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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특집] 자기소개서 잘 쓰려면? 콘셉트부터 정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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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가 필요한 순간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 SNS나 인터넷 블로그를 통해 사적인 이야기를 털어놓을 때에도, 학교나 회사에서 보고서와 기획서를 통해 공적인 의견을 전달해야 할 때도, 글쓰기의 기술은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까지 ‘글쓰기 훈련’은 자신의 책을 쓰고자 하는 사람들, 혹은 문학 작품을 집필하려는 사람들에게만 필요한 것으로 여겨져 왔다. 글 쓰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들은 많았지만 그 안에서 ‘실용적인 글쓰기’의 비결을 찾기란 어려웠다.

 

그런 점에서 『심플』은 모두가 듣기를 원했지만 누구나 들을 수는 없었던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일기, 자기소개서, 보고서, 기획서와 같이 실생활에서 필요한 글쓰기의 기술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한 발 더 나아가 서평, 에세이, 칼럼, 연설문, 책 쓰기의 방법까지도 두루 다루고 있다.

 

『심플』이 전하는 글쓰기의 비법은 제목만큼이나 간결 명료하다. 양식에 따라 반드시 포함시켜야 될 핵심들을 간추려 공식으로 나타낸 것이다. 한 예로, 자기소개서는 C와 S의 합으로, 보고서의 공식은 "POINT"로 요약된다. 이때 C는 Concept, S는 Story의 약자다. “자기소개서의 기본 공식은 나만의 콘셉트를 잡는 일과 그것을 증명할 수 있는 이야기를 쓰는 것”이라는 의미를 짧은 공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보고서의 공식 역시 마찬가지다. 핵심 문장(Point), 보고 배경(Information), 보고 대상(Object), 의견(Thought), 참고 자료(News)가 모두 담겨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이렇듯 『심플』은 “글쓰기는 공식이다”라는 새로운 아이디어로 실용적인 글쓰기의 비결을 쉽고 명확하게 전달하고 있다. 그 바탕에는 오랜 시간 다른 이들의 글을 첨삭 지도해 온 저자의 경험과 노하우가 자리하고 있다. <경향신문> <서울신문>에서 편집기자로 일하며 글을 바라보고 다듬는 눈을 키워온 임정섭 저자는, 현재 네이버 카페 <글쓰기 훈련소>의 소장이자 책 신문 사이트 <북데일리>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EBS 라디오 프로그램 <직장인 성공시대>를 비롯해 국회, 한국은행, 삼성경제연구소 등 공공기관과 기업에서 글쓰기 강사로 활약한 바 있다. 국립중앙도서관, 중앙대학교, 포스코에서 이루어지는 서평쓰기와 비즈니스 라이팅에 대한 강의는 현재 진행형이다.

 

『심플』을 이야기하는 데 있어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POINT 라이팅’ 기법이다. 임정섭 저자가 직접 개발해 글쓰기 붐을 주도한 이 ‘심플’한 원칙은 주제(Point) 개요(Outline) 배경정보(Information) 뉴스(News) 생각(Thought)을 순서대로 담음으로써 한 편의 글이 완성됨을 알려준다. 책에 소개된 다른 공식들과 마찬가지로 기억하기 쉬울 뿐만 아니라 ‘핵심을 놓치지 않는 글쓰기’를 가능하게 하는 비법이다.

 

 

‘떠오르는 대로’ 쓰는 것부터 시작하라


글쓰기 방법을 공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되셨나요?


차별화된 방식으로 글 쓰는 법을 간단하게 알려주기 위해서 공식으로 나타낸 거죠. 글쓰기에 대해서 추상적으로 알려주는 책들이 있는데, 글쓰기 강사로서 책임의식을 갖지 않을 수 없었어요.

 

글쓰기에 대한 관심이 뜨겁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디지털 세상이 되면서 예전에는 말로 했던 것들을 글로 전하는 시대가 된 거죠. 이메일이나 SNS 같은 걸 활용하면서 글을 쓸 일이 많아진 거예요. 그런데 글쓰기 실력이 그에 뒷받침되고 있는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특히 젊은 층은 영상 매체에 더 익숙하잖아요. 글을 쓰더라도 간단한 글쓰기가 주를 이루고 논리적인 글쓰기는 부족한 측면이 있죠. 그렇다 보니까 회사에서 보고서를 쓰거나 대학에서 리포트를 쓸 때 부족함을 느끼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우리 교육에서 글쓰기 교육이 부족했다고 생각해요. 글쓰기에 대한 필요는 많아졌는데 글쓰기에 대해서 많이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글쓰기 붐이 일어난 거죠.

 

말씀하신 것처럼 SNS와 메신저를 통해 의사소통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이런 현상이 글쓰기 방식에도 변화를 가져왔을까요?


SNS를 통해서 적는 글들은 그 길이가 한 단락, 두 단락 정도 밖에 안 되잖아요. 물론 그렇게 짧은 글도 많이 쓰다 보면 점차 확장해서 긴 글을 쓰게 되겠죠. 하지만 확장의 단계를 거치지 않고 그 상태에 머무르면 실용적인 글쓰기를 하기는 상당히 힘들 거라고 생각돼요. SNS에 올리는 글들은 자기표현의 방식으로 하는 것인데, 실제로 업무와 관련해서 글을 쓸 때는 논리적 글쓰기가 바탕이 되어야 하잖아요. 그런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죠.

 

『심플』에서 말씀하셨다시피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은 많은데 막상 글로 옮기려고 하면 시작부터가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럴 때는 ‘일단 떠오르는 대로 써보라’고 하셨죠.


우리가 말로써 표현하는 건 우뇌적인 활동이에요. 우뇌의 특징은 창의적이고 통합적이고 즉흥적인 것인데, 글쓰기는 논리적인 것이거든요. 그러니까 말과 달리 글에서는 아무 이야기나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논리적인 글쓰기를 하는 건 좌뇌형 글쓰기라고 볼 수 있는데, 저는 우뇌형 글쓰기도 할 필요가 있다고 이야기해요. 우뇌형 글쓰기는 논리적이고 순차적으로 쓰라는 좌뇌의 말을 거부하고 다른 사람과 수다를 떨 듯이 쓰는 거예요. 글쓰기를 재미있게 하는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는 친구에게 편지를 쓰듯이 하는 건데, 그게 바로 우뇌형 글쓰기예요. 이렇게 떠오르는 대로 일단 쓰는 것이 책에서 이야기한 ‘마구쓰기’인데요. 이 과정은 워밍업이 되기도 하고, 점차 글의 분량을 늘려가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해요.

 

인터넷의 블로그나 카페처럼 공개된 장소에 고정적으로 글을 쓰는 활동도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마치 다른 사람을 위해서 밥상을 차리듯이 글을 써서 선물하듯이 보여줘야 된다는 거예요. 나만을 위해 요리할 때와 달리, 다른 사람을 위해 요리를 할 때는 굉장히 많은 배려가 필요하잖아요. 정성을 다하게 되고, 자신의 요리가 어떤지 비로소 알게 되죠. 그런 의미에서 혼자 일기나 에세이를 쓰는 사람은 나만을 위해서 요리하는 사람과 같아요. 글쟁이는 반드시 남을 위한 글을 쓰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돼요. 그래서 블로그나 카페와 같이 다른 사람이 볼 수 있는 공간에 글을 쓰라고 권하는 거예요. 그 작업을 고정적으로 반복한다면 더욱 좋고요.

 

‘나만의 글쓰기 창고’를 마련하라는 조언도 들려주셨는데요. 글쓰기 창고에 넣어 둘 문장은 어떤 기준으로 선택해야 할까요?


이 부분에 있어서도 글쓰기는 요리와 매우 비슷해요. 요리를 잘하려면 신선한 재료를 보는 눈이 있어야 하잖아요. 지금의 질문은 ‘어떻게 하면 좋은 재료를 찾을 수 있는지’ 묻는 것과 같아요. 쉽게 말해서 그건 요리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배우게 되는 거죠.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깨닫게 되는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방법을 말씀드린다면, 글을 쓰는 실력은 글을 읽어내는 능력과 비례해요. 이전에 독서해왔던 것들과 사고해 왔던 것들이 좋은 재료를 찾아내는 눈을 만드는 거죠. 예를 들어서, 저는 서평쓰기 교육을 할 때 한 권의 책 속에서 마음에 드는 문장이나 이야기를 뽑아보라고 주문합니다. 이런 훈련을 반복하면 갈수록 탐스러운 재료를 찾게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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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소개서, 콘셉트부터 정하라


‘포인트(POINT) 라이팅’ 기법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전통적인 글쓰기 방식은 주제를 먼저 정하고 구조를 만든 다음 글을 전개해 나가는 거잖아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주제를 정하는 단계부터 어려움을 겪어요. 주제라는 단어의 무게에 짓눌리는 거죠. 하지만 글을 쓸 때 주제보다 중요한 것이 포인트예요. 대상의 특징을 잡아내는 거죠. 특이한 점이나 인상적인 것들을 통해서 글을 전개하면서 주제를 잡아가야 된다는 게 ‘포인트 라이팅’이 이야기하는 첫 단계(Point)예요. 그 다음에는 아웃라인(Outline) 즉 개요를 만들고, 배경정보(Information)를 포함시키고, 대상과 관련된 인물이나 예화를 넣음으로써(News) 글을 더욱 풍부하게 만드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대상에 대한 자신의 생각(Thought)을 덧붙이고요. 

 

기획서 작성의 방법으로 제시하신 ‘스타이론(STAR Writing)’도 흥미로웠습니다.


기획서를 써야할 경우는 두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어요. 하나는 주어진 과제에 대해서 쓰는 것이고, 또 하나는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쓰는 것이죠. 전자의 경우에는 아이디어를 내기에 앞서 현 시점에서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해야 돼요. 그러려면 질문을 던져야 하죠. ‘스타이론’에서 이야기하는 건 종이 위에 별을 그리고 다섯 꼭짓점에 문제점을 쓰라는 거예요. 그것이 첫 번째 단계인 문제점 나열(Sketch problem)이죠. 다음으로 해야 할 생각 던지기(Throw think)는 브레인스토밍과 같은 건데요. 자신의 생각을 밖으로 드러내는 과정이에요.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여러 가지 의견을 내놓는 거죠. ‘마구쓰기’ 같은 거라고 할 수도 있어요. 이 과정에서 자신이 생각지 못했던 내용이 나올 수 있죠. 그 아이디어들을 정리하는 단계(Arrange idea)를 거친 후에는 시장 조사(Research market)를 해야 돼요. 자신이 생각한 방식이 실제로 실현 가능한지, 문제는 없는지 파악하는 거죠. 이 모든 과정을 거쳐야 기획서 작성(Writing plan) 단계에서 기획서의 초안을 마련할 수 있어요.

 

자기소개서를 쓸 때 중요한 것은 ‘콘셉트’이라고 하셨습니다. 콘셉트란 무엇이며 어떻게 정해야 하나요?


자기소개서의 공식을 C 플러스 S 라고 정의했는데요. 결국은 내가 무엇을 얘기해야 하는지 콘셉트(Concept)를 잡아야 한다는 거예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기소개서는 자신이라는 상품을 판매하기 위한 팸플릿과 같은 거잖아요. 그러면 자신이 어떤 강점이 있는지 어떤 사람인지 명확하게 나타내야 하죠. 그게 콘셉트입니다. 이야기(Story)는 자신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풀어줄 수 있는 근거가 되고요.

 

“글쓰기에 있어 더 근본적인 연습은 ‘책 읽기’와 ‘사색’이다”라고 적으셨습니다.


글쓰기를 시작하는 것은 하나의 목표를 향해서 꽃씨를 심는 거라고 이야기할 수 있어요. 꽃씨가 싹을 틔우려면 양분이 필요하잖아요. 글쓰기에 있어서는 그동안 읽어온 책이나 경험이 양분이 돼요. 글쓰기는 한 사람의 경험과 독서량, 그리고 생각을 먹고 자라는 거죠. 그러니까 글을 잘 쓰려면 경험이 다채로워야 하고, 책을 통해서 간접 경험을 많이 해야 하고, 많은 사고를 해야 해요.

 

책 쓰기의 이점 중 하나로 ‘몰입 독서’를 꼽으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글쓰기를 시작했다면 ‘어느 해 1년은 글쓰기에 미쳐있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몰입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른 일들과 마찬가지로 글을 쓸 때에도 미친 듯이 그것을 했던 시간이 필요한 거죠. 책 읽기 역시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어쩌다 한 번씩 읽는 걸로는 효과가 적고, 몰입해야 한다는 의미죠. 책을 읽는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쓴 좋은 글을 자신도 모르게 내면화하는 거잖아요. 내 것으로 만드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글쓰기에 앞서 책을 많이 읽는 것이 중요하고, 책을 쓰다 보면 독서량이 비약적으로 늘어나게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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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mple 심플정섭 저 | 다산초당
대한민국 최고의 글쓰기 강사이자 ‘글쓰기 훈련소’ 운영자 임정섭 소장은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글이란 어렵고 멋진 글이 아니라, 쉽게 쓰고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글이라 말한다. 고급스럽기 이전에 명료해야 하고, 뛰어나기보다 자연스러워야 한다는 것이다. 정섭 소장은 글쓰기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토로하는 수강생들을 보며 쉽고 간단하지만 핵심을 정확히 파고드는 글쓰기 비법을 공식으로 정리하여 『심플』에 엮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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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반장 "결국은 스스로를 움직이게 하는 재미가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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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소토 유니온', '윈디시티'로 한국 음악씬에 펑크(Funk)와 레게, 소울 등 다양한 장르를 싹 틔워오던 그가 온전히 '김반장'으로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솔로 작업인 「한 이불 속 우리」, 「혼자 걷는 이 시간」, 「No more sad-mistake」는 그동안 그가 말하고 실천했던 '촌사람'이나 '비빔정신'과는 조금 다른 각도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소재의 변화만큼 표현의 방식도 달라져 '레게'라는 장르로 스스로를 울타리 치지 않는다. 김반장의 눈에 띄게 달라진 움직임은 변절이 아닌 그야말로 '발효', 그러니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익고 여물어가는 그런 '숙성'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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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한 달에 한 번 솔로곡이 나오고 있습니다.


올해는 김반장 먼슬리 싱글처럼 나와요. 앨범은 내년쯤이고요. 한 달에 한 번씩 12월까지.

 

이번에 나온 「No more mistake」는 어떤 곡인가요?


우선 힙합이고요. 배경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요즘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많잖아요. 보면서 안타까웠던 심경들을 담았어요. 재능 있는 어린 친구들이 신기도 어려운 신발에 화장 진하게 해서 어른들의 문법으로 얘기를 하잖아요. 자신의 앞날을 진열장 상품으로 만드는 게 아닌가 싶었어요. 이게 저는 대단히 슬픈 실수 같아요. 아이들은 아이들로 살아가야지 그 때부터 어른으로 살아가면 안 되잖아요. 얼마 전에 태국, 라오스 여행을 다녀왔어요. 거기 아이들은 자기네들 나이에 맞게 재밌게 지내는 반면 우리나라 아이들은 어른 나이의 기준으로 힘들게 살죠. 큰 차이를 느꼈어요.

 

솔로 김반장과 밴드 윈디시티와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윈디 시티는 제가 프로듀싱을 맡고 있지만 밴드다보니 멤버 개개인의 즉흥적인 것들이 많이 들어가요. 예를 들자면 같이 연주하다가 합이 맞아 좋은 부분이 나왔을 때 그 순간을 극적으로 담고자 노력하죠. 즉흥성이 50% 정도 비중을 차지한다고 하면 돼요. 반면 솔로 작업은 준백(前 소울 스테디 락커스)이가 프로듀서를 맡고 여기에 외국 프로듀서까지 추가로 기용했어요. 즉흥성이 적은 대신 디테일한 사운드 메이킹이나 제가 전달하고 싶은 음악적 파장을 키우려 해요. 그런 부분에서 윈디 시티와 차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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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작업에서 오히려 프로듀서를 따로 두셨군요. 준백씨와의 작업은 어떤가요?


제가 못보는 부분을 이 친구가 잘 봐요. 많은 설명 없이도 서로 공감을 잘 하고요. 신뢰가 있어요. 같이 하는 게 즐겁기도 하고. 재미있어요. 재미없으면 안하겠죠? (웃음)

 

윈디시티와 솔로곡들은 작업방식이 조금 다르네요. 그러면 내용적 차이는 어떤가요?


아무래도 밴드는 각자의 역할이란 게 있잖아요. 그렇다보니 다들 윈디시티에서 풀지 못하는 부분들이 있죠. 저도 마찬가지예요. 윈디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룹 안에서는 제 주장을 강하게 얘기하기 쉽지 않죠. 밴드에서는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비하인드로 빼고 팀의 전반적인 색을 내는 데에 주력해요. 지금은 그 때 뒤로 뺐던 제 개인 사는 얘기를 꺼내는 거죠. 마음껏. 하지만 큰 메시지는 윈디시티 때 했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아요. 나이를 먹어가니 평화와 행복, 삶의 즐거움, 이런 것들을 좀 더 세련되게 전달하고 싶어요.

 

그럼 윈디 시티 활동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재미있는 게 윈디 때 연주했던 친구들이 요즘 싱글 작업에 들어갔어요. 베이스 치는 선택이도 솔로 만들고 같이 작업했던 기타리스트 시문이도 솔로 싱글을 만들었고요. 그래서 저도 이때 쯤 작업을 하게 됐어요. 윈디시티는 내년 쯤 다시 만나서 해볼까 생각 중입니다.

 

윈디시티 2집 이후 우리나라 전통과의 '비빔', 그리고 '토속'과의 접목에 집중을 많이 하셨어요? 그 계기가 궁금합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페스티벌 시에라 네바다(Sierra Nevada)에 갔을 때인데, 거기 프로모터 분이 저희를 메인무대에 세웠어요. 아시아 쪽 레게 밴드가 메인에 서는 건 처음이라고 해요. 감사하게도 그 해 최고의 팀으로도 선정됐고요. 분명 저희는 본토 레게 밴드가 아닌데도 말이죠. 이런 걸 보면, 제가 느끼지 못 할 뿐이지 외국의 소울과 교집합을 형성하는 우리 할아버지가, 아버지가 주신 한국의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자메이카 할아버지들이 북을 치는 걸 보면 우리 풍물놀이가 생각나기도 하고요. 그 교집합은 더 찾아보고 공부해야죠. 그래서 판소리 배우러 다니고 굿판에 다니고 했어요. 노래도 부르고 못 치는 장구도 쳐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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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탄생한 「잔치레게」나 「모십니다」 이런 작품들은 평단에서는 새로운 시도라고들 하는데 대중들 사이에서는 낯설다, 생소하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사실 전반적인 반응이 좀 그랬어요. 윈디 1,2집과 많이 달랐으니까요. 개인적으로는 그 당시에 이걸 꼭 해야겠다 하는 심정이었거든요. 마치 사춘기 때 찾아오는 과제처럼요. 한국적인 요소를 넣은 한국의 레게를 들려주고 싶었고요. 본토의 흐름을 따라가는 자메이카 리바이벌도 분명 좋지만 이왕이면 제가 가진 전통을 비비는 게 더 좋을 것 같았어요. 제게는 한풀이기도 했죠. 하지만 제가 음악을 더 잘 했다면 사람들이 낯설고 생소하게 받아들일 이유가 없거든요. 아티스트 소양의 문제도 분명 있어요. 이러한 시도들을 해보면서 제 깜냥도 좀 알게 됐어요.

 

어떻게 보면 전통이나 토속에 대해 한국 사람들이 오히려 더 낯설어 하는 것 같아요.


한국의 것이라는 게 한국 사람들에게 굉장히 무겁게 다가가는 것 같아요. 저도 한국문화에 대해 잘 모르고 잘 못느꼈어요. 소울, 레게, 힙합을 들으며 예전에는 '우리 가락은 왜 이렇게 느리지', '호흡이 길지' 이런 생각을 자주 했거든요. 경험이 쌓이고 견문이 축적되면서 최근에는 우리 장단이 굉장히 좋다는 느낌을 자주 받아요. 땅, 하늘, 사람 이런 요소들이 들어가면서 철학을 만들어내고 또 짜임새를 갖추고 있죠. 디자인이 굉장히 잘 돼있어요. 이런 한국적인 요소를 제 안에서 깨우고 싶어요. 서구 음악으로 생긴 고정관념을 깨고도 싶고요. 황병기 선생이 얘기했던 것처럼 비서양적이 가장 한국적인 거라잖아요.

 

그동안 많은 고민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우리 전통을 잘 틔우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우리 전통을 어떻게 인식하고 어떻게 풀어낼 것인지는 우리 세대가 해결해야 할 몫이라 생각해요. 일단은 현대화 작업을 잘 해야겠죠. 한때는 전통이 강한 지역의 문화를 동경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그런데 전통이라는 게 무조건 다 좋은게 아니라 불필요한 인습도 있다는 것을 그 양면성을 느끼게 됐어요. 전통이 강한 나라는 보수적인 관성도 강하게 있어요. 그런 면에서 보면 우리 나라가 훨씬 더 열려있는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중심만 잘 잡으면 여러 가질 수용해 새로운 걸 많이 만들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래서 한국 음악에서 희망을 많이 보기도 하고요.

 

윈디 시티에서 해온 토속적인 실험들이 솔로 작업에도 계속 되는 건가요?


일단은 당장에 제가 낼 수 있는 표현법이 솔로 앨범들의 표현법에 해당할 것 같아요. 아프로(afro), 레게, 펑크(funk), 소울, 라틴 이것저것 해볼 수 있겠죠. 때가되면 우리 장단 같은 게 들어가겠고요. 다만 「모십니다」 와 「잔치레게」를 해보니까 조금 더 연구를 해야 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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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소토 유니온부터 윈디시티, 그리고 김반장까지 지금까지 12년 동안 음악을 했어요. 그동안의 길을 좀 되짚어 보고 싶네요.


일단 음악에 몰입한 건 드럼 소리가 너무 좋았고요. 또 친구들 다 가요들을 때 서구 음악 들으면서 혼자만의 만족, 위안을 얻기도 했고요. 개인적인 얘기를 더 하자면 집안 분위기가 그렇게 좋지만은 않았어요. 저의 세대에 흔히 볼 수 있는 도시노동자가정의 이해와 소통의 부재였죠. 저는 그 사이에서 일어나는 불화와 소외를 예민하게 느꼈고 거기에 휩쓸리기보다 자유롭고자하는 욕구가 강했습니다. 그 때 탈출구로 삼았던 게 음악이었던지라 이어폰으로 귀를 막아야 숨을 쉴 수 있었죠. 그렇게 음악을 좋아하다가 20대 초반에 음악 동아리를 찾아 정보를 얻었고 더 많은 노래들을 들었죠. 그 때만해도 음악을 하면서 벌이를 해야겠다는 결심은 없었어요.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음악을 하자는 생각이었고. 시작부터 음악을 생계로 삼으면 너무 무거워지잖아요. 그러다가 아소토 유니언 때 「Think about chu」가 많은 사랑을 받았어요. 사실 히트 같은 건 예상도 안 했거든요. 그 때도 마케팅 같은 건 전혀 몰라서 당시 라디오 피디 분이 곡 러닝 타임 5분이 다 나간 게 처음이라고 하시더라고요. 방송을 위해 곡 길이가 조금 짧아야 한다는 그런 생각을 아예 못한거죠. 그냥 좋아서 했어요. 어떤 면에 있어서 전 음악 애호가에요. 링에 올라와있지만 일단은 음악을 좋아합니다. 제게 영감을 주는 음악을 듣고 따르면서 특화된 저만의 그라운드를 깊게 파려 하고요.

 

인디신에도 오래 계셨죠. 이번 인디 20주년 기념 앨범에 「나에게 쓰는 편지」가 수록되기도 했습니다. 그동안 상당 기간 봐오신 만큼 느끼시는 점도 많을 것 같은데요.


예전에 비해 양적으로는 확실히 커졌어요. 힙합 신의 경우에는 건강하게 성장하고 있죠. 음악 하는 사람, 아트워크를 하는 사람, 기획하는 사람들이 모여 자생력 있는 크루를 만들잖아요. 그거야말로 인디펜던트 예술이죠. 다만 서로의 가치 목표가 서로 비슷하다보니 독자 노선이 생기긴 힘들어 보여요. 기성에 있는 걸 다 같이 바라보는 느낌이랄까요. 당장 돈이 되는 것 보다는 자기 작품, 자기 화법에 내실을 기여했으면 하는 생각이 있어요. 인디 신 전반에 대해 얘기하자면, 매스미디어에 생긴 트렌드에 자주 영향을 받는 경향이 최근 잦아졌어요. 다들 비슷한 소리, 비슷한 목소리를 내고 있잖아요. 좀 더딘 발걸음을 보이는 것 같기도 해요. 인디펜던트라는 중심에는 아직 내실이 가득 차지 않았어요. 또 요즘 활동하는 친구들을 보면 포맷화된 모습이 없지 않아 있어요. 이래도 될까, 저래도 될까 하면서 자기 표현을 절제하죠. 솔직함, 진솔함을 보여주는 게 인디잖아요.


저는 12년 동안 활동하면서 무대에서 자유로움을 보여주고자 하는 데에 힘을 쏟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무대 뒤에서 엄청 힘들 게 연습해요. 무대 위에서 자유로워야 하거든요. 놀기 위해 연습을 하는 거죠. 그렇지 않으면 무대 위에서 연습을 하게 되잖아요. 권투선수 유명우님이 했던 말이 있어요. “링 밖에서 많은 땀을 흘리지 않으면 링 안에서 많은 피를 흘리게 된다.”

 

2009년이었나요,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에서 하셨던 공연이 기억납니다. 이른바 '한예종 사태' 직후 격려차 열렸던 감사 파티 무대였는데요. “내 친구가 한예종에 다니는데 과제 때문에 정작 자신이 하는 일,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 사유할 시간이 없다더라. 여러분도 예술과 자신이 하는 작업에 대해 많이 생각하셨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투박하긴 해도 애정을 담은 얘기였어요. 한예종에 있는 친구들이야말로 자기 예술을 마음껏 뽐내야 하잖아요. 다만 지금 이 얘길 다시 하라면 조금 균형을 맞춰서 지혜롭게 하지 않을까 해요. 그 땐 너무 파이터 같아서. (웃음) 그때는 지금이든 얘기의 골자엔 결국 같은 내용이 담길 거예요. 여유롭고 자유롭게 가자는 얘기를 전달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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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분명 파이터 이미지가 있었어요. 분노하는 이들과 함께 분노하던 때가 있었죠?


그렇죠. 다만 그렇게 행동하면 분노에 불을 더 지피는 게 아닌가 하는 찜찜함이 전부터 들었어요. 그리고 이제는 좀 더 전체적인 상황을 보고 움직이게끔 하는 게 아티스트의 움직임이라고 여겨지고요. 또 언제부터인가는 저항만을 이야기하는 데에 한계가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도 해요. 아픔을 모른다는 건 아니에요. 다만 지금 당장의 화풀이 보다는 전체를 신중히 볼 필요가 있어요.

 

그래서인지 요즘 김반장의 활동이나 음악을 보면 전과는 조금 달라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나이도 먹고 여러 경험을 하면서 생각이 바뀐 것 같아요. 제가 옳다고 생각해왔던 것들이 옳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느낌을 자주 받아요. 나이를 먹으면서 눈이 떠진다는 게 이걸 말하나 싶어요. 하나를 보더라도 여러 관점을 이해할 수 있고 마음에 안 드는 걸 보더라도 또 다른 관점으로 이해할 수 있죠.

 

이젠 음악적으로도 레게에 국한되지 않을 것 같아요.


네. 이제 어디에도 국한되고 싶지 않아요.

 

때로는 레게가 올가미처럼 다가온 적도 있었겠죠?


레게를 하면할수록 레게의 표현법에 갇힐 수 있다고 생각해요. 레게를 막 시작할 때는 그저 좋았어요. 그때만 해도 한국에서 레게 풍의 음악을 하는 사람은 있었지만 레게의 삶과 철학과 음악을 함께 하는 사람은 없었잖아요. 훼손되지 않은 영역이라는 느낌이 들었고 제가 잘해서 다음 세대에 넘겨줘야겠다는 판단이 들었어요. 그런데 음악을 하다 보니 자메이카의 역사를 내 그릇에 담는 게 아니라 그냥 담는, 오히려 레게적이지 않은 상황이 발생하는 거죠. 여러 나라에 가보면 본토 레게와 변형된 레게가 공존해있거든요. 우리의 정체성을 갖고 주도적으로 다른 문화를 가져와야지 그렇지 않으면 맹목적인 '빠'만을 생산하게 되는 문제가 나와요. 뭐든 간에 형식에만 치우쳐지면 본질하고 멀어지죠.

 

2005년 이즘 인터뷰에서 음악으로 체제를 넘고 싶다고 말씀하셨죠? 그 때의 생각은 아직도 변함 없으신가요?


무엇 때문에 음악을 하고 있다는 생각은 피하려고 해요. 결국은 스스로를 움직이게 하는 재미가 중요해요. 그리고 주변에 퍼져나갈 재미가 중요하고요.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다른 것들과 연결되지 않을까 합니다.

 

인터뷰, 정리 : 김반야, 이수호
사진 : 이한수
2015/06 김반야(10_ba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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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철환 “사람이 어떻게? 사람이기에 그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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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본성’과 ‘인간의 감정’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이 없다면 인간의 마음을 읽을 수도 없고 인간의 마음을 얻을 수도 없을 것입니다.”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얻을 것인가』에 담긴 작가 이철환의 대답이다. 마음을 얻길 원한다면 먼저 그 마음을 살펴라. 너무도 당연한 이치 앞에서 슬며시 웃음이 배어나온다. 이토록 명쾌한 해답을 두고 그토록 찾아 헤매었구나, 싶은 자각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기도 한다. 누군가의 마음을 얻기 위해 애썼던 시간들과, 누군가의 마음을 얻지 못해 괴로워했던 순간들과, 사람의 마음을 얻는 방법을 찾아 나섰던 어떤 때에, 나는 왜 그랬는지. 작가를 따라 사람의 마음을 여행하는 동안 이해는 더 깊어졌다. 그건, 사람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마음을 끌어안을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얻을 것인가』에서 작가 이철환이 들여다보는 마음의 모습들은 아름답지만은 않다. 더 정확하게 말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여기지 않는 것들이다. 질투, 배신, 이기심, 이중성, 속물근성, 허영심, 폭력성……. 나에게서든 남에게서든 발견하고 싶지 않은 마음들, 덮어버리거나 도려내버리고 싶은 마음들이다. 그러나 작가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타이른다. 인간의 본성과 감정을 업신여기지 말라고. 그것은 사람에 대한 긍정이었다. 『연탄길』『행복한 고물상』 『눈물은 힘이 세다』『위로』를 통해 전해졌던 따스한 시선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다.

 

천재를 만나고 싶다면 모차르트를 만나면 되고, 인간을 만나고 싶다면 모차르트 대신 살리에리를 만나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모차르트를 질투하는 살리에리의 모습은 차라리 인간적으로 보입니다.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얻을 것인가』 140~141쪽)

 

작가는 질투를 자연스러운 마음의 반응으로 이해했다. 치열한 생존경쟁을 해야 하는 것이 인간의 운명인데, 원하는 것을 가지지 못한 사람에게서 질투하는 마음이 생겨날 수도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왜 사람은 사람을 배신할까요? 인간은 감정의 동물이고 인간의 감정은 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인간은 상황의 지배를 받는 동물이기 때문에 자신에게 불리한 조건이 닥쳤을 때 살아남기 위해 상대를 배신할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얻을 것인가』 148쪽)

 

그는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 있느냐’고 묻지 않는다. ‘사람이기에 그럴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고 슬며시 반론을 제시하고 싶은 마음은 작가의 질문 앞에서 고개를 숙인다. “인간은 대체로 지혜로우며 이성적인가요? 인간은 대체로 합리적이며 상식적인가요?”라는 그의 물음에 나의 모습을 비춰보게 되는 까닭이다.

 

“한 치의 허영심도 없다는 자의식, 어쩌면 그것 또한 모종의 허영심인지도 모릅니다.” 작가는 넌지시 말하고 있었다. 다른 이의 마음이 당신 안의 그것과 다르지 않음을. 누군가로부터 무시당하고 싶지 않은 자기보호 본능을 내가 가지고 있는 것처럼 그 역시 그랬을 뿐이라고. 그렇기에 책 속에 담긴 ‘인간에 대한 열두 개의 생각’은 “나를 위로하거나 변명하거나 합리화시키는 도구”로 사용할 수도 있고, 동시에 “타인을 이해하는 소통의 도구”로 사용할 수도 있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있는 그대로 긍정하려는 작가의 태도는, 누군가의 감정을 멋대로 재단하지 않겠다는 신념의 표현이기도 했다. 인터뷰를 마칠 때까지도 그는 자신의 이야기가 결코 절대적인 것이 아님을 강조했다. 하나의 생각이 정답일 수는 없고,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놓은 것이다. 그것은 또 다른 긍정이었다.


 

인간의 마음을 찾아가는 지도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얻을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작가님의 첫 번째 대답은 ‘사람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알아야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지도를 보고 길을 찾아가는 것과 같은 거죠. 인간의 마음을 찾아가는 지도는 이미 수많은 책 속에 있었습니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서 우리의 선배들이 제시해 준 인간의 지도, 삶의 지도들이 있었던 거예요. 그리고 제가 만난 다양한 사람들의 삶의 모습 속에도 있었어요. 저는 그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였고 공통점을 찾으려고 애썼습니다. 그 중에서 어려운 부분들은 더 쉽게 전하려고 노력했고요. ‘인간의 본성과 감정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를 쓰지 말자’는 것이 첫 번째 원칙이었어요. 한 개인의 경험이나 감정은 지극히 주관적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고전이 된 작품들의 공통점은 “인간을 깔보지 않았다는 것”이라고 적으셨습니다. 인간을 긍정적으로 바라봤다는 의미일 텐데요. 그러한 시선은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얻을 것인가』에도 담겨있다고 생각됩니다.


결국 제가 말씀드리고 싶었던 것이 인간에 대한 긍정이었어요. 동시에 ‘나에 대한 긍정’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저도 누군가를 질투했던 적이 있거든요. 그런 마음이 들 때마다 제가 참 형편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질투의 대상에게 인간적으로 미안한 마음이 들었고요. 그런데 동서양의 지성사에 담긴 삶과 마음에 대한 지도를 살펴보니까, 치열한 생존 경쟁을 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 질투는 자연스러운 감정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질투 때문에 스스로를 형편없다고 생각했던 마음에 위로를 받을 수 있었고요. 그건 누군가 나를 질투한다 해도 그를 밀어내지 않을 자신이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해요. 질투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인간의 본성과 같은 것이라는 걸 알고 나니까, 나와 타인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거죠.

 

책에서 “인간은 대체로 지혜로우며 이성적인가요? 인간은 대체로 합리적이며 상식적인가요?”라고 물으셨습니다. 이에 대한 작가님의 답변은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굳이 멀리 보지 않고 저를 보면, 때때로 이성적이고 때때로 비이성적인 것 같아요. 때때로 합리적이고 때때로 굉장히 비합리적이죠. 때때로 감성적이고 때때로 전혀 그렇지 않고요. 사회나 국가의 체계를 보더라도 인간이 그렇게 이성적이지는 않은 것 같아요. 인간이 이성적이라면 우리 삶 속에 이렇게 많은 모순과 부조리가 있지는 않은 것 같거든요. 저의 삶만 보더라도 모순과 부조리가 가득합니다. 저희 딸한테 ‘그렇게 하면 안 되잖니’라고 말하면서도, 혼자 생각해 보면 저 역시 그렇게 산 적이 많거든요. 현재 제 모습이 그럴 수도 있고, 앞으로의 삶 속에 수없이 나올 수밖에 없는 모순들인 거죠.

 

인간의 감정에 대해 살펴보시기 전에, 네 가지 생각의 도구를 알려주셨습니다. 그 까닭은 무엇인가요?


일례로, 네 가지 생각의 도구 중에 ‘꿀 속으로 다이빙하는 개미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어요. 손가락 한 마디 정도의 물이 담긴 세숫대야의 가운데에 놓인 꿀을 먹기 위해서 천장에서 낙하하는 개미들의 이야기죠. 개미들은 꿀을 맛보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결국 빠져나올 수 없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생각의 도구로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전에 한 번쯤 더 생각할 거예요. 누군가가 지나가는 말로 ‘살면서 극단을 선택하는 게 제일 위험한 거야’라고 말하면 쉽게 잊어버리지만, 이야기는 마음속에 오래 남거든요. 삶의 중요한 순간에서 극단을 선택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더 나은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아요.

 

책에서 들려주신 아리스토텔레스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중용을 취하라는 이야기였죠.


그는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극단적인 선택을 피해야 하는데, 실제로 사람들은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는지에 대해선 잘 모르는 것 같다’고 말했어요. 그리고 ‘마땅한 시간에 마땅한 일을 마땅한 방법으로 하는’ 분별력이 우리에게 행복을 준다고 했습니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마땅히 무언가를 해야 할 시간에 마땅한 일을 마땅한 방법으로 하면 불행해질 일이 없죠. 비극적인 선택도 안 할 거고요. 그런데 극단적인 선택을 해버릴 때가 많기 때문에 그러지 못하는 거예요. 그리고 자기 확신에 빠져있는 경우도 너무 많죠. ‘꿀 속으로 다이빙하는 개미 이야기’는 자기 확신에 빠진 사람들에게도 중요한 생각의 도구로 쓰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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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이중성은 당연한 것 아닐까요?


‘인간의 이중성이 세상을 평화롭게 한다’는 이야기는 언뜻 충격적으로 다가오는데요. “감정을 속이지 않는 것과 순수한 것은 분명 다른 차원의 것입니다”라는 말 속에서 그 의미를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인간 안에 내재된 폭력성이 가면을 통해 걸러지지 않고 그대로 드러난다면 세상은 훨씬 더 위태로워지죠. 저 역시 마음속에 있는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던 적이 있습니다. 그것이 솔직하고 순수한 거라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런데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았어요. 상대방의 생각까지도 헤아려야 순수한 것이더라고요. 내 마음에 있는 이야기를 그대로 꺼내는 것이 솔직하거나 순수한 것이 아니고, 상대방이 불편해할 수 있는 이야기라면 차라리 마음속에 두는 것이 훨씬 더 좋은 것 같아요. 인간의 이중성은 당연한 거라고 생각해요. 그것이 누군가를 속이기 위한 것만 아니라면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되고요.

 

여러 개의 가면을 쓰고 사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하지만, 그로 인한 고민들도 생기는 것 같습니다. 나의 새로운 가면을 보고 누군가가 실망하지는 않을까, 하고 죄책감을 느끼는 것이죠.


인간의 이중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은 나를 긍정하는 방법이 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다른 사람의 이중성도 긍정해 줄 수 있게 되잖아요. 만약 누군가를 보고 ‘그 사람은 겉 다르고 속 다른 사람이야, 이중적이야’라고 얕잡아 본다면 우리는 사람을 잃게 됩니다. 동시에 자신을 속이는 것이고요. 그의 모습이 나에게도 똑같이 있으니까요.

 

다른 사람이 지신에게 실망할까봐 두려워하는 마음은 무엇에서 비롯되는 걸까요?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구도자에게 보낸 편지』에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너무 도덕적이지 말라, 왜냐하면 자기 자신을 속일 수 있으니까’ 아울러 이런 말도 있죠. ‘그저 좋은 사람이 되려고 하지 말고 무언가를 위해 좋은 일을 하라’ 당신이 좋은 사람이든 아니든, 가치 있는 것을 위해서 좋은 일을 하라는 거예요. 참 중요한 말이죠. 어떻게 모든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 있겠어요. 불가능한 일이죠.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되려면 자아와 이기심을 억눌러야 하거든요. 그것들은 반드시 폭발해요. 대부분 가족이나 자신보다 약한 사람, 심지어 자기 자신을 향해서 폭발하죠. 이중성과도 맞닿아 있는 이야기 같아요.

 

작가님께서 생각하시기에 우리가 경계하고 버려야 하는 감정들은 무엇인가요?


책에서도 언급했지만, 프랑스의 철학자 알랭은 ‘사람들이 악하다고 말하지 말라, 근처에 있는 바늘을 찾으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악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찔러서 악하게 만든 바늘이 주변에 있을 거라는 거예요. 그를 악하게 만든 상황이 있을 거라는 이야기죠. 인간의 폭력성이 밖으로 드러나는 경우, 대부분은 그런 상황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어쩌면 그건 상황의 차이일 수도 있어요. 사람마다 참을 수 있는 상황이 다 다른 것 같아요. 그런데 만약 지나친 폭력성이라면, 그걸 긍정할 수 있을까요? 제가 책에서 말씀드린 열두 개의 감정과 본성 속에서 반드시 제외되는 것들은 극단적인 것들입니다. 극단적인 것에 대한 기준도 다르지 않느냐고 물으실 수도 있을 텐데, 저는 상식선에서의 극단성을 말하는 거예요.


 

오직 어둠을 통해서만 인도되는 빛이 있어요


“인정받기 위해 필요한 것은 노력하며 나를 기다리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라고 적으신 부분이 인상 깊었습니다. 나를 기다려준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꿈을 이룬 사람들의 공통점은 자신을 기다려주는 시간이 있었다는 거예요. 그들은 처음부터 자신이 갖고 싶었던 것을 갖지 못했어요. 그걸 갖기 위해 정말 많은 시간 공을 들였죠. 그 시간 동안의 절망은 이루 헤아릴 수 없어요. 나를 기다려준다는 것은 굉장히 지루한 시간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나의 가능성을 긍정하면서 어둠의 시간을 견디는 것’을 각오하지 않으면 인정받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아무도 인정해주지 않지만 언젠가는 나도 존귀하다고 말해 줄 누군가를 만날 거라고 믿고, 도저히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장벽이 눈앞에 있어도 언젠가는 그것을 넘을 수 있다는 걸 믿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서 자신을 기다려주는 거죠. 그냥 무작정 기다려주는 게 아니라, 노력하면서 어둠의 시간을 적극적으로 견디는 거예요.

 

‘비판’에 대한 이야기에서 들려주신 경험담이 떠오릅니다. 『연탄길』을 출간하기까지 3년 동안 다섯 번이나 출판사로부터 거절당하셨다고요.


처음 출판사에 원고를 보낼 때는 한 달 안에 연락이 올 거라고 확신했어요. 원고에 대한 자신감이었어요. 그런데 연락이 안 왔습니다. 문제점을 듣고 싶어서 출판사를 찾아갔어요. 거절의 이유를 들었는데, 그때는 크게 공감하지 않았어요. 하지만 확실히 메모해 두었죠. 두 번째 출판사에서는 연락이 올 거라고 믿었는데, 그곳에서도 연락이 없었어요. 또 찾아갔죠. 저도 민망한 순간을 두려워하는 성격이라 찾아가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그 분들도 얼마나 불편하시겠어요. 그런데 직접 이유를 들으니까, 전적으로 공감은 안 됐지만, 자꾸 생각이 나더라고요. 그렇게 계속 거절당하면서 3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어요. 다섯 번 거절당했죠. 그러면서 분명하게 알게 됐습니다. 제 원고가 형편없다는 걸요. 제 원고가 좋다는 생각을 버릴 수 있었던 거예요. 원고가 좋다면 그렇게 거절당할 리 없거든요.

 

그렇게 긴 절망의 시간을 어떻게 견뎌내실 수 있었나요?


대부분 우리는 아픔을 통해서 자신을 정직하게 바라볼 수 있잖아요. 다섯 번 거절을 당하고 나니까 정직하게 제 원고를 볼 수 있었어요. 제 원고가 형편없다는 걸 알았으니까 선택할 수 있었죠. 없애버리든지 고치든지. 물론 출판사에서 거절당할 때마다 부분적으로 고치기도 했지만 다섯 번 거절당하고 난 후에 제대로 고쳤어요. 그 분들이 해준 이야기를 전부 반영하면서요. 그리고 서른 장의 그림도 직접 그려 넣었습니다. 제가 화가만큼 잘 그리지는 못하지만 글을 쓴 사람만 그릴 수 있는 그림이 있거든요. 그렇게 그린 그림이 『연탄길』에 실렸고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얻을 것인가』에도 담겼죠.

 

당시의 경험은 작가님에게 무엇을 남겼을까요?


그때 알게 된 것이, 어긋남이 조화가 될 수 있다는 거예요. 삶에서 무언가 자꾸 어긋나고 있을 때, 불편해하고 힘들어하기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나를 불편하게 하는 그런 어긋남이 삶 속에서 아름다운 조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긴 거예요. 융이 말했듯이 ‘어둠의 빛’ 즉, 오직 어둠을 통해서만 인도되는 빛이 있다는 거예요. 캄캄한 시간, 아픔의 시간을 통해서만 깨닫게 되는 것이 있는 거죠.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얻을 것인가』안에서 인간의 내밀한 본성과 감정을 들여다보셨습니다. 책에 실린 그림도 직접 그리셨고요. 만약 작가님께서 인간의 모습을 그림으로 그리신다면, 어떤 모습이 될 것 같으세요?


그림을 그리라면 먼저 저를 그리겠어요. 그리고 저를 향해 다가오는 따뜻한 손길, 저의 상처 받은 마음을 보살펴주는 따뜻한 손길을 그리고 싶어요. 나에 대한 믿음을 갖는 것이 곧 다른 사람에 대한 믿음을 갖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나를 믿을 수 있을 때 다른 사람도 믿을 수 있는 거죠. 그리고 내가 나를 인정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다른 사람을 인정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어쩌면 내가 나를 인정해주고 믿음을 갖는 것이 누군가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일 지도 몰라요. 그런 의미에서 보면, 그림 속에서 저를 보살펴 주는 손길은 저의 것일 수도 있어요. 내 안에서 울고 있는 나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줘야 하는 거죠. 그 손을 잡아주지 않으면 우리는 누구의 손도 잡아줄 수 없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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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얻을 것인가 이철환 저 | 자음과모음
내가 상대의 손을 잡는다고 해서 소통이 시작되는 것이 아니고, 내가 내민 손을 상대가 잡았을 때 비로소 소통이 시작된다. 상대방이 진짜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먼저 알아내야 하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제대로 읽을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 인간의 마음을 읽는다는 것은 인간의 내면을 이해한다는 것이고, 이 책을 통해 인간의 본성과 감정을 깔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해석하면서 사람을 제대로 이해하고 사랑하는 것을 배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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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어 지승호 “내레이션이 너무 많으면, 다큐도 재미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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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유일의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 그와 인터뷰를 하고 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속 시원해하다”는 평을 한다.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적확하게 묻고 분명하게 전달하기 때문이다. 강준만 교수는 “지승호는 인터뷰 전문 저널리스트 오리아나 팔라치보다 더 윤리적이고, 바바라 월터스보다 성실하다”, 배우 오지혜는 “20년 된 친구에게도 못한 얘기를 지승호에게는 한 것 같다”고 평했다.

 

그는 독보적인 인터뷰어로 언론, 출판계에서는 인정받고 있지만, 때론 대중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기도 한다. 얼마 전 다음카카오 뉴스펀딩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쓴 글에는 “남의 말이나 받아 적는 주제에 지 이름 달고 책을 내는 일을 15년간하다니 정말 뻔뻔하다”는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는 즐거움을 누렸지만, 이면에는 언제나 인터뷰에 대한 편견이 따라붙었다. 지승호는 아직도 이 편견과 싸우는 중이다.

 

『지승호, 더 인터뷰』『쉘 위 토크』이후 5년 만에 펴내는 인터뷰 모음집으로 지승호가 최근 했던 인터뷰 중에서 가장 의미 있었던 인터뷰 7개를 모은 책이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 만화가 강풀, 가수 오지은, 기자 이상호 등 저자 지승호와 같이 오랜 기간 한 길을 걷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만화가 강풀은 지승호와의 인터뷰에서 “작품의 의미는 독자가 부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승호의 인터뷰도 마찬가지다. 의미는 독자가 만들고 갖는 것이다. 인터뷰어는 인터뷰이와 독자의 간극을 가깝게 하는 역할을 한다. 인터뷰이에게는 말할 기회를, 독자에게는 들을 기회를 준다. 묻지 않으면 들을 수 없는데, 사람들은 가끔 착각을 한다. 텍스트가 하늘에서 뚝 떨어진다고.

