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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곤, 학원을 다녀도 외국어가 늘지 않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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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 공부, 시험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라


인생의 반환점에 도착한 나이 50, 김원곤 저자는 외국어 공부를 시작했다. 서울대 의대 흉부외과 교수인 그의 일상은 여유롭지 않았고 강하게 남아 있는 경상도 억양 탓에 모국어조차 완벽하게 발음하기 힘들었지만, 1년 안에 4개 국어 외국어능력시험에 모두 합격했다. 『파란만장 중년의 4개 외국어 도전기』에 기록된 이 놀라운 경험담은 ‘열정은 나이 들지 않는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2003년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실 영어 외에 새로운 외국어를 배워야 할 현실적인 필요성이나 미래의 특별한 계획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어찌 표현하면 순수하게 지적 호기심이 발현된 것이라고 멋있게 말할 수도 있겠다. 무엇보다 당시 주5일제가 확산되고 직장에서 직급이 올라감에 따라 조금씩 여유 시간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 이유였을 것이다. 어쩌면 세월이 덧없이 흘러가는 데에 대한 아쉬움과 막연한 공허감이 더 작용했을지도 모른다. ( 『파란만장 중년의 4개 외국어 도전기』 16쪽)

 

저자는 일본어 중국어 프랑스어 스페인어의 4개 국어를 구사한다. 2003년 일본어를 시작으로 2005년에는 중국어를, 2006년과 2007년에는 각각 프랑스어와 스페인어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2001년부터 2012년 사이에 외국어능력시험에 전부 합격했다. 짧게는 5년, 길게는 9년 만에 원어민과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쌓은 것이다.

 

세월의 덧없음에서 오는 아쉬움과 공허함을 느낄 때, 도전 과제로 선택할 수 있는 건 다양할 거예요. 그 중에서 외국어 공부를 선택한 이유는, 가치와 보람을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실용적인 측면에서도 좋을 것 같았고요. 현실적으로는 영어 이외의 제2외국어를 공부해야 될 동기나 필요성은 전혀 없었어요. 처음에는 ‘제2외국어 한 가지 정도는 더 늙기 전에 배워두자’라는 생각으로 일본어 공부를 시작한 거였어요. 일본은 가까운 나라니까 여행을 떠나기도 쉽고, 우리나라에서도 일본에 관련된 서적이나 영상물을 쉽게 접할 수 있으니까요. 배워두면 용도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선택했던 거죠.”

 

『파란만장 중년의 4개 외국어 도전기』에서 고백하듯, 저자가 외국어 공부를 시작하게 된 현실적인 필요나 거창한 목표는 없었다. 다른 언어에 비해 배우기 쉽고 일상생활에서 많이 접할 수 있다는 이유로 일본어를 선택했고, 중국어 역시 같은 한자문화권 언어이니 상대적으로 진입 장벽이 낮을 것이라는 판단 하에 도전하게 됐다. “프랑스 와인이나 치즈에 붙어 있는 상표의 이름들만이라도 제대로 발음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프랑스어를 “스페인어는 한국사람 입장에서 발음이 매우 쉽다”는 말에 스페인어를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외국어능력시험에 대해 알게 됐다. 학원 수업을 같이 듣던 학생들이 자격시험을 목표로 공부 중인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그렇다면 나도 한번 재미로라도 쳐봐야겠네”하고 가볍게 생각했지만 곧 “시험이라는 중간 목표가 있으면 공부 효율성을 확실히 높일 수 있겠다”는 기대를 가지게 됐다.

 

“제 경우에는 직업적인 이유로 외국어가 필요했던 것도 아니고 미래의 계획을 위해서 준비했던 것도 아니었어요. 그러면 공부의 동기가 없잖아요. 그 상태로 10년이 될지 20년이 될지 모를 공부를 계속 해나가는 건 정말 지루한 일이죠. 그래서 스스로 중간 목표를 세우면 지루함을 없앨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목표를 향해서 노력하는 과정에서 더 분발하게 될 것 같기도 했고요. 목표를 달성하지 못해도 크게 문제될 것은 없지만, 지금처럼 모두 이루게 되면 성취감도 남다르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긴 공부의 중간 매듭을 마련하기 위해서 외국어능력시험에 도전하게 된 거예요.”

 

“시험 그 자체를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목표를 이루기 위한 효율적인 수단으로 활용”했던 저자는 『파란만장 중년의 4개 외국어 도전기』에서 자신이 경험한 ‘시험의 효과’를 알려준다. 그가 전하는 ‘외국어를 공부하는 데 있어 시험이라는 목표가 필요한 이유’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시험은 자신이 현재까지 걸어온 길과 향후 여정을 정확하게 제시해준다. 그리고 다음의 이정표가 나올 때까지 확실한 중간 목표를 가지고 걸어갈 수 있도록 의지를 다잡아준다.

 

- 시험을 출제하는 측에서는 오랜 경험을 바탕으로 수험생이 반드시 알아야하는 중요한 문제들을 출제하기 마련이다. 즉, 공부 방향에 대해 체계적이면서 합리적인 지침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 시험은 스스로의 상태를 냉정하게 평가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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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을 다녀도 외국어가 늘지 않는 이유


독자들은 『파란만장 중년의 4개 외국어 도전기』안에서 중년의 나이에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열정을 발견하게 되고, 그 열정이 열매를 맺는 과정을 목격하게 된다. 아울러 4개 국어의 외국어능력시험이 치러지는 방법과 합격에 이르는 길에 대해 알게 된다. 그러나 정작 저자 자신은 공부의 비법 같은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단언한다. 그리고 외국어를 마스터한다거나 정복한다는 개념 역시 존재할 수 없다고 말한다.

 

“최고의 등산가들도 산을 정복한다는 말은 쓰지 않아요. 그 말 자체가 굉장히 조심스럽다고들 하죠. 그렇지만 객관적으로는 ‘산을 정복했다’는 표현은 쓸 수도 있는 것이죠. 그런데 어학이라는 건 정상이 어디인지 기준도 없고, 보이지도 않고, 있지도 않아요. 예를 들어서 한국인에게 ‘당신은 한국어를 정복했습니까?’ ‘당신은 한국어를 마스터했습니까?’라고 물어본다고 생각해 보세요. 아마 최고의 소설가나 최고의 문학 비평가도 감히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없을 거예요. 하물며 외국어는 더욱 그렇죠. 모국어도 정복을 못 하는 마당에 외국어를 정복할 수는 없는 거죠.”

 

말하자면 산악인의 과거 등반 기록은 그 자체만 가지고도 충분히 권위 있고 훌륭한 것이지만, 어학 공부를 하는 사람의 과거 기록은 바로 지금의 실력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한때의 아련한 추억으로 끝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학 공부에는 은퇴도 휴식도 있을 수 없다. 오로지 묵묵히 끈기 있게 한 번 시작한 공부를 평생 지속하는 외길만이 존재할 뿐이다. ( 『파란만장 중년의 4개 외국어 도전기』 8쪽)

 

그렇기에 저자는 외국어 공부의 지름길이나 필승법을 알려주겠다고 호언장담하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비결 아닌 비결”을 말해줄 뿐이다. 그 첫 번째는 ‘외국어 공부의 원칙’으로, 문법과 단어로써 기본을 탄탄하게 마련하는 것이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외국어 학습에 있어서 문법은 ‘뼈대’가 되고 단어는 ‘근육’이 된다. 문법과 단어라는 기본 체력을 갖추어야 듣기와 말하기, 읽기와 쓰기의 기술적인 측면을 배워나갈 수 있는 것이다.

 

“문법하고 단어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면 많은 사람들이 ‘그런 걸 강조하는 건 옛날식 교육 방법이다’라고 하는데요.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고 또 쓸 수 있으려면 문법과 단어 실력이 바탕이 되어야 해요. 듣기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죠. 모르는 단어가 어떻게 들리겠어요. 그런 식으로 다 유기적인 관계로 맺어져 있는 거죠.”

 

흔히 ‘생활외국어’라는 이름 아래 최소한의 단어와 문법으로 말을 이어나가는 것을 자랑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서바이벌 회화는 가능하겠지만, 항상 제자리일 수밖에 없다. 문법과 단어 이 둘을 좌청룡 우백호처럼 곁에 끼고 있을 때라야 비로소 제대로 된 외국어 학습이 이뤄질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파란만장 중년의 4개 외국어 도전기』 121~122쪽)

 

또한 그는 암기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으로 “반복을 통한 학습”을 강조한다. 구체적인 실천 방법은 가급적 빨리, 가능한 자주, 중복의 자극을 주면서 반복하는 것이다. 그 근거로 저자는 독일의 심리학자 헤르만 에빙하우스의 연구 결과를 제시한다. 헤르만이 실험한 바에 따르면 우리의 망각은 기억한 지 10분이 지난 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1시간 후에는 절반 정보를, 하루가 지난 후에는 70%를 잊게 된다. 이를 통해 저자는 “반복학습 과정을 통해 그 기억을 되살리려고 노력한다면, 망각 속도를 현저하게 늦추는 효과를 보거나 심지어 아예 장기 기억의 창고로 그 기억을 옮겨놓을 수 있다”고 말한다.

 

“학원에서 외국어를 공부하면서 ‘나는 학원에서 배운 것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학원에 가도 별 소용이 없더라, 돌아서면 잊어버려서 나이를 절감하게 된다, 나는 왜 젊은데도 기억력이 없을까’라는 이야기를 많이들 하잖아요. 그런 사람들을 보면 대개는 수업을 마치고 나가자마자 해방감에 취해서 학원에서의 일은 빨리 잊어버려요. 그러고 나서 다음 날이 되어서야 배웠던 걸 되새기려고 하면 채 절반도 기억나지 않죠. 그러면 계속 좌절감을 느끼고, 포기하게 되고, 작심삼일에 그치는 거예요. 저는 학원 강의실에서 나오자마자 바로 반복 학습을 시작해요. 지하철타고 집에 가면서, 그리고 집에 도착해서 잠들기 전까지도 계속 반복해서 되새기는 거죠. 빠른 시간 안에 적어도 두 번 정도는 반복 과정을 거치는 건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잊어버리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기억 창고에 남을 확률을 높여주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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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은 나이 든 사람들의 편이다


『파란만장 중년의 4개 외국어 도전기』가 제안하는 또 다른 방법은 ‘기억의 강도’를 높이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저자는 수업 중에도 계속해서 머릿속으로 내용을 되새기고, 가능하다면 연상 암기법을 활용하라고 조언한다.

 

“수업 시간에도 단순하게 선생님의 가르침만 듣고 있으면 안 돼요. 굉장히 빠르게 두뇌를 회전해서 ‘저 단어를 쉽게 외우려면 어떤 것과 연결해서 기억해야 하나’와 같은 고민을 해야 하죠. 시간이 있다면 새로 배운 단어를 수업 중에 써가면서 다시 보는 것도 좋아요. 여러 가지 방법으로 기억과 자극의 강도를 높이고 횟수를 늘리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해야 돼요. 처음에는 어려운 일처럼 여겨지겠지만, 반복을 통해 습관화시키면 힘들이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할 수 있게 돼요.”

 

이번 책을 통해서 김원곤 저자는 “외국어 공부를 시작하기엔 늦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현실적이고 실증적인 증거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가 ‘나이 든 사람들이 공부하며 느낄 수 있는 즐거움과 여유’가 있음을 이야기하며 도전을 격려한다.

 

예를 들어, 어떤 외국어를 배우는 데 있어 적어도 3년 정도는 지나야 웬만한 대화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하자. 젊은 시절에는 3년이란 세월이 까마득한 시간처럼 생각돼 미리 정신적으로 지치게 될지도 모르지만, 세월의 빠름을 이미 절감하고 있는 나이 든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 3년이 어느 날 눈뜨고 일어나면 지나가 있을 세월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이 때문에 나이 든 사람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그 기간을 힘들어하지 않고 묵묵히 공부를 이어나갈 수 있는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파란만장 중년의 4개 외국어 도전기』 163쪽)

 

뿐만 아니라 “나이든 사람들은 젊은 사람들처럼 공부에 조급해하지 않아도 되는 이점이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젊은 시절에는 입학 취업 유학과 같은 현실적인 목표를 위해서 외국어 공부를 해야 하고, 빠른 시간 내에 결과를 얻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지는 데 반해, 나이 든 후에 시작하는 공부는 조급함에서 비켜 서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저자는 “결국 세월이란 시간은 젊은이들의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이 든 사람들의 편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렇다고 해서 『파란만장 중년의 4개 외국어 도전기』의 메시지가 중년 혹은 노년층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이미『20대가 부러워하는 중년의 몸만들기』를 통해 ‘도전하는 데 있어 나이는 걸림돌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몸소 입증해 보인 바 있지만, 이번 책에서는 모든 연령대의 독자들을 향해 ‘이미 늦었다는 생각으로 스스로 한계를 규정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다.

 

“개인적인 욕심으로는 『파란만장 중년의 4개 외국어 도전기』가 전 연령층에게 읽혔으면 좋겠어요. 당연히 일차적으로는 중년 또는 노년의 독자들이 관심을 가지겠지만, 외국어라는 건 모든 국민의 관심사잖아요. 외국어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통해서 외국어 전체에 대한 개념을 파악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외국어 학습에 도움을 받을 수도 있을 거고요. 외국어 공부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는 만큼, 꼭 나이 든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공부 방법은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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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만장 중년의 4개 외국어 도전기김원곤 저 | 덴스토리(DENSTORY)
나이 50에 일본어를 필두로 중국어, 프랑스어, 스페인어에 도전한 무모한 중년이 있다. 외국어를 배워야 할 절박한 이유나 미래의 계획 같은 건 없었다. 게다가 그는 우리말 발음도 자신 없는 경상도 출신! 그야말로 '사서 고생'의 표본인 셈이다. 그러나 처음 일본어학원에 등록한지 10여 년이 흐른 지금, 그는 ‘외국어 공부의 달인’, '외국어 습득의 신'으로 불린다. 기억력이 감퇴하는 50대의 직장인이, 순전히 학원 수업만으로, 4개 외국어를 정복한 비결은 대체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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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민 북스피어 대표 “이렇게까지 하는데, 재미없으면 어떡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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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를 내세우는 사람치고 싱거운 사람이 없고, 의미를 내세우는 사람치고 재밌는 사람이 없다. 그런데 재미와 의미, 모두를 충족시키는 책이 나왔다. 김홍민 북스피어 대표가 집필한 책 『재미가 없으면 의미도 없다』이야기다. 출판계에서 ‘마포 김 사장’으로 불리는 김홍민 대표를 만나기 전에는 딴따라이거나 자기 세계관이 투철한 사람일줄 알았다. 그런데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그럼 북스피어의 야매력, 드립력은 어떻게 탄생한 걸까? 인터뷰를 하다, 사무실 바닥을 기어가는 개미 한 마리를 발견했다. 오랜만에 보는 곤충이었다. 개미도 여기가 장르문학 전문 출판사인 걸 아는 걸까?

 

올해로 북스피어는 10살이 됐다. 창립 10주년을 맞아 김홍민 대표는『재미가 없으면 의미도 없다』출간했고, 독자 3명을 데리고 미야베 미유키 작가를 인터뷰하러 일본에 갔다. 이름하여 ‘독자원정대’였다. 지난 6월 20일에는 철원의 한 폐교를 빌려 ‘창립 10주년 기념 파티, 장르문학 부흥회’를 열었고, 야매 장르문학 소식지 <르 지라시> 특대호를 발행했다. 물론 10주년을 맞아 미야베 미유키의 신작 『십자가와 반지의 초상』를 펴냈다.

 

소설가 백민석은 북스피어 창립 10주년 덕담으로 “김홍민 대표는 출판보다 이벤트에 더 열심이고 이벤트 플래너 쪽으로 더 재능을 보인다. 그쪽으로 빠져도 성공할 것 같다.”고 <르 지라시>에 밝혔다. 얼핏 동의하나 국문과 출신, 소설가 지망생이었던 김홍민 대표의 인터뷰를 읽어 보면 생각이 달라질 지 모른다. 책, 출판에 대한 애정이 없었더라면 ‘야매 이벤트 전문가’ 김홍민은 결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기에.

 

 

안 팔리면? 할 수 없지!


편집자가 책을 제안했을 때부터 제목이 정해져 있었다고요. 『재미가 없으면 의미도 없다』는 북스피어 출판사의 모토이기도 한데. 책이 나오게 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책을 한 번 써야겠다는 생각은 예전부터 했어요. 가급적 북스피어 10주년에 맞춰서 나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어크로스에서 제안을 줬어요. 사실 아무런 제안이 오지 않아도 쓰려고 했는데, 그래도 내 출판사에서 나오는 건 아무래도 좋아 보이진 않으니까요. 기본적으로 북스피어에서 10년간 해왔던 일들을 정리하고 싶었어요. 평소에 그런 문의를 자주 받아요. 독자펀드 5천 만원을 어떻게 받았어요? 독자교정은 뭔가요? 같은. 그럴 때마다 일일이 대답해주기가 참 어려운데, 이번 기회에 다 정리하면 좋지 않을까 싶었죠. 책을 맡은 편집자 분이 꼭 출판뿐만 아니라 다른 산업의 마케팅에도 참고 사례가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는데, 잘 모르겠네요.

 

서문을 읽어보니, 미녀 치과의사와의 소개팅도 거절할 만큼 책에 대한 불안감이 컸다고요.


걱정을 되게 많이 했어요. 원래 다른 매체에 글을 쓸 때도 걱정이 많은 편이에요. <한겨레신문>에 칼럼을 쓸 때도 다음 날, 신문에 실리기까지 걱정을 많이 해요. 출판계의 민감한 이슈에 대해 썼을 때는 겁도 나요. 그렇다고 하나 마나 한 이야기를 쓸 순 없는데,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되나? 나도 도덕적인 인간이 아닌데?’ 이런 생각이 들죠. 이 책이 얼마나 큰 레퍼런스가 되겠나? 하는 고민도 있었고, ‘이걸 가지고 책 씩이나 썼냐?’는 반응이 나오면 되게 괴롭겠다, 그런 생각을 엄청 많이 했어요.

 

현재까지는 반응이 되게 좋은데요.


다행이죠. 아직까지는 없어서.

 

아직도 걱정하세요?


혹시 뭐가 또 나오지 않을까? 항상 느끼는 거지만, 백 명의 선플보다 한 명의 악플이 파급력이 커요. 그 효과가 너무 막강해서 누구 하나가 부정적인 발언을 하면, ‘그럴 수도 있겠구나’로 가거든요. 그런 생리를 너무 잘 알기 때문에 걱정이 돼요.

 

기본적으로 북스피어에서 출간하는 장르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이라면 이 책을 되게 흥미롭게 읽을 것 같은데요. 독자들의 리뷰를 보셨나요?


많이 올라 왔더라고요. 지난 주말에도 행사가 있었고 출판 강의도 나갔는데, 다들 책을 사가지고 와서 사인을 해달라고 하시더라고요. 저희 독자들 같은 경우에는 절반 정도가 북스피어 블로그에 자주 오시거든요. 블로그에서 많이 봤던 글이고 제가 연재했던 칼럼도 책에 많이 포함됐는데, 책으로 읽으니까 새롭다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저도 교정을 볼 때와 모니터로 볼 때, 교정지, 가제본, 책으로 볼 때 다 느낌이 다르거든요. 반면에 독자교정 이벤트를 거의 10년간 했는데 ‘이런 게 있었어?’라고 처음 알았다는 분들도 계세요. 아, 정말 홍보는 끝이 없겠구나,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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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로 오래 일하셨는데, 편집자가 저자가 되면 그때야 비로소 저자를 이해한다고 하잖아요. 어떠셨나요? 편집자와 저자로서의 입장이 있었을 텐데요.


막연하게 예상을 했는데요. 예를 들면 그동안 제가 편집자였을 때는 다른 필자의 글을 고치잖아요. 엄청 신중하게 고쳐야 하는데, 어느 순간 제 입맛에 맞게 고칠 때가 있어요. 그것이 좋지 않다는 걸 알지만 그럴 때가 있어요. 취향의 문제이기도 하고. 예컨대 100명의 사람이 다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는 문장이 있는가 하면, 이건 고쳐도 그만 안 고쳐도 그만인 게 있는데, 후자를 제 취향에 맞춰 고칠 때가 있거든요. 이번 책을 쓰면서, 그게 좋지 않다는 걸 더 뼈저리게 느꼈죠.

 

최근 북스피어에서 미야베 미유키의 『맏물 이야기』를 펴내면서 북&쿡 퍼포먼스 행사를 열었어요. 책의 한 대목을 북텔러리스트들이 직접 낭독하고, 소설 속에 등장하는 요리를 푸드스타일리스트가 실제로 재현했는데. 반응이 되게 좋았어요.


괜찮았어요. 『맏물 이야기』가 일본에서 7년 전쯤 나온 소설인데, 마침 우리가 냈을 때 한국이 요리 붐이 일어서요. 공연이 언론에도 보도가 되면서 묘하게 책도 많이 팔렸어요.

 

공연이 딱 봐도 비용이 꽤 많이 들었을 것 같던데요.


원래 그렇게 크게 할 생각은 없었고 소박하게 하려고 했는데, 아이디어가 계속 나오는 거예요. 저걸 추가하면 좋겠고, 이것도 추가하면 좋겠고. 비용이 다 늘어나는 상황이었는데, 이미 책으로 얻은 수익금을 몽땅 때려 부었어요. 무슨 이벤트를 하려고 할 때, 다른 영업자들은 “그게 수익이 돼요?”라고 묻는데, 전 5년 전부터 판매를 아예 놔버렸어요. 행사 자체로 재밌어야 한다, 그게 판매로 이어지면 다행인 거고 안되면 어쩔 수 없는 거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어요. 행사를 판매와 연관시켜서 계산기를 돌리면, 못해요. 손해 보는 거 뻔히 알고 시작하는 거고. 그걸 고려하기 시작하면 재밌는 걸 할 수가 없어요.

 

재미 있는 게, 곧 의미가 있기 때문에 이런 행사를 벌이는 걸 텐데요.


북&쿡 퍼포먼스 같은 경우는 저희 행사가 거의 최초라고 생각해서. 비용을 더 아끼지 않았어요. 사실 준비할 때까지는 엄청 고민을 많이 하거든요. ‘이렇게까지 하는데 재미없으면 어떡하지?’ 그게 항상 고민이에요. 그런데 동시에 ‘안 팔리면 할 수 없지’하는 마음이 있어요. 하지만 재미없으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이 더 커요.

 

북스피어의 모토가 ‘재미’인데요. 대표님의 삶 자체에 대한 ‘재미’는 어떤가요?


제 삶에는 그런 게 전혀 없어요. 강의를 하거나 글을 쓰거나, 일에 관련된 일을 할 때는 되게 재밌고 활달하고 그런데. 그냥 일반인으로서의 저는 되게 내성적이고 말도 없고 그래요. 약간 자아가 분리되는 것 같아요. 모드가 달라져요. 사고 체계가 달라지는 건데, 원래의 저를 돌아보면 혼자 누워서 있는 거 좋아하고 사람들이랑 어울리는 것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요. 맛집 찾아 다니는 거, 그런 거 제일 싫어해요.

 

일에서 충분히 재미가 충족되기 때문일까요.


뭐 분석을 해보진 않았는데 그럴 수도 있는 것 같아요.

 

독자들이랑 창고 정리도 하시던데, 여러 번 참가하는 분도 계시나요?


한 번 하시고 나서 연속으로 3,4번 오신 분이 있으셨어요. 파주 창고에 책이 7만 권 정도 있거든요. 창고 정리 이벤트는 수십 번 한 것 같아요.

 

북스피어가 장르문학 전문 출판사이기 때문에 독자들과 밀접한 소통이 가능하지 않았나 싶기도 한데요. 그렇다고 모든 출판사가 이런 이벤트를 벌이진 않는데.


저희 같은 경우는 원래 시작부터 이런 이벤트를 하겠다는 건 없었어요. 인력도 없고 돈도 없으니까 궁여지책으로 한 거죠. 독자들의 힘을 빌려 볼까? 하는 생각으로 했는데, 참여한 분들이 좋아해주시고. 그걸 특이한 경험으로 인식을 해주시니까 점점 이벤트적인 성격을 강화한 거예요. 처음에 독자 교정 이벤트를 했을 때는 그냥 사무실 책상에 앉아서 교정 보고, 밥 먹고 헤어졌어요.

 

올해 현충일에는 기차를 타고 교정을 보는 ‘낭만독자 열차교정’ 행사를 했는데, 부제가 ‘오자를 발견하지 못하면 집에 돌아가지 못하리’였어요.


강릉으로 가는 완행 열차를 타고 8시간 동안 교정을 봤어요. 끝나고는 같이 놀고. 1박 2일 동안 작품을 번역한 번역가 집에 놀러 가서 하룻밤을 같이 자면서 교정을 본 적도 있어요. 모든 이벤트가 다 그래요. 조금씩 가미를 해가면서 커진 거죠.

 

이벤트 참여 독자 선발은 어떻게 하나요? 선착순인가요?


선착순으로 뽑을 때는 거의 없고 선발을 해요. 하고 싶은 이유가 절실한 분들이 있어요. 예컨대, 지원해달라는 글을 올렸는데 “저요 저요.”, “나 할래요.”라고 댓글을 다는 분들이 있는데, 저는 좀 이해가 안 돼요. 왜 하고 싶은지에 대한 구체적인 뭔가가 있어야지, “저요 저요.”라고만 하면 그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독자 교정 같은 경우에는 맞춤법을 너무 모르시면 또 안 되는 거니까. 너무 문장이 틀린 분들은 뽑기가 애매하고 그런 게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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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문학부흥회 포스터

 

 

독자원정대, 장르문학 부흥회, 공동출판


북스피어에서 최근 10주년 기념작으로 미야베 미유키의 현대물 신작 『십자가와 반지의 초상』을 펴냈어요. 독자 3명과 함께 미미여사를 인터뷰하러 일본에도 가셨던데요.


3년 전에는 저 혼자 갔거든요. 올해 북스피어가 10주년을 맞았으니까 독자들이 인터뷰를 하면 어떨까 싶더라고요. 직접 독자들이 질문지도 짜게 하고 일정도 정하는 독자원정대를 모집했어요. 기본적으로 일본어가 되는 분들에게 신청을 받았는데, 총 3명을 뽑는데 한 서른 명 넘게 지원해주셨어요. 경쟁률이 10:1 정도였던 거죠. 출판사 스태프까지 총 6명이 갔어요.

 

미야베 미유키 작가님의 반응은 어떠셨나요? 해외 독자들과의 만남이 특별했을 텐데요.


엄청 좋아하셨어요. 3년 전에 제가 갔을 때는 프라이버시는 물어보면 안 되고, 정치적 사안도 물어보면 안 된다고 했는데. 이번에는 완전히 다르시더라고요. 예전에는 단답형으로 대답하신 게 많으셨는데, 이번에는 물어보지도 않은 아버님 이야기도 하시고 일본 정치가가 바보 같은 이야기를 해서 한국 독자들에게 미안하다고도 하시고. 속으로 ‘아 이런 이야기를 하셔도 되나?’ 싶었어요. 인터뷰가 너무 좋아서 막 독자들이 울고 그랬어요. 작가님이 손수 선물도 준비해주시고.

 

미야베 미유키 작가님의 인터뷰가 북스피어의 야매 장르문학 소식지 <르 지라시>에 실렸는데요. 이 소식지는 북스피어 신간 구매 독자에게 사은품으로 제공되기 때문에 책을 산 독자들만 읽을 수 있어요. 좀 아까운데요.


사실 독자원정대 모집 공고가 나가고 기자 분들이 많이 요청을 해왔어요. 자기도 좀 데리고 가달라고. 저희도 쉽게 가려고 했으면 일간지 기자와 같이 갔겠죠. 그럼 비용도 3분의 1밖에 안 들고, 지면도 확보되고. 그런데 기자가 갔으면 작가님이 이렇게 소탈하게 인터뷰를 안 하셨을 거예요. 결과적으로는 되게 잘한 거라고 생각해요. 작가님이 달뜬 것 같을 정도로 마음을 확 열었거든요. 되게 감동스러웠죠. 독자 분들이 다들 구름 위를 걷고 있는 것 같다고 했어요. 저는 사진만 찍고 아무런 개입도 안 했는데, 하여튼 정말 깜짝 놀랐죠. 작가님이 내 후년에 30주년 일 때 다시 오라고 하더라고요. 그 때는 좀 더 많은 독자들을 데리고 가고 싶어요.

 

정말 하고 싶은데, 여력이 안 돼서 아직까지 못한 이벤트가 있나요.


매년 저희가 장르문학 부흥회를 하는데, 내년에는 바캉스를 겸해서 해보면 어떨까 싶어요. 올해 처음으로 가족 단위 독자들을 받았는데 되게 좋더라고요. 내년에는 섬을 빌려 보고 싶어요. 뭔가 비용이 좀 들더라도, 1박2일 대여가 가능하다면 가족 단위로 바캉스 겸 부흥회를 여는 거죠. 섬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것 같아요. 폐교 부흥회도 <한겨레21>에서 인터뷰를 하면서 무심코 했던 말이 실현이 된 거예요. 기자 분이 “내년엔 어떻게 할 거냐?”고 물어서 “글쎄요. 폐교나 빌려 볼까요?” 그랬거든요. 그게 올해가 될지는 몰랐죠. (웃음)

 

타 출판사와 공동출판도 하셨죠.

한 작가의 작품을 꾸준히 내는 게 목표였는데 한계가 있더라고요. 모든 사항을 다 협의하고 진행을 해야 하니. 단발성으로 4,5개 출판사가 모여서 젤라즈니 전집을 한 권씩 낸다든가. 그런 기획을 해보면 어떨까도 싶어요.

 

책을 보니, 예전처럼 발랄하게 머리가 돌아가지 않아 걱정이라고요.


항상 그 걱정을 해요.

 

직원들에게 이벤트 아이디어를 내라고 하면 안 되나요? 또는 주변의 젊은 친구들에게.


음, 그게 다른 게 뭐냐면요. 전 제가 생각하지 않으면 상상이 잘 안 돼요. 예를 들어, 모든 출판사들은 재밌는 걸 하고 싶어하잖아요. 그런데 왜 못하냐? 직원이 아이디어를 내면 실현이 어려워요. 제가 출판사에 다닐 때도 아이디어 회의도 많이 해봤어요. 예를 들어 어떤 책에 대한 이벤트 아이디어를 짜보자고 하면 직원들은 되게 스트레스에요. 뭐랄까. 너무 막연하기도 하고 자기검열도 생기죠. 제가 출판사를 다녔을 때도 그런 모습을 너무 많이 봐왔거든요. ‘아이디어 회의합시다’ 하는 것보다 차라리 내가 정해서 시작하는 게 서로가 편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디어가 많은 직원들은 새로운 일을 막 벌이고 싶을 거예요. 하지만 상사, 대표 눈치 보느라 차마 이야기를 못 꺼내겠죠. 그런 분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출판 마케팅 강의를 나가면 그런 질문을 많이 받아요. 저는 딱 두 가지를 이야기해요. 예전 회사에 있을 때 제가 써먹었던 건데, 그냥 허락을 받지 않고 진행을 하는 거예요. 나중에 거기에 대해서 깨지든, 잘되든. 저는 대부분 잘됐거든요. 위에서 한 소리를 듣긴 했지만, 잘리지 않은 걸 보면 내심 좋아한 게 아닐까 싶어요. 두 번째는 제안을 하는 사람이 최악의 상황을 미리 상정하는 거예요. “이런 아이디어가 있는데 만약에 실패하면 이런 이런 일이 벌어지겠죠? 아마 잘 안 되겠죠?”라고 먼저 선수를 치는 거죠. 그럼 오히려 듣는 입장에서는 “왜 잘될 수도 있는 것 같은데, 미리 걱정해?” 이런 반응이 나와요. 먼저 세게 나가면 상대는 움츠러들거든요. 책은 읽지 않았지만 아마 『설득의 기술』에 아마 이런 내용이 나와 있지 않을까요? 저는 가끔 너무 확신이 있게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 오히려 반감이 생겨요.

 

‘마포 김 사장’이라고 불리는데, 출판사 직원이었을 때도 별명이 있었나요?


딱히 없었어요. 정말 재미없는 인간이었죠. 그 때는 새로운 걸 안 해도 월급이 나오니까. 굳이 내가 뭘, 이런 생각이 많았죠. 그런데 북스피어는 내 사업이니까요. 직원들에게 미루지 않고 아이디어를 내고 SNS를 직접 운영하는 이유는 제 일이고 제가 책임도 져야 하는 일이니까, 제가 해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또 절박하니까요. 만약 제가 어느 회사에 들어가 있는 상태로 10년차가 됐다면 그저 그런 편집자로 책을 만들고 글을 썼을 것 같아요. 그런데 창업을 하면서 제작도 배우고 영업도 배우고 서점도 다녀보니까 할 수 있는 게 많아지더라고요. 정말 내 생계랑 직결된 거라고 생각을 하니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해보는 거죠. 그런 심리가 되게 강해요. 다른 출판사들한테 이벤트를 제안하면, 다들 좋아해요. 재밌는 거 하고 싶으니까요. 그런데 선뜻 못 받아들이는 건 그걸 안 해도 할 수 있는 게 많기 때문이에요. 굳이 뭘 격 떨어지게 그런 걸 해? 이런 거죠. 저랑은 다르구나, 싶을 때가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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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주년 기념 특대호 <르 지라시> 

 

 

출판은 좀 예외면 안 되나요?


10주년 특대호 <르 지라시>를 만들면서 야매 책 광고를 받았어요. 격 떨어지는 광고인데 꽤 많은 출판사가 참여했어요.


처음부터 전략적으로 대표 분들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신간 광고를 하는데 ‘명작’ ‘역작’ ‘100만부 돌파’ 이딴 문구는 빼고, 잔망스러우면서 야매적인 콘셉트로 그동안 감춰뒀던 ‘드립력’을 발휘해보라고 했죠. 물론 유료 광고라서 한 책당 30만 원 받았어요.

 

글항아리, 마음산택, 바다출판사, 은행나무, 한빛미디어, 한스미디어, 휴머니스트 광고가 실렸던 데요. 출판사 대표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흔쾌히 좋다고 하셨어요. 우선 대표님들이 오케이 하면, 내가 실무진이랑 이야기를 해보겠다, 그랬죠. 되게 빨리 진행됐어요. 바다출판사 경우에는 디자인을 A팀, B팀으로 나눠서 경쟁을 붙였는데 둘 다 너무 잘해서 대표님한테 전화가 왔어요. 광고비 두 배로 줄 테니까 둘 다 넣어달라고요. (웃음) 사회평론이 광고를 너무 재미없게 만들어와서 빠져있던 찰나였거든요. 그래서 바다출판사는 광고가 두 개 실렸어요. 1면에 마음산책 광고가 실렸는데 제일 빨리 보내줬거든요. 마감을 안 지킬까 봐 선착순으로 앞면에 실어주겠다고 했어요. 은행나무 같은 경우는 신간 회의보다 이 광고 회의를 더 많이 했대요. 제가 온라인에서 투표하겠다고 했거든요. 제일 야매스러운 걸 뽑겠다고. 꼴등하면 쪽팔리니까 다들 열심히 해준 것 같아요.

 

<르 지라시> 다음 호에도 야매 광고를 볼 수 있나요?


글쎄요. 다음 번에는 서로 비난 광고를 해보면 어떨까 싶어요. 4,5군데 출판사 담당자들이 모여서 서로 먼저 양해를 구하고, 각자 다른 출판사의 책 광고를 해주는 거예요. 이를테면, “어, 이 책 더럽게 두꺼운데?” 뭐 이런. 요령 있게 비난 광고를 만드는 거죠. 까는 거지만 요령 있게 까는 거 있잖아요. 사람들이 리뷰를 쓸 때 좋은 점만 써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문제점을 지적해도 읽고 싶게 만드는 리뷰가 있어요. 비판 리뷰인 건데, 글의 공력이 훨씬 더 필요하죠. 저희 책이 인터넷서점에 나오면 리뷰가 막 달리잖아요. 좋은 리뷰도 있고 나쁜 리뷰도 있는데, 재미없게 읽었다고 별점을 되게 낮게 준 리뷰가 있었는데 기분 좋게 읽은 적이 있어요. 문제점을 지적하는데 일단 글을 너무 잘 썼고, 구구절절 맞는 말인 거예요. 글을 너무 잘 쓰니까 읽고 있는데 상쾌한 느낌이 들더라고요. 오히려 책이 더 궁금해져서, 사고 싶은 생각도 들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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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꿈이 소설가였다고 하셨는데, 지금도 여전한가요.


접었어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겠지만 창작은 타고 나는 것 같아요. 책을 만들면서 절실히 느꼈어요. 이런 표현이 오해의 소지가 있지만, 저도 습작 많이 해봤거든요. 소설 비슷한 걸 흉내는 낼 수 있겠지만, 아주 단적으로 ‘내가 미야베 미유키 소설 같은 책을 쓸 수 있을까?’ 생각하면 저는 죽었다 깨어나도 못 쓰거든요. 훈련이나 교육이나 그런 걸로 안 된다는 걸, 되게 절감한 순간이 있었어요.

 

장르문학은 아무래도 마니아 층이 많은데, 전체 출판시장에서 보면 되게 소수에요. 도서정가제 이후 사람들이 책을 더 안 사고 있는데요.


예전에 한 번 칼럼에도 쓴 적이 있는데요. 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책을 읽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책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 읽는 이유는 약간의 습관의 문제라고 생각하거든요.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는다고, 책도 비슷한 것 같아요. 요즘은 더욱이 SNS 글쓰기가 되게 활발해졌잖아요. 글쓰기의 중요성을 다 인식하고 있는데. 책을 읽어야 한다는 강박과 글을 잘 쓰고 있는 소망은 100%는 아니겠지만 많이들 갖고 있어요. 저는 글쓰기가 언제 들어 왔냐면, 고등학생 때부터 책을 읽다가 마음에 드는 문장을 발견하면 그걸 노트에 다 적어 옮겼는데. 그게 대학노트로 이렇게 두꺼워요. 두 번째는 PC통신이 한창 인기일 때, 게시판에서 글로 논쟁을 하는 게 유행이었어요. 글로 싸우면 글이 되게 늘어요. 제가 그 때 강준만 씨한테 빠져 있을 때라서 엄청나게 싸움을 많이 하고 다녔어요. (웃음) 그런데 책을 늘 옆에 두고 읽지 않으면, 글로 싸워야 할 때 레퍼런스를 찾기가 힘들죠. 미야베 미유키 작가는 인터넷을 안 써요. 컴퓨터에 아예 인터넷이 연결되어 있지 않아요. 인터넷에는 허황된 정보가 너무 많다는 거예요. 그래서 책을 항상 찾아서 조사를 한대요.

 

만약 일간지 1면이 뭔가를 실을 수 있다면.


글쎄요. 재밌는 광고를 통으로 실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지금까지 보지 못한 재밌는 책 광고. 저자 사진, 책 사진도 없고 아무런 설명 없이 그냥 사진 한 장에 카피 하나만 쓴. 되게 세련된 광고를 해보고 싶어요.

 

『재미가 없으면 의미도 없다』는 아무래도 출판, 마케팅 관계자들이 많이 읽을 것 같은데요. 저자로서 이 책을 추천하고 싶은 분이 있다면.


독자들이 많이 읽었으면 좋겠어요. 마케팅 이야기도 썼지만 기본적으로 책에 대한 이야기를 쓴 건데요. 예컨대 파본이 왜 생기느냐, 그런 걸 모르는 분들이 많으세요. 독자 분들이 책을 받았는데 그게 파본일 때, 인터넷서점 리뷰에 별을 하나를 주는 경우가 있어요. 그러면 출판사 입장에서는 되게 속상하잖아요. 내용으로 평가 받은 게 아니니까요. 엄밀하게 말하면 출판사가 모든 책을 한 권 한 권 다 뜯어 보고 해야 하지만, 물리적으로 힘들잖아요. 기계로 인해 파본이 나올 수 있는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고요. 또 종이 낭비라면서 띠지를 극렬하게 싫어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런 반응을 들으면 되게 속상해요. 물론 독자들이 모든 걸 이해해줄 필요는 없지만 이런 이런 일에 대해서는 이해 받고 싶을 때가 있어요. 이번에 『십자가와 반지의 초상』이 나왔는데, “이게 무슨 인문학 서적이냐, 소설이 뭐가 이렇게 두껍냐?” 이런 리뷰를 올리는 분들이 있어요. 저희도 분권으로 내면 더 좋아요. 가격을 더 높일 수도 있고요. 하지만 한 권으로 낸 건, 이 소설이 한 호흡으로 보는 게 더 좋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에요. 조금 두껍더라도 가격을 확 낮출 수 있고요. 또 이걸 뭐 양장으로 냈냐고도 하는데, 900페이지 넘는 책을 무선으로 하면 터져요. 열심히 했으니까 사달라는 게 아니라, 책이 만들어지는 배경의 일정 부분을 독자들이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요즘 출판계가 되게 어지러운데요. 대형출판사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작은 출판사가 키운 작가를 큰 출판사가 데리고 갈 때, 저는 좀 그래요. 전 떳떳하지 않은 짓은 안 하거든요. 도덕적인 인간이라서가 아니라 쪽팔리니까 안 해요. 저 같이 조그만, 별볼일 없는 사장도 그런 생각을 하는데, 저 훌륭한 출판사의 상징적인 분들이 왜 쪽팔린 일을 하는지 모르겠어요. 이런 이야기를 하면, “네가 경영의 논리를 몰라서 그래. 모든 산업은 마찬가지야.”라고 하는데, 출판은 예외일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자본주의사회에 살지만 출판은 좀 그 원리에 벗어날 수도 있지 않나요? 문제 제기만 하면, “넌 출판을 되게 특별하게 생각한다.”고 하는데요. 좀 특별하면 안 되나요? 저는 선배들이 후배 보기에 창피한 일은 안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거든요. 최소한 후배들 보기에 창피한 일은 안 할 것 같아요. 이런 이야기를 하면 누군가가 저를 유심히 보겠죠. 제가 이런 이야기를 굳이 하는 이유는 제가 한 이야기가 있으니까, 나중에 그런 일 못할 거 아니에요. 잘난 척이라는 걸 알지만 굳이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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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가 없으면 의미도 없다김홍민 저 | 어크로스
출간비용 마련을 위한 ‘독자 북펀딩’, 이웃 출판사와의 공동 출간, 자체 제작 장르문학 소식지 발행까지. 독특한 마케팅 실험과 독자들과의 연대로 주목받아온 북스피어 출판사의 김홍민 대표가 10년간의 출판 시장 횡단기를 책으로 담아냈다.책을 좋아하는 독자들이라면 즐겁게 읽어나갈 에피소드가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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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박세길, 지금부터 3년이 이후 30년의 역사를 좌우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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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SF 영화처럼 어느 날 문득 닥치는 것이 아니다. '오래된 미래'라는 말처럼 오늘 우리의 삶과 지나온 역사 속에 이미 미래의 모습이 담겨 있다. 한국 현대사는 우리가 마주할 미래에 대해 풍성한 지혜를 제공하는 마르지 않는 샘이다. (316쪽)

 

지금 벌어지는 일들을 역사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해석하기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기도 하다. 또한 그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역사를 현재의 관점에서 보고 재구성하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통해 역사적 맥락으로 현상을 보기 위한 초석을 마련했던 저자 박세길이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으로 다시 찾아온 이유다. 저자는 현 시점이 “역사의 변곡점을 통과하고 있”는 때라고 말하며, 바로 지금이야말로 청년 세대가 주체적으로 나서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우리 현대사를 꼼꼼하게 되짚은 저자는 어째서 ‘청년 세대’에 집중하는 것일까. 그가 청년 세대의 힘을 발견한 것은 2008년 촛불 때였다. 이전과 전혀 다른 형태의 촛불 시위를 주도했던 청년 세대의 역동성과 개방성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들은 시위를 축제로 탈바꿈시켰고 그 안에서 자유롭게 제 목소리를 냈다. ‘88만원 세대’였던 청년들은 그 후 지금까지도 꾸준히 자신들의 목소리 내기를 주저하지 않고 있다. ‘안녕들하십니까’부터 ‘알바연대’까지 청년 세대의 역사는 줄기차게 진행 중이다.


그렇다면 이들, 청년 세대는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는가? 우리 현대사에 굵직한 상흔을 남겼던 사건들을 되짚어 보니 명백한 답이 나왔다. 모든 일들이 청년 세대를 가리키는 듯이.  『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은 그 가운데서도 가장 뼈아픈 사건, 1997년 외환위기를 제일 먼저 진단한다. 저자는 “현재 발생하는 온갖 문제의 시발점, 근원”이라고 외환위기를 규정하고, 청년 세대의 삶을 따라간다.   


‘어제의 청년’ 박세길이 ‘오늘의 청년들에게’ 전하고자 했던 핵심 메시지는 이것이다. “지금의 문제는 우리 선에서 해결하겠다고 하는 의지를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 청년들이여, 당신은 결코 어리지 않다. 결코 미숙하지 않다. 당신 스스로 세상을 바꾸고자 한다면 그렇게 될 수 있다. 저자가 ‘열한 가지 질문’을 갖고 들여다 본 역사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그러니 부단히 일어나 희망을 만들어주길 간절히 바란다. 문제의식을 갖는 것, 그것부터가 큰 시작이다. 

 

 

청년 세대 관점으로 바라본 역사


11가지 질문을 구성하셨어요. 기존 역사서와는 구성도 좀 다르고요. 이런 방식을 통해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가요? 


처음에는 열 가지 질문으로 시작했어요. 쓰다 보니 열다섯 가지로 늘어났다가 줄이는 과정을 통해 최종적으로는 열한 가지로 결정이 되었고요. 일단 지금이 2015년이고, 전체 글 속에도 녹아있지만 역사를 지금의 청년 세대 관점에서 보았어요. 그들이 현대사를 통해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가에 대해 고민하니 몇 가지 질문들이 나오더라고요. 그 질문들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기술해보려는 것이 첫 번째였고요.


순서가 특이하죠. 만일 해방, 분단 이야기로 시작했다고 했을 때 청년 세대들이 과연 이것에 흥미를 느낄 수 있겠느냐(웃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너무 먼 이야기잖아요. 자신들과 관계없다고 느낄 것 같았어요. 청년 세대가 딱 실감할 수 있는 것이 외환위기 때부터 아니겠느냐, 때문에 거기서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가려고 했죠. 말 그대로 옛날 얘기는 교훈을 찾기 위한 것으로써 다시 한 번 들여다보고, 마지막으로 그럼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희망을 찾는 순으로 구성한 거예요. 통상적인 대열과는 다르긴 하죠.

 

서두에도 ‘어제의 청년이 오늘의 청년들에게’라고 쓰셨잖아요. 청년 세대에 관심을 갖게 된, 그 세대에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진 이유가 있으셨을 텐데요.


부끄러운 얘기입니다만, 2008년 이전까지는 별 관심이 없었어요. 2008년 촛불시위라는, 이전에 없었던 전혀 새로운 현상이 드라마틱하게 펼쳐졌죠. 아시다시피 촛불시위의 주역이 당시 10대부터 30대에 이르는 청년 세대였어요. 그들의 행동 패턴이나 모든 것들이 전혀 다른 거예요. 저에게는 굉장히 놀라운,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었어요. 도대체 이들의 정체가 뭐냐, 호기심을 가진 것부터 시작했죠. 이전 세대와는 사고, 행동 등이 전혀 다르니까요. 비슷한 시기에 『88원 세대』라는 책이 나오지 않았습니까. 책이 그 세대에 상당한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고요. 저는 이 내용이 어째서 이토록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는지 또 궁금했어요. 그렇다보니 자연스럽게 저의 중요한 관심사가 되었습니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세대가 등장했고, 앞으로 역사는 이들로부터 새롭게 시작될 것이라는 잠정적 결론이 나오더라고요. 이후 제 모든 탐구의 중심은 지금의 청년 세대가 된 거죠.


50대 중반을 넘어섰기 때문에 정서적으로 쉽지가 않은데요(웃음). 어쨌든 이들 입장에서 역사를 재해석, 재구성 해보고, 다시 역사를 통해서 청년 세대들이 갈구하는 바를 생각해보려고 했어요.

 

가장 흥미로웠던 대목은 2008년 촛불 시국을 탈산업사회로 진입하는 신호로 보셨던 부분입니다. 젊은 세대, 청년 세대에 희망을 보시는 거죠?


촛불시위에 대해 다룬 장(章)이 9장이죠. 소제목을 ‘문화 충돌 속에 드러나는 미래’라고 했는데요. 탈산업사회가 요구하는 인간형과 촛불 시위를 통해 표현된 세대의 특징이 기가 막히게 일치해요. 탈산업사회의 특징을 개방성, 수평성, 다양성, 이 세 가지로 꼽았는데요. 말 그대로 탈산업사회에는 창의적 인간, 창조력이 넘쳐나는 인간이 필요해요. 촛불 시위를 거대한 예술 행위라고 표현했잖아요. 그런 면모가 딱 드러났던 거죠. 우연적인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그들에게 내재된 속성이었고, 촛불 시위를 통해 극적으로 드러났다고 생각해요. 『자본주의, 그 이후』라는 책을 2012년에 냈는데요. 그 책에서 상당히 집중적으로 탐색을 해봤죠. 결론이 명확하게 나더라고요.

 

말씀하신 청년 세대들은 그런 진단을 스스로 인식하진 않았겠지만, 이런 평가를 보면 자신들에 대해 상당히 명확해지는 부분도 있을 것 같아요. 혹은 이런 평가에 대해 의문이 들 수도 있겠고요.


현재 청년 세대의 특성이나 가능성을 가장 풍부하게 간직하고 있는 사람들이 30대 여성일 것 같아요. 그들을 생각하며 썼습니다. 똑같은 현대사지만 예전에 썼던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와 비교해보면 완전히 다를 거예요. 어느 시점에 어떤 사람의 입장에서 역사를 보느냐에 따라서도 역사는 전혀 다르게 다가오니까요. 1988년에 『다시 쓰는 한국현대사』를 처음 선보일 당시는 민주화가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아가던 시기였어요. 이전까지는 왜곡된 역사를 일방적으로 주입받았잖아요. 이제는 제대로 역사를 말해보자고 하는 ‘시각 교정’의 욕구가 강했어요. 그래서 제목도 ‘다시 쓰는’이라고 했고요. 요즘은 잘못된 시각을 바로 잡아야 한다, 이런 것은 아닐 거예요. 사는 게 답답하니까 ‘사는 게 왜 이러한가?’에 대한 답을 찾고 싶어 하는 것이 주된 동기가 아닐까 싶어요. 답을 찾으려면 질문을 던져봐야 하죠. 그래서 제목이 ‘질문’이 된 거고요. 그런 점이 이 책을 구상하게 된 중요한 동기였다고 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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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중심사회


결론부터 말하자면, ‘사람중심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하셨어요. 구체적인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가장 고민했던 부분이에요. 이 책에서는 역사적 맥락 속에서 간략한 정도나마 언급했는데요.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 책에서 서술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대전제는 현재 역사의 변곡점을 통과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까지 진보 세계를 구성했던 명제들이 다 낡은 것으로 전락되어버린 거예요. ‘사람중심사회’는 과거와 전혀 다른, 새로운 국면에 형성되는 것이고요. 때문에 그것을 설명하기 위한 명제들이 전부 재정립되어야 해요. 과거에 일반화되었던 명제로부터 연역될 수 없는 것이죠. 이 책에서 그것들을 다 설명할 수 없었어요. 어설프게 전달했다가는 오히려 잘못 해석될 가능성이 컸으니까요.


예를 한 가지만 들어볼게요. 기존 진보 세계에서는 ‘노동자 계급’을 중심으로, 이들의 이해와 요구를 바탕으로 미래 사회를 규정했는데요. 지금 청년 세대들은 전통적인 노동자가 아니에요. 노동자의 전통적 특징을 생산수단을 갖고 있지 못하고, 노동수단을 판매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고 하는 것이 일반적인 설명이잖아요. 지금은 보편적으로 창업을 꿈꿔요.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아이디어와 콘텐츠를 가지고 창업을 꿈꾸는 거죠. 전통적인 노동자가 아닌 거예요. 계급 정체성도 전혀 다른, 전혀 새로운 인간이 등장했다고 하는 부분이죠. 그런 점에서 모든 명제를 재정립하고 새로 구상해야 합니다. 기존의 것들과는 전혀 다른 패러다임을 표현하는 것이 ‘사람중심사회’예요. 그것을 위한 최소한의 사회 인식 기초를 이 책에 담았어요.

 

책을 따라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드는 질문이 바로 이것이었거든요.


막연하지만 사람중심사회로 가는 게 맞다, 그것이 뭘까, 궁금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이 책은 성공했다고 볼 수 있어요.(웃음)

 

지금 사회가 예전처럼 대단한 사회 변혁이나 혁명이 가능한 시대는 아니잖아요. 하지만 변화해야 한다면 어디로 가야 할까라는 질문은 자연스러운 것 같아요.


경로도 완전히 다르고요. 사람중심사회로 바뀌어나가는 가장 중요한 전제는 누구나 창업이 가능한 환경입니다. 이념적 표현이긴 합니다만 누구나 창업이 가능하고, 또 창업을 시도한다면 기업에는 어떤 현상이 벌어지겠어요? 구성원을 잡아두려면 그가 창업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것과 똑같은 것을 기존 기업이 제공하지 않으면 안 되겠죠. 지분도 나누고, 경영권도 공유하고, 그야말로 동업자와 같은 형태가 될 텐데요. 그렇게 사회가 바뀌어간다는 거예요. 중국의 사례를 들었는데 그것이 하나의 암시가 될 것 같습니다. 촹커(創客, 중국에서 IT을 바탕으로 한 혁신적 창업자를 가리키는 말)가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어요. 젊은이들이 창업의 꿈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는 것, 진정한 진보 지식인이라면 그것을 제일 크게 내세워야 할 거예요. 그런 이야기를 포함해서 두 번째 작업을 계획하고 있어요. 

 

 

1997년 외환위기, 청년 세대 고통의 근원


역사의 층위는 무척 다양해서 어느 하나에 문제가 머물지 않잖아요. 연쇄작용이랄까,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 같다는 생각을 늘 하는데요. 책에서 다룬 우리 근현대사에서 가장 안타까운 사건을 꼽는다면 무엇인가요?


단연 외환 위기죠. 외환 위기라고 하는 것이 우리 역사를 극명하게 바꿔놓았어요. 현재 발생하는 온갖 문제의 시발점, 근원으로 규정할 수 있겠죠. 책의 구성을 외환 위기로 시작한 이유예요. 우리 사회의 모순들에 대해 파헤쳐보는 것으로 시작했어요. 두말할 것 없이 지금 청년 세대의 고통이 다 외환 위기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보고 있어요.

 

외환위기 이후 기성세대들이 청년 세대에 부담을 전가하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것을 지켜냈다고 진단하셨어요.


신자유주의의 흐름 속에서 이것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은 채 그 안에서 자기 이익을 지키는 데 급급했고, 결과적으로 청년 세대에게 부담을 지우게 된 거죠. 일부러 떠넘기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말이에요. 새로 사회에 진입하는 청년 세대에게 고스란히 떠넘겨버린 셈이 됐어요.

 

네. 그런 해석을 통해서 이후의 일들이 대부분 이해가 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민주노총이 그렇죠. 애초에 피와 땀으로 일궈낸 것이 민주노총이잖아요. 지금은 현상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죠. 예전에 노동자라고 하면 억압 받고, 소외된, 동정심 때문에 함께 연대했는데요. 지금은 이들이 상위 10% 안에 들어요. 외환위기 이후 진행된 아주 극명한 변화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죠.

