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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배 퀸텟, 재즈와 국악을 결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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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작은 재즈동네이지만 이 동네 사람들이 몇 해 전부터 예의 주시하고 있는 독립 레이블 하나가 있다. 2년 전에 발족한 '일일 사운드'다. 이곳에서 나오는 음반들은 하나 같이 아티스트들의 개성이 선명했고 그래서 평론가들의 특별한 주목을 받았다. 당시 등장해서 일약 주목을 받은 색소포니스트 김오키는 이 레이블의 대표적인 아티스트다. 하지만 레이블 전체를 만들고 운영하고 있는 베이시스트 김성배는 이 레이블의 조타수라고 할만하다. 그는 아티스트이면서 어떻게 레이블을 만들었을까? 그가 생각하는 재즈란 어떤 것일까? 영국 공연을 마치고 한국에 들어온 그를 합정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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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초청을 받아 다녀온 것으로 알고 있다. 언제 입국했나?


스코틀랜드에서 8일 동안 공연 하고 지난 8월 25일, 그러니까 이틀 전에 들어왔다.

 

어떤 행사였나?


스코틀랜드 에딘버러에서 열리는 '에딘버러 페스티벌 프린지'라는 축제다. 음악축제라기 보다는 연극, 무용의 비중이 큰 축제다. 기본적으로 에딘버러에는 '에딘버러 국제 페스티벌'이라는 커다란 축제가 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 주류 축제에 반(反)하는 소규모 축제가 열리기 시작했는데, 예를 들어 셰익스피어 연극을 새롭게 해석해 공연한다든가 하는 식의 시도가 자유롭게 열리는 축제였다. 그것이 성장하여 에딘버러 페스티벌 프린지로 발전한 것이다. 이 축제는 실험적인 음악에도 많은 기회를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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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연주자들과 다녀왔나?


작년에 음반을 발표한 (컨템포러리) 국악그룹 '세움'의 멤버로 다녀왔다. 작년에 세움은 서울아트마켓(PAMS: Performing Art Market in Seoul)에 참여했는데 그곳에 온 에딘버러 페스티벌 프린지 관계자가 우리를 보고 초대한 것이다.

 

에딘버러에서 세움에 대한 반응은 어떠했나?


에딘버러의 C 애버뉴 극장에서 일주일간 공연했다. 그런데 첫 날인 월요일과 다음 날인 화요일에 사람들이 너무 오질 않아 공연이 끝나고 우리들은 좀 낙담했다. 그러다가 근처에 있는 '리큐어 라이브러리'(Liquor Library)라는 라이브 바를 발견하고는 무작정 들어가 연주 한 번 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주인이 출연료는 30파운드 밖에 못주며 대신 맥주를 무료로 주겠다고 하여 그곳에서 연주를 했다. 연주가 끝나자 반응이 좋았다. 한 나이 많은 관객은 다가와서 '내가 평생에 들었던 음악 중에 가장 충격적인 사운드'였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 공연이 있은 후 조금 용기를 얻었다.

 

축제기간에 열리는 공연들에 관한 평들이 지역신문과 웹사이트에 실리는데 우리 리뷰는 바에서 공연한 다음 날인 수요일에 실렸다. 그런데 평점이 별 다섯 개, 만점이었다는 게 중요했다. 그러자 그 다음 날인 목요일부터는 관객들이 극장을 채우기 시작했다. 주말에는 훨씬 더 많았다. 그리고 공연이 끝날 때면 객석에서는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이 쏟아졌다. 그들에게 낯선 음악임에도 불구하고 집중해서 감상하고 반응하는 관객들의 모습에서 그곳 현지의 음악인들이 조금 부럽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들은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는 사실을 알고 잠비나이와 국악그룹 숨을 아느냐고 묻기도 했다. '리커 라이브러리'에서도 두 번 더 공연을 가졌다. 그때 출연료로 60파운드를 받았다. (웃음)

 

세음의 멤버들을 소개해 달라.


트럼펫에 하승국, 소프라노, 알토 색소폰에 김성완, 가야금에 이준, 타악기와 구음에 이민경 그리고 베이스에는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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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앨범을 발표했을 때와는 멤버가 많이 바뀌었다.


그렇다. 재즈 뮤지션인 하승국, 김성완, 나를 제외하고 국악 연주자들이 전부 바뀌었다. 인원도 두 명으로 축소되었다.

 

그렇다면 음반에 수록되었던 내용과 현재 연주는 많이 바뀌었나?


그렇지 않다. 기본적으로 곡을 전부 내가 썼고 전체적인 디렉션도 내가 했기 때문에 크게 바뀌지는 않았다.

 

그런데 음반에는 '김성배 작곡'이라는 표기가 전혀 없더라.


음반에서는 내가 팀을 이끌었다는 점을 감추고 싶었다. 음악에 대해 이러니, 저러니 이야기를 해도 기본적으로 세움의 음반은 국악음반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아직 국악 공부에 대해 일천한 재즈 연주자가 국악 작곡을 하고 팀을 이끌었다는 점을 밝히려니 쓸 데 없는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 같고 해서 그런 점들을 감췄다.

 

국악에는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되었나?


나는 천안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랐다. 내가 어릴 적 '80년대 우리 동네에서는 무속인들의 굿 소리를 자주 들을 수 있었다. 나는 어릴 때부터 그 소리가 좋았다. 물론 음악을 좋아해 나중에 클래식을 전공하다가 재즈에 관심을 가져 분야를 옮기게 되었지만 여전히 어릴 때 접했던 국악에 대한 관심은 내게 늘 있었다. 그래서 음반에 담긴 민요들을 채보하고 국립국악원에서 국악전공 아카데미에서 수업을 듣기도 하고, 국악에 대한 관심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렇다면 세움은 국악그룹이라고 봐야 하나?


(잠시 생각하다가) 그런데 우리가 국악을 한다고 해서 전통적인 한국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국악도 21세기 현대음악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어릴 때부터 징소리를 들으면 그것이 마치 일렉트로닉 사운드처럼 들렸다. 언젠가는 그 부분을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해 볼 생각이다. 국악이 갖고 있는 현재성, 국제성에 나는 관심이 더 많다.

 

그러한 음악을 추구할 때 국악인들과는 견해 차이가 없었나?

 

당연히 많았다. 전통이라는 것은 재즈 연주자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되지만 재즈 음악인이 보기에 국악계는 전통에 대한 관념이 훨씬 더 강한 것 같다. 그에 비한다면 나는 클래식 전공 했다가, 재즈 연주 했다가 한때는 홍대 주변에서 인디 음악도 했고, 그래서 내 음악은 족보가 없는, 무족보 음악인 것 같다. (웃음) 당연히 갈등이 있었다.

 

일일 사운드는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나?


2013년 여름이었는데 그때 김오키와 나는 각각 음반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음반이 완성되면 어떻게 배포할 것인지, 홍보할 것인지 고민이 많았다. 그래서 결국에는 우리가 직접 해보자는 결론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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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레이블을 통해 음반을 내면 무엇이 문제였나?


기본의 유통구조 속에 들어가면 온라인 매장에 음반 자료가 올라가고 몇몇 매장에 음반이 비치되어 있고 운이 좋아 매체에 나온다던지 그게 전부였다. 수많은 음반을 취급하는 배급사의 입장에서는 일일 사운드의 음반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니었다. 잘 되면 좋고, 안 되도 그만이고 하는 식이었다. 그럼에도 우리는 배급사와 이익을 나눠야 했다. 실제로 일일 사운드를 시작하고서도 홍보는 직접 했지만 유통에 자신이 없어서 기존 배급사에게 부탁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대형 소매점에서 가격 덤핑을 하는 등 우리가 원하지 않는 일들이 벌어졌다. 결국에는 신촌에 있는 향음악사에만 우리가 직접 배급하는 방식으로 결론을 내렸다. 그러니까 오프라인 매장 중에서 향음악사에만 일일 사운드의 음반이 전부 있다.

 

너무 배급 통로가 좁은 게 아닌가?


우리의 음악이라는 게 다양한 팬들이 요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본다. 그리고 실제 판매를 보면 우리가 공연 때 직접 파는 음반의 양이 더 많다. 그러니까 우리 음악을 좋아해 줄 사람들은 우리 공연에 오는 것이다.

 

음원 판매는 어떻게 하고 있나?


그 부분은 조합원들의 의견이 잘 수렴되지 않아 각자 결정하는 것으로 했다. 각각의 아티스트들이 자기 음원을 원하는 경로를 통해 팔고 있다.

 

조합원들이라고 했는데 무슨 뜻인가?


2014년 11월에 일일 사운드는 종로구의 협동조합으로 등록이 되었다. 그래서 속한 아티스트들은 조합원이 되는 것이다. 모두 매달 조합비를 내고 있다.

 

협동조합으로 등록이 되면 어떤 이익이 있는가?


종로구에서 공연과 연주를 위한 공간을 마련해 줄 예정이다. 지원자들이 많아 우리가 선택 될지는 아직 미정이지만 조합을 결성하면 우선적으로 그들에게 기회를 주려고 한다. 10월에 심사 결과가 발표된다.

 

그렇다면 일일 사운드는 독립적인 아티스들의 모임인가?


그렇다. 모든 음반들은 그 아티스트가 직접 제작한 음반들이다. 단지 개별적으로 홍보하거나 개별적으로 공연하면 힘이 너무 없으니까 그런 뮤지션들끼리 모여 같이 활동함으로써 서로 도움을 주자는 취지에서 모였다.

 

현재까지 몇 장의 음반이 나왔나?


(하나하나 손가락으로 꼽으며 세어본다) 김오키, 김성배, 김성준, 지박, 세음, 김오키 2집, 준킴, 아방 트리오, 오진원, 지박 & 바르당 오베스피앙, 신성아, 이렇게 모두 열한 장이 나왔다.

 

음반을 발표한 사람들은 모두 조합원인가?


아니다. 아방 트리오에 참여한 피아니스트 프란체스카 한은 조합에 속해있지 않고 당연히 외국인 피아니스트 오베스프앙도 조합원은 아니다. 반면에 아직 음반을 발표하지는 않았지만 허준혁, 김윤철은 조합에 속해있다.

 

속한 뮤지션들을 보면 재즈 뮤지션들이 많지만 국악 뮤지션들도 있고 스펙트럼이 상당히 넓다.


그렇다. 성아 누나(신성아)는 현대음악 작곡가인데 다른 분야의 연주자들과 작업하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일일 사운드의 성격과 딱 들어맞는다.

 

누구나 일일 사운드에 들어올 수 있는 것인가?


아니다. 기본적으로 여기 속한 음악인들과 작업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함께 작업하다가 서로 뜻이 맞으면 자연스럽게 조합원이 될 수 있다.

 

일일 사운드는 왜 다양한 분야의 음악인들이 함께 하게 되었나?


일일 사운드는 해외의 다른 레이블에서도 들어볼 수 없는 참신한 음악을 만드는 게 목표다. 내 개인도 그러한 목표를 두고 음악을 하고 있다. 나는 음악이란 원래 하나의 뿌리에서 나왔다고 생각한다. 세상에는 못 어울릴 음악이 없다. 서로 장벽을 치는 것은 새로운 음악의 탄생에 장애가 된다. 음악뿐만이 아니라 앞으로는 무용, 연극 등 다른 분야의 예술가들과도 적극적으로 만나 볼 생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재즈와 국악을 섞으려는 수많은 시도가 있었지만 이렇다 할 성과가 없었다고 생각한다.


작업을 하면서 너무도 자기가 해오던 음악에 집착해서 그런 게 아닐까 본다. 아울러 상대방 음악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데 그런 것이 너무 부족한 채 그냥 만나서 작업하다 보니 뭔가 어색한 음악만이 나왔던 것이다. 앞으로 더 나아질 것이라 보인다.

 

김성배 퀸텟의 첫 음반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는데 이후에는 활동이 없었나?


작은 공연들을 많이 했다. 그리고 지난 5월에는 일본 간사이 지방 타카츠키에서 열리는 재즈 페스티벌에 참여했었다. 우리 공연 모습을 페이스북에 올려놨더니 그것을 보고 연락이 오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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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의 반응은 어땠나?


일본 전체의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모두 앨범에 수록된 오리지널 곡을 연주했는데 그걸 보고 일본 재즈 연주자들이 많이 놀라더라. 그들은 스탠더드 넘버들을 주로 연주했다.

 

김성배 퀸텟의 향후 계획은 없나?


2집을 준비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멤버를 대폭 교체해 새로운 사운드를 만들어 보고 싶다. 색호폰에 신현필, 피아노에 윤문희, 드럼에 한웅원 그리고 기타리스트 한 명을 물색 중이다.

 

그 밖의 다른 계획은 없나?


세음도 새로운 녹음 제의가 들어왔다. 독일에서 제안이 들어왔는데 무손실 마스터 음원으로 판매된다. 1집에 수록되었던 세 곡과 새로운 곡 두 곡을 새로운 멤버들과 곧 녹음할 것이다. 일일사운드의 음반들을 LP로 발매하는 프로젝트를 비트볼 뮤직과도 이야기 중인데 만약 성사가 되면 김성배 퀸텟 1집을 다시 녹음하고 싶다. 당시엔 처음 녹음이라 녹음에 있어서 여러 시행착오가 많았다. 새롭게 녹음한다면 훨씬 좋은 음향으로 녹음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현재 인천 문화재단 아트 플랫폼의 입주작가로 있는 만큼 이곳에서 원하는 성과물도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다.

 

무척 바쁘게 사는 것 같다.


그런가?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베이스 연주자로 찰스 밍거스난 데이브 홀랜드를 따라 잡는 것은 어려울 것 같다. 단지 다른 사람들에게서는 들을 수 없는 독특한 음악을 어렴풋이 만들기만 해도 난 음악인으로서 만족할 수 있을 것 같다.


인터뷰, 정리: 황덕호
사진: 이한수 (인터뷰), 방영문 (에딘버러)

2015/09 황덕호(saturnman2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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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모모의사, 당신을 위한 눈물을 남겨 놓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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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문제는 삶을 저평가하는 것


고마운 바보들과 만날 때가 있다. 셈을 할 줄 모르고, 더 나누어줄 수 없음을 안타까워하고, 받은 이의 미소를 보며 행복해하는, 그런 바보들과 만나는 순간이야말로 더없이 감사하다. 세상의 한 귀퉁이에서 작은 불빛을 밝히고 있는 이가 있다는 게, 적잖은 안도감을 주기 때문이다. 『내일은 괜찮아질 거예요』의 저자인 ‘모모 의사’ 김준형도 그런 바보들 중 한 명이었다.

 

전국 의사들의 평균 진료 시간이 4.2분밖에 되지 않는 사회에서(서울 대형 종합병원의 진료 시간은 20초 남짓에 불과하다!), 그렇게 해야만 의사도 먹고 살 수 있다는 목소리가 익숙한 현실에서, 그는 ‘아주 긴 진료’를 고집하는 바보 의사다. 불필요한 검사를 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불필요한 약을 처방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그는 그저 환자의 이야기를 들을 뿐이다. 『모모』의 주인공처럼 사람들의 고민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이상한 점은 그가 신경정신과 전문의나 심리 상담가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는 내과 전문의다. 고민을 들어주는 게 의무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왜, 귀한 진료 시간을 할애해가며 환자들의 걱정을 들어주는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의사란 사람들을 향해 ‘어디가 아파서 오셨나요?’라고 묻는 사람이니까. 때때로, 아니 생각보다 자주, 몸의 통증은 마음의 통증에서 비롯되니까.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정신과와 내과를 구분하는 건 공급자(의료인) 중심의 판단인 것 같아요. 소비자(환자) 중심의 구분일 수는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내과에 오는 사람이라고 해서 정신을 놔두고 오는 것도 아니고, 정신과에 가는 사람도 몸은 놔둔 채 영혼만 가는 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내과든 정신과든 환자 분을 볼 때는 몸과 마음을 같이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환자 분들과 같이 아파하고 힘들어하고 웃는 것이 의사의 일인 것 같고요.”

 

‘몸과 마음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다’는 저자의 믿음은 막연한 추측이 아니었다. 긴 시간 환자들과 만나며 깨달은 사실이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아픈 마음이 신체적 증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의학과 의료를 구분해서 생각해 주셔야 합니다. 의학이 자연과학이라면 의료는 사회과학입니다. 의학은 실험실에서 이루어지지만 의료는 정신과 마음이 있는 사람을 상대하는 겁니다. 기계를 상대하는 게 아니에요. 그런 점에서 저는 의료가 인문학과 굉장히 가까운 학문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모모 의사의 진료실에서 환자들이 털어놓은 고민들은 무척 다양했다. 외모콤플렉스로 인해 폭식과 거식을 반복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하고 마음의 병을 얻은 이도 있었다. 누군가는 가족과의 갈등 때문에, 또 다른 누군가는 꿈꿔왔던 삶과 너무나 다른 현실 때문에 괴로워했다. 마음을 병들게 하는 일들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었다. 그로 인해 신체적 고통을 호소하는 일도 드물지 않았다.

 

“마음의 병이 생기는 원인에 대해서 정답을 말씀드릴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살아가는 동안 누구나 하나씩은 마음의 짐을 지게 되잖아요. 그 짐들은 언제든지 마음과 몸의 병으로 나타날 수 있어요. 어떻게 보면 자신의 삶에 대해서 저평가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일 수도 있어요. 그게 더 우리 마음을 아프게 하는지도 모릅니다. 내가 아무리 초라한 사람이라도 나는 누군가의 이상이고 희망일 수 있습니다. 우리 사는 모습은 그렇게 흉하지도, 그렇게 아름답지도 않습니다. 그냥 고만고만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삶을 저평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는 우리 삶을 꿈꿀 수도 있으니까요.”

 

신경성 질환. 스트레스로 인해 생긴 질병을 이르는 말이다. 소화불량, 두통, 불면증 등이 대표적이다. 신경 써야 할 일들이 너무 많을 때, 크고 작은 문제들이 동시에 생길 때,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법한 증상들이다. 이럴 때 필요한 건 소화제도 진통제도 수면제도 아니다. 그런 것들은 미봉책에 지나지 않는다. 근본적인 치료를 위해서는 스트레스의 원인을 찾아내야 한다. 모모 의사가 그러했듯 아픈 마음에게 시간을 내어주어야 한다.

 

“신경성 질환과 꾀병은 다른 겁니다. 꾀병은 아프지 않은 사람이 아프다고 거짓말을 하는 거지만, 신경성 질환은 과도한 스트레스나 아픈 마음 때문에 몸의 기능에 이상이 생긴 거거든요. 두 가지는 분명히 구분돼야 됩니다. 신경성 질환들은 마음의 문제가 해결되면서 낫는 경우가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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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의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


상처를 받을 때마다 우리는 바보가 된다. ‘겨우 그 정도 일로 아파하다니 바보 같다’는 말이 호흡처럼 새어 나오는 것. 때로 그 말은 타인을 향하지만 자기 안에서 맴도는 순간도 많다. 남들보다 뛰어나지 못해서 바보 같고, 그래서 상처받는 모습은 더 바보 같고, 그런 것 따위는 아무 상관도 없다고 떨쳐내지 못하는 자신이 한심할 지경이다. 결국 다짐하는 건 ‘더 강해져야겠다’는 거다. 실패하지 않으려고, 패배감에 사로잡히지 않으려고, 남몰래 아파하지 않으려고, 더 강해지자고 마음먹는다. 그런 우리를 향해 『내일은 괜찮아질 거예요』는 ‘바보의 마음’을 말한다. “세상은 이른바 ‘바보의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둔하고 미련한 사람’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라고.

 

“고담의 바보 이야기를 들어보셨나요? 영국 존 왕 시절에 실제로 존재했던 마을에서 있었던 일인데요. 왕이 사냥터로 가는 길에 고담 마을을 지나가게 되자, 수탈을 두려워한 사람들이 회의를 했어요. 그때 한 현자가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똑똑해서 죽은 사람은 많아도 바보라서 죽은 사람은 없다고요. 바보처럼 행동하자는 거였죠. 그때부터 사람들은 호수에 뜬 달을 건지겠다고 물속에 그물을 던지고, 새들을 가두겠다면서 숲에 벽돌을 쌓았어요. 그 소식을 들은 왕은 마을을 피해 사냥 길을 우회해서 만들었고요. 저는 그게 현 시대를 살아가는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끊임없이 똑똑해지고 예민해지고 빨라지기를 바라잖아요. 그건 고담의 사람들처럼 현명한 바보가 되려는 꿈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 것일지도 몰라요.”

 

바보의 꿈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면, 저자는 그 중 한 명일 게 분명했다. 의료계의 현실을 아는 이라면 누구든 그를 향해 ‘더 똑똑하게 굴어야 한다’고 말했을 것이다. 환자의 걱정을 들어주는 일 같은 건 정신과 전문의나 심리 상담가에게 맡겨두고, 그 시간에 한 사람이라도 더 진찰하는 것이 ‘현실적인’ 판단일 테니까. 저자 역시 모르는 바가 아니다. 자신을 두고 바보 같다고 말하는 목소리도 낯설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의사의 책무에 대해 이야기한다.

 

“4분 혹은 2분 안에 진료를 마쳐야 한다는 건, 누구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가 주는 압박이 아닌가 생각해요. 짧은 시간 내에 돈을 많이 벌고 자원을 창출하는 게 궁극적인 목표가 되는 세상이 되어 가죠. 더 안타까운 건 모든 것이 거기에 맞춰진다는 겁니다. 내과 의사는 항상 죽음을 앞두고 있어요. 많은 환자 분들이 내과에서 돌아가시고 그만큼 저희는 사망 진단서를 작성해야 할 때가 많아요. 죽음이라는 걸 앞에 두고 있으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삶의 가치를 재정립해야 합니다. 다시 평가해야 돼요. 그렇게 세상을 바라보게 되면 ‘2분이나 3분, 4분 안에 환자를 진료하는 게 과연 올바른 것인가’에 대해서 진지한 고뇌를 하게 되죠.”

 

‘삶에서 진정 가치 있는 것들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품고 사는 의사, 바보들의 편에 서서 세상을 살아내는 의사에게 어떤 환자가 마음을 열지 않을 수 있을까. 『내일은 괜찮아질 거예요』가 증언하듯, 저자와 만난 환자들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고민을 털어놓았다. 이야기가 끝난 뒤에는 아픔을 씻어내는 눈물이 흐르기도 했고, 개운함이 담긴 미소가 번지기도 했다. 하지만 저자는 그 순간이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이라 말하지 않는다. 마음이 열리고 만나기 위해서는 자신만큼이나 마주 앉은 사람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까닭이다.

 

“대화를 나누면서 환자 분들이 실마리를 찾는 경우는, 저로서도 환자 분으로서도 행운인 거죠. 사실은 해결해드리지 못하는 부분이 훨씬 많아요. 안타깝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한마디 말로 위로해 드리는 것밖에 없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 분의 인생에 관여해서 해결해드리고 싶지만 그건 안 됩니다. 저는 관찰자일 뿐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건 마음이라도 덜 다치게 해드리는 것뿐일 때가 더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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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위한 눈물을 남겨 놓으세요


모모 의사의 처방전을 빼곡히 채우는 것은 알쏭달쏭한 이름의 약들이 아니다. 수많은 고전들 이 들려주는 이야기와 철학자의 한 마디, 인디언의 격언과 곳곳의 속담들이다. 그 안에서 저자는 환자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감춰져 있던 이치를 발견해주고, 새로운 시각에서 바라보기를 조언한다. 힘들고 괴로울 때는 그냥 울어버리자고, 독특한 처방을 내릴 때도 있다.

 

“조선 시대에는 ‘곡비’라는 노비가 있었습니다. 상가(喪家)에서 대신 울어주는 노비였어요. 지금 일본과 중국에도 그런 역할을 하는 직업이 있는데, 그 사람들이 울면 너무 슬퍼서 다 같이 운다고 해요. 같이 울면서 카타르시스를 만들어주는 거죠. 저는 ‘울지 않고 살아야지, 울면 지는 거야’라는 생각은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곡비한테도 부모가 있고, 그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울잖아요. 곡비조차도 자기 자신을 위한 눈물 한 방울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삶은 눈물의 연속이기에 “우리는 눈물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내일은 괜찮아질 거예요』는 어깨를 다독여주었다. 그 안에서 읽히는 것은 긍정이었다. 바보 같이 사는 삶도, 터져 나오는 눈물을 쏟아내는 것도, 다 괜찮다고 이야기하는 긍정. 어쩌면 그 특유의 태도 덕분에 저자는 다른 사람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가 강연 봉사를 통해 전파하는 ‘좋은 생각 만들기 건강법’ 역시 삶에 대한 긍정에 기반하고 있다. 인간의 운명은 타조의 그것과 같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는 것. 저자는 이집트 ‘사자의 서’에 기록된 신화 속에서 이와 같은 깨달음을 얻었다. 신화에 따르면 망자는 저승에서 심판을 받기 위해 자신의 심장이 저울 위에 올려놓아야 한다. 이때 반대편 저울에 얹어지는 것은 마아트 여신의 타조 깃털이다. 더럽혀진 심장이라면 저울 아래로 굴러 떨어질 것이고, 그렇지 않고 저울이 수평을 이룬다면 영혼은 신의 땅으로 가게 될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 저자는 ‘마음을 평가하는 저울 위에 왜 타조의 깃털을 놓았는지’ 의문을 품었다. 그리고 자신만의 답을 얻었다. 

 

“타조는 인간과 가장 닮은 새예요. 아무리 뛰어도 날지 못합니다. 하늘은 신의 세상이고요. 우리는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신처럼 살 수는 없어요. 깨끗하고 선하게 살다가 후회와 절망 없이 죽어가는 인생이라는 건 이 세상에 없습니다. 우리는 타조예요. 신적인 기준에서 우리 인생을 바라볼 수는 없다는 거죠. 그렇지만 우리는 깨끗하고 고귀하고 후회 없이 살아가는 인생을 꿈꾸기 때문에 마음을 다치게 돼요. 제가 ‘좋은 생각 만들기’ 강의에서 전하는 메시지도 그런 겁니다. 우리 삶을 바라볼 때 너무 완벽한 것을 찾지는 마시라고 말씀 드리는 겁니다. 누군가에게 비난을 받을 수도 있고 버림받을 수도 있습니다. 누군가 때문에 손해를 볼 수도 있고 다칠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그게 우리의 삶이라는 걸 인지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은 생각이 아닌가 싶습니다.”

 

『내일은 괜찮아질 거예요』 안에서 모모 의사는 고백하고 있었다. 치유를 받은 사람은 환자들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었다고. 삶의 고난에 맞서 당당하게 싸워온 그들과 만나면서 “인생의 의미와 삶의 기술”을 배워왔다는 것이다.

 

“제게는 그 분들이 스승이라고 생각해요. 의학적으로는 제가 조금 더 알 수 있겠죠. 하지만 삶의 기술이라는 건 살아보지 않고는 모릅니다. 살아가는 데에는 매뉴얼이 없어요. 학교에서 가르쳐주지도 않습니다. 자신이 마주친 삶을 어떻게 극복하고 살아가야 하는지, 저는 의사로서 그리고 관찰자로서 그 분들께 배우는 거죠.”

 

그는 진료실에서 만난 환자들을 통해 삶에는 정답이 없다는 사실을 배웠다. 그리고 “어쩌면 우리는 정답 없는 삶에서 정답을 찾으려 하기 때문에 아플지도 모른다”는 걸 알게 됐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겨진 과제는 무엇일까. 정답을 찾으려는 노력이 무의미하다면, 상처 받은 바보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내일은 괜찮아질 거예요』의 독자들이 자신의 삶을 다시 바라봐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찢기고 닳고 넝마가 된 인생이라 하더라도 그 인생을 다시 끌어안고 사랑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용기가 필요합니다. 자신의 추하고 더럽고 슬프고 안타까운 모습을 다시 한 번 바라볼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런 인생이라도, 눈물을 흘리면서라도, 다시 끌어안고 사랑하고 해줄 수 있는 용기요.”

 

『내일은 괜찮아질 거예요』를 읽다 보면 모모 의사의 진료실을 떠올리게 된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그곳에 익숙해 보이는 사람들이 앉아있다. 알 수 없는 미래에 불안해하고 꿈과 현실의 갈림길에서 고민하는 청춘이 있고, 직장에서는 치열한 경쟁에 시달리고 집에서는 가족의 주변을 맴돌기만 하는 중년의 가장이 있고, 떠나는 자신보다 남겨질 배우자를 애달파하는 노년의 부부가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깨닫는다. 마음을 여는 열쇠는 마음밖에 없다는 사실을.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누군가의 아픔에 귀 기울이는 ‘모모’ 같은 이가 있다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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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괜찮아질 거예요모모 의사 김준형 저 | 알에이치코리아(RHK)
이 책은 모모 의사가 20년 넘게 환자들을 보며 진료했던 실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삶에 치여 생긴 스트레스로 병을 얻은 환자들이 건강을 되찾는 과정을 그렸다. 저자가 내려준 처방 내용에는 다양한 상황에서의 스트레스 해소법과 지혜로운 대처방법이 나온다. 『내일은 괜찮아질 거예요』는 마음주치의 모모 의사가 들려주는 ‘삶이 편안해지는 마음 건강법’으로 더 행복한 내일을 찾아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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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교실, 주말에는 숙제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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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터킨더’(엄마와 아이들이라는 뜻의 독일어) 박성숙이 새로운 독일 교육 이야기와 함께 찾아왔다. 『꼴찌도 행복한 교실』『독일 교육 이야기』 이후 5년 만이다. 『독일 교육 두 번째 이야기』가 들려주는 그곳의 현실은 아직도 먼 미래의 일처럼 느껴진다. 아이들의 놀 권리를 법으로 보장하고, 18세가 되면 학교에서의 모든 문제를 학생과 선생님이 단독으로 결정하며, 기업은 직업교육을 주도하면서 맞춤형 인재를 길러낸다. 저자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 입시 지옥을 경험하며 자라난 이들에게는 쉽사리 믿을 수 없는 이야기들이다.

 

20년 가까이 독일에서 두 아이를 교육시킨 저자 역시 일상 속에서 크고 작은 놀라움과 마주한다. 아이들은 좋은 친구와 나쁜 친구를 구분할 때 사회성을 말한다. 성적이나 재능은 아이들에게나 선생님에게나 중요한 기준이 아니다. 학교에는 대학 정교수 직책을 마다하고 평교사가 된 선생님이 있고, 대학 입학시험에 합격하고도 직업교육을 받거나 무작정 해외여행을 떠나는 친구들이 있다. 졸업식에 모인 학부모에게 교장 선생님은 “사랑은 주되 아이의 인생에 참견은 하지 마세요”라고 조언한다.

 

이렇듯 『독일 교육 두 번째 이야기』에는 생활 속에 녹아 든 독일인의 교육관이 담겨있다. 그것은 각종 정책과 제도에 영향을 미치며 아이들의 권리를 보호해왔다. ‘학생의 신분으로 해서는 안 되는 일’만 줄줄 읊어놓았던 우리네 교칙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늘 그렇듯 의식은 제도를 낳고 제도는 다시 의식의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 어렸을 때부터 자신들의 권리에 대해 배우고 정치 참여의 경험을 터득한 독일의 아이들은 대학생이 되자 “왜 우리 부모가 세금을 버젓이 내고 있는데 등록금을 내야 하는 것이냐”며 당당하게 항의했다. 그들의 움직임은 등록금 제도 폐지를 이끌어냈다. 독일의 성인들은 국정 교과서뿐만 아니라 검인정 교과서마저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가가 정해놓은 범주에서만 교과서를 선택하도록 통제하는 것은 “언론과 학문의 자유를 침해하고 국민을 국가가 지향하는 이념에 가둬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 이유다. 사회화라는 명목으로 통일된 국가관을 학습시켰던, 그것이 교육의 역할 중 하나라고 믿었던 우리와는 정반대의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독일 교육 두 번째 이야기』는 그동안 저자가 ‘무터킨더’라는 이름으로 블로그를 통해 공유했던 이야기들과 <한국교육신문> <여성중앙> <우리 교육> <고래가 그랬어> 등 각종 매체에 기고했던 글들을 엮었다. 평범한 일상의 포스팅인 듯 막힘 없이 읽히면서도 교육 제도에 대한 심도 있는 시각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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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는 숙제를 내주면 안 됩니다!


독일에서는 아이들이 휴식을 취할 권리를 법으로 보장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주말에는 숙제를 내주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 학교법도 있다고요.


독일은 주 별로 학교법이 약간씩 다른데요. 말씀하신 부분은 제가 살고 있는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의 학교법이에요. 보통의 독일 아이들은, 특별히 성적이 뒤처지지 않는 한, 학원이나 과외 같은 개인 공부를 하지 않아요. 학교 공부가 전부인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유일하게 집에서 공부하는 시간이 숙제를 할 때죠. 그런데 그 숙제마저도 많이 내주지 못하도록 법으로 정해져 있어요. 학년별로 숙제 분량을 정해 놓았어요.

 

“시험은 일주일에 두 과목 이상, 하루에 한 과목 이상은 볼 수 없다”고 정해놓은 조항도 눈에 띕니다.


시험을 볼 때도 최대한 아이들의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도록 한 거죠. 지금은 달라졌다고 하는데 예전에 우리나라에서는 모든 과목의 시험을 하루 안에 다 봐야 했잖아요. (독일 사람들은)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하더라고요. 어린 아이들이 그 스트레스를 어떻게 감당 하냐고요. 그래서 하루에 한 과목 이상, 일주일에 두 과목 이상은 시험을 보지 못하게 규정해 놓은 거예요. 독일의 수능시험인 아비투어 역시 마찬가지예요.

 

여전히 우리나라의 수능시험은 하루 안에 모든 게 판가름 납니다. 그 날 컨디션이 저조했더라도 어쩔 수 없죠. 운도 실력이라고 생각하니까요. 독일의 경우는 어떤가요?


독일은 운이 따르지 못하도록 해요. 아비투어 한 달 전에 포어 아비투어라는 모의고사를 보는데요. 그 성적을 내신 성적에 포함시키고 아비투어 성적과 비교해요. 뿐만 아니라 선생님이 알고 있는 아이의 실력과도 비교하죠. 만약 100점만 맞던 아이가 아비투어에서 70점을 맞으면 아이에게 분명히 무슨 일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심한 스트레스가 있었다든지 운이 작용해서 아이에게 너무 어려운 문제가 출제됐을 수 있다는 거죠. 선생님이 아이를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거예요. 반대로 늘 70점을 맞던 아이가 아비투어에서 100점을 맞으면 운이 작용했거나 부정이 있었거나 어떤 사유가 있다고 생각하죠. 그래서 두 경우 모두 다시 시험을 봐야 돼요. 0점부터 15점까지의 점수에서 아비투어와 포어 아비투어의 점수 차이가 4점 이상이면 재시험에 응시해야 돼요. 운이 작용할 수가 없는 거죠.

 

아이들을 교육할 때 독일 사람들이 가장 금기시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학업 성적에 대해서는 자유롭고 문제 삼지 않지만, 타인에게 피해를 준다든지 법을 어기는 문제에 있어서는 항상 잔소리가 따르고 규제가 있어요. 역사적으로 2차 세계대전 경험했기 때문에 생긴 교육적인 엄격함도 있는데요. 장난으로라도 상대에게 총을 겨누는 행동 같은 건 독일 교육 안에서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는 부분이에요. 나중에 폭력을 내재화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걸 전제해 두고 있는 거죠. 독일에는 로젠몬탁이라는 축제가 있어요. 그 기간에는 모두가 분장을 하고 즐기는데요. 어린 남자아이들은 카우보이 분장을 가장 좋아해요. 그런데 카우보이니까 총을 차고는 있지만 쏠 수는 없어요. 유치원에서도 선생님이 총을 쏘면 안 된다고 하니까 꽂고만 다니는 거죠. 집에서도 마찬가지예요. 그 부분에 있어서는 항상 안 된다는 말을 듣고 자라기 때문에 의식 속에 뿌리 깊게 박혀있어요.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한 교육도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습니다. 사회봉사의 날을 정해서 ‘반드시 스스로 일해서 번 돈’을 기부하게 하는 것만 봐도 그렇고요.


형식은 다르더라도 모든 학교에서 기부활동을 해요. 저희 아이들이 다닌 학교에서는 일 년에 두 번 정도 사회봉사의 날이 있었어요. 아이들이 자신의 힘으로 돈을 벌어서 학교에 기부하도록 하고, 자매결연을 맺은 아프리카의 학교를 후원하는데요. 학교에서는 그 내역을 상세하게 정리해서 아이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해요. 너희가 기부한 돈이 어떻게 쓰였는지 계속 알려주는 거죠. 독일에서는 거의 99%의 학교들이 (다른 학교와) 자매결연을 맺고 기부 활동을 하고 있어요. 그 활동이 교육 과정 속에서 필수 이다시피 해요. 선생님도 협조하지만 아이들의 활동으로 더 많이 이루어지고요. 기부하는 걸 익숙하게 만드는 거죠.

 

최근에는 난민 수용 문제와 관련해서 많은 독일인들이 감동을 전해주고 있잖아요. 독일에 온 걸 환영한다는 피켓을 들고 난민들을 맞이하면서요.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해 배웠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독일 사람의 입장에서는 굉장히 힘든 선택이죠. 당장 세금을 더 내야 하니까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독일의 중산층이 잘 살지는 않아요. 부담해야 할 세금이 많기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보다 훨씬 더 빠듯하게 살아요. 그런데 그 돈을 또 나눠서 난민들을 도와야 하니까, 사실 힘든 일이죠. 현재 독일의 여당은 중도보수예요. 한국식으로 생각하면 그들은 보수니까 저변에는 난민에 대해서 반대하는 입장이 깔려있죠. 그런데 독일이 우리나라와 다른 점은, 마음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더라도 공식적으로는 절대 이야기하지 못한다는 거예요. 사회가 전체적으로 공감대를 이룬 상식적인 선에서는 야당이든 여당이든 비슷한 입장을 취해요. 그래서 교육 정책도 큰 변화를 일으키지 않고 이어가는 것이고, 난민에 대해서도 자신이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해서 반대한다고 말하지 못하는 거죠.

 

국민들로부터 질책 받을 것을 두려워하는 건가요?


물론 지금 난민을 받아들이는 문제에 있어서도 국민들 사이에서 질책의 목소리가 있기는 해요. 얼마나 더 세금을 부담해야 되는 거냐는 의견도 있어요. 그렇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은 ‘내가 더 힘들어지겠지만, 할 수 없다’ 하고 받아들이는 입장이에요.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교육을 시키니까 ‘나 혼자 살면 안 되고 이웃과 함께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뿌리 깊이 박혀있는 거죠. 그래서 대환영은 절대 아니지만 ‘어렵지만 이 시기를 넘기자, 우리에게 부과된 일이라면 받아들이자’라는 입장을 취하는 거죠. 그게 사회적인 공감대이고요. 당연히 극우의 네오나치 같은 사람들은 격렬히 반대하지만 소수일 뿐이에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받아들여야 될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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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학생들이 독일 유학을 선택하는 이유


우리는 유럽의 복지국가들을 바라보면서 늘 궁금해 하죠. 과중한 세금에 대한 불만은 없을까 하고요. 심지어 독일은 유학생도 무료로 대학에 다니게 해주잖아요. 그 부분에 있어서 국민들의 반발은 없나요?


그거에 대해서는 반발하지 않아요. 독일 학교는 입학생의 일부를 외국인에게 할당해야 되는데, 최근에는 영국의 학생들이 ‘밀려온다’고 표현할 정도로 유학을 엄청 많이 와요. 영국에서는 평균적으로 등록금이 천만 원이 넘는데, 독일에서는 등록금을 낼 필요가 없으니까요. 대학을 다니면서 드는 비용이라면 200~250유로 정도를 내고 학생 티켓을 사야 하는 정도예요. 우리 돈으로 25~30만 원 정도인데, 학생 티켓을 사면 6개월 동안 구역 내의 모든 교통시설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어요. 학교시설은 물론이고요. 그 외에 기숙사 비용이라든지 자취를 한다면 임대료 정도만 부담하면 돼요. 그리고 독일의 교육 제도가 바뀌어서 석사 과정은 영어로만 수업을 하거든요. 영국 학생들이 보기에는 독일에 와서 공부하기 너무 좋은 거죠.

 

독일에서 학업을 마치면 취업도 할 수 있는 건가요?


100% 가능하다고 할 수 있어요. 대학 졸업자가 없어서 못 쓰는 나라가 독일이거든요. 현재는 독일의 경제력이 영국보다 훨씬 좋으니까, 영국에서 명문대를 다니던 학생들도 독일로 유학을 오는 거예요. 이런 상황을 독일 입장에서도 좋아해요. 고급 인력이 유입되는 거니까요. 영국 학생들뿐만 아니라 중국 학생들도 많이 유학을 오고요. 나라와 관계없이 유학생에게도 학비가 무료예요. 그런 부분에 대해서 반발한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어요. 독일 사람들은 ‘대학은 원래 무료니까’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몇 년 전에 대학 등록금이 생겼을 때도, (한 학기에) 겨우 50만 원 정도였는데, 그것도 낼 수 없다고 계속 시위를 해서 폐지시킨 거고요.

 

말씀하신 그 부분이 굉장히 충격적이었습니다. 대학 등록금을 당연히 내야 하는 비용으로 생각하지 않고 ‘우리 부모가 세금을 내고 있는데 왜 등록금을 내야 하냐’고 항의하니까요.


독일도 대학생들은 정치에 관심이 없어요. 선진국은 다 그래요. 정치가 잘 굴러가니까 관심을 갖지 않는 거죠. 그런데 등록금 문제가 생기니까 대학생들이 다 같이 투표를 한 거예요. 등록금에 찬성하는 야당이나 여당 후보들은 참패했고요. 정치인들로서는 방법이 없었죠. 대학생들의 입장에 찬성하지 않으면 정치 생명이 끝날 수도 있는 거예요. 우리나라에서는 반대는 하면서도 투표는 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하는데, 투표와 정책의 연관성을 교육을 통해서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피부로 느끼지 못해서 그런 것 같아요. 독일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정치에 대해서 투명하게 교육을 받거든요.

 

독일의 정치 교육은 어떻게 이루어지나요?


14살 정도가 되면 정당의 청년회에 가입할 수 있고 16살이 되면 정당 당원이 될 수 있어요. 16살부터 지방 선거에 참여할 수 있고요. 그러니까 지방 선거를 할 때면 후보들이 선거 유세를 하러 학교를 찾아와요. 독일 아이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책을 내세우는 후보에게 투표하고요. 한국에서는 학생들의 정치 활동을 허용한다는 학생인권조례의 조항이 논란이 됐었는데,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인 거예요. 자신들이 아이들 모르게 뭔가를 하고 싶은 거죠. 사실 교육 당사자는 아이들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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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교실, 체벌은 없지만 교권은 있다


최근 한국에서는 교과서를 두고 논란이 있었습니다. 국정 교과서를 사용하던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도 있고요. 그런데 독일 사람들은 국정 교과서뿐만 아니라 검인정 교과서도 폐지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한국에서도 이념의 자유가 보장되잖아요. 그런데 공동의 국가관이라는 건 한 가지 이념을 주입시키는 거죠. 독일에서 국정 교과서는 나치 시대에만 있었어요. 모든 국민을 국가의 이념에 길들이는 작업에 교과서를 활용했던 거죠. 국정 교과서의 시대가 끝난 후에는 출판사에서 만든 교과서를 주 별로 선별하도록 했는데요. 지금 독일에서는 그런 검사와 승인 단계조차도 이념을 검사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어요. 국가의 이념에 국민들을 가두기 위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많은 학자들이 반대하고요. 그래서 베를린을 비롯한 5개 주에서는 검인정 교과서가 폐지됐어요. 역사 교재를 선생님들이 직접 선택해요.

 

학교 폭력 문제와 관련해서 뤼틀리 학교의 사례는 우리 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많은 것 같습니다.


뤼틀리 학교는 사회적인 공감대와 도움을 통해서 폭력에서 벗어난 사례로 독일에서도 엄청 유명해요. 이 학교는 학생들의 90%가 이민자 2세예요. 그 아이들이 문제를 일으키는 수준이 너무 심각해서 교사들이 ‘도저히 무서워서 수업을 할 수 없다’고 할 정도였죠. 학교를 폐쇄하든지 경찰을 투입해 달라고 선생님들이 교육청에 편지까지 보냈어요. 사건이 알려지면서 큰 화제가 됐고 당시(2006년) <슈피겔>이 선정한 5대 사건 중 하나에도 포함됐어요. 당시까지만 해도 독일은 성적을 올리는 데 굉장히 집중하고 있었어요.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낮은 성적을 기록해서 ‘교육 선진국으로서 너무 창피하다’는 생각이 퍼져 있었거든요. 그런데 그 문제가 발생하고 나서 학교 폭력에 사회적으로 많은 관심을 갖게 됐죠.

 

뤼틀리 학교의 문제는 어떻게 해결되었나요?


엄청난 돈과 인원과 프로그램을 투자했어요. 베를린 주정부에서도 집중적으로 투자했고요. 교장선생님이 바뀌고 나서 가장 먼저 시도한 건 학부모들을 학교로 유도한 거예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마련했죠. 그리고 아이들에게 독일어 공부를 시키는 게 아니라 모국어를 집중적으로 가르쳤어요. 그 결과 모국어 실력이 좋아지니까 독일어 실력도 자동적으로 좋아진다는 걸 경험하게 됐고요. 그리고 독일에서도 악기를 배우는 건 돈이 굉장히 많이 드는 일인데, 뤼틀리 학교는 1인 1악기를 무료로 가르쳤어요. 그렇게 많은 투자를 한 뒤로 학교가 완전히 달라져서 지금은 폭력은 거의 없어졌고요. 아이들의 변화를 보게 됐죠. 처음 사건이 터졌을 때는 학교 폐쇄 논의가 있었는데 지금은 ‘독일 교육의 오아시스’라는 제목으로 언론에 소개되고 있어요.

