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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성장기의 생존 전략 “성공의 기억을 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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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지않아 경제가 회복될 거라고 믿는 이들에게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가 전하는 메시지는 단호하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불경기 뒤에는 호경기가 이어질 것’이라는 낡은 발상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조언한다. 단단히 각오해야 할 것이라고. 본격적인 저성장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전조는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저자인 김현철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교수가 책에서 소개하는 다양한 통계와 연구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한 때 연평균 9.5%의 성장률을 보이던 한국 경제는 2011년 1분기부터 9분기 연속 0% 성장을 기록했다. 2013년 2분기와 3분기에는 전 분기 대비 1%의 성장률을 보이며 회복하는 듯 했지만 다시 4분기 연속 제로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내수 부진도 심각한 상황이다. “GDP 대비 가계의 소비 지출 비중은 2002년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고 전체 가계의 평균 소비 성향 역시 60%로 하락”한 것이다. 가계부채는 1000조 원을 넘어섰고 공기업을 비롯해 정부 역시 많은 부채를 안고 있다. 이러한 추세를 반영해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는 우리 경제가 2017년부터 본격적으로 저성장기에 돌입하게 될 것이며, 2020년에서 2030년 사이에는 제로 성장 시대가 시작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희망적이지만은 않은 전망이지만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가 독자들에게 보여주는 것은 절망이 아니다. 생존을 모색하기 위한 시간과 방법이 있음을 알려주는 까닭이다. 30년 가까이 일본 경제와 기업을 연구해 온 저자는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보다 앞서 저성장기에 들어선 일본을 타산지석으로 삼자는 것이다. 그는 자신이 직접 목격했던 버블 붕괴의 현장을 전하며, 그 과정에서 일본 정부와 기업이 저질렀던 실수를 증언한다.

 

또한 “경제가 아무리 저성장기에 접어들더라도 성장하는 기업은 반드시 있기 마련”이라는 사실에 주목해,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은 기업들의 혁신 전략을 소개한다. 세계적인 의류 기업으로 성장한 ‘유니클로’는 다품종 소량생산이라는 기존의 도식에서 벗어나 소품종 대량생산을 추구함으로써 ‘저렴한 가격에 품질 좋은 옷을 파는 브랜드’로 입지를 굳혔다. ‘닌텐도’는 마니아를 대상으로 고기능의 제품을 생산하는 업계 분위기에서 탈피해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게임을 만드는 데 주력했다.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끈 ‘슈퍼호텔’과 ‘나의 레스토랑’은 파격적인 가격으로 경쟁에서 우위를 점했다. 불필요한 서비스 비용을 줄이고 더 많은 고객을 유치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해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렇듯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가 들려주는 일본의 사례 속에는 우리가 경계해야 할 실수와 지향해야 할 성공 모델이 담겨있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이유부터 해외 시장에 진출하는 비결, 원가 절감과 가치 혁신을 이뤄내는 전략, 위기 상황에 필요한 리더십 등 ‘저성장 시대의 생존 방법’ 아홉 가지를 제시한다. ‘저성장기의 성장’이라는 바늘구멍을 통과한 기업들의 비망록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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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은 실패의 어머니다


저성장 시대에 일본에서 나타났던 현상들이 최근의 한국에서도 관찰되고 있나요?


요리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케이크 붐이 일고 있는 것도 한 예라고 할 수 있죠. 90년대에 버블이 붕괴되고 난 뒤의 일본도 그랬어요. ‘작은 사치’라고 불렀던 현상들인데요. 경제가 어려워지기 시작하면서 쉽게 소비를 할 수 없게 된 사람들이, 돈을 아꼈다가 자기가 좋아하는 것 하나를 사는 거예요. 월급을 받으면 TV에 나오는 셰프의 레스토랑에 간다거나 맛있는 케이크 집을 찾아가서 즐거움을 맛보는 거죠. 방송국에서는 제작비가 많이 필요한 프로그램 대신, 출연자들만 섭외하면 만들 수 있는 토크쇼 형식의 프로그램을 기획했어요. 그렇게 사회의 분위기가 바뀌어 나갔던 거죠.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어떤 공통점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지금 한국에서도 불황형 흑자가 발생하고 있어요. 호황기의 끝자락에서 수출은 관성에 따라 계속 유지되는데, 소비가 감소하니까 수입은 줄어드는 거예요. 그러니까 경제가 좋아서 흑자가 발생하는 게 아니라 경제가 나빠져서 흑자가 생기고 있는 거죠. 모두가 경제가 어렵다고 하는데도 경상수지는 흑자를 기록하는 이유가 그래서예요. 버블이 붕괴된 후 일본에서도 불황형 흑자가 지속되면서 엔화가 강세로 돌아섰어요. 그러면서 수출은 더 감소했죠. 우리도 시간이 지나면 수출이 줄어들 거예요. 그리고 올해부터 자영업자 수가 감소하기 시작했는데요. 이것도 저성장 시대에 들어서고 있음을 보여주는 현상이죠. 백화점과 할인점의  매출이 줄기 시작한 것도 마찬가지고요.

 

『어떻게 돌파한 것인가』에서 제시하신 자료들을 보면, 지금 한국의 상황은 20년 전의 일본보다 더 암울한 것 같습니다.


90년대의 일본과 지금의 한국을 보면 모든 면에서 우리가 불리하죠. 당시 일본은 황금의 30년이라는, 세계에서 예를 찾아볼 수 없는 경제 순항기를 향유했거든요. 그러면서 전 세계의 부를 끌어 모으고 축적했고요. 그런데 우리는 국민소득이 채 3만 불도 안 되는 상황에서 저성장에 들어서게 됐어요. 국가 경제력에 있어서 큰 차이가 있죠. 게다가 일본은 ‘총 일본인 중류사회’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중산층 강화 정책을 30년간 지속했었어요. 중간층이 부를 보유한 상태에서 저성장에 들어섰던 거죠.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양극화가 심각하잖아요. 이런 상황에서 경제 성장이 둔화되면 ‘너 죽고 나 살자’는 경쟁이 시작되면서 갈등이 심화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격적인 저성장기까지 조금은 시간이 남아 있기 때문에 이 기간 중에 잘만 대응하면 경제를 다시 활성화시킬 수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일본이 무엇을 잘못해서 저성장에 들어섰는지’ 시행착오를 다 봤기 때문에, 그나마 희망이 있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일본은 준비 없이 저성장기로 진입했거든요. 황금기가 계속 될 거라고 생각하다가 저성장이 시작되니까 ‘회복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왜 이러지?’ 하면서 20년을 보내버린 거예요. 이제야 ‘이렇게 해서는 안 되겠구나, 구조적으로 바꿔야겠다’ 생각해서 아베노믹스를 시작하고 있는 거죠. 한국은 운이 좋게도, 그렇게 준비 없이 당한 일본을 옆에서 봤어요. 그래서 뭘 해야 하고, 뭘 하면 안 되는지를 알고 있죠. 그런 이점을 살리자는 게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의 기본 메시지예요. 말 그대로 ‘징비록’이죠(웃음). 16세기의 징비록은 일본한테 당하고 나서 쓴 참회의 글이지만, 거꾸로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는 일본이 당한 일을 교훈 삼아서 우리의 미래를 경계하자고 말하는 거예요.

 

“저성장기의 생존 전략은 발상의 전환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조언하셨습니다. 동시에 많은 기업들이 “저성장에 접어든 현실을 좀처럼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지적하셨는데요. 이유가 무엇일까요?


기업을 대상으로 자문과 강의를 하다 보면 이런 이야기를 듣습니다. 한국 경제는 냄비와 같아서 푹 가라앉았다가도 다시 확 살아난다는 거예요. 지금까지의 경험이 그랬거든요. IMF 위기 때도 2008년에 세계 금융 위기 때도, 이듬해에는 경제가 회복됐어요. 그 경험들이 경영자의 뼛속에 숨어있는 겁니다. 지금 기업 경영의 중추를 맡고 계신 분들은 한국의 경제의 황금기를 경험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아니거든요. 2012년에 경기가 바닥을 친 후에 내년에는 회복될 거라고 계속 이야기하면서 현재까지 왔어요. 이제는 2016년에 회복될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렇다 해도 1% 차이예요. 회복되면 경제성장률 3% 이지만 회복이 안 되도 2% 이거든요. 그러니까 이제는 각오해야 된다는 거예요. 경제 체력이 이미 약화된 상태인데 그걸 모르고, 옛날처럼 시간이 가면 또 성장할 거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는 거죠.

 

일본의 기업들에게도 ‘발상의 전환’은 쉽지 않은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책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성공은 실패의 어머니’라는 격언이 유행했을 정도니까요.


제가 90년대에 자문과 교육을 했던 기업들, 신일본제철 아사히맥주 기분 식품 등 많은 기업들이 버블 붕괴의 원인을 제대로 진단하지 못했어요. 이건 졸부들이 부동산 놀이하다가 망한 거다, 개미 주주들이 주식 투자하다가 실패한 거다, 그렇게 이야기했죠. 자신들과 같은 일본 기업은 추락하는 경제를 받쳐주는 주춧돌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고요. 그렇게 ‘우리는 아직까지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하다 보니까, 발상을 전환하지 못한 채 20년을 흘려보낸 거예요. 한국의 경영자들 역시 ‘한강의 기적’을 잊지 못하고 있는데요. 경제의 변곡점을 지나면서 새로운 시대가 열리면 옛날의 성공 체험은 실패의 어머니가 된다는 걸 기억해둘 필요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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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진출에 성공하려면 국내 시장을 사수하라


경제 불황으로 시장이 작아지고 경쟁이 치열해지면, 기업은 제품 개발에 더 집중할 수밖에 없을 텐데요. 일본의 경우는 ‘과잉 품질’ ‘과잉 기능’ ‘과잉 모델’ 때문에 위험에 처하게 됐다고 하셨어요.  


일본 자동차의 간판 기업인 닛산이 르노에 매각된 이유가 과잉 품질과 과잉 기능 때문이에요. 기술과 장인 정신에 대한 자부심으로 스카이라인 같은 명차를 만들어 냈지만, 그건 제품이 아닌 작품이었죠. 대중차가 될 수 없었던 거예요. 그래서 몰락했던 거고요. 한국의 기업들도 닛산처럼 될 수 있어요. 단적인 예로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의 경우를 보세요. 갤럭시S는 필요 이상으로 고부가 상품이 됐죠. 반대로 샤오미는 필수 기능만 탑재한 저가 모델을 출시했어요. 현대자동차의 투싼은 중국에서 4천만 원 정도에 판매되고 있는데요. 중국의 자동차 기업들은 2천만 원짜리 SUV를 만들어내요. 그들의 전략은 ‘싸게 판다, 쓰다가 고장 나면 공짜로 수리해 주겠다’는 거예요. 이런 상황이라면 과잉 품질 과잉 기능 과잉 모델을 내세우는 기업이 불리할 수밖에 없어요.

 

저성장기에는 ‘체급별 경쟁’도 없어질 거라고 예측하셨습니다. 이미 대기업과 골목 상권의 갈등이 치열해진 상황인데요. 이러한 추세가 더 두드러질 것 같아 우려됩니다.


경제 호황기에는 시장이라는 파이가 커지니까 체급 별로 나뉘어서 우아한 경쟁을 하는 게 가능해요. 그런데 저성장기에는 혼자 살아남기도 급급하잖아요. 남을 돌봐줄 여력이 없죠. 이전투구형 경쟁이 시작되는 거예요. 계열관계도 마찬가지죠. 경제가 좋을 때는 많은 일본 기업들이 계열사와 관계를 맺고 있었어요. 80년대만 하더라도 그것이 일본 기업의 성공 비결로 여겨졌죠. 하지만 경제가 무너져 가기 시작하면서 굳이 계열사의 비싼 부품을 사서 쓸 이유가 없어졌어요. 닛산도 한국의 회사들로부터 부품을 수입해요. 애플에도 계열이 없죠. 생산은 팍스콘이, 광고는 대행사가 하도록 하고, 자신들은 제품 기획과 마케팅만 하잖아요. 저성장기에는 자기 혼자 살기도 바쁜 거예요.

 

결국 강한 자만 살아남는 시대가 도래한다는 말씀이신데요. 선두를 차지하지 못한 기업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책에서 조언하신 대로 틈새시장으로 가서 압도적인 지위를 차지해야 하나요?


저성장기처럼 시장의 판도가 뒤집어질 때는 틈새시장에서 진력을 다하는 기업이 살아남아요. 한 예로, 제가 자문했던 월드패션이라는 일본 기업은 거의 모든 종류의 옷을 만들었어요. 성인 남성과 여성, 아이의 옷은 물론이고 골프복까지 만들었죠. 그런데 유니클로를 보세요. 베이직 의류에만 집중했죠. 그 결과 업계 1위였던 월드패션은 서서히 무너져가고, 작은 기업이었던 유니클로는 일본 패션의 1등 기업이 됐어요. 시장을 특화한 기업이 살아남은 거예요. 저성장기에는 재벌 기업들만 살아남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모르는 거예요. 작은 기업들과 함께 경쟁하려면 뚱뚱한 체격으로는 뛸 수 없어요. 근육들을 다 빼내야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죠.

 

유니클로는 고품질의 제품을 저가에 판매하는 혁신을 보여줬는데요. 그 비결이 궁금합니다.

 
일본에도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이 있어요. 그런데 유니클로는 싸면서도 좋은 제품을 팔았죠. 후리스라는 옷은 타 기업들의 판매가 대비 1/10 가격으로 팔았어요. 기존의 패션 기업들은 수많은 하청기업들을 두고 디자인부터 생산까지 계열화했는데, 그게 제품 가격을 높이는 원인 중 하나였거든요. 그런데 유니클로는 중국 공장에 생산을 주문했고, 자신들이 주문한 제품은 반품 없이 총괄 구매하겠다고 했어요. 생산 단가를 낮춘 거죠. 관리자를 파견함으로써 품질도 높였고요. 아울러 언제나 팔 수 있는 베이직 의류에 집중하고, 창고에서 셀프 서비스로 판매한 것도 제품 가격을 낮출 수 있었던 이유예요.

 

국내 시장의 상황이 좋지 않을 때는 해외 시장으로 진출하려는 기업들도 많아지는데요.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는 해외 시장을 마련하는 동시에 국내시장도 사수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국내시장이 여전히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국내 시장은 기업이 가장 잘 아는 시장이죠. 지금까지 비즈니스를 해 온 곳이니까요. 더 중요한 건, 이 곳이 마더(mother) 마켓이라는 거예요. 대기업들도 새로운 시장에서는 헤맬 수밖에 없습니다. 아모레 퍼시픽이 중국에서 성공을 거두었다고 하지만, 15년의 투자 끝에 이제 회수가 시작된 거거든요. 국내 시장에서는 흑자를 내는 데 3년이 걸렸어요. 이게 국내 시장과 해외 시장의 차이예요. 해외 시장에서는 성과를 내기까지 오랫동안 자본을 투자해야 돼요. 현지 시장을 개척하는 과정에서 국내의 유능한 직원을 주재원으로 보내야 하고요. 그러니까 국내 시장은 해외 시장이 성공할 때까지 자금과 인력을 공급해 주는 곳이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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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스 성장, 일본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발상의 전환이라는 측면에서 닌텐도가 보여준 선택도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시장이 성장할 때는 미투(me, too) 전략이 굉장히 편한 측면이 있어요. 시장 자체가 커지기 때문에 미투 전략을 내세운 후발 주자도 충분히 따라갈 수 있거든요. 그런데 저성장기에는 시장 자체가 줄어들기 때문에, 그 시장을 개척한 사람이 시장을 독식해요. 뒤따라간 사람에게는 시장이 없는 거예요. 닌텐도도 소니가 등장했을 때 같이 경쟁했지만 저성장기가 되니까 상황이 달라졌어요. 10년 동안 고전을 면치 못했죠. 그러다가 ‘따라하면 안 되고 자신의 길을 찾아가야 된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때 나온 게 이른바 ‘엄마 지상주의’예요. 엄마가 좋아하는 건 다 하자는 거죠(웃음). 게임 마니아가 아니라 그 대극에 놓여 있는 초보자들을 목표 고객으로 정해서, 누구나 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들자고 방향을 튼 거예요.

 

‘나의 레스토랑’의 성공은 쉽게 납득이 되지 않습니다(웃음). 왜 사람들은 서서 밥을 먹어야 하는 레스토랑에 열광한 걸까요?


‘나의 레스토랑’의 성공 기반이 된 건 ‘나의 프렌치 레스토랑’과 ‘나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인데요. ‘나의 프렌치 레스토랑’의 경우를 보면, 기존의 고급 프랑스 레스토랑과 동일한 식재료로 동일한 메뉴를 만들어서 판매하는데 가격은 1/5 정도에 불과해요. 이렇게 저렴한 가격이 가능한 첫 번째 이유는 테이블 회전율이 높기 때문이에요. 일반적으로 고급 프랑스 레스토랑의 테이블 회전율은 하루 한 번이거든요. 풀코스로 식사하는데 긴 시간이 걸리니까 다음 손님을 받을 수가 없어요. 그런데 ‘나의 프렌치 레스토랑’의 테이블 회전율은 1일 3.5회예요. 이 부분에서 원가를 1/4 정도 줄일 수 있고요. 나머지 부분은 마진율이 높은 와인을 판매해서 충당해요.

 

‘내 돈 주고 식사하는데 왜 쫓기듯이 서서 먹어야 하나’ 하고 생각할 법도 한데요.


저성장에 시달리는 20년 동안 선 채로 빠르게 식사하는 데 익숙해진 거죠. 편의점이나 역 앞  식당에 서서 밥을 먹는 게 더 이상 불편하지 않은 거예요. 그리고 ‘나의 프렌치 레스토랑’에서는 먹고 싶은 메뉴만 고를 수 있어요. 고급 프랑스 레스토랑들이 짜여진 코스를 판매하는 것과는 다르죠. 저렴한 가격에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으니까 사람들이 줄을 서서 먹는 거예요. ‘나의 프렌치 레스토랑’의 입장에서는 사람들이 서서 먹으면서 식사 시간이 짧아지니까 테이블 회전율이 높아져서 좋고요. 그리고 앉아서 먹을 때와는 달리 테이블이 클 필요도 없잖아요. 같은 공간 안에 더 많은 테이블을 놓을 수 있는 거죠. 그것도 판매 가격을 낮출 수 있었던 요인이에요.

 

저성장기에 기업을 성공적으로 이끈 경영인으로 후지필름의 고모리 시게타카 사장과 세븐앤드아이홀딩스(세븐일레븐)의 스즈키 도시후미 회장을 소개하셨습니다. 


고모리 사장 이전의 전임 사장은 23년 간 후지필름을 이끌었어요. 물론 그 기간 동안 코닥을 이기고 후지필름을 세계적인 1등 기업으로 만들었죠. 그런데 고모리 사장이 보기에는 필름 시장의 전망이 밝지 않은데, 전임 시장은 아직도 필름 시장은 많이 있다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래서 고모리 사장이 전임 사장을 반 강제적으로 쫓아냈어요. 자신은 회사를 살린 후에 그만두겠다고 선언하면서요. 아날로그 필름 사업을 대체할 아이템을 찾기 위해 ‘필름 기술을 가지고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라’고 지시했죠. 그 결과 디지털 제품과 화장품 제품을 개발했고, 후지필름의 약품이 에볼라 바이러스의 유일한 치료제로 떠오르면서 전 세계에 폭발적으로 팔리기도 했어요. 그렇게 죽어가던 회사를 살리고 자신은 사장의 자리에서 물러났고요.

 

스즈키 회장의 경영 방식은 어땠나요? 급진적이고 강경한 스타일의 고모리 사장과는 달랐나요?


스즈키 회장도 창업자를 제치고 그 자리에 올라섰다고 볼 수 있죠. 위기상황에 놓인 기업에게 온화한 경영자는 적합하지 않아요. 생사의 기로에서 빠르게 판단하고 지휘할 사람이 필요하죠. 스즈키 회장은 조령모개(朝令暮改)가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아침에 결정한 내용을 저녁에 수정할 수도 있다는 거죠. 기존의 경영자들은 권위와 위엄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결정을 바꾸길 꺼려했는데, 그것과는 정반대되는 거예요. 시장이 급변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죠. 많은 비용을 감당하면서까지 일주일에 한 번씩 모든 사원을 동경에 모이게 한 것도 마찬가지예요. 저성장기에는 시장 환경이 급격하게 변하기 때문에 모든 상황을 다 같이 공유해서 대처하지 않으면 안 되거든요.

 

저성장 이후에 호황이 아닌 제로성장이 찾아올 것이고, 그 상황이 장기간 이어질 거라고 전망하시나요?


지금까지 우리는 인플레이션만 경험했는데, 제일 힘든 건 디플레이션이에요. 제품 가격이 1/10로 떨어지면 기업 매출이 1/10로 떨어지는데, 이 경험이 우리에겐 없어요. 한국의 기업들이 경제 상황을 설명하는 용어도 성장 아니면 역성장이에요. 기본적으로 성장이라는 발상 속에 있는 거죠. 일본처럼 20년 간 마이너스 성장을 한다는 게 상상이 안 되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도 마이너스 성장까지 갈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해야 돼요. 

 

한국의 기업인들에게 어떤 변화를 주문하고 싶으세요? 


‘발상의 전환을 하라는 것’ 그리고 ‘각오하라는 것’ 이 두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어요. 세상이 바뀌었고 앞으로 바뀐다는 걸 인식해야 돼요. 저성장기는 지금까지 한국이 한 번도 경험해 보지 않은 길이에요. 그러니 단단히 각오해야죠. 한국의 기업들은 알게 모르게 ‘누군가가 도와주겠지’라는 생각이 있어요. 경제가 어렵다고 아우성치면 정부가 추경예산도 편성해주고 경제 활성화도 시켜주겠다고 해왔거든요.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지금까지는 경제가 성장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저성장 시대가 되면 세입이 줄어들기 때문에 정부가 도와줄 수 없어요. 오히려 법인세를 올릴 것이고 가계가 부담하는 세금도 늘어날 거예요. 그래서 각오해야 한다고 말씀드리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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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김현철 저 | 다산북스
김현철 교수는 최악의 경제성장률을 구가하던 저성장기의 일본 경제와 일본 기업들의 대응 방식에 주목하고 우리나라의 저성장기 타개책을 제시한다. 일본 기업과 경영자들은 세계적으로 각광받던 일본식 경영을 어떻게 뜯어 고쳐 성장을 꾀했는지, 낡은 가치를 뒤바꾸어 어떤 새로운 가치로 탈바꿈했는지, 혁신에 성공한 경영가들의 비밀은 무엇인지 풍부한 사례를 토대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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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형규 “윤계상, 장태호가 걸어오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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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도 보지 못한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본 사람은 없어요.” 지난 7월 24일부터 방송되고 있는 JTBC 드라마 <라스트>의 시청소감이다. 윤계상, 이범수, 박원상, 박예진 등 연기파 배우들의 출연으로 방송 전부터 화제를 모았던 <라스트>는 2011년 다음 만화속세상에서 인기리에 연재됐던 강형규 작가의 동명웹툰이 원작이다.

 

『라스트』는 주식작전에 실패한 펀드매니저 ‘장태호’가 서울역 노숙자가 되면서 시작된다. 조직폭력배가 연루된 사기극에 휘말려 순식간에 쫓기는 신세가 된 장태호는 서울역 노숙자들을 상대로 한 지하경제 시스템을 발견하고, 100억 규모의 블랙 머니를 소유한 곽흥삼의 존재를 알게 된다. 장태호는 사회에 복귀하기 위해 곽흥삼의 100억 원을 빼앗으려 하고, 그 속에서 극단적인 양육강식의 먹이사슬과 맞닥뜨리게 된다. 16부작 드라마 <라스트>는 현재 후반부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배우들의 열연과 빼어난 연출력으로 원작 웹툰까지 덩달아 큰 관심을 받고 있다.

 

강형규 작가는 드라마 <라스트> 제작발표회에서 윤계상을 처음 본 순간, “장태호가 걸어오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웹툰 『라스트』의 주인공 ‘장태호’의 눈빛을 쏙 빼 닮았기 때문이다. 4년 전, 완성했던 작품을 TV로 다시 보는 소감은 어떨까. 강형규 작가는 연신 “제작진과 배우들이 참 영리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2002년 『영챔프』에서 단편 「환영문」으로 데뷔한 강형규 작가는 장편 「장화림」으로 대한민국 만화대상 신인상 수상했고, 2010년부터 웹툰 「무채색 가족」, 『라스트』, 『다이아몬드 더스트』, 『쓸개』등을 연재했다. 지난 7월, 「왈퐈」 연재를 마쳤고 현재는 휴지기를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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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라스트> 제작진, 영리한 캐스팅


<라스트>를 본방 사수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되게 흡족하게 보고 있어요. 우선 캐스팅이 좋았어요. 제작진이 영리했던 것 같아요. 사실 『라스트』가 2011년에 연재된 작품이다 보니, 저에게는 좀 희석된 느낌이 없지 않았어요. 몇 년이 지난 후 영상물로 다시 보게 된 건데, 아무래도 출연자들이 저보다 더 각 캐릭터를 잘 이해하고 있지 않을까 싶어요. 제작발표회를 보면서도 느꼈지만 모든 배우들이 원작의 캐릭터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고마운 일이죠.
 
곽흥삼 역을 배우 이범수 씨가 맡았는데, ‘신의 한 수’라는 평이 많습니다.


모든 캐릭터가 그렇지만 곽흥삼은 특히 애착이 많은 인물이에요. 영화 <지옥의 묵시록>을 보면 말론 브란도가 결정적으로 등장하는 장면이 있거든요. 그 장면의 분위기를 모티프 삼아 곽흥삼의 캐릭터를 만들었어요. 세상에 존재하지만 드러나지 않은 곽흥삼은 지옥의 묵시록의 말론 브란도의 첫 등장 신처럼 항상 어두운 조명에서만 등장해요. 그러다가 그의 악행이 다 드러나고, 장태호와 마지막 파티를 벌일 때, 원작 『라스트』에서는 노숙자들이 살고 있는 지하도의 백열등 아래에서 파티를 하죠.
 
“감정도 돈이야. 비즈니스에 방해돼”라는 대사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곽흥삼이라는 캐릭터를 만들면서도 ‘애를 어떻게 몰락시키지?’라는 생각을 했어요. 곽흥삼이 장태호에게 “그릇 좀 보자”는 말을 하는데, 그러면서 “나는 장태호 안 믿는다. 나를 믿지”라고 말해요. 결국 오만함 때문에 몰락하는 게 곽흥삼이에요. 오만함을 씻었던 장태호는 곽흥삼을 이기고, 곽흥삼은 오만함을 버리지 못해 장태호에게 지게 돼죠. “감정도 돈이야”라고 말했지만, 결국 스스로는 자기 오만함에 빠져서 자멸한 인물이 곽흥삼이에요.
 
만화가로서 작품을 그리는데, 방해가 되는 감정이 있다면요?


무슨 일이 있어도 일주일에 한차례씩 원고 마감을 해야 하는 직업이잖아요. 시간은 촉박하고요. 그러다 보니 기쁘던 슬프던 모든 감정이 다 일하는 데 방해가 돼요. 앉아서 그림을 그리다가 보면 미세한 감정 변화에도 집중하게 되고, 몸에 조금만 변화가 와도 금세 알아채요. 예민해지죠. 세상 만물이 주는 감정에 휘둘리고, 그것과 싸우며 책상에 앉아있어요. 봄, 가을이 되면 놀고 싶고, 여름, 겨울이면 기후 때문에 괴롭고요. 무한 반복되는 느낌이랄까요.

 

주인공 ‘장태호’ 캐릭터는 어디에서 영감을 받으셨나요?


아무래도 저겠죠. 어렸을 적에 오만하기도 했고 밑바닥으로 떨어지는 경험도 했고요. 만화가로 데뷔는 빠른 편이었지만 무명 시절이 워낙 길었어요. 힘들었어요. 장태호가 자장면 그릇 옆에 있는 단무지를 먹을까? 말까? 망설이는 장면이 있었잖아요. 그게 제 경험이에요.
 
드라마에서 장태호는 결국 단무지를 먹지 않았어요.


그런데 저는 실제로 먹었어요. 제가 20살 때부터 29살까지 하숙집에서 살았어요. 만화가로 데뷔했지만 보증금 5백 만원을 못 구했거든요. 장태호는 단무지를 먹는 걸 포기했지만, 저는 옆방 사람이 시켜 먹은 자장면 그릇 옆에 있는 단무지를 반찬으로 먹었어요. 하숙집에서는 점심을 안 주니까, 아침밥을 많이 퍼와서 밥을 남겼다가 점심으로 끼니를 때웠는데 밥만 먹기는 힘들었으니까요. 저는 그게 부끄럽지 않았어요. 사람들은 그냥 ‘저 사람이 만화를 오랫동안 그렸나 보다’라고 생각하겠지만, 노력 없이 만화가가 된 건 아니에요. 
 
『라스트』를 만들기 위해 서울역에 있는 노숙자들을 직접 만나고 취재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노숙자들을 만났을 때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무엇이었나요.


우선 생각보다 노숙자 분들이 많다는 거였어요. 제가 본 노숙자들의 모습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뭔가 작은 것에서 위안을 얻으려는 모습을 많이 보게 됐던 것 같아요. 사실 서울역을 많이 지나다녀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전혀 노숙자 같지 않은 분들도 많이 계세요. 생각보다 되게 멀끔하시고 정중하신 분들도 많고요. 취재할 때 중년쯤 되시는 남자 두 분의 대화를 들은 적이 있는데, “아무리 네가 나무 판자를 구해오더라도 꼭 박스는 바닥에 깔아야 해”라는 말을 하시더라고요. 그분들에게는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였어요. 이 분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서 제가 어떻게 말할 순 없을 것 같아요. 말할 수 있는 건, 이분들이 무서운 분들이 아니라는 거예요. 누구나 이런 상황에 처할 수 있고 그들도 저희와 별반 다를 게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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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은 풍부하고 구조는 단순한 만화


2010년에 연재한 「무채색 가족」은 전작들과 비교해봤을 때, 주제나 그림이 새로웠어요.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는데, 이들 가족의 가훈(‘명확한 의사전달 오해 없는 우리사회’)이 등장하는 이야기였어요. 작가님의 신조 아닐까, 싶더라고요.


맞아요. 저는 한 사람을 대변하는 건, 그 사람의 생각이나 정황이 아니라 행동이라고 생각해요. 「무채색 가족」의 왕년에 잘나가던 소설가 ‘조강병’은 가정에 소홀한 아빠에요. 조강병은 “이런저런 상황 때문에 이렇게 됐지만, 내 마음은 그게 아니었어”라고 말하는데, 전 그런 사람이 싫어요.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게 아니라, 그 사람은 그냥 가정에 소홀한 거예요. 핑계를 될 게 아니라, 반성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모두가 그런 실수를 할 수는 있어요. 하지만, 꼭 반성하고 사과했으면 해요. 사실 저 역시도 이런 생각을 한 게, 오래되지 않았어요. 생활에서 이 신조를 얼마만큼 지켜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노력하려고 해요.
 
“어떤 만화를 그리고 싶다”라는 소망이 있다면요.


추구하는 건, 감정은 풍부하고 구조는 단순한 만화에요. 사실 구조를 현란하게 만드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거든요. 감정을 쏟기에 딱 적당한 구조를 만드는 게 중요하죠. 여러 가지 사건을 만들어내는 건 어렵지 않아요. 제가 만화 작업을 할 때, 항상 패턴이 있어요. 감정적인 작품을 한 편 했으면 그 다음에는 구조가 복잡한 작품을 하는 스타일이에요. 「무채색 가족」 다음에 『라스트』를 그렸고, 그 다음에는 우울한 감성의 『다이아몬드 더스트』, 치밀한 작품인 『쓸개』, 분노의 감정을 담은 「왈퐈」를 한 게 다 이유가 있어요.

 

가장 최근에 작업한 「왈퐈」는 의문사를 당한 남자를 둘러싼 그의 아버지와 아내의 복수 이야기입니다. 어디에서 소재를 얻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예전부터 만들어 보고 싶었던 두 가지 테마가 있었어요. 하나는 세상에 대한 분노를 어디에 표출해야 할 지 모르는 이들의 이야기였어요. 자신의 불만과 분노의 대상을 찾는 이들의 이야기, 그리고 또 하나가 위장된 모습이 아닌, 본연의 모습을 내비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만들어 보고 싶었죠. 그 두 이야기 합쳐진 이야기가 「왈퐈」입니다. 취재보다는 자료가 많이 필요했던 작품이었어요. 사이코패스에 대한 자료와 사건들을 많이 찾아봤어요. 자료를 뒤지면 뒤질수록 「왈퐈」를 포기하기 싶어지더군요. 공포 영화도 못 보는 저로서는 정말 괴로운 시기였습니다. (웃음)

 

「왈퐈」 이후, “감정의 흐름을 주로 하여 서사를 이루는 작필은 당분간 지양하겠다”고 말씀하셨는데, 다 이유가 있었네요.


「왈퐈」는 정말 힘든 만화였습니다. 주인공들의 감정을 따라가며 대사를 쓰고, 그들의 얼굴을 그리는 것이 너무 괴로웠죠. 표정의 대부분이 울고, 괴로워하고, 화내고, 죽일 듯 째려보고. 이런 거 밖에 없었으니까요. 연재하는 내내 연쇄 살인마의 심정과 가족을 잃은 이들의 심정을 되새기고, 연구하고, 마음에 붙잡아 두어야 했어요. 전 항상 연재가 들어가기 전에 전체 이야기를 다 짜둬요. 회차까지 나누어 두죠. 연재 때는 그것을 계획대로 옮기기만 하면 돼요. 그래서 이런 강한 감정의 원고를 해도 삶의 정서에 영향을 안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더라고요. 주인공들의 얼굴만 봐도 괴로웠어요. 날마다 악몽을 꿨어요.
 
21살, 상대적으로 일찍 만화가로 데뷔를 하셨는데요. 만화를 선택한 계기가 있었나요?


청소년기 시절에 홍콩 영화를 많이 봤어요. 형, 누나가 7살, 11살 차이인데, 그들이 접하던 문화를 자연스럽게 일찍 받아들이게 됐어요. 라디오를 많이 들어서 팝 음악도 좋아했고요. 일찍 성숙했던 것 같아요. 집에 책이 많아 고전도 많이 읽었고, 영화도 많이 봤어요. 음악도 잠깐 했고 그림은 조금씩 깨작깨작 그렸는데, 생각해보면 다 표현하는 일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아요. 중학생 때는 농구선수가 꿈이기도 했는데 그 때는 『슬램덩크』를 열심히 봤거든요. 영향이라고 보면 영향일 수 있겠죠.
 
글과 그림 중에 어떤 작업이 더 힘든가요?


그림이죠. 육체적으로 힘들고 정신적으로도 힘들어요. 그림은 계속해서 바꾸게 돼요. 탈고를 한 다음에도 계속 바뀌고, 말 칸이 없어지기도 하고 캐릭터의 표정이 바뀌기도 하고. 그릴 때마다 항상 어려워요. 
 
『미생』과 같이 웹툰이 단행본으로 성공한 케이스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좋죠. 다행이다 싶고 더 잘됐으면 좋겠어요. 제가 그렇게 될 일은 없을 것 같지만(웃음).
 
장담은 못하죠. 『라스트』가 드라마 인기에 힘입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는데요.


드라마를 재밌게 본 분들이 원작을 궁금해하는 경우가 있긴 하더라고요. 봐주시면 감사하죠.

 

강형규 작가의 작품을 좋아하는 독자(팬)들의 특징이 있을까요?


만나 본 팬들의 대부분이 연세가 좀 있으셨어요. 전문직을 가진 분들이 꽤 많았고요. 깊은 대화를 나눴던 분들도 많았었는데, 모두 삶에 진지한 태도를 가지신 분들이었어요. 언제나 팬과의 만남은 참 즐겁습니다. 저도 몰랐던 제 작품에 대한 견해들을 들을 때면 참 신기하고, 때로는 반성도 하고 그래요. 최근엔 아버지뻘 되시는 팬 분이 「왈퐈」 이야기 후, “주인공인 욱철과 혜봉은 어떤 삶을 살게 되느냐?”고 여쭈시더라고요. 작품 이후의 해석은 독자들의 몫이라, 저도 말씀 드리기가 어렵지만, 그럼에도 제 생각을 말씀 드렸더니, 약간 실망하는 눈빛을 보이셨어요. (웃음) 그 분이 생각한 모습과 달랐나 봐요. 좀 죄송했어요.

 

각 작품마다 더 재밌게 즐길 수 있는 독자들이 있을 것 같은데요. 웹툰 『라스트』는 특히 어떤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작품인가요?


통쾌함이 가득해서 남녀노소 모두가 킬링타임용으로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특히 목적 달성을 위해 숨가쁘게 앞만 보고 달려온 분들이라면 더욱 공감하며 보실 거라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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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과의 우정, 사랑을 생각해본다면


「왈퐈」 이후 한 달 정도 쉬신 것 같은데요.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사실 제가 좀 냉혈한 사람이었거든요. 우정이나 믿음, 뭔가 사람들이 모여 합심해서 노력해서 승리하고. 이런 정서가 많이 없었어요. 그런데 올해부터는 인간에 대한 사랑과 정, 이런 감정들을 진심으로 느끼게 됐어요.
 
계기가 있었나요?


올해 딸이 태어났습니다. (웃음)
 
결혼하셨는지 몰랐습니다. 우선 축하합니다.


(웃음) 사실 공개한 적이 없어요. 딸이 태어난 후로 ‘아 순수하게 사람을 진짜 좋아할 수 있구나’를 알게 됐어요. 물론 아내도 순수하게 사랑하지만 아내는 뭐랄까, 저와 오랫동안 고생을 많이 해온 동지의식도 있고요. 딸은 조금 다르더라고요. 저랑 아내를 그렇게나 좋아해요. 둘 중에 한 사람이 없으면 난리가 나고요.
 
(웃음) 그거야 당연한 거 아닌가요? 엄마, 아빠니까요.


그런가요? 아무튼 제가 좀 달라진 것 같아요. 작년에 아내가 딸아이를 임신했을 때 제가 「왈퐈」를 시작했는데, 이 만화가 아들 죽인 놈을 잡으러 가는 이야기잖아요. 작업실에서 그런 만화를 그리다가 집에 가면 내 아이가 있으니까. 되게 괴롭더라고요. 정신분열이 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고 제가 갑자기 『요츠바랑』같은 만화를 그리게 되진 않겠지만. 뭐랄까. 좀 변한 것 같긴 해요.
 
강풀 작가님은 딸 바보 아빠가 되면서, 창작 그림책을 펴내기도 하셨는데요. 강형규 작가님의 딸 바보 그림책은 볼 수 없을까요?


(웃음) 모르겠어요. 아마 힘들지 않을까 싶은데 평생 없을 거라는 보장도 못하죠.
 
작가님의 새로운 작품을 기다리는 독자 분들께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재밌게 『라스트』를 봐달라는 이야기밖에요. 이런 대답 너무 뻔하고 정말 싫죠?
 
그게 사실인데, 뻔하다고는 말할 수 없죠. (웃음)


요즘 정말 이야기가 넘쳐나는 세상이잖아요. 그 수많은 이야기들 속에서 제 작품을 선택해주셨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감사 드려요. 「왈파」 연재가 끝난 지 딱 한 달이 됐는데요. 만화가로 데뷔한 이후 열흘 이상 쉰 적이 없어요. 연재 끝나면 곧바로 다른 작품 준비를 들어갔으니까요. 계속 그렇게 살다 보니 몸이 고장이 났어요. 몸뿐이 아니라 마음까지도 지치더라고요. 이번에는 조금 더 쉬려고 해요. 많은 분들이 볼 때는 다 똑같은 만화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저는 매번 새로운 작품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이번에는 작품을 좀 쉬면서 사람들과의 우정, 사랑 같은 걸 더 생각해보고 싶어요. 생각하다 보면 좋은 아이디어가 나올 것 같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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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스트 LAST 세트 강형규 글,그림/창작집단A.P 기획 | 애니북스
조폭의 돈 70억으로 시작한 주식작전의 실패로 펀드매니저 장태호는 순식간에 동료, 연인, 가족, 그리고 모든 돈을 잃고 쫓겨 다니게 되고, 결국 노숙자가 되어 서울역에 들어서게 되지만, 그곳이 100억 규모의 블랙머니가 오가는 암흑경제의 중심지였음을 깨닫는다. 그는 소문의 100억을 사회 복귀의 밑천으로 삼고자 하지만, 서울역에는 극단적인 약육강식의 먹이사슬로 돌아가는 지하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촘촘히 짜인 서열을 하나씩 밟고 올라가야 하는 장태호는 결국 그 어둠의 세계를 만들어낸 ‘무적의 사나이’ 곽흥삼과 마주치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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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동근 교수 “메트로폴리스 서울, 도시회복력을 올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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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를 인구 몇 만 이상으로 쉽게 정의할 수 없었듯이 메트로폴리스를 단순히 수백만 명이 사는 대도시로만 생각할 수 없다. 도시적인 것의 탄생을 목도하던 때처럼 우리는 메트로폴리스적인 것을 정의하고 상상해야 한다.(6쪽)

 

서울은 덩치만큼이나 크고 다양한 저마다의 삶을 품고 있다. 누구에게 서울은 유흥과 소비의 공간으로, 누구에게 서울은 전통과 역사의 공간으로, 누구에게 서울은 최첨단 기술의 공간으로 존재한다. 서울 인구 천만. 이제 서울은 ‘도시’를 넘어 ‘메트로폴리스’가 되었다. 이 대도시의 작동 과정을 살피는 것은 지금까지와 앞으로의 서울의 삶을 이해하고 나아갈 곳을 결정하는 첫머리가 될 것이다.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에서 임동근 교수는 서울에 자원이 모이고, 이동하고, 축적되는 과정을 통사적으로 읽어낸다. 그 과정에 권력과 자본이 어떻게 작용하고 몸집을 키워왔는지를 살피는데 이는 무엇보다 서울이 빠르게 변화한 탓에 우리가 채 읽어내지 못했던 중요한 성찰이 아닐 수 없다.


빈곤하고 열악한 환경의 서울에서 으리으리한 건물들이 하루가 다르게 모습을 드러내는 화려한 도시 서울로의 변화는 결코 하루아침에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다만 빨랐을 뿐이다. 그 틈, 변화 과정, 역사의 변곡점에 누가, 무엇이, 어떻게 서울을 지금의 모습으로 만들어놓았는지 설명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은 바로 그 대목을 짚어주는 의미 있는 책이다. 권력이 자본에게 어떻게 날개를 달아주었고, 그것으로 권력을 유지했으며, 소외당한 사람들은 어째서 다시 일어나지 못했는지가 드러난다. 지리학이라는 안경을 통해 현대사 속 서울을 차근차근 짚다보면 서울의 현재가, 우리의 삶이, 욕망이나 희망이 뚜렷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것이 정치지리학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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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독특한 도시


“작은 현상을 가지고 설명을 하다 보면 이전에는 전혀 다른 사안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24쪽)다고 하셨는데, 그 말이 계속 머리에 남는 책이었습니다. 책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기도 했고요. 이런 설명은 이전까지 별로 들어본 적이 없었어요.


역사학계에서는 아날학파(Annales School)라고 해서 브로델(Fernand Braudel)부터 시작하는 굉장히 전통 있는 학문의 흐름이 있었습니다. 사상사가 아니라 물질사에서 시작하는 건데요. 부엌의 구조가 어떻게 바뀌었나, 벽돌이 어떻게 바뀌었나, 이런 것 하나 하나를 가지고 역사의 흐름, 주기, 리듬을 파악하는 거죠. 1960년대부터 프랑스에는 이런 전통이 있었습니다. 푸코(Michel Foucault)라든지 이런 사람들도 다 아날의 자장에 있다고 얘기를 하는데, 그 영향을 받은 세대들입니다. 한국에서도 1990년대부터 적극적으로 도입이 됐어요. 한국사학, 서양사, 인류학 이런 쪽에서는 많이 쓰고 있죠. 쓰는 줄도 모르게 쓰는 거죠.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도시, 지리 쪽에는 별로 그런 얘기가 없었는데요. 이 책에서는 그런 전통 하에 현대사를 본 거죠. 어떻게 보면 지리학 책이라기보다는 역사학 책 같은 느낌이 들죠. 방법론이 아날의 전통에 있기 때문에 그런 느낌을 받는 겁니다.

 

두 달 간 팟캐스트에 소개한 내용을 묶은 책인데요. 방송을 하면서 전하려고 했던 것은 어떤 내용이었나요?


방송에 참여하려고 했을 당시 프랑스에서 지리학 관련 팟캐스트가 한참 떴어요. 이참에 비슷하게 한국에서도 해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하게 됐고요. 몇 가지 주제를 제안했어요. 그 중 메트로폴리스 서울이라는 주제가 결정된 거죠.

 

정치지리학 시선으로 역사를 본다는 것은 또 다른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정치지리학에 대해 간단히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지리학이라는 것 자체가 자원 배분에 관한 사회적 현상들을 보는 학문입니다. 정치도 하나의 자원이거든요. 그게 정치지리학이죠. 문화지리학이라고 하면 문화도 하나의 자원으로 보는 거예요. 땅 위에 있는, 공간상에 있는 어떤 것들이 자원이 되느냐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해요. 예를 들어 북극이라고 하면 여태까지 북극에 대한 논의는 기후학자, 해양학자들이 들어가 했는데요. 북극에 나와 있는 자원 때문에 항로가 개척된다든지 석유가 나온다든지 하는 순간 지리학의 대상이 돼요. 자산, 자원을 배분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이죠. 농담처럼 화성지리학도 나와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는 게 화성에 자원이 있으면 그걸 어떻게 공간적으로 배분을 하느냐가 연구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정확하게 말하면 뭔가 돈이 될 만한 것들이 A라는 지점에서 B지점으로 움직이는 것을 파악하는 게 지리학이에요. 움직임, 밀도, 공간적 분포, 이런 것들에 굉장히 민감해요. 그 중 정치라는 게 하나의 자원처럼 나오는 거죠. 돈이 있다는 것과 정치적인 권력이 있다는 것이 거의 똑같은 효과를 내기 시작하는 겁니다. 같은 효과일지도 몰라요. 그런 것들을 연구하는 게 정치지리학입니다.

 

“서울은 독특한 도시”라고 하셨는데 무엇이 가장 특징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다른 메트로폴리스와 서울이 다른 점은 무엇이 있나요?


서울은 우선 굉장히 빨리 성장했고요. 성장도 생각보다는 무척 순조로웠어요. 갈등이나 도시 폭동 같은 것도 거의 없었고요. 계급 갈등도 있긴 있었지만 민주화가 되면서 많이 극복이 된 상황이죠. 다른 나라에서 봤을 때 훨씬 더 안전하게, 안정적으로 성장한 것처럼 보여요. 그래서 사람들이 놀라워하는 거죠. 실제로 그게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죠. 슬럼으로서의 서울, 1960년대의 한참 빈곤하던 서울에서 지금의 잘 사는 서울로 곧바로 넘어가지는 않았을 텐데 그 과정을 연구한 사람들이 별로 없어요. 그걸 보여주기 위해 이 책을 쓴 거거든요. 이것이 제 박사논문의 주제예요. 어떻게 메트로폴리스가 순식간에 빠르게 진행되었는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됐는가를 보는 거죠.


같은 위치에서 생각할 수 있는 곳이 많이 있어요. 카이로, 부에노스아이레스, 뉴델리 같은 여러 도시들이 그래요. 대부분 슬럼이 많은 도시들, 인구가 너무 많아서 문제라고 생각했던 도시들이었거든요. 이 도시들이 갑자기 메트로폴리스로 성장하는, 부(富)가 올라가는 장면 대부분이 다 해석이 되는 거죠.

 

메트로폴리스로 이행하는 장면들에 공통점이 있다는 것이군요.


도시가 2천만 이상으로 팽창하게 되면 기존의 5만 도시가 만들어지는 방식과는 완전히 다르거든요. 정치적으로 그 요인들을 몰아주지 않으면 해결이 안 되는 거예요. 5만 도시면 주변에서 먹을 것을 공급하면 살 수 있어요. 2천만 쯤 되면 먹을 것을 공급하는 시간이 길어요. 범위도 넓고요. 그 물류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굉장히 많은 경제적인 힘, 군사력, 세계 무역 질서, 각종 법적 질서가 들어가야 하는 거죠. 그걸 하나씩 만들어왔다는 겁니다. 그 과정을 보는 하나의 틀이 메트로폴리스 지리학이에요. 도시지리학과는 또 달라요. 대도시가 어떻게 성장하고 관리되는지 하는 연구의 또 다른 흐름이 있죠. 그 흐름 안에서 서울을 본 거예요. 비슷한 흐름으로 베이징, 도쿄 등도 볼 수 있죠. 서로 소통하고 그래요. 이런 쪽으로는 생각보다 지식의 흐름도 빠른 편이에요.

 

그러니까 말이 안 된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기는 되고 저기는 안 되는 경계가 모호합니다. 하필 이런 선을 그은 이유가 뭐였을까, 누가 그었을까, 이것은 지금도 미스터리입니다.

(중략)
이와 관련된 인터뷰도 없고, 당사자들 중 지금 살아 있는 사람도 별로 없습니다. 워낙 빨리 처리하다 보니까 집중 조명도 되지 않았습니다. 누구 머리에서 나왔는지 모릅니다. 관련된 황당한 예는 많습니다. (80쪽)

 

가장 아쉬웠던 것은 기록 부족으로 정확하게 전후 사실을 알기 어렵다는 점이었습니다. 먼 과거도 아닌데 말이죠. 물론 연구자로서는 더 하지 않을까 싶어요. 가령 서울 확장 미스터리 같은 부분은 괜한 소설적 상상을 하게 하는데요.(웃음)


1960년대 자료가 제일 없어요. 너무 빨리 변했기 때문에 그래요. 당시는 복사기가 없었기 때문에 자료가 필사본 한 부 밖에 없는 경우도 많았고요. 그 자료 사라지면 끝나는 거죠. 그 빈틈에 대해서는 많이 추론을 하는데요. 실제로 관련된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기 때문에 심증은 가죠. 말하기는 힘들지만요. 또 ‘누가 결정했는지가 중요한가?’라는 생각도 해요. 누가 결정했어도 단발성 사건이었다면 이어지지 못하거든요. 이어갔다는 것 자체가 의의가 있는 거지 하나의 사건 자체가 의의가 있다고 보기는 힘들죠. 그린벨트를 예를 들어도 후에 그린벨트를 해지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계속 유지했다는 것이 의의가 있는 거죠.


역사적인 사건들을 평가할 때, 그 사건들이 정말 중요했다는 평가는 결국 후속되는 마디들에 따라 결정되는 거고요. 그 마디들이 오늘날 어떤 작동을 하고 있는지, 그것이 더 중요하다고 보는 거죠.

 

강남이라는 공간이 참 재미있어요.“외부 사람들이 강남을 재생산”(378쪽)해주고 있다고 하셨는데, 어떤 의미인가요?


강남에서 많이 돈 쓰시잖아요.(웃음) 거의 대부분이 그렇지 않나요? 소비도 큰 축을 담당하고 있고요. 제일 큰 건 강남은 사무직 노동자들의 집중지라는 거예요. 다른 도심의 경제 상황이라면 물건이 왔다 갔다 하는 부분도 많죠. 강남은 종이 만지는 사람들이 제일 많이 몰려있는 곳 중 하나예요. 사무직 노동자들의 오피스촌이 나온 거죠. 이들이 돈 쓰는 비율이 제일 높은 거예요. 또 사무직 노동자들이 연령별, 계급별, 성별로 어떻게 구성되느냐를 봐야 해요. 30, 40대 그리고 압도적으로 여성들이 많죠. 여성들이 국내 소비문화를 리딩하는 면이 있고요. 돈이 끊임없이 왔다 갔다 하는 시기가 또 30, 40대고요. 강남은 그런 공간의 집합이 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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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중요한 게 복지


서울, 하면 아파트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초기에는 아파트에 대한 선호가 거의 없었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사실은 거주자 비율이 단독주택과 큰 차이가 없다는 분석도 하셨는데, 아파트는 어쩌다가 이렇게 확장된 형태로 자리 잡았을까요?


서울 시민의 반 정도가 다세대 주택에 살아요. 아파트가 지배적인 주거 형태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사는 사람들을 생각하자면 절반인 거예요. 수도권으로 확장을 하면 조금 높아지긴 하죠. 민간 자본을 주택에 끌어들이기 위해서 아파트 정책을 편 거거든요. 재벌 건설사를 끌어들이려면 규모를 키워야 했어요. 집 한 채 지어 얼마 벌고 이래서는 안 되는 거거든요. 단지 차원에서 하나의 건설사가 덤벼야만 돈이 남는 겁니다. 처음 민간 자본 끌어들일 때 얼마 이상 짓는 업체에 땅을 팔겠다, 이런 식으로 강요한 측면이 있죠. 그게 꾸준히 발전하다보니 지금까지 왔는데요. 단순히 그것만으로 해석할 순 없겠죠. 중간 중간 위기들이 많이 있었어요. IMF도 그렇고, 재건축도 그렇고요. 건설사들이 마케팅까지 시도하는 여러 흐름들 속에서 지금의 모습이 나온 거죠. 오히려 지금은 거꾸로예요. 미분양 사태의 가장 큰 문제가 뭐냐면 이미 덩치가 커져버린 주택건설업체들이 더 이상 크게 지을 필요가 없을 때 어떤 식으로 그 자본들을 돌릴 것인가의 문제와 맞물려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구조조정이 들어가는 거죠. 이미 많이 했고요.

 

그래서 이후에 ‘건설’에서 ‘관리’로 변신을 하게 된다고도 하셨잖아요.


네, 임대업자로 변신을 해야 하는데요. 그 도중에 있는 거죠. 말 그대로 건설자본에서 임대자본으로 바뀌어야 하는데 그게 쉬운 게 아니에요. 그러려면 임대료를 낼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해요. 아주 안정적으로 임대료를 낼 수 있는 단지들이 하나씩 나와야 하는데 월세 내기 다 싫어하잖아요. 돈이 나가는 거라고 생각하니까요. 거부감 없이 할 수 있는 방법이 뭘까, 혹은 그렇게 월세를 낼 수밖에 없는 세대를 어떻게 안정적으로 양산할까가 해결돼야 하는 거죠. 일시적으로는 가능해요. 집을 없게 만들면 어쩔 수 없이 월세 살아야 하니까요. 그렇지만 지속을 못한다는 거예요. 월세 내는 가구를 천만 정도 꾸준히 유지하려면 관리가 엄청 필요해요. 거기에 가장 중요한 게 복지입니다. 복지가 없으면 월세 시스템이 정착이 안 되거든요.

 

복지라면, 주택 바우처 같은 것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주택 바우처가 됐든 교육 복지가 됐든 의료 복지가 됐든 말이에요. 지금처럼 교육비에 허리가 휠 때는 주거비를 안정적으로 내기 힘들죠. 그러니까 어떤 것을 제거시킬 것인가 하는 건데 이건 큰 딜레마일 거예요. 주거를 공공복지로 하면 의료복지가 깨질 수 있어요. 의료복지를 잘 구성하면 주거복지가 깨지겠죠. 왜냐하면 모든 분야에 다 복지를 제공하지는 않으니까요. 어떤 것을 줄 것이냐를 하나씩 판단할 텐데, 의료 시장을 활성화시킬 것이냐 주택 시장을 활성화시킬 것이냐 이런 거예요. 한국의 의료보험 시스템은 좋은 편인데요. 그동안은 의료복지 덕분에 주거비로 나갈 돈이 있었던 겁니다. 의료복지가 깨지면 이쪽으로 갈 돈이 없어지는 거죠. 여러 단계들을 같이 놓고 봐야 해요.

 

지금 상황을 보면 점점 그렇게 되고 있는 것 같은데요. 의료 민영화 같은 이야기도 많이 나오고 있고요.