 

그에 대해 질문을 좀 드릴게요. ‘노동운동이 노동자 이익 옹호에 실패’했다, ‘새로운 대안이 필요한 상황’이다, 라고 하셨어요.


노동자의 보편적인 이익을 옹호하는데 실패한 거예요. 자신들의 이익을 옹호하는데 집중한 거죠. 하지만 그들이 노동자의 전부는 아니잖아요. 전체적으로 본다면 소수에 해당하죠.

 

특히 지금 젊은 세대에게는 노동조합조차 진입하기 힘든 영역이라 와 닿지 않는 경우도 많아요.


대부분의 노동조합은 정규직만 가입이 가능해요. 비정규직은 아예 자격이 없는 셈이에요. 일부 함께 가입되어 있는 노조가 있긴 하지만요. 노동조합이라는 그 세계에서조차도 배제되어 있는 거예요. 현재 노조는 기득권을 지키는 조직으로 된 거죠.

 

노동조직은 어떻게 변화해야 할까요? 대안은 무엇이 있다고 보시는지 궁금해요.


정말 어려운 질문입니다.(웃음) 노동조합이라고 하는 조직을 떼어놓고 보면 솔직히 답을 드리기가 힘들고요. 누구나 창업이 가능한 환경을 만드는 것에서부터 사람중심사회로 전환될 것이라는 말씀을 드렸는데요. 상상을 해보세요. 청년 세대에게는 복지라는 것이 실패해도 언제든지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달라는 것이 주된 내용이 되겠지요? 이 경우, 현재 비정규직에 머물러있는 세대들은 어떤 모습을 보이겠습니까. 결사적으로 나서겠죠. 그렇게 바뀌는 거예요. 비정규직에 의존했던 기업들도 체제 변화를 도모하지 않으면 유지할 수 없는 연쇄적인 변화가 일어나겠죠. 한 마디로 비정규직 자체가 필요 없는 환경이 되어야 한다고 봐요. 그런 근본적 변화를 하지 않고는 현재로써는 답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청년 유니온이나 알바 연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계세요? 기존 노조에의 진입조차 가능한 통로가 없기 때문에 밖에서 자신들끼리의 조직을 만들고 연대를 하는 형태잖아요.


근본적 해결책은 아니라 하더라도 우리 현실에서 굉장히 절실한 움직임이죠. 실업자, 비정규직은 아예 기존 노조에 가입조차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최소한의 배경이 되어주고 있으니까요. 저는 청년 유니온 측과도 자주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는데요. 지금 상황에서 아주 적절하게 잘 만들었다고 보고 있어요. 반복되는 이야기입니다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 하더라도 변화로 가는 하나의 징검다리 역할은 충분히 하고 있죠.

 

무엇보다도 좌우 구도는 우리 사회의 가장 중요한 문제를 드러내는 데 무력하다. 소수 기득권층이 권력을 독점하고 국민 다수는 소외당하고 있다는 진실 말이다. (중략)국민이 양분되어 옥신각신하는 좌우 대결 구도는 기득권에게 더할 나위 없이 안정적인 환경이다.(98쪽)

 

 

청년세대, 어리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어


좌우 구도, 진영 논리는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는 데 큰 방해 요소입니다. 진정한 의미의 좌우냐 하면 그것도 아닌 경우가 많이 있고요.


굉장히 큰 장애가 되고 있습니다. 종편 보셨습니까? 노골적으로 좌우 담론을 재생산해요. 이것들은 한국 사회 문제의 본질을 은폐하고 기득권을 보호하는 도구로, 아주 심각한 장애가 되고 있죠. 유럽 역사를 보면 좌우의 사상, 이념 대결이 나름대로 건강하게 작동을 하면서 발전시킨 측면이 있어요. 하지만 우리는 그것도 아니에요. 철저하게 기득권 세력을 엄호하기 위한 장치로써 작용한 것이 좌우구도예요. 그것도 주로 ‘종북좌파’라고 해서 북한을 물고 늘어지면서 억지로 덮어씌우는 식으로 이미지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죠. 굉장히 저열하게 말이에요. 더 심각한 문제는 스스로 진보라고 하는 사람들이 이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에요. 자신도 모르게 묻어가고 있는 상황이죠.

 

이에 대해서도 어떻게 전망하고 계신지 여쭙고 싶어요. 질문이 많아지는 책입니다.(웃음)


제가 풀어갈 입장이 아니긴 합니다만. 다른 매체에 쓴 칼럼 내용인데요. 지금의 야당 및 진보 정당들이 오히려 여당 보다 더 과거 의존적이지 않는가 생각이 들어요. 새정치민주연합의 경우 김대중, 노무현을 못 넘고 그 유산에 의존하고 있는 모습이에요. 그러니까 친노, 비노가 대립하고 싸우잖아요. 진보 정당 역시 기존의 운동권 정파 구도에서 조금도 못 벗어나고 있고요. 그런 점에서 감히 말씀 드리면 올해부터 2017년 대선까지의 기간 동안 청년 세대가 새로운 정치 주체로 어떻게 서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새로운 패러다임과 문화를 갖는 새로운 정치 주체가 서고, 이들이 어떻게 국면을 새롭게 끌어가느냐가 우리 사회의 미래를 판가름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중요해요.


지금 청년세대는 자신이 어리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예전에는 20대 청년들의 사회 활동이 빠르다는 느낌이 없었는데, 어느 덧 층층시야가 되다 보니 마치 30대가 아직 어린 것처럼 생각을 해요. 결코 그렇지 않아요. 30대면 충분히 독자적으로 세상을 헤쳐 나갈 수 있어요. 특히 이전 386, 486 세대들이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성공시킨, 우리 역사에서 유일한 세대에요. 너무 자부심이 강하다보니 늘 ‘나의 뒤를 따르라’고 해요. 항상 청년 세대가 앞장서서 역사의 변화를 끌어왔는데 지금은 뒤에서 쫓아가는 형태가 됐어요. 이걸 2~3년 내에 극복해내지 못하면 어렵다고 생각해요.

 

책에서도 지금 청년의 생태가 예외적인 것이라고 하셨고요.


무척 예외적인 거죠. 요즘 ‘비정상의 정상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이것이야말로 그 말이 적용되어야 할 부분이에요. 어려움은 이런 것이에요. 지금 청년 세대들은 딱히 추종할 만한 사상이나 이론이 없잖아요. 역사의 변곡점을 통과하는 시기기 때문에 예전의 것들이 다 낡은 것으로 전락해버렸단 말이죠. 무슨 주의라고 하면 옛날 얘기처럼 느껴지잖아요. 새롭게 정립해야 하지만 그것이 하루아침에 이뤄질 것은 아니니까요. 그런 점에서 지금 청년 세대는 상당히 고통스럽게 스스로 헤쳐가야 하는 세대죠. 마치 근대 초입과 비슷한 시기예요. 저희 때처럼 편안하게 기존의 지적 자산이나 유산을 물려받기만 해도 먹고 살 수 있었던 상황과는 아주 다릅니다.

 

해방공간에서 반탁운동의 시작은 많은 역사학자 분들이 뼈아픈 일로 꼽는 일이기도 해요. 말씀하셨듯이 역사적 사건을 통해 같은 오류를 범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일 텐데요. 이 일에서 배울 것은 무엇일까요?


당시 좌익 세력의 경우 소련에 의지한 채 뭔가를 해결하려고 하는 데서 꼬이기 시작했다고 진단했는데요. 현재 우리 사회를 보면 아직 그런 면이 보이지 않게 많이 남아 있어요. 워낙 주변 강대국의 입김이 센 나라다 보니까 알게 모르게 주변에 기대서 해결하려고 하는 면이 있죠. 봅시다.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가 주변에 있잖아요. 제자리만 중심을 잘 잡고 서로를 견제시키면서 자리를 지키면 알아서 경쟁할 수밖에 없는 구도예요. 그런데 그 사고를 제대로 못하는 거죠. 그 정도의 외교적 역량을 발휘한다면 스스로의 몸값을 최대한 올릴 수 있을 거예요. 그런 측면에서 보면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라고 봅니다.

 

분단이라는 우리가 당면한 상황이 여러 측면에서 커다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렇죠. 북한을 견제하고 제압을 하려고 하면서 계속 미국을 등에 업고 있잖아요. 전 세계에서 전시작전권을 다른 나라에 맡기고 있는 나라가 거의 없는데 말이에요. 미국이 가져가라고 했던 것마저 자꾸 연장하기까지 했죠. 그러다보니 강대국의 긴장 속에 우리가 휘말려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어요.

 

청년 세대들은 통일에 대해 그렇게 간절하게 체감하지 않습니다. 태어났을 때부터 분단 상태였고요.


극복해야 할 문제죠. 쉽게 말해 통일이 되면 더 잘 살 수 있다(웃음)라는 긍정적 사고, 미래 지향적 관점에서 대할 수 있는 측면을 바라봐야 해요. 경제적 측면만 봐도 제대로 되기만 한다면 그 가능성은 무척 크죠. 오히려 보수층에서 훨씬 더 빨리 그런 면을 봤어요. 그래서 ‘통일은 대박’이라는 말을 했잖아요. 물론 통일에 대한 관점, 접근 방식은 다르지만 서로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상생의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돼요. 긴 안목으로 가지고 가야죠. 그것은 개성공단 하나만 보더라도 설명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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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정치 주체


그 사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당시에는 판단하기가 힘들잖아요. 지금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 역시 그러한데, 가장 우려되는 것은 무엇인가요?


가장 어려운 게 그 순간을 역사적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이죠. 우선 경제 상황이 가장 심각하다고 봐요. 한 마디로 경쟁력을 잃었죠. 정말 걱정스러운 건 이대로 가면 청년들은 설 땅이 없어요. 성장을 강조하지만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과거의 성공에 도취되어서 과거의 패러다임 안에 갇혀 있으니 경제는 대책 없이 추락하고 있어요. 너무 지나친 낙관주의는 독이 된다고 했습니다만, 위기의식이 확산될수록 새로운 활로를 찾아 나설 가능성 또한 커지거든요. 가능한 한 그 시간이 짧아져야겠죠. 그런 점에서 여러모로 역사적 기로에 서 있는 거예요. 한국 경제가 변화하고, 그 다음 새로운 정치 주체가 재정립되어야 한다고 봐요. 외환위기 전후 몇 년이 이후 20년의 역사를 규정했듯, 마찬가지로 지금부터 3년이 이후 30년의 역사를 좌우할 것입니다.

 

책을 읽은 사람들이 꼭 가져갔으면 하는 저자의 메시지를 하나만 꼽는다면요?


뒷면에 ‘청년세대가 먼저 읽고 기성세대에게 권하는’이라고 적었어요. 가장 먼저 읽어줬으면 하는 독자층은 단연 청년세대입니다. 그분들에게 집중적으로 건네고 싶은 메시지는 말 그대로 지금의 문제는 우리 선에서 해결하겠다고 하는 의지를 갖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답을 찾아나가고, 그것에 근거해 현실을 변화시키는 것은 만만치 않을 거예요. 그러나 운명적으로 그렇게 가지 않으면 이런 틀 안에서는 답이 없어요. 더 나빠질 가능성이 훨씬 크거든요. 우리가 주체가 되어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방면에 새로운 변화를 만들겠다는, 그 문제의식을 갖는 데 이 책이 일조한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희망이 있다고 보세요?


오히려 제가 꼭 묻고 싶습니다. 청년세대 스스로 ‘우리가 노력하면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겠다’는 희망이 있는지(웃음) 궁금해요. 우리 역사는 그 어떤 역사보다도 역동적이었잖아요. 민주항쟁, 2008년 촛불로 이어지는 에너지가 훨씬 더 파괴력 있게 지금 끓고 있다는 생각을 해요. 계속 진화 중에 있고요. 그런 점에서 저는 미래를 희망적으로 기획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독자 분들도 그렇게 느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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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 열한 가지 질문박세길 저 | 원더박스
이 책은 이 의문을 풀기 위해 “청년 세대의 고통은 어떻게 시작되었나?”를 포함해 모두 열한 가지 질문을 던지고 역사에서 그 답을 도출한다. 저자는 해방 이후의 역사를 필요에 따라 순서를 변경하거나 재조합하면서 한국 현대사의 극단적인 반전과 역설의 의미를 독자에게 충실히 안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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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음악인이 바라본 한국 드라마 음악의 현장, 음악감독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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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봄 국내 TV에서는 조금 뜻밖의 음악이 자주 방송되었다. MBC TV에서 3월부터 5월까지 방송된 16부작 수목 드라마 < 앵그리맘 >(최병길 연출/ 김반디 극본)은 대부분의 드라마 음악을 재즈로 사용한 것이다. 국내 드라마 역사상 음악감독으로 재즈 음악인을 기용하고 음악을 재즈로 채운 것은 < 앵그리맘 >이 최초다. 할리우드 영화계에서도 매우 드물게 벌어지는 재즈 사운드 트랙이 국내 드라마에서 어떻게 성사된 것일까? 재즈 음악인이 바라본 한국 드라마 음악의 현장은 어떤 것이었을까? < 앵그리맘 >의 음악감독을 맡은 그룹 '윈터플레이'의 리더 이주한과 사운드 트랙의 제작책임(Executive Producer)을 맡은 '라우드피그'의 재키 곽 대표를 만났다.

 

- 어떻게 드라마 음악을 맡게 되었는가? 학교 폭력을 다룬 사회성 짙은 작품이어서 음악으로 언뜻 재즈를 상상하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재키: 연출을 맡은 최병길 감독은 지금까지 단막 드라마만 연출해 왔고 장편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는 장편 데뷔작에서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었고 드라마 음악도 그 중의 하나였다. 드라마를 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 앵그리맘 >은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다. 하지만 최병길 감독은 이 주제를 마냥 무겁게 끌고 가지 않았고 중간 중간에 코믹한 성격도 많이 집어넣고 가급적이면 경쾌하고 재미있게 풀어가려고 했다. 그래서 이 모든 분위기를 아우르려면 재즈가 가장 적합한 음악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리고 이 다양한 분위기를, 특히 대중적인 코드와 섞어 가장 잘 풀어나갈 수 있는 재즈 음악인이 누굴까 생각하다가 이주한을 선택한 것이다. 최병길 감독은 한편으로 열렬한 음악 마니아다. 애쉬번이란 이름으로 활동한 뮤지션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번 사운드트랙에서도 노래 한 곡을 불렀다.


주한:몇 년 전만 같았더라도 재즈 음악인을 드라마 음악 감독으로 쓰려고 하면 아마도 방송국 내부에서 허락이 나질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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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린트 이스트우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더라. 자기가 감독을 맡은 영화에서 음악을 재즈로 사용하면 제작자들이 늘 반대 했다고.


주한: 할리우드도 그랬으니 한국은 어떻겠는가. 특히 TV 드라마란 영화와 달라서 온 가족이 저녁에 앉아 시청하는 것이다. 영화음악보다 훨씬 더 대중적이어야 한다. 그래서 지금껏 재즈는 드라마에서 거의 사용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몇 년 사이에 보면 재즈에 대한 거부감이 많이 줄어든 것 같다. 커피숍에 가면 늘 재즈가 나오고 재즈 페스티벌도 자주 열리고 하니 어느새 많이 친숙해 진 것이다. 드라마 시청률도 그리 나쁘지 않게 나와 참 다행이다.


재키: 실은 반대가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다. 나도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최병길 감독의 의견에 내부에서 반대가 꽤 있었다고 한다. 만약 재즈를 사용했다가 드라마 분위기가 어지러워지면 어떡하느냐는 지적을 받은 거다. 그래서 실은 음악감독을 이주한 씨로 시작했다가 만약 여의치 않으면 바로 투입할 두 번째 음악감독도 내정해 놓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최병길 감독은 비범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아, 이렇게 반대가 심한 걸 보니 오히려 이때 재즈를 잘 사용하면 음악감독 기용에 있어서 내가 하나의 전환점을 만들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다행히도 이주한 씨의 음악에 대해 최병길 감독은 흡족해 했고 드라마가 진행되자 음악에 대한 우려는 주변에서도 말끔히 사라졌다고 했다.

 

- 음반을 보니 두 장의 CD에 서른아홉 곡이 빼곡히 담겼다. 이 많은 음악이 전부 드라마에 쓰였나?


주한: 그렇다. 원래 작곡한 것은 더 많았다. 100곡이 넘었다.

 

- 보통 사운드 트랙 음반을 보면 몇 개의 주제가 등장하고 그 다음에는 대부분 변주들인데 < 앵그리맘 >의 음악에는 굉장히 많은 주제들이 등장한다.


주한: 물론 이 곡들 가운데서 굉장히 자주 쓰인 중요한 곡들이 있고 어떤 곡들은 한 번만 등장한 곡들도 있다. 하지만 한 자리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보는 영화와는 달리 주간 단위로 보는 드라마이기 때문에 음악의 통일성도 필요하지만 그때그때 상황에 맞는 음악들이 많이 필요했다.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짧은 시간 안에 작곡한 곡들도 상당히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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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 곡들도 드라마가 촬영된 뒤 화면을 보고서 작곡을 하나?


주한:아니다. 이미 올해 초에 대본의 일부를 받았다. 드라마의 전체 분위기를 파악하고 주요 인물들의 캐릭터를 분석 한 뒤 각 인물에 맞는 음악을 만들기 시작했다. 이때 드라마 감독과의 의견 조율이 중요하다. 촬영에 들어갔을 때 이러한 음악들은 대부분 준비가 되어 있었다.

 

- 그렇다고 미리 준비된 음악만으로 채워지는 건 아니지 않는가?


주한: 그렇다. 시나리오를 보고 음악을 미리 만들어 놓지만 실제로 촬영된 것을 보면 뜻 밖에도 다른 음악이 반드시 필요하게 된다. 그럴 때는 급히 음악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 음악을 만들 수 있는 시간은 보통 얼마만큼 주어지나?


주한: 모두 아시다 시피 TV 드라마라는 것은 모든 횟수를 전부 완성해 놓고 하나하나씩 방송하는 게 아니다. 앞의 내용들 방송되고 있을 때 뒤의 내용들은 여전히 촬영 중에 있다. 맨 처음 3월에 방송이 시작되었을 때는 미리 촬영해 놓은 분량이 많아서 여유 있게 완성 편집본이 나왔다. 수요일 밤 10시에 방송인데 화요일, 심지어 월요일 그러니까 하루 이틀 전에 편집본이 완성되었다. 그 정도면 시간이 충분한 거다. 그 영상을 보면서 기존의 음악들을 적절한 곳에 앉히고 더 필요한 음악들은 바로 작곡해서 그 안에 넣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횟수가 진행되면서 점점 시간이 촉박해진다. 드라마 감독의 입장에서 보자면 촬영과 편집을 동시에 진행해야 하니까 점점 더 시간에 쫓기는 것이다. 5~6회 쯤 이르자 편집본이 당일 아침에 오고 그 뒤에는 낮에 도착했다. 그러면 서둘러 음악을 앉히고 드라마 감독의 승인이 떨어지면 상암동 MBC에 있는 종합편집실로 달려간다. 그래서 배우의 대사에서부터 모든 소리들을 전부 편집 한 뒤 맨 마지막에 음악을 입힌다. 그러면 방송시간이 임박해서 모든 일이 끝난다.

 

- 꼭 최종 편집본을 보고 음악을 앉혀야 하나? 가편집본을 보고 음악을 넣으면 여유가 있을텐데.


주한: 처음에는 그렇게 해봤다. 그런데 결국 완성 편집본을 보면 아무런 소용이 없더라. 결국 같은 일을 두세 번 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완성 편집본이 나올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드라마 음악감독은 필연적으로 시간과 싸워야 한다.

 

- 빠른 시간에 작곡한다고 하더라도 녹음을 어떻게 그리 빨리 하나?


주한: 밴드로 녹음한 중요한 음악들은 이미 만들어져 있어야 한다. 갑작스럽게 필요한 음악들은 보통 어떤 분위기에 필요한 음악들이고 보통 다 미디로 작업한다. 곡만 만들어지면 시간은 그리 걸리지 않는다.

 

- 스튜디오 밴드 음악을 들어보면 근래에 한국 재즈 연주자들의 실력이 급속도로 성장했다는 느낌을 새삼 받았다.

 

주한: 그렇다. 각 악기별로 국내에서 최고로 실력 있는 연주자들을 기용했는데 리허설 시간이 그리 길지 않았음에도 완벽하게 연주해 주었다. 특히 젊은 드러머 김민찬과는 처음 작업해 봤는데 정말 잘하더라.

 

- 맞다. 드럼 솔로가 기본적으로 깔리면서 진행된 음악이 몇 곡 있었다.


주한: 실은 그런 음악들은 드라마에서 모험이었는데, 그래도 최근에 영화 < 버드맨 >이나 < 위플래쉬 >처럼 드럼 솔로가 많이 나오는 영화음악이 등장하지 않았나. 사람들이 그리 어색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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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드라마 음악이 만들어지는 산업적인 구조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 보통은 드라마 음악에서 음악감독과 음악 제작회사는 분리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 앵그리맘 >의 경우에는 음악감독 이주한 씨에, 그가 속한 라우드피그가 제작을 담당했다. 굉장히 예외적인 경우라고 들었다.


재키:그렇다. 우선 드라마 음악 제작의 기본적인 구조를 정리해보면 이렇다. 드라마 감독은 이 드라마의 음악을 가장 잘 만들 수 있는 사람을 선정한다. 그것이 음악감독이다. 한편으로 이 드라마 제작국에서는 음악 제작에 관한 모든 비용을 부담하고 동시에 음악의 판권을 소유하게 되는 음악제작자를 물색한다. 시나리오, 캐스팅, 연출, 음악감독 등을 검토하고 수익성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는 회사가 음악제작사로 나서는 것이다.

 

- 그 수익성을 따져서 (재키) 곽대표가 제작자로 나선 것인가?


재키: 맨 처음 MBC와 접촉할 때부터 제작과 판권을 전부 가지라는 제안을 받았다. 드라마 음악 제작에 경험도 없는 내게 이런 제안이 들어오다니, 깜짝 놀랐다. 그런데 일이 진행되면서 전체적인 그림이 머릿속에 잡히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이 드라마의 기본적인 성격을 놓고서 판단했을 때 아무도 제작자로 나서지 않았던 것이다. 우선 이 드라마는 멜로물이 아니다.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사랑의 발라드가 극적으로 쓰일 대목이 없다. 특히 최병길 감독은 드라마의 흐름을 깨면서 주제가가 마치 뮤직비디오처럼 반복적으로 나오는 연출은 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완강하게 고수하고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음악감독은 재즈 뮤지션인 이주한이다. 그 어떤 제작자가 여기에 관심을 갖겠는가? 그러므로 내게 기회가 왔다는 것을 나도 나중에 알았다.

 

- 그렇다면 보통은 음악 제작사가 모든 비용을 내는 대신에 그 드라마에서 히트곡을 만들어내서 그 비용을 충당하고 수익을 얻는다는 뜻인가?


재키:그렇다. 음악제작에 대한 모든 비용을 제작사가 내기 때문에 드라마 감독도, 음악감독도 제작사의 요구를 결코 거절할 수 없다. 제작사는 자신의 회사에 속한 가수의 노래를 이 드라마에서 어떤 장면에 몇 회 동안 나오게 해달라고 부탁한다. 감독들은 그 요구를 거절할 수가 없다. 그래서 드라마에서 어색하게도 마치 뮤직 비디오처럼 주제가가 중간에 자주 등장하는 장면이 나오는 것이다. 함께 일한 경험 많은 음악 오퍼레이터의 말에 의하면 이미 시나리오 단계에서부터 그러한 작업이 진행된다고 한다. 시나리오 상에 '이 장면에서, 누구의 노래, 3분간 쭉 흐른다' 이런 지시가 쓰여 있는 것이다. 그러한 대본과 연출은 드라마의 완성도를 떨어뜨린다고 본다.

 

- 그렇다면 방송사에서는 음악제작에 관한 예산을 전혀 책정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재키:그렇다. 음악에 관한 예산은 전혀 없다.

 

- 많이 놀랐다. 언제부터, 왜 그런 것인가?


재키:나도 그것은 모르겠다. 아무튼 이런 구조가 깨지지 않는 한 드라마 음악의 질적 향상은 이뤄질 수 없다. 영화음악 제작하듯이 드라마도 드라마 음악 제작에 대한 예산을 방송국에서 미리 집행해야 한다고 본다. 그래야 좋고 다양한 음악들이 나온다.


주한: 기본적으로 드라마 음악, 영화음악은 화면을 서포트 해줘야 한다. 그런데 국내 드라마 음악을 보면 과도하게 자신이 주인공이 되려는 모습을 너무 자주 보인다.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재키:그런데 최근에도 한 드라마가 최고 호화 캐스팅에 자본력 있는 음악 제작사를 끌어들여 인기 가수의 노래를 집중적으로 내보냈다. 그런데 그 수익은 예상만큼 되지 않았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이제 그러한 방식에 시청자들이 식상함을 느끼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어쩌면 서서히 변화의 시점이 다가오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 그런데 < 앵그리맘 > 사운드 트랙에도 상업적으로 꽤 가능성 있는 노래들이 있다. 예를 들어 알리의 「사랑한다 미안해」, 애버딘 오렌지의 「텔레포트 미 Teleport Me」같은 노래 말이다.


주한: 물론 있다. 음악감독이라면 그 장면에 가장 적절한 노래를 어떤 장르의 음악이든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크게 히트하리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복적으로, 극적으로 등장해야 하는데 최병길 감독과 처음 작업하면서부터 우린 그런 식으로 하지 말자는 이야기를 애초에 했었다.

 

- 그럼 시작부터 적자를 감수했다는 말인가?


재키:물론 순진하게 뛰어들었다가 구조적으로 수익이 어렵겠구나, 하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하지만 재즈 음악인으로서 이런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다. 경험만으로도 얻은 게 있다고 본다.

 

- 물론 음악의 대부분은 재즈이지만 알리의 노래라든지, 애버딘 오렌지의 노래는 대중적으로도 성공 가능성이 있다고 느꼈다. 두 노래 스타일도 완전히 다르다. 한 작곡가의 작품이라는 게 잘 믿기지 않는다.


주한: 나는 늘 대중음악에도 관심이 많다. 미국에서 어떤 노래들이 인기를 끄는지 늘 유의해서 지켜본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노래가 발견되면 비슷한 스타일로 곡을 써본다. 이리저리 변신하는 작업이 나는 재미있다.

 

- 애버딘 오렌지는 누구인가? 외국 팀인가?


재키: (주한과 함께 한참 웃음) 음악 제작할 때는 주변 사람들에게 영국에서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인디 뮤지션이라고 했다. 우선 작곡 의도는 남녀가 함께 부르는 풋풋한 듀엣 곡을 만든 것인데 드라마 종반에 시간상으로 너무도 쫓기고 있을 때였다. 제작 입장에서 너무도 힘든 일은 작곡도 작곡이지만 적절한 가수를 캐스팅하는 문제였다. 여기에는 돈 문제도 포함된다. 이미 이 사운드 트랙으로 흑자가 어렵다는 게 자명한 사실인데 또 애써서 지명도 있는 가수를 캐스팅한다는 게 여러 모로 어려웠다. 그래서 곧 데뷔를 앞두고 있는 자스민을 캐스팅하고 여성 파트는 내가 그냥 불렀다. 지금 처음 말하는 거다. 당시에 말하면 너무 성의 없게 제작한다는 소리를 들을 것 같아 비밀로 했었다. (웃음)

 

- 정말인가? 직업 가수가 불렀는 줄로 알았다. 전에도 노래를 부른 적이 있는가?


재키: '89년인가, '90년인가 대학가요제 미주지역 대회에서 우승한 적이 있다. 가수로 데뷔하라는 제작사의 권유도 있었지만 하지 않았다. 오래 전 이야기다.

 

- 이주한 씨와 결혼하고 함께 일하게 된 것은 얼마나 되었나?


재키:결혼한 지는 4년 되었고 라우드피그를 만들어 매니지먼트를 하게 된 것은 3년 되었다.

 

- 원래는 CF 제작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재키: 원래 영화를 전공했고 국내 기업의 해외 CF를 제작했다. 광고 일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게 대략 10년 되었는데 광고를 제작 하면서 단순히 영상물을 만드는 것보다는 콘텐츠를 개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느끼게 되었다. 특히 음악과 결합하면 좋은 공연, 영상 등 좋은 콘텐츠를 개발하기에 좋다는 생각이 들어 기획사를 만들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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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 데뷔 20주년이다. 어떤 계획이 있는가?


주한:드라마 음악을 어렵게 만들고 지금은 잠시 재충전하는 시간이다. 하지만 곧 다시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 윈터플레이 팀으로 여러 공연이 잡혀있고 올해에도 해외 공연 일정이 있다. 지난 20년 동안 잘 버텨온 것 같다. (웃음)


재키:낯 선 음악 비즈니스를, 그것도 재즈 음악인들과 해오면서 많은 걸 느꼈다. 특히 재즈는 국내와 같은 획일화된 시장 구조 내에서는 생존하기 어렵지 않나. 지금까지의 방식으로 그냥 방치해 둔다면 앞으로 재즈시장은 점점 더 어려워 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뭔가 획기적인 기획이 필요하고 뮤지션들도 지금까지의 마인드와는 달리 보다 적극적으로 기획에 참여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 같다. 내가 보기엔 대부분 '너무' 뮤지션스럽다. 난 내일도 따로 있는데 재즈 뮤지션의 삶을 내가 더 걱정하는 것 같다. (웃음)


주한: 재키는 걱정이 너무 많은 게 탈이다. (웃음)

 

- 인터뷰, 정리: 황덕호
- 사진: 이한수

2015/07 황덕호(saturnman2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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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의 작품도 미스터리 소설로 읽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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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빨간 표지에 단출한 검정색 글씨.<미스테리아>의 첫 인상은 강렬했다. 미스터리 소설을 처음 펼쳐들 때처럼 강한 호기심을 자극했다. 현존하는 유일의 미스터리 전문 잡지가 들려줄 이야기는 무엇일까. 김용언 편집장은 서두르지 않았다. 그녀는 <미스테리아>라는 이름에 담긴 의미부터 차근차근 설명해 나갔다. 미스터리(Mystery)와 히스테리아(Hysteria)의 결합인 미스테리아(Mysteria)는 ‘미스터리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구어라는 것. 이로써  <미스테리아>가 지향하는 바는 명확해졌다. 미스터리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에 의한, 미스터리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를 담고 있을 터였다.

 

지난 6월, 독자들과 처음 만난  <미스테리아>는 오랜 준비 기간만큼이나 밀도 있는 정보들을 펼쳐 보였다. 최근 출간된 미스터리 소설들에 대한 리뷰와 영화와 드라마로 다시 태어난 작품들에 대한 소개로 가볍게 문을 여는가 싶더니, 전문지에 걸맞은 예리하고도 심도 있는 지면들이 이어졌다. 창간호 특집 기사에서는 황금가지 시공사 엘릭시르 세 곳의 출판사 편집장과 미스터리 평론가들이 모여 ‘한국 미스터리의 현주소’에 대해 대담을 나누었고, 국내 매체로는 최초로 데니스 루헤인과 미쓰다 신조의 서면 인터뷰를 실었다.

 

기존의 작품들, 예컨대 박완서의 『도시의 흉년』과 최인석의 「집 내 집 뿐이리」 안에서 미스터리한 요소들을 찾아나가는 박해천 동양대학교 조교수의 시도는 새롭고, 법의학자 유성호가 들려주는 실제 사건들에 대한 법의학적 분석은 흥미롭다. 이밖에도 <미스테리아>는 배명훈, 송시우, 도진기, 김서진, 로렌스 블록 등 국내외 걸출한 작가들의 작품을 전한다. 특히 일본에서 출간된 작품 『밀실 입문』을 독점 연재한 코너는 밀실 살인의 가능성을 다각도로 조명함으로써 미스터리 마니아들의 호기심을 충족시켜 준다.

 

장르문학 전문지 <판타스틱>의 수석 에디터로 근무한 바 있는 김용언 편집장은  <미스테리아>의 이야기를 시작하며 “미스터리라는 장르로서만 가능한 방식으로 수많은 이야기가 탄생할 수 있다고” 적었다. 그녀의 믿음을 의심할 여지는 없다. 미스터리 소설만이 보여줄 수 있는 소재와 방식이 있다. 그렇기에 <미스테리아>의 창간은 세상의 이야기들이 더욱 다양해질 것이라는 기대를 품게 한다. 미스터리 문학의 마니아뿐만 아니라 이야기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미스테리아>의 출발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응원하는 이유다.

 

 

‘순수하게 재미를 위해서’ 책을 읽으면 안 되나요?


1년의 기획, 6개월의 작업을 통해 <미스테리아>를 창간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미스테리아>와 같은 매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신 건 훨씬 더 이전의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지난 해 9월 부터였어요. 올 봄을 목표로 창간할 생각이었는데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작용해서 6월 15일에 처음 선보이게 됐습니다. <판타스틱>을 만들 때에도 안타까운 부분이 있었는데요. 장르소설의 마니아층이 생각보다 많지 않잖아요. 그렇다 보니까 장르소설이 폭넓게 읽히지 않죠. 저에게는 장르문학과 순수문학이 다르지 않아요. 재미를 느끼는 층위는 다르지만 크게 거부감을 느끼지는 않는 거예요. 그래서 순수문학의 독자들이나, 어렸을 때는 미스터리 소설을 읽었지만 지금은 별로 찾지 않는 독자들을 유혹하는 자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장르소설의 재미와 의미, 그리고 장르소설만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자리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거죠.

 

말씀하신 것처럼 장르소설은 종종 순수문학과 비교되면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합니다. 장르소설을 단지 ‘킬링타임용 작품’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있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런 부분이 완전히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재미와 흥미를 위해서 읽는 독서가 분명히 존재하죠. 이를테면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을 읽을 때와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을 읽을 때 기대하는 바는 분명히 다른 거예요. 그 자체를 부인할 생각은 없어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독서에서 재미를 찾으면 안 되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일본에서는 장르소설을 엔터테인먼트 소설이라는 용어로도 부르는데요. 순수문학과 엔터테인먼트 소설을 나누는 것에 대해서 전혀 거리낌이 없어요. 작가들도 ‘우리는 순수하게 즐거움을 위해서 글을 쓴다’고 얘기하고요. 우리도 그렇게 떳떳해져도 된다고 생각해요. ‘재미있으려고 읽는다’는 말 자체에 거부감을 가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판타스틱>이 폐간되면서 장르문학의 팬들이 가슴 아파하기도 했는데요. <미스테리아>를 창간하시면서 당시의 경험을 떠올리기도 하셨을 것 같습니다. 


비단 장르소설을 다루는 매체뿐만 아니라 종이 잡지 자체가 무척 힘든 상황이에요. 패션지처럼 광고를 많이 받을 수 있는 잡지가 아니라면, 종합 일간지들도 (운영하기) 쉽지 않죠. 광고 수익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고요. 그런 부분에 있어서 <미스테리아>는 어떨 것인지, 처음에는 그 걱정을 제일 많이 했어요. <미스테리아>의 창간은 장기적으로 얻는 이득까지 고려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미스테리아>를 통해서 한국 미스터리 작가들의 시장을 넓히고, 잡지에 실리는 글들을 책으로 출간하고, (새로운) 필자들을 발굴하고, 독자들이 그 책을 사고… 그러면서 장르문학의 시장이 넓어지는 것까지 생각했던 거죠.

 

<판타스틱>과 <미스테리아>가 차별화되는 지점은 어디일까요?


<판타스틱>은 여러 장르를 통틀어서 다뤘기 때문에 강박적으로 계속 구분을 했던 것 같아요. SF, 판타스틱, 미스터리 등 장르의 배분에 신경을 많이 썼죠. 각 장르의 독자들이 자신의 관심사에 따라서 읽을 수는 있었겠지만, 산만한 느낌도 없지 않아 있었던 것 같아요. 수박 겉핥기식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는 불안감이 항상 있었어요.<미스테리아>는 미스터리 장르만 집중적으로 다루니까 조금 더 정돈되고 집중된 형태로 잡지를 만들 수 있는 것 같아서 개인적으로는 만족하는 편이에요. 하나의 장르 안에서 다양한 변주를 해볼 수 있으니까요. 가장 큰 과제라면 미스터리 마니아들과 미스터리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 사이에서 잘 조율하는 일이 될 것 같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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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장르문학은 왜 일본을 따라잡지 못할까?

 

 <미스테리아>의 창간호부터 반응이 뜨겁습니다.


창간호 프리미엄이라는 게 있고 다들 덕담을 많이 해주셔서 기분 좋지만, 너무 들뜨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미스터리 전문 잡지가 나왔다는 점에서 미스터리 팬들이 가장 먼저 좋아해 주시는데요. 저희가 기대하면서 동시에 걱정했던 측면이 ‘마니아가 아닌 독자들에게까지 가 닿을 수 있을 것인가’하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미스터리 문학을 많이 읽지 않는 분들 중에서도 호의적인 이런 반응을 보여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 반응을 지속시킬 수 있었으면 좋겠고요.

 

강렬한 디자인이 눈길을 사로잡는데요. 문단 구성에서도 틀을 깨고자 한 시도가 엿보입니다.


디자인에 대한 호불호가 확실하게 갈리더라고요(웃음). 예상은 했었어요. 그런데도 이대로 밀어붙였던 이유는, 기존에 없던 콘텐츠가 나오는 거니까 새로운 형식으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느낌이었죠. 사실 이런 디자인은 메이저 출판물이 아닌 형태의 출판물에서는 꽤 많이 시도가 되는 형식들이에요. 저는 메이저 출판물에서도 이런 파격적인 것들을 해보자고 했던 거고요. 형식들만 조금씩 바꿔도 잡지 디자인이 훨씬 자유로워지거든요. 독자 분들 중에는 낯설어 하시고 심지어 좋아하지 않는 분들도 있는 것 같은데요(웃음). 그런 반응을 도외시할 생각은 아니지만, 낯설다는 이유로 보기 불편하다고만 생각하지 마시고 ‘왜 다른 잡지 디자인과 달라졌는지, 기존의 틀과 다르니까 어떤 부분이 달라 보이는지’ 생각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미스터리 소설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라면 무엇일까요?


어쨌건 범죄가 있고 그것을 둘러싼 것들을 이야기하는 소설인데요. 저는 인간이 굉장히 악한 존재라고 생각하거든요. 역사를 보면 그렇잖아요. 인간의 선의를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자연 상태에서는 기본적으로 악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미스터리 소설, 더 넓게는 범죄 소설들은 자신만의 장르적인 장치들을 이용해서 ‘인간들이 왜 악해지는지’ 혹은 ‘인간이 악해지는 데 있어서 미치는 요인들이 무엇인지’ ‘그것에 대해서 우리가 어떻게 저항할 수 있을지’ 그런 것들을 현명하게 얘기해준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미스터리 소설을 읽을 때마다 새롭게 느끼는 부분들이 있는 것 같고, 또 재미를 느끼는 것 같아요.

 

미스터리를 비롯한 장르문학에 대한 수요는 영미권과 일본의 작품에 치중되어 있는 게 현실입니다. 왜 그럴까요?


사실 한국 미스터리의 역사를 영미권이나 일본과 물리적으로 비교하는 게 어렵죠. 한국에 미스터리가 소개된 건 일본을 통해서 이루어진 일이잖아요. 일본에서 번역된 작품들을 다시 번역해서 받아들였죠. 그마저도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꾸준하게 받아들일 수 없었고요. 그건 미스터리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서구 문명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불균질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영미권의 미스터리 부흥을 실시간으로 접하지 못했던 거죠. 서구의 발명품인 미스터리를 가지고 한국 작가들이 작품을 쓰는 건 서구에 이미 쌓여있는 토대들을 많이 흡수한 다음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 토대 자체가 잘 마련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작가들도 과거 작품들에서 도약을 잘 이루지 못한 것 같고요.

 

 <미스테리아>에서“우리는 그동안 뛰어난 해외 미스터리를 다수 읽어왔습니다. 이미 눈높이가 높아진 상황에서 한국 미스터리가 그사이의 간극을 부리나케 따라잡지 못한다는 불평은 충분히 나올 수 있습니다”라고 적으신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70~80년대에는 스포츠 신문 등을 통해서 김성종이라는 걸출한 작가가 나왔기 때문에 (미스터리 소설이) 반짝 부흥했었어요. 그런데 90년대에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미스터리 소설을 발표할 수 있는 지면 자체가 굉장히 축소됐죠. 작품을 발표하고 피드백을 받으면서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든 거예요. 미스터리 작가들이 없었던 건 아닌데, 독자들과 함께 작품을 성장시킬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해외의) 미스터리 소설들의 번역본을 읽고 자라난 세대들의 눈에는 한국 작품들이 불만족스러웠던 거죠. 번역되는 작품들은 걸작들인 데 반해서 한국 작품들은 성장이 제대로 안 된 상태였으니까요.

 

덧붙여“하지만 한국의 미스터리 토양은 이제 막 다져지기 시작한 상황이고, 우리가 미처 그 사실을 모르고 있을 뿐”이라고 적기도 하셨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나왔던 작품들을 저도 같이 읽고 있는 중인데요. 굉장히 달라졌다는 생각을 했어요. <판타스틱>을 만들 때만 해도 작가들이 너무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그게 아니라, 우리가 몰랐을 뿐이지 그때부터 계속 나오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해외 걸작들에 익숙한 분들이 보시기에는 여전히 성에 안 찰 수도 있지만, 저는 예전과는 확실히 다르고 성장 속도도 굉장히 빠르다고 생각해요. 머지않아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이들이 만족할 수 있는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박완서의 작품에서 미스터리 소설이 보인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에서 변화를 감지하셨나요?


이를테면 도진기 작가님은 한국에서 소위 본격 추리의 일인자라고 손꼽히는 분인데, 작가님 소설을 읽으면서 깜짝 놀랐어요. 트릭이 굉장히 좋았거든요. 한 마디로 유치하지 않은 거예요. 말이 되고 설득이 되는 트릭인 거죠. 그래서 ‘한국 소설에서도 이런 트릭이 나올 수 있구나’하고 감탄했어요. 그리고 기술적인 면에서도 굉장히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해요. 한국에서만 가능한 미스터리라면 한국을 잘 반영해야 하잖아요. 한국 사회의 맥락을 잘 끌어들여야 하죠. <미스테리아> 창간호에 실린 「누구의 돌」을 쓰신 송시우 작가님의 장편『라일락 붉게 피던 집』이나 「신드롬」의 김서진 작가님 전작인『2월 30일생』을 보면, 한국의 특정한 시공간을 배경으로 해서 거기에서 배태된 괴물이나 범죄자들의 묘사가 참 좋아요. 한국 사회의 토양에서 나온 범죄자들에 대한 시각이 점점 더 구체화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MISSING LINK’라는 이름의 지면도 눈에 띕니다. “한국 미스터리 소설의 ‘가상의’ 계보를 색다른 상상으로 채워 넣는 기획”이라고요.


한국 미스터리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두 명의 작가 외에는 딱히 떠오르는 이름들이 없어요. 20세기 초의 김내성 작가와 80년대의 김성종 작가죠. 중간 중간 (다른) 미스터리 작가들이 있었지만 그 둘을 뛰어넘지는 못했어요. 그렇다면 ‘한국 미스터리의 토대가 그렇게 허약한가’ 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우리가 순수문학으로 분류하는 30~40년대의 작품들 중에도 넓은 의미에서 범죄소설에 들어갈 수 있는 작품들이 많다고 생각해요. 순수문학 독자들은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저희로서는 ‘알고 보면 우리에게도 범죄소설의 계보가 있다’고 제안해 보고 싶었어요. 이를테면 김동인이나 주요섭의 소설에서도 그런 단서들을 발견할 수 있었거든요.

 

앞으로 ‘MISSING LINK’에서는 어떤 이야기들을 들려주실 계획인가요?


다양한 필자들이 돌아가면서 ‘이런 소설도 범죄소설로 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제안을 이어가면서 계보를 만들어 보고 싶어요. 우리가 잘 몰랐던 미스터리 작가들을 소개하는 글이 나올 수도 있고요. 이번에 박해천 선생님께서 쓰신 것처럼, 박완서 작가의 소설 속에서 공간을 중심으로 그 안에서 배태되는 범죄의 기운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도 있죠. 필자들 사이에서 다양한 시각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국내 매체로는 최초로 데니스 루헤인과 미쓰다 신조의 인터뷰를 실으셨는데요.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작가들이 왕성하게 책을 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항상 해요. 어느 정도 양이 쌓여야 질도 나온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점에서 데니스 루헤인과 미쓰다 신조는 데뷔 이래로 꾸준히 책을 쓰셨던 분들이죠. 인터뷰 기사에서도 그런 부분이 엿보이는데, 투철한 직업의식을 가지고 굉장히 성실하게 공부하고 글을 쓰고, 본인의 글쓰기를 되돌아보는 작가들이에요. 미쓰다 신조는 “『염매처럼 신들리는 것』에서는 호러 50 대 미스터리 50” “『흉조처럼 꺼리는 것』에서는 호러 10 대 미스터리 90”과 같은 식으로,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 정확하게 파악하려고 노력하고 객관화하려고 하죠. 그런 측면들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충분히 자아도취 할 수도 있는데 그러지 않고, 성실한 직업인으로서 글쓰기를 계속한다는 점이 좋았어요.

 

‘나의 기획서’라는 지면을 기획하신 의도도 궁금합니다. 짐작컨대 “한국 미스터리 독서 시장과 창작 활동 양쪽 모두에, <미스테리아>가 든든한 벗으로 남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투영된 게 아닐까 싶은데요.


한국에서는 번역자 선생님들이 기획자 역할까지 겸하곤 하세요. 이런 작품을 출간하면 어떻겠냐고 제안하시고 번역을 시작하시죠. ‘나의 기획서’ 페이지는 번역자 선생님들의 이메일까지 공개하면서 이 책도 출간해 보자고 출판사에 권하는 건데요. (대부분) 그런 책들은 번역자 분들께서 잘 이야기하지 않으려고 하세요. 나만 알고 있다가 꼭 내가 번역하고 싶은 책들이 분명 있거든요. 예전에 <판타스틱>을 만들 때에도 비슷한 경험이 있어서 이번에는 가능할까 싶었는데, 흔쾌히 참여하겠다는 분들이 계셔서 기쁜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모쪼록 연결이 잘 돼서 출판까지 이어지면 좋겠다는 바람이고요. 그래서 번역자 선생님들도 본인의 비밀 같은 작품들을 공개해 주실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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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테리아>공모전 통해 신인 작가 발굴하고 싶다


최근에 가장 재미있게 읽으신 미스터리 소설은 무엇인가요?


가장 최근에 읽은 건 카트린 아를레의 『지푸라기 여자』예요. 오래된 소설인데 계속 읽지 못하다가 근래에 읽었어요. 얼마 전에 영화 <은밀한 유혹>으로 개봉하기도 했고 궁금해지더라고요. 2차 대전 직후에 나온 소설이고 작가가 20대 때 쓴 작품인데, 정말 놀라운 통찰력이 있었어요. 굉장히 날카로웠고요. 처음에는 ‘전제가 조금 뻔하지 않나?’하고 생각하면서 읽었는데 뒤로 갈수록 완전히 몰입해서 읽었어요. 이런 게 고전이구나 싶더라고요. 60여 년 전에 쓰인 소설인데도 너무나 현재적으로 읽히는 거예요. 배경 묘사라든가 주인공의 심리 상태가 지금의 한국 상황과 다르지 않고요. 최근에 읽은 작품 중에서는 제일 재미있었어요.

 

미스터리 소설의 재미를 아직까지 발견하지 못한 독자들에게는 어떤 작품을 추천해 주실 건가요?


근래의 작품 중에서는, 이미 많은 분들이 읽으셨지만, 길리언 플린의 『나를 찾아줘』가 많은 공감들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남자들은 굉장히 싫어한다고 하던데요(웃음). 많은 여성 독자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소설이라고 생각해요. 미스터리 소설을 잘 안 읽으셨던 분들이라면 공인된 걸작에서 시작하는 게 안전한 방법인 것 같아요.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 중에 유명한 작품들-『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오리엔트 특급살인』도 있겠고요. 하드보일드 소설의 초기 걸작들로 불리면서 이후의 사회파 소설들을 결정지었던 작품들, 예를 들면 레이먼드 챈들러나 대실 해밋의 작품들도 있겠죠.

 

<미스테리아>는 국내외 작가들의 단편 소설도 소개하고 있는데요. 앞으로 신인 작가의 작품도 만나볼 수 있을까요?

 

<미스테리아>에 공개한 것처럼 투고도 받고 있고요. 보내주신 작품들은 빠짐없이 읽고 있어요. 그 중에서<미스테리아>의 방향과 잘 맞는다고 판단되는 작품들은 당연히 실을 생각이고요. 그리고 <미스테리아>주관으로 공모전도 열 계획이에요. 아마 연말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공모전을 통해서 본격적으로 작가들을 발굴할 생각이에요. 기존 작가 분들의 작품도 계속 실을 거고요.

 

‘특히 이 지면을 주목해 달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코너가 있으세요?


앞서 이야기했던 ‘MISSING LINK’같은 코너는 미스터리 마니아들에게도 신선하게 보일 수 있고 미스터리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들도 편하게 접근할 수 있는,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코너가 아닌가 싶어요. <미스테리아>만의 독자적인 기획이라는 느낌도 있고요. 그래서 계속 지켜봐주셨으면 좋겠어요. 매호 바뀌게 될 스페셜 기사도 가능하면 현재 진행형의 이야기를 끄집어낼 생각이에요. 독자 분들이 보시기에 저희가 부족하고 성에 안 차는 측면이 있다 하더라도, 관심 가지고 계속 봐주시면 좋겠고요. 많은 제안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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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테리아 (격월) : 창간호 [2015] 편집부 | 엘릭시르
미스터리 전문 격월간 잡지 《미스테리아》가 창간되었다. 미스터리(mystery)와 히스테리아(hysteria)라는 단어가 결합되어 ‘미스터리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구어를 제호로 사용한 잡지답게, 한국 미스터리 장르의 토대를 단단히 다지면서 미스터리 창작과 독서의 저변을 확장시킴으로써, 미스터리라는 장르로서만 가능한 방식의 수많은 이야기들을 풀어낼 수 있는 유일무이한 지면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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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 이승윤 “영원한 헬스보이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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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국민 앞에 ‘헬스보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운동을 시작한 사람이 반드시 개그맨이 아니었더라도 그는 조급하게 운동하지 않았을까. 많은 분야에서 ‘숫자’가 현상을 왜곡하는 경험을 하게 마련이지만 특히 다이어트라는 영역은 그 정도가 심하다. 남들에게 체중감량을 선언하고 하는 운동은 결과적으로 건강을 위한 것도, 진짜 운동을 하는 것도, 결코 나를 위하는 것도 아니다. 오랜 기간 운동을 해온 사람이 ‘지속 가능한’, ‘꾸준한’ 운동을 반복해서 강조하는 것도 이유가 있을 것이다.


‘헬스보이’ 이승윤도 그런 과정을 거쳤다. 100kg에 육박하는 몸에서 ‘마이 프레셔스’ 식스팩을 갖기 위해, 또 유지하기 위해 지독하게 식단을 관리하고 운동에만 열중하기도 했다. 회식에도 가지 않았고, 친구들도 만나지 않았고, 카페에 가서도 도시락을 꺼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였나? 지금 그는 말한다. “결과적으로 건강을 위하는 것은 평생 해야 하는 노력인 것 같아요. 잠깐이라도 하는, 꾸준하고 지속가능한 운동이 중요한 거지 운동 자체의 노예가 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라고.


현재 이승윤은 자신이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는 나만의 적정체중을 찾았다고 했다. 여기서 그가 깨달은 또 한 가지가 등장한다. 바로 숫자다. 가장 활력 있고, 활기찬 상태는 사람마다 다르다. 이른바 BMI(Body Mass Index, 신체질량지수)라고 하는 것에 얽매여서는 안 된다. 그것이 내 몸에 적당하지 않을 수도 있다. 숫자에 집착하기 보다는 진짜 ‘건강한’ 운동을 하는 것, 평생 운동을 하고 건강한 몸을 유지하는 것이 우리가 잊고 지낸 기본일지 모른다.

 
이승윤이 ‘라스트 헬스보이’를 진행하면서 후배 개그맨 김수영과 이창호에게 강조한 것도 바로 그것이었다. 가장 기본에 충실한 운동법, 규칙적인 생활과 식습관. 이것만으로 그 둘은 수많은 화제를 낳은 놀라운 결과를 성취해냈다. 이승윤은 이 메시지를 책에 담고자 했고, “운동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다고 했다. 지금 당장 밖으로 나가 10분이라도 동네 한 바퀴를 걷는 것, 그것부터가 운동의 시작이다.

 

 

진짜 건강을 위한 운동


벌써 네 번째 책이라고요. 소감이 궁금한데요.


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웃음) 헬스보이의 역사 같은 건데요. 이 책이 가장 최근에 헬스보이를 하고 나서 낸 거잖아요. 아무래도 지금까지 운동을 해오면서 생각이 계속 변한 부분이 있어요. 이 책은 최근 제 생각을 담은 거죠. 처음에는 뭣 모르고 시작했다가 점점 알게 되면서 운동에 대한 생각이 조금씩 바뀌었거든요. 한 10년 쯤 하다 보니까 지금은 진짜 건강을 위한 운동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보여주기식 운동보다는 말이죠. 그런 생각을 전달하고 싶었어요.

 

그 부분이 이 책의 핵심인 것 같아요. 다이어트-식스팩 또는 S라인-적정체중으로 이어지는 시행착오는 많이 겪는 과정이기도 해요.


처음엔 누구나 의욕이 앞서죠. 살면서 한 번은 식스팩이나 화보촬영용 완벽한 몸을 만들고 싶은 욕망이 있잖아요. 저 또한 그랬어요. 그렇게까지 해보기도 했고요. 나중에는 그 상태로는 365일을 살 수는 없겠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죠. 6개월 정도 그 상태로 살았는데 너무 힘들더라고요. 무엇을 위한 것인가 싶기도 하고요. 지금은 그때보다 식스팩은 흐릿할지언정 훨씬 건강한 것 같아요. 얼굴 표정이 진짜 달라요. 그때는 너무 예민하고, 편안한 표정이 안 나왔죠. 지금이 오히려 표정도 밝아지고, 편안함을 느껴요. 아침에 일어나 거울 속 내 배의 지방을 체크하지 않아도 되고요. 그런 것들에서 벗어나니까 마음이 편안해지는 건데요.


결과적으로 건강을 위하는 것은 평생 해야 하는 노력인 것 같아요. 잠깐이라도 하는, 꾸준하고 지속가능한 운동이 중요한 거지 운동 자체의 노예가 되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적정한’이라는 게 참 어렵잖아요. 세간의 식스팩 열정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가요?


저도 한때 많이 했고, 그 노력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에요. 자신의 목표에 맞게 열심히 운동하는 건 좋은 일이죠. 식스팩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면 그것도 좋고요. 다만 그런 운동이 건강이 위주가 아니라 보여주기에 급급한 운동이라면 의문을 가져야할 것 같아요. 완벽한 몸을 갖춘 상태가 과연 건강한 상태라고 할 수 있을까를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살면서 한 번쯤 식스팩을 만들고, 유지해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그 몸으로 평생을 살 수 있는가 생각했을 때는, 잘 모르겠어요.


