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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병희, 나무를 보며 고전을 이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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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한 때 시인을 꿈꾸던 문학도였다. 이후에는 신화를 공부하기 위해 중국으로 떠났고, 지금은 작은 공방에서 나무를 매만지며 살아가고 있다. 사람들은 그를 향해 묻는다. 왜 목수가 되었냐고. 돌아오는 대답은 거창하지 않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누군가가 되기 위해 공부했던 건 아니었으니까, 라고 답할 뿐이다. 그리고 덧붙인다. “늘 만들어져 있는 것만을 선택하는 것이 내겐 무기력처럼 느껴졌다”고. “내가 혼자 짓고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은 생각뿐이었다”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느끼면서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는 대상을 찾던 그는 나무와 만났다. 따스한 결을 가진 존재와 마주하자, 그동안 활자로 다가왔던 문학과 철학이 살갗의 감촉으로 느껴졌다. 『목수와 인문학』에 담긴 저자 임병희의 성찰에 대한 이야기다.

 

나무를 통해서 그는 세상과 삶의 이치를 보았다. 빠르게 자라면서도 단단한 나무는 없다는 사실을 배우면서, 자신의 약한 부분을 흔적 없이 덜어내려던 마음이 욕심이었음을 깨달았다. 어디에도 쓰일 수 없을 것 같던 자투리 목재가 작지만 유용한 소품으로 태어나는 걸 지켜보면서, 허투루 버릴 수 없는 조각들은 삶에도 있음을 알게 됐다. 둥근 곡선으로 나무를 뚫는 공구들을 통해 강함을 이기는 부드러움의 힘을 떠올리기도 했다. 묵직한 질문들과 명쾌한 해답들이 공방 곳곳에 숨어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고전이 전해준 이야기와 다르지 않았다. 톱질 하나를 할 때에도 이해와 정성이 필요하다는 깨달음은 『대학』이 가르쳐 준 격물(格物) 치지(致知) 성의(誠意) 정심(正心)의 이치를 떠올리게 했다. 가구의 뼈대를 만들고 사포질을 하기까지 어느 과정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다는 사실은 “흐르는 물은 구덩이를 채우지 않고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는 『맹자』의 가르침과 닿아 있었다. 그렇게 나무들은 침묵의 언어로 『도덕경』을 들려주었고 『논어』『장자』의 말씀을 읊었다. 각종 공구들 역시 한 목소리로『중용』을 말하고 『주역』을 전했다.

 

『목수의 인문학』에서 저자가 다다르는 인문학적 통찰은 아주 일상적인 순간들에서 시작된다. 그 속에는 누구나 한 번쯤 가져봤을 의문들과 감정들이 있다. 독자들의 깊은 공감을 이끌어 내면서도 고전의 의미를 쉽게 전달해줄 수 있는 이유다. 나무와 고전이 어우러진 책 속의 이야기들은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묵묵히 살아내는 지혜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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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이 없는 나무는 없다


문학과 문화인류학을 공부하고 신화를 연구했던 이전의 삶과 목수로 사는 지금의 삶에 공통점이 있을까요?


공부와 목공의 구조는 같다고 생각해요. 어떤 가구를 만들지 생각하는 과정은 어떤 주제에 대해서 공부할지 생각하는 것과 같고요. 가구 디자인을 구상하는 과정은 공부한 결과를 어떤 형식의 글로 쓸지 고민하는 과정과 같아요. 그에 앞서 목차를 정하는 건 도면을 그리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고요. 가구를 조립해 나가는 과정이 글을 써내려가는 과정이라면, 초고를 다듬는 순간은 가구를 사포질하고 마감재를 바르는 것과 같죠. 공을 들인 만큼 좋은 결과를 얻게 되는 건 목공이나 공부나 마찬가지예요. 

 

“나무에 단단하면서 빨리 자라는 부분은 없다. 그것이 나무의 이치다”라고 하셨습니다. 반면“사람은 빨리 단단히 자라기를 바란다”고 하셨고요.


반드시 겪어야 하는 상황임에도 피하려고 할 때가 있잖아요. 나라는 사람을 이루고 있는 여러 가지 면모 중에서도 좋은 하나의 모습만을 가지고 싶어 하고요. 주어진 순간에 충실하면 그것 자체로 자신에게 무언가를 줄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우리는 욕심을 너무 많이 부리는 것 아닐까 싶고요. 그래서 조금은 나무처럼 살아보려고 해야 하지 않나, 생각해요.

 

『도덕경』 24장의 이야기를 통해 ‘흠’에 대해 말씀하신 부분이 기억납니다. 흠이 없는 나무는 없듯이 사람 역시 흠결이 없을 수는 없잖아요.


흠이 있다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면 문제가 되지 않는데, 흠이 없는 걸 찾으려고만 하는 것 같아요. 나무에는 흠이 있는 게 당연하잖아요? 그게 이치이기도 하고요. 사람도 완벽하게 성인처럼 살 수 없는 거고요. 그러면 나에게도 흠이 있다는 걸 인정해야죠. 그러고 나서 ‘그 흠으로부터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 흠을 남기지 않으려고 노력할 수 있는가’를 생각해야 하고요. 완전무결한 사람을 꿈꾼다면 작은 흠 하나만 있어도 자기 삶이 잘못된 것처럼 느껴질 수 있을 거예요. 백지 위에 작은 점 하나가 있다고 잘못된 건 아닌데 말이에요. 중요한 건 흠을 대하는 자세인 것 같아요. 흠은 어디에나 있는 것 같거든요.

 

톱을 통해 격물, 치지, 성의, 정심의 이치를 떠올리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톱질이 잘 안 됐기 때문이죠(웃음). 직선으로 곧게 톱질을 한다는 게 쉽지 않아요. 톱이나 나무에 대해 잘 모르면 그렇게 되죠. 켜야 되는데 자르고 있다거나 나무의 밀도 차이를 헤아리지 못한 거예요. 그걸 알고 나니까 먼저 나무와 톱의 성질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톱질이 어긋나려고 할 때 짜증내지 말고 참고 계속 하면 반듯하게 나가거든요. 그 과정을 보면서 『대학』의 구절이 떠올랐어요. 우리는 보통 ‘수신제가치국평천하’만 알고 있는데 그러려면 격물, 치지, 성의, 정심해야 하는 거잖아요. 톱질을 하면서 제가 나무를 모르고 톱을 몰랐다는 걸 알게 됐거든요. 그럴 때 마음과 기술을 연마하지 않은 나는 탓하지 않으면서 톱과 나무만 탓했던 거죠.

 

공구를 다루다가 다쳤던 일화도 들려주셨는데요. 상처가 생기고 나면 두려움이 따라오는데, 그런 점에서 나무를 다루는 일은 계속 두려움을 넘어서는 일일 것 같습니다.


다치고 나면 기계가 무서워지죠. 그런데 그만큼 더 조심하게 되고, 사고를 당할 확률도 줄어들게 돼요. 경미한 사고 덕분에 기계를 무서워하게 돼서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마음에 상처를 입었을 때는 어떻게 다뤄야 할까요?


가끔씩 지나고 나서 후회하는 일들이 있잖아요. 그런데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돌이킬 수 없는 거니까, 그 일을 생각하면서 괴로움을 당하기도 해야죠. 그러면서 조금씩 나아지지 않나 싶어요. 다음에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또 같은 실수를 하지만, 부끄러워하고 괴로워했던 순간이 있기 때문에 조금 더 조심하게 되는 거죠. 실수 혹은 잘못이라는 걸 모르면 거리낌이 없을 텐데, 알면 저어하는 마음이 생기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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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물은 구덩이를 채우지 않고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의자를 만드시면서 “도는 사람에게서 멀지 않다” ‘도끼 자루를 찍어내나니 그 법은 멀지 않다’는 『시경』의 구절을 생각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의자를 만들면서 어느 정도 높이로 만들면 좋을지 고민하고 있을 때였어요.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제가 의자에 앉아있더라고요. 그 의자를 기준으로 가늠하면 되는데, 머리로만 고민하고 있으니까 몰랐던 거예요. 『시경』에 나오는 도끼 자루 이야기를 보면, 도끼를 가지고 도끼 자루를 깎으면서 얼마만큼 깎아야 되는지 모르잖아요. 제가 딱 그 꼴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만히 살펴보면 거의 대부분 주위에 해답이 있는데, 먼 데에서만 찾으려고 하니까 헤매는 거죠. 도가 사람과 멀면 도가 아니라는 말과도 통하는 이야기 같아요. 그런데 때로는 돌고 돌아서 가까운 곳에 이르는 경험도 해 볼 필요가 있죠. 그러면 잘 잊어버리지 않게 되니까요.

 

결국 인문학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주는 것 같습니다. 원(圓)에 대한 이야기에서 전하고 싶으셨던 메시지도 다르지 않을 텐데요. 물 흐르듯이, 둥글게 살아가야 한다는 걸까요?


다 꿈이죠(웃음). 그런데 그렇게 되려고 노력을 하면 그나마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잖아요. 둥글게 살고 물처럼 흐르면 좋은데 그렇게 살수만은 없죠. 이런 얘기는 불가와 도가의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사람이 닮아가야 할 길은 불가와 도가에도 있고 유가에도 있는 것 같아요. 자연의 영역이 도가적 불가적이라면 현실의 영역은 유가적이죠. 목공도 그런 것 같아요. 나무와 같은 자연의 재료를 가지고 인공의 재료인 금속으로써 다듬잖아요. 그럼으로 인해서 가구가 하나 만들어지고요. 결국은 자연의 이치와 사람의 기운이 모여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도가적인 자연과 유가적인 인공이라고 할까요. 두 가지 속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건 사람도 마찬가지죠. 그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고 살아가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흐르는 물은 구덩이를 채우지 않고는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는 『맹자』의 가르침과 함께 “건너뛰고 이루어지는 일은 없다”고 적으셨습니다. 나무를 다듬는 모든 과정에 해당되는 말이 아닐까 싶은데요. 어떠신가요?


그렇죠. 건너뛰고 싶기도 하죠(웃음). 그런데 건너뛸 수 없으니까 하는 건데요. 물처럼 살라는 말이 꼭 순응하라는 의미는 아니에요. 연어가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게 역행은 아니잖아요? 맞바람을 맞으며 새가 날아가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물처럼 구덩이를 채워야 한다는 건 주어지는 것에 완전히 내 몸을 맡기라는 게 아니에요. 그 순간에도 계속해서 나아가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는 거죠. 구덩이를 채우는 과정도 나아가는 과정 중에 하나인 거예요. 구덩이가 채워질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가만히 있으면 결코 채워지지 않는다는 의미죠.

 

처음 경첩을 달면서 많은 고생을 하셨다고요. 그 결과 깨달으신 것은 문의 중요성이었던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간격이 일정하도록 경첩을 다는 게 너무 어려웠어요. 그래서 ‘문을 만들지 말까’ 라는 생각도 했죠. 그런데 문을 만들지 않으면 텅 비어있는 공간만 남잖아요. 경첩을 만들 수밖에 없었죠. 그러다가 문득 ‘역시 문이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나에게도 굉장히 많은 문이 있고, 그 중에는 오랫동안 닫아놓은 문도 있고, 닫아야 하는데 열어놓은 문도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람을 만날 때에도 문을 닫아야 할 때 열고, 문을 열어야 할 때 닫아놨던 때가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경첩을 달아 보니까 결국 움직이는 건 문이 아니라 경첩이라는 걸 알게 됐어요. 경첩의 중요성을 깨달은 거죠. ‘도의 지도리’가 의미하는 게 그거거든요. 지도리라는 건 경첩 가운데에 있는 쇠막대를 의미해요. 지도리가 무궁하다는 이야기는 지도리가 있음으로 인해서 열고 닫음을 계속 반복할 수 있다는 거죠.


 

나무가 가르쳐 준 ‘인생미정’


전동 드릴의 회전력을 조절하는 ‘토르크’라는 부분을 보면서 『중용』을 말씀하셨어요.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전동 드릴의 속도와 힘은 토르크의 숫자에 따라서 달라지는데요. 그래서 나무의 재질이 무른지 단단한지를 보고 숫자를 바꿔줘야 해요. 그런 것처럼 사람을 만날 때도 정도를 조정해야 되지 않나 싶어요. 공자가 성격이 강한 사람은 눌러주고 소심한 사람에게는 기를 북돋아줬던 것처럼요. 어떤 일을 하거나 어떤 사람을 만날 때에는 토르크를 조정하는 것과 같은 마음을 가져야 된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중용』의 이야기를 하게 된 거죠.

 

『목수의 인문학』에서 ‘인생미정’을 이야기하셨는데, 나무가 알려준 삶의 순리들을 한 마디로 요약하신 건가요?


인생은 미정에서 기정으로 가는 것 같아요. 지금의 상태는 과거의 것들이 쌓여서 만들어진 거잖아요. 마치 단층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수많은 단층들이 있어서 지금의 절벽이나 나를 만들었지만, 만들어진 이 상태는 정해진 것이죠. 그런데 계속 미정은 이어질 거예요.

 

목공 전문 잡지를 출간하실 계획이라고 들었습니다.


출간 중인 목공 잡지가 없더라고요. 전동 드릴 하나를 고르려고 해도 살펴봐야 할 것들이 정말 많은데 자세히 알려주는 곳이 없는 거죠. 선택을 쉽게 하도록 도와주는 이야기도 없고요. 인터넷에 정보들이 있기는 하지만 정리되어 있지 않잖아요. 그래서 목공 잡지를 만들어 보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9월 창간호를 목표로 준비 중이고요. 나무의 결에 따라 작업하는 방법이라든지, 자체적으로 실험을 해서 얻은 데이터를 제공할 예정이에요. 목공과 관련된 문화 이야기도 싣게 될 거고요.

 

『목수의 인문학』을 읽은 독자들이 어떤 이야기를 기억해 주길 바라세요?


대부분의 경우 기다리던 그 순간이 바로 앞에 있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죠. 거의 다 왔다는 걸 기억하셨으면 좋겠어요. 스스로를 이끌고 갈 수 있는 한 마디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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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의 인문학 임병희 저 | 비아북
이 책은 저자가 목수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도중에 겪은 일들과 그보다 과거의 경험들을 사서(四書)와 노장(老莊) 등의 동양고전 속 문장들로 풀이한다.얼핏 보면 관계가 없어 보이는 목공과 인문학 사이에서 공통점을 발견하고, 더 나아가 그 안의 이야기들을 삶의 다른 영역으로까지 확대해가는 일은 인문학의 외연을 넓혀가는 작업이다. 또한 책상에 앉아 머리로만 생각하지 않고, 삶의 현장과 직접 부딪치며 만들어가는 ‘현장의 인문학’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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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선 “사랑은 관대하게 일은 성실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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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닮는다. 그래서일까.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한다고 공공연하게 밝혀온 임경선 작가는 하루키와 닮았다. 어떤 모습이 닮았느냐고 한다면, 꾸준히 계속 쓴다는 점이다. 하루키가 3~4년에 한 번씩 장편을 내고, 그 사이에 단편집과 산문집을 썼듯 임경선 작가도 장편소설과 소설집, 산문집을 꾸준히 출간했다. 이런 다양한 글쓰기 덕에 독자 층이 넓은 것은 두 작가 모두 비슷하다.

 

이번에 임경선 작가가 낸『태도에 관하여』는 에세이다. 부제 ‘나를 살아가게 하는 가치들’이 말하듯, 이 책은 그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태도를 이야기한다. 총 5가지인데, 자발성ㆍ관대함ㆍ정직함ㆍ성실함ㆍ공정함이 그것이다. 자칫 훈계가 될 주제이지만 임경선 작가는 그녀 특유의 담백한 필체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면서 독자와 공감할 수 있는 폭을 넓힌다.

 

『태도에 관하여』의 또다른 매력은 책 끝에 실린 대담이다. 임경선 작가와 김현철 정신과 전문의 사이에 오간 대화는 그 자체로도 흥미롭지만 책을 해설하는 역할도 맡았다. 그래서 이 책의 대담을 보고 처음부터 읽어나가는 것도 훌륭한 독서 방법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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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선을 지탱한 5가지 태도

 

『태도에 관하여』는 어떻게 나온 책인가요.

 

쭉 돌아보니, 제가 라디오 방송이나 신문 칼럼에서 인생 상담을 꼬박 10년을 했더라고요. 라디오 방송 원고를 모두 갖고 있는데, 그게 몇 박스가 되죠. 너무 많아서 폐품하려다가, 다시 보게 됐어요. 버리기 전에 예전에 내가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궁금해서 읽어봤어요.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지만 결국은 태도에 관한 이야기를 계속 했던 것 같아요. 하나의 태도가 세상을 바라보는 틀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아, 나는 이런 삶의 태도를 참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이렇게 스스로 깨달으면서 5가지 태도에 관한 책을 썼죠.

 

어떤 독자를 염두에 두고 쓰셨나요?

 

특별히 어떤 독자를 염두에 두고 쓰지는 않았어요. 이 책은 그저 제가 믿는 가치들에 대한 제 이야기니깐요. 독자들은 그것을 읽고 저마다 다르게 느끼겠죠. 저마다 상황과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 다르니까요. 다만 ‘이렇게 해야 한다’라고 강요하거나 단정짓듯이 쓰지 않으려고 거리감을 지키려고 한 부분은 있어요. 제가 잘난 사람도 아니고요. 누가 누구를 가르치고, 누구를 구제하나요. 제 이야기가 자신의 태도를 되새김질하는 데 자극제나 참고가 되었으면 해요.

 

그래도 작가님을, 작가님의 글을 좋아한다는 고백을 많이 듣지 않나요.

 

가끔씩 저를 좋아해서 무라카미 하루키까지 좋아하게 됐다는 이야기를 듣는데, 부끄러워요. 이거 뭔가 거꾸로 된 느낌인데… 그래도 좋아해주시니 저도 행복하지만 그 중에서 특히 남성 독자들이 좋게 읽어줄 때 기뻐요. 왜냐하면 남성 독자들이 제 책을 읽어주는 건 여성들에게 좋은 신호라고 생각하거든요.

 

『태도에 관하여』의 표지가 선생님의 작품 중에서는 가장 단순한 것 같습니다.

 

보통은 책 커버가 아름답고 눈에 띄길 바라지만 이번에는 다 필요 없고 도리어 ‘절제와 여백’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파란색 줄무늬처럼 깔끔하고 심플한 게 책에서 말하는 태도들과도 이미지면에서 어울릴 것 같았죠. 제가 개인적으로 줄무늬 광이기도 해서 옷의 대부분이 세로 줄무늬나 가로 줄무늬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태도에 관하여>커버의 줄무늬를 자세히 보면, 줄이 반듯하지 않고 자유롭게 울퉁불퉁해요. 견고하면서도 부드럽고, 단단하지만 융통성이나 유연성이 있는, 그런 느낌이라 저도 아주 마음에 듭니다. 

 

삶을 대하는 태도를 5가지로 정리하셨는데요. 5라는 숫자에 담긴 특별한 의미가 있을까요?

 

아니요, 그냥 모으니까 자연스럽게 5가지로 정리된 거예요. 그 외에도 제가 좋아하는 가치가 자유로움, 수줍음 정도가 있지만 자유로움은 너무 큰 이야기고, 반대로 수줍음은 너무 작은 이야기라서 책으로 묶기에는 딱 5가지가 적절했어요.

 

저는 본문도 좋았지만, 대담을 인상 깊게 읽었습니다. 대담이 일종의 해설 역할을 하더라고요.

 

한국 책을 보면 대담이 인기가 없는데, 일본에서는 대담 책이 많이 읽혀요. 저도 대담 책 읽는 걸 좋아하고요. 대담자를 정신과 의사인 김현철 선생님으로 한 이유는, 가치관에 대한 심리적 해석이 더 듣고 싶어서였어요. 대담을 보면 시대적 분석도 담겼고요. 현철 선생님은 제가 좋아하는 가치관을 몸소 체득하고 구현하고 계시죠. 성실함이나 자발성으로 자유롭게 사시는 분이에요. 저는 기본적으로 선하고 성실한 사람을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결국은 자유에 관한 책

 

대담에는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5가지 태도가 결국은 자유로 귀결된다고요.

 

5가지가 태도의 밸런스를 유지하면 인생이 그래도 덜 우울하고 조금 더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 같아요. 자기다운 인생을 살 수 있죠. 자유롭다는 의미는 돈이나 세상이 주는 시선, 자신을 옭아매는 콤플렉스 등 많은 것으로부터 자유롭다는 뜻일 텐데요. 자유롭게 살려면 노력해야 하고 희생해야 하고 강해져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감정적으로 타인을 품어줘야 할 때도 있고요. 남을 품어야 자기 자신도 품을 수 있으니까요. 정말 중요한 것에 집중하고, 중요하지 않은 것을 선별할 수 있는 혜안도 갖춰야 하고요.

 

사실 30대 중반까지는 쉽지는 않죠. 할 것도 많고, 불안하고, 뭘 챙겨야 할지도 모르니까요. 주변을 보면서 나대로 가는 게 쉽지 않아요. 그렇다고 계속 그렇게 눈치 보며 살 수는 없거든요. 그런 삶이 계속 되면 속물이 되거나 소진되어버려요. 저는 30대 중후반이 갈림길이라고 생각해요. 굉장히 속물로 사느냐, 자유롭게 사느냐 차이가 확연히 벌어지는 시기죠. 이건 돈을 벌었다, 성공했다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작가님은 자유로운 길을 택하신 것 같아요. 전업작가로 삶을 계속 살고 계신데요.

 

11년 동안 11권 썼으니 매년 한 권은 책을 쓴 건데, 어쩌다 이런 일을 하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깜짝 깜짝 놀라기도 해요. 애초에 꿈은 소소했어요. 전업작가로 살아야겠다, 이런 생각보다는 제 이름이 들어간 칼럼을 갖고 싶었거든요. 글 쓰는 커리어가 확장되고 깊어지면서 칼럼만이 아니라 다른 장르의 글쓰기를 할 수 있었어요. 이렇게 길게 갈 수 있었던 원동력은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 덕분이에요. 제가 무라카미 하루키 책은 모두 원서로 읽고 되게 좋아하는데, 무라카미 하루키도 정말 열심히 활동했잖아요. 작가가 되었다고 바로 원래 하던 재즈카페 일을 바로 관두지도 않았고, 전업작가가 되어서는 꾸준히 쉼없이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을 왕성하게 발표해왔죠. 이런 일관되고 꾸준하게 노력하는 모습이 저를 심적으로 지탱시켜왔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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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거실에 걸린 하루키 액자

 

자유라고 하면, 다른 사람 시선 신경 쓰지 않고 혼자서 뭔가를 마음대로 하는 것을 상상하게 되는데요. 책에서는 타자와 일(?)을 강조하셨습니다.

 

어떤 직업이 낫느냐 안 낫느냐를 떠나서 그 일을 할 때 어떤 태도로 하는가가 중요한 것 같아요. 기본적으로 일은 타인에게 가치를 주는 행위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일에 있어서 당연히 타인의 존재를 무시할 수 없죠. 그래서 일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무엇보다도 성실해야 할 것 같아요. 프로답게 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시키는 대로 하라는 의미는 아니에요. 조직 안에서도 자발적으로 일을 해야죠.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은 자기 일의 테두리를 스스로 설정 못하니, 조직 밖을 나가면 자유의 몸이 되었다고 해도 스스로 일을 해나가는 것이 잘 되질 않아요. 자발적으로 일을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만이 일을 직접 만들어내고 테두리를 스스로 설정하고 그 범위를 조금씩 넓혀갈 수가 있죠. 자기 통제력, 규율의 문제는 그런 측면에서 중요한 것 같습니다.

 

공적인 관계에서 저 사람이 좋다 나쁘다 등, 사적인 인격으로 판단하는 것은 가급적 자제해야 할 것 같아요. 마음이 소모될 뿐이니까. 대신 그만큼 사적인 관계에서는 굉장히 이기적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데 한국에는 거꾸로 하는 사람이 상당히 많아요. 공적인 관계에서 인간적인 호불호를 따지면서도 개인적인 관계에서는 의무감에 지배된 사람들이 흔하죠. 모임에 나가기 싫어도 억지로 나가잖아요. 인간관계가 즐거운 게 아니라 의무감으로 챙겨야 하는 무언가로 간주해서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거든요. 그런 걸로부터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습니다.

 

사랑은 관대하게, 일은 성실하게 하라는 선생님 말씀과 이어지네요.

 

사랑의 전제는 이별이에요. 이별할 때 아프잖아요. 아프고 속상하고 상처받는다고 해서 이별을 씁쓸하게 생각하거나 피해의식을 느끼거나 원망하면 다음에 사랑하기가 힘들어져요. 다음 사랑할 때 힘들고 겁 먹고, 마음을 안 열고, 새로운 상대에 과거의 망령을 투영시켜서 사랑을 시험해보려고 하죠.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얻고 느끼는 순간인데, 사랑에 관대하지 못하면 이런 행복을 놓쳐버려요. 사랑을 통해 성장한다, 성숙해진다,라는 말은 거창한 게 아니라 결국 나를 이해하는 만큼 상대방을 이해하고, 이별의 상처를 입더라도 시간이 되면 우뚝 일어서서 나는 나대로 인생을 걸어나가자는 뜻인 것 같아요. 고통을 받아들이고 견뎌내고 마침내 재생하는 것이지요. 사실 제대로 아파한 사람들, 정면으로 고독과 고통을 관통한 사람들이야말로 진정으로 사랑을 한 사람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국에서 전업작가로 살아가려면

 

전업작가로 살기를 꿈꾸는 사람이 많은데요. 조언을 해주신다면?

 

저는 전업작가를 사실 권장하지 않습니다(웃음). 뭐 그래도 꼭 하셔야겠다면 작가로 살기 위해서는 글을 재미있게, 잘, 계속 부지런히, 많이 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질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가정 하에 공백기 없이 가급적 쭉 썼으면 좋겠죠. 저는 기왕이면 전업작가가 되기 전에 다른 직업을 체험하거나 사회경험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고요, 병행이 가능하다면 생계를 위해 다른 직업을 같이 갖고 갈 수 있을 때까지 갖고 가는게 나을 것 같아요. 돈 때문에 스트레스받으면 글이 팍팍해지거든요. 또한 글쟁이 초기에는 인지도가 올라갈 때까지는 매체 연재를 해서 자신을 드러내는데 주저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나 홀로 예술’은 정신건강에 안 좋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건 변명하지 않는 태도입니다. 한국에서 책이 안 팔리네, 책을 안 읽네, 이렇게 한탄하면 무슨 소용인가요.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스마트폰만 본다고요? 저도 집에서는 책 많이 보지만 지하철에서는 스마트폰 봐요. 이런 현실을 받아들여야죠. 한탄한들 바뀌나요. 책 써서 생활이 안 된다고 자포자기하면, 독자에게는 점점 더 읽을 책이 없어져요.
 
당차다는 평과는 달리 실은 소심하다고 쓰셨는데요. 실제 선생님은 어떤 사람인가요.

 

소심해지지 않으려 보이려는 건 후천적인 훈련 덕분이고, 사람 앞에서 하는 건 뭐가 됐든 아직 떨려요. 부끄럼을 많이 타기도 해요. 기본적으로는 혼자 있는 게 좋아요. 사생활에서는 가능하면 혼자 있고, 가만히 있는 걸 좋아하죠. 그렇게 겉으로는 정적인 상태를 좋아하지만 속으로는 감정적으로 예민한 상태를 좋아합니다.

 

소설과 에세이 중에 어떤 글을 더 쓰고 싶나요?

 

소설은 아직 신인에 가깝죠. 그런 의미에서 소설 쪽 글을 더 잘 쓰고 싶다는 욕구가 있어요. 그렇다고 에세이를 잘 쓴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요. 에세이는 삶의 한 부분을 기록한다는 의미에서 저도 즐겁고, 글을 함께 공유하는 독자도 즐거워해요. 에세이는 솔직히 쓰지만, 그래도 완전히 솔직하게는 못 쓰는 부분은 있어요. 그런 부분은 소설로 표현할 수 있겠죠.

 

흥미로운 건, 베스트셀러 순위 상위권을 보면 소설은 한국소설이 별로 없어요. 에세이는 반대죠. 한국 작가의 에세이가 보통 상위권에 올라와 있는데요, 아무래도 공감되는 정서 때문에 그런 것 같긴 해요. 저도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하지만, 외국 작가의 소설만 상위권에 붙박이로 있는 건 좀 아쉽습니다. 소설은 전세계에서 인정받은 작가의 작품이 들어오니, 실제로 한국소설보다 더 잘 써서 더 많이 어필한다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어쨌든 한국소설들이 더 분발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차기작은 어떤 글인가요?

 

두 번째 장편소설을 준비해볼까 합니다. 아련하고 애틋한 첫 작품보다는 조금 더 독하게 쓰고 싶네요. 몸과 마음이 시큰시큰 타들어가는, 정신이 아득해질 것만 같은, 지독한 사랑에 관한 소설을 쓰려고 합니다.

 

* 사진 : 임경선 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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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도에 관하여임경선 저 | 한겨레출판
《태도에 관하여》는 자발성, 관대함, 정직함, 성실함, 공정함이라는 다섯 가지의 태도의 틀을 통해 우리가 일상적으로 겪는 삶의 문제들을 통찰하고 접근해 나가지만, 일방적인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독자들에게 ‘그렇다면 당신이 중요하게 여기는 삶의 태도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져 독자 스스로의 기준을 통해 자발적으로 자신의 인생을 걸어 나갈 수 있게 도와주는 자극제의 역할을 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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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소이 “지금도 무언가를 버티고 있는 사람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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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답다.” 소이가 첫 산문집『꿈,틀』을 펴내고 지인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제목부터 표지,글과 사진들에는 소이 감각이 흠뻑 들어있다. 1세대 걸그룹 ‘티티마’ 멤버에서 영화배우, 단편영화감독, 인디밴드 라즈베리필드의 싱어송라이터까지. 소이는 끊임없이 창작하는 일을 자신의 숙명이라 여긴다. 『꿈,틀』은 “나로 인해 단 한 사람이라도 위로 받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쓴 책이다.

 

꽤 더워진 한낮, 홍대의 한 카페에서 소이와 마주했다. 전날, 전주국제영화제 사회를 보느라 잠을 푹 자지 못했단다. 왼쪽 눈이 부었다며 신경을 쓰는 모습이 예쁜 사춘기 소녀 같았다. 책을 펴내고 인터뷰를 하는 건 오늘이 처음이란다. 만들어진 책을 처음 봤을 때, “슬펐다”는 그녀. 연예인이 쓴 책으로 미리 예단하지 않고, 그냥 김소연이 쓴 책으로 읽으면 꽤 공감이 간다. 무료할 틈이 없어 보이는 소이는 무료해질까봐 걱정을 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그녀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평생 그 걱정 안 해도 될 것 같다”고.

 

“넌 가장 무서운 게 뭐야?”


단 1초도 주저하지 않고,


“어느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어떠한 열정도 남아있지 않을까 봐, 그런 아침이 불현듯 찾아올까 봐, 그게 제일 무서워.”라고 대답했다.

 

무섭다. 두려운 것이 아니라 무서운 것이다.


어느 날 아침(혹은 오후) 여느 때와 다르지 않게 침대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들어간다. 졸린 눈을 채 뜨지도 못하고 양치를 하고 있을 때 문득 무엇인가 달라진 걸 느낀다. 양치질하고 눈곱도 떼고 코도 풀고 나서 거울에 비친 퉁퉁 부은 얼굴을 한참 바라보니 그제야 무엇이 문제인지 깨닫는다. 하고 싶은 일이 없다. 조금의 열의와 두근거림도 없이 해야 할 일들만 두 발 앞에 나열되어 있다. 열정이라는 것을 지난 수십 년간 조금씩 조금씩 흘리고 다녀, 오늘에 와서는 바닥이 난 것이다.


이것은 공포이다.

 

(넌 가장 무서운 게 뭐야? 81쪽)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솔직하게 쓴 책


2년간 책을 준비했다고 들었어요. 생각을 깊게 하고 글을 쓰는 편인가 봐요.


글은 예전부터 많이 썼는데요.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쓴 게 아니고 그냥 편하게 쓴 글이었는데, 책을 쓰겠다고 마음을 먹고 시작하니까 너무 안 써지더라고요. 써야겠다는 의무감으로 쓴 글들은 억지스러운 느낌이 들고, 그래서 가식적으로 써진 글은 다시 폐기하고 그랬어요. 책이 만들어지기까지 한 세 번은 엎었나 봐요(웃음). “손가락 끝으로 글을 쓸 때가 있다”는 이야기가 그래서 나온 거예요. 마음에 담긴 이야기를 차마 전하지 못해, 의식적으로 손가락이 대신해서 글을 적곤 했어요.

 

새 앨범 제목도 『꿈, 틀』이에요. 


자다가 문득 떠오른 제목이에요. 여러 후보군이 있었는데 다 맘에 안 드는 거예요. 나다운 제목이면 좋겠다, 재기발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침대에 누워 있다가 갑자기 ‘꿈틀’이라는 단어가 떠올랐어요. 꿈을 향해 꿈틀거리는 나의 움직임? 좋은 느낌이 들어서 바로 정했어요. 아, 처음 생각했던 제목으로는 ‘대동소이’도 있었어요. 재밌지 않아요? (웃음) 앨범은 책과 같이 준비한 건 아니에요. 예전에 써놓은 곡이 있었는데 가사가 안 나와서 발매를 못했다가, 책을 완성하고 나니까 가사가 써져서 그 때부터 바짝 앨범 작업을 했어요. 같이 나오면 더 좋겠다 싶긴 했어요.

 

책을 쓰다 보니, 곡도 완성이 된 거네요. 완성된 책을 처음 봤을 때, 어떤 느낌이었어요?


슬펐어요. 마냥 속 시원하고 ‘아 드디어 해냈다’는 느낌도 있었는데요. 가장 큰 감정은 슬펐던 것 같아요. 왜냐면 이제 이 책은 제 몫이 아니고, 이 책을 읽는 분들의 몫이 됐잖아요. 이젠 제 손을 떠난 듯한 느낌이 들어서 슬프더라고요.

 

“내 안의 소녀를 찾기 위해서 아동서적 코너에 간다”는 이야기가 재밌더라고요.


요즘도 종종 가요. 아이들 틈에서 책을 읽어요(웃음). 그림책을 좋아하거든요. 가장 순수하게 힘을 얻는 것 같아요. 바로 영감을 받아요. 꿈꾸는 걸 멈추지 않기 위해 꼭 필요한 시간이에요.

 

장례식을 미리 기획해 놓았다는 것도 사실인가요? 드레스 코드는 가장 현란한 의상을 입고 와야 한다면서요. 배경음악은 필수, 댄스 플로어도 있어야 하고, 구 남친들은 반드시 와야 한다고요.


가까운 친구들은 이미 다 알고 있어요. “너답다”라고 말해준 친구도 있고 그냥 웃어넘기는 친구도 있고 가끔 걱정하는 친구들도 있어요. “아 진짜 어떻게 해야 하지? 만약에 진짜 네가 나보다 먼저 죽으면 난 뭘 해야 해?”하고 묻더라고요. 부모님한테는 아직 이야기를 못했었는데, 책을 먼저 읽으셨더라고요.

 

책을 되게 솔직하게 썼잖아요. 영화 촬영이 불발된 이야기도 쓰고 전세금 걱정하는 상황도 밝히고.


마지막 교정을 볼 때쯤, 어머니가 집에서 종이뭉치를 발견하곤 다 읽으셨더라고요. 제가 집을 비웠을 때였는데, 문자가 왔어요. “언제 이런 글을 썼니?”라고 하시면서 우셨다고 하셨어요. 어머니가 울 정도면 내가 정말 솔직하게 썼다는 생각이 들어서 용기를 많이 얻었어요. 사실 최종본을 교정할 때, 너무 힘들었거든요. 이 상태로 정말 내가 내야 하나? 진짜 다시 엎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 상태였는데 엄마 문자를 받고 나서 ‘이대로 그냥 가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솔직하게 쓰긴 했지만, 또 비겁하게 인칭을 바꿔서 쓴 글도 있어서 저 스스로 ‘아, 끝까지 비겁하네’ 이런 생각도 했어요(웃음). 가수 오지은 씨랑 친구거든요. 그 친구는 한 번 책을 낸 경험이 있어서 조언을 많이 구했는데, 마지막 원고를 보내고 지은이한테 “내가 잘 썼다고는 스스로 이야기 못하겠지만 한 가지 자신 있는 건, 있는 그대로 내 모습을 다 보여준 것 같아서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더니, 그러면 잘 쓴 거라고 말해줬어요. 좀 힘이 났어요.

 

스스로를 ‘창작 중독’이라고 말했어요. 책을 쓰면서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도 했을 것 같아요.


예전에 단편소설을 출간한 적이 있어요. 재능기부 형식으로 문화인들이 여러 명 모여서 소설집을 냈는데요. 『아무도 몰라』라는 책이에요. 어후, 소설은 정말 어려운 것 같아요. 정말 힘들었어요.

 

어떤 내용이었나요?


어떻게 보면 자적적인 이야기에요. 캐릭터 자체가 1인칭이었고, 독백을 하듯이 쓴 글이에요. 예전에 시나리오를 쓰고 싶어서 써놓은 걸 모놀로그로 바꾼 셈이에요. 판타지적인 요소도 있지만. ‘내가 어렸을 때 좋아했던 밴드를 그 시절로 시간여행을 해서 만난다면 어떻게 됐을까?’ 하는 상상에서 나온 이야기에요.

 

글 쓰는 건 어릴 때부터 좋아했나요?


어렸을 때부터 해외를 많이 왔다갔다해서 그런지 저만의 공간이 꼭 필요로 했던 거 같아요. 새로운 곳에 대한 적응력은 항상 빨랐지만, 모든 게 붕 떠 있던 시기였고 발을 내딛고 있다는 느낌을 갖지 못한 상태였으니까요. 그래서 어릴 때부터 상상을 많이 했어요. 그림을 못 그리니까 그 상상력은 글로 옮겨졌고요. 또 단어에 대한 동경이 있어요. 단어가 모여서 말이 되고, 문장이 되고. 아직도 단어를 많이 동경해요. 단어를 조합하는 재미를 느껴서 글 쓰는 걸 좋아했던 것 같아요. 요즘 ‘도담도담’이라는 예쁜 단어를 발견했는데, 유아용 단어래요(웃음). 아이가 잘 노는 모습을 뜻하는 말인데, 다음 책 제목으로 쓰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했어요.

 

가장 무서운 게, “어떠한 열정도 남아있지 않다고 느껴질 때”라고 했는데요.


서른을 넘기면서 가장 큰 장점은 여유를 갖게 된 건데요. 그만큼 날 선 열정은 없어진 것 같아요. 그래서 더 무섭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이게 더 무뎌지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도 드는데, 최대한 그렇지 않게 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요즘 노력하는 건, 너무 멀리 보지 않으려는 거예요. 멀리 보면 더 무서워지는 거예요. 두려운 게 아니라 이건 무서운 거예요. 제가 내린 결론은, 하루하루를 살자, 하루하루에 충실하자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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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정말 좋은데 연애는 너무 힘들어요


요즘은 어떤 생각에 몰입해 있나요?


다음 달에 갈 여행 생각이요(웃음). 영국 글래스턴베리 락페스티벌에 갈 거거든요. 이 책을 쓸 때만해도 예매에 실패했었는데, 얼마 전에 취소표 예매를 성공했어요(웃음). 체력적으로도 그렇고 함께 갈 친구들도 점점 없어지고 그래서, 올해는 꼭 가고 싶었거든요. 예매를 성공해서 어찌나 기쁘던지. 요즘은 하루하루, 다음 프로젝트만 생각하려고 해요. 올 봄에는 앨범이랑 책을 내는 일이었고, 최근에는 전주국제영화제였고 이제 글래스턴베리 락페스티벌이에요. 저는 일상을 프로젝트 형식으로 만들고 싶거든요. 프로젝트별로 살아야지, 안 그러고 멀리 보면 너무 무서워요.

 

구 남친 이야기를 많이 해서 놀랐어요. 그 분들이 책을 읽어도 괜찮을까요?


쓰면서 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했어요. 근데 이게 난가? 라는 생각이 들 거예요. 왜냐하면, 추억은 누구에게나 다르게 적히잖아요. 그 사람이 생각하는 순간과 제가 생각하는 순간이 다를 수도 있고. 그런데 대부분의 글에 있는 주인공은 이 책을 못 읽을 거예요. 왜냐면 한국말을 못 읽는 친구거든요. 그래서 그 친구와 관한 이야기는 편하게 썼던 것 같아요. 제 추억을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으니까요.

 

너드를 좋아한다고 고백했는데요. 평소 좋아하게 되는 남자들의 공통점이 있을 것 같아요.


약간 자기 일에 있어서 천재적인 무언가가 있는 거 같아요. 보편적으로 봤을 때는 그 천재성이 드러나지 않아도, 제 눈에는 그 사람의 특별한 빛이 보여요. 남들은 보지 못하는 색깔을 내가 볼 때, 되게 좋거든요. 그래서 제가 너드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웃음). 그 사람이 뭔가에 집중했을 때 나타나는 색깔인데요. 제가 갖고 있지 못해서 그런 것 같아요.

 

연예인 소이가 아닌, 사람 김소연으로 물을게요. 연애할 때는 어때요? 성격이 많이 바뀌나요?


아, 좀 지랄 맞아요(웃음). 저 같은 여자랑 연애하면 제가 남자라도 정말 힘들겠다 싶어요. 예전에 MBTI 성격 테스트를 했는데, INFP가 나왔어요. 옛날에는 믿지 않았는데, 얼마 전 제 성격에 스스로 지쳐있을 때 INFP의 성격 분석을 읽었더니 정말 공감이 됐어요.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 나는 그냥 INFP구나, 싶었어요. 20대 때는 정말 심했거든요. 사랑 지상주의인데 사랑을 못 믿는. 그런 모순을 안고 살았어요. 30대가 되면 괜찮겠지 했는데, 또 별다른 게 없는 거예요. 상대에 따라 달라질 수는 있는데, 그럴 수는 있는데, 연애는 아직 힘들어요. 사랑은 정말 좋은데 연애는 너무 힘들어요.

 

열정은 많고 창작도 좋아하는데, 또 귀차니스트다. 이건 좀 모순인 것 같은데요. 정말 이것만은 안 귀찮은 일이 있다면?


노는 건 절대 귀찮아 하지 않아요. 뽀로로가 명언을 남겼잖아요. 노는 게 제일 좋아요. 페스티벌 다니고 그럴 땐 정말 행복해요. 이번에 전주국제영화제 사회를 봤는데, 매니저를 버리고 하루 먼저 내려갔어요. 영화제를 즐기고 싶었거든요. 김꽃비 배우랑 친한데, 그 친구는 바이크를 타고 전주에 내려온 거예요. 서울에서 전주까지. 저에게도 바이크를 전도하고 있어요(웃음). 관심이 살짝 가긴 하는데, 글래스톤베리 페스티벌 때문에 지출이 커서 아직은 안 된다고 그랬어요. 그런데 곧 설득 당할 것 같아요. 이번에 전주에서도 바이크 연습하면서 재밌게 많이 다녔어요. 여행을 가서는 최고로 부지런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아요(웃음).

 

혼자 가는 여행도 즐길 것 같아요.


좋아요. 혼자 다니는 여행이 제일 편해요. 물론 친구들과 가서도 많은 걸 경험할 수 있지만, 저는 혼자 있는 시간이 꼭 필요한 성격이라서요. 친구들끼리 여행을 가서도 하루 정도는 꼭 혼자서 보내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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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어 죽을 때까지 표현하면서 죽고 싶어요


책에“집 앞 책방에서 숨막힐 정도로 건조한 외로움을 그린 글을 읽고 많이 울었다”는 이야기를 썼는데 어떤 책이었나요?


타블로의 『당신의 조각들』을 읽고 너무 많이 울었어요. 첫 장부터 너무 건조한 거예요. 글들이. 두 번째 장부터는 눈물이 막 계속 떨어져서 ‘어떡하지? 미안하네’ 그랬어요. 그 때 영감을 받아서 바로 그 자리에서 쓴 글이에요. 타블로 씨랑은 옛날엔 친했는데 그 친구도 가정이 있고 바쁘다 보니 잘 만나진 못해요.

 

최근에 읽었던 책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요?


신해욱 시인의『일인용 책』이요. 너무 좋더라고요. 제가 김애란 소설가를 정말 좋아하는데, 김애란 작가의 작품을 읽고 있으면 작가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요. 그런 글들을 좋아해요. 사뿐 사뿐한 그런 글들을 좋아하는데, 신해욱 시인의 책에서도 그런 느낌이 들더라고요. 누가 추천해줘서 읽었는데 너무 좋아서, 아껴서 읽고 있어요. 하루에 두 세 개씩.

 

일상에서 행복감을 느낄 때는 언제에요?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면서 누워있을 때, 좋아요. 가장 행복할 때는 햇살이 내리쬐면서 정수리가 따뜻한 상태에서 짬뽕을 먹으면서 졸 때. 자면 부으니까 앉아서 조는 거예요. 자장면 먹고는 잠이 잘 안 와요. 토요일 오후에 따뜻한 햇살이 내 정수리에 닿을 때, 짬뽕을 먹으면서 졸고 있을 때가 너무 좋아요. 혹시 연남동 홍게라면 먹어봤어요? 아, 정말 맛있어요.

 

다음 생애, 직업 선택의 자유가 주어진다면 가수, 배우 말고 어떤 일을 해보고 싶어요?


피부과에서 여드름 짜고 싶어요. 정말 잘했을 것 같아요. 꼼꼼하게 성실하게 진짜 잘했을 것 같아요. 정말 꼼꼼하게 짰을 때의 그 쾌감(웃음). 가끔 어머니 여드름도 짜드려요. 그런데 피부가 좋으셔서 많이 없어요. 대신 귀도 잘 파드려요. 진짜 완벽하게 해야 돼요. 시작하면 완벽하게 해야 하는 일이 바로 여드름 짜기하고 귀 파는 거예요.

 

꼼꼼한 걸 좋아하면 뜨개질 같은 건 어때요.


그런 건 진짜 못해요. 손으로 뭘 만드는 걸 못해요. 마이너스의 손이라서. 그래서 글을 썼어요. 그림은 못 그리니까.

 

독자들이 궁금해할 만한 질문 하나 할게요. 책 속 사진들에 등장하는 남자 모델은 누군가요?


<초인시대>에 나오는 김창환 배우에요. 책을 만들면서 사진 찍어주는 친구랑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사진에 남자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왜냐면 정말 많은 이야기들이 사랑에 관한 글이었으니까요. 아쉽게도 당시에 썸 타고 있던 남자도 없고 애인은 당연히 없었고. 누굴 해야 하나? 그러고 있는데 마침 연락이 온 친구가 창환이었어요. 사진 찍어달라고 하니까 바로 OK해서 같이 찍었어요. 누나의 작업에 함께해서 너무 좋다고 해줘서 고마웠어요. 며칠 전에 책을 선물했는데 엄청 좋아했어요. 자기가 생각했던 이미지대로 잘 나왔다고(웃음).

 

아직도 마음속에 꿈틀거리는 꿈이 있을 것 같아요.


평생 꿈꾸는 표현가였으면 좋겠다고 썼는데, 그건 좀 추상적인 거고요. 멋지고 싶어요. 찌질한 짓은 그만하고 싶어요. 너무 예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또 예민하고 싶기도 하고. 멋지고 싶은데 아니야. 또 찌질하고 싶고. 아! 멋진 찌질이가 되고 싶어요.

 

멋진 찌질이, 되게 멋진데요.


(웃음) 늙어 죽을 때까지 표현하면서 죽고 싶어요. 어떠한 도구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표현을 하면서 동시에 돈도 벌고 싶어요.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 버는 건, 정말 축복이거든요. 돈을 벌어서 놀고 싶어요. 여행도 많이 가고요. 가능하다면 금전적으로 어린 아이들에게 꿈을 꿀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어요. 지금도 여러 형태로 지원은 하고 있지만, 좀 크게 금전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갑자기 궁금하네요. 지금 20살 소이, 10살 소이와 만날 수 있다면 어떤 이야기가 하고 싶어요?


10살 소연이는 힘든 상태였어요. 그때 왕따라는 걸 당했을 때였거든요. 얼마 전, 폴 매카트니 공연을 갔는데 정말 좋았어요. 비틀즈는 제 인생에서 큰 영향을 줬거든요. 4살때부터 음악을 들었으니까요. 6살 때 인종차별을 당했을 때나, 9살 10살 때 왕따를 당했을 때나. 다 외국인학교를 다녔을 때라, 적응을 못했을 고등학교 때도 항상 제 인생에는 비틀즈가 있었어요. 그런데 그 노래를 폴 매카트니가 내 눈앞에서 불러줬을 때는 이건 현실이 아닌 거에요. 실제로 처음 본 거였거든요. 진짜 계속 울었어요. 예전에 리버풀에 혼자 놀러 갔었거든요. 그 때도 정말 큰 위로를 받았어요. 아, 이곳에서 그들이 실존했구나! 그 느낌 때문에 계속 울었어요.

 

예전의 기억들이 다 겹쳐졌겠네요.


네, 폴 매카트니 공연 때도 그 느낌을 받았어요. 폴 매카트니가 매 곡마다 곡마다 진짜 저의 추억이 있거든요. “너 이때 이랬지. 잘 견뎌냈어.” 또 이 노래는 “너 그때 이랬잖아. 너 10살 때 이랬잖아. 넌 잘해냈어.”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 거 같이 느꼈어요. 10살 소연이에게 폴 매카트니가 노래로 해줬던 말을 해주고 싶어요. “괜찮아, 이것만 버텨내면 돼. 10년, 20년 후에 나아진다는 건 확실하지 않지만 분명한 건 강해져 있다.” 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최근에 대림미술관 앞에서 열린 플리마켓에서 팬들에게 매니큐어를 칠해줬던데요. 린다 매카트니 사진전이 열리고 있어서 그 공간을 선택한 건가요?


그건 아니고요. 플리마켓을 좋아해요. 사람들에게 손톱을 칠해주고 싶었어요. 책에도 나온 것처럼. 세 번째 손가락에 까만 매니큐어를 칠하는 이유가 있거든요. <검지 손가락>이라는 단편영화도 그래서 찍은 거고요. 책에 매니큐어를 칠하는 이유를 썼으니까 그걸 읽은 사람들한테 해주고 싶었어요. 플리마켓은 뭔가를 꼭 파는 게 아니라 소소한 재미를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이니까 이 기회다 싶었어요.

 

어떤 사람들이『꿈,틀』을 읽으면 좋을까요?