거의 모든 부분에서 복지를 깨려고 하는 흐름이 있는 거죠. 민영화, 자유화 하면서요. 그렇게 되면 주거 시장 같은 경우는 어쩔 수 없이 줄도산이 나오는 거죠. 더 이상 지탱할 수가 없으니까요. 그러니 건설자본 입장에서는 힘든 거죠. 탈출을 시키는 겁니다.


내수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수출은 무용인데요. 내수란 돈이 안에서 돈다는 겁니다. 돈이 안에서 돌면서 외국에서 돈을 벌어오지 않아도 국가 경제가 굴러갈 수 있는 역량을 키워야 하는데 그게 없는 상태기 때문에 휘둘리는 거죠. 지금 그래서 수출 실적에 일희일비 하는 겁니다.

 

 

젊은 세대들 70~80%는 평생 월세 내면서 살 것


주택문제는 노동문제와 연결되어 있다고 하셨어요. 예전처럼 한 직장에 오래 다니면서 돈 모아 집 사는 풍경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잖아요. 특히 젊은 세대들의 주거 불안도 심하고요.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옮겨갈 것이라고 예상하세요?


두 직장을 다녀도 집 사기는 어려울 걸요?(웃음) 집 사는 건 불가능하죠. 대신 이들이 임대료를 꾸준히 낼 수 있는 정책으로 갈 겁니다. 젊은 세대들은 아마 70~80%는 죽을 때까지 월세 내면서 살 거예요. 그 월세를 낮을 수준으로 해결해 줄 것이냐 아니면 살인적으로 계속 올라가도록 내버려둘 것이냐 하는 차이가 있을 뿐이죠.

 

지금의 30대들까지는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는 경우가 아직 있는데요.


부모님의 자산이 있느냐 없느냐가 굉장히 큽니다. 젊은층 같은 경우는요. 세대로 환산할 수가 없어요. 부모님에게 집이 있으면 그 집을 물려받겠죠. 어차피 한 가구에 자녀가 2~3명밖에 없기 때문에 집 한 채를 상속 받는 것은 가능할 거예요. 하다못해 같이 살 수라도 있는 거예요. 그게 생각보다 굉장히 큰 완충제였어요. 그게 아니라면 부모님이 경제활동을 그만 두었을 때 그분들을 부양하면서까지 임대료 내고 하는 건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니까요. 그런 계층, 그런 계급들에게는 지금 굉장히 악몽 같은 상황에 계속 펼쳐지는 겁니다. 노인 복지도 거의 없는 상태기 때문에요.

 

김: 그러니까 결국은 주택문제는 노동문제하고 거의 직접적인 상관이 있는 거군요.


임: 서울시 주택 보급률이 70퍼센트다, 60퍼센트다 하며 주택 위기 운운 했는데, 사람들이 계속 올라오기 때문이거든요. 사람들이 지방에서 쉽게 일자리를 구하고 평생직장 다닐 수 있으면 서울에 주택문제는 없었겠죠.(264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정부 정책들을 보면 어떻게든 부동산을 부양하는 단기적인 정책들이 계속 나오고 있는 상황이거든요.


어떤 분들은 지금 부동산 정책은 있는 자들이 땅을 팔기 위한 제도라고까지 말을 하거든요. 너무 많은 돈이 부동산에 묶여 있으니까 포트폴리오 관리 차원에서 현금화시키려고 한다는 건데요. 그걸 그 아래에 있는 계급에게 판다는 거죠. 전가시키는 거예요. 전적으로 그렇게 말할 수는 없겠지만 부분적으로는 맞는 얘기죠. 생각보다 그런 시도가 많습니다.

 

굉장히 설득력 있는 분석처럼 들리네요.


데자뷰예요. 예전에 증권이 올라갈 때도 비슷했거든요. 예전에는 상위 1%, 5% 정도가 주식을 했어요. 그러다가 10%가 주식을 할 때 상위에 있는 사람들은 돈을 법니다. 10%가 벌기 위해서는 상위 20%까지 주식에 들어와야 하는 거고요. 결국 피라미드예요. 위에 뺏기는 만큼 아래 자산 계층에서 돈을 가져와야만 본전을 유지하는 구도기 때문이죠. 워낙 정보도 한정되어 있고요. 부동산도 비슷한 거예요. 돈을 써야만 가치가 올라가면서 위에 있는 계급이 자산을 증식하는 거죠. 시간적으로는 미래 세대의 돈을 끌고 와야만 가능한 겁니다. 지금 40대의 집 가진 사람들이 집으로 돈을 벌려면 30대가 40대 사람들이 투자한 돈보다 더 많은 돈을 부동산을 투자해야만 가능한 거예요. 미래 세대들이 부동산에 돈을 더 많이 쓰길 바라는 거죠. 그래야만 부동산 가치가 올라가는 거니까요. 그런 전쟁이기도 해요.

 

끝나지 않는 전쟁인 건가요?


‘언제까지 이걸 할 거냐?’라고 해서 특정 세대를 파괴 시키는 작업을 하고, 리셋하자고 하든가 아니면 판을 아예 바꾸자는 개념으로 가든가 해야 할 거예요.

 

판을 아예 바꾼다면 어떤 방법이 가능할까요? 꽤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일 것 같은데요.


토지 공개념 같은 아주 혁신적인 제도들이에요. 굉장히 강한 제도들이 들어와야겠죠. 버티질 못하면 부분적으로 가겠죠. 부분, 부분을 파국으로 만들겠죠. 가령 청년을 위한 주택 정책을 짜겠다고 해서 적어도 이들은 집 걱정 하지 않도록 과감한 복지를 하자고 해버리면 하숙집을 갖고 있는 세대들은 그 부분에 대해서는 파국이 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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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확실히 책임을 져야 하는 영역


신자유주의로 인한 변화들에 관심이 있는데요. 도시계획이 아니라 도시 개발이 되어버린 서울, 수도권을 보면서 여러 가지 감정이 들더라고요. 정책도 없고, 철학도 부족한, 오로지 얼마나 돈이 되느냐에 따라 마구잡이로 공간을 확장해요.


메트로폴리스는 개발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설비 투자를 계속 해야만 새로운 생산이 가능한 구조로 이미 갔어요. 무한 경쟁으로 간 거죠. 때문에 개발을 반대한다는 건 말도 안 돼요. 교통망도 바꿔야 하고, 상가도 바꿔야 하고, 다 바꿔야 합니다. 다만 그 속도를 어떻게 할 것이냐, 얼마나 공공이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개발 이익들을 공평하게 나눌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할 것이냐, 더 나아가 안정적으로 개발할 방법이 있느냐 라는 게 핵심 포인트예요.


코엑스, 뚝섬, 용산 다 민간이 개발했어요. 그런 방법 대신 조합이라든지, 시가 들어가서 아예 공영 개발이 된다든지 하는 방법이 있겠죠. 개발 이익을 시가 가져올 수 있게 말이에요. 자산권, 소유권을 공공이 놓지 않고 거기서 나오는 이익들을 시 재정, 복지로 돌릴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놓는 것이 제일 중요해요. 지금 개발들은 하나 같이 시 재정이 열악하다는 핑계를 대면서 국공유지를 매각하는 겁니다. 지하철도, 경전철도 민간에게 그냥 주는 거거든요. 최악의 개발 모델인 거죠. 개발을 하긴 하되 공공이 꾸준히만 해주고 민간은 거기서 건설해서 돈 벌고, 위탁 운영해서 돈 벌고, 하도록 만들어주기만 하면 돼요. 통째로 넘길 이유는 하나도 없어요. 처음 구도 자체가 이 도시를 공공이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차원에서 접근했어야 하는데 그게 없고 다 근시안이었어요. 4년 임기, 중임 이 정도 바라보고 바로 치고 나가기 때문에 그런 안정적인 개발 가능성이 점점 떨어지고 있는 겁니다.

 

경제구조를 진단하고 돈을 풀면 그 다음부터는 알아서 건물도 올라간다고 하셨는데, 이게 핵심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사전에 진행하는 이런 꼼꼼한 진단은 가장 못하는 것 중 하나예요.


그런 경험이 거의 없죠. 동네를 개발하겠다는 청사진은 많이 봤지만 그 동네가 왜 문제인지에 대한 보고서는 거의 없어요. 뭐가 문제라고 밝히는 게 굉장히 중요한데 그러면 표가 안 되나 봐요.(웃음) 왜 문제인지를 하나씩 따져보면 잘못한 부분이 튀어나와요. 그리고 지금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권력을 갖고 있으면 안 돼요. 특정 지역에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 권력자라고 하면 계속 그것들을 회피하겠죠. 도시 문제는 복잡하다고 말들 하고, 물론 복잡하기도 하지만 의외로 간단하게 풀리는 것도 있어요. 문제가 간단한 것도 되게 많은데 간단한 것을 질문하지 않게 만드는 게 권력이에요. 감추는 권력이 생산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겁니다. 말을 못하게 하거나 인식 자체를 못하게 하는 힘이 훨씬 센 겁니다. 이런 경우는 실제로 문제가 아주 간단하다 하더라도 등장하지 않는 거죠.

 

안에서 돈이 돌아야 한다, 내수가 뒷받침 되어야 한다고 하셨는데요. 지금의 사회는 지리적 경계도 많이 허물어진 상태잖아요. 온라인이나 모바일도 점점 확대되고 있고요. 또 민영화가 계속 되다 보면 말씀하신 ‘돈아 안에서 돌도록’ 하는 상황은 더 불리해져요.


정부 통제가 점점 힘들어지죠. 그런데 저는 민영화에 완전히 반대는 아니에요. 특정 부분은 민영화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특정 부분은 굉장히 강하게 공적 영역으로 갖고 있어야 하는 거죠. 한 영역을 공적 영역과 민간 영역으로 나누는 경우가 있어요. 지금은 모든 부분을 그렇게 하겠다고 하는 거거든요.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복지혜택을 주겠다고 하면서 일정 부분을 민영화시키는 건데요. 그게 굉장히 위험한 발상이에요. 경계를 결정할 때마다 싸워야 하니까요. 하위 15%까지 복지를 할 것이다, 20%까지 하자, 줄다리기를 하게 되죠. 또 상위 80%를 상대로 돈을 버는 사람들이 하위 20%를 대상으로는 돈을 안 벌고 싶겠어요? 계속 내려가서 그 영역까지 침범하게 된단 말이에요. 그걸 매번 지켜내야 하기 때문에 너무 힘든 일이 돼요. 오히려 어떤 특정한 분야에 대해서는 국가가 강하게 책임을 지고 나머지 부분을 민간 시장으로 가서 효율을 높이겠다, 고 선언을 해주는 게 중요해요. 그러면 민간 자본도 그 영역은 넘겨버리게 돼요. 예전에 지하철은 공공이라는 게 분명히 있었어요. 그런 것들이 야금야금 깨져나가는 거예요. 그게 제일 위험해요. 어디까지는 지키겠다는 사인을 확실히 하고 장기적으로 간다는 의지를 보여주면 나머지 민간 시장이 훨씬 더 활성화 돼요. 그걸 안 하는 거죠.

 

공공의 영역으로 두어야 하는 것들이 분명히 있어요.


재생산과 관련된 부분이 그래요. 아이를 계속 낳을 수 있게 해주고, 병 걸리지 않게 해주고, 이런 것들이 핵심인 거죠. 그건 국가가 확실히 책임을 져줘야 하는 거죠.

 

앞으로 서울은 또 어떤 모습으로 변화할까요? 어떻게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도시회복력(urban resilience)이라는 말이 있어요. 안 좋은 사건을 겪어도 다시 돌아갈 수 있는 힘이에요. 도시의 저력을 키우자는 것과 비슷하죠. 저력이 있으려면 안에서 돌아가는 돈들이 지금처럼 빨라지면 안 돼요. 천천히 들어와서 천천히 나가도록 역량을 키워야 해요.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사람이 며칠 돈 안 들어오면 끝나는 것처럼 도시도 마찬가지예요. 적어도 외부에서 자원이 어느 기간 동안 안 들어오더라도 버틸 수 있는 힘들이 필요해요. 그렇게 하려면 도시 안에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각종 지수를 확인하는 작업이 필요해요. 서울에서 얼마나 에너지를 쓰고 있는지, 쌀을 얼마나 먹는지,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이야기해줘야 해요. 그런 이야기들이 별로 없는 거죠.

 
서울에 있는 모든 마트, 슈퍼 등을 총괄해서 그곳에 보유하고 있는 쌀을 가지고 서울사람들이 며칠을 버틸 수 있는가 판단하는 사람이 누군가는 있어야 해요. 전기, 물 모두 마찬가지죠. 대중교통이 마비되었을 때 보행권 안에서 물을 며칠 간 공급받을 수 있다면 도시회복력이 올라가는 거죠. 돈도 마찬가지고요. 그런 게 없어요. 지금은요. 과거에는 전쟁 때문에라도 그런 시도들이 부분적으로 있었는데 지금은 점점 사라지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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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폴리스 서울의 탄생 임동근,김종배 공저 | 반비
이 책은 그런 독특한 통치술, 독특한 선택들을 하나 하나 역사적으로 되짚어보며 그 효과와 부작용들에 대해 객관적으로 살펴본다. 가령 동사무소라는 독특한 한국적 행정기관은 왜 생겼으며 어떤 기능을 했는지, 그린벨트는 왜 만들었고 어떤 기능을 했고 어떤 부작용을 낳았는지, 아파트는 어떻게 전 국민의 로망의 되었으며 또 어떻게 지배적인 주거 양식이 되었는지, 다세대,다가구 주택은 왜 그렇게 많아졌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왜 이렇게 외면당하고 있는지, 왜 마포가 아니라 테헤란로가 대표적인 오피스 지구로 자리 잡게 되었는지 등등 의문점들에 대한 흥미로운 답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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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PD의 추천, ‘문 닫기 전에 꼭 가야 할 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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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쿡방’과 ‘먹방’은 식상해졌다고, 사람들은 말했다. 우리는 기존의 음식 프로그램과는 확연하게 다를 거라고, <수요미식회>는 말했다. 그들의 출발을 지켜보는 시선에서는 의심이 묻어났다. 맛이 없으면 맛없다고 말하고, 음식을 만들거나 맛보는 모습도 보여주지 않고, 식당도 섭외하지 않은 채, 과연 시청자들을 끌어 모을 수 있을까. 막상 뚜껑을 열고 보면 별 다를 것 없을 거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결과는 달랐다.

 

<수요미식회>의 도마 위에 오른 음식점들은 출연진의 ‘매의 눈’을 피해갈 수 없었다. ‘이 집의 아쉬운 점’을 이야기하는 시간은 항상 찾아왔고, 맛있다는 칭찬과 별로라는 지적은 늘 공존했다. 화려한 셰프의 요리 솜씨도 음식을 흡입하는 식신의 모습도 없었지만, 음식과 식당에 얽힌 맛깔스러운 이야기는 시청자의 침샘을 자극했다. 그 결과 <수요미식회>는 재미와 신뢰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방송이 시작됨과 동시에 포털사이트의 실시간 검색어를 장악했고, 블로그와 SNS에서는 ‘<수요미식회>에 방송된 식당’ 정보가 공유됐다.

 

<수요미식회>를 보며 자신만의 맛집 리스트를 채워갔을 이들에게, 책으로 찾아온 『수요미식회』는 그 자체로 참고 사전이 되어줄 것이다. 탕수육과 짜장면, 복고치킨, 김치찌개, 떡볶이, 삼겹살, 평양냉면 등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메뉴들의 이야기가 압축적으로 담겨있는 까닭이다. 뿐만 아니라 1회부터 26회까지 방송을 통해 소개되었던 음식점 88곳에 대한 정보도 한 눈에 볼 수 있다.

 

방송에서는 볼 수 없었던 음식과 식당의 뒷이야기를 엿볼 수 있다는 점 역시 『수요미식회』만이 가진 매력이다. ‘문 닫기 전에 꼭 가야 할 식당’의 장인들이 인터뷰이로 참여해 방송 성공 비법과 비하인드 스토리, 자주 방문하는 유명인, 손님이 적은 시간대, 창업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까지 알토란같은 정보들을 공개했다.

 

이로써 제작진은 ‘미식으로 세상을 이롭게 하라’는 자신들의 사명을 『수요미식회』안에도 고스란히 담아냈다. 그들을 대표해 채널예스와 만난 이길수 PD는 책과 방송을 향해 쏟아지는 궁금증을 말끔하게 해소시켜주었다. 출연진에게 식사비용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건 사실일까? 연출자가 추천하는 ‘문 닫기 전에 꼭 가야 할 식당’은 어디일까? 이어지는 내용 속에 그녀의 대답이 감춰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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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출연 고사하는 식당들의 속사정


‘문 닫기 전에 꼭 가야 할 식당’의 선정 과정이 궁금합니다. 자문단 외에 네티즌의 평가도 반영하시나요?


일차적으로 자문단의 의견을 구하고요. 거기에 더해서 블루리본이나 다이어리알 같은, 음식 정보를 알려주는 매체도 살펴보죠. 블로그도 다 보고요. 잡지 기사 또는 음식 칼럼에서 한 번이라도 언급했던 식당들은 모두 참고해요. 그렇게 정보를 모은 다음에는 해당 음식점에 대한 최근의 평가를 다시 확인하고, 20~30곳을 추려서 제작진이 답사를 가죠. 식당에 취재를 갈 때는 몰래 가고요. 출연자 분들도 각자 가능하신 시간에 다녀오세요. 그러고 나서 최종적으로 서너 곳의 식당을 고르는 거예요.

 

<수요미식회>의 일부 영상들은 음식점의 협조 없이 촬영된 것 같습니다. 방송 출연을 원치 않는 식당들도 많은가요?


방송 출연을 별로 하고 싶어 하지 않는 식당들이 많아요. 기존에도 그랬거나, 오래 전에 출연한 적이 있지만 최근에는 촬영에 협조하지 않는 식당들도 많고요. 왜냐하면 이미 장사가 잘 되고 있는 곳들이 대부분이거든요. 단골손님만으로도 포화 상태이기 때문에, 더 많은 손님이 몰리면 단골손님들에게 민폐가 될 수도 있고요. 그래서 촬영에 호의적인 식당은 거의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필요한 식당들이 있잖아요. ‘이 음식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그 집을 빼놓을 수는 없다’고 할 수 있는 곳들이요. 그런 경우에는 저희 프로그램에 대해서 설명을 드리고 최대한 설득을 해보지만, 그래도 안 되면 협조 없이 촬영을 하게 되는 거죠.

 

촬영 협조를 얻은 음식점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평가하기가 어렵지 않나요?


이미 저희 프로그램의 성격을 알고 계시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을 때도 있고요. 처음에는 설명을 드리기도 해요. 무조건 칭찬하는 프로그램은 아니라고요. 무엇보다 그런 부분에서 자유로우려면 취재나 촬영에 드는 일체의 비용을 저희가 부담해야 돼요. 출연자들도 사비로 음식 값을 계산하시고, 저희도 마찬가지예요. 촬영을 위해 주문했더라도 음식에 대한 비용은 다 지불해요. 철저하게 지키고 있는 원칙이에요. 솔직하게 평가하는 데 있어서 불편할 만한 일은 만들지 않아야 하니까요.

 

말씀하신 것처럼 <수요미식회>는 무조건 칭찬하는 프로그램이 아니잖아요. 그런 이유로 촬영을 거절하셨던 분은 없었나요?


있기는 해요. 식당 섭외가 마무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출연진이 식사하러 찾아갈 때도 있는데요. 제 추측이기는 하지만, 근무하시는 분들이 출연진을 알아보시고 ‘혹시 <수요미식회>에서 왔나’ 하고 생각하셨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녹화 며칠 전에 연락 주셔서 방송 출연을 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신 경우도 있었고요. 식당에서 너무 심각하게 출연을 거절하셔서 어쩔 수 없이 방송에서 소개하지 못했던 적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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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스파이크와 이상민, <수요미식회>의 ‘의외의 인물’


출연자에게 식비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사실일 줄은 몰랐습니다(웃음).


그래서 음식을 좋아하는 분이어야 돼요(웃음). 음식이라는 게 혼자 가서 먹는 게 아니니까 비용이 생각보다 더 많이 들거든요. 가족들과 함께 가시기도 하고, 지방에 가실 때는 숙박도 하셔야 되잖아요. 기름 값도 들고요. 원래 음식을 궁금해 하시고 좋아하시니까 가능한 일이죠. 그렇지 않으면 부담도 많이 되실 거예요. 돈 뿐만 아니라 시간도 많이 투자하셔야 되거든요. 한 회에 적어도 서너 식당을 소개하는데, 매주 방송이 있잖아요. 게다가 지역 특집 같은 경우에는 식당 서너 군데만 다녀오실 수 있는 게 아니라, 길거리 음식부터 시장 문화까지 보셔야 하거든요. 그러면 다녀오셔야 하는 데가 7~8 군데예요. 1박을 하지 않고는 힘든 상황이죠. 그런데도 시간을 내셔서 즐겁게 다녀와 주시니까 너무 감사드릴 뿐이죠.

 

지금까지 출연하신 분들 중에서 ‘의외의 인물’을 꼽으신다면, 누구를 이야기하시겠어요?


기본적으로 음식에 관심이 많은 분들을 섭외하지만 돈 스파이크 씨는 조금 의외였어요. 그 분은 저랑 미팅하실 때도 먹기 위해서 돈을 번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웃음). 이상민 씨도 부모님께서 식당을 운영하셨다고 해서 의외였고요. 이현우 씨는 본인이 요리를 많이 하세요. 아이들에게 직접 요리를 해주실 때가 많다고 하시더라고요. 원래 요리를 좋아하고 즐기시는데 음식을 맛보러 다니신 경험도 많아요. 그런데다가 음식을 바라보는 시각이 남다르시죠. 조금 더 감성적이고 많은 의미를 생각하시니까요. 신동엽 씨는 예전부터 연예계에서 미식가로 유명했던 분이에요. <오늘 뭐 먹지?>에서는 직접 요리를 하시니까 서툰 모습을 보이시지만,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음식에 관심이 많으셨다고 하거든요. 그 시간이 30년 가까이 되니까 내공이 엄청나죠.

 

방송에서 소개된 식당과 관련해서 항의를 받으신 적도 있으세요?


간혹 게시판에 글을 올리시는 분이 계시기는 한데요. 그런 글이 한두 개씩 올라오면 식당 사장님이나 관리하시는 분께 전화를 드려요. 어떻게 된 일인지 여쭤보고, 혹시 오해가 있었다면 앞으로 조금 조심하셔야 될 것 같다고 말씀을 드리죠. 정말 다행인 건, 지금까지 굉장히 많은 식당을 소개해 드렸는데 그에 비하면 항의는 그렇게 많지 않았던 것 같아요. 저희가 더 열심히 해야죠.

 

준비하기가 쉽지 않았던 음식들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그렇죠. 저희가 준비하고 있는 아이템 위주로 이야기가 많은 음식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죠. 그런데 역사와 전통만 있다고 해서 이야기가 많은 건 아니니까요. 지금과 같은 음식 문화가 왜 생겼는지, 왜 이런 방식으로 먹고 있는지, 일부 지역에서 특정 식당들이 많은 이유는 무엇인지, 그런 것도 다 음식 이야기잖아요. 그래서 역사와 문화를 깊이 있게 이야기할 만한 메뉴가 아니라고 해도 전할 수 있는 이야기는 다양한 것 같아요. 때로는 취재를 멈추거나 미루는 경우도 있기는 하죠. 어떤 이야기를 먼저 방송에 내보낼지 고민하고요. 저희가 동시에 진행하는 아이템이 6개 정도 되거든요. 두 개 정도는 자료 조사 중이고, 또 다른 두 개는 식당을 찾아가서 사전 취재를 하고, 그리고 방송 녹화를 하는 아이템이 두 개 정도 되는 거예요. 일주일에 한 편씩 제작하는 게 아니라, 한 아이템을 준비하는 데 거의 3주 이상이 걸려요. 많은 제작진들이 공을 들이고 있죠.

 

취재 과정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메뉴는 무엇이었나요?


‘이 맛 모르고 먹지 마오’라는 코너에서 소개된 내용들이 거의 다 그랬어요. 사람들이 놓치고 있거나 알게 되면 재미있을 만한 이야기들 위주로 담아냈거든요. 준비하는 과정에서 저도 ‘이 이야기 너무 재미있다, 이런 정보는 사람들이 알아야 돼’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두부 요리에 대한 내용 중에도 재미있는 것들이 많았는데요. 대부분 우리가 포장이 잘 되어 있는 두부를 선호하는데, 두부는 제조 과정이 정해져있어서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이야기들도 흥미로웠고, 전체적으로 보면 일괄적으로 이어지는 내용들이 있는 것 같아요. 이북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음식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것도 그 중 하나인데요. 상인 문화가 발달했던 개성에서 음식 문화도 같이 발달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쌈을 싸서 먹는 음식이나 비벼 먹는 음식들은 가난해서 생긴 거라는 이야기가 많은데, 꼭 그렇지만은 않은 음식도 많아요. 물론 양을 푸짐하게 늘리려고 쌈을 싸먹고, 편안하게 먹으려고 이것저것 넣어서 비벼먹는 문화가 생겼다고 하지만 그것 이상으로 고도의 마케팅 전략이 있었던 경우도 있고요. 새로운 기계가 생기면서 생긴 음식들도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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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냉면은 꼭 한 번 드셔보세요”


시청자들의 반응이 가장 뜨거웠던 메뉴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당연히 치킨이죠(웃음). 사실 치킨은 내용이 너무 많아서 『수요미식회』에는 복고 치킨 위주로 담은 거예요. 그리고 파스타도 반응이 아주 좋았어요. 특히 ‘수요미식회답다’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은 것 같은데요. 예전에는 파스타라고 하면 예뻐 보이는 그릇에 담긴 파스타를 보고 맛있다고 이야기하는 정도였잖아요. 그런데 저희는 조금 더 진지했어요. 사람들이 많이 먹어봤고 관심도 갖고 있지만 잘 모르는 음식이니까요. 그리고 평양냉면은 음식 고수나 미식가라고 할 만한 분들이 많은 관심을 가져 주셨어요. ‘평양냉면만큼은 본방을 놓치지 않으리라’ ‘수요미식회에서 드디어 평양냉면을 이야기하는 구나, 어떤 내용이 나오는지 보자’라고 생각하신 분들도 계셨고요. 워낙 마니아층이 많아서 저희도 준비하면서 고민을 많이 했던 음식이기도 한데요. 역시나 반응이 좋았어요.

 

짬뽕 편도 큰 화제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인터넷에서 ‘5대 맛집’으로 알려진 식당들이 정말 맛있는 곳인지 궁금해 하는 분들이 많았잖아요.


저희도 ‘짬뽕 5대 맛집’은 어떻게 선정된 건지 조사하다가 알게 됐는데요. 글을 올리신 분은 순수한 의도로 ‘제가 개인적으로 뽑아 본 전국 5대 짬뽕입니다’라고 적으셨어요. 그 식당들을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려고 하셨던 게 아니고요. 그 정도로 음식에 관심 있는 분들이 많이 계세요. 사실 TV 프로그램들이 그만큼을 충족을 못 시켜드렸던 것 같기도 해요. <수요미식회>를 만들면서 ‘우리가 너무 많은 내용을 담는 게 아닐까’라는 고민도 했었는데요. 음식에 관련된 직종을 갖고 계신 게 아닌데도 음식에 대해서 굉장히 많이 알고, 궁금해 하시고, 시간과 돈을 투자해서 맛집을 찾아다니시는 분들이 많은 걸 보고 고민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수요미식회』은 독자들에게 어떤 즐거움을 안겨주게 될까요?


대부분 우리는 음식에 대해서 다각적으로 탐구해 본 경험이 없잖아요.『수요미식회』의 서문을 쓰신 황교익 선생님께서 책을 보시고 하신 말씀이 ‘책이 쉽게 받아들이기 좋으면서도 음식의 이야기를 다각적으로 하고 있어서 젊은 친구들이 봐도 좋겠다’는 거였어요. 음식이란 이런 거라고 고리타분하게 이야기하면 ‘이렇게까지 알고 먹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잖아요. 그런데 『수요미식회』에는 전현무 씨처럼 초딩 입맛을 가진 사람들의 시각도 있고, 음식 전문가 분들의 이야기도 있고, 문화사적으로 풀어내는 음식에 대한 이야기도 있어서, 다각적인 시각이 모여 있다고 생각해요. 저는 자기 입맛을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이 미식가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자신의 취향을 정확히 알려면 다양한 경험이 필요해요. 그런 경험의 기회를 제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수요미식회』가 의미 있는 것 같아요.

 

PD 님이 추천하시는 ‘문 닫기 전에 꼭 가야 할 식당’은 어디일지 궁금합니다.


식당 하나를 꼽아볼 수는 없지만, 짜장면 편에 소개된 식당 중에서는 신승반점에 한 번 가보시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중식의 첫 식당이라고 하는 공화춘의 외손녀께서 운영하시는 식당이거든요. 공화춘의 후손이 만들어내는 맛은 어떨까 궁금하실 수 있으니까, 찾아가 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평양냉면 편에 소개된 모든 식당들은 꼭 가보셨으면 좋겠어요. 평양냉면이라는 음식을 한 번쯤 드셔보셨으면 좋겠거든요. 그런데 평양냉면은 한 번 먹어서는 맛을 모른다고들 하니까, 세 번 정도만 시도를 해보셨으면 좋겠어요. 음식도 자꾸 도전해 보고 시도해 봐야 스펙트럼이 넓어지잖아요. 평양냉면도 한 번 시도해 보시면 분명히 ‘아, 평양냉면 한 그릇 먹고 싶다’는 생각이 떠오르는 날이 하루 정도는 있을 거예요(웃음).

 

<수요미식회>를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적은 돈으로 손쉽게 행복해질 수 있는 게 음식이잖아요. 돈이 많아야만 행복을 누릴 수 있는것도 아니고 노력을 많이 해야 되는 것도 아니고요. 음식이라는 적은 노력으로 행복해지기 쉬운 방법 중에 하나인 것 같아요. 그것마저 아무렇게나 드시는 것보다는, 음식에 대해서 알게 되면 늘 먹어왔던 음식도 달라 보일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나를 대접하는 의미로 오늘의 한 끼도 소중하게 드셨으면 좋겠어요. 음식이라도 온전히 잘 먹어서 나를 잘 다독일 수 있는, 그런 계기가 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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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미식회tvN 수요미식회 제작팀 저 | 시드페이퍼(seed paper)
수요미식회는 단순히 요리를 하거나 음식을 먹는 과정을 1차원적으로 보여주는 걸 넘어, 철저히 ‘제대로 된 맛’에 집중하며 고차원적인 음식 토크를 선보인다. 홍보의 장으로 변질되어버린 기존 프로그램에서 봄 직한 억지 리액션을 지양하고, 맛을 전달하는 데 있어서 지금껏 누구도 시도하지 않은 방식을 사용한다. 음식을 앞에 놓지 않고도 음식이라는 하나의 주제에서 파생될 수 있는 모든 범주의 이야기를 깊이 있지만 무겁지 않게 다루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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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광수 “나는 얼마큼 솔직해질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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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수생각’ 박광수를 만났다. 오랜만에 그의 글을 읽고 든 생각은 ‘많이 화가 났었구나’하는 것이었다. 이에 “악에 받”쳐 보인다는 질문을 던졌더니 “악에 받친 것 없느냐?”고 되물었다. 그는 자신이 “악에 받쳐서 행복하고자 하는 것 같”다고 했다. 모두가 행복해지려 하지만 정작 자신이 언제 행복한지 모른다는 말과 함께 박광수는 자신이 언제 행복한지를 하나씩 읊었다. 행복에 대해 오래, 깊이 생각한 사람이 할 수 있는 말들이었다. 솔직함, 자기 고백, 행복에 대한 강박적 추구. 오랜만에 만난 박광수는 이 단어들로 요약할 수 있었다.


『살면서 쉬웠던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는 다정하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이야기와 재치 있는 언어로 킥킥대게 했던 ‘광수생각’과 꽤 다르다. 무엇보다 그는 솔직했고, 그 말이 편하게 들리지 않기도 한다. 가령 이런 글들.

 

‘이렇게 힘든 세상을 물려줘서 기성세대로서 미안하다’고 또 어떤 염병할 놈들은 짐짓 슬픈 눈으로 젊은이들에게 되지도 않는 위로를 건네곤 하지만, 짱구를 아무리 굴려 보아도 위로인지 놀리는 건지 당최 알 수가 없다. (중략)지금보다도 더 살기 어려운 그 어떤 시대에도 잘 살아 내던 사람들은 늘 존재했다. 아프다고, 힘들다고, 어렵다고 이제 그만 징징대기를 바란다. 진짜 치열했던 사람들은 아픈 것, 힘든 것, 어려운 것을 느낄 사이마저 없었다.(155쪽~157쪽)

 

그의 말에 공감하는 사람도, 반대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박광수는 “기조 자체가 솔직하자는 것”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악플에 관한 개인적인 경험, 그 밖에 삶에서 받은 많은 상처들을 통해 느낀 것들을 나름대로 소화시키고 솔직하게 글을 적었다. 그리고 삶은 지옥이지만, 가끔 행복을 주며 불행을 가득 느끼게 하곤 하지만 지지 않고 언제나 행복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삶의 대원칙은 ‘행복’이라는 것. “그때 하고 싶은 것들, 그때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들을 선택하고 살 거예요”라는 그의 마지막 말에서 그가 낭만주의자거나 현실주의자, 행복주의자 또는 그 모두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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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장르 중에 시가 제일 좋아


무척 자기 고백적인 글입니다. 이런 글을 쓰게 된 이유가 궁금해요.


다 그랬던 것 같아요. 일간지 만화 그릴 때는 분명히 전달하는 게 있었죠. 하지만 만화 옆에 붙었던 글들은 다 지금 같았어요. 다만 변한 것은 세월이겠죠. 나이 먹고, 몸도 약해지고, 그런 것들이 글에 조금 반영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오래된 글이 아닌 것 같은데, 책 준비는 얼마나 하셨어요?


1년 정도요. 계약한 건 5년 됐고요. 두 권을 계약했었는데요. 다 원래 계약한 그대로 되지 않았어요. 『앗싸라비아』라는 사진책을 낸 후, 시를 읽고 나서 제 느낌을 칸 만화로 그렸었어요. 그걸 모아서 시집을 내려고요. 인터넷에 연재를 했고요. 원고가 다 모아졌는데 책으로 엮으려고 하니 제 처음 생각과 너무 다르더라고요. 제 칸 만화가 시를 읽는 느낌을 너무 방해하는 것 같아서 제가 하지 말자고 했어요. 사실 시를 출판사에 제가 제안한 것이거든요. 고민하던 차에 저와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오던 걷는나무 출판사 대표님과 의견이 맞아서 그곳과 『문득 사람이 그리운 날엔 시를 읽는다』를 낸 거죠. 대신 이 책의 원고를 출판사에 보여드렸죠. 좋다고 하셔서 이 책이 나오게 된 거예요.

 

시를 좋아하시나 봐요.


시가 참 좋잖아요. 문학 장르 중에 시가 제일 좋은 것 같아요.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할 수 있고요. 어렸을 때 소설을 많이 읽었고요, 요즘은 작업량이 계속 있으니까 소설을 읽을 만한 시간이 별로 없어요. 에세이나 시처럼 그때그때 끊어 읽어도 단절되는 느낌이 없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시, 신문, 잡지, 에세이, 사실 활자가 들어가 있는 것들은 가리지 않고 보는 편이에요.

 

시를 읽는 것이 작업하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되나요? 그냥 작업과 별개의 취미인가요?


저희는 시 세대예요. 어렸을 때는 문방구에서 연습장에 「목마와 숙녀」가 적혀있는 것도 팔았고요. 지금보다 훨씬 더 시를 많이 접할 수 있었죠. 시화와 시가 적혀있는 연습장이 있었어요. 그런 연습장을 사서 썼고, 그게 거의 처음 시를 접한 느낌이에요. 시를 읽으면 일단 감성이 충전돼서 좋죠. 어떤 시들은 어떻게 이런 사물에서 이런 생각, 이런 상황에서 이런 생각들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죠. 발상에 도움이 돼요. 김영승 시인의 시에서 특히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아요. 「취객의 꿈」 같은 시는 참 좋죠.

 

평소에 작업량이 얼마나 되는지 궁금해요. 이번 책도 써놓은 원고를 출판사에 보여줬다고 했는데요.


메모를 좀 해놔요. 그리고 출판사 미팅할 때마다 계속 ‘이런 책 어때요?’하고 물어봐요. 책 만드는 걸 좀 즐거워하는 것 같아요. 재미있고요. 초반의 제 책들은 정말로 다 모아서 불태워버리고 싶거든요. 지금도 글을 잘 쓰진 않지만 글을 너무 못 쓰고, 책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잘 몰랐었어요. 만들면서 조금씩 책 만드는 방법, 글의 함량, 그림의 함량, 이런 것들이 조금씩 높아가는 게 스스로가 좀 즐거워요. 다음 책은 또 뭘 하면 좋을까 생각하고요.

 

다음 책 구상도 있군요?


‘엄마의 물건’ 이런 걸 생각하고 있어요. 책에도 나왔지만 어머니가 아프시거든요. 돌아가시기 전에 엄마의 자질구레한 물건을 다 모아 그것에 관한 에피소드와 추억을 사진과 글로 어우러지게 했으면 좋겠다 생각하고 있어요. 아직 출판사가 정해진 곳도 없고 그냥 계속 생각하고 있는 거예요.

 

포기를 모르고 말썽부리는 나를,
어머니도 포기를 모르고 안아 주셨다.
안아 주실 때마다 마치 주술처럼 “괜찮다, 괜찮다.”라고 말씀하셨다.
어머니는 시커멓게 탄 가슴으로 나를 안아 주며 내 인생에 주름으로 남을 일들을 하나씩 정성스럽게 모두 펴 주셨다.
병원에 누워 계시는 어머니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면 미로처럼 주름이 이리저리 엉켜 있다. 그 주름을 보고 있노라면 내 인생의 주름으로 남을 만한 일들을 어머니가 펴 주시며 다 가져가신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2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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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하자


이번 책을 쓰면서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네요.


첫 번째는 일단 ‘솔직 하자’였던 것 같고요. 매번 책을 낼 때마다 비슷한 생각을 해요. 솔직하고자 하는데요. 거기에 대한 스스로의 의문점은 ‘나는 얼마큼 솔직해질 수 있지?’라는 생각이에요. 무엇보다 이런 건 되게 싫었어요. 요즘 청춘 위로하는 말들이 많잖아요. 그건 약간 어른들의 위선이나 위악이라고 생각해요. 진짜 그들을 위해 무슨 생각을 하긴 하나 싶어요. 저는 미안하단 생각해본 적 없거든요. 나도 살기 힘든데 그들에게 미안해야 할 이유도 별로 못 찾겠고요. 물론 사회적 구조 자체가 이상하게 돼서 취업하기 어렵게 됐다고 하지만요. 늘 그래왔어요. 경중의 문제죠. 지금 청년들만 처한 현실이라고 위로 같은 건 정말 하기 싫었어요. 늘 힘들어, 그러니까 잘 버텨, 이 얘기를 꼭 해주고 싶었어요.

 

말씀처럼 청춘에게 한 말들이 무척 날카로워요. 책에서도 그만 징징대라고 매몰차게 말하는데요. 여기서 하고 싶었던 말은 뭔가요?


이런 얘기는 전에도 계속 쓰긴 했는데요. 스펙을 쌓았는데도 취업이 안 된다는 얘기를 많이 하잖아요. 사실은 디자인계도 그렇지만 어느 분야나 좋은 인재를 찾기가 어렵거든요. 사람이 없어서 못 뽑아요. 정말 하고 싶은 일에 대해 타당한 스펙을 쌓는지 봐야 해요. 단지 자격증 따는 것만을 위한 거라면 당연히 취업하는 데 문제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조금 더 깊숙이 들어가서 이게 얼마나 필요한지 알고 나서 해야 하는데 그냥 자격증 몇 개라는 건 사실 필드에 가면 하나도 중요하지 않거든요. 심지어 디자인 대학 같은 곳은 굉장히 전문적인 걸 공부하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졸업하고 나오면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해요. 실전에서는 하나도 쓸 게 없어요. 대학 커리큘럼이 문제일 수도 있겠지만요. 특히 디자인 쪽에서는 잘 되는 친구들 중 대학 졸업장 없는 친구들도 많아요. 분야의 특수성이 있긴 하겠지만 오르고 싶은 산은 이쪽 산인데 다른 쪽에서 땅 파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많이 해요. 멘토란 말도 싫어하는데요. 누군가 주변에 좋은 형들이 그 산이 아니고 이 산이라고 알려주면 좋을 텐데 그런 사람이 없이 그냥 위로만 한다는 거죠. 미안하다고요. 그런 것보다는 정확한 길을 알려주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계속 어깨 두드려주는 것은 계속 그 자리에 있게 만들어요. 누군가가 날 위로해주고 있으니까 여기에서 조금 더 슬퍼해도 괜찮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건 낙오자를 양산해낼 뿐이라고 생각해요. 늙은이들이 제일 부러운 게 청춘인데 뭐가 불쌍하다고 위로를 하겠어요. 억만금을 주더라도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가고 싶죠.

 

청춘으로 돌아가고 싶으세요?


가끔 그런 생각해요. 제 몸을 다 해체해서 뼈도 깨끗이 씻고, 연골도 새로 교체해서 다시 조립해줬으면 하고요. 노환이 온 건 한참 됐고, 요조 노래처럼 정말 ‘에구구’가 주술처럼 그걸 해야 아침에 일어날 수 있어요. 옛날엔 벌떡벌떡 일어났었는데 말이에요. 술도 어린 친구들에게도 절대 안 졌는데 지금은 백전백패예요. 싸우려고 하면 무조건 지니까요.

 

하지만 작가에게는 ‘박광수’라는 명함이 있잖아요. 명함 한 장 없어서 괴로운 게 청춘들이니까요. 적어도 벌어먹고 살 수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는 말들인데 그만 징징대라고 하는 게 독하게 들리기는 해요.


벌어먹고 살만한 일들은 엄청 많아요. 중소기업 같은 곳은 사람 엄청 찾아요. 화이트칼라 직종만 원하니까 그렇죠. 대학 시스템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들어가기는 쉽고, 졸업은 어려운, 취업이 위한 대학이 아니라 학문을 위한 대학이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말 취업을 위한 곳은 전문학교 같은 것들이 더 활성화 되면 되죠. 지금은 대학교들에서 광고하는 게 전부 취업률이잖아요.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고졸, 대졸이라는 구분이 희미해져서 대학은 누구나 갈 수 있지만 그건 공부하려고 하는 사람이 가는 곳이라는 공감대가 생겨야겠죠. 꼭 대기업이 아니어도 되잖아요. 그런 곳 아니면 갈 곳은 많이 있어요.


이런 것들은 사실 어른들이 잘못 만들어놓은 사회 구조긴 하지만요. 그래도 청년들에게 그렇게 미안해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우리 세대도 그랬고, 아버지, 할아버지 세대는 더 힘들었거든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너무 못됐나요?(웃음)

 

작가의 청춘 시절은 어땠는지 궁금해지는데요.


저는 한 번도 취업해본 적이 없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저는 저에 대해 항상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나는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당시 사회적인 부분으로는 나는 직장인에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만화하기 전에 제가 디자인 하는 것을 보고 한 출판사 사장님이 작은 오피스텔을 무상으로 대여해 주셨어요. 거기서 몇 년 지내다가 일이 많아져서 옮기고, 옮기고 하다가 만화하기 직전에는 직원 세 명 두고 디자인 회사를 했었거든요. 그건 큰 재능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는 오랜 시간 노력해왔다고 생각해요. 저만큼 노력하면 저만큼은 된다고 생각해요. 스페셜리스트도 있긴 해요. 하지만 시간과 노력을 이길 순 없어요.


대학 때는 3~4일 밤새고, 나머지 하루 이틀은 밤새며 술 마시고, 토론하고 그랬었어요. 밤새 술 마시고 ‘우리는 뭐가 될까’ 토론하는 것도 치열한 청춘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대부분 성공한 사람들은 거짓말을 하는데요. 성공을 부풀리죠. 실패한 사람들만이 실패한 것에 대해 통렬한 자기반성을 하면서 이야기를 해줘요. 그런 데서 훨씬 배울 게 많아요. 저는 실패를 많이 했던 사람이어서, 아직도 성공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내 삶의 성공, 행복하려고 하는 사람이고 비교적 다른 사람보다 행복한 것 같다는 면에서는 성공한 것 같은데요. 강연회를 한다든지, 사람들을 모아놓고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에요.

 

어떤 직장에 들어갈지 생각하는 것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어떻게 사는 걸 원하는지 들여다보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의미군요.


그렇죠. 그게 가장 중요해요. 늘 하는 얘기인데요.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 하고 싶어 하지만 정작 내가 언제 행복한지 몰라요. 기성품인 행복, 그런 것들을 행복이라 믿고 사는 거죠. 행복의 빛깔은 엄청 다양하거든요. 한국 국민이 5천만이라면 행복의 빛깔은 5천만 가지 정도 될 거예요. 그게 지금은 열 개도 안 된다는 생각을 해요. 5천만 가지의 행복이 모여 있을 때 예쁜 사회가 되고,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가 될 거예요. 행복의 너무 스펙트럼이 좁기 때문에 좁은 행복을 서로 차지하려다 경쟁도 심해지고, 누구 하나도 행복하지 않은 거죠.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도 뺏길까봐 두려워서 행복하지 못하고 스트레스 받고요. 뺏고자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죠.


행복이라는 것을 찬찬히 적어보면 그렇게 거대한 것에 행복은 없어요. 저는 행복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엄마 다리 베고 누워 잠들다가 엄마가 슬쩍 다리를 빼고 베개 놓아주시고, 다 큰 아들을 깨워서 밥 먹으라고 하실 때예요. 그게 제일 행복해요. 만화가게에 가서 신간 만화책을 보며 주인아저씨에게 라면 끓여달라고 해서 먹을 때 엄청 행복하고요. 페라리를 산다, 행복하겠죠. 한 달 정도 행복하려나요? 실행해보지 않았던 행복들은 대부분 행복하지 않아요. 내가 더 가졌어, 라는 행복은 그렇게 오래 가는 행복들이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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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행복이란 말 싫어해


또 작가가 행복할 때는 언제인가요?


아이를 꼭 안아줄 때도 행복해요. 이혼을 해서 아이가 엄마랑 사는데요. 아이를 만날 때마다 늘 얘기해요. 아빠는 오직 행복하기 위해서 사는 사람이고, 지금 행복하다고요. 너도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말하죠. 또 착각하면 안 된다고 얘기해요. ‘우리’의 행복은 없다고요. 너의 행복, 나의 행복이 있을 뿐이라고요. 비록 따로 살아도 행복한 아빠, 행복한 아이, 행복한 엄마가 있는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라고 얘기해요. 저는 ‘우리’의 행복이란 걸 되게 싫어해요. 그 말은 ‘그러기 위해 너의 행복을 좀 포기해라’라는 뜻이거든요. 개인의 행복이 가장 중요해요. 물론 그게 범법이 되어서는 안 되겠죠.


아이가 어느 장소에서 어떻게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 진실이라면 내가 그 아이가 뭐가 되고 싶은지는 별로 중요한 일도 아니고, 그렇게 될 수도 없어요. 아이가 뭐가 되길 바라면서 잘 안 되니까 부모들은 아이 때문에 행복하지 않다고 하는데요. 내가 사랑하기 때문에 아이가 행복하길 바라는 것이라면 그 아이가 어떨 때 행복한지도 부모는 알고 있어야 해요. 그걸 맞춰줘야죠.

 

보통의 부모들은 자식이 행복하리라는 믿음 안에서 뭐가 되라고 강요를 하는 거잖아요.


학습된 거예요. 더 앞선 세대는 대부분 공부를 할 수 없는 환경이었고, 억척스럽게 일하고 부지런해야 한다고 얘기했었죠. 우리 아버지 세대들은 공부 잘하면, 소위 일류대 나오고, 상사맨이 돼야 행복하다고 눈으로 봐왔어요. 시대가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생각은 조금밖에 안 바뀐 거고요. 자기가 살면서 보아온 풍경들을 자식들에게 다시 주입하는 거예요. 시대가 바뀌는 것들을 열심히 잡아내려 하지 않는 어른들이라면 그럴 수밖에 없겠죠. 그게 잘못됐다고 얘기할 순 없어요. 그래야 자식이 행복하다고 믿는 거니까요. 행위 자체를 나쁘게 얘기할 수 없긴 한데 인식 개선을 해줄 수 있는 좋은 사람들이 많이 필요하단 생각이에요.

 

제목도 그렇지만, 어머니 이야기도 있고, 어떤 상처 같은 것이 느껴졌어요. 솔직히 말하자면, 저 밑에는 악에 받친 목소리도 깔려 있는 것 같았거든요.


악에 받친 거 없나요? 저는 악에 받쳐서 행복하고자 하는 것 같아요. 어려서 공부를 못하고, 안 했어요. 지금도 그렇지만 선생님들은 학생을 이분법으로 판단했어요. 공부 잘하는 애는 착한 애, 공부 못하는 애는 못된 애, 이렇게요. 저는 못된 애로 구분 됐죠. 그림만큼은 어려서부터 늘 전교 1등이었어요. 그럼 선생님이 저를 ‘광수는 그림 잘 그리는 애’로 분류해야 하는데 그냥 못된 애로 구분을 하는 거예요. 그런 것들이 어려서부터 너무 싫었던 것 같아요. 선생님들이 집에 찾아와서 돈을 받아가는 모습도 봤고요. 그런 부조리들이 싫었어요.


성인이 돼서는 금전적으로, 세상으로부터 얻은 허명 같은 것으로는 성공했다고 볼 수 있겠지만 부침이 되게 심했죠. 디자인을 하다가 만화로 직업을 바꾸고, 작은 성공 때문에 도취돼서 정신 잃고, 이혼 했다가, 사업도 망했다가 그랬어요. 많지도 적지도 않은 나이인데 다른 사람에 비해 풍파가 두세 배는 많았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행복을 엄청 믿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삶에 대해서는 관조적인 면을 갖게 됐고요. 복합적인 면이 있는 것 같아요.

 

‘버티기’를 여러 번 말하기도 하거든요. 삶은 누구에게나 힘든 것이다, 라는 인식이 도움이 될까요? 방해가 될까요?


저한테는 도움이 돼요. 후배들에게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천당과 지옥이 있을까 하는 질문이었는데요. 저는 둘 다 있다고 했어요. 죽으면 모두 천당에 가는데 못 되게 산 사람은 다시 환생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우리가 사는 곳이 지옥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내가 뭔가 잘못해서 이 지옥에 왔다면 이 삶을 즐겁게 살다 가는 게 나를 여기 보낸 누군가에게 지지 않는 거라고 생각해요. 삶은 대체로 힘들지만 잠깐 행복을 줬다 뺐잖아요. 그래야 온전히 불행해지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이곳은 지옥인데, 여기서 절대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행복하게 살 거예요.

 

말씀드렸지만 개인적인 고백들이 많이 있거든요. 사소하게는 통풍이나 어린 시절 가졌던 도벽에서부터 이혼이나 어머니의 병환 이야기까지, 이런 내밀한 이야기를 하는 데 부담은 없나요? 워낙 사적인 이야기니까요.


기조 자체가 솔직하게 살자는 거니까요. 감춰진다고 감춰지나요. 인터넷에 떠도는 이야기는 맞는 것도 있지만 틀린 것도 굉장히 많아요. 지금은 연락 닿지 않지만 최근 만화가 강풀이 악플러 고소한다고 하는데, 연락이 된다면 고소하지 말라고 하고 싶어요.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 과정에서 또 상처 입을 거예요. 악플에 초월할 수 있는 사람은 없죠. 저도 엄청 괴로웠는데요. 그 괴로움은 대부분 저 때문에 상처 입는 가족들을 보는 괴로움이거든요. 하지만 고소한다고 달라지는 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저는 아버지나 아이에게도 더러는 거짓말도 있고 잘못된 것도 있지만 제가 해놓은 것들 중 일부니까 너무 개의치 말고, 상처 받지 말고 살라고 했어요. 아이의 경우 아빠의 이혼, 아빠에 관한 이상한 소문들로 주변의 괴롭힘을 받았을 때는 굉장히 곤욕스러웠어요. 나의 잘못으로 인해 상처를 준 것은 평생을 통해 갚겠다고 얘기하는데요. 고소한다고 아이의 상처가 없어지는 것 같진 않아요. 그냥 두려고 늘 생각하고 있어요. 그것의 단초는 늘 제가 제공했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가해자, 피해자로 구분한다면 최초의 가해자는 저였을 테니까요. 이혼하면서 누군가에게 상처를 줬고요.

 

그냥 두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나요.


나이가 들수록 그냥 두는 것, 참 좋다고 생각해요. 애써서 뭘 한다는 것, 잘 되는 걸 본 적이 없어요. 시간이 해결해주는 일도 드물지만 안 되는 일은 안 되고, 제자리를 잡는 것들은 자리를 잡기 때문에 말이죠. 애써서 되는 건 그렇게 못 봤어요. 일도, 사람도, 사랑도, 세상도, 그래요.

 

 

질문 하나가 인생을 5년 동안 소용돌이치게 해

 

세상 나이로 마흔 살이 막 넘었을 무렵 꽤나 할 일이 없던 나는 친구와 술집에서 꽤 오랜 시간 동안 별 생각 없이 술을 마시고 앉아 있었다. (중략)취한 친구가 갑자기 용수철처럼 튕기며 자신의 상체를 곧추 세우면서 내게 질문했다.
“이야~광수야아~너 이 다음에 크면 뭐가 되고 싶냐?”
뜬금없는 질문이었지만 나는 모든 동작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거의 10살 이후에는 들어보지 못한 신선한 질문이었다.(101쪽)

 

친구가 술 취해서 한 질문 ‘넌 커서 뭐가 되고 싶냐?’ 에 답을 좀 찾으셨는지 궁금해요.


그것 때문에 책도 안 내고 5년 동안 다른 일을 한 적 있어요. 아무 일도 안 하고 5년을 영화 해보려고 했었어요. 원래 3년 간 해보자고 했었는데, 2년을 더 끌다가 돌아왔죠. 다시 돈을 벌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지금 바닥으로 돌아왔어요. 완전히 포기한 건 아니고요. 사람들이 그때 만든 이야기가 좋지만 너무 어두워서 흥행은 안 될 것 같다고 얘기해서요. 기회가 된다면 좀 더 공력이 있을 때 소설로 발표해보고 싶어요. 완전히 포기한 것도, 하고 있는 것도 아닌 그런 상태예요. 그 친구의 질문 때문에 5년 동안 그 바닥에서 굴렀어요. 허비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덕분에 좋은 사람도 많이 알게 됐고요. 나쁜 사람도 알게 되면서 이런 사람은 피해야겠다는 것도 알게 됐죠. 질문 하나가 제 인생을 5년 동안 소용돌이치게 했어요.

 

큰 용기였던 것 같아요. 걸어오던 길을 벗어나려면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을 텐데요.


모르는 곳에서 뭔가를 한다는 건 여행하는 것 같아요. 여행의 가장 중요한 점은 별로 뛰지 않는 평상의 삶에서 내 가슴을 뛰게 한다는 거예요. 이 골목을 돌면 뭐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면 거기에서 어떤 생각 같은 게 있을 수 없거든요. 모르는 게 여행이고, 새로운 걸 배우는 것 같아요. 전혀 모르는 길이니까 모르는 걸 부끄러워하는 것 자체가 웃긴 일이죠. 여행에 늦은 게 있나요? 노년에도 여행은 좋잖아요. 저는 여행이 제일 좋더라고요.

 

‘무규칙 이종 격투 문화가’로서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것들이 궁금합니다.