저는 하루 삼십 분에서 한 시간 정도의 운동량으로 이 몸을 유지하고 있거든요. 그런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굳이 헬스가 아니라도 말이에요. 등산을 할 수도 있죠.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프로그램을 하면서 등산을 자연스럽게 하게 됐어요. 한 달에 두 번 씩 하는데요, 그런 것도 운동이죠.

 

자기에게 맡는 운동을 했으면 한다는 말씀이시군요.


자기한테 맡는 걸 했으면 좋겠어요. 처음 배우는 분들이 강도 높은 웨이트 트레이닝을 한다거나 하면 그것이야말로 운동을 지속할 수 없는 가장 큰 요인이라고 생각해요. 책을 여러 권 냈지만 그것이 제 생각의 변화를 보여주는 것 같아요. 이전의 것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고요, 해보니까 깨닫는 것들이 있다는 의미예요. 강속구 투수가 시간이 가면서 효율적인 투구를 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에요. 그런 것 같아요. 예전엔 무조건 강속구만 고집했어요. 최고의 식스팩을 만들겠다, 그렇게 생각했고요. 지금 식스팩은 흐릿하지만 내 몸이 건강한 이정도의 운동이 좋지 않으냐 하는 거죠.

 

만약 지금 멋진 식스팩을 가지고 있지만 오히려 삶이 무기력해지고 주변에서 자신의 얼굴을 보고 몸 안 좋은 거 아니냐고 물어보거나, 또는 성격이 날카로워진 것을 스스로 느끼고 있다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길 바란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든 것인가? 마이 프레셔스를 버리면 잃었던 것들을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잘 생각해 보자. 무엇을 위해 운동하는가. (37쪽)

 

결국 ‘기본’인 것 같아요. 꾸준함, 건강을 말하셨고, 제목 역시 ‘지속 가능한’이라고 했어요.


어느 순간 느꼈어요. 운동 경험이 오래 되고, 주변에도 운동 경험이 오래된 트레이너들, 선수들도 있잖아요. 함께 운동을 하다보면 가장 기본적인 운동을 빠뜨리지 않고 반드시 해요. 어떤 운동 프로그램을 하더라도 말이에요. 예를 들어 가슴 운동을 할 때는 벤치 프레스가 기본이잖아요. 운동 경력 20년이 되었다 하더라도 벤치 프레스를 안 하진 않거든요. 하체 운동의 기본은 스쿼트인데요, 경력이 아무리 오래 돼도 스쿼트를 빼고 하체 운동을 하진 않아요. 그러니 그 기본적인 운동만으로도 어느 정도 유지가 되고 건강에 좋은 거죠. 그것에 익숙해져서 다른 운동을 추가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죠. 기본적인 운동을 잘 닦아 놓으면 다른 운동을 하기도 굉장히 편해져요. 가장 기본적인 것의 느낌을 알아야 발전시킬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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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에 너무 연연할 필요는 없어


98kg까지 나가던 시절도 있었어요. 경험자로 전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을 텐데요. 적정 체중을 유지하는 데 무엇이 가장 큰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세요?


사람마다 몸이 다 다르고, 체질도 다르잖아요. 일반 의학적으로 키에 비례해 책정되는 몸무게가 있어요. 제게는 그게 사실 안 맞아요. 저는 머리도 크고(웃음), 골격 자체도 커요. 뼈도 두껍고요. 기본적으로 체중이 많이 나가죠. 제 키에 해당하는 적정 몸무게가 61kg인가 그런데요. 아무리 다이어트를 해도 그 몸무게가 된 적도 없고요, 그 몸무게가 되면 오히려 건강하지 못할 것 같아요. 한참 욕심내서 68kg까지 뺀 적이 있었는데 정말이지 죽을 지경이었거든요. 몸 자체가 다른 거예요. 컨디션도 가장 좋고, 힘도 제일 잘 쓸 수 있고, 스스로 건강하다고 느끼는 몸무게를 찾은 거예요.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그런 점을 감안하셔야 할 것 같아요. 몸무게 숫자에 너무 연연할 필요는 없어요. 기본적으로 근육량이 많은 사람들도 있잖아요. 그렇게 따지면 우리나라 보디빌더들 모두 과체중으로 나올 거예요. 하지만 그들은 비만이 아니잖아요. 자신이 가장 활기차고 힘을 잘 쓸 수 있는 적정 체중은 운동을 해보면 자신이 알게 될 거예요. 내 몸을 스스로 만들어가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숫자에 집착하는 것은 여러 의미에서 경계해야 할 부분이에요.


건강한 몸은 자신이 만드는 거지 기준을 다른 데에 두면 안 돼요. 예를 들어 연예인들 몸을 보면서 그 몸처럼 되겠다고 목표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것보다는 자신의 건강을 찾는 게 중요하죠. 식스팩 좀 없으면 어때요? 적당히 옷 입었을 때 좋고, 그런 게 좋은 것 같아요.

 

‘라스트 헬스보이’ 코너에서는 완전히 다른 사례 두 분과 함께 했어요. 그런데도 운동법은 거의 비슷했다고요.

 

똑같았어요. 마른 체형이나 뚱뚱한 체형이나 운동법은 똑같아요. 물론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기본적인 것은 거의 비슷하죠. 단 하나예요. 규칙적인 생활이 중요하다는 거였어요. 규칙적이지 않기 때문에 살이 찌고, 규칙적이지 않기 때문에 마르는 거예요. 코너 들어가기 전에 김수영, 이창호 씨와 인터뷰를 정말 많이 했어요. 창호는 굉장히 예민해요. 작은 소리에도 자다 깨고, 깊은 잠을 못 잔대요. 먹는 것을 불규칙하게 먹고요. 수영이도 마찬가지예요. 불규칙하게 너무 많이 먹어요. 불규칙하게 너무 많이 자고요. 둘 다 새벽 네다섯 시나 돼야 자더라고요. 당연히 몸이 건강하지 않죠. 운동을 하면서는 그런 습관들이 바뀌어가는 거죠. 제 때 먹고, 제 때 자고요. 그러니까 컨디션이 무척 좋아졌어요. 곁에서 보면서도 느꼈어요.

 

김수영 씨의 감량 체중이 워낙 화제가 되었잖아요. 식이조절을 한다든지 엄청난 운동을 했으리라고 많이들 생각하셨는데, 아니었네요.


4개월 동안 만든 결과인데요. 4개월이 짧다면 짧지만 길다면 굉장히 긴 시간이거든요. 4개월 동안 안 먹을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거예요. 생각보다 긴 싸움이기 때문이죠. 다만 수영이는 빠질 살이 너무 많았던 거죠.(웃음) 100kg까지 빼는 데 크게 무리는 없었던 것 같아요. 규칙적인 습관을 철저하게 잘 지키는 것만으로 충분했죠. 처음에 걷기부터 시켰거든요. 수영이는 30분 이상을 걸어본 적도 없는 친구였던 거예요. 또 하루 일곱 끼, 여덟 끼 먹던 식사를 세 끼로 줄이고요. 그것만으로 살이 쭉쭉 빠지더라고요. 무리하게 한 게 아니었어요.


물론 이 친구들만의 특수성은 있었겠죠. 수영이는 어렸을 때 씨름을 했기 때문에 신체 능력이 좋아요. 운동을 가르쳐주면 잘 하는 부분이 있었어요. 그래서 성과가 잘 나온 것 같아요. 창호는 너무 예민한 부분이 있어서 심리적으로 많이 다가갔던 것 같아요. 항상 마음을 편안하게 하려고 노력했어요. 빈 말이라도 ‘나만 믿고 따라와’라는 말을 많이 해주고, 최대한 걱정거리를 덜 안겨줬던 게 컸던 것 같아요.

 

전천후 트레이너 역할이었군요.


그런 것 같아요. 저는 전문 트레이너도 아니고 자격증도 없지만요. 운동을 가르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고, 오히려 저보다 더 전문적인 트레이너들이 운동을 더 잘 가르쳐줄 수 있죠. 제가 중점을 두었던 건 이들이 꾸준히 운동을 할 수 있는 동기부여였어요. 정신을 컨트롤 하는 것이 중요했지, 운동은 특별한 것이 없었어요. 정말 간단한 내용이었어요. 운동 방법은 책에 나온 것에 크게 벗어나지 않았어요. 저는 항상 그걸 지킬 수 있게 도와주는 것에 집중했던 것 같아요.

 

트레이너에게 의존하지 않는 스스로의 운동법에 대해서도 조언을 하셨잖아요.


방금도 수영이를 보고 왔거든요. 어제도 어깨 운동했다고 자랑하더라고요. 스스로 할 수 있게 만드는 방법이 중요한 것 같아요. 저도 스스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한 경험으로 지금까지 운동하고 있잖아요. 다양한 경험들을 하면서 말이에요.

 

그런 측면에서는 동기부여도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제가 ‘잘생겼다’고 마음에 없는 말을 정말 많이 했어요. 정말 잘생겨졌다, 살 더 빼면 난리 나겠는데, 그런 식으로 많이 얘기했죠. 진심은 아니었지만요.(웃음) 끊임없이 동기부여를 계속 해줬던 것 같아요. 무엇보다 관심. 운동을 혼자 하다보면 굉장히 외롭기 때문에 밤에도 연락하고 계속 그랬죠.

 

코너 바깥에서도 굉장히 많은 작업이 있었어요.


엄청나게요. 하루 종일 같이 붙어있는 거죠.

 

변화를 느끼셨을 텐데요. 성격이 좋아졌다고도 하셨잖아요.


아무래도 예민해지는 시기가 있죠. 모두가 그래요. 살을 뺀다는 것은 지금까지 갖고 있던 불규칙한 습관을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거기서 오는 부작용이 있어요. 수영이도 그런 과정이 조금 있었죠. 반항까지는 아니지만 인상을 쓴다거나 하는 식으로요. 저도 해봐서 아니까 계속 다독이고, 잔소리도 좀 많이 했어요. 여러 방법을 다 써봤던 것 같아요. 충격도 줘보고, 칭찬도 해주고요.

 

결과적으로 성공도 했고, 김수영 씨는 방송 출연도 많이 하시는데, 뿌듯하시겠어요.


굉장히 뿌듯해요. 수영이가 방송도 많아지고 나름대로 관심도 많이 받고 그래서 참 좋아요. 수영이에게 이후는 네가 알아서 해라, 70kg까지 빼라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하는데 최소한 더 찌지는 말라고 얘기했어요. 빼야겠다고 필요성을 느낀다면 운동을 배웠으니까 알아서 하되, 다시 예전처럼 돌아가지는 말라고요. 건강을 얻었으니 유지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했죠. 수영이도 많이 즐거워하고 의욕적으로 바뀌어서 참 보기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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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스팩에 대한 강박


거의 10년 정도 운동을 하셨다고 했는데, 운동을 하면서 가지게 된 확신이 거의 이런 내용일 것 같습니다.


세상 모든 것을 단절하고 산 적이 있어요. 운동 때문에, 식스팩 한 번 만들어보자고 6개월 이상을 세상과 소통하지 않고 살았어요. 회식도 간 적이 없었어요. 얼마나 독하게 했는지 몰라요. 그렇게 하니까 원하는 식스팩은 얻어지더라고요. 아침 6시에 지방 공연 가는 일정이 있다면 새벽 4시 반에 일어나서 그날 운동을 하고 갔어요. ‘헬스보이’라는 타이틀 때문인지, 영원한 헬스보이가 되어야 한다는 어떤 강박관념이 있었어요. 헬스보이 끝낼 당시 몸무게가 74kg이었는데, 이후에 67kg까지 더 뺀 거예요. 그렇게 지냈던 게 후회스럽진 않아요. 인생에 한 번 자신과의 승부를 해서 이겼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성취감 또한 크거든요.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게 아니라 어느 순간 평생 이렇게는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거예요. 먹는 즐거움도 크잖아요. 매일 참아가면서 살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예요. 이걸 깨닫는 데 무척 오랜 시간이 걸린 것 같아요. 지금은 74kg 정도를 유지하고 있어요. 훨씬 활기차고 일에서도 더 적극적이고 좋아요. 이후에 인상 좋아졌단 얘기를 정말 많이 들었어요. 예전에는 첫인상이 굉장히 안 좋았었다고 해요(웃음). 그것도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방송 코너를 진행하면서 늘 만족스럽진 않았을 것 같아요. 코너를 하면서 힘든 건 없었나요? 수치로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일어난 에피소드도 있을 것 같아요.


약간의 힘든 부분은 있죠. 하지만 제작진도 그렇고 모두 기본적인 것은 건강이고 무리해서 할 필요는 없다는 공감이 있었어요. 그렇잖아요. 몸을 망가뜨려가면서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게 무리하지 말자는 거였죠. 사실은 제가 ‘헬스보이’ 했을 때는 체중이 늘어난 적도 있었어요. 당황해서 말도 안 되는 애드리브도 쳤었어요. 어느 날은 체중이 안 빠져서 순간적으로 “체중은 줄지 않았지만 근육은 늘었다”고 하면서 몸에 온 힘을 다 줬던 기억이 나요.(웃음) 근육이 늘면 한 주 만에 얼마나 늘었겠어요. 하지만 너무 당황스러웠거든요. 사람들은 제가 한 주 만에 체중이 얼마나 빠졌을까 궁금해 하면서 오셨는데 빠지지 않았으니까요. 그래서 ‘헬스걸’ 할 때는 몸무게가 빠지지 않을 때 벌칙을 수행하기로 한 거죠. 무리하지 않기 위해서 다른 요소를 넣은 거예요. 이번 ‘라스트 헬스보이’ 때는 무리하지 않으려고 벌칙도 준비하고 다 구상했는데, 그런 일이 없었어요. 워낙 수영이는 지금까지 안 해서 그렇지 뺄 체중이 많았던 거니까요. 

 

단점이 있다면 장점도 있겠죠. 방송이라는 강력한 동기부여가 계속 운동하게 하고, 결국 성공하게 만드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 그리고 방송 바깥의 많은 사람들은 작심삼일을 경험하고요.


많은 분들이 운동이 너무 어렵고 복잡할 것 같다는 오해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체계적으로 뭔가 배워야 한다고 생각하시고요. 남자의 경우 가슴이 딱 벌어지고 싶다, 라고 하면 특수한 운동법을 배우는 특별한 과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잖아요. 아니거든요. 집에서 매일 팔굽혀펴기 100개 씩 해도 그런 가슴을 가질 수 있어요. 어렵게 생각하지 말자는 거예요. 저녁에 많이 먹었다 싶으면 동네 한 바퀴 빠르게 걷는 것만으로도 운동인 거거든요. 내 몸을 움직이는 게 운동이지 근육을 쥐어짜면서 들어올리는, 그게 처음부터 중요한 건 아니거든요.


정말 쉽고, 기본적인 운동으로도 몸에 충분한 변화를 줄 수 있다는 거예요. 어렵게 생각하지 않고 하다보면 내 몸이 변해요. 몸이 변하면 그 때부터는 스스로 운동을 하게 되고요. 딱 일주일만 참고 하루 한 시간만 꾸준히 운동해서 몸의 변화를 발견하는 즐거움을 맛보면 그것 때문에 계속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너무 어렵게 접근하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라스트 헬스보이’에서 이창호 씨의 사례를 보는 것이 다른 다이어트, 성형 프로그램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었다고 생각해요. 건강한 상태를 만드는 것에 중심을 두었다는 것이 말이에요. 그동안은 외형에 집중하는 접근이 많았으니까요.


저도 그걸 느껴요. 물론 외형적으로 보기 좋으면 좋겠죠. 그렇지만 그 사람처럼 되고자 하는 건 잘못된 것 같아요. 예를 들어 김수영 씨가 복현규 씨처럼 될 수는 없겠죠. 그런데 목표를 그렇게 잡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이창호 씨의 목표는 일반인이었어요.(웃음) 식스팩, 몸짱이 아니라 건강한 상태 말이에요. 전 이 사진이 가장 좋은 것 같아요. 창호의 지금 몸 상태가 완벽한 식스팩이 있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건강해보이잖아요. 이정도면 예전에 비해서는 충분한 거죠. 표정에서도 나타나잖아요. 얼굴이 완전히 달라요. 정말 자신감 있는 표정이잖아요.


특히 이창호 씨는 제가 보여주기 위해서 물을 먹지 말라거나 하지 않았고, 특별한 운동을 하지 않았어요. 창호의 목표는 쫙쫙 갈라지는 근육을 만드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에요. 그것은 수영이도 마찬가지였고요. 최소한의 건강을 찾기 위한 상태를 목표로 한 거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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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보이 이창호 씨의 변화

 

 

동네 한 바퀴 걷는 것부터


책을 보면 멋진 사진들이 많아요. 마음에 드세요? 촬영하면서 재미있는 일도 많았죠?


일단 제가 웃통을 안 벗고 찍은 것이 정말 마음이 편했어요.(웃음) 예전 책에는 벗고 찍느라 굉장히 예민했거든요. 식스팩을 보여주기 위해 이틀을 물도 안 먹고 사진을 찍었어요. 그러니 얼마나 몸 상태가 안 좋았겠어요. 부담도 되고요. 또 스스로 나의 식스팩이 잘 나오지 않은 것 같으면 다시 찍자고 요구하고 그랬어요. 이 책은 일단 안 벗으니까 마음이 정말 편하더라고요.

 

표정도 정말 좋거든요.(웃음)


저도 느껴요. 이전 책과 비교했을 때 표정이 정말 좋은 거예요. 차이를 저도 느끼죠.

 

꾸준한 운동으로 건강하게 생활하시고, 책도 내셨고, 다음 목표가 있다면요? 


저는 영원한 헬스보이가 되고 싶어요. 남들이 따라올 수 없는 근육질의 몸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제가 불리한 조건들이 많잖아요. 머리도 크고(웃음), 사람들이 선호하는 몸은 아닐 수도 있죠. 하지만 이게 최선이고, 그거면 된 거예요. 여자들이 좋아하는 몸이 아니다, 트렌드는 그게 아니다, 라고 하시는데 그런 게 운동하는 목적은 아니니까요. 스스로 활기차고, 건강한가 그것이 우선인 거죠. 할 수 있는 최선의 몸 상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무척 즐거워요. 예전 뚱뚱했던 때보다는 백 배 낫다고 생각하고요. 그런 마음가짐이 중요한 것 같아요. 저렇게 되느니 운동 안 하고 만다는 생각을 가진 분들이 계시다면, 건강을 위해서 운동을 하시라고 말씀 드리고 싶어요. 누구처럼 되려고 운동하는 게 아니라 말이죠. 그러면 단순히 외형적 변화가 아니라 스스로 성취감이나 생활의 활기를 느끼실 거예요.

 

마음의 건강도 갖고 계신 것 같네요.


뚱뚱했을 때는 매사에 자신이 없었던 것 같아요. 사람들이 내 배를 볼까봐 신경 쓰이고, 주변이 굉장히 의식 됐어요. 땀도 많이 흘리고, 숨소리도 거칠었거든요. 지금은 그런 게 없어요. 잘생겨서가 아니라 자신감이 생긴 거예요. 생활도 이전보다 더 나아지고 있는 것 같아요. 운동이 가져다주는 것은 단순히 외형적인 변화만이 아니라 외적인 것도 무척 많아요. 알게 모르게 많은 것을 변화시키는 것이 운동이에요.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헬스보이’라는 코너를 같은 포맷으로 세 번이나 하고, 운동법을 다룬 책이 여전히 관심을 받는 것을 보면 아직까지 많은 분들이 목표달성을 못하신 것 같아요. 마음처럼 성공하지 못했다고 생각하시니까 항상 마음만 가지고 있고요.

 

진짜 전하고 싶은 것은, 운동이라는 건 내 몸을 움직이는 것 그 자체부터니까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시라는 거예요. 말만 하지 말고 당장 나가서 동네를 한 바퀴 걷는 것부터 하시라고요. 그것이 시작이거든요. 실천을 하셔서 다시는 이런 책을 거들떠도 안 보게 되셨으면 좋겠어요.(웃음) 제 스스로 느낀 것들을 책에 썼으니까 많이 공감해주셨으면 좋겠고요. 운동은 거창한 게 아니라 건강을 위해 조금이라도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으로 하시는 거니까요. 그러면 어렵지 않게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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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보이의 지속가능한 운동법 이승윤 저 | 한빛라이프
이 책은 2007년 ‘헬스보이’, 2011년 ‘헬스걸’에 이어 올해 ‘라스트 헬스보이’로 다시 한번 놀라운 변화를 만들어낸 개그맨 이승윤의 운동법을 담았다. 유행 같은 운동이 아닌 기본에 충실한 ‘지속가능한’ 운동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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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윤광준 “사진이 별건가, 인생을 담으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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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찍고 싶은 사진』은 책 제목을 잘 살펴봐야 한다. ‘잘 찍은’이 아니라 ‘찍고 싶은’이다. 책에 실린 사진들을 보면 감탄사가 나오는 사진이 있는가 하면, ‘어, 이 정도는 나도 찍을 수 있겠는데’하는 사진이 있다. 저자 윤광준의 의도는 바로 후자다. 사물과 풍경, 사람을 보는 ‘눈’이 있어야 찍을 수 있는 사진들을 뽑아내 심도 깊은 심사평을 적었다.

 

네이버 <오늘의 포토>는 대한민국의 수많은 사진 고수들의 응모작 중 매일 단 한 컷을 꼽는 코너다. 7년간 2,200여 컷이 선정됐다. 대한민국 사진계의 내로라하는 작가, 평론가들이 심사위원을 거쳤다. 윤광준 저자는 ‘글 쓰는 사진가’답게 심사평을 통해 사진 기술로서의 평가를 너머 사진을 찍은 이의 상황을 읽어냈다. 거칠고 투박해도 사진가의 선택이 드러난 사진, 저자에게 내밀한 쾌감을 느끼게 한 사진들을 골라내 『내가 찍고 싶은 사진』을 펴냈다.

 

한겨레문화센터에서 8년째 사진 강좌를 진행하고 있는 윤광준 작가는 “기술이 아니라 사진이다. 흉내 내지 말고 당신만의 이야기를 풀어내라”고 말한다. 좋은 사진은 평범한 일상을 소중히 여기는 데서 나온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부분을 보는 눈’이 있다면, 당신은 이미 사진작가다.

 

 

사진이 사물의 외피만을 옮기는 데 머무른다면 절망이다. 대단하고 특별한 겉모습에만 현혹될 것이기 때문이다. 종류는 많지만 먹을 게 없는 음식, 소재가 없어 쓰지 못하는 글과 처지가 비슷해진다. 내용이 파악되지 못한 겉모습의 확신은 혼란만 더하게 될지 모른다. 스스로 찾아 선택한 결정이 더 소중하다. 특별함이란 원래부터 있는 게 아니다.

 

볼 줄 아는 눈이 새롭게 만들어낸 내용일 뿐이다. 모든 예술은 새로운 해석으로 풍요로움을 이어간다. 그런 점에서 세상에 널린 보이는 것 모두가 사진 찍을 거리다. ‘찍을 게 없다’란 말은 알고 있지 못하다는 뜻이다. (143쪽)

 


사람들의 양면성을 확인한 네이버 <오늘의 포토>


2012년에 『내가 갖고 싶은 카메라』를 내고 『잘 찍은 사진 한 장』개정판을 낸 후, 오랜만에 신간입니다. 서문을 읽어 보니 “책을 준비하는 내내 즐거운 비명을 질렸다”고요.


즐거웠어요. 오랜만의 몰입에서 오는 쾌감이 컸어요. 사실 네이버 <오늘의 포토> 심사위원으로 요청을 받았을 때는 별로 관심이 없었어요. 워낙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으니, 그저 그런 아마추어들의 발표의 장일 거라 생각했죠. 그런데 올라온 사진들을 쭉 보다 보니 참 재밌더라고요. 이 기회에 보통 사람들의 사진을 들여다보게 된 거죠. 제가 사진으로 대중적 만남을 시도한 사람이라 대중에 대한 관심은 계속 있었지만, 대중의 사진을 이렇게 많이 본 건 처음이었어요.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양면성을 그대로 확인했다고 할까요.

 

양면성이라고요?


사람들의 앞과 뒤, 말과 행동이 다른 지점을 본 거죠. <오늘의 포토>에 출품된 작품들의 규모가 굉장하거든요. 네이버 내에서 소화를 다 못하니까 외주 회사를 통해 <오늘의 포토>를 따로 관리해요. 매주 1차로 필터링을 하는데, 90%는 떨어져요. 1회에 50개 작품에서 70개 작품 정도가 올라가는데, 사진이 놀랍도록 똑같더라고요. 정말 깜짝 놀랐어요. 1차 선별작인데도 불구하고요. 그렇게 개성 있고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사진이 이렇게 놀랍도록 똑같은 걸 보고서, 왜 그럴까 생각하게 됐죠. <오늘의 포토> 심사평은 최소한의 가이드가 있어요. 기본 분량을 채워야 하는데, 기왕이면 심사평을 통해서 좋은 사진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하고 싶었어요. 1년간 심사평을 했더니 엄청난 양이 쌓이더라고요. 지금도 수많은 공모전이 열리고 있는데, 심사평을 가지고 책으로 묶은 건, 아직까지 보지 못했어요. 양식으로써도 재밌는 책이 된 것 같아요.

 

수상작들을 일상 찍기, 풍경 찍기, 인물 찍기, 하늘 찍기 등 주제별로 나눴습니다. 독자들이 특별히 관심이 있는 주제를 깊이 있게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내가 찍고 싶은 사진』의 특징은 ‘이 정도는 나도 찍을 수 있겠다’에요. 우리가 알고 있는 좋은 사진이란 뭔가, 내가 찍고 싶은 사진은 뭔가를 살펴보면, 이건 정확히 말하면 남의 것이기가 쉬워요.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지식과 경험에서 좋아하는 걸 반복하려는 건데요. 중요한 건, 우리가 언제부턴가 자기 눈으로 보는 걸 믿지 않기 시작했다는 거예요. 믿고 있는 걸 보게 된 거죠. 사진은 자유를 지향하기 때문에 내 눈으로 보는 것을 믿어야 해요. 주체적 판단, 주체적 선택이 사진의 출발이고, 그것을 옮기는 게 곧 사진이에요. 가장 솔직해야 해요. 남에게 보이기 위해 과장을 하고 포장을 하는데, 그런 과정이 전혀 필요 없는 거예요. 아마 많은 분들이 이 책에 실린 사진들을 보고 ‘이거 뭐야?’라고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전 이게 더 솔직하다고 본 거죠.

 

수상작을 선택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염두에 둔 기준은 무엇인가요.


인간의 삶을 다뤄야 한다는 게 제 기본적인 생각이에요. 삶과 유리된 예술이란 있을 수 없어요. 표현도 결국 인간의 삶을 들여다보는 거잖아요. 그 중요한 주제를 비껴간 상태에서 아름다움이라는 추상적인 가치를 쫓는 건 위험이 크다고 봐요. 결국 자기 이야기가 없다는 게 문제에요. 사람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도 그 사람을 통해서 자기를 드러내려고 하는 건데. 남을 의식하지 않고 찍는 사진은 없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사진이 소통의 한 방법이라면, 소통되지 않는 사진은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남에게 읽혀지길 원하기 때문에 찍는 거 아닐까요? 자신의 선택을 중요시하는 컷들, 즉 생각을 가진 사진들을 뽑았어요.

 

한 장의 사진으로 사람을 읽기는 힘든데요.


네이버에서 <오늘의 포토>를 진행하면서 객관적인 장치를 하나 만들었는데. 개인 사진 블로그에 등록을 해야, <오늘의 포토> 후보작이 될 수 있어요. 좋든 싫든 자기가 찍은 사진을 블로그에 올려야 하는데, 예전 사진들을 쭉 보면 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어요. 사진을 선정하고 나서, 그 사람의 과거 사진들을 보면 제 생각이 거의 맞더라고요. 나름 확신을 갖게 됐죠.

 

총 137컷이 실렸습니다. 특별히 더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 사진이 있나요.


‘비행’이라는 사진이에요. 구름과 작게 찍힌 비행기만 보이는 사진인데, 미국에 간 소년이 찍은 거예요.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이라 많은 사람들이 ‘이게 뭐야?’ 했을 거예요. 그런데 이 사진 한 장이 제 눈길을 끌었어요. 사진을 좀 했다는 사람들은 절대 이렇게 안 찍거든요. 출품자의 해설을 읽어 보니, 어린 나이에 미국에 가서 혼자 있는 상황이더라고요. 문득 하늘에 떠 있는 비행기를 봤는데 울컥 한 거죠. ‘저게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일지 모르는데, 집에 가고 싶다’ 그런 생각을 담은 거죠. 울림이 왔어요. ‘아 한국 가고 싶다’는 이 절실함을 어떻게 더 표현할 수 있겠어요. 내적 동기가 있는 사진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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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_ 강성운

 

 

책에 실린 사진들을 보면 되게 단순한 사진도 있고, 전문가가 찍은 듯한 사진도 있습니다. 일부러 연출을 한 사진도, 그냥 우연히 찍은 사진도 있고요.


다른 심사위원들이 그동안 많이 뽑은 사진들을 되도록 뽑지 않았어요. 어떤 회에는 뽑을 사진이 없을 때도 있었어요. 그럴 때는 정말 너무 아름다운 풍경이거나 성의가 대단한 사진을 뽑았죠. 공통점이라면 찍은 이의 생각이 그대로 드러난 사진이라는 거예요. 스스로 찾아낸 세상의 아름다움과 이야기를 담아낸 사진들만이 제 관심의 대상이거든요. 사진에서조차 자유롭지 못하면 숨 막혀 살 수가 없어요.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도 많이 실렸던 데요.


많아요. 아직도 사람들은 사진을 찍으려면 좋은 카메라로 능숙하게 조작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어요. 카메라의 화질과 성능의 문제는 사용자가 아니라 카메라를 만드는 엔지니어의 고민으로 돌려줘야죠. 진심보다 우선하는 게 있을까요. 예술사진 하느라 정작 제 아이, 가족사진 하나 변변하게 남기지 못한 무신경한 사람들이 많은데요. 정작 자신에게는 어떤 사진이 남을 것인지, 생각해본다면. 다른 사진들을 찍을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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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미화하면 좋은 사진이 될 수 없다


디지털카메라에 이어 스마트폰까지, 요즘은 인스타그램이 유행하면서 거의 사진 홍수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너무 많이 찍고 너무 많이 보기 때문에 ‘좋은 사진’에 대한 판단이 어려워지는 것 같기도 한데요.


유래 없는 사진적 풍요 시대가 됐죠. 디지털사회의 공통된 흐름이라고 볼 수 있어요. 디지털 시대가 잘못된 게 아니에요. 필름 시대가 아니니까 누구든 원 없이 찍을 수 있는 시대가 됐는데, 배가 부른 거죠. 문제는 그 다음이죠. 정말 좋은 걸 선택하려는 능력. 그 필요를 인정하는 게 지금 해야 할 일인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그냥 찍어 놓고 버려요. 프린트해서 보관하지도 않고 습관적으로 찍어두다가, 어떤 시점을 기준으로 버려요. 그건 사진이 지향하는 바가 아니에요. 자신의 표현 의도를 잘 담고 정리해서 자신의 삶에 피드백이 되도록 쓰는 게, 중요한 목표가 아닌가 싶어요.

 

셀카 인구는 여전히 많은 것 같습니다. 가끔 여행지에서는 셀카봉이 둔기로 변하기도 하는데요. 셀카는 찍는 사람과 안 찍는 사람이 확연히 구분되어 있습니다. 찍는 사람은 정말 많이 찍고, 안 찍는 사람은 아예 안 찍죠. 셀카를 어떻게 보시나요?


너무 자연스러운 현상 아닌가요? 자기를 드러내고 싶은 욕망은 우리 모두가 공감해요. 누구에게나 있으니까요. 문제는 자기를 드러내는 방식에 있어요. 자기 사진만 들입다 올라는 사람은 한마디로 보여줄 것이 없다는 뜻이에요. 그 얼굴과 상황이 맞물렸을 때 사진이 돋보일 수 있는데, 상황이 없고 자기 얼굴만 드러낸다는 건 사진에 대한 가치를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는 뜻이에요. 사진적 소통에 대해 고민한 적이 없는 거죠. 하지만 이것도 필요하다고 봐요. 이 단계를 거쳐야 이렇게 하면 안되겠다는 반성이 생기니까요. 파리에 가면 셀카봉을 금지하는 구역이 많아요. 휘두르다가 다치는 사람이 많으니까요. 이런 것들이 시대의 한 모습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문제가 있다고 보진 않아요. 뭐든지 차고 넘쳐야 안정의 시기가 오지 않나요? 꼴 보기 싫은 걸 참아야, 더 좋은 걸로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나중에는 하라고 해도 안 할 걸요.

 

아기가 태어나면 예쁜 사진을 찍어주기 위해 좋은 카메라를 구입하는 부모들도 많은데요. 아기 사진은 어떻게 찍어야 할까요?


상황이 드러나도록 찍는 게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상황이 드러나야 그게 기록이 되잖아요. 자기 애기 얼굴이 예쁘다고 얼굴만 찍는 건, 한 부분일 뿐이죠. 현실의 아기는 다 지저분한 방바닥에서 굴러다니고 정신이 없잖아요. 그런데 사람들은 자꾸만 현실을 미화하려고 해요. 예쁜 옷을 입혔을 때만 사진을 찍으려고 하죠. 사진적 포장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지저분한 배경을 자꾸 지우려는 건 뭘까요? 내가 아니라 세상의 기준을 자꾸 따라가려는 거죠. 내 삶을 드러내는 건, 지지고 볶고 그렇게 사는 모습 속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거예요. 아이의 성장과정을 기록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이게 얼마나 소중한가요? 사진을 찍는다는 건, 그 사람의 바탕이 드러나는 행동이에요. 너도 나도 베끼고 아름다움만 쫓으면 좋은 사진은 나오기 힘들어요.

 

웨딩 스튜디오에서 사진을 찍는 신랑, 신부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아주 재수없죠. 싫어하는 정도가 아니라 그걸 의뢰하는 사람이 이해가 안 가요. 몰개성 속에 끼어들고 싶다는 뜻인데. 돈도 많이 들고, 왜 표정도 없는 사진에 되지도 않는 포즈를 취하는지. 이해가 안 가요.

 

포토샵에 대해서도 묻고 싶어요. 포토샵을 과하게 한 사진을 보면 거부감이 드는데요. 작가님 사진 같은 경우에는 포토샵을 한 흔적이 거의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쓰고 안 쓰고는 사용자의 몫이라고 봐요. 도구와 방법에 대해 초점을 맞출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할 만큼 해보라는 거에요. 별도의 룰을 만들어 강요할 필요가 없어요. 모든 건 흐름이에요. 지나치게 하다 보면 결국 어느 단계에서는 저절로 안 하게 돼요. 너무 짧은 기간 동안, 이렇게 해야 한다고 강요할 필요가 없다고 보는 거죠. 디지털카메라를 쓰면서 포토샵의 기능을 부정하면서 마치 해서는 안 될 일 취급을 하는데. 디지털카메라의 이미지 변환 엔진은 이미 포토샵 프로그램을 내장시켜놓았어요. 찍힌 데이터는 사용자의 의지를 더해 자유롭게 수정과 변경이 가능해져요. 포토샵을 적용하면 다채로운 표현의 가능성이 열리죠. 선택의 문제인데, 과거의 것을 그대로 고수하는 사람도 새로움을 향해 가는 사람도 있어요. 전 사진이 이전과 다른 창조적 변형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고 믿어요.

 

사진 강의에서 수강생들이 가장 자주 묻는 질문은 뭔가요.


어떻게 하면 사진을 잘 찍을 수 있나? 그거죠. 우선 자주 찍어야 해요. 그리고 스스로의 애정을 확인해야죠. 사진을 찍는 사람의 자세가 핵심인데, 노력하지 않고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돈을 잘 벌 수 있는 주식을 찍어 달라는 거랑 다르지 않죠. 가장 중요한 건 사진이라는 도구를 통해서 자신이 무엇을 바라볼 것인가, 무엇을 지향할 것인가. 그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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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세상을 이야기하는 게 가장 중요


사진가로 출발해 작가가 되셨는데요. 고 구본형 선생님이 윤광준 작가님을 두고 “어떻게 사람이 사진보다 글이 더 좋냐”라고 표현하신 적이 있어요.


제 경우는 사진을 하다 보니 사진의 한계가 느껴져서 글을 쓴 거예요. 사진은 한 프레임 단위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내 생각을 연결시킬 수가 없어요. 다음 편의 시추에이션, 더 나은 결과를 가지고 열거를 하는 게 사진적 표현의 방식인데요. 그 행간에 대한 아쉬움이 생기더라고요. 정확히 말해서 사진을 보는 것보다 읽는 쪽의 관점을 소중히 여긴 거예요. 그리고 저 나름대로 사진적 행간을 메우기 위한 행위가 글쓰기였어요. 두 개를 결합시키려고 했고요. 지금 양쪽을 걸치고 있는 입장인데, 참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봐요.

 

사진과 글, 작가님에게는 어떻게 다른가요?


저는 무엇이 더 편하다, 그런 걸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다만 두 개의 표현 방법을 가지고 있다는 게 행복이라고 생각해요. 우위를 따질 수 없는 거죠. 보완적 관계라고 생각해요. 많은 작가들이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달리 양면성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아요. 어떤 측면만 알려지기 때문인데. 이를 테면 지휘와 작곡을 모두 하는 예술가가 있다고 할 때, 살아 있을 때는 작곡이 더 뛰어나다고 평가 받았는데 사후에는 지휘가 더 인정 받는. 그런 경우가 있어요. 마찬가지로 무엇이 더 중요하다는 건 없어요.

 

꽤 오래 전부터 사진 강의를 해오고 계신데, 수강생들 중에 중학교 2학년생도 있었다고요.


지금은 벌써 대학생이 됐어요. 결국 사진과를 가더라고요. 열정이 넘치는 사람들을 보다 보면 시작부터 다른 사람이 있어요. 아무리 뭘 해도 안 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심성과 자세가 중요한데, 열정이 대단한 사람은 결국 자기 길을 가는 것 같아요.

 

사진을 배울 때도 성장이 빠른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기 세계에만 빠져 있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주 분명해요. 너무 잘난 사람은 변하지 않아요. 자기 도그마가 너무 큰 거예요. 자기가 기존에 알고 있는 지식과 정보를 강사가 알고 있는 것과 끊임없이 견주어보는 거죠. 저 사람의 이야기를 수용해서 자기 행동의 변화를 가져오는 게 아니라, 상대의 말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거예요. 제가 자주 하는 말이 있는데, 서른이 넘은 사람은 개조가 불가능하다는 겁니다. 개조하려는 것 자체가 잘못인데, 개조가 아니라 개선을 통해서 끝없이 달라져야 해요. 개선의 필요와 단초를 주는 게 중요해요. 저는 강의를 하면서, 한 번도 ‘이렇게 찍어라’라는 말을 한 적이 없어요.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원적인 이야기를 해요. 항상 강조하는 건 방향이에요. 그걸 찍어서 어디에 써먹으려고 하냐? 뭘 하려고 하냐? 뭘 보려고 하는지에 초점이 맞춰있어요. 사진적 행위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사진적 행위의 결과가 자신의 삶에 연관이 돼야 한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사진을 스킬로 이해했을 때, 멋진 그림을 옮겨주는 도구라고 생각하면 얻어낼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거죠.

 

요즘 자주 찍게 되는 풍경은 어떤 장면인가요?


만나는 사람, 제 눈앞에 보고 있는 사람들이 결국 제 사진의 대상들이에요. 전 스마트폰이 나와서 너무 좋아요. 그전에는 뭔가 작심을 하고 들고 다니면서 뭘 하려고 했는데. 내 선택이 바로 사진으로 옮겨질 수 있다는 게 놀라워요. 저도 스마트폰으로 평소에 사진 많이 찍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은 그 장점을 거꾸로 이해해요. 스마트폰 카메라라는 형식이 그럴싸해 보이지 않으니까, 그게 사진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보통 사람들이 사진은 좋은 카메라를 가지고 본격적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장르도 있겠지만, 그건 사진이 할 수 있는 수많은 것들 중 하나에요. 모든 사람들이 거기 따라갈 필요는 없어요. 내가 본 세상을 이야기하는 게 가장 중요해요. 가장 의미 있는 작업이고요.

 

그간 사진, 오디오 관련 책을 쓰셨는데. 다음 책도 준비 중이신가요.


사진이랑은 조금 다른데요. ‘신비한 수업’이라는 책을 내려고 해요. 제가 경험하고 봐왔던 아름다운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써보고 싶어요. 바우하우스에 대한 책도 나올 거고요. 저는 곧 일본으로 떠나요. 김정운 교수가 집에 방을 하나 내줘서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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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찍고 싶은 사진윤광준 저/네이버 오늘의 포토 기획 | 웅진지식하우스
사진 인구 500만 명 시대. 손안에 스마트폰만 있으면 누구나 쉽게 사진 찍는 세상이다. 네이버 〈오늘의 포토〉는 대한민국의 수많은 사진 고수들의 응모작 중 매일 단 한 컷을 꼽는 코너로, 좋은 사진을 찍는 이들의 전시장이자 서로의 공감을 확인하는 축제의 장이다.《내가 찍고 싶은 사진》에는 〈오늘의 포토〉 선정작 137컷과 대한민국 사진 멘토 윤광준의 심사평을 9가지 유형으로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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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주 “호감과 비호감, 자신감과 뻔뻔함 사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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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속의 그녀는 늘 당당했다. 스스로 자신의 외모를 희화화 하면서도 쓴 웃음 짓지 않았다. 몸무게만으로 수박 한 통을 산산조각 내는 모습을 보여줄 때도, ‘호로록 호로록’ 음식을 흡입하는 대식가의 면모를 보여줄 때도, 자신감을 잃지 않았다. 늘씬한 몸매와 작은 얼굴을 가진 사람도 외모 콤플렉스 하나쯤은 안고 살아가는 ‘외모 지상주의 시대’에, 그녀는 자신의 몸과 여성성을 드러내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짧은 치마를 입고 섹시한 춤을 추고 ‘뿌잉 뿌잉’ 애교를 선보였다.

 

솔직하고 당당한 모습이 사랑스러운 그녀가 첫 번째 에세이 『나는 괜찮은 연이야』를 출간했다. 연애, 연관, 연예인, 연포탕, 연분 등 ‘연’으로 시작되는 단어들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책 속의 그녀는 ‘연꽃’ 같은 여자였다. 둥글고, 크고, 진흙탕 속에 있어도 진흙에 물들지 않는 연꽃 같은 사람.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기에 자신감을 잃지 않는’ 모습은 TV에서 보아오던 그대로였다. 동시에나는 괜찮은 연이야』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었다. 대중에게 알려지기 전의 그녀는 “넌 비호감이라서 안돼”라는 말을 듣는 ‘연예인’이었다.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그림과 춤과 ‘연결’되어 있던 소녀였다. 의상 디자이너를 꿈꾸며 10년 넘게 미술을 전공했고, 타고난 끼와 재능으로 동대문 쇼핑몰 무대에서 춤을 추며 사람들을 열광시키기도 했다.

 

대중이 알지 못했던 그녀의 순간들은 계속 이어진다. 첫사랑의 기억과 남녀관계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게 들려주며 ‘연애’를 말하기도 하고, 동료 개그맨 정주리 안영미 변기수를 비롯해 자신의 곁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소중한 이들과의 ‘연분’을 떠올리기도 한다. 싱글족에게 어김없이 찾아오는 쓸쓸한 ‘연말’을 보내다 콩나물을 키우는 소소한 재미를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부터 ‘연포탕’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털어놓는 음식에 대한 이야기까지, 작은 일상의 순간들도 담겨 있다.

 

『나는 괜찮은 연이야』안에서 진짜 이국주를 발견할수록 실제로 그녀를 만나보고 싶은 마음은 커져갔다. 이토록 진솔하고 소탈하고 당당한 여자라니, 한 번쯤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지만 그녀와의 만남은 예외였다. 생각했던 만큼 털털했고 그 이상 솔직했으며 가벼운 예측을 뛰어넘었다.



이 길이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첫 책을 출간한 소감이 어떠세요?


아마 두 번째 세 번째 책은 없을 것 같아요(웃음). 제 인생에서 첫 번째이면서 마지막이 될 거라는 생각을 하고 만들었거든요. 제가 재미있게 말을 할 수는 있지만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아니기 때문에 혼자 책을 만든다는 게 부담됐어요. 다행히 주위의 좋은 분들이 도와주시겠다고 하셔서 정말 감사했죠. 『나는 괜찮은 연이야』함께 만든 양지은 작가님도 마찬가지였어요. 처음 뵙는 작가님과 작업했다면 마음속에 있는 얘기나 사생활을 털어놓기가 불편할 수도 있었을 텐데, 예전부터 친하게 지냈던 작가님이라서 편하게 준비할 수 있었어요. 이번 기회를 통해서 더 가까워진 것 같고요.

 

『나는 괜찮은 연이야』를 통해서 지나간 시간과 자신에 대해 돌아보게 됐을 것 같아요.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책이니까 고마운 분들에 대해서 꼭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정말 나한테 고마운 사람들이 누굴까’ 많이 생각하게 됐고요. 지면의 한계가 있으니까 아쉽게도 다 담지는 못했지만, 마음은 전해질 거라고 생각해요. 『나는 괜찮은 연이야』에서 이야기했던 모든 분들이 책 속에 자신의 이름이 들어가 있는 걸 너무 고마워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더 감사했죠. 영미 언니랑 주리도 빨리 책 보여 달라고 관심을 보여주고, 다른 분들도 직접 나서서 SNS에 홍보를 해주기도 하셨어요. 그 마음이 너무 고마워서, 앞으로도 계속 보답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연’이라는 게 참 묘하다는 생각도 하셨겠어요.


후배들이나 동생들한테 항상 해주는 이야기가 있어요. 언제 어디에서 누굴 만날지 모른다는 거예요. 하찮은 일을 하더라도 내가 잘하면 그때 만난 사람들만큼은 내 사람이 되고, 다른 곳에서도 ‘그 사람은 열심히 해, 참 잘해’라고 말해줄 거라고 생각해요. 라디오 방송을 하면서 많이 느꼈던 부분이에요. DJ를 맡기 전에 게스트일 때도, 열심히 하니까 많은 분들이 칭찬해 주시더라고요. 만약 그때 제가 안 좋은 모습을 보여드렸다면 지금 제 편이 되어주지 않으셨겠죠. 사람의 인연은 정말 잘 지켜나가야 되고 많이 만들어야 된다는 생각을 해요.

 

사람들과 관계를 맺을 때 자신만의 원칙이나 비결이 있으세요?


제가 먼저 만남의 자리를 만들어요. ‘조만간 밥 한 번 먹어요’라는 말을 흘려듣지 않고 꼭 지켜요. 저는 정말 사람들 만나는 걸 너무 좋아하고 그 모두가 인맥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서로 전화번호를 주고받은 후에도, 헤어지고나면 다시 연락해도 될지 고민하게 되잖아요. 그런데 만난 순간에 다음 약속을 잡으면 인연이 계속 이어져요. 저는 상대방이 이성이거나 연예인일 경우에는 첫 만남에서 전화번호를 물어보지 않아요. 실례가 될 수도 있고 상대가 원하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세 번 정도 만난 다음에 물어봐요. 처음 만났을 때부터 정말 연락처를 물어보고 싶은 상대라면, 우리가 세 번째 만나는 날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말하죠.

 

“넌 비호감이야, 개그우먼이 되긴 글렀어”라는 이야기도 들었다고 하셨는데요. 그런 순간에도 자신을 믿는다는 게 어렵지는 않으셨나요?


저는 한 가지 일에만 매달리는 건 추천하고 싶지 않아요. 이게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 불안해지고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것 같거든요. 물론 제가 당장 할 일도 개그밖에 없었어요. 그렇지만 마음만은 ‘이 일이 아니더라도 필요하다면 어떤 일이든 할 수 있는 자신감과 뻔뻔함이 나에게는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더 편하게 일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해보는 데까지 해보고 아니면 말자’라고 생각하면서 오래 버틴 거죠. 물론 하고 있는 일에 몰입해서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생각까지도 그렇게 가지면 제 자신이 힘들어질 것 같았어요. 그래서 나는 다른 것도 잘할 수 있다고,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줬던 것 같아요.

 

이제는 모든 사람들이 ‘호감녀’라고 부르는 스타가 됐잖아요. 비호감과 호감은 결국 자신감의 차이일까요?


모든 분들이 그렇게 느끼시지는 않겠죠(웃음). 사람들이 저의 자신감을 보고 좋아하거나 싫어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개그우먼은 웃기면 되는 거고, 배우는 연기를 잘하면 인정받는 거잖아요. 결국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잘하면 호감이 되는 것 같아요. 자신의 일을 잘하면 멋있어 보인다고 생각해요. 그러려면 자신감이 있어야 하지만, 사람들이 나의 자신감 때문에 나를 좋아하는 건 아니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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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룸메이트>에서 눈물 흘렸던 진짜 이유


지난해에는 <룸메이트>에서 눈물을 보이기도 하셨어요. 데뷔 8년 만에 전성기를 맞았지만 힘든 순간도 있었던 것 같은데요. 그 시기는 어떻게 지나오셨나요?


방송 이후에 더 말조심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사실 제가 했던 얘기는 일이 힘들다는 게 아니었어요. 바쁘게 일을 하는 와중에 저를 좋게 봐주시는 분들도 계셨지만 싫어하는 분들도 생겨서, 악플 때문에 힘들었던 거예요. 그런데 저로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몰랐죠. 그렇게까지 관심을 받아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인기를 얻고) 두 달 동안은 악플이 없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악플이 달리더라고요. 사실 멘붕이 왔었어요. ‘나는 변한 것 없이 똑같은 개그를 하고 있는데, 두 달 전까지는 좋아했고 두 달 후에는 싫어한다면 뭐가 문제일까’ ‘비호감 이미지를 버리기 위해서 살을 빼고 예뻐져야 하나’ ‘내가 살을 뺀다고 해서 엄청 예뻐질 것도 아닌데, 그렇다면 (캐릭터가) 애매해지고 또 욕을 먹지는 않을까’ 그런 생각을 때문에 혼란스러웠어요. 그래서 힘들다고 이야기했던 건데 편집상 이야기를 줄이다보니까, 바쁜 일정으로 인해서 힘들어하는 걸로 비춰졌던 거죠.

 

방송 이후에 주변 분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너를 보고 달려오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렇게 복에 겨운 소리를 하면 되냐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그런데 한 분 한 분 찾아뵙고 말씀드릴 수도 없고,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를 모르겠는 거예요. 정말 내 마음을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 같은 생각도 들고요. 그래서 혼자 정신없이 살았던 것 같아요. 울기도 많이 울었고, 회사도 힘들어지면서 이런 저런 일들도 있었고… 그때가 정말 많이 힘들었어요. 작년 겨울부터 올해 초까지 너무 힘들었죠. 그때 오히려 제 곁에 있는 좋은 분들을 더 많이 생각했던 것 같아요. 『나는 괜찮은 연이야』를 쓰는 동안에도 양지은 작가님이 제가 얘기를 꺼낼 때까지 많이 기다려주셨고요. 책에서 이야기한 모든 분들이 제 이야기를 들어주시고, 다른 곳에서도 저에 대해 좋게 말씀해주셨어요. 그래서 견딜 수 있었지 않았나 싶어요.

 

춤을 잘 추시는 건 알고 있었지만, 동대문 쇼핑몰 무대에서 우승하셨던 건 몰랐어요. 그때 처음으로 무대 위에 서는 즐거움을 알게 되셨나요?


초등학교 때부터 춤추는 걸 워낙 좋아했고 주변에서 춤을 잘 춘다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그래서 제가 춤을 잘 추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때의 경험으로 춤을 잘 춰서 웃기는 애라는 걸 알게 됐죠. 저는 멋진 모습을 보여주려고 무대에 올라갔던 거였는데, 제가 생각했던 반응과 달리 사람들이 웃더라고요(웃음). 그래서 ‘내가 이 몸으로 춤을 잘 추는 게 웃긴 거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나한테 이런 모습이 있구나’라는 걸 명확하게 알았죠.

 

『나는 괜찮은 연이야』에서 직접 그린 그림을 공개하기도 하셨는데요. 그림을 전공하다가 개그맨이 되기로 마음먹으신 계기가 있었나요?


제 안에 있는 또 다른 끼를 발견하게 되면서 도전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생겼던 것 같아요. 10년 넘게 그려온 그림을 버린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닌데, 마침 슬럼프가 찾아왔어요. 성적과 그림을 같이 준비해야하는 현실을 뒤늦게 알게 된 거예요. 저는 그림만 그렸던 사람이었으니까 공부는 손 놓고 있었거든요. 그러다가 공부를 하려니까 너무 힘든 거예요. 하지만 현실은 아무리 그림 실력이 좋아도 성적이 좋지 않으면 서울권 대학에는 시험을 볼 수 없었죠. 그래서 슬럼프가 시작됐고, 그러다 보니까 그림이 싫어졌어요. 때마침 새로운 끼가 치고 올라오면서 기회가 됐고요.

 

오늘 『나는 괜찮은 연이야』의 독자들과 만남을 가지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실 계획이세요? 


말씀드릴 내용을 미리 정해놓지는 않았어요. 독자 분들이 궁금해 하시는 걸 말씀드리고 싶어요. (강연의) 주제는 자신의 단점을 인정하고 장점을 살리라는 건데요. 제가 항상 하는 이야기이기도 해요. 자격지심이나 자존심 등 많은 것들을 버리지 않으면 단점은 고쳐지지 않는 것 같아요. 만약 외모가 단점이라면, 외모를 고친다고해서 만족하게 되는 건 아니거든요. 그래서 계속 고치게 되죠. 저는 그게 싫어요. 제 모습을 그대로 인정하고 제가 가지고 있는 매력적인 부분을 끄집어내서 보여주자는 주의예요. 솔직히 고치려고 했으면 얼마나 많이 고쳤겠어요(웃음). 기회도 있었을 테고, 고쳐주겠다는 곳도 많았을 테고, 트레이너도 구할 수 있었겠죠. 그런데 그렇게 고친다고 해도 외모에 대한 자신감은 안 생길 것 같았어요. 독자 분들께도 그런 얘기들을 해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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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사냥> 섭외가 들어온다면…


이번 책에서 연애와 사랑에 대한 이야기도 솔직하게 들려주셨어요. 여성 독자들에게 ‘단호박 같은 여자’로 살아야 한다고 조언하셨는데, 할 말을 똑 부러지게 잘 하는 여자가 되어야 한다는 의미인가요?


하고 싶은 얘기는 해야 돼요. 저 같은 경우에는 그러지 못해서 쌓이거든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 터져버리는데, 너무 오랫동안 쌓아왔기 때문에 눈물부터 나요. 어떤 부분이 왜 상처가 됐는지 이유를 명확하게 말하지 못하는 거예요. 그러면 상대는 ‘얘가 생전 안 그러다가 왜 갑자기 그러는 거야’하고 생각하게 되고, 저는 속 좁은 애가 되어버리죠. 그래서 쌓아놓지 말고 그때그때 표현하는 게 관계를 오래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인 것 같아요. 무엇보다 그렇게 해야 자신이 덜 힘들고요. 저도 원래부터 그런 스타일은 아니라서 변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그런 의미에서 단호박이 되자고 했던 거고요.