 

 

화려하지 않지만 믿을 수 있는 선수


인터뷰어로 인터뷰를 하다가, 반대로 인터뷰를 당하게 되셨습니다.


매체에 속하지 않고 인터뷰를 하는 게 신기한지, 몇 번 인터뷰를 당한 적이 있는데요. 아무래도 인터뷰를 당할 때는 녹취를 해야 한다는 부담이 없으니까 편하긴 한데, 내가 어떻게 보여질지에 대한 부담은 있죠. 대개 사람들은 인터뷰어가 말을 잘한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그렇지 않아요. 그래서 인터뷰를 할 때 준비를 많이 하고 가요. 준비를 많이 했을 때는 상대적으로 편하게 진행하지만, 제대로 준비를 못했을 때는 진행하는 게 힘들고. 어려운 지점들이 있어요.

 

5년 전 인터뷰집『쉘 위 토크』를 내고, 앞으로는 인터뷰 모음집을 내지 않겠다고 결심했는데, 『지승호, 더 인터뷰』를 펴내셨어요.


당시 인터뷰에 대한 스트레스가 컸던 것 같아요. 인터뷰 자체에 대해서 모르는 분들도 많았고. 어떤 분들은 좋게 평가하지만 상당히 많은 분들이 “녹음기를 들고 와서 자기 이름을 걸고 책을 낸다”고 하셨으니까요. 책을 많이 읽고 배웠다는 분들이 더 그런 경우가 많아요. 상처 주는 방법도 더 잘 알고 계셔서 댓글 하나도 잔인하게 다시고(웃음). 제 인터뷰 방식 자체가 인터뷰이한테 조명을 비추고 훑는 스타일인데, 그거 자체가 옳았나? 는 생각도 했는데요. 제가 열 사람이 칭찬해도 한 명이 비난하면, 그 소리에 더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라서요. 어떻게 보면 저자도 연예인처럼 되야 하는데. 무플보다 악플이 나은 건데, 제 성격이 그렇지 못한 것 같아요. 5년 전에 했던 결심도 이 생각과 다르지 않았을 텐데. 한 번도 주목을 받아보지도 못했음에도 식상해진 것 같기도 하고(웃음). 욕을 먹더라고 노출을 하는 게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15년간 인터뷰로 만났던 당대 지식인, 방송인, 배우들의 인터뷰평이 대단합니다. 칼럼니스트 김규항은 “지승호는 인터뷰이가 감탄할 만큼 치밀하게 준비하고, 또 거듭한다. 그는 개척자적인 인터뷰어”라고 말했고, 가수 故 신해철은 “이 양반이 뭔가에 대해 물어보면 ‘이유가 있겠지’하고 편하게 대답한다”고 평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민망해요. 그동안 들은 찬사만 모아 놓았는데, 과했다 싶어요. 그런데 그렇게 해서라도 책이 좀 나가면 그것도 나쁘지 않겠다, 그렇게라도 버텨야겠다고 생각해서 출판사가 써준 대로 내버려뒀어요. 찜찜한 건, 그 분들의 생각이 지금은 바뀌었을지도 모른다는 거예요. 그렇다고 일일이 다시 물어볼 수 있는 문제도 아니니까. 지금 그렇게 나쁜 관계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이해하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지승호가 뽑은 우리시대 문제적 인물들’이라는 테마로 강준만 전북대 교수, 만화가 강풀, 김난도 서울대 교수, 가수 오지은, 기자 이상호 등 7명의 인터뷰를 책에 실었습니다.


근간에 했던 인터뷰 중에 좋았던 인터뷰를 뽑았어요. 분량 때문에 미처 다 싣지 못했던 인터뷰도 있고요. 일곱 분의 공통점을 꼽자면 한 길을 계속 걸어가고 있다는 점일 거예요. 각자 자기 분야에서 10년 이상 일해오신 분들인데, 어떻게 보면 저하고 약간 비슷할 수 있는, 동병상련 같은 느낌을 가진 분들이라고 할까요.

 

단행본으로 인터뷰가 묶어지면, 평생 기록으로 남는 거잖아요. 부담스럽게 생각한 분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강준만 교수님 인터뷰는 정말 싣고 싶었는데, 혹시나 허락을 안 해주실 것 같기도 해서 ‘책으로 내고 나서 매를 맞자’고 생각했어요. 나중에 교수님께서 “네가 이야기하면 허락해줬을 텐데”라고 하셨어요. (웃음)

 

<인터넷 한겨레>의 하나리포터로 글을 쓰기 시작해, 웹진 <시비걸기>, 여성주간신문 <우먼타임즈>, 월간 <아웃사이더>, <서프라이즈>에서 활동하다 ‘전문 인터뷰어’가 되셨어요. 지금까지『마주치다 눈뜨다』, 『유시민을 만나다』, 『감독, 열정을 말하다』, 『신해철의 쾌변독설』, 『괜찮다, 다 괜찮다』등 40여 권의 책을 썼고, 최근에는 『서민의 기생충 같은 이야기』, 『이대로 가면 또 진다』,『만화, 세상을 그리다』 등을 펴냈어요. 정말 방대한 작업을 하고 계신데, 일을 선택하는 기준이 있을 것 같아요.


기본적으로 제가 궁금한 사람들을 만나요. 제 나름대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으면 만나죠. 인터뷰는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분명히 인터뷰이에게 기대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준비를 많이 하고 연구를 많이 하면, 의미 있는 기록을 남길 수 있어요. 가시적으로 나오는 부분이 그렇게 크지 않지만, 많은 사람들이 인터뷰를 하면 좋은 기록도 많이 남겨진다고 생각해요.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인터뷰는 꽤 고된 일입니다. 책을 낸 저자의 경우에는 책을 읽어야 하고, 최근에 한 인터뷰 기사 등 근황을 다 찾아봐야 하고. 질문지를 먼저 보내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으니 철저하게 질문을 구성해야 하고, 인터뷰를 하고 나서는 녹취를 풀어야 하고. 틀린 문장은 다시 쓰고, 반복되는 이야기는 빼야 하고요. 하지만 평소 쉽게 만날 수 없는 사람과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게 인터뷰의 매력입니다.


최근에 한 월간지에서 서간집을 내신 이명세 감독님과 채호기 시인의 인터뷰를 부탁해왔어요. 준비할 시간이 이틀밖에 없었는데, 평소 이명세 감독님을 만나보고 싶었기 때문에 수락했죠. 인터뷰를 책으로 묶을 때는 대개 질문을 5백 개 정도 만들어가요. 계속 대화를 나누다 보면, 한 질문이 다른 질문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시간이 끝도 없이 길어질 때도 있죠. 『강신주의 맨얼굴의 철학 당당한 인문학』쓸 때, 인터뷰만 50시간을 했는데. 녹취를 푼다고 하면 두 세배 시간이 더 걸리는 것 같아요. 10시간 정도를 쭉 이어서 해본 것 같은데. 50시간 인터뷰를 했다고 하면, 꼬박 풀어도 10일 이상이 걸리는 거니까요. 슬럼프에 빠지기라도 하면 시간이 지체되니까 되도록 빨리 녹취를 풀어 놓으려고 해요.

 

인터뷰를 하는 분들을 보면 ‘필자’를 언급하며 사견을 많이 쓰는 경우가 있는데요. 지승호 작가님의 글을 읽어보면 되도록 인터뷰어가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점점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자기 검열을 많이 해요. 움츠러드는 거일 수도 있고요. 인터뷰어가 감독이라고 치면, 인터뷰이의 어떤 면을 이끌어내야 하는 거잖아요. 언젠가 진중권 교수님이 제 기사를 두고 “인터뷰어의 고유한 시각이 수줍게 모습을 드러낸다”고 평해주셨는데, 인터뷰어가 굳이 “나는 이런 느낌을 받았다”는 걸 또 한 번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싶어요. 그 느낌을 질문과 답에 녹여서 기사를 쓰면, 독자가 스스로 느낄 수 있잖아요. 인터뷰어가 해석을 또 한 번 해주면 아무래도 방해가 되지 않을까 싶은 거죠. 다큐에서도 내레이션이 너무 많이 나오면 재미가 없잖아요. 정말 잘 쓴 건, 이 사람이 슬프고 좋구나를 인터뷰를 읽고 나서 느낄 수 있게 하는 거 아닐까요. 흔한 비유지만, 야구선수들이 허슬 플레이를 하면 관중들이 화끈하다고 좋아하지만, 감독이 정말 좋아하는 선수는 타구의 방향을 예측해서 안정적인 플레이를 하는 선수거든요. 관중은 모르지만 감독은 아는 거죠. 화려하지 않지만 믿을 수 있는 선수가 누구라는 걸.

 

전문 인터뷰어로 지승호 작가님이 인정받을 수 있었던 요인이기도 하네요.


대부분 인터뷰이들이 인터뷰가 끝나면 저에게 호감을 갖는데, 안정감 때문일 거예요. 편집자 분들 입장에서도 일단 맡기면 원고가 나오고 책이 나오니까요. 이게 굉장히 중요한 건데, 이상하게 한국 사회는 느려 보이고 성실한 걸 미덕으로 여기지 않는 면이 있어요. ‘내가 열심히 하면 저거보다 나을 텐데?’라고 생각을 하는데, 실제로 경기에 나갔을 때는 아닐 수 있거든요. 밖에서 보는 것과 실제로 맞닥뜨리는 게 다를 수 있어요. 뭔가 투덜거리는 것 같아서 슬프지만(웃음). 정말 그냥 받아 적기만 하면 되는 일이라면, 왜 이렇게 편하고 좋은 일을 사람들이 안 하는 걸까요? 좋아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는 일인데요.

 

인터뷰를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들은 쉽게 말을 하진 않더라고요.


그렇죠. 정신적으로도 힘들고, 생각보다 육체적으로도 많은 시간을 쏟아야 하는 일인데, 사회적 보상이 낮기 때문에 안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최소한 노동에 대한 존중은 있어야 하는데, 그다지 인정을 안 하죠. 큰 보상을 받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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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하려면 더 조심스러워야 한다


인터뷰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인터뷰이의 과거 기사들을 많이 참고하게 되는데요. 다른 기자들이 쓴 인터뷰 기사를 읽으면, 어떤가요?

 

자료를 찾기 위해 읽기도 하지만 인터뷰 자체가 재밌어서 보는 경우도 많은데요. 재밌을 때도 있지만 불편할 때도 있어요. ‘왜 인터뷰를 이렇게 하지? 독자들이 이런 인터뷰를 좋아하나?’ 그런 생각도 드는데, ‘이런 점은 나보다 훨씬 낫구나’하고 배워야겠다는 생각도 해요. 최근에는 슬로우뉴스에서 박순찬 화백의 인터뷰를 읽었는데, 새로운 방식을 시도한 점이 새롭더라고요. 박 화백의 이야기를 다른 텍스트와 연결해서 엮어낸 걸 보고 자극을 많이 받았어요.

 

인터뷰를 굳이 두 개로 분류하자면, 인물에 초점을 둔 인터뷰와 이슈에 초점을 둔 인터뷰로 나눌 수 있는데요. 어떤 인터뷰가 더 편한가요.


아무래도 이슈에 관해 이야기하는 게 더 편하죠. 하지만 그 이슈에 대해 어느 정도는 팔로우를 하고 있어야 해요. 그게 없으면 겉도는 이야기가 되죠. 만약 양심적 병역거부를 한 사람을 인터뷰할 때, “힘드셨겠어요”라고 하면 그 분의 감정은 전달할 수 있겠지만, 깊이 있는 이야기는 전하기 어렵겠죠.

 

평소 좋아하는 인물을 만났을 때는 아무래도 더 기사를 잘 쓰고 싶을 텐데요.

 

더 정확하게 기록하고 남기고 싶은 마음이 있죠.

 

반대로 싫어하는 사람을 인터뷰이로 만날 때는 어떤가요.

 

저는 사람 자체를 미워하지 않아요. 저와 정치적 입장이 다를 때 얄미울 때도 있지만, 그 사람 자체를 미워하는 건 아니에요. 그 사람이 가진 권력이 커서 사람들에게 영향을 많이 미친다면 이야기가 조금 달라지겠지만요. 인터뷰 요청을 받았을 때, 제가 궁금한 사람이면 거의 해요. 굳이 구분하진 않아요. 제가 변희재 씨 인터뷰도 몇 번 했는데요. 그렇게 밉지는 않아요.

 

인터뷰를 하고 원고를 보여달라고 하면 보여주시나요? 


보여달라고 하면 보여줘요. 대개 팩트가 다른 걸 고치거나, 이건 뺐으면 좋겠다고 하면 대부분 받아들여요. 하지만 너무 왜곡을 하면 이야기가 달라지죠.

 

지승호 작가님이 인터뷰로 쌓아온 이력이 상당한데, 원고를 보여달라고 하면 ‘나를 못 믿나?’하는 생각도 들 것 같은데요. 서운하기도 할 것 같고요.


그런 건 인터뷰이의 성격인 것 같아요. 진중권 선생님 같은 경우에는 자기가 얘기한 게 어떻게 나가든 관심이 없는 분이거든요. 오해와 비난, 이런 거에 초월한 분이세요. 하지만 어떤 비난에 대해 민감한 분들은 어쩔 수 없어요. 김난도 교수님 같은 경우에는 인터뷰를 할 때, 표현 하나하나에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쓰신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너무 과도한 비난을 들었으니까요. 인터뷰를 할 때도 조심스러워 하셨는데 응해주셨고, 책에 실린다는 이야기를 듣고 한 번 원고를 보고 싶어 하셨어요.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도 있고 이해가 가니까요. 보여드렸죠.

 

인터뷰는 기본적으로 묻고, 듣는 작업입니다. 계속 이야기를 듣고만 있다 보면, 간혹 내 이야기를 하고 싶은 충동, 내 의견을 말하고 싶은 느낌이 들 때도 있지 않나요? 그럴 땐 어떻게 하시나요? 자제하시나요?


예전에는 좀 있었는데, 그게 그렇게 좋은 건 아니라는 생각이에요. 그 사람을 통해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려면 인터뷰 서문에 쓰거나, 내가 따로 글을 쓰는 게 낫죠. 인터뷰이를 더 잘 이해하게 만드는 텍스트로는 길게 쓸 때가 있는데, 그 외에는 되도록 자제해요. 예전에 표창원 교수님과 『공범들의 도시』를 냈는데, 이건 제가 한국사회의 범죄에 관심이 있기 때문에 한 거예요. 표창원 교수님의 이야기를 끌어내서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 거죠. 한국사회가 범죄를 대하는 태도가 너무 주먹구구식, 공부를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수사기관의 인권의식이 없다는 걸 지적한 건, 제 의견이죠. 그런데 리뷰를 보면 놀라운 게, 같은 책을 봐도 너무 극단적으로 다른 이야기들을 해요. 어떤 분은 “얘는 왜 자꾸 표창원 생각을 끄집어내려고 하냐.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자꾸 답변을 유도한다”고 하시더라고요. “인터뷰어가 하는 일이 없다”는 리뷰를 읽은 적도 있어요. (웃음)


오랫동안 인터뷰를 할 수 있었던 이유가 궁금합니다.


글쎄요. 아직까지 주목을 받지 못해서 그럴 지도요. 튀고 싶은 자의식을 눌렀기 때문에 오래 갈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방송으로 치면 일인자가 됐을 때, 그걸 유지한다는 게 더 어렵잖아요. 욕망이 없을 순 없겠죠. 하지만 눌러야 편해지니까요. 약간의 스타성이 생겼다면 수익도 좋아지고 일을 하기 더 수월했을지 몰라요. 그런데 조금 뜨면, 훅 가잖아요. 국회의원들이 대부분 한 번 의원에 당선되면 두 번째 꿈이 재선 의원이 아니라, 대통령인 것처럼. 저 사람이 왜 그럴까? 생각해봤는데, 주변에서 가만히 놔두질 않아요. 더 큰 꿈을 꾸라고 하죠. 그래야 옆에서 자기도 이득이 생기니까. 그런데 이런 걸 받아들이면 사람이 훅 가요. 어느 정도 떴을 때 절제를 못하면, 끝인 것 같아요. 오래하려면 더 조심스러워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인터뷰이에 대한 철저한 준비는 지승호 작가님의 트레이드 마크이기도 한데요. 인터뷰어로서 단점이 있다면.

 
너무 많죠. 외국어를 배운다고 친다면, 말을 잘 못한다고 해도 외국인들에게 말도 붙여보고 부딪혀봐야 하는데, 그런 거를 못해요. 말을 붙이기 전에 고민을 너무 많이 하고 결국 시도를 못하는 편인데, 그게 인터뷰어로서 엄청난 단점이에요.

 

기자 분들을 보면 의외로 내성적인 분들도 많아요.


그렇긴 해요. 예전에 이시형 박사님이 “내성적인 사람이 성공한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남 앞에 잘 못 서는 사람이니까 훨씬 더 준비를 많이 하기 때문이에요. 그 사람과 무슨 대화를 나눠야 할지에 대해서도 공부를 해야 하잖아요. 인터뷰는 어차피 듣는 작업이기 때문에 말을 많이 하는 사람보다 내성적인 사람이 더 잘 맞을지도 몰라요. 역설적이지만, 그런 분들이 더 오랫동안 하고 더 잘되는 경우가 있고요. 부족한 부분일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났을 때는 장점이 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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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인터뷰어를 꿈꾸는 분들이 있을 텐데요. 먼저 길을 개척한 선배 입장에서 조언을 하신다면.


강풀 작가가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랑 비슷해요. 무조건 만들어야 해요. 실전으로 써보고 사람들한테 욕도 먹어봐야 내가 소질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 수 있어요. 인터뷰는 어느 정도 하다 보면 쓸 수 있다고 생각해요. 매체에 들어가면 제약을 받긴 하지만, 매체 안에서 훈련을 받는 것도 좋은 경험이에요. 저도 8개월 정도 <우먼타임스>에서 일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됐어요.

 

『지승호, 더 인터뷰』에서 강풀 작가는 “만화가는 좀 덜 나이 드는 직업”이라고 표현했어요. 인터뷰어는 어떤 직업인 것 같나요.


어쩔 수 없이 겸손해지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인터뷰를 해서 듣겠다는 사람은 뭔가가 있는 사람이잖아요. 인터뷰이에 대해서 공부를 하다 보면 놀라워요. 기본적으로 존경할 만한 부분이 있는 사람들이니까요. 하지만 그런 마음만 갖고 있다면 인터뷰를 제대로 못하죠. 일정하게 줄다리기도 해야 하고요. 자기가 너무 작아지면 인터뷰도 못해요. 나름의 자존감이 있어야 해요. 정신과의사들이 밥은 혼자 먹는다고 하잖아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루 종일 들어야 한다는 게 엄청난 스트레스라는 거죠. 자기도 그게 트라우마가 되니까 카운슬링을 받기도 하고. 듣기만 하다 보면 지칠 수 있는 거죠. 인터뷰도 그런 직업인 것 같아요. 매력적이지만 힘들죠.

 

예전 인터뷰를 보니, 배우 송강호를 인터뷰하고 싶다는 소망을 이야기했는데. 아직 못 만나셨죠?


워낙 인터뷰를 안 하시는 분이셔서. 예전에 김지운 영화감독님과 인터뷰를 하고, “송강호 씨, 섭외 좀 안 될까요?”라고 부탁을 드린 적이 있어요. 김지운 감독님이 저한테 송강호 씨한테 이렇게 문자를 보냈다고 캡처를 해서 보여주시더라고요. “지승호란 인터뷰어랑 인터뷰를 했는데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돼서 좋았다. 인터뷰 한 번 해보면 어떻겠냐”고. 그런데 답은 없었어요. 얼마 전에 <씨네21> 창간 20주년 인터뷰에 나왔던데, 그건 송강호 씨랑 두 편 이상 영화를 찍은 감독들이랑 한 거니까요. 뭐, 언젠가 제 인터뷰가 더 쌓여지면 송강호 씨가 인터뷰를 하겠다는 마음이 들었을 때, 여러 후보 중의 한 명은 되겠죠.

 

혹시 이 인터뷰를 통해, 만나고 싶은 사람을 밝히신다면.


얼마 전에 <오마이뉴스>에서 인터뷰를 하면서 “정말 대화가 되는지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거든요. 그런데 그 기사를 보고 주변에서 “너 그렇게 말해도 괜찮겠냐”는 반응이더라고요. 시대가 하 수상한 건지. 당연히 괜찮은데 사람들이 굉장히 공포심을 느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이걸 노리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이 책을 故 신해철, 故 최동원 님께 바친다고 쓰셨는데, 두 분과 특별한 인연이 있나요.


『지승호, 더 인터뷰』가 저에게는 꽤 의미 있는 책이니까요. 좋아했던 사람들한테 이런 식으로라도 마음을 전하고 싶었어요.

 

아무래도 평소 ‘인터뷰’에 대한 관심이 있는 독자들이 이 책을 읽게 되겠죠. ‘인터뷰’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늘 하는 말이 있는데, “인터뷰는 기술이 아니고 태도”라는 거예요.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통해서 ‘나를 존중하고 듣고 있구나’라고 생각이 들면 누구나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요. 침묵도 대화라고 하잖아요. 친구랑 대화를 하는 것도 일종의 인터뷰에요. 친구가 울고 있는데, 자꾸만 너 왜 우니?”라고 물으면, 폭력일 수 있어요. 그럴 때는 가만히 있다가 친구가 울음을 그쳤을 때, “할 이야기 없어?”라고 묻는 게 낫죠. 상대의 상태에 맞춰 존중하면서 대화를 하는 게 중요해요. 애정이 있다고 자꾸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걸 “너 걱정돼서 그래”라고 꼬치꼬치 캐묻는 건 좋지 않아요. <한겨레>에서 하고 있는데, 인터뷰의 최고봉이 ‘가족 인터뷰’라고 하잖아요. 꼭 직업으로 인터뷰를 하는 게 아니라 일상의 관계 속에서 인터뷰를 해봐도 좋을 것 같아요. 그냥 이야기를 하는 것과 공부하고 생각한 다음에 대화를 하는 건 완전히 달라요. 꼭 신상을 알아야 할 필요는 없지만, 상대를 이해하기 좋은 방법이 되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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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승호, 더 인터뷰지승호 저 | 비아북
『지승호, 더 인터뷰』에는 전문 인터뷰어로 15년을 활동하며 40여 권이 넘는 인터뷰집을 낸 지승호만의 내공과 노하우가 결집되어 있다. 저자는 그동안 어떤 주제별로 여러 사람을 인터뷰한 책은 내기는 했었지만, 이처럼 저자가 좋아하는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을 다루고, 인터뷰의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책을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우직하게 인터뷰어로서 외길을 걸어온 지승호의 긴 인터뷰 역사를 총결산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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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인숙 “남편을 위로하려고 찍은 사진, 사랑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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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를 하고 싶어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는데 사랑이 됐다.” 『서울 염소』의 저자 오인숙 사진작가의 이야기다. 사진 에세이 『서울 염소』는 10여 년간 남편의 방황과 갈등을 지켜본 아내의 일기다. 사춘기를 겪는 두 딸을 이해하기 위해 사진을 찍기 시작했는데, 어느 날 남편의 괴로움이 카메라로 들어왔다. 대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매일을 견디고 있었던 남편, ‘서울 염소’가 되어 높은 빌딩으로 출근해야 하는 남편의 뒷모습이 앵글에 잡히자, 비로소 있는 그대로의 남편을 받아들이게 됐다. 저자는 “사진을 찍을 만큼의 거리를 두자, 온전히 한 인간으로서 남편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17년간 교직 생활을 한 아내와 초고속 승진을 하며 승승장구했던 프로그래머 남편. 동갑내기 부부는 큰 욕심을 부리지 않았지만 서울살이는 결코 만만치 않았다. 결국 남편은 구조조정의 칼날을 스스로에게 들이댔고 아내는 학교를 그만뒀다. 아들과 둘이 떠난 여행에서 아내는 사진의 매력에 빠졌고, 남편은 “와이셔츠 단추 한 개 열고 다니다 하나 더 여니 세상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졌다”며 시골에 집을 짓기 시작했다. 밥벌이의 지겨움은 여전하지만, 이들 부부는 자신들이 ‘언제’ 행복한 지를 알게 됐다.

 

지난 가을, 아내는 남편을 위해 작은 전시회를 열었다. 고심 끝에 선별한 사진들을 남편에게 보여주자, 남편은 “담담하네”라고 말했다. “아내가 남편을 찍었는데 자극적이면 이상한 거지. 뭘 더 바라나?”라며, 은근히 칭찬을 기대했던 아내를 꿀 먹은 벙어리로 만들었다. 그런데 사진전이 끝나고 6개월 만에 나온『서울 염소』 초고를 읽은 저자의 딸아이는 “울 뻔했어. 아빠가 참 아름다운 사람인 것 같아. 정말 순수한 어린아이 같아”라고 말했다.

 

“처음엔 집사람이 자기 사진 욕심에 자꾸 나를 찍는가 보다 했는데 어느 날 보니 제가 하는 이야기를 다 받아 적는 거예요. 울컥하더라구요. 그래서 그때부터 몸을 대주기 시작했어요. 인자 찍든가 말든가 마음대로 한 번 해보라고.”(183~184쪽)

 

결국 누군가를 찍는 일은 그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행위였다. 『서울 염소』는 신묘한 책이다. 예쁘게 찍으려고 애를 쓴 사진, 잘 쓰려고 아등거린 글이 하나 없는데, 읽는 내내 심장이  뛴다. 아주 새롭고 특별한 것을 만들기란 오히려 쉽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읽어내는 일일지 모른다. 아내는 남편의 표정 대신 낯빛을 찍었다. 사진에는 빛과 함께 그림자도 찍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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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엄마, 아빠라는 직위를 떨쳐버려


책을 낸 과정이 궁금합니다. 작년에 ‘서울 염소’라는 제목으로 사진전을 열기도 하셨죠.


남편 사진이 계속 쌓이면서 한번쯤 정리를 좀 해야 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남편이 회사에서 구조조정되면서 여행을 가기로 했는데, 그 전에 선물로 주고 싶기도 했고요. 사진전을 열면서 도록을 만들었지만 제대로 더 깊이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죠. 책을 준비하면서 남편이랑 이야기를 했는데, 저희의 삶이 비단 저희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더라고요. 친구들이랑 이야기하다 보면 “시골 가고 싶다, 귀농하고 싶다, 여행하고 싶다”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은 거예요. 대개 그런 것들에 대해 꿈만 꾸다 마는데, 그래도 저희는 운이 좋게 실현을 해봤으니까요. 조금의 위로 같은 게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처음 『서울 염소』라는 제목을 읽고, ‘왜 염소지?’ 싶었어요. 그런데 의미를 알고 보니 되게 슬프더라고요.


염소 이야기가 이 책의 출발이에요.

 

“어릴 때 큰집으로 심부름을 가곤 했어. 산모퉁이를 돌면 묵은 밭 같은 평지가 나오는데 거기 염소 한 마리가 묶여 있는 거야. 그냥 쇠꼬챙이에. 염소는 동그라미 안에 있어. 쇠 말뚝과 동그라미 중간쯤에 앉아 입을 우물거리면서. 그 모습이 어린 눈에도 무척 인상적이었어. 그런데 커서 보니까 내가 딱 그 염소야. 목줄 길이가 회사 가는 거리인 거지.”(4쪽)

 

책을 읽는데 한 페이지도 쉽게 넘어가지가 않더라고요. 슬프기도 하고 행복하기도 하고. 남편은 아내의 글을 보고 어떤 반응이었나요? 사진만 봤을 때의 느낌과는 달랐을 텐데요.


자기가 굉장히 슬프게 그려졌대요. 자기는 웃긴 놈인데. (웃음) 평소에 남편이랑 워낙 이야기를 많이 해요. 같이 본 글도 많고요. 저희에겐 새삼스럽진 않은 거예요. 많이 했던 이야기니까. 우리 부부가 하던 이야기에서 마치 사료를 찾는 느낌이었어요. 남편이랑 저만 회원인 온라인 카페가 있는데, 서로 관심 있는 일에 대해 이야기도 하고 그래요.

 

쌍둥이 두 딸의 복잡 미묘한 관계를 사진으로 이해하려고 했듯이 남편에게 드리운 그늘을 이해하기 위해 카메라를 들었다. 그러나 남편은 달랐다. 온갖 표정을 지으며 풍부한 감정을 표현하는 여자아이들과는 달리 남편은 웃거나 화내거나 무표정한, 딱 세 가지 얼굴뿐이었다. 처음에는 완강하게 거부했다. 얼굴을 가리고 저만치 가버리기 일쑤였고 때론 소리를 버럭 지르기도 했다. 그래도 나는 천천히 그에게 다가갔다. 긴 세월이 흐르고 남편은 아이들의 배경에서 자기 삶의 내 사진 속의 주인공이 되었다. (180~181쪽)

 

첫 장부터 눈을 떼기가 어려웠어요. 사진도 사진이지만, 특히 글이. 책을 본 지인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많이 울었다는 분들이 꽤 있더라고요. 그런데 감동을 받은 부분이 다 다른 것 같아요. 결혼을 안 한 동료는 부모님이 생각나서 울었다는 분도 있고. 남편이 프로그래머라고 하신 기자님은 이카루스의 추락, 그 부분이 너무 자기 이야기 같다고도 하셨고. 여행 간 이야기가 좋았다는 분도 계시고요. 감동 받은 부분이 조금씩 다른 게 저한테는 재밌게 느껴졌어요.

 

시 같은 느낌도 들고. 문장이 굉장히 정제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고등학생 때부터 문학소녀였어요. 좀 웃긴 이야기인데, 17살 때 절필한 사연이 있어요. 글이라는 게 쓰다 보면 자기 자신이랑 좀 다르잖아요. 쓴 글을 보면 되게 절실한데, 제 자신은 되게 관념적이고. 결정적으로 뭔가를 하겠다고 엄청나게 글을 써놨는데, 현실에서의 나는 아무 것도 아니고. 글 속의 저와 바깥의 제가 너무 다르다는 느낌을 받아서 글을 못 쓰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어떻게 다시 펜을 들었는지는 모르겠는데, 항상 글에 관심이 많았어요.

 

특별히 어떻게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은 안 했나요.


글을 쓴다는 게 누구를 대상으로 한다기보다, 자기 생각을 정리하는 게 더 먼저잖아요. 저 혼자 회원인 카페도 있어요. 일기장인 거죠. 책을 준비하면서, 아예 새롭게 쓴 글이 그렇게 많지 않아요. 써놓은 글들을 싹 정리하는 느낌으로 스스로 편집을 했다고 할까요. 여행을 갔을 때, 내가 뭘 하고 싶을까를 생각했는데. 사진은 두 번째였던 것 같아요. 첫 번째는 글 쓰는 행위더라고요. 그래서 사진 선생님한테 “이제 글 쓰는 거 하고 싶어요”라고 했어요. 사진은 사실 남편 때문에 계속 한 거지, 글 속에서 제가 더 자유로운 것 같아요. 사진은 더 많이 공부해야 하고요.

 

대안학교에 다니고 있는 쌍둥이 두 딸의 이야기도 재밌었어요.


며칠 전에 책을 읽어 보라고 줬더니, 첫 장부터 대성통곡을 하면서 보더라고요. 방에서 각자 따로따로 보는데, 계속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고. (웃음) 마지막 장쯤에서 또 다시 대성통곡을 하고. “난 안 울 거야”라고 하더니, “난 어떻게 살아야 할까?”라고 묻더라고요. 자기 전에 저에게 편지를 줬어요. 딱히 어떤 대목에 감동했다는 것보다 우리 가족 모두에게 감동을 받았다면서, 소중한 사람들이 옆에 있어서 좋다는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이제 엄마, 아빠라는 직위를 떨쳐버려”라고 했는데, 애들한테는 엄청난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일단 저로서는 가족에게 큰 영향을 줬다는 것만으로도 되게 고마운 책이에요.

 

 

우리가 어떤 상태에서 행복한지를


“사랑은 단지 곁에 있어주는 것. 이 말을 이해하는 데 너무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하셨어요.


사진 찍어주면서 늘 옆에 있고, 손잡고 걸어주고, 이야기 들어주고. 그것보다 중요한 게 없는 것 같아요. 불안하지 않다면 거짓말일 거예요. 남편이 귀농을 이야기했을 때는 ‘아, 난 전혀 아닌데. 그런 거 싫은데’ 했어요. 하지만 같이 가봤더니, 관심이 생기고 더 좋은 사진을 찍고 싶다는 욕심도 생기고. 돈이 있고 없고 보다, 어떤 큰 충만함을 알게 된 거예요. 맨 마지막에 시골집 사진이 나오는데, 사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 시골이냐 도시냐, 여행지냐 하는 건 더 이상 중요한 것 같지 않아요. 어떤 상황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가 어떤 상태에서 행복한지를 알게 된 거예요.

 

남편을 더 잘 이해하게 됐을 거고요.


사진을 찍으려면 일단 상대방이 있어야 하잖아요. 절대적으로 같이 보내는 시간이 많아야 가능해요. 교감이 많아야 좋은 사진이 나오는 것 같아요. 얼굴만 봐도 안다는 게, 저는 남편을 찍고. 남편은 제 안색을 살펴요. ‘오늘은 안 아픈가’ 하고요. 아이들이 스무 살이 넘어가면, 남편이랑 여행을 다니면서 한 곳에서 1,2년씩 살면서 지내고 싶어요. 남편이 하는 앱 개발에 제가 아이디어를 줄 수도 있는 거고, 남편은 제 사진 작업에 새로운 테마를 줄 수도 있고요.

 

책을 보면서, 남편 분이 점점 더 잘생겨진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웃음) 작가의 애정이 사진에서도 보이는 것 같고. 가장 큰 건, 남편 분이 행복해졌기 때문이겠죠.


어떤 분이 저랑 남편이랑 둘이 찍은 사진을 보시더니 “여자가 너무 좋아해. 균형이 안 맞아”라고 하시더라고요. (웃음) 아직도 제 눈에 콩깍지가 씐 것 같아요.

 

마지막 사진에서 남편 분이 개구진 표정으로 “인숙아 밥 줘!“라고 적힌 모니터를 들고 있어요. 되게 인상적인데요. “사진 좀 그만 찍고 밥이나 줘?” 이런 건가요?


(웃음) “밥만 많이 주세요”에 더 가까워요. 약간 머슴 버전? 남편이 좀 단순해요. “난 밥만 주면 돼”, 이런 말을 많이 해요. 그렇다고 본인이 요리를 안 하는 건 아니에요. 제가 “나도 밥 줘”하면 밥 줘요. 그 사진을 찍었을 때가 남편이 백수일 때인데, 아침부터 이야기가 잘 돼서 점심 때까지 계속 놀면서 사진을 찍었어요. 남편이 밥 달라고 해서, 그날 빵을 줬어요. (웃음)

 

사진을 공부하게 된 동기가 있었나요.


본격적으로 공부한 건, 큰 아이가 초등학교 5학년 때인데, 둘이서만 유럽여행을 갔어요. 처음으로 남편 없이 갔는데, 아이랑 저밖에 없으니까 제가 주도한 여행이 됐죠. 그 때 사진을 찍으면서 완전 빠졌어요. 블로그에 사진을 올렸는데 롯데백화점에서 전시를 하자고 연락이 오더라고요. 어, 이게 뭐지? 나 잘 찍나?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남편이 중고 디지털카메라를 사왔어요. 사진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2005년에 한겨레 강재훈 사진학교에 등록했어요. 그 때 선생님이 처음 보여 준 책이 『윤미네 집』이에요. 아, 이건 가봐 싶더라고요. 그 전까지는 어떻게 멋있는 사진을 잘 찍을까만 생각했는데,『윤미네 집』을 보고 사진에 대한 방향성, 정체성이 정해졌어요. 나중에 나도 아이들 사진을 찍어서 결혼할 때 선물로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사진가가 되겠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당시엔 교사 생활을 했던 터라, 전업으로 사진을 한다는 건 꿈에도 생각을 못했어요.

 

지금도 여전히 남편 사진을 찍으시나요? 책을 내고 나서, 남편을 찍는 시선이 달라졌을지도 궁금합니다.


찍어요. 남편이 마지막 사진에 “밥 줘”라고 쓴 것처럼, 좀 웃긴 사람이에요. 스스로 자기가 슈퍼모델인 줄 알고, 빛이 좋은 날이면 “이런 데서 안 찍고 뭐 하는 거냐”며 저를 불러요. (웃음) 자기가 오히려 ‘나는 로케이션 디렉터’라면서 이런 이런 사진을 찍어보자고 제안을 해요. 인간의 진화를 사진으로 담아보면 어떻겠냐고 했는데, 생각 중이에요.


오인숙 셀렉 (1).jpg

 

 

사진은 끊임없이 상대와 자신을 맞춰야 한다


사진작가로 활동하고 계신데, 사진은 저자님께 어떤 의미인가요.


사진 수업시간에 “당신에게 사진이 뭐냐?”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첫째는 인식의 확장이에요. 어떤 사람을 볼 때, 정면에서 보다가 아래에서 보면 전혀 다르거든요. 생각을 확장하게 하는 도구죠. 두 번째는 자기 안에 있는 생각을 표현하는 도구인 것 같고, 마지막으로 가장 강력한 게 소통의 수단이라는 거예요. 남편과 신혼 초창기 때, 온라인 카페를 만들어 놓고 소통을 하다가 멈춘 이유가 글은 어떻게 보면 일방적인 거잖아요. 내 생각을 갖고 혼자 쓰고 그걸 상대한테 보라고 주는 건데. 화가 났거나 부부싸움을 했을 때, 서로 마주보면서 하는 이야기는 그 자리에서 사라지지만 글로 쓰면 그건 남아 있으니까요. 그리고 남자들은 여자들이 조목조목 따지는 걸 싫어하잖아요. 그런데 사진은 조금 다른 것 같아요.

 

어떤 게 다른가요.


사진은 일단 대상이 있어야 찍을 수 있잖아요. 그리고 자기 기분이 안 좋으면 안 찍혀주죠. 소통의 수단이라는 게 끊임없이 상대와 자기를 맞춰가야 하니까. 내가 어떤 상태인지, 자기를 되돌아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참는 순간이 생기고. 계속해서 소통하려고 노력한 결과가 사진에서도 보이는 것 같아요.

 

지난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부부들이 읽으면 가장 좋겠지만, 신혼 부부들이 이 책을 읽어도 좋을 거란 생각을 했는데요. 이제 막 결혼생활을 시작한 분들에게 딱 하나의 조언을 한다면.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인다는 건 참 어려워요. 지금도 힘들지만, 시간을 두고 참는 게 필요한 것 같아요. 저희 부부가 대화를 많이 하고 소통을 잘하지만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서로 건드리지 않아요. 마음에 들어서 그러는 건 아닐 거예요. 그 사람 걸로 놔둬야 원만한 관계가 유지될 수 있으니까요. 서로 기다려주는 게 중요해요. 각자의 영역을 인정해주고. 믿어주고 또 밥도 줘야 해요. 미워도 자기가 해야 할 건 하는 거예요.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툭 토라져버리는 게 아니라, 화가 나도 지켜줘야 할 부분, 자기 할 역할이 있으면 하면서 화도 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서울 염소』를 어떤 사람들에게 선물하면 좋을지요.


가능하면 남편 또래의 남자들이 많이 봤으면 좋겠어요. 남자들은 이런 책을 잘 안 읽는다고들 하는데, 그래도 사진은 많이 보잖아요. 또 남편의 짝꿍인 여자들이 읽어도 좋을 것 같아요. 많은 분들이 자기도 한 번 흉내 내보겠다는 말씀을 많이 해주셨는데, 사진이라는 걸 통해서 이렇게도 살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셨으면 좋겠어요. 많은 분들이 조금이라고 행복한 순간을 기억했으면 해요.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계신지요. 두 번째 책을 기대해도 좋을까요.


산 넘어 산이라고, 책을 냈다고 고비가 없는 건 아니에요. 애들이 책을 읽고 펑펑 울었다고, 다음날부터 말을 잘 듣는 것도 아니고. (웃음) 책을 준비하는 사이에 남편이 또 한 번 실직을 했고, 3개월 정도 쉬었다가 다시 회사를 다니고 있는데. 그 사이 더 힘들어진 부분도 있어요. 그런데 이런 고비고비가 있을 때 그간 찍었던 사진들을 보고 있으면, 다시 감동도 받고 힘도 얻고 그래요. 사람의 기억은 완벽하지 않잖아요. 하지만 사진에는 그 당시의 표정, 느낌들이 다 생생하게 들어있으니까요. 60살쯤 되면, 한 번쯤 다시 한 번 정리를 하고 싶은 생각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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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염소오인숙 저 | 효형출판
너무 가까운 거리가 때로는 관계의 진실을 가리기도 한다. 사진가 오인숙은 한때 가장 사랑했던 남자, 남편을 이해하기 위해 카메라를 들고 한 걸음 물러나 그의 순간순간을 기록해왔다. 남편과 아내가 아닌 인간 대 인간으로 서로를 응시하고 이해해가는 과정을 담담한 사진과 간결한 글로 담아낸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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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진혁 PD “미니다큐 , 어? 하는 느낌이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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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혁 셀렉 (1).jpg

 

하루 24시간. 8시간을 잔다고 하면 16시간을 깨어 있는 건데, 우리는 16시간 동안 어떤 생각을 가장 많이 할까. 직장인이라면, 아침에 출근하면서 커피를 마실까? 오늘 상사한테 보고서는 통과될까? 거래처 미팅은 괜찮을까? 점심은 뭐 먹지? 등을 떠올릴 것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생각을 하면서 산다. 그런데, 16시간 중에 딱 5분만 쪼개서 평소 깊이 생각하지 않았던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면 어떨까. 960분 중에서 딱 5분 만이라도 말이다.

 

김진혁 PD가 독립 언론 <뉴스타파>에서 만드는 미니 다큐 <5분>은 사회적인 이슈를 다루고 있지만, 기존의 다큐와는 다르다. 가장 최근에 제작한 ‘아들의 추도사’ 편에서는 갖가지 해석이 쏟아진 노무현 전 대통령 6주기 추모식을 다루며, 노건호 씨를 ‘아버지를 잃은 한 명의 아들’로 바라봤다. “다른 대통령들의 아들들과 달리 평범한 삶을 선택했기 때문에 평범한 아들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 <뉴스타파>의 해석이다. 5월 20일에는 “전염병 퇴치 방법으로 ‘정치를 똑바로 해야 한다’는 처방”을 내린 독일의 병리학자 ‘루돌프 피르호’를 다뤘다. 같은 날 한국에서 발병된 메르스를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미니 다큐 <5분>은 현재 시점에서 사회적으로 대두되는 문제들을 놓고 합리성과 상식을 되짚어볼 것을 제안한다. 2013년 11월 ‘친일연구의 선구자 임종국’ 편을 시작으로 저널리스트 에드워드 머로, 복지국가 스웨덴의 에른스트 비그포르스, 주교 지학순, 안녕하십니까 대자보, 4만 7000원의 노란 봉투 캠페인 등을 다뤘다. 책으로 엮인 『5분』은 각 방송의 주요 키워드와 함께 방송으로 보여주고자 했던 개념들을 심도 깊은 해설로 덧붙였다.

 

김진혁 PD는 책을 펴내며 “지루하고 반복적인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문득 발걸음을 멈추는 5분을 마련해주고 싶었고, 동시에 나 자신에게도 그런 시간을 마련해주고 싶었다. 『5분』이 많은 분들에게 5분의 행복, 작은 컬러 픽셀 하나 자연스러운 생각의 고리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우리사회에서 구조적으로 고민해야 할 지점


최근 개봉한 영화 <위플래쉬> 이야기를 하면서 “생각거리가 강요 받은 느낌 없이 자연스러워서 좋았다”고 밝히셨는데요. 『5분』을 연출하면서 제작자로서 특히 신경 썼던 부분과 비슷할 것 같습니다.


독자가 생각의 자극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게 가장 신경을 많이 쓰는 부분이에요. 특히 기존에 무심하게 지나쳤다거나 너무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굳이 다시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여겼던 부분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려고 애쓰죠.

 

아무래도 시청자들은 <지식채널e>의 연장선으로 <5분>을 보지 않을까 싶습니다.


비슷한 시스템으로 만들어졌어요. EBS에서 퇴사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으로 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뉴스타파>에 계셨던 이근행 PD님이 제안을 하셨어요. 다큐 하나 만들어보면 어떻겠냐고. 계속 영상을 만들 생각은 있었지만 <지식채널e>와 비슷한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에 대한 부담감은 있었거든요. 너무 똑같은 포맷을 오래한다는 게 좀 걸리더라고요. 하지만 <뉴스타파>에서 제안을 주신 거고, 조금이라도 <뉴스타파>에 기여할 수 있다면 의미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지식채널e>이라는 특화된 포맷이 있었기 때문에 제게 제안을 주셨으니, 이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죠. 처음에는 일주일에 한 편을 요구하셨는데, 그건 무리였고. (웃음) 2주에 한 편씩 만들게 됐어요.

 

아이템 선정은 어떻게 하시나요?


이게 참 어려운데요. <지식채널e>는 아이템 제한이 거의 없었거든요. 그런데 <뉴스타파>라는 타이틀이 붙으니까 약간의 한계가 있어요. 잠정적으로 내린 결론은 ‘<지식채널e>의 소사이어티 채널’만 다루자는 거예요. 그 안에서 자유롭게 주제를 선정하고 있어요. 작가 분들의 의견도 많이 듣고요. <지식채널e>를 만들 때, 거창하게 이야기하면 시대정신, 소프트하게 말하면 트렌드를 다룬다고 했는데요. 겉으로 드러나는 시사적인 아이템을 끌어오지 않고, 그 이면에 있는 사람들의 직간접적인 사고패턴이나 우리사회에서 구조적으로 고민해야 할 지점들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어요.

 

지난 5월 20일 <뉴스타파> 미니다큐 ‘5분’에 ‘전염병에 정치를 처방한 의학자’ 편이 올라왔습니다. 마치 메르스를 예언이라도 한 듯싶었는데요.


결론부터 말씀 드리면 전혀 예상하지 않았어요. 전염병같이 정치와 전혀 상관이 없어 보이는 부분조차 정치와 매우 밀접하단 얘기 정도를 하려고 했던 것인데, 메르스 사태가 발생되면서 그게 정말 현실로 증명이 됐네요.

 

주교 지학순, 천국의 집, 다메, 모독 등 다양한 이슈를 다뤘습니다.『5분』에 소개된 내용 중에, 지금 대한민국 국민들이 좀 더 깊이 생각했으면 좋겠다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어느 하나 다 그러길 원해서 특별히 하나를 꼽기는 어려워요. 다만 개인적으로 복지국가 ‘스웨덴의 비밀’이 현재 대한민국에게 가장 큰 시사점을 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정치도 문제지만 빈부격차를 포함한 문제가 보다 더 심각해 보이고, 정치 문제 역시 그러한 경제적 문제 위에 놓여 있다고 보기 때문인데요. 특히 스웨덴을 포함한 서구 복지국가의 현재 모습은 여러 매체를 통해 이미 수없이 많이 소개가 된 반면, 정작 현재 모습에 이르게 된 과거의 실질적인 어려움들, 경험들은 잘 알려져 있지 않거든요. 그래서 그냥 카피(?)해대는 경향이 있는데, 스웨덴의 과거를 보면 현재 우리 상황과 닮은 점이 적지 않아서 이 부분에 대해 알게 되면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좀 더 많이 회자됐으면 좋았을 텐데, 아쉬움이 남았던 영상은 무엇인가요?


세월호 유가족 분들 이야기를 다룬 '세월호 유가족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 편이에요. 세월호 사태와 관련된 담론들이 너무 '극적인 상황' 자체에 치중되어 있는데, 오히려 그분들이 가장 원하는 건 평범한 일상 그 자체라고 생각했고, 그 부분에 대해 사람들이 생각해 봤으면 했습니다. 다만 세월호 참사에 대한 해결이 정부의 무성의함으로 인해 지지부진해지다 보니, 아이템 자체에 시청자들 역시 많이 지치신 것 같네요.