무계획이 계획이에요. 그때 하고 싶은 것들, 그때 행복하다고 느끼는 것들을 선택하고 살 거예요. 삶에 있어 여러 선택들이 있다면 가장 기본 원칙은 행복이에요. 그게 될 것 같아요. 돈이 주는 것의 최대 장점은 내가 갖고 싶은 걸 갖게 해주는 게 아니라 내가 하기 싫은 것을 안 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라고 쓴 적이 있거든요. 그런 것 같아요. 적당히 돈 벌면서 하기 싫은 일은 쳐내고 하고 싶은 일, 행복한 일만 하면서 살 거예요. 그런 내 삶을 바라보는 제 자식들도 오직 행복을 위해 살았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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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쉬웠던 날은 단 하루도 없었다박광수 저 | 예담
우리 이웃이 느끼는 서러움, 삶의 버거움, 가족에 대한 사랑, 희망들이 고스란히 담긴 그림과 글을 통해 함께 하는 이들의 소중함과 이 세상이 살 만한 곳임을 일깨워 주며 때로는 따스함으로, 때로는 발칙한 상상력으로 수백만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박광수 작가가 이번에는 ‘세상을 경험해 보니 이제 조금은 알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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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자가 강력 추천하는 ‘당일치기 총알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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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여유로운 여행의 함정에 빠질 때가 있다. 여행지에서 최대한 많은 시간을 보내겠다며 있는 시간 없는 시간 다 끌어 모았더니, 떠나기 전부터 준비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고, 돌아온 후에는 지독한 여독에 시달려야 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런 여행의 가장 큰 맹점은 ‘너무 떠나고 싶은데 시간이 없어’와 같은, 핑계 아닌 핑계를 대면서 떠남을 미루게 된다는 것이다. 『당일치기 총알여행』은 바로 그 함정에 빠진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태어났다. ‘여행을 꼭 길게 떠나야 할 이유가 있나?’라는 도발적인 질문을 품어보게 만든다.

 

2박 3일? 3박 4일? 다녀보면 안다. 여행지의 감동, 딱 순간이다. 하루하루 숙박이 늘어날수록 피곤도 따라 늘어난다. 당일치기, 길어야 1박이 살길이다. 인생, 짧다. “에이, 2박 3일은 돼야지” 하고 놀다간 당신의 황금 같은 주말과 휴가, 순식간에 다 없어진다. 여행, 지금부턴 이기적으로 다니시라. 짧고 굵게. 그리고 얍실하게. (『당일치기 총알여행』 5쪽)

 

제목 그대로 『당일치기 총알여행』은 하루 또는 1박 2일로 후다닥 다녀올 수 있는 여행 코스를 소개한다. <매일경제>의 여행 레저 전문 기자인 신익수 저자가 그동안 쌓아온 데이터베이스를 탈탈 털었다. 서울 시내부터 대마도에 이르기까지, 휴게소 별미부터 무안의 기절 낙지까지, 놓칠 수 없는 맛과 멋을 계절별로 나누어 정리해놓았다.

 

세빛섬과 낙산 성곽의 야경은 평일 저녁 데이트 코스로도 손색이 없고, 온돌 마루와 족욕 카페가 딸린 서해금빛열차를 이용하면 연로하신 부모님의 여행길도 한결 가뿐해진다. 평범함을 거부하는 이색 여행 마니아를 위한 코스도 눈에 띈다. 단풍구경은 어르신들의 스테디셀러라는 편견을 버려라. 정선에서는 해발 819미터 높이에 있는 짚와이어를 타고 시속 100킬로미터로 내려오면서 화려하게 물든 가을 산을 감상할 수 있다. 해돋이를 보기 위해 꽉 막힌 도로와 높은 숙박비를 감당하면서 동해로 달려갈 필요도 없다. 안양, 파주, 양평, 인천 등 지하철만 타면 닿을 수 있는 명당들이 즐비하다.

 

상사 눈치 보느라 긴 여행은 꿈도 못 꾸는 당신,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주말을 통째로 반납하고 힘든 월요일을 맞아야 하는 당신, 힐링과 추억을 찾아 떠나는 시간이 필요한 당신에게도『당일치기 총알여행』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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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만원으로 떠나는 해외여행


당일치기 여행을 추천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요즘에는 자기를 희생해서 가는 이타적인 여행이 대부분인 것 같아요. 아이도 생기면 더욱 그렇고요. 자기를 찾아가는 여행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짧고 굵게 다녀오고, 다녀온 후에 내 시간을 갖자는 주의예요. 여행 후에 기억에 남는 건 어차피 핫스팟이니까, 그런 곳만 점으로 찍어서 다녀오자는 거죠. 남는 시간은 나에게 할애하고요. 이렇게 여행을 떠나면 아이들에게도 감동은 똑같이 주면서 부모도 자기 시간을 가질 수 있잖아요. 『당일치기 총알여행』은 얍실한 사람들을 위해서, 이기적으로 여행을 떠날 준비가 된 사람들을 위해서 쓴 거예요.

 

혼자 떠나는 여행이라 할지라도 핫스팟만 골라서 둘러보는 게 효율적이라고 생각하세요?


당연하죠.『당일치기 총알여행』에도 혼자서 갈 수 있는 여행지가 많이 나오는데요. 대마도나 남이섬처럼 혼자 짧고 굵게 다녀오더라도 감동은 오래 이어질 수 있는 곳들 위주로 소개했어요. 그리고 힐링 포인트로 소개한 템플 스테이도 대부분 혼자 떠나시잖아요. 양주의 육지장사에서는 ‘단식형 템플스테이’를 경험해보실 수 있고, 서산의 서광사에서는 바둑을 두면서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시간을 가지실 수 있어요.

 

대마도 여행 코스는 완벽에 가까워 보이는데요(웃음). 저렴한 비용으로 해외여행을 떠날 수 있는데다가, 면세 쇼핑도 할 수 있고, 일본 100대 해변에 선정된 해수욕장과 해수탕을 찾아갈 수도 있잖아요. 나가사키 짬뽕까지 맛보고요. 


대마도 여행은 고속선을 타고 가는 거기 때문에 수속 절차가 좀 까다롭기는 해요. 히타카쓰항에 도착해서 한 시간 정도 수속을 밟아야 하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나야 할 이유는 충분하죠. 면세 쇼핑에서 가방 하나만 잘 사도 본전은 건지잖아요(웃음). 왕복 5만~6만 원이면 다녀오거든요. 그리고 최근에는 업그레이드 버전도 나왔어요. 당일치기로 떠나려면 서울 사람들은 부산까지 미리 가서 대마도로 출발해야 했는데, 새롭게 생긴 2박 3일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그 시간을 더 알차게 보낼 수 있어요. 서울에서 비행기로 출발해서 남해 지역을 둘러본 다음 대마도로 떠나는 거거든요. 그리고 대마도 내에도 시티투어 버스가 등장했어요. 미리 예약만 하면 6만 원 정도만 내고 대마도 안에 있는 핫스팟들을 둘러볼 수 있어요. 한국 전망대, 최익현 순국비, 덕혜옹주 결혼기념비 등 한국과 얽힌 명소들에 다 데려다 줘요.

 

대마도 당일치기 여행을 ‘스테디셀러’라고 말씀하신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대마도까지 고속선을 타고 가는 코스가 생긴 지 5년이 넘었는데요. 항상 200명 정원이 꽉 차요. 여행에서 우리가 원하는 건 재미있는 지역만 둘러보고 쇼핑하고 현지 음식 맛보는 거잖아요. 대마도에서는 그 모든 걸 경험해볼 수 있어요. 시티투어 버스로 명소 둘러보고, 부산 국제공항이랑 배에서 쇼핑하고, 그리고 대마도가 나가사키 현이니까 나가사키 짬뽕 맛보고요. 일본 투어의 기분을 그대로 내면서 실속도 차리는 거죠. 요즘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대마도를 찾는 분들도 많다고 해요. 춘천이나 자라섬처럼 캠핑장도 마련되어 있어서, 여행사에 문의하면 텐트 치고 캠핑할 수 있도록 해주기도 하거든요. 당일치기 여행으로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생각되신다면 하루 주무시고 오셔도 좋을 거예요.

 

굳이 멀리 떠나지 않고도 여행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기도 하셨어요.


책을 쓰면서 계속 생각했던 게 테마였어요. 짧고 굵게 다녀오지만 기억에 오래 남으려면 뭔가 하나의 테마가 필요하거든요. 야경 투어나 문탠(moontan) 투어를 소개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에요. 문탠은 아경을 색다르게 표현한 거라고 할 수 있는데, 태양을 즐기는 선탠 말고 달빛을 즐기는 문탠도 좋을 수 있다는 거죠. 부산에는 아예 문탠로드가 있어요. 문탠로드라는 명칭을 상표 등록까지 해놨고요. 지하철역도 만들어놨어요. 서울 시내에서는 세빛섬도 감춰진 여행지인데, 대부분 한강을 스쳐 지나가면서 세빛섬을 볼 뿐이지 잘 알지는 못하잖아요. 책 속에서 분수 투어로 소개하기도 했지만, 세빛섬 옆에 반포대교 분수가 굉장히 유명해요. ‘전 세계 엽기적 분수 10선’에도 소개됐고, 20여 미터에서 190톤의 물이 쏟아지니까 길이로 따지면 기네스북에 오를 정도죠. 그리고 프로포즈 명소이기도 해요. 미리 신청만 하면 분위기 있게 분수가 떨어질 때에 맞춰서 프로포즈할 수도 있어요. 게다가 공짜예요.

 

서울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한 가지가 시티투어 버스가 아닐까 싶습니다.


시티투어 버스는 외국인들만 타는 걸로 아시지만, 사실 그 버스가 서울 내의 여행 포인트를 다 데려다줘요. 탑승료가 만 원 밖에 안 하는데, 하루 종일 다른 시티투어 버스로 계속 환승할 수도 있고요. 그러니까 시티투어 버스를 이용하면 당일치기로 서울을 다 둘러볼 수 있는 거죠. 당일치기 여행에서 제일 중요한 게 동선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 점에서 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다양한 고리로 연결된 곳들을 보실 수 있어요.

 


세빛섬의 야경 명당은 여기!


‘서울의 문탠 명소’로 소개하신 낙산을 여행하려면 어떤 코스가 좋을까요?


낙산으로 올라가는 꼬불꼬불한 길이 국수 자락을 닮았잖아요. 그래서 국수 골목이라고 하는데, 거기에 유명한 국수집 대여섯 개가 다 모여 있어요. 혜화역 뒤쪽으로 올라가는 길을 따라가시면서 국수도 먹으실 수 있고요. 낙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북쪽 라인을 보시면 왼쪽으로 옛날의 성곽들이 그대로 남아있어요. 거기에서 보는 야경이 정말 멋져요. 그리고 오른 쪽으로는 판자촌이 있는데, 성곽과 비슷한 높이의 판잣집들이 모여 있어요. 그러니까 당일치기로 낙산에 가신다면 국수도 먹고 야경도 보고 내려오는 길에 옛날 분위기도 내실 수 있는 거죠. 또 다른 포인트는 그 옆에 있는 이화마을이에요. 예전에 이승기 씨가 천사 날개 벽화 앞에서 찍은 사진으로 유명해진 마을인데요. 워낙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최근에는 다른 곳에 옮겨 그려 놓았지만, 다양한 벽화들이 있으니까 같이 즐기셔도 좋겠죠.

 

세빛섬의 야경 포인트는 어디인가요?


잠수교에서 바로 이어지는 주차장에 도착하셔서 앞쪽으로 가세요. 그곳에 주차를 하신 다음에 왼쪽으로 보시면 가빛섬이 있는데요. 거기가 가장 좋아요. 세빛섬이 재미있는 게, 밤에는 색깔이 변하거든요. 그것도 보시면 좋을 것 같고요. 반포대교 위에서 달빛무지개분수가 떨어질 때를 맞춰서 가시면 차안에서도 오붓하게 데이트를 즐기실 수도 있어요. 그리고 세빛섬에 굉장히 유명한 파스타 집이 있거든요. 요즘 워낙 인기가 많아서 주말에 가실 때는 미리 예약하셔야 돼요. 당일치기로 세빛섬을 가실 때도 동선이 중요한데요. 지하철을 타고 역에 내리시면 서울시에서 빌려주는 자전거가 있어요. 대여료가 한 시간에 천 원인데요. 자전거를 타고 세빛섬에 가서 구경도 하시고 자전거 반납한 뒤에 지하철타고 집에 가시면 딱 알맞은 코스일 거예요.

 

‘지하철 타고 찾아가는 해돋이 명당’은 정말 알짜 정보입니다. 안양 파주 인천처럼 가까운 곳에서도 해돋이를 볼 수 있다고는 생각해보지 못했거든요.


공항철도가 평소에는 인천국제공항역까지만 가잖아요. 그런데 주말에는 한 칸을 더 가요. 바로 용유 임시역인데요. 거기에서 내리시리면 당일치기 코스가 되는 거예요. 역 앞에서 길만 건너면 거잠포라는 바다를 보실 수 있고요. 실미도랑 무의도도 20분 거리 안에 있어요. 대부분 서해에서는 해가 지는 걸로만 생각하시는데, 거잠포는 해가 뜨고 지는 멀티 명소 중에 하나예요. 그리고 인천에 있는 오션 스코프(ocean-scope)도 일출과 일몰 명당이에요. 컨테이너 박스 다섯 개로 전망대를 만들어놨는데요. 송도의 센트럴파크 역에 내려서 조금만 걸으시면 돼요. 인천에 가신 김에 차이나타운에서 식사까지 하고 오시면 당일치기 코스가 완성되겠죠.

 

‘이색 도서관 투어’에서 소개해주신 도서관에서의 하룻밤은 정말 매력적인 여행이 될 것 같습니다.


도서관도 재미있는 곳이 많은데요. 서울에서 가볼 수 있는 곳은 낙성대 공원의 컨테이너 박스 도서관이 있고요. 오산 꿈두레도서관은 당일치기로 가셔도 되고 캠핑을 하실 수도 있어요. 도서관 뒤편에 원형 통으로 만들어 놓은 숙소가 있거든요. 미리 신청만 하면 무료로 이용할 수 있어요. 도서관 안에서도 재미있는 이벤트를 하는데, 금요일과 토요일에 도서관 바닥에 텐트 서른 동을 마련해줘요. 엄마랑 1박 2일, 아빠랑 1박 2일, 친구랑 1박 2일을 보낼 수 있게 해주는데요. 자는 동안에는 도서관을 다 오픈해줘요.<박물관은 살아 있다>처럼 ‘도서관은 살아 있다’를 경험해 보라는 거죠. 그리고 나주에 가면 박물관에서도 1박 2일 동안 머무를 수 있어요. 캠핑장에 캐러반이 다섯 동 있고 텐트를 칠 수 있는 나무 데크도 설치해 놨어요. 이 프로그램도 미리 신청하면 공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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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자에게 필요한 건 ‘뒤통수치기’


『당일치기 총알여행』에서 소개하신 가을 여행지 중에 가장 강추하시는 코스가 있나요?


애국심도 키우고 특별한 단풍놀이를 하고 싶으신 분들은 정선 병방치에 가시면 좋을 것 같아요. 전망대까지 올라가시면 두 가지 체험을 해보실 수 있는데요. 하나는 짚와이어를 타고 내려오는 거예요. 전 세계 최고의 표고차(높낮이 차이)를 자랑하고 순간 속도는 100킬로미터 정도 되니까 아찔함을 느끼실 수 있죠. 게다가 내려올 때 왼쪽을 바라보시면 한반도 모양의 지형이 있어요. 대한민국에서 한반도 모양의 지형을 가진 곳이 강원도 내에만 세 곳 정도가 있는데, 여기는 정말 원조라고 보시면 돼요. 그리고 반대쪽으로 나오시면 스카이워크가 있거든요. 말발굽 모양으로 된 통유리 위를 걷는 건데, 여기에서도 한반도 모양의 지형이 보여요. 병방치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커피 한 잔 하시는 것도 좋은데요. 창밖으로 짚와이어를 타고 내려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구경할 수 있어요. 흡사 마카오타워 레스토랑에서 창밖으로 번지점프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 같죠.

 

가을하면 식도락 여행을 빼놓을 수가 없잖아요. 특별히 추천하고 싶으신 가을의 맛이 있을까요?


가을에는 무조건 서해 쪽으로 동선을 잡으셔야 돼요. 절대 실수가 없는 동선이 서해예요. 인천 서해포구 쪽에 가시면 전어 대하 꽃게까지 다 즐기실 수 있고요. 그 아래 홍성 남당항까지 축제가 이어져요. 9월 중순부터 10월 중순, 길게는 11월까지 맛 투어를 떠나실 수 있어요. 갈대와 억새를 보시려면 서천 신성리 갈대밭도 좋죠.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촬영지이기도 한데요. 많이들 떠올리시는 순천만 말고도 정말 멋진 갈대밭의 모습을 보실 수 있는 곳이에요. ‘<공동경비구역 JSA> 길’ ‘술 익는 마을 길’ 같은 테마길도 마련되어 있고요. 특히 여기가 소곡주라는 전통주가 유명하니까 한 번 맛보시고 오시면 좋을 것 같아요.

 

서해 여행의 또 다른 팁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서해 여행을 한 방에 해결하는 방법이 있어요. 금빛 열차를 타시면 되는데요. 누워서 탈 수 있는 유일한 기차예요. 온돌 마루실이 있어서 힐링도 할 수 있고, 그 옆에 있는 족욕칸에서 창밖을 보면서 족욕을 하실 수도 있어요. 금빛 열차는 서해의 여행 포인트 일곱 곳에 정차해요. 용산역에서 출발해서 온양 온천도 들르실 수 있고요. 서천 신성리 갈대밭도 보실 수 있고, 군산 익산까지 내려가요. 요즘에는 광복 79주년을 맞아서 군산으로 애국투어를 가시는 분도 많아요. 히로쓰가옥처럼 일본의 흔적이 남아 있거든요. 그리고 또 하나 좋은 점이, 모든 역이 시티투어 버스와 연계되어 있다는 거예요. 당일치기로 짧고 굵게 잘 놀다 오실 수 있는 거죠.

 

많은 분들이 여행기자라는 직업을 부러워하실 것 같은데요. 어떻게 여행기자가 되셨나요?

 
기자 생활을 하다보면 여러 부서에서 일하게 되잖아요. 그 과정에서 나는 여행을 좋아한다,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잘 논다, 라는 걸 어필하셔야 돼요(웃음). 여행 지면이 있으면 자신이 기사를 쓰겠다고 먼저 나서기도 하고요. 그렇게 하다 보면 여행기자가 되는 거죠. 그런데 여행기자가 되려고 언론사에 입사한다는 게 쉽지는 않잖아요. 언론 고시라고도 할 정도로 굉장히 힘든 과정을 거쳐야 하니까요. 그런데 요즘에 여행 작가도 많고 여행 블로거도 많으니까요. 여행 분야의 전문 글쟁이가 되고 싶은 분들은 여행 작가 협회에 가입하셔야 활동하셔도 좋을 것 같아요. 그 전에는 블로거로 활동하시면서 다양하게 습작도 해보시고 사진도 찍어보시고요. 아카데미에서 배우시는 것도 한 방법이겠죠. 어떤 방법을 택하시든 생각하셔야 하는 건 ‘뒤통수치기’예요. 똑같은 여행 포인트도 어떻게 하면 낯설게 볼 수 있을지 고민하는 거죠. 여행 작가나 기자가 되고 싶다면 스토리를 만들어내야 돼요. 낯설게 바라보고 특이하게 보이도록 하는 게 필요해요.

 

여행과 관련해서 좋아하는 책 혹은 작가도 있으실 텐데요.


최갑수 작가의 책은 다 좋아해요. 시인 출신으로 글도 굉장히 잘 쓰시고 사진도 좋더라고요. 요즘 라오스의 루앙프라방이 힐링 여행지로 뜨고 있는데, 최갑수 작가는 이미 5년 전에 루앙프라방에 대한 책『목요일의 루앙프라방』을 쓰셨더라고요. 최근에 출간하신 『맛있다 제주!』도 함께 읽어보시면 재미를 느끼실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여행 사진을 잘 찍고 싶으시다면 김진석 작가의 책을 권해드리고 싶어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사진집을 출간한 작가예요.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키스하는 장면만 사진 찍어서 『소울 키스』라는 책을 내기도 하셨는데요. 그렇게 테마를 찾아서 사진을 찍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여행기자로 활동하시면서 터득하신 노하우를 들려주세요.


최근에 출간한 책 『닥치GO! 여행 2』에 실려 있는 노하우 중에 꼭 알려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해외여행을 싸게 갈 수 있는 요일의 법칙이라는 건데요. 출발 날짜를 일요일부터 화요일 사이에 잡으시면, 동남아 같은 경우에는 10만 원 이상 저렴해져요. 일반적으로 목요일이 가장 비싸기 때문인데요. 대부분 주말에 귀국해서 월요일에 출근할 생각으로 목요일 출발을 선호하시거든요. 또 다른 요일의 법칙은 티켓팅과 관련된 거예요. 티켓팅을 일요일에 온라인으로 하시는 게 좋아요. 이건 제 개인적인 의견이 아니고 월스트리스저널이 발견한 법칙이에요. 미국 내에서 항공사별로 티켓팅 가격을 비교해 봤더니 일요일이 가장 저렴했던 거죠. 그리고 최근에 나온 법칙은, 아시아나 항공 같은 경우에는 매월 첫째 주 화요일 오전 9시가 항공권이 가장 저렴해요. 세계여행과 국내여행의 땡처리 티켓을 그때 내놓거든요.

 

『닥치GO! 여행』에서 말씀하시길, 해외여행에 꼭 필요한 두 가지는 친구와 깨끗한 방이라고 하셨어요. 당일치기 여행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인가요?


당일치기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건 마음가짐이에요. ‘당일치기로 짧고 굵게 다녀와도 행복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이요. 그리고 여행을 다녀온 뒤에 나만의 시간을 갖겠다는 이기적인 마음가짐도 중요하죠. 내 시간을 즐기는 게 지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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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일치기 총알여행신익수 저 | 생각정거장
『당일치기 총알여행』은 여행전문기자 신익수가 ‘스탬프’, ‘무한 리필’, ‘교황 순례길’, ‘이색 우체통’처럼 한 가지 주제에 다양한 여행지를 소개하고, 사계절 52주에 맞춰 테마별로 당일치기 여행 코스로 안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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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결혼을 하려면 어려운 연애를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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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들어가면 제각각 미세하게 다른 생각들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람이지만 의외로 크게 다르지 않게 살아가는 것이 또 사람이다. 그러니 1년에 두 번, 명절 때만 되면 들어오는 친척들의 공격들, ‘남자친구는 있니?’, ‘결혼은 언제 하니?’, ‘아이는 언제 낳을 거니?’, ‘둘째 계획은 있니?’, ‘아이가 공부는 잘하니?’에 무참하게 당하고 마는 것이다. 다른 삶을 상상하는 감수성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생각이지만 막상 다른 삶을 사는 자신의 모습에 막연한 두려움을 갖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다 보면 이곳은 참 대책 없이 ‘작은 사회’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어쩌랴. 세 다리만 건너면 아는 사람이라고, 그 아는 사람들에 아는 사람들과 친한 사람들까지 똘똘 뭉쳐 내 라이프 스타일에 훈수를 두는데.


여전히 싱글을 고집하는 3545 여성들에게 1세대 커플매니저 홍유진 대표는 묻는다.

 

그래도 결혼 생각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더 늦기 전에 생각을 분명히 정리해볼 필요가 있다. 정말로 결혼 생각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막연히 결혼이 두려운 것인지 깊이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최근 3년 사이에 친구나 동료, 선배들이 결혼해서 잘사는 모습을 보거나 그들의 결혼식을 보며 내심 부러웠던 적이 있다면 결혼 생각이 없다는 당신의 말은 거짓말이다.(241쪽)

 

‘거짓말’이라는 단어에 뜨끔했다면 홍유진의 제안을 읽어봐도 좋겠다. 연애를 하는 건 개인의 자유지만 1,000쌍이 넘는 커플을 결혼으로 골인시킨 커플매니저의 경험이 닫혀있던 마음을 열어줄지도 모를 일이다. 꼭 결혼을 하라는 게 아니다. 삶에 작은 재미를 더할 연애 정도를 해본다고 생각하면 뭐, 나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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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을 만나야 행복할까를 고민


경력 20년, 1세대 커플매니저, 1,000쌍 성혼 이력, 대단해요. 저자만의 특별한 성혼 비법이 있는지 궁금해져요.


한국 사람들은 밥을 꼭 먹어야 하잖아요. 그 개념을 생각하면 돼요. 싱글들에게 늘 강조하는 것이 오래 가는 관계의 중요성이에요. 순간적으로 어떤 것을 원한다고 요구하는 분이 있지만 저는 연애는 뜨겁게 해도 결혼은 편안한 사람과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해요. 그걸 잘 맞춰 따라오시는 분들은 성혼이 되기 때문에 그게 저만의 노하우가 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 문화에 맞는 정서나 결혼에 맞도록 계속 해왔기 때문에 그것이 저만의 성혼 비법(웃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연애와 결혼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접근하는 것이 도움이 되는 거군요.


연애라는 많은 과정을 겪어서 결혼이라는 목적이 나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혼을 위한 만남을 한다는 것 자체는 또 어긋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어요. 부모님이 원하는 결혼 같은 경우도 그렇고요. 연애를 시작하지 않은 채 결혼을 위한 만남을 시작하다보면 잘 안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가장 극적인, 기억에 남는 매칭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우리나라는 흔히 종교적인 것, 지역, 특정 성 씨에 대해 배타적인 경우가 굉장히 많아요. 둘만 좋아서 결혼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굉장히 어렵죠. 이런 것을 타파한 사례가 많이 기억이 나죠.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장남을 선호하지 않을 때가 있었어요. 1남 9녀 중 장남인 남성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도 없고 홀어머니에 시누이들이었거든요. 남자 분은 정말 좋은데 좀 부담스럽다는 반응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여성에게는 ‘형제가 많다’ 정도로만 얘기를 하고 만남을 유도한 적이 있어요. 만났는데 남성도 여성에게 구체적인 형제관계를 말하지 않았어요. 어느 날 여성이 제게 물어오기에 그제야 설명을 했죠. 여성이 깜짝 놀라더라고요. 이해를 좀 시켰어요. 주변을 보지 말고 그 남성의 장점만 보라고요. 그렇게 만남이 이루어졌죠. 이후 시누이들이 이 여성을 다 챙겨주더라고요. 음악회 티켓, 영화표도 챙겨주고요. 응원군이 많았던 거죠. 오히려 더 좋았던 경우에요. 그렇게 결혼을 했는데 참 기억에 남아요.

 

여전히 결혼에서 ‘어떤 것은 안 된다’하는 조건들이 많이 있군요.


종교적인 것을 거부하는 분들이 가끔 있거든요. 어떤 종교는 절대 안 된다고 하지만 다른 종교인 분들이 만나서 잘 살고 있는 경우도 굉장히 많아요. 그런 것은 실제로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게 현실인 것 같아요.

 

편견이 방해가 되기도 하는데 일단 만나면 그런 편견은 중요해지지 않다니 만남이란 참 예측불가네요.


커플 매니저를 통해서 만나면 왠지 완벽한 만남을 할 거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데요. 그렇기 때문에 요구하는 조건도 많은 경우들이 있죠. 저도 예전에는 완벽한 프로필을 소개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는데요. 제가 만족하는 조건이어도 싱글 분들은 만족이 안 되는 경우가 생기는 거예요. 결국 완벽한 소개보다는 그 사람들이 어떤 마음일까를 찾아내는 게 가장 중요했어요. 그런 부분에 조금 더 다가가니 교제율이 좀 더 높아지더라고요.


성형외과 의사와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요. 가장 결과가 만족스러울 때는 환자의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 찾아내는, 충분한 상담이 있었던 때라고 해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를 만나느냐가 아니라 어떤 사람을 만나야 행복할까를 고민하는 매칭이 되어야 하죠. 그런 매칭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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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의 매력을 먼저 알아야


상담 과정에서 당사자는 모르지만 저자에게는 보이는 특징적인 면들도 있나요?


현장에서 경험으로 보이는 통계들이 굉장히 많아요. 연애 많이 안 해본 분들의 특성, 노처녀의 특성, 이런 게 흐름으로 잡힌다는 거죠. 골드미스, 올드미스가 와서 흔히 이렇게 얘기해요. “내가 예전에는 이런 사람을 만났어요”라고요. 그분이 능력 있고 이러면 지금 그런 얘기를 안 합니다.(웃음) 남성분들은 “내 친구는 미스코리와 결혼했고, 친구는 슈퍼모델과 결혼했고요” 하면서 친구 얘기를 막 해요. 그 말은 자기는 별 볼 일 없다는 얘기예요. 얘기하는 이상형에서 그 사람이 연애 경험이 있는지, 없는지 파악할 수 있어요. 연애 경험이 적기 때문에 남이 말하는 이상형을 자기 것에 꿰어 맞추는구나 하는 판단을 할 수 있습니다.


본인의 이상형을 알아야 해요. 그러려면 자기의 매력을 먼저 알아야 하고요. 책을 쓰면서 가장 고민했던 게 3545 싱글녀들이 자기 매력이 무엇인지 알고 있을까 하는 것이었어요. 상담을 많이 해봐도 절대 모르고 있어요. 상대에게 원하는 목록을 적는데 그게 자신과 걸맞지 않은 목록인 거죠.

 

그래서인지 이상형 리스트를 적어라, 그 절반을 지워라, 같은 실천 포인트를 제안하고 있더라고요.


꿈을 갖고 있는 건 좋죠. 그런데 이상형이 막연하게 막 나오는 사람들이 있어요. 리스트가 구체적으로 나오는 사람도 마찬가지인데요. 이들은 이상형을 이론적으로 만든 거죠.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요. 우선 하나 하나 적으라고 합니다. 거기서 자신과 맞지 않는 것을 하나씩 털어버리는 거죠. 그러다보면 정말 원하는 것, 정말 간절한 것, 어떤 사람과 만나면 부합이 잘 될까 하는 것들이 나와요. 그게 돼야 매칭이 와도 만날 수가 있죠. 일반적으로는 그런 걸 못하는 겁니다. 욕심을 갖고 있는 거예요. 나이가 들면 뱃살이 늘듯이 자꾸 조건을 첨가합니다. 빼지를 않고요. 내가 이 정도니까, 내 친구는 이 정도 만났으니까, 상대는 이래야 한다는 오류들이 생기는 거죠.

 

실제 이런 방법을 적용시켰을 때 효과가 있었나요?


그럼요.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지 물으면 거의 비슷하잖아요. 크게 안 본다고 하면서 학교는 어느 정도 나왔으면, 키는 컸으면, 잘생기지는 않아도 되지만 훈남이었으면, 강남권에 살았으면, 스타일이 멋졌으면, 형제가 많지 않았으면, 어학연수를 1년이라도 다녀왔으면, 하면서 평범한 사람을 찾는다고 하죠. 그런 사람이 없다기보다 그분에게 매칭 하기 부족한 거예요. 그런 걸 모르기 때문에 막상 자신이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물어요. 그런 사람 해주면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느냐고요. 할 수 있다고 하지만 결국 차이고 말거든요. 그러면서도 옷 스타일이 마음에 안 들었다, 어쨌다 하면서 자기합리화를 해요.


저는 우선 싱글들이 자기의 매력을 먼저 찾았으면 좋겠어요. 자기가 매력이 있어야 해요. 자기 매력을 알아야 상대에게 발산할 줄 알고, 그러면서 상대의 매력을 볼 줄 아는 시야가 넓어지거든요. 구구단을 할 줄 모르면 옆 사람이 구구단을 할 줄 아는지 모르는 것처럼 말이에요. 자기 매력이 없는 친구들이 많이 있더라고요.

 

이 사람은 잘 되겠다, 이 사람은 너무 어렵겠다, 싶은 첫 느낌이나 경험에서 오는 특징들도 있나요?


연애가요? 아니면 결혼이요?

 

아, 그것에 따라 특징들도 다른가요?


다르죠. 시작은 잘하는데 끝을 못 맺는 사람이 있고요. 시작은 어설픈 것 같은데 결혼으로 쏙 가는 분들도 가끔 있어요.

 

그런 분들은 어떤 차이가 있나요?


처음에 호기심을 발휘하는 분들은 연애를 잘해요. 그러다가 상대에 대한 호기심이 끊어지면 지속이 안 되는 거죠. 늘 호기심만 발동하는 거예요. 거품이 빠지면 맛없는 맥주가 되는 것과 같은 개념이라고 보시면 돼요.(웃음) 반대로 처음 시작은 밋밋하고, 서툴고, 어색하게 가도 기본적인 매력이 있는 사람들은 더디지만 결혼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있어요.


나는 왜 연애가 안 될까, 왜 결혼이 안 될까 하시는 분들은 누누이 말하지만 스스로 자기 분석을 꼭 한 번 해야 해요. 부정적 분석이 아니라, 나의 매력은 무엇이고 내가 어떤 점에서 상대와 맞을까를 보셔야 한다는 거예요. 올드미스들이 흔히 주변에 남자가 없다고 말해요. 저는 되물어요. 남자를 찾아낼 혜안이 있느냐고요. 운명이 곁을 지나가도 못 찾아요. 그 사람이 괜찮은지 안 괜찮은지 모르는 거예요.

 

상담을 할 때 그 사람이 갖고 있는 매력을 찾아내는 데 무척 많은 시간을 들이시겠어요.


네, 그게 가장 먼저예요. 상담을 하면서 그 사람의 매력을 끄집어내는 게 중요해요. 의사가 진료를 한 다음 병을 고치듯이 말이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를 찾아내고, 어떤 사람을 좋아하느냐를 찾아내는 게 커플매니저의 역할입니다. 단순히 있는 사람들을 매칭하는 건 아니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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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백인백색


3545 여성은 20대의 연애방식과는 다른 태도와 방법론을 취하라고 누누이 말해요. 이런 경험에서 나온 이야기겠죠? 3545 여성들이 가장 놓치지 쉬운 맹점이 뭔가요?


제가 보통 세대별 특징을 얘기하는데요. 20대는 외모를 보고, 30대는 직업, 40대는 경제력, 50대는 사회적 지위를 보고요, 60대는 건강을 봅니다. 여성이나 남성이나 마찬가지예요. 3545 여성들은 직업과 경제력을 보겠죠. 지금 3545 여성들은 고학력, 고스펙, 동안 외모, 경제력 등이 다 갖춰져 있어요. 상담할 때 저는 본인의 스펙이 올라갈수록 상대의 그것은 떨어질 거라고 얘기해요. 그걸 감안하라고 시작하라고 하지만 못하죠. 직업도 괜찮아야 하고, 경제력도 괜찮아야 하는데 인성도 좋아야 하고, 집안 환경도 좋아야 하고, 자신의 커리어를 인정해줘야 하고, 이왕이면 스타일도 괜찮아야 하고, 이런 게 계속 나오는 거예요.


사람마다 백인백색인데 어떤 틀 안에 남성이 들어와야 만나볼까 연애할까 말까를 고민해요. 20대 때는 경험을 많이 하고 시행착오 겪는 게 맞는데요. 3545가 되면 시행착오 겪는 단계는 지나야 하거든요. 그걸 못해요. 20대 마인드와 스타일을 유지하는 분들도 많고요.

 

30대의 연인은 뜨겁고 적극적이고 열정적인 마음으로 서로를 간섭하진 않는다. 대신 그들은 묵묵히 서로를 지켜봐 주고 공감하고 응원하는 편안한 짝이 돼준다. 혼자 훌쩍 떠나기엔 왠지 두려운 여행에 그렇게 한발 떨어져서 편안하게 동행하는 짝, 그게 30대의 연인이다.(177쪽)

 

‘나이에 맞게’라는 것이 필요하다는 건가요?


3545 여성분들 미팅 시에는 장소도 20대가 많은 곳으로는 잘 안 해주려고 해요. 그건 그 사람을 배려한 건데요. 이런 경우가 있었어요. 대학교 앞에 있는 카페였는데요. 꼭 그곳에서 미팅을 하겠다고 한 여성이 있었어요. 그 안에 있는 젊은 친구들과 비교가 되는 곳은 위험해요. 남성이 딱 들어서서 그 여성을 보고 바로 다른 데로 가자고 데리고 나왔다는 거예요. 3545라면 비교적 완숙한 매력을 어필해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까 짝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싱글들에게 거울을 많이 보라고 늘 얘기해요. 거울을 보라는 건 내 나이에 대한 느낌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의미예요. 10대가 화장을 과하게 하면 보기 좋지 않은 것처럼 30대가 됐는데도 여전히 20대의 행동을 한다면 현실적으로 안 맞는 거죠. 남성들은 결혼상대로 대개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을 원하는 부분이 있어요. 그게 안 맞으니까 서로 어긋나는 거죠.

 

책에서도 남자가 바라는 여자의 성격은 거기서 거기라고 하셨잖아요. 커플매니저로서는 어려운 점도 많을 것 같아요. 남자가 바라는 이상형이 그대로인 반면 여자의 이상형은 변했으니까요.


남성들에게 어떤 여성을 좋아하냐고 물으면 ‘오늘 본 여성’(웃음)이라고 하잖아요. 싱글 남성분들은 보면 어린 여성을 좋아해요. 그게 1순위예요. 남성들은 나이에 있어 굉장히 예민해요. 2세 때문에 그래요. 아이를 낳지 않을 거라면 중요하지 않지만 보수적인 남성들의 결혼관에서 2세는 무척 예민한 부분입니다. 나이에 대한 기준은 안 변합니다.
여성들은 바뀌었죠. 1997년 IMF 이전에 여성들은 ‘학력’이 우선이었어요. 서울대가 최고라고 했죠. IMF가 터지고 가정이 깨지고 명예퇴직을 당하고 하니까 ‘직업’으로 기준이 바뀌었어요. 그러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오니까 이제는 직업도 불안해요. 적금도 다 날아갔고요. 그래서 나온 것이 ‘임대업’을 하는 남자가 좋다고 바뀌었죠. 그 다음에 나오는 것이 ‘연하남’이고요. 물론 그 안에 스펙 등 기본 사항은 다 들어갑니다. 또 요즘 인기가 있는 직업이 ‘셰프’입니다. 나를 위해 음식을 해주는 남자를 찾는 거죠. 여성들이 자신의 능력은 된다, 그러니 남자가 나에게 맞춰달라는 것이에요.

 

오랜 기간 봐왔으니 시대에 따른 태도 변화를 감지하는 것도 가능하겠군요. 요리 잘하는, 연하남 외에 또 다른 최근의 특징들이 있나요?


여성들이 예전에는 ‘사’자 들어가는 직업군을 좋아했죠. 요즘은 그렇진 않고요. 외국 경험이 있는 남성을 좋아해요. 사고가 트인 사람, 외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을 좋아하는 거죠. 특징적인 걸 갖고 있는 남성을 좋아해요. 취미가 독특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하고요. 그것으로 스트레스를 풀 줄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사회생활을 하는 여성들이 많으니까 남성에 대한 기준도 과거에 비해 다양해진 것일 테죠.


그렇죠. 예전에는 남성이 집을 마련하는 게 100%였다면 지금 집은 함께 사는 것이기 때문에 여성들이 더 큰소리를 칠 수 있는 거고요. 집이 있는 남성이 인기가 있긴 있지요. 그러나 30대에 집이 있기는 쉽지가 않고 그런 분들은 이미 짝을 만났기 때문에 3545 여성들이 만날 수 있는 그런 남성은 별로 없어요. 좋은 남성이 별로 없는 거죠.

 

남성에게 특별히 하는 조언도 있나요?


요즘 남성들은 적극적인 여성을 좋아해요. 표현하는 여성을 좋아합니다. 예전에는 현모양처라고 했는데, 요즘은 자기 일도 하면서 반응도 좋은 적극적인 여성을 좋아해요. 요즘 남성들이 자신감이 없거든요. 20대부터 50대까지 자신 있는 사람을 별로 못 봐요. 드물어요. 그래서인지 반응이 좋은 여성을 좋아하더라고요. 대화를 받아주는 여성을 참 좋아하죠. 만남이 이루어졌을 때 여성의 매력 1순위는 미소예요. 잘 들어주고 호응해주면 남성의 마음이 굉장히 편안해지는 거예요. 실제로 그렇게 결혼에 골인한 경우도 있고요.


그래서 만남을 가기 전에 여성들에게 이런 팁을 드려요. 만나서 미소를 딱 지으라고요. 이렇게 하면 남성들 마음의 문이 확 열립니다. 남성이 여성에게 호감을 느끼는 반응이 세 가지가 있어요. “진짜요?”, “정말요?”, “대단해요!” 이 세 가지만 하면(웃음) 백전백승입니다.

 

그게 잘 안 되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금 만나는 남성과 결혼이 안 될 수도 있어요. 한 명 만나서 결혼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래서 지금 만나는 사람과 연습을 하라고 얘기를 합니다. 아까 말한 리액션들이 낯간지러울 수 있지만 3~5명 연습하잖아요? 그러면 반응이 확 오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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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는 북한산이 아니라 둘레길


초 치는 요소를 제거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그 요소들을 지적하신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만혼이라고도 하는데요. 조금 늦게 결혼을 하면 주변에서 제일 많이 하는 말이 “뭐 하는 사람이야?”예요. 돈은 많은지, 집은 어디를 구했는지, 이런 걸 물어요. 중요한 것은 남에게 보여지는 게 아니에요. 우리는 주변을 굉장히 의식하죠. 그러다보니 남과 비교하게 되고 판단의 오류가 와요. 저는 본인이 원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간절하게 생각해보는 게 중요하다고 말해요. 세상 사람들은 본인에게 그렇게 관심이 없어요. 그냥 지나가는 말로 하는 거니까 의미 두지 말라는 거예요. 이 사람이 내가 원하는 조건에 한두 가지만 부합된다고 하면 되는 거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할까?’를 고민해요. 자기만 사랑하면 되는데 말이에요. 그런 주변 의식을 조금씩 접어야 한다는 거죠.

 
쉬운 결혼을 하려면 어려운 연애를 해야 해요. 그렇지만 어려운 연애라는 건 북한산이 아니라 둘레길입니다. 누구나 걸을 수 있는 거고, 완주하면 상쾌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사람들이 포기하죠. 노력해서 찾으면 분명 짝은 나타나요.

 

결혼도 연애도 모두 현실이라고도 하셨는데요. 사실 책을 읽다보면 싱글 상태를 지나치게 대상화하는 건 아닌가 하는 질문이 생길 수 있을 것 같아요. 꼭 결혼을 해야 할까요? 다양한 삶이 가능하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결혼이 좋은 거냐는 질문을 종종 받아요. 하지만 제가 책을 통해 하려고 한 말은 연애를 하자는 겁니다. 결혼은 그 다음 순서죠. 결혼은 60이고 70이고 할 수 있어요. 100세 시대기 때문에 언젠가는 결혼을 할 수 있죠. 55세에 처음 결혼을 하신 여성도 있었어요. 그런데 연애의 경험이 있고, 연애의 달콤함을 알아야 새로운 이성이 왔을 때 결혼까지 연결되는 것 같아요. 연애를 해보라는 게 가장 포인트입니다.


내 삶이 팍팍하고, 전혀 이성과의 관계가 없는 분들은 생활이 건조해요. 이성에 대한 호감을 갖고 사는 건 나쁘지 않다는 거예요. 나의 심장을 설레게 하는 느낌을 평생 몇 번이나 느끼겠습니까. 그 추억은 나이가 들어도 안타까운 것으로 남아요. 연애가 어렵지 않은 것이니 즐겨보라고 말을 하고 싶었던 거예요.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감성이니까요. 반드시 결혼이 전부라는 건 아니에요.

 

연애를 원하고, 기다리고 있는 3545 여성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OECD 국가 중 우리나라 사람의 기대수명이 5위래요. 80년 동안 혼자 지내는 게 맞는가를 한 번 생각해보셨으면 좋겠어요. 예전에는 혼자 지낼 수 있었어요. 형제가 많았으니까요. 또 예전에는 마을 부락을 이루고 살았잖아요. 지금은 윗집에 살인범이 사는지도 모르는 시대기 때문에 혼자 걸을 수 있는 길이 나이가 들수록 줄어든다는 사실을 아셔야 해요. 그에 제일 좋은 반려자는 짝이죠. 그런 짝을 만나는 것에 대한 관심을 가지셨으면 좋겠어요. 관심을 포기하지 말고요. 또 남에게 보여주는 게 아니라 서로만 본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내 주변에 누가 있는지 살펴보고, 내가 싱글인 걸 자랑도 하셔야 해요. 그래야 소개도 들어오죠. 늘 말하지만 야쿠르트 아줌마나 경비 아저씨에게도 말하는 거예요. 인연은 어디서 연결될지 모르거든요. 준비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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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연애가 어려운 이유 홍유진 저 | 더시드컴퍼니
저자는 남녀 1만 명 이상을 상담하고 1,000여 커플을 탄생시킨 결혼정보업계 최고의 베테랑답게, 풍부한 데이터와 오랜 상담 경험을 바탕으로 3545에 최적화된 연애, 사랑 그리고 결혼의 해법을 제시한다. 그 핵심은 지피지기! 즉 ‘나는 왜 아직도 싱글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저자는 스스로, 혹은 주변에서 ‘괜찮은 싱글녀’라고 인정하는 것은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고, 단 한 명이라도 괜찮은 남자가 탐내는 여자가 돼야 한다고 직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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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가 이주향, 당신의 짐은 누구의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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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만나는 시간』을 읽는 동안 철학은 소리 없이 스며든다. 철학자 이주향이 읽어주는 한 권의 책, 한 편의 영화, 한 장의 그림, 한 곡의 음악에는 무수히 많은 삶과 사람의 이야기가 숨어있다. 『도덕경』 『레미제라블』부터 영화 <설국열차><위대한 개츠비>미켈란젤로의 「피에타」와 조용필의 「바운스」까지, 저자의 손끝이 가리키는 작품들은 낯설지 않다. 그러나 그녀가 들려주는 메시지는 익숙함과는 거리가 멀다. 여백과 침묵 속에 잠들어 있던 이야기들을, 그래서 많은 이들이 무심코 지나쳤던 목소리들을, 철학자 특유의 감각으로 포착해냈기 때문이다.

 

철학이 무엇인지 정의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나를 만나는 시간』의 책장을 덮을 때쯤, 희미하던 그 실체는 점차 또렷해진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무엇을 느끼고 고민하며 살아가는지, 그래서 살아가는 동안 어떤 사건과 상황에 놓이게 되는지, 그 안에서 자신을 지켜내기 위해 선택하는 것들은 얼마나 다양한지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놀라운 것은, 이 모든 이야기들이 어렵고 난해한 철학적 용어들에 기대지 않고도 전해진다는 사실이다. 저자는 그저 자신의 마음을 붙들어 두었던 작품들을 펼쳐 보일 뿐이다. 자신을 매료시킨 어떤 것의 의미를 말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그 속에서 나와 당신과 우리의 모습이 보인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으며, 철학자 이주향은 ‘낙타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내 것이 아닌 짐을 지고서 힘겹게 걸음을 떼는 낙타. 그 눈빛을 떠올리는 것은 거울을 마주보는 것과 같다. 익숙한 피로감이 깃들어 있는 까닭이다. 영화 <위대한 개츠비> 안에서는 서투르기만 했던 사랑의 흔적을 찾게 된다. “위험하지 않은 모험이 없듯 어리석은 줄 모르는 사랑은 없습니다”라는 저자의 한 마디는 잊었던 사랑의 기억을 되살린다. 늘 관계 속에서 앓는 우리를 위한 조언도 빼놓을 수 없다. “만날수록 얽히기만 할 때는 ‘대범’을 가장하고 만나는 것보다는 그릇이 작음을 인정하고 도망가는 게 좋습니다”라는 말은 어딘지 모르게 뜨끔하다. 엉킨 실타래를 풀고야 말겠다고, 마치 수학문제를 풀 듯 답을 찾아 헤매는 동안, 나도 당신도 지쳐버린 건 아닌지 되돌아보게 된다.

 

이렇듯 『나를 만나는 시간』은 명쾌한 해석으로 갈증을 해소시켜 주기도 하고, 가볍지 않은 질문을 던져 깊은 사유에 빠져들게도 한다. 그 순간들을 거치며 우리는 비로소 나를 들여다보게 된다. 저자가 포착해낸 오늘의 현실을 응시하면서 코끝이 찡해지는 것은, 알게 모르게 지쳐있었던 나를 뒤늦게 발견했기 때문이다. 문제의 본질을 꿰뚫는 저자의 통찰에 가슴이 시원해지는 이유는, 나도 모르는 사이 질문과 갈등을 쌓아둔 채 살아왔기 때문이다.

 

각종 의료장비의 도움을 받지 않고서는 몸속을 들여다 볼 수 없는 것처럼, 자신이 병들어 있다는 사실조차 알 수 없는 것처럼, 마음과 감정 역시 관찰하지 않으면 그 상태를 알 수 없다. 마음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건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자신 이외의 존재와 바깥세상을 향해있던 시선을 거두어들여 나의 안을 비추는 일이 필요하다. 『나를 만나는 시간』은 다양한 이야기들 속에서 길어 올린 ‘철학의 지혜’를 들려줌으로써 ‘온전한 나로 살기 위한’ 시간을 선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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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지고 가는 짐은 누구의 것인가요?


“동서양의 고전들을 통해서 궁극적으로는 나를 들여다보게 된다고 생각해요. 『소학』만 보더라도 옛 사람들이 사람과 생명을 어떻게 대했는지 알 수 있잖아요. 한 예로, 유모는 아이가 처음 만나는 스승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온화하고 말이 적은 여인을 선호했고요. 그런 배려 속에서 태어나고 성장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다를 수밖에 없겠죠. ‘세상의 중심은 나’라는 자신감을 길러주기 위해서는 어떤 태도를 보여주느냐가 중요해요. 그런 의미에서 순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범을 보여준 인물이에요. 우리는 늘 ‘무엇이 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하지만, 그렇게 살기 위한 태도를 가지려면 모범이 되어줄 존재가 필요하거든요. 책이 그 역할을 해줄 수도 있어요. 깊이 읽을 수 있는 책은 나의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와 같잖아요.”

 

『나를 만나는 시간』에서 철학자 이주향은 예리한 시선으로 현실의 겉꺼풀을 벗겨냈다. 그러자 차갑고 불편한 세계가 드러났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통쾌함과 서글픔이 뒤섞인 묘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도태와 낙오라는 단어가 뒤를 바짝 쫓고 있는 것처럼, 그래서 가능한 멀리 달아나려는 것처럼, 떠밀리듯 살아가는 나와 당신을 확인하는 일이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토록 아픈 상황을 이해해주는 이가 있다는 사실은 위안이 되기도 했다.

 

“몸속 시계가 작동하기 전에 알람에 맞춰 일어나, 깨지 않은 잠을 커피로 깨우고, 지옥철에 몸을 싣고 일터로 나가는 인생을 그래도 축복받은 인생으로 여기는 사회” 속에 우리는 덩그러니 남겨져 있다. “남의 평가만 내면화하는 하인으로, 하녀로, 낙타로만 살게 되는” 줄도 모르고 “바쁘다는 것이 능력의 척도인 줄” 믿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낭만도 반납하고 정의도 외면하고 오로지 취업을 향해 질주했건만 취업을 하지 못하는 청춘들”과 “취업은 됐어도 비정규직의 불안을 안고 살아야 하는 젊은이들”이 넘쳐나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가 날카롭게 지적하듯 “남들이 부러워하는 대기업에서 근사해 보이는 일을 하지만 정작 본인은 오디션 프로그램의 참가자처럼 언제 낙오될지 모르는 두려움에 외줄 타는 심정으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한 사람의 필요를 ‘얼마만큼 성과를 낼 수 있는가’라는 기준으로 평가하는 세상이죠. 그런 세상에서는 모든 사람이 미생 아닌가요? 자신의 존엄성을 스스로 보지 못한다면, 지금의 사회는 봉건 사회보다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봉건 사회에서는 주인을 잘 만나면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해서 심리적인 부담 없이 살아갈 수 있었잖아요. 하지만 현대 사회는 먹고 사는 문제도 보장해주지 않죠. 그러면서 계약을 빌미로 사람을 쥐어짜요. 1년마다 혹은 2년마다 계약을 갱신해야 하는 삶이 얼마나 피곤하겠어요. ‘나를 만나는 시간’은 엄두도 낼 수 없을 거예요. 그런데 사실은, 그런 사람들에게 더 필요한 것이 자신과 만나는 시간이에요. 현대인들은 자신을 하인 취급할 준비를 철저히 하고 있어요. 그런 상황에서는 끝까지 하인 대우밖에 받지 못해요. 우리에게는 사람답게 경영하려는 노력, 그리고 스스로의 존엄성을 찾으려는 노력이 필요해요.”

 

『나를 만나는 시간』에서 저자가 들려준 ‘낙타의 삶’이 떠올랐다. 미생들에게 허락된 삶은 낙타의 그것과 다르지 않을 테니까.

 

낙타는 열심히 짐을 지고 가는데, 그 짐은 주인의 것이지요. 오로지 주인의 짐을 지고 주인이 정한 길을 가는 낙타의 시간, 누구나 그 시기를 거치며 사회적 존재가 됩니다. 학교를 다니고 직장을 잡고 성과를 내는 일로 떳떳한 공동체의 일원이 되는 거지요. 그런데 그렇게 공동체의 일원으로만 살다 보면 남의 평가만 내면화하는 하인으로, 하녀로, 낙타로만 살게 되는 겁니다. (『나를 만나는 시간』 92~93쪽)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 나오는 이야기죠. 니체는 자기 짐이 아닌 것을 성실하게 지고 가는 낙타 같은 인간이 있다고 이야기했어요. 그러다가 ‘나를 만나는 시간’이 찾아오면 사자로 변한다고 했죠. 사자 같은 사람은 나의 삶을 사는 사람이에요. 내가 아닌 것의 삶을 살지 않고, 그런 삶을 강요하는 것에 대항해서 싸우죠. 엄청난 저항의 에너지를 가진 존재이지만, 그 삶은 굉장히 긴장되어 있기도 해요. 중요한 건 사자가 어린아이로 변하는 과정이에요. 니체는 어린아이가 최초의 긍정이라고 했는데, 운명을 긍정한다는 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거예요. 예를 들면 슬플 땐 슬픔과 놀고 기쁠 땐 기쁨과 노는 거죠. 희노애락애오욕이 없는 게 아니에요. 희노애락애오욕에 빠지지 않고 파도타기 하듯이 타고 넘는 거죠. 그게 긍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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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을 관찰하는 일부터 시작하세요


책 속에서 저자는 거듭 강조하고 있었다. 나 자신을 돌아보지 못한 것은 죄라고. 나 자신을 돌볼 줄 모르는 것은 죄라고. 죽비처럼 내리꽂히는 그 말들은, 스스로를 들여다보고 마음을 살피는 일이 선택의 영역 밖에 있는 것임을 일깨워주었다. 그것은 의무였고, 그렇게 하지 못한 우리는 모두 유죄였다. 자신을 상대로 지은 죄를 씻어내기 위해서는 알아야 했다. 나를 바라본다는 것은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나를 관찰하는 일의 시작은 내 몸을 관찰하는 거예요. 몸의 변화를 지켜보면 감정이 어떻게 일어나고 가라앉는지 보여요. 그렇지 않으면 모든 이야기들이 추상적으로 들리죠. 굉장히 구체적인 이야기라 해도 마찬가지예요. 마음이든 신체든 내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에 주의를 기울여야 해요. 신체 어느 한 곳에 의식을 두면 보이는 흐름들이 있어요. 만약 명치끝이 막혀있는 게 보인다면 ‘내가 인생에서 소화하지 못하는 것들을 명치에 차곡차곡 쌓아뒀구나’ 하는 생각이 들 거예요. 한두 달이 지나면 소통이 이루어지면서 막혀있던 것들이 풀어지는 걸 느끼게 될 거고요. 그렇게 몸의 변화를 관찰하다보면 한결 차분해져요.”