 

‘연하’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주변에 어린 친구들이 많다고 하셨어요. 연애할 때는 어떤가요?


제가 케이팝과 춤을 너무 좋아해서 관련된 영상을 보고 배우다 보니까 어린 친구들이 편했어요. 그 친구들과 친해질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을 때도 불편한 부분 없이 잘 어울릴 수 있겠더라고요. 그들도 저를 불편해 하지 않고요. 그래서 친해지다 보니까 주변에 연하들이 많아진 거예요. 솔직히 어렸을 때는 자신감이 없었던 저였는데, 어린 친구들을 만나면서 내가 뭔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힘이 나기도 했어요. 그렇게 20대 중후반을 거의 동생들과 보냈는데, 지금 30대의 저로서는 동갑 친구들을 많이 찾고 싶어요. 이제는 어딘가에 기대고 싶은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연하라고 해서 기댈 수 있는 상대가 되지 못하는 건 아니겠죠. 주리도 그렇고 미려 언니도 그렇고 백지영 언니도 연하를 만났잖아요. 어른스러운 연하든 동갑이든 오빠든, 저를 필요로 하고 저도 기댈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집에서는 애교가 없는 딸이라고 하셨어요. 그래도 연애할 때의 모습은 다를 것 같은데요.


남자친구가 있을 때는 나름 애교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내숭이 있는 거더라고요. 제가 방송에서 강한 캐릭터를 연기했던 걸 사람들이 다 아니까, 그것보다 조금 약한고 여성스러운 모습은 보여줬어요. 그런데 애교는 없었더라고요. 내숭이었던 걸 인정합니다(웃음). 연애할 때 한 번도 애교를 부려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술 먹으면 애교가 나오더라고요. 술 마신 제 모습을 찍은 영상을 본 적이 있는데, 3초 동안 보고 지웠어요. 제 모습을 보고 제가 놀랐다니까요. 가끔씩 방송에서 개그맨들이 이국주는 술 먹으면 귀여워진다고 말할 때 안 믿었는데, 직접 제 모습을 보니까… 평소에 못한 애교를 쏟아내는 것 같더라고요(웃음).

 

“연애 경험이 많진 않지만 많이 차여봤기 때문에 상대가 나를 좋아하는지 안 좋아하는지 알 수 있다”고 하셨는데요. 아직까지 <마녀사냥>에서 이국주 씨를 만나보지 못한 게 아쉬워요.


솔직히 섭외가 들어오면 한 번 생각을 해 볼 것 같아요. 과연 제가 해줄 이야기들이 있을까 싶어요. 저는 화려한 연애를 해본 것도 아니고 많은 연애를 한 것도 아니에요. 그런데 친구들한테 정말 많이 상담을 해줬어요. 제3자가 봤을 때 명확한 부분들이 있잖아요. 저는 그걸 정확하게 말해주는 것 같아요. 그리고 예쁜 여자들은 가만히 있어도 남자가 먼저 다가오고, 그렇게 연애가 시작되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만들어가기 위해서 해야 할 게 너무 많은 거예요(웃음). 저는 그런 걸 알려줄 수 있는 현실성 있는 사람인 것 같아요. 많이 차여봤기 때문에 썸인지 아닌지, 연애인지 아닌지 구분해줄 수 있기도 하고요. 하지만 막상 <마녀사냥>에 출연하면 쑥스러울 것 같아요. 출연자 분들처럼 연애를 많이 해본 건 아니니까요.

 

‘힘들고 괴로운 일들을 안고 있는 사람들 중에 단 한 사람에게라도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적으셨죠. 그것이 이국주 씨가 개그맨으로 살아가는 이유일까요?


일단 제가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 자체도 너무 좋아요. 평소에 저도 ‘저 사람도 사는데 내가 이렇게 힘들어하면 안 되지’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스타킹>에 출연하면서 배운 점도 많아요. 저는 신체가 건강하고 어려운 상황에 있지 않아도 힘들 때가 많은데, <스타킹>에는 몸이 불편한데도 긍정적인 생각을 갖고 멋진 무대를 보여주는 분들이 계세요. 그런 분들을 보면서 힘을 내곤 해요. 그 분들도 그걸 좋아하시고요. 그런 것처럼 누군가 저를 보고위로를 받고 버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외모 콤플렉스 때문에 힘든데 고칠 방법이 없다면 ‘이국주도 저렇게 멋지게 사는데 나도 힘을 내보자’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죠.

 

『나는 괜찮은 연이야』를 통해서 독자들과는 어떤 ‘연’을 맺고 싶으세요?


저는 SNS에서 책 제목으로 해시태그를 달아놓고, 독자 분들에게 댓글을 달아드리고 있어요. 제가 대단한 사람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직접 책을 사서 봐주시는 분들이잖아요. 제가 댓글을 달아드리는 것만으로 그 분들의 기분이 좋아지실 수 있다면, 그 순간이 인생에서 작은 이벤트가 될 수 있다면, 그렇게 해드리고 싶었어요. 그리고 저를 좋아했던 분들이라면 저한테서 도망가실 수 없게끔 탄탄한 인연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요. 『나는 괜찮은 연이야』는 부담 없이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한 독자 분께서 “호로록 읽혔다”고 하시던데, 개인적으로 그 표현이 너무 좋더라고요. 오늘 하루 할 일이 없을 때, 데이트가 취소됐을 때, 하루 만에 쉽게 읽으실 수 있는 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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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괜찮은 연이야이국주 저/양지은 편 | 자음과모음
개그우먼 이국주는 자신을 꽃에 비유한다면 ‘연꽃 같은 여자’라고 한다. 연꽃은 둥글고 크다. 연꽃은 진흙탕에서 자라도 전혀 진흙에 물들지 않고, 시궁창에서 피어도 향기가 가득하다. 뚱뚱해도 당당하고 빛나는 여자 이국주는 책을 통해 이야기한다. 외모가 전부가 아니라고. 누군가 만약 외모에 자신이 없다면 지금부터 ‘연꽃’ 같은 여자로 살아가면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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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고] 일본에서 미야베 미유키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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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3년 전, 나는 미야베 미유키를 인터뷰하기 위해 도쿄로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그를 만나는 것은 오랜 바람이었다. 계기는 독자펀드였다. 독자들이 모아준 5,000만원이 아니었다면 그를 만나기까지 더 오랜 시간이 걸렸으리라. 당시 인터뷰를 정리하며 글의 말미에 나는 이렇게 적었다. “본사가 10주년이 될 때쯤 한 번 더 그를 만나고 싶다.” 구체적인 계획이 있어서 그랬던 건 아니다. ‘다시 만난다면 계기가 있어야 할 텐데 10주년은 좋은 구실이 되지 않을까’ 하고 막연하게 생각했을 뿐이다.

 

10주년 기념작으로 『십자가와 반지의 초상』을 내자고 마음먹었을 때, 비로소 나는 ‘다시 만나고 싶다’는 바람에 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지난번 인터뷰처럼 밋밋하게 말고, 재미있는 방식으로 이벤트화할 수는 없을까. 그러다가 문득 ‘독자원정대를 꾸려보자’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던 것이다. 이번에는, 그를 만나고 싶어 하는 독자들의 바람을 이루어주자. 비용은 전부 출판사가 대겠지만 공짜는 없다. 질문지도 만들고 인터뷰도 하고 하여간 처음부터 끝까지 싸그리몽땅 독자들이 직접 하게 하자, 는 것이 나의 계획이었다.

 

이제와 고백하건대 인터뷰 시간을 온전히 독자들에게 맡기고 출판사는 전혀 관여하지 않기로 한 결정이 불안하기도 했다. 당연하지 않은가. 다들 아마추어일 텐데. 하지만, (1) 오랫동안 미야베 미유키의 작품을 읽어왔으며 (2) 일본어로 대화가 가능한 데다 (3) 독자원정대 이벤트에 지원한 수많은 경쟁자들을 실력으로 물리치고 티켓을 획득한 세 명의 독자들은, 본인들의 오랜 바람을 이룸과 동시에 나의 걱정도 단숨에 기우로 만들어 버렸다. 인터뷰를 시작하고 삼십 분도 채 지나지 않아, 나는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작가는, 3년 전 내가 찾아갔을 때만 해도, 프라이버시에 관한 질문이나 민감한 정치적 사안에 대해서는 질문을 받지 않거나 단답형으로 대답하기 일쑤였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한국 독자들에게 일본의 정치가가 실례되는 말을 해서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다”며 말문을 연 미야베 미유키가, “일본은 아직 멀었다, 지금 아베 수상은 거짓말만 한다는 느낌”이라거나 “일본 영화는 지고 있다, 내 소설이 영화화된다고 했더니 그렇다면 한국에서 만드는 편이 낫겠다고 말해준 일본의 배우가 있을 정도”라는 얘기를 들려주었을 때, 우리는 약간 놀랐다. ‘일본 출판계의 성차별 문제’에 대해 언급한 뒤에는 “아주 친한 편집자가 아니고서는 이런 얘기를 하지 않는데”라며 씁쓸하게 웃었다. 그는 왜 이런 말들을 스스럼없이 털어놨을까. 한국에서, 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준 독자들이, 어렵사리 바다를 건너 나를 찾아왔으니, 나 역시 하나마나 한 얘기 말고 일본 매체들에게도 거의 하지 않았던 대답을 들려주고 싶다, 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장소는 도쿄에 위치한 미야베 미유키의 사무실, 날씨는 더할 나위 없이 쾌청. 다음은 2015년 5월 22일, 14시부터 약 두 시간 반에 걸친 만남의 기록이다.

 


분량 맞추기는 상당히 어려운 문제
 
미미: 미용실 갈 시간이 없었어요. 머리가 많이 길죠? 평소에는 지금보다 훨씬 짧거든요. 흰 머리 염색한 것도 색깔이 좀 빠졌고(웃음). 참 잘 와 주셨어요. 만나서 반갑고 와줘서 고맙습니다. 그런데 다들 일본어를 잘하시는군요. 일본어 공부를 하시나요? 아, 시원한 음료 드시고 긴장도 푸세요. 보내주신 질문지를 보면서 질문이 너무 많지 않은가 생각했는데, 하나하나 읽으면서 정말 즐거웠습니다. 온 마음을 다해 제 작품을 읽어 주셨다는 게 전해져서 기뻤어요.
 
정림: 저희도 『십자가와 반지의 초상』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단숨에 읽었어요.
 
미미: 이렇게 두꺼운데요? 이 작품은 신문에 매일 연재했는데, 연재 한 회분이 원고지로는 두 장 반 정도이고 단행본으로는 한 쪽 반 정도예요. 실제 책으로 나왔을 때 분량이 얼마나 될지는 저도 몰랐거든요. 연재를 마친 글을 책으로 만들기 전에 엄청나게 두꺼운 교정지를 받고 어느새 이렇게 많이 썼을까 하고 놀랐을 정도예요. 이걸 단행본으로 엮으면 꽤 두꺼운 책이 되겠다는 출판사의 말에, 어쩜 나는 매번 이렇게 길고도 두꺼운 책만 낼까 하고 자책했지요. 아, 또 길게 쓰고 말았어, 또 책값이 비싸지겠구나 싶어서 독자분들에게 죄송한 마음입니다.
 
정림: ‘행복한 탐정’ 시리즈의 첫 번째와 두 번째 작품도 꽤 두꺼웠지요.
 
미미: 점점, 점점.
 
정림: 더 두꺼운 책으로.
 
미미: 갈수록 두꺼워져버려서(웃음).
 
정민: 연재하기 전에 분량을 정해 놓진 않으시나봐요?
 
미미: 신문 연재는 일 년 정도로 대략적인 기간을 정해 놓지만 거의 연장하게 돼요. 제 연재가 끝나면 그 후에 어느 작가가 연재할지도 이미 정해져 있는데 대부분 안면이 있는 작가랍니다. 다들 저보다 바쁜 작가들이라 제가 한 달 혹은 두 달 더 연장해야 한다고 하면, “오오! 연장해! 연장해! 연재 준비를 전혀 못 했거든. 연장해 줘!”라고 해요(웃음). 그 바람에, 그럼 연장하지 뭐, 하는 마음에 점점 길어지는 거지요. 걱정스러운 일이에요. 
 
정민: 독자 입장에서는 기쁜 일인데요.
 
미미: 한데 지난달에 나온 책은 어쩌다 보니 비교적 짧았어요. 독자분들이 다들 “짧네요, 짧네요” 하면서 크게 실망했다는 듯이 “이번에는 짧아서 금방 읽었네요” 하는 거예요. 짧다고 실망한 분들이 너무 많아서, 차라리 긴 편이 나을까, 하고 굉장히 고민했습니다.
 
정민: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것도 힘드시겠어요.
 
미미: 역시 600페이지 정도는 되어야 하나 싶기도 하고. 분량 맞추기는 상당히 어려운 문제랍니다. 마침 여러분이 『십자가와 반지의 초상』과 관련해서 오셨으니 알려 드리죠. 다음에 나올 책도 ‘행복한 탐정’ 시리즈예요. 아마 2016년 2~3월쯤 단편집이 나올 거예요. 원고지 100~200장짜리 단편 네 편 정도로 구성할 예정인데 『십자가와 반지의 초상』만큼 두껍지는 않을 겁니다. 『십자가와 반지의 초상』은 글자가 빽빽이 들어차 있잖아요. 다음 단편집은 글자를 넉넉하게 배치해서 좀 더 읽기 편하게 하려고요. 아, 그러면 또 도시락 상자가 되어 버리겠군요.
 
정민: 책장에 진열했을 때는 그게 더 근사해요. 스기무라가 등장하는 단편들은 어딘가에 연재하고 계신가요?
 
미미: 네, 잡지에 연재중이에요. 원래는 잡지사 한 군데와 연재 약속을 했지만, 의리를 지키기 위해 다른 한 군데에서도 연재하고 있어요. 그쪽 이야기가 가장 길지만요. 단편 네 편 가운데 세 편이 완성되어 있으니 나머지 한 편만 더 쓰면, 내년 봄에는 책이 나올 거예요. 스기무라가 어떤 경위로 탐정사무소를 차렸는지를 비롯하여 사립탐정이 된 그의 일상을 자세히 그렸습니다. 탐정으로서 스기무라가 다루게 되는 사건은 그렇게 큰 사건이 아니에요. 비교적 작은, 오늘날 일본 사회에서 어느 정도 규모의 도시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을 가능성이 있는 사건이지요. 스기무라가 특별히 싸움에 소질이 있다거나 그렇다고 컴퓨터를 잘 다루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런 스기무라가 갑자기 어려운 사건을 다루지는 못하기 때문에 무척 일상적인, 이를 테면 이사해서 살게 된 동네 아주머니가 쓰레기장 청소 당번을 대신해 줄 테니 이걸 조사해 달라는 그런 사건부터 시작합니다.


 
세월호 사건, 늦었지만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미미: 북스피어에서 굉장히 빠른 주기로 제 작품들을 번역 출판해 주셔서 정말 감사할 따름이에요. 그 덕분에 한국 독자 분들이 거의 시차 없이 읽으실 수 있는 것 같아요. 깜짝 놀랐습니다. 여러분이 오시기 직전에 저희 사무실 직원이 지금까지 북스피어에서 펴낸 제 작품 목록을 보여 줬거든요. 서른여덟 작품이나 되었어요. 이렇게 많이 내주시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동료 작가들과 모이면, 한국 독자 분들이 일본의 미스터리와 엔터테인먼트 소설을 많이 읽어 주신다는 사실에 함께 기뻐하고 고마워한답니다. 요즘 두 나라 사이가 상당히 어려운 시기인데요, 언제나 저희 책을 읽어 주는 한국 독자 분들에게 일본의 정치가가 실례되는 말을 해서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서로 나누었습니다. 그런 것을 신경 쓰지 않고 저희가 쓴 신간이 나오면 읽어 주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얼마나 고마웠는지 이번 기회를 통해 꼭 말로 전하고 싶었어요. 한국 독자 분들 덕분에 일본 작가들이 얼마나 위로와 격려를 받았는지 모릅니다.
 
정민: 좋은 소설은 국경을 초월하니까요.
 
미미: 맞아요. 그것이 저희들에게 무엇보다도 격려와 용기가 됩니다. 작년에 한국에서 대단히 불행하고 슬픈 일이 있었잖아요. 세월호 사건이요. 사건이 일어나던 당시에 저는 TV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습니다. 미스터리나 판타지 소설을 좋아하는 학생이 그 배에 타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동료 작가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일본이 동일본 대지진으로 무서운 일을 겪었을 때 한국의 독자들이 진심으로 저희를 걱정해 주셨듯이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고민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뉴스만 봤습니다. 정말 슬픈 사건이었으니, 여러분도 무척 괴로우셨으리라 생각합니다. 늦었지만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정림: 마음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타국의 소식에도 늘 관심을 갖고 계신가요?
 
미미: 그럼요. 아침부터 일하는 편인데요, 일어나자마자 대체로 NHK 위성방송 채널의 월드뉴스를 봐요. 물론 화산 분화나 지진, 큰 비 소식도 체크해야 하지만 일본 국내 뉴스는 안타깝고 무서운 사건이 많아서, 자, 이제 일하자, 하고 마음먹으려던 참에 그런 사건을 접하면 풍선에서 바람이 빠지듯 슈우- 하고 기운이 빠져 버리거든요. 월드뉴스를 보면 예를 들어 (브라질) 리오 카니발 개막 소식도 알 수 있고 세계에서 일어나는 소식을 접할 수 있잖아요. 요즘에는 이슬람 관련 뉴스가 많아서 걱정이 되긴 하지만 그래도 꼭 챙겨 봅니다. 한국의 가장 큰 방송국의 뉴스를 메인으로 해 주니 한국에서는 이런 일이 있구나 하고 알 수 있어요.
 
서영: 뉴스는 사무실 출근하기 전에 보시는 건가요?
 
미미: 지금은 작업실과 집을 합쳐서 쓰고 있어요.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두 군데로 구분해서 썼는데요, 대지진 후 원전이 멈췄으니 절전해야 하잖아요. 혼자 두 군데나 사용하는 건 사치라는 생각이 들어 형제와 동거하며 한 방에서 다 해결할 수 있도록 바꿨습니다.
 
정민: 그럼 오늘은 일부러 사무실에 나오신 건가요? 저희 때문에 일부러 오신 건 아닌지…….
 
미미: 무슨 말씀을! 사무실에는 일 문제로 자주 옵니다. 더군다나 여러분은 멀리서 오셨잖아요. 한 방에서 무엇이든 전부 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다 해결할 수 있더라고요. 제 작업용 책상은 이 정도 크기(성인 일곱 명이 다닥다닥 붙어 앉을 수 있는 크기의 사각 테이블)의 책상인데요, 동네 가구점에서 원목으로 주문 제작했어요. 평소 묵직한 책을 많이 올려놓으니까 책상 다리를 이 정도(두 손으로 원을 만듦) 두꺼운 나무로 여섯 개 만들어 세운 덕분에 저희 집에서 가장 튼튼한 가구가 되었지요. 동일본 대지진 당시 가장 심하게 흔들렸을 때도 그 밑에 들어갔어요. 3월 11일부터 15일까지는 매일 지진이 이어졌죠. 그때마다 긴급 지진 속보가 삐-삐- 하고 울려서 밤에 잠들 수가 없었어요. 도쿄는 그나마 안전한 편이었지만 센다이는 훨씬 큰일이었어요. 저는 겁이 많아서 줄곧 작업용 책상 밑에 이불을 깔고 잤답니다. 그때 아, 큰 책상이 있어서 다행이야, 하고 생각했지요.

 

정민: 편한 잠자리는 아니었겠어요.
 
미미: 제대로 매트리스를 깔고 잤기 때문에 괜찮았어요. 아직 추운 날씨였지만 두꺼운 이불은 불편하니 얇은 이불을 덮고 그 대신 보온물통을 끌어안고 잤어요. 책상 밑에 아담한 스탠드를 두고 책을 읽으며 지냈습니다. 평소에도 그 책상 밑에서 일을 했어요. 이쪽을 보며 일을 하다가 옆으로 몸을 틀면 작은 밥상이 있어 거기서 밥을 먹었지요. 딱 이 위치(미야베 작가의 정면)에는 책장이 있고 또 몸을 틀면 전화와 팩스, 또 몸을 틀면 접이식 침대가 있어서, 좁지만 필요한 건 다 갖추면서도 제대로 된 절전 생활을 했습니다. 지금까지 작업실과 집, 두 군데나 사용했던 생활은 뭐였을까, 마음만 먹으면 이렇게 콤팩트한 생활을 할 수 있구나 하는 걸 깨달았습니다. 다만 한 가지, 책이 넘치는 게 문제였어요. 어느 날 책을 정리하려고 바닥에 깨끗한 깔개를 깐 다음, 방향제나 건조제 같은 것과 함께 책을 늘어놓았지요. 그때 이 위에 매트리스를 깔면 잘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 뭐예요. 하지만 그렇게 하면 책을 꺼낼 수가 없으니 역시 제대로 정리해야겠구나 싶어서 결국 사무실에서 빌린 창고에 보관하고 있습니다. 이야기하다 보니 샛길로 샜군요. 아무튼 지금은 대체로 그렇게 생활하며 일하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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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주』


 
무리해서 많이 쓰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서영: 이번 인터뷰의 취지를 말씀드릴게요. 3년 전 북스피어가 에도시대물인 『안주』의 한국어판을 펴낼 때 미야베 선생님을 인터뷰한 적이 있지요. 북스피어는 올해 6월 18일로 창립 10주년을 맞이합니다. 3년 전 인터뷰에서 10주년 때 한 번 더 선생님을 인터뷰하고 싶다고 말씀드린 기억을 더듬어 이번에 다시 한 번 청한 건데요. 흔쾌히 승낙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한국에는 미야베 선생님을 보고 싶어 하는 독자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한국 독자들과 만남의 자리를 마련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그렇다면 이번에는 독자가 직접 미야베 선생님을 인터뷰해 보면 어떨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독자 분이 이곳에 오실 수는 없으니까요, 저를 포함한 세 명의 독자가 대표로 오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이 자리에 함께하지 못한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릴게요.
 
미미: 신간이 나올 때마다 발 빠르게 번역 출판해 준 북스피어에 감사드립니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신간이 나오면, 독자분들이 감상을 교환하며 이번 시리즈물은 이렇게 전개되었구나, 하고 이야기를 나눈다고 들었습니다. 작가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고 감사한 일이지요. 이번에 독자 세 분을 눈앞에서 만나게 되어 기쁘고, 오늘 와주신 분들 뒤에 제 책을 읽어 주는 수많은 독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고마운 마음입니다.
 
정림:  선생님께서는 올해만 해도 1월에 『비탄의 문(悲嘆の門)』 상하권과, 4월에 『사라진 왕국의 성』을 출간하셨지요. 연달아 장편 작품을 내시느라 많이 바쁘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 근황이 궁금합니다.
 
미미: 맞아요, 책이 연달아 나왔지요. 전부 신문과 주간지에 연재했던 작품인데요, 생각보다 빨리 썼습니다. 예를 들어 『십자가와 반지의 초상』은 다 쓰고 나서 책으로 간행되기까지 1년 10개월의 사이가 벌어졌어요. 저는 이미 작품을 끝냈지만 연재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지요. 앞으로 책으로 나올 분량이 저금되어 있는 상태였어요. 최근 연달아 척척 나왔던 작품은 사실 모두 작년 4월에 작업을 마친 거랍니다. 작년 8월과 11월에 나온 책, 그리고 얼마 전 나온 책은 전부 완성된 상태였지요. 그래서 요 1년간은 정말 편했어요.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책이 나와서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대략 2007년부터는 『십자가와 반지의 초상』을 포함해 쓰고 싶었던 이야기를 썼어요. 꼭 쓰고 싶었던 이야기, 쓰는 동안 제 자신이 즐거워지는 이야기를 썼습니다. 일주일에 일요일 하루만 쉬며 꼬박 일했더니 작년 4월에는 모든 작업이 끝나 제 손을 떠나더군요. 책으로 만들어질 일만 남자, 저는 공기 빠진 타이어처럼 되었어요. 책이라는 저금통은 있지만 나라는 저금통은 텅 비어서 거꾸로 들고 흔들어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상태였지요. 그때부터 좋아하는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기도 하고 가끔은 도쿄 디즈니랜드에 놀러 갔어요. 저희 집에서 한 30분 정도면 갈 수 있을 만큼 가깝거든요. 또 저희 집 고양이와 놀기도 하고 산책도 하면서 지냈습니다. 서너 달은 그렇게 생활하고 그 후로는 조금씩 단편을 쓰거나 다음 장편을 위한 조사를 하거나 장편을 쓰기 위해 읽어야 할 책을 읽었어요. 한가롭게 지냈답니다.
 
정민: 책 저금을 위해 하루에 몇 시간 작업하시나요?
 
미미: 단행본 페이지로 말하면 10페이지 정도일 거예요. 오늘은 여기까지 쓰자, 이 대화 장면은 중요하니까 오늘 안에 다 써야지, 하고 그날의 할당량을 정해서 씁니다. 평소에는 아침 8시부터 일을 시작하는데요, 특히 여름에는 워낙 덥기 때문에 5시에 일어나서 선선할 때 일을 해치우고 오후부터 더운 시간대에는 시원한 곳에서 책을 읽어요. 대신 밤에는 10시쯤 잠자리에 들지요. 그래서 밤놀이를 하지 않게 됩니다. 컨디션이 좋으면 두 시간 만에 할당량을 채우기도 하지만 반대로 대여섯 시간을 끙끙대도 전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날도 있어요. 그런 날은 일단 대여섯 시간 동안 열심히 한 다음, 오늘은 그만 됐어, 단것이라도 먹으러 가자, 산책하러 가자, 하는 식입니다.
 
서영: 끝나는 시간은 정하지 않고 쓰고 싶은 분량을 달성하는 방식이군요.
 
미미: 그렇지요.  『십자가와 반지의 초상』뒷부분에 스기무라가 나호코와 차 안에서 이야기하는 장면은 역시 단숨에 쓰고 싶었거든요. 그 앞뒤 부분을 포함해서요. 그때는 이틀 동안 30시간을 일했어요. 일하다 피곤해지면 의자에 기대어 쉬면서 나중에 다시 고쳐 쓰더라도 일단 쓸 분량은 다 채웠습니다. 그날은 아무래도 제 손으로 밥을 지어먹을 수가 없어서 가족이 차려준 밥을 먹고 오늘은 이만 자자, 하고 자버렸어요. 대체로 이런 일은 장편을 쓰는 중에 마지막 장면에서 한 번쯤 있지요.
 
정림: 그렇군요. 저는 동시에 여러 작품을 쓰시는 줄 알았어요. 동시에 여러 작품을 쓰시는 일은 별로 없나요?
 
미미:연재는 동시에 하고 있어요. 일주일 단위로 나눠서 말이지요. 때문에 일요일은 하루 쉬고 있답니다. 예를 들어 일주일은 『십자가와 반지의 초상』을 쓰고 일요일 하루 어디 놀러가거나 쉰 다음, 월요일부터 『안주』를 쓰는 식이지요. 그렇게 하면 딱 알맞은 느낌으로 머리를 전환할 수 있어요. 제 주변의 정말 바쁜 작가들은 매일 혹은 이틀에 한 번 꼴로 다른 작품을 마감하는 방식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는 못 해요. 최소한 일주일 단위가 아니면 뭐가 뭔지 모르게 되니까요. 일단 저부터가 혼란스럽거든요. 최소한 일주일, 이상적인 단위는 열흘, 그건 좀 어렵겠지만 이렇게 하다가 보름 단위로 두 작품을 동시에 쓴다면 가장 즐거울 것 같습니다.
 
서영: 왠지 로봇처럼 오전과 오후로 일을 나눠서 하신다고 생각했어요.
 
미미: 전 그게 안 돼요. 오늘 하루 예를 들어 3페이지만큼 쓰자, 이 중요한 정보를 다 쓰면 오늘은 그걸로 끝이야, 하고 분량을 달성하고 나면 더 이상 일을 하지 못해요, 절대로. 특히 그날의 분량 끝 무렵에 가서 저녁밥을 먹으면 흐물흐물 늘어져서 조금 남은 분량조차 쓸 수가 없어요. 그래서 밤에 일하는 작가는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저녁밥 먹고 샤워하고 나면 전 더 이상 못 씁니다. 좋아하는 TV드라마는 일단 녹화해 둔다고 해도 역시 보고 싶잖아요. 너무 무리해서 많이 쓰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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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와 반지의 초상』

 


공부라기보다는 책을 읽으며 잡학을 쌓았지요
 
정림: 이제 작품 얘기를 좀 해볼까요. 『십자가와 반지의 초상』에서 버스 납치 사건 장면은 정말 긴장감이 느껴지는 한편 따뜻한 마음으로 읽었습니다. 이야기에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어요. 개인적으로 버스 납치 사건의 승객뿐만 아니라 독자인 저까지 범인의 능수능란한 화술에 조종당하는 느낌이었습니다. 이 대목을 쓰실 때 ‘독자들이 이렇게 읽어 주었으면 좋겠다’ 하고 목표하신 게 있을 것 같은데요.
 
미미:방금 그 말씀대로 읽어 주길 바랐어요. 버스 납치 사건의 범인은 노인이지만, 납치 사건을 처음 구상할 때는 스타벅스 같은 커피숍이 점령당하는 것으로 생각했거든요. 그 편이 스기무라와 편집장이 말려들 확률이 높겠다 싶어서요. 커피 한 잔 마실까 해서 갔더니 그런 일이 벌어진 거죠. 어떻게 하면 커피숍을 점령할 수 있을까 하고 실제로 여러 군데의 체인점 커피숍에 가봤는데 벽이 유리로 된 커피숍이 많은 데다 대부분 출입구가 여러 군데여서 혼자서는 점령할 수 없을 것 같더군요.

 

한편 범인은 권총을 갖고 있어도 별로 무섭지 않은, 즉 굉장히 뛰어난 말솜씨를 지녀서 이 사람이 뭔가 말하면 들어버리고 마는 유형이 어떨까 생각했어요. 뛰어난 화술과 정중한 말투에 설득력까지 갖춘 범인이요. 그 사람이 권총을 들이대고 쏘기도 하지만 ‘죄송하군요, 이런 일에 말려들게 해서’라고 말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내가 범인이라면 ‘오늘 이곳에 온 여러분을 감금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젊은 여성들을 이런 곳에 가두다니 사죄의 뜻으로 나중에 달러화로 10,000달러를 지불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면 어떨까 하는 것이 출발점이었어요. 상대가 정말이지 난폭해 보이고 총을 빵빵 쏘아 대는 사람인 데다 딱 보기에도 제대로 일하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라면 ‘여러분에게 나중에 돈을 드리겠습니다. 정부에서 몸값을 받아 그걸 여러분한테 나눠드리지요’라고 말한들 절대로 믿지 않겠지요. 하지만 아주 신사적이고 뛰어난 말솜씨를 지닌 사람이 나중에 여러분한테 돈을 지불한다고 말하면 어느새 세뇌당해서 혹시 진짜로 주는 거 아냐, 하고 생각하게 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뛰어난 말솜씨의 친절한 버스 납치범이라니 이상하지만, 그런 사람이 있다면 어떨까 생각해서, 그 장면을 읽을 때는 왠지 나도 구슬려지는 것 같아, 하고 느끼며 읽어 주길 바랐어요.
 
정림: 그럼 노인의 모델이나 실제 인물은 없는 거군요?
 
미미: 네, 없어요. 일본에서도 차량 납치 사건이 여러 번 발생해서 인질이 다치고 살해당했는데요, 굉장히 폭력적이고 슬픈 일이었기 때문에 그런 식으로는 절대로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스기무라가 다리를 묶여서 넘어지고 또 어깨를 다치긴 했지만, 누군가 총이나 칼에 맞는 전개를 만들지 않으려고 그런 일이 필요 없을 만큼 화술이 뛰어난 사람을 생각했어요. 이 사람에게 이런 말을 하면 설득당하는구나, 하고 상대의 약점을 잘 간파하는 사람이 가끔 있잖아요. 이야기하면 왠지 나를 꿰뚫어보는 것 같은 생각이 드는 사람으로 설정하고 싶었기 때문에 모델은 없습니다.
 
정민: 저도 학창시절에 그렇게 화술이 뛰어난 선생님, 학생들의 성격을 빨리 파악하는 선생님을 만난 적이 있는데요, 이 노인이 훨씬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미미: 아, 맞아요. 그래서 학생을 지도하는 데 능숙한 학교 선생님처럼 써야 한다고 생각했고, 소설 속에서 범인은 교사가 아닐까 하는 이야기도 잠깐 등장시킨 겁니다. 특별히 학생을 잘 파악하는 선생님이 있잖아요. 이 학생에게는 이렇게 말해 주는 편이 좋다, 이 아이는 이렇게 행동하고 있지만 사실 속마음은 이렇다, 하고 잘 알고 있는 선생님처럼 쓰고 싶었어요.
 
정민: 원서 뒷부분에 참고문헌으로 『마음을 조종하는 남자들(心をあやつる男たち)』이라는 책 제목이 적혀 있던데요, 따로 심리학 공부도 하셨나요?
 
미미: 전문적인 수준의 공부는 하지 않았어요. 그저 이런저런 책을 읽으며 공부라기보다는 잡학을 쌓았지요. 다행히 심리학에 관한 책이 꾸준히 나왔거든요. 심리학은 일본에서 일반인의 관심이 높아요. 진지한 책을 비롯해서 『내 취향인 그녀를 뒤돌아보게 하는 방법』, 『인기 있는 여자가 되기 위한 방법』 등 폭넓은 심리학 서적이 많이 나왔기 때문에 닥치는 대로 읽었습니다. 『사랑받는 여자가 되기 위한 비결』을 읽으며 이걸 읽고 어디다 써먹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웃음) 그래도 참고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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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의 사소한 소망을 노리는 인간들이 싫었어요
 
정림: 이 작품의 테마인 다단계 판매와 투자사기는 한국에서도 한때 심각한 사회문제로까지 대두된 적이 있고 지금도 끊임없이 문제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소설을 보니 일본은 한국보다 먼저 이 문제로 큰 진통을 겪은 듯 보입니다. 작품 전반에 걸쳐 나오는 다단계 판매와 가공투자사기라는 설정은 어떻게 하게 되셨는지요.
 
미미: 일본의 전후 사회는 다단계나 투자사기가 줄곧 문제였어요. 새로운 법률로 그것을 금지하면 이번에는 그 법망을 피해 가는 새로운 수법이 나옵니다. 지금도 골치 아픈 문제예요. 내가 태어난 1960년대에 나왔던 수법이 옛날에 잊힌 줄로만, 법률로 근절된 줄로만 알았는데 오늘날 인터넷을 통해 다시 확산되기도 하지요. 수법의 근본은 쇼와 30년대(1950~1960년대)에 유행한 것과 다름없는데도 인터넷에서 폭넓게, 더구나 옛날을 전혀 모르는 젊은 네티즌을 대상으로 확산되고 있어요. 수십 년 전의 수법인데도 아직도 그로 인한 피해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서영: 구체적으로 어떤 게 있나요?
 
미미: 사람을 모집하죠. 펀드를 조성해서 참가자를 모집하는 방식이에요. 근본적인 구조 자체는 옛날과 다름없지만 광고할 때는 인터넷을 활용합니다. 집에서 스마트폰으로 바로 볼 수 있어서 잘 만들어진 화면을 보면 신뢰하게 돼요. 옛날처럼 호화로운 팸플릿을 만드는 것보다는 일상적이고 사적인 공간으로 들어오기가 수월해졌어요.
 
서영: 선생님도 그런 걸 보신 적이 있나요?
 
미미: 저는 옛날에 매일 졸기만 했지만 법률 사무소에서 일했으니까요(웃음). 덕분에 지금까지 잘 방어할 수 있었지요. 이건 수상해, 하면서요. 원래 저희 집이 그쪽으로 굉장히 엄격해서, 세상에 편하게 돈을 벌 수 있는 일은 없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거든요. 저희 집 가훈이 ‘무릇 돈이란 편하게 벌 수 없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예요(웃음). 저희 집은 노동자 집안이라, 일하지 않는 자는 돈을 벌지 못한다고 알고 있기에 아예 그런 건 상대도 하지 않았답니다.
하지만 신문과 주간지를 보면, 화장품, 건강 보조식품, 다이어트 식품을 취급하는 다단계 사기가 여전히 많잖아요. ‘깨끗한 피부를 갖고 싶다’, ‘건강해지고 싶다’, ‘열심히 일해서 저금했으니 이 돈을 좀 운영해서 이자를 얻고 싶다’ 같은 우리 일상생활의 사소한 소망을 노리는 인간들이 싫었어요. 생활에 밀착된 그 악랄하고 치사한 수법이 정말 싫었기 때문에 이번 작품에서 써보자고 생각했습니다.
 
서영: 이미 대답을 해주신 것 같은데요. 만약 교코쿠 나쓰히코 선생님이나 오사와 아리마사 선생님처럼 가까운 사람이 다단계판매나 상품 구입을 종용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웃음)?
 
미미: 만에 하나 그런 일이 생긴다면 양동이에 물을 담아서 “정신 차리세요!” 하고 물을 끼얹고 “도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하고 물어보겠죠(웃음). 절대로 그런 일이 일어날 리 없지만, 그래도 역시 무섭다고 느끼는 게 저도 자신할 수 없는 경우가 있어요. 이를테면 어떤 병을 앓게 됐을 때가 그런 경우죠. 아직까지는 좋은 비타민 영양제가 있다든지, 기미를 없애는 데 좋은 약이 없을까, 하고 비교적 행복한 이유로 영양제를 복용하고 있어서 괜찮아요. 하지만 저도 그렇고 저희 부모님이나, 형제자매, 친한 친구들이 큰 병을 앓게 됐을 때 의학으로는 못 고친다, 하지만 이걸 먹으면 낫는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면, 그때는 저도 자신이 없네요. 어쩌면 제가 적극적으로 그런 약을 사는 데 앞장서서 오히려 “정신 차려!”라는 소리를 듣고 물바가지를 쓸지도 모르죠(웃음). 저는 이유도 모른 채, 오사와 씨나 교코쿠 씨가 양동이에 물을 담아 저에게 끼얹으면서 “대체 뭐에 눈이 뒤집힌 거야!”라고 할지도 몰라요. 

 

최근 들어 사이가 돈독했던 편집자가, 저보다도 젊은 편집자였는데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실감하게 됐는데요. 만약 제가 병에 걸리고 의사로부터 수술해도 완치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면, 그런데 이런 귀한 한약을 먹으면 낫는다, 라고 하면 그 약이 설령 200만 엔이 넘더라도 목숨은 소중하니까 기꺼이 사겠다는 생각이 들 것 같아요. 그러니까 그런 인간의 가장 약한 부분을 파고드는 사기 경제 범죄가 싫은 거예요.

 

일본에서 이런 사기 범죄는 아주 오래 전부터 있었어요. 물론 대규모로 이뤄진 것은 전후부터인데요. 전쟁 전에 나온 옛날 신문을 봐도 관련 기사들이 실려 있어요. 기도로 난치병을 낫게 한다면서 목돈을 받아 챙긴다든지. 이런 것에도 일종의 전통이 있어서, 세월과 함께 관련 지식이 축적되면서 진보해 온 것이죠. 예를 들어 라디오가 생기고 TV가 나오고 수많은 잡지가 만들어지면서 광고도 많아졌죠. 그리고 인터넷이 생겨나면서, 이렇게 새로운 매체가 만들어지면 그에 맞춰 새로운 수법이 만들어지는 거죠. 그러니까 사라지지 않는 것 같아요.
 
정림: 인간의 가장 ‘약한’ 부분을 노리는 인간의 ‘악한’ 본성 때문이겠지요.
 
미미: 그렇죠. 그래서 아무래도 나이 든 분들을 많이 노리죠. 일본은 점점 고령화 사회로 가고 있잖아요. 저희 부모님도, 어머니가 81세, 아버지가 88세신데 아직 건강하시거든요. 몇 번이고 묏자리를 사라는 전화가 걸려 왔어요. 아무래도 우리 묏자리는 사두는 게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으로 이야기를 들어 봤던 모양이에요. 그런데 처음에는 묏자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점점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더래요. 개운(開運)을 위해서 이런 걸 사지 않겠냐고 하기도 하고 앞으로 가격이 올라갈 거니까 땅을 사라고 권유하기도 했다더군요. 일본에서는 원야상법(原野商法)이라고 하는데 전혀 개척이 되지 않은 벌판을 판매하는 거예요. 예를 들면 앞으로 이곳에 신칸센 역이 들어서니까 미리 사두는 게 좋다는 식이죠. 저희 부모님 집으로 그런 전화가 종종 걸려오는 모양이에요.
 
정림: 지금 말씀하신 이야기가 바로 『십자가와 반지의 초상』에 나오는 닛쇼 프런티어 협회의 수법과 같은 것이지요?
 
미미: 맞아요. 그런 거예요. 정수기 구입을 권유하는 전화가 걸려온 적이 있었어요. 마침 제가 부모님 댁에 있다가 그 전화를 받았거든요. 처음에는 약간 흥미가 생겼죠. 『십자가와 반지의 초상』을 쓰기 전이었는데 정말로 정수기를 파는 전화인 줄 알고 이야기를 들어봤어요. 음이온이 나온다든지 여러 모로 좋은 점이 많다고 하더라고요. 한데 뒤로 갈수록, 암도 낫는다는 둥 고혈압과 당뇨병도 쉽게 고친다는 둥 어처구니없는 말들을 쏟아내는 거예요. 잠자코 듣고 있었다가 “새빨간 거짓말!” 하고 끊어버렸지요. 뭔가 좀 더 그럴싸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까 해서 계속 듣고 있었던 건데 말이죠. 이번 소설을 쓸 때 많이 참고가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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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와 반지의 초상 일러스트

 


반지의 제왕과 예수를 부인하는 베드로
 
정림: 『십자가와 반지의 초상』에 한국에서도 많이 알려진 <반지의 제왕>이 나와서 반가웠습니다. 작품 속에서 스기무라 부녀가 명장면 베스트를 고르는 대목이 나오잖아요. 미야베 선생님이 꼽는 ‘명장면 베스트’는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미미: 저는 사실 <호빗> 시리즈를 더 좋아해요.<반지의 제왕>은 너무 거대한 이야기라서요. <호빗> 정도의 이야기가 재미있어요. <반지의 제왕>에도 좋아하는 장면이 많이 있긴 하지만 무엇보다 음악이 좋았어요. 그래서 O.S.T도 구입했거든요. 스기무라와 모모코에게는 명장면 베스트 10을 꼽도록 했지만, 저는 음악이 더 좋았어요.
 
정림: <반지의 제왕>『십자가와 반지의 초상』에 등장시킨 것은 집필 당시 이 작품에 빠져 있었기 때문인가요?
 
미미: 스기무라가 딸과 함께 볼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하고, 스기무라는 매일 밤 모모코가 잠들기 전에 딸에게 책을 읽어주잖아요. 모모코가 그런 판타지 소설을 읽고 싶어 하는 나이가 되지 않았나 생각했어요. 저 역시 영화 <반지의 제왕>을 좋아하기 때문에 작품 속에 넣게 된 거죠. 하지만 지금 『십자가와 반지의 초상』을 쓴다면 아무래도 <호빗>을 넣을 것 같아요. <호빗>에서 스마우그가 나오는 장면은 정말 근사하지 않나요?


영화<반지의 제왕>은 DVD로 여러 번 봤는데요. 원작 소설은 읽지 않았어요. 일본에는 아주 오래된 번역본밖에 없거든요. 최신 번역본이 나오지 않았는데, 옛날 버전은 옛날 말투라 익숙하지가 않아서 못 읽겠더라고요. 하지만 『호빗의 모험』은 어렸을 때 읽은 책이에요. 그래서 지금 읽어도 정겹게 느껴져요.
 
정림: 『십자가와 반지의 초상』에서 스기무라가 『반지의 제왕』영어 원서에 도전하는 장면이 나오는 것도 그런 번역 사정이 있었기 때문인가요?
 
미미: 네, 저는 영어 원서를 읽을 수 없으니까 하루 빨리 새로운 번역본이 나와 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아서 그 장면을 썼어요. 일본에서는 비교적 오래 전에 나온 책일지라도 이 사람의 번역이 훌륭하다고 하면 좀처럼 새로운 번역본을 내지 않아요. 하지만 사용하는 말이 달라지기도 하고 말투가 바뀌기도 하잖아요. 그런 부분을 감안해서 새로운 번역본을 내주면 좋겠어요. 특히 고전 작품은 더욱 그렇죠.
 
서영: 『십자가와 반지의 초상』의 테마가 되는 <예수를 부인하는 베드로> 그림을 스기무라 부부처럼 우에노 국립 미술관에 가서 보셨는지요? 어떤 계기로 이 그림을 작품의 모티브로 사용하게 됐는지 궁금한데요.
 
미미: <예수를 부인하는 베드로>를 보러 미술관에 가긴 갔어요. 그런데 두 시간은 줄서서 기다려야 한다고 해서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왔지요. 억울한 기분도 들고. 그때 미술관 기념품점에서 화집과 그림엽서를 팔았거든요. 대신에 그걸 사왔어요. 그때는 이런저런 일 때문에 무척 바쁜 시기였거든요. 두 번 다시 보러 가지 못하는 바람에 화집을 보고 글을 썼어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들어가지 못했지.’ 그때를 떠올리면서 쓴 거예요.
 
정림: 이 그림을 『십자가와 반지의 초상』의 모티브로 삼겠다 생각하고 보러 가셨던 건가요? 
 
미미: 그건 아니고. 단순한 이유에요. 제가 렘브란트를 좋아하거든요. 모처럼 일본에서 전시회가 열리니까 보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던 거예요.
 
한: 못 보고 돌아온 원통함을 작품 속 스기무라와 나호코의 경험으로 푸신 거군요(웃음).
 
미미: 그런 셈이죠(웃음).
 

 

‘일단 검색을 한다’가 가장 다른 점
 
서영: 『십자가와 반지의 초상』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사건 해결을 위해 인터넷으로 다단계판매 피해자의 정보를 수집하는 대목을 보면 “오늘날의 사회에서는 인터넷 검색에 걸리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과 같은 뜻이다”라는 소설 속 문장에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미야베 선생님은 인터넷을 자주 이용하지 않는다고 들었는데요. 그럼에도 『십자가와 반지의 초상』을 보면 그 영향력에 대해서는 깊이 실감하고 계신 것 같아요.
 
미미: 인터넷은 기본적으로 매우 훌륭한 시스템이지요. 수많은 어려운 문제들, 예를 들면 해킹으로 인한 정보 유출 등을 제외하면 말예요. 앞으로 점점 더, 뭐라고 할까요, 더욱더 세련돼진다고 할까요. 세련되고 안전하고 안심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발전할 거라 생각해요. 하지만 지금은 아직 발달 과정에 있는 중이죠. 다들 시스템의 충돌이나 악성 바이러스 문제로 골머리를 앓잖아요. 저도 마찬가지인데요. 그래서 소설을 쓰는 컴퓨터에는 굳이 인터넷 연결을 하지 않아요. 취재할 때도 인터넷을 이용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출처가 명확하지 않은 정보가 너무 많으니까요. 지금까지 쭉 해온 것처럼 서점에 가서 알고 싶은 분야의 책을 찾아보죠. 예를 들어 이번엔 케이크 가게에 대한 소설을 쓴다고 하면 서점에 가서 파티시에가 쓴 책을 찾아보는 식이죠. 이렇게 하는 편이 익숙해서 오히려 저는 더 쉬워요. 불편하지도 않고요.


다만 요즘에는 모두들 일단 검색부터 하니까, 작품에서 그런 부분을 충실히 묘사해두지 않으면 부자연스럽겠죠. 모르는 단어가 나왔다, 이 영화가 보고 싶다, 지금 어디서 하고 있지? ……이런 상황에서는 백이면 백 인터넷을 이용하기 때문에, 저한테는 검색하는 습관이 없지만 쓰지 않으면 안 되죠. 그래서 꽤 의식하면서 쓰는 편이에요. 저는 하지 않지만 젊은 사람이라면, 대학생이라면 이 부분에서 검색할 거라고 생각하며 글을 써요.


속편으로 쓰고 있는 스기무라가 사립탐정이 된 이후의 이야기가 그런 건데요. 옛날에는, 예를 들어 여기에 탐정이 있고 의뢰인이 찾아오죠. ‘자기가 살고 있는 집 근처에서 아주 오래 전에 사건이 일어났다, 자기는 그 사건에 대해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어떻게든 사건의 진상을 알고 싶으니 조사해 달라’는 식인 거죠. 예전 같으면 사건을 맡게 된 탐정이 가장 먼저 찾아가는 곳은 의뢰인의 동네잖아요. 그리고 지역 도서관에 가서 옛날 신문을 들춰봅니다. 하지만 지금은 일단 검색부터 하죠. 관련 키워드 몇 개를 넣어서요. 그렇게 하면 실제로 알게 돼요. 사건만 정리해서 올려놓는 사이트도 있으니까요.


스기무라 덕분에 사립탐정 소설을 정말 오랜만에 쓰면서 무엇이 달라졌나 생각해 봤더니 ‘일단 검색을 한다’가 가장 다른 점이라는 걸 절감했어요. 그건 그것대로 편리하죠. 예전 같았으면 일단 해당 장소에 가서 이웃들 탐문하고 단서를 얻는 데까지 한 챕터를 썼다면, 지금은 4페이지 정도만 써도 대략 어떤 사건인지 설명이 가능하니까요. 그렇지 않아도 글이 길어지는 저로서는 고맙게도 페이지를 절약할 수 있게 됐어요(웃음). 또, 모니터로 무언가를 본다는 게 당연한 시대가 됐잖아요. 제 책은 아직 전자책으로 안 나왔지만 앞으로는 전자책으로 소설을 읽는 것이 당연한 시대가 올 거예요. 그때가 오면 저도 전자책 출판을 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 일본에서 전자책 시장의 90 퍼센트 시장을 점유하고 있는 건 코믹(comic)이에요. 왜냐하면 일본인도 소설은 종이책으로 봐야 한다는 감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코믹은 그림을 크게 할 수도 있고, 권수가 많으니까 (책을 소장하려면) 공간이 필요하게 되잖아요. 그래서 전자책으로 읽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사람들이 점점 모니터로 책을 읽게 되면 책방도 점점 압박을 받게 되겠죠. 책방을 너무 좋아하는 저로서는 그렇게 된다는 것도 마음 아파요. 인터넷 사회에 대해 복잡한 감정을 갖고 있는 게 바로 그런 부분이에요. 그것 외에는 정말 편리하고 굉장한 발명이라고 생각합니다.
 

미야베 미유키 인터뷰는 [특별 기고] 미야베 미유키 “내가 SNS를 하지 않는 이유” (2)로 이어집니다.

 

이상은, 당초 ‘야매 장르문학 소식지 <Le Zirasi> 특대호’에 실린 인터뷰 가운데, 분량 및 작품의 스포일러가 될 만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일부를 축약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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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와 반지의 초상미야베 미유키 저/김소연 역 | 북스피어 | 원제 : ペテロの葬列
인질 전원이 무사한 채로 사건은 종결되는 듯 보이지만 진짜 수수께끼는 이제부터다. 인질이었던 승객들 앞으로 죽은 범인이 보낸 거액의 위자료가 도착한 것이다. 죽은 노인은 어떻게 이토록 큰 금액을 인질들에게 보낼 수 있었을까. 대관절 왜 보냈을까. ‘당국에 신고해야 한다’는 주장과 ‘정당한 대가이니 그냥 가져도 된다’는 주장으로 나뉘어 동요하는 승객들 사이에서 스기무라는 사건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나서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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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특별 기고] 미야베 미유키 “내가 SNS를 하지 않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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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고] 일본에서 미야베 미유키를 만나다 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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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SNS를 하지 않는 이유
 
정림: 선생님은 스마트폰을 사용하시나요?
 
미미: 아직 없어요. 
 
정림: 인터넷 사회의 발전에는 아무래도 스마트폰의 영향이 있었다고 생각하는데요. 『십자가와 반지의 초상』속에서도 개인정보나 풍평피해(소문으로 인한 피해) 문제가 등장합니다. 선생님은 책이 출간된 이후에 인터넷에 올라온 독자평을 모니터하시나요?
 
미미: 인터넷에 올라온 독자평을 직접 읽어 보진 않습니다. 제 담당자와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예를 들어 독자들의 불만이 어떤 부분에서 나왔는지, 어떤 부분이 좋았다고 하는지 담당 편집자와 이야기를 하곤 해요. 아무래도 직접 읽게 되면 말이죠, 제가 정말 마음에 드는 소설을 만나게 됐다든지 재미있는 영화를 보게 됐을 때, 또는 기대했는데 막상 보고 나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그럴 경우 최초의 단계에서는 감정적이 되기 쉽기 때문에 그런 상태로 무언가 글을 쓴다면 실제 감정보다 과장되게 표현될 것 같아요. 날선 말을 하게 되죠. 칭찬이든 실망했다는 평이든 강하게 정보가 올라오니까요. 그런 걸 계속 보게 되면 칭찬을 받았을 때는 기고만장해지고 안 좋은 평을 들으면 축 처지니까 직접 날것의 정보는 보지 않으려고 해요.


요즘은 SNS를 많이들 하실 텐데, 이건 누구든지 바로 발신할 수 있으니까 굉장히 감정적인(emotional) 도구인 것 같아요. 그래서 그것만은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제가 트위터에 뭔가 쓰고 싶어졌을 때, 지금 감동받았으니까 이런 말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겠지만 이 말도 어쩌면 무상한 것일 수 있죠. 조금쯤 말을 참아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어요.
 
정림: 선생님의 경우는 직업적 습관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미미: 그렇죠. 원래 우리 작가들은, 자신의 원고를 쓸 때도 ‘이 단어로 괜찮을까’ 그렇게 생각하는 습관이 배어 있으니까요. 소설가가 되는 사람 대부분, 감정 표현이 풍부한 사람이 많아요. (감정이) 단조로운 사람은 별로 없죠. 항상 담담함을 유지하던 사람이 굉장히 감정적인 소설을 쓸 수는 없으니까요. 제 자신이 감정적이 되기 쉬운 성향이 있다는 걸 잘 알기 때문에 머릿속 생각을 그대로 입 밖으로 내뱉는 건 좀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굉장한 칭찬의 말도 빗나간 것일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늘 냉정하게 생각하려는 습관이 배어 있어요.


또 제가 SNS를 하지 않는 이유가 하나 더 있는데요. 제 생활이 너무 단조롭기 때문에 쓸 말이 없어요. ‘오늘 하루도 어제와 같음’, ‘이번 달도 지난달과 같음’ 이런 수준이거든요(웃음). 아주 가끔 어딘가 놀러가도 그렇게 눈이 번쩍할 만큼 새로운 곳이 아니기 때문에 쓸 말이 없어서 안 해요. 그래서 사무실에서 운영하는 홈페이지에도 쓸 소재가 없어서 전부 스태프에게 맡겨 버렸어요. ‘요즘에는 이런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소개 정도뿐, 저에 대한 새 소식은 정말 아무것도 없어요. SNS를 매일매일 업데이트하고 또 그 내용을 사람들이 재미있게 읽고, 그렇게 활발하게 SNS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절대 못 해요.
 
정림: 동감입니다.
 
미미: 동지가 있어 다행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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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년 동안 전혀 달라진 게 없는 출판계의 여성 차별
 
정림: 『십자가와 반지의 초상』속에 여성에 대한 차별 내용을 짧게라도 넣으신 것은 의도하신 건가요.
 
