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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훈현 “문제는 재주가 아니라 인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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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훈현 9단은 만 5살 때, 아버지 손에 이끌려 목포에 있는 유달기원의 문턱을 넘으면서부터 바둑을 만났다. 그가 살아온 환경은 오직 바둑이었다. 11살 때부터 부모 없이 일본으로 바둑 유학을 떠났고, 젊은 나이에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불과 마흔 셋에 제자 이창호 9단에게 모든 타이틀을 빼앗겼다. 당시에는 패배의 아픔이 쓰라렸지만 막상 모두 잃고 나니 오히려 자유로웠다. 누구보다 파란만장한 삶이었다. 하루에 네댓 갑을 피울 만큼 대단한 골초였지만, 1990년대 중반에 떠난 미국여행에서 “내 차는 금연구역”이라는 친구의 말에 화가 나, 주머니 속 담뱃갑을 쓰레기통에 던졌다. 그 후로 지금까지 담배를 피워본 일이 없다.

 

최고의 바둑 기사이자 세계 최다승(1935승), 세계 최다 우승(160회). 1989년 한중일 최정상의 기사들이 참가한 바둑 올림픽 ‘잉창치배’에서 세계 일류 기사를 차례로 꺾고 대회 첫 우승. 변방으로 평가 받던 한국 바둑을 세계 바둑의 중심으로 올려 놓은 조훈현 국수가 첫 에세이집 『고수의 생각법』을 펴냈다. 그는 요즘 등산과 골프를 즐기며 여생을 어떻게 보낼지 궁리 중이다. 조훈현은 “내 인생을 만들어준 스승님의 지혜를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바둑은 지금 여기, 현재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바둑을 둘 때는 모든 잡념을 버리고 오로지 바둑판 위에 마음을 집중해야 한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지금 있는 자리가 최선의 자리다. 지금 이 순간이 다시없는 소중한 시간이다. 모든 꿈의 출발은 ‘지금, 여기’다.“ (1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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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재주가 아니라 인품


바둑 책은 여러 권 쓰셨지만 에세이는 처음입니다. 재작년에 건강이 안 좋아지면서 인생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셨다고요. 


그간 썼던 책은 전문 분야니까 어려운 게 별로 없었어요. 이번 책은 개인적인 이야기가 많이 들어있으니까, 생각이 많았죠. 재작년에 폐가 안 좋아서 병원에 갔는데, 암이면 이건 사형 선고라고 하더라고요.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죠. 죽으면 어떡하나, 또 운이 좋아서 살면 뭘 해야 하나. 그런데 괜찮다는 판정을 받았어요. 그 때 든 생각이 내일, 내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거였어요. 조금씩 정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바둑책이면 간단했을 텐데, 이건 사실 걱정되는 책이었어요.

 

어떤 독자 분은 『고수의 생각법』으로 필사를 하시더라고요.


그래요? 이왕 쓴 거 많은 분들이 고개라도 끄덕여주면 좋은데. 그래도 반응이 꽤 좋다니까 다행이에요. 책을 쓴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 걱정이 많았는데, 기회라는 게 항상 주어지는 건 아니잖아요. 그때그때 기회가 있을 때 하는 게 좋죠. 사실 책에 담긴 게 대단한 이야기가 아니고 제가 살아온 이야기에요. 다만 저의 스승이신 세고에 선생님의 정신이나 가르침은 제3자 입장에서 보더라도 귀감이 될만한 거라고 생각했어요.

 

어떻게 보면 조금 더 일찍 쓰실 수도 있었을 책인데요.


아직 제 자신한테 좋은 점수를 줄 수가 없어요. 저는 부족한 게 많은 사람이에요. 만약 제가 90, 100세에 죽는다면 지금 책을 안 썼을 거예요. 80세쯤 됐을 때 썼겠죠. 하지만 계기라는 게 있잖아요. 또 책이라는 게 혼자서 쓴다고 나올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여러모로 잘 맞았던 거죠.

 

제목이 『고수의 생각법』입니다.


처음에는 제목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결국 생각이라는 게 마음이더라고요. 높으신 분들, 정신수양을 하는 분들을 보면 좋은 말씀을 많이 하시잖아요. 듣고 깨닫고 말하는 거죠. 생각이 곧 마음이라는 깨달음이 있었어요.

 

일본 유학 시절의 이야기가 인상 깊었습니다. 고 세고에 겐사쿠 명예9단의 내제자셨는데, 선생님으로부터 배운 것 중에 가장 값진 것은 무엇이었나요.


사람의 도리를 배웠다는 게, 가장 소중합니다. 우리들은 뭔가를 배우고자 할 때 학원을 찾는데 그 곳에서 만나는 스승에게는 학문을 배우는 거지, 정신을 배우는 건 아니에요. 그런데 저는 세고에 선생님께 정신을 배웠어요. 스승님은 저에게 이럴 때는 이렇게 해라, 저럴 때는 저렇게 하라고 단 한 번도 말씀하신 적이 없어요. 그냥 보고 배우는 거예요. 스승님의 말씀, 태도를 통해서 그 정신이 느껴졌죠.

 

11세 때부터 9년간 세고에 선생님의 집에서 함께 사셨는데, 바둑을 배운 횟수는 손가락을 꼽을 정도였다고요. 그 오랜 시간을 버티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어쩔 수 없었죠. 제가 일본에 왜 갔겠어요. 바둑을 잘 두려고 간 건데. 일본에서는 저 혼자밖에 없었으니까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죠. 선생님의 깊은 뜻은 나이가 들어서야 알게 됐지만, 당시에는 어쩔 수 없었어요. (웃음)

 

일본 유학 중에 세고에 선생님은 “내기 바둑은 절대 두지 말라”고 하셨는데, 그 약속을 깨신 적이 있었어요. 내쫓기기도 하셨는데요.


열흘 정도 접시 닦기를 했어요. 그대로 한국에 돌아갈 수는 없었으니까 어떻게든 스승님이 화를 푸실 때까지 기다려야 했죠. 당시에는 스승님이 왜 그렇게까지 혹독하게 하시는지 이해가 안 갔어요. 제게 제자가 생기고 스승이 되어서야 이해가 됐어요. 스승님은 저를 처음 본 순간부터 제가 1인자가 될 재주가 있다는 걸 아셨어요. 문제는 재주가 아니라 인품이었죠. 바둑 명인에 걸맞은 인격과 품성을 만들어주고 싶으셨던 거예요. 선생님의 원칙은 혹독했지만 덕분에 제가 사람이 됐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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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의 수를 두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이창호 9단을 제자로 받았을 때, 스승으로서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저는 세고에 스승님과 같은 경지에 오르지 못했기 때문에 내가 어떤 스승이 돼야겠다는 생각 같은 건 없었어요. 인품과 인격을 어떻게 가르치겠어요. 매너는 가르칠 수 있어도 인품은 못 가르쳐요. 다만 스승이 중심을 잡고 있으면 제자가 알아서 보고 배워요. 인성, 인품, 인격은 그냥 보여주는 거예요. 자기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그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거죠.

 

처음 이창호 9단을 봤을 때는 “바둑은 강했지만 천재성이 보이지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세계적인 기사가 될 거라는 확신은 없었어요. 그런데 포기할 수 없는 기이한 느낌 같은 게 있더라고요. 저랑은 많이 달라요. 제가 빠르고 날렵하고 다소 공격적인 바둑을 추구하는 반면, 창호는 느리지만 두텁고 묵직해요. 성실하고 온화한 성격과도 관련이 있죠. 저는 도박을 하지만 창호는 안전한 길을 선택하는 유형이에요. 뼛속부터 다르죠.

 

1998년 28기 최고위전에서 사상 최초 사제 대결을 펼쳤는데, 0.5집 차이로 이창호 9단에게 패하셨습니다. “다른 기사들은 물론 나 자신도 깨닫지 못했던 내 허점을 창호가 봤다”고 평가하셨는데요.


창호는 저를 이기기 위해 나를 연구했어요. 어떻게 하면 이길 수 있을지, 빈틈이 어디인지를 집중적으로 파고든 거죠. 처음 창호에게 타이틀을 빼앗겼을 때는 너무 괴로웠지만, 어차피 빼앗길 거라면 내가 직접 키운 제자에게 빼앗기는 게 낫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고 나니 모든 게 거짓말처럼 괜찮아지더라고요. 승부라는 게 원래 그렇잖아요. 과정도 중요하지만 결과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해요. 이길 수 있으면 이겨야 해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반전의 기회를 기다려야 해요. 제가 버텼던 이유는 이겨야 한다는 욕심이 아니라 아직 이길 기회가 있다는 희망 때문이었어요.

 

이창호 9단은『고수의 생각법』을 읽고 어떤 이야기를 하던가요?


아무 말도 없었어요. 할 필요도 없고요. 좋은 책인지 아닌지는 자기가 알아서 읽고 판단할 일이죠. 일단 책이 나왔으니까, 내 제자니까 한 권 준 거예요. 뜻이 있어서 준 것도 아니고요. (웃음)

 

바둑에서 꼭 해야 하는 일로 ‘복기(復棋)’를 빼놓을 수 없는데요. 인생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바둑은 제대로 복기를 안 하면 성장할 수가 없어요. 오히려 더 공부가 돼요. 바둑은 경기잖아요. 잘못하면 지는 거니까. 그 원인을 열심히 파악하는 게 필요하죠. 인생도 그래요. 사람들이 피곤하니까 안 하는 건데. 어제의 반성을 통해 내일의 성장이 있는 거잖아요. 마음이 없는 것뿐이지, 10분 덜 자고 운동을 하는 것과 다르지 않아요. 조금만 시간을 내고 마음을 쓰면, 할 수 있는 거예요. 일만 하는 게 제일 안 좋아요. 10분, 20분만이라도 짬을 내서 미래 생각도 하고 과거 생각도 해야죠. 사람들은 다 꿈을 먹고 살잖아요. 공상도 하고 반성도 하고. 지금 현대인에게는 굉장히 더 중요한 시간이에요.

 

바둑을 두면서 가장 많이 하는 생각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매 판이 질문이니까요. 다음에는 어떻게 둘 것인가, 그것 말고 더 있겠어요? 딱 한 수로 끝나지 않으니까요. 최선의 수를 두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그 생각을 하죠. 모든 것이 그렇지만 바둑도 실전에서 결정 나는 거니까요.

 

인생에 있어서는 어떤 질문을 하고 계신가요?


스승님으로부터 받은 것들을 어떻게 전하냐, 그거예요. 스승님이 자신의 삶을 통해 제게 말한 건 ‘사람이 되라’는 말씀이에요. 좋은 인품을 갖추라는 말인데, 그게 쉽지가 않더라고요. 그건 누구한테 딱 배운다고 되는 게 아닌 것 같아요. 저절로 키워지고 갖춰지는 것 같아요. 정말 가르쳐준다고 알 수가 없어요.

 

젊은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많으실 것 같습니다.


많죠. 젊은 사람들이 열심히 살고 있다는 건 알지만, 너무 즉각적이라고 할까요? 충동적인 면이 많은 것 같아요. 조금만 생각하면 쉽게 답이 나올 텐데, 손발이 먼저 나가는 모습을 볼 때는 조금 안타깝죠. 기본적으로 최선을 다하면서 살면 크게 어긋난 인생은 아니라도 봐요. 다 재벌이 되고 대통령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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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두는 수에 책임을 져야 한다


1995년에 금연을 결심하고 곧바로 성공하셨어요. 평소 하루에 담배 3갑을 필 정도로 애연가이셨는데.


쉽게 끊은 편이었어요. 미국 여행에서 돌아왔을 때 이미 절반쯤 금연에 성공한 상태였으니까요. 이후로 밥이 맛있어지더라고요. 원래 저는 식욕이 없는 편이어서 밥 한 공기를 비우는 게 되게 어려운 사람이었거든요. 낯빛도 좋아졌고 살이 찌면서 체력도 좋아졌죠.

 

금연을 한 뒤로 건강은 물론 바둑 성적도 좋아지셨잖아요. 주변 분들에게 금연을 권하진 않으셨나요.


지은 죄가 있어서, 그런 권유를 할 수가 없어요. 내가 골초였는데 누구한테 담배를 피지 말라고 하겠어요. 담배는 옆에서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소용이 없어요. 본인이 끊으려는 의지가 있어야죠. 금연을 마음먹은 사람에게 금단 증상 같은 건 이야기해줄 수 있는데, 담배 피는 사람한테 “너 끊어”라고는 말 못해요. 본인의 마음이니까요.

 

한국기원은 1999년부터 대국장 완전 금연제를 실시했습니다. 지역의 모든 기원도 이제 흡연실을 따로 두고 있고요.


입단 연령이 점점 낮아지면서 어린 아이들이나 청소년들 앞에서 담배를 피우는 건, 좋지 않다는 의견이 많았어요. 한동안은 예선전을 흡연실과 금연실로 나눠서 치르기도 했죠. 요즘 가끔 우연히 담배 냄새를 맡으면 그리울 때가 있긴 해요. 그래도 피진 않아요. 시간에 대한 그리움이지 담배에 대한 그리움은 아니거든요.

 

예전만큼 바둑인구가 많지 않습니다. 바둑을 배우는 어린이 숫자도 줄고 있고요.


바둑이 나빠서, 안 좋아졌기 때문이 아니에요. 다만 오락 거리가 너무 많아진 거죠. 컴퓨터 게임, 스마트폰 게임이 훨씬 접근하기가 편하잖아요. 놀이문화가 많이 생기다 보니 분산이 된 거죠. 옛날 같았으면 10명이 바둑을 뒀다면 이제 1,2명 밖에 흥미를 갖지 않아요. 달라진 거죠. 중국 같은 경우에는 정부 차원에서 지원을 많이 해줘요. 바둑만 잘해도 일류대학을 갈 수 있어요. 모든 힘이 합쳐지니까 발전할 수밖에 없어요. 바둑 인기가 대단하죠.

 

어릴 때 바둑을 배우면 어떤 면이 좋나요?


바둑은 내가 두는 수에서 책임을 져야 해요. 나름대로 생각을 해야죠. 두뇌 개발이 좋다는 건 과학적으로도 입증됐지만, 무엇보다 좋은 점은 차분해진다는 거예요. 성질이 급하면 못 앉아 있어요. 바둑은 한 번 배워놓으면 웬만하면 실력이 확 줄지는 않아요. 운동 같은 경우에는 연습을 덜하면 실력이 급격하게 줄지만, 바둑은 그렇게 확 내려가진 않아요. 최종 컨디션은 떨어지겠지만, 한 번 배워놓으면 웬만큼 잊어버리는 경우는 적어요.

 

얼마 후, 조치훈9단과 특별 대국이 열립니다. 어떻게 준비하고 계신가요? (인터뷰는 7월 26일 이전에 진행됐습니다)


준비라고 할 것이 뭐 있겠습니까. 준비를 했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요. 지금을 제가 일선에서 싸우는 게 아니고 흘러간 경기를 하는 거니까요. 최고의 기량을 보인다는 의미보다는 옛날 추억을 생각하면서 요즘은 어떤가? 하고 두는 거죠. 편하게 두려고 해요.

 

앞으로의 계획도 궁금합니다.


제가 참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고 좋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었는데요. 앞으로는 어떻게 보답을 하며 살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해봐야겠죠. 책을 낸 것도 하나의 보답일 수 있을 거예요. 이제는 내리막길인데, 내려가는 건 어쩔 수 없지만 90도로 내려가느냐, 10도로 내려가느냐를 따져보면 그래도 후자가 낫지 않겠어요? 운이 좋으면 더 올라갈 수도 있겠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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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훈현, 고수의 생각법조훈현 저 | 인플루엔셜
조훈현은 우리가 후회 없는 나만의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나만의 생각’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확신을 가진 ‘나만의 결정’을 내리고 ‘나만의 인생’을 찾기까지, 그 과정은 기약이 없는 길고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일 수 있다. 분명 ‘생각’은 인생을 바꿀 수 있지만, 어떻게 바뀔지 장담할 수 없기에 두려움이 앞설 때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생각하는 일을 멀리하거나 멈춰서는 안 된다.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먼저 불안하고 걱정하는 이들이라면 실패 때문에 사소한 일에도 좌절하고 상처를 입은 이들이라면, ‘생각의 힘’을 몸소 깨달은 조훈현의 말에 귀를 기울여보는 것을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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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광판 인간」(서주희, 제5회 손바닥 문학상 당선작)이라는 소설에서 주인공은 뇌 병변 장애 1급으로 장애인 시설에 살고 있다. 그가 움직일 수 있는 곳이라곤 손가락 하나뿐이다. 물론 말도 못한다. 그는 상상한다. 전광판이 있다면. 자신에게 전광판이 있어 자신의 생각을 상대에게 전할 수 있다면 하고.

 

극단적인 예지만 어쩌면 현대를 살아가는 모두는 전광판이 필요할 만큼 소통의 부재를 안고 사는지 모르겠다. 상대가 건네는 칭찬이 과연 칭찬일지 고민하고, 진짜 속마음을 숨긴 채 가짜 미소를 건네는 당신. 만일 전광판 없이도 상대를 파악할 수 있다면! 이 복잡한 세상에 얽힌 복잡한 관계 안에서 당신은 훨씬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으리라. 더불어 나를 가꾸는 일도, 훨씬 수월해지지 않을까.

 

아무리 멋진 몸매와 능력이 있더라도 다듬고 가꾸지 않으면 가치가 떨어지고 능력은 사장된다. 자신의 강한 능력과 그것을 보완해 주는 자신의 또 다른 능력을 꾸준히 계발함으로써 더욱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다. 우리에게는 위대함을 실현할 수 있는 선택권이 있다. 우리는 위대함을 실현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이미 가지고 있다.(315쪽)

 

DISC가 분류하는 “네 가지 행동유형을 기억한다면 타인의 행동에 드러나는 그 사람의 성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5쪽)고 말하는 『당신을 읽다』의 저자 김재득은 “인간은 변하게 되어 있어요. 교육을 받는다든지 급격한 변화를 겪는다든지 일상에 사건이 벌어진다든지 하는 이유로 말이에요. 결국 이런 변화가 완성으로 가는 여정이지 않을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라고 했다.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는 개인의 몫이고 그 과정에 자신의 현재 모습을 정확하게 파악한다면 남보다 앞선 출발점에 설 수 있다는 것.

 

물론 DISC는 완벽한 도구가 아니다. 모든 도구는 완벽할 수 없다. 섣불리 상대를 파악하고 ‘낙인’의 오류를 범하는 경우도 많다. 때문에 저자의 “인간은 ‘D’, ‘I’, ‘S’, ‘C’ 성향을 모두 가지고 있는 존재”라는 말에 집중해야 한다. 다만 그 중 어떤 성향을 주로 사용하는지, 자신에게 부족한 것은 어떤 면인지를 파악한다면 전보다 훨씬 성숙한 관계에 도달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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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TI, 애니그램, 빅파이브 등과 함께 검색되는 강력한 도구 DISC


“DISC의 가장 큰 장점은 짧은 시간에 상대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44쪽)라고 하셨어요. 책의 주된 목적이기도 하고요. DISC를 소개하면서 사람들이 어떤 효과를 가져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셨나요?


네 개 유형으로만 구분되니까 이 네 가지로 어떻게 인간 유형을 분류할 수 있느냐고 할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우리가 길을 잘 모를 때 방향을 제대로 제시해 주면 길을 떠남에 있어 큰 어려움이 없잖아요. 어디로 갈지 모를 때 ‘서쪽으로 가라’ 이러면 안도감이 생기거든요. 내가 누군지 잘 모를 때 D인지, S인지 정도만 알아도 굉장한 도움이 된다는 거죠. 강력한 거예요.


기존에 소개된 성격이나 행동 유형들은 9개, 16개 등으로 나누죠. 굉장히 다양해요. 헌데 교육 받고 나면 후에 잘 기억도 못해요.(웃음) 반면에 DISC처럼 너무 쉽게 분류하면 좀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죠. DISC는 나름대로 교육학이라든지 내용을 기반으로 검증된 것이기 때문에 차별성이 있어요. 그에 더해 저는 좀 더 한국적인 상황에 맞추었고요. 대학생들의 사례도 있습니다. 훨씬 강력하고, 쉽고, 과학적이라는 것이죠.

 

데이터를 많이 확보하는 데 큰 노력을 하셨더라고요.


1,349명을 검사했어요. 그 중 대학생들이 500명 정도 되고요. 과학성을 갖지 않으면 혈액형처럼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사상체질도 과학적으로 접근하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좀 인정을 못 받거든요. 비슷한 것이죠. 관상학, 손금 등은 여전히 인정을 못 받잖아요. DISC는 그래도 국내 석, 박사 논문이 50편 이상 되고 이미 서양에서는 5위 안에 검색이 되는 도구입니다. MBTI, 애니그램, 빅파이브 등과 함께 DISC가 5위 정도에 랭크되고 있어요.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DISC 같은 장치들이 유용하리란 기대는 충분히 가능하죠.


그렇죠. 나 자신조차 솔직히 잘 몰라요. 아무리 파고들어도 모르는 게 나잖아요. 그래서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고 말했는데요. 평생을 가도 잘 모를 수 있습니다. 나도 모르는데 심지어 너를 어떻게 알겠어요? 함께 살았던 자식, 배우자도 모르는 경우도 많죠. 이때 상대가 어떤 사람이냐 정도만 알면 굉장히 도움이 된다는 거예요. 패턴을 읽는다는 거예요. 인간에게는 패턴, 습관이라는 게 있거든요. 그런데 그 습관을 나의 기준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인정하려고 하지 않아요. 상대를 낙인 시켜버리는 것이죠. 그것에서 탈피해야 해요. 계속 자기만 고집해선 안 되죠. 상대를 이해하게 되면 달리 보여요. 상대와 나를 구분하자는 게 아니라 전체적인 시스템으로 인간을 이해하자는 도구가 DISC입니다. 다른 도구보다도 간략하지만 세분화할 수 있는 분류도 더 있고 말이죠. 네 가지로 나누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관계가 다양해지는 경험을 할 수 있어요. 인간은 자기중심적이니까요. 그 점만 인정해도 이 책의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것에 소명을 다했습니다.
 
‘길을 잘 모를 때 방향만 제대로 제시해줘도 길을 떠남에 있어 큰 어려움이 없다’는 말이 핵심이겠네요.


인생 자체가 항해잖아요. 어디로 갈지 모를 때 ‘서쪽으로 가라’라는 말만 해줘도 굉장한 거예요. 위안이 되는 거죠.

 

실제로 관계를 좀 더 편안하게 느끼거나, 변화를 겪는 경우도 많이 보셨나요?


책에 보면 수기가 포함되어 있는데요. 학생들에게 이야기를 다 수집했어요. 여기에 솔직한 이야기들이 많이 담겨 있어요. 레포트 과제를 할 때도 I유형 같은 경우는 벼락치기를 해요. C유형은 답답해 죽겠는데 말이에요. 결국 C유형이 공부를 잘하는 편이니까 스터디를 해도 다 갖춰놓으면 말을 잘하는 I유형은 묻어가기도 하죠. 성적은 오히려 I가 더 좋을 때가 있어요. 인간관계가 좋고, 어필도 잘하니까요.(웃음) DISC 검사를 통해 상대를 이해하게 되었다는 말이 나오는데, 그런 변화를 읽을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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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행동은 변하게 마련


특정 유형으로 상대를 인식했을 때 발생하는 오류도 경계해야 할 부분인 것 같습니다.


당연하죠.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어설프게 한 번 봐서 되는 건 아니에요. 한 번 보고 낙인을 붙이면 안 돼요. 인간의 행동은 변하게 마련이거든요. 환경의 지배를 받기 때문이에요. 학교에서의 행동과 집에서의 행동이 다를 수도 있거든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바깥에서 하는 행동을 집에서도 그대로 하진 않아요.


저희 검사지도 보면 ‘본능’과 ‘환경’ 두 가지로 나뉘어 있어요. 물론 본능대로 바깥 환경에서 활동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스트레스도 없겠죠.(웃음) 하지만 그러기는 무척 힘들어요. 수위조절이 필요하니까요. 이와 같은 조절 능력도 굉장히 중요하겠고요.


결국 인간은 ‘D’, ‘I’, ‘S’, ‘C’ 성향을 모두 가지고 있는 존재입니다. 그중 한두 가지를 주로 사용하는 거예요. 오른손잡이가 어떨 때는 왼손도 쓰잖아요. 오른손 쓰는 게 편하니까 주로 사용하는 거죠. 인간은 안정된 상태에서 편한 것을 사용하기도 하고, 불편한 상황에서 불편한 것을 사용하기도 해요. 그것과 마찬가지예요.  


모든 심리학 도구처럼 DISC도 ‘어떤 행동이 더 좋고 어떤 행동이 더 나쁘다’는 식으로 가치를 다루지 않는다. 개인이 가진 강점과 약점, 욕구 등을 그대로 보여 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신은 이렇게 되어야 한다’라는 이상적인 모델이나 바람직한 인간의 모습에 대한 언급은 조심스럽다. 하지만 ‘당신은 이런 유형이므로 이런 부분을 보완한다면 더 나아질 것이다’라는 조언은 가능하다고 본다.(45쪽)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성향이 변하기도 하고요.


당연히 변하겠지만 기본적 본질이 변하지 않는다는 개념은 존재합니다. 그것을 기질이라고 일컬을 수 있는데요. DISC가 그것까지 판단합니다. 진단지를 보시면 ‘최소’(싫어하는 것)와 ‘최고’(좋아하는 것)를 체크하도록 되어 있거든요. 선호하는 것은 가장이 가능해요. 소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돼지고기도 먹을 수 있죠. 하지만 회를 진짜 싫어하면 아예 먹질 못하잖아요. 싫어하는 것은 본능일 수 있어요. 좋아하는 것은 2순위, 3순위까지 양보할 수 있죠. 그런 행동심리에 근거해 ‘최소’ 항목을 분석하면 본질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기질을 사회생활하면서는 많이 안 드러내는 거죠. 그래서 진단지에는 또한 ‘환경’ 설정이 있습니다. 처한 환경에 따라 행동이 달라지기 때문에 구분해서 검사하는 거예요. 행동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잖아요. 속으로는 저것이 마음에 안 들지만 겉으로는 칭찬하는 행동을 할 수 있어요. 그래야한다고 배운 부분이 있기 때문이죠. 그 행동으로 드러나지 않은 속마음을 안다는 것도 굉장히 중요해요.

 

같은 유형 안에서도 ‘성숙도’로 세분화한 것이 중요한 대목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부분이 도구들을 보면 평면으로만 봐요. DISC는 입체적으로 봅니다. 같은 유형이라도 ‘미성숙’, ‘평균’, ‘성숙’ 단계가 있어요. 같은 D유형이라 하더라도 미성숙한 D가 있을 수 있고, 성숙한 D가 있다고 보는 거죠. 성숙한 단계에서는 어느 유형이든지 괜찮아요. 그러나 불편한 상황, 갈등이 있거나 스트레스 받는 순간에 불쑥 미성숙한 면이 튀어나오는 거잖아요. 그렇게 구분해서 측정하도록 해놓은 것이죠.

 

인간은 ‘D’, ‘I’, ‘S’, ‘C’ 성향을 모두 가지고 있다고 하신 것, 싫어하는 것은 본능일 수 있다고 보는 내용과 모두 맥이 닿아있는 것 같네요.


그렇죠. 저희 검사지가 30문항이지만 가령 D는 하나도 해당하지 않고 I만 30개 해당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하나 정도는 다 있어요. 제 경우 본능(기질)은 DC인데, 환경은 CD예요. 그렇다면 I는 없느냐? 하나 정도는 있어요. S도 한두 개는 있고요. 하지만 가장 많이 쓰는 것이 순간적으로 드러나는 것이죠.

 

 

DISC, 당신을 읽다


성향이나 특징은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맥이 닿아 있잖아요. 저자는 D유형에 해당하다고 밝히셨는데, 저자 본인을 포함해 D유형에 대해 좀 더 설명해주신다면?


좌표평면 안에서 설명을 드리면 쉬울 거예요. Y축을 외향성, 내향성으로, X축을 좌뇌(일 중심 사고), 우뇌(감성 중심 사고)로 놓을 수 있겠죠. 외향적이면서 일 중심인 유형이 D예요. 외향적이면서 감성, 사람 중심인 유형이 I고요. 내향이고 사람 중심이면 S, 내향적이지만 일 중심이면 C유형이에요. 저는 D와 C 사이를 오가고 있는데요, 그것으로 본다면 인간미가 있다든지 사람을 좋아한다든지 하는 면은 굉장히 약한 거예요. 일 중심이며 외향적인 D유형은 직설적이고, 선구자적인 면이 있다고 볼 수 있겠죠. D유형에 해당하는 사람은 전체 인구의 5.5% 정도밖에 안 돼요. 다행인 거죠.(웃음) 모두가 서로 일 시키고 돌직구를 날리면 너무 힘들 테니까요. 그러나 전형적인 리더의 모습은 대부분 D입니다. 이성계, 박정희 같은 강력한 리더들이 D유형에 해당해요.

 

제 경우 20대에는 I유형이었던 것 같고, 지금은 S나 C의 성향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연령대에 따른 공통적인 특징도 있나요?


최근 대학생들 중 I유형이 굉장히 많습니다. 재미를 추구하면서 외향적인 경우가 많죠. 연령대가 변화하면서 새로운 특징들이 추가되는데요. 인간은 결국 완성된 방향으로 가고자 하니까요. 극I유형의 사람이 신입사원이 되었다고 칩시다. 자신의 성향을 발휘할 수 있을까요? 못해요. 그때는 S를 발휘할 수밖에 없어요. 눈치도 보고 하면서요. 환경을 지배를 받아 성향을 숨기는 거예요.

 

환경이 바뀌면 성향이 바뀌는 사례가 또 있나요?


명동성당에서 북한 이탈 주민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해보면요. 그분들은 D가 엄청 강해요. 하지만 이곳에 와서는 D성향을 숨기고 있죠. 환경을 아직 잘 모르니까요. S식으로 행동을 하기도 하고요. 그러나 죽음을 각오하고 탈출한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D유형이 많은 거죠. 국내에 있는 수많은 이주민들 역시 마찬가지예요. 평균적으로 D유형이 5.5%라고 했잖아요. 이들은 10~20% 정도가 D예요. 그러나 낯선 곳에 오면 당분간은 S나 C처럼 신중하고 관찰하는 태도로 살 수밖에 없겠죠. 그렇게 환경의 지배를 받는 것이 인간이기 때문에 환경적인 면과 본능, 기질적인 면을 구분한 것입니다. 검사 결과도 환경과 본능이 완전히 다르게 나오는 경우가 많아요. 또한 자가 진단과 주변인 진단이 다를 때도 많죠. 내가 보는 나 자신과 가족이 보는 나 자신은 또 다르니까요. 이 차이를 보면서 왜 이런 차이가 생기는지 살펴보는 방식으로 접근할 수도 있습니다. 그 편이 훨씬 더 좋겠죠.

 

집단검사를 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되겠네요.


좋습니다. 그때부터 서로 대화를 하고 코칭이 들어가요. 하지만 그러려면 시간이 좀 필요한데 대부분 잘 안하려고 해요. 대학 강의 때는 가능하죠. 16주 코스로 해서 숙제도 내주고 하니까요. 검사 결과를 보면서 가족의 눈에 자신이 어떻게 보였는지, 어떻게 변화할 수 있는지 생각하는 것이 가능한 거죠. 특히 편차가 큰 항목만 다뤄도 대화가 굉장히 진전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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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C로 읽는 역사적 인물들


속담으로 이해를 돕기도 하고, 조선의 역대 왕들 유형을 분류하기도 했어요. 흥미로운 것은 조선 왕 70%가 S유형이었다는 점입니다. 또한 역대 대통령들의 경우 D유형이 무척 많았어요. 어떤 공통적 특징이 있다고 볼 수 있겠죠.


각 대통령들의 자서전이나 전기, 『조선왕조실록』을 분석해 DISC 전문가적 사고로 조명한 결과입니다. 조선 왕들의 경우, 기질은 다를 수 있었겠지만 환경적인 측면에서는 S유형이 많았어요. 신하가 임금을 조정하는 궁중암투의 역사 속에서 선택할 수 있는 행동이었던 것이죠. 또 흥미로운 점은 D유형 왕의 후대왕은 S유형이 나오는 패턴이 있다는 것이에요. 초기에는 대통령들 역시 그랬어요.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 이후로는 D유형이 많이 나왔지만 말이에요. 이승만(D성향) 대통령 다음은 윤보선(S성향) 대통령이 나오고, 박정희(D성향) 대통령이 나오면 다음에 최규하(S성향) 대통령이 나왔죠.

 

대통령 선거 제도가 안착된 노태우 대통령 이후로 모두 D성향이 나왔다는 점도 눈길을 끄네요.


이전에는 패턴이 있었는데 말이죠.(웃음) D가 도전적이고 선구자적 역할을 하는 면이 많잖아요. 앞으로는 D유형이 점점 더 많아질 거예요. 세계적 추세이기도 하고요. 과거에는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해서 오히려 깎아 내렸는데요. 이제는 그렇지 않잖아요. 그런 시대가 온 거죠.

 

그런가하면 드라마 <미생>, <별그대>, <왔다 장보리>, <응답하라 1994>의 등장인물을 DISC 유형으로 분류하셨어요. 혹시 다른 작품의 등장인물들도 성향 분석이 가능할까요? 가령 <징비록>에 등장하는 류성룡, 이순신이나 도요토미 히데요시 같은 인물들이요.


책에는 넣지 않았지만 영화 속 등장인물에 대한 분석도 다 끝난 상태입니다. <연평해전> 같은 경우에도 선장은 DC유형이에요. 사람들을 처음부터 사귀지 않아요. 반면 갑판장 같은 사람은 새벽에 해산물을 잡아서 함께 라면도 끓여먹고 놀거든요. 선장은 무뚝뚝하게 지시하면서도 서서히 어울리게 되는 장면이 있죠. 그런 모습으로 유형 분석이 가능해요. 이순신 장군은 S유형이 강해요. 미리 대비하는 성향이거든요. SC라고 볼 수 있어요. 유비무환이라는 단어로 설명할 수 있겠죠. I에 해당하는 성향은 거의 발견할 수 없고요. 이순신 장군은 흥미, 유흥과는 거리가 있죠.

 

연예인의 유형 분석도 눈길을 끕니다. 김구라를 전형적 DC유형으로 꼽았고요. 유명인의 성향 분석을 좀 더 부탁 드려요. DISC 유형에 대한 이해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소녀시대 같은 걸그룹을 보면 DISC 각 유형이 철두철미하게 다 있어요. 때문에 각 유형을 좋아하는 팬들을 모두 흡수하는 거죠. 어떤 성향의 사람이 팬이 될지 기획 단계부터 다 해놓는 거예요. 어떤 TV프로그램도 마찬가지예요. <무한도전>, <1박 2일>의 캐릭터들도 그렇거든요. 강호동은 무슨 유형일까요? D죠. 노홍철은 I고요. 다양한 유형의 캐릭터를 골고루 배치시킴으로써 시청자를 잡아두는 것입니다. 시청자의 다양한 구미를 다 맞춰줄 수 있으니까요. 예능의 경우 D나 I유형은 잘 나타나요. 외향적이니까요. S나 C는 내향적이기 때문에 서서히 나타나요. 정형돈의 경우가 C에 해당합니다. 조금 조심스러운 것은 그것이 설정일 수도 있기 때문인데요. 그렇지만 설정이라는 전제 하에 본다면 명확한 분석이 가능하죠.

 

스타 운동선수들, 김연아나 박태환, 이승엽 선수도 분석이 가능할 것 같은데요.


저에게 아이디어를 주셨네요.(웃음) 운동선수들은 기본적으로 성실하겠죠. 기본적으로 외향적일 테고요. 그러나 이승엽 선수 같은 경우는 인터뷰들을 보면 C나 S 성향을 좀 읽을 수 있어요. 축구 선수들 중에는 세레머니를 할 때 춤을 추는 선수도 있잖아요. 그런 면에서 I를 읽을 수 있겠죠. 본격적인 분석은 아직 안했지만 가능할 것 같네요.

 

 

변화를 부르는 DISC


성찰보고서가 포함되어 있어요. 이것은 어떻게 작성하게 되신 건가요?


일종의 자기 고백서, 자기 견적서라고 볼 수 있어요. 자신의 불완전함을 고백함으로써 자신을 발전시킬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거예요. 내게 그러한 면이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야기함으로 해서 오히려 용기를 얻는 거죠. 알고 나면 변화하는 거예요. 상대가 어떤 연유로 저런 행동을 했는지 이해할 수도 있고요. ‘나’에서 ‘너’로 가는 거죠. 그렇게 ‘나’와 ‘너’가 모여 ‘우리’가 되는 거니까요.

 

DISC를 잘 몰랐던 사람도 많았을 텐데요, 이 책을 꼭 권하고 싶은 분들이 있다면?


기존에 DISC를 어설프게 배웠던 분들도 있어요.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자세히 알 필요가 있습니다. 학문적 근원도 알아야 하고, 어떤 학자가 있었는지도 알아야 해요. 1장, 2장은 DISC에 대해 공부하고자 하거나 전문직에 종사하시는 분들이 공부할 수 있는 내용이에요. 일반 독자라면 3장부터 보셔도 돼요. 제가 권유하고 싶은 것은 이 책이 대중적 흥미와 대학 교재 수준의 심층 분석이 포함되어 있으니 그런 면을 함께 보셨으면 한다는 점입니다. 균형 잡힌 지식이 무척 중요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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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읽다김재득,권영조,김은정 공저 | 매일경제신문사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독자가 DISC에 대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사회, 문화, 역사 등 다양한 맥락에서 DISC 각 유형들의 특징을 짚었다는 점이다. 각 유형들의 특징을 속담을 통해 알아보기도 하고 십이지간, 조선의 왕, 대한민국의 역대 대통령, 우화와 드라마 캐릭터의 성격유형을 DISC로 분석하기도 했다. 또 사람의 성격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그런 성격을 분류하는 DISC라는 도구가 도대체 무엇인지, 언제부터 시작된 것인지, 믿을 만한 건지, 각 유형들은 어떤 성격적 특징을 가지는지 등 단순히 재미를 넘어서 DISC에 관한 깊이 있는 내용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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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 씬에서 가장 핫한 프로듀서, 피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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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다사운드 소속 힙합 듀오 라임버스의 피제이(Peejay)는 이제 프로듀서 피제이로 더욱 유명하다. 빅뱅, 투애니원, DJ DOC 등 YG 소속 아티스트와의 협연으로 이름을 쌓은 그는 현재 힙합 씬에서 가장 트렌디하면서도 폭넓은 음악을 선보인다. 결정적인 「Dali, van, picasso」는 두 말 할 것도 없고, 최신으로는 자이언티와 크러시의 히트 콜라보 「그냥」이 있다. 그런 그가 솔로 커리어를 시작하려 한다. 정력적인 작업을 통해 자신만의 스타일을 구축하고 있는 피제이를 연희동에서 만났다.

 

< Walkin' Vol.1 >은 여러모로 첫 발걸음입니다. 새로운 레이블에서 나온 개인의 첫 앨범인데요.


워킨 레코즈 (Walkin' Records)라는 이름의 레이블을 세웠어요. 아무래도 타 회사, 타 아티스트와 작업하다 보면 제가 가진 생각을 100% 표현하기는 어렵거든요. 새 아티스트 받을 생각 없이 편하게 음악 하고 싶어서 만든 레이블이에요. 1인 기업, 사업자 등록증 같은 개념이랄까요?

 

현재 가요계, 특히 힙합 씬에서 가장 핫한 프로듀서임에도 솔로 커리어를 시작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음악을 할 때, '더 늙기 전에 많은 것을 만들어놓자'는 생각이 있어요. 하루하루 습관적으로 노래를 만들고, 작업에 재미가 붙게 되면 계속 뭔가를 하고 있어요. 이를테면 집에 쌓여있는 습작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개인적으로 보관하기보다는 이 결과물들을 정리해서 솔로 앨범으로 만들어보고 싶었죠. 피제이의 스타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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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 1이라는 제목이 의미하는 바도 '작업 정리'인가요?


그렇죠. 평소에 써놨던, 작업했던 (Walkin') 곡을 추려서 볼륨 시리즈로 콘셉트 화한 거에요. 앞으로도 볼륨 투, 볼륨 쓰리 계속 나올 텐데 정리 형식이 될 것 같아요. 볼륨 투는 거의 다 완성됐고 마무리만 하면 되는 상황이고요.


원래는 2014년 가을쯤이 발매 예정일이었습니다. 작업 과정이 오래 걸렸나요?


앞서도 언급했지만 꾸준한 작업선 상의 결과라 따지고 보면 2012년이나 2013년에 다 만들어졌어요. 제 성격이 좀 느긋한 편도 있고… 마무리 작업과 피쳐링 등에서 시간이 걸렸네요.

 

피제이의 스타일이라면?


앨범을 들어보면 아시겠지만 사실 좀 어려워요. 확 와 닿진 않죠. 소속사와 함께 작업할때도 이런 류의 곡을 전달하면 '난해하지 않을까'하는 반응이 오더라고요. 힙합 기반의 네오 소울, 약간은 몽환적이면서도 다양한 소스(Source)가 이리저리 합쳐진 상태라고 해야 할까요.

 

작곡가 피제이가 다채로운 색이 자랑이라면 솔로 피제이의 앨범은 일관됨이 있습니다. 2010년의 마인드 콤바인드(Mind Combined)가 그 출발점같은데.


마인드 콤바인드는 라임버스 이후 첫 콜라보레이션 프로젝트였어요. 그룹 시절에는 아무래도 대중 친화적인 음악을 하고자 했다면 그 이후로는 고유의 방식을 확립하는 과정이었던 거죠. 마침 진보(Jinbo)를 만났는데 스타일이 완전히 맞았어요. 전부터 제가 구상해오던, 평소에 가장 많이 쓰는 형태를 진보도 하고 있었죠. 이 앨범도 그 작업의 긴 연장선상이라 봐도 될 것 같아요. 아주 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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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앨범 자켓도 그 뜻을 어느 정도 담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앨범 속지를 보셔야 해요. 빈지노와 함께하는 크루 IAB 작품이에요. 처음 디자인하는 분들과 이야기했을 때 앨범에 관한 이야기를 했죠. 평소에 썼던 습작들의 모음집 콘셉트를 생각하고 있다고 말씀드리니 그 과정을 '나무'로 만든 거에요. 정말 깎고 사포질하고 나무 옮겨서 만든 실제 조형물이에요. 촬영은 서울대 목공 사무실에서 했고요.

 

앨범 자켓을 거대한 프로젝트로 만든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무식한 짓이라 할 수도 있죠. 그래도 제 작업 방식을 가장 잘 나타낸 것 같아요. 굳이 무식해도 의미 있고, 과정이 있는 결과라면 좋아요. 그냥 완성본 볼 때랑은 꽤 큰 차이죠.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고 싶었어요.

 

수록곡을 살펴보면 우선 이국적인 「Time」을 꼽아보죠. 스페인어 나레이션이 독특하네요.


본래는 포르투갈 어로 하고 싶었어요. 브라질 느낌을 살리려고요. 그런데 한국에 포르투갈 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아요. 아쉬워하다가 그래도 브라질 빼면 다른 나라들은 다 스페인 어를 쓰니까, 스페인어로 진행했죠.
라임버스의 「Senorita」라는 노래가 있어요. 그 인트로에도 스페인어가 나오는데, 그 녹음을 도와준친구와 새로 섭외한 여성 한 분의 목소리에요.

 

브라질 느낌이라면 노래에 녹아있는 보사노바 풍의 리듬 때문인가요?


맞아요. 남미 음악도 많이 좋아하는 편이라 다양한 시도를 끌어와서 이것저것 넣어보기도 해요.

 

남미 음악에는 언제부터 영향을 받으셨는지?


중 고등학교 한창 음악 듣는 시절이잖아요. 저는 흑인 음악이 좋아서 레코드 판 표지에 흑인만 있으면 그냥 다 샀어요. 록, 재즈, 힙합, 가리지 않고 그냥 흑인이면 샀어요. 그렇게 모르고 많이 들은 이유도 있고… 제가 자주 가던 레코드점 주인아저씨가 추천해준 앨범 중에 보사노바 스타일 노래가 많았어요.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다가 본격적으로 찾아 들으면서 빠지게 되었어요. 화성 면에서나, 리듬 면에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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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의 내용도 의미가 담겨져 있다는데,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만들고 나서 떠오른 생각은 '주문'이었어요. 좋은 일이 있어도 나쁜 일이 있어도 언젠가 시간이 지나면 해결이 된다는, 그러니 걱정 말고 맥주나 한잔 하러 가자는. 이런 내용의 일상적인 대화에요. 사실 굉장히 당연하고 일상적인 표현인데, 반복되는 리듬이나 멜로디를 듣다 보니 일종의 기복, 주문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괜찮아 잘 될거야.

 

「Reborn」에서는 YG의 작곡가, 초이스37의 랩도 들을 수 있습니다.


원래 초이스 37은 LA에서 비트 만들고 랩하던 친구였어요. 저랑 포지션도 비슷하고 음악 성향도 비슷하죠. 저랑 합이 잘 맞겠다 싶어서 같이하게 되었는데, 그 전에도 초이스랑은 한번 꼭 작업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사실 랩 메이킹이 쉽지 않아보였는데, 결국 4, 5년 전 써놓은 가사를 바탕으로 했죠. 비트만 바꾸고.

 

에픽하이< 신발장 >앨범에 수록된 피제이씨의 비트 「Life is good」, 「Lesson 5」가 많이 생각났는데요.


그 스타일로 빚은 비트에요. 「Lesson 5」같은 경우는 너무 작업이 빨리 이뤄져서, 그냥 금방금방 비트 만들고 금방금방 녹음하고, 여유롭게 만든 노래에요.

 

그런가 하면 트랩 비트의 「Out Of My Mind」는 앨범에 어우러지면서도 다른 느낌인데요. 대세의 키스 에이프와 G2가 참여했습니다.

 

Keith Ape가 Kid Ash 라는 이름을 쓸 때, G2와 같이하던 팀 'G2 & Kid Ash' 때부터 무척 마음에 들었어요. 어린 친구들이라 자극도 많이 받았고요. 원래는 BPM 90 정도, 지금 스타일과 완전히 다른 비트였는데 조금 더 트렌디함을 넣어야겠다는 의견을 받았어요. 본래는 붐뱁이었다면 이제는 21세기형 트렌드라 할 수 있죠.

 

키스 에이프가 주목받기 전 싱글로 공개된 곡이기도 합니다.


키스 에이프같은 계속해서 같이 작업해보고 싶은 친구에요. 아이디어와 활력이 넘치죠. 다만 지금은 활동한다고 미국에 있으니까요.

 

콜라보레이션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뭐니뭐니해도 피제이씨의 커리어에서 가장 중요한 파트너는 역시 빈지노같습니다. 「I get lifted」에서 또 참여해주셨죠.

 

빈지노는 이제 많이 작업하다 보니까 서로에 대해서 더 잘 알게 되었죠. 「I get lifted」 비트를 처음 짰을 때 빈지노를 처음 떠올렸어요. 그래서 노래는 빈지노와 그 크루 IAB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빈지노와의 첫 만남에서 특별히 다른 점이 있었는지?


당시 빈지노는 재지팩트 스타일 대신 혼자 할 수 있는 음악을 구현할 프로듀서를 찾고 있었어요. 빈지노와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니 음악도 그렇고 미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서로 취향도 겹치고 말도 잘 통하더라고요. 느낌이 너무 잘 맞아서 계속 만나서 작업하는 경우가 생겼어요. 보통 집에서 주로 혼자 작업을 하는 편이었는데 이제는 말을 더 많이 나누게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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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가지 예를 들어주신다면.


< Up All Night >EP 전체가 대화를 통해서 콘셉트를 짠 거에요. Wooyoungmi라는 디자이너 브랜드의 파리 컬렉션 음악을 총괄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때 많은 이야기를 하면서 EP 전체를 구상했어요. 「How do I look」같은 경우도 기존 작업물을 엎어버리고 새로 만든 거에요.

 

빈지노 씨의 경우도 있지만 보통 콜라보레이션을 할 때는 어떤 과정으로 이뤄지나요?


음반을 구상할 때 피쳐링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리고는 바로 연락하죠. 연락처 알아서 문자 보내거나 전화하는 건 당연하고, 트위터 DM도 활용해요. 크러시가 아메바랑 계약하기 전에도 트위터 쪽지로 처음 만났었어요.
그리고는 일단 무조건 만나서 서로의 생각을 공유하고, 대화를 통해 작업을 풀어나가요. 빈지노도그렇고, 진보도 만나서 작업했죠. 업무관계 대신에 사람 대 사람으로 감정을 통하고 싶어요.

 

콜라보레이션에 있어 피제이 씨는 굉장히 장대한 장르 폭을 자랑하고 계십니다. 가요부터 힙합, 일렉트로닉 모두 아우르는 스펙트럼의 비결이 있을까요?


저는 음악을 전문적으로 배우진 않았어요. 그래서 일단 좋은 귀가 중요한 것 같고. 자연스럽게 체득하려면 한 장르만 듣는 대신에 넓게 두루두루 음악을 들어야 해요. 장르 얘기가 나왔지만 사실 하나만 파기에는 세상에 좋은 음악이 아주 많아요. 제 결과물이 그날그날 다른 이유도 이것 때문 같아요. 어떤 날엔 발라드가 좋고, 어떤 날엔 멜로디가 들리고. < Walkin' > 시리즈가 힙합을 표방하고는 있지만 사실 다른 콘셉트로 나올 수도 있어요.


본래 라임버스라는 힙합 듀오 팀을 하다 프로듀서의 길을 걷게 되었습니다.


어렸을 때 꿈은 작곡가였어요. 그게 어떻게 하다 보니 DJ DOC의 이하늘 형을 알게 되었고, 함께 라임버스를 만든 거에요. 그 때도 재밌었지만, 계속 작업하다 보니 랩보다는 비트 메이킹에 더 흥미가 가더라구요. 딱히 프로듀서나 비트 메이킹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여기까지 왔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이렇게 흘러온 것 같아요. 다른 얘기긴 하지만, 지금은 힙합이 대세기 때문에 랩을 해도 유행이 되는데 과거에는 랩이 비주류였죠. 저는 또 랩을 그렇게 잘하진 못한다고 생각했어요. 잘하는 사람이 해야 멋있죠.

예전 랩 하던 시절 생각해보면 공연을 하고 싶기도 해요. 그래도 다시 생각해보면 프로듀서로써의 커리어가 제 성격에 가장 잘 맞는 것 같아요. 이제 가사는 안 쓰지만, 노래는 유명해지길 바라죠. 당연한 모순같아요.