 

무심코 짓는 표정, 습관적인 손짓까지도 의식적으로 관찰하는 일부터 시작하라는 이야기다. 손쉬운 방법임에 틀림없지만 그만큼 어색한 일이기도 하다. 마치 내 것이 아닌 양 몸과 마음을 내버려둔 채 지켜보지 않았던 시간들이 피부로 느껴진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몸과 마음을 살필 시간이 없다고 이야기하죠. 일을 위해서는 24시간을 쓰면서도 정작 자신을 위해서 하루에 30분도 할애하기 힘들잖아요. 자식을 위해 살면서 자신을 위해서는 살지 않는 엄마들과 똑같은 거예요. 자식을 위하는 것이 곧 나를 위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내 일을 위하는 것이 나를 위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자식이든 일이든 자신이 애착하고 있는 대상에 빠져있는 거예요. 나를 볼 줄 알아야 내가 애착하고 있는 것이 보이고 내가 미워하고 있는 것이 보여요. 애착과 증오는 삶을 만드는 축이에요. 자신이 무엇에 애착과 증오를 느끼는지 아는 것과 모른 채 끌려가는 것은 굉장히 달라요.”

 

『나를 만나는 시간』속에서 저자는 묻고 있었다. “마음에 상처를 입었을 때 당신은 어떻게 하십니까?” 이어 그녀는 담담하게 고백했다. “나는 혼자만의 공간으로, 나만의 동굴로, 침묵으로 도망갑니다” 언뜻 문제를 회피하는 것처럼 오해될 수 있는 이야기이지만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저자에게는 확고한 신념이 있기 때문이다. “마침내 내가 나를 대면할 수밖에 없는 시간에 도달할 때까지” 대범한 척 나서기보다는 작은 그릇을 인정하고 도망가는 편이 낫다고 조언할 수 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인생의 매듭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맺히고 풀리는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내 손을 떠나는 일도 있다는 걸 알아요. 그리고 어떤 일을 손에서 떠나보내고 나면 어느 순간 해결이 되기도 하고요. 인간관계도 그런 것 같아요. 끝까지 해결하려고 하기보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문제라면 애착을 보이지 않아요. 내가 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라고 생각하는 거죠. 어느 순간 다시 챙겨져 있다는 걸 아니까요.”

 

『나를 만나는 시간』이 선사하는 변화는 한 개인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자신에게 너그러운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도 너그러울 수 있다”는 저자의 말처럼, 나의 마음을 돌보는 일은 상대의 마음을 살피는 일까지 가능하게 한다. 그녀가 『레미제라블』의 미리엘 신부에게서 발견한 베풂이 지금 우리에게 낯선 이유는 그래서일지도 모른다. 내 마음에 여유가 없으니 다른 이를 향해 마음을 열 수 없는 것 아닐까.

 

“어렸을 때부터 미리엘 신부를 굉장히 좋아했는데요. 요즘에는 그런 사람들을 주변에서 보게 되는 것 같아요. 자기 인생을 믿고 수행이 된 사람들이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니체가 이야기한, 사자를 거쳐 간 어린아이 같은 사람들이죠. 그들은 네 것과 내 것을 나누지 않아요. 그리고 변화시킬 의지를 갖지 않고서도 주변 사람들을 변화시켜요. 만약 미리엘 신부가 장발장을 변화시킬 의지가 있었다면, 장발장은 절대 변하지 않았을 거예요. 미리엘의 삶은 개방적인 거죠. 마음을 열어놓고 사는 사람이잖아요. 누군가 자신을 찾아와서 함께 식사를 하는 하룻밤이 굉장히 소중했던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그 사람이 곤경에 처했을 때 도움을 준 거고요. 저 역시 미리엘 신부와 같은 선택을 했을 것 같아요. 소유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알거든요. 저에게 오는 모든 것들에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타인을 믿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은 자신을 믿는 것이다. 사랑하는 일 역시 다르지 않다. 종종 사랑한다는 말은 내 안으로 찾아들지 못하고 밖으로만 맴돈다. 가족에게 연인에게 친구에게 사랑을 전하면서도, 정작 나에게는 사랑한다고 말해주지 못한 날들이 얼마나 많은가. 아마도 우리는 끊임없이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스스로를 부족함 투성이로 규정해버렸는지도 모른다. 그 불신이 나를 믿지 못하고 사랑할 수 없도록 만들고, 진짜 내 모습을 들여다보는 일을 회피하도록 만든 건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나를 만나는 시간』이 전하는 진실을 가슴에 새겨둘 필요가 있다. “당신은 46억 년의 세월이 기다려온, 태양의 피워낸 꽃이라고. 그러니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라고” 이 말을 주문처럼 외우며, 밖으로 향하던 시선을 자기 안으로 거둬들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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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만나는 시간이주향 저 | 사우
철학자 이주향이 안내하는 철학은 어렵고 복잡하지 않다. 그는 난해한 철학을 영화, 만화, 문학, 고전 등과 접목시켜 쉽게 설명하는 철학자로 유명하다. 이 책에서 저자는 자아 성찰과 삶의 태도, 죽음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문학작품과 고전, 음악, 미술, 영화 등 우리가 쉽게 접하는 다양한 소재를 갖다 쓴다. 《도덕경》, 《서경》, 《소학》 등 동양 고전부터 《파이돈》,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등 서양 고전까지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철학을 풀어내지만 편안하게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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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카오와 신드롬'을 일으킨 일본의 4인조 록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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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에 있었던 라이브 < Twilight City >와 팀의 결성 및 세계관, 작품에 대해 인터뷰했다. 곧 국내에도 공개될 'ANTI-HERO'의 음원과 함께 해당 인터뷰를 즐겨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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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매체와는 첫 인터뷰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먼저 간단히 팀 소개를 부탁합니다.


All : 안녕하세요. 저희는 Nakajin(Leader/SoundProduce,Gt), Fukase(Vocal,Conceptor), Saori(Stage Produce,Pf), DJ LOVE(SoundSelector,DJ) 이렇게 4명으로 이루어진 크리에이티브 그룹입니다. Fukase를 중심으로 한 소꿉친구들이 만든 그룹이에요. Fukase와 Saori는 유치원부터, Nakajin은 초등학교부터, DJ LOVE는 고등학교부터 친구입니다. 지금은 한 집에서 셰어하우스 같은 형태로 다 함께 살고 있고요.

 

현지에선 '세카오와 신드롬'이 절정에 달한 느낌입니다. 올해 발매한 두 번째 앨범< Tree >의 판매량이 거의 하프밀리언에 육박하는 등, 까마득한 선배인 사잔 올스타즈와 미스터 칠드런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의 성과를 거두었는데요. 실감은 나시는지요.


Nakajin : 데뷔 후부터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다”라는 한결 같은 마음으로 활동해왔습니다. 그 결과, 조금씩 확산되고 있다는 실감은 물론 있지만, 더욱 더 다양한 분들께 들려드리고 싶다는 생각에서 지금은 해외 전개를 시작하고 있고, 아직 전해야 할 분들이 많아 그 실감에 취해있을 여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특히나 굉장히 어린 세대들에게도 인기인데, 언론이나 평단의 말이 아닌, 본인들이 생각하는 인기 이유는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Fukase :멤버 4명이 서로 사이가 좋은 것이 분명 친숙해지기 쉬운 저희들의 매력 중 하나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단독 라이브 < Twilight City >에 대해서

 

닛산 스타디움에서의 공연은 처음이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 Twilight City >라는 타이틀을 붙였던데,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 전체적인 콘셉트는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Saori : 2013년에 < 炎と森のカニバル(불꽃과 숲의 카니발) >, 2014년에 < TOKYO FANTASY >라는 공연을 해 왔고요. 이번엔 가공의 거리를 콘셉트로 표현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 Twilight City >라는 타이틀로 정했습니다. 스테이지뿐만 아니라, 회장 주변의 분위기부터 세계관을 느끼실 수 있도록 했어요. 전체적으로 아시아 판타지 같은 세계관을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앞서 이야기했던 < 炎と森のカニバル >, < TOKYO FANTASY >와의 차별점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Fukase :< 炎と森のカニバル >은, 지하제국 안에 있는 거대 나무 아래의 라이브가 이미지였습니다. < TOKYO FANTASY >는 거대 나무의 마지막 날이라는 콘셉트였고요. < Twilight City >는 가까운 미래의 아시아 타운, 그 거리에 있는 역과 트리맨션이라는 이미지였습니다.

 

일반적인 코스로 여겨지는 Zepp-Hall-Arena-Dome에 구애되지 않은, 프리 라이브나 원맨 페스티벌을 개최하는 등의 이색적인 라이브 활동을 이어왔는데요. 어떠한 의도로 이런 형태의 활동을 전개해 온 것인지 궁금합니다.


Fukase :누군가가 지나온 레일이나 코스에는 그다지 흥미가 없어서, 자신만이 할 수 있는 표현이나 스테이지, 방법은 무엇일까라고 생각한 결과가 지금 저희들이 만들고 있는 스테이지와 세계관에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고 보니 2012년 < Jisan Valley Rock Festial >로 한국을 찾은 적이 있어요. 필자도 오랜 팬인지라 그 현장에 있었는데. 시간이 좀 많이 흐르긴 했지만, 당시 공연에 대한 소감은 어땠는지요.


Fukase : 당시 첫 한국 이벤트였어요. 아직 영어로 노래할 수 있는 곡도 없어서 커뮤니케이션이 좀 어려운 부분이 있었어요. 관객들과 같이 더 가까워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그 때 경험으로 영어 곡의 필요성을 느꼈고, 그런 곡이 완성된 경위가 되었네요.


그리고 네임보드를 가져 온 팬이 있어서 무척 기뻤었어요. 아마 메시지는 'Fukase, 여길 봐'였던 걸로 기억해요.(웃음)

 

첫날 공연 직전만 해도 막 비가 쏟아질 것 만 같은 날씨였어요. 걱정되진 않던가요.


DJ LOVE :진짜 걱정했어요. 막 준비를 시작하려는 타이밍에 일본 가까이 태풍이 3개씩이나 동시에 발생해서. 솔직히 계속 조마조마 했지만, 결과적으로 별로 영향이 없어서 안심했습니다.

 

과감하게 「ピエロ(Pierrot)'와 'スノマジックファンタジ-(Snow magic fantasy)」를 각각 키보드와 기타만으로 단출하게 표현했어요. 이를 통해 무엇을 보여주고자 했는지요.


Saori : 큰 공연장이기 때문에 미니멀한 것을 하고 싶어 이 연출을 넣었습니다.

 

로커로 변신한 DJ LOVE씨의 퍼포먼스가 인상적이었어요. 본인의 아이디어였나요.


Saori :매 회 DJ LOVE 코너가 있는데, 그 이야기를 멤버 전원이 나누고 있고, 자연스럽게 이런 콘셉트가 되었습니다. 이 퍼포먼스 전에 영상에서 멤버들이 집에서 이야기 하는 회상 장면이 있는데 바로 그런 느낌의 대화였어요.

 

라이브 연출은 Saori씨가 담당하고 계신 것 같은데, 어떤 식으로 누구와 아이디어를 발전시키는 건인지? 스태프에게 “그런 건 무리에요”라고 들은 적은 없나요


Saori : 스태프들은 무리라고 얘기하지 않는 것을 모토로 삼고 있어 무리란 말을 들은 적은 거의 없어요. 그래도 무리라고 느껴질 때는 다른 아이디어를 가져다주곤 해요. 하고 싶은 것들은 항상 몇 가지씩 가지고 있는 편이고, 라이브가 있을 때 선택해서 그걸 중심으로 연출을 생각하죠.

 

곡마다의 이야기를 담아내기 위해 각각의 연출에 어느 때보다 많은 신경을 쓴 것 같았습니다. 「Death disco」에서 무대 전체에 각종 문자를 투영했던 것이나, 첫째 날에 달리기만 했던 전차가 둘째 날엔 날아다녔다(!)라는 리포트를 보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거든요. 가장 연출에 있어서 고심했던 곡은 어떤 곡이었는지, 또한 기술적으로 힘들었던 곡은 어떤 곡이었는지 듣고 싶습니다.


Saori : 「ム-ンライトステション(Moonlight Station)」의 공중열차가 아무래도 가장 실현시키기 힘들었어요. 그건 바람 같은 날씨의 영향도 있고, 저희들의 예상만으로는 실현할 수 없는 부분이 있어서 몇 번이나 실험하고 테스트했지만 좀처럼 정밀함을 유지할 수가 없더라고요. 사실 저희들도 둘 째날 본 공연에서 본 게 첫 성공이었어요.
기술적으로는, 신곡 「ANTI-HERO」나 「SOS」에 테크니컬한 프레이즈가 많아 힘들었습니다. 어쿠스틱 코너도 비슷하게 집중력이 필요한 파트였어요.

 

지난 < 炎と森のカニバル >나 < Tokyo Fantasy >와는 또 다른, 세카이 노 오와리 최대 규모의 단독공연이었습니다. 과연 이번 < Twilight City >는 본인들이 추구하는 이상향에 얼마나 근접했는지, 공연이 끝난 지금 100점 만점을 기준으로 점수를 매겨볼 수 있는지, 그리고 그렇게 점수를 매긴 이유도 듣고 싶네요.


Saori : 80점 정도 주고 싶어요. 할 수 있는 한 모든 것을 했지만 한 번 더 한다면 더 잘 할 수 있는 것도 얻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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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편성에 관해

 

먼저 팀의 유래가 궁금합니다. 라이브하우스를 직접 만들고, 그곳을 거점으로 활동을 시작했다고 알고 있는데요. 라이브하우스 클럽어스(clubEARTH)의 제작배경 및 팀의 결성계기를 간단한 게 말씀해주신다면요.


Nakajin : 처음엔 저와 Fukase가 시간에 상관없이 제작을 할 수 있는 스튜디오 같은 이미지로 시작했어요. 단지 스튜디오면 동료들이 늘지 않을 것 같아서, 사람들이 모이기 쉬운 장소로 만들기 위해 형태를 라이브 하우스로 바꿨죠. 그렇게 하니 많은 사람들이 협력해 주었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팀이 만들어졌습니다.

 

리듬파트가 없이 투 기타와 피아노, DJ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의 포지션을 구축하게 되었는지 궁금하네요. 처음부터 의도한 구성이었나요.


Fukase : 처음엔 드럼과 베이스를 넣으려고 오디션도 열고 여러 시도를 했었는데, 생각만큼 되질 않았어요. 좀처럼 정착이 안 되니까 “이대로라면 그룹 만들기 전에 늙어 죽겠어!”라는 위기감이 들었고, 그럼 지금 할 수 있는 친구들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것이 바로 지금과 같은 기타, 피아노, 보컬, DJ의 구성이었죠.

 

모든 멤버가 각자 해보고 싶은 음악스타일이 있을 것 같은데, 팀 색깔은 철저히 보컬 중심으로 가는 것 같아요. 이 부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DJ LOVE :그건 잘못 보신 것 같아요. 다만 콘셉트를 구상하는 게 보컬을 맡고 있는 Fukase라서 그런 인상을 받으실 수도 있습니다. 때문에 그런 생각이 완전히 잘못됐다고 할 수는 없겠죠.

 

Fukase씨는 힙합을 좋아한다고 들었습니다. 혹시 최근 듣고 있는 일본, 해외 힙합 뮤지션이 있다면요?


Fukase : GOMESS입니다.

 

 

밴드 세계관에 대해

 

암울한 밴드명에 비해 곡들은 경쾌하고 밝습니다. 역시 멤버들이 생각하는 '세계의 끝'이 어둡지만은 않기 때문인가요?


Saori : Fukase가 인생의 절망을 경험했을 때, 그 옆에 있던 친구들과 함께 자신이 좋아하던 음악을 전력으로 시작해 보자라는 생각으로부터, 그 스타트 지점을 가리키는 의미로 세카이 노 오와리(世界の終わり:SEKAI NO OWARI=세상의 끝)라고 붙인 것이 밴드명의 유래입니다. 그래서 이름의 어감은 언뜻 보기엔 네거티브하지만, “세상의 끝에서부터 시작해 보자”라는 긍정적인 팀명이에요.

 

어려보이는 목소리가 팀의 특징이자 굉장한 매력이지만 곡에 따라서는 고민이 되기도 했을 것 같습니다. 좀 더 어둡게, 혹은 성숙한 느낌을 주고 싶을 때도 있었을 것 같은데, 그런 경우엔 어떤 식으로 해결하셨나요?


Fukase : 어두운 곡은 억지로 속삭이듯 부르는 것으로 해결합니다.

 

한국을 방문했을 때도 스크린에 번역된 노랫말을 띄웠던 것처럼, 세카이 노 오와리의 음악은 가사가 굉장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습니다. 삶, 죽음, 천사, 악마, 생명, 전쟁 등과 같은 키워드의 일반적인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만드는 후카세의 철학과 이로부터 비롯되는 고정관념의 타파가 많은 사람들에게 어필하는 것이 아닌가 싶은데. 평소 어떤 생각으로 가사를 쓰며, 그 생각의 배경에는 무엇이 있는지 궁금하네요.


Fukase : 일상에서 생겨나는 슬픔과 고통을 표현하고, 그 곳으로부터 이제 어디로 향해 갈지를 생각하며, 웃는 얼굴인 채로 눈물이 나올 것만 같은 가사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가사나 곡 분위기 등에서 드러나는 세계관이 어린이들이 듣기에는 좀 과격, 우울하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Fukase : 때로 현실은 과격하고 우울합니다. 그렇기에 어린이들에게는 허구를 보여주는 대신 현실엔 과격함도 우울함도 있지만, 그래도 인생은 멋진거야라는 메시지가 전해지는 편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해요.

 

한국에서도 가사에서 드러나는 후카세의 내면을 좋아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반면 진지한 면모로 하여금 접근하기 힘들다는 대중들도 있는 것이 사실이고요. 그리고 이러한 시선은 현지에도 꽤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이 점에 대한 본인들의 생각은 어떤지 듣고 싶습니다.


Fukase : 사람들이 각각 다른 면을 가지고 있기에 일어나는 현상이라 생각합니다.

 

노랫말도 노랫말이지만, 다큐나 여타 인터뷰를 보면 자의적으로 고독해지고 고립되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에 반해 상당한 유명세를 갖고 있는데, 이런 괴리감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으신지요.


Fukase : 자의적으로 고독해지고 고립되려고 하는 경향은 전혀 없습니다. 저는 전혀 그 반대로 사람들을 사랑하고, 외로움을 잘 타는 사람이에요(웃음). 만약 가사에서 그런 인상을 받으셨다면 전체적으로 가사의 의도를 잘못 이해하고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렇게 생각한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데, 목소리와 표정에 그 원인이 있는 게 아닌가 스스로 생각하고 있어요.

 

곡마다 다양한 '불안감'이 있어요. 밝으면 밝은 대로 어두우면 어두운 대로 각자 나름의 불안감이 곡 안에 스며들어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시는지요.


Fukase : 앞 인터뷰에서도 말한 것처럼, 불안감으로 끝나는 곡은 하나도 없습니다. 제가 만드는 곡은 응원 곡이고, 제 팬들도 그렇게 느끼고 있을 거라 생각해요.

 

 

작품 변화에 대해

 

음악적으로도 꽤 많은 변화가 있었어요. < Earth >가 어느 정도 록의 포맷을 유지하면서 이뤄낸 음악적 성취였다면, 메이저 데뷔 이후, 그러니까 「眠り-」 부터는 완연한 팝노선으로 옮겨간 듯한 인상이었습니다. 그 후 「RPG」라는 대히트곡이 탄생했고. 이후의 싱글은 어느 스타일에도 국한되지 않은 자유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데. 음악적 변화에 있어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지요.


Nakajin :< ENTERTAINMENT >라는 작품이 완성됐을 때, '지금 타이밍에 가지고 있던 음악성과 스킬이 하나의 앨범으로 표현됐구나'라는 것을 느꼈어요. 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 타이밍의 저희들이었고, 다음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저희들의 작품이나 표현과는 또 별개의 것이었죠. 새로운 작품을 만들기 위해 저희들이 하고 싶은 것과 그간의 발상들을 소중히 여기면서 도전을 이어나갔고, 동시에 팝적인 것을 만들어 내자라는 의식에서 탄생한 최초의 작품이 'RPG'였어요. 「RPG」가 있었기에, 다음으로 「スノマジックファンタジ-(Snow magic fantasy)」와 「炎と森のカ-ニバル(불꽃과 숲의 카니발)」이 나올 수 있었고, 「Dragon Night」를 거쳐 앨범 < Tree >가 만들어 졌다고 생각합니다.

 

가사 역시 전에는 키워드에 대한 생각들을 스트레이트하게 전달했다면, < Tree >에 오면서 가상의 인물과 세계관에 빗대 표현하는, 흔히 이야기하는 '판타지'의 측면이 극대화 된 것 같은데요. 의도한 부분인지 아니면 본래 자신이 구사하는 작법 중 하나인지 궁금합니다.


Fukase :표현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 Tree >를 들으며 느낀 것이지만, 수록곡 속 인물들은 아픔이 있고, 상처가 있고, 마냥 즐거울 수만은 없는 내면의 갈등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이와 같은 '결핍'이 있는 자가 그 결핍을 메움으로서 닿을 수 있는 '평범함'이 세카이노 오와리가 갈구하는 판타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또한 세카이 노 오와리가 생각하는 '판타지'의 정의를 듣고 싶습니다.


Fukase : 판타지에서 중요한 것은 리얼한 측면이라고 생각해요. 현실을 얼마나 제대로 묘사하고 있느냐가 판타지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멤버 각자가 정의한 그 '판타지'에 가장 부합하는 자신들의 곡은 무엇인지요.


Nakajin : 저희들에게 있어서의 판타지는 형태를 바꾸는 것이라 생각해요. 최신 곡이 항상 저희들의 판타지를 표현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은 「ANTI-HERO」가 그 모드에요.


Saori : 「スノ?マジックファンタジ-」입니다. 가사에 나오는 등장인물의 실제 모델이 없기 때문이죠.


Fukase : 저는 「Dragon Night」요.


DJ LOVE :「ム?ンライトステ-ション(Moonlight station)」입니다.

 

한국에서도< Tree >의 음원서비스가 시작됐는데, 이 앨범으로 전달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 알고 싶네요.


Nakajin : 어느 부분을 어떻게 들으셔도 세카이 노 오와리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꼭, 여러분이 좋아하는 곡과 만나시길 기대해요. 그러면 정말 기쁠 것 같아요.

 

일본에서 7월에 싱글 「ANTI-HERO」가 발매되었습니다.(국내에도 음원 서비스 중) < 진격의 거인 Titan on attack >의 주제가로 알고 있는데요.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분위기의 곡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간단히 소개를 부탁드릴게요.


Fukase : 이번 곡을 제작하는 동안 많은 대화를 나눴고 또 여러 아이디어가 나왔어요. 영화가 여러 나라에서 개봉되는 것도 요인 중 하나였지만, 곡의 분위기와 멜로디를 보니 영어가 더 적합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영어가사를 붙였습니다.

 

오울 시티(OWL CITY)의 「Tokyo」에도 참여했고, 이번 「ANTI-HERO」싱글도 미국에서 작업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영미권 진출도 염두에 두고 있으신지요.


Nakajin :물론이죠. 저희들이 만든 작품이 전세계에 전해질 수 있길 바랍니다.

 

 

음악 작업에 대해

 

가사의 이미지를 구현하기 위해 사운드 측면에서 많은 시도를 했었죠. 불꽃놀이 소리나 심장 소리를 비트로 쓰고, 야외에서 혹은 콘서트홀에서 녹음을 한 적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결국 세카이 노 오와리의 음악은 '표현'에서 나아가 '전달'에 궁극적인 목적이 있다고 보면 될까요.


Nakajin :평소라면 스튜디오에서 녹음하는 게 스탠더드라고 생각하지만, 저희는 공간의 울림과 곡의 스토리성을 포함해서 레코딩하고 싶었기에, 다양한 레코딩 아이디어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샤미센 등 일본 전통 악기의 소리를 곡에 넣기도 했는데, 다른 나라 전통 악기 소리를 소스로 활용해볼 생각은 없는지요. 그리고 앞서 이야기했듯 악기가 아닌 것에서 소리를 뽑아 낸 것도 많은데, 그 중 가장 만족스러운 것은 무엇인지 듣고 싶습니다.


Nakajin : 편곡 시 전세계 다양한 악기로 시험하기 때문에, 가능성은 열려 있습니다. 최근에 새로 알게 된 민속악기도 많이 있고요. 작업하면서 가장 만족했던 것은 역시 불꽃놀이 소리로 만든 킥입니다. 「炎と森のカ?ニバル」란 곡에서 사용했죠. 소리를 녹음하기 위해 3~20호의 불꽃을 터트려서 소리의 차이를 비교하기도 했어요. 그러고 보니 제 컴퓨터 속에 다양한 소리의 샘플소재가 점점 늘어나고 있네요.

 

개인적인 체감상 한국 일본음악 커뮤니티에서 쟈니즈나 AKB 다음으로 많이 올라오는 글이 세카이 노 오와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미디어 노출이 많고 사생활도 공공연히 오픈하는 덕분에 이에 따라오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굉장히 화제가 되기도 하는데. 이런 것들도 본인들의 음악을 완성하는 한 부분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Fukase : 대단히 영광스런 일입니다. 저는 아마, 연예인으로서의 자각이 없는 것 같아요(웃음). 하지만 그걸로 괜찮다고 생각해요. 제가 저로 계속 있는 게 밴드에서의 제 역할이니까요.

 

이건 여담인데요. LOVE씨는 얼굴 괜찮으신가요? 가면 때문에 피부 트러블이 있진 않을까 걱정이 되어서요. 매년 여름 록 페스티벌에서 고생이 많을 것 같습니다.


DJ LOVE : 한 번 습도를 쟀더니 스팀사우나 같이 90%가 넘어가길래 어쨌든 피부에는 좋은 게 아닌가하고 멋대로 생각하고 있어요. 힘들지만 항상 있는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세카이 노 오와리가 아직 친숙하지 않은 분들을 위해 팀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Nakajin :사이좋은 4인조 그룹입니다!

 

 

진행 : 조아름, 황선업
정리 : 황선업
사진제공 및 취재협조 : 제이박스 엔터테인먼트(J-BOX Entertainment)

2015/08 황선업(sunup.and.down16@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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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컨설턴트 이경태 “가격 파괴가 아니라 원가 파괴를 해야 성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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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국세청 발표를 보면 지난 10년간 새로 문을 연 가게는 949만 개, 그 중 가장 많은 업종을 차지한 것은 단연 식당이었다. 그러나 이보다 훨씬 중요한 지표는 생존율이다. 살펴보니 불과 16% 밖에 되지 않았다. 이쯤 되면 여기가 ‘창업하기 좋은’곳인지 ‘망하기 좋은’곳인지를 가만히 생각해 보게 된다. 대박 식당 사례가 줄을 이루고 대박 난다는 아이템은 주구장창 쏟아지지만 성공은커녕 생존을 하는 식당이 16%라니 식당을 ‘평생직장’ 삼아 개업하는 사람은 도리어 희소하게 느껴진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대체 왜 식당을 차리나? 창업컨설턴트 이경태 소장은 “장사는 인생”이라고 말하며 충분한 공부, 준비 없이 식당 개업하는 것을 두고 “그러니까 망”한다고 어조를 높였다. 프랜차이즈에 가맹하면서 자기 인생을 남한테 맡긴다고 지적했다. 다시, 국세청의 지표를 본다. 이경태 소장의 지적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정답이라고 일컬어지는 ‘카더라’ 통신 몇 가지가 있다. 첫째, 식당은 원가의 비중이 35%를 절대 넘어서는 안 된다는 것. 둘째, 고정비(인건비)를 낮춰야 돈을 번다는 것. 셋째, 주인이 주방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무수한 잘못된 정보들이 진실인양 돌아다니는데 일일이 다 거론하지는 않겠다. 필자가 볼 때 이 세 가지 잘못된 상식만 깨뜨려도 장사는 좀더 쉬워질 것이다.(101쪽)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한 번 쯤은 대박집의 꿈을 꾼다. 불안한 노후를 만지작거리면서 괜찮은 아이템을 찾아 헤맨다. 잘되는 집들을 찾아다니고 이 정도는 나도 할 수 있겠다고 사업 구상을 해본다. ‘평생직장’이 되는 식당의 달콤한 꿈을 꿔본다.


『평생직장 식당』은 이경태 소장의 열 번째 책이다. 그런 만큼 자신의 20년 노하우를 꼼꼼히 담았다. 물론 전부 담지는 않았다. 다만 공부해야 한다는 사실, 마인드를 바꿔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며 섣불리 식당 창업에 나서지 않도록 했다. 결국, 요행은 없고 철저히 준비해 남과 다른 것을 만들어내는 것, 그 방법 외에는 길이 없는 것이 아닐까. 그의 말마따나 ‘장사는 인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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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을 왜 남한테 맡기나?


500만이 넘는 인구가 자영업에 종사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러면서도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은 별로 없는 것 같고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러니까 망하는 거예요. 마지못해서 하는 거예요. 밀려서, 쫓겨서 하는 거죠. 40세가 넘으면 취직할 데가 진짜 없어요. 아무리 기술이 있어도 연줄이 있지 않은 한 너무 힘들어요. 그런데 아이들은 중, 고등학생이에요. 어떡해요? 할 일은 없고, 그나마 조금 모아놓은 게 있으니까 ‘이거나 한 번 해보자’하는 거죠. 항상 말이 ‘이거나’예요. ‘이걸 해보자’가 아니라 ‘이거나’인데 그게 되겠어요? 생각이 틀렸죠.


학교 가려면 공부 많이 하잖아요. 학원도 많이 보내고요. 왜 그러겠어요? 조금 더 점수 잘 나와서 좋은 학교 가라고 공부시키는 거잖아요. 장사는 인생이에요. 인생을 걸고 하는 건데 공부를 진짜 안 해요. 뭐가 뭔지도 모르고, 절차도 몰라요. 프랜차이즈 가맹이나 하고요. 체인점 하나 하면 본사가 알아서 해준다고 생각하죠. 내 인생을 왜 남한테 맡겨요? 또 한 가지 문제는 무료 창업 강좌가 너무 많다는 거예요.

 

강의가 많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건 뭔가요?


악순환이 계속 돼요. 국가에서 공짜로 교육을 시키려면 누군가 강의를 해야 하잖아요. 강사료가 너무 싸요. 강사 입장에서, 불러줬으니 가긴 가는데 돈은 안 된단 말이에요. 그런데 돈은 벌어야 하고요. 그러니 가서 무슨 얘기를 하겠어요? 알짜배기 정보보다 영업과 관련된 얘기를 하는 거예요. 귀에 쏙쏙 들어오는 자극적인 얘기만 하고요. 이게 첫 번째 잘못된 점이고요. 두 번째는 배우러 가는 사람이 돈을 안내면 안 돼요. 교육을 신청해놓고 안 가도 손해 보는 게 없죠. 가서도 다 자고 있고요. 돈을 썼다면 지불한 만큼 얻으려고 하겠죠. 상담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지인에게 소개 받은 분에게 돈 내라고 못 하잖아요. 공짜로 상담을 해줄 때가 있어요. 나중에 그거 하는지 물어보면 안 한대요. 돈을 안 냈기 때문에 좋은 기회를 제시해줬음에도 불구하고 안 하는 거예요. 그럼 누가 손해일까요?


공짜 교육을 찾아 간다는 게 문제예요. 국가는 그게 지원인 양, 복지인 양 하는데 절대 아니죠. 완전히 방법이 잘못됐어요. 오히려 국가에서 시험을 보는 게 좋아요.

 

책에서도 그런 내용을 적으셨죠. 시험을 치러야 한다고까지 말하는데요. 진짜 시험을 치르자는 건 아닐 테고, 그 정도로 말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물론 말도 안 되는 얘기죠. 하지만 시험에서 떨어지면 창업을 못하게 하는 건 사회구조를 더 건강하게 만드는 거라고 생각해요. 창업을 많이 하면 고용이 늘어나겠죠. 그러니까 창업을 지원해요. 그러나 그건 잠깐이에요. 그 사람들이 망해서 가계부채가 늘어나는 걸 생각해야죠. 가계부채가 늘어나는 것도 나라가 떠안아야 하는 문제잖아요. 시험을 봐서 합격할 때까지 식당을 시작하지 않겠다는 마인드가 생긴다면 정말 좋겠죠.

 

공부하라고 계속해서 당부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은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겠죠.


주변에 장사한다는 사람 있으면 어떻게 할 건지 한 번 물어보세요. 아무 생각도 없을 걸요.(웃음) 박람회 가보고 좋다는 거 한 번 보지, 스몰비어가 뜬다는데 그거 한 번 해보지, 이런 식이에요. 우리 엄마가 음식 잘한다고 하면서요. 엄마는 시간을 오래 들이잖아요. 식당이 어떻게 엄마 음식보다 맛있겠어요. 절대 안 되죠.

 

값비싼 상담 노하우를 책으로 내셨잖아요. 괜찮은가요?(웃음)


괜찮은 이유가 있어요. 책을 보고 실제로 따라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아마 백 명 중 다섯 명도 안 될 거예요. 95명은 ‘좋다! 나중에 써먹어야지!’하고 잊어버려요. 바로 실행하지 않는단 말이죠. 메모를 아무리 해도 메모 자체를 안 보는데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5% 정도에게는 도움이 될 거예요. 또, 이런 것들도 다 줄타기거든요. 예를 들어 번성하고 있는 고깃집에 점심 메뉴 제안하는 것과 파리 날리는 고깃집에 점심 메뉴 제안하는 건 전혀 달라요. 똑같은 크기, 똑같은 인테리어라고 해도 말이죠. 책에서 제안한 내용이 좋긴 하지만 아무렇게나 가져다 쓰면 오히려 역효과가 될 수도 있어요. 그래서 당당하게 보여주는 거예요. 이 내용을 눈치껏 잘 가져다 쓰는 사람은 그것도 그 사람의 재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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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깨지 않으면 망한다


사실, 월세, 권리금, 설비비, 고정비, 점포 발굴 등등 알아야 할 것들이 너무 많더라고요. 식당을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알아야 할 것 한 가지를 꼽는다면 가장 먼저 무엇이 있을까요?


가장 먼저 준비해야할 것 한 가지라면 생각을 깨는 거예요. 생각을 깨지 않으면 종로에 가서 해도 망하고요, 권리금을 많이 주고 들어가도 망하고요, 월세가 비싼 가게를 들어가도 망해요. 생각 자체가 달라야 해요. 백 원 어치를 팔면 70원이 남아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해요. 이 생각을 못 버리면 모든 게 다 안 맞아요. 인건비도 아깝고, 재료비도 아깝고, 뭐 하나 더 달라고 하는 것도 아깝죠. 30원 안에서 모든 걸 다 풀어야 하기 때문인데요. 남들과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여건이 아무것도 없지만 하나, 생각을 잘하면 이길 수 있어요. 다른 집이 냉면 팔아서 이문 남기고, 만두도 팔아서 이문 남기려고 할 때 나는 냉면만 이문을 남기겠다, 왕만두는 노마진으로 주겠다고 한다면 이길 수 있어요. 그 생각 하나만 잘하면 말이죠. 저 집은 냉면도 하고 쫄면도 하는데 나는 비빔냉면 하나만 하겠다, 이 생각만 갖고 있으면 언젠가는 역전시킬 수 있어요.

 

판매가 대비 원가비율 35%, 인건비 낮추기, 주인이 주방에 있기 등 ‘카더라 통신’ 3요소를 모두 깨라고 조언했어요. 파격적인데요.


원가 35%를 맞추려면 절대로 좋은 재료를 쓸 수 없고요. 절대로 남보다 더 줄 수가 없어요. 남과 똑같은 가격을 갖고 팔면서 남보다 더 줘야 이길 것 아니에요? 아니면 맛있게 주거나 말이죠. 하지만 맛있게는 줄 수가 없어요. 10년 한 사람을 3일 배운 내가 어떻게 이겨요. 그럼 뭔가를 더 줘야 하는데 원가 35% 안에 막혀 있으니 방법이 없어요. 또, 창업 전문가들이 흔히 말하죠. 인건비에서 아껴야 한다고요. 인건비에서 아낄 것 같으면 아예 안 하면 돼요. 어느 기사를 봤어요. 가족이 일을 하니 ‘착한 가격’에 서비스가 가능하다는 내용이었어요. 아니, 가족이 행복해지려고 식당을 하는 거지, 남한테 착한 가격으로 국밥을 주기 위해 왜 일을 해야 하냐고요. 그건 아니잖아요. 진짜 그 기사를 보고 너무 화가 났어요.


음식은 외식 사업이 아니라 서비스 사업이에요. 사람이 만들고, 사람이 날라다 주고, 손님의 시중을 사람이 들어줘야 하잖아요. 사람이 없으면 안 돼요. 인건비를 무슨 수로 줄여요? 인건비의 연장선에 주인이 주방에 있기도 깨야 하는 건데요. 주방 인건비가 제일 비싸기 때문에 주인이 주방에 있잖아요. 거기까지는 좋아요. 하지만 손님은 식당에 갈 때 음식만 보러 가는 게 아니에요. 한두 번이면 모르겠지만 여러 번 갔을 때는 주인이 나를 좀 알아봐줬으면 하는 마음이 다 있어요. 그런데 가면 주인은 늘 주방에 있어요. 직원만 보죠. 직원한테 ‘저 단골인 거 아시죠?’해봐야 답이 없어요.

 

지켜야 한다고 알려진 3요소가 오히려 식당이 성장하는 데 방해가 된 셈이네요.


진짜 이 세 가지는 반드시 깨져야 해요. 창업 전문가들도 어디 가서 이런 얘기는 하지 말아야 해요. 프랜차이즈들은 어쩔 수 없어요. 인건비가 적게 들어간다고 해야 가맹점을 끌어 모을 테니까요. 하지만 창업 전문가들, 기자들은 정확하게 얘기를 해줘야죠. 가격이 싼 게 능사가 아니잖아요.

 

싼 가격 때문에 손님을 끄는 집들도 많이 있잖아요.


가격이 싼 것은 증폭의 힘이 없어요. 싸다고 하는 집은 가격이 싸서 인기 있는 게 아니에요. 가격에 비해 훨씬 더 많은 것을 주기 때문에 인기가 많은 거거든요. 손님은 가격만 가지고는 절대로 현혹되지 않아요. 차라리 7천 원짜리에서 3천 원 더 받고, 그 추가된 3천 원은 100% 재료비에 쓴다고 하면 정말 끝내주는 게 나올 수 있거든요. 아주 간단한 거예요. 떡라면이라고 500원을 더 받는데 떡은 겨우 대여섯 개만 넣어주잖아요. 이해를 못하겠어요. 그런 경우가 정말 주변에 많아요. 그걸 딱 깨서 다른 것을 한다면 이기는 거예요.


이번에 백종원 씨가 빽다방으로 완전히 어퍼컷 날렸잖아요. 사이즈도 크게 주는데 가격도 싸요. 테이크아웃 위주로 하니까 가게가 작아도 되고, 인테리어 비용도 안 들고, 창업자 입장에서도 이쪽이 훨씬 더 좋죠. 이제 기가 막히게 커피 시장이 재편될 거예요. 울며 겨자 먹기로 대형 매장의 카페도 가격을 내릴 수밖에 없어요. 지금 팔던 가격을 절대 유지할 수 없어요. 옆에 빽다방이 있으면 말이죠.

 

프랜차이즈 사업장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프랜차이즈는 점포를 파는 거거든요. 그러려면 이 점포가 팔릴만한 것을 만들어놓아야 해요. 예쁘게, 그럴듯하게 만들어놓아야 해요. 그걸 턴키로 팔아넘기는 거예요. 그게 프랜차이즈예요. 걔네는 분명히 고급화전략을 지향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그렇지 않으면 점포가 안 팔려요. 그들이 노리는 건 똑똑한 사람들이 아니에요. 돈 많고, 게으른 사람들을 노리는 거예요. 철저해요. 미안한 얘기지만요. 가맹점주가 똑똑하다는 얘기는 되게 불편한 얘기에요. 본사를 귀찮게 해요. 나중에 분쟁을 일으키죠. 조합을 만들거나, 연합체를 만들거나, 다 똑똑한 사람들이 하는 거예요.

 

프랜차이즈의 목적은 가맹점주의 돈을 벌어주는 게 아니라, 점포를 팔아주는 것이라고요.


가맹점주의 피를, 자산을 뺏어오는 게 목적이에요. 원래 뜻은 그게 아니지만 말이죠. 원래 뜻이 그게 아니라면 또 싸울 수 있어요. 그렇다면 왜 당신이 공급하는 재료가 내가 가서 사는 재료보다 비싼지 설명해달라고 물을 수 있죠. 말이 안 되잖아요. 쌀집에 내가 가서 사면 싼데 왜 본사 마크 하나를 찍은 쌀은 더 비싸냐고요. 거기에 반론을 제기할 본사는 아무도 없을 거예요. 그렇게 해야 유지가 된다? 그럼 유지할 정도만 먹어라 이거예요. 돈을 엄청나게 벌 정도로 해먹지 말고요. 말이 안 되는 거죠.


저는 궁극적으로 점주가 돈을 버는 게 목적이에요. 점주가 돈을 벌게 해야 해요. 그러려면 이 사람들의 생각을 싹 바꿔주면 좋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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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이 자발적으로 마케팅해주는 대박집


이렇게 되면, 마케팅이 가장 불필요하다고 한 말이 이해가 됩니다. 맛집이라고 찾아갔다가 다시는 가지 않는 식당들이 많아요. 그런 경험은 다들 한 번 씩 있을 테고요. 판매하는 음식에 집중하자는 제안이었던 거죠?


손님이 원하는 건요. 내가 지불하는 가격보다 잘 나오는 음식이면 돼요. 맛있는 음식이 아니라요. 맛집이라고 막상 가서 먹어보면 다들 그래요. ‘뭐, 별로다’ 다 그래요. 어쨌든 바글바글한 곳에서 먹고 다녀왔다 인증샷 하나 남기면 끝이죠. 반면 ‘어라? 여기는 1인당 만 원인데 엄청 잘 줘, 대단해’라고 하면 다르겠죠. 제일 히트를 쳤던 게 애슐리에요. 9,900원을 내면 특별한 건 없어도 이것저것 다 먹을 수 있잖아요. 주부들에게 엄청난 거였죠. 가격 대비 성능, 가성비가 좋았기 때문에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죠. 그것처럼 경쟁자와 내가 같은 가격이라 해도, 경쟁자보다 10~20% 비싼 가격이라 해도 손님이 나가면서 ‘정말 이렇게 줘도 남아요?’라는 소리를 들었다면, 그렇다면 내가 이기는 거겠죠.


손님이 원하는 건 가격 대비 만족도고요, 그 만족도가 있으면 왜 만족스러운지를 손님이 전파해요. 맛있다는 건 전파가 안 돼요. ‘그 집 돈까스 진짜, 엄청 맛있어’해야 맛있는 걸 어떻게 더 설명해요? 거기에 구체적인 설명을 하면 달라지죠. 돈까스를 시켰는데, 돈까스보다 더 큰 피자가 나오더라, 어지간한 곳보다 훨씬 나은데 가격은 이렇더라, 하면 전파가 돼요. 그게 마케팅보다 더 효과가 좋죠.

 

손님이 마케터가 되는 거네요.


자발적으로 말이죠. 마케팅 최고의 방법은 구전이잖아요.

 

결국 가격 파괴보다는 원가 파괴라고 하는 건데요. 원가 파괴를 해서 실패한 경험은 없나요? 백전백승이었나요?


원가 파괴를 해서는 실패하지 않아요. 그렇지만 점주가 능력이 없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죠. 자기가 자신이 없으면 말이죠. 점주가 손님 응대를 잘 못하고, 손님과의 스킨십에서 멀찍이 도망가 있으면 실패해요. 손님이 오는데 도망가는 점주가 있거든요. 부끄러워서 그런다는데 미치겠더라고요.(웃음) 계속 그렇게 하면 가게 망할 텐데, 해도 틀이 좋으니까 괜찮대요. 틀은 기본이 되는 거죠. 손님은 이제 점주와의 접점을 쌓아가길 원할 텐데 계속 그러면 안 된다고 했거든요. 결국 넉 달 만에 접었어요.

 

식당 운영이라는 건 한 요소만 잡혀서 되는 건 아니고 굉장히 종합적인 접근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거군요.


그럼요, 그걸 모르시는 거예요. 서비스는 개판이어도 맛만 있으면 된다, 물론 그런 집도 분명 있어요. 하지만 그런 집이 우리가 될 순 없어요. 그런 집은 하늘이 점지한 식당이에요.(웃음) 음식도 별로고, 선불로 받고, 친절하지도 않은데 가면 줄 서서 먹어야 하는 집이 있어요. 산 속 비닐하우스에 목욕탕 의자 놓고 먹는 대박 오리집 있거든요. 따라한다고 되겠어요? 안 되죠. 그건 논외고요. 강의 말미에 항상 하는 얘기가 있는데요. 지금까지 한 얘기 다 잊어도 이거 하나는 절대 잊지 말라고 하는 얘기가 있어요. 손님과 스킨십 하라는 거예요. 손님 이름은 기억 못해도 직함 정도는 알고 있으라고 해요. 무슨 일 하는지는 좀 알고 있어야죠.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어요. 이름까지는 아니어도 ‘이 사장님’, ‘이 과장님’ 정도는 할 수 있잖아요. 그러면서 악수 한 번, 포옹 한 번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예전에 골목마다 있던 비디오 대여점을 생각하면 돼요. 잘 가는 대여점에 신프로가 많아서 가는 게 아니에요. 가면 주인 아저씨가 나를 알아봐주고, 추천해주니까 가는 거죠. 미용실도 마찬가지고요. 여러분이 계속 다니는 곳들을 따져보세요. 뭔가 나와 조금이라도 접점이 있으니까 단골 삼아 그 집을 가는 거죠. 그걸 만들어내야 해요. 장사는 스토리에요. 스토리는 주인과 손님이 만들어가는 거죠. 주인이 없는 스토리는 있을 수 없어요.

 

이기는 장사의 비밀 TIP

 

1. 내주는 손이 부끄럽지 않은 상차림을 만들자.
2. 하나를 판 마진이 아니라 100개를 판 후의 마진을 목표하자.
3. 만든 상차림이 자신 있다면 쓸모없는, 반응 약한 메뉴는 버리자.
4. 반드시 가격 대비 만족도를 채워 넣어야 한다. 손님은 영민하다.
5. 단단한 메뉴가 완성되었다면 나가서 알리자. 발가벗고서라도 알리자.
6. 기다려야 한다. 손님이 내 식당을 인정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7. 그래도 늦는다면 자신의 진심을 반성하자. 수정하자. 더 진심을 다하자.(216쪽)

 

 

마인드를 바꿀 수 있는지 생각해야


책에서 진짜 알짜배기 노하우는 담지 않았다고 하셨거든요.


이 책에는 많이 담겨 있어요. 실제 포스터 넣어서 설명한 부분은 특히 제 컨설팅 회원 분들이 넣지 말자고 반대를 많이 했어요. 공개하지 말라고요. 그건 바로 적용 가능한 거잖아요. 반대를 많이 했죠.

 

요즘 보면 식당 하다가 망해서 가정이 파탄난다, 이런 뉴스들 정말 많잖아요. 그런 것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세요?


대한민국 자영업자 중에 이런 컨설팅이 있다는 것도 모르는 사람들이 80%가 넘을 거예요. 어디 구청에서 무료 강좌가 있다는 것조차 몰라요. 아는 게 없어요. 가게 안에서 전화기나 보고, 손님 오나 안 오나만 염탐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것도 몰라요. 불쌍하죠. 노력을 해야 해요. 공부를 해야 하고요. 그러니 우리 회원들끼리는 기회가 널려있다고 하죠.(웃음) 그들과 경쟁해서 다 이길 수 있으니까요.

 

식당으로 창업 성공의 꿈을 꾸는 많은 사람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식당이 자기 몸에 맞는지 먼저 확인해봐야 해요. 음식을 만들 수 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요. 열두 시간 동안 한 공간에서 버텨낼 수 있는지가 가장 중요해요. 그게 안 된다고 하면 식당은 안 하는 게 좋아요. 그 자체가 힘든데 다른 게 어떻게 되겠어요. 그 안에서 숨 쉬고 있는 것만으로도 힘든데 말이에요. 첫째는 내가 제한된 공간에서 하루 종일, 일 년 내내 버틸 수 있는가를 가장 먼저 테스트 하셔야 해요. 아무 곳에나 가서 하루 종일 있어봐야 해요. 무슨 일이든 상관없어요. 두 번째는 무조건 남과 달라야 살아남는다는 마인드를 완성시키셔야 해요. 좋은 자리를 찾고, 남다른 인테리어를 하고, 괜찮은 메뉴를 뽑아내고 하는 건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돼요. 노력만 있으면 일정 부분 해결이 돼요. 기본적인 마인드는 그런 것과 전혀 상관이 없죠. 마인드를 바꿀 수 있는지 생각해야죠. 옆집은 백만 원 팔아서 오십만 원 가져가는데, 나는 백만 원 팔아서 삼십만 원, 이십만 원도 가져갈 수 있다는 마인드가 되어 있는지를 따져야 해요. 나머지는 기술적, 기능적인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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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직장 식당 이경태 저 | 새로운제안
장사를 하는 점주들에게 주방이 아니라 카운터, 홀에서 일하라고 조언하는 것도 독특하다. 저자는 주인이 홀에서 손님과 스킨십을 하고, 어떤 음식을 남기는지, 먹고 난 후 반응은 어떤지를 점검하라고 말한다. 식당 비즈니스는 커뮤니케이션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 책은 그동안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장사에 관한 9가지 착각과 입지 선정에서 함정에 빠지지 않는 법, 1등 가게를 만드는 장사에 대해 이야기한다. 식당 창업뿐 아니라 지속 경영, 가게 파는 법에 이르기까지 쉽게 정리해 주어 막연하게 장사나 해볼까 생각했던 이들이 평생직장으로서의 식당으로 접근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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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한혜진 “신상백 하나면 운동복이 몇 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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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로, 모델로 긴 시간을 살면서 몸에 대해서는 반전문가가 됐어요. 내 몸이 마음가짐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도 알게 됐고요. 이제 그 시간을 이야기할 때가 온 것 같아요.” 톱모델 한혜진이 『한혜진 바디북』을 펴낸 건, 단순히 ‘내 몸 정말 예쁘죠?’의 의미가 아니다. 긴 시간 동안 아름다운 몸을 갖기 위해 고군분투해온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한혜진 바디북』에는 모델 한혜진의 16년 노하우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녀는 “단 한 번도 살찐 적 없는 시간들을 통과해 어느덧 많이 먹으면 살찌고, 움직임을 게을리하면 더 이상 예쁜 몸을 가질 수 없는 나이에 도달했다”고 고백한다. 자발적으로 책을 쓰게 된 동기이기도 하다.

 

“책 제목을 놓고 고민을 정말 많이 했어요. 한 번 봤을 때 기억에 강하게 남아야지 나중에 찾아보고 책을 살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처음에는 출판사에서 ‘한혜진처럼’이라는 제목이 어떻겠냐고 했어요. 그런데 너무 싫은 거예요. 이거야말로 너무 재수 없는 거 아닌가? 해서요. (웃음) 제가 뭐라고 ‘~처럼’이 될 수 있겠어요. 다만 책을 내고 자신하는 건, 제가 생각하는 아름다운 몸과 건강에 대해 모든 걸 담았다는 거예요. 가집녀, 엉집녀 같은 단어도 제가 만들었어요. 여자 몸의 8할은 ‘엉덩이와 배’이거든요. 더 궁금하시면 책을 보시면 돼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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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괜찮아, 또 열심히 하면 돼


첫 책입니다. 굉장히 여러 모로 신경을 많이 썼다고 들었어요. 출판의 모든 과정에 관여하셨다고요. 완성된 책을 처음 봤을 때, 어떤 기분이었나요?


책이 나왔을 때, 엄청 가슴이 벅찰 것 같았는데 그냥 덤덤하고 허탈하더라고요. (웃음) 책을 만들어본 적이 없었으니까 어색했던 것 같아요. 제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경험이니까요. 사실 준비할 때, 원고를 너무 많이 읽고 고쳐서 책이 막상 나왔을 때는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어요. 뭔가 얼떨떨한 느낌이에요.

 

모델이 책을 냈다고 하면 대부분 화보집일 거라는 예상을 하는데요. 글이 꽤 많더라고요.


주변 분들도 사진집에 가까울 거라고 예상을 많이 하셨대요. 이렇게 텍스트가 많을지 몰랐다면서요. (웃음) 일단 ‘재밌다’라는 의견이 제일 많았고, ‘고생했겠다’, ‘빨리 읽힌다’ 이런 의견들이 많았어요. 일반 독자 분 중에 “앉아서 2시간 만에 다 읽었다”고 말해주신 분도 있어요. 사실 저는 제가 작업한 사진이나 이런 리뷰 같은 걸 잘 안 보거든요. 출연한 방송 프로그램 모니터링을 안 할 정도로요. 그런데 책이 나온 후로는 달라졌어요. 매일 아침 인스타그램에 ‘#한혜진’ 해시태그를 검색해 보고 있어요. (웃음)

 

어떤 리뷰가 특히 기억에 남았나요?


“집에 책이 도착해있길래, 잠깐 읽어볼까? 하고 읽기 시작했다가 다 읽을 때까지 아무것도 못했다” 이런 반응을 볼 때, 너무 기분이 좋더라고요. 모델이 꿈이라서 제 책을 보신 분들도 있고, 운동을 좋아하고 다이어트에도 관심이 많아서 샀다는 남자 독자 분도 있었어요. 사실 다 몰래 몰래 본거죠. (웃음)

 

그런데 책을 쓰면서 가장 먼저 한 생각이 “사람들이 재수 없다고 하면 어떡하지?”였다고요.


사람들이 보기에는 ‘당신은 이미 다 갖추고 있지 않냐?’고 생각할 수도 있고, ‘실패를 해본 적이 없는 네가 감히 어떻게 그런 걸 논하냐?’고 말할 것도 같아서, 고민이 많았어요. 그런데 사실 모든 사람이 제 몸무게 일 수는 없어요. 저도 오랫동안 지켜오던 제 몸무게에 변화가 있었을 때 정말 죽을 만큼 힘들었거든요. 보통 사람이 평균 체중 50kg 대를 20년 동안 유지했는데 어느 순간, 5~6kg가 늘어있으면 당황스럽잖아요. 저도 같은 케이스에요. 40kg였던 사람이 45kg가 되는 거랑, 50kg 사람이 55kg 되는 거랑 같은 거거든요. 몸무게 이야기를 책에 많이 쓴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어요.

 

올해 1월, JTBC <냉장고를 부탁해>에 출연해 냉장고 속 음식들을 공개한 일이 화제를 모았는데요. 모델에게는 옷장 공개보다 더 힘든 일이 ‘냉장고’ 공개라면서요? 함께 출연한 동료 모델 이현이 씨의 식단과 확연히 달라서 더욱 주목을 끌었던 것 같아요.


처음에 현이랑 같이 출연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랑 너무 비슷하면 어떡하나? 고민을 했을 정도였어요. (웃음) 그런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저랑 많이 다르더라고요. 현이가 “선배, 제 냉장고랑 선배 냉장고랑은 완전히 다를 거예요. 걱정 안 하셔도 돼요”라고 했는데, 정말 달랐던 거죠. 제 냉장고가 다큐멘터리였다면 현이의 냉장고는 따뜻한 가족 드라마였어요. 달걀과 고구마를 비롯해 온갖 다이어트 식품으로 점철된 제 냉장고와 달리 현이 냉장고는 집 밥에 어울리는 맛, 각종 밑반찬들이 있었으니까요. 현이한테 “너는 도대체 그런 걸 먹고 어떻게 몸매를 유지하니?”라고 물었더니, “많이 먹고 많이 움직여요”라고 하더라고요. 현이 냉장고 속 반찬들도 현이도 보기 좋았어요. 행복한 유부녀와 다이어트 중인 독거 모델의 차이라고 말해도, 어쩔 수 없을 것 같아요.