구 남친들? (웃음). “니가 이랬어”하면서. 사실 저도 극복을 못한 상태에요. 저도 지금 부단히 부단히 싸우고 있는 상태고. 미래에 나와 싸우고 과거의 나와 싸우고 현재 여러 나와 싸우고 있고. 하루에도 열두 번씩 포기를 해야 하나? 라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나이는 상관없는 거 같아요. 10대가 그럴 수 있는 거고, 50대 60대 어르신들이 똑같은 감동을 느낄 수도 있는 거고요. 어떤 싸움 한가운데에서 어떻게든 버텨내고 있는 분들이 읽으면서 “아 우리 다 똑같구나. 다 똑같으니까 열심히 해보자” 이런 생각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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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틀 소이 저 | 이덴슬리벨(EAT&SLEEPWELL)
배우이자 싱어송라이터인 소이가 산문집 《꿈,틀》을 출간했다. 일상의 소소한 일을 누구나 공감하도록 표현하는 게 꿈인 그녀는 그동안 연기, 음악, 글 등 다양한 방식으로 대중과 만나고 감성을 공유해 왔다.《꿈,틀》은 그런 그녀가 자신만의 색깔을 담아 펴낸 감성 에세이다. 조금은 색다른 시선으로 바라본 일상이 메모된 포스트잇처럼 이 책 안에 조각조각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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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지금 우리의 먹거리는 〈설국열차〉의 양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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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찌개를 시켰는데, 김치찌개 맛이 아니라 라면 국물 맛이 나는 정체 불명의 음식을 먹어본 적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물론 라면 국물을 더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주문한 음식이 김치찌개였다면 김치찌개가 나와야 정상이 아닐까. 전호용 저자가『알고나 먹자』를 쓴 계기도 비슷했다. 김치찌개와 된장찌개, 순두부 국물 맛이 똑같은 음식점에 경종을 울리고자 책을 냈다.

 

이 책은 진짜 된장, 고추장, 간장은 어떻게 만드는지를 알려준다. 구워 먹고 튀겨 먹고 볶아 먹는 고기도 주요한 소재다. 산업화된 구조에서 가축이 어떻게 크는지를 비판적으로 고찰했다. 소수의 거대 다국적 대기업이 주무르는 음식 산업의 현주소를 지적하는 것은 책에서 일관된 저자의 관점이다. 예전의 우리 선배들은 어떻게 먹거리를 대해왔는지를 돌아보는 시선도 책에 녹아있다. 

 

책에 실린 방대한 지식은 저자가 머리로 습득한 게 아니라, 몸으로 부딪쳐서 알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알고나 먹자』는 정보 전달과 구조 비판이 들어간 책이지만, 전달 방식이 딱딱하지는 않다. 저자 전호용은 농촌에서 성장해 농사 일에 익숙하고, 자라서는 다양한 일을 거쳤다. 그중에서 실제로 식당에서 음식을 만드는 일도 했다. 지금도 전주에서 돈까스집을 운영 중이다. 이러한 저자의 삶이 먹거리에 관한 생생한 실화를 기록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지금 내가 먹는 게 똥인지 된장인지 모르는 시대

 

『알고나 먹자』는 어떻게 나온 책인가요?

 

사실 이게 책으로 나올 거라 생각하고 연재한 건 아니에요. 연재하겠다고 작정하고 쓴 글도 아니고요. 서문에도 썼지만, 밥 먹다 보니까 갑자기 빡치더라고요. 된장찌개를 먹는데, 된장찌개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김치찌개도 아닌 맛이 났어요. 분명히 된장찌개가 아니라는 걸 알지만, 저는 그걸 먹어요. 먹고 살아야 하니까요. 기분이 이상하죠.

 

<딴지일보> 독자 투고란에 우리가 먹는 된장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된장찌개가 실은 된장찌개가 아닐 수 있다는 내용을 올렸어요. 그게 반응이 좋아서 계속 썼죠. 된장 다음에는 고추장, 간장, 소금 쓰고 그 다음에는 고기를 다뤘습니다. 김장, 여러 가지 향신료 등도 함께 소개했고요.

 

먹거리에 관한 지식이 보통 도시에서 사는 사람보다 훨씬 넓고 깊은데요. 어떻게 이런 정보를 습득하셨나요.

 

몸으로 부딪쳐서 안 거죠. 농사도 짓고, 음식 만드는 일도 해보고 장사도 했고요. 지금도 하고 있어요. 얼마 전에 ‘아톰돈까스’라고 돈까스집을 열었거든요. 저를 농부라고 소개한 곳도 있지만, 농사 짓는 사람은 아니에요.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이 농사를 지으시니까 옆에서 봐서 안 거죠. 책에 등장하는 이름은 글을 쓰면서 알았어요. 어렸을 때 저희끼리는 ‘신풀’, ‘다치는 풀’, ‘우리 집 옆에 있는 풀’ 이렇게 불렀지 정확한 명칭은 몰랐거든요. 그래서 글 쓰는 데 시간이 가장 많이 걸린 부분이 이름 찾는 일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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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 동물 모두 인간과 함께 사는 존재

 

이 책에는 정보도 있지만 선생님의 개인적인 이야기도 있는데요.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에피소드를 꼽는다면?
 
집에서 키우던 개를 잡아 먹던 풍경이에요. 먹지만, 즐겁게 먹는 사람은 없어요. 어렸던 저는 아랫목에서 이불 뒤집어 쓰고 울었죠. 아이가 떼쓰면 어른이 혼내야 하는데, 혼내지 않아요. 어른들도 미안하니까요. 개에게도 미안하고 저에게도 미안하고. 그렇다고 달래지도 않아요. 설명해봤자 어린이가 이해 못할 거니까요. 답이 있는 문제는 아닌데, 우리가 고기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를 묻는 중요한 장면 같아요.

 

서문만 보면, 『알고나 먹자』가 먹거리를 두고 벌어지는 요식업계의 꼼수 같은 걸 다루는 책 같습니다만 내용을 보면 거시적인 문제 제기가 중심인 듯합니다. 다국적 대기업의 횡포와 같은 문제가 그런데요.

 

꼼수, 야매 이런 걸 알려주는 재미도 있어요. 하지만 그것보다 근본적인 문제를 말하고 싶었습니다. 카길 같은 회사가 우리가 먹고 입고 덮는 모든 걸 쥐락펴락하고 있잖아요. 고기 같이 생긴 게 그게 정말 고기일까, 하는 생각을 해야죠. 우리가 고기로 먹는 그 동물이 어떻게 살았을까요. 이윤이 생명 앞에 놓이는 상황에서 얼마나 비상식적으로 동물이 자라는지는 익히 알려졌잖아요. 차라리 마당에서 살던 누렁이를 잡아 먹은 사람이 훨씬 정직했을 수도 있어요. 누렁이는 그래도 살 만큼 살다가 갔거든요. 갈 때 길맞이도 해 주고 가족 같은 정도 나눴고요.

 

생선에 관한 언급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책에는 좀 빠졌지만, 일본에서 나는 생선을 안 먹겠다고 하는 사람이 많잖아요. 그런데 그 생선을 누가 그렇게 만들었나요. 사람이 한 거잖아요. 나는 안 먹어, 하고 끝낼 일인가요. 그럼 그 생선들은 다 바다에서 죽겠죠. 그리고 생선으로 먹고 사는 사람도 있는데, 그들은 어떻게 하나요. 사람이 한 짓이라면, 피해를 어느 정도는 함께 몸으로 느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해요.
 
책에 일관되게 흐르는 논지는 생태주의적인 사고라고 할 수 있겠네요. 인간 중심주의를 반성하자, 이런 주제를 염두에 두고 쓴 듯합니다.

 

에이, 그렇게 거창하지 않아요. 제가 그렇게까지 환경 중심적으로 사고하지 않아요. 세제도 많이 쓰고요. 대신에 머릿속에 각인하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저 동물과 저 나무와 풀이 나와 함께 살고 있다는 점을 알고 먹자, 이 책 제목 그대로입니다.

 

 

농사는 무서운 일, 싼 음식이 착하다는 인식 바꿔야

 

이 책이 먹거리에 관한 책이고, 결국 농업 이야기인데요. 한국 농업을 향해 쓴소리도 아끼지 않았는데요. 뭐가 가장 문제인가요.

 

대농을 육성하려는 정책이죠. 정부가 수매 형태로 움직이기 때문에 소규모 농사가 불가능합니다. 가령, 고흥에서 양파 농사를 짓는다고 해요. 트럭으로 실어서 가락동으로 올라오겠죠. 소비는 대규모 도시에서 이뤄지니까요. 이게 가능하기 위해서는 생산량이 많아야 합니다. 생산량을 많게 하려면 한 가지 작물을 지을 수밖에 없죠. 농사를 지으려면 농약을 뿌리는데요. 농약을 뿌리면, 딱 한 가지 작물 빼고는 다 죽어버려요. 이런 방식은 여러 가지 작물을 한 밭에 심어서 키우는 육성 방법이 될 수 없죠. 텃밭 형태는 사라지게 됩니다. 땅을 회복시키려면 오랜 시간이 걸리고요. 그러니 그 자리에는 계속 같은 작물밖에 심을 수 없어요.

 

대농을 육성하면서도 식량 자급률은 떨어지고 있는데요.

 

곡물 농사 지어서는 타산이 안 맞으니까요. 생계로 농사를 지으려면 특용 작물, 계절 과일 등 값 비싸게 받을 수 있는 상품을 키울 수밖에 없어요. 그러면 곡물 생산 안 되니까 수입해야죠. 악순환이에요. 많은 사람이 농사 짓고 싶다고 이야기하지만, 농사는 정말 무서운 일이에요. 특히나 농사로 삶을 건사하는 건 힘든 상황이에요. 농사로 생계 유지하는 것과 전업 작가로 사는 것의 난이도가 비슷하지 않을까요. 그만큼 어렵습니다.
 
얼마 전에 연 아톰돈까스는 어떤 식당인가요. 『알고나 먹자』의 고민이 많이 반영된 곳이겠죠?

 

굉장히 많이 부딪쳐요. 결국은 돈이 문제입니다. 수익을 높여야 하느냐, 음식의 질을 높여야 하느냐, 이 두 가지는 반비례하거든요. 한국에서는 '착한' 뭐라고 해서 가격이 저렴해야 한다는 의식이 있지만, 박리다매 하면 착해집니다. 하지만 박리다매는 사람을 진 빠지게 만드는 장사거든요. 그리고 저렴하게 만들려면 만드는 사람은 저렴한 식재료의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어요. 저렴한 게 무조건 착하지 않아요. 오히려 좋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먹거리는 어떤 의미일까요.

 

<설국열차>에 나오는 양갱 같은 거라고 봐요.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으로 봤던 장치가 양갱입니다. 열차 안에서 살아야 하니, 식량이 있어야겠죠. 매일 양갱 한 개가 배급되는데, 하루 생활에 필요한 영양 성분은 다 있으니까 먹으면 살 수 있어요. 안 죽으려고 먹죠. 그런데 이게 무엇으로 만든지는 몰라요. 실제로는 바퀴벌레를 배양해서, 그걸 갈아서 이것 저것 섞어서 만든 건데요. 바퀴벌레라서 잘못됐다는 게 아니에요. 바퀴벌레를 먹을 수 있죠. 그렇지만 인간은 어쨌든 인간으로서 존엄도 있고, 나는 풀, 축사에 살고 있는 동물들, 곡식 낱알 하나 하나에도 생명이라는 존엄이 있는데, 생산해서 가공하고 식품 만들어서 공급하는 사람이 생명의 존엄을 인식하지 못하는 거 같아요. 마지막 에피소드에 절기를 다룬 이유도 여기에 있어요. 우리는 계절이 변하는 시기에 맞춰서 먹고 살았는데, 언젠가부터 이런 부분은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죠.

 

요리는 언제부터 하셨어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일 거예요. 어머니 아버지는 밖에 나가서 일하시고, 늦둥이라 형제들은 일찍 도시로 떠난 뒤여서 할머니와 저랑 둘이 있는 상황이 많았어요. 할머니도 밥을 해 주시지만, 저도 밥을 해야 할 때가 있었죠. 하루는 볶음밥을 해 먹고 싶어서, 설탕을 많이 넣었어요. 설탕이 다니까, 넣으면 맜있을 거라 생각했죠. 만들고 나서 한 입을 먹었더니, 달기만 하고 정말 맛이 없어요. 절대로 못 먹을 밥이었는데, 그 밥을 남겨서 들키면 혼나거나 맞을 수밖에 없어요. 그러면 개를 주거나, 개도 안 먹으면 땅을 파서 묻어버려요. 시골이니까 가능하죠. 그런 과정을 수십 번, 수백 번을 더 거쳤죠. 제가 음식을 배운 기본은 그 때의 실패로 다지지 않았나 싶어요.

 

농촌에서 보낸 어린 시절의 이야기도 재밌는데요. 신기했던 게, 초등학교 때 사건을 생생하게 기억한다는 점이었어요.

 

저도 인상적인 기억만 나요. 학교에서 배운 건 별로 기억이 없고요. 특히 기억나는 장면이, 게구멍에 손을 넣고 게가 제 손을 물기를 기다리는 건데요. 게가 물면 아프지만, 게가 제 손을 물었기 때문에 잡을 수 있어요. 정말 강렬한 인상이 남죠. 게가 물 때의 그 고통과 짜릿함이 뇌리에 딱 박혀서 잊혀지지 않아요. 그렇게 몸이 기억하고 있는 기억들을 이 책에서 주로 풀어냈습니다.

 

다음에 낼 책은 어떤 내용인가요.

 

두 권이 출간 예정이에요. 딴지일보에 연재했던 ‘야만인을 기다리며’와 ‘그녀를 위한 식탁’인데요. 자연에서 나는 것만 먹으면서 살려고 했던 1년 여의 시간과, 지금 만나는 여자 친구와 어떻게 만났고 어떻게 연애하는지를 밥이라는 키워드로 푼 글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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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나 먹자전호용 저 | 글항아리
이 책은 한마디로 우리가 먹는 음식에 들어가는 식재료에 대한 시시콜콜한 이야기다. 지난 2013년 4월부터 딴지일보에 ‘알고나 먹자’라는 제목으로 연재되었던 글을 정리하여 묶었다.


[관련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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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전문가에게 듣는 동사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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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겨루기>는 올바른 우리말이 무엇인지를 맞히는 KBS의 퀴즈 프로그램이다. 방송에 나오는 질문은 보통 사람이 못 풀 만한 어려운 문제도 많다. 프로그램에 나오기 위해 몇 년씩 우리말을 집중적으로 공부했지만 달인에 오르지 못하는 사람도 많은 만큼, 우리말은 어렵다.

 

우리말을 어렵게 하는 요소 중 하나가 ‘용언’이다. 동사와 형용사인 용언은 기본형과 활용이 있는데, 한국어에는 불규칙 활용이 많다. 그리고 한자어를 빈번하게 사용하면서 사라져가는 동사도 있다. 그래서 올바른 동사 사용법을 익히는 게 우리말 고수가 되기 위해 필수다.

 

『동사의 맛』은 20년 넘게 교정ㆍ교열을 해 온 김정선 저자가 쓴 책이다. 누구보다 먼저 원고를 보고, 누구보다 많이 글을 봤을 저자답게 책에는 우리가 자주 헷갈리는 동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했다. 한편으로는 점점 사용하지 않아 사어가 될지도 모르는 아름다운 동사를 소개하기도 했다. 단순히 뜻풀이만 했다면, 다소 딱딱한 책이 되었겠지만 『동사의 맛』에는 이야기가 있는 예문을 함께 수록해서 읽는 맛을 더했다.

 

 

명사가 아니라 동사로 책을 낸 이유

 

『동사의 맛』은 어떻게 나온 책인가요.

 

출판사 사람과 식사하고 술 마시면서 나온 이야기에서 시작한 책이에요. 동사만으로 책을 썼으면 좋겠다고 제안해주셨는데, 저도 처음에는 의외였죠. 그런데 생각해 보니, 동사가 문제더라고요. 명사처럼 체언은 몸 자체를 바꾸지는 않는데, 동사나 형용사 같은 용언은 기본형과 활용형이 있고 불규칙 활용이 워낙 많으니까요. 체언은 인터넷 검색으로 찾아볼 수 있지만, 활용 심한 동사는 검색해도 잘 안 나와요. 그래서 누군가가 정리해 놓으면, 독자가 이용하기에 편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책 형식이 특이합니다. 동사 활용도 소개해주셨지만, 예문 분량도 만만치 않은데요.

 

뜻 풀이와 활용만 소개하면 일반 독자가 읽을 것 같지 않았어요. 이야기가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말이 쉽지, 이야기 만드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교정 보시면서 실수를 발견하실 텐데요. 어떤 느낌이 드나요.

 

마땅히 물어볼 사람이 없고, 별로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실수해요. 대개 체언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용언은 그렇게까지 신경을 안 쓰거든요. 이렇게 되면서 두 가지 현상이 두드러져요. 첫째는, 동사 표현이 단조로워집니다. 제가 교정 일 처음 했을 때만 해도 ‘가시다’와 ‘부시다’는 소설 말고도 일반적인 산문에서도 썼어요. 입을 가시고 그릇을 부시다고 썼는데, 지금은 ‘씻다’ 하나만 써요.

 

둘째는, 한자어에 ‘하다’, ‘되다’를 붙여요. 월드컵 해설 들을 때였는데, 해설 위원이 한국 경기라 더 긴장해서 그렇겠지만 이렇게 말을 하더라고요. “이기기 위해서는 작전을 성공시켜야 하는데요. 아, 저러면 실패돼요, 실패돼요.” 사어가 될 이유가 없는데도 한 단어로 쓰거나, 한자어에 ‘하다’나 ‘되다’를 붙여버리니까 사어가 되어버리죠. 아쉽죠.

 

 

컴퓨터가 없던 시절 책은 어떻게 만들었을까

 

오랫동안 교정ㆍ교열을 하며 이쪽 일을 생각하는 선생님만의 철학이 있을 것 같아요.

 

이런 표현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는 사람이에요. 번역가가 번역에 관한 책을 낼 수는 있지만, 저희가 교정에 관한 책을 내면 바로 항의가 들어올 거예요. 교정 교열은 어쨌든 원문의 실수를 지적하고 수정해야 하니까요. 저자나 역자는 자신의 글을 확신하는 사람이고, 우리는 의심해야 하는 사람이죠. 편집자는 양쪽을 설득해서 조화를 이루는 역할이고요. 의심을 하더라도, 제 입장에서 의심하면 안 되고 독자 입장에서 봐야 해요.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읽는 책으로 만든다면, 그 수준에서 의심해야죠.

 

교정ㆍ교열 보는 데 특별히 선호하는 분야 책이 있나요?

 

주로 인문학 관련 책을 교정 보지만, 제 기호를 투영하면 실수가 많이 나와요. 설령 제 기준에서는 아는 이야기더라도 넘어가면 안 되는데, 지나칠 수 있거든요. 저자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고 원고만 받아서 작업하는 게 더 잘 되죠. 경제경영이나 자기계발서는 잘 안 하는 분야인데, 가끔 하게 되면 힘들어요. 신조어도 많고, 모르는 용어도 많이 나와서 흐름이 끊기거든요. 직장 생활의 어려움이 주된 내용인데, 저는 혼자 일한 시간이 많아서 그쪽에서 무엇이 중요한지도 잘 모르잖아요. 그러면 단순한 교정밖에 볼 수 없으니 재미 없어지죠. 교정ㆍ교열이 단순히 맞춤법, 띄어쓰기만을 고치는 작업은 아니거든요. 교정ㆍ교열은 첫 독자로서 깊이 있게 읽고, 글의 전반적인 순서에 관한 의견도 저자나 편집자와 주고 받는 것까지 포함하는 일이에요.

 

소설이나 시와 같은 책은 교정ㆍ교열 과정이 없을 것 같은데요.

 

한국 시, 소설은 드물지만 번역 소설은 봐야 하고요. 국내 작가의 소설 중에는 김훈 선생님의 <칼의 노래>를 의뢰 받아 작업한 일이 기억나네요. 순전히 제가 옛날 방식으로 책을 만드는 출판사에서 일을 배웠기 때문에 그런 기회를 얻을 수 있었죠. 원고지와 교정지의 내용을 일일이 대조해야 했거든요. 그분이 원고지에 연필로 꾹꾹 눌러쓰시는 분이잖아요. 제가 교정 본 책 중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거의 유일한 책일 겁니다. 문학상을 받기도 했으니 문단에서 인정을 받은 작품이기도 하네요. 책이 나오고 나서 버스에서 여대생 둘이 그 책을 들고 마치 시의 한 구절 한 구절을 낭송하듯이 문장을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며 읽는 모습을 본 적이 있어요. 지금도 잊히지 않을 만큼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예전에 책 만들던 방식은 어땠나요.

 

제가 옛날 방식으로 일한 마지막 세대가 아닐까 싶은데요. 우선 원고를 받아서 원고지 상태에서 한 번 봐요. 원고지 위에다가 체크를 하고, 교정본을 오퍼레이터에게 뽑아 달라고 하죠. 교정지 상태로 나오면, 출력실로 가서 인화지 상태로 봐요. 이 과정에서 최소 3교를 보게 되죠. 그리고 인화지를 재단해서 대지에 일일이 붙여가면서 편집을 하는 겁니다. 사진 들어갈 자리를 파내거나 각주는 따로 제 위치에 붙여가면서 말이죠. 물론 인화지를 오리고 따 붙이고 하는 이른바 ‘쪽자 작업’도 하게 되죠. 필름을 가지고도 쪽자 작업을 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말하자면 지금 컴퓨터가 하는 일을 손으로 직접 한 셈이랄까요.

 

그래서 당시 제 책상에는 컴퓨터가 없었습니다. 대신 식자용 칼에 풀, 자, 커터칼, 제도판 따위가 있었죠. 작업을 끝내고 나면 손은 풀로 엉망이 되고 코엔 필름을 긁어내느라 생긴 가루들이 들어차곤 했어요. 어떨 땐 작업하다 손을 베서 인화지가 벌겋게 물들기도 했고요. 말 그대로 기술자였죠 뭐. 이렇게 말하면 무척이나 오래된 옛날이야기 같지만 사실은 불과 15년밖에 안 된 이야기입니다. 요즘 출판 편집자는 책 만드는 일 외에 강연 기획이나 언론 홍보, 표지 디자이너와 협의 등 다양한 일을 하지만 그 당시에는 편집자가 책 한 권 만들려면 다른 걸 할 시간이 없었어요. 당시는 에디터라는 개념보다는 편집기술자, 편집공학자였죠. 지금은 표지 디자인 따로, 교정 교열 따로, 홍보 따로 이렇게 세분화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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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좋아 시작한 일, 배우는 맛으로 계속해

 

초기 편집자에서 에디터가 되지 않고 교정 교열 전문으로 가신 이유가 있을까요?

 

저는 편집기술자 시절의 편집자라 요즘 편집들이 선배님이라고 부르면 불안해요. 에디터 개념의 편집자가 아니었기 때문에요. 그저 책이 좋아서 출판사에서 일하면 좋겠다 싶어 들어갔을 뿐이지 내가 정말 편집 일을 좋아하는지 또는 이 일은 평생 직업으로 삼을 만한지 확신은 없었죠. 결국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해볼까 하다 그것도 쉽지 않아 아르바이트 삼아 다시 교정 교정 일을 하게 되었어요. 잡지사 출판사에서 정말 지겨워했던 일이라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요. 아니나 다를까 부탁한 곳에서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아, 이제 이 일은 안 하겠구나 싶었는데 또 연락이 왔어요. 저를 소개해준 후배가 너무 포장을 한 거죠. 그렇게 하다 보니, 지금까지 오게 된 건데요. 외주 교열을 하며 더 많이 배웠어요. 한 군데만 아니라 여러 출판사의 편집자와 대화를 하면서 책에 대해서도 배우고, 배우는 맛에 계속 했죠.
 
책을 좋아했던 계기가 있었나요?

 

아버지가 양복점 재단사였는데, 아버지가 양복 값 대신해서 전집을 받아오셨어요. 방 한 칸에 네 식구가 살던 때라 어머니는 굉장히 싫어하셨죠. 좁은 데 무슨 책이냐고요. 그때 『돌리틀 선생의 항해기』, 『닐스의 모험』, 『하늘을 나는 교실』등을 읽으면서 책이 재밌다는 걸 알았어요. 중학교 가서도 도서관에서 이런저런 책을 빌려보곤 했죠. 혼자 구석에서 책 읽는 시간이 늘면서 성격이 지나치게 소극적이 되는 것 같아 일부러 잘 노는 친구들하고 어울려 다니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두 친구가 바로 내 앞에서 깨진 유리를 들고 장난을 치다가 한 친구가 실수로 다른 친구를 찌르고 만 거예요. 병원에 실려 갔던 친구가 일주일 만에 교실로 돌아왔는데 심장을 몇 센티미턴가 비껴갔다고 하더라고요. 충격을 받아서 그때 이후로는 더 소심한 성격이 되고 말았어요. 이를테면 책 속으로 도피하는 게 습관이 되었달까요.

 

문학소년, 이런 말이 자랑거리일 수 있지만 살아보니까 무엇이든 과한 건 안 좋더라고요. 책이라고 해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책을 보더라도 활동적인 생활도 어느 정도 해야 해요. 사람 성향에 따라 다를 수 있죠. 지인들과 모여 술 마시며 즐겨야 스트레스가 풀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혼자 조용히 자기만의 시간을 가져야 마음이 가라앉는 사람도 있죠. 사람에 따라 다를 텐데, 이미 나이가 든 어른은 어쩔 수 없지만 어린 학생의 경우라면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는 건 좋지 않을 듯싶네요. 저도 책을 좋아해서 책 만드는 일을 직업으로 삼기까지 했지만, 돌이켜보면 한쪽 세계에만 치우쳐 지낸 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출판 쪽 일을 하시면서 책 안 읽는다는 이야기를 참 많이 듣지 않나요.

 

그럴 수밖에 없을 거 같아요. 예전에는 책과 독자 사이에 아무 것도 없었죠. 보통 서점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는데, 친구 기다리다 서점 들어가서 책을 사기도 하고 그 책을 빌려주기도 했어요. 그렇게 해서 야금야금 책의 세계를 알아갔는데요. 그야말로 대면이죠. 요즘은 책 한 권을 사려고 해도 수많은 게 개입해요. 검색해서, 리뷰 보고, 저자 정보와 출판사 서평 읽은 뒤에 카트에 넣어놨다가 주변 사람 이야기를 듣고 안 사게 되고, 이런 시대가 됐어요. 예전에는 소설이든 수필이든, 철학 서적이든 그 책에 감동해서 밤새 못 잤는데, 지금은 그런 느낌은 중간에서 휘발되죠. 갖가지 정보가 중간에 끼어드니까요. 그리고 스마트폰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요. 예전에는 젊은이들이 주로 스마트폰을 봤는데, 요즘은 나이 든 사람도 전철에서 다 스마트폰 보는 시대니까요.
 
책 읽는 사회가 되려면 어떻게 할까요?

 

제가 답할 질문은 아닌 것 같긴 한데요. 굳이 답하자면, 책 읽는 재미를 붙여야겠죠. 책 읽는 재미는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면대면으로 쭉 읽는 습관 속에서 나와요. 저는 직업이니까, 남의 원고를 기본 3번 보는데요. 재교를 볼 때, 3교를 볼 때 미처 보지 못했던 게 계속 나와요. 이 이야기가 어떤 의미냐 하면, 책을 알기 위해서는 한 번의 독서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뜻이죠. 책과 나 사이의 모든 벽을 제거하고 쭉 읽어야 글 읽는 맛도 생깁니다.

 

다음 책은?

 

먹방이 유행이죠? 예전 요리 프로그램은 요리 만드는 것으로 끝났는데, 이제는 드라마나 토크쇼,오디션과 결합해서 다양하게 보여주잖아요. 요리의 기본형이 활용형으로 간 셈인데, 말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시중에는 맞춤법 관련 책이 많이 나와 있어요. 그런 책이 기본형이라면, 『동사의 맛』은 이야기와 결합을 시도했는데, 우리말 관련해서 색다른 책을 내려고 해요. 상황이 허락된다면 형용사와 부사로도 비슷한 책을 써보고 싶어요. 한국어의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품사가 형용사와 부사가 아닌가 싶어서요. 다만 이번에도 사전이나 참고서가 아니라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 되어야 할 텐데 그게 고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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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사의 맛 김정선 저 | 유유
이 책은 한국어 동사를 다루되, 일반 독자는 재미있게 읽으면서 동사 활용법을 익힐 수 있고, 글을 쓰거나 남의 글을 다듬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글을 다루는 데 도움을 줄 목적으로 쓰였다. 20여 년간 외주 교정자로 숱한 교정지와 씨름한 이력과 실전 경험을 가진 저자는 헷갈리는 동사를 재미있게 풀어낼 수 있는 방법을 궁리했고, 그 결과 헷갈리는 동사를 짝짓고 이를 스토리텔링과 접목하는 방식을 택했다. ‘남자’와 ‘여자’의 에피소드를 동사를 사용하는 사례로 활용해서 독자가 끝까지 읽을 수 있도록 꾸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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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뻔하지 않은 기적의 공부법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최영희 “와 닿지 않으면 문학도 학습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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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문학이란 어떤 것일까. 당신은 『완득이』를 읽거나 영화로 보았을 것이고,『괭이부리말 아이들』을 읽거나 들어봤을 것이다. 그러나 ‘청소년 문학’에 대한 인식은 크지 않았을 것이고 이 첫 질문, ‘청소년 문학이란’에 대해서도 쉽게 설명하기 어려울 것이다.


쉽게 생각해보자. 청소년이 읽는 문학을 떠올리면 된다. 교과서에 나오는 근현대문학들, 『감자』, 『메밀꽃 필 무렵』,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같은 작품들이나 외국 성장 소설, 『수레바퀴 아래서』, 『데미안』같은 작품들 아닌가. 하지만 이 작품들이 꼭 ‘청소년 문학’인가 하면 그렇지만도 않다. 게다가 이러한 추천도서목록이 청소년들에게 얼마나 다가가는지 의문이기도 하다. 너무 멀거나, 너무 어렵거나, 너무 어둡거나, 너무 슬프다. 청소년들 스스로의 삶을 투영한, 진정으로 소통하고 공감하면서 읽을 수 있는 문학이 청소년 문학이라면 이런 목록과는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다. 

 

물론 청소년 문학에 대한 이러한 논의는 진즉 있었고, 우리 문학계에 청소년 문학으로 자리한 작품들도 많다. 분명 양적으로 팽창했고, 출간 목록들이 존재를 증명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러한 작품들이 고정관념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측면도 있는데, 청소년들의 삶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것 역시 ‘어른’인 작가가 바라본 관점에 불과할 경우가 왕왕 있기 때문이다. 왕따, 학교폭력, 성적 우선의 냉혹한 경쟁구도, 가족과의 소통 불가. 이렇듯 청소년 문학이 아픈 청소년, 기성세대에 희생당하는 청소년이라는 프레임에 갇혀있지는 않았는지 생각해볼 일이다.

 

청소년들은 모두 아픈가? 꼭 그렇지만은 않다. 괴로운 안에도 그들의 삶이 있고, 그 안에서 자신들만의 즐거움과 희망, 성장 동력을 갖고 살아간다. 잘 알지도 못하는 어른들이 모르는 소리를 하고 있다고 느낄, 혹은 너무 어두워서 읽기 싫다고 생각하게 되는 작품이 아니라 진짜 그들을 대변하는 경쾌한 작품이 필요하다.

 

제 8회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한 최영희 작가의『꽃 달고 살아남기』는 그런 문제의식을 어느 정도 해소해줄 작품이 아닐까 싶다. 이 작품의 주인공 진아와 친구 인애는 나름의 고민과 해결해야할 숙제들이 있지만 씩씩하게 문제와 대면한다. 도움이 필요하다면 ‘변태’ 물리 선생님에게 손을 내밀기도 하고, 뭐든 ‘좋게 좋게’ 살아야 한다는 어른들의 말에 반기를 들기도 한다.

 

분명 열여덟 살을 지나왔는데, 그 나이가 낯설기만 하다면 이 책을 보면서 내 열여덟을 추억해도 좋을 것이다.

 

 

저는 인애를 꿈꾸는 범생이었어요


먼저 제 8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책 내기 위해서 이런저런 수정을 워낙 많이 했어요. 좀 힘들었어요.(웃음) 청소년 책이기 때문에 오해할 수 있을 부분은 빼고, 붙이기를 했죠. 그런 것들을 하나라도 놓치면 안 되니까요.

 

출간까지 많이 힘드셨으리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에너지 소모가 쓰는 것 이상으로 많아요. 쓸 때는 혼자 즐거워서 몰입해서 쓰지만 활자화되는 것에는 책임이 있잖아요. 책이 나오면 전부 작가의 책임이니까요. 첫 날 딱 오타가 보였어요.(웃음)

 

책 자체는 귀엽고 예쁘게 잘 나왔는데요. 특히 표지는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보면 더욱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이미지들이에요.


표지는 정말 중요해요. 거의 집착할 정도예요. 이 책에 대해서는 만족하고 있어요. 글을 쓸 때 구체적인 이미지를 그려놓지는 않고 느낌만 가지고 쓰는데요. 처음 시안에서는 진아 이미지가 머리에 큰 꽃을 달고 있는 것이었어요. 그것은 상상력을 너무 가둬버리는 것 같아서 수정을 하고 지금의 이미지로 나온 건데요. 상상의 여지가 있는 그림이라 좋아요. 표지에서 누군가 해석한 것을 그대로 보여주면 안 되잖아요. 그게 답이 아니니까요. 이 그림들은 그렇지 않아서 마음에 들었어요.

 

작가의 열여덟 살이 무척 궁금해지는 소설이었습니다.


저를 아는 분들은 ‘인애’ 같았을 것이라고 하세요. 저는 인애를 꿈꾸는 범생이었어요.(웃음) 일탈하는 친구들을 좋아하지만 정작 나는 일탈 못하는 학생이요. 오토바이 뒤에 매달려 다니는 친구들을 동경하면서도 그렇게는 못했죠.

 

내면의 욕망은 컸군요.


엄청났죠. 그렇지만 성당도 다니고 있었고 해서 좀 억눌려 있었어요. 그 와중에도 제 안에 뭔가 있었던 것 같아요. 당시 유행했던 소설이 『여자의 남자』 같은 것이었는데, 친구들이 궁금해 할 부분을 접어서 돌린다거나 하는 식의 사소한 일탈을 했어요. 대놓고 수업을 빠진 적도 없었지만요. 돌아보면 건질 게 하나도 없는(웃음)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어요.

 

어찌 보면 그런 욕망을 문학적으로 발산하고 계신데요. 학창시절의 경험이 작품에 영향을 끼쳤을까요?


글쎄요. 저의 청소년기는 매력이 조금도 없었는데요. 성인이 돼서 기자생활도 해보고, 번역가도 해보고, 연구소에도 있어보고, 다양하게 살면서 오히려 10대 문화와 잘 맞는다는 것을 알았어요. 10대 청소년들과도 친하고요. 10대 커뮤니티에서 활동했을 때 저를 중학교 2학년인 줄 알 정도였어요.(웃음)

 

청소년 문학을 하게 된 계기는 제가 정말로 몰입해서 읽었던 책들이 해외 YA(Young Adult 의 줄임말)소설이었는데, 그것들이 저와 코드가 맞았던 거예요. 성인 소설에 나오는 어른들만의 세계가 재미있지도 않고 관심도 가지 않고 싫었어요. 명쾌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청소년기에 읽었던 책들은 불행한 결말이 많았어요. 『수레바퀴 아래서』, 『호밀밭의 파수꾼』등 다 그렇잖아요. 모범생이니까 내색 않고 읽긴 했지만 크게 공감하진 못했어요. 희망할 여지, 상상할 여지가 있고 현실을 깨뜨릴 만한 결말이 저에게는 필요했어요. 그런 욕구가 억눌려 있다가 YA소설들을 만나면서 해소가 된 것 같아요. 『해리포터』시리즈 보면 정말 암울하지만 끝내 싸워 이겨내잖아요. 그런 단순한 대답이 좋았고, 그렇게 무리 없이 풀어갈 수 있는 것이 10대 소설이라고 생각했어요. 지금 쓰고 있는 글에 대해서 굉장히 만족하고 있어요.

 

 

마음의 심지를 심어주고 싶었어요


‘살아남기’라는 제목이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했어요. 희망이나 꿈이 아니라 ‘생존’에 대해 말씀하셨거든요. 이유가 있을까요?


2014년이 작가들에게는 ‘세월호 사건’을 비껴갈 수 없는 해였죠. 작가의 말에도 썼는데요. 평범하게 살아남아서 어른이 된다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이구나 하는 것을 느꼈어요. 그때 ‘생존’이라는 게 특별한 의미로 와 닿았던 것 같아요. 그것이 저의 화두였던 것 같아요. 작년에 쓴 글들은 기존에 쓰던 것보다 조금 더 우울했어요. 『꽃 달고 살아남기』도 그렇고요. 그래도 아이들이 살아남길 바라고, 너희들은 우리보다는 좀 더 나은 모습으로 비루하지 않게 성인의 삶에 안착했으면 좋겠다는 그런 바람이 있었어요.

 

작가의 말에서 ‘4월 16일’에 대해 말씀하셨지만 저 역시 부끄러운 어른 됨에 대해 많이 생각하는 시기인데요. 작가는 어떠신지 듣고 싶었어요.


작년에 『트라우마 한국사회』라는 책을 읽었는데요. 제가 70년대 후반생이에요. 70년대 후반생이 80년대 생보다 편하게 살았대요. 절대빈곤이 사라진 세상에서 고등학생 때 서태지와 미드를 접했으며, 학업을 그렇게까지 강요당하지도 않았고요. 부모와의 갈등도 적었던 세대고, 성적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으면 그대로도 살 수 있는 세대였어요. 사회에 나와서는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을 지나왔기 때문에 아무렇지 않게 시위할 수 있었고요. 세상이 우리가 바라는 대로 움직여줄 것이라고 생각했죠. 그러다가 정권이 바뀌고 세월호가 터진 거예요. 저희 선배들이 20대에 했던 고민이 이제와 시작된 거예요.

 

한 번도 어른이라는 생각을 안 하고 살다 작년에 자각이 됐는가 봐요. 아이 엄마면서도 어른이라는 생각과 분리되어 있었는데, 이제 내가 정신 차리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자각을 하게 됐죠.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했어요. 희생된 아이들, 그 사건을 실시간으로 봐야 했던 아이들 모두에게요. 그 아픔들이 크면서 더 트라우마가 될 것 같아요. 저도 어렸을 때 겪었던 어떤 사건이 크면서 트라우마가 되는 걸 느꼈었는데요. 이건 그 정도가 아니잖아요. 그래서 싸울 수 있는 힘, 떨쳐낼 수 있는 힘을 아이들에게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요즘 아이들 쉽게 포기하잖아요. 자살도 많이 하고요. 이것을 작품에서는 ‘갈 데까지 간다’라고 표현했는데요,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힘, 해보지 않고 포기하지는 않게 마음의 심지 같은 것을 심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어른으로서, 작가로서 할 수 있는 일은 그게 전부인 것 같아요.

 

세월호 사건은 많은 사람들에게 지금도, 앞으로도 너무나 큰 상처로 남겠죠.


가족들과 광화문에 종종 다녀와요. 저 역시 아직도 해소가 안 된 것 같아요. 그런데 아이들은 해소가 안 된 줄도 모르는 상태인 것 같고요. 언젠가 아이들 안에서 한 번 폭풍처럼 올라오지 않을까, 생각하면 참 미안해요. 또 덤덤해져버린 아이들에게도 미안하죠. 비극을 끝내 자각하지 못하고, 일부 어른들의 매정한 논리로 커버린 아이들에게도 미안할 것 같아요.

 

그것 역시 생존법이잖아요. 자기 방어라고 할까요.


그렇죠. 아이들이 파헤쳐보고 그러면서 이겨내길 원했던 것 같아요.

 

소설 속에서 주인공 ‘진아’ 역시 동네 어른들의 ‘좋게 좋게 넘어가자’는 식의 태도를 계속해서 비판적으로 보잖아요. 그런 장면을 통해서도 작가의 마음이 읽혀요.


좋게 좋게’라는 말이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세상을 대변하는 말인 것 같아요. 지금 다들 세월호 그만 말하자고 하잖아요. 세월호뿐 아니라 우리가 끝까지 물고 늘어져야 하는 아픔에 대해서도 ‘먹고 사는 것도 힘든데 그만하자’라고 하는 논리가 흔해요. 그것이 우리 세상을 결국 병들게 한 것 같았어요. 제 이야기가 우리 아이들에게 그런 어른들의 논리를 깨트릴 수 있는 사소한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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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 싸움을 해나가길


하지만 결국 문제는 어느 것도 해결되지 않았어요. 물리선생님 스캔들이나, 인애의 성폭행 미수 사건도 그렇고요. 신우와의 대면도 끝내 보여주지 않으셨는데요. 어떤 의도였나요?


안타깝지만 현실에서는 그런 해결책이 주어지지 않죠. 성폭행 미수 가해자가 확실하게 쇠고랑을 차는 모습을 보여주는 건 또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다만 진아와 인애가 그걸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갖길 바랐고요. 끝까지 싸움을 해나가길 바랐어요. 세상의 가장 큰 문제가 부끄러운 진실을 감추는 것이었잖아요. 그런데 진아와 인애는 감추고 넘어갈 수 있는 것을 물리선생님을 위해 감추지 않고 더 힘든 길로 들어갔어요. 그런 이 아이들의 생존의지, 어떻게든 이겨낼 것이라는 걸 보여주려고 했어요. 책을 읽고 어떤 분이 그러더라고요. 해결된 건 없지만 진아 곁에는 인애와 물리선생님이 남았다고요. 우리가 어떤 문제를 함께 극복해나가는, 같이 고민하고 아파하는 사람이 있다는  그것만큼 위로가 되는 것도 없잖아요.

 

독자 입장에서는 사건이 깔끔하게 해결되기를 바랄 수 있지만 진짜 현실은 절대 그렇지 않잖아요. 신데렐라와 왕자가 결혼하게 됐지만 그 다음부터가 진짜 삶이니까요. 그보다는 어떤 사람과 ‘관계 맺음’이 되었는가를 더 보여주려고 하셨던 게 의미 있었던 것 같아요. 


만약 다른 장르였다면 딱 떨어지는 결말을 보여줄 수도 있었겠죠. 하지만 현실 소설이잖아요. 여기서 명쾌한 결말을 썼다면 제가 무책임해지는 것 같아요.

 

‘마을 공동체’에 대한 진아의 생각이 변화하는 과정도 흥미롭습니다. 꽃년이를 마을회관에 두는 마을 어른들을 보면서 진아는 깨닫잖아요. 진아의 성장과 마을 공동체에 대한 긍정이 어떤 식으로 연결되어 있는지 궁금했어요.


아주 보수적이고, 지금 청소년들과 가장 동떨어진 장치를 두고 싶었어요. 그게 마을 어른들이었어요. 너무나 견고한 세상의 기득권이랄지, 이 아이들이 훗날 부딪칠 세상의 모습에 대한 은유였거든요. 진아가 그 마을 공동체를 마음으로 긍정했다기보다는 애증의 관계를 담담하게 받아들인 거예요. 사랑도 현재진행형이고 증오도 현재진행형이죠. 이 세상을 등지고 미워할 수만은 없어요. 끝없이 파헤치고 싸워 나가되 세상에 놓인 것들에 대한 애증의 감정을 갖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와 다른 세상이라고 해서 잘라내 버린다면 우리가 세월호를 잊으라고 하는 사람들과 뭐가 다르겠어요? 우리는 역사의 일부고, 세상의 일부기 때문에 속한 곳에 대한 애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의미였어요. 그분들을 존경하게 된다는 그런 게 아니라 한편으로는 지독히 떠나고 싶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고마운 마음이 있다는 거죠.

 

긍정이라기보다는 수용의 의미였군요.


우리가 물려받은 세상이 그렇잖아요. 살게 해줘서 고마우면서도 이렇게 왜곡된 모습을 보여줘서 증오스러운 부분이 있죠. 그런 단면들을 말하고 싶었어요. 아이들의 세상은 굉장히 좁잖아요. 책에도 썼지만 그것만 보지 말고 이 사회라는 큰 틀 속에서 네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우주의 역사 속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전체 역사 안에서 네가 얼마나 동등한 존재인지 보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물리선생님이 우주 얘기를 하잖아요. 우리 모두는 동등한 가치를 가진 존재들이잖아요. 좀 더 넓은 세상을 보길 바라는 마음이 컸어요.

 

칼 세이건을 정말 좋아해요. 칼 세이건은 늘 저 먼 곳에서 우리를 조명하잖아요. 우리가 얼마나 편협하고 사소한 인간들인지 생각하게 해요. 그런 경험을 하고 나면 또 덤덤하게 살아갈 수 있는 힘도 생기는 것 같아요. 더 이상 내 앞에 선 저 사람이 두려운 존재가 아니게 돼요. 먼 우주적 관점으로 보면 우리는 모두 먼지와 똑같은 성분으로 이뤄진 ‘별의 잔해’라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어요. 그런 배짱을 가지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했었어요.

 

‘찰흙 인형’(59쪽) 소재가 무척 문학적이고 감동적으로 읽혔어요. 찰흙 인형들이 인생 곳곳으로 가 나를 도와주었으면 좋겠다는 ‘노래’ 같기도 한 대목이 말이죠. 많이들 소망하는 방식이기도 한데요.

 

진아는 고립된 삶, 도와주는 사람 없는 삶을 살아왔잖아요. 주변은 모두 노인들이고요. 내 옆에 누군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게 단순히 진아처럼 특별한 상황에 놓인 아이들뿐 아니라10대 아이들의 공통된 생각이에요. 그래서 아이들이 인터넷 커뮤니티와 자신들만의 역할 놀이에 연연해하는 것 같아요. 내 삶을 속속들이 이해해줄 수 있는 누군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죠. 그러면서도 아이들은 이기적이잖아요. 이기적인 건 나쁜 게 아니라 생존 본능이거든요. 내 취향대로 뭔가 존재했으면 좋겠는 거죠.


또 그 장면은 신우의 존재를 진아가 알기 전이거든요. 누군가 내 분신 같은 존재가 나타나서 내 억울하고 외로운 삶을 들어줬으면 하는 마음을 상징하면서 신우에 대한 암시를 약간 주는 면도 있었던 것 같아요.

 

역시 신우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진아는 후에 결국 신우에게 자신의 자책감이나 바람이 투영됐다는 걸 깨닫기도 해요.


우리가 놓쳐버렸던 것, 과거에 내 자신이 가해자일 수도 있었고, 혹은 좀 더 할 수 있었을 텐데 하지 않고 소극적으로 대했던 경험들이 무수히 많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변명으로 다 덮어버리면서 어른이 돼요. 그렇게 하지 않는 아이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진아(眞我)는 말 그대로 ‘진짜 나’라는 뜻을 가진 이름이거든요. 진아가 ‘진아(진짜 나)’가 되려면 자기의 아픔은 물론이고 다른 이를 아프게 했던 기억도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진아는 누군가가 늘 필요했던 존재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도 신우가 있었어야 했고요. 동시에 진아의 이기적인 마음과 신우를 아프게 했던 자신을 돌아보는 이중적인 의미로도 필요했죠. 사랑하면서도 미안했던 존재로 신우가 필요했어요. 자신의 과거와 맞대면을 하고 지금 겪는 고통과 정면으로 마주보고 어른이 되길 바랐어요. 그러기 위해서 신우라는 장치가 꼭 필요했죠.

 

진아가 겪는 상황은 보편적이지 않더라도 진아 자체는 청소년을 대표할 수 있는 캐릭터예요.


네. 그래서 진아의 정신 분열 상태를 좀 더 강하게 묘사하지 않았어요. 한 아이의 이야기를 쓰려 한 게 아니니까요. 청소년의 양면적인 모습, 그러면서도 용기 있게 자신과 맞서는 아이의 모습을 그리기 위한 것이었어요.

 

물리선생님이 이들에게는 가장 따뜻하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어른입니다. 세상의 잣대와는 달라요. 이런 어긋남이 삶의 진실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기도 합니다.


자꾸 세월호 사건을 말하게 되는데요. 힘이 있는 사람들이 달려가 주지 않았잖아요. 어떻게든 구하려고 동동거렸던 사람들은 어부들이었어요. 세상의 논리와 맞지 않잖아요. 제게 물리선생님은 그런 존재였어요. 평소에는 아이들의 세상과 동떨어져 있죠. 물리선생님은 아이들을 싫어하잖아요. 그런 선생님 안에 진짜 아이들에 대한 진심은 있었던 거죠. 어떤 사건이 터지면 어른들은 먼저 재잖아요. 뒷일부터 생각하는 어른들이 일반적이에요. 저도 그럴 것 같거든요. 그런데 물리선생님은 재지 않아요. 캐릭터 잠옷을 입고 뛰어오잖아요. 세상 어딘가에 한 명 쯤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어른이었어요. 또 이야기를 쓸 때 아이들만 고립시키고 싶지 않았어요. 세상, 세계와 이어주는 누군가가 있었으면 했어요. 그게 또 삶의 진실인 것 같고요. 물리선생님이 균형을 딱 맞춰준 것 같아요.

 

틈새에 있는 존재들, 그들이 세상에 소금 역할을 하지 않나 생각해요.


손을 떠난 작품이니까 어떻게 읽어도 상관없는데요. 누군가는 제가 그 안에 담아둔 의도나 진심을 읽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의외로 아이들이 물리 캐릭터를 잘 읽어내더라고요.  

 

 

와 닿지 않으면 또 하나의 학습지와 다름없어


작가로서 갖는 작품의 가장 큰 화두는 무엇인가요?


소통이요. 어렸을 때 책을 많이 읽었는데, 그 책들이 저와 소통이 되지 않았어요. 그 나이 때 겪는 고민들을 정말로 안아준다는 생각이 안 들었어요. 문학적으로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정도였죠. 그래서 나는 문학적으로 혹시 인정을 못 받더라도 아이들이 그저 깔깔대고 읽는다 해도 언젠가 문득 그랬었지,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소통이 되기를 바라요. 어렵지 않은 이야기들로 말이에요. 또 너무 무겁게 쓰면 힘들어하니까 그러지 않으려고 하고요. 아이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는 게 제 문학의 화두예요.

 

문학이 나를 안아주지 않았던 경험이 커다란 동력이 됐네요.


그런 경험이 있기 때문에 안 그랬으면 하는 거죠. 요즘 10대들은 바쁜 시간 쪼개서 책 읽잖아요. 그렇게 읽는데 와 닿지 않으면 문학이 또 하나의 학습지와 다름없어요. 저는 문학이 유일무이한 예술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문학도 세상의 일부죠. 그 자체로만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요. 다가가야 해요. 청소년들이 책을 안 읽는 이유 첫째는 책 읽는 어른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그렇다면 저희 세대가 책을 읽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성장기 때 재미있는 책을 못 만나서인 것 같아요. 요즘 청소년들이 괜히 웹툰에 열광하는 게 아니에요. 그것에 대해 혀를 찰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물론 누군가는 문학을 끌어올려야겠죠. 그렇지만 저는 소통을 더 앞에 두고 있어요.

