았다고 하셨지만 『가장 사소한 구원』을 읽고 감동을 받았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애당초 저는 이런 이야기를 책으로 써서 낸다는 게, 납득이 되지 않았어요. 아직도 미심쩍은 느낌이 있어요. 그래서 잘한 일인가? 걱정을 했는데, 책이 잘 팔린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어느 정도 부담감은 덜해졌어요. 내가 그렇게 엉터리 짓을 한 건 아니구나, 싶었어요.

 

어떤 독자들이 이 책을 읽으면 좋을까요?

김현진이 책 마지막에 이렇게 썼더군요. “살아야겠다”고. 그건 저에게 보람이었어요. 만약 현진 같은 상황에 있는 사람들이 읽고 똑같이 도움을 받을 수 있다면, 저로서는 바랄 게 없겠죠.

 

꼭 묻고 싶은 질문이 있습니다. 교수님께 일간지 1면, 전면이 주어진다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으신지요?


이런 말을 하고 싶어요. 사람한테 너무 큰 기대를 하지 말자. 우리 모두는 굉장히 부족하고 도덕적으로나 지적으로나 결함이 많은 사람들인데, 타인을 볼 때 너무 큰 기대를 갖고 보는 경우가 많아요. 그 기대 때문에 갈등이 생기고 더 큰 분쟁이 생기는 것 같아요.

 

글 쓰는 일을 직업으로 삼고 싶었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추후 출간 예정인 책이 있나요?


지금 장성택 전기를 쓰고 있어요. 책으로 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쓰고 있어요.

 

앞으로의 소망, 꿈은 무엇인가요?


소박한 꿈인데요. 우리 민족이 좀 잘되는 걸 보고 싶어요. 지금 제가 대학원에서 외국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어요. 이미 졸업을 하고 외국에서 취직을 한 학생들도 있고요. 얼마 전에 한 학생이 이메일로 질문을 하나 했어요. 한류 파워를 소프트 파워(soft power)로 평가해야 하는데, 주변에서 비판이 많다고 하더라고요. 한류가 커머셜 마케팅(commercial marketing)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많다고요. 저는 한국 사람들이 마케팅을 잘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소프트 파워가 더 중요하게 되리라고 생각해요. 삼국지 위서 동이전과 같이 한국 사람들에 관한 오래된 기록을 살펴보면, 예로부터 우리 나라 사람들은 춤과 노래를 즐겼어요. 외국의 침략도 많이 받고 오랫동안 가난을 겪었기 때문에 마음속에 한을 어떻게든지 흥으로 풀어내야 했으니까요. 저는 한국이 경제적으로 부유하게 됐고 어느 정도 민주화도 됐고 문화수출국이 된 걸 참 기쁘게 생각해요. 물론 어두운 면도 많고 비판적으로 볼 수도 있지만, 이만큼 잘된 것도 훌륭하게 생각하고 앞으로도 잘됐으면 좋겠어요. 제가 기여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겠지만 더 잘되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20세기는 참 비참한 세기였잖아요. 21세기는 우리 민족이 더 잘되고 잘사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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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사소한 구원라종일,김현진 공저 | 알마
이 편지들 안에는 이 시대 ‘청춘’을 둘러싼 거대한 사회담론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없다. 그 반대다. 아주 사소해 보이는 이야기, 그렇지만 누군가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상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길을 걸으면서, 버스를 기다리면서, 혹은 직장에서, 가정에서 느꼈던 감정의 흐름들, 내면에 꼭꼭 숨겨놓았지만 빙산의 일각처럼 그 작은 편린만 종종 드러나곤 했던 아픈 상처들, 일상에서 문득 발견하는 소중한 깨달음들에 대한 이야기가 잔잔하게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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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주대 “결국 내가 찾는 건,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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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속도에 이르면 시간이 느려지는데
우리의 그리움은 언제나 광속을 넘는다
우리가 늙지 않는 이유다 (65쪽, <특수상대성> 전문)

 

글에서 힘찬 기운과 동시에 지독한 외로움을 느꼈다고 한다면 거짓일까. 인터뷰를 위해 시인을 만나 직접 그의 이야기를 들었으니 앞서 그 느낌은 글에서 온 것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분명 글에서 어떤 상반된 기운, 희망을 소망하는 마음과 밑바닥을 들여다보는 마음을 함께 느꼈던 것 같다. 정체 불분명한 굴곡이 느껴졌고, 동시에 천진난만함이 느껴졌다. 좀 의아한 느낌이다. 어울리지 않는 감정이 아닌가. 인간의 마음이 천 길 물속이라지만 잘 이해되지 않았다.

 

김주대 시인은 말한다. “무엇을 이루었다고 하는 순간에도 우리는 어느 끝에 이른 것이 아니라, 이미 또 다른 ‘시작’에 서 있을 뿐”(13쪽)이라고. 또 시인은 말한다. “낮술에 취해 떠돌며 만난 모든 폐가에서는 두고 온 가족들이 새처럼 깃들여 비를 피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목숨이 물컹 만져졌다.”(186쪽)고. 힘차게 시작을 말하는가 하면 위태롭게 목숨을 만지작거리기도 한다. 이런 느낌은 그림에서도 마찬가지인데, 등이 굽은 아버지의 가녀린 모습을 그리고, 빨갛게 물든 아름다운 단풍나무를 그려 보인다. 샛노란 개나리는 물론 ‘고뇌’라는 글자로 고개 숙인 사람을 형상화하기도 한다. 대체 어째서 시인은 이토록 다른 감정을 한 자리에 담았을까?

 

대학교 4학년, 이른 나이에 등단한 김주대 시인은 오랫동안 시와 떨어져 살았다. 크게 사업을 해서 엄청나게 많은 돈을 벌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망했다’. 가족과 뿔뿔이 흩어졌고, 매일 죽음을 생각하며 살았다. 낮에도 술에 취해 있었고, 지인들의 도움으로 먹고 살았다. 매일 시를 썼다. “칼을 안 쓰려”고 시를 썼다. 고통스런 시간이었을 텐데, 시인은 웃으며 말했다. “솔직히 말해 망하길 잘했죠. 지금 훨씬 좋아요. 원래 나로 돌아온 거예요. 정말 좋죠.”이것은 그가 자신의 그림 한 곳에 어김없이‘목숨’이라는 빨간 도장을 찍은 이유기도 하다.

 

성숙한 어른, 천진난만한 청년, 모두 김주대 시인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글을 보며 가졌던 의아한 느낌은 인터뷰가 끝나고 말끔히 해소되었다.

 

 

시는 물질이다


들어가는 말에서시인은 시를 지어 실제로 거기에 거주”한다고 하셨어요. 시인에게 ‘시’라는 ‘물질’에 대해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보통 ‘언어의 물질성’을 많이 얘기하거든요. 시란 개념이잖아요. 색도 모양도 없죠. 단지 문자라는 기호로 표현될 뿐이에요. 그런데도 제가 실제 거주한다고 한 것은요. 물질은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으로 느낄 수 있잖아요. 물질과 마찬가지로 시도 오감으로 느낄 수 있다는 의미예요. 가령 어떤 사람을 만났을 때 공포를 느껴요. 사람이라는 물질이 공포라는 감각을 일으키죠. 어떤 시를 봐도 공포를 느낄 수 있잖아요. 어떤 사람과 포옹 했을 때 따스함을 느끼듯이, 어떤 시를 보면 실제 따스함을 느낄 수 있어요. 시를 읽고 가슴이 두근거릴 때가 있죠. 그래서 시를 물질과 동일한 존재로 보는 것이죠. 어떤 시를 보면 상당히 슬프고 눈물이 나는데요. 그것은 실제로 눈앞에 슬픈 사건이 벌어진 것이죠. 실체로서의 사건들, 물리적인 사건이라는 차원에서 그래요. 철학적인 의미기도 해요.

 

제목도 그렇지만 시를 보면 ‘물리’, ‘광속’, ‘중력’, ‘화석’, ‘진화론’처럼 과학적 언어를 많이 사용했어요.


시가 막연한 대상에 관한 것이라 흔히 생각하잖아요. 하지만 인간의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몸이나 이성으로 느낄 수 있는 ‘실제 있는 것들’이거든요. 때문에 시인의 비유도 본인이 모를 뿐이지 어쩌면 실재를 느끼고 말한 것이라는 거죠. 실체에 가장 잘 접근해 들어가기 위한 것이 과학인데요. 과학자들은 자연을 아주 간명하게 설명해요. 시인도 과학자처럼 심플하게 설명하지는 않지만 심플하게 느낄 수는 있어요. 느낌은 과학자들보다 강렬하게 느끼는데 표현을 못할 때 과학자들이 쓰는 용어를 더 알면 잘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공부를 하는 거죠. 자연 과학 공부를요.

 

‘특수상대성’에 대한 시도 두 편이나 쓰셨는데요.


인간이 살아가면서 제일 중요하게 느끼는 게 시간과 공간이에요. 어제 있었던 일, 내일 닥칠 일 같은 시간과 내가 있는 곳이라는 공간이요. 시는 공간을 축소시킨다고 볼 수 있어요. 사랑하는 사람이 부산에 있다면 실제 공간은 400km가 넘겠지만 그 사람을 이곳에서 느끼는 느낌은 훨씬 짧아요. 그 사람이 옆에 있는 것처럼 그려낼 수도 있다는 것은 400km를 단 4cm로 줄일 수 있는 기능을 하는 것이죠. 아인슈타인 상대성이론은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개념들인데요. 그것을 시에 변용해본 거예요. 상대성 이론에 의하면 빛의 속도보다 빨라지면 시간이 느려진다고 했는데, 시간이 느려진다는 것은 늙지 않는 거죠. 빛의 속도보다 빨리 내 심장에 그 사람을 끌어오는 것, 그것은 그리워하는 동안 내 몸의 시간이 느려지는 것이라 볼 수 있어요. 안 늙는다는 것, 젊어진다는 의미예요. 때문에 그리움이 많은 사람은 잘 안 늙는다고 한 거고요. 시적인 비유를 과학적 사실과 연결해서 유추해봤어요.