 

하지만 대부분의 모델들이 한혜진 씨와 같은 식단을 유지할 것 같은데요.


모르겠어요. 모두가 그럴 것 같진 않아요. 저 같은 경우는 모델들 사이에서도 특수한 경우인 것 같아요. 관리를 많이 한다기보다는 운동, 건강에 특별히 관심이 많은 편이라서요. 외국에서 살았던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아직도 요즘 외국에서는 어떤 음식을 먹는 게 유행인지 많이 찾아봐요.

 

“한국에 여성을 독자로 한 건강 잡지가 없다는 게 아쉽다”는 이야기도 하셨어요.


왜 한국에는 여성이 보는 운동, 건강 관련 잡지가 없을까 생각해보니, “아무도 안 사니까”라는 결론이 아주 간단하게 나더라고요. 또 우리나라는 미국에 비해 초고도비만 인구가 상대적으로 적고, 마른 사람이 대부분이라는 이유도 있을 텐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만 인구가 적기 때문에 건강 잡지가 안 나온다는 건,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기도 해요. 왜냐면 마르기 위해서 건강 잡지를 보는 게 아니라, 건강하기 위해서 잡지를 보는 거니까요. 아시아권 여성들이 여전히 건강에 대해 많은 흥미가 없다는 건,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 하는 부분인 것 같아요.

 

주변에 다이어트를 결심하거나 건강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조언을 많이 해주시나요?


듣고자 하고 물어보는 친구들한테는 얘기를 해줘요. 하지만 몸의 변화를 강하게 느끼지 않으면, 절대적으로 공감하기는 어려워요. 비슷한 경험이 있는 친구들하고는 이야기를 자주 하는 편이고요. 모델들은 몸을 도구로 쓰는 직업군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몸이 망가지게 되면 그 충격이 정신으로도 함께 이어져요. 커리어에 바로 영향을 끼치고요. 일에 대한 의욕이 많이 떨어지고 자괴감이 심해지면서 자신의 상황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아요. 저는 『한혜진 바디북』이 ‘괜찮아. 괜찮아. 또 천천히 하면 돼’ 이런 느낌으로 읽혔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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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친구 고르는 눈으로 트레이너를 찾자


모델을 세 단어로 표현한다면 “변신, 관리, 인내”라고 하셨어요. 단어들만 두고 보면 뭔가 되게 빡빡해 보이고 힘들게 느껴져요.


저도 이 단어들을 쓰고 나서 놀랐어요. 너무 비슷한 단어들이기도 했고, ‘아, 내가 모델이라는 직업을 이렇게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를 깨닫게 됐어요. 변신은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닌, 그냥 단순한 명사일 뿐이잖아요. 어떻게 보면 관리와 인내라는 단어는 직업적으로 굉장히 부정적이고 힘들다는 느낌일 수도 있는데요. 저로서는 ‘너무 힘들게 보이면 어떡하지? 좋았던 건 하나도 없었던 건가’라는 생각이 들면서, 동시에 ‘나 엄청 힘들었나 보다’라는 묘한 느낌이 들었어요. 지인들이 이 글을 보고 너무 걱정을 안 하셨으면 좋겠어요. (웃음)

 

책에서도 느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민폐가 되는 걸 조심스러워 하시는 것 같아요.


일할 때 사람들을 많이 괴롭히는 스타일이에요. 결과에 집중하는 스타일이라 그랬던 거 같아요. 그런데 나이가 조금씩 들면서 과정을 행복하게 즐기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제가 워낙 결과 지향적인 사람이다 보니 어려울 때도 많고, 여전히 같이 일하는 파트너들은 조금 힘들어하지만요. (웃음) 그래도 요즘은 조금 내려놓고 느긋하게, ‘다같이 좋게 좋게 가야지’라는 생각을 하고는 있어요.

 

『한혜진 바디북』에서 인상적이었던 게 패션보다 운동 관련 이야기가 훨씬 많은 점이었어요. 요 몇 년 동안 신나게 탐닉하는 아이템이 운동복이라고요. ‘신상백 하나면 운동복이 몇 벌이야?’라고 하면서, ‘운동복 효과’를 강조하셨어요.


오해하실 수 있는데, 가방을 사지 말고 운동복을 사라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가방은 남자들에게는 뭐랄까 약간 기피의 대상이잖아요. 하지만 여자들에게는 상징적인 아이템이고요. 굉장히 고가이기도 하고 자신만의 아이덴티티를 실을 수 있으니까요. 어떤 의미인지 아시죠? (웃음) 제가 말씀 드리고 싶은 건, 그 아이덴티티를 몸으로 가져가자는 거예요. 중간에서 다리 역할을 해주는 운동복을 입고 스스로 몸을 위해 투자를 하자는 거죠. 컬러가 산뜻한 운동복은 기분 전환에 그만이에요. 운동하기 죽기보다 싫은 날, 컬러가 밝고 화사한 운동복을 입으면 없던 에너지도 불끈 생겨요. 헬스장 최악의 패션은 헐렁한 티셔츠에요. 순면 소재 티셔츠는 땀이 잘 마르지 않거든요. 또 여러 동작을 할 때 말려 올라가기 일쑤라서 도무지 운동에 집중할 수 없어요. 전 운동복을 구입할 때 디자인이 같은 옷을 사이즈 별로 입어봐요. 자주 하는 운동 동작을 해보고 어떤 사이즈가 운동하기에 적합한지를 꼭 따져봐요.

 

공복 상태로 자전거를 타는 방법이 효과적이라고요? ‘공자’라는 별칭도 붙여주셨던 데요. 요즘도 자전거를 꾸준히 타시나요?


그럼요. 스케줄이 없는 날은 헬스장에서 트레이너랑 함께 운동을 하지만 그럴 수 없는 날에는 30분 정도 일찍 일어나서 실내 자전거를 타요. 처음 5분은 무게를 가볍게 설정해놓고 타다가, 무릎의 움직임이 부드러워지면 돌리기 뻑뻑할 정도로 강도를 높여요. 그렇게 15분 정도 타다 보면 땀이 흘러요. 총 30분 정도 타는데, 아무런 스케줄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운동법이라서 지금도 제 몸매의 든든한 지원군이에요. 언젠가는 트레이너가 제 자전거를 보더니 다른 자전거로 바꾸라고 하더라고요. 친구가 선물로 준 자전거인데, 조만간 바꿔야 할 것 같아요. 제 신장에 맞지 않는 사이즈라서 계속 타면 무릎에 무리가 올 거 같다고 해서요. 어떤 자전거가 좋은지 계속 찾아보고 있는데 가격이 천차만별이더라고요. 2천만 원짜리도 있던데, 사실 제 자전거는 15만 원짜리 거든요. 그런데 기능은 정말 훌륭해요. 7년 동안 한 번도 고장이 안 났을 만큼. 다만 제 몸에 안 맞아서 그렇지만요.

 

좋은 트레이너를 알아보는 방법으로 ‘남자친구와 트레이너’를 비교한 꼭지도 재밌었어요. “우리는 좋은 남자친구를 만나야 한다. 그리고 좋은 남자친구를 찾아 헤매는 마음으로 좋은 트레이너를 찾아야 한다. 나쁜 남자친구와 나쁜 트레이너는 우리의 귀중한 시간을 앗아가고, 실망과 좌절을 안겨주기 때문”이라고 썼어요.


책을 쓰면서, 가장 술술 잘 써지고 가장 만족스러운 부분이 바로 이 꼭지였어요. 사람들이 저에게 듣고 싶어하는 부분과 제가 얘기해줘야 하는 부분이 교묘하게 잘 어울러졌어요. 마치 <마녀사냥>과 다이어트가 잘 섞인 느낌이랄까요? (웃음) 쓰면서도 무척 신나게 썼던 것 같아요. 어느 정도는 제가 직접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썼고, 전 트레이너와 현재 트레이너를 비교해가면서 쓴 부분이기도 해요. 책에서 함께 운동법 사진을 찍은 트레이너 분이 현재 저와 운동을 같이 하는 분이세요. 3년 정도 같이 했는데 제일 저랑 잘 맞고, ‘조금 더 빨리 만나서 운동을 했으면 몸이 덜 다쳤을 텐데’라는 생각도 들어요.

 

현재 트레이너 분이 책을 보면 뿌듯해 하시겠네요.


뿌듯해 하라고 쓴 거예요. 더 잘 가르쳐 달라고요. 어느 정도는 뇌물이랄까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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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다잡고 자극을 받을 수 있는 책


이제 ‘모델 한혜진’이라는 타이틀 뒤에 꼭 ‘<마녀사냥>’이 따라붙어요. <마녀사냥>으로 얻은 것과 잃은 것이 있다면요?


아,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데요. 얻은 거라고 한다면 아무래도 인지도겠죠? 사실 저는 방송을 계속 하고 있었어요. 패션 프로그램 MC를 맡은 것도 10년 정도가 됐고요. 그때는 소수의 마니아 층이 있었다면 지금은 대중적인 인지도가 생긴 것 같아요. 이런 부분에서는 프로그램에 대해 굉장히 감사하게 생각해요. 잃은 것은 대외적으로는 없는데, 사실 저는 그렇게 센 성격이 아니에요. 방송이야 편집을 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잖아요. 자극적인 멘트를 더 살리게 되니까요. 그건 방송을 하는 입장에서는 포기하고 내려놓아야 하는 부분이기도 해요.

 

굉장히 솔직하고 자기표현이 확실한 성격이신데요. 한혜진 씨가 보기에 아름다운 여성은 어떤 사람인가요?


기본적으로는 제가 죽었다 깨어나도 못할 것 같은 일들을 하고 있는 분들이 제일 존경스럽죠. 열망이 있지만 저는 할 수 없는 일들, 하지 않고 있는 일들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시기심도 생기고 존경심도 들어요. 사실 시기와 존경은 함께 오는 거잖아요. 좌절을 하는 동시에 자극제가 되는 것처럼요. 가장 가까운 예로 제 어머니가 그런 분이세요. 저는 어머니를 육체적으로 절대 이길 수 없다고 느껴요. 어머니는 할 수 없는 건 없다고 생각하는 주의에요. 무한긍정주의자라고 할까요? 반면 저는 굉장히 부정적인 성향이 있어요. 걱정도 많이 하고 불안한 마음도 항상 많고. 그래서 더 많이 준비를 하는 장점은 있지만 뭐든지 쉽게 가는 경향이 없어요. 제 어머니같이 항상 긍정적인 에너지를 뿜어내는 사람을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열등감도 느껴요. 제가 어머니랑 풀코스 마라톤을 완주하는 게 꿈인데요. 엄마는 사막 마라톤이 목표이신 분이에요. 꿈이 아니라 목표요. 제가 어머니랑 같이 운동을 하면 늘 못 따라가요. 제 페이스를 맞춰주려고 하시는데도 힘들어요. 노력해서 안 되는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자기관리가 확실한 건 어머니를 닮으신 것 같아요. 평소에 어머니가 방송 모니터도 잘해주시겠어요?


어렸을 때 제가 밥을 먹고 있으면, 엄마가 밥을 뺏어서 작은 공기에 덜어서 주시고 그랬어요. “살찌면 네가 하고 싶은 일 못하는데 왜 관리를 못하냐”고. 그런 말씀을 많이 하셨죠. (웃음)

 

모델 후배들을 위한 강연도 종종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후배들이랑 얘기하는 거 되게 좋아해요. 재밌어요. 처음에는 후배들이 저를 어려워할 수도 있겠지만 만나면 그런 편견을 깨는 것 같아요. 밥도 자주 먹고 술도 같이 마시면서 먼저 이야기도 많이 걸고 친해지는 편이에요. 제가 동덕여대에서 이번 학기부터 강의를 맡았는데 학생들이 22살이거든요. 같이 얘기하는 것도 재밌고, 자기네끼리 얘기하는 걸 몰래 듣는 것도 너무 재밌어요. (웃음)

 

<마녀사냥>에서는 여자들의 속마음을 거리낌없이 털어놓는 대변인 역할을 하셨는데요. ‘그래도 이런 여자들은 참 답답하다’ 싶을 때도 있나요?


성격적인 부분에 대해서 제가 말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그 사람의 일부분이니까요. 다만, 자신의 외모에 대해 기본적으로 너무 자신감이 없는 친구들을 보면 조금 안타까워요. 자신의 장단점을 모두 인식하고 있어야 하는데, 장점을 한가지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거든요. 어느 정도는 자신과 외모에 대해 타협을 해야 하는데, 그런 타협점도 없이 계속 얼굴을 고치고 또 고치는, 주변 사람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죠. 안타깝고요.

 

책에서 “일은 재밌게 해야 한다. 꼭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은 하지 말자”고 하셨어요.


회사를 통해 들어오는 일을 고를 수 있고 선택할 수 있다는 게, 진짜 좋은 것 같아요. 그건 위치나 지위를 떠나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고를 수 있는 분들이 많진 않겠지만요. 저는 하고 싶지 않은 일은 진짜 돈을 많이 준다 해도 하지 않는 게 좋다고 느끼고, 그런 결정을 스스로 해낼 때가 저 스스로 가장 대견한 것 같아요. 솔직히 말해서 책 같은 경우에도, 회사에서 먼저 “책을 내보는 건 어때?”라고 제안을 한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시간도 많이 소요되고 이것 때문에 다른 일에도 방해를 받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은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하고 싶은 일을 결정하고 끝까지 마침표를 찍었다는 게, 저에게는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주로 즐겨 보는 책이나 좋아하는 작가가 있나요?


좋아하는 작가는 파울로 코엘료예요. 모든 책들은 다 읽었어요. 읽었을 때 한번에 꽂히는 게 있고, 다시 읽었을 때 또 다른 느낌을 주는 책을 좋아하는데, 파울로 코엘료가 제게 그런 작가에요. 사실 술술 잘 읽히는 책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잘 안 읽히는 책을 계속 끝까지 읽었을 때, 제 것이 되는 느낌이 있잖아요. 그런데 장르 같은 거는 크게 상관하지 않고 다 읽어요. 자기계발서도 많이 읽고요. 아 최근에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친구가 심심할 때 읽어 보라고 추천해줬거든요? 그래서 별 생각 없이 읽었는데, 누운 상태로 한 번에 다 읽었어요. 읽고 나니 해가 떠있더라고요. 정말 재밌었어요.

 

『한혜진 운동법』을 가장 추천해주고 싶은 독자 층이 있다면요?


책을 쓰면서 머릿속에서 기둥처럼 박혀있던 생각은 ‘내가 운동을 게을리하고 마음을 다잡아야 할 때, 다시 꺼내서 읽고 자극 받을 수 있는 그런 책을 써야겠다’ 였어요. 운동법 부분도 제가 평생 동안 주기적으로 하는 필수적인 방법만 소개했고요. 사실 처음에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너무 많아서 글로 잘 풀어낼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거든요. 그런데 쓰면서 글 쓰는 것 자체에 대한 매력을 많이 알게 됐어요. 주제를 잡고 써내려 간 게 아니라, 쓰다 보니까 그 속에서 쓸 만한 소재들이 많이 나오더라고요. 제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 모두를 쏟아낸 책이거든요. 많은 분들이 읽고 재밌었으면 좋겠고 조금이나마 자극이 되면 무척 행복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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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진 바디북한혜진 저 | 삼성출판사
한혜진은 신이 내린 바디가 아니며, 다만 노력하는 여자일 뿐이다. 그 모든 노력을 자신의 첫 책 『한혜진 바디북』에 담았다. 그녀답게 직설적이며 때론 독설도 서슴지 않지만, 숨겨두고 알려주지 않은 팁 같은 건 전혀 없다. 이 책은 운동법‘만’ 알려주는 책이 아니다. 여자가 아름다워지는 데 필요한 네 가지 운동, 식단, 뷰티, 멘탈 관리 노하우를 차근차근 알려준다. 체중계에 며칠에 한 번 올라야 하는지, 헬스장에 갈 수 없는 사람이 매일 운동할 수 있는 환경 만드는 법, 다이어트를 하면서 초콜릿과 짜장면을 즐기는 법, 모델들끼리만 공유하는 뷰티 노하우가 빼곡히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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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섭 “해야 할 이야기가 있으면 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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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안철수 의원의 ‘입’이었던 전 새정치민주연합 대변인 금태섭 변호사의 ‘공개적인 반성문’이 책으로 나왔다. 지난 총선에서 충격의 패배를 당한 ‘야당’이 왜 질 수밖에 없었는지,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솔직하게 털어놓은 동시에 적나라하게 분석했다. 안철수의 진심캠프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왜 그렇게 쉽게 무너졌는지도 알 수 있다. 금태섭 변호사는 현재 새정치민주연합 당원으로 활동하며, 본업인 변호사 일을 하고 있다. 책이 나오자 언론들은 그에게 “어떤 야심이 있길래 지금 이런 책을 냈냐”고 물었다. “이런 책을 내면 공천 받기가 어렵다”는 영리한 충고도 들었다. 그러나 끝까지 책을 정독한 사람이라면 저자의 진심을 읽을 수 있다.

 

금태섭 변호사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는 대한민국 정치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소통의 부재’다. 저자는 “야당이 신뢰를 잃은 이유는 어떤 특정 지점에서 잘못했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사람들은 무언가 일이 벌어졌을 때 야당이 보여주는 대응 방식에 실망한다”고 말한다. 야당이 이기기 위해서 갖춰야 할 조건으로는 ‘야당식 경쟁, 의제 설정, 20대 위원장이 있는 청년위원회, 결단하고 위험을 감수하는 용기’ 등을 제언으로 내놓았다. 책을 다 읽고 나면 ‘비단 정치 이야기만은 아니겠구나’ 싶다. 조직을 이끌고 가는 사람, 조직원들이 읽으면 꽤 찔리고 공감이 갈 책이다.

 

지금 금태섭 변호사에게 물을 수 있는 질문들은 꽤 많다. 현 정부, 정치의 문제점을 꼬집어 달라고 할 수도, 안철수 진심캠프의 문제점을 더 파고들어보자고 부추길 수도 있다. 그러나 웬만한 궁금증은 책을 읽으며 해소가 됐다. 무엇보다 궁금한 건, ‘저자’ 금태섭의 얼굴, 속내였다. 그동안 이런 책을 낸 당원은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뜨거운 실패자’ 금태섭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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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심하기 시작하면 솔직한 글을 쓸 수 없다


『이기는 야당을 갖고 싶다』를 작년 가을부터 준비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근 1년간 책을 쓰셨는데 고민을 많이 하신 흔적이 보입니다. 


작년 11월쯤에 출판사 분들과 만나서 책의 구상 이야기를 하고 초고를 쓰기 시작했어요. 책이 8월에 나왔는데 출간될 때까지 계속 고쳤어요. 정치라는 맥락을 빼고 이야기한다면, 사실 되게 재밌는 이야기예요. 어떤 프로젝트를 갖고 여러 사람들이 만나 일을 했는데, 다들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고 일에 대해 자부심이 컸어요. 어떻게 보면 순수하게 접근한 건데, 일을 참 좋아했고 또 좌절했죠. 저는 사람들이 왜 무엇 때문에 움직이는가에 대해 관심이 많아요. 글 쓰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책으로 써보고 싶었고, 좌절한 저를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뭔가 답을 주고도 싶었어요. 정리를 해야만 위로가 될 것 같아서요. 그래서 대선이 끝나고 계속 책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생각보다 어려웠습니다. 고치기도 많이 했고, 뺀 부분도 많아서 상당히 시간이 걸렸어요.

 

민감한 내용도 많습니다. 어느 정도의 논란, 비판도 예상하셨을 것 같습니다.


검사 시절 <한겨레신문>에 ‘현직 검사가 얘기하는 수사 제대로 받는 법’을 기고했는데, 그 때부터 뭔가를 쓰면 늘 소란스러운 일이 생겼어요. 이번 책도 주변에서 많이 말렸어요. 본래의 의도가 다르더라도 이러저러한 비판이 나올 거라고 걱정을 하셨는데, 저는 이미 몇 번 겪어봤기 때문에 견딜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또 제가 한 번 무슨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면 하는 습관도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든 저로서는 쓰는 게 맞다는 결론이 났어요. 이런 이야기를 듣고 싶은 분들도 있을 거고요. 제 인생에서 자부심이 두 개 있는데, 하나는 두 애들을 안 때리고 키웠다는 거고, 다른 하나는 해야 할 이야기가 있으면 했다는 거예요. 우리나라 정치판에서는 같은 편을 비판하는 게 금기인데, 저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쨌거나 저로서는 폭로 같은 걸 할 생각이 있었던 게 아니기 때문에 가능한 그 쪽으로 가지 않으려고 노력했어요. 또 개인적인 입장을 떠나서 선거나 창당 같은 일을 겪었으면 한 번 검토해볼 만한 이야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비판에 대해서는 크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아무래도 언론에서는 안철수 의원이나 박경철 원장에 대한 이야기가 화제가 됐습니다. 소통 부재의 원인으로 ‘비공식 기구의 발흥’을 꼽으셨는데, “박경철 원장이 별도의 모임을 만들어서 후보와 비공개 회합을 가지면서 선거운동의 모든 면에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밝히셨습니다.


언론에 계신 분들은 대부분 짐작을 하고 계셨지만, 내부에 있었던 사람이 말한 건 처음이니까 어느 정도는 예상을 했어요. 책이 나오고 나서 언론에서 바로 인터뷰 요청이 왔는데, 출간 당일이랑 다음 날은 안 했어요.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따로 있었기 때문에 시간을 조금 보내고 하는 게 낫다고 판단이 됐어요. 그 이후에는 제가 하고 싶은 말도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안철수 의원과 박경철 원장에 대한 이야기가 생각보다 분량이 많지는 않더라고요. 책의 핵심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부에 불과하죠. 그 이야기를 하려고 했다면 책을 안 쓰고 다른 방법도 많았을 거고요.

 

책 제목은 어떻게 나왔나요?


출판사 편집부와 의논해서 정했어요. 처음에는 공적인 일에 대해 기록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있어서 ‘나의 18대 대선 이야기’로 제목을 할까도 생각했어요. 하지만 지난 이야기만 하는 것보다 왜 이 책을 썼는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썼기 때문에 『이기는 야당을 갖고 싶다』가 더 맞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굉장히 빠르게 읽히고 재밌었는데, 큰 글자로 강조한 문장들이 많더라고요. 하고 싶은 이야기, 강조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다고 느꼈습니다.


프롤로그 내용도 서문치고는 많이 썼는데, 강조하고 싶은 내용을 표시해서 편집자 분께 드렸어요. 제가 강조한 부분도 있고 편집자 분의 의견을 듣고 순서를 바꾸기도 하고 그랬어요. 글을 잘 쓰지는 못하지만, 리듬감 있게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저로서는 재밌게 썼다고 생각하는 글을 다른 사람들이 읽으면 좀 다를 때가 있잖아요. 그런 이유도 있었어요.

 

“정말 생각을 많이 했고, 고치기도 많이 했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가요?


지난 대선 일도 그랬고, 앞으로 야당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쓴 부분도 그랬고, 전체가 다 그랬던 것 같아요. 책이라는 게 짧은 글이 아니잖아요. 독자를 생각하면서 쓰게 되는데요. 제 이야기를 읽으실 분들이 같이 진심캠프 활동을 했던 분들도 있고, 반대 노선을 걸었던 분도 있을테고, 단순히 캠프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도 있을 거란 말이에요. 그런데 이걸 다 의식하고 쓰면 솔직한 글이 나올 수 없어요. 조심하기 시작하면 솔직한 글을 쓸 수 없어요. 특정한 독자를 생각하고 머릿속에서 논쟁을 벌이다 보면 균형을 잃을 수도 있고요. 책을 쓰면서 솔직하면서도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여러 입장에 있는 독자들을 만족시킬 생각은 없었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솔직하게 이야기를 해서 듣는 사람들은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제 바람이었어요.

 

저자 소개 글을 보면 “변호사이자 새정치민주연합 당원. 정치에 관심이 많은 대한민국의 보통 아저씨였다”고 써있습니다. 이제는 ‘보통 아저씨’가 아니시잖아요. 정치에 이미 뛰어드셨고 내년 총선 출마 가능성에 대해서도 부정하지 않으셨습니다. 공적인 입장을 너머 정치에 뛰어든 개인으로서의 변화가 궁금합니다.


일단 프로필을 그렇게 쓴 건, 제가 정치전문가가 아니었고 신문이나 보면서 정치에 관심이 많았던 사람의 입장에서 썼다는 걸 분명히 한 겁니다. 어찌됐든 선거에 뛰어들었고, 국회의원이 되거나 의원이었던 사람들 이상으로 정말 열심히 했고, 많이 배웠다는 게 저로서는 감사한 일이에요. 그간 법을 하면서 사람들이 왜 범죄를 저지르고, 자백을 하는지를 살펴봤을 때, 그건 개인적인 영역이거든요. 하지만 정치는 공적인 영역이죠. 물론 출세를 하고 싶다는 개인적인 욕망으로 정치에 뛰어드는 사람들도 있지만, 공적으로 자신이 기여를 하고 싶어 정치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저는 진심캠프에서 일하고 대선을 치르고 합당을 하는 가운데, 사람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잘 알게 됐고 저 스스로에 대해서도 잘 알게 됐어요. 책에서 제가 안철수 의원에게 “더 이상 돕기가 힘들겠다. 떠나겠다”고 말한 내용이 나오는데. 그 때도 같이 함께했던 시간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컸어요. 제가 앞으로 정치를 하든 안 하든, 개인적으로 성장했다는 것은 확실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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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쓴 일이 챙김을 받자고 하는 게 아니잖아요


‘안철수 진심캠프’에서는 상황실장, 새정치민주연합에서는 대변인을 지내셨습니다. 정치에 뛰어들었을 때, 대변인을 할 거라는 예상은 조금도 하지 않으셨나요?


못했죠. 존 그리샴의 『가스실』이라는 소설에 보면 “변호사는 날 때부터 기자를 다룰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와요. 언론 대응을 잘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법조에서 하는 것과 정치에서 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니까요. 대변인을 하게 될 줄은 몰랐죠. 그 때 생각한 건 사법제도를 개혁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많으니까 그에 관한 공약을 만들고, 네거티브를 검증할 수 있겠다는 정도였어요. 

 

진심캠프에서 활동하면서 가장 후회가 되는 것은 무엇인가요?


좋게 말하면 조심했고 어떻게 보면 주저했어요. 그 시점에서는 굉장히 고민한 건데,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지 않을까? 괜히 내가 나섰다가 망치면 어떡하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많이 주저했어요. 법조출입기자들이 법원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무리 잘 알아도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보다는 모르잖아요. 제가 아는 것에 한해서는 이렇다, 저렇다를 말할 수 있고 고민할 수 있는데. 정치라는 건 다른 거니까요. 나서야 하는 순간과 아닐 때를 조절하는 게 어려웠어요. 하지만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기에 후회는 되지 않아요. 그 시점에서는 정말 승리를 위해서 가장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갔으니까요.

 

하지만 결국 실패했습니다.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을 ‘소통의 부재’로 꼽으셨는데요. 어느 곳보다 소통을 강조하는 캠프였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선거 캠프의 메시지는 충분한 토론을 거쳐 나와야 하는데, 진심캠프에서는 이런 과정이 없었어요. 어떤 메시지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불투명했어요. 주제가 적절한지, 내용이 좋은지를 떠나 어떤 절차를 거쳐서 누가 쓰는지도 알 수 없었고, 충분히 검토해서 만든 것인지에 대해서도 확신이 서지 않았어요. 토론에 나가기 직전에 최종 결정 사항만을 통보 받았으니, 방송에 출연하는 우리 측 인사들은 언론에 공개된 내용만 반복할 수밖에 없었죠. ‘앵무새 같다’는 조롱을 듣기도 했고요. 여러 요인이 있지만 비공식 채널이 공식적인 캠프가 힘을 잃을 정도로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 큰 문제였죠. 선거 캠프가 모르는 비밀회의가 매일 열린다면 무슨 사고가 터질지 알 수 없지 않습니까. 캠프에서 공식적인 직책을 갖고 일하는 것은 결과에 책임을 지기 위해서이고, 그래야 책임 소재가 분명해지고 과정을 돌이켜보며 고쳐나갈 수가 있는데, 그러질 못했죠.

 

책을 읽다 굵은 펜으로 밑줄을 그은 문장이 있습니다. “자신이 속한 속사정을 안다는 것은 구성원들에게 자부심과 소속감을 준다. 이것은 무엇과 바꿀 수 없는 힘이고 충성심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보안을 유지할 필요가 없는 일까지 내부 사람들에게 알려주지 않으면 자존심에 상처를 주고 일에 대한 열정도 떨어뜨린다(185쪽)”는 문장입니다. 변호사님이 이 책에서 가장 말하고 싶은 것이 ‘소통의 부재’라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이것은 비단 정치계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그것도 경험에서 나온 건데요. 검찰에 있을 때 어디를 단속한다고 발표하면, 검사가 자기만 알고 있다가 마지막 순간에 밝히는 경우가 있고, 수사관들에게 미리 이야기를 해주는 경우가 있어요. 아무래도 전자의 방법이 단기적인 효과가 크지만, 장기적으로는 그렇게 못합니다. 물론 미리 이야기를 하면 이야기가 샐 위험이 있어요. 업자들과 친한 부패한 사람이 있을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같이 일하는 사람들을 믿어주고 신뢰하면 처음 한 두 번에서는 안 좋은 결과가 나오지만, 점점 스스로 자부심을 갖게 되면 비밀을 지켜요.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잖아요. 법조 출입기자들이 “당신은 밤새가면서 단속도 하고 수사를 한다면서 어딜 하는지도 모르냐?”면서 자존심을 건드리는데, 그 사람을 버티게 하려면 자부심을 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뢰를 줘야 하고요. 그러다 보면 비밀이 있어도 이해를 하게 되고요. 모든 걸 가르쳐주지 않다 보면 일이 어려워집니다. 보안을 지키기 위한 가장 중요한 원칙은 비밀 사항을 최소화하는 거예요.

 

“영리하는 충고는 늘 틀렸다. 영리한 충고를 따랐을 때 결과는 거의 예외 없이 나빴다”며, “상황은 항상 변한다. 위험을 감수하고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현상을 유지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기회를 잃거나 심지어 위기를 맞게 된다”고 지적하셨습니다. 변호사님도 이 책을 내는 과정 속에서도 ‘영리한 충고’를 꽤 많이 들으셨을 것 같습니다. 지금도 듣고 계실지 모르고요.


어떤 판단을 놓고 고민할 때, 저의 선택 기준은 ‘내가 애초에 무엇을 하려고 했나’입니다. 몇 분들은 저에게 “이런 책을 내면 공천 받기도 나쁘고 출마에도 좋지 않다”고 이야기를 하시는데, 이게 당장은 맞는 것 같아도 결국엔 아니에요. 제가 이번에 책을 내고 언론에 나온 반응 중에 실망한 점이 있는데 “총선을 앞두고 노이즈 마케팅을 하려고 책을 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당에 있는 사람이 이런 식으로 책을 내면서 안철수 의원을 비판하면, 안철수 의원도 저를 안 챙겨줄 거고 문재인 대표도 못 챙겨준다. 바보 같은 짓이다”라는 지적이었어요. 그런데 제가 책을 쓴 게 챙김을 받자고 한 게 아니잖아요. 캠프에 모이고 새 정치를 한다고 당을 만든 것도 그런 걸 하지 말자고 한 건데, 이런 말을 하는 건 애초의 목적을 잊은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마지막 부분에 ‘이기는 야당이 갖춰야 할 4가지’에 대해 쓰셨습니다. ‘야당에는 야당식 성공법이 있다. 즉, 경쟁해야 한다’, ‘의제를 설정할 수 있어야 한다’, ‘20대 위원장이 있는 청년위원회가 있어야 한다’, ‘결단하고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분량은 많지 않지만 가장 고민하고 쓴 내용이 아닐까 싶습니다.


가장 좋은 글은 스토리를 쭉 풀어놓고 독자가 스스로 느끼게 하는 글일 거예요. 아주 잘 쓴 소설은 우리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허구 이야기여도 교훈을 주잖아요. 제가 처음 캠프에 뛰어들었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걸 하자”고 생각했어요. 기존에 정치를 하던 분들의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비판적인 눈이 생겼는데, 정치에 대해서 많이 아는 분들이 똑똑해 보이는 충고를 하지만 그게 해답이 아닐 때가 있었어요. 대안을 이야기한 분량이 책의 전체 분량에 비해서는 적지만, 저로서는 굉장히 고민해서 쓴 겁니다.

 

청년위원회에 대해 좀 더 여쭙고 싶습니다. 야당의 청년위원장이 대개 40대, 심지어는 50대의 국회의원이 맡았는데, 이것부터 잘못됐다고 지적하셨어요.


야당은 시스템을 갖고 장기적으로 가는 게 아니라, 그때그때 급조하는 게 가장 큰 문제 중에 하나입니다. 맨날 말은 100년 정당이라고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죠. 지금 청년위원회를 만들면 단지 이번 선거를 포함해 쭉 이어져야 하는데, 항상 지금만 생각하니까 문제입니다. 2012년에 국회의원들이 심사위원이 돼서 ‘나가수’ 식의 서바이벌 이벤트로 청년 대표를 뽑았는데, 그러면 다음 선거는 어떻게 할 건지, 후속 활동은 어떻게 했는지에 대해서도 나와야 하는데, 한 걸로만 끝이잖아요. 많은 분들이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정치에 대해 한 마디씩 하시지만, 사실 굉장히 전문적인 영역이거든요. 사회구조, 경제적인 문제를 모르면 이야기가 안 됩니다. 저희에게 필요한 건 깨끗한 이미지를 가진 정치 초년생이 아니라 결과를 낼 수 있는, 단련된 정치 전문가입니다. 직업으로서의 정치인이 필요해요. 외부의 저명인사를 끌어들여서 쉽게 위기를 넘길 생각은 버리고, 젊은 세대가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해요.

 

평소 페이스북 등 SNS 활동을 활발히 하시는 편이시잖아요. 젊은 분들과 꽤 소통을 잘하시는 것으로 보였는데요. 정치에 관심이 전혀 없는 청년들에게는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으신가요?


글쎄요. 사실 저희가 먼저 고쳐야 하는 문제인데요. 모든 당이 청년 문제를 이야기 한다고 하는데, 나이가 든 사람들이 이야기를 하면 답이 안 나와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으니까요. 청년들이 정치에 관심이 없을 수밖에 없는 건, 본인들의 이해관계나 바라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없기 때문이에요. 요즘 젊은 친구들이 일베를 많이 하는데, ‘어떻게 사람이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하고 넘길 수도 있지만, 그만큼 사람이 모이는 데에는 이유가 있는 거잖아요. 같이 이야기를 해보려는 노력이 필요하죠. 서로의 생각은 다르지만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은 만들어줘야 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듭니다. 우선적으로 저희가 잘 못하고 있기 때문에 크게 말할 수는 없겠지만, 청년 분들도 적극적으로 나서서 참여하고 만들어가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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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책


실제 비판적인 반응이 있고, 그래야 좋은 책이기도 합니다만. 일단 이 책을 읽고 마음이 찔리는 정치인들이 꽤 많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거야 저도 있죠. 이 책을 쓰면서 조심했던 것 중 하나가, 어쨌거나 사람은 자기 입장에서 말한다는 거예요. 혹시라도 책을 읽는 분이 “넌 그렇게 잘났냐?”고 생각할 수 있잖아요. 하지만 그래도 제 입장을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제 생각이 맞다, 잘났다가 아니라 솔직하게 이야기를 해야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도 나오고 그래야 발전이 되는 게 아닌가, 싶었어요. 비판이 일어나지 않는 글은 좋은 글이 아니라고 생각하고요.

 

‘특별히 이 책을 꼭 읽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나요?


아무래도 제가 법률가이기 때문에 법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아요. 결국 법도 사람을 다루는 건데, 이 책도 사람에 관한 이야기거든요. 재판을 하다 보면 이론적인 것을 떠나서 사람을 잘 알아야 해요. 제가 의과대학이나 로스쿨에서 강연을 할 때 자주 하는 이야기가 있는데, 소설이나 연극, 영화를 보는 게 도움이 된다는 거예요. 제가 읽는 책의 90%가 소설이거든요. 소설을 읽으면서 사람을 배워요.

 

소설가가 꿈이시기도 하고, 독서가로도 유명하십니다. 요즘은 어떤 책을 읽으시나요?


최근에 나온 미셀 우엘벡의 『복종』도 재밌게 읽었고, 『라이프 애프터 라이프』도 인상 깊게 읽었어요. 도나 타트의 『비밀의 계절』도 재밌었는데 그의 최신작인 『황금방울새』는 번역이 되기 전에 읽었어요. 정반대의 학문을 읽는 게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많이들 하는데, 한 때는 물리학에 관한 책을 열심히 본 적도 있었어요. 제대로 깊게 파지는 못해도 다양한 책을 읽는 게 좋은 것 같습니다.

 

만약 지금, 일간지 1면이 통으로 주어진다면 어떤 글을 쓰고 싶나요?


저하고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어요. 새누리당이라고 다 틀린 게 아니고, 야당이 하는 이야기라고 다 틀린 게 아니잖아요. 어떤 주제에 대해 서로의 생각을 교환하는 내용을 써서, 사람들로 하여금 판단하도록 하고 싶어요. SNS나 언론들을 보면, 한 방향이 정해져서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만 떠들잖아요. 법조에서도 그렇지만 생각이 정말 다른 사람이 있을 때, 정말 좋은 판단이 나오거든요. 법에 대해서도 저랑 정반대의 생각을 하는 분들이 있는데, 그 분들이 쓴 판결문을 보면 숨이 탁 막히다가도 그것에 대해 반박을 하다 보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생각하게 돼요.

 

현 정치 이슈 중에 가장 관심 있게 보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불평등, 양극화 문제죠. 노동시장 문제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는 게 가장 어려운 문제라고 생각해요. 우리나라는 상위 10%가 50을 가지고 있고 나머지 90%가 50을 나눠야 하는데, 대단히 어려운 문제죠. 우리나라가 얼마 전까지는 고도성장사회였기 때문에 노력하면 어느 정도는 목표를 이뤘지만, 지금은 아니잖아요. 어느 정도 사람들이 안정적으로 살 수 있으려면, 양극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희망도 갖고 아이도 낳고 그러죠.

 

최근에는 정치에 대해 직접적으로 비판하는 글을 쓰신 걸 못 봤습니다.


일단 대변인을 했던 때 만큼은 안 했고, 책을 준비하면서는 조심했어요. 잘못하면 모두까기가 될 수 있으니까요.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모두 책으로 몰았는데, 이제는 또 해야죠. 원래 할 말은 하는 스타일이라서요. (웃음)

 

책을 내고, 뭔가 후련해 보이세요.


가까운 사람들이 “왜 골치 아프게 이런 책을 쓰냐?”는 말을 많이 하셨어요. 저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그걸 안 쓰면 다른 걸 쓸 수가 없어요. 이제는 썼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는 후련합니다.

 

내년 총선 출마 가능성에 대해서 부정하지 않으셨는데요. 결정하신 건가요?


개인적인 일에 대해서는 개인의 계획을 세우고 가는데, 공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기준이 ‘내가 뭘 하는 게 전체에 도움이 되느냐’인데요. 제가 정치에 뛰어들었을 때, 내가 죽어도 국회의원을 해보겠다는 뜻이 있었던 건 아니었어요. 정치라는 게 사회가 나가는 방향에 얼마나 영향력을 끼치느냐인데, 출마는 하나의 수단일 뿐이죠. 내년까지 지켜보면서 판단할 생각입니다.

 

캠프 활동을 하고 선거에 참여하면서 “성장했다”고 표현하셨는데요. ‘성장’의 의미가 궁금합니다.


포용할 수 있는 생각의 폭이 넓어지는 거라고 생각해요. 자기를 잃지 않고 마음을 열 수 있는 게 성장이 아닐까 싶어요. 대학에 다닐 때는 검사들의 어떤 면면들이 되게 싫었거든요. 그런데 검찰에 와서 생각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이해가 되는 부분이 생기더라고요. 정치를 하면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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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는 야당을 갖고싶다금태섭 저 | 푸른숲
법 지식을 본격적으로 대중의 눈높이에서 풀어낸 《디케의 눈》, ‘정의로운 법’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 《확신의 함정》의 저자 금태섭 변호사가 4년 만에 《이기는 야당을 갖고 싶다(푸른숲 刊)》로 돌아왔다. 이 책은 2012년에서 2014년까지 안철수 캠프 상황실장으로 활동하고, 이후 새정치민주연합 대변인을 지낸 저자가 ‘대통령 선거전(戰)’의 한가운데서 직접 보고 겪고 느낀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은 ‘현대판 징비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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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윤경 “빚은 반드시 갚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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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금융, 금융 소외, 은행 문턱이 높다, 는 등의 말에 우리는 속아온 것 같다. 더 많은 사람들이 금융 ‘혜택’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에 호응해 정부의 대출 규제는 계속 완화됐다. 이제 빚을 내는 길은 너무도 많고, 쉬워서 거의 전 국민이 채무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빚이 없다고 생각하는 당신, 지금 지갑을 열어보길 바란다. 꽂혀있는 카드가 몇 장이나 되는지 살펴보시길. 거기 있는 카드도 빚이다. 게다가 야금야금 ‘카드론’, ‘리볼빙 서비스’, ‘현금 서비스’ 등을 통해 당신은 빚을 내고 있지 않은가. 학자금 대출, 전세 대출, 담보 대출 등 빚은 모습을 바꿔가며 일생의 동반자가 되었고 자칫하면 벼랑으로 떨어지기 십상이 된다. TV에서는 끊임없이 카드사, 대부업체, 저축은행의 광고가 쏟아진다. 노래를 부르고, 감성을 자극한다. ‘바쁠 때는 택시도 탄다’는 말도 하고, 카드 쓰는 모습을 멋있게 포장하기도 한다. 이것은 거대한 최면 같다.


『빚 권하는 사회 빚 못 갚을 권리』의 저자 제윤경의 말처럼 금융은 복지가 아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빚을 내기 쉽도록 해서는 안 된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복지다. 그는 말한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꾸 금융 회사에 소비하라고 하는 거잖아요. 먹고 살 돈도 없는데 말이에요. 그런 것을 마치 공공성인 것처럼 금융 소외니, 그런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어요. 복지를 말해야죠.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모피가 필요한 게 아니고 외투가 필요한 거예요.”

 

그가 “파산은 권리”라고 말하는 이유도 같은 맥락에 있다. 빚은 반드시 갚아야 하는 것이 아니다. 방법을 몰라서, 돈이 없어서 삶이 나락으로 떨어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다. “물론 돈을 빌렸으면 갚아야 하는 것이 상식”(16쪽)이지만 “못 갚을 경우 어떤 형태의 형벌도 감수해야 한다는 식의 생각을 강요하는 것은 야만적”(16쪽)이다. 그래서 채권 소각 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바로 주빌리 은행이다.


아직도, ‘그래도 빚은 갚아야 한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면 제윤경이 들려주는 금융사들의 민낯을 꼼꼼하게 들여다보길 바란다. 금융사는 벼랑 끝에 몰린 사람들에게 ‘손해를 보지 않는 게 아니라 수익을 극대화’하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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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국민이 추심원 역할을 하는 셈


인권 침해가 되든 말든 금융사만 안전하면 되느냐는 질문이 날카롭게 꽂힙니다. 은폐된 진실이란 생각도 들고요. 금융 권력, 언론의 견고한 카르텔인데요. 처음 이 문제, 채무자 구제 운동에 빠진 이유가 있었을 것 같아요.


저소득층 경제 교육을 하는데 제일 심각했던 문제가 빚이었어요. 복지를 아무리 연결해줘도 빚이 문제가 되니까 자활 자체에 장애가 되는 부분이 많았어요. 참여정부 때도 빚이 이런 식으로 땡처리 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때는 정부가 구제책을 많이 내놨거든요. 개인 파산 제도도 만들고요. 채무자들이 단체를 만들기도 했었어요. 신불자 클럽, 이런 걸 만들고 활동을 했었는데요. 이명박 정부 들어서 파산의 문턱이 높아지니까 파산이 안 되고, 채권은 계속 유동화 돼서 거래되고 하는 상황들이 지속됐죠. 그런 과정에서 이 문제가 누적이 됐어요. 민원 접수 되는 것들도 보면 잊고 지낸 10년 된 빚에 대해서도 갑자기 대부업체에서 연락이 온다는 내용들이 생기는 거예요. 어떻게 이런 일이 이렇게 방치되고 있나 들여다봤더니 소멸시효 지난 것도 살려서 편법으로 추심을 하고 있더라고요. 심각성을 느꼈죠. 저희가 파산을 도와드리려고 해도 이미 제도는 파산 문턱이 너무 높아진 상태여서 안 됐어요. 힘이 있어야겠다 싶어서 제도개선 운동을 시작했죠. 하지만 모든 시민운동이란 게 제도개선 운동 과정에서는 문제 해결 방법이 없잖아요. 개선 운동하는 사이 신음하는 사람은 여전히 신음하고요. 두 방향으로 가야겠다 싶어서 동시에 지자체에 상담 센터를 만들게 됐어요.

 

책에 담은 사례들이 그 상담을 통해 발견된 것들이었죠?


캠코(한국자산관리공사)가 예전에 캠페인을 했었는데요. 채무자 사연이 너무 많이 접수되니까 저희 쪽에 위탁을 줬어요. 상담을 해달라고요. 2년 전인데요. 그때 내용들도 많아요. 답장 쓰느라 정말 고생했어요.(웃음) 그 과정에서 그 많은 편지들을 쭉 읽는데 공통된 내용들이 있었어요. 책에 공통된 내용이라고 소개한 것들이 다 그 편지에서 뽑은 단어들이에요. 하나같이 죽을 것 같은 심리 상태에 대한 하소연이었어요. 그냥 ‘사는 게 어렵다’ 정도가 아니라 ‘숨도 못 쉬겠다’, ‘전화가 너무 공포스럽다’는 내용들이니까요.

 

정신적으로 완전히 피폐해지는 거죠.


당해보지 않으면 몰라요. 너무 공포에 빠져있죠. 오랫동안 추심을 당하면서 ‘네가 죄인이다’라는 식의 비난을 받아온 거예요. ‘빌렸으면 갚으셔야죠’ 이런 얘기를 하루에 몇 번 씩 여러 차례 통화한다고 생각해보세요. 정말 고통스러운 게 자책이잖아요.

 

채무자를 비난하는, 빚 진 사람이 잘못이라는 사회적인 감수성에 대해서도 지적하셨잖아요.


너무 심하죠. 얼마 전 다른 인터뷰에서도 한 얘기인데요. 솔직히 진보언론도 자유롭지 않죠. 툭하면 도덕적 해이 얘기하고요. 그게 어떻게 도덕적으로 문제 삼을 일인가요. 사적 계약인데 말이에요. 전 국민이 추심원 역할을 하는 셈이죠.

 

지금은 모든 것이 유동적인 상태다. 근대 이후 자유가 늘었지만 자유의 실체는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한다. 병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을 찾았으나 의사를 선택할 자유가 주어지면서 환자에게 병에 대한 책임까지 주어지는 식이다. 유동적 근대성이 만들어내는 사회적 공포감에는 금융 시스템이 만들어내는 것도 추가된다. 첨단 금융기법을 통해 자산 증식의 기회를 선택할 자유가 늘어났지만 그만큼 금융상품의 리스크는 개인에게 되돌아간다.(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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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의 문턱은 높아야 한다


가혹하게 이루어지는 채무자에 대한 추심을 ‘노예시장’에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채권 추심에 관한 법률 등에서 금하고 있는 것들이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그리 놀랍지도 않고요. 뉴스를 장식하는 빈곤층 자살 사건도 익숙해요. 참 안타깝고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본적인 인권이 금융 논리에 짓밟히고 있는 것이잖아요.


어떻게 이렇게 인권을 보호하기는커녕 인권을 완전히 무시할까 싶어요. 국민행복기금도 그래요. 40만원 버는 사람에게 4만 7천 원 씩 10년 간 갚으라고 하는 거거든요. 천만 원짜리 채권을 30만원에 사놓고 말이에요. 500만 원을 전부 받겠다는 거잖아요. 그렇게 받아서 남은 돈은 은행에 준대요. 가난한 사람들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쥐어짜서 은행 돈 벌이 해주겠다는 거예요. 바로 정부가요. 금융 회사들은 또 그 안에 들어있는 사람들의 고통과는 상관없이 9천억이라는 수익만 생각하고요. 돈을 위해서 사람이 죽어도 상관없다는 건지 생각하게 돼요. 이렇게까지 하는 것은 한 인간에게 너무 큰 고통을 가하는 것이라는 기본적인 개념이 없는 거죠. 아무리 기업이고, 아무리 이윤 추구가 최우선이라고 하지만요. 애초에 금융은 제한적인 기업이어야 해요.

 

미국의 경우 약탈적 금융에 대한 강한 제재를 가하고 있다고 설명하기도 했어요.


네, 추심도 이렇게 못해요. 우리는 아무도 감시하지 않는 틈을 타서 이렇게까지 해온 거예요. 진보언론들마저 금융의 문턱이 높다, 금융 소외가 어쨌다는 식으로 얘기를 했죠. 금융의 문턱은 높아야 해요. 금융이 복지가 아니고, 금융이 제도가 아니잖아요. 그건 사업이에요. 왜 가난한 사람들이 금융에 그렇게 많은 돈을 낭비하도록 자꾸 금융의 문턱을 낮추라고 하느냐고요. 금융은 공공이 아니라는 거죠.

 

말하자면, 빚을 내기가 너무 쉬운 게 큰 문제가 아닐까 해요. 무엇보다 신용카드 문제를 꼭 이야기해야 할 것 같은데요. 카드론, 수수료 등 카드사는 그야말로 불노소득을 취득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잖아요. 그러나 국가 정책은 신용카드사를 위한 것처럼 보이고요. ‘외상 거절하면 불법’인 나라가 여기에요.


카드를 쓰면 세금도 깎아주고요. 카드 안 쓰면 벌금도 매겨요. 이런 나라가 어디에 있어요.(웃음) 외상을 거절하면 불법이 되는 거잖아요. 완전히 우리 의식이 뭔가에 경도된 거죠. 신용 카드, 금융, 파이낸싱, 이런 것들이 마치 21세기에 굉장히 중요한, 생활의 일부인 것처럼, 일상의 기본인 것처럼 받아들인 거예요. 정책도 진보, 보수 할 것 없이 그렇게 했던 거고요.


학자금 대출 이슈도 그랬어요. 왜 학자금 대출을 더 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한 적이 있는데요. 등록금이 비싸면 등록금을 내리라고 해야지 왜 대출을 더 받으라고 하나요? 신용 카드로 학자금 결제하도록 하겠다는 말도 나왔었잖아요. 미쳤냐고 했어요. 그게 됐으면요, 신용 카드사는 앉아서 천문학적인 돈을 벌었을 거예요. 그게 말이 되느냐고요. 그러면 돈이 없는 사람들은 학비를 어떻게 하느냐고 되물어요. 대학이 분할로 받으면 되는 거예요. 그런 요구를 하면 되지 왜 카드 결제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어요. 카드가 복지인 줄 아는가 봐요.

 

카드야말로 모든 개인이 지는 채무의 첫 관문이기도 하죠.


사람들은 그냥 생각하기 귀찮아하는 것 같아요. 생협에서 왜 카드로 결제를 해요? 협동조합인데 말이에요. 매일 그렇게 욕하고 다녔어요.(웃음)

 

카드론이 이렇게 쉬워지고, 리볼빙이라는 카드사의 대출 서비스가 나온 것이 그리 오래된 얘기는 아닌 것 같거든요. 언제부턴가 너무 자연스럽게 사용하게 됐어요.


2003년 카드 대란 때는 현금 서비스가 범람했는데요. 현금 서비스는 리스크가 컸던 거죠. 또 현금 서비스 자체가 연체의 가능성이 매우 높아요. 그러면 부실 자산이 되잖아요. 그게 금감원으로부터 제재를 받아요. 그걸 피하는 방법이 카드론이었던 거예요. 나눠서 갚으라는 거죠. 워낙 저금리라 조달 비용도 낮은데 카드론은 금리가 높잖아요. 마진이 어마어마한 거죠. 책에 쓴 내용 일부분은 제가 2009년에 지적한 내용이에요. 보고서를 한 국회의원 보좌관실에 보내 문제제기를 해준 적이 있거든요. 비판해도 안 하고, 그냥 넘어가더라고요.(웃음)

 

모든 분야가 그런 것 같아요. 부동산도 마찬가지로 거품이 빠져야 하는 건데 빚을 더 내서 집을 사라고 하죠.


다 빚이죠. 전세도 빚을 늘려주고요. 학자금도 빚을 늘려주고요. 심지어 그러고는 빚을 내라고 한 적이 없대요. 정말 우롱하는구나 생각했죠. 국민을 바보로 아는 것도 아니고 말이에요. 7월에 발표된 정책은 어쨌든 원금을 갚으라는 것 아니냐고 하는데요. 제도가 안 바뀐 채로 입으로만 원금 갚으라 한들 소용없는 얘기죠. DTI(Debt To Income, 총소득에서 부채의 연간 원리금 상환액이 차지하는 비율, 지난해 8월 60%로 완화), LTV(Loan To Value ratio, 주택을 담보로 대출을 해줄 때 적용하는 담보가치 대비 최대 대출가능 한도, 지난해 8월 70%로 완화)를 줄이든가 했어야죠. 소득의 60%까지 이자비용을 충당할 만큼 빚을 내서 쓰라는 제도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원금 갚으세요, 라니 너무하는 거죠.

 

TV만 틀면 나오는 대부업체 광고도 문제입니다. 점점 가면을 바꿔가며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있잖아요. 최근 규제에 관한 법률이 통과되었다고는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광고는 쏟아지고 있어요.


법률은 통과됐지만 시행이 아직 안 되고 있어요. CJ가 정말 문제예요. 대기업이 법까지 통과된 마당에 법률이 시행되기 하루 전까지 대부업 광고로 돈을 벌겠다는 것 아니에요. 저축은행은 대부업과 다른 줄 아는데요. 심지어 OK저축은행은 러시앤캐시 거예요. 저희 집에는 TV가 없어요. 그랬더니 정말 좋은 게 광고를 볼 필요가 없는 거예요. 음식점이나 가면 광고 트렌드를 보게 되는데 볼 때마다 너무 화가 나요.

 

심지어 어린이 채널에도 그런 류의 광고가 계속 나왔었잖아요.


지금 어린이 채널에서 대부업 광고는 안 하는데요. 보험 광고는 해요. 화폐가 날아다니는 것은 똑같은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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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적 금융


제1금융권, 그러니까 은행의 추심 자회사 설립 이야기가 충격적이었어요. 돈이 된다는 얘기일 텐데 그것이 서민 경제를 죽이고 있는데요. 유암코를 비롯한 은행권의 부실 채권 매각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부탁 드려요.


추심 회사도 있고, AMC 같이 채권을 사들이는 회사도 있어요. 유암코도 그렇고요. 대신F&I도 그렇죠. 대신F&I는 원래 우리은행 거였어요. 유암코는 6개 시중 은행이 합자해서 만든 거고요. 점잖은 척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진짜 약탈적이고 야만적이죠. 유암코는 심지어 계열사로 대부업체도 운영하고 있어요. 유암코는 담보 채권만 하는데요. 우리는 담보대출이라고 해도 담보물을 처분하고 나서 빚이 남으면 또 추심 당하잖아요. 미국은 안 그래요. 담보대출은 딱 열쇠 던지면 끝이에요. 계약의 주체는 집이고, 사람에 대한 채권행사가 불가능하게 되어 있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사람이 연대보증을 서 있는 셈이죠. 일단 담보 처분하고 남은 채권은 그러면 무담보가 되는 거잖아요. 담보가 처분 됐으니까요. 그런데 빚이 천만 원이 남았다고 하면 천만 원짜리 무담보 채권이 돼서 유암코, 자기네가 만든 대부업체가 또 팔아요. 그걸 또 다시 추심하는 거죠.