그렇다면 프로듀서 피제이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은?


평소에 내가 뭘 만드나, 뭘 하나 보여주고 싶은 욕구가 < Walkin' > 시리즈 앨범을 만들었어요. 마감일에 안 쫓기고, 내가 만들어서 내가 낼 수 있는 시스템. 레이블도 그래서 만든거고요. 지금처럼 다른 이들과 같이 협연도 하고, 공연이나 솔로 활동도 생각하고 있어요. 솔로 활동이라면 제가 나서서 공연을 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해야 제 음반 공연이 좀 더 인상을 남길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죠. 라이브 셋 밴드 공연도 지금 구상 중이에요.

 

마지막으로 < Walkin' > 시리즈를 정의한다면.


작곡가 피제이가 아니라, 프로듀서 피제이가 '평소에 해왔던 흔적'이라고 봐 주시면 편할 것 같아요.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스타일로 만든, 제 음반입니다.

 

 

인터뷰 : 김반야, 김도헌
정리 : 김도헌
사진 : 정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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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잔의 커피로 완벽해지는 순간이 있다. 한 잔의 커피로 엉망이 되는 하루도 있다. 『커피 한잔 할까요?』는 그 모든 순간들로 채워져 있다. ‘2대커피’를 운영하는 바리스타 박석은 손님들에게 특별한 순간을 선사한다. 무명의 만화가에게 건네는 과테말라 안티구아에는 위로가 녹아있다. “한 잔 커피에 담긴 위로의 양은 평등하지만 그걸 마시는 사람들의 상처는 결코 똑같지 않지”라는 말로 창작의 외로움을 다독인다. 긴 겨울을 지나 봄날을 맞이하는 이들에게 권하는 커피는 ‘케나AA’. 그는 정성으로 로스팅한 원두 속에 “버텨줘서 참으로 고맙다”는 마음을 감춰두었다.

 

그러나 박석이 제자로 맞아들인 청년 강고비는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다. 제대로 된 에스프레소 한 잔 내리지 못하고 밤새 고전하는 그는, 단골손님으로부터 “자기 때문에 내 하루의 행복이 엉망이 됐어요!” “자기가 뭔데 내 행복을 뺏어가는 거야?”라는 원망 아닌 원망을 듣는 처지다. 이제 막 커피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그는 박석의 곁에서 “에스프레소로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알아가고, 한 잔의 커피에 담긴 바리스타의 ‘정성과 살핌의 시간’을 배워가는 중이다.

 

커피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는 『커피 한잔 할까요?』는 익숙한 듯 낯선 질문을 품게 한다. ‘커피가 뭐라고, 그 한 잔에서 찰나의 행복과 스치는 우울을 경험하는 걸까’하고 자문하게 되는 것이다. 언뜻 보기에는 ‘도통 커피의 매력을 알 수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서나 들을 법한 질문 같지만, 이미 커피와 사랑에 빠진 사람들도 이 질문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커피 한 잔 여유롭게 마실 시간도 없이 쫓기듯 하루를 보내다 맛있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을 때 ‘행복하다’는 말이 절로 나오는 이유를, 원두를 삶아낸 물처럼 싱거운 커피를 마주했을 때 시무룩해져버리는 이유를,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는 힘들다.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한 가지. “악마같이 검지만 천사같이 순수하고 지옥같이 뜨겁고 키스처럼 달콤”한 이 음식에는 분명 마력이 감춰져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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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만 작가와 “커피 한잔 할까요?”


허영만 만화가와 만난 순간에도 우리 사이에는 커피가 있었다. 많은 순간 그것은 이야기의 주제가 되었고, 때때로 다른 이야기로 건너가는 소재가 되었다. 커피를 매개로 만나고 대화를 나눈다는 것, 커피 잔 너머에 늘 사람이 있었다는 것, 그 사실만으로도 커피에 매료되는 이유를 충분히 알 것 같았다. 『커피 한잔 할까요?』에서 작가가 커피의 이야기만큼이나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에 공을 들인 이유도 다르지 않을 터였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날 모인 사람들 중 커피를 마음껏 즐길 수 없는 이는 허영만 작가뿐이었다는 것이다. 『커피 한잔 할까요?』의 연재를 시작하며 밝혔듯, 작가는 카페인에 민감해 커피를 마시지 못한다.

 

“커피를 마시면 잠을 자지 못해서, 오전에만 조금 마셔요. 하루는 커피나 녹차를 한 잔도 마시지 않았는데도 잠이 안 와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그 날 족발을 먹었더라고. 족발을 삶을 때 냄새를 없애고 색을 내기 위해서 커피를 넣는 집도 있잖아요. 그것 때문에 잠이 안 왔던 모양이에요. 나한테 커피는 ‘사랑할 수 없는 여인’인 거지(웃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가 카페를 찾은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또 다른 허형만(허영만 작가의 본명은 허형만이다)을 만나기 위함이었다. 바리스타인 그와의 만남은 『커피 한잔 할까요?』를 위한 취재의 연장선으로 봐도 무방했다. 작품을 준비할 때마다 빈틈없는 취재로 유명한 만큼, 작가는 허형만 바리스타의 한 마디 말도 놓치지 않았다.

 

“허형만 바리스타와는 전시회(허영만 전-창작의 비밀)에서 처음 만났는데, 카페 ‘허형만 커피’는 그 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나하고 이름이 같다 보니까, 주변 사람들이 카페도 차렸냐고 물어보더라고(웃음).”

 

작가는 허형만 바리스타의 조언에 따라 직접 핸드드립을 하고, 커피에 대한 그의 철학에 귀 기울였다. “마시고 났을 때 한 잔 더 먹고 싶은 커피가 맛있는 커피”라는 허형만 씨의 말에 “2편이 기다려지는 만화가 좋은 만화”라고 응수하며 미소 짓다가도 진지한 표정으로 메모를 멈추지 않았다. 특히 “맛있는 커피는 마시고 났을 때 개운하고, 목 넘김이 편하고, 식었을 때도 맛있다” “좋은 술과 좋은 사람과 좋은 커피의 공통점은 부드럽고, 뒤끝이 개운하고, 향기가 있다는 것”이라는 이야기는 작가의 손을 바삐 움직이게 했다.

 

“지금은 커피에 재미를 붙여가는 중이죠. 그리는 사람이 재미있어야 독자가 재미있어요. ‘오늘은 재미없게 그렸다’ 싶으면 독자들이 즉각 반응한다고.『커피 한잔 할까요?』를 그리면서도 전문적인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하면 내가 재미가 없어요. 이 만화는 커피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하는 게 아니라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거예요. 다만 주제가 커피일 뿐이지. 지문도 너무 많으면 재미가 없어요.『식객』 때도 지문이 많았는데, 그에 비하면 『커피 한잔 할까요?』는 굉장히 적은 거지. 그림체가 단순해졌다는 이야기도 듣는데, 나이 들어서 복잡해지면 안돼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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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맨 이야기는 감동적이지 않으니까”


『커피 한잔 할까요?』의 연재를 시작한 올 해, 허영만 만화가는 데뷔 40주년을 맞았다. 특별한 순간을 기념하는 작품인 만큼 남다른 의미가 있을 것 같지만, 작가는 손을 내저었다. “하다보면 40년 되고 50년 되는 거지” 별다를 게 있냐는 것이다.

 

“처음에는 계절 식재료에 대한 만화를 그리고 있었는데, 아들한테 이야기 했더니 커피를 소재로 그리시는 게 어떠냐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시작하게 됐죠. 요즘에는 커피가 트렌드이기도 하니까. 한편으로는 『식객』의 이야기를 그냥 커피로 바꾼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꾸 들어서, 그것 때문에 고민이에요. 주인공과 배경만 다른 게 아닌가 싶은 건데, 사실 그렇게 따지면 다 똑같겠지. 심야식당도 똑같고(웃음).”

 

‘나는 아직도 진화하고 있다’는 말을 가장 좋아한다는 작가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그림자 속에 갇힐까 염려하며, 냉철할 만큼 객관적인 시선으로 스스로를 돌아보고 있었다. 그렇다면 자기 복제에 대한 고민 끝에서 찾은 해답은 무엇일까.

 

“이럴 때는 주인공을 죽여야 되는데(웃음). 그렇게는 안 되니까, 지금 있는 상황에서 최대한 감동적인 이야기를 만들어 내야죠. 감동이라는 건 형식을 달리 한다고 해서 오는 게 아니라 이야기 자체에 있는 거니까.”

 

작가의 말처럼, 그의 작품 속에는 언제나 감동이 있다.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적인 순간에서 길어 올리는 그 감동은 격정적이기보다는 잔잔하고, 그래서 독자들은 그의 작품 안에서 위안과 위로를 얻는다. 희망을 발견한다. 작가 역시 “예전이나 지금이나 제 만화는 슈퍼맨이 없습니다. 항상 주위에 일어날 수 있는 그런 정도의 사람들이 주인공이죠”라고 이야기한 바 있다. 그러나 때로는 초인적인 인물에 기대어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도 있지 않을까.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에게 집중하는 이유’에 대해 물었을 때, 작가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슈퍼맨이 나오는 이야기에는 한계가 있어요. 항상 더 센 놈을 만들어야 되는 거죠. 그게 머리 아프잖아요(웃음). 슈퍼맨 같은 인물이 나오는 이야기는 영화로 만들어졌을 때가 더 재미있어요. 액션이 들어가야 되는데, 만화로 열심히 그려도 그만큼의 효과를 얻기 힘들거든요. 그리고 슈퍼맨 이야기 같은 건 감동적이지 않아요. 우디 앨런의 영화가 훨씬 더 감동적이지. 나한테 ‘슈퍼맨 같은 만화를 그릴래, 우디 앨런 영화 같은 만화를 그릴래’하고 물어보면 난 우디 앨런 쪽이에요. 그리는 내가 재미있어야지, 처음부터 인상 빡빡 쓰면서 긴장감 있게 가는 건 내가 못해. 중간에 막 장난치고 싶어(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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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같은 만화를 그리고 싶다


데뷔 40주년 작품으로 『커피 한잔 할까요?』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물었을 때, 작가로부터 특별할 것 없는 대답이 돌아오리라는 것은 이미 짐작한 바였다. 그에게 있어 40년이라는 ‘지나간’ 시간은 중요한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19일 막을 내린 ‘허영만 전-창작의 비밀’에서도 그 사실은 어김없이 드러났다. 전시회를 준비하며 작가가 큐레이터에게 건넨 첫 마디는 “회고전으로 만들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 이유에 대해 정형탁 큐레이터는 “허영만 만화가는 과거에 만족하고 정리하는 느낌의 전시회는 싫었던 것 같다”고 전했다. 그 결과 이번 전시회는 “지금도 진화하고 있는 세계를 그대로 옮기는데 집중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만화가 허영만에게는 자신이 고군분투하며 쌓아올린 작품들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허영만 전-창작의 비밀’이 우리 만화계화 후배들에게 미칠 영향이었다. 그는 “내 전시가 성공해야 다른 만화가 후배들도 계속 이곳에서 전시를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으로 전시회를 준비하며 큰 책임감을 느꼈다고 했다. 이번 전시회는 예술의전당에서 처음으로 한국 만화를 초대한 자리였기 때문이다. 이전까지 예술의전당은 ‘지브리 원화 전’ ‘픽사 20주년 전’ 등 해외의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주인공으로 전시회를 기획한 적은 있었지만, 국내 만화가를 위해 자리를 마련한 바는 없었다.

 

“이번 전시회는 사건이었죠. 예전에도 소소하게 전시회가 있었지만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적은 없었잖아요. 예술의전당에서 일하는 분들이 만화를 인정했다는 얘긴데, 의미가 있었죠. 내가 예술의전당 사장님한테 만화를 선택한 이유를 물어본 적도 있어요. 사장님이 말씀하시길,  취임한 후에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예술의전당이 우리나라 사람들을 위해서 우리나라 전시회를 몇 번이나 했나’ 싶더래요. 그때 마침 만화 전시회 이야기를 듣고 결정해줬다는 거예요. 만화에 관심 있는 시민들이 전시회를 많이 찾아와 주면 만화를 예술로써 인정해준다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이번 성공을 계기로 제2 제3의 만화 전시회가 열릴 수도 있는 거니까, 많은 기대를 했죠. 그런대 메르스 여파가 있어서 단체 관람이 취소되는 일도 있었고… 아쉬움이 남아요.”

 

‘허영만 전-창작의 비밀’은 작가의 작품 속에 녹아든 모든 순간들을 조명했다. 하나의 이야기를 낳기까지 치밀하게 조사하고, 치열하게 고민하며, 혼을 담아 획 하나하나를 그려나갔던 순간들이 응집되어 있었다. 오랜 시간 작가가 일상의 순간들을 기록해온 ‘만화 일기’ 역시 전시회를 통해 공개됐다. 전시회가 끝난 지금 어디에서도 구해볼 수 없는 ‘만화 일기’의 단행본을 그는 취재진 앞에 펼쳐보였다.

 

“예전에 고은 선생의 『바람의 사상』을 정말 재미있게 읽었어요. 누구를 만나서 술을 마시고, 누구를 면회 가고, 그런 이야기들인데. 그때가 유신 때니까 상황을 짐작하면서 읽었죠. 고은 선생은 글을 잘 쓰시니까 일기를 쓰신 건데, 그러면 나는 만화로 일기를 쓰면 되지 않나 생각했어요. 그렇게 시작한 게 지금 23권 째 쓰고 있어요. 일기장에 바로 그리니까 그림이 좀 부실해서, 메모해 뒀다가 시간이 날 때마다 일기장에 옮겨 그려요.”

 

일기 속에는『커피 한잔 할까요?』가 남긴 흔적도 있었다. 작품을 위해 (좀처럼 친해질 수 없는) 커피를 향해 한 발작 떼었던 순간을 작가는 다음과 같이 기록해 놓았다. “24일부터 커피를 조금씩 마시기 시작했다. 오전에만. 괜찮다. 정신이 맑아지고 약간 긴장한다” 또 다른 날의 기억은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채워져 있다. “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던 어머니”가 그리웠던 날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작가는 고백하듯 읊조렸다. 그런 어머니와 같은 만화를 그리고 싶다고.

돌아보면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 같은 사람, 말없이 응원을 보내주고 가만히 등을 토닥여줄 것 같은 사람, 허영만 만화가의 작품은 이미 대중에게 그런 존재일 지도 모른다. 『각시탈』『오! 한강』 『미스터 손』 『아스팔트 사나이』 『비트』 『타짜』『식객』『꼴』『말에서 내리지 않는 무사』… 그 어떤 작품으로든 만화가 허영만의 이름으로 기억되는 시절이, 우리에게는 있다. 늘 독자들의 곁에서 함께 성장해 온 그이기에 『커피 한잔 할까요?』로 기록될 지금 우리의 이야기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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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한잔 할까요? 1 허영만 글,그림/이호준 글 | 예담
서울의 어느 작은 골목, 커피에 대한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2대커피〉의 주인장 박석은 언제나 한결같은 커피 맛으로 많은 단골손님들을 거느리고 있다. 그의 커피 철학을 배우기 위해 매일 카페 문밖으로 출근하는 강고비는 우연한 기회에 〈2대커피〉 박석의 수제자로 입성하게 된다. 《커피 한잔 할까요?》 1권에는 수제자가 된 강고비가 커피를 배워나가며 고군분투하는 내용이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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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해문 “아이들은 놀다가 다칠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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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놀다가 다칠 권리가 있다”는 이야기에 부모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자신의 자녀가 부디 안전하게 무사고로 자라길 바라는 부모들에게는 꽤 거부감이 들 이야기다. 아동문학가이자 놀이터디자이너인 편해문 작가는 『놀이터, 위험해야 안전하다』를 통해 “안전한 놀이터, 지루한 놀이터가 위험하다”며, “아이들은 작고 자주 다쳐야 크게 안 다친다”고 말한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만 들은 아이들은 정작 큰 위험이 닥칠 때, 아무것도 방어할 수 없다.

 

마트가 아이들의 놀이터가 된 지금, 아이들이 지금 빠져든 놀이는 ‘소비’다. 무언가를 사지 않으면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는 성인들의 모습이 이제는 아이들에게서 보인다. 왜 이런 상황이 펼쳐졌을까. 놀 시간, 놀 공간, 놀 친구들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 10년 동안 편해문 작가는 “아이들은 놀기 위해 세상에 온다”는 말을 하고 다녔다. 앞으로의 10년은 “아이들은 놀다가 다칠 권리가 있다”는 이야기를 할 작정이다.

 

『놀이터, 위험해야 안전하다』는 한국에서의 놀이와 놀이터를 직접 소개하며, 독일과 덴마크에서 만난 아이들이 어떻게 놀이터에서 노는지를 사진을 곁들어 보여준다. 세계적인 놀이터디자이너 귄터 벨치히와의 대담도 인상적이다. 편해문 작가는 “놀이터를 고민하는 부모, 교육운동가, 놀이터활동가, 디자이너, 예술가, 건축가, 조경가, 정책입안자, 시공 설비 안전 감리 담당자, 놀이기구 회사, 시민단체, 지자체, 정치인, 건강한 기업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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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작고 자주 다쳐야 크게 안 다친다


『놀이터, 위험해야 안전하다』『아이들은 놀이가 밥이다』이후에 쓰는 ‘놀이 3부작’의 두 번째 책입니다. ‘놀이터’에 대한 책을 쓰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그동안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교육이 아니라 놀이라는 걸 강조해왔습니다. 삶이 놀이가 되려면 시간, 친구, 공간이 있어야 해요. 20년 동안은 시간, 친구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이제는 공간을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한국 사회는 창의성 교육을 굉장히 강조하는데, 아이들이 노는 놀이터에 가보면 그게 거짓말이라는 게 보여요. 조그만 공간에 아이들을 집어넣고 조몰락거리는 게 우리나라의 창의성 교육인데, 제가 생각하는 창의는 몸으로 느끼는 거예요. 한국에 놀이터가 6만 개 정도 있는데, 대부분 다 똑같아요. 아이들은 모두 다른데 말이죠.

 

책 제목만 읽고는 놀라는 부모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위험해야 안전하다니.


이 책은 제 개인적으로는 세월호 침몰 사고를 바라보는 사회에 대한 응전, 답변이라고 할 수 있어요. 사람들이 여러 각도로 세월호 사건을 추모하는데, 밖에 나와 촛불집회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각자 자신이 서있는 곳에서 세월호에 대한 성찰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세월호 사건 이후 안전에 대한 인식이 굉장히 심화됐잖아요. 올해 초 어린이놀이시설안전관리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되면서 강화된 안전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는 놀이시설들이 대거 폐쇄됐고, 폐쇄될 예정이에요. 위험하면 어떻게든 고쳐서 사용해야 하는데 위험하니까 닫으라는 거죠. 저는 이런 상상력을 끔찍하게 봐요. 우리나라 놀이터가 굉장히 획일적으로 위험하지 않게 만들어졌잖아요. 저는 이게 분명히 아이들의 행동, 사고의 보수화에 영향을 끼칠 거라고 생각해요. 놀이터를 집 밖에 있는 거라고만 생각할 수 있는데, 사실 놀이터는 굉장히 중요한 공간이에요.

 

어떤 면에서요?


저는 아이들이 살아가면서 필요한 것들을 학교에서 배운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놀이와 놀이터를 통해 배운다고 생각해요. 학교에 계신 분들이 불편하게 들으실 수 있지만, 학교에서는 규율을 가르치는 곳이에요. 놀이터는 완전히 반대의 것이고요. 학교와 놀이터가 중심을 갖고 균형을 잡아야 한 인간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을 텐데, 너무 치우쳐있으니까 문제죠.

 

우리나라 놀이터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가요?


놀이터를 유치원 수준으로 만들어놓고, 이 놀이터는 초등 아이들이 놀기에 안전하다고 말하는 거예요. 초등 아이들이 동네 놀이터에 가면 지루해서 정말 미치려고 해요. 몸은 이렇게 커졌는데, 놀이기구의 높이는 낮고. 그러니까 아이들은 미쳐요. 그래서 다음 단계가 뭐냐? 하면, 그 지루한 놀이기구를 원래의 용도대로 쓰지 않는 거예요. 사고가 언제 나냐? 바로 이럴 때 나요. 놀이터에 가면, 안내판이 붙어있어요. 놀이기구의 용도에 대해 설명하면서 이런 행동을 하지 말라는 게 빽빽하게 적혀있죠. 문제는 아이들에게 이건, 반드시 해야 할 것으로 읽힌다는 거예요. 아이들은 도전을 하고 싶고 자신의 한계를 알고 싶은데, 놀이터가 유치원 수준이니까 반대로 놀 수밖에 없어요.

 

“아이들은 작고 자주 다쳐야 크게 안 다친다”고 말씀하셨어요.


그렇죠. 이렇게 안전만을 강조했을 때의 문제는 아이들이 실제 재난이나 큰 어려움을 만났을 때,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점이에요. 이게 정말 위험한 거죠. 놀이터의 첫 번째 강령은 아이들이 위험과 만나고 한계에 도전하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기준이 안전이에요. 저는 이 안전신화가 아이들을 더욱 더 안전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확신이 있어요. 아이들이 안 다쳤으면 하는 게 부모 마음이잖아요. 안 다치는 방법, 물론 있어요. 안 움직이면 돼요. 가만히 있으면 안 다쳐요. 많이 듣던 이야기 아닌가요? 제가 20년 정도 아이들의 놀 권리에 대해 이야기를 해왔다면, 앞으로는 아이들이 다칠 권리에 대해서 말하고자 합니다.

 

실제 부모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반응이 어떤가요? 그래도 지금 당장, 조금이라도 안 다쳤으면 하는 게 부모의 마음일 텐데요.


요즘 부모들의 사고를 바꾸는 게 상당히 쉽지 않은데요. 자녀가 하나밖에 없기 때문이에요. 보통 하나, 아니면 둘을 낳는데. 저도 아빠인 입장에서 그 심정을 모르는 게 아니에요. 과잉 보호하게 만드는 사회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부모들이 평생 자기 아이의 몸에 에어백을 입히고 헬멧을 씌울 순 없잖아요. 아이들은 지금보다 험한 국면을 맞을 거예요. 그러면 부모는 뭘 하는 사람인가? 이렇게 살아갈 아이들을 도와줘야죠. 지금 아이들을 간섭하고 제재하고 금지했을 때, 아이는 과연 부모가 없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갈까요? 부모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정말 그것이 아이를 사랑하는 건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할 필요가 있어요.

 

“어떤 경우에 있어서도 아이를 보고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굉장히 많이 하셨어요.


아이들은 다 다르니까요. 몇 가지로 걸러지지가 않거든요. 우리는 놀이터를 바라볼 때, 놀이의 개념으로 봐야 하는데 엔터테인먼트 관점으로 보고 있어요. 이건 굉장히 큰 차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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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일본 도쿄에 있는 후지 유치원을 소개하셨는데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교실마다 3개의 하늘창이 있고, 수도꼭지에는 센서를 달지 않아 확 틀었을 때 물이 튀어 아이들이 수압을 느끼고 조절할 수 있게 설계했어요. 놀이기구를 설치하지 않아 아이들이 놀 궁리를 하게 만들었는데, 연구기관에 의뢰한 결과, 이곳 아이들이 여느 유치원 아이들보다 6배나 많이 놀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외국의 예를 들어서 안타깝지만, 여기 원장님이 매년 입학설명회에서 학부모에게 하시는 말씀이 있어요. 자기가 오랫동안 아이들을 봐왔는데, 놀면서 다리나 팔이 부러지지 않은 아이들이 목이나 척추를 다치는 걸 너무 많이 봤다는 거예요. 아이들은 작은 위험을 경험했을 때, 자기를 돌보는 힘이 생겨요. 그런데 모든 위험요소를 다 막았을 때, 회복 불가능한 부상을 입게 돼요. 제가 여기서 말하는 위험은 회복이 가능한 부상, risk를 말하는 거예요. 놀이터에서는 회복이 가능한 부상들이 허용돼야 해요. 물론 바닥에 빈 병이 거꾸로 꽂혀있는 등의 위험(hazard)은 걸려져야 하고요.

 

한국에 놀이터가 6만 개나 된다는 것이 놀랐습니다.


제가 관심을 갖고 있는 놀이터는 주택이나 아파트에 있는 놀이터에요. 공원 같은 곳은 차를 타고 가야 하지만, 놀이터는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이잖아요. 그래서 공공의 영역에서 다뤄져야 하는데, “너희 아파트니까 너네가 알아서 지으세요”라고 하는 게 대부분이에요. 좀 재정이 있는 아파트의 경우에는 장기수선충당금으로 놀이터를 고칠 수 있는 여지가 있는데, 그렇지 못한 아파트나 주택은 대안이 없어요. 고치질 못하니까 폐쇄를 하는 거죠. 형편이 괜찮은 아이들은 놀이터가 없어도 다른 레저를 할 수 있지만, 어려운 아이들은 유일한 놀이터조차 닫히면 갈 곳이 없어요. 그래서 더 위험한 곳으로 내모는 이런 일들이 없어져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놀이터를 중심으로 책을 풀었지만, 놀이와 육아, 교육에 대한 철학이 큰 그림으로 그려졌습니다. “놀이터 사유화는 아이들의 삶을 뿌리부터 소비에 절게 할 것”이고, “결국 아이들은 뭔가를 사기 위해 공부를 하게 된다”고 지적하셨어요. 되게 가슴이 뜨끔할 부모들이 많을 것 같아요.


요즘 초등학교 5,6학년 아이들을 보면 더 이상 아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애들이 하는 놀이를 보면, 게임이랑 SNS 같은 거예요. 이건 여기 속세이기 때문에 아이들에게는 공기와 같은 것들이에요. 하지 말라고 할 수 없는 거죠. 저는 아이들을 오랫동안 지켜보면서, 소비가 아이들의 놀이가 됐다고 결론을 내렸어요. 어른들이 언제 행복한지를 생각해보면 뭔가를 샀을 때에요. 아이들도 마찬가지에요. 소비가 아이들의 국면이 됐어요. 큰 마트에 유료 놀이터가 들어섰는데, 이제 돈을 내지 않으면 놀 수 없는 상황이 돼버렸어요. 공공놀이터가 6만 개가 있는데, 공기도 안 좋고 놀이도구가 다 화학재료로 만들어진 유료 놀이공간에서 노는 판국이 됐어요.

 

부모들도 사실 마음이 썩 편하진 않습니다.


저 역시 마음이 불편할 거라고 생각해요. 이런 상업화된 놀이터에 가면 아이들이 혼자 놀고 있어요. 옆에 누가 있는지 잘 몰라요. 부모들도 그렇게 노는 아이들을 보는 게 좋진 않겠죠. 그렇기 때문에 공공놀이터 6만 개가 제자리를 찾아야 해요. 갈만한 곳으로 탈바꿈이 돼야 해요.

 

이 책을 놀이터를 고민하는 부모, 교육운동가, 놀이터활동가들이 읽었으면 좋겠다고 밝히셨는데요. 영유아를 비롯해 초등학생을 자녀로 둔 부모들이라면 굉장히 공감할 이야기가 많아요. ‘놀이터’라는 범주를 넘어서 이 책이 많이 읽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꼭 놀이터에 제한을 두고 쓴 책은 아니에요. 우리가 어떤 세상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지를 조망해볼 수 있는 책이기도 해요. 독자를 한정하고 싶지는 않고요. 부모들이 읽어도 좋겠고, 실제 놀이터를 만드는 사람들이 꼭 좀 관심을 가져줬으면 해요. 아이들의 놀 공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자는 거예요. 아이들은 아무 힘이 없잖아요. 놀이터를 짓는 사람은 힘이 센 사람인데, 이들이 놀이터에서 노는 사람은 아니란 말이에요. 이건 불일치죠. 이런 상황들을 알고 있으면서 지역에 사는 주민들이나 교육활동가, 예술가들이 다같이 밑그림을 그리면서 아이들이 원하는 놀이터에 고민해보면 더 바랄 게 없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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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의 건축이 아이들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


『놀이터, 위험해야 안전하다』에 보니, 프로필 소개가 ‘놀이터 디자이너’라고만 써있더라고요.


번거로운 게 좀 싫더라고요. 저는 디자이너는 삶을 바꾸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눈에 보이는 어떤 디자인이 있어야만, 그게 디자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누구라도 아이들의 놀 공간에 대해 얼마든지 디자인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을 잘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라면요.

 

오는 10월에 전남 순천에 국내 첫 혁신형 놀이터 ‘기적의 놀이터’가 생길 예정입니다. 작가님께서 조성 총괄 책임을 맡으셨는데요.


2003년에 순천에서 첫 번째 ‘기적의 도서관’이 만들어졌잖아요. 이 때 초등학생이었던 아이들이 이제는 성인이 됐는데요. 공공의 건축이 아이들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걸, 눈으로 확인했어요. 그래서 첫 번째 ‘기적의 놀이터’를 순천 시민들과 함께 만들어보려고 해요. 제가 마스터 플래너를 맡았는데, 주변 분들이 순천시에서 뭐를 받냐는 그런 이야기를 해요. (웃음) 저는 이걸 통해서 돈을 벌자, 이런 게 아니에요. 그런 일도 아니고요. 놀이터를 통해서 놀이의 궁극적인 이상향, 그런 걸 만들어보고 싶어요.

 

궁극의 놀이터는 어떤 놀이터일까요?


제가 놀이터 이야기를 하니까, “놀이터를 좋게 짓자”는 말로 이해하는 분들이 계신데요. 제가 정말 말하고자 하는 것은 궁극의 놀이터는 하우스(house), 홈(home)이라는 거예요. 두 개념이 조금 다르잖아요. 하우스는 ‘터’의 느낌이 강하고, 홈은 조금 따뜻한 느낌이 있는데.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 사람들이 먼저 집을 놀이터로 내줘야 해요. 지금 우리의 집을 아이들의 놀이터로 허용하고 있는가, 여기서부터 놀이터에 대한 개념은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다음이 내 동네에 있는 놀이터에요.

 

현재 안동에 살고 계신데요. 작가님의 동네 뒷산에 놀이터를 가꾸고 싶다고 말씀하셨어요.


동네 아이들과 조금씩 만들고 있는데, 뒷산이 저희 집은 아니니까요. 책에도 썼지만, 독일의 놀이터 디자이너 권터 벨치히가 자신의 동네에 만든 놀이터를 보면서 좀 충격을 받았어요. 그 분은 유럽에 있는 놀이터 몇 천 개를 설계하고 놀이기구를 만들었는데, 정작 최후에 자신이 손수 가꾼 놀이터에는 그 놀이기구가 단 하나도 없어요. 철저하게 자신을 부정하는 건데요. 제가 이런 말을 할 연배는 아니지만, ‘내가 생각했던 놀이터가 맞구나. 그런 놀이터를 가꿔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책을 보면서, 장난감에 대한 생각도 많이 들었습니다. 제대로 된 놀이터가 있다면, 아이들에게 그 수많은 장난감이 반드시 필요할 것 같지 않아서요. 매일 새로운 장난감을 사달라는 아이들 때문에 힘들어 하는 부모들도 많은데요.


엄마 아빠들이 사는 데 정신이 없으니까 아이들을 돌볼 시간이 없어요. 그러니까 장난감을 하나씩 건네주는 거예요. 아이들을 보는 사람들은 부모여야 하는데, 한국사회에서는 뭐를 사주거나 돈을 투자해 어디를 보내는 게 육아가 됐어요. 아이들은 새로운 장난감을 갖게 되면 환호합니다. 마트에 가서는 장난감을 사달라고 드러누워요. 부모들은 이런 모습을 보면서 아이들이 장난감을 갖고 싶어서 그러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건 아이들을 보지 않기 때문에 알지를 못하는 거예요. 무선 자동차의 기능이 총 몇 가지인가요? 기껏해야 네 가지에요. 앞, 뒤, 양 옆으로 가는 게 다에요. 며칠 있다가 쓰레기통에 들어가요. 왜냐, 아이들은 장난감을 갖고 끊임없이 배반을 느껴요.

 

배반이라니요?


내가 정말 갖고 놀고 싶은 게 이건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는 뜻이에요. 저는 부모들이 마트에서 드러눕는 아이들을 보면서 뭘 느끼길 바라냐 면요. “나는 엄마랑 놀고 싶어. 아빠랑 놀고 싶어. 친구랑 놀고 싶어”라고 속삭이고 있다는 거예요. 왜 이런 일이 반복될까요? 장난감은 아무리 좋아도 네 가지 기능밖에 없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사람을 만났을 때는 이게 무한히 늘어나요. 아이들이 원하는 것은 장난감이 아니에요. 같이 놀아줄 누군가를 기다리는 거죠.

 

요즘 정부는 아이들의 놀 권리를 만들겠다고 선언을 하고, 헌장을 만든다고 합니다.


저도 국회에서 발제를 하기도 했는데. 이제 ‘권리’라는 말을 들으면 속이 울렁거려요. 어떻게 만들겠다는 대안이 있어야 하는데, 전혀 그런 거 없이 헌장만 만들고 있으니 답답합니다. OECD 국가들 중에 한국 아이들의 ‘삶의 만족도’가 최하위로 나왔는데. 각 부처들은 이벤트성 행정만 하고 있어요. 놀 권리가 대두되는 건 바람직한 일이지만, 진정성이 없다면 “놀 권리가 있다는 건 나도 알아, 그런데 아이들한테는 줄 수 없어. 이게 현실 아냐?”라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어요.

 

명함 뒷장에 “아이들은 놀기 위해 세상에 온다”는 문구를 새기셨는데요. 놀이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자유, 그리고 내가 주인이 되는 거예요. 내가 놀면서 주인이 되는 경험은 놀이밖에 없어요. 아이들을 정으로 키울 것인가? 자기 삶의 주인으로 키울 것인가?를 생각해봐야 해요. 제가 놀이터를 오랫동안 관찰하면서 이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한 이유는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민주주의를 배우기 때문이에요. 놀지 않고서는 다른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어요. 같이 놀지 않으면 갈등이 만들어지지 않고, 그 갈등을 어떻게 푸는지 알 수가 없으니까요. 놀이터는 민주 시민의 소양을 기르는 첫 번째 장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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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터, 위험해야 안전하다편해문 저 | 소나무
이 책은 한국에서의 놀이와 놀이터를 직접 소개하는 것은 물론이고, 독일과 덴마크에 직접 가서 놀이터 디자이너들과 만나 대담하며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어떻게 노는지를 사진을 곁들여 보여준다. 또한 모험놀이터로 놀이 운동의 새로운 장을 열어가고 있는 일본의 아이들은 어떻게 노는지도 취재하여, 한국 아이들의 놀이 현실을 환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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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강사 유수연 “지금의 20대는 사슴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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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머무르면 지금이 현재가 돼요. 그럼 또 다른 시대를 동경하겠죠. 상상 속의 황금시대. 현재란 그런 거예요. 늘 불만스럽죠. 삶이 원래 그러니까.”(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중에서)

 

황금시대는 언제나 저 먼 곳에 있다. 결코 다시 오지 않을 황금시대, 그것은 늘 다른 이들의 몫이다. 가닿지 못한 세계는 아름답게만 느껴지고, 현재는 늘 불만스럽다. 낭만과 아름다움이 모두 그곳에 있다면 여기 내가 놓인 현실은 구겨지고 답답해서 도무지 만족스럽지 않다. 이 팽창하는 불평등, 기회의 불균형, 차별과 좁혀지지 않는 차이는 나라는 존재를 공격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런가. 삶이란 원래 그런 것일까.


유수연은 말한다. “‘페스트’라는 건 어느 세대에나 이름을 조금씩 바꿔서 존재해요. 사회가 바뀔 때마다 차별과 갈등이 계속 있었다는 사실을 다른 시대, 다른 사람의 삶에서 보게 된다면 조금 더 열린 상태에서 세상을 볼 수 있지 않을까요.”라고.


『인생 독해』의 유수연은 독설 날리던, 매서운 말로 정신을 번쩍 들게 하던 그와는 꽤 다른 모습이다. 삶의 이유를 찾던 방황기, 유수연은 알베르 카뮈의 작품을 탐독하며 세상을 이해했고 흔들리는 삶의 매 순간에 『데미안』의 인물들에게 위로받았다. 어느 때나 ‘페스트’가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는 삶은 더 열린 눈을 가진 삶일 것이라는 그는 ‘사슴’ 같은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 끝까지 살아남으라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헤세가 한 권으로 써낸 인간의 성장과 완성,
이반 데니소비치가 단 하루로 그려낸 인생을
미천한 나는 이렇게 길고 긴 세월 동안 주저리 풀어내었다.
시간이 흐르며 나의 생각들이나 태도는 조금씩 달라지기도 하고,
나이를 먹어가도 여전히 미완의 좌충우돌이지만
그 성장의 과정들은 나의 역사이다.(139쪽)

 

강의를 할 때도 기술이나 특별한 공식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푸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가장 좋다는 유수연은 이번 책을 통해 자신이 어떻게 책을 읽어왔는지 그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자신만의 ‘인생 독해법’을 공유하고자 했다. 그는 왜 ‘살아남아야 한다’고 말하는가. 세상 안의 나란 존재는 무엇인가. 그의 강의처럼 힘 있는 문장을 따라가면 알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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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을 보여주는 것


무척 자기고백적인 책이에요. 자기계발에 대한 환상, 희망에 대한 불신도 읽히고요. 이런 생각을 전하게 된 구체적인 이유들이 궁금합니다.


책을 쓴 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자 하는 목적이 아니었어요. 나처럼 존재감 없던 사람이 성장하는 과정을 주기별로 남긴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20대 내 모습을 남긴 게 첫 번째 에세이고요. 이후 나온 책들 역시 30대에 이어 지금 40대의 내 모습을 남긴 기록 같은 측면이 있죠. 앞으로도 책이 나온다면 소설이 아닌 이상 그 과정이 주로 담길 거예요. 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해요.

 

이른바 ‘책에 대한 책’인데요. 누구나 다양한 목적을 가지고 독서하잖아요. 그 목적이란 관심사와 깊은 관련이 있을 테고요. 책을 읽을 때 주인공보다 주변인의 삶의 태도, 현실 적용 가능성 등을 읽었다고 하셨거든요. 이 부분에 대한 연구나 고민이 많았던 것 같아요.


색이 많이 섞인 것 같아요. 전공이 경영학이기 때문에 소위 말하는 전략적 사고 같은 것들에 대한 방법론을 많이 배웠죠. 그렇게 책을 읽다 보니 여러 색깔이 섞이는 면이 있어요. 어떻게 양념을 치느냐에 따라 책이 다른 모습으로 숨 쉰다고 생각해요. 목적, 경험이나 과정이 녹아 나오는 것 같아요.

 

가장 먼저 소개한 작품 『데미안』은 아홉 번이나 읽으셨다고요. 이 작품에서 어떤 특별한 매력을 느끼셨나요?


10대에 『데미안』을 읽었을 때는 싱클레어에 심취했고요, 20대가 되어 존경할만한 사람을 찾으려 했을 때는 데미안에 심취했었고, 현실과 역할의 한계를 생각하는 지금은 피스토리우스에 심취하고 있어요. 그렇게 한 권의 책이 제 인생 전체에 영향을 주며 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10대 때 싱클레어만 보이는 이유가 있죠. 싱클레어가 학교에서 크레머라는 나쁜 친구들과 지내다가 데미안과 만나는 것이 전형적인 학교생활을 너무나 잘 묘사했다고 생각해요. 가정이라는 세계를 나와서 부모가 나를 보호해주지 못하는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 학교잖아요. 저는 작가의 성장 배경도 많이 보는 편인데요. 헤세가 처음부터 완벽한 인격을 가졌던 것이 아니라 노력해서 성취했다는 것이 작품에도 그대로 반영이 된 것 같아요. 작가가 사람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는 사실, 10대의 그 같은 생활을 기억하고 작품에 담아냈다는 것이 정말 놀라워요. 그 미묘한 감정들 말이에요. 10대가 하는 고민들을 『데미안』이 가장 잘 알아줬다고 생각해요. 또한 10대 때 저는 데미안을 만나게 되길 갈망했기 때문에 이 책을 손에서 놓을 수 없었어요. 주변에 존경할 수 있는 사람 찾기가 쉽지 않잖아요. 그래서 더 열심히 책을 읽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피스토리우스에 머문 상태지만 언젠가 데미안까지 만나는 날이 오겠죠. 완성도 있는 삶이 되면 말이에요.

 

다른 작품에 대한 독해도 마찬가지지만 ‘피스토리우스’를 위한 변명이랄까, 하나 낮은 단계를 바라보는 시선에 공감했습니다. 모두가 이상을 실현하진 못하죠. 현실에 발 딛고 사는 생활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있어요.


싱클레어가 피스토리우스를 떠나면서 한 말이 뭐냐면 시인으로 살든 광인으로 살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다, 그 역할 내에 얼마나 자신을 다 태웠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이었는데요. 하지만 피스토리우스는 그 사이에 끼어있는 사람이죠. 싱클레어처럼 말하기는 쉬워요. 이상을 버리고 자기 직분을 완벽하게 소화해서 다 태우는 것도 중요한 일일 거고요. 하지만 저는 근본적으로 인간이란 건 끊임없이 더 나아가려는 자아와 현실에 충실하려는 자아가 함께 있어야 살아지는 거라고 생각해요. 현실에 충실하기만 하다고 해서 삶에 더 의미가 있는 것도 아니에요. 카뮈라면 이 부조화 자체가 삶이라고 얘기했겠죠. 헤세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서 자아를 태우는 게 삶이라고 얘기한 거고요. 카뮈와 헤세, 둘 사이에 제가 끼어 있어요. 그 단계가 지금 제가 멈춰있는 단계예요.

 

 

나만의 우주를 만드는 것이 중요


흔히 좋아하는 구절이나 첫 문장 같은 것들을 많이 얘기하잖아요. 저자에게도 그런 것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카뮈의 『시지프 신화』는 솔직히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아무리 읽어도 어려워요. 그런데 그 책에 제일 좋아하는 구절이 있어요. 시지프가 다시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돌을 계속 올리기 때문에 위대하다는 내용이에요. 돌을 정상에 올려놓으면 끝이 올 거라는 희망이 없는데도 계속하니까요. 우리는 아무리 노력해도 지금 모습에서 크게 달라질 수 없을 수 있어요. 학벌, 재산, 외모 등으로 이미 정해졌을 수도 있죠. 그러나 희망이 없어도 돌을 굴리는 게 인간의 의지예요. 헛된 희망에 행복해하지 않고 돌을 굴리는 일상 안에서 다시 의미를 재창조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여기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한국이란 사회, 어느 대학을 나온 누구, 이것에서 벗어날 수 없고, 자고 일어났을 때 엄청난 갑부가 되어 있을 거라는 희망도 없어요. 그래도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하루를 버티는 게 의미가 있는 거죠. 『시지프 신화』에서 말하는 건 희망이 있었다면 그는 더 이상 신화가 아니라는 거였어요. 또한 시지프가 희망, 쓸데없는 행복, 좌절 등에 유난하지 않았기 때문에 신이 개입할 수 없는 하나의 영역이 된 거잖아요. 내 안에 그런 나만의 우주를 만드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생각해요. 외부에서 주어진 기대, 희망이나 비교 등에 좌우되지 않고 자기 우주를 만드는 것, 그래서 신의 장난질에 놀아나지 않고 내 인생을 살아내는 것, 그 대목을 굉장히 좋아해요.

 

카뮈의 작품은 두 개나 수록이 되어 있어서 눈길을 끌었는데 역시 카뮈를 좋아했군요.


중학교 때부터 카뮈에 거의 미쳐있다시피 했어요. 아시는 얘기지만(웃음) 학창시절 공부를 못했어요. 공부를 피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책을 읽는 것이었어요. ‘쟤는 공부는 못하지만 책을 많이 읽어’ 이런 거 있잖아요. 그래서 마음 놓고 읽었던 것 같아요. 그때 심취한 작가가 카뮈예요. 그의 작품에는 반항적인 요소도 많잖아요. 제가 카뮈의 실존적인 면, 부조리를 얼마나 이해했는지 모르겠지만 나의 상황이나 나이에 맞게는 이해했던 것 같아요. 10대, 20대에 이해할 수 있었던 카뮈를 좋아했고 지금 40대에 이해할 수 있는 카뮈를 좋아해요. 카뮈에 대해서라면 평론가분들이 더 잘 이해하셨을지 모르지만 내 인생에서 위치하는 카뮈가 분명히 있는 거죠.


책이란 건 다 코끼리 같다고 생각해요. 장님이 코끼리 만지듯이 다리만 만진 사람은 다리 밖에 못 보고 꼬리 만진 사람은 꼬리 밖에 못 보겠죠. 다리를 읽고 전체를 못 보더라도 다리라도 제대로 이해하면 돼요. 이번 책도 그래요. 사람들이 ‘전문가가 아닌데 책에 대해 쓰는 게 맞느냐’고 말할 수 있겠죠. 저는‘전문가가 아닌 사람은 책을 읽고 침묵해야 하느냐’라고 생각해요. 평범한 사람의 범위 내에서 녹여낼 수 있는 부분도 있는 거잖아요. 그런 차원에서 책을 썼어요.

 

이렇게 카뮈는 자신의 창조물인 뫼르소의 죽음을 통해 우리 안에 사장되어 있는 이방인에게 새로운 삶을 선사한다. 부조리한 생애, 영원하지 않은 삶에서 오로지 옳은 것은 나 자신뿐이라고 이야기 한다. 그러니 거대한 세계에서 고립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저항하라고, 기꺼이 오늘을 버텨낸 우리를 다독인다.(48쪽)

 

시, 소설은 물론 동화나 인문서 등 다양한 책을 ‘독해’하고 있는데요. 책 선정에 특별한 기준이 있었나요?


사람들은 흔히 책을 읽고 무언가를 배웠다고 하는데, 저는 좀 다른 것 같아요. 저는 현실을 먼저 겪고 그걸 설명할 책을 찾아요. 책을 먼저 읽고 배운 건 아니었던 것 같아요. 세상을 겪고 나면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생기기 때문에 그걸 책으로 정리하는 스타일이에요. 때문에 중, 고등학교 때 좋아했던 책들은 굉장히 어두운 책들이 많아요. 염세, 허무, 실존 쪽이 많죠. 그러다가 점점 읽는 분야가 넓어졌는데, 그건 현실을 이해해야 하기 때문이었어요. 현실에서 접하는 분야가 다양해지니까 책도 다양해진 거죠.(웃음)

 

그렇다면 후반부에 소개된 책들은 비교적 최근에 읽은 책들인가요?


『콧수염 아저씨의 똥방귀 먹는 기계』는 최근에 읽은 거고요, 그 외의 책은 예전부터 계속 읽었던 책들이에요. 니체나 쇼펜하우어는 무척 오랫동안 손에 잡고 있던 책이고요.

 

이해가 안 돼서 책을 찾는다고 하셨는데, 그런 책을 만나기기조차 사실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책을 보다가 거기서 멈추는 거예요. 내 현실과 만나는 점이 있으면 현실과 책의 그 부분을 연결시키는 거죠. 책을 다양하게 읽으면서 이해하지 못했거나 더 소화해야 하는 부분이 있으면 거기 멈춰가는 거죠. 책을 만나기 쉽지 않다기보다 접목시키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읽은 책 권수는 보통 분들이 저보다 많을 거예요. 그런데 멈추질 않는 거죠. 계속 물 흐르듯이 책이 흘러가버려요. 사실은 굉장히 많은 책들을 만났으면서도 말이에요. 만일 『흥부와 놀부』를 읽는다면 저는, 나는 흥부일까 놀부일까, 흥부의 자기변명은 뭘까, 나의 자기변명은 어느 쪽에 더 가까울까, 이런 생각들을 해요. 현대인들은 다 놀부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나 소유, 자기 것을 지키는 것이 과연 나쁜 것인가 라는 질문을 또 할 수 있겠죠. 이렇듯 책 안에 멈춰있기는 가까운 책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해요. 여행으로 치자면 서울에서 부산을 가는 게 그냥 목표인 것과 중간에 어떤 정거장이 있었는지, 어떤 풍경들이 있었는지 살피는 것은 다르듯이 말이죠. 계속 멈추기 때문에 그런 책을 만났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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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티는 삶은 역사 속에서 반복되고 있어


전체적으로 냉소적인 것 같지만 응원으로 들리는 말들이 많습니다. 기존의 ‘독설’이미지와도 사뭇 다르고요. 변화로 봐도 될까요?(웃음)


변화는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어떤 매개체를 이용했느냐 뿐이죠. 『유수연의 독설』같은 경우는 간단한 명언 같은 것이 많으니까 좀 더 강하게 보이는 거고요. 근본적으로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거의 비슷한 것 같아요.

 

근본적인 메시지라면, 무엇일까요? 희망을 말할 수 없다고도 하셨잖아요.


희망 싫어해요. 한 번도 희망을 얘기해본 적이 없어요.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말도 사실은 정확하게 한 적이 없어요. 흔히 오해하시는 부분인데요. 저는 다만 노력만 말해왔어요. 그것 또한 어쨌든 살아야 하니까 노력하라는 거였어요. 결과에 대한 약속을 보고 가라는 것이 아니고요. 끝에 뭐가 있을지는 모르기 때문에 함부로 약속할 수 있는 부분은 없죠. 제 강의나 책을 보면 과정에 대한 얘기가 많지 ‘이렇게 하면 네가 무엇이 될 것이다’라는 얘기는 안 나와요. 기본적으로 개인차가 있다는 것은 인정하고, 그러니까 개인차를 배제하고 무조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 건 굉장히 무책임하다는 생각이에요.

 

‘살아야 하니까’라는 말을 또 물어봐야 할 것 같은데요. 이 말이 책에도 많이 나와요.


어쨌든 살아가야 하는데,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과정을 말하는 거죠. 살아가는 과정에 대한 얘기, 조금이라도 더 열심히 살고 나름대로 채워가면서 사는 얘기를 하는 거예요.

 

이 책 『인생독해』의 탄생 배경이기도 하겠죠?


여기 소개한 책들을 이렇게 읽고 사고하면 성공한다, 가 아니에요. 일단 하루, 일 년, 십 년, 인생을 버텨내야 하잖아요. 버티는 게 나 혼자가 아니라 버티는 삶은 역사 속에서 반복되고 있다는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그 안에서 좀 더 가져가야 할 부분들에 대한 이야기죠. 노력도 마찬가지 같아요. 일이라는 게 결과보다는 나를 태워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 안에서 어떻게 하면 좀 더 만족도를 높이며 그 시간을 버틸 것이냐 생각하죠. 그런 것들에 대한 고민이 제 모든 책에 담겨 있고, 그 고민을 공유하려는 의도로 쓰고 있어요. 누구도 답을 줄 순 없겠죠. 다만 나만 이렇게 힘든 게 아니고, 나만 이렇게 사는 게 유난한 것이 아니라는 공유에서부터 책이 시작하는 거예요.