 

독일 학교에서 체벌은 상상할 수도 없다고 하셨는데요. 그럼에도 선생님들의 교권은 강력하게 보장된다고 하셨습니다. 그 비결이 궁금합니다.


독일에서는 체벌이나 촌지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꺼낼 필요도 없어요. 그런 거에 대해서 잊은 지 오래예요. 만약 체벌이 일어난다면 신문 1면을 장식할 정도로 큰 사건이에요. 저도 지금까지 구체적인 사례를 본 적이 없고요. 촌지에 대해서도 신문에서 기사를 본 적이 별로 없어요. 그런데도 선생님이 진짜 교권을 가질 수 있는 건 성적을 줄 수 있는 선생님의 자율권이 50% 정도 되기 때문인데요. 시험에서 100점을 받는 아이라 하더라도 수업태도가 좋지 않으면 선생님이 50점만 줄 수도 있어요. 그러면 성적표에는 75점이 기록되겠죠. 그러니까 아이들은 수업 시간에 나태할 수 없는 거예요. 그게 바로 교권인 거고요. 이렇게 선생님에게 강력한 권한을 줄 수 있는 건 믿음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에요. 촌지를 상상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선생님이 자신에게 이익도 되지 않는데, 특정 아이만 예뻐할 이유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양심이 허락하는 대로 있는 그대로 점수를 주는 거죠.

 


미래의 노동자를 키우는 독일의 기업들


기업과 학교의 연계도 눈에 띄는 대목입니다. “독일처럼 효율성 있는 직업교육을 위해서는 학교가 아닌 기업 주도로 바뀌어야 한다”고 적기도 하셨죠.


책에서 이야기한 부분은 직업학교에 대한 건데요. 독일 아이들은 4학년을 졸업하면 인문계 또는 실업계 학교로 진학해요. 인문학교와 실업학교의 공통 교육 과정은 비슷해요. 인문계는 대학 진학을 위해서 조금 더 수준 높은 과정을 가르치는 거고, 공부에 흥미가 없어서 실업계를 선택한 아이는 직업학교로 진학할 수 있게 하는 거죠. 인문계 아이들은 12학년까지 대학 입시를 준비하고 실업계 아이들은 10학년이 끝나면 졸업을 하고 취업 자리를 알아봐요. 취업하면 자연적으로 학교는 일주일에 2~3번 가는 거고요. 그렇게 2~3년 동안 회사와 학교를 오가면서 배우면, 기업들은 큰 문제가 없는 한 그 학생을 정식으로 채용해요. 자신들이 쓸 인재를 회사가 투자해서 키우는 거죠. 중소기업뿐만 아니라 대기업도 그렇게 하고 있어요. 요즘에는 이원화 대학도 많이 늘고 있고요.

 

기업과 학교가 연계된 교육은 어떤 효과를 낳았나요?


독일의 초중고 과정이 13년제에서 12년제로 축소된 해가 있었어요. 그때 입시생도 두 배가 되었고 직업학교 인원도 두 배로 늘었죠. 독일의 기업들은 채용 인원을 재빨리 늘리는 방식으로 직업 연습생을 흡수했어요. 지금 미국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미국 내 독일 기업들을 중심으로 직업 시장을 변화시키고 있는데요. 이런 변화는 청년실업률과도 깊은 관계가 있기 때문에 중요해요. 미국은 청년실업률이 18% 정도 되고 독일은 8% 정도인데요. 독일은 이런 이원화 직업 제도를 통해서 낮은 청년실업률을 가질 수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많은 국가들이 이 제도를 받아들이려고 하고 한국도 도입하려 하지만, 기업에서 자신들이 직접 인재를 키운다는 마인드가 없으면 실현하기 어렵죠.

 

한국에서도 쉽게 시작해볼 수 있는 독일의 교육방식이 있을까요?


교사들이 가장 쉽게 학생들을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은 학생을 대하는 자세를 바꾸는 거라고 생각해요. 독일 교사들은 공부 잘하는 학생을 절대로 떠받들지 않아요. 그 학생이 인격적으로도 성숙한 아이라면 떠받들겠지만 성적과는 관계없어요. 독일에서 가장 존중 받고 사랑 받고 친구들이나 선생님에게 추앙 받는 아이는, 인격적으로 성숙하고 사회적이고 타인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아이예요. 선생님들은 항상 그런 아이가 최고라고 아이들 앞에서 추켜 세워요. 아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그런 분위기를 접하기 때문에 ‘저런 사람이 최고구나’라고 인식해요. 그건 한국의 선생님들도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공부는 꼴찌를 하더라도 인격적으로 훌륭한 아이를 최고라고 추켜 세우면 다른 아이들도 싫어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 아이가 착하고 좋은 아이니까요.

 

독일의 학생과 학부모들은 대학 진학을 필수로 생각하지 않는데요. 우리 사회도 그렇게 되려면 ‘대학을 졸업하지 않아도 사회에서 차별 받지 않는 분위기’가 먼저 만들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독일 부모들은 자녀의 행복을 많이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아이가 공부를 못한다면 억지로 공부를 시키지 않고, 부모가 엘리트 출신이어도 아이 성향에 따라 직업학교를 권할 때도 있어요. 직업학교를 졸업해도 희망이 있으니까 가능한 일이기도 하죠. 독일에서도 대학은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이 가요. 공부에 소질이 없는 아이들은 대부분 직업학교를 선택하고요. 아무래도 보통의 부모들은 내 아이가 공부를 잘해서 대학에 가기를 바라죠. 대학 나와서 좋은 직업을 가지면 더 나은 지점에서 시작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지만 우리처럼 대학 진학을 전부로 생각하지는 않는다는 거예요. 당연히 독일의 부모들도 아이가 대학에 진학하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을 경우에 선택의 여지가 많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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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교육 두 번째 이야기박성숙 저 | 21세기북스
그간 저자가 아이의 성장 과정을 통해 밀착형 독일 교육을 전해왔던 것처럼 이번 책 또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한 아이의 모습을 실감나게 담았다. 이와 함께 독일의 진학과 취업 제도를 통해 한국 사회에서 화두로 떠오른 문제들의 원인과 해결책을 명쾌하게 써내려갔다. 실생활에서 직접 겪은 독일 교육의 참모습에 국가적 차원의 법과 제도적인 면을 함께 다룬 이번 책은 독일 교육에 관한 이론과 실제 모두 아우른 독일 교육 완결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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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훈장 독자와 사는 웹툰 작가 ‘무적핑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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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갑자기 메신저로 찾아온, 조선시대 그분들의 시시콜콜한 이야기’. 「조선왕조실록」의 ‘록(錄)’을 ‘톡(talk)’으로 해석한 『조선왕조실톡』은 역사와 개그를 묶은 웹툰이다. 왕을 ‘그분’, 역사를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변주했다. 원작자 ‘무적핑크’ 변지민 작가는 연재를 시작하며, ‘10만 역사 덕후’들이 이 웹툰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무척 고심했다. 결과는 ‘실톡’이 통했다. 2014년 12월 9일, 첫 회를 연재한 이래, 뜨거운 반향을 일으킨『조선왕조실톡』이 단행본으로 출간됐다. 매주 2회 연재를 지키느라 꼬박 밤을 새고 있는 ‘무적핑크’를 만났다. 어릴 적 후레쉬맨 캐릭터를 좋아해 ‘무적핑크’라는 필명을 지었다는 변지민 작가는 현재 시각디자인과에 재학 중인 대학생 신분이다. 역사와 SF를 모두 좋아하는 아이러니한 웹툰 작가, 무적핑크는 현재 ‘훈장’ 독자들과 함께 동고동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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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감 넘치는 한 순간


표지 촬영, 어색하지 않았어요?


모델로서는 어차피 아마추어잖아요. 전문가에게 맡겨야죠. 방송도 그렇고 사진도 그렇고, 촬영하시는 분들이 원하는 그림이 있더라고요. 거기에 최대한 맞춰서 가는 게 맞는 것 같아요.

 

2009년에 『실질객관동화』로 데뷔했으니 올해로 벌써 웹툰작가 생활 7년차에요.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일주일에 마감을 두 번 해야 하는데, <웹툰히어로 툰드라쇼> 촬영이 매주 월요일이에요. 더구나 세트장이 문경에 있어서 촬영 때문에 웹툰 마감을 주말에 해야 해요. 주말도 못 쉬고 일주일 내내 작업을 해야 하니까 컨디션이 점점 하락 곡선을 찍어서, 촬영 횟수를 좀 줄여달라고 요청했어요.

 

작품 연재 중에 스케줄이 많으면 마음이 번잡할 텐데요. 프로그램 자체가 원작자가 많이 개입하는 포맷의 예능이라서요. 같이 이야기도 만들고 출연도 하고 있어요. 처음 프로그램이 기획될 때, 대사가 없었으면 좋겠고 표정 연기도 안 했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사관 역할을 주셨어요. 수염은 평소에 한 번 붙여 보고 싶었어요. (웃음) 일정이 힘들긴 하지만, 원작 속의 캐릭터를 실제 배우들이 연기하는 걸 보면 되게 새롭고 재밌어요. ‘육화’라고 하면 좀 이상한가요? 배우 분들에 의해서 실물이 되는 걸 지켜보는 게 흥미로워요. 배울 것도 많고요.

 

『조선왕조실톡』 단행본이 8월에 출간됐는데, 예스24 역사 분야에서 꾸준히 상위권을 지키고 있어요. 부모님들이 자녀들에게 선물로도 많이 사준다고 하더라고요. 역사 공부 좀 재밌게 하라면서요.


맞아요. 저도 그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책만큼은 소장 가치가 있는 콘텐츠를 넣어주고 싶었어요. 이 책이 만화 분야가 아니라 역사 분야에 포함돼있잖아요. 역사 전문가이신 이한 선생님께서 ‘실록 돋보기’라는 제목으로 각 회당 역사 해설을 써주셨어요. 글 쓰는 스타일이 저와 되게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웹툰은 개그인데, 너무 진지하게 해설이 붙으면 서로 해칠 수가 있었을 텐데, 톤이 잘 맞았어요. 선생님께서 외국에 계셔서 아직 얼굴을 뵙지 못했는데, 책이 나오고서야 메일을 주고 받았어요. “손도 안 잡아보고 애부터 낳았네요”라고 인사를 드렸죠.

 

조금 아쉬운 부분은 없었나요?


판형을 조금 기형적으로 해도 재밌겠다 싶어요. 재밌게 보셨다는 평이 제일 많지만, 연세가 조금 있으신 분들은 글자가 너무 작다는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출간 전에 아이디어 차원에서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는데, 길다란 판형으로 작업했으면 어떨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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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명의 왕들을 아이돌처럼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셨어요.


처음 연재를 시작했을 때는 걱정이 되게 많았어요. 인기 있는 웹툰 리스트를 보니까 상위 20% 안에 역사물이 하나도 없더라고요. 여기서 뭘 할 수 있을까, 한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그림도 그렸다가 실사도 넣어보면서 꽤 헤맸어요. 지금은 어느 정도 안정기인 것 같은데요. 원래 사람이 가장 즐거운 상태가 자기가 해야 하는 과제의 수준이 아슬아슬할 때잖아요. 너무 어려워도 하기 싫고, 너무 쉬워도 하기 싫고. 매주매주 그 과제를 넘나드는 기분이에요.

 

 ‘작가’라는 호칭은 아직도 어색하다고 부담스럽다면서요?


많은 분들이 그렇게 부르시는 걸 편해 하시니까, 듣고는 있는데요. 여전히 “프로젝트 하나를 마치고 그 노동력을 돈으로 환급 받는다”는 입장이에요. 프리랜서라는 것에 딱히 불만도 없고요. 다만, 작업할 때의 태도라고 할까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조금씩 변하는 것 같아요. 처녀작인 『실질객관동화』를 연재할 때, 인터뷰를 보면 제가 사람들을 설득하고 싶다는 뉘앙스의 말을 많이 했더라고요. 지금은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설득이 불가능하다고요?


이를 테면, 대학생 친구들이랑 인터뷰할 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웹툰을 통해 뭔가 놀라움을 주고 깨달음을 주고 싶다는 작가님의 말이 인상적이었다”고요. 그 말을 듣고 ‘내가 저런 헛소리를 했나?’ 싶었어요. 놀라움이나 충격을 준다는 건 마음먹는다고 되는 일이 아니잖아요. 뭔가를 쏟아 붓는다고 되는 일도 아니고. 중요한 건, 웹툰을 보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부분이라든가, 공감할 만한 부분을 집어주는 일이더라고요. 그러면 독자 분들이 제각각 해석을 해요. 즐거워도 하고 심각해 하기도 하고. 20살 때는 오롯이 저라는 사람에 대해, 제 내면에만 집중했는데 요즘은 관찰을 많이 해요. 웹툰이 짱구를 잘 돌린다고 잘 만들어지는 게, 아니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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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의 수단이 있다면요?


뉴스를 많이 봐요. 국내 언론사 다섯 개 정도 앱을 깔아놓고 수시로 봐요. 언론사마다 성향이 다르잖아요. 요즘 사람들이 어떤 것에 관심이 있는지 알아보려고 인터넷 게시판도 많이 봐요. 되게 사소한 이야기여도 그 안에 희로애락이 다 있어요. “요즘 저 뭐하고 삽니다”, “이런 간식이 요즘 인기예요”하는 것들을 관찰해요. ‘생활감 넘치는 한 순간’이라고 할까요? 그런 걸 많이 찾게 됐어요. 옛날에는 뭔가 이질적이고 낯선 풍경을 좋아해서 소설을 읽어도 SF를 좋아했는데, 확실히 달라졌어요. 그 때는 일상적인 것을 다루는 건 지루하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취향, 관심의 대상이 달라진 계기가 있어요?


철이 들었다기보다는 작품의 성향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조선왕조실톡』이 옛날 사람들 얘기잖아요. 하지만 그 사람들도 현대인들과 똑같이 가족끼리 싸우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실패도 했단 말이에요. 제 작품이 그런 일상을 다루는 이야기다 보니까, 관심사도 바뀐 것 같아요. 처음 작품을 기획했을 때는 역사에 뭔가 참신하고 새로운 것을 넣어야 하지 않나? 싶었거든요. 그런데, 어설프게 하면 독자들이 읽다가 멍해질 수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원칙을 세운 게 있어요. 기본적으로 작품 한 회가 3개 챕터로 구성되는데, 도입은 무조건 2015년, 지금 시대에 일어나는 일로 시작하자고 정했어요. 구 남친의 문자가 왔다든가, 누구의 생일을 축하한다던가, 아들이 엄마한테 혼난다든지. 일상에서 문자나 메신저로 나눌 법한 이야기로 시작하다가 약간의 배경 설명을 한 후, 본론으로 들어가서 역사적인 일을 엮는 거예요. 마지막 챕터는 결론을 내리거나 다음 회에 대한 떡밥을 던지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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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 웹툰을 그리지만 전 항상 진지해요


『조선왕조실톡』의 댓글을 쭉 읽다 보면, 역사 공부를 하는 것 같아요. 대개 웹툰들을 보면 “재밌어요”, “다음 회 기대됩니다”, “빵 터짐” 같은 댓글이 압도적으로 많은데, 『조선왕조실톡』은  달라요. 일단 스토리에 대한 내용이 굉장히 많고, 역사 자료를 덧붙이는 독자들도 많아요.


그래서 제가 독자 분들을 ‘훈장님’이라고 불러요. 굉장히 감사하고 재밌고 좋아요. 역사물 자체가 웹툰에서 인기 있는 장르도 아니라, 10만 역덕(역사 덕후)들의 반응이 어떨지? 걱정이 많았는데, 오히려 역사를 좋아하는 분들이 많이 호응을 해주셨어요. 콘텐츠를 보태주시는 분들도 많고요. 저도 읽으면서 공부가 될 정도예요. 웹툰 하나가 업데이트가 되면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잖아요. 예를 들어, 선조가 처음 나온 회라면 독자 분이 ‘선조’를 위키백과에 검색해서 나오는 글을 복사해서 댓글로 달아주세요.

 

동화를 객관적인 시각으로 본 『실질객관동화』나 실록을 새롭게 해석한 『조선왕조실톡』도 모두 책을 보지 않고는 만들 수 없는 작품 아닐까 싶어요. 책은 작가님께 어떤 존재인가요?


자세가 많이 바뀐 것 같아요. 어릴 때 책을 좋아하긴 했는데, 한 책을 마르고 닳도록 있는 스타일이었어요. 학교에서는 독서 부장 같은 걸 시키면 했고요. 그냥 책은 친구처럼 보면 좋고 익숙한 존재였는데, 중학생이 되고 조금 크면서는 필요에 의해서 읽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아요. 제가 하고 있는 작품과 관계된 책들을 주로 봤으니까요. 지도에 관한 책이라든가, 여행기, 종교나 문화 관련 서적들을 많이 봤어요. 자원의 역사에 대한 책도 많이 봤고요. 제가 설탕, 석유, 커피 이런 자원에 대한 관심이 많거든요. 그런데 완독한 책은 거의 없어요. 필요하면 먹다 던져 놓는, 스낵 같았다고나 할까요? 읽은 권수도 많지 않았고요. 그런데 요즘은 계속 마셔대는 것 같아요. 필요에만 의해서도 아니고. 너무 과하게 읽는 것 같아요. 2주 정도 웹툰을 작업하려면 책을 한 1,000페이지는 봐야 하니까요.

 

전자책으로 많이 보시나요?


책을 놓아 둘 때도 없고, 하나하나 사기도 번거로워서요. 요즘은 읽어주는 책도 나왔잖아요. 귀에 이어폰을 꼽고, ‘그냥 알아서 지나가라’ 그러면서 읽어요. 책 읽는 순간에는 아무 생각을 안 해도 되는 게 편하더라고요. 언제나 쉬면서 하고 싶은 건, 스마트폰을 비행기 모드로 해놓고 전자책을 보는 거예요. 취미가 독서인 적은 없었는데 요즘은 그렇게 된 것 같아요.

 

대학 입시 면접 때, “열심히 일만 하며 살다가 마흔 살이 될 즈음, 세계에서 가장 물가가 싼 나라에 가서 1년간 살다가 돌아와 그 경험담을 책으로 쓰겠다”는 이야기를 하셨다고요. 웹툰이 아닌 다른 작품으로 책을 낸다면, 어떤 내용을 다루고 싶어요?


문득 드는 생각인데, 가상의 백과사전을 만들고 싶어요. 가상의 세계관을 만들어서 지형 같은 걸 창조하고, 거기에 서식하는 생물이라든가 광물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지금으로서는 먼 미래의 일인 것 같지만, 제가 지적 도전 같은 걸 좋아해요.

 

필명 ‘무적핑크’를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안 했나요? 『조선왕조실톡』이라는 작품만 놓고 보면 꽤 안 어울리는 조합일 수 있는데요.


있어요. 『실질객관동화』를 마치고 작품 두 개를 더 했는데, 하나가 「경운기를 탄 왕자님」이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농사를 소재로 한 작품인데, 연재를 하다 보니까 제가 그림을 그리는 작업을 별로 안 좋아하더라고요. 왜 그려야 하는지 모르겠더라고요. 다음으로는 「실질객관영화」를 했는데, 짧은 분량 안에서 기존 영화를 소개하면서 또 패러디까지 해야 하니까 되게 어려웠어요. 해보니까 전위적이더라고요. 제가 그렸지만 공감도 안 가고요. 두 작품을 하면서는 애정을 많이 못 가졌던 것 같아요. 선배 작가님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한 작품이 어느 정도 인지도가 쌓이면, 후속 작품의 색깔이 완전히 달라졌을 때 독자들이 별로 안 좋아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새로운 필명으로 갈까도 생각했어요. ‘무적핑크’라는 이름으로는 개그밖에 못 그리니까요. 그런데 저는 언제나 진지한, 진지 빠는 타입이거든요? 다행히 『조선왕조실톡』을 하면서 맞는 옷을 찾은 것 같아요. 개그 웹툰을 하는 분들을 보면 저를 포함해서 정말 진지한 분들이거든요. 개그맨도 자기가 웃으면 재미 없고, 나는 진지한데 그걸 남들이 웃을 때, 재밌는 거잖아요.

 

대학생 때, 웹툰작가로 데뷔했고 현재도 대학생이세요. 대학생들에게 ‘워너비’로 불리시는데요. 후배들에게는 어떤 이야기를 자주 하시나요?


자주 듣는 질문 중에 하나가 “작가님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으셨는데, 좋아하는 일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란 이야기에요. 저는 좋아하는 일을 했다기보다 싫어하는 일을 안 하려고 발버둥 친 것 같아요. 정말 고집이 세서 싫어하는 일을 하는 걸 너무 싫어했거든요. 대학 강의와 내가 주도적으로 하는 작업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저는 후자예요. 아무래도 제 것을 하는 게 남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수업이랑 마감이 겹치면 수업을 안 가요. 주변 친구들이나 교수님들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보세요. 예전에는 웹툰작가가 되게 힘들고 돈을 못 버는 직업이라는 인식이 있었잖아요. 저를 좀 뺀질이로 보셨죠.

 

지금은 상황이 역전됐겠어요?


달라졌죠. 저는 학교에서 언제나 독강, 혼밥이에요. 혼자 강의 듣고 혼자 밥 먹고 그러는데, 남들 의식을 별로 안 하는 편이라서 개의치 않아요. 저는 학점이 D 만 나와도 재수강을 안 해요. 좋은 학생은 아니고 걱정스러운 학생이겠죠. 많은 분들에게 추천하기에는 위험한 라이프 스타일인데요. 영화감독 크리스토퍼 놀란이 언젠가 한 대학교 강연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대요. “꿈보다 현실을 좇아라.” 저도 비슷한 말을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현실적인 범위 안에서 선택을 하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데, 그 현실적인 선택이 당신의 감정을 모두 버리라는 게 아니잖아요. 성공을 하려면 일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하고, 집중하려면 그게 적성에 맞아야 힘들지 않은데. 후배들을 보면 조금 안타까워요. 특히 미대생들은 기회의 문이 좁다 보니까, 당연히 돈을 받아야 하는 프로젝트에서도 “시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러고 있으니까요. “언제나 자신을 좀 아껴라. 아껴줄 사람은 너밖에 없다”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사회생활을 꽤 일찍 시작하셨는데, 수입은 어떻게 관리하세요?


일단 저축이에요. 곳간을 어느 정도 채워놓으면, 인기가 떨어지거나 작품이 실패해도 다음 단계로 갈 기회를 만들 수 있잖아요. 언제든지 작업할 수 있는 상태인 게 좋은 것 같아요. 어차피 돈을 잘 쓰지도 못하니까 잘 쌓아놓으려고 해요.

 

왠지 평생 만화를 그리고 있을 것 같진 않아요.


일단 『조선왕조실톡』이 규모가 있는 작품이다 보니까 2,3년 정도는 이 작업에 몰두할 것 같아요. 단행본으로는 아마 5권까지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잘 해내면 1차 목표를 달성하는 거고, 그 이후에도 비슷한 포맷으로 새로운 작품을 할 수도 있을 것 같고요. 전 일할 때, 힘 빼고 하는 걸 잘 못해요. 무조건 잘해야 하고 의미가 있어야 해요. 조직생활 같은 건, 잘 못할 것 같아요. 모든 걸 제가 관리, 감독하는 걸 좋아해서요. 그런데 요즘은 조금 놓는 법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해요. 혼자 해 봤자 의미 없는 일이 많더라고요. 의도를 전달하는 법도 배워야 하고, 남을 좀 믿는 법을 배워야 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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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톡 1변지민 저/YLAB 기획/이한 해설 | 이마
[실톡]이 다루지 못한 부분들에 대한 설명은 물론 역사적인 해석까지, 역사를 좋아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실톡]을 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평소 역사에 관심이 없거나 어렵다고 꺼리던 사람들도 한번 ‘조선시대 그분들의 대화’에 빠지면 그 재미에서 헤어나기 어렵다. 일반 독자들뿐만 아니라 연구자나 일선 역사 교사들 사이에서도 화제가 되어, 실제로 학교 역사수업에서 자료로 활용중이라는 독자들의 제보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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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식 “젊은 사람들은 신자유주의 전쟁의 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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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땅에서 나고 자란 동포, 여성으로 태어난 남성, 꼭 거창한 (인권과 같은)주제가 아니라도 사람에게는 모두 다양한 정체성과 주류에 편입되지 않는 비주류의 범주가 있다. 장애인의 반대말이 정상인이 아니라 비장애인이듯 사실 우리 모두는 ‘완벽하지 않다’. 완벽한 인간이 없다고 해도 좋겠다. 이것은 ‘사실’이지만 이 사실을 받아들인 삶과 그렇지 않은 삶은 크게 다를 것이다. 서경식, 그로 말하자면 재일조선인으로 일찍이 시인을 꿈꾸던 소년이었으나 모어와 모국어가 달랐기에 겪어야 했던 혼란을 평생 동안 감내하며 살았다. 조국을 찾아 일본을 떠난 두 형은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고, 형들의 구명에 애쓰느라 그는 “대학 졸업 후 10년 정도 백수”로 지냈다.


그 스스로 ‘경계인’이라 말하는 재일조선인 서경식 도쿄게이자이대학 교수. 주변인으로서 서경식 교수가 평생 가졌던 감각은 그에게 꾸준히 다른 세상과 ‘여기’를 함께 바라보는 힘으로 남았다. 일본인 틈에 있는 조선인, 한국어를 충분히 향유하지 못하는 조선인, 역사의 소용돌이 안에 살아야 했던 한 개인이 감당해야 하는 삶의 질문은 너무나 컸다.


그런 그에게 고전이란 어떤 것이었나. 그는 “지금껏 가지고 있던 공식에 대해 의심을 갖게 해주는 그런 것”을 고전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고전이란 어려운 낱말과 낯선 작가 이름으로 힘주어 읽어야 하는 이미지가 아니라 훨씬 즐거운, 감정을 고양시키는 이미지로 탈바꿈하게 된다.


“문학이나 예술은 타인에 대한 상상력”이라는 서경식 교수의 말에 크게 공감하게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다른 삶을 상상하고 공감하는 것은 이 삶의 외양을 넓히는 데도 크게 작용한다. 내가 원하는 것이라고 여기는 것들이 실은 남에게서 주어진 것들이라는 사실, “신자유주의적인 시간 감각”이 나의 “사고나 생활양식을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 지금 겪는 고통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 역사적, 사회 구조적 문제라는 사실을 안다면 삶은 훨씬 다양한 빛깔로,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을 것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은 아주 선량한 사람”이지만 불평등한 사회 구조를 알고 “그 구도를 거절하지 않는 한 이 사람은 결국 국가 범죄의 공범자가 된다”고 말하는 서경식 교수의 말에서 다시 또 고전을 읽는다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고전을 읽음으로써 “자신을 외부에서 바라보는 시선을 갖”게 된다면 세상이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가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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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관념을 해체하는, 고전


‘고전’이라는 이름이 주는 첫인상은 아마도 ‘읽어야 한다’는 의무가 아닌가 싶어요. 머리말에서는 “젊은이들에게 권하는 교양서 목록이 아니”라고 하셨지만 그렇게 읽힐 위험이 있다는 건, 알고 계시죠?(웃음)


우선 저 자신이 원래가 소위 지식인이 아닙니다. 물론 제가 좋아해서 글쟁이가 됐는데요. 대학교수가 되고 주변 교수들을 보니까 기본적인 고전을 다 읽고 했던, 말 그대로 고전적인 지식인들이더라고요. 저는 그렇지 않고 주변인, 경계인이어서요. 우연히 그런 자리에 있게 됐을 뿐이지요. 일반인으로서 시간이 있을 때 원해서, 좋아해서 책을 읽었을 뿐이에요. 이 책도 원래는 <한겨레신문>에 연재했던 건데, ‘내 서재 속 고전’이라는 시리즈 제목 자체가 제게는 거북하다 할까 쑥스럽다 할까, 그랬죠.


기본적으로 고전 서적의 내용 설명이라기보다 ‘나’라는 사람과 그 책의 접점이랄까 만남이랄까 그런 얘기를 썼을 뿐이에요. 그런 식으로야 쓸 수 있지 다른 본격적인 방법으로는 못 썼을 것 같아요.

 

고전이라는 도구를 빌려서 나의 이야기를 했다고 볼 수 있겠네요.


그러니까 얼마든지 ‘저 놈은 고전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놈이다’ 하는 욕도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항상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요.(웃음) 어쩔 수 없는 것이지요.

 

말씀처럼 목록들 역시 흔히 생각하는 ‘필독 고전’ 목록과는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이 책들이 공통적으로 선생님께 주었던 번뜩임 같은 게 있었을 것 같아요. 이 목록들이 나에게 온 이유랄까 그런 것이 궁금합니다.


연재 얘기를 들었을 때, 저는 제 나름대로 내게 재미있었던 책에 대해서 얘기할 뿐이다, 이렇게 가볍게 생각했지요. 아시다시피 일본 사회 상황이 아주 나빠지고 있어요. 정치상황 자체도 우경화되고 있고요. 지난 2~3년 사이에도 글을 쓰면 쓸수록 심해져서, 이런 사회에서 젊은 사람들이 다시 발견하고 다시 봐야 하는 책은 어떤 책인가 하는 문제의식도 당연히 있었습니다.


저는 1951년생이고, 60년대 일본사회에서 사춘기, 청춘기를 보냈습니다. 그 시기가 지금 돌이켜보면 전쟁 후 일본의 평화주의, 민주주의, 인문학이 가장 풍요로웠을 시기였죠. 물론 그때는 그렇게 생각 안했고, 앞으로 더 좋아질 것이다, 더 좋아져야 한다 그렇게 생각했었는데요. 1970년대 후반 이후 계속해서 사회가 안 좋은 방향으로 왔기 때문에 60년대, 제가 고등학생이던 시절부터 대학교 1~2학년까지 일본에서 배웠던 고전의 가치를 젊은 세대에게 얘기해놓아야 한다고도 생각했지요. 일본 분들 중에도 물론 그런 분들이 계시지만, 저 같은 일본의 소수자로서의 느낌이 또 강하게 있는 것 같아요. 나에게 휴머니즘의 가치, 민주주의의 가치, 인권 등을 가르쳐준 일본 사회가 왜 이렇게 되었는가 하는 것이죠. 그런 문제의식들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것이 이 책에 기본적으로 있는 바탕이라 할 수 있죠.

 

처음 연재 당시에 ‘재미를 주었던 책들’을 쓰자고 가볍게 생각했다고 하셨는데, 그 재미라는 것이 궁금해집니다. 어떤 책을 ‘재미있다’고 느끼시는 건가요?


어려운 질문입니다.(웃음) 사실 저는 재미있게 책을 읽는 사람인데요. 하나는 일본의 시대소설류가 있죠. 에도 시대를 다룬 소설들도 재미있는 것들이 있어요. 또 저는 등산이나 모험을 다룬 다큐나 소설도 많이 봐요. 공부라든가 자기 자신의 인격을 완성시키기 위한다는 고상한 의식 없이 읽는 거죠. 대학 졸업 후 10년 정도 백수 시절이었는데 그때 그런 책도 많이 읽었어요. 그런 것 중에도 제 기준으로는 고전인 것도 있어요. 그 얘기를 한국 독자에게 어떤 식으로 전달할지 고민하다 연재가 끝나버렸어요. 사실 저는 그런 이야기까지 가고 싶었어요. 몽테뉴, 칸트뿐 아니라 아주 대중적인 책들 중에도 고전이라 할 만한 책들이 있다고 해야 어떤 것은 고전이라 하고 어떤 것은 아니라 하는지 기준이 보이잖아요. 그것까지 해야 재미가 있을 텐데 못했습니다.


제게 뭐가 재미있느냐면 세상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상식, 고정관념을 무너지게 하는, 해체해주는,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는, 제 사고의 외양을 넓혀주는 그런 것이에요. 공식을 외워서 어딜 가나 그 공식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껏 가지고 있던 공식에 대해 의심을 갖게 해주는 그런 것이 제게는 고전이에요. 그런 것은 사회과학서, 철학서뿐 아니라 대중소설도 그런 경우가 있다는 것이에요.

 

얼마 전에 『시의 힘』이라는 책도 출간이 되었는데요. 시도 그렇게 읽으시는 거죠?


다른 사람들은 시를 어떻게 읽어요? 몰라요. 저는 그렇게 읽었을 뿐이지요.(웃음) 저는 중학교 때 시인이 되려고 했어요. 고등학교 때는 자비로 시집을 출판하기도 했죠. 한 인터뷰에서 한 얘기인데요. 우리에게는 50년이란 세월이 별로 긴 세월이 아니다, 엊그제 같은 얘기다, 라는 거예요. 우리에게는 그런 얘기를 해야 하는 역할이 있다는 거죠. 젊은이들은 모르지만 어제의 세상 풍경이 이런 것이었다, 전쟁은 이런 것이었다, 전쟁 후는 이런 세상이었다, 를 말해야 해요. 그걸 왜 시로 써야 하느냐면, 너무 로고스적인, 언어이성적인 얘기로만 하면 포함될 수 없는 그런 부분들이 있기 때문이에요. 저 자신은 그렇게 쓸 재주가 없지만 시가 재미있는 것은 재미있다, 그렇게 생각했어요.


저는 한국말로 시를 쓰거나 한국의 시를 진짜로 이해하는 경지까지는 못갈 것 같아요. 그냥 직역해서 어떤 의미인지는 어느 정도 이해하지만 시라는 건 그런 게 아니에요. 언어의 리듬이라든가 울림이 의미가 있지요. 그런 걸 맛볼 정도까지는 도달하지 못한 채 아마 세상을 떠날 것 같아요. 안타까운 일인데 할 수 없어요. 그럼에도 시에 대해서 조금 객관적으로 거리를 두고 볼 수 있는 것은 내가 이런 처지여서이다 이렇게 생각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시에 대해 다시 관심 갖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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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소중한 고전은 프리모 레비


에드워드 사이드, 프리모 레비, 루쉰 등에 관한 글들은 특히 선생님께서 그간 해왔던 이야기들과 맞물려서 질문거리들을 줍니다. 제 경우, 프리모 레비로 들어가는 입구가 선생님의 책 『시대의 증언자 쁘리모 레비를 찾아서』였거든요. 선생님이 갖고 계신 ‘전달자/질문자’로서의 정체성이 궁금합니다.


죄송합니다. 항상 똑같은 사람들로 똑같은 이야기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웃음) 전달자로서의 정체성이 프리모 레비만큼 있는지는 모르지만 비슷하다고 볼 수 있지요. 프리모 레비 책을 통해서 저 자신의 정체, 위치를 알게 됐다 할 수 있어요. 개인적으로는 가장 소중한 고전이 프리모 레비라 할 수 있지요.


1989년에 감옥에 있던 형 둘이 모두 석방됐어요. 석방될 때까지 저는 다른 일에 대해서는 집중적으로 생각할 수도 없고 저 자신의 길에 대해서도 제대로 생각할 수 없었어요. 언제 석방될지도 몰랐으니 말하자면 임시의 삶이라 할까요. 그냥 하루하루를 살았을 뿐이었죠. 그런데 석방됐다, 자, 내일부터 너는 어떻게 살 것이냐 하는 문제가 던져진 거예요. 정체성이랄까 진로에 대해 처음 아주 깊이 생각하게 됐어요. 그때 <아사히신문사> 출판부에서 글 청탁이 들어왔어요. ‘20세기의 천 명’이라는 짧은 평전집의 필진 중 한 명으로 글을 쓰게 됐어요. 그때 쓴 글이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책으로 묶였어요. 그 중 다섯 사람 정도에 대해서는 좀 더 본격적인 평전을 쓰자고 생각했었어요. 프리모 레비만 그것이 이루어졌죠. 그렇게 제게는 가장 소중한 고전이 됐어요. 말하자면 저의 여러 사유의 척도가 됐다고 할 수 있지요.

 

재일조선인이기에 더 가깝게 느낀 부분도 있었겠지요.


물론 재일조선인과 유대인은 다르죠. 하지만 경계인, 소수자, 피차별자라는 공통점도 있어요. 그런 사람들만 가질 수 있는 보편성을 생각하는 데 큰 도움을 받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책이 일본뿐 아니라 한국에서 출간되고 읽은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다고 하면 제게도 아주 행복한 일입니다.

 

프리모 레비 외에 본격적으로 써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작가는 또 누가 있나요?


시인 파울 첼란이에요. 파울 첼란의 문제는 그대로 저 같은 사람이 일본 사회에서 맞서 싸워야 하는 문제기도 했어요. 보편적으로도 특히 아우슈비츠 이후 인간에게 던져지고 있는 물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간단하게 설명하면요. 파울 첼란은 유대인인데 모어가 독일어죠. 시를 모어인 독일어로 쓸 수밖에 없는데 그 독일인들이 부모를 수용소에 살해했어요. 너는 적들의 말로 시를 쓰느냐는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는 거예요. 파리로 망명해 시를 쓰고 소르본 대학에서 시를 가르치는데 독일어로 해요. 아시다시피 프랑스는 독일어를 잘 안 읽어요. 그러니까 주변에 자신의 시를 읽어줄 사람이 거의 없는 상태예요. 완전히 고립된 상태로 시를 쓴 사람이에요. 또 독일에서 상을 받게 됐는데 수상식장에서 누군가 반유대주의적인 발언을 했죠. 진짜 반유대주의 발언이었는지는 지금까지 의문이에요. 하지만 첼란은 그렇게 느꼈다, 그것이 중요하죠. 수상식장에서 첼란은 도망쳐버렸어요. 독일어로밖에 못쓰는데 독일에서도 도저히 못 견디는 사람이에요.


그런 처지가 조금 과잉되긴 하지만 제가 일본에 있는 처지와 비슷하게 보여요. 제가 겪어온 경험, 내 본의를 아무리 전달해도 상대방인 일본인 다수자가 그걸 왜곡하거나 오해하거나 자기 멋대로 해석해버리거나 하는 상황에 대해서 느끼는 스트레스에 대해서는 첼란도 이런 것이었을까 하는 걸 느껴요. 그래서 첼란에 대해 공부를 더 하고 동유럽에 첼란의 흔적을 찾아 가는 순례 여행도 하고 싶었어요. 이제는 좀 무리일 것 같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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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정이 중요해


디아스포라로서의 시선을 꾸준히 말해오셨잖아요. 어린 시절과 달리 “벽 바깥으로 나온” 지금, 여전히 절망감이 있다, “피로감과 공허감에 침식당하는 감각”이라고 적으셨는데요. 인간 존재에 대한 절망도, 게다가 희망(고전)도 모두 인간에게서 나온다는 사실은 참 아이러니합니다. 


간단하게 말씀 드리면요, 인간 존재에 절망할 수 있는 존재가 인간입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이 인간이면서도 인간에 절망할 수 있는 존재예요. 절망조차 안 하면 완전한 절망이죠. 제게 고전이 된 많은 사람들은 인간이라는 게 얼마나 절망적인지에 대해서 얘기해온 사람들이죠. 자기 자신을 비판적으로 볼 수 있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것이에요. 자신을 외부에서 바라보는 시선을 갖고요. 그것이 교양이죠. 또 지금 이 순간만 보는 게 아니라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지금 이렇게 있게 된 유래에 대해서 역사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존재 말이에요. 이런 존재조차 없어지면 절망도 못하게 된 인간, 그냥 동물화, 기계화된 그런 존재가 되어 버리지요. 절망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 오히려 희망을 찾아내기 위해서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희망이 여기에 있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고요. 얼마나 희망을 찾아내기 어려운지에 대해 바로 보고, 그 어려움에 대해 얘기하는 사람이 인간이다, 이렇게 저는 생각합니다.

 

희망을 말하기는 쉽지만, 절망에 대해 이야기함으로써 희망으로 가는 어려움을 말하기는 쉽지가 않아요.


마르크 블로크라는 사람이 나치에 저항해 나이 50세 넘은 대학 교수면서도 저항에 가담해서 총살을 당했죠. 이것을 겉으로만 이해하면 형식화가 되고, 그의 맥락,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기 어렵게 돼요. 어떤 사상이라든가 사유가 생긴 지 불과 한두 세대 만에 거의 그렇게 형식화, 형해화가 돼요. 이 사람이 무엇을 외쳤는지, 무엇을 요구했는지, 왜 이 이념을 갖게 됐는지를 봐야 해요. 만약 마르크 블로크가 지금 살아있었다면 이 사람의 사상은 어떤 식으로 이어졌을 것이고, 우리가 어떤 식으로 계승해야 하는지, 이것이 문제지요. 마르크 블로크가 애국주의자였기 때문에 우리도 애국주의여야 한다고 해선 안 된다는 거죠.


고전이나 책에 대해 얘기할 때 항상 느끼는 게 이런 거예요. 우리의 사유, 사고를 끊임없이 형식화, 형해화 시켜버리는 힘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 그것에 우리가 어떻게 저항할 수 있는지가 가장 어렵고 필요한 문제라고 봅니다. 이 책도 아주 조심해서 썼는데요. 서경식이란 사람이 이런 목록으로 이 책을 추천하고 있다, 이걸 다 읽어야 한다, 이걸 알아야 교양이 될 수 있고 모르면 안 된다, 그런 뜻이 아니죠. 우리가 제대로 살기 위해서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거예요. 결론이 아니라요. 그 과정을 보여주는 이야기를 어떻게 할 수 있는지가 제게는 가장 어렵기도 하고 흥미로운 일이기도 합니다. 

 

말씀처럼, 불과 한 세기 또는 반 세기의 이야기들조차 너무 빨리 잊혀요. 그 곁에서 절망을 얘기하는 것조차 너무 피로하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맞습니다. 일본 지식인 중에 아주 쉽게, 아주 흔히 그 절망이라는 말을 쓰는 사람들이 있어요. ‘나는 벌써 절망했기 때문에 아무 꿈도 없습니다’라든가 ‘선생님은 아직 절망 안 하시니까 그렇게 저항하시는데, 저는 벌써 절망했기 때문에 안 합니다’하는 식이에요. 그건 자기 보신의 다른 표현일 뿐이지 진짜 참된 절망 아니지요. 이런 절망적 상황에도 아직까지 자기의 위치, 삶을 진짜로 위협받지 않은 사람들의 표현인 것이죠. 


일본 사회의 대부분 사람들은 에도시대, 메이지시대, 식민지, 전쟁, 민주화, 민주주의 하는 식으로 책장 넘기는 듯한 시간 감각으로 있어요. 저처럼 반 세기 이상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한쪽도 안 넘어간 느낌인데 말이에요. 단편화되어 있는 것은 대중들뿐이지 지배층은 계속되고 있다는 거죠. 우리의 사고 자체가 단편화되어 있고, 아주 짧은 문장으로 정답인지 오답인지 알아야 하는 식이니까 그런 척도로만 생각해요. 지금 당장 답을 못 내더라도 끈질기게 생각하는 태도 자체가 파괴당하고 있다는 거죠. 거기서부터 저항해야 해요. 그거 어려워요. 제가 이런 얘기하면 ‘선생님, 그럼 희망 갖게 될 만한 정책이 있습니까’라고 하는데, 그런 거 없어요. 그런 사회에 살고 있다는 걸 알면서 일상적인 생활 태도부터 우리 자신을 다시 우리 것으로 자각해야 한다는 겁니다.

 

그것이 사유하는, 고독한 시간에 대해 많은 작가들이 말하는 이유기도 한 것 같아요.


시간 감각에 대해서도 얘기하는데요. 일본을 비롯한 식민지 세력들이 들어오면서 철도에 시간표가 등장해요. 정확한 시간에 기차가 출발해서 정확한 시간에 도착하는 것은 우리 선조에게는 너무 신기한 일이었죠. 농촌 공동체 생활이었기 때문에요. 산업식민자본주의, 아침 8시부터 공장에 들어와서 8시간 혹은 12시간 집단적으로 일하게 하는 자본주의적인 시간 감각은 영국에서 시작해서 식민지주의와 더불어 일본의 강제로 이곳에 들어왔던 거예요. 그것이 지금은 신자유주의적인 시간 의식으로 됐죠. 여행을 할 때도 목적지, 출발지만 넣으면 컴퓨터가 가는 길을 알려줘요. 이 방식은 도중이 없어요. 도중에 멋진 공원이 있다든가 가지 말고 여기서 놀자든가 하는 선택의 여지가 없게 되어있어요. 5시간 걸리던 것을 30분에 갈 수 있다, 그렇다면 남은 시간이 우리 거냐? 아니죠. 지배층의 것이에요. 남은 시간에 일해야 하죠. 19세기 말 산업자본주의적이던 시간 감각이 지금은 신자유주의적인 시간 감각이 되어 사람들의 사고나 생활양식을 지배하고 있어요. 지배가 가장 심한 나라가 대한민국이에요. 노예화가 된 거예요. 저도 노예죠. 철도를 안 탈 수는 없고요. 시간대로 안 되면 짜증이 나고 그런 사람이에요. 그런 구도 속에 자신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거죠.

 

언제든지 접속해서 언제든지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걸 자유라고 생각하지만 종속되는 경우가 훨씬 많아요. 그 자각하는 것이 잘 되지 않아 또 문제고요.