 

한 독자가 『5분』을 읽고, “적나라하다. 뜨겁다. 아름답다. 뭉클하다”고 표현했더라고요. PD님이 생각한 『5분』의 감정은 무엇인가요?


'어?' 하는 느낌이랄까요? 아주 큰 생각 혹은 감정의 변화는 아니지만, 그 단초가 될 수 있는 작은 지적 균열을 느낄 때의 쾌감이라고 생각합니다.

 

『5분』을 특히 어떤 분들이 읽으면 좋을까요?


사회 정치를 포함한 세상의 문제는 나와 아무런 상관이 없거나, ‘그들만의 리그’라고 생각하거나 ‘그 놈이 다 그 놈’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라면 한번쯤 보셨으면 해요. 그렇다고 무슨 대단한 거시 담론에 대해 알 필요가 있다는 건 아니고요. 그저 가볍게 한번 읽어 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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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로움을 이뤄낼 수 있는 중요한 도구


『5분』에서 <시 잇 나우(See It Now)>, <히어 잇 나우(Hear it Now> 등 기념비적인 프로그램을 만든 최초의 종군 기자 ‘에드워드 머로’를 다뤘는데, TV에 대한 PD님의 생각이 담겨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에드워드 머로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언론인이에요. 매카시와 맞서 싸울 만큼 용감하고 정의로운 것도 물론 대단하지만,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보여줬던 의제 설정 능력, 언어 구사 능력 등이 무척이나 놀라웠거든요. 용기에 더해 실력마저 출중한 것이죠. 하지만 무엇보다 TV를 오락의 도구가 아닌 정의로움을 이뤄낼 수 있는 중요한 도구로 보는 그 파격적 관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자칫 이렇게 말하면 '프로파간다 도구'로 보느냐는 역풍을 맞을 수도 있는데, 머로는 오히려 대 놓고 얘길 한 거지요. 사실 TV는 그 매체적 속성상 어떻게 활용하든 프로파간다적 요소를 없앨 수 없기 때문에, 머로처럼 어떠한 목적으로 위한 프로파간다적 도구로 쓸 것인가를 정확하게 밝히는 것이 차라리 솔직한 것입니다. 이건 어떤 면에선 권력과 맞서는 것보다, 더 많은 적을 만들 수 있는(동료들마저 적으로 만들 수 있는) 관점이자 발언이기 때문에 굉장한 용기라고 생각하고 동시에 통찰이라고 봅니다.

 

올해 1월에 ‘꼰대 vs 선배’ 편을 <5분>에서 다뤘는데, 젊은 독자들의 큰 반향이 있었습니다. 지금의 20대에게 선배세대가 쥐어주는 건 ‘자기계발서’와 ‘힐링 도서’라고 지적했는데요. 현재 대학교수로 재직 중인 PD님께서 학생들에게 자주 하게 되는 이야기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시는지.


나름 애는 씁니다. 그렇다고 꼰대가 안 되려고 하는 건 아니고요, 그보다는 선생으로서 적절한 역할을 하려고 애쓰면 그게 자연스럽게 꼰대가 안 되는 길이라고 봅니다. 중요한 건 꼰대가 안 되는 게 아니라, 선생이 되는 것 아닐까요.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해서 남에게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 이런 걸 속된 말로 ‘꼰대질’이라고 한다. 그렇게 보면 꼰대는 꼭 나이가 많아야 하는 건 아니다. 정치성향과 이념성향이 특정한 쪽에만 꼰대가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 않아도 하루 하루 버텨내기 어려운 20대 들에게 선배가 되어줄 자신이 없으면 꼰대질은 하지 않는 게, 현재 20대가 겪는 불안감 가득한 세상을 만든 선배 세대가 갖춰야 할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싶다. (꼰대 vs 선배, 278쪽)

 

EBS에서 직업탐구 프로그램을 제작하기도 하셨는데요. 만약 직업 선택의 자유가 주어진다면 다른 일을 해보고 싶으신가요?


PD가 되지 않았더라도 영상 제작 혹은 창작과 관련한 일을 어찌됐든 했을 것 같습니다. 무언가를 새롭게 만들어 내는 것이 제 적성에 잘 맞고, 그 이외에 다른 걸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요. 제 머릿속에 있는 것을 창작해 내는 게, 즐겁습니다.

 

현재 해직언론인 관련 영상을 만들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으신 건가요.


이 분들의 잘 알려지지 않은 소소한 면들을 담고 싶어요. 그래서 대단한 투사로서의 면모가 아닌 상식적인 언론인이 되고자 하는 평범한 한 명의 인간으로서의 모습을 알리고 싶습니다.

 

만약 일간지 1면을 통으로 쓸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과연 나쁜 대통령이었나? 그걸 한 번 쓰고 싶어요.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재임기간의 주요 프레임이 개인적인 캐릭터나, 발언과 같은 부분으로 짜여 있었는데, 이제는 국가경영이라는 실질적인 프레임으로 바라볼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됐다고 생각해서요. 단순히 노 전 대통령을 이제는 좋게 봐주자거나 하는 식의 접근이 아니라 대통령으로서의 역할이라는 본질적 접근을 이제라도 해야, 현재의 대통령 나아가 앞으로 새로 뽑을 대통령에 대해 국민들이 유의미한 관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2011년에 『지식의 권유』를 집필하셨는데, 후에 쓰고 싶으신 책이 있다면.


현재로선 이미 다 쏟아낸 것 같아서 특별히 추가로 쓰고 싶은 책은 없어요. 다만 예전부터 기회가 되면 극영화 시나리오처럼 완전히 허구의 이야기를 만들어 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어요. <지식채널e>에서 일부 시도해 보기도 했고요.

 

현재 제작 중인 미니 다큐는 무엇인가요?


메르스 관련 내용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아직 구체적인 윤곽이 잡힌 건 아니고요.

 

피디님께 지금, 자유시간 ‘5분’이 주어지면, 무슨 일을 하고 싶나요?


지금 만들고 있는 해직 언론인 다큐멘터리를 생각할 거 같아요. 완성되기 전까지는 주로 그럴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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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김진혁 저/뉴스타파 기획 | 문학동네
『5분』은 [지식채널ⓔ]를 기획하고 연출한 김진혁 피디가 EBS를 퇴사한 후, 독립언론 뉴스타파를 통해 선보인 [김진혁의 5minutes]를 엮은 책이다. ‘감성지식’이라는 방송 다큐멘터리의 새로운 장르를 선보이며 ‘5분’ 간 전해지는 강렬한 메시지와 영상을 시청자들에게 제시했던 그가, 이번에는 사회적인 이슈를 중심으로 도망갈 수도 없고, 포기할 수도 없던, 진실에 관해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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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출장』은 기자 곽아람이 현대 미술이라는 바다를 향해 던져 넣은 그물이다. 촘촘한 틈 사이로 데이미언 허스트, 제프 쿤스, 프랭크 게리, 로버트 인디애나 같은 거장들의 작품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 뒤를 그림자처럼 따르고 있는 것은 작가들의 내밀한 목소리다. 이 이야기들을 끌어올리기 위해 저자는 미술 기자로 근무하는 3년 동안 수많은 현장 속으로 뛰어들었다.

 

뉴욕의 현대미술관(MoMA), 런던의 빅토리아앤드앨버트 미술관(V&A), 카타르의 이슬람 미술관(MIA)은 물론이고 베니스 비엔날레, 아트바젤 인 바젤, 크리스티 홍콩 등 현대 미술의 중심지라 할 만한 공간 속을 거닐었다. 인터뷰를 위해 찾은 작가들의 작업실에도, 낯선 도시의 크고 작은 갤러리에도, 이야기는 숨어 있었다. 『미술 출장』은 그 시간의 기억들을 간직하고 있다.

 

곽아람만의 작은 갤러리라 불러도 좋을 법한 이곳 『미술 출장』에서, 현대 미술은 더 이상 낯설거나 어려운 대상이 아니다. 엽기적인 데이미언 허스트의 작품-포름알데히드 속에 담긴 죽은 상어와 구더기가 엉겨 붙은 소머리를 보고 ‘역시 난해하다’며 고개를 가로저을 필요는 없다. 작가는 그저 “‘죽음’이란 불가피한 것”임을 말하고 싶었을 뿐이니까. 역동적인 곡선을 활용하는 건축가 프랭크 게리의 철학을 엿보는 것도 어렵지 않다. “나는 그 열정과 사랑에서 영감을 얻고, 내 작품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그 감정을 그대로 느끼길 바란다”는 작가의 한 마디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

작품 뒤에 감춰진 작가의 삶을 들여다보는 경험 역시 흥미롭다. ‘LOVE’라는 단 네 글자로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작가 로버트 인디애나는 작품의 저작권 등록을 하지 않아 “싸구려 작가”라는 오명 속에 살아야 했다. 그의 작품이 새겨진 물건들이 시장에 쏟아져 나오면서 ‘그저 그런 상업 작가’로 치부된 것이다. 정작 인디애나 자신은 한 푼도 벌지 못했지만, 뉴욕의 미술계와 평론가들은 등을 돌렸다. 결국 그는 “평화와 행복을 찾아” 자신만의 섬으로 숨어들었다.

 

이렇듯 『미술 출장』은 미술계의 내밀한 이야기 속으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저자가 이끄는 대로 따라 걷다 보면, 그 이야기가 생각보다 친숙하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미술과 함께 호흡해 온 저자의 삶도 마찬가지다. 기자로 살아온 지 13년, 그녀가 지나온 열정과 성장의 순간들은 독자들의 그것과 닮아있다.

 

“하고 싶은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해보고 싶은 일”이었다는 걸 자각하게 됐고 “고용불안 시대의 회사원에게 ‘일이 곧 나’라는 생각은 위험하다”는 깨달음을 얻게 됐다. 출장에서 돌아오자마자 바로 회사로 출근할 만큼 최선을 다하면서도 “일은 그저 일일 뿐이라는 자세”로 적당히 무심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독인다. 일과 일상 사이의 적당한 거리를 찾으려는 그 고민은 평범한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것이다.

 

 

그림 안의 삶과 그림 밖의 삶이 만나는 순간


『미술 출장』을 준비하시면서 이전에 썼던 기사들과 당시의 기억들을 되짚으셨을 텐데요. 감회가 어떠셨나요?


출장을 가면 현장에서 보고 느낀 것들을 SNS에 기록해 놓는데요. 그렇게 남긴 글들이 『미술 출장』을 쓰는 데 바탕이 됐어요. 기사는 일부 인용했고요. 예전에 썼던 글들을 찾아서 읽다 보니까 ‘지금의 나는 그때와 달리 얼마나 변했나, 나라는 인간은 어디까지 왔나’ 이런 생각들을 해보게 됐어요.

 

대부분 출장을 가면 일을 마친 후에 개인 시간을 갖잖아요. 기자님께서는 그 시간에도 미술관과 박물관을 찾으시더군요.


그림 보는 걸 좋아해요. 미술관이라는 공간을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한데요.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가면 그림이 가득 걸려있는 방이 있잖아요. 그런 공간이 좋아요. 일의 영역은 현대 미술의 세계이지만, 개인적으로는 르네상스라든지 인상주의 이전의 작품들을 좋아하거든요. 그런 그림들을 보기 위해서 가는 거죠. 잠시 머리 식힌다는 생각으로요.

 

책에서도 ‘미술에 있어서 보수적인 취향을 갖고 있다’고 적으셨는데요. 미술 기자로 일하면서 바뀐 부분도 있으신가요?


취향은 변하지 않는 것 같아요. 예전에 회사 선배가 ‘이념은 짧고 취향은 길다’는 말을 한 적이 있는데, 맞는 말인 것 같아요. 취향은 변하지 않더라고요.

 

“가보지 못했기 때문에 신화화되는 장소”가 뉴욕이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뉴욕으로의 첫 출장은“이 도시가 온몸으로 나를 거부하고 있는 게 아닌가”생각될 정도로 힘드셨다고요.


현대미술의 중심이 뉴욕이니까 한 번 가봐야 된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어요. 직접 가보니까 미술품들은 생각했던 것처럼 좋았고, 날씨는 겨울에는 별로인 것 같더라고요. 살고 싶다는 생각은 별로 들지 않는 곳이었지만, 여행을 떠나고 싶은 곳이기는 한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다시 찾고 싶은 공간은 어디인가요?


뉴욕에 갈 때마다 MoMA(뉴욕 현대미술관)는 항상 갔던 것 같아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도 그렇고요. 전시회는 계속 바뀌잖아요. 한 번 찾아갔다고 해서 소장된 모든 작품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오르간 리허설」과 만났을 때 “순간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림만 있었다면 그런 느낌을 받지 못했을 수 있는데요. 『미술 출장』에 썼듯이 그림 앞에 앉아있던 관람객의 모습이 너무 인상 깊었어요. ‘무엇이 그녀를 저렇게 몰입하게 했을까’를 생각하다보니까 그림 안에서 노래를 부르는 여자와 동일인인 것처럼 느껴지더라고요. 그렇게 그림이 액자 밖의 현실과 만나는 지점이 아름다운 것 같아요. 그림을 본다는 건 그림 안의 삶과 그림 밖의 우리 삶이 만나는 거잖아요. 그 지점에서 사건들이 일어나고 감정들이 생기는 건데, 그런 것들이 아름다운 것 같아요.

 

그런 경험을 안겨주었던 또 다른 작품이 있나요?


『미술 출장』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테이트 브리튼에 있는 존 싱어 사전트의 그림 「카네이션, 릴리, 릴리, 로즈」를 굉장히 좋아해요. 실제로 처음 본 건 대학생 때였어요. 유럽에 배낭여행 갔다가 보게 됐는데요. 그림이 주는 감동이랄까요, 사람을 멈추게 하는 느낌이 있었어요. 미술관을 다니다 보면 처음 보는 작품인데도 시선을 잡아끌고 발길을 멈추게 하는 그림이 있어요. 그건 인연인 것 같아요. 「오르간 리허설」도 제가 알지 못했던 작품이었거든요. 화가에 대해서도 몰랐고요. 그런데 그림 앞에 앉아있는 여자가 너무 인상적이어서 관심을 갖게 됐던 거죠.

 

“예술은 결국 향유자로 인해 완성된다”고 말씀하신 부분이 기억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림은 어떻게 보는 건가요?’라고 물어오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시겠어요?


그림을 보는 방법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논의들이 있는 것 같아요. 누군가는 그림도 많은 지식을 가지고 봐야 한다고 말할 거예요. 그런데 저는 그냥 놀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우리가 책을 읽고 영화를 보는 데에는 크게 부담을 가지지 않잖아요. 그런데 그림에 대해서는 왜 그렇게 부담을 가질까 싶기도 해요. 사진을 보듯이 그냥 이미지라고 생각하고 ‘내 마음에 드는지, 나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는지’ 생각하면서 보면 될 것 같아요. 그러다가 궁금하면 화가나 그림이 그려진 배경에 대해서 찾아보게 되는 거죠. 예술이란 건 작가의 의도이기보다는 향유하는 사람의 몫인 것 같아요. 그렇게 즐길 수 있으면 되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제프 쿤스와의 만남, 가장 불편한 인터뷰로 기억돼


책에 실린 인터뷰를 통해서 작품 속에 감춰진 의미를 전해주기도 하셨는데요. 그런 메시지를 찾아내는 비결이 있으세요?


저는 작가가 감춰놓은 메시지가 크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물론 의미는 있죠. 하지만 그대로 작품을 감상하라는 법은 없는 거잖아요. 어차피 그건 감상하는 사람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기자로서 일을 할 때는 독자들에게 정보를 전달할 의무가 있으니까 작가들의 메시지를 전하죠. 그렇지만 개인으로서 본다면 작가의 의도를 모르더라도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미술 출장』은 비평가나 예술가가 들려주는 미술 이야기와 차별화되는 것 같습니다.


이번 책이 출장기이자 미술 체험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면 많은 분들이 쉽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저는 기자니까 제가 쓴 책은 학자가 쓴 것과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학자들은 이론과 심오한 이야기를 하면서 깊게 파고들겠지만 대중이 읽기에는 어렵잖아요. 그래서 저는 독자들이 쉽게 읽으면서 세상에 이런 세계도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책을 쓰고 싶었어요.

 

제프 쿤스와의 만남은 “13년의 기자 생활을 통틀어 가장 불편한 인터뷰로 기억”된다고 적으셨어요. 반면 쑹둥에 대해서는“아티스트 인터뷰 치고, 드물게 즐거운 인터뷰였다”고 하셨는데요. 그런 미묘한 차이들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걸까요?


인연이고 운명이라고 생각돼요(웃음). 친구 관계만 보더라도 잘 맞는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잖아요. 인터뷰도 마찬가지죠. 서로 파장이 잘 맞아야 하고 운도 좋아야 하죠. 시기도 잘 맞아야 하고요. 서로 컨디션이 좋을 때 만나면 아무래도 이야기가 잘 풀리지 않겠어요? 대부분 기자들 앞에서는 성실하게 이야기하지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지 않는 순간도 있는 것 같아요. 제프 쿤스의 경우가 그랬다고 할 수 있을 텐데요. 누군가 그렇게 이야기하더라고요. 이런 이야기까지 책에 싣다니 정말 용감하다고요(웃음).

 

만약 기회가 된다면 제프 쿤스와 다시 만나고 싶으세요?


다시 만나기 너무 힘들 거예요. 시간이 허락이 안 되겠죠. 그런데 기회가 되더라도 다시 만나고 싶지는 않아요. 저와는 인연이 닿지 않는 사람 같아요(웃음).

 

반면에 쑹둥과의 인터뷰는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있다고 하셨는데요.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쑹둥의 작품을 좋아했어요. 사실 제가 개념미술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은 아닌데, 쑹둥의 작품에는 서정적인 내러티브가 있었어요.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그 스토리가 마음에 들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쑹둥과는 통역을 거치지 않고 직접 (영어로) 대화를 했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작가에 대해서 더 많이 느끼게 된 부분도 있었어요. 그의 작품을 좋아하다 보니까 공감하는 지점도 많았고요.

 

프랭크 게리와의 인터뷰는 매우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던 것 같습니다. 어떠셨나요?


재미있고 유쾌한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당시에는 너무 힘들었죠. 처음에는 건축 담당 기자한테 넘기려고 했었는데, 부장님께서 “네가 하고 싶지? 그럼 네가 해”라고 하셔서 덜컥 맡게 된 거였거든요(웃음). 사진 촬영하는 과정도 힘들었고요. 그런데 인터뷰 전 날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던 게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인터뷰 하면서 대화도 잘 통했고 합이 잘 맞았어요. 본인도 유머러스하게 이야기를 들려줬고요.

 

프랭크 게리는 “어려운 건축 개념을 쉬운 언어로 이야기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다고 하셨습니다.


예술가들 중에는 모호한 이야기를 하는 분들도 있어요. 그러면 독자들 입장에서는 인터뷰가 어려워지고 재미가 없어지죠. 제가 생각할 때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 정립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어려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아요. 프랭크 게리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 너무나 확고하게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굉장히 쉽게 얘기를 했던 거죠. 그런 점에서 역시 대가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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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출장』은 친구가 들려주는 여행 이야기


무언가 깨달음을 주는 인터뷰이를 만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일 텐데요. 그런 점에서 잊을 수 없는 인터뷰이가 있다면 누구인가요?


로버트 인디애나와의 만남은 정말 인상 깊었어요. 「LOVE」라는 작품으로 굉장히 유명해졌지만, 결국 그 작품이 발목을 잡아서 스스로를 유폐하고 살아갔잖아요. 여든이 넘어서 다시 뉴욕에 도전장을 냈고요. 그 인생이 강한 인상을 남겼죠.

 

『미술 출장』에 실린 인디애나의 사진을 보고 눈빛이 잊히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부침을 겪고도 너무나 순수한 눈빛을 간직하고 있더라고요.


많은 분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눈빛이 기억에 남는다고요. 그런 눈빛을 보여줄 수 있는 건 아티스트라서 가능한 것 같아요(웃음).

 

인디애나가 수백 마리의 동물 인형들을 하나하나 소개해줬다는 이야기도 재미있었습니다(웃음).


저는 배 시간에 맞춰서 인터뷰를 끝내야 하니까 마음이 급했는데, 인형을 하나하나 소개해 주면서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하셨어요(웃음). 그런데 돌이켜 보면 그는 정말 최선을 다해서 인터뷰에 임했던 거예요. 한국 사람과 만나는 게 처음이었다는데, 멀리서 온 손님에게 얼마나 최선을 다하고 싶었겠어요. 그러니까 이곳저곳을 보여주고 자신에 대해서 최대한 많이 이야기하고 싶었을 거예요.

 

기자로서 악역을 자처해야 하는 순간들도 있었을 텐데요. 진 마이어슨에게는“보통 여자들은 너처럼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는데, 이상해”라는 말을 듣기도 하셨습니다.


일할 때는 ‘독자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만 생각하는 편이에요. 논란이 있는 인물이나 거물급 아티스트를 대상으로 할 때, 질문은 공격적으로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저도 이야기하기가 쉬운 건 아니지만, 인터뷰어로서는 최선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해서 인터뷰에 긴장감이 생기면 독자가 훨씬 더 재미있게 읽으니까요. 로버트 인디애나의 경우에도 사람들이 제일 궁금해 하는 건 ‘「LOVE」 때문에 뉴욕에서 쫓겨나게 됐을 때 기분이 어땠을까’하는 거잖아요. 그 부분은 너무 아픈 상처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만났다면 묻기 힘들었을 거예요. 하지만 기자니까 물어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럴 때는 조심스러운 게 사실이지만 인터뷰이가 기분 상하지 않도록, 너무 직설적이지 않게 물어봐야 하죠.

 

미술에 대해 잘 알지 못해서 『미술 출장』을 낯설게 받아들이는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책과 더 가벼운 마음으로 만나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조언해 주세요.


그냥 친구가 들려주는 여행 이야기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그리고 일하는 여자로서의 자각을 가지고 쓴 책이기 때문에 ‘지금 30대 여성들이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 일에 대한 자세는 어떤 것인지’에 대해서 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었어요. 또래의 여성들은 ‘친구가 미술 기자로서 일하면서 겪은 일들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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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출장 곽아람 저 | 아트북스
3년간 미술기자로 있었던 일간지 기자가 작가와 화랑주, 큐레이터와 컬렉터, 옥션 관계자들과 평론가들이 움직이는 거대한 미술 현장에서 그간 보고 듣고 느낀 것들에 대한 기록을 담았다. 데이미언 허스트, 제프 쿤스, 로버트 인디애나, 트레이시 에민 같은 기라성 같은 예술가들과 직접 만나 인터뷰를 하고, 아트바젤 인 바젤, 베니스 비엔날레 같은 굵직한 미술계 이벤트를 취재한 경험들이 빼곡히 담겼다. 기사화된 공식 취재 내용 외에 취재 과정에서 있었던 다사다난한 에피소드들이 들어 있어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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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재훈 “혼자 있을 때 행복한 사람이 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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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식물에 매료되었는데 뚜렷한 이유는 없었다. 아마 씩씩한 생명력, 혹 변화무쌍함, 무엇보다 평화로움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몇 가지 표현으로 적긴 했지만 여전히 알 수 없는 이유로 가슴이 뛰어서 나는 그저 식물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한 나절을 보내고 싶다는 열망을 늘 가슴에 품고 있다. 이런 소망이 미완성인 이유는 도시에 살기 때문이며, 곁에 스마트폰을 두고 있기 때문이며, 막상 그 꿈을 이룰 수 있는 순간이 왔을 때 내 자신이 그 순간을 견뎌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낭비라고 말하는 세상에서, 행복을 수치로 표현할 수 있다고 믿는 세상에서 어떤 숫자로도 표현할 수 없는 무위의 시간을 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고독의 힘』을 쓴 원재훈 작가는 “고독은 위로고 위안이고 치유”라고 힘주어 말한다. 고독의 시간을 애써 두고, 그 시간을 견뎌낸 사람은 삶과 죽음에 대한 태도까지 달리 할 수 있다고 말이다. 고독은 관계를 더욱 건강하게 하며, 종래에는 행복에 이르게 한다는 사실을 작가는 오랫동안 생각해왔다.

 

함부로 타인의 영역에 나를 들여놓지 않고 나의 영역에도 섣불리 타인의 침입을 허락하지 않는 것, 그것이 내 삶을 풍부하게 하는 자양분이다. 풍요로운 숲을 이루는 잘 큰 나무들은 서로를 부둥켜안고 있지 않다. 나무들은 제각기 그리움의 간격으로 아름답게 서 있을 뿐이다. (54쪽)

 

‘사람들 사이에 섬이 있다’고 한 정현종 시인의 말처럼 우리는 근본적으로 고독한 존재들이다. 고독하므로 관계에 얽매이고, 고독하므로 고독하지 않으려 애를 쓴다. 그러나 작가는 고독 자체는 결코 두려운 것이 아니며 “고독을 바라보는 시선 때문에 두려운 것”이라 설명한다. 고독을 대하는 태도가 달랐던 위대한 인물들은 고독으로 인해 삶의 진실을 찾아냈다. 고독이 없었더라면 결코 성취하지 못할 것들을 성취했다. 고독한 사람이 모두 위대한 인물은 아니라 할지라도 위대한 인물들은 모두 고독했다!


그러니 고독해지자. 고독해지기를 두려워하지 말고, 고독을 피하지 말자. 고독은 삶을 고양시키고 북돋우며 가보지 못했던 곳으로 우리를 데려갈 것이다. 그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삶은 훨씬 단단해질 것이다. 잠시 멈춤이 더 힘찬 동력을 만들어내는 역설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 작가는 굳게 믿는다.


『고독의 힘』을 읽고, 나는 식물을 관찰하는 시간이 늘었다.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온 주제 ‘고독’


시인 보들레르는 이미 19세기에 “혼자 있을 줄 모르는 불행이라니!”라고 쓰며 한탄을 했다고요. 이런 탄식은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 더욱 유의미한 문제의식이 아닐까 싶습니다.


고독은 시대의 문제가 아니고, 유사 이래 계속 되어왔다고 봐요. 동아시아 창조 신화 중 ‘반고 신화’가 있는데요. 반고가 혼돈 속에서 혼자 수천 년을 있다가 고독을 깨고 나와요. 고독의 시선으로 보면 모든 게 설명이 돼요. 보들레르를 이야기한 이유는요. 19세기는 가장 자본 등이 발달하던 시기, 인간이 뭔가를 이뤄낸 시기잖아요. 그것은 물론 가치가 있죠. 반드시 필요하고요. 그렇지만 사람들이 진짜 가져야 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보들레르는 한탄을 한 거예요. 『악의 꽃』이라는 산문집 중 ‘고독’이라는 챕터에 나온 글인데요. 대단한 천재 시인의 눈에 세상 사람들은 고독을 몰라서 불행하다고 생각한 거죠. 사람들이 보기에는 이상했겠죠. 고독해야 불행하다, 고독이 병이다, 하는 이야기는 익히 알았지만 고독하지 못해 불행하다고 말을 하니 참 이상했을 거예요. 하지만 보들레르가 위대한 시인인 이유는 고독의 힘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요.

 

작가님은 고독에 대해 꽤 오랫동안 생각해온 듯해요. 작가 개인에게도 고독을 통해 구원 받은 어떤 경험들이 있었던 것이겠죠?


가장 고독과 친해야 할 사람들이 작가예요. 예술가들은 고독과 친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 같아요. 연예인들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혼자 있음을 견디지 못하고 어떻게 다른 사람과 함께 하겠어요? 사람이 사랑하는 데도 마찬가지겠죠. 누군가를 가장 사랑하는 방법은 자기가 고독해지는 거예요. 자기 혼자서 잘 살아야, 고독하고, 혼자인 상태를 잘 견뎌야 타인을 사랑할 수 있어요. 혼자를 견디지 못하고 주변에 기댄다고 생각해보세요. 못 살아요. 스스로 지낼 수 있어야 서로 사랑할 수 있어요. 에리히 프롬도 그렇게 말했어요. 두 사람이 얼마나 사랑하느냐는 얼마나 외로운가의 증거라고요.


일상생활에서도 고독을 견뎌야 자기 일을 할 수 있어요. 조직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더 하겠죠. 내구력이 강한 사람들은 주변에 크게 영향 받지 않거든요. 곁에서 보면 고독을 잘 견디는 사람들이 탁월한 경우가 많더라고요. 또한 고독은 제가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온 거예요. 직전에 썼던 『단독자』 역시 고독한 사람들의 이야기고요. 출판사에서 『고독의 힘』제안을 받았을 때 아주 흔쾌히 책을 쓸 수 있었던 것도 그런 기가 막힌 타이밍 덕분이었죠.

 

반복해서 자신만의 공간을 가지기를, 산책을 하기를 권하셨어요. 쇠이유 사례도 흥미로웠고요. 


메스너의 사례도 그렇죠. 산악인 메스너(Reinhold Messner)는 고독의 제왕이에요. 셰르파도 없이 혼자 등반한 사람이죠. 『검은 고독 흰 고독』을 쓰기도 했는데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혼자 등반하는 것을 생각해보세요. 엄청나게 고독한 일이죠. 세계적인 사이클 선수 랜스 암스트롱(Lance Armstrong)도 마찬가지예요. 마라톤은 말할 것도 없죠. 철학자들, 예술가들이 산책을 많이 하는 이유가 있어요.


중요한 것은, 고독은 절대 방치나 격리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격리의 상태는 감옥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사회적 약자들에게 고독을 이름 붙이는데 그것 역시 고독과는 다른 것이죠. 또 다른 차원이에요. 고독은 스스로 선택하는 거예요.

 

흔히 고독을 외로움, 슬픔, 우울처럼 부정적인 개념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아요. 작가님이 생각하는 고독이란 무엇인가요?


영어로 생각하면 쉬워요. 고독을 두 가지로 번역할 수 있어요. loneliness와 solitude인데요. solitude가 고독이에요. 고독이 가지고 있는 몇 가지 중요한 속성이 있어요. 외롭고, 쓸쓸한 속성이 있죠. 그걸 전환시키자는 거예요. 그게 바로 행복으로 가는 길이니까요. loneliness를 생각하지 말자는 거예요. 고독이 사람이라고 칩시다. 똑같은 사람이 다가와도 각자 대응이 다를 것 아니에요. 그것과 똑같아요. 고독은 손님이에요. 손님이 찾아왔을 때 어떻게 대할지는 내가 하기에 달렸어요. 내가 잘해드리면 그 사람이 나에게 금을 줘요. 고독이 무서워서 내쫓았다면 황금을 받지 못했겠죠. 차 한 잔만 주면 그가 갖고 있던 황금을 다 주려고 하는, 바로 그게 고독이에요. 우리는 고독에 대한 선입견을 가지고 무섭다고 하지만 절대 아니에요. 고독은 위로고 위안이고 치유예요.

 

‘고독해야 고독하지 않다’(167쪽)고 한 역설이 그 때문에 가능한 것 같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철학자 소로가 그랬죠. 세상에 노을이 진 하늘만큼 기품 있는 그림은 없다고요. 자연과 가까워지고, 고독해짐으로써 고독해지지 않은 거예요.

 

 

혼자 있을 때 행복한 사람


점점 많은 사람들이 행복에 대한 재정의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행복의 환상이 개인의 삶을 더욱 고통스럽게 한다는 것인데요. 고독에서 행복을 찾는 것 역시 행복과 관련한 새로운 접근인 것 같아요. 고독의 관점에서 행복은 어떻게 가닿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우리는 결국 행복해지고 싶죠.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행복하다는 게 무엇인지. 흔히 행복이 타인과의 관계에서 오잖아요. 그런데 한 단계 더 생각하는 거죠. 저는 혼자 있을 때 행복한 사람이 되라고 말하고 싶어요. 스스로 찾아야 하지만 의외로 쉬워요. 혼자 있을 때 행복한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들은 혼자 있을 때 많은 것들을 해요. 그림도 그리고, 음악도 만들고요. 그 연장선에서 타인과 관계를 맺으면 관계가 튼튼하죠. 혹시 관계가 떨어져나가도 혼자가 행복하기 때문에 그 관계가 불행의 요인이 아니에요. 행복의 요인을 계속 밖에서만 찾으면 엄청나게 불안한 거죠. 『고독의 힘』이라는 책은 그런 관점에서 작가들의 이야기를 했어요. 책에 다루지 못했지만 고독의 관점에서 훌륭한 인물들을 다루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해요. 도스토예프스키, 베토벤, 모차르트 모두 그렇죠. 천재라는 건 얼마나 고독을 잘 견디는가에 있다고 생각해요. 고독의 힘이라는 것은 나비의 고치예요. 아주 간단해요.

 

책에 다루지 못한 사례도 많이 가지고 계시겠어요.


많죠. 스티븐 스필버그가 ET를 만들었을 때 어디서 만들었는지 아세요? 사막에서 만든 거예요. 사막이야말로 진짜 고독한 공간이잖아요. 고독한 상태에서 외계인을 왜 무섭게만 그리는지 의문이 생긴 거예요. 어린 아이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귀여운 캐릭터를 만들어볼까 해서 쓴 것이 ET예요. ET는 당시 최고의 흥행수익을 거뒀죠. 도스토예프스키, 마크 로스코, 이순신 등 그 외에도 고독의 힘을 보여주는 사례가 정말 많아요.

 

“나는 오로지 꽉 물거나 쿡쿡 찌르는 책만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해. 우리가 읽는 책이 단 한주먹으로 정수리를 갈겨 우리를 각성시키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책을 읽겠어? (중략)우리가 필요로 하는 책이란 우리를 몹시 고통스럽게 하는 불행처럼, 우리 자신보다 더 사랑했던 사람의 죽음처럼, 우리가 모든 사람을 떠나 인적 없는 숲 속으로 추방당한 것처럼, 자살처럼, 우리에게 다가오는 책이야. 한 권의 책은 우리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라야만 해.”(55쪽)

 

카프카의 사례를 보면 인간관계는 거의 없었지만 반면에 독서에는 무척이나 집중했던 면모를 발견할 수 있어요. 『고독의 힘』 역시 다양한 저작이 인용되어 작가님의 독서 편력이 엿볼 수 있기도 하고요. 고독의 시간과 독서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카프카의 유명한 말, “책은 도끼다”라고 했던 이전의 문장을 읽어야 해요. 일부러 책에도 길게 인용을 해놓았어요. 독서의 힘이 고독의 힘이라고 볼 수도 있을 거예요. 어떨 때 독서가 잘 되는지 생각하면 돼요. 한 권의 책을 제대로 읽는 건 힘들어요. 어려운 책은 방에서 읽고 또 읽어야 이해가 되죠. 방을 어둡게, 고독하게 해두고 읽어야 잘 들어와요. 힘들게 읽은 책이 오래 남고요. 고독할 때 메모하게 되잖아요. 뭔가 생각이 날 때는 고독할 때거든요.


가장 중요한 것은 독서예요. 책처럼 좋은 게 없어요. 독서를 많이 한 사람들이 강한 사람들이에요.

 

‘등대’에 관한 사유 부분이 계속 뇌리에 남았습니다.‘삶이 등대처럼 자신만의 빛을 발하며 어두운 세상을 뚫고 나가는 발걸음이어야’(109쪽)한다고 하셨는데요.


1년 반 동안 국내 등대를 다 돌아다닌 적이 있어요. 항만청에서 협조를 해주셔서 우리나라 등대 기행을 했어요. 남해, 무인도까지 다 돌아다녔죠. 독도는 접안이 안 돼서 못 갔지만요. 책에도 썼지만 기행을 하면서 충격적인 말을 들었어요. 너무 어두워서 “바다가 참 어둡군요”라고 했더니 선장님이 “그건 갈 길을 몰라서 그런 겁니다”라는 거예요.

 

문학하는 사람보다 낫다고 생각했어요. 허구한 날 어둠 속에서 등대를 찾아다닌 이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였어요. 아주 인상적이었죠. 또 한 번은 어느 섬에서 등대지기를 하는 분과 술을 마셨어요. 그런데 그분은 술을 안 드시더라고요. 등대지기는 술을 마셔선 안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외로움을 못 견디기 때문이라는 거예요. 기쁜 일이 있어도 안 된대요. 자꾸 생각이 나니까요. 등대지기들 모두 등대 같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어요. 수행자들이죠. 간혹 그런 분들을 만났어요.


등대만큼 고독과 어울리는 게 또 있을까요. 등대의 불빛은 전 세계가 다 달라요. 어청도가 다르고, 부산이 다르고, 칠레가 다르죠. 그렇듯 자신만의 고유성을 가지면서 바다만 바라보는 거예요. 바다에서 바라보는 등대는 정말 달라요. 보지 않고는 모를 거예요. 등대에서 고독의 의미를 많이 깨달았어요. 많은 분들이 등대 이야기를 좋아하시더라고요.

 

작가님이 삶에 대한 자세가 엿보이는 것 같기도 해요.


결국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자는 거잖아요. 고독 그 자체만 얘기해서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고독을 통해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관한 이야기를 한 것이죠. 고독을 통해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까지 연결되어 있는 이야기에요. 등대 기행을 하면 정말 사는 방법을 알게 돼요. 어쩔 수가 없어요. 마치 감옥 같은 상태니까요.

 

앞서도 감옥 이야기를 하셨는데, 도스토예프스키에게 감옥의 존재도 그렇고 감옥 역시 고독의 관점에서 의미심장한 장치임에는 틀림없습니다.


바다만 해도 열려있는 공간이잖아요. 얼마든지 내릴 수 있고요. 가장 고독한 상태는 격리되고, 유배되고, 추방된, 감옥에 갇히는 상태예요. 저는 못 견딜 것 같아요. 그런데 그걸 견뎌낸 사람들이 있잖아요. 넬슨 만델라, 추사 김정희, 다산 정약용 등 유명한 사람들은 다 감옥을 겪었죠. 김대중 전 대통령, 신영복 선생 역시 옥중생활을 하셨잖아요. 보통 사람이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저는 만델라가 수감되었던 감옥에 직접 가봤는데요. 어떻게 지냈을지 상상이 안 돼요. 참고로 말하자면 만델라는 굉장히 낙천적인 사람이었어요. 미래를 어둡게 보지 않았어요. 무기징역이 선고되었을 때 “사형이 아니어서 다행”이라고 했을 정도니까요. 반드시 걸어서 이곳을 나간다고 생각한 사람이에요. 이런 점은 반드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요.


감옥에 갈 일이 생기지 않는다면 가장 좋겠죠. 하지만 그럴 때도 견딘 사람들을 보고 뭔가를 배워야 하는 거예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서 말이에요. 감옥에서의 고독은 고독의 최상급이죠. 될 수 있는 한 그런 상태에 빠지지 않아야 하지만 혹시 그런 상태가 된다면 이런 분들을 떠올릴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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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터널처럼 고독하다


‘희망 없는 상황에서 용기가 힘을 발휘할 때 인간은 최고조에 달할 수 있다’(162쪽)고 한 에릭 호퍼의 말을 읽고 또 읽는다고 하셨어요. 희망을 유행가처럼 말하는 세상에서 용기에 방점을 둔 삶이란 또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생활인으로서의 자세이기도 하고요. 특별히 이 문장에서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정확히 “자기기만이 없다면 희망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렇게 시작해요. 희망이라는 건 자기기만이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나를 살짝 속이는 거죠. 희망하는 것이 이뤄질 것이라고 자신을 속이는 거예요. 이 책이 당장 베스트셀러 1위가 된다는 것은 자기기만이에요. 하지만 책을 내고, 이렇게 인터뷰를 하는 것은 용기예요. 에릭 호퍼는 제가 무척 좋아하는 철학자예요. “돈은 악의 근원이다”라고 누군가 말했어요. 그걸 헛소리라고 해버리는 건 하수죠. 에릭 호퍼는 “그는 악에 대해서도 모르고, 돈에 대해서는 더 모른다”고 말해요. 기가 막히죠. 그야말로 신사예요. 우리로 치면 선비죠. 모두 고독한 사람들이에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가 평화라고 결코 말할 수 없듯이 고독은 과정이어야 하지, 종착점이어서는 안 되는 것이 아닐까요? 자기만의 방을 갖는 것만으로 고독의 힘을 알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것에 대해 기가 막힌 대답을 한 사람이 파블로 네루다예요. 나는 터널처럼 고독하다. 얼마나 기가 막힌 말이에요.(웃음) 고독은 터널이에요. 터널이 있어서 빨리 갈 수 있어요. 터널이 없으면 산을 넘어야겠죠. 그렇잖아요? 오히려 고독이 안전한 거예요. 어두운 터널을 가다가 끝에 빛이 다가올 때의 느낌은 대단하죠. 고독을 거쳐야 할 과정이라고 생각해야 해요. 고독은 계속 와요. 우리가 열심히 운동해서 멋진 몸을 만들었다, 이건 끝이 아니라 시작이에요. 그 이후가 더 힘들어요. 인생에 터널은 하나만 있는 게 아니에요. 이 책을 읽고 ‘이 고독만 지나가면 나는 행복하겠다’고 생각한다면 확실하게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요. 더 긴 터널이 또 나와요. 다만 터널이 나타났을 때 이것은 지나간다고 생각하면 돼요. 자연은 참 신비로워서 적당히 견딜 수 있는 터널을 주죠. 그 고독을 거쳐서 좋은 사람과 관계를 맺고 살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어요. 

 

시를 읽는 것에 대해 칼럼을 쓰시기도 했던데요. 시인으로서의 정체성도 크게 갖고 계시고요.


소설가로 등단했고, 소설을 쓰지만요. 시인이고 싶어요. 어렸을 때부터 정말 시가 좋았어요. 시집을 읽고 완전히 빠져들었어요. 김소월, 김수영, 정말 좋은 시가 많잖아요. 어렸을 때 시를 읽지 않았다면 지금 저는 아예 다른 사람이 되었겠죠.

 

작가로서 고독을 처음 만났을 때가 언제인지 궁금했는데, 시를 만났을 때가 그때가 아니었나 생각이 드네요.


그렇죠.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했었는데 얘기를 듣다보니까 그런 것 같네요.(웃음) 당시 맨 뒤에 앉아 있었는데요. 어쩌다가 여자 친구가 준 시집을 펼쳐 들었던 거예요. 운동을 많이 하고 체력이 좋았기 때문에 시를 볼 틈이 없었거든요. 그때 혼자 처음으로 진짜 책을 본 거예요. 교과서가 아닌 책을 말이에요. 그게 바로 시집이었어요. 그때부터 시를 읽어서 여기까지 오게 된 거죠. 내 인생이 좋다, 나쁘다를 떠나 결국 그렇게 고독한 어떤 순간에 사람의 인생이 결정돼요. 그 고독한 한 순간이요. 자기에게 다가오는 고독이 분명히 누구에게나 있어요. 황제, 거지에게도 다가오죠. 고독이 다가올 때 어떻게 손을 잡느냐에 따라 황제도 되고 거지도 된다는 거예요. 기회라고 말하는데, 기회가 어디 있나요. 알아서 가는 거죠. 그저 외롭다고 생각할 때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라는 거예요. 물론 힘들지만 지나가도록 견뎌야 해요. 누가 대신해주겠어요? 그럴 때 ‘이렇게 하라’고 말하는 건 거짓말이에요. 그런 말에 속지 마세요. 세상은 잔혹하고, 공정하지 않죠. 괴롭고 고독할 때, 그때 힘을 내야죠. 고독을 통해서 힘을 내야 해요. 다른 데 가거나 피해서는 절대 안 돼요.

 

책을 통해서 꼭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다면 어떤 것인가요?


이 책을 읽고 힘을 냈으면 좋겠어요. 세상이 힘들고, 거칠고, 야비하죠. 이 순간에도 배반을 당하는 사람이 있을 거예요. 고독의 구렁텅이로 떨어졌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을 거예요. 그 사람들에게 여기야말로 치고 나갈 곳이라고 말을 하고 싶어요. 발상만 전환하면 세상이 달라질 거예요. 어떤 것 때문에 두려운 게 아니에요.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 때문에 두려운 거죠. 시선을 잘 잡아주면 돼요. 고독을 바라보는 시선을 찾으라는 거죠. 고독을 달리 바라보면 역설적으로 고독도 외롭지 않게 되고, 더 이상 고독하지 않게 돼요. 소로처럼 말이에요. 소로가 자연에서 발견한 것을 여러분은 도시에서 발견하는 거예요. 일부러 그런 시간을 만들라는 것입니다. 하루에 5분 만이라도 고독한 시간을 만들길 바라요. 또 책을 읽으시길 바라고요. 책의 세계로 들어오셨으면 좋겠어요. 좀 더 바라는 게 있다면 이 책에서 다룬 니코스 카잔차키스나 보들레르, 카프카 등 유명한 작가들의 책을 꼭 읽었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왜 그 작가들에게 감동했는지 알게 되셨으면 좋겠어요.


시인이나 예술가에게 고독은 반드시 필요해요. 시인, 예술가가 아니더라도 위대한 사람들에게는 반드시 그런 속성이 있으니까 고독과 삶을 대하는 태도를 빌려오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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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의 힘 원재훈 저 | 홍익출판사
고독으로부터 삶의 풍요를 발견하게 하는 인문에세이 《고독의 힘》은, 외로운 마음의 곳간을 긴 여운으로 남을 문학의 양식으로 채워주는 책이다. 상처로만 여겨왔던 고독에서 자기를 돌아보게 하는 귀한 시간을 통해 한층 더 성숙한 당신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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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때 알아야 할 것들, 맛집과 나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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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자주 사용하는 단어이면서도 정작 그 말이 뜻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모를 때가 있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 싶다. 노래 가사에서, 소설에서, 시에서, 영화 대사에서 그토록 자주 등장하는 단어이지만 사랑이 무엇인지,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를 명쾌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서일까. 커뮤니티 ‘사랑할 때 알아야 할 것들’을 향한 사람들의 관심이 뜨겁다. 카페를 시작으로 페이스북과 카카오스토리까지 확장한 일명 ‘사알’은 100만 명이 넘는 구독자를 자랑한다.

 

『사랑할 때 알아야 할 것들』은 ‘사알’ 운영자 김재식 저자가 만든 책이다. 10년 넘게 커뮤니티를 운영하면서 스스로도 사랑에 관해 많이 고민했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중에서 특별히 공감을 많이 얻은 글을 선별해서 책에 실었다. 그래서 늑대 이야기 등 인터넷에서 한 번쯤 읽었을 법한 글도 책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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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젊은 사람들이 사랑에 관심이 없다고?


『사랑할 때 알아야 할 것들』의 뿌리가 된 카페 ‘사랑할 때 알아야 할 것들’ 운영을 2004년부터 시작하셨는데요. 어떤 계기였나요.

 

프롤로그에도 짧게 쓴 내용인데요. 원래 저는 결혼을 일찍 하고 싶어했던 사람이었어요. 한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과 관계를 평생 이어가야 한다고 생각했었고요. 잘 안 됐죠. 몇 번 관계에서 실패하면서 어떤 사람을 만나야 하고, 어떻게 건강한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을까를 고민했죠.

 

사랑이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은 답 없는 질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혼자만 하지 말고 사람들과 같이 나눠 보면 해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 카페를 열었어요. 카페를 운영하면서는 제 이야기를 털어놓지 않았어요. 회원들의 시선이 있잖아요. 운영자가 그것도 모르면서 운영해? 이런 이야기를 듣는 게 두려워서 소통하는 공간을 만들려고 했지, 굳이 제 이야기를 쓰지는 않았어요.

 

책에 실은 글은 어떤 기준으로 고르셨어요?

 

제가 쓰는 글이 대부분이지만, 카페, 페이스북 등 다양한 채널을 운영하다 보니까 사연을 많이 보내주세요. 사연이 너무 많아 보내주신 모든 사연들을 다 읽어보지는 못하지만, 나름대로 사연들을 읽고, 너무 개인적인 넋두리가 아닌 많은 분들이 교감할 수 있는 포인트가 있는 글을 위주로 올리려고 노력하거든요. 공감을 많이 얻은 글 위주로 책에 담았어요. 이미 검증이 된 글이라고 할 수 있죠. 인터넷에서 한 번 본 글을 굳이 책으로 또 보려고 할까, 이런 걱정도 있었지만 카페 회원들이나 페이스북 팬들이 좋아해요. 캡쳐한다고 해도 보관하는 데 한계가 있잖아요. 책으로 나와서 찾기 쉽다고도 말씀해주시고요.