 

‘유수연도 그런 고민을 하는구나’에서 응원을 받는 독자들이 분명 있는 것 같거든요.


사람은 원해서 태어나지 않았어요. 태어나보니 내가 누구였고, 능력이 어느 정도였고, 집이 어떤 환경이었던 거죠. 그 상태에서 자기 삶을 100% 만족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거예요. 계속 만들어가는 거죠. ‘유수연도 그런 고민을 하는구나’라는 반응을 가끔 봐요. 그건 저의 부각된 한쪽 면만 보는 데서 오는 반응이라 생각해요.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다양한 감정, 다양한 면이 있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이 책이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아요. 과정을 보여주려 했으니까요.

 

고민, 살면서 겪은 외로움, 성장통과 같은 과정을 솔직하게 적은 이유가 그것이겠네요.


많이들 잘못 생각하시는 게 제가 수업에서 공식을 강의할 거라고 여겨요. 기술을 강의할 거라고요. 제 강의 대부분은 풀이 과정을 보여주는 거예요. 강사가 직접 문제를 풀어보고, 막힌다면 그 부분에서 뭘 생각해야 하는지 이야기해요. 강의할 때 가장 좋은 건 정리해서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과정을 직접 보여주는 것이더라고요. 책도 마찬가지 같아요.


부모님들, 어른들은 좋은 것만 보여주고 싶어하잖아요. 그 마음은 알지만 거기서 간격이 생기는 것 같아요. 과정을 공유하는 건 소통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출발점에서 함께 걸어가야 어느 부분에서 차이가 벌어졌는지, 어디서 틀어졌는지 생각할 수 있어요.

 

 

지금의 20대는 말이죠. 사슴 같아요.


아무래도 곁에서 자주 보기 때문이겠지만 지금 젊은 세대에 대한 감각이 훨씬 구체적이에요. 이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큰 희망이 없더라도 살아내야 한다고 말하고 싶어요. 사람들의 인생이란 건 하나하나가 다 신화죠. 신데렐라 동화처럼 아름다운 종류는 아니지만요. 그동안 취업을 앞둔 20대들을 세대에 걸쳐 봐왔는데요. 지금 40대가 된 사람들의 20대 시절은 호랑이 새끼 같은 느낌이었어요. 공식이나 영어 단어 하나를 던져놓으면 낚아 먹는 그런 느낌, 순발력도 굉장하고, 생존력이나 소화해내는 힘도 강했고요. 지금 30대가 된 사람들의 20대는 표범에 비유하면 될까요? 좀 더 날카롭고, 냉소적이기도 했어요. 지금의 20대는 말이죠. 사슴 같아요. 정말 착해요. 겪어온 세대 중 가장 착하고 가장 순해요. 부모 말도 잘 듣고요. 그런데 잡아먹힐 것 같아요. 앞선 세대의 드센 기운을 당해내질 못해요. 그게 강의실에서도 느껴져요.


이들이 사회에 나가서 앞선 세대와 부딪쳐야 하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버티는 힘을 강하게 할 수 있는 무엇이 있을까 고민해요. 호흡을 길게 끌고 가는 힘에 대해서도 많이 고민하고요. 쓸데없는 희망이나 기대를 주기보다 이 버팀을 직시하는 것에 대해 많이 고민하는 거예요. 당신들 엄청나게 성공할 수 있으니까 열심히만 하라고 말할 수 없으니까요. 지금 20대들은 면역력이 없으니까 면역력 단계부터 가는 것 같아요. 멘트도 달라졌고요.

 

사슴 같다는 말이 인상적이네요. 어떤 징후로 들리기도 하고요.


예전에는 그래도 졸업하고 토익 점수 따면 취업전선으로 내보낼 수 있었어요. 지금 20대들은 품고 있는 시간이 상당히 길어요. 실질적으로 취업을 하려면 졸업하고 3, 4년 정도가 걸려요. 그 시간을 노력이라는 것으로 버텨야 하거든요. 지금 30, 40대들, 6개월만 취업 준비하면 가능했던 때에는 영어 단어 외우는 것이 최우선으로 중요했다고 한다면 지금 20대들은 영어단어보다 3, 4년이란 시간을 존재감 없이 버티는 게 더 중요해요. 그러니까 강의 내용도 달라지고요. 차이가 느껴져요.

 

SNS에 대해 대단히 부정적인 시각도 적으셨거든요. 내면이 궁핍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하셨고요.


SNS 아주 싫어해요. 악담도 많고, 허황된 얘기도 많죠. 커뮤니케이션의 수단이 아니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커뮤니케이션 수단이라면 악플도 없을 거예요. 그 안에서 자신을 증명하려고 하니까 악플이 생기는 것이거든요. 거기서 많은 것을 기대하고요. 그러다보니 그곳이 과포화상태가 되는 것 같아요. 자기를 증명하려는 무대가 잘못되지 않았나 생각해요.

 

이는 외모 집착이나 성형에 관한 담론과도 연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진짜 내가 어떤 종류의 인간인가 보다 어떤 종류의 인간으로 비춰지는지에 더 관심을 많이 두는 거죠. 세상은 또 그것만을 평가하기도 하고요.


성형보다 SNS가 더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성형이나 겉치레, 현실에서의 어떤 역할 등은 자기가 살아가는 이야기예요. 그렇지만 SNS는 만족감이거든요. 끊임없이 배가 고프니까 무언가를 먹고자 하는 곳이에요. 성형 같은 것은 최소한의 수단이라도 될 수 있어요. 좋은 차를 타려고 한다거나 예뻐지고 싶다는 욕구는 현실 속에서 나를 가꾸는 면이 될 수 있거든요. SNS는 현실의 나를 가꾸는 것과 아무 상관이 없어요. 그게 SNS가 더 위험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어차피 평가 기준이라는 건 시대마다 계속 있어왔죠. 누군가는 소외를 당하고요. 누구는 그것 때문에 피해를 받아요. 그게 외모일 수도, 돈일 수도 있죠. 어쨌든 그런 것들에 시달리고 있어요. 일종의 ‘페스트’죠. 그로부터 아주 자유롭긴 힘들지만 의식은 할 수 있어요. ‘페스트’를 이겨보겠다는 의지라도 있는 게 성형이라면, SNS는 ‘페스트’를 이기고자 하는 게 아니라 가상의 세계를 만들어놓고, 성을 짓고 사는 꼴이죠. 현실과 분리되어 공중에 떠 있는 거예요. 실체가 없어요. 돈, 외모, 학벌이 ‘페스트’라면 그걸 이겨내야 해요. SNS는 이겨내는 게 아니라 사람을 현실에 존재하지 않게 하는 거거든요. 약간 마약 같은 거죠. 그래서 훨씬 더 위험한 게 아닐까 생각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단 한 가지 선택이 있다면 삶의 태도를 정하는 것뿐이다. 이 시대의 페스트와 차별을 극복할 것이냐, 아니면 각종 차별에 대해 불평하며 계속 피해의식 속에서 살아갈 것이냐의 선택이 삶의 모든 것을 좌우하게 된다.


타루의 말대로 “페스트 환자가 된다는 것은 피곤한 일이지만 페스트 환자가 되지 않으려고 하는 일은 더욱더 피곤한 일”이기도 하다.(84쪽)

 

말씀하셨듯, ‘페스트’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강조하셨어요.


우리 세대만 피해자라는 관념이 있는 것 같아요. 기성세대는 너희가 열심히 하지 않아서 그런 거다, 나약하다고 하죠. 젊은 세대는 또 제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어요. 그런데 역사, 문학을 공부하고, 반복되는 인간의 삶에 대한 패턴을 읽는다면 다른 세대에 대한 이해가 좀 더 생기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서 ‘페스트’를 이야기한 거예요. 내가 억울한 이유는 나밖에 모르기 때문이거든요. ‘페스트’라는 건 어느 세대에나 이름을 조금씩 바꿔서 존재해요. 사회가 바뀔 때마다 차별과 갈등이 계속 있었다는 사실을 다른 시대, 다른 사람의 삶에서 보게 된다면 조금 더 열린 상태에서 세상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이런 얘기를 강의실에서도 하세요?


예전에는 많이 했는데 요즘은 못해요. 요즘 학생들에게는 뭘 하지 말라고 하기조차 힘든 게, 너무 아무것도 할 게 없어요. 예전에는 그래도 공부를 하면서 정치에 관심이 있거나 뭔가 다른 관심사가 있으면 그거 끊고 공부만 하라고 얘기할 수 있었거든요. 요즘은 너무 많이 소외당해있고, 너무 많이 기가 죽어있기 때문에 뭘 하지 말라고 하는 것 자체가 참 힘들어요. 여기 강의실에 있는 학생들은 앞으로 2~3년 동안 백수로 학원가를 돌아다녀야 해요. 그들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어요. 그들에게 SNS는 위로가 될 수도 있겠죠. 그들은 현실에 없는 사람들이잖아요. 일자리도 없고요. 가상이라도 어딘가에는 있어야 할 것 아니에요. 어디에 있든 살아남기만 하면 돼요.

 

시대가 바뀌면서 덩달아 바뀌는 젊은 세대들의 모습을 날 것 그대로 보아왔기 때문에 더 현실에 대해 생각하는 부분이 많을 것 같아요.


그렇죠. 만나는 학생들이 항상 취업 준비생들이니까요. 늘 취업 관련 기사를 볼 수밖에 없고요. 20대의 눈높이에 맞춰질 수밖에 없죠. 이들과 하루 종일 호흡을 하면서 이들과 다른 세계에 살 수는 없으니까요. 사회를 보는 각도도 그때마다 20대에 맞춰지는 것 같아요.

 

‘살아남아야 한다’(87쪽)는 문장에서도 볼 수 있듯 모두가 생존의 문제를 고민해야 하는 시기잖아요. 저자의 경우는 어떠세요?


20대 입장에서 자꾸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요. 과거에는 1년 만에도 눈에 보이는 결과가 나타나니까 그걸 바라보고 노력할 수 있었는데요. 지금은 똑같이 일을 하거나 똑같이 노력을 해도 과거에 오던 결과는 오지 않아요. 요즘 집이라는 건 돈을 모아서 살 수 있는 게 아니듯이 말이에요. 보상이 어려운 사회죠. 지금부터는 아주 느리게 가야 해요. 그러려면 기본적으로 내 안의 중심이 굉장히 강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보상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반복을 오랜 기간 해낼 수가 없어요. 최근 인문학에 대한 많은 관심도 근본적으로는 장기간을 버티기 위한 방법이 아닐까 싶어요. 인문학으로 가면 일단은 버틸 힘이라도 생기니까 인문학이 요즘 열풍인 것 같아요. 호흡을 길게 끌어가기 위해서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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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독해유수연 저 | 위즈덤하우스
살아남기 자체가 화두가 되어버린 지금, 저자는 독한 인생의 혼란을 잡아준 책들을 소개하고, 그 책들로부터 선별하여 현실에 적용한 생존 전략을 알려준다. 즉, 남들은 그냥 지나칠 수 있는 메시지를 예리하게 포착한 인문고전 독해법과 거기에서 한 단계 발전한 인생 독해법을 제시한다. 이 책은 단순한 독서 에세이가 아니라 책을 응용하여 인생을 경영하도록 도와주는 실천적 자기계발 지침서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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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숙 “애쓰지 않은 밥상이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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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셰프, 맛집, 집밥, 먹방, 먹스타그램 등 음식에 대한 관심이 차고 넘치고 있다. 맛집에서 한 끼를 먹기 위해 1시간 이상을 기다리는 사람들. 음식이 나오면 인증샷을 찍기 위해 스마트폰을 꺼내기 바쁘다. “보기 좋은 음식이 먹기도 좋다”는 말이 있는데, ‘보기 좋다’는 의미는 과연 어떤 뜻일까. 배우이자 자연치유 전문가 문숙은 “단순한 조리법으로 만든 애쓰지 않은 밥상이 보기에도 먹기에도 좋은 음식”이라고 말한다. 그가 최근 펴낸 『문숙의 자연식』은 우리 몸의 해독과 치유의 능력을 살려주는 60가지 건강식을 소개한 책이다. 자연식의 9가지 원칙을 소개하며, 건강하게 먹는 방법을 넘어 ‘먹는다는 것’에 관한 근본적인 이야기를 다룬다.

 

배우 문숙은 고교 재학 중에 TV드라마 <세나의 집>으로 데뷔, 고 이만희 감독의 영화 <태양 닮은 소녀>, <삼포 가는 길>등에 출연했다. 1977년 미국으로 이주한 후 화가로서 작품활동을 활발하게 하다가 건강에 심각한 적신호가 찾아오자, 묵언 명상 수련을 떠났다. 이후 요가와 명상에 심취하게 됐고 음식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맨해튼에 있는 자연치유식 요리연구원에서 조리사 자격증을 받은 뒤 치유식 공부를 시작했고, 하와이 마우이 섬에서 자연건강식과 요가 등을 가르치다 지난해 9월부터 한국에 머물고 있다. 현재는 요가와 명상를 가르치며 『문숙의 자연식』의 후속작 『문숙의 자연 치유』개정판을 준비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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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족해서 아픈 게 아니라 과해서 아파요


‘자연식’이라는 개념이 조금 낯설어요. 자연식이란 어떤 음식을 말하는 건가요?


자연식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눠져요. 건강한 몸과 마음을 유지시켜주는 ‘자연 건강식’, 몸에 이상이 생겼거나 의학 치료를 받고 난 뒤 치유를 목적으로 하는 ‘자연 치유식’, 그리고 마음을 맑게 하고 신경을 안정시켜 수행과 의식 향상에 도움을 주는 ‘젠 푸드’가 있어요. 아무리 좋은 음식을 찾아 먹어도 병의 원인이 되는 먹을거리를 계속 먹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잖아요. 자연식에서는 우선 무엇을 먹어서 고친다는 생각을 뒤로하고 무엇을 입에 넣지 말아야 할 것인가를 살펴보기를 권해요. 우리에게 가장 적합한 먹을 거리는 가공식품이 아닌 자연에서 자연식이에요.

 

“요리란 애쓰지 않고 만드는 것이 더 좋다”고 말씀하셨어요. 음식에는 사람의 기운이 담겨 있기 때문인데요. 한식은 특히 손이 많이 갑니다. 정성이 많이 들어간 음식이지만, 사실 요리를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되게 힘듭니다.


사람마다 조금은 다르겠지만 요리는 기본적으로 재미있는 활동이에요. 하지만 힘들어하는 사람이 많아요. 왜냐면 화려한 음식을 만들려고 하기 때문이에요. 식당들도 마찬가지에요. 음식을 이윤의 목적으로 삼고 있으니 값싼 재료를 써야 하고, 그걸 감추려다 보니 보이는 것에 애를 많이 써요. 저는 음식은 만든 사람 자신이 힘들면 먹는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한 끼만 먹고 마는 게 아니잖아요. 애쓰지 않는 밥상을 만들 필요가 있어요. 중요한 건, 전체적인 건강을 생각해서 메뉴의 틀을 잡아주는 거예요. 저는 한 끼를 너무 많이 먹었을 경우에는 나머지 한 끼는 디톡스 드링크를 만들어 마시길 권해요.

 

여름에는 식욕이 많이 당기질 않습니다. 더우니까 시원한 음료만 찾게 되고요.


여름철은 생 음식, 즉 익히지 않는 음식을 먹기에 가장 좋은 계절이에요. 생식이 굉장히 좋다고 알려져 있는데, 그것도 계절에 따라서 먹어야지 한겨울에 생식에 도전하는 건 추천하고 싶지 않아요. 요즘 같이 더울 때는 신선한 과일 샐러드를 먹는 게 좋아요. 푹 끓인 음식은 겨울로 미뤄두고, 여름에는 가벼운 채소 위주의 식단이 좋아요. 몸의 열도 낮춰주고 소화도 잘되고 디톡스에도 효과적이에요.

 

채식 인구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어요. 완전채식주의자가 약 50만 명이라고 하는데요. 자연식에서는 채식주의를 어떻게 보고 있나요?


저는 적극적으로 채식을 권장해요. 하지만 육식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 갑자기 채식으로 돌아서는 건 부담이 돼요. 갑자기 육식을 끊으면 오히려 더 먹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고 역효과가 나기도 하고요. 서서히 변해가는 방법이 좋다고 봐요. 일주일에 몇 번씩 채식의 날을 정한다든지, 채식 위주의 식단을 먹되 고기국물을 조금씩 먹는 것도 좋고요. 처음에는 조금 허전할 수 이지만 시간이 흐르면 몸이 가벼워지고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걸 느낄 수 있어요.

 

『문숙의 자연식』은 단순한 조리법으로 만들 수 있는 음식들을 소개한 책이에요. 대부분의 레시피 책과는 달리 몇 인분, 정량 같은 것이 나와있지 않아요. 레몬주스 1/3컵, 마늘 1쪽 이 정도뿐이에요.


한 스푼을 넣는 건가, 두 스푼인가. 그런 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에요. 상황과 계절에 따라, 또 먹는 사람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요. 당근이 제철이라면 당근을 좀 더 쓰면 되고, 상추가 제철이면 상추를 더 쓰면 돼요. 몸의 상태에 따라 묽기를 조절할 수도 있고요. 계절과 날씨에 따라 자신의 기운을 느끼는 게 좋아요. 레시피는 그저 참고에요. 누군가의 정답을 따라 요리하는 것보다 자신만의 영감을 따라 요리하는 게 훨씬 좋아요. 중요한 건, 신선하게 먹는 거예요. 너무 많이 남아 보관해 두기보다는 그때그때 먹는 게 좋아요.

 

“되도록 덜 먹자”는 이야기도 강조하셨는데요.


이제는 부족해서 아픈 게 아니라 과해서 아파요. 양만 과한 게 아니라, 우리가 먹는 화학 물질의 종류도 과하죠. 작물을 경작하는 땅에다 투여하는 비료나 살충제 제초제, 수많은 첨가물을 비롯해 음식을 포장하는 비닐, 식탁 위의 플라스틱 그릇까지 한 끼의 밥상은 한 끼의 독성 물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스트레스가 쌓이면 맵고 짜고, 자극적인 음식을 먹으면서 푸는 사람들이 많아요. 잠깐은 스트레스가 풀릴지 몰라도, 소화도 힘들고 결국 탈이 날 때가 많은데요.


효과는 정말 잠깐이고 결국에는 역효과를 내죠. 자극적인 음식은 신경을 자극하기 때문에 안 그래도 정신적으로 스트레스가 쌓인 사람에게는 더욱 좋지 않아요. 힘들 때는 쉬어야 해요. 힘들 때는 우는 것도 좋고, 너무 힘들 때는 자는 게 낫죠. 자꾸 신경을 자극하면 더 큰 병이 되는 거예요. 성격 자체도 순한 음식을 먹는 사람은 순해요. 자극적인 음식을 자주 먹는 사람은 어떤 일에 부딪혔을 때, 너무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경우가 많아요. 육류를 많이 먹는 사람일수록 반응적인 성격을 갖게 되는데, 오히려 건강이 좋지 않아요. 특히 신경성 질환이나 관절염과 같은 염증 질환이 있거나 몸에 늘 통증을 호소하는 사람은 맵고 짠 음식, 강한 향신료가 들어간 음식을 줄이는 게 좋아요. 마늘, 양파, 파 같은 채소를 먹지 말라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소음과 공해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필요해요. 몸의 기운이 너무 민감하고 순수해지면 도시에서 일상 생활을 하기가 힘들어질 수 있어요. 하지만 산 속에서 혼자 사는 사람에게는 불필요하죠.

 

건강을 조금 신경 쓴다는 사람들 중에는 영양제를 굉장히 신뢰하는 경우가 많아요. 자연식에서는 영양제를 어떻게 바라보나요?


자연식에서는 영양제를 약 취급을 해요. 의사의 처방이 있어야 먹을 수 있는 거예요. 비타민이 부족하다는 진료 결과가 나왔을 때만 먹는 거예요. 자연식의 기본 조건에 통식품이 아닌 것을 먹지 말라는 이야기가 있어요. 영양제는 통식품이 아니에요. 화학적으로 영양성분을 배합해서 만든 약이기 때문에 자연식에 속하지 않아요. 우리 몸에는 ‘영양제’를 어떻게 섭취하느냐에 대한 DNA에 없어서 영양제가 체내에 들어오면 몸은 당황해요.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DNA 중에 영양제는 없었으니까요. 영양제는 꼭 의사에게 물어보고 되도록 천연 성분으로 만든 영양제를 먹는 게 좋아요.

 

어렸을 때 선생님께서 좋아하셨던 음식은 무엇이었나요?


9살 때까지 시골에서 살았는데 집에 밭이 있었어요. 아버지, 어머니가 직접 수확한 곡물이나 채소들을 주로 먹었어요. 벼농사만 안 지었기 때문에 쌀만 사다 먹었어요. 감자, 옥수수, 참외, 땅콩까지 웬만한 재료들을 다 자급자족했어요. 제가 건강하게 태어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건강을 챙기는 습성을 보면, 어린 시절에 주로 먹었던 음식의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제가 부모들을 만나면 항상 강조하는 것 중 하나가 어릴 때 아이의 식성을 잡으라는 말이에요. 어렸을 때 케이크나 햄버거를 많이 먹은 아이는 컸을 때도 그걸 원해요. 슬프고 외로울 때 생각나는 음식이 패스트푸드인 거예요. 저는 지금도 설탕을 먹으면 몸이 힘들어 하거든요. 체질적으로 그게 싫은 거예요.

 

생협이나 유기농 식품매장이 점점 늘어나고 있어요. 유기농 식품을 찾는 소비자들이 많아졌다는 결과인데요. 근 1년간 한국 생활을 하셨는데 식재료를 구하는 일이 어떠셨나요?


되도록 유기농 식재료를 파는 곳에서 구입을 하는데, 가짓수가 많지 않아서 그냥 올 때도 많아요. 그래도 포장지에 생산자의 얼굴 사진이 찍혀 있는 걸 보면, 믿을만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자기 얼굴을 걸고 파는 거니까 정직하지 않겠어요? 그런데 미국에 비해 값은 꽤 비싼 편이에요. 한국에서는 제가 혼자 생활하니까 가능한데, 식구가 여러 명인 집에서는 유기농 식품만 먹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미국에서 유기농으로 작물을 재배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개가 젊은 사람이에요. 뜻있는 사람들이 모여서 장을 열기도 하는데, 웬만한 식재료를 쉽게 구할 수 있어요. 한국에도 진지하게 친환경 농업을 실천하는 젊은 사람들이 많다고 들었는데, 정부 차원에서 그들을 많이 키워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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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를 예쁘게 받아주는 일


늘 화장기 없는 얼굴에 편안한 옷차림이세요. 고무신을 즐겨 신으시죠?


제일 편해요. (웃음) 아름다움이라는 건 건강미가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생각해요. 서양은 조금 까맣더라도 햇빛에 그을린 피부를 건강하다고 보는데, 한국 여성들을 보면 화장을 많이 해서 늘 뽀얀 것 같아요. 그런데 그들의 뒷모습을 보고 있으면 자기 몸을 잘 가누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병들어 보이는 패션이라고 할까요? 높은 하이힐을 신어서 뒤뚱뒤뚱 걷는 모습을 보면 ‘저 사람이 잘 걸어가겠나?’ 싶어요. 유행이 역행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죠. 성형수술을 많이 해서 얼굴은 뽀얀데 고민에 차 있는 표정을 볼 때가 많아요. 사실 아름다움이라는 건, 자기 두 발로 설 수 있어야 하고 자기표현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주객이 전도됐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젊은 사람들은 젊음을 과신해서 건강에 신경을 쓰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요. 선생님의 경우에는 어떠셨나요?


젊을 때는 건강에 무심했어요. 모든 게 재밌어서 경험하느라 바빴죠. 특별히 내가 이걸 먹어야지, 그런 게 없었던 것 같아요. 젊을 때는 회복이 빠르잖아요. 건강을 신경 쓸 여력이 없었죠. 그런데 몸에 신경을 쓰니까 반응이 오기 시작하더라고요. 자연식을 먹다가 그렇지 않은 음식을 먹었을 때는 몸에서 신호가 와요. 몸이 불편하다는 거죠.

 

“풍요가 고통이 된다”는 이야기도 하셨는데요. 예전의 선생님은 뭐든지 만족스럽지 않은 상태에서는 절대 외출을 하자 않으셨다고 들었어요. 해변가에 갈 때도 제대로 옷을 입고 나가셨다고요.


멋진 정도가 아니에요. 최고가 아니면 성에 안 찼어요. (웃음) 그런데 항상 모자라는 거예요. 저보다 꼭 더 괜찮은 사람이 있는 거죠. 이걸 유지하기 위해 제가 얼마나 노력을 했겠어요. 제가 화려함의 끝까지 갔던 사람이기 때문에 이쪽 사람들의 마음을 너무 이해해요. 화려함의 이면에 그걸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 돈이 필요한지를 알아요. 그 뒤에 오는 허전함도 알고요. 그런데 이 모든 걸 내려놨을 때, 얼마나 자유롭고 행복한지를 알게 됐어요.

 

외적인 화려함에 공을 들이는 젊은 사람들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하세요? 조언을 해주시나요?


전혀요. 그건 제가 해야 할 일이 아니에요. 요가나 명상을 하면서 뭔가를 물어오는 사람들에게는 이야기를 해줘요. 물으니까 답하는 거지, 제가 먼저 나서서 이렇다 저렇다고 말할 문제는 아니에요. 모든 사람에게는 문제가 있는데, 그걸 제가 다 손을 댈 수는 없잖아요. 전 사람들이 갖고 있는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보는 일이 제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감싸주고 사랑해주는 게 제가 해야 할 일이지, “너는 이게 틀렸고 저게 옳아”라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본인이 힘들어서 제게 물어올 때도 그 사람이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비춰줄 뿐이지, 그 사람의 업에 뛰어들 일은 아니죠. 그 사람의 있는 그대로를 예쁘게 받아주고, 사랑해주는 게 제 일이라고 생각해요.

 

선생님께서 하와이에 계실 때, 가수 이효리 씨와 배우 한효주 씨가 찾아갔다고 들었어요. 특별한 인연은 없었던 걸로 아는데, 어떻게 만나게 되신 건가요.


사람들의 마음을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사람이 살다 보면 인생의 방향을 틀어줘야 할 때가 생기잖아요. 어느 순간에 다음에는 어떤 방향으로 갈지 모르겠다는 마음이 들고. 많은 연예인들이 자신이 나이를 먹는다는 생각이 들 때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방황을 하는 것 같아요. 인기의 절정에서 어디로 가야 하는지 고민이 되고. 저는 굉장히 오랫동안 영화계를 떠나 있었던 사람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를 선배라고 생각해준 것 같아요.

 

까마득한 후배들을 만날 때, 어떠세요?


후배라는 생각이 많이 안 들어요. 그냥 한 인간으로 보이니까요. 그런데 후배들은 그걸 싫어하더라고요. 자기를 특별히 사랑해줬으면 하고 바라는 것 같아요. 영화인들은 배우협회에 등록이 되면, 선후배 관계가 생겨요. 제가 하와이에 오랫동안 살다가 한국에 갑자기 나타났는데도 모든 사람의 선배가 된 거예요. 저는 자연스럽게 선배가 된 게 아니라서, “선배님”이라고 부르면 너무 부담스러워요. 어린 사람들이 저에게 굉장히 깍듯한 것도 어색하고. 안 그랬으면 좋겠다고 하면, 안 된대요. (웃음) 그래도 참 고맙죠. 오랫동안 활동을 못했는데도 이렇게 반겨주는 걸 보면, 참 고마워요. 이렇게 많은 분들이 저를 따뜻하게 관심을 가져줄 줄은 몰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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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한 마음이 건강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


최근에 한효주 씨와 함께 영화 <뷰티 인사이드>를 찍으셨는데. 곧 개봉을 앞두고 있어요. 40여 년 만에 영화 작업을 하셨는데, 어떠셨나요?


역할이 크진 않아요. 한효주 씨가 사랑하는 남자의 엄마 역을 맡았어요. 영화 자체가 굉장히 만화 같은 이야기에요. 제가 정말 오랜만에 영화 현장에 갔는데, 그렇게 오래 쉬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물고기가 물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렇게 편할 수가 없는 거예요. 후배들이랑 일하는 게 너무 좋고. 새벽에 나오는 것도 좋고, 밤새서 촬영하는 것도 좋았어요. 열심히 일하는 친구들을 보고 있으면 너무 예쁜 거예요. 시스템이 바뀌어서 옛날 영화 현장이랑은 너무 다르지만, 마치 고향에 온 것 같았어요. 이번 영화는 새로운 시스템에 적응하는데 시간을 다 쏟은 것 같아요.

 

또 다른 영화 출연 제안이 온다면요.


저는 크게 바라는 게 없어요. 어느 순간에 모든 걸 다 내려놓아서 특별히 바라는 것도 없고, 큰 목표 같은 걸 세우지 않아요. 그러면 실망하게 되니까요. 하지만 그냥 주어진 하루하루에 마음을 다하다 보면, 나 자신에게 실망할 일도 없고, 못할 일도 없고, 안 할 일도 없는 것 같아요. 본의 아니게 일이 어그러지는 경우도 있지만, 될 건 다 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하루하루를 살아요. 크게 실망할 일도 없고 크게 기뻐할 일도 없고. 그냥 고마워요.

 

근 1년간 한국에서 머무르셨는데, 선후배들은 선생님께서 자연식을 하고 있다는 걸 많이 알잖아요. 여러 명이 함께 식사를 해야 할 경우에는 선생님께서 메뉴를 선택하시나요?              


후배 분들이 적당한 메뉴를 골라주는 경우도 있지만, 늘 그럴 수 있나요? 융통성을 가져야죠. 이번에 영화 촬영을 하면서 새벽 6시에 식사를 했는데, 메뉴가 뼈해장국이더라고요. 한효주 씨한테 “아, 이거 좀 과하다” 그런 적은 있어요. (웃음) 그런데 영화 현장에서는 수십 명, 때론 백 명 이상이 함께 움직여야 하잖아요. 나한테만 맞는 음식을 선택하면 안되죠. 웬만하면 같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을 같이 먹는 게 좋은데. 왜냐면 편안한 마음이 건강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에요. 모든 장수하는 사람들을 보면 긍정적이고 마음을 편안하게 먹는 습관을 갖고 있어요.

 

2007년에 고 이만희 영화감독님과의 추억을 담은 산문집 『마지막 한 해』를 펴내셨는데. 후에 에세이를 또 쓰실 계획은 없으신가요.


항상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왜냐면 늘 말의 한계를 느끼기 때문이에요. 굉장히 큰 생각을 갖고 있는데, 그걸 말로 하면 삼류가 될 때가 있어요. 그런데 그걸 글로 표현하면 이류 정도는 돼요. 일류는 말을 안 하고 느낌으로 알 수 있는 거겠죠. 다른 방법도 많겠지만, 말보다는 글로 표현될 때 조금 더 침착하게 세심하게 전달할 수 있지 않나. 그런 마음이 있어요.

 

한국에 완전히 정착할 생각도 있으신지요?


글쎄요. 모르겠어요.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고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이를 먹으니까 집에만 있는 게 너무 심심해요. 젊었을 때 너무 놀아서 그런가 봐요. (웃음) 나이를 먹으니까 조금 할 말도 생기고, 뭔가를 하면 좀 잘하는 것 같아요. 옛날에는 잘 못했거든요. 이제는 뭔가를 하는 게 재밌어요. 요즘은 사람들이 오래 살잖아요. 오래 사는 것에 대한 좋은 점이 있어요. 나이를 먹어야만 알 수 있는 지혜가 생기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지혜가 생겼는데 몸이 안 받쳐주면 그것만큼 아쉬운 게 없어요. 젊은 사람들은 능력이 있는 대신 아직 지혜가 없잖아요. 나이가 들어 생긴 지혜를 잘 전달하려면 평소에 건강 관리를 잘해야 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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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숙의 자연식문숙 저 | 샨티
먹는다는 건 육체적인 배고픔만 해결하는 행위가 아니라 다른 생명체의 에너지가 고스란히 나에게 전해지는 일이다. 무엇을 먹는지는 몸뿐 아니라 우리의 마음과 의식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나는 단순한 조리법이나 건강하게 먹는 방법만이 아니라 ‘먹는다는 것’에 관한 좀 더 근본적인 이야기를 당신과 나누고자 한다. 저자는 자연식, 자연건강식, 자연치유식, 젠푸드라는 네가지 주제요리를 소개한다. 또한 매크로 바이오틱, 아유르베다, 음양오행과 영양학에서 이론적 기초를 찾았다. 음식으로 더욱 더 건강해지고 일상을 변화시키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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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성신제 “피자헛에서 지지스 컵케이크까지, 왜 도전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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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헛을 국내에 들여와 승승장구했고, 미국 본사에 사업을 뺏겼고, ‘피자 독립군’ 성신제 피자를 만들었고, IMF 외환 위기로 무너졌으며, 사업 부도로 처참하게 모욕당하고 좌절했다. 마치 에베레스트에서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 모든 순간 ‘도전자’ 성신제는 멈추지 않는다. 끊임없이 다음을 준비했고 이곳, 지지스 컵케이크까지 왔다. 또, 다시 도전하겠다는 생각은 다음과 같은 물음에서 비롯됐다.


‘도전하지 않으면 어떻게 할 건데?’


그의 도전은 삶에 대한 대단한 애착과 연결된다.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뭐든 스스로 결정해야 했던 경험들이 자신에 대한 확신과 애정으로 여물었다. 그 과정에서 삶이 언제나 성공만을 보장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후회하지 않았고, 다시 도전을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이것이 마지막 도전이 될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결코 사그라지지 않을 것 같은 그의 뜨거운 열정에 자연히 묻게 됐다.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가?


“성신제 그 사람 되게 웃기는 사람이다, 이렇게요.(웃음) 그렇게 흥하고 망하면서도 계속 웃기더라. 그러면서 뭔가를 하더라. 그렇게 이해되는 게 꿈이에요.”


만일 이것이 꿈이라면 그는 꿈에 대단히 가까이 간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 모든 굴곡을 제대로 겪어낸 사람의 달관한 면모가 보이는 듯했다. 직장암, 폐암, 간암에서 급성심근경색까지, 그를 덮쳤지만 그는 아직 무너지지 않았다. “누가 보더라도 저 사람은 자기 자신을 컨트롤 하는구나 생각할 수 있도록” 늘 준비하고, 관리한다는 그의 모습이 든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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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뭐 이런가 싶었다


건강은 어떠세요?


보시다시피요.(웃음) 괜찮습니다.

 

책에서 하신 투병 이야기가 가슴 아프게 와 닿아서 여쭸어요.


그 이야기를 책에 적은 이유가 있어요. 병원에 가니 아픈 사람이 너무 많더라고요. 밖에서 보면 아픈 사람이 하나도 없고요. 아픈 사람들이 실제로 겪는 것이 일반적으로 노출되거나 관심이 집중된 적이 거의 없다고 봐요. 특히 교수님, 스님, 목사님 같은 분들이 소위 힐링에 관계된 책을 써내는데요. 저 자신도 그렇고, 아팠던 그 어떤 사람도 그런 책을 보고 힐링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암 판정을 받았을 때 참 놀랐어요. 드라마 보면 그 순간이 멋있게 그려지잖아요. 막상 당해보니 그렇지 않더라고요. 세상에 그것처럼 무미건조한 게 없어요. 의사가 차트를 보더니 “어? 암인데요.”라고 하더라고요. “빨리 수술 안 하면 6개월밖에 생존 못합니다.”라고요. 그게 다예요. 그렇게 건조하게 암 판정을 받고 투병하는 사람들이 그런 책을 보고 힐링을 받고 마음에 안정을 찾을까요? 절대 그럴 수 없어요. 아파보지 않았으니까요.

 

그렇다면 책을 쓰게 된 계기도 거기에 있나요?


사실 책을 쓰려고 했던 게 아니에요. 너무 아프니까 가족들이 잠든 밤에 혼자 겨우 몇 자 적어간 거죠. 너무 아파서 많이 쓸 수도 없어요. 며칠 제가 적는 것을 지켜보던 아내가 어느 날 노트북을 치우더라고요. 투병도 그렇게 힘든데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요. 의사는 스트레스 받지 말라고 하는데 말이죠. 제 입장에서는 그렇지 않았어요. 의사가 하지 말라는 것들은 죄다 소식해라, 스트레스 받지 마라, 운동해라, 정도예요. 어떻게 스트레스를 안 받아요? 그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는 사람을 하나도 못 봤어요. 그러면 나라도 써야겠다고 생각했죠. 또 너무 아프니까 조금이라도 잊으려면 다른 데라도 집중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쓴 거예요. 횟수로 한 5년 걸렸어요.

 

수술도 많이 받으셨잖아요. 가족 입장에서는 걱정하는 것이 당연하죠.


수술을 여덟 번인가 받았어요. 모르는 사람이 제 몸을 보면 무슨 조폭인 줄 알 거예요.(웃음) 어쨌든 과연 이 책을 내서 아프고 힘든 사람들이 힐링 받을 수 있을까 생각했어요. 물론 저도 마찬가지죠. 어떤 방법을 제시하지는 못하겠지만 최소한 그 누구보다 많이 아파봤으니 이 얘기를 들으면 위로가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전혀 아파보지 않은 사람이 하는 말보다는 낫겠죠. 또 저보다 심하게 망해본 사람도 별로 없을 거예요. 그러니까 저 사람의 말을 들으면 뭔가 위로가 된다, 하는 게 있을 테니까 그런 면에서 이 책이 좀 의미가 있지 않겠나 생각해요.


아내의 반대가 많았어요. 저는 그런 뜻에서 어려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건데 아내나 주변 사람들은 걱정을 했죠. 지금 하는 사업이 젊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건데 그들에게는 별로 와 닿지 않은 내용이잖아요. 게다가 암이라고 하면 죽음이 연상되는데 그 때문에 비즈니스 컨셉트에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것이 아니냐 생각할 수도 있고요. 주변에서 반대를 많이 했죠. 글을 다 쓴 것은 작년 9월이었는데 그런 이유로 바로 책을 내지 못했어요. 한사코 반대해서요.

 

끝내 책을 내시게 된 이유도 궁금해져요. 주변 사람들을 어떻게 설득하셨어요?


아, 계기가 있었어요. 한 달 보름쯤 전이었어요. 출근을 하려는데 가슴에 얹힌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평생 그런 적은 처음이었어요. 증상이 계속 돼서 아내와 한방 병원에 갔어요. 침을 맞았는데도 낫질 않아요. 아내는 약속이 있다기에 보내고 집에 돌아와 누워있는데 처음에 배에 있던 통증이 점점 가슴으로 올라오더라고요. 한방 병원에서 나올 때 한의사가 한 얘기가 생각났어요. 얹힌 게 낫지 않으면 심장을 의심해보라고요. ‘아! 뭔가 이상하다’생각해서 바로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갔어요. 메르스가 한참일 때였어요. 우여곡절 끝에 응급실에 누웠는데 담당 의사가 갑자기 ‘비상!’그러더니 저를 그 자리에서 수술실로 올려 보냈어요. 급성심근경색이었어요.

 

심근경색이요?


네. 너무 급하다고 바로 수술을 하더라고요. 끝나고 의사가 하는 말이 정말 운이 좋았대요. 심근경색 골든타임이 세 시간인데 다행히 제가 네 시간 만에 갔어도 메르스 때문에 사람들이 많지 않고 해서 빨리 수술을 할 수 있었다는 거예요. 그렇게 나와서 생각하니까 사는 게 뭐 이런가 싶더라고요. 너무 허무하더라고요. 만약 속이 안 좋으니까 출근 하지 말고 집에서 쉬겠다고 생각하고 누워있었으면 저는 죽었을 거예요. 수술 끝나고 나오면서 출판사에 전화를 했어요. 빨리 책을 내자고요. 책이 나오는 것을 보기도 전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었으니까요. 그 얘기를 아내에게 했더니 더 이상 아무 말 하지 않아요. 그래서 책이 나온 거예요. 드라마 같죠?(웃음) 이렇게 드라마틱하게 사는 사람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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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 자체가 너무 달콤해


그래서인지 『달콤한 모험』은 성신제의 성공스토리를 담은 게 아니었어요. 오히려 뼈아픈 실패의 기록 같기도 하거든요. 과거의 실패, 실수를 고백하는 것이 용기라고 한다면 정말 용기 있는 책입니다. 이런 고백이 왜 필요했나요?


이 나이 와서 뭘 감추겠어요? 점잖게 세상 사람들을 격려하는 얘기해봐야 뭐하겠어요? 그건 아니에요. 누가 봐도 다 아는데 말이에요.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이제와 새삼 용기를 내거나 과거를 낱낱이 얘기할 필요가 있었느냐는 질문도 가능하잖아요.


그래서 이 도전이 ‘달콤한 도전’이라고 말하는 거예요. 책에 지금까지 겪었던 실패와 성공했을 때의 기억들을 모두 엮었어요. 더 이상 내 인생에 있어 새로운 출발은 없어요. 물리적으로 그렇죠. 그나마 이런 몸 상태를 유지하면서 지난날을 반추해보는 일을 할 수 있는 것 자체가 너무 달콤한 거예요. 지금은 이 사업을 진행하는 과정 자체가 굉장히 달콤해요. 재미있잖아요. 비록 머리는 하얗게 됐지만 말이에요.(웃음)

 

책을 읽으면서 이 같은 열정이 어디서 샘솟는지가 가장 궁금했어요. 당시 의사의 6개월 시한부 선고의 말 앞에서 한 생각이 ‘다시 도전할 수 있을까’ 였다고요.


아직도 잊지 못하는 게 있어요. 서울대학병원 본관에 가면 2층에 내려다볼 수 있는 열린 공간이 있어요. 수술을 받고 다음 날 일어났어요. 수술 부위는 쳐다볼 용기가 안 나더라고요. 수액을 6~7개를 맞고 있었죠. 병실을 나와 2층에 내려와서 보니 크리스마스 캐럴이 흘러나와요. 사람들 표정도 다들 밝고요. ‘저들 틈에 낄 수 있을까? 정말 끼고 싶다. 어떻게든 일어나서 걸어야지. 그래야 다시 도전할 수 있지’란 생각만 났어요. 더 정확하게 얘기하면 ‘도전 안 하면 어떻게 할 거야?’였어요. 다시 안 일어나면 어떻게 할 거냐고요. 그대로 있기엔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너무 허무한 거예요. 어렵게 공부해서 취직하고, 나와서 창업에 성공했다가 깨졌다가 암에 걸려, 죽었다, 너무 의미 없는 거예요. 내 자신에게 떳떳하고, 남들을 위해서라도 뭔가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나는 왜 인생 이모작을 시작해야 했을까? 지지스 컵케이크를 준비하면서 불쑥불쑥 떠오르는 생각이었다. 결론은 인생을 실패로 끝내지 않겠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나는 남부럽지 않은 성공도 해보았고 실패의 쓰디쓴 잔도 마셔보았다. 성공과 실패는 있을 수 있다. 누구나 성공만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실패했을 때의 처참한 느낌만 남아서는 안 된다.(127쪽)

 

이 모든 도전은 성신제가 갖고 있는 삶에 대한 대단한 애착으로 읽힙니다. 포기하는 마음이 들 법도 한데 결코 그렇지 않아요.


인생을 그렇게 살아왔어요. 넓게 보면 아버지 덕이기도 해요. 워낙 남겨주신 것 없이 일찍 돌아가셨으니까요. 덕분에 모든 걸 맨손으로, 내 힘으로 해결해야 했어요. 그렇게 내가 하나씩 쌓아가다 보니 누구보다 내 자신에 대한 애착이 강해요. 삶 자체가 그랬기 때문에 암 선고를 받고 수술하고 나서도 내가 극복해야지 괜히 고생한 게 되면 안 됐어요. 내 자신에 대해 가지고 있는 애정, 이런 것이 사실 저를 일으켜 세우는 데 큰 보탬이 됐죠.

 

자존심이 무척 센가 하면 지지스 컵케이크의 매장 인테리어를 젊은이들에게 맡기는 등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하지 못할 결단들이 곳곳에 보입니다. 사업가로서, 이런 면모는 장점인가요? 단점인가요?


사업을 해오면서 세운 원칙은 ‘의인막용(疑人莫用)’하고 ‘용인물의(用人勿疑)’하겠다는 거예요. 사람이 의심스러우면 쓰질 말고, 사람을 썼으면 의심하지 말라는 뜻이에요. 항상 믿어요. 봐서 함께 일할 사람이다 싶으면 거의 100% 믿어요. 물론 그 때문에 피해도 많이 보긴 했지만 아직까지도 그게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많은 사업가들이 아무도 믿지 않고 오직 자신의 뜻만 고집하는데, 그런 자세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글쎄요. 그랬기 때문에 지금까지 큰 돈 못 벌고 이렇게 있는지는 몰라도(웃음) 후회는 없어요. 장점도 되고 단점도 되죠. 친구들이 그래요. 사업 망했다는데 허허 거리고 다니니까 이상하다고요. 하지만 후회하지 않는 거죠.

 

완전히 무너졌다 싶을 때도 계속 다음을 준비해요.


인생이 너무 짧잖아요. 한국에서 이스라엘 갔다가 프랑크푸르트에 갔다가 뒤셀도르프에 갔다가 파리에 갔다 한국으로 오는, 거의 무박 3일의 출장 경험을 책에도 적었잖아요. 그때 상당히 아팠거든요. 그렇지만 이걸 빨리 해내고 대안을 찾아야지, 하는 생각이었던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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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치와 용기

 

몇 가지 사례들은 굉장히 극적이에요. ‘참나무 장작 사인’장면은 특히 성신제에게 이런 드라마틱한 면모가 있다는 점을 잘 보여주는 사례고요.


제가 좀 장난기가 있어요.(웃음) 케니 로저스와 사업을 같이 하던 당시 있었던 일인데요. 케니와 약속이 되어 있었는데 아무 말 하지 않고 가기 전에 장난으로 수염을 길렀어요. 그런 모습으로 케니를 딱 만났죠. 그가 깜짝 놀라요. ‘오!’하면서 막 웃더라고요. 수염을 기르니 서로 얼굴도 좀 닮았고요. 한참을 웃었죠. 그렇게 장난기가 좀 심했어요.

 

아내 분에게 처음 고백하던 방법도 굉장히 짓궂다고 볼 수 있죠. 과 사무실로 연애편지를 보냈으니 얼마나 뉴스가 됐겠어요.


지금 얘기하면 아내가 속았다고 해요.(웃음) 속으로 차 마시자고 다가오면 퇴짜를 놓아야지 생각했대요. 그랬는데 거의 1년을 아무 말도 안 하니까 도리어 초조하게 기다리게 된 거예요. 1년이 다 돼서야 차 한 잔 하자고 하니 곧바로 ‘Yes’가 나와 버린 거예요. 저는 그걸 노리고 한 거죠.

 

인터뷰가 잡히고 책 읽기 전에 문득 떠오른 궁금증이 있었어요. 지금도 피자헛이 곳곳에 있잖아요. 지나가면서 보면 기분이 어떨까 싶더라고요. 애증이 있겠죠?


뚫어지게 봐요. 더 열심히 봐야죠.(웃음) 그 당시에는 뭐랄까, 버려진 아이 같은 느낌이 들어서 차마 볼 수가 없더라고요. 지금은 일부러 더 뚫어지게 봐요. 뭘 잘하고 있는지도 살피고요. 애증의 감정이 있죠. 실제로 그걸 할 때는 진짜 내가 키운 자식 같은 느낌을 가지고 했었거든요. 당시 펩시코의 웨인 캘러웨이 회장은 미국에서도 대단한 인물이었죠. 그런 사람이 한국에 오면 저와 어깨동무를 하면서 우리는 패밀리라고 하곤 했어요. 그런데 미국으로 돌아가서는 어떻게 뺐을지 궁리했던 거죠. 정말 제 가슴에 못을 박은 사람이에요. 1993년이 그런 일이 있고난 후 캘러웨이 회장이 1998년 암으로 죽었어요. 그때 생각했죠. 나는 아직 살아있다, 하고요.

 

오히려 당당하게 그곳들을 쳐다봐야 새로운 것에 도전할 용기가 생길 것이다.
과거의 실패, 고통, 시련을 외면한다면 나는 영원히 거기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내 실패, 고통, 시련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어야한다. 그래야 스스로를 넘어서게 된다. 스스로 트라우마를 넘어서지 못한다면 새로운 시작은 꿈도 꾸지 못한다.(197쪽)

 

사업을 하면서 그와 같은 인간의 탐욕을 많이 접하셨겠어요.


많이 보죠. 어쩌겠어요? 나는 내 일을 하는 거죠. 아버지 얘기를 했지만 워낙 없이 돌아가셨기 때문에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 결정하면서 살아왔어요. 저는 항상 스스로를 누구보다 우수하다고 생각하며 지냈어요. 친구들 앞에서는 그런 얘기 안 하죠. 하면 완전 이상한 사람이죠.(웃음) 그렇지만 항상 생각은 그렇게 했어요. 지금도 항상 내 자신이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누가 보더라도 저 사람은 자기 자신을 컨트롤 하는구나 생각할 수 있도록 말이에요. 정신도 마찬가지고요.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이 곳곳에 묻어나는데 가족들이 이 책을 읽었나요? 읽고 뭐라던가요?

 
아내는 읽었어요. 아무 말 안 하던데요. 아름답게 장식하거나 보태서 쓴 얘기가 아니니까요.

 

자녀들에게 직접 속마음을 말한 적은 없으셨을 것 같고, 책을 읽고 아버지의 마음을 알게 되었을 때 그들에게 어떤 마음이 들까 궁금했어요.


아들과 딸에게 그냥 책이 나왔다고만 말했어요. 새삼 미안하다든지 하는 말은 전혀 안 했어요. 사실 아이들에게 그렇게 살가운 아버지는 아니에요.

 

베풂의 삶을 다짐한다고 하셨어요. 성신제의 다음 행보는 뭔가요?


1981년이었어요. 미국 출장을 가야 하는데 돈이 없었어요. 친구가 해외 입양아 에스코트 프로그램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줬어요. 아이 셋을 데리고 미국을 갔어요. 울고 불안해하는 아이 셋을 데리고 간다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에요. 막상 도착해서 양부모에게 인계하는 장면에서는 너무나 마음이 아팠어요. 안 가려고 해요. 그때 생각했어요. 이런 삶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요. 이후 제 나름대로는 나누기 위한 노력을 해왔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이후 시스템이 바뀌어서 에스코트 프로그램은 없어졌다고 해요. 정서적으로도 무척 안 좋은 과정이었죠. 요즘은 입양을 하려면 양부모가 와서 당분간 생활을 하고 데려가야 한다고 해요. 그렇게 저처럼 에스코트 하게 되는 사람도 더 이상 없죠.