 

담보물은 담보물대로, 빚은 빚대로 다 갚아야 한다는 게 우리 상식이었던 것 같아요. 사람이 연대보증을 서 있다, 당황스럽네요.


사례가 또 하나 있는데요. 어떤 분에게 빚이 6억이 남았는데, 집의 가치가 원래 8억이었대요. 그걸 추심업체가 가져가서 5억에 경매를 한 거예요. 1억이 아직 남았죠? 거기다가 경매할 때 들어간 법정 비용, 연체 이자까지 다 합쳐서 총 잔존 채무가 1억 8~9천정도가 됐대요. 이분이 개인 회생을 했죠. 그렇게 해서 또 일부 갚았는데, 나머지를 배우자에게 지운 거예요. 이건 정말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돈을 버는 거예요. 손해를 보지 않는 게 아니고요, 수익을 극대화하고 있는 거예요. 망한 사람들을 상대로 말이죠. 배우자 연대보증 건은 다 소급해서 없애야 해요.

 

‘빚 못 갚을 권리’도 있다는 것을 아예 상상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도덕적 해이 얘기하는데요. 오히려 부자들은 안 갚아요. 법무법인들 보세요. 빚 탕감해준다는 현수막을 다들 내걸고 있잖아요. 변호사에게 돈만 주면 다 파산, 면책 해줘요. 가난한 사람들만 죽으라는 소리죠. 도덕적 해이를 어디에다 갖다 대는 건지 모르겠어요. 빚 안 갚는 건 가능해요. 돈이 있어야 가능하죠. 기업이나 서민들은 빠져나가기가 힘들어요. 망하면 수입이 중단되잖아요. 그러니까 문제가 되는 거죠. 자영업자들, 기업하는 사람들, 한 번 망하면 재기가 안 돼요.


파산 신청은 권리예요. 그걸 떼어먹는다고 얘기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선진국의 경우 빚을 갚기 어려워졌을 때, 채무자의 상황이 바뀌었을 때, 채권채무계약을 다시 하는 것이 의무예요. 이자도 깎아주고, 상황 기간도 늘려주고요. 원금 상환을 유예해주거나 말이죠. 실직했는데 어떻게 갚아요? 그러면 다시 언제 직장을 구할 건지, 다 조정해서 계약하게 되어 있어요. 채권 매도도 못해요. 매도 허가가 잘 안 나죠. 그런 걸 하냐고요. 우리나라는 전혀 없죠. 안 해요.

 

채무자의 상황을 고려한 재계약이란 아주 중요한 제도 개선 포인트 같네요.


기한이익상실이라고 있어요. 한마디로 채무자의 채권에 관한 모든 권리를 다 포기하는 건데요. 그걸 바로 때려요. 두 달 연체하면 끝이죠. 선진국은 그게 불가능해요. 그렇지 않아요. 채무자를 구제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이 은행 자체에 있어요.

 

은행 스스로 제도를 구축하길 바라는 건 불가능한 일이겠죠. 결국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생각, 자활 정책, 복지가 제대로 구축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화, 방문 추심 다 금지시켜야 해요. 서류로만 하도록 해야죠. 금감원에서 추심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별도로 발표해요. 법이 추상적이기 때문인데요. ‘반복적으로’라는 문구를 보세요. 뭐가 반복적인지(웃음) 알 수 없잖아요. 매일하면 반복 아닌가요? 그런데 하루 세 번까지는 반복이 아니래요. 그게 가이드라인이에요. 금감원의 감독 대상은 금융 회사들이니까 이 가이드라인은 금융 회사한테만 유효하다, 그래서 서울시에 얘기를 했죠. 서울시가 대부업체 추심 가이드라인을 만들라고요. 대부업체 관리 권한은 서울시나 지방자치단체가 갖고 있으니까요. ‘한 통이라도 매일 전화하는 것은 반복’이라는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거죠. 일주일 총량을 규제하든가 하는 식으로 제한할 수 있죠.


이번에 소멸시효 지난 부실채권에 대해 금감원에서 거래하지 못하도록 가이드라인을 발표했어요. 그건 금융회사만 해당 되거든요. 대부업체에 소멸시효 지난 부실채권은 서울시가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라고 제안 했어요. 소멸시효 끝난 채권 거래 불가, 금감원 가이드라인에 준해 대부업체도 관리감독 하겠다는 내용으로 말이죠. 그런 식으로 자꾸 관리 감독을 해나가야죠.

 

서울시가 나서서 개선책을 고민한다는 것은 무척 고무적이긴 한데요.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여요.


갈 길이 멀죠. 하지만 여론의 방향이 바뀌면 가능할 것 같기도 해요. 여론이 움직이면 정부도 안 할 수 없으니까요.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이런 일을 하는 거죠.(웃음) 계속 부실채권 시장 파보기로 언론에서도 가야 해요. 채권 시장을 계속 건드리고, 금융이 얼마나 야만적인지를 얘기해줘야죠. 제도는 금방 바꿀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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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에게 필요한 것은 금융이 아니라 복지


계속 ‘이것이 잘못된 방향이다’라는 얘기를 해야 할 텐데, 어떤 비전을 가지고 계세요? 주빌리 은행의 비전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지금 11대 국회가 끝나가고 있어서 입법은 거의 물 건너갔다고 봐야 해요. 다음 국회 때 정무위 의원들 몇 분을 모시고 ‘빚 땡처리 방지법’처럼 자극적으로 언론에 많이 노출하려고 해요. 유동화를 할 수는 있겠지만 이렇게 땡처리해서 개인의 인권을 다 포함되어 있는 것들이 사고 팔리는 건 문제라는 걸 말하려고 해요. 내년 4월 이후가 되겠죠. 그런 생각이 좀 있고요. 또 경기도에서 저희 주빌리 은행과 같이 하고 있어요. 여야 상관없이 저희와 함께 하는 분들이 인기인이 되도록 만들어야죠.(웃음)


부실채권 시장에 대해 사람들이 몰랐던 거잖아요. 은행만 한 해 9조원 규모예요. 작은 규모가 아닌데 몰라요. 얼마 전에 대부업체에 기부를 받아서 37억을 소각했는데요. 2천 명의 빚이 탕감됐어요. 평균 빚이 3백만 원 정도인데 이자가 빚의 다섯 배예요. 정말 화가 나요.

 

대부업체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금맥이네요. 하나만 제대로 추심해도 몇 십만 원에 산 채권에서 몇 천만 원을 받아낼 수 있잖아요.


추심원은 게다가 고용도 안 해요. 실적제거든요. 개인사업자로, 보험설계사처럼 계약을 하는 거죠. 땅 짚고 헤엄치는 식으로 돈을 버는 거죠. 주빌리 은행이 잘 돼야 해요.(웃음) 돈을 갚아주시는 것으로 또 채권을 사면 도덕적 해이 논란에서도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모델이에요. 채무자의 돈으로 다른 채무자를 구제하는 거니까요.

 

주빌리 은행이 그라민 은행과 같은 모델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무엇인가요?


저희는 돈을 빌려주는 곳이 아니에요. 빌린 돈의 채권을 저희가 사서 없애주는 거예요. 가난한 사람에게 돈을 빌려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얼마 전에 정부의 서민 금융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는데요. 서민 금융이란 말도 하지 말자고 했어요. 기만적인 용어예요. 서민에게 필요한 건 복지지 금융이 아니에요.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꾸 금융 회사에 소비하라고 하는 거잖아요. 먹고 살 돈도 없는데 말이에요. 그런 것을 마치 공공성인 것처럼 금융 소외니, 그런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어요. 복지를 말해야죠.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모피가 필요한 게 아니고 외투가 필요한 거예요. 금융에 대해 진짜 다시 생각해야 돼요. 은행도 개인이 그렇게 돈 안 갚는 게 힘들면 빌려주지 않으면 돼요. 부실한 투자자인 게 뻔한데 왜 그렇게 돈을 빌려줘요? 기업들 쫓아다니면서 건강한 금융 운동을 해야죠. 『보노보 은행』이라는 책을 읽어보세요. 진짜 좋은 금융 사례들이 많아요. 금융은 그렇게 가야 해요. 좋은 사업을 발굴해서 투자도 하고, 경영도 지원해주고요. 그렇게 해서 일자리도 창출하고 그래야 해요. 이번 기회에 그런 인식이 많이 확산되기를 바라요.

 

은행이 사회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기능을 하는 곳이 될 수 있는데 말이죠.


우리는 은행도 너무 독점이에요. 지점이 많잖아요. 그게 한 마디로 골목상권을 무너뜨리는 거예요. 메가 뱅크가 필요한 게 아니고 로컬 뱅크가 필요하거든요. 지역적으로 작은 은행들이 많이 있어야 해요. 진짜 그 지역의 특성에 맞는 지역 로컬 뱅크가 많이 생겨야 해요. 그래야 지역 사업 발굴도 하고요. 지금은 다 독점하고 있는 형태예요. 미국이나 유럽 같은 곳은 다 로컬이에요. 금융은 원래 덩치가 커지만 관리가 안 돼요. 작아야 관리가 잘 돼요. 2008년 전 세계를 위기로 몰아넣은 미국 금융 위기 때 벌어진 운동이 계좌 옮기기 운동이었어요. 작은 지역 로컬 뱅크로 계좌를 옮기자는 운동이었어요. 공룡 회사를 혼내주자는 운동이 있었죠. 미국은 우리에 비하면 덜 야만적인 거예요. 그때 잠깐 부실채권 판매를 광범위하게 허용했었어요. 그걸로 욕을 엄청 많이 먹었고, 2012년에 주빌리 운동을 한 거예요. 우리는 그게 일상인데 말이에요.(웃음) 창피한 일이죠.

 

근본적인 채무자 구제 방안으로 채권자 참여 배제, 개인파산, 면책과 더불어 심리상담 지원 등을 꼽으셨어요. 좀 더 설명해주시겠어요?


제가 보기에 장기간에 걸쳐 추심에 노출된 사람들은 거의 병이 난 사람들이에요. 너무 힘들어요. 뭘 할 수 있는 여력이 없고, 살아 있지만 살아 있는 게 아닌 것 같은 모습이에요. 방 한 칸에 일곱 식구가 살아요. 번듯한 매장을 운영하던 분이었는데, 눈을 못 마주치더라고요. 너무 위축되어 있고요. 영혼에 상처가 났다고 해야 할까요? 저희를 통해 채무를 털어버린 분의 말에 따르면 발이 땅에 안 닿는 것 같대요. 전화기를 보는 마음이 반갑고요. 그래서 저희 상담사들이 무척 헌신적이에요. 그런 모습을 보니까요. 정말 보람 있죠. 한 상담사 분은 은행 지점장으로 퇴직하신 분이 있어요. 처음에는 엄청 반발을 많이 했어요. 돈은 반드시 갚아야 한다면서요. 교육하는 내내 그런 말씀을 하셨거든요. 지금은 파산 실적 1위예요.(웃음) 아침 일찍 출근해서 하나라도 더 해주려고 하시죠. 없는 돈인데 단팥빵 사오시면 정말, 감동이죠. 저희가 채권을 사서 없애는 빚보다 상담 센터에서 없애는 빚이 훨씬 많아요. 참 감사하죠. 서울시에 이 상담 센터를 정말 어렵게 만들었거든요. 3년 째 운영되고 있는데요. 이제는 좋은 모델이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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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 권하는 사회, 빚 못 갚을 권리제윤경 저 | 책담
복지로 풀어야 할 저소득층 문제도 대부업체 등의 금융권 대출을 통해 해결하려 하니, 생활이 빠듯한 사람들은 빚의 악순환으로 더욱 빠져들게 된다. 이러한 부채 중심의 성장 구조는 OECD 국가 중 1위의 자살률이라는 결과를 불러왔다. 그럼에도 은행과 카드사, 대부업체 등 금융권은 끊임없이 빚을 권한다. 한국 사회를 장악한 주류 언론 미디어 역시 금융권의 입장만을 대변하고 있다. 이와 같은 ‘빚 권하는 사회’의 이면에는 막다른 길에 몰린 서민들에게서 막대한 이익을 거두고 있는 금융의 실체가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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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노 시호 “당신은 어떤 삶을 살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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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노 시호가 에세이집 『SHIHO: 사랑이 반짝하고 빛나는 때』를 펴냈다. 일본에서는 톱 모델로, 한국에서는 ‘추성훈의 아내’, ‘사랑이 엄마’로 불리는 야노 시호가 한국 독자들을 만나기 위해 그간의 생각을 털어놓았다. 모델을 꿈꾸기 전까지는 평범하기만 했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부터 엄마, 아내로 살아가는 지금의 일상을 솔직하게 써내려 갔다. “모델을 꿈꾸기 전까지 꿈이 없는 아이였다”고 고백하는 야노 시호. 그녀는 자신의 특별한 삶을 과시하기보다는 “생각보다 삶은 단순할 수 있어요. 눈앞의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해요”라며 가뿐한 표정을 지었다. 스스로를 ‘욕심쟁이’라고 표현하지만 그보다 먼저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야노 시호는 모든 질문에 ‘깔깔’ 웃으며 담백한 대답을 내놓았다.

 

타고난 낙천가, 야노 시호는 “이 책에서 아주 조금이라도 눈에 걸리는 문장이 있거나, 마음에 남는 문장이 있어서 작은 변화의 계기가 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문장을 찾는 건, 독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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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에게 각자의 삶이 있는 법이니까요


한국 독자들과 만나는 것은 처음입니다. 책을 쓰면서 어떤 생각을 많이 하셨는지 궁금해요.


제 자신과 새롭게 다시 마주한 느낌이에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느껴온 감정, 겪어온 일들과 어긋나지 않도록 ‘있는 그대로의 저’를 전하려고 노력했어요. 작년에는 여러 일로 많이 바빴어요. 모델로서도 그렇고, 아내로서도 그렇고, 엄마로서도 그렇고,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도 정말로 수많은 일을 겪었어요. 소중한 경험을 많이 했지만, 그저 ‘일을 해냈을 뿐’이지, 그 시간을 제대로 맛볼 수는 없었죠. 하지만 이 책과 마주하게 되면서, 저 자신을 되돌아보게 됐고, 제 감정과 솔직하게 만나며 정리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어요.

 

모델로서의 일상도 많이 엿볼 수 있었습니다.


‘모델 시호’는 제 인생에서 굉장히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요. 모델로서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지를 고민하는 것이 저의 일이라고 생각하고요. 일본에서 『model;Shiho』라는 책을 출간한 적이 있어요. 모델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도움이 됐던 작업이었어요. 일본에서는 그림책을 낸 적도 있고, 요가나 운동법에 관한 책도 썼어요. 엄마, 아내로서의 일상들을 담은 책은 이번 책이 처음이고요.

 

“공부에 흥미가 없다면 모델이 되는 건 어때?”라는 어머니의 조언 덕분에 모델을 꿈꾸게 되셨다고요. “각자에게 각자의 삶이 있는 법이니까, 시호는 시호의 인생을 즐기렴”이라는 부모님의 조언이 특히 기억에 남아요.


적성에 맞으면서도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된 건, 모두 엄마 덕분이에요. 저희 엄마 아빠는 고향을 떠나고 싶었지만 떠나지 못한 세대에요. 두 분 모두 마을 바깥으로 나간 적이 없어요. 하지만 저에게는 이 곳을 떠나면 안 된다는 말 같은 건 꺼내지 않으셨어요. 사고방식이 긍정적이고 진취적이세요. 여러 면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거든요.

 

벌써 모델로 데뷔하신 지가 20여 년이 됐습니다. ‘모델 시호’의 정체성을 갖기 위해 가장 노력하는 부분이 있다면요?

 

여러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건, 마음이라고 생각해요. ‘모델을 계속하고 싶다’는 마음과 ‘모델이라는 일을 좋아하는 마음’이 있지만, 그 마음들을 계속 갖기 위해 애써 노력하진 않아요. 오히려 ‘어떤 여성으로 살아야 할지’에 대해 더 생각하는 편이에요. 몸의 변화에 대한 관리라든가, 건강 관리에도 신경을 쓰고요. 건강이라고 해서 몸만 신경 쓰는 게 아니라, 마음의 건강 또한 늘 중요하게 생각해요.

 

스스로를 ‘욕심쟁이’라고 말했어요. 20대 때는 생각하는 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으면, 분한 마음에 많이도 울었다고요.


다양한 일을 하고 싶다는 욕심과 함께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일을 하고 싶다는 바람이 있어요. 모델로, 아내로, 엄마로 시간을 보내는 것과 동시에 의류사업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NPO 활동가로서 시간을 쪼개 활동하고 있어요. 이 모든 일이 행복의 원인이 되지만 때로는 고통의 원인이 돼요. 저는 스스로 감정에 충실한 사람이라서 ‘하고 싶다’는 마음이 다른 무엇보다 소중해요. ‘시호’라는 제 이름은 ‘뜻을 품는다’는 의미에요. 저는 행복해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좋을까? 라는 고민을 많이 해요. 제 감정을 소중하게 여기는 건, 그것이 저 스스로를 사랑하는 일이기 때문이에요.

 

책에 남편 추성훈 씨에 대한 이야기는 생각보다 많지 않더라고요.


원래 원고를 많이 썼는데, 책을 내기 직전에 삭제했어요. (웃음) 막상 쓰려니 부끄럽더라고요.

 

그럼 인터뷰를 기회로 추성훈 씨의 장점을 한 가지만 꼽아주신다면요?


그릇이 넓은 사람이에요. 그는 어떤 일이 있어도 동요하지 않아요.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언제나 모든 것을 단단하게 감싸 안고 있죠. 또 "이거 안 돼! 저것도 안 돼!” 이런 말을 하지 않아요. 마음이 넓은 사람이에요. 또 있는 그대로의 저를 받아들여 주는데, 그건 모두 시어머니의 덕이라고 생각해요. 애정을 듬뿍 받고 자란 사람이라서요.

 

시호 씨도 그만큼 좋은 사람이기 때문이 아닐까요.


진짜요? 감사합니다. (웃음)

 

추성훈 씨는 이 책을 읽으셨나요?


안 읽었을 걸요? (웃음) 책이 출간된 후로, 매일매일 바쁜 스케줄을 보내고 있어요. 그래서 아직 제대로 책을 전달하지 못한 상황이에요. 남편은 한국어를 말하는 것은 잘하지만, 사실 읽는 것은 서툴러요.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리기 때문에, 이 책을 다 읽는 데에는 아마 1년 정도 걸리지 않을까 싶어요.

 

“아름다움은 먹는 것으로 만들어진다”는 말을 하셨는데, 모델 야노 시호의 식습관도 궁금해요.


매우 심플해요. 우선 아침에 일어나면 물을 한 컵 가득 마셔요. 채소와 제철 과일은 되도록이면 그 상태 그대로 먹으려고 하고요. 과일과 채소를 중심으로 6:4 비율로 그린 스무디를 만들어 먹기도 해요. 아침을 적게 먹은 날이면 점심은 얼마든지 먹어도 좋다고 생각해요. 낮에는 몸을 많이 움직이니까요. 다이어트를 하고 싶을 때도 점심은 제대로 먹어요. 대신 저녁은 가볍게 먹고요. 최근 들어서는 고기보다 생선 위주로 식사를 하고 있어요.

 

최근 한국에서 진행되는 스케줄이 많다고 들었어요. 한국에 오면 어떤 음식을 자주 먹나요?


삼계탕을 정말 좋아해요. 진짜 맛있어요. 일본에는 맛있는 삼계탕이 별로 없어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어느 가게에 들어가도 맛있으니까요. 정말 좋아해요. 또 돌솥영양밥도 좋아해요. 뜨끈뜨끈한 그 느낌이 좋고, 한국 쌀이 더 단단하고 쫄깃쫄깃하더라고요. 맛이 달라요. 제가 건강식을 좋아하는 편이에요. 체력이 없을 때에는 찌개나 탕 종류를 먹곤 해요. 곰탕이라든가 갈비탕이라든가, 먹으면 힘이 넘치는 느낌이 들어서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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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의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세요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통해, 사랑이가 많은 사랑을 받게 됐는데요. 출연을 결정하기까지 고민을 많이 하셨다고 들었어요. 지금은 어떠신가요?


많은 분들이 사랑이를 너무 예뻐해 주셔서 감사 드리는데요. 요즘 고민은 사랑이가 ‘자신을 특별하게 대해주는 걸 너무 당연하게 여기지 않을까’ 하는 부분이에요. 사랑이에게 있어서는 ‘누군가가 말을 걸어주는 것’으로부터 커뮤니케이션이 시작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사랑이가 먼저 다른 사람에게 말을 잘 건넬 수 있을지’도 조금 걱정이에요. 앞으로의 과제예요. 최근 들어서 깨 닫기 시작한 문제죠.

 

TV에서 보여지는 엄마로서의 모습은 굉장히 자유로워 보여요. 간혹 대중들이 오해하는 부분은 없나요?


그런 걸 별로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일로 생각하지 않아요. 그래서 제가 어떻게 비쳐지는지에 대해서 그다지 의식하지 않는 편이에요. 사실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메시지가 많은 방송이에요. 저조차도 그 방송을 보고 배우게 되는 부분이 많아요. 그래서 제 실제 모습과 방송에서 보여지는 모습에 차이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게 ‘싫다’라는 느낌보다는 그 차이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요. 저도 방송을 보면서 ‘늘 저런 엄마라면 정말 좋겠다’ 하는 마음이 있어요.

 

배운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인가요?


가장 기본적으로는 ‘어딘가에 가서 아이와 함께 무언가를 한다’는 거예요. 사실 바쁜 일상 속에서 계획을 세워서 아이와 늘 정기적으로 무언가를 배우고 체험하는 건 어려운 일이에요. 그렇지만 방송을 통해 그것을 배웠고, 또 촬영을 준비하다 보면 정말 사소한 일이지만 주먹밥을 싼다든지 간식을 챙긴다든지 마음가짐을 조금 더 제대로 갖게 돼요. 일상생활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의식하지 않는 부분을, 방송을 통해서는 조금 더 의식하게 되곤 하죠. 정말 사소한 일이라도 그렇게 되더라고요. 방송을 보면 ‘그렇구나’ 싶은 마음을 갖게 돼요. 언젠가는 촬영을 하는데, “사랑이한테 조금 더 칭찬을 해주세요”라는 말을 들었어요. 당시에는 눈치채지 못했다거나, 저도 모르게 지나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더라고요. 방송 자막을 보고 있으면, 제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고 행동한 부분을 언급해 주는 부분도 있어요. 그런 걸 보면 굉장히 사소한 부분도 깨닫게 돼요.

 

딸 사랑이에게는 어떤 부모가 되고 싶나요?


저희 부모님이 제게 해주신 것처럼 사랑이의 개성을 잘 끌어내서, 그것을 살릴 수 있도록 다리를 놓아 주고 싶어요. 언제든지, 어느 곳에서든지 ‘지켜보는’ 엄마가 되고 싶은 마음도 있고요. 부모는 아이의 가장 든든한 편이고, 가장 많이 지켜봐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이에요. 언제든지 ‘안심할 수 있는 장소’로서 존재하고 싶어요. 독립하기 전까지는 아이의 선택이라든가, 일에 있어 하나의 길잡이가 되어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워킹맘으로서의 이야기도 꽤 많이 쓰셨던 데요. 일본은 어떤가요? 워킹맘들이 일하기 편한 환경인가요?


일본 역시 워킹맘이 굉장히 많은데요. 한국과 비교하자면, 일본은 ‘일하는 엄마’라는 인식이 사회 내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어요. 아무래도 일하기가 크게 어렵지 않은 환경이에요. 제가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한국은 조금 ‘반반’인 느낌이에요. 반 정도는 ‘일하는 엄마’에 대한 인식이 제대로 되어 있지만, 나머지 반은 ‘여성은 결혼하면, 또 아이를 낳으면 직장보다는 가정에 전념하면 좋겠어’ 하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듯해요. 일본은 ‘일하는 엄마’에 대한 인식이 좋은 편이에요. 그렇지 않은 곳도 있겠지만, 대체적으로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어요.

 

‘아이의 속도’에 대한 글이 인상적이었어요. “나의 속도에 맞춰서 아이를 키우는 것을 그만두기로 마음먹었다”고 하셨어요.


사랑이를 빨리 재우고 싶은 마음에 “어서, 양치질해”라고 말할 때가 있어요. 아이를 자꾸만 재촉하게 되는 거죠. 그런데 생각해보면 아이에게도 엄연히 ‘양치질하고 싶을 때’가 있을 거예요. 아이의 의사보다는 엄마의 의향과 속도가 더 중요시되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해요. 여유를 갖지 않으면 아이와 마주 보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요. 생각해보면 너무 서둘러서 끝내지 않아도 되는 일이 많아요. 아이의 속도를 어느 정도는 존중해주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것만으로도 부모와 아이는 보다 좋은 관계가 되리라고 믿어요.

 

일과 육아를 병행하는 엄마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눈앞의 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필요해요. '균형을 제대로 잡는 것'과 ‘전환'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요. 아이와 함께 있을 때는 일에 대해 생각하면 안 되고, 그것은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예요. 아이와 같이 있을 때에는 아이에 대해, 일할 때에는 일에 대해서만 생각하는 게 현명하죠. 남편과 있을 때에는 남편에 대해, 집에 있을 때에는 집안일에 대해 생각해야 하고요. 눈앞에 있는 시간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느냐에 따라 모든 게 달라진다고 생각해요. 일할 때 아이에 대해 생각하면, 일에 집중할 수 없게 되니까요.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제대로 나눈 후, 각각의 일에 ‘즐기면서’ 임하는 것이죠. 이 시간을 즐기지 않으면, 꽤 힘들어지리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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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으로서의 자신을 의식하는 삶


패션 사업도 병행하고 계신데요. 스스로에게 투자하는 것을 망설이는 엄마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여성으로서의 자신’과 ‘스스로의 몸’을 의식하는 것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비싼 옷을 입더라도 입은 사람의 몸이 아름답지 않으면, 그 가격의 옷으로 보이지 않으니까요. 그 옷이 제 구실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죠. 몸이라는 것은, 신경을 쓰지 않으면 점점 느슨해지고 늘어지게 되는 법이라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일상생활에서 자세를 신경 쓴다거나, 의식을 하게 되면 그것만으로도 몸이 긴장을 되찾게 되죠. ‘아름답게 보이고 싶다’는 마음과 ‘여성으로서의 자신’을 언제든 의식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바쁜 일상에 이것을 늘 잊어버리게 되곤 해요. 그렇지만 말씀 드렸다시피 의식하는 것만으로도 분명 많은 것이 달라질 거예요. 옷을 고를 때에도, 화장을 할 때에도. 이 부분은 잊지 않길 바라요. 잊게 되는 순간, 무너져버리게 되거든요. 저 또한 이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잘 알아요.

 

모델로서 남편 추성훈 씨의 패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게 말이에요. 가끔씩 모자를 삐뚤게 쓰곤 해요. 티셔츠를 입고, 20대처럼 입고 다니는 때가 있어요. 왠지 ‘힙합’의 느낌을 주는 옷차림을 하죠. ‘아니, 이제 40대니까 그 차림은 조금 그렇지 않아?’ 싶은 때가 있어요. (웃음) 그런데 또 몸에 딱 맞게 맞춤 정장을 입을 때에는 정말 멋있어요.

 

야노 시호 씨와 추성훈 씨 모두 일본과 한국을 오가면서 바쁜 일상을 보내고 계신데요. 부부관계를 위해서 특별히 노력하는 부분이 있는지 궁금해요.


음. 그다지 없어요. ‘어떡하지?’ 싶은 기분이네요. (웃음) 뭐랄까, ‘오늘, 내일'의 일에 대해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해요. 남편이 특히 그런 편인데, 오랜 시간 함께 있을 거니까 오늘, 내일의 문제에 대해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아요. 하지만 일주일에 한 번씩 가족끼리 외출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시간을 맞추고는 있어요. 아무래도 각자의 일이 바쁘니까 매일 가족이 함께하는 시간을 갖는 것은 무리예요. 그래서 ‘며칠 후에 다 같이 어디 가는 거 어때?’, ‘다음 주 일요일에는 셋이서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이런 식으로 약속을 정하고 있어요. 부부끼리만 나가는 경우도 있고, 사랑이도 함께 나가는 경우도 있어요. 바쁘지만, 사실 늘 잊지 않으려고 생각하고 있죠.

 

최근, 가장 행복한 순간은 언제였나요?


얼마 전에 가족 모두가 한 달간 한국에서 생활한 적이 있는데요. 그때 보낸 시간은 정말 행복했어요. 모든 순간이 다 행복한 추억으로 남게 됐어요. 그리고 제가 서핑을 정말 좋아하는데요. 서핑할 때도 무척 행복해요.

 

요즘 주로 하는 생각들은 무엇인가요?


항상 생각하는 건, 마음가짐이에요. 그것이 사람이든 일이든 무엇이든 간에 존경과 애정을 담아서 대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어요. 인생의 과제라고 생각하죠. 남편, 아이, 일에 대해서든 또 저 자신에 대해서든, 다른 사람에 대해서든, 먹는 것에 대해서든, 입는 것에 대해서든, 저를 둘러싼 모든 것에 대해서 이 감정을 놓지 않으려고 해요. 늘 금세 잊곤 하지만,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마음 가짐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독자들에게 가장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이런 삶도 있어요” 아닐까 싶어요. “저는 이런 삶을 살고 있는데, 당신은 어떤 삶을 살고 있나요?” 하는 마음이에요. 뭔가 선택을 앞두고 있다거나,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이 책을 읽은 후 ‘아, 이렇게 간단한 방법이 있을 수도 있겠구나!’ 하고 생각하게 된다면 기쁠 듯해요.

 

어떻게 보면, 구체적인 조언보다 더 와 닿는 말이 아닐까 싶어요.


인생이라는 것은 사람과의 만남으로 많은 게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풀이 죽어 있다가도, 누군가가 말을 걸면 금방 기운을 차리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이 책이 어떤 식으로든 ‘행복’의 계기가 되면 좋겠다는 마음이에요. ‘전한다’는 마음보다도 ‘그렇게 되면 좋겠다’ 하는 마음이에요.

 

 

번역: 정혜지(에이지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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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HO 시호 : 사랑이 반짝하고 빛나는 때야노 시호 저 | 에이지21
그녀는 어린 시절의 자신을 '꿈이 없는 아이'였다고 소개한다. 동시에 결코 '눈에 띄는 아이가 아니었다'고도 말한다. 그러한 그녀가 어떻게 일본을 대표하는 모델이 될 수 있었을까? 지금도 여전히 최고의 자리에서 모델 일을 계속하고 있으며, 듬직하고 다정한 남편과 사랑스러운 딸과 함께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그렇지만 그녀는 이 모든 것이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고 분명하고도 확고하게 말한다. 이어서 어느 때에는 행복의 원인이 되지만, 어느 때에는 고통의 원인이 되기도 하는 '욕심쟁이'로서의 삶에 관해, 담백하면서도 허심탄회한 문체로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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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학자 이정일 “운은 미신이 아니라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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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들어가는 글’에서 “사람들은 운이 변하기 시작할 때 저를 만나게 됩니다”라고 적었다. 주술 같기도 한 이 문장이 묘하게 눈길을 끈다. 거창하긴 하지만 신이 사라진 시대에 ‘운’이라고 하는 것을 만나게 될 줄이야. 저자가 궁금하다. 가시적인 것, 명확한 것, 수치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을 믿는 지금, 운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아주 어려서부터 운명학을 공부하기 시작해 지금은 상위 1%의 고객들을 만나고 있다는 저자는 “운은 과학”이라고 말한다. 일정한 흐름과 주기가 있는 것이 운이고, 타이밍이 무엇보다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10년에 걸쳐 자산가 5천 명의 재운에 대한 통계를 만들었는데, 운명학이 정립되던 시기에는 없었던 지금 시대의 변수들을 운명학적으로 접근하려는 이유였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돈이 ‘있다’는 사실에 집중”(64쪽)하고, “피해의식 없이 현실을 냉철하게 받아들”(66쪽)이고, “사람을 가려 사”(67쪽)귀는 특징들을 갖고 있었다.


운의 흐름을 알면 누구나 행운을 차지할 수 있다는 말은 무척 달콤했다. 평생 운을 공부한 사람이 들려주는 운의 특징들을 읽어 내려가니 그 운이 다가오고 있는 것 같은 기이한 기분도 들었다. 당장 무언가를 바꿔버려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결국 삶은 항해고, 어디로 갈지 결정하는 키잡이는 자기 자신이다. 저자가 들려주는 말들 역시 조금만 거리를 두고 보면 ‘운’보다 ‘삶의 태도’에 방점을 두고 있는 것들이었다. 기도하는 마음보다 공부하는 마음으로 책을 읽으니 달콤함이나 묘함은 사라지고 현명한 삶을 꾸리는 데 도움이 될 어떤 통찰들이 떠올랐다. 자기 자신으로 사는 것, 인정할 것은 인정하는 것,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따른다는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삶의 진실은 영역을 뛰어넘어 모두 맞닿아 있는 게 아닐까.


그렇지만 달콤한 말로 유혹하고 싶다. 여기에 저자의 주술 같은 말을 따라해 본다.
“이 인터뷰를 읽기 시작할 때 운이 변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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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은 미신이 아니라 과학


운명에서 ‘운’이란 후천적인 것, 움직이는 것이고 ‘명’이란 선천적인 것, 정해진 것이라고 설명하셨어요.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운명’은 ‘명’에 가까운 것이었네요.


절대로 정해져있지 않아요. 지금은 어떤 미신이랄까, 그렇게 보는 측면이 크죠. 실제로 ‘운명’이라고 하면 굉장히 벗어날 수 없는 느낌도 들고 말이죠.(웃음) 운은 누구나 바라는 건데도 부정적인 느낌이 많이 지배하고 있잖아요. 저는 세계 각국에서 운에 대한 공부를 한 사람인데요. 돌아다니면서 보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이 특히 운을 잘 못 살리고 있더라고요. 특히 우리나라 사람이 운에 대해 부정적인 느낌을 많이 가지고 있고요. 미신이 아니라 과학이라는 말을 하려고 했죠. 다른 분들은 어떤 원리가 있고 그 원리를 푸는 식으로 많이 하는데요, 제가 다른 분들과 다른 것은 통계적인 접근을 한다는 거예요. 과학적인, 통계적인 접근법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가령 주역 풀이라고 해서 그것을 해석하는 정도라면 저자는 통계를 많이 내려고 했다는 의미죠?


거의 그런 식이잖아요. 거기서 벗어나 실제로는 어떤가, 통계가 어떤가, 실제 운이라는 것이 요즘 정말 그러한가를 알려주고 싶었던 거죠.

 

예전 학문을 가지고 지금처럼 변수가 많은 사회의 삶을 해석한다는 게 무리가 있겠죠.


맞아요. 직업이라든지 이런 것들의 가짓수 자체가 달라졌고요. 옛날에는 지금처럼 펀드니 뭐니 하는 것도 없었고, 부동산도 이렇게 형태가 다양하지도 않았고요. 계층 간 이동도 자유롭지 않았으니, 굉장히 달랐던 거죠.

 

말씀하신 것처럼 일반적으로 운에 대해 부정적인 느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 질문이 가능할 것 같은데요. 인간에게는 자유의지가 있지 않느냐, 정해진 ‘명’이 있다면 힘들게 노력할 필요가 있겠느냐, 하는 반문 말이에요.


가난해지고 병들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잖아요. 누구나 잘 살기를 원하고, 보이지 않는 힘이 나를 도와줘서 일이 잘 풀리길 바라잖아요. 인생에서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요소가 있다는 것은 인정을 하거든요. 그러면 내가 어떤 방향으로 행동해야 그 좋은 것들을 불러올 수 있는지, 내 자유의지를 좀 좋은 쪽으로 맞추자는 거죠. 개인의 성격은 거의 정해져 있어요. 친한 친구를 떠올리면 어떤 상황에서 이런 말을 할 거다, 라고 하는 게 거의 예측이 가능하죠. 그런 방향으로 행동하는 것이 과연 나에게 좋은 것들을 가져다주느냐, 나를 행복하게 하고, 부자로 만들고, 건강하게 하는 방향으로 가져다주는지 살펴보자는 거예요. 지금 하는 행동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를 잘 모르니까요. 운명에 대한 이해가 있으면 훨씬 알기가 수월해져요. 운이라는 것을 ‘알 수 없다’라고만 생각해서는 어렵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구름이 모이면 비가 내린다는 것을 예측할 수 있잖아요. 날씨에 대한 기본을 배웠기 때문에요. 그것처럼 일반적인 운의 원리를 조금이라도 알면 훨씬 더 많이 예측이 가능하고 내가 스스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는 거죠.

 

운의 흐름을 탈 줄 알아야 한다, 타이밍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셨는데요. 지금 나의 운이 어떻게 흐르고 있는지, 지금이 좋은 타이밍인지 쉽게 알 수 없다는 게 맹점인 것 같습니다.


책에 운이 변할 때의 징조를 담았어요. 운이 변할 때 제일 먼저 달라지는 것은 ‘인연’이죠.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고, 이전에 내 인생에 있었던 중요한 사람이 빠져 나가게 된다든지 말이죠. 이별과 만남, 인연이 사실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결정적인 단서 중의 하나라고 볼 수 있어요.

 

5장은 인연으로 한 장을 다 할애하고 있거든요. 그런 이유가 있었군요.


그렇죠.

 

5장에서 가장 궁금했던 것이 있는데요. 선연인지 악연인지에 따라 같은 징조들이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잖아요. 지금 이 관계가 선연인지 악연인지를 어떻게 파악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인연 일지 얘기를 했는데요. 지금까지 내가 만났던 사람들에 대해서, 인연의 역사를 좀 정리해보면 앞으로 내가 만나는 사람에 대해서도 예측이 가능하죠. 생각해 보세요. 첫 인상이 좋았는데 끝이 나빴던 사람 꼭 있잖아요. 그런 식으로 지금까지의 내 역사를 알고 책을 읽으면서 정리를 해보면 훨씬 나아요. 정리가 되잖아요? 그러면 내가 경험한 게 유형 3의 선연이었구나, 유형 5의 악연이었구나 하는 식의 파악이 될 거예요. 그렇게 정리를 해보면 앞으로 만나게 될 사람도 훨씬 더 잘 알 수 있다는 거죠.

 

자신의 과거를 알지 않고는 미래의 일도 알 수 없다는 건가요?


그렇죠. 과거 속에 어떤 힌트가 있다는 거죠. 미래로 발전할 수 있는 힌트요. 나는 끊임없이 변화하지만 과거와 완전히 다른 내가 생기기는 어려우니까요.

 

사람들이 운이 좋아지는 시기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자존감과 자신감이 강해진다.
2. 악연이 끊어진다.
3. 단점을 인정하되 얽매이지 않는다.
4. 상대에게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
5. 부정적인 감정을 잘 다루게 된다.
6. 새로운 일이 시작될 조짐이 보인다.
7. 고질병의 상태가 좋아진다.
8. 가족에게 변화가 생긴다.
9. 취향에 변화가 생긴다.
10.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미래를 향한다.(88~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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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지는 시기가 오면 반드시 좋아져


운이 변할 때의 징조 중 자존감이 강해진다, 악연이 끊어진다, 고질병의 상태가 좋아진다, 취향에 변화가 생긴다 등의 내용이 있어요.


그 징조들을 관찰하면 운이 변하는 변곡점에 있다는 것을 스스로 느낄 수 있는 거죠. 운이라는 것이 정해진 게 아니잖아요. 노숙자도 돈은 벌어요. 어느 날 갑자기 누가 5만 원 짜리를 흘리고 간다든지 이런 일이 생긴단 말이에요. 타이밍과 방향이 중요하다는 것은 그 시기를 알고 정실하게 투자를 제대로 해놓는다든지 하면 5만 원 벌 것을 5천만 원 벌 수 있다는 거예요. 타이밍과 방향이 그래서 중요해요. 투자를 부동산에 할 건지 펀드에 할 건지, 타이밍이 이때라는 것을 아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되겠어요.


내가 좋아지는 시기가 오면 반드시 좋아져요. 이때 조금 좋아질 건지 크게 좋아질 건지는 내 노력이 결정을 한다는 거예요.

 

30년 주기의 ‘토성리턴’에 대해서도 말씀하셨어요. 30대 전후 시기가 무척 중요하다고요. 어떻게 준비하면 가장 좋을까요?


토성이란 건 인간에게 교훈과 지혜를 주는 행성이고, 사람을 제일 힘들게 하는 엄격한 교사라는 별명이 점성술에 붙어있는 행성이에요. 말하자면 그때가 철드는 시기예요. 역사적 인물들을 예로 들었는데요. 그들도 토성리턴에 가장 결정적인 순간을 많이 맞이했고, 똑같이 29.5년이 되는 58~59세, 두 번째 토성리턴에 또 그 다음 시기의 여러 깨달음이 왔고요. 그때 제대로 깨달아서 방향을 제대로 회전한 사람들, 그 시기가 힘들긴 했지만 그것을 통해 교훈을 얻은 사람들은 그 다음 30년을 보내는 데 있어 굉장히 많은 힘을 얻을 수가 있죠.

 

불과 20~30년 사이에도 사회의 흐름이라는 게 많이 달라졌잖아요. 80년대의 30대 전후가 사회 진출로 성과를 내려는 때라면 지금의 30대 전후는 이제 막 사회 진출을 하는 때라고 볼 수 있는데요. 같은 토성리턴이라도 차이가 있을 것 같아요.


시대적 과제라는 게 다르잖아요. 80년대의 시대적 과제는 먹고 사는 거였어요. 지금은 자아실현이잖아요. 그때와 지금의 비교 기준 자체도 너무나 다르고요. 그때와 지금의 토성리턴은 기본적인 것은 거의 똑같아요. 자아실현이라는 측면에 있어서는 그런데요. 지금 30세의 과제가 더 무겁죠. 그냥 먹고 사는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사회가 요구하니까요.

 

시대적 과제도 함께 분석을 하시는 건가요?


관계가 있을 수밖에 없죠. 제가 행정대학원에 간 것은 국운을 공부하기 위함이었어요. 사회적 변화와 연관이 있을 수밖에 없는 거예요. 말하자면 똑같이 의대에서 공부를 한다고 해도 80년대에 의사에게 요구하던 것과 지금 이 시대에 의사에게 요구하는 것은 다르잖아요. 훨씬 서비스 정신을 많이 요구하고, 전문성을 많이 요구하고요. 80년대에 피부과에서 지금처럼 그런 시술을 하지는 않았거든요. 성형이 이렇게 발달하지도 않았고요. 전혀 다른 것들을 요구하는데 그 시대적 과제에 대해 내 인성이 얼마나 부합하는가를 보는 거예요. 시대적인 부분은 ‘명’과 ‘운’ 모두에 영향을 미친다고 보는 게 정확해요. 정말 똑같은 사주라도 80년대에 의사를 했으면 성공했을 사람이 지금 했으면 실패할 수도 있거든요. 결국엔 통계적으로 보는 거죠. 의사로 성공하고 싶다고 했을 때 이 사람이 지난 5~10년 간 의사로 성공한 사람과 똑같은지를 봐요.

 

자산가 5천 명의 운을 통계로 정리했다고요. 이들의 가장 특징적인 것은 무엇이었나요?


가장 다른 점은 딱 하나를 꼽으라니 참 그러한데요.(웃음) 가장 다른 점은 일단 자기 자신으로 산다는 거죠. 사회가 요구하는 어떤 기준에 맞춰서 ‘이렇게 살아라’ 하는 대로 살지 않고 자기 나름대로 산 사람들이라는 거죠. 자기다움이 있다는 거예요. 모든 사람이 A가 좋다 하더라도 A가 싫으면 아니라고 한다는 거죠. 사회적 기준에 맞추려고 자기를 끼워 넣지 않는다는 거죠. 이건 점점 더 강해지고 있어요. 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요구하는 표준이 있잖아요. 4인 가족, 2명의 자녀, 아파트, 무슨 대학 이상, 이런 것들이요. 거기에 자기를 끼워 넣지 않는다는 거예요.

 

그렇다면 사회적으로 요구하는 일반적인 표준들은 자산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걸까요?


아니요, 관계가 있죠.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똑같이 대학을 가더라도 ‘다들 대학에 가니까’ 하는 생각으로 대학을 가요. 반면 그 사람들은 분명하게 자기 안에 뭐가 있어서 가는 거예요. 같은 행동을 하더라도 전혀 달라요.

 

보통 사람이 지금 말씀하신 자산가들의 특징적인 면을 꾸준히 훈련하고 지향하면 그들처럼 될 수도 있나요?


충분히 될 수 있다고 봐요. 운을 공부한 사람으로 솔직하게 말하건대, 누구나 대통령이 될 수 있는 건 사실 아니에요. 누구나 이건희가 될 수 있다, 이건 사실 아니라고 봐요. 그런데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원하는 수준의 부와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원하는 수준의 명예는 지금 아무리 가난하고 힘들어도 운을 잘 활용한다면 충분히 이룰 수 있어요. 그 정도는 누구나 이룰 수 있고, 때에 따라서는 더 큰 성공도 가능해요.

 

누구나 가능하다고 하지만 누구나 되지는 못하고 있잖아요.


그 중 하나가 운의 중요성을 알지만 활용할 줄 모르는 것이 있겠죠. 운이 성공의 주요 인자임을 누구나 알잖아요. 누구나 아는데 어떻게 쓸 줄은 모르는 거예요.

 

그런 경우를 보면 안타깝기도 하시겠어요.


그렇죠. 정말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있어요.(웃음) 재래시장 같은 곳에 가보면 그런 곳에서 고생하고 계신 분들 중에 큰 그릇에 이만큼만 채워서 그렇게 고생하고 있다든지 그런 경우도 많아요.

 

 

건강이 모든 운의 출발점


성형으로 ‘조건적으로는’ 운명을 바꿀 수도 있다고 하셨는데요. 운명에 도움이 되는 좋은 관상이란 어떤 건가요?


그런데 관상은 사주의 영역을 벗어나진 못해요. 벗어나는 정도는 아니에요.

 

예쁜 외모가 좋은 관상은 아니라고도 하셨죠.


맞아요. 책에서도 얘기했지만 내가 어떻게 생겼는지 보다 중요한 것은 찰색(察色)이라고 했어요. 얼굴에 나타나는 색이라는 거죠. 일단 몸이 건강하면 색깔은 좋아져요. 일단은 건강에 신경을 써야죠. 건강이 모든 운의 출발점이에요. 위가 안 좋으면 입 주변이 시커멓게 되듯이 말이죠. 얼굴에 오장육부가 나타난다고 하잖아요. 관상학에서는 이렇게 빛나는 은은한 흰색은 좋고, 이런 식의 검은색은 안 좋고, 하는 것들이 있어요.

 

혹시 애정운이 좋은 관상은 어떤 특징이 있나요?


애정운을 나타내는 것은 눈 꼬리 부분인데요. 물론 관상이 보여주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사주와 궁합이다, 라는 것을 저는 좀 강조해요. 잘못된 정보를 혹시 드릴까봐 이렇게 말씀 드릴게요. 제가 통계적으로 볼 때 관상은 사주의 영역을 벗어나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분명히 참조할만한 부분은 있죠. 예를 들어 얼굴에 칼을 대서 좋아지는 사주가 있거든요. 예뻐져서 실제로 도움이 되는 사주가 있죠. 이렇다면 그 사람은 제가 성형을 시켜라, 라고 조언해요. 부모님이 오셔서 물어보실 때, ‘이 딸은 꼭 쌍꺼풀도 하고, 코도 해라’ 이런 경우도 있어요. 점성술적으로 칼을 대서 좋아지는 사람이 있어요. 연예인들 보면 굉장히 많이 드러나 있어요.

 

성형 기술이 과거에 비하면 지금 많이 확산된 것이잖아요.


과거에도 그런 사주가 있었지만 몰랐거나 할 수 없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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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할 땐 독한 게 좋은 마음자세

 

결국은 ‘마음자세’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조언을 곧장 실천하면 좋겠지만 그게 잘 안 되잖아요. 훈련으로 가능할까요?


가장 중요한 건 심상이죠. 그리고 훈련으로 얼마든지 되는 거예요. 고객들을 보면서 정말 느껴요. 매년 찾아오는 고객들이 달라지는 걸 보면서 느끼고요. 중요한 게 마음자세라는 건데요. 사람들은 마음자세라고 하면 착하고 바르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착하고 바른 사람들이 운이 좋은 건 아니에요. 착한 것과 운 좋은 것은 아무 상관이 없는 거고, 오히려 쓸모없는 착함은 내 인생을 망치는 거예요. 독할 땐 독한 게 좋은 마음자세예요. 아니면 딱 끊고, 이런 게 굉장히 좋은 마음자세예요. 상처를 주기 싫어, 이런 게 안 좋은 마음자세고요. 악연이다 싶으면 ‘너는 꺼져라’라고 대놓고 얘기할 수 있는 게 좋은 마음자세예요.

 

문학작품을 많이 인용하셨는데 그게 읽는 데 도움을 줬어요. 특히 『더 리더』의 두 주인공 한나와 마이클의 관계는 악연이라고 단정했거든요.


운명학이라는 것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어요. 하나는 활인업(活人業, 사람을 살리는 직업)으로써의 운명학이에요. 세간에 거의 퍼져있는 것, 99.999%가 활인업으로써의 운명학이에요. ‘사람을 구한다’ 이런 얘기죠. 넌 성격이 이렇다, 착하고 바르게 살아라, 이런 게 활인업으로써의 운명학이고요. 옛날 중국에서 운명학은 사실 왕이 신하를 뽑고, 제대로 거사를 치르거나, 택일 하거나 이런 데 쓰였잖아요. 천문을 본다고 해서요. 결국 제왕학이라는 거죠. 제가 하는 것은 활인업이 아니라 제왕학이에요. 국왕은 뭍이다, 이런 말을 들어보셨을 거예요. 왕은 뭘 해도 잘못이 없어요. 그렇잖아요. 왕한테 죄책감을 가지라고 하는 사람은 없잖아요. 아까 부자들은 뭐가 다르냐고 하셨는데, 다 스스로 왕으로 산다는 거예요. 돈이 많으니까 왕이 되었다, 이런 게 아니고요. 처음부터, 돈이 없을 때도 그 마음가짐으로 살았기 때문에 된 거거든요. 내가 왕이고, 내가 운을 활용해서 살아가는 왕의 자세라는 것은 활인업에서 얘기하는, 사람들을 다루기 쉬운 백성으로 만들기 위해서 착하게 바르게 살고, 윗사람 말 잘 듣고, 사회 규칙 잘 지켜라, 하는 것과 전혀 달라요. 인연을 다루고 이런 것들 모두 제왕학적 접근이에요.

 

활인업과 제왕학을 예를 들어 조금 더 설명해주시겠어요?


일반적인 활인업에서의 접근은 ‘그래도 그만큼 사랑했으니까 후회하지 않아’ 이렇게 되겠죠. 제왕학적인 접근은 다르죠. 왕이란 결국 책임이 있는 자리거든요. 결과를 보면 돼요. 결과적으로 얻은 것이 결국 최악의 결과잖아요. 그게 악연인 거죠. 인연에 대해서 얘기할 때 결과를 얘기해요. 그래서 저는 연애운 상담은 잘 안 해요. 연애는 뭐 그냥 그 과정에서 즐거우면 되는 거니까요. 결혼이라든지 이런 건 그렇지가 않잖아요. 서로 너무 사랑했지만 결과적으로 법정 이혼이다, 이런 건 좋은 인연이 아닌 거거든요. 책에서 말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내가 좋은 걸 얻을 수 있느냐는 거예요. 결국 내가 돈을 얻고, 명예를 얻고, 결과에서 좋을 수 있느냐고요. 그 과정에서 간혹 내가 독한 짓을 해야 한다면 전혀 죄책감 갖지 말고 하라는 거예요. 그게 왕이에요. 활인업하는 사람들의 접근과는 전혀 달라요. 착한 사람들이 비참하게 사는 걸 정말 많이 봤어요. 그런 사람들 정말 대단하고 존경할 만해요. 그 정신은 굉장하죠. 그런데 일반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이 원하는 인생은 착하고 바르고, 가난하게, 비참하게 사는 게 아니거든요. 저는 그렇게 살기를 원하는 게 아니에요.

 

착하고 바르게 산다, 는 것이 나쁜 이야기는 아닌데요.


제 얘기가 대단히 악해지라는 것도 아니에요. 역사적으로 좋은 군주를 보면 굉장히 결단력이 있고, 착할 땐 착하고 악할 땐 악하게 그렇게 살았잖아요. 자기가 선악의 위에 있어서 그것을 다루면서 그렇게 살라는 거예요. 당신이 왕이 돼서 말이죠. 누구나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될 수 있어요. 그런데 이런 걸 느끼기가 되게 힘들어요. 왕이 뭐 엄청난 대기업의 주인이 돼야 왕인 게 아니에요. 작은 집에서 소박하게 가정주부로 살아가도 내가 스스로 내 운명과 인생을 컨트롤 할 수 있고, 내 운을 가늠할 수 있으면 그게 왕인 거예요.


제 고객 중에 그렇게 엄청난 사람만 있는 건 아니거든요. 상위 1%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오고, 저녁 뉴스에 나오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죠. 그렇지만 그런 분들의 어머니라든지, 평범한 사람인데 내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있는 분들도 많이 있어요. 기회비용이라는 게 있는데, 그 기회비용을 줄이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 엄청 많아요.

 

누구에게나 과거에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궁금증이 있잖아요. 그걸 잘 활용하는 특별한 방법이 있을까요?


예를 들어 부동산을 샀는데 그게 안 팔리고 집값은 떨어져서 엄청나게 후회하는 사람이 있다면 저는 전문가니까 년도로 말을 해주죠. 당신이 2007년에 했던 그 잘못된 선택을 2019년에 똑같이 하게 될 수 있으니까 그때를 주의하라고 말을 해줄 수 있죠. 하지만 전문가가 아니라 그렇게 할 수 없다면 그때의 상황을 살펴볼 수는 있어요. 갑자기 예전에 알던 사람이 전화가 와서 좋은 집이 있다고 하면서 나를 설득했고, 그때 마음이 어떻게 변해서 남편 몰래 일을 저질렀고, 하는 이런 비슷한 상황이 빚어지거든요. 인생이라는 건 회오리처럼 진화해나가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어느 때의 상황이 도돌이표처럼 완전히 똑같지는 않지만 비슷하게는 돌아올 때가 있어요. 이때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문제죠.

 

그때 선택이 좋았다고 한다면 비슷한 상황에서 그런 선택을 다시 했을 때 좋아지는 건가요?


좋아질 가능성이 많아질 수 있죠. 그렇지만 정말 가끔은 반대로 돌아오기도 해요. 예를 들어 예전에 사기꾼을 만났다면 그 다음에 내가 사기를 칠 수 있는 운이 돌아온다거나 이럴 때가 있죠. 그럴 때는 사기를 쳐야 하는 거예요.(웃음)

 

저자의 삶에도 책의 출판은 어떤 의미가 있을 것 같은데요. 지금 이 시기에 책을 낸 이유가 있을까요?


사회봉사의 차원에서 의미가 있죠. 이 책은 읽을 사람만 읽으라는 생각으로 냈어요.(웃음) 운 좋은 사람은 읽을 것이고, 아니면 안 읽겠지, 라는 그런 생각이에요. 지금 시기는 장기불황이랄까 이런 것들 때문에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인생에서 희망을 잃었잖아요. 또 명목상으로는 가능하지만 사실 우리 사회가 계급 간 이동이 거의 불가능한 사회가 됐잖아요. 사람들이 참 꿈이 없잖아요. 지금은 ‘꿈을 꾸면 된다’ 이런 세상이 아니에요. 그렇지만 이런 상황에서 단 하나 남은 판도라의 상자가 있다면 그게 운이거든요. 그건 내가 마음먹기에 따라서 작동할 수가 있다는 거죠. 이런 것들을 얘기하고 싶었던 거죠.