 

「지도를 그려」(42쪽)라는 시도 같은 맥락에서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지도라는 것은 공간을 축소한 모형이니까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을 시에서는 얼마든지 축소시키거나 확대시킬 수 있다는 의미예요. 시인은 시에서만큼은, 시를 쓸 때만큼은 전지전능한 존재라는 거죠.

 

기존의 것들과 다른, 새로운 시선이 많아서 시가 흥미롭게 읽혔습니다.


그런 걸 많이 생각하죠. 예술이라는 건 좀 낯설게, 독창적으로, 새롭게 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시각을 얻기 위해 다양한 작업을 해요. 그림도 그리고, 과학도 공부하고요.

 

과학적인 내용에 영감을 얻으신다고 하셨는데, 영화도 즐겨보시나요?


즐겨 보지만 영화에서는 영감을 많이 못 느껴요. 영화보다는 주로 독서하면서 많이 생각해요. ‘영감’이라고 하면 갑자기 싹 떠오른다고 생각하시는데 그렇지 않고요. 늘 생각하고 노력하는 거예요. 요즘은 연재 때문에 못 나가지만, 한 번 나가면 거의 안 들어와요. 지방에 내려가서 시장이나 풀 같은 것들 관찰하고요. 서울도 사람들이 그냥 못 보고 지나가는 것들이 많아요. 자연은 꼭 바깥으로 가야 있는 게 아니라 도시 안에도 있어요. 좀 다른 형태로 있을 뿐이죠. 틈에 있거나, 밟혀 있거나, 웅크려 있거나, 일부러 누군가 가꿔서 있거나 말이에요. 그런 것을 찾아다녀요. 지방에 가도 그냥 골목길을 돌아다녀요. 그러면 이야기가 많이 보이니까요. 아이들 눈빛, 노는 모습, 억양 등에서 독특한 공간과 이야기가 느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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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인지 관찰한 장면을 쓴 작품이 꽤 있어요. 「부녀」(81쪽) 같은 작품이 그렇고요.


그렇죠. 관찰한 것, 공부한 것, 느낀 것들이 다 시가 돼요. 사진 촬영한 것들도 많고요. 촬영해서 시를 쓰고 그 다음에 그림을 그리는 거예요. 책 표지에 詩書畵(시서화)라고 해두었는데요. 사람들이 그림도 잘 그린다고 하는데 제게는 솔직히 기분 나쁜 말이에요. 저는 시만 쓰는 거예요. 제가 가진 시의 본래 이미지, 주제가 있잖아요. 그 주제를 품고 다니는 거죠. 사진을 찍는 것은 시가 시각적으로 확장이 되는 것이에요. 출발도 시고, 최종적으로도 시가 그림으로 확장된 것이라고 봐야 해요. 발이 아파서 신발을 신으면 발바닥의 확장을 신발로 볼 수 있는 것과 같아요. 시의 확장이 사진이고 그림이에요. 쓰지 않고 그린 그림은 하나도 없어요. 그러니까 그림도 잘한다고 하면 기분이 안 좋아요.(웃음) 저는 한 가지 잘하는 사람이에요.

 

 

모든 것이 포함된 작은 것


사랑과 자연(꽃, 풀)에 대해 많이 쓰시고, 섬세한 감성도 인상적입니다. 요즘 풀, 들여다보지 않잖아요.


제 본래 주제는 소외된 것, 작지만 소중한 것, 작은데 전부를 포함한 것들이에요. 새싹에서도 우주 전체를 볼 수 있어요. 암컷과 수컷이 만나, 바람과 물과 빛의 작용으로 싹을 피우고, 비바람 맞으며 고통과 고난 속에 살다 생을 마감하고, 거름이 된단 말이에요. 이처럼 우주가 작은 데도 있어요. 모든 것이 포함된 작은 것들을 찾아다닌 거죠. 그것의 소재가 되는 것이 새싹, 풀 같은 것들이에요.


학원을 오랫동안 하다 망했어요. 입시 논술학원을 18년 했어요. 선생님도 많았고요. 돈을 엄청 많이 벌었는데, 하루아침에 망했어요. 등단은 대학교 4학년 때 일찍 했는데, 먹고 사느라 시를 못 썼죠. 돈을 워낙 많이 버니까 시 생각이 안 났어요. 신경 써야 할 것도 많으니 사업만 확장되지 시는 아예 못 써요. 그러다가 결정적으로 4년 전에 망했어요. ‘길에 나선다’고 하는데 실제로 그랬어요. 가족들과도 다 헤어졌어요. 이 작업실에 이사 온 게 2주 정도밖에 안 됐는데, 이곳 집기들도 전부 독자 분들이 보내주신 거예요. 망하고 매일 페이스북을 했어요. 매일 시를 한 편 써서 올렸어요. 

 

소셜 펀딩으로 시집을 출간하셨는데, 그런 과정이 있으셨죠?


『사랑을 기억하는 방식』이라는 시집이었어요. 독자들이 돈을 모아주셨어요. 당시 돈이 하나도 없었어요. 불안하잖아요. 낮에 막걸리를 많이 마시고 돌아다니다 잔뜩 취해 들어와서 컴퓨터 앞에 앉았어요. 페이스북 친구들이 쪽지로 그래요. 매일 공짜로 시와 그림을 볼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고요. 취한 김에 페이스북에 썼어요. 그렇다면 갚아라, 시집을 낼 테니 투자하라고 썼죠. 15분 있다가 오백만 원이 들어오더라고요. 그날 저녁까지 천만 원이 넘게 들어왔어요. 깜짝 놀라서 중단했어요. 다음날 또 술을 먹었어요. 얼마나 내는지 보자는 생각이 들어 다시 투자하라는 글을 살렸어요. 그렇게 모은 돈으로 시집을 냈죠. 그땐 소셜 펀딩이란 단어도 몰랐어요. 시집을 내고 행사를 하려 했는데 할 수가 없었어요. 세월호 사건이 터졌거든요. 그달 말에 시집만 내고 투자하신 300분 정도에게 돈을 돌려주겠다고 했죠. 돈을 돌려줄 수 없으니 그림을 그려서 투자하신 분들에게 선물했죠. 그때 그린 그림이 <사랑을 기억하는 방식>(26쪽)이라는 그림이에요. 그렇게 다 갚았어요. 2014년 8월쯤 조계사에 2층 강당에서 출판기념회 비슷한 걸 하긴 했죠. 그렇게 소셜 펀딩을 했었어요.

 

그림을 그린 것도 그 시기였나요?

 

그림한지는 1년 반 정도 됐어요. 물론 어렸을 때는 그리기도 했지만 그림과 관련 없는 생활을 20년 넘게 했죠. 페이스북에 시를 판다고 했는데, 무형물이니까 팔 수 없잖아요. 페친(페이스북 친구) 한 분이 아이패드를 보내주시면서 친필로 시를 써서 파일을 보내달라고 하더라고요. 글만 써서 보내기 뭣해서 그림 몇 개를 그렸어요. 아주 조잡한 그림이에요.(웃음)


그림을 그리면서 어떤 도구를 써야하는지조차 모르니까 물감은 뭘 사야 하는지, 화선지는 뭘 사야 하는지 다 페친들에게 물어봤어요. 시키는 대로 그림을 그려서 올렸어요. 한 1년을 그렇게 올렸죠. 또 거의 매일 신작 시를 올렸어요. 안 쓰면 죽을 것 같았어요. 불안하고, 슬프고 그래서요. 한 6개월 정도 칼을 옆에 두고 잔 적이 있어요. 죽고 싶어서요. 칼을 쓰면 시를 못 쓰잖아요. 칼을 안 쓰려면 시를 쓰면 되고요. 아이들 생각하면서 매일 시를 썼죠. 아이들이 처음에는 저를 미워하다가 페이스북 보면서 저를 이해하게 됐어요.

 

삶의 커다란 위기를 시로 치유하신 거네요.


그렇죠. 그걸로 할 말 다 하고, 사람들도 그렇게 만나고요. 시 쓰면서 생활이 많이 회복된 거죠. 아이들과의 관계도 회복되고요. 솔직히 말해 저는 망하길 잘했죠. 안 그랬다면 골프장이나 다니고 했겠죠. 지금 훨씬 좋아요. 시골에 살다가 처음 서울 왔을 때 누가 좋은 장소에서 만나자고 했는데 그게 무척 불편하더라고요. 백화점 같은 곳이었는데, 반질반질하니까 불안해요. 그 주변이 못 있고 멀리 갔었어요. 본래 시골에서 자라서 그런 면이 있는데 학원하면서 돈을 워낙 많이 버니까 그런 진짜 제 모습이 사라졌던 거죠. 비싼 차도 쉽게 사고요. 망하고 나니 옛날 내 모습이 돌아오더라고요. 밥만 있으면 아무거나 잘 먹고요. 옷도 닳을 때까지 입는 옷 하나만 입고요. 원래 나로 돌아온 거예요. 정말 좋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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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언어다


“모든 존재는 해석을 기다리는 의미 있는 기호들”이라 하신만큼, 시인은 모든 사물에서 시를 발견하는 것 같습니다.


비유적이긴 한데요. 성경에서 ‘빛이 있으리 하니 빛이 있었다’고 했잖아요. 빛이 있으라고 ‘말씀’을 한 거예요. 빛은 결국 ‘말씀’으로 만들어진 거죠. 빛 이후의 모든 존재들은 다 언어로 만들어진 거고요. 그러니까 나도 언어고, 상대방도 언어예요. 누군가의 표정, 주름살, 몸짓에서도 언어가 보인다는 거예요. 걸음걸이도 여러 가지가 있잖아요. 어떤 사람이 뒷짐을 지고 걸어요. 거만해서 그럴 수도 있지만 몸이 불편해서 그렇게 걷는 사람도 있어요. 몸이 불편해서 그렇게 걷는 사람은 그 자체가 겸손하죠. 그의 삶이 그대로 녹아있어요. 구두 닦는 분들을 보면 대부분 새끼손가락을 들고 있거든요. 한 번 보세요. 한 사람만 그러면 언어가 아닌데 거의 다 그래요. 왜 그런지 자세히 보면 그렇게 해서 정밀해지는 거예요. 새끼손가락을 들면 닦는 범위가 좁아지면서 정밀해지죠. 그 직업에 충실해지려고 나타난 자세들이에요. 그것이 언어죠. 돌아다니면 그런 것들이 보여요.