 

 

더 이상 기회가 없다고 생각

 

세 번째 책인데요. 첫 번째, 두 번째 책과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희한하게 10년 주기로 책을 내게 되더라고요. 이것도 계기는 마찬가지예요. 항상 망하고 다시 시작할 때 쓴 책이거든요.(웃음) 이번에는 조금 다른 게, 더 이상은 기회가 없겠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나이로 봐도 그렇죠. 그래서 책 뒷부분에 제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겪었던 것들을 다 남겼어요. 새롭게 일어나려는 젊은이들을 위해 뭔가 도움이 될 이야기들을 쓰려고 했어요. 그런 면에서 거의 정리하면서 쓴 책인 거죠.

 

인생 2막을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한 마디 남겨주세요.


저는 철학자도 아니고 성직자도 아니고, 고상하게 얘기할 수 있는 건 없어요. 다만 제 생각은 ‘안 일어나면 어떻게 할 건데?’였어요. 누구에게 살려달라고 할 거예요? 돈을 달라고 할 거예요? 아니잖아요. 결국은 자기 자신이 마음먹고 일어나야 해요. 책을 통해 조금이라도 느꼈으면 하는 부분이 뭐냐면 당신이 처한 상황보다 훨씬 더 형편없는 절벽에 떨어져본 사람이 있다는 것이에요. 이걸 보고 나도 어느 정도만 하면 인생 값어치가 있겠구나 생각한다면 일어나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러면 일어나야죠. 아내는 힘들었던 얘기를 미주알고주알 할 필요가 있느냐고 물었죠. 하지만 제가 진짜 하고 싶은 얘기는 그런 것이었어요.

 

좋은 얘기는 하기 쉽죠. 어려운 얘기, 힘든 얘기를 하는 게 용기고 진짜 도움이 되는 말일 수도 있잖아요.


그렇죠. 말도 멋있게 지어내서 베스트셀러 되는 책들도 있잖아요. 적어도 현장에서 뛴 저의 입장은 좀 달라요. 사업이 망하고 버스비가 없어서 몇 시간을 걸어서 집에 가는 상황에 처한 사람한테 좋은 말만 할 수 없어요. 심하게 얘기하면 그런 말은 사기죠. 망한 게 자랑은 아니지만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누구한테 내놓아도 떳떳해요. 저처럼 망해본 사람도 없을 거예요. 그렇게 떨어져도 다시 일어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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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모험성신제 저 | 생각정원
《달콤한 모험》은 외식업 30년의 과정 속에서 그가 겪었던 역경과 그에 맞서는 도전의 가치를 담은 책이다. 화려한 성공과 벼랑 끝의 좌절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문제는 성공과 좌절을 대처하는 우리의 삶의 자세이다. 저자는 끊임없이 공부하면서 꿈과 도전 앞에서 머뭇거리지 말고 당당하게 자신의 길을 가라고 주문한다. 그래야 후회 없는 진짜 인생을 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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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이, 행복한 엄마로 살았더니 작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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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펼치는 순간, 가슴이 출렁이는 책이다. 아직 겪지 않은 일인데, 알 것 같은 이야기와 풍경들. 눈으로 보고 있는 그림이 마치 어제의 우리, 내일의 우리 집 모습인 것 같다. 화가 강진이의 첫 책 『너에게 행복을 줄게』는 오랫동안 그림일기를 써온 작가의 그림과 글을 수록한 책이다. 퇴근한 아빠의 팔에 매달리는 두 딸과 그 예쁜 모습을 놓지 않고 싶어 국자를 든 채 현관으로 쪼르르 달려가는 엄마의 모습을 그리며, 작가는 ‘가족’이라는 단어 앞에 ‘모든 것을 견뎌낼 수 있는 힘’이라는 글자를 새겼다.

 

표지 그림을 보자. 작품명은 ‘빨래’, 글 제목은 ‘산처럼 쌓여 있는 빨래하는 날’이다. 분홍색 꽃무늬 이불을 아파트 베란다에 널고 차를 한 잔 하는 주부. 내가 혹은 내 엄마가 분명 겪었을 모습이다. 빨래를 너느라 녹초가 되었어도 가지런히 일광욕을 하는 빨래들을 보면, 고단한 일상이 꽤 살갑게 느껴진다. 풍경이 그림으로 옮겨지면, 내 모습을 독자로서 읽어낼 수 있다. 또 다른 감흥이 찾아온다. 이 그림이 위대한 까닭이다. 강진이 작가는 책 제목을 ‘너에게 행복을 줄게’로 하자는 편집자의 제안에 오랫동안 망설였다. “제가 어떻게 감히 행복을 줘요. 그리고 ‘줄게’는 반말인데요”라고 말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무명작가의 첫 책이 입소문을 타고 금방 4쇄를 찍었다. 읽고 나니, 선물을 안 하고는 못 배기는 책이었던 것이다.

 

2004년 9월, 작가는 ‘나는 행복한 엄마가 되었다’라는 제목으로 일기를 쓰면서, “행복한 그림책 작가가 되고 싶었다. 요즘은 행복한 엄마로 산다”라고 적었다. 그로부터 10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지났다. 지금 작가의 일기장에는 “행복한 엄마로 살았더니, 행복한 작가가 됐다”라고 써있을지도 모르겠다.

 

내 그림을 본 사람들은 모두 말한다. 참 행복해 보인다고. 그러나 그 어느 누구의 삶이 행복만으로 채워질 수 있을까. 나 역시 버겁고 지쳐 아이처럼 엉엉 목 놓아 울고 싶어질 때도 있었고, 자존감과 의욕이 바닥으로 가라앉고 가라앉아 땅속으로 꺼져버리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더 그림을 그렸다. 엄청난 작품도, 위대한 순간도 아니지만 내 기억 속 행복한 시간들을 눈앞에 펼쳐놓았다. 그러곤 새삼 내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깨닫곤 했다. 선을 그으며, 하나하나 색을 입히며 나는 하나씩 깨달아갔다. 그렇게 마음의 평온이 찾아왔다.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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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보면 좋은 추억이라는 걸, 그때도 알았다면


『너에게 행복을 줄게』를 읽고 나면, “지인들에게 선물을 안 할 수 없다”고 하던데요.


감사하죠. 카카오스토리에서 일기를 구독해주셨던 분들이 많이 읽어주셨어요.

 

그림도 좋지만 글이 참 좋았어요. 책 서문에 고은 시인의 「순간의 꽃」 시구(급한 물 떠내려가다/ 닿은 곳에 / 싹 틔우는 땅버들 씨앗 / 이렇게 시작해보거라)를 소개하며, 그림일기의 시작에 대해 이야기하셨어요.


정말 그랬어요. 그 시를 딱 읽는 순간, 왈칵 하더라고요. 제 모습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어요. 일기를 쓴 건 초등학교 때부터였는데요. 대학 시절 그림 작업 일지로 채웠던 일기장, 연애 일기, 결혼해서 쓴 태교일기와 성장일기, 그리고 제 자신의 그림, 신앙, 미래에 대해 쓴 일기까지, 한 상자에 가득해요. 육아나 살림으로 바쁘다가도 내 정체성, 내 존재를 잃고 싶지 않아서 내면의 몸부림을 쳤던 것 같아요. 마음을 치유하는 건, 우선 자기 이야기를 하는 거라고 하는데. 제게 일기가 그랬던 것 같아요.

 

카카오 스토리에는 어떻게 그림일기를 올리게 되셨나요?


어느 날 친구한테, 일기를 쓰고 있다고 말했더니 “카카오 스토리에 올려보는 게 어떠냐”고 하더라고요. 이런 평범한 이야기에 사람들이 관심이 있을까? 싶었는데 생각보다 정말 많은 분들이 좋아하셨어요.

 

구독자가 약 5만 명인데, 댓글 수도 굉장하더라고요. 젊은 엄마들뿐만 아니라 남성 독자들도 꽤 많던데요.


독자 분들이 공감하는 부분이 저에게는 굉장히 색달랐어요. 전 그냥 평범한 제 삶을 드러내서 알린 건데, “저도 그래요”라는 댓글이 제일 많았어요. 사실 처음에는 저 좋자고 그린 건데, 공감해주시는 분들이 많이 응원해주시고 표현해주셔서 저로서는 힘도 나고 기분도 좋고 그랬죠.

 

태교로 읽어도 좋을 책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젊은 예비 엄마들이 태교로 읽는다는 이야기를 몇 번 들었어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너무 좋아서 닭살이 돋아요. (웃음) 저도 사실 첫 애를 낳고 한동안은 우울했어요. 산후우울증이라는 게 있잖아요. 아이는 너무 예쁘지만, 시시때때로 잠 못 자고, 먹는 것도 제대로 못 먹으면 우울할 때가 있었어요. 모유수유를 하면서 미역국을 커다란 대접으로 먹고 있으면 내가 동물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고. 긍정적인 생각이 들 때도 있었지만, 아닐 때도 많았어요. 그런데, 지나가보면 다 추억이거든요. 이런 것도 나중에 보면 좋은 추억이라는 걸, 미리 알아도 좋을 것 같아요.

 

그림만 보면, 참 행복하고 따뜻한데. 사실 사는 게 그렇게 녹록하지만은 않잖아요. 힘든 시간도 많았을 텐데요.


힘들 때, 더 많이 그렸어요. 최근에 중고등학교 시절 성당 친구들을 만났는데, 한 남자애가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그 친구가 결혼을 안 한 친구거든요. 솔로니까 주변에서 자기를 많이 찾는대요. 한풀이를 할 상대로요. 그래서 자기가 감정의 쓰레기통이 되는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그 친구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는데, 제 책을 보더니 “너도 어지간히 사는 게 힘들었구나. 이렇게 한 권의 책이 나올 정도면”이라고 말하는 거예요.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남자애인데도 손을 덥석 잡고 싶었어요. (웃음) 되게 고맙더라고요. 뭉크는 자기의 삶이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고통스러워서 그런 그림을 그렸지만. 저는 힘들 때마다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리면서 스스로를 위로했던 것 같아요.

 

어떤 때, 특히 그림이 많이 그려졌나요?


아이들이 사춘기를 겪을 때 있잖아요. 대화를 좀 하고 싶어 방에 들어갔는데, “엄마, 나가”라고 했을 때. (웃음) 그럴 때 일기를 쓰면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림을 그렸어요. 좋을 때도 물론 그림을 그렸지만, 힘들 때 그림을 붙들고 있으면 조금은 치유가 되더라고요. 그런 시간이 있어야, 다시 일어나서 아이들 밥도 해줄 수 있고요. 

 

그림을 보면, 되게 행복해 보이세요. 물론 행복을 느낄 수 있는 마음을 갖고 있어서겠지만요.


사람들이 “넌 남편이랑 되게 사이 좋은가 보다”라는 말을 자주해요. 그런데, 어제도 싸우고 수시로 말싸움을 해요. 아무리 사이가 좋은 부부라도 결혼생활을 하다 보면 섭섭하고 기분 상하는 일, 많잖아요. 감정이야 깊게 안 좋을 때도 있고, ‘다 이러고 살지’ 뭐 이러면서 훌훌 털어버릴 때도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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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끊임없이 미소를 짓더라고요


책에 실린 작품 중에 특별히 많이 기억나는 그림은 어떤 작품인가요.


둘째 아이 돌잔치를 했을 때, 정말 정신이 없었거든요. 첫째가 어렸을 때, 둘째를 되게 시기했어요. 둘째한테 머리띠를 해놓으면 자기 것이라면서 꼭 빼앗고. 자기가 입던 옷을 동생이 입고 있으면 성화를 하고. 두 살때까지 엄마, 아빠 사랑을 독차지하다가 동생이 생기니까 샘이 많이 났던 것 같아요. 둘째 돌잔치를 하는데, 둘째만 예쁜 한복을 입혀놓으니까 첫째가 난리가 난 거예요. (웃음) 저는 음식하고 상을 차리느라 정신이 없는데, 남편은 많이 거들어주지도 않고. 정말 어렵게 어렵게 사진까지 딱 찍고 났는데. 몇 년이 지나고 사진을 다시 보니까 되게 마음이 찡하더라고요. ‘이때, 그랬지. 좋았네’싶고. 정말 힘들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감정이 훨씬 크더라고요.

 

한밤 중에 두 아이를 재우고 창 밖을 바라보는 그림도 정겨웠어요.


둘째는 갓난아이니까 자주 깨서 저랑 작은 방에서 잤거든요. 그런데 꼭 큰 애가 자기 먼저 재워달라고 작은 방으로 오곤 했어요. 다독다독 애들을 재우고 창 밖을 보는데, 문득 제 일상이 너무 감사하고 좋더라고요. 저는 그때가 되게 좋았어요. 그런데 나중에 들어보니 남편은 정말 힘들었던 때였대. 남편이 영국에서 일하던 때인데, 미래가 불투명한 상태에서 둘째가 태어났으니까 힘들었나 봐요.

 

화장실 청소하는 그림도 되게 좋았어요. 익숙한 일상인데 그림으로 보니 새롭다고 할까요. 지저분한 화장실 청소가 향기롭게 보이더라고요.


“저도 막 이러고 나왔어요”라는 댓글을 많이 달아주셨어요. 누구나 그렇게 살잖아요. 주부들이 집에만 있다 보면 ‘나는 뭐지? 나는 뭘 하는 사람이지?’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그런데 그림으로 보면 ‘이 일도 참 중요한 일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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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은 한 컷인데, 그림이 세밀해서 실감나요.


물건을 버리는 걸 제가 잘 못하는 편이거든요. 그래서 뭔가를 버리기 전에는 꼭 사진을 찍어요. 언젠가는 그림으로 그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아이들 장난감을 버릴 때도 사진을 찍고, 동생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그래요. 사진 자료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에요. 화장실 청소하는 그림은 스케치를 하다 보니까 제 손이 어색하더라고요. 동작이 아무래도 부자연스러운 것 같아서, 저 포즈를 하고 나서 남편한테 “빨리 사진 좀 찍어봐”라고 해서 나온 그림이에요. (웃음)

 

이불 빨래를 하고 차를 한 잔 하는, 표지 그림도 되게 와 닿아요.


여자들이 되게 알법한 순간이잖아요. 이 이불이 극세사인데 겨울 이불이에요. 봄까지 덮었는데 비싼 게 아니라서 그런지 보풀이 꽤 있더라고요. (웃음).

 

메모도 많이 하시고, 책도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남편도 책을 좋아해서 집에 책이 좀 많은 편이에요. 신문이나 잡지 같은 걸 읽을 때도, 제 생각이랑 같다는 생각이 들면 메모를 자주해요. 그림 작업을 하다가 일기를 뒤적거리는 경우가 있는데, 오래 전에 썼던 일기를 보면서 ‘내가 이런 걸 썼구나’ 싶기도 해요. 새롭게 제 것으로 만들게 되는 계기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꼭 메모를 많이 하려고 해요.

 

남편 분은 책을 보고 어떤 반응이던가요.


책을 보면서 끊임없이 미소를 짓더라고요. (웃음) 사실 출판사에 글을 하나하나 써서 보낼 때마다 남편을 보여줬거든요. 그런데 자꾸 지적을 하는 거예요. 이런 표현은 굳이 안 들어가도 괜찮다면서. 그냥 읽어만 봐주면 좋은데, 지적을 할 때는 기분이 나빴어요. 속으로 ‘자기가 편집자인가?’ 구시렁댔죠.

 

두 딸의 반응은 어때요?


큰 애가 고등학생 2학년인데 미술 전공을 준비하고 있어요. 둘째는 중학생인데 글 쓰는 작가가 되고 싶어해요. 자기가 쓴 소설을 포털 사이트에 올리기도 하는데, 나름대로 문장이나 맞춤법 같은 걸 많이 신경을 쓰더라고요. 그래서 둘째 아이한테는 책이 나오기 전에도 “엄마 글 좀 봐달라”면서 조언을 구했어요. 첫째는 이번에 책으로 처음 본 건데, 울컥했나 봐요. 자기 어렸을 때 이야기고 하니까 “엄마, 되게 그렇더라”라면서, 새삼 좋았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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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형 이야기’를 쓸 계획이에요


대학에서는 서양화를 전공하셨고, 최근 몇 차례 전시회를 열기도 하셨는데요.


제 그림이 작잖아요. 동문전을 몇 번 했는데, 개인이 할당 받는 기준이 50호 정도에요. 저는 하나만 걸면 작으니까 여러 그림으로 50호를 맞춰요. 친구들이나 선후배들이 그린 큰 그림을 보면, 근사하고 멋져요. 반면 저는 생활일기잖아요. 처음에는 부끄럽고 창피한 것도 있었는데. “어, 이런 그림도 있네?”하면서 관심 있게 많이들 봐주시더라고요. 조금씩 용기가 났던 것 같아요. 아직 쑥스러운 마음이 아예 없진 않은데, 그래도 좋고 뿌듯해요.

 

결혼을 하고 육아를 거의 바로 시작하셔서, 작가로서의 활동을 아주 활발히 하신 편은 아닌데요. 동기들이나 선후배들이 작품활동을 하는 걸 보면, 아쉬운 마음이 들 것 같아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기억의 밑바닥에서부터 화가를 꿈꿨어요. 중간에 유치원교사로 장래희망을 바꾼 적이 있지만, 유치원에서 뭐를 가르칠까?를 생각해보면 그림이었어요. 공부는 열심히 안 했지만 그림은 정말 열심히 그렸거든요. 대학에 가서도 정말 치열하게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요. 남편도 대학 때 만났기 때문에 결혼도 자연스럽게 순서를 밟는 것처럼 하게 됐는데, 육아 기간 동안에도 그림을 놓지 않고 싶어서 일을 계속 했어요. 잡지에 나오는 그림도 그리고, 학습지 컷도 그리고. 이따금 친구가 자기 원고를 주면서 일러스트를 그려달라고도 했고, 기업 사보 표지도 그렸어요. 물론 아이를 키우다 보니 온전히 몰입하면서 작품을 하긴 어려웠어요. 그래도 계속 일기를 쓰면서 붓을 놓지 않으려고 했던 것 같아요.

 

동화를 그리셔도 좋았을 것 같아요.


어린이책 준비를 하다가 몇 번 어그러졌어요. 제 글이 어린이책에 맞지 않았는지, 전문작가가 다시 글을 다듬어주신 적도 있는데, 이상하게 저는 온전히 제 글이라는 생각이 안 들면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더라고요.  ‘이건 아닌가 보다’ 하고, 어렵게 무릎을 꿇게 된 일이 몇 번 있었어요.

 

『너에게 행복을 줄게』를 첫 책으로 내려고, 그런 과정이 있었던 건 아닐까요?


그 생각 여러 번 했어요. 많이 산 건 아니지만, 살면서 가장 크게 느끼는 건, ‘내가 그 힘든 시기를 보낸 게 지금 이 시간이 오려고 그랬나 보다’라는 거예요. 정말 비참하게 깨졌던 적이 있었거든요. 어렸을 때부터 그림에 있어서는 칭찬만 듣고 자랐는데, 어린이책을 준비하면서 많이 좌절했어요. 책이 되려면 독자들을 만족시켜야 하니까 출판사에서 책을 되게 꼼꼼히 보더라고요. 저는 정말 정성껏 준비를 해갔는데, 모든 사람들 앞에서 저를 깨시더라고요. 그때 정말 내가 저 사람들 보란 듯이 좋은 작품을 하겠다고 생각했어요. (웃음) 반드시 일어서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만큼 쉽지 않았죠. 그런데 이 책을 내고 나니까, 저 스스로를 칭찬해주고 싶은 생각이 들어요. 힘든 시간을 극복해줘서 고맙고, 이 책이 나에게 오려고 그런 과정들이 있었나 싶고. 지금 새로 준비하는 이야기가 인형에 대한 책인데, 예전에 어린이책을 기획했을 때 썼던 이야기에요.

 

인형 이야기요?


인형을 무지무지 좋아해요. (웃음) 어렸을 때 갖고 싶었는데 못 샀던 인형들을 딸들에게 사주기도 했는데, 딸 아이들도 참 좋아했어요. 남자 역할을 했던 인형, 엄마 역할을 했던 인형, 할머니가 베고 자서 코가 납작해진 곰 인형 등 아직도 집에 많아요. 『너에게 행복을 줄게』가 하나의 에피소드 형식으로 쓴 책이잖아요. 인형을 소재로 각각의 에피소드를 만들어내서 저만의 동화책을 쓰고 싶어요.

 

『너에게 행복을 줄게』가 일기를 쓰지 않았더라면 나올 수 없는 책이잖아요. 일기를 쓰고 싶은데 막상 글을 쓰기가 어렵고, 그림을 그리기가 낯선 독자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요즘은 재주 있는 분들이 너무 많잖아요. 하고자 하면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도 처음 그림을 그릴 때는 지금처럼 스케치부터 시작하지 않았어요. 일기를 쓸 시간이 없으면 간단히 장을 보고 돌아오는 내 모습을 메모장에 그려본다던가. 외출하려고 평소에 안 입던 옷을 입고 예쁘게 꾸몄을 때는 거울에 비친 모습을 따라 그려보기도 하고 그래요. 카페에서 친구를 기다리는 시간에 화장지 위에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요. 어렵지 않다고 생각해요. 본인이 만족하면 되는 거잖아요. 처음부터 누구에게 무언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하는 게 아니니까요. 저는 머리맡에 늘 작은 수첩이 있어요. TV를 보다가 생각나는 것도 적고 신문을 보다가 좋았던 기사를 오려 놓기도 하고요.

 

혹시 오늘도 메모를 하셨나요?


지하철을 타고 왔는데, 갑자기 콩밥이 생각났어요. 제가 콩밥을 되게 좋아하거든요. 완두콩, 서리태, 온갖 콩을 다 좋아해요. 오늘 메모장에는 이렇게 썼어요. “콩을 넣어 밥을 지을 때, 나는 기분이 좋아진다. 익어가는 밥 냄새에서 나는 단 콩 내음이 나는 너무 좋다. 김이 빠지고 착 하고 신호추가 내려가는 소리가 들리면 나는 흰 주걱을 들고, 뽀얗게 뿜어지는 김을 온 얼굴로 맞는다. 이게 나의 수분 공급 노하우다.”

 

아! 한 편의 시 같아요.


(웃음) 요즘 너무 좋은 게 글 쓰고 그림 그리는 데에 있어서는 머리 회전이 빨라요. 책상 앞에 앉아서 작심하고 쓰면 머리가 딱딱해질 때가 있거든요. 멍 하고 있다가도 뭔가 떠올려질 때 한 문장이라도 써놓아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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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행복을 줄게 강진이 저 | 수오서재
‘이 책은 제목 그대로 행복을 주는 책입니다. 삶에 대한 감사, 깨달음, 지혜…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입니다.’라는 이해인 수녀의 추천의 글처럼, 강진이 작가의 그림일기는 메마른 시대에 단비 같은 기록들이다. 날마다, 순간순간 찾아오는 작은 깨달음과 행복을 펼쳐놓은 이 시대를 사는 ‘어른을 위한 그림일기’. 수만 명의 SNS 구독자가 공감하고 사랑한 글, 그림이 80여 편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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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에 간다고 행복해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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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드림’에 부제를 붙인다면 ‘행복의 나라로’ 쯤 되지 않을까.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늘 손꼽히는 국가들-덴마크,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아이슬란드가 모여 있는 차가운 땅, 북유럽. 그곳의 삶을 궁금해 하고 동경하는 이유를 애써 설명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높은 복지 수준, 천혜의 자연 환경, 새로운 교육 문화, 여유로운 삶의 태도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이미 모두에게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것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내가 꿈꾸는 북유럽 라이프』는 아주 명쾌한 해석을 제시한다.

 

돈이나 지식으로 삶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 줄 알았던 기대감은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했다. 모두가 생각하던 사회적인 기준과 평가가 삶의 행복 기준이 아니라는 결과물이 현실 곳곳에서 돌출된다. 자본주의의 무한 경쟁 속에서 지쳐 가는 사람들이 과연 행복한 삶과 의미 있는 인생 마무리는 무엇일까를 고민하게 되었다. 세계인이 발견한 북유럽은 이런 고민 속의 다른 나라들과는 사뭇 달랐다. 육아, 직장, 건강, 노후 등 전 세계가 고민하는 기본적인 삶의 문제들에 대해 안정되고 풍요로운 생활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내가 꿈꾸는 북유럽 라이프』 56~57쪽)

 

책의 공동 저자인 ‘루크’와 ‘안젤라’ 부부는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20대를 보냈다. 생애 첫 번째 이민이었고 자본주의의 생리를 온 몸으로 느낀 경험이었다. 그곳에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20여 년을 지냈다. 동료 디자이너로서 두 사람이 함께 시작한 사업은 순조롭게 진행됐고, 덕분에 바쁜 나날을 보냈지만 그들의 삶은 ‘안정’과 ‘성공’으로 설명될 만한 것이 됐다. 그러던 중 부부는 스웨덴 여행에서 ‘행복’을 말하는 사람들과 만났고, 두 번째 이민을 결심했다.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나라에서 사회민주주의의 상징과도 같은 나라로, 경쟁하는 삶이 아닌 더불어 사는 삶으로 건너간 것이다.

 

『내가 꿈꾸는 북유럽 라이프』는 그들이 직접 체험한 북유럽의 일상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스웨덴뿐만 아니라 이웃한 스칸디나비아 국가들의 현실적인 이야기들도 들려준다. ‘매력적인 북유럽 이민, 제대로 살펴보기’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그곳으로의 이민을 꿈꾸는 이들을 위한 유용한 정보들이 가득하다. 각 나라의 이민 제도, 복지와 교육 정책, 자연 환경, 국민들의 성향까지 한 권의 책 속에서 모두 들여다볼 수 있는 것이다. 특히 북유럽에 먼저 정착한 한국인 가족으로서 그들이 들려주는 조언들은 이민을 결정하기에 앞서 반드시 점검해 봐야 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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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에 간다고 행복해질 수 있을까?


북유럽에서의 생활이 가족의 삶에 미친 영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안젤라 :많은 것들이 바뀌었는데, 그 중 하나는 계획을 세우지 않고 살게 됐다는 거예요. 남편과 아이들을 대하는 방식도 달라졌죠. 그 전까지는 남편과 같이 일하면서도 제가 생각하는 바를 제안하는 게 내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스웨덴에 가서 바뀌었죠. 당신이 원하는 대로 하라고 말하는 거예요. 아이들에게도 제가 나서서 주도하기보다 스스로의 생각과 의지로 결정하게 해요. 그리고 스웨덴에 살면서 보험이나 저축 같은 것도 가입하지 않았는데, 북유럽 사람들이 그런 걸 하지 않아요. 노후 보장이 잘 되어있고 워낙 세금으로 많이 내니까요. 비상금 조금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버는 만큼 쓰면서 즐겨요. 처음에는 그런 모습이 신기하고 너무 대책 없는 것 아닌가 싶기도 했는데요(웃음). 저도 익숙해지니까 너무 편하더라고요. 조급증이 없어졌어요.

 

현재는 한국에서 생활하고 계신데요. 아마도 많은 분들은 ‘왜 그 좋은 나라를 떠나 왔을까’ 궁금해 하실 것 같습니다.


루크 :스웨덴에서 생활하면서 블로그 <스칸디나비아의 루크와 안젤라>를 시작했어요. 일상 속의 메모들을 적어 놓았던 건데요. 그걸 계기로 한국에 계신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게 됐고, 북유럽이나 미국에 대해서 잘못 알려져 있는 부분도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저희 가족이 실제로 북유럽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들려드리게 됐죠. 점점 소통을 늘려가다 보니까 ‘아예 한국에서 지내면서 북유럽의 문화, 생활, 교육, 이민 등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는 커뮤니티를 운영하면 어떨까’ 싶더라고요. 그렇게 시작하게 된 게 노르딕후스(NordikHus) 라는 회사이고, 한국의 많은 분들과 북유럽에 관해서 소통하고 있어요.

 

한국의 많은 사람들이 북유럽 이민을 꿈꾸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루크 : 처음에는 인테리어나 가구 같은 단순한 것들로 북유럽에 관심을 가지다가, 점차 교육 제도나 장애인 평등, 복지와 같은 부분들에도 주목하기 시작한 것 같아요. 그러면서 ‘북유럽에 직접 살아보면 어떨까’라는 생각도 갖게 되고요. 동시에 미국 영국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같은 전통적인 이민국들이 더 이상 꿈의 나라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된 거죠. 그러면서 유럽과 북유럽, 일본 대만 싱가포르 같은 아시아의 잘사는 나라들이 대안으로 떠오른 것 같아요. 특히 북유럽은 평등의 가치가 잘 실현되고 있는 나라잖아요.


안젤라 :제 주변에 있는 20대 후반~40대 초반의 분들을 보면 ‘과연 내가 행복한가, 왜 이러고 살고 있지’라고 자문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 세대들은 어느 정도 부모님 세대나 사회 분위기에 맞춰서 바쁘게 경쟁하면서 살아왔잖아요. 그런 시간들을 되돌아보면서 지금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게 된 거죠. 그러던 중에 행복 지수가 제일 높은 곳이 북유럽이라는 게 알려졌고 부모 세대나 결혼을 앞둔 사람들, 아니면 혼자 살지만 앞으로의 삶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북유럽이라는 곳에 자기 모습을 넣어보기 시작한 것 같아요. ‘내가 고민하고 있는 문제의 해답이 북유럽이라는 시스템 안에서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들을 많이 하시는 것 같고요. 저희도 그런 궁금증 때문에 스웨덴에 간 것이기도 했고, 그런 이유로 스웨덴에 이민 오신 분들을 만나기도 했어요.


루크 :어쩌면 『내가 꿈꾸는 북유럽 라이프』를 읽고 나면 이민 갈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드실 수도 있어요. 요즘에는 행복하기 위해서,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 이민을 가잖아요. 그런데 저는 단순히 어떤 시스템 안으로 들어가는 것만으로 그 목표가 이뤄진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북유럽 사회의 분위기나 시스템이 삶의 목적이나 행복을 누리는 데 적합하기 때문에, 한국에 있는 것보다 (북유럽에 있는 게) 행복해질 확률이 조금 더 높다는 거죠. ‘북유럽에 가는 건 행복한 것이고 한국에 있는 건 불행한 것이다’ 이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한국에 있으면서도 북유럽 사람들의 마인드로 행복을 느끼려고 하면 얼마든지 북유럽보다 더 행복할 수 있다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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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의 사람들이 평균의 가치로 평등하게 살아가는 것”


미국과 북유럽, 두 사회의 가장 큰 차이점으로 무엇을 꼽으시겠어요?


루크 :북유럽 국가들은 사회주의 체제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게 가장 큰 차이점이죠. 사회주의의 산물은 복지, 연금, 의료보험 같은 것이잖아요. 그걸 위해서 세금이라는 장치가 있어야 되고 국가적으로 투명해야 하는 게 당연한 거고요. 미국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돈으로 귀족과 같은 신분이 된다는 걸 경험했어요. 그러니까 그곳은 신분이 자본과 연결되고, 자본을 가진 건 좋은 일이죠. 부자는 존경하고 따라야 할 존재예요. 물론 사회주의 체제에서도 부자는 위대하지만, 그들도 해야 될 책임을 가지고 있어요.  


안젤라 :스웨덴에 살면서 제가 가지고 있던 소유나 자산의 개념을 바꿔야 했어요. 미국에 있을 때는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노후와 아이들 교육을 걱정했고, 미리 계획해서 준비해둬야 하니까 능력껏 더 벌어야겠다는 데에 초점을 맞췄어요. 그런데 북유럽에 오니까 그만큼 (세금으로) 내야 하는 게 있고, 별로 큰 의미가 없더라고요. 하지만 북유럽의 큰 기업들은 딜레마에 빠져있어요. 자본주의 시장에 진출하고 경쟁해야 하는데, 북유럽에서 자란 사람들은 영업이나 마케팅에 있어서 아이디어가 부족한 거예요. 그래서 글로벌한 회사에서는 외국 사원들을 많이 채용해요. 자신들의 무딘 감각과 긴장감을 보완하기 위해서 자본주의 국가의 젊은이들을 고용하는 거죠. 

 

북유럽 국가들의 복지는 국민들의 세금에 기반하고 있는데요. 이에 대해 ‘돌아오는 복지에 비해 너무 많은 세금을 걷는다’며 항의하는 목소리는 없나요?


루크 : 북유럽 국가들이 매년 조사하는 게 있어요. 현재 부과하고 있는 세금이 많은지 적은지 국민들에게 묻는 거예요. 그러면 70% 이상의 국민이 괜찮은 수준이라고 말해요. 그 믿음의 전제는 정부의 투명도죠. 정부 투명도와 부패 지수를 조사를 하면 매년 북유럽 국가들이 상위권을 차지해요. 정부뿐만 아니라 개인의 투명도도 높아요. 주차 위반만 해도 자기 스스로가 그걸 창피해하고 견디지 못해요. 어렸을 때부터 그래요. 그런 사람들이 정부에서 일하고 있는 거니까 정부의 신임도는 최상이죠. 그러니까 북유럽 사회에서는 ‘세금을 너무 많이 걷는 것 아니냐’라는 말은 곧 ‘나에게 혜택을 조금만 주세요’라고 말하는 것과 같아요. 정부가 받은 돈이 전부 자신에게 돌아올 것을 아니까요.


안젤라 :스웨덴에서는 탈세나 사기처럼 다른 사람의 돈이나 세금을 횡령하는 범죄가 가장 죄질이 나쁘다고 생각해요. 스웨덴에서 촉망 받던 젊은 여성 정치가가 있었어요. 나중에 총리가 되지 않을까 하고 국민들의 기대를 받는 인물이었는데, 그 사람이 관리하던 사람이 공금을 횡령했어요. 100만 원 정도 되는, 그렇게 큰 금액도 아니었어요. 그런데도 그 사람은 정치계를 떠났어요.


루크 :살인은 우발적일 가능성도 있지만 탈세는 계획적인 범죄잖아요. 그래서 더 악질 범죄라고 보는 거예요. 그 사회에서는 기업도 탈세를 하면 문을 닫아야 할 정도예요.

 

“평균의 사람들이 평균의 가치로 평등하게 살아가는 것”이라는 북유럽의 교육 목표는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안젤라 : 그 말은 저희 아이 선생님께 직접 들었던 말이에요. 제가 가장 큰 충격을 받았던 일이 있는데, 선생님과 면담할 때였어요. 한국이나 미국에서와 달리 북유럽에서는 아이도 면담에 참여하고, 선생님과 아이가 주로 이야기를 나눠요. 한 번은 선생님께서 저희 딸이 스웨덴어를 빨리 배울 수 있도록 단어 숙제를 내주는 게 어떻겠냐고 물어보셨어요. 저는 숙제를 내달라고 했죠. 그런데 선생님이 손을 뻗어서 저를 제지하시면서 지금 아이에게 물어본 거라고 하시는 거예요. 엄마의 의견이 궁금하면 질문드릴 테니 아이의 이야기를 먼저 들어보자고요. 북유럽의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작은 일이라도 자기가 결정하고, 그 결과 역시 직접 느끼고 책임을 져요. 저 역시 북유럽에서 아이들로 하여금 생각하게 하는 교육 방식을 배웠어요. 

 

책에서 “한국의 사회적 잣대에 따른 교육 목표와 부모의 열정은 북유럽 이민과 연결될 수 없다”고 말씀하셨는데요.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루크 :한국의 교육은 너무 큰 목표를 세워놓고 (아이들이) 질질 끌려가도록 만들어 놓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만약 그 시스템이 괜찮은 것이었다면 지금쯤 좋은 효과가 나와야 할 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경쟁이 더 심해지고 있잖아요. 그렇다면 무언가 바꾸어야 될 필요성이 있다는 게 증명된 거죠. 요즘의 초등학교는 예전 국민학교 시절보다 많이 바뀌었지만, 중고등학교와 대학교의 시스템도 점점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안젤라 : 북유럽에서는 대학을 목표로 중고등학교에 진학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북유럽으로 이민을 가서 그곳에서 자란 아이는 대학에 진학하지 않겠다고 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부모가 계속 한국의 가치관을 가지고 생활하고 있으면 자녀와 갈등이 생길 수 있겠죠. 한 발 더 나아가서 ‘내가 너를 위해서 이곳까지 왔는데’ 라는 거창한 주제까지 붙으면 더 힘들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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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사업 이민, 한국적인 아이템이 통한다?


북유럽 이민의 단점으로 이민의 장벽이 높은 현실을 이야기할 수 있는데요. ‘유학 후 현지 취업’이나 ‘사업’ 외에는 영주권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없는 건가요?


루크 : 그렇죠. 그 외에는 결혼이나 정치적 망명 같은 극단적인 경우가 있어요. 북유럽은 비 이민 국가거든요. 이민 국가는 취업이나 특별한 사유 없이도 와서 살 수 있게 해주지만, 비 이민 국가는 현지에 취직을 했거나 현지에서 사업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영주권을 내줘요. 최근에 덴마크가 이민국가로 선회하려 하고 있는데요. 자국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에요. 취업 권장 리스트에는 IT 계열 엔지니어, 해양 의학 교육 관련 종사자, 체육인, 요리사 정도의 직업군이 있어요. 그런데 해당 자격을 갖추지 못했더라도 쉬운 방법이 있어요. 현지에 유학을 가서 취업하거나 현지에서 사업을 하는 거예요.
 
『내가 꿈꾸는 북유럽 라이프』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덴마크의 경우에는 “식당, 커피숍 등의 단순한 사업은 거부되기 쉽다” 보니, 특출 난 아이디어가 없으면 사업을 이유로 영주권을 받기가 어려울 것 같은데요. 현실은 어떤가요?

 
루크 :북유럽 국가들은, 대부분의 나라들이 그렇지만, 저공해 환경 친화적인 고부가가치 산업을 선호해요. 문화 관계된 산업을 굉장히 좋아하고요. 디자인이나 출판 관련 산업, 또는 음식과 같이 색다른 문화를 소개하는 사업은 다 찬성이에요.


안젤라 : 국가 간 무역이나 교류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사업도 좋고요.


루크 : 특별한 사업 아이템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우리에겐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그들이 보기에는 굉장히 특이한 일일 수 있어요. 한국 문화를 가지고 한국말을 쓰면서 관련된 사업을 한다면 굉장히 특이하잖아요. 한국에서 덴마크 문화를 가지고 덴마크 음식을 만들어서 판매하는 것과 마찬가지죠. 덴마크에서는 별 다른 일이 아니지만 우리에겐 특이하게 느껴지잖아요. 

 

자녀 교육을 위해 이민하려는 가족들에게 “만일 ‘아이들의 교육’이 이민 목적이 되었다 하더라도, 처음의 목적이 이민 생활 동안 온 가족의 ‘핑계’로 바뀌어서는 안 된다”고 조언해 주신 부분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안젤라 : 미국에서 지낼 때부터 그런 사람들을 많이 봤어요. ‘내가 지금 여기에 왜 왔는데, 누구 때문에 이 고생을 하고 있는데, 나는 영어도 못하는데 너 하나 바라보고 왔는데’라고 하는 거죠. 그러면 아이들 입장에서는 ‘나는 이곳에 오자고 이야기한 적도 없는데 왜 나한테?’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럴 때 아이는 자신의 꿈을 위해서 공부하는 게 아니라, 엄마아빠의 희생을 보상해주는 상징적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목표 때문에 공부를 하기도 하죠. 그런 상황에서 아이가 좌절하거나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건 자기 때문이 아닌 거예요. 부모님과 이 나라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되고, 한국에 있었다면 잘됐을 것 같은 생각도 들죠. 가족이 함께 이민을 결정했더라도 부모나 자식의 이름을 벗고 나 자신으로서 새로운 문화를 배우고 적응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온 가족이 함께 현지를 답사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하는 부담이 따르지만 그만큼 가치 있는 노력과 투자라고요.


루크 :이민이라는 건 삶의 기반을 옮기는 큰일이잖아요. 그래서 저는 ‘비용과 시간이 문제가 아니고, 반드시 그곳에 가서 적어도 2주 이상 실제로 생활을 해보라’고 주장해요. 이민은 가족이 함께 가면서 어느 한 사람만 답사를 보내면, 이민 생활 중에 안 좋은 부분이 있으면 그 사람만 원망할 게 뻔하잖아요. 그건 비겁한 일이고, 그러니까 반드시 함께 미리 찾아가 보라는 거예요.

 

북유럽 생활에서 불편한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일부에서는 ‘상점들이 다 일찍 문을 닫기 때문에 밤이 되면 너무 심심하고 지루하다’는 이야기도 하는데요.


루크 : 11월부터 2월, 3월까지는 아침 9시에 해가 떠서 오후 1시면 어둑어둑해져요. 3시면 완전히 깜깜해지고요. 여름에는 새벽 4시쯤에 해가 떠서 다음 날 새벽 2시 정도에 지는데요. 밤 12시에도 골프를 칠 정도예요. 스포츠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얼마든지 취미활동을 즐길 수 있어요. 동네마다 축구장 야구장 골프장이 하나씩은 다 있거든요. 그런 게 아니고 여가나 유흥 쪽으로 활발하신 분들이라면 문제가 될 수 있어요.


안젤라 :한국 사람들이 여가를 즐겼던 모습들이 굉장히 단조로웠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한국에서는 일이 끝나면 모여서 먹고 마시고 이야기하는 게 즐거움이라고 생각하니까 북유럽에 오면 ‘난 할 게 없어, 뭘 해야 돼?’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요. 사실 스웨덴 사람들은 너무너무 바빠요. 밖이 깜깜해도 아이들도 다 무언가를 배우러 다니고 사람들 취미도 정말 다양해요. 여행도 자주 가고 취미 클럽도 많고요. 


루크 :그러니까 가족들과 지내는 시간도 자연히 많아져요. 특히 캠핑 문화를 즐기는 분들에게는 북유럽이 천국일 거예요. 캠핑장을 예약할 필요도 없고, 전기 화장실 상수도 하수도 시설이 다 갖춰져 있는 데다,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거든요.

 

기온과 눈, 일조량 같은 자연환경도 적응을 어렵게 하는 요소일 것 같은데요.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루크 : 기본적으로 북유럽 친구들은 자연을 좋아해요. 즐기고 이용하는 정도의 개념이 아니라 자신조차도 자연의 일부라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종교 수준을 넘어서 자신의 생명처럼 자연을 생각하는 거예요. 그들은 날씨나 일조량이나 구름도 자연의 일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부분들까지도 숙명처럼 받아들여요. 


안젤라 :스웨덴에는 ‘나쁜 옷차림은 있어도 나쁜 날씨는 없다’는 속담이 있어요. 갑자기 비가 내려서 다 젖어도 짜증을 내는 게 아니라 너무 신나 하면서 비를 맞고, 눈보라 치는 겨울에도 생후 일주일도 안 된 아이를 데리고 산책을 나와요. 궂은 날씨를 이유로 학교 행사가 취소되는 일도 없고요. 자연을 즐길 줄 아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있는 거예요. 

 

북유럽인이 되기 위해 갖추어야 할 부분들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안젤라 : 가진 것과 주변의 작은 것에 감사하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스웨덴에서 제가 그곳 사람들에게 배웠던 게 굉장히 긍정적인 태도였어요. 북유럽 사람들은 각자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주어진 것에 감사하니까 더 희망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지금이 아쉬워서 안달복달하면서 욕심 내는 희망이 아니라, 내일은 더 좋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갖게 되는 거죠. 제 마음의 색깔도 그렇게 많이 바뀐 것 같아요.


루크 : 『내가 꿈꾸는 북유럽 라이프』속에 ‘북유럽 이민 신청자에게 바란다’라는 제목의 글을 썼는데요. 그때 경력 학벌 재산에 대한 이야기보다 먼저 언어를 말씀 드린 건, 저는 언어가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언어보다 더 도움 되는 게 있다면 개방적 마인드와 열린 시야라고 적었는데요. 그건 어느 곳으로 이민을 가든 그곳에 적응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자신이 변화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는 거죠. 그러려면 마음이 열려 있어야 돼요. 그래야 시야도 넓어지죠. 반드시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자신이 왜 북유럽에 가려고 했는지, 무엇이 목표였는지, 왜 가족과 상의해야 하는지 정리할 수 있을 거예요. 한국에서부터 여유를 찾는 훈련을 하셨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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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꿈꾸는 북유럽 라이프 루크,안젤라 공저 | 팬덤북스
《내가 꿈꾸는 북유럽 라이프》의 저자 루크와 안젤라는 부부로, 20대에 미국으로 가서 20여년 동안 살다가 북유럽 스웨덴으로 떠났다. 북유럽에서 그들은 한국과 미국에서 경험하고 익혔던 모든 생각과 가치관을 흔들고 바꿔 버릴 정도의 강한 임팩트를 맛봤다. 두 사람은 북유럽에서 느낀 충격과 감동을 단지 기억하기보다는 여러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서 이 책을 출간했다. 이민을 준비하는 자세부터 북유럽의 문화, 사회 등에 대한 소개, 이민을 가는 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또 북유럽 5개국의 이민 조건들을 나라별로 알려 주며, 저자들의 경험담과 팁도 함께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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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무현 “『만화 노무현』, 언론에게는 가장 불편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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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이라는 이름은 하나의 이름으로 해석되지 않는다. 그야말로 ‘논쟁적’인 이름이다. ‘사람’ 노무현은 없는데 ‘노무현’은 언제까지나 이야기되고 논쟁의 중심에 선다. 논쟁적이라는 것은 그 안에 무수히 많은 의견들이 합의되지 않은 채 혼재되어 있다는 뜻이다. 2015년, 서거 6주기를 넘긴 지금, 그의 이름만큼은 시간의 영향 밖에서 그대로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여기 노무현의 죽음을 둘러싼 당시 상황을 입체적으로 그린 ‘논쟁적’인 책이 있다. 『만화 노무현』펴낸 시사만화가 백무현은 “반드시 한 번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사안이란 생각이 들었”다며 책을 펴낸 이유를 밝혔다.


저자는 1996년 8.15 해방부터 전두환과 노태우 전 대통령들의 구속에 이르는 50년 현대사를 다룬 『만화로 보는 한국현대사』를 출간했고, 2005년부터는 박정희, 전두환, 김대중, 문재인 등 정치인들을 다루는 만화를 꾸준히 그렸다. 그리고 최근『만화 노무현』을 통해 노무현을 세상에 내보냈다.


책은 “제 만화는 알몸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알몸 드러내기를 좋아해요. 특정 인물 주변을 빙빙 돌며 하는 관찰이 아니라 그 사람에 대해 아주 자세히, 옷을 벗겨서 들여다보는 거죠. 화장이나 변장을 벗겨내고 싶어요.”라는 저자의 말처럼 과연 위험하지 않나 싶을 정도로 적나라하게 당시 상황을 담는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문제를 지적하고, 반대 의견을 제시하는 토론이 계속되면 좋겠다는 백무현. 시사만화가로서 늘 삐딱하게 세상을 보지만 역사가 발전한다는 사실을 믿는다는 저자를 따라 2009년을 살피다보면 오늘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달라져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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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게는 가장 불편한 책


“과연 논쟁적인 사람임을 부인할 수는 없을 터”(7쪽)라고 하셨어요. 과연 논쟁적인 책이 아닌가 묻게 됩니다.


그렇죠. 죽음에 대해 처음부터 끝까지 종합적으로 접근한 것은 처음 아닌가 싶어요. 그간 파편적인 보도만 있었죠. 씨실, 날줄을 엮어 보니 반드시 한 번 짚고 넘어가야 할 중요한 사안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논쟁적인 책이긴 한데 그에 비하면 홍보가 잘 안 되고 있는 건 아닌가 싶어요.(웃음) 놀라운 건 뭐냐 하면요. 책이 나오고 주변에 선물을 하면서 SNS에 좀 알리고 하라 했더니 다들 잘 안 해요. 이유를 물으니까 친구가 “너 같으면 하겠느냐?”는 거예요. 이 책을 읽었다고 하면 ‘친노’로 찍힐 텐데 누가 SNS에 올리겠느냐고요. 노무현을 지지했던 분들인데도 말이죠. 이 프레임이 아직 공포로 남아있구나 생각했어요.

 

일종의 자기 검열을 하게 되는 거군요.


네. 문성근 씨 같은 경우는 꼭 읽어야 할 책이라고 대놓고 홍보를 해줬어요. 고맙죠. 그런가 하면 다른 분들은 좀 무서워하고, 혹시나 친노로 찍혀서 정치적으로 어떤 피해를 보지 않을까 하는 생각부터 먼저 하는구나 했죠. 오히려 제가 미안하더라고요.

 

인터뷰 준비하면서 찾아봤는데 신간 소개조차 거의 다뤄지지 않았더라고요. 특히 조중동에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어요.


책에 언론을 모조리 비판해놓았거든요. 언론이 남을 비판하는 일은 잘하는데 자신이 비판당하는 꼴은 못 보는 것 같아요. 엘리트를 자처하는 분들이 특히 그렇고요. 조중동은 아예 소개할 것을 예상하지도 않았지만 진보 언론조차 거의 소개를 안 하는 거예요. 책에서 한겨레, 경향 등도 모두 비판했거든요. 결과적으로 언론에게는 가장 불편한 책이 된 거죠.


보통 작가들도 책 홍보 등을 위해 언론과 결탁을 해요. 그런데 그런 것을 전혀 생각 안 하고 닥치는 대로 그렸어요. 당시에는 언론 또한 아주 나쁜 공범이었기 때문이에요. 보도 안 해도 좋다고 생각했어요. 다른 홍보 채널도 많잖아요. 요즘은 딱히 신문 소개가 중요하지 않기도 하고요.

 

 

상징성을 가진 인물, 노무현


왜 노무현이었을까요? 주변에 벌어지는 이와 같은 반응을 예상할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에 집중한 이유, 노무현을 그려야 했던 이유가 궁금합니다.


어쩌다 대통령 시리즈를 그리게 됐는데요. 현대사 공부를 오래 하니 우리 현대사의 최정점에 있는 사람들은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대통령제라는 점도 있지만 대통령에게 과도하게 권력이 집중된 한국 정치 체제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는 우선 거리를 두는 게 어려웠어요. 정치적 자결을 한 분이기 때문에 다가서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어요. 노무현이라는 개인 한 명이 아니라 아주 독특한, 사회 정치적으로 가장 뜨거웠던 상징성을 가진 인물이기 때문에 그렇죠. 어렵더라고요. 2009년 김대중 대통령을 그린 후 노무현 대통령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서거하신 거예요. 막상 돌아가시니까 거리 설정에 고민이 많이 됐어요. 위인전으로 할 수도 없고, 냉혹하게 비판을 할 수도 없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 거예요.