 

또 하나의 학습지가 된다는 말에 정말 공감이 돼요.


아이들이 멍을 좀 때려야 하거든요. 그러면서 작품과 다시 만나야 해요. 요즘 아이들은 읽으면 독서록 쓰고 또 읽고 해요. 멍 때릴 틈이 없죠. 그래서 좀 비어있는 책도 필요한 것 같아요. 문학적으로 완성도 있는 책도 물론 필요하죠. 아이들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말이에요. 하지만 카타르시스도 느끼고 어떤 장면서는 웃고, 울고 할 수 있어야죠. 영화 보듯이 말이에요. 아이들과 교감할 수 있는 책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아무래도 10대 이슈에 관심이 많으시니까 사회적으로 문제라고 하는 것들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하실 것 같아요. 치열한 경쟁, 선행학습 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계세요?


문제들도 지역별, 학부모 그룹별로 천차만별이에요. 여론이 너무 크게 떠들잖아요. 그게 어느 곳에서는 정말 심한 문제겠지만 조금만 벗어나도 또 그렇지도 않고, 모든 학부모가 공감하는 것도 아니에요. 저는 세상에 자정능력이 있다고 믿어요. 우리가 일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주면 안 돼요. 그게 청소년 현실의 전부인 것처럼 써도 안 된다고 생각해요. 차라리 근원적인 10대의 고민을 담는 게 낫죠. 청소년 소설의 임무가 아이들의 현실을 개탄하는 것까지는 아닌 것 같아요. 오히려 아이들의 취향을 존중해주는 게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소설 쓰는 시간 외에는 어떤 것을 하세요?


운동 좋아하고요. 영화도 많이 봐요. SF를 좋아해서요. 곧 「스타워즈」가 개봉하잖아요. 기대하고 있어요. 레고도 좋아하고요. 그런 게 재미있어요. 아이돌도 좋아하고요. 원래 빅뱅 좋아했는데요, 곧 IKON이라고 데뷔합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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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달고 살아남기최영희 저 | 창비
주인공 박진아는 ‘도완득’만큼이나 활력 만점, 매력적인 캐릭터이다. “어찌 보면 어리고, 어찌 보면 십 대의 끝물 같고, 또 어찌 보면 욕 같은 나이”인 열여덟 살 진아는 나이 많은 엄마 밑에서 입양아로 자라 온 자신의 처지를 비하하거나 연민하지 않고 담백하게 바라보면서, 모두가 쉬쉬하는 진실을 향해 꿋꿋하게 걸어 나간다. ‘좋게 좋게 넘어가라.’며 침묵을 강요하는 세상에 당찬 도전장을 내민 주인공들. 이들의 성장은 과거 완료가 아닌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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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특집] 은유 “비밀글만 쓰면 글은 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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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털 사이트에 ‘글쓰기’를 입력하고 책을 검색하면 1만 5천 여권의 책들이 얼굴을 내민다. 팔리니까, 원하는 독자들이 있기 때문에 나오는 책일 텐데 ‘노하우’, ‘비법’, ‘매뉴얼’이란 카피를 맞닥뜨리면 다소 머뭇거리게 된다. 그래도 필요해서 책을 골라 읽다 보면 글쓰기가 더 어렵게 느껴진다. 신경 써야 할 게 많아서, 고쳐야 할 부분이 많아서 글을 쓰고 싶던 마음이 달아난다.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을 끝까지 유지하게 만들어주는 책은 없을까? 고민하던 찰나에 『글쓰기의 최전선』을 만났다. 글쓰기 책에 전쟁용어를 사용한 까닭은 무얼까. 치열하게 쓰라는 의미일까? 책 표지에는 7개의 가지각색 펜이 사이 좋게 누워있다. 두께도 길이도 펜촉도 모두 다르다. 다만 촉이 바라보는 방향은 같다. 7개의 펜은 독자들에게 단 한마디를 던진다. “’왜’ 라고 묻고 ‘느낌’이 쓰게 하라.” 어렵다. 역시, 글쓰기는 심오해야 하는가? 저자는 ‘나는 왜 쓰는가’라는 제목의 글로 여는 글을 대신했다. 미셸 푸코의 말로 시작되는 17쪽 장문의 글. 밤마다 구직 사이트를 헤매다 글을 쓰게 됐고 자유기고가가 된 저자는 “삶이 굳고 말이 엉킬 때마다 글을 썼다”고 고백한다. “글을 쓰고 있으면 물살이 잔잔해졌고 사고가 말랑해졌다”는 그는 글쓰기를 ‘요리’에 비유했다. 이어지는 서문의 글 ‘글쓰기의 최전선으로’. 저자가 글쓰기 수업을 열게 된 까닭을 차분히 밝힌다.

 

글쓰기 수업은 내 생애 최고의 배움의 장소였다. 학인들이 ‘이런 삶을 살았다’고 불쑥 내미는 글은 늘 압도적이었다. 질박하고 진지하고 열띠었다. 철학과 문학에서 읽지 못하고 신문과 라디오 사연에서 들을 수 없었던 삶의 진귀한 이야기는 많고도 많았다. 그 비밀스러운 생의 이야기들 덕분에 나는 선입견을 내려놓고 타인과 관계하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인간에 대한 나의 무지를 깨우치고 인간에 대한 이해를 깨칠 수 있었다. 인간은 삶을 의미 있게 만들려는 본능을 가진 존재임을 믿게 되었다” (33쪽)

 

최근 문학평론가 황현산은 『글쓰기의 최전선』을 읽고 자신의 트위터에 “읽기와 생각하기와 글쓰기에 대해 매우 깊은 성찰을 담고 있다. 삶의 최전선에서 글쓰기를 가르쳐온 경험집약. 책 뒤 ‘글쓰기 수업시간에 읽은 책들’은 아주 잘 짜인 추천도서 목록이다”라고 적었다. 은유 저자는 친구로부터 이 소식을 듣고, “어디 신문에 대서특필 난 것보다 만 배쯤 더 좋았다”고 했다. 무명작가의 책을 꼼꼼히 읽어준 선생의 평에 평소와 다른 달뜬 기분을 느꼈다고.

 

‘글 쓰는 사람’ 은유는 2011년부터 연구공동체 수유너머R에서, 2015년부터 학습공동체 가장자리에서 글쓰기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평소 니체와 시(詩)를 읽으면서 질문과 언어를 구한다. 월간 『나.들』에 성폭력 피해 여성 인터뷰를 1년간 연재했고, 산문집『올드걸의 시집』과 인터뷰집 『도시기획자들』등을 펴냈다. 황지우 시인의 「산경」 시구인 “아픈 세상으로 가서 아프자”를 마음에 새기고 글을 쓰는 저자 은유. 그녀의 이야기가 더 듣고 싶었던 건, 『글쓰기의 최전선』이 가져다 준 감응 때문이었다. 진짜 글을 쓰고 싶은 감흥 아닌, ‘감응’.

 

 

글쓰기 수업을 시작한 후, 사람에 대해 조심스러워졌다


서문만 읽었을 때부터 막 설렜다. 글쓰기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한 건 처음이었다. 책을 내게 된 과정, 계기가 궁금하다.


글쓰기 수업을 하기로 했을 때, “내가 글쓰기를 어떻게 가르칠 수 있을까. 내가 아무리 가르쳐도 사람들이 글을 안 쓰면 그만인데”라는 생각을 했다. 일단 내가 아는 걸 말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왜 글을 쓰는지를 고백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감응을 이끌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마치 글쓰기에 관한 진리의 터득자인 양 수업하는 건 있을 수 없고. 나도 고민하고 방황하고 회의하고 질문하는 가운데, 글을 쓰고 있었으니까. 그 생각을 정리했던 글이 서문이었다. 글쓰기 수업을 3년 정도 했을 즈음, 글쓰기 책을 내고 싶다는 제안을 조금 받았다. 글쓰기 책이 워낙 많이 나오는데, 나까지 낸다는 게 민망해서 유보적인 태도를 취했는데, 일반인들이 글쓰기 과정을 통해서 세상에 관심을 갖고 자기 자신에 대해 알아가고 눈떠가는 과정이 신비로웠다. 배움과 우정이 일어나는 걸 눈으로 보고 있으니까, 혼자만 알고 있기 아까웠다. 그래서 좀 써보자고 생각했다.

 

연구공동체 ‘수유너머R’에서 시작해 올해는 학습공동체 ‘가장자리’에서 글쓰기 강좌를 하고 있다. 책에 글쓰기 수업에 오는 수강생들을 ‘학인’으로 지칭했는데, 대개 뚜렷한 목적 없이 오는 경우가 많았다.


처음 이 책을 ‘목적 없는 글쓰기’라고 지을까도 생각했다. 소설가 되기, 기자 되기, 시인 되기도 아니고 치유 글쓰기도 아닌, 특정한 목적 없는 글쓰기 수업이었다. 목적 없음에서 드러나는 쓸모 없음의 쓸모랄까? 수업을 하면서 그런 부분들이 발견됐다. 글쓰기 수업에 참여한 가장 많은 수강 동기는 “나를 알고 싶어서”였다. 책을 내고 싶은 구체적인 목표를 가진 사람들도 있었지만, 홈스쿨링을 하는 고등학생도 있었다.

 

블로그 인사말이 황지우 시인의 시구, “아픈 세상으로 가서 아프자”다.


사람들이 개인적으로 다 아프지 않나. 우울증도 많고 공황장애도 많고. 글쓰기 수업에 오는 분들이 모두 정상적인 직장생활을 하는 것 같이 보였지만 아프다는 내밀한 고백을 해오는 사람이 많았다. 그게 질병이기도 하고 병적으로 정의되지 않은 고통이기도 했다. 다 개별적으로 아픈 거다. “아픈 세상으로 가서 아프자”고 한 건, 나의 아픔을 사회에 나가 말하고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좀 나아지니까. 치유가 된다기보다 아픔을 견딜 수 있게 된다는 ‘약간’의 믿음이 있다. 글 쓰면 다 좋아지는 것처럼 말하고 싶지 않다. 개인차가 있으니까.

 

글쓰기를 가르치면서 학인들에게 오히려 배운 것도 많았을 것 같다.


사람에 대한 공부일 거다. 사람들이 대개 자기 개인의 경험의 폭을 넘기 어렵다. 그래서 영화도 보고 문학작품을 접하면서 사유의 지평을 넓히는데, 글쓰기 수업에 온 학인들의 구체적인 삶의 상세한 이야기를 통해서 삶이란 게 개개인에게 어떤 무게로 다가오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사람에 대해 좀 조심스러워졌다. 쉽게 단언하지 않게 된 것 같다. 이를테면 “노력이 부족해서 그런 거야”, “이렇게 하면 되지 않아?”라는 생각을 덜하게 됐다. 모두 저마다 삶의 고유한 배경과 조건에서 고통이 발생하는 거고, 이게 그렇게 간단치 않다는 걸 알게 됐다. 조금 더 섬세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조심스러워진 것도 같고. 그동안 지은 죄도 생각나고 그랬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변했나?


이를 테면 엄마로서 아이들을 키우면서 쉽게 말했던 것들이다. 글쓰기 수업에 17살 소년이 오는 경우도 있었고 20살 학생이 오기도 했다. 그들이 어릴 적 엄마와 겪었던 갈등 상황들을 듣고 ‘이런 것도 아이들한테는 상처가 되는 구나’를 알게 됐다. 다양한 세대가 모여있으니까 학인들도 서로 인지가 되는 거다. 나이를 좀 드신 분들은 ‘엄마 입장에서는 그렇겠구나’하고 공감하기도 하고. 다양한 입장에서 볼 수 있었다.

 

최근에 “글 쓰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 불행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는데, 꽤 공감했다. 저자도 그러한가?

 

처음 글쓰기 수업을 열었을 때, 토요일 오후 2시에 시작했다. 강의실에 젊은 친구들이 와 있는데 마음이 짠했다. “이 화창한 봄날에 왜 여기에 와 있냐? 행복해지면 잡지 않을 테니 언제든지 나가라”고 했다. 행복한 사람은 굳이 글을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글쓰기, 정말 힘들지 않나.

 

요즘은 SNS 시대다. 사람들의 자기표현도 많아졌는데.


페이스북 같은 곳에 올리는 글은 사소한 자기표현인데, 자기과시적인 측면이 없지 않다. 내가 좋고 행복할 때는 말을 많이 할 수 있다. “나 책 나왔어”, “좋은 일 있어”, “나 상 받았어” 같이 이야기할 수 잇는데, 어두운 감정, 고통이나 상실에 대해서는 사회적으로 발언할 장이 별로 없다. 왜냐면 내 아픔, 약점, 상실을 이야기했을 때 개인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사회적으로 이해관계가 얽혀 있으니까. 우리는 불행을 받아들이는데 훈련이 안 되어 있다. 연습이 안 되어 있어서 큰일날 것처럼 반응한다. 불행도 해석된 고통을 앓고 있다. 어쩔 줄을 모른다. 그래서 글을 쓴다고 생각한다. 행복한 감정이든 불행한 감정이든 밖으로 나오는 게 중요한데, 우리 사회에는 공론의 장이 없다. 기껏 하는 게 술 먹고 친한 사람들이랑 하소연하는 일인데, 그건 상황을 있는 그대로 푸념을 늘여놓는 거다. 이걸로는 고통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 불행한 일이나 개인의 고통은 공적인 자리에서 안전한 장에서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테면.


부모가 “우리 아이가 대학을 안 가서 슬퍼.” 이런 이야기를 했는데, 탈학교 아이가 밖에 나와 잘 지내고 있는 걸 보면 “이렇게도 살 수 있는데?”라고 생각할 수 있는 거다. 다른 관점으로 볼 수 있다. 우리 글쓰기 수업에도 알고 보니 부모님이 이혼한 친구들이 많았다. 부모의 이별을 받아들이는 게 힘들어서 오랫동안 말하지 못하다가, 어느 시점에 말할 수 있게 되면 홀가분해진다. 그런 게 좋은 거다. 지지해줄 수 있고 다독거려줄 수 있으니까. 내가 처한 불행이 하나부터 열까지 다 불행한 건 아니다. 행복적인 요소도 줄 수 있다. 그래서 불행한 사람이 글을 쓰는 게 아니라 불행이 글로 드러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답답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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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쓴다는 건, 나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


좋은 책을 추천해달라는 사람들에게 “서점으로 산책을 가보라”고 썼다.


사람이 단 음식이 당기면 푸드코드를 지나가다가도 케이크에 눈길을 뺏긴다. 몸이 필요한 부분을 반응하는 거다. 뇌도 몸이라서, 정서적인 부분이나 보충하고 싶은 부분이 있으면 책이 신호를 보낸다. “이 책을 읽으면 좋지 않을까?”하고. 그런데 요즘은 서점이 모두 베스트셀러 위주로 다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 좀 힘들어진 것 같다.

 

내 상황, 나에게 지금 필요한 책을 만나는 것도 쉽지 않다. 많이 접하면 조금 쉽게 찾을 수 있겠지만.


책도 많이 실패해봐야 한다. 요리사의 혀가 예민해져야 하듯이. 이것저것 읽어보면서, 책에 소개된 또 다른 책들을 징검다리 삼아서 읽다 보면, 맞는 책도 만나고 안 맞는 책도 만나면서 훈련이 된다. 나한테 딱 맞는 책을 자주 만나는 건 현실적으로 힘들다. 하지만 이 책을 만나기 위한 시행착오고, 그것이 헛된 게 아니다.

 

앞서 말한 것처럼, 글 쓰는 일이 행복하지만은 않다. 일로써 글을 써야 했을 때, 힘들었던 순간은 없었나.


프리랜서로 사보 일을 했을 때, 막판에 되게 힘들었다. 기업 이데올로기에 맞는 뭔가를 만들어내야 했는데, 본질적인 구조적인 문제는 덮고 계속 아름다운 말만 끌어내야 하는 게 힘들었다. 세상은 아픈데 나는 아름다운 이야기만 하고 있으니까 힘들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 그 일이 재미없어졌다. 사람을 만나 인터뷰를 할 때, 그 사람에게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는 건데 좋은 점만 써야 했으니까. 그 사람이 겪은 역경은 모두 성공으로 가기 위한 어떤 극적인 장치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로 풀어졌으니까. 뭔가 구도화된 느낌이 들어서 내가 여기에 익숙해지면 다른 글, 진실한 글을 못 쓸 것 같아서 불안했다. 내 글이 정형화된 틀 안에서 잔재주를 부리게 되는 게 슬펐다. 나는 내게 다가오는 느낌을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일을 관뒀다. 배운 것도 많았는데,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써도 비슷한 글이 나올 것 같아서, 나만 쓸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그만뒀다. 그 후로는 힘든 글은 별로 쓰지 않은 것 같다.

 

“글 쓰고 싶다”, “책을 한 번 써보고 싶다”는 사람들이 많다.


한 수업에 한 두 분은 책을 내고 싶어하는 경우가 있다. 조언을 많이 구하는데, 내가 가장 자주하는 말은 쓸 수 있으면 우선 써보라는 거다. 수업이 짧게는 10번, 많게는 16주차까지 진행되는데 매회 과제만 꼬박꼬박해도 16편의 글을 쓰는 거다. 쉬울 것 같지만 되게 어렵다. 얼만큼 쓸 수 있는지를 써보는 게 중요하다. 책 내고 싶어하는 사람들한테는 일단 다 쓰고 이야기하자고 한다. 대개 “내가 살아온 거 다 쓰면 전집 한 권이야” 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막상 쓰려고 하면 두 페이지도 채우기 어렵다. 현실을 아는 게 중요하다. 내가 쓰고 싶은 것과 쓸 수 있는 것의 차이가 있다. 어떤 학인은 글쓰기 수업 때 자기가 썼던 글들을 모아 책으로 만들었다. 앞으로의 30대를 잘 살기 위해서 20대를 정리하고 싶었다면서, 나한테 추천사를 써달라고 했다(웃음). 작게라도 해보는 게 중요하다. 어떤 감정이 많은 것과 언어화를 할 수 있는 건 다르다. 그건 기능적인 부분이다. 일단 어떤 방향성, 테마를 잡아서 써봐야 한다.

 

책 속에 글쓰기 수업에 참여한 학인들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부록으로 학인들의 글을 실었는데.


인용도 많이 했다. 한 분 한 분 다 허락을 구했다. 책에 들어간 게 영광이라며 되게 좋아하셨다. 이 말을 들었을 때 뭉클했다. ‘삶이란 타자에게 빚진 삶’의 줄임말이고, 나의 경험이란 나를 아는 모든 나와 나를 모르는 모든 나의 합작품인데, 누구도 삶의 사적 소유를 주장할 수 없다. 『글쓰기의 최전선』이 내 이름으로 쓴 책이지만, 글쓰기 수업에 참여한 학인들의 생각이 많이 들어 있는 것처럼, 내 삶도 누군가의 생각, 미디어의 생각, 선생님의 말, 부모님의 말로 구성된 거다. 항상 이 점을 중요하게 이야기했는데, 학인들이 잘 이해한 것 같아서 고마웠다. 가슴으로 받아들였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글쓰기의 최전선』이 말하는 글쓰기 노하우는 “왜 라고 묻고 느낌이 쓰게 하라”이다.


왜? 라고 묻는 게 정말 중요하다. 어떤 생각이나 느낌을 갖고 있는데, 누군가가 “왜?”라고 물으면 대개 대답을 못 한다. “왜 기자가 되고 싶었어?”라고 물을 때, 말을 못한다. 내가 가진 어떤 생각이나 판단이 어디에서 온 건지, 진짜 나의 생각인지 남의 생각인지를 잘 모른다. 니체는 “첫 번째 판단을 버려라. 그것은 시대가 네 몸을 통과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 생각이 아닌 경우가 많다. 내 욕망이 아닌 경우가 많다. 나에게 어떤 느낌이 들면, “왜?”라고 물어보는 게 중요하다. 대부분 ‘왜?’는 생략하고 바로 문장이 나오는 데, 글을 쓰는 건 왜?라고 묻고 나에게 일어나는 느낌에 충실해야 내 고유한 글을 쓸 수 있다. 그렇지 않고 책에서 들은 것, 멘토가 했던 말, 어떤 지식이나 정보에 의해서 글을 쓰면 고유한 글이 안 나온다. 내 느낌에 충실해서 글을 써야 한다. 글을 쓴다는 건, 자기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글은 정답이 없는 건데, 뭔가 모범답안처럼 써야 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하물며 인터뷰도 그렇다.


물론이다. 글을 쓰다가 막힐 때가 있다. 이게 안 좋다고 생각하면 왜? 라고 묻고, 그 근거를 생각해서 문장을 이어가는 건데, 내가 나를 설득하지 못하면 남도 설득하지 못한다. 글 쓰는 건 곧 질문하는 일이다. 답을 찾으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답은 있지도 않은데 있다고 생각해서 어려운 거다. 질문을 구성하는 능력이 곧 글 쓰는 능력이다. 질문이 처음에는 유치해지다가 날카로워지는 게 글의 수준이 높아지는 거다. 물론 그게 어렵다(웃음).

 

공적인 공간에서의 글쓰기도 강조했다.


글도 사람처럼 혼자서만, 사적인 공간에서만 쓰면 성장할 수 없다. 글도 사람이랑 똑같다. 세상에 나와 부딪히고 넘어져야 글도 성장한다. 블로그에 일기를 한 장 쓰고 비밀글로 처리하면, 글이 안 는다. 부끄러워도 여러 사람 앞에서 자기가 쓴 걸 읽어보고 피드백을 받는 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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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의 삶을 자신의 언어로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


오랫동안 인터뷰를 해오고 있다. 재밌지만 동시에 힘든 일이다.


인터뷰를 정말 좋아하는데, 사보 인터뷰를 하면서 어느 순간부터 비슷비슷한 글이 나오더라. 그게 싫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 내가 의미를 마음껏 부여할 수 있고 해석을 어떻게 내려도 좋은 장에서 인터뷰를 할 때는 보람도 크고 재밌었는데, 그것도 일년 넘게 하니까 어느 순간, 어떤 사람을 만나도 이야기가 다 비슷했다. 내 가치관이 너무 투영돼서 누굴 인터뷰해도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있더라. 그 사람의 고유성도 살리면서 내 가치관이 자연스럽게 녹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걸 느끼는 순간, 인터뷰를 쉬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위클리 수유너머>에서 진행했던 ‘전선 인터뷰’를 그만뒀다. 그렇게 좀 쉬다가 재개한 게, 한겨레 <나.들>에서 한 성폭력피해여성 인터뷰였다.

 

섭외뿐 아니라 속 깊은 이야기를 끌어내야 한다는 게 어려웠을 것 같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차이보다 장애인 안에서의 차이가 더 큰 것처럼, 성폭력피해여성도 개인차가 크다. 똑같은 성폭행이어도 어떤 집안의 경제적 상황에 따라 다르고, 부모의 태도에 따라 다 다르다. 그래서 더 섬세하고 조심스럽게 접근하려고 노력한 게 성폭력피해여성 인터뷰였다. 내 선 판단으로 그 사람을 미리 재단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는데 쉽지만은 않았다.

 

성폭력피해여성 인터뷰를 하면서 어떤 생각을 많이 했나?


나의 무지를 많이 깨달았다. 그 전까지는 그저 막연히 ‘되게 힘들겠다’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평소 여성문제에 관심이 많다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무관심했다는 걸 깨달았다. 인터뷰를 하면서 ‘글쓰기 수업을 함께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피해여성이 있었겠다’ 싶었다. 실제로 고백한 사람도 있다. 폭력 문제가 그렇듯이 이게 힘의 문제라는 걸 알게 됐다. 약한 자를 강한 자가 억압하고 힘으로 짓누르는 거다. 동물 같은 놈이 섹시한 여자를 보고 본능적으로 충동적으로 저지르는 게 아니라, 치밀한 계산에 의해서 아는 사람들에 의해 벌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밤보다 낮에 더 많이 일어나고, 어떠한 생사 여탈권을 쥐고 있는 사람들이 권력을 행사하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됐다.

 

꼭 인터뷰를 해보고 싶거나, 만나보고 싶은 사람이 있나.


특별히 만나고 싶은 유명한 분은 없다. 관심이 있는 건, 자기 언어를 갖지 못한 사람들이 자기 발언을 할 수 있게, 소통을 할 수 있게 어떤 매개자 역할을 해주고 싶다는 거다. 그 중 하나가 성폭력피해여성이기도 하고. 그 여성들은 정말 이중의 고통을 받고 있다. 피해자이면서 숨어 지내야 하고, 죄의식을 갖고 있으니까. 그 분들을 인터뷰하면서, 사회적인 약자들, 자기의 삶을 자기 언어로 말하기 어려운 분들을 위해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마음은 큰데 생각보다 어렵다.

 

처음부터 원하는 글을 쓰고 원하는 일만 했다면 어땠을까? 상상해본 적이 있는지.


상상해본 적은 없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좀 재미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어느 직장에 들어가도 하기 싫은 일은 해야 하니까 그런 상황이 주어질 가능성도 없겠지만. 하기 싫은 일을 하는 것도 정말 중요한 것 같다. 일을 배울 때, 하고 싶은 일만 한다는 건 내 세계 안에 갇혀 있는 거다. 먹기 싫은 걸 먹어 봤을 때, 그걸 좋아할 수도 있는 것처럼 하기 싫은 일을 하는 건 정말 중요하다. 책도 생전 안 읽어본 책, 불편한 책을 읽어보는 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학인들이 가끔 “선생님, 제가 사르트르를 읽게 될 줄 몰랐어요. 어려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안 어려워요”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다. 싫어하는 일을 안 하려고 해서 그런 경우가 많은데. 나는 이 일 저 일 해본 게, 나에게 필요했던 일인 것 같다. 그래서 내가 뭘 좋아하는지 알 수 있었으니까.

 

학창시절, 책벌레였나?


그 정도는 아니었고 그냥 좋아했다. 시 읽는 것도 좋아했고. 어릴 때 꿈은 막연히 글 쓰는 일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굳이 따지면 기자? 그것도 막연했다. 직업적인 동경이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아는 직업이 별로 없었으니까.

 

두 아이의 엄마다. 글쓰기 교육에 열을 올리는 학부모들도 많은데, 아이들을 직접 가르치나?


전혀 안 한다. 권유를 한다고 해도, 애들 입장에서 강요라고 생각하면 그건 강요인 건데. 행복한 사람은 글을 쓸 이유가 없다. 글을 안 써도 살 수 있으면 제일 좋은 거고(웃음). 재밌는 일도 많은데 굳이 써야 하나? 친구랑 수다 떠는 거, 길고양이랑 놀고, 집에서 뒹굴 거리는 게 더 행복하지 않나? 그 나이 때는 이런 게 훨씬 중요한 것 같다. 너무 그 권리를 일찍부터 빼앗는 건 어떻게 보면 폭력이다. 물론 책 읽는 것 좋다. 어휘력도 풍부해지고 공부를 잘하는 방법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좋은 성적이 나오는 건 책을 안 봐도 가능한 일이다. 저마다 고유성이 있는 건데, 책을 좋아하지 않는 아이들한테 굳이 읽힐 필요는 없다. 내 아이들을 봐도, 그다지 책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이의 본성을 꽃피우는 일이 중요하다. 아이가 원하는 일을 하는 걸 바라지, 글 쓰는 걸 바라지 않는다(웃음).

 

간혹 좋은 책을 알게 돼서, 그 책이 정말 꼭 필요할 것 같은 사람한테 추천을 해주는데. 사줘도 안 읽는다(웃음).


(웃음) 사람들은 자기 싫은 건 안 하고 필요한 건 한다. 나도 그런 집착이 있었는데, 사람들의 내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많이 내려놓았다. 그거 되게 용 쓰는 거다. 내 주관으로 남에게 권유하는 건데, 좋은 건 사람마다 다르고 자기 좋은 건 다 알아서 한다. 사람을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는 게 정말 어렵지 않나. 예전에는 막연히 알았다면 지금은 조금 실질적으로 알게 된 것 같다. 이 책이 나한테 필요하다는 건, 마치 영양분이 필요한 것처럼 몸이 필요로 하는 건데, 사람마다 다른 거다. 권해서 읽으면 좋은 거고 아니면 마는 거다. 꼭 해야 하는 거, 그런 거 없다. 자기마다 다 다르다. 사람마다 다르다.

 

『글쓰기의 최전선』이 필요한 독자들도 있을 것 같은데.


이 책은 글쓰기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론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도구적 글쓰기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삶의 속도에 너무 지쳐서 조금 물러앉아 나를 돌아보고 싶을 때, 사람들이 올레길도 가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가는 것처럼, 사유의 여행을 해보고 싶은 사람에게는 도움이 될 것 같다. 걷는 것처럼 생각의 보폭을 짚는 행위로써의 글쓰기? 이 정도를 생각하는 분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사실 글을 쓴다고 달라지는 건 없다. 글쓰기 수업을 들은 분들 중에 더러 직장을 관두고 새로운 일을 하는 분들도 있지만, 대개 원래의 삶을 그대로 산다. 사람의 삶이 바뀐다는 거, 관점을 바꾼다는 건 엄청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글을 쓰다 보면, 내가 왜 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자각은 생긴다. 너무 열심히만 살면 어느 순간, 이상한 데 가있을 가능성도 있는데. 그런 건 조금 막을 수 있지 않을까.

 

지금 저자에게 신문 1면이 주어진다면, 쓰고 싶은 글은.


세월호 이야기를 하고 싶다. 왜 아이들을 구조하지 않았는지, 그 부분을 이야기하고 싶다. 아무것도 규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유가족들과 희생자 가족들의 삶이 어떻게 됐는지, 그 절실함에 대해 말하고 싶다. 세월호 사건은 불행하지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이유를 모르는 고통이 너무 답답한 거 같다. 왜 아이를 구하는 척했지? 이런 생각을 하면 가슴이 턱턱 막힌다. 다들 우리나라가 선진국인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많은 사람이 수장된 걸 방관하게 된 이유 하나를 못 밝히는 걸 보면, 우리나라의 일상이 중지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요즘 궁리 중인 것은.


얼마 전부터 가정폭력피해여성들과 글쓰기 수업을 하고 있다. 한 번 수업을 했는데 되게 막막하고 난관에 봉착했다. 책 읽을 시간이 없고 독해할 능력이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가르쳐야 하나? 고민하고 있다. 6월부터는 저소득층가정 여성 분들과 글쓰기 수업을 하기로 했는데, 어떤 책을 가지고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어떻게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을까가 내 고민이다. 전향적으로 사고해야 하는데, 쉽지 않아서 계속 고민 중이다.

 

다음 책이 무척 기대된다.


모르겠다. 굳이 내가 안 써도 좋은 책이 많이 나온다고 생각하면, 안 쓸 것 같고. 내가 꼭 해야 할 말이 생기면 쓰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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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의 최전선 은유 저 | 메멘토
이 책은 “삶의 옹호로서의 글쓰기”를 화두로 연구공동체 수유너머R과 학습공동체 가장자리에서 글쓰기 강좌를 진행하고 있는 은유의 글쓰기론이다.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누구나 맞닥뜨리게 되는 문제들, 고민들, 깨침들에 관한 이야기와 지난 4년간 글쓰기 수업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그 섬세한 변화의 과정을 담았다. 특히 ‘안다는’ 것보다 ‘느끼는’ 것에 굶주린 이들을 위한 글쓰기, 그리고 ‘나’와 ‘삶’의 한계를 뒤흔드는 책읽기, 인간에 대한 이해를 돕는 ‘르포와 인터뷰 쓰기’를 중심으로 풀어냈다.


[관련 기사]

- 셀피족의 어머니 비비안마이어 『나는 카메라다』
- 자기 과시의 시대, 조용한 진짜 영웅들
- 우리말 전문가에게 듣는 동사 이야기
- 소이 “지금도 무언가를 버티고 있는 사람들에게”

- 최영희 “와 닿지 않으면 문학도 학습지겠죠”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딥플로우, 당신이 TV에서 보지 못한 진짜 힙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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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그라운드 래퍼 앨범이 버스 측면광고로 붙었다. 험상궂은 민머리 사내가 ‘당신이 TV에서 보지 못한 진짜 힙합’이라는 문구와 함께. 우리가 만난 건 음반에서 듣지 못한 유쾌한 딥플로우, 인터뷰 내내 웃음이 번졌다. 웰메이드 힙합 앨범 < 양화 >부터 그의 레이블, VMC 또 한국 힙합에 대한 흥미로운 생각들까지, 성심성의껏 짚어주었다. 

 

앨범 발매가 작년 겨울에서 올 4월로 연기되었습니다. 무슨 이유였나요?


원래는 지난해보다 한해 전, 2013년 겨울이었는데...(웃음) 저의 계획은 그랬는데, 1년 반 정도가 연기된 거죠. 맡은 일이 여러 가지여서, 밀린 것도 있지만 비트가 바뀌었던 게 가장 큰 이유였어요. 비트를 고르면 바로 픽스하고 진행하는 추진력이 필요한데 계속 마음이 바뀌고, 그러다보니 오래 걸리게 되었습니다.  

 

< 양화 > 발매 전, 마지막 활동이 < 언프리티 랩스타 >에 나간 것 입니다. 출연을 어떻게 결정하셨나요? 


최근 인터뷰들에서 < 쇼미더머니 >를 향한 제 비판적인 입장에 대해 그럴 자격이 있느냐, < 언프리티 랩스타 >도 나가 놓고 앞뒤가 다른 것 아니냐는 피드백이 많았어요. 동감하고 후회하는 부분이에요. 저는 당시, 섭외가 왔을 때 2회까지 본 상황이었어요. <쇼미더머니>와는 다르게, 더 예능적인 시각으로요. 그러다 재미없어져서 안 보고, 한창 앨범 작업하는 중에 연락이 왔죠. 심사라기 보단 투표고, 다른 래퍼 분들도 많이 오신다, 하면서 제가 알고지내는 좋은 형들 이름을 얘기하더라고요. “잔뜩 오니까 오셔서 관람하시고 투표해주시면 됩니다. 가볍게 오세요.” 그래서 가볍게 갔는데 그런 포맷으로 준비해놨더라고요. 제가 선택한 거니까 어쩔 수 없죠, 하지만 그 프로그램 방향성에 동조한다기보다 ‘그냥 간 거’예요. 함부로 행동했다가 뒤탈이 난 경우죠. 이번 일로 뮤지션이 자신의 음악, 가사와 일관성 있게 입장을 취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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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본격적인 < 양화 > 이야기 해보죠. 3년 반 만에 솔로 정규로 돌아왔습니다. 기분이 어떤가요?


지금은 발매된 지 꽤 지나서, 축하받거나 좋았다고 연락 오는 일은 없어지는 시기에요. 다시 앨범 내기 전 상태로 돌아가는 것 같은데, 딱 나왔을 땐 엄청 좋았어요. 우선< 양화 >가 제겐 상징적인 앨범이었거든요. 20대에서 30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제작한 앨범이고, 그때의 어떤 중2병 같은 감성도 있고... 또 환경이 바뀌고 과정이 힘들어지면서, 이 숙변을 싸고 나면 평화로워지리라. 창문을 열고 분위기 환기하는 기분일 것이다. 라고 제게 의미를 부여했는데 막 체감 되지는 않더라고요. 저는 아침형 인간도 되고 살도 빠지고 그럴 줄 알았어요.(전원 웃음) 앨범 나오면 내가 많이 바뀌고, 리프레쉬되서 건강한 사람이 되겠지 했는데 그런 거 없더라고요.


또 좋았던 건, 피드백. 제가 발표하고 나서 받은 피드백 중 가장 좋았어요. 원래 좋은 거 내면 이렇구나를 느꼈죠. 전에는 커뮤니티에 글이 올라오거나, 지나가다 만난 뮤지션이 잘 들었다고 하는 정도였는데 이번엔 커뮤니티, SNS에 글도 많았고 평소에 아예 연락 안하고 제 결혼식에도 안 올 것 같은 뮤지션들이 막 연락했거든요. 제 생각에는 원래 앨범이 좋으면 ‘좋다’ 라고 생각만 해요. 그다음 단계로 좋으면 SNS로 샤라웃하는 거고, 그 다음으로 좋으면 연락을 하는 건데 연락을 생일 때보다 더 많이 받았어요. 제가 리스펙하는 형들도 전화 와서 “뭐 뭐 좋았다.” 말씀해주시는데, 이 사람이 어떤 기분으로 전화했는지 알 거 같으니까 더 공감되고, 좋았죠. 

 

앨범 프로모션으로 양화대교 지나는 버스에 광고를 건 것은 기발했습니다. 미리 공개된 ‘잘 어울려’ 뮤직비디오도 감각적이었고요. CD는 639(류상구, 딥플로우의 본명)장만 찍고 VMC 카드 주는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흐름을 이어갈 멋진 < 양화 > 관련 결과물들이 더 있나요?


제 콘서트 때 다른 힙합 공연과 달리 무대에 투자해 볼까 생각중이에요. 나스 20주년 콘서트에서 무대를 < Illmatic > 배경, 퀸스브릿지처럼 꾸며놓았더라고요. 인상적이었고, < 양화 >도 공간적인 배경이 있으니까 욕심내고 있는 부분이에요. 외적으론 조금 더 재밌는 느낌을 원해서, 버스킹 해보고 싶어요. 날씨가 따뜻해지면 버스킹 하고 시디도 팔고. 아니면 양화대교 위에서 공연? 아직까진 구상하고 있는 것들이에요.(웃음) 

 

본격적인 앨범 이야기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대부분의 비트를 TK에게 맡겼죠.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원래는 비트를 손 쓸 수 있는, 손이 닿을 수 있는 한에서 다 들어봤어요. 하다하다 SNS에 메일 주소를 올려 받아 보기도 했고요. 개인적으로 안 좋다고 생각하는 방법이긴 한데, 너무 방법이 없었어요. 원하는 콘셉트가 분명한데 거기에 맞는 비트가 없었거든요. 결국 신뢰하는 TK에게 밑그림을 그려주면 TK가 후반 작업을 맡는 방식으로 작업했어요. 그리고 틈틈이 저의 초안 없이 독자적으로 쓴 비트를 들려주기도 했는데 그중 < 양화 >에 어울릴법한 트랙도 가져왔어요. 그래서 TK의 비트가 많이 실리게 된 거죠.

 

대체적으로 가사를 먼저 쓰셨다 들었습니다.


처음 그런 방식으로 작업하게 된 계기는 변심 때문이에요. 비트를 받아놓고 변심하게 되면 가사 진행이 어렵거든요, 안 꼴리니까. 비트를 반납하자니 프로듀서에게 실례고 해서, 원하는 비트나 템포에 작업한 뒤 아카펠라를 보내주는 방식을 택했어요. 더 빨리 나오고 변심할 확률도 줄어들고, 이젠 버릇이 되었어요. 크루 친구들에게도 추천하는 방법이에요.   
 
가사를 먼저 쓰셨다는 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분명했다’는 증거이기도 하겠죠? 


콘셉트 앨범이니까, 시나리오를 정한 거죠. 배경을 정하고, 담을 이야기도 정하고, 각자의 역할을 정했는데, 개별적인 트랙으로도 가치가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깔리니까 당연히 가사를 먼저 썼어야 했죠. 그것을 뒷받침할 비트 고르기도 힘들었던 것 같아요. 원래는 이렇게 안하죠. 처음 해본 거예요.

 

이번 앨범의 중심에는 딥플로우와 류상구가 공존합니다. 그것이 양화(兩話)겠죠? 전작에선 꺼내지 않던 개인사를 이번에 털어놓은 이유가 무엇인가요?


< Heavy Deep >의 몇몇 트랙에서 맛을 봤거든요. 「Welcome to the club」같은 노래로 제 이야기를 다루면서 느껴지는 피드백, 성취감이 이 더 코어한 느낌이 들었어요. 음악을 하고 랩을 하는 이유마저도 거기서 더 코어함을 느꼈고요. 전 그래서 누가 제 1집 앨범 좋다고 하면 속으로 아무것도 모른다 생각해요.(전원 웃음) 그때 저도 분명히 뇌가 있었겠지만 실체가 없는 가사들이 많아요. 전부터 막연하게 랩은 메시지야 라고 해왔는데, 내게 메시지가 될 수 있는 게 뭔지 안 시점부터는 내 이야기 하는 것이 당연하게 되었죠. 남의 음악을 들을 때도 그런 것이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해졌어요.

 

처음으로 부모님에게 본인의 CD를 드렸다고 들었습니다. 부모님은 어떻게 들으셨나요?


시디를 드렸지 들려드리지는 못했어요. 그래서 반응은 모르겠네요. 자연스럽게 들려드리고 싶어요. 공감에 나온다든가, 콘서트에 초청해서요. 관심은 많으세요. 이름도 헷갈려 하시고 하시지만 항상 저를 응원해주시죠. 그 정도 향유하는 것에 만족해요. 더 나아가서 음악에 제 가족이야기를 담은 것도 알아주시면 더 좋고요.

 

이후의 앨범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솔직히 이런 식은 진절머리가 나있는 상태라, < 양화 >같은 앨범은 당분간 나오지 않을 것 같아요. 원래 음악시장 논리상 먹힌 거를 또 하는 게 맞는지만, 관심이 없어요. 흥미 있는 게 아니라면 저에겐 의미 없고요. 이제는 딥플로우 콘텐츠로 못해본 거를 해보고 싶네요. < 양화 >가 웰메이드라면 이제는 뤄(Raw)한 걸해보고 싶어요. 믹스테이프를 내거나 차에서 듣기 위한 트랙이 끊기지 않게 믹싱이 된 결과물이라든지. 더 언더그라운드, 날 것의 음악을 해보고 싶어요. 전혀 돈이 안 될 것 같지만요.(웃음)   
 
한국 힙합 신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합니다. 대표적으로 「열반」과 「불구경」에서 부정적인 신의 생태를 보고하죠. 적나라합니다. 그렇다면 딥플로우 씨가 생각하는 2015년 한국 힙합 신의 밝은 면은 무엇인가요?


제가 완전 이런 얘기만 해서, 제 스스로가 씹꼰대 도장을 찍는 것 같아 두렵기도 하지만 저는 없는 것 같아요. 전혀 없다고 하기에도 뭐가 있겠지만, 저는 없는 것 같아요. 제가 칼럼리스트가 아니라서 논리정연하게 정리해 드리지는 못하겠는데요, 신에 오래 있었던 사람으로서 망조가 보여요. 일단 차세대들의 성향,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거랑 달라요. 단순히 요즘 애들은 쯧쯧하는 게 아니에요. 저는 오히려 그 다음 세대, 이제 태동하는 애들이 멋져 보여요. 던 말릭 같은 친구의 인터뷰 애티튜드나 가사를 보면 96년생인데, 나이 많은 친구들보다 애티튜드가 좋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저의 다음 세대가 망치고 그 다음 세대가 잘되지 않을까 생각은 하는데... 이걸(웃음) 인터뷰에 싣기도 좀 그런 게 막연해요. 하지만 촉 있잖아요. 촉! 새와 쥐가 도망가면 날씨가 어떻게 되고, 그런 논리인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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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에 오래 계셨는데 그 동안 팬들의 성향도 많이 변했죠?


유행의 주기가 10년 주기로 변한다고 하는데, 그걸 확실하게 느꼈어요. 1세대 MP힙합은 성인이 엄청 많았는데. 빅딜, 소울 컴퍼니 때는 중고생들이 많았거든요. 그건 뮤지션들의 성향, 겉모습과도 관련이 있는 것 같아요. MP힙합 때는 간지나는 형들이 많았어요, 주석 같은. 하지만 소울 컴퍼니와 빅딜은 그냥 랩 잘하는 형들.(웃음) 그러한 성향이 팬들의 경향도 바꾼 거죠. 다시 10년이 돌아와서 일리네어 코홀트처럼 비주얼 적으로 스웩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각광을 받고, 성인 팬이 많아지는 게 보여요. 서브 컬쳐를 동경하는, 신에 유입되고 싶은 성인들이 있거든요. 단순히 음원만 냈을 때와 라이프 스타일까지 보여줬을 때가 많이 차이 나게 되는 거죠. 공연장엔 아직 여중고생이 많아 보여도 파티가 열리면 예전과 달라요. 또 팬들이 생각하는 멋진 힙합, 멋진 래퍼의 기준에 곤조도 느껴지고요.  

 

작두」에 대한 반응이 뜨겁습니다. 비트도 딥플로우 씨가 만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떻게 만들게 되었나요?


기획을 했던 거죠. 앨범에 필요한 킬링 트랙인데. 의도가 성공적으로 먹혔어요.


제 전작에서 가장 반응이 좋았던 트랙이 「이 구역의 미친놈은 나야」예요. 저는 기믹이 너무 보여서 싫어했는데, 덕분에 공식을 알았죠. 제 옆에 어떤 래퍼들을 배치하고 어떤 주제에 어떤 콘셉트와 어떤 분위기로 가면 킬링 트랙이 된다 라는 공식. 그런 지점들을 이용해 만든 노래예요.

 

주제가 굳이 「작두」인 이유가 있나요?


크루나 랩 레슨 친구들에게 라임을 설명할 때 나온 거예요. 제가 생각하는 상위 클래스의 라임은 명사/명사 혹은 뭐 명사/동사 이런 걸 넘어 의미까지 링크가 되는 그런 라임이거든요. 그걸 설명할 때의 예시가 작두/싹뚝이었어요.

 

「작두」에서 넉살 씨와 딥플로우 씨의 래핑이 완전 달라 이질감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의도하신 장치인가요?


제가 랩을 먼저 녹음하고 허클베리 피를 섭외했죠. < 분신 >이라는 공연 브랜드를 운영하는 친구라 「작두」 콘셉트에 제격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넉살에게 “이런 트랙이고 넉살아 헉피랑 같이 할 건데 이 곡은 네가 주인공이 되어야 해”라고 했죠. 제 노래지만 넉살은 제가 푸시해야 하는 뮤지션이기도 하니까요. 저는 넉살이가 이 곡에서 1등이길 바랐어요, 헉피를 섭외했지만.(전원 웃음) 주인공 만들려고 넉살이 가사도 한 번 엎고 그랬었어요. 두 번째 쓴 가사가 지금 결과물이에요.


결국 「작두」가 의도대로 킬링트랙이 되어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죠. 저보다 넉살이 주인공이 된 것도 의도였지만 제 계획에 헉피는 없었거든요.(웃음) 사람들이 넉살, 헉피를 좋아하면서 저는 꼴찌가 됐어요. 왠지 모를 씁쓸함이 있습니다.

 

「이 구역의 미친놈은 나야」 말씀 하시니까 넉살 씨가 지구인 씨와 매칭이 되네요.


그렇죠. 저는 우리나라 로우 톤 래퍼들의 핸디캡에 대해 다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들을 역이용한 거예요. 전달력이나 속도감, 제가 부족한 부분을 채움으로서 더 재밌어지는 거죠.

 

랩 스타일을 확고하게 유지하고 계십니다. 바꾸고 싶은 적은 없었나요?


저로서는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해요. 1,2,3집 랩이 다 다르게 들리거든요. 그중 지금 랩이 가장 내추럴한 느낌인 것 같고요. 그런데 피드백은 지루하다는 이야기가 많았어요. 인정하는 부분도 있지만 랩은 이렇게 하면 되지 않나 라는 사상이에요. 아이돌 래퍼들도 랩 서커스하듯이 스킬을 잘 보여주는데 저는 하고 싶지 않아요. 비프리나 팔로알토 정도로, 라이밍하는 랩을 하고 싶어요.

 

「당산대형」이란 콘셉트는 어떻게 작업하게 된 건가요?


일단 작업실이 당산동에 있어서 떠오른 것 같아요.(웃음) 여러 가지 오마주를 넣었죠. 이소룡 영화, 소울스케이프 형, 완전 형님 앁(Shit)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리고 개인적인 생각인데 우리나라에 트랩이라는 사운드가 정착 되려면 약간 B급 느낌이 첨가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마약 얘기를 다룰 수 는 없잖아요. 또 사운드는 트랩인데 보여주고 싶었던 바이브는 우탱클랜이었죠. 그래서 소울스케이프 형께 스크래치도 부탁드리고 “트랩에 스크래치를 해달라니”라는 말도 들었어요. 

 

중요한 건 아니지만 들을 때마다 궁금했던 것이 스킷입니다. 앨범을 전체적으로 끈끈하게 이어주는데요, 설정 하지 않고 녹음한 것인가요?


까발려보자면 다른 것들은 다 내추럴하게 녹음이 된 거고, 「낡은 신발」만 아니에요. 실제로 제가 택시를 자주 타는데 매번 듣는 질문이 “왜 머리 밀었어요? 스님이에요? 운동선수에요?” 그런 질문을 정말 많이 듣거든요. 그래서 그걸 녹음해야겠다. 마음먹고 1년간 녹음기 켜고 다녔는데 딱 그 질문이 끊겼어요!(전원 웃음) 택시 탈 때마다 괜히 목소리 톤도 다듬고 대사를 똑같이 치는데 요즘 기사님들은 말씀이 없으시더라고요. 마스터링하기 삼일 전까지 안 돼서 따로 아저씨 같은 목소리의 형을 섭외해서, 녹음했죠. 그동안 녹음했던 소스들과 이 형의 목소리를 섞은 게 결과물이고요. 나머지는 실제 녹음한 것들입니다.

 

「Bucket list」 끝 부분의 통화는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이었나요?


우탄이의 목소리인데... 우탄이가 새벽에 전화할 땐 항상 같은 내용이에요. 술 취해서 “형님~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런 오그라드는 건데 저는 놀리려고 녹음 버튼을 누르죠. 아마 그거 녹음한 날은 자기 앨범, < Zooreca > 낸 날이었을 거예요. 저희가 모여서 힙합플레이야 라디오도 나가고, 축하 술자리도 갖고 있던 도중에 로꼬의 싱글이 나와서 1위를 했어요. 그걸 보고 제가 속상했죠. 우탄이는 괜찮아했는데 우탄이가 열심히 만든걸 아니까... 물론 로꼬도 열심히 했겠지만 뭔가 씁쓸해서 집에 먼저 갔어요. 갔는데 전화가 온 걸 녹음한 거죠. 

 

지금 잠깐 얘기가 나왔는데< Zooreca >도 그렇고 VMC는 앨범 전체적인 흐름에 신경을 많이 쏟은 게 느껴집니다. 앨범을 한 번에 듣는 사람이 거의 없어지고 있음에도 흐름에 열의를 쏟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앨범을 정주행해달라고 하면서도, 간지러워요. 나도 그런 식으로 감상 안 하니까. 저한테는 형식미에요. 그리고 그렇게 듣지 않아도 감상법은 그거니까요. 또 이런 식이 아니라면 굳이 앨범의 형태로 만들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요.