학자들도 그래요. 학문이라는 행위 자체가 그렇게 편성되어 있어요. 국가, 기업에서 연구비를 얻고, 1년에 몇 번 논문을 냈다면 자격을 얻을 수 있는 구조 자체가 문제죠. 쉽게 말하면 우리가 자기 자신을 자유롭게 해방시키는 방법을 조금 더 깊이 고민해야 한다는 거예요. 책에 소개한 가토 슈이치 선생도 그런 사람이에요. 물론 아주 부자층이고, 저도 개인적으로 반감 안 느끼는 건 아니지만요.(웃음) 선생이 한 얘기 중 재미있는 건요. 캐나다 브리티시 콜롬비아 대학 교수로 계셨을 때 베트남 전쟁이 벌어졌어요. 학생들이 일어나서 반전운동 했어요. 교수들은 처음엔 거의 아무것도 안하고 지켜보고 있었다고 해요. 그런데 학생들이 열심히 하니까 조금씩 교수도 가담하기 시작했죠. 그중 정치학, 경제학 교수들이 제일 마지막에 가담했대요. 자신의 연구로는 승산 없다는 결론밖에 안 나왔던 거예요. 베트남은, 반전 운동은 승산이 없다고요. 학문적으로 그런 결론밖에 안 나오니 개인으로서는 참여 못 하지요. 학문이라는 게 그렇게 아주 역설적인 것이라는 거예요.

 

문학, 예술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달랐나요?


승산이 없어도 참을 수 없다, 지금 우리가 던지는 폭탄 아래 베트남 아이가 있다는 걸 상상만 하더라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사람부터 일어서기 시작했다는 거죠. 문학이나 예술은 타인에 대한 상상력이죠. 그걸 지닌 사람은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돼요. 가토 슈이치 선생님은 도쿄게이자이대학에서 강연하셨을 때, 문학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19세기 프랑스 소설을 왜 읽고 왜 재미있어하는지 하는 얘기하셨는데요. 그것이 문학사상 명작이라 읽어야 한다든가 이것을 읽어야 프랑스 혁명의 역사를 알게 된다, 그런 이유가 아니라는 거죠. 그것을 읽으면 일본인인 우리가 순간적으로 프랑스인이 될 수 있고, 21세기에 사는 우리가 19세기를 살 수 있다는 거였어요. 우리 상상의 틀이 이렇게 확장되는 것이다, 그것이 재미다, 그렇게 얘기하셨어요. 그것이 고전이라는 거예요. 그걸 알면 세상이 조금 더 나을 거라는 얘기를 하셨어요. 가토 슈이치 선생이 그렇게 얘기했다고 일본 사회가 좋아지는 건 아니지만 그런 얘기를 꾸준히 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이것이 희망이라고 하면 희망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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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이 되고 있는 사람들


일본의 평화헌법 개정에 관한 뉴스가 연일 뜨겁습니다. 한국에서도 이를 규탄하는 시민단체의 목소리도 많고요. 일본 내부도 마찬가지겠지만 막상 ‘주변’에서는 이런 내용에 무섭도록 무관심한 것이 또 사실입니다. 사회, 정치 현상에 무관심한 선량한 사람들, 그들도 희생자지만 만일 전쟁이라도 일어나면 또다시 그들이 타자를 해치게 된다, 라고 적은 대목이 떠오르는 장면이에요.


일본은 이중기준의 나라, 자신은 평화를 원한다고 하면서 전쟁하는 나라이죠. 원래도 그랬는데 공공연하게 그렇게 된 국면에 왔어요. 이건 전후 일본의 근본적 문제예요. 일본인 대다수가, 진보적인 사람조차 자신들은 평화주의 국가라고 생각해요. 지금 헌법 9조 개정 반대 운동하는 사람도 전후 일본의 평화주의 전통을 지키자는 구호를 외치고 있어요. 우리는 과연 그런가 하는 의심으로 보고 있죠.


패전했을 때 일본 지배층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가 천황제 문제였어요. 천황제를 지키려다 오키나와전도 그렇고, 원폭도 던져지고 했지요. 괜히 수십만의 사람들을 그 때문에 죽였어요. 결국 상징 천황제라는 식으로 정치적인 권한은 없이 국민의 상징으로 남겨요. 그것도 이중기준이죠. 그 대신 미국은 일본이 또다시 군사력으로 자신들에게 저항할 수 없도록 헌법 9조를 만들었어요. 이 두 가지가 전후 일본의 이중기준의 시발점이에요. 일본사람들이 참된 평화주의자인지 아닌지는 천황제를 어떻게 비판적으로 볼 수 있는지, 자기 나라가 평화주의라고 하면서 사실은 뭘 해왔는지에 대해 제대로 자각하고 있는지를 보는 것이 척도라고 보고 있어요. 지금 많은 사람들이 평화를 외치며 싸우는 게 좋은 일인데, 지나치게 기만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그건 이중기준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지 이중기준 자체를 그만두자는 얘기가 아니라고 보고 있어요.

 

무척 어렵고, 뿌리 깊이 복잡한 문제기도 하네요.


특히 이번 여름에는 젊은 학생들이 많이 일어서고 운동했어요. 친한 다카하시 교수가 도쿄대에서 30년 동안 있었는데 이런 일은 처음이라는 얘기도 했어요. 그 정도로 새로운 흐름인 것이 사실이에요. 그런데 이 사람들이 앞으로 어려운 싸움을 해가면서 우리는 아주 자기본위적이었다, 우리에게만 관심이 있었다, 그런 것을 알게 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돼야 새로운 사회가 될 수 있어요.

 

한국은 지금, ‘한국이 싫어’ 이민을 고민하는 청년들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이들이 다른 세계를 상상하는 건 대단한 꿈이 아니라 아주 낮은 수준의 희망 정도에 불과하고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숫자가 말하고 있죠. 한국은 출산율이 가장 낮고, 자살률이 일본보다 높은 나라죠. 그러니 그 심정도 어느 정도 이해가 되네요. 삶의 모든 시간을 국가나 기업에 지배당하고 있어요. 학생들이 중학교, 고등학교부터 0교시부터 밤 11시까지 공부하고요. 언젠가 무리가 와서 파탄할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런 때가 다가오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모두가 너무 정신이 없어요. 차분하게 생각하고, 천천히 얘기 나누고, 책이나 볼 새도 없이 사는 상황처럼 보여요. 젊은 사람들이 도망치려고 하는 것도 무리가 없지만 어디로 가나요? 


어느 정도 심각한지에 대해서는 제가 잘 모르니까 더 이상 말씀드릴 수 없는데요. 인간이라는 게 난민이 되거나 망명을 하거나 고향을 버리거나 하는 것은 고전적으로는 못 먹게 되거나 전쟁이 터지거나 그런 상황을 상상하죠. 그런데 이것도 하나의 전쟁이죠. 신자유주의 전쟁의 피해자라 할 수 있어요. 이 사람들이 당장 못 먹는 것도 아니고, 어느 정도 교육도 받았고, 노력하면 해외에 나갈 방법도 아니까 고전적인 난민은 아니지만 그런 식으로 난민화가 되는 거죠. 이들에게 자네들은 한국 사람이니 한국에서 버티라고 할 수 있을까요? 이 사회를 조금 더 있고 싶은 나라로 만드는 것밖에 대책이 없는 것 같아요. 민족주의적인 의미가 아니라, 살기 좋은 나라가 되면 외부에서도 사람이 많이 들어오니까요.

 

2011년, 채널예스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가장 큰 관심을 쏟고 있는 일’로 원전사고를 꼽으셨어요. 그렇다면 지금, 가장 크게 관심 쏟고 있는 일은 무엇인가요?


지금까지 일본의 소수자로 지내면서 소수자의 시선으로 비판을 해왔는데요. 그걸 더 깊이 파악하고, 극복하려는 언어행위, 표현행위가 어떤 것이 있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언어적인 논리로는 충분하지 않아요. 장 폴 사르트르가 그런 말을 했죠. “반유대주의는 하나의 정열이다.” 그런 정열이라는 것이 전후 일본의 민주주의가 풍요로웠을 때는 잘 안 보였어요. 극복이 돼서 일본이 좀 더 합리적인 나라가 될 거라는 근거도 없는 낙관주의가 있었는데요. 60~70년 대 그 순간만 다른 모습이 보였을 뿐이지요. 일본을 비합리적인 정열로 서로를 유착하고 있는 사람들의 집단이라고 볼 때, 이 집단이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에 대한 분석, 비판을 심도 있게, 심각하게 해야 해요. 그것이 오히려 문학적인 행위, 예술적인 행위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합니다.


오늘은 거의 일본에 대해서만 말씀 드렸는데, 거의 대한민국과 공통점이 있는 얘기입니다. 일본이라는 나라가 법을 개정해서 표면상 허용되지 않는 해외에서의 무력행사를 합법화시키는 해석을 했죠. 말하자면 일본의 자위대가 실제적으로 군이라는 인식을 갖게 됐어요. 대한민국은 어떻게 보면 일본의 모범이에요. 군대가 있고, 병역제가 있고요.

 

대한민국에 있고 일본에 없는 것은 국가보안법이에요. 그러니까 앞으로 일본에서 국가보안법이 생기지 않을까 해요. 일본에 있고 한국에 없는 것은 천황제예요. 한국에 천황제가, 일본에 국가보안법이 생기면 이 두 나라는 쌍둥이 같은 나라가 돼요. 미국이 제일 좋아할 거고요. 그러니까 서로를 반면교사로 삼아 정신 차려야 한다, 그런 얘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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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서재 속 고전서경식 저/한승동 역 | 나무연필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에세이스트 서경식, 그가 자신의 서재 속 책들 가운데 마음에 품고 있던 열여덟 권의 고전을 세상에 꺼내놓았다. 자신의 독서 이력과 사유를 한껏 드러낸 이 글들을 통해 우리는 그가 어떤 순간 그 책을 만났으며 어느 구절에 밑줄을 치며 성찰했고 또 어떤 깨달음과 위안을 얻었는지를 오롯이 들여다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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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탁, 짝퉁이 되지 않으려면 날 것에서 영감을 얻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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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반지의 본질은 금이 아니라 구멍이다』에는 사회와 인간과 사물의 본질에 대한 100가지 생각이 담겨있다. 국내 광고계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쌓아 올린 저자 김홍탁이 ‘본질의 망각’에 휩싸인 시대에 던지는 화두다. 지난 해 8월부터 올해 1월까지 페이스북 페이지 ‘탁톡1119’에 연재했던 글들을 모았다. 묵직한 한 권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가 망각해서는 안 될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 묻고 있다.

 

제일기획의 ‘마스터’로 친숙한 그는 20년 간 광고와 마케팅의 선두주자로 활약한 베테랑이다. 국내 최초로 글로벌 광고 무대에 뛰어들었고, 칸 국제광고제와 런던 국제광고제, 원쇼 광고제, 뉴욕 페스티벌 등 유수의 광고제에서 수상 및 심사, 강연한 바 있다. 2012년에는 ‘칸 키메라(Cannes Chimera) 프로젝트’의 심사위원으로 초청되며 화제의 주인공이 됐다. 저개발국가의 발전과 건강, 기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선정하기 위해 모인 14명의 심사위원 중 유일한 한국인이었던 것.

 

크리에이터로서 김홍탁이 가진 감성과 통찰력은 『금반지의 본질은 금이 아니라 구멍이다』에서도 빛을 발한다. 디자인이란 ‘어떤 형태를 만들어 내는 것’일 뿐만 아니라 ‘생각을 디자인하는 것’이라고 정의하며 “이미 만들어진 것에서 영감을 받으려 해선 안 된다”고 조언한다. “가공되지 않은 날 것으로부터” 영감을 얻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그는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진실된 인사이트와 진정한 공감”이라 믿는다. 책 속에서 통찰을, 여행 안에서 창의력을 건져 올리라고 강조하는 이유다.

 

제2의 김홍탁을 꿈꾸는 이들에게 『금반지의 본질은 금의 아니라 구멍이다』는 필독서가 될 것이다. 그러나 저자가 이끌어내는 공감은 훨씬 더 많은 이들을 유혹한다. “내가 가치를 두는 일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나 자신을 아는 일이다” “결국 나의 멘토는 나 스스로 부딪쳐 얻게 되는 낯선 체험과 그것을 통해 자가발전하는 에너지의 총합인 것이다”라는 이야기는 누구에게나 울림으로 남는다.

 

올해 초 ‘플레이그라운드’의 CCO로서 또 다른 도전을 시작한 그는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광고?마케팅 전문가들과 수평적 협업을 통해 시너지를 발생시키고 있는 것. “생존보다는 공존이 키워드가 되어야 할 시점”이라는 통찰은 죽은 사유가 아니었다. 살아서 꿈틀대는 움직임으로 이어지고 있었다.『금반지의 본질은 금이 아니라 구멍이다』가 당신에게 전하는 ‘본질’도 세상 밖에서 깨어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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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일이다


페이스북 페이지 ‘탁톡1119’에 연재하신 글들이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특히 ‘좋아요’를 많이 받은 이야기는 무엇이었나요?


공감해 주신 분들의 스펙트럼은 굉장히 다양했어요. 연령대도 그렇고요. 특히 젊은 친구들은 미래가 불안하니까 교육이나 취업의 문제에 대한 반응이 컸어요. IT를 기반으로 한 스타트업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오고 갔고요. 저만의 생각이 아니었기 때문에 공감하셨던 것 같아요.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누구나 느낄 수 있었던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니까, 보시면서 ‘맞아, 내 이야기야’라고 생각하신 게 아닌가 싶어요. 그리고 제 의견에 동조하지 않으시면 본인의 의견을 밝히기도 하셨는데요. 그 댓글을 본 다른 분들은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겠다’고 느끼기도 하셨을 거예요. 저는 그런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다양한 의견이 존중되는 사회가 돼야 하잖아요. 그런 면에서도 순기능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광고계에서 일하시면서 한계나 염증을 느끼기도 하셨나요?


그게 꼭 광고계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우리 사회가 단 기간에 농업사회와 산업사회를 거쳐 정보사회와 지식사회까지 압축 성장을 했잖아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우리의 패러다임은 산업사회에 머물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산업사회의 가치관이란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면서 빠른 시간 안에 동질의 상품이나 서비스를 생산해 내는 건데, 그런 매뉴얼에서 움직였다는 이야기죠. 그건 그 시대에 맞는 시스템인 거예요. 그 결과 지금까지 어느 정도 경제가 성장했으니까 그게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는 거죠. 그런데 지금은 생태가 바뀐 거예요. 수직적인 것보다는 수평적인 협업이 중요한 거고, 윗사람이 아랫사람으로부터 배워야 되는 거예요. 아이디어가 중요해졌고, 전혀 상관없던 사람들과도 협업을 해야 되죠. 그렇게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한민국 사회의 전반적인 시스템은 산업사회의 구조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번 책에서 광고인을 꿈꾸는 이들을 위해 많은 조언을 들려주셨는데요. “광고를 만드는 일은 결국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일”이고 “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진실된 인사이트와 진정한 공감”이라고 하셨어요. 그렇다면 인사이트와 공감을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건 정말 정답이 없어요. 관심이 많고 관찰하는 사람이 얻을 수 있는 거죠. 저는 솔루션이 쥐어짜서 나오는 게 아니라 발견하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해답은 이미 세상에 있어요. 그걸 발견하기 위해서는 관심과 관찰이 기본적으로 있어야 돼요. 사람과 세상에 대해서, 그리고 제품 서비스와 관련해서는 그것이 처한 문제점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관찰해야 하죠. 솔루션은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나오는 건데, 대부분의 경우 무엇이 문제인지를 파악하려는 노력이 그렇게 크지 않거든요. 어떻게 보면 클라이언트 중심의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그런 것일 수 있어요. 클라이언트로부터 의뢰를 받으면 요구 사항에 맞춰서 어떻게 콘셉트를 잡을 건지 고민하는 것부터 시작을 하거든요. 정말로 그것이 가진 문제점이 무엇인지 한 번 생각해 보는 게 필요한데, 그런 점이 부족해요.

 

인사이트를 얻으려면 책을 읽으라고 말씀하기도 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디에서 진실을 배워야 하는지’ 고민하는데 책에 진실이 있잖아요. 책 한 권을 쓰려면 그 주제에 대해서 자신이 그 동안 얻은 지식과 경험을 모아야 하잖아요. 그것이 제대로 전달되도록 오점이 없게끔 체크를 거듭하면서 만들어내고요. 그러면 정말 에센스만 모아 놓은 거예요. 드시라고 밥상을 차려서 갖다 놓는 거죠. 독자 입장에서는 젓가락 숟가락질만 하면 되는데 그걸 안 한다는 게 이상한 거죠. 좋은 책 속에는 우리가 무임승차해서 얻을 수 있는 귀중한 지식과 정보가 너무 많죠. 단순히 지식 정보만 흡수하는 게 아니라 거기서 팁을 얻게 되잖아요. 그것이 자기 동기부여가 되는 거죠. 자기 동기부여가 없으면 일에서 절대 성과가 날 수 없어요. 그래서 제일 중요한 멘토는 자기 동기부여라고 쓴 거예요. 멘토는 사람이 아니라 책 한 권일 수도 있고 한 편의 영화나 광고 한 편일 수도 있어요. 사실 제가 그랬거든요. 질이 좋은 경험을 많이 쌓아야 돼요. 그러면 쉬운 것들은 저절로 해결이 돼요. 시험을 볼 때와 똑같아요. 시험 볼 때 어려운 걸 공부하면 쉬운 건 저절로 해결이 되잖아요.

 

‘맥락독서’라는 독특한 독서 습관도 공개하셨어요. 독서가 끝나기 전에 저자가 참고한 책을 펼쳐서 함께 읽으신다고요.


책을 쓰면서 인용을 한다든가 각주를 단다는 건 저자가 그 책을 읽었다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저자가 읽었던 책을 보면 관계가 형성되는 걸 볼 수 있어요. 단선의 소셜 콘텍스트가 아니라 다층적인 소셜 콘텍스트를 이해하게 되는 거고요. 글을 썼을 당시의 저자의 생각을 더 풍부하게 이해하게 되죠. 처음부터 그런 방식으로 독서를 하려고 한 건 아니고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된 거지만, 저에게는 맥락도서가 도움이 참 많이 됐어요. 더 폭넓게 배경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거죠.

 

『금반지의 본질은 금이 아니라 구멍이다』는 어떤 책들과 맥락을 같이 하고 있나요?


제 책은 맥락독서를 할 만한 내용이 많지는 않은데요. 신대철 시인의 시, 그리고 유니타스브랜드의 권민 대표가 쓴 책들을 함께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꼭 책이 아니더라도, 전남일보와 함께한 ‘공프로젝트’도 찾아보시면 더 이해가 극명해지실 거예요. 영화에 대한 이야기기 나오면 영화를 찾아보실 수도 있을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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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에게 필요한 건 “정신을 움직이는 일갈”


대부분 디자인은 시각적인 요소를 만들어내는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대표님께서는 “생각을 디자인하는 것”이라고 새롭게 정의하셨습니다. 그리고 “디자인을 ‘어떤 형태를 만들어 내는 것’이란 생각에 가두는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고 덧붙이셨어요.


어떤 형태로 만들어지는 건 결과물인 거죠. 생각을 디자인해야 돼요. 그렇지 않으면 손재주만 좋은 건데, 손기술이 좋아야 하는 시대는 지나갔어요. 그건 얼마든지 잘하는 사람을 찾아서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생각을 디자인하는 사람이 되라는 거예요. 앤디 워홀도 ‘왜 예술품이 극소수 사람들의 전유물이 되어야 하나, 가장 대중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햄버거와 마릴린 먼로를 소재로 삼은 거잖아요. 모든 사람이 작품을 소유하고 볼 수 있어야 하니까 실크 스크린 기법으로 대량생산을 한 거고요. ‘대량생산 시스템이 자리 잡은 이 시대에 예술의 대중화가 어떻게 되어야 하느냐’라는 콘셉트를 판 거죠. 현대 사회에서는 더더욱 콘셉트의 싸움인 거예요. 나이키의 퓨얼밴드도 ‘어떻게 하면 야외에서의 운동량도 측정할 수 있을까’라는 인사이트가 있는 거잖아요. 사람들의 니즈를 간파한 거거든요. 그러다 보니 신발에 칩도 넣고 모바일 앱도 개발하고 밴드 형식을 생각해낸 거예요. 그 모두를 디자인한 거죠.

 

청년들을 위한 멘토링이 넘쳐나는 시대입니다. 실패해도 괜찮으니 크게 상심하지 말라고 다독이죠. 이럴 때일수록 필요한 건 “귀에 달콤한 얘기가 아니라 정수리를 쩡쩡 울리는, 정신을 움직이는 일갈”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 힐링이라는 말이 화두가 되고 있는데 거기에만 익숙해지는 건 결코 좋은 게 아니죠. 그걸 통해서 사람들이 무언가를 느껴서 변화가 와야 하는 거잖아요. 강연을 계속 찾아 다니는 청중들도 많이 있을 텐데, 그걸 통해서 변화가 없다면 그냥 강연을 소비하는 거거든요. 일회용 컵처럼 말이에요. (궁극적으로는) 변해야 되겠죠.
 
청년들을 향해 시원한 일갈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자기 주도적인 삶을 살아야죠. 그러려면 자신이 가치를 두고 있는 게 무엇인지 생각해야 돼요. 그것이 명쾌해지면 자신이 가진 재능을 통해서 추구하는 가치를 향해 달려가게 되는데, 저는 그게 성공적인 인생이고 자기 주도적인 인생이라고 생각해요. 남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는 거죠. 그런데 우리는 ‘이 정도 스펙이면 어느 정도는 가야 되잖아’라는 생각을 하잖아요. 주변을 너무 심할 정도로 생각하는 거예요. 일종의 허영일 수도 있고요. 그러다 보니까 자기 주도적인 삶을 살지 못하고 자꾸 주변 환경에 이끌리는 삶을 사는 거예요. 행복하지도 않고요. 혹시 지금 선택한 것이 잘못되어서 나중에 돌아가더라도 자기 삶을 살아야 돼요. 그걸 알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치를 두는 것이 뭔지를 빨리 찾아야 하고요.

 

‘자존’ 대해 말씀하신 부분이 떠오릅니다. 자신의 룰을 지키며 사는 것은 때로 불화를 야기하지만 견뎌야 한다고 하셨죠. “그 불화를 견디지 못한다면 어느 한 순간 자기는 없어진다”고요.


자기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밀고 나가고 자기의 주관대로 살려면 타인이나 다른 시스템과 불화를 일으킬 수밖에 없어요. 당연한 거죠. 그런데 그때 무너지면 계속 체제 순응적으로, 남이 살라는 대로, 남이 옳다고 믿는 대로 가게 되는 거예요. 모험을 못하게 되는 거고요. 자기 주도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새로운 것을 하려면 모험을 해야죠.

 

대표님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처음 디지털 마케팅을 시작하실 때 우려의 목소리가 많지 않았나요?


네, 그랬죠. 회사 내에서도 그랬어요. 처음에 글로벌 마케팅을 시작할 때도 그런 이야기가 있었어요. 국내 TV 광고를 만들어야 포트폴리오가 쌓인다는 거죠. 그런데 저는 조금 이해가 안 됐던 게, 우리가 글로벌 프로젝트를 할 기회가 없다면 모르겠지만 기회가 있는 거잖아요. 한국의 제품들이 글로벌 브랜드가 되고 팔려나가는 건데, 기회가 있는데도 안 하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그 분야로 옮겨가서 1년 안에 성과 못 내면 어떻게 될지 모른다’ 이런 이야기도 들었어요. 그런데 저는 길이 없다면 무모한 거지만, 길이 있는데도 안 가는 건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잘사는 일”이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어떻게 못하는 일을 억지로 하겠어요? 좋아하지만 못하는 일을 하게 되면 나중에 자괴감이 더 커져요. 영국 프리미어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은 얼마나 행복할까요. 수많은 사람 앞에서 주말마다 자신의 실력 보여주면서 돈도 많이 벌잖아요. 오타쿠들은 계속 코딩하면서 노는 거고요.

 

카피라이터로 광고계에 입문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당시에도 ‘이건 내가 잘하는 일이다’라는 확신이 있으셨나요?


처음에는 확신이 없었어요. 일단 글을 쓰고 먹고 생각으로 먹고 살 수 있는 직업을 찾다가 광고회사 카피라이터라는 직업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리고 아주 우연하게 시작을 했죠. 이것이 훌륭한 커뮤니케이션 방법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워낙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니까요. 그런데 늘 갈증이 있었어요. 너무 천편일률적인 광고만을 양산해내는 게 한국의 현실이더라고요. 그래서 새로운 걸 해보고 싶었고, 혼자서 한국 광고 문화를 바꿔보겠다고 안티 광고전이란 걸 기획하기도 했어요. 광고는 단순한 마케팅이 아니라 대중문화라는 메시지를 담아서 『광고, 대중 문화의 제1원소』라는 책도 썼고요. 그때는 제가 많은 영향력을 줄 수는 없었지만 그런 시도가 있었다는 건 중요하다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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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퉁’이 되지 않으려면? ‘날 것’에서 영감을 얻어라!


칸 광고제에서 봤던 기네스 광고에서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고 고백하셨습니다. 어떤 광고들이 대표님을 놀라게 하나요?


보지 못했던 콘셉트와 스토리텔링이 놀라웠던 거죠. 그 기네스 광고는 무려 97년에 만들어진 거잖아요. 그 당시에 이미 광고를 통해서 페미니즘과 젠더와 게이와 사랑이란 주제를 이야기했어요. 그러면서 아주 의뭉스럽게 광고까지 하는 거죠. 그런 광고가 없잖아요. 그때까지 없었고 지금도 별로 있다고 볼 수는 없어요. 그걸 보면서 너무 자괴감이 들었어요. ‘어떻게 저렇게 광고를 만들 생각을 했지’ 싶은 거죠. 그런 걸 허용한 광고주도 뛰어난 거고요. 그런데 제가 더 놀랐던 건, 영국의 국민들은 그런 광고를 본다는 거잖아요. 거기에서 좌절을 느꼈죠. 광고가 국민의 의식 수준까지 높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한 거예요. 그래서 광고 대중문화에 대한 책도 쓰고 안티 광고전도 기획하면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말씀하신 것처럼 ‘자괴감이 느껴지는 순간’이 적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크리에이터는 끊임없이 새로운 걸 창조해내야 하니까요. 그럴 때는 어떻게 이겨내시나요?


만약 제가 소설을 쓰는 작가라면 작품에 대한 책임이 온전히 저에게 있을 수 있죠. 그런데 광고는 조금 달라요.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광고주가 사주지 않으면 세상에 나올 수 없으니까요. 그게 안타깝죠. 다른 종류의 자괴감이 더 생성되는 거예요. 왜 이 시대가 이것밖에 안 되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죠. 게다가 돌아오는 반응이 없으면 자괴감이 더 클 수도 있죠. 그런데 그건 방법이 없어요. 계속 새로운 것을 제시해서 실행되도록 하는 것밖에 없죠. 실행이 되어야만 사람들이 보고 느끼는 거니까요. 제가 늘 이야기하는 게, 실행되지 않은 아이디어는 아이디어가 아니라는 거예요. 의미가 없는 거죠. 실행이 되어서 세상에 나와야만 사람들이 ‘바로 저거야’라고 생각한다는 거죠. 그래야 세상이 바뀌는 거고요. 좋은 아이디어를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실제로 사회에 모습을 드러내도록 실행하는 게 굉장히 중요해요.

 

지금의 대표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들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어떤 분야든 공존할 수 있는 생태를 만들어 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크리에이티브한 창작물을 계속 만들어서 광고를 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기준을 제시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고요. 새로운 작품들을 계속 봐야만 ‘적어도 저걸 넘어서는 작품은 만들어야지’ 하고 생각하게 되거든요. 계속 질 낮은 작품만 만들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도 안 되고요. 그리고 어떤 누구와도 일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죠.

 

그런 가치들이 가장 잘 반영된 작품들은 어떤 것이었나요?


삼성의 NX 카메라로 밴드 ‘오케이 고(OK GO)’의 뮤직비디오를 만들었던 것도 새로운 시도였죠. 영상이 여전히 중요한 매체이긴 한데 그 작품은 TV가 아니라 온라인을 통해서 많이 확산됐잖아요. 그럴 때 어떻게 하면 효과적일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었던 작업이었어요. 작년에 난민을 주제로 한 ‘보이지 않는 사람들’ 프로젝트도 좋았다고 생각하고요. 전남일보와 하는 ‘공프로젝트’도 신문이 해야 했고 그러나 하지 못했던 것들을 새롭게 해보는 작업이에요. 저는 그게 굉장히 의미 있다고 봐요.

 

‘짝퉁’ 카피에 대한 이야기도 인상 깊었습니다. 광고의 ‘짝퉁’ 카피나 이미지에도 공통점이 있을까요? 


많죠. 그런 건 기존에 만들어진 광고들을 레퍼런스로 삼았기 때문이에요. 만들어진 것은 완성된 거거든요. 거기에서 더 상상력이 뻗어나갈 수가 없어요. 그런 것에서 영감을 받으려고 하면 유사하게 갈 수밖에 없죠. 좋은 작품들을 많이 봐야 하는 이유는, 적어도 이 세상에는 이런 류의 작품들이 나와 있다는 걸 알기 위해서예요. ‘저것을 넘어서는 작품을 만들어야 되겠다’라고 깨닫기 위해서 참조를 하는 거죠. 아이디어를 얻기 위한 게 아니에요. 요즘 표절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들을 보면 이미 나와 있는 작품을 베낀 거잖아요. 영감은 날 것으로부터, 가공되지 않은 것으로부터 받아야 되는 거예요. 터키의 카파도키아에는 자연이 만들어낸 기암괴석들이 있어요. 가서 보시면 ‘건축가 가우디가 여기에서 영감을 받아서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만들었구나’라는 생각이 드실 거예요. 하지만 그건 독창적인 창작물로 만들어낸 거라는 거죠.

 

『금반지의 본질은 금이 아니라 구멍이다』라는 제목이 독자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것 같습니다. 핵심 키워드는 ‘본질’이 아닐까 싶은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사실 본질이라는 것은 우리가 다 알고 있어요. 그런데 거기에 올인을 못하는 거죠. 쉽게 이야기하면 건강해질 수 있는 방법에 본질이 있고, 이미 우리는 다 알고 있잖아요. 하루 세끼 식사를 규칙적으로 먹고, 정해진 시간에 자고, 유산소 운동을 하고, 그런 것들을 알지만 지키지 못하는 것과 똑같아요. 그런데 그렇게 하다 보면 임시방편과 미봉책에 휘둘리게 되거든요. 그럴 때일수록 제대로 가려면 ‘이 일의 본질이 뭐였지? 지금 내가 하는 일의 본질이 뭐지?’ 이런 것들을 끊임없이 생각해 봐야 된다는 거예요. 아이디어가 풀리지 않을 때도 마찬가지예요. 미션이 무엇이었는지, 해결해야 될 문제점이 무엇인지에 대한 본질적인 것들을 끊임없이 찾고 질문을 해야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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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반지의 본질은 금이 아니라 구멍이다 김홍탁 저 | 이야기나무
2015년 3월 제일기획의 마스터라는 호칭이 익숙했던 그는 세상을 이롭게 만드는 아이디어를 고민하고 실천하고자 플레이그라운드 CCO(Chief Creative Officer)로서의 인생을 시작했다. 이 책에는 마스터라는 최고 지위에서 벗어나 새로운 도전을 시작할 수밖에 없었던 대한민국 광고계의 현실과 그러한 현실에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그의 치열한 고민이 담겨 있다. 또한 광고인을 꿈꾸는 광고 꿈나무들을 위한, 더 넓게는 미래를 이끌어갈 20대들을 위한 애정 어린 조언도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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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제다 “그럴듯한 뻥을 치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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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 인터뷰가 처음이라는 동화작가, 임제다를 만났다. 독특한 이름의 뜻을 물으니, 여러 이야기가 쏟아졌다. 조선중기 시인 ‘임제’부터 <스타워즈>‘제다이’까지. “이제 다 나 세상이다”라는 의미에서 “내가 임제다”라는 농담까지. 독특한 필명을 지은 작가의 작품은 뻔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탐험가의 시계』를 읽으면서 딱 들어맞았다. 한겨레아이들에서 펴내는 ‘징검다리 동화’ 21번째 작품 『탐험가의 시계』는 임제다 작가의 세 번째 책으로, 선원으로 일하는 아빠의 소식이 끊기자 탐험을 떠나는 영이의 이야기를 담은 판타지동화다. 작가는 서문에서 스스로를 ‘탐험가’로 명명하면서, 이 동화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실제 겪은 일’이라고 설명한다. 어린이 독자들은 헷갈린다. 어? 작가가 탐험가였다고? 이건 뭔 소리? 궁금증이 생기면서, 동화에 흠뻑 빠져든다.

 

2011년 『달팽이의 성』이 ‘제4회 웅진주니어 문학상 신인 부문’ 대상을 수상하면서 등단한 임제다 작가는 영화감독 지망생이었다. 사춘기 시절부터 시나리오를 썼으니 반 평생을 ‘습작생’으로 살았다. 고등학교 졸업 후 여러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프랑스 영화학교 에섹(ESEC)에 입학했고, 귀국 후 시나리오를 쓰던 중에 제대로 글쓰기를 배우고 싶어 시립도서관의 ‘동화 수업’에 등록했다. 동화보다는 SF, 판타지를 즐겨 읽었던 터라 ‘동화작가’가 되리라곤 상상하지 못했다. 다만 항상 ‘뻥’을 치고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판’이 조금 달라졌을 뿐이다. 임제다 작가는 글을 쓸 때, ‘내 안의 아이’를 불러낸다고 했다. 그 아이에게 재밌는 이야기를 해준다는 심정으로 펜을 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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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요? 나를 더 좋아해주세요


어린 시절, 영화 <인디아나 존스>를 보고 탐험가가 되기로 마음먹으셨다고요? 서문이 인상적이었어요. ‘작가의 말’이 아닌, ‘탐험가의 말’을 쓰셨는데요. 어린이 독자들이 굉장히 흥미롭게 받아들일 것 같아요.


글을 쓴다는 게 어떻게 보면 뻥을 치는 일인데, 정말 그럴듯하게 뻥을 치고 싶었어요. 작가가 책의 화자인 것처럼, ‘내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느낌으로요. 제가 『반지의 제왕』을 정말 좋아하는데, 그 책도 앞 부분에 보면 작가가 뻥을 그럴듯하게 쳐놓잖아요. 호빗이라는 종족이 어쩌구 저쩌구. 저는 이 책을 성인이 돼서야 읽었는데도 ‘아 정말 이게 사실인가?’라고 착각한 적이 있어요. (웃음) 그래서『탐험가의 시계』를 쓰면서 “내가 진짜 탐험가”라고 뻥을 한 번 쳐보자고 생각했어요.

 

『탐험가의 시계』는 소녀 ‘영이’가 탐험을 하는 이야기입니다. 선원인 아빠의 소식이 끊기자, 영이는 뒷산 ‘히말프키’로 별을 찾아 떠나요. 별에게 아빠가 빨리 오게 해 달라고 소원을 빌고 싶어서요. 어떻게 탄생한 스토리인가요?


영화 시나리오를 쓰면서 떠오른 소재예요. 큰 고모부를 뵌 적이 한 번도 없는데, 나중에 친척 분께 들어보니까 배를 타던 분이셨는데 실종이 됐고 시신도 못 찾았대요. 사촌오빠들이 되게 어렸을 때 돌아가셨다고 하는데, 이런 일이 흔치 않잖아요. 항상 머릿속에 남아 있었던 것 같아요. 앞서 출간된 두 작품과 다르게, 제목이 먼저 떠오른 책이에요. 영이처럼 제게도 회중시계가 있었는데, 누군가가 홍콩에서 사온 시계였던 것 같아요. 시계를 열면 되게 예쁜 음악 소리가 나왔는데, 오빠가 소리가 시끄럽다고 분해를 하다가 고물이 됐어요. 그 시계에 대한 기억과 실종된 큰 고모부를 생각하다가 떠오른 작품이에요.

 

재밌는 장면이 있어요. 영이 아빠가 항해를 하면서 만난 꼬마들의 사연인데, 모두들 저주 받은 물건들을 하나씩 갖고 있었어요. 아빠가 저주를 풀어주자, 꼬마들은 하나같이 “아저씨는 제 생명의 은인이나 마찬가지예요. 앞으로 평생 아저씨와 아저씨 가족을 위해 기도할게요”라고 고마움을 표현했어요. 굉장히 인상적이더라고요. ‘가족을 위해 기도한다’는 이야기가요.


프랑스에서 영화학교에 다닐 때 연극동아리 활동을 했어요. 한 학기를 마칠 때마다 공연을 했는데, 제가 양복점에 양복을 맞추러 가는 남자 연기를 한 적이 있어요. 남장 연기를 했죠. 그런데 어떤 꼬마 관객 둘이 저한테 와서는, “진짜 남자인 줄 알았다”면서 “당신과 당신 가족들이 즐거운 연말을 맞길 바란다”고 하는 거예요. 애들이 그런 말을 하니까 되게 기억에 깊이 남았어요.

 

동화 속에 이안 소프, 히카르도 카카 등 실제 유명 스포츠 선수들이 대거 등장해요. 저주 받은 물건을 갖고 있었던 꼬마들의 미래인데요. 어린이 독자들은 ‘엇, 이게 뭐지? 진짠가?’ 싶을 것 같아요.


제대로 뻥을 친 거죠. (웃음) 이것도 진짜 일인 것처럼요.

 

혹시 동화에 등장하는 강아지 ‘멋쟁이’도 실존했던 강아지인가요?


옛날에 키우던 강아지 이름이에요. 엄마가 아는 분한테 얻은 강아지였는데, 너무 예뻐서 좋은 이름을 지어주고 싶어서 밤새 인터넷을 다 뒤지고, 그리스 로마 신화까지 다 찾아봤는데 마땅한 이름이 떠오르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멋쟁이’라고 지어줬어요. 더 이상 어울리는 이름이 없어서요. 프랑스에 있을 때, 도둑 맞았는데 그 소식을 듣고 3일 동안 밤낮으로 울기만 했어요. 동화를 쓰면서도 생각이 너무 나더라고요.

 

윤예지 작가님이 그림을 그려주셨어요. 첫 번째 책 『달팽이의 성』도 함께 작업하셨는데요. 특별한 인연이 있으신지요?


언젠가 영화를 하는 친구한테 『달팽이의 성』 이야기를 했어요. 그랬더니 “자기가 좋아하는 화가가 있는데, 이 작품이랑 잘 어울릴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그냥 흘려 듣고서 출판사한테도 이야기를 안 했는데, 어느 날 편집자 선생님이 화가가 정해졌는데 ‘윤예지 작가’님이라고 하는 거예요. 소름이 돋았어요. 개인적으로는 아는 사이는 아닌데요. 그림이 좋아 이번 책도 같이 작업을 하게 됐어요.

 

2011년 첫 작품 『달팽이의 성』이 ‘제4회 웅진주니어 문학상 신인 부문’ 대상을 수상하면서 데뷔하셨어요. 『탐험가의 시계』도 같은 해에 쓴 작품이라고 들었습니다.


『달팽이의 성』을 쓰고, 보름 있다가 『그림자 도둑』을 썼고, 또 보름 있다가 『탐험가의 시계』를 썼어요. 『탐험가의 시계는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원고인데, 연희창작촌에 있을 때 출판사 편집자 분을 만나 책을 내게 됐어요. 수정을 꽤 많이 했어요. 아마 네 번째 버전일 거예요. 『달팽이의 성』 같은 경우는 정말 하룻밤 만에 쓴 동화라서요. 저도 놀라워요. 어떻게 쓸 수 있었지? 정말 그 분이 와서 써준 느낌이에요. 물론, 오랫동안 문장을 많이 다듬었어요. 내용은 그대로지만 맨 처음 쓴 대로 내보내면 안 될 것 같았어요. 이 동화를 쓰고 문학상 공모에 내려고 우체국에 갔는데, 국장님이 ‘투고’라는 글씨를 보더니 “행운을 빕니다”라고 하셨어요. 그 이야기를 듣는데 너무 기분이 좋은 거예요. 나와서 횡단보도를 걷는데 까치가 울어서, “웬 까치?”라고 지나치는데 집 앞에서도 까치를 만났어요. 또 발표 며칠 전에는 꽃다발을 받는 꿈을 꿨는데, 이대호 선수랑 롯데 야구선수들이 나왔어요. 속으로 ‘아, 될 수도 있겠다’ 싶었죠. (웃음)

 

그림책 번역도 하셨던 데요?


2년 전쯤인가, 조금 친분이 있는 편집자 분께서 번역을 해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을 해주셨어요. 어려운 작업이라서 거절했는데, “아마 책을 읽고 나면 재밌어서 하고 싶을 거야”라고 하시더라고요. 『내가 나눠줄게 함께하자』라는 책인데, 읽어 보니 정말 재밌더라고요. 특별히 어렵진 않을 것 같아서 번역에 도전했어요.

 

동화를 쓰게 된 계기도 궁금해요.


2009년 가을이었을 거예요. 혼자 오랫동안 시나리오를 썼는데, 글쓰기를 제대로 처음부터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침 도서관에 ‘동화창작교실’이라는 글쓰기 모임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모임에 나갔는데, 동화를 써도 재밌을 것 같았어요. 안미란 동화작가님께 배웠는데, 철학을 전공하셔서 깊이 있는 이야기를 많이 쓰시는 분이세요. 첫 수업이 두 시간짜리였는데, 되게 인상 깊었어요. ‘동화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기초부터 잡아주시는데, 제가 영화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랑 비슷한 게 있더라고요. 동화로 접근해도 좋겠다 싶었죠. 사실 그동안 영화를 하고 싶다는 게, 궁극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는 거였으니까요. 동화를 써도 좋겠다고 생각했죠.

 

어릴 때, 동화를 많이 읽으셨나요?


동화책은 많이 안 읽었던 것 같아요. 『삼국지』『셜록 홈즈』같은 책을 좋아했고, 판타지나 모험 영화 같은 걸 즐겨 봤어요.

 

어른이 돼서 읽는 동화의 느낌은 어때요?


정말 재밌다, 하면서 읽어요. 동화를 배울 때는 맨날 도서관에 가서 동화책을 수두룩하게 봤어요. 사서가 이상하게 볼 정도였어요. 신작 나오면 다 챙겨 읽고 그랬으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다 보진 않아요. 다 볼 필요는 없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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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아, 재밌는 책도 있어


프랑스에서 영화학교를 다니신 이력이 있어요. 영화감독을 꿈꾸셨던 걸로 알고 있는데요. 영화와 동화, 비슷한 점도 있겠지만 다른 매력도 있어요.


동화를 쓰면서 이런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영화는 되게 도도하다. ‘네가 날 좋아해? 그래서?’라는 느낌이라면, 동화는 ‘내가 좋아요? 나를 더 좋아해주세요’”, 이런 느낌”이라고요. 그런데 지금은 동화가 조금 어려워졌어요. 그래도 동화에 대한 느낌은 비슷해요. ‘되게 귀여운 아이’같다고 할까요?

 

영화는 주로 어떤 소재로 시나리오를 쓰셨나요?


되게 다양해요. 유쾌하고 발랄한 청춘 코미디 같은 작품도 있고, 연애물도 있고요. 얽히고설킨 이야기를 좋아해요. <펄프픽션>을 좋아하는데 액션영화 같지만, 결국 사람과 사람이 얽히는 이야기잖아요. 줄거리를 말해보라고 하면, 딱히 이야기하기 어려운 영화들. 그런 작품들을 좋아해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 바로 유학을 가시진 않았는데요. 그동안은 어떤 일을 하셨나요?


스물 다섯 살 때 프랑스에 갔는데요. 그 때까지 일도 하고 놀기도 하고 그랬어요. 사진관에서 아르바이트도 했고 서빙도 했고요.

 

프랑스로 간 이유는요?


예전부터 프랑스를 가보고 싶었어요. 제가 영화를 공부하러 간 학교는 사립이었는데, 영화전문학교 에섹이란 곳이에요. 항상 가보고 싶다는 생각만 있었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는데, 아는 사람이 프랑스로 유학을 가는 걸 보고 그게 불씨가 됐어요. 돈이 굉장히 많이 들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학비는 적게 드는 편이지만 그래도 생활비가 꽤 들었을 텐데요.


프랑스는 유학생들한테도 주택 보조금을 줘요. 20%에서 많게는 40%까지요. 저는 수녀님들이 운영하는 사설 숙소에 있었는데 밥도 하루 두 끼를 줬고, 2인실을 사용해서 가격이 꽤 저렴했어요. 어학비가 가장 싼 지역을 찾았는데, 더 싼 곳도 있었지만 거기는 한국 사람들이 너무 많다고 해서요. 항스는 파리에서 한 시간 반 정도 걸리는데, 한국인이 거의 없었어요. 일년 동안 생활비 다 포함해서 5백만 원쯤 쓴 것 같아요. 정부지원금도 받고 그랬으니까요. 정부지원금은 거주지가 확실하고 체류증이랑 은행 구좌, 학교 등록만 돼 있으면 꽤 많이 나와요.

 

꿈꾸던 곳에서의 생활은 어땠나요?


꿈 같지는 않더라고요. (웃음) 생각하는 것과 많이 달랐어요. 우선 말이 안 통하는 데서 오는 불편함이 가장 컸어요. 한국에서 불어를 어느 정도 배우고 갔고, 학교에서도 꽤 높은 레벨이었는데도 초기에는 정말 너무 쉬운 단어도 못 알아 들을 정도였어요. 4개월쯤 지나니까 적응이 되더라고요. 그 때부턴 재밌었어요.