 

10년 넘게 운영한 커뮤니티다 보니 쌓인 자료가 많을 텐데요. 정리하기도 쉽지는 않았을 듯해요. 책으로까지 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이유가 있나요.

 

언론에서는 요즘 젊은 사람들이 사랑이나 결혼에 관심도 없고 혼자 살아도 된다고 이야기하죠. 그런데 제가 카페나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를 운영하면서 느낀 건 전혀 달라요. 특히 20대는 지금 만나는 사람과 결혼하기를 원하더라고요. 언론이 일부만을 가지고 모두 그런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아요. 여전히 사랑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책도 만들게 됐죠.

 

책을 만들면서 가장 먼저 떠올린 에피스도를 꼽아 줄 수 있나요.
 
20대 중반에 만나던 친구가 있었죠. 그 친구가 갑자기 “궁금한 게 있는데, 장난하지 말고 꼭 진지하게 대답해줘. 오빠는 나 아니면 안 돼?”라고 물었어요. 왜 물어보느냐고 되물었더니, 꼭 이야기해달래요. 제가 감성적이기도 하지만, 이성적이기도 하거든요. 이렇게 대답했어요. “너 아니면 안 되는 게 어딨어. 지금은 그럴 수 있지만, 내가 헤어지고 난 다음에도 너는 나만 생각하며 평생 혼자 지낼 수 있어? 그렇게 못해. 나 아니면 안 된다는 말은 굉장히 잘못 되었어.”

 

굉장히 이성적으로 이야기한 거죠. 저는 정말 그렇게 생각했고,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하지 않아요. 물론 이제는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지만요. 그렇게 이야기하고 얼마 안 있다가, 그 친구가 바람나서 헤어졌는데요. 충격이 굉장히 컸어요. 3년을 만나면서 굉장히 좋아했던 친구였고 사랑은 더 커졌던 상황이었으니까요. 그때는 제 대답 때문에 헤어졌다고 생각을 못 하다가, 1년 뒤에 깨달았어요. 아, 이 친구가 그때 A와 B를 선택하는 기로에서 확신을 얻고 싶었던 거구나, 내가 그렇게 말을 해버려서 떠났구나…

 

이성적이라고도 했지만, 책에는 감성적인 글이 많잖아요. 이런 감성 글쓰기는 어떻게 단련하셨나요?

 

원래 책을 거의 안 보다가, 시집을 읽기 시작했죠. 중고등학교 때 읽은 시집만 300권 정도 될 걸요? 서정윤 시인의 『홀로서기』를 참 좋아했고요. 서정윤 시인이 불미스러운 사건을 일으켜서 안타깝지만요. 좋아했던 시인이에요. 중학교 시절부터는 글쓰기도 즐겼어요. 고등학교 때는 음악을 전공해서 제가 써놓은 글로 곡을 만들고 싶었죠. 그때는 일기를 많이 썼어요. 음악 많이 듣고, 글 많이 쓴 게 단련이라면 단련? 저는 영상물은 많이 안 봤어요.

 

사랑할 때 뭘 알아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카페 회원, 팬들은 이 책을 읽고는 어떤 반응이에요.

 

책이 나오기 전에 이미 글, 그림, 표지를 다 봐줬어요. 책에서 제 스타일이 보인다고 해요. 담담하면서 센. 제가 말할 때 차분한 편인데요. 그래서 마음도 따뜻할 거라고 착각을 하시는데, 그래서 저와 사귄 여성 분 중에서는 실망하는 사람도 있어요. (웃음) 마음속에는 센 면도 있거든요.

 

그런데 사랑할 때 뭘 알아야 할까요.

 

스스로 자기를 아는 게 중요하죠. 뻔한 대답이기도 하고, 말이 쉽지 자신을 안다는 게 어렵죠. 저는 주변 사람에게 물어봐요. 제가 어떤 사람인지를요. 그리고 그 사람에게도 너는 이렇다, 저렇다를 이야기해 줘요. 듣기 좋은 이야기보다는 듣기 싫은 이야기를 해 줄 때 더 진정성을 느끼고 고마워요.

 

옳은 대답입니다만 다소 원론적인 듯한데요. 좀 더 구체적으로 알려주신다면.

 

얼마 전에 이런 일이 있었어요. 친구들끼리 만난 자리였는데, 제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두 친구가 막 싸우더라고요. 사랑과 정이 같다, 다르다로요. 답 없는 이야기 하지 말고 다른 이야기하자고 했어요. 그랬더니 한 친구가 정말 묻고 싶었대요. 사랑할 때 뭘 알아야 하는지를요. ‘사랑할 때 알아야 할 것들’을 대표해서 한번 말해 보래요.

 

저는 맛집을 알아야 한다고 했어요. 그 친구는 장난치지 말고 제대로 말하라고 했지만, 사실이거든요. 데이트할 때 고민이 뭐에요? 어디서 만나고 무엇을 먹고 뭘 할지잖아요. 내가 그 사람과 만나서 무엇을 했을 때 가장 행복한지 아는 게 중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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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하게 사랑 많이 했으면


VX(Valuable eXperience)의 대표이기도 한데, 어떤 활동을 하는 곳인가요. 그리고 앞으로 계획은?

 

제가 운영하는 회사이고요. 개인적으로는 네 번째 창업이네요. 회사 이름 그대로 사람들에게 가치 있는 소중한 경험을 만들려고 해요. 세줄짜리 러브레터 전시회도 그중 하나였고요. 원래는 사랑할 때 알아야 할 것들을 위해 만든 회사는 아니었어요. 다른 아이템으로 창업을 했는데 준비했던 서비스가 개발이 지연되면서 1년 동안 약 2억이 넘는 돈을 까먹었어요. 지금도 빚으로 고스란히 남아있고요. (웃음) 그러다가 지금 상황에서 내가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다가 그동안 독립 플랫폼으로 전환하려고 무수히 노력했었던, 하지만 본업이 따로 있었기에 손 놓고 있었던 사랑할 때 알아야 할 것들을 다시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한 거죠. 그리고 페이스북 페이지를 개설하여 지금 이렇게 책까지 내게 되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사랑할 때 알아야 할 것들을 보고 온라인 매칭 서비스를 해 보라며 제안하는데, 저는 그것보다는 연인들이 건강하게 놀 수 있는 온라인 서비스를 제공하고 오프라인에서는 문화를 만들고 싶어요. 연인들이 권태기에 빠지는 게 건전하고 재미있게 놀 수 있는 문화가 없어서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지금까지 ‘사랑할 때 알아야 할 것들’이라는 브랜드를 건강하게 잘 지켜왔어요. 앞으로도 지금처럼 건강하게, 잘 지켜나가고 싶어요.


다음에 책을 낸다면?

 

사랑 이야기를 나눠보면, 제 사연이 영화 같다고 많이 말씀해주시는데요. 그런데 누구나 영화 같은 스토리를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사랑은 특별하니까요. 저도 제 이야기만을 모아서 책으로 내고 싶다는 생각은 했어요. 그 안에 들어가는 사진, 그림도 가능하다면 제가 만들어 보고요. 그렇게 내려면 이 책이 잘 되어야 가능하겠죠. (웃음)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끝으로 독자에게 한 마디 남긴다면.

 

저는 사랑한다는 말을 잘 안 해요. 사랑한다고 이야기하면, 죽을 때까지 지켜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사람 일은 모르잖아요. 그래서 사랑한다는 말을 함부로 하는 게 아니라고 여겨요. 죽기 전 마지막 순간에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만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사랑한다는 말이 아닐까 싶은데요. 이렇게 말하면, 여자친구들은 실망하죠. 그래도 굽히지 않아요. 제가 가진 신념이니까요. 이건 제 사랑이고, 각자 정의하는 사랑이 있을 거예요. 거기에 대해 제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의미가 없어요.


남녀가 만나는 게 외로워서 만나지만 꼭 외로워서만 만나는 건 아니예요. 너와 나의 울타리를 가지려고 만나는 거잖아요. 그 울타리가 가정이겠죠. 나와 잘 맞는 사람을 만나서, 건강한 울타리를 가져야 그 안에서 태어나는 아이들도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여기서 건강하다는 의미는 정신적, 육체적 모두를 포함해요. 그런 사람이 많아져야 사회가 건강해지겠죠. 그러니 건강하게 사랑을 많이 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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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 때 알아야 할 것들김재식 저/정마린 그림 | 엔트리
이 책은 ‘사랑할 때 알아야 할 것들’ 회원들이 가장 뜨겁게 공감하고 소통했던 170여 개의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 이야기들은 사랑의 위기와 갈등, 아픔이 있을 때 많은 이들에게 위로와 힘이 되었고 때로는 조급해지거나 불안해질 때 여유롭게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힐링서가 되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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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김려령의 첫 성인소설 『너를 봤어』를 읽은 독자라면, 필시 그녀의 두 번째 작품을 손꼽아 기다렸다. 청소년소설을 썼던 작가가 맞나? 싶을 정도로 김려령의 소설은 강렬했다. 누구는 『완득이』, 『우아한 거짓말』의 색깔이 사라져서 아쉽다고 했지만, 작가는 달라지지 않았다. 끊임없이 폭력을 말하고 사랑을 속삭이고 있다.

 

김려령 작가의 두 번째 성인소설 『트렁크』는 기간제 결혼을 한 29살 여자, 노인지가 주인공이다. 인지는 결혼정보업체 웨딩라이프의 비밀 자회사인 NM(new marriage) VIP팀에서 6년차 차장이다. 회원에게 선택을 받으면 일정 기간 동안 회원의 기간제 부인인 FW(field wife)가 되어주는 게 인지의 업무다. NM에서는 계약 결혼을 하는 직원들을 두고 ‘출장’을 간다고 말한다. 인지의 계약 결혼은 철저히 비밀로 부쳐진다. 인지가 사랑했던 남자를 멸시했던 엄마, 인지를 몰래 사랑하고 있는 단짝친구 시정, 인지와 소개팅을 하는 남자 엄태성 등 아무도 모른다. 인지는 네 번째 결혼을 마친 시점에 작곡가인 전 남편으로부터 재결합 신청을 받고 다섯 번째 결혼을 시작한다. NM에서는 이례적인 일이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사랑에 빠진 건 아니다. 단지, 인지가 트렁크를 다시 풀었을 뿐이다.

 

주변 사람들은 늘 내가 만나는 사람만 중요시했을 뿐, 행복하니? 하는 질문은 누구도 하지 않았다. 당연 내 불행 따위에도 관심이 없었다. 나는 그렇게 사는 게 힘들어요, 항변해도 소용없었다. 네가 뭐가 부족해서? 어쩌면 그런 무심함에 화가 났던 것도 같다. 괜히 버럭버럭 화를 내서 나만 더 힘들었던 것 같기도 하고. 벌써 서른이다. (210쪽)

 

『트렁크』는 김려령 소설답다. 폭력을 말하는데 사랑이 보이고, 죽음을 이야기하는데 삶이 보인다. 김려령은 주인공 인지에게 철저하게 거리감을 뒀다. 기간제 결혼을 선택했다고 구차한 합리화도 연민도 하지 않는다. 다만, 주변인들에게 속삭인다. “가만두면 자생적으로 예뻐질 세상을 자꾸 훼손하지 말라고.”

 

 

자기를 내쫓아서 하는 결혼은 하지 말라는 거예요.


약간은 『너를 봤어』의 연장선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냥 내버려뒀으면 잘 살아갈 사람인데, 왜 자꾸 건드릴까”하는 작가의 마음이『트렁크』에서도 읽혔습니다.


저한테 항상 그런 게 있어요. 동화를 쓸 때도 성인소설을 쓸 때도 마찬가지에요. ‘가만히 뒀으면 현재보다 더 예쁘게 살아갔을 사람인데, 왜 그럴까’ 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훈수사회? 어떤 경우에서도 한 마디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요. 대의가 확실해서 반박할 수는 없는데, 그 소리를 듣는 당사자는 속으로 무너지는 거예요. 현학적인 말들을 끊임없이 해대니까. 장기를 둘 때 꼭 옆에서 한 마디를 하면서 끼어들면 되게 밉잖아요. ‘아, 저런 말 하고 싶을 때, 한 번만 참으면 되는데’ 그런 생각들이 저한테는 항상 있었어요. 살다 보면 스스로 깨닫고 바뀌고 그럴 텐데, 그 사람의 어디까지를 보길래 저런 말을 함부로 할까. 그런 게 항상 쌓여있었어요.

 

불친절한 시선인 것 같아요. 말하는 사람만 친절하다고 착각하는.


그래서 저는 “너 그렇게 하지마”가 아니라, 주변 사람들, 옆에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한 명 한 명이 다 옥죄면 여기에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되는지, 그 이야기를 끊임없이 하고 있는 것 같아요. 다른 배경, 다른 사연을 쓰지만 늘 옆 사람한테 시선이 가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본인만 친절하다고 느끼는 그 시선 몇 개만 거두면 좀 나아질 것 같은데, 왜 다들 한마디를 해야 직성이 풀리는지.

 

『트렁크』에서는 인지의 소개팅남 ‘엄태성’이 그런 것 같은데요. 듣는 사람의 심정은 생각하지도 않고 끊임없이 자기 이야기만 해대는.


살다 보면 불현듯 닥치는 불행이란 게 있잖아요. 제어하려고 해도 끊임없이 달라붙는 불행. 엄태성은 인지에게 불행의 상징인 것 같아요. 의도하지 않게 찰거머리처럼 붙어 있는 불행.

 

소설 제목이 처음부터 ‘트렁크’였나요?


초고는 ‘트렁크’였고, 중간에는 서정적이고 짠한 제목이 있었어요. ‘사랑이 남았다면’이라고 지었다가 막 왔다 갔다 했는데 다시 ‘트렁크’로 온 거예요. 사는 게 긴 여정, 긴 여행이잖아요. 보통 트렁크를 쌀 때 잘 싸야겠다고 생각을 하는데, 상당히 짐이 될 때가 많아요. 여행 중에 버리고 싶을 때도 많고.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갖고 있는데 그게 또 사실은 버려도 되는 거예요. 백팩 하나만 메도 되잖아요. 트렁크가 어쩌면 버려도 되는 운명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 순간 저한테 착 중첩됐어요. 처음에는 너무 대놓고 상징적이지 않나 싶었는데, 쓰다 보니 ‘트렁크’가 제게  제목으로 왔어요.

 

2007년 데뷔 후 줄곧 청소년소설만 발표하셨는데, 2년 전 『너를 봤어』를 펴내면서 뜨거운 반향을 불러일으켰어요. 처음부터 청소년, 성인소설 구분하지 않았고 『너를 봤어』도 오랫동안 애착을 갖고 쓴 작품이라고 하셨는데, 『트렁크』는 언제 출발한 작품인가요.


꽤 오래 전에 어느 정도의 기틀은 잡아 놓은 상태였어요. 6,7년 동안 동화, 청소년소설을 발표하면서 중간중간에 썼던 작품들이 꽤 있어요. 그런데 막상 발표를 하려니까 맥만 그대로 가지고 왔지, 완전히 새로 써야 하는 상황이 되더라고요. 시대적 배경도 달라지고, 그 사이에 신조어도 많이 생기고. 그 때 썼던 단어들이 다 낡아 보이는 거예요. 마치 쭉정이를 골라내는 키에다 작품을 쏟아놓고 막 치는 느낌이었어요. 거기에서 남은 걸로만 쓴 거예요.

 

‘기간제 결혼’이라는 소재는 처음부터 갖고 간 설정인가요?


어떤 단어랑 이야기가 쇼트처럼 지나갈 때가 있어요. 그 때 미친 듯이 쓴 작품이 모 아니면 도인데, 『트렁크』도 그래요. 나 혼자 미쳐서 쓴 글인데, 미쳤기 때문에 써보고서 놀래요. (웃음) 기간제 결혼을 선택한 건, 일반적이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사랑이 실제로는 빈번하게 예쁜 모습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세상은 터부시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소수자의 사랑이 소수이기 때문에 존중 받아야 한다는 게 아니라, 행복과 사랑을 말하기 전에 존엄이라는 걸 생각해봤어요. 그건 다수, 소수냐에 관계 없이 절대적으로 지켜야 할 가치거든요. 비슷한 맥락에서 결혼이라는 건, 존엄만큼이나 큰 제도이자 관습이잖아요. 어느 통념적 대의가 너무 크면, 그것을 취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박탈 당할 수밖에 없어요. 다수가 오랫동안 맞다고 했기 때문에 더 압박 당하는 거예요. 저는 결혼반대주의자가 아니에요. 연애주의자가 맞지만 결혼반대주의자는 아니에요.

 

비혼주의자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데요.


요즘은 젊은 사람들한테 결혼을 하라고 말할 수가 없어요. 말하고 싶으면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하는데 그걸 못해주잖아요. 직장이 있다고 해도 대부분 비정규직이니 결혼을 생각할 여력이 없어요. 외부에서 결혼하라는 것도 압박이지만, 잘 살펴보면 무의식 속에 ‘내가 결혼을 해야 하는 거 아닌가’라는 마음이 있는 것 같아요. 주변 사람들이 결혼하는 걸 보면, 자기 스스로가 초라해지는 거죠. 하고 싶은 마음은 없는데 결혼을 안 했다는 사실 만으로. 긴 세월 동안 결혼이라는 게 유전적으로 박힌 것 같아요.

 

결혼반대주의자가 아닌 이유는요?


결혼 자체로만 놓고 보면 이것처럼 예쁜 모습이 없어요. 어떤 사랑하는 사람이 딱 만나서 합이 만들어지는 거잖아요. 촌스럽지만, 두 개의 쪼개진 하트가 겹쳐질 때 예쁘잖아요. 그 순간만큼 빛나는 순간이 없어요. 다만 쫓기면서 하지는 말자는 거예요. 타인의 시선 때문에 무엇 때문에 헤어지지도 말고, 주변의 압박 때문에 마음에도 없는 쫓기는 결혼은 하지 말자는 거예요. 자기가 자기를 내쫓아서 하는 결혼은 하지 말라는 거예요.

 

작가님은 결혼을 한 상태에서 이 작품을 쓰셨는데.


이 소설의 콘셉트를 잡았을 때는 제가 어렸을 때였어요. 결혼은 한 상황이었지만, 당사자 입장에 더 가까운 거예요. 어른들한테 ‘니들이 세상 이렇게 만들어놨잖아’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에 더 가까운 거예요. 그런데 지금 중년이 되고 보니까 거기에서 오는 미안함이 있어요. 그 존재가 나였구나, 싶은 거예요. 젊은 세대에게 미안함이 있어요. 세상은 “탓만 하지 말라”고 하는데, 젊은 친구들이 기성세대를 탓해야 하는 시대에요. 우리가 잘 다지지 못해서, 애들이 막힌 거예요. 우리 세대는 위로할 자격도 없다는 생각도 했어요. 우리 앞 세대, 386세대는 희생정신이 있었는데, 우리 세대는 그런 게 없었어요. 발전 없이 한량처럼 사는 건 나쁘지만, 탓도 뭘 잘못했는지 알아야 할 수 있잖아요. 미운 건 밉다고 이야기해도 되는 것 같아요.

 

“탓하라”는 조언이 낯설게 다가옵니다. 젊은 세대들에게 더 하고 싶은 말씀은.


젊은 친구들한테 더 이상 얹힐 말이 없어요. 힘내라고 하기도 미안하고. 지금 젊은 친구들처럼 부지런하게 사는 사람이 없어요. 저 때만해도 비정규직이 없었고. 부부 중 한 사람만 일해도 월세에서 10년 살면 전세, 전세로 10년 살면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아니니까요. 자꾸 제 아래 친구들이 예뻐 보이는데. 미안한 감정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지금 제 딸이 스물 둘이고, 아들은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했어요. 얘들이 살아남아야 하는 세상이 되었는데, 내가 참 해준 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부모세대가 됐는데 해준 게 되게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젊은 세대들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기성 세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것 같은데요.


소설가의 여러 가지 직무 중 하나가 대신 말해주는 거잖아요. 사람들이 다 이야기하고 살 수는 없는 노릇이고요. 옳은 소리를 함으로 인해 받게 되는 불이익이 있으니까. 작가에게는 목에 걸려 있는 말들을 대신 해주는 역할도 있지 않나 싶어요. 그래서 위로를 받는 거죠. ‘내가 한 생각을 저 사람도 했어’하고 혼자 심정적으로 먼 거리에서 공감하는 것, 그런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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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가 예쁜 건, 선함이 있기 때문


주인공 인지는 행복하게 살려고 바득바득 노력하는 성격은 아닌데, 불행이 연달아 왔어요. 큰 욕심을 갖고 있지도 않은데 말이죠.


예전에 어른들이 “사는 게 그렇지 않아”라고 말하면 자기변명처럼 들렸어요. 그런데 제가 마흔을 넘기고 어느 정도 경험을 해보니까, 쭉 행복만 오는 것도 아니고 불행만 오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불행이 연속으로 탁탁탁 치고 올 때는 정말 견디기 어려워요. 지금은 사람들이 많이 행복한 것 같지가 않아요. 언제부턴가 개개인이 행복해 보이지 않아요. 너무 팍팍해졌어요. 내 삶이 팍팍하면 옆을 볼 수 없잖아요. 내가 가진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하니까, 내가 아프면 당장 내 아픔이 다른 사람의 아픔을 견제해버려요. 그 아픔이랑 내 아픔이 섞이면 그 아픔의 파이가 너무 커지니까요. 그래서 꿈꾸는 것 같아요. 제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행복한 소수가 있지만, 행복이라는 단어가 이제 되게 추상적이에요. 행복, 사랑이 이제 현실적이지 않아요. 문학에서도 값싸게 들어오는 단어로 여겨져요. 그걸 현실에서 찾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이런 이야기를 누구한테 했더니, “너 죽을 때가 됐냐? 네 나이 때 하는 이야기가 아닌데” 하더라고요. (웃음)

 

인지의 소개팅남 ‘엄태성’ 이야기를 좀 묻고 싶었어요. 겉으로 보기에는 참 멀쩡해 보이고 사람 좋아 보이는데, 인지가 거절을 하는데도 계속 나타나요. 인지가 하는 말은 안 듣고, 그냥 자기 말만 해대는 거죠. ‘연극적 쾌활함’이라는 표현이 딱 맞았어요. 정말 짜증나고 답답한 캐릭터인데, 소설을 읽으면서 ‘작가님이 엄태성을 되게 미워하는구나, 싫어하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웃음) 티 났나요? 『트렁크』를 쓸 때, 정말 오랜 기간 엄태성이 너무 미웠어요. 악인을 데리고 와도 작가는 그 사람이 되게 매력이 있으니까 쓰는 거거든요. 그런데 엄태성은 너무 미운 거예요. 나마저 그 사람을 내치면 안 되는데, 심지어 내가 끌고 온 인물인데 너무 미운 거예요. 어쩌면 이렇게 징글 징글하게 계속 인지 앞에 나타나는지. 엄태성은 자기 세계 안에만 있는 사람이에요. 계속 남의 말을 헛듣는 거예요. 어떤 이야기를 해도 자기가 생각한 거에 딱 넣어버려요. 타인의 말을 자기 말에 소화시키고 쑥 배설하고. 자기 감정, 자기 이야기만 하니까 그게 너무 싫은 거예요.

 

그렇게 싫으면 엄태성을 빼버릴 생각은 안 하셨나요?


제가 사랑할 수 없는 인물이라서 빼보기도 했는데, 뭔가 팍 파인 느낌이 들더라고요. 이게 딱 합리적으로 얘기할 수 없는 거예요. 내 무의식에서 튀어나온 사람, 내가 너무 싫어하는 분류의 사람인 거거든요. 폭력에서 언어 폭력, 신체적 폭력이 있는데요. 엄태성 입장에서는 “내가 뭘 했는데?”라고 말할 수 있지만, 같은 장소에 똑같이 나타나는 거,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굉장히 끔찍한 거예요. 또 다른 방식의 끔찍함이에요. 한 사람의 인생이 기구해질 때, 어느 하나만 갖고 탁 무너지지 않아요. 여러 곳에서 옥죄다가 결정타로 하나가 탁 터졌을 때, 무너지는 거예요.

 

인지 입장에서는 엄태성이 결정타였네요.


탁 터진 거죠. 사람이 감내할 수 있는 한계를 꾸역꾸역 참고 있는데, 어느 순간 낯선 불행이 튀어나서 딱 붙어 버린 거예요. 우리는 항상 대상을 필요로 하잖아요. 그 사람이 실제 얼마만큼 잘못했나 보다, 지금 내 분노의 수치가 어디까지 와있는지가 더 큰 영향을 미치죠. 당사자는 억울할 수 있는데, 그걸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터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그 사람이 딱 온 거예요.

 

그런데 결국 인지가 NM로부터 감금 당한 엄태성을 구해주잖아요.


그건 인지가 갖고 있는 선함이에요. 인지가 끝내 밉지 않은 건, 걔 안에 선함이 있어요. 저는 선을 믿거든요. 내가 사회에 반하는 행동을 해야 할 경우가 있을 때, 끝내 위로 치고 올라올 수 있는 힘은 선이에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자체적인 선이죠. 선을 선으로 읽지 못하는 사람도 있고, 그래서 선한 자가 바보가 되곤 하지만. 아무리 칼을 열 명에게 주면서 “몇 시부터 몇 시까지의 살인은 용서해줄게”라고 말해도, 누군가를 죽일 수 있는 사람은 정해져 있어요. 절대 못 찌르는 사람이 있어요. 인지가 갖고 있는 선이 그래요. 인지가 가진 선을 앞으로 탁 빼놓지 않고 숨겨 놨는데, 그게 참 예뻐요.

 

『우아한 거짓말』도 그렇고, 『너를 봤어』도 그렇고. 주인공 혹은 주변인의 자살이 작품 속에 계속 등장해요. 『트렁크』에서도 인지의 친구이자, 시정을 사랑했던 ‘혜영’이 자살을 했어요. 계속 작품 속에서 죽음을 다루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죽더라도 온전하게 맞는 죽음을 맞았으면 해서요. 아프게 죽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안고 싶은 거예요.

 

인지가 만약 엄마로부터 자신의 남자친구가 거절 당하지 않고, 친구의 자살도 없었더라면. 일반적인 결혼을 했을까요?


평탄하게 살지는 못했을 거라고 봐요. 뭔가를 가정하고 보면 여러 가지 결말이 나오는데. 제가 운명론자는 아니지만, 어떤 사건을 겪었기 때문에 어떤 결혼을 택하는 것보다는 그 사람이 타고난 것, 습득되어간 철학이 그 어떤 길로 향하게 하는 것 같아요. 인지는 피해간다고, 도피한다고 말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에는 굉장히 과감하게 부딪히면서 사는 애에요. 우리가 어떤 걸 선택할 때, 그게 떳떳하지 않고 암묵적이거나 지하세계에 있는 것들일 때는 스스로에게도 핑계가 필요한 거예요. 그래야 덜 비참하잖아요. 인지가 취직하는 이야기를 하면서 “뭐 대단한 사명감을 갖고 해야 하냐”고 말하잖아요. 보통 사람들이 “너 그 일 왜 하니?”라고 질문할 때가 있는데, 우리가 얼마나 대단한 사명감을 갖고 일을 하겠어요. 사람들이 작가들에게 “왜 글을 쓰나요?”라고 많이들 묻는데, 단순한 거예요. 쓰고 싶으니까요.

 

인지와 함께 NM에서 일하는 ‘유 대리’ 이야기도 좀 듣고 싶어요. 인지가 유 대리의 성격을 이야기하면서 “자신의 아픔을 다른 사람에게 옮기지 않는다”고 말했어요. 개인적으로 가장 슬펐던 대목이에요.


유 대리를 생각하면 아파요. 되게 아파요. 제가 비슷한 캐릭터를 알아요. 소설에는 완전히 변형시켜놨지만요. 그냥 서로 조용히 바라만 봐주고 그러는 관계에요. 유 대리가 팍 터져서 울고 저한테 엎어졌다면, 제가 안고 울었겠죠. 유 대리는 “살 집이 없다”는 문장이 있잖아요. 그 문장을 쓰고 나서 한동안 진짜 뒷문장을 못 썼어요. 애가 너무 가여워서. 내 집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머물 집이 없다는 거니까.

 

“NW에서 유 대리가 노를 할 회원은 없는 거였다”(76쪽)는 문장도 아팠어요.


얘 꿈이 너무 소박한 거예요. 그런데 그 소박함도 채워주지 못하는 세상이에요. 얘 꿈이 뭐가 그렇게 거창하다고 그것도 못 이루는지. 정말 그 자체로 예쁘고, 정말 목련같이 톡 하고 살아난 예쁜 꽃 같은 사람인데.

 

어떻게 보면 인지의 친구이자 동성애자인 ‘시정’이 가장 평범하게 무난하게 평탄하게 사는 것으로 보여졌어요.


실제로 동성애자 몇몇을 알고 있는데, 여성적 취향을 가진 사람도 있지만 상당히 많은 분들은 평범해요. 티가 전혀 안 나요. 단지 사랑하는 대상이 동성일 뿐인데, 특이한 제스처를 취한다던가, 독특한 취향을 가졌을 거라고 생각하고 오해하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데 대부분은 눈치챌 수가 없어요. 시정은 아주 평범한 아이에요. 옆에 그렇게 붙어 있는 친구인 시정이도 눈치채지 못했으니까요. 인지가 매력이 있지만 단점은 자기가 본 것만 딱 본다는 거예요. 그 순간 거기에 올인하니까, 옆이 안 보여요. 인지는 부모조차도 거리를 두고 보잖아요. 인지와 시정이는 굉장히 가까운 사이지만, 시정이 고백하기 전까지는 몰랐죠. 같은 동성일 때 더 눈치를 못 챌 수 있어요. 여자라면 더 그래요. 제가 고등학생 때 걸스카웃을 했는데, 교통 안내를 하고 있으면 후배들이 와서 “선배님” 이러면서 바지 주머니에 사탕을 넣어주고 갔어요. 그러면서 자기네들끼리 깔깔대고 가는데, 되게 예뻤어요. 인지도 시정이의 사랑을 그 정도로 본 것 같아요. 내 옆에 있는 친구가 당연히 자기랑 같을 거라고 생각한 거죠.

 

시정이 인지를 오랫동안 좋아했다고 말했을 때, 인지의 반응이 더 놀라웠어요.


인지가 예쁜 건, 앞만 보고 가지만 선입견이 없어요. 처음 마주친 거에 대해서 자기 임의대로 나누는, 그런 게 없어요. 엄태성 같은 경우는 본능적으로 싫은 거예요. 본능적으로 자기랑 맞지 않는 뭔가가 부싯돌처럼 탁 부딪힌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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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적으로 하고 싶었던 말은 ‘사랑’


인지는 “NM 바깥세상에서 만나는 별종은 참기 힘들다”고 했어요.


NM은 직업이니까요. 감정노동자이면서 육체노동자인데, 여기서는 그걸 참으면 보수가 오잖아요. 직업인으로 철학도 있겠죠. 어떤 것도 노련하게 받아주니까. 하지만 아닐 경우에는 탁 치죠.

 

작가님이 참기 힘든 별종은 어떤 사람인가요.


엄태성인 것 같아요. 상대방의 감정은 요만큼도 읽지 못하는 사람. 내 감정이 우선인 게 아니라, 그냥 자기 감정이 당연한 사람. 엄태성이 잘생겼잖아요. 잘생겨서 더 싫은 거예요. 못생겼으면 안쓰럽기라도 한데. 되게 애매한 말이긴 한데, 호감이 안 가는 사람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호감은 내 감정과 상대의 무엇이 탁 하고, 어떤 설명 없이 마주치는 거예요. 외모, 학벌, 재산 그런 게 아니고. 지하철에 탔을 때, 내가 어디에 앉을까를 생각할 때 ‘아 저 사람 옆에 앉아야지’ 생각하잖아요. 같은 옆자리라도 선택을 하게 되는데, 엄태성한테는 그런 감정이 요만큼도 없는 거예요. 싫어하는 걸 다 몰아준 것 같아요.

 

인지에게 재결합을 요청한 작곡가 남편은 10년 전, 인지에게 도움을 줬던 사람이었어요. 소설을 읽으면 읽을수록, 어쩌면 이런 사람이 인지에게 딱 맞는 사람이 아닐까 싶었어요. 타인에게는 냉정해 보이지만 인지가 정말 필요할 때, 적당히 도움을 주고. 거리감을 유지하고.


캐릭터라는 게, 나이와 외모, 소양 정도만 가닥을 잡고 시작하는데요. 자기 개성은 자기가 찾아가요. 이 책을 쓰면서 저도 느꼈어요. 어느 순간, 남편이 너무 멋있어진 거예요. 이렇게 깔끔한 관계도 괜찮겠다 싶었어요. 제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었던 말은 사랑이잖아요. 인지가 “플라토닉 너나 해라”고 말했지만, 몸을 섞었다고 해서 다 사랑하는 관계는 아니거든요. 인지가 안식년이 필요하다고 말할 정도로 힘든 직업적 결혼생활을 했는데, 다섯 번째 남편과 만났어도 성관계에서 오는 느낌을 모르고 있거든요. 그런데 마지막 날, 둘의 무엇인가가 딱 결합하면서 이제야 몸이 딱 열리는데 헤어져야 하는 거죠.

 

얼마 전에 놀란 게 피임약 광고를 하는데 카피가 ‘스무 살의 사랑’이더라고요. 우리 딸이랑 그걸 보면서 “이거 극장에서 하는 광고 아니었어요?”라고 했어요. 어느 순간, 내가 아들을 단속하게 되는 때가 온 거예요. 그게 걔 여자친구를 지켜주는 게 돼버리니까요. 섹스가 안 된다는 게 아니라, 몸과 몸이 기뻐할 때 정신적인 것도 통해야 한다는 거죠. 인지가 안타까운 게 그거에요. 헤어짐 앞에서 몸이 딱 열려버렸으니. 한 번은 우연히 다시 만날 수 있지만, 두 사람이 또 만나진 못할 것 같아요. 인지의 남편이 “다음에 또 만나면 그냥 같이 살자”고 했는데, 전 그게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서 쓴 대목이에요.

 

마지막에 엄태성이 다시 나타나서 인지에게 케잌을 두고 가요. 섬뜩했어요.


여러 가지 의미를 담은 거예요. 사실 인지가 엄태성에게 죽임을 당하면서 끝나는 버전도 썼었어요. 자판기 할머니가 인지한테 “못질 많이 하면 초상난다”고 했잖아요. 인지가 “엄마가 사람들한테 목 박는 이야기 많이 하고 다녔잖아. 엄마 때문이야. 엄마가 못질을 너무 많이 했어”라고 쓰기도 했어요. 그런데 너무 직접적으로 보여준 것 같아서. 그런 추측은 독자들이 하길 바랐어요. 실제 그 대목을 보여주지 않았어도 죽는 거라고 보는 사람이 있어요. 직접적으로 목숨을 위협 받는 건, 이제 인지인 거죠. 그렇게 열어놓고 소설을 딱 닫았는데, 이 결론이 훨씬 낫던 것 같아요.

 

작품에서 ‘폭력’을 끊임없이 이야기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가장 무서운 폭력은 어떤 폭력인가요.


심리적 폭력인 것 같아요. 물리적 폭력은 증거라도 제시하고 동정심이라고 받을 수 있잖아요. 누가 더 잘못했는지를 볼 수 있는데, 심리적으로 끊임없이 압박하는 건 정말 더 괴로워요. 요즘은 인터넷에서 대면하지 않은 상태의 폭력들이 굉장히 난폭해요. 딱히 대처할 수 없는 폭력인 거예요. 그걸 설득하려면 되게 피곤한 자료를 만들어야 해요. 고통을 보상받으려면 정신과치료를 받았는지 증명을 해야 해요.

 

“왜 너만 유난을 떨면서 더 아파하냐”는 시선도 있어요. 그냥 넘어가는 사람도 있다면서.


모든 종류의 폭력은 나쁘다고 생각해요. 더 가슴 아픈 게, 심리적으로 안으로 표현할 수 없는 정신 상태를 말살시키는 거예요. 『우아한 거짓말』에서 요즘 친구들한테 말하고 싶었던 것도 마찬가지에요. 심리적으로 옥죄어 버리는 거. “뭐 이 정도로 그래?”라는 거, 정말 무서운 거예요. 정신을 말살시키는 폭력 앞에 놓이면 내가 미치지 않고는 벗어나지 못해요.

 

노인지라는 이름이, NO 認知(인지) 라는 뜻 맞나요? 『너를 봤어』를 썼을 때, 서영재 라는 이름을 작가님 팬의 이름에서 따왔다고 밝혔는데.


맞아요. 어떤 분이 “서영재로 소설 하나 써주면 소원이 없겠다”는 이야기를 인터넷에 쓰신 걸 보고, ‘그래? 영재 괜찮은데? 서영재 더 괜찮은데? 완전 작가 이름인데? 내가 소원 들어드립니다’하고 썼어요. (웃음) 그런데 이번 소설은 너무 아파서 아는 사람 이름을 일부러 쓰지 않았어요. 가끔 작가와의 만남 같은 행사를 할 때, 사인을 하다 보면 탐나는 이름이 되게 많아요. 그럴 때, 나중에 이 이름 써도 되냐고 여쭤봐요. 괜찮다고 하시면 메모해놓고. (웃음) 『트렁크』는 내가 너무 소설에 푹 빠지지 않고. 독자들과 같은 리듬으로 가고 싶었어요. 거리감이 너무 없을까봐, 오히려 내가 갖고 있는 비슷한 이름들을 다 뺐어요.

 

『우아한 거짓말』에서 천지에게 “너 되게 귀한 애야”라고 말해주셨는데, 『트렁크』의 인지에게는 어떤 말을 해주고 싶나요.


예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존재만으로도 예쁜 사람이라고. 전 인지가 예뻤어요. 내 친구였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항상 사랑은 많이 하는 쪽이 불리해요. 인지는 시정이한테 “나 뭐 먹고 싶다”고 말하는데, ‘지가 해먹지?’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밉지 않아요. 시정이의 사랑을 미처 알아채지 못했지만, 인지는 한 번도 자기 존재와 시정이를 떼어놓고 생각해보지 않은 친구에요. 사실 사랑과 우정이라는 게, 종이 한 장 차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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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렁크 김려령 저 | 창비
‘한국문학의 새로운 활력’, ‘비범한 이야기꾼’이라 불리는 김려령 작가가 흡인력 강한 소설로 다시 독자들을 찾아왔다. 신작 장편 『트렁크』에서 작가는 기발한 상상력과 리얼리티 넘치는 명쾌한 화법으로 인간관계와 사랑의 맨 얼굴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심리 전개 대신 재치 있는 대화와 속도감 있는 문장으로 전개되는 이 작품은 생생하게 살아 숨쉬는 이야기의 힘을 여실히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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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경, 똑똑한 그녀가 나쁜 남자에게 끌리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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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아버지와 딸의 관계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알려주는 치유서가 아니다. 단지 그동안 잘 몰랐던 아버지와 딸의 관계에 조명을 비추어 여성 그리고 딸의 삶에서 아버지 혹은 아버지라는 한 남자의 영향력을 알아채기 위한 것이다. (『아버지의 딸』 6쪽)

 

『아버지의 딸』은 섣불리 치유를 말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먼저 관계를 제대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지금까지 ‘아버지와 딸의 관계’에 대한 깊이 있는 사유와 대화가 부재했기 때문이다. 반면 어머니와 딸에 대한 담론들은 이미 익숙할 만큼 오랜 시간 이어져왔다.

 

이러한 현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아이는 어머니를 통해 여성성을, 아버지를 통해 남성성을 학습한다’는 보편적인 명제를 모두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딸들의 삶에도 분명 ‘아버지로부터 영향을 받아서 구축하게 되는’ 한 세계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제껏 우리는 그 영역을 면밀히 살피려하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아버지의 딸』이야기는 시의적절하다. “딸들의 무의식에 여러 형태로 자리 잡은 아버지의 영향력을 관계심리학으로 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딸’은 아버지로부터 각별한 영향을 받은 딸들을 의미한다. 분석심리학자들이 사용하는 이 용어는 세상의 모든 여성들을 일컫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임상심리전문가인 저자 역시도 “아버지를 오랫동안 부인해오다가 자신이 영락없는 ‘아버지의 딸’임을 알고 놀라는 딸들이 많다”고 증언하고 있다. 아버지로부터 긍정적인 영향을 받았든 부정적인 영향을 받았든, 심지어 신체적 혹은 정신적으로 아버지의 부재를 경험했다 하더라도, 아버지와의 관계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딸은 없다. 아버지가 드리운 그림자는 빛 또는 어둠의 흔적으로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는 것이다.

 

현재 서울사이버대학교에서 상담심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이우경 저자는 『아버지의 딸』을 통해 상담실의 안과 밖에서 만났던 많은 딸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버지와 제대로 된 애착 관계를 형성하지 못해 이성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거나, 아버지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항상 ‘잘난 딸’이 되고자 노력해온 딸들의 고백이 담겨있다. 꼭 이렇다 할 문제를 겪지 않더라도 어린 시절 아버지가 무심코 반복했던 말들, 예컨대 ‘네가 아들이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든지 ‘지금은 아빠가 바쁘니까 딴 데 가서 놀아’라는 이야기들도 딸에게 상흔으로 남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아버지의 딸』은 말한다. “오랫동안 아버지를 부정하는 것은 곧 자신을 부정하는 것이고 그러다 보면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부정하게 된다”고. 반대로 이야기하면 “아버지를 긍정하는 것이 자기 삶을 수용하고 긍정하는 것임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자기 삶을 짓누르던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애증을 내려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딸의 삶에 있어서 아버지의 영향력은 부인할 수 없는 것이기에, 그의 존재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면 스스로를 온전히 끌어안지 못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결국 『아버지의 딸』은 아버지와의 관계를 들여다봄으로써 딸들로 하여금 자신을 이해하도록 이끈다. “우리 모두는 아버지의 딸이다”라는 저자의 말처럼, 이 이야기는 세상의 모든 여성들에게 해당되는 것이기도 하다. 어머니, 아내, 여자 친구 등 서로 다른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는 딸들, 그녀들의 삶을 이해하는 실마리가 되어준다.

 


무능한 아버지의 딸은 왜 슈퍼우먼이 될까


딸에게 있어서 어머니와의 관계가 미치는 영향과 아버지와의 관계가 미치는 영향이 다른가요?


아무래도 어머니는 딸과 동성이기 때문에 여성적인 역할, 모성 역할에 대한 모델이 되어 주죠. 반면 아버지는 이성이기 때문에 딸에게 독특한 영향을 미치는 부분이 있어요. 특히 이성 관계나 일 영역에 있어서 그렇죠. 그런데 그 영향력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 잘 이야기되지 않기도 했고요. 융과 같은 분석 심리학자들은 아버지에게 특별한 영향을 받은 딸을 ‘아버지의 딸’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는데요. 이런 내용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특히 아버지가 무능력하고 무책임한 경우 딸은 스스로 성취에 목을 매는 슈퍼우먼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어떤 결핍, 예를 들어서 자신은 아들이 아니라는 결핍을 메우기 위해서 성취 지향적이 되기도 하고요. 또 다른 경우에는 아버지가 너무 무책임해서 제대로 딸을 보호해 주지 못하다 보니까, 스스로 여전사처럼 세상에 대항하면서 전투태세를 갖추고 살아온 여성들도 있어요. 분석심리학자들은 그런 여성들을 일컬어 그리스신화에 등장하는 ‘아마조나스 여인’이라고 하는데요. 이렇게 슈퍼우먼처럼 살다보면, 20대 30대에는 그것이 동력이 될 수 있지만, 중년에 들어서면서 신체적인 고통을 경험하거나 심리적으로 소진되는 느낌을 갖게 됩니다.

 

슈퍼우먼과는 반대로 ‘영원한 소녀’에 머무르는 여성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아버지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었던 건가요?


아버지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란 딸들 중에서도 수동적이고 취약한 소녀 이미지를 갖고 있는 여성들이 ‘영원한 소녀’의 유형이라고 할 수 있어요. 이들은 고유한 정체성을 찾거나 스스로를 발전시키기보다는 주변의 중요한 타인, 즉 남자친구나 남편이 자신에게 투사한 정체감을 취하는 경향이 있어요. 아버지의 착한 딸, 공주, 매력적인 아내, 왕비 역할을 맡기도 하죠.

 

‘영원한 소녀’는 살아가면서 어떤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나요?


이런 유형의 여성들은 늘 힘 있는 존재가 자신을 통제해 주어야만 안심하고 혼자서 뭔가를 결정하는 걸 어려워해요. 심리적으로 의존적이 되는 거죠. 자기 독립성이나 자율성을 발달시키지 못하고요. 그래서 두려움이나 우울, 불안에 취약할 수 있어요. 실제로 남편에게 너무 의존적인 나머지 남편의 부재를 경험하면 강한 우울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죠.

 

일반적으로는 아버지와 딸의 관계는 친밀할수록 좋다고 여겨지는데요. ‘감정적 근친상간’의 개념을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감정적 근친상간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이가 좋지 않은 경우나 어머니가 부재한 상황에서 나타날 수 있는데요. 아버지가 마치 딸을 애인처럼 여기게 되는 거예요. 딸은 정서적으로 아내의 역할을 하게 되고요. 이에 대해서 가족심리학자들은 부모와 자녀 사이의 경계를 침범한 사례로 봐요. 아버지와 딸 사이가 친밀한 건 좋지만 심리적인 거리를 두어야 해요. 요즘 딸바보 아빠들 중에는 경계를 허무는 경우도 많은 것 같은데요. 『아버지의 딸』에도 썼듯이 유치원생 딸아이가 남자 아이들과 놀고 있으면 질투심을 느끼는 아빠들도 있어요. 그런데 아이가 나이가 들면 심리적으로 놓아주어야 해요. 특히 여자아이의 경우 2차 성징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신체적으로도 거리를 두어야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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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그녀가 나쁜 남자에게 끌리는 이유


‘착한 딸 콤플렉스’에 빠진 사람들에게는 어떤 인식의 전환이 필요할까요?


어머니와 아버지가 부모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주지 못했을 때, 또는 부모가 아이를 너무 억압하는 경우에 ‘착한 딸 콤플렉스’에 빠질 수 있어요. 결국은 자기 욕구를 많은 부분 희생하고 부모의 기대에 맞춰서 사는 것이기 때문에, 어느 순간 원망이나 억울한 감정을 느끼게 되죠. 자신의 뜻대로 살게 하려는 부모에게 화가 나기도 하고요. 이럴 때는 약하고 어두운 측면을 인정해야 돼요. 엄격한 권위 앞에 스스로 억압하고 억제했던 인격의 원시적인 측면을 인식하는 거죠.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이제는 예전과 다르게 살 거야’라고 선언하기가 두려울 것 같은데요. 어떤가요?


그렇죠. 착한 딸 콤플렉스에 빠진 사람들은 자기주장을 잘 하지 못해요. 부모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라 직장에서도 착한 모습을 보이려고 하는 경우도 많아요. 윗사람이 시키는 대로 하는 ‘예스맨’이 되는 거죠. 자기 안에 부정적인 감정이 올라오는 걸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하는데, 그런 감정이 올라오면 불편해하는 거예요. 감정은 다 옳다는 걸 기억할 필요가 있어요. 부정적인 감정이 올라오는 것도 당연한 거라고 받아들여야 하는 거죠. ‘부모님한테 이런 마음을 가지면 안 되지, 저 사람은 나한테 잘해줬는데 이런 마음 갖지 말아야지’하고 죄책감이나 수치심, 불안감을 느끼면서 욕구를 억압하면 안돼요. 그러면 나중에는 무의식에서 원할 수 있어요. 몸이 아프거나, 갑자기 우울해지거나, 자꾸 화가 나거나, 억울한 마음이 올라오는 거예요. 그래서 불특정 다수에게 화를 내거나 별 일이 아닌데도 화를 내기도 해요.

 

“유독 고부갈등에 시달리는 여성 중에서도 의무감과 헌신에 가득 찬” 딸들이 많다고 하셨습니다. 자신의 의사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해서일까요?