용기를 냈던 것은 작년 세월호 사건 때문이었어요. 세월호를 보는데 2007년 태안 기름 유출 사건 때 노무현 대통령이 내려가서 진두지휘 했던 이미지가 떠올랐어요. 해양경찰청장을 혼내면서 수단과 방법 가리지 말고 기름을 막으라고 했잖아요. 노무현이었다면 세월호를 7시간동안 방치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노무현이란 사람이 정치적으로 극단의 평가, 부정적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세월호 사건을 보면서 노무현이라는 사람을 우리 시대가 불러내고 있구나 생각했어요. 그때 비로소 노무현을 그려야겠다고 생각했죠.

 

기획부터 실행까지 거의 5년이 넘는 시간이었네요.


5년 동안 가슴앓이가 있었던 거죠.

 

거리두기가 힘들었다고 하셨는데 이유를 자세히 말씀해주시겠어요?


노무현을 지지했죠. 때문에 거리두기가 어려웠던 거고요. 대통령 후보로 노무현이 결정된 후 당시 노무현 후보를 만난 적이 있어요. 호탕하고, 재미있게 말씀도 잘 하시고, 좌중을 압도하는 분이었어요. 또 흔한 이름이 아닌데 이름이 같으니까 서로 신기해하고 그랬어요. 개인적인 추억이 있죠. 이름에 얽힌 애틋함도 있고 그렇습니다.(웃음)

 

노무현의 과와 실에 대해 다양한 평가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평가를 어떻게 담아내려고 하셨나요?


이번에 나온 1권은 노무현의 죽음에 관련된 세력들을 고발한 내용을 담았고요. 2권은 ‘김대중과 노무현’이라는 가제가 붙었는데요, 그 두 분의 관계를 살펴보려고 해요. 3권에서 그런 역사적 평가를 다뤄보려고 합니다. 과와 실은 반드시 가려내서 알려드리고 잘못 알려진 부분도 바로 잡아서 노무현의 진심이 무엇이었는가를 자세하게 알려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에요.

 

“노무현을 불러내되 ‘노무현 이야기’는 않기로 한다”(7쪽)고도 하셨잖아요.


네. 1권에서는 그렇죠. 2, 3권에는 ‘노무현 이야기’가 좀 나올 겁니다. 나올 수밖에 없고요.

 

이번 작업을 하시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제가 그림을 잘 못 그려요.(웃음) 그래서 좀 힘들었어요. 사실 노무현의 죽음을 다루다보니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더라고요. 관점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 고민이 컸어요. 가장 마지막 부분에 부엉이바위에 오른 장면이 있는데요. 장면 처리를 어떻게 할지 고민도 많이 됐고요. 부엉이바위에 올라서 그분이 2분 동안 무슨 생각을 했으며 부엉이바위에서 자신의 집, 마을, 자신이 살아온 봉화 마을을 바라봤을 때 그 심경이 어땠을지 같이 헤아리다보니 정말 힘들었어요. 부엉이바위에 올라섰을 때의 그 노무현, 얼마나 가련합니까. 그 절망적인 노무현이 떠올라서 힘들었어요. 이 장면을 어떻게 처리할지 보름동안 고민했어요. ‘운명이다’라는 구절은 유서 첫 부분에 나오는데요. 뒷 장면으로 뺀 것도 그런 부분이죠.


산 사람이 노무현의 마음속으로 들어갈 수는 없겠죠. 그렇지만 빙의를 한 번 해보자고 다짐한 후 그 정도로 절망적인 순간을 고민하는 게 보름이 걸리더라고요. 그래서 책 출간이 늦어졌어요.(웃음) 출판사 재촉을 많이 받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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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의 독자를 대상으로 한 책이니만큼 객관성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을 것 같거든요.


바로 그런 점 때문에 노무현의 등장, 노무현의 웅변 등을 자제시켰어요. 노무현 위주로만 해버리거나 변명 내지는 해명 조로 가버리면 객관성이 좀 떨어질 우려가 있으니까요. 적극적으로 설명해줬으면 한 노무현 지지층의 아쉬움도 있겠죠.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이 호소력이 더 있잖아요. 원래 침묵이라는 것도 굉장히 큰 호소가 될 수 있으니까요.

 

중간 중간 연설 내용을 다루셨는데요, 그것은 어떤 의도였나요?


그것은 책의 내용과 관계없이 독자들에게 도움을 주려는 의도에서 넣었어요. 연설만 봐도 그 사람이 살아온 길을 알 수 있으니까요.

 

취재를 무척 많이 하셨다고 들었거든요. 자료 준비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나요?


노무현 대통령 측 분들은 취재에 쉽게 응해주셨는데요. 이명박 대통령 쪽 당사자들과는 연결을 많이 시도했지만 잘 안 됐어요. 그럴 수밖에 없었겠죠. 결국은 청와대 출입기자, 검찰 출입기자들을 많이 만나서 취재를 했죠. 그분들이 제공해준 정보도 꽤 많았어요. 당시 검찰 분위기도 알려주고요.


당시 검찰 중수부장이던 이인규가 출입기자 오찬 자리에서 엘리엇의 시구 ‘4월은 잔인한 달’을 인용하며 수사 본격화를 암시했다는 내용(115쪽)도 그렇게 알게 된 것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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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진보하는가?


시사 만화가로서 보는 세상은 좀 다를 것 같습니다. 의구심 드는 일들이 많아 여쭙는 것인데, 역사는 과연 진보하는 것일까요? 책에도 비슷한 구절이 나오잖아요. “세상을 조금이라도 바꾸었다고 믿었는데, 돌아보니 원래 있던 그대로 돌아가 있었어”(245쪽)라고요.


그러니까요. 요즘 보면 역사가 발전한다는 말이 과연 맞는 것인지 의아할 때가 많죠. 노무현의 그 말은 저도 참 놀랐어요. 김대중은 국민보다 반 보 앞서가야 한다고 했잖아요. 그래야 국민과 함께 호흡하며 갈 수 있다고요. 그런데 노무현이란 사람은 몇 십 보를 달려가 버리니까 국민들과 맞지도 않고 그랬죠. 이런 분들이 어찌 보면 선구자죠. 이들로 인해 역사도 발전하고요. 지도자가 똑같이 발 맞춰 가면 그 사회는 발전할 수가 없겠죠. 요즘은 오히려 뒤로 가고 있으니까 희한한 거죠. 역사가 과연 발전하고 있느냐고 생각하게 되고요. 화가 나기도 해요. 특히 젊은 층들은 더욱 그렇겠죠.

 

젊은 사람들이 이런 의구심을 던지면 앞선 세대가 늘 하는 말이 있어요. 그래도 예전보다는 나아졌다고요.


예전에 막걸리 보안법이라고 했던 것만큼 무서운 사건이 지금 벌어진 국정원 해킹 사건이거든요. 모든 정보를 국가 기관이 관리하고, 들여다보고 있다는 거예요. 알몸을 매일 들여다보는 거죠. 이것은 실질적인 고문 못지않게 굉장히 무서운 겁니다. 개인의 사소한 모든 것까지 다 들여다본다는 건 무척 치명적인 사건이죠. 이런 일들을 보면 후퇴해도 너무 후퇴했다고 봐요.


시사만화가로서는 늘 삐딱하게 세상을 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프랑스 혁명 같은 것들을 보면서 역사가 발전한다는 사실을 믿는 거예요. 그때도 혁명 후 반동이 일어나고 공화정이 서는 과정들이 있었잖아요. 엎치락뒤치락하면서도 결국은 시민이 승리하는 과정이었어요. 역사가 영원히 후퇴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크게 보아 역사가 발전한다는 것을 믿는 거예요.

 

그야말로 나비효과처럼 아주 작은 사건 하나가 엄청난 후폭풍을 몰고 오는 경우도 많고요. 그것에 휘말리는 개인도 반드시 생기게 마련이잖아요. 역사적 인물들을 다루다보면 아무래도 그런 장면을 많이 접하시죠?


지금처럼 후퇴하는 상황 속에서 가장 안타까운 것이 오포세대라고 하는 젊은 세대들이에요. 지금 젊은 층들이 좌절하고 엎어지는 게 가장 안타까워요. 정치인들이 나쁜 짓을 하는 거죠. 젊은이들이 꿈, 욕망을 한 번 피워보지도 못하고 무너지잖아요. 역사는 후퇴할 수 있는데, 그 자체가 많은 젊은 층들에 상처를 주고, 생채기를 내고, 좌절하게 하니까 그게 무척 화가 나는 부분이죠.

 

그 상황이 장기적으로 지속되었을 때 한 세대가 파편화되거나 정치적으로 냉소하게 되는 악순환도 벌어져요.


물론 아쉽기도 해요. 유흥가를 가득 채운 젊은이들을 보면 저 친구들 중 5%만 광장에 나와도 달라질 텐데 싶고요. 아르바이트에 학업에, 그럴 시간이 어디 있느냐고 할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한 번 정도만 광장에 나와도 바뀔 수 있을 텐데 잘 안 나오더라고요.

 

갈등하는 사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합니다. 계층 간, 세대 간, 이념 간 갈등이 늘 첨예하게 대립중이에요. 이런 사회, 어떻게 보세요?


사회 규모가 커지면 그만큼 갈등도 많아지는 것이 당연하죠. 사실 갈등은 세상을 바꾸는 에너지가 될 수도 있어요. 새로운 창조가 가능해지죠. 그런 갈등을 누가 해결해야 하느냐면 정치 영역일 텐데요. 한정된 자원을 배분해야 하는 게 정치니까요. 그러니 정치가 굉장히 중요해요. 저는 국회의원 수를 늘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재벌 권력을 견제할 수 있는 건 국회의원 말고는 없거든요. 재벌 권력이 가장 탐욕스럽잖아요. 4대강, 부동산 등 모두 재벌의 탐욕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이에요. 여기에 관료와 언론이 함께 이익을 얻어가고요. 모든 법안도 재벌을 통해 만들어지죠. 견제할 영역은 국회의원밖에 없어요.


홍종학 의원이 신혼부부에게 집 한 채를 주자는 주장을 했잖아요. 너무 좋더라고요. 그걸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하는데 자세히 보니 정말 가능한 정책이에요. 오포세대에게 당장 중요한 것이 집이잖아요. 집 마련하느라 인생을 다 허비하잖아요. 50대까지 집 때문에 허덕이다가 끝나요. 이런 식의 문제와 갈등을 줄이는 것이 국회고 정치인이에요.

 

 

내 만화는 알몸이다


자신의 만화가 말하는 단 한 가지는 무엇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요?


제 만화는 알몸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부분을 주변에서 만류하기도 하는데요. 저는 알몸 드러내기를 좋아해요. 특정 인물 주변을 빙빙 돌며 하는 관찰이 아니라 그 사람에 대해 아주 자세히, 옷을 벗겨서 들여다보는 거죠. 화장이나 변장을 벗겨내고 싶어요. 그러면 대상과 싸움이 벌어지기도 하는 일도 왕왕 있죠. 에둘러 해야 저도 안 다치고 팬도 많이 확보되는데, 지금까지 그렇게 못했어요.(웃음) 너무 알몸까지 드러내버리니까요.


가령 친일파 인물을 다룰 때 ‘친일을 했다’ 정도만 가야 하는데 젊은 시절부터 어떻게 친일을 했으며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죄다 이야기를 만드니까 당사자들은 당혹스럽죠. 박정희 대통령 만화를 냈을 때 편집국으로 전화를 한 통 받은 적이 있어요. 나이 지긋하신 분이 좋은 책을 내주셔서 너무 감사하다고요. 그런데 다음날 또 전화가 왔어요. 이번에는 험악한 욕을 마구 쏟아내는 거예요. 책을 안 읽고 전화를 했다가 읽어보니 위인전이 아니니까 화가 난 거죠. 참 코미디죠.(웃음) 평가를 내리는 것은 독자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취할 부분은 취하고 버릴 것은 버리면 돼요.

 

이명박 대통령의 자서전이 나왔을 때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등 화제가 됐었어요. 그에 비한다면 이 책에 대한 관심은 좀 덜한 것 같은데요. 아쉬운 점은 없으신가요?


없어요. 『대통령의 시간』 같은 경우 이명박 대통령 지지층뿐 아니라 이명박 대통령의 이야기가 궁금한 사람들도 다 사서 봤더라고요. 탐구하고 논박해보려고 사서 본 분들도 의외로 많았어요. 저는 책이 출판되었다는 것을 훌륭하게 생각합니다. 매체를 통해 주장하는 것이고 이것이 폭력적인 방법은 아니잖아요. 폭력이 아닌 책들은 다 훌륭하다고 봐요. 선택은 독자, 국민의 몫이니까요. 책이라는 매체를 죽이면 안 되잖아요. 가령 전두환도 책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거고요. 그런 것은 권장될 부분이에요. 이명박 대통령 자서전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하는 일들은 참 좋은 거예요. 그 자체를 나쁘게 보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대통령들이 책을 많이 내야 해요. 변명이든 회고록이든 기록을 많이 남겨야만 후대에 평가도 하고 연구할 수 있어요. 좋은 깨달음을 주는 책들이기 때문에 사람에 따라 좋은 책, 나쁜 책을 나눌 수 있는 건 아니라고 봐요. 모든 책은 필요하다고 생각하니까요. 세상에 나쁜 책은 없다, 제 지론은 그겁니다.

 

그 말씀은 이 책 『만화 노무현』을 꺼리는 사람들에게도 해주고 싶은 말이겠군요.


그렇죠. 설령 정치적 입장이 다를지라도 이 책을 보고 반박을 하거나 의견을 전할 수 있잖아요. 의견을 남길 창구는 요즘 많으니까요. 문제를 지적해도 좋아요. 그러면서 독자 사회나 지식인 사회의 층이 두터워지고 토론이 계속된다면 좋겠죠. 독서문화도 건강해지는 거고요. 일반적으로 그렇게 되는 게 좋다고 봐요.

 

『만화 노무현』의 완결 시기에 대해서 앞으로의 계획과 함께 들려주세요.


3권 완간은 내년 2월 정도가 될 것 같아요. 지금도 계속 취재하고 있고요. 텍스트만 완성되면 금방 하는데 과정이 무척 복잡합니다. 워낙 공정이 복잡하니까 나름대로 고민이 많습니다.(웃음)


일단 노무현 대통령 끝내고 이승만 대통령까지 다룰 생각이에요. 그렇게 대통령 시리즈를 마감한 후에는 외국의 대통령들을 다뤄보고 싶어요. 베트남의 호찌민 같은 분들을 다뤄도 재미있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때가 좋아지면 북한도 다뤄보고 싶지만 아직은 때가 아닌 것 같습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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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노무현 1백무현 저 | 이상media
노무현 대통령의 짧은 유서와 죽음은 ‘침묵’이다. 때때로 침묵은 장황한 연설이나 구차한 변명보다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하고 더 큰 울림을 준다. 그 침묵의 간극을 메우고 그의 마지막 하루가 있기까지를 만화로 재구성했다. MB정권이 들어선 다음 도대체 그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이 만화는 더 많은 독자들에게 노무현의 삶과 죽음, 그리고 그가 간절히 꿈꾸었던 ‘사람 사는 세상’의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다. 《만화 김대중》, 《만화 박정희》로 주목받았던 시사만화가 백무현이 그리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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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진 “여성주의는 하나의 관점, 세계관, 인식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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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혐오’ 이슈가 우리 사회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팟캐스트 ‘옹달샘과 꿈꾸는 라디오’에서 개그맨 장동민이 내뱉은 여성 비하 발언이 대중의 비난을 받았는가 하면, 서바이벌 프로그램 ‘쇼미더머니’에 참가한 그룹 위너의 송민호가 한 랩 가사가 문제가 되기도 했다. 방송뿐 아니다. 인터넷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의 메르스 갤러리(일명 ‘메갤’)에서는 ‘김치녀’, ‘보슬아치’ 등 ‘여성’을 덧씌우던 혐오 프레임을 그대로 남성에게 씌우는 이른바 ‘미러링’으로 큰 화제가 된 바 있다.


‘지금, 여기’에서 여성은 어떻게 대상화 되고 있나. S라인, 하얗고 깨끗한 피부, 유행하는 화장법은 물론이고 조신함, 잘 웃는 성격, 분위기를 맞추는 능력 등 ‘여성적’이라고 하는 시선들은 얼마나 오래된 것인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광범위하게, 뿌리 깊게 우리를 지배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차별’이니 ‘여자가 부럽다’느니 하는 말들은 또 얼마나 빈번하게 문제를 은폐하고 있는지.


『여성 혐오가 어쨌다구?』에서 ‘언어가 성별을 만든다’라는 제목의 글을 실은 ‘메타 젠더주의자’ 정희진은 이에 대해 “지금 벌어지는 일련의 현상을 낡은 새로움이라고 본다”(98쪽)고 말하고 있다.

 

가부장제 사회가 작동하는 방식 중 하나는, 성별 이슈에는 ‘과거가 없다’는 인식이다. 누군가 성별 이슈를 꺼낸다면 페미니즘과 관련한 책도 충분히 보지 않고 여성의 역사도 모른 채 자신이 처음 제기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처음 페미니즘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면 여성이든 남성이든 ‘페미니스트’든 모두, 자기 혼자 ‘이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선구자 의식과 동시에 피해 의식과 울분을 갖기 쉽다. 여성의 경험은 공유되지 않고 여성의 역사는 전수되지 않기 때문이다.(97쪽)

 

정희진은“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인식은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가를 아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쓰는 모든 언어를 의심해야 합니다.”라고 지적한다. “여성의 삶을 드러내는 언어는 없다”(93쪽)는 것이다. 이것을 인지하는 것, 이 무지 상태를 벗는 것이 다음 단계로의 이동을 가능하게 할 사다리가 될 터다. 언어가 권력자의 도구로 사용되어 왔음을 명징하게 인식할 때 비로소 새로운 실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여성 개인들의 성장과 행복, 건강을 바”란다는 정희진. 그의 글이 주는 성찰을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한다면 “여성의 경험”과 “여성의 역사”는 전수될 수 있을 것이다. 변화는 가능하고, 우리의 지향점은 좀 더 가까워질 것이다. “새로운 인식이야말로 최고의 성장이고, 치유이고, 저항”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여성학과 여성주의는 다르다


얼마 전 <씨네21> 칼럼에서 ‘계급문제’를 ‘성별문제’로 보지 말라고 하셨어요. 대중의 인식 오류, ‘무지’로 인해 선생님께서 겪는 피로감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책에서도 물론 그렇고요. (“우리는 언제나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같은’ 억압에 반복해서 대응해야 하고,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야 한다. 나는 이 고통을 거부한다.”(98쪽)) 새로운 이야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시작점에 서게 되는 근본적인 문제는 뭘까요? 언제까지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어디서부터, 무엇부터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무지’는 개인과 공동체의 적극적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계급과 성별과의 관계는 서로 교직(交織)되어 있어, 사실 간단히 말할 수는 없는 이슈죠.


여성의 경험, 역사, 지식이 축적되지 않는 것은 기본적으로 성별 제도가 사회정치적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에서, 여성주의 지식을 무시하기 때문입니다. 남녀 모두 심지어 자신을 ‘페미니스트’로 정체화하는 이들조차 여성주의는 공부하지 않아도 저절로 안다는 인식이 깊습니다. 실은 가장 복잡한 사유가 필요한 영역인데 말이죠. 지식 자체에 위계가 있잖아요. 여성 관련 지식은 모든 학문 분야에서 주변화되어 있지요. 예를 들어, 사회학에서 가족사회학과 노동사회학의 위상이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스스로를 ‘메타 젠더주의자’라고 하십니다. “페미니즘의 사고방식은 모든 인식론의 기본”(94쪽)이라고 하셨고요. 페미니즘의 시선으로 사회를 바라보고, 이해한다는 것은 선생님께 어떤 의미가 있나요? 책의 가장 마지막 문장과도 연결되어 있을 것 같아요. (“‘을’의 위치를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 약한 자가 되어 성실한 인간으로 사는 것이 페미니스트로 사는 것보다 더 어려운 시대가 되었다. 나는 그것이 같은 삶이기를 바란다.”(116쪽))


일단, 여성학(gender studies, feminist studies, woman`s studies)도 매우 여러 가지이고, 여성학과 여성주의는 좀 다르지요. 여성주의는 국문학, 영문학처럼 하나의 분과 학문이 아닙니다. 여성주의는 마르크스주의나 자유주의처럼 하나의 관점, 세계관, 인식론입니다. 그러므로 여성주의자는 모든 분야에 자기 관점을 적용시킬 수 있습니다. 성별, 계급, 인종 등의 시각에서 중립적인 지식은 없습니다. 여성주의자는 자기 입장을 밝힐 뿐입니다. 여성주의 수학, 여성주의 의학, 여성주의 정신분석, 여성주의 핵물리학도 있습니다. 여성학은 다(多)학제, 간(間)학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다른 학문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국문학 하시는 분들은 일본어, 영어를 다 하시죠. 사회와 무관한 학문은 없기 때문입니다.


대개 여성주의를 ‘여성 문제’, ‘남녀 문제’로 한정합니다. 물론 젠더는 성차별과 성별 이슈를 포함하며 동시에 이를 넘어서는, 그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저는 젠더를 사회 구성 원리, 대안적 세계관(‘다른 목소리’)이라고 생각합니다. 젠더를 딛고 젠더를 넘어서(meta) 모든 분야에 여성주의‘적’ 사유 원리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당연히 여성주의는 성별 문제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평화학도 스펙트럼이 대단히 넓습니다. 기존의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서부터 ‘힐링’ 담론까지 모두 평화학이죠. 저는 여성주의 관점의 평화학을 추구합니다. 그러므로 제게는 여성학 연구자나 평화학 연구자는 같은 말입니다. 특정 지식 분야를 정체성으로 사고하는 것은 어이없는 일입니다. 물론 정치적 맥락에 따라 ‘선언’으로서의 의미가 충분히 있습니다만, 기본적으로 정체성의 정치는 여성주의의 출발이지 목적이 아니며 극복해야 할 사유입니다.

 

 

따로 그리고 같이

 

어떤 공간에서 벌어지는 논쟁들을 보면 서로 아예 다른 기준에서 시작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이야기 진행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여성혐오’라는 주제에 관해서 더욱 그렇죠. 개념 안에 포함된 다양한 결을 따져보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에요.


사실, 저는 그런 방식의 ‘논쟁’에는 관심도 없고, 굳이 끼어들고 싶지 않습니다.(웃음) 논쟁이라고 불리는 것들이, 다 논쟁이 아닙니다. 저는 한국사회에서는 논쟁을 할 수 있는 기본 전제가 굳건하게 형성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논쟁’이나 ‘논객’이라는 말 자체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논쟁, 대화, 토론에 대해 우리 사회는 심각한 오해를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처럼 ‘여성혐오’라는 주제에 대한 관심이 컸던 적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여성혐오가 어쨌다구?』와 같은 책도 많이 읽히고 있고요. SNS를 통한 담론의 장이 적극적으로 형성되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 변화의 시작이라고 보시나요?


일단, 성차(별)에 대한 여성들의 상황 인식이 변화한 데 비해, 남성들은 어리둥절함과 무지를 공유하고 있는데, 이러한 상황은 기득권층(남성)의 (언어)폭력으로 전화될 확률이 크죠. 여성에 대한 혐오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비하일 때, 이에 항의하는 움직임(‘남성에 대한 혐오’)은 저항과 분노의 표현으로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매체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그야말로 미디어가 메시지입니다. 오프라인에서라면 불가능한 일들이 많죠. 제2의 자아가 가능한 공간이니까요. 그러나 개인적으로 저는, 이 문제와 별개로 SNS라는 매체 자체에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울어진 땅’(107쪽)을 인식하는 감수성은 개인만 노력해서 되는 건 아니잖아요. 사회 전체가 이른바 ‘민주주의’를 좀 더 적극적으로 지향해야 하지만 우리의 ‘지금, 여기’(97쪽)는 결코 그렇게 보이지 않습니다. 여기서 비롯된 사람들의 냉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가요?


우리 사회에서는 ‘이미’ 민주주의, 진보, 근대성… 이런 개념에서 젠더는 제외되어 있습니다. 구조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구조를 작동시키는 것은 사람입니다. 저는 ‘구조적’ 노력보다 여성 개인들의 성장과 행복, 건강을 바랍니다. 그것이 구조와 개인, 미시와 거시, 일상과 정치의 구분을 깨는 첫걸음입니다. ‘피해자’가 ‘가해자’를 선도할 필요는 없습니다. 따로 그리고 같이. 이 두 가지를 전략적으로 구사해야죠. 자신에게 적대적인 상대편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가장 안타깝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남성이든 여성이든 ‘이상한 사람’을 이해하는 데 인생을 낭비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사실, 우리 사회에서 성역할 규범을 자원으로 활용하는 여성이 아니라면, 남성의 존재가 크게 인생에 도움이 되는 여성은 많지 않습니다. 이런 말은 중년 여성들이 가장 많이 하시죠. 50대 남성이 필요한 세 가지는 아내, 와이프, 마누라. 50대 여성이 필요한 세 가지는 딸, 돈, 개라고 하는 말도 있잖아요.

 

 

우리가 쓰는 모든 언어를 의심해야


‘표현이 자유’라는 오해에 대한 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권력자의 도구’(104쪽)라고까지 말씀하셨어요. ‘표현하는 사람이 누구인가’, 자신의 언어가 있는가를 곰곰이 따져보는 것이 언제까지나 중요할 것 같습니다.


이 문제가 모든 권력관계의 핵심입니다. 사회적 약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언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회운동은 그 언어를 만들어가는 과정이지요. 이 역시, 제 말이 아니라 파농의 말입니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인식은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가를 아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쓰는 모든 언어를 의심해야 합니다. 흔히 이런 것을 인문학이라고 하지요. 사회적 약속으로 언어는 언제나 과도적이고 임의적이며 매복할 태세를 갖추고 있습니다. ‘지식인’은 그것을 좀 더 예민하게 인식하는 사람 아닐까요? 따라서 지식인의 조건은 ‘지식(정보)’이 아니라 윤리와 감수성이죠.

 

피로감에도 불구하고, ‘다시’, 꾸준히 발언하게 되는 데에는 책임감도 있으시겠죠? 혹은 최소한 ‘어떤 역할을 했으면 한다’는 선생님 자신의 의도가 있으신지 들려주세요.


저는 그저 자기 삶에 충실하고 싶은, 성실하고 싶은 개인일 뿐입니다. 저는 ‘건강 약자’입니다. 제 문제로 우리 사회와 저항하기에도 힘겨운 사람입니다. 제가 해야만 하는 어떤 역할이 있다는 그런 생각, 전혀 없습니다. 애초부터 저는 그런 자아를 아예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사명감? 이건 더욱 당황스럽습니다. 시민의 상식 차원에서 실천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사명’이나 ‘책임감’, ‘나는 누구이므로 이래야 한다’라는 것은 굉장히 숙고해야 할 단어라고 생각합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하자면, 여성들은 역할을 해도 욕먹고, 안 해도 욕먹는데, 기왕이면 (편하게 역할을) 안 하고 욕먹는 게 낫지 않을까요?

 

이제 막 자신의 사회적 위치와 그 역사성을 깨달은 사람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공부의 의미는 다양합니다. ‘공부’하세요, 인생에서 남는 것은 공부밖에 없습니다. 새로운 인식이야말로 최고의 성장이고, 치유이고, 저항이라고 생각합니다.

 

 

*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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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보라,임옥희,정희진,시우,루인,나라 공저 | 현실문화연구(현문서가)
이 책은 최근 인터넷과 방송을 매개로 촉발된 혐오 전쟁부터, 대학 캠퍼스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역차별 논쟁, 페미니스트와 성소수자 들 안에 잠재된 혐오, 사회 지배적인 혐오를 내재한 자기혐오 등 다양한 혐오의 얼굴들을 드러낸다. 그러는 동안 혐오는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혐오의 대상은 누구인지, 혐오라는 강렬한 감정의 기능과 효과는 무엇인지, 우리는 어떻게 혐오로부터 나아갈 수 있는지를 묻고 답한다. ‘여성 혐오’를 입구 삼아 우리가 진정 도달하고자 하는 것은 ‘혐오 사회’의 민낯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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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은 우리의 일상을 많이도 바꾸어 놓았다. 채팅, 쇼핑을 넘어 배달음식 주문, 부동산 중개까지 오프라인 기반의 다양한 서비스들이 모바일에 새 둥지를 틀었다. 기다렸다는 듯 수십만의 사용자가 모이고 있다. 모바일 환경이 스타트업 창업가들에게 무한한 기회를 제공하는 것 역시 더 이상 새로운 일이 아니다. 다양한 인적, 물적 자원이 스타트업 앞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많은 전문가, 투자자들이 기회가 열려있다는 사실에 대해 말하고, 성공하는 인재를 찾아내느라 애쓴다. 그러나 모두가 ‘성공’하는 스타트업 창업가가 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사실 대부분이 ‘실패’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다음을 꿈꾸고, 다시 또 도전한다. 넥스트 마크 주커버그를 꿈꾸며.


『권도균의 스타트업 경영수업』의 저자 권도균은 이니텍과 이니시스를 창업해 보안, 전자 지불 분야 국내 1위 기업으로 성장시킨 후 최고 가치로 매각해 창업의 신화로 불리고 있다. 이후 스타트업 인큐베이터로 변신, 프라이머를 설립했고, 현재 프라이머를 통해 스타트업 발굴과 투자, 교육에 힘쓰고 있다. 권도균은 말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더 일찍 창업의 경험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이다. 또한 그 과정에 배움이 있어야 한다고 반복해서 말했다. “포커스가 굉장히 중요하다, 본질에 집중을 해야 한다”는 그는 쏟아지는 스타트업 창업가들에 비해 스타트업에 맞는 경영 방식에 대한 교육은 거의 없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기존의 경영학 지식들은 스타트업이 가진 “백지상태”라는 부분을 장점으로 충분히 승화시키지 못한다. “6년 가까이 수천 명의 스타트업 창업가들을 만나 수만 시간을 그들과 함께 고민하고 씨름하는 과정”에서 그가 “배우면서 쌓아온 지식을” 책에 담고자 한 가장 큰 이유였다.

 
질문을 끝까지 물고 늘어지면 새로운 기회가 열린다고 말하는 권도균. 낙관적이고 주도적인, ‘성공하는’ 스타트업 창업가들이 더 많이 나오고, 그들이 씨앗이 되어 큰 나무로 자라나길 바란다는 그의 멘토링을 통해 앞으로 더 많은 스타트업들이 재미있고 혁신적인 서비스를 만들어 우리에게 제공해주길 기대한다. 그들을 통해 세상이 더 편리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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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트업, 무한한 가능성


“스타트업 경영은 배움의 길”(28쪽)이라고 하셨어요. 무엇보다 기초가 중요하다는 걸 강조하시는 것 같습니다. 강조한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놓치고 있는 부분이라는 의미도 되겠죠.


어차피 창업해서 성공하는 사람이 소수라고 전제한다면 나머지 실패하는 사람들이 창업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것이 소수의 성공을 위해 다수가 희생하는 모델이라면 말이 안 된다 생각했어요. 흔히 실패로부터 배운다고 하지만 모두가 성공을 추구해요. 그렇게만 해서는 배울 수가 없어요. 실패를 해도 배우는 부분이 남아야 해요. 성공만 추구하면 실패하고도 배울 게 없어지는 경우를 종종 보죠.

 

애초에 창업자들은 실패를 생각하지 않잖아요. 당연히 성공할 것이라 생각하고 시작하니까요.


그러나 이성적으로는 실패하더라도 배움의 과정이 있다는 사실을 가지고 있어야 해요. 본능과 감정은 성공을 추구하더라도 말이에요. 가르치는 것 역시 성공의 방법만 가르치는 게 아니라 이 과정을 통해 뭘 배워야 할지를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배움 중에 아주 중요한 것이 ‘내가 스티브잡스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아는 것이에요. 굉장히 중요합니다.(웃음) 모든 사람이 스티브잡스가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그 사실을 아는 것 자체가 인생에 아주 중요한 배움이라는 거예요. 해보기 전에는 모르는 거니까요.

 

그래서인지 창업의 경험이 중요하다, 대학 필수 이수 과정을 두자고 주장하셨죠? 이 부분이 눈길을 끕니다.


같은 거죠. 창업은 경험이고 경험을 통해 배워서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게 중요해요. 내가 창업가가 아니라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죠. 그걸 알면 그 다음에는 주어진 현실에서 자신의 길을 찾을 텐데 혹시 내가 제2의 스티브잡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계속 갖고 있는 한 자신의 현재에 최선을 다하며 살지 않거든요.


삶의 방향을 제대로 잡는 거예요. 창업이 아니라 예술가나 공무원, 또는 직장인으로 위대한 일을 할 수도 있는데 말이죠. 그래서 젊었을 때 창업의 경험을 해야 한다는 거예요. 실패해도 충격이 덜한 시절에 해야 하니까요.

 

스타트업만의 특징, 장점은 무엇일까요?


원점에서 시작한다는 점이요. 대기업의 경우 이미 가진 게 있잖아요. 이미 제품이나 고객이 있고 굴러가는 비즈니스가 있어요. 스타트업은 진짜 백지상태라는 거죠. 완전히 밑그림부터 다시 그릴 수 있는 거예요. 경영학 등에서 말하는 것과는 다르죠. 기초부터 시작할 수 있어요. 많은 사업들이 한계가 이미 정해져 있어요. 결정되어 있어요. 그런데 근본적으로 처음부터 세워나가면 그 한계가 끝이 없는 거죠. 무한한 가능성을 내포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죠. 물론 하면서 자꾸 현실에 닥치고 역량이 부족하면 한계가 새롭게 정해지겠지만 처음에는 백지상태라는 것이 스타트업의 아주 다른 점이에요.

 

프라이머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스타트업 인큐베이팅에 힘쓰고 계시는 이유로 봐도 될까요? 프라이머의 기획 의도를 말씀해주세요.


프라이머는 투자회사니까요. 주주들도 있고요. 이 역시 하나의 회사니까 투자해서 주주에게 이익이 돌아가게 하는 것이 기본이죠. 그러나 그것이 제1의 목적은 아니고요. 가장 큰 목적은 후배 창업가들을 돕는 것이죠. 우리도, 주주들도 다 창업을 해봤던 사람들이니까요. 잠재성이 있고, 조금만 도우면 잘할 수 있는 사람인데 아무도 안 도와줘서 헤매다가 실패하는 경우도 있거든요. 또 더 커질 수 있는데 멈춰있는 경우도 있고요. 자본 등 여러 한계가 있잖아요. 그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무너질 수도 있는 거니까 그들을 도와서 잠재력을 최대화하도록 만드는 게 목적이었어요. 교육 사업이에요.(웃음)

 

추천사 중에도 이런 책이 창업할 때부터 있었으면 훨씬 덜 힘들었을 거라고 한 내용이 있었어요.


저도 그랬으니까요. 좌충우돌하고요. 그때 누가 뭐라 했으면 말을 안 들었을지도 모르죠. 그렇지만 옆에서 잘 도와주고 이끌어줬다면 또 다른 결과를 낼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가장 아쉬운 것은 학교 교육


국내 창업 환경이라는 것이 미국이나 유럽 같은 선진국과 달라 아쉬운 점도 많이 있을 것 같은데요.


환경에 대해 조금 다르게 보는 것 중 하나가 근원적으로 볼 때 가장 아쉬운 것은 교육인 것 같아요. 초, 중, 고등학교의 교육 과정이 우리가 생각하고, 사고하는 능력을 키울 수 없도록 해요. 경영의 핵심이 바로 상황을 판단하고, 의사 결정하는 것이거든요. 창업자가 어떤 사고를 하고, 어떤 것을 해석하고, 판단하는 게 경영의 모든 것이에요. 우리는 어려서부터 그렇게 교육 받지 않잖아요. 암기 위주, 좋은 점수만 얻으면 좋은 평가를 받는 교육을 20~30년 동안 받아왔기 때문에 문제죠. 그건 창업 세계에 들어가서 보면 독이거든요. 창업은 진짜 그라운드에 올라가는 거니까요.


미국이 다 좋은 것은 아니지만 교육 과정 중에 그런 것들이 있어서 판단력, 생각하는 능력, 이런 것들이 뛰어나요. 때문에 어떤 목표가 생기면 훨씬 더 뛰어난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 같습니다.

 

의외의 지적입니다. 벤처기업을 주식 투자의 대상으로만 보거나 창업 후 실패한 기업들에 대한 보호가 거의 없는 상황 등을 지적하리라고 예상했어요.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아쉬운 점도 있죠. 스타트업이나 벤처 생태계에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생태계가 온실 밖에서 만들어져야 한다는 건데요. 너무 온실 속에서 정부 지원처럼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생태계에서 못 벗어나고 있어요.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에요. 중요한 일이긴 하지만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소위 민간 생태계들이 자라나지 못하는 거죠. 장기적으로 볼 때는 좋은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입니다.

 

청년 창업가들에게 과도하게 빚을 권하는 일부 정부 기관을 비판하신 부분도 있었고요.


몇몇 기관은 빚을 권해요. 20대 청년들은 빚이 뭔지 모르거든요. 1억이 어떤 돈인지 모르죠. 직장 생활하면서 1억을 모으려면 얼마나 걸리는지 몰라요. 그런데 그런 1억이란 돈을 사업하면서 쓰면 진짜 금방 없어지거든요. 그런 건 문제예요, 진짜. 이에 대해서는 여러 번 공개적으로 비판하기도 했어요.

 

실질적인 조언들이 굉장히 많아요. 스타트업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무엇이라고 알리고자 했나요?


첫 번째가 빚이에요.(웃음) 빚을 내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다른 엉뚱한 짓을 안 할 수밖에 없어요. 돈이 있으면 엉뚱한 짓을 해요. 다 안 해야 할 일을 하는 거거든요. 뭐든 그렇잖아요. 리소스가 부족하면 창의적이 되잖아요. 있는 돈 가지고, 또는 없는 돈 범위 내에서 어떻게든 원래 하려던 일을 열심히 하다 보면 선택과 집중을 할 수밖에 없어져요. 사실 그것이 경영의 원리예요.


조금 관념적 조언을 하자면 포커스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거예요. 본질에 집중을 해야 해요.

 

오랫동안 봐오면서 가장 흔히 하는 엉뚱한 짓은 무엇이 있던가요?


20년 뒤에 필요한 일을 지금 준비하는 거죠.(웃음) 예를 들면 어떤 서비스를 만들면서 지금 회원이 100명도 안 됐는데2,000만 명 회원을 대비해 빅데이터, 데이터베이스, 이런 것들을 막 설계하고 다 미리 만들어놓는 거죠. 그거 만든다고 해도 천 명 회원이 안 되면 데이터베이스 자체가 필요가 없잖아요. 천 명이면 엑셀로 정리하는 게 더 빨라요.(웃음) 그런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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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관주의, 주도성, 책임감, 결과 중심적 사고


기업가가 가지면 좋은 면모를 낙관주의, 주도성, 책임감, 결과 중심적 사고 네 가지로 꼽으셨어요. 좀 더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우리는 벌써 잘 알아요. 미래가 불안하면 내 시간과 돈을 안전한 곳에 넣으려고 하죠. 교사, 공무원이 되려고 시간을 들여요. 미래가 변화의 기회가 많고 더 큰 보상이 있다고 믿는 신념이 있는 사람은 안전만 추구하는 그들이 어리석어 보이겠죠. 당연히 미래를 위해 새로운 일을 해야 할 거고요. 낙관주의적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기업가의 면모를 가졌다고 볼 수 있는 거죠. 주도성도 비슷해요. 내 시간, 돈, 에너지를 나를 위해 쓸 것인가 남을 위해 쓸 것인가 생각하는 거예요. 회사를 다니면서도 좋은 게 있으면 가지고 나오잖아요. 왜 나올까요? 나를 위해서 쓰고 싶은 거잖아요. 회사를 위한 게 아니라 말이에요. 시간과 돈을 내가 직접 운용하는 거죠. 저는 주도성이 합리적인 사고라고 생각해요.


책임감과 결과 중심적 사고는 거의 같은 맥락인데요. 많이들 남의 탓하죠. 정부, 대기업 등 사업을 하는 사람조차도 그래요. 진짜 기업가적인 사람들은 프로 스포츠 선수들이에요. 변명 안 하잖아요. 타율, 방어율, 숫자로 증명하죠. 부상당했느니 오판이니 이런 얘기 안 하죠. 저는 창업가들이란 주어진 환경 속에서 골을 넣는 사람이라고 얘기합니다. 그 정도로 자기가 결정하고 책임질 자신 없으면 경영하지 말아야죠.

 

이런 내용을 후배 창업가들에게도 많이 말씀하시나요?


항상 하는 얘기가 ‘창업가는 결과로 말하는 사람이다’예요. 결과로, 숫자로만 얘기하죠. 저도 좋은 CEO가 되고 싶은 욕구가 있었기 때문에 사업 초기에는 많이 했어요. 복리후생, 민주적 운영 등이요. 몇 년 지나고 생각했어요. 이러다가 회사가 망하고 나면 사람들이 나를 뭐라고 평가할 것인가. 앞에서는 ‘열심히 노력했는데 안타깝다, 그래도 당신은 좋은 사람이다’고 할지 몰라요. 그러나 뒤에서는 ‘회사 운영나 잘 하지’라고 할 거예요. 그런 생각이 딱 들더라고요. 최고의 복리후생은 지속적으로 고용하고, 지속적으로 회사를 성장시키는 거예요. 그렇다고 악덕 운영을 한 건 아니고요.(웃음) 우선순위를 바꾸고, 의사결정 방법을 바꿨어요. 그러니까 오히려 집중하게 됐죠.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런 것들이 아마 제가 회사를 망하지 않게 만든 요인이란 생각이 들어요.


지금 스타트업들 보면 지금 그런 거 할 때가 아닌데, 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 것에 신경 쓴다는 것은 그만큼 본질에 신경을 못 쓰고 있다는 의미거든요. 생각 점유율에서 본질이 자꾸 줄어드는 거예요. 경쟁력이 그만큼 떨어지는 거죠. 블로깅 하지 말라고 하고, 책 쓰지 말라고, 강연 하지 말라고 해요. 창업가는 연예인이 아니고 작가가 아니라고요. 그러면서 제가 하게 됐네요.(웃음)

 

프라이머가 교육 사업이라고 농담처럼 말씀하셨는데, 이런 이야기를 해도 잘 안 바뀌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아요. 안타까움도 크겠고요.


어려서부터 훈련받은 사고가 갑자기 결과 중심적 사고로 확 바뀌지 않는 것 같아요. 결과 중심적으로 사고해라, 하면 다 동의해요. 나는 결과 중심적으로 사고한다고, 다들 주장해요. 그러면서 행동이나 말은 결과 중심적이지 않아요. 지적하면 그것만 그렇고 다른 것은 결과 중심적으로 한다고 해요.(웃음)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심하게 말해 창업 ‘놀이’를 하는 사람들도 있겠죠.


많아요.

 

투자할 때 가장 먼저 보는 것이 ‘사람’이라고 한 매체 인터뷰를 봤어요.


비즈니스 모델을 열심히 얘기하는데 사실 그건 아무것도 아닌 거거든요. 그런 얘기를 하면서 이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식으로 사물을 보는지 그걸 더 중요하게 보죠.

 

스타트업 업종을 지켜보면 굉장히 다양하고 기발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유행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고요.


결국 시장이 있어야 하니까요. 시장이라는 건 결국 그 시대 사람들의 시대정신과 유행이라는 일종의 흡인력이죠. 또 모바일 때문에 생길 수 있는 새로운 혁신들이 있고요.

 

시대마다 다르다고 한다면 최근에 느껴지는 변화, 혁신에는 무엇이 있나요?


모바일이죠. 물론 보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저는 모바일로 봐요. 제가 창업할 당시는 인터넷이 등장하던 환경이었거든요. 드디어 오프라인의 많은 일들을 온라인에서 다 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었죠. 그게 비전이었어요. 20년 가까이 지나서 돌아보면 여럿이 들어왔다는 걸 알 수 있죠. e-커머스, 포털, 게임 등 여러 가지가 있어요. 하지만 오프라인이 들어온 것은 몇 년 안 돼요. 이유는 플랫폼이 PC였기 때문이었어요. 책상 위에 있잖아요. 사람과 같이 움직이지 않아요. 모바일은 항상 손에 들고 다니면서 오프라인과 같이 움직이니까 훨씬 더 많은 오프라인 비즈니스를 온라인으로 시뮬레이션하기 좋아졌어요. 그게 요즘 유행처럼 말하는 O2O(Online to Offline) 비즈니스들이죠. 과거 웹, PC 때문에 일어났던 혁신보다 모바일이 훨씬 더 많은 오프라인을 잠식하는 혁신이 될 거라 생각해요. 향후 5년 사이 씨가 많이 뿌려질 거고요. 10년, 15년 후에는 그 씨가 자라 여러 나무가 될 가능성이 있어요. 오프라인 기반의 기업들이 긴장해야 해요.

 

자연스럽게 직업군의 다양화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창직(創職, invent a job)’이라는 말도 사용하셨는데, 앞으로는 전혀 다른 분위기가 되리라고 예상하시는 건가요?


이제는 진짜 규칙적으로 출퇴근하며 월급 받는 직업은 점점 줄어들 거라고 봐요. 지금도 많이 없어지고 있지만 점점 더 없어질 거라고 생각하고요. 피터 드러커의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지식노동자는 점점 돈을 많이 벌 거예요. 그 지식노동자 영역으로 못 들어간 사람들과의 양극화가 생길 거예요. 우버처럼 공유경제가 시대상황을 반영하는 거거든요. 조금 우울한 얘기지만 중세 소작농 시대로 다시 돌아가는 거죠. 머리 좋은 소수의 사람들이 봉건 영주가 되는 거예요. 옛날에는 토지가 자원이었다면 이제는 지식이 자원이 돼요. 그 사람들의 지식으로 만들어진 인프라 밑에 수많은 사람들이 소작농처럼 지내게 되지 않을까요. 그런 시대가 올 위험이 있다고 생각해요.

 

너무 무섭네요. 중세 영주의 토지와 달리 지식이라는 것은 대체 불가능이잖아요.


우울하죠. 사실 우버가 무엇을 소유하고 있어서 그렇게 대단한 게 아니거든요. 그 창업자의 지식인 거죠. 그게 돈을 벌 것이라고 예상하니 자본이 투자를 하고 그 결과 전 세계 수십만 명의 운전수들이 시간제로 일을 하고 있죠. 그런 시대가 오는 것 같단 생각이 드는데, 걱정하지 마세요. 한 오십 년이나 백 년 후 정도가 될 것 같으니까요.(웃음) 우리 세대는 괜찮을 것 같아요. 칠십 년, 백 년, 이대로 가면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고, 지금 조금씩 징조가 보이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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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아이템 찾기 가장 좋은 곳은 직장

 

나는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말을 정말 싫어한다. 특히 젊은이들이 이런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보면 슬퍼진다. 벌써부터 직장 학교에서 배움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모든 희망을 접고 스스로를 ‘먹고 사는 문제’라는 감옥에 가둬버리면 진짜 희망이 없는 인간이 되기 때문이다. 아직 시간도 많고 기회도 무궁무진하다. 지금 조금 힘들고 뒤쳐져 있더라도 역전의 기회는 아직 많다.(47쪽)

 

“목구멍이 포도청이란 말을 싫어한다”고 하셨어요. 청년들 입장에서 조금 변명해보자면요. 관심 있는 분야에 취직하기는 어렵고, 취직한 곳은 선호와 전혀 다르고, 생활은 점점 궁핍해지니 생활고민이라도 없는 안정적인 직장, 먹고 살 수 있는 직장을 찾아 공무원 등을 꿈꾸는 것 같아요. 기회가 무궁무진하다는 말씀이 현실감 있게 들리지 않는 이유인데요. 이런 의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래서 그런 말을 하긴 하는데 한편으로는 그 안에 갇힌 청년들이 이해가 되긴 해요. 그렇지만 청년들 스스로 맞다고 생각하는 것은 틀린 거거든요. 그렇게 말하고 싶은 거죠. 갇혀있는 거예요. 창업 영역으로 청년들을 끌어오고 싶은 거죠. 기회는 많다고 할 수 있는데, 자신감도 없고, 용기도 없고, 경험도 없으니까 계속 제자리예요. 원래 그렇다는 기존 이데올로기에 갇혀버리니까 그걸 벗어날 생각조차 안 하고 있어요. 그게 안타깝죠. 초, 중, 고 교육 과정에서 잘 안 가르쳐준 것이라고 봐요.


“목구멍이 포도청”이란 말을 싫어하는 구체적인 이유는 따로 있어요. 창업 아이템을 찾기 가장 좋은 곳이 직장이에요. 직장에서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면 모든 영역이 가능성이 있거든요. “목구멍이 포도청”이기 때문에 이 일을 한다고 생각하는 한 기회가 입 안에 들어왔다 나가도 절대 눈에 안 보인다는 거죠. 그런 사고를 버리고 일에 진지하게 접근해보면 기회가 분명히 있어요. 저는 그게 가장 좋은 창업의 기회라고 생각해요. 저도 그랬고요.

 

‘전문 경영인’, ‘자유로운 경영자’에 대한 개념은 우리에게는 아직 생소한 것 같습니다. 오해도 있는 것 같고요. 엑시트(exit, 투자 회수)에 대한 의견이 궁금합니다.


전문 경영인에 대한 개념이 거의 없죠. 회사를 개인 소유라고 생각하고요. 그렇다고 모두 엑시트 해야 한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균형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운 돈과 지식과 시간이 쌓이면 그것들은 결국 의미를 추구하게 된다고 생각해요. 많은 돈들이 기업 안에 있거든요. 이해관계 안에 있는 거예요. 기업들이 스타트업에 투자할 때 기업 CEO의 머릿속에는 자기 회사의 이익을 더 많이 고민하죠. 말은 안 하지만요. 그런 점에서 이 사회에 자유로운, 이해관계에 얽히지 않은 자산들이 많이 쌓이면 천박한 산업자본주의의 논리가 아닌 논리들이 좀 더 퍼지게 되리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균형을 유지하려면 엑시트 한 창업자들이 많아지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어요.


프라이머를 만들 때도 그런 사람들의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운 공간을 만들자는 측면에서 창업한 거예요. 그래서 프라이머의 미션이 우리의 성공이 아니라 후배 창업가들의 성공일 수 있는 거고요. 스타트업에 도움이 되는 공간이 그나마 프라이머가 되고 있는 것 같아요.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운 돈이 의미를 추구하는, 선순환 하게 된다는 얘기가 낭만적으로 들렸던 이유 중 하나는 우리에게 그런 경험이 없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자본의 탐욕만 많이 봤지 후배를 양성하고, 토양을 넓히는 일은 거의 본 적이 없으니까요.