 

딥플로우 씨가 청자로 누렸던 쾌감을 본인도 선사하고 싶은 생각에서 앨범을 만든 것은 없나요?


당연히 있죠. 하지만 그렇게 듣지 않아온 어린 친구들에겐 강요할 수 없는 거죠. 그런데 켄드릭 라마가 그걸 납득시키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보여주면 설득력이 생긴다는 걸 알고 힘을 얻었어요.

 

래퍼로서 가장 큰 욕심은 무엇인가요?


제가 하고 싶은 것을 제대로 구현하고 싶어요. 또 제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막연하게 장래희망이 있어요. 내 랩이 완성되었을 때, 내가 랩 마스터가 되었을 때 이런 느낌일거야. 라는 게 있어요. 어떻게 보면 잘 하고 싶은 욕망, “피쳐링 해줘” 했을 때 ‘내가 다 조져야지’ 이러한 욕심의 근원지일 거예요. 거기에 가까워지기 위해서 계속 하는 거 같아요. 죽을 때까지 없어지지는 않을 것 같은 제 원동력 같은 거죠.


포지션 적으로는 나중에 A&R이 되고 싶어요. 저는 래퍼로서 멋없는 나이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거 있어요. 솔직히 저는 제이지 새 앨범 기대 안 되거든요. 잘 하겠죠. 블록버스터 같은 거잖아요. 저는 차라리 제이 콜이나 켄드릭 듣겠다는 거예요. 여튼 그런 나이가 되면 그동안 쌓아둔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제가 생각하는 멋진 것들을 유지시키고 발전시키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똘배(석찬우)가 이런 걸 제대로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이에요. 유입된 지 오래됐고, 상황도 알고 뮤지션도 이해해주고, 문화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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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블의 사장님으로서 가장 큰 욕심은 무엇인가요?


애들이 돈 벌면 저도 버는 거잖아요. 다들 돈 벌 수 있는 환경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각각 개인의 성취도 있겠지만, 상징적으로 비스메이저가 돈 버는 구조라면, 새로 생기는 레이블들도 승산이 생기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걸 보여주고 싶고, 가장 이상적인 형태는 하이라이트처럼 보이거든요. 정공법으로 정당한 성취를 얻고 있는 것 같아 멋져 보여요. 저희도 다른 이들도 그렇게 나아갔으면 좋겠어요.   
 
VMC가 음악에 비해 과소평가 받는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저도 그렇게 느끼고 있어요.< 양화 > 앨범 내기 전까지만 해도 부당하다고 느끼는 편이었는데, 좋은 거 내면 이미지가 바뀌고 인정받지 않을까 라는 진리 같은 것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아직 많이 보여준 것도 적으니까요. 더 열심히 하고 멋있는 거 많이 보여주면 당연히 인정 받겠지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물론 <쇼미더머니> 나가면 그 순간이 더 빨리 찾아올 것 같지만 저희는 그러지 않을 거고, 정공법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있어요.  

 

허클베리 피의 < 분신 >이나 그러한 공연 브랜드를 만드는 것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희도 < 비스메이저 리그 >라는 이름으로 하고 있는데, 브랜드가 되기에는 모호한 거 같아요. 또 비스메이저 하면서 제 것도 계속 하다보니까 온전히 신경을 못 쓰기도 했고요. 앞으로는 온전히 비스메이저에 신경을 써서 공연 브랜드 제작이라든가, 친구들 앨범 콘셉트도 잡아 주고 해야죠.

 

< 양화 > 이후, VMC의 다음 스텝은 어떻게 되나요?


넉살의 앨범, < 작은 것들의 신 >이 나올 예정이에요. 10트랙이고 LP, EP 구분 없고요, 동명의 소설을 모티브로 만든 앨범이고, 메인 프로듀서도 따로 없어요. 제가 디렉팅해 준 정도, 6월 말 ~7월 초쯤이 목표예요. 또 여름에 TK 프로듀싱 앨범이 나올 거고요. 던 밀스, 우탄 다 작업하고 있는데, 던밀스가 속도가 빨라요. 지 혼자 “했어유~” 하면서 들려주는 앤데 제 계획에는 없고요.(웃음) 오디라는 친구도 중간에 미니 앨범을 낼 예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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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플로우 기사에 꼭 달리는 댓글이 ‘진짜 힙합’입니다. 가장 청렴한 래퍼의 이미지를 갖고 있기 때문이죠. 본인은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좋죠... 돈 주고 살 수 없는 이미지니까. 제가 하고 있는 음악에 그런 이미지가 있다고 느끼신다면 감사하죠. 그런데 최근에도 가사에 진짜 힙합이라는 단어를 담는데 당시 워드플레이일 수도 있고, 단순한 단어 선택일 수도 있는데, 요즘은 패러다임이 바뀌는 것 같아 그런 단어가 민망해요. 하지만 로망이긴 하죠. 솔직히 우리가 토론을 할 때 진짜 “힙합이 뭐냐?” 라고 하면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 있는 있지만 각자의 기준은 가슴 속에 있잖아요. 모호하게라도. 늘 하고 싶고, 티내고 싶은 게 입으로 말하지 않더라도 썸즈 업 할 수 있는 느낌. 말로 하는 게 아니고 그 느낌을 유도해 낼 수 있으면 성공한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에요. 내 입으로 내가 진짜 힙합이죠 라고 하기엔 민망해요. 그 실체가 없으니까.

 

이즘의 공식 질문이기도 한데요, 인생의 음반 3장을 꼽아주세요.


일단 일매틱 들어가고 음... (최근에 힙합 첫사랑이라면서 인스타그램에 몹딥 올리셨었죠. 넣어드릴까요?) 네 몹딥< The Infamous >그리고... 그냥 클래식으로 가죠. < The Blueprint >, 정말 뻔하네요.(웃음)

 

인터뷰 : 황선업 전민석
사진 : 이한수
정리 : 전민석

2015/05 전민석(lego9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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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동 “누구나 백조인 시대, 누구나 오리여도 괜찮은 시대가 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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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하다고 생각되던 것이 가능한 것이 되고 쓸모없다고 여겨지던 것이 쓸모를 찾는 것은 모두 상상력에서 비롯된다. (172쪽)

 

상상력 넘치는 마을들이 펼쳐진다. 사람들이 마을 안에서 ‘놀고, 먹고, 모이고, 협동하고, 말하고, 예술하고, 교육하고, 일하’면서 함께 산다. 외로웠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지금의 교육과는 다른 살아있는 삶을 가르치고 싶어서, 삶의 방식을 공유하기 위해, 우리의 이야기를 전하고 우리가 주인공이 되는 언론을 만들려고, 삶의 공간에 예술을 녹이고, 안전한 먹을거리를 만들기 위해, 사람들이 모였다. 드물게 역동적이고 정겹다. 차갑고 복잡하기만 한 서울이라는 공간 안에 이런 마을이 살아 숨 쉬고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물론 그곳이 낙원은 아니다. 사람 사이에 갈등도 있고, 이런저런 어려움도 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마을이라는 의미일 터다. 『마을을 상상하는 20가지 방법』에는 우리가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멋진 가치들이 살아 숨쉬는,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마을이 있다. 이 마을들의 모습이 기막히게 매력적이어서 내가 사는 이곳에도 당장 가져오고 싶은 마음에 엉덩이가 들썩일 정도다. 생동감 넘치는 이야기를 읽어 내려가다 보면 서울 하늘 아래 멋진 모습으로 자라난 ‘어느 특별한 마을들’ 가운데 내가 살고 싶었던 곳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그려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인상적인 것은 많은 마을들이 ‘먹을거리’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우리를 충격에 빠뜨렸던 뉴스들을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밥상 위에 오른 이 음식들이 어떤 곳에서 나고 어떤 길을 통해 왔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불안감은 누구에게나 있다. 이런 세상에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것을 상상한다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며, 안전한 먹을거리의 회복은 곧 안전한 삶터의 회복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터뷰 역시 ‘밥상’에서 이뤄졌다. 밥을 함께 먹으며, 이야기인 듯, 인터뷰인 듯 다양한 이야기를 두 시간이 넘도록 나누었다. ““밥 한 번 먹자”는 말 뒤에는 식사 한 끼가 주는 신뢰의 공유”(45쪽)를 만끽했던 것이다. 당신도 오늘 저녁, 맛있는 밥을 좋아하는 사람과 꼭 함께 나누길 바란다.

 

 

새로운 마을의 싹이 트고 있는 시대


박재동 선생님께는 ‘시사만화가’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다니는데요. 이번에는 ‘마을’입니다. ‘마을 공동체’에 원래 관심이 있으셨나요?


박재동:삽화를 그리면서, 즐거웠어요. 내용이 좋으니까요. 마을에 늘 관심이 있었어요. 나 같은 사람은 아주 어렸을 때 마을공동체에서 자랐어요. 5, 60년 전 마을은 초가로 된 집들의 공동체였고, 모든 사람들의 직업이 똑같은 곳이었죠. 사람들의 관심사도 같고, 아이들도 다르지 않았고요. 하나의 공동체로 짜여있었어요. ‘마을’이 어떤 것이라는 게 머릿속에 딱 있죠. 그림도 바로 그릴 수 있을 정도로요. 초가집, 당산나무, 우물가, 학교, 이런 식으로 말인데요. 마을 전체가 하나의 삶을 사는 느낌이 있었어요. 물론 개개인도 있지만요. 누구네 집에 무슨 일이 생기면 함께 가서 일도 하고, 울어주고 하는 식이었어요. 도시로 오면서 마을의 단절을 느꼈어요. 새로운 마을의 싹이 트고 있는 시대예요.

 

이웃, 마을과 단절된 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습니다. 전하고 싶으셨던 메시지가 있다면요?


박재동: 제가 살던 마을은 프라이버시라는 게 거의 없었어요. 투명한 사회죠. 한 번 찍히면 큰일인데, 도시는 그게 돼요. 그게 도시의 강점이죠.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어요. 제가 시골마을에 살다 부산으로 이사를 갔는데, 많이 놀랐죠. 전부 뜨내기들이었어요. 여기는 마을이란 개념이 없어진 거예요. 집에서 쫓아내질 않나, 사기꾼들이 있질 않나, 말도 엄청 험하고요. 그 후 서울에 왔는데 여기는 더했어요. 하숙생에게 무슨 마을이 있겠어요. 지금도 살고 있는 곳이 우리 동네기는 하지만 이게 동넨지 모르겠어요. 그러다보니 마을의 개념을 달리 해야겠다 생각이 들어요. 워낙 자주 이사를 가고 오니까요. 지금은 아파트촌도 마을이고, 직장도 마을이죠. 옛날과는 다른 거예요. 인터넷 안에도 새로운 마을이 있더라고요. ‘우리 마을이다’ 말할 수 있는 곳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무조건 예전의 마을을 생각하신 건 아니군요. 도시에도 그 나름의 장점이 있다고요.


박재동: 어렸을 때 어두운 밤하늘에 별이 반짝반짝 떠 있는 것을 보면 아름답지만 한편으로는 외로웠어요. 지금은 별을 못 보지만요, 우리끼리 사는 이곳에 별이에요. 자연 조금 잃어버려도 항상 전기도 들어오고 좋죠.(웃음) 옛날엔 밤이 아주 캄캄해서 무섭고 외로웠어요. 특히 어디 갔다가 늦게 들어올 때면 캄캄한 길을 오래오래 걸어서 겨우 집 근처에 다다라요. 방에 켜 있는 조그만 빛이 겨우 보일 뿐이에요. 지금은 천지사방이 빛이잖아요. 지금은 안 걸어도 되지만 걷는 거고요. 예전에는 무조건 걸어야 했죠. 이렇게 만나려면 엄청 오래 걸렸어요. 예전 마을의 좋은 점만 생각하면 돼요.

 

‘온라인’을 통해 ‘마을’의 가능성을 확인한 사례가 의외로 많아요. 말씀하신 것처럼 박재동 선생님께서도 온라인 마을을 상상하시고요. 사회가 변화하면 수단을 달리 해서도 기존의 소중한 가치를 이어나갈 수 있음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 아닐까 싶어요.


박재동:‘톡’이 내 마을이에요.(웃음) 괜히 들여다보고, 또 심심하면 보는 거예요. 난 좋게 생각해요. 안 보려면 안 볼 수도 있잖아요. 선택할 수 있어요. 내가 사는 도시에는 ‘우리 동네 놀러와’ 할 수 있는 게 없거든요. 음식이 좋은 게 있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고요. 동네 사람들도 사귀었다 싶으면 이사 가잖아요. 별 게 없는 거예요. 내가 떠난다 해서 섭섭할 사람도 아무도 없죠. 온라인도 새로운 마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정신적인 가치를 나누는 사람들은 다 온라인에서 만나거든요. 옆집 사는 사람과 정말 속 깊은 얘기 못하잖아요. 인사하는 정도죠. 생각을 나눌 수 있는 게 중요한 거예요. 그게 마을의 중요한 부분이에요. 그것이 없으면 외로운 거죠.

 

아파트 사례가 가장 처음 소개 되는데, 어떤 의도가 있었던 건가요?


김이준수:의도가 있던 건 아니고요.(웃음) 다만 아파트라는 공간에 대한 고민은 다들 많이 하고 있죠. 서울시에서 커뮤니티 플래너라고 해서 대단지 아파트 안에 커뮤니티를 만들어주는 그런 분들도 운영하고 있기도 하고요. 아파트 쪽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는 구조죠. 아파트에 사는 사람의 비율이 50%가 넘으니까요.

 

대화의 단절이나 공동체 가치의 훼손을 이야기하면서도 상상력이 부족했다는 생각을 했어요.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과 공동체를 만드는 일이 이렇게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거든요.


박재동: 나라를 만들어야겠어요.(웃음) Republic of Human. 온라인상에서 만들면 되거든요. 좀 더 인간답고, 가치 있게 살자는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만들면 되는 거예요. 국경을 초월해 정말 사람을 위한 곳이 되는 거죠. 작은 일이라도 세상에 도움이 되는 것을 할 수 있어요. 예전에는 생활이 전부 땅에 있었지만 지금은 달라요. 마을도 얼마든지 그렇게 될 수 있어요.

 

이번 작업을 통해 영감을 많이 얻었다고 하셨잖아요. 특히 ‘마을’이라는 것의 어떤 부분이 영감을 주었는지 궁금해요.


박재동: 사례 하나하나 모두 새로운 시대, 새로운 문화를 예고하는 새싹 같아요. 그래서 이 작업할 때 굉장히 즐거웠죠. 김이준수 씨도 글을 잘 썼잖아요. 종일 그림을 그리면 힘든데요, 그래도 힘든 줄 모르고 했어요. 내용이 ‘마을’ 곳곳을 의미 있고, 가치 있게 만들어주고 있으니까요. 어릴 때 사라졌던, 내게 부족했던 ‘마을’의 모습이 있었어요. 뜨내기가 모인 곳에서 나 자신도 뜨내기인 상태, 마을에 대한 기대가 전혀 없었던 상태에서 마을을 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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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업도 예술이 될 수 있어


마을의 힘이라는 것은 곧 ‘이야기’의 힘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각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고, 듣고 싶고, 다른 이에게 의미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박재동 선생님께서 마을 사람들이 예술가가 되면 “오직 먹고살기 위해 하는 일이 아니라 뭔가 문화적인 가치를 지닌 일로 만들어준다”(239쪽)고 한 부분도 그런 맥락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박재동: 마을에 좀 가치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우리 동네에 이런 게 있다, 할 수 있는 가치 말이에요. 그런 가치들을 뜻 있는 사람들끼리 하나씩 심고 있기도 하고요. 우리 동네에 어떤 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자랑이 되고 이야깃거리가 되고 희망이 되죠. 그런 점에서 이 책이 굉장히 가치가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어요. 이렇게 정성스럽게 가치를 심는 것이 무척 소중해요. 또 제가 생각하는 것이 있어요. 요즘 음식점이 많잖아요. 스파게티 집, 베트남 쌀국수 집 등등. 미용실도 있고, 커피숍도 있고, 휴대전화 매장, 당구장, 기원도 있죠. 나는 그런 일 자체가 참 가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곳이 존중받는 그런 마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특별히 그런 생각을 하시게 된 계기라도 있으신가요?


박재동: 한 번은 풀빵을 굽는 아주머니를 봤어요. 우리 어머니께서 풀빵 장사를 하신 적이 있고, 저도 풀빵을 구웠기 때문에 자연히 마음이 갔죠. 그 아주머니를 그리려고, 풀빵을 많이 사면서 허락을 구했어요. 그리면서 이야기를 나눴어요. “아이들 키우면서 장사하느라 힘드네요. 이렇게 살면 좋은 날이 올까요?” 저보고 그래요. “그럼요.” 하고 그런 이야기를 그림 옆에 썼죠. 다 그리고 아주머니 성함을 물어보니 이름은 쓰지 말라고 해요. 그때 너무 가슴이 아팠어요. 우리 어머니도 이 장사를 해서 나를 키웠고, 나도 풀빵을 구웠는데 왜 저렇게 부끄러워해야 하나 생각했어요. 내가 못 배워서, 좋은 대학 못 나와서 어쩔 수 없이 하는 부끄러운 일로 생각하는 거죠. 하지만 정말 부끄러운 일이 뭐예요. 나쁜 짓 안 하고 자기가 벌어서 살면 그게 자랑스러운 거예요.

 

성공과 실패에 대한 그런 개념이 사람들을 괴롭히는 경우가 많죠.


박재동: 다른 한 번은 언젠가는 또 택시를 탔는데 기사 분이 하얗게 샌 제 머리를 보고 예술가 같다고 해요. 그러면서 “나도 예술가예요.” 하더라고요. “내 차에 타는 사람은 무조건 행복하게 해줍니다. 예술가 아닙니까?” 라고요. 이 사람은 자부심이 있는 거죠. 이 사람은 최고의 직업을 갖고 있는 거예요.


성공이라는 게 뭔가요. 우리에게는 성공과 실패의 프레임이 있어요. 성공이란 사회적으로 알아주는 것, 판사, 교수, 의사처럼 안정되고 고위직이라고 생각하죠. 나머지는 다 루저예요. 루저들이 양산되어 있어요. 내가 아주 소중한 사람이고,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사람들에게 가치를 주는 사람이라는 의식이 많이 없는 거죠. 우리 사회가 대개 그런 루저를 만들어내요. 학교에서도 아이들에게 공부 열심히 하라고 하는데, 그 안에 “열심히 안 하면 풀빵 굽는다”는 말이 숨어 있어요. 옛날에도 특정 직업을 천시하는 경우가 많았잖아요. 그런 생각을 부끄러워해야 해요. 새로운 시대는 지금 같은 수직적 가치가 아니라 수평적 가치, 풀빵 굽는 것이나 미용실을 하거나 교수를 하거나 판사를 하거나 상관없이 가치를 찾을 수 있는 수평적 구조를 만들어야 해요. 제가 바라는 마을은 그런 거예요. 무슨 일을 해도 뿌듯한 사람들이 있는 동네 말이죠.

 

그래서 ‘짜장면 배달 대회’, ‘치킨 주간’을 만들자는 재미있는 제안을 하신 거로군요.


박재동:김밥 장사도 쉬운 일이 아니에요. 한편 공부 많이 한 사람들도 취직이 어렵고요. 이제 정신이 드는 거예요. 저절로 변해가겠죠. 그렇지만 자신이 하는 일을 ‘예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직 별로 없어요. 예술이라는 게 최고의 경지거든요. 정치도 엄청 잘하면 ‘예술이다’ 그러잖아요. 장사도 엄청나게 잘하면 ‘예술적이다’ 라고 말할 수 있어요. 아름다움이 있거든요. 스스로에게 예술적인 일을 한다는 느낌이 올 때 사람은 굉장한 가치를 느낄 수 있어요. 다른 사람이 부럽지 않죠. 모든 사람들이 음식점을 하면서도 내 영혼이 들어있는 곳이 되기를 바라요. 어떻게 하면 그렇게 느낄 수 있을까요? 우선 다른 사람들이 알아줘야 해요. 보통 사람의 생업 자체를 똑같이 소중하게 해주는 거죠. 어떤 축제 같은 걸 하면 그게 될 수도 것 같아요. 짜장면 배달이라는 것이 얼마나 멋있는가는 ‘짜장면 배달 대회’를 해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거죠. 쉬운 일은 아니에요. 그러나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재미를 느끼면 그것 자체에도 가치를 줄 수 있지 않겠나 싶어요. 거기서 하나의 마이스터(meister, 명인)가 배출될 수도 있고요. 수평적으로 건강해질 수 있어요. 이제 조금씩 그게 가능해지고 있어요. 

 

책에 소개된 사례들이 그런 변화를 느낄 수 있게 해줘요. 가치가 바뀌고 있다는 것을 말이에요. 적게 벌어도 행복하게 살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요.


박재동: 많죠. 책 전체를 관통하는 것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됐다는 거예요. 남이 시키는 대로 사는 게 아니라, 사회 구조 안에 톱니가 되어 사는 게 아니라 우리끼리, 우리가 주인이 돼서 사는 거죠. 아이들 교육을 우리가 이렇게 하자, 먹을거리를 이렇게 하자, 하고 마을을 만들었어요. 그 안에는 어떤 기쁨이 있겠죠. 기쁨을 확산시키는 거예요. 진정한 즐거움이 새로운 가치가 되어서 퍼지고 있어요. 사람들에게 이 책이 영감을 많이 줄 거예요. 이럴 수도 있구나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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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백조인 시대, 오리여도 괜찮은 시대


사람, 삶, 예술과 가치에 대해서 늘 생각하시는 거죠?


박재동: 예술이라는 게 근본적으로 사랑에서 출발해요. 사랑하는 만큼 일을 하게 돼요. 많이 사랑하면 몸이 부서져라 하잖아요. 사랑하지 않으면 하기 싫어요. 저는 어떤 경우에는 의무감으로 해야 하니까 하는 때가 있는데 그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세월호 사건에 대해서 매일 같이 미치겠다고 생각하고 하는 건 아니거든요.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나 생각해서 조금 한 거죠. 얼마 전 기사를 보니까 제가 너무 훌륭하게 나와요.(웃음)


사람이 내가 있는 곳에서 관심이 생기더라고요. 가까우니까 와 닿는 거예요. 내 일로 생각하게 돼요. 가만히 생각해보면 할아버지, 아버지가 겪었던 사회적 모순에 대해 관심이 있더라고요. 그걸 벗겨내는 것이 나의 일이에요. 직업의 귀천이라는 주제가 항상 깔려있어요. 어렸을 때 늘 그것에 시달렸으니까요. 직접 당했기 때문에 가슴이 아픈 거죠. 우리집이 만화방을 했는데 어렸을 때 그건 금하는 것이었어요. 가정환경조사를 할 때 너무 싫었어요. 근데 담임선생님이 우리집에 오셔서 아무 내색을 안 하셨어요. 그때 내가 구원을 받았죠. 지금도 그런 생각을 늘 하고, 따져 봐요. 열심히 사는 사람이 왜 천시 받아야 하나, 아니라는 거죠. 

 

지극히 상식적인 태도에서 구원을 받게 되는 일이 요즘도 많은 것 같아요. 선생님께서 늘 갖고 있는 주제가 또 있나요?


박재동:교육이 그래요. 선생을 하면서 아이들을 봤잖아요. 그 아이들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황금 같은 시간을 학교에서 다 보내요. 아이들이 행복해야 하는데 말이죠. 재미난 이야기를 하나 해줄게요. 김민웅 교수(성공회대 교수)라는 분이 있어요. 친구예요. 『동화독법』이라는 책을 냈는데요. ‘미운오리새끼’ 이야기를 어떻게 읽느냐면 말이죠. 미운오리새끼가 구박 받다가 자기가 백조라는 것을 발견하고 자아를 실현했다는 내용이잖아요. 김민웅 교수는 그 뒤를 이야기해요. 결국 백조들은 저들끼리 모여서 세계를 탄탄하게 틀어쥐고 살고, 오리들은 절대로 범접할 수 없도록 계급을 나눠버린다는 거예요. 미운오리새끼는 백조, 즉 ‘갑(甲)’이 된 거죠. 그 말을 듣고 ‘내 얘기다!’ 했어요.

 

미운오리새끼 이야기가 선생님 이야기라고요?


박재동:저는 어릴 때 싸움도 못하고 어리바리했거든요. 기죽어 지내다 공부를 잘한다는 걸 알게 됐죠. 명문 중, 고등학교에 서울대를 나왔어요. 백조가 된 거 아니에요? 그 순간 다른 사람들을 다 오리로 보는 거예요. 나는 백조인 줄 알고 즐기며 살았던 거죠. 서울대니까 갑, 선생 했으니까 아이들에게 갑, 시사만화를 그릴 때는 그야말로 갑이었죠. 드러내진 않았어도 사실 갑을 즐기면서 살았어요. 그런데 저희 자녀들이 공부를 엄청 못하는 거예요. 학교에 불려가고요. 그러면서 주변이 새롭게 보였어요. 치킨집도, 미용실도 내 아이가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니까요. 전엔 내가 백조니까 백조 새끼인 아이들도 백조로 살 거라 생각했던 거죠. 우리 어머니가 풀빵 장사를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에요. 내가 말로는 민중, 민중 하지만 정말 엘리트주의에 빠져있었구나 깨달았어요. 지금 마을에 관심을 갖는 것도 그래서예요. 모두 중요하니까요. 중요하다는 걸 나중에 깨달은 거죠. 누구나 백조인 시대, 오리여도 괜찮은 시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하나 더 보태자면 분단이에요. 알게 모르게 우리가 겪는 고통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하죠. 그것 때문에 종북이니 좌빨이니 하는 말을 아무데나 갖다 붙여요. 그런 걸 보면 너무 안타까워요. 그런 것들에서 내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소개된 사례들을 통해 가장 크게 느낀 것은 ‘먹는 것의 중요함’이었습니다. “밥은 네트워크, 공동체”라고도 하셨는데요.


박재동:이탈리아에 갔을 때 로미오와 줄리엣의 생가도 보고, 세계적인 등산가 메스너(Reinhold Messner)도 만났지만 그곳에서 먹었던 전통 화덕 피자가 정말 맛있어서 계속 생각이 나요.(웃음) 꼭 먹어보라고 하고 싶어요. 먹는 게 맛있으면 그렇게 다 모이죠.

 

밥을 함께 먹는 것은 기본적인 신뢰가 깔려 있음을 보여주는 행위였다. 서양에서 유래된 건배의 풍습도 같은 맥락에서 비롯되었다. 술에 독을 타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건배를 한 것이다. 그래서 “밥 한 번 먹자”는 말 뒤에는 식사 한 끼가 주는 신뢰의 공유가 있다. (45쪽)

 

 

언론의 주인이 돼야 진짜 주인


핵심이 되는 이야기를 압축해 보여주는 박재동 선생님의 그림이 책이 주는 커다란 매력 중 하나인데요. 가장 기억에 남는 마을 사례는 어떤 것이었나요?


박재동: 마을 신문 <도봉N>과 마을 방송을 하는 <와보숑> 사례요. 어디 가서 강연할 때도 많이 얘기해요. 이게 새로운 시대다, 라고요. 사람들이 주인이 되는 시대요. 지금까지 언론이나 이런 것들은 수동적으로 받는 형태였잖아요. 자기가 생산해야 해요. 언론의 주인이 돼야 진짜 주인이 되는 거예요. 전에 만난 어떤 분이 생각나요. 싱글맘인데 저를 알아보고 부럽다고 말을 해요. 이유를 물었더니 “선생님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잖아요.”라는 거예요.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이나 능력을 갖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부러운지 모른다고 말이죠. 우리가 자기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고 공유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몰라요.


사람들은 어쩌면 이야기하기 위해서 태어났는지도 모릅니다. 때문에 새로운 시대가 왔다는 걸 이 사례를 보고 생각했죠. 뉴스라는 게 항상 먼 곳, 흘러온 곳의 이야기니까 우리는 주변부 인생, 변방 인생이라는 느낌이 늘 있어요. 하지만 책에서 본 마을은 내 이야기가 뉴스가 되고 방송이 되고 있어요. 동네 아줌마가 아이를 안고 나와서 앵커를 하고요. 누구나 주인이 되는 삶이 꽃피는 것을 보고 이렇게 민주주의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는 생각보다 잘한다는 거예요. 확신을 하고 있어요. 학교에서도 아이들 스스로가 방송을 만들어야 해요. 아이들이 PD도 하고, 기자를 하고, 편성해서 자기들을 위한 방송을 해야 한다는 거예요. 실제로 경기도 교육청에서 그런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어요. ‘꿈의 학교’라고요. 제가 그곳 운영위원장을 지내고 있어요.(웃음)

 

‘꿈의 학교’에는 어떤 비전을 갖고 계세요?


박재동: 학교에서도 아이들이 직접 장사를 해볼 수 있어야 해요. 어릴 때 우동집을 해보라는 거예요. 나중에 무얼 하겠다, 가 아니고 지금 해보라는 거예요. 영화감독이 되고 싶으면 지금 영화를 만들라는 거예요. 기획사를 너희끼리 만들어서 돈을 벌어보라고요. 해봐야 열심히 공부하게 되고, 망해봐야 진짜 가치와 꿈을 찾을 수 있어요. 해보고 꿈을 찾는 거지, 그냥 앉아서 적성 검사 하는 정도로는 안 돼요. 학교에서 풀빵 굽는 것, 우동 만드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소중한가를, 그 가치를 어릴 때 심어줘야 해요. 공부 잘하는 건 그 중 하나의 길이죠. 의사 되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스스로 돈을 벌어서 써보는 맛이 있잖아요. 고소하게 써먹어보고 망하기도 하고요.(웃음) 앞으로 우리 아이들은 그렇게 강하게 키워야 한다는 거예요. 그런 식으로 구르다보면 고등학교 졸업할 때쯤에 성장을 다 할 거예요. 지금은 대학교 나와도 뭘 해야 할지 모르는데, 그렇게 막연하게 꿈을 찾지 말라는 거죠.

 

책에 소개된 것 외에 집중할 만한 사례가 지역에도 많이 있을 것 같아요.


박재동: 많이 있죠. 서울에 있으면 방 한 칸 얻는 것도 너무 힘들고 경쟁도 심하잖아요. 그래서 새로운 가치를 찾아서 귀촌을 하거나 하는 사람들이 주변에도 여기저기 눈에 띄어요. 지역 마을에 들어가서 과외도 하면서 욕심 없이 적게 벌고 적게 쓰며 사는 거죠. 지역 자체에서도 귀촌 마을을 만들어서 군에서 지원을 하기도 해요. 책에서 보듯 자생적인 사례도 있지만 관에서 자구책을 마련하는 경우도 있어요.

 

김이준수: 마을만들기전국네트워크라는 것도 있고요. 어쨌든 서울에 사람이 많다보니까 이런 마을 공동체 관련해서 센터도 만들고 했기 때문에 사례가 많았고요. 부산도 그렇고 다른 지역도 마을 공동체와 관련한 것들을 벤치마킹도 하고, 서울에서 어떻게 하고 있는지 탐방도 많이 오시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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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을 상상하는 20가지 방법박재동,김이준수 공저/서울시 마을공동체 담당관 기획 | 샨티
요즘 같은 세상에 가족도 못 믿는데 이웃은 어떻게 믿느냐고 되묻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정말 세상이 그렇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세상에서, 대문을 열고 골목으로 나와서 혹은 마을의 공유 공간에 모여서 함께 ‘놀고, 먹고, 협동하고, 예술하고, 교육하고, 일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담아놓은 책이 나왔다. 바로 《마을을 상상하는 20가지 방법》! 마을에서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행복’을 보여주고, 그 방법까지 제안하는 책이다.

 

[추천 기사]

- 이우혁 “『왜란종결자』는 세계관에 기초를 잡은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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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해 “영리한 사람이 망가질 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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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60년, 올해 나이 90세. <전국노래자랑>의 히어로, 방송인 송해 선생에 대한 수치를 얘기하면 모두들 깜짝 놀란다.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는 게 이유다. 실제로 만난 송해 선생은 과연 그랬다. 놀랍게도 나이를 조금도 느낄 수 없었다. 30~40년 전의 이야기, 혹은 더 먼 시절 이야기를 할 때는 정확한 수치와 지명, 당시 책임자 이름까지 정확히 읊었다. 그뿐인가. ‘낙원동 칸트’라고 불린다는 송해 선생은 인터뷰 후에도 어김없이 목욕탕에 들렀다 저자 오민석 교수와 소주잔을 기울였을 것이다. “다음 달에 녹화를 여섯 개나 잡아놨어, 이놈들이(웃음).” 라는 말마따나 가장 일정이 많아 바쁜 계절, 그 와중에 책을 내고, 인터뷰를 한다는 것이 선생에게는 가능한 일이었다. 감탄 또 감탄이다. 체력과 그에 못지않은 젊은 정신력은 과연 1988년부터 지금까지 <전국노래자랑>을 이끌었던 제일의 원동력이었음이 틀림없다. 

 

말하자면 그는 ‘코미디언’이라는 선입견이 주는 가벼운 인상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의 외모는 근엄한데, 그 근엄을 언제든지 무너뜨릴 자유와 권리가 대중에게 있는 것이다. 이것이 중요한 것이다. 만만한 인간을 만만하게 횡단할 때 거기에는 아무런 쾌락이 없다. 그러나 전혀 만만하지 않은, 점잖고 근엄하고 게다가 나이까지 지긋한 ‘어르신’을 아무런 경계 없이 허물 때, 대중들은 희열과 해방을 느낀다.

이것이 내가 말하는 “횡단의 쾌락”이다. (281쪽)

 

송해 선생의 평전『나는 딴따라다』를 쓴 오민석 교수는 송해 선생을 ‘정이 많고 사랑이 넘치는 사람, 원리원칙에 충실한 사람, 완벽을 지향하는 대중예술가’라 일컫는다. 1년 여 시간을 함께 움직이며 관찰한 결과다. 처음 가졌던 송해 선생에 대한 인상이 “더 강해지고 선생에게 더 깊이 매료됐다”고 말하는 오민석 교수. 그는 송해 선생을 통해 한국 대중문화를 읽어낸다. 책 『나는 딴따라다』는 어느 한 방송인을 추억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아픈 기억, 전쟁과 분단, 이산가족으로서의 애끊는 삶과 대중문화 종사자의 불안하기만 했던 삶을 들여다보고 지금 이후를 조명하는 뜻 깊은 작업을 묵직하게 담았다. 지난 시간에 앞으로 다가올 세상이 있다는 말이 괜한 것이 아님을 책은 생생하게 증명하고 있다. 역사이자 현재진행형인 한 인간의 삶을 읽는 일은 언제나 계속되어야 한다.

 

 

“선생님,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신 분입니다”


책을 내겠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먼저 듣고 싶어요.


송해: 여러 군데서 하자고 했었죠. 그동안은 오랫동안 사양했어요. 한 것도 없이 무슨 책을 쓰냐고 했었는데, 오 교수님(저자 오민석)과 아주 인연이 우습게 돼가지고. 이 ‘우습게’ 됐다는 얘기가 굉장히 우습고도 재미있는 이야기입니다.(웃음) 아주 한 사람의 마음처럼 의견이 동해서 나만 기억을 하더라도 이제는 한 번 남겨보자고 생각하게 됐어요. 사람이 살아가는 데 다들 어려움도 있고, 즐거움도 있겠지만 말이에요. 제 경우는 세월이 조금 흘렀고, 요즘 광복 70년이라고 하지만 저는 살면서 전쟁과 분단을 다 경험했기 때문에 그런 내용을 현대를 사는 젊은이들에게 ‘우리 사는 동안에는 이런 일을 겪은 사람도 있다’고 전해줄 수 있다면 하고 생각을 했습니다.

 

두 분께서 목욕탕에서 만난 장면,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어요.(웃음) 이렇게 책이 만들어지려고 그렇게 만나게 되셨던 것 같아요.


송해: 네.(웃음)


오민석: 그렇죠. 그 후로 20년이 지났는데 말이죠. 저는 일요일마다 <전국노래자랑> 화면을 통해서만 선생님을 뵀고, 멀리서 흠모했는데요. 제 주변머리가 <전국노래자랑>을 찾아갈 만큼도 안 되고, 그러기도 머쓱한 일이었고요. 그랬는데 목욕탕에서 만났으니 그 순간에 제가 얼마나 놀랐겠어요.(웃음) 알몸인 채로 락커를 열어서 제 첫 시집 개정판을 드리고 했었죠. “선생님,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신 분입니다.” 제가 그랬죠. 모든 사람이 선생님을 좋아하니 얼마나 행복합니까. 유명하다거나 다른 이유가 아니라 사람들이 선생님을 누구나 좋아하니까 세상에 이런 분이 어디 있느냐 싶은 거죠. 취재 하면서 함께 다녀보면 진짜 누구나 좋아하거든요.

 

오민석 교수님은 1년 여 시간 동안 인터뷰와 취재를 하셨다고 들었어요. 처음과 지금, 송해 선생님에 대한 인상에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오민석: 바뀌었다기보다 더 깊어졌죠. 목욕탕에서 우연히 만나기 이전부터 선생님은 이런 분이다, 라고 갖고 있는 인상이 있는데 그게 전혀 오산이 아니었고요. 오히려 그게 더 깊어지고 더 매료당했죠.

 

책을 읽으면서 저 역시 새롭게 ‘송해’라는 어른에 대해 매료되는 경험을 했어요.


오민석: 이 책에서 딱 한 가지 보람이 있다면요. 선생님을 많이들 좋아하시지만 그 중에도 적극적으로 좋아하는 분들이 이 책을 살 텐데요. 책을 읽고 나서 선생님을 더 깊이 이해하고, 인간적으로 더 깊이 좋아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게 저의 보람이에요.

 

표지가 책의 정체성을 보여준다고 할까요. 우리가 흔히 아는 송해 선생님의 웃는 얼굴은 진중하고 권위 있는 표정 뒤에 가려져 있거든요. 대중이 느낄 법한 ‘낯설음’이 잘 담겨 있는 것 같아요.


오민석: 출판사의 아이디어죠. 겉표지의 엄숙한 표정은 선생님께서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겪은 고난과 고통, 결핍이 집약된 표정이에요. 그렇지만 이 모습만 있는 게 아니죠. 고통의 끝에 승리한 선생님의 얼굴이 바로 이 환하게 웃는 표정이거든요. 책을 쓰면서 쓰려고 했던 것이 선생님의 이 두 가지 모습인데, 출판사에서 그 의도를 딱 맞춰주어서 아주 감탄했어요. 보통 책을 사면 띠지를 버리는데, 이 책은 띠지가 이렇게 크게 올라와서 거기 선생님의 엄숙한 표정을 담았으니까요. 또 재미있는 것은 표지에 활자가 전혀 없다는 점이에요. 저는 영문학자기 때문에 국내서와 외국 저서들도 많이 보는데요. 타이틀이 없는 책은 정말 드물어요. 이것은 송해 선생님만 가능한 거예요. 이렇게 두어도 책을 보면 누구든지 송해 선생님에 관한 책이라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에 표지에 타이틀을 붙일 필요가 없는 거죠. 이런 과감한 발상은 출판사에서 잘 해주셨어요. 저도 처음에 표지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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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즐거워하는 단어 ‘딴따라’


제목도 여쭤보고 싶은데요. ‘딴따라’라는 단어가 가진 함의가 있을 것 같습니다.

 

송해: ‘딴따라’라는 단어의 정확한 의미라고 밝혀진 게 없어요. 그게 한 가지 재미있고요. 또 그때 그 시절에는 ‘딴따라’에 준하게 부를 이름이 없었어요. 그러니까 아주 쉽게 부르는 대로 나왔던 게 이 단어였구나 생각해볼 수 있죠. 저희가 ‘딴따라’라는 말을 들을 때는 상당히 소외감도 있었고, 스스로도 자신을 비하하는 생각도 할 수 있을 때였거든요. 제가 학교를 ‘해주음악전문학교’를 갔는데, 당시는 그런 학교를 선택한다고 하면 집안에서 쫓겨났어요. 소위 ‘딴따라’, ‘띤따라’라고 해서 경시 받았었죠. 저 역시 그 말을 들어오면서 소외 받고 경시 받는 느낌도 다 가졌었지만 결국 이것은 소중한 것이다, 라고 생각했어요. 우선 알리기가 제일 좋아요. 또 ‘딴따라’라는 얘기로 경시하던 사람들이 이 즐거움이 없으면 어떻게 살았을까, 그러면서도 이 소중함을 몰라주니까 답답했다, 이런 것도 있었어요. 지금은 상황이 아주 반전되어 있죠. 그런 세월의 흐름도 함께 느끼는 거고요. 출판사에서 강력히 주장한 제목이지만 내가 정말 여러 세인(世人)들 앞에서 부르짖고 싶었던 말이 이거예요. 저는 아주 즐거워하는 단어가 ‘딴따라’라는 말입니다.

 

오민석 교수님도 ‘딴따라’라는 단어에 많은 의미부여를 하셨잖아요.


오민석:선생님이 작년에 ‘은관문화훈장’을 받으셨어요. 그보다 먼저 2003년에는 ‘보관문화훈장’을 받으셨는데, 그때 수상소감으로 “나는 딴따라다, 영원히 딴따라의 길을 가겠다”고 말씀하셨어요. 이번에 ‘은관문화훈장’을 받으시면서는 수상소감으로 “한국 대중문화 만세”라고 하셨어요. 딴따라로서의 승리감을 표현하신 거라고 생각해요. 그 며칠 뒤 제게 사석에서 하신 말씀이 “나는 이겼다”였어요. 이 말 한마디를 하기까지 시간을 생각하게 됐죠. 올해가 데뷔 60년이에요. 60년 세월의 말할 수 없는 파고(波高)들, 천시, 때때로 경험한 작은 승리들, 좌절 모두가 그 안에 있어요. 저는 원래 ‘송해, 90년의 기억’이라는 제목을 생각했었는데 선생님께서 지금의 제목을 아주 마음에 들어 하셨죠. 책의 일관된 주제를 압축한 제목이 『나는 딴따라다』예요. 나는 제목 다는 재주가 없구나 생각했죠.(웃음)

 

송해 선생님의 말씀에서 어른의 마음이 느껴지는데요. 경시하듯 불렀던 ‘딴따라’라는 말을 이렇게 자랑스럽게 여기기까지 겪었던 모든 일들을 다 품으신 거잖아요.


송해: 숱한 일이 많았죠. 잡을 것 없는 낭떠러지를 떨어지는 기분이 늘 들었어요. 우리 계통에 오랫동안 있던 사람들은 그만 두어야겠다 생각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평생 3년 계획을 못 세워봤어요. ‘딴따라’에게는 기약이 없어요. 방송은 춘하추동, 4계절 개편을 하잖아요. 다음 계절에도 계속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첫 프로그램부터 떠오르는 것이라. 그게 힘들어 중도하차하는 사람들이 많았죠.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사람들이 하는 모든 걸 다 해본 것 같은 기분입니다. 유랑극단도 많이 했으니까요. 어떤 연기를 하면 그 사람이 되어야 하는 거잖아요. 그런 경험으로 사회를 볼 때는 어느 정도 대화가 통하고요. 그런 이득도 있어요. <전국노래자랑>이라는 게 각 분야 사람을 다 만나잖아요. 예전에 했던 경험으로 지금 득을 얻고 있죠.

 

그때는 미처 몰랐지만 모든 것들이 선생님의 큰 자산이 되었군요. 대단한 프로의식이 느껴지기도 해요.


송해: 출연자들과 방송 전 대화를 할 때 예심에서 했던 그대로 하라고 말을 합니다. 예심 통과됐다고 망가지는 걸 부끄러워하고 안 하면 안 됩니다, 라고 해요. 둔한 사람은 망가지는 걸 못해요. 영리한 사람이라야 망가질 줄 안다는 거예요. 성한 사람이 됐다가 인간의 한 움직임을 배우는 거 아니에요. 머리가 좋고 예민한 사람이라야 망가지죠. 관객으로서 즐거움을 가질 때가 언제겠어요. 보지 못했던 이타성이라든가 돌연한 이야기, 몸동작 이런 것들 아니에요? 나를 받쳐 들고 움직이는 대목이 있다 했을 때, 나는 또 거기서 떨어져보는 거지요. 그러면 또 사람들이 즐거워하고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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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버팀목


사람에 대한 깊은 관심이 없었다면 하지 못했을 일들이 많았어요. 송해 선생님께 ‘사람들’이란 무슨 의미였을까요.


송해: 사람은 상호버팀목입니다. 사람은 서로가 버티고, 밀고 당겨주고 하는 교감이에요. 사람이 그런 것 없이 산다면 그게 뭐겠어요? 삶이라 할 수 없죠. 직업이야 어쨌든 서로는 어디 가서 만나도 버팀목이 되는 거다, 생각합니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직후, <전국노래자랑>은 애도의 뜻을 담아 8주 동안이나 방송을 내보내지 못했다. 악단 단원들은 무려 두 달 동안 개런티를 받지 못한 채 손가락만 빨아야 했다. 송해 역시 비정규직이지만, 송해는 관계자를 설득해 이들 개런티의 60%를 받아냈다. (46쪽)

 

세월호 사건 당시 두 달 동안 <전국노래자랑>을 하지 못했을 때, 급여를 받아내기도 하셨고, <가로수를 누비며>(KBS 라디오 교통방송, 1974년부터 1988년까지 송해 진행) 시절에도 택시 기사 합동결혼식을 치러내기도 하셨잖아요. 그 모든 것들은 역시 ‘사람’을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에요.


송해: 내 자신이 놀랐으니까요. 예전에는 택시 기사 분들의 생활이 정말 힘들었어요. 결혼식도 못하고 사는 사람이 너무나 많았어요. 놀라서 물어보니 험한 생활 얘기를 하더라고요. 88올림픽을 앞두고 들은 얘기예요. 그래서 회사를 몇 군데 가서 직접 얘기를 들었어요. 결국 합동결혼식을 해보자고 연출자와 얘기해서 신청을 받았는데 이틀 만에 300쌍이 신청을 해요. 지금 생각해보니 그 말씀이 맞아요. 너는 너고, 나는 나지, 라는 생각을 했더라면 그렇게 안 했겠죠. 그랬다면 어땠을까, 생각이 들어요. 지금은 다들 나이 들어서 연락도 오고 그래요. 그분들 자녀가 결혼한다고 청첩장이 오기도 하고요. 나는 가족이 또 하나 얻어졌죠. 사람이 재산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니까요, 나는. 재산이 또 늘지 않았어요?(웃음)

 

정말 인상적인 것이 송해 선생님의 이런 행동력이에요.

 

오민석:<가로수를 누비며>가 방송으로 끝난 게 아니고, 전국의 기사 분들과 정말로 인간적인 교류를 워낙 많이 하셨어요. 기사 분들이 송해 선생님을 ‘송기사’라고 해요.(웃음) 자신들과 같이 생활하고 바닥까지 이해한다고 느끼지 않으면 그렇게 말하지 않겠죠. 당시 교통법규가 사고가 나면 운전자에게 무조건 책임이 가도록 되어 있었어요. 때문에 택시 운전자나 이런 분들이 감옥에 많이 갔나 봐요. 송해 선생님이 그 바쁜 와중에 서울 톨게이트에서 모금 활동을 하셨죠. 그 가족들을 도와주느라고 말이에요. 그런 걸 안 해도 되는 건데 발로 뛰어서 하시고요. 굉장히 인간적인 거죠.

 

‘사람이 재산’이라고 하셨는데, 지금은 ‘사람보다 돈’ 아닐까요. 이렇게 말씀해주시니 오히려 특별하게 느껴지네요.

 

송해: 그렇죠. 방송도 그래요. 지금은 화면에 좀 비치고 누가 찾는다고 하면 ‘얼마 줄래’라고 해요. 달라졌죠. 인간적으로 생각하는 것, 도리로 생각하는 것, 아까 사람이 버팀목이라고 했지만 그런 얘기에 대해 생각 자체가 달라진 거죠.

 

 

무엇을 해도 성급하면 안 돼


‘매 시간 사선’이었던 전쟁 당시 경험을 말씀하기도 하셨는데요. 젊은 세대들에게는 낯설기만 한 이야기에요. 그런 시간을 살아오신 어른으로서 요즘 젊은이들에게 뭔가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실까요?


송해: 돈에 대한 가치를 알고 돈을 알아야 해요. 무조건 돈만 많은 게 돈의 가치가 아닙니다. 일 푼이라도 그 일 푼을 어디에 쓸 것이냐를 생각해야 하고요. 무슨 일을 하더라도 그렇게 성급하면 안 돼요. 요즘은 너무 쉽고 빨라요. 하지만 당장 결론을 내려고 하는 건 실패의 수가 훨씬 더 많지요. 경험을 많이 못한 채로 실패의 순간이 오면 극단적인 생각을 하게 돼요.


하나 새겨야 하는 건 내가 해보지 않으면 모른다는 거예요. 어려움이 좀 있더라도 천직으로 알고 해보면 답은 오게 돼 있어요. 내일을 모르게 발전해가고, 정신없이 사는 세상이다 보니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정답은 아니다, 얘기하고 싶어요.

 

빨리 뭔가 이루려고 하면 실패할 확률이 더 높다, 중요한 말씀인 것 같아요.


송해: 요즘 사람들에게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가라’고 하면 듣겠어요?(웃음) 하지만 그 나름대로 뜻이 있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어요. 또 상대와 나를 바꿔 생각할 필요가 있어요. 시행하기는 어렵겠지만 너무 급변하는 세상에서도 자기만의 시간을 가져야 해요. 세상은커녕 자기 자신도 모르잖아요.

 

그런 삶을 살고 있는 젊은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 새롭게 얻게 되는 것들이 있을 것 같아요. 특히 분단의 경험은 젊은 세대와는 완전히 유리된 것들이거든요. 그곳에 나의 살붙이가 있다는 감각은 상상도 못하고요.


송해: 올해 광복 70년이라고 하죠. 요즘 사람들은 그 얘기를 저처럼 느끼지 않을 거예요. 나 같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이해 못할 길을 많이 걸어왔어요. 이런 얘기라도 말하는 사람이 있어야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해요. 인생이란 게 간단하게 와서 가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잖아요. 어떻게 해서 지금 모습까지 왔느냐 생각하면 내가 갈 길에도 도움이 많이 되겠지요.