자기 주장이 강한 며느리들은 시어머니와의 관계에서도 선을 분명히 긋고 부당한 요구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거부해요. 그러나 착한 며느리들은 인정받고 싶은 마음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하죠. 자기 욕구를 억압하면서 시키는 대로 하는 거예요. 그런데 희생한 만큼 언제나 돌려받는 것은 아니잖아요. 오히려 상대는 자신이 희생하는 만큼 더 요구하게 되죠. 그러다 보면 결국 화병에 걸리는 거예요. 공황장애를 겪는 경우도 많고요.

 

자신이 주변의 남자들과 맺는 관계를 살펴보면, 유년 시절에 아버지의 상실과 부재로 경험한 고통을 발견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둘 사이에는 어떤 연관 관계가 있나요?


신체적 또는 정서적으로 아버지의 상실이나 부재를 경험한 사람들은 아버지를 대체할 대상을 찾아요. 가부장적인 남성에게 이끌리기도 하고, 남자친구나 남편에게 집착하거나, 목사님과 신부님 같은 종교지도자에게 강박적으로 몰두하기도 하죠. 아니면 일을 통해서 결핍을 채우려고 하다가 일 중독이 되는 경우도 있어요. 우리는 부성적인 원형을 가지고 있는데, 실제 아버지의 모습과 달리 ‘아버지는 이렇게 해야 돼’라는 생각으로 만들어 놓은 이미지가 있는 거예요. 관계에 중독이 되어서 사람한테 집착하는 사람들은, 상대가 부성적인 원형을 충족시켜주지 못하면 우울해하고 분노하기도 해요. 사랑이 아닌 중독에 가까운 거죠.

 

‘아버지 없는 딸’ 증후군이란 무엇인가요?


아버지의 결핍을 경험하면 늘 뭔가에 매진해야 한다고 느끼면서 정서적인 허기를 안고 살아갈 수 있어요. 그리고 거부당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되죠. 이런 여성들은 이성 관계에서 있어서도 ‘거절민감성’이 굉장히 높아요. 그러다 보면 원치 않는 성관계에 빠지기도 하는데요. 거절할 수 있는데도 상대가 떠나갈까 봐 두려워서 의사표현을 하지 못하는 거예요. 남자가 떠나가면 버림받은 느낌을 받고요. 반대로 (결핍을 채우기 위해) 성에 탐닉하게 될 수도 있어요. 술이나 성공에 집착하는 경우도 있고요.

 

아버지가 없이 유년 시절을 보냈음에도 그와 같은 증상을 보이지 않는 여성들은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요?


물론 ‘아버지 없는 딸’이라고 해서 모두가 이런 증후군을 겪는 건 아니에요. 개인차가 분명히 있죠. 아버지가 없더라도 엄마가 건강한 모델이 되어주는 경우, 아이들을 잘 돌보고 경제적인 역할도 해주면서 성장으로 이끄는 경우도 있어요. 아버지가 부재한 상황에서 엄마마저 역할을 잘 해주지 못할 때 문제가 발생하는 거죠. 그러니까 ‘아버지 없는 딸’에게는 엄마의 역할이 중요해요. 엄마가 건강하게 곁을 지켜주는 경우에는 이런 증후군을 겪지 않을 수 있어요.

 

『아버지의 딸』에서 말씀하신 것처럼“지적이고 강한 여성이 어이없게도 나쁜 남자에게 끌리는” 모습을 종종 목격합니다.


투사된 이미지 때문이에요. 여성 안에 자리 잡은 남성 원형은 부재하는 아버지상을 끌어 모으기 때문에 고독하게 방랑하는 늑대가 아니무스(여성의 무의식 속에 있는 남성적 요소 - 필자 주)로 형성돼요. 이런 여성들은 사랑에 빠지게 되면 고독한 방랑자라는 남성상을 주변에 투사하죠. 그래서 다정다감한 남자보다는 늘 떠날 것 같은 불안감을 주는 나쁜 남자에게 이끌리는 거예요. 성실하고 변함없이 곁을 지키는 남자보다는 무책임하고, 성실하지 않고, 심지어 다른 여성에게 추파를 던지는 남성에게 매력을 느끼는 거죠. 건강한 아버지 상을 경험하지 못한 여성은 건강한 아버지 상을 경험한 여성들에 비해 이런 남자들에게 빠져들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버지와 딸, 어떻게 화해할 수 있을까


딸의 성적인 부분에 대해서 아버지가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서 여성성에 대한 인식도 달라진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가장 이상적인 아버지의 태도는 어떤 것일까요?


아버지가 딸의 성을 너무 억압하거나 금기시하는 경우, 딸들은 자라서 성에 있어서 자연스럽게 욕구를 충족하기 어려울 수 있어요. 성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갖거나, 심지어 성을 더럽다고 생각하게 될 수도 있죠. 특히 아버지가 성적으로 억압한 경우에는 성에 있어서 죄책감을 갖게 돼요. 성적인 즐거움을 느끼는 것에 죄의식을 가지는 거죠. 신앙적인 이유로 성에 너무 엄격한 태도를 보이는 경우도 마찬가지예요. 이렇게 강한 죄책감을 갖다 보면 성 불감증이 생길 수도 있죠. 아버지는 딸의 성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해요. 특히 2차 성징이 나타나면 딸이 여성으로 태어난 걸 축하해주고 환영해 주되 신체 접촉을 조심해야 하고요. 여성성을 과도하게 억압해서도 안 되지만 너무 강조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아요.

 

자식에게 자신의 욕구나 기대를 투사하는 아버지들도 많습니다. 이런 아버지의 딸들은 ‘독립 대 의존 갈등’을 겪는다고 하셨죠.


이런 갈등은 모든 자녀들이 부모와의 관계에서 겪는 거예요. 특히 부모가 너무 자녀를 움켜쥐는 경우, 벗어나고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내 힘으로는 무언가를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이 생겨요. 반항하면서 독립하려고 하다가도 다시 의존하게 되는 거죠. 대부분은 20대가 되면서 심리적인 독립을 먼저 하고 점차 경제적인 독립을 하게 되잖아요. 그런데 부모 특히 아버지가 강하게 통제하고 지배하는 경우에는 30대 40대가 되어서도 온전히 독립하지 못해요. 이렇게 독립 대 의존 갈등을 겪다 보면 부모에 대해서 양가감정을 갖게 되죠. 의존하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을 통제하는 것에 대해 화가 나는 거예요.

 

이미 아버지가 곁을 떠나셔서 화해를 할 수 없는 딸들에게 ‘내면의 아버지와 화해하는 방법’을 알려주셨습니다.


내면의 아버지란 진짜 아버지가 아니라 딸의 마음속에 내재화된 아버지인데요. 주로 내면의 목소리가 돼요. 아버지의 비난을 많이 받은 딸은 늘 ‘아버지가 좋아하실까’하고 아버지 기준에서 평가하게 되는 거죠. 아버지의 목소리와 진정한 자신의 목소리를 구분할 필요가 있어요. 아버지 목소리를 따라가기 보다는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 내면의 고유한 열정이나 울림을 따라 가겠다는 다짐과 용기가 필요해요. 인간적 한계와 감정을 존중하는, 부드러운 목소리를 가진 내면의 아버지를 스스로 키워나가야 하고요. 내면의 아버지와 화해하게 되면 현실의 아버지와의 힘겨루기가 사라지고, 아버지의 긍정적인 부분과 부정적인 부분을 수용할 수 있게 되죠. 아버지가 돌아가신 상황이라면 원망과 넋두리를 반복해봤자 해결되는 건 없잖아요. 결국 회복할 수 있는 열쇠는 자신에게 있어요.

 

아버지를 향한 용서와 화해의 끝에서 느끼는 감정은 결국 연민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죠. 결국 아버지도 강한 남자가 아니었다는 것, 약함과 두려움이 많은 한 남자였고 그 두려움을 숨기기 위해 그런 방식으로 행동하였을 것이라는 것, 아버지 역시 그 아버지의 아버지로부터 혹은 어머니로부터 올바른 양육을 받지 못한 결과 좋은 아버지가 될 수 없었을 것이라는 것, 아버지도 인간적 약점이 많은 분이었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연민의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거죠.

 

딸과 화해하고 싶은 아빠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미안하다, 네가 많이 힘들었겠다’라는 한 마디만으로도 가슴 속의 응어리가 녹아내리겠죠. 그런데 그와 달리 끝까지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 아버지도 있잖아요. 이럴 때는 자기 용서를 먼저 해야 돼요. 아버지로부터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다보면 스스로를 대접하지 못하는 사람이 될 수 있거든요. 나는 아무 쓸모가 없어, 라고 생각하면서 낮은 자존감을 갖는 거예요. 그렇다면 아버지의 사과와 용서에 너무 연연하지 말아야 하죠. 아버지의 영향으로 스스로를 함부로 대하지는 않았는지, 그 원망감이나 분노를 다른 사람에게 화살처럼 쏘아대지 않았는지 들여다봐야 돼요. 만약 그런 부분이 있었다면 스스로를 용서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고요. 만약 아버지가 화해를 원하지 않는 경우에는, 계속 아버지에게 맞추면서 괴로워하기보다는 심리적 거리를 둘 필요도 있다고 생각해요.

 

『아버지의 딸』의 마지막을 ‘자기만의 방’과 ‘자기 집의 주인’에 대한 이야기로 장식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버지니아 울프가 말했던 자기만의 방은 자신만의 공간과 경제적 여유를 의미하죠. 물론 지금은 버지니아 울프가 살았던 시대보다 독립심이 강하고 능력 있는 여성들이 많아졌지만, 한편으로는 그렇지 못한 여성들도 많아요. 자기만의 방이라는 건 물리적인 공간이기도 하지만 심리적인 공간이기도 해요. 혼자서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 자율성과 독립성을 추구할 수 있는 힘, 그리고 경제력을 갖추어야 한다는 걸 은유하는 거죠. 그래야만 자기 집의 진짜 주인이 될 수 있으니까요. 아버지나 남자친구나 남편의 인형이 아닌, 자기만의 능력과 힘을 가진 주체로서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싶었어요. 물론 관계를 통해서 자신을 찾을 수 있기지만, 관계에만 전적으로 의존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예요. 자기만의 주체성과 독립성을 가지고 홀로 서있을 수도 있는 여성이 관계 맺음도 더 잘할 수 있고요.

 

책에서 말씀하셨다시피“이 책은 세상의 모든 딸과 모든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히 이 책을 추천하고 싶은 독자가 있다면 어떤 이들인가요?


아버지로부터 긍정적인 영향을 받은 딸들보다는 부정적인 영향을 받은 딸들이 『아버지의 딸』을 찾게 될 것 같은데요. 상대가 연인이든 직장 상사든 이상하게 이성과의 관계가 힘들게 느껴진다면, 이 책이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딸을 잘 키우고 싶은 아버지들이나 여자 친구나 부인을 조금 더 이해하고 싶은 남자들에게도 추천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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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딸이우경 저 | 휴(休)
《아버지의 딸》은 딸들의 무의식 속에 여러 형태로 자리 잡은 아버지의 영향력을 관계심리학으로 풀어낸 책이다. 지금까지 숱하게 이야기되었던 어머니와 딸, 어머니와 아들의 이야기에서 벗어나 기대와 실망, 흠모, 사랑, 배신이 엉켜 있는 아버지와 딸의 관계를 재조명해봄으로써 여성 그리고 딸의 삶에서 아버지 혹은 아버지라는 한 남자의 영향력을 알아채기 위한 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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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레오 “스타 셰프 되려면 어떻게? 할 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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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셰프 전성시대다. TV를 켜는 족족 셰프들이 나온다. 요리를 하지만 예능을 하는 것 같기도 하고, 경계가 모호해졌다. 그런데 모두가 진짜 셰프는 아니다. 요리사라고 전부 다 셰프는 아니기 때문. 셰프(chef)란, 요리 전분야에 조예가 깊은 전문 요리사를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요리사를 뜻하는 단어 ‘cook’과 구별되어 사용된다. 하지만 요즘 대한민국에서는 요리를 하면 무조건 ‘셰프’라고 칭한다. 청소년들에게 장래희망을 물으면 “스타 셰프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요리’를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스타 셰프’가 되고 싶단다.

 

대한민국의 스타 셰프 전성시대를 연 강레오가 첫 책『날, 자꾸만 무뎌지는 나를 위해』를 펴냈다. <마스터 셰프 코리아>를 통해 '한국의 고든 램지'라는 별명을 얻은 강레오는 요리 프로그램의 섭외 1순위 셰프다. 예능감은 없는데 실력이 있으니, 방송에서 자꾸만 그를 불러낸다. 출판계에서도 앞다퉈 책을 내자며, 강레오를 찾았다. 그는 “요리책은 정말 완벽할 때 내고 싶다”며, 대신 에세이를 썼다. 활발한 방송활동과 더불어 매주 한복려 궁중음식연구원과 벤처농업대를 다니며 농장 경영, 요리학교 설립 등을 계획하고 있는 강레오를 만났다. 그는 “요리를 22년 했다. 50년 요리 인생을 살려면 갈 길이 멀다. 아직 반밖에 안 왔다”고 했다. 강레오에게 음식에 대한 철학, 셰프에 대한 오해, 방송 출연의 기준을 물었다.

 

요리 서바이벌 프로그램 심사위원이 되어 참가자들의 요리에 대해 다소 직설적인 이야기를 할 때, 간혹 접시 위의 음식을 쓰레기통에 버리거나 입에서 뱉어내는 제스처를 취할 때, 사람들은 독설이라는 이미지로 나를 바라보기도 했다. 하지만 내 입에서 나간 매서운 말 한 마디가 어떤 의미였는지를 누군가는 알아들으리라 믿었다. 당신의 열정을 믿는다는, 더 잘할 수 있는 살마이라는 걸 안다는 그 속뜻을, 정말로 요리에 열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해했으리라.

 

다만 방송에서의 한두 마디로는 미처 전달하지 못했던 속이야기들은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었다. 그 이야기들을 이제 책이라는 매체에 담아보고자 한다. 요리에 대한 진심을 읽기 위해 참가자의 두 눈을 지그시 쳐다보던 나처럼, 누군가는 나의 진심을 읽어낼 수 있을 거라 믿기에. (9쪽)

 

 

독설 셰프? 현실은 더 냉혹하다


첫 책인데 요리책이 아니고 에세이입니다.


누구나 다 내는 요리책이면 안 내는 게 맞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누구나 할 수 있으면 굳이 제가 안 해도 되잖아요. 요리책은 한 권만 냈으면 해요. 아무나 흉내 낼 수 없는 요리로 가득할 때, 그 때 내고 싶어요. 지금도 낼 수는 있겠지만 아직 덜 완벽하니까, 못하는 거예요. 저만의 색깔이 더 깊어지고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요리를 만들 수 있을 때, 요리책을 쓸 거예요. 한 권만 내도 상관 없는데, 대신 한글로 안 내고 싶어요. 전 세계에 팔아야 하니까.

 

셰프가 되기까지의 과정, 음식에 대한 철학 등을 매우 구체적으로 쓰셨던데요.


원래는 좀 더 거칠게 썼어요. 크리틱도 좀 세게 하고 싶었고. 우리나라 음식 비평하는 분들이 음식에 대한 매커니즘을 모르니까 계속 스토리만 붙이면서 음식을 평가하잖아요. 짜다, 싱겁다, 달다, 고향의 맛이다. 이 정도밖에 평가를 못하는 게 아쉬워요. 하나의 음식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처음부터 끝까지를 분석해서 표현한 크리틱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제대로 된 크리틱을 해보고 싶었는데, 이번 책은 에세이니까 그거에 맞게 쓰려고 했어요. 평론을 한다면, 한국에 오래된 식당이나 전통음식에 대해 쓰고 싶어요.

 

“부모가 뭘 먹느냐에 따라 아이가 먹는 음식의 수준도 달라진다”(21쪽)는 말이 인상 깊었어요. 딸 에이미한테도 평소 요리를 자주 해주나요?


해주죠. 에이미는 편식을 안 해요. 저랑 먹는 것에 경쟁이 붙었어요. (웃음) 엄마가 에이미한테 뭘 줬는데 안 먹잖아요? 그럼 제가 뺏어 먹어요. 그러면 에이미가 따라 먹고요. 아빠가 먹는 게 맛있는 음식이라는 인식을 심어줬어요.

 

이유식도 만들어줬나요?


그럼요. 박선주 이유식은 한 시간 반이 걸리는데, 강레오 이유식은 15분이면 끝나요. (웃음) 엄마들이 이유식 만드는 걸 되게 힘들어 하는데 이해가 안 가요. 젓느라 힘들다고 하는데 왜 저어야 하나요? 굳이 생쌀부터 안 해도 돼요. 밥으로 해도 돼요. 밥을 좀 차게 식히면 칼로 썰어져요. 그걸 끓이면 돼요. 얼린 밥을 썰어도 되고. 요즘 주서기가 굉장히 잘 나오잖아요. 과일이나 채소를 갈아서 그 찌꺼기를 이유식에 넣는 방법도 있어요. 채소를 볶을 때 맛있게 먹으려면, 채소가 원래 가지고 있는 수분을 빼서 채소가 갖고 있는 맛을 줘야 해요.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굉장히 재밌게 요리를 할 수 있어요.

 

<마스터 셰프 코리아> 이야기를 안 할 수 없습니다. 독설 셰프로 유명하셨는데요.


(웃음) 댓글로 욕 엄청 먹었어요. 너가 그렇게 대단해? 재수없어! 정말 보기 싫다는 글 많이 봤어요. 그런데 그 상황에서 가장 빠르게 출연자들을 납득시키고 고칠 수 있는 방법은 말이에요. 주방 같으면 끌고 나갔겠지만 방송 중에 그럴 순 없잖아요. 그것도 순화해서 말한 건데 사람들은 충격이었나봐요. 방송이라서 더 그랬던 것 같아요. 고든 램지 같은 셰프는 더 여과 없이 방송이 됐는데, 유럽에서는 열광했어요. 한국은 아직까지 요리사에 대한 그런 신뢰가 없는 것 같아요. 요리사가 왜 그렇게 나대고 지랄이냐, 이런 소리도 들었어요. (웃음) 요리사라는 직업이 지금보다 더 존중 받는 상황에서 방송을 했으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마음도 있었어요. 전 그렇게 하는 프로그램이라서 그렇게 한 거예요. 사실 현실은 더 심하기도 하고.

 

<마스터 셰프 코리아>를 통해 발전했다고 보는 출연자들은 누구인가요.


시즌1의 김승민 씨 같은 경우는 지금 본인 가게도 더 잘 되고 있고, 평소 하고 싶었던 요리에 변화를 주게 돼서 좋았다고 했어요. 시즌2부터는 딱히 잘 모르겠는데요. 박준우 씨 같은 경우는 “나는 요리사가 아닌데 왜 나를 그렇게 대하지?”라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은데, 저의 진심을 알아줬고 가장 빨리 본인을 변화시켜 요리를 습득한 경우에요. 처음에는 떨어질 수밖에 없는 실력이었는데 준우승까지 했잖아요. 본인 스스로 변화했기 때문에 가능한 거였죠. 변하는 걸 보고 훌륭하다고 생각했어요.

 

요즘 요리 예능 프로그램이 대세잖아요. 셰프들의 인기가 대단한데. 이유가 뭘까요?


글쎄요. 해외에서도 이렇게 된 상황을 본 적이 없어요. 요리사의 특별한 재능이라면 요리겠죠. 가수라면 그 사람의 목소리나 어떤 감성적인 면이나 철학이 담긴 음악에 빠져서 좋아하는 걸 텐데, 사람들이 셰프에 열광하는 건 과연 그 사람의 요리에 대한 철학을 좋아해서인지, 쇼의 형태인지 잘 모르겠어요. 요리를 재밌고 친근하게 접근하는 건 좋지만, 글쎄요. 출연하는 셰프들의 식당이 지금 더 안 되고 있으면 안 됐지, 잘되진 않아요.

 

예약이 한참 밀려있다고 하던데요.


매출을 보면 다를 거예요. 예전에는 코스 요리 먹는 손님들이 대부분이었던 가게에 이제 단품 요리 한 두 개만 시키는 손님들만 찾아와요. 요리사들이 왜 방송을 하고 싶어하는지 모르겠어요. 유명해져서 뭘 하려고 하는 건지. 사람들이 알아봐주는 게 그저 좋은 건지, 방송을 이용해서 뭔가를 얻으려고 하는 건지. 외식과 가깝지 않은 사람들을 외식으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하거나 후배 요리사들을 끌고 갈 마음을 갖는 건 좋은데, 유명세를 만들어 연예인이 되고 싶은 거라면. 나중에는 이 시장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게 되겠죠.

 

해외의 경우는 어떤가요? 제이미 올리버나 고든 램지 같은 스타 셰프는 성공한 거 아닌가요?


제이미 올리버도 처음 TV에 출연했을 때 사람들이 좋지 않은 시선으로 봤어요. 훌륭한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있었지만, 검증이 필요하다는 시각도 많았죠. 증명이 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지금은 실력을 인정받고 레스토랑 사업도 잘 되고 있죠. 고든 램지는 원래 좋은 요리사였기 때문에 잘된 케이스에요. 지금 우리나라는 뭐가 좋은 셰프의 기준인지 모르겠어요. 아무나 셰프로 불리고 있고 뭘 하려는 건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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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사가 너무 방송에 많이 나오는 건 역효과


요즘 “스타 셰프가 되고 싶다”는 청소년들이 많아요. 요리를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스타 셰프’가 되고 싶은 거죠.


스타 셰프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냐고 많이들 묻는데, 해줄 이야기가 없어요. 방송에 나오게 되면 서로 비교를 하고 싶어 하잖아요. 전 누구와 비교가 되기 위해서 열심히 해본 적이 없어요. 제 스스로가 어디까지 할 수 있냐를 보는 거죠. 누구랑 비교해서 요리를 하고 싶었던 적이 없어요. 아직까지 한국사회의 외식 수준이 그렇게 높지 않은 상태에서 요리사가 너무 방송에 많이 나오는 건 역효과라고 봐요.

 

이를 테면 어떤 역효과인가요.


음식을 정말 잘해서 방송에 나오는 게 아니라 단순히 재미만을 위해서 출연하게 되면, 요리사는 다 저렇게 소금만 뿌리면 웃겨 주는 사람이 되겠죠. 요리 실력이 우선이어야 하는데, 무조건 “나도 <냉장고를 부탁해>에 출연하면 인기 있는 셰프가 될 수 있다”고 하는 건, 좀 아니잖아요.

 

요리 프로그램 섭외를 많이 받을 텐데, 출연을 선택하는 기준이 있나요?


제가 할 수 있는 것, 제가 꼭 필요해서 했으면 하는 프로그램은 해요. <대단한 레시피>의 경우, 전국에 있는 재미있는 요리들을 찾으러 가는 프로그램이에요. 어묵밥이나 비빔밥와플 같은 건, 그걸 파는 지역에 가지 않으면 모르는 거예요. 이런 재밌고 맛있는 음식을 제품화 시키는 게 이 프로그램의 취지인데, 재밌을 것 같아서 출연했어요. 저도 언젠가 제품화하는 음식을 생각해봤기 때문에 이 프로그램을 통해서 공부를 하고 있는 거예요. 저는 한국을 보는 걸 좋아해요. 대한민국 자체를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방송을 통해서 한국음식을 더 다양하게 넓게 보고 싶어요. 개인으로 찾아갈 때는 한계가 있는데 방송을 통해서 가면 제가 원하는 걸 많이 얻어와요. <찾아라 맛있는 TV>나 <대단한 레시피>는 그런 면에서 큰 도움이 되죠.

 

만약 요리 프로그램을 기획할 수 있다면.


한국의 24절기 음식을 한 번씩 다뤄보고 싶어요. 대한민국에서 50년 이상 가는 노포들도 취재하고 싶고. 대한민국 신지식농업인부터 선진농가까지 제가 가지고 있는 리스트가 400개 정도 되는데, 그분들을 인터뷰 해도 좋을 것 같아요. 그분들의 재료를 가지고 요리도 하고. 내년부터 개인 농장을 시작하는데 한 번 추진해보고 싶어요. <한국인의 밥상> 같은 프로그램을 예능으로 풀어도 좋을 것 같아요. 평범한 김치찌개 같은 요리를 왜 TV로 넋 놓고 봐야 하는지, 그런 모습을 볼 때는 좀 씁쓸해요.

 

오랫동안 요리를 하는 분들은 보면, 서양음식을 전공했음에도 불구하고 한식에 관심이 대단해요. 최종적으로 선택하는 건 한식일 때도 많고.


서양음식을 하다가 본인들의 한계가 왔기 때문에 못 하는 경우도 있고. 자꾸 한식 세계화를 외치니까 안 하면 안 될 것도 같고. 그런데 결국 한식을 배우는 사람은 몇 안 돼요. 일반 가정에서 먹는 수준의 한식을 하죠. 한국사람이 언제부터 고춧가루를 범벅이 되게 먹게 됐는지, 묵은지는 어떻게 생겨났고. 그런 공부를 해야 하는데 하는 사람이 없어요. 그래서는 수준 높은 음식이 나올 수 없어요. 서양음식은 우리가 제대로 배우기가 힘들어요. 남의 요리니까. 동남아, 아프리카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한국 음식을 배우는 것만큼 어려울 거예요. 서양음식을 배우려면 그 지역에 가서 본토 사람들보다 더 뼈저리게 느끼고 더 잘 먹으면서 공부를 해야 해요. 한국 음식을 아예 다 끊고 살아야 될까 말까인데. 한국에서 서양음식을 공부하면, 런던에서 한식을 배우는 거랑 똑같은 거죠. 그러니까 본인들이 커갈 수 없다는 걸 알고 자꾸 옆으로 튀는 거예요. 분자요리에 도전하기도 하고.

 

현재 무형문화재 궁중요리 기능보유자 한복려 선생님께 한식을 배우고 계시죠?


일주일에 두 번 수업을 들어요. 수강생들을 보면 대단한 분들이 많아요. 배울 게 정말 많아요.

 

세계적인 셰프로 손꼽히는 장 조지, 피에르 가니에르, 피에르 코프만, 고든 램지의 레스토랑에서 요리를 했는데, 그들에게 배운 것 중 가장 소중한 건 무엇인가요.


정말 좋은 요리사란, 가장 좋은 재료를 찾을 수 있는 눈을 가진 사람이라는 거예요. 그 재료가 어떤 맛이 나는지, 어떻게 요리를 해야 상품 가치가 있는지를 아는 요리사가 훌륭한 요리사에요. 단순히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최상의 재료를 가지고 제대로 요리하는 게 중요해요.

 

모든 사람들이 스타 셰프에게 배울 수 있는 건 아닌데요. 어떻게 그 레스토랑에 들어갈 수 있었나요.


드라마틱하진 않아요. 일단 면접을 봐야 하는데, 면접이라는 게 서로에게 신뢰를 갖게 하는 작업이잖아요. 한국 사람들은 넥타이를 매고 와서 이력서 주고 앉아 있는데. 저는 그렇게 안 봐요. 본인 유니폼, 칼, 앞치마, 행주 가지고 오라고 해요. 그렇게 저랑 3일 정도 일하다 보면, 이 사람이 정말 같이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가 파악돼요. 지금도 그렇게 봐요. 유럽에서는 보통 그 과정을 일주일씩 해요. 애매한 경우에는 한 달까지도 하죠.

 

모든 사람에게 기회를 주진 않을 텐데요.


면접까지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기회를 줘요. 이메일로 이력서를 받아 보면, 대략 이 정도 이력을 가지고는 할 수 있겠다고 감이 오잖아요. 면접을 보러 가면 스무 명씩 와서 앉아 있어요. 계속 밖에서 허드렛일을 하다가 못 버티면 나가고. 버티고 들어오면 윗 단계의 허드렛일을 해요. 주방에서 25명이 음식을 만들고 있으면, 15명은 허드렛일을 하는 사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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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자와 요리사가 직접 만날 필요 있다


앞으로 요리학교를 만들고 싶다고 했는데, 신입생 면접을 볼 때 어떤 질문을 하고 싶나요?


글쎄요. 요리를 배우는 사람에게 왜 질문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네요. 그런 거 물어볼 필요 없을 것 같아요. 그만큼 생각을 갖고 요리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어차피 요리를 못하는 사람은 알아서 떨어져 나가요. 아무 생각 없이 배우러 왔다가 그 안에서 아이디어를 얻어서 더 좋은 요리를 할 수도 있고요. 저도 처음부터 무조건 해외로 나가겠다고 생각한 게 아니에요. 주변 사람들을 보고 경험을 쌓고, 선배들이 나아가는 방향을 보고 꿈을 키운 거예요. 요리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한테 굳이 쓸데없는 질문을 하고 싶진 않아요. 저는 요리학교를 만들게 되면 단순히 기술을 가르치는 학교가 아니라, 뭔가 꿈을 키울 수 있고 그 사람만이 갖고 있는 창의적인 생각을 열어줄 수 있는 학교를 만들고 싶어요.

 

조언을 한다면.


요리사가 정말 힘든 직업이라는 건 말해주고 싶어요. 절대 화려한 직업이 아니에요. 되게 폐쇄적이고 편협하고 살벌한 군대 같은 집단이에요. 호텔하고는 달라요. UDT라고 보면 돼요. 하나가 되지 못하면 나가야 해요. 상하관계가 절대적으로 지켜져야 하는 곳이에요.

 

벤처농업대도 다니는 중이시죠?


올해부터 다니기 시작했어요. 껍질째 먹는 수박이 나온 거, 아세요? 풋콩인데, 콩비린내가 나지 않는 콩도 있어요. 요리사들의 숙제는 이런 재료들을 어떻게 가장 온전한 상태로 식탁에 올릴 수 있느냐예요. 최상의 맛을 어떻게 접시에 담을까. 그걸 아는 사람이 요리를 잘하는 사람이에요. 저는 앞으로 농작물 자체를 키울 건데, 더 깊게는 맨땅에서 재료들을 키워내는 것도 일종의 요리라고 생각해요. 자연과 싸워가면서 얻는 거잖아요. 이 학교에 다니면서 알게 된 게, 요리사와 생산자가 직접 대화를 해본 적이 없대요. 여기는 농장을 직접 소유하는 경영자만 올 수 있어요. 생산자들과 요리사가 직접 대화를 나누니까 할 일이 무궁무진해요. 생산자는 보통 유통자들에게 필요한 재료를 물어보고, 유통하는 사람들은 핸들링 하기 좋은 식재료만 이야기하거든요. 하지만 생산자와 요리사가 직접 소통하면 다양하게 식재료를 쓸 수 있는 방법을 보여줄 수 있는 거예요. 다양한 재료가 나오면 특별한 요리법이 필요 없어요.

 

힘들 때 생각나는 힐링 푸드가 있나요.


글쎄요. 음식만 먹는다고 힐링이 될까요? 그 음식을 먹은 시간이 아름다웠던 거지, 음식으로만 힐링이 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주변환경이 따라가줘야 하는 거죠.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고 환경 만큼 중요한 게 있을까 싶어요. 배 위에서 술 마셔 보신 적 있나요? 배 위에서 술을 마시면 안 취해요. 바닷바람을 맞으니까 뭘 먹어도 맛있어요. 전복이 얼마나 빨리 가는 줄 알아요? 사람들은 전복이 안 움직인다고 생각하는데 기어가는 속도가 꽤 빨라요. 배에서만 전복의 속도를 느낄 수 있어요. 배 위에서 먹는 전복이랑 노량진 전복은 달라요. 식감도 다르고. 그만큼 먹는 환경이 중요해요. 전복을 먹었다고 그 때의 전복을 느낄 순 없죠. 누구랑 먹느냐도 중요하고.

 

강레오 셰프와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글쎄요. 책을 통해 하고 싶은 이야기는 대부분 한 것 같은데. 저는 빨리 무언가를 이루려고 한 적이 없어요. 성공했다고 생각한 적도 없고요. 한 50년 정도 해봐야 요리에 대해 알 것 같다고 했는데. 지금 22년 했거든요. 저도 반을 더 해야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요리를 깊은 학문으로 보는데. 저는 요리로나, 인간적으로나 평생 더 완벽해지기 위해서 노력하려는 사람이에요. 『날, 자꾸만 무뎌지는 나를 위해』가 저한테 기록이 되는 건 맞는데, 독자 여러분들은 어떻게 보실지 모르겠네요. (웃음).

 

좋은 요리책이란.


영감을 많이 주는 요리책이 좋겠죠. 레시피 책은 잘 안 봐요. 요리사들의 이야기가 많이 담긴 책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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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자꾸만 무뎌지는 나를 위해 강레오 저 | 예담
그는 그 누구보다 자기 스스로에게 가장 날선 원칙과 기준을 적용한다. 자신이 꿈꾸는 확실한 미래를 갖고 있는, 그 삶을 위해 하루하루 뜨거운 날을 세우며 사는 그가, 자신이 진정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찾지 못한 채 오늘도 어딘가에서 헤매고 있는 이들에게 묻는다. “대단하지는 않지만 유일하게 좋은 것. 당신은 그것을 위해 살고 있습니까? 당신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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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이보영 “어떤 엄마가 될까, 고민하게 만든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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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많이 읽기로 소문난 배우, 이보영이 첫 에세이 『사랑의 시간들』을 펴냈다. 이보영은 2013년 방송된 KBS 토크쇼 <달빛 프린스>에 출연해 프랑수아 를로르의 『꾸뻬 씨의 행복여행』을 소개했고, ‘꾸뻬’ 시리즈를 베스트셀러로 올려놨다. 예상외의 반응에 크게 놀랐던 이보영은 덕분에 좋은 책을 알게 됐다는 팬들의 이야기에 내심 뿌듯해했다.

 

『사랑의 시간들』은 이보영이 오랫동안 준비한 책이다. 삶에 위로가 되고 깨달음을 줬던 소중한 책 23권을 신중히 골랐다. 『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내 슬픈 창녀들의 추억』,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등 대부분 두 번 이상 읽었던 책들을 소개했다. 책에 실린 사진은 실제 이보영의 서재에서 찍었다. 책을 사랑하는 이보영답게 서재, 거실, 침대 맡 등 집안 곳곳에는 항상 책으로 가득하다. 한가할 때면 서점을 자주 찾는 이보영. 좋아하는 작가의 책들을 두 손 가득 들고 올 때, 그녀는 행복하다. 이보영은 지난 6월 13일, 예쁜 딸을 출산했다. 예정일보다 조금 일찍 태어난 딸 덕분에 산후조리원에서 인터뷰 답변지를 보내 왔다. 『사랑의 시간들』을 읽으면 이보영이 왜 훌륭한 연기를 할 수 있는지, 조금은 눈치챌 수 있다.

 

내가 어떤 상황에서 어느 나이에 읽느냐에 따라 이해하는 폭이 달라진다는 것은 책이 지닌 신비로움 중 하나이다. 몇 년 전부터 나는 어릴 때 읽었던 고전을 다시 읽는다. 의무감으로 읽었던 그때와는 울림의 크기 자체가 다르다. 마치 다른 책을 새롭게 읽고 있는 것만 같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다르기에 같은 내용도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인생을 조금이라도 맛본 후에야 이해할 수 있는 책들을 그때 뭘 안다고 끌어안고 있었을까. 한 번 읽은 책을 다시 읽는 일은 뜻밖에 찾아온 흥미로운 여행과도 같다. (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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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하는 출판사의 책들을 선택하는 편이에요


책을 쓰기까지 굉장히 망설였다고 들었습니다. 완성된 책을 봤을 때는 어떠셨나요?


먼저 들었던 생각은, 책을 쓰는 일은 굉장히 버거웠다는 거예요. 막상 제가 쓴 글들이 이렇게 책으로 만들어져 손에 쥐고 보니 말할 수 없이 뿌듯한 마음도 크지만, 한편으로는 이 책을 사람들이 읽을 생각을 하니 몸 둘 바를 모르겠어요.

 

『사랑의 시간들』이라는 제목은 어떻게 짓게 됐나요? 책을 읽은 시간들을 표현한 건가요.


책을 읽는 시간이 기쁨과 행복을 주는 사랑의 시간들이었다는 의미도 있고요. 또 소개한 책들이 제가 살면서 읽었던 수많은 책들 중에서도 특별히 저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거나 가슴을 울렸던 책들이었기에, 이렇게 제 감정을 담은 제목을 붙이게 되었어요.

 

23권의 책을 선택한 기준이 궁금합니다.


모두 저에게 깊은 여운을 준 책이에요. 저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하게끔 했고, 더 나아가서 제 삶의 태도까지 변화시켜주었던 고마운 책들이죠. 읽는 기쁨과 함께 성장의 계기를 준 책들인데, 사실 처음에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은 소개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원래 취지에는 맞았지만 억압당하는 여성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더버빌가의 테스』와 결이 비슷하기도 했고, 이미 스테디셀러들이 목록에 많이 있더라고요. 하지만 어느 날 뉴스에서 보도되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전쟁을 보며 다시 그 책을 생각하게 돼서 꼭 소개를 하고 싶었어요.

 

책을 쓰면서 자연스럽게 태교가 됐을 것 같은데요. 아이를 생각하면서 특히 더 좋았던 책은 무엇인가요?


아쉽게도 이 책의 원고는 임신 이전에 거의 완성한 상태라 태교 시기와 겹치진 않았어요. 그래도 책을 쓰면서 ‘미래에 나는 이런 부모가 되어야겠다’, ‘내 아이에겐 이렇게 해줘야지’라는 생각들은 했어요. 책 속에 소개되었던 『창가의 토토』, 『나의 라임오렌지나무』같은 책을 읽으면서는 특히 그런 생각을 많이 했었던 것 같아요. 『창가의 토토』를 처음 보았던 어린 시절에는 ‘책 속에서 토토를 보듬는 어른들처럼 나도 아이의 시선에서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가 되어야겠다’라고 다짐했어요. 충분히 그런 어른이 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기도 했고요. 하지만 시간이 흐른 후 어른이 된 저는 어렸을 때 그 마음은 사라지고 어느새 제 기준으로 아이를 판단하는 어른이 되어 있더라고요. 결혼으로 이사를 했을 때, 책장에서 『창가의 토토』를 다시 보았는데 어렸을 때 다짐했던 그 마음이 다시 새록새록 생각났어요. ‘좋은 엄마’가 되는 건 정말 힘들고 인내심이 필요한 일이라고 지레 겁먹고 있었던 마음이 사라지고 어린 시절의 결심을 되새기게 되었어요.   

 

책 속에 보인 책장이 꽤 크던데요.


결혼하고 이사를 하면서 정리를 했어요. 책을 꽂을 때는 크게 작가별로 분류해요. 혹은 수상작별, 출판사별로 나누어 정리해 놓기도 하고요. 특히 좋아하는 작가의 책과 국내작품과 해외작품 등으로 나누기도 해요.

 

전에 읽었던 작품이 좋으면 그 작가의 작품은 챙겨본다고 했는데, 책을 고르는 기준이 있나요?


가장 크게 영향을 주는 건 출판사인 것 같아요. 좋아하는 작가의 책이나, 좋은 책들이 많이 나오는 출판사를 신뢰하게 되더라고요. 또 신인작가의 책을 읽는 걸 좋아해서 새로 등단하는 작가들의 책을 찾아보기도 해요. 그래서 신춘문예 수상작들도 자주 보는 편이고요. 책 속에 소개된 책 중에는 2014년에 세계문학상을 받은 이동원 작가의 『살고 싶다』가 있네요. 한창 바쁠 때 이 책을 접했는데 빽빽한 스케줄 속에서도 이틀 만에 다 읽었어요. 작가의 따뜻한 마음이 담담한 문장에 배어 있어서 인상 깊었어요. 이동원 작가님의 다음 소설도 매우 기대하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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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기준을 세운 삶을 살아갔으면 해요


『창가의 토토』를 비롯해 좋은 책은 몇 번이고 다시 읽는 버릇이 있는 것 같던데요. 읽으면 읽을수록 더 새롭게 다가오는 책은 무엇인가요.


좋았던 작품을 여러 번 읽는 건, 좋은 책은 언제 읽어도 저에게 여러 감정을 느끼게 해줘서 그러는 것 같아요. 읽을 때마다 느끼는 점이 달라지기도 하고요. 특별히 『어린 왕자』는 읽을 때 마다 새롭게 다가오는 책이에요. 『어린 왕자』는 제가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느냐에 따라서 매번 다르게 읽히고 다른 깨달음을 줘요. 왜 힘든 건지 구체적으로 표현하기 힘들 때, 이 책을 읽으면 제 마음을 다독이는 기분이 들어요.

 

보통 사람들이 오히려 바쁠 때, 책을 더 읽고 싶다고들 하는데요.


저는 반대인 것 같아요. 촬영 때는, 촬영 생각만으로도 벅차서 오히려 바쁠 땐 책을 멀리하게 되는 것 같아요.

 

후배, 동료 배우들에게 ‘연기생활에 도움이 되는 책’을 추천해주신다면.


특별히 연기에 도움이 되는 책이라는 건 없는 것 같아요. 연기라는 게 워낙 다양한 상황과 다양한 인물을 그리는 일이다 보니, 다양한 경험을 하고, 다양한 책을 읽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마음을 이해해 보려고 하는 게 더 도움이 될 것 같아요. 2007년에 영화 <나는 행복합니다>를 찍었는데, 당시 제가 맡은 캐릭터를 표면적으로만 이해했거든요. 캐릭터가 이해되어야 연기를 할 수 있는데, ‘수경’이라는 캐릭터를 온전히 이해하기에는 제 삶의 깊이도 얕고 경험도 짧았었죠. 영화 촬영이 끝난 후 정유정 작가의『내 심장을 쏴라』를 읽었는데, 이 책을 영화를 찍기 전에 읽었더라면 어땠을까 많이 아쉬웠어요. 제가 이해하지 못했던 감정들의 구멍을 좀더 채울 수 있지 않았을까 싶었거든요.

 

이 책이 영화화가 된다면, 주인공을 하고 싶은 책이 있나요?


예전에 『화차』를 읽었을 때 그런 생각이 들었는데, 이미 영화화가 되어 아쉽네요. (웃음)

 

태교로 읽은 책이 있나요?


사실 제가 임신 중에 읽었던 책들이 재미 위주의 책들이어서, 태교를 위해 읽었다고 말씀 드리기 애매해요. 거의 미스터리, 추리물, 탐정물 같은 스피디한 작품들을 읽었어요. 책 읽는 동안의 재미를 느끼며 마음을 가볍게 했다고 할까요? 그것도 제 방식의 태교라면 태교였죠. (웃음)

 

『사랑의 시간들』을 특히 어떤 독자들이 읽으면 좋을까요?


사실, 책을 준비하면서 많은 고민을 했었어요. ‘과연 누가 내가 쓴 책을 읽게 될까’라는 생각들이요. 아마도 제 이야기가 담겨 있는 책들이니 팬 분들이 가장 많이 읽어주실 것 같고, 많이 좋아해주시지 않을까요? 바람이 있다면, 이 책에 소개된 책들은 제가 읽고 삶의 태도나 생각들에 좋은 영향을 주었던 책들이고, 힘들 때 위로가 되기도 하면서 성장할 수 있게 도와준 책들이니, 독자 분들도 저처럼 좋은 영향, 느낌을 받을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아요.

 

책을 많이 읽지 않는 시대입니다. 독서가로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요즘 서점가에 삶의 방향을 소개해주는 책이나, 실용서 위주의 책들이 많은데요. 그런 책들을 통해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려고 하기보다는, 마음의 여유를 갖고 다양한 분야의 여러 책들을 읽으면서 나만의 기준을 세운 삶을 살아갔으면 좋겠어요.


*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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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시간들이보영 저 | 예담
이 책에서 그녀는 자신의 서가에서 삶에 위로가 되고, 힘을 주고, 깨달음을 주었던 책들을 빼내어 그 책에 얽힌 이야기를 소개하고 있다. 귀한 책으로 세상을 밝혀주는 작가들의 밤을, 서재를, 책상을 상상하며 그녀가 쓴 책과 인생 이야기.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아름다운 배우 이보영의 또 다른 매력, 그녀를 더욱 돋보이고 아름답게 만들어주는 지혜를 들여다보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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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안주원 “구글러에서 주모로, 셰프로 부르진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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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경리단길에서 좀 더 깊숙이 들어가면 ‘보석길’이라는 예쁜 동네가 있다. 새로운 골목 문화를 만들어가는 그 곳에 ‘한국술집 안씨막걸리’가 있다. 갤러리인가? 카페인가? 착각하게 만드는 이 곳은 요리사 안주원 씨가 ‘주모’를 맡고 있는 곳이다. 최근 『구글보다 요리였어』를 펴내자 사람들이 그녀를 신기하게 보고 있다. 왜 신의 직장인 구글에서 나와 혹독한 주방을 선택했는지, 지금은 후회하고 있지 않은지, 자꾸만 곁눈질을 한다.

 

『구글보다 요리였어』의 저자 안주원은 중학교 2학년 때 미국 유학길에 올라 10년 가까이 캘리포니아, 로드아일랜드, 뉴욕 등지를 오가며 다양한 경험을 했다. 2007년 코넬대학교를 졸업하고 귀국해 구글코리아에 입사했다가 2년 6개월 만에 사표를 썼다. 수 차례의 딴짓 끝에 요리를 해야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이다. 복지 혜택이 좋기로 유명한 글로벌 IT기업 구글을 떠난다고 하자, 주변 사람들은 수근거렸다. “돈이 얼마나 많으면 신부수업을 받으러 외국 요리학교에 입학해?” 오랜 갈등 끝에 결정한 선택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이야기는 흘려 보낼 수 있었다. 미국 존슨앤웨일즈의 조리 프로그램을 이수하고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미슐랭 원스타 레스토랑 SPQR에서 인턴과정을 거쳤다. 물론 한국 영어카페에서 커피도 만들고 베이글도 구웠다. 서울 정식당에서 일하다 진짜 만들고 싶은 한국 음식을 소개하기 위해 8개월 전, ‘한국술집 안씨막걸리’에 주모로 취직했다.

 

안씨막걸리에서는 콩을 갈아 두부도 만들고, 김치도 직접 담근다. 막걸리, 계란 등 각종 식재료들은 모두 최상품으로 사용한다. 가격이 비싼 재료가 최상품이 아니다. 정직하게 키우고 자란 것이 최상품이다. 한 때는 유학생, 취업준비생, 구글러, 무급 인턴 요리사였던 안주원 씨를 한국술집 안씨막걸리에서 만났다.

 

 

신의 직장? 구글도 회사다


『구글보다 요리였어』, 제목이 독자들을 확 당깁니다. 직접 지은 제목인가요?


출판사의 의견이었어요. 구글이라는 걸, 내세우지 않을 수 없다는 건 알았는데. 그동안 구글이라는 타이틀을 벗으려고 노력했던 게 다 물거품이 되는 건가 싶더라고요. 사실 하고 싶은 제목이 딱히 없어서 힘들었어요. 만약 뭔가가 있었다면 출판사에게 딴지를 걸면서 제안했을 텐데. 이게 순수문학도 아니고 그렇다고 살랑살랑한 감성 에세이도 아니고, 하고 싶은 일을 찾았다는 이야기니까, 그냥 가야겠다고 생각했죠.

 

현재 이태원에 있는 ‘한국술집 안씨막걸리’에서 일하고 있는데, 식당 이야기는 전혀 안 나오더라고요.


만약 안씨막걸리에서 2, 3년간 일을 하고 있었으면 자연스럽게 책에 녹아졌을 텐데 여기 온지가 이제 4달이 됐거든요. 제 이야기를 하고자 했으니까 어쩔 수 없이 코넬, 구글, 정식당 이야기가 들어갔지만, 사실 하고 싶은 건 그 안에 있는 내면적인 이야기였어요. 저는 20대 때 그런 불만이 되게 많았거든요. 책에도 썼지만 ‘구글러’라고 하면 저에 대해서는 아무 관심도 없는 거예요. 단지 구글에 다니는 사람일 뿐인 거죠.

 

구글러이기 때문에 부러움의 대상이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했겠네요.


“쟤 구글러래”라고 이름이 붙어버리면 끝이거든요. 그래서 일부러 정말 솔직하게 다 썼어요.

 

무척 적나라하게 써서 놀랐어요. 구글의 현실을 볼 수 있었는데, 구글도 회사는 회사더군요.