 

영화학교에 들어갈 때, 입학 시험 대신 직접 쓴 시나리오를 제출하고 합격하셨다고 들었어요. 구체적인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학교 과정이 2년짜리였는데, 대부분 준비반부터 시작해서 1학년으로 들어가요. 고등학교를 졸업한 친구들이 대개 준비반으로 들어가고, 대학에서 영화를 1,2년 공부한 친구들은 1학년으로 들어가고요. 저는 한국에서 대학을 가지 않았기 때문에 당연히 준비반으로 지원했는데 뭔가 성의를 보여야 할 것 같아서, 제가 쓴 단편을 시나리오로 옮겼어요. 불어로 번역해서 어설픈 스토리보드도 그리고요. 지원하고 나서 3주쯤 있다가 합격 여부가 결정된다고 했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프랑스에서 연락이 안 왔어요. 한 달쯤 됐을 때, 편지가 한 통 왔는데 직접 면접을 보러 파리로 오라고 써있었어요. 속으로 ‘설마 면접까지 보자는데 떨어지는 건 아니겠지?’ 싶었는데, 친구들이 ‘꼭 그러라는 법은 없지’라고 하는 거예요. 확신 없는 상태에서 파리로 갔는데, 면접관들이 “우리가 너무 고민을 하느라 오래 걸렸다”고 하더라고요. 저를 준비반으로 보내야 할지, 1학년으로 보내야 할지 회의를 무척 오래 했다면서요. 저는 너무 떨려서 “그래도 준비반으로 가야 하지 않겠냐?”고 했더니, “준비반에서는 네가 따로 배울 게 없을지도 모른다”고 했어요. “철학 같은 걸 배웠냐?”고 물어서, 고등학교 때 윤리를 배웠으니까 “조금 배웠다”고 했어요. “아는 철학가를 대보라”고 해서 “플라톤, 소크라테스”를 이야기했고요. 준비반에서는 대개 구도를 위해서 사진 촬영 실습을 많이 한대요. 제가 그 날, 항상 가지고 다니는 카메라를 들고 갔거든요. 그리고 사진관에서 일을 해본 경험이 있다니까, 1학년으로 가는 게 좋겠다는 결론을 내려주셨어요.

 

이 이야기 너무 재밌는데요? 학교 생활은 즐거웠나요?


교장 선생님이 한국 학생들을 되게 좋아하셨어요. 아이디어가 좋다고 하면서요. 교장실에 들어가면 한국 학생이 주고 간 태극 부채가 걸려 있었어요. 이병률 작가님이 이 학교 출신이라고 들었어요. <버스 정류장> 이미연 감독님도 다니셨고요.

 

영화학교를 갈 만큼, 영화에 대한 열정이 컸는데. 지금은 동화를 쓰고 계세요. 미련 같은 건 없으세요?


친한 친구가 지금 장편영화 데뷔를 앞두고 있는데 너무 바쁘더라고요. 옛날부터 저한테 그랬어요. “너는 동화 쓰기를 잘했어. 계속 써”라고요. 그 친구가 어린이를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를 많이 만드는데, 자기가 나중에 다 영화화 할 거래요. (웃음) 연출을 하고 싶은데 다른 사람의 시나리오로 하고 싶진 않아서 글을 쓰기 시작했는데, 한 때는 시나리오를 쓰면서 영사실에서 아르바이트도 하고 그랬어요. 그런데 저는 한 번에 두 가지는 안 되더라고요. 제대로 글쓰기를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글을 배우러 갔다가 영화에서 멀어진 케이스예요.

 

저자로서, “『탐험가의 시계』를 어떻게 읽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나요?


그냥 재밌게 보기를 바라는 마음이 가장 커요. 『그림자 도둑』도 그렇고 이번 책도 그렇고. 모두 꿈을 찾아가는 이야기라고 볼 수 있는데요. 꿈을 포기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포기도 나쁘지 않아요. 제가 말하는 건, 굉장히 큰 꿈이 아니에요. 누구나 지금 당장, 되게 작은 소망이 있을 거 아니에요. 물을 마시고 싶으면 물을 마시는 것처럼요. 예전에 연희창작촌에 있을 때, 근처 중학교에서 강연을 해달라고 요청이 들어왔어요. 40분 정도 진행했는데, 애들이 정말 뚱하게 앉아있더라고요. 너무 긴장이 돼서 “너희들 지금 제일 하고 싶은 게 뭐냐?”고 물었더니 다들 대답을 못해요. 선생님 눈치만 보고 있다가, 어떤 한 아이가 “물 먹고 싶어요”라고 했어요. 제가 “저기 정수기 있으니까 가서 물 먹으라”고 하니까, 질문한 아이를 포함해서 다른 애들이 모조리 일어나서 정수기 앞에서 줄을 서는 거예요. ‘물을 안 마시고 싶어도 마셔야 하는가 보다’라고 생각한 거죠. 그 때 좀 쇼크를 받았어요. 이후에 담양에 있는 학교에서도 강연을 할 기회가 있었는데 자유롭게 노는 아이들이라서 그런지 정말 다르더라고요.

 

이 인터뷰를 아이들이 읽진 않을 텐데요. 어른, 또는 부모들이 읽고서 『탐험가의 시계』를 추천해줄 수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부모들은 대개 학습에 도움이 되는 책들을 선호하잖아요. 깔깔대면서 재밌게 읽는 책이 더 많은 것을 아이들에게 준다는 것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요즘 아이들은 책을 읽으면 모든 게 기록으로 남는다고 들었어요. 어떤 책을 읽었는지가 대학교 면접까지 간다고요. 그러니까 부모들은 당연히 학습 위주의 책을 추천할 거고, 그러면 아이들은 책을 재미없는 존재로 인식하겠죠. 시간이 남는 아이들이 책을 선택할 일이 없어지죠. 되게 무서운 것 같아요. 독서가 재밌을 수 없어지는 세상이니까요. 저는 특별한 건 없어요. 다만 “애들아, 재밌는 책도 있어”라고 속삭이는 그런 느낌으로 책을 쓰고 있어요.

 

책을 지루한 존재로 여기는 독자들에게, 한 마디를 해주신다면요?


코난 도일이 『잃어버린 세계』를 쓰면서 책의 앞머리에 “반쯤 어른인 소년에게 혹은 반쯤 소년인 어른에게 한 시간의 즐거움을 주기를”이라는 문장을 썼어요. 제 마음도 그래요. 아이들이 재밌게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제일 먼저 재밌게 해주고 싶은 사람은 저 자신이에요. 제 안에 있는 아이에게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생각을 하면서 소설을 써요. (웃음) 그래야 다른 사람들도 재밌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탐험가의 시계』를 보신 분들은 재밌다고들 하는데, 본 분들은 많지 않나 봐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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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험가의 시계 임제다 글/윤예지 그림 | 한겨레아이들
이번 작품 《탐험가의 시계》에서는 작가 특유의 기발한 상상력과 모험 동화의 박진감 넘치는 서사, 작은 단서들이 모여 큰 그림을 완성해 가는 탄탄한 구성이 유감없이 발휘되었습니다. 여기에 아빠의 소식을 기다리는 아이의 애타는 마음과 따뜻한 가족애가 더해져 읽는 재미와 감동을 골고루 주는 판타지 동화가 탄생했습니다. 어른들의 품을 벗어나 혼자만의 길 앞에 서는 나이, 아직은 두려움과 호기심을 간직한 채 수수께끼로 가득한 세상 속으로 탐험을 떠나기 시작하는 8~10살 저학년 어린이들에게 꼭 맞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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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국 “역사는 원래 재미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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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라는 단어에 들어있는 이미지야 셀 수 없이 많지만 무엇보다 앞에 나올 것은 ‘재미’가 아닐까. 우리는 원래 ‘옛날 옛날에...’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그 틈에 낀 생활, 문화와 배경이 모두 역사다. 낯선 단어와 외워야 하는 숫자들 탓에 역사를 그저 괴로운 것이라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지만 역시 역사는 재미있는 것이다. 엄청난 인기를 끈 TV 드라마, 영화, 소설은 물론이고 심지어 게임에 이르기까지 역사가 아니었다면 존재하지 못했을 작품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36만이 구독하는 카카오스토리 채널 <5분 한국사 이야기>의 운영자 박문국은 “역사는 원래 재미있는”것이기 때문에 더 많은 사람들에게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하고자 했다. 역사는 지금과 단절되어 있는 것이 아니므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더 많았다. 조선의 과거제도를 들어 지금 입시제도를 생각하고, 사대주의와 조공에서 무역을 본다. 그렇다면 역사에서 발견할 이야기들이 훨씬 많아지는 것이다.


“우리는 백 년 밖에 못 살지만 선조들이 수천 년의 기록을 남겨주었고, 그것들을 보면서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것이 가능하”다는 저자는 『한국사에 대한 거의 모든 지식』을 읽고 흥미를 느낀 사람들이 여기서 멈추지 않고 더 다양한 역사를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다시 말하지만 역사는 원래 재미있는 것이다. 수십 만 ‘역덕’의 탄생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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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양면이 있다


처음, 연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나요?


대단한 건 아니고요. 지인과 얘기하다가 우연히 하게 됐어요. 제가 문예창작과 사학을 전공했고, 글 쓰는 것과 역사 모두 좋아하니까 한 번 해보자고 생각했죠. 처음엔 그냥 썼는데 점점 보는 사람들이 늘더라고요. 그게 지금까지 오게 된 거예요. 굳이 말하자면 재미있어서 한 거예요. 바른 역사를 알아야 한다는 그런 사명감 보다는 제가 재미있고, 보는 분들도 재미있어 하시니까요. 그것도 감사하고요.

 

어떤 이야기를 다룰 때 보는 사람들이 특히 늘던가요?


처음엔 몇 백 명 정도였다가 안창호 선생에 관한 글을 올렸을 때였나, 그런 것들이었어요.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은 확실히 있으니까요. 기억나는 건 과거제도에 관한 글인데요. 지금도 학생들 공부를 아주 열심히 하잖아요. 옛날 과거제도는 훨씬 힘들었다(웃음), 그런 글이었어요. 제일 중요한 건 재미있게 쓰는 거고, 그런 걸 좋아해요.

 

연재와 책은 다르겠죠. 책 작업의 어려움을 적기도 하셨는데,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어요?


시간이요. 책 작업을 한다고 이야기 올리던 것을 소홀히 하면 안 될 것 같았어요. 그러니 작업 시간이 두 배가 된 거죠. 저도 일단은 학사 학위 정도고, 박사 학위나 이런 게 아니니까 제가 독자적으로 학설을 전개한다거나 이러면 안 될 것 같거든요. 일단 자료들, 논문 같은 것들을 많이 참고했어요. 국회도서관을 간다든지요.

 

재미로 시작했다고 하셨는데 그런 작업들이 계속되면서 즐겁지 않은 순간도 있었을 것 같네요.


지금은 ‘하권’을 쓰고 있어요. 역시 시간 부족이 문제죠.(웃음) 독자 분들도 책을 빨리 읽으시더라고요. 댓글로 언제 하권이 나오느냐고 물으시고요. 그래도 아직까지는 힘들다는 느낌까지는 안 들어요. 시간도 없고, 잠도 많이 줄었지만 보는 분들이 재미있어 하시니까 그게 제일 재미있죠.

 

글을 쓰시면서 새롭게 알게 된 재미있는 역사적 장면이 있을 것 같은데 들려주세요.


여러 가지가 있겠는데요. 세종대왕 같은 경우 성군이잖아요. 훈민정음 창제를 제외하더라도 말이에요. 노비에게 출산휴가도 주고, 그런 것들을 보면 지금보다 훨씬 나은 부분도 있어요. 그런데 세종대왕이라고 뭐든지 다 잘한 건 아니거든요. 책에도 썼는데요. 화폐개혁 이야기예요. 그건 저도 자료조사 전까지는 몰랐거든요. 명나라 화폐제도를 받아들여 조선에도 화폐를 도입해야겠다고 했는데 이게 조선 실정과 전혀 맞지 않았던 거죠. 사람들은 화폐를 안 쓰고 쌀로 물물교환 하고 이러는데 세종대왕이 이것을 법으로 다스렸어요. 전 재산을 몰수하는 식으로요. 세종대왕 같은 성군이라도 단점은 있었고, 양면이 다 있었다는 사실을 본다면 복합적으로 읽히지 않을까 생각해요.

 

무능한 왕으로 인식되고 있는 왕들에게도 공훈은 있었을 테고요.


드라마 <징비록> 보시면 배우가 연기를 잘하기도 했지만 선조가 엄청 못났잖아요. 확실히 선조는 추한 짓을 많이 했어요. 도성을 버리고 도망갔다가 의주로 피난하는 것에 멈추지 않고 아예 명나라로 가려고 했고요. 분명 단점들이 많이 있어요. 반면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이 선조가 의외로 정치를 되게 잘한 면도 있다는 거예요. 흔히 임진왜란 때 아무런 준비를 안 해서 전쟁에 졌다고 하는데요. 실록이나 잡록 등 기록을 보면 공통적으로 나오는 게 선조의 전쟁 준비거든요. 조정에서 전쟁 준비를 하려면 지방에서 반발해요. 지금까지 전쟁이 없었으니까요. 왜 갑자기 전쟁 준비를 하느냐고 상소들이 막 올라오는데요. 그래도 진행하죠. 선조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선조에게도 이런 면이 있다는 것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역사 공부의 방법이랄까, 자료 조사를 어떻게 하셨는지 구체적인 내용이 궁금해지네요.


논문 중심으로 했고요. <역사저널 그날>에 나오는 신병주 교수님 책도 좋고요. 오항녕 교수님이나 임진왜란 쪽에 한명기 교수님 이런 분들 책도 좋아요. 꼭 말씀 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재미있다고 하세요. 그렇다고 해도 제가 이 책을 잘 쓴 게 아니라 역사는 원래 재미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기존의 석학 분들 중에도 방금 언급했던 분들은 무척 재미있게 잘 쓰세요. 그런 것을 많이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가끔 연재할 때도 이런 말을 남기는데요. 제가 올리는 내용이 절대불변의 사실이라고 받아들이진 말아달라고요. 제 글에도 틀린 부분이 있을 수 있고, 결국 독자 분들이 이쪽에 관심을 가지고 더 확장해서 많은 걸 알아가셨으면 좋겠거든요. 이런 건 틀린 거라고 비판할 수도 있어야 하고요. 그게 더 바른 방향이라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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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아들이는 사람의 몫


일종의 다이제스트 역사서인데, 대중이 흥미를 갖고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말씀처럼 역시 오독의 위험이 있다는 단점도 있어요.


<관상>을 예로 들어볼게요. ‘김내경(송강호 역)’이라는 사람은 당연히 사료에는 안 나오는 사람이에요. 그걸 역사왜곡이라고 할 이유는 없죠. 그런 건 감독의 상상력의 범주니까요. 다만 수양대군(이정재 역)이 호랑이를 잡고, 김종서 대감에게 보내겠다, 이런 식으로 말하면서 왕 놀이 하고 그러잖아요. 실제로 그러지는 않았거든요. 계유정난 직전까지 김종서 쪽 힘이 훨씬 강했어요. 수양대군이 그러는 걸 봤다면 역모꾼이라 해서 죽이기 딱 좋았겠죠. 정확하게 말하면 이것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게 위험한 부분인 것 같아요. 불편한 소리지만 받아들이는 사람의 몫이거든요. 좀 더 여러 방향으로 알아야 한다고는 생각해요. 수양대군이 실제로 어떤 사람이었는지, 실제는 아니지만 영화에서는 이렇게 나와서 더 재미있다 정도로 받아들이면 될 것 같아요.

 

워낙 영향력이 강하고, 일단 재미있으니까요. 특히 사극 장르는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사실일 것이라는 생각이 바탕에 있는 것 같아요.


학계 입장이 무시당하는 경향이 요즘은 좀 있는 것 같아요. 제가 가장 공부를 많이 한 건 근현대사거든요. 과거 정부를 불신할 만한 일들이 많이 있었잖아요. 그런 것이 쭉 이어져서 역사에 대한 인식도 그렇게 돼 버린 것 같아요. 생각해보면 학창시절에 식민사관 이런 것 다 배우는데, 그런 것도 다 역사학자들이 한 거거든요.


사도세자의 경우 ‘노론음모론’이 있는데요. 노론이 이간질시켜서 영조와 사도세자의 비극이 있었다는 거예요. 노론이 아예 개입하지 않은 건 아니겠지만 그건 너무 과중한 측면이 있어요. 학계의 중론이기도 하고요. 그런데 예전 대중화 서적에서 노론음모론이 많이 다뤄졌고, 그런 기조를 지금까지 계속 따르는 것 같아요. 물론 언제든지 그런 시각을 제시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옳다고 하면 또 안 된다고 보거든요. 학계에서 이런 연구가 진행되고 비교적 검증된 학설이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과정이 있는데, 그걸 다 무시하고 학계는 잘못된 걸 말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라고 봐요. 그래서 제가 제일 강조하는 게 학계 의견을 최대한 따른다는 거예요.

 

최대한 따르되, ‘이것이 진짜다’라고 받아들이진 말라는 얘기군요.


그래서 말하고 싶은 건, 이 책만 보면 안 된다는 거예요.(웃음) 이걸로 관심을 갖게 되었다면 좀 더 재미있는 것들도 많으니까 많이 보셨으면 좋겠어요.

 

보통 사람들에게는 그 시작을 어떤 것으로 하느냐가 문제인 것 같아요. 역사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처음 관심 갖게 되는 곳이 필요한 것 같고요.


단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왜곡되는 부분도 있지만 대중매체가 무척 효율적이라고 봐요. 저는 드라마 <용의 눈물>을 무척 재미있게 봤고, 역사 만화책도 재미있게 읽었어요.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같은 책들도 정말 좋은 책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영화, 소설 등 관심 가질 수 있는 것들이 많아요. 게임도 있겠죠. 어쨌든 접해서 재미있다고 느끼면 좋은 것 같아요. 그 다음은 흐름 파악이라고 할까요. 이 책도 그래요. <5분 한국사 이야기>라는 카카오스토리 채널에서 어느 정도 흥미로운 이야기를 했다, 그 다음 할 것은 흐름이라고 생각해서 조선의 흐름을 다루게 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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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인류의 경험


조선 왕조 외에 꼭 다뤄보고 싶은 한국사의 한 장면이 있다면 언제인가요?


공부를 많이 한 건 근현대사거든요. 광복 이후가 저는 제일 재미있어요. 1980년대 5공화국 시절은 광주민주화운동도 있었고 그때 일들이 지금까지 내려오는 거죠. 87년의 헌법이 지금까지 내려오고 개정되지 않았잖아요. 우리에게 영향도 가장 많이 끼치고요. 민주주의라는 기조가 그때부터 시작된 것이 아닐까 생각하는 것도 있고요. 유시민 씨가 한 발언 중 공감 가는 게 있었어요. 역사 공부는 현재에 대한 인식에서부터 시작된다고요. 이 책도 조선에 대한 이야기지만 지금과 겹쳐지는 것도 분명히 있거든요. 역사에 모든 게 있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아요. 세종대왕의 말 중에 이런 것도 있어요. 과거의 바른 정치와 잘못된 정치를 다 바라보고 그것을 정치에 대입해야 된다, 그 기록들은 오직 역사로써 바라봐야 할 것이다, 라는 얘기거든요. 이 말이 무척 공감이 가고, 역시 성군이구나(웃음) 생각도 하게 돼요.


제 생각은 언제나 그래요. 과거는 단지 고루한 것이 아니라 현실에 분명히 대입할 수 있는 것이고, 이것 또한 인류의 경험이라는 거예요. 우리는 백 년 밖에 못 살지만 선조들이 수천 년의 기록을 남겨주었고, 그것들을 보면서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는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합니다. 그래서 더더욱 역사가 재미있는 것이기도 하고요.

 

흥미로운 부분은 기존 시각과 조금 다른 관점에서 해석한 대목들이거든요. 말씀하신 세종의 화폐개혁 실패라든지, 악명 높은 문정왕후에 대해서 그럴만한 이유도 있었다든지 말이에요.


다시 한 번 말하고 싶은 건 이것이 저의 독자적인 해석이거나 이런 건 절대로 아니라는 거예요. 이미 논문으로 나왔고, 책으로도 많이 나와 있는 거예요. 이미 논의가 많이 됐는데 대중들은 잘 모르잖아요. 만약 역사를 공부하신 분들이라면 이게 신선하지 않을 거예요. 저는 어쨌든 이미 있던 얘기를 제 문체로 그나마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썼어요. 저는 이야기꾼 정도라고 생각해요.

 

역사에 왜곡문제도 많고, 시대에 따라 해석이 달라지기도 하잖아요. 그렇다면 역사 공부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일단 자기가 믿고 싶은 것만 보는 게 제일 위험해요. 2차 세계대전 때 히틀러가 아리아인은 우수한 인종, 다른 인종은 열등한 인종이라고 하고 특히 유대인들을 학살했잖아요. 그것을 독일 국민들은 믿었단 말이죠. 물론 그들도 믿을만한 이유가 있었어요. 1차 세계대전 때 졌고, 경제대공황으로 나라가 완전히 망했는데 히틀러 같은 강력한 지도자가 이끌어주길 바랐죠. 어떤 면에서는 히틀러가 리더십이 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 결과는 잘 알다시피 패망이었죠. 그런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봐요. 우리나라도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보거든요. 민족주의적인 게 불필요하다까지는 아니지만 그게 과도해진다면 언제든지 그렇게 갈 수 있겠죠. 민족주의 자체는 의의가 있고, 그게 없었다면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은 힘들었어요. 그렇지만 지금은 그대로 받아들이면 우리도 언제든 우경화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요.


누누이 말씀드리지만 이 책을 전적으로 믿으면 안 돼요. 그래서 글을 쓸 때도 ‘이런 의견이 있다’는 식으로 한 경우가 많았는데요. 좀 거리를 두고 싶어요. 제가 권위를 갖게 돼도 안 되고요. 열린 마음이 제일 중요하겠죠. 내가 알았던 것과 다른 게 있을 수 있다, 정도로요.

 

예종이나 인종처럼 단명한 왕들에 대해 독살설이 늘 제기되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보았어요. 그래도 꾸준히 제기되는 이유들이 있겠죠?


재미있으니까요.(웃음) 예를 들면 독살설로 제일 유명한 건 정조일 텐데요. 이인화 『영원한 제국』에서도 그런 이야기가 나왔었죠. 학계에서는 독살설이 별로 의미 있게 나오진 않아요. 일단 왕 암살이 그렇게 간단한 일도 아니고요. 차근차근 따져보면 굳이 독살할 이유가 없는 경우도 많아요. 이건 야사에 나온 얘긴데요. 문정왕후가 배 다른 아들인 인종에게 오색 떡을 줬는데 그걸 먹은 후에 급사했다는 내용이 나와요. 물론 문정왕후는 인종이 죽길 바라긴 했을 거예요. 그런 정황이 많이 보이고요. 인종이 9개월 재위했는데요. 보통 3년 상이라고 하는데, 왕의 경우 3년 상을 다 치르면 일처리가 안 되잖아요. 그러니까 6개월이 졸곡이라고 해서 그때부터 식음 전폐하던 걸 멈추는 게 있어요. 그런데 인종은 그걸 철저히 지켰어요. 6개월 동안 진짜 미음만 먹어서 몸이 완전히 상했거든요. 그 이후에도 음식을 못 넘겨요. 거식증에 걸린 거죠. 인종이 죽기 한 달 전부터 거의 앓아누웠는데요. 이런 상황에서 굳이 문정왕후가 위험을 무릅쓰고 독살할 이유가 있었을까요. 독살하면 제일 먼저 의심 받을 사람이 본인인데 말이에요. 인종 예만 들었지만 이 외에도 여러 독살설이 나오는 왕 중에는 정황 상 그럴 필요가 없는 경우가 꽤 많아요. 논리적으로 그래요.
그렇지만 일단 독살설은 재미가 있고, 매력적인 소재기 때문에 더 많이 사용되는 것 같아요.

 

음모론도 그렇고 이런 이야기들은 상상력을 자극하는 좋은 소재니까요.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로마 경구가 있잖아요. 이 말을 별로 좋아하지는 않아요. 어느 정도 맞는 말이긴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아요. 칭키스칸 같은 경우 오히려 몽골에는 기록이 많이 없어요. 그에게 때리고 밟혔던 이슬람 쪽에 기록이 많이 있거든요. 역사가 승자의 기록이라 단정 짓는다면 역사를 우습게 본다고 할 수도 있을 거예요. 기록은 무수히 많아요. 패자의 기록도 많고요. 그런 여러 가지를 교차검증해서 내놓는 게 학자들이에요. 그러니 음모론 같은 것에 좀 더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음모론이 있고, 재미있으니 책으로 내서 넘겨짚고 사실처럼 받아들이게 된다면 문제가 있다고 보거든요.

 

권문세족, 신진사대부, 훈구파, 사림파 등 왕과 대립되는 세력들이 결국 붕당정치로 귀결되었잖아요.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고, 사회갈등의 뿌리로 인식되는 경우도 있는데요. 저자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세종을 예로 들어볼게요. 세종 때 무척 중요했던 게 토론이에요. 허조라는 신하가 있었는데 그가 반박을 많이 하는데 세종은 그 사람도 중용했어요. 하지만 세종이 언제나 그랬던 건 또 아니에요. 훈민정음 창제 때는 반대의 모습을 보여요. 설총이 이두로 만든 건 아무 말 안 하면서 감히 왕한테 너희가 아는 게 뭐가 있다고 반대를 하느냐 이런 식으로 말을 하거든요. 훈민정음은 확실히 세종이 이렇게 했기 때문에 잘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런 방식은 효율성은 있죠.


붕당은 신사적이긴 하거든요. 학연, 지연이라는 부작용도 있었지만 그런 식으로 정책을 일궈냈던 과정이 부정적인 면보다 긍정적인 면이 더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500년 유지된 왕조가 드물잖아요. 500년 조선 왕조의 힘은 이렇게 왕권과 신권이 절묘하게 균형을 이뤘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것도 확실히 맞는 것 같아요. 책은 왕 중심으로 이야기했는데요. 이건 조금 옛날 느낌이기도 해요. 왕 중심으로 역사를 풀었으니까요. 민중도 있었고, 조선은 신하들의 나라였다는 말도 있는데요. 저는 그렇더라도 조선은 왕이 가장 강하지 않았나 생각하거든요. 대간이라고 언론의 역할을 했던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렇더라도 왕한테는 권한이 있었어요. 법을 초월하는 권한 말이에요. 견제관계가 점점 맞아 들어가기는 했죠.

 

대간과 왕의 갈등에서 흥미로운 게 성종과 연산군이었어요.


역사의 흐름을 말해야 하는 이유가 있어요. 연산군이 대간을 그렇게 싫어했던 이유 중 하나가 성종이 엄청나게 대간들한테 눌려 지냈기 때문이었어요. 성종이 구리로 수조를 만들었는데 대간들이 사치스럽다고 반대를 해요. 성종이 결국 구리로 만든 것을 치우고 다시 돌로 만들어요. 당연히 그 과정에서 돈이 더 많이 들었죠. 그런 모습을 봤기 때문에 연산군이 대간들을 혹독하게 대했다고도 보거든요. 그게 전부는 아니지만요.


어쨌든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조선은 왕이 어떤 붕당에게 힘을 실어주기도 하고, 빼앗기도 해요. 저는 언제까지나 그 주체가 왕이었다고 보는데요. 그게 깨진 게 훗날 세도정치죠. 조선이 약해진 걸 붕당 탓을 많이 하는데요. 조선 멸망 때는 오히려 붕당이 완전히 깨져버려요. 한 세력이 전횡했던 거잖아요. 세도정치의 힘이 너무 강해져서 견제도 없어지고요. 조선이 500년 왕조를 이어올 수 있었던 건 세종이 다져놓은 토론 문화도 있었고, 후에 붕당으로 적절하게 유지한 이유 등이 있었다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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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매역사가


사대주의에 대해 설명한 부분, 실리적인 측면이 강했다는 내용도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아요.


북한을 예로 들어볼게요. 북한은 매우 주체적이잖아요.(웃음)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고요. 하지만 다 잘 알듯이 모두 가난하게 살아요. 사대는 어쩔 수 없어요. 중국이 강하잖아요. 사대를 하면서 받아올 건 받아오고 해야죠. 조공 같은 경우 세종 초반까지도 비극적인 일이 많았지만, 동시에 받아온 것도 많았어요. 명나라 황제는 너희들이 이런 걸 보냈으니 나는 더 좋은 걸 내려야겠다, 하는 명분론이 무척 강했거든요. 그게 무역의 한 형태로 돼요. 언제나 사대에 눌려있던 것도 아니죠. 실록에는 사신이 왔는데 함경도 관찰사가 돌려보낸 일도 나와요. 고려 때도 비슷한 게 있었어요. 송나라에서는 고려가 조공 보내는 것에는 실리가 없고 손해만 되니까 그만 좀 오라고 한 일도 있거든요. 사대주의를 그저 안 좋은 거라고 생각하는데 실제로 도움이 된 부분도 많이 있었어요. 물론 비극적인 일도 있었지만 말이에요. 언제나, 뭐든지 양면적인 게 있어요.

 

역사의 재미기도 하고 어려움이기도 한데, 사실 만으로는 다 알 수 없는 종합적인 이야기들이 있는 거잖아요. 전후 사실을 다 안다는 게 참 쉽지 않아요.


힘든 일이긴 해요. 수능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요. 지금 한국사를 공부한다면 무조건 외워야죠.(웃음) 역사 공부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저는 어렸을 때부터 역사가 재미있었어요. 역사라기보다는 전래동화나 만화가 좋았겠죠. 그게 너무 재미있었고, 이것저것 보다가 흐름을 알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전공도 하게 됐고요. 최근에는 인터넷에 재미있는 글들도 많이 있으니까 참고를 하고요.


흐름 파악이란 게 짧은 시간에는 안 될 거예요. 엄청 오랜 시간이 걸리겠죠. 저도 다 알진 못하고, 아는 것만 알 뿐이고요. 책을 쓰면서도 엄청나게 공부를 많이 했어요.(웃음)

 

조선시대 이야기를 듣다 보면 자주 나오는 것이 바로 사약입니다. 여기서 ‘사’는 줄 사( 賜)입니다. 즉, 왕이 하사하는 약이라는 뜻이지요. 결코 죽을 사(死) 자가 아닙니다. 이런 형 집행의 정식 명칭이 사사(賜死)입니다. 죽음을 명한다는 뜻이지요. (중략)
사약이 언제나 잘 드는 것도 아닌지라 한두 잔으로는 죽지 않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귀양지에 사약을 내리게 되면 여분의 양을 더 가져가기도 했지요. 그리고 여러 잔을 마셔도 멀쩡하면 병졸이 활줄로 목을 졸라 형을 집행하거나 사약을 추가로 가져오기 위해 집행이 연장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129~131쪽)

 

코끼리 선물, 사약이나 과거제에 관한 뒷이야기 등 중간에 삽입된 이야기들이 흥미롭습니다. 또 다루고 싶은 뒷이야기들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당장 생각나는 건 경종인데요. 실록에 적힌 바로는 경종이 간장게장과 감을 같이 먹어서 죽었다는 얘기가 나오는데요. 한의학에서 안 좋다고 한다는데, 그런 것도 무척 재미있죠.(웃음) 고종의 커피 이야기도 할 수 있겠죠. 차도 좋아했다고 하고요. 철종의 첫사랑 이야기도 있는데요. 철종이 원래 강화도령이라고 해서 헌종이 후사를 남기지 못해 왕이 된 거거든요. 철종이 강화도에서 사랑했던 사람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역사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주는 작가로 할 앞으로의 활동이 기대되고, 궁금한데요.


얼마 전 돌아가신 남경태 선생님이 저술을 많이 하셨거든요. 그분 책 정말 재미있어요. 남경태 선생님이 늘 자기소개를 하는 게 ‘야매역사가’라고 많이 말씀하셨거든요. 저도 그렇다면 ‘야매’일 거예요. 야매더라도 최대한 학계 의견을 반영하려고 하고요. 학부 정도의 지식인데 독자적인 이야기를 하는 건 학문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봐요.


지금은 역사 이야기를 썼지만 소설을 써보고 싶기도 하고요. 재미있으니까요. 다른 이유가 없어요. 국가 발전, 민족의 사명 이런 건 아니에요.(웃음) 재미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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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에 대한 거의 모든 지식박문국 저 | 소라주
대학에서 문예창작학과 사학을 전공한 박문국 저자는 취미 삼아 시작한 일이 생각보다 커지자, 더 정확한 고증을 위해 매일 다섯 시간 이상 책과 논문을 살피고 관련 글을 올리는 데 집중했다. 유연한 글솜씨와 탄탄한 역사상식을 기반으로 한 《5분 한국사 이야기》를 신뢰하는 구독자들이 이제는 그가 구술한 『한국사에 대한 거의 모든 지식: 조선의 왕 이야기(상)』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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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인디씬의 손꼽히는 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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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남자와 여자가 스텔라를 탄다' 라는 이름을 풀이하는 것이 불필요하게 느껴질 정도로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는(이하 구남) 인디씬의 손꼽히는 밴드로 자리잡았다. 데뷔 < 우리는 깨끗하다 >부터 보여준 독특하고 분명한 개성, 2집 < 우정모텔 >의 높은 완성도는 그들의 3집을 학수고대하게 만들었다. 4년 만에 발매된 3집< 썬파워 >는 또 다른 시도와 변화를 보여준다. '조웅'-'임병학'의 2인 체제는 키보디스트 '김나언'과 드러머 '박태식'의 합류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변화에 대해서 자연스럽고 여유있게 받아들였다.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 어떤 입장에 있느냐, 어떤 감성에 있냐에 따라 음악도 달라지는 것 같아요." < 썬파워 >는 구남의 2015년식 동력, 그들의 철학을 그대로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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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집 <썬파워>에는 새로운 멤버들이 합류했습니다. 처음에 어떻게 만나게 되셨나요?


웅 : < 우정모텔 >을 내고, 공연을 하기 위해 건반 치는 멤버를 구해야 했어요. 친분이 있던 림지훈씨에게 소개를 부탁했는데, 림지훈씨가 "니가 원하는 건반주자 첫째 조건이 뭐냐?"라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춤을 잘 췄으면 좋겠다."라고 대답하니까 그 다음날 바로 전화가 왔습니다. "춤을 잘 추는 건반 주자가 딱 한명 있다."라며 나언이를 소개시켜주었어요. 실제로 나언이는 삼바를 잘 춰요.

 

그리고 태식이는 예전에 있던 카바레 사운드의 다른 팀 드러머였어요. 그 팀이 해체한 뒤에도 연습실에서 종종 봤어요. 팀이 해체해서 그런지 혼자 연습실에 와서 참 한스럽게 드럼을 치고 있었어요. 하루종일 드럼을 쳐서 별명이 '에너자이저'라고 하더라고요. 그 모습이 좋아서 팀을 같이 하자고 얘기를 꺼냈습니다.

 

박태식 씨, 김나언 씨의 경우는 밴드에 들어오기 전, 구남의 이미지는 어땠나요?


나언 : 저는 원래 구남을 몰랐습니다. 구남을 처음 들어보고 나서 든 생각은 '어렵다', '낯설다', '이상하다'였어요. 처음에 세션으로 참여하게 되면서 작업 중인 곡을 받아서 듣는데 처음에 잠이 너무 왔어요. 세 번째쯤 들었을 때부터 완전 빠지게 돼서 세션이자 팬이 되었습니다.

 

태식 : 원래 같은 소속사였지만 저와는 다른 종류의 사람들이라고 느껴졌어요. 사실 당시의 저는 제가 뮤지션이라는 생각이 없었어요. 록을 좋아하는 드럼 애호가 정도랄까요? 하지만 구남에 들어와서 이제는 정말 뮤지션이 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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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디씬에서 김나언 씨의 인기가 대단합니다. 덕분에 남성 팬들도 많이 늘었다고 들었습니다.


웅 :새로운 멤버들이 들어오면서 기존 밴드의 음울한 분위기를 깨뜨려줬어요. 햇살 가득한 젊음을 담은 느낌이랄까? 요즘 많이 젊어졌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습니다. 나언이가 무대 한 가운데서 즐겁게 공연하는 것이 밴드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어요.


그래서인지 나언씨가< 썬파워 >의 수록곡 「UFO」에서는 보컬로 참여도 하셨습니다.


웅 :네, 사실 'UFO'를 녹음하기 위해 1년 간 열심히 연습을 시켰어요.

 

나언 :소리 내는 법부터 소리를 다루는 것까지 모두 배워야했어요. 요즘에는 컨디션이 좋으면 고음 부분도 자신이 있는데, 많은 분들이 제가 안쓰러워 보이시나봐요. < EBS 스페이스 공감 >에서 공연했는데, 고음 부분을 관객분들이 떼창으로 도와주시는 거에요. 그래서 제 실력을 뽐내지 못했어요. (웃음)


그런데 새로운 멤버가 보강되면서 앨범이나 그룹의 색깔도 변한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예전 작업과는 많이 달라졌을 것 같아요.


웅 : 네, 새 앨범을 재미없다고 섭섭해 하는 분도 있어요. 충분히 예상은 했습니다. 우리도 그 부분을 충분히 이해하지만, < 썬파워 >는 현재 구남이 짓고 있는 표정입니다. 나중에 나언이가 나이가 들면 또 표정이 달라질 수도 있겠죠. 하지만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 어떤 입장에 있느냐, 어떤 감성에 있냐에 따라 음악도 달라지는 것 같아요. 나언이 보컬을 전면적으로 넣은 것도 구남이 예전과 다른 팀이 되었음을 말해줘요. 3년 전쯤에는 팀 이름을 '물불토킹'(물, 불, 땅의 왕 혹은 물, 불에 대한 토킹의 뜻)으로 바꿀까 고민도 했습니다. 하지만 '물불토킹'과 '구남'을 따로 나눈다는 것 자체가 거리낌이 있어 포기했죠.


확실히 예전보다 록킹한 느낌이 강해졌네요?


웅 : 2인조로 했을 때는 거의 '루프 음악', 반복적인 루프에 조금씩 모양을 붙이는 작업이었습니다. 지금은 여러명이 함께 하는 밴드가 되니까 음악을 '주물럭 주물럭'하는 것에 재미가 생겼어요. 연주하는 입장에서도 그게 재밌고요. 흐름을 약속하는 재미, 또 약속하지 않아도 이끌고 따라오는 재미를 담았습니다.


그리고 투어를 다니면서 갤럭시 익스프레스, 아폴로18, 노브레인, 로다운30 등의 영향도 많이 받았어요. 사실 예전에는 시끄럽고 저희와 동떨어진 음악을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제 취향이 아니었어요. 그런데 같이 무대에 서면서 그들의 에너지가 멋있게 다가왔습니다.


사운드의 질감이 바뀌었습니다. 예전에는 목욕탕 사운드, 전자음악이 특징이엇는데, 이번< 썬파워 >에서는 사람의 목소리와 화음이 많아졌어요?


웅 : 기계가 아닌 사람의 코러스를 많이 녹음했습니다. 기타 톤이 음악을 좌지우지 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 같아요. 약간은 오타쿠스러운 얘기지만 '경남전자'라는 이펙터 회사의 모델 중 출시된 지 꽤 된 '코러스 모델'이 있어요. 그게 예전에는 싸구려 느낌이 나서 서랍에 쳐박아 두었는데, 다시 꺼내서 사용해보니 너무 좋은 거예요. 결 위에 다른 결이 얹히는 느낌이 좋았어요. 뭔가 무지개 같은 느낌도 들고요. 그래서 그 이펙터를 이번 앨범에 많이 사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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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컬의 변화도 상당히 많이 느껴집니다.


웅 : 제가 구남 활동을 안할 때 피처링으로 참여한 앨범들이 꽤 있어요. 신윤철씨 솔로 앨범, 바비빌의 < Dr. Alcohol >에도 참여하고, 한예슬 주연의 영화 < 티끌모아 로맨스 >의 OST 「쉬운 얘기」도 참여했습니다. 발라드 풍의 「쉬운 얘기」를 예를 들면, 그 곡과 어울리는 목소리 톤을 찾아서 노래했죠. 구남 1집 때는 처음이라 노래하는 것이 굉장히 수줍었는데, 2집 때는 나름 익숙해져 더 잘 불러보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이번 3집에는 느낌대로 부르는 게 가장 멋있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목 상태가 안 좋은 상태라도 느낌이 오면 노래를 했고요. 테크닉 보다는 당시 기분이나 감정에 집중하면서 노래를 불렀습니다.


여러가지 상황이나 스타일이 바뀌긴 했지만 가사들의 정서는 그대로입니다. 여전히 자유로운 영혼이 느껴집니다.


웅 :가사는 머릿속에서 나오는 제 얘기를 토대로 씁니다. 병학이 같은 경우에는 몇 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가사를 잘 모를 만큼 가사에 대해 되게 둔한 편입니다. 나중에 인터뷰에서 '그런 가사였어?'라고 물어볼 만큼요. 그나마 나언이가 호기심이 많아, 무슨 얘기를 쓰는지 관심을 가지는 편이에요.

 

태식 :주위 다른 사람들이 가사가 좋다고, 한 번 보라고 해서 봤는데, 사실 「우주로 가자」를 듣고는 우주로 가고 싶나보다, 「재미」는 재밌나보다, 식으로 가사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어요. 그런데 「노인생각」의 가사가 좋더라고요. 곡마다 내포된 의미가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어요.


정말 「노인생각」은 그동안과 좀 다르달까요. 인생을 사색적으로 바라보는, 일종의 성숙이 느껴집니다.


웅 : 꼰대가 되어가고 있는 걸까요?(웃음) 나이 드는 걸 부인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나이 들면서 경험도 많아지고, 어떠한 선입견도 생기는 데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죠? 어찌 보면 나이에 맞게 사는 것도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가사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이지만, 구남의 가사는 '섹슈얼리티'한 것이 가장 큰 매력이 아닌가 싶습니다.


웅 :저희는 모두 성인이잖아요. 살면서 '섹슈얼리티'가 정말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습니까? 저희는 자연스러운 일상을 노래하고 있어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성'을 포함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일부러 가사를 야하게 써볼까 이런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묻어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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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소속사였던 '카바레 사운드'에서 나오고, 스스로 '아시아 레코드'를 설립했습니다. 활동 방식이나 운용의 차이도 크겠네요.


웅 : 저는 지금이 구남의 전성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시기를 어떻게 이어갈까라는 고민을 하고 있어요. 힘이 조금이라도 남아있을 때 하고 싶은 것을 기획하고 뜻하는 것 이루고 싶어요. 돈을 떠나서 의미 있는 것들을 많이 하고 싶어서 회사를 차린 거예요. 돈을 쓰면서 다니고 있지만 지금 이 시기를 알차게 보내고 싶다는 마음부터 시작된 것입니다.

 

앞으로 계획이 기대가 되네요?


웅 :올해 안에 전국 10개 지역 투어를 기획하고 있고, 아시아 투어도 기획 중이에요. 현재 '아시아 키스 스퀘어'라는 거창한 이름의 공연을 기획하고 있습니다. 이 공연을 기획하게 된 계기가 있어요. 작년에 캘리포니아 출신의 뎅기 피버(Dengue Fever)와 함께 미국 투어를 했어요. 미국 공연을 마치고 함께 일본으로 넘어갔는데, 뎅기 피버 멤버들은 저희가 당연히 일본어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더라고요. 그들이 보기에는 대한민국과 일본은 매우 가까운 나라로 보이니까요. 그때 미국, 유럽 먼 나라로 공연을 갈 게 아니라 우리 주변 나라 부터 돌아보자 싶었습니다. '아시아 키스 스퀘어'를 통해 많은 아시아팀과 만나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병학 : 연말까지 제대로 된 전국투어를 하고 싶어요. 대도시만 도는 '빈껍데기 전국 투어'가 아니라 전국 구석구석을 다녀보는 거죠. 물론 그러다 보면 집객이 안되어 힘이 빠질 수도 있을겁니다. 하지만 일단 '우리 동네들'이기 때문에 각오를 하고 갈 겁니다. 사람이 있는 곳 여기저기에 달려가서 우리 음악을 들려주고 싶습니다.


IZM의 공식질문입니다. 나에게 가장 영향을 많이 준 앨범이거나 지금 듣고 있는 앨범이 무엇입니까?


웅 : 지금 듣고 있는 앨범은 사카모토 신타로(Shintaro Sakamoto)의 < Hollow me >. 일본 쪽 매니저가 소개시켜준 좋은 앨범이에요. 유라유라 테이코쿠(Yura Yura Teikoku)라는 밴드의 리더인데, 현재 솔로앨범을 내고 활동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엄청 좋아요. 천재가 아닌가 싶습니다.

 

태식 :저 같은 경우는 펑크를 좋아해서 음악을 시작했는데, 요즘에는 힙합을 좋아하게 됐어요. 절제된 비트가 매력을 주는 한편, 터질 것만 같은 느낌이 묻어나는 것이 매력이에요. 요즘 듣고 있는 건 칸예 웨스트의 < Yeezus >. 제가 듣는 팀 중에서 제일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나언 : 음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된 앨범은 셀로니어스 멍크(Thelonious Monk)의< Monk's Dream >입니다. 처음 음악으로 깊은 감정을 느끼게 한 앨범입니다. 예전에는 브라질음악, 브라질 리듬의 하몬드 오르간(Hammond Organ) 연주곡을 많이 들었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삼바를 듣고 왔는데, 그 흥겨운 브라질 음악 스타일을 구남에 장착하고 싶어요.