저는 근본적으로 그것이 경영의 원리고, 그게 더 큰 돈을 버는 원리라고 생각해요. 결국 남을 이롭게 하는 게 나에게 가장 큰 이익이라는 거죠. 피터 드러커나 훌륭한 경영인들의 말에도 다 담겨 있어요. 이타주의적 신념을 가졌던 사람이 더 큰 성공을 하는 것 같아요. 물론 아주 뛰어나게 탐욕적인 사람도 성공을 하긴 하지만요.(웃음) 그 둘 중 무엇이 진짜인지 항상 헷갈리죠. 어려운 일이에요.

 

칼럼, 강연 등의 글을 모았는데요. 스타트업에 관한 강연이나 멘토링을 하실 때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나 흔하게 보는 반응은 어떤 것이던가요?


공통적으로 힘들어해요. 멘토링이 굉장히 힘든 일이에요. 불편해하거든요. 아이 키우는 것과 똑같아요. 그렇다고 해서 억지로 되는 일도 아니고요. 그들이 이해는 가요. 본능적으로는 멘토링 대로 하면 안 될 것 같거든요. 넘어질 것 같은 자세를 자꾸 취하라고 하고, 실제로 익숙하지 않으니까 자꾸 넘어지기도 하고, 그러니까 와서 안 된다고 하고요. 그런 과정이 길어요. 그걸 기다려주는 것이 힘든 일이죠.

 

스타트업 창업자들에게 가장 많이 하시는 말씀이 있다면?


원래 하려던 일을 하라는 거예요.(웃음) 하려고 했던 그 일을 하라고요. 창업 놀이 하지 말고, 잘하기 위해서 하는 일을 하지 말라고요. 그 얘기를 계속 반복해요. 제일 많이 하는 얘기는 이거예요. ‘하지 마라.’


멘토의 역할은 결국 본질에서 벗어나지 않게 하는 거죠. 처음 투자할 때는 하려고 했던 게 말이 되기 때문에 한 거거든요. 그런데 가만히 두면 자꾸 빗겨 나가요. 그런 것을 자꾸 끌어다 제자리에 갖다 놓는 거죠. 그러다가 결과가 보이면 그제야 본인이 좀 깨달아요. 본질에 집중하니까 되는구나, 를 알고 나면 이후에는 알아서 안 하죠. 그때까지 멘토링이 좀 필요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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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도균의 스타트업 경영 수업권도균 저 | 로고폴리스
책은 실패하지 않는 창업으로 가는 법, 성과를 만드는 법, 스타트업의 강력한 에너지를 발산하는 법, 차별화된 스타트업 마케팅 전략뿐만 아니라 협력자(직원)을 구하는 법, 조직을 이끄는 리더십, 생존이 최우선 과제인 스타트업 위기관리 등을 소개한다. 끝으로 저자는 사장의 윤리는 회사를 비추는 거울이라며, 사업의 본질에 다가설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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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삐밴드, 19년 만의 재결합한 펑크 록 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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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오~” 짧지만 강렬한 인사였다. 1995년 1집 <문화혁명>으로 데뷔한 후 삐삐밴드는 이듬해 정규 2집을 내고는 돌연 해체를 선언했다. 활동 기간 겨우 2년 남짓. 그러나 이들이 가요계에 새긴 족적과 그 잔향은 크고 길었다. 메가폰을 잡고 '딸기가 좋다'고 악을 쓰던 보컬은 당시로선 파격이었고, 주황색 머리에 트레이닝 차림을 하고서 종횡무진 무대를 휘젓는 모습도 분명 이색이었다. 틀을 깨는 음악적 자유분방함은 곧 기성 문화에 대한 저항과 동일했다. 삐삐밴드의 출현은 그 자체만으로 가요계에 일어난 또 하나의 균열이었고, 한국 펑크록은 그 균열의 틈새를 통로삼아 본격적으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삐삐밴드가 다시 뭉쳤다. 데뷔 20년을 기념하는 EP앨범<pppb>도 공개했다. 해체 후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었고 멤버들도 모두 불혹의 나이를 넘겼지만, 변한 것은 많지 않다. 그간 각자의 분야에서 길을 내어 달파란(강기영)은 영화음악가로, 박현준은 밴드 '모노톤즈' 멤버로, 이윤정은 밴드 'EE' 멤버이자 스타일리스트로 각각의 직함을 갖게 됐다는 것, 그래서 다시 시작하는 삐삐밴드가 이들에게 '겸업'이 되었다는 게 과거와의 유일한 차이라면 차이다. 무더운 여름날, 연남동의 한 카페에서 삐삐밴드를 만나 그들의 과거와 현재에 대해 물었다. 이들은 과거에도 그랬듯 '지금의 삐삐밴드'가 말할 수 있고 말해야 하는 것들에 대해 여전히 고민하고 있었다.

 

19년 만의 재결합이다. 과거 매니저였던 김진석 팝뮤직 대표가 재결성을 권유했다고 들었는데.


이윤정 : 김진석 대표님은 예전에 삐삐밴드 매니저를 하셔서 우리의 일거수일투족과 사건사고를 모두 담당하던 분이었죠. 그게 그리웠는지 1년 전부터 연락이 왔어요. 재밌을 거 같아 다시 모이게 됐습니다.


정말 오랜만의 작업이었는데, 어땠나?


이윤정 :옛날이랑 똑같았어요. 마치 어제 만난 사람들처럼 자연스럽게 빨리 빨리 진행이 됐어요. 엉키는 거 없었고 의견 낸 거 서로 반영해서 예전 방식대로 쭉 간 거 같아요. 셋이 쭈그려 앉아서 '이런 단어 어때?' 라고 제가 써서 보여주면, 오빠들은 '이런 건 어때?' '그래 좋다, 하자!' 가사작업도 곡 나오면서 바로바로 쭉쭉쭉.


데뷔 20주년을 기념해 발매된 EP 타이틀이 < pppb >다. 앨범 설명을 해준다면?


이윤정 :< pppb >는 삐삐밴드(pippi band)를 뜻해요. 우리가 처음에는 'pipi밴드'로 나왔는데, 'pipi'가 오줌이잖아요. 그걸 뭔가 교체하는 느낌도 있고, 또 원래 삐삐가 'pippi'거든요. pppb가 디자인상으로도 음악적 이미지로도 잘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P' 세 개가 우리 셋 같기도 하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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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틀 「Over and over」은 꽤 대중적인 스타일에 편하게 듣기도 좋다. 예전보다 대중성을 염두에 두고 만든 건가? 삐삐밴드 답지 않다는 의견도 있는데.

 

달파란 :음악적으로는 진행이 제일 요즘스럽죠. 어차피 우리는 대중음악을 하는 거니까. 대중을 생각 안 한다는 건 말이 안 돼요. 대중 생각 안 하고 진행하는 작업은 또 따로 있고요. 이건 그냥 대중 팝이라 너무 무게를 갖는 건 아닌 거 같아요.

 

이윤정 : 그렇다고 대중성을 위해 막 고민하고 그런 건 아니에요. 그냥 우리가 할 수 있는 선에서 그래도 조금은 더 많은 사람들이 듣기 위한 방법은 뭐가 있을까를 생각해요. 하지만 '삐삐밴드다움'이라는 이미지는 우리가 만든 게 아니고 보는 사람들이 만든 거라서 그게 크게 맞는 말은 아닌 거 같아요.


「Over and over」에 피처링으로 참여한 자이언티와의 작업은 어땠나?


이윤정 :자이언티가 활발하고 적극적으로 해 줬어요. 본인 파트 멜로디도 스스로 짜왔는데, 제가 같이 작업하는 날 줄무늬 티셔츠를 입고 왔어요. 곡의 내용에 대해서 막 이야기를 해 주는데 자이언티가 “누나, 옷 어디서 샀어요?”하고 물어보더니 갑자기 '그 줄무늬 티는 어디서 샀어' 그걸 가사에 넣은 거예요. 처음엔 가이드식으로 했었는데 제가 맘에 들어서 그대로 곡에 넣었어요.


당시 자이언티에게 곡의 내용에 대해 뭐라고 설명했나.


이윤정 :비밀이에요.(웃음) 소외된 생명들에 대한 이야기를 한 것 같아요. 버려진 개들이나, 불쌍하고 힘겨운 사람들. 그리고 다른 점이 있는 사람들의 입장에 대해서요.


앞으로 또 협업해 보고 싶은 사람도 있나? 주목하고 있는 최근 뮤지션이 있다면?


달파란 : 글쎄요. 생각 안 해 봤는데. 자이언티도 염두에 뒀다기보다는 어쩌다 연이 닿아서 한 거예요. 뮤직비디오를 봤는데 가사가 되게 솔직한 편이더라고요. 일상적이고요. 목소리도 특색이 있고 노래도 잘하고. 우리가 노래 잘하는 사람을 쓰는 스타일은 아닌데, 그래도 반대가 만나면 재밌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앨범엔 총 4곡이 수록되었다. 타이틀 곡 외에 다른 수록곡들에 대해 소개를 한다면?


달파란 :만나서 제일 처음 작업한 게 「로봇 가나다 라마바」인데, 만나자마자 어떻게 시작을 할까 하다 대충 써서 나온 걸 그대로 한 거예요.

 

박현준 :사운드 컬러가 일반적이지 않고 독특한 느낌이어서 재미있는 곡이죠.

 

이윤정 :저는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생각이 나서 '심장이 없는 사자', '용기가 없는 로봇' 같은 식으로 가사가 나온 거 같아요. 그런 사람들에게 이상을 좇아가자는 내용을 담았어요. 그리고 현준오빠가 무대 위에서 기타를 멋있게 연주하는 것에 대한 상상을 했고, 그 모습을 다시 보고 싶기도 해서 '그토록 원하던 기타를 튕겨라'하는 가사를 넣었죠. 오빠(달파란)가 요즘 영화음악을 해서 그런지 작업한 거 들으면 영상적인 게 많이 떠오르는 거 같아요. 그래서 저도 좀 빨리빨리 캐치가 되고, 단어나 글 같은 것도 빨리 생각이 나는 거 같아요.


「I feel rove」는 어떤가?


달파란 : 이 곡은 전형적인 디스코 진행의 곡이에요. 도나 섬머의 「I feel love」를 약간 오마주한 면도 있고요. 디스코의 원료를 존경하는 의미에서 그렇게 한 거예요.(나머지 멤버들이 “처음 듣는 이야긴데?”하며 웃었다.) 저는 'I feel love'로 하자 그랬는데 윤정이가 'rove'로 하자고 해서 그렇게 바꿨고요.

 

이윤정 : 'rove'라는 발음이, 들을 때는 'I feel love'로 들리거든요. 우리가 지금 사랑 타령을 하기엔 좀 그렇지 않나 싶어서요.(웃음) 가사도 전반적으로 현 시대의 빈부를 다루고 있어요. 요즘 사람들이 너무 겉도는 느낌이 많이 들고, 사건 사고가 많기도 하고 좀 이상한 느낌이기도 해서, '지금 우리 좀 붕 떠 있지 않나, 방황하고 있지는 않나?' 그런 걸 이야기 한 거 같아요.


마지막 곡인 「ㅈㄱㅈㄱ」은?


달파란 :가장 빨리 만든 곡이에요. 좀 포스트 모더니즘한, 어쩌면 가장 삐삐밴드스럽다고 말해지는 곡이고, 키치적인 게 많아요. 코드도 촌스러운 코드거든요. 헤비메탈 진행 같은 것도 나오고, 예전 록 진행 같은 것도 나오고, 록 보컬도 나오고. 사실 우리는 웃기라고 되게 유머러스하게 하고 코드도 촌스럽게 한 건데 사람들은 웃기게 안 듣고 심각하게 받아들이더라고요.(웃음) 삐삐를 기억하는 데는 이 곡이 제일 좋겠다 싶어 선공개로 하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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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삐'라는 캐릭터는 어른이 되지 않는 말광량이의 상징이다. 20주년 앨범에서 삐삐밴드는 말괄량이 그대로인가? 아니면 어른이 된 것 같나?


이윤정 :기술적인 것은 성장을 했겠죠. 다들 그 세월 동안 전문 분야에서 작업을 더 했고, 나름 연구도 했고, 자기 방향에 더 파고들었을 거고. 그런 건 확실히 성장을 한 거 같아요. 특히나 제가요. 어디서 주워 온 애가 “노래해봐” 하면 하는 애였지만, 지금은 진행도 빨라지고 더 잘 캐치하게 됐죠. 예전에는 오빠들이 “해봐” 해도 모르는 게 많았는데, 이젠 다 알아듣겠고 더 편해지고 심지어 제가 요구까지 하는 상황이(웃음). 그런데 캐릭터적인 면이나 인간적인 부분은 예전과 똑같은 거 같아요.


20년 전에 활동한 모습을 지금 보면 어떤가?


이윤정 :전 진짜 재밌는 거 같아요.

 

박현준 :전 예전에도 되게 귀찮아했구나. 하하하.

 

달파란 :다행인 건 세월이 많이 지났는데 지금 봐도 안 부끄러운 거? 왜 옛날 사진 보면 창피한 사진이 있기도 한데 저희는 안 그런 거 같아요. 그때는 우리가 너무 꾸미는 거 아닌가 싶기도 했는데, 그 시대에 충실하면 안 창피한 거 같아요. 예를 들어 디스코가 한참 유행할 때 미국사람이 배바지 입고 있는 걸 지금 보면, 촌스럽다기보다는 그 시대를 딱 보는 느낌이잖아요. 오히려 막 미래를 생각해서 옷을 만든다든가 특이해 보이려고 뭘 하는 노력이 지나고 나면 더 촌스러워 보이는 거 같아요. 우리가 트레이닝 복 입고 그런 게 당시 한국에서는 특이했지만, 세계적인 90년대 룩이었거든요.


그런 세계적인 흐름을 읽을 수 있는 것도 안목인 거 같다.


달파란 :그냥 뭐 느낌. 그런 느낌들을 서로 갖고 있었던 거 같아요.

 

박현준 : 평소 생각하던 것을 방송에서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 '뻔뻔함'이 있기도 했고요.


어찌 보면 활동기간이 짧았음에도 삐삐밴드는 참 많은 이슈를 남겼다. 그리고 현재 인디 관련 책에 전설처럼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자신의 이런 족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이윤정 : 저는 삐삐밴드 캐릭터가 너무 세서 다른 음악을 할 수 없던 시절이 있었어요. 이십대 중반쯤 그게 다 스트레스로 다가온 적도 있었어요. 하다못해 돈이 없는데 아르바이트도 할 수 없고, 얼굴은 팔렸고, 사람들은 다 딸기를 좋아한다고만 생각하고 있고(웃음), 한번 각인이 된다는 게 참 무서운 거더라고요. 우리가 딸기로 TV에서 공연을 한 게 한두 번밖에 안 되거든요. 그런데도 그렇게 이미지가 각인된다는 게 미디어의 힘이 놀라운 거죠. 그래도 결국에는 우리가 가지고 가려 했던 뮤지션으로의 형태는 갖고 갔던 거 같고 지금도 유지는 하는 거 같아요. '파격' 이런 건 우리가 의도한 건 아니지만, 독보적인 건 맞는 거 같아요. 우리밖에 없었던 거 같아요. '왜 제2의 삐삐밴드가 안 생기는 거 같냐'고 누가 물어보더라고요. 생길 수가 없으니까요. 나처럼 노래 부르는 애가 어딨겠어요.(웃음)


심지어 '노래를 일부러 못한다'라는 말도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만큼 개성적인 보컬이었다. 그랬기에 '삐삐'로 영입된 것이 아닐까.


이윤정 : 그때부터 너무 착하고 예쁘게만 노래 부르는 사람들이 많아서 오빠들이 펑크적인 이미지를 갖고 갈 멤버를 찾다가 제가 너무 겁 없이 막 부르니까 “너 그냥 해라” 한 거 같아요. 음정 나가고 삑사리 나고 그런 건 다 재미로 생각하고 그대로 녹음을 한 거 같은데, 저는 그게 속상하고 싫었는데도 다시 녹음을 안시키더라고요.(웃음)


이윤정의 매력은 뭐였나?


이윤정 :그 전에 보컬로 설 애들이 몇 명 있었대요. 근데 말을 안 듣고 울고 그랬대요. 근데 저는 약간 겁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니었나?

 

박현준 :그 전의 보컬들은 뭔가를 해 보자고 했는데 못한다는 식으로 울어버리고, 통하지가 않으니 잘 안 됐죠.

 

이윤정 :난 그 마음 십분 이해해.(웃음) 근데 “너 마음대로 해” 할 때 진짜 마음대로 하기가 쉽지가 않아요. '뭘 마음대로 하라는 건데?'싶잖아요. 그런데 저는 마음대로 했거든요.

 

달파란 :너무 잘 하려고 심각해지는 느낌보다는 신선한 느낌? 느낌을 보는 거지 그때는 노래를 잘하고 못하고를 따지진 않았어요. 귀여운 여자애가 말괄량이처럼 노래하는 그림을 상상하니 재밌더라고요. 그런데 보통 노래하려는 친구들은 어떻게 하면 잘할까, 멋있어 보일까 하는 것만 신경을 쓰니까, 우린 그런 게 매력없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윤정이는 처음 딱 봤을 때 알았어요. 같이 하면 되겠다.

 

이윤정 : 나는 내가 되게 잘 부른다고 생각하고 불렀는데.(웃음)

 

박현준 :사실 노래하는 데 있어 놀란 부분도 있었어요. 이렇게까지 나오는구나. 저도 깜짝 놀랐지만 놀란 척 안하고 있었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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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삐밴드 초기 달파란과 박현준의 영향력이 너무 컸나보다. 오빠들이 무섭기도 했다고?


이윤정 : 열아홉, 스무살짜리 여자애 앞에 이렇게 같이 앉아서 “빨리 해봐” 이러는데 무섭죠.(웃음) 주변에 어른이고 뭐고 신경 안 쓰던 시기였는데, 오빠들 말은 참 잘 들었던 거 같아요. 언젠가, 오빠 집에 작업실이 있었는데, 비틀스의 영상이나 전반적인 음악 역사에 관한 다큐멘터리 비디오테이프들을 계속 틀어놓고 보라는 거예요. “이거 첨부터 끝까지 봐!” 막 이러면서.(웃음) 그게 내가 좋아서 듣는 것도 아니고, 다른 걸 계속 듣는 게 쉽진 않거든요. 그걸 막 졸면서 보고 있었던 게 생각이 나요.(웃음) 음악보다는 문화적 개념을 가르쳐 주려고 했던 거 같아요. 전반적인 문화의 형태나 음악의 형태를 좀 알면 곡 이해도 빠를 거고 노래 부를 때도 영향이 있지 않을까 해서. 그래서 잘 부르지 않아도 되는 이미지가 나왔겠죠?


달파란과 박현준이 음악적 스승이겠다. 그런 경험들이 윤정씨의 음악 기반이 되지 않았을까?


이윤정 : 그랬던 거 같아요. 그 기반이 탄탄하고 클래식한 거는 아니지만, 나름 제가 좋아하는 음악적 방향을 찾아갈 수 있게 도움을 준거 같아요. 저는 아직 코드도 잘 몰라요. 멜로디도 흥얼거리며 나오는 거고요. 근데 그걸 믿어주는 게 좋고 성장의 계기가 됐어요. 믿어주지 않잖아요. 누가 그냥 아무거나 흥얼거리는 걸 곡으로 써주겠어요. 근데 그걸 정리해 주는 거잖아요 곡 하나로. 그게 너무 신기한 거죠. 재밌어지고요. 제가 보기엔 오빠들이 음악을 많이 해 와서 항상 나오는 뮤지션들의 패턴이나 기술적인 부분에 워낙 익숙해져 있다가 어떤 애가 말도 안 되는 걸 한 게 재밌어 보였던 거 같아요. 음도 안 맞고 코드도 안 맞는 걸 부르니까 웃긴 거 있잖아요. 「슈퐁크」 같은 것도 오빠들 기타 칠 때 혼자 주절주절한 걸 그대로 녹음한 거예요. 그냥 그게 저희 작업 환경인 거죠.


밴드가 말괄량이 같은 이미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큰 그림도 있었고, < 문화혁명 >이라는 데뷔 타이틀도 예사롭지 않다. 준비를 많이 한 것 같은데?


달파란 :그때 어느 정도의 생각을 했는지는 기억이 잘 안나요. 음.. 그때 이미 저도 연주를 어느 정도 많이 했고 현준이도 연주한 지 오래 되고 음악적으로 정직한 것들에 실증이 났었던 거 같아요. 오히려 불협 같은 것, 불협에서 오는 재미들에 더 흥미를 가졌던 거 같아요. 그래서 삐삐밴드를 하게 된 거 같아요. 또 당시 반사회적인 성향도 있었고요. 당시 사회가 좋진 않았어요. 그게 답답해서 이런 게 왜 하나도 없을까 하는 마음이 있었죠. 그래서 앨범제목도, 사실 붙여놓고는 너무 거창한 거 아닐까 걱정을 했었는데(웃음), 그렇게 내게 됐어요.

 

이윤정 :오빠들이 구상을 다 한 상태에서 저를 찾은 거 같아요. 삐삐밴드란 이름도 오빠들이 만든 상태에서 삐삐를 찾은 거고요. 그래선지 막힘이 없었어요.

 

박현준 : 그렇기도 하고, 윤정이에게서 가사나 멜로디 소재가 딱 나오는 것도 있어요.

 

이윤정 :저는 작곡을 했던 사람이 아닌데, 오빠들 방식이, 계속 기타를 치고 있어요. 왜 그러는지 몰랐는데 저보고 흥얼거리라는 거예요. “그냥 뭐 한번 불러봐” 그러는데, 저는 패닉이 오는 거죠. '안녕하세요'도 그렇게 나온 거예요. 뭐라도 해 보라고 해서 “안녕하세요~”하다가 즉석에서 곡으로 정리돼 나온 거예요.(웃음) 그게 어떻게 보면 교육이죠. 그런 식으로 작곡을 시킨 거잖아요. 작곡이 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렇게 시키다 보니 다른 데서 다른 사람들이랑 작업하다 보면 다들 너무 신기해해요. 저 같은 방식으로 작업하는 사람을 많이 못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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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한국 펑크의 최초 발자취'으로 삐삐밴드를 꼽기도 하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달파란 : 아니에요. 우리뿐만 아니라 당시 홍대나 명동 길거리에서 크라잉넛, 노브레인 같은 친구들이 활동하고 있었어요. 저희도 몰랐었는데 그걸 보고 '얘네도 이런 걸 해?' 했던 기억이 나요. 아무튼 우리가 최초가 아니고 당시에 그런 흐름과 움직임이 있었어요. 그런데 우리는 대중매체를 탄 거고 그 친구들은 언더그라운드를 형성해 갔던 거고요.

 

이윤정 : 그런 말 하면 부담스러운 거 같아요. 그 친구들이 봐도 이상하잖아요. 사실 진짜 완전 펑크를 지향한다고 보면 우리는 펑크의 개념을 가지고 간 정도죠. 펑크적인 사상에서 봤을 때 대중매체를 탄다는 게 처음에는 되게 싫었을 거예요 아마도. 근데 나중에 알려지고 나서는 사람들이 펑크음악을 좋아하게 된다는 게 참 신기하잖아요. 어떻게 보면 일반적인 댄스음악이나 매체를 타는 음악이 아닌, 다른 장르라고 불릴 만한 음악과 뮤지션들이 90년대에 많이 나온 거 같기도 해요. 지금은 새로운 형태의 장르라든지 특색들이 새로 나오기가 힘든 시기인 거 같고요.


당시 통용되던 그룹 사운드에서 밴드(BAND)라는 이름을 최초로 사용했다고 하는데?


달파란 :당시 그런 용어를 안쓰는 게 답답했던 거죠. 지금도 뭐. 답답한 건 한 두 가지가 아닌데.(웃음) 그런 것에서부터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었죠.

 

이윤정 : 최근에 오빠들과 만나서 서로 이야기한 건 말할 사람이 필요한 것 같아요. 너무 안하고 있는 것 아니냐. 다들 너무 아무 일 없는 것처럼 그냥 하는 거 아니냐. 그런 대화를 처음 만나서 많이 나눈 거 같아요. 뭐라도 하자.


여전히 답답한 게 많은 세상인 것 같다.


이윤정 :계속 안 좋았죠 뭐. 근데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이 알지 않아도 될 정보까지도 많이 알게 되면서 좀 더 악해지는 거 같기도 하고, 좀 더 냉정하고 차가워진 거 같기도 하고, 외려 많이 무뎌진 거 같기도 해요. 굉장히 큰 사건사고에 대한 정보가 나왔는데 '좋아요' 누르고 5분이면 잊어버리잖아요. 뭔가 되게 매정하게 변해버린 거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게 슬픈 거 같아요. 아기 엄마다 보니 이게 과연 이러고 말 문젠가 하는 생각을 해요. 이런 것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걸 좀 알리든지 깊이 다뤄야 하는 거 아닌가 싶어요.


활동 당시와 비교하면 지금 음악 산업과 시장에도 상당한 변화가 있다. 이에 대해 어떻게 보나?


이윤정 : 음악 하는 게 직업이 될 수 없는 세상이 온 거 같아요. 주변에 음악만 하는 애들이 없어졌어요. 따로 투잡을 하지 않으면 생계를 할 수 없으니까. 생계형 뮤지션이 1%도 안 되는 상황이죠.

 

달파란 : 문제는 산업적으로 따져봤을 때 분배의 문제가 있다는 거예요. 사실 전체 시장 규모는 매출이 줄어든 게 아니니까요. 음악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점점 더 안 좋아지고 그걸 유통시키고 판매하는 사람들은 더 많은 이득을 보니까. 그 사람들은 한 밴드가 뜨고 지는 것에는 관심이 없어요. 전체에만 (관심이 있지). 또 보통은 그런 메인스트림이 있다 그러면 언더라는 시장이 따로 존재하는데 한국은 그게 형성이 안 된 거 같아요. 그래서 언더에서 음악을 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보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순환이 안 되니까, 그걸 이어 가기가 보통 쉬운 일이 아닌 게 돼 버렸죠.

 

박현준 : 때문에 음악이 더 발전하지 않고, 멈춰버리고, 듣기 좋은 거면 거기에만 한정시켜버리게 되는 부분이 있죠.

 

이윤정 : 지금은 잘한다 못한다가 중요하지 않아진 거 같아요. 음악 잘한다 못한다가 아니라 홍보 잘한다 못한다가 된 거 같아요. 홍보 잘하고 운 좋으면 잘 된 거고, 아니면 못한 거고요.


다시 삐삐밴드로 활동을 시작하게 된 지금, 삐삐밴드는 각자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나?


이윤정 :스무살 즈음 주민등록증이 생기잖아요. 제가 그 시기에 활동한 거라 저한테 삐삐밴드는 주민등록증에 첫 집이 찍힌 것 같은 느낌이에요. 지금은 20년 뒤에 갱신하는 느낌?

 

박현준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이렇게 관심이 된다는 게 참 다행인 거 같아요. 예전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가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었다는 것 자체에 대해 감회도 새롭고요. 앞으로 다른 계획을 세울 때 영향이 될 것 같습니다.

 


인터뷰 : 김반야, 윤은지, 윤석민
정리 : 윤은지
2015/08 윤은지 (theothersong@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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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가 강헌 “모차르트는 신동 아닌 뮤직 머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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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복과 반전의 순간 : 강헌이 주목한 음악사의 역사적 장면들』(이하 『전복과 반전의 순간』)은 음악 속에 남겨진 역사의 흔적을 발굴해낸다. 동시에 역사가 낳은 음악들을 추적해 나간다. 그래서 저자는 책의 표지에 (제목만큼이나 큰 글씨로) ‘Music in history History in music’이라 적어놓았다. 이 말 속에는 음악평론가 강헌이 음악을 이해하는 방식, 음악을 말하는 방식, 곧 『전복과 반전의 순간』의 정체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다.

 

그는 재즈를 설명하기 위해 미국-스페인전쟁과 흑인들의 한 맺힌 역사를 상기시키고, 1950년대 미국의 경제성장으로부터 로큰롤의 이야기를 이끌어낸다. 75년 발매된 『신중현과 엽전들 2집』 앨범의 재킷에서는 암울했던 현실을 읽어내고 「목포의 눈물」을 통해 일제강점기 동안 “대중들에게 무리 없이 받아들여진” 엔카의 흔적을 짚어낸다.

 

음악사의 물줄기를 틀어버린 전복과 반전이 “어떤 동기와 역학”으로 일어났는지, 그것이 어떻게 “정치경제적 요소와의 상호작용”을 만들어내는지 보여주는 것이다. 이로써 독자들은 어떠한 음악과 음악가도 자신이 존재했던 시대와 사회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에 눈뜨게 된다. “20세기 이후 인간의 일상에 음악이 개입하지 않는 순간은 거의 없다”는 저자의 말처럼, 음악으로부터 영향 받지 않은 시간 역시 없음을 알게 된다.

 

자칫 딱딱하고 난해해지기 쉬운 내용들이지만 『전복과 반전의 순간』안에서는 흥미롭고 매력적인 이야기로 탈바꿈했다. 저자 특유의 입담과 깊이 있는 통찰력을 만나 어려운 개념들을 쉬워졌고 복잡한 배경들을 명쾌해졌다. 스윙을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있을까? 강헌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떤 음악을 들을 때, 왠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플로어로 막 달려가고 싶은 느낌, 그 순간의 감정”이 스윙이다. 영국의 펑크록밴드 ‘섹스 피스톨즈’가 로커의 상징인 긴 머리를 잘라버린 이유는 무엇일까? “근원을 상실하고 이미 부르주아가 되어버린 선배 로커들에 대해 반대한다는 의미로” 머리를 짧게 깎았던 것이다.

 

전복과 반전의 기록들로 가득 찬 이 책은 독자들이 사실이라 믿었던 것들조차 완벽하게 뒤엎어버린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로큰롤의 상징이고, 모차르트는 타고난 음악 신동이며, 「사의 찬미」를 부른 윤심덕은 연인 김우진과 함께 자살했다는 통념 앞에 ‘정말 그랬을까?’라는 커다란 물음표를 던지는 것이다. ‘아니면 말고’ 식의 단순한 문제 제기가 아니다. 합리적 의심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들은 페이지 곳곳에 자리하고 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상식이 전복되는 짜릿함, 가려졌던 진실을 발견했을 때의 기분 좋은 배신감이 느껴진다. 그보다 먼저 찾아오는 반전은 이토록 방대한 양의 이야기가 이렇게나 막힘없이 읽힌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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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큰롤, 10대에게 문화 권력을 쥐어주다


『전복과 반전의 순간』에 소개된 장면들은 “음악사에서 장르와 시대에 상관없이 나한테 가장 매력적인 순간”이라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책에 실린 내용들은 ‘전복과 반전의 순간’ 강연의 첫 번째 시즌에서 이야기했던 것들인데요. 제가 음악을 듣기 시작한 이후부터 지금까지,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음악사의 많은 순간들 중에서 가장 드라마틱하게 여기는 순간들이에요. 음악과 인간, 시대와 예술가의 관계를 가장 극명하게 느낄 수 있는 순간들이 아닌가 싶고요.

 

“사회적이고 인문적인 시각에서 대중음악을 논하는” 평론가로 인정받고 계시고, 이번 책도 예외는 아닙니다. 그러한 접근 방식을 고수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제가 가지고 있는 시각이나 접근 방법이 새로운 건 아니에요. 일반적인 것들 중 하나일 뿐이죠. 음악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양식사적인 이야기, 테크니컬한 요소들이 중요할 수 있어요. 그런데 제 비평의 독자들은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 음악을 많이 듣는 사람들, 음악 속에서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이에요. 우리는 단순히 음악을 들을 뿐입니다. 음악은 굉장히 감각적인 수용을 하는 예술이죠. 소설을 읽는 것과는 달리, 단어들의 의미를 언어학적으로 추적하면서 음악을 듣지는 않잖아요. 스쳐지나가듯이 듣다가 어느 순간 하나의 음악이, 젊은이들 식으로 말하면 ‘꽂히게’ 돼요. 그런데 음악이라는 텍스트의 안에, 혹은 그 뒤나 밑에는 많은 요소들이 숨어있죠. 음악이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졌거나 우연히 바람에 실려 온 것이 아니잖아요. 인간이 창조한 거란 말이에요. 그렇다면 어떤 시대가 요구하는 방향 혹은 그 시대와 사회가 꿈꾸는 욕망이 음악을 현실화시키게 된 거죠. 그 동력을 추적해 보면 조금 더 비옥한 음악 듣기가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것이죠.

 

재즈의 탄생과 관련해서 다양한 역사적 배경들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흑인 노예가 하늘을 향해서 부르짖던 소리인 필드 홀러”(field-holler)가 아닐까 싶습니다.


통상적으로 책에서 재즈를 설명할 때 그런 이야기를 하지는 않죠. 장르적으로 접근하거나 학술적으로 설명하는데요. 저는 그런 책에서는 별로 감동이 느껴지지 않더라고요. 재즈는 굉장히 감동적인 음악인데 재즈를 설명한 책에서는 별로 감동을 못 느낀다면, 그 설명에 조금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우리가 재즈를 들을 때 바라는 건 틀에 짜여 있는 아름다움을 즐기는 게 아니잖아요. 틀과 규범에서 거의 본능적으로 밖으로 뛰쳐나가려고 하는, 어딘지도 모르는 곳으로 뛰쳐나가려고 하는 자유분방한 욕망의 에너지 때문에 재즈를 듣는 거란 말이죠. 그렇다면 재즈의 가장 깊은 본질에 대한 이야기 안에 있는, 살아 움직이는 인간의 에너지가 있어야 독자들의 빠르게 이해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재즈뿐만 아니라 『전복과 반전의 순간』에 등장하는 모든 음악들을 설명할 때 신경 썼던 방식이에요.

 

“로큰롤은 이전까지 아무런 문화적 권력을 소유하지 못했던 10대라는 또 하나의 마이너리티들이 문화의 주인이 된 사건”이라고 정의하셨습니다.


재즈는 노예 계급 출신으로 미국 사회의 가장 밑바닥 층에 있던 사람들이 자신들을 지배하는 백인들도 만들어내지 못했던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낸 거죠. 재즈의 연장선에 있는 로큰롤은 20세기 중반에 백인 10대라는 역사적인 세대 혹은 계층과 만나면서, 어떻게 보면 재즈와 완전히 반대되는 길을 걷게 돼요. 재즈의 전제는 빈곤이었는데 로큰롤의 전제는 중산층적 풍요였거든요. 이 풍요는 납득하기 어려운 새로운 지옥(학교 안과 밖에서 경쟁이 가속화된 현실 - 필자 주)을 가져다 줬죠. 한국사회도 80년대에 그런 걸 경험했잖아요. 마찬가지로 ‘풍요 속의 치열한 빈곤’이 혁명적인 반전을 이뤄낸 거예요. 로큰롤이라는 하나의 괴물을 만들어냈다고 볼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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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없는 것을 잊지 못하게 하는 ‘노래의 힘’


많은 이들에게 엘비스 프레슬리는 로큰롤의 상징처럼 여겨지는데요. 『전복과 반전의 순간』을 보면 놀라운 ‘반전’을 경험하게 될 것 같습니다. 사실 그가 10대들의 반항을 대변했던 시기는 1년 10개월 정도에 불과하니까요.


그만큼 당시에는 ‘기존의 백인 중산층 성인 세대들이 지배해 왔던 문화’에 대항하는 ‘새로운 세대의 문화’가 등장한 것이 악몽이었던 거죠. 미국의 백인 기득권 계급들은 자기들이 가진 모든 권력을 동원해서 (로큰롤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어요. 그때 로큰롤은 거의 죽었죠. 그들의 보이지 않는 폭력과 위협 앞에서 엘비스 프레슬리가 제일 먼저 와해된 것은 필연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어요. 10대 문화의 상징이었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큰롤이 사멸되지 않고, 인류 역사에서 어른들이 가져왔던 거대한 지배 체제를 무너뜨리고야 마는 것은, 예술사에서 가장 큰 전복의 순간이 아닌가 싶어요.

 

로큰롤이 부활하는 데 있어서 비틀스의 등장이 큰 영향을 미쳤을까요?


음악적으로는 가장 결정적인 공헌자이지만, 저는 그만큼 중요한 것이 존 F 케네디의 암살이라고 생각해요. 가장 큰 정치적인 배경이 되었다고 봅니다.

 

존 F 케네디가 대통령에 당선될 때, 유권자들 중에는 로큰롤과 함께 10대를 보낸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 존 F 케네디는 상징적인 인물이 아니었을까요?


존 F 케네디 이전의 미국 대통령은 가장 보수적인 기득권자들의 대변인이었고 상징이었어요. 그런데 케네디는 미국 역사상 최초의 40대 대통령인 데다가 아일랜드 이민자 출신이었고 가톨릭교도였어요. 이른바 백인 사회의 마이너리티 출신이죠. 물론 엄청난 부자의 아들이기는 하지만요. 그런 점에서 문화적으로 탄압받던 로큰롤 세대들은 케네디와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에서 엄청난 쾌감을 느꼈을 거예요. 마치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노무현의 승리를 자신의 승리라고 생각했던 진보적 젊은이들처럼요. 실제로 케네디는 굉장히 진보적인 정치 철학을 폈죠. 그것이 미국의 주류 사회와 마찰을 일으키면서 누가 봐도 말이 안 되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암살 사태가 일어난 거고요.

 

로큰롤이 겪어야 했던 박해의 역사는 낯선 이야기가 아닙니다. 젊은 세대의 새로운 문화에 기성세대가 질겁하는 일은 우리사회에도 있었으니까요. 문화에 대한 유연성을 잃게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문화야말로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기 때문입니다. 어른들이 자기 세대의 감수성에 맞지 않는 젊은 세대의 문화가 나올 때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는 이유가 뭘까요? 자신이 그 문화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열등감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그 문화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문화적인 기득권을 와해시킬지도 모른다는 공포감 때문이죠. 자기 세대의 문화의 와해는 결국 자신이 누리고 있는 모든 기득 권력의 와해를 상징합니다. 왜 한국의 노태우 정부가 그토록 트로트를 옹호하면서 전통가요라는 왕관까지 씌워주려고 몸부림쳤겠습니까. 왜 50년대 미국의 기성세대들이 언론과 보수 정치인들까지 동원하면서 로큰롤을 사탄의 음악으로 몰아가고 그것을 죄악시했겠습니까. 그것은 단순한 취향이 판단이 아니라는 거죠.

 

한국에서는 70년대에 ‘청년문화’에 대한 탄압이 이루어졌습니다. 『전복과 반전의 순간』을 보면 ‘청년문화’가 가진 상징성과 영향력을 두려워했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 시대에 기득권층은 ‘자유’라는 한 단어 때문에 ‘청년문화’가 두려웠던 겁니다. 그것이 자신들을 위협하고 종래에는 권좌에서 끌어내릴 거라는 걸 예감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미치도록 ‘청년문화’를 증오하고 마약쟁이 나쁜 놈으로 만들고 급기야는 금지시켰던 거예요. 사실 한국의 ‘청년문화’라고 하는 것은 대학생들의 문화였습니다. 그들은 프로페셔널한 사람들이 아니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장호 감독이나 송창식 김정호 같은 가수들이 등장하자, 기존에 이미자로 대표되던 트로트 진영이나 패티 김으로 대표되던 스탠더드 팝 진영이 일거에 시장에서 무너졌죠. 그때 기득권층이 가졌을 공포는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음악과는 전혀 관계없는 문화 외적인 논리를 들이대는 겁니다. 그것이 제가 ‘대한민국판 분서갱유’라고 불렀던 1975년의 금지곡 조치와 대마초 사건이라는 마녀사냥입니다. 

 

금지곡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노래가 「아침 이슬」이 아닐까 싶습니다. 『전복과 반전의 순간』에서 이 곡에 대한 기억을 들려주기도 하셨죠. 이한열 열사의 장례식 때 추모 행렬이 불렀던 「아침 이슬」을 잊지 못하신다고요.


바로 어제 일인 것처럼 잊을 수 없는 장면이죠. 100만 명이 하나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음악 중에서도 특히 가사가 있는 노래는, 모든 예술 중에서도, 집단적 일체감을 분만하는 데 가장 효율적인 양식입니다. 87년 이한열 열사의 장례식은 말할 것도 없고, 월드컵 국가 대표 경기만 보더라도 알 수 있죠.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울컥하면서 없던 애국심이 순식간에 생겨나잖아요. 노래 안에는 그런 무서운 전염성이 있습니다. 긴 시간을 거쳐서 만들어진 노래 안에는 그 시대를 가장 힘겹게 살아냈던 다수의 진정한 마음이 담겨 있는 거예요. 유행가임에도 불구하고 금세 잊히지 않고 살아남는 노래에는 시대를 넘어서 많은 집단에게 일체감을 주는 어떤 진실이 있는 거고요. 그런 고양된 흥분감은 노래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입니다. 결코 잊을 수 없는 것을 잊지 못하게 하는 것, 그것이 노래의 힘이죠.  

 

 

베토벤은 역사상 최초의 로커


80년대에는 우리사회에도 중산층이 생겨나면서 청소년들이 자신들만의 문화를 이끌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변집섭의 「희망사항」이 분기점을 형성했다고 말씀하셨는데요.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저는 그 노래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봅니다. 1980년대 초중반에 한국의 10대 여학생들은 50년대 미국의 10대와는 달리 여전히 가부장적인 유교주의에 갇혀 있었습니다. 이들은 성(gender)의 벽에 갇힌 자신들의 억압을 순정만화적인 상상력으로 해소하려고 했어요. 이성에 대한 극도의 추상성을 가지고 있었던 거죠. 실제로 80년대 여고생들의 발라드는 굉장히 추상적이에요. 구체적인 일상성이 없습니다. 조용필의 「창밖의 여자」나 「비련」 같은 노래를 보면 알 수 있죠. 그런데 80년대 후반이 되면 상황이 달라집니다. 88올림픽을 기점으로 해서 이른바 X세대라고 부르게 되는 진짜 10대들이 등장하는데요. 그 과도적 상황에 나오는 노래가 바로 변진섭의 2집에 있는 「희망사항」입니다.

 

「희망사항」이 이전의 노래들과 다른 점이라면 무엇인가요?


신예 작곡가인 노영심이 만든 「희망사항」은 너무 생소한 이미지를 가진 노래였습니다. 사랑에 대한 상투적이고 관념적인 표현들을 쓰지 않았어요. 여자는 마음이 예뻐야 한다는 식의 추상적인 가치들을 얘기하지 않는 거예요. 눈에 보이는 것만 얘기하죠.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여자’ ‘밥을 먹어도 배 안 나오는 여자’ 처럼요. 그 중에서도 백미는 ‘뚱뚱해도 다리가 예뻐서 짧은 치마가 어울리는 여자’예요. 거의 현미경 적인 사고죠. 「희망사항」은 이전까지 한국의 사랑 노래가 가지고 있던 운문적인 상상력을 산문적인 상상력으로, 관념적인 상상력을 일상적인 상상력으로 바꿔갔어요. 이른바 러브 발라드가 랩이라는 새로운 10대의 문화로 가기 전의 중요한 교두보 역할을 한 거예요.

 

가장 좋아하는 뮤지션은 베토벤이라고 하셨는데요. 『전복과 반전의 순간』에 적으신 것처럼 그가 ‘역사상 최초의 로커’이기 때문인가요?


네. 베토벤 이전까지의 음악가들은 정치와 종교의 후원 없이는 사실상 자기의 뜻을 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시민사회가 도래해서 시민에게 자신의 음악을 직접 팔아서 먹고 사는 시대가 오기 전까지는요. 베토벤은 합스부르크 왕가 시대에 살았지만 동시에 프랑스 대혁명 이후에 새로운 시민사회가 오버랩 되는 굉장히 미묘한 시대에 살았습니다. 베토벤은 긴 바지를 입고 빈 시내를 활보했어요. 그건 ‘나는 공화주의자다’라는 상징이었죠. 그래서 베토벤은 자신을 지배했던 계급들과 엄청난 불화 속에서 지내게 돼요. 신분 사회에서 예술가들이란 사실 아무것도 아닌 존재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토벤은 자신의 취향과 욕망에 의해서 음악을 만든 최초의 작곡가라고 봅니다. 자신의 오너의 의지와 취향에 맞춰서 음악을 만든 게 아니죠.

 

대부분 모차르트는 타고난 천재라고 생각합니다. 덕분에 삶도 여유로웠을 것 같은데 『전복과 반전의 순간』 속의 모차르트는 전혀 다른 모습입니다. 안쓰럽게 느껴질 정도예요.


모차르트는 신동이 아니었어요. 철저하게 조립된 뮤직 머신이었죠. 그런데 그에게는 인간의 영혼이 있었다는 거죠. 그것이 결국 그를 현실 속에서 패배하게 만들었어요. 어차피 뮤직 머신으로 키워진 존재라면 현실에 순응함으로써 행복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않은 거죠. 모차르트는 여섯 살 때 작곡을 했고 열두 살 때 오페라를 썼고 열네 살 때 교향곡을 썼지만, 스물다섯 살 이전에 쓴 작품 중에서 우리가 감상하고 있는 곡은 거의 없어요. 열일곱 살에 쓴 25번 교향곡을 제외한다면 대부분 습작 수준이죠.

 

만약 모차르트가 베토벤과 같은 사회 상황 속에서 살았다면 어땠을까요?


역사에 가정법은 의미가 없지만 ‘모차르트가 10년만 늦게 태어났더라면’하고 생각할 수 있죠. 책에도 썼지만, 모차르트가 자신의 예술적 결전장을 빈이 아니라 프라하로 잡았다면 요절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거라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요. 그때 프라하는 시민 계급들의 권리가 굉장히 신장되어 있었거든요. 모차르트는 묘지도 없이 부랑아들이나 묻히는 시체 더미 속에 묻혔어요. 저는 그것이 궁정사회에서 시민음악가를 꿈꾼 자에 대한 상징적인 처벌이라고 생각합니다. 묘비명조차도 남기지 못하게 만든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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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철, 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도전자


「사의 찬미」를 부른 윤심덕의 죽음에 대해 “기획 자살”이라고 단언하셨습니다. 주장의 근거로 제시하신 이야기 중에 흥미로운 것이 있는데요. 일본의 한 신문사 사주가 이탈리아에 갔다가 ‘윤심덕과 김우진일지도 모를’ 사람들을 만났다는 기록입니다.


저는 그들이 윤심덕과 김우진이었을 거라고 봐요. 그때 윤심덕은 굉장히 심신이 피폐해 있을 때예요. 김우진은 아버지와의 갈등이 최고조로 달했을 때고요. 「사의 찬미」 음반이 큰 성공을 거두면서 가장 큰 이득을 본 곳이 레코드와 축음기 회사인데, 그들이 유럽행을 권유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이탈리아에 있는 두 일본인이 윤심덕과 김우진일지도 모른다는 기사가 나온 뒤에 한국 언론도 난리가 났어요. ‘우리 언니는 자살할 사람이 아니다’라는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켰던 윤심덕의 여동생 윤성덕도 자신의 말이 맞지 않느냐고 이야기했죠. 김우진의 동생 김복진은 총독부 외사과에 공식적으로 수색 청원을 냈고요. 그런데 그 뒤로는 보도도 없고 유가족들도 전부 입을 닫습니다. 그 순간에 시작된 침묵이 우연일까요?

 

씨네21과의 인터뷰에서 “무엇보다 지금 시대는 평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음악계에는 어떤 전복과 반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아주 잘생기고 정말 음악을 만들 줄 아는, 능력도 탁월하고 인간적인 매력도 넘치며, 동시에 미래 지향적인 생각을 가진 로커가 나와서 ‘음악이란 이런 것이다’라는 걸 한 번 보여줬으면 좋겠어요. 보이그룹이나 걸그룹이 아니면서도 세계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사람이 나왔으면 좋겠죠.

 

초인을 기다리고 계신 것 아닌가요?(웃음)


(웃음) 하도 답답해서 하는 소리예요.

 

올해 10월 즈음에는 故 신해철 씨에 관한 책을 출간하실 계획이라고 들었습니다. 한국 대중 음악사에서 그가 가지는 의미는 어떤 것일까요?


신해철이야말로 자신이 수행해냈던 결과물에 비해서 가장 저평가 된 인물이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이 있어요. 신해철은 활동 중에 대부분 사전심의라는 검열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음악의 상투성에서 벗어나는 새로운 발상법들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시도했습니다. 그 중에 어떤 것들은 대중과 너무 멀어지게 되는 것이기도 했고, 어떤 건 너무 개인적인 것으로 들어가서 사람들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고, 그런 시행착오들이 존재했지만 그는 시행착오를 두려워하지 않았어요. 데뷔할 때 스타가 되었지만 끊임없이 도전자의 자세로 도전했습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득권을 지키려고 몸을 사리지 않았어요. 그런 점들이 신해철이 우리 대중음악에 끼친 굉장히 중요한 영향이라고 생각합니다. 흔히 하는 말로, 대중음악계에도 똑똑하게 자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처음 보여준 거죠.

 

『전복과 반전의 순간』다음 이야기도 준비하고 계시죠? 벙커 1에서 진행하신 강연 시즌 2, 시즌 3의 내용을 만나볼 수 있는 건가요?


내년 초쯤에 2권이 나올 것 같은데요. ‘전복과 반전의 순간’ 강연 시즌 2에서 이야기했던 내용들을 실을 생각이에요. 음악의 변방국이었던 미국과 영국이 어떻게 뮤지컬을 가지고 콧대 높은 오페라의 권력을 뒤엎고 새로운 음악극의 주연 국가로 등장하게 되었는지, 뮤지컬의 전복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요. 80년대 한국의 언더그라운드와 미국의 얼터너티브 록을 비교하면서 가장 막강한 음악 산업 시대에 어떻게 대안적인 움직임들이 또 다른 시장을 형성하는지에 대해서도 살펴보게 될 거예요. 3권은 내년 후반기 나오지 않을까 싶은데요. 시즌 1과 2 강연에서 빠진 부분들과 시즌 3의 강연 내용이 함께 실릴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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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복과 반전의 순간강헌 저 | 돌베개
이 책은 이렇듯 크게 네 개의 장으로 구성되었으나 네 개의 이야기가 나란히 서 있는 데 머물지 않는다. 네 개의 각 장은 각각 다시 두 개의 이야기로 나뉘어지는 듯하더니 그 두 개의 이야기는 다시 하나의 이야기로 소급된다. 그리고 그 각각의 이야기 네 개는 책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큰 줄기로 합해져 결국 개별적인 정보와 사실 관계의 정리를 넘어, 음악을 통해 문화사 전반을 대하는 시선의 변화를 이끌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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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정호 “우울에 빠지면 책을 볼 여력이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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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데 책을 어떻게 읽어요?”