 

나의 해석을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면 모든 것들에서 이야기가 느껴지는군요.


네. 막 보여요. 우주 탄생 직후, 엄청 짧은 시간에 물질들, 미립자들이 만들어졌잖아요. 그 물질들은 지금도 그대로 있죠. 우주 탄생이 137억 년이면, 지금의 물질들 모두 137억 년 된 물질들이라는 거예요. 한 사람이 오는 건 137억 년이 오는 거예요. 그 사람의 몸짓 속에는 우주의 어떤 것도 보이고, 그 사람의 인생도 보이고, 짧게는 그 사람의 생활도 보이는 거죠.

 

어머니와 아버지가
만나기 전
서로의 외부였을 때에도
나는 그들의 내부였다 (128쪽, 「오래된 시간」)

 

특히 ‘사람’에 대한 특별한 시선이 많이 느껴졌어요.


인간은 부자연스러운 존재라고 생각하거든요. 살아있을 동안은 오장육부로 내용물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자기도 모르게 긴장하는 거예요. 항문은 오므리고 있잖아요. 인간은 실제로 그렇죠. 죽으면 이게 다 빠져나가고요. 굉장히 불편한 존재인 인간이 자유에 이르려면 미립자로 돌아가는 것, 죽음 상태에 이르는 거예요. 그러면 자유로운 존재가 돼요. 살아있을 땐 그런 자유로운 존재가 못 되잖아요. 하지만 죽지 않고 자유에 이르는 길은 내 안에 있는 것을 빼내는 것, 그게 바로 시라는 거예요. 내 안에 있는 물질들, 시, 언어를 밖으로 확산하는 것이에요. 그림은 우주, 엄마로부터 받은 색을 밖으로 내보내는 것이고요.

 

“사람이 있는 풍경만이 선경이 될 수 있다”(32쪽)고도 하셨고요.


결국 제가 찾는 것은 사람일 거예요. 인간이 자신과 가장 닮은 존재를 찾는 거죠. 나 아닌 사람들에서도 나를 볼 수도 있고, 내가 가진 고통을 가장 잘 토로할 수 있는 대상도 사람이죠. 그래서 친하고 싶고요. 알고 보면 다 착한 사람들이에요. 모두 나만큼의 서정과 정서가 있어요. 사람 만날 때가 제일 좋죠.

 

그에 비하면 그림 속에 표현된 사람은 굉장히 작아요. 이건 왜 그런 걸까요?


옛날 그림에도 보면 꼭 조그맣게 사람이 있어요. 산수화에도 아주 작게라도 사람이 있죠. 사실 작은 그 사람이 주제예요. 주제를 작게 그렸거든요. 이진경(철학자) 선배도 말하기를 본래 사람이 가장 소중한 존재인데 사회적 조건 때문에 작아진 거죠. 위치, 계층 때문에 존재가 약해진 거잖아요. 그런데 그걸 복원한다면서 갑자기 크게 그리면 안 돼요. 주제가 작아지면 오히려 관심을 가지거든요. 그런 효과도 있고요. 작은데 작지 않은 거죠. 작은 것이 우주 전체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언어로도 가능하게 하고, 그림으로도 가능하게 한 거죠. 불교에서도 이런 말을 많이 하는데 그것이 실재라는 거예요. 제 그림을 본 사람은 그걸 느끼겠죠. 그럼 저와 진짜 친구가 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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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그림은 불과 기름의 관계


그림 그린 지 1년 반 정도 되셨다고 했는데요. 그림을 그리면서 시가 어떤 영향을 받았고, 어떻게 바뀌었는지 궁금합니다. 시와 그림을 불과 기름이라고도 하셨어요.


시를 그림으로 보완한다 혹은 그 반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건 완전히 잘못됐어요. 이 둘이 만나면 보완재가 아니라 불과 기름처럼 만나는 순간 새로운 존재로 폭발한다는 거예요. 전혀 다른 세계를 만들어요. 그림을 보면서 시를 읽으면 더 잘 꿈틀거리며 다가와요.

 

그림에 있는 ‘목숨’은 무슨 의미인가요?


유인(遊印)이라는 건데요. 이름 끝에 찍는 건 낙관이라고 하고요. 유인은 허전하다고 생각하는 곳이나 아무 데고 찍으면 돼요. 유인으로 공간의 구도를 맞추기도 하고, 전체 공간을 평화롭게 만들기도 해요. 내용도 되고, 형식도 되는 거죠. 특별히 ‘목숨’이라는 글을 쓴 것은 제가 매일같이 죽고 싶었을 때 시로 살아났으니까 이 단어를 택했죠. 보통 예쁜 단어를 많이 쓴다는데 그게 좀 짜증나더라고요.(웃음) 그래서 ‘목숨’이라고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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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화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글자를 그림으로 형상화한 것들입니다. 아버지, 집, 고독, 풍경 같은 작품을 보면 글자 자체로 작품이 됐어요. 쉽지 않은 작업일 것 같습니다.


‘모든 존재는 해석을 기다리는 기호’라고 했는데 기호에서는 언어 기호가 제일 중요하니까요. 한글도 만든 분들이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우주나 세계의 진실을 분명히 그 글자 형태에 담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한 번 해봤어요. 가장 먼저 한 것이 ‘아버지’라는 글씨였어요. 이응은 사람 머리와 가장 닮았어요. 등이 굽은 아버지의 모습에 맞춰서 그려보는 거예요. 그렇게 그려지는 것들이 많더라고요. 지금도 계속 시도하고 있어요.

 

「세한도」(148쪽)라는 작품에는 특별히 김정희의 동명 작품에 대한 작가의 말이 자세히 있었어요.


사실은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 때문에 처음 그림을 시작했어요. 국보 180호인데요. 그 작품은 구도도 엉망이에요. 잘 그린 그림이 아니에요. 대신 글이 좋죠. 제가 용감하게 시작한 이유도 나는 시를 쓰니까 그림은 좀 못 그려도 된다는 자신감이었어요. 화가들이 제게 이렇게 그리지 말라고 하진 않을 거니까요. 나는 시를 쓰고, 정신을 그리는 거라고 생각해요. 추사의 「세한도」를 보니 나무들이 있는데 사람 모습과 비슷했어요. 저의 작품에서 나무를 아예 사람으로 바꾸어버렸어요. 그렇게 하니까 나무에서 사람이 보이고, 사람에게도 글자가 있을 것 같았어요. 글자로 그림을 만들게 된 것도 그와 같아요. 많은 분들이 좋아해줘서 재미있게 또 했어요. 어려워요. 연구를 많이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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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십시오」, 「2014년 4월」, 「무소의 뿔처럼」 등의 작품은 세월호에 관한 작품들입니다. 당연하겠지만 시인은 세상의 아픔에 솔직하고 담담하게 말을 건네요. 벌써 1년이 넘었는데, 이 사건이 시인에게는 어떤 의미인가요?


처음에는 잘 모르겠더라고요. 충격적인 게 있었어요. 인터넷에서 본 거예요. 게임방에 들어오던 친구가 안 들어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자기들의 언어로 ‘야, 돌아와, 빨리 게임해야지, 관심 끌려고 그러지? 이제는 돌아와’라고 장난으로 쓴 거죠. 며칠 있다 안 오니까 ‘이상하다, 장난이었어, 미안해, 진짜 돌아와’라고 해요. 또 일주일 지나니까 ‘이거 장난 아니다, 미안하다’라고 썼더라고요. 그걸 보는데 섬뜩하더라고요. 그래서 자세히 보게 됐어요. 이건 이성을 떠나서 그것에 대해 안 쓰고, 관심을 안 가진다는 게 사람이 아닌 것 같았어요. 그때는 광화문을 매일 갔어요. 힘들었어요. 요즘은 제가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어요. 그림 그려서 기증도 하고요. 이 사건이 제가 그림 그리는 방향을 더 공고하게 해준 것 같아요.

 

사건 자체에 대해서는 제가 아직도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닌 것 같아요. 저는 다른 사람보다 감각적인, 1차원적 존재인 것 같거든요. 판단을 잘 못하겠어요. 아직도 그냥 허우적거리고 있어요. 사회사적, 정치사적 의미로 써낼 자신은 아직 없어요. 내가 있었던 세계의 중요한 사건이기 때문에 지켜보고 있긴 해요.

 

굴곡진 경험도 그렇고, 죽음에 대해 남다른 감각을 가지고 계십니다.


죽음이라는 것은 경험할 수 있다면 가장 절절하게 우리를 깨닫게 해주겠죠. 하지만 죽음을 경험하고 나면 깨달음을 얻는 순간 나라는 존재는 사라지잖아요. 죽지 않고 죽음을 경험하는 것은 타인의 죽음을 경험하는 거예요. 혹은 내가 죽음 비슷한 곳에 가보거나. 그때 많은 것이 다가오죠. 어마어마한 것들이 올 거예요. 우리 사회도 그 사건으로 인해 엄청난 충격을 받았고, 후에 오는 것을 알게 되겠죠. 중요한 것은 유가족들이에요. 그 분들은 반쯤 죽은 분들이거든요. 살아도 살지 않은 그 사람들이 세상을 가장 올바르게 보는 거예요. 죽음에 가까이 가봤으니까요. 산 사람이 그걸 깨닫는 게 쉽지 않잖아요. 작가라면 그런 걸 예민하게 생각해야 해요. 제 경우 우연히 왔었어요. 사업이 망하면서 그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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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은 언제나 광속김주대 저 | 현암사
페이스북 시인’, ‘SNS 시인’이라는 별칭으로 잘 알려진 김주대 시인의 첫 번째 시화집 『그리움은 언제나 광속』이 나왔다. 부드럽고 따스한 그림과 감성적 시어가 주를 이루는 다른 시화집과는 사뭇 다르게, 이 책은 남성적 기백이 가득하다. 지면을 가로지르는 힘 있는 터치, 강렬한 색감이 시선을 먼저 사로잡고, 생의 본질을 꿰뚫을 듯 강직하면서도 서정적인 표현으로 깊이를 더해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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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신옥철 “더 많이 외로워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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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이 쓴 책이 모두 그렇지는 않지만, 대개 배우나 가수의 이야기를 담은 책은 그들 팬을 넘어서 널리 읽히는 게 쉽지는 않다. 무명 시절에서 스타가 되기까지의 사연은 충분히 감동적이지만 팬이 아닌 일반 독자에게 다가가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스타의 이야기가 더 넓게 확장되기 위해서 필요한 요소가 바로 보편적인 호소력이다. 그런 점에서 아웃사이더 신옥철이 쓴 『천만 명이 살아도 서울은 외롭다』는 그의 팬이 아닌 독자도 설득할 수 있는 책이다.