 

병학 : 저는 너바나, 섹스 피스톨스, 김현식 이것저것 좋다고 소문난 것은 다 좋아합니다. 요즘에는 태식에게 추천받아 힙합을 들어요. 말하자면 All kind of music인 셈이죠. 오늘 하루는 샤론 존스와 댑 킹스(Sharon Jones And The Dap-Kings)라는 팀의 라이브를 보고, 태식이의 추천으로 모스 뎁, 데미안 말리를 듣다가 마지막엔 신디 로퍼의 「Time after time」를 들었네요. (웃음)


진행 : 김반야, 신현태, 이택용, 이기찬, 홍은솔
정리 : 이택용, 이기찬
사진 : 홍은솔
2015/10 이택용(naiveplanted@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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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계 사람들] 책도 미술작품처럼 감상할 수 없을까? – 정민영 아트북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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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입장에서 낸 책이에요.” 정민영 아트북스 대표가 『편집자를 위한 북디자인』을 설명하며 보탠 말이다. 미술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 국내 유수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월간 <미술세계>에서는 편집장, 계간 <이모션>에서는 편집인을 지낸 미술전문 출판사 ‘아트북스’ 대표의 설명이 자못 어색했다. 평생 ‘책바치’로 살아온 정민영 대표가 쓴  『편집자를 위한 북디자인』 현장에서 본 상식적인 북디자인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북디자이너가 아닌 사람이 쓴 ‘북디자인’ 이야기이기에 그는 스스로를 ‘독자’로 한정했다. 이 책의 힌트는‘책도 미술작품처럼 감상할 수는 없을까?’이다. ‘편집자를 위한’이라는 타이틀을 달았지만 책의 면면이 궁금한 독자라면 꽤나 흥미롭게 읽힐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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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몸을 사랑하는 법에 대해


『편집자를 위한 북디자인』을 펴내셨습니다. 단독 저서로는 두 번째 책인데, 이 책 또한 출간하기까지 많이 망설이셨다고 들었습니다.


책이라는 게, 자기 입장에서 쓸 수밖에 없으니까 만들고 나면 부족한 점이 많이 보여요. 그래도 할 이야기는 했구나, 싶어요.

 

‘편집자라는 타깃을 설정하셨지만,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퍽 관심이 갈만한 책입니다.


『편집자를 위한 북디자인』은 크게 보면 일종의 책을 사랑하는 법에 관한 책이에요. 책이라는 게, 표면적으로는 하나의 물질로만 보이지만, 따져 보면 어떤 짜임새를 갖고 만들어진 완결된 형태예요. 사람들이 책을 읽을 때, 책등을 보고 속표제를 여는 과정 등은 생각을 안 하겠지만, 책의 구성을 의식하고 본다면 좀 더 애정을 갖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자꾸 종이책이 소용이 없어지는 시대라고 하는데, 책의 물질적인 가치를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요즘 몸매가 어쩌고, 이런 말을 많이 하는데요. 제목에 ‘편집자’라는 말을 붙였지만, 크게 보면 ‘책의 몸을 사랑하는 법’을 말한 책이라고 볼 수 있어요.

 

‘책의 몸을 사랑하는 법’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책의 구조를 따져보면 앞날개부터 시작해서, 앞표지, 면지, 권두, 본문 등으로 나눠져 있어요. 독자는 디자이너와 편집자가 디자인하고 편집한 시각적인 동선을 따라, 책의 조형미를 접하면서 내용을 흡수하죠. 이 책은 ‘읽다’보다는 ‘보다’에 집중한 책이라고 볼 수 있어요. 내용보다는 내용을 담는 그릇으로서, 주도면밀하게 설계된 책의 몸매에 관해 생각해보는 책이죠. 저는 책을 처음 집어들 때, 책등이나 질감, 무게감 등 책의 전체적인 느낌을 봐요. 본격적으로 책을 읽을 때 내용이 좋으면, 굉장히 기분이 좋아요. 미술을 전공한 입장에서는 미술작품을 감상하듯 보고요. 어떤 소재가 어떤 위치에 있어서 어떤 짜임새가 있는지 등을 살펴보는데, 이 또한 책의 몸을 사랑하는 법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좋은 책은 좋아 보이는 책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책에 쓰셨는데요. 썩 수긍이 되는 이야기였습니다.


만듦새는 좋은데 속이 부실한 경우는 거의 없어요. 책도 사람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책의 외모, 즉 디자인을 통해서 내부로 들어가잖아요. 겉이 마음에 들어야 내부로 들어가는 기회도 생기죠. 디자인은 ‘이 책 이렇게 좋아’라고 홍보를 해주고 자기는 뒤로 물러나는데요. 이런 역학 관계를 생각하면 책이라는 물질성이 굉장히 재밌어요. 독자를 인도해주고, 자기는 뒤로 물러나서 ‘디자인’은 기억도 안 나게 해버리니까요.

 

아트북스의 책은 내용과 함께 만듦새까지 함께 보는 독자들이 많습니다. 어떤 책을 만들고자 하시나요?


크게 내세울만한 건 없습니다. 신경을 쓰는 건, 미술 전문 출판사에서 으레 나오는 미술책에서 벗어나서 미술책 같지 않은 미술책을 만들고자 해요. 독자들이 미술책이라고 하면 ‘내 분야는 아니야’라고 재단할 때가 많은데, 그 틀에서 벗어나 미술에 대한 거리감을 좁히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표지를 통해서도 그렇게 다가가려고 하고요.

 

『편집자를 위한 북디자인』의 표지는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이 책을 가로로 눕혀 들면, 마치 또 하나의 책을 든 것 같은 그림이 나와요. 옷하고도 매치가 될 수 있겠죠. 기왕 책을 들고 다닌다고 한다면, 이렇게 매치되도 좋지 않나? 싶었어요.

 

‘북디자인’을 이야기한 책이라서이겠지만, 정말 많은 책들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타 출판사에서 펴낸 책들이 압도적으로 많은데요. 일일이 허락을 구하셨을 텐데, 굉장히 고된 작업이었을 것 같습니다.


그렇죠. 편집자가 정말 고생했어요. 수고했다는 말이 절로 나와요. 이 책은 그 양반 책이에요. 편집자도 10년이 지나고 보면, 이 책의 모자란 부분들을 발견하겠지요.

 

책 뒷날개에 아트북스에서 최근 출간한 『커버 Cover』라는 책을 소개했습니다. 북디자이너의 표지 이야기를 다룬 책인데요. 대표님의 저서와 매치가 되는 책이라, 독자들에게도 유용한 정보가 될 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일단 디자인에 관한 우리 책이니까요. 뒷날개를 출판사의 홍보 면이라고 했으니까, 이 책을 포함해 디자인에 관련된 책들을 쭉 소개할까 하다가, 이 책이 가장 직접적인 책이라고 판단했어요.

 

그런데 『커버 Cover』가 꽤 비싼 책입니다. 표지도 독특하고요. 제작 단가가 꽤 높을 거라 예상됩니다.


책이라는 게 내용만으로도 가치가 있지만, 크게 보면 디자인된 상태를 경험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간혹 돈이 좀 더 들어가도 흑백이 아니라 컬러로 인쇄를 했으면 좋았을 법 싶은 책들을 만나곤 해요. 독자 입장에서는 이 귀한 자료들을 접할 통로가 책밖에 없잖아요. 일일이 박물관, 미술관을 다 찾아 다닐 수 없으니까요. 저희는 가급적 비용이 조금 더 들더라도 책 안에서 완결된 이미지를 보여주려고 노력해요.

 

출판사를 운영하다 보면, 판매 부수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물론 신경을 쓰는데,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홍보비를 제작비에 조금 더 들인다고요. 제작비를 조금 더 늘리면 독자들은 컬러로 책을 볼 수 있는데, 이것 자체도 홍보가 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책의 질을 높이고 그것이 알려지면, 곧 홍보이잖아요.

 

책 앞날개에 실리는 ‘저자 소개 글’에 대한 질문도 하고 싶습니다. 굉장히 길게 쓰는 저자들도 있고, 그간 펴낸 책이나 간단한 소개만 곁들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유시민 작가가 그랬던 가요? 책을 낼 때마다 늘 저자 소개를 다르게 쓴다고 하더라고요. 그 이야기를 듣고 공감했어요. 보통 책을 많이 내는 저자들은 한 번 소개글을 써놓고, 계속 그걸 카피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유시민 작가는 책의 독자 타깃에 맞게 어떤 부분은 숨기고 어떤 부분은 내세운다고 했는데, 귀담아들을 만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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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의 글발, 굉장히 중요하다


대표님 이야기도 좀 여쭙고 싶습니다. 굉장한 다독가로 유명하세요.


책을 좋아해요. 아내한테 미안한 이야기지만, 오래 살아야겠다고 생각한 게 책 때문이에요. 내가 읽어야 할 책이 계속 나오지 않습니까? 지금은 뒤늦게 아이가 생겨서 오래 살아야 하는 이유가 아이로 바뀌었지만, 책이 그렇게 좋았어요. 제가 살아온 인생을 이야기한다면, 책방이나 책에 관한 이야기로 다 할 수 있어요. 문학적으로 미쳤던 것도 있고, 비평 쪽에 관심도 있었고, 그림을 그려야 하는 화가로서도 자기 세계를 만들어야 했으니까요. 자연스럽게 책을 좋아하게 된 거예요. 사야 할 책이 계속 나온다는 게, 너무 좋아요.

 

모든 책이 가치가 있는 건, 아닐 텐데요. 이게 책으로까지 나와야 하나? 싶은 책들을 만날 때도 꽤 많습니다.


저는 그것도 긍정적으로 봐요. 사람들은 책 자체가 굉장히 묵직하게 오래 가야 하고, 시간의 어떤 마모력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데요. 패스트 푸드라면 조금 과장된 표현일 수 있겠지만, 일정 기간 빠르게 활동하다가 사라지는 책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책을 많이 보는 사람들은 그런 책은 안 좋다고 이야기하는데, 전 그 책들 또한 갖고 있는 기능이 있다고 봐요. 아트북스에서 대중서와 전문서의 중간 역할을 하는 책을 만드는 이유가 이런 생각 때문이에요. 일정한 기간에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미치고 사라지는 책들도 그만큼의 가치가 있어요.

 

대표님을 두고 ‘편집자에게 많은 기회를 줬다’라고, 평한 글을 보았습니다.


책이라는 게, 출판사에서 마케터와 이야기를 해서 내는 경우도 있지만요. 한 책을 한 사람이 맡았다는 건, 그 책이 편집자의 책이라는 것과 같다고 생각해요. 평소에 다른 출판사에서 나온 책들을 볼 때, 판권에서 편집자 이름을 유심히 봐요. 그것과 연관해서 책의 모양새를 보고요. ‘이 편집자가 만들었네’하고 책을 찾아보기도 하고요. 편집자가 월등히 뛰어나면 뛰어난 만큼, 부족하면 부족한 만큼 그 모습대로 책이 나온다고 생각해요. 물론, 한 권의 책을 내기까지는 많은 사람들이 필요하지만 책을 최종적으로 책임지는 건 편집자예요.

 

요즘은 디자인적인 요소나 타깃 마케팅 등을 통해서 책이 알려지기도 하는데요.


간혹 책 표지가 아주 뛰어나서 판매에 영향을 끼쳤다는 이야기를 듣는데, 그 말은 조금 의심해 봐요. 책이 나오기 전에 출판사에서 보통 표지 시안을 다섯 개 정도 만들어서 선택을 하는데, 대개 모든 시안이 다 좋아 보여요. 대표든, 편집자든 누군가가 선택해서 최종 표지가 결정 나는데, 그건 그 사람의 취향이라고 봐요. 저는 표지가 일정한 수준만 된다면, 판매에 크게 영향을 미치진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최종 결정은 편집자가 하게 해요. 편집자의 재량을 발휘할 수 있는 부분이라면 맡기는 게 맞지 않나 싶어요. 오랫동안 출판사 생활을 하다 보니 모든 걸 내가 통제하고 안다고 생각했는데, 내 생각 밖에 괜찮은 게 너무 많은 거예요. 알지 못하는 것에서 벌어지는 것도 많고요. 모든 걸 통제할 수 있지 않다는 걸 깨달았어요. 젊은 사람들과의 감각도 차이가 날 거고요. 제가 책을 좋아해서 주간지, 일간지, 잡지를 챙겨보면서 젊게 만든다고 하지만, 한계가 있어요. 결국 그 사람의 감각에 맞게 하는 게 정답이라고 생각해요.

 

아트북스를 만드시기 전에 정신세계사와 문학동네, 세계사에서 편집자로 일하셨습니다. 편집자로서 가져야 할 덕목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게 있다면, 어떤 점을 꼽고 싶으신가요?


글발이요. 저는 좋은 글이나 미문에 관심이 많아요. 제가 편집자로 일하다 잡지사에서도 일했는데, 하루에도 수많은 보도자료가 날라와요. 보통 편집자들은 내부에서 책을 만든 후에 보도자료를 쓰는데, 보도자료를 받는 입장에서는 이 보도자료를 통해서 책으로 들어가요. 관계가 역전되는 거죠. 잘 쓴 보도자료에 의해서 책에 대한 호기심을 갖게 되고, 안 갖게 되는데요. 편집자의 기획력이 발휘될 수 있는 부분이에요. 신문에 어떤 책 소개가 나와서 궁금해서 인터넷서점에 들어가 그 책에 대한 출판사 서평을 읽어보는데, 그 글이 너무 잘 써져 있으면 그 책이 더 궁금해지는 거예요. 그래서 편집자의 글발은 상당히 중요하다고 봐요. 단순히 책 내용을 요약할 수도 있겠지만, 독자들을 유혹하는 장치를 심어 놓을 수도 있죠.

 

특별히 좋아하는 출판사나 편집자가 있으신가요?


돌베개 책을 좋아해요. 돌베개에서 나온 책들 중에 상당수가 저희 집에 있어요. 돌베개 책의 특징은 장식이 없이 단순해요. 미니멀하죠. 그럼에도 짜임새가 있고요. 단순함에서 주는 힘이 있어요. 최근에는 현암사에서 나온 손철주 선생님의 『사람 보는 눈』의 출판사 서평을 읽다가, 편집자 글발이 참 좋다고 생각했어요. 책이 또 한 번 주목을 받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고, 책이 날개를 날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간혹 책을 만들다 보면, 내부 사정으로 인해 편집자가 바뀌는 경우도 있어요. 새로 책을 맡게 된 편집자가 기존 편집자가 만들어놓은 방향을 그대로 수용할 수도 있지만, 자기 시각에 아닌 부분도 있을 수 있고요. 그럴 때 저는 새 편집자가 보는 방향대로 가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새로운 시각을 갖고 있는 건, 굉장히 중요해요.

 

미술 전문 출판사의 대표의 일상도 궁금합니다. 하루 중 어떤 일에 가장 많은 시간을 쏟으시나요?


저한테 오는 투고나 받은 원고를 검토하는 일이 많아요. 출판이 될 만한 원고가 들어오면 편집부와 함께 논의하고, 제가 직접 처음부터 방향을 잡아주는 원고도 있고요.

 

중대형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오랫동안 일하다 보면 관리직으로 가는 경우가 많은데요. 필드에서 뛰고 싶어 출판사를 여는 편집자 분들도 꽤 많이 있습니다. 대표님은 어떠신가요? 편집자로 일할 때와 대표로 일하는 지금, 장단점이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장단점이 있습니다. 전체를 결정해야 하니까 어려움도 있고 또 반면에 만족스러운 부분도 있겠죠. 그런데 지금은 대표가 된 입장에서 이런 생각을 해요. 비유를 하자면, 사람들이 그림을 수집하지 않습니까? 추상화도 있고 극사실주의도 있을 거예요. 대개 자기 취향에 맞게 고르죠. 그런데 나중에 역으로 봤을 때, 한 사람이 선택한 그림들을 통해 그 사람의 마음의 상태, 관심, 정신세계까지 이야기할 수 있다고 봐요. 제가 아트북스를 만들고 대중미술서라는 포커스에 맞춰 책을 내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저자들은 본인의 책을 낸 거지만, 책을 펴낸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 저자들을 통해 내가 생각한 세계를 만들어냈다고 볼 수 있어요. 대표로서 좋은 점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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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에 문을 연 아트북스는 ‘생활 속의 미술’을 모토로 전문서를 비롯한 미술 대중서를 출간하고 있다. 아트북스는 적극적으로 국내 필자를 개발하고, 미술의 전공 유무를 떠나 미술을 사랑하는 저자들의 원고를 충실히 검토하여 책을 펴낸다.

 

아트북스에서 책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기준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판매가 어느 정도 될 건지도 무시할 수 없겠고요. 기존의 시각들과 얼마나 다른가도 중요하게 봅니다. 가령 빈센트 반 고흐에 관한 책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계속 나오지 않습니까? 이미 아트북스에서도 몇 권이 나왔지만 관점이 새롭고 좋다면 꾸준히 낼 생각이에요. 지금도 두 권 정도 준비하고 있고요. 또 미술의 대중화에 부합하는 원고라면 검토를 합니다.

 

15년 동안 펴낸 책 가운데, 가장 뿌듯함을 줬던 책을 꼽아주신다면요?


지금 당장 떠오르는 건, 2009년에 펴낸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편지』예요. 굉장히 두꺼운 책인데 이 책을 내고 무척 뿌듯했어요. 서경식 선생님이 언젠가 당신의 책을 펴내면서 “반 고흐 편지를 책으로 내고 싶었는데 이미 박홍규 작가가 내서 마음을 접었다”고 쓴 글을 본 적이 있어요. 원문을 잘 살렸다는 평가를 받은 책인데, 잘 알려지지 않아서 아쉬웠어요. 이 책이 나올 무렵, 노무현 전 대통령이 돌아가셨는데 묘하게 반 고흐의 삶과 일치하지 않나, 싶었어요. 고흐도 왕성히 작품 활동을 하다가 나중에 탄광촌으로 돌아가기도 했고,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했잖아요.

 

요즘은 주로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신가요?


책에서 미처 이야기하지 못한 것들을 메모하고 있어요. 좀 더 체계적으로 전문적으로 이야기해볼까 하는 생각도 있고, 책에 대한 단상을 짧은 단편 식으로 써볼까 하는 마음도 있어요.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책을 빼놓고는 대표님의 일상을 상상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혹시, 책을 안 봐야겠다고 결심한 적은 없으신가요?


(웃음) 그래서 일본 여행을 간 적이 있어요. 한글과 동떨어진 세계를 살아야겠다고 생각해서, 책을 한 권도 안 들고 갔어요. 그런데 나중에 돌이켜 생각해보니, 일본에서 다녀온 곳들이 모두 우리 근대 문학가들이 활동했던 무대였더라고요. 그 문학가들의 작품들을 챙겨서 갔으면 어땠을까, 후회를 했어요.

 

저자들에게 ‘이런 책을 내자’고 제안하고 있는 기획물이 있나요?


지금은 없어요. 제가 앞서서 그러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지금은 다양한 유형들의 책들이 쏟아지고 있잖아요. 아트북스가 벌써 15년이 됐는데, 지금은 또 다른 형식의 책 스타일이랄까? 대중서도 아니고 전문서도 아닌, 소설로 치면 경장편 같은 책이 필요한 시대가 아닐까 싶어요.

 

 

정민영 대표가 추천하는 책 BEST 3

 

 

내가 읽고 만난 일본 

김윤식 저 | 그린비

나는 저자의 애독자다. 미술학도이면서 그의 두툼한 문학연구서와 기행에세이를 비롯한 문학평론집을 읽고 모았다. 지금은 기행에세이와 연구서 몇 권만 남겨 두고 모두 출가시켰지만 나는 여전히 영혼의 허기가 느껴지는 저자의 책들 곁에 서성이고 있다. 이 책은 저자의 지적, 사상적 여정에 각인된 5인의 사상가에 대해 사유한 일종의 사상적 자서전이다. 평생, 동사 ‘쓰다’와 ‘읽다’의 주어로 살아온 저자의 도저한 지적 편력의 안쪽을 조금 엿본 기분이다. 내친 김에 저자의 문학적 자서전인 <내가 살아온 20세기 문학과 사상>(2005)도 찾아 읽었다. 두 책 모두 두툼하고, 뜨겁다.

 

 

 

간송미술 36 회화

백인산 저 | 컬처그라퍼

이 책은 넙데데한 판형과 큼직한 제목 글씨가 ‘청소년 책’ 같은 인상을 주지만 여느 옛 그림 관련 대중서와 격이 다르다. 격의 원천은 저자가 1991년부터 간송미술관의 소장품을 관리 전시, 연구해온 적임자라는 데 있다. 저자는 자신의 사적인 이야기를 앞세우기보다 그림으로 직입하여 화풍과 필선을 분석하며, 그것을 둘러싼 전거와 역사적인 맥락을 통해 그림의 진가를 찾아준다. 더불어 그림에 대한 묘사가 세세하고, 애정이 흥건하여 읽는 즐거움이 동행한다.

 

 

 

 

미술 출장

곽아람 저 | 아트북스

기자만이 보고 쓸 수 있는 여행기 성격의 미술현장 취재기다. 그런데 이 책의 주인공은 인터뷰이나 미술현장이 아니다. ‘인터뷰 대상과 독자 간의 매개자인 기자’ 자신이다. 기사에서 기자는 철저한 ‘을’이지만, 이 책에서 기자는 완전한 ‘갑’이다. 자신이 주인공이 되어, 기사에 쓰지 못했던 지난한 취재 여정과 ‘기자’가 아닌 ‘자연인’으로서의 소감까지 솔직하게 들려준다. 글발까지 한 미모 하는 저자는 미술사학 전공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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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그림책 『개그맨』은 눈물이 낳은 웃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 눈물을 삼키는 개그맨과, 그에게 잃어버린 웃음을 찾아주기 위해 눈물 흘리는 아이가 등장한다. 사람들은 무대 위의 개그맨이 더 세게 넘어질수록, 더 우스꽝스럽게 얼굴을 일그러뜨릴수록 즐거워했지만 아이만은 달랐다. 개그맨 아저씨가 아파할수록 웃음을 잃어갔다. 오직 작은 영혼만이 그의 고통과 쓸쓸함을 알아주었던 것이다.

 

“아픈 것들을 보면 같이 눈물 흘릴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김지연 작가는 공감을 말했다. 다른 이의 아픔을 보며 그것이 자신의 것인 양 끌어안을 수 있는 마음. 『개그맨』은 그 소중한 가치를 아이들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작품 속의 개그맨처럼, 눈물에서 웃음을 틔워내는 이들을 향해 작은 위로를 전한다.

 

『개그맨』에는 어린이 책에서 흔히 발견되는 요소들이 없다. 숲 속의 동물 친구들도, 파스텔 톤으로 채색된 그림도 찾아볼 수 없다. 종이 판화 기법으로 만들어낸 이미지들은 다채로운 색감을 보여주지만 밝고 따뜻한 느낌과는 거리가 멀다. 드문드문 기괴한 모습을 한 인물들도 눈에 띈다. 이런 낯선 화법을 선택함으로써 작가는 또 하나의 질문을 던지고 있다.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세상은 아름답게 꾸며낸 모습이어야만 하는지, 그것만이 좋다는 생각은 얼마나 자의적인지 묻고 있는 것이다.

 

김지연 작가는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세상과 전하고 싶은 마음을 손끝에 담아냈다. 하나하나 종이를 오려 붙이며, 세상 한 켠에는 눈물 맺힌 마음을 안고 살아가는 이웃도 있다고 속삭였다. 종이 조각 위에 색을 입히고 힘껏 찍어내면서, 그런 이들을 위해 아파할 수 있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다독였다. 마음으로 그리고 몸으로 기록하며 작품을 탄생시킨 것이다. 그래서일까. 『개그맨』은 짧은 이야기임에도 긴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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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작은 사람일 뿐이에요


『개그맨』의 소재는 어떻게 구상하게 되셨나요?


작은 아이랑 둘이 프랑스 여행을 간 적이 있는데요. 그때 현지인들도 잘 모르는 극장을 하나 찾았어요. 공연하시는 분이 저희 애를 무대 위로 불러서 즉석에서 공연을 하셨는데, 너무 자연스럽고 재미있더라고요. 당시에 (국내에서는) 개그맨 김병만 씨가 수족관 안에서 콜라를 마시고, 그런 개그 코너가 있었는데 그걸 보면서 안쓰러운 부분이 있었어요. 슬랩스틱 코미디를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그걸 보고 좋아하는 우리 모습에 놀랐어요. 무대 위에서 개그맨이 계속 맞아도 다들 너무 재미있게 보는 거예요. 아프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상황이 아이러니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마음들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자는 생각으로 만든 작품이 『개그맨』이에요. 우리 안에 있는 이면의 모습, 남을 아프게 하고 웃는 모습을 알아차리기를 바라는 마음이 많았어요.

 

작품 속의 개그맨이 낯설게 느껴지지만은 않았던 것 같아요. 사람들이 좋아하는 모습대로 자신을 바꾸어 나가는 건,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일이니까요.


(독자 분들이)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어요. 어떤 아버지는 이제 보니까 자신이 개그맨이었다고, 너무 힘든데도 사실은 아이 때문에 웃으면서 일을 하고 있었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개그맨』을 읽으시면서 한 번쯤 그런 생각들을 하시는 것 같아요.

 

『개그맨』의 메시지가 가볍지만은 않다고 생각되는데요. 아이들은 어떻게 읽었을지 궁금해요.


아이들도 의미를 알아차리더라고요. 개그맨 아저씨가 안됐다고 이야기하기도 하고, 작품 속의 아이처럼 자신도 아저씨를 구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하고요. 저는 주로 그림책을 보여줄 때 글을 전부 가리고 그림만 보여주거든요. 그림만으로 이해가 되면 거의 대부분을 이해할 수 있는 거거든요. 그런데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림만 보고도) 이 이야기가 어떤 서사로 흘러가는지를 말하더라고요. 글이 없으면 조금 더 쉬워져요. 글을 읽는 순간 어려워지는 거죠.

 

그림만 보고 이야기를 이해하는 건, 어른들보다 아이들이 더 잘할 것 같습니다.


세대가 많이 달라져서 그래요. 우리 세대는 글로 모든 걸 배웠던 세대이고, 요즘 아이들은 태어났을 때부터 이미지를 볼 수 있는 매체들이 있었잖아요. 그러니까 이미지에 대한 훈련이 굉장히 잘 되어 있어요. 그래서 아이들이 책 읽는 게 힘들어요. 독서 단계가 올라갈수록 못 읽는 거예요. 책이 없어서 못 읽는 게 아니라 텍스트를 해석하는 게 힘든 거죠. 반대로 우리는 이미지를 해석하는 게 너무 힘들잖아요. 그런 점에서 그림책은 전 세대와 현 세대를 연결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해요. 글과 그림을 품고 있으니까 엄마는 글을 보고 아이한테 접근하고 아이는 그림으로 엄마랑 그 세계를 나누는 거예요. 어느 세대든, 글씨를 알든 모르든, 여러 사람들과 나눌 수 있는 책이 그림책이에요. 정말 선물 같은 책이죠.

 

『개그맨』의 그림체나 색감은 거칠게 느껴지는 측면이 있습니다. 말씀하셨듯이 이야기를 미화하지 않으려다 보니 그런 선택을 하신 것 같은데요. 우려되는 부분은 없으셨나요?


저는 아이들의 세계가 따로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작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지, 어리다고 해서 몰라야 하는 게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오히려 아이들이기 때문에 더 이야기를 잘해줘야 하는 부분이 있죠. 독자들이 어린이이기 때문에 불편하고 거친 방식이라고 말하기에는 책은 굉장히 평등한 도구죠. 그리고 출판이 되기 전에 편집자와 디자이너가 필터링을 다 했어요. 원래는 더 기기 묘묘해요(웃음). 그래서 그렇게 불편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다양성의 측면에서 『개그맨』이 가지는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선택은 아이들의 몫이라 하더라도 어른들에게는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줄 의무가 있는 것 아닐까요?


우리가 자꾸 뭔가를 마련해주려고 하면 안 되는 것 같아요. 특히 문화나 예술은 다 경험해 보고 선택해 가야지, 이것이 좋다라고 말하는 기준은 참 애매모호한 거죠. 도덕적인 선에서 어긋나지만 않는다면, 세상을 판단하는 기준에 대해서 우리가 함부로 선택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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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책은 도서관에서 함께 고르세요


자녀에게 어떤 책을 골라주면 좋을까요? 그리고 어떻게 하면 재미있게 책을 읽어줄 수 있을까요?


사실은 책을 골라주려고 하는 것부터가 문제의 시작인 것 같아요. 연령대별로 다르기는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그림책이 놀이감이거든요. 그림책으로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는 게 중요한 거예요. 유명한 작가의 훌륭한 책이 중요한 게 아니고요. 책을 통해서 아이와 공감하는 시간을 만드는 거죠. 부모는 글을 이해하는 데 뛰어나고 아이들은 이미지를 해석하는 데 뛰어난데, 그 공통의 것을 담은 게 그림책이거든요. 책을 통해서 아이와 이야기를 하면 되는 것이지, 추천목록이라는 게 의미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아이가 관심 가지고 있는 소재에 대한 책을 함께 읽으면서 우리 아이만의 추천목록을 만들어가는 게 중요한 거죠. 그래도 이왕이면 여러 가지를 상상할 수 있는 그림과 시적인 언어가 있는 그림책을 보는 게 좋겠죠.

 

아이가 좋아하는 책만 읽으려고 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실컷 보고 질리면 다른 책도 보게 돼요. 그런데도 너무 걱정된다고 하시는 분들이 계신데, 그러면 저는 도서관에 가시라고 말씀 드려요. 엄마 혼자 책을 골라서 집으로 배달시키면 그건 엄마의 취향일 뿐이잖아요. 아이와 같이 도서관에 가면 아이는 아이 취향대로 어머니는 어머니 취향대로 고를 수가 있어요. 그래서 3:2 비율로 이번에는 아이가 세 권을 선택하고 다음에는 엄마가 세 권을 선택하는 식으로 골고루 읽는 거예요. 그러면 한쪽으로 치우칠 수가 없죠. 항상 균형점이 있으니까요. 아이가 아무리 이상한 책을 가지고 와도 수준을 나무라면 안 돼요. ‘이 책이 재미있을 것 같니?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뭐야?’ 하면서 같이 재미있게 읽어줘야죠. 그래야 엄마가 고른 책도 아이에게 권할 수 있잖아요.

 

『개그맨』은 여타의 어린이 그림책과는 다르게 느껴졌는데요. 출판사 측에서도 비슷한 생각을 하신 것 같습니다(웃음). “어린이들이 이런 화법을 낯설어할지도 모른다는 우려에도, 망설임 없이 이 그림책을 출판하게 됐다”고 하시더라고요.


맞아요(웃음). 다소 거친 부분이 있어요. 그렇지만 이야기를 순화시키면 정말 웃긴 이야기가 되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방법을 선택한 거예요. 단순히 웃기려고 만든 이야기가 아니라 웃기고 웃는 관계에 대해서 이해를 하자고 말하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부드러운 파스텔 톤으로 바꾸면 그냥 ‘어느 유쾌한 개그맨 씨의 이야기’가 돼버리잖아요. 그래서 거칠지만 이런 방식으로 갈 수밖에 없었어요. 아마 출판사 측에서도 저랑 똑같은 생각을 하셨을 것 같아요. 누군가는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요. 『부적』이라는 책을 만들 때도 같은 생각을 했었고, 계속 그런 식의 작업들을 해왔죠. 그 역할을 함께 해주는 출판사가 있으니까 너무 신나고 고마워요.

 

첫 작품이신 『부적』은 성인 독자들을 대상으로 만드신 책이었죠?


그림책 작가가 되기로 결심했을 때부터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고민했었어요. 그때 저를 가르쳐주셨던 SI 그림책학교의 조선경 선생님께서 ‘지금 네 생각이 어디에 꽂혀있는지 생각해 봐라’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아이가 잘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고, 그게 기원이랑 맞물렸어요. 기원이라는 게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잖아요. 그걸 어떻게 책으로 만들 것인지 생각하다가 부적을 떠올렸죠. 그렇게 해서 『부적』을 수제본으로 200권을 만들었는데 당시에 센세이션했던 거죠. 일단 금기시됐던 것을 건드렸고 무당도 아닌 사람이 출판물로 만들었으니까요. 그러다가 어린이 책 출판사에서 연락이 온 거예요. 『부적』 같은 어린이 책을 만들어달라고요. 그래서『깊은 산골 작은 집』을 만들게 됐죠. 조선경 선생님의 지지와 지도가 없었더라면 『부적』은 세상에 나오기 힘들었을 거예요. 제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 소신을 밀고 나아가는 힘을 만들 수 있게 해주셨거든요.

 

서른일곱의 나이에 어린이 그림책을 만들기 시작하셨잖아요. 계기가 있으셨나요?


원래는 서양화를 전공하고 그림을 그렸었어요. 강남의 갤러리 같은 곳에 초대를 받고 전시회도 했었는데요, 그 안에서 괴리감이 컸어요. 저는 시장에서 자랐거든요. 시장에서 장사하시는 아주머니들이 저를 칭찬해주고 격려해주시면서 반은 키우신 거예요. 그런데 그 분들은 정작 갤러리에 오시지 못하잖아요. 문턱이 너무 높으니까요. 그게 정말 아이러니한 거예요. 그러면서 내가 진짜 원하던 모습이나 미술의 방식이 이런 거였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방식을 조금 바꿔야겠다는 고민을 하게 됐고, 이후에는 작업을 하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저희 아이들한테 그림책을 보여주면서 이거구나 싶더라고요. 큰 비용 들이지 않고 살 수 있는 책 속에 간결한 글과 그림을 실으면 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거죠. 그때부터 그림책을 만들기로 마음먹었고요. 『부적』을 기획할 때부터 남들이 하면 안 된다고 말하는 것들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까지 판화를 이용해서 작품을 만들어 오셨는데요. 익숙한 서양화가 아닌 판화를 선택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간절하게 비는 마음에는 힘이 있어야 되잖아요. 진짜 간절한 건 세거든요. 그 센 마음을 붓으로 표현하니까 많이 약하더라고요. 필력으로 표현하기에는 도가 통하고 신기가 있는 사람이나 가능할까, 쉽지 않았어요(웃음). 그런데 조각 칼은 조형미를 살리면서도 센 힘을 보여줄 수가 있었어요. 그게 판화를 시작하게 된 이유죠. 판화는 힘을 가해서 눌러야 찍히기 때문에 그 힘만큼 전달이 된다고 생각해요. 물리적인 측면에서도 힘이 들어가지만, 저는 마음의 힘도 들어간다고 생각하거든요. 조각할 때도 굉장히 집중을 해야 되고요.

 

『부적』과 『깊은 산골 작은 집』에서는 부적을 소재로 선택하셨고 『꽃살문』은 십장생, 『한글 비가 내려요』는 한글 뒤풀이에서 이야기를 풀어가셨어요. 지속적으로 전통문화에 관심을 가지는 이유가 있으세요?


전통문화에 남아있는 물건들이나 상징들은 굉장히 오랜 시간 가치가 누적된 것들이에요. 어떤 사물을 하나 선택하면 그 안에 굉장히 깊은 생각이 누적돼 있는 것이 전통의 소재들인 거죠. 현대의 사물을 가지고 이야기하자면 지금 시점의 이야기를 할 수는 있지만 누적된 가치는 별로 많지 않거든요. 그런데 옛 것에는 많은 사람들의 시공간과 가치가 누적되어 있어서, 제가 조금 덜 드러내도 사람들이 알아채는 부분이 많더라고요. 그런 소재가 정말 많은데 공부하는 과정은 너무 어려워요. 『부적』은 자료 조사만 3년을 했고요. 『한글비가 내려요』도 책이 나오기까지 5~6년 정도 걸렸어요. 『꽃살문』도 2~3년 동안 준비했고요. 많은 사람들 손에 쥐어지는 이야기인데 잘못 해석이 된다거나 다른 생각을 하게 할 수는 없잖아요. 어린이들에게 읽히는 책이라는 점에서 느껴지는 책임도 있고요. 소재를 가지고 다른 이야기를 전개하는 데에는 문제가 없지만,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그대로 전달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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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한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야


자녀들에게 읽어주셨던 그림책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무엇인가요?


재미난 책들이 정말 많은데요. 『헨리에타의 첫 겨울』은 좋아하는 그림책이기도 하고 ‘나도 언젠가 이런 책을 만들어봐야지’하고 생각하는 책이에요. 마치 우리들 이야기 같더라고요. 살다 보면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있잖아요. 무슨 짓을 해도 안 될 때,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 몰리면 세상을 비관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삶을 포기하기도 하죠. 그런데 그런 순간에도 방법이 있는 거예요. 그것 하나로 또 살아가게 되고요. 『헨리에타의 첫 겨울』은 그런 걸 생각하게 해준 책이었어요. 최근에 봤던 책 중에 뭉클했던 건 『엄마가 만들었어』예요. 강연에서 이 책을 읽어드리면 다 울고 난리가 나요(웃음). 『엄마가 만들었어』는 정말 엄마 이야기예요. 최선을 다하는 우리 엄마들의 이야기죠. 저희 작은 아이는 그 책을 읽고 나서 ‘효도하겠습니다’ 그러더라고요(웃음). 『더벅머리 아이』도 읽어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어린이 그림책 작가로서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으세요?


어린이 책 작가라고 생각해본 적은 없고요. 그냥 그림책 작가라고 생각해요. 저는 제 자신이세상의 1~2%가 아닌 97~98%에 속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그런 사람들하고 같이 살면서 부대끼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될 거예요. 지금 준비하고 있는 이야기들도 98%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고요. 어린이 책에서는 1~2% 안에 드는 사람이 되라고 말하기보다, 네 곁에 이렇게 많은 98%의 사람들이 있고 그들은 정말 소중하고 멋진 사람들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그런 결심을 했기 때문에 서양화를 그리다가 그림책을 만들기 시작한 거고요. 책을 만들지 않더라도 그런 활동을 계속 하지 않을까 싶어요. 책 만드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이 일을 하면서 더 많이 공부하게 되고 성장하더라고요. 그게 너무 멋진 일이죠.

 

그림책을 만드시면서 배우신 건 무엇인가요?


일단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게 무척 쉬워졌어요. 가치 있는 일을 하기로 결심하고 그림책을 만들기 시작했기 때문에 그게 너무 명료해진 거예요. 아무리 힘들어도 가치 있는 일이라면 신이 나고요. 그렇지 않으면 재미도 없고 관심도 없죠.

 

어린이 독자들에게 그림책을 선물하면서 ‘정말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구나’라고 느껴지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독자 분들이 ‘이런 것도 있군요’라고 하실 때인 것 같아요. 『한글비가 내려요』는 한글 뒤풀이에 대한 이야기잖아요. 노래로 한글을 익혔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셨다가 제 책을 계기로 아실 때 뿌듯하죠. 노래를 통해서 한글이 전파됐다는 걸, 노래에 그런 힘이 있다는 걸, 이야기하는 게 너무 즐거운 일이고요. 『꽃살문』도 마찬가지예요. 우리에게 이렇게 아름다운 문이 있었고, 문을 열고 닫으면서 꿈을 꾸고 사는 멋진 사람들이 있었다는 걸 이야기하는 거죠. 『부적』에서도 진심을 담으면 다 소원이라고, ‘할머니 오래 사세요’라고 쓴 카드가 곧 부적이라고 말하는 거고요

 

『개그맨』에서 독자들이 어떤 메시지를 발견하길 바라세요?


아이들에게는 ‘아픈 것들을 보면 같이 눈물 흘릴 줄 알아야 해’라고 말하고 싶어요. 내 것으로 만들고 싶어서 우는 아이는 많지만 타인에게 공감해서 눈물을 흘리는 아이는 거의 없잖아요. 특히 남을 위해서 흘리는 눈물은 정말 적거든요. 그런데 『개그맨』에서는 아이가 개그맨을 위해서 눈물을 흘리잖아요. 그 눈물이 신비로워진 세상이 된 거예요. 마땅하고 당연한 일인데 말이죠. 그래서 타인에게 공감하는 마음과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건 굉장히 멋있는 일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그래서 이 작품은 제목은 『개그맨』이지만 주인공은 아이예요. 나머지 인물들은 다 종이로 만들고 아이만 리놀륨으로 조각한 이유도 그래서고요. 종이 판화는 살살 문질러서 색 조절을 해야 하는데 리놀륨은 힘 있게 찍히거든요. 작품을 보시면 아이에게 힘이 집중되어 있는 게 느껴지실 거예요. 아이처럼 공감하라고, 아저씨에게 힘을 주는 사람이 되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는 거죠.

 

지금은 어떤 작품을 준비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어린이 미술 교과서를 만들고 있어요. 그 동안은 미술 교육이 입시를 위해서 혹은 학교에서 점수를 잘 받기 위해서 이루어졌잖아요. 제가 만들고 있는 책은 인문학적으로 접근하는 미술 교과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자전거의 원리를 알기 위해서 자전거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니라, 내 몸에서 만든 에너지로 자전거를 탄다는 게 정말 멋진 일이라고 느끼면서 그림을 그리는 거죠. 자화상을 그리면서 얼굴을 예쁘게 잘 그리는 데 집중하지 않고, 나는 어디에서 왔을까 질문을 던져보는 거고요. 어머님들이 보시고 아이들과 직접 놀이를 할 수 있는 책이 될 거예요. 내년 봄쯤에 출간하지 않을까 싶어요.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신가요?


그림책은 정말 멋진 책이라는 이야기를 꼭 하고 싶어요. 정말 좋은 책인데 잘 모르고 있으신 것 같아서 너무 안타까워요. 글과 그림으로 가치 있는 것을 이야기하는 건 굉장히 적극적인 방법인데, 어리고 유치하다고 치부해버리는 측면이 있잖아요. 우리가 미처 생각해보기 전에 가치 대상에서 제외됐던 거죠. 그림책은 굉장히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줘요. 항상 열린 결말이 있거든요. 그건 그림책만이 할 수 있는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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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김지연 글그림 | 웃는돌고래
《개그맨》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나눠 주느라 정작 자신은 웃음을 잃어버린 개그맨과 그런 개그맨에게 웃음을 찾아 주고 싶은 아이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이다. 코미디 공연을 앞둔 개그맨은 관객들이 자기 공연을 얼마나 좋아해 줄지 두근두근한다. 드디어 시작된 공연, 그러나 관객들은 무표정하다. 오로지 아이만이 즐겁게 보고 있을 뿐이다. 세상을 웃게 하는 개그맨의 의미, 웃음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이야기다. “세상 모든 개그맨에게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는 작가의 헌사처럼, 우리에게 진짜 웃음을 주는 ‘개그맨’의 소중함을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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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 “멸종, 심각하고 우울한 단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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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손에 현미경을, 한 손에 망원경을 들고 있다. 두 기계 모두 배율이 아주 좋아 지금껏 인류가 확보한 지식을 모두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다. 무기물에서 유기물로, 세포로, 복잡한 구조를 가진 생물로 진화하는 과정을 관찰한다. 발붙인 땅 위로, 하늘로, 대기권 밖으로, 태양계로 시선을 돌린다. 놀랍고도 아름다운 풍경들, 그 모든 것들에 관한 거의 모든 지식들. 그 가운데 인류가 있다. “지구 탄생 46억 년 만에 환경에 적응하지 않고 환경을 바꾸는 생명종이 등장”해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역사를 쓰고 있는 것이다.


자연사의 세 키워드 ‘공생’, ‘멸종’, ‘진화’로 생명 탄생의 결정적 장면들을 짚어낸 이정모 서대문자연사박물관 관장은 천문학자 칼 세이건을 인용한다. 칼 세이건은 『코스모스』의 에필로그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종으로서의 인류를 사랑해야 하며, 지구에게 충성해야 한다. 아니면, 그 누가 우리의 지구를 대변해 줄 수 있겠는가? 우리의 생존은 우리 자신만이 이룩한 업적이 아니다. 그러므로 오늘을 사는 우리는 인류를 여기에 있게 한 코스모스에게 감사해야 할 것이다.(『코스모스』, 682쪽)

 

이는 아주 자연스럽게 “꽃이 예쁜 이유는 사람이 존재하기 때문이에요. 사람이 존재하기 전에는 어떤 동물도 저 꽃을 보고 예쁘다고 얘기한 적이 없잖아요. 인간이 있으니까 자연이 아름답고, 지구가 의미가 있고, 우주가 장엄한 거죠.”라는 이정모 관장의 말로 연결되었다. 우연으로 점철된 자연사 각각의 장면이 아주 세밀하고 유기적으로 얽혀서 현생 인류가 탄생한 것은 다시 생각해도 기적 같은 일이며, 이 기적은 다시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니 우리는 장엄한 우주와 지구의 역사에서 인류라는 종이 탄생했다는 ‘놀라운’ 사실을 우주적 관점에서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그럴 수 있다면 저 먼 과거의 ‘결정적 장면’들을 가지고 현재 이후의 진화에 대해서도 상상해봄직 한 것이다.


앞서 말한 현미경과 망원경은 그러므로, 다름 아닌 인류, 인류가 쌓은 지식들, “인류를 여기에 있게 한 코스모스”그 자체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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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과 자부심


“생명의 진화에는 아무런 목적이 개입하지 않는다. 무수한 우연의 연속일 뿐이다.”라고 하셨어요. 이 ‘우연’한 사건들을 안다는 게 이렇게 흥미로운 일인 줄 몰랐습니다.