 

노인 한 사람이 사라지는 건 도서관이 사라지는 것과 같다고 하잖아요. 한 사람의 삶으로 역사를 읽을 수 있는 거고요. 지금, 필요한 작업이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오민석: 쓰지 않으면 다 사라지는 거죠. 그런데 우리나라에 평전 문화가 약해요. 유명한 사람들은 자서전이라고 쓰는데, 대부분의 자서전은 대필이고요. 객관적 증거도 없고, 자화자찬에 빠지기도 쉽죠. 좋은 평전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제가 썼던 위인들에 대한 이야기는 어린이를 위한 이야기였어요. 생가에 가서 방바닥을 더듬어도 도무지 감이 안 오더라고요. 무척 힘들었어요. 이번 작업을 하면서 돌아가신 분들, 옛날 분들에 대해 쓰는 것과 평전을 쓰는 건 완전히 다르다는 경험을 했죠. 평전은 살아계실 때 써야 한다는 소신을 갖게 됐습니다. 돌아가신 후에 쓰는 평전은 미이라를 더듬는 일이라고 한 인터뷰에서 얘기를 했어요. 또 연대기 순으로 쓰는 건 죽은 이야기예요. 현재와 과거를 끊임없이 교차시키고 맞대면 시키는 작업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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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이자 현재진행형 <전국노래자랑>


<전국노래자랑>에 대한 문화적 평을 하신 부분도 인상적이에요. 이 프로그램은 굉장히 역사적이면서 현재진행형인데요. 이 안에서 우리 대중문화를 읽어내셨어요.


오민석: <전국노래자랑>은 제가 볼 때 정말 의미 있는 장르입니다. 영문학의 연구 풍토는 ‘문학’에서 ‘문화’로 중심이 바뀐 지 무척 오래됐습니다. 여기에서 ‘문화’는 고급문화가 아니라 상업적 대중문화를 얘기하는 거예요. 심지어 포르노 잡지의 서사 전략을 비교 연구한다든가 하는 식으로요. 이 책은 제가 시인이자 평론가로서 달려든 부분도 있지만 영문학자로서 송해라는 텍스트를 해석하는 작업이기도 했어요. <전국노래자랑>이라는 유례없이 독특한 프로그램에 큰 관심을 가졌었죠. 모든 TV 프로그램은 잘난 사람들의 잔치예요. 우리보다 잘난 얼굴들, 많이 배운 사람들이 등장하죠. 때문에 대부분의 시청자들은 무의식중에 열등감을 느껴요. 그래서 성형을 하게도 되고요. 많은 드라마가 열등감을 조장시켜요. 저는 그게 문화 산업이 갖고 있는 아주 나쁜 점이라고 생각해요. <전국노래자랑>은 그렇지 않습니다. 바흐친(Mikhail Bakhtin)의 이론을 빌어 ‘카니발’이라는 표현을 썼는데요. 위계를 완전히 뒤집어엎고, 모든 사람이 평등해지고, 누구나 자유롭게 제 목소리를 내는 자리예요. 남성중심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여성들에게 나쁜 젠더 개념이 강조되잖아요. 그런데 <전국노래자랑>에 나오는 아줌마들 보세요. 그런 것들을 스스로 싹 무시하잖아요. 주변, 하위주체들이 문화의 중심에 치고 들어와서 휘저어놓는 거예요. 이거는 굉장한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그 중심에 송해 선생님이 계시죠.


오민석: 선생님이 딱 맞는 게, 선생님 얼굴을 보세요. 얼마나 근엄하세요.


송해: (웃음)


오민석:이 외모만 보시면 말 붙이기 힘들 수도 있어요. 근데 무대 위에서 어떻게 그렇게 망가지시냐고요. 한 번은 한우가 많은 지역에서 어떤 여자 분이 부위를 설명하면서 선생님 엉덩이를 때리는 분도 있었어요.(웃음) 세상에, 이렇게 점잖은 분이 망가져주시잖아요. 중심이 망가지니까 출연진들도 마음 놓고 노는 거예요. 완전한 하위주체들의 잔치, 해방구예요. 저는 그래서 대학 다닐 때부터 <전국노래자랑>에 매료되어 있었죠. ‘유쾌한 상대성’이라고도 했는데요, 억눌리는 자가 없는 거예요. 더 주목할 것은, 이 프로그램이 아이돌이 등장하는 음악 프로그램 세 개를 합친 시청률이 나온다는 것이죠. 저는 학문적으로 해석하지만, 일반 시청자들은 그런 걸 몰라도 느끼는 거예요.

 

지금의 모습을 포함해 송해 선생님의 삶 전체가 무척 극적이에요. 그 화살표가 모두 <전국노래자랑>을 가리키고 있기도 하고요. 얼마 전 기자회견을 하시면서 선생님의 이야기가 영화화 된다면 주인공은 김수현이라고 하셨던데요.(웃음)


송해:한국전쟁 당시 군대에서 휴전 전보를 내가 쳐놓고 고향을 못가는 사람이 아니오. 그런 걸 지금 생각하면 이게 무슨 운명이었느냐, 하는 생각이 들어요. 1953년 7월 27일 밤 22시를 기해 모든 전투를 중단한다, 이게 원본이거든요. 암호였으니 몰랐는데 나중에 알아보니 그거예요. 그걸 왜 내가 쳤을까, 또는 그게 아니면 지금 이렇게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들을 해요. <전국노래자랑>을 하면서 그런 게 다 돌아오는 겁니다. 재미있는 얘기지요.

 

오민석 교수님은 송해 선생님의 신곡 <유랑청춘>을 작사하기도 하셨어요. 가사에 담고 싶었던 이야기는 무엇이었어요?


오민석:선생님의 뼈아픈 일생과 분단의 역사를 함께 담고 싶었죠. 분단이라는 추상적 개념이 개인사와 겹치면 뼈저리게 다가오거든요. 그래서 하고 싶었어요. 물론 제가 작정하고 한 건 아니에요. 올해가 선생님 데뷔 60주년인데, 기념해서 <전국노래자랑> 악단의 신재동 단장님이 송해 선생님 모르게 선물을 해드리자고 해서 하게 됐어요. 그런데 전 작사를 해본 일이 없거든요. 이 책을 쓰고 있었는데 어느 날 새벽 세 시 쯤에 ‘필’이 왔어요. 3절 가사를 5분 만에 썼어요.

 

송해 선생님은 가사가 마음에 드셨어요?


송해: 가사를 보고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나 떠나올 때 나는 몰랐는데 어머니는 육감이 있었던 거예요. 부모 자식 간에 흐르는 일이 있어요. 어머니가 툇마루에 앉아서 다녀오겠다고 하는 제게 “얘야, 이번엔 조심해라” 하시던 게 세월이 흐를수록 더 생각이나요.

 

두 분께서는 독자들이 이 책을 어떻게 읽었으면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송해: 아무것도 없이 얼굴만 여기 있는데(웃음), 이게 또 편한 얼굴은 아니잖아요. 그저 이 책을 내 일이다, 하고 한 번 읽어보시면 좋겠어요. 아주 젊은층에서는 그렇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뭐라도 뜻이 있겠다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오민석:일단 책이 작가의 손을 떠나면 독자의 몫이니까요. 또 독자는 워낙 천차만별이라 읽고 싶은 것을 읽어내면 되는데요. 다행히 이 책이 어떤 독자가 읽더라도 각자 읽을 것이 있다고 생각해요. 책 읽는 게 익숙하지 않은 분들은 사진첩으로 보셔도 좋고요. 영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대중문화연구를 어떻게 했는지 하는 방식으로 보셔도 되고요. 송해 선생님의 개인사를 알고 싶은 분들은 그걸 읽으시면 돼요. 다양한 방식으로 어떻게 읽어도 다 얻을 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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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딴따라다 오민석 저 | 스튜디오본프리
영원한 국민 MC 송해의 일대기를 그린 이 책은 20여 년 전 어느 가을날 인사동 골목에서 저자와 송해의 우연한 만남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로부터 시간을 거꾸로 되돌려 1927년의 황해도 재령을 거쳐 부산에 이르기까지 한국전쟁의 참혹한 피난길을 걷는가 하면, 떠돌이 악극단을 따라 전국 방방곡곡 유랑길을 구불구불 따라간다. 마치 송해의 맨얼굴을 보는 것처럼 솔직하고 꾸밈이 없으며, 살가우면서도 근엄한 무게를 지닌 이 책은 우리 부모 세대에게는 추억과 그리움을, 젊은 세대에게는 격려와 영감을 줄 것이다.


 

[추천 기사]

- 이우혁 “『왜란종결자』는 세계관에 기초를 잡은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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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이 “지금도 무언가를 버티고 있는 사람들에게”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윤진서 “소설 『파리 빌라』, 예쁜 감성의 책은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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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산문집 『비브르 사비』를 펴냈던 배우 윤진서가 소설 『파리 빌라』로 독자들에게 두 번째 인사를 청했다. 『파리 빌라』는 이별 후 여행을 떠난 한 여자와 그녀의 친구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파리, 뉴욕, 아테네 등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도시는 실제 윤진서가 여행했던 곳이다. 10여년 전부터 글을 써왔다는 윤진서는 “글 쓰는 일에 어떤 의미나 이유는 없다. 배우라는 직업을 갖게 된 것과 마찬가지로 너무 좋아하니까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글쓴이로서의 책임감 느껴


“처음부터 소설을 써야겠다는 마음은 아니었어요. 워낙 글을 쓰는 게 취미에요. 여행을 다닐 때나 평상시에도 글을 많이 쓰는데, 글이 모아지면 하나로 이어지게 편집도 하고 그래요. 저에게 글은 취미이자 놀이에요. 『파리 빌라』를 쓰게 된 건, 어느 날 제가 돌아다녔던 공간에 대한 생각들을 글로 적다 보니 제 경험만으로는 소재가 조금 부족하다 싶었어요. 그래서 허구의 인물을 집어넣고 내가 실제로 느끼진 않았지만 느꼈을 법한 이야기들을 담았어요. 소설을 쓰면서 별별 생각을 다 했어요. 내가 왜 이렇게 힘들어야 하는지, 내가 왜 힘들자고 이런 일을 시작했나. 그런데 어느 날 마음에 드는 문장을 쓰면 기뻐서 미칠 것 같았어요. 또 어느 날은 재능도 없는 내가 왜, 이런 걸 쓰기로 했나 싶기도 했고요.”

 

1년 반 동안 『파리 빌라』를 붙들고 있었던 윤진서는 “결국 죽을 것 같을 때, 살아야 하니까 소설이 끝이 났다”고 했다. 산문집을 썼을 때는 내 경험만 잘 전달하면 그만이었지만, 소설은 달랐다. 한 명이라도 공감하지 못하면 책을 내는 데 의미가 없었다.

 

“산문은 결국 제 경험이나 느낀 것만 쓰면 되니까, 누구도 딴지를 걸 수 없잖아요. 내가 쓴 건데 누가 뭐라고 하겠어요. 하지만 소설은 허구니까 공감이 되지 않거나, 누군가 ‘이렇지 않아?’라고 했을 때, ‘몰라’라고 말할 순 없는 거고요. 글쓴이로서 책임도 져야 하니, 이것저것 만질 게 많았어요. 수정을 정말 많이 했어요. 버전이 몇 가지 있을 정도였어요. 어떻게 연애를 마무리 지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두 달마다 계속 다른 버전의 책을 주니까 편집자가 ‘정말 힘드시겠어요’라고 했어요.”

 

수십 번의 수정이 있은 후 『파리 빌라』가 탄생했다. 소설 속 주인공은 혼자 여행을 떠났고 또 다시, 둘이 아닌 혼자로 존재했다. 일찍이 완성된 소설을 읽은 그녀의 친구는 “윤진서스럽다”는 평을 남겼다.

 

“친구가 보는 내가 그렇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글로써도 저는 방황을 한 거죠. 이런 저런 버전을 쓰다가 결국 스스로 읽기에 자연스러운 버전으로 온 거니까요. 밝게 끝내고 싶었던 욕심도 있었어요. 에너지를 줄 수 있고 용기를 얻을 수 있는. 해피 엔딩도 많이 생각했어요. 실제 연애도 그렇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요.”

 

소설에는 윤진서가 직접 찍은 사진이 곳곳에 실렸다. 글과 적합한 사진을 꼼꼼히 골랐을 법한데, 윤진서는 “사진에 신경을 쓸 만큼의 여력이 없었다”고 했다. 소설을 출간한 달 출판사 이병률 대표의 감각으로 사진은 선택됐다.

 

“글에 민감해서 토시 하나만 틀려도 편집자랑 몇 날 며칠을 이야기했거든요. 그런 이야기를 하느라 정신 없었어요. 표지 사진은 파리에 사는 아는 지인한테 받은 건데, 예전 표지는 제가 생각했던 이미지가 아니었어요. 제가 생각하는 감성이 아닌 예쁜 표지였거든요. 『파리 빌라』가 예쁜 감성의 책은 아니잖아요.”

 

여배우가 쓴 소설. 누군가는 예쁜 이야기를 기대할지 모르지만 소설은 꽤 건조하고 적나라하다. 감정을 숨긴 듯하지만 발가벗은 듯하기도 하고, 주인공의 방황에 퍽 저자의 갈등이 비치는 것 같다.

 

“소설에 나오는 모든 여자들, 그게 다 저인 것 같아요. 제가 공감한 거니까요. 친구 둘이서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도, 한 인간으로서 한 여성으로서 궁금했던 것들을 스스로 묻고 답했던 것 같아요. 그 부분만이 아니라 다른 부분들도 제가 고민했던 부분들인 것 같아요. 책을 쓰면서 좋았던 건 이해의 폭이 많이 생겼다는 거예요. 소설은 한 쪽 입장만 쓰지 못하고 다른 쪽 입장에 대해서도 써야 하잖아요. 산문과 소설의 다른 지점이 그게 아닐까 해요. 내가 보았던 것들이 결국은 여러 개가 되는 지점들이 생기면서, 조금 더 멀리서 보게 되니까. 그런 게 결국 자신한테 성장이 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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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지에서 새로운 것을 찾는 능력


『파리 빌라』를 읽다 보면 윤진서가 실제로 좋아하는 공간들을 발견할 수 있다. 윤진서는 “레스토랑 이름도 친절하게 써 있으니 꼭 한 번 가봐도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평소 여행이 일상인 윤진서는 여행지에서 새로운 것을 찾는 일이 습관이자 특기다.

 

“누구보다 잘해요. 저를 따라올 사람이 없기 때문에 여행 정보 같은 건 누구한테 묻지 않아요. 장담하건대, 제가 낫더라고요(웃음). 여행을 가면 현지에서 사람들과 잘 놀아요. 적응이 빠른 것 같아요. 그래서 여행을 계속 다닐 수 있는 것 같고요.”

 

촬영 스케줄이 없는 날, 윤진서는 혼자 여행을 떠난다. “우리나라 고속버스 노선도를 꿰고 있다”는 그는 모자를 쓰고 버스를 타면 아무도 자신을 알아채지 못한다고 했다. 고속버스터미널에서 자연인 윤진서로 돌아가 여행에 집중할 때, 그저 행복하다.

 

『파리빌라』의 주인공은“원래부터 나란 인간은 척을 잘한다. 초연한 척, 관심 없는 척, 괜찮은 척. 사실 그렇게 척을 하다보면 스스로도 그렇게 믿게 되는 순간이 온다.”(133쪽)고 했다. 세상에 ‘척’이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윤진서에게 “당신이 잘하는 ‘척’도 있지 않냐?” 물었더니, 이내 부정했다.

 

“요즘 사람들은 척을 하느라 잘 사랑에 빠지지 않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쿨해지는 것 같아요. 남들 눈치를 본다는 것에 꼭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지만, 저는 전혀 그런 인간이 아니에요. 그런 게 필요한 인간이죠.”

 

소설 속 나는 ‘척’을 잘하는 사람이었지만 여행을 시작한 이후로 수도꼭지를 틀어놓은 것 마냥 자주 눈물을 흘렸다. “그동안 내가 알아왔던 척을 잘하는 여자는 사라지고 최소한의 슬픔도 숨길 수 없는 여자가 되어버렸다.”(133쪽)고 썼다. 스스로에게 솔직한 것, 주저하지 않는 것. 아마 윤진서가 여행을 통해 배운 것일지도 몰랐다.

 

최근 윤진서는 시인 윤희상의 『소를 웃긴 꽃』, 박민정의 소설 『유령이 신체를 얻을 때』, 윤고은의 『알로하』를 재밌게 읽었다고 했다. “작가와 나이의 갭이 있으면 얻게 되는 게 많은데, 젊은 여성 작가들의 책을 읽으면 고민하는 지점이 비슷해서 공감하고 싶을 땐 또래 작가의 책을 많이 읽는다”고 했다. 작가의 출생년도까지 알고 있는 윤진서에게“그런 것도 알아보고 읽어요?”라고 물으니, “당연한 일 아니냐”며 대수롭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보통 한 권의 책을 끝내면 모든 저자들이 쉬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윤진서는 달랐다.“아직 젊어서 그런가 봐요”라며“소설? 산문? 둘 다 생각하고 있는데, 뭔가 더 진전이 빨리 되는 쪽으로 쓰고 싶다”고 말했다.

 

“시나리오나 영화 연출, 생각도 항상 많이 하죠. 그런데 뭔가 미칠 듯이 ‘이건 꼭 만들어야겠어’ 이런 건 아직 없었어요. 아직은 안 생기더라고요. 만약에 생긴다면 해보고 싶고, 해볼 것 같아요. 생기느냐의 문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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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빌라윤진서 저 | 달
배우 윤진서가 소설 『파리 빌라』를 펴냈다. 작가는 찬란한 사랑의 순간과 그 사랑이 지난 후의 아픔, 여행한 도시에서 마주한 감정의 입자들을 사랑에 대해 다른 정의를 내리는 두 여자의 이야기를 통해 건조하고 담담하게 그려내고 있다. 가상과 실제, 과거와 현재, 꿈과 현실, 사랑과 사랑 사이에서 소설은 수많은 경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다시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인간에 대한 애정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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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강신주, 영화를 보려면 지적 허영부터 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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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샹떼』 강신주와 이상용의 영화 예찬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은 언제나 영화에 대한 이야기에 갈증을 느낀다. 극장을 나설 때부터 ‘영화 어땠어?’라고 묻고 싶어 조바심이 난다. 내 마음을 건드렸던 한 권의 책과 만났을 때처럼 그 작품이 어떤 의미로 다가왔는지 말하고 싶고, 다른 이는 어떻게 느꼈는지 듣고 싶다. 쉽사리 이해할 수 없는 상징들에 대한 해답도 찾고 싶다. 그러나 바람과는 달리 목마름을 씻어 줄 상대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주변에서 흔히 만나게 되는 이야기들은 단순히 줄거리를 읊어주는 휘발성 강한 것에 불과하거나, 도통 이해하기 어려운 난해한 언어들로 가득 찬 전문가의 말들뿐이다.

 

그래서 『씨네샹떼』와의 만남은 반가움에서 시작된다. 영화를 보고, 느끼고, 이야기함으로써 이해에 다다르고 싶은 간절함을 알아주는 이를 만난 느낌이다. 『씨네샹떼』의 이야기는 영화의 이론에만 갇혀 있지도 않고, 작품과 동떨어진 사유의 세계를 부유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두 영역 모두를 아우르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영화평론가 이상용이 영화적 기법과 역사에 대한 의미를 짚어준다면 철학자 강신주는 그 안에 녹아있는 인간과 사회와 시대의 자화상을 읽어내는 까닭이다. 영화 전문가와 철학 전문가의 만남인 동시에 영화 문외한과 철학 문외한의 만남인 이유로, 두 사람의 언어는 평범한 관객들의 눈높이를 벗어나지 않는다. 영화 또는 철학에만 국한되지 않는 균형감 잡힌 이야기를 평이하게 들려줄 수 있음은 『씨네샹떼』가 가진 미덕이다.

 

『씨네샹떼』는 지난 해 여름부터 6개월 동안 두 사람이 함께 진행한 동명의 영화 토크쇼를 정리한 것이다. 그들이 함께 감상한 영화에 대한 정보는 물론, 강연을 통해 나눈 이야기, 관객들과 나눈 대화까지도 ‘정돈’해 놓았다. 철학자 강신주가 “책으로 만들면서 많은 부분들을 아프게 버려야 하는 점이 안타까웠다”고 밝혔을 정도로 단순히 내용을 정리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그 이야기들을 책의 언어로 재탄생시키는 데 공을 들였다. 그리고 토크쇼에서는 볼 수 없었던 두 사람의 깊어진 시선을 담아놓았다. ‘철학자의 눈’ ‘비평가의 눈’이라 이름 붙인 장에 실린 글들은 토크쇼가 끝난 후에 적어 내려간 것으로, 소통을 통해 서로의 생각을 넓혀간 두 사람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평론가 이상용은 『씨네샹떼』의 문을 열며 “결과적으로 이 책은 한 권의 시나리오였다. 이를 바탕으로 25회의 촬영 현장이 펼쳐진 것이다”라고 적었다. 충격으로 다가왔던 탄생의 순간부터 성장과 방황을 거치며 현재에 이르기까지, 영화가 걸어온 길을 조명한 이 작품은 ‘영화에 대한 성장 영화’라 부를 만 하다. 뤼미에르 형제와 조르주 멜리에스에서 시작해 로베르 브레송과 알프레드 히치콕, 김기영, 장 뤽 고다르, 우디 앨런과 장이머우를 거쳐 미야자키 하야오와 클린트 이스트우드에 다다르기까지, 영화사의 물길을 틀었던 거장 감독과 작품들이 즐비하다. “예술가의 반열에 오른 탁월한 감독들, 그리고 그들의 빛나는 대표작을 통해 우리 이웃들에게 성찰의 계기를 마련하고 싶었던 것이다”라고 출간 이유를 밝힌 강신주의 말에서도 『씨네샹떼』가 가지는 의미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을 터다.

 

오늘날 영화에 대한 말들은 그 어느 때보다 범람하고 있지만, 정작 영화를 응시하고 들여다보고 생각하면서 동시대를 사유하는 말들은 사라져 가고 있다. 이 책의 열망은 시대의 뒤안길로 접어든 영화의 성찰을 다시금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그리하여 영화와 함께 영화의 언어가 타오르는 것이다. (『씨네샹떼』 15쪽)


 

『씨네샹떼』를 보면 영화의 문법이 보인다


『씨네샹떼』에 소개된 25편의 영화를 선정하는 데 이견은 없으셨나요?


이상용: 아주 단순하게 얘기하면 제가 좋아하는 영화들을 선택한 건데요. 그 중에서도 많은 분들에게 전달될 만한 영화들, 영화사에서 누구나 꼽게 되는 걸작들, 시대의 격변을 끌어안고 있는 영화들을 선택했죠. 조금 더 친절하게 작가를 안내해 드리고 싶었고, 작품을 둘러싸고 있는 맥락들을 같이 말씀드리길 원했거든요. 지역적인 안배를 하기도 했고, 한글 자막이 제공되는 영화들을 고르기도 했지만, 일단은 제가 좋아하는 작품들을 골랐어요. 그래야 편하게 권유할 수 있으니까요.

 

강신주 : 주관적이라는 이상용 선생님의 말은 정직하게 골랐다는 의미에 가까울 거예요. 어떤 사람은 어려운 걸 다룸으로써 자신이 유식하다고 얘기하잖아요. 그런데 이상용 선생님은 영화에 자신감이 있으신 게, 쉬워 보이는 영화에도 굉장히 많은 것들이 있다고 말씀하세요. 저는  보편적인 영화 25편을 꼽았다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이상용 선생님을 감동시켰던 영화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다른 사람도 감동시킬 수 있는 영화들이죠.

 

고전 작품이 두고두고 회자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만, 이미 많이 이야기된 작품을 재론한다는 것이 부담되셨을 것 같기도 합니다.


이상용 : 그렇지는 않았어요. 우리가 고전에 대해서 오인하고 있는 부분이 있는데, 너무 많이 들어서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거든요. 하지만 직접 경험하고 나누는 시간들은 그다지 없는 게 현실이잖아요. 그런 점에서 『씨네샹떼』에서 소개한 작품들은 마땅히 함께 나눠볼 만하고 얘기해 볼만 한 것들이고요. 제가 자신감 있게 편한 마음으로 설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같이 얘기하면 재밌을 작품들을 고른 거예요. 고전의 가치라는 건 같이 읽어보고 보고 경험해야 빛나는 것 같아요. 알고 있다고 믿는 환상 속에서 살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강신주 :『씨네샹떼』를 처음 기획할 때 저희의 의도는, 우리가 처음 영화를 봤을 때의 친근한 느낌을 끌어올리는 거였어요. 그래서 어떤 작품을 처음 봤을 때는 30%만 보였는데 『씨네샹떼』를 읽은 후에는 60% 70%를 본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를 바랐어요. 그러면서 더 성장하고 성찰할 힘도 생기고요.

 

『씨네샹떼』의 구성을 살펴보면 영화라는 존재가 태어나고 성장하는 과정을 순차적으로 보여주려고 한 것 같습니다.


이상용 : 중요한 순간들의 영화들을 끄집어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처음부터 영화의 아버지 격에 해당되는 뤼미에르 형제의 작품부터 최근의 작품까지 다뤄보자는 흐름을 가지고 있었어요. 한 때는 영화사의 중심이기도 했지만 지금은 약간 소외됐거나 수그러든 흐름들도 적절히 안배해야겠다는 생각에서, 상대적으로 할리우드나 미국 영화를 최소화시키기도 했고요. 『씨네샹떼』는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시대적 격변을 따라갔다고 볼 수 있을 거예요. 2차 세계 대전 이전과 이후, 70년대에 보수화되면서 등장했던 세계사의 흐름도 따라가고 있거든요. 영화라는 매체 자체가 시대와 떨어져서 홀로 존재하는 장르가 아니에요. 너무나 대중적인 장르이고 많은 관객들과 함께 호흡할 수밖에 없는 예술 매체이기 때문에, 그 흐름들을 충실히 짚어가면서 따라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렇게 의도하신 이유가 있으실 텐데요.


이상용 : 영화와 관련된 책들을 보면서 안타까운 점이 있었어요. 전체 흐름도 조망하면서 주요한 작품들에 대해서 재해석하거나 지금 우리 시대에 맞게 현대적 언어로 다시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지 않더라고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러 가는데 왜 이런 책들이 없을까, 정말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천만 관객 시대라고 하는데 그에 반해서 영화를 정리하는 움직임은 왜소한 것이 아닌가 싶었던 거죠. 그것이 『씨네샹떼』의 가장 큰 출발점 중에 하나였던 것 같아요.

 

강신주 :제가 영화제에서 관객들과 대화해 보니까, 정작 읽어야 될 보석 같은 것들을 놓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게 너무 안타까웠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관객 수준을 올리는 건데, 그래야 작은 예산의 영화도 사는 거거든요. 문화가 획일적으로 되는 건 끔찍한 일이잖아요. 그런 점에서 영화를 제대로 보자는 느낌이 많이 들었고, 이상용 선생님에게 『씨네샹떼』를 같이 하자고 제안한 거예요. 이 책을 잘 보다 보면 영화 보는 눈이 굉장히 커져요. 인문학에서 문법에 해당하는 건 역사일 수밖에 없거든요. 역사란 기승전결을 요약한 거예요. 『씨네샹떼』를 통해서 영화사 100년을 훑는 순간 영화의 문법이 어떤 식으로 구성되어 있는지 보여요. 수록된 작품은 25편이지만 지금까지 나온 영화 전부라고 할 수 있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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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려면 지적 허영부터 버려라


철학자와 평론가의 만남이어서 좋았던 부분이라면 어떤 것일까요?


이상용 : 만약에 평론가 혼자 혹은 평론가 둘이 했으면 재미없었을 것 같아요. 영화 평론이라는 한계 속에 너무 갇혀서 정보나 지식들을 많이 전달해 줄지언정, 그것들이 현실의 삶과 결합되는 방식에 대한 고민들은 상대적으로 덜했을 수 있었겠죠. 다행히 『씨네샹떼』는 강신주라는 사람과 함께 했기 때문에 영화가 우리의 경험과 삶 속에서 어떻게 인식되는지, 우리에게 어떤 교훈이나 참고가 될 수 있는지 까지도 이야기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영화에 대한 정보는 이미 블로그에 많이 있잖아요. 중요한 건 그것을 우리의 말과 생각과 언어로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인데 그건 어디에도 없죠. 그걸 만들어가기 위해서 이 조합은 굉장히 이상적이라고 생각해요.


강신주 :다른 분야의 전문가 둘이 모이면 담론이 쉬워지죠. 저는 영화에 문외한이고 이상용 선생님은 철학에 문외한이니까, 서로를 이해시켜야 하잖아요. 거기에 관객까지 개입되니까 친근해지고요. 그 부분이 좋았던 것 같아요. 『씨네샹떼』에는 저희가 대화를 나누고 관객들과 질의 응답한 부분들도 담겨 있고, 철학자와 비평가가 영화를 어떻게 봤는지에 대한 글도 실려 있는데요. 그것들이 모여서 진짜 풍성해졌다고 생각해요.

 

“우리 이웃들에게 성찰의 계기를 마련하고 싶었”다고 적으셨는데요. 우리가 영화를 읽고 이야기하는 행위의 목적이 ‘성찰’에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강신주 :성찰은 온 몸으로 뛰어들어야 하는 거예요. 영화라는 매체는 어두운 공간에서 혼자 바라보는 관음증적 매체인데, 사실 영화감독들은 성찰을 요구하거든요. 『씨네샹떼』에 실린 25편의 영화를 결정했을 때도 영화에 물씬 들어가자고 이야기했어요. 이상용과 강신주라는 사람도 이 영화들을 보면서 더 많이 지혜로워졌고 삶을 바라보게 됐으니까요. 성찰의 힘이라는 건 그런 거죠. 피상적으로 살지 말고, 구경꾼으로 살지 말고, 영화 속에 뛰어들어서 젖어 들자는 거예요. 전쟁을 직접 경험해 보지 않아도 좋은 영화들은 그것이 얼마나 참혹한지 가슴 속까지 느끼게 하잖아요. 이상용 선생님께서 선택하신 영화들은 그런 거예요.

 

이상용 :성찰에 대해서 두 가지 범주로 나눠볼 수 있을 것 같아요. 하나는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영화이지만 깊이 들여다보면 숨겨져 있는 것들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있고요. 또 하나는 정말 중요한 영화들인데 지금은 잊혔거나 잘 안 보는 영화들과 만나는 거죠. 고다르(장 뤽 고다르)나 안토니오니(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영화들은 여전히 새롭고 대단히 중요한 영화들인데, 사람들은 낯설게 느끼거나 어색해하고 충격을 받기도 하거든요. 그것 역시 굉장히 중요한 영화적 경험이에요. 그러니까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은 더 깊이 있는 성찰을 할 수 있고, 낯선 것들은 ‘그것이 왜 지금까지도 새롭고 현대적인가’에 대한 성찰을 할 수 있는 거죠. 『씨네샹떼』는 그 두 가지 층위를 골고루 배합해 놨기 때문에 영화들에 다가갈 수 있는 두 가지 길을 발견하실 수도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성찰과 관련해서 많은 분들이 ‘왜 평론가나 철학가의 눈에는 보이는 것이 내 눈에는 보이지 않을까’를 궁금해 할 것 같습니다. 성찰에 이르는 지름길을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강신주 : 우리 눈에는 보이고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게 아니에요. 사람들이 색안경을 끼고 보는 거죠. 제가 공부를 하면서 얻었던 건 딱 하나예요. 내 느낌에 충실하게 바라봐야 한다는 거죠. 중요한 건 정직하게 보지 않는다는 거예요. 스스로에 대해서 자신감이 없으니까 흉내 내려 하거든요. 안경을 벗으면 보여요. 모두가 똑같이 보인다고 말할 때 ‘나에게는 이렇게 보인다’라고 얘기하면 시작되는 거죠. 영화를 보고 내 감정을 울렸던 부분에 대해서 왜 그랬는지, 어떤 기법 때문에 감정이 울렸는지 반성하면 영화 평론이 되는 거예요. 영화가 재미없으면 재미없다고 말하면 되는데, 다들 위대하다고 하면 그냥 따라가거든요. 그 허위가 쌓이는 거예요. 영화 이론을 과잉해서 영혼 없는 이야기를 하지 말고, 어떤 스토리 라인이나 장면에서 감정이 울리면 그것만 반성해도 돼요. 성찰은 그런 거죠. 감정과 느낌 없이 성찰을 하면 지적 허구가 돼요.

 

이상용 :자신의 눈에 보이는 대로 이야기하는 자신감과 솔직함이 비평이라고 생각해요. 그것이 곧 철학이자 성찰이고요. 솔직하지 못하면 안경이든 필터든 쓴 채로 보게 되는 것 같아요. 보이는 대로 말하는 데에 있어서 평론가나 비평가의 위치에서는 책임이 따르죠. 왜 그렇게 보이는지에 대해서 열린 자세로 같이 대화를 나눠야 하니까요. 결국 자신이 왜 그렇게 봤는지에 대해서 언어를 통해서 설명하고 설득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 자신감이 없기 때문에 본 대로 말하지 못하는 거죠. 그 지점까지 갈 수 있다면 누구나 영화를 통해 성찰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씨네샹떼』에서 저희가 나눈 이야기들도 똑같아요. 각자가 영화를 어떻게 봤는지, 왜 그렇게 봤는지 얘기한 거거든요.

 

강신주 : 지적으로 부족해서가 아니라 지적으로 너무 과잉되어 있고 지적 허영이 많아서 영화가 안 보이는 거예요. 정직하게 ‘이 장면이 좋았다’부터 쌓아 올리면 돼요. 어린아이 같은 순진성을 가지고 마음을 열었으면 좋겠어요. 강신주와 이상용이 위대한 게 아니라 ‘그 사람들은 순진함을 회복해서 보이고 나는 잘난 척하기 때문에 안 보인다’라고 생각하면 정답에 가까울 거예요.

 

이상용 : 영화는 숨기는 매체가 아니에요. 다 보여주는 매체죠. 다만 내가 열어놓고 있지 않아서 다가가지 못하는 거예요. 일단 내 눈으로 볼 것, 그리고 앞에 보이는 매체는 모든 것을 들려주고 보여주려고 애쓰는 매체라는 걸 당당하게 대면할 것. 이것이 가장 기본적인 출발점이 될 것 같아요.


 

철학자와 비평가의 행복했던 변화


“궁극적으로 우리는 영화를 통해 철학자가 영화평론가가 되고, 영화평론가가 철학자가 되는 걸 꿈꾼다”고 하셨습니다. 영화를 바라보는 데 있어서 서로의 시선에 영향 받기도 하셨나요?

 

강신주 : 처음에 한 편의 영화를 봤을 때 강신주는 강신주로, 이상용은 이상용으로 있었죠. 그런데 영화를 매개로 이야기를 하고 글을 쓰면서 강신주의 글에 이상용 선생님의 흔적이 남게 됐어요. 이상용 선생님의 글에는 강신주의 흔적이 남게 됐고요. 그렇게 되기까지 과정이 너무 재미있었어요. 더 성장하고 안목이 넓어졌으니까요. 이상용 선생님은 철학적으로 변하고, 강신주는 영화평론가적 감각이 생긴 거예요. 강신주가 영화평론가가 됐거나 이상용 선생님이 철학자가 된 게 아니에요. 이상용 선생님은 어떤 철학자를 만나든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거고, 저도 다른 영화평론가를 만나면 더 잘 이해할 수 있죠. 영화에서 등장인물이 관계를 맺으면서 변화해가듯이 『씨네샹떼』는 실질적 관계에 들어가 있어요. 책이 나오기 전이나 후에 이상용 선생님은 달라졌고 저도 달라졌죠. 그건 행복한 거예요.

 

이상용 :비평가의 눈’ ‘철학자의 눈’ 속에는 강연에서 서로에게 들었던 말들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있죠. 교정 과정에서 보니까 강 선생님 글 속에 제가 했던 말이 있더라고요. 마찬가지로 제가 쓴 글 안에도 강 선생님이 중요하게 다뤘거나 툭 던졌던 말을 받아서 다른 식으로 풀어놓은 부분이 있죠. 강연을 함께했던 청중들뿐만 아니라 우리 자체도 모든 강연의 시작과 끝이 달랐어요. 첫 회를 시작했을 때와 마지막 회를 마칠 때의 호흡과 느낌도 달라져 있었고요. 그 결과물들의 총 집합체가 『씨네샹떼』라고 할 수 있어요.


책이 상당히 묵직합니다. 900쪽 가까운 분량인데요. 조금 더 가벼운 마음으로 접근하려면 어떤 방식이 좋을까요?

 

강신주 : 25편의 영화 중에 분명히 본 영화가 있으실 거예요. 그 부분부터 읽으면 돼요.

 

한편에서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영화를 먼저 보고 책을 보라고 조언하기도 하더군요.


강신주 :어떤 방법도 관계없어요. 가장 쉬운 방법은 자신이 본 영화, 좋아하는 감독에 대한 이야기부터 읽는 거예요. 그러면 금방 알게 될 거예요. ‘내가 좋아하는 이 영화가 이렇게 더 깊게 풀리고 감동을 주네’라는 생각이 들 거고, 그러면 다른 꼭지도 알아서 찾아보게 된다고 생각해요. 책을 먼저 읽으면 우리가 이야기했던 것으로만 영화를 이해하려고 할 거예요. 그러니까 목차만 살펴보거나 영화를 보고, 만약 한 편도 관람한 영화가 없다면 편한 느낌이 드는 영화부터 넘겨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러면 ‘나는 뭘 봤던 거지’하고 놀랄 수도 있을 거예요. 『씨네샹떼』의 목적이 그거거든요. 봤던 영화 다시 보게 하기, 그리고 그런 경험들이 쌓인 뒤에는 보지 않은 영화도 ‘이상용이랑 강신주가 정해 놓은 영화네, 봐야겠네’라는 신뢰까지 끌어내는 거죠.

 

이상용 :책에 실린 영화들은 개봉한 지 오래된 것들이기 때문에 스포일러라는 개념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고요. 사실 좋은 영화들은 내용과 줄거리를 다 알아도 상관없어요. 줄거리나 몇 가지 언어로 요약되지 않는 수많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거든요. 『씨네샹떼』가 다루고 있는 영화들은 내용을 안다고 해서 영화를 아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명확히 보여주는 작품들이에요.

 

철학자 강신주와 영화평론가 이상용은『씨네샹떼』를 통해 영화 담론을 뿌리 내릴 수 있기를 바라고 있었다. 더욱 풍성한 영화 이야기를 피워나가려는 이들의 움직임은 책 밖에서도 활발히 이어질 예정이다. 6월부터는 대학로에 위치한 ‘벙커1’에서 ‘30금 씨네샹떼’라는 이름으로 오픈 강좌를 시작한다. 『씨네샹떼』의 싹을 틔웠던 극장 CGV에서도 새로운 강연을 이어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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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샹떼 강신주,이상용 공저 | 민음사
인구 대비 영화 관객 수가 가장 많은 한국은 세계적인 감독들을 배출하고 있는 영화 선진국이다. 그러나 영화 독자는 정작 읽고 싶은 책을 찾을 수 없다. 어려운 용어만 난무하는 현학적인 글이거나, 영화를 하나의 스토리로 접근한 평론이거나, 또는 소개한 영화를 보지 않고서는 이해할 수 없는 구성이거나 너무 지루한 예술영화 얘기만 하고 있거나… 이 모든 불만 사항을 고려하고 앞으로 펼쳐질 영상 시대를 대비한 종합 대책으로서 『씨네샹떼』를 제안한다.

 

[추천기사]


- 마음의 지도를 그리는 여행 <와일드>
- <백설공주 살인사건> 세 치 혀와 세 마디 손가락이라는 흉기
- 이기적이고 거친 박동의 오르가즘 <위플래쉬>

- <화장> 사람의 마음
- 윤진서 “소설 『파리 빌라』, 예쁜 감성의 책은 아니에요”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샘 혼 “관계를 맺는 것, 그것이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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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ntro : 서두
N=New : 새로움
T=Time : 시간
R=Repeatable : 반복
I=Interact : 상호작용
G=Give : 관심주기
U=Useful : 유용함
E=Examples : 예시

 

인트리그(INTRIGUE). ‘강하게 흥미를 일으키다’라는 뜻의 이 단어는 그 자체로 대화법의 키워드다. 『적을 만들지 않는 대화법』으로 유명한 저자 샘 혼(Sam Horn)은 이 단어에 자신의 새로운 대화법 아이디어를 모두 담았다(그녀는 비즈니스 커뮤니케이션 컨설팅 전문 업체 ‘인트리그 에이전시(The Intrigue Agency)’의 대표기도 하다). 바쁜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서 어떻게 대화를 시작하는지, 무엇을 보여주는지, 어떻게 대화를 계속 이끌어갈 수 있는지, 그리하여 결국 상대와 어떻게 ‘관계 맺는지’에 대해 저자가 직접 경험한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서 해법을 제시한다.

 

2014년 8월 28일자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실린 그레첸 가베트(Gretchen Gavett)의 기사는 화상 회의장에서 참석자들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분석하고 있다. 27퍼센트는 졸고 13퍼센트는 조깅, 선탠, 쇼핑, 개 운동시키기 등 다양한 주제의 잡생각에 빠져 있었다. (중략)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이 기사는 회의 시작에 앞서 5분 동안 참석자들이 돌아가며 개인적인 얘기 또는 업무 얘기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라고 조언한다. 이렇게 하면 타인의 말에 한층 집중하는 분위기가 조성된다는 것이다. (157쪽)

 

2015 아시아 리더십 컨퍼런스에 참석하기 위해 처음으로 한국을 찾은 저자는 시종일관 눈을 맞추고, 흥미로운 사례들을 이야기하며 대화를 주도했다. 어떤 질문에 대해서는 “좋은 예를 찾고 있다”며 깊이 생각하기도 하고, 좋은 사례를 그 자리에서 찾아 보여주기도 했다. 그것이 전혀 ‘기술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저자의 힘이었다. 샘 혼은 주의를 끄는 인용문을 검색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조언하지만 상대와 진짜 관계 맺는 방법에 대해서 여러 페이지에 걸쳐 말한다.“중요한 것은 창조력이 아니다, 공감력이다”(168쪽)라고 한 결정적 이유다. 사람들이 기술적인 대화법에 열중할 때 그녀는 관계 맺기에 집중했다. 상대가 말을 하게 함으로써 상대의 관심을 이끌고 그와 보다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는 방법에 집중했다. 그녀의 조언에 따라 관계 맺기에 성공해 삶을 바꾼 사례들이 넘친다. 상대에 관심을 가지는 것, 그것이 핵심이다. 

 

 

관계를 맺는 것, 그것이 전부다(only connect)


‘관계 맺기’, ‘관심’에서 성공적인 대화의 핵심을 찾으셨어요. 

 
E.M. 포스터(E.M. Forster)가 삶이 끝나는 순간 돌이켰을 때 삶의 목적은 무엇일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는 두 단어로 말했어요. ‘관계를 맺는 것, 그것이 전부다(only connect)’라고 말이죠. 학교에서 수학, 과학, 역사 등은 가르치지만 사람들과 어떻게 관계 맺는지, 친구가 되는지에 대해서는 가르치지 않아요. 또 어려운 상대에게 대처하는지도 가르치지 않죠. 바쁘고 관심 없는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내는 방법도 안 가르칩니다. 그래서 ‘관계 맺기’에 대해 썼습니다. 좋은 대화는 관계 맺기의 핵심입니다.

 

그것은 또한 역설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관계 맺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의미기도 하겠죠.


사람들이 사업차나 여러 가지 국제적인 회의에 참석을 많이 하는데요. 모르는 사람들을 한 번에 많이 만나게 되니까 부끄럽기도 하고, 불편하기도 한 상황을 많이 겪게 되죠. 예를 들어 볼게요. 한 남자가 다른 나라에서 열리는 컨퍼런스에 참석하게 됐어요. 그가 무엇을 했을까요? 호텔 방에만 있었다고 해요.(웃음) 수다를 떨고, 사람들을 만나는 게 불편해서 그랬다고 해요. 이 남자분이 제게 말하기를 21살쯤 되면 자신감이 생기고 알아서 잘 할 수 있게 될 거라 생각했었는데 아니었다고, 아직도 사람들을 만나면 긴장된다고 하더군요. 아직도 뭘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고요. 그가 제게 배운 것이 두 가지 있다고 말했습니다. 한 가지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상대에게 계속 질문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잘 지냈어요?”라고 물으면 “네.”라고 대답하면 대화는 끝이죠. 하지만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으면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끌어낼 수 있다는 거예요. 그는 또 상대에게 질문하는 것보다 중요하게 배운 것은 대화를 다시 돌려주는(turn back) 것이었다고도 했어요. 최근에 본 영화가 있는지 묻고 상대가 어떤 영화를 봤는지 말했을 때, 그 다음 상대에게 내가 본 영화에 대해서 얘기하는 게(take back)아니라 어떤 부분이 재미있었는지, 영화는 어땠는지 다시 상대에게 물으면 대화를 더 많이 이어나갈 수 있다는 것이죠.


제 어머니가 하신 말씀 중에, “말을 제일 많이 하는 사람이 그 자리에서 가장 즐거운 사람”이라는 말이 있어요.(웃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상대에게 계속 묻는 게 대화에서 아주 중요합니다.

 

책에서도 다양한 사례를 많이 들어 말씀하시는데요, 상대가 말을 할 수 있도록 묻는 것도 좋은 예를 하나만 들어주실 수 있을까요?


엔지니어 분이 한 분 계셨어요. 컴퓨터 앞에만 데려다 놓으면 진짜 잘할 수 있는데, 예쁜 여자만 있으면 말을 못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너무 떨린다고 했어요. 그에게 과제를 내줬죠. 모르는 사람과 대화를 시도하라고요. 그는 매일 밤 공원을 시계 방향으로 뛰었는데요, 한 달 전쯤에 반시계 방향으로 뛰는 예쁜 여자를 봤던 거예요. 평소 같았으면 부끄러워서 그냥 지나쳤겠지만 제가 내준 과제가 있으니까 그걸 핑계 삼아 대화를 시도했습니다. 월요일에는 ‘안녕’하며 말을 걸었죠. 여자도 ‘안녕’하고 답했습니다. 화요일에는 ‘좋은 저녁이네요’하며 인사를 건넸고 그녀도 ‘그러네요’라고 인사했죠. 수요일에는 ‘혹시 같이 뛰실래요?’라고 물었답니다. 여자의 대답이 무엇이었을까요? ‘절대 안 물어볼 줄 알았어요!’라는 거였죠.(웃음) 수요일에 이들은 매일 만나 함께 뛰게 됐고요. 그가 대화를 먼저 시도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지금도 서로 반대 방향으로 뛰고만 있겠죠.(웃음)

 

대화법에도 트렌드가 있을 텐데요. 워낙 빠르게 변하기도 하고요. 우리는 이것들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금붕어가 사람보다 집중 시간이 더 길다고 해요. 인간은 8초인 반면 금붕어는 9초라고 합니다. 요즘 트렌드는 짧을수록 좋은 거예요. 예를 하나 들어볼까요. 런던 올림픽 최고기술경영자(CTO, chief technology officer)를 만나 프리젠테이션 할 기회를 가진 저의 고객이 있었어요. 말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되느냐고 제가 물었죠. 한 시간이라고 답하더군요. 저는 그에게 한 시간이 아니라고 말했어요. 프리젠테이션을 시작할 때, ‘올림픽이 200여 일 앞으로 다가왔으니 당신이 얼마나 바쁜지 안다, 10분만 말씀을 드리겠다, 이후에 당신이 궁금한 점이 있다면 우리가 더 대화 나누는 것을 기대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10분 안에 끝내겠다’고 말을 하라고 조언했어요. 상대가 예상했던 시간보다 짧게 대화를 하는 거죠. 상대로 하여금 당신이 시간을 잘 활용한다고 생각하도록 말이에요.

 

오랫동안 커뮤니케이션을 연구하셨으니까 드리는 질문입니다. 처음 생각과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적을 만들지 않는 대화법』에서는 대하기 어려운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관한 것이었어요. 화를 내고 불평하는 사람들에 대해, 혹은 좋지 않은 소식을 어떻게 전할지에 대해 쓴 책이었습니다. 이후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지금 사회에서는 사람들의 주의를 집중시킬 수 있는 대화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말을 할 때 모두 고개를 숙이고 이메일을 확인하고 있잖아요.(웃음)요즘 사람들은 바쁘고, 신경 써야 할 것이 많으니까요.


사례 하나를 들어보겠습니다. 사업 자금을 모으기 위한 자리였어요. 차에 가방을 걸어놓을 수 있는 작은 고리를 가지고 있는 여자 분이 계셨어요. 저는 “정말로요? 이 작은 고리에 투자할 사람을 찾겠다고요?”라고 했죠. 아주 똑똑했던 것이, 설명회 자리에 자동차의 좌석을 직접 가지고 나왔어요. 갑자기 급정거를 해서 가방 안에 있는 것들이 쏟아졌다고 생각하자고 설명했어요. 운전하면서 그것들을 주워 담으려고 하는 장면을 생각해보자고요. 그 모습을 실제로 보여주었더니 그 자리에 있던 어떤 남자가 손을 들어 ‘두 개를 사겠다’고 했습니다. 아내와 딸에게 줄 것으로요. 60초 만에 두 개를 팔았어요. 이것은 무척 흥미로운 사례예요. 이메일을 하거나 관심이 없는 바쁜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이런 방법이 진짜 요즘 필요한 대화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먼저 상대에게 관심을 가지면 관계가 돈독해져


‘공동체’의 가치가 새롭게 조명되는 때기도 한데요. 저자 역시 들어주기, 함께 가야 한다, 나 중심 대화가 아닌 상대 중심의 대화를 하라 등, 기존에 널리 퍼졌던 ‘자신을 드러내라’ 조언과는 다른 메시지를 계속해서 주고 있습니다. INTRIGUE를 구상했는데 이에 대해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듣기도 중요하지만 좋은 질문을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데일 카네기가 인간관계에 관해 책이 15년 전에 썼는데요. 이 책에 대해 ‘현대판 데일 카네기’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가 한 말이 ‘상대방의 관심을 끌어들이려 노력하면서 2년 동안 사귄 사람보다 상대방에게 내가 관심을 보여주면서 2달 사귄 사람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이었어요. 유머가 있고, 똑똑하고, 아는 게 많아야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먼저 상대에게 관심을 가져주면서 관계를 돈독하게 할 수 있어요.


예를 들어볼게요. 제 아들 두 명 모두 하와이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 워싱턴 D.C로 옮겼어요. 이들은 처음에 친구를 사귀려면 내가 진짜 재미있고, 똑똑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자신들이 뭘 하면 관심을 끌 수 있는지를 생각한 거죠. 축구팀에 들어갈 수도 있고, 주말에 함께 해변에 갈 수도 있고, 밴드를 할 수도 있겠죠. 그러나 아이들은 다른 친구가 좋아하는 게 뭔지를 알고 그걸 같이 함으로써 친구를 더 많이 사귀었어요. 처음에는 수줍고, 사람들 만나는 것도 부끄러워했지만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워싱턴 D.C에 가서 몇 주 만에 새로운 사람들을 사귀고 많은 관계를 가질 수 있었던 이유도 그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했을 때 정말 즐거운지에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에요. 그렇게 우정을 쌓았죠.