그렇죠. 똑같은 게 많죠. 책을 쓰는데 8개월이 걸렸는데 구글 부분만 쓰는데 3개월이 걸렸어요. 너무 어려운 거예요. 제 이야기를 쓰고 싶으니까 당연히 구글 이야기가 들어가야 하는데 조심스러웠죠. 회사에 누가 되고 싶진 않으니까요. 저라는 사람이 그 안에 들어가서 겪은 갈등을 얘기하려고 쓴 건데, 핵심이 다르게 전달될 까봐 걱정도 됐고요. 쓰기가 참 어려웠는데 본질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구글 부분을 되게 재밌게 읽으시더라고요. 분명 구글이 다른 회사들에 비해 굉장히 장점이 많은데, 그만큼 되게 업무 성과를 빨리 빨리 내야 하는 것도 있고요. 자유로운 만큼 또 해야 할 일도 있는 거죠.

 

구글코리아에 입사하고 벌어진 일이나 존슨앤웨일즈에서 요리 공부를 한 에피소드는 정말 생생하게 느껴졌어요. 칙릿영화를 보는 것 같기도 했고. 사진도 직접 찍었던데요.


요리 부분은 워낙 강렬한 기억들이 많았고 블로그를 계속 해오면서 기록을 해왔으니까요. 제가 정말 좋아하고 중요한 일이다 보니까 기록을 남기고 싶었어요. 구글 이야기는 지메일을 다 샅샅이 찾아보면서 기억을 되살리니까 생각이 나더라고요. (웃음) 사진도 제가 한동안 카메라 덕후였는데, 그 때는 정말 사진 찍고 블로그를 하는 게 낙이었어요.

 

안씨막걸리에서 ‘주모’ 역할을 하신다고요. 요즘은 음식점만 차리면 모두들 자칭 타칭 ‘셰프’라고 부르는데요.


제가 셰프라는 단어에 알러지가 있어요. 너무 남용되고 있는 것 같아요. 사실 요리사가 셰프인 거고 셰프가 요리사일 수 도 있지만, 어원을 따져보면 외국에서 온 거잖아요. 셰프라는 타이틀을 달려면 정말 조리사로서 오랫동안 열심히 일해야 하는데, 요즘은 요리만 하면 다들 셰프라고 해요. 그래서 저는 입버릇처럼 “나는 요리사다. 주모다”라고 말하고 다녀요.

 

미술랭 원스타 레스토랑 SPQR에서 인턴과정을 거치고, 서울의 정식당에서도 일했는데요. ‘한국술집 안씨막걸리’에서는 어떻게 일하게 되신 건가요?


안씨막걸리는 안상현 씨가 사업자를 낸지 1년이 넘은 가게인데요. 인테리어를 끝낸 건 8개월 정도 됐어요. ‘끼니’라는 수업을 같이 듣다가 만나게 됐는데, 음식을 바라보는 시각이 저랑 되게 비슷했어요. 마침 저도 정식당을 나왔던 때라 요리사로서 어떻게 생계를 유지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거든요. 아시겠지만 요리사가 박봉이잖아요. 돈도 좀 벌어야 하는데, 제 사업을 하기엔 아직 모자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던 때라 타이밍이 잘 맞았죠. 처음에는 저도 잘할 수 있을지 되게 걱정됐는데, 저를 무조건 믿어줬어요.

 

『구글보다 요리였어』덕분에 손님이 좀 늘었겠어요.


기사가 조금 나가니까 연령층이 좀 넓어졌어요. 원래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 손님들이 많았는데, 대학생들이나 어르신 분들도 종종 오세요. 제가 일을 해서 돈을 벌어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니 생계형 요리사이긴 한데, 돈을 벌기 위해 타협을 해서 트렌디한 음식을 만들고 싶진 않아요. 제 꿈은 신념을 갖고 맛있는 한국 음식을 만드는 거예요. 한국적인 멋, 한국적인 맛이 뭘까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해요. 트렌디하고 아기자기하고 예쁘고 그런 음식이 아니라, 정말 무엇을 알리고 싶은지에 대해 생각해요. 예를 들어 저희 가게에서는 방짜수저도 하나에 10만 원짜리에요. 손으로 두드려 만든 거거든요. 가게에서 쓰기엔 정말 비싼 제품이지만 손님들이 또 그걸 알아보시더라고요. 이걸 모두 쓰시라는 게 아니라, 이런 것도 있다는 거예요. 약간 한가한 시간에 음식에 관심이 많은 손님이 오시면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해드려요.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나요?


제가 오리 육수를 내서 수제비탕을 끓여드리는데, 어떤 젊은 손님이 친구들이랑 와서 술을 먹다가 ‘엄마랑 먹고 싶은 맛’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때 ‘아 내가 드디어 이걸 달성했구나’ 싶었어요. 저는 누구랑 와도 맛있는 음식을 하고 싶거든요. 그게 큰 응원이 됐고, 제 진짜 VIP 손님은 2살짜리 아기에요. 병윤이. (웃음) 가끔 오시는 구글러 부부의 아들인데, 평소에 외식을 잘 못하니까 아이가 여기에 와서 과식을 한 거예요. 제 음식을 엄청 맛있게 먹더라고요. 안씨막걸리에서는 두부랑 김치를 직접 담그는데, 원래 양념을 적게 하기도 하지만 아이가 김치를 그렇게 잘 먹더라고요. 메뉴 두 개를 시켰다가 아이가 잘 먹으니까, 부모가 하나를 더 시켰어요. 그랬더니 아이가 두 팔을 들고 만세를 부르는 거예요. 애기들은 거짓말을 못하잖아요. 정말 양손으로 두부를 먹더라고요. 그때 정말 감동했어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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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만 하던 고상한 누나가 얼마나 버티겠어?


요즘은 어떤 고민을 많이 하나요.

 

진부한 말이지만, 할머니 세대가 돌아가시면 이제 저희 세대는 회사에서 만든 장을 먹어야 되는 거잖아요. 저는 맛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사람이 있는 음식이 정말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요. 누구네 김치, 누구네 장. 이런 게 사실은 정말 훌륭한 음식 문화 아닐까 싶어요. 그래야 맛있는 패스트 푸드도 나올 수 있는 거잖아요. 요즘 한국은 뿌리는 점점 약해지고 거품은 많아져서 화려해지는 느낌만 들어요. 물론 저도 요리 공부를 할 때 그런 면이 없진 않았는데, 꼭 그래야만 요리를 오래할 수 있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자꾸 화려하고 새로운 걸 찾으려고 하는데, 옛날에 계속 해오던 것에서도 답이 있다고 봐요.

 

한식에 대한 열망이 대단해요. 미국에서 10년 이상 살아서 더 그리웠던 걸까요.


다양한 음식을 접했지만, 할머니의 북한식 순대, 엄마의 시원한 배추김치가 전해주는 마음의 위로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었어요. 어렸을 때 먹고 자란 음식에 가족이라는 정서가 얽혀 있어서 그런지, 제 생각과 감성을 풀어낼 수 있는 음식은 한식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요리를 하면서부터는 한국 음식이 그냥 찌개에 구닥다리로 치부되는 게 너무 싫더라고요. 한국에서 한국 사람으로서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는 음식은 결국 한국 음식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다들 너무 새로운 것, 유행하는 것에만 치중하는 모습을 볼 때는 아쉬워요. 외롭기도 하고요. 분명 저 같은 생각을 하는 요리사들도 분명 있겠죠. 책을 내고 생긴 소망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요리사들과 함께 장도 담그고 여행도 하면서 한국 전통음식을 잊지 않는 거예요. 이탈리아의 햄과 치즈가 몇 백 년 동안 맥을 이어오면서 칭송을 받는 것처럼, 우리나라 음식도 인정 받았으면 좋겠어요. 안씨막걸리에 오면서부터는 정말 제가 하고 싶었던 걸 하나하나 펼쳐나가는 것 같아서 정말 행복하죠.

 

요즘 훈남 셰프가 대세잖아요. 조금 잘생기고 언론에 노출되면 금방 스타가 되는데요. 이런 분위기 때문에 진짜 요리를 하는 요리사들이 오히려 빛을 못 보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해요. 요리라는 게 정말 제대로 시작하면 힘들잖아요. 어땠나요?


좋아서 시작했고 구글을 관두고 요리를 택한 건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지만. 힘들긴 했어요. 여전히 요리가 좋지만 그게 현실이 되고 일상이 됐을 때, 견뎌야 하는 것들이 있잖아요. 예를 들어 페이스북을 보고 있으면 제 친구들은 다 예쁜 옷 입고 결혼도 하고, 이제 좀 연차가 돼서 돈도 좀 버니까 여행도 다니고 그러거든요. 그런데 저는 추리닝 입고 출근하고 있으니까요. 대부분 요리사들이 조리대를 나와서 쭉 가는 경우가 많잖아요. 저는 늦게 시작한 타입이니까 처음에 이방인 보듯이 많이 했죠. 공부만 하던 고상한 누나가 얼마나 버티겠어? 그런 시선도 많았고요. 고시원에서 지내면서 일할 때는 정말 제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어요. 월급도 박봉이니까 돈을 쓸 수도 없고. 예전에 구글에 다닐 때는 핫한 레스토랑도 가고 정식당에 손님으로도 갔는데, 요리를 하면서부터는 컵라면 먹으면서 일했으니까요. 그걸 견디는 게 제일 힘들었어요.

 

구글에서 일이 맞지 않아 갈등했을 때보다 더 힘들었나요?


그 때는 정신적인 갈등만 있었던 것 같아요. 요리를 시작하면서부터는 육체적으로도 힘드니까 뭔가 되게 서럽고. 후회는 안 했지만, 그동안 누렸던 걸 아직 못 버렸던 거죠. 내가 20년 동안 치열하게 공부하면서 미국 생활을 버티고 구글에 들어갔으니까. 그렇게까지 했는데 주방에서 서러움을 겪고 있다는 게 힘들었던 것 같아요. 다 못 비워냈던 거죠. 막 행주 빨다가 너무 서러워서 울고 그랬어요.

 

방송계도 그렇고 외식계도 그렇고 ‘열정 페이’라고들 하잖아요.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박봉을 견뎌야 한다는 걸, 현실로 맞닥뜨리면 열정만으로 이겨내긴 어렵죠.


외국도 그렇거든요. 제가 처음에 요리를 한다고 하니까, 다들 호텔 식당에서 월급 500. 600만 원 받는다고 생각한 사람들이 되게 많았어요. 깜짝 놀랐어요.

 

좋아하는 일과 내가 할 수 있는 일, 그럭저럭 버틸 수 있는 일 사이에서 고민하는 젊은 사람들이 많은데요.


생각만 한다고 답이 나오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다들 처음에는 부럽다고 하세요. 어떻게 찾았냐고. 그런데 끊임 없이 자기를 관찰해야 하거든요. 막연히 책상머리에 앉아서 ‘난 이 직업이 안 맞는데, 뭐할까?’ 생각만 하다 보면 스트레스만 늘어요. 자꾸만 부딪혀 보면서 ‘아 그럼 나는 이런 게 더 잘 맞나?’ 생각하면서 자꾸 고쳐 나가야죠.

 

남의 시선을 생각하다 보면, 자기 판단이 어렵게 돼요.


사실 그래요. 저는 성향상 원하는 걸 꼭 해야 하는 성격이에요. 제가 디자인을 못한 게, 저는 피드백이 빨리 빨리 오는 프로젝트를 해야 하거든요. 열정과 그때 그때의 집중은 굉장히 잘하는데 마라톤은 잘 못 뛰는 거죠. 그런데 디자인 프로젝트는 3,4년짜리도 있으니까 그걸 못 버틴 거예요. 저는 한 달도 힘들어요. 요리가 제게 맞는 게, 몇 분 만에 그 날 안에 나오잖아요.

 

고추장, 된장 같은 건 더 긴 시간이 필요한데요? (웃음)


아, 그래도 요리니까. 하는 재미가 있으니까요. (웃음) 정말 딴짓을 많이 해보고 알게 된 거에요. 복합적으로 쌓여서 요리를 선택하게 된 건데, 게으름을 피우지 말고 본인에 대해 더 많이 부딪혀 봐야 알게 돼요. 해봐야 안다고들 하잖아요. 컴퓨터 앞에 앉아서 검색만 하면서 ‘이런 직업이 맞을까?’ 생각하는 것과 현실에 나가보는 거랑은 정말 달라요. 저는 그렇다고 소위 안정적인 직업이라고 말하는 일을 선택하는 걸 틀렸다고 생각하지도 않거든요. 본인이 원하는 삶을 그려봤을 때 포기해야 하는 것도 있는 거잖아요. 저도 요리하면서 포기한 거 많아요. 대신 좋아하는 일을 택했을 때의 희열을 얻은 거죠. 포기하는 것 대신 얻는 것도 있는 거고요. 자신에 대한 고찰 없이 ‘아 그냥 안정적인 직업을 가져야 해. 근데 난 불행해’라고 생각하고 앉아있는 건 잘못된 거죠. 자신에게 뭐가 필요한지를 자꾸만 돌아보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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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속도가 느려질 때, 기다려 보자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에는 어떤 걸 가장 먼저 생각하나요?


어렸을 때는 욕심이 많아서 다 끌어안고 가다가 터지는 경우가 많았어요. 다 완벽해야 할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그래 버려도 좀 괜찮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에 내가 집중해서 잘할 수 있는 거라면 택해요. 그게 결국 내가 관심을 가장 많이 가질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정말 선택을 못할 것 같을 때는 그냥 기다려요. 기다리는 것도 미덕이 돼요. 그러다 보면 대부분 가닥이 잡히더라고요. 물론 아직도 잘 못하긴 해요. 책에도 썼지만, 삶의 속도가 느려질 때 그걸 잘 못 견뎠어요. 항상 뭔가 달리고 있어야 했는데. 제 멘토 중의 한 분이 “그래도 괜찮다. 진정하고 물 한 잔 마시고, 삶을 제3자로 바라봐라. 그렇게 기다리면 또 괜찮아질 거야”라고 했어요.

 

명문대에 나온 딸이 신의 직장을 버리고 요리사를 선택했을 때, 부모님의 반응은 어땠나요.


걱정을 많이 하셨겠죠. 그런데 별 말 안 하고 “그냥 해봐라”라고 말씀하신 건, 제가 처음 미국에서 10년 유학하고 한국에 들어왔을 때 너무 우울해 한 걸 보셨거든요. 미국에서 취업을 못하고 들어오니까 유학 갔다 와서 퇴보한 것 같고. 정말 미국에서 성공하려고 적응하려고, 미친듯이 노력했거든요. 그랬는데도 미국에서 저를 받아주질 않더라고요. 문화가 다르니까. 쟤는 쿨하지 않고 재미 없는 한국 애. 그래서 한국 음악도 안 듣고 한국적인 걸 다 버려야 했어요. 그래서 대학교 때는 다들 저를 교포라고 오해했어요. 그런 상태에서 한국에 들어왔으니까, 다시 한국에 적응하기가 너무 싫었던 거죠. 다시 되돌려 놔야 하니까. 구글에 들어간 것도 약간 도피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내가 여기에 가면 다시 미국적인 사람이 될 수 있어, 하는. (웃음) 하지만 결국 한국에서 사는 거고 한국회사였으니까요.

 

유학은 왜 갔나요?


어렸을 때 추첨해서 학교를 들어가서 국립초등학교를 졸업했거든요. 아무래도 시설도 좋고 행사도 많고 그랬는데, 일반 중학교에 가니까 엄청 삭막한 거예요. 진짜 모래밭 운동장에 벽돌 건물 딱 하나 있고. 점점 예체능 과목도 빠지고. 그래서 엄마가 1년만 내보내야겠다고 생각하시고 무리해서 저를 유학을 보내셨어요. 근데 제가 좋아하니까 IMF가 터졌는데도 고생하면서 학비를 보내신 거예요. 엄마가 어릴 때 학습지 선생님이 숙제를 20장 내주고 가면, 3장 이상 못 풀게 하셨거든요. 얘가 집중할 수 있을 때까지만 하라고 선생님이랑 막 싸웠어요. 질리게 안 해주신 거, 그 부분에 늘 감사해요. 그래서 미국에서 더 열심히 해서 효도하고 좋은 대학 가야지, 하는 생각을 했는데 점수를 잘 받는다고 절대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게 아니잖아요.

 

20대 초반 젊은 사람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들어요?


얼마 전에 대학생 몇 명을 만났는데, “좋아하는 게 뭐니?”라고 물었더니 아무도 대답을 못하는 거예요. 되고 싶은 걸 말하라는 것도 아닌데. 좋아하는 게 뭔지 전혀 모르고 사니까 30,40대 때 약간 사춘기처럼 방황하는 게 아닐까 싶더라고요. 그게 되게 불행한 거 같아요. 다양한 사람들, 재밌는 사람들이 많아야 살기 좋은 문화가 될 것 같은데 말이에요.

 

학부모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저도 자식을 낳으면, ‘이 학원 보내야 하지 않나?’ 이런 고민을 하겠지만, 조금 용기를 내서 좀 재밌는 걸 시켜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지금은 그런 부모님들도 많이 있을 것 같은데요.

 

사실 ‘구글’이라는 타이틀이 없었다면 이 책이 크게 주목 받지는 못했을 텐데요.


맞아요. 구글 때문에 화제가 됐고 당연히 혜택을 보고 있긴 한데요.. 제가 구글을 ‘should’라고 표현했잖아요. 구글이 해야 할 것 같은 일을 상징한다면, 요리는 제가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이에요. 그렇게 생각하고 읽어봐 주시는 독자들이 많지만 어떤 분들은 아예 안 읽겠죠. 그냥 ‘과거 팔아서 음식 판다’고 생각하겠죠. 옛날에는 구글 나와서 요리학교 간다고 했을 때, “아 집에 돈이 많으니까 신부수업을 외국으로 간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웃음) 그때 ‘아 사람은 어떻게든 자기가 원하는 대로 받아들이는 구나’ 싶었죠.

 

최근에 안씨막걸리 페이스북에 들어갔는데 직원을 구하더라고요. 그런데 ‘동료를 구한다’고 표현한 게 인상적이었어요.


저희 대표가 그런 거에 굉장히 민감해요. 저도 이왕이면 좀 더 좋은 표현을 쓰는 게 맞다고 생각하고요. 보통 주방, 홀 이렇게들 말하는데, 저희는 객장이라는 표현을 써요. 한국적인 멋을 찾아가는 사람들이니까 이왕이면 한국어를 많이 쓰자, 그런 자잘한 것부터 시작할 수 있잖아요.

 

『구글보다 요리였어』를 읽고 취업 준비생이나 대학생은 물론, 직장인, 학부모들이 읽어도 재밌겠다 싶었어요. 좋을 것 같고.

 

책을 읽고 꿈을 찾고 그런 것도 좋지만, 음식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는 기회가 되면 좋겠어요. 우리가 맨날 먹는 거잖아요. 음식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한 번 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해요. 어떻게 보면 가장 큰 바람인 것 같아요.

 

어렵게 원하는 길을 찾게 됐지만, 30대에 꿈을 찾은 것도 정말 행운이잖아요. 지금 꾸는 꿈은 뭔가요?


더 많은 사람들이 집에서 밥 해먹는 거예요. 사실 직장인이나 맞벌이 부부들이 음식을 해먹는 게 얼마나 힘든지 잘 알거든요. 저도 자취를 오랫동안 해봤으니까요. 제가 외식업을 하고 있지만, 진짜 꿈은 집밥 먹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거예요. 저는 일요일 점심만큼은 엄마랑 동생이랑 꼭 집에서 밥을 먹어요. 가족들이 한 밥상에 둘러앉아서 밥을 먹는 게, 그 때는 투닥거리고 싸워도 가족끼리의 유대감을 유지시켜주는 되게 중요한 시간이거든요. 보통 딸이랑 아버지랑 얼마나 많은 대화를 하고 자랐겠어요. 저희 아버지도 대화를 잘하는 분이 아니었는데 음식을 좋아하는 편이셔서 제가 요리를 하게 됐을 때, 아빠에게 음식을 만들어주면서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됐어요. 아빠가 돌아가셨을 때 너무 힘들었지만, 아빠에게 맛있는 음식을 해드렸던 기억들 때문에 이겨낼 수 있었어요.

 

후속작은 요리책일 것 같은데요.


만약 쓰게 된다면 새로운 느낌의 한식을 소개하고 싶어요. 저희 가게에서는 마늘을 일주일에 한 열 개 정도만 쓰나? 갖은 양념을 안 써요. 식초도 조금, 참기름도 거의 안 쓰고. 맛간장 같은 걸 다양하게 내서 장아찌를 담그는 식이에요. 보통 한국 음식이 양념이 많아야 맛있다는 생각 때문에 어려워하잖아요. 나물 하나를 무쳐도 간장, 설탕, 파, 마늘, 고추, 이런 게 다 들어가야 하니까요. 양념이 없어도 맛있는 한식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소개해도 재밌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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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보다 요리였어안주원 저 | 브레인스토어(BRAINstore)
우리는 흔히 성공의 척도를 돈과 명예에 두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에 평범한 직장인들이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성공은 누구나 알 만한 명문대를 나와 좋은 회사에서 일하는 것이다. 그런 일반적인 기준에서 볼 때 이 책의 저자는 성공한 사람이었다. 열심히 공부해서 미국의 명문대를 졸업했고, ‘신의 직장’이라 불리는 구글에 들어갔으니 말이다. 하지만 저자는 모두가 말하는 ‘성공적인 삶’을 뒤로하고 어느 날 갑자기 혹독한 주방에서의 삶을 택한다.


[관련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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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 우리의 먹거리는 〈설국열차〉의 양갱
- 소이 “지금도 무언가를 버티고 있는 사람들에게”

- 두 번째 음식 시집 낸 한복선 미식 작가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지성 “아내 차유람, 좋은 일 하니까 보내주신 사람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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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이 삶을 변화시킨다고 말하면서 정작 자신의 삶은 변하지 않는 사람들. 말과 글로 그럴싸하게 사회를 이야기하면서 그와 닮은 부분 없는 삶을 사는 사람들. 많은 사람들이 살아내고 있는 치열한 삶, 피로한 생활을 알지 못하면서 그들을 섣불리 위로하는 사람들. 많이 있다. 많지만 사람들은 그들의 달콤한 글에 현혹되고 그들만의 인문학에 현혹된다. 조금이라도 삶이 나아질까 기대를 안고 애처롭게 매달려본다.


글의 무게감을 생각하는 사람은 자신의 삶이 먼저 변화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글을 읽는 사람들이 행여 자신의 삶을 들여다보았을 때 실망하는 일이 없도록 하려면 매순간 자신을 벼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글이 자신의 행동과 다른 부분을 가리키고 있지는 않은지 긴장하고, 꾸준히 각오를 새로이 할 것이다. 그래서 글보다 삶이 더 높은 곳에 다다랐을 때 그들을 우리는 ‘어른’이라고 부르게 되는 것이 아닐까.


『여자라면 힐러리처럼』, 『꿈꾸는 다락방』으로 자기계발서의 대표 저자로 이름을 알린 이지성. 작가는 이후 『리딩으로 리드하라』를 통해 인문 고전 읽기의 중요함을 말했고, 최근작 『생각하는 인문학』에서는 인문학이 어떻게 생각을 고양시키고 삶을 변화시키는지, 생각하는 힘을 가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짚어냈다.

 

위대한 작가들과 위대한 사상가들과 위대한 예술가들과 위대한 건축가들의 공통점은 자연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수시로 도시를 벗어나 자연 속으로 들어가라. 그리고 당신의 내면을 만나라. (중략) 그때 비로소 당신은 내면에 하늘과 대지, 산과 숲, 바다와 강을 담을 수 있다. 위대함의 시작, 당신이 위대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위대함은 자신의 내면에 충실하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91쪽)

 

작가는 무척 편안해보였다. 결혼을 앞둔 새신랑이었으니 세상 누구보다 행복한 순간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제 글은 계속 제 삶을 따라 가는 것”이라고 한 작가의 말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는데, 작가는 자신을 지지하는 독자들, 자신의 책을 읽고 삶이 바뀐 독자들을 직접 만나면서 자신이 쓰는 글에 대해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당연한 일이다. 글과 다른 삶은 거짓말이 아닌가. 때문에 작가는 말뿐이 아닌 삶, 실천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함께 저소득층 공부방 아이들에게 인문학 교육 봉사활동을 하고, 해외 빈민촌에 학교를 건립한다. 무엇보다 이런 활동들이 ‘재미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영혼의 즐거움’이라고 표현한 작가는 평생 이 일들을 잘 해나가고 싶다고 말한다. 그런 작가에게서 삶에 대한 강한 애정과 믿음을 보았다고 하면 혼자만의 착각일까. 판단은 여러분에게 맡긴다.

 

 

인문학에는 ‘사랑’이 빠져선 안 돼


‘생각하는 힘’에 대한 근거로 철학, 역사, 경제와 컴퓨터 산업의 발전사까지 다양한 사례를 다루고 있습니다. 방대한 영역을 다루면서 독자에게 꼭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무엇이었나요?


제대로 된 생각을 하면 좋겠다, 그 생각의 방향이 따뜻해지면 좋겠다는 정도였어요. 대답이 너무 짧은가요.(웃음)

 

리딩으로 리드하라에서도 그렇고, 이 책 역시 ‘사랑’을 많이 강조하셨거든요. 방금 말씀하신 ‘따뜻함’과 맥이 닿아있을 것 같아요. 작가에게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대표적으로 진시황은 정말 인문학을 사랑한 사람이에요. 한비자, 법가 사상을 기반으로 중국을 통일했죠. 진시황은 한비자와 한 번 만나서 대화하는 것이 소원이었다고 해요. 그것을 위해 전쟁을 일으킬 정도로 인문학에 깊이 빠진 사람이었어요. 문제는 이 사람의 인문학이 자신의 두뇌를 단련하는 정도에 그쳤던 거예요. 쉽게 말해 오늘날 월스트리트 사람들이겠죠. 그 사람들도 아이비리그 출신들이고, 인문학을 열심히 한 사람들이잖아요. 그 인문학에는 ‘사랑’이 빠져있었던 거예요. 사랑이라고 하면 저도 낯간지러운데요.(웃음) 남녀 간의 사랑을 뜻하는 게 아니고요. 인문학의 기본정신이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어떻게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것이잖아요. 인류 역사 속에서 인문학을 한 사람들의 흐름이기도 하고요. 그런 의미의 사랑이에요.

 

그러나 요즘 사회에서 ‘인문학’은 달리 소비되고 있어요.


물론 요즘 한국 사회에서 인문학이라고 하면 그런 것보다는 개인의 행복 쪽으로 많이 흘러가고 있죠. 그것도 중요하지만 큰 흐름을 놓고 봤을 때 생각해야 할 부분이 있어요. 저는 인문학, 역사를 공부하면서 이 개념을 깊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사랑이란 것을 적극적으로 실천하긴 어렵더라도 말이죠. 진시황이 천하통일의 꿈을 이뤘지만 결국 14년 만에 나라도 망하고, 자식들도 다 죽었던 것이 역사적 사실이잖아요. 인문학에 사랑이 빠져 있으면 그렇게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인문학 역시 도구잖아요. 칼일 수 있단 말이죠. 칼은 많은 사람을 배부르게 하는 요리의 도구도 될 수 있지만 다른 사람을 위협하고, 찌르는 용도가 될 수도 있어요. 조선시대를 봐도 탐관오리라고 하는 사람들 모두 인문학을 열심히 한 사람들이에요.(웃음) 어떻게 보면 인문학의 개념은 위험한 것일 수 있으니까 사랑이라는 개념을 좀 집어넣어야겠다고 생각한 거죠.

 

꾸준히 ‘사회 안의 나’를 생각하시는 거군요.


요즘 유행하는 말 있잖아요. 사회 구조에 대한 이야기요. 그런 말들은 당연한 것인데 왜 그렇게 이슈가 되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지만요. 인문학이라는 것은 요즘 유행하는 말로 하자면 ‘사회 참여’, 사회 구조를 변화시키는 일인 거죠. 자기계발도 당연히 그렇고요. 그런 책들의 저자 메시지는 모두 그곳을 향해 있어요. 상식이고 기본이죠. 그것이 대단한 것처럼 된 상황이 안타까워요. 그냥 조용히 하는 거니까요. 그렇게 생각하고 있고요.


사회 구조를 바꾸는 노력에 대해 그동안 책에서는 강하게 말한 적이 별로 없어요. 상식적인 부분인데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정치하시는 분들은 그걸 직업으로 하시는 분들인데 그분들이 잘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의 상황까지 오게 된 거잖아요. 그분들이 사회참여에 대해 말과 글로 크게 이야기하는 부분들이 너무 많으니까 저는 늘 고민을 했던 것 같아요. 나까지 말하고 글을 쓸 필요가 있을까 하고요. 진짜 사회참여란 무엇일까 생각했고, 실천하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렸어요. 그래서 5년 전부터 두 가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국내 저소득층 공부방 아이들에게 인문학 교육을 하고 있고요. 해외 빈민촌에 학교를 짓고 있어요. 앞으로도 계속 할 거고요, 더 잘하기 위해 ‘차이 에듀케이션’을 세워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어요.

 

말과 글보다는 실천이라는 말씀이 와 닿아요.


차이 에듀케이션을 처음 시작했던 것도 저와 인문 교사 활동을 처음부터 했던 자원봉사자 두 분과 함께였어요. 두 분 모두 재능기부로 하고 계시고요. 제가 저소득층 공부방과 같은 곳에 관심을 이렇게 갖는 이유가 있어요. 이런 말은 조심스럽지만 강력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들 중 어린 시절 가정환경이 좋지 않거나 소외 되었던 경우가 많이 있다고 해요. 봉사활동을 통해 우리가 그런 상황에 있는 아이들의 삶을 바꿔주는 것, 그것이 진정한 사회참여라고 생각했어요. 그것이야말로 미래를 바꾸고, 사회구조를 바꾸는 일이라고요. 이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사회참여인 거죠. 이것만큼은 말과 글보다 실천으로 하고 싶었어요.

 

특별히 실천을 강조하시는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실천을 해야 결국 대중도 감동을 받고, 함께 하더라고요. 사람들은 말과 글로만 하는 것에 대한 피로감이 너무 많이 있어요. 그냥 꾸준히, 평생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드리면 많은 분들이 함께 하실 거라고 믿어요. 그렇게 되면 사회가 결국 바뀌는 게 아니겠는가, 그런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지난 5년 동안 이 일을 해왔지만 거의 알리지 않았거든요. 행여 순수성을 의심 받을 수도 있을까봐서요. 이번에 『생각하는 인문학』을 출간하면서 이제는 알려야 할 때라고 생각했어요. 이지성이란 작가가 그동안 전해왔던 자기계발, 인문학 메시지가 말과 글만이 아니라 현실에서 어떻게 구체화되었는가를 이야기하고, 많은 사람들과 함께 이 일을 끌고 나가야 할 때라는 판단을 내렸던 거죠. 그 때문에 책에도 과감히 쓰고, 요즘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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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뛰고 재미있는 일


베스트셀러 작가로 성공한 이후의 이러한 행보가 흥미롭습니다. 저소득층 공부방 봉사, 세계 빈민촌 학교 건립, 차이 에듀케이션 설립까지, 작가의 지향점이 궁금해요.


그냥 재미있는 걸 하자는 생각이에요. 유혹적인 제안도 많았지만 그런 것들은 거절해왔거든요. 차이 에듀케이션 운영도 힘들긴 하지만요. 가장 큰 기준이 그것 같아요. 대기업에서 돈을 많이 후원 받고, 많은 돈을 번다고 해도 재미가 없을 것 같더라고요. 저도 물론 돈을 좋아하지만요, 그러기엔 인생이 너무 짧다고 생각해요. 지금 하는 일들은 사실 늘 위기이고, 이게 또 재미있단 말이에요, 하루하루가.(웃음) 또 독자 분들이 변화되어 오셔서 봉사하시는 걸 보면 가슴이 뛰고 재미있어요. 그래서 하는 거예요. 거창한 건 없어요. 많은 걸 해봤는데 이게 제일 재미있어서 하고 있어요. 영혼의 즐거움이라고 할 수 있겠죠. 때문에 주변에도 말하곤 해요. 재미없으면 떠나라고요.


소크라테스가 인문학이란 결국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라고 했는데요. 아무리 제가 오래 산다고 해도 50년을 더 살긴 어렵겠죠. 지난 40년을 돌아봐도 금방 갔거든요. 그렇게 많은 고생을 하며 살아왔어도 진짜 하룻밤 같은데, 이후 40년 역시도 하룻밤 같겠죠. 그러니 치열하게 즐거움을 추구하면서 살자, 그래야 후회하지 않겠다, 그 생각이 가장 큰 것 같아요. 그 다음에 봉사에 대한 어떤 의무감, 작가로서의 사회적 책임 이런 게 있을 수 있겠죠. 하지만 그것들은 다 부록이에요. 그것만 가지고 어떻게 살아요.(웃음) 저는 자선사업가가 아니라 다만 즐겁고, 함께 하시는 분들도 즐겁다고 하니까 이 일을 하는 거예요.

 

재미있으면서도 가치 있는 일, 혹은 가치 있는 일에 재미를 갖는 것, 참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논어』‘학이편’에도 그런 말이 있잖아요. 學而時習之, 不亦說乎(학이시습지, 불역열호)라고 해서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라고요. 여기서 ‘배움’이 ‘修身齊家治國平天下(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배우는 거고, 그것을 실천하라는 건데요. 그것처럼 제가 즐겁고 주변 분들이 즐거워졌다면 시간이 지났을 때도 더 많은 분들이 즐거워질 수 있을 거예요. 한국 사회의 즐거움이란 게 술 마시는 것, 영화 보는 것, 말초적이고 소비적인 것들, 영혼을 병들게 하는 즐거움인데요. 보여주고 싶어요. 이런 것들이 진정한 인생의 즐거움일 수 있다는 것을 말이에요. 즐거움에 관한 새로운 문화가 구축이 되면 좋겠어요.

 

‘자기계발 같은 건 하지 말라느니 인문학은 경제를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느니 하는 말은 제발 삼갔으면’(75쪽)이라고 해 강하게 의사표현을 하셨는데요. 그간 받아온 편견에 대해서도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지 궁금해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예요. 일단 그건 누군가를 비난하는 거잖아요. 그런 나쁜 세력들이 있어요. 어떤 것이 이슈가 되면 다함께 선한 쪽으로 힘을 모아서 나아가야 하는데, 그 안에 자기 집단의 사익을 집어넣어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인문학은 무조건 이래야 한다며 비난하는 사람들은 그 안에 그 사람들의 사익이 숨어있다고 봐요. 사익이 없다면 함부로 비난할 수 없거든요. 사회구조 이야기할 때도 그렇잖아요. 진짜 진심으로 사회구조를 바꾸고, 사회참여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사람들을 분열시키고 거기서 이익을 취하는 무리들이 있다고 봐요. 그들이 너무 싫고, 그들의 말도 안 되는 거짓된 논리에 선량한 사람들이 희생당하는 게 안타까운 거죠.


이런 얘기를 한 궁극적인 이유는 그런 논리에 희생당하는 사람들을 봤기 때문이에요. 정의를 앞세우지만 사실은 사익추구가 목적인 집단에 가서 오히려 수탈을 당하고, 철저하게 이용만 당하고, 버림받는 것을 많이 봤거든요. 말이 안 되는 거죠. 자기계발을 하면서 자기만 계발을 하고, 자기만 잘 먹고 잘 산다면 그게 무슨 자기계발이에요? 그건 거짓말이에요. 반대로 사회 이야기를 하시는 분들 중 자기계발을 비난하는 분들이 일부 있는데요. 정말 좋은 사회는 자기를 철저하게 존중해주는 사회지, 자기를 없애야 하고 자기계발은 나쁘다고 하는 게 아니에요. 개인의 꿈을 짓밟고 무시하는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너무 싫어요.

 

그 역시 실천이 바탕이 되지 않은, 말과 글뿐인 삶에 대한 경계네요.


진짜 사회참여를 하시고 사회구조를 바꾸려고 노력하는 분들은 또 그렇게 안 하시더라고요. 오히려 더 존중하시고요. 정말 인문학 열심히 하시고 사회참여 열심히 하시는 분들은 제게도 정말 지지 많이 해주시고, 어떻게 하면 같이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시기도 해요. 그런 분들 정말 많으시거든요. 그런 분들을 놓고 보니까 새로운 프리즘이 보이더라고요. 자기계발을 무조건 비난하는 사람들이 잘못되었구나 생각하게 됐고요.


저는 링컨의 이 말을 정말 좋아해요. “나는 당신들의 말과 글을 보지 않는다. 당신들의 삶을 본다.”는 말이에요. 삶은 거짓말을 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말과 글은 가장 정의롭지만 삶을 보니 거짓말이라고 한 링컨의 비판이 그 말에 나오거든요. 저도 그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고 말과 글뿐이라면 한 번 경계를 하게 되는 거죠. 
 


독자가 작가를 섬기면 안 돼


글로 현혹하는 경우가 정말 많아요. 그래서 사람들도 그 글이 낀 색안경을 같이 끼게 되기도 하고요. 반복적으로 ‘인문학은 저자가 아닌 나 자신을 위해 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이유도 그 때문이죠?


그럼요.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저자들은 독자를 섬기기 위해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독자가 작가를 섬기면 안 되거든요. 다른 작가 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지만요. 저는 늘 독자를 섬기는 작가라고 생각하고, 글로 거창하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대중적인 언어로 대중을 섬기는 방법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사람이에요. 때문에 이분들이 책을 읽은 후 제 삶까지 들여다봤을 때 실망하지 않으시도록 하려고 노력해요. 저는 그렇게 살아왔고, 평생 대중을 섬기는 작가로 살고 싶어요. 제 책을 읽고 감동 받으시는 분들이 저보다 더 소중한 분들이라고 생각하고요. 매일 각오를 다시 하고 있어요. 건방져지지 말아야겠다, 가르치려고 하지 않고 철저하게 섬기는 쪽으로 살자, 이것이 저의 큰 모토예요.

 

(전략)우리나라 10대들이 입시지옥으로 내몰리고, 20대들이 비정규직을 전전하고, 30대들이 출산을 기피하고, 40대들이 돌연사 하고, 50대들이 퇴직금을 날리고, 60대 이상의 노인 자살률이 OECD 최고를 기록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게 다 돈, 돈 때문이다. (75쪽)

 

이런 생각을 갖게 된 어떤 계기, 크게 도약한 순간이 있었던 건가요?


저는 그냥 좀 스타일이 달라요. 보통 우리나라에서 글 쓰시는 분들, 특히 비문학 쪽으로 글 쓰시는 분들은 대부분 자기 분야의 전문가예요. 쉽게 말해 우리 사회의 엘리트들이시죠. 상위 1% 분들이세요. 저는 정말 밑바닥에서 15년 간 무명작가 생활을 해왔고, 도시빈민 생활을 10년 넘게 했어요. 책을 통해 경제, 금융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요. 저는 부모님의 보증 빚 때문에 15년을 피눈물을 흘리면서 산 사람이기 때문에 정말 그분들과 삶의 차원이 완전히 달라요. 일반적으로 한국의 지식인이라고 하면 경제적으로도 일반 서민들에 비해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을 텐데 저는 15년을 빚 때문에 가슴 졸이며 너무나 비참하게 살아왔기 때문에 알거든요. 기본적으로 사람이 생활하는 데 필요한 돈이 없다는 게 어떤 것인지 말이에요. 가난이 어떻게 가정을 분열시키는지 곁에서 지켜봤어요. 인근 대형 교회에서 수도세와 전기세를 내주는 동네에서 10년을 살았으니까요. 거기서 서민들의 피눈물을 보면서 살았기 때문에 항상 경제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경제가 제대로 서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 되니까요. 그런데 이런 얘기를 한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을 보면 황당하죠. 빚 때문에 울어본 적 있는지, 10년씩 고통 받은 적 있는지, 가정이 뜯기는 경험을 한 적이 있는지 오히려 질문을 던지고 싶어요.


이게 제 삶이었기 때문에 제 글은 계속 그런 제 삶을 따라 가는 거예요. 그런 고통을 겪어보지 못한 분들에게는 제 글이 굉장히 당황스러웠겠죠. 무슨 작가가 그렇게 돈 얘기를 하냐는 말이 나오는데, 저는 제 삶이에요. 그것이 제 밑바탕에 깔려있다는 것이 대중들과 공감을 일으켜서 많은 분들이 제 책을 많이 사랑해주시는 게 아닌가 생각해요.

 

글이 삶을 따라간다고 하신 부분은 교육 문제를 지적한 대목에서도 함께 읽혀요. 우리 인문학 교육의 단절을 근현대사에서 찾으며 역사적 진단을 하셨는데요.


이것도 제가 교사생활을 해봤기 때문에 아는 거예요. 학교가 아이들을 다 로봇으로 만들고 있더라고요. 그나마 스스로 생각을 하는 아이의 생각마저 파괴시키고, 질문도 못하게 만들어요. 그렇다고 교사나 교육청을 탓하고 싶진 않아요. 그들도 피해자예요. 정말 아이를 잘 가르치고 싶어 학교에 갔더니 그 학교가 역사적으로 잘못 설계된 구조로 인해 철저하게 인간성을 말살시키고, 부품으로 찍어내는 공장이었던 거죠. 지금도 학생들이 하루에 한명 씩 자살하잖아요. 그런 교육 구조인데 이걸 바꾸지 않고서는 희망이 없다는 거예요.


인문학 하시는 지식인들이 교육에 관심을 많이 가지셨으면 좋겠어요. 시민, 사회를 바꿔야 한다고 말씀들 하시지만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부품처럼 찍혀서 사회에 나오는 이상 사회는 절대 안 바뀌거든요. 교육은 최우선으로 바꾸어야 할 문제예요. 저는 현장에서 이 사회 구조를 봤던 거예요. 왜 이 사회가 불합리할까, 학교에서부터 철저하게 구조화 되어 나가는구나, 그렇다면 학교를 바꿔야 한다, 이것이 깨달음이었고 그런 얘기를 책에 하게 된 거죠.

 

개인이 생각하는 힘을 갖게 되면 이러한 역사적 절벽들이 극복될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학교에서 부모님과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 선생님과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 친구를 어떻게 대할 것인가, 이런 교육을 받지 않잖아요. 그 친구들이 사회 나가서 어떻게 되나요. 세상과 단절이 되고, 인터넷만 하잖아요. 교육이 달라진다면 친구와 친해지느라 바쁘겠죠. 인터넷 할 시간이 없을 거예요.(웃음) 사람을 사귀는 법을 알게 되고, 사람을 사귀는 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간 상태로 사회 구성원이 되면 그 사회는 지금보다 아름다워지겠죠.

 

꿈에서나 가능할 것 같은 이야기네요. 꼭 이루어졌으면 좋겠다고 상상하는 꿈이요.


지인에게 독일 사회에 관한 얘기를 들었어요. 이민을 가서 중소도시 마을에 정착했는데 이삿짐을 푼 첫날 오후에 누가 찾아와서 보니까 마을 할머니였대요. 자기가 대학 교수 출신인데 와서 독일어를 가르쳐주겠다고요. 그렇게 세 번이나 마을 사람의 방문을 받았대요. 외국에 정착하느라 힘들 텐데 도와주겠다고요. 이미 그런 나라들이 많단 말이죠. 그곳은 교육이 다르죠. 가정교육이 다르고, 마을 공동체가 다르니까 그곳의 아이들에게도 자연스럽게 배우는 거죠. 우리는 그런 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으니까, 교육을 바꿔야 한다는 거예요. 우리가 경험한 교육은 친구를 적으로 만드는 교육, 돈이 많으면 이기는 교육이었죠. 돈을 많이 들여 족집게 과외를 받아 남들보다 더 좋은 대학을 간다, 이건 비겁한 거잖아요. 그렇지만 그런 걸 가르치는 거죠. 또 어떻게 합니까? 교사를 무시하게 만들어요. 학원 선생님을 더 존중하게 만들고요. 학원 선생님을 더 존중하는 이유가 뭐예요? 나를 더 좋은 대학에 보내준다는 거잖아요. 인격이 더 좋다거나 사회적으로 훌륭한 분이어서가 아니라 말이죠. 이 교육 구조는 인간을 병들게 하는, 영혼을 파괴하는 구조예요. 이걸 바꾸지 못하고 사회가 바뀌길 바라는 건 이해할 수 없다는 거예요. 뿌리를 바꾸지 않고 꽃 색깔만 바꿀 수는 없으니까요. 

 

‘조급하면 지게 된다’(200쪽)고 한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이야기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우리 사회는 늘 서두르고, 결과를 빨리 찾으려고 하잖아요.


해보자는 거예요. 최소한 10년 정도는 해보고, 바꾸려는 노력은 해보자고요. 결과에 집착하는 것도 학교 교육에서 나온 거예요. 조급한 결과로 평가받는 교육이었기 때문에요. 그래서 교육을 바꿔야 한다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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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일을 했더니 좋은 배우자를 만났다


종교가 작가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도 궁금해요. 꼭 특정 종교를 믿는 행위가 아니더라도 ‘종교적 마음’은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인문학 이야기를 하지만 사실 인문학만 했다면 과연 이런 활동을 했을까 생각해요. 우리나라에 인문학 잘하시는 분들 많잖아요. 그런데 그분들이 이런 활동 했다는 얘기를 많이 못 들어봤거든요. 제가 이런 일을 할 수 있었던 중심에는 신앙이 있는 거죠. 그래서 최근 뉴스펀딩으로 한국 교회에 대해서도 비판한 기사를 썼어요. 우리나라 많은 문제들이 삶으로 풀어야 할 문제들을 말과 글로만 푸는 건데요. 교회에서도 설교만 그럴싸하게 하죠. 그렇다면 그 종교에 희망이 있나요? 제가 삶을 잘 사는 사람은 아니지만 계속해서 삶을 강조하고 싶어요. 예수님도 삶을 강조하셨으니까요. 기독교인으로서, 환원하는 삶을 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절박감이 제게는 있어요. 교회 밖에서의 삶이 변화되지 않는다면 그건 가짜 신앙인 거죠. 삶이라는 건 종교의 핵심 가치를 실천하는 삶이어야 하지, 부록의 가치들에 매몰되는 종교는 옳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죠.

 

대형 교회 비판처럼 민감한 문제들에 발언하는 것이 조심스럽진 않으세요?


작가가 이런 말 해야죠.(웃음) 작가가 할 일을 하는데 왜 그러는지 이해를 못하겠어요. 얼마 전에도 스티브 잡스 비판을 했는데, 그것도 작가가 비판하지 누가 합니까. 그런 것들도 받아주고 말할 수 있는 문화가 형성되어야 하는 거예요. 자기와 다르다고 무조건 비난할 필요는 없어요. 그런 건 전혀 신경 쓰지 않아요. 침묵하는 대중이 훨씬 무섭죠. 악플을 남기는 분들이 글의 기준이 되면 안 되거든요. 이번에 뉴스펀딩을 하면서도 굉장히 큰 용기를 얻었어요. 후원금액이 무척 높거든요. 옳은 말을 하면 진짜 침묵하는 다수는 저를 지지하시는구나, 아직 우리 사회에는 희망이 있다, 어떻게 이분들과 좀 더 관계 맺고 사회를 바꿀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자신감도 갖게 되었어요.

 

그분들과 좀 더 소통하기 위해 특별히 노력하는 부분이 있나요?


저는 작가니까, 좋은 글을 쓰는 거죠.(웃음) 그분들은 무서운 분들이에요. 조용히 평가하고 끝내는 분들이죠.

 

조금 후면 결혼을 하시잖아요.(결혼식 사흘 전에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축하를 드립니다. 결혼과 사회적인 신념을 어떻게 함께 이끌고 가실 생각이신가요? 


유람도 무척 좋아해요. 더 도움을 못 줘서 미안해하고 있어요. 함께 봉사활동도 다녀왔고요, 제 관심사를 충분히 공감하고 있어요. 좋은 일 하니까 주님이 보내주신 것 같아요.(웃음) 최근 인터뷰에서 배우자 기도를 했었느냐는 질문을 받았는데, 안 했거든요. 성경에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면 더 주신다고 했는데, 그 말씀만 믿고 좋은 일 하다 보니 좋은 배우자를 주셨다고 그렇게 얘기했어요.(웃음) 본질을 말하고 싶었어요. 제가 늘 그렇게 사는 건 아니지만 중심과 본질을 많이 생각하다보니 가슴 설레는 일이 많아요. 저는 아마 자기계발의 대표적인 사람일 텐데요, 독자들이 보실 때 자기계발이란 저런 것이구나 생각하실 수 있도록 살려고 해요. 어쩌다보니 대중 인문학의 물꼬도 트게 되었는데 그분들에게도 보여드리고 싶어요. 인문학이란 저런 것이라는 것을 말이에요. 결국 삶으로 귀결되는 것 같아요.