생명뿐 아니라 우주의 탄생도 우연의 역사잖아요. 우주가 뻥 터졌다는데 어떻게 터졌는지도 모르고, 우연인지 아닌지도 모르겠어요. 우주가 폭발한 다음에 여러 가지 일어난 일들도 아주 우연의 연속이에요. 거의 일어날 수 없을 아주 작은 확률의 것들이 모이고 모여서 지금까지 나타났잖아요. 생명이 등장했고, 그 생명이 지금의 인류가 될 때까지도 끊임없는 우연이 계속 모였어요. 어떻게 계속 우연으로 되느냐고요.(웃음) 그 우연이 또 한두 번이 아니었거든요. 지구가 생긴지 46억 년이고, 생명이 생긴 게 38억 년인데 이 기간 동안 무수히 많은 우연이 생겨 겨우 이 정도예요. 우리가 지금 이걸 아주 최고라고 생각하지 않잖아요. ‘겨우’ 이 정도 생길 수 있었던 거죠.


우연이라고 해서 하찮다든지 덜 귀하다는 게 아니에요. 우연 속에서 이만큼 온 것은 우리에게 행운이고 일종의 자부심을 갖고 기뻐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죠.

 

이 경이로운 우연의 사건들이 또 필연적인 결과들을 낳았잖아요. 진화의 시계를 되돌려도 비슷한 조건이라면 지금과 비슷한 결과를 낳았을 것이라는 사이먼 콘웨이 모리스의 말도 눈길을 끌었어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요. 스티븐 제이 굴드 같은 사람은 이렇게 나올 확률은 없다, 라고 얘기하기도 하죠. 제 마음은요, 이랬다저랬다 해요. 정말 이렇게 꼭 됐을 것 같아, 라는 생각을 한 건 스스로에게 자부심을 심하게 가질 때였고요. 좀 더 겸손한 자세를 가질 때는 다시 되돌아가도 우리가 됐을까 하는 생각을 하죠. 그런데 아주 옛날까지는 아니더라도 5억 년 전의 조건 정도라면 거의 비슷한 모습이 아닐까 싶어요. 공룡들이 번창했을 때 포유류들은 주먹만 하게 살았잖아요. 순서가 바뀌어서 포유류가 먼저 번성했다가 소행성과 부딪쳐 포유류가 다 멸종하고, 지금 그 당시 숨죽여 살던 파충류들이 번성한다, 이 정도 차이는 있을지언정 큰 줄기에는 큰 차이가 없었을 거라는 생각도 들어요.

 

지금은 두 의견 중 어느 쪽에 더 기울어 있으신 건가요?


우연이다, 거꾸로 시계를 되돌린다고 하면 이렇게 안 생길 가능성이 훨씬 더 클 수 있다, 그래서 참 고맙다(웃음), 그 우연의 역사들이 참 고맙다, 이렇게 생각해요. 하필이면 이렇게, 내가 생기게 해줬으니까요. 반 세기 전의 일만 해도 그래요. 어머니와 아버지가 주무셨을 때 하필이면 그 몇 억 분의 일에 해당하는 정자가 닿았잖아요. 고마운 일이죠.

 

자녀가 있으시죠? 책에 잠깐 언급하기도 하셨어요.


리처드 도킨스를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요. 상당히 싫어함에도 불구하고 ‘이기적 유전자’라는 것이 무척 다가오는 게요. 그것이 ‘이기성’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거든요. 자기 유전자를 잘 보존하려다 보니 ‘이타성’이 드러난다는 얘기를 하는 건데요. 저도 자녀를 낳고 길러보니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더라고요. 그 전까지는 이기성과 이타성의 구분이 완전히 달랐는데 어느 순간 되니까 그 구분이 사라져버리더라고요. 그렇게 된 매개가 나의 아이였던 거예요. 아이에 대한 애정이 확산이 돼서 다른 아이에 대한 것으로까지 넓어지는 것 같더라고요. 진화 심리학도 별로 안 좋아하는데, 그렇다 보니까 진화 심리학도 자꾸 끌리는 거죠.(웃음) 그렇게 해석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 또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해요.

 

진화 심리학은 왜요?


기본적으로 심리학에 대해서 신뢰가 없었어요. 그것이 과학일까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과학은 재현 가능해야 하고, 그것을 또 수없이 많이 해서 그래프를 그릴 수 있어야 하는데 심리학은 한 번 해버리면 누가 못 하는 거예요. 다른 건 그렇지 않잖아요. 논문에서 반드시 재현해보고 또 많은 사람들이 그걸 따라 해본단 말이에요. 심리학 실험들은 재현해볼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아요. 아이랑 침팬지를 함께 키워보니 이렇더라, 하는데 다른 아이랑 키워보지는 않았거든요. 오로지 그 데이터 하나로 얘기하는데 그걸 믿어야 하나 생각이 드는 거죠. 진화심리학은 심지어 수만 년 전의 이야기를 해요. 볼 수도 없는 것들인데 말이에요. 환원주의에 빠지게 돼 있죠. 어떻게 뭐든 게 다 그럴 수 있냐 생각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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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매 순간 의심해야 하는 것


환원주의라는 측면에서는 책 곳곳에 창조과학자들을 비판하기도 하셨죠.


항상 조심해야 할 게 환원주의잖아요. 편하거든요. 모든 걸 하나로 다 설명할 수가 있어요. 사람들도 좋아요. 일관성 있게 쫙 설명을 해낸다면 말이에요. 하지만 경계해야 할 것들이 있어요. 저도 자연선택으로 많은 걸 설명하려고 하지만 계속 의심을 해요. 매번 의심을 하지만 아직까지는 이보다 더 좋은 설명이 없기 때문에 이걸로 설명하는 거거든요. 어느 날 공룡 화석 속에서 사람의 뼈가 나온다든지, 삼엽충이 있는 지층에서 고래가 나온다든지, 한 가지만 나와도 그동안 생각했던 진화 이론들을 다 버릴 수 있죠. 창조과학자들은 그런 점에서 무척 안타까워요. 의심을 하지 않아요. 저 교회 다녀요.(웃음) 창조에 대해 의심하지 않아요. 하지만 창조주의, 창조과학 이런 것은 안 믿거든요. 그건 이데올로기고, 문자중심주의라고 생각해요. 진화도 창조의 아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할 수 있거든요.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 방법은 다 있어요. 그러려면 계속 의심을 해야 한단 말이에요. 그렇지만 종교에서는 보지 않고 믿는 게 복이 있다고 얘기하니까요. 그건 과학의 방법은 아니거든요. 과학은 매 순간 의심해야 하는 거죠.

 

대개는 믿음과 의심을 동일선에 올려놓지 못하잖아요.


그게 아주 옛날부터 있었던 거거든요. 이게 깨져나가는 데 사실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하지만 다 깨졌죠. 갈릴레오 때 한 번 크게 깨지고, 다윈 때 크게 깨졌어요. 그런데 여전히 그걸 믿고 있는 분들이 있는 거죠. 대화를 왜 안 하느냐고들 하시는데요. 많이 했었지만 층위가 달라요. 마술과 물리의 층위가 다르잖아요. 우리나라는 진화론을 받아들이는 사람 수가 높아요. 유럽 정도는 아니지만 미국보다 훨씬 높고요. 60~70%가 받아들여요. 그런데 진화론을 믿는 사람의 60% 이상이 창조론도 함께 가르치면 되는 거 아니냐고 하는 거예요. 싸우지 말고 다 가르치면 되지, 하는 거죠. 화학시간에 연금술 같이 가르치자, 할 수 없는 거잖아요. 천문학시간에 점성술도 같이 가르치면 되지, 안 하잖아요. 진화와 창조과학이라는 것은 대개 그 정도 차이가 있는 거예요. 그걸 같이 가르치라는 건 사실 갑갑한 이야긴 거죠.

 

그렇게 안이하게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은 우리가 받는 진화론 교육의 깊이를 문제 삼아볼 수도 있겠네요.


독일 유학 때 교수님이 진화론 얘기하면 너는 어떻게 그렇게 무식하냐고 했어요.(웃음) 『종의 기원』을 안 읽었다니까 놀라셨어요. 여러 번 시도했지만 번역도 이상하고, 너무 지루한 책이었어요. 사실 『찰스 다윈의 비글호 항해기』같은 책들은 정말 문학적이고 좋거든요. 재러드 다이아몬드와 비슷하죠. 『제3의 침팬지』한 권만 읽으면 모든 얘기를 다 할 수 있는 거잖아요. 다윈도 그런 식이었죠. 저는『종의 기원』읽지 말라고 해요. 대신 윤소영 선생님이 쓴 『종의 기원, 자연선택의 신비를 밝히다』가 진짜 좋다고 하죠. 장대익 교수님이 쓴 『다윈의 식탁』은 왜 아직 외국에 번역이 안 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읽은 무수히 많은 진화에 관한 책 중 장대익 교수님의 이 책만큼 세상의 진화론을 다 모아둔 책이 과연 있는가, 없어요.

 

 

자연사, 인류를 위해 필요한 것

 

우리가 자연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뭘까요?


저도 ‘자연사’라는 이름을 독일 갈 때까지 못 들어봤어요. 1992년 독일에 갔는데 가서 1년 쯤 지난 후 자연사박물관을 봤죠. 너무 궁금했어요. 자연사가 뭔지도 몰랐거든요. 가서 본 후 처음 생각을 하게 됐죠. 역사를 왜 배우나요? 그저 옛날이야기가 궁금해서 배우는 게 아니잖아요. 우리나라와 우리 민족이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가를 생각하고, 찬란했던 나라들이 멸망한 이유를 배우려고 공부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이 나라와 민족이 어떻게 하면 지속가능할까를 반면교사로 배우고 고민하자는 거죠. 자연사도 마찬가지거든요. 인류가 어디서 나왔는지를 알고 싶은 거예요. 옛날에 살았던 그 많은 동물들이 일일이 다 궁금해서가 아니라 고생대의 바다를 3억 년이나 지배했던 삼엽충이 왜 사라졌을까, 1억 5천만 년 동안이나 중생대 육상을 지배했던 공룡들이 왜 멸종할 수밖에 없었을까, 이런 멸종에서 교훈을 얻는 거죠. 그 교훈으로 우리 인류가 얼마나 더 살아야 하고, 더 살아남기 위해 어떤 방책을 세워야 하는가를 고민하기 위해서 자연사를 배워야 하는 거죠. 국가, 민족을 위해 역사가 필요하다면 인류를 위해 자연사가 필요한 거예요.

 

자연사는 곧 멸종의 역사라고도 했듯이 ‘멸종’에 대한 다른 시선을 견지하고 있는 것 같아요. 새로운 기회라고 하셨는데요.


자연사박물관장이라고 하니 환경 단체 등에서 강연 요청이 많이 와요. 제일 처음에 멸종 얘기를 하거든요. 멸종은 아무것도 아니라고요. 그러면 주최 측이 당황하죠.(웃음) 저는 멸종이 그렇게 심각하고 슬픈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따지고 보면 멸종은 다음 세대 생명에게 자리를 비워주는 거예요. 생태적 지위, 니치(niche)라고 하는 구성들이 있어요. 그곳을 다 차지하고 있는데 다른 종이 새롭게 생겨날 수가 없잖아요. 비워주면 새로운 게 생기고, 그러면서 생태계가 발전도 하는 거죠. 공룡이 지금까지 살고 있다면 포유류는 여태 주먹만 한 크기로 야행성으로 살고 있을 게 분명해요. 공룡이 사라지니까 포유류도 점점 커지면서 인류도 등장하게 된 거잖아요.


중요한 건 내가 살아남는 거예요. 이런 말하면 인간중심적이지 않느냐고 하는데요. 당연히 인간이 인간중심적이지 도롱뇽중심적인 게 말이 되느냐고 생각해요. 인간 없는 지구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하는 거예요. 다섯 번의 대멸종이 있었고, 지금은 여섯 번째 대멸종을 걱정하는 건데요. 그간 대멸종을 보면 늘 최상위 포식자가 멸종했어요. 지금 최상위 포식자는 인류거든요. 여섯 번째 대멸종이 일어나면 인류가 멸종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문제인 거죠. 꽃이 예쁜 이유는 사람이 존재하기 때문이에요. 사람이 존재하기 전에는 어떤 동물도 저 꽃을 보고 예쁘다고 얘기한 적이 없잖아요. 인간이 있으니까 자연이 아름답고, 지구가 의미가 있고, 우주가 장엄한 거죠. 인간이 버텨내야 하는 거예요.

 

칼 세이건은 우리에게 지구에게 충성할 것을 요구하며 그것은 단지 인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우주를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우리 인류는 더 지속해야 한다. 인류가 태어나기 전까지 지구에는 어떤 생명도 이름을 가져본 적이 없다. 인류가 존재하기 전 우주는 단 한 번도 아름답지도 장엄하지도 못했다. (중략) 인류라고 영원할 수는 없다. 인류도 언젠가는 멸종하고 말 것이다. 하지만 호모 사피엔스는 이제 생겨난 지 20만 년밖에 안 되었다. 우리는 훨씬 더 지속해야 정상이다. (8쪽)

 

그렇지만 상어, 고래, 석탄처럼 인간 존재로 사라져가는 것들에 아무래도 집중하게 되더라고요. 여섯 번째 대멸종이 너무 빨리 올 것이란 과학자들의 예측과 함께 생각한다면 시사점은 훨씬 많아져요.


인류에 문제가 있는 건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인류가 없어지길 바라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는 인류가 없어진 후 지구가 폭발하건 얼음덩어리가 되건 아무 관심이 없어요. 사람은 100~150만 년은 더 존재해야 하는 게 정상이에요. 호모 사피엔스는 20만 년 밖에 안 됐잖아요. 여섯 번째 대멸종이 길어야 만 년, 짧으면 500년이라고 하는데 이건 너무 짧죠. 인류가 사라진 후 인류와 비슷한 어떤 종이 나타나는 게 아니거든요. 어디로 갈지 몰라요. 영원히 등장 못할지도 모르죠. 다시 파충류의 시대가 될 수도 있고요.


최근 200년 동안의 일들은 너무 심각하죠. 기원전 만 년 전, 지구는 위기에 봉착했어요. 지구 탄생 46억 년 만에 환경에 적응하지 않고 환경을 바꾸는 생명종이 등장한 거예요. 물길을 바꾸고, 불을 질러 밭을 만들고요. 산업혁명 이후부터는 도저히 지구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변하고 있는데요. 저는 인류가 지금 같은 소비사회를 지속할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기술은 어마어마하게 발전했지만 기술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에너지, 자원이 있어야 하잖아요. 이 에너지와 자원은 정점을 지났어요. 우리가 쓸 수 있는 자원은 거의 남아 있지 않을 거예요. 다시 신석기 시대로 돌아가진 않을 거고, 아마 다시 200년 전의 삶의 모습과 비슷하게 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요. 거기에 적응할 수 있는 지식과 기술이 필요하겠죠. 바느질, 놀이, 농사, 이런 거라고 생각하고요.

 

생명과 우주의 역사에서 “가장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눈의 탄생을 꼽으셨어요. 무척 감명 깊게 읽은 대목이기도 해요.


우리 감각 중 가장 중요한 감각이죠. 눈으로 얻는 정보들이 너무 많아요. 눈이 탄생하기 전 동물들은 아무것도 보지 못한 거죠. 입을 벌리고 물을 떠다니다 누가 내 입에 들어오면 고맙게 먹는 거고, 누군가의 입에 들어가면 재수 없게 죽는 거였어요. 삶조차 우연에 맡기게 됐었는데요. 눈을 가지게 된 다음부터 무엇을 쫓고, 무엇으로부터 도망가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됐어요. 그 다음부터 위장색이라는 것도 하게 되고 여러 전략들을 세워야 했죠. 생명이 드디어 전략, 생각이라는 걸 갖게 된 계기가 눈인 것 같아요. 눈은 지구가 생긴 지 41억 년쯤 지난 후, 생명이 생긴 지 33억 년 지난 후에 생겼어요. 눈 하나를 만들기 위해 얼마나 지난한 일들이 있었느냐고요. 눈의 탄생은 정말 멋진 순간이죠. 그 순간이 없었다면 우리 같은 육상의 동물들은 존재할 수가 없어요. 지렁이 같은 삶이었을 거예요.

 

눈이 처음부터 지금 같은 형태는 아니었다는 사실도 흥미롭거든요. 처음 눈은 광물이었다고요. 


창조과학자들이 눈에 대해 이렇게 정밀한 기관이 어떻게 만들어졌느냐고 말해요. 그건 진화 과정을 이해 못하시는 거예요. 이런 눈이 처음부터 딱 만들어진 게 아니거든요. 아주 단순한 것에 장치가 하나씩 붙어요. 다른 데 쓰던 장치가 조합이 돼 전혀 다른 게 생기기도 하고요. 눈이 만들어지는 데 33억 년이 걸린 거예요.

 

이 대목에서 눈먼 시계공 얘기를 안 할 수가 없죠.


아주 멋진 논증이잖아요. 길을 가다 시계를 발견했다, 그 시계의 설계자가 어떻게 없다고 할 수 있겠느냐, 그래서 페일리는 신은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를 했던 거고요. 그 논증이 틀렸다는 게 아니라 다른 식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는 거예요. 리처드 도킨스는 이에 대해 정말 시계공이 있다면 그 시계공은 눈이 멀었구나, 왜냐면 눈을 잘 못 만들었기 때문이다, 라고 했어요. 사람의 눈은 망막의 앞에 신경이 있기 때문에 빈 점이 있을 수밖에 없거든요. 그런데 우리가 무엇을 볼 때 까만 점이 보이지 않잖아요. 그 이유는 눈이 계속 움직이기 때문이에요. 반면 오징어의 눈은 안 그래요. 오징어의 눈이 사람의 눈보다 좋죠. 그 논증으로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거예요. 그래서 도킨스의 가장 중요한 책이 『눈 먼 시계공』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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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살자


‘캄브리아기 대폭발’과 관련한 부분이나 날렵한 사냥꾼인지 느림보 청소부인지 여전히 알 수 없는 티라노사우르스의 존재처럼 미지의 공백들이 있잖아요. 우연하고도 위대한 발견들이 기다려져요.


지금도 계속 발견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어요. 고생물학 쪽에 정말 많은 논문이 나오고 있더라고요. 특히 진화적 증거가 엄청나게 많이 나와요. 화석 같은 것이 말이죠. 중국과 몽골의 힘이 커요. 중국 사람들이 유학 후 귀국해서 보니까 어마어마한 화석들이 있는 거예요. 다른 나라에서 가설을 세우면 그 가설에 해당하는 화석을 다 찾아낼 수 있었죠. 실제로 무척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거든요.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모습들이 있죠.


공룡의 모습을 상상만 했었잖아요. 이제는 실제 공룡의 색을 알 수 있게 되었거든요. 피부에 멜라닌 색소가 들어있는 멜라노솜이란 조직은 화석으로 남아요. 그 조직이 색깔마다 조직의 구조가 다르거든요. 구조를 보면 색깔로 알 수 있는 거예요.

 

최근 본 것 중 가장 흥미로운 발견은 뭐가 있었나요?


스테고사우루스라는 공룡이 있어요. 등에 뾰족뾰족하게 나와 있는 게 있거든요. 그걸 예전에는 방어용 무기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옆구리에서 공격을 할 텐데 그건 위에 있거든요. 그러니까 어떤 사람들은 옆에서 공격하면 그게 쫙 펴진다고도 했죠.(웃음) 그러려면 인대가 붙어있어야 하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인대 자국이 없었어요. 요즘은 CT가 발전해서 찍어보니까 거기 모세혈관이 많아요. 물리면 피가 줄줄 흐르겠죠. 그러니 이것은 방어용 무기는커녕 약점일 수가 있는 거예요. 도대체 뭘까 생각한 거죠.


스테고사우루스는 풀도 없던 시절 나무 따먹던 공룡이에요. 머리가 좋을 필요가 없었어요. 두뇌가 호두 한 알 크기 정도예요. 멍청했죠. 요즘의 가설은 그것이 짝짓기를 하는 데 필요했다는 거예요. 초식동물은 함께 살잖아요. 다른 종들이 섞여서 지낼 수 있죠. 멍청하니까 짝짓기를 엉뚱한 동물과 해버릴 수 있는데 그러면 안 되잖아요. 누가 보더라도 확실한 특징이 있는 공룡들이 선택돼서 살아남은 거라고 생각할 수 있는 거죠.


역시 가장 재미있는 것은 새예요. 공룡은 멸종한 게 아니라 새로 남아있는 거죠. 또 여전히 관심이 많은 건 최초의 생명체고요. 첫 번째 세포, 이런 데 관심이 많죠. 어떻게 처음 생명이 생겼을까, 이것이요. 얼음 속, 열수 분출구 등지에서 찾아내고 있는데 의외로 최근에는 많은 증거들이 나와서 서서히 그 모습들을 만들어내고 있죠. 이런 식이면 조만간 최초의 모습을 그려낼 수 있을 것 같아요.

 

『걸리버 여행기』의 오류를 지적한 부분, 얼마 전 칼럼에서 슈퍼문에 대해 이야기한 부분 등 반대되는 가정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 재미있습니다. 스토리텔링에 대한 고려도 좀 있으신 것 같아요.


그럼요,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죠. 재미로 사람을 끝까지 끌고 가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한 번에 되는 게 아니에요. 부모님들 중에 자연사박물관에 한 번 와서 뽕을 빼려고 하는 분들이 있어요. 재미있게 잠깐 보고, 맛있는 거 사주고, 기념품 사고, 또 오고 싶어지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과학을 대중에게 전달할 때 많은 것을 주고 싶어서 얘기하지만 기억에 안 남잖아요. 자기가 이해할 수 있는 주변 경험에서 하나 끄집어내면 돼요. 모든 건 이야기에요. 스토리텔링이 돼야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어요. 그러려면 읽어야 해요. 저는 교과서 말고 차라리 소설을 읽으라고 얘기해요. 지금 필요한 건 새로운 첨단 과학 지식이 아니라 이걸 전달할 수 있는 기술이죠.


서대문자연사박물관에는 어린이 도슨트가 있어요. 교육 프로그램이 참 좋아요. 몇 미터씩 맡아서 설명을 하는데요. 아이들이 처음엔 단순히 외운 얘기를 쭉 하다가 스스로 알게 돼요. 석 달만 지나면 이야기를 하기 시작해요. 이 친구들도 아는 거예요. 다 전달하지 않더라도 흥미를 주는 요소들만 전달하면 된다는 걸 초등학생들도 알더라고요.

 

“이 책을 한 문장으로 줄이면 ‘같이 살자’이다”라고 하셨죠.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조밀한 먹이사슬이 있어야 해요. 그래야 생태계가 잘 유지돼요. 그런 곳에서는 한두 종이 사라져도 빈 공간은 누가 다시 채워주니까요. 그런데 인간이라는 종이 먹이사슬을 너무 크게 차지하니까 먹이사슬이 느슨해졌어요. 도롱뇽이 중요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서 저 도롱뇽조차도 지켜줘야 하는 거죠.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 주변에 있는 생명들을 살려내야 하는 거예요. 


뭐든 연습이 필요하잖아요. 주변의 삶도 생각을 못하면서 어떻게 도롱뇽 생각을 하겠어요. 대학에서 청소 노동자들 휴식 공간을 안 줘서 화장실에서 밥을 먹는다는 뉴스를 볼 때 진짜 안타까웠어요. 같이 살고 있는, 같은 공간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조차도 나의 동료라고 생각 못하고, 같이 살자는 생각을 못하는데 어떻게 눈에 안 보이는 저 산 속의 도롱뇽과 같이 살자고 생각하겠어요. 결국 나를 위한 것으로 다른 생명과 같이 살아야 하는데 그 연습으로 우리 주변에 있는 이웃들과 같이 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고, 고통을 나누고, 탐욕을 줄여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앞으로 더 전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있으신가요?


과학 전반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과학만 대중화되는 게 아니라 대중도 과학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좀 더 깊은 이야기들이 나와야 하는 거예요. 목요일마다 교수님들을 모셔서 강연을 해요. 쉽게 강연할 필요 없다고 말씀 드려요. 사람들은 다 쫓아와요. 원래 과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니까요. 간극은 계속 채워나가는 거고요. 대중의 과학화란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바꿔나가는 거예요. 기존의 것들을 의심해 나가는 과정이고요. 그럼으로써 합리성을 갖게 되고 그것을 바탕으로 이 사회가 합리성을 갖게 되는 거죠. 합리성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살아남기 위해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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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생 멸종 진화 이정모 저 | 나무,나무
자연사는 멸종의 역사다. 공생하지 않으면 멸종한다. 공생한 생명만이 진화로 이어진다. 공생 멸종 진화. 자연사를 이해하는 세 가지 키워드다. 이정모 서대문자연사박물관 관장이 쓴 책, 『공생 멸종 진화-생명 탄생의 24가지 결정적 장면』은 38억 년에 이르는 생명의 역사를 이 세 가지 키워드로 정리한다. 바다의 출현에서부터 현생 인류까지, 기나긴 생명의 역사를 조망하면서 이 관장은 공생을 통해서만 진화로 이어질 수 있음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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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복 셰프 “왜 자꾸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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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란’ 이연복 셰프가 첫 책 『사부의 요리』를 펴냈다. 맛있는 중식의 비결을 털어놓았을 줄 알았는데, 그보다 더 진한 인생 이야기를 담았다. 참 솔직하게도 털어놓았다. 그의 진면모를 아는 사람들 중에는 여럿 눈가를 붉히기도 할 것 같다. 고생담보다는 ‘사고담’이 훨씬 많은 책, 비결보다는 ‘진심’을 담은 책이다. 이연복 셰프를 소개할 때, 많은 사람들은 ‘주한 대만 대사관의 최연소 주방장’, ‘우리나라 최초의 호텔 중식당 ‘호화대반점’ 요리사’, ‘후각 없는 요리사’ 등을 떠올리지만, 『사부의 요리』를 읽고 나면 ‘나무 배달통을 들었던 13세 소년’, ‘지금도 만두를 싸는 목란 셰프’, ‘길냥이들에게 밥을 주는 사부’를 기억할 것 같다.

 

“나처럼 어린아이는 아니지만, 고등학생 중에 아르바이트를 하는 ‘철가방’들도 간혹 눈에 보인다. 그런 친구들을 보면 안쓰럽기도 한데, 결국 자기 힘으로 고된 시간들을 이겨내는 수밖에 없다. 세상은 냉정하니까. 그렇다 해도 사람들이 자기 입에 들어가는 음식을 나르는 사람들에게 조금만 더 친절하게 대해주면 좋겠다.” (22쪽)

 

“지금 어려운 사람들, 뭔가 힘든 사람들하고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잘나가는 사람들은 잘되는 이야기만 하니까, 배울 것도 생각할 것도 별로 없다. 그런데 어렵고 힘든 사람들하고 이야기를 나누면 뭐가 문제인지,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에 대해 나도 같이 머리를 굴리게 된다. 나는 사람이 마음을 쓴다는 게 그런 거라고 생각한다. 잘나가는 사람들끼리, 잘나갈 때 서로 친하게 구는 게 아니라, 내게 부족한 것을 털어놓으면서 같이 고민하는 게 마음을 쓰는 것이다. 그게 진짜 의리고 믿음이라고 생각한다.” (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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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은 힘들게 배워야 한다


요리책을 내자는 제안을 많이 받으셨는데, 인생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를 쓰셨어요.


크게 자랑거리는 아니지만, 나에 대해 뭔가를 조금 남기고 싶었어요. 요리책은 이미 너무 많잖아요. 어떻게 보면 선배들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기도 했고요. 요리를 너무 내세우는 건, 쑥스럽지 않나 생각했어요. 그러던 중에 인생 이야기를 써보자는 제안을 받았는데, 한 번 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어요. 음식을 만들고 나누는 이야기, 음식에 얽힌 이야기, 요리사로 살아오면서 겪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지금 식당 브레이크 타임에 인터뷰를 하고 있는데요. 보통 때라면 어떻게 시간을 보내시나요?


재료 준비할 시간이에요. 할 일이 되게 많아요. 어제도 <냉장고를 부탁해> 촬영을 밤 10시까지 했어요. 아침 7시에는 홈쇼핑 촬영하러 갔다 왔고요. 바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당 영업시간에는 웬만하면 주방을 지키신다고요.


가끔 예외도 있지만 거의 매일 식당에 있어요. 손님들이 제가 방송에 많이 나오는 걸 보고, 식당에 없는 줄 아시는데요. 식당에서 마주치면 많이들 놀라세요. “어, 식당에 계시네?”라면서 의외라고 하세요.

 

사진 촬영 요청도 많이 받으시더라고요.


어렵게 오신 손님들이잖아요. 요즘은 많은 분들을 예약 받기가 어려워요. 죄송하죠.

 

그러게요. 지금도 전화가 끊임없이 옵니다. 지금도 예약을 하려면 기본 한 두 달은 기다려야 한다고 들었어요.


정말 답이 없는 것 같아요. 직원 두 명이 계속 전화를 받고 있는데, 손님 입장에서도 통화가 돼야 예약을 하시든 마시든 할 거 아니에요. 손님들이 식사를 마치고 자주 하시는 말씀이 “저 전화 300통 걸었어요”예요. 어떤 분들은 운 좋게도 3,4번 만에 통화가 연결되는데, 100번이 넘어도 연결이 안 되는 분은 운이 없는 거예요. 이게 정말 방법이 없어요. 그래서 제가 방송에서 이 고민을 말했다가 자연스럽게 홈쇼핑으로 연결이 된 거예요.

 

‘목란’이 큰 인기를 얻게 된 시초가 레이먼 킴 셰프가 KBS <해피투게더>에 출연해 ‘목란 탕수육’을 극찬하면서부터인데요. 방송으로 인해 당연히 매출이 높아졌을 거라고 예상했는데, 의외로 초반에는 매출이 좋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원래 코스 요리를 먹던 손님들이 못 오고, 짜장면 같은 단품 요리를 먹는 손님들이 늘었기 때문이라고요.


방송이 나간 후, 목란은 정말 혼란스러웠어요. 매스컴을 타면서 주위에 사는 손님들이 한꺼번에 몰리니까 우왕좌왕했죠. 원래 목란은 단골들 위주로 운영되던 식당이었는데, 갑자기 일반 식사로 바뀐 거죠. 코스 요리를 먹는 손님들이 별로 없으니까 매출은 떨어졌고요. 그런데 일시적인 현상이었고 지금은 되려 매출이 높아졌어요. 몇 달을 기다려서 예약을 하고 오셨는데, 그게 억울해서라도 이것저것 제대로 먹어보자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지금은 매출이 훨씬 늘었어요.

 

『사부의 요리』라는 제목이 정겨우면서도 강렬한데요. 어떻게 짓게 된 제목인가요?


목란의 주방에서는 저를 ‘사부’라고 불러요. 중국말로 하면 ‘쓰부’인데요. 중식당에서는 셰프라는 말보다는 더 잘 사용하는 말이에요. 그런데 이 말이 참 묘해요. 사부는 선생님이라는 뜻이 있잖아요. 그냥 요리만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음식을 만드는 걸 누군가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더 정성을 들이게 돼요. 『사부의 요리』는 요리책이 아니지만, 제 인생을 담은 책이라서요. 마음에 와 닿는 제목이었어요.

 

이연복 셰프의 고생담이 많을 담겨 있을 거라고 예상했는데, 의외로 ‘사고’를 친 이야기가 굉장히 많더라고요. (웃음)

 

요즘 젊은 사람들은 “우리가 옛날에 말이야” 이러면서 하는 이야기를 되게 싫어하거든요. 그런 이야기는 될 수 있으면 피하려고 했어요. 사고야 뭐, 많이 치긴 했죠.

 

지금 셰프님의 인상은 무척 부드러우신데, 과거에는 꽤 날카롭고 불의를 참지 못하는 성격이셨다고요. 몸무게가 48kg 밖에 나가지 않을 때도 있었고요.


그랬죠. 남들은 학교에서 공부하고 친구들과 뛰어놀 나이에, 저는 무거운 나무 배달통을 들고 쏟아질까 안절부절못하면서 걷고 또 걸었어요. 그 때를 생각해면 내가 생각해도 참 안쓰러워요. 어떤 사람들은 40년이 넘게 한 길만 고집한 제 인생이 멋지다고 하는데, 돌이켜보면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택한 길이기도 했죠.

 

‘목란(木蘭)’이라는 식당 이름에도 깊은 뜻이 있더라고요.


사연이 있었어요. 제가 일본에 있을 때 아버님께서 갑자기 돌아가셔서 임종을 못 지켰어요. 그게 마음이 너무 안 좋아서 한국에서 식당을 차릴 때,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났어요. 영화<뮬란>이 중국 구전 설화를 바탕으로 한 건데, 제목은 여자 주인공 이름 ‘화목란’에서 따왔어요. 화목란에서 이름 목란을 영어로 바꿔 ‘뮬란’이라고 한 거죠. 화목란은 구전으로 전해지는 중국의 대표적인 영웅으로 퇴역 장수의 딸이었어요. 늙고 병든 아버지를 전쟁터에 내보낼 수 없어 자기가 남장을 하고 대신 전쟁터에 나가죠. 영화<뮬란>을 봤을 때, 부모님께 하직 인사를 올리고 입대하는 목란의 모습을 보면서 옛날의 제 모습이 생각났어요. 배달로 돈을 벌겠다고 중국집에 뛰어들었던 어린 시절 모습이요. 그래서 다음에 장사를 하게 되면 가게 이름을 ‘목란’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우리 음식을 맛보는 사람들이 가족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기 바라는 마음도 있어요.

 

당연하게, 자연스럽게, 묵묵하게 요리를 하는 셰프님의 이야기가 인상적이기도 했습니다.


제 일이니까요. 요리를 시작할 때, 이게 ‘내 일’이라고 생각하고 묵묵하게 하면 그 사람은 오래 가거든요. 그런데 생각이 많은 애들은 오래 못해요. 우리 식당에도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일하지만, 고민이 특히 많은 애들이 있어요. 고민할 시간에 묵묵하게 일을 하다 보면 세월도 가고, 내가 세운 목표에도 가깝게 가게 되는데요. 요즘은 직업이 많아지면서 선택할 수 있는 가짓수가 많아져서, 다른 생각들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저는 “요리사가 꿈이에요”라고 말하는 사람한테, 저희 식당 같은 곳에서 3개월 정도 일해보고 판단하라고 해요. 일을 해본 다음에 힘들다, 쉽다를 판단하면 된다고 해요.

 

“일은 힘들게 배워야 한다”고도 말씀하셨는데요.


지금 우리 식당에서 일하는 직원들에게도 굉장히 강조하고 있어요. 요즘 식당이 얼마나 많아요? 거리를 걷다 보면, 수두룩한 게 식당이에요. 식당이 없는 곳이 없어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이 동네 식당들 사이에서 내가 죽을 쓰면, 내가 죽는다고요. 얼렁뚱땅해서는 이 골목에서도 살아남을 수 없어요. 지금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고요. 그래서 직원들에게도 항상 이야기해요.

 

책에서 현재 ‘목란’에서 일하고 있는 두 명의 제자를 소개하셨던 데요. 직원들은 어떤 기준으로 뽑으시나요?


두 명은 제가 식당을 오픈했을 때부터 계속 함께한 친구들이에요. 나머지 직원들은 계속 바뀌었는데 두 친구는 끝까지 함께하고 있어요. 저는 사람을 뽑을 때, 기술은 안 보고 무조건 첫째는 인성을 봐요. 기술은 배우면 되지만 인성은 안 고쳐져요. 기술은 좋은데 인성이 안 좋으면 함께 일하기가 어려워요. 두 친구는 인성도 좋고 요리사로서 보는 범위도 넓고 리더십도 있어요. 그래서 제 제자로 인정했어요. 지금 또 한 명의 직원을 제자로 삼으려고 눈여겨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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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식에 대한 편견, 깨고 싶었다


중화요리는 자극적이라는 인상이 강한데요. 셰프님 요리를 통해 그 편견이 조금 깨진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중화요리는 불이 세야 한다, 기름을 많이 써야 한다, MSG가 많이 들어간다”고 생각하세요. 그래서 안 좋은 인식들을 많이 갖고 있었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 ‘쿡방’이 뜨면서 스타 셰프들이 많이 나왔는데 그 중에 중식 요리사는 한 명도 없더라고요. 제가 방송에 나가게 된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중식에 대한 편견을 깨보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어요. 중화요리도 생각보다 간단하고 조미료 없이도 충분히 맛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는데요. 보여지는 요리가 아니라 정말 맛을 봤을 때, 맛있는 요리를 소개하자는 생각이 있었어요. 중식 요리사들이 자부심을 갖기를, 중식 요리사의 길을 가보겠다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바라는 마음도 꽤 커요.

 

스타 셰프들이 대거 방송에 출연하면서 인기를 얻었지만, 예능 프로그램에 많이 나오다 보니 “요리를 너무 재미로만 다룬다”는 비판적인 시각도 꽤 있습니다.


방송에 나와 요리를 하는데, 예능이 전혀 없으면 그건 옛날로 다시 돌아가는 거예요. 여자 요리 선생님이 나와서 “이거는 몇 스푼을 넣고 몇 센치로 자른다”고 설명해주는 얌전하고 조용한 방송 밖에 못 만들죠. 요즘 예능 프로그램에서는 음식을 되게 거칠게 해요. 요리사가 얼만큼의 경륜이 있는지는 몸에서 나와요. 몸에서 나오는 동작들을 보고 알 수 있어요. 저는 그게 예능과 섞이면 맛있는 요리, 방송이 나온다고 봐요. 사람들이 때때로 “저 사람 돈독 올랐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런 이야기를 다 신경 쓸 수는 없어요. 저뿐만 아니라 누구라도 좋은 기회가 생기고 또 돈도 벌 수 있다면, 싫다고 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이게 제 솔직한 심정이에요.

 

방송 활동은 어떠세요? 꽤 즐기시는 것처럼 보여요.


요리만 너무 오래 하다 보니까, 또 다른 세계에 들어가서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게 재밌어요. 방송을 하고 홈쇼핑을 하는 것도 저의 하나의 외도인 것 같은데요. 즐겁지만 한편으로는 엄청 스트레스를 받는 것도 있어요. 10월 17일부터 <강호대결 중화대반점>이라는 방송이 SBS Plus에서 방송하는데, 중식 셰프 4명이 나와서 각자 제자와 함께 실력을 견주는 프로그램이에요. 프로그램 취지가 좋아서 출연하게 됐는데, 제가 아무래도 출연진 중에 조금 인지도가 있다 보니까 작가 분이 툭하면 전화하고, 저를 너무 못살게 굴어요. (웃음) 아마 좀 있으면 또 찾아올 것 같아요.

 

『사부의 요리』를 보면, ‘목란’을 열기까지의 과정이 굉장히 구체적으로 나와 있어요. 처음 서울 역삼동에서 ‘목란’을 여셨고 지금은 연희동에서 2년째 요리를 하고 계신데요. 오너 셰프로서 식당을 자주 옮기고 싶진 않으셨을 것 같아요.


물론이죠. 그런데 세입자들은 장사를 하다 보면 자기 의지와는 관계 없이 이전해야 할 때가 많아요. 역삼동에서 ‘목란’을 이전한 건, 연통 때문이었어요. 중식 식당은 후드를 외부로 꺼내야 하는데, 건물주가 미관상 좋지 않다고 반대했어요. 결국 하수구로 빼게 됐는데, 연기 특성상 위로 솟잖아요. 연기가 잘 안 빠지니까 주방도 어렵고 홀도 어려워서 결국 옮기게 됐죠. 압구정동에 있을 때는 집세를 너무 올리는 거예요. 저희가 처음에 들어갔을 때가 350만 원이었는데, 7년 후에 나왔을 때가 750만 원이었어요. ‘목란’이 들어가기 전에 있던 식당들이 모조리 안 돼서, 그동안 집세를 못 올렸는데 저희가 잘되니까 막 올린 거예요. 너무 남 좋은 일만 시키는 것 같아서 평동으로 옮긴 건데 거기는 또 재개발 이슈가 터졌죠. 지금 연희동도 계약 기간이 딱 끝나자마자 집세가 올랐어요.

 

창업을 계획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꼭 하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요?


가게 주인에 대해 파악하는 게 정말 중요해요. 가게를 열고자 하면 우선 부동산에 찾아가잖아요. 공인중개사가 좋은 자리가 나왔다고 추천해주면, 그 매장 주변을 돌면서 커피도 한 잔 마시면서 주위 사람들에게 꼭 물어봐야 해요. 가게 주인 성격이 어떤지에 대해서요. 가게 주인이 좋으냐, 나쁘냐에 따라서 장사가 정말 많은 영향을 받아요. 가게 주인이 심심하면 찾아와서 트집잡고 집세 올리고 하면, 정말 골치 아파요. 사실 요즘은 정말 실력을 갖췄으면 좋은 장소 같은 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요. 요즘은 손님들이 다 찾아오잖아요. 조금만 뜨면 어디든 찾아오는 게 식당이에요. 음식만 좋으면 주차 시설 같은 건 문제되지 않아요. 기본이 갖춰진 다음에 가장 중요한 건, 가게 주인이에요.

 

요즘 홈쇼핑에도 진출하셨어요. 칠리새우를 비롯해서 탕수육이 나왔고, 최근에는 셰프님 이름을 딴 짜장면도 출시됐습니다. 그런데 사업이라는 게 잘되면 좋지만, 사고가 많이 나잖아요. 소비자는 셰프님의 이름을 믿고 구입할 텐데 말이에요.


우선 출시 전에 제가 시식을 철저하게 했어요. 교정할 게 있으면 일일이 다 따져봤고요. 저와 계약이 끝날 때까지 유지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문제가 생기면 제약을 붙일 수 있도록 조건을 갖췄고요. 탕수육은 판매되기까지 네 번이나 불합격했어요. 칠리새우도 다섯 번쯤 다시 만들었고요. 철저하게 관리했습니다. 그렇지만 모두를 만족시킬 순 없겠죠. 열 명에 한 명 정도는 마음에 안 들겠죠. 세상이 그러니까요. 정치도 마찬가지잖아요. 여당에 들어가면 야당에게 뭐라고 하고, 또 그 반대파도 있고요. 어디서나 어느 정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합니다.

 

‘목란’의 메뉴도 계속 개발하고 계시는지도 궁금합니다.


일부러 연구를 한다든가 하는 건 없어요. 메뉴를 살짝 섞어본다든지, 요리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어요. 다만 다른 중식집과는 차별성을 갖고 가려고 해요. 될 수 있으면 다른 음식점에서는 팔지 않는 메뉴를 소개하려고 해요. ‘목란’의 만두 같은 경우는 한국식와 일본식, 중국식이 다 섞여 있어요. 일본 사람들은 양배추를 많이 쓰거든요. 일본에 있을 때 먹었던 만두에 좋은 인상이 있어서, 만두를 만들면서 양배추를 많이 넣어 봤어요. 한국 사람들은 매콤한 맛을 좋아하니까 청양고추도 좀 넣어 봤고, 고기 반죽 자체는 중국식이에요. 우리 식당 만두가 굉장히 인기가 있어서 수요를 따라갈 수가 없어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만두도 예약제로 받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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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사람들이 많이 읽어 주면 좋겠어요


책을 쓰면서는 어떤 생각을 많이 하셨어요?


울컥울컥했죠. 항상 인상에 남는 건 친구들, 사람들이에요. 제가 친구, 선배들한테는 엄청 의리 있게 했거든요. 그런데 제가 정작 힘들었을 때, 손을 내밀어주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게 마음에 쓰여요. 지금도 사석에서 술자리 같은 모임이 있을 때, 저는 솔직하게 이야기해요. 옆에 선배들이  있어도 “선배, 정말 재수 없었어”라고요. 욕도 하고 그래요.

 

가족에 대한 미안함도 많이 묻어나더라고요.


미안한 게 많아요. 고생도 많이 했고. 그래서 요즘은 가족들한테 원하는 거 뭐든지 얘기하라고 해요. 다 들어준다고. “난 힘들어도 좋아. 너네만 행복하면 돼”라고 했어요. 최근에 아내한테 “정말 당신이 하고 싶은 게 뭐냐?”라고 물었더니, “차를 바꾸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바꿔줬어요. 두 달 전쯤에요. (웃음)

 

아내 분이 셰프님이 식당에 없을 때는 ‘주방장’ 역할을 하신다고 들었어요.


가만히 못 있는 성격이에요. 식당에 나오면 정말 일이 힘든데, 그걸 항상 하고 있어요. 그런데 정말 잘해요.

 

추천사 이야기도 좀 묻고 싶습니다. 박찬일 칼럼니스트가 써주셨는데요. 오랜 인연을 갖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특히 이 글귀가 인상적이었어요. “짜장면 먹고 가. 그게 형 마음의 정수다.”


글을 딱 보는 순간, 눈물이 팍 쏟아졌어요. 바로 문자를 보냈어요. “이 썩을 놈이 왜 사람을 울컥하게 만들고 그러냐”고. 박찬일은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는 사이인데, 제가 생각할 때는 그 친구가 불쌍해 보였는데, 그 친구는 저를 불쌍하게 생각했나 봐요. (웃음) “너나 좀 잘해”라고 그랬죠.

 

책 곳곳에 좋아하는 사람들 이야기를 많이 쓰셨어요. 방송으로 알게 된 최현석 셰프 이야기를 할 때도 이름 앞에 ‘내가 좋아하는’을 붙이셨는데요. 뭐랄까. 사람에 대한 배려가 느껴졌어요.