 

신문기사나 유명인사의 인용문이 많습니다. ‘검색하라’고 조언하기도 하셨지만 ‘무엇을’ 검색하느냐도 아주 중요한 능력이 되었어요. 습관처럼 반드시 하는 것이 있으세요?


첫 번째 조언은 좋은 얘기를 들으면 바로 적으라는 것입니다. 스티븐 마틴(Stephen Martines)이라는 유명한 개그맨이 일요일 아침에 나오는 쇼에서 인터뷰를 했는데요. 그는 사실 가장 웃긴 사람 중 한 명인데, 너무 떨려서 인터뷰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해요. 이후 그 사람은 책으로도 성공을 했고, 영화나 연극에서도 히트를 많이 했죠. 그에게 왜 그렇게 인터뷰를 잘 못했느냐고 물었더니 ‘그 얘기를 30년 전에 나에게 해줬다면 안 떨고 잘했을 텐데’라고 했대요. 그걸 듣고 저는 이 이야기를 적어둬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책이나 세미나에 이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요. 한 번은 직장을 얻지 못해 슬퍼하는 사람에게 “스티븐 마틴이 네 삶이다”라고 말하기도 했어요.(웃음) 몇 달 후 당신은 직장을 얻게 될 것이라고요. 슬픈 상황보다 해피엔딩을 생각하라는 거죠. 눈썹을 치켜 올리게 하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보거나 들으면 적어두는 것이 좋습니다. 당신의 눈썹이 올라갔다면, 다른 사람들의 눈썹도 올라갈 수 있으니까요.

 
무엇을 검색하느냐에 대해서도 말씀 드릴게요. 인용문을 검색할 수 있는 사이트에 가서 원하는 주제를 입력하면 그에 관한 인용문이 있는지 찾을 수 있어요. 인용문을 찾았을 때 나에게 와 닿지 않고 별 의미가 없으면 그것을 인용하지 마세요. 내가 읽었을 때 정말 감정적으로 좋다고 느끼고 기억할 만하다고 생각되는 것만 인용하세요. 제가 최근에 찾은 가장 인상 깊었던 인용문은 파울로 코엘료의 ‘어느 날 당신은 시간이 늘 당신이 하고 싶었던 것을 하도록 기다려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깨달으며 일어날 것이다’는 말이었어요. 이 말을 듣고 제가 느꼈던 감정은 다른 사람도 함께 느낄 수 있어요. 그렇게 감정을 전달할 수 있을만한 인용문을 인용하는 게 좋아요.

 

최신 뉴스에 관심을 가지는 것과 대화를 잘 이끄는 능력이 어떤 연관성이 있을까요?

 

엘레나 크리프라는 사람은 사람들이 특정 사건에 관련되어 있고 싶어한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그 관련성이란 최신 뉴스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제가 참석했던 한 회의의 기조연설을 하신 분 이야기를 할게요. 그는 교육과 편견, 교육의 전망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50년 전에 했던 연구를 인용해서 말을 하더군요. 그것이 좋은 연구였던 것은 물론 맞지만 사람들은 50년 전 연구에 관심을 갖지 않았어요. 어제 일어난 뉴스, 지난주에 시행된 연구를 인용해서 사람들이 진짜 눈썹을 치켜 올릴 수 있도록 하는 관련 있는 이야기를 하는 게 중요해요. 그 관련성이라는 것은 최신 뉴스인가 아닌가에 관해서도 관계가 많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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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 주변의 문제부터


지금 한국사회는 분노와 우울이 많은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계층, 세대 간 소통 부재가 사회문제를 일으키기도 하고요. 이에 대해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이번 아시안 리더십 컨퍼런스에서도 대두된 문제인데요. 일본, 인도 총리,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도 말씀을 하셨고요. 책에서도 한 말인데요. 패티 스톤사이퍼(Patty Stonesifer, 빌&멜리나 게이츠 재단 공동대표)라는 여성분은 380억 규모의 세계에서 가장 큰 자선단체를 운영하고 있어요. 그녀가 워싱턴 D.C에서 노숙자들의 음식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말했더니 사람들은 되물었습니다. 이렇게 큰 자선단체를 운영하면서 지역의 문제에 관여하려고 하느냐고 말이에요. 그녀는 워싱턴에서 노숙자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비영리단체가 몇 개나 되는지 아느냐고 물었어요. 그런 단체는 47개 밖에 없었습니다. 그녀는 어떻게 우리가 워싱턴 안에 있는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면서 전 세계 평화와 기아 문제에 대해 논할 수 있느냐고 말했다고 해요.

 

『적을 만들지 않는 대화법』『사람들은 왜 그 한마디에 꽂히는가』도 똑같이 일단 우리 지역사회 안에서, 개인 간의 대화법과 관계 개선을 통해 그것이 어떻게 전 세계적인 차원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한국 역시 북한 문제, 통일 문제처럼 분개하고 분노할 수 있는 일이 많은데요. 그것에 대해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계속 분개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문제의 해결책은 아니죠. 제 생각은 내 주변 사람들을 좀 더 잘 대하는 방법을 배우고, 그로써 좀 더 나은 관계를 가지게 되고, 대화를 좀 더 잘할 수 있게 되어서 하루하루 나은 삶을 만들면 그것으로부터 세계적인 차원으로 더 나은 사회를 가져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세계적인 차원에서 시작하는 것은 우리가 불평하거나 분개하는 일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에 변화를 가져오기는 어렵습니다. 주변에서, 일상생활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책을 읽은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을 변화시켰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세요?

 

제 강연에 누가 봐도 억지로 참석한 것 같은 60대 남성분이 벽에 기대 서 있었어요. 발 하나는 문 밖으로 나가 있는것 같았어요.(웃음) 제 말이 그에게까지는 닿지 않는다는 걸 알았죠. 강연 후 일주일 뒤에 그 분에게서 메일이 왔습니다. 강연에 참석하기 싫었는데 매니저가 억지로 그 강연에 가게 해서 화가 났던 것 같다는 내용이었어요. 어떻게 하면 그 프로그램을 벗어날지만 생각했었다고요. 며칠 후 그에게 25년 간 결혼생활을 해온 아내가 갑자기 이혼을 요구했다고 하더군요. 그는 그제야 자신이 아내를 정말 사랑하고, 모두 자신의 잘못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어요.

 

그는 제 책에 담긴 말을 기억해서 일단 아내에게 사과를 하고 두 번째 기회를 달라고 말을 했다고 해요. 예전에 그는 절대 사과를 하지 않았대요. 그것은 남자로서 약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결혼해서 처음으로 아내에게 사과를 하고 새로 시작하자고 말을 했대요. 25년 동안 한 번도 하지 않았던 말이었죠. 아내는 그렇게 하겠다고 했고, 결국 이혼하지 않게 되었어요. 제 강연에 자신이 강제로라도 참석하지 않았다면 아내가 이혼을 요구했을 때,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느냐고 화를 냈겠지만 강연에 참석했던 그 하루 덕분에 이혼을 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어요.


이처럼 제 책을 통해 사람들이 언제나 새로운 변화를 이룰 수 있고, 새로운 기회를 가질 수 있고, 사람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고, 이미 상처를 받은 사람일지라도 새로운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재미있는 사례들을 많이 보여주셨거든요. 가지고 있는 이야기가 아직도 많이 있을 것 같은데, 다음 책 출간 계획이 있으신가요?


제 아들 둘이 버지니아 공대를 다녔는데요. 오랜만에 집에 와서 함께 저녁을 먹고 있었어요. 앤드류가 고등학교 졸업한 후로 계속 보지 못했던 라이언이란 친구를 만났다고 했어요. 졸업 후 계속 보지 못해서 궁금하던 차에 말이죠. 저는 아들에게 어떤 사람들은 그걸 ‘세렌디피티(serendipity)’라고 부른다고 했어요. 뜻밖의 재미라는 거죠. 제 생각에 뜻밖의 어떤 것들은 그저 우연이 아니라 운명의 문을 두드리는 밝은 미래가 아닐까 싶어요. 그후 아들이 제게 그 말이 자꾸 생각난다고 하면서 ‘세렌디피티’가 아니라 ‘세렌데스티니(seren destiny)’인 것 같다는 말을 하더군요. 그것에 영감을 받아 신작을 쓰고 있습니다.


‘세렌데스니티’와 관련해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인용문은, ‘차가 차고에 있으면 그 차를 얻어탈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말입니다. 미키 애그러월(Miki Agrawal, 홈페이지: http://www.mikiagrawal.com/) 씨는, 뉴욕은 아파트가 좁아서 사람들이 집에서 밥을 해먹기 싫어하고 밖에서 먹는다는 사실을 생각했어요. 그렇지만 밖에서 사먹는 음식은 몸에 좋지 않고 계속 소화불량이 오잖아요. 그녀는 구글에 피자를 검색하다가 뉴욕에서 판매되는 식품의 10%가 피자라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사람들이 그만큼 피자를 많이 먹지만 몸에는 좋지 않아요. 그래서 몸에 좋은 피자를 만들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그녀는 돈도 없고, 경험도 없었습니다. 히지만 클라우드 펀딩을 통해 농장에서 직송해서 오가닉 피자를 만드는 식당을 열게 됐죠. 지금은 전 세계적인 회사가 되었습니다. 미키 씨는 직감을 따라 돈도 얻고, 경험도 얻었어요. 사람들은 그런 걸 왜 하느냐고 했지만 그 직감을 따랐죠. 그 결과 포브스에서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20인에 들기도 했습니다. 그것이 세렌데스티니와 관련한 하나의 예라고 할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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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을 만들지 않는 대화법샘 혼 저/이상원 역 | 갈매나무
저자 샘 혼은 이 책에서 언어적 공격에 어떻게 맞서야 하는지 보여주고 있지만, 이 책은 싸워서 상대를 때려눕히라고 말하지 않는다. 요점은 적을 만들지 않는 대화법, 공격하지 않고 우아하게 이기는 기술이다. 일상생활에서 바로 써먹을 수 있는 실용적 지혜가 풍부한 이 책은 원하는 것을 놓치지 않으면서도 늘 사람이 따르게 하는 대화 기술을 알려준다.


[추천기사]


- 마음의 지도를 그리는 여행 <와일드>
- <백설공주 살인사건> 세 치 혀와 세 마디 손가락이라는 흉기
- 이기적이고 거친 박동의 오르가즘 <위플래쉬>

- 강신주, 영화를 보려면 지적 허영부터 버려라
- 윤진서 “소설 『파리 빌라』, 예쁜 감성의 책은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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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특집] 한창훈 “작가 되고 싶다면, 비문학적인 것에도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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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한창훈은 『한창훈의 나는 왜 쓰는가』를 펴내며, 서문에 “왜 쓰는가, 이런 거 물어보는 거 아니다”라고 썼다. 이어 “옳기는 하겠지만 좋지는 않다. 짧은 질문은 긴 대답을 요구한다”고 했다. 어렸을 때 글 잘 쓴다는 소리 한 번 들어보지 못했다는 한창훈은 “소설을 쓰고 싶다기보다는 소설가란 직업을 가져야 되겠다는 생각이 더 컸다”고 실토한다. 작가는 왜 수많은 직업 중, 고독하기 짝이 없는 소설가라는 직업을 택했을까. 작가의 글 쓰는 이유가 궁금해 『한창훈의 나는 왜 쓰는가』를 읽기 시작했다면, 서문만 읽어도 궁금증은 해소가 된다.

 

작가의 말마따나 짧은 질문은 긴 대답을 요구한다. “나는 왜 쓰는가”로 시작한 자문자답이 11페이지의 이야기로 확장된 것도 다르지 않다. 한창훈은 브레히트의 시 「책 읽는 어느 노동자의 질문」으로 대답을 끝맺는다. 시는 “성문이 일곱 개인 테베를 누가 지었을까? / 책 속에는 왕들의 이름만 나와 있네”로 시작한다. 작가가 변방이라는 이름으로 인해 이야기되지 않는 존재들을 늘 떠올리는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예전에 <아침마당>에서 출연자가 어렸을 때 헤어진 가족 찾는 것을 수요일마다 했다. 진행 맡고 있던 이금희씨를 어쩌다 만난 자리에서 그 프로그램 관련 이야기를 했다. 그녀가 말하기를 ‘재수없게 아침부터 눈물바람이다’라며 불만을 표시한 시청자가 제법 있었단다. 나는 그 따위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정말 보고 싶었다. 얼마나 인생이 평안하고 즐거우면 타인의 아픔을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왜 아침에는 울어서는 안 되는가 말이다. 내가 쓰는 이유는 그들이 애써 알고 싶어하지 않는 당대 이야기로 그런 종자들을 불편하게 만들고 싶기 때문이다. (13~14쪽)

 

글쓰기는 삶을 궁리하는 방법


오늘 『한창훈의 나는 왜 쓰는가』북 콘서트가 열린다. 서울에는 자주 오는 편인가.


한 달 반 만에 왔나? 평균적으로도 그렇다.

 

현재 거문도에서 살고 있는데 서울에 오면 어떤가.


이제 어디를 간다고 해서 새삼스러울 건 없다. 느낌이 새롭진 않은데, 답을 하자면 가장 먼저 느껴지는 게 소음이다. 워낙 조용한 데 있다가 오니까. 소음이 나를 엄청나게 괴롭히는 건 아닌데, ‘아 사람들이 참 많은 소리를 내면서 살고 있구나’ 라는 걸 의외로 자주 느낀다. 사람이 사는 데 소리가 날 수밖에 없는 건데, 물리적인 특징 때문에 그런 것 같다. 그 외에는 다 똑같다.

 

『한창훈의 향연』개정판을 펴내면서 새롭게 제목을 지었다. 『한창훈의 나는 왜 쓰는가』다. 저자가 “왜 쓰는가?”에 답한다는 게, 민망할 수도 있지 않나.


사실 이 제목이 내 의지와는 상관 없었다. 출판사에서 제안한 제목인데, 괜찮겠다 싶어서 수긍했다. 솔직히 처음에는 어색하고 민망했다. ‘나는 왜 쓰는가’를 제목으로 하면, 뭔가 구체적으로 작가로서의 대단한 이야기를 일부러 하고 있다는 뉘앙스를 줄 것 같아서. 서문에 쓴 것처럼, 질문이 거창하면 답이 초라해진다. 뻔한 답이 나오고 볼품 없어진다. 왜 쓰는가? 보다는 어떤 방식으로 쓰는가? 쓰게 되는 과정은 무엇인가? 무엇으로 하여금 그 사람을 자극해서 쓰게 하는가? 이런 디테일한 질문으로 가면 괜찮은 답이 나올 수 있다. 이런 의미로 제목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출판사 의견에 따랐다.

 

글쓰기는 ‘삶을 궁리하는 방법’이라고 했다.


가장 완벽한 미래 사회에는 예술가가 없다는 말이 있듯이, 사회가 불행할수록 예술은 흥하기 마련이다. 거창한 비유라고 생각해서 쓰는 것도 아니다. 책을 내고 초기 때, 선배 작가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사람이 글을 쓰는 이유는 내 안에 뭔가가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개인적인 명제로 축소된 건데, 나한테는 이게 굳이 답이 아니다. 내가 글을 쓰는 건, 세상의 불행 때문도 아니고 내 안의 뭔가가 궁금해서 쓰는 것도 아니다. 인생이 안 풀린 건 사실이다. 인생이 정말 잘 풀리고 고민 없이 살아도 됐더라면 굳이 이 쪽 세계로 올 이유가 없었을 거다. 왜 이렇게 지난하고 힘든 일을 하겠나. 인생이 안 풀린다는 표현이 진부하긴 하지만, “세상이 이 따위인데 왜 계속 살아야 하지?” 이 질문을 자신한테 계속해서 던질 수밖에 없으니까. 그게 나의 현재이기 때문이 다. 이를 테면 내가 작업선도 탔고 현장 일을 많이 했다. 일을 나가면 되게 고단하다. 자연스럽게 ‘언제까지 내가 이런 일을 하면서 살게 될까’를 생각하게 된다. 이게 삶에 대한 궁리다. 물론 답을 못 찾는다는 짐작은 한다. 글쓰기가 마치 그 행위 같은 거다.

 

소설을 택할 수도, 시를 택할 수도 있었을 거다.


시인은 주로 안테나가 자신을 향해 있는 것 같다. 자신을 탐색하고 들여다보고 자신을 통해서 세상을 읽어내려고 한다. 하지만 소설은 안테나가 타인을 향해 있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통해서 세상을 읽어보려고 한다. 타고난 기질 차이인 것 같기도 한데, 나는 내 안을 들여다보는 걸 별로 안 좋아했던 것 같다. 궁금한 게, 나보다는 타인의 삶이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살고 있지? 그래서 그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물어보고 지켜보고 듣고, 그걸 기록한 게 내 글쓰기다.

 

책에 소개한 일과가 무척 단순하다.“새벽 기상. 바람의 방향과 세기를 가늠하기. 담배 피우면서 그냥 있기. 원고 쓰기. 낚거나 뜯어온 것으로 국 끓여 밥 먹기. 책 읽기. 산책이나 생계형 낚시하기. 그리고 사람들 이야기 듣고 있기.” (109쪽) 한창훈 소설의 가장 큰 원동력은 마지막 일과 ‘사람들 이야기 듣고 있기’가 아닌가 싶다.


내가 살고 있는 섬, 거문도 주민이 1천 3백 명쯤 되는데,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삶을 한 명만 들여다보는 데도 상당한 시간과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1980년대에 나온 초기 팝페라 가수 루이스 터커는 영국의 왕실 오페라단에 있다가 나와서 대중음악을 했다. 내가 한창 여수에서 DJ 생활을 했을 때 「미드나잇 블루」라는 노래가 큰 인기를 끌었는데, 그 때 루이스 터커의 인터뷰 기사를 봤다. 누가 ‘미래에 어떤 계획을 갖고 있는가’를 질문했는데 대답이 인상적이었다. “어느 정도 가수 생활을 한 다음에 고향 시골마을에 가서 동네 카페 앞에 하루 종일 앉아 있고 싶다. 마을 사람들 지나가는 거 구경하고 이야기하는 게 내 마지막 소원이다.” 이 기사를 읽었을 때가 내가 고작 20대 초반이었을 땐데, ‘나도 저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그러고 있는 셈이긴 하다. 맨날 동네 슈퍼 앞에 앉아서 사람들하고 이야기하고, 마을 돌아가는 모습 또는 꼬라지도 보고, 그러고 있으니까.

 

만나는 사람들이 작품의 소재가 되기도 할 텐데.


소재를 위해 사람들을 만나는 건 아니고, 어느 순간 소재가 온다. 굳이 소재를 찾아 헤매고 다니는 스타일은 아니다. 인터넷 검색 같은 것도 잘 안 한다. 자연스럽게 사람들이랑 이야기를 하다가, 문득 어떤 소재가 오면 그걸 그냥 쓴다. 나에게 온 것을 쓰는 거다.

 

서울에서 태어나 자랐다면 한창훈의 작품 색이 달랐을 것 같기도 하다. 서울이란 대도시에서 쭉 살았더라도 글을 계속 썼을까.


생각해보진 않았는데, 작가가 된다는 전제를 깐다면 나는 똑같았을 것 같다. 책에도 썼지만 작가가 되겠다고 생각한 이유 중 하나가 섬에서 얻은 언어와 변방의 정서를 표현할 수 있다는 것과 내가 살아오면서 만난 사람들, 특히 외가 쪽 사람들의 삶을 기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릴 때, 막연히 나이가 들면 고향에 돌아와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는데, 어차피 10살 때까지는 여수에서 살고 광주, 대전 등에서도 살았기 때문에 큰 차이는 없었을 것 같다. 똑같이 글을 썼을 거다.

 

 

작가 되려면 비문학적인 것을 함께 해라


독한 시간대를 보내는 최고의 방법은 ‘독서’와 ‘걷기’라고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인가.


니체는 “걷지 않고 떠오르는 생각은 의심하라”고 했다. 굳이 그 말 때문은 아니지만, 걷기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독서를 물론 하긴 하지만, 다른 작가에 비하면 적은 편이다. 다독은 잘 안 한다. 새로운 책들을 일부러 찾아서 읽는 것보다 신뢰하는 책을 한 번 더 읽는 스타일이다. 책을 읽고 책과 관련된 것을 인터넷에서 찾아보는 것보다 내가 뭔가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걸으면서 더 생각해보는 걸 좀 더 신뢰한다. 걸을 때 생각이 제일 많이 떠오른다. 섬이 좁으니까 계속 같은 길을 걷고 있다.

 

20년 넘게 전업작가 생활을 하고 있는데, 원고를 쓰다가 날밤을 샌 적이 없다. 마감 펑크는 딱 한 번 있었다고 책에 썼더라.


그것도 날짜 계산을 잘못한 거다. 달을 착각했다. 나는 약속 지키는 걸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스타일이라서, 마감이 있으면 언제든 준비를 하고 있다. 원고를 일찌감치 쓰고 최대한 볼 수 있을 때까지 본다. 하여간 볼 수 있을 때까지는 계속 읽어보고 정확히 마감날에 맞춰서 원고를 준다.

 

무작정 글 쓰고 싶다는 사람에게는 어떤 말을 해주나.


질문 정도에 따라서 답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일단, 막연히 쓰고 싶다는 사람에게는 “안 써도 되면 쓰지 않고 살아라”라고 한다. 대개 사람들에게 물어본다. 당신이 생각하고 있는 글쓰기의 좌표나 지점이 어느 정도인지. 그냥 글쓰기의 생활화처럼 당신의 삶을 기록해가고 그것을 정리하는 정도의 글쓰기라고 생각하는지, 작가를 목표로 하는지. 그거에 따라 답이 많이 달라진다.

 

작가를 목표로 하는 사람의 경우는 어떤가.


일단 프로페셔널이 중요하다. 거기에 맞춰서 혹독하게 연습을 해야 한다. 독서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책에도 썼지만 비문학적인 것을 같이 할 필요가 있다. 소설가가 되고 싶다고 해서 소설만 읽고 문학 관련 책만 읽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반대의 것을 해야 한다. 나는 천체물리학을 추천한다. 씨름선수 이만기 씨가 계속 씨름판을 평정했을 때 어느 인터뷰에서 “저녁 시간에는 주로 뭐하시나요?”라는 질문에 “탁구를 친다”고 했다. 100kg 이상을 들어올리는 씨름선수가 세상에서 가장 가벼운 공, 2.7g에 불과한 탁구공을 친다는 거다. 이 기사를 보고 ‘이 사람 정말 똑똑하구나’ 감탄했다. 요즘 컴퓨터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컴퓨터 앞에 8시간을 앉아 있어야 하면 남은 시간에는 뒷산을 천천히 걷는 게 좋다. 반대되는 일을 해야 너무 외골수에 빠지지 않고 중화할 수 있다.

 

작가지망생들에게 또 강조하는 것이 있다면.


필사를 많이 하라는 거다. 가장 닮고 싶은 작가의 작품들을 필사하고, “왜 이 작가는 이렇게 썼나”는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 왜 이 작가가 이 정도에서 문장을 끝내고 그 다음에 이런 길이의 문장을 넣었는지. 이게 눈에 확 들어오기 전까지는 어렵다. 그 전까지는 밀어붙이는 수밖에 없다.

 

보는 눈도 있어야 하지 않나.


전반적으로 작가들은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거에는 눈이 안 가고,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눈길이 간다. 그런 디테일을 보는 눈은 물론 있어야 한다. 작가들은 보통 “넌 어떻게 그런 걸 기억하고 있니?” 라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어릴 때는 엉뚱하다는 말도 많이 듣고. 예술가적 기질이 있다는 소리를 듣고 그러더라.

 

 

중요한 것은 진심보다 태도


소설 쓸 때의 원칙을 기대했는데, 책에 언급한 것은 ‘이야기할 때’의 원칙이다.“새로운 의미나 정보, 웃음. 그 외는 다물고 있자.” (297쪽)고 했는데, 이거 쉽지 않은 일 아닌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삶의 원칙이라고 여길 정도다. 많이 질린 거다. 내가 술꾼이다 보니 사람들하고 많이 어울리고 술 마시면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한 말을 또 하고 또 하는 장면을 엄청 많이 경험했다. 그게 얼마나 괴로운가. 사람을 가장 많이 괴롭히는 일이 나도 알고 있는 말로 나를 가르치려 하는 거다. 그거 너무 괴롭다. 그래서 원칙을 세웠다. 새로운 정보나 의미가 있을 때만 말을 하는데, 그게 자주 있지는 않지 않은가. 또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웃기는 이야기가 아니면 입을 다물자. 백 퍼센트 다 지키진 못하지만 그걸 원칙으로 한다.

 

동네에서 한창훈 작가를 많이 찾겠다.


겨울이 되면 많이들 찾는다. (웃음) 자기들이 떠들고 싶은데, 자기들끼리는 안 들으니까. 나는 잘 들어주는 편이니까 많이 찾는다.

 

또 인상적이었던 것 하나가 “중요한 것은 진심보다 태도”라는 말이다. 특별히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까닭이 있나.


살면서 계속 해왔던 것 같다. 우리는 진심, 진실이라는 것에 굉장히 많은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는데. 약간 예외의 예가 될 수 있겠지만, “너를 정말 사랑해”라고 말하면서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있다. 상대를 진심으로 사랑하긴 하는데, 사랑하는 방법을 잘 모르거나 연습이 돼있지 않았을 때 벌어진다. 질투가 생기면 그걸 사랑이라고 착각하기도 하고. 폭력적인 행동을 해놓고 다음 날 비는 사람들도 있다. “진짜 내 진심은 이 거야”라면서 무릎 꿇고 비는 게, 정상적이라고 행복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진심이 중요하긴 하지만 우리 관계에서 더 필요한 건 태도다.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다. 나도 오랫동안 친밀했던 사람들과 떨어져 지내다 보면, 생각나는 게 그 사람의 진심보다 나를 대했던 태도다. 그 태도가 기억에 남는 거다. 태도는 진심을 읽어내는 가장 중요한 거울이다. 좋은 태도가 나오면, 반응이 나온다. 그런 의미에서 쓴 말이다.

 

스마트폰은 쓰지 않는 걸로 들었는데, TV는 보나?


본다. 뉴스도 보고 다큐멘터리도 보고 프로야구도 좋아한다. 다만 이해가 안 가는 건, 남들이 뛰어 노는 걸 왜 TV로 보고 있는지 모르겠다. 젊은 애들이 자기네들이 나가서 뛰어 놀아야 하는데, 다른 애들이 뛰어 노는 걸 보고 있다. 지금 사회의 가장 어색한 부분 중 하나다.

 

아름답게 늙는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했다. 지금의 고민인가?


결국 내 인생에서 무엇을 목표로 해야 하나, 그것을 많이 고민했다. 20대 후반 때부터였을 거다. 우리나라가 지금 처음으로 노령화 사회가 됐는데, 인류사회에서 한 번도 경험을 못 해본 거라 모두들 어떻게 해야 할지 당혹해 하고 있다. 그래서 건강 염려증 환자들만 많이 생겼는데. 사실 솔직히 말하면 아름다운 노인을 못 만나봤다. ‘저 사람처럼 나이 들고 싶다’ 싶은 사람을 만나보고 싶었는데 그렇지 못했다. 지금은 더 세상을 살아오면서 모델들이 생기긴 했지만, 그 시절만해도 못 찾았다고 할까. 이를테면 미래의 목표를 한 줄로 표현한다면 ‘아름답게 늙어야겠구나. 최소한 그렇게 노력해야겠구나’다. 그래서 자꾸 늙음을 기웃거린다고 할까. 난 어릴 때도 얼른 청년이 되고 싶었다.

 

청춘을 부러워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전혀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청년 때는 얼른 장년이 되고 싶었다. 마흔이 되기를 기다렸다. 마흔이 된 첫 날, 기분이 좋아서 ‘나는 오늘부로 장년이 됐다’라면서 소주를 마셨다. (웃음) 어떤 사주쟁이가 나를 보고 “마흔까지는 죽도록 고생한다”고 해서 그런지, 고생을 죽싸게 했다. 그런데 그 사주쟁이가 나중에는 나이를 오십으로 옮기더라. (웃음) 젊을 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한다. 부럽다는 생각도 없고. 더 나이 드는 게 좋고, 단지 ‘아름답게 늙을 수 있을까’를 여전히 숙제로 붙들고 있다. 요즘 젊은 아이들이 사건 사고로 죽어가는 걸 보거나 교육 시스템 때문에 항상 기가 죽어서 다니는 걸 보면 마음이 걸린다. 씩씩함이 없어진 것 같다.

 

“세상을 앞당겨 살아버리는 게 소설가의 팔자”라고 했는데.


내가 하고 싶은 게 뭘까, 하고 싶어 하는 게 뭘까를 생각해보면. 나이를 더 먹어서 세상을 더 깊이 있게 보고 싶은 거다. 자꾸 더 미래로 가고 싶은 거다. 더 미래가 되면 세상을 더 깊이 있게 읽을 수 있겠지? 그런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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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훈의 나는 왜 쓰는가한창훈 저 | 교유서가
이 책은 소설가 한창훈의 글쓰기가 어디에서 출항하여 어디에 닻을 내리는지 그 과정을 여실히 보여주는 산문집이다. 한창훈의 작품을 두고 바다와 섬, 항구 사람들의 질펀한 삶의 애환을 빼면 설명하기 어렵듯이, 이번 산문집 역시 한창훈 문학의 시원인 거문도와 여수, 부산 등지에서 작가가 고락을 함께했던 사람들과 친척들, 그리고 선후배 문인들과의 진하고 짠한 추억을 생생하게 풀어낸다.


[추천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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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왕따 문제, 객관적인 시선이 정답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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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하기 전에…


최근 붉어진 ‘잔혹 동시’ 논란에 대해 비평가 진중권은 SNS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어린이들은 천진난만하지 않아요. 내가 해봐서 아는데, 더럽고 치사하고 때로는 잔인하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그는 “그 더러움 치사함 잔인함의 절반은 타고난 동물성에서 비롯”된다고 했다. 어린 아이들과 어른들의 본성에 큰 차이가 없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의 말에 공감하며 생각했다. 누군가의 지나간 시절일 뿐인데 그때의 모습이 훗날과 그리 다르지도 않을 거라고.

 

아이들의 모습이 그렇듯 그들이 속한 세계 역시 아름답지만은 않다. 어른들의 세상과 마찬가지로 힘의 논리가 지배하고, 강한 자는 약한 자를 직감적으로 알아챈다. 부모와의 갈등,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 사랑이 주는 달콤함과 씁쓸함도 존재한다.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그 현실이 일반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린이는 모두 천진난만할 거라는  어른들의 편견 때문일까. 아니면 관심과 소통의 부재 때문일까. 이유가 무엇이든 『홀딩파이브 도와줘!』는 그들의 ‘리얼 월드’를 들여다보게 해준다.

 

이제는 많은 이들에게 알려진 ‘홀딩파이브’는 10대들의 고민 상담 애플리케이션이다. 7,800명에 가까운 이용자를 확보하고 있을 정도로 인기가 많다. 10대들을 대상으로 만들어졌지만 20대 30대 성인들은 물론, 청소년 자녀를 둔 부모 세대까지 찾고 있다. 익명성이 보장되는 공간에서 누구나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고, 또 누구나 그를 향해 위로와 응원을 보낼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홀딩파이브’ 안에서 누구도 혼자가 아니라는 마음을 주고받았다. 『홀딩파이브 도와줘!』는 바로 그 마음을 기록하고 있다.

 

‘홀딩파이브’ 애플리케이션의 운영자이자 『홀딩파이브 도와줘!』의 저자인 김성빈은 고민을 털어놓을 대상과 공간이 필요했던 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왕따를 경험했다. “내가 죽지 않고는 절대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는 절망”을 맛보았고 “자살은 더 이상 희망이 없는 친구들의 마지막 몸부림이자 체념의 다른 이름이었던 것”이라고 뼈아프게 공감했다. 그 시간들의 끝에서 ‘홀딩파이브’는 탄생했다. “어른들은 늘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하면서 정작 우리가 필요로 할 때는 옆에 없잖아요”라는 그녀의 외침은 부모님을 움직였고, 애플리케이션 제작 회사로부터 재능 기부를 이끌어냈다.

 

청소년들이 ‘홀딩파이브’에 털어놓는 고민들은 매우 다양하지만 몇 가지 유형들로 대표된다. 학교 폭력, 부모와의 갈등, 이성 문제, 외모에 대한 걱정 등이다. 『홀딩파이브 도와줘!』는 실제로 ‘홀딩파이브’에 올라온 글들을 보여줌으로써 아이들이 견뎌내고 있는 현실을 알려준다. 애플리케이션 내에서 ‘드림인’으로 지칭되는 청소년이 고민을 토로하면, 또래 친구들과 함께 ‘해피인’으로 불리는 멘토들이 댓글로써 공감과 위로를 전했다.

 

왕따를 당한 이후부터 친구 사귀기가 힘들다는 고민에는 “드림님은 사랑받고 존중받아 마땅한 사람이에요”라는 댓글이, 공부도 못하고 뛰어난 재능도 없어서 부모님에게 민폐만 끼치는 것 같다는 이야기에는 “저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어요. 그러니 혼자만 그럴 거라고 생각하지 마세요”라는 응답이 돌아왔다. 용기를 전해주려고 자신의 힘들었던 지난 시간을 털어 놓은 사람도 있었고, 다른 사람이 어떻게 대하든 절대 좌절하면 안 된다고 손을 잡아주는 사람도 있었다.

 

이렇게 『홀딩파이브 도와줘!』는 우리 아이들이 살고 있는 세상의 민낯을 드러내 보인다. 그리고 따돌림사회연구모임, 청소년 상담사, 학습법 전문가 등 오랫동안 청소년과 함께 고민을 나누었던 이들의 목소리도 전한다. 힘든 시간을 보내는 아이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 아이들의 곁을 지키는 어른들에게는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것이다.


 

상처에 공감하려면 자신의 상처부터 털어놓아야 한다


『홀딩파이브 도와줘!』가 출간된 이후 주위의 반응은 어떤가요?


친구들이 책 잘 읽었다고 하면서, 자신이 고민하는 것들이 책 속에 다 있다고 하더라고요. 친구들뿐만 아니라 『홀딩파이브 도와줘!』가 언론에 소개되고 나서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 주셨어요.

 

‘홀딩파이브’의 시작은 10대들을 위한 것이었지만, 갈수록 이용자들의 연령대가 다양해지는 것 같습니다.

 

10대 뿐만 아니라 부모님 세대도 이용하고 계세요. 20대 30대 분들은 자신이 학창 시절에 왕따를 극복한 이야기도 들려주시고요. 학교뿐만 아니라 직장에도 왕따는 있으니까, 그와 관련된 고민 글들도 올라와요. 부모님들은 사춘기 자녀를 두고 계신 입장에서 자녀와 겪는 갈등에 대해 털어놓기도 하세요. 점점 더 많은 분들이 오셔서 고민을 나누시니까 더 좋은 것 같아요. 세대 간에 소통이 이루어지니까요.

 

청소년들이 ‘홀딩파이브’에 털어놓는 고민들은 주로 어떤 것들인가요?


아무래도 가장 많은 건 학교 폭력 문제예요. 이성 문제, 외모 문제, 진로 문제, 학업 문제들도 많지만 비중이 제일 큰 건 학교 폭력 문제인 것 같아요.

 

전문적인 상담 기관들도 많은데 왜 청소년들은 ‘홀딩파이브’를 찾는 걸까요?


실제로 아이들은 상담 센터를 잘 활용하지 못해요. 아픈 이야기를 하는 거니까 자신을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거든요. 그런데 상담 센터에 전화하면 학교와 이름을 물어봐요. 그 분들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저 역시 거부감이 들었던 이유이기도 해요. 그런 점에서 ‘홀딩파이브’가 더 좋은 접근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익명으로 이용할 수 있으니까요. 저도 직접 댓글을 달고 있는데 심각한 상황에 놓인 친구들에게는 전문 상담 센터를 찾아가라고 조언해 주고 있어요.

 

자신과 같이 왕따 문제로 고민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위안이 되기도 했을 것 같아요.


‘나만 힘든 게 아니었구나. 나와 같은 아이들이 이렇게 많구나’ 라는 걸 느끼면서 위로가 된 측면도 있죠. 저보다 더 심한 경우를 당하는 아이들도 많거든요. 그걸 보면서 ‘이 아이들도 이렇게 견뎌 내는데 내가 견디지 못하면 안 되겠다’라는 생각도 들어요. 아마 다른 친구들도 저와 같은 생각을 할 거예요.

 

힘들었던 경험을 털어놓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어땠나요?


제가 말하지 않았으면 사람들은 저에게 그런 아픔이 있는지 몰랐을 텐데, 책을 통해서 그 이야기가 공개된 거잖아요. 사실 힘들었어요. 저희 부모님을 좋지 않은 시선으로 보시면서 ‘딸이 왕따 당했다며?’ 물어보시는 분들도 계셨고요. 그래서 또 상처를 받기도 했죠. 그런데 저와 같은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을 안아주기 위해서는 제 아픔을 먼저 공개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나 역시 그런 일을 겪었고 지금은 극복했다고 말하면서 가까이 다가가고 공감을 전하려면, 결국 이야기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그로 인해서 아이들이 힘을 얻고 치유될 수 있다면 괜찮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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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혼자가 아니야!”라고 말해주세요


『홀딩파이브 도와줘!』에 실린 고민들 중에서 어른들이 가장 이해해 주지 못한다고 생각되는 것은 무엇인가요?

어른들은 외모에 대한 고민을 잘 이해하시지 못하는 것 같아요. 10대들에게는 외모가 차지하는 비중이 굉장히 큰데, 어른들은 그냥 다 예쁘다고만 하시잖아요(웃음). 학교 폭력의 경우에는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공감하기 힘들어요. 어른들 뿐만 아니라 학교 폭력을 경험해 보지 않은 분들은 크게 공감하지 못하시는 것 같아요.

 

학교폭력 문제와 대면했을 때 어른들이 ‘객관화의 오류’를 범한다고 적었어요.


제가 왕따를 경험하면서 느낀 건, 이 문제는 선생님이나 부모님도 해결해줄 수 없다는 거예요. 어른들은 객관적으로 보시려고 하거든요. 피해자도 잘못했고 가해자도 잘못했다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런데 피해자는 소수이고 가해자는 다수잖아요. 둘 다 똑같이 잘못했다고 하는 게 자칫하면 피해자가 문제의 원인을 제공한 것처럼 이야기될 수도 있어요. 피해자와 가해자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조율해야 하지만, 너무 객관적으로 보려고 하는 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힘들고 외로운 상황에 놓인 친구들이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말은 “넌 혼자가 아니야!”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봐도 이 말이 가장 듣고 싶었나요?


네. 그때 제가 선생님을 찾아갔을 때, 첫 말씀이 ‘가해자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데, 네가 피해의식을 갖고 있어서 예민하게 반응하는 거 아니냐’라는 거였어요. 그래서 충격을 많이 받았죠. 이후부터 선생님께서는 제가 가해자들과 같은 공간에 있지 않도록 해주셨는데, 제가 원한 건 그게 아니었어요. 저도 공부할 권리가 있는데 그 아이들 때문에 학교에서 공부할 수 없으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선생님께 말씀드렸죠. 아이들과 분리해 주시길 바라는 게 아니라, 선생님께서 제 이야기를 들어주시는 것 하나만 바랐다고요. 그때 제일 간절했던 건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과 고민을 털어놓을 곳이었어요. 내 말을 들어주는 한 사람만 있어도 숨이 트일 것 같다고 생각했죠.

 

홀딩파이브 도와줘!』에는 또래 친구들인 ‘드림인’과 인생 선배라고 할 수 있는 ‘해피인’이 들려주는 조언이 모두 실려 있습니다. 두 이야기 사이에 차이점이 있나요?


제가 경험을 통해서 느낀 바에 따르면, 우리의 문제는 우리가 해결할 수밖에 없어요. 선생님과 부모님이 우리의 자존감을 높여주실 수는 있지만 해결사는 되어주실 수 없죠. 저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왕따를 경험했다가 2학년이 된 후에 친구들을 사귀게 됐어요. 그 친구들이 제 손을 잡아줘서 이겨낼 수 있었던 거죠. 청소년들은 가해자나 방관자가 되기도 하고 피해자가 되기도 하니까 그에 맞는 노하우를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또래들끼리만 이야기하다 보면 문제는 해결할 수 있어도, 생각이 고만고만해서 꿈과 희망을 키울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우리를  이끌어 주실 분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해피인’ 분들은 꿈과 희망이 자랄 수 있도록 이야기를 들려주시죠.


 

우리에겐 상처받지 않을 권리가 있어요


책에 소개된 조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굉장히 많은데요. ‘힘들어’라는 세 글자만 적힌 글이 올라온 적이 있어요. 장난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상황이잖아요. 저도 장난인가 싶었는데, 댓글을 보고 부끄러워졌어요. 무슨 일이냐, 얼마나 힘들기에 힘들다는 말밖에 하지 못할까, 라는 글들이 올라오는 거예요. 진심으로 들어줄 준비가 돼있는 분들이 많았던 거죠. 그 글들을 지켜보면서 많은 감동을 받았어요.

 

‘홀딩파이브’에 올라온 글들을 그대로 책 속에 옮겨놓았습니다. 의도한 바가 있었겠죠?


애플리케이션 내에서 오래 전에 쓰인 글들은 다시 보기 힘들잖아요. 제가 공감할 수 있고 10대들이 공감할 수 있는 사연들을 『홀딩파이브 도와줘!』에 모아놓고 싶었어요. 학교 폭력을 당하는 아이들의 지침서가 될 수 있도록 만들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한눈에 볼 수 있게 구성한 거예요.

 

지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친구들에게 “우리에겐 상처받지 않을 권리가 있으며, 상처받았다고 해서 꼭 망가져야 할 의무도 없다는 것을” 이야기해주고 싶다고 했습니다. 덧붙이고 싶은 말은 없나요?


지금의 힘든 시간도 언젠가는 끝난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터널에 처음 들어가면 어두움 때문에 괴롭고 힘들지만, 터널을 지나면 밝은 빛이 보이잖아요. 그것과 마찬가지로 지금 통과하고 있는 터널에서도 언젠가 밝은 빛이 보일 테니까, 극단적인 생각하지 말고 ‘홀딩 파이브’에 고민을 털어놓고 위로 받으면서 혼자가 아니라는 걸 느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끝나지 않는 게임은 없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그 친구들과 함께 아파하고 있을 부모님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도 있을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저희 부모님도 ‘네가 잘못했으니까 아이들이 그랬겠지, 아무 이유 없이 그러지는 않았을 거야’라고 말씀하셔서 좌절감이 굉장히 컸어요. 가족도 내 편이 아니구나, 라고 느꼈거든요. 아이들이 부모님께 힘들다고 말씀드릴 때는 정말 힘든 거라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웬만큼 힘들어서는 부모님 걱정하실까봐 털어놓지 않거든요. 힘들다고 이야기할 때는 정말 많이 고민하고 힘들어했던 거예요. 그럴 때는 아이의 편이 되어서 이야기를 들어 주셨으면 좋겠어요. 저희 부모님은 제가 얼마나 귀하고 사랑 받아야 할 존재인지를 인지시켜 주려고 노력하셨어요. 그것도 부모님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선생님이나 주변 어른들이 아이의 자존감을 높이는 데 도움을 주시면, 자신감을 가지고 다른 아이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저 역시 그랬고요.

 

『홀딩파이브 도와줘!』를 통해서 어떤 움직임들이 생겨나기를 기대하세요?


‘홀딩파이브’에 매일 많은 사연들이 올라오는데, 댓글을 달아주실 멘토 분들이 부족해요. 『홀딩파이브 도와줘!』를 보시고 청소년을 감싸주실 많은 어른들이 참여해 주셔서, 청소년과 함께 소통하고 공감하고 위로해 주실 분들이 많아지시면 좋겠어요.


저자는 『홀딩파이브 도와줘!』를 통해 가장 전하고 싶은 이야기로 “많은 어른들이 관심을 가지고 아이들의 마음을 알아주셨으면 좋겠다”는 한 마디를 꼽았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거대한 정책도 아니고 단발적인 이벤트도 아니라는 말도 덧붙였다. 지속적이고 깊은 관심만을 원한다는 그녀의 말은 아프게 다가왔다. 그러나 『홀딩파이브 도와줘!』가 소통의 물꼬를 틀어줄 거라는 기대감이 있기에 절망스럽지는 않았다. 이제 갓 스무 살이 된 여대생에게서 시작된 작은 움직임은 점점 더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홀딩파이브’를 후원하고 싶다고 전해온 기업이 있는가 하면, 각계각층에서 청소년을 위해 노력하던 사람들이 커다란 연대를 그리고 있다. 『홀딩파이브 도와줘!』가 작은 씨앗이 되어 희망을 터트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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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딩파이브 도와줘!김성빈 저 | 마리북스
이 책에는 10대들의 생생한 고민 48가지와 강지원 변호사, 가수 김태우, 성우 김종성 씨를 비롯한 20여 명의 해피인들의 따뜻하고 체계적인 답변이 담겨 있다. 이번 책에서는 기존에 활동하던 해피인들 외에 따돌림사회연구모임(따사모) 선생님들, 김혜민 청소년 상담사, 최귀길 학습 전문가, 정재호 교육 전문가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의 답변이 더해졌다. 불확실한 미래로 불안해하고 고민하는 청소년들의 지침서로 손색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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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안전하지 않은 디지털 세상에서 잊힐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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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구글이 ‘구글 포토’를 발표하고 무료로 무제한의 사진 저장 서비스를 하겠다고 밝혔다. 실시간으로 업로드 할 수도 있고, 업로드 된 파일들이 장소와 날짜별로 정리되는 등 편리한 기능도 함께 설명했다. 인터넷 저장 장소에 용량 제한이 있거나, 더 많은 용량을 사용하기 위해서 돈을 들여야 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내용이었다. 뉴스는 빠르게 내용을 보도했고, 사람들은 소중한 정보가 없어질까 걱정했는데 이런 서비스가 생겨 다행이라며 반겼다. 만일 송명빈 저자의 이야기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었더라면 그렇게 편안한 마음으로 뉴스를 보지만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우리는 저장에만 집중했지, 소멸에 대해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고 지적한『잊혀질 권리, 나를 잊어주세요』의 저자 송명빈은 디지털 시대가 진화함에 따라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더 큰 재앙이 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잊혀질 권리’에 대한 논의는 대재앙의 전조 증상이라는 것. 다시 뉴스를 들여다보자. 한 대학생이 이른바 ‘몸캠 피싱’으로 괴로워하다 자살한다. 연예인이 SNS에 적은 몇 마디 말로 구설수에 오른다. 유명 카드사가 해킹을 당해 수천만 명의 개인정보가 누출된 것은 더 이상 놀랍지도 않다. 하루에도 몇 번 씩 광고 전화와 문자에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이 얼마나 될까.


가장 큰 문제는 개인이 정보를 통제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디지털은 인류가 멸망하지 않는 한 영원히 저장되고, 무한히 복제된다. ‘디지털 장의사’의 등장이 어색하지 않을 날이 멀지 않게 느껴진다. 소설에만, 영화에만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면 저자의 말에 귀 기울이고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보길 권한다. 디지털 세상은 그리 안전하지 않다.

 

 

디지털의 장점은 곧 단점


소설, 영화 등에서도 문제제기를 많이 해왔지만 실제 생활에서 온라인 프라이버시에 관해 체감하는 정도는 아주 미미한 것이 현실입니다. 저자가 처음 ‘잊혀질 권리’에 집중하게 된 건 언제였고,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저는 인터넷 1세대인데요, 그동안 그 누구도 지우는 것에 관심이 없었던 것 같아요. 최근 몇 가지 이슈들로 ‘잊혀질 권리’에 대해 많이 얘기하지만 저는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고 있어요. ‘잊혀질 권리’라는 단어에 혹시 갇혀있지는 않는지 의구심을 가지고요. 그것이 왜 등장했는지, 인터넷이란 무엇인지, 문제가 그것에만 있는지 묻는 거죠. 좀 더 근본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근본적으로는 ‘디지털’이라는 속성에서 시작합니다. 디지털의 장점은 영구불변, 무한복제가 가능한 것이죠. 이는 역사적으로 영세했던 인류에게(웃음) 엄청난 것이었잖아요. 하지만 이게 장점일까요? 단점이지 않을까요? 생각을 바꾸면 거기서부터 단점이 나오기 시작해요. 영구불변한 것이 우리에게 안 좋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거고, 댓글이 무한히 보존되는 것이 문제가 있겠구나 생각하는 거죠. 10년 이상 인터넷 관련 업무를 해오면서 느끼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책에도 다루셨지만 할리우드 유명 배우의 사생활 노출 자료가 웹에 퍼져서 곤란을 겪기도 하고, SNS로 대중의 뭇매를 맞는 연예인들도 많이 있었죠. 이미 퍼진 자료는 아무리 지워도 계속 복제됩니다. 말씀처럼 장점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점점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어요.


검찰에 ‘디지털 포렌식(digital forensic)’이라는 게 있어요. 어떤 사건이 생기면 검찰이 PC, 휴대전화 등을 다 조사하잖아요. 사람들은 수사하기 전에 삭제하고 없애지만 검찰은 모두 복구해내요. 그게 디지털 포렌식인데요. 검찰만 가능한 게 아니라 해커들 역시 가능하다는 의미도 되죠. 지운 게 모두 살아난다는 이야기에요. 파일을 삭제하고 휴지통 비우기까지 하면 완전히 삭제된다고 생각하시잖아요. 그게 아닙니다. 콘텐츠는 그대로 남아있고 연결하는 다리만 붕괴시켜놓은 거예요. 다리만 놓으면 복구할 수 있겠죠? 검찰도 그렇게 하는 거예요. 모든 PC는 복구가 돼요. 심지어 세 번 정도 포맷한 것까지도 복구가 돼요.

 

그와 관련해 책에서 아이디어를 주셨어요. 세 번 이상 포맷을 해야 한다고요.


10GB의 저장소가 있다고 했을 때, 그 용량 가득 덧씌우기를 세 번, 네 번 해야 해요. 제가 5년 전쯤에 PC가 고장이 나서 복구가 되는지 서비스센터에 갔더니 두 시간 있다 오라고 하더라고요. 두 시간 만에 복구가 됐는데 깜짝 놀랐어요. 훨씬 이전 자료들까지 모두 복구가 된 거예요. 머리가 쭈뼛 서더라고요.