 

그래서 천만 명이 살아도 서울은 외롭다. 아니, 60억이 살아도 지구는 외롭다. 타인과, 심지어 자기 자신과도 소통하지 못하는 우리는 모두 외톨이이다. 마치 광대 피에로처럼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얼굴에 눈물을 그려 넣고는 슬픔을 가슴에 묻고, 슬프지 않은 척, 행복한 척 웃고 있을 뿐인 외톨이 말이다. (21쪽)

 

<외톨이>, <주변인>, <피에로의 눈물> 등 명곡으로 많은 동시대인의 외로움을 다독였던 그의 언어가 책 속에서도 녹아있다. 신옥철 작가는 산문집 『천만 명이 살아도 서울은 외롭다』에서 자신을 키운 건 8할이 외로움이었다고 고백한다. 외로움이 어떻게 아웃사이더의 음악 세계에 영향을 미쳤고, 고독이 신옥철의 삶을 어떻게 이끌어갔는지를 기록했다. 주목할 부분은 이러한 외로움이 특별한 게 아니라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낄 감정이고, 모두가 기꺼이 외로움을 인정하자는 대목이다. 외로움을 인정하는 건 다름을 이해하는 과정이고, 고독의 정체를 알아야 소통도 가능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래서, 이 책의 또 하나 중심 키워드는 소통이다.

 

 

부모와 아이가 함께 읽는 모습을 그리며 쓴 책

 

『천만 명이 살아도 서울은 외롭다』는 어떻게 나온 책인가요.
 

소설가나 언론인이 되고 싶었는데, 뜻하지 않게 원하는 대학으로 진학하지 못하면서 취미로 삼던 음악을 업으로 하게 됐지만 어렸을 때부터 책 쓰는 게 꿈이었어요. 한동안 잊고 지냈던 꿈이었죠. 원래 계획은 서른 살에 아웃사이더가 아니라 신옥철이라는 이름으로 책을 내자는 게 목표였습니다. 본명으로 책을 낸 건, 랩퍼로서가 아니라 저라는 사람의 정체성으로 기록을 남기는 게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죠.

 

책 쓰기로 마음 먹은 곳은 군대였습니다. 그곳에서 편지 한 통을 받았습니다. 군대 가기 전 2.5집 때 저와 인터뷰를 했던 기자가 쓴 편지였어요. 전직해서 출판 편집자를 하고 있으니, 책을 내면 어떻겠냐는 내용이었는데요. 인터뷰 때 책을 향한 애정을 많이 이야기했는데, 그게 인상적이었나 봐요.

 

제목이 참 좋습니다. 어떻게 나온 제목인가요?

 

출판사와 이야기하면서 최종적으로 3개를 올렸어요. 그중에서 최종으로 정한 제목인데요. 저는 제목에 외로움이란 누구나 겪는 감정이고 익숙하다는 뉘앙스를 잘 담아보고 싶었어요. ‘외로움을 꺼내놓을 수 있는 용기’도 후보 중 하나였는데, 너무 전형적인 책 제목 같아서 뺐고 결국 ‘천만 명이 살아도 서울은 외롭다’로 정했어요. 제목을 정하고나서는 왜 내가 이런 제목을 생각하지 못했을까 하는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는데요. 인터뷰 할 때, “이 제목은 제가 정했습니다”라고 당당하게 할 수 없잖아요. (웃음) 저는 거짓말은 안 하거든요.

 

책을 쓸 때 염두에 둔 독자가 있었나요.
 
딱히 염두에 둔 독자라기보다는 이런 장면을 생각해봤어요. 부모님이 아이 손을 잡고 서점에 가서 제 책 앞에서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거죠. 아들아, 이 책을 읽어봤으면 좋겠어. 그러면 아들이 말해요. 엄마 당연히 이 사람 알지, 엄마가 이사람 어떻게 알아? 엄마가 답합니다. 이 사람이 누군지 몰랐는데 책을 보니 좋은 이야기를 하더라. 아이가 엄마에게 말하길, 이 사람은 원래 음악 하는 사람인데 음악도 잘해. 그렇게, 엄마는 아웃사이더의 음악을 듣고 아이는 신옥철의 책을 읽는 그림인데요. 일부 층만이 아니라 성별 세대 상관 없이 함께 읽을 수 있는 책이 됐으면 좋겠어요. 혼자 읽기보다는 누군가에게 권해주고 함께 사러 가는 책이었으면 하고요. 좋은 영화를 상대방을 바꿔 가며 두 번, 세 번 보는 경우가 있잖아요. 이 책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청년기가 외로움을 가장 격하게 느끼잖아요. 외로움으로 몸부림 치는 청춘에 한 말씀.

 

띠지에도 있는 말처럼 ‘기꺼이 외로워지자, 끝까지 외로워지자, 그 힘을 믿어보자’라는 말을 드리고 싶네요. 외로움을 인정하는 게 중요해요. 외로움을 인정해야 극복하거나 나눌 수 있거든요. 쉽지는 않죠. 많은 사람이 외로움을 피하고 싶고, 감추고 싶은 대상으로 여겨요. 이런 인식의 재변화를 주는 책이 『천만 명이 살아도 서울은 외롭다』였으면 좋겠습니다. 제 음악의 목표가 비주류를 주류로 만드는 것이었듯, 외로움도 그렇게 인식을 바꾸고 싶어요. 더 많이 외로워했으면 좋습니다.

 

 

아웃사이더에게 고독이란

 

고독, 외로움이 전면에 등장하는데요. 선생님께 고독이란?

 

익숙한 설렘, 낯익은 낯섦 정도의 느낌인 것 같아요. 새로운 환경이나 사람을 만날 때 갖는 두렵기도 하고 기대하기도 하고 설레기도 하는 감정인데요. 저에게는 두려움이 더 컸어요. 두려움 때문에 그 대상과 거리가 생겨서 괴리감이 생기고, 괴리감 때문에 외로움이 태어났어요. 그 외로움은 제 옆에 있는 다른 사람을 외롭게 만들었고요. 그런데 같이 외로움을 느끼니까 따뜻하더라고요.

 

지금도 상당히 외롭습니다. 책을 내고 작가님, 선생님 이런 말을 듣는데 굉장히 고독해져요. 두 가지 의미의 고독감이 더 생겼는데요. 한 가지는, 작가라는 말을 들었을 때, 스스로 작아지는 느낌이 들어요. 이 작품에 당당하지 못한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분명 어렸을 때부터 꿈이 책 내는 것인데도 낯선 호칭 때문에 괴리감이 생기면서 외로워져요. 두 번째는, 작가라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져요. 영역이 넓어진 것 같고, 새로운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도 들고요. 제 이야기를 솔직하게 노력해서 써서 뿌듯하기도 합니다. 이렇듯, 가장 외로운 순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인 거죠. 기쁘든 그렇지 않든, 만족스럽든 만족스럽지 않든 결국은 고독해진다는 말인데, 고독은 이렇듯 어떤 상황에서도 느낄 수 있는 감정입니다.

 

외롭다, 고독하다는 말을 아내 분은 싫어하지는 않나요.

 

전혀요. 외로움이 익숙한 설렘, 낯익은 낯섦이기도 하지만 외로움을 가장 많이 느낄 때는 가장 행복한 순간이니까요. 고독과 행복은 같이 물려 있습니다. 와이프는 제 생활의 중심이고 제가 지켜나가야 할 소중한 사람이에요. 무조건 내 편이지만, 약점이 하나 생긴 거라고 생각해요. 그 사람이 다치거나 상처 입었을 때, 저도 얼마나 힘들겠어요. 저와 와이프의 관계는 그래서 가장 외로운 관계입니다. 그래야 행복할 수 있고요.

 

아웃사이더 하면 스피드인데, 글 쓰는 속도는 어땠어요?

 

군대에서 시작해서 지금 나왔으니, 상당히 오래 걸렸어요. 쫓기면서 글을 쓰고 싶진 않았어요.  음악 하는 방식으로 글을 대하고 싶지는 않았거든요. 제가 음악을 하겠다고 했을 때, 아버지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좋아서 하는 게 음악이고, 힘들 때 풀기 위해 하는 게 음악인데 음악을 업으로 삼으면 음악으로 힘들어질 때 어떻게 감당하겠느냐고요. 글마저도 꼭 써야 하고, 짜내야 하고, 나를 알려야 하는 것의 일부가 되어버리면 글이 저를 풀어주고 행복하게 해주지 못할 것 같았죠. 그렇게 되면 오히려 저를 치열하게 살도록 몰아붙일 텐데, 그게 싫었어요. 그렇다고 간절하게 안 썼다는 뜻은 아니에요. 방식을 다르게 하고 싶었어요.

 

글은 느리게 말하는 랩? 음악은 외로움을 감추기 위해 예민하고 날카롭고 빠르고 치열하게 뭔가를 꽉꽉 채워넣었다면 책은 가장 편한 상태일 때, 감정을 끄집어내고 싶을 때, 힘을 뺀 상태에서 썼어요. 그렇게 해야 글을 보는 사람도 부담스럽지 않을 것 같았죠.