미미: 그렇죠. 일본은 아직 멀었어요. 지금 아베 수상은 ‘여성이 활기차게 일할 수 있는 사회’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거짓말만 한다는 느낌이에요. 전혀 제대로 되고 있지 않아요. 출산 휴가도 받기 힘들고……. 그래서 지금 10대, 20대의 젊은 여성들은 차라리 전업주부를 하고 싶어 한다고 들었어요. 사회에 나가 일해도 힘들기만 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회사에서 그만두라고 하니까. 그렇게 돈이 많지 않아도 되니까 차라리 전업주부를 하겠다, 남편과 아이를 돌보며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여성들이 늘고 있다더군요.


제가 있는 출판계도 상당히 보수적이에요. 물론 우리는 기본적으로 실력주의라서 일을 잘하면 남자, 여자로 차별받는 일은 없습니다만 아무래도 어딘가에 아직도 남아 있다는 느낌이에요. 예를 들어 “이런 소재의 글을 쓰는 건 여성 작가가 잘하지”라는 식의 발언은 역시 차별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소재는 여성 작가에게 맞지 않다”라든가, “여성 작가치고는 선이 굵직한 작풍이다”라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다른 분들은 어떨지 모르지만 저한테는 다 차별로 들려요. 그런 거 상관없잖아요. 출간된 작품을 읽고 “와! 선이 굵직한 작품이네”, “어쩜 이렇게 나이브할까”, 이렇게 느낀 다음에 작가를 판단하면 좋은데, “여성 작가가 이런 작품을 쓰는 건 별난 일이네요” 같은 이야기가 아무렇지도 않게 나오는 걸 보면 정말 기가 막히죠. 저는 데뷔한 지 28년이 되었는데요, 그 28년 동안 전혀 달라진 게 없어요.

 
그럼, 이런 것이 완전히 근절된다면 사회가 좋아질까? ‘그렇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는 점이 어려운 것이죠. 그래서 이런 이야기는 별로 하지 않아요. 아주 친한 관계의 편집자가 아니고서는 하지 않아요. 출판계가 아직까지도 보수적인 세계라는 이야기는 좀처럼 하기 힘들죠.
 
서영: 음, 오늘 꺼내기 어려운 얘기를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선생님의 작품 『누군가』『이름 없는 독』에 이어서 『십자가와 반지의 초상』도 드라마로 만들어졌잖아요. 자신의 소설이 드라마로 만들어질 때 ‘이런 정도는 지켜주면 좋겠다’는 것이 있나요?
 
미미: 시나리오를 읽어도 뭐가 뭔지 모르기 때문에, 영화든 드라마든 시나리오를 읽지 않아요. 이게 영상이 되면 어떻게 만들어질지가 상상이 가질 않아요. 예를 들어 대사나 내용만을 가지고 “이 부분은 틀렸어요”라고 말하는 것도 좀 핀트가 안 맞으면 별로잖아요. 권리관계의 계약 때문에 사무실의 스태프분들은 시나리오를 읽지만 저는 읽지 않아요. 일단 제 의도와 너무나도 맞지 않는 에피소드가 추가되면 안 되니까 그런 정도는 사무실 스태프분들이 체크해 주셔요. 그래서 시나리오는 ‘뭐, 아무 상관없으니 영상에 맞게 써 주세요’, ‘이렇게 많은 등장인물이 전부 영상에 나올 수는 없으니까 생략하는 것도 당연히 상관없고요’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런데 정말 유일하게 캐스팅만은 신경 써요. “누구누구로 해 주세요”가 아니라 “저는 이런 이미지의 인물로 글을 썼습니다”나 “이런 이미지의 배우는 안 될 것 같네요”라는 식으로 감독님께 말씀드리는 정도긴 하지만요. 이게 작가 개개인에 따라 다 달라서 시나리오를 전부 보고 수정하는 분도 계시고 촬영 현장에 가시는 분도 계셔요. 저는 견학 삼아 촬영 현장에 가본 것밖에 없어요. 뭐, 놀러간 거지요.


그래서 저는 맨 처음에 감독님과 이야기할 때, 스기무라 같은 경우는 기본적으로 넥타이를 매고 정장을 갖춰 입고 회사를 가는 이미지가 잘 어울리는 배우로 해 주세요, 라고 이야기했어요. 딱 봐도 멋있는 연예인 같은, 물론 샐러리맨 중에도 ‘이 사람 미용사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멋진 사람도 있지만, 그런 느낌이 아니라 스기무라는 진짜 성실하고 평범한 샐러리맨이니까 그런 분으로 캐스팅해 주세요, 라고 부탁드렸죠. 배우분들 중 몇 분인가가 이 작품을 하고 싶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너무 기쁜 일이지만 제가 상상한 이미지보다는 연령대가 좀 높았어요. 스기무라는 좀 더 젊고, 어떤 일이 일어나도 동요하지 않는 타입은 곤란하니까 진중한 이미지가 아닌 배우로 찾았죠. 최종적으로는 고이즈미 고타로 씨가 해 주신다고 하셔서 정말 기뻤어요. 새로운 스기무라 사부로 시리즈는 완전히 머릿속에 고이즈미 고타로 씨를 떠올리면서 쓰고 있을 정도거든요.
 
정림: 한국에서도 선생님의 작품이 영화화됐지요.
 
미미: 네. <화차>를 정말 훌륭한 영화로 만들어 주셨어요. 저는 이때까지 만들어졌던 어떤 영화보다도 한국에서 만들어진 <화차>가 정말 좋아요.
 
정림: 그때도 캐스팅 같은 것에 관여하셨나요?
 
미미: 아니요, 그때는 감독님에게 전부 다 맡겼죠.
 
정림: 배우분도 연기를 굉장히 잘하셨죠.
 
미미: 사채업자로 나오는 분은 정말 무서웠고 생활력 있는 연기를 보여 주셔서 진짜 훌륭했어요. DVD로 몇 번을 돌려봤는지 몰라요. 마땅히 볼만한 게 없으면 아, <화차> 봐야지, 하고 볼 정도였어요.
 
정림: 변영주 감독님이 기뻐하실 것 같아요.
 
미미: 영화가 너무 멋져서 변영주 감독님을 뵀을 때 정말 눈물이 날 뻔 했어요(웃음). 그때 저는 감독님에게 전부 맡겼는데 마지막까지 시나리오를 20번 이상 수정하셨다고 듣고 놀랐어요. 저도 물론 원고를 수정하긴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20번까지는 한 적이 없거든요. 그렇게 계속해서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기 때문에 영화가 근사해진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서영: 사실 저희 엄마가 드라마 작가세요. 이 질문도 엄마가 대신 해달라고 부탁하신 건데요. 대본이 잘 안 써지면 엄마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저는 어릴 때부터 항상 봐왔거든요. 그럴 때 미야베 선생님은 어떻게 극복하시는지 알고 싶어요. 참고로 저희 엄마는 모든 걸 다 포기하고 주무십니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르신대요.
 
미미: 어휴, 저도 어머님과 똑같아요(웃음). 오늘은 진짜 안 되겠다고 생각하면 먹고 싶은 거 먹고 느긋하게 목욕하고 휴대전화 게임 같은 걸로 좀 놀다가 그냥 자 버려요. 물론 다음날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건 아니더라도 기분전환이 되니까 다시 한번 긍정적으로 임할 수 있게 돼요. 그렇게 반복하다 보면, 아, 이렇게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떻게 써야할지 곤란하면 그냥 오늘은 자 버리자 하고 자고, 다음날 일어나면 일단 이런 식으로 써봐야지 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돼요. 여러분들이 오시기 전에 질문지를 받아서 읽었을 때, 아, 저도 이렇게 자버려요, 하고 생각했어요(웃음).
 
서영: 저희 엄마도 게임하는 것을 굉장히 좋아해서 대본이 잘 안 써지면 만날 휴대전화로 게임을 하시거든요.
 
미미: 그렇죠. 그게 아마 두뇌의 완전히 다른 부분을 쓰는 거잖아요. 글이 잘 안 써지거나 스토리가 잘 연결이 안 되거나 하면, 그걸 한번 풀어 주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목욕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고요. 심지어 저는 목욕을 하면서도 휴대전화로 게임을 하는데요(웃음). 긴장이 풀리면서 뭔가 아이디어 같은 게 떠오를 때가 많아요. 다만 옛날에는 목욕할 때 떠올랐던 것들을 다 기억할 수 있었는데 요즘엔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아서, 서둘러 목욕을 마치고 메모를 한 후에 옷을 입어요. 안 그러면 다 잊어버리거든요(웃음).
 
서영: 아이고,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일동 웃음).
 
미미: 이건 뭐 어쩔 수가 없어요, 나이를 먹은 거니까요(웃음). ‘막히면 그냥 자버린다’는 어머님의 행동에 저도 엄청나게 공감하더라고 전해 주세요.
 
박: 엄마가 기뻐하시겠네요(웃음).
 
미미: 다행다행(웃음).
 

미야베 미유키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독자원정대 인터뷰 전경.jpg

미야베 미유키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독자원정대 인터뷰 전경

 


일본 미스터리의 성장은 작가들의 결속력 덕분
 
정림: 한국에서는 선생님의 작품을 비롯해서 히가시노 게이고 작가나 요네자와 호노부 작가 등 일본의 추리소설이 굉장히 인기가 있습니다. 아까 말씀하신 것 중에 답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한국은 추리소설 작가들의 활동이 활발히 이뤄지지 않고 또, 여성작가 중에 미스터리 장르를 쓰는 작가가 거의 없거든요.
 
미미: 아직은 그렇군요.
 
정림: 일본의 미스터리 소설이 일본은 물론 해외에서도 인기를 얻고 있는데, 그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미미: 저도 이 질문을 처음 받아봤을 때 이건 정말 답하기 어렵다고 생각했어요. 왜일지 의외로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고 생각해 봐도 이유를 모르겠더라고요. 영화의 경우는 한국이 더 훌륭하거든요. 일본 영화는 뭐, 완전 지고 있죠. 제 소설이 영화화된다고 했더니, 실명을 말할 순 없지만 어느 여배우가 “그렇다면 한국에서 만드는 편이 더 낫다”고 말한 적이 있을 정도예요.
 
정림: 일본 여배우분이요?
 
미미: 예, 일본 여배우요. 지금 활동하고 있는 배우예요. 그 업계에 있는 사람이 그렇게 말을 할 정도구나 싶기도 하고, 역시 그런가 하고 생각했어요. 제가 보는 TV채널 중에 wowwow라는 채널에서 한국 영화를 꽤 많이 방송해 줘요. 한국 영화를 일본에서 리메이크한 경우도 있는데, 너무 재미가 없어지더라고요. 뭔가 박력이 사라진달까. 신기하죠. 한국 영화는 이렇게 재밌는데 일본 영화는 왜 이렇게 맥을 못 출까요.

 
그런 차원에서 보자면, 일본의 미스터리가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데 한국은 왜 미스터리 작가가 별로 없을까 하는 것도 역시 시간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일본은 전쟁이 끝나고 바로 자유주의라는 정치 체제를 택해서 무엇을 쓰든지 검열당하지 않는 상황이었지만 한국의 경우는 힘들었던 시기가 있었으니까요. 거기서부터 조금 시간이 지나면 발전하지 않을까요. 일본도 처음에는 미국이나 영국으로부터 점차 수입하기 시작했고 그걸 읽은 사람들이 쓰기 시작해서 현재 일본의 미스터리의 맥을 잇는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니까 한국도 눈 깜짝할 사이에 미스터리가 번영하고 한국의 미스터리가 엄청 재미있어져서 저 같은 사람들이 조금 기력을 잃을지도 모르죠. 10년밖에 안 걸릴지도 모르는 일이에요. 변화는 언제나 빠르니까요.
 
정림: 역시 일본의 미스터리는 시간을 축적해서 쓰는 것일까요.
 
미미: 지금은 많이 옅어졌지만 미스터리가 쇼와 시대, 그러니까 20세기까지는 좋게 말하면 서브컬쳐, 나쁘게 말하면 통속문학으로 일컬어졌기 때문에 문학작품으로서는 2류라고 할까 소모품으로 보이던 시기가 길었어요. 제가 데뷔한 지 28년 되었는데요. 제 세대에도 처음 10년간은 그런 분위기가 남아 있었으니까, 저보다 더 윗세대의 미스터리 작가들한테는 더 힘들고 분한 일들이 있었을 거예요. 좋은 작품을 써도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요? 노골적으로 오락용 문학이라고 취급받았다든가. 그러지 않은 작가들도 있었지만 그 수는 정말 적죠.


이런 상황이 바뀐 게 21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인 것 같아요. 그렇게 ‘너희는 통속문학을 쓰는 사람들이야’라고 밖으로 밀려났기 때문에 그와는 반대로 미스터리를 쓰는 작가들끼리는 사이가 정말 좋았어요. 우리의 선배는 자신들이 엄청 고생했으니 그 밑 세대에게는 그런 분한 경험을 겪게 하고 싶지 않아서 많은 것들을 해주셨죠. 제가 신인으로 등단했을 때도 미스터리 세계의 거물이셨던 분께서 자신의 담당 편집자에게 흥미로운 신인이 나왔으니까 무슨 일이 생기면 도와주라는 식으로 말씀해 주시기도 했어요. 정말 결속력이 강했죠. 서로를 지지해 온 것이 있었기 때문에 그만큼 성장하는 것도 빠르지 않았나 생각해요. 지금은 또 반대로 미스터리가 일본 문학의 중심처럼 되어 버려서 많은 사람이 쓰게 되었죠. 원래부터 미스터리가 좋았던 사람이 아니더라도, 문학을 하고 싶어서 시작한 글쓰기가 결과적으로는 미스터리가 돼 버리는 등 굉장히 많은 분이 폭넓게 쓰게 되었어요.
 
정림: 선배라고 말씀하셨는데 제가 알고 있는 에도가와 란포나 마쓰모토 세이초 같은 작가분들이 떠올라요…….
 
미미: 아, 그렇군요. 그분들은 정말 전설적인 선배님들이시고 제가 말한 선배는 부모님 세대 정도의 분들이에요. 다들 돌아가셨지만요. 제가 데뷔했을 때 딱 지금 저 정도의 나이거나 그보다 좀 위였던 분들요. 완전 베테랑이셨던 분들이 많은 편집자를 알고 계시고 많은 일들을 해 주셨어요. 정말로 이 미스터리계를 지탱해 주셨고 그 후에 배출된 젊은 작가들을 응원해 주셨죠.
 
서영: 멋있는 분들이시네요.
 
미미: 그렇죠. 그래서 그런 시기에 있을 수 있던 게 정말 행복한 거구나 하고 느껴요. 그 시절이 행복했기 때문에, 선배들이 70대 후반, 80대가 되어 차례로 돌아가셨을 때 부모님이나 사이가 좋던 친척, 예뻐해 주시던 학교 선생님이 돌아가신 것만 같아서 울면서 날을 지새우곤 했어요. 점점 더 외로워졌고요. 지금은 반대로 제가 후배들이 곤란에 처하면 도와줘야 하는 입장이 되었는데 지금 후배들은 알아서 잘하고 있기 때문에 제가 뭘 해줄 게 없어요.
 
서영: 예를 들면 요네자와 호노부 선생님 같은 분들이신가요?
 
미미: 아, 요네자와 작가는 같은 게임의 팬이라서 저랑은 친구예요. 저도 요네자와 작가의 팬이라서 거의 모든 작품을 다 읽었어요. 굉장히 성실하고 좋은 사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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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가 의견을 주지 않으면 나는 실망한다
 
정림: 북스피어 편집부에서 제일 궁금해할 질문이라고 생각되는데요, 선생님께서 『외딴집』을 집필하실 때, 이 질문지의 내용이 정확한진 모르겠습니다만……, 몇 번이나 연재를 그만두고 싶었지만 어느 편집자 덕분에 무사히 작품 연재를 끝마칠 수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일본 작가들의 후기를 읽다보면 편집자의 역할이 굉장히 크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요. 선생님에게 편집자는 어떤 존재인가요.
 
미미: 마라톤을 함께 뛰어줄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처음에 저를 길러내 주셨던 편집자분도 저보다 나이가 많으셨고, 동년배였던 분들도 지금은 출판 업계에서 은퇴했지만 훌륭하신 분들이 많았어요. 지금은 제 원고를 가장 먼저 읽는 분들이 모두 저보다 나이가 어려요. 그래서 어찌 됐든 사양하지 말고 이 부분을 좀 더 읽고 싶다든지, 이 부분은 알아듣기가 힘들다든지, 흐름이 좀 빠른 편이 낫다든지, 뭐든 좋으니까 꼭 말해 달라고 이야기해요. 젊은 편집자들은 아무래도 조심스러워하니까요. 아무 얘기가 없으면 저는 실망하거든요. 그래서 처음에 그렇게 부탁을 드려요. 재미없으면 재미없다고 말해 달라고요. 재밌게 쓰도록 노력할 테니까. 그렇게 말해도 화 안 낼 거라고 말하죠. 제일 먼저 내가 쓴 걸 읽어 주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 사람이 재밌어하거나 무서워하거나 이 사건의 범인은 대체 누굴까 하고 생각해 주는 것이 원동력이 돼요. 그 정도로 중요한 존재예요.


꼭 많은 경험을 쌓아야만 좋은 편집자가 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젊은 편집자만이 알 수 있는 부분도 있다고 생각해요. ‘아직 입사한 지 2년밖에 안 된 편집자예요’라는 젊은 분이라도 ‘이 부분이 굉장히 감동적이었고 이 캐릭터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어요’라는 이야기를 해 주시면 그렇구나 하고 생각하게 돼요. 그러니까 경험이나 연령이라든지, 순문학이 좋아서 미스터리는 잘 모른다든지, 미스터리는 좋아하지만 연애소설은 잘 모른다든지 하는 취향을 신경 쓸 필요는 전혀 없어요. 그 순간 그 작가와 호흡이 맞으면 될 것 같아요. 이 작가는 아마 이렇게 해주길 바라는 걸까, 이 부분을 알아줬으면 하는 걸까를 알아준다면 분명히 좋은 관계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반대로, 감사합니다, 하고 원고를 받고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는 사람과는 일할 수 없어요. 그건 정말 허무한 일이죠. 정신 차려 보니 교정지가 와 있더라고요, 같은 느낌으로 재밌었다, 재미없었다 한마디도 말해 주지 않는 것은 씁쓸해요. 그도 그럴 게, 담당자가 첫 독자이자 그의 의견을 듣고 처음에 쓰는 거라는 생각을 저는 하고 있거든요. 처음에는 당신을 향해서 이야기를 쓰는 거니까 사양 말고 좋고 나쁜 점을 말해 주세요, 라는 느낌으로요


그때 마지막까지 저를 재촉하면서 이야기를 쓸 수 있게 만들어 주신 편집자분은 은퇴하시고 지금은 강아지를 매일 산책시키며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계세요. 병을 앓고 수술을 하셔서 체력적으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셨대요. 회사에서는 남아 달라고 말했나 봐요. 1주에 두 번 정도라도 좋으니까 회사에 와 주세요, 라고 한 모양이지만 저는 오히려 은퇴하신 게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는 유유히 살아가셨으면 좋겠어요. 그때 편집자분은 저를 혼내면 제가 잘 못 쓸 거라고 생각해서 본인이 조심하셨나 봐요. 그래서 제가 못 쓰겠다고 말해도 절대로 혼내지 않으셨어요. 예를 들어 이번 달에 10페이지를 쓰기로 했는데 5페이지밖에 못 썼더라도 다섯 페이지를 썼다고 칭찬해 주셨어요.


저도 신인 때 편집자한테 크게 혼난 적은 없는데 그렇게 혼나는 편이 더 잘되는 작가도 있는 모양이에요. ‘아, 젠장’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엄격하게 말해 주지 않으면 ‘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구나’ 하고 생각한다나 봐요. ‘정말 진지하게 나를 생각한다면 가끔씩은 좀 혼내 봐요’라고 생각하는 작가도 있나 봐요. 그래서 뭔가 선생과 제자 같은 관계이기도 하고 친구이기도 하고 부모 자식 같기도 하죠. 부부 이외의 모든 관계이지 않을까 싶어요. 형제 같기도 하고. 아, 그런데 실제로 편집자와 작가가 결혼하는 경우도 있는데, 그때부터는 담당 편집자를 맡지 못하죠. 부부가 되어 버리면 객관적이지 못하게 되니까요. 또 반대로 간섭하면서 너무 심하게 말할지도 몰라요. 작가가 이건 내 세계다, 라고 생각하는 부분에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는 말을 들어 버리면 상처를 받겠죠. 저야 전혀 그럴 일이 없었지만, 실제로 제 동세대의 작가들이 담당 편집자와 결혼하는 경우가 꽤 있어서 엄청 놀랐어요. 그렇게 되면 담당 편집자는 완전 다른 분야의 편집자가 되어서 떨어져서 일을 하고 그 부부는 원만하게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한다나 봐요.
 
무슨 일이 일어나도 걱정 마시고 읽어주시길
 
정민: 이제 슬슬 마지막 질문입니다. 이 인터뷰가 글로 정리될 즈음이면 『십자가와 장미의 초상』의 한국어판이 완성될 거예요. 한국의 독자 분들에게 한마디 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미미: 어찌 됐든 주인공의 신변에 굉장히 큰 변화가 일어나니까 그 점에 대해서 다행이라고 느끼는 분들도 계실 거고 아, 역시 이렇게 되는 구나, 하고 느끼는 분들도 계실 거고 충격적으로 받아들이시는 분 등 여러 가지 의견들이 있을 것 같지만 스기무라가 살아가는 인생에 있어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작품이므로, 그가 그것을 잘 극복해 내서 사립탐정이 될 수 있도록 시리즈를 쓰고 싶습니다. 무엇이 일어나도 걱정하지 마시고 읽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사건 자체는 실제로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이니까 밀접하게 느껴질 수 있을 거예요. 좀 두꺼워서 하루 만에 읽는 건 무리일진 몰라도 서스펜스도 있고 인질들이 서로 사이가 좋아지는 모습은 느긋하게 보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들의 이야기에 흠뻑 빠져서 읽어 주신다면 그 이상으로 기쁜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독자: 감사합니다.
 
미미: 인터뷰 후에 관광이나 그런 예정이 있으신가요?
 
독자: 내일 진보초에 가보려고 해요. 처음인데, 선생님은 자주 가시나요?
 
미미: 가끔씩 가보고 싶어지죠. 뭘 사는 건 아닌데 그냥 걷는 것도 재밌고 의외로 대학이 주변에 많아서 싸고 맛있는 식당도 많아요. 그 주변에 출판사도 많고요. 슈에이샤(집영사)에 들르는 일이 최근에 많아서 돌아오는 길에 들르거나 해요. 서울에도 책방이 즐비한 거리가 있나요?
 
정림: 없어요. 서점이 그다지…… 인터넷으로 사니까요.
 
미미: 역시 그렇군요. 최근에 인터뷰했던 건데 인터넷으로 주문하면 편의점 세븐 일레븐에서 받아갈 수 있다고 해요. 오, 그거 좋네 하고 생각한 게 집에 아무도 없으면 못 받잖아요. 몇 권이나 주문하면 우체통에 못 넣으니까요. 편의점에서 받아볼 수 있다니 진짜 좋다고 생각했어요. 좋은 아이디어네, 하고 느꼈어요. 전에 인터뷰하러 오셨던 분이 세븐넷에서 서적 담당이셨는데 책을 엄청 좋아해서 많이 읽고 오셨어요. 그래서 세븐넷의 광고지도 만드셨던데 그게 엄청 멋지게 잘 만들어졌더라고요. 이건 우리에게 진짜 편리하지만 출판업계 분들은 힘들겠구나 싶었어요. 일본에서도 도쿄나 오사카는 괜찮은데 지방의 작은 도시에서는 점점 책방이 사라져서 통신판매만이 살길인가 봐요. 그런 식으로 큰 도시에서는 책방, 지방 도시는 통신판매로 어떤 책이든 다 판매할 수 있다고 해요. 그거는 그거대로 또 즐겁다고 생각했어요.
 
정림: 그렇군요.
 
미미: 아 혹시 스카이트리는 안 가시나요? 제가 사는 곳에서 가까워서 지하철로 한 역이에요. 제가 밥 짓는 주방에서 너무 잘 보여요. 너무 그렇게 잘 보이니까 한 번도 안 가봤는데 상품이 너무 귀여워서 좀 준비해 봤어요. 가급적이면 한국으로 돌아가실 때 들고 가기 편한 걸요.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네요(웃음).
 
일동: (완전히 감격해서 눈물!!!) 아 너무 귀여워요. 정말 감사합니다(웃음).

 

이상은, 당초 ‘야매 장르문학 소식지 <Le Zirasi> 특대호’에 실린 인터뷰 가운데, 분량 및 작품의 스포일러가 될 만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일부를 축약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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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와 반지의 초상미야베 미유키 저/김소연 역 | 북스피어 | 원제 : ペテロの葬列
인질 전원이 무사한 채로 사건은 종결되는 듯 보이지만 진짜 수수께끼는 이제부터다. 인질이었던 승객들 앞으로 죽은 범인이 보낸 거액의 위자료가 도착한 것이다. 죽은 노인은 어떻게 이토록 큰 금액을 인질들에게 보낼 수 있었을까. 대관절 왜 보냈을까. ‘당국에 신고해야 한다’는 주장과 ‘정당한 대가이니 그냥 가져도 된다’는 주장으로 나뉘어 동요하는 승객들 사이에서 스기무라는 사건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나서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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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망고식스 강훈 대표, ‘커피왕’에서 ‘망고왕’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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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성공만 했던 것은 아니다. 크게는 사업실패도 겪었고, 미국 진출 실패로 큰 비용 손실을 보기도 했다. 사소하지만 마케팅이 실패하기도 했고, 이런저런 예측 못한 장애물이 발견되기도 했다. 사업에 관한한 두려움을 모르고, “너무 겁이 없어서 불안한 것도 못 느끼는” 터라 주변에서는 불안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어떤 일도 난항을 겪게 마련이다. 실패는 더 강한 근육을 만들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힘을 주었다. 아주 좋은 선생이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손해를 봤다면 그것 역시 ‘수업료’로 삼았다.


1000억 대 매출을 달성하고, 500개 매장을 내며 카페베네를 뜨는 커피숍으로 만든 ‘커피왕’ 강훈은 이후 카페베네를 떠나 2011년 망고식스를 런칭한다. 어느 순간 내 눈에는 한계가 보이기 시작했다. 더 이상 국내에서 커피 전문점 매장 수를 늘리는 일이 의미가 없겠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15쪽) 망고, 디저트, 차별화된 컨셉으로 일찍이 꿈꿔왔던 해외 진출 목표를 달성하는 것, 그것이 잘 나가는 카페베네를 떠나 새로운 도전을 감행했던 강훈이 진짜 가고자 한 길이었다.

 

진짜 성공은 그렇게 쉽게 결과물을 보여주지 않는다. 노력에 대한 보상을 바란다면, 금방 포기하지 말고 먼 미래를 내다보면서 한 발 한 발 나아가야 한다. 30년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10년은 한 분야에서 고생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남보다 더 큰 성공을 이뤄낼 수 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당신의 자리가 맨 앞자리가 되는 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그날을 기약하며 지금 이 순간, 당신의 미래를 선점하길 바란다. (222쪽)

 

어떤 이름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라는 질문에 ‘망고왕’이라고 대답하는 강훈 대표. 그의 관심은 오직 망고다. 그리고 국가 대표 카페를 만드는 것, 해외 진출 성공이다. 따라하는 ‘2등의 전략’ 말고, 선점하는 ‘1등의 전략’을 말하는 그의 끝나지 않는 도전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궁금하다.

 

 

쉽게 포기하지 말아야


‘강훈’하면 ‘커피왕’이란 수식어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데, 정작 자신은 1등이라 생각한 적 없다고 하셨어요. 도전의식을 말씀하려 하신 것 같은데요.


1등이라 생각한 적 있다기보다는 1등이 되려고 항상 노력하는 것이죠. 1등이 되면 그 다음부터 도전할 게 없잖아요.(웃음)

 

왜 도전일까요? 무엇이 나를 계속 도전하게 한다고 생각하세요? 어떤 것이 동력이 되고 있는지 궁금한데요.


글쎄요. 저도 별로 도전 안 하고 싶거든요.(웃음) 편안하게 안정되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자꾸 도전해요. 왜 그럴까 생각을 해봤죠. 어렸을 때부터 쌓인 게 아닌가 싶어요. 초등학교도 다섯 군데를 나왔어요. 여러 이유로 전학을 다른 사람들보다 많이 했죠. 때문에 남들보다 변화에 대한 적응이 아마 좀 빠르지 않나 싶습니다. 신세계 입사 후에도 그랬어요. 백화점이 보통 순환보직이 많거든요. 그 중에서도 저는 더 많이 했어요. 매장에 있다가, 웨딩 관련 쪽에 갔다가, TF팀에 갔다가, 해외 명품 구매 쪽으로 간 다음 또 스타벅스로 갔어요. 많이 옮겨 다녔죠. 그런 것들이 경험이 됐어요. 어쩌면 도전하려고 한 게 아니고 자꾸 새로운 쪽으로 가는 환경에 놓였던 거예요. 의도한 게 아니고요.

 

책을 통해 ‘마인드와 관점을 공유해 달라’는 당부를 하셨거든요. 한 마디로 자신의 마인드를 표현한다면 무엇일까요?


『카페베네 이야기』에서는 주로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졌어요. 이번 책은 제목에도 ‘선점하라’고 썼는데요. ‘도전’을 말하려고 한 것이죠.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라는 의미예요. 에필로그에 요즘 젊은 친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었어요. 요즘 친구들이 너무 나약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약하다’는 의미는 쉽게 포기한다는 것이거든요. 실제로 그것이 힘들고 어려운 게 아닌데 포기해요. 저는 제가 강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는 평균 수준인데 다른 사람들이 약하지 않은가 생각하죠.  

 

‘끝까지 밀어붙이기’를 강조하시는 거죠?


운동을 많이 했을 것 같은 외모지만 전 골프도 안 하고, 당구도 못 쳐요. 거꾸로 얘기하면, 무언가 하나를 하면 끝장을 봐야 한다는 뜻이에요. 그것에서 1등이 되다시피 해야만 되는 그런 면이 있어요. 제 자신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그렇죠. 담배도 안 피우고요. 오히려 두려워서, 너무 빠질까봐 안 한다고 주변에도 종종 말해요. 그런 성격, 마인드가 있기 때문에 카페베네, 망고식스도 일단 시작했으면 정말 제대로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거였죠.

 

이 자신감의 원천은 무엇일까요? 위험하다고 느낄 것도 같은데 밀어붙이거든요.


많이 위험하죠. 사람들이 볼 때는 항상 불안하죠. 무모하고요. 너무 겁이 없어서 불안한 것도 못 느끼는 거죠. 외로움을 극복하는 방법에 대해 말을 해볼게요. 사람은 누구나 외롭잖아요? 그럴 때 현재의 외로운 상태보다 훨씬 더 외로워지면 돼요. 그러면 지금 외로운 건 외로운 게 아니에요. 더 어렵고 힘든 걸 겪고 나면 지금 어려운 건 더 이상 어려운 게 아니라는 건데요. 해병대 다녀온 사람이 그냥 군대가 힘들지 않다고 하는 것처럼 그런 거죠. 할리스를 팔고 3년 공백기가 있었어요. 그때 처참하게 깨져보고 깨달았어요. 이후 카페베네를 할 때, 그것이 남들이 볼 때는 어려운 것이었겠지만 저는 쉽게 해냈던 거예요.

 

계속 승승장구한 것만은 아니었잖아요. 사업 실패도 겪었고요.


그렇죠. 엄청 힘들었죠. 카페베네에 합류하기 1년 전이었어요. 그때 남들 10년 생각할 만큼 많은 생각을 했어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부터 시작해서요. 그렇게 힘든 것들을 견뎌낼 정도로 강해진 거죠. 말씀 드렸듯이, 남들은 힘들고 어려운, 위험 부담이 있는 것을 왜 하냐고 하지만 제게는 그것이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 게 아니에요. 관점의 차이죠. 상대적인 게 아니겠느냐 생각해요.

 

흔히 ‘회복탄력성’이라고들 하는데, 많이 단련되어서 회복하는 근육이 발달한 경우겠네요.


그 말의 의미에 대해 아주 깊이 공감하고 있어요. 운동을 하는 것처럼 마음도 단련해야 한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대다수는 그런 단련을 하지 않고 살지는 않는지 생각합니다. 저도 1년 동안 힘든 시기를 겪으면서 어쩔 수 없이 단련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 있었죠. 그 1년은 아무도 안 만났어요. 그만큼 외로움을 겪고 나면 그보다 더 외로울 수가 없어요. 그때보다는 지금이 훨씬 행복하고요. 이런 걸 못 겪어본 사람들은 지금이 외로운 거죠. 

 

위기의 순간이 왔을 때 무너지기도 하잖아요. 이게 지나가면 강해질 것이다, 라는 생각을 하기는 쉽지 않아요.


주변에 친구나 후배들도 망가지는 경우가 많아요. 거의 못 일어나요. 저 같은 경우 바로 또 일어나니까 이런 질문을 받곤 하는데요. 아버지께서 어렸을 때부터 제게 ‘할 수 있다’고 꾸준히 말씀하셨고, 저는 그걸 100% 믿었어요. 지금은 교회를 다니지 않지만 어렸을 때 가서 들은 말씀이 ‘항상 견딜 만큼 시련을 주신다’는 것이었는데요. 이런 시련은 나를 훈련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저는 믿어요. 그래서 조금 힘든 일이 있어도 이것이 나를 더 크게 성장시키기 위해 훈련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하죠. 그렇게 내공이 쌓이는 것이고, 그걸 일단 견뎌내요.

 

‘직원들이 나를 오케이로 부른다(152쪽)’고도 하셨잖아요. 위험부담에 대해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정말 걱정 안 하세요?


어떤 일이 있더라도 그렇게 힘든 일이 아니라고 하는 자신감이 있는 거죠. 경험으로부터 나온 거예요. 책을 만들 때도 그랬어요. 표지, 디자인도 우리와 의견 조율이 필요하잖아요? 그렇지만 출판사에서 얘기하는 것을 무조건 따라가자고 했어요. 출판사가 우리보다 더 많이 고민했을 것이고, 책에 대한 부분만큼은 더 많이 생각했을 테니까요. 그렇다면 누가 맞겠느냐, 책에 관한 한 전문가는 출판사겠죠. 출판사가 얘기하는 것은 무조건 수용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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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 그리고 직원 교육


감각이 좋다고 해야 할까요. 망고식스라는 이름을 짓는 것부터, 신메뉴 이름 정하기 등성공할 것을 직감(25쪽)’했다고 하셨어요. 운이 좋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많이 보고, 많이 경험하는 것이죠. 남들보다 많은 경험을 하다 보니 좀 낫지 않나 생각해요. 때문에 제 감을 믿고요.

  

그렇지만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니까 주변 의견을 수용하거나 설득하는 과정도 꼭 필요하잖아요. 어떻게 하세요?


대화와 타협 보다는 강제와 강압으로(웃음) ‘나를 따르라’고 해요. 그렇게 해도 저를 믿고 따를 수 있는 이유는 ‘신뢰’가 쌓여있기 때문이겠죠. 그동안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줬기 때문에 제가 강력하게 뭔가를 주장했을 때 따라올 수 있는 거겠죠. 또 지나보면 그게 맞았고요.


물론 저도 사람이니까 실수도 할 수 있고, 실패할 때도 많죠. 고민될 때도 많고요. 더구나 CEO는 판단을 잘해야 하니까요. 한 번 판단을 잘못해도 큰 위기가 될 수 있고요. 큰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이 될 때는 주제에 관련된 책을 보려고 해요. 마케팅 방법이 고민된다고 하면 마케팅 책을 보면서 판단해요. 망고식스 시작하면서 고민스러울 때도 『50번째 법칙』이라는 책을 보고 결론을 내렸죠. 그런 경우가 많이 있어요. 『권력의 법칙』이라는 책은 무척 두꺼운데 제가 성경처럼 꺼내보는 책이에요. 조직관리 등 중요한 포인트에서 늘 꺼내보고, 정리하곤 하죠.

 

최근에 읽은 책 중에 기억나는 책은 뭔가요?


『딜리버링 해피니스』라고요. 온라인 신발회사 자포스 CEO 토니 셰이(Tony Hsieh)가 쓴 책인데요. 우리 회사 비전이 ‘감동과 행복을 전하는 글로벌 기업’이에요. 그런데 재포스도 ‘행복을 전달’한다는 비슷한 의미를 갖고 있더라고요. 그래서 책을 전 직원들에게 읽어보라고 했죠.

 

전 직원들에게요?


매 분기에 한 권 씩 읽기를 해요. 반응은 좋지 않은 것 같아요.(웃음) 워낙 강제로 책 읽기를 하니까요. 시험도 보고요. 독후감을 쓰라고 하니까 내용을 다 베껴서 지금은 시험을 봐요.

 

이번 책 『따라하지 말고 선점하라』도 그렇다면?


당연히 봐야죠. 그런데 이 책도 안 읽을 것 같아요.(웃음) 시험을 봐야겠어요.

 

책에도 직원 교육에 대한 언급을 하셨죠. 특별한 철학이 있으신 것 같아요.


매주 주간 회의 때는 강연 프로그램을 함께 봐요. 1년 째 하고 있는데요. 제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 주제와 맞는 강연을 직접 선정해서 보여줘요.


직원 교육이 제일 중요해요. 마인드를 갖도록 하는 것이 말이에요.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그렇지가 않아요. 모든 직원이 똑같은 마인드를 갖고 있는 것도 아니고요. 잘 안 돼요. 사람마다 다 다르고요. 부정적인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아무리 ‘도전하라, 할 수 있다, 선점하라’고 말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되잖아요. 마인드를 심어주는 것이 말은 쉽지만 막상 생활에 적용하려면 잘 안 되는 거예요. 평생 가지고 온 생각을 어떻게 제가 1년 만에 바꾸겠어요. 그렇다면 교육을 많이 해야죠. 업무 앞에 적극적인 마인드를 갖게 하는 것만도 엄청나게 힘드니까요. 끊임없는 교육, 훈련을 통해 자신도 모르게 그런 행동이 나오도록 해야 해요. 그것이 무척 힘들어요.

 

앞서나가기 위해서는, 그리고 1등이 되기 위해서는 망고식스가 하지 않는 것을 찾는 게 정답이다. 그러기에 나는 항상 다른 브랜드가 하지 않는 새로운 것을 찾으려 노력한다. 그것이 트렌드를 선도하는 브랜드와 트렌드를 따라가는 브랜드의 결정적 차이다. 그래서 나는 우리 직원들에게 “우리가 만들면 항상 트렌드가 될 것이다. 그러니 무조건 남들이 하지 않는 새로운 전략을 짜야 한다.”라는 말을 자주 한다. 사명감과 자부심을 가지고 일을 하라는 것이다. (77쪽)

 

 

‘선점’이란 앞으로 뭘 좋아할 것인가를 찾는 것


‘트렌드 세터’로서의 역할을 많이 강조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드라마<신사의 품격> PPL은 거의 전설처럼 읽혔어요. 트렌드를 읽는 것이 사업에 얼마나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시나요?

 
1년 전과 3년 전도 엄청난 차이가 있어요. 3년 전만 해도 타깃 고객층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인테리어를 좋아하는지, 어떤 메뉴를 원하는지, 어떤 노래를 좋아하는지 파악하기가 그나마 좀 괜찮았어요. 1위하는 노래가 지금은 1주일 만에 바뀌잖아요. 트렌드가 측정이 안 돼요. 워낙 변화가 심해서 트렌드를 찾는 것 자체가 힘들어요.

 
어떤 영화를 봤어요. 성공하고 싶으면 상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서 그것만 해주면 된다고 한 대사가 있었어요. 쉽게 말해 고객이 원하는 것을 찾아서 충족시켜주기만 하면 되는 거예요. 그것이 트렌드죠. 찾아서 해주면 되는데, 찾는 게 얼마나 힘들어요? 또 빨리 찾아야 하고요. ‘선점’이란 앞으로 뭘 좋아할 것인가를 찾는 거예요. 지금 좋아하는 것이 아니고요. 한 발 앞서 준비해야 트렌드와 비슷해지는 거죠. 너무 앞서도 안 되고요. 시점이 중요하죠. 그래서 어려운 거예요. 계속 말씀드리지만 많이 보고, 많이 듣고, 많이 경험하는 것, 그것밖에 방법이 없어요.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신다면요?


‘상상하지 말고 고객을 관찰하라’(182쪽)썼는데요. 앉아서 고객이 뭘 좋아할 것이라고 분석만 해봐야 알 수 없어요. 직접 찾아가서 봐야죠. 일반 커피 브랜드에서 잘못 생각하는 것이 있어요. 카페만 보면 안 돼요. 타깃 고객들이 카페만 가지 않잖아요. 이들이 전체적으로 무엇을 좋아하는지 생각해야죠. 그 중 일부가 카페라는 거예요. 그걸 파악하려면 상당히 광범위할 수밖에 없어요. 저는 ‘우리 비즈니스는 노는 게 일하는 거다’라고 말해요. 잘 놀아야 해요. 일만 열심히 한다고 되는 게 아니고, 고객이 뭘 좋아하는지 트렌드를 봐야 하죠. 라떼, 모카의 매출 비중이 몇 퍼센트고 하는 것을 조사해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제가 강조하는 것은 실제 가보고 고객들이 실제로 뭘 하는지 파악해야 한다는 거예요. 말했듯이 고객이 원하는 것을 찾아내서 그걸 해주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니까요.

 

‘병문졸속’을 인용하시면서 전쟁이라고까지 표현하셨잖아요. 트렌드에 안테나를 세워두는 것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거로군요.


특히 서비스업이기 때문에 그렇죠. 서비스업의 중심은 ‘사람’이에요. 올해 좋아했던 것과 내년에 좋아하는 것이 달라요. 지금 좋아하는 것이 다음 달 되면 또 바뀌죠. 그걸 쫓아가야 하지만 그것이 무척 힘들어요.

 

그래서 변화를 무척 강조하셨는데요. 사실 프랜차이즈 업체와 가맹점주 사이의 갈등은 많이 기사화되기도 했습니다. 인테리어 교체 같이 큰 비용이 드는 부분에서 가맹점 업체에 비용을 전가하는 방식도 문제가 되고 있고요. 프랜차이즈와 가맹점 관계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가요?


일반적으로 프랜차이즈의 가장 큰 문제가 방금 말씀하신 부분입니다. 통일화, 규격화, 단순화로 요약할 수 있는데요. 가맹점이 다 같아야 하잖아요. 그래서 저는 정반대로 하고 있어요. 우리는 다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것 역시 기존 사고와 다른 점이겠죠. 미국과 중국에도 진출을 했는데요. 미국에 매장을 낼 때도 이름만 ‘망고식스’로 하고 나머지는 다 현지에 맞게 하라고 했어요. 메뉴도 마찬가지고요. 다 달라요. 중국도 그렇고요.


일반 프랜차이즈의 관점에서 봤을 때 이건 완전히 말도 안 되는 거죠. 망하는 프랜차이즈죠.(웃음) 하지만 왜 이렇게 하느냐면, 통일된 형태로 프랜차이즈를 내는 것은 벌써 지나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지금 시대는 또 달라졌어요. 고객들이 수시로 변화하고, 수시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하는데 기존의 방식을 고수하는 것이 맞겠느냐고요. 메뉴는 바꿀 수 있겠지만 인테리어를 또 바꾼다면 쉽지 않잖아요. 망고식스의 로고만 해도 벌써 네다섯 번 바뀌었거든요. 아직도 예전 로고와 예전 인테리어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곳도 많이 있어요. 일반적으로는 그걸 다 바꿔야 하겠지만 우리는 그냥 두라고 해요. 앞으로도 계속 변화할 텐데 그런 것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도 말이 안 돼요. 현 상태를 유지하면서도 최대한 변화에 맞춰 바꿔나간다는 정책이에요.

 

굉장히 특이한 정책이네요.


이것도 차별화예요. 프랜차이즈가 반드시 다 똑같은 모습이어야 한다는 법칙이 있는 건 아니에요. 다 달라도 돼요. 이걸 우리가 만들어나가는 거죠. ‘선점’이에요.

 

오픈된 구조기도 하고요.


저희는 아주 유연해요. 해외 진출할 때도 이름만 통일하고 나머지는 다 달라도 된다고 한 이유예요.

 

장단점이 있을 것 같은데요. 일반적으로 ‘스타벅스’하면 딱 떠오르는 분위기가 있잖아요. 세계 어느 곳을 가도 똑같다고 하는, 그런 정체성 말입니다. 그와는 완전히 정반대의 개념이거든요.


지금 전국 180개 매장이 있는데요, 지금은 완성된 형태가 아니라고 말해요. 계속 변화하면 언젠가 100% 완성된 형태가 되는 날이 오겠죠. 그때가 되면 변화된 모습으로 통일할 수도 있겠지만 그 전까지는 계속 변화하면서 유연하게 접근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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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대표 카페를 만들겠다


매장수를 말씀하셨는데요. 그런 부분에서는 카페베네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매장 확장에만 치중한 반쪽짜리 성공 아니냐는 비판도 있었는데요. 이에 대해서 하실 말씀이 있으실 것 같아요.


제가 국내 카페베네 매장이 500개 되었을 때까지 함께 하다가 나왔고, 카페베네가 지금은 1000개쯤 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망고식스의 점포를 300개까지만 하겠다고 했어요. 여러 요소가 있겠지만, 매장수만 놓고 봤을 때 300개~500개 정도가 적당하다고 생각해요. 상권 문제가 있으니 더 많아도 안 되겠고, 브랜드 파워라는 측면에서는 더 적어도 안 되거든요. 제가 300개라고 말한 이유는 망고식스가 가진 차별적 요소들로 그 정도 규모면 충분하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이런 경우 본사의 수익 문제가 발생할 수 있죠. 저희는 해외에서 3,000개 매장을 내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어요. 해외에서 할 자신이 있기 때문에 국내 매장수는 300개로 공표할 수 있었던 거죠. 그런 자신이 없었다면 할 수 없었을 겁니다. 지금은 다른 브랜드도 해외 진출을 하고 있지만, 망고식스가 해외진출을 목표로 했을 때는 아무도 해외진출을 상상하지 못했어요.


카페베네가 중국에 500개 이상 매장을 냈는데 지금 문제가 드러나고 있죠. 특히 해외는 빠르게 매장을 늘리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 봐요. 그러다보니까 결과는 안하느니만 못하게 된 거예요. 저는 10년 이상을 보고 있어요. 롱런해야 하니까요.

 

카페베네 시절에 그런 점을 예견하셨나요?


다 예견했죠. 국내 500개 매장을 낸 후 해외에 집중하자고 했었죠. 해외를 잘 했으면 또 달랐겠죠. 이미지도 좋고, 수익도 좋았을 거예요. 그렇지만 지금은 카페베네라는 이미지 자체가 많이 안 좋아졌죠.

 

여러 가지 감정이 들 것 같아요.


할리스는 그래도 이미지 좋게 잘 되고 있잖아요. 알차게 운영되고 있고요. 그런데 카페베네는 안타깝죠.

 

국내 카페 산업의 전망을 어떻게 보고 계세요?


할리스 사장님과도 친분이 있어요. 제가 카페베네에 있을 때도 한 얘기인데요. 이제 우리 브랜드끼리 경쟁하지 말자, 얼라이언스처럼 힘을 합쳐서 해외에 나가서 스타벅스 같은 해외 브랜드와 경쟁해야하지 않겠느냐고요. 더구나 할리스, 카페베네 다 제가 만든 거잖아요. 지금 그 브랜드와 경쟁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니까요. 제가 카페베네와 경쟁해서 뭐하겠어요? 매체 인터뷰에서 경쟁자로 생각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는데요. 저는 별로 경쟁자로 생각하지 않아요. 그들은 저를 경쟁자로 생각할지도 모르지만요. 나의 경쟁자는 해외 브랜드라고 말했죠. 사실 별로 관심이 없어요. 카페베네가 뭘 하는지, 할리스가 뭘 하는지 관심이 없거든요. 이 친구들은 계속 저를 주시하긴 하지만. 결국 국내 커피 시장도 이제는 해외 쪽으로 눈을 돌려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해요.

 

반드시 국가대표 카페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여러 번 언급하셨어요. 자연스레 무엇이 강훈을 이렇게 뛰게 만드는지 궁금해집니다.


할아버지께서 제 이름을 잘못 지어서 그래요.(웃음) 공훈 훈(勳) 자를 쓰거든요. 이름을 잘 지어야 해요.(웃음) 사명감이 있죠. 그것이 자꾸 저를 뛰게 만들어요.


카페베네 시작할 때, ‘국내에서 스타벅스를 이기겠다’고 했었어요. 할리스를 할 때는 ‘국내에서 최소한 스타벅스와 견줄 수 있는 브랜드를 만들겠다’고 했고요. 그때 이런 말을 어느 누가 믿었겠어요. 하지만 저는 무모할지언정 자신감이 있었어요. 결과적으로 목표를 모두 달성했죠. 지금 해외 시장에서 브랜드를 알리겠다고 하는 이 목표가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남들이 볼 때는 가능하겠느냐고 하겠지만 말이에요. 카페베네, 할리스 당시 제 목표는 이것보다 더 불가능한 목표였어요. 오히려 그때보다 지금이 더 쉬운 거죠. 실제로 가시적인 성과가 나고 있고요.

 

무엇으로 기억되고 싶은지, 궁극적인 꿈이 무엇인지 말씀해주세요.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을 어렸을 때 많이 들었어요. 아버지께요. 또 항상 남들보다 조금 손해 보며 살라고도 하셨어요. 요즘대로라면 다 틀린 말이겠죠. 저는 워낙 어렸을 때부터 그런 말을 듣고 자라서 그 마음이 굳게 있는 것 같아요. 사명감을 갖고 있죠. 길을 만들면 후배들이 그나마 편하게 갈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걸 책으로도 보여주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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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하지 말고 선점하라강훈 저 | 다산3.0
매장 두 개로 존폐 위기에 처해 있던 ‘카페베네’를 브랜드 로고부터 인테리어, 메뉴까지 모두 개선하여 3년 만에 연 매출 1,000억 돌파, 업계 최초 500호점 돌파, 최단기간 최다 매장 돌파를 기록하며 국내 커피 시장의 역사를 새로 쓴 대한민국 ‘커피왕’ 강훈! 그가 돌연 연 매출 1,000억 원대 커피 브랜드를 버리고, ‘망고’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폭발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망고식스 창업기’와, 포화된 국내 카페 시장을 버리고 세계 무대를 향해 도전하는 강훈의 ‘사업 신화’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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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주은 교수 “기호 있는 사람이 재밌게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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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셰프 전성 시대다. 공중파, 종편, 케이블을 가리지 않고 셰프가 등장한다. 요리를 향한 대중의 관심이 요즘처럼 높았던 적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맛 자체를 향한 관심이라기보다는 요리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에 사람들은 더 열광하는 것 같다. 언제 어떤 사람과 누가 만든 요리를 어떻게 즐겼는지, 그러니까 요리를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에 사람들은 끌린다. 다소 식상한 비유지만, 식구라는 말에서 보듯 음식은 관계이고, 관계는 곧 삶, 요리는 인문학이다. 그래서 요리는 문학, 영화, 회화 등에서 등장하는 단골 소재였다.

 

공감하는 글쓰기로 많은 사람에게 미술 작품을 소개해온 이주은 교수가 『미감』을 냈다. 빨간 표지가 인상적인 이 책에는 ‘미감’이라는 단어가 세 가지로 새겨져 있다. 우선 한글로 미감이 있고 한자로 美感 그리고 味感이 차례로 적혀 있다. 저자는 이에 대해 프롤로그에서 “음식 이야기와 예술작품을 같이 버무린 이 책은 우리의 빈약해진 미감味感을 미감 美感으로 승화시켜줄 것이라 믿는다.”라고 쓴다. 

 

『그림에, 마음을 놓다』, 『당신도, 그림처럼』, 『다, 그림이다』에서처럼 이번 책에서도 이주은 교수는 친근한 문체로 작품을 소개한다. 차이가 있다면 책에서 소개하는 작품은 모두 음식과 관계 있다는 사실. 미식가이면서 음식을 많이 그린 살라보르 달리를 비롯해 역시 미식가였지만 다소 기괴한 모습으로 요리를 표현한 파블로 피카소의 작품이 실렸다. 이외에도 빈센트 반 고흐, 클로드 모네, 장 프랑수아 밀레, 폴 세잔 등 서양의 유명 예술가를 비롯해 김홍도, 신윤복 등 조선의 화가, 장욱진과 배영환과 같은 현대 예술가의 다양한 작품을 소개한다. 미술 작품만을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 책에는 <카모메 식당>, <토리노의 말>, <중경삼림> 등 영화와 박범신 소설가의 장편 『소금』 등 문학 작품 이야기도 있다. 이렇듯 『미감』은 신선한 재료로 만들어낸 풍성한 12첩 반상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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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를 잃어버린 사람을 위한 책


음식에 초점을 맞춘 계기가 궁금합니다.


원래 예술 작품에 나타난 음식 재료에 관심이 많았어요. 음식의 상징성에 관해 쓴 글로 학술 발표를 하기도 했고요. 먹는 게 감각적인 행위잖아요. 음식 재료가 섹슈얼리티를 상징할 때도 잦고요. 학생들도 정물화에서 나타난 음식의 상징, 이런 이야기를 좋아해요. 재밌게 듣고요. 미술만이 아니라 문학, 영화에도 요리가 자주 등장해요. 예로, 영화 <나인 하프 위크>는 지금 봐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트렌디한 작품인데요. 그 작품에서도 음식이 에로틱하게 등장하죠. 음식은 다양한 랭귀지를 갖고 있습니다. 이런 소재를 생각하면서, 공부하면서 『미감』을 쓰게 됐죠.


이준 셰프가 『미감』에 참여했는데요. 많은 셰프 중에서 이준 셰프가 함께한 이유는?


그림만으로는 요리가 잘 보이지 않을 것 같았어요. 실제 요리를 사진으로 찍어야 요리를 더 잘 표현할 수 있겠다 생각했죠. 이준 셰프는 미국에서 돌아오자마자 우리나라에서 다양한 실험을 했던 사람이에요. 스토리텔링이라는 말이 유행하기 전에 요리에 스토리텔링을 결합한 셰프였죠. 개인적으로는 교수 모임에서 소개받았는데, 글 쓰는 동안은 정신이 없어서 미처 연락하지 못했어요. 운명인지, 잡지에서 우연히 이준 셰프가 쓴 글을 봤어요. 그래서 연락했더니, 이준 셰프도 관심 있어 했고 흔쾌히 승낙했죠. 이준 셰프는 정말 성실해요. 이야기도 잘 통했고요. 같이 나눈 요리와 삶에 관한 철학적인 이야기를 대담 코너에 실었어요.


『미감』은 어떤 독자를 염두에 두고 쓰신 책인가요.


처음부터 독자를 생각하고 쓰진 않아요. 쓰고 싶은 글을 쓰고, 나중에 책을 낼 때는 정리하고 다듬죠. 메모 같은 글은 세련된 문체로 바꾸는데, 그때는 독자를 생각해요. 『미감』을 쓸 때는 기호를 잃어버린 사람을 떠올렸어요. 저도 뭐가 먹고 싶은지 잘 안 떠오르는 사람인데요. 그래도 삼시세끼는 어떻게든 먹죠.