인류에게 커뮤니케이션은 굉장히 어려운 숙제였어요. 비용이 많이 들고, 기술이 많이 수반되어야 하는 것이었죠. 종이를 만들어 제본해서 책을 만들기까지 굉장히 힘든 일이었잖아요. 부피도 크고요. 그런데 디지털이라는 것이 생기면서 아주 작은 것에 많은 정보를 넣기 시작했어요. 패러다임이 바뀌기 시작한 거예요. 저장과 기록하는 데 드는 비용이 너무 싼 거죠. 흔해져버린 거거든요. 그러니 사람들은 계속 쟁여 넣어요. 그렇게 쟁이는 것을 제 3자가 관심 있게 보는 거예요. 바로 해커죠. 여기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어요.

 

‘디지털 주권’을 말씀하잖아요. 디지털 주권이 개인에게 제대로 주어져야 한다고 한 저자의 주장에 큰 공감이 갑니다.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부탁 드려요.


패러다임을 봐야 해요. 잊혀질 ‘권리(right)’잖아요. 이 권리는 소비자의 것이에요. 그런데 방송통신위원회나 인터넷진흥원 등에서 공청회를 하면 소비자는 없고 서비스 사업자만 있어요. 서비스 사업자들은 잊혀질 권리에 포커스를 두고 있지 않거든요. 지우고 싶지 않아요. 돈이 되니까요. 정보통신망법 44조라든지 하는 것들이 잊혀질 권리를 대변하는 법안이라고 하잖아요. 서비스 사업자들은 그 안에서 충분히 소비자의 권리를 지켜주고 있다고 얘기를 하고요. 하지만 생각해보세요. 소비자가 포털에 올렸던 게시글을 지우려면 얼마나 걸릴까요? 구글의 경우는 전화번호도 없고 이메일로만 접수하게 되어 있어요. 전화를 할 수 있는 경우도 담당자 찾는 데만 2~3일이 걸릴 거예요.


근본적으로 지우는 것에 인색할 수밖에 없는 구조는 회원수와 저장소라고 하는 부분입니다. 포털사의 기업 가치를 평가할 때 인적 자원, 자산 등과 더불어 평가하는 것이 얼마나 큰 저장용량을 보유하고 있느냐거든요. 썩은 데이터라도 보유하고 있으면 그것이 자산 가치로 인정받는다는 것이죠. 자산이 소멸되는데 지울 이유가 없어요. 우리가 하루에 받는 이메일 중 80%가 광고인데, 그걸 왜 없애지 않고 계속 쟁여 놓느냐는 거죠. 한 가지 더 재미있는 것은, 데이터를 보유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들긴 하지만 높은 자산 가치를 유지해서 수익이 나는 것에 비하면 나쁘지 않다는 점이에요. 그러니까 기업들은 온갖 정보를 계속 가지고 가는 거예요.

 

기업의 논리에서만 본다면 그게 뭐가 문제가 되겠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을 텐데요.


국내 거대 포털사들은 더 이상 한 사람의 것이 아니에요. 국민 기업이란 말이죠. 저장소가 돌아가려면 막대한 전력이 들어가잖아요. 저장소는 또 발열이 되기 때문에 열을 식히기 위해 에어컨디션 시스템이 들어가요. 거의 수력 발전소 하나의 전력이 들어갈 정도예요. 그것은 국민의 혈세로 돌아가죠. 저는 일종의 캠페인이라고 주장을 해요. 왜 썩은 데이터로 기업 가치를 평가받기 위해 이 많은 사회적 비용과 기회 요소와 자산이 들어가야 하느냐고요.


아마 스스로 위기의 순간을 맞게 될 거예요. 아직 인터넷의 1세대, 30년이 다 지나지 않았어요. 이제 사후 문제가 발생합니다. 죽은 사람이 여전히 회원으로 가입되어 있어요. 블로그, 카페, 이메일 계정이 그대로 남아 있죠. 그것들을 포털들은 자산으로 소중히 간직하고 있어요.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것을 말이에요. 앞으로 이런 일이 계속 생겨날 테고 계속 누적이 될 텐데, 기업에서는 대책이 있느냐는 거죠. 저도 죽고, 2세대, 3세대가 되면 그때도 이런 자산, 정보를 계속 보존할 거냐는 거예요.

 

디지털 공간에서 정보를 생산하고 배포하는 비용은 무료에 가깝다. 하지만 한번 뿌려진 정보를 회수하는 데 드는 비용은 천문학적이다. 따라서 모바일 분산 네트워크 공간에서 소멸시효를 정하지 않고 올린 글이나, 아무 장치 없이 게시한 정보를 완전하게 삭제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1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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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에이징시스템(DAS, Digital Aging System)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더 많은 정보를 더 적은 공간에 담을 수 있게 되었어요. 저장소를 유지하기 위한 비용도 점차 줄어들 것이라 기대할 수 있고요. 기업의 입장에서는 손해 볼 것 없는 장사겠네요.


‘무어의 법칙(Moore's law, 인텔의 공동 설립자인 고든 무어가 1965년에 발표)’은 18개월마다 반도체는 2배씩 성장한다는 내용이에요. ‘황의 법칙(2002년 당시 삼성전자 황창규 사장이 발표)’은 12개월마다 2배씩 성장한다는 내용이고요. 그 말은 18개월, 1년 마다 반도체 가격이 반값이 된다는 얘기에요. 8GB짜리 USB가 지금 3만원이라고 하면 내년에는 1만5천원이 된다는 얘기잖아요. 기업 입장에서는 얼마든지 쌓아도 되는 거죠.


하지만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예전에는 인터넷 기록물들이 대부분 텍스트였어요. 몇 킬로바이트면 끝났죠. 지금은 사진, 동영상, 동영상도 SD급, HD급, UHD급으로 바뀌고 이제는 3D까지 나왔어요. 용량이 어마어마하게 많아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용량을 전부 감당할 수 있을까요? 정말 계속 가격은 낮아질까요? 황의 법칙은 깨지지 않을까요? 반도체는 물리적으로 30나노미터 이하까지도 줄일 수 있는데요, 그것보다 더 줄이게 되면 혼선이 발생하기 시작해요. 반도체 자체의 신뢰도가 깨지겠죠. 얼마든지 줄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종이를 반씩 접어보세요. 더 이상 접지 못하는 때가 오잖아요. 저장소 값이 내려가지 않으면 어떻게 되나요. 이제부터 대란이 일어나는 거예요.

 

다만 ‘잊혀질 권리’에 한정된 개념이 아니라 훨씬 큰, 지구적인 관점을 갖고 계시는군요.


‘잊혀질 권리’와 ‘디지털 소멸’의 포함 관계를 잘 모르시더라고요. 디지털 안에 인터넷, 그 안에 프라이버시와 관련된 것이 잊혀질 권리예요. 디지털이 우리 앞에 나타난 게 70년 정도 되었고, 현재는 많은 부분이 디지털로 되어 있죠. 컴퓨터, 휴대전화, MP3, 자동차에 들어가는 CPU와 같은 것들은 기본적으로 디지털 속성을 가지고 있죠. 잊혀질 권리는 디지털과 관련된 커다란 재앙 중 작은 전조증상이라고 책에 썼는데요. 앞으로 디지털 재앙이 어떻게 오는지 상상해봅시다. 휴대전화를 많으면 12개월에 한 번 씩은 바꾸거든요. 노트북도 2~3년 되면 바꾸고요. 버리기 아까우니까 중고로 10만 원이라도 받고 팔아요. 2020년에는 자동차가 무인으로 움직인다고 하는데요. 자동차가 도로 위를 달리는 게 아니라 네트워크 위를 달리게 된다는 말이죠. 앞으로는 시동을 걸면 OS(Operating System)가 부팅될 거예요. 주인이 다녔던 10년, 20년 치 기록이 온전히 폐기될까요? 차는 폐차하더라도 메모리는 아까우니까 시장에 되팔잖아요? 사생활 문제가 다 노출될 거 아닙니까. 자동차에 얼마나 많은 정보가 담기겠어요. 가장 큰 문제는 빅데이터예요. 빅데이터는 우리가 쓸모없다고 생각하는 데이터까지도 정보로 가공하겠다는 것이잖아요.

 

기술의 발전이 인류에게 주는 이점만 엄청나게 강조되어온 것 같아요.


이제 마이크로로봇이 나온다고 해요. 혈관 안에 들어가서 암세포를 잘라내고, 막혀있는 혈관도 자른대요. 그 로봇이 역할을 다하면 죽어서 몸 밖으로 나와야 하잖아요. 그런데 오류가 났다면 어떨까요? 혈관을 돌아다니면서 멀쩡한 혈관을 자른다면 말이에요. 과연 관리가 되겠느냐는 거죠. 디지털에이징시스템(DAS, Digital Aging System)이라고 하는 것은 시한을 둬서 언제까지만 임무를 수행하라는 내용도 물론 있어요. 또한 ‘에이징’이라는 것은 갱신의 의미거든요. 좀 더 사용해야겠으면 ‘YES’라고 신호를 줄 테니 계속하고, ‘NO’라고 신호를 주거나 또는 아무 말이 없다면 그때까지만 임무를 수행하고 소멸되어야 한다는 거예요. 그런 규정이 없으면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자동차, 의료용 로봇, 디지털과 관련된 많은 것들이 문제가 되겠죠. 사물인터넷(IoT, Internet of Things)도 큰 문제예요. 팬티만 입어도 당뇨가 체크된다고 하잖아요. 그 모든 개인정보가 제대로 관리가 되겠느냐고요. 그걸 다 확인하고 싶은 게 빅데이터잖아요. 큰 문제예요.


지금까지 디지털은 생성하고 저장하는 측면만 봤지만 데칼코마니 같은 거예요. 소멸에 대해서 이제부터는 보아야 한다는 거예요.

 

디지털에이징시스템(DAS)으로 디지털 소멸 특허를 세계최초로 취득하셨어요.


제가 꼭 얘기하고 싶은 것은요. 특허로 떼돈을 벌겠다는 것이 아니에요. 대부분 나 혼자만 쓰겠다는 게 특허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특허의 첫 번째 요소는 공개하는 거예요. 등록하면서 다 알게 되잖아요. 그 대신 공개한 사람에게 권리를 인정해주는 거죠. 이런 좋은 아이디어를 공개했으니까 가져다 쓰라는 거예요. 엄청난 돈을 달라는 것이 결코 아니에요. 참 이상한 게, 기업은 창의력에 대해 협의하거나 인정해주지를 않고 그걸 피해서 똑같이 만들려고만 해요.


이 특허는 ‘스냅챗(수신자가 메시지를 읽으면 사라지는 휘발성 SNS)’과도 다릅니다. 그곳 역시 삭제 방식이 아니거든요. 사진을 찍어 보내면 상대가 읽었을 때 5초 이내에 사라지잖아요. 사진을 동영상 5초 간 재생하고 멈추면 사라진 것처럼 보이는 거예요. 서버에서 사라진 게 아니라요. ‘플레이스톱방식’이죠.

 

특허를 내서 ‘공개’를 하려고 했다고 하셨는데요. 디지털 소멸과 관련한 저자의 비전은 무엇인가요?


디지털 소멸은 디지털 생성 전체와 맞먹는 정도의 어마어마한 시장이에요. 그 중에 인터넷 시장은 일부인데, 이것만 하더라도 엄청난 규모죠. 소멸에 관한 시장이 이제 시작되었다고 하면 엄청나게 큰 시장이겠죠. 저는 거기에 비즈니스 모델들을 하나씩 제시하고 있는 거예요. 국가적인 차원에서 우리가 표준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가령 타이머를 단다든지, 어떤 것은 남기고 어떤 것은 소멸시킨다는 식의 로직, 논리구조를 생각하는 거죠. 그것을 인터넷에 적용할 때는 어떻게 한다, SNS에는 어떻게 해야 한다, 블로그나 카페는 어떻게 해야 한다는 규격들을 제시하고 있어요. 지금은 아주 시작단계예요. 


최근 추가로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 있어요. 작년 1월에 카드사에 있던 개인정보가 다 유출되었잖아요. 동사무소, 은행 등에서 작성한 가입서를 쓰레기통에 버렸다가 크게 문제가 된 적도 있었고요. 코어 데이터만 관리한다고 해도 안 되는 거예요. 9급 공무원들이 사용하는 PC 뒤져보세요. 학교 선생님들도 마찬가지고요. 거기에 해커들이 접근해요. 얼마든지 범죄에 악용될 수 있어요. 디지털 소멸 문제는 시급합니다. 

 

 

디지털 콘텐츠의 수명 관리에 대해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


SSO, 클라우드 서비스, 심지어는 A/S를 통해서도 나의 소중한 정보가 유출될 수 있다는 사실은 짐작은 했지만 사뭇 충격적입니다.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편리함과 소중한 개인정보를 맞바꾸고 있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렇죠. 어떻게 믿어요? 어이없는 일이 계속해서 생기고 있는 거죠. 그런데도 기업에서는 관심이 없어요. 한 은행에 제 특허에 대한 설명을 하고, 정보보호의 필요성을 강변한 적이 있어요. 열흘 동안 고민하고 온 답변이 “너희 시스템을 적용할 때 은행 업무가 불편해진다”는 거였어요. 너무 화가 났어요. 은행 편하라고 제안한 게 아니었거든요. 불편하라고 제안한 거죠. 고객을 보호하라고요. 그런데 기업이 편해지는 솔루션이라고 생각했던 거예요. 여전히 정부나 법제 관료들은 서비스 사업자에 포커스 되어 있는 게 너무 안타까워요. 책을 내게 된 것도 좀 읽어보고 소비자들이 얼마나 위험해지는지 알게 되길 바랐기 때문이에요.

 

“항상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66쪽)고 하셨는데요. 위기감을 느끼면 결국 어쩔 수 없이 자기 검열을 해야 하는 지경에 다다르게 되죠. 그래야 한다는 것일까요?


안심하고 하기가 어렵죠. 자기 검열을 해야 해요. 비밀번호를 건다든지, 자료를 주고받을 때 필요 이상으로 조심을 해야 한다는 거예요. 

 

유럽과 구글, 페이스북 같은 미국 글로벌 기업 간 ‘잊혀질 권리’에 관련한 법정 다툼은 우리에게도 주요한 논쟁거리를 안겨줍니다. 바로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것이라는 반론 때문인데요. 이것에 대해서 저자는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가요?


이것이 표현의 자유나 알 권리와 무슨 상관이 있어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선택의 문제인 거예요. 고객에게 자기 선택권을 줘야 한다는 뜻이에요. 키보드에 엔터키가 있잖아요. 그 위에 선풍기처럼 드르륵 돌려서 시한을 설정할 수 있도록 하는 기능을 만들어 넣자는 거예요. 한 달 설정하고 엔터, 두 달 설정하고 엔터를 누를 수 있도록 하자고요. 지금까지는 업로드, 다운로드 외에 뭐가 있었나요. 업로드할 때 시한 설정의 선택권을 준 적이 없잖아요. 나에게 선택권을 달라는 거예요. 내가 글을 올리는 것이니까요. 기업은 한 번도 글을 올리는 개인의 입장에서 생각한 적이 없어요.


올리는 순간 주홍글씨가 되는 거잖아요. 999년과 무제한은 분명히 다른 거예요. 999년은 언젠가 없어진다는 의미예요. 오래 걸리지만 없어지는 거죠. 하지만 무제한은 인류가 망하지 않는 한 없어지지 않는다는 뜻이죠. 그건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는 거예요. 일기를 쓰거나 자신의 의견을 적은 것이 저장되어 있는 기간은 100년이면 족해요. 송도 IT 센터에 가면 뭐라고 적혀있는 줄 아세요? ‘당신의 자료를 천 년 간 보관해드립니다’라고 걸어놨어요. 대체 왜 그래야 하나요. 말이 안 되는 거죠. 우리에게 한 번도 없었던 선택권을 이제는 달라는 거고 자기 결정권을 달라는 거지 알 권리, 표현의 자유와는 관계가 없어요.

 

올리는 순간 주홍글씨가 된다’는 말씀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것 같아요.


공공의 영역과 사적인 영역은 다른 거예요. 기자들이 쓴 것까지 지우겠다는 게 아니거든요. 디지털 콘텐츠의 수명 관리에 대해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에요. 자료를 올릴 때 언제까지 필요하다는 것을 스스로 예측하고 결정하는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는 거예요. 악플을 달았다고 해도 그게 십 년 갈 필요는 없는 거잖아요. 교사인 아내에게 제자가 찾아와 “개명하고 싶다”고 고민을 털어놓는 상황이 그래서 오는 거죠.


저는 사는 동안 인터넷이 나왔어요. 그런데 지금 유치원 졸업하고, 초등학교 들어가는 아이들은 태어나보니 인터넷 세상인 거예요. 휴대전화도 아이들이 더 잘 다루잖아요. 그 아이들은 인터넷이 뭐가 문제다, 이건 이렇게 사용해야 한다고 이해하기 전부터 이런 환경에 노출이 돼요. 인터넷에 욕을 쓸 수도 있고요.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에 올렸던 욕 때문에 취업이 안 되고, 결혼도 못하고, 대대손손 딱지로 남아 있어야 하는 건 아니에요.

 

일련의 위험성들을 고려해 저자가 습관처럼 하는 작업들은 어떤 게 있나요? 독자에게 일상적으로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제안한다면 말이에요.


톡 하는 친구들과 가끔 만나면 다 같이 지우자고 해요.(웃음) 나만 지우면 안 되거든요. 함께 지워요. 굉장히 피곤하죠. 또 정기적으로 인터넷을 검색해서 문제 있는 것들은 지워달라고 요청하기도 해요. 언젠가 자료 삭제 요청을 했는데 안 된다고 해서 정말 힘들게 한 적이 있어요. 회유, 부탁, 애원을 해서(웃음) 일주일 만에 지웠어요. 아마 그 경험 때문에 영향을 받아서 제가 여기에 몰두하는지도 모르겠어요.


잊혀질 권리와 디지털 소멸 관련해서 서비스 사업자와 소비자 구조를 앞서 말씀 드렸는데요. ‘as is’와 ‘to be’로 나뉘어져요. as is는 평판관리회사처럼 용역 베이스로 지우는 거예요. 그러나 그렇게 지우는 것도 한계가 있죠. ‘퍼가기’ 한 것은 애원을 하거나 정말 돈을 많이 주거나 해서 지우는 수밖에 없잖아요. 여러 사람이 퍼갔다면 그들 모두에게 연락을 해야 해요. 몇 달이 걸릴 수도 있어요. 이런 형태는 귀찮음을 대신할 뿐이죠. 지금까지 디지털 소멸과 관련해서는 표준이라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수작업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요. to be는 자동화 시스템이에요. 과거 30년 간 잘못해 온 부분을 100% 되돌릴 수는 없겠지만 지금부터라도 규격을 적용한다면 이제는 관리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저희 특허 논리 구조대로 실행을 하면 퍼가기도 관리가 돼요. 태그값이 남으니까 내가 없애면 퍼가기도 없앨 수 있어요. 그렇게 하면 제한적으로나마 관리가 되는 스탠다드가 만들어질 것이고, 그걸 우리나라가 먼저 만들어서 국제 표준으로 제시할 수 있게 된다는 거예요.

 

(전략)즉 ‘DNA 그리고 이것의 생명주기를 관장하는 이른바 텔로미어의 도입이 바로 디지털 미래의 근본적 해법은 아니겠는가?’에 대한 담론을 시작해 보자는 것이다. (213쪽)

 

깊이 생각할수록 이것이 무척 철학적인 개념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죽음에 관한 문제기 때문이에요. 더불어 인간의 유전자 안에 텔로미어(telomere)가 들어있는 것처럼 디지털 안에 수명 관리 소자를 넣겠다는 개념이 포함되어 있어요. 디지털에이징시스템은 지금 얘기가 아니에요. 지금은 필요 없을 수도 있어요. 디지털이라고 하는 작은 소자 하나하나에 수명 관리 유전자를 심겠다는 것이니까요. 디지털은 앞으로 무한히 변모할 거예요. 오감에 대해서 다 기록하는 날이 올 거고요. 앞으로는 1GB짜리 ‘ㄱ’도 나올 수 있겠죠. 그 글자 안에 냄새나 다른 개념이 들어갈 수도 있고요. 디지털 안에 텔로미어를 넣겠다고 하면 흔히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고 하시겠지만, 그건 지금 얘기죠. ‘ㄱ’ 하나가 1GB인 상황에서는 당연히 텔로미어를 넣을 수 있어요. 디지털에게 아이덴티티를 주고 대신 우리가 정한 시간에 죽어야 한다는 거예요. 책에는 이런 부분을 뒤에서 아주 조금 다루고 있는데요, 다음 책으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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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질 권리, 나를 잊어주세요송명빈 저 | 베프북스
이 책에서는 일상에서 개인정보 유출의 피해를 줄이는 예방법 및 디지털 흔적을 지우는 방법부터 쉽게 활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과 우리가 미처 몰라서 이용하지 못했던 인터넷 사이트 등 다양하고 구체적인 정보를 제시한다. 뿐만 아니라, 잊혀질 권리의 개념과 이를 둘러싼 여러 논쟁, 더 나아가 디지털 소멸이라는 한 차원 더 높은 개념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추천기사]


- 마음의 지도를 그리는 여행 <와일드>
- <백설공주 살인사건> 세 치 혀와 세 마디 손가락이라는 흉기
- 이기적이고 거친 박동의 오르가즘 <위플래쉬>

- [글쓰기 특집] 한창훈 “작가 되고 싶다면, 비문학적인 것에도 관심”
- 왕따 문제, 객관적인 시선이 정답은 아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유수진 “부자 되기는 연애, 다이어트와 똑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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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본 사람은 타인의 아픔을 알아본다. 아버지의 사업이 어려워져 진로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닥치고, 잠을 줄여가며 악착같이 돈을 벌고, 빚을 갚고, 다시 사기를 당하고, 끝내 재기에 성공한 ‘6억 연봉녀’ 유수진. 그가 젊은 여성들에게 집중하고 그들의 삶이 빛나기를 간절히 바라는 이유다. 빛 한 점 없는 어두운 터널을 지나가는 심정으로 젊은 날을 버텨 성공한 자산관리사가 된 유수진은 ‘나의 루비들’이라고 지칭하며 젊은 여성들, “그녀들이 나의 빽”(271쪽)이라고 웃으며 말한다. 20, 30대의 젊은 여성들이 자신에게 컨설팅을 받고 차근차근 부자의 길을 걷는 것을 보는 게 인생의 보람이라고 말하는 ‘언니’ 유수진. 그는 『부자언니 부자특강』을 더 많은 사람들이 읽어보고, 공부하고, 부자 되는 습관을 길러서 선택의 폭이 넓은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11년 경력의 자산관리사가 직접 겪으며, 열심히 공부하며 얻은 노하우가 고스란히 담긴 결과물이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그녀들도 예전의 나처럼 희망 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어차피 부자도 못 될 텐데 돈은 모아서 뭐 하나, 지금 내 행복을 위해 쓰는 게 맞지. 열심히 살아봐야 인생 뭐 달라지겠어. 희망 없이 생기 없이 자신이 보석인지도 모른 채 돌멩이나 원석으로 살아가는 그녀들. 그녀들을 수백 번 수천 번의 손길로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으로 만들어주고 싶다. (17쪽)

 

많은 것을 이룬 성공한 여자 유수진에게 최근 관심 있는 분야가 있는지 물었다. 그는 ‘수행’이라고 말했다. 뜻밖이었다. 이유를 들어보니 곧 수긍이 갔다. 책에서도 누누이 강조했던 균형 잡힌 ‘라이프스타일’을 만들기 위한 끝없는 노력이 엿보였기 때문이다. 마음의 먼지를 털어내는 호흡과 수련을 통해 보다 균형 잡힌 삶을 꾸려나가고 싶다고 말하는 차분한 목소리가 화려한 겉모습 속에 담긴 그의 진짜 속을 보여주는 건 아닐까. 부자는 어느 곳에 투자해서 얼마의 수익을 내느냐가 아니라 ‘라이프스타일’이라고 말하는 유수진. 그는 또한 “어른으로써 보여야 하는 올바른 삶의 자세에 대해 항상 고민하고 있다”고 전하며 20, 30대 젊은 여성들에게 끝없는 응원과 애정을 보냈다.

 

 

여자가 부자 되기 더 쉽다


곳곳에 적힌 ‘언니가...’하는 대목이 눈에 띄어요. 컨셉이 있었던 것 같은데요.


자산관리는 고객과 한 번 인연을 맺으면 1, 2년 안에 끝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원하는 부자가 될 때까지 10년, 20년 인연이 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일을 시작할 때, 나와 대화가 잘 통하고 컨셉이 맞는 사람이 누구일까를 먼저 고민했어요. 제 자신이 20대 직장인 여성이었고, 그때 어떤 게 힘들고 무엇이 궁금했었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분들의 고민을 덜어드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처음부터 저는 직장인 20대, 30대 여성분들과만 상담을 했고요. 이제 나이가 드니까 이분들에게 언니가 되는 거예요. 조금 있으면 이모가 될 것 같아요.(웃음) 부자를 만드는 언니, 줄여서 ‘부자언니’라는 별명도 그렇게 생기게 된 거예요.

 

프롤로그에서부터 ‘여자는 겁이 많다, 그런 성향이 부자 되는 데 큰 장점이다’라고 단언을 하셨어요. 그간의 경험일 텐데요. 여자가 어떤 면에서 부자 되는 기질을 가졌다는 걸까요?


여자들은 일단 계획 세우는 걸 좋아해요. 여행을 가도 출발 전에 항공권 끊고, 숙박을 정하고, 어디를 가고, 뭘 사고, 이런 것에서부터 이미 여자들은 여행이 시작돼요. 계획 하는 것 자체가 즐거운 사람들이거든요. 남자들은 그냥 대충 가서 눈에 보이는 식당에 가 밥 먹으면 되고, 맛있으면 좋고 맛없으면 할 수 없다, 이거예요. 재테크에서도 똑같이 차이가 드러나요. 여자들은 내가 한 달에 얼마 벌고, 얼마 쓰니까, 얼마를 모을 수 있고 이게 쌓이면 몇 년 후에 얼마가 되고, 하는 식의 계산을 앉아서 즐겁게 할 수가 있어요. 그러면 향후 몇 년 안에 부자가 될 수 있구나 계획을 짤 수 있는 거예요. 남자들은 다 필요 없고 인생 한 방이다, 생각해요. 차곡차곡 월급쟁이로 돈 모아서 부자 되는 것보다는 사업으로 한 방에 인생이 역전되기를 원하시는 거죠. 그래서 로또도 하시고요. 그런 성향들 때문에 아예 출발선부터 재테크를 대하는 자세부터가 다른 거예요.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그런 경향이 분명 있다는 거군요.


특징이 있죠. 남자들은 자기 나름대로 계획을 세웠다 하더라도 주변사람들에게 묻지 않아요. 재테크에서 가장 위험한 게 남의 말을 안 듣는 거예요. 물론 남의 말에 휘둘리는 것도 위험하지만 개인의 경험을 일반화시키는 것만큼 위험한 건 없어요. 어떤 것으로 한 번 성공하면 그걸 정답이라고 생각하고 밀고 가는 면이 남자에게 훨씬 많아요. 여자들은 정말 저렴하게 옷을 잘 사도 친구들한테 물어보고 또 물어보잖아요. “얼마이게? 잘 산 것 같아? 예뻐?”하면서 묻고 또 물어요. 여자들에게는 돌다리도 계속 두드리면서 건너는 경향이 대부분 있죠. 남자들은 한 번 오케이라고 하면 쭉 밀고 가는 경향이 있고요. 재테크에 있어서는 여자들의 이런 성향, 안정적으로 계획을 유지하고 꾸준히 유지하고 리스크도 점검하는 방식이 훨씬 더 잘 맞는 거죠. 그래서 부자 되기에 훨씬 더 유리하다고 얘기한 거고요.

 

‘다이어트’에 비교하시기도 했어요. 이른바 ‘부자 되는 방법’이 살 빼는 습관처럼 생활 방식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겠죠?


여자들이 늘 이렇게 말하잖아요. ‘물만 마셔도 살쪄’라고요. 하지만 물을 많이 마셔요.(웃음) 결국은 다이어트도 한 달 동안 몇 kg을 뺄 거야, 이게 아니라 평소 자신의 라이프스타일 자체를 살찌지 않는 라이프스타일로 가지고 계셔야 다이어트가 가능해요. 부자도 마찬가지인 거죠. 언제까지 얼마를 모으고 저축할 거야, 가 아니라 평소에 늘 아끼고 모으는 습관이 몸에 배 있어야 부자가 되시는 거거든요. 그런데 그건 하기 싫고 자꾸 얼마를 모으고, 수익이 몇 퍼센트 나고 이것만 보는 거예요. 살 빼는 것과 똑같죠. 약 먹어서 일단 당장 일주일에 3kg 빼고, 가시적인 성과가 보이는 이런 것만 원하는 거죠. 습관이 안 좋으면 결국 요요현상이 오잖아요. 재테크도 마찬가지예요. 아끼고 모으는 습관이 없으면 아무리 좋은 금융 상품이라도 결국 요요로 다시 돌아와요. 습관, 라이프스타일이 돈을 아끼고 모으는 라이프스타일이 아니라면 절대 부자는 되실 수 없어요. 이 세상에 요행은 없고, 어느 날 갑자기는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요행이 없다는 말이 인상적인데요, 우리는 흔히 ‘부자’라고 하면 어떤 전설처럼 여기는 이미지가 있어요. 그래서 한방 외에 부자가 되는 방법은 없다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그러실 수 있어요. 과거 우리나라는 고도 성장기였어요. 압구정동 예전에 배 밭이었잖아요. 땅 하나 잘 사면 몇 십 억 벌 수도 있는 시기를 지나오면서 봤던 부자들의 모습은 운, 졸부, 이런 모습들만 있었죠. 게다가 국가 경제가 두 자릿수로 성장할 때는 정경유착의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어요. 어디가 개발한다는 정보를 듣고 땅을 사면 땅값이 오를 것이다 하니까 정치와 경제가 유착될 수밖에 없는 거죠. 돈 있는 사람들은 정치하는 분들을 밀어주고, 그분들은 또 정보를 넘겨주고 이들이 사업을 계속 유지할 수 있게 지원을 하거나 하는 방식으로요. 이런 상황을 계속 보다보니 부자는 역시 운이 좋아 땅을 잘 사거나 더럽고 치졸한 방법으로 정권에 로비나 해서 되는 거라는 인식이 있는 거죠. 멋있는 부자들의 모습을 아직 못 본 거예요.

 

멋있는 부자란 어떤 걸까요?

 

부자의 개념부터 바꿨으면 좋겠어요. 부자나 돈은 나쁜 게 아니거든요. 돈이 나쁜가요? 돈을 대하는 태도가 나쁜 거죠. 아주 옛날 최 부잣집, 인근 몇 리 안에 사람이 굶어죽는 일 없게 하라는 그런 얘기도 있었잖아요. 제가 만나는 부자 멘토 같은 분들은 자신이 많은 사람들을 가르칠 수 없기 때문에 저를 가르치면 제가 젊은 20, 30대 여자들을 가르치지 않겠느냐 해서 저한테 아직도 숙제 내주고 하세요. 10억이 1퍼센트면 1년에 얼마 차이, 5년, 10년에 얼마 차이가 나는지 그래프로 그려보라고요. 근대 역사에 대해, 철학에 대해 공부하라고 하는 것도 다 제 멘토들이 알려주신 거예요. 막연하게 행복한 부자 보다는 부자가 되고난 후에 무엇을 했으면 좋겠는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하고 싶어요. 지금까지는 돈을 모으는 것 자체, 부자 되는 것 자체가 목표였거든요. 부자가 되고 나니 할 일이 없어요. 그러니 모은 돈을 잃을까봐 걱정만 하고요. 부자가 되고 난 후의 목표가 있으면 달라져요.


예를 들어 부자가 되면 탈북 청소년을 돕겠다, 혹은 유기견 보호센터를 짓겠다, 이런 목표가 있으신 분들은 부자가 되고 나면 그때부터 할 일이 또 생겨요. 그러면 당신이 하고자 했던 일들을 해나가는 행보가 굉장히 멋있고 아름다운 거죠. 단순히 행복한 부자 보다는 아름다운 부자가 되셨으면 좋겠어요.

 

 

자산관리사에 대한 오해


“평범하게 누리려고 해도 부자가 되어야 하는 그런 세상”(83쪽) 이라는 말처럼 아주 현실적인 조언을 많이 합니다. 커밍아웃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했고요. ‘부자’라는 단어에 부정적 인식이 많이 있어 더 강하게 말씀하신 것 같아요. 자산관리사로서 받는 오해나 일하면서 겪은 어려움도 많았겠죠?


비즈니스 하는 자리가 아니었고, 그저 인사를 하는 자리였는데요. 인사를 하면서 명함을 드리면 “죄송합니다, 명함이 떨어져서요” 해놓고 다른 테이블에 가서는 명함을 나누고 하시는 분들이 계셨어요. 자산관리사라는 이유로 제겐 명함을 안 주시는 거죠. 찾아오거나 귀찮게 할까봐서요. 사회 전반에 있는 저희 직업에 대한 선입견은 ‘금융 상품을 팔아먹으려고 하는 사람’에 불과한 거죠. 저희에게 도움을 준다고 생각하시고요. 정 때문에 상품 하나 가입해주지만 그게 잘못되면 손해는 내가 보니까 이 사람과 관계 맺기가 싫은 거예요.(웃음) 한국 사람들이 생각하는 자산관리사에 관한 개념 자체가 완전히 바뀌었으면 좋겠어요. 이 책이 그런 계기가 되면 좋겠고요.

 

자산관리사로서 가지는 자부심도 있으실 것 같은데요.


이 직업을 택한 후배 분들이 굉장히 많이 계시는데 그분들 무척 힘드실 거예요. 회사에서 알려주는 부분 역시 ‘어떻게 해야 고객을 부자 만들 수 있다’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이 상품을 잘 판매할 수 있다’를 가르치기 때문이죠. 자산관리사라는 직업에 관한 개념, 철학이 바로 서기 힘든 상황이에요. 후배님들 역시 나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에 대해 스스로 한 문장으로 대답할 수 있어야 해요. 그런데 그걸 못하거든요. 친구한테 상담 한 번 받아보라는 얘기가 민폐 끼치는 말처럼 생각 되고, 그러니까 전화해서 ‘지나는 길에 잠깐 들러서 차 한 잔 마시고 그 차가 식기 전에 일어나겠다’는 말을 하게 되는 거예요. 우리가 하는 일은 사람들이 가난하게 살지 않게끔 하는 일이거든요. 이렇게 좋은 일을 하면서도 스스로 하는 일에 대한 긍지, 철학이 없으니까 영업을 모르는 사람부터 만나고 싶다는 말을 하게 되는 거예요.


자산관리사나 재테크에 대해 사회 전반에 번져있는 잘못된 인식들이 좀 바로잡혔으면 좋겠고, 이 직업을 가지신 분들도 이 책을 읽고 공부를 하셔서 어떻게 고객들에게 부자에 관한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가, 진짜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한 번 더 고민하시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제대로 일하는 사람이 늘어나면 금융소비자들도 제대로 서비스 받으시는 분들이 늘어나실 거예요. 그러면 사회 전반의 인식도 좋아질 거라고 생각해요.

 

책을 읽으면서도 느꼈지만 선배로서의 의무감이나 책임감도 굉장히 큰 것 같아요.


그럼요. 저는 예전 회사에 있을 때도 일을 잘했어요. 상담을 하러 들어가면 옆방에서 녹음을 해가는 사람도 있었고요. 약속도 안 하고 저희 지점으로 무턱대고 찾아와서 10분만 얘기하자, 노하우를 좀 알려달라고 하는 분들도 굉장히 많았어요. 시기도 많이 받았고요. 그런데 꾸준히 일을 잘하니까 저 사람은 DNA가 다르다고 해버리시더라고요.(웃음) DNA가 다른 게 아니라요. 제대로 공부하고 제대로 일을 하려고 무던히 애를 썼고, 그러다보니 지금까지 온 거예요. 업계에 이 정도로 오래 일하는 선배 분들의 숫자가 그리 많지 않아요. 저도 영업이 힘드니까 선배를 찾아가서 노하우를 배우고 싶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죠. 그때 저는 그분들의 시간은 고객을 만나는 데 써야 하는 시간이지 내가 함부로 뺏을 수는 없는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찾아가서 알려달라고 하지 못했거든요. 맨 땅에 헤딩하면서 혼자 오다보니 이 역시도 너무 힘들었어요. 후배들에 대해서는 제가 쌓아온 노하우를 정리해서 책으로 담았으니 이 책을 읽고 좀 더 효율적으로, 제가 지나온 가시밭길을 겪지 않고 이 길을 가실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많이 있어요. 어떤 게 진짜 자산관리인지 기준을 바로 세울 수 있게 하는 게 선배들이 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해요. 방법이 없으니 노하우를 도둑질하는 일은 없도록 말이에요.

 

장님이 코끼리 다리를 더듬는 심정이었겠네요. 그 절박함이라는 것이 말이에요.


실제로 SNS에 제 콘텐츠를 그대로 가져가서 자기 것인 양 페이지를 운영해서 ‘좋아요’가 8만 이상 되는 경우를 봤어요. 제 페이지는 3만 7천 명인데요.(웃음) 다양한 콘텐츠를 가져 와서 꾸준히 관리를 하시긴 하는데, 그건 본인 것이 아니잖아요. 출처도 안 밝혔고요. 그게 영업 방해가 돼요. 하지만 문제 삼지 않았어요. 절박하다는 뜻이거든요. 이 일이 결국 나 혼자 어떻게든 헤쳐 나가야 하는 일이다보니 그런 마음이 들겠죠. 그런데 이런 것들을 차라리 양지로 끌어내자고 생각했어요. 책을 보고 차라리 공부하셔서, 본인의 실력으로 만들어서, 발전하셨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남의 것을 카피해서 아무리 포장해도 고객과 상담을 하고 관리하다보면 결국 본인의 실력은 드러나게 되어 있으니까요.


제가 선배로서 해야 하는 일은 자산관리의 기준을 바로 쓰는 것, 그리고 제 노하우를 정형화시켜서 후배들이 공부할 수 있게 교과서 같은 책을 만들어주는 것, 그게 저의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 책을 진짜 많이 읽으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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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인으로서의 의무


경제 역사나 금융 상품에 대한 소개와 함께 추천할 책이나 영상도 많이 담겨있거든요. 공부 정말 많이 하셨다는 생각을 했어요. 노하우를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가르쳐주고 싶다는 마음이 담겨있는 것도 느껴졌고요.


더 궁극적인 목표가 있어요. 어떤 자산관리사도 평생 곁에서 부자 되실 때까지 관리해드리겠다는 약속을 할 수는 없어요. 보장할 수 없거든요. 세상에 어떤 일도 100%는 없고, 제가 고객들보다 먼저 죽거나 병에 걸려 일을 하지 못하는 순간이 올 수도 있는 거잖아요. 제가 정말 해야 할 일은 고객 분들이 스스로 내 돈을 지키고, 불릴 수 있는 힘, 고기를 스스로 잡을 수 있는 방법을 깨우치시도록 해드리는 것이에요. 지금이야 종목도 다 골라드리고, 몇 주를 얼마에 하시라고 다 알려드리지만 말이에요. 이걸 언제까지 해줄 수 있겠느냐는 거죠. 저희가 없으면 어떻게 하겠어요? 스스로 하셔야 되거든요. 세상이 바뀌었고, 바뀐 세상의 패러다임에 적응하시려면 공부하셔야 해요.


뭘 공부해야 하는지조차 모르겠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더 모르겠는 분들에게 상품만 파는 사람이 아니라, 나만 믿고 쫓아오게 하는 게 아니라 금융 교육을 시켜드리는 게 금융인으로서 해야 할 의무라고 생각해요. 사회적인 의무인 거죠. 

 

가장 큰 보람을 느꼈을 때는 언제였나요? 혹은 큰 영감을 주었던 사례가 있다면요?


다 보람이 있어요. 결국은 사람이 변해가는 과정을 지켜보게 되는 직업이에요. 가장 힘든 순간, 어떤 변화의 순간에 가장 먼저 저희와 연락하게 되어 있거든요. 변화라는 것은 돈의 계획에 차질이 생기게 되기 마련이니까요.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이 사람의 인생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꾸준히 보고 가는 직업이에요. 처음 만났을 때 재테크의 ‘재’도 모르시다가 저를 만나 충격을 한 번 받으시죠.(웃음) 그때부터 라이프플랜, 머니플랜을 세우시기 시작하시고요.


저희 카페(‘부자언니 유수진의 부자재테크’)에는 드라마 얘기가 없어요. 다큐 얘기 하세요.(웃음) 그것을 보고 자신의 생각을 얘기할 수 있는 정도가 됐어요. 이 친구들에게 얼마나 많은 변화가 생겼는지 몰라요. 친구들과 차 마시고, 치맥 먹고, 배 나오고 하던 여자들이 이제는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플랜B를 가진 친구들도 있고요. 이렇게 변화하는 모습을 보는 순간들이 굉장히 눈물 나요. 아이를 다 키운 것 같은 느낌도 들고요. 사람이 변하는 과정을 지켜본다는 게 짜릿함과 희열, 보람이 있죠. 그것 때문에 일을 하는 것 같아요.

 

애착이 정말 대단해요. 이 자리까지 오게 된 동력이기도 하겠죠?


그런 것 같아요. 저희도 그렇고 고객들도 그렇고 서로가 서로에 대한 애착이 무척 각별해요. 한 가지, 저는 제게 롤모델이라고 하는 것을 원하지 않아요. 저는 그 친구들에게 정답이고 싶지는 않아요. 뭔가를 제안하고 싶을 때는 그냥 제가 먼저 해요. 그걸 보여주죠. 그걸 보고 멋있다고 생각하고, 자기도 하고 싶어지는 거예요. 이런 과정은 ‘동화’시키는 과정이거든요. 내 생각이 옳다고 강요한다면 그것 자체도 폭력이에요. 강요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깨우치고 동화되는 사람들을 보는 게 행복해요. 일이 힘들다고 투덜대다가도 제가 새벽 한 시에 퇴근한다는 글을 카페에 올리고, 다음날 아침 7시 반에 카페 글에 댓글을 달고 하는 걸 보여주면 자연히 알게 되는 거죠. 게다가 이 친구들이 저를 처음 봤을 때보다 지금은 제가 또 이만큼 성장해 있으니까 발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극을 받고요. 그런 모습을 서로 좋아하는 거죠.

 

“제대로, 잘 살아야 한다. 나를 롤 모델로 삼고 있는 젊은 여자들이 적지 않기 때문에,”(19쪽)라고 하셨는데, 선배로서의 정체성이 저자에게도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올바르고 바르게 살아야 한다고 하는 이유가 이거예요. 큰 잘못을 하고 윤리적으로 문제가 생긴다면 그건 이 친구들에게 상처가 되겠죠. 그래서 잘 살아야 해요.(웃음) 사람이 실수를 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실수했으면 빨리 인정하고 사과하는 모습을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해요. 모르는 걸 모르겠다고, 잘못한 걸 잘못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게 어른이라고 생각하니까요. 어른으로써 이 친구들에게 보여야 하는 올바른 삶의 자세에 대해 항상 고민하고 더 열심히 사는 게 이들에게 보답하는 길이라고 많이 생각하고 있어요.

 

타인에게 끼치는 영향을 생각하시는 그런 저자에게 영감을 주는 ‘멘토’는 어떤 분일지 궁금하네요.


멘토가 한 사람에 국한되어 있지는 않아요. 여러 사람의 좋은 점을 보고 배우려는 타입이에요. 그렇지만 많지도 않고요. 영감을 주는 뮤즈나 멘토가 몇 분 있으시죠. 유명한 분들은 아니고, 진짜 멋있는 부자, 균형이 굉장히 잘 잡혀있는 그런 분들이 계세요. 신앙심이 깊고, 아이들을 정말 예쁘게 키워내셨고, 무척 편안하게 사시는 분이 계신데, 그분에게 영감을 많이 받아요. 이 분은 늘 인생에 문화와 예술이 함께 있어요. 이 분에게 삶에 있어 예술이 주는 균형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배워요. 인문학적 질문들도 배우고요. 어떤 강연에서 『레미제라블』에 관해 얘기를 했는데요. 자산관리사 중에 인문학적 부분과 결부시켜 풀어낼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아요. 그렇듯 인문학적 화두를 늘 제게 던져주시는 멘토가 있어요.


세상에는 남들은 못하지만 나만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모두 할 수 있지만 내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이 있을 텐데요. 후자가 훨씬 어렵다고 생각해요. 모두 할 수 있는 일을 내가 제일 잘하려면 그때부터는 인문학적 인사이트의 싸움이에요. 숫자를 아무리 잘 관리하고, 수익을 아무리 잘 내도 저처럼 고객들과 끈끈하게 갈 수 없는 이유가 있어요. 인문학적 인사이트가 빠져있기 때문이죠. 결국 금융은 숫자가 아닌 사람이라고 하는 이유기도 해요.

 

자본주의에서 민주주의를 실현할 수 있는 방법이라든가 투표를 알고 하는 것도 부자 되는 방법이라고 하셨는데 이런 부분도 비교적 독특한 시선입니다.


이론적인 공부와 필드에서의 공부가 병행되었기 때문에 이런 책을 쓸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자산관리 전문가라고 자격증을 갖고 내세우는 분들 중에 진짜 자산관리사로 성공한 사람들은 없어요. 결국 재테크도 연애와 똑같아요. 글로 배울 수 없거든요. 책으로 배우는 건 분명 한계가 있다는 거죠. 연애도 자꾸 해보고 만나보고 어떻게 사랑하는지 배워야 연애가 늘어요. 그처럼 재테크도 실전과 이론이 접합되었을 때 실력이 늘고 내공이 생기는 거예요. 두 가지가 균형이 잘 맞아야 해요.


멘토에 대해 잠깐 얘기했는데요. 제게 모멘텀을 주었던 친한 언니가 있어요. 투표를 할 때 철학과 소신을 가지고 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해준 사람이에요. 중산층의 개념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었고요. 한국은 중산층 하면 소득이 얼마, 차는 몇 cc 이상, 집은 몇 평, 하는 식으로 모두 숫자예요. 선진국이 정답은 아니지만 선진국의 경우는 좀 다른데요. 나만의 레시피가 있을 것, 사회적 약자에 관심을 가질 것, 하는 식이거든요. 그런 대화를 해나가면서 역사를 공부했어요. 근대사와 자본주의 역사, 돈의 역사까지 모두 공부를 하게 된 거예요. 저는 사실 『자본론』까지 다 공부했어요. 자본주의의 문제, 한국 자본주의의 성숙 단계, 이 단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 등에 대해 연구했죠.

 

자산관리사로서 성공했다고 할 수 있을 텐데요. 앞으로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 일을 오래, 꾸준히 잘하는 게 목표예요.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할 거고요. 저희 회사는 직원을 고객 중에서만 뽑아요. 플랜B를 두라고 말을 하지만 고객들에게는 당신들의 플랜B가 자산관리사가 아니냐고 말해요. 통장잔고가 0에서 얼마까지 어떻게 변했는지, 그 본인의 통장이 자격증이라고요. 자신이 부자 되는 길을 걸어왔고, 저와 같은 철학을 갖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이미 자산관리사로서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이죠. 이 회사가 앞으로 더 잘 되고 번창한다는 것은 우리 고객들의 플랜B가 될 수 있는 토대가 만들어지는 거잖아요. 그래서 이 회사를 더 잘, 꾸준히 잘해야 하는 부분이 있죠.


자산관리사 아카데미를 만들어서 후배들을 가르치고 싶어요. 똑똑한 사람인데 이 직업만 가지면 하루아침에 바보가 되어 버린다고 느껴요. 자존감에 굉장히 많은 상처를 받으면서 이 일을 하는 거예요. 1년 이상 버티기가 굉장히 힘들죠. 그렇지 않다는 것, 잘할 수 있는데 방법을 몰랐다는 걸 알려줄 수 있는 자산관리사를 위한 아카데미를 하고 싶어요. 그건 제가 고객을 위해 시간을 써야 하는 것이 먼저기 때문에 언제 시작이 될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장기적으로 하고 싶은 목표 중 하나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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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언니 부자특강유수진 저 | 세종서적
이 책은 부자는 되고 싶지만 부자가 되기 위한 기초적인 학습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젊은 여성 직장인들을 위해 금융 환경에 맞는 체계적인 재테크법을 알려준다.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4가지가 필요하다. 부자가 되겠다는 굳은 결심, 부자가 되기 위한 인생 설계도, 실제 투자로 이어지는 적극적인 액션 그리고 부자에게 배우는 재테크 생활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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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수영 “사랑에는 피해자도 가해자도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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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숨가쁘게 달려왔다. 문제아였던 청소년 시절을 딛고 골든벨 소녀로 우뚝 선 뒤, 명문대 진학과 졸업 뒤에는 골드만 삭스에 입사. 몸에서 암 세포를 발견한 뒤, 회사를 관두고는 죽기 전에 이루고 싶은 꿈을 찾아 떠났다. 이런 기록을 『멈추지 마 다시 꿈부터 써봐』에 담았다. 이 책이 저자의 이야기를 담았다면, 다른 사람의 꿈 이야기를 담은 책이 『당신의 꿈은 무엇입니까』이다. 꿈 전도사로서 25개국, 67개의 국적을 가진 365명을 찾아다닌 ‘드림 파노라마’ 프로젝트는 SBS 스페셜로 방영되기도 했다.

 

1차 드림 파노라마 프로젝트를 마친 김수영 작가가 이번에는 2탄으로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아시아, 오세아니아로 떠났다. 바뀐 점이 있다면 주제다. 김수영 작가는 꿈이 아니라 사랑에 관해 물었다. 그래서 이번 프로젝트는 드림 파노라마 2탄으로 시작했지만, 러브 파노라마로 이어졌다. 꿈 전도사 김수영이 사랑 전도사로 변한 계기와, 긴 여행 속에서 만난 사람과 그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담은 책 『당신의 사랑은 무엇입니까』이 출간됐다. 책을 내고 바쁜 일정을 소화 중인 김수영 작가에게서 이야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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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사랑이 뭐길래

 

꿈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하셨는데요.

 

저는 험난한 10대와 치열한 20대를 거치면서, 사랑에 관해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사랑이 한 번도 우선순위였던 적도 없었고요. 연애를 해도 자기중심적이었고, 꿈에만 몰입하느라 다른 사람에게 상처도 많이 줬어요.

 

생계라는 과업을 완수하고 나서 그제야 마음이 열렸어요. 한 친구를 만났고, 처음으로 헌신적인 사랑을 했어요. 사랑하다 보니 저 스스로가 이해가 안 되고 그 사람도 이해가 안 되는 상황이 이어졌죠. 결국, 헤어졌어요. 그 친구를 만나면서 몰랐던 저의 수많은 면을 발견하고 스스로 놀라고, 헤어지고 나서도 의문이 풀리지 않았어요. 도대체 사랑이 뭘까… 그렇게 드림파노라마 2탄을 갔지만, 사람들의 꿈 이야기는 들어도 들리지 않았어요. 안 되겠다, 싶어서 아예 사랑에 관해서만 물어보기로 했죠. 그렇게 해서 나온 책이 『당신의 사랑은 무엇입니까』입니다.