 

책 쓰시면서 다른 의미로 힘들었겠네요. 힘을 빼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니까요.

 

이 책을 만들며 가장 힘들었던 부분이 그거였어요. 외로움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게 중요할까, 아니면 공감대 형성을 위해서 적절하게 조율하는 게 중요할까. 책을 보시면, 처음에는 처절하게 시작하죠. 나중에는 제가 외로움을 대하는 태도라 바뀌더라고요. 글을 써나가는 과정에서 스스로 편하게 끄집어내다보니 그렇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프롤로그가 처절한데, 굳이 수정 안 한 이유가 독자도 제가 외로움을 대하는 태도가 변하는 걸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어요. 외로움이라는 감정이 어렵고 처절하고 두려운 감정이기보다는 설레기도 하고 낯익은, 친근한 감정이라는 걸 느꼈으면 좋겠어요.

 

책 순서가 시간순은 아니던데요.

 

저는 삶을 살아온 흐름대로 음악으로 담아왔어요. 그 누구보다 강하고 남자다운 척을 하고 싶을 때  <남자답게>를, 남자다운 척이 행복하게 하지 않다는 걸 알고 외로움을 인정하면서 <외톨이>를 만들었죠. 철저하게 혼자였던 외톨이가 갑자기 대중적 사랑 받으면서 그 변화를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주변을 맴돌 때 <주변인>이 나왔고요. 함께 가기로 결심하면서 기쁨을 느꼈을 때 <주인공>을 내놓고 군대에 갔죠. 다시 단절을 느끼고는 <슬피 우는 사람>을 만들었어요.

 

글도 이렇게 테마와 감정에 맞춰서 배치를 하고 싶었어요. 글을 끄집어내는 게 제 몫이었다면 정리하고 재배치하는 데는 편집자와 소통이 중요했는데, 결과적으로 좋게 나왔던 것 같습니다. 편집자나 저나 고민했던 부분은 이 책이 연예인이 쓴 연예인의 책 느낌은 안 났으면 한다는 점이었는데요. 저도 어떤 내용을 쓰면 독자가 더 많이 궁금해할지는 알아요. 가장 가까운 존재였던 MC 스나이퍼와 물어뜯고 싸우고, 화해하는 등 이슈가 된 음악적 사건이 몇 개 있었잖아요. 그런 사건에 대한 저의 설명을 자극적으로 담았다면 힙합팬이나 음악팬은 상당히 더 관심을 가졌겠지만, 이런 걸 담고 싶지는 않았어요. 다루더라도 테마에 맞게 수위 조절을 했고요.

 

왜 그랬냐. 그런 사건들은 제가 아웃사이더라는 특정 가수로서 느낀 외로움이지, 여러분의 외로움은 아니거든요. 소송해 본 사람이 얼마나 많겠어요. 누가 상대방을 마치 죽일 것처럼 싸우겠어요. 이런 이야기는 뉴스로도 얼마든지 볼 수 있으니, 굳이 책에까지 담을 필요는 없죠. 책에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감정, 그 감정 안에서의 외로움을 주로 썼어요. 제가 힙합 뮤지션으로서의 외로움을 썼다고 해도, 그 외로움이 결국 비슷한 형태의 외로움이라는 점을 표현하려고 수위 조절 하는 작업을 책 마무리하는 시점까지 했습니다.

 

첫 책이라 아쉬움도 있을 것 같습니다만.

 

띠지의 사진? 이 사진을 보면 제가 되게 외로워보이고, 엄청 힘주고 문장 써가는 대문호 같은 느낌이 들거든요. 이 사진을 볼 때마다 고독해지는 거죠. (웃음) 지금은 계속 보니까, 띠지 사진과 표지 디자인이 적당히 조절됐다는 생각이 들어요. 표지가 각지지 않고 따뜻하고 경쾌한 느낌을 준다면, 그 아래 띠지 사진이 무게를 주면서 완급 조절을 해 주는 것 같아요.

 

군대에서 책을 쓰기로 했고, 사실 군대가 가장 외로운 공간이기도 한데요. 책에서 군대 이야기는 별로 없습니다. 저라면 군대 상사나, 군대에서 벌어지는 비합리적인 일을 기록으로 남겼을 법도 한데요.
 
누군가를 욕하는 걸 싫어해요. 싫은 소리 하는 것도 싫어하고요. 군대는 아무리 가까운 사람도 전역하면 떠나야 하고, 같이 있기 싫은 사람도 매일 봐야 하는 곳입니다. 만남과 헤어짐을 내 의지와 상관없이 반복하는 곳이 군대죠. 저 역시 안타까움과 스트레스가 컸지만, 어떤 공간이건 다 똑같이 힘들어요. 군대라고 특별한 건 없죠. 전역하고 나서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때가 군대라고 말한 적도 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군대 다녀오고나서가 더 힘들었어요. 그래서 누군가를 욕하고 싶지도 않고 그럴 마음도 안 갖게 됐어요.

 

수없이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면서 생긴 태도가 있는데요. 기대하지 말자, 입니다. 책이 나오고 불교계 큰스님인 정우 스님께 드린 적이 있는데, 그 때 스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붙잡고 있지 말라고요. 붙잡는 순간 붙잡힌 거고, 붙들고 있는 순간 붙들린 거라는 말씀이었는데요. 갖는 순간 잃어버릴 두려움에 살게 됩니다. 그래서 스님은 그냥 보라고 하셨는데, 이런 태도를 삶에서 가지게 된 것 같아요. 기대하는 순간 실망하게 되잖아요. 그래서 저는 첫인상이 좋은 사람을 별로 안 좋아해요. 첫인상이 좋으면 관계가 악화될 수밖에 없거든요. 물론 첫인상이 나쁘면 안 되죠. 안 보게 되니까요. 첫인상이 나쁘지 않은 사람이었는데, 만날수록 그 사람의 장점이나 매력을 알아가면 설렘이 더 커지죠. 그 친구와는 다른 대화, 어떤 일을 함께 할 수도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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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 안 되는 건 서툴러서

 

글쓰기 대회에 나가 1등을 했는데, 그때 어떤 글로 상을 받았는지 기억나세요?

 

한민족공동체의식함양을 위한 전국논술글짓기 대회였어요. 아마 6.25 시기에 맞춰서 했던 거 같아요. 제가 수시를 넣을 수 있는 마지막 전국단위 대회였죠. 전국대회 3위 안에 입상해야지만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있어서 나갔는데 그 전까지는 3위 안에 들지 못했어요. 마지막이니 정말 각오하고 쓴 글인데, 심사위원이 보기에 잘 쓴 글이 어떤 건지 고민하고 썼던 기억이 나요. 통보를 늦게 받아서 수시에 지원하지 못한 것도 충격이었지만, 정말 멘붕이었던 사실은 의도해서 작정하고 쓴 글이 1등을 받았다는 점이었는데요. 내가 쓰고 싶은 대로 썼을 때는 결과가 좋지 않았는데, 심사위원에게 비춰질 모습을 생각해서 쓴 글이 좋게 평가받았다? 혼란스러웠죠.

 

그렇게 신문방송학과에 입학해서 언론인이 되었다면 어떤 언론인이 되었을까요.

 

글 쓰는 게 좋아서 언론인이 되고 싶었지만, 구체적으로 뭘 할지와 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다만 내 이야기를, 사회 현상에 대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전달하거나 꺼내놓는 사람이 되는 게 꿈이었죠. 손석희 사장님을 존경하는데요. 그분이 서강대에서 개강 미사 하는 영상을 봤어요. 20대 젊은 언론인을 꿈꾸는 청년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였는데,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문제의식을 뚜렷이 갖는 친구면 좋겠고, 그 문제의식이 건강했으면 한다고요.

 

전문가에 비해서는 정치 사회 경제에 관심을 많이 갖는 사람은 아니지만, 저도 사회 현상을 보면 궁금한 게 있잖아요. 제가 정치할 사람은 아니라도, 정치인들이 왜 싸우는지는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어떤 순간부터 언론인이 아니라 음악인으로 선을 바꾸고 나서는 예술가로서 할 수 있는 말을 거침없이 하자는 쪽이었지, 문제의식을 끄집어내려고 살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앞서 사람에 기대를 걸지 않는 삶을 살게 되었다고 했는데, 이런 삶이 극단적으로 가면 무미건조하고 슬픈 삶이 될 수 있어요. 이랬던 내가 문제가 있지 않나, 하는 문제의식을 갖게 하는 질문이네요. 어쨌든, 사회가 건강한 문제의식을 제기하고, 직접적으로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는 꺼내놓아서 더 많은 사람과 대화했으면 좋겠습니다. 더 뛰어난 경험, 의견이 합쳐지면 더 건강한 사회로 가겠죠. 독설가가되겠다는 건 아니지만, 저도 문제의식을 상기시키는 글과 음악을 만들려고 해요.

 

책에서는 리스펙트는 사라지고 디스만 남은 상황에 대해서 말씀해주셨는데요. 한국사회에서의 소통에 관해서 말씀하실 부분이 있을 듯해요.

 

세대마다 다르긴 하겠지만 대한민국 많은 사람이 억눌려있어요. 끄집어내지 못한 삶을 살아가죠.저희 세대만 해도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 ‘하지 마, 안 돼’일 거예요. 이렇다 보니, 뭘 할 때도 안 되지 않을까, 위험하지 않을까부터 생각하게 되죠. 브레인스토밍도 안 되고요. 그러다가 대한민국이 개발도상국 거치면서 많은 문화를 급작스럽게 수용하게 됐잖아요.

 

그래서 서툰 거죠. 제가 가장 힘들었던 순간과 가장 행복한 순간이 일치한다는 말을 했는데, 서툴다 보니까 외로움을 대하는 태도, 행복을 대하는 태도 모두 서툴죠. 연예인도 그래요. 억눌린다는 말이 다른 말로 한다면, 쫓긴다는 의미일 텐데 쫓기다 보면 절실하고 간절해지겠죠. 연예인이 성공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게 뭘까요? 힘든 무명시절 이야기거든요. 오디션 프로그램도 가창력만으로만 판단하지 않잖아요. 나중에 들통나서 마이너스될 건 생각 못하고 유명해지려고 없는 사연을 만들기도 해요. 그만큼 억눌려 있으니까요.