 

행운만 타고난 사람도 없고, 불운만 타고난 사람도 없습니다. 살아가는 동안 행운도 만나고 불운도 만날 뿐입니다. 다만 행운과 불운을 만났을 때 대하는 삶의 태도에 따라 우리의 운명이 엇갈리게 된다는 사실은 기억해야 합니다. 인생이란 내 안의 여러 가지 나를 알아가는 여행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겪게 되는 사건이나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 새로운 내 안의 나를 만나게 된답니다. 이때 만나는 나를 이해하고 인정하고 사랑하는 것이 더 큰 행운을 마주하게 되는 삶의 태도입니다.(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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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 준비하는 미래이정일 저 | 이다미디어
지은이는 지금까지 동서양에 걸쳐 5만여 명의 운명학적 특징을 분류하고 분석해 데이터베이스로 만들었다. 동서양의 대표적인 운명학의 원리에다 현대 경영학과 통계학을 접목하는 독창적인 방법으로 일반적이고 과학적인 운의 원리와 활용법을 체계화한 것이다. 그리고 10년 동안 우리나라 자산가 5천여 명의 재운에 대한 통계 자료를 만들어 부자들의 운명학적 특징과 삶의 자세 등 공통분모를 추출하여 정리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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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후퍼 “사람들에게는 각자 다른 성공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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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상회담>을 떠나며 그가 남긴 메시지에는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작은 실천들을 통해 하나씩 계단을 오르다 보면 어느새 꿈이 이루어졌음을 깨닫게 될 거라고, 위험은 곧 배움의 기회이니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도울 수 있도록 꿈에 대해 이야기하라는 조언은 도전의 지표가 되어주었다. 그리고 성공의 정의는 한 가지가 아니라는 말 속에는 ‘자신에게 맞는 성공을 찾아서 도전하라’는 응원이 감춰져있었다.

 

‘꿈을 좇는 한국의 청년에게’ 전한 그의 진심은 ‘제임스 후퍼의 명언’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가 닿았고 공감의 메아리가 되어 다시 돌아왔다. 각자 다른 꿈을 꾸는 사람들이 서로의 도전을 응원하게 된 것이다. 바로 그곳에서 『원 마일 클로저』는 시작되었다. 제임스 후퍼가 모험가로서 자신의 도전에 대해, 평범한 한 남자로서 자신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기로 한 것이다.

 

모든 도전이 그러하듯 제임스 후퍼의 도전 역시 성공과 실패의 순간들로 채워져 있다. 모든 삶이 그러하듯 그의 삶에도 절망과 희망의 순간들이 교차했다. 그 이야기들을 조금의 보탬도 없이 조금의 덜어냄도 없이 그는 덤덤하게 들려준다. 최연소 영국인으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르고 세계 최초로 북극에서 남극까지 무동력 종단에 성공한 거창한 기록보다 중요한 것은, 그 과정을 함께한 사람들과 깨달음에 대한 이야기다.

 

제임스 후퍼의 곁에는 모험을 함께했던 친구 롭이 있었고, 마지막 순간까지도 도전을 멈추지 않았던 그의 삶은 “생의 마지막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남겨주었다. 여성이 아닌 남성으로 엄마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의 어머니는 “두려움과 맞설 수 있는 용기”와 “행복을 찾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었다.

 

수없이 생사의 갈림길에 섰던 모험을 통해서, 소중했던 친구의 상실을 통해서, 행복해지기 위해 두려움과 맞섰던 어머니의 선택을 통해서, 그는 지금 이 순간을 즐겁게 살아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배웠다. 그래서 자전거 여행을 통한 모금 활동인 ‘원 마일 클로저’를 시작했고, 수익금으로 우간다에 학교를 세우고 후원하고 있다. 자신이 발견한 도전의 의미를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고 싶기 때문이다.

 

『원 마일 클로저』안에서 제임스 후퍼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그가 ‘꿈을 좇는 한국의 청년에게’ 남긴 메시지에 담긴 셀 수 없이 많은 순간들과 의미들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의 가슴을 뛰게 만들었던 제임스 후퍼의 진심이 담겨있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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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지 않다면 왜 도전하는 거죠?


<비정상회담>에서 ‘꿈을 좇는 한국의 청년에게’ 전한 세 가지 조언이 큰 화제가 됐습니다.


제 이야기를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소중하게 생각할지 몰랐어요. 저도 많이 놀랐고요. 그 반응들이 『원 마일 클로저』를 쓰는 데 영감이 되어줬어요. 꿈꾸고 도전하는 이야기를 책으로 쓰면 사람들한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감동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제가 말한 내용들과 비슷한 말들을 이전에도 많은 사람들이 했죠. 그래서 사람들이 그렇게 큰 반응을 보여줘서 저도 놀랐는데요. 제가 <비정상회담> 시청자들과 나이가 비슷하기도 하고 저를 그냥 평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임스가 할 수 있다면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신 게 아닌가 싶고요. 그렇게 생각해 주신다면 저도 좋아요.

 

부인 이정민 씨가 『원 마일 클로저』의 번역에 참여하셨는데요. 제임스는 ‘슈퍼맨 같은 사람이 아니라 평범한 청년일 뿐’이라고 적으셨어요.


제가 모험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학교를 다니면서 좋은 기회를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에요. 저희 학교에 자전거 동아리가 있었는데요. 그곳에서 만난 선생님께서 항상 잘했다고 칭찬해 주셨기 때문에 자신감이 생겼어요. 친구들과 같이 활동하면서 우리도 잘할 수 있다는 걸 믿게 됐고요. 선생님의 도움 없이 우리끼리 해낼 수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고요. 그렇게 작은 모험에서 시작해서 점점 큰 모험으로 옮겨갔던 것 같아요. 저는 선수도 아니고 똑똑한 사람도 아니지만 좋은 학교에 가서 훌륭한 선생님을 만났고, 그 분께서 학생들한테 좋은 기회를 주셨기 때문에 모험을 시작할 수 있었죠. 

 

모험가 제임스를 만든 건 자신감과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었다고 생각하세요?


네, 확실히 그렇죠. 에베레스트에 가고 싶다고 생각해도 처음에는 자신감이 없잖아요. 어떻게 에베레스트까지 갈 수 있는지도 모르고요. 그런데 자전거 동아리에서 선생님과 친구들이랑 자전거 타면서 ‘내가 이런 걸 할 수 있구나, 선생님 없이도 우리끼리 해볼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 다음에는 다른 도전도 해볼 수 있어요. ‘이걸 할 수 있으면 다른 것도 할 수 있겠지?’ 싶은 거죠. 그렇게 조금씩 더 큰 도전을 하면서 에베레스트까지 갈 수 있었어요. 계단 하나는 그렇게 높지 않아서 내려올 수 없는 만큼은 아니었어요. 그렇게 조금씩 계단을 올라갔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예요. 갑자기 ‘나는 이제 에베레스트에 갈 수 있다’라고 생각한 순간은 없었어요. 조금씩 더 큰 목표를 갖게 됐던 거죠.

 

『원 마일 클로저』의 첫 번째 조언도 ‘한 걸음 한 걸음씩’ 나아가라는 건데요. 꿈을 향해 다가가는 단계를 정할 때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저한테 제일 중요한 건, 뭘 해도 즐겨야 된다는 거예요. 즐겁지 않으면 하고 싶지 않잖아요. 목표를 향해 가면서 즐겁지 않다면 그만두고 다른 길로 가도 돼요. 제일 중요한 건 즐겁게 행복하게 사는 거예요. 과정이 재미있으면 계속 하고 싶어서 끝까지 갈 수 있잖아요. 힘들거나 재미없을 때는 끝까지 가기 싫어요. 끝까지 가기 싫으면 에너지를 낭비하지 마시고 가고 싶은 길로 가는 데 에너지를 쓰세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해나가면서 제일 중요한 건 행복이잖아요. ‘행복하지 않으면 도대체 왜 하는 걸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 암벽 등반부터 배워야했고, 필요한 장비를 사기 위해 아르바이트도 해야 했습니다. 그럴 때는 꿈이 너무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졌을 것 같아요.


우리는 너무 어렸고 순진했어요. 처음에는 에베레스트에 오르기 위해 어떤 경험이 필요한지도 몰랐어요. 바보 같았죠(웃음). 그런데 이미 친구들과 친한 사람들한테 우리는 에베레스트에 갈 거라고 알려줬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었어요. 우리가 포기하면 그 사람들이 우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무섭기도 했거든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제일 친한 친구 롭이랑 함께였기 때문에 힘들 때도 서로 응원할 수 있었어요.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믿지 않아도 우리는 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죠. 롭이 없었다면 에베레스트에 가지 못했을 거예요. 혼자였다면 ‘너는 청소년이고 경험도 없는데 어떻게 에베레스트에 갈 수 있겠냐’는 말을 들으면서 의심이 생겼을 거예요. 그런데 같이 꿈을 꾸는 사람이 있으면 그런 말은 듣지 않아도 돼요. ‘그 사람이 우리를 믿지 않는대, 그 사람한테 우리가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자’ 그렇게 얘기하면서 함께 도전을 계속할 수 있죠.

 

꿈이 너무 멀게만 느껴질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떤 일이든 바로 이룰 수는 없어요. 어느 정도는 참아야 해요. 쉽게 갈 수 있는 길은 없으니까 쉬운 부분은 재미있게 하고 힘든 부분은 참아야 돼요. 제일 중요한 건 계속 목표를 소중하게 가지고 있는 거예요. 그러면 ‘내가 지금 이런 일을 하는 이유는 목표가 있기 때문이다’라고 생각할 수 있어요. 힘든 일도 쉽게 이룰 수 있죠. 우리도 에베레스트에 가기 위해서 등반하는 법부터 배워야했어요. 그래서 알프스에 가서 등반을 배웠죠. 그리고 필요한 장비를 사고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고요. 그때 목표는 그것뿐이었어요. 미래의 목표에는 에베레스트가 있었지만 당시에는 바로 눈앞에 있는 목표만 생각하고 있었어요. 알프스에 다녀오고 난 후에는 다음 계단이 무엇인지 생각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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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은 혼자서 하는 게 아니에요


모험을 하다 보면 힘들고 어려운 순간들이 많을 텐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도전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사실 모험할 때 보통은 지치고 피곤하고 힘들어요. 하면서 이걸 왜 하는지 가끔은 몰라요(웃음). 그냥 집에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될 때도 있어요. 그래도 모험하면서 많이 배우고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해요. 그리고 항상 작은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계속 생각해야 되는데요. 뒤돌아보면 나를 계발시켰다는 느낌이 있어요. 많은 문제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결국 해냈다는 걸 생각하다 보면 스스로가 자랑스럽죠. 그리고 모험을 끝내고 돌아와서 친구랑 나눌 수 있는 추억이 있다는 게 좋아요. 누구나 가질 수 없는 추억이니까 둘이서만 이야기할 수 있는 게 있잖아요. 그 추억 때문에 더 가까워지고요.

 

에베레스트를 등반하면서 다른 등산가들의 시신을 발견한 적도 있다고 하셨는데요. 그 순간의 두려움은 어떻게 이겨내셨나요?


그 날은 정상으로 가는 날이어요. 제일 위험한 날이었죠.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정상이 가까워지면 힘들어도 포기하고 싶어 하지 않거든요. 힘이 하나도 없어도 정상까지 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정상까지 갔다가 내려가요. 그때 시신으로 발견된 사람들도 대부분 그렇게 죽었어요. 에너지를 다 써서 내려갈 때는 힘이 다 빠져서 걸어가지 못했던 거예요. 그래서 잠깐 앉았다가 그대로 죽음을 맞은 거죠. 그 중에 한 사람은 며칠 전에 우리가 베이스캠프에서 사귀었던 친구였는데, 당연히 슬펐고 충격을 받았죠. 그런데 사실 그곳에는 산소 양이 너무 적어서 생각을 잘 할 수가 없어요. 그냥 정신이 없어요. 내가 어디를 향해 가는지, 날씨가 어떤지, 그 순간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감정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것 같아요. 그래도 시신들을 봤을 때 이 사람이 왜 죽었는지 아니까 나도 같은 실수를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죠. 그 사람들을 기억할 때마다 지금 내가 컨디션이 어떤지, 롭의 상태는 어떤지 확인했어요.

 

롭과 함께 모험하면서 서로에게 힘이 되는 이야기들도 많이 나누었을 것 같습니다.


제일 힘이 되는 이야기는 ‘제임스, 이건 우리만 하는 게 아니야’라는 거였어요. 우리를 계속 응원해준 사람들이 있다고 말해준 거죠. 친구들과 스폰서, 가족들이 우리를 이해해 주고 지원해줬기 때문에 갈 수 있었던 거잖아요. 아마 부모님이 가지 말라고 하셨어도 갔을 테지만, 그랬다면 상처를 가지고 갔을 거니까요. 그렇게 우리를 도와줬던 많은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우리가 포기하면 그 사람들이 우리에게 투자한 의미가 없어진다’는 이야기들을 나눴어요. 또 우리가 이 길을 선택함으로써 포기했던 일들이 있었기 때문에 ‘이 일이 아니라면 무엇이 남아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했고요.

 

도전에 성공하고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열정이나 힘이 단 1그램도 남지 않은 기분”을 느꼈다고 하셨어요.


모험을 할 때는 인생이 제일 중요해져요. 그런데 일상에서는 내가 예쁜 집에 사는지, 비싼 차를 가졌는지, 무슨 가방을 가지고 있는지가 중요하잖아요. 모험을 할 때는 그런 것들의 가치가 없어지죠. 내 인생과 다른 사람의 인생만 중요해요. 매일매일 죽을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더 깊게 사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일상에서는 인생과 비교하면 문제도 아닌 작은 일들에 집중하게 되죠. 그래서 모험에서 돌아오면 사람들이 왜 이렇게 작은 것들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어떤 사람이 그렇게 살고 싶다면, 그래서 행복하다면, 제가 비판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것 때문에 다른 사람을 아프게 한다면 신경 써야 하지만 자기 삶 안에서 그렇게 하고 싶은 거라면 그래도 되잖아요. 그걸 친구를 잃은 경험을 통해서 깨달았던 것 같아요.

 

말씀하신 것처럼 때로는 목표를 달성한 뒤에 허전함이나 우울함이 찾아오기도 하는데요. 지금은 그 감정들을 어떻게 달래고 계신가요?


이제는 어느 정도 배운 것 같아요. 그래서 목표를 하나만 가지지 않고 동시에 작은 목표도 세우고 큰 목표도 세워요. 큰 목표를 이루기까지 오래 걸리는데 그 과정에서 작은 목표를 항상 가지고 있어요. 큰 목표가 끝날 때는, 그것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아직도 작은 목표가 남아 있어요. 그렇게 하면 집중해야 할 대상이 항상 있어요. 또 이제는 어느 정도 자신감도 있고 스스로를 믿기 때문에 ‘지금 완벽하지 않아도 다시 좋아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특히 롭이 죽었을 때의 감정이랑 탐험에서 돌아왔을 때의 우울을 비교하면 우울한 감정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제일 중요한 건 인생이에요. 그것보다 중요한 건 없어요. 인생을 행복하게 사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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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에게는 각자 다른 성공이 있어요


롭이 세상을 떠난 후에 모험을 그만두고 싶지는 않았나요?


물론 친구가 없어졌기 때문에 너무 슬펐지만, 롭에 대해 생각하면 슬플 수 없어요. 왜냐하면 죽는 순간에 롭은 진짜 재미있게 등반하고 있었기 때문에 아마 행복했을 거거든요. 물론 롭이 죽고 나서 처음에는 저도 모험이 무서워졌고, 어느 정도는 모험을 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어요. 그런데 제가 롭을 좋아했던 이유는 정말 용감하고 엄청난 에너지를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이에요. 계속 앞을 보고 있었고 정말 긍정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에 롭이 너무 좋았어요. 롭이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에 저도 에베레스트에 갈 수 있었고 북극에서 남극까지 갈 수 있었어요. 물론 앞으로 제가 안전을 더욱 더 생각해야하지만, 아예 모험을 그만두는 건 맞지 않는 것 같아요. 제가 즐거워하는 일이니까 그걸 하면서 행복하다면 그래도 해야죠.

 

모험을 포기하지 않은 제임스의 선택에 대해 롭은 어떤 이야기를 해줄까요?


제가 지금 하는 일들은 롭 때문인 것 같아요. 롭이 죽지 않았다면 저는 한국에 오지 않았을 거예요. 롭은 항상 저보다 긍정적이었고 저보다 강한 파트너였어요. 늘 롭은 도전하자고 하는 사람이었고 저는 안전을 생각하는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우리는 잘 맞았던 것 같아요. 롭은 항상 앞으로 당기고 저는 뒤로 당겨야 했거든요. 그런데 롭이 곁에 없으니까 제가 롭처럼 됐어요. 롭이 가졌던 매력처럼 새로운 일을 자신감 있게 할 수 있었어요. 롭이 죽었을 때 1년 동안 런던에서 일하면서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는데요. 어떤 학교를 가야할지 고민하다가 계속 공부하면서 살고 싶지는 않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아예 새로운 시작을 하고 싶었어요. 정말 먼 나라에서 다른 문화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었던 거예요.

 

『원 마일 클로저』에서 실패의 경험까지도 솔직하게 공개하셨습니다. 실패는 끝이 아니라 “성공을 향한 배움의 과정”이라고 덧붙이셨고요.


짧은 기간으로 보면 실패인 경험도 길게 보면 성공일 수 있어요. 예를 들어서 마라톤에 나가서 끝까지 뛰지 못하면 실패잖아요. 그런데 그 경험 때문에 다음 마라톤을 잘 준비해서 성공하면 결과적으로는 성공인 거예요. 실패의 경험 때문에 어느 정도 배우고 다시 시도하면서 배우는 게 있다면 성공할 수 있어요. 그렇게 보면 실패는 실패가 아니에요. 실패는 그냥 성공으로 가는 한 계단이에요. 제일 중요한 건 왜 실패했는지 알아봐야 하는 거죠. 실패했다고 다시 도전해보지 않으면 그때는 실패했다고 할 수 있어요. 그게 아니라 왜 실패했는지 생각해보고 실패의 원인을 알 수 있으면 실패가 아니에요. 새로운 정보를 얻어서 앞으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으니까요.

 

남자로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 어머니의 이야기는 고백하기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제 경험 중에 하나이고, 그 경험 때문에 제가 지금의 모습이 된 거니까 이야기한 거예요. 그렇지만 한국 사회가 변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아요. 제가 한국을 너무 사랑한다고 해도 한국 사람은 아니잖아요. 저에게 한국 문화를 변화시킬 권리는 없다고 생각해요. 제가 말하고 싶었던 건 제가 이런 경험들을 통해서 지금의 저로 성장했다는 것뿐이에요. 어머니의 선택을 통해서 제가 배운 건, 어머니가 남자가 됨으로써 더 행복해졌고 그 결과 저도 행복해졌다는 거예요. 곁에 있는 사람이 행복을 느끼니까 저도 편해졌어요. 제가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제일 중요한 건 그 사람의 인생이고 행복이라는 거예요. 겉으로 드러나는 게 중요한 게 아니죠. 내 옆에 있는 사람이 행복하면 나도 행복하게 살 수 있어요. 

 

책의 제목이기도 한 ‘원 마일 클로저’ 프로젝트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2009년 1월에 친구 롭과 앳킨슨이 함께 세상을 떠났어요. 너무 슬펐지만 둘 다 열정적인 사람이었기 때문에 세상에 그들의 매력을 보여주고 싶었고 그들이 사회에 좋은 영향을 줄 수 있기를 바랐어요. 그래서 ‘원 마일 클로저’ 프로젝트를 시작했고요. 프로젝트의 목표는 세 가지예요. 하나는 우리의 친구에 대해 이야기하고 소중한 추억을 말하고 싶었고요. 새로운 참가자한테도 롭이 어떻게 살았는지, 그 사람의 행동에서 어떤 점을 배울 수 있는지 보여주고 싶어요. 두 번째 목표는 롭의 이름으로 다른 사람에게 좋은 교육의 기회를 주는 거예요. 교육 덕분에 꿈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하고, 우리도 학교에서 좋은 교육과 선생님을 만난 덕분에 많은 기회를 가질 수 있었거든요. 그래서 기부금을 모아서 우간다에 학교를 짓기 시작했어요. 세 번째 목표는 저와 롭이 멋진 선생님을 만나서 도전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것처럼, 모험을 아예 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어느 정도 모험을 경험해볼 수 있도록 하는 거예요.

 

이번에는 한국에서 ‘원 마일 클로저’를 시작한다고 들었습니다. <비정상회담>의 알베르토 몬디와 수잔 샤키야도 함께한다고요.


9월 13일부터 시작하는 이번 프로젝트는 네 번째 ‘원 마일 클로저’예요. 두 번째 ‘원 마일 클로저’는 2012년이었는데. 그때 저는 2년 동안 한국에서 살고 있었고, 한국 친구 다섯 명 정도가 유럽에 와서 프로젝트를 함께했어요. 작년에 프라하에서 영국까지 갔을 때는 한국 친구 열 명 정도가 참여했고요. 작년에 갔던 친구가 ‘원 마일 클로저’가 너무 재미있고 자기 친구도 참가하고 싶어 한다면서, 한국에서도 ‘원 마일 클로저’를 하면 안 되냐고 하더라고요. 유럽에서  개최하면 한국 친구들은 많은 비용과 시간을 내서 와야 하니까요. 그래서 올해에는 한국에서 같이하게 됐어요.

 

‘원 마일 클로저’의 기부금으로 우간다의 나랑고 학교를 후원하고 계시잖아요. 부인 이정민 씨는 그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하셨고요.


제가 아직까지 나랑고 학교에 가보지 못해서 부끄러운데요. 아내는 6개월 동안 나랑고에 있었어요. 지금은 호주에서 공부하고 있기 때문에 갈 수 없지만, 앞으로 저도 아내처럼 몇 개월 동안 나랑고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박사 과정이 끝날 때 좋은 기회가 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아내도 지금 영양학 석사 과정에 있어서 끝나고 나면 다시 우간다로 돌아가서 좋은 역할을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처음 나랑고 학교에는 건물도 하나도 없어서 망고 나무 그늘에서 수업을 진행해야 했는데요. 이제는 열 개의 교실과 세 개의 기숙사가 있어요. 2011년에 세 명의 학생으로 시작해서 지금은 730명의 학생이 공부하고 있고요. 최근에는 우간다에서 상위 30% 안에 드는 학교가 됐어요. 갈수록 학생 수가 많아져서 새로운 교실을 만들고 있는데도 교실에 다 들어가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아요. 내년에는 더 새로운 교실 만들 거예요.

 

한국에도 아웃도어 교육 센터를 설립하실 계획이 있으시죠?


제가 한국에 처음 왔을 때부터 알게 된 가장 친한 형과 JNS 매니지먼트라는 회사를 만들었는데요. 저희 둘 다 운동하는 걸 좋아하고 비슷한 점이 있으니까 한국에서 아웃도어 교육 시스템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학교에서 자전거나 등반을 배우면서 많은 기회를 가질 수 있었던 것처럼 한국에서도 그런 교육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아웃도어 경험이 독립적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해결책을 찾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한국 학생들에게도 그런 경험을 주고 싶어요.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생각하기에는 내년쯤에 그런 교육 센터를 열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원 마일 클로저』의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모든 사람한테 다른 성공이 있어요. 성공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자기에게 맞는 성공을 찾아야 될 것 같아요. 예술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대기업에서 성공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대기업 생활이 모든 사람한테 맞는 성공은 아니라는 걸 말씀드리고 싶어요. 다른 사람의 기대에 너무 부담 갖지 마시고 자기가 가고 싶은 길을 가면 열정 있게 일해서 성공할 수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고요. 재미없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면 힘을 낼 수 없잖아요. 그러면 어떻게 성공할 수 있겠어요. 하고 싶은 일을 하면 일처럼 생각되지 않아요. 그 길로 가면 끝까지 갈 수 있어요. 지치지 않아요. 하고 싶은 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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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마일 클로저제임스 후퍼 저/이정민,박세훈 공역 | 다산책방
열다섯 살 때부터 모험가를 꿈꾸며 크고 작은 도전들을 해온 그는 한국 나이로 스물아홉 살이다. 보통 청년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막 사회생활에 적응할 때라는 것을 감안하면 젊은 나이에 대단한 업적을 이룬 것. 극한의 환경을 이겨내고 ‘세계 최초’라는 수식어를 얻게 된 제임스 후퍼는 [비정상회담]을 통해 꿈이 없는 젊은이들에게 자신이 전하고 싶은 ‘세 가지(3steps)’에 대해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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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자기반성, 삶에 대한 무한히 예민한 감각, 모순으로 점철된 인생, 그 안에 시인들이 남긴 영롱히 빛나는 시가 있다. 어느 삶이 늘 행복하기만 하겠느냐만 특히 시인들의 삶은 평탄과는 거리가 멀었다. 약물, 음주, 누이동생과의 근친상간 끝에 자살한 게오르크 트라클, 홀로코스트로 부모를 잃고 본인은 간신히 살아남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 결국 센 강에 투신한 파울 첼란, 담뱃불이 번져 화재로 죽은 잉에보르크 바하만, 반체제작가로 낙인 찍혀 추방당해야 했던 라이너 쿤체... 이러한 목록은 끝없이 이어진다.


시인들이 짧고 혹독한 삶을 견뎌내며 시를 써내려간 시인의 집을 따라간 것은 공간을 보기 위함이 아니라 시를 알기 위해서였다고 말하는 전영애 교수. 그는 시인이 걸었던 곳을 함께 걸으며, 조심스레 그 위에 자신의 발자국을 얹어보면서 시인이 그랬던 것처럼 시인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다. 감당하기 힘든 삶의 무게로 짓눌릴 때 시인들이 써내려간 시구들을 떠올리며 살아가는 방법을 배웠다. 몸의 고됨은 중요하지 않았고 다만 시인의 삶이 말을 건네면 그것을 받아 적는 일에 몰두했다.

 

또다시 둘러보는 나의 어수선한 삶. 거기 누운, 마흔한 살 생일을 바로 앞두고 죽은 카프카보다 나는 이미 더 살았다. 그렇건만, 언제나 번잡하게 겉돌기만 했을 뿐 무언가 정말 중요한 것은 아직도 시작도 못한 듯 어수선한 나의 삶을 통렬하게 되돌아본다. 남은 것이라도, 이제라도, 쏟아부어야 할 것 같다. 무엇인가에.(155~156쪽)

 

『시인의 집』의 모든 문장들은 너무나 아름답고 겸손하다. 시적인 문장들이 정갈하게 놓여있다. 쉽게 책장을 넘겨서는 안 될 것 같은 끈끈함, 사유의 밀도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삶이라는 어려운 여정을 시인들과 함께 견뎌내는 것이 꼭 의미 있는 일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서늘한 바람이 훅 끼쳐오는 계절에, 참 어울리는 책이다.


문장과 꼭 닮은 전영애 교수, 그의 ‘집’은 여주에 있는 ‘여백서원’이다. 이제 조금이나마 나누고 싶다는 그는 비록 서원을 돌보는 일로 고된 날을 보내고 있지만 언제나 감사하다. 열린 공간으로, 누구나 와서 쉼을 찾을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그는 말했다. 그 공간이 전영애 교수의 글과, 말과, 삶과 닮았으리라는 것은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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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속으로 들어간 순간들


한 사람의 독자로 꼭 드리고 싶은 감상인데요, 책이 정말 좋았습니다.

 
그래요? 감사합니다. 어느 시기엔가는 책을 써도, 한 사람이나 읽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아마 그래서 자꾸 독일어로 글을 쓰게 됐던 것 같아요. 이 책은 진짜 우리말로 다시 돌아오기 위해서 썼어요. 너무나 감사해요. 한 분이 그렇게 읽으셨으면 쓸모가 있는 거겠죠.(웃음)

 

여러 해 두고 쓰인, 힘들게 만들어진 책이라고요.


여러 해 썼고, 여러 해 출판사에 있었어요. 상당 부분을 연재한 적이 있어요. 연재했던 이유가 우리말로 글을 쓰고 싶어서였는데요. 자신도 없었고요, 조금 더 좋은 그릇에 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에 굉장히 여러 해를 묵어있었어요. 혹시 디테일에서 약간 오래된 느낌이 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그렇지는 않은 것 같아요. 

 

출간 소감이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어떠세요?


정말 감사했어요. 책도 정말 자기의 운명이 있는 것 같아요. 억지로는 안 되고요. 공들였던 책이 잘 나오니까 얼마나 좋은지요. 사실 보통 책이 나오고는 복잡한 생각들이 많이 있거든요. 이번에는 참 좋았습니다.

 

이것은 가장 아름답고 적극적인 시 읽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인의 ‘집’에 매료된 이유가 특별히 있었나요?


공간의 문제라기보다는 오히려 시라는 추상을 찾아간 것 같아요. 사실은 자신의 문제인데 책에 자신의 문제를 쓰진 않았어요.(웃음) 어디선가는 대답을 찾은 거지요. 어느 집에서 시인이 나를 맞아줘서 내게 상담을 해준다거나 그러진 않지만 글을 쓰면서 사는 삶에 대해 생각하는 기회여서요. 세상 어느 시인이 그렇게 떵떵거리면서 잘 살았겠어요. 심지어 그러리라고 추측되는 괴테도 안 그래요. 그렇기 때문에 겸손하게 자신을 돌아보는 이유가 더 컸었어요. 제 자신의 추구이기도 했고, 제게 조금 남아 있을 수 있는 허영을 털어내는 일이기도 했던 것 같아요.

 

시를 찾아갔다고 하셨는데요. 공간에서 어떤 시적 영감을 찾으셨던 건지 궁금했었어요.


그건 아니었어요. 영감을 받거나 그런 건 아니고요. 제가 그 시인들의 시를 알잖아요. 제가 그 시인이 된 것처럼 공간을 바라봤어요. 저 시구가 이렇게 나왔구나, 그런 생각도 들었고요. 시 한 구절도 굉장히 크게 다가오는 느낌이었어요. 예를 들면 게오르크 트라클 같은 경우 정말 교회 바깥에 걸려있는 왕관이라든지, 교회 벽에 적혀있는 시라든지 이런 게 그냥 글로만 보는 것하고 시인의 눈으로 바라보는 건 좀 다르더라고요.

 

프라하 성에서 카프카의 『소송』어느 구절을 떠올리는 장면이 있거든요. 집과 시인이 거주한 지역들은 그대로가 언어로, 감각으로 남아 시인과 시가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 같아요.


네, 정말로요. 정말 겹겹 성 안에서 바닥은 전부 돌이고, 가끔 불이 켜져 있는데 『소송』의 현장에 빠져든 것 같았어요. 괴테 같은 경우에도 그랬어요. 그 창문에서 바깥을 내다본 삶이라는 게, 정말 시인의 마음속을 읽을 수 있더라고요. 정확하지는 않겠지만 그런 게 보이니까 정말 좋았어요. 어디나 조금 시 속으로 깊이 들어가는 계기였던 것 같아요.

 

어느 창문에 괴테가 섰을지 잠시 생각해본다. 알 수 있다. 복도 끝이 아니고 그 곁의 창문이 분명하다. 그 창문으로부터 보이는 풍경의 흡인력이 대단하기 때문이다. 큰길 비아 델 코르소가 보이고, 거기서 나눠지는 골목길 하나가 전면을 채우며 아득하게 뻗어져 나간다. 거의 물가인지 지평선인지 알 수 없는, 더는 인적이 없고 나무의 모습만 어렴풋한 그 끝에까지.(중략)
나도 오래 그 창가에 서 있다. 창가에 한참 서 있다보니, 왠지 여기까지 나를 오게 한 일들 중 가장 중요한 일을 다하고 난 느낌이 든다. 다른 것들은 어쩐지 나머지 같다.(465~466쪽)

 

시인의 집을 다녀온 후 곧바로 순간순간 짧은 글들을 쓰셨던 건가요?


조금씩은 노트를 해요. 기록의 의미에서 한다기보다는 대부분은 뭐라도 끼적이면서 극복해야 되는 상황들이 많아서요. 그런 식이에요.(웃음) 제대로 르포를 쓰는 것처럼, 혹은 일기를 쓰는 것처럼 그렇게 체계적으로 한 건 아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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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가장 선명하게 나를 돌아보는 방법


프롤로그를 읽고 ‘에스토니아’를 소망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 같습니다! 꼭 가보고 싶어지는 곳이었어요. 중세 유럽 한 가운데 있는 것 같은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져서요. 그 공간에 대한 기억을 조금 더 들려주세요.


가게 된 것 자체가 너무나 놀랍죠. 오래 전 이야기인데요. 그 나라가 독립해서 십 몇 년이 됐을 때 갔으니까요. 정말 어린 독립국이었어요. 재미있는 후일담이라면, 그곳 학회 언어가 영어였어요. 지금도 시원찮은데 그때만 해도 영어가 시원찮아서 영어로 바로 논문은 못 쓰고 독일어로 써서 옮겼어요. 왜 그랬는지 독일어 원고를 하도 힘들게 써서 조금 아까운 생각이 들더라고요. 원고를 어디 투고했다가 떨어졌어요.(웃음) 당연해요. 그 학회의 포맷이 있잖아요.

 

그리고 함량이 안 되면 떨어지는 건 당연한 건데요. 몇 달 지났는데 세상에, 스페인에서 기가 막힌 잡지가 하나 우송돼 왔어요. 그렇게 예쁜 학술지를 처음 봤는데요. 제가 에스토니아에서 영어로 발표했던 원고를 스페인어로 번역해서 너무나 아름다운 포맷으로 실어줬더라고요. 거기서 서툰 영어로 했던 글이 참, 아름답게 남아 있어요.

 

그것 또한 대단한 선물이었네요.


정말 선물이죠. 이미 많이 받았는데 말이에요.(웃음) 정말 그래요. 전에는 철이 없어서 그래도 누가 좀 알아주면 좋겠고, 조금 그런 생각이 많이 있었는데요. 이제 더 나이 들어 돌아보니까 받은 게 더 많고, 그것도 별로 공도 없이 받은 게 많아서 어떻게든 좀 나누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좀 들고요. 가끔씩 글을 쓰는 이유도 이제는 좀 그렇습니다. 전에는 어떤, 삶을 감당하는 방법이었는데요. 이제는 조금은 남다른 경험이 있고, 제 분야에서는 조금은 공부한 것도 있고 해서 조금이나마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것도 주제넘은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에요.(웃음)

 

대단히 자기반성을 많이 하는 모습이어서요. 좀 여쭤보고 싶었어요. 글에서도 종종 그런 면이 엿보였거든요.


유학 경력이 세 학기 밖에 안 돼요. 독일어로 어린이와 대화를 했을 때 만세를 불렀어요.(웃음) 칸트, 헤겔, 괴테는 읽어도 어린이하고 말을 해봤어야죠. 어찌됐던 그렇게 독일이라는 현실에서 멀리 떨어져서 혼자 읽고 그랬는데요. 자꾸 독일어로 글이 쓰여서 조금 제 글로 쓰고 싶어서 『시인의 집』을 쓴 거예요. 시인에 대한 건 그렇게 썼고, 정말 제 글은 독일어로 썼어요. 두 개가 이중적으로 나왔죠. 독일어로 쓴 건 물론 출판과는 상관없어요. 출판할 생각은 지금도 없고 앞으로도 없어요. 언제나 글은 일단 삶을 감당하는 방법이기도 했고, 저를 돌아보는 방법이어서요. 가장 선명하게 자기를 돌아보는 방법이에요. 좋지 않은 글이나마 글을 써왔으니까 사람이 이만큼 되지 않았나 해요.(웃음) 안 그러면 감당이 안 됐을 텐데요. 지금도 문제투성이지만요.

 

시집을 내는 것이 취미나 장기자랑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적은 문장이 기억에 남아요.


그러면서도 책은 조금 냈는데 반성투성이에요. 시집은 더 못 내고 있어요.

 

그래도 쓰긴 쓰시죠?


그건 제 의지는 아니고요. 출간하지 않은 걸로는 조금 묶어놨어요. 다만 묶고 정리하는 동안 그 생각 하나는 완결이 되니까요. 아마 출판을 하면 조금 더 다듬어질 수는 있겠지만요. 어쨌든 씀으로 해서 또 그 시절을 감당을 하고, 그 시절이 무엇인가를 생각을 하고, 이런 한 단계, 한 단계였던 것 같아서요. 종합적으로 글 배운 건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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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열어준 사람은 카프카, 시를 열어준 사람은 첼란


“하루 반쯤의 일정, 그 이상의 시간이 내게 주어진 적은 없는 것 같다”(130쪽)고 적으셨어요. ‘그곳’을 가기 위해 힘든 여정을 보내는 장면이 곳곳에 나오기도 하지만 힘든 기억만은 아닐 테죠. 지금, 그 시간들이 어떻게 남아있는지 궁금합니다.


여러 가지 하고 사니까 학회 갔다가 여행 다니고, 많이 돌아다닐 수는 없는 입장이잖아요. 실은 공부도 다 도둑질하듯 했어요.(웃음) 학회는 완전히 야반도주처럼 다녀서 하루 남으면 감지덕지였죠. 한참 지나 원칙을 세웠어요. 학회 끝나고 하루는 비운다, 하루는 비워서 돌아도 보고, 근처도 가고, 숨도 돌린다는 생각을 했어요. 요즘은 하루는 비워요. 그런 시간이 굉장히 소중한 시간이에요.


예전엔 나이도 들고, 경험도 많아지면 조금은 쉬워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굉장히 많이 했는데요. 경험도 쌓이지만 쌓인 경험보다 요구가 더 높아져서 여전히 힘들어요. 내내 힘들게 있다가 돌아오기 때문에 하루 비는 시간이 무척 소중하죠. 공부가 거의 독학이었기 때문에 배울 기회가 있으면 거의 달려갔어요. 모든 게 그렇지만 얼마나 외로워요. 자기가 관심 있는 것에 대해 한 마디라도 나눌 사람이 있다면 너무나 반가워서 학회를 가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누가 저렇게 기웃거리나 해서 끼워주고, 그러다가 불러도 주고, 그렇게 됐어요.(웃음)

 

쿤체 시인의 낮고 조용한 목소리는, 독일어에 뿌리내리려는 어느 먼 분단국의 목소리인 나의 시로 시작하여, 독일 분단을 거쳐, 다시 날카로운 심지를 박으며 분단 한국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을 괴롭혔던 이데올로기의 비극과 분단의 고통을 그 누구보다 온몸으로 겪었던 시인의 나직한 목소리가, 또다른 분단국과 그 나라 사람들에 대한 사랑으로 확장되어 공명하고 있었다. 그 순간은, 내가 꿈꾸어본 적도 없는 어떤 순간, 삶의 절정이라 할 어떤 것이었다.(206쪽)

 

라이너 쿤체는 책에 소개된 시인들 중 유일하게 생존해 있는 시인이자 선생님과 깊은 교류가 있는 시인입니다. 독일까지 한옥을 보낸 일화에서 볼 수 있듯 두 분의 우정이 정말 감동적으로 읽혀요. “삶의 절정”이 아닐까 라고 표현하기도 하셨고요.


정말 감사하죠. 거의 독학이었기 때문에 평생 스승을 찾아 헤맨 것 같아요. 젊었을 때는 오만하게 누가 새끼손가락만 좀 잡아줘도 될 것 같았어요. 나중에 보니 결국 혼자 하는 거였어요.(웃음) 참 감사해요. 시 선생님을 만나게 된 것이요. 사람이 꼭 원하는 건 이루어지는 것 같아요.


한옥 지은 이야기를 굉장히 예쁜 책으로 일곱 권을 만들었어요. ‘작은 집 이야기’라고 이름 지었는데 출판하지는 않고요. 선생님(라이너 쿤체)과 주고받은 편지들인데요. 한옥을 지으면서 나눴던 편지도 너무나 대단한 기록이어서 예쁜 책으로 만들어뒀어요.

 

멋진 책일 것 같은데 왜 출판하지 않으셨어요?


저는 늘 자신이 없어요. 『시인의 집』도 그렇고요. 누가 이 책을 읽겠나, 생각이 들어서요. 책은 어찌됐건 상품이잖아요. 출판사에게 이런 책으로 장사하라고 드릴 수가 있겠나, 이런 생각이 앞서요. 책 내면 늘 좀 죄 지은 사람 같아요. 정말로요. 이러면 책을 안 내야 맞는 거잖아요. 그런데 책을 많이 냈단 말이에요. 하지만 책을 냅시다, 하고 책을 낸 건 평생 두세 번 밖에 안 돼요. 그냥 공부하는 방법으로 해서 뒀다가 기회가 닿으면 냈는데요. 모르는 사람이 보면 책을 척척 내는구나 하시겠지만 그렇지는 않고요. 죽을 만해야 책이 나오더라고요.(웃음)  

 

‘시인의 집’이지만 카프카가 수록되어 있잖아요. 카프카를 넣어야만 했던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 것 같아요.


참 예외적이죠. 이물질이라.(웃음) 행운이 많은데 그 중에서도 아주 큰 행운은 문학을 카프카로 시작할 수 있었다는 것인 것 같아요. 누가 골라준 것도 아니고 작심한 것도 아니죠. 그때만 해도 카프카는 너무 낯설고, 『변신』같은 건 엄두도 안 나던 시절인데요. 친한 사람은 아니고 동창 한 명이 카프카로 석사 논문을 쓰다가 세상을 버렸어요. 과로였던 것 같아요. 도대체 카프카가 누구기에 그런 일이 다 있나 싶었어요. 작품을 볼 엄두는 안 나고 일단 카프카 평전을 한 번 본다고 아주 공들여 번역을 했고요. 그때 했던 생각이, 작가는 작품으로 알아야지 작가에 대해 논한 걸로는 아니다, 였어요. 그래서 그 번역 마무리 되고부터 작품을 읽게 됐어요. 번역을 하면서 작품을 읽었죠. 카프카야 말로 그렇게 읽기 적합한, 어쩌면 그렇게 읽어야 할 작가일 거예요.


카프카에게는 문학이 삶의 대안이었어요. 결국 문학이 너무 버거워서 삶 속으로 가야하지 않을까 했다가 언제나 다시 문학으로 돌아온 작가죠. 그렇게까지 문학에 자기를 다 쏟는다는 게 무엇인가를 알게 해줬어요. 그땐 문학공부인지 몰랐지만 문학공부의 시초였다는 생각을 해요. 그런 입구를 가질 수 있었다는 건 정말 행운인 것 같아요. 조금 과장을 하자면 어떤 시가 카프카의 문학만큼 진할 수 있겠는가, 이런 생각이 조금 들었어요. 그만큼 카프카의 문학이 아주 조탁된 시의 밀도와 강도와 적어도 같거나 더한 것이어서요. 그래서 카프카를 꼭 넣고 싶었어요.

 

넣고 싶었지만 담지 못한 작가들도 많이 있겠네요?


당연히 많죠. 예를 들면 이런 거예요. 더블린에서 학회가 열렸다, 한다면 더블린을 갔다가 그냥 올 순 없잖아요. 평생 읽으려고 해도 못 읽는 작품 중 대표적인 게 또 『율리시스』예요. 그걸 어떻게 읽어요.(웃음) 그런데 가만히 생각하니까 더블린에 앉아서도 『율리시스』를 못 읽으면 나는 평생 『율리시스』를 못 읽겠구나 싶었어요. 그때는 유일한 예외로 사흘 시간을 내서 더블린에서 『율리시스』를 읽었죠. 거기 쓰인 현장들이 환하니까요. 그곳에 앉아 『율리시스』를 읽었던 건 정말 너무나 좋은 기억이었어요. 하지만 제가 어떻게 제임스 조이스에 대해서 감히 쓰겠어요. 그래서 쓰지는 않았는데 그 방대한 작품의 현장이 다 보이니까 좋았죠.

 

시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거대한 세계를 산 보잘 것 없는 초라한 인간을 생각하게 됐습니다. 참 서글프고, 서러운 감정이 많이 들었어요. 특히 비교적 길게 다룬 시인 파울 첼란을 읽으면서 그랬는데요. 선생님께서 옮긴 시 선집『죽음의 푸가』를 함께 들춰보며 읽으니 더욱 그렇더라고요. 물론 서글프고 서럽지만 반드시 필요했던 이야기라는 생각도 들고요. 


1980년에 파울 첼란을 읽고 있는 동안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났죠. 바깥에 있었기 때문에 훨씬 더 선명하게 보였어요. 안에서는 아직도 유언비어로만 돌고 이런 시점에 저는 밖에 있었기 때문에요. 도저히 상상이 안 되는 거예요. 일제라면 상상을 할 수 있는데 말이에요. 마침 첼란을 우연히 읽었죠. 역사의 문제들이나 인간의 수렁, 불합리 같은 것을 감당하는 측면도 있었어요. 거꾸로 광주가 있었기 때문에 아우슈비츠에 있던 사람들에게도 조금 더 가깝게 느껴볼 수 있지 않았나 그런 생각도 해요. 문학을 열어준 사람은 카프카라 했지만 시를 열어준 사람은 첼란이에요. 문학이 무엇인가를 정말 혹독하게 생각하게 만드는 그런 사람들로 문학을 시작할 수 있었다는 게 참 다행이었던 것 같아요. 문학적인 것도 있지만 역사와 인간의 모순에 대해서 치열하게 생각해볼 수 있었는데요. 기가 막힌 만행도 인간이 저지르고, 또 그런 것을 토대로 너무나 높은 정신의 결정물들이 나오는데 그것도 또 인간이 한 일이라 여러 가지 공부를 깊게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글 쓰는 마음으로 사는 것


개인적인 질문입니다만 선생님께서 곳곳에 적으신 ‘시를 산다’는 감각은 어떤 것일까요? 시심을 고백한 대목이 무척 인상적이었거든요. 고백을 적어 내려간 자체도 쉽지 않으셨을 것 같아요.


저도 그렇게 말을 함부로 해서 미안한데요.문학 학문을 하려고 했던 사람들은 전부 소설이나 시를 쓸 용기가 조금 부족했던 사람들 아닐까요.(웃음) 그 안에서 조금은 안전한 길을 간 거라서 말이에요. 그런 자기반성도 좀 있고요. 제가 스무 살 때 한 일이라고는 시 안 쓰겠다고 결심한 정도밖에 없는, 참 한심한 사람인데요. 잠깐 문단에 나가본 적이 있어요. 왜냐하면 시를 쓰고, 읽으면서 사람이 됐으니 나도 시를 조금 돌봐야 도리가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었는데요. 일단 저는 아니더라고요. 안 되겠더라고요. 그냥 글 쓰는 마음으로 사는 게 어떨까 그런 생각이죠. 별 것 아니에요.


지금은 많이 뻔뻔해졌지만 돌아보면 너무나 부끄러움이 많았어요. 그런 결심을 한 건 간단해요. 학교 잡지에 글을 한 번 내봤더니 그 다음부터는 학교에 가면 속옷만 있고 서 있는 것 같았어요.(웃음) 도저히 감당이 안 되더라고요. 나는 아니구나, 생각했어요. 표현을 하려면 나가는 것도 씩씩하게 나가고 이래야 되는데, 소심한 것과 표현하는 것이 합쳐질 수 있는 게 아니라서요.

 

『죽음의 푸가』옮긴이의 말에 보면 딸 세인이 시를 함께 추려주었다고 하고, 이 글도 읽어주었다는 작가의 말이 눈에 띄었어요. 책에는 딸에게 쓴 편지도 그대로 실으셨는데요. 세인 씨는 선생님께 어떤 영감을 주는 존재인 것 같았습니다. 


딸이 안 중요한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전혀 돌보지 않았는데 잘 자라준 것만 해도 고마운데 참 좋은 친구여서요. 늘 감사하고, 미안하고 그래요. 도무지 상식적인 엄마가 못 돼서요. 

 

에필로그에 자신의 공간을 공개하셨어요. 애정이 물씬 느껴지기도 했고요. 얼마나 자주 그곳에 계세요? 그곳에 가면 ‘숨이 쉬어진다’고 하셨기에 그곳에서의 생활, 그곳에 계실 때의 느낌이 참 궁금했습니다. 


너무나 좋아서 새벽 두 시건 세 시건 몸만 뺄 수 있으면 거기를 갔어요. 아무리 늦더라도 거기를 가야 시들은 꽃을 컵에 꽂아놓으면 좀 살아나는 것처럼 살아나서 글도 쓰고 조금 사람이 제대로 돌아오는데요. 어느 날 걱정이 되는 거예요. 이 집을 내놓아야 하는 상황이 오면 어쩌나 해서요. 알아보니 건넌 마을에 굉장히 넓은 땅이 있어요. 아무것도 안 따지고 계약을 했어요. 그 빚을 작년까지 갚고(웃음) 그 땅이 너무 넓어서 저 혼자 쓸 수가 없기에 서원을 지었어요. 그게 여백서원입니다. 요즘은 주경야독이 극에 달했어요. 그럴 듯하게 보일지는 몰라도 아무도 이렇게 살기는 싫을 거예요. 노동이 좀 심하게 과합니다. 오셔서 보시면 알아요. 넓어서 일이 많아 낮에는 일을 많이 해야 하고요. 서원지기 한다고 제가 본업을 다 제쳐놓을 수는 없으니까 밤에는 또 일을 하고요. 그래도 기본적으로 일단 감사해요. 서원은 함께 사는 공간으로 생각하니까 내가 좀 힘들어도 감당이 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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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집전영애 저 | 문학동네
삶은 어쩌면 평생에 걸쳐 안주할 단 하나의 집을 찾기 위한 여정일지도 모른다. 힘겨운 대낮의 일상을 마치고 어둑해지는 길들을 지나서, 마침내 돌아가 곤한 몸을 누일 장소. 우리는 그곳을 ‘집’이라고 부른다. 집이 없는 자에게는 휴식이 없다. 주변을 온통 경계하느라 잠조차 편하게 잘 수가 없다. 정처 없이 떠도는 여행자라 할지라도, 그날 밤의 거처를 생각하며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된다. 몸과 마음을 쉬게 할 곳. 든든한 식사와 따뜻한 차 한잔을 마실 수 있는 곳. 그리고 마침내 구원받을 수 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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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호 PD, 대중을 유혹하는 7가지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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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빡 속았다. 최초로 거리를 활보했던 여성 흡연자들이 뿜어냈던 여권 신장의 상징이, 베이컨과 달걀이 점령한 아메리칸 브렉퍼스트가, 1930년대 미국인들의 거실 한편을 차지했던 붙박이 책장이, 모두 ‘만들어진’ 작품이었다니. 더구나 이 모두가 한 사람의 대중홍보 전략가에 의해 치밀하고 정교하게 고안된 이미지일 줄이야.

 

『대중 유혹의 기술』이 들려주는 진실 앞에서 기존의 통념들은 소리 없이 허물어져 내린다. 당신이 떠올리는 이미지가, 사실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사건의 실체가, 조금도 가공되지 않은 것이라 확신할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당신을 에워싸고 있는 미디어의 힘을 간과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보이지 않는 손’은 도처에 있다. 그것은 대중의 심리를 꿰뚫고 마음을 움직이는 기술을 가지고 있고, 모든 종류의 텍스트를 동원해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반응을 이끌어낸다. 한 장의 사진과 한 편의 드라마, 심지어 언론 기사와 주변의 입소문까지도 ‘보이지 않는 손’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한 번도 맛본 적 없는 과자지만 먹고 싶다는 강렬한 유혹을 뿌리치기 어렵고(허니버터칩) 짜릿한 스포츠 영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에너지드링크의 효과를 떠올리는 일이(레드불) 가능한 이유다.

 

『대중 유혹의 기술』에 담긴 7가지 유혹의 기술은 몇 주 전 EBS 다큐프라임 <한국인의 집단심리 - 우리 WE>를 통해 공개된 바 있다. 갓 나온 따끈따끈한 정보를 책 속에서 만날 수 있게 된 건, 프로그램 제작 단계에서부터 출간을 염두에 둔 오정호 PD 덕분이다. 그는 방송 시간의 제약과 영상 매체의 특성을 이유로 미처 다 담지 못한 이야기들을 『대중 유혹의 기술』 안에서 풀어냈다. 이 방대한 작업을 통해 그가 전하려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당신을 유혹함으로써 다른 유혹에는 쉽게 빠지지 않을 어떤 지혜를 당신에게 주고 싶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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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품을 팔고 싶다면 라이프 스타일을 바꿔라


다큐프라임 프로그램 제작과 『대중 유혹의 기술』출간을 동시에 준비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카메라에 비유하자면 방송은 표준렌즈라고 할 수 있어요. 모든 맥락이 제거되고 적당한 사이즈가 나오죠. 자세히 들여다보거나 멀리서 바라보는 경우는 없어요. 그런데 책은 접사렌즈나 망원렌즈의 효과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방송에서는 제거된 맥락들을 책으로 풀어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무엇보다 대중적인 소재라는 판단이 있었어요. 저는 프로그램을 만들 때마다 ‘내가 만든 프로가 아니더라도 보고 싶을까’를 생각하는데 『대중 유혹의 기술』을 준비할 때도 같은 기준으로 판단했어요. 이런 책이 시중에 나오면 들춰볼 것 같더라고요(웃음). 그리고 지금 시대에는 대중을 타깃으로 하는 전략들이 미디어라는 매체를 통해서 이루어지잖아요. 그런 점에서 함께 이야기해볼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이번 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되신 결정적인 계기로 두 권의 책을 꼽으셨어요. 『적군파 : 내부 폭력의 사회심리학』『우리는 왜 극단에 끌리는가』때문이라고요.


『적군파』가 출간되던 해에 프레시안에서 이 책을 올해의 책으로 선정했어요. 처음에는 심심한데 읽어볼까 라는 생각이었는데, 직접 보니까 굉장히 밀도 있더라고요. 인간 심성에 대한 깊은 해부가 있었어요. 『우리는 왜 극단에 끌리는가』는 제도화된 시스템 내에서 우리가 극단화되는 경우들을 생각해 보게 하죠. 이렇게 가장 어두운 부분부터 가장 밝은 부분까지 한꺼번에 다 이야기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생각하다가 처음의 기획안을 제출했어요. 그것과 한국인의 집단심리를 결합해서 만들어 보자고 생각해서 탄생하게 된 게 이번 프로그램이고요.

 

‘대중이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생각은 오래 전부터 가지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2011년에 영국에서 폭동이 발생했을 때 제가 런던에 있었는데요. 그때 4일 동안 밖에 나가지 못했어요. 방화와 약탈이 일어나는 동네 한 가운데에 있었거든요. 그때 트위터를 많이 보게 됐는데, 폭동의 와중에서도 누군가는 빗자루를 가지고 나가자고 하면서 청소를 하더라고요. 어둠과 그림자를 동시에 교차해서 보는 게 흥미로웠어요. 이런 소재를 통해서 대중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심리에 대한 내용이 될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죠. 칠레 광산에 매몰됐던 광부들의 이야기도 굉장히 흥미로웠어요. 보통은 휴머니티가 살아있는 아름다운 이야기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사실은 기네스북 기록에 오르려고 서로 마지막까지 남겠다고 하는가 하면, TV가 생기자 채널 선택권을 두고 다투기도 했거든요. 그런 모습들이 흥미로웠죠.

 

이번 취재를 통해 대중에 대해 생각이 바뀌셨나요?