먹고 싶은 걸 잘 떠올리는 사람들이 부럽더라고요. 후배나 학생 중에 먹을 거에 관해 아이디어가 풍부한 사람이 있는데요. 그런 사람들에게는 유사함이 있어요. 재밌게 살아요. 맛에 관심 있는 사람은 재밌게 산다는 가설을 내리고 관찰했더니, 결론도 똑같이 나왔어요. 결국 기호가 생기면 재밌게 살 수 있다는 의미일 텐데요. 『미감』은 어쩌다 기호를 잃어버리게 됐는지, 어떻게 하면 다시 찾을 수 있는지를 함께 생각해보는 책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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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으로 채우는 게 정신 건강에도 좋아


계란을 좋아하시고, 계란 같은 글을 쓰고 싶다고 쓰셨습니다.


제가 도시락을 싸던 세대라 그런지, 계란이 없으면 뭔가 빠진 느낌이에요. 계란이 푸짐해 보이잖아요. 아무리 맛집이라도 계란이 없으면 저는 별로더라고요. 또 제가 매운 걸 잘 못 먹어서, 낚지볶음이나 주꾸미에 계란찜이나 계란탕이 나오면 정말 반가워요. 계란이 매운맛을 덜하게 하죠. 넣은 것과 안 넣은 것의 차이가 정말 큰 게 계란이니, 저도 계란 같은 글을 쓰고 싶어요. 글만이 아니라 관계에서도 사람들에게 계란 같은 기분을 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하고요.


『미감』에는 영화, 문학, 미술 그리고 교수님의 지인 이야기 등 다양한 소재가 등장합니다. 그래서 풍성한 느낌을 주는데요.


저는 생각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요. 산만하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산만함을 제 타입으로 만들어서 글을 쓰죠. 그림 볼 때나 수업할 때 하나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영화, 책에서 봤던 게 동시다발적으로 생각나요. 하나의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비슷한 주제로 여러 이야기를 한 꼭지씩 썼어요. 책이 산만해질 수도 있어 디자인과 구성에 신경을 썼습니다.
 
처음에는 가장 중요한 내용을 넣을 때가 많습니다. 달리를 선정한 이유를 말씀해주세요.
 
달리가 워낙 요리에 관심이 많았어요. 달리, 모네, 피카소가 소문난 미식가인데 이중에서 피카소는 요리를 먹음직스럽게 그리진 않았어요. 모네 그림은 찾아보니 의외로 작품이 많이 없었고요. 달리는 음식과 사람이 섞여 있는 그림을 그렸는데, 생각하는 방식이 귀엽잖아요. 양갈비와 여자친구를 같이 놓는다는 발상이 대표적인데요. 예술가의 독특한 점인데, 어울리지 않는 걸 함께 묶거든요. 일상적인 개념을 확 뛰어넘어서 많은 사람에게 엄청난 즐거움을 주죠. <양갈비를 걸치고 있는 갈라>가 그런 예가 아닐까 싶어요.
 
두 번째는 술을 꼽으셨습니다. 교수님 술 즐기시나요?


저는 폭음은 안 하고요. 저녁에 반주를 해요. 살찐다고 해도 에라 모르겠다 내일 아침에 운동해야지, 하면서 한 잔씩 마셔요. 제법 마실 때도 있어요. 탈고했을 때요. 원고 넘기면 신나서 기쁨이 몰아칠 때는 좀 과음을 합니다. 원고 마감했다고 친구에게 전화하면 그 친구가 섬뜩하면서 컨디션을 마시고 나타나요. (웃음) 예전에는 잘 안 마셨는데 요즘은 막걸리 같은 탁주도 마셔요. 섞어 마시진 않아요. 머리 아프니까요. 종류 가리지 않고 술은 골고루 다 좋아해요. 배갈도 좋고요. 예술가들과 술 마실 때는 오래 마시기 해요. 추천사 써 주신 사석원 선생님과 곧 마셔야 하는데 그때는 컨디션을 두 병 챙겨야 할 것 같아요. (웃음)


다양한 이야기가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에피소드를 꼽는다면?


영화 <카모메 식당>을 비행기 타고 가면서 봤는데요. 잔잔한 작품인데, 오니기리를 먹는 장면이 그렇게 맛있어 보이더라고요. 든든해 보이고요. 긴장할 때 어떤 사람은 안 먹는다고 하던데, 저는 먹는 편이거든요. 중요한 발표를 앞두고 먹어두면 덜 떨리고요. 마음이 허할 때는 냉면집 육수가 생각나고. 음식으로 채우는 게 정신 건강에도 좋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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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반복되는 삶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시도


‘인간의 숙명을 씹어 삼키고 싶다면’에서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과 예술을 논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는데요. 예술은 인생에서 어떤 역할을 하나요.


영화 <토리노의 말>은 지루한 영화지만, 의미심장한 작품입니다. 영화에서처럼 인생은 반복이에요. 아침에 옷 입고 일하고, 밥 먹고, 옷 갈아입고, 자고… 수레바퀴 돌 듯 살고 있잖아요. 그렇게 살다가도 언젠가는 진짜 좋은 날이 오겠지, 파라다이스가 오겠지, 구원이 오겠지, 종교는 그렇게 말하지만 니체는 아니라고 하죠. 니체는 내세를 안 믿어요. 오히려 어제 선택한 걸 오늘도 선택한다면, 잘 사는 거라고 이야기해요.


우리 인생이 그래요. 오디세우스처럼 배 타고 항해할 거야, 하고 말하지만 막상 진짜 실천하는 사람은 많지 않잖아요. 구원을 꿈꾸고 희망을 품으며 언젠가는 뭘 하겠다는 생각보다는 차라리 반복되는 삶 속에서 오늘 하루 최선을 다하고 누릴 수 있는 기쁨을 모두 누리는 게 오히려 행복하지 않을까요. 예술은 이런 삶에서 의미를 찾아보려는 시도라고 생각해요. 감자만 먹으면 너무 목이 막히니까, 커피도 조금 마셔야 하듯. 예술은 정말 고통이지만, 그 고통이 없으면 삶이 너무 의미가 없어질 듯한 그런 거예요.


이 책에 소개된 작품, 작가는 어떤 위치에 있다고 평가하시나요.


여기에 나온 미술가들은 어떻게든 경계를 넘어섰던 사람이에요. 색으로 감정을 혼합해내려 했던 예술가죠. 이 책에서는 감각 외에 감정도 이야기했어요. 셰프가 재료로 요리하듯 미술가는 색채와 감정으로 상상하며 표현해내죠. 그들만의 감정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우리도 읽고 느낄 수 있는 함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예술 작품이고요.
 
방송에서나 일상에서 셰프 전성시대 같아요. 사회가 이렇게 먹거리에 관심이 많은 현상을 어떻게 이해하시나요.
 
맛 자체보다는 맛에 관한 이야기에 관심이 많은 듯합니다. 우리가 그동안 정신없이 내달리며 살면서 급하게 살아가느라 다 놓쳤잖아요. 이제는 기억하고 싶고 추억하고 싶죠. 누구랑 무엇을 먹었는지를 기억하고 싶다 보니, 감성적인 면에 관심이 생겨요. 맛에 관한 이야기가 풍족해지는 건, 결국 인문학의 일환이겠죠. 팩트, 정보만으로 사람을 이해할 수 없잖아요. 그 사람을 이해하려면 이야기화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직장에서 지각했다는 팩트만으로는 그 사람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잖아요. 왜 지각했는지를 물어봐야겠죠. 너무 나뭇잎이 푸르러 자연을 감상하다 늦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그 사람이 팍 이해가 가죠. 가치관 균형을 이루려면 이야기로 접근해야 해요. 『미감』에도 많은 이야기가 있어요. 가명으로 실은 제 지인 이야기도 있고요.
 
나이 듦, 죽음을 비중 있게 서술하셨습니다.


순간순간 늙음을 경험해요. 여기저기 아픈 데도 늘고, 자연스럽게 나이 듦에 관해 생각하게 됐어요. 어느 순간 제가 나이 들어 있는 위치에 있는데, 우아하다고 생각할 때도 있죠. 그런데 젊을 때는 안 추한데 나이 들어서 하면 추해지는 행동이 있어요. 젊었을 때는 어떤 것도 다 귀엽잖아요. 나이 들어서는 새로운 미덕이 필요하다는 깨달음이 생겼죠. 누구나 추하게, 천하게 늙기는 싫잖아요. 그래서 우아하게, 아름답게 늙어가는 것에 관해 고민하고 있어요. 죽음도 그렇죠. 우아하게, 잘 죽고 싶어요.


이준 셰프에게 웰 다잉을 물으셨는데, 교수님께서 생각하시는 웰 다잉은 무엇인가요.


미국에서 본 묘비 중에 인상적이었던 게 ‘She was so sweet.’였어요. 저도 거창한 업적보다는 누군가에게 사랑스러운 사람으로 기억에 남고 싶어요. 그렇게 한 줄기 빛처럼 남아 있다면, 충분하지 않을까요. 사랑하는 이에게 사랑스러운 여자로 기억되고 싶네요.


마시멜로 빨리 먹어도 괜찮아


미술사를 전공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한때 카피라이터도 생각해 보셨다고 하던데요.


엄청난 문학소녀는 아니었지만, 추리소설을 많이 읽었어요. 제가 자랄 때는 추리소설을 못 읽게 하는 분위기였지만 좋아했죠. 추리소설과 미술 작품 읽는 방식이 비슷해요. 단서를 찾고 이야기를 만들어가잖아요. 미술 작품도 아주 추상적인 작품 빼놓고는 단서를 찾아야 하거든요. 그래서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미술사를 전공하게 됐죠.


카피라이터가 됐다면, 노력했을 거 같아요. 글에는 지금도 그렇지만 신경을 많이 썼어요. 책 쓸 때도 만약 독자가 내 책에서 밑줄 그을 때가 한 줄도 없으면 어쩌지, 각인될 문장을 쓰려고 늘 노력을 해요.


2~3년마다 꾸준히 책을 내고 계신데요. 교수님께 책이란, 글쓰기란 어떤 의미인가요?


글쓰기는 일상이에요. 수업 때 다하지 못한 이야기를 글로 써요. 감동이 넘쳐서 정리하고 싶을 때도 글로 쓰고요. 특히 혼자 영화 볼 때는, 감상을 이야기할 사람이 없잖아요. 기록해놓는 거죠. 그런 것들이 글쓰기로 이어졌고, 글이 모이면 책을 내죠. 책은 좀 더 신중하게 냅니다. 인쇄물이니까요. 많이 다듬죠.


『미감』은 선생님 저술 활동에서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요?
 
늘 제가 하던 말이 ‘카르페 디엠, 지금 이 순간을 즐기자’인데요. 『미감』에도 제 가치관이 담겼습니다. 인생이 길다 보니, 단면단면이 무시될 수 있는데 사실 오늘 내가 뭘 먹었는지와 뭘 했는지가 인생을 구성합니다. 니체의 영원회귀처럼 단면단면이 행복하면 긴 인생도 행복할 수밖에 없어요. 저는 지금을 희생하자는 주의가 아니거든요. 마시멜로를 빨리 먹어버리는 사람이죠. 빨리 먹어버리는 쪽과 참는 쪽 두 가지 태도에는 장단점이 있지만, 이 순간을 즐기면서 맛있는 것부터 먹고 힘든 줄 모르고 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예술 외 다른 글을 써 보실 욕심은 없는지요.


나중에 은퇴하고 몰입해서 긴 글을 쓸 수 있다면, 범죄소설 한 번 써보고 싶어요. 예술작품에 관한 걸 엮어서 하면 재밌지 않을까 해요. 제가 잔인한 장면 묘사도 잘할 것 같거든요. 영화도 <킬 빌> 같은 작품을 유심히 보는 편이고요.


방학, 휴가철 미술관 찾을 사람 많을 텐데. 어떻게 보면 좋을까요.


데이트로 많이 가시잖아요.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가면 좋겠어요. 이미지 앞에 생으로 서면 두려울 수 있는데, 도슨트 활용하시면 좋아요. 두려움을 깨기까지가 조금 힘든데, 남자친구나 여자친구와 다니면서 친숙해지려고 애쓰면 금방 이미지가 뿜어내는 신비로운 이야기를 스스로 볼 줄 알게 되어요. 도슨트를 활용하셔도 좋고, 책도 도움이 될 거예요. 제가 쓴 책을 포함해서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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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감이주은 저 | 예경
스토리텔링 창작 요리로 유명한 이준 셰프와 미술사가 이주은 교수는 이 책에서 우리 마음 속 감정과 관련된 12가지 주제(자유, 절제, 슬로라이프, 버팀, 나이듦, 자아발견, 가벼움, 추억, 소통, 본능, 뒤엎음, 편견)를 바탕으로 그림과 요리를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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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주역들, 다시 뭉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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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행과 상관없이 드물게 마니아를 만드는 작품들이 있다. 영화, 소설, 드라마 등에서 발견되는 이런 작품들은 이른바 ‘폐인’을 양성하며 존재감을 발휘한다. 작중 등장인물의 섬세한 내면에 집중하는가 하면, 잠깐 등장했던 소품이나 어떤 장치가 극의 흐름에 아주 중요한 요소로 해석되기도 한다. 흥미로운 것은 그것이 작품 제작자의 의도와 무관하게 발견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특히 영드, 미드나 특정 감독의 영화는 이런 팬층이 무척 두터워 애써 특이한 사례로 볼 일도 아니다. 하지만 국내 드라마는 어떤가? 드라마를 통해 스타가 탄생하고, 새로운 문화가 유행한다 하더라도 드라마 자체로 종영 후까지 이야기되는 사례는 드물 것이다. 다중인격장애라는 소재를 다루며 음악과 조연 캐릭터까지 두루 화제가 되었던 드라마<킬미힐미>는 그래서 주목할 만하다. 지난 7월 7일, 주인공 오리온(황정음)의 집으로 촬영했던 ‘쌍리’에서 진행된 <킬미힐미> GV에는 ‘미미’(<킬미힐미>팬들을 가리키는 애칭) 70명이 초대되었다. 함께 자리한 감독 및 스태프들과 함께 드라마의 디테일과 숨겨진 이야기를 상세하게 나누며 종영의 아쉬움을 달랬다.

 

가장 먼저 김진만 감독은 “‘미미’ 여러분 너무나 반갑고요. 오늘은 7월 7일, 우리가 만난 지 6개월 되는 날입니다. 6개월 맞이 행사를 크게 하자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DVD가 나오기 전이지만 직접 여러분들에게 설명도 하고 싶고 해서 이런 자리를 마련했습니다.”라고 말하며 반가움을 전했다.


김진만 감독이 즐겨 쓰는 표현이 있다. ‘퍼즐’ 비교인데, “작은 조각라도 그 조각이 있어야 큰 그림이 완성되는 것처럼 묵묵히 양보해주고, 희생해준 배우와 스태프가 없었다면 <킬미힐미>는 없었다.”고 말한 것이다. 김진만 감독은 스태프들을 “<킬미힐미>의 숨은 공로자”라고 소개했다. 함께 자리한 원혜정 미술감독, 정승우 촬영감독, 김수한 음악감독이 차례로 소개되었고 무대 뒤편에서 무술감독 및 다른 스태프들도 함께 박수를 보냈다.

 

주인공 차도현 역을 맡았던 배우 지성이 등장하자 큰 환호성이 ‘쌍리’를 가득 채웠다. 쑥스럽게 인사를 전하며 “반갑습니다. <킬미힐미>가 끝나고 얼마 안 됐는데, 몇 년 지난 것 같은 기분이에요. 개인적으로 많이 아쉬웠는데 이런 자리가 있어 오기 힘든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왔습니다. 함께 <킬미힐미>만들며 고생한 식구들과 많은 사랑을 주셨던 우리 ‘미미’분들이 계시니까요. 우리는 의리잖아요.(웃음) 지금 말씀은 못 드리겠지만 좋은 영화로, 열심히 하는 연기로 여러분들에게 보답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주인공 오리진 역을 맡았던 배우 황정음은 “이렇게 많이 와주셔서 감사드리고요. 감독님이 정말 너무 열심히 만들어주셔서(웃음). 천재 감독님, 사랑합니다.”라며 특유의 애교로 인사를 전했다.

 

차도현의 유학시절 주치의이자, 오리진의 지도 교수 석호필 역을 맡았던 배우 고창석은 “인사를 드리게 될 줄 몰랐습니다. 이런 모습이라(웃음). 뜻 깊은 자리 되시기를 바랍니다.”라고 유쾌하고 친근하게 인사했다.

 

오리진, 오리온 남매의 어머니 지순영 역할을 맡았던 배우 김희정과 아버지 오대오 역할을 맡았던 배우 박준규가 함께 등장했다. 김희정은 먼저 “‘쌍리’까지 오시느라 너무 고생 많으셨고요, 작품이 끝났는데도 이렇게 응원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며 배우 박준규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박준규는 “hello, how are you, guys.”라고 인사말을 전해 좌중에게 큰 웃음을 주었다. “벌써 6개월 됐다고요? 대단합니다. 저도 이런 작품에 출연할 수 있어서 정말 기쁘고요. 감사합니다. 여러분 사랑해요.”라고 인사를 전하며 무대에서 내려갔다.

 

차도현의 비서 안국 역할을 맡았던 배우 최원영은 “반갑습니다. 이렇게 큰 행사인 줄 모르고 감독님 연락 받고 왔는데, 감독님 팬 미팅이었네요.(웃음) 드라마가 끝났는데도 이렇게 만날 수 있어 반갑습니다. 오랜만에 옛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고맙습니다.”라는 인사를 전하기도 했다.

 

‘미미’들의 심도 깊은 질문이 이어졌다. 드라마 촬영의 특성 상 충분히 준비하거나 사전에 계획하지 못하고 찍었던 장면들을 다양한 방향으로 해석하는 ‘미미’들에게 당황하기도 하고, 변명의 말을 전하기도 하는 흥미로운 자리였다.


무엇보다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 하나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 숨은 곳에서 애쓴 스태프들. 그들이 전하는 <킬미힐미>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다음은 그들과의 인터뷰 내용이다. 드라마를 보지 않았던 사람이라도 흥미가 동하는 내용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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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한 음악감독 인터뷰


김진만 감독님의 비밀 시놉시스는 배우 지성 씨와 음악감독님에게만 공개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음악감독님은 그 시놉시스를 보시고 OST를 어떻게 구상하셨는지 궁금합니다. 특히 이름을 제목으로 하는 <I am Cha Dohyun> 과 <I am Shin Segi> 음악들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궁금해요.


비밀 시놉은 처음부터 저에게 알려주지 않았어요. 드라마 진행 되면서 그래도 다른 스태프 보다는 제가 먼저 알았지만요. 처음에는 몰랐어요. 음악 컨셉을 얘기하기 전에, 제가 이 일을 18년째 하고 있는데 이 작품 음악 작업이 두 번째로 힘들었던 것 같아요.(웃음) 너무 힘들었어요. <Kill me>와 <Heal me>는 시놉시스를 보고 처음에 만들었어요. 컨셉은 뻔하지 않은 음악이어야 한다는 것이었고요. 코믹이라고 해도 마냥 가볍지 않은 것, 감정이 깊어진다고 해도 너무 절절하지 않은 것 등 저만의 몇 가지 기준이 있었어요. <Kill me>와 <Heal me>를 처음 만들고 김진만 감독님에게 들려줬을 때 감독님도 좋아하더라고요. 그래서 이 곡들을 이 작품 음악의 톤이라고 생각하고 다른 음악을 이 곡들에서 출발해 만들었어요.


<I am Cha Dohyun> 과 <I am Shin Segi> 같은 곡들의 제목은 나중에 지었어요. 처음에 감독님과 얘기한 것은 이 드라마는 차도현이 살아야 드라마가 산다는 것이었죠. 그래서 도현에게 굉장히 우호적인 음악,  <I am Cha Dohyun>은 거기서 나온 거예요. 그러나 말씀 드렸듯이 너무 절절하게 하고 싶진 않았고요. 신세기는 일을 벌여놓고 차도현을 힘들게 하고, 못된 면도 있는 캐릭터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슈퍼맨과도 같은 캐릭터죠. 때로는 속도 후련하게 하고요. 그것에 착안해서 만든 음악이 <I am Shin Segi>이에요. 신이 나기도 하고, 어떨 때는 살짝 긴장으로 접어들고요. 굉장히 긴 곡인데, 그 안에 그런 느낌을 다 집어넣었어요.

 

OST <환청> 끝부분에 가수 장재인 씨의 웃음소리가 나와요. 서늘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천진난만한 웃음소리 같기도 해요. 음악감독님께서 의도하신 부분이 있으신가요?


원 작곡자에게 이 곡을 받았을 때 그 안에 웃음소리가 들어있었어요. 물론 작업하는 과정에서 몇 번 수정되기도 했죠. 가사도 그렇고요. 그러한 과정에서도 웃음소리는 그대로 두었어요. 드라마에 처음부터 아역들이 등장하는 건 아니었거든요. 드라마가 깊어지면서 어린 도현과 어린 리진이 나온 건데요. 그 웃음소리가 묘하게 하늘로 사라지면서 퍼지는 느낌들이 굉장히 아련했어요. 의외의 반응이었죠. 방송 나가기 전에 영상을 보고 음악을 붙이다보면 수십 번 씩 그 장면을 보잖아요. 대개의 곡들은 몇 번 보면 흔히 말해 벌써 약발이 떨어져요.(웃음) <환청>은 희한하게 오래 가더라고요. 수십 번을 봐도 볼 때마다 새롭고, 이 곡에 이런 부분이 있었는지 새삼 생각하게 돼요.

 

이 곡에 나쑈의 랩이 등장하죠. 가사가 드라마 주제와 잘 맞아서 좋아하는 분들도 많았지만 드라마와 안 어울린다는 이야기도 있었다고 해요. 감독님은 랩을 듣고 처음 어떠셨어요?


랩 부분에 대해서는 참 이야깃거리가 많은데요. 처음에는 신세기 테마곡이었어요. 감독님도 그렇게 주문을 했었고요. 분노의 표출을 음악으로 표현해야 하니까 인상적인 멜로디와 폭발적이고 파워풀한 랩을 컨셉으로 잡고 곡을 만들게 된 거죠. 처음에는 나쑈가 랩을 해서 왔는데, 우리의 의도와 너무 달랐어요. 목소리 톤도 얇고, 한국어로 가사 전달을 하려다 보니 어색한 부분도 있었고요. 그래서 20부 동안 노래를 쓰면서 랩까지 다 내보낸 경우가 몇 번 안 돼요. 거의 장재인 씨 노래 부분만 내보내고 그랬죠. 그런데도 불구하고 어떤 특별한 장면에는 랩이 붙으면 깜짝 놀랄 정도로 소름 돋는 경우가 있었어요. 랩의 가사가 이 드라마의 모든 것을 다 말해주는 것처럼 들리더라고요. 다른 곡들도 마찬가지지만 물론 가사 작업할 때는 가사에 정말 신경을 많이 썼어요. 드라마와 동 떨어진 곡은 싫었거든요. 기본적으로 그런 부분에 많이 신경을 썼죠. 아마 랩이 드라마와 어울리지 않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그 톤 때문에 그랬지 않았나 싶지만 실제로 드라마에 대단한 기여를 했고, 무척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어쩔 땐 신세기가 등장하는데 BGM이 <I am Cha Dohyun> 이거나 차도현이 등장하는데 반대로 <I am Shin Segi>인 경우가 있어요. 그렇게 정하신 이유는 뭔가요?


김진만 감독님과 10년 넘게 함께 일을 하고 있는데요. 많이 싸우기도 하지만(웃음) 비슷한 부분이 있어요. 각 인물별 테마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거예요. 더구나 이번에는 차도현과 신세기가 하나였으니까요. 그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신세기라고 해서 왜 차도현이 가진 안쓰러움이 없겠어요. 그러니까 그건 크게 의미를 두지 않았어요.

 

OST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곡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해요.


<I am Cha Dohyun>이요.

 

이유는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는데요. 김진만 감독님의 연출관이 있잖아요. 대본에 상세한 지문이 있고, 배우가 그대로 연기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신데요. 마찬가지예요. 보는 사람이 느끼는 것이지 그걸 연기하는 사람, 만드는 사람이 거기에 함몰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음악도 마찬가지고요. 어떤 슬픔의 감정을 끌어내기 위해서 음악 자체가 너무 절절하고, 신파가 되고, 음량으로 밀어붙이는 그런 건 정말 싫었어요. 감독님도 저와 의견이 같았고요. 최대한 선선한 음악을 구상한 거죠. 판단은 보는 사람이 한다는 거예요. 그렇게 그 곡을 만들었는데요. 다른 드라마 입장에서 보면 그 정도는 슬픈 음악도 아닐 거예요. 아주 선선하니까요. 드라마는 물론 한 장면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고 맥락에서 봐야하죠. 그런 장면들에 <I am Cha Dohyun>을 붙여서 보면 오히려 더욱 슬프고, 40인조 스트링이 긁어대는 음악을 붙였을 때보다 훨씬 감동이 있더라고요. 저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닐 거예요. 그래서 그 음악에 애착이 많이 가요. 버전도 7~8개 이상 되고요. 편곡도 여러 가지로 해서 다양하게 썼죠. 기억에 많이 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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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우 촬영감독 인터뷰


어느 분석 글에서 차도현은 인물의 왼쪽얼굴이, 신세기는 오른쪽얼굴이 주로 나오게끔 카메라 각도를 잡아 시청자로 하여금 이질감을 느끼게 했다는 내용을 읽고 감탄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처럼 각 인격의 차별화를 위해, 오리진과 오리온의 캐릭터를 표현하기 위해 촬영 상 특별히 신경 쓰신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요?


사실 처음부터 치밀하게 계획해서 이루어진 건 아니고요. 전혀 다른 인격이 나오다보니 현장에서 어떻게 이 두 인물을 차별화시킬까 고민하는 과정이 있었죠. 정면은 대개 비슷하잖아요. 방향을 다르게 하면 느낌이 약간 달라져요. 그렇게 해보는 게 어떨까 해서 시도를 했죠. 배우도 그 부분을 좋아했고, 보는 분들도 좋아하셨고, 저희들도 만족했어요. 현장의 아이디어였어요. 사전에 그 계획을 하고 온 것은 아니었고요.


보통 촬영은 배우를 카메라나 현장에 제어하면서 찍을 수가 있거든요. 그런데 <킬미힐미>라는 작품을 들어갈 때, 인격이 다양하고 캐릭터를 무기로 삼아야 하는 작품이었기 때문에 가능한 카메라가 인물을 쫓아가면서 배우를 자연스럽게 두고 찍자는 게 컨셉이라면 컨셉이었어요. 그런 맥락에서 나온 것이죠.

 

한 배우가 다양한 인격을 연기하기 때문에 차별화를 도모했던 시각적 장치가 있었는지, 의도가 자연스레 궁금했거든요.


그렇죠. 저희도 끝까지 그 부분이 고민이었죠. 시간이 별로 없는데다가 이런 것들이 3, 4부 안에 거의 만들어졌기 때문에요. 보통 현장에서는 ‘3중 촬영’이라고 하는데요, 한 대의 카메라로 몇 번을 연기하면서 찍는 경우가 있고, 몇 대의 카메라로 한꺼번에 찍는 경우가 있잖아요. 이런 캐릭터, 세기와 도현 등 극 중에서 인격이 변할 때는 연결하기에도 그렇지만 배우가 최대한 한 번에 다 쏟아내게 하기 위해 카메라를 여러 대 설치해서 받아 냈던 거죠. 그런 정도의 노력은 사실 누구나 해요.(웃음)


드라마든 영화든 어떤 이야기를 영상화 하는 것인데요. 여러 가지 기술적 이유로 어느 부분까지만 연기하고 새로 찍는 경우가 있어요. 하지만 그렇게 되면 배우가 감정을 연결하기 어려울 수 있죠. 특히 이 작품은 여러 인격이 왔다 갔다 하기 때문에 더욱 그랬어요. 때문에 주어진 장소가 있으면 많게는 네다섯 대까지 카메라 세팅을 해서 한꺼번에 찍었어요. 그걸 위해 리허설도 하고요. 가령 이 지점에서 지성 씨가 어느 곳에 시선을 둘 것인지 서로 합을 짜고, 저도 어떤 장면에서 이 정도로 해주면 촬영이 괜찮을 것 같다는 식으로 의견을 말하기도 하고요. 아무래도 한 장면에서 배우가 자신이 가진 것들을 최선을 다해 연기하다 보면 좋은 이미지가 담기더라고요.

 

7인격 중에서 신세기 부분은 좀 다르게 보였어요. 신세기만 다르게 촬영한 부분이 있나요?


촬영 원본 소스를 편집해서 장면을 구성하잖아요. 우선 다양한 각도에서 인물을 찍는 거죠. 사이즈도 다양하게 하고요. 다양한 각에서 한 번에 인물을 담아내면 다양하게 편집할 수 있잖아요. 그러면 보시는 분들은 디렉션이 확확 바뀌는 느낌을 가질 수 있는 거죠. 과거 영상 문법에 의하면 라인이라든가 지켜야 하는 선들이 있었거든요. 그런 부분을 의도적으로 파괴하거나 넘어서 지성이란 배우가 신세기를 연기할 때 도움이 되도록 할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편집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다양한 디렉션의 소스가 많으면 편집 과정에서는 여러 재료가 많은 거니까요. 좋은 편집이 나올 가능성이 있겠죠. 저희는 같은 연기의 얼굴도 다양한 각에서, 다양한 사이즈에서 담아주고, 그걸 가능한 한 한 번에 찍는 거죠. 사실 그건 감독님과 저, 배우들이 모두 합의해서 의논해서 기술적으로 어느 정도 커버한 다음에 촬영이 들어간 거예요. 신세기라고 특수한 장비로 찍거나 그런 건 아니었어요. 

 

어떤 장면을 다르게 찍고 싶었는데 여건이 안 되서 하지 못 했던 장면도 있었을 것 같아요.


요섭이 빌딩 위에서 자살을 하겠다고 하면서 통화하는 장면이 있거든요. 그곳이 마포대교 근방에 있는 건물 옥상이었는데 무지하게 추웠어요. 이틀 전인가 밤샘 촬영을 하다가 장소 헌팅하러 갔는데 옥상에 올라갔더니 정말 아래도 쫙 내려다보이고 너무 좋더라고요. 그런데 엄청 춥고 바람이 많이 불었어요. 사실 그 장소를 보고 요즘 많이 사용하는 헬리캠을 써서 촬영하고 싶었거든요. 그 장면이 전화를 받고 오리진이 요섭을 찾아와야 하는 것이니까 전체를 보여주면 좋겠다 싶었어요. 결국 여건 상 안 됐죠. 바람이 너무 불어서 헬리캠을 쓸 시도조차 하지 못했죠. 촬영도 결국 하루에 끝내지 못하고 다음날까지 찍었어요. 그 장면은 그렇게 찍었다면 드라마가 조금 더 기름질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요.(웃음) 돈 쓴 티를 좀 많이 낼 수 있었겠죠.

 

돈 쓴 티요.(웃음)


제가 하는 일이 사실 돈 쓴 티를 내는 거니까요. 나이트클럽 장면이 그런 거였죠. 보조출연자 200~300명을 불러서 찍은 장면인데요. 클럽 분위기를 내야 하는데 하루 종일 찍을 수 없잖아요. 그때 제 아이디어가 장면을 찍은 후 클럽에 진짜 음악을 틀고 놀도록 하자는 거였어요. 그러면 사실 잘 놀 수 있는데 오디오 탓에 음악 다 끄고 춤만 추라고 요구하기 때문에 많은 드라마나 영화에 썰렁한 나이트클럽 장면이 많은 거거든요. 일단 음악을 틀고 찍자, 전화로 자기들도 안에서 막 찍고, 우리가 숨어서도 찍자 했죠. 그 장면이 드라마가 강한 장면은 아니었지만 분위기는 상당히 잘 찍혔던 것 같아요. 촬영하는 입장에서 그 장면이 대단히 가치 있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의외로 그 장면이 투입된 물량이 잘 표현되었고요. 그 장면을 보고 많이들 신나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촬영 된 장면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어떤 부분인가요?


그 나이트클럽 장면 뒤에 세기와 오리진이 택시 타고 가는 장면까지 이어지는 거거든요. 근데 그 뒷부분이 대본에도 없는 애드립으로 보는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냈던 장면이에요. 황정음이라는 배우의 깨알 같고 폭발적인 리액션으로 살린 장면이었어요. 그래서 만족하죠. 찍을 때 특별히 노력을 하고 이런 것보다 앞뒤가 잘 연결돼서 보는 사람들이 좋았다면 저도 만족합니다.

 

그렇다면 혹시 개인적으로 애착이 가는 장면, 공들여 찍은 장면이 있다면 들려주시겠어요?


오리온이 오리진과의 관계가 있잖아요. 고민하면서 거리를 걷는 장면이 있어요. 울기도 하고요. 그걸 홍대 거리에서 밤 12시 쯤 촬영한 것 같은데요. 보통 촬영을 하려면 차도 막고, 통제를 하고 찍잖아요. 제가 조명도 하지 말고, 차도 막지 말고, 스태프들도 최대한 숨고 찍자고 했죠. 요즘은 짐벌이라는 장비가 있으니까 그냥 연기를 하도록 했죠. 거의 200미터 이상 팔로우를 해서 끝낸 장면이 있어요. 그게 자연스러웠다고 말을 하더라고요. 인위적인 것 없이 거리에 있는 사람들도 제어하지 않고 찍었으니까요. 늦은 밤거리의 느낌도 잘 들어갔고요. 괜찮았던 것 같아요.

 

짐벌도 말씀하셨지만 다양한 장비들로 촬영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 중 가장 촬영하면서 힘들었던 장비가 있었나요?


특별히 힘들었던 장비는 없었고요. 메인 카메라는 비싼 장비예요. MBC에서 장비 지원을 잘해줘서(웃음) 크게 어려움 없이 찍었죠. 저는 원래 스타일이 메인 카메라를 중요시하진 않아요. 그건 원래 좋은 거니까요. 그냥 가볍게 부수적으로 쓸 수 있는 카메라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번에도 보면 세기가 차를 타고 질주한다거나 하는 장면이 있는데요. 보통 렉카에 차를 올려서 카메라 달고 찍잖아요. 이번에는 그런 경우는 별로 없었어요. DSLR로 제가 함께 타서 세기가 운전하는 것을 찍거나, 리깅이라고 하는데 차에 카메라 몇 대를 붙여서 찍거나 했죠. 카메라가 작아야 가능한 일이거든요. 작은 카메라들을 나름대로 효율적으로 잘 사용해서 찍었죠. 그 덕분에 스태프들이 잠도 좀 자고요.(웃음) 자는 게 중요하잖아요. 잘 찍고 자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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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혜정 미술감독 인터뷰


무당벌레 오르골은 지성 배우님의 의견이 반영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협찬과 관련 없이 미술 감독님이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따로 준비했던 소품은 어떤 것이 있나요?


촬영은 대부분 무척 급하게 이루어져요. 소품을 사전에 철저히 준비할 수 있는 건 솔직히 몇 가지 안 돼요. 촬영에 들어갈 때 나올 수 있는 대본이 3, 4회 정도까지 밖에 안 돼서 그 뒤의 소품은 미리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없어요. 이후 소품들은 대부분 현장에서 김진만 감독님이 결정하는 것들이 더 많았어요.

 

그렇다면 소품 준비하면서 있었던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글쎄요. 제가 현장에 많이 없어서요.(웃음) 소품 하나하나를 떠올리기는 힘들고요. 무당벌레 오르골 역시 김진만 감독님이 원래 오르골을 좋아하셔서 나오게 된 걸로 알고 있어요. 거의 감독님 아이디어가 많다고 보시면 돼요. 저도 미술감독이긴 하지만 주로 김진만 감독님 머릿속에 있는 것들을 듣고 정리해서 내보이는 것이 주로 하는 일이에요. 제 기억에 <킬미힐미>하면서 김진만 감독님이 오르골에 대해 꽤 애착이 있으셨던 걸로 알고 있어요. 그래서 OST에도 오르골 단독 연주도 들어가 있고요.

 

7화 옥상 장면에서 요섭이 그린 그림에 대한 질문이 많습니다. 일곱 인격 외에 다른 얼굴도 그려 있어요. 요섭이 요나를 긴 머리로 그린 것이나 페리박이 수염이 있는 것 등 인격의 방에선 다들 그렇게 이미지화 되어 있는 건가요?


그렇게 의도를 하긴 했죠. 하지만 말씀드렸다시피 대본이 빨리 나오지 않다보니 처음 기획 단계에서는 일곱 개의 인격이라고 했지만 요나 이후 나머지 5, 6, 7번 인격은 솔직히 초반에 확실하게 구현된 것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어떤 인격이 다음에 나오게 될 것인가를 협의하거나 김진만 감독님과 진수완 작가님이 계속 만들어가지 않았을까 싶어요.


7부에 등장했던 것은 아주 구체화된 이미지보다는 ‘이럴 것이다’하는 것으로 빨리 그렸던 거죠.(웃음)

 

차도현의 기억속의 지하실은 나무 바닥에 장난감이 가득 차 있었는데 실제 오리진이 있던 지하실은 콘크리트 바닥에 아무것도 없었는데 각각의 장난감은 어떤 의미로 채우셨나요?


제 판단에는 초반 기억속의 지하실은 우리가 늘 상상할 수 있는 것이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어린 아이가 갇혀 있었지만 어린 아이라는 것을 부각시키기 위해 장난감과 같은 것들이 필요하지 않겠느냐 생각해서 설정한 거고요. 후반에 나왔던 지하실은 솔직히 말씀 드리면 화제 장면이 더 중요했었어요. 그곳에서 화제가 중요했기 때문에 그것을 세팅하는 과정에서 그냥 그 집안의 어느 창고로 구성을 한 거예요.

 

미술팀에서 가장 신경 써서 준비하신 것은 무엇인가요?


아무래도 초반 1~4부를 가지고 시작하니까요. 그 대본을 가지고 준비한 것이 더 많았거든요. 가장 신경 많이 썼던 것은 도현의 집과 쌍리라는 공간이었어요. 남녀 주인공의 공간이기 때문에 그랬죠. 도현이가 극 후반에는 많이 부각되진 않았지만 사촌과 회사 내에서 후계자 자리를 놓고 대결을 하게 되는 그 공간까지 세 공간으로 나누어서 초반에 많이 준비를 했죠. 나머지는 대본이 나오는 것에 따라서 추가적으로 준비를 했어요.

 

컨셉에 맞는 소품들이 각자 다를 것 같은데요.


네. 도현의 공간 같은 경우 도현이가 일곱 가지 인격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공간이잖아요. 그걸 시청자가 느낄 수 있게 해야 하기 때문에 비정형적인 구조나 소품들을 놓으려고 했어요. 시청자로 하여금 그것이 불안해 보이도록 말이에요. 리진의 공간이나 쌍리 같은 경우는 그와 반대로 사랑스럽고, 안정적이고, 편안해 보이도록 구성했어요. 그래서 그 감각이 도현에게까지 전달될 수 있을 정도의 따뜻함이어야 했죠. 그렇게 중점적으로 했던 것 같아요.

 

페리 박 장면의 물풍선 유리병을 많이 궁금해 하시더라고요.


이건 급조된(웃음), 사전에 계획된 건 아니고요. 저도 ‘이게 뭐지?’ 싶을 정도로 갑자기 준비된 거였어요. MBC 소품 팀에 있던 것 중에 빨리 가져올 수 있는 것으로 한 거예요.(웃음)

 

그래요?(웃음) 이런 사실을 알면 팬들의 환상이 많이 깨질 것 같아요.


환상이 깨지죠? 그래서 미화시켜서 말씀을 드리고 싶은데 그러면 거짓말을 해야 하니까요.(웃음) MBC 소품 창고에는 어마어마한 게 많이 있어요. 거의 박물관 수준이니까 가능했죠. 오히려 처음부터 그것을 의도했다면 그 모양이 안 나왔을 수도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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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률 “죽을 때까지 내가 여행할 곳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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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껴 읽고 싶다.” 이병률의 여행에세이를 좋아하는 독자들의 이야기다. 이병률 작가가 세 번째 여행산문집 『내 옆에 있는 사람』을 펴냈다. 『끌림』,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가 해외편이었다면 이번 책은 조금 더 가까운 곳에서 만난 사람들 이야기다. 한겨울 태백에서, 비양도로 가는 배 안에서, 한적한 진안 버스터미널에서 마주친 인연들을 털어놓았다. 작가는 아무 날도 아닌 어떤 날에 여행을 떠나는 ‘생활여행자’다. 여행이 곧 삶이고, 삶이 여행인 일상을 산다. 20년 넘게 한 계절이라도 떠나지 않고 버틴 해가 없었다. 여행을 통해 많은 것을 느꼈으므로 그만큼의 빚을 갚기 위해 글을 쓴다. 작가는 “사랑하는 사람은 무엇으로도 침묵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가 떠나고 글을 쓰는 일을 반복하는 까닭이다.

 

“나와 많이 다른 사람 앞에서는 두렵다. 비슷한 사람하고의 친밀하고도 편한 분위기에 비하면 나와 다른 사람 앞에서는 본능적으로 속을 여미게 된다. 그럴수록 나와 같은 사람을 찾겠다면서 여러 시험지를 들이대고 점수를 매기는 게 사람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내가 좋아하는 기준과 중심들을 꺼내놓고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이해하는지 이해 못하는지를 시험하는 것은 참 그렇다. 사람은 저마다 다르고 각자의 박자를 가지고 살며 혼자만의 시력만큼 살아간다.”

 

 

자기 옆에 누가 있는지를 모르는 시대잖아요


2013년에 시집 『눈사람 여관』을 펴내고 2년 만입니다. 이병률의 여행에세이를 기다리는 독자들이 많았어요. 쓰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 때, 산문을 쓴다고 했는데. 『내 옆에 있는 사람』은 유독 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아요.


여행을 하다 보면 내가 사람다워진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그러면 글을 쓰게 되고요. 혼자 떠난 여행에서는 오히려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돼요.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그게 글이 되죠.

 

시를 쓸 때와 산문을 쓸 때, 어떻게 다른가요.


산문은 여행하면서 쓰는 것 같아요. 저는 여행하면서 사는 사람이니까 삶하고 되게 닮았겠죠. 하지만 시는 순간순간에 쓰는 것 같아요. 어떤 틈이 생기고 그 틈 안에 뭔가 좀 보일 때. 그걸 받아 적다 보면 시가 돼요. 시는 쓰면서 굉장히 긴장해요. 소리 내서 많이 읽어야 하고. 뭔가 미학적인 걸 쌓아가기 위해서 시간을 기다리면서 써요. 반면에 산문은 과거의 것들이나 최근의 무언가를 떠올렸을 때 ‘아 쓰고 싶다’는 생각에서 하나하나 매듭을 지어가는 일인 것 같아요.

 

『끌림』,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에서 『내 옆에 있는 사람』까지. 제목만으로도 위로를 받았다는 독자들이 있어요.


이번 책은 제목이 늦게 정해졌어요. 확정된 제목이 따로 있었는데 ‘당신을 버린다는 것’이었어요. 글 쓰는 친구들이 이 제목 안 쓸 거면, 자기들이 쓰고 싶다고 장난스럽게 싸우기도 했는데요. (웃음) 요즘 시대가 어려우니만큼 긍정의 의미를 담는 게 낫지 않냐는 의견들이 많았어요. 전작에서 그런 느낌들을 많이 줬기 때문에 이번에는 좀 달라도 되지 않을까 싶긴 했는데. 지금 이 시간에서는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어울리는 것 같았어요. 요즘 자기 옆에 누가 있는지를 모르는 시대잖아요. 외로워하면서도 자기밖에 모르고, 자기 세계 안에 들어가 있고. 실속 있게 사는 건지, 자기애에 온전히 갇혀있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무슨 일이 생기면 당황하면서도 누군가에게 손을 뻗을 생각을 못하는 걸 보면, 되게 안타까워요.

 

“내가 잘하는 건 돌아다니는 일”이라고 말한 적이 있어요. 이 책 또한 돌아다니지 않았으면 나올 수 없는 책이고요.


아무리 바빠도 일부러 시간을 만들어요. 돌아다니는 시간을요. 그게 제가 살아가는 법이기도 하지만, 살아남는 법이기도 하고, 살아지는 법이기도 해요. 바쁘게 살다가도 떠나면 안 되는 시기가 와요. 20년 넘게 제 몸에 배어있는 거기도 하고. 익숙한 거죠. 주변 사람들은 이제 이런 제 모습을 다 알고 이해해줘요. 다녀오면 얼굴이 좀 다림질이 되니까요.

 

주로 혼자 여행을 다니지만, 여행지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사귀는 일을 주저하지 않는 것 같아요.


저를 자극시키고 첫 단추를 꿰게 하는 건 사람인 것 같아요. 작가라는 게 혼자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직업이잖아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온기에 의해서 무언가가 촉발될 때가 많아요. 어떤 사람을 만났을 때 온기가 스치면, 그걸 확대 해석하고 필요 이상으로 가열된 상태가 될 때가 있어요. 상대는 아무 감정 없이 던진 말이나 행동일 수도 있는데 말이에요. 가끔은 내가 너무 과장해서 쓰고 있는 건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모든 인간관계는 적당한 오해, 오해의 행진이잖아요. 예전에 <인간극장>이라는 다큐멘터리가 있었는데, 저는 그걸 볼 때마다 눈물바람이었어요. 지금 시대에는 맞지 않는 감각일 수 있지만, 저는 그래요. 글 쓰는 사람들 중에 제일 울컥을 많이 하는, 그런 사람인 것 같아요.

 

가끔은 그런 성격이 피곤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 않나요?


있어요. 내가 필요 이상으로 너무 많이 붙들고 있구나, 그런 생각을 해요. 하지만 이런 감정을 갖게 되는 건 제가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에요. 그게 나쁜 감정일수도 좋은 감정일수도 있고요. 저는 안 좋은 일도 오래 가져가는 편이에요. 뒤끝이 있어요. (웃음) 하지만 이게 인간적이라고 생각해요. 부끄러운 일도 아닌 것 같고요. 저는 질투도 해요. 청춘에 대해서 많이 질투해요.

 

청춘을 부러워하세요? 요즘은 젊은 사람들이 살아가기가 너무 힘든 시대라서, 청춘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지 못했어요.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저는 어릴 때 너무 아등바등하면서 진지하려고만 했거든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문예창작학과에 들어갔는데, 기본이 안 되어 있는 상태에서 너무 거대한 것들이 쏟아진 거죠. 선배들이 이거 읽어라, 저거 읽어라 하고 책들을 던져주는데 따라가기가 쉽지 않았어요. 시인 지망생으로 살아갈 때였으니까 진지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기도 하고요. 30대 중반이 넘어서 알게 된 건, ‘난 A형이니까 유머감각을 길러야 해’였어요. (웃음) 노력을 했어요. 남한테 웃음을 좀 주면서 살아야겠다고요. 낙천적인 성격도 좀 돼보려고도 했고. 그래서 요즘 중고등학생들을 보면 아름답고 예쁜데, 아려요. 중고등학교 수업 의뢰가 들어오면 아무리 멀리 있는 학교라도 꼭 가려고 하는 이유이기도 해요.

 

시집 『눈사람 여관』을 펴내고 독자와의 만남 행사를 했을 때, 시낭독축제에서 만났던 남고생 3명을 초청했잖아요. 학생들이 시를 읽는 모습을 되게 기분 좋게 바라보고 있어서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짜장면 사주고 싶어서 불렀어요. (웃음) 그 친구들이 작은 무대라도 사람들 앞에 서보게 하고 싶었고요. 그런데 시를 까먹어서 실수하고 못 받아 치고, 난장판이 됐거든요? 하지만 전 좋았어요. 그들에게도 특별한 기억으로 남았을 것 같고요.

 

이번 책은 유독 여행 중에 만난 사람들 이야기가 많아요. 오랜 펜팔친구를 만나게 된 이야기, 우연히 헤어진 연인들과 함께 밥을 먹게 된 일 등. 떠나지 않았더라면 만날 수 없고, 있을 수 없는 일들이에요.


여행을 하다 보면 그런 고리들이 자연스럽게 생기게 돼요. 얼마 전에 어떤 한 센터에서 일하는 선생님께서 강연 요청을 하셨어요. 어린 친구들을 만나는 자리라서 흔쾌히 나갔어요. 애들을 재밌게 해줘야 하는데, 그렇게 못하니까 “잠만 자지 마라”고 했어요. 강연을 마치고 선생님께 이야기를 들어 보니 형편이 조금 어려운 친구들이더라고요. 식사 때도 지나고 해서, 옆에 있던 남학생 둘한테 “아저씨 다음에 또 오면 차이나타운 데려가 줄 수 있어?”라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답을 안 해요. 쑥스럽고 이상한 거죠. 그래도 전화번호를 남겼고, 실제 만나러 갔어요. 같이 밥도 먹고 사진도 찍었어요. “너희들 사진 찍어도 돼?”, “이 사진, 책에 실어도 돼? 그런데 잘 안 나오면 책에 안 넣을 수도 있어”라고 했어요. 애들은 어리둥절해하죠. (웃음) 책에 사진이 실렸으면 바로 보내줘요. 보고 싶어할 거니까요. 아마 그 친구들한테는 문화충격일 수도 있어요. 이렇게 첫 고리가 생기면, 나중에 우리가 어떻게 만날지 몰라요. 10년 뒤에 불쑥 나타나서 “아저씨, 저예요”라고 말하는 일도 생길 수 있고, 실제 생기고요. 이런 인연들이 쌓이는 게 제 여행인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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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간절하면 상황을 읽을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눈빛을 되게 중요하게 본다고 했는데, “나와 많이 다른 사람 앞에서는 두렵다”는 이야기도 했어요.


나이가 들었으니 그래도 어느 정도는 각진 것들이 닳고 부드러워졌겠죠. 하지만 전혀 다른 성향의 사람들을 만날 때 가끔 욱할 때가 있어요. 상대가 일방적일 때죠. “당신은 왜 따뜻한 척 글을 쓰면서 왜 만났을 때는 따뜻하지 않나요?” 이런 말을 들을 때가 있어요. 처음 만난 사이인데 말이죠. 저는 누군가에게 처음부터 따뜻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기류가 찌르르 흘러서 마음을 확 열게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콘센트를 꼽았는데도 전혀 뭔가가 안 오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사람 간의 관계는 몇 초 안에 파악할 수 없는 건데, 대놓고 이런 말을 들을 때가 있어요.

 

그런 분들이 있어요?


많아요. 너무너무 많습니다. 어떻게든 멀어지겠지 하는데, 집요하게 그런 분들이 있어요. 간혹 글쓰는 사람들을 환상 속에서 생각하는 분들이 있잖아요. 살다 보면 더 챙기고 싶은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분들도 있어요. 하지만 뭐 괜찮아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얼마 전에 작가님이 트위터에 올린 글을 봤어요. “사람을 좋아하면 모두 편안해질 거라 생각했는데 늘 허우적이구나.” 


사람을 좋아하는 힘으로 단단해질 거라고 생각하는데, 잘 터지죠. 비오면 새고, 얼었다가 녹으면 균열이 생기고. 사람에는 장사가 없는 것 같아요. 사람을 이만큼 좋아하고 사람을 좋아하는 철학으로 살고 있는데, 그걸 누구에게나 적용할 수는 없으니까요.

 

독자들이 늘 궁금해 하더라고요. 그래서 대신 묻고 싶어요. 지금 연애 중이신가요?


(웃음) 강의를 나가면 많이 듣는 질문 중 하나에요. 언젠가는 이렇게 대답한 적도 있어요. “일주일 전부터 사랑하고 있습니다. 저 혼자.” 그런데 지금은 없어요.

 

이색적인 질문을 받아본 적도 있을 것 같은데요.


엊그제 ‘마음을 전하는 글쓰기’ 행사에 갔는데, 어떤 분이 이런 질문을 하셨어요. “대전의 어느 칼국수집 좋아하시죠? 대전에 오면 저랑 식사할 의사가 있나요? 예스 아니면 노로 대답해주세요.” (웃음) 그래서 제가 스태프에게 연락처를 남겨달라고 했죠. 자기 사랑에 대해서 묻는 사람도 많고, 글을 평생 쓰고 싶은데 용기를 달라고 했던 분도 있었어요. 되게 감동적이었던 게 그 분이 공대생이셨는데 “나는 등단을 안 해도 책을 못 내도 상관 없는데 평생 글을 쓰고 싶다”고 하셨어요. 이보다 더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을까요? 응원해주고 싶더라고요. 그 분은 좋은 글을 쓸 수밖에 없는 분이라고 확신했는데, 다만 자신에게 계속 자극을 주는 사람, 영향을 주는 사람을 나란히 가져갔으면 좋겠다고 말씀 드렸어요.

 

책에서 ‘시인인 척하기 위해서 삶에서 끊어야 할 목록들’에 대해서도 말하셨는데요. 지금은 어떤 걸 끊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지금도 비슷해요. 면전에서 이런 말씀을 드려서 좀 그렇지만, 우선 인터뷰를 끊어야 해요.

 

인터뷰를 많이 하는 편은 아니시잖아요?


안 하죠. 새로 책이 나오면 조금은 할 수밖에 없는데, 사람 앞에 드러나는 일을 많이 안 하는 게 저한테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세상 어딘가에 꺼내지는 일 같은 건 조금 덜하면서 살아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을 때가 있죠.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보면 얕게 좋아하는 경우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정말 좋아하거나, 아니면 아예 관심이 없다든가. “시를 쓰고 싶어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이미 시인 이상의 자격을 가졌다”고 쓰기도 하셨는데.


하룻밤을 자고 오는 시 캠프에 갔을 때, 참 좋았어요. 계곡에 앉아 물소리를 배경음악으로 각자 좋아하는 시 한 편씩을 낭송하는데, 함께 있었던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열렸어요. 한 사람이 시 낭송을 마치고 울컥하길래 이유를 물었더니 “다시는 이런 시간이 오지 않을 것 같다”고 했어요. 이게 시의 힘이 아닌가 싶었죠. 저는 그래요. 시를 쓰면서 생활을 열심히 하는 후배들을 볼 때, 그 자체로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어요. 잘돼야 하는 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 친구들이 잘됐으면 좋겠는데. 희망이 없을까 봐, 그게 걱정일 때가 있어요. 저는 이제 중심이 흔들릴 때는 아닌 것 같아요. 시를 쓰는 일을 갑자기 그만둘 일을 절대 없으니까요. 그런데 후배들은 내 후배니까 약해 보이잖아요. 그들이 흔들릴까 봐 마음이 힘들 때가 있어요. 저는 시를 좋아하는 분들, 사랑하는 분들이 고마워요. 많이 고마워요.

 

『끌림』을 냈을 때, 이런 이야기를 하셨어요. “극소수의 끼를 가진 이들에게만 눈에 띄길 바란 책”이라고. 『내 옆에 있는 사람』은 어떤가요.