 

연예인을 바라보는 태도도 그래요. 영웅이 나타나길 바라다가도, 그 영웅이 기고만장해지는 건 보기 싫고, 꼬투리를 잡아서 다른 영웅을 만들려고 하는, 이런 태도가 억눌린 감정으로 인한 서툼이 만든 그림 같아요. 진부한 말이겠지만, 우리 모두가 좀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어요. 지금이 저에게는 느리게 걸어가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에 관해서 인지하는 시점인데요. 눈 앞만 보고 가면 한 치 앞밖에 못 보지만, 천천히 걸으면 멀리 넓게 볼 수 있어요. 빠르게 가려고 앞만 보면 혼자서 자기 이야기밖에 못 하지만, 느리게 가면 다른 사람과 함께 대화를 하며 갈 수 있어요. 문화적인 측면에서는 앞으로 대한민국이 발전할 여지가 많습니다. 발전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받아들이거나, 무조건 거부해서는 안 되는데 그게 가능하려면 여유가 있어야겠죠.

 

 

버지니아 울프를 좋아하는 이유

 

책도 많이 읽으시잖아요. 요즘은 어떤 책 읽으세요?

 

저는 음악 만드는 작업 기간에는 외부 음악을 하나도 안 들어요. 왜 그러냐 하면, 이미 저는 수많은 문화, 예술, 경제 등 여러 요소의 영향 받으며 사는 사람인데 음악마저 다른 작용을 받으면 제 정체성이 흐려진다고 생각하는 타입이거든요. 그렇다고 전혀 안 듣는 건 아니에요. 음반 작업 끝나면 미친 듯이 듣죠.

 

책 쓸 때도 다른 책은 한 권도 안 봤어요. 책은 군대에서 참 많이 읽었어요. 하지만 제가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시점부터는 거의 안 봤고요. 책을 내고 나서 서점에 갔더니, 제가 좋아하던 작가의 책이 그 사이에 많이 나왔더라고요. 그래서 이제는 좀 책을 읽고 싶어졌네요.

 

좋아하는 작가로 꼽아주신 버지니아 울프는 남성 독자보다는 여성 독자가 많은 작가인데요. 
 
혹자는 버지니아 울프가 여성성을 대표하는 작가라고 하지만, 저는 그런 점을 좋아했던 건 아니에요. 제가 음악을 대하는 태도와 울프의 문학 세계가 비슷해요. 그 당시의 여성이라는 위치는 사회적으로 외톨이였어요. 울프가 묘사한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감정에 제가 집중한 거죠. 단절, 괴리감, 외로움이 어떤 식으로 표현될 수 있는지를 울프가 보여줘서 좋아했고 운문과 산문 경계를 허문 점도 마음에 들었고요. 작위적인 표현도 있지만, 그 표현이 오히려 복선으로 작용하는 부분도 절묘하죠. 사실, 처음에는 굉장히 어려웠어요. 처음에는 문장에 관심을 가졌고, 나중에는 주제 의식으로까지 확장되었어요.

 

어떤 작품 좋아하세요?

 

『파도』라는 작품입니다. 4집의 타이틀 곡인 <바람 곁에>의 시작이 됐던 작품이기도 한데. 주인공이 6명이 나오고, 나오지는 않지만 이들의 의식에 작용하는 친구가 1명 있어요. 이들과 상관 없이 해가 뜨고 지는 동안 일렁이는 파도를 바라보는 제3자가 나오죠. 총 8명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어렸을 적의 기억을 공유하고 자라서는 전혀 다른 삶을 살지만 얽히고설킨 관계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의식적인 독백으로 진행돼요. 외부 환경이 작용하지 않고 철저하게 사람과 사람 사이의 내면 관계에만 집중하죠. 이야기 바탕에는 울프 특유의 우울함의 정서가 있고요.

 

이 책의 원제가 ‘모두의 인생’이었을 거예요. 여러 사람이지만 한 사람일 수 있고, 한 사람에게서도 여러 모습이 있다는 느낌을 담은 제목인데, 이 제목이 왜 파도로 변했는지를 고민을 해봤어요. 파도가 끊임없이 몰아치면서 밀려나가고, 연속인 듯 단절인데 세상과 나 사이의 관계 그리고 우리의 삶이 파도와 같은 게 아닌가 하는 뉘앙스를 담았다고 생각해요. 혼란스럽고 어려웠던 책이지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주제이죠.

 

버지니아 울프의 글이 아웃사이더 음악에 영감을 줬다고 하셨는데, 혹시 다른 음악도 그런 곡이 있을까요?

 

내면적 외로움을 섬세하게 꺼내는 데 버지니아 울프가 작용을 했다면, 섬찟한 표현력을 직설적으로 표현하는 데는 에드거 앨런 포입니다. 『어셔 가의 몰락』을 좋아했는데, 전혀 과학적이지 않아 보이는 사건을 상당히 과학적인 복선으로 진행해나가는 이야기입니다. 포 덕분에 추리소설을 많이 읽었어요. 제 곡 중에서는 ‘삐에로의 눈물’ 같은 곡이 포의 분위기를 많이 반영했죠.

 

 

작가로서 신옥철로 인정 받을 때까지 계속 쓸 것

 

야구에서는 초반에는 구속으로 윽박지르던 투수가 기교파로 변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아웃사이더 랩은 ‘스피드’인데요. 앞으로도 이 부분은 변하지 않을까요.

 

스피드에서 인정을 받다 보니까, 제 감성적인 부분이 기술적인 화려함보다는 덜 전달된 부분이 있지만, 저는 기술보다는 감성이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제가 아니라 대중들이 “아웃사이더 랩은 빠른 게 전부가 아니야”라고 이야기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죠. 4집은 사람들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음반이었어요. 차트 1위를 하려고, 누군가에게 들려주기 위해 만든 게 아니라 스스로가 나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였죠. 의도적으로 빠르게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었고 제 랩이 워낙 빠르니까 사람들이 빠르다고 느낄 거고요.

 

앞으로도 의도적으로 뭔가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은 절대 하지 않습니다. 글 써서 1등했을 때 했던 생각이기도 했는데요. 다른 사람이 좋아하는 게 뭔지를 생각하고 만들었을 때 과연 내가 행복했을까요? 저도 사람들이 뭘 듣고 싶어하는지 모르지는 않거든요. 지금까지 해왔던 데이터베이스가 있으니까, 1위를 할 수 있는 확률적으로 높은 방법은 알죠. 그러나 그렇게 차트 1위를 했지만 자기 만족이 없다면요? 1위는 떨어져요. 1위보다 중요한 게 오래 살아남는 것이고, 오래 하려면 결국은 자기만족이 더 커야 하죠. 창작을 하는 건 힘들지만, 자기 만족조차 없다면 무조건 힘들어요.

 

앞으로 하고 싶은 음악은, 완급조절을 잘하는 음악입니다. 무조건 힘을 빼는 것도 아니고 힘을 주는 것도 아닌, 상황에 따라서 빼고 주고 그렇게 하는 음악을 만들려고 해요. 책을 쓰며 느꼈던 감정이 다음 음악에 반영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음악으로 채우고 앞으로 달려가는 데 급급했다면, 책을 쓰면서 느리게 걷는 방식을 알아갔습니다. 해보고 안 하는 사람이 되어야지, 해보지 않아서 못하는 사람이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기 때문에 느리게 걷는 연습을 하고 있습니다.

 

책에 쓰신 대로, <히든 싱어> 아웃사이더 편이 나오면 참 재밌을 것 같아요.

 

시즌 3 제작할 때 제가 거론됐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구체적으로 제안이 오진 않았는데요. 저도 되게 궁금해요. 그런데 과연 똑같이 따라 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발음과 속도는 따라 할 수 있겠지만, 제 목소리까지 같아야 하는데 랩이 다른 음악보다 더 힘들죠. 노래보다 랩이 정말 더 정교해야 하거든요. 같은 시간 안에 더 촘촘하게 들어가잖아요. 특히 제 랩은 더 잘게 쪼개니까요.
 
책은 앞으로도 계속 쓰실 생각인가요?

 

책을 쓰면서 결심한 게 ‘계속 쓰자’였어요. 책 쓰는 게 재밌기도 하고, 연륜이나 경험 쌓는 데 도움도 돼요. 음악과 책 시너지 작용도 될 것 같고요. 하나만 계속 하는 사람은 장인이 될 수 있지만, 자칫 잘못하면 매너리즘에 빠지거나 오만해질 수 있는데요. 저는 최대한 다양한 영역에서 저를 풀어내려고 해요. 그게 서로 영역을 높일 것 같고요. 지금 목표는 신옥철 이름으로 이 분야에서도 작가로서 인정받고, 글 안에서 만들고자 하는 저만의 스타일을 독자에게 뚜렷하게 각인할 때까지 계속 쓰기입니다.

 

북콘서트를 준비 중이라고 들었어요.

 

여러 번 강연을 했고, 콘서트도 했지만 북콘서트라는 형식은 처음입니다. 처음으로 여는 시간이고 공간이고 자리니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음악과 글이 서로 방해되지 않고 다른 공명을 만들 수 있도록 하려고요. 목표는, 책을 출간하면서 제가 느꼈던 감정의 변화를 북콘서트 안에서도 청중들이 느끼는 거예요. 외롭지만, 외로운 사람끼리 모여서 덜 외로워지는 시간이 됐으면 해요. 책에 등장하기도 했고, 글 쓰는 데 영감 주기도 했던 많은 분들을 어렵게 섭외해서 모셨습니다. 좋은 말씀 많이 해주신 존경하는 이은미 선배님, <슬피 우는 새>에서 함께 해줬고 삶의 방향을 긍정적으로 바꿔나가는 데 많은 조언해주신 이수영 선배, 절친한 친구이고 저와는 다른 분야에서 고군분투하는 배우 정경호, 랩퍼로서 동질감을 갖고 있고 외로움과 트라우마를 이겨내면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노력하는 동생인 타이미가 함께 해주십니다. 좋은 분들과 함께 책이 만들어진 이야기와 외로움을 나누면서 적재적소에 그에 맞는 노래를 들려줄 수 있는 무대를 만들려고 하니까 북콘서트에 많이 오시면 좋겠어요. 혼자 오셔도 좋고, 함께 오셔도 좋고, 혼자 와서 다른 혼자 온 사람의 손을 잡아서 함께 나가셔도 좋고요. 조만간 공연장에서 찾아뵙겠습니다.