옛날에 제가 사람들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어요. 일본에 들어가게 된 결정적인 계기도 주위 친구들을 좀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어서예요. 제가 어릴 때는 철이 없고 사람 사귀는 걸 좋아해서 주변에 사람을 많이 뒀는데, 정작 끝판에 저에게 도움이 되는 친구들이 별로 없었어요. 제가 어렸을 때부터 직장생활을 오래해서 다른 친구들보다는 수입이 항상 좋았어요. 대사관에 일할 때, 친구들은 50,60만 원 벌었는데 저는 250만 원 정도 벌었으니까요. 돈을 헤프게 썼죠. 술 잘 사주고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주변에 친구들이 많이 몰렸는데, 정작 쓸모 있는 친구는 없었어요. 그러다가 일본에서 일하게 되면서 사람 사귀는 법, 겸손한 태도 같은 걸 배우게 됐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일본에서 10년을 보낸 게 정말 큰 도움이 됐어요. 지금 제 입에서 나오는 사람들은 거의 좋은 사람들이에요.

 

SNS 활동도 꽤 열심히 하시는데요. 굉장히 귀여운 말투로 글을 쓰시더라고요.


(웃음)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이니까요. 일본에서 다시 한국으로 왔을 때, 좋은 사람들을 정말 많이 만나게 됐는데요. 그 사람들이 제 주위에 있다는 게 정말 행복해요. 제가 지금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는 것도 저 혼자의 힘이 아니에요. 주위에서 같이 도와주고 응원해주신 분들 덕분이에요.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다 마음을 전하고 싶지만 그렇게 못하니까, SNS에 글을 올리면 ‘그 분들이 다 보겠지’ 그런 마음으로 쓰는 거예요.

 

요리를 업으로 하고 있다면, 『사부의 요리』가 여러모로 도움이 되겠다 싶었어요. 또 어떤 독자들이 이 책을 읽으면 좋을까요?


젊은 사람들이 많이 봐주면 좋겠어요. 앞으로 굉장히 험난한 길을 헤쳐나가야 하잖아요. 방송에서는 셰프들의 모습이 화려해 보이지만 실상은 정말 고생을 많이 해요. 지금에 와서야 여러 스타 셰프들이 있지만, 방송에서 비쳐지는 모습이 그냥 생긴 게 아니라는 걸, 그 과정이 얼마나 험난하고 어려운지를 젊은 분들이 많이 아셨으면 좋겠어요. 그런 부분에 있어서 이 책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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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부의 요리이연복 저 | 웅진지식하우스
그의 인생과 요리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 《사부의 요리》는 오랜 시간 주방을 지켜오면서 같은 일을 수없이 반복하고, 수없이 연구해온 한 장인의 전부가 담겨 있다. 칼질 하나를 수백 수천 번 연습했을 젊은 날, 뜨거운 불과 상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웍을 휘두르는 지독한 성실함. 누구의 도움 없이 자신만의 요리와 가게를 키워낸 뚝심. 이 책에는 그 인생의 비법이 여기 담겨 있다. 평범하게 그지없는 짜장면 한 그릇도 땀과 세월이 담기면 삶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이연복. 《사부의 요리》를 통해 인생에 대한 정직하고 우직한 마음가짐을 만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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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수진 “미친 건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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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피’라는 이름으로 친숙한 가을방학의 보컬리스트 임수진이 첫 번째 에세이 『언젠가 너에게 듣고 싶은 말』을 출간했다. 그녀가 들려주는 소소한 일상은 나와 당신의 것처럼 낯설지 않다. 누군가를 만나고, 관계를 맺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으려는 순간들이 이어진다. 너무나 평범해서 시시하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언젠가 너에게 듣고 싶은 말』에서는 작게 빛나고 있으니, 이상한 일이다.

 

아마도 그녀 특유의 감성 때문일 거라고, 미루어 짐작한다. 따뜻한 듯 서늘하고 달콤한 듯 쌉싸름한 목소리는 ‘계피’의 노래 속에만 있지 않았다. 언젠가 너에게 듣고 싶은 말』의 책장 사이사이에도 스며있었다. 이번에도 그녀는 덤덤하게 읊조리듯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러면서도 뜨거운 감정은 뜨거운 대로, 서글픈 순간은 서글픈 대로 담아냈다. 이 또한 묘한 일이라 할 수밖에.

 

『언젠가 너에게 듣고 싶은 말』에는 여백이 많다. 구태여 많은 설명을 덧붙이지 않는 까닭이다. 그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독자들의 이야기다. 임수진의 순간들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크게 다르지 않았던 나의 감성들이 떠오른다. 그렇게 그녀의 이야기 위로 나의 이야기가 겹쳐진다. 시월의 첫 날, 그녀와 함께한 시간들도 마찬가지였다. 사랑하고 살아가는 평범한 일들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고, 그녀만의 것이 아닌 나와 당신의 이야기가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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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피’ 아닌 임수진의 이야기


첫 책을 출간하신 소감이 궁금합니다.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고민도 많이 하셨을 것 같은데요. 어떠셨나요?


책이 나와서 굉장히 설렌다기보다는 덤덤한 것 같은데요(웃음). 그건 앨범을 낼 때도 마찬가지예요. 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미리 콘셉트를 정해놓지는 않았고요. 손이 가는 대로 썼어요. 저희는 앨범 작업을 할 때도 콘셉트를 잡아놓고 시작하지는 않거든요. 제가 아는 많은 뮤지션들도 일단 곡을 쓴 다음에 좋은 걸 고르시더라고요. 콘셉트를 확실하게 정해놓고 작업하시는 분들도 많이 계시겠지만요.

 

『언젠가 너에게 듣고 싶은 말』에서 일상적인 순간과 감정들에 대해 이야기하셨습니다. 특별함이 아닌 평범함을 선택하신 이유가 있나요?


‘어떤 이야기인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은 아닌 것 같아요. 같은 경험을 하더라도 그 안에서 감정을 얼마나 세밀하게 느꼈는지, 그 경험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지에 따라 다르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개인적으로 이야기의 구성이 기상천외한 것들을 선호하는 편이 아니기도 하고요. 특별한 경험도 흥미롭기는 하지만, 저는 조금 다른 종류의 것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아닌가 합니다.

 

지난해에는 정바비 씨가 산문집 『너의 세계를 스칠 때』를 출간하셨잖아요. 이번 책을 준비하시면서 조언을 구하기도 하셨나요?


‘다른 분들은 사적인 이야기를 많이 쓰시던데, 그 정도를 어느 선에서 조절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물어봤었어요. 바비는 ‘그래서 나는 전혀 쓰지 않아’라고 하더라고요(웃음). 피드백을 받고 나서 조금 포함시키기는 했는데, 본인이 전하고 싶었던 주된 내용은 아니었다고 이야기했던 기억이 나요.

 

『언젠가 너에게 듣고 싶은 말』에는 개인적인 이야기가 많이 담기지 않았다고 생각하세요? 


바비가 그런 조언을 하기는 했는데요. 바비랑 저는 워낙 다른 종류의 사람이라서요(웃음). 바비 책과 제 책도 많이 다른 것 같아요. 『너의 세계를 스칠 때』를 보면서도 ‘이 사람은 정말 나랑 다른 사람이구나’하고 생각했어요(웃음).

 

주로 어떤 부분에서 그런 차이를 느끼세요?


일단 바비는 세상에 관심이 많죠. 「취미는 사랑」의 가사에도 ‘내가 취미로 모은 제법 값나가는 컬렉션’이라는 부분이 있잖아요. 바비는 수집가예요. 경험도 수집하고 물건도 수집하고, 여러 가지로 수집을 많이 해요. 그런데 저는 수집에 큰 관심이 없거든요. 경험의 수집에 있어도 마찬가지예요. 저는 여행도 잘 가지 않아요. 바비는 1년에 몇 번씩 가거든요. 저와는 다른 사람이죠.

 

일상적인 이야기를 들려주다 보면 나라는 사람이 드러날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 점에서 책을 쓰시는 동안 ‘나를 어디까지 보여줘야 하나’라는 고민을 하셨을 것 같아요.


두렵다고 생각했었는데요. 친구들에게 원고를 보여주면서 ‘이건 너무 부끄러운 경험 아닐까?’라고 말했더니 ‘왜? 다 그런 거 아냐?’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더라고요. 그래서 ‘꺼내놓고 나면 다 별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하기는 했어요.

 

독자 분들은 책 속에서 가을방학의 감성을 발견하게 될까요? 


가을방학의 감성이랑 닮아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보컬이라는 정체성과는 닮아있는 부분이 많지 않나 생각해요. 저는 담담한 보컬이라는 평가를 받거든요. 많이 절제가 되어 있으면서 그 안에서 미묘한 것들을 담아내는 것 같다고요. 『언젠가 너에게 듣고 싶은 말』도 그런 느낌이 아닌가 싶어요. 이를테면, 제 보컬은 딱히 특별할 게 없기는 해요. 바이브레이션을 넣는 것도 아니고 엄청난 성량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기교도 없고요. 그런 게 책에도 적용이 될지는... 보시는 분들이 판단하시겠죠(웃음).

 

『언젠가 너에게 듣고 싶은 말』은 기교 없이 담담하게 써내려 간 이야기라고 볼 수 있겠네요.


네, 그런데 노래는 담담하기만 해서 좋은 건 아니잖아요. 담담하면서도 그 안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떨리는 무언가가 있어서 전해져야 좋은 노래가 되는 거죠. 말하듯이 노래를 부르는 게 장점이 되려면, 단순히 말하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고, 그걸 통해서 상대에게 어떤 감정을 촉발시켜야 하는 거잖아요. 책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판단은 독자 분들이 하실 테지만요.

 

‘계피’가 아닌 ‘임수진’으로 책을 쓰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계피는 음악을 위한 예명이고요. 이 책은 음악과는 크게 관련이 없어요.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쓰지도 않았고요. 그래서 계피가 아닌 임수진으로 나와야 된다고 생각했죠. 책을 통해서 가을방학에 대해 더 이해하고 싶거나 음악 이야기를 더 듣고 싶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에게는, 책이 기대에 못 미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평소에 저라는 인간에 대해서 보고 싶으셨던 분들이라면 이 책을 보실 수도 있겠죠. 어떤 독자 분께서는 책을 다 읽어도 제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다고 하시던데, 그건 무척 잘 파악하신 거예요(웃음). 제 친구들한테도 가끔씩 그런 이야기를 듣거든요. 그 자체가 저의 특성인 것 같기도 하고요. 그게 책에 그대로 반영이 됐을 수도 있겠죠. 그래서 제가 노래를 그렇게 부르는 것 같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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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건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책 중간 중간 뮤지션이기에 고민하는 부분들도 눈에 띄는데요. 그 중 하나가 음색에 대한 고민인 것 같아요.


이를테면 배우들이랑 비슷한데요. 사람들이 기대하는 역할이 있어서 계속 비슷한 인물만 연기하게 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러면 배우는 갈등을 겪으면서 연기 변신을 하는데, 그 시도가 성공적인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저는 무리하게 노력했기 때문에 그런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만약 지금까지와는 다른 연기를 할 수 있다면, 그건 때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돼요. 아직 때가 되지 않았는데 억지로 하다 보면 보는 사람이 거부하는 거죠. 배우가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보이니까요. 물론 다른 경우도 많이 있겠지만, 그래서 좋지 않은 성과를 얻게 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아요. 뮤지션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고요.

 

“미친 건 사랑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미친 건 그냥 미친 거다”라는 이야기도 들려주셨어요(웃음).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건 한 때 정말 미쳐봤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요. 어떠세요?


그렇죠(웃음). 정말 세게 사랑을 했던 적도 있었죠. 그때는 사랑을 통해서 이루고자 하는 게 당연히 상대의 사랑이라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정말 많더라고요. 이를테면 나는 자존감이 필요한데 상대가 나를 많이 사랑해주면 자존감이 느껴지는 것처럼 생각이 드는 거죠. 그런데 자존감을 느낄 수 있는 통로는 정말 많거든요. 많아야만 하고요. 자기 능력을 통해서 자존감을 가져야 하니까요. 그런데 저도 그렇고 대부분의 여자들이 연애 관계를 통해서 자존감을 느끼려고 하는 것 같아요. 당연히 저도 거기에서 다 벗어나지 않았고요.

 

미치지 않고 사랑하려면 조금 더 힘을 빼고 조금 덜 욕심내야 하는데, 말처럼 쉽지가 않잖아요. 결혼하신 후에는 잘 실천하고 계신가요(웃음)?


당연히 잘 안 되죠. 잘 됐으면 그런 이야기를 쓰지도 않았을 거예요. 그런 생각을 할 필요도 없을 테니까요. 잘 되지 않으니까 생각을 많이 하고 노력도 하고, 그러다 보니까 생각이 의식 속에 자리 잡게 되고, 책에도 쓰게 된 거겠죠. 아마 심리학자들도 자신이 상담해주는 문제들을 완전히 넘어선 건 아닐 거예요. 그랬다면 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을 테니까요.

 

『언젠가 너에게 듣고 싶은 말』을 읽으면서 남편 분에 대한 애정이 흠뻑 묻어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끔 그런 생각도 들어요. 이 사람을 왜 이렇게 좋아하는 걸까(웃음).

 

동시에 평범한 결혼 생활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셨어요. 때론 다투기도 하고, 등 돌린 채 잠들기도 하는 일상들이요.


같이 살면 연애할 때와는 조금 달라지는 부분들이 있죠. 깨 볶는 신혼이라는 건 신화 같아요. 사람들에게 아무리 물어봐도 그런 종류의 신혼을 보낸 사람은 없어요(웃음). 깨는 볶죠. 그런데 깨만 볶지는 않아요. 생강 물처럼 톡 쏘는 것도 있고요. 깨만 볶으면 그건 이상한 거예요. 제대로 연애를 안 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생각해요. 연애를 하다 보면 자신의 콤플렉스가 전부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상대를 탓하기도 하고 스스로 미워지기도 하잖아요. 그런 모습들이 드러나야 제대로 연애를 하는 것 아닐까요?

 

연애할 때와는 달리 결혼이 주는 무언가가 있을 것 같아요.


저는 결혼을 통해서 한 시대를 마무리 짓고 성장하고 싶었어요. 연애를 할 때는 상대가 내가 싫어하는 일을 하면 그냥 밀어내서 헤어져버릴 수 있지만 결혼은 그렇지 않잖아요. 여러 가지 대응 방식을 취하게 되죠. 설득을 해서 푼다든지, 나도 똑같이 화를 낸다든지, 참는다든지, 그냥 웃어준다든지, 다양한 방식들이 있죠. 저는 쉽게 헤어질 수 없는 울타리가 사람의 성장을 담보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고통을 피하고자 하는 건 본능이니까, 관계에 문제가 생기면 그냥 헤어져버리고 말잖아요. 새로 연애를 시작하는 좋은 기분을 다시 느끼고 싶으니까요. 그런데 아무리 연애를 해도 사람 간에 나누는 감정은 비슷비슷한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저를 새로운 틀 속에 넣어보기로 한 거죠.

 

뮤지션도 아니고 아내도 아닌, 서른세 살의 평범한 여자 임수진으로서 고민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인생이 너무 짧다는 생각을 해요. 벌써 서른셋이라는 게 믿겨지지 않아요(웃음). 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뭘 했을까, 헛살았구나, 그런 생각을 가끔 하죠(웃음). 많은 걸 이룬 것 같지만 꼼꼼히 따져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고, 내가 그 일들에서 정말 만족감을 느꼈는지 정직하게 물어보면 그런 것도 아닌 것 같아요.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들었어요. 젊은 네가 지금 행복하지 않은데 더 나이 들어서 몸이 아플 때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냐고요. 지금 행복하지 않으면서 그때 더 행복할 거라는 상상을 버리라고 하더라고요. 그 말을 들은 후로는 지금 젊을 때 나의 심리적인 장애들을 넘어서지 않으면 나중에는 더 힘들겠다는 생각을 해요. 다른 한편으로는, 이십 대 때 제가 너무 불행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지금이 제일 행복해요. 청춘도 역시 신화인 것 같아요. 그렇게 많은 시트콤들이 아름다운 공동체와 연애를 그리고 있는 건, 그런 걸 누리는 사람이 없기 때문인 거죠.

 

이십 대에 행복하지만은 않았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렇게 기억하시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어떻게 보면 저의 이십 대가 한국사회의 성과주의에 희생된 것 같기도 해요. 성과주의의 특성은 아무리 해도 더 해야 된다는 거잖아요. 겉에서 보기에 저는 학력도 나쁘지 않고 밴드도 잘 되고 있었는데도, 그런 걸 하면서 성취감을 느끼기 힘들었어요. 지금보다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런데 그건 끝이 없거든요. 성과주의의 특성은 현실에서 내가 어떤 것을 이루었든 얼마나 열심히 했든 상관없이 더 뽑아내는 게 아닐까 싶어요. 저는 그게 지금 십 대 이십 대의 자살률로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해요. 성적 때문에 죽는다는 게 진짜 문제가 아니라, 뼛속까지 스며들어있는 더 잘해야 된다는 강박을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거라고 생각돼요. 그걸 공감해주는 사람이 없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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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너에게 듣고 싶은 말』그리고 『세 번째 계절』


‘이만큼 했으면 됐다’는 생각을 갖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왠지 그러면 안 될 것 같고, 그럴 시간에 더 노력해야 할 것 같은 강박이 있는 거죠.


저도 마찬가지거든요. 노래를 아무리 해도 할수록 더 힘들어요. 노래를 100번 1000번 부르는 동안 어떻게 항상 그 감정 속에 있을 수 있겠어요. 그런데 노래 부를 때는 그렇게 해야 되거든요. 가끔씩은 관객들이 나를 평가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죠. 아무리 해도 관객을 만족시키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거든요.『언젠가 너에게 듣고 싶은 말』에서 이야기한 평범한 불행이라는 건, 평범한 것이라기보다는 만연되어 있는 불행이라고 생각해요. ‘의식주도 풍족하고 문제가 없는 것 같은데도 왜 불행한가’라는 생각말이죠. 뭔가 공허한 거죠.

 

그 이유가 뭘까요?


심리학에서는 결핍을 삶의 추동력으로 삼았던 부모 세대가 자식들에게 ‘더 해야 된다’는 콤플렉스를 물려줬다고 이야기하더라고요. 부모가 자녀를 양육하는 방식은 그 자녀의 자녀에게까지 이어지고, 콤플렉스도 대물림 된대요. 아래 세대로 내려올수록 콤플렉스는 더 심해지고요. 그런데 부모 세대에게는 ‘더 해야 된다’는 콤플렉스를 가져야 할 이유가 있었어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굶어 죽었으니까요. 그런데 그 자녀들은 그렇게 해야 할 이유도 없는데 콤플렉스만 남아있는 거예요. 제가 생각하는 평범한 불행이라는 건 그런 종류의 불행이었던 것 같아요. 어딘가 부족하다, 더 잘해야 될 것 같다, 그런 생각으로 인해서 겪게 되는 것들이죠.

 

『언젠가 너에게 듣고 싶은 말』을 쓰시면서 ‘내 생각이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구나’라고 느끼신 부분도 있었나요?


드러낸다는 게 무엇인가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한 것 같아요. 저는 지금까지 무언가를 드러내지 않았었잖아요. 노래도 드러내지 않는 방식으로 드러내는 걸 택했고요. 미묘한 전략으로 대중문화계에서 생존한 느낌인데요(웃음). 드러낸다는 게 뭔가, 라는 생각을 했죠. 제가 얻게 된 교훈은, 드러내지 않으려고 하는 마음의 벽을 치우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는 거예요. 드러내려고 한다고 해서 드러나는 게 아니고요. (의식적으로) 드러내려고 하면 이미 의도가 반영되어서 과장되는 것 같아요. 이번 책에서 영향을 받아서 부른 가을방학 3집도 마찬가지였어요.

 

지난달에 가을방학의 3집 『세 번째 계절』도 발매가 됐는데요. 이번 책이 많은 영향을 미쳤나요?


정말 많은 영향을 줬어요. 책을 쓰면서, 감정이라는 게 드러내지 않으려고 하지만 않으면 드러난다는 걸 알게 됐는데, 노래할 때도 그 점을 생각했어요. 이번 앨범에 실린 「이별 앞으로」 같은 곡은 더 감정을 담아서 부르려고 했었는데요. 그렇게까지 하면 듣기에 좋지 않더라고요. ‘감정을 느껴서 드러내야지’ 하고 생각하고 녹음했을 때는 좋지 않았고요. 느끼는 대로 했을 때는 자연스럽게 나오더라고요. 그게 정말 너무 어려워요(웃음). 저는 관객이 무서운 걸 알거든요. 관객은 제가 뭘 느끼고 있는지 이야기하지 않아도 다 알아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절 보고 있잖아요. 관객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알아채요. 그 분이 제 기분을 알고 있다는 걸 제가 어떻게 아는지도 설명할 수는 없어요. 그렇지만 관객들은 알아요. 남겨주신 리뷰를 봐도 아시는 것 같고요. 제가 긴장을 했는지 안 했는지도 아세요. 그런 건 절대 숨길 수 없다고 생각해요. 제가 노래를 부를 때 감정을 밀어내려고 하면 그것도 알아요. ‘뭐가 안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별론데’ 하고 생각하시는 거죠.

 

한 인터뷰에서 “음악적인 부분에 있어서도 음악에서보다 책에서 더 영향을 받는 것 같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똑같은 책을 반복해서 읽는 걸 굉장히 좋아했거든요. 그래서 박학다식하게 알지는 못하는데요(웃음). 책을 읽으면서 보낸 시간 자체는 많은 편인 것 같아요. 어렸을 때는 동화책을 많이 읽었어요. 민음사의 60권짜리 동화전집이요. 그리고 이십 대가 되면서부터는 똑같은 책을 계속 읽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어렸을 적 쌓인 동화적인 감성이 음악 작업에도 영향을 주었을까요?


아무래도 그렇겠죠. 제가 정바비라는 송 라이터를 선택한 이유를 생각해 보면, 멜로디도 무척 좋지만 가사가 정말 좋았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해요. 바비 씨의 가사는 호불호가 나뉜다고 생각하는데요. 오버그라운드에서는 그런 식의 가사를 쓰지 않잖아요. 바비의 가사는 상당히 문학적이죠. 장식이 많고, 에둘러서 표현하기도 하고, 그러면서 새로운 효과를 내기도 하고요. 책들을 읽으면서 그런 부분을 바라보는 눈과 취향이 생겼겠죠. 그렇지 않았다면 전혀 다른 종류의 음악을 받아서 불렀을 수도 있겠죠?

 

어떤 노래로 기억되는 뮤지션이 되고 싶으세요?


앨범을 낼 때 어떤 사람이 들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마찬가지로 책도 어떤 사람이 읽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어요. 어쩌면 처음부터 뮤지션을 목표로 삼았던 게 아니라서 그런지도 모르겠어요. 자연스럽게 흐름을 타다 보니까 뮤지션이 된 거고, 그래서 더 목표가 없는 것 같기도 해요. 책 역시 어떤 목표 지점을 두고서 쓴 게 아니거든요. 자연스럽게 흘러서 분량이 쌓이니까 출간하게 된 거예요. 가을방학 앨범이랑 똑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진 거거든요. 책을 써야겠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목표는 없었어요. 어떤 음악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마음도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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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너에게 듣고 싶은 말임수진 저 | 달
1983년생, 여자, 대학교 졸업, 대학원 졸업, 앨범 몇 장을 낸 가수인 그녀는 보통의 사람과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사람이다. 학교를 졸업하고, 친구를 사귀고, 연애를 하고, 업으로 삼는 일이 있으며, 결혼도 하게 되는 여성이다. 30대에 접어들기까지 그녀가 경험한 것들과 마주하는 광경들은 다른 사람들의 것과 특별히 다를 것 없이 평범하다. 그녀는 그녀의 일상이 어떻게 흘러왔는지를, 아주 일상적인 시선으로 관찰하여 적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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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재, 피케티의 해법은 사회를 가난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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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보수를 표방하는 정규재 한국경제신문 주필이 『세상의 거짓말에 웃으면서 답하다』를 출간했다. 이번 책은 지난해 출간한 『닥치고 진실』에 이어 다시 한 번 ‘정규재 TV’의 내용을 엮은 것이다. 2012년 시작한 인터넷방송 ‘정규재 TV’는 누적 시청자 2,500만 명을 기록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30년 경력의 베테랑 기자가 날카로운 시선으로 파헤치는 뉴스 이면의 이야기가 시선을 잡아 끌었던 것. 그 열기에 응답하듯 저자는 올해 7월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정규재 뉴스’를 선보였다. 정규재식 뉴스 읽기에 매료된 시청자의 숫자는 하루 평균 10만 명에 달한다.

 

『세상의 거짓말에 웃으면서 답하다』에는 2014년부터 2015년까지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궜던 현안들에 대한 통찰이 가득하다. 단통법 시행, 무상복지와 공무원연금 개혁을 둘러싼 논란, 세월호 참사로 드러난 언론의 문제점 등 난해한 사건들에 대해 명쾌한 해석을 들려준다. 그 속에는 저자가 이야기하듯 ‘진짜 보수’의 시선이 녹아있고, 독설도 마다하지 않는 따끔한 지적이 담겨있다.

 

세계는 점점 나빠져서 도처에 가난이 넘치고 환경은 파괴되며, 인간성은 갈수록 메말라가고 있다는 잘못된 주장들이 너무도 널리 퍼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 생각은 너무도 많아 그렇지 않다는 말을 듣는 것이 오히려 불편한 일이 되고 말았다. 그런 주장들은 지구에 대한 잘못된 해석이고 우리의 삶을 너무도 가볍게 보는 감각의 착각이며, 지각의 오류라는 것이 이 책의 골자다. (『세상의 거짓말에 웃으면서 답하다』 11~12쪽)

 

인터뷰를 시작하며 저자는 우리 언론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사실 관계조차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외신들의 보도를 해석해서 전달하는 데 급급하다는 이야기였다. 이러한 현실은 ‘정규재 TV’와 ‘정규재 뉴스’를 시작하게 된 계기였고, 많은 이들이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주목한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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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시대예요


우리 언론이 외신을 인용 보도하는 데 그치고 있다는 말씀은 충격적으로 다가옵니다. 어쩌다 이런 상황이 된 걸까요?


우리 국민들 자체도 그런 뉴스를 원치 않아요. 진실을 원하지 않아요. 그저 붕붕 떠다니는 이야기만 원하는 거죠. 사실에 기반 한 진지한 기사를 원하는 것 같지 않아요. 제가 느끼기에는 우리 사회가 원래 그런 사회 같습니다.

 

‘뉴스가 잘 팔리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게 원인일까요?


그런 것도 있고 언론이 추구해야 될 본질을 잊어버린 것도 있죠. 언론인들 스스로가 갈수록 인적 구성에서부터 천박해진다고 할까요. 아니면 반지성적인 성향을 많이 가지게 되었다고 할까요. 질이 많이 떨어지죠. 그 점을 느끼게 돼요. 예를 들어서, 이건 굉장히 민감한 얘기이기도 하지만, 고노 담화 이후에 일본이 위안부들에게 천 엔 상당의 금품으로 배상하고 총리 이름으로 된 사과문을 일본의 공무원들이 전달했다는 것을 아는 국회의원이 몇 명이나 있을까요? 물론 어떤 경과를 거쳐서든지 간에 그 배상을 거절한 할머니들도 많지만, 우리가 아는 게 뭐가 있냐 이거죠. 뭘 가지고 요구하고 있냐 이거죠. 예를 들어서 왜 일본이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항의 하는지, 그에 대한 일본 측 주장을 아냐 이거에요. (그걸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냐고요. (우리가 가진 생각은) 그저 일본 놈들이 땅에 욕심이 나서 미친 주장을 하고 있다는 거지, (제대로 아는 게) 뭐가 있냐는 거예요.

 

그런 점에서 많은 분들이 ‘정규재 TV’와 ‘정규재 뉴스’를 대안 미디어로 여기시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대안의 지위까지는 턱도 없고요. 그저 소수의 지식이 필요로 하는 거죠. ‘정규재 TV’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반응들을 보면 ‘정규재 뉴스를 보다가 KBS 뉴스 같은 걸 보면 오락프로 같다’고 평가하는 사람이 꽤 있어요. 거기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뉴스가 없어요. 지식도 없고요. 어제(10월 5일)만 해도 굉장히 중요한 국제 뉴스들이 많았는데 KBS 뉴스 같은 경우는 김무성과 서청원의 갈등, 한강에 사람이 빠져 죽은 사건, 이런 뉴스로 다 채웁니다. 그게 대한민국이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데 무슨 지식이 되겠냐는 거죠. 뉴스가 코미디 프로처럼 또는 싸구려 정치를 중계하는 것처럼 변질되고 있는 거죠. 종편들도 마찬가지예요. 종편이 그런 틈새를 메울 거라고 나왔는데 싸구려 논평가들이 나와서 정치 갈등이나 부추기고 있죠.

 

『세상의 거짓말에 웃으면서 답하다』라는 제목을 보면, 세상에 거짓말이 너무 만연되어 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거짓말들이 많죠. 힐링이라면서 등장한 청춘 멘토들이 하는 얘기들 중에 대부분은 거짓말이에요. 안철수를 비롯해서. 안철수는 개인에 대해서도 많은 거짓말을 해서 사람들의 비웃음을 샀지만, 그런 거짓말을 사소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죠. 그런데 그건 사소한 문제가 아니에요. 가족에게 알리지도 않고 군대에 갔다, 이런 얘기는 새빨간 거짓말이죠. 문제는 자기 개인에 대해서 거짓말할 뿐만 아니라 청년들에게 세계관에 대해서도 거짓말을 한다는 겁니다. 옛날에는 살기 좋았는데 지금은 살기 어려워진 것처럼 얘기한다든가, 옛날에는 일자리가 많았는데 지금은 일자리가 없어진 것처럼 얘기한다든가, 다 거짓말이에요. 예를 들어서, (영화) 국제시장에 광부로 간 이야기가 나오는데, 다 대졸자들끼리 모여서 박터지게 경쟁해서 갔습니다. 그 당시에는 대졸자들이 갈 수 있는 직장이 은행 정도 말고는 없었어요. 그런데 옛날에는 일자리가 굉장히 많았던 것처럼 ‘요즘은 일자리가 없어서 미안하다’는 식의 이야기를 떠들고 다니는데, 그건 청년들의 정신에 마약 주사를 주는 것과 똑같아요.

 

책의 서문에서 세상은 느릴지언정 조금씩 좋은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반문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 같은데요. 세계적으로 성장이 정체되어 있고 많은 국가들이 높은 실업률로 시름하고 있지 않습니까? 과연 세상은 점점 더 좋아지고 있는 걸까요?


좋아지고 있어요. 한국이 기대보다 덜 좋아지고 있는 거고 선진국들이 기대보다 덜 좋아지고 있는 거죠. 그런데 세계 전체로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중국과 인도에서 매년 4천만 명이 중산층이 되고 있거든요. 이렇게 중산층이 늘어나고 많은 사람들이 가난으로부터 벗어난 시대가 없었습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시대가 지금이에요. 중국 사람들이 한국에 놀러 와서 돈 쓰고 제주도 땅을 사고, 이렇게 먹고 살만하게 된 인간이 많이 생겨나고 있잖아요. 문제는 우리 사회가 우리가 기대했던 만큼 좋아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 조급증 때문에 나빠지고 있는 것처럼 인식하는 것이지, 세계 전체가 나빠지고 있는 건 아니죠. 우리 기대만큼 좋아질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을 만들자는 것이 우리의 바람이고 그걸 위해서 노력해야 되는 것이지, 세상을 저주한다고 무슨 해법이 나오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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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케티의 해법은 사회를 가난하게 만든다


책의 부록으로 “자유시장경제는 어떻게 우리를 풍요롭게 하는가?”라는 제목의 글을 실으셨습니다. 시장경제를 대체할 새로운 체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시장경제 체제는 대체되는 것이 아니고 오랜 삶의 방식이기 때문에 잘 지켜나가야 되는 가치예요. 시장경제 체제만큼 정의로운 체제는 없습니다. 우리는 국가가 자애로운 신처럼 국가가 뭔가를 조정해 주기를 바라지만 국가는 그랬던 적도 없고 그런 건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요. 시장경제는 굉장히 거칠고 치열한 경쟁처럼 보이지만 가장 공정한 겁니다. 그 동안 자본주의와 대 자본을 욕하면서 골목 상권과 전통 시장과 중소기업을 보호해야 된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지금 그것들이 보호되었어요. 그 결과 우리에게 남아있는 일자리라고는 시급 알바 비정규직 밖에 없죠. 거기에는 다 그런 일자리뿐이니까요. 그런데 우리 젊은이들이 2만 달러 3만 달러에 커서 골목 슈퍼마켓, 전통 시장, 작은 영세 기업에 가서 일하고 싶냐는 거예요. 큰 데에 가서 일하고 싶으면서 그걸 키울 생각을 해야죠. 사회적 자본 다 끌고 가서 죽어야 될 것을 못 죽게 하면 어떡하나요?

 

또 다른 이유가 있을까요?


또 하나는 이런 거예요. 교육이 썩어가지고 공부 열심히 하지 마라, 적당하게 하자, 이런 이야기를 하잖아요. 그런데 어떤 직업이 연봉 1억을 받을 수 있는지 생각해 보자는 거예요. 연봉을 그만큼 받으려면 어떤 분야에 전문성이 있다고 인정해야 되잖아요. 그런데 왜 그런 공부는 안 하려고 하면서 연봉은 높여 달라고 하냐는 거죠. 연봉 10억을 받고 싶으면 그만큼 전문적 지식으로 무장이 되어야 하고, 대학은 그런 교육을 해야 되거든요. 그런데 그런 교육을 못하게 하잖아요. 등록금을 반값으로 줄이자고 하는데 대학 등록금이 낮아지면 좋은 교수가 들어오나요? 그러면서 무슨 좋은 연봉을 바라요. 그러면서 세상이 뜻대로 안 되니까 시장경제가 나빠서 그렇다고 해요. 바보들 아니에요? 대부분 머리 나쁜 애들이 시장을 욕해요. 공부하기 싫은 애들이 시장을 욕해요. 국민들도 그래요.

 

시장경제 체제를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국가들은 어떤가요?


덜 떨어진 국가일수록 시장경제를 하지 않으려고 하거든요. 아르헨티나 브라질 러시아처럼 자원 많은 나라일수록 시장경제를 하지 않으려고 하죠. 자원은 공짜로 나오는 거니까요. 열심히 공부하고 기술을 익히고, 그래서 직업을 가지고 연봉이 많이 받아야 중산층이 되거든요. 중산층이 많은 나라가 좋은 나라잖아요. 그런데 자원이 많은 나라는 그렇게 안 해도 되죠. 공짜로 자원이 나오니까요. 그 자원을 독점한 소수의 재벌과 기타의 민중이 대립하는 사회가 되는 거예요.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에서 자원이 나지 않는 건 축복이에요. 천만다행이고요. 우리나라에 자원이 조금 풍부했다면 대한민국 국민의 80%는 바보처럼 되어있을 거예요.

 

토마 피케티에 대해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마르크스주의적 해법을 주장하고 있다”고 평가하셨습니다.『21세기 자본론』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증거로 앵거스 디턴의 『위대한 탈출』을 이야기하셨고요.


『위대한 탈출』은 시장 경제가 인도하는 길을 따라서 빈곤에서 벗어나는 사람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는 것을 논증한 책이에요. 피케티의 책은 갈수록 대중들은 가난해진다고 주장하는데, 그건 현실에서 우리가 보고 있는 것하고 다르죠. 중국 사람을 보세요. 중국이 더 가난해지고 있나요? 세계가 더 가난해지고 있냐는 거죠. 여전히 빈곤이 남아있지만 빈곤한 사람의 숫자는 계속 줄어들고 있지 늘어나고 있는 게 아니거든요. 그런데 그런 거짓말을 하면 어떡해요? 현실에 맞지도 않잖아요.

 

피케티의 주장이 잘못되었다고 말씀하시는 근거는 무엇인가요?


피케티적인 해법은 소득세를 85%를 걷으라는 건데 그건 몰수란 말이에요. 번 것의 대부분을 가져서 복지에 쓰자고요. 그럼 어떤 사회가 될 것 같아요? 굉장히 좋은 사회가 될 것 같죠? 안 그래요. 점점 가난한 사회가 돼요. 복지는 생산성과 관계없는 지출이에요. 복지가 되려면 생산성과 아무 관련이 없어야 되죠. 생산성하고 관련 있는 것은 시장 거래잖아요. 그런데 생산성과 관련이 없는 데에 자꾸 돈을 빼서 써보세요. 그 사회는 결국 망하죠. 그래서 사회주의 국가들이 망한 거예요. 그런데도 피케티는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하면서 바보들에게 박수갈채를 받았죠. 본인도 증거를 잘못 채집했다고 인정했잖아요. 일반 바보들의 눈에는 옛날이 좋았던 것처럼 보이는데, 그것도 사람들이 늘 빠지는 세상의 거짓말이에요. 인간의 기억 편향일 뿐이죠. 마치 헤어진 애인이 계속 아름답게 느껴지듯이, 놓친 물고기가 (기억 속에서) 계속 자라나고 있듯이, 그런 기억 편향이죠.

 

 

개천에서 용이 나면 안 돼요


‘빈곤이 분명 존재하지만 빈곤한 사람들의 숫자는 줄어들고 있다’고 말씀하셨는데요. 그와 반대로 갈수록 부는 소수에게 집중되고 빈곤층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것은 지식인들의 질투심에 불과해요. 그들이 하는 이야기는 0.1~0.2%에 속하는 부자들에 대한 거죠. 왜 0.1~0.2%에 자기를 비교하나요? 그건 통계에서 아예 빼버려야죠. 0.1~0.2%의 부자를 가지고 ‘저들이 우리에게서 너무 많은 부를 뺏어가고 있다’고 주장하면 어떡해요. 그야말로 지식인들의 질투에 지나지 않아요. 평균적인 걸 가지고 이야기를 해야 하잖아요. 그리고 세계화 현상 때문에 빈부 격차가 확대되는 것처럼 보이는 거예요. 그런데 빈곤이 늘어나고 있는 건 아니거든요. 분명히 빈부 격차가 확대되고 있는 현상들이 나타나는데, 그렇다고 빈곤이 늘어나고 있는 건 전혀 아니라는 거예요. 그 문제는 전혀 다른 문제이므로 빈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을 양극화의 문제와 혼돈하거나 섞어서 이야기하면 안 돼요.

 

경제 위기 상황에서 발생하는 세대 간의 갈등은 어떻게 보시나요?


젊을 때는 항상 가난해요. 젊은 사람이 가난하지 않으면 누가 가난해요? 부자라고 해도 부모가 부자인 것이지 그 자녀가 부자는 아니잖아요. 젊은 사람들은 늘 가난에 대해서 얘기하는 데, 그건 당연한 거예요. 대부분의 경우에는 젊은 사람들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이 부자잖아요. 그건 다행스러운 거죠. 그리고 노령화 시대가 되면서 젊은 사람들보다 점점 더 부자인 노인들이 많아지고 있는데요. 그래서 통계를 내면 빈부 격차가 더 벌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거예요. 우리 사회의 빈곤 가구가 늘어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데에는 숨어 있는 또 다른 이유도 있어요. 1인 가구가 굉장히 늘어나기 때문이죠. 1인 가구는 무조건 복합 가구보다 가난하거든요. 가장이 1인 가구가 되지는 않잖아요. 자녀들이 학교나 직장, 결혼을 이유로 분가해서 살죠. 그래서 가난한 1인 가구가 계속 늘어나고 있는 거예요.

 

경제 불평등 정도를 조사할 때 1인 가구를 제외하면 결과가 달라질까요?


그리고 노인 복지가 많아지면서, 그 동안은 1인 가구가 아닌 것처럼 하고 있었던 노인들도 이제 자식들로부터 독립된 1인 가구인 것처럼 행세를 해요. 그래야 정부 보조금을 받으니까요. 그래서 가난한 노인 가구가 계속 늘어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거예요. 결과적으로 복지 제도가 가난한 노인 가구를 만들어내고 있는 거죠.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1인 가구들을 제외하면, 과연 우리 사회의 빈곤이나 양극화는 어느 정도가 될지 조사를 해봐야죠. 그런데 (지금은) 통계에 1인 가구까지 다 포함시켜 놓고 그런 주장을 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서 급여 소득자들 간에도 급여 차이가 많이 난다면 근로 소득 안에서의 양극화거든요. 그건 이렇게 볼 수도 있어요. 우리사회는 연공서열이니까 젊은 애들은 월급이 무조건 낮아요. 은퇴 직전의 사람이 월급이 가장 많고요. 그런데 20년 후에는 똑같은 기대 소득이 되는데, 그것을 사회 문제인 양극화라고 할 수 있겠냐는 거예요. 우리가 문제로 삼는 구조화된 양극화의 문제는 전혀 아니잖아요.

 

‘요즘에는 개천에는 용 안 난다’ 이런 이야기도 있지 않나요?


젊은 애들은 당연히 아무도 용이 아니에요. 젊은 애들이 어떻게 용이 되나요. 그리고 개천에서 용이 나면 안 돼요. 용 자체가 없어져야죠. 왜 누구는 미꾸라지고 누구는 용인가요? 왜 용이 나와야 되나요? 개천에서 용 안 나온다는 게 사시 제도 때문에 늘 나오는 이야기인데, 지금의 사법 시험 제도는 신분증 제도예요. 그걸 자격증으로 바꾸자는 게 로스쿨 제도고요. (사시 제도를 유지해야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가난하고 소위 좋은 대학에 들어가지 못한 아이들이 사시를 통해서 다시 한 번 재도전할 기회가 주어진다고 주장하는데, 그건 거짓말이고 착각이에요. 사시가 있으면 대학(입시)에 실패를 해서 좋은 대학을 못 다니는 사람이 점프할 수 있는 복수전의 기회를 가질 수 있고 로스쿨에는 그런 기회가 없다고 인식한다면, 그 사람은 사시에도 계속 떨어지는 정도의 지력을 가진 거예요.

 

사법시험 존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만큼, 로스쿨 제도가 더 유익한 이유를 여쭤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시에서 합격하는 비율보다 로스쿨에서 합격하는 비율이 훨씬 높아요. 그런데 무슨 개천의 용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냐고요. 개천의 용을 주장하면서 사시 존치를 주장하는 젊은 애들은 머리가 나쁜 애들이에요. 그런 애들이야말로 소수의 용들을 위해서 버려지는 지렁이들이에요. 신림동에 가서 고시 공부하면서 합격하지도 못하고 평생을 거기에 매달려서 신세를 망치는 아이들일수록 더 그런 이야기를 하거든요. 아니면 신림동의 하숙집 주인들이 그런 주장을 하죠. 오히려 로스쿨 제도가 개천의 용을 만들어내는 제도라니까요. 가난한 애들이 훨씬 더 많이 공부하도록 해줘요. 서울대 로스쿨 같은 경우에는 30%가 소위 기초생활 보호 대상 수준인 아이들이에요. 기존에 고시 합격했던 놈들이 자기의 기득권을 지키려고 어린애들을 꼬시는 거예요. 그런 데 속아서 개천의 용 주장을 하고 있으면 머리가 나쁜 거죠. 그것도 거짓말 중에 하나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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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복지를 주장하는 건 도덕적 타락


얼마 전 단통법 시행 1년을 맞아 비판 여론이 다시 한 번 거세게 일었는데요. 『세상의 거짓말에 웃으면서 답하다』에서도 단통법이 시행될 당시에 강력하게 비판하신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우려했던 점들이 모두 현실화 되었다고 보시나요?


요즘 난 그 이야기 안 해요. 예상했던 대로 다 되고 있잖아요. 단통법이 그렇게 될 거라고 처음부터 다 이야기했던 거고, 그렇게 안 될 거라 주장하면 미친놈이었는데, 결국 그렇게 되고 있잖아요.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면 안 되거든요. 시장은 자유로운 상태로 두는 것이 소비자한테 가장 좋습니다. 정부가 자꾸 개입해봤자 좋아질 게 없어요. 자유롭게 놔두고 누구든지 치열하게 경쟁해야 소비자가 좋아지는 건데, 정부에서 보호해 주겠다고 해서 보호가 됐나요? 안 되잖아요. 예를 들어서 경제민주화 해야 된다고 중소기업 보호 제도를 만들고 골목 상권을 살리라고 할 때에도 저는 다 안 된다고 이야기했어요. 나중에 보면 일자리는 그런 데밖에 안 남는다고요. 그런데 지금이 그렇잖아요. 젊은 애들이 갈 수 있는 일자리가 그런 데밖에 더 있어요? 그런데 맨날 자본주의 욕이나 하고, 시장경제 욕이나 하고, 대기업들 때려잡는데 일자리가 어디에서 나올 수 있겠어요?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 좌빨들이 말하는 게 그렇게 하자는 거잖아요. 안철수 같은 사람들이 맨날 하는 얘기가 그런 거죠.

 

무상복지야말로 지난 1년 간 가장 뜨거웠던 논제였는데요. 작가님께서는 보편적 복지에 대해 “실은 도덕적 타락일 뿐”이라고 하셨습니다. 선별적 복지를 해야 된다고 주장하시는 건가요?