저는 우리의 마음이 할 수 있는 영역들이 되게 많다고 생각해요. 마음의 무한 가능성? 그런 걸 믿어요. 마음이 간절하면 상황을 읽을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 같아요. 진심이 통한다는 말이 있지만, 진심이 안 통하는 게 세상이거든요. 하지만 마음을 잘 사용하면 눈빛만으로도 마음을 건네줄 수 있고 상대가 나에게 주고 싶은 걸 잘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같아요. 마음이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많아요. 많은데, 우리가 너무 가둬놓고 있죠. 새장 안에 마음을 딱 가둬놓은 것 같아요. 20대 때의 제가 그랬고요. 사람이 좋아하는 게 생기면 마음이 작동을 하게 되잖아요. 내가 감히 손을 뻗을 수 없는 것도 닿아서 가질 수 있어요. 안타까운 건, 마음을 쓰지 않고 겉돌고 있다는 거예요.

 

“이 책을 집필하면서 마지막 여행산문집이기를 바랐다”는 말도 하셨는데. 서운할 독자들이 많을 것 같아요.


책을 만들다가 문득 그런 마음이 쓱 들었어요. 여행산문, 그만해도 되지 않을까? 제가 죽을 때까지 여행할 곳은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에 대해 더 많이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나는 이런 여행을 해요”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사는 것 자체가 여행인 사람. 내 속을 보여주고, 상대방의 속을 꺼내 보여주는 그런 여행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제가 자주 하는 이야기 중에 “살아가는 건 결국 여행”이란 말이 있어요. 여행을 뛰어넘는 여행 이상의 여행? 그런 이야기를 쓰고, 그런 여행에세이들을 많이 읽고 싶어요.

 

“당신은 지금 어떤 계절이냐고 물었을 때, 술술 답하는 상태였으면 좋겠다”고 쓴 글이 인상적이었어요. 작가는 지금 어떤 계절을 살고 있나요?


지금은 여름이에요. 여름에는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적거든요. 기온이 낮고 바람이 불고, 비가 조금 더 오면 저는 글을 쓰고 싶은 욕구가 생겨요. 그런데 이제 책을 막 털었으니까 글씨 쓰기 싫어요. (웃음) 지금은 시원한 곳에서 책을 많이 보려고 하는 시기에요. 여름을 잘 보내고 나면 찬바람이 곧 불겠죠? 그러면 시한테 전속력으로 달려가서 포옹을 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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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옆에 있는 사람이병률 저 | 달
금발의 아리따운 연인이 키스하는 장면을 포착한 대신, 허름한 시장통에 삼삼오오 모여 국수를 먹거나 작은 터미널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길가에 아무렇게나 피어 있는 들꽃들, 어느 시골 골목길에 목줄 없이 뛰어다니는 똥강아지들이 시선을 붙잡는다. 고개만 돌리면 만날 수 있는 주위의 풍경들, 그리고 평범하지만 그 안에 뭔가를 가득 담은 사람들의 표정이 무심한 듯 다정하게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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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만기 "인맥에도 다이어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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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는 늘 어렵다. 어떻게 해야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상처받지 않고 관계를 이어나갈 수 있는지, 고민은 계속되지만 정답은 없다. 사람을 ‘경영’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조언들에 귀 기울여 보아도 나에게 꼭 맞는 이야기를 찾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든 통용되는 ‘기본’이란 있기 마련이다. 어쩌면 우리는 그 사실을 간과한 채 ‘기술’만을 찾아 헤맸기 때문에 관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관계의 재발견』은 바로 그 ‘기본’에 대한 이야기다.

 

“기본이라는 것도 결코 거창한 것이 아니다. 진심으로 상대방을 배려하고 존중하고, 약속을 잘 지키고, 받으려 하기 전에 주려고 노력하면 된다” 『관계의 재발견』이 알려주는 인간관계의 기본은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나 실천하지는 못하는 일이기도 하다. 모든 순간에 진심을 다하기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작은 약속 하나도 소홀히 하지 않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 돌아올 것을 생각하지 않고 주었다는 사실조차 잊는다는 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우리는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찰은 『관계의 재발견』에 담긴 저자의 경험담과 만날수록 깊어진다. 『중국 천재가 된 홍대리』의 저자이기도 한 김만기 중국 투자 전문가는 자신이 이룬 성공의 한 가운데에는 사람이 있었다고 말한다. 중국에서 제대로 된 꽌시(관계)를 통해 비즈니스를 할 때에도, 영국에서 유학하며 언어와 문화가 다른 사람들과 친구가 될 때에도, 진심은 늘 통했다고 말한다.

 

경영인으로서 그가 들려주는 조언들, 예컨대 “비즈니스 관계에서는 더욱 어려운 상황을 피해서는 안 된다” “접대와 식사의 차이는 ‘관계의 높이’에 있다”와 같은 이야기들은 직장인이라면 모두가 공감할 만한 것이다. 동시에 비즈니스를 넘어서는 관계를 맺기 위한 ‘기본’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관계의 재발견』은 비즈니스를 위해 관계를 맺는 방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비즈니스 역시 진심으로 맺어진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관계에서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처럼 중요한 말이 없다” “편안한 관계를 원한다면 일단 무의미한 비교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나쁜 관계를 지속할 이유는 없다”와 같은 조언들만 보더라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이러한 ‘기본’들은 비즈니스 관계뿐만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 맺어지는 모든 관계를 아우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관계에도 ‘관리’와 ‘기술’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들에 염증을 느꼈다면, 인맥을 관리하는 일이 버겁게 느껴진다면, 상대도 나를 ‘관리의 대상’으로 여길 것 같아 회의감이 든다면, 지금이 『관계의 재발견』안에서 잊었던 ‘기본’을 찾아야 할 때다.

 


관계의 기본은 약속을 지키는 것부터


『관계의 재발견』은 관계에서 기술보다 기본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이와 같은 이야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인간관계 속에서 사람들이 상처 받고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저도 후배의 고민을 들어준 적이 있는데, 상사와의 관계 때문에 너무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직장을 그만두는 걸 고민하는 정도가 아니라, 앞으로 직장생활을 못할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든다는 거예요. 저도 한동안 충격을 받았는데, 그동안 제가 맺었던 관계들을 되돌아보게 되더라고요. 물론 저에게도 힘든 순간들이 있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계 속에서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던 건, 나름대로 기본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지키면서 살아왔기 때문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알고 있는 부분들을 정리해서 많은 분들께 전달해드리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거죠.

 

중국 투자 전문가로 활동하시면서 관계의 중요성에 대해 느끼신 바도 많을 것 같습니다. 중국에서는 ‘꽌시’가 중요하다고 알고 있는데, 그것이 결국은 관계를 의미하는 것이니까요.


중국에서는 ‘꽌시가 없으면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다’고 이야기할 정도로 사람관계를 중시하죠. 비즈니스에 있어서도 사람들 사이의 원만한 관계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상대방의 체면을 깎아내리지 않도록 유연하게 메시지를 전달하려 하고요. 중국에서 리더의 자리에 오르려면, 능력과 실력은 당연히 갖춰야 하는 부분이고, 인간관계를 정말 잘해야 돼요. 제가 중국에서 비즈니스를 할 때에도 그 중심에는 항상 사람이 있었어요. 그리고 진심은 늘 통했어요. 우리는 글로벌 언어로 영어를 꼽지만, 제가 생각할 때 진정한 글로벌 언어는 진심인 것 같아요. 어디든 사람관계는 다 똑같으니까요.

 

『중국 천재가 된 홍대리』에서도 ‘깊은 꽌시를 맺으려면 결국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죠.


우리나라 기업들이 중국 시장에 진출해서 실패하는 원인들은 다양하지만, 그 중 하나는 꽌시에 대한 오해인 것 같아요. 대부분 꽌시를 인맥이나 네트워크 정도로 이야기하잖아요. 예를 들면, 사업할 때 필요한 인허가를 받기 위해서 돈을 주는 식의 ‘기브 앤 테이크’를 떠올리는 거예요. 그런 건 『중국 천재가 된 홍대리』에서 말하는 ‘얕은 꽌시’에 해당하는 거죠. ‘깊은 꽌시’는 오랫동안 서로가 신뢰를 유지하면서 숙성된 관계를 유지해 나가는 거예요. 필요한 순간에 대상을 찾아서 돈을 주고 문제를 해결하는 얕은 꽌시는 단발성으로 끝날 수밖에 없죠. 항상 뒷거래 혹은 자금을 필요로 하고요. 그렇게 되면 오래 지속될 수 있는 비즈니스 관계를 맺기는 어렵죠. 한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예요. 오랫동안 깊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서로 간의 배려와 존중과 이해가 필요하죠. 관계에 있어서 중요한 건 숫자가 아니라 질이라고 생각해요.

 

많은 사람들이 쉽게 잊어버리는 관계의 ‘기본’은 무엇일까요?


기본 중의 기본은 약속이죠. 많은 분들이 약속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약속 당일에 연락해서 시간을 미루거나, 오늘 못 보면 다음에 보면 된다는 생각으로 약속을 취소하기도 하죠. 물론 갑자기 불가피한 일이 생길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런 상황에 미리 대비하지 못한 것이기도 하죠. 사실 기본이라는 건 다 연결되어 있어요. 약속을 잘 지키면 신뢰를 얻을 수 있죠. 그리고 약속을 잘 지킨다는 건 책임감이 강하다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하나만 잘 하면 다 관통이 되는 거예요. 아울러 모든 사람을 똑같이 대하는 것도 기본 중의 기본이 아닐까 싶어요. 사람에게 차별을 두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기본이 흔들린다고 생각해요.

 

오랫동안 기업을 경영해 오셨는데요. 비즈니스 관계에서 갖춰야 할 ‘기본’에 대해서는 어떤 조언을 들려주고 싶으세요?


제가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니까 좋은 인재를 추천해 달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가 있어요. 그럴 때 가장 기본적으로 보는 것이 인간적인 됨됨이에요. 능력은 당연히 갖추어야 하는 부분이고요. ‘이 친구는 틀림없다, 이 친구는 기본이 되어 있다’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거죠. 그리고 저 뿐만 아니라 다른 경영자들도 표정이 밝은 사람을 선호해요. 그런 사람들은 같은 자격요건을 갖춘 지원자들 사이에서 큰 인상을 남기죠. 첫 인상만으로 직원을 채용하는 것과는 달라요. 비록 능력은 조금 부족한 사람이라 해도, 그가 가진 밝은 미소는 조직 내에서나 대외적으로나 큰 역할을 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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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맥관리, 어떻게 해야 할까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써 인맥을 만들고 관리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사업을 하시는 분들 중에는 거래처나 업무적으로 만나는 사람들을 리스트로 정리해서, 시기를 정해놓고 지속적으로 연락을 취하는 분들이 계시죠. 저 역시 사업을 처음 시작할 때 그런 조언을 들은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렇게 하지는 않았어요. 형식적인 연락을 통해서 상대에게 감동을 주거나 깊은 관계를 맺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오랫동안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한 번을 만나더라도 제대로 된 관계를 형성하는 게 좋다고 봐요. 관계는 관리가 아니에요. 관리라는 말 자체에 기술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데, 물론 표현을 쉽게 하려다 보니까 사용하는 말이겠지만, 사람이 사람을 관리한다는 말에 거부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에요.

 

『관계의 재발견』에서 말씀하시길 선물을 주고받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셨어요. “특히 명절이나 특별한 날에 선물을 보내는 것을 싫어한다”고요.


지금은 선물의 의미가 많이 변질됐잖아요. 형식적인 선물은 고르는 사람도 피곤하고 받는 사람도 부담스럽죠. 그래서 선물이 필요한 순간이라면 ‘어떤 선물을 고를까’도 고민하지만 ‘어떤 마음을 담을까’를 더 고민해요. 편지에 어떤 글귀를 적을지, 그 분이 어떤 선물을 좋아하실지 고민하는 거죠. 값비싼 물건을 선물하면, 받는 사람이 좋아할지는 몰라도, 감동까지는 주지 못하는 것 같아요.

 

인간관계에 대한 기술적인 이야기들이 넘쳐나는 상황이다 보니 ‘선물하기 좋은 때’에 대한 조언도 듣곤 합니다. 모두가 다 선물을 보내는 시기는 피하라는 이야기인데요.


『관계의 재발견』을 쓰게 된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해요. 최근 관계에 대한 책들이 많이 출간되고 있지만, 제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들은 없더라고요. 대부분 ‘관계를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가’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기본에 대해서 짚어주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용기를 내게 됐어요. 기술이 필요 없다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비즈니스적인 측면에서 일정 부분 필요한 것도 사실이죠. 다만 진심이 담겨있지 않으면 효과가 떨어진다는 거예요. 진정성이 있은 후에 기술이 있어야지, 기술 위주로 관계를 맺게 되면 얕은 관계에 그칠 뿐이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작가님께서 인맥을 유지하시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저는 방법이 없어요. 진심을 다할 뿐이죠. 때마다 연락을 하거나 선물을 보내지도 않아요. 『관계의 재발견』에서 이야기한 티엔리후이라는 친구와의 관계도 그렇죠. 제가 그 친구에게 많은 걸 해준 게 아니었어요. 영국에서 같이 공부할 때 한국에서 보내준 내복을 나눠 입고, 감기약을 나눠 먹고, 집에서 싸가지고 간 김밥을 같이 먹었을 뿐이에요. 하지만 그런 일들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요. 이렇게 깊은 관계들이 쌓이면 그 사람들이 또 다른 좋은 사람을 소개해주게 돼요. 그러면서 관계가 더 깊어지고 넓어지고 단단해지는 거죠. 진심 밖에는 답이 없어요. 진심을 든든하게 받쳐주는 것은 기본이고요.

 

『20대에는 사람을 쫓고 30대에는 일에 미쳐라』에서 ‘기브 앤 테이크’가 아닌 ‘기브 앤 기브’를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번 책에서도 “주고받을 것을 기대하지 말고, 주고 잊어버리는 것이 가장 좋다”고 하셨고요.


받을 것을 기대한다면 주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사람 관계에서 여유가 있어야 더 많이 주는 건 아니잖아요. 우리가 봉사나 기부를 하는 이유는 상대에게 줌으로써 내가 행복해지기 때문이죠. 어떻게 보면 내가 더 큰 행복을 얻는 거예요. 줄 수 있다는 건 행복한 거죠. 그렇게 마음에서 우러나서 주는 것이 아니라 억지로 주는 경우라면 차라리 주지 않는 게 낫다고 봐요. 하지만 받는 사람의 경우는 다르죠. 받은 입장에서는 그 사실을 잊지 않는 게 도리라고 생각해요.

 


관계에도 다이어트가 필요하다


관계를 그르치고 싶지 않아서 싫은 소리를 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관계의 재발견』은 “어렵고 불편한 이야기일수록 정면 돌파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말하기 어려운 이야기일수록 직접 얼굴을 보고 이야기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좋지 않은 이야기를 한다는 게 쉽지는 않죠. 하지만 그렇게 시간을 끌다 보면 상대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어요. 그러니까 피하지만 말고 직접 만나서 이야기하는 게 좋다는 거예요. 얼마 전에는 카톡으로 해고 통보를 받은 분의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이건 정말 말이 안 되는 거죠. 해고할 때 마음이 좋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하지만 떠날 때 우아하게 떠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평생 그 기업에서 노력하면서 기여를 했다면 멋지게 나갈 수 있도록 존중해줘야죠. 비즈니스 상황에서는 언제나 경쟁이 있어요. 구조 조정이 필요한 순간도 있죠. 그렇게 하지 않으면 좋겠지만 해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그 어려운 일을 누군가는 제대로 해줘야 된다는 거예요.

 

인맥 관리를 하다가 지쳐버리는 사람들도 있는데요. 그렇게까지 관계 유지에 매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질적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면 적정선을 지켜야 하는데 욕심을 부리는 경우가 있죠. 그건 관계가 아니라 형식적인 관리밖에 안 된다고 생각해요. 한두 번 만나서 명함을 주고받은 사람들까지 모두 자신의 인맥이라고 생각하는 건데, 그건 사회생활을 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아요. 사업을 하는 데 있어서 기회가 되어줄 거라고 기대하겠지만, 오히려 독으로 돌아올 수도 있죠. 어설픈 관계를 통해서 뭔가를 만들어내려고 하면 그 사람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지거든요. 사람을 소개시켜 준다고 생각해 보세요. 한두 번 밖에 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는 사람을 소개시켜 주는 것과, 오랫동안 봐오면서 능력이나 인간 됨됨이를 다 알고 있는 사람을 소개시켜 주는 건 다르잖아요. 그렇게 신뢰가 깨어지면 사람도 일도 모두 잃게 돼요.

 

‘인맥 다이어트’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신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인맥을 다이어트한다는 표현도 적절하지는 않은 것 같지만, 쉽게 이야기하고자 그렇게 이름 붙였는데요. 인간관계의 적정선이라는 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적절한 인간관계의 범위를 몇 명이라고 단정 지어서 말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너무 과잉된 상태라거나, 기본이 갖춰져 있지 않은 사람들이 나의 인맥 속에 들어와 있다면, 다이어트가 필요한 것 아닌가 생각돼요. 기본을 갖추지 않은 사람들이 주변에 있으면 나만 피해를 보는 게 아니라 내 주변 사람들에게도 피해를 줄 수 있거든요. 일례로, 나를 통해서 다른 사람에게 접근해서 그 사람을 이용하려할 수도 있죠. 그런 사람들은 과감하게 인맥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관계의 재발견』에서 말씀하신 바에 따르면, 인맥 다이어트를 하게 되는 순간이 있는 것 같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이 오죠. 누군가 나를 통해서 다른 사람을 이용하려고 하는 사건이 발생한다거나, 내가 어려운 시기에 먼저 나서서 ‘요즘 나도 힘들다’고 말하면서 넌지시 선을 긋는 사람을 발견하게 되기도 하고요.

 

귀인에 대한 이야기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귀인을 만나려면 행운이나 인연이 따라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작가님께서는 “관계 속에서 귀인을 만드는 것은 어디까지나 내 노력과 열정”이라고 말씀하셨어요.


나를 바로 세우지 않거나 실력은 갖추지 않은 채 관계에만 기대는 건 문제가 있다고 보는 거예요. 많은 사람을 아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인지가 중요한 거잖아요. 내 능력을 먼저 키우고 나서 스스로가 당당하면 관계도 자연스럽게 단단해지는 거예요. 귀인을 만나는 것도 저절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에요. 열심히 살아가는 나의 모습을 보고 귀인이 반할 수 있는 거죠. 『관계의 재발견』에서 소개한 쇼팽과 리스트의 이야기에서도 알 수 있듯이, 내가 열정을 불태워서 노력할 때 그 모습들과 환경을 보고 귀인이 다가오는 거예요. 나를 알지도 못했던 사람이 귀인이 되어주는 게 아니고요. 귀인은 자신의 주변에 있다고 생각해요. 항상 가까운 곳에서 나를 지켜보던 사람 중에 귀인이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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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대’가 아닌 ‘식사’를 하는 방법


‘관계를 맺을 때 경계해야 할 사람들’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주셨습니다. 그 중에는 ‘상대방을 존중할 줄 모르는 사람’도 포함되어 있고요.


상대방을 무시하는 자세로 사업하는 사람은 아랫사람을 쥐어짜면서 성과를 낼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기업을 오래 이끌어가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조심스러운 이야기이지만, 한국의 기업들 중에는 상명하복 문화가 남아있는 곳들이 있죠. 그런 부분이 일의 추진력에 있어서는 좋을 수 있지만, 직원들을 존중하지 않는 모습들은 반드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지 않으면 한 단계 더 올라갈 수 없죠. 존중받지 못하고 항상 긴장되어 있는데 어떻게 창의적인 생각을 할 수 있겠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 사회에서는 상하관계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사람을 봐도 ‘그만한 위치에 있으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사회 전반적인 인식이나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고 봐요. 리더의 자리까지 올라가는 사람은 인간적으로 좋은 평판을 받는 사람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우리는 평판이 좋은 사람은 능력은 별로라고 생각할 때도 있는 것 같아요. ‘사람은 좋은데 능력은 부족하다’고 말하면서 말이죠. 반면에 ‘인간적으로 별로이지만 능력은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사람을 더 선호할 때도 있는 것 같은데요. 중국의 경우는 리더가 되기까지 검증 시스템이 굉장히 많이 마련되어 있어요. 능력은 기본이고, 사람관계를 원만하게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여기니까요. 중국을 30년 만에 G2의 국가로 만들어낸 등소평이 보여준 리더십도 그런 것이죠.

 

‘접대’가 아닌 ‘식사’를 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알려주셨는데요. 많은 직장인들이 궁금해 하는 비결일 것 같습니다.


접대를 식사로 바꾸는 방법은 마음가짐에 달려있다고 생각해요. 접대를 한다고 생각하면 긴장되고 불편하잖아요. 밥을 어떻게 먹었는지도 모르겠고요(웃음). 그런데 서로가 좋은 인연으로 만나서 정보를 교환하고 배우는 시간을 갖는다고 생각하면, 즐거운 마음으로 식사할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접대를 생각하고 자리를 마련하려고 하면 고정화된 장소를 떠올리게 되지만, 함께 식사한다고 생각하면 즐거운 마음으로 상대가 좋아할 만한 장소를 고민하게 될 거예요. 접대는 일회성에 그치지만 식사는 다음 만남을 기약하게 되죠. 그렇게 관계를 지속하면서 친구가 될 수도 있고, 좋은 기회가 있을 때 함께 일하자고 제의하게 되기도 해요. 접대든 식사든 같이 밥을 먹는다는 사실은 똑같은 데도 마음먹기에 따라서 이런 차이가 생기는 거예요.

 

독자들이 『관계의 재발견』을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까요?


제가 책에서 말하는 ‘기본을 지키라’는 이야기는 우리가 흔히 들어왔던 것이고 익히 알고 있는 것이죠. 실제로 실천을 하지 않을 뿐이에요. 만약 이 책을 읽고 한 가지라도 느낀 것이 있으시다면 실천하셨으면 좋겠어요. 크든 작든 약속을 지킨다거나, 지금까지 무심코 지나쳤던 사람들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는 거죠. 그러다 보면 신뢰를 얻게 되고, 귀인도 나타나게 되고, 기회도 온다고 생각해요.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리고 힘이 드는 일처럼 느껴지실 테지만, 습관이 되고 몸에 배면 좋은 사람이 될 수밖에 없을 거예요. 관계의 기본은 기술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고, 빨리 만들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하나씩 실천해 나가는 부분이 느린 것처럼 보여도 더 깊고 빨리 도달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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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재발견 김만기 저 | 다산북스
주변을 살펴보면 스트레스 없이 주변 사람들과 잘 지내는 이들도 있다. 그들은 새로운 사람과 이야기도 잘하고, 어떤 성격의 사람과도 트러블 없이 지낸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인맥이 필수라는데 나에게 쓸 만한 인맥은커녕 편안한 사람 찾기도 어려운 것 같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람을 만나지 않고 살 수도 없다. 어쩔 수 없이 사람은 만나는데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것이 어렵다는 사람들을 위해 글로벌 사업가 김만기 교수가 『관계의 재발견』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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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철 "카피라이터에게 필요한 건 인간을 이해하는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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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마치며 우리는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모든 요일의 기록』은 ‘평범한 사람이 나를 만들어가는 평범한 이야기’라는 것. 아마도 많은 이들은 의아해 할지도 모르겠다. 11년째 롱런 히트 중인 카피라이터의 이야기가 단지 평범할 뿐이라니, 가당치도 않다고 여길지 모른다.

 

물론 저자의 화려한 이력을 들여다보면 이러한 의심은 지극히 합리적이다. 그녀는 ‘인문학으로 광고하는’ 박웅현 CCO와 함께 11년 동안 TBWA KOREA에서 근무하며 인상적인 카피들을 써왔다. SK텔레콤의 ‘사람을 향합니다’ 네이버의 ‘세상의 모든 지식’ e편한세상의 ‘진심이 짓는다’ SK이노베이션의 ‘혁신을 혁신한다’ 등이 모두 그녀의 작품이다.

 

그러니 『모든 요일의 기록』에 담긴 카피라이터 김민철의 이야기는 기발하고 독특한 ‘남다른 무엇’일 게 분명했다. 그런데도 저자는 자신의 시간이 평범한 사람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그녀의 말을 듣고 『모든 요일의 기록』을 되짚으니 수긍이 가고도 남았다. 책에 기록된 순간들은 단 한 줄의 카피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차곡차곡 쌓여 온 ‘토양’이었기 때문이다.

 

한 순간의 선택 속에는 그보다 훨씬 앞선, 무수히 많은 시간들이 담겨있다. 한 줄의 글이 탄생하는 일도 이와 다르지 않다. 김민철 카피라이터의 작품 속에도 그녀의 지난 시간과 오래 전의 그녀가 녹아있다. 『모든 요일의 기록』은 그 모든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는 한 권의 일기와도 같다.

 

“유독 ‘기억’과 관련된 머리는 평균 이하임이 확실”하다고 스스로를 평가하는 그녀는, 자신의 가슴을 사로잡은 순간들을 온 몸으로 붙들어두었다. 사랑하는 시 한 편을 외우는 일도 만만치 않은 그녀이지만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이 알려준 오독의 즐거움은 잊지 않는다. 알베르 카뮈의 작품 속 한 문장을 늘 외우고 있는 건 아니지만 덕분에 “회사 가는 일까지 즐거워졌던 아침”을 기억한다. 

 

가슴으로 기억하기 위해 마음이 이끄는 대로 솔직하게 반응하다보니 남다른 능력도 생겨났다. 평범한 순간조차 특별하게 만드는, 예민한 감각을 지니게 된 것이다. 그녀는 여행지의 흔한 길거리 공연에서도 ‘골목마다 감춰져 있는 프리마돈나’를 발견하고, 야외 공연장을 둘러싼 새와 바람의 소리에서도 음악을 듣는다. 오래된 카메라로 들여다보는 빛바랜 벽, 긴 세월을 살아낸 노인들의 얼굴에서는 “시간의 색깔”을 발견한다.

 

그 경험들을 붙잡아두기 위해서, 그때 자신의 감정들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녀는 여전히 쓰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모든 요일의 기록』역시 그 과정에서 탄생했다. 책 속에서 그녀는 말한다. “잘 살아야 잘 쓸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그래서 『모든 요일의 기록』에 담긴 이야기는 카피라이터이기 이전에 평범한 사람으로서 김민철이 잘 살기 위해 간직해온 것들에 대한 것이면서, 동시에 카피라이터로서 그녀만이 가진 비결에 대한 것이다.

 


카피라이터에게 필요한 건 인간을 이해하는 능력


『모든 요일의 기록』에서 읽고 듣고 찍고 배우고 쓰는 순간들에 대해 이야기하셨습니다. 카피라이터로서 이와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카피라이터라고 하면 반짝반짝 아이디어가 빛나는 사람이나 재기발랄한 사람을 떠올리는 분들이 많은데, 저는 그런 것과는 정말 거리가 멀어요. 그래서 제가 카피라이터로서 해줄 수 있는 이야기가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 보니까, 카피라이터가 되기 위해서 열심히 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말하면 좋을 것 같더라고요. 여행을 하고 책을 읽는 것이 카피를 쓰는 데 어떤 도움이 되냐고 물어 오시는 분들도 많은데요. 인풋만큼 반드시 아웃풋이 나오는 건 아니지만, 그런 것들이 바탕이 되어서 아이디어가 나오는 거라고 생각해요.

 

스스로를 “유독 ‘기억’과 관련된 머리는 평균 이하임이 확실”한 사람이라고 하셨잖아요. 그렇다면 지나간 순간들을 어떻게 간직하고 활용하시나요?


글로 기록되어 있는 것들은 잘 기억하지 못하는 편인데요. 대신 이상하리만큼 잘 기억하는 것들이 있어요. 예를 들면 그때 내가 어떤 자리에 앉아 있었는지, 그때 상대는 어떤 말을 했는지, 그런 분위기나 감정들은 잘 기억해요. 그리고 그 순간들을 글로 남기려고 노력을 많이 하죠. 대부분의 순간들은 시간이 지나면 다 흩어져 버리잖아요. 그런데 글을 쓰면, 제가 쓴 글을 기억하지는 못해도, 그것에 대해서 썼다는 사실은 기억할 때도 많거든요.

 

소설을 읽으면서 인간과 감정에 대해 배우게 된다고 적으셨어요.


(일을 하다 보면) 제가 이해하지 못하는 대상들에게 말을 걸어야 될 때가 있어요. 난감한 순간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쓸 수 있는 건, 그 사람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태도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건 광고를 통해서 배우는 것이기도 하지만 소설 속에서 배우는 측면도 있는 것 같아요. 카피라이터라서 소설을 읽는다기보다는, 인간이기 때문에 소설을 통해서 인간을 배우는 것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하게 돼요. 제가 읽고 듣는 것들이 모두 일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듯이, 소설도 마찬가지예요. 하지만 누군가를 이해를 할 수 있는 토양이 생길 거라고 생각해요.

 

결국 카피라이터에게 필요한 건 인간을 알고 이해하는 능력일까요?


그렇죠. 저는 책이나 소설, 음악을 통해서 그것들을 배우는 거고요. 어떤 카피라이터들은 직접 사람을 만나면서 사람에 대해 배우기도 하고, 책을 읽지 않는 카피라이터도 있어요. 굉장히 다양하죠.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말했던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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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 카뮈와 김화영이 가르쳐 준 ‘지중해’


『모든 요일의 기록』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사람과 책의 관계에도 때와 환경과 감정의 궁합이 맞는 순간이 있”는 것 같습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프랑스로 떠나시려다가, 김화영과 알베르 카뮈의 책을 읽고 미련 없이 포기하셨잖아요(웃음).


미련이 없는 건 아니에요. 아직까지도 ‘그때 떠났어야 했다’고 생각하곤 해요(웃음). 그런데 당시에는 ‘계획했던 것처럼 1년씩 떠나있을 필요는 없겠다’고 생각됐어요. 그래서 20일 정도 짧게 여행을 다녀왔죠. 여행 마지막 날에는 ‘이걸로 충분하다’는 감정까지 느끼면서 미련 없이 돌아올 수 있었고요. 그런데 여행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어느 순간 ‘이만하면 됐다’고 느껴서 돌아오게 되지만, 지나고 보면 다시 가고 싶죠.

 

당시에 『행복의 충격』『결혼, 여름』『안과 겉』『이방인』『시지프 신화』 속에서 무엇을 발견하셨나요?


『이방인』에서 뫼르소는 법정에 서서도 끝까지 눈을 뜨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우리처럼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서 그런 것도 같다고 거짓말하지 않고요. 그 모습을 보면서 ‘지금 여기의 순간을 살고 있다는 것에 대한 의식을 놓치지 않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많이 생각해보게 됐죠. 『시지프 신화』의 시지프는 굴러 떨어지는 돌을 다시 언덕 위로 올려야 하는 형벌에 처한 사람이잖아요. 남들이 보면 불쌍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는 굴러 떨어지는 돌을 보고 다시 묵묵히 올라가는 순간을 살고 있어요. 그 스스로는 자신을 불쌍하게 여기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왜냐하면 그 순간에 주인이 되어서 살고 있으니까요. 그 마음가짐은 누가 빼앗아갈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에게 형벌을 내린 신도 그 마음까지 빼앗아갈 수는 없는 거잖아요.

 

그런 ‘발견’이 일상에 변화를 일으켰나요?


저는 지금도 출근하는 걸 되게 싫어하는데요(웃음). 그런 걸 읽으면서 어느 순간 회사에 출근 하는 게 괜찮아졌어요. 지중해를 산다는 것이 물리적인 공간으로써의 지중해를 말하는 게 아니라는 걸 많이 느꼈거든요. 실질적인 공간으로써의 지중해가 아니라 정신의 지중해가 더 중요하겠다고 생각했던 거예요.

 

떠남의 이유가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었다는 걸 알게 되셨군요. 육체적으로 벗어나는 것만이 답은 아니라는 걸 깨달으셨고요.


그렇죠. 그런 답을 내린 거죠. 그게 저의 결론이었던 거예요. 사실은 모든 직장인들이 매일 그런 마음과 싸우잖아요. 벗어나고 싶은데 회사에 가서 돈은 벌어야 하고. 저도 똑같아요. 카피라이터도 회사원이니까, 같은 고민을 하는 거죠.

 

“모든 독서는 기본적으로 오독이지 않을까?”라는 물음 앞에서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오독이 주는 즐거움이 있을지도 모른다고요.


그런 경험은 다들 있지 않을까요. 술을 마시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읽은 책이 너무 좋았는데, 다음 날 술이 깨고 나서 다시 읽어보면 왜 그렇게 내가 좋아했는지 모르겠는 거죠. 여행지에서 너무 재미있게 읽은 책인데 집에 돌아와서 봤을 땐 별로일 때도 있고요.

 

카피를 쓰실 때에도 그런 경험을 하신 적 있나요?


그렇죠. 그런 순간은 꽤 많은 것 같아요. 정말 괜찮다고 생각한 카피였는데, 다음날 아침 회의실에서 말하려고 하면 어제 굉장히 좋다고 느꼈던 이유를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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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지겹고 글이 구차하다 느껴질 때는…


음악과 관련된 경험들은 많은 이들이 부러워할만 합니다. 특히 리스본에서의 크리스마스는 거리의 연주자들과 평범한 할머니가 함께 한 공연으로 특별해졌죠.


외국 여행을 가면 거리에 뮤지션들이 많잖아요. 어쩌면 그 할머니도 그런 뮤지션 중 한 명이었을 거예요. 저는 그 분에 대해 알지 못하지만요. 그런데 같은 순간을 보더라도 그냥 지나쳐 가는 사람이 있고, 저처럼 그 순간에 나에게 와 닿은 무언가를 곱씹어보거나 기록으로 남기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아요. ‘왜 나는 지금 저 사람이 좋은 걸까’ 하고 계속 생각해 보는 거죠. 그러니까 그런 순간이 특별한 게 아니라 사실은 모두가 다 겪는 일인 것 같아요. 저는 어떤 순간을 잡아내려고 하는 훈련이 되어있는 것 같고요. 스스로를 훈련시키려 했던 것 같기도 해요. 음악회에 가서도 ‘저 음악에 대해서 느끼는 나의 감정은 무엇일까’ 계속 생각하는 거고요.

 

오래된 카메라, 오랜 세월을 이겨낸 벽, 오랜 시간을 살아낸 노인들에게 마음을 빼앗기시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시간의 더께 속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저는 물건에 대한 욕심이 많지 않고 새 것을 좋아하지 않는데요. 누군가가 직접 만들었거나 사용했던 물건처럼 이야기가 덧입혀 있는 것들을 유독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리고 노인 분들을 볼 때면 궁금하다기보다는 그냥 좋아요. 살면서 좋든 싫든 꼭 겪어야 하는 것들이 있잖아요. 나이 드신 분들에게는 그런 것들이 한 번 통과해 나간 느낌 같은 게 있는 것 같고, 그걸 제가 좋아하는 것 같아요. 어쨌거나 시간이 쌓일수록 모든 사람한테는 각각의 분위기라는 게 생기는 거잖아요. 젊은 사람들은 그 분위기가 바뀔 여지가 많지만 나이 드신 분들은 고정된 경우가 많단 말이죠. 그렇게 끊임없이 바뀌면서 결국 만들어진 그 분위기가 좋은 것 같아요.

 

“말이 지겹고, 글이 구차하다 느껴질 때 아무 생각 없이 흙을 만질 수 있는 시간이 있다는 게 큰 위로였다”고 적으셨습니다. 말과 글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카피라이터의 삶이 버겁게 느껴질 때도 있으세요?


그렇게 거창하게 느낀다기보다는 카피라이터는 기본적으로 머리를 많이 쓰는 직업이잖아요. 그래서 머리를 멈추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죠. 몸을 움직이는 것보다 정신을 움직이는 게 에너지 소모도 많고 더 피곤하니까 셔터를 내리고 싶은 거예요. 개인적으로 손을 움직이는 일을 좋아하기도 하고요.

 

흙을 빚으면서 ‘뭐가 될 거라고 기대하지 않고, 그래서 쉽사리 나가떨어지지 않고, 묵묵히 계속하는 것’의 중요성을 깨달으신 것 같습니다. 지난 10년 간 카피라이터로 살아오신 순간들도 마찬가지였을까요?


제가 일을 처음 시작할 때 박웅현 CCO님과 사수 한 분이 공통적으로 가르쳐 주신 게 있었어요. ‘이건 일이다’라는 거였죠. 박웅현 CCO님이 자주 하시는 말 중 하나가 ‘모든 사생활은 모든 사회생활에 우선한다’라는 거예요. 회사 일보다 더 중요한 건 개인의 삶이라는 의미죠. 저는 처음부터 광고 꿈나무가 아니었어요. 막연하게 ‘나는 책도 좋아하고 글 쓰는 것도 좋아하고 음악 듣는 것도 좋아하고 그림 보는 것도 좋아하니까 카피라이터를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입사 시험에 응시했는데 운이 좋게 붙었던 거죠. 그래서 광고를 통해서 이름을 알리고 싶다거나 그런 욕구는 지금도 없고 예전에도 없었어요. 그냥 ‘나는 평범한 회사원인데 운 좋게 이런 일을 하게 됐구나’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일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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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요일의 기록』, 지금 이곳에서 충실하게 살아나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


『모든 요일의 기록』에서도 박웅현 CCO님과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는데요. 작가님에게 있어 박웅현 CCO님은 어떤 인연인지, 그 분과 함께한 ‘인문학으로 광고하’는 작업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저한테는 진짜 은인이시죠. 정말 고마운 분이에요. 10년 동안 같이 일을 해왔기 때문에, 저는 걸음마부터 시작해서 달리는 법까지 전부 그 분께 배웠어요. 박웅현 CCO님께서는 “내가 출제했지만 내가 떨어졌을 시험을 김민철이 통과”했다고 말씀하시지만,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그 분께서 저한테 맞는 문제를 내주신 거죠. 책과 음악처럼 제가 기본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들에 대한 문제를 내주셨기 때문에 손쉽게 풀 수 있었던 거예요. 만약 그때 박웅현 CCO님이 갑자기 신입사원을 뽑겠다고 마음먹지 않으셨다면, 광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을 데려다가 키우고 싶다고 생각하지 않으셨다면, 저는 카피라이터가 못 되는 거였어요. 될 수가 없었죠. 저는 진짜 운이 좋았던 건데, 그 운도 박웅현 CCO님께서 만들어주신 거였어요. 인문학으로 광고하는 것도, 그 분께서 그렇게 하시니까 자연스럽게 보면서 배우게 됐고요. 제가 읽고 보고 경험하는 모든 일들을 응원해주시는 분이기도 해요.

 

더 이상 스스로를 위로할 필요가 없어지면서 카피라이터가 되었다고 하셨어요.


카피라이터가 되기 이전의 글쓰기와 지금의 글쓰기는 낮의 글쓰기와 밤의 글쓰기처럼 달랐던 거죠. 전자가 밤처럼 어둡고 내면으로 침잠해 들어가는 글쓰기였다면, 후자는 나라는 사람이 어느 정도 필요하지만 그것보다는 해야 될 말과 방향이 정해져 있는 세계인 거예요. 물론 그것을 어떤 식으로 쓸 것인가는 다시 나라는 사람을 통해서 나오는 거지만, 그건 명백한 세계인 거죠. 지금의 글쓰기를 익히면서는 사람 자체가 많이 바뀌었어요. 매우 어두운 사람에서 조금 밝아지기도 했고, 그러면서 밤의 글쓰기를 조금 내려놓게 되었던 것 같아요. 예전에는 어둠에 대해서 감정이 예민하게 반응했다면 이제는 밝음에 대해서도 예민하게 반응하게 된 거죠.

 

“쓰지 않을래야 쓰지 않을 수가 없는” 이유에 대해 적기도 하셨는데요. 작가님으로 하여금 쓰기를 멈출 수 없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때그때 나의 감정이 가장 큰 이유이겠죠. 그걸 잊어버리고 싶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기록해 놓고 잊어버리곤 해요(웃음). 이번에 『모든 요일의 기록』을 쓰면서 제가 뭘 느끼고 살았는지 알기 위해서 옛날 일기들을 봤는데요.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기억은 나지 않았지만(웃음) 기록은 꾸준히 해놨더라고요.

 

『모든 요일의 기록』을 쓰면서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많은 것들을 다시 손에 쥐게 되었다”고 말씀하신 건 어떤 의미인가요?


어느 순간부터는 어떤 감정에 대해서 쓰는 게 구차하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뭘 그렇게까지 쓰나, 싶었던 거죠. 글을 쓴다는 게 다시 어둠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왜 나는 글만 쓰면 자꾸 어두워지지’라는 생각에 감정을 쓰지 않으려고 한 거예요. 그런데 이번에 『모든 요일의 기록』을 쓰면서 ‘이 정도는 써도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어둡지 않고 가볍게 쓸 수 있는 이야기들도 있다는 걸 스스로 알게 됐고요. 저는 그런 이야기를 쓰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스스로도 신기했어요.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세요?


『모든 요일의 기록』을 시작할 때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한 가지 생각을 계속 했어요. ‘내가 유명한 사람도 아니고 나는 그냥 아무것도 아닌데, 이 책을 독자들이 왜 읽어야 하지’라는 생각이었죠. 그러다가 책이 나오고 독자들의 반응을 보면서 알게 됐어요. 제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와 상관없이 나라는 사람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었던 것 같아요. 나라는 사람의 주인은 나잖아요. 지금의 내가 비루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는 이유로 그냥 내버려 두는 것도 자신이고, 다시 다독이면서 뭔가를 기대하지 않고 묵묵히 계속해 보는 것도 나일 거예요. 결국은 『모든 요일의 기록』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지금 여기에서 충실하게 살아나가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려 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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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요일의 기록김민철 저 | 북라이프
역사 속 위대한 크리에이터들까지 거론하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창조는 ‘노동’이라는 것을. 이는 크리에이티브의 최전선에 있는 카피라이터의 경우도 다를 바 없다. 국내 최대의 독립 광고 대행사인 TBWA KOREA의 10년차 카피라이터 김민철은 조금 더 독특한 스토리를 보여준다. 스스로에 대해 “같은 구절을 수백 번 읽어도 고스란히 잊어버리는 능력이 있다. 과장이 아니다. 그렇게 나는 내가 쓴 카피 한 줄도 못 외우는 카피라이터”라고 말하는 그녀는, 이 모든 악조건을 성실함, 더 정확히 말하자면 성실한 ‘기록’으로 극복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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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구 감독 “맞아요. 저는 쿠바 예찬론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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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는 와이파이는 고사하고 인터넷도 쓰기 어려운 나라다. 이메일을 쓰려면 5성급 호텔의 비즈니스룸에 가야 한다. 정승구 감독이 묵언을 하고자 쿠바로 떠난 건 아니었다. 지난해, 혼란스러운 한국 사회를 마주하면서 ‘특별 시기’를 이겨낸 ‘레솔베르(resolver)’의 나라, 쿠바를 떠올렸다. ‘레솔베르’는 쿠바가 특별 시기에 썼던 구호이자 삶의 방식이다. 정승구 감독은 한 달 반 동안 쿠바에 체류하면서 머리가 맑아지는 걸 느꼈다. 검색창 없이 대화를 이어나가자, 생각의 호흡이 길어지고 집중력도 높아졌다. 무엇보다 쓸데없는 걱정을 안 해서 좋았다.

 

어제(7월 20일), 쿠바는 수도 아바나에 주쿠바 미국대사관을 재개설했다. 지난해 12월 17일, 54년 만에 미국과의 역사적인 국교 정상화 선언 이후 6개월여만이다. 정승구 감독은 ‘미국의 손길이 닿기 전, 자본주의의 때가 묻기 전’의 풋풋한 쿠바의 마지막 모습을 포착하고 왔다. 쿠바에서 받은 영감을 어떻게 풀어낼까 고민하다, 『쿠바, 혁명보다 뜨겁고 천국보다 낯선』을 썼다. 정승구 감독은 “이제는 맥도날드, 스타벅스가 있는 쿠바를 상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꽤 서운한 표정이었지만 쿠바의 달라진 풍경을 벌써 궁금해 하는듯했다.

 

2009년 영화 <펜트하우스 코끼리>를 연출, 제작한 정승구 감독은<비열한 거리> 제작부로 충무로에 입문했다. 서울에서 태어나 도쿄, 보스턴, 시카고 등 세계 8개 도시에서 살았고, 지금까지 90여 개국을 여행했다. 지난해 장편과학소설 『영원한 아이』를 펴냈고, 현재 《중앙선데이》에 쿠바의 문화, 역사와 정치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

 

 

쿠바 사람들은 자기만의 연출력이 있어요


“한 편의 로드 무비 같다”는 리뷰, 많이 들으셨죠?


엇, 그런 이야기 좀 들었어요. 뭐,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갔으니까 로드 트립이라고 하면 로드 트립이죠. 사실 쿠바는 정말 오래 전부터 가고 싶었던 나라였어요. 우리에게는 되게 미지의 섬? 환상의 섬? 이런 피상적인 이미지만 있잖아요. 관광객으로 가서 찔끔찔끔 보는 건 의미가 없을 것 같아서 최소한 한 달 넘게 체류해보자는 기분으로 떠났어요. 작년 9월에 갔는데 10월 중순까지 있었어요.

 

쿠바에 대해 환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많은데, 실제로 가본 사람은 많지 않아요.


제가 처음 쿠바에 대해 인지한 게 중학생 때였던 거 같아요. 서양사 시간에 쿠바 미사일 위기에 대해 들었는데, 그때 관심이 갔고. 또 1997년에 체 게바라의 유해가 발견됐잖아요. 그 때 한국에서도 체 게바라 평전이 유행하면서 언젠가는 쿠바를 꼭 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2000년에 갈 기회가 두 번 정도 있었어요. 미국에서 지낼 때 멕시코를 통해서 들어갈 수 있었는데, 스케줄이 어긋나서 못 갔어요. 지난주 뉴스를 보니까 뉴욕과 쿠바의 수도 아바나 간에 직항이 생겼더라고요. 그 전까지는 관광객으로 쿠바를 들어가는 게 힘들었는데, 이제 관광객들이 대폭 늘 거예요.

 

취재비자가 없이는 취재가 불법이었는데, ‘페페’라는 친구 덕에 쿠바의 속살을 볼 수 있으셨던 것 같아요.

『쿠바, 혁명보다 뜨겁고 천국보다 낯선』을 쓸 수 있게 된 것도 마찬가지고요.


항상 느꼈던 게, 우리나라 여행 책을 읽어보면 뭔지 모르게 단조로움이 느껴졌어요. 현지 사람들이랑 직접 소통하는 이야기를 쓰면 좋을 것 같았죠. 아무래도 모르는 반찬에는 젓가락이 선뜻 안 가는 법이잖아요. 하지만 용기를 갖고 현지 사람들에게 말도 걸어보고 연애를 하듯이 적극적으로 다가가면, 좀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어요. 페페는 쿠바에서 만난 어린 친구인데, 영어도 엉터리이고 딱히 하는 일이 없었어요. 시간이 날 때마다 같이 밥을 먹고 쿠바 이야기를 나눴는데, 제가 영화감독이라고 하니까 페페도 호기심을 보였죠. 쿠바 사람들은 외국인을 만나는 걸 좋아해요. 통제된 국가에서 살다 보니 자유롭지 못하지만, 문화적으로는 굉장히 열려 있어요.

 

예상과 달랐던 쿠바의 모습도 있었나요.


일단 저는 예상이나 예측을 많이 안 하는 버릇이 있어요. 지식과 정보는 기본적으로 알고 가지만, 선입견이 많을수록 여행의 재미는 떨어지잖아요. 너무 쿠바 찬양을 해서 좀 그렇지만. (웃음) 쿠바의 첫인상은 되게 깨끗하다는 거였어요. 쿠바가 아름다운 이유가 여러 가지 있지만 굉장히 깨끗하다는 것도 빠질 수 없을 것 같아요. 쿠바인들은 되게 부지런하고 적극적으로 살아요. 그리고 자기 연출력이 있어요. 멋있고 우아한 게 아니라 자기만의 연출력이 있어요. 그런 미학적인 것에 완전히 매료될 수밖에 없었어요. 또 좋았던 건, 생각보다 굉장히 열려 있고 사교적이라는 점이에요. 제가 생각한 것보다 세상물정에 대해 잘 알고 있어요. 유럽, 멕시코, 캐나다 여행객이 많기 때문일 수도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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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가 매력적인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사람이었나요?


맞아요. 사람들이 가난하지만 찌들지 않았어요. 교육, 문화수준도 높고. 제가 이방인으로 그 곳에 들어갔지만, 한 달 반을 체류하면서 ‘아, 사람이 이렇게 살 수도 있지’ 그런 걸 깨닫게 됐어요. 건축물, 음악, 자연도 다 아름답고 좋은데 결국 잔상에 남는 건 사람이었어요. 쿠바 사람들에게는 때묻지 않은 순박함이 있었어요.

 

여행을 하는 가운데 감독님의 절친은 ‘페페’였잖아요. 페페 덕에 알게 된 ‘다리아나’ 이야기도 재밌었어요. 대부분의 쿠바 젊은이들이 미국을 선망하고 있었는데, 다리아나는 예외였잖아요.


다리아나는 발레리나였어요. 그런데 교통사고로 트럭에 발이 깔려 반년 이상 입원을 했죠. 결국 그녀는 발레를 포기했는데 지금은 암시장 상인으로 일해요. 저는 페페와 다리아나 커플과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행복했어요. 한 사회의 현재와 미래를 보는 방법은 고리타분한 정치가나 연예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게 아니라, 그곳 젊은이들과 어울리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들에게도 저는 호기심의 대상이었죠.

 

페페와 다리아나와 대화를 하면서, ‘교양’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는데. 되게 인상적이었어요. “타인에게 관심과 배려를 갖고 다른 생각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교양’이라고요.


우리는 뭔가 아젠다가 있어야 만나잖아요. 인터뷰를 하든, 소개팅을 하든. 그런데 쿠바 사람들은 삶의 여백이 있어서 대화를 하다 보면, 생각하지 못했던 세계관에 대해 듣게 돼요. 상당히 열려 있어요. 교양이라는 게, 유명인사의 예술작품을 읊는 게 아니에요. 타인에 대해 배려하고, 모르는 것에 대해 호기심을 느끼고, 동의를 하고 안 하고를 떠나 담론을 만들어가는 자세가 교양이라고 생각해요.

 

쿠바에 체류하면서 실망한 부분은 없었나요?


기대나 예상을 안 했기 때문에 실망 같은 건 별로 없었어요. 만약 제가 쿠바의 기업과 일을 한다면 골치 아프겠죠. 쿠바의 국민 스포츠가 ‘기다림’이니까요. 그런데 저는 여행자잖아요. 비즈니스를 하면 화병이 나겠지만 저는 받아들이면 그만이에요. 쿠바에서는 불편한 게 많아요. 인터넷 와이파이는 말할 것도 없고, 지방 교통도 정말 안 좋아요. 또 웬만한 곳에서는 화장지를 항상 가지고 다녀야 해요. 주유소에 갔는데 기름이 없을 수도 있고. 현지에서 살면 힘들겠지만 여행자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다고 넘기게 되는 것 같아요.

 

『쿠바, 혁명보다 뜨겁고 천국보다 낯선』을 보면, 쿠바의 역사에 대한 이야기도 꽤 많이 쓰셨어요. 쿠바를 말할 때는 ‘체 게바라’를 빼놓을 수 없는데. 책에는 ‘피델 카스트로’ 일화가 더 많이 등장해요.


쿠바는 뼛속까지 체 게바라로 도배가 되어있는데, 체 게바라는 예수그리스도이자 제임스딘이에요. 그런데 피델은 아직까지 살아 있는 권력이에요. 쿠바에 가기 전에는 피델에 대한 자서전 몇 개만 읽은 수준이었는데, 실제 쿠바에 가보니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요. 웃자고 하는 이야기지만, 독재자에도 급이 있다고 하잖아요. 김일성, 전두환 같은 독재자가 있는가 하면 이들과 차원이 다른 독재자들이 있어요. 재밌는 건, 피델은 용인된 독재자라는 거예요. 참 묘한 지점인데요. 존경하지만 무서운 인물인 거죠. 쿠바에서 피델을 반대하는 집회를 열 자유는 없어요. 친구들끼리 집안에서 럼을 마시면서 피델 이야기를 할 때도 판토마임으로 그를 지칭해요. 국제적인 파워블로거 ‘요아니 산체스’가 스위스 서버를 통해 피델 정부를 비판하는 글을 올리는데도, 피델은 훨씬 고단수에요. 언론의 자유를 인정한다는 걸 보여주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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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세계에서 받는 색다른 자극


쿠바에서 한국인 관광객을 본 적이 있나요?


아니요. 한 명도요. 지난 10년간 한국인 입국자가 5천 명이 넘지 않아요. 제가 4천 몇 백 번째였을 거예요.

 

쿠바는 모든 책을 종이값 정도면 살 수 있다고 하던데요.


저작권협회에 가입이 안 되어 있으니까, 그냥 찍으면 다 내는 거예요. 그래서 책을 많이 읽기도 해요. 날씨가 좋을 때 광장을 가보면, 상인들이 헌책을 책장에 쌓아놓고 팔아요. 물론 대부분의 책들은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빼돌린 거죠. 플라자 데 아르마스에 갔을 때, 보물을 한 권 찾았어요. 체 게바라 사망 직후 출간된 볼리비아 게릴라 일지 초판본과 1921년 마드리드에서 출판된 소설책이었어요. 치열하게 흥정해서 적절한 가격에 그 책을 샀는데, 책 파는 아저씨의 엄살과 익살이 예술이었어요. ‘’남는 게 없다, 쿠바에 처음 온 것 같아 기념으로 거저 준다, 문화교류 차원이다, 자본주의 나라에서 온 사람한테 털린 것 같다’’며. (웃음)

 

한국에 대한 인식은 어떤가요?


우리나라가 쿠바 공중파에 드라마를 무상으로 지원해요. 그래서 드라마를 통해 많이 알려져 있고. 한국 영화도 많이 봐요. 쿠바에서는 박찬욱, 김기덕, 봉준호 감독님 작품이 좀 알려져 있어요. 재미있는 건, 남한과 북한에 대한 인식이 거의 없다는 거예요. 공산국가지만 사상적인 것에 관심이 크게 없어요.

 

쿠바 여행을 꼭 추천해주고 싶은 대상이 있다면요.


우스갯소리로 하는 이야기지만, 몸에 이상이 없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정말 가보면 좋을 것 같아요. 사업하는 분의 경우에는 단순히 시장조사를 떠나서 정말 색다른 영감을 받을 수 있을 거예요. 유럽, 뉴욕, 중국, 호주 같은 나라를 여행하는 것도 좋고 먹방 여행을 하는 것도 좋지만, 조금이라도 젊을 때 더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서 자극을 받는 것도 굉장히 유의미한 여행이 될 것 같아요. 저는 쿠바 예찬론자에요. (웃음)

 

진지하게 쿠바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독자들에게 조언을 하신다면.


전 계획이라는 단어는 안 좋아하지만, 준비는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특히 강조하고 싶은 건, 서바이벌 스페니쉬 정도는 공부하고 떠나라는 거예요. 한 달 정도만 공부해도, 쿠바의 10배, 20배는 더 들여다볼 수 있어요. 우리가 외국인과 말할 때, 한국말을 조금이라도 들을 줄 아는 외국인이면 더 열린 마음으로 대하게 되잖아요. 영어를 잘하는 쿠바인들도 많지만, 사교를 쌓고 싶으면 조금이라도 언어를 공부하고 가면 좋을 것 같아요. 또 현지에서 자전거를 빌려서 여행할 수 있고, 치한이 좋은 나라니까 대중교통으로 국토 여행을 해도 괜찮아요. 쿠바가 미국과 외교 정상화가 되면서 이제 경제개방이 될 테니 많이 달라지겠죠. 더 많이 달라지기 전에 가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그 어떤 고난에도 찌들지 않고 유머를 잃지 않는 그들만의 생생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쿠바를 찾아왔다”(32쪽)고 하셨어요.