 

⇒ 아웃사이드 북콘서트 신청하기 http://ch.yes24.com/Culture/SalonEvent/5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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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 명이 살아도 서울은 외롭다 신옥철 저 | 웅진지식하우스
외로움은 혼자라는 데서 시작하는 걸까? 아니면 누군가와 함께였다 헤어질 때 태어나는 걸까? 아니면 내가 너무 다르기 때문에 겪게 되는 걸까? 《천만 명이 살아도 서울은 외롭다》는 아무리 많은 이들과 함께 해도 생겨날 수밖에 없는 외로움을 받아들이는 법, 그 힘으로 남과 다른 나를 사랑하는 법을 말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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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말로 “모든 음악은 결국 자기를 찾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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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실상부, 말로는 한국을 대표하는 재즈 보컬리스트 중 한 사람이다. 척박한 국내 재즈계에서 그녀는 오랫동안, 끈질기게 버텨왔고 대중들과 긴밀하게 호흡했으며 그 속에서 자신만의 빛깔을 만들어 냈다. 지난 해 말 그녀는 자신의 여섯 번째 음반< 겨울 그리고 봄 >을 발표했다. 이전의 두 앨범< 동백 아가씨 >(2010), < 말로, 배호를 부르다 >(2012)가 모두 한국의 옛 노래들을 담은 음반이었기에 말로가 자신의 새로운 노래를 발표한 것은 2009년 이후 5년 만이다. 새 앨범에 관한 이야기가 듣고 싶어서 그녀가 노래를 부르고 있는 재즈클럽 야누스로 향했다. 수요일 밤이면 클럽 야누스에서는 피아니스트 김가온이 이끄는 그의 트리오가 연주를 한다. 그리고 말로는 게스트 뮤지션으로 무대에 올라 그들의 반주로 대여섯 곡의 노래를 부른다. 첫 번째 무대가 끝나고 말로는 무대에서 내려오면서 드러머 이도헌과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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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어떤 이야기를 나눴나? 연주할 때 어떤 문제라도 있었나?


마지막 곡으로 「스위트 조지아 브라운 Sweet Georgia Brown」을 불렀는데 내가 조금 흥분을 해서 템포가 빨라졌다. 원래도 이 곡을 빠르게 부르는 편인데 더 빨라졌다. (웃음)

 

하지만 즉흥적으로 연주자들과 '합'을 맞추면 되는 것 아닌가?


그렇긴 한데 필요 이상으로 빨라지면 전체적인 균형이 깨진다. 재즈는 즉흥의 음악이지만 너무 과잉의 감정을 넣는다던지 흥분하면 좋은 음악이 나올 수 없다.

 

앨범에서는 자신의 작품이나 보통 재즈 뮤지션들이 연주하지 않는 흘러간 노래들을 다뤘는데 클럽에서는 스탠더드 넘버를 주로 부르나 보다(그날 무대에서 말로는 「스위트 조지아 브라운」 외에도 셀로니어스 멍크의 곡 「바로 너야 I Mean You」와 아서 슈워츠, 하워드 디츠의 「당신, 밤 그리고 음악 You and Night and Music」을 불렀다).

 
나의 곡을 여기서 부르려면 별도의 준비가 필요한데 클럽 연주에서는 현실적으로 그것이 힘들다. 또 다른 이유를 들면 재즈 연주자라면 늘 스탠더드 넘버를 훈련해야 한다. 그것을 통해 보다 즉흥적으로, 자유롭게 노래할 수 있는 방식을 발전시켜야 한다.

 

야누스에서 노래한 지 얼마나 되었나?


신인시절부터 노래했지만 야누스가 이곳 서초동으로 이사 온 뒤부터는 매주 수요일에 계속 노래했다. (잠시 생각하더니) 8년 정도 된 것 같다.

 

매주 출연하는가?


그렇다. 정말 불가피한 일이 있지 않은 한 이곳에서 노래한다. 이렇게 즉흥적으로 노래한다는 것은 내게 큰 즐거움이다. 아울러 이곳은 박성연 선생님이 만든 공간이지 않은가? 이곳에서 매주 노래한다는 것은 내게 큰 영예다. (재즈 보컬리스트 박성연은 1978년에 <야누스>를 시작해 현재도 계속 이곳을 운영하고 있다)

 

첫 음반 내고 활동 시작한 지 얼마나 되었나?


그게 1998년이니까.......17년 되었다. 원로가수다. (웃음)

 

그런데 데뷔 음반부터 한국의 옛 노래들을 재즈 스타일로 부르지 않았나?


그렇다. 「희망가」, 「봄날은 간다」, 「이별의 종착역」, 「누구 없소」 등을 불렀다.

 

그렇다면 말로의 현재 음악은 이미 그때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떻게 그런 아이디어를 갖게 되었나?


직업가수로 활동하기 전에 미국 버클리 음대에 재즈를 배우러 유학을 갔다. 그런데 그곳에서 미국 사람들 앞에서 영어로 노래하면서 많은 걸 느꼈다. 이건 기악 연주자들과는 매우 다른 차원의 문제다. 내가 아무리 영어로 노래를 잘 한다고 한들 내가 그곳에서 태어나 그곳의 문화를 완전히 터득하고 있지 않은 한 그들만큼 노래할 수 없다는 걸 느꼈다. 노래란 언어와 함께 전달되기 때문에 그것은 어쩔 수 없는 문제였다. 내가 아무리 노래를 잘 해도 그들은 그저 '신기해' 했을 뿐이다. 유학 시절에 많이 우울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와 우리말로 된 노래를 불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우리말 노래 가운데서도 말로 씨가 부른 노래들은 말로 씨의 나이를 생각하면 너무 예스럽다.


그런가? 나도 재즈를 부르기 전에는 통기타 치면서 해바라기, 들국화 양희은, 김민기, 송창식 노래를 불렀다. 하지만 재즈 스타일로 편곡된 우리 노래를 찾으려니 오히려 그보다 더 옛 노래가 효과적이란 사실을 알았다. 재즈로 편곡되었을 때 더 어울리면서 더 참신한 느낌을 주었다.

 

이후에 < 동백 아가씨 >나 < 말로, 배호를 부르다 >도 그런 맥락에서 작업한 것인가?


그렇다. 당시의 노래들이 재즈와 상통하는 면이 상당히 많다.

 

1집을 내고 나서 왕성하게 활동했나?


제작자가 가요계에서 경력이 있던 사람이라 음반이 나오고 여기저기에 홍보가 되었다. 그래서 그때 <이소라의 프로포즈>라는 프로그램에 나가 노래를 불렀다. 그런데 리허설이 끝나자 피디라는 사람이 날 부르더라. 그러더니 '왜 노래를 자기 마음대로 바꿔 부르냐.'고 내게 윽박지르는 게 아닌가. 피디가 초대한 가수에게 노래를 가르친다는 게 말이 되나?

 

90년대만 하더라도 방송국 피디들의 고압적인 태도가 있었다.


난 재즈가수이기 때문에 원곡을 그대로 부르지 않는다고 말해도 막무가내였다. 잠시 밖에 나가 혼자서 벽을 치며 울었다. 그때 다시는 TV에 나가려고 애쓰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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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 씨의 2집을 샘플 음반으로 갖고 있다. 그런데 이 음반은 왜 공식적으로 발매되지 않았나?


1집을 우리말 가사에, 가요성향의 음반으로 발표했는데 그 음반을 홍보하는 과정에서 마음의 상처가 깊었다. 마음에 내키지 않은 방송 출연, 인터뷰에 전부 응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1집을 만들었던 제작자가 이번에는 다른 회사로부터 투자를 받아 2집을 만들자고 내게 제안을 했다. 그리고 그 투자회사는 음악에 대해 아무런 간섭을 하지 않겠다고 했다. 어떻게 이런 좋은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내가 좋아하는 재즈 스탠더드 넘버나 실컷 녹음하자고 마음먹었다. 우리말 가사의 노래를 불러야겠다는 생각이 그 사이에 또 바뀐 것이다. (웃음) 그래서 미정 씨(피아니스트 임미정), 크리스 바가 (드럼) 등 평소에 자주 연주하던 재즈 뮤지션들을 모아 완전한 재즈 음반을 녹음했다. 그런데 녹음이 완성되니 투자회사가 황당해 하는 거였다. 누가 이런 음악을 녹음하라고 했냐고 하는 거다. 그래서 난 아무런 간섭도 안 하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느냐고 되 물었더니 그 회사는 그래도 대중가요를 녹음해야지 이런 음악을 어떻게 파냐면서 결국 음반을 발매하지 않았다.

 

그 이후에 3집 < 벚꽃지다 >를 발표하면서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되었다.


1, 2집을 내고서 5년의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에 <한국일보>의 장병욱 기자를 알게 되었다. 그 분은 일간지 기자 중에서 유독 재즈에 관심이 많은 분이다. 그런데 그 분이 어느 날 연락을 해서 저녁을 함께 먹자고 했다. 신문사 근처에 있는 어느 찌개 집에 들어갔는데 장병욱 기자가 원고 한 뭉치를 내게 건냈다. 함께 근무하는 이주엽 기자가 쓴 시라고 했다. 무척 양이 많았다. 장 기자는 이 시를 가사로 노래를 만들어 볼 수 없겠냐고 물었다. 그래서 집에 돌아가 살펴보겠다고 했다.