 

채정호 가톨릭대 정신과 교수는 실제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몇 권의 책들을 추천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환자들은 책을 볼 여력이 없었다. 커다란 ‘블랙독’이 자신을 누르고 있는 상황에서 글자가 눈에 들어올 턱이 없다. 채정호 교수는 『굿바이 블랙독』을 보면서, 이 정도의 책이라면 읽을 만하겠다고 생각했다. 짧은 문장과 간결한 그림이 주는 여운은 컸기 때문이다.

 

생경한 단어 ‘블랙독(black dog)’은 평생 우울증을 앓았던 영국 전 수상 윈스턴 처칠이 자신의 지독한 우울증을 ‘블랙독’이라고 부르면서, 우울증의 별칭으로 쓰이게 됐다. 『굿바이 블랙독』의 저자 매튜 존스톤 역시, 18년간 지독한 우울증을 겪었던 사람이다. 그는 9.11 세계무역센터 테러 사건을 현장에서 목격한 후, “인생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짧다”는 교훈을 얻었다. 그 후 지독하게 자신을 따라다녔던 우울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굿바이 블랙독』을 쓰기 시작했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지 단 4시간만에 완성된 이 책. 저자는 “말 그대로 내 안에서 술술 흘러나온 것을 그대로 썼다”고 말한다. 매튜 존스톤은 오랫동안 광고인으로 현재는 호주 시드니에서 화가, 작가, 사진가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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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여라, 최선의 우울증 해소 방법


『굿바이 블랙독』을 처음 보셨을 때, 어떤 인상을 받으셨나요?


사실 번역하기 전에는 몰랐어요. 제안을 받고 읽어봤는데, 이 책이 굉장히 짧고 간결하잖아요. 임팩트 있는 글과 그림으로 이뤄졌는데, 짧지만 강렬한 느낌이 있더라고요. 사실 사람이 우울에 빠졌을 때는 책을 들 여력이 없어요. 그 의지조차 없는데, 두꺼운 책은 더군다나 못 읽죠. 이 책을 번역하기로 결정한 건, 작가가 우울한 사람의 상태를 굉장히 공감이 가게 그렸기 때문이에요.

 

처음 책을 본 독자들은 ‘블랙독’이 뭔가? 싶을 것 같아요.


이 책에서는 블랙독을 ‘녀석’이라고 번역했는데. 무엇으로 부르는 게 가장 적당할까에 대해서 많이 고민했어요. 블랙독, 놈, 그 새끼, 검둥이 개 등 여러 단어를 떠올렸는데요. 우울증이라는 게 사람을 계속 따라다니는, 밀쳐버릴 수 없는 거잖아요. 나에게 이런 것이 있다는 걸 인정하고 넘어가야 하는 개념이 있어서 결국 ‘녀석’이라는 표현을 택했어요.

 

특별히 기억에 남는 그림이 있나요?


45쪽에 나오는 그림인데, 블랙독이 침대에 누워있는 남자를 누르고 서있잖아요. 굉장히 인상 깊었어요. 우울증은 우울이라는 큰 정서에 압도를 당하는 거거든요. 건강한 사람이 기분 나쁜 거랑 차원이 달라요. 나의 일부가 기분이 나쁠 수도 좋을 수도 있는데, 우울증은 나쁜 기분이 지속되는 거예요. 우울이라는 말을 너무 흔히 쓰는 게 문제인 게, 영어로 번역하면 우울증은 ‘Depression’이거든요. Press, 즉 어떤 눌리는 느낌이 있어요. 본인이 우울증을 갖지 않으면 그런 기분을 느끼기 어려워요. 사람들이 흔하게 “나 우울해”라고 말하는 것과는 차원이 달라요. 그걸 뛰어넘어요. 위에서 짓눌러서 손가락 하나 까닥할 수 없는 그런 감정인데, 정말 겪은 사람만이 알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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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매튜 존스톤’은 실제로 20년 넘게 우울증을 겪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굿바이 블랙독』을 쓰게 됐고 쓸 수 있었겠죠.


제가 자주 하는 말이 있는데, “우울은 정신질환이 아니고 전신질환”이라는 거예요. 그야말로 전신의 모든 기능이 떨어지는 게 우울증이에요. 그런 느낌을 알아야 하는데, 이 책의 저자는 그런 느낌을 잘 표현했어요. 우울이 꼭 감정만은 아니거든요. 태도, 무거움 그런 것들도 포함되는데, 그런 전체적인 느낌을 잘 담은 책이에요. 그림 자체도 예쁘고요.

 

그렇다면 단순히 우울한 감정이 있는 사람보다, 우울증을 현재 겪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책인가요?


우울이라는 게 결국 정도의 문제, 스펙트럼인데요. 아주 가벼운 우울도 있고, 그야말로 총체적으로 우울증이 와서 약을 먹고 입원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어요. 이 책은 우울의 다양한 형태들을 골고루 보여주고 있어요. 우울해서 집중력이 떨어져서 계산을 잘 못하는 경우, 자신감이 없고 위축해지는 사람, 기억력이 딸려서 치매 증세가 오는 경우 등 다양한 모습이 그려져 있어서, 자신의 상황에 부합된다면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실제로 책을 읽게 함으로 우울증 환자를 치료하신 적이 있나요.


아주 애정을 갖고 있는 책이 있어요. 제가 일찍 번역한 책인데 지금은 절판됐을 거예요. 미국 정신과 전문의가 제안하는 우울증 치유 방법 92가지를 담은 『우울증에서 벗어나기』이란 책인데, 미국에서는 100만 부가 팔렸던 책이에요. 똑같은 책을 제가 두 번 번역했는데, 환자들에게 드리고 싶어서 번역한 책이에요. 실제로 많이 드리기도 했고요.

 

환자들에게 효과가 있었나요?


문제는 이 분들이 책을 읽을 여유가 없다는 거예요. 나중에 이 사람이 건강해졌을 때는 “그 책 읽어보니까 좋더라고요”라고 하는데, 정작 우울증을 극심하게 겪고 있을 때는 책이 안 읽히는 거죠.  몸도 움직이기 싫은데, 책이 읽혀질 리가 없는 거예요. 그 책이 분량이 많은 것도 아니었는데도요. 그래서 훨씬 분량이 적어져야 하고, 그림 같은 게 많아야겠구나, 라는 생각을 했어요.

 

『굿바이 블랙독』 106쪽에는 ‘우울증을 예방하는 마음의 기술 5가지’가 실려있어요. 교수님께서 직접 쓰신 내용인데요. 많은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법 한 가지를 꼽아주신다면요.


첫 번째 항목인 ‘움직여라’라는 건데, 우울할 때는 움직이는 게 거의 불가능한 일처럼 느껴지지만 10분만 걸어도 기분이 금세 좋아져요. 그래서 제가 운동화를 사러 가는 일부터 시작해보라고 한 거예요. 미국에서 약 처방 이외에 우울한 사람을 회복시킬 수 있는 대체의학을 찾아보는 실험을 한 적이 있어요. 효과가 있었던 게 딱 하나인데, 바로 운동이었어요. 문제는 우울증이 있으면 움직이기 싫다는 건데, 안 움직여서 우울한 거거든요. 움직일 수만 있다면, 그게 최선의 방법이에요. 저는 강제로 움직이게 하는 기계도 개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스스로 움직이게 만드는 게 되게 의미 있는 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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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 분노, 불안. 우울은 모든 감정에 잘 묻어난다


한동안 우울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지만, 요즘 한국 사회를 보여주는 감정은 ‘분노’인 것 같습니다. 우울하다고 꼭 분노로 감정이 표출되는 건 아닐 텐데요.


100% 맞는 건 아니지만, 대개 화라고 하는 게 밖으로 표출되면 ‘분노’이고, 자기 안으로 들어가면 ‘우울’인 경우가 많아요. 정서가 확실히 달라요. 우울과 분노는 아주 중요한 정서인데요. 인간의 부정적인 정서인 우울, 분노, 불안은 같이 묻어서 다닐 때가 많아요. 삼형제죠. 그런데 우울은 어떤 감정과도 같이 잘 묻어 나오는 경우가 많아요. 우울한 사람은 불안하기도 하고 화도 내는 반면, 화만 나는 사람, 불안하기만 한 사람도 있어요.

 

SNS에 자신의 감정을 자주 토로하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온라인 공간에서라도 위로를 받고 싶어서 그러는 걸까요? 이것이 우울함을 해소하는 좋은 방법인지, 궁금합니다.


너무 SNS에만 감정을 표현하는 건 좋지 않아요. 친구나 사람들을 만나서 표현하는 건 너무 좋은데, 만나지 않고 SNS에서만 푸는 건 위험해요. 인간관계가 없는 상태에서 SNS를 하면 댓글이 없어도 문제고, 마음에 안 드는 댓글을 봐도 문제거든요. 우울할 때는 SNS를 많이 안 하는 게 도움이 돼요. 표현은 하되 SNS 위주는 좋지 않아요. 사람을 만나서 활동하는 게 가장 좋은데, 왜냐면 만나려면 우선 움직여야 하잖아요. 그런데 SNS는 방에 틀어박혀서 하는 거니까 좋지 않아요. 누구라도 만나는 게 훨씬 도움이 돼요.

 

자신의 감정에 특히 예민한 사람들이 있는데요. 어쩔 수 없는 기질 때문인 건가요. 너무 예민하면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인들도 피로하게 만드는데요.


감정이라는 게 우리의 일부거든요. 그런데 그걸 너무 크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감정이 자기의 주인인 것처럼 사는 사람들이 있어요. 감정의 영향을 너무 많이 받는 거죠. 감정은 날씨랑 되게 비슷해요. 비가 오면 죽는 사람이 있는데, 비가 계속 오나요? 언젠가는 그치죠. 다시 해가 난다고 무조건 좋아지는 것도 아니고요. 중요한 건, 결국 비도 지나간다는 거예요. 한국 사람들이 굉장히 기분파인 사람들이 많은데요. 심지어 자기 아들을 너무 사랑하지만, 자기 감정이 너무 격하니까 막 때려요. 나의 본질과는 상관이 없게 되는 거죠. 감정이 우선이니까. 런던 같이 비가 많이 오는 도시도 있고, 캘리포니아처럼 날씨가 맑은 곳도 있어요. 그렇다고 런던이 가치가 없고, 캘리포니아만 가치가 있나요? 살기는 캘리포니아가 편하겠지만, 가치랑은 관계가 없어요.

 

하지만 종종 착각하게 돼요. 


속는 거죠. 너무 감정이 안 좋으니까. 날씨 영향을 너무 많이 받는다면, 날씨가 안 좋은 대로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해요. 내가 날씨가 안 좋으면 욱 할 때가 많다면, 우산을 준비해야죠. 비가 오면 그냥 집에서 빈대떡이나 부쳐먹는다던가, 나름대로의 노하우를 만들어야 해요. 그런데 사람들이 그걸 잘 안 해요. 감정에 너무 좌지우지 되는데, 자신이 그 감정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 지에 대해 노력을 안 해요.

 

간혹 자신의 감정에 지나치게 무감각한 사람도 있습니다. 노력하는 건지, 정말 그러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감정을 잘 보낼 수 있는 사람이 득도한 건데요. 대부분 수행하는 분들의 이야기일 테고요. 보통 사람들의 경우에는 희로애락에 너무 몰려다니지 않는 게, 중요해요. 휩쓸려서 살지 않는 게 중요해요. 기쁘다고 죽나요? 화나면 화날 수 있죠. 그렇지만 죽을 건 아니잖아요. 그런데 문제는 우울하면 죽는다는 거죠. 감정이 자신의 일부라는 생각을 해야 해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감정에 너무 많이 치우치는데, 그게 가장 문제에요.

 

메르스 문제도 여쭙고 싶어요. 일찍부터 마스크를 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전혀 걱정을 하지 않는 사람도 있는데요. 나라마다 문화적 차이도 있겠지만, 개인으로 보면 트라우마나 성장 환경, 성향 등의 영향도 있을까요? 메르스와 같이 전염병이 돌 때, 대처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정말 제각각입니다.


문화적 영향일 수 있는데요. 어느 나라냐, 얼마나 배웠냐, 인식에 따라서도 다른데 우리나라는 꼭 그렇지도 않아요. 서양의 경우에는 지적 수준이 높으면 공포가 낮은 편이에요. 인지적으로 확률이 적다는 게 논문에 나와 있으니까, 정보가 많은 사람들은 공포를 적게 갖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공포심이 크죠. 경제 상황에 따라서도 불안 민감도가 다를 수 있는데. 한국 사람들은 문화적으로 따지면 굉장히 현세지향적, 가족지향적이에요. 지금의 것들이 무너진다는 것에 대한 공포심이 큰 편이에요. 한국은 조선시대에서 넘어오면서 정신문화가 무너졌기 때문에 뭐가 중요한 것인가, 즉 정신문화적 가치가 별로 없어요. 현세적인 삶에서 누리는 것들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현실에 있는 것들이 무너진다는 것에 대한 공포가 커요. 경제적으로 망가진다든지, 자녀가 아프다든지. 그럴 때 되게 큰 공포를 갖는 거죠.

 

개인의 민감도가 다른 것은 기질, 성향의 차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그런 것도 있죠. 원래 불안이 높았던 사람은 메르스 사태 같은 게 터지면, 불안이 확 높아지니까요. 아무리 건강한 사람도 불안하긴 하지만, 차이는 있죠. 물잔을 생각하면 돼요. 원래 불안이 찰랑찰랑 차있던 사람은 물을 조금만 더 부으면 넘치잖아요. 하지만 원래 물이 반밖에 안 차 있던 사람은 물을 조금 부어도 넘치진 않죠.

 

메르스 사태가 일어났을 때, 격리자 상담을 하셨잖아요.


전화 상담을 요청하는 분들은 대개 불안이 높은 분들이신데요. 자신이 환자가 아니고 격리자인데도, 격리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불안하신 분들이 많았어요. 제가 아는 정신과의사 한 분도 격리자였는데, 나중에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니 본인도 밥을 먹으면서 열이 오르니까 막 걱정이 됐다고 하더라고요. 사람이 원래 밥을 먹으면 열이 오르잖아요. 근데 민감한 상황이니까 더 심각하게 느낀 거죠.

 

국가가 제대로 빠른 대응을 하지 않아, 불안을 조장한 것도 문제였습니다.


그렇죠. 사실 우리나라는 우울도 문제지만 불안이 큰 나라에요. 나라에서 불안을 조장해요. 국가적으로도 부모도 아이들한테 “너 공부 안 하면 큰일난다”고 불안을 조장해요. 우울이라는 정서는 불안 이후에 따라오는 경우가 많아요. 우리나라는 불안을 조장하니까 사람들이 불안이 높은데. 메르스 같은 사태가 생기면 그 불안이 확 높아지는 거죠.

 

상담을 하시면서는 격리자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셨나요?


가장 중요한 건, 이런 불안한 마음, 정서도 지나간다는 거예요. 계속 불안하면 못 살잖아요. 심호흡을 하는 것도 도움이 되고요. 무엇보다 이 감정을 잘 보내는 게 중요해요.

 

3년 전부터 옵티미스트 클럽을 만들어 운영하고 계신데요. 한 달에 한 번, 정기모임을 갖는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나누나요?


지난 달에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무엇을 했나, 어떤 노력을 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해요.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긍정적인 활동을 하는 게 어떤 전염력이 있어요. 긍정적인 정서를 가진 사람들이랑 긍정적인 환경을 만들어나가고, 좋은 일을 하려는 사람들과 뭉치는 게 힘이 돼요. 매달 둘째주 화요일에 만나는데요. 만 원만 내시면 김밥도 드리고 차도 드려요. 제가 강연을 할 때도 워크샵을 할 때도 있고요.

 

정신과의사들은 매일 매일 심리적으로 힘든 상태에 있는 환자들을 마주하는데요. 그에 따른 피로감도 많을 것 같습니다. 교수님은 “환자를 통해 내 자신이 성숙하게 된다”고 말씀하시기도 하셨는데.


정신과의사가 확실히 그런 장점은 있어요.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정신이 건강하다고 볼 수는 없지만, 정신과의사를 하기 전의 내 모습과 비교하면 그 전보다는 나아졌으니까요. 산부인과의사가 진료를 하면서 자궁이 튼튼해지진 않잖아요. 정형외과의사가 다리가 더 튼튼해지는 것도 아니고요. 그런데 정신과의사는 환자들을 만나면서 자기 멘탈 관리를 하게 돼요. 일반적으로 건강하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누군가 “당신 건강하냐?”고 물었을 때 “의사를 하기 전보다는 정신적으로 건강하다”고는 말할 수 있는 거죠. 직업이 그런 건, 좋은 일이에요.

 

만약 유유자적하게 보낼 수 있는 한 달의 휴가가 주어진다면, 어떤 책을 읽고 싶나요?


지금은 책을 쓰고 싶어요. 밀려 있는 일이 너무 많아서요. 약속되어 있는 것들도 조금 있고. 책이라는 게 운이 좋으면, 100만 명한테도 읽히게 되잖아요. 진료는 아무리 많이 봐도 하루에 100명, 50명 한계가 있는데. 책이라는 건 제한이 없어요. 제가 100명의 환자를 보면 1명이 변하는데, 그 비율로 책을 따져보면 100만 명이 읽었을 때, 1만명이 변할 수 있잖아요. 아, 책을 쓴다고 하더라고 백만 명까지는 읽어주지 않으시려 나요? (웃음)

 

(웃음) 『굿바이 블랙독』은 짧고 금방 읽을 수 있는 책인데요. 특히 이 책이 도움을 줄 것 같은 대상은 어떤 독자들일까요.

꼭 우울하지 않더라도, 감정에 너무 영향을 많이 받는 분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아요. ‘블랙독’이라는 큰 덩어리를 이야기하지만 그건 어떤 감정이거든요. 감정의 지배를 많이 받는 분들에게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아요.

 

우울증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는 분들도 많을 텐데요. 어떤 도움을 주고 싶어도 방법을 잘 몰라서 그냥 이야기를 들어주고만 있는 분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그런 분들 때문에 우리나라가 돌아가고 있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어요.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시는 거거든요.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건 정말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이에요. 제가 나라라면 훈장을 주고 싶어요. 굉장히 훌륭하고 자부심을 가질 있는 일이에요. 문제는 내가 건강해야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거예요. 누군가 힘들다고 이야기할 때, 들어줄 수 있는 체력, 마음이 있어야 해요. 감정은 전염력이 강해요. 우울에 전염되지 않으려면, 내가 먼저 건강해야 해요. 자기 정서를 유지하는 게 좋아요. 그럴 때『굿바이 블록독』이 조금 도움이 될지도 모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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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블랙독매튜 존스턴 저/채정호 역 | 생각속의집 | 원서 : I Had a Black Dog
우울증 때문에 모든 것을 잃어버리기 직전, 그는 용기를 내어 블랙독과 마주하며 이렇게 말한다. ‘내가 가진 문제로부터 도망가기보다는 문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 이 책에서 그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블랙독을 효과적으로 길들이는 방법을 제시한다. 그 방법은 간단명료하다. 몸과 마음을 부지런히 움직여서 블랙독을 멀리 떠나보내라는 것. 예를 들어 걷기나 달리기로 몸을 자주 움직이고, 블랙독이 좋아하는 스트레스, 불안 등을 떨치기 위해서 휴식과 명상으로 평온한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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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작가 특집] 공지희 “어른들만 애써 모른 척 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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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이 모르고 있을 뿐이지 어린 친구들의 세계는 훨씬 다양해요. 어른들이 더 순진하죠.”


어른들이 더 순진하다. 그저 타자의 시선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순진하다 못해 그 안에 놓인 각양각색의 삶을 한데 뭉쳐 ‘청소년’이라고 부르고 만다. 이 분류는 폭력적이다. 당신과 나의 15살이 다르듯 지금 15살들의 삶이 제각기 다르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다양한 결이 만드는 무지개를 이해하면, 그러면 좀 덜 순진한 눈으로 그 삶들을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제4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한 『톡톡톡』을 쓴 공지희 작가는 “예방주사 맞는 것처럼”, “어린 친구들이 모를 수 있는 부분을 빨리 알려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가 작품에서 다룬 청소년 임신, 낙태, 미혼모 등에 관한 이야기는 꼭 필요했던 이야기였다. 먼저 말하지 않으면 ‘사고’는 계속해서 반복될 것이고 그로 인한 상처도 점점 더 많아질 것이다.

 

“우리 사람들은 누구나 이런 아기였지. 우주의 기운이 가장 충만한 존재로 태어나는 아기. 하지만 자라면서 그 기운을 점점 잃어버리게 돼. 걸음마를 하고 오줌똥 가리고 말을 배우고 세상 지식을 채우면서.”
(중략)
어른들은 뭔가? 나이가 많다는 단 한 가지 이유만으로 자신들이 항상 옳다고 우기는……. 보풀들도 나도 그들도 똑같은 하나의 생명일 뿐이다.(209쪽)

 

작가는 그 안에 무참하게 소외당하는 존재들에 주목했다. 바로 ‘보풀’들이다. 노랑 모자를 쓰고 나타난 이 존재는 그들 자신이 생명이라는 사실을 온몸으로 증거한다. 그 존재들을 쉽게 말하는 어른들, 소중히 여겼으나 잃어버린 언니, 고민에 빠진 친구, 이들 주변에 있는 빛나는 생명이 참으로 애틋하게 그려진다. 다 할 수 없는 말을 담은, 아기 울음과도 같은‘톡톡톡’이 오래도록 가슴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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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들이 알아야 한다


먼저 제4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기분이 어떠세요?


반가운 마음과 걱정스런 마음, 두 가지죠. 글을 오래 안 썼어요. 판타지 작품이 이해를 못 받는 경우도 있었고요. 잘 쓴 판타지라면 그런 핑계가 통하진 않겠죠.(웃음) 톡톡톡, 이 작품은 오래된 글이에요. 한참동안 썼다가 가지고 있다가 다시 쓰고, 그러다가 결판을 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확인을 해보고 싶었어요. 마무리를 해야 한다는 개념으로요. 해 볼만큼 했으니, 책이 되든지 말든지 결정이 되고 나면 어느 방향으로든 마음 편하게 놓아야겠다, 그 지점에서 선택했던 게 공모전이었는데요. 기대도 하지 않았다가 소식을 듣고 너무 놀란 거예요. 감정이 무뎌져서인지 수상보다는 책이 나오게 된 게 기뻤어요. 좀 자유로워지겠구나 싶었고요.

 

이 작품을 구상하고, 쓴 것이 꽤 오래 전이더라고요.


단편 작업을 해놓은 게 10여 년 전 인 것 같아요. 써놓고는 조금씩 생각이 달라졌어요. 장편으로 깊이 있게 써야겠다 생각하고 있다가 그리고 4~5년 전쯤에 장편으로 썼어요. 그때는 동화로 썼는데요. 리얼한 공감을 위해서, 섹스, 연애, 성에 대한 개념들이 필요하더라고요. 동화에서는 다루기 힘든 부분이죠. 그래서 청소년 문학으로 선택을 하게 된 거죠. 

 

그동안은 동화책을 써오셨는데, 청소년 소설을 쓰게 된 이유가 주제 때문이었군요.


네. 성 문제 등에 대해 접근을 하고 리얼리티를 확보하려면 청소년 소설로 써야 했어요. 그간 써오던 동화로 쓸 수도 있었겠지만 맞지 않는 것 같았어요. 모르겠어요. 이 이야기가 처음에는 동화인 척 하면서, 단편인 척 하면서 왔다가 이렇게 왔는데요. 어느 땐가는 성인 소설로도 써볼까 고민했던 적도 있어요. 그리고, 청소년들이 알아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사례 조사를 할 때도 느꼈던 부분이고요. 이게 현실인가 싶을 정도로 청소년들에게 놀라운 일들이 많이 일어나더라고요.


이런 이야기를 한 작품이 많았다면 모르겠는데요. 청소년의 임신, 낙태, 미혼모 이야기는 많이 있는데, 죽은 아이들은......, 많은 생각이 찾아오더라고요. 그들의 이야기도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노랑모자, 마리 같은 그 죽은 아이들 말이죠?


사실 그 아이들이 주인공이에요. 아직 독자들과 만나지 않은 상황이라 잘 모르겠는데요. 어른들의 경우는 이 작품을 보고 청소년의 낙태 문제로 이해하는 분들도 계셔요. 그렇지만 죽은 아이들의 이야기가 없다면 이건 다른 낙태 이야기와 다를 게 없잖아요. 조금 더 이 아이들 쪽으로 이야기를 끌고 가야 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독자들의 판단이 어떨지 궁금해요.


청소년 임신과 낙태라는 이 소재가 청소년 소설을 쓰게 했다고 하셨는데, 이런 소재가 또 있으세요?


고학년 동화를 쓰다 보면, 이 글을 청소년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싶을 때가 있어요. 경계에 있는 소재들이라고 할까요. 그런 건 청소년 소설로 써보려고 해요. 청소년 소설이라도 초등학생들도 읽었으면 좋겠어요.

 

사실 장르의 구분이라는 건 의미 없는 경우가 많잖아요. 더 어린 친구들도 얼마든지 청소년 소설을 읽을 수 있고요. 다양한 소재들이 더 많이 이야기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초등학생들 독서능력이 어느 정도까지 갔는지 잘 모르겠지만, 동화에서만 다루어지는 세계 밖의 이야기를 예방주사 맞는 것처럼(웃음) 책을 통해 경험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요. 독서를 통해 다양한 소재들을 소화해 낼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 어른들이 모르고 있을 뿐이지 어린 친구들의 경험이나 정신세계는 훨씬 넓고 다양해요. 어떨 때 보면 어른들이 더 순진한 경우도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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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만 애써 모른 척 하는 것


곰곰이 생각해보면 우리 모두의 청소년기는 결코 어리지 않은 시기에요.


당연하죠. 진짜 그래요. 저희 때도 학교에 그런 친구들이 있었어요. 어른의 세계에 들어가 있는 듯한 친구들. 임신한 애도 있었고, 동거하는 애들도 있었고, 가방에서 콘돔 나오는 애도 있고 그랬어요. 물론 그런 세계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애들이 훨씬 많았겠지만. 어른들은 그들이 아이들에게 바라는 입장에 서서 애써 모른 척 하는 부분이 분명 있긴 했던 거죠. 그런 입장에서 보면 『톡톡톡』에 나오는 인물들이, 좀 순진하거나 시시하게 느껴지는 청소년 독자들도 있을 수 있어요.

 

그 중에서도 달림은 참 기특한 아이인데요. 학교도 믿지 않고, 잘못된 것에 대해서는 무서운 어른이라도 따져들죠. 스스로 생각하는, 심지 굳은 아이에요. 우리 모두가 달림이 될 수 없다면 세상에 더 많은 달림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달림 캐릭터는 어떻게 태어난 건가요?


그런 아이가 많지 않겠죠.(웃음) 그렇지만 있긴 있을 것 같지 않으세요? 있음직한 캐릭터를 상상했어요. 어느 바닷가 마을, 조그만 항구에 횟집을 들어갔는데 그런 아이가 있었다, 라고 충분히 상상할 수 있잖아요. 배경은 제가 염두에 두고 쓴 장소가 있는데요. 아주 작은 항구에 위치한 식당 이름이 식당 주인의 딸 이름이었어요. 주인이 혼자 아이를 키우며 식당을 하신다고 하더라고요. 그곳을 생각하며 썼죠.

 

‘톡톡톡’은 인사말이자, 감탄사, 말도 다 전할 수 없는 어떤 건넴이에요. 작가가 생각한 ‘톡톡톡’은 어떤 의미였나요?


여러 가지 방향으로 생각을 할 수 있잖아요. 두드리는 소리에서 시작됐지만 그것으로 아이가 엄마를 확인하게 됐고요. 아이의 ‘톡톡톡’은 세상의 것을 다 배울 수 없었던 아이가 자기감정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이었죠. 때문에 제목으로도 쓰게 됐어요. 다른 제목을 쓸 여지가 없었어요. 이걸 넘어설 제목이 없었죠. 이 제목이 세상을 향해 소통을 시도하는 아이의 신호로 들렸으면 해요.

 

아기들이 말을 하지 못할 때 울음소리로 감정을 전달하잖아요. 똑같은 울음이라도 다른 의미가 있는 것처럼 ‘톡톡톡’ 역시 그런 것이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렇게까지 생각해주시다니(웃음). 그러니까 노랑 모자의 표현 방식은 다 ‘톡톡톡’인 거죠. 자기를 알릴 수 있는 도구고요.

 

노랑모자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엄마 만나서 정말 정말 좋았어. 이제 나는 괜찮아. 엄마를 만났으니깐. 엄마도 나를 만났으니깐 이제 괜찮아야 해?”
언니가 힘들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톡톡톡!”
노랑모자가 언니의 손가락에 대고 말했다.
“이건, 사랑한다는 뜻이야.”(285쪽)

 

부제목들도 읽는 재미를 주더라고요. 목차만 읽어도 이야기를 하나 읽은 것 같은 느낌이에요. 참 좋았어요.


정말 힘들게 만들었어요. 3, 4일 동안 고민했어요. 이것만요. 처음부터 이렇게 넣은 건 아니에요. 처음엔 번호만 쭉 매겼어요. 출판사 측에서 소제목을 넣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쓰게 됐죠. 단순하게 단어를 나열하거나 밋밋한 소제목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목차에 대한 새로운 시도를 해보고 싶었죠. 그런데 소제목 쓰는 게 훨씬 힘들었어요.(웃음) 평범하지 않게 하려고 애썼어요. 왜 이렇게 목차에 욕심이 났는지 모르겠어요.

 

손재주가 좋은 달림은 인형을 만들어요. 인형을 만드는 과정이 생명의 탄생 과정에 대한 은유로 읽히던 걸요.


처음 쓸 때는 인형 만드는 장면을 많이 넣었어요. 개인적으로도 인형 만드는 것에 관심이 있고요. 뱃속 아이의 외형적 상징물로 인형을 선택한 거예요. 인형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아이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한 투사로 선택한 거죠. 그런데 인형 만드는 방법을 자세히 적는 게 흐름을 깨는 느낌이 들어서 좀 뺐어요.

 

공부 잘하고 똑똑한 해림이는 못한 결정을 멋 부리기 좋아하고 부모님 속 썩이는 미루는 해낸 것 같아요. 흥미로운 대목입니다.


고정관념이 우려되긴 하는데요. 성적이 좋고 똑똑하다고 하는 아이들이라고 꼭 어른들이 바라는 모범생일거라는 것도, 연애를 하고 사고를 치는 아이들이라고 다 성적이 나쁘리라는 법은 없다고 봐요. 제 각기 유형이 다른 거죠. 조심스러워요. 결국은 가르치려고 쓴 거구나 하는 반응이 나올까봐서 걱정이 돼요. 교훈적으로‘이래야 한다’고 가르치려던 게 아니라는 점을 말하고 싶어요. 그들 나름의 고민과 선택에 대해서는 존중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었어요. 작품 안에 남성의 역할이 거의 없다는 점이에요. 지평이가 우정으로 기운을 넣어주는 정도죠. 달림의 아빠는 아예 없고요. 어쨌든 생명의 탄생에 참여를 한 존재들이 이곳에 ‘없다’는 게 의아했어요.


사례들이 1부터 10까지 있다면 가장 극단적인 사례를 말씀 드리고 싶었어요. 아기를 같이 만든 남성 중에 어떤 경우에는 여성보다 더 아기의 존재에 대한 존중을 하는 남성도 있겠죠. 하지만, 대부분 뱃속의 아기를 자기 몸처럼 목숨처럼 생각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고 생각하고요. 그건 남성이라는 존재 자체가 갖고 있는 특성일까? 저도 궁금해요. 물론 그런 남자들이 나쁘고, 그러면 안 되고, 하는 일반적인 생각은 갖고 있지만 그들이 아이를 가진 여성만큼 뱃속의 생명과 유대감을 가지기 힘들 거라고 생각해요. 생태학적, 본능적으로 말이에요.


또 이야기에 남성이 포함되면 가족주의적인 틀을 강요하는 게 될까봐 조심스러웠어요. 남성과 여성이 섹스를 할 때 결혼하려고만 섹스를 하는 건 아니잖아요. 이 사람이 내 뱃속에 아이가 들어왔을 때 어떻게 해줄 것이라고 약속을 받고 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런 것에 대한 절실한 각성이 여성들에게는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이야기를 읽고 남성, 남학생들이 그런 부분을 생각해준다면 좋겠지만 우선 여성이 먼저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거죠. 그런 이유로 이야기 전개에 남성이 크게 필요하지 않았어요.

 

아름답고 환상적인 동굴 묘사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아름답게 그리려고 했어요. 그래야 되잖아요. 평범한 동굴은 일단 아니어야 하니까요. 그 아이들이 와서 잠깐 있다가 가는데 좋은 곳에서 있게 해주는 게 당연해요. 더 재미있고, 더 신나게 해주고 싶었어요. 바닷가를 놀이동산처럼 아이들이 정말 좋아하는 장소로 만들고 싶은 생각이 있었어요.

 

이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의 생각이 어떻게 바뀌길 바라세요?


그건 얘기를 할 수가 없어요.(웃음) 이야기를 통해 달라질 수도 있고, 안 달라질 수도 있겠죠. 각자가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 어떤 환경에 처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죠. 어떤 정신적인 기준을 세워준다는 생각은 아예 없고요. 이 책의 운명은 이제 저를 떠났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교훈적으로 읽히는 것을 지나치게 경계하시는 것 같아요.


당연하죠. 그런데 그렇게 읽힐 수도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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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해답을 찾을 수 있게 하는 책


좋은 청소년 소설이란 뭘까요? 아니면, 이런 질문이 가능하긴 한 걸까요?


글쎄요. 좋은 것과 나쁜 것이 따로 없지 않을까 생각해요. 한 사람에게 좋은 게 모두에게 좋을 수는 없는 거라고 생각하고요. 좋다는 기준이 굉장히 주관적이잖아요. 개인적인 입장을 하나하나 들여다볼 때는 정말 아무것도 없는 소설도 좋은 소설일 수 있어요. 외로울 때 자기에게 위로가 되는 문학을 찾고, 즐기게 되는 것 같거든요. 불후의 명작, 고전도 좋지만 주목 받지 못하고 돌아다니는 책들 중에도 굉장히 자기에게 위로가 되는 책들이 발견되는 경우를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주변 사람에게 터놓고 얘기하거나 물어볼 수 없는 상황에 있을 때 보면서 자기 스스로 해답을 찾을 수 있게 하는 책들이 있는 것 같거든요. 그런 책들이 좋은 소설이란 생각이 드는데요. 저도 지금도 그런 책들을 찾아요. 그런 책을 발견하면 정말 좋고요. 약간 약 먹듯이 책을 봐요. 위로 받고 싶고, 힘들 때마다 말이죠.

 

예를 들자면요? 작가에게 그런 책은 어떤 책들이었어요?


어린 시절에는 책을 많이 안 읽었어요. 그때는 집에 책이 있는 아이들이 많지 않았어요. 명작 전집 정도 있는 친구들이 몇 있기는 했어요. 그냥 많이 놀았죠. 청소년 때 소설 조금씩 읽기 시작했고요. 그것도 유행 따라 읽는 정도였어요. 어른이 돼서 읽기 시작했으니까 사실 어렸을 때 문학적 영향을 받은 게 없는 편이죠.


어느 날 보니, 저는 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판타지를 좋아하더라고요. 판타지라는 큰 프레임 안에서 소박한 판타지, 일상에서 소소하게 일어나는 판타지를 쓰고 싶어요. 그런 판타지의 종류를 굳이 찾아서 구분하자면 아마도 마술적 리얼리즘에 가까운 것일까? 생각하기도 해요. 맞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인지 마르케스 작품들을 좋아하고요. 미하엘 엔데, 폴오스터, 권정생의 작품들에서도 감명을 많이 받았어요.


권정생의 『오물덩어리처럼 뒹굴면서』, 에밀 아자르 『자기 앞의 생』이라는 책을 많이 추천해요. 읽고 나서 고맙다고 말하는 친구들이 종종 있어요. 저는 아마도 감동적이고 따뜻한 책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책 뒷부분에 실린 인터뷰에서 권정생 선생을 좋아한다고 하셨더라고요.


누구나 다 좋아하는 분이지만 작가들에게는 굉장히 신적인 존재였어요.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경지에 계신 분이죠. 그리고 인간적으로 정말로 멋진 선배님이셨어요.

 

책을 많이 안 읽는다고 걱정들을 많이 해요. 청소년들이나 부모들이 책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요즘 어린이 청소년 자녀를 둔 부모님들은 책을 읽히려고 하는 분들이 많이 줄어든 것 같아요. 이 와중에 아이들에게 책을 읽힌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닌 거예요. 아이들이 책 읽을 시간이 없거든요. 시간 분배의 우선순위로 치면 독서는 한참 밀려나 있어요. 중요한 일 다 하고도 시간이 남아서 심심하면 혹시 책을 읽을 수 있어요. 그렇지 않은데 책을 읽는 아이는 요즘은 혼난다고 해요.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요. 안 읽히는 차원이 아닌 거죠. 읽을 수가 없게끔 몰아가는 상황인데요. 학교에서 독서 프로그램이나 해야 읽는 정도. 권장도서 읽고 독후감 써서 점수 받아야 하는 정도인 거죠. 이 상황이 계속되면 미래가 큰 걱정인 거죠.


먼저 어른들도 책을 읽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봐요. 혼자 하기가 쉽지 않겠죠. 그러니까 둘, 셋이 모여서 함께 책을 읽기 시작하는 것도 좋겠어요. 저도 책모임에 꾸준히 나가 혼자 읽기 어려운 책을 읽어나가거나 토론을 해요. 같이 하면 훨씬 쉽게 책을 읽을 수 있더라고요. 부모들이 먼저 읽고 독서 분위기를 아이들에게 이어져야 한다고 봐요. 어떤 운동의 개념이라든가, 아니면 놀이의 차원으로 가볍게 시작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부모들이 의무적으로 독서를 한다면 조금 달라질 수도 있겠네요.


책을 읽는 부모님들은 어디가 달라도 다르겠죠. 자녀를 이해하는 폭도 넓어질 것이고.
어디 가서 아이들과 만날 때, 꼭 필요한 것이 독서라고 얘기를 해요. 사실 책을 읽는 아이들이 시험문제를 잘 읽어요.

 

요즘의 시험은 문제 자체를 이해하는 게 큰 관건이더라고요. 문제를 이해한 다음에야 답을 쓸 수 있겠죠. 오로지 성적에 관심 있는 부모님들도 이런 점을 알기는 하겠죠. 게다가 입시시절을 지나고 이후의 성인이 된 다음에도 책 읽은 경험이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일단 교육 구조 자체가 오로지 한 목표만을 위해 움직이고 있으니까 책을 읽기가 너무 힘들게 만드는 부분이 있어요. 요즘 모든 아이들이 다 힘들죠. 힘든 아이들에게, 책은 약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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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톡톡공지희 저 | 자음과모음
『톡톡톡』은 낙태나 생명 경시 등 이 시대 신선하지 않을 수 있는 소재를 너무나 잘 직조해낸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그래서 오히려 신선하다는 심사평까지 받았다. 뛰어난 상상력으로 낙태된 영혼에 대해서도 자기가 그린 세계를 동굴로 가시화시켜서 보여준다. 환상적인 세계를 리얼하게 이끌어냈다. 강한 주제의식을 이야기 속에 잘 녹이고, 확실하게 현실에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아이, 노랑모자를 매력적으로 그려서 읽는 이들의 마음을 끝까지 애틋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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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장강명 “독서는 자기 것, 휘둘리지 말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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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문을 찾는 독자, 재미를 찾는 독자, 감동을 찾는 독자, 교훈을 찾는 독자. 세상에는 수많은 독자들이 존재한다. 그렇다면 작가들은 어떠한가. 오로지 자신의 문학적 성취만을 위해 글을 쓰는 사람이 있을까. ‘절대’라는 것은 없겠지만, “누구에게라도 읽히길 원하기 때문에 책을 낸다”는 명제 앞에서 자유로울 작가들은 많지 않다. 작가들은 간혹 독자들의 리뷰는 전혀 읽지 않는다며, 그들의 반응에 초월한 듯한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독자들은 궁금하다. 작가가 왜 이 작품을 썼는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인지 묻고 싶고, 때론 작가와 직접 대면하고 싶다.

 

이러한 독자들의 심정을 모르지 않을 텐데, 등단 5년차 작가인 소설가 장강명은 최근 ‘북 콘서트 싫어요’라는 제목의 칼럼을 썼다. “독자를 그냥 책으로 만나고 싶다”며, “창작자가 감상자를 가장 방해하기 쉬운 예술도 문학”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인터뷰도 하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 책을 펴낸 뒤의 인터뷰에서 작품을 논하지 않기는 어려운 일일 테니. 하지만 장강명은 올해 참 많은 인터뷰를 했다. 작품 이야기, 작가 개인의 이야기, 한국 출판계에 대한 비판도 거침없이 했다. 더 이상 물을 게 없을 정도로. 또한 최근 펴낸 장편소설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의 말미에는 ‘제20회 문학동네 작가상’ 수상작가로서의 장강명 인터뷰가 실렸다. 작가의 인간적 면모가 궁금하다면 그 글을 읽으면 될 터였다.

 

그러하다면 ‘2015년 대한민국 출판계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고 있는 작가’ 장강명에게는 어떠한 질문을 해야 옳을까. 한 번 따져나 볼까? 마릴린 맨슨 티셔츠를 입고 나온 장강명 작가에게 물었다. “이 인터뷰, 안 하는 게 맞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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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모르는 해석을 해줬으면 좋겠어요


최근 ‘북 콘서트 싫어요’라는 칼럼에서 “독자를 그냥 책으로 만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셨어요. 그런데 정작 9월 ‘소설학교’(예스24에서 매달 진행하는 독자와의 만남 행사)의 주인공 작가세요.


제가 어느 정도는 회색 분자이기도 하고 타협하는 성미가 있어요. 어떻게 보면 인생철학이기도 한데, 매사에 체념하는 게 있어요. 저는 무슨 주의나 이데올로기, 도그마에 빠질래야 빠지기 힘든 성격이에요. 이를테면 “독서는 독자의 것”이라는 걸 극단적으로 밀어붙인다고 생각해보면요. 움베르토 에코가 그랬던가요? “작가는 책을 쓴 다음에 죽어버려야 한다. 제목은 아무거나 붙이고, 책에 대해 설명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는데, 저는 일견 동감하지만 그 정도는 아니에요. 매사에 여러 원칙들이 있는데 어느 정도는 타협하죠. 저희가 지금 마시는 커피가 한 잔에 4천 원쯤 하잖아요. 그런데 어느 아프리카 사람들은 4천 원이면 이틀 끼니를 때울 수 있어요. 사실 저희가 지금 굳이 커피를 마셔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극단적으로 보면 부조리한 현실일 수 있죠. 그렇다면 저희가 당장 커피를 끊어야 하나요? 그렇지도 않죠. 저에게는 독자들을 책으로만 만나고 싶은 마음이 있는 반면, 책이 좀 홍보되고 좀 팔렸으면 하는 마음도 있어요. 그러니까 어느 정도 선에서는 하는 거죠. 안 했으면 좋겠다는 원칙과 해야 하는 것 사이의 일종의 타협이에요.

 

‘어느 정도의 선’을 말한다면요?


요즘 유료 북 콘서트가 있더라고요. 저는 이것까지는 안 할 것 같아요. 타협이라는 의미는 어느 정도에서 정하는 거예요. 제가 타협주의자라고 비판을 받으면, 인정하고 받아야겠죠. 저는 어떤 의미에서는 모든 사람들이 타협을 하면서 산다고 생각해요. 어느 정도 위선자이고 비겁한 사람일 수밖에 없는데, 제가 생각할 때는 이게 인간의 조건이에요.

 

인터뷰는 어떤가요? 최근 문단에서 큰 주목을 받았고 연달아 책이 출간되면서, 인터뷰도 꽤 많이하셨는데요. 인터뷰를 하다 보면 자기 작품에 대한 해석을 할 수밖에 없잖아요.


애초에 텍스트의 주인이 작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인 것 같아요. 지금 이 질문을 듣고 생각났는데, 북 콘서트를 할 때도 처음에 단서를 달까 해요. 여기서 제가 하는 말에 너무 휘둘리지 마시라고요. 독자가 궁금한 게 있으면 질문을 하고, 또 인터뷰어가 대신 물어볼 수 있겠죠. 저는 책을 쓰면서 있었던 뒷이야기를 할 수 있겠고요. 하지만 독자들이 제가 책을 낸 이후에 한 말이나 인터뷰에 나온 이야기들에 휘둘리지 않길 바랍니다. 독서는 자기 것이잖아요. 주체적으로 작품을 해석하는 독자에게는, 이런 인터뷰도 좋을 것 같아요.

 

어떻게 해석을 하든 그것은 독자의 몫이라는 뜻인가요.


옛날에 제가 <중경삼림>이라는 영화를 재밌게 봐서 극장에서만 세 번을 봤어요. 저는 그 영화를 홍콩 반환에 대한 이야기로 해석했는데, 어느 날 왕가위 감독의 인터뷰를 보니까 “홍콩 반환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며 딱 잘라 말하더라고요. 저는 당황해서 속으로 약간 갈등을 하다가, ‘감독이 어떻게 말하든 나는 내가 느낀 대로 해석하는 게 맞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지금도 홍콩 반환에 대한 이야기라고 이해하고 즐기고 있는데, 독자들도 그렇게 즐겨주면 제가 좀 자유로울 것 같아요. 저는 작품이 책으로 나온 이후부터는 독자가 자기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세계라고 생각해요. 제가 만약 게임 개발자라면 가장 바라는 게, 게임 플레이어가 재밌게 게임을 즐기는 것일 텐데요. 만약 플레이어가 게임을 하고 있는데, 개발자가 옆에서 이러쿵 저러쿵 조정을 한다고 생각해봐요. 그건 아니잖아요. 스타크래프트를 만든 사람이 홍진호 씨보다 게임을 잘하나요? 아니잖아요. 저는 독자들이 제 책에 대해 저도 모르는 해석을 해줬으면 좋겠어요.

 

전작 『한국이 싫어서』에서는 기자지망생 ‘지명’의 모습 속에서,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이하, 『그믐』)에서는 스톱워치로 시간을 재가면서 소설을 쓰는 ‘작가’의 에피소드에서 장강명 작가님의 이야기가 비쳐졌어요. 지금도 스톱워치로 집필 시간을 기록하시나요?


합니다. 스톱워치로 시간을 잰 다음에 그날 그날 엑셀로 기록하니까요. 엑셀에 수치를 기록하면 평균 합계가 나오잖아요. 요즘 부진했다 싶으면, 오늘 좀 더 피치를 올려야겠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쓴 날이면 조금 여유를 부리기도 하고 그래요. 8시간이 기본인데 그 이상 쓸 때도 있어요. 12시간까지는 못 써본 것 같고요.

 

전업작가라는 타이틀 이전에 ‘전업주부’라는 이야기도 하셨어요. 전업주부로서의 삶은 어떤가요?


정말 탁월한 전업주부예요. 매일 청소를 하고 거기에 더해 일주일에 두 번, 대청소를 해서 먼지가 쌓일 일이 없어요. (웃음) 제가 처음 전업작가를 해야겠다고 말했을 때, 아내한테 너무 미안하고 고맙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가사 일을 전부 하겠다고 했어요. 아내가 “그러고 싶으면 그래”라고 했는데, 당시에는 안 믿었대요. 저의 성실함을 안 믿는 게 아니라, 장보는 거랑 세탁, 설거지까지는 하겠지만 설마 청소를 할까, 싶었던 거예요. 제가 약간 생활감각이 떨어지거든요. 덜렁거리기도 하고. 아내가 보기에는 “저거 저거 청소한다고 그러면서 접시나 깨겠지” 했던 거예요.

 

예상 외로 잘하고 있다는 뜻이죠?


(웃음) 네, 집이 우선 엄청 깨끗해요. 아내는 집안일을 한 사람이 하는 건 부당하다면서 빨래 널기 같은 건 같이 하려고 하는데, 저한테는 크게 도움이 안돼요. 비율로 따지면 9:1 정도, 제가 9예요. 처음 회사를 그만둔 해에는 수입이 없었으니까, ‘이렇게라도 아내한테 도움이 돼야겠다’는 인간의 도리 같은 거였는데 이제 그냥 적응이 된 것 같아요.

 

첫 직장이 언론사는 아니었습니다. 건설회사를 다니다 재도전해서 기자가 되셨으니 ‘기자’라는 직업에 대한 열망이 컸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11년 기자생활을 하다 2년 전 그만두셨어요. 사표를 낸 이유에 대해서는 전업작가로서의 희망도 이야기하셨지만, 기자 일이 힘들었다고도 말하셨고요. 육체적으로 힘들었던 것인지, 아니면 앞으로 데스킹을 해야 한다는 게 싫으셨던 건가요?


두 가지 이유가 다 있었던 것 같아요. 연차가 쌓이면 내근직을 하게 되는데, 그러면 다른 현장 기자가 만들어온 기사를 데스킹 하는 업무를 봐야죠. 그게 싫기도 했고 육체적으로 힘든 것도 있었어요. 1년에 2,200시간 글을 쓰겠다고 말했는데, 제게는 이 시간이 휴가 같은 느낌이에요. 1년 동안 평일에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토요일에는 서너 시간 쓰면 채워지는 시간인데, 기자로 일할 때는 일주일에 기본 70시간은 일했던 것 같아요. 하루에 12시간 일하는 게 너무 당연했죠. 아는 사람이 과로사 하고 병 걸리고 하면 덜컥덜컥 두렵기도 하고, 정신적으로 힘든 것도 있었어요.

 

그래도 가장 큰 이유는 ‘작가적 열망’이었을 텐데요.


기자 일을 할 때부터 소설을 써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기사는 어떻게 보면 한정된 틀이에요. 잘 아시잖아요. 더구나 일간지는 분량, 지면의 압박이 심해요. 큰 뉴스가 나오면 준비했던 기사도 아예 쓸 수 없고, 기자가 흥미로운 현상을 찾았더라도 그걸 쉽게 기사화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죠. 제가 오타쿠에 대해 쓰고 싶다고 해도 일간지에서 쉽게 지면을 확보하긴 어려워요. 길이의 틀 뿐 아니라 형식적으로도 되게 분명해야 하고. 야마 라는 것이 있어야 하죠.

 

『그믐』과 같은 글은 상상할 수가 없겠죠?