 

참 편안해 보이세요.


네. 저도 예전에는 주변 사람들 만나면 날이 서있는 것 같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며 살았던 거죠. 하지만 사람은 계속 성장해야 하니까요. 다행히 주님께서 성장을 시켜주셨고(웃음) 늘 재미있어요.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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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일곱 이건희처럼이지성 저 | 차이
이 책은 이건희가 거둔 성공을 미화하거나 이건희 개인의 신변잡기를 다루지 않는다. 독자가 직접 실천할 수 있는, 이건희로부터 추출한 자기계발 노하우들을 정리한 책이다. 지난 10년간 누적판매부수 1위(CEO 관련 서적)에 오른 『스물일곱 이건희처럼』의 최신 개정판으로, 새롭게 추가된 내용(‘이건희의 생각 시스템을 만든 도서목록’ ‘삼성 가문 100년을 만든 인문학 독서법’ ‘이건희 어록’)을 통해 이전보다 더욱 풍성하고 구체적인 자기계발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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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준 "인생을 바칠만큼 좋아하는 음악을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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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준은 연주 경력 10년을 훌쩍 넘긴 재즈 피아니스트다. 2014년 초, < 디어 섬원 Dear Someone >(에반스)이라는 제목을 단 그의 첫 번째 음반이 드디어 발매되었다. 이 음반은 작년에 발매된 재즈 음반들 가운데 단연 손에 꼽혀야 뛰어난 음반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하지만 모든 매체는 이 음반에 무심했으며 이 음반을 주목하는 재즈 평론가는 거의 없었다. 앨범이 발매 된지 1년이 이미 지난 5월 말, 늦게나마 그를 만났던 것은 그 때문이었다. 인터뷰가 약속되었던 날 그는 이태원의 재즈 클럽 '올댓재즈'에서 연주를 할 예정이었다. 연주가 있기 전 이태원 뒷골목의 한 식당에서 만나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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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클럽 연주는 자신의 밴드로 출연하나?


아니다. 오늘 밴드는 색소폰 주자 한승민의 5중주단이고 나는 사이드맨으로 연주한다.

 

- 연주 경력이 꽤 되는데 왜 이리 첫 음반을 늦게 발표했나? 요즘은 데뷔하자마자 음반 내는 사람도 많은데.


사실 이 음반의 기본적인 컨셉은 2004년부터 시작됐다. 그때부터 정상이(베이스), 신동진(드럼) 여기에, 현재는 미국에서 공부 중인 신명섭(색소폰)까지 더해져서 사중주단이 짜여졌다. 하지만 음반을 녹음해야겠다는 생각은 그간에 하지를 않았다. 재즈 음반이 팔리지 않는다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은 연주자 숫자들이 너무 많아 앨범을 통해서라도 자신을 알려야 했지만 이미 10년 이상 연주해온 나로서는 새삼스레 음반으로 날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래도 음반 한 장은 내야하지 않느냐는 주변의 권유에 결국 녹음했지만 말이다. 정상이, 신동진은 이 음반에서도 베이스와 드럼을 맡았다.

 

- 어떻게 하다가 재즈 피아니스트가 되었나?


원래는 대중음악 작곡 전공이었다. 피아노라고는 클래식 피아노 교육을 받은 게 전부였다. 그런데 가요 작곡에 재즈가 도움이 될 것 같아 서울재즈아카데미에 입학했다.

 

- 그곳에서 재즈 피아노를 공부했나?


아니다. 그때까지도 여전히 전공은 작곡이었다. 그런데 1999년에 분당에서 '한미일 재즈 페스티벌'이라는 축제가 열렸다. 이 행사에 이정식 쿼텟 그리고 더 쿼텟(The Quartet)같은 당시 한국 재즈를 대표하는 팀들이 참가했는데 이정식 쿼텟의 피아니스트 곽윤찬 선생님, 더 쿼텟의 양준호 선생님 모두 서울재즈아카데미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계셨다. 그분들의 연주를 듣고 깜짝 놀랐다. 즉흥연주라는 게 저런 거구나. 나도 저런 연주 해봐야겠다는 결심이 바로 섰다. 당장 작곡에 쓰던 컴퓨터 장비를 모두 팔아버렸다. 그리고 재즈 피아니스트의 훈련을 시작했다.

 

- 그때 서울재즈아카데미에서 함께 공부한 연주자 중에는 누가 있었나?


프렐루드의 희안이 형(피아니스트 고희안)이 함께 있었다. 1년 과정이었기 때문에 곧 졸업했고 나는 재즈가 더 배우고 싶어서 동아방송대에 입학했다.

 

- 동아방송대를 졸업하지는 않은 걸로 알고 있다.


그렇다. 입학을 해보니 오히려 내 연습시간이 줄었다. 나는 당장 프로 뮤지션처럼 연주하고 싶은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대학엘 들어가니 교양도 들어야 하고 학교의 이런 저런 행사에 참여하다가 보니 한 학기가 그냥 끝나더라. 이렇게 학교를 다니다가는 시간과 돈만 허비할 것 같다는 생각에 학교를 그만 두었다. 그리고 다시 서울재즈아카데미를 찾아가 월마다 조금의 돈을 내고 연습실도 쓰고 청강도 하면서 계속 재즈를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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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션의 꿈을 안고 대학에 들어간 젊은 친구들이 많다. 하지만 비싼 등록금을 내고 대학을 정말 다녀야하는지 방황하는 학생들도 많다. 그들에게 어떤 충고를 해주고 싶나.


대학에 출강하고 있다. 실용음악과에 피아노 전공으로 입학하려면 재즈를 익혀야 하는 학교들이 많다. 그러니 많은 학생들이 대학에 입학하기 위해 재즈를 연습한다. 하지만 그 중에서 재즈를 정말 좋아해서 연주하는 학생은 열 명 중에 두, 세 명에 불과하다. 심지어 대부분의 학생은 자기가 진짜 좋아하는 음악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대학에 입학한다. 그런 학생들은 자신이 음악을 해야 하는 지에 대해서도 확신이 없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에게 자신이 정말 인생을 바칠 만큼 좋아하는 음악을 찾으라고 이야기 한다.

 

- 다시 서울재즈아카데미에서 연습하던 시절에 연주활동은 하지 않았나?


오늘도 함께 연주하게 될 한승민과 그때부터 함께 연주를 시작했다. 그때 우리는 20대 초반으로 재즈동네에서 나이가 제일 어렸다. 그래서 밴드이름을 '스윙키즈'라고 했다. 그런데 그 무렵 창훈이 형(드러머 이창훈)이 함께 연주하자고 연락이 왔다. 색소폰에 영우 형(길영우), 베이스에는 현재 밴드 프렐루드에서 연주하는 진배 형(최진배)이었다. 그때 창훈이 형이 춘천의 한 클럽과 이야기를 해서 매주 수요일이면 춘천에 가서 연주를 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시절이 가장 즐겁고 행복했던 것 같다. 내가 매일 연습하고 연마했던 재즈를 사람들 앞에서 연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설레고 기뻤다.

 

- 서울에 있는 클럽에서는 연주하지 않았나?


아니다. 얼마 후 색소포니스트 신동진 선생님께서 연락하셔서 자신의 사중주단에서 연주를 해달라는 거였다. 매주 목요일 클럽 야누스에서였다. 그때 정말 너무너무 기뻤다. 그때까지 주로 재즈 1세대 선생님들과 함께 연주해 오셨던 신동진 선생님은 당시 내게 하늘과 같은 존재였다. 감히 쳐다보기도 힘든 분이었다. 심지어 전통의 클럽 야누스에서 연주할 수 있다는 게 믿겨지지를 않았다. 나의 꿈이 너무 빨리 이뤄지는 것 같아, 정말 이래도 되는 건가 하는 기분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때가 2001년이었는데 국내에 재즈 피아니스트가 스무 명도 채 되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그러니 가급적이면 신인과 연주하고 싶었던 신동진 선생님은 나를 지목하신 것이다.

 

- 다른 밴드에서는 연주하지 않았나?

 

물론 아니다. 그 무렵에 세존이 형(에반스 뮤직의 홍세존 사장)과 처음 만났다. 당시 베이스를 연주하던 세존이 형이 함께 트리오 팀을 결성해 연주하자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클럽 '원스인어블루문'에서 매주 월요일에 연주를 했다. 그런데 정작 월요일이 되면 세존이 형과 드러머들이 다른 일로 바빠서 내가 베이스와 드럼을 구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아마도 그때 국내에서 활동하던 베이시스트, 드러머들과 거의 알게 되었던 것 같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재즈동네가 작았기 때문에 모두들 한 식구처럼 전부 알고 지냈다. 자연스럽게 여러 연주자들로부터 함께 연주하자는 제안을 받았고 매일 밤 쉴 새 없이 연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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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론 연주자 숫자가 적었다고는 하지만 재즈 피아니스트가 되기로 결심한지 2년 만에 정말 빠른 성장을 했던 것 같다.


물론 그런 면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빠르게 성장한 만큼 정말 이게 맞는 길인가 회의도 찾아왔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난 더 성장해야 하고 그만큼 연습도 더 많이 해야 하는데 거의 매일 연주 일정이 잡히다 보니 나 스스로를 위해 써야 할 시간이 점점 줄어들었다. 어느 음악 동네나 마찬가지이겠지만 연주자들은 무대가 끝나면 팀워크도 다질 겸 해서 간단히 술 한 잔 씩을 한다. 그러니까 무대 기회가 많아질수록 자연히 술자리 횟수도 늘어나게 된다. 처음 연주생활을 시작했을 때 거의 매일 술자리를 갖는 선배 연주자를 본 적이 있었다. 저 선배는 언제 연습을 하나 궁금해지면서, 저런 연주자가 되면 절대 안 되겠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어느새 나도 바쁜 연주 생활을 하면서 나도 비슷한 사람이 되어 있는 게 아닌가. 재즈 연주자가 되어 정신없이 5년 동안 활동했을 때 더 이상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번뜩 머리를 스치더라. 신체검사를 보충역 판정을 받아 공익근무를 하고 나서 마치고 유학을 가야겠다고 결심했다.

 

- 그런데 이제 20분 뒤면 연주가 시작 되는데 클럽으로 지금 자리를 옮겨야 하지 않나?


앗, 벌써 그렇게 됐나. 자리 옮기고 다시 이야기를 시작하자.

 

밤 8시 30분부터 '올댓재즈'에서는 한승민 퀸텟의 연주가 시작되었다. 배선용(트럼펫), 한승민(테너 색소폰), 오영준(피아노), 최진배(베이스), 김영진(드럼)의 연주였다. 어쩐 일인지 요즘은 흔히 듣기 힘들어진 정통 하드밥 스타일의 연주였다. 한 시간의 1부 무대가 끝난 후 다시 오영준과 자리에 앉았다.

 

- 그래서 네덜란드 유학은 언제 떠났나?


2008년 여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음악원에 입학했다.

 

- 늘 스윙과 블루스를 강조하는 정통 스타일을 추구하는데 암스테르담 음악원에서 만들어진 성향인가?

 

아니다. 암스테르담 음악원은 스윙을 강조하는 악풍과는 거리가 있다. 굳이 말하자면 그 학교에서 재즈 피아노의 출발점은 빌 에번스다. 피아노 전공의 학생들은 대부분 브래드 멜도의 스타일을 따랐다.

 

- 그 학교의 교수로 있는 롭 반 바벨(Rob Van Babel)은 연주에서 정통적인 면모도 많이 보이지 않나?


그렇다. 하지만 그 학교의 교수들은 학생들에게 무언가를 강요하지 않는다. 맨 처음에 그게 무척 당혹스러웠다. 뭔가 구체적인 것을 지적하고 숙제도 많이 내주길 원했는데 레슨 시간에 '뭘 연주할까?' 물은 뒤 레퍼토리가 정해지면 그 곡을 교수는 한 시간 내내 아무 말 없이 학생과 함께 연주하는 거였다. 그리고는 아무 말도 없었다. (웃음) 그때 함께 연주하면서 선생의 가르침을 귀로 터득했어야 하는데 나는 한국 스타일로 말로 뭔가를 지적해 주기를 원했던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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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덜란드에서 공부한 기타리스트 박용규씨도, 뉴욕에서 캐니 배런에게서 배운 피아니스트 임미정 씨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더라.


맞다. 유럽과 미국에서 음악교육이란 뭔가를 주입하려고 하지 않는다. 학생의 재능과 개성을 끌어내려고 한다. 내가 선생이 말하는 것을 노트에 적으려고 하니까 그들은 적지 말라 했다. 그냥 들으라고 했다. 어떤 가르침이 절대적으로 고정되는 것을 그들은 원치 않았다. 물론 학교마다 학풍의 차이는 있다. 헤이그에 있는 댄 하그 음악원은 스윙과 비밥을 매우 중시하는 학교다. 스타일로 놓고 보자면 난 댄 하그 스타일에 더 가깝다. 그래서 그곳 연주자들과도 여러 차례 잼을 했다.

 

- 스윙과 비밥을 추구하는 스타일은 언제 만들어졌나?


재즈를 처음 연주하면서부터 그 스타일에 끌렸다.

 

- 좋아하는 피아니스트는 누구인가?


오스카 피터슨, 진 해리스, 윈턴 켈리, 베니 그린. 이 분들을 최고로 꼽는 것은 옛날에도 그랬고 현재도 변함이 없다. 난 확실히 외골수인 것 같다.

 

- 본인의 스타일과 학풍이 좀 달랐던 것 같은데 별 문제는 없었나?


암스테르담 음악원에서 1학년은 예비학생, 2학년부터가 본과에 들어가는 체계를 갖고 있다. 2학년에 진학하기 전에 시험을 치르는데 무사히 합격해 2학년으로 진급했다. 시험을 치르면 지도교수가 학생들을 일일이 지적해 주는데 그때 들었던 이야기가 잊히지 않는다. '너는 이미 스윙, 비밥, 블루스에 있어서 입학생 중에 가장 뛰어났다. 이제부터는 요즘 스타일의 음악도 많이 듣고 그러한 스타일의 곡도 한 번 써보고 연주해 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빌 에번스도 많이 듣고, 키스 자렛, 브래드 멜도도 많이 듣고 그들의 음악적 장점도 많이 느낀다. 그래서 2011년에 졸업하고서 특히 한국에서 좋아하는 재즈 스타일이 보다 컨템포러리한 스타일이다 보니 그 경향으로 바꿔볼까 심각하게 고민하기도 했다. 물론 다시 나의 본 모습으로 돌아갔지만 말이다.

 

- 유학 생활은 순조롭게 마쳤나?


언어문제, 외로움 등과 많이 싸워야 했다. 그래서 많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방학이 되면 한국에 들어와 계속 연주활동을 했는데 2009년 여름에 클럽 원스인어블루문에서 연주하다가 숨이 막혀 쓰러져 급히 응급실로 옮겨졌다. 공황장애라는 진단이 나왔는데 스트레스가 큰 원인이라더라. 지금도 버스를 타면 불안해져 버스를 타지 못한다. 연주를 할 때면 그것이 클럽 연주라고 할지라도 약간씩 긴장을 하는데 그 긴장이 쇼크로 번지지 않기 위해 늘 약을 먹고 있다.

 

- 처음 연주자로 활동하던 시기와 2010년 즈음을 넘어서면서 재즈동네가 급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지 않았나?


물론이다. 우선 연주자가 무척 많아졌다. 실력 있는 젊은 친구들도 계속 등장한다. 10년 전만 하더라도 클럽을 찾아가면 무대 위에는 늘 아는 연주자들만이 있었다. 하지만 요즘은 늘 모르는 연주자들과 마주친다. 상황이 이러니 어떤 연주자들이 한 장소에서 고정적으로 연주하는 레귤러 긱(regular gig)이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재즈클럽에서 연주하고 싶어서 일정을 잡아달라고 하면 이미 두 달 동안의 출연 일정이 꽉 짜여 있는 상태다. 옛날처럼 클럽에서 매일 연주할 수 있는 시절은 이미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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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 직업 재즈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략 몇 명 정도 될까?


한 300명은 족히 될 것이다. 현재 외국에서 유학 중인 학생들이 3~400명 정도 되니 수 년 안에 그들이 전부 국내에 들어오면 국내 실용음악과 출신 연주자들까지 더해져 숫자는 급격히 불어날 것이다. 연주자는 급격히 늘어나는데 클럽은 하나 둘씩 문을 닫는 추세고........큰일 났다.

 

- 그래도 늘 보면 바쁘게 생활하는 것 같다. 일주일의 일정은 어떻게 흘러가는가.

 

네 군데 대학에서 학생들을 지도하고 일주일에 1~2회 정도 클럽에서 연주한다. 대구에 있는 대학에도 출강을 했는데 시간을 너무 빼앗겨 이번 학기부터는 그만 두었다. 그 시간에 내 작품을 쓰거나 연습 시간을 더 가질 정이다.

 

- 이제 음반 < 디어 섬원 >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우선 음반이 스윙으로 가득 차 있다. 스윙의 매력이란 무엇인가?


글쎄.......그걸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그것이 있어야 재즈는 더욱 재즈답게 들리는 것 같다. 재즈를 표현하는 데는 여러 방식이 있다. 보통 그것을 재즈 랭귀지라고 부르지 않나. 재즈의 말투다. 그런데 아무리 풍부한 재즈 랭귀지를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거기에 스윙이 빠지면 그것은 설득력 있게, 명확히 전달되지 않는다. 아무리 많은 어휘를 갖고 있더라도 발음이 좋지 않으면 상대방이 잘 알아들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음반은 네 박자 스윙만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박자 실험을 하고 있다.


언뜻 들으면 변박으로 연주하는 것 같지만 실은 4/4박자를 고수한 것이다. 「나는 구식예요 I'm Old Fashioned」는 4/4로 연주하지만 중간 중간에 더블타임을 불규칙하게 삽입했다. 그래서 좀 복잡하게 들린다. 「너는 내 모든 것 You're My Everything」은 한 라인이 4/4박자의 네 마디, 그러니까 16비트인데 그것을 6/4 6/4 4/4로 변칙적으로 쪼갠 것이다. 변박이라고는 할 수 없고 일종의 트릭이다. 모두들 이런 스탠더드 넘버를 연주하기 때문에 개성을 불어넣기 위해서 리듬에 변칙을 주었다.

 

- 직접 작곡한 오리지널 곡들은 고전적인 형식이고 선율도 또렷하고 인상적이다. 제목에 담긴 의미도 궁금하다.


「디어 리 양 Dear Ri Yang」에서 리양은 내가 키우는 고양이 이름이다. 「미스터 H Mr. H」는 네덜란드에서 화성학을 가르친 행크라는 이름의 교수에게 헌정한 곡이다. 그분에게서 배운 이론으로 곡을 썼다. 「베니의 곡 Benny's Tune」에서 베니는 내가 존경하는 베니 그린이다. 그 분의 연주를 생각하며 곡을 썼다. 「패닉 Panic」은 이 음반에 담긴 유일한 마이너 키의 블루스다.

 

- 피아노 음색이 아름다운데 특별히 신경을 쓰는가?


맨 처음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오로지 화성과 즉흥연주에만 신경을 썼다. 그런데 암스테르담에서 나를 맨 처음 가르쳐 준 선생님이 유러피언 재즈 트리오의 창립멤버 카렐 보에리였는데 정말 그의 소리가 너무도 환상적이었다. 그리고 내 소리가 얼마나 엉망인지를 깨닫게 되었다. 그 다음 부터는 멋진 소리를 내기 위해서 많이 애썼다. 명연주자의 음반을 들을 때도 저 소리가 어떻게 만들어 지는지 신경을 많이 쓴다.

 

- 가장 보편적인, 전통적인 재즈 피아노 스타일인데 왜 유사한 유형의 피아니스트가 국내에는 별로 없는가?


글쎄, 모르겠다. 사람들이 이런 음악을 그냥 구식으로 여기는 것 같다. 나의 음악이 오히려 괴짜가 된 것 같아 이상한 기분이 든다.

 

- 혹시 다음 음반에 대해서도 구상을 갖고 있는가?


베이시스트 진배 형과 작업을 함께 할 것 같다. 피아노 트리오 편성에 기타를 더할 예정인데 진배 형이나 나나 모두 베이시스트 레이 브라운을 무척 좋아하기 때문에 레이 브라운이 러셀 말론, 몬티 알렉산더와 함께 만들었던 사운드를 우리도 해보고 싶다. 하지만 연주곡목은 우리가 직접 만든 곡으로 할 예정이다.

 

- 많은 사람들이 재즈를 듣는 것 같지만 국내 재즈시장은 여전히 척박하다. 앞으로의 전망은 어떤가?


지난 15년 간 활동을 돌아보면 정말 잘 버텼던 것 같다. 초창기에 음악활동을 같이 해왔던 선배들 가운데서도 이제는 어느덧 다른 일을 하고 있는 분들도 계시다. 음악 말고 다른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은 꿈에도 가져 본 적이 없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더욱이 내가 처음부터 목표로 삼았던,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악 스타일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 해온 것도 정말 다행이었다. 걸어온 길을 계속 갈 생각이다. 편협한 것 같지만 누군가에게는 그것이 길일 것이다.

 

 

- 인터뷰, 정리: 황덕호
- 사진: 이한수

2015/06 황덕호(saturnman2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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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리스트 정주희 “꽃으로 프러포즈 성공하고 싶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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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희 셀렉 컷 (1).jpg

 

1년에 딱 한 번만 꽃집에 가는 사람이 많다. 어버이날, 또는 스승의날. 아니면 누군가의 졸업식에 가야 할 때. 왜 아무 날도 아닐 때 꽃을 사는 사람은 흔치 않을까. 꽃이 비싸서? 주변에 꽃을 파는 곳이 없어서? 선물해줄 사람이 없어서?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낯설기 때문이다. 또 꽃을 선물해도 의외로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금방 시들어 버리는 꽃에 마음을 줄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보떼봉떼 플라워 클래스』의 저자 정주희는 15년차 플로리스트다. 대학에서 조경을 전공하고 조경사로 일하다가 2001년, 우연히 꽃을 배우게 됐고 프랑스 파리 에콜 아티스틱 드 카트린 뮐러(ECOLE ARTISTIQUE DE CATHERINE MULLER)에서 공부하고 이듬해 플라워 아틀리에 ‘보떼봉떼(BEAUTE ET BONTE)’를 열었다. 프렌치 스타일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는 보떼봉떼의 클래스는 플로리스트 지망생들과 현직 플로리스트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 프랑스어 보떼(beaute)는 아름다움을 뜻한다.

 

정주희가 지난 1년간 준비한 세 번째 책『보떼봉떼 플라워 클래스에는 일상에서 활용도가 높은꽃들이 사계절에 맞게 소개되어 있다. 기본 부케부터 센터피스, 생화 리스와 드라이 리스, 크리스마스트리 등의 다양한 아이템을 비롯해 꽃을 다루는 기본 도구와 테크닉, 꽃을 잘 고르고 관리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경제적, 시간적 이유로 선뜻 꽃을 배우지 못했던 이들에게 좋은 입문서의 역할을 해주는 한편, “책만 봐도 힐링이 된다”는 평을 듣고 있다.

 

 

꽃 들고 다니면 프랑스 사람도 친절해요


『꼼 데 플레르COMME DES FLEURS』, 『삼 곱하기 십』 이후 세 번째 책입니다. ‘사계절의 프렌치 스타일 꽃 수업’이라는 부제가 붙었는데, 일 년 동안 준비를 하셨겠어요.


작년 4월부터 시작했으니까 1년 걸렸죠. 지난 봄부터 올해 봄까지 쓴 것 같아요. 책이나 글을 쓸 때 스트레스가 조금 있는 편인데, 이번 책은 생각보다 그런 스트레스가 없었어요. 정말 100% 진실이라고 할까요?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만 쓰다 보니 써지더라고요.

 

기본 부케부터 센터피스, 생화 리스와 드라이 리스, 크리스마스트리 등의 다양한 아이템을 소개하셨어요. 책을 보고도 쉽게 꽃을 다룰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현재 작업실에서 클래스를 진행하고 계시죠?


수업은 9년 전부터 시작했는데, 홍대 작업실에서 한 건 5년 정도 된 것 같아요. 그 전에도 옆 동네서 하긴 했지만요. 일주일에 9개 정도 클래스를 진행해요. 주 5일 근무인데 빠듯해요. 초급, 중급, 고급 과정이 있고 취미반도 있어요. 핸드 타이드 부케만 특화한 클래스도 있고, 웨딩만 전문적으로 배우는 시간도 있고요. 현재 40분 정도가 클래스에서 공부하고 계세요.

 

2001년에 꽃을 시작하셨으니 벌써 15년차 플로리스트신데요. 어떻게 꽃을 공부하게 되셨나요.


어렸을 때 꿈이 꽃집을 하는 거였어요. 그때는 플로리스트라는 용어도 없을 때고, 꽃집이 화원으로 불리던 때였거든요. 꽃을 공부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에, 친한 친구가 이화여대 평생교육원에 꽃을 공부하는 분들이 계시다는 거예요. 한 번 놀러 와도 된다고 하셨는데, 처음부터 무턱대고 가기가 실례일 것 같아서 엽서를 썼어요. 자기소개를 해가며(웃음). 그 때는 지금처럼 이 메일이 흔하게 사용되던 때가 아니었거든요.

 

플로리스트 양성 과정이었나요?


수업을 하는 곳은 아니었어요. 파티라던가 백화점 디스플레이, 매장 디스플레이에 사용되는 꽃을 만드는 곳이었는데, 첫 날 가자마자 일을 했어요. 그 분들이 뭔가를 만들고 계셨는데, “너도 한 번 해볼래?”라고 하셔서, 바로 했죠. (웃음) 당시 제가 조경회사를 다니고 있었는데, 일주일에 두 세 번씩 시간만 되면 놀러 갔어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정말 재밌어서, 자주 갔죠. 그렇게 꽃을 배웠어요. 그러다 금호문화재단 아트숍에서 일을 하게 됐는데, 플라워 파트가 따로 있는 건 아니었는데, 행사에 필요한 꽃을 만들고 디스플레이하는 업무를 했어요.

 

당시만 해도 플로리스트라는 직업이 굉장히 생소할 때였는데요.


2003년에 드라마 <여름향기>에서 손예진 씨 직업이 플로리스트였어요. 드라마 때문에 많이 알려졌어요. 그 전에는 직업을 플로리스트라고 하면, 플롯이랑 연결 지어서 생각하는 분들이 많았거든요. <여름향기>에서 손예진 씨가 플라자호텔에서 꽃을 꽂는 모습이 나왔는데, 저희 숍에서 플라자호텔 꽃을 만들었거든요. 드라마를 보면서 ‘실제로는 저렇게 쓰레기가 적게 나오지 않을 텐데’라는 생각을 했어요. (웃음) 그렇게 우아하기만 한 직업이 아니니까요.

 

꽃에 관심을 갖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엄마가 취미로 꽃을 하셨어요. 사범자격증이 있어서 사람들을 가르치기도 하셨는데, 그 영향도 없지는 않은 것 같아요. 아기 때부터 자연을 되게 좋아했던 것 같아요. 꽃뿐만 아니라 나무도 되게 좋아하고 동물을 좋아하지만 야생동물을 더 좋아하거든요.

 

조경을 하다 꽃을 하게 된 건 어떤 이유였나요.


조경이랑 원예를 같이 전공했거든요. 공부할 때는 원예보다 조경이 훨씬 더 재밌어요. 조경은 종합과학예술이라고 말하거든요. 그림도 잘 그려 야하고, 제도도 해야 하고, 식물도 알고 계산도 잘 해야 하고. 약간 공대 같아요. 그런데 막상 나와서 일을 하다 보니까, 되게 인내가 필요한 직업인 거예요. 플로리스트 같은 경우에는 생화를 바로 바로 만지는 직업이고 결과물이 바로 보이잖아요. 반면에 조경은 오랜 시간이 걸리죠. 내가 나무를 심는다고 가정하면, 현장에 가서 보는 게 아니라 컴퓨터 화면으로 설계 그림을 보거든요. 보통 조경의 완성은 10년이라고 해요. 여의도공원 같은 경우를 보면 아시겠지만, 10년 정도는 지나야 어느 정도 조경이 완성돼요. 공부하고 설계하는 건 되게 재밌었는데, 꽃을 딱 접하고 나니까 너무 다른 매력이 있는 거예요. 조경할 때도 제일 관심 있었던 게 식물을 심는 거였거든요. 계절별로 꽃이 피는 거랑 꽃이 다 폈을 때 어울러지게 하는 것, 그게 되게 재미있어요.

 

2005년에 파리로 유학을 떠나, 에콜 아티스틱 드 카트린 뮐러(ECOLE ARTISTIQUE DE CATHERINE MULLER) 에서 공부를 하셨는데.


1년 정도 있었으니까 유학이라 하기엔 좀 짧아요. 공부도 공부였지만, 파리에서 만난 사람들이 인상 깊었어요. 일단 꽃을 들고 다니는 분들이 정말 많아요. 한국에서 플라워숍에서 일을 하다 보면 까만 봉투를 찾는 남자 손님들이 되게 많거든요. 꽃을 들고 가면 사람들이 자꾸 쳐다보니까 그게 부담스러운 거죠. 항상 쇼핑백 같은 걸 찾으시는데, 쇼핑백이 없을 때는 검정 비닐봉지도 없냐고 그러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프랑스에 딱 가니까, 옷도 말끔히 차려 입은 노신사 분이 정말 예쁜 꽃다발을 안고 가시는 거예요. 우리나라에서는 정말 보기 힘든 풍경이죠.

 

프랑스 사람들이 워낙 꽃을 좋아하기로 유명하죠.


한국에서도 꽃을 들고 다니면 아주머니들이 말도 많이 거시고 그러는데. 프랑스는 반응이 너무 다른 거예요. 횡단보도에 꽃을 안고 있으면 옆에 계신 분이 꽃을 쳐다보는 시선이 딱 느껴져요. 제가 움직일 수 조차 없을 정도로 꽃을 아름답게 쳐다보세요. (웃음) 또 가게 같은 곳에 꽃을 들고 가면 온 직원들이 다 나와서 “이 꽃은 처음 본다”고 말하기도 하고. 정말 프랑스는 꽃을 들고 다니면 더 친절해요. 프랑스인들이 불친절하다고 많이들 알고 계시잖아요. 애기 데리고 다니면 친절하고요. 그리고 목발 집고 다니면 친절해요. 애완동물이 있어도 그렇고요.

 

프랑스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꽃은 뭔가요?


가장 좋아한다기보다는 그냥 무난하게 추천할 때는 장미에요. 프랑스 어학 CD가 있는데, 그걸 들으면 프랑스의 문화가 그대로 들어가 있거든요. 듣다 보면 플라워숍에서 대화하는 부분이 나오는데, 꽃을 선물 받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을 때 ‘할머니’라고 답하면, 플로리스트가 “핑크 장미와 붉은 장미를 섞어라. 그럼 좋아하실 거다”라고 해요. 그런 걸 보면 한국이나 프랑스나 별반 다를 게 없는 것 같아요.

  

정주희 셀렉 컷 (2).jpg

 

 

꽃 시장 가려면 새벽 5시, 오전 11시 이후가 좋다


대한민국에 플로리스트는 대략 몇 명 정도 있나요?


글쎄요. 굉장히 많을 것 같긴 한데 정확한 수치는 모르겠어요. 일단 사람들이 정말 쉽게 생각해서 시작했다가 쉽게 문닫는 경우가 많아요. 지금 플라워숍이 정말 많이 생기고 있는데 없어지는 속도가 더 빠르대요. 예를 들어 플라워 잡지 같은 경우는 5월 달에 인터뷰를 했는데 6월에 숍이 문을 닫아버리는 경우가 너무 많아서, 심지어는 새로 나온 곳을 일부러 취재하지를 않는대요. 젊은 친구들이 쉽게 생각해서 잠깐 배우고 숍을 열었다가, 현실 부딪혀서 문을 닫는 경우가 많은 거죠.

 

왜 이렇게 쉽게 열고 쉽게 닫는 걸까요?


플라워숍 같은 경우는 다른 사업에 비해 초기투자 비용이 많이 들지는 않는 편이예요. 정말 공간이랑 테이블, 가위, 나만 있으면 되니까요. 음식이라 할 경우 오븐도 있어야 하고 주방설비가 어느 정도는 있어야 하잖아요. 플라워숍은 상대적으로 비용이 적게 드니까 더 쉽게 시작할 수 있는 거죠. 꽃을 배운지 얼마 안됐는데 대책 없이 오픈 했다가, 정말 대책 없이 임신해서 그만두는 경우도 있어요. (웃음)

 

한동안 플라워카페가 많이 생기기도 했는데, 요즘은 또 많이 보이질 않네요.


생각해보면 정말 예쁜 장면이잖아요. 꽃이랑 커피가 같이 한 공간 안에 어우러지는 것. 그런데 그것도 굉장히 어려운 일이에요. 둘 다 같이 가기가 힘든 게, 어느 한쪽으로 쏠릴 수 밖에 없어요. 플라워숍에 갔을 때는 꽃 향기가 나야 하는데, 커피 향이 더 강하게 나면 묻히거든요. 성공하기가 정말 어려워요. 꽃이 많은 카페가 된다거나, 아니면 커피값을 정말 싸게 한다던가. 균형을 맞추기가 쉽지가 않아요.

 

플로리스트를 꿈꾸는 분들, 플라워숍을 내고 싶다는 분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보통 꽃을 좋아하니까 ‘한 번 배워볼까?’하고 시작하는 분들이 많은데요. 일단 가장 중요한 건 정말 꽃을 좋아해야 해요. 꽃을 보고 만지고 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잖아요. 이를 테면 꽃다발 하나를 만든다고 하면, 사실 꽃을 꽂고 포장까지 10분이면 되요. 하지만 그걸 하기 위해 수반되는 일들이 정말 많죠. 새벽에 꽃 시장을 가야하고 트렁크게 가득 싣고 온 꽃을 다 다듬어야 하고. 어떨 땐 눈물도 났어요. 너무 많아서. 정말 다듬고 쓰레기 버리는 것도 일이에요. 정말 꽃을 좋아하지 않으면 이 수반되는 일들을 못 버티는 거예요. 손톱에 항상 꽃물이 들어있어요. 가시도 그렇고요. 바로 숍을 오픈 하는 건 정말 추천하지 않고요. 배워서 시작하는 건 한계가 있으니까 어느 정도 일을 해본 다음에 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플로리스트 양성과정 프로그램이 굉장히 많아지고 있는데요. 업계는 어떤가요? 플로리스트의 처우라든지.


일을 하면서 또 부딪히는 문제가 페이가 굉장히 심하게 적어요. 적은 것까지는 그나마 괜찮은데 페이를 안 줘요. 얘기를 들어보면 정말 심각한 데도 많은데, 4대보험을 안 들어주는 곳도 많다고 들었어요.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 해도, 어느 정도 보상이 따라줘야 하잖아요. 페이도 적은데, 서비스직이다 보니 사람에 대한 스트레스까지 받고. 이게 첫 번째 난관인 것 같아요. 가르치는 학생들 중에서도 이런 일로 상처를 받고 하소연을 하러 많이 와요. 그래서 제가 “그만 하고 싶어?”라고 물어보면 “그래도 하고 싶어요”라고 말하더라고요.

 

우리나라는 특별한 날이 아닐 때 꽃을 사는 일이 흔치 않잖아요. 고가의 꽃을 사지 못하니 꽃 시장에 가는 분들이 많은데요.


사실 꽃 시장에 가는 걸 추천하고 싶진 않아요. 처음 가는 분들 중에 상처 받으시는 분들도 많아요. 도매시장이 소매한테 열려있는 경우가 우리나라밖에 없어요. 외국은 전부 라이센스가 있거나 사업자등록이 있어야 도매시장에 가서 구입할 수 있어요. 유통상으로 보면은 그게 정상이거든요. 그래서 일본, 영국, 프랑스, 독일 등 모두 도매시장 가격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싸요. 그렇게 되다 보니 소매 플라워숍도 우리나라보다 싸고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더 꽃을 즐기지 못한 이유가 될 수도 있고, 그러다 보니 자꾸 도매시장을 찾게 되는 것 같아요. 악순환인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꽃 시장을 찾는 일반 소비자들이 줄지는 않을 텐데요. 꽃 시장을 잘 활용하는 방법이 있다면.


도매시장 같은 경우는 밤 12시부터 낮 12시까지 하거든요. 밤 12시에는 상인들이 꽃을 받는 시간이라서 정말 바쁜 시간이에요. 일단 그 시간대는 피하면 좋고요 새벽 5시, 6시에 가면 한가하게 꽃을 구경할 수 있고요. 아니면 오전 10시 이후도 괜찮고요. 오전 7시부터 10시 반까지는 플로리스트들이 많이 오는 시간이라서, 일반인들이 와서 한 두 단 산다고 하면 꽃이 없다는 하는 상인 분들이 많아요. 낮 12시 앞뒤로 가면 꽃을 좀 싸게 살 수 있어요. 같은 꽃이라 해도 밤 12시랑 낮 12시랑 가격 차이가 많이 나요. 밤 12시는 가장 싱싱한 꽃을 살 수 있는 시기라서 제일 비싸요. 또 꽃을 만지지 않는 건 기본 매너에요. 함부로 꽃의 얼굴을 만지게 되면 못 파는 경우도 생기거든요. 한 명이 만지는 게 아니라, 열 명, 백 명이 만지니까요. 그럼 못 팔게 되니 상인 분들이 야단을 치고 짜증을 내시는 거예요.

 

프러포즈를 할 때 꽃을 많이 사는데, 지금 한창 연애 중인 커플들에게 꽃다발을 사는 팁을 알려주신다면.


일단은 예쁜 숍을 찾아가는 게 중요하고요. 취향을 알고 가는 게 제일 좋긴 한데, 그렇지 않을 때는 그냥 플로리스트한테 맡기는 게 제일 낫긴 해요. 저도 주문이 들어오면 제일 먼저 ‘어떤 분한테 어떤 날에 어떻게 선물할 건지’를 물어보거든요. 취향도 물어보고. 예를 들어 노란색 꽃만 안 들어가면 된다고 하신 손님도 있고, 향이 너무 강한 걸 안 좋아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선물을 할 거면 먼저 여자친구한테 알러지가 있는지, 무슨 색깔을 좋아하는지, 지나가면서 무엇을 보고 예쁘다고 하는지 등 평소에 눈 여겨 보는 게 제일 좋죠. 만약 장미를 선택한다면 보통 흔히 보는 빳빳한 장미 말고, 가든장미를 선택해도 괜찮아요. 가격은 좀 더 비싸지만 여자친구한테 센스를 인정 받을 순 있을 거예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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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이 공간에 있으면 그 공간의 활력이 달라진다


저자님께 꽃을 배우고 있는 수강생들은 어떤 꽃을 좋아하시나요?


저희 학생들은 일반적인 취향은 아니에요. 그래도 기본적으로 작약, 스위트피 등은 다들 좋아하는 것 같아요. 스위트피는 지금은 안 나오는데, 아주 대중적인 꽃은 아니지만 향기가 굉장히 좋아요. 스위트피 향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본적이 없을 정도예요.

 

모든 꽃에 향이 있진 않잖아요.


맞아요. 작약 같은 경우도 어떤 작약은 향이 정말 좋은데, 어떤 작약은 정말 고약한 냄새가 나는 경우도 있고 꽃 중에서도 발 냄새가 나는 것도 있어요. (웃음) 알리움이라는 꽃은 되게 예쁜데, 줄기 끝에서 파 냄새가 나요. 전에 어떤 분은 향 맡으시고 국밥을 먹고 싶다고 하시기도 해요. 지금 같은 초 여름에는 허브 종류도 많이 나오는 시기예요. 사람들이 오래 보고 두는 건 굉장히 좋아하잖아요. 라벤더는 말려서 1년 2년을 볼 수 있으니 괜찮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플라워숍은 5월에 가장 바쁘잖아요. 어버이날도 있고, 스승의날도 있고. 마치 의무적으로 꽃을 사긴 하는데, 의외로 꽃 선물 받는 걸 싫어하는 분들도 있어요.


5월에 플라워숍을 가면 80%가 다 카네이션이 차지하고 있어요. 상징적인 의미로 카네이션을 사는데 그때가 되면 예쁜 카네이션도 많이 나오기도 해요. 그런데 가끔 숍을 하는 친구들 얘기를 들어보면, 부모님들조차도 꽃 받는걸 좋아하지 않으신 분들도 많다는 거에요. 심지어 아들이 꽃을 선물했는데 엄마가 들고 와서 환불해달라고 한 경우도 있다는 거죠. 정말 속상한 경우인데, 그럴 경우에는 당사자한테 전화를 해서 어쨌든 알린대요. 백화점 안에 들어가 있는 숍의 경우에는 컴플레인이 심하다고 해요. 졸업식에 쓸 꽃다발을 주문해서 분명히 본인이 다 골라가지고 갔는데, 다음날 환불을 해달라는 거죠.

 

아직도 특별한 날이 아닐 때, 꽃을 사는 걸 어색해 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처음이 되게 낯선 거예요. 특히 나를 위해서 꽃을 사는걸 생각을 못하시거든요. 정말 비싼 돈을 투자하실 필요도 없고, 근처 꽃집 가서 예쁜 꽃 한 송이만 사도 되거든요. 그거 하나 사무실 책상에 꽂아놔도 기분이 달라지는데 처음이 어려운 거죠.

 

꽃이 왜 좋은가요?


예전이 플리마켓에 참여한 적이 있는데, 어떤 분이 “이거 생화예요?”라고 물어보셨어요. 맞다고 하니까, “죽으면 그만이잖아”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웃음) 마음을 어느 만큼 주느냐에 따라 다른 것 같아요. 책이 더 좋은 사람도 있고 꽃이 더 좋은 사람도 있잖아요. 꽃은 잠깐 살고 사라지지만, 그 순간에 주는 에너지가 큰 것 같아요. 꼭 지속된다고 더 좋은 건 아니잖아요. 꽃은 순간으로 압축해서 보는 식물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그래도 이왕이면 오래 가는 꽃을 사고 싶어하는 분들이 많은 데요.


대부분 물어 보시는 게 “이 꽃 오래가요?”라는 말이에요. 꽃들이 수명이 다 다르잖아요. 카네이션 같은 경우엔 정말 한 달도 살아요. 물론 굉장히 오래가는 꽃들도 있는데 반면에 하루 이틀 밖에 못 가는 꽃들도 많죠. 얼마 전에 꽃 시장에서 하루 밖에 못사는 꽃을 사라고 하시더라고요. 저도 수명이 짧은 꽃을 살 땐 고민하기도 해요. 제 마음이 그만큼인 거죠. 하지만 다른 꽃은 하루 밖에 못산다 해도 정말 사고 싶을 땐 사거든요. 예를 들면 ‘시계초’ 라는 꽃이 있는데, 꽃을 보기가 힘들어요. 정말 딱 하루만 피어 있거든요. 하루만 피고 다시 오그라들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하루를 보기 위해서 사는 거죠.

 

오랫동안 꽃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일을 하고 만나오셨잖아요. 꽃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공통점을 발견했을 것 같은데요.


대체로 예쁜 걸 좋아해요. (웃음) 그리고 부지런해요. 물을 다 갈아주고 화기도 다 닦아서 옮겨 심어주고 해야 하거든요. 저는 집에서는 그렇게까지 못하거든요. 학생들 중에 정말 꽃을 좋아하는 친구들은 집에서도 다 꽃을 키우고 관리하고 그래요. 일주일 동안 어떻게 꽃이 피었는지 하나하나 관찰하면서.

 

꽃 사는 걸 돈 아까워하는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식물이 공간에 있으면 그 공간의 활력이 달라지거든요. 사람들이 꽃이 금방 시든다는 이유로 사질 않잖아요. 꽃은 곁에 두고 그냥 보는 거랑 직접 만지는 거랑은 차이가 엄청 커요. 사람이 자연을 가까이 두고 살아야 하는데, 지금 우리나라는 자연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잖아요. 꽃 한줄기라도 그걸 만지고 가꾸다 보면 스스로 생명체를 보살피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요. 또 꽃을 선물 받았을 때, 꽃을 사신 분의 마음을 생각해 보면. 얼마나 감동이에요. 나를 위해 숍에 가서 꽃을 고르고, 그 시간을 투자해서 사가지고 왔으니까. 그 마음을 알고 보면, 꽃이 내 마음에 안 들더라도   예뻐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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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떼봉떼 플라워 클래스정주희 저 | 나무수
《보떼보떼 플라워 클래스》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에 맞게 기본 부케부터 센터피스, 생화 리스와 드라이 리스, 크리스마스트리 등의 다양한 아이템을 담아 일 년 내내 꽃과 함께할 수 있다. 또한 꽃을 다루는 기본 도구와 테크닉, 꽃을 잘 고르고 관리하는 법, 플라워 어레인지먼트의 기본을 체계적으로 소개해 꽃을 배우고 싶지만 시간적, 경제적 이유로 선뜻 시작하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입문서로서 부족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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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우 “원효는 내가 강력하게 사랑하는 한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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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를 만나야 할 때가 왔던 거예요


김선우 작가가 “강력하게 사랑하는 한 남자” 원효. 그는 오랫동안 오해와 편견의 시간 속에 잠들어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훌륭한 승려라 추켜세우면서도 ‘결국은 파계승일 뿐인’ 한 남자로 깎아내렸다. 작가에게 그것은 믿을 수 없는 이야기였다. “나의 원효에 대한 모독”이었다. 그녀가 아는 한 원효는 그런 사내가 아니었다. 해골에 고인 물속에서 자유와 깨달음을 읽어내는 비약을 이뤘던 그가, 가벼운 바람처럼 일어난 춘정을 이겨내지 못하고 정을 통했다니. 그가 요석 공주를 품은 데에는 분명 감추어진 이야기가 있을 터였다. 그건 합리적인 의심이기 이전에 굳건한 믿음이었다.

 

“요석과의 사랑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여러 관점에서의 호기심이 있었어요. 그도 누군가를 사랑했던 한 남자였구나, 라는 느낌도 들었지만 그 이야기가 전해지는 방식에 대한 의심이 있었어요. 해골 물 일화를 통해서 저에게 강력한 도약의 느낌을 주었던 멋진 사내가, 갑자기 춘정이 동해서 여자와 자고 싶다는 생각을 할 인물이 아니라는 확신 같은 게 있었던 거죠. <삼국유사>에서 일연이 어떤 의도로 원효의 행장을 그렇게 정리해 놓았는지는 다 알 수 없지만 ‘이것은 나의 원효에 대한 모독이야’라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의 진심을 전하기 위해 작가는 눈을 떠야 했고 귀를 열어야 했다. 원효가 견뎌낸 순간들을 살피고 원효에게서 터져 나오는 목소리에 집중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지금이 아니더라도 꼭 한 번은, 자신 안에 쌓인 원효의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아야 했다.

 

“그러다가 때가 온 거예요. 그를 만나야 하는, 그를 써야 하는 때가 온 거죠. 작가들은 그것이 일종의 운명이라고 생각해요. 작가의 이야기 창고에는 굉장히 많은 소재들이 있죠. 살면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얻은 영감들, 나중에 무엇으로든-시로든 소설로든 에세이로든 쓰여질 수 있는 영감들이 있어요. 그 무수한 소재들 중에 어떤 것이 지금 순간에 책상 앞으로 불려 나와서 함께 세계를 만들어갈지는 알 수 없어요. 그건 운명적으로 온다는 느낌이 있어요.”