 

살펴보니 시가 마음에 들었나?


청승 떠는 게 딱 내 취향이었다! (웃음) 어릴 때부터 난 시 읽는 걸 무척 좋아했다. 이주엽 대표의 원고를 살펴보니 한 눈에 몇 편의 시들이 금세 음악으로 떠올랐다. 그래서 바로 녹음하고 싶다고 이야기를 전했다. 이주엽 대표도 워낙 글 쓰는 것을 좋아하고 음악을 좋아해서 음반사를 만드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가 내가 본인 가사에 음악을 만들겠다고 하니 결국 다니던 직장도 관두고 지금의 회사 'JNH'를 만들게 되었다.

 

작곡은 언제부터 시작했나?


어릴 적부터 곡을 썼다. 고등학교 때 곡을 만들었고 대학 시절에도 동아리에서 노래를 만들어서 부르곤 했다.

 

「벚꽃지다」와 같은 곡은 방송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재즈의 즉흥성을 너무 많이 억제한 음반이어서 불만은 없었는가?


재즈의 성격이 강한 노래들은 지금 내가 여기서 부르는 것처럼 클럽 연주를 통해 부를 수 있다. 음반을 녹음한다는 것은 매우 현실적인 것이어서 판매도 염두에 둬야 하고 앨범에서 즉흥을 발휘하지 못한 것은 내 스스로가 충분히 이해를 했다. 다만 앨범을 발표하고서도 그런 노래를 재즈 클럽에서 부를 수 없다는 것이 아쉬웠다. 재즈클럽의 공연은 성격상 아무런 리허설 없이 모두가 연주할 수 있는 재즈 스탠더드를 연주하기 때문에 내 작품을 별도로 준비해서 무대에 올릴 수가 없다. 동시에 클럽 연주가 늘 그리 좋지 못한 음향 조건에서 노래를 하다 보니 나의 즉흥적인 노래에도 늘 한계가 있었다. 모니터 조건이 좋은 공연장이었다면 더 좋은 즉흥 노래를 들려줄 수 있는데 하는 아쉬움이 지금도 늘 있다.

 

이번에 발표한< 겨울 그리고 봄 >도 먼저 이주엽 대표의 가사가 만들어지고 여기에 말로 씨의 음악이 더해지는 과정으로 만들어졌나?


그렇다. 80%가 그런 식으로 진행되었다.

 

그 어느 음반보다 깊은 슬픔이 느껴졌다. 앨범 전체의 컨셉 같은 것이 있었나?


더 깊이가 느껴졌다면 그것은 이주엽 대표의 가사가 심오해 진 것이다. (웃음) 컨셉이라고 할 것 까지는 없고 작곡의 스타일이 그 사이에 바뀐 면이 있다. 전에는 곡의 선율보다는 편곡에 많은 신경을 썼다. 멜로디가 대충 나오면 이런 화성과 리듬을 써서 곡을 만들면 되겠구나,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좋은 멜로디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멜로디에 영감을 주는 시만을 선택했다.

 

말로 씨의 휴대폰 뒷면에는 노란 리본이 붙여져 있다. 「잊지 말아요」는 세월호 참사의 희생자들에게 바친 곡으로 알고 있다. 지난 해 4월 19일을 지나면서 무엇을 느꼈나?


뮤지션들은 늘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그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이런저런 고민을 하게 된다. 그것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기술적으로 무엇이 필요한가 생각한다. 그런데 세월호가 바다 밑으로 가라앉자 내 자신도 무엇에 의해 밑으로 끌려 내려가는 것 같았다. '네가 아무리 아름다움을 생각하고 고상한 생각을 하는 것 같아도 너의 현실은 그런 게 아니야. 현실은 이런 거야. 너는 지금 여기에 있어'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음반은 근원적인 슬픔 속에서도 음악적으로 그 어느 음반보다 재즈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스캣도 그냥 음악적인 기교를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그 음악의 내용과 완전히 부합한다는 느낌이 든다.


고맙다. 그런데 이번 음반은 함께한 연주자들에게 거의 100%에 가까운 자율권을 주었다. 그 전의 음반들에서는 연주자의 즉흥솔로가 나오더라도 이런 방식으로 연주해달라는 식의 주문을 늘 했었다. 그런데 이번 음반에서는 곡을 주고 여기에 자율적으로 연주해 달라고 맡겼다. 민경인 (피아노), 황이현 (기타), 정영준 (베이스), 이도헌 (드럼) 모두 최고의 연주자들이니 만큼 그들의 해석을 믿었다. 게스트 뮤지션으로 연주해 준 조윤성 (피아노), 배선용 (트럼펫), 정태호 (아코디언) 모두 마찬가지였다. 이런 방식의 변화가 재즈의 느낌을 살려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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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에 발표한 말로 씨의 책 재즈싱잉의 비밀』(자음과 모음)을 보니 서문에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더라. 자신의 스타일을 찾아 자신만의 노래를 부르는 것이 결국 재즈싱잉이다, 라고 정의했는데 맞는가?


그렇다. 하지만 아마도 모든 음악이 결국에는 자기의 스타일을 찾고 결국에는 자기를 찾는 과정일 것이다. 다만 재즈는 즉흥의 음악이고, 그래서 노래하는 사람에게 많은 것이 열려있다. 아울러 재즈란 음악은 자신을 표현함에 있어서 그것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세세한 부분을 생각하게 해준다. 그냥 '슬픔'이 아니라 그 슬픔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자세한 방식을 고민하게 해준다.

 

이해가 잘 안 간다. 좀 더 설명해 달라.


만약 일반적인 노래를 부른다면 어떤 곡은 어떤 음색으로 불러야 한다는 정답이 이미 나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재즈에서 노래는 하나의 악기다. 기악 연주자들과 마찬가지로 보컬리스트들도 어떤 음색으로 노래하는가가 아니라 어떤 조성으로, 어떤 리듬으로 노래하는가를 먼저 고민한다. 그것을 고민해야 즉흥도 되고 다른 반주자들과 함께 연주할 수 있다. 반면에 그 음색은 그 누구도 고민해주지 않는다. 누구와 상의할 필요도 없다. 오로지 가수 자신의 몫이다. 그 음색은 그 노래를 부를 때의 화성, 리듬 감정의 변화 등이 종합되면서 가수가 최종적으로 선택하는 것이다. 자신만의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그런 뜻이다.

 

재즈란 음악에 대해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되었나?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했고 음악에 꽤 소질이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모든 노래를 들으면 막연하게나마 화성적으로, 리듬적으로 이해가 되었다. 아, 저 곡은 이런저런 곡이구나, 하고. 그런데 대학 시절에 우연히 한 카페에서 재즈를 듣게 되었다. 도무지 화성이 어떻게 되는지, 리듬이 어떻게 되고, 소절이 어떻게 나뉘는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충격이었다. 누구의 음악이냐고 물었더니 존 콜트레인의 음악이라고 했다. 그리고서는 다이나 워싱턴의 노래를 들었는데 그 음성이 너무나도 멋졌다. 이런 음악을 하는 사람들을 어디가면 만날 수 있느냐고 물었더니 이태원에 있는 '올댓재즈' 클럽을 찾아가 보라고 했다. 무작정 그곳으로 찾아가 연주자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결국 당시로서는 유학을 가야 재즈를 배울 수 있겠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유학을 떠나는 문제는 간단히 해결되었나?


아니다. 이미 작곡 전공인 언니(정수란/ 부산대 음대 교수)가 유학을 떠난 상태라 집에 더 이상 부담을 주기 싫었다. 그래서 내 자신이 객관적으로 어느 정도 음악에 소질이 있는지 검증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유재하 가요제에 참가했다. 그때 입상을 했고 그래서 내 자신도 '그래, 음악에 인생을 걸어보자'고 결심했다. 그래서 유학길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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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학을 통해 가장 큰 배움을 얻었다면 무엇인가?


물론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무엇보다도 그곳에 가니 내가 완전한 주변인이란 사실이었다. 한국어를 알아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나는 어렵게 그들의 언어로 이야기해야 했다. 그들의 노래를 불러야 했고 최고의 연주를 듣기 위해서는 뉴욕을 찾아가야 했다. 내 주변의 동료들은 어떻게 하든 뉴욕에 남아 그곳에서 활동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나는 다른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비슷한 노래를 불러야 하고 또 좋은 음악이란 모두 뉴욕에 집결해 있다면 다른 곳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 다른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 뉴욕뿐만이 아니다. 대한민국에서는 서울이 그런 도시고 서울 안에서도 몇몇 지역을 찾아가야만 좋은 음악을 들을 수 있다. 하루하루 일상에 쫓기는 사람들에게 음악은 멀리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은평구 진관동 안에서 자주 공연도 하고 모임도 갖고 있다. '북카페 물푸레'는 우리가 자주 모이는 장소다. 언젠가는 어느 분의 집 마당에서 이웃들을 초대해서 공연한 적도 있다. 좋은 음악이란 한 사람이 독점하고 있어는 안 되듯이 한 장소만이 독점하고 있어서도 안 된다. 좋은 음악은 어디에든 있어야 한다.

 

최근에는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가.


음반 발매하고 또 앨범 발매 공연하느라 너무 진을 뺐다. 조금 쉬고 싶다. 아참, 전에 미셸 르그랑의 작품들만을 모아 피아니스트 이명건과 듀오로 녹음을 했다. 남들이 안 부른 그의 좋은 곡들이 많아 내가 불러서 나 혼자 들으려고 녹음했는데 이주엽 대표가 왜 혼자만 들어야 하냐며 음반으로 내자고 한다. 아마 얼마 후에 나올 것 같다. 또 북한산 초등학교에 가서 아이들 합창 지도를 하는 것도 계속 할 예정이다.

 

아이가 그곳에 다니는가?


3학년이다. 학부모 재능기부인 셈이다. (웃음)

 

 

인터뷰, 정리: 황덕호
사진: 박창현, JHN 뮤직 제공
2015/05 황덕호(saturnman2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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