대중이 주어로 쓰일 때보다 목적어로 쓰일 때가 훨씬 많죠. ‘대중이 무엇을 할 수 있다’라는 것보다는 ‘대중을 설득한다, 대중을 유혹한다, 대중을 이끈다, 대중을 호도한다’라고 하는 경우가 훨씬 많은 거죠. 그런 건 이미 정교화 된 기술로 굳어져있어요. 대중으로 하여금 물건을 사게 하거나, 원하는 방향으로 이동하게 하거나, 어떤 것을 생각하지 못하게 하는 식이죠. 저는 그 기술들이 공통적으로 통과하는 지점이 미디어라고 본 거예요. 그야말로 매개체인 건데, 그 매개체는 잘 보이지 않죠. 그렇다면 대중 유혹의 기술을 쓰는 보이지 않는 손이 무엇일지 궁금해지잖아요. 방송에서는 제가 뚜렷하게 나타내지는 않았지만 노엄 촘스키의 인터뷰처럼 그것이 미디어라고 은근하게 밝힌 거예요.

 

『대중 유혹의 기술』에서 에드워드 버네이즈가 PR에 미친 영향을 많은 지면에 걸쳐 소개해주셨습니다. 그는 어떤 인물이었나요?


일단 버네이즈는 천재죠. 저도 버네이즈에 대해서 조사하면서 대단히 흥미로운 인물이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베이컨을 팔기 위해서 아메리칸 브렉퍼스트를 만든다든지, 녹색 옷을 유행시키기 위해서 파티를 기획하고 입소문을 만들어 낸다든지, 책을 팔기 위해서 붙박이 책장을 유행시킨다든지, 그런 면들은 거의 100년 지난 지금 생각해봐도 대단히 현대적이고 직관적이죠. 모든 마케터들이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본능적으로 대중들을 유혹할 수 있는 기술을 원하는데, 그것의 본류가 에드워드 버네이즈라는 생각이 들어요. 상품을 팔기 전에 대중들의 라이프스타일을 바꾸라는 건 지금 생각해 봐도 너무 뛰어난 전략이잖아요.

 

책에 쓰신 것처럼 버네이즈는 프로이트의 조카였고 『정신분석입문』을 직접 번역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대중이 선동 가능한 대상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던 걸까요?


대중은 취약한 존재들이죠. 어떤 자극을 주면 움직이게 될 수밖에 없다는 게 저의 생각이기도 해요. 충분히 길들여질 수 있죠. 버네이즈 역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요. 버네이즈는 자본주의를 굉장히 신뢰했고 좋아했던 사람이었어요. 자본주의가 굴러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욕망을 계속해서 만들어줘야 되는데, 그것이 PR과 홍보의 기술이라는 것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거죠. 지금의 홈쇼핑만 봐도 알 수 있잖아요. 계속해서 욕망을 만들어내고 그 욕망을 보여주고 욕망이 채워진 상태의 나를 보여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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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의 공포와 분노를 자극하라

 

지금까지 바이럴 마케팅의 전략은 ‘최대한 많이 입소문을 내는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런 데 책에서 소개하신 울트라뮤직페스티벌코리아(UMF)은 전혀 다른 방식을 선택했더라고요.


울트라뮤직페스티벌의 경우는 대중들에게 너무 많은 정보를 밀어 넣지 않아요. 오히려 정보에 굶주리게 만들었어요. 그 대신 정보를 탐색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는 굉장히 잘 만들었죠. 그 안에서 경쟁이 이루어지게 한 거예요. 누군가 정보를 찾아내면 그것이 바이럴로 돌게 되고요. 정보 탐색에 선행하는 사람과 후발주자들의 간격을 벌리게 하는 일종의 시차 전략이었다고 할까요. 모든 사람에게 모든 정보를 줬을 때는 그 시차가 발생하지 않아요. 하지만 굶주리게 했을 때는 다르죠. 그것도 나름대로 좋은 바이럴 전략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드라마투르기라는 극작술이 저널리즘에서도 사용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보통 스토리라인이라고 하면 픽션에만 해당된다고 생각하지만 논픽션에서도 가능하죠. 사실 논픽션 스토리텔링에는 기법이 있고 기자들도 많이 써요. 좋은 방식으로 쓰이죠. 그것이 반드시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문제는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있을 때 팩트가 정확히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드라마가 만들어지는 거예요. 혐의만으로도 드라마가 만들어지거든요. 이야기가 하나하나 덧붙여지면서 사회적 드라마가 돼요. 그것이 사람들에게 소비되는 시스템을 우리는 이미 갖추고 있죠. 신문이나 인터넷에서 이야기가 돌기 시작하면 찌라시나 SNS를 통해서 확산되잖아요. 그런 일이 가능한 미디어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거예요.

 

이런 현상 속에는 어떤 위험성이 감춰져 있나요?


혐의가 팩트가 되는 과정에서는 누가 그렇게 규정했는지 범인을 찾기 힘들어요. 공범에 묻히는 거죠. 이런 드라마투르기의 위험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어요. 가장 큰 위험은 마지막 결론을 누가 내느냐의 경쟁으로 간다는 거죠. 저널리즘이 드라마 작업으로 변하면 누가 따끈따끈한 소식을 덧붙이느냐의 경쟁이 되는 거예요. 사람들은 계속해서 드라마를 소비하다가 잠잠해지면 다른 사건으로 넘어가죠. 대중들을 유혹하는 이런 기술은 사실 미디어에서 가장 많이 쓰죠. 저는 이걸 누가 쓰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고 봐요. 드라마투르기는 좋은 기술일 수도 있고 호도하는 기술일 수도 있는 거죠.

 

알랭 드 보통의 말을 빌려 “뉴스는 ‘동요하고 겁먹고 괴로워하는 대중’을 간절히 원한다”고 하셨습니다. 그 사실을 보여주는 예들을 다수 소개해 주셨고요. 그 중에서도 가장 상징적인 사건은 키티 제노비즈 사건일까요?


키티 제노비즈 사건은 1964년에 발생했고 저는 2014년에 우연히 보게 됐어요. ‘뉴욕타임스도 실수를 한 적이 있을까’라는 가벼운 호기심에서 조사를 하다가 알게 됐죠. 물론 이견도 있어요. 뉴욕타임스의 거짓말이라는 주장도 있고 의도된 건 아니라는 주장도 있어요. 지금도 모든 사회심리학 책에서 방관자효과를 설명할 때 키티 제노비즈 사건이 언급돼요. 아직도 각종 매체에서는 38명의 주민들이 범죄 현장을 보고도 신고하지 않았다고 하고요. 결과적으로 키티 제노비즈 사건은 그 동네 주민들에게 오명을 줬죠. 하나의 정보가 공포와 분노와 같이 들어왔을 때는 굉장히 강하게 박혀요. 그것이 강화가 되면 그렇게 믿어버리고요.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공포와 분노를 자극하는 건 대단히 효과적으로 대중을 유혹할 수 있는 기술이죠. 변형하면 마케팅적으로 쓸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특히 온라인에서 공포와 분노는 가장 강력한 요소예요. 잘 활용하면 뷰어나 접속자수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 요소인 거죠. 암울하고 공포스러운 걸 넣었을 때 사람들은 더 끌리거든요.

 

그와 유사한 사례가 최근에도 있었나요?


이른바 사다코의 눈빛이라고 불렸던 조현아 씨의 사진은 굉장히 공포스러웠죠. 그 사진이 묘했던 건 공포와 분노가 동시에 있었다는 거예요. 사실 그녀는 분노의 대상이 될 수 있는 행동을 했죠. 그 사람이 저지른 일은 법적으로 처리하면 돼요. 그런데 그 단계를 넘어가는 과정에서 사다코의 눈빛이라는 사진이 나와서, 분노라는 감정에 공포라는 감정을 덧붙여서 강화시킨 거예요. 조현아를 우롱하는 패러디도 많이 나왔잖아요. 증오의 대상을 누가 더 희화화시킬 수 있는지 경쟁 아닌 경쟁이 이루어진 거예요. 그건 옳지 않다고 봐요. 오히려 사건의 본질에서 더 멀어지게 하는 행위들인 거죠. 공포와 분노는 어떤 사건의 본질을 찾을 수 있는 일차적인 감정이기는 해요. 하지만 그것이 사건을 제대로 들여다보는 열쇠는 아닌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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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에 기술에 현혹되지 않으려면…


히틀러가 대중을 유혹한 기술을 이야기할 때 대부분 요제프 괴벨스를 떠올릴 텐데요. 『대중 유혹의 기술』은 하인리히 호프만의 역할에도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는 어떻게 히틀러를 대중의 아이콘으로 만들었나요?


호프만은 히틀러의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잖아요. 저는 호프만의 스튜디오에서 촬영된 히틀러의 사진이 흥미로웠어요. 사진 속에서 연설을 연습하는 히틀러의 모습을 보고 그는 만들어진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하인리히 호프만은 히틀러의 이미지를 통제하기 시작했던 거죠. 밖으로 나가는 히틀러의 이미지를 통제했어요. 그만이 히틀러의 사진을 찍을 수 있었고 내어줄 수 있었던 거예요.  『나의 투쟁』이 나오기 전까지는 히틀러는 그냥 평범한 정치가 이미지였는데, 책이 출간된 이후부터는 나치당에서 이미지를 조정하기 시작해요. 히틀러를 점점 독일인이 원하는 얼굴로 만들어내기 시작한 거죠. 그렇게 통제된 이미지들을‘괴벨스의 라디오’에 덧붙였고요.

 

“레드불의 PR 전략에는 가장 효과적인 대중 유혹의 첨단 기술이 총망라되어 있다”고 하셨습니다.


레드불의 마케팅 전략을 살펴 보면 하늘을 나는 것에 공통점이 있더라고요. ‘레드불, 날개를 펼쳐줘요’라는 CEO의 캐치프레이즈가 있었던 거예요. 에너지드링크를 먹었을 때 체험적으로 다가오는 느낌과 뛰어내리는 스포츠의 순간들이 잘 맞아 들어간 거죠. 펠릭스와 레드불사가 함께한 성층권 프로젝트처럼요. 그리고 카메라 기법도 그렇게 쓰죠. 이를테면 드론을 사용하거나 헬기에서 촬영하는 거예요. 레드불의 마케팅에는 미디어 이벤트, 쾌감 있는 공포, 바이럴이 다 들어있어요. 때로는 무의식을 자극하기도 하죠. 일본에서 ‘레드불 에어 레이스 치바’를 개최했잖아요. 일본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하늘을 나는 꿈과 맞닿아 있는 거예요.

 

『대중 유혹의 기술』은 “대중을 유혹하는 최고의 기술은 대중의 무의식을 이용하는 방법”이라고 말합니다. 대중의 무의식은 어떻게 발견하고 이용할 수 있는 걸까요?


과거의 기억 또는 과거의 기쁨을 활용할 수도 있고요. 트라우마와 욕망을 자극할 수도 있어요. 대중의 무의식이라는 건 어떻게 보면 통계적으로 설명이 가능하죠. 할리우드에서는 보통 작품을 리바이벌을 할 때 주기가 있어요. 20~25년 정도예요. 소비자가 어렸을 때 봤던 것을 성인이 되어서 다시 보고 싶어 하는 나이가 된 시점이거든요. 그리고 중요한 건 자녀와 같이 볼 수 있는 나이가 됐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무엇이 유행이 될 수 있을까 분석할 때 20년 또는 25년 전의 신문을 뒤져보면 좋죠. 어렸을 때 각인됐던 기억이나 기쁨들이 소비될 수 있는 상품으로 다시 찾아왔을 때 쓰게 되니까요.

 

트라우마를 자극하는 것이 어떻게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걸까요? 언뜻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상처를 다시 가지고 오는 게 아니라 상처를 뒤집어서 가지고 오는 거죠. <포레스트 검프>가 어떻게 미국인들을 사로잡았는지 생각해 보면, 뒤집어진 역사이기 때문이에요. 베트남 전쟁은 미국이 패배한 전쟁인데 <포레스트 검프>는 그걸 다른 형태로 뒤집어서 가지고 왔거든요. 들추기 싫었던 전쟁을 받아들일 수 있는 기억으로 다시 가지고 온 거죠. <암살>도 비슷하겠죠. 그 당시에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를 우리가 소비할 수 있는 역사로 다시 가져오는 거예요. 이를테면 우리나라가 핵폭탄을 발명할 수 있었다는 것만 가지고도 얼마든지 소설이 될 수가 있는 거고요. 실패한 역사도 얼마든지 가공과 변형을 거쳐서 가져올 수 있어요.

 

『대중 유혹의 기술』에 담긴 7가지 기술들은 인간의 심리를 정확하게 꿰뚫고 있잖아요. 그런 기술에 현혹되지 않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요?


안다고 해서 현혹되지 않는 건 아니죠. 기술의 손아귀는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기왕 속을 바에는 덜 속는 방법 밖에는 없지 않을까요? 보이지 않는 손은 너무 강하고 은폐되어 있어요. 우리에게 그 손은 보이지 않지만 그들에 의해서 우리는 보이죠. 내가 인터넷에서 무엇을 보고 무엇을 좋아하는지 다 알잖아요. 마케팅적으로 우리는 이미 그들의 네트워크 안에 들어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속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 같고, 다만 어떻게 하면 덜 속을 수 있을지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속지 않으려면 속이는 기술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렇죠. ‘어떤 기호가 거짓을 말하는 데 사용될 수 없다면, 마찬가지로 그 기호는 진실을 말하는 데도 사용될 수 없다’는 기움베르토 에코의 말을 좋아하는데요. 마찬가지로 거짓말의 기술이 될 수 있는 것은 진실의 기술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것은 누가 쓰느냐에 따라서 진실의 기술이 될 수도 있고 거짓말의 기술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요. 유혹의 기술이 속이는 기술이 될 수도 있지만, 속이는 데에서 빠져나올 수 있게 만드는 기술이 될 수도 있죠. 아니면 제대로 속이는 기술이 될 수도 있고요. ‘그 기술을 어떻게 사용할지는 당신의 판단에 달려있다’는 이야기를 남길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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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유혹의 기술EBS MEDIA 기획/오정호 저 | 메디치미디어
TV프로그램이 성공작으로 방송된 후 출판으로 이어지는 일반적인 경우와 달리, 책 《대중 유혹의 기술》은 방송 제작과 동시에 진행되었다. 따라서 단순히 방송 내용을 활자로 풀어놓는 것을 넘어 (방송의 1, 2부에 해당하는) 100분의 시간에 담지 못한 상세한 이야기들을 책 속에 담아낼 수 있었다. 방송 최종 편집과 책 마감이 겹쳐 8월 한 달을 초인적인 스케줄을 이어가고 있는, 다큐의 PD이자 이 책의 저자인 오정호 PD는 방송을 표준렌즈에, 책은 접사렌즈에 비유하며, 각각의 역할에 충실한 결과물을 내고자 노력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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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결혼을 하려면 어려운 연애를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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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 들어가면 제각각 미세하게 다른 생각들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람이지만 의외로 크게 다르지 않게 살아가는 것이 또 사람이다. 그러니 1년에 두 번, 명절 때만 되면 들어오는 친척들의 공격들, ‘남자친구는 있니?’, ‘결혼은 언제 하니?’, ‘아이는 언제 낳을 거니?’, ‘둘째 계획은 있니?’, ‘아이가 공부는 잘하니?’에 무참하게 당하고 마는 것이다. 다른 삶을 상상하는 감수성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생각이지만 막상 다른 삶을 사는 자신의 모습에 막연한 두려움을 갖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다 보면 이곳은 참 대책 없이 ‘작은 사회’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어쩌랴. 세 다리만 건너면 아는 사람이라고, 그 아는 사람들에 아는 사람들과 친한 사람들까지 똘똘 뭉쳐 내 라이프 스타일에 훈수를 두는데.


여전히 싱글을 고집하는 3545 여성들에게 1세대 커플매니저 홍유진 대표는 묻는다.

 

그래도 결혼 생각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더 늦기 전에 생각을 분명히 정리해볼 필요가 있다. 정말로 결혼 생각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막연히 결혼이 두려운 것인지 깊이 생각해 보라는 것이다. 최근 3년 사이에 친구나 동료, 선배들이 결혼해서 잘사는 모습을 보거나 그들의 결혼식을 보며 내심 부러웠던 적이 있다면 결혼 생각이 없다는 당신의 말은 거짓말이다.(241쪽)

 

‘거짓말’이라는 단어에 뜨끔했다면 홍유진의 제안을 읽어봐도 좋겠다. 연애를 하는 건 개인의 자유지만 1,000쌍이 넘는 커플을 결혼으로 골인시킨 커플매니저의 경험이 닫혀있던 마음을 열어줄지도 모를 일이다. 꼭 결혼을 하라는 게 아니다. 삶에 작은 재미를 더할 연애 정도를 해본다고 생각하면 뭐, 나쁠 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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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을 만나야 행복할까를 고민


경력 20년, 1세대 커플매니저, 1,000쌍 성혼 이력, 대단해요. 저자만의 특별한 성혼 비법이 있는지 궁금해져요.


한국 사람들은 밥을 꼭 먹어야 하잖아요. 그 개념을 생각하면 돼요. 싱글들에게 늘 강조하는 것이 오래 가는 관계의 중요성이에요. 순간적으로 어떤 것을 원한다고 요구하는 분이 있지만 저는 연애는 뜨겁게 해도 결혼은 편안한 사람과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해요. 그걸 잘 맞춰 따라오시는 분들은 성혼이 되기 때문에 그게 저만의 노하우가 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 문화에 맞는 정서나 결혼에 맞도록 계속 해왔기 때문에 그것이 저만의 성혼 비법(웃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연애와 결혼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고 접근하는 것이 도움이 되는 거군요.


연애라는 많은 과정을 겪어서 결혼이라는 목적이 나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결혼을 위한 만남을 한다는 것 자체는 또 어긋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어요. 부모님이 원하는 결혼 같은 경우도 그렇고요. 연애를 시작하지 않은 채 결혼을 위한 만남을 시작하다보면 잘 안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가장 극적인, 기억에 남는 매칭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우리나라는 흔히 종교적인 것, 지역, 특정 성 씨에 대해 배타적인 경우가 굉장히 많아요. 둘만 좋아서 결혼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굉장히 어렵죠. 이런 것을 타파한 사례가 많이 기억이 나죠.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장남을 선호하지 않을 때가 있었어요. 1남 9녀 중 장남인 남성이 있었습니다. 아버지도 없고 홀어머니에 시누이들이었거든요. 남자 분은 정말 좋은데 좀 부담스럽다는 반응들이 많았어요. 그래서 여성에게는 ‘형제가 많다’ 정도로만 얘기를 하고 만남을 유도한 적이 있어요. 만났는데 남성도 여성에게 구체적인 형제관계를 말하지 않았어요. 어느 날 여성이 제게 물어오기에 그제야 설명을 했죠. 여성이 깜짝 놀라더라고요. 이해를 좀 시켰어요. 주변을 보지 말고 그 남성의 장점만 보라고요. 그렇게 만남이 이루어졌죠. 이후 시누이들이 이 여성을 다 챙겨주더라고요. 음악회 티켓, 영화표도 챙겨주고요. 응원군이 많았던 거죠. 오히려 더 좋았던 경우에요. 그렇게 결혼을 했는데 참 기억에 남아요.

 

여전히 결혼에서 ‘어떤 것은 안 된다’하는 조건들이 많이 있군요.


종교적인 것을 거부하는 분들이 가끔 있거든요. 어떤 종교는 절대 안 된다고 하지만 다른 종교인 분들이 만나서 잘 살고 있는 경우도 굉장히 많아요. 그런 것은 실제로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게 현실인 것 같아요.

 

편견이 방해가 되기도 하는데 일단 만나면 그런 편견은 중요해지지 않다니 만남이란 참 예측불가네요.


커플 매니저를 통해서 만나면 왠지 완벽한 만남을 할 거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는데요. 그렇기 때문에 요구하는 조건도 많은 경우들이 있죠. 저도 예전에는 완벽한 프로필을 소개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는데요. 제가 만족하는 조건이어도 싱글 분들은 만족이 안 되는 경우가 생기는 거예요. 결국 완벽한 소개보다는 그 사람들이 어떤 마음일까를 찾아내는 게 가장 중요했어요. 그런 부분에 조금 더 다가가니 교제율이 좀 더 높아지더라고요.


성형외과 의사와 이야기한 적이 있는데요. 가장 결과가 만족스러울 때는 환자의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 찾아내는, 충분한 상담이 있었던 때라고 해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를 만나느냐가 아니라 어떤 사람을 만나야 행복할까를 고민하는 매칭이 되어야 하죠. 그런 매칭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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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의 매력을 먼저 알아야


상담 과정에서 당사자는 모르지만 저자에게는 보이는 특징적인 면들도 있나요?


현장에서 경험으로 보이는 통계들이 굉장히 많아요. 연애 많이 안 해본 분들의 특성, 노처녀의 특성, 이런 게 흐름으로 잡힌다는 거죠. 골드미스, 올드미스가 와서 흔히 이렇게 얘기해요. “내가 예전에는 이런 사람을 만났어요”라고요. 그분이 능력 있고 이러면 지금 그런 얘기를 안 합니다.(웃음) 남성분들은 “내 친구는 미스코리와 결혼했고, 친구는 슈퍼모델과 결혼했고요” 하면서 친구 얘기를 막 해요. 그 말은 자기는 별 볼 일 없다는 얘기예요. 얘기하는 이상형에서 그 사람이 연애 경험이 있는지, 없는지 파악할 수 있어요. 연애 경험이 적기 때문에 남이 말하는 이상형을 자기 것에 꿰어 맞추는구나 하는 판단을 할 수 있습니다.


본인의 이상형을 알아야 해요. 그러려면 자기의 매력을 먼저 알아야 하고요. 책을 쓰면서 가장 고민했던 게 3545 싱글녀들이 자기 매력이 무엇인지 알고 있을까 하는 것이었어요. 상담을 많이 해봐도 절대 모르고 있어요. 상대에게 원하는 목록을 적는데 그게 자신과 걸맞지 않은 목록인 거죠.

 

그래서인지 이상형 리스트를 적어라, 그 절반을 지워라, 같은 실천 포인트를 제안하고 있더라고요.


꿈을 갖고 있는 건 좋죠. 그런데 이상형이 막연하게 막 나오는 사람들이 있어요. 리스트가 구체적으로 나오는 사람도 마찬가지인데요. 이들은 이상형을 이론적으로 만든 거죠.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요. 우선 하나 하나 적으라고 합니다. 거기서 자신과 맞지 않는 것을 하나씩 털어버리는 거죠. 그러다보면 정말 원하는 것, 정말 간절한 것, 어떤 사람과 만나면 부합이 잘 될까 하는 것들이 나와요. 그게 돼야 매칭이 와도 만날 수가 있죠. 일반적으로는 그런 걸 못하는 겁니다. 욕심을 갖고 있는 거예요. 나이가 들면 뱃살이 늘듯이 자꾸 조건을 첨가합니다. 빼지를 않고요. 내가 이 정도니까, 내 친구는 이 정도 만났으니까, 상대는 이래야 한다는 오류들이 생기는 거죠.

 

실제 이런 방법을 적용시켰을 때 효과가 있었나요?


그럼요.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지 물으면 거의 비슷하잖아요. 크게 안 본다고 하면서 학교는 어느 정도 나왔으면, 키는 컸으면, 잘생기지는 않아도 되지만 훈남이었으면, 강남권에 살았으면, 스타일이 멋졌으면, 형제가 많지 않았으면, 어학연수를 1년이라도 다녀왔으면, 하면서 평범한 사람을 찾는다고 하죠. 그런 사람이 없다기보다 그분에게 매칭 하기 부족한 거예요. 그런 걸 모르기 때문에 막상 자신이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물어요. 그런 사람 해주면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느냐고요. 할 수 있다고 하지만 결국 차이고 말거든요. 그러면서도 옷 스타일이 마음에 안 들었다, 어쨌다 하면서 자기합리화를 해요.


저는 우선 싱글들이 자기의 매력을 먼저 찾았으면 좋겠어요. 자기가 매력이 있어야 해요. 자기 매력을 알아야 상대에게 발산할 줄 알고, 그러면서 상대의 매력을 볼 줄 아는 시야가 넓어지거든요. 구구단을 할 줄 모르면 옆 사람이 구구단을 할 줄 아는지 모르는 것처럼 말이에요. 자기 매력이 없는 친구들이 많이 있더라고요.

 

이 사람은 잘 되겠다, 이 사람은 너무 어렵겠다, 싶은 첫 느낌이나 경험에서 오는 특징들도 있나요?


연애가요? 아니면 결혼이요?

 

아, 그것에 따라 특징들도 다른가요?


다르죠. 시작은 잘하는데 끝을 못 맺는 사람이 있고요. 시작은 어설픈 것 같은데 결혼으로 쏙 가는 분들도 가끔 있어요.

 

그런 분들은 어떤 차이가 있나요?


처음에 호기심을 발휘하는 분들은 연애를 잘해요. 그러다가 상대에 대한 호기심이 끊어지면 지속이 안 되는 거죠. 늘 호기심만 발동하는 거예요. 거품이 빠지면 맛없는 맥주가 되는 것과 같은 개념이라고 보시면 돼요.(웃음) 반대로 처음 시작은 밋밋하고, 서툴고, 어색하게 가도 기본적인 매력이 있는 사람들은 더디지만 결혼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있어요.


나는 왜 연애가 안 될까, 왜 결혼이 안 될까 하시는 분들은 누누이 말하지만 스스로 자기 분석을 꼭 한 번 해야 해요. 부정적 분석이 아니라, 나의 매력은 무엇이고 내가 어떤 점에서 상대와 맞을까를 보셔야 한다는 거예요. 올드미스들이 흔히 주변에 남자가 없다고 말해요. 저는 되물어요. 남자를 찾아낼 혜안이 있느냐고요. 운명이 곁을 지나가도 못 찾아요. 그 사람이 괜찮은지 안 괜찮은지 모르는 거예요.

 

상담을 할 때 그 사람이 갖고 있는 매력을 찾아내는 데 무척 많은 시간을 들이시겠어요.


네, 그게 가장 먼저예요. 상담을 하면서 그 사람의 매력을 끄집어내는 게 중요해요. 의사가 진료를 한 다음 병을 고치듯이 말이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를 찾아내고, 어떤 사람을 좋아하느냐를 찾아내는 게 커플매니저의 역할입니다. 단순히 있는 사람들을 매칭하는 건 아니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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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백인백색


3545 여성은 20대의 연애방식과는 다른 태도와 방법론을 취하라고 누누이 말해요. 이런 경험에서 나온 이야기겠죠? 3545 여성들이 가장 놓치지 쉬운 맹점이 뭔가요?


제가 보통 세대별 특징을 얘기하는데요. 20대는 외모를 보고, 30대는 직업, 40대는 경제력, 50대는 사회적 지위를 보고요, 60대는 건강을 봅니다. 여성이나 남성이나 마찬가지예요. 3545 여성들은 직업과 경제력을 보겠죠. 지금 3545 여성들은 고학력, 고스펙, 동안 외모, 경제력 등이 다 갖춰져 있어요. 상담할 때 저는 본인의 스펙이 올라갈수록 상대의 그것은 떨어질 거라고 얘기해요. 그걸 감안하라고 시작하라고 하지만 못하죠. 직업도 괜찮아야 하고, 경제력도 괜찮아야 하는데 인성도 좋아야 하고, 집안 환경도 좋아야 하고, 자신의 커리어를 인정해줘야 하고, 이왕이면 스타일도 괜찮아야 하고, 이런 게 계속 나오는 거예요.


사람마다 백인백색인데 어떤 틀 안에 남성이 들어와야 만나볼까 연애할까 말까를 고민해요. 20대 때는 경험을 많이 하고 시행착오 겪는 게 맞는데요. 3545가 되면 시행착오 겪는 단계는 지나야 하거든요. 그걸 못해요. 20대 마인드와 스타일을 유지하는 분들도 많고요.

 

30대의 연인은 뜨겁고 적극적이고 열정적인 마음으로 서로를 간섭하진 않는다. 대신 그들은 묵묵히 서로를 지켜봐 주고 공감하고 응원하는 편안한 짝이 돼준다. 혼자 훌쩍 떠나기엔 왠지 두려운 여행에 그렇게 한발 떨어져서 편안하게 동행하는 짝, 그게 30대의 연인이다.(177쪽)

 

‘나이에 맞게’라는 것이 필요하다는 건가요?


3545 여성분들 미팅 시에는 장소도 20대가 많은 곳으로는 잘 안 해주려고 해요. 그건 그 사람을 배려한 건데요. 이런 경우가 있었어요. 대학교 앞에 있는 카페였는데요. 꼭 그곳에서 미팅을 하겠다고 한 여성이 있었어요. 그 안에 있는 젊은 친구들과 비교가 되는 곳은 위험해요. 남성이 딱 들어서서 그 여성을 보고 바로 다른 데로 가자고 데리고 나왔다는 거예요. 3545라면 비교적 완숙한 매력을 어필해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까 짝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싱글들에게 거울을 많이 보라고 늘 얘기해요. 거울을 보라는 건 내 나이에 대한 느낌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의미예요. 10대가 화장을 과하게 하면 보기 좋지 않은 것처럼 30대가 됐는데도 여전히 20대의 행동을 한다면 현실적으로 안 맞는 거죠. 남성들은 결혼상대로 대개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을 원하는 부분이 있어요. 그게 안 맞으니까 서로 어긋나는 거죠.

 

책에서도 남자가 바라는 여자의 성격은 거기서 거기라고 하셨잖아요. 커플매니저로서는 어려운 점도 많을 것 같아요. 남자가 바라는 이상형이 그대로인 반면 여자의 이상형은 변했으니까요.


남성들에게 어떤 여성을 좋아하냐고 물으면 ‘오늘 본 여성’(웃음)이라고 하잖아요. 싱글 남성분들은 보면 어린 여성을 좋아해요. 그게 1순위예요. 남성들은 나이에 있어 굉장히 예민해요. 2세 때문에 그래요. 아이를 낳지 않을 거라면 중요하지 않지만 보수적인 남성들의 결혼관에서 2세는 무척 예민한 부분입니다. 나이에 대한 기준은 안 변합니다.
여성들은 바뀌었죠. 1997년 IMF 이전에 여성들은 ‘학력’이 우선이었어요. 서울대가 최고라고 했죠. IMF가 터지고 가정이 깨지고 명예퇴직을 당하고 하니까 ‘직업’으로 기준이 바뀌었어요. 그러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오니까 이제는 직업도 불안해요. 적금도 다 날아갔고요. 그래서 나온 것이 ‘임대업’을 하는 남자가 좋다고 바뀌었죠. 그 다음에 나오는 것이 ‘연하남’이고요. 물론 그 안에 스펙 등 기본 사항은 다 들어갑니다. 또 요즘 인기가 있는 직업이 ‘셰프’입니다. 나를 위해 음식을 해주는 남자를 찾는 거죠. 여성들이 자신의 능력은 된다, 그러니 남자가 나에게 맞춰달라는 것이에요.

 

오랜 기간 봐왔으니 시대에 따른 태도 변화를 감지하는 것도 가능하겠군요. 요리 잘하는, 연하남 외에 또 다른 최근의 특징들이 있나요?


여성들이 예전에는 ‘사’자 들어가는 직업군을 좋아했죠. 요즘은 그렇진 않고요. 외국 경험이 있는 남성을 좋아해요. 사고가 트인 사람, 외국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을 좋아하는 거죠. 특징적인 걸 갖고 있는 남성을 좋아해요. 취미가 독특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하고요. 그것으로 스트레스를 풀 줄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사회생활을 하는 여성들이 많으니까 남성에 대한 기준도 과거에 비해 다양해진 것일 테죠.


그렇죠. 예전에는 남성이 집을 마련하는 게 100%였다면 지금 집은 함께 사는 것이기 때문에 여성들이 더 큰소리를 칠 수 있는 거고요. 집이 있는 남성이 인기가 있긴 있지요. 그러나 30대에 집이 있기는 쉽지가 않고 그런 분들은 이미 짝을 만났기 때문에 3545 여성들이 만날 수 있는 그런 남성은 별로 없어요. 좋은 남성이 별로 없는 거죠.

 

남성에게 특별히 하는 조언도 있나요?


요즘 남성들은 적극적인 여성을 좋아해요. 표현하는 여성을 좋아합니다. 예전에는 현모양처라고 했는데, 요즘은 자기 일도 하면서 반응도 좋은 적극적인 여성을 좋아해요. 요즘 남성들이 자신감이 없거든요. 20대부터 50대까지 자신 있는 사람을 별로 못 봐요. 드물어요. 그래서인지 반응이 좋은 여성을 좋아하더라고요. 대화를 받아주는 여성을 참 좋아하죠. 만남이 이루어졌을 때 여성의 매력 1순위는 미소예요. 잘 들어주고 호응해주면 남성의 마음이 굉장히 편안해지는 거예요. 실제로 그렇게 결혼에 골인한 경우도 있고요.


그래서 만남을 가기 전에 여성들에게 이런 팁을 드려요. 만나서 미소를 딱 지으라고요. 이렇게 하면 남성들 마음의 문이 확 열립니다. 남성이 여성에게 호감을 느끼는 반응이 세 가지가 있어요. “진짜요?”, “정말요?”, “대단해요!” 이 세 가지만 하면(웃음) 백전백승입니다.

 

그게 잘 안 되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지금 만나는 남성과 결혼이 안 될 수도 있어요. 한 명 만나서 결혼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래서 지금 만나는 사람과 연습을 하라고 얘기를 합니다. 아까 말한 리액션들이 낯간지러울 수 있지만 3~5명 연습하잖아요? 그러면 반응이 확 오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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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는 북한산이 아니라 둘레길


초 치는 요소를 제거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그 요소들을 지적하신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만혼이라고도 하는데요. 조금 늦게 결혼을 하면 주변에서 제일 많이 하는 말이 “뭐 하는 사람이야?”예요. 돈은 많은지, 집은 어디를 구했는지, 이런 걸 물어요. 중요한 것은 남에게 보여지는 게 아니에요. 우리는 주변을 굉장히 의식하죠. 그러다보니 남과 비교하게 되고 판단의 오류가 와요. 저는 본인이 원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간절하게 생각해보는 게 중요하다고 말해요. 세상 사람들은 본인에게 그렇게 관심이 없어요. 그냥 지나가는 말로 하는 거니까 의미 두지 말라는 거예요. 이 사람이 내가 원하는 조건에 한두 가지만 부합된다고 하면 되는 거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할까?’를 고민해요. 자기만 사랑하면 되는데 말이에요. 그런 주변 의식을 조금씩 접어야 한다는 거죠.

 
쉬운 결혼을 하려면 어려운 연애를 해야 해요. 그렇지만 어려운 연애라는 건 북한산이 아니라 둘레길입니다. 누구나 걸을 수 있는 거고, 완주하면 상쾌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사람들이 포기하죠. 노력해서 찾으면 분명 짝은 나타나요.

 

결혼도 연애도 모두 현실이라고도 하셨는데요. 사실 책을 읽다보면 싱글 상태를 지나치게 대상화하는 건 아닌가 하는 질문이 생길 수 있을 것 같아요. 꼭 결혼을 해야 할까요? 다양한 삶이 가능하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결혼이 좋은 거냐는 질문을 종종 받아요. 하지만 제가 책을 통해 하려고 한 말은 연애를 하자는 겁니다. 결혼은 그 다음 순서죠. 결혼은 60이고 70이고 할 수 있어요. 100세 시대기 때문에 언젠가는 결혼을 할 수 있죠. 55세에 처음 결혼을 하신 여성도 있었어요. 그런데 연애의 경험이 있고, 연애의 달콤함을 알아야 새로운 이성이 왔을 때 결혼까지 연결되는 것 같아요. 연애를 해보라는 게 가장 포인트입니다.


내 삶이 팍팍하고, 전혀 이성과의 관계가 없는 분들은 생활이 건조해요. 이성에 대한 호감을 갖고 사는 건 나쁘지 않다는 거예요. 나의 심장을 설레게 하는 느낌을 평생 몇 번이나 느끼겠습니까. 그 추억은 나이가 들어도 안타까운 것으로 남아요. 연애가 어렵지 않은 것이니 즐겨보라고 말을 하고 싶었던 거예요.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감성이니까요. 반드시 결혼이 전부라는 건 아니에요.

 

연애를 원하고, 기다리고 있는 3545 여성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OECD 국가 중 우리나라 사람의 기대수명이 5위래요. 80년 동안 혼자 지내는 게 맞는가를 한 번 생각해보셨으면 좋겠어요. 예전에는 혼자 지낼 수 있었어요. 형제가 많았으니까요. 또 예전에는 마을 부락을 이루고 살았잖아요. 지금은 윗집에 살인범이 사는지도 모르는 시대기 때문에 혼자 걸을 수 있는 길이 나이가 들수록 줄어든다는 사실을 아셔야 해요. 그에 제일 좋은 반려자는 짝이죠. 그런 짝을 만나는 것에 대한 관심을 가지셨으면 좋겠어요. 관심을 포기하지 말고요. 또 남에게 보여주는 게 아니라 서로만 본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내 주변에 누가 있는지 살펴보고, 내가 싱글인 걸 자랑도 하셔야 해요. 그래야 소개도 들어오죠. 늘 말하지만 야쿠르트 아줌마나 경비 아저씨에게도 말하는 거예요. 인연은 어디서 연결될지 모르거든요. 준비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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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에게 연애가 어려운 이유 홍유진 저 | 더시드컴퍼니
저자는 남녀 1만 명 이상을 상담하고 1,000여 커플을 탄생시킨 결혼정보업계 최고의 베테랑답게, 풍부한 데이터와 오랜 상담 경험을 바탕으로 3545에 최적화된 연애, 사랑 그리고 결혼의 해법을 제시한다. 그 핵심은 지피지기! 즉 ‘나는 왜 아직도 싱글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저자는 스스로, 혹은 주변에서 ‘괜찮은 싱글녀’라고 인정하는 것은 아무짝에도 소용이 없고, 단 한 명이라도 괜찮은 남자가 탐내는 여자가 돼야 한다고 직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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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인드C “메리가 더 망가져야 한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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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작가 마인드C가 인터뷰를 하면서 가장 많이 사용한 단어는 ‘아내’였다. 『윌 유 메리 미』가 아내와의 연애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하다’ 싶었다. ‘아내 덕후’라는 말을 들을 정도라니, 아내를 두고 “내가 본 생명체 중에 가장 아름답다”고 말할 정도니, 핀잔은 주지 않았다. 내심 부럽기도 하고 꽤 멋져 보이기도 했으니까.

 

마인드C가 “내 생애 첫 번째 단행본이 될 작품”이라고 자신한 『윌 유 메리 미』는 2014년 3월부터 현재까지 네이버 만화에서 연재 중인 일상 웹툰이다. 띠 동갑인 서울 남자, 부산 여자의 장거리 연애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귀여운 캐릭터만큼이나 더 흥미로운 건, 바로 작가의 실화라는 점. ‘윌’은 마인드C, ‘메리’는 작가의 아내로 두 사람은 지난해 결혼에 골인해 부부가 됐다. ‘사람들의 마음을 컨트롤하고 싶다”는 소망으로 ‘마인드C’라는 필명을 만든 작가는 지금,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자신보다 그림을 더 잘 그리는 아내의 살뜰한 내조와 연이은 연재 제의, 인터뷰 요청을 받고 있다. “힘들지 않냐”고 물으니 “찾아줄 때, 많이 열심히 뛰어야 한다”고 말하는 전력투구형 작가 마인드C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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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저의 첫 번째 단행본입니다


부산에서 방금 올라오셨다고요? 가방이 엄청 무거워 보여요.


기차에서 일하면서 올라왔거든요. 오늘 이 인터뷰가 끝나고 라디오 방송이 있어요. 내일도 서울 스케줄이 두 개가 또 있고요.

 

네이버 만화에 이어 피키캐스트 피키툰까지, 연재 일정도 되게 빡빡하시던데요. 체력은 괜찮으세요?


타우린 먹으면서 하고 있어요. (웃음) 제가 그런 맛을 좋아하거든요. 박카스도 좋아하고요. 아내가 마늘즙도 챙겨줘서 먹고 있어요. 찾아줄 때, 많이 열심히 뛰어야 할 것 같아요.

 

‘작가의 말’이 인상적이었어요. 단 한 마디를 쓰셨더라고요. “이것이 저의 첫 번째 단행본입니다.” 되게 진지하게 느껴졌어요. ‘정말 단행본을 내고 싶으셨구나’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처음에는 길게 썼는데 계속 쓰다 보니까 말이 길어지더라고요. 그래서 결국에는 이 한 문장이 낫겠다 싶어서 출판사에 보냈어요. 보내면서도 ‘출판사 분들이 장난스럽게 보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제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셨더라고요. 원했던 편집이 딱 저거였어요. 데뷔한 지가 10년이 넘었는데 『윌 유 메리 미』가 첫 번째 단행본이에요. 그 이상의 말이 필요 없을 것 같아요.

 

사실 조금 놀랐습니다. 첫 단행본인지 몰랐어요. 전작 「2차원 개그」도 인기가 많았잖아요.


여러 작품을 안 쉬고 쭉 했는데, 지금까지는 책으로까지 가기에는 다소 부족한 콘텐츠를 만들었던 것 같아요. 『윌 유 메리 미』를 하면서 개인적으로도 성장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여러 모로 뜻 싶었어요. 성취감도 들고요. 처음 단행본을 받아봤을 때, 머리가 어질어질하더라고요. 주변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가 안 들렸어요. 책을 처음 받은 날이 팟캐스트 <빨간 책방>을 녹음하는 날이었거든요. 편집장님이 책 나온다는 이야기를 사전에 안 해주시고 갑자기 들고 오셔서 놀랐어요. 되게 감동했어요.

 

아내 분의 반응도 궁금해요. 작품의 실질적인 주인공이신데요.


좋아하죠. 그런데 저만큼 좋아하진 않아요. (웃음) 다음에는 더 예쁘게 만들자고 했어요. 저는 독자분들이 이 책이 선물로 주고 받았으면 좋겠어요. 자기가 직접 사는 게 아니라, 선물로 주고 받는 책이요. 누군가에게 “이런 이야기도 있더라”하면서 주고 받는 책이 되는 게 제 목표에요.

 

『윌 유 메리 미』가 ‘실화’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잖아요. ‘메리’의 실존 인물인 아내의 허락이 없었다면 탄생하지 못했을 작품이에요.


그렇죠. 만화를 그리기 전에 항상 상의해요. 아내가 기획자에요. 사투리나 대사 감수를 봐줘요. 같은 에피소드를 겪었더라도 제가 기억하는 것과 아내가 기억하는 게 다 다르더라고요. 세세한 부분이 달라요. 저는 아내 캐릭터를 그릴 때 조심스럽게 예쁘게 그리려고 애를 쓰는데, 아내는 “더 망가지게 그려라. 주근깨도 더 눈에 띄게 그려”라고 말해요. 본인 얼굴을 귀엽게 그리면, “재미없어. 더 추하게 그려”라고 해요. (웃음)

 

단행본 마지막 장에는 ‘외전, 메리 이야기’가 실렸어요.


아내가 직접 그렸는데 단행본에서만 보실 수 있어요. 아내가 원래 그림을 되게 잘 그리는데, 고의로 어설프게 그렸어요. 저보다 잘 그리는 것처럼 보이면 안 되잖아요. (웃음)

 

2014년 3월에 연재를 시작하셨으니까 벌써 1년 반이 지났어요. 아직 에피소드가 많이 남아 있나요?


생활 만화라는 게, 그때 그때 그리는 만화가 있고 예전에 있었던 일을 기록하는 만화가 있어요. 저는 후자예요. 몇 년 전 이야기를 가지고 그리기 때문에 소재가 이미 정리가 돼있어요. 그래야 초조함이 없어요. 늘 그때 그때 하고 싶을 때 하는 편인데, 개그는 항상 밑바닥에 깔고 갑니다. 『윌 유 메리 미』는 캐릭터 만화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거고요.

 

『윌 유 메리 미』를 읽으면서 인상적이었던 게 가독성이었어요. 단행본 출간을 염두에 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만화칸도 딱딱 스토리에 맞게 끊기고 말풍선의 위치나 서체도 굉장히 신경을 쓰신 것 같아요.


맞아요. 서체도 일부러 연재 전에 라이센스를 샀어요. 출판사에서 편집을 잘해주신 부분이 큰데요. 연재를 시작하면서부터 ‘이게 나의 첫 단행본이 될까?’라는 기대가 있었어요. 기획만 3년 정도 걸렸고, 캐릭터 디자인만 3개월을 했으니까요. 캐릭터 제품도 염두에 뒀고, 아내를 설득하는 시간도 길었고요. 우리나라 20대 여자가 자신의 개인사를 세상에 내놓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윌 유 메리 미』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그림은 어떤 그림인가요?


밤바다 장면 아닐까요? 뽀뽀하고 폭죽 터지는 장면이요. 이야기가 막 전개되는 느낌이잖아요. 상투적이지만 이런 거 좋아해요. (웃음) 또 메리가 귀엽게 그려졌을 때가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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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의 댓글은 모두 읽어보시나요?


한 회당 1천 개에서 2천 개정도 달리는데, 10분이면 읽으니까요. 마감하고 힘들 때, 댓글을 보면 기운이 생겨요. 박수를 받는 느낌이에요. 저는 예술을 추구하고 그런 사람이 아니라, 제가 좋은 걸 보여드리고, 그걸 재밌게 보시는 분들이 있을 때 힘이 나요. 독자 분들과는 가깝게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 커요. 그래서 SNS도 열심히 하는 거고요. 제 활동도 알리면서 독자 분들이 궁금해 하는 것에 대해 답변도 해드리고 있어요. 저는 안티 댓글이 정말 없는 편이에요. 가끔 “메리는 실제로 보면 뚱뚱하고 못생겼을 것”이라는 시기성 짙은 댓글을 다는 분이 계시긴 한데요. 아마, 실제로 보시면 깜짝 놀라실 걸요? (웃음)

 

“트위터는 만화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하셨어요.


처음에는 이 작품이 실화라는 걸, 의심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판타지도 아니고, 꾸며낸 이야기로 알더라고요. 그래서 SNS를 더 열심히 해요. 아내가 티라미스 케이크를 좋아한다는 에피소드가 만화에 나왔잖아요. 실제 제가 아내를 위해 티라미스를 자주 사가는데, 그런 걸 사진으로 찍어서 트위터에 자주 올려요. 만화의 설정이 있을 수 있지만 현실에서도 보여주는 거예요. 제가 만화 속 ‘윌’ 캐릭터랑 좀 닮았잖아요. 그런 이야기를 독자 분들한테 들으면 너무 좋아요.

 

불미스러운 일을 겪기도 하셨어요. 작가님에 대한 허위 사실이 인터넷 게시판에 떠돌아서 곤혹을 치렀어요.


이 사건이 터졌을 때, ‘난 이제 끝났구나’ 싶었어요. 연예인도 아닌데 너무 급속도로 퍼져나갔어요. 해명을 했지만 사람들이 해명 기사까지는 안 보잖아요. ‘웹툰작가 인생은 이제 끝났구나, 다시 디자이너로 돌아가야 하나?’ 생각했죠. 그런데 아내가 컴퓨터랑 굉장히 친한 사람이라서 금방 증거를 찾았어요. 70페이지 정도 자료를 쭉 뽑아보더니 바로 경찰서로 달려 가라고 하더라고요. 지금도 네이트판에 이상한 글이 하나 올라왔는데, 제가 어떤 사람의 휴대폰을 해킹해서 『윌 유 메리 미』를 썼대요. 도대체 누가 썼는지 한 번 보자고 생각하고 있어요. 아내가 증거 자료를 쫙 모으고 있어요. 지금은 뭐랄까, 사냥하는 느낌이에요. 아직도 만화가를 되게 만만하게 보는 분들이 있는 것 같은데, 깜짝 놀라게 해주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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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먹을 걸 다 사주겠다’는 프러포즈


작년에 작품 속 실제 인물인 ‘메리’ 양과 결혼에 골인하셨는데, 신혼 생활은 어떠세요? 언젠가 결혼 생활이 작품의 소재가 될 수도 있겠어요.


그럼요. 지금도 에피소드가 엄청 많이 쌓였어요. 아내의 새로운 면이 많이 보이더라고요. 일단 생각했던 것보다 잠이 많아요. 이렇게 잠이 많은 여자가 저랑 연애하면서, 주말마다 밖에 나오고 고생한 걸 생각하면, 어휴. 아내가 그 때 많이 힘들었대요. 휴일이면 12시간은 자야 하는 사람인데, 저 만난다고 이래저래 꾸미고 그랬으니까요. 그런 부분이 충격적이면서도 고마웠어요. 얼마나 귀찮았을까도 싶고요.

 

장인어른께서 “너희는 천생연분이다. 둘 다 또라이라서”라고 했다면서요?


(웃음) 처음에는 저를 인정을 안 해주셨어요. 띠 동갑이니까 현실적으로 결혼까지 가기에는 불가능하다고 보셨죠. 그런데 장모님이 저를 좋게 봐주셔서 계속 장인어른을 설득하셨어요. 처음 찾아 뵈었을 때, 술을 마셨는데 제가 술을 잘 먹거든요. 더구나 장인어른 앞에서 취할 리가 없잖아요. 술자리에서 좋게 보시고 그 후로는 교류가 많았어요. 굉장히 개방적인 분이세요.

 

사위의 웹툰도 보시나요?


그럼요. 되게 자랑하고 다니시고 좋아하세요. (웃음)

 

‘메리’ 양께 청혼은 어떻게 하셨어요?


“평생 먹을 걸 다 사주겠다”고 했어요. (웃음) 아내가 옷 같은 데는 관심이 없고, 오직 먹을 것. 요리에 관심이 많아요. 지금도 아내가 먹고 싶어 하는 건, 무조건 다 사줘요. 제 약속이니까 해야죠.

 

요리도 직접 해주시나요?


제가 원래 혼자 오랫동안 살아서 요리를 잘하는 편이에요. 그런데 결혼하고 초반에는 아내의 요리 때문에 좀 괴로웠어요. 된장찌개를 끓였는데 돼지고기를 넣더라고요. 뭔가 본인이 되게 연구를 많이 하던데, 그래도 요즘은 너무 잘해요.

 

‘아내 덕후’라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아내 이야기를 정말 많이 하시네요. (웃음) 예전에 인터뷰에서 그러셨나요? 아내를 두고 “내가 본 생명체 중에 가장 아름답다”고 표현하신 걸 읽었는데, 깜짝 놀랐습니다.


(웃음) 지금도 그런 느낌이 들어요. 저는 아직 아기가 없지만, 자기 자식은 뭘 해도 귀여운 느낌이 들잖아요. 아내를 보면 그런 느낌이 들어요. 나이는 저보다 훨씬 어리지만, 사회생활만 적게 했을 뿐이지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해요. 나이랑 철 드는 건 정말 별개잖아요. 요즘 특히 고마운 게 내조를 그렇게 잘해줘요. 결혼하고 나서 고기를 정말 많이 먹어요. 운동하고 오면 먹을 걸 잘 챙겨줘요. 결혼하고 7kg정도 쪘을 걸요? 점점 제가 더 커질 거예요. 어제도 스테이크를 세 장 먹었어요. 먹다가 더는 못 먹을 것 같아서 한 장은 남겼어요.

 

작품을 보다 보니 ‘부산 여자’에 대한 로망? 같은 게 조금 있었던 것 같아요.


특히 부산 아줌마들이 정말 매력적이에요. 말은 되게 세게 하시는데 친절하세요. 만화에 나오는 여관집 아줌마 이야기도 다 실화예요. 식당에 가면 제 덩치를 보시고는 밥을 한 그릇씩 꼭 더 주세요. 서울 아줌마 분들과는 조금 다르세요. 뭔가 살갑게 대해주시는데 생활력도 있으시면서 친절한 매력이 있어요. 아내도 되게 밝아요. 사투리 자체가 밝잖아요. 서울 남자들은 조금씩 부산 여자들에 대한 로망이 있지 않나요? 제가 본 분들이 모두의 경우는 아니겠지만, 고지식하고 보수적이면서도 발랄한 매력이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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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적으로 좋은 콘텐츠


꽤 일찍 데뷔하신 편이에요. 1.5세대 작가로 불리시는데요. 직장생활도 꽤 하셨어요. 웹툰작가로 사는데 그간의 조직생활이 도움이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부조리에 대한 인내심 정도요? 제가 데뷔할 당시에는 매체가 별로 없었어요. 메이저 매체라고 하면 스포츠신문 정도였어요. 회사에 다니면서 양다리로 만화를 그렸는데, 회사는 언제든지 그만두고 싶었어요. 디자인회사를 다녔고 운영도 했는데, 되게 안 좋더라고요. 저는 디자이너로 간지나게 쭉 살고 싶었어요. (웃음) 영국 유학도 가고 싶었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더라고요. “난 만화가가 돼야겠다”는 정확한 그림 같은 건 없었어요. 그래픽 디자인을 전공했고 5년 동안 직장생활을 했는데 자연스럽게 성장 단계를 거쳐 만화가가 됐어요.

 

웹툰작가 지망생이 정말 많잖아요. 가끔 강연도 하신다고 들었어요.


많죠. 최근에는 중학생,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강연을 했는데 현실적인 이야기를 많이 해줬어요. 꿈을 가지라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이야기잖아요. “지금 꿈이 없는 건 당연하다. 20, 30대가 되도 그 고민은 여전하다. 지금 잘하고 있다”고 말해줬어요. 삼촌이 하는 이야기 같았나 봐요. 좋았다는 아이들이 있더라고요. 사는 게 긴장의 연속인데, 강연까지 들으러 와서 긴장하게 해주고 싶지 않았어요. “이런 강연회에 온 것만으로도 당신은 뭔가를 할 사람이다. 열심히 잘할 사람”이라고 말해줬어요. 웹툰작가 지망생들에게도 마찬가지에요. 너무 급하게 생각하고 남들이 하는 거 따라 하지 말고, 만화 그리기가 싫으면 우선 만화책을 보라고 해요.

 

작가님은 만화를 자주 보시나요?


만화를 자주 보진 않아요. 만화를 보면 뭔가 휩쓸릴 것 같은 느낌이 들어요. 만화적인 뻔한 표현을 안 하려고 노력해요. 디자인적인 요소를 많이 가져가려고 하고요. 대신 영상, 영화를 되게 좋아해요. 영상에서 오는 연출법에서 영감을 많이 받아요. 영화 티켓 값은 아깝지가 않아요. ‘이 돈으로 이렇게 좋은 영화를 볼 수 있다니’ 싶을 때가 많아요. 대중적인 센스를 계속 가지고 가야 하기 때문에 상업영화를 많이 봐요. 감독의 입장에서 보려고 노력하고요.

 

굉장히 바쁜 일상을 보내고 계신데요. 또 연재 제안이 온다면 할 여력이 있으세요?


할 수 있어요. 제 책상 위 칠판에 “한계는 없다”라고 써놓았어요. 데뷔하고 초창기 때랑 지금이랑 비교해보면 말도 안 되게 작업량이 늘었어요. 그런데 아내가 워낙 잘 서포트를 해주고 있어서 가능한 것 같아요. 혼자 살 때는 신경 써야 할 일이 많았는데 결혼하니까 작품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되게 좋아요. 다시 말씀 드리지만 저는 예술가가 아니에요. 상업작가라고 해야 하나요? 제 콘텐츠를 파는 사람이기 때문에 당연히 콘텐츠를 사주는 사람들의 눈치를 봐요. 대중적으로 좋은 콘텐츠를 만들 생각을 하고요. 저 스스로의 만족도도 중요하지만 사람들도 좋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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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유메리미 1마인드C 글,그림 | 예담
매주 화요일 토요일이면 네이버 웹툰 창을 부러운 비명으로 들썩이게 만드는 화제의 웹툰 『윌유메리미』가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 외모는 근육질의 상남자이지만 마음은 감성소녀인 윌과 외모는 하얀 청순녀지만 속은 의리의 부산 상여자인 메리의 연애담을 그리는 『윌유메리미』는 “읽을수록 분하다. 오글거림을 견딜 수가 없다. 그리고 너무나 연애가 하고 싶다!”라는 원망 아닌 원망을 들으며 강력한 팬덤을 형성하고 있다.『윌유메리미』 1권은 첫 만남부터 시작해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장거리 연애를 하는 이야기를 주로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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