 

『발원』이라는 운명은 2012년 봄에 시작됐다. 조계종 화쟁위원회와 불교신문이 공동 기획으로 작가에게 소설 연재를 부탁한 것이다. “어떤 소재든 상관없으니 세상에 두루 힘이 되는 이야기를 써 주십시오.” 그녀가 부탁받은 전부였다.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지금 이 순간 내 창고에서 꺼내야 하는 것은 무조건 원효다. 그리고 요석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화쟁위원회 위원장이신 도법스님과 불교신문 사장님께서 처음에는 걱정을 많이 하셨어요. 스님들도 공부를 많이 하실수록 원효가 얼마나 크고 깊고 넓은지 알게 되니까요. 원효의 이야기를 쓴다는 게 어려운 일일 텐데 과연 가능할까, 하고 걱정하셨던 거예요. 그래서 ‘저는 원효를 연구하겠다는 게 아니고 제가 사랑하는 남자를 한 번 그려보겠다는 거니까 괜찮아요’ 라고 말씀드렸죠.”

 

사상가로서 원효가 가진 깊이는 쉽게 헤아리기 힘든 것이었다. 작가의 말처럼 그는 “한국사가 남긴 가장 걸출한 사상가 중의 하나”였고 “한국 철학사를 정리할 때 가장 처음에 놓여야 하는 사람”이었다. 그가 남긴 철학적 사유들과 수많은 저서들은 한국을 넘어 중국과 일본, 인도에까지 전파되며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발원』이 그려내는 원효의 모습은 사상가의 그것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인간 원효를 복원하다 보니 그의 존재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사상의 빛깔이 자연스럽게 우러나왔다. 그가 가진 사상이란 그런 것이었다. 삶과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심원이었다.

 

“원효가 탁월한 사상가로서만 존재한다면 저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을 거예요. 중요한 건 원효가 너무나 사람을 사랑한다는 거예요. 그가 가진 대승불교적 사유는 완벽하게 중생에 대한 사랑과 일치하는 거거든요. 당대의 많은 승려들이 불교를 단지 사유로만 가지고 있었지만 원효는 달랐어요. 자신이 알고 있고 생각하고 있고 느끼고 있는 것을 민중들 속에서 부연하면서, 그들과 함께 살고 살피고 사랑하기를 바랐죠. 자신이 바란 것을 그대로 실천하며 살았던 사람이에요. 당시에는 불교가 왕족의 수호를 위해서 정치적으로 사용되는 측면이 있었잖아요. 그런데 원효는 백성을 위주로 부처의 가르침을 실천했어요. 그 과정에서 주는 감동들이 굉장히 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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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원』은 후회 없는 작품


『발원』에서 원효가 보여주는 사랑은 서로 다른 층위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에게 있어 요석에 대한 사랑은 중생을 향한 사랑과 다르지 않았다. 그렇기에 두 사람의 사랑은 세속의 영역에 머무르는 것도 아니고 삿된 것도 아니다.

 

“원효가 요석과 만나서 사랑을 나누는 과정도 중생에 대한 사랑의 과정과 함께 가요. 요석을 사랑하는 과정에서 우여곡절을 겪다가 이 사랑에 완벽하게 헌신하는 순간 원효도 훌쩍 커져요. 올곧게 민중을 사랑하는 것과 올곧게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에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을 깨달아가는 과정이 그려져 있는 거예요. 원효와 요석은 같이 성숙해갔던 동반자죠. 사랑을 깊고 넓게 가꾸면서 서로가 서로에게 구속이 되지 않고, 소유하고자 하지 않으면서도 서로의 인간적인 성숙을 위해서 배려하고 응원하는 거예요. 그렇게 동지적인 애정과 남자와 여자로서의 애정이 아슬아슬한 균형을 이루면서 흘러가죠.”

 

『발원』을 앞에 두고 “후회가 없다”고 말하는 작가에게서 망설임이나 주저함을 찾아볼 수는 없었다. 최선을 다해서 자신이 사랑하는 존재를 되살려 놓은 그녀에게는 많은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발원』을 보시면 김선우가 사랑한 원효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아실 수 있을 것”이라는 한 마디면 충분했다. 작가 김선우가 원효를 사랑하는 이유, 그것을 짐작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그녀가 『발원』속에 새겨놓은 원효라는 두 글자는 사랑의 다른 이름이었다.

 

전장에서는 부상당한 적군을 살리기 위해 내달리고, 광장에서는 짓밟히는 백성들을 대신해 자신의 목을 내어놓았다. 그 어떤 존재와 집단 심지어 사상까지도 생명 위에 군림할 수는 없다는 신념이 있었다. 너도 꽃이고, 나도 꽃이고, 모두가 꽃처럼 아름다운 존재라는 말 속에는 작가 김선우의 목소리가 배어있는 듯 했다. 지금까지 줄곧 그녀가 세상을 향해 외치던 이야기와 다르지 않은 까닭이다.

 

조국. 충. 용맹. 임전무퇴. 이 모든 관념은 한 줌 지배 귀족의 권력 욕망에 소모되는 가여운 희생을 낳을 뿐이다. 헛된 망상을 조장할 뿐이다. 어떤 것도 생명 앞에서는 모두 삿되다. 나는 있는 그대로 보겠다. 이는 그대로 고통의 실상과 대면하겠다. (중략) 내게 조국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이 경계 지어 놓은 삿된 국경보다 더 큰 조국이어야 할 것이다. 나는 새로운 조국을 찾아낼 것이다. 조국의 이름으로 살생하지 않아도 되는 조국을. (『발원』 1권 115쪽)

 

“원효는 제가 계속 이야기해온 사랑의 결정체예요. 제가 이야기해 온 모든 사랑을 요석과 더불어서 가장 강력하고 완전하게 발원을 하고 있어요. 요석과의 사랑만이 아니라 사람을 사랑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원효는 제가 구현하고 싶은 사랑, 제가 바라는 모든 사랑을 거의 완벽하게 보여주는 인물이에요.”

 


그때의 원효가 지금의 우리에게


사랑하는 사람 원효에게 세상은 너무나 아픈 곳이었다. 말씀은 사라지고 우상만이 남은 공간, 그 앞으로 모여드는 권력과 재물, 그것이 썩어갈수록 늘어갔던 통한의 목소리. 그 가운데에 서 있는 원효를 지켜보는 일이 힘든 이유는 그에게서 우리의 모습이 겹쳐 보이기 때문이다. 힘이 없는 자는 억울하고, 억울한 자는 스스로를 고립된 높은 곳으로 밀어 올려야 하고, 그를 끌어내리려는 자들은 사람들의 눈을 가리고, 눈 감지 않겠다 다짐하는 자들은 사냥감처럼 이리저리 내몰려야 하는, 시대의 현실이 지금과 조금도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세월호 사건을 겪으면서 『발원』을 1년 정도 더 붙잡고 퇴고했어요. ‘소설 속의 이야기가 오늘 우리에게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정돈할 수 있도록 하는 시간이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저도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많이 고민하면서 쓰고 다듬을 수밖에 없었던 책이에요.”

 

『발원』은 독자들로 하여금 또 다른 원효를 염원하게 만든다. 지금 우리의 곁에는 왜 그와 같은 이가 없는가, 무거운 탄식이 새어나오게 한다. 그러나 홀로 고통을 짊어진 원효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그것이 바람이 아닌 이기적인 욕심임을 깨닫게 된다. 어느 한 개인에게만 무게를 지우기엔 너무 잔인하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깨어나야 한다는 작가의 말은, 그래서 아프게 다가온다.

 

“사람들이 흔히 이야기하잖아요. 이게 국가가 맞느냐고, 국가가 왜 있느냐고요. 이런 질문을 하는 때가 왔을 때, 우리는 보다 강하고 자유롭고 사랑의 능력을 많이 가진 개별 개별의 주체가 탄생되도록 집중해야 돼요. ‘국가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국가 시스템을 변화시킬 수 있는 힘으로 변형되기 위해서는 개인의 힘이 더 강해져야 되는 거예요. 보다 강력한 인문정신을 가진 개인들이 많아짐으로써 강해지는 거죠. 문학을 읽는 것은 더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겠다는 의지를 스스로에게 천명하는 방식이거든요. 내가 속한 사회구조 속에 그냥 복종하면서 살지 않겠다, 나는 나의 자유와 행복을 찾아가며 살겠다, 나의 존재를 충만하게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겠다고 스스로를 일깨우는 게 인문정신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책을 읽고 소설을 읽고 시를 읽어요. 이런 강한 열망을 가진 주체들이 많아지는 사회라면 엉망진창의 국가 시스템을 변화시킬 수 있어요. 강력한 문제 제기가 정치적인 압력으로 전환 가능하니까요.”

 

원효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역시 주체로서의 선언과 다르지 않다고 작가는 말했다. ‘모두가 자신 안의 부처를 발견하고 꽃피워야 한다’는 그의 말은 곧 ‘모두가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그 깨달음이 퍼져 나가도록 하기 위해 원효는 사람들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자유롭고 행복한 삶에 이르는 방법을 함께 나누기 위함이었다.

 

“원효는 6두품의 신분이죠. 6두품은 귀족의 바로 아래에, 그리고 평민들의 가장 위에 위치해요. 6두품으로서 살기에 가장 적합한 삶은 이런 걸지도 몰라요. 안전한 상위 0.1%의 뒤치다꺼리를 하면서 백성들 위에 군림하는 거죠. 원효가 그런 삶을 선택하지 않은 건 강력한 주체 선언인 거예요. 지금의 우리도 마찬가지잖아요. 많은 시민들이 중산층을 꿈꾸죠. 상위 1%로 태어나지는 못했지만 99% 중에서는 가장 높은 곳에 오를 거라고 사다리타기를 시작한단 말이에요. 이 비루한 체제를 무너뜨리려면 다른 삶을 살겠다고 결심해야 돼요. 그리고 그 결심을 자기 삶으로 전환해내야 하죠. 그런 강력한 인문적 주체들이 많아지면 1%의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사회 시스템이 흘러가지 않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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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와 요석, 몸과 마음을 나누던 밤


원효가 세상의 낮은 곳을 향해 걸어 들어갈 때 그의 곁에는 요석이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은애하는 이가 사내로서 멀어지는 걸 바라보면서도 막아서지 않았다. 그가 걸어가는 길이 순탄치만은 않을 거라고 짐작하면서도 만류하지 않았다. “부처의 삶을 이루소서”하고 바랄 뿐이었고 “명경이 되소서. 소녀는 지수가 되겠습니다”하고 뜻을 보탤 뿐이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으로 아파하는 이는 원효와 요석만이 아니었다. 요석이 원효라는 운명에 눈뜨기 전, 그녀의 마음속에는 화랑 보현이 있었다. 보현 역시 요석을 사랑했지만 멀어져 가는 그녀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요석은 차라리 자신을 미워하라 말했지만, 보현은 알고 있었다. 자신은 결코 그럴 수 없는 사람임을.

 

“원효와 요석은 작품을 쓰면서 완성된 캐릭터가 아니에요. 처음부터 제 마음 속에 ‘내가 사랑한 원효는 이런 사람이야’라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어요. 마찬가지로 ‘그가 사랑한 요석이라면, 사랑을 통해서 원효를 완성시킨 요석이라면 이런 사람이야’라는 생각도 있었고요. 그 모습이 작품을 쓰면서 자연스럽게 발현됐어요. 작품이 진행되면서 의외의 진화를 한 인물은 보현이에요. 아마 많은 여성 독자들이 원효보다 보현을 더 좋아하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요(웃음). 처음에 보현은 요석을 정말 친오빠처럼 든든하게 지켜봐주는 남자였어요. 그런데 소설이 진행되면서 요석을 향한 사랑의 감정, 너무 사랑하는데 가질 수는 없는 남자로서의 보현이 성장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걸 지켜보는 것도 작가로서 굉장히 재미가 있었죠.”

 

『발원』을 출간한 뒤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원효와 요석이 사랑을 나누는 장면은 ‘작심하고’ 썼다고 밝혔다. 그리고 “사람들아, 사랑은 이렇게 하는 거다”라고 보여주고 싶었노라고 덧붙였다. “완전한 하루였고 영원이었”던 그 밤, 그들의 사랑은 어떤 모습이었던 걸까.

 

“그 장면을 그릴까 말까 사실 고민했어요. 왜냐하면 이전의 그들이 유지해 온 관계만으로도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줬다는 느낌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굳이 그들의 하룻밤을 쓰기로 결정한 이유에는 작가적인 욕망이 있었어요. 사람과 사람의 몸이 만나는 섹스가 어디까지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문장으로 보여주고 싶었던 거예요. 가장 아름다운 예술의 경지로 남녀의 섹스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문장의 힘으로요. 문장의 힘만으로도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독자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작가의 욕망이 있었던 거죠.”

 

이어서 그녀는 ‘몸과 마음이 함께 가는’ 사랑에 대해 이야기했다.

 

“사랑은 몸과 마음이 동시적으로 만나야 가능한 거잖아요. 그런데 갈수록 몸과 마음이 분리된 사랑이 점점 많아지고, 분리된 사랑 때문에 몸도 힘들고 마음도 힘들어진 ‘찢어진 주체들’이 너무나 많아지고 있어요. 그리고 사랑하는 행위로써 드러나지 않는 섹스는 어떤 식으로든 폭력이에요. 지금 우리에게는 사랑을 나누고 증진시키고 성숙시키는 행위로써 몸과 몸의 만남에 대한 공감이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원효와 요석이 몸으로 만나는 장면을 보여주면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지, 몸과 몸은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를 느끼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래서 그 장면을 쓰고 싶었던 것이기도 해요.”

 

『발원』의 해제를 쓴 철학자 강신주는 자신의 글에 다음과 같은 제목을 붙였다. “소설가의 데뷔 기회를 박탈당한 철학자의 행복한 넋두리” 그 속에 담긴 고백은 “왜 나는 원효를 다룬 소설 쓰기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것이다. 김선우 작가와 마찬가지로 “원효와 요석에 관련된 근사한 소설을 하나 쓰는 것”을 바래왔던 그가 증언하는 원효는 『발원』안의 원효와 많이 닮아있다. 사람을 사랑했고, 그래서 그들 곁에 머물기를 원했던 사람. 그들과 더불어 자기 안의 씨앗을 틔우려고 했던 사람. 짐작컨대 그가 발원했던 바는 김선우 작가가 열망하는 바와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세상에 개인들이 존재하는 방식과 우리가 꿈꿀 수 있는 보다 좋은 공동체를 모색하는 데『발원』이 중요한 추동력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스스로를 깨워서 정신과 마음을 추스를 수 있는 강력한 도구가 되기를 바라고요. 『발원』은 이제까지 제가 해왔던 소설 작업의 총체라고도 할 수 있어요. 제가 꿈꾸었던 완전한 개인, 제가 꿈꾸는 모습에 가장 근접한 공동체, 글로써 구현 가능한 몸과 마음의 사랑, 이 모든 것들이 다 들어가 있거든요.”

 

이번 작품 안에서 독자들이 ‘강력한 주체가 되는 방법’ ‘보다 자유로운 인간이 되는 방법’ ‘더 잘 살아갈 수 있는 인간이 되는 방법’을 찾았으면 좋겠다는 작가 김선우. 그녀는 문학과 우리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로 인사를 대신했다.

 

“책을 잃어버리면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기가 매우 어려운 시대예요. 과포화 상태의 매스미디어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더 적극적으로 책을 옆에 두어야 하는 시대라고 생각해요. 나를 나로서 잘 존재할 수 있게끔 도와주는 가장 강력한 친구이자 도구가 책이라는 걸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그 중에서도 문학작품은 우리의 몸과 마음의 상태를 통째로 느낌의 세계로 변환시킬 수 있는 아주 좋은 장르예요. 문학작품을 통해서 잃어버린 감각을 회복하려는 노력들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를 사랑한다면 진짜로 잃어버리면 안 되는 것이 무엇인지’ 늘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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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원김선우 저 | 민음사
김선우 장편소설 [발원:요석 그리고 원효]가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는 시인이자 날카로운 산문가 그리고 통찰력 있는 소설가이기도 한 작가 김선우의 네 번째 장편소설이다. [발원]은 원효와 요석의 사랑 그리고 당시 신라의 사회상과 원효의 사상을 공중제비를 도는 주령구처럼 균형감 있게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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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석 “아이와 어른은 감동하는 부분이 달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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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왜 똥, 방구 이야기에 자지러질까. 어른들은 똥 이야기가 나오면 눈을 찌푸리고 숨기지만 아이들은 환호한다. 소아정신과의사 서천석은 “아이들은 호들갑 떠는 어른들의 반응을 재미있게 여기는 동시에 어른들이 물러난 공간에서 해방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저자는 똥을 소재로 한 그림책을 통해 똥을 ‘아이들의 소중한 분신’으로 읽어냈다. 『응가하자, 끙끙』에서는 배변을 ‘아이들의 창조 행위’로,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에서는 똥을 ‘자기를 더럽히는 존재인 동시에 자기가 누군지 보여 줄 수 있는 활동으로 본다.

 

누구는 “그림책을 그냥 재밌게 보면 됐지. 해석까지 해야 하나?”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알면 더 많이 보이고, 더 재밌게 읽을 수 있는 법이다. 특히 아이들에게 어떤 책을 읽어줄까 고민하고 있는 부모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길잡이다.

 

전작 『아이와 함께 자라는 부모』, 『우리 아이 괜찮아요』등을 통해 ‘육아 멘토’로 불리는 서천석은 많은 부모들에게 그림책 읽어주기를 권한다. “그림책을 읽어 주는 그 순간이 부모가 아이에게 집중하는, 극히 드문 시간”이기 때문이다. 또 그림책에는 아이들의 진실한 마음이 꾸밈없이 들어가 있다.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고 싶다면 육아서 이전에 그림책을 펼쳐도 좋겠다.

 

서천석은 최근 『그림책으로 읽는 아이들 마음』을 통해 그림책으로 아이들과 소통하는 방법을 소개했다. 서천석은 “세상에 많은 물건이 있다고 해도 누군가 나를 위해 준비해 선물한 물건이라면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갖게 된다. 아이는 부모와 그림책을 읽으며 이미지와 언어, 이야기에 집중하고 몰입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림책 내용이 평범하더라도 일상과 다른 차원에서 받아들이면 큰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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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은 심도가 깊은 책


오랫동안 그림책 칼럼을 써오셨습니다. 지금도 <한겨레신문>에 ‘서천석의 내가 사랑한 그림책’을 연재 중이신데요. 책으로 펴내는 건 처음입니다.


그림책에 대해 쓴 건 5년 정도에요. 육아잡지에 처음 글을 쓰기 시작했고, <한겨레신문>에 연재한 지는 3년 정도 됐어요. 『창비어린이』에서는 그림책 평론을 썼는데, 그동안 써온 칼럼을 일부 수정하고 추가해서 『그림책으로 읽는 아이들 마음』을 내게 됐어요.

 

그림책을 즐겨 보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아이들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아이들을 알기 위해서 그림책을 읽기 시작했어요. 아이들을 알고 싶어서 소아정신과를 전공했는데, 막상 만나는 아이들을 이해하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제 입장에서는 책이 세상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식이거든요. 아이들이 좋아하는 책을 보면 아이들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읽게 됐어요.

 

어릴 때는 그림책을 읽지 않으셨나요?


제가 어렸을 때는 그림책이 별로 없었어요. 기껏해야 동화책, 세계명작동화가 전부였죠. 그림책을 보고 자라질 못했기 때문에 제게는 완전히 새로운 세계였어요. 읽는 거 자체가 즐겁더라고요. 그림책이 주는 독서의 즐거움이 커서 열심히 읽기 시작했죠. 그런데 치료자로서 그림책을 봤을 때, 부모들이 잘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아이들이 왜 그림책을 좋아하는지, 그림책의 어떤 부분에 빠졌는지, 그림책으로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를 모르는 분들이 많은데. 저는 아이들이랑 소통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까 그런 걸 대신 이야기해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아이들이 무엇에 매혹되고 무엇에 관심이 있는지가 보이니까요. 그러다 보니 그림책에 대한 글을 자연스럽게 쓰게 됐어요.

 

칼럼을 통해 소개하는 그림책들을 보면, 웬만한 그림책은 다 읽으시는 것 같아요.


대부분 볼 수 있는 건 다 봐요. 2,3주에 한 번씩 서점에 가는데 그림책 코너에 가서 신간은 다 봐요. 매대 밑에 있는 것부터 새로 들어온 것까지. 그림책은 대부분 출판사에서 번호를 매기면서 나오잖아요. 평소 어디까지 봤는지를 체크하니까 다음 번호 책이 나오면 챙겨 읽어요. 최근에는 엔씨소프트에서 그림책을 내더라고요. 그건 아직 못 봤어요. 읽어 봐야죠.

 

아이들을 치료하고 계신데, 그림책을 치료 도구로 사용하기도 하나요.


그럼요. 치료적인 면에서 이용하는 것도 있어요. 하지만 그림책이 해결 방안이 되는 건 아니에요. 도구인 거죠. 이 도구를 통해서 어떻게 소통하느냐가 사람의 변화를 일으키는 거예요. 소통하는 방법에 대해서 잘 모르면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하는 부분이 많이 있어요. 인식은 또 다른 차원이니까, 모든 아이들이 그림책을 읽고 변화를 갖는 건 아니에요. 적잖은 아이들이 변화를 못 볼 수도 있어요. 잘 인식하고 감정을 끌어내는 게 중요하죠. 마음속에서 생각을 진행하는 게 필요해요.

 

그림책을 추천해달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으실 텐데요.


많이 들어요. 적극적으로 추천을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부모들이 일일이 그림책을 다 읽고 고를 여력이 없잖아요. 아이 키우는데 할 일이 너무 많으니까. 수많은 그림책을 보고 고르기가 힘들기 때문에 큐레이션이 점점 더 중요해지는 것 같아요.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많이 추천을 안 한다는 점에서 부담이 있어요. 개개인들이 더 적극적으로 그림책을 추천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왜냐면 많은 사람들이 추천을 해야 고르기가 더 쉽잖아요. 제가 추천한 게 어떤 사람에게는 안 맞을 수도 있고요. 난 이 사람의 시각으로 본 게 맞더라, 하고 생각이 들면 그 사람이 추천한 책을 신뢰하고 계속 보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엄밀히 말하면 큐레이션인데, 그런 큐레이션이 많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상징’ 부분이 인상 깊습니다. 똥, 곰, 구름, 바다 등 그림책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를 다시 생각해보게 됐어요.


그림책에 유독 많이 나오는 상징들을 있어요. 토끼는 약자, 사자는 강자, 곰은 엄마 또는 야생을 상징해요. 교육을 특별히 하지 않았어도 무의식적으로 그런 상징은 갖고 있다고 보는 거죠. 그림책 작가들이 상징을 따로 생각하고 그림을 그리진 않지만, 집단무의식으로 저절로 표현하게 되는 거예요. 상징이 있을수록 의사소통에서 더 많은 의미를 전달할 수 있어요. 상징이 이미 갖고 있는 의미가 있기 때문에 설명이 덜 필요한 거죠. 그런데 상징이 갖고 있는 의미를 잘 알지 못하고 그림을 그리게 되면,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잘못 전달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림책의 숫자는 점점 늘어나는데, 가끔 책을 읽다 보면 배경이 너무 옛날 풍경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맞아요. 요즘 아이들은 대부분 아파트에 살잖아요. 그런데 아파트가 나오는 그림책을 떠올려보면 거의 없어요. 애들이 다니는 어린이집, 골목, 놀이터 같은 것조차 잘 등장하지 않아요. 부모 세대들이 겪었을 법한 그림이 배경으로 나오죠. 시대착오적인 모습이에요. 이런 건 좀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 당대에 살고 있는 어린이 독자들을 위해 책을 만드는 건데, 작가가 살았던 시대가 배경이면 좀 그렇죠. 독자들이 어떤 것에 관심이 있고, 어떤 시각적인 이미지 속에 살고 있는지에 대한 연구가 더 활발히 이뤄져야죠. 책에도 썼지만 『엄마는 회사에서 내 생각해?』의 김영진 작가처럼 현재 아이들이 겪고 있는 문제를 다루는 작가들도 있어요. 작가라는 직업 자체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쓰게 되잖아요. 그러다 보니 독자를 연구하는데 익숙하지 않을 수 있어요. 그런 부분에서는 편집자들이 중요한 역할을 해줘야 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가끔 그림책을 보다 보면, 이건 어른이 읽어도 좋을 책이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림책 작가들은 그림책 자체를 아이들을 위한 책이라고 생각하는 걸 싫어해요. 모든 세대가 보는 책이라고 생각하는데, 저도 동의해요. 중요한 건, 어릴 때 그림책에 만족해야 어른으로서의 독자도 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어린이 독자를 위한 책이라면 좀 더 어린이 독자에게 집중해주는 것도 필요하죠. 좋은 책이라면 어린이는 어린이대로, 어른은 어른대로 느끼는 바가 있을 거라 생각하고요. 좋은 음식을 먹으면, 배가 고프지 않았던 상태였어도 맛있는 느낌을 갖게 되잖아요. 디테일을 알면 알수록 더 많은 걸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음식도 마찬가지에요. 더 좋은 음식, 책을 볼 수 있는 눈이 생기겠죠. 저는 그림책을 심도가 깊은 책이라고 생각해요. 숨어 있는 의미가 많이 때문에 어린이가 봐도 좋고, 인생의 중요한 고민을 앞둔 어른이 봐도 좋은 책이에요.

 

육아로 지친 부모들이 읽으면 좋을 그림책이 있다면.


백희나 작가의 『삐약이 엄마』가 좋을 것 같아요. 고양이가 삐약이를 키우면서, ‘나의 자유분방했던 시절은 어디로 갔을까’를 떠올리는데. 하루하루 힘들어하는 엄마들의 심정을 십분 이해하게 하는 책이에요.

 

아이들과 함께 봐도 좋을 책은요?


아이들에게는 『마녀 위니』시리즈를 추천하고 싶어요. 마녀 위니가 상징하는 게 엄마에요. 엄마의 나쁜 측면이 마녀인데, 이 시대의 엄마들을 볼 수 있는 책이기도 해요. 위니는 모든 세상을 검은색으로 꾸며놔요. 자기가 사랑하는 고양이 윌버도 검은색인데, 온통 검은색이니까 다들 넘어지고 문제가 벌어져요. 위니는 안되겠다 싶어서 고양이 색깔에 변화를 줘요. 자기 색에는 변화를 주기 어려우니까 고양이 색깔을 계속 바꾸는 거죠. 그러니까 고양이는 괴롭고 힘들어지고 위니를 골탕 먹이기도 해요. 아이들은 고양이에 감정 이입을 할 거예요. 엄마들은 마녀에게 감정이입을 하고. 결국 마녀 위니는 성을 총천연색으로 바꿔요. 고양이만 검은색이니까 이제 잘 구별할 수 있게 됐죠. 위니에게는 희생일 수 있는데 그걸 통해서 새로운 균형을 찾게 돼요. 어쩌면 이 시대의 괴로움 속에서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 새로운 균형을 찾아가는 엄마들의 심정을 대변할 수 있는 그림책인 것 같아요.

 

『똑똑똑 과학 그림책』 시리즈의 『싸우는 몸』, 『느끼는 몸』, 『일하는 몸』, 『자라는 몸』의 글을 쓰기도 하셨는데요. 그림책 칼럼을 계속 쓰다 보면, 그림책을 직접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도 들 것 같습니다.


그림은 못 그리니까 글 작가를 해보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그러면 그림 작가와 공동 작업을 해야 하는데, 내가 전달하고 싶은 내용을 충분히 깊이 있게 완결성 있게 만드는 게 어렵잖아요. 몇 권 정도는 작업할 수 있는 대본을 이미 써놨는데, 언젠가 작가들과 충분히 교류가 있고 서로 친밀하게 작업을 할 수 있다면 해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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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중요한 건 책에 흥미를 갖게 하는 것


그림책을 어떻게 골라야 할 지 모르겠다는 부모들이 많아요.


우리나라 그림책은 너무 부모를 위한 책이 많아요. 내가 이걸 보고 좋은 느낌을 받았으니까 우리 애도 감동하겠지, 아이한테 이걸 가르치고 싶으니까, 선택하는 책도 많고요. 그림책 선택에서 기준이 너무 지나치게 부모에게 쏠려 있는 게 문제에요. 사실 『그림책으로 읽는 아이들 마음』을 쓴 게, 그걸 말해주고 싶어서예요. 아이들 마음은 어른들과 다르거든요. 내가 감동받았으니까 우리 아이도 감동할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아이는 그걸 다르게 느껴요. 왜 다르게 느끼는지를 말해주려고 책을 쓴 거고요.

 

아이들에게 책 선택권을 주는 게 가장 좋겠지만, 대개 서점을 같이 가면 즉흥적으로 책을 고르잖아요. 사줬는데 집에서 안 읽는 경우도 있고요.


그렇죠. 아이들은 즉흥적이기 때문에 눈에 띠는 뭔가가 있을 때 확 고르는 경우가 많아요. 장난감 살 때도 비슷하죠. 산 다음에 안 갖고 노는 경우도 많아서 판단을 믿을 수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도서관을 같이 가는 게 좋아요. 서점은 시간의 한계가 있잖아요. 도서관에서 아이들이 두 번 세 번 보려고 하는 책들은 사주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유심히 보는 그림책들이 있다면, 그 책들의 공통점을 볼 수 있을 거예요. 그걸 파악하면 성공 확률이 높아지겠죠.

 

 

그림책은 언제부터 읽어 주는 게 좋나요?


읽어 준다는 게 내용의 전달을 의미하는데, 유아에게 읽어서 전달할 정도의 내용이란 애초에 무리에요. 세 돌 이전의 아이들에게는 그림책을 놀이도구로 활용하는 게 좋아요. 한두 개의 그림을 갖고 이야기를 만들어 놀아도 좋고, 운율을 넣어 읽어 주거나 의성어, 의태어를 사용해서 말놀이를 하는 것도 좋고. 가급적 다양한 방식을 제시하면서 아이가 원하는 방식을 고르는 게 최선이에요.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싶은데. 재밌게 읽어주지 못해 고민하는 부모들도 있습니다. 그림책은 어떻게 읽어줘야 좋은가요?


많은 부모들이 그저 텍스트를 읽어 주는 데 급급해요. 하지만 그래서는 아이가 충분한 자극을 받지 못하고 재미도 느끼지 못해요. 학습이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되고 정서적인 안정감을 확인하고 기본 인성을 확립하는 걸 가장 중요한 목표로 둬야 해요. 글자에만 집중하다 보면 글 외의 다양하고 풍부한 메시지도, 재미도, 작가의 의도도 놓치게 되요. 그래서 유아에게 그림책을 읽어줄 때는 글자에 집착하기보다 그림을 기반으로 이야기를 자유롭게 지어내서 입말로 들려주는 게 좋아요. 한 글자, 한 글자 똑바로 읽어 주는 건 아이가 줄거리를 따라갈 수 있을 때, 만 4세 정도에 하는 게 좋아요. 아이가 좋아하는 장면이 있으면 여러 번 반복해서 보고 그림을 보며 함께 흉내 내고 장난도 치면 아이의 흥미를 끌 수 있어요.

 

 

부모들이 독서 교육, 논술 지도에 관심이 많은데요. 글 쓰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누구나 말을 하고 싶은 욕구는 있는 것 같아요. 자기 생각을 말하고 싶은 욕망, 남이 인정하고 이해해줬으면 하는 생각이 있어요. 그런데 정리가 잘 안 될 수도, 자기가 생각하는 것 이상을 글로 표현하기 어려운 사람이 있어요. 생각하는 것들의 매우 작은 부분만 글로 표현이 되는 아이도 있고요. 생각이 부족하거나 약해서 그런 게 아닌데. 그런 아이의 경우는 생각을 표현하는 데 두려움을 가질 수 있어요. 내가 표현을 했는데 우습게 보면 어떡하나, 한심하다고 생각하면 어떡하나. 걱정하는 거죠. 모든 아이들은 평가에 대한 두려움이 강해요. 그 평가가 부정적으로 올까 봐 말하는 걸 회피하는 경우가 많아요.

 

표현을 두려워하는 아이들에게는 어떤 반응을 보여주는 게 필요할까요. 


말하는 것에 대해 모두 인정하고 긍정하는 분위기에서는 말하는 게 확실히 늘어요. 표현 기술도 발전하고. 아이들에게는 표현 자체를 격려하는 게 중요해요. 그런 면에서 보면 평가를 전제로 하는 모두가 참여하는 글쓰기, 독후감대회가 괴로울 수 있어요. 때문에 어떤 참여 자체에 의의를 두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이 기회에 뭔가 나에게 재미있는 책을 골라보고, 그 느낌을 어떤 식으로든 표현한다면 더 많은 아이들이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거잖아요. 부모나 교사 분들 입장에서도 우리 아이가 멋있는 글을 썼으면, 지식을 얻길 바라는 마음보다 자기를 표현하는 도구로 독후감을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요.

 

부모나 교사들이 더 신경 써야 할 부분이 있다면.


아이들 모두가 그렇지는 않지만. 대회나 출판 같은 외적인 것을 앞에 두었을 때, 기본적으로 자기 생각의 일면을 과장하는 경우가 많아요. 좋은 글짓기 선생님은 과장을 안 하게 하려고 노력을 많이 하지만, 아이들은 그걸 뚫고 과장을 하고 싶어 해요. 자기를 포장해서 그럴듯하게 보이는 게 아이들한테는 되게 중요한 일이에요. 어떻게 보면 노출이라는 것도 적절한 수준에서는 통제하는 게 아이들 성장에는 도움이 될 수 있어요. 어릴 때 글짓기대회에 나가서 상을 받으면 글을 더 잘 쓰고 싶은 욕구는 늘겠지만, 계속 힘이 들어간다든지 기술에 더 신경을 쓰게 된다든지 그런 일이 벌어져요. 평가에 초점을 두고 글을 쓴다면, 나중에는 평가 없는 글은 쓸모 없다고 여길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러니 표현하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고 그것을 격려하는 게 가장 좋을 것 같아요.

 

예스24에서도 매년 어린이독후감대회를 엽니다. 올해는 8월 10일부터 9월 23일까지 열릴 예정인데요.


대상 도서가 따로 정해져 있지 않은 독후감대회는 여러 모로 의미가 있다고 봐요. 아무 책으로 써도 되는 건 너무 좋은 것 같아요.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독후감대회를 마치고 아이들의 평가를 한 번 들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이 대회가 재밌었다고 평가한 아이들이 가장 많은 반에 상을 주는 거죠. 물론 이걸 미리 말하면 의미가 없겠지만(웃음). 결국 우리가 독후감대회를 하는 건, 책에 흥미를 갖게 하려는 거잖아요. 책을 즐겁게 느끼게 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이 대회를 재밌어 한다면 그게 가장 큰 효과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저자님도 아빠이자 부모이신데요. 육아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지요.


우리가 보면 어떤 일이든 목적이 있잖아요. 육아를 할 때도 아이들이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하는데, 가끔 보면 아이들이 행복하지 않게 이끌어가는 경우가 보여요. 저는 아이들도, 육아도 행복해졌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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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으로 읽는 아이들 마음서천석 저 | 창비
아이들 마음을 돌보는 정신과 의사로서 그는 그림책에 드러난 아이들의 변화무쌍한 마음을 섬세하게 짚어낸다. 또한 성장과정에서 발달 과제에 맞는 그림책이 무엇인지, 심리적 어려움을 겪는 아이들에게 그림책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부모가 자신과는 다른 아이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지 따스하고 현실적인 조언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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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피아니스트 손열음 “글 쓰는 쾌감, 피아노 못지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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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손열음의 클래식 이야기를 담은 『하노버에서 온 음악편지』가 출간됐다. 클래식에 문외한인 사람들도 흥미롭게 읽을 만한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이를테면 ‘나는 왜 음악을 하는가’에 대한 솔직한 속내부터 좋아하는 음악가에 대한 애정, 음악교육을 비판한 ‘콩쿠르에 목숨 거는 사회’ 등 피아니스트이자 마지막 20대를 보내고 있는 손열음의 진솔한 고민이 담겼다.

 

5년간, 50여 편의 음악 칼럼을 쓴 손열음은 책을 내자는 제안을 받고, 학교 앞 책방에서 살다시피 했던 학창시절을 떠올렸다. “책방 아주머니가 서울에 주문 넣어주신 책들이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재미로 하루하루를 보냈다”는 손열음. 이제 저자가 되어 자신의 책을 손에 들었다. 현재 하노버 국립 음대에서 공부 중인 손열음에게 <채널예스>가 메일을 띄었다. 손열음은 바쁜 연주회 일정에도 불구하고 짧은 질문 하나도 허투루 답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씀 드리면’을 말머리로 붙여가며, 정성 어린 답장을 보내왔다. 현재 하노버 국립 음대에서 공부 중인 손열음은 오는 7월 24일, 대관령국제음악제에서 하프시코드 주자로 데뷔한다.


 

쓸 때마다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라고 생각했어요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요?


지금 이 순간은 도쿄에 있어요. 어제 도착했고요. 내일 또 다른 곳으로 떠나요. 공식적으로 사는 곳은 독일의 ‘하노버’라는 도시지만 연주여행 때문에 막상 거기서 시간을 많이 보내지는 못해요.

 

서문의 ‘주제 파악’이라는 표현이 재밌었습니다. 그래서 책이 늦게 나왔나 보네요. 주제 파악을 잘하는 것 말고, (웃음) 손열음의 장점과 단점을 이야기해주신다면.


저는 옳다, 그르다의 가치판단을 잘 못하는 편이예요. 무슨 말이냐면, ‘무엇이 좋다, 나쁘다’ 이런 똑 부러진 판단보다는 주로 ‘이것은 이러하다, 저것은 저러하다’ 하는 식으로 생각을 늘어놓는 편이라서요. 한마디로 제 장점, 단점도 뭔지는 잘 모르겠네요. 모든 면이 다 장점이자 단점이지 않을까요? 다만 살면서 참 불편하다고 느낀 점은 ‘숫기 없는’ 것이요. 이건 정말이지 도움이 안 돼요.

 

최근 TV에 출연해 『논어』를 읽었다고 해서 화제를 모았어요. 대중에게는 피아노와 논어의 조합이 새로웠던 것 같습니다. 어릴 적부터 책을 굉장히 좋아했다고 밝혔는데, 책을 선택하는 기준이 있나요.


저는 ‘책 속의 책 읽기’나 ‘책 마인드맵’을 가장 많이 했던 것 같아요. 현재 읽고 있는 책 하나를 기준으로 그 책 속에 나오는 또 다른 책을 찾아 읽는다든가, 또는 그 책의 저자와 연결고리가 있는 또 다른 저자의 책, 혹은 현재 그 책과 비슷한 소재를 다룬 책 등등을 찾는 것?『논어』는 아주 어렸을 적에 산 책이고 사실 끝까지 다 읽어보지도 않았어요. 제가 원래 역사 분야를 좋아했었고 특히 조선사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러다 보니 자연히 유교, 성리학의 근본이 궁금해졌죠. 그래서 그냥 대충 뒤적여볼 생각으로 사본 것뿐이었어요. 심지어 진지하고 심도 있게 읽은 것도 아니었는데, 화제가 돼서 정말 민망해요. 
 
<중앙SUNDAY>에 ‘하노버에서 온 음악편지’를 오랫동안 연재했는데요. 바쁜 연주회 일정도 있고, 마감을 지키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럼을 이어간 건, 글 쓰는 재미를 알기 때문이었을까요.


솔직히 쓸 때마다 ‘이번이 정말 마지막이다’라고 생각할 정도로 너무 힘들어요. 재밌어 하며 쓴 글은 정말이지 없는 것 같기도 하고요. 원래 글 쓸 적에 컴퓨터 앞에 앉아 구상만 하며 훌쩍 보내버리는 시간까지 다 합하면 한편에 6-7시간 정도가 드는데, 이게 평범한 일상에서라면 상관이 없지만 그보다 내일 음악회가 있다거나, 지금 당장 리허설을 가야 된다거나 하는 긴박한 상황일 때가 더 많거든요. 그래서 그 순간엔 정말 벗어나고만 싶을 정도로 싫을 때가 많아요. 그런데 막상 글을 다 썼을 때의 쾌감이 정말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커요. 감히 비교해선 안 되겠지만 ‘출산을 반복하는 게 이런 기분인가’ 싶을 정도예요. 하하. 태어난 아기를 보면 그 끔찍했던 산고도 다 잊혀진다면서요. 제가 매달 느끼는 기분도 그 100분의 1 정도는 되지 않나 싶어요.
 
36쪽 ‘오늘 연주는 어땠나요?’에서 ‘잘 된 연주’에 대한 글이 흥미로웠습니다. 연주회는 청중과의 교감을 놓칠 수 없을 텐데요. 최근 ‘잘 된 연주’는 어떤 연주회였나요?


지난주에 독일 바트 키싱엔이라는 도시에서 있었던 리사이틀이었어요. 여름에 큰 음악제를 하는 곳으로 올해 네 번째로 참가한 거였는데 워낙 제가 좋아하는 장소라 그랬는지 아침에 하는 연주인데도 너무 잘 됐어요. 제가 원래 아침에는 사람 구실을 거의 못하거든요. 내가 하는 음악에 내가 질질 끌려가는 느낌이 드는 연주가 있는가 하면 나라는 사람이 주체가 되어 모든 것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연주가 있어요. 지난주가 딱 후자였어요. 정말 신났어요.
 
책 출간 기념 음악회에서 에른스트 슐체의 시를 낭송했다고 들었습니다.


이 시보다는 이 시의 곡을 붙인 슈베르트의 리트를 좋아해요. 책에도 썼지만 아마도 제가 이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노래일 거예요. 사실 저는 시에 조예가 없는 편인데, 그나마 슈베르트나 슈만의 가곡을 들으며 가끔 독일시를 읽어요.
 
책에 소개한 음악가 중에 가장 매력적으로 생각하는 음악가는 누구인가요.


저에게는 너무너무 많으니, 독자 분들이 읽고 매력적으로 생각하실 음악가를 꼽아 볼게요. 아마도 라흐마니노프나 쇼스타코비치? 아무래도 모차르트나 베토벤 같은 음악가들은 한참 예전의 사람들이잖아요. 라흐마니노프나 쇼스타코비치는 그래도 우리와 크게 떨어지지 않은 시대를 살았으니 독자 분들이 더 가깝게 느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들이 살았던 20세기 초반은 그 시대상이 처절하지만, 그랬기에 예술가 개개인의 본질이 한층 더 도드라지기도 했어요. 라흐마니노프나 쇼스타코비치의 음악과 인생궤적 역시 그렇고요. 그게 아주 인간적이고, 그래서 매력적으로 느끼실 것 같아요. 
 
현재 하노버 국립 음대에서 아리에 바르디와 수학 중입니다. 아리에 바르디 교수님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하셨는데요. 가장 큰 영향, 변화는 무엇인가요.


선생님을 만나고 하나부터 열까지 바뀌었어요. 예를 하나 들면, 유학을 간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선생님께서 엄청나게 조심스럽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열음. 근데 혹시 너희 문화권에서는 사람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얘기하는 것이 실례니? 만약 그렇다 해도 여기서는 상대방 눈을 좀 더 쳐다보며 말해도 좋을 것 같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을 거야.” 그때서야 제가 낯선 상대방의 눈을 잘 못 쳐다본다는 걸 알았어요. 그걸 고치려다 보니 낯가리는 성향도 자연히 많이 줄었어요.

 

음악적으로는요?


음악적으로는 가히 제 꿈을 이뤘어요. 원래 제가 유학을 가기 전 꿈꾸던 스승이 ‘내가 하는 음악적 표현들의 당위성을 설명해줄 수 있는 사람’ 이었거든요. 한마디로 여기서 작게 연주하면 ‘왜’ 작게 연주하는가. 또 여기를 클라이막스로 만든다면 ‘왜’ 여기가 클라이막스인가 하는 질문들에, ‘이러이러하기 때문에’라고 답해줄 수 있는 사람을 꿈꿨던 거예요. 그때까지의 저는 ‘그저 이렇게 느끼니 이렇게 연주할 뿐'이었거든요. 그러면서도 타고난 성향이, 잘 모르는 걸 그저 실행부터 하고 보는 걸 몹시 겁내 하는지라, 제 스스로의 음악에 설명 못할 불편함이 있었어요. 그러다 선생님을 딱 만났는데, 선생님이 딱 제 꿈 속의 스승인 거예요. 그러면서도 또 놀라우리만치 유연하시고요. 보통 그렇게 이지적인 분은 딱딱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이 정상일 텐데 선생님은 그렇지도 않으세요. ‘체계화해서 만들되, 체계화한 그 논리는 직관을 자유롭게 해주는 도구에 불과해야 한다’는 게 선생님의 지론이세요. 평생을 목표로 꼭 하나 써보고 싶은 게 있다면, 선생님의 이런 가르침들을 엮은 책이에요.

 

책 하니까 생각났는데 저에게 마르셀 프루스트, 슈테판 츠바이크, 슈무엘 아그논, 마르그리트 뒤라스 같은 작가들을 소개해준 사람도 선생님이에요. 물론 저도 선생님께 움베르토 에코 같은 작가들을 소개하기도 했어요. 실은 한국 문학 작품을 더 많이 소개하고픈데, 번역본이 너무 적어 아쉬워요. 시중에 영어번역본으로 나와있는 작품들 중 제가 좋아하는 것들은 몽땅 구해다 드리긴 했어요. 아주 좋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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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먼저 반응하는 삶은 어떨까


책과 클래식 음악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공통점은, 처음에 딱 시작했을 때는 ‘이거 언제 끝나나’ 싶다가 빠져들기 시작하면 끝나는 게 아쉬울 정도가 되는 것? 또 책을 영화에 비교하고, 클래식 피아노 음악을 가사가 있는 팝 음악에 비교해 본다면요. 후자에 비해 상상의 여지를 훨씬 많이 열어준다는 것도 비슷한 점일 듯 해요. 다른 점은 독서는 중간중간 끊어 가며 할 수 있지만 음악회에 오신 분들은 아쉽게도 중간에 한번 나가면 끝이라는 것?
 
요즘 주로 듣고 있는 음악, 플레이 리스트가 궁금해요.


솔직히 말씀 드리면 근 일주일간 들은 음악이 전혀 없네요. 요 몇 달간 연주가 너무 많아서 그랬는지.저도 안 들을 수 있을 땐 안 듣고 싶을 때도 있거든요.
 
이강숙 교수님이 집필한 피아니스트 손열음을 주인공으로 한 장편소설 『피아니스트의 탄생』을 읽어보셨을 텐데요. 독자로서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정말 솔직히 말하면, 몇 번 시도했는데 제대로 못 읽었어요. 너무 민망해서요. 총장님의 다른 글들은 좋아하는 것이 참 많은데 그 책만은 못 읽겠더라고요. 지금쯤은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당시의 제가 열여섯이었는데 이제는 스물아홉이 되었고, 아주 많은 것이 변했으니까요.
 
정말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는데요. 한 달의 자유가 주어진다면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싶나요?


서예하고 춤을 배워보고 싶어요. 꾸준히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없었기에 한 번도 시도를 못해봤어요. 
 
만약 직업 선택의 자유가 주어진다면.


그 자유에 재주도 포함된다면, 그러니까 제가 만약 재주가 있다면 몸으로 사는 일을 한번 해보고 싶어요. 이를 테면 운동선수나 무용수? 사실 음악도 ‘반 체능’ 이기는 해요. 그런데 피아노라는 악기의 특성도 그렇고 저의 성향도 그렇고, 저는 아무래도 현상을 받아들이고 풀어내는 모든 과정에서 몸보단 머리가 먼저 반응하는 편이예요. 그런데 몸이 먼저 반응하는 삶은 어떨까? 그에 대한 동경이 무지 커요. 또 확실한 잣대에 의해서 평가 받고 눈에 보이는 수치를 매기는 게 가능한 그런 사회는 왠지 그 속이 되게 건강할 것 같다는 환상이 있어요. 물론 제가 그 실체를 알지는 못하지만. 하지만 몸이 너무 힘들 것 같긴 해요. 전 아마 못하겠죠? (웃음)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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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버에서 온 음악 편지손열음 저 | 중앙북스(books)
손열음의 이번 책은 타 클래식 입문서와는 다른 세 가지의 차별점이 있다. 첫째, 클래식 매니아뿐만 아니라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쉬우면서도 밀도 높은 글이라는 점. 둘째, 청중의 눈을 포함해서 연주자의 눈으로 음악을 바라보는 방법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중들이 평소 궁금해했던 비밀스러운 영역인 ‘연주자의 삶‘을 진솔하고 담백하게 고백하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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