아무래도 쿠바를 갈 때는 한국에서 여러 가지 안 좋은 일도 많았고 환멸 같은 걸 느꼈던 것 같아요. 그럴 나이가 되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돌아와서 생각해보니 제가 대안 같은 걸 찾았던 거 같아요. 사람들이 막막하고 답답할 때, 역사 책을 보잖아요. 우리가 왜 이 모양인지를 알려면, 과거의 연역이 있을 테니까요. 언젠가 페페가 제게 “글을 왜 쓰냐”고 물은 적이 있어요. 쿠바를 다녀 오고 나서 책을 쓴다는 계획 같은 건 없었어요. 다만, 쿠바의 이야기와 잔상이 망각으로 달아나기 전에 곁에 잡아 두고 싶었어요. 저는 쿠바에서 자극이 아닌 영감을 받았던 거 같아요. 그게 가장 큰 수확이에요.

 

영감의 결실은 언제쯤 볼 수 있을까요?


지금 시나리오를 한 편 쓰고 있어요. 조선시대 배경의 사극인데 현재의 이야기를 빗대서 작업하고 있어요. 책도 한 편 준비 중인데, 한 도시 이야기에요. 한 도시의 예술, 건축, 문화 이야기를 제 개인사와 엮어서 써볼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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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혁명보다 뜨겁고 천국보다 낯선 정승구 저 | 아카넷
2014년 가을, 저자는 취재 비자를 받지 않고 쿠바에서 아는 인맥을 통해 사람들을 만날 계획을 세우고 여행을 떠났다. 이렇게 해서 현지인들과 좌충우돌 부대끼며 그동안 언론과 책에 소개되지 않은 쿠바 사회의 이모저모를 체험했다. 미국과 쿠바가 국교 정상화에 합의한 이후 한국 제품의 수입을 원하는 쿠바와 시장 확대를 바라는 한국의 수교가 시간문제인 시점에서 출간된 이 책은 쿠바에 관한 가장 최근의 정보와 분위기를 담은 책으로도 주목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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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재즈 페스티벌을 많이 가는데, 왜 재즈클럽은 안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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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마치 몇 년을 같이 살아도 결코 그 속을 알 수 없는 애완용 고양이와도 같다. 때론 주인을 무척이나 따르는 것 같기도 하면서 때론 너무도 무심해 보이는, 그래서 애완용 가축과 도심의 야수 경계 사이를 절묘하게 거니는 한 마리의 능청스런 고양이.(80쪽)

 

재즈는 아름답다. 별스럽기도 해서 귀를 잡아끄는 매력이 있다. 날씨, 장소불문 부드럽게 장면에 녹아들다 곧 자신이 장면이 되는 음악. 우리는 아름답고 특별한 음악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 결국 현실로 돌아왔다. 짧지 않은 역사의 이 아름다운 음악을 둘러싼 현실이라는 땅은 지금 너무나 황폐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음악에 매혹되어 삶을 그것에 바치려는 사람들과 음악을 ‘피크닉’용 정도로 소비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의 괴리가 걱정스러웠다. 매해 수십만의 사람들이 재즈 페스티벌에 가고, 도시를 뒤덮은 수많은 카페에서 재즈가 흘러나오지만 그뿐이다. 재즈는 매력적이지만 여전히 먼 곳에 있는 낯선 음악이며 음반은커녕 어떤 뮤지션을 들어야 할지도 모를 복잡하고 번거로운 장르로 치부되고 있는 것 같다.


“재즈 페스티벌을 그렇게 많이 가는데 왜 재즈 클럽은 안 갈까요?” 재즈 평론가 황덕호가 묻는다. 얼굴이 좀 달아올랐던 것 같다. 음악을 좋아하지만 어떤 음악이 좋다고 뚜렷하게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라 막 재즈를 듣기 시작했다고 하면서도 다음 단계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비단 국내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위로하듯 말한 황덕호는 “정말 음악을 좋아하고 싶다면 음반을 딱 한 장이라도 사라고 말씀 드리고 싶다"고 했다. 그거다. 속으로 무릎을 탁 쳤다. 거기에 해답이 있을 것이다. 빵을 좋아하는 사람이 반드시 제빵 지식을 알아야 하는 건 아니므로. 맛있는 빵집을 찾아다니며 훌륭한 빵을 맛보는 건 (기쁜 마음으로)할 수 있으니까.


어떤 빵부터 시작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강력 추천하는 두 가지는 『그 남자의 재즈 일기』와 유튜브다. 이것만 있으면 된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빵집(음반)을 하나만 찾아내자. 그걸로 충분히 성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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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화와 집중도 사이에서


2002년에 출간되었던 책이 개정되어 나왔습니다. 2002년과 2015년은 시간의 간격만큼이나 재즈를 둘러싼 환경 변화가 클 것 같은데요. 라디오에서 재즈 프로그램도 꾸준히 진행하고 계시는 내부인 입장에서는 어떻게 느끼시나요?

 
물론 음반이 사라지고 있는 전반적인 문제가 책에도 담겨 있는데요. 일단 재즈라는 음악이 2000년대 초만 하더라도 듣는 사람들의 숫자가 지금보다 훨씬 적었어요. 그러다 보니 이런 가이드북도 필요하다는 생각에 책을 쓰겠다는 아이디어를 만들었었죠. 지금은 어느 커피숍을 가도 재즈가 많이 나오죠. 재즈 페스티벌을 한 번 하면 수십만의 인파가 모이고요. 전보다 굉장히 덜 특별한 음악이 된 건 맞아요. 대중화되었다고 봐야죠. 동시에 재즈를 열심히 듣는 사람의 숫자는 줄어든 것 같아요. 많이 줄었죠. 음반이 사라지고 있는 부분과 큰 관련성이 있어요. 예전에는 어떤 아티스트가 어떤 음반을 냈고, 어떤 순서대로 나오고 있고, 누가 연주하고 있다는 것 등에 대한 총체적인 관심이 있었는데요. 음반이 사라지니까 광역적으로 넓어지는 대신에 그 음악에 대한 집중도랄까 그런 것이 떨어진 부분이 있죠. 열혈팬들은 훨씬 줄어든 느낌이 들어요. 음악 전반에서 소비되는 패턴이 다 그렇게 바뀐 것 같아요. 그런 상황이죠.

 

특히 국내 재즈 인구가 ‘공중분해(643쪽)’ 됐다고 표현하기도 하셨어요.


그렇죠. 실제 제가 음반사 담당자와 이야기 도중 들었던 얘기인데요. 팝이나 가요는 음반 시장에서 디지털 시장으로 옮겨갔잖아요. 음반 매출이 줄어들고 디지털 시장이 계속 커지고 있는 상황이고요. 음반이 사라지는 것을 가장 거부하는 층은 클래식 층이에요. 디지털로 듣는 것을 무척 싫어하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시장이 커진다는 대세는 바뀌지 않고 있고, 클래식 분야도 더디게나마 디지털 시장이 확대되고 있어요. 그런데 재즈는 음반 시장도 없어지고, 디지털 시장도 없어져버린 거예요.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느냐면 재즈가 너무 좋아서 듣는 사람의 숫자가 애초에 적었던 거고, 일 년에 한 번 페스티벌 가서 듣는 것으로 모든 게 다 만족이 되었다는 거죠. 그 시장만 남은 거예요. 음악 시장이라고 보기에는 좀 힘들고, 피크닉 시장 같은 것으로 말이에요.

 

피크닉 시장이요? 


예. 그런데 이게 비단 한국 시장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미국에서는 2014년 통계가 2015년 상반기에 나오는데요. 공연 시장 등을 모두 포함한 통계인데, 재즈가 1.4%를 차지해서 꼴등을 했어요. 그건 항상 그랬어요. 동요 시장보다도 작아요. 재즈는 원래 그런 음악이에요.(웃음) 그런데 제일 충격적인 것은, 디지털 시장이 전년 대비 마이너스 시장이 된 분야가 재즈가 유일했다는 점이에요. 클래식도 디지털 시장 규모가 조금씩 다 늘거든요. 그런데 재즈만 마이너스가 됐어요. 그것에 대해 재즈 뮤지션들이 많이 얘기를 주고받았다고 해요. 이 통계는 인터넷에서 볼 수 있어요.

 

답답하실 것 같아요. 재즈를 향유하는 방식이 카페에서 듣는 음악 정도이지 어떤 아티스트를 좋아해서 음반을 찾아듣는 것으로 이어지진 않고 있어요. 그런 노력이 거의 없어진 분위기를 어떻게 보고 계신지 궁금해요.


음반이 만들어져서 컬렉션으로 듣는 문화가 미국과 유럽은 1930년대부터 시작된 것 같아요. 그때부터 음반 컬렉터라는 것이 생겨서 각 음반 회사 별로 일련번호들을 정리해서 잡지로 내고, 서로 정보를 공유하면서 평을 쓰고 이런 것들이 생겼어요. 재즈는 숫자가 훨씬 적긴 했지만요. 폭발적으로 이 숫자가 늘어난 게 LP라는 매체가 생기고 나서부터죠. 이때부터는 말도 안 되게 음악 시장이 거대해지고 평도 쏟아졌어요. 집에 오디오를 두고 음악을 듣는 것이 굉장히 재미있는 취미거리가 된 시대가 있었죠. 이제는 재미있는 것들이 다 스마트폰으로 가서 사람들이 재미를 다른 쪽에서 느끼는 상황이 된 것 같아요.


영화도 비슷하게 볼 수 있겠지만 영화는 확실히 극장이라는 공간을 집에 구현하기가 힘들고, 단순히 영화를 보는 것만이 아니라 애인이나 친구를 만나서 밥을 먹는 등의 행위들이 다 동반되어 있는 것이니까 좀 다르겠죠. 그것도 일종의 피크닉인 거죠. 재즈도 그렇게 된 것 같아요.

 

그런가 하면 ‘재즈란 이런 것이다’라고 하는 편협한 기준으로 반쪽짜리 감상을 하는 경우도 많아요. 책에서도 그런 감상을 계속 경계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누구나 그런 면이 있죠. 아무래도 균형 감각이 있으면 좋겠죠. 사실 그런 점에 있어서는 이 책을 싫어하는 분들도 많으실 거예요. 요즘 재즈 잘 안 다루고 있고, 재즈라는 음악을 어느 한쪽으로 몰아놓은 것 같은 느낌이 있을 테니까요. 이 취향에 동의하시지 않는 분들의 숫자가 훨씬 많을 거예요. 비근한 예로 팻 메스니(Pat Metheny), 키스 재럿(Keith Jarrett)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뮤지션들인데 이 책에서는 살짝만 다루잖아요. 실제로 저에게 그런 불만을 얘기한 분들도 계셨거든요. 그래서 책 역시 균형이 있다고 표현하기는 좀 그렇죠.


책에서 표현한 것은 음악 마니아고 재즈를 아주 좋아하시는 분들이 가지고 있는 편협함이나 까탈스러움, 잘난 척하고 재수 없는(웃음) 면들이었는데요. 이런 것들이 등장해야 얘기가 좀 진행이 되는 면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입문자 입장에서 ‘듣는 사람들은 저렇구나’ 생각하면서 그 사람과 정신적으로 싸움이 벌어져야 동력이 생기니까요.

 

사실 음악 감상자로서 우리 안에는 M도 있고, 염경미나 최지숙 등 모든 등장인물이 들어 있잖아요. 때문에 책의 주인공이 경험하는 의식의 흐름이 공감되는 부분이 있어요.


예.(웃음)

 

 

음악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은 건축을 춤으로 표현하는 것과 마찬가지

 

소리에 대한 감상을 글로 표현한다는 것이 무척 주관적이기도 하고, 쉽지 않은 작업이었을 것 같아요. 색깔, 동물, 풍경 등으로 표현하면서 최대한 느낌을 전달하려고 하셨어요. 어려운 점은 없으셨어요?


어렵죠. 그게 제일 어려운 부분이죠. 누구의 말인지 불확실하지만 ‘음악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은 건축을 춤으로 표현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유명한 얘기가 있잖아요. 어려워요. 추상적인 것을 말로 표현하는 데는 늘 한계가 있어서요. 책에서 계속 라이너 노트(liner note, 음반에 따라 나오는 음악과 연주자 해설)를 읽고 얘기를 하잖아요. 대부분 영문으로 쓰여 있어서 잘 안 읽으시는데, 책에서는 그걸 빼놓고 얘기를 하려면 진행이 안 되니까 객관적인 사항을 가지고 시작한 거죠. 아니면 뜬구름 잡는 얘기만 계속 하게 되니까요. 좀 억지스럽긴 하지만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그런 설정을 넣은 거예요.

 

랠프 J. 글리슨이 쓴 음반 해설문의 도입부를 인용하면 이렇다.

 

이 음악에 대해 말할 것이라곤 별로 없다. 내 말은 음악에 대해 많은 설명을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바보 같은 짓이며 음악 자체가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말하려는 바는 음반을 들으면서 내 마음속에 수많은 섬광이 스쳐지나갔으며, 할 수만 있다면 나는 삶과 현장, 사람들 그리고 피와 땀 사랑 등 모든 것들이 어우러진 소설 한 편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170쪽)

 

칼럼도 많이 쓰시는데, 그때도 비슷한 방법을 취하시는 거죠?


조그만 리뷰를 쓸 때도 저는 안에 있는 정보는 최대한 읽고 쓰려고 해요. 최소한 그 뮤지션이 이 음악을 통해 전달하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것을 출발점으로 삼아야죠. 아주 아름다운 미문을 쓰려고 노력하는 건 아니고요.


책을 쓸 때 참 힘들었어요. 주인공이 나름 초보자잖아요. 그런데 너무 다양한 정보를 다 알고 있는 티가 나면 독자 입장에서 공감하기가 힘드니까 적정선을 타협해야 했죠. 그렇다고 너무 모른다는 말만 하고 넘어가면 읽는 분들에게는 아무 도움이 안 되고요. 어떤 게 있다고 하더라 하는 식으로 썼는데, 잘 전달이 안 된 것 같기도 하더라고요.(웃음) 이게 왜 명반인지 더 구체적으로 강한 어조를 가지고 설명해줘야 하는데 왜 그러지 못했냐는 질문도 받았거든요. 제 능력의 부족함일 수도 있고, 책의 내용상 너무 그럴 수도 없었어요. 평론가가 글을 쓰고 있는 게 아니니까요. 초보자가 쓰는 일기 화법이 일장일단이 있었던 거죠. 

 

편견을 깨는 것도 아주 중요한 감상 포인트가 아닐까 싶습니다. 관악기 편성 대목에서도 그 점을 지적해요. 


그것이 재즈 드는 데 가장 어려운 부분 중 하나인 것 같아요. 클래식 음악에서도 항상 현악기 뒤에 있는 것이 관악기고, 실내악 같은 데서는 아예 잘 쓰지도 않고요. 특히 금관악기들은 더 그렇죠. 일반 팝 음악에서는 사라진지 오래 됐죠. 이 소리는 재즈를 들어야 뭘 만나는 정도예요. 일단 무슨 악기 소리인지도 잘 모르고요. 들을 때 소리가 좋아야 하는 건데 참 어려운 장벽인 것 같아요. 많은 분들이 팻 메스니, 키스 재럿을 좋아하는 이유는 사운드의 친숙함이라는 부분이 있어요. 피아노의 친숙함, 기타 사운드처럼 어떤 장르를 좋아해도 다 좋아할 수 있는 음색을 가지고 있는 악기들이니까요. 색소폰, 트럼펫이 되면 어디서 만날 일이 없는 악기들이니까 낯설죠. 책이 이 악기들에 대한 편견을 깰 수 있게 했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어떻게 하겠어요?(웃음) 그저 어느 순간에 괜찮다는 느낌이 와야 하는 거죠. 저도 10대 시절 록을 더 좋아했을 때는 색소폰 나오면 술집 음악 듣는 것 같고 싫었어요. 특히 빅밴드 음악은 서커스 음악 듣는 것 같고요. 그런데 어느 순간 좋아지더라고요.

 

어떤 순간이었을까요?


모르겠어요. 왜 그게 좋아졌느냐고 물어보면 대답을 못하겠어요. 그렇지만 어느 순간 딱 오는 거죠. 너무 얘기가 많이 되어서 안 좋은 면도 있지만, 사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재즈를 굉장히 좋아하잖아요. 카운트 베이시(Count Basie)를 들을 때 그가 하는 게 있대요. 볼륨을 가급적 제일 크게 하고, 맥주를 들고, 소파에 몸을 기대고 앉아서 사운드를 몸으로 느낀다고요. 이게 빅밴드, 카운트 베이시가 주는 즐거움이라고 했거든요. 전적으로 공감해요. 제가 그런 문장을 쓸 수 있었으면 진짜.(웃음) 그 사람은 정말 대단해요. 어떤 평론가도 그렇게 쓴 적이 없거든요. 그런데 느낌이 딱 오잖아요. 그 문장 읽고 나서 그대로 하면 정말 좋을 거예요. 그렇지 않을까요? 클래식 교향악단에서도 그런 소리가 안 나오죠.

 

그 압도적인 소리들을 ‘몸’으로 느낀다는 상상만도 좋은데요.

 

네! 사운드의 완급을 굉장히 폭 넓게 쓰잖아요. 피아노, 베이스 소리가 ‘치-치찌치-착착착’하며 나지막하게 나오다가 ‘파박!’ 이런 식으로 나오잖아요. 서서히 올라가는 게 아니라 ‘팍!’치고 나와요. 죽이잖아요. 2004년에 한국에 왔었는데, 연주가 끝나도 관객들이 아무도 가질 않더라고요. 진짜 대단해요.

 

현장에서 소리를 들으면 그 감각을 잊지 못할 것 같아요.


그 다음부터는 음반을 들어도 그 느낌이 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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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인종, 다양한 문화, 다양한 음악이 만든 ‘재즈’


재즈라는 음악은 무엇보다 해석의 여지가 많다는 것이 큰 매력인 것 같아요. 다양한 줄기가 갈래를 뻗었고요. 재즈의 예술성이 이런 부분이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애초에 재즈라는 음악은 시작부터 그 안에 다양한 음악이 몰려 들어와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일단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에게는 기본적으로 블루스라는 음악이 있잖아요. 독특한 음악적 형식과 라임이 있단 말이죠. 이들이 군악대도 하고, 술집에서 피아노도 치고 하면서 다 섞인 거죠. 재즈가 최초에 대중음악적 성격도 있었지만 음반 산업과는 별개로 자신들이 좋아서 하는 장르로 형성된 거예요.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 카운트 베이시, 찰리 파커(Charlie Parker) 등 그들이 만든 소리들은 음반 판매를 염두에 둔 게 아니에요. 단지 뮤지션들끼리 알아듣는 언어였던 거죠. 물론 시장이라는 것도 일종의 압박이어서 이런 음악이 안 팔린다고 하면 그 음악은 죽어요. 그쪽으로 상상을 할 수가 없는데, 재즈 뮤지션들은 몇 장 팔리든 이게 굉장히 음악적으로 재미있는 언어라고 하는 공감이 있었던 거예요. 그게 오래 지속되다보니 사방팔방으로 음악이 변하면서 100년 동안 이어져 온 거죠. 듣는 사람의 숫자와 상관없이 말이에요. 굉장히 독특한 사회적 환경 속에서 이런 음악이 가능했던 것 같아요. 다른 나라였어도 불가능했을 거예요. 다름 아닌 미국이란 나라에서 다양한 인종의 문화, 다양한 음악들이 섞이는 안에서 뮤지션들을 위한 뮤지션들의 음악이 만들어진 거죠. 그걸 또 좋아하는 소수의 팬들이 있었고요.

 

소수의 팬들이라는 점이 또 중요한 부분이에요. 그들 재즈 뮤지션들의 삶이 마약과 술로 얼룩진 사례들이 많았잖아요.


대부분 그 사람들이 패배자가 되었죠. 시장 안에서 말이에요. 그럴 수밖에 없는 거죠. 거기에 어떤 성공 스토리가 없죠.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처럼 대중적으로 너무나 잘 알려진 뮤지션이 중간에 한두 명 씩 나오고 사회적, 금전적으로 대우도 받긴 했지만 대부분은 그들이 무슨 음악을 했는지도 모르는 경우가 많았죠. 그러니 다 약물에 의존하고, 술에 의존하고 나자빠져버렸죠.

 

더불어 ‘할렘 르네상스’ 안에서 재즈를 해석하기도 하셨고, 사회적 저항 분위기에서 비롯된 재즈의 흐름도 읽혔는데요. 이런 접근이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반드시 재즈뿐 아니라 음악이란 사회와 결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잖아요.


음악이 세상과 별도로 떨어져 있는 게 아니죠. 말했듯이 사회적 조건이 마련되어야 그 안에서 무엇이 만들어지고 할 수 있는 것이에요.

 

국내 재즈 뮤지션, 신인 뮤지션들의 상황은 어떤가요?


엄청 많이 나오고 있어요. 2010년 이후 재즈 음반이 1년에 100장 정도는 나왔을 거예요. 요즘은 음반 시장 위축에 따라 좀 줄어든 것 같지만요. 굉장히 많이 나왔죠.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음반 시장도 안 좋고, 재즈 뮤지션들이 음악으로 생활하기도 힘든 국내 음악 토양에서 말이에요.


재즈 뮤지션들이 한국 와서 많이 놀라는 것이 청중들의 나이가 어리다는 거예요. 깜짝 놀라요. 일본의 경우도 거의 고령화 되었고, 그것이 굉장히 재즈의 전망을 어둡게 하는 요소가 되죠. 페스티벌을 가면 거의 다 노인이에요. 우리나라만 젊은 사람들이 많이 가요. 사회적 여건이 좋아졌다기보다는 그만큼 재즈가 늦게 들어왔기 때문이에요. 말들이 많지만 재즈 대중화의 단초가 세워진 것은 1990년대부터 서서히 시작되었다고 보는데요. 2000년 이후에 페스티벌도 생기고 하면서 사람들이 듣기 시작한 거거든요. 현재 재즈 뮤지션, 직업적으로 클럽에서 연주하고 하는 사람들의 숫자를 대략 300명 정도인데, 2000년대만 하더라도 50명 됐을까요? 100명이 채 안 됐어요. 국내 음반 자율화가 된 게 얼마 안 되니까요. 재즈 CD가 80년대 후반, 90년대 돼서 보였지 그 전에는 수입이 안 됐어요. 음악을 마음껏 접할 수 있고, 할 수 있는 세대가 늦게 탄생한 거예요. 또 실용음악과라는 요인도 커요. 80년대 후반에 학과가 생기면서 재즈를 조금 하는 사람들이 주임교수로 앉기 시작했죠. 화성이론 같은 것이 기본적으로 다 재즈에서 나오거든요. 그러니까 어디라도 입학하려면 재즈를 조금이라도 이해해야 했어요. 

 

 

재즈 페스티벌을 그렇게 많이 가는데 왜 재즈 클럽은 안 갈까


문제는 수요가 크지 않다는 점이에요. 앞서 미국 재즈 뮤지션들의 사례도 떠오르네요.


시장이 안 만들어지고 있다는 게 굉장히 큰 문제죠. 뮤지션이 살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앞으로 큰 문제가 될 것 같아요. 재즈 페스티벌을 그렇게 많이 가는데 왜 재즈 클럽은 안 갈까요? 그나마 1930년대 미국의 재즈 뮤지션들은 평생 재즈라는 음악을 하며 살았거든요. 가난하게 살지언정 말이죠. 우리나라는 아예 희망고문 자체가 안 되는 것 같아요. 클럽도 너무 없고, 음반도 안 팔리니까요. 지금 국내 재즈 뮤지션이 300명 정도라고 했는데, 몇 년 안에 곱절이 늘 것 같거든요. 금세 늘어요. 하지만 실질적으로 무대가 없으니까 다른 방법을 찾게 되겠죠. 정말 연주 잘하는 신인들이 나오니까 반갑기도 하면서 착잡하기도 해요. 

 

시만 쓰는 시인이 없는 것처럼 재즈만 할 수 있는 재즈 뮤지션이 존재할 수 없는 환경이군요.


해방 이후 한국은 음악이 실패한 나라예요. 예체능계에서는 스포츠가 성공을 했죠. 음악은 실패했어요.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 80년대까지 국가 주도의 사회였잖아요. 스포츠를 국가적으로 장려했던 반면 음악은 항상 검열과 감시의 대상이었죠. 이것만 놓고 보아도 여기서 잘될 수가 없었던 거죠. 대중음악 평론가들이 우리나라 대중음악의 역사를 얘기하고, 호평하는데요. 물론 좋은 음악도 있었고, 이런 어려움 가운데도 훌륭한 음악이 나왔다는 걸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닌데 전반적으로는 저질의 음악을 쏟아냈어요. 국가 찬양하는 노래, 천편일률적 노래들을 쏟아냈다고요. 시인과 뮤지션의 상상력을 죽인 나라죠.

 

자본이라는 권력도 무시할 수 없고요.


2000년대 이후 자본이 검열의 자리를 차지해요. 안 팔리는 건 다 죽이죠. 싸이가 아무리 흥행을 해도 한국 음악에 1%도 도움 못 돼요. 음악이든, 시든 최소한 사회 구성원으로서 낙오자나 실패자, 죽는 사람이 생겨선 안 되는 거예요. 안전장치가 있지 않으면 아무도 시를 안 써요. 아무도 음악을 안 하죠. 계산을 해볼 수 있겠죠. 주 5일, 아침 9시에 출근해서 오후 3시 정도에 퇴근하는 정도의 노동으로 최소한의 생활 가능한 돈을 벌면서 나머지 시간을 창작에 쏟고, 밤에 어디 가서 공연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되면 되는 거예요. 무슨 진흥원에서 지원 사업을 한다, 다 소용 없어요. 창작자들이 그런 지원에 손을 안 벌리고 어느 정도 노동을 하면서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지 않으면 불가능해요.

 

그런 환경이 사실 전혀 불가능한 얘기도 아니잖아요. 유럽이나 선진국의 사례를 봐도 그렇고요.


프랑스의 하모니카 연주자가 국내에 온 적 있어요. 한 클럽에서 연주를 한 후 자신이 가져온 서류를 내밀면서 클럽 주인에게 서명을 해달라고 하더라고요. 프랑스에 돌아가서 이 서류를 제출하면 정부에서 돈이 다 나온대요. 한국에서 공연한 것까지 말이에요. 우리나라에서는 진짜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마음을 정화시킬 수 있는 곳에 세금이 하나도 안 쓰이고 있죠.

 

이런 고민을 정말 많이 하실 것 같아요.


안 할래요. 이제.(웃음)

 

이런 틈에도 고무적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나요? 아니면 전혀 희망이 없다고 보세요?


젊은 뮤지션들이죠. 우리 세대에서는 도무지 생각도 할 수 없던 음악을 만들어내고, 너무 잘해요. 어렸을 때부터 음악을 했으니까요. 그렇지만 도통 이 젊은 친구들의 재능을 담보해낼 수 있는 사회적인 조건이 안 만들어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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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딱 한 장의 음반


명반 50장을 꼽으셨는데, 그 중 제일 좋아하는 음반이 뭘까요?


정말 좋아하는 뮤지션인데 책에 다루지 못한 사람들도 많아요. 좋아하는 가수 중에 멜 토메(Mel Torme)라고 있는데요. 내용 흐름 상 안 맞으면 억지로 넣을 수가 없더라고요. 음. 제일 좋아하는 음반 고르기는 힘들어요. 범위를 좁힌다면 모를까요.(웃음)

 

그렇다면, 술 한 잔 했을 때 떠오르는 음악을 꼽는다면?


얼마 전에 술자리에서 빌리 홀리데이(Billie Holiday)가 흘러나오는데, 함께 있던 여섯 명이 동시에 쓰러졌어요.(웃음) 진짜 좋았어요. 사람들은 다 똑같더라고요.


무인도에 가져갈 음반을 ‘아일랜드 레코즈’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하여튼 찰리 파커가 좋아요. 들으면 전체가 완전히 재즈로 들어찬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들을 때마다 짜릿짜릿해요. 듀크 엘링턴도 좋지만 그는 좀 아닌 작품도 있고, 너무 과하다 싶은 것도 있는데 찰리 파커는 진짜 버릴 게 하나도 없는 에센스인 것 같아요. 재즈 에센스요.

 

이제 막 재즈를 듣는 분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실 것 같아요.

 

오해하실 수도 있겠지만 정말 음악을 좋아하고 싶다면 음반을 딱 한 장이라도 사라고 말씀 드리고 싶어요. 오히려 많이 사는 사람도 저는 별로 신뢰하지 않아요. 한 장을 여러 번 듣고, 누가 연주했는지도 살펴보고, 낱낱이 알아야 해요. 그럼 다음 단계로 자연스럽게 옮겨갈 수 있어요. 책의 내용이 다 그런 것이고요. 그렇게 가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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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의 재즈 일기황덕호 저 | 현암사
다채로운 이 음악들이 모두 ‘재즈’다. 재즈는 흡수력이 왕성해서 모든 음악을 빨아들였다가 재즈로 토해낸다. 재즈는 한때 지금의 힙합 같은 핫한 음악이자 불손한 음악이었으며, 팝처럼 널리 대중적인 사랑을 받던 음악이었다. 또 현대 미술처럼 파격적이고 난해한 음악이기도 했다. 모든 것이 그렇듯 재즈도 공부하면 하는 만큼 들리는 음악이고, 역사적 이해가 필요한 음악이다. 재즈 입문자를 위한 최고의 레퍼런스 『그 남자의 재즈 일기』는 ‘그 남자’가 뉴올리언스의 홍등가, 시카고의 클럽, 뉴욕의 뒷골목과 카네기홀을 함께 거닐며 재즈를 읽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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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혁 “픽션이 너와 함께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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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는 너무 많은 일을 해야 하는 감독


“지금은 되게 심란해요. 사실 가장 좋은 건, 글을 쓰고 있을 때에요. 제일 행복한 순간은 소설이 3분의 1쯤 진행됐을 때고요.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를 상상할 때, 그 때가 되게 좋아요. 소설을 끝내고 책이 나올 즈음이 되면, 굳이 책을 내야 하나? 이런 생각이 들고 마음이 복잡해지죠.”

 

그러니까 이 인터뷰는 김중혁 작가의 심란한 속내가 드러날 이야기다. 『가짜 팔로 하는 포옹』이 예약 판매 중인 상태에서 진행된 인터뷰였으니, 완성된 소설을 읽은 독자는 출판사 편집자와 작가 본인, 그리고 필자가 전부였다. “말은 자책하게 되는데 글은 절대 자책하지는 않는다”는 김중혁 작가는 이 인터뷰를 읽고 “내가 왜 이런 말을 했을까?” 자책하고 있을지 모른다. 처음 팟캐스트 <이동진의 빨간책방>을 녹음하고서는 “내가 저런 멍청한 이야기를 했나?” 싶었다고 했다. 그렇기 때문에 김중혁에게 소설은 더 귀한 물성이다. 소설은 온전히 작가가 모든 걸 창조한다. 캐스팅부터 자료조사, 분장, 연출, 촬영, 편집까지. 책에도 엔딩 크레딧이 있다면 작가의 직업은 꽤나 많아질 것이다. 작가의 말마따나 “소설가는 너무 많은 일을 해야 하는 감독”이다.

 

“소설을 쓰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 이야기를 쓴 적이 없는 것 같아요. 농담처럼 ‘연애소설’이란 이야기를 했는데, 사람과 사람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잘되고 있는 연애 말고, 연애를 막 시작한 사람들의 이야기, 막 끝내고 난 상황의 이야기, 즉 연애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김중혁 스타일로 해석된 ‘연애’는 「상황과 비율」, 「픽포켓」, 「종이 위의 욕조」, 「힘과 가속도의 법칙」, 「요요」 등의 제목을 달고 세상에 나왔다. 김중혁은 책 속 ‘작가의 말’에 이번 단편소설집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의 이름을 적으며 “이 사람들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재밌게 쓰려는 마음도 있었지만, 진심 어린 작가의 말이라고 생각했다.

 

“소설을 쓸 때 어떤 특정한 주인공이 주로 떠오르지만, 그 주인공이 있으려면 더 많은 사람들을 상상해야 하거든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제가 그 모든 사람들을 다 생각을 하면서, 상상을 하면서 소설을 썼더라고요. 그래서 그 사람들에게 다 감사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책장을 열면 나오는 작가 소개에는 김중혁 작가가 지금까지 쓴 모든 단편의 제목을 적었다. 출생, 학력 등은 찾아볼 수 없다. “소설책이 표지부터 마지막 장까지, 하나의 완결된 세계면 좋겠다”는 작가의 바람이 반영됐다. 소설집 제목 『가짜 팔로 하는 포옹』역시, 책에 수록된 단편소설의 제목이다. “한 번만 안아주고 가라”는 남자의 말에 “지금까지 마신 건 내가 계산하고 갈게”라고 답하는 여자, 두 사람의 이야기다. 줄곧 대사와 장면이 반복되는, 해설 없는 시나리오 같은 작품이다.

 

“머릿속으로 연극 무대를 상상하면서 쓴 소설이에요. 두 명의 남녀가 술집에 앉아 이야기를 주고 받고 있는 상황을 떠올렸어요. 문득 ‘가짜 팔로 하는 포옹이 되게 슬프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어떻게 생각하면 ‘가짜 팔’이라서 슬프게도 들리지만, 가짜 팔로라도 포옹한다는 것 자체가 희망적이라는 생각도 들고???. 두 사람이 포옹을 했어야 했나? 가짜 팔로라도 해야 하나? 둘이서 어떤 마음일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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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들이 말 잘해도 이상하지


김중혁 작가가 애당초 소설집 제목으로 생각했던 작품 「요요」는 ‘제13회 이효석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되면서 이미 수상작품집의 제목이 됐다. 시계를 만드는 남자의 인생을 그린 이 소설은 단편이지만 굉장히 긴 시간을 다룬다. 주인공은 한 여자를 사랑했지만 현실의 것들을 버리지 못해 먼 곳에 있는 여자에게 가지 못한다. 김중혁 작가는 “정말 사랑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소설인데, 쓰다 보니 남녀가 사랑하는 얘기를 쓰고 싶은 마음이 크지 않았다”고 말했다.

 

「요요」는 ‘마치 한 편의 영화를 한 컷 한 컷 보여주는, 그런 시각적인 기분으로 쓰고 싶었던 작품이었어요. 짧은 소설에서 긴 시간을 표현해야 할 때는 어떻게 장면을 건너뛰는 게 좋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썼어요. 당시 수제시계를 제작하는 회사를 취재하면서 시계 조립과 관련된 책을 읽기도 했거든요. 소설을 쓰다 보면 그런 낯선 책들도 읽게 돼요.”

 

「요요」의 주인공 차선재는 아픈 아버지를 병간호하느라 베를린에 있는 수영에게 가지 못하는데, 그 와중에 시계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는다. 병원만 왔다갔다하는 환경 속에서 더 좋은 아이디어가 나올 수 없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아픈 아버지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사실을 찜찜해 하는 인물이다. 소설가 또한, 이와 같지 않을까? 기쁨과 슬픔 속에 빠져 있다가도 문득 이야깃거리를 떠올리는 게 작가의 운명이다.

 

“온전히 슬픔이나 기쁨을 느낄 때가 있지만, 거기에서 조금 빠져나갔을 때는 정말 내가 관심 있는 것들을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조금만 그 감정에서 물러나 있으면, 이 감정이 나한테 어떤 의미인지를 떠올리는 게 작가의 직업병이 아닐까, 생각해요. 사람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에요. 다툴 때는 화나 나서 싸우는데, 상황이 좀 지나고 나면 내가 왜 이랬지? 왜 화를 냈지? 그 배경이나 상황을 생각하게 돼요. 직업병일 수도 있지만 작가로서 참 행복하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쨌든 모든 걸 관찰하고 들여다보면서 이해하려는 시도를 계속한다는 점이에요. 그냥 무감각하게 무덤덤하게 무심하게 받아들이는 것보다, 아주 작은 거라도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들여다보는 게 소설가의 운명이라면 말이에요.”

 

다섯 번째로 실려 있는 단편 「종이 위의 욕조」에는 큐레이터와 방송기자의 대화가 그려진다. 큐레이터인 용철은 미술작가와 인터뷰를 마친 기자에게 묻는다. “(그 작가) 말 잘 못하죠?” 기자는 답한다. “작가들이 말 잘해도 이상하지.” 용철은 대꾸한다. “인터뷰 내용 들어보니 전부 뜬구름 잡는 소리던데?” 기자는 “사람들은 구름 좋아해. 뭉실뭉실하니까”라고 답한다. 김중혁 작가에게도 똑같이 물었다. “지금 우리도 뜬구름 아닌가요?”

 

“뜬구름 위에서 비가 내리죠. 뜬구름이 겉으로 아름다워 보일 뿐 아니라 실제로 우리에게 비를 내리고 휴식을 제공하는 것처럼, 예술도 그런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가끔은 뜬구름이라서 스스로가 하찮게 보이고 필요 없이 보일 때도 있지만, 그렇게 되지 않으려도 많이 노력해요. 이야기를 만들어낸다는 게 허무맹랑해 보이고 무의미해 보일 때가 많지만, 삶을 너무 타이트하지 않게 만드는 힘이 된다고 생각해요.”

 

김중혁 작가는『가짜 팔로 하는 포옹』을 펴내며 독자 사은품으로 보틀을 만들었다. ‘중혁 보틀’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물병에는 “픽션이 너와 함께하기를(May the fiction be with you)”이란 문구가 새겨져 있다. 영화 <스타워즈>에 나오는 대사 “May the force be with you”를 패러디했다. 독자들은 물병에 물을 담으며 어떤 생각을 할까. “소설이 뜬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들릴지라도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통로가 되기를 바란다”는 작가의 마음을 읽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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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팔로 하는 포옹 김중혁 저 | 문학동네
숫자로 치자면 네번째 소설집이고, 그의 입을 빌리자면 첫번째 연애소설집이다. 대놓고 연애라니, 그렇다면 주요한 테마를 ‘사랑’으로 잡았다는 얘기인데 세상 그 어떤 소설이 사람에 대한 사랑이 아니고서 쓰일 수 있겠냐마는 그럼에도 ‘김중혁이 이야기하는 남과 여’는 보다 특별해 보이는 게 사실이다. 총 여덟 편의 소설이 실린 이번 작품집에서 그는 그만의 장기인 빠른 읽힘의 힘을 여지없이 발휘하고 있다. 일부러 쉬어가라는 듯 찍어둔 잦은 쉼표 사이사이 그만의 군더더기 없는 문장들은 여전히 젊다. 특유의 재치도 양껏 잘 녹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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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희주, 왜 우리는 ‘꼼지락 홀릭’에 빠졌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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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만든 선물』에는 ‘마음의 순간들’이 기록되어 있다. 누군가를 떠올리며 그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일지 세심하게 살피는 마음, 그 마음이 오롯이 전해지기를 바라며 정성을 쏟는 시간, 선물을 받고 아이처럼 기뻐할 그의 얼굴을 떠올리며 미소 짓는 순간이 담겨있다. 그 모두는 한 장의 상품권이나 대량 생산된 물건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것이다. 세상 단 하나 뿐인, 단 한 사람만을 위한 선물인 까닭이다.

 

‘꼼지락 홀릭’에 빠진 저자가 들려주는 『손으로 만든 선물』의 세계는 다채롭다. 향기로운 만남이 오래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준비하는 ‘허브 솔트’부터 혼자 사는 후배를 위해 요리하는 ‘후리가케’와 ‘연근 초절임’ 어머니에게 시원하고 가벼운 여름을 전하기 위해 만드는 ‘모시 가방’에 이르기까지, 많은 시간과 특별한 재능이 없어도 직접 만들 수 있는 선물은 다양하다.

 

간단한 바느질만으로 뚝딱 만들어내는 ‘리넨 주머니’는 누구에게나 유용한 선물이 된다. 결혼을 앞둔 친구에게는 이니셜을 수놓은 ‘컵 받침’과 달콤한 ‘웨딩 티’로써 축하의 마음을 전할 수 있고, 한 땀 한 땀 축복을 박음질해 넣은 ‘아기 이불’로는 사랑스러운 조카의 탄생을 기념할 수 있다. 책을 사랑하는 이에게 전하는 ‘책보’와 ‘책갈피’ 커피 대용으로 마실 수 있는 ‘서리태차’ 부엌일을 즐겁게 만들어주는 수놓은 ‘행주’와 ‘리넨 앞치마’는 나를 위한 선물로 준비해도 좋다.

 

『손으로 만든 선물』은 손바느질과 자수의 기본 방법은 물론 도안까지 소개하는 실용적인 책이지만, 그 안에 담긴 것은 단순한 정보만이 아니다. 한 병의 ‘밀크티 잼’ 한 장의 ‘부채집’에도 이야기가 숨어있다. 직접 만든 선물로 마음을 전했던 사람들과 인연에 대한 이야기다. 일본인 남편과 결혼한 후 일본에서 가정을 꾸렸던 저자는 한국에서 친구가 보내 준 선물 상자와 손 편지로 그리움을 달랬고, 자신의 할아버지가 입으셨던 유카타 천으로 컵 받침을 만들어준 일본인 친구와 소울 메이트가 되었다.

 

『손으로 만든 선물』만이 전할 수 있는 마음과 감동을 알아채기란 어렵지 않았다. 인터뷰를 위해 저자와 만났을 때, 그녀는 지난밤에 얼려두었다는 ‘민트 잎 총총 박힌’ 얼음을 띄워 탄산수를 내어주었다.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원두를 직접 갈아 커피를 내려주었다. 찻잔 속에 담긴 것은 만남에 대한 기대였고, 기다림의 설렘이었고, 아직 만나지 않은 이를 위해 일찌감치 준비한 정성이었다. 직접 만든 선물에 깃들어 있는 것은 상대를 향한 살핌과 나눔의 진심이라는 걸, 그녀는 말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들려주었던 것이다.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세상 하나뿐인 선물들은 그녀의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일본 주재원 부인들의 규방 공예 교실이기도 한 저자의 집은 손끝에서 탄생한 ‘선물’들의 보금자리였다. 색색의 천을 오리고 바느질해서 무늬를 넣은 여름 커튼과 풍경 밑에 달아놓은 고운 빛깔의 조각천은 바람이 불 때마다 시선을 사로잡았다. 떨어진 자스민 꽃을 올려놓은 접시는 그 자체로 멋진 장식이 되었고, 할로윈 데이를 맞아 호박 모양으로 만들었다는 바늘꽂이는 작은 미소를 띠게 했다. 그 공간 속에서 오고간 이야기들은 ‘선물’에서 시작되어 ‘사람’과 ‘소통’으로 끝을 맺었다.

 


왜 우리는 ‘꼼지락 홀릭’에 빠졌을까?


최근 ‘꼼지락 홀릭’에 빠진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프라모델을 조립하고 컬러링 북을 색칠하죠. 어떤 매력에 이끌린 걸까요?


제 경우에는 바느질을 하고 있으면 정말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아요. 마음이 정리된다고 할까요. 고민이 너무 많으면 바느질이 잘 안 될 때도 있지만, 평소에는 손으로 무언가를 만들 때면 마음이 안정돼요. 그리고 무언가 이루어낸 게 눈으로 보이니까 성취감도 있고요. 수업을 하면서 항상 이야기하는 게, 이렇게 손으로 만드는 일이 주부 우울증에도 너무 좋다는 거예요(웃음). 끊임없이 손을 움직이면서 집중도 하게 되고, 성취물이 있으니까 ‘내가 뭔가를 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생각되면서 나를 확인하게 되는 것 같아요.

 

직접 만드는 즐거움만큼 그것을 선물할 때의 기쁨도 클 것 같습니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하려고 하면 많이 망설여지잖아요. 상대에게 필요한 것을 파악하기도 어렵고, 웬만한 물건들은 이미 가지고 있으니까 선물을 고르는 게 쉽지 않죠. 그래서 저는 책을 한 권 선물하더라도, 조금이라도 더 의미와 정성을 담고 싶은 마음에, 직접 만든 책보 속에 책을 넣어서 선물하곤 해요. 친구들과 차 선물을 주고받을 때도 많은데, 그럴 때는 차와 함께 간단하게 만든 티 푸드나 컵 받침을 전해주고요. 거창하거나 만드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는 건 아니지만, 그래서 서로 너무 부담 갖지 않으면서 기억에 남는 선물을 나눌 수 있는 것 같아요. 상대방이 좋아해주는 걸 보면 선물을 주는 저도 기분도 너무 좋아요. 그게 손으로 만들어서 선물하는 기쁨이 아닌가 싶어요.

 

선물을 줌으로써 행복하셨던 순간이 많겠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언제인가요?


미국에 살고 있는 친구를 거의 10년 만에 만난 적이 있어요. 공항에서 친구를 배웅하면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쓰라고 안대랑 같이 쿠키와 약식을 전해줬는데, 너무 좋아하더라고요. 일본 문화를 좋아하는 친구라서 화려한 기모노 천으로 안대를 만들어줬는데요. 여행갈 때마다 옆에 앉은 사람이 그게 뭐냐고 물어본대요(웃음). 친구도 안대를 쓸 때마다 제가 생각난다고 좋아해줬던 게 기억나요.

 

선물을 준비하게 되는 건 바로 그 순간 때문이겠죠. 내가 만든 선물을 받고 상대가 너무 좋아하는 순간이요.


그렇죠. 선물을 주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가지고 있는 것을 비우는 거지만, 선물을 받고 좋아하는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오히려 마음이 채워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역시 비워야 채워지는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직접 만든 선물은 남다른 감동을 주죠. 누군가 오랫동안 나를 생각하면서 준비한 것이니까요.


맞아요. 저 역시 선물을 준비할 때마다 ‘이 사람은 뭘 좋아할까’ ‘이런 게 필요할 것 같았는데’라고 생각하면서 무엇을 선물할지 결정해요. 손으로 만든 선물은 내가 그 사람에게 집중하고 있다는 걸 표현해 줄 수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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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위해 베개 커버를 준비하세요


선물을 통해 마음을 전하고 인연을 맺었던 이야기들도 빼놓을 수 없는데요. 일본에 계신 작가님에게 선물을 보내주었던 친구의 이야기는 특히 감동적이었습니다.


친구가 보내준 선물들이 정말 큰 힘이 됐죠. 처음 일본에 갔을 때는 한국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와 달리 할 일도 없었고, 일본어도 거의 못했거든요. 그때 친구는 저를 위해서 자신이 재미있게 읽은 책, 여행지에서 산 물건들, 제가 좋아하는 한국 과자 등을 상자 가득 보내줬어요. 김창완 씨가 진행하는 라디오 방송이랑 출연하신 드라마도 테이프에 담아서 보내줬고요. 제가 김창완 씨 팬이거든요(웃음). 그리고 친구도 요리하는 걸 좋아하니까 레시피를 편지에 적어주기도 했죠. 그냥 과정만 적어주는 게 아니라 ‘네가 좋아하는 감자를 보니까 생각이 나서 만들어 봤어’ 하면서 레시피를 알려주는 거예요. 그때 친구도 아이 키우고 시어머니 모시고 사느라 바빴을 텐데, 너무 고마웠죠.

 

『손으로 만든 선물』에서 어머님을 위해 만드신 베개 커버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주셨어요.


제가 기억하는 엄마는 늘 바쁘셨어요. 너무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한 분이시거든요. 제가 중학교 때부터 일을 시작하셔서 제가 결혼한 이듬해에 일을 그만두셨어요. 그리고 지금까지 아주 많은 곳으로 여행을 떠나시죠(웃음). 엄마에게 어떤 선물을 드리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안대와 베개 커버를 만들어 드렸어요. 안대는 저도 잘 때마다 사용하는데 너무 편하고 좋더라고요. 베개 커버는 여행지 숙소에서 베개를 넣어서 깨끗하게 쓰시라고 만들어 드렸죠. 엄마 이름의 마지막 글자를 이니셜로 수놓아서요. 여행에서 돌아올 때는 베개 커버 안에 빨랫감을 넣어서 가지고 와도 좋아요. 만드는 방법도 어렵지 않고, 주머니 만드는 것과 똑같은데 크기만 크게 하면 돼요.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지 않아요.

 

손으로 만드는 무언가가 나를 위한 선물이 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책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수를 놓은 작은 행주 하나로도 부엌일이 즐거워지잖아요. 


찻잔 받침을 만들 때도 ‘이건 내가 차를 마실 때 써야지’라고 생각하면서 나를 위한 선물을 만들 수 있죠. 그러면 내가 나를 대접하는 느낌이 들기도 해요. 저도 스스로를 위한 선물을 많이 만드는 편이에요.

 

첫 만남에서 건넬 수 있는 “부담스럽지 않지만 조금 특별한” 선물로 ‘허브 솔트’를 소개해주셨습니다.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요?


만들기 정말 쉬워요. 소금과 허브와 후추만 있으면 되니까요. 말린 허브가 있다면 사용해도 좋고요. 생 허브를 사용하면 ‘허브 솔트’의 뚜껑을 여는 순간 정말 진한 향이 퍼져요. 저는 집에 로즈마리가 있어서 잎을 따서 만들어 봤는데 너무 좋더라고요. ‘허브 솔트’는 서너 달 동안 두고 쓸 수도 있고, 소금을 사용하는 거의 모든 요리에 사용할 수 있어요. 닭고기 요리를 할 때 쓰면 고기 냄새를 잡아주고, 감자를 쪄서 찍어먹어도 맛있어요. 간수가 빠진 소금이라면 그냥 사용해도 되고요. 물기가 많다고 생각되면 살짝 볶아서 수분을 날리면 돼요. 그 다음에는 로즈마리와 적당량의 후추와 같이 믹서기에 넣고 돌리면 끝이에요. 준비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리는 건 아니지만 오래 두고 유용하게 쓸 수 있고, 먹으면서 선물해준 사람을 생각하기도 하니까 좋은 것 같아요.

 

선물을 포장할 때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을 활용할 수 있는 방법도 알려주셨어요.


‘허브 솔트’ 같은 경우에는 깨끗한 병에 넣어서, 조각 천에 바느질을 해서 만든 라벨을 붙여도 좋고요. 종이냅킨 두 장을 겹치게 놓고 가운데에 병을 올린 후에 감싸주면 돼요. 윗부분을 끈으로 묶어준 다음 꽃잎처럼 펼치면 포장이 완성되죠. 간단하게 만든 주머니에 넣어서 선물해도 되고요. 쉽게 구할 수 있는 좁고 긴 종이봉투에 병을 담아서 윗부분을 묶기만 해도 돼요. 보통 빵집이나 커피숍에서 사용하는 그런 봉투를 이용하면 작은 종이가방을 만들 수도 있어요. 윗부분의 절반을 안으로 접어 넣고, 접힌 부분 양쪽에 두 개씩 구멍을 뚫어서 손잡이를 달아주는 거죠. 선물이 담긴 상자를 포장할 때도, 따로 포장지를 살 수도 있지만, 종이 끈이나 리본을 이용해서 한 번 묶어주기만 해도 좋아요. 투명한 비닐봉투 안에 선물과 같이 꽃이나 나뭇잎을 넣을 수도 있고요. 집에 있는 비닐봉투나 종이봉투, 끈 정도만 있으면 굳이 재료를 사지 않아도 선물을 포장할 수 있는 거죠.
 

최희주 작가 (16).jpg

 

 

손으로 만드는 선물, 시작은 ‘컵 받침’ ‘책갈피’ 부터


‘복숭아씨 모빌’은 그 소재와 의미가 특별합니다. 엄마가 직접 만들어서 아이 방에 걸어주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예전에 도교 문화 전시회를 관람한 적이 있는데요. 옛날에는 복을 부르고 나쁜 기운을 막기 위해서 복숭아씨를 부적처럼 썼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규방 공예 중에서 삼각뿔 모양으로 만드는 아기 베개도 비슷한 의미를 가지고 있거든요. 나쁜 기운을 쫓기 위해서 일부러 뾰족하게 만들어요. 그 생각이 나서 복숭아씨를 넣어서 모빌을 만들어 봤어요. 홍차 티백과도 같은 삼각형 모양인데요. 사방에서 오는 나쁜 기운을 막아주지 않을까 싶었죠. 친정에 갔을 때 오빠한테 주면서 차에 걸고 다니면 사고가 나지 않을 거라고 말해줬더니 너무 좋아하더라고요(웃음).

 

손으로 만드는 일이 처음인 사람들은 어떤 것부터 만들면 좋을까요?


컵 받침 같은 건 작은 천 하나만 있으면 금방 만들 수 있어요. 끝 부분을 말아서 바느질 홈질만 하면 되는 되거든요. 책갈피도 만들기 쉽고요. 행주에 자수를 놓는 것도 간단하죠. 처음에는 도안을 어떻게 그려야 할지 몰라서 선뜻 시작하기 힘드실 텐데요. 마음에 드는 실을 사서 둘레를 바느질만 해도 좋아요. 마음에 드는 그림을 그려서 자수를 놓을 수도 있고요. 바늘땀이 들쭉날쭉하더라도 자수 하나만 놓아도 정성이 많이 들어간 것처럼 보여요.

 

『손으로 만든 선물』에 소개된 선물들 중 유독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티 코지’와 ‘이니셜 컵 받침’ ‘웨딩 티’는 결혼하는 친구에게 무엇을 선물해줘야 할까를 상상하면서 만들었어요. 저에게 친구의 결혼식이란 오래 전 일이지만(웃음) 그때 이런 선물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결혼한 후에도 두 사람이 향기로운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선물인 것 같아요. ‘모시 가방’은 엄마에게 가벼운 가방을 선물해드리고 싶어서 만든 거예요. 모시 천과 대나무 핸들을 이용해서 가볍기도 하고, 여름에 시원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요.

 

『손으로 만든 선물』이 그 자체로 선물이 되기도 했을 것 같습니다.


책에서 ‘마스크 주머니’를 소개하면서 일본인 친구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요. 친구에게 『손으로 만든 선물』을 전해주하면서 네 이야기도 담겨있다고 했더니 너무 좋아하더라고요. 친구가 자신의 할머니께도 책을 사서 보내드렸는데, 한국어를 배우고 계신 할머니께서 이 책을 교재 삼아 공부하신대요. 우리 손녀 이야기가 실려 있는 책이라고 친구들에게 말씀하시면서요(웃음). 그렇게 멀리에서도 좋아해주시니까 너무 감사하고, 이렇게 서로 마음이 전해진다는 게 참 좋았어요.


『손으로 만든 선물』을 읽으며 최희주 저자는 남다른 감각의 소유자라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이 마법 같은 선물들을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녀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깨달았다. 손끝으로 만들어내는 선물들은 감각에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정성에서 태어난다는 것을. 선물이 주는 감동 역시 재주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이었다.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소중한 누군가의 얼굴이 어른거리기 시작했고, 그에게 진심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일렁였다. 어쩔 수 없다.『손으로 만든 선물』과 함께 준비를 시작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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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만든 선물최희주 저 | 푸른숲
첫 만남에 부담 없이 건넬 허브 솔트, 책 좋아하는 친구를 위한 책보, 시어머니에게 선물하는 모시 가방, 첫 조카를 위한 낮잠 이불 등 누군가를 생각하며 만들면 좋은 27가지 선물을 소개한다. 천 손질법, 기본 손바느질과 자수 기법을 수록하고, 만드는 과정을 그림으로 표현해 바느질 초보자도 쉽게 따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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