 

주제가 달라져서인지 문체도 달라진 것 같아요. 많이 차분해졌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힘들 때, 절에 들어가서 스님과 문답도 주고받았는데요. 스스로 생각해도 사람이 달라졌어요. 예전에는 100% 외향성이었다면, 지금은 반반이에요. 하루는 사람과 많이 만나고 이야기했다면, 다른 하루는 아무 말도 안 하고 집에 있으려고 해요. 나이가 들어서인지,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인지는 모르겠지만, 과거에는 발산만 했다면 이제는 수렴도 하려고 합니다. 혼자만 잘났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지만 지금은 누군가가 쌓아놓은 게 모여서 세상이 존재하고, 세상이 있기에 나도 있다고 여겨요. 좀 더 겸허해졌죠.

 

드림파노라마가 아시아와 중동, 유럽이었고 이번 프로젝트는 아메리카와 아프리카 그리고 아시아와 호주로 이어졌는데요. 공간이 바뀌었다면, 책의 내용은 어떻게 바뀌었을까요.

 

글쎄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가정하는 건 의미가 없을 것 같아요. 공간에 따라 이야기가 달라지는 건 당연할 테고 특히 중동은 종교 쪽에서 다른 이야기가 나왔겠죠. 하지만 공간이 중요하지는 않아요. 매번 사랑이 소중하고 다르죠. 60억의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다른 사람과 만나 상호작용하는 모습은 모두 다르니까요.

 

김수영 작가에게 사랑이란

 

프로젝트 하기 전에 작가님께서 생각하는 사랑은 무엇이었나요.

 

사랑에 관한 개념이 없었던 것 같아요. 태도에서도, 수동적이라고 해야 할까요. 관심 있는 사람이 있어도 적극적으로 다가가서 사귀고 싶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었고요. 영국에서는 연애보다는 일에 집중했어요. 평소에는 마음이 닫혀 있다가, 여행지에 그나마 마음이 잠깐 열려서 홀리데이 로맨스를 하긴 했지만 제대로 사랑을 한 적이 없었어요. 남자친구가 없었던 건 아닌데, 일반적인 연애를 남들처럼 많이 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실연 이후에 공부를 많이 했어요. 답답했으니까요. 처음에는 이름난 연애 블로그에 갔는데, 답이 안 나와요. 그래서 정신분석학, 진화심리학, 인류학, 역사학, 생물학 책들까지 정독했죠. 책에는 이런 내용은 많이 줄인 편이에요.

 

지금은 사랑을 어떻게 정의하시나요.

 

에필로그에도 썼듯, 결국 우리라는 모든 존재 하나하나는 사랑이잖아요. 누군가가 사랑했으니 태어났고, 사랑으로 키웠으니 자랐어요. 우리 존재 자체가 사랑이죠.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사랑하면 한계가 있어요. 서로서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함께 성장해나갈 수 있는 게 사랑이 아닐까요.

 

이번 프로젝트가 전과 달랐던 점이 있었다면? 주제가 사랑인지라, 작가님을 향해 다가온 사람도 많던데요.

 

드림 파노라마 때는 사전에 기획해서 간 프로젝트고 홍보도 열심히 했어요. 많은 나라의 현지 방송과 신문에서 소개되기도 했고요. 이번 여행에서는 저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했어요. 저라는 사람을 설명 안 하고, 그냥 만나고 다녔어요. 한국에서는 어떤 남자가 저를 마음에 들어하다가도, 알고 보니 김수영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갑자기 그 만남이 멘토링으로 바뀐 경우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러브 파노라마 때는 있는 그대로의 저를 좋아해 줘서 감사했습니다.

 

꽤 많은 남자가 작가님에게 구애했는데, 비결이 있나요.

 

제가 유난히 인기가 많았다기보다는 그곳 문화가 달라요. 마음에 들면 주저하지 않고 다가왔어요. 한편으로는 제 에너지 덕도 있는 것 같아요. 실연의 상처로부터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을 때는 에너지가 닫혀있었어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마음이 열리고 제가 저 스스로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면서, 에너지를 발산하고, 그 에너지를 느껴서 저에게 다가오지 않았나 싶어요.

 

인터뷰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연을 꼽는다면.

 

다 기억에 남는데, 트렌스젠더 졸린처럼 힘든 상황 속에서 사랑 꽃피운 사연이 기억에 남죠.

 

라울 리진카 부부도 인상 깊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남자가 무책임한 경우인데요. 한 사람이라도 생각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죠. 사랑이란 두 사람이 같이 만들어가는 거잖아요. 둘 다 노력하고 서로 배려하면 가장 좋겠지만, 한 명이라도 배려하면 끌고 나갈 수 있어요. 둘 다 배려 안 하고 서로 싸우면, 아무것도 안 되겠죠.

 

사랑중독자들 챕터에서는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 이야기인데요. 중복되는 느낌도 있어 책에는 싣지 않았지만, 인도네시아에서 자신을 마음 사냥꾼이라 부르는 사람을 만났어요. 첫사랑이 있었는데, 그녀가 낙태했으니 치료비를 달라고 해서 줘요. 충격을 받았죠. 임신했다는 것도 충격인데, 낙태까지 했으니까요. 그 사람은 술 마시며 방황을 오래 해요. 그런데 알고 보니 여자친구가 가방이 사고 싶어서 말한 거짓말이었죠. 그 뒤로 남자는 첫사랑 때 받은 트라우마로 정상적인 연애를 못 해요. 자기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여자를 유혹하고, 여자가 넘어오면 마음이 식어요. 나를 좋아하는 여자는 뭔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기에 다른 사람들을 오롯이 사랑하지 못하는 이런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아 가슴이 아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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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란 사랑으로 태어나서 사랑으로 죽어가는 존재

 

독자들이 이 책을 어떻게 읽었으면, 하고 생각한 적 있나요?

 

책을 다 쓰고 나서 적어놓은 게 있어요. 그대로 읽어드릴게요. 책을 읽으면서 독자들 마음속 얼음이 하나씩 스르르 녹고 마음이 온기로 채워져 따뜻해졌으면 좋겠다, 몇 번 홀짝이며 눈물도 흘리고 멍하니 앉아 옛사람도 떠올려 보고 그 사람에게 감사하고 자신이 꿈꾸는 사랑도 적어보고 미처 몰랐던 이야기에 놀라고 마지막에 새로운 사랑으로 가슴 설레며 책장을 덮으면서도 한참 동안 자신의 사랑에 관해 생각해봤으면 좋겠다, 그리고 또 그 여운이 사랑의 순간에 머물렀으면 좋겠다… 실제로 독자들이 이렇게 읽었는지는 모르겠네요. (웃음)

 

꿈, 사랑은 결국 인간에 관한 이야기잖아요. 작가님 생각으로는, 인간이란 어떤 존재일까요.

 

인간이란 사랑으로 태어나서, 사랑으로 살고 사랑으로 죽어가는 존재입니다. 사랑이 바탕이 될때 우리는 더 나은 삶과 세상을 꿈꿀 수 있죠.

 

꿈이 한 사람의 미래를 결정짓는다면, 사랑은 그 사람의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까지 관통하는 근원적인 존재의 이유가 아닐까. (56쪽)

 

어느덧 쓴 책이 4권이나 되었는데요. 앞으로 쓰고 싶은 글은?

 

처음부터 책을 많이 쓰려고 의도한 적은 없었어요. 항상 이게 마지막 책이라고 생각하며 썼는데, 지금은 동화 한 편을 쓰고 있어요. 6월부터 중앙일보에 연재하는 초등학교 고학년 대상 꿈에 관한 소설인데요. 저는 책을 써야겠다는 마음보다는 다양한 콘텐츠를 계속 만들 것 같아요. 이미 경험한 게 엄청난 양인데, 그게 영상으로 나올 수도 있고 칼럼이 될 수도 있겠죠. 올 한해는 그 경험을 내보내는 일만으로도 금방 갈 것 같아요.
 
김수영, 하면 꿈을 빼놓을 수 없잖아요. 앞으로도 도전은 계속 하실 건가요?

 

사람의 자존감을 구성하는 건 두 가지인데요. 하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다는 능력에 대한 자신감, 다른 하나는 사랑받을 수 있는 소중한 사람이라는 인식인데요. 저는 전자가 과도할 정도로 높았고, 그 자체로 자존감이 높다고 생각했죠. 이번 프로젝트에서는 후자 쪽에서 많이 깨달았어요. 앞으로 꿈에 도전하지 않겠다는 뜻은 아니지만, 도전하더라도 예전처럼 스스로를 괴롭혀가며,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하면서 이루어야겠다는 생각은 없어요. 러브파노라마 프로젝트를 마친 후, 지금 이 순간, 내가 있는 이곳이 가장 좋고, 내가 하는 이 일이 가장 즐겁고, 내 옆에 있는 이 사람이 소중하다는 걸 깨달았거든요.

 

끝으로 사랑으로 힘들어하는 독자들에게 팁을 주신다면.

 

부정적인 이야기는 안 듣는 게 좋아요. 사랑하는 사람에 관해 9가지 장점을 이야기하다가도 1가지 단점을 말하면, 주변에서 이렇게 이야기하죠. 안 돼, 만나지 마. 사랑을 조건 따져가면서 하는 게 아니잖아요.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휘둘리기보다는 일단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원하는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았으면 해요. 이 세상에 한 명 한 명 소중하지 않는 사람이 없는 만큼 품어주고 안아주고 사랑을 주면, 사랑하지 못할 사람은 없어요.

 

사랑하다보면 여러가지 힘들 수도 있죠. 그러다보면 많은 사람이 자신을 피해자로, 상대를 가해자인양 이야기해요. 하지만 사랑에는 피해자도, 가해자도 없고, 결국은 두 사람이 함께 쓴 스토리에요. 악연도 인연이라고, 다 이유가 있어서 지금 인연을 만난 거니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마세요. 모든 인연이 그렇듯, 사랑도 시작이 있는 만큼 끝도 있으니 감사하는 마음으로 상대에게 최선을 다하는게 가장 중요하죠.

 

모든 인간관계는 상호 영향을 준다. 긍정적인 사람도 부정적인 에너지를 지닌 사람 곁에 있으면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다. 부정적인 에너지를 지닌 두 사람이 만나면 상황은 최악으로 치닫는다. 물론 늘 긍정적인 기운으로만 인생을 살기는 힘들지만, 가급적 좋은 것만 보고 생각하면 인생도 긍정적으로 변하지 않을까? (1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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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사랑은 무엇입니까 김수영 저 | 웅진지식하우스
뜨거운 질문을 안고 시작된 ‘러브 파노라마’ 프로젝트. 김수영은 2013년 9월 캐나다를 시작으로 아메리카,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대륙에서 22개국 127명의 사람들과 만나 108개의 사랑 이야기를 만났다. 나는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일까. 나는 어떤 사랑을 하는 사람일까. 이 책은 그 소중한 경험을 담은 책으로 우리 삶의 존재 이유인 사랑에 대한 가능성과 열정을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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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뻔하지 않은 기적의 공부법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두 번째 음식 시집 낸 한복선 미식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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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선 저자는 다양한 이력을 지녔다. 궁중음식의 대가인 황혜성 교수의 둘째딸로 중요무형문화재 제38호 ‘조선왕조 궁중음식’ 이수자이자, 한본선식문화연구원장이다. 한식의 대중화를 위해 ㈜대복을 경영하고 있기도 하다. 그리고 『밥 하는 여자』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시인이자 미식 작가로 활동 중이다.

 

한복선 시인이 쓰는 시는 독특하다. 소재 면에서 음식을 다룬다. 많은 시인이 작품의 일부에서 음식에 관해 노래하기도 하지만, 그녀의 시에는 음식이 빠지지 않는다. 또 하나 특별한 점은, 음식에 관한 입체적인 경험이 담겼다는 사실이다. 음식을 먹는 데 그치지 않고 재료를 준비하고 음식을 만드는 과정까지를 시에 담았다. 여기에 더해 한국 근현대사는 물론 음식에 얽힌 조선 역사도 시의 소재로 다룬다.

 

음식이라는 친근한 소재를 다루면서도 저자의 경험을 구체적인 시어로 담은 만큼 『조반은 드셨수』는 난해하지 않다. 동시 느낌도 들고, 에세이처럼 읽을 수도 있다. 덕분에 시에 친숙하지 않은 독자도 그녀의 시를 즐겁게 감상할 수 있다. 저자가 직접 그린 민화가 시와 어울려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는 점도 시집이 지닌 매력이다.

 

 

음식 시야말로 인문학 중의 인문학

 

식문화 전문가로 활동해오시다, 시 쓰기를 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매일 음식만 강의하다가, 생각을 해 봤어요. 지금 내 나이에 어울리는 게 무엇일까. 글이더라고요.글은 오래 남고 시끄럽지 않잖아요. 그 동안은 시끄럽게 말을 많이 했다면, 이제는 조용하고 차분하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긴 글로 쓴다면 필요 없는 시끄러움이 더해질 것 같고, 시야말로 나를 간결하게 표현할 수 있는 형식 같았죠.

 

이번 시집에는 어떤 이야기를 담으셨나요?

 

문화와 철학이 함축된 게 인문학이라고 한다면, 시는 인문학이죠. 음식도 인문학이에요. 음식이라는 게 사람을 떠나서 만들어질 수 없으니까요. 이번 시집 역시 많은 사람과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담았어요. 여성으로서의 삶, 어머니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 자식에 대한 사랑, 그리고 음식에 관해 썼어요. 이번 시집에서도 주된 소재는 음식이에요. 음식에도 사계절이 있잖아요. 그래서 계절도 책에 들어가 있어요. 또한 음식의 맛과 조리 안의 의성어, 의태어 등의 맛있는 표현에 사라져가는 우리의 맛과 멋을 생각하며 썼습니다.
 
시상이 떠오르지 않아 어려웠던 적은 없었나요.

 

전혀요.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연스럽게 썼어요. 제 이야기를 하는 거니, 소재를 찾는 데 어렵지도 않았고요. 첫 번째 시집인 『밥 하는 여자』가 제 이야기잖아요. 제가 아는 음식의 종류도 많으니 소재 찾느라 고생할 일도 없죠. 첫 번째 책이나 두 번째 책에도 여러 가지 음식이 나와요. 음식 이야기를 하면서 제 추억도 넣고, 역사 속 이야기도 넣었어요. 제 시집을 읽고는 지인이 지식이 많이 들었다고 해요. 음식 만드는 사람들은 당연히 알고 있는 사실인데, 음식 안 하는 분들에게는 생소한 거죠.

 

 

한복선 시인의 시에는 희망과 측은지심이 공존

 

시집에 주로 담으려고 했던 정서가 있나요.

 

제 시는 우울하지 않아요. 동시 같다고도 하고요. 이 시집에는 희망을 담으려고 했어요. 희망도 있지만 삶에 대한 측은지심, 배려, 미안함도 있어요. 음식을 먹는다는 행위에는 살아 있는 것을 죽음으로 초래하는 무자비한 면도 있거든요.

 

많은 작품 중에 표제작을 정할 때 고민하셨겠어요.

 

시라는 건 나를 보여주는 것이니까, 가장 나를 잘 표현할 수 있는 작품을 고르느라 첫 번째 시집은 『밥 하는 여자』로 정했어요. 그리고 누구나 밥을 먹고 살잖아요. 밥이라는 한 글자가 뭉클하니까 시집의 제목으로도 적당하겠다 생각했죠.

 

두 번째 시집인 『조반은 드셨수』는 시어머님이 하신 말씀이었어요. 시어머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한낮인데, 막내아들에게 “조반은 드셨수”라고 물었어요. 우리 엄마들은 항상 밥 타령이잖아요. 본인이 배불러도 자식이 밥 안 먹으면 항상 배고프잖아요. 우리 말에는 아랫사람이라고 해서 함부로 하대해서 말하지 않았어요. 자식에게도 밥 먹었냐고 안 하고 조반은 드셨냐고 공대했죠.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사랑은 많은 사람이 공감할 제목인 것 같아 이 작품으로 표제작을 정했어요.

 

우리 어머니는 아픈 아기에게


어미 입에 밥 잘근잘근 씹어 먹이시며


밥 먹어야 힘 난다며 평생 부엌에서 사셨다


어머니 돌아가시기 전에도


막내 아들 보며 “조반은 드셨수”


한낮인데 아침밥 걱정이다 (<조반은 드셨수> 중, 18쪽)

 

시와 함께 실린 민화를 직접 그리셨는데요. 민화는 어떤 계기로 그리기 시작하셨나요.

 

그림을 좋아했어요. 대학교 때는 유화를 그렸지만, 완성을 못 했죠. 궁중 음식을 하니까, 민화가 어울리겠다 싶어 그리기 시작했어요. 실용적인 목적도 있었어요. 연구원에서 1년에 한 번씩 전시를 할 때 병풍이라든지 필요한 게 있거든요. 그럴 때 쓰면 좋겠다 싶어 꾸준하게 그렸어요. 개인전이나 시를 염두에 두고 그린 건 아니지만, 시집에 민화를 붙이니 생각보다 잘 어울렸어요.

 

<물밥>, <젯날> 등에는 한국전쟁 이야기 나오잖아요.

 

우리나라 역사를 봤을 때는 항상 평화롭지는 않았어요. 영화 <국제시장>에도 나오듯, 지금 우리의 평화가 그냥 얻어진 게 아니에요. 저마다 불만이 있겠지만 한국은 정말 잘 살아요. 우리 선대가 전쟁터에서 물밥이라도 먹으면서 살아남았기 때문인데요. 이번 시집에서는 우리의 역사성도 조금 보여주고 싶었어요. 시 한 편 한 편이 『혼불』처럼 소설이 될 수도 있다고 봐요. 『혼불』도 우리 민속 문화에 관해 많이 썼는데, 이 시집에도 전통문화를 많이 담았죠.

 

그때 이야기를 해 주실 수 있나요.

 

한국전쟁 때, 갓난아기였으니 기억은 안 나죠. 커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어머님께서 고생을 많이 하셨어요. 돈암동에서 태어나서 충청도로 피난을 가는데, 남자들은 먼저 피했어요. 아버지가 큰아들만 데리고 먼저 갔고, 어머니가 저랑 언니를 데리고 피난을 갔죠. 논바닥에 버려놓은 솜이불을 기저귀 삼아 채우고 그렇게 갔대요. 하루는 우마차에서 언니를 잃어버려서 하룻밤 자고 나서야 찾기도 했다고 해요. 우리 둘은 자전거에 태우고 어머니는 걸어서 충청도까지 가셨어요. 그렇게 고생해서 가시다가, 밤에 갑자기 눈이 안 보였대요. 영양실조 때문에요. 그런데도 저는 식충이처럼 엄마의 젖을 먹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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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은 규격 없는 서로의 어울림

 

<깨진 그릇>과 <준치 새>는 젊은 세대를 향한 조언 같이 들렸습니다.

 

<깨진 그릇>은 100년 계약을 맺어 선서했더라도 삶에 희망이 안 보인다면, 새는 그릇 사이로 물을 줄줄 흘릴 게 아니라 팍 깨고 나가라는 시죠. 누구를 위해 사나요? 나를 위해 살아야 해요. 예전에야 자식, 부모 때문에 울고 참고 살았지만 그게 옳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내가 나를 위해야 다른 사람도 나를 위해줄 수 있어요.

 

아버님은 딸기, 어머님은 생란을 떠올리셨는데요. 선생님 자신은 어떤 음식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시에도 썼듯, 저는 유자이고 싶어요. 유자는 전통적인 우리의 과일이지만, 레몬과 오렌지 계통의 서양적인 맛이 나잖아요. 가시가 있는 은장도처럼 함부로 접할 수 없는 고귀함도 있고요.

 

<내연의 MSG>를 재밌게 읽은 독자가 많을 것 같아요. 이 시는 어떤 경험으로 떠올리셨나요?

 

오늘의 영양학은 영원하지 않아요. 와인이 좋다, 커피가 좋다 이런 이야기에 사람들이 너무 많이 흔들리죠. MSG가 죽일 놈이라고, 한 사람이 이야기하면 MSG 장사는 하루아침에 망하는 세상인데요. 정작 식약청에서 조사했더니, 좋은 천연 재료에서 나온 거라고 밝혀졌잖아요. 음식 만드는 사람들이 조금씩 다 쓸 거예요. 그런데도 MSG가 몸에 안 좋다고 하니까, 말을 못해요. 내연 관계죠. 숨겨둔 애인.

 

MSG를 사용하면 김치찌개든, 된장찌개든, 순두부든 맛이 획일화된다는 비판도 있잖아요.

 

사용하는 법을 몰라서 그래요. MSG 넣는다고 다 맛있는 줄 알지만, 아니거든요. 탕수육 소스 이런 데는 MSG 넣으면 더 맛이 없어져요. 양념은 물감 팔레트 같아요. 본인이 원하는 초록을 내기 위해서는 그때그때 다르게 섞어야 하는 것처럼, 양념도 마찬가지예요.
 
음식은 규격 없는 서로의 어울림(12쪽)이라는 말씀과도 통하네요.

 

음식이 예술이라는 말은 조선 요리 강령에도 나와 있어요. 우리나라 음식은 레시피가 없어서 음식이 아니라는 비판도 있지만,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레시피가 없다는 건 가장 고차원적이라는 뜻이에요. 파스타는 누구나 만들 수 있죠. 실제로 아르바이트생이 서양 요리를 만들기도 하잖아요. 우리나라 음식은 반찬도 쉽게 못 만들어요. 음식은 첫째가 재료, 둘째가 지식, 그다음이 정성 이 세 가지가 합쳐져야 나오는데, 예술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어요.

 

 

한식 세계화, 우리가 먼저 한식을 알아야

 

재료를 말씀해주셨는데, 먹거리 안전성에 관해 불안한 소식이 자주 들립니다.

 

마일리지 적은 음식, 로컬푸드 이야기가 결국은 신토불이일 텐데요. 자연의 기를 받은 음식이 옳은 길이긴 합니다. 그렇지만, 이제 다민족국가인데 우리 것만 고수할 수는 없어요. 다변화하는 세상에서 우리 것만 찾는 건 어렵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사람을 믿고 싶어요. 나쁜 음식 만들면 잡아내잖아요. 현실적으로 내가 다 키워 먹을 수 없는 세상이니, 서로가 믿어야죠.

 

김치와 갈비를 상품화하는 활동도 활발히 하고 계신데요.

 

제가 홈쇼핑에 출연하니까 상업에 팔려 간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다르게 생각해요. 우리 음식을 상품화해서 주부의 일손을 덜어 줄 수 있거든요. 음식 만드는 걸 즐기는 사람도 있지만, 집에서 쉬고 싶고, 그 시간에 친구 만나고 싶은 사람도 있어요. 이런 사람들이 우리 음식을 쉽게 구입하고, 음식 만들 시간에 딴 일을 할 수도 있겠죠. 옳은 길을 갈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선생님은 평소에 어떤 음식 드시나요?

 

어떤 사람은 제가 궁중 요리를 하니까, 한국 음식만 먹을 거 같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어요. 아니에요. 아침에 빵 먹으면, 점심에는 밥, 그리고 저녁에는 국수든지 딴 걸 먹어요. 다변한 걸 좋아하죠. 머리 스타일도 저의 자유로움을 표현하는 거예요. 경직되지 않은 생각을 유지하려고 노력해요.

 

한류를 이야기하면서 한식의 세계화가 빠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전문가로서 한식의 세계화에 관해 고견을 들려주신다면.

 

저도 지금 상품화 하는 일을 하고 있는 개인사업자인데요. 궁중음식연구원에서는 교육도 하고요. 한식의 세계화가 가능하게 하려면 우선은 우리가 우리 음식을 사랑하고 잘 알아야겠죠. 다음에는 나라가 이래라저래라 하지 않아도 전문가들이 알아서 잘할 거예요. 물론 국력, 경제력도 받쳐줘야 하죠. 한국이라는 나라도 모르는데, 사람들이 한식이 뭔지 알 수 없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자동차도 많이 팔고, TV도 많이 팔면서 우리가 잘살고 볼 일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비타민 A, B와 같이 서양적인 영양학만 배우지, 동양의 영양학은 너무 몰라요. 동양 철학으로 봤을 때는 중용이 제일 편한 것이고, 편한 음식이 건강한 음식, 건강한 음식이 계절 음식인데 이게 다 자연 섭리, 음양오행, 대우주와 소우주와 이어지는 이야기거든요. 이런 쪽으로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어요.

 

채널예스 독자를 위한 선물

 

한복선 시인 인터뷰 기사를 페이스북, 트위터 등으로 공유하고 댓글로 계정을 알려 주신 독자 중 5 사람에게 한복선 시인의 친필 사인본 『조반은 드셨수』를 드립니다.


신청 기간 : ~6/14
당첨자 발표 : 6/15 (채널예스 공지게시판)
당첨 인원 : 5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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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반은 드셨수한복선 저 | 에르디아
조선왕조 궁중음식의 대가인 고 황혜성 교수의 둘째딸이자 궁중음식 전문가인 한복선 시인이 음식을 주제로 한 시를 엮어 두 번째 시집인 [조반은 드셨수]를 내놓는다. 이번 시집에서는 1집 출간 이후 새롭게 모은 시 80편을 묶어 궁중음식을 향한 애정,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 자식과 손주에 대한 사랑 등을 담아 한층 더 깊은 향을 내는 시를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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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주원 “구글러에서 주모로, 셰프로 부르진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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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경리단길에서 좀 더 깊숙이 들어가면 ‘보석길’이라는 예쁜 동네가 있다. 새로운 골목 문화를 만들어가는 그 곳에 ‘한국술집 안씨막걸리’가 있다. 갤러리인가? 카페인가? 착각하게 만드는 이 곳은 요리사 안주원 씨가 ‘주모’를 맡고 있는 곳이다. 최근 『구글보다 요리였어』를 펴내자 사람들이 그녀를 신기하게 보고 있다. 왜 신의 직장인 구글에서 나와 혹독한 주방을 선택했는지, 지금은 후회하고 있지 않은지, 자꾸만 곁눈질을 한다.

 

『구글보다 요리였어』의 저자 안주원은 중학교 2학년 때 미국 유학길에 올라 10년 가까이 캘리포니아, 로드아일랜드, 뉴욕 등지를 오가며 다양한 경험을 했다. 2007년 코넬대학교를 졸업하고 귀국해 구글코리아에 입사했다가 2년 6개월 만에 사표를 썼다. 수 차례의 딴짓 끝에 요리를 해야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이다. 복지 혜택이 좋기로 유명한 글로벌 IT기업 구글을 떠난다고 하자, 주변 사람들은 수근거렸다. “돈이 얼마나 많으면 신부수업을 받으러 외국 요리학교에 입학해?” 오랜 갈등 끝에 결정한 선택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이야기는 흘려 보낼 수 있었다. 미국 존슨앤웨일즈의 조리 프로그램을 이수하고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미슐랭 원스타 레스토랑 SPQR에서 인턴과정을 거쳤다. 물론 한국 영어카페에서 커피도 만들고 베이글도 구웠다. 서울 정식당에서 일하다 진짜 만들고 싶은 한국 음식을 소개하기 위해 8개월 전, ‘한국술집 안씨막걸리’에 주모로 취직했다.

 

안씨막걸리에서는 콩을 갈아 두부도 만들고, 김치도 직접 담근다. 막걸리, 계란 등 각종 식재료들은 모두 최상품으로 사용한다. 가격이 비싼 재료가 최상품이 아니다. 정직하게 키우고 자란 것이 최상품이다. 한 때는 유학생, 취업준비생, 구글러, 무급 인턴 요리사였던 안주원 씨를 한국술집 안씨막걸리에서 만났다.

 

 

신의 직장? 구글도 회사다


『구글보다 요리였어』, 제목이 독자들을 확 당깁니다. 직접 지은 제목인가요?


출판사의 의견이었어요. 구글이라는 걸, 내세우지 않을 수 없다는 건 알았는데. 그동안 구글이라는 타이틀을 벗으려고 노력했던 게 다 물거품이 되는 건가 싶더라고요. 사실 하고 싶은 제목이 딱히 없어서 힘들었어요. 만약 뭔가가 있었다면 출판사에게 딴지를 걸면서 제안했을 텐데. 이게 순수문학도 아니고 그렇다고 살랑살랑한 감성 에세이도 아니고,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는 이야기니까, 그냥 가야겠다고 생각했죠.

 

현재 이태원에 있는 ‘한국술집 안씨막걸리’에서 일하고 있는데, 식당 이야기는 전혀 안 나오더라고요.


만약 안씨막걸리에서 2, 3년간 일을 하고 있었으면 자연스럽게 책에 녹아졌을 텐데 여기 온지가 이제 4달이 됐거든요. 제 이야기를 하고자 했으니까 어쩔 수 없이 코넬, 구글, 정식당 이야기가 들어갔지만, 사실 하고 싶은 건 그 안에 있는 내면적인 이야기였어요. 저는 20대 때 그런 불만이 되게 많았거든요. 책에도 썼지만 ‘구글러’라고 하면 저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도 없는 거예요. 단지 구글에 다니는 사람일 뿐인 거죠.

 

구글러이기 때문에 부러움의 대상이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했겠네요.


“쟤 구글러래”라고 이름이 붙어버리면 끝이거든요. 그래서 일부러 정말 솔직하게 다 썼어요.

 

무척 적나라하게 써서 놀랐어요. 구글의 현실을 볼 수 있었는데, 구글도 회사는 회사더군요.


그렇죠. 똑같은 게 많죠. 책을 쓰는데 8개월이 걸렸는데 구글 부분만 쓰는데 3개월이 걸렸어요. 너무 어려운 거예요. 제 이야기를 쓰고 싶으니까 당연히 구글 이야기가 들어가야 하는데 조심스러웠죠. 회사에 누가 되고 싶진 않으니까요. 저라는 사람이 그 안에 들어가서 겪은 갈등을 얘기하려고 쓴 건데, 핵심이 다르게 전달될 까봐 걱정도 됐고요. 쓰기가 참 어려웠는데 본질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구글 부분을 되게 재밌게 읽으시더라고요. 분명 구글이 다른 회사들에 비해 굉장히 장점이 많은데, 그만큼 되게 업무 성과를 빨리 빨리 내야 하는 것도 있고요. 자유로운 만큼 또 해야 할 일도 있는 거죠.

 

구글코리아에 입사하고 벌어진 일이나 존슨앤웨일즈에서 요리 공부를 한 에피소드는 정말 생생하게 느껴졌어요. 칙릿영화를 보는 것 같기도 했고. 사진도 직접 찍었던데요.


요리 부분은 워낙 강렬한 기억들이 많았고 블로그를 계속 해오면서 기록을 해왔으니까요. 제가 정말 좋아하고 중요한 일이다 보니까 기록을 남기고 싶었어요. 구글 이야기는 지메일을 다 샅샅이 찾아보면서 기억을 되살리니까 생각이 나더라고요. (웃음) 사진도 제가 한동안 카메라 덕후였는데, 그 때는 정말 사진 찍고 블로그를 하는 게 낙이었어요.

 

안씨막걸리에서 ‘주모’ 역할을 하신다고요. 요즘은 음식점만 차리면 모두들 자칭 타칭 ‘셰프’라고 부르는데요.


제가 셰프라는 단어에 알러지가 있어요. 너무 남용되고 있는 것 같아요. 사실 요리사가 셰프인 거고 셰프가 요리사일 수 도 있지만, 어원을 따져보면 외국에서 온 거잖아요. 셰프라는 타이틀을 달려면 정말 조리사로서 오랫동안 열심히 일해야 하는데, 요즘은 요리만 하면 다들 셰프라고 해요. 그래서 저는 입버릇처럼 “나는 요리사다. 주모다”라고 말하고 다녀요.

 

미술랭 원스타 레스토랑 SPQR에서 인턴과정을 거치고, 서울의 정식당에서도 일했는데요. ‘한국술집 안씨막걸리’에서는 어떻게 일하게 되신 건가요?


안씨막걸리는 안상현 씨가 사업자를 낸지 1년이 넘은 가게인데요. 인테리어를 끝낸 건 8개월 정도 됐어요. ‘끼니’라는 수업을 같이 듣다가 만나게 됐는데, 음식을 바라보는 시각이 저랑 되게 비슷했어요. 마침 저도 정식당을 나왔던 때라 요리사로서 어떻게 생계를 유지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거든요. 아시겠지만 요리사가 박봉이잖아요. 돈도 좀 벌어야 하는데, 제 사업을 하기엔 아직 모자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던 때라 타이밍이 잘 맞았죠. 처음에는 저도 잘할 수 있을지 되게 걱정됐는데, 저를 무조건 믿어줬어요.

 

『구글보다 요리였어』덕분에 손님이 좀 늘었겠어요.


기사가 조금 나가니까 연령층이 좀 넓어졌어요. 원래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손님들이 많았는데, 대학생들이나 어르신 분들도 종종 오세요. 제가 일을 해서 돈을 벌어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니 생계형 요리사이긴 한데, 돈을 벌기 위해 타협을 해서 트렌디한 음식을 만들고 싶진 않아요. 제 꿈은 신념을 갖고 맛있는 한국 음식을 만드는 거예요. 한국적인 멋, 한국적인 맛이 뭘까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해요. 트렌디하고 아기자기하고 예쁘고 그런 음식이 아니라, 정말 무엇을 알리고 싶은지에 대해 생각해요. 예를 들어 저희 가게에서는 방짜수저도 하나에 10만 원짜리에요. 손으로 두드려 만든 거거든요. 가게에서 쓰기엔 정말 비싼 제품이지만 손님들이 또 그걸 알아보시더라고요. 이걸 모두 쓰시라는 게 아니라, 이런 것도 있다는 거예요. 약간 한가한 시간에 음식에 관심이 많은 손님이 오시면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해드려요.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나요?


제가 오리 육수를 내서 수제비탕을 끓여드리는데, 어떤 젊은 손님이 친구들이랑 와서 술을 먹다가 ‘엄마랑 먹고 싶은 맛’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때 ‘아 내가 드디어 이걸 달성했구나’ 싶었어요. 저는 누구랑 와도 맛있는 음식을 하고 싶거든요. 그게 큰 응원이 됐고, 제 진짜 VIP 손님은 2살짜리 아기에요. 병윤이. (웃음) 가끔 오시는 구글러 부부의 아들인데, 평소에 외식을 잘 못하니까 아이가 여기에 와서 과식을 한 거예요. 제 음식을 엄청 맛있게 먹더라고요. 안씨막걸리에서는 두부랑 김치를 직접 담그는데, 원래 양념을 적게 하기도 하지만 아이가 김치를 그렇게 잘 먹더라고요. 메뉴 두 개를 시켰다가 아이가 잘 먹으니까, 부모가 하나를 더 시켰어요. 그랬더니 아이가 두 팔을 들고 만세를 부르는 거예요. 애기들은 거짓말을 못하잖아요. 정말 양손으로 두부를 먹더라고요. 그때 정말 감동했어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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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만 하던 고상한 누나가 얼마나 버티겠어?


요즘은 어떤 고민을 많이 하나요.

 

진부한 말이지만, 할머니 세대가 돌아가시면 이제 저희 세대는 회사에서 만든 장을 먹어야 되는 거잖아요. 저는 맛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사람이 있는 음식이 정말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요. 누구네 김치, 누구네 장. 이런 게 사실은 정말 훌륭한 음식 문화 아닐까 싶어요. 그래야 맛있는 패스트 푸드도 나올 수 있는 거잖아요. 요즘 한국은 뿌리는 점점 약해지고 거품은 많아져서 화려해지는 느낌만 들어요. 물론 저도 요리 공부를 할 때 그런 면이 없진 않았는데, 꼭 그래야만 요리를 오래할 수 있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자꾸 화려하고 새로운 걸 찾으려고 하는데, 옛날에 계속 해오던 것에서도 답이 있다고 봐요.

 

한식에 대한 열망이 대단해요. 미국에서 10년 이상 살아서 더 그리웠던 걸까요.


다양한 음식을 접했지만, 할머니의 북한식 순대, 엄마의 시원한 배추김치가 전해주는 마음의 위로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었어요. 어렸을 때 먹고 자란 음식에 가족이라는 정서가 얽혀 있어서 그런지, 제 생각과 감성을 풀어낼 수 있는 음식은 한식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요리를 하면서부터는 한국 음식이 그냥 찌개에 구닥다리로 치부되는 게 너무 싫더라고요. 한국에서 한국 사람으로서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는 음식은 결국 한국 음식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다들 너무 새로운 것, 유행하는 것에만 치중하는 모습을 볼 때는 아쉬워요. 외롭기도 하고요. 분명 저 같은 생각을 하는 요리사들도 분명 있겠죠. 책을 내고 생긴 소망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요리사들과 함께 장도 담그고 여행도 하면서 한국 전통음식을 잊지 않는 거예요. 이탈리아의 햄과 치즈가 몇 백 년 동안 맥을 이어오면서 칭송을 받는 것처럼, 우리나라 음식도 인정 받았으면 좋겠어요. 안씨막걸리에 오면서부터는 정말 제가 하고 싶었던 걸 하나하나 펼쳐나가는 것 같아서 정말 행복하죠.

 

요즘 훈남 셰프가 대세잖아요. 조금 잘생기고 언론에 노출되면 금방 스타가 되는데요. 이런 분위기 때문에 진짜 요리를 하는 요리사들이 오히려 빛을 못 보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해요. 요리라는 게 정말 제대로 시작하면 힘들잖아요. 어땠나요?


좋아서 시작했고 구글을 관두고 요리를 택한 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지만. 힘들긴 했어요. 여전히 요리가 좋지만 그게 현실이 되고 일상이 됐을 때, 견뎌야 하는 것들이 있잖아요. 예를 들어 페이스북을 보고 있으면 제 친구들은 다 예쁜 옷 입고 결혼도 하고, 이제 좀 연차가 돼서 돈도 좀 버니까 여행도 다니고 그러거든요. 그런데 저는 추리닝 입고 출근하고 있으니까요. 대부분 요리사들이 조리대를 나와서 쭉 가는 경우가 많잖아요. 저는 늦게 시작한 타입이니까 처음에 이방인 보듯이 많이 했죠. 공부만 하던 고상한 누나가 얼마나 버티겠어? 그런 시선도 많았고요. 고시원에서 지내면서 일할 때는 정말 제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어요. 월급도 박봉이니까 돈을 쓸 수도 없고. 예전에 구글에 다닐 때는 핫한 레스토랑도 가고 정식당에 손님으로도 갔는데, 요리를 하면서부터는 컵라면 먹으면서 일했으니까요. 그걸 견디는 게 제일 힘들었어요.

 

구글에서 일이 맞지 않아 갈등했을 때보다 더 힘들었나요?


그 때는 정신적인 갈등만 있었던 것 같아요. 요리를 시작하면서부터는 육체적으로도 힘드니까 뭔가 되게 서럽고. 후회는 안 했지만, 그동안 누렸던 걸 아직 못 버렸던 거죠. 내가 20년 동안 치열하게 공부하면서 미국 생활을 버티고 구글에 들어갔으니까. 그렇게까지 했는데 주방에서 서러움을 겪고 있다는 게 힘들었던 것 같아요. 다 못 비워냈던 거죠. 막 행주 빨다가 너무 서러워서 울고 그랬어요.

 

방송계도 그렇고 외식계도 그렇고 ‘열정 페이’라고들 하잖아요.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박봉을 견뎌야 한다는 걸, 현실로 맞닥뜨리면 열정만으로 이겨내긴 어렵죠.


외국도 그렇거든요. 제가 처음에 요리를 한다고 하니까, 다들 호텔 식당에서 월급 500. 600만 원 받는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되게 많았어요. 깜짝 놀랐어요.

 

좋아하는 일과 내가 할 수 있는 일, 그럭저럭 버틸 수 있는 일 사이에서 고민하는 젊은 사람들이 많은데요.


생각만 한다고 답이 나오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다들 처음에는 부럽다고 하세요. 어떻게 찾았냐고. 그런데 끊임 없이 자기를 관찰해야 하거든요. 막연히 책상머리에 앉아서 ‘난 이 직업이 안 맞는데, 뭐할까?’ 생각만 하다 보면 스트레스만 늘어요. 자꾸만 부딪혀 보면서 ‘아 그럼 나는 이런 게 더 잘 맞나?’ 생각하면서 자꾸 고쳐 나가야죠.

 

남의 시선을 생각하다 보면, 자기 판단이 어렵게 돼요.


사실 그래요. 저는 성향상 원하는 걸 꼭 해야 하는 성격이에요. 제가 디자인을 못한 게, 저는 피드백이 빨리 빨리 오는 프로젝트를 해야 하거든요. 열정과 그때 그때의 집중은 굉장히 잘하는데 마라톤은 잘 못 뛰는 거죠. 그런데 디자인 프로젝트는 3,4년짜리도 있으니까 그걸 못 버틴 거예요. 저는 한 달도 힘들어요. 요리가 제게 맞는 게, 몇 분 만에 그 날 안에 나오잖아요.

 

고추장, 된장 같은 건 더 긴 시간이 필요한데요? (웃음)


아, 그래도 요리니까. 하는 재미가 있으니까요. (웃음) 정말 딴짓을 많이 해보고 알게 된 거에요. 복합적으로 쌓여서 요리를 선택하게 된 건데, 게으름을 피우지 말고 본인에 대해 더 많이 부딪혀 봐야 알게 돼요. 해봐야 안다고들 하잖아요. 컴퓨터 앞에 앉아서 검색만 하면서 ‘이런 직업이 맞을까?’ 생각하는 것과 현실에 나가보는 거랑은 정말 달라요. 저는 그렇다고 소위 안정적인 직업이라고 말하는 일을 선택하는 걸 틀렸다고 생각하지도 않거든요. 본인이 원하는 삶을 그려봤을 때 포기해야 하는 것도 있는 거잖아요. 저도 요리하면서 포기한 거 많아요. 대신 좋아하는 일을 택했을 때의 희열을 얻은 거죠. 포기하는 것 대신 얻는 것도 있는 거고요. 자신에 대한 고찰 없이 ‘아 그냥 안정적인 직업을 가져야 해. 근데 난 불행해’라고 생각하고 앉아있는 건 잘못된 거죠. 자신에게 뭐가 필요한지를 자꾸만 돌아보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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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속도가 느려질 때, 기다려 보자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에는 어떤 걸 가장 먼저 생각하나요?


어렸을 때는 욕심이 많아서 다 끌어안고 가다가 터지는 경우가 많았어요. 다 완벽해야 할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그래 버려도 좀 괜찮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에 내가 집중해서 잘할 수 있는 거라면 택해요. 그게 결국 내가 관심을 가장 많이 가질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정말 선택을 못할 것 같을 때는 그냥 기다려요. 기다리는 것도 미덕이 돼요. 그러다 보면 대부분 가닥이 잡히더라고요. 물론 아직도 잘 못하긴 해요. 책에도 썼지만, 삶의 속도가 느려질 때 그걸 잘 못 견뎠어요. 항상 뭔가 달리고 있어야 했는데. 제 멘토 중의 한 분이 “그래도 괜찮다. 진정하고 물 한 잔 마시고, 삶을 제3자로 바라봐라. 그렇게 기다리면 또 괜찮아질 거야”라고 했어요.

 

명문대에 나온 딸이 신의 직장을 버리고 요리사를 선택했을 때, 부모님의 반응은 어땠나요.


걱정을 많이 하셨겠죠. 그런데 별 말 안 하고 “그냥 해봐라”라고 말씀하신 건, 제가 처음 미국에서 10년 유학하고 한국에 들어왔을 때 너무 우울해 한 걸 보셨거든요. 미국에서 취업을 못하고 들어오니까 유학 갔다 와서 퇴보한 것 같고. 정말 미국에서 성공하려고 적응하려고, 미친듯이 노력했거든요. 그랬는데도 미국에서 저를 받아주질 않더라고요. 문화가 다르니까. 쟤는 쿨하지 않고 재미 없는 한국 애. 그래서 한국 음악도 안 듣고 한국적인 걸 다 버려야 했어요. 그래서 대학교 때는 다들 저를 교포라고 오해했어요. 그런 상태에서 한국에 들어왔으니까, 다시 한국에 적응하기가 너무 싫었던 거죠. 다시 되돌려 놔야 하니까. 구글에 들어간 것도 약간 도피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내가 여기에 가면 다시 미국적인 사람이 될 수 있어, 하는. (웃음) 하지만 결국 한국에서 사는 거고 한국회사였으니까요.

 

유학은 왜 갔나요?


어렸을 때 추첨해서 학교를 들어가서 국립초등학교를 졸업했거든요. 아무래도 시설도 좋고 행사도 많고 그랬는데, 일반 중학교에 가니까 엄청 삭막한 거예요. 진짜 모래밭 운동장에 벽돌 건물 딱 하나 있고. 점점 예체능 과목도 빠지고. 그래서 엄마가 1년만 내보내야겠다고 생각하시고 무리해서 저를 유학을 보내셨어요. 근데 제가 좋아하니까 IMF가 터졌는데도 고생하면서 학비를 보내신 거예요. 엄마가 어릴 때 학습지 선생님이 숙제를 20장 내주고 가면, 3장 이상 못 풀게 하셨거든요. 얘가 집중할 수 있을 때까지만 하라고 선생님이랑 막 싸웠어요. 질리게 안 해주신 거, 그 부분에 늘 감사해요. 그래서 미국에서 더 열심히 해서 효도하고 좋은 대학 가야지, 하는 생각을 했는데 점수를 잘 받는다고 절대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게 아니잖아요.

 

20대 초반 젊은 사람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들어요?


얼마 전에 대학생 몇 명을 만났는데, “좋아하는 게 뭐니?”라고 물었더니 아무도 대답을 못하는 거예요. 되고 싶은 걸 말하라는 것도 아닌데. 좋아하는 게 뭔지 전혀 모르고 사니까 30,40대 때 약간 사춘기처럼 방황하는 게 아닐까 싶더라고요. 그게 되게 불행한 거 같아요. 다양한 사람들, 재밌는 사람들이 많아야 살기 좋은 문화가 될 것 같은데 말이에요.

 

학부모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저도 자식을 낳으면, ‘이 학원 보내야 하지 않나?’ 이런 고민을 하겠지만, 조금 용기를 내서 좀 재밌는 걸 시켜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지금은 그런 부모님들도 많이 있을 것 같은데요.

 

사실 ‘구글’이라는 타이틀이 없었다면 이 책이 크게 주목 받지는 못했을 텐데요.


맞아요. 구글 때문에 화제가 됐고 당연히 혜택을 보고 있긴 한데요.. 제가 구글을 ‘should’라고 표현했잖아요. 구글이 해야 할 것 같은 일을 상징한다면, 요리는 제가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이에요. 그렇게 생각하고 읽어봐 주시는 독자들이 많지만 어떤 분들은 아예 안 읽겠죠. 그냥 ‘과거 팔아서 음식 판다’고 생각하겠죠. 옛날에는 구글 나와서 요리학교 간다고 했을 때, “아 집에 돈이 많으니까 신부수업을 외국으로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웃음) 그때 ‘아 사람은 어떻게든 자기가 원하는 대로 받아들이는 구나’ 싶었죠.

 

최근에 안씨막걸리 페이스북에 들어갔는데 직원을 구하더라고요. 그런데 ‘동료를 구한다’고 표현한 게 인상적이었어요.


저희 대표가 그런 거에 굉장히 민감해요. 저도 이왕이면 좀 더 좋은 표현을 쓰는 게 맞다고 생각하고요. 보통 주방, 홀 이렇게들 말하는데, 저희는 객장이라는 표현을 써요. 한국적인 멋을 찾아가는 사람들이니까 이왕이면 한국어를 많이 쓰자, 그런 자잘한 것부터 시작할 수 있잖아요.

 

『구글보다 요리였어』를 읽고 취업 준비생이나 대학생은 물론, 직장인, 학부모들이 읽어도 재밌겠다 싶었어요. 좋을 것 같고.

 

책을 읽고 꿈을 찾고 그런 것도 좋지만, 음식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기회가 되면 좋겠어요. 우리가 맨날 먹는 거잖아요. 음식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한 번 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해요. 어떻게 보면 가장 큰 바람인 것 같아요.

 

어렵게 원하는 길을 찾게 됐지만, 30대에 꿈을 찾은 것도 정말 행운이잖아요. 지금 꾸는 꿈은 뭔가요?


더 많은 사람들이 집에서 밥 해먹는 거예요. 사실 직장인이나 맞벌이 부부들이 음식을 해먹는 게 얼마나 힘든지 잘 알거든요. 저도 자취를 오랫동안 해봤으니까요. 제가 외식업을 하고 있지만, 진짜 꿈은 집밥 먹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거예요. 저는 일요일 점심만큼은 엄마랑 동생이랑 꼭 집에서 밥을 먹어요. 가족들이 한 밥상에 둘러앉아서 밥을 먹는 게, 그 때는 투닥거리고 싸워도 가족끼리의 유대감을 유지시켜주는 되게 중요한 시간이거든요. 보통 딸이랑 아버지랑 얼마나 많은 대화를 하고 자랐겠어요. 저희 아버지도 대화를 잘하는 분이 아니었는데 음식을 좋아하는 편이셔서 제가 요리를 하게 됐을 때, 아빠에게 음식을 만들어주면서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됐어요.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너무 힘들었지만, 아빠에게 맛있는 음식을 해드렸던 기억들 때문에 이겨낼 수 있었어요.

 

후속작은 요리책일 것 같은데요.


만약 쓰게 된다면 새로운 느낌의 한식을 소개하고 싶어요. 저희 가게에서는 마늘을 일주일에 한 열 개 정도만 쓰나? 갖은 양념을 안 써요. 식초도 조금, 참기름도 거의 안 쓰고. 맛간장 같은 걸 다양하게 내서 장아찌를 담그는 식이에요. 보통 한국 음식이 양념이 많아야 맛있다는 생각 때문에 어려워하잖아요. 나물 하나를 무쳐도 간장, 설탕, 파, 마늘, 고추, 이런 게 다 들어가야 하니까요. 양념이 없어도 맛있는 한식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해도 재밌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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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보다 요리였어안주원 저 | 브레인스토어(BRAINstore)
우리는 흔히 성공의 척도를 돈과 명예에 두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에 평범한 직장인들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성공은 누구나 알 만한 명문대를 나와 좋은 회사에서 일하는 것이다. 그런 일반적인 기준에서 볼 때 이 책의 저자는 성공한 사람이었다. 열심히 공부해서 미국의 명문대를 졸업했고,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구글에 들어갔으니 말이다. 하지만 저자는 모두가 말하는 ‘성공적인 삶’을 뒤로하고 어느 날 갑자기 혹독한 주방에서의 삶을 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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