만약 이 소설이 기사라면, 데스크가 이렇게 말하겠죠. “너 하려는 이야기가 뭐야? 속죄야? 아니면 기억에 대해서 쓰고 싶은 거야?” 제가 “기억”이라고 답한다면 “그럼 다시 써”라고 할 테고요. 제가 쓰고 싶은 건 분명한 이야기가 아니라, 저의 어떤 이야기, 픽션이었으니까. 일간지라는 매체에는 맞지 않죠. 기자로 일할 때 열심히 했지만 애증이 있었고 한편으로는 회의도 있었어요. 쓰고 싶은 글을 쓰고 싶은데 아직 못 쓰고 있었고, 육체적으로도 힘들었으니까요. 그래도 기자가 됐을 때, 최소한 만 10년은 해보자고 생각했거든요. 주변에 이 이야기를 하도 많이 해서, 2012년에  “선배 그만둔다면서 왜 안 그만둬요?” 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어요. (웃음)

 

후배들에게는 뭐라고 답하셨나요?


“아, 글쎄 좀 더 보자”고요. (웃음) 그러다가 정작 사표를 낼 때는 준비 없이 울컥해서 냈어요. 사실 책을 한 권 더 낸 뒤에 작가로서 조금 이름을 알리고 연착륙을 하고 싶었는데, ‘아 이제 정말 못해먹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사표를 냈어요.

 

사표를 낸 후에 기분은 어땠나요.


북극에 와 있는 느낌이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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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내면 욕먹을 각오가 돼있거든요


등단작 『표백』이 한겨레문학상을, 『열광금지, 에바로드』는 수림문학상을, 『2세대 댓글부대』로 제주4.3평화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문단에서는 일찍이 화제가 됐지만, 대중 독자들에게 폭넓게 알려진 건, 『한국이 싫어서』출간 이후입니다. 이 책이 올해 5월에 나왔는데 문학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꽤 많이 팔렸습니다. 언론에서도 많이 다뤄졌고요. 작가님에 대한 뜨거운 관심이 느껴지시나요?


대중을 진짜 만나는구나, 그런 생각이죠. 『한국이 싫어서』가 이렇게 큰 반응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약간의 논란이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있었죠. 제목이 도발적이니까요. 논란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그렇게 해서 독자들을 많이 만나면 좋으니까요.

 

그런데 논란이 아니라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어요.


그러게요. 사실 ‘아, 나도 한국이 싫어’ 이런 반응만 있으니까 약간 서글프기도 했어요. 저는 책을 내면 욕먹을 각오가 돼있거든요. “아무리 그래도 ‘한국이 싫어서’가 뭐야?” 그런 반응도 있을 줄 알았는데, 이런 주제에 있어서 공격을 받는 지점에 있는 분들도 ‘아, 젊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우리 반성해야 한다’는 식이니까, 되게 놀랍더라고요. 논란이 안돼서 놀랐고, 생각보다 반향이 커서도 놀랐어요. 개인적으로 내가 올해 운이 좋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운이 좋다는 건 어떤 뜻인가요?


최근 뭔가 굵직한 한국 소설이 안 나온 지가 몇 달 됐잖아요. 타이틀이 될만한 소설이 없으니까, 이야기를 할만한 굵직한 작품이 많이 나오지 않아서, 제 책이 주목 받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들어요.

 

최근 『그믐』이 예스24 ‘오늘의 책’으로 선정됐는데, 책의 카피가 ‘특별한 주목을 받고 있는 작가’더라고요. ‘특별한’이 되게 모호한 표현이잖아요. 어떻게 느끼시나요?


제가 지금은 좀 유니크한 존재일 수가 있겠죠. 문학상을 많이 탔기 때문이 아니라, 최근에 주목 받은 작가들과는 전공도 다르고 해온 일도 다르니까요. 글의 결도 약간 다를 거고요. 제 입으로 말하는 건 민망하지만 이런 면에서 주목을 받고 있는 건, 맞는 것 같아요. 중요한 건, 제가 부응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겠죠. 빨간색이 여러 개 있을 때는 파란색이 주목을 받기 마련이잖아요. 그런 것 같아요. 제가 주목 받는 배경을 따져본다면요.

 

간혹 사람들은 누군가가 갑자기 큰 관심을 받게 되면, 질투를 합니다. 노력해서 얻은 것이라도 결실이 너무 커 보이거나 성장속도가 빠르면, 겉만 읽게 경우도 많고요. 『표백』이라는 작품을 쓰기까지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사실을 모르는 것처럼요.


제 말이 거만하게 들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요. 한국 소설이 지금 돌파구를 찾고 있는 건 맞는 것 같아요. 뭔가 질적으로 낮다는 이야기가 아니고요. 저는 SM 소속 가수들을 보면 하나하나 완성도가 엄청 높다는 생각이 들어요. 보아의 레전드 공연을 보면 어떻게 노래를 저렇게 잘하면서 춤도 잘 추지? 괴물 같다는 느낌이에요. 샤이니의 「루시퍼」를 들었을 때도 되게 좋았고, 「Ring Ding Dong」 가사도 좋았고, SM이 EXO를 만들어 중국 시장을 공략하는 전략도 혁신적으로 봤어요. 하지만 한국 대중문화 전체가 다 SM이면, 그건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슈퍼스타 K>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버스커 버스커 같은 그룹도 나왔으면 하는 마음인 거죠.

 

장강명 작가님의 케이스가 ‘버스커 버스커’일 수도 있겠네요.


여러 가지 운과 포지션을 본다면, 그렇게 볼 수도 있겠죠. 전 버스커 버스커가 사랑을 받은 게, 아이돌 그룹과 차별화를 둔 전략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보질 않거든요. 단지 그들은 본인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했는데, 운이 따라줬고 좋은 프로그램을 만나서 주목을 받게 된 거예요. 전 누가 누구보다 더 열심히 한다, 더 노력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다 본인들의 틀 안에서 열심히 다 노력을 한다고 생각해요.

 

『그믐』이 ‘제20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이기 때문에 책 말미에 인터뷰가 실려있습니다. 권희철 문학평론가님이 인터뷰를 하셨는데, 글이 참 재밌습니다. 실례가 될지 모르겠지만, 작가님은 이 글을 어떻게 읽었을까 궁금하더라고요.


되게 부끄럽게 읽었어요. 왜냐면 권희철 평론가님을 그 날 처음 뵈었는데, 문학평론가와 일대일로 이야기를 한 게 처음이었거든요. 제가 문단 수업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에 문학적 지식이 없는 사람이라서 약간 두려운 마음도 있었고, 가능하면 저를 좀 감추고 싶었어요. 작가로서 열심히 쓰고 있다는 건 드러내 보이고 싶었고(웃음) 작가적 야심 같은 건 감추고 싶었죠. 남들이 보면 얼마나 웃길까, 하는 얼토당토않은 면들은 들키고 싶지 않았고요. 인터뷰이가 저였기 때문에 당연히 제가 이야기를 더 많이 했고, 평론가님이 별 말이 없으셔서 속으로 ‘이 정도면 내가 선방했지’ 싶었는데 글을 읽어보니 저를 꿰뚫어 보셨더라고요. 부끄러웠는데, 그래도 좋은 면을 봐주신 것 같아 읽으면서 얼굴이 빨개지면서 기분이 좋아지는 그런 느낌이었어요. (웃음) 소개팅에 나가서 마음에 드는 이성을 만났는데, 상대가 별 반응이 없어서 ‘나를 안 좋아하나?’ 짐작했는데 나중에 주변 사람들에게 들어보니 “나를 괜찮다고 하더라” 그런 느낌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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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통해 위안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읽었으면


지난 8월부터 예스24 블로그에 장편 소설 「눈덕서니가 온다」를 연재 중이신데요. 강원도의 한 학교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사건을 그린, 스릴러물이에요. 책으로 엮이기 전에 독자를 만나는 기분은 어떠신가요? 블로그라는 연재처를 선택한 이유도 궁금합니다.


「눈덕서니가 온다」가 좀비 호러물이잖아요. 이 작품에 맞는 독자에게 먼저 보여주고 싶었어요. 만약 이 작품을 문예지에 연재한다고 하면, 글쎄요. 반응이 썩 좋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문예지 독자들이 원하는 작품이 아니기 때문인데요. 저는 이 작품을 종이책보다는 웹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었어요. 블로그라는 게 접근성이 되게 좋잖아요. 더 많은 독자들을 얻기도 쉽고요. 문예지에 아무리 재밌는 좀비소설이 연재되더라도 그 문예지를 살 10대 독자들은 많지 않을 거란 말이에요. 그런데 블로그는 모바일로 보기도 편하잖아요. 또 예스24 블로그를 쓰는 독자 분들을 보면, 기본적으로 글을 좋아하고 즐기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았어요. 간혹 작가들은 자신의 포지션에 따라 어떤 어떤 출판사에서 책을 내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는데, 저는 그런 게 딱히 없어요. 출판사 선택이 확고한 작가들을 나쁘게 보는 게 아니라, 저는 굳이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표백』‘작가의 말’에서 “소설을 쓰는 동안 대학 시절을 자주 돌이켜보게 됐다”고 하셨어요. 『그믐』을 쓰면서는 어떤 생각을 많이 하셨나요?


솔직히 말해 작년이랑 올해는 ‘내가 전업작가로 성공할 수 있을까?’에 대해 가장 많이 생각한 것 같아요. 공모전에 응모한 것도 그렇고요. 『표백』은 3년이 걸려서 완성한 작품인데, 당시에는 제가 기자였으니까 부담은 크지 않았죠. 벼랑 끝은 아니었으니까요. 하지만 소설을 쓰면서 저조차도 반신반의했어요. 내가 등단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요. 아내는 아예 믿지를 않았어요. 그런데 저는 속으로 ‘못할 거 뭐 있나?’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등단을 하지 못하고 전업작가로 살 수 없었더라면, 어땠을까요.


전업작가로 성공을 못한다면 길이 한 세 가지쯤 있더라고요. 홍보업계로 가든지, 잡지사에 가든지, 아니면 공대생이었으니까 기술을 배워서 재취업을 하든가. 대학 후배들 중에도 그런 케이스가 있어요. 한 후배는 기중기 면허를 따더라고요. 아마 제가 작년에 작가로 못 떴더라면 다른 길로 갔을지도 몰라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밝힌 인터뷰를 읽었어요. 물론 이 이야기가 기사의 핵심은 아니었지만, 소설가가 “나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싶다”는 말은 사실 많이 하진 않잖아요.


그런 줄 전 몰랐어요. 이 이야기를 했다고 주변 사람들한테 말하니까 이색적인 이야기라고 하던데, 전 몰랐어요. (웃음)

 

만약 스테디셀러와 베스트셀러, 두 가지만 놓고 본다면요. 그래도 베스트셀러를 쓰고 싶으신가요?


이것도 아까 말한 타협의 지점인데요. 제가 보기에 정말 나무한테 미안한 베스트셀러들이 있어요. 최소한 그런 작품은 쓰고 싶지 않아요. 물론 많이 팔리는 소설을 쓰고 싶은데. 그걸 극단으로 밀어붙이면 제가 굉장히 혐오하는 베스트셀러가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책이 있을 거란 말입니다. 세상에 흑과 백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저에게 여러 가지 작가적 욕심과 그 욕심 중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있을 건데, 그 안에서 저를 막는 선이 있을 거예요. 타협하는 선이 있겠죠.

 

의도적으로, 신작에 대한 구체적인 질문은 안 드렸습니다만. 작가가 어떤 작품을 쓴 것에는 작가적 욕망을 넘어, 어떤 독자들에게 이 작품이 유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쓸모라는 의미라기보다, ‘어떤 독자들이 읽으면 더 와 닿을 작품’이라는 측면에서요.


너무 엄숙해지나? 싶기도 하지만. 『그믐』은 마음의 상처가 있거나 자기 앞날이 밝지 않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아요. 이 소설 자체가 밝지 않은 미래를 앞둔 사람, 과거의 상처 때문에 괴로워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잖아요. 이전까지 제가 썼던 책들은 개인의 상처에 대해서는 별로 말을 하지 않는 작품이었어요. 왜냐면 제가 기자로 오래 살았기 때문에, 사람이나 사건을 기사로 대했을 때가 많았어요. 기사처럼 소설을 쓰는데 익숙해졌던 거죠. 『표백』, 『열광금지, 에바로드』, 『한국이 싫어서』가 어떤 사회현상을 포착해서 그 현상이 이야기하는 바를 설명하면서 인물들을 소설에 넣었던 거죠. 인물들이 이러저러한 감정표현을 합니다만 이건 사회현상에 대한 본인의 반응이었던 것 같아요.

 

반면 『그믐』은 “이게 장강명 작가의 소설이야?” 싶을 정도로 많이 다르고요.


지금까지 쓴 작품들과는 많이 다르죠. 사회현상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고, 상처받은 개인에 대해 쓰고 싶었으니까요. 그간 작품들의 등장인물들은 거의 센 성격의 사람이었고, 자기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에 대해 저항하는 이야기였어요. 그런데, 『그믐』은 달라요. 정말 상처에 지배당해서 사는 사람들이죠. 결국엔 모두 상처에서 해방되고요.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의 제 독자들은 사회비판적인 성향을 갖고 있는 분들이 조금 많았던 것 같아요. 사회분석 텍스트로서 소설을 읽고 즐기는 경우가 있었던 건데요. 『그믐』은 조금 더 책을 심장 가까이에서 읽고, 책을 통해 위안을 받으려는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아요.

 

『한국이 싫어서』를 재밌게 읽고 나서, 장강명 작가의 책을 역주행하면서 읽고 있다”는 독자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아마 곧 『그믐』도 읽을 것 같은데요. , 장강명의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제가 등단한 지 만 5년이 안 됐는데요. 계속 스스로 갈고 닦아가는 중이라고 생각해요. 『한국이 싫어서』를 쓰면서는 ‘내가 40대 남자 작가인데 여성이 화자인 작품을 쓸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서 썼고,
『그믐』은 ‘나도 이제 사람의 상처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봤던 작품이에요.저는 계속 이런저런 도전을 하고 시도하는 있습니다. 그저 성장하는 작가로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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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장강명 저 | 문학동네
오로지 시간을 한 방향으로 단 한 번밖에 체험하지 못하는 인간 존재의 한계를 근본적으로 성찰하는 작품이다. 일진으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다 얼결에 살인을 저지르는 남자, 그 남자의 사랑을 너무 뒤늦게 깨닫게 되는 여자, 그리고 그 남자의 칼에 아들을 잃은 한 어머니, 세 인물의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작가는 시간과 기억, 속죄라는 삶의 본질적인 문제를 풀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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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작가 특집] 김지영,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방귀 트는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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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포스타일』은 일찌감치 소문난 잔치였다. 초등학생 독자들 100명의 선택을 받아 세상에 나온 작품이기 때문이다. 어린이 책 전문 출판사 비룡소는 국내 최초로 ‘어린이 심사위원제’를 도입, 어린 독자들이 이야기를 직접 선택할 수 있도록 ‘스토리킹’ 문학상을 제정했다. 『쥐포스타일』은 세 번째로 영광을 거머쥔 작품이다. 그러니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옛말은 과감히 잊어도 좋다. 대신 기억해야 할 사실은 많은 이들이 선택한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쥐포스타일』을 선택한 어린이 심사위원들은 하나같이 ‘공감’을 이야기했다. “이야기 속 주인공이 뭐든 잘하는 아이들이 아니라 나와 같은 평범한 아이들이라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든다” “우리들의 고민이기도 한 꿈, 존재감, 우정 등을 재밌게 보여주는 책!” 이라며 찬사를 아끼지 않은 것.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어느 교실에나 있을 법한 아이들이다.

 

부모님과 선생님에게 말썽쟁이로 낙인 찍히고 친구들과의 관계에서는 스스로 왕따가 되길 선택한 ‘구인내’ 똑똑한 건 알겠는데 그래서 조금 많이 재수 없는 ‘나영재’ 아역배우로 활동할 만큼 예쁘장한 얼굴에 새침한 성격을 가진 ‘봉소리’ 취미는 식사요 특기는 방귀뀌기인 ‘장대범’.

 

닮은 구석이라고는 조금도 없어 보이는 네 명의 아이들은 특별한 사건을 계기로 친구가 된다. “폭우가 쏟아지고 천둥 번개가 치는 아주 기분 나쁜 날” 문제의 자석이 나타난 것이다. 나영재와 봉소리, 장대범의 엉덩이에 붙어서 떨어질 줄 모르는 녀석을 두고 구인내는 하나의 가설을 세운다. ‘자석은 방귀를 따라다닌다!’ 이 일을 계기로 네 명의 친구들은 방귀(Gas) 사건을 해결하는 사총사 ‘쥐포(G4)’가 된다.

 

그들을 둘러싼 미스터리한 사건들 속에는 현실을 투영하는 거울들이 감춰져 있다. 학교에는 “자기를 소개하는 글에도 별 도장의 개수로 치사하게 점수를 매겨 놓은” 선생님이 있고 집에는 “학교는 조용히 다니는 거야. 있는 듯 없는 듯”이라고 말하는 엄마가 있다. 그 안에서 아이들은 “선생님들이 우리에게 꿈을 가지라고 말하는 건 우리가 꿈을 갖는 게 중요해서가 아니라, 그 말을 하는 게 선생님들이 해야 하는 숙제이기 때문이란 걸” 알아가고 “진짜 잘할 수 있는 걸 놔두고 가짜 특기를 쥐어짜”며 살아간다. 『쥐포스타일』에 대해 “아이들은 모처럼 실컷 웃겠고 어른들은 몰래 방귀 뀐 사람처럼 부끄러움을 느낄 것이다”라고 말한 평론가 김지은의 말에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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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걸 잘 해내지 못해도 괜찮아


『쥐포스타일』은 어린이 심사위원이 직접 선정한 작품인 만큼 작가님에게도 의미가 남다를 것 같습니다.

 

 당연히 훨씬 더 영광스럽죠. 어른들보다는 어린이들이 좋아할 거라는 생각을 했었어요. 한편으로는 ‘어른들의 입장에서는 재미있는데 요즘 어린이들은 어떻게 봐줄까’라는 걱정이 있었고요. 아이들이 올려준 심사평을 나중에 봤는데, 다행히도 재미있고 공감된다고 이야기해줘서 제 마음이 통한 것 같아 기뻤어요. 『쥐포스타일』에는 튀는 설정이 없어서 어찌 보면 밋밋할 수도 있는 이야기인데, 의외로 아이들이 평범한 일상에서 공감을 느꼈다고 하더라고요.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날 법한 일들과 교실에 한두 명씩은 있는 아이들이 등장하니까 더 편하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쥐포 스타일』에 대한 평가에서 빠짐없이 등장하는 단어가 ‘방귀’ 와 ‘B급’입니다. 생리현상이라는 소재는 유아에게만 흥미로울 줄 알았는데, 초등학생 독자들에게도 통했습니다.


『쥐포 스타일』을 본 어른들은 너무 재미있다고 하는데, 그게 어린이들한테도 통할 줄은 몰랐어요. 그런데 일곱 살인 저희 아들이나 그 친구들도 보면, 방귀 이야기만 나와도 좋아하더라고요(웃음). 아이들이 방귀 이야기를 유치하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좋아하고, 그래서 웃음을 불러일으킬 수 있겠다고 가볍게 생각했어요. 

 

“아들에게 영감을 얻어 쓴 첫 장편동화”라고 하셨는데요. 아드님에게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으셨나요?


‘다 잘하지 않아도 괜찮아’ ‘네가 하고 싶은 걸 자유롭게 했으면 좋겠어’ ‘엄마로서 너에게 강요하지 않을게’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정신이 건강하게 자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고요. 『쥐포스타일』의 첫 이야기는 아이가 반복적으로 하는 말을 들으면서 떠올렸는데요. ‘자석 자석 자석 방귀’라고 매일 이야기하고 다니더라고요(웃음). 아마도 그때 영상물에서 ‘자석 자석 자서 방귀’라고 말하면서 위협하는 괴물의 모습이 나왔던 것 같아요. 그게 자기 딴에는 너무 멋있었나 봐요(웃음). 그 말을 들으면서 참 재미있다고 생각했어요. ‘방귀 때문에 자석이 내 몸에 붙는다면 어디에 붙으면 좋을까’ 생각하다가 첫 번째 이야기를 만들었죠.

 

아이에게 권하는 책은 어떤 기준으로 고르시나요?


지식적인 부분에 중점을 둔 책보다는 창작 이야기 위주로 골라주고 있어요. 학교에 가고 학습을 시작하게 되면 필독 도서처럼 읽어야 하는 책들이 많잖아요. 그러면서 창작을 읽게 되는 시간은 줄어들고요. 그래서 지금은 생각을 넓히게 되는 책들을 권해주려고 해요.

 

아이가 읽고 싶은 책과 부모가 읽히고 싶은 책이 서로 다를 때가 많을 텐데요. 그럴 때는 어떻게 하세요?


일단 책을 사주면 아이가 다 읽기는 하는데요. 어떤 시기에 꽂히는 책이 있긴 하죠. 예를 들면 계속 공룡 책만 가져오는 거예요(웃음). 그러면 저는 그냥 읽어줘요. 처음 책을 샀을 때는 한 번씩 다 읽어보고, 또 읽고 싶은 책들은 아이가 선택하게 하는 거죠.
 
책을 고를 때는 아이의 의견을 전적으로 수용해주시나요?


아이가 책을 편식하는 편은 아니에요. 대부분은 제가 읽자고 하면 잘 읽어요. 집에 비슷한 책이 있는데도 또 사고 싶어 할 때는 ‘이건 집에 있으니까 이번에는 다른 책을 볼까? 이 책도 재미있을 것 같지 않아?’라고 말해주는데요. 그러면 대부분 수용하더라고요. 책을 혼자서는 잘 안 읽으려고 해서 제가 같이 읽어요. 요즘 엄마들이 다 그렇게 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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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무덤’ 만드는 엄마는 되고 싶지 않다


『쥐포스타일』에는 ‘책 무덤’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많은 엄마들이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면서 뜨끔했다고 하던데요. 작가님께서는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아이에게 억지로 책을 권하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썼던 것 같아요. 스스로에 대한 경계라고 할까요. 제 경우에도 아이가 장난감을 어지르면서 놀면 좀 치우고 놀라고 얘기하면서, 책을 쌓아놓고 읽으면 그 모습을 보면서 너무 흐뭇하거든요. 제가 아이한테 책을 많이 읽으라고 강요하지는 않지만, 아이가 클수록 변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요즘에는 거실을 서재처럼 꾸미는 집도 많잖아요. 물론 책을 많이 읽는 습관이 좋은 것이기는 하지만, 그걸 아이들에게 너무 강요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자녀와 함께 『쥐포스타일』을 읽을 어른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강요하지 말고 아이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도록 자유를 주시라고 이야기 하고 싶어요. 요즘 아이들은 스케줄에 맞춰서 움직이잖아요. 학원도 가야하고 해야 할 일들이 있고요. 어느 정도 자율성을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책을 읽는 것도 엄마가 이건 반드시 읽어야 되는 책이라고 말하기보다는, 물론 학교에서 필독 도서를 정해주지만, 가끔은 아이가 선택해서 읽도록 해주는 거죠. 그런 식의 자유를 줬으면 좋겠어요.

 

작품 속에 등장하는 선생님을 통해서 전하고 싶으셨던 메시지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쥐포스타일』에서 그린 선생님의 모습은 극단적이긴 하죠. 모든 선생님들이 그러신 것은 아니고요. 그런데 항상 아이들에게 꿈을 향해서 나아가라고, 꿈이 있는 사람이 성공한다고 말하는 어른들이 진심으로 아이의 마음을 들어주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동화를 쓰게 된 계기가 있으셨나요?


처음부터 아동문학이나 아이들에게 많은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닌 것 같아요. 그런데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부터 ‘내 아이가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들이 건강한 생각을 가지고 자랄 수 있도록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고요. 한창 자라는 시기에 아이들은 방황도 많이 하고, 아픔도 많고, 내가 누구인지도 알기 어렵잖아요. 그리고 어른은 잘 변하지 않지만 아이들은 책 한 권으로 변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쓴 이야기가 조금이라도 변화를 줄 수 있다면 도움을 주고 싶었어요.

 

‘좋은 동화란 어떤 것인가’에 대한 작가님의 대답이 궁금합니다.


요즘은 대부분의 아이들이 스마트폰은 보면서도 책은 많이 읽지 않잖아요. 정말 많은 매체들에 둘러싸여 있는데, 그 가운데에서 책이 줄 수 있는 것들만 전해줘도 좋은 이야기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눈으로 보이지 않는 세상을 활자를 통해서 볼 수 있고, 입장을 바꿔서 타인의 마음을 생각해볼 수 있는 경험을 안겨주는 거죠. 

 

아이들이 책과 처음 만날 때 혹은 성장하면서 책을 대할 때 어떤 방식으로 접근하면 좋을까요? 

 
자연스럽게 접하게 됐으면 좋겠어요. 책을 잘 읽지 않는 친구들도 학습만화는 재미있어서 많이 읽거든요. 엄마들이 볼 때는 그 안에 많은 지식이 담겨 있지는 않다고 하는데요. 아이들은 재미있어서 찾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책이 많아져서 그 중에서 아이들이 스스로 골라서 읽게 되는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처음에는 쉬운 책으로 접근해서 시간이 지나면서 어려운 책도 읽을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고요.

 

그 과정에서 부모님의 역할도 중요하겠죠.


그러니까 엄마랑 같이 읽어야 하죠. 아이한테 책만 쥐어주고 끝나는 게 아니라 엄마가 같이 읽고 책에 대해서 이야기 나누면서 교감을 하면 더 잘 기억하게 되잖아요. 그렇게 책에 대해서 같이 이야기하려면 아이와 엄마가 함께 읽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책 읽는 습관을 갖게 해주는 데에도 필요할 것 같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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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귀 트는 친구’를 만드세요!


어린 시절 읽으셨던 책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무엇인가요?


어릴 때 동화책이 많지 않았던 것 같아요. 어머니가 큰 맘 먹고 전집을 마련하기도 하셨지만(웃음) 책이 많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요. 집에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있었어요. 그 책을 굉장히 많이 읽었어요. 반복해서 읽고 또 읽었죠. 처음에는 이기적인 소년에게 너무 화가 났는데 계속 읽으면서 감정이 변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도서관에서 읽었던 책 중에 ‘소년소녀 명랑시리즈’라는 번역서가 기억나요. 제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쌍둥이 자매의 이야기였는데요. 우리와는 다른 생활이 너무 멋있어 보였어요. 쌍둥이라는 것도 간접 경험이 됐고요. 그렇게 번역된 외국의 아동 문학도 재미있게 읽었던 것 같아요.

 

최근에 아이에게 권해주신 작품 중에 ‘읽히길 참 잘했다’고 생각되는 작품이 있으세요?


아무래도 그림책 위주로 보게 되는데요. 앤서니 브라운의 작품도 아이가 굉장히 좋아해요. 재치가 있으니까 깔깔거리면서 보곤 하죠. 최근에 제가 참고하려고 구입한 책 중에『느긋한 돼지와 잔소리꾼 토끼』라는 작품이 있는데, 초등용 책이라 글밥이 많아요. 그래서 아이에게 읽어주면서 과연 재미있어할까 걱정도 했었는데, 너무 재미있어 하더라고요. 몇 번을 읽어줬는지 몰라요. 저도 그렇게 유쾌하면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동화를 읽어주신 후에 덧붙이신 말씀은 무엇이었나요?


제가 이야기를 덧붙이기보다는 아이가 이야기하는 걸 들어줘요. 아이가 작품 속의 토끼가 자기 친구 같다고 하기에 ‘그래? 어떤 점이 그런데?’ 하고 물었더니 매일 뭔가를 시킨대요(웃음). 그렇게 아이의 말을 들어주는 편이에요. 조금 더 크면 논리적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이끌어줘야겠지만, 아직은 어리니까, 지금은 아이에게 맡기는 편이에요.

 

어른들이 『쥐포스타일』읽으면서 부끄러움을 느꼈다면, 아이들은 통쾌함을 맛봤을 것 같습니다. 자신들의 눈에 비친 어른들의 모습을 낱낱이 들춰내 주었으니까요. 


그랬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쓰기도 했어요(웃음). 모든 선생님과 어른들이 그러지는 않지만, 그런 부분이 존재하기는 하니까요. 어른들은 ‘나에도 저런 면이 있는데’ 라고 느끼고 아이들은 ‘우리 엄마도 이래, 우리 선생님도 그래’라고 하면서 통쾌해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유난히 애착이 갔던 인물이나 에피소드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아무래도 ‘구인내’라는 아이가 가장 애착이 가는데요. 인내는 자발적 왕따예요. 친구는 귀찮고 늘 배신하는 존재라고 생각하면서 스스로 만든 틀에 갇혀 있죠. 사실 친구들도 인내를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아요. 그런데 사람은 결국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가잖아요. 만약 인내와 같은 아이가 있다면 자신을 보여줘도 괜찮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어요. 인내가 작품 속에서는 모든 사건을 해결하는 매력적인 아이지만, 사실은 완벽하지 않거든요. 그리고 저는 ‘장대범’의 이야기를 통해서 네가 잘하는 일이 특기가 될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었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구인내’ 와 ‘장대범’은 별다른 특기가 없는 아이처럼 보이는데요. 사실은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렇지 않을까요?


보통 눈에 띄는 아이들은 몇 명일뿐이죠. 나머지는 눈에 띄지 않는 아이들이고요. 그런 아이들이 『쥐포스타일』을 보고 힘을 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지금 현재의 상황이 어른이 될 때까지 이어지는 건 아니라는 것’ ‘너도 충분히 너의 길을 찾아서 갈 수 있다는 것’ ‘항상 별처럼 눈에 띄고 빛날 필요는 없다는 것’을 이야기해주고 싶어요.

 

독자들에게 “학창시절에 ‘방귀 트는 친구’를 꼭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어요. 


정말 편하게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친구를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의미예요. 어른이 되어서는 그런 친구를 만나기가 쉽지 않거든요. 그러니까 어릴 때부터 우정을 탄탄하게 쌓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그 때는 엄마한테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또래에게 이야기하기도 하고, 자기 마음을 가장 공감해 주는 사람이 친구이기도 하잖아요. 그 시기를 같이 재미있게 해쳐나갔으면 좋겠다는 거죠. 10대 때는 힘든 시절이기도 하지만, 생각하기에 따라서 가장 재미있고 무엇이든 꿈꿀 수 있는 시기인 것 같기도 해요. 그 시간 동안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를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타인의 평가나 시선에 너무 신경 쓰지 말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요. 다른 사람의 말에 크게 상처 받아서 좌절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나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은 결국 나 자신이니까요. 먼저 스스로를 사랑해야 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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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포스타일김지영 글/강경수 그림 | 비룡소
『쥐포스타일』은 친구 같은 건 필요 없다고 외치던 ‘시크건방’ 소년 구인내가 우연한 사건을 통해 친구라는 존재를 발견하고 우정을 키워 나가는 과정을 유쾌하게 그린 이야기입니다. 방귀 때문에 자석이 엉덩이에 붙는다는 독특한 상상력은 기존의 동화에서 본 적 없는 극한의 유쾌 발랄 코믹 추리 서사를 이끌어 냅니다. 어찌 보면 이 요소들은 작품을 얕고 시시한 것으로 만들 수 있지만 작가는 이 B급 소재를 통쾌함을 주면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매력적인 이야기로 만드는 데 십분 활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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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킴, 박력있는 하드 밥 퀸텟의 첫 음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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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오년 전 쯤 일이다. 클럽 '올댓재즈'의 진낙원 대표가 문자를 보냈다. 토요일 밤 늦게 클럽에 한 번 오라고. 정말 화끈한 밴드 하나가 등장했다고. 지금의 자리로 이사 가기 전, 어두운 3층의 '올댓재즈'로 늦은 토요일 밤에 찾아가봤다. 무대 위에서는 국내 재즈클럽에서는 좀처럼 듣기 힘든 뜨거운 하드 밥 사운드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 무대의 주인공 진킴이 그로부터 5년 만에 자신의 첫 음반을 발표했다. < 재즈유닛 The Jazz Unit >. 푹푹 찌던 여름 날 오후 세 시에 그를 만나러 그가 자주 가는 연남동의 한 바에 문을 열고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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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랫동안 김진영이란 이름으로 알고 있었는데 앨범이 나오면서 진킴(Jin Kim)이라고 부르려니 어색하다. 본인은 익숙한가?


(웃음) 몇 년 전 미국에서 생활할 때 쓰던 이름이었는데 그곳에서도 '진'이라고만 부르지 성까지 부르지는 않았다. 김영진이란 이름으로 하자니 너무 평범해서 기억에 남지 않을 것 같아 진킴이란 이름을 사용했다.

 

- '재즈유닛'은 앨범 제목인데 밴드 이름도 되지 않나?


그렇다. 우리 밴드를 '진킴 재즈유닛'이라고 부르시면 될 것 같다.

 

- 밴드 결성한 지 몇 년 되었나?


그간에 멤버 변동이 있었지만 트럼펫-색소폰을 앞세운 5중주단을 결성해 활동해온 것은 5년 되었다.

 

- 재즈를 연주한 지는 몇 년 되었나?


15~16년 된 것 같다.

 

- 첫 음반이 왜 이토록 늦었나?


그 사이에 전공악기를 바꾸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원래는 기타 전공이었다. 10대 때부터 록을 좋아해 기타를 연주했는데 2004년에 트럼펫으로 전공을 바꿨다. 트럼펫 실력이 그래도 앨범에 담을 만큼은 돼야 녹음을 할 수 있었는데 그때를 기다리다 보니 시간이 지나가 버렸다. 지금도 부족하지만 그래도 더 이상은 늦출 수 없어서 올해 녹음에 들어갔다.

 

- 기타에서 트럼펫으로 왜 바꿨나?


2002년에 재즈 기타를 공부하러 보스턴 버클리 음대로 유학을 갔다. 그때 재즈기타의 첨단은 커트 로젠윙클이었다. 나도 그처럼 연주하고 싶었다. 하지만 마음속에 갈등이 있었다.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내가 아무리 노력 한들 커트처럼 칠 수 있을까? 심지어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기타리스트는 누구인가 자문해 보면 나는 커트보다는 그랜트 그린이나 웨스 몽고메리를 더 좋아했다. 올드 스타일이었다. 하지만 당시 재즈동네의 분위기는 커트처럼 연주해야만 되는 분위기였다. 아직 피터 번스타인도 각광받기 전이었기 때문에 복고풍으로 연주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러던 와중에 보스턴에서 내가 적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 사람이 먼저 그곳에 와있던 달균이 형(트럼펫/ 색소폰 주자 임달균)이었다. 그런데 그와 한 집에 살던 사람이 대런 바렛이었다. 대런은 엘빈 존스 재즈 머신 멤버로 활약한 바 있는 뛰어난 트럼펫 주자였다. 그가 부는 트럼펫 소리가 너무 멋져서 나도 재미삼아 트럼펫을 불어봤다. 그랬더니 대런이 내게 트럼펫에 소질이 있다는 거였다. 그래서 작심하고 연습을 했는데 원래는 6개월에 걸쳐 익혀야 되는 과정을 난 단 2주 만에 끝냈다. 옆에서 보던 대런도 놀랐다. 그래서 트럼펫으로 악기를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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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펫으로 녹음하기까지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나?


그렇다. 맨 처음에는 트럼펫이 쉬운 줄 알았다. 그런데 조금 더 해보니 어림없는 생각이었다. 우선 기타 전공으로 버클리에 4년 장학금을 받고 입학했는데 3학기까지 기타를 전공하다가 4학기 때부터 트럼펫으로 바꾸니 장학금이 안 나오는 거였다. 난 그걸 몰랐었다. 학교를 찾아가 떼를 쓰고 사정사정하여 4학기까지는 장학금을 받았지만 나머지 4학기는 장학금 없이 공부해야 했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처음에 조금 빨리 진도가 나갔다고 트럼펫을 우습게봤다는 거였다. 어림없는 생각이었다. 가면 갈수록 트럼펫이 어려워졌다. 지금도 하루에 몇 시간씩 연습하는데 좌절할 때가 많다. 조금 연습을 게을리 하면 되던 것도 금세 안 된다. 굉장히 열심히 해서 조금 실력이 향상되면 그 부분 때문에 더 많은 연습을 해야 한다. 모든 악기가 그렇겠지만 할수록 어렵다.

 

- 특별히 무엇이 어려웠다고 설명해 줄 수 있겠는가?


(잠시 생각하다가) 트럼펫을 연주한 지 2년 쯤 되니 이 악기는 아무리 재능 있는 사람이라도 절대적으로 거쳐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어느 악기에나 그 시간이 필요하지만 특히 트럼펫, 프렌치호른과 같은 금관악기들은 그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본다.

 

- 소리를 내기가 어려워서 인가?


그 점 하고도 관련이 있다. 좋은 음색을 만들기도 어렵고. 우선 주력(奏歷)이 짧은 사람들은 아무리 테크닉이 좋아도 큰 볼륨으로 세 곡 정도 불면 더 이상 불지를 못한다. 오랜 시간이 지나야 요령껏 큰 소리를 내고 길게 호흡해도 지치지 않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다. 그것은 자기 스스로가 깨우쳐야 하는데 그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래서 작년까지만 해도 녹음은 엄두가 안 났는데 올해가 되어, 그래 한 번 해보자, 라는 생각이 들었다. 10년 더 걸린 것 같다.

 

- 2002년에 미국으로 갔다가 언제 한국에 돌아왔나.


2010년에 왔다. 기타에서 트럼펫으로 바꾸면서 학교 다니는 기간이 늘어날 수밖에 없었다. 한 학기 다니고 그 다음 학기는 휴학하고 보스턴이나 뉴욕에서 학비 벌고. 나머지 4학기를 이수하고 그곳에서 생활하다가 8년의 시간이 흘렀다.

 

- 굳이 트럼펫을 선택하면서 인생의 발목이 잡힌 것 같다.


그렇다. (웃음)

 

- 한국에 와서 어떻게 활동했나?


클럽에서 연주하다가 색소폰 주자 유종현을 만났다. 내가 좋아하는 하드밥에서부터 콜먼 호킨스, 벤 웹스터 스타일도 소화하는 이 색소폰 주자를 보고 함께 팀을 만들자고 했다. 그래서 트럼펫, 색소폰을 앞세운 오중주단을 만들었다.

 

- 어떤 곡을 주로 연주했나.


거의가 하드 밥 스타일의 곡이었다. 여러 곡이 있었는데.......웨인 쇼터 곡 중에 「밤의 어린이들 Children of the Night」, 「하나씩 One By One」 또는 시더 월턴 곡 「시더 나무 그늘 The Shade of Cedar Tree」 같은 곡들이 생각난다. 이런 곡들은 당시 국내에서 우리만 연주했던 것 같다.

 

- 미국에서도 이제는 하드밥의 기세가 많이 꺾인 것 같다.


윈턴 마설리스가 1980년대 초에 등장한 후 하드밥은 재즈의 중심에 다시 돌아왔다. 재즈 르네상스 시대가 온 것인데 내가 미국을 갔던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그 기운이 남아 있었다고 본다. 하지만 지난 10년 간 이 스타일이 서서히 내리막길을 걸으면서 재즈 전체도 침체기에 들어서는 것 같다. 아마 현재 뉴욕에서 활동하는 재즈밴드 가운데 하드밥을 추구하는 밴드는 30% 미만일 것이다.

 

- 그런데 국내에서는 애초에 이런 음악을 들을 기회가 별로 없었다고 본다.


그렇다. 그런데 그것은 국내에 재즈가 들어온 경로와 관련이 있다고 본다. 유학을 떠나기 전에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이 듣던 재즈를 생각해 보면 주로 ECM 혹은 GRP 레코드의 음악이었다. 이 레이블의 음악들은 마니아들이 듣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도 종종 나왔다. 하지만 정통 재즈가 나오는 프로그램은 없었고 자연히 그런 음악을 듣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예를 들어 피아노에는 키스 자렛, 기타에는 팻 메시니가 전부였다. 그러니 베니 그린이나 피터 번스타인이 들어설 자리가 너무 좁았던 것이다. 재즈 기타를 처음 연주하던 시절에 내게도 팻 메시니는 영웅이었다. 하지만 그의 음악이 재즈 전체를 대표할 수 없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 기타에서 트럼펫으로 악기를 바꾸면서 취향도 바뀐 것인가?


그것보다는 유학 시절에 재즈 전통의 중요성을 보다 깊이 알게 된 것이 이유인 것 같다. 모든 음악들은 전통에 닿아 있다. 오늘날의 스타일을 주도하고 있는 연주자들도 그 출발점은 기본적인, 옛날 재즈다. 예를 들어 월터 스미스 3세, 애런 파크스와 같은 연주자들도 덱스터 고든과 레드 갈런드를 최고의 연주자로 꼽는다.

 

- 진킴 재즈 유닛의 연주를 클럽에서 보면 늘 마지막에 블루스를 연주하더라.


정확히 블루스 형식의 곡은 아닐지라도 재즈는 블루지한 느낌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본다. 블루스의 느낌을 빼면 재즈는 거의 모든 것을 잃는다. 세상에 즉흥연주를 구사하는 음악은 참으로 많다. 그중에서 재즈를 재즈답게 해주는 것은 블루스와 스윙이다. 리듬에서 스윙의 느낌도 블루스만큼 중요하다. 이 이야기는 내가 한 것이 아니고 윈턴 마설리스가 늘 주장하는 것이긴 하지만.

 

- 그렇다면 블루스와 스윙이 빠진 재즈는 재즈의 퇴보라고 보는가?


꼭 옛날 스타일대로 블루스와 스윙을 구사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어떤 형태로든 그것은 지켜져야 한다, 요즘 각광 받는 트럼펫 주자 앰브로스 아킨무시르의 음악도 상당히 파격적인 것 같지만 그 핵심에는 블루스와 스윙이 있다. 그것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본다.

 

- 그렇게 되면 재즈라는 음악의 폭이 너무 좁아지는 게 아닌가?


재즈의 범위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핵심을 말하려는 거다. 또 윈턴 마설리스 이야기를 또 인용해서 그렇지만.......유튜브에 검색해 보면 윈턴이 고등학생 재즈 연주자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이 올라와 있다. 거기서 한 학생이 케니 G도 재즈가 아니냐고 묻는다. 그러자 윈턴은 그 사람의 음악에도 즉흥연주가 있고 재즈의 요소들을 어느 정도 갖췄으니 재즈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재즈의 진수에서는 거리가 멀다고 대답한다. 그러면서 비유하는 것이 지난 5월에 있었던 메이웨더와 파퀴아오와의 대결이다. 누가 보더라도 그 경기는 권투경기가 맞다. 그걸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경기는 진짜 싸운 경기가 아니었다. 권투의 핵심이 빠진 것이다. 블루스와 스윙은 그 핵심을 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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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앨범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기본적으로 국내 앨범에서 보기 드물게 재즈다운 사운드가 녹음되었다고 본다. 특별히 신경을 썼나?

 

사실 국내에 재즈전문 엔지니어가 아직 없다는 게 어려움이었다. 한참 주변에서 함께 일할 엔지니어를 물색하다가 경험이 많으신 박혁 씨를 소개 받았다. 이 분은 과거 헤비메탈 밴드 크래시의 음반을 녹음하신 분인데 비록 종류가 다른 음악이지만 서로 의사소통을 충분히 하면 좋은 사운드를 만들어 낼 줄 아는 노하우를 가졌다고 믿었다. 박혁 씨는 인내심 있게 제 이야기를 들어주셨고 흡족할만한 사운드를 녹음할 수 있었다.

 

- 녹음에서 어떤 부분이 가장 힘들었나?


내가 듣기에 국내 재즈 페스티벌이나 음반을 들어보면 해외 녹음과 가장 차이가 나는 것은 드럼이다. 재즈 특유의 섬세하면서도 탄력 있는 드럼 사운드가 있는데 그것이 국내 녹음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페스티벌 가서 들으면 거의 록 드럼 같다. 내 생각에 재즈 밴드에서 사운드의 중심은 드럼이다. 그리고 전체 사운드에서 절반을 차지한다. 드럼이 촘촘하게 사운드의 밑그림을 깔아줘야 하기 때문에 드럼 소리 하나 잡는 것만 두 시간이 걸렸다. 두 시간 동안 박혁 씨에게 여러 주문을 드렸는데 경험이 많은 분이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금세 판단을 내렸다.

 

- 믹싱이나 마스터링 과정에서 소리가 많이 좋아졌나?


물론 그 과정도 중요하지만 이렇게 어쿠스틱 사운드를 추구하는 밴드는 원래 녹음 소스가 좋아야 한다. 후반 작업으로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녹음 당시에 공을 많이 들였다.

 

- 원래 녹음 시간이 얼마나 걸렸나?


정오에 시작한 녹음이 그 사이에 식사도 하고 담배도 피우고 휴식도 취하고 모두 하니까 자정에 끝났다. 하루에 여덟 곡 모두를 녹음했다.

 

- 연주를 수정, 편집하는 과정도 거쳤나?


아니다. 내가 허밍 보컬을 한 「레인 워크 Rain Walk」에 오버더빙이 들어갔을 뿐 나머지는 라이브 녹음이나 다름없다. 테이크 3까지 녹음했던 곡이 한 곡 있고 나머지는 모두 테이크 원투에 끝냈는데 두 개를 합쳐서 편집하거나 하는 일 없이 마음에 드는 테이크를 하나 골라 통째로 음반에 실었다. 한 마디로 옛날 방식인데 그래야 연주가 자연스럽게 들린다.

 

- 아트 블레이키와 재즈 메신저스가 연주했던 「서커스 Circus」만을 제외하고는 수록곡 모두가 오리지널 넘버다. 평소에 작곡을 많이 해두었나?


여러 곡을 써 놓았다. 하지만 앨범에 담으려고 보니 모든 곡들이 다 마음에 안 들더라. 그래서 3~4주 만에 곡들을 다시 만들었다. 수록곡 중 「페미닌 Feminine」만 이전에 써 놓았던 곡이고 나머지는 앨범을 위해 다시 썼다.

 

- 밴드 전체가 팀워크가 참 좋다고 느꼈다. 리듬이 탄탄하고 앙상블도 치밀하다. 이 멤버들은 언제 한 팀이 되었나?


아까 말한 대로 맨 처음 유종현을 만났다. 그는 정말 나와 잘 맞는 연주자다. 특히 앙상블 연주할 때 잘 맞는다. 틀려도 같이 틀린다. (웃음) 그리고 이듬해에 베이스 연주자 김대호와 드러머 김민찬을 만났는데 이 젊은 연주자들의 실력에 깜짝 놀랐다. 이들의 스윙을 들으면 한국 사람이 아닌 것 같다. 난 대호를 '소울 대디'라는 애칭으로 부르는데 그의 연주에는 정말 소울이 넘친다. 나나 종현이와 같은 관악기 주자들이 훌륭한 리듬섹션과 만난다는 것은 정말 행운이다. 우리는 대호-민찬 위에 올라타기만 하면 좋은 연주는 저절로 나온다. 반면에 밴드 멤버 중 피아니스트는 가장 늦게 확정 되었다. 전용준, 오영준 등 훌륭한 피아니스트들이 우리와 함께 했지만 그들도 각자 자신의 음반들을 발표하면서 우리와 오랫동안 함께하지 못했다. 그러던 중에 스코틀랜드에서 한국에 온 폴 커비가 작년부터 우리와 함께 했는데 그는 솔로도 좋지만 정말 컴핑(comping: 반주)에서 탁월했다. 우리들의 솔로가 뭔가 어색한 음악을 내면 그의 컴핑이 그 부분을 교정해 주거나 채워준다. 이 멤버들이면 녹음 한 장해도 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 앨범에는 김이지라는 보컬리스트가 객원으로 참여했다.


앨범 전체가 하드 밥 스타일이지만 그녀가 참여한 <레인 워크>만 조금 예외인 곡이었다. 그녀는 꽃잠 프로젝트의 보컬리스트인데 이 곡의 성격과 잘 어울릴 것 같아 초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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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금 전에 이야기했듯이 한국의 재즈 취향은 하드 밥과 거리가 멀다. 클럽에서 연주 할 때 반응은 어떤가?


한국의 재즈 취향이 ECM 혹은 GRP 스타일로 흘렀다는 것은 정통재즈를 들을 기회가 별로 없었다는 것이지 그것이 고정 불변의 취향이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2005년도에 처음 퀸텟으로 연주를 시작하자 박력 있는 사운드에 모든 클럽 매니저들이 매료되었다. 당시에는 특정 요일에 고정으로 출연하는 '레귤러 긱'이 있었는데 우리는 네 개의 클럽에서 레귤러 긱을 가질 정도였다. 클럽에 온 관중들의 반응도 상당히 뜨거웠다. 그때 생각이 들었다. 아, 우리 음악도 열심히 하면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겠구나.

 

-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재즈동네에는 재즈의 메인스트림이 잘 정착하지 못하는 느낌이다.


재즈를 그 자체로 받아들이지 않고 다른 음악의 대용물로 받아들이는 게 이유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재즈를 팝 음악보다 조금 더 세련된 음악으로 인식하면서 배경음악으로 듣거나, 실내악처럼 숨죽이고 조용히 듣는 음악으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재즈의 즉흥연주, 블루스, 스윙과 같은 핵심적인 요소들은 다 멀리하는 것이다. 그것은 재즈클럽의 경영난과도 관련이 있다고 본다. 재즈클럽에 가면 그만의 독특한 흥, 즐거움을 맛봐야 하는데 그런 즐거움을 전해주는 밴드가 별로 없다. 재즈의 기본적인 성격을 추구하는 밴드가 그래도 어느 정도는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음악을 하면 옛날 음악이니, 창의성이 없다느니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이해할 수가 없다.

 

난 재즈 연주자들이 좀 더 관객에게 가까이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언젠가 앙코르 곡에서 무대에서 내려와 객석을 돌아다니며 트럼펫을 분 적이 있다. 사람들이 박수치며 환호하는 가운데 즐겁게 무대를 마쳤다. 그런데 며칠 뒤 그 자리에 있던 한 뮤지션이 내게 메일을 보냈다. 그런 싸구려 행동으로 진지한 재즈 연주자들의 이름에 먹칠하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그 메일을 받고 정말 충격을 받았다. 이렇게 서로 생각하는 것이 다르구나. 재즈시장이 침체 되어 있는 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재즈에 대한 지나치게 심각한 태도도 한 몫 한다고 본다.

 

- 가장 좋아하는 트럼펫 주자는?


클리퍼드 브라운, 도널드 버드, 윈턴 마설리스, 로이 하그로브

 

- 가장 좋아하는 재즈밴드는?


아트 블레이키와 재즈 메신저스, 60년대 마일스 데이비스 퀸텟 (마일스-웨인-허비 핸콕-론 카터-토니 윌리엄스), 재즈 앳 링컨센터 오케스트라.

 


- 인터뷰, 정리: 황덕호
- 사진: 이한수
2015/08 황덕호(saturnman2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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