선별적 복지라는 말도 틀린 말이고요. 가난한 자에 대한 지원 시스템이 되어야 된다는 거죠. 가난한 사람들에게 돌아갈 돈을 멀쩡한 사람들이 같이 나눠 먹겠다면 말이 되냐는 거예요. 보편적 복지라는 말을 붙여 놓으니까 그럴 듯 해 보이는데, 그건 사회적 자원을 나눠먹자는 이야기거든요. 돈을 내서 가난한 사람을 도와줘야 될 놈이 자기까지 나눠 먹겠다고 하면 어떡해요? 그러니까 보편적 복지는 말은 그럴 듯한데 틀린 말이에요. 가난한 자에게 돌아가야 될 사회적 복지를 같이 나눠먹자고 하면 되나요. 가난한 자들, 또는 인생을 살다가 원치 않게 불행이 닥쳐온 사람들이 재생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충분한 복지를 줘야죠. 그래야 재기할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선별적 복지라는 말도 틀린 말이에요. 가난한 자들,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에게 도움을 줘야지, 멀쩡한 사람들한테 주면 안 되죠.

 

무상복지에 대한 논의 중에서도 특히 무상급식에 관한 논쟁이 뜨거웠습니다. 


지금 보세요. 무상 급식해서 밥 다 잘 먹게 되었나요? 그리고 아이들의 원어민 교사는 다 어디로 갔어요? 예산 부족으로 학교 현장에서 다 그만뒀잖아요. 그러면 아이들이 영어는 어디에서 배우나요? 부잣집 아이들은 미국에 가서 배우면 되요. 그래서 우리나라 좌익들의 자녀들은 전부 미국에 가 있잖아요. 저는 그런 걸 보면 분노를 느껴요. (요즘 세상에) 영어 안 하고 살 수 있나요? 그런데 (학교에서) 영어 안 가르치잖아요. 그리고 무상급식을 안 한다고 해서 급식을 안 주는 게 아니란 말이에요. 필요한 아이들한테 무상 급식을 해줘야지, 왜 다 먹자고 해요. 왜 돈을 낼 수 있는 놈한테 안 받고 국가 예산으로 다 대주면서, 필요한 원어민 교사에 대한 예산 줄이고 학교 고쳐야 되는데 예산이 그대로냐고요. 먹일 수 있는 부모는 자기가 먹이고 부모가 여러 가지 불행으로 먹일 수 없으면 국가가 먹이는 거죠. 누가 밥 주지 말라고 했나요?

 

선별적 복지를 할 경우 아이들이 받을 상처가 우려된다는 주장들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도 책에서 언급하셨죠. 


그건 얼마든지 표시 안 나게 줄 수 있어요. 그리고 심지어 상처를 받지 말아야 하느냐, 그것도 문제란 말이에요. 인간은 짐승이 아니에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 부모가 찢어지게 가난해서 내게 밥도 못 먹이는 무능한 부모라는 걸 아이들이 왜 몰라야 되냐고요. 아이들이 모르게 한다고 해서 모르나요? 그런 거짓말을 가지고 세상을 속이려고 하면 안 되죠. 아이들이 상처받는다고 하는데 왜 상처 받으면 안 되요? 인간은 살면서 상처를 받으면서 성숙해 가는 존재잖아요. 우리 부모가 무능해서 나에게 밥도 못 먹인다, 이런 걸 아이들이 모르냐고요. 그리고 그걸 몰라야 되나요? 그 아이들은 평생 누가 먹여주는 거 아니잖아요. 언젠가는 자기 발로 일어서야 되는데 왜 몰라야 되요? 그런 사기가 어디 있어요.

 

『닥치고 정치』에서 “진정한 보수야말로 개혁적이다”라고 하셨습니다. 진정한 보수란 어떤 이들이라고 생각하세요?


자유의 가치를 아는 사람이죠. 국가는 구조적으로 무능하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사람이에요. 그래서 우리나라에 스스로 보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중에 가짜 보수가 굉장히 많아요. 계속 국가가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가짜예요. 자유의 가치를 중요시 여겨야 진짜 보수죠. 그런 사람이 세계를 진짜 발전시키는 사람이고요. 국가를 뜯어먹으려고 하지 않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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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거짓말에 웃으면서 답하다정규재 저 | 베가북스
30여 년 기자 생활’의 대한민국 대표 지식인 정규재가 2014~2015 주요 현안을 명쾌하게 해석한다. 정치-사회-경제 분야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글로벌 이슈, 인문-예술까지 넘나드는 그의 해박한 지식과 합리적인 맥락 찾기에 탄성을 금할 수 없다. 눈앞에 나타난 현상만 보고 아우성치며 들끓는 ‘앵무새’ 뉴스 뒤에서, 보이진 않지만 장기적이고 근원적인 의미와 본질을 찾아주는 끈끈한 지식의 힘이 우리에게 상쾌한 생명력과 희망을 불어넣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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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이경 “도대체 책 읽는 게 무슨 도움이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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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한 제목의 책이 나왔다. ‘든든한 내면을 만드는 독서 레시피’라는 카피를 단 『책 먹는 법』. 저자 김이경은 ‘맛있는 한 끼의 독서’를 권하며 있는 그대로 읽는 법, 다독하는 법, 정독하는 법, 문학과 고전을 읽는 법 등을 소개했다. 책 앞날개에 적힌 저자 소개를 살짝 들쳐보니 호기심이 쑥 튀어나왔다. “초등학교 때 국어 교과서를 큰 소리로 읽다가 어머니의 칭찬을 듣고 소리 내어 책 읽기의 즐거움을 처음 느꼈다”는 김이경 작가. 그는 서해문집에서 오랫동안 편집자로 일하다 지금은 독서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우연히 인연이 닿은 시립도서관의 독서회에서 20년 넘게 강사로 책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간 소설집 『순례자의 책』, 서평집 『마녀의 독서처방』, 『마녀의 연쇄 독서』등을 펴냈다.

 

김이경 작가가 쓴 『책 먹는 법』은 유유출판사에서 펴내는 땅콩문고 시리즈다. 무척 작은 판형의 책으로 200쪽이 넘지 않는 매우 가벼운 책이다. 마치 편의점에서 파는 삼각김밥 같은 인상인데, 뒷맛은 확연히 다르다. 우선 든든하다. MSG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글밥의 향연은 꽤 묵직하다. 이런 책의 첫인상을 ‘삼각김밥’이라고 표현했으니, 저자에게는 무척 실례다. 한적한 고택에서 처음으로 맛본 12첩 반상으로 책의 끝인상을 수정한다. 그리하여 김이경 작가에게 인터뷰를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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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등에서 갑자기 빛이 나는 책이 있어요


독서칼럼니스트이시지만 ‘법’이라는 제목의 책을 내기란, 꽤 부담스러운 작업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후회를 많이 했어요. (웃음) 출간 제안을 받았을 때 맛있는 수제 맥주를 먹고 있었거든요. 출판사대표님이 제 독자라고 하시면서 책을 내자고 하셔서, 반가운 마음에 ‘그래요. 써보죠”라고 했는데, 집에 와서 정신을 차려 보니 후회되더라고요. ‘아 못 쓰겠다’ 싶어서 연락을 드리려고 했는데, 바로 계약금을 보내신 거예요. 이 책은 정말 시작부터 끝까지 맥주랑 함께 썼어요. 맑은 정신으로는 한 문장, 한 단어가 다 걸리는 거예요. 이게 최선일까, 내가 너무 교만한 게 아닐까. 자기검열도 많이 했고요. 밤에 맥주를 한 잔 먹고 ‘아 몰라’ 이러면서 쓰기 시작하니까 분량이 늘긴 했는데,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면 거의 모든 문장을 다 지웠어요. 80%는 버리고 20% 정도를 건지는 심정으로 썼어요. 사실 독서에 대해 너무 시시콜콜하게 모든 이야기를 한다는 것에 대해 망설이기도 했어요. 하지만 모든 이야기를 할 수는 없는 거니까요. 제 한계를 인정하고 시작한 글이에요. 결국 자기만의 독서법을 만들어가는데 작은 실마리를 주는 것일 뿐이니까요.

 

책이 8월에 출간됐는데, 집필은 언제부터 시작하셨나요?


작년 가을부터 썼어요. 매수는 정말 얼마 안 되는데, 오래 쓴 책이에요.

 

저자 소개 글을 재밌게 읽었어요. “책은 사 주지 않았지만 신문 여러 종을 구독하며 밥상머리에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듣고 말할 기회를 준 부모님 덕분에 비판적 독해와 지식의 중요성을 깨달았다”고 쓰셨는데요.


한 주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저희 다섯 형제가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아버지였어요. 너무 가난해서 학교를 못 다니셨거든요. 초등학교도 졸업을 못하셨는데, 제가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 중에 아버지만큼 똑똑하고 지적이고 많이 아는 분을 본 적이 없어요. 아버지가 어떻게 혼자 공부를 해오셨을까, 생각해보면요. 계속 책과 신문을 읽으셨어요. 한국방송이 별로 없을 때부터 미국방송을 챙겨 보셨고, 새벽부터 라디오뉴스를 항상 들으셨고요. 신문도 여러 개를 보셨는데, 언론마다 입장이 다르고 주요하게 생각하는 면이 다르고, 기자마다 수준이 다르기 때문에 여러 종을 봐야 한다고 하셨어요. 신문의 행간을 읽으신 거죠. 아침에 신문이 배달되면, 아버지가 읽으시고 그 다음에는 오빠들이 읽고 나야 제 차례가 됐어요. 아버지의 신문이 내려오길 기다리면서 아침을 보냈는데, 저로서는 어른이 되는 상징이기도 했어요.

 

어린 아이가 신문을 보기는 쉽지 않은데요.


신문을 보면 네 컷 만화가 있잖아요. 그것부터 봤던 것 같아요. 만화부터 보다가 기사를 읽곤 했던 기억이 나요.

 

『책 먹는 법』을 보면, 책을 고르는 법부터 독서의 다양한 방법을 소개하고 있어요. 첫 장에서는 ”어깨에서 힘을 빼고 첫 눈에 반한 책을 읽어라”라고 하셨는데요. 반하려면 우선 만나고 접해야 하잖아요. 작가님은 어떻게 책을 고르시나요?


책방에 직접 가기도 하고 인터넷서점도 들어가보는데, 거의 비슷한 책이 자꾸 보이잖아요. 그래서 저는 매주 도서관에 가서 신간 코너를 둘러봐요. 혹시 놓친 책도 있을 수 있으니까 틈틈이 서가도 보고요. 그러면 책등에서 갑자기 빛이 나는 책이 있어요. 물론 리뷰를 읽다가 챙겨 놓는 책도 있지만, 저와 궁합이 맞는 책이 저를 막 불러요.

 

최근에 반한 책은요?


요즘 역사 문제가 시끄러워서 역사책을 많이 찾아보는데, 썩 재미있는 게 없더라고요. 그러다가 『일본제국 vs 자이니치』라는 책을 알게 됐는데, 책장을 넘기다가 그대로 매료됐어요. 상당히 감동적으로 읽었어요. 또 전영애 교수님이 쓴 『시인의 집』을 보는데, 몇 장 읽다가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어요. 제가 미술가 윤석남 선생님께 이 책을 선물했더니, 어느 날 문자가 왔어요. “일흔 나이에도 이 책을 읽으니 눈물이 난다”고요. 책을 선물하면 이 사람이 나와 맞는지, 안 맞는지를 알 수 있잖아요. 내가 좋게 읽은 책이라고 상대도 꼭 좋아하라는 법이 없는데요. 이렇게 책을 통해서 인연이 돈독해지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아요.

 

반해서 읽었는데 배신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지 않나요?


많죠. 많아요. (웃음)

 

156쪽 이야기도 퍽 인상적이었는데요. “결국 문제는 삶”이라는 문장이었습니다. “잘 살기 위해 책을 읽는 것이지 그 반대가 아니”라고 하셨는데요. 간혹 책 많이 읽었다고 자랑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작가님의 말마따나 ‘아니, 그런 책을 읽은 사람이 왜 그 모양이야?’ 싶을 때가 있습니다. 저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예요. 훌륭한 책을 쓴 분들의 실태를 마주했을 때, 때때로 실망도 합니다. 독자 입장에서는 혼란스러울 때가 있어요.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문제나 결점, 한계가 없는 인간은 없잖아요. 저도 저희 아버지를 무척 존경하지만 모든 게 완벽한 분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살아온 시대적 문제, 성격이나 한계, 문제가 분명히 있어요. 이걸 아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훌륭한 점을 인정하는 게 같이 가야 하는데, 많은 사람들은 어느 한 부분이 실망스러우면 그 사람 자체를 폄하하는 경우가 많아요. 특히 도덕적 잣대를 엄격하게 생각하는데, 가만 보면 외국 작가들에게는 그렇지 않아요. 여자관계가 복잡해도 자유분방한 사람이라고 평가하는데, 지금 우리와 같이 살고 있는 현 시대의 우리 작가들에게는 그 잣대를 너무 엄격하게 둬요. 하지만 작품이라는 게, 꼭 그 작가의 모든 내면이 들어가 있지는 않아요. 자기도 모르는 어떤 영감 같은 것이 훨씬 더 좋은 작품을 만들게 하는 경우도 있어요. 독자는 저자의 여러 한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가 중요하게 감동 받은 부분만 인정하면 돼요. 책이라는 게, 사람을 존경하기 위해 읽는 게 아니잖아요. 내가 이 작품에서 어느 부분이 좋았다면, 그 이유는 나에게 있는 거예요. 그걸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되는 거지, 그 사람이 훌륭하고 아니고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아요. 작가의 한계가 오히려 그 사람의 위대함이 됐으면 정말 대단한 거니까, 그걸 인정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한계가 때로는 장점이 될 수 있다는 말씀이시죠?


훌륭한 점이 꼭 훌륭함을 낳는 건 아니니까요. 지나치게 도덕적 판단을 하는 건, 문학의 자유로운 발전과 성숙에 좋은 영향을 끼치진 않는다고 생각해요. 자유가 있어야 예술이 피어나잖아요. 자유가 도덕적 기준, 사회적 기준과 꼭 맞는 건 아니니까요. 이 기준은 그 사람이 범죄를 저질렀을 때 갖다 붙이면 된다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글을 쓴 사람은 심성도 좋은 사람’일 거라는 환상을 버리기가 쉽지 않아요.


(웃음) 작가는 교만해야 글을 쓸 수 있어요. 글 쓰는 사람뿐만 아니라 예술가라고 하는 사람은 어느 정도 자아도취가 있어야 해요. 자기 예술을 하려면 내가 특별한 걸 한다는 마음이 있어야 뭐라도 나올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 마음이 없다면, 그냥 공부를 하는 사람이죠. 교만이 동력이 될 수 있어요. 우리가 그 사람을 존경할 필요는 없다니까요. (웃음) 훌륭한 문학작품을 만들면 그 사람도 훌륭한 인격체일 거라고 생각하는데, 잠시 천사가 왔다 갔다고 생각하면 쉬워요. 사람의 힘으로만 되는 게, 아닐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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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좋은 책, 편집자의 존재가 드러나지 않아야


출판사에서 편집주간으로 일할 때, 5년 동안 근 200여 종에 달하는 책을 만드시다가 결국 대인기피증과 활자울렁증이 도져 일을 그만두셨는데요.


그 때는 정말 괴롭더라고요. 내가 읽고 싶은 책은 못 읽고 책만 만들어야 했으니까요. 물론 내가 기획한 책이 실물로 나오는 희열은 어디에 비교할 수가 없는데, 몇 년 동안 너무 많은 책을 만들다보니 정말 꼴도 보기 싫었어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고집들을 보면서, 이런 인간이 될 바에야 왜 책을 읽지? 그런 환멸도 느꼈어요.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결국 제 글을 쓰고 싶더라고요. 남의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어주고 읽다 보니까. 내 이야기를 좀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쓴 책이 『순례자의 책』이에요. 저는 글을 단숨에 쓰는 스타일이 아니라서,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어요. 시작은 단순했어요. ‘도대체 책이 무슨 소용이 있는데?’라는 약간 시니컬한 의문에서 내 답을 구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저 혼자서 책을 읽고 쓰기 시작했어요.

 

대인기피증은요?


저희들끼리 편집자에 대해 말할 때, ‘무수리’라고 해요. 남의 뒤치다꺼리를 많이 해줘야 하는 일이잖아요. 제가 출판사에 막 들어갔을 때는 편집자가 한 명밖에 없는 상황이었어요. 그러다 갑자기 규모가 커지니까 내부 사람들 갈등도 있었고 외부 사람들도 많이 만나다 보니 늘 긴장 상태였죠. 한 달에 4,5권을 만들어야 하니까 일 년에 백 편 이상의 원고를 봐야 했는데요. 정말 그 때쯤 되니까 막 화가 나더라고요. (웃음) 이러다가 인간성 다 버릴 것 같아서 그만뒀어요.

 

편집자 경력이 많은 분들을 보면, 대개 글발이 좋으세요. 책을 만들다 보면 당연히 책을 보는 눈도 높아지고, 자기 글을 쓰고 싶은 욕망도 생길 텐데요. 편집자의 역할을 어떻게 보고 계신가요?


저는 정말 좋은 책은 편집자의 존재가 드러나지 않는 책이라고 생각해요. 너무 잘 읽혀서, 편집자가 아예 생각도 안 나게 하는 책, 그런 책이 좋아요. 자꾸 편집이 눈에 띄기 시작하면 그건 잘 만든 책이 아니에요. 편집자는 부재를 통해 증명되는 존재라서 당연히 회의에 시달릴 수밖에 없어요. 원래 그런 거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점 때문에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큰 덕목을 배울 수 있는 직업인 것 같아요. 제게 대인기피증까지 준 직업이지만, 전 그때 시간들이 너무나 소중했어요. 자기 책을 쓰던 남의 책을 만들던, 그 시간들을 정말 잘 견디는 분들을 늘 고맙게 생각해요. 정말 세상에 큰 보탬이 되는 일을 하고 계시니까, 자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책 먹는 법』의 편집은 어떻게 진행됐나요?


편집자 분께 전적으로 일임했어요. 제 책에 대해 저보다 더 잘 아는 분은 편집자예요. 저자는 주관적이 될 수밖에 없지만, 편집자는 객관과 주관을 다 갖고 있는 분이니까요. 정말 긍지를 가져야 해요.

 

독서회 이야기도 좀 여쭐게요. 20년이 넘게 독서회 ‘글두레’에서 강사를 맡고 계신데요. 보통 어떤 분들이 모이시나요?


일단 책을 좋아하는 분들이 오세요. 도서관에 공고를 써 붙이니까 궁금해서 오시기도 하시고요. 그런데 계속 모임을 하게 하는 힘은 사람인 것 같아요. 결국 사람이 힘이 되니까 와요. 30대부터 60대, 70대 여성 분들이 모이는데, 요즘은 세대 차이를 조금씩 느껴요. 약간 아쉬운 점이 새롭게 오시는 분들의 경우는 정보나 지식 욕구는 굉장히 강한데, 사람들하고 관계 맺는 일에 대해서는 거리를 많이 두세요. ‘나에게 지식적으로 도움이 되면 계속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어’라는 마음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이런 마음을 갖고 있으면 지식 자체도 크게 늘지 않아요. 앎이라는 게, 내가 모르는 모든 것들로부터 배운다는 자세가 있어야 하는데 ‘이 책에서 내가 새로운 걸 좀 얻겠어. 정보를 얻겠어’라는 마음만 갖고 있으면, 스스로를 완전히 탈바꿈하는 앎은 얻기가 힘들어요.

 

“책을 이야기하는 모임이지만, 결국 사람”이라면 듣는 귀도 열려 있어야겠어요.


사람은 누구에게나 인생의 힘든 시기들이 있잖아요. 젊은 분들은 늘 자기들이 지금처럼, 별탈 없이 살 거라고 생각들을 하는데, 꼭 우여곡절을 겪는 때가 와요. 20년 동안 독서회를 통해 만난 사람들만 해도 그렇고요. 그런데 정말 힘들 때, 이분들이 서로에게 큰 힘이 돼요. 책 읽는 모임은 다른 모임이랑 달라서, 위로를 해도 좀 더 조심스럽게 하시고 배려심이 깊어요. 그래서 이 모임이 더 힘이 되는데요. 독서 모임에 참여하고 싶은 생각이 있다면, 좀 더 마음을 열면 좋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요즘 젊은 사람들은 책을 읽기보다는 유명 강사의 강연을 듣거나 멘토를 만나는 걸 좋아해요. 독서회 같은 모임은 시간을 많이 뺏긴다고 생각하고요.


강의를 듣는 게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저 역시 좋은 강의에서 감동을 받고 자극을 받을 때가 많아요. 문제는 강의만 듣는다는 거에 있겠죠. 요즘 우리나라 세태를 보면 계속 강의만 들으려고 하고 책은 안 읽잖아요. 도서관이 평생학습관으로 바뀌면서 책이 더 있어야 할 공간이 강의실로 변경되고 문화센터 개념으로 바뀌었는데, 그건 문제라고 봐요. 강의를 듣는 것도 너무 중요하지만 강의로는 도저히 안 되는 부분도 있어요. 스스로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없으면 배울 수 없는 것들이 있으니까요. 몸으로 배우는 게 가장 좋지만, 몸으로 배울 때조차 혼자 생각하는 방법을 모르면 성장하기가 어려워요. 만약 경험과 지혜가 비례한다면 노인들은 모든 면에서 지혜로워야 하는데 그렇진 않거든요. 경험 자체를 정리하고 숙고해서 하나의 철학으로 만드는 훈련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건 독서가 해결해주는 문제예요.

 

‘아이와 함께 책 읽는 법’에서는 “독서교육을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학부모들이 놀랄 이야기인데요. 독서 습관을 키우는 노하우로는 “내버려 두기, 읽어 주기, 들려 주기, 들어 주기, 전집으로 책장을 빽빽이 채우지 말기”를 꼽아주셨어요.


저희 집 바로 옆에 도서관이에요. 주말에 가보면 정말 많은 아버님이 아이들이랑 도서관을 오는데, 너무 많이 읽히세요. 볼 때마다 항상 마음이 아픈데, 사실 책은 하루에 한 권이면 충분하잖아요. 한 권을 충분히 생각하려면, 하루에 한 권도 많을 수 있어요. 아이들은 반복하는 걸 참 좋아하는데, 그 반복이 결코 무의미한 과정이 아니기 때문에 새로운 걸 끊임없이 주기보다는 다양한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도록 시간을 주는 게 현명하다고 봐요. 도서관에서 정말 책을 열 권, 스무권 씩 싸 들고 가는 부모들을 보면 마음이 참 안 좋아요. 전집 같은 경우도 그래요. 할인률도 높고 큰 출판사에서 나온 책이니까 선뜻 구매를 하는데, 애들 입장에서는 그렇게 힘든 게 없어요. 어른도 그렇잖아요. 세계 전집 사다 놓으면 마냥 좋나요? 언제 다 읽나, 부담스럽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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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앎을 가져가려고 하는 마음


사실 출판계는 늘 불황이라고 하지만, 책을 읽는 사람들은 꾸준히 읽습니다. 그런데 요즘 정말 불황은 ‘문학’인 것 같습니다. 문학을 읽을 여유가, 읽을 때가 아니라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래서 읽어야 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 작가님께서는 “문학은 사람을 이해하는 데 특히 나를 아는 데에 가장 좋은 자료”라고 하셨어요.


따지고 보면 픽션이든 논픽션이든 책을 읽는 이유는 사람을 이해하고 세상을 알기 위해서잖아요. 철학이나 역사, 심리학도 다 사람을 이야기하지만 문학은 사람의 행동과 심리를 판단하기보다 묘사하는 데 중점을 두기 때문에, 사람 속을 상상하고 공감하고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밖에 없어요. 최근에 문학에서 표절 관련 이슈가 뜨거웠잖아요. 그 이후로 한국 문학이 너무 실망스러워서 이제 한국 소설을 안 읽겠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꽤 들었어요. 물론 저도 실망한 부분이 있지만 그렇다고 한국 문학을 안 읽는 게 옳은가요? 너무 안 읽어서 그렇게 된 건데요? 지금보다 더 안 읽으면 정말 표절을 해도 아무도 모르겠네요?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생각해보면 독자에게도 책임이 있어요. 독자들은 마치 자신이 피해자인양 이야기를 하시는데, 저는 독자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해요. 표절은 언제나 어느 나라에서나 있어 왔어요. 이렇게 큰 문제로 이슈화된 건, 우리나라의 권위 있는 작가가 권위 있는 출판사에서 낸 책이라서 아닐까요? 그런데 이 권위가 어떻게 만들어졌냐를 생각해보면 독자가 스스로 판단하기를 멈추고 권위자에게 기댔기 때문이에요. 권위는 있어야 하지만, 독자가 스스로 권위를 부여할만한 역량을 갖추는 것도 중요해요. 이런 면에서는 독자들이 자기 책임을 회피한 거예요.

 

독자가 준 권위보다 더 큰 힘은 없죠.


독자가 압력을 가해야 바꿀 수 있어요. 독자의 수준이 올라가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으로는 어렵다고 생각해요. 저자, 출판사가 스스로 권위를 내려놓을 하등의 이유가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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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서 가장 크게 얻는 것, 배우는 것은 무엇인가요?


20대 마르크스주의 책을 읽을 때, 그게 제 삶의 어떤 철학이 됐는데요. 전 항상 지행합일을 할 생각이 없다면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 정신으로 늘 읽으니까 사실 좀 고단하죠. 아는 것도 힘든데 행동으로 옮기기까지는 또 얼마나 힘들어요. 하지만 그렇게 해오려고 했어요. 또 하나는 제가 살면서 너무 힘들어서 어떤 책을 읽게 되는 경우가 있어요. 책이 뭔가 제게 답을 줬기 때문에 열심히 읽는 건데요. 저는 스스로 내가 여성이라는 걸 뼈저리게 느낀 게 결혼을 하고 나서예요. 그 때부터 여성에 대해 공부를 하기 시작했는데, 여성으로서의 권리를 주장하는 한편 남편에 대해서도 더 많이 생각하게 됐어요. 살다 보면 불화도 생기고 힘들지만, 근본적인 해결도 결국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이런 걸 모른 채 일희일비하다가 보면, 내 인생이 어느 방향으로 가는지 모르게 돼요.

 

어떤 책이 위로가 됐을 때를 돌이켜보면, 나 스스로를, 내 현재를 이해하게 만들어줬을 때인 것 같아요.


제가 집에서 막내인데, 어머니가 아프셨을 때 당시에 제가 직업이 없어서 어머니 옆을 오랫동안 지켰어요. 어머니를 보면 안쓰럽고 마음이 아팠지만, 젊은 저로서는 답답한 마음이 왜 없었겠어요. 속으로는 화가 났죠. 그 때 죽음에 대한 책들을 많이 읽었는데, 큰 도움을 받았어요. 자기 객관화에 있어서는 제 독서가 도움이 됐다고 생각해요. 함께 독서회를 하는 분들이 때때로 “도대체 책을 읽는 게 무슨 도움이 되냐?”라고 하는데, 저 같은 경우는 어머니가 아프실 때 정신분석학 책을 여러 권 읽으면서 내가 느끼는 이런 불만이 어디에서 나오는지를 알게 됐어요. 처음에는 부모를 원망하다가 부모도 하나의 인간일 뿐이라는 걸 깨달았죠. 저 사람도 한 인간인데, 왜 부모로서의 역할만 요구하나, 그런 게 잘못됐다는 걸 깨달으면 원망이 줄 수밖에 없죠. 물론 심리 상담을 받아도 도움이 될 거예요. 그런데 스스로 힘들게 깨닫는 것과 남이 이야기해줘서 빨리 깨닫는 것은 좀 다른 것 같아요. 책을 읽는 내내, 내면의 갈등을 겪는다고 생각해요. 저는 사람들이 뭔가를 너무 빨리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자기 앎을 가져가려고 하는 마음을 꼭 가졌으면 좋겠어요.

 

그래도 책은 재미없다, 지루하다는 사람들에게 한 마디를 하신다면요?


(웃음) 책은 정말 재미가 없지 않아요. 자기랑 맞는 사람을 못 만난 것과 비슷하게 자기와 맞는 책을 못 만난 거, 아닐까요? TV도 모든 프로그램이 재밌진 않잖아요. 정말 재밌는 순간은 30분 정도일 텐데, 책도 항상 그 정도를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요. 약간 마음에 안 들어도, 친해지려면 시간이 좀 필요하니까요. 요즘은 좋은 만화책도 많으니까, 가볍게 시작해도 좋을 것 같아요. 최근에 스웨덴 여성만화가 그린 『가족의 초상』을 무척 재밌게 봤어요. 정말 제가 읽은 최고의 심리책이에요. 작가가 직접 겪은 이야기라서 더 재밌었는데, 너무 재밌게 읽어서 남편에게 추천해줬는데 남편도 손을 못 떼더라고요. 저와 독서 취향이 상당히 다른 편인데도 재밌게 보더라고요.

 

좋아하는 한국 작가들도 궁금합니다.


황정은의 『백의 그림자』를 참 좋게 읽었고, 김사인 시인의 시 좋아하고, 산문은 서경식 선생님의 글을 좋아해요.

 

앞서 독자의 권위, 독자의 책임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셨는데요. 독자들에게 더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딱 한 마디예요. 일단 읽으셨으면 좋겠어요. 판단은 나중에 하고요. 잘 읽어주는 건, 저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고 생각해요. 사람을 만났을 때, 상대의 이야기를 잘 듣는 게 그 상대를 위한 게 아니라, 내가 쓸데없이 오해를 해서 내 마음을 괴롭히지 않기 위해서이기도 하잖아요. 책도 마찬가지예요. 사람들은 대체로 남의 이야기를 듣고 있을 때도 자기 생각을 하고, 남의 책을 읽을 때도 자기 생각을 하는데요. 책 읽는 30분 만이라도 온전이 책에 집중을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요즘은 사람들이 모두 불만이 많고 분노가 많잖아요. 내 이야기를 안 들어준다, 나를 무시한다는 생각들을 참 많이 하는데, 조금만 경청해줘도 좀 덜하지 않을까 싶어요. 내 인생을 위해서 30분만 명상하는 시간, 공부하는 시간으로 도전해도 좋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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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먹는 법김이경 저 | 유유
선생의 유려한 글쓰기와 꼼꼼한 책 읽기 경험이 골고루 잘 섞인 이 책은 아직 책 읽기에 익숙지 않은 독자도 편안히 책과 접할 수 있도록 쓰였다. 따라서 이 책을 읽는 독자는 제대로 책 읽는 데 필요한 영감과 필요한 지식을 얻을 수 있으며, 구수하게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따라가노라면 어느새 단단하면서도 묵직한 것이 속에 남는다. 나를 힘들고 고통스럽게 하는 사태에 처했을 때, 그 어떠한 경우에도 굳게 뿌리박아 흔들림 없는 ‘든든한 내면’을 만드는 데 독서만 한 게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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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우, 만년필로 기록한 여행의 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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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좋은 그림』은 선으로 기록된 여행의 기억을 담고 있다. 만년필의 예리한 펜촉에서 시작된 선들이 교차하고 덧대어지면서, 스쳐가는 순간들을 종이 위에 붙들어놓았다. 교토의 기요미즈테라, 터키의 아야소피아 성당, 부여의 무량사, 바티칸의 성베드로 광장, 홍콩의 푹와 노천 시장, 캄보디아와 인천의 골목길까지, 화려한 건축물과 복잡한 공간들이 모두 하나의 가느다란 선에서 탄생했다. 그 기록들은 체온처럼 따뜻한 온기를 머금고 있다. 카메라나 스마트폰 같은 간편한 방식을 마다하고 애써 손끝으로 적어 내려간 것이기 때문이다. 육필, 문자 그대로 몸으로써 기록한 것들에는 분명 그것만이 품고 있는 감성이 있는 법이다.

 

책에 담긴 스케치들을 그려낸 건 시간과 마음이다. 대상을 응시했던 많은 순간들과 그 안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던 마음들. 그것들이 한 데 어우러져 『아무래도 좋을 그림』의 풍경과 사유가 되었다. 긴 세월을 이겨낸 건축은 자신이 기억하는 역사를 들려주고 이름 모를 골목길은 일상을 말한다. 때로는 여행의 의미에 대해, 또 때로는 살아가는 일의 본질에 대해 묻기도 한다.

 

이렇게 색다른 방식으로, 그래서 반가운 이야기로 여행의 기억을 나누어주는 저자 정은우는, 이미 ‘솔샤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유명한 파워블로거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7년 연속  에세이와 예술 분야의 파워블로거로 선정되었고 약 370만 명의 네티즌과 소통해왔다. 그가 보여주는 만년필 스케치와 감성에 매료된 이들은 왜 이제야 책으로 출간된 거냐며 아쉬움을 토로했을 정도다.

 

『아무래도 좋을 그림』이 품고 있는 또 다른 감성은 애정이다. 저자가 흠모하는 만년필과 여행과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모두 담고 있으니. 이상한 일은, 그 애정이 독자에게로 옮아온다는 사실이다. 『아무래도 좋을 그림』을 읽노라면 “서로 만날 일 없던 것들”에도 기꺼이 시선을 빼앗기고 사유의 공간을 내어주는 여행을 꿈꾸게 된다. 이토록 찬찬히 마음을 나누는 떠남도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까닭이다. 이런 이야기에 애정을 갖는 건, 막을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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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좋을 그림』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


만년필만이 가진 매력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저는 만년필이 필기구 중에서 가장 번거롭기 때문에 써요. 물론 연필도 쓰려면 깎아야 하고 다른 필기구도 준비에 필요한 과정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만년필은 가장 번거로워요. 잉크를 채워야 하고, 그 과정에서 흘러 넘치기도 하고, 그러면 손에 묻고 닦아내야 되고, 심지어는 오랫동안 쓰지 않으면 막히기도 해요. 그럴 때는 따뜻한 물에 헹궈준 다음에 하루 정도 기다려야 돼요. 만년필을 쓰지 않는 분들은 번거롭고 불편한 과정이라고 생각하실 수 있는데, 그런 부분들이 강제적으로라도 여유를 만들어줘요. 저는 그렇게 강제된 여유가 좋더라고요. 지금 우리는 모눈종이처럼 바쁘고 촘촘한 일상을 살아가잖아요. 그런데 바쁜 와중에도 아무 생각 없이 잉크를 넣고 닦고 헹구는 일들을 하다 보면, 정신의 객석이 마련돼요. 그 짧은 순간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되거든요.

 

“스케치는 장소의 구조나 색에 대한 관찰을 끊임없이 품게 만드는 반면, 카메라는 사진을 찍음으로써 할 일 다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한다”는 러스킨의 주장에 동의한다고 하셨어요. 작가님께서 사진이 아닌 그림으로 여행을 기록하시는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맞아요. 하지만 저는 사진이 인스턴트적이거나 일회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림보다 하위에 있는 문화라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각자 가진 의미가 분명히 있는데, 대상을 조금 더 관찰하는 측면에 있어서는 그림이 좋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특별한 장면을 추억하기에는 사진이 더 좋다고 생각하고요. 저도 사진을 많이 찍거든요. 그런데 예전에는 어릴 적 사진을 보면 그 안에 있는 제 모습에 대해서 생각했다면, 요즘에는 사진에 없는 것들이 보여요. 사진을 찍어주던 아버지나 그때 제가 앉았던 자리에서 바라보던 풍경들 같은 걸 생각하는 거죠. 사진의 진짜 의미가 여기에 있는 게 아닌가, 라는 생각도 하게 되고요. 사진을 통해서 딸려 나오는 추억 타래 같은 게 있는 것 같아요. 그런 걸 보면서 기억이라는 게 잊히는 게 아니라 엉켜있는 거구나, 물꼬만 있으면 딸려 나오는 거구나, 라는 생각들을 해요.

 

 

『아무래도 좋을 그림』에서 말씀하시길, 여행기를 즐겨 쓰지 않는다고 하셨어요. “기록 때문에 도시에 대한 기억이 지배당하고 왜곡된다는 강박” 때문이라고요.


기록을 해야 된다는 강박이 여행을 부자유스럽게 하는 것 같아요. 대부분 박물관의 티켓이나 브로셔를 일일이 챙겨오잖아요. 그런데 제 경우에는 그런 것들은 6개월만 지나도 추억이 되지 않더라고요. 그렇다 보니까 ‘추억이라고 생각하면서 가져왔는데 추억이 되지 않는 것들에 둘러싸여서 하는 여행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여행기를 써야 된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으면 느낀 것도 없는데 느낀 것처럼 써야 되잖아요. 그러다 보면 솔직해지지 못하게 되고요. 그러면 무슨 의미가 있나,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꼼꼼하게 여행기를 쓰지는 않아요.

 

그렇다면 블로그와 책을 통해서 들려주는 여행기는 어떻게 탄생하게 된 건가요?


그 중에서도 ‘이런 건 누군가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다’라고 생각되는 것들이 있는 거죠. 사실 10년 동안 여행을 다니고 그림을 그린 결과로 이 정도의 이야기가 나온 거고요.

 

책에 담긴 이야기들이 굉장히 다양한 주제를 아우르고 있는데요. 그 모두를 관통하는 하나의 핵심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크게 한 가지로 말하자면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자연을 제외한다면, 제가 좋아하는 건축이나 그곳에서 만나는 음식 교통편 다양한 문화들이 결국은 그 지방의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거니까요. 하나로 축약하자면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의식주가 될 수도 있겠네요. 건축이나 음식이나 어차피 다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것들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여행을 가면 그 지역의 사람을 많이 궁금해 하는 편이에요. 우리가 어떤 곳에 대해 별로였다고 이야기하는 것도 생각해보면 사람한테 느낀 감정인 경우가 많거든요. 바가지를 썼다거나, 불친절을 경험했다거나, 극단적으로 말하면 인종 차별을 경험했다든가, 결국에는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문제들이 많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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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비결은 기차를 놓치는 것


어떤 풍경들을 만나셨을 때 펜을 들게 되시는지 궁금합니다. 『아무래도 좋을 그림』에서는 그 순간을 책을 읽다가 밑줄을 긋는 순간에 비유하셨죠.


제가 한 말은 아니고 박완서 작가님께서 하신 말씀인데요. 작가님께서 어렸을 때 헌책이나 친구들이랑 같이 돌려보는 책을 많이 보셨대요. 그러다 보니까 누군가 밑줄을 친 문장들을 많이 보게 됐는데, 어렸을 때는 ‘고작 이런 문장이 좋다고 밑줄을 그었나, 더 좋은 문장들도 많은데’ 하는 얄팍한 마음들이 있었다는 거예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까 누군가 밑줄을 긋는 건 그 문장이 당시 그 사람이 안고 있던 마음의 결핍에 와 닿았기 때문이지, 문장 자체가 셰익스피어나 피츠제럴드에 버금가는 문장이어서 그런 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셨대요. 저 역시도 제가 평소에 궁금해 했던 걸 잘 발라냈다고 느껴지는 문장에 밑줄을 긋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림도 마찬가지라는 말씀이시군요. 


비유하자면 그림도 그런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이 보면 아무렇지도 않을 풍경 같은데 그려보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그러면 한 번 그려보고 싶다고 생각되는 거죠.  사진으로 찍어서 예쁜 장면이 있고, 그림으로 그려서 의미가 있을 것 같은 장면이 있거든요. 그런 게 보이는 순간이 있어요. 그럴 때 스케치를 하게 되죠. 재미있는 건, 그렇게 그리다 보면 내가 중요하게 보는 것과 중요하지 않게 보는 것이 뭔지를 알게 돼요. 같은 풍경을 보더라도 어떤 건 그냥 건너뛰고 어떤 건 정말 꼼꼼하게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이번 책을 엮으면서도 발견하셨을 것 같아요. 작가님께서 집중해서 바라보는 대상은 무엇인지요.


눈썰미가 있으신 독자 분들은 느끼셨을 텐데요. 『아무래도 좋을 그림』에는 기차 그림이 굉장히 많이 나와요. 책에는 실리지 않은 기차 그림도 많고요. 저는 열차를 보면 무조건 그리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고요. 이유를 생각해 보면, 일단 기차역에서 기다리는 동안 시간이 많이 생기기 때문이고요. 그리고 기차가 주는 로망 같은 게 항상 있죠. 어렸을 적에 아빠와 타던 기차를 생각하면서 항상 그리워했다는 느낌 같은 거죠. 그리워하니까 남기고 싶다는 생각도 있는 거고요. 그리고 이건 결핍과도 조금 관련돼 있는 건데요. 우리가 어딘가에 묶여 있고 단속적인 생활을 하다 보니까 기차를 보면 ‘저걸 타면 어디든 갈 수 있겠지’라는 생각이 드는 거죠. 그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엮여서 기차나 전차를 보면 굉장히 그리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작가님만의 독특한 여행 방법도 눈에 띄었는데요. 일정에 구애 받지 않고 여행한 지 오래 되셨다고요.


일단 기본적으로 일정을 정해놓지 않고요. 여행을 간다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대부분 우리는 여행 가기 전에 교통편, 숙소, 꼭 가야 할 곳들을 정해놓잖아요. 그런데 저는 숙소조차도 정하지 않고 가는 경우가 더러 있어요. 가보면 다 있거든요(웃음). 너무 많은 정보들을 가지고 가면 경제적인 여행은 될 수 있을 거예요. SNS에 올릴 사진이 남는 여행이 될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 자랑할 만한 여행도 될 수 있죠. 그런데 그건 내가 다녀온 게 아니라 나라는 이름의 로봇이 다녀온 거랑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저는 친구들이 여행 비결에 대해서 물어오면 ‘네가 기차를 놓쳤으면 좋겠고, 반대 방향으로 가는 버스를 탔으면 좋겠고, 굉장히 불친절한 아줌마를 만났으면 좋겠고, 생각지도 못한 메뉴가 나왔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해요.

 

그렇게 말씀하시는 이유가 있으실 것 같아요.


나중에 가서는 그게 이야기가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여행을 가기 전에 일정을 짜고 숙소와 교통편을 예약하면서 설레는 순간부터 여행은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돌아온 뒤에도 그곳을 추억할 수 있으면 계속 여행 중이라고 생각하고요. 그런데 너무 모눈종이처럼 정교하게 여행을 다녀오면 금방 잊어버리게 되더라고요. ‘내가 성실하게 미션을 수행하고 왔어’ 정도의 만족감이 남는 거죠. 많은 사람들이 스토리텔링을 하려면 특별한 경험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는데요. 저는 특별한 일이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사람이 아니라 일상적인 걸 특별하게 볼 줄 아는 사람이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여행지에서도 특별한 걸 보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걸 보러 가는 과정에서 있었던 이야기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아무래도 좋을 그림』을 통해서 특별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굳이 하나를 꼽자면 이런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실은 소박한 삶이라는 건 없고, 소박하다고 하더라도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우리 삶의 이야기가 풍부해질 수 있다는 거죠.

 

건축을 전공하신 만큼 역사적인 건축물을 보기 위해서 여행을 가시는 경우가 많을 것 같은데요. 실제로는 어떠신가요?


건축물의 역사라든지 도시의 배경 같은 부분도 당연히 중요하죠. 아는 만큼 볼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결국에는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의 문제인 것 같아요. 당연히 풍부한 지식이 있는 게 좋고 ‘나는 그걸 어떻게 보고 있는가’ 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합천 해인사에서 영지라는 작은 연못을 보고 느낀 게 있었어요. 그 연못은 물이 굉장히 맑아서 제 모습이 다 비치거든요. 그걸 보면서 ‘연못에 내 모습이 이렇게 비치는구나’라는 걸 느끼는 나의 시각도 있지만, 사실은 그 안에 물이 채워져 있기 때문에 그걸 볼 수 있는 거거든요. 그래서 내 생각을 보려면 먼저 생각이 채워져야 된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배경지식에 대해 아는 건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하지만, 그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그 배경지식을 통해서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솔직하게 바라보는 일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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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도장깨기가 아니잖아요


“요즘엔 차라리 꿈이 없는 사람이 더 건강해 보인다”고 하셨어요. “목표나 꿈이란 게 우리 살이에 얼마나 소용이 닿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고도 하셨고요. 삶을 대하는 작가님의 태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인 것 같은데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꿈이 있는 삶을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대로 충분히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데, 제 방식이 그렇지 않은 거죠. 우리에게는 ‘나이대별로 해야 되는 일들이 있다’는 생각이 있잖아요. 스무 살이면 좋은 대학교에 가야하고, 대학 졸업 후에는 취업을 해야 하고, 서른 즈음이 되면 결혼을 해야 하고요. 그런데 사실 인생이 도장깨기 같은 게 아니라는 거죠. 분명 그에 맞춰서 살아가는 삶도 가치가 있지만, 그런 강박을 가지고 있으면 ‘반드시 빨리 어딘가에 도달해야 된다’는 생각 속에서 살게 되는 것 같아요.

 

작가님께서 중요하게 여기시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언제 시작했느냐’보다 ‘언제까지 하고 있느냐’예요. 예를 들면 피카소나 세잔이나 샤갈 같은 사람들을 화가로 기억되는 건, 그들이 그림을 일찍 시작한 신동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림을 그리다가 죽은 사람들이기 때문이거든요. 저는 좋아하는 작가 나쓰메 소세키를 보더라도, 연재중인 소설의 189회를 써야 되는 시점에서 원고지에 189라고 쓰고 죽었어요. 그렇게 죽으면 소설가로 죽은 거죠. 물론 제 작품이 세잔이나 소세키처럼 인류사에 엄청난 공헌을 한 건 아니지만(웃음), 저는 언제까지 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어느 시점에 어떤 걸 이루어야겠다는 꿈이나 목표가 소용이 닿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항상 가지고 있고요.

 

많은 분들이 한 번쯤 생각해 보시면 좋을 이야기라고 생각됩니다. 과제를 강요하는 목소리들이 넘쳐나는 시대잖아요. 반드시 해야 되는 일들을 설명해주면서, 그렇게 하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처럼 이야기하죠.


그렇다고 집착을 버려야 한다거나, 그런 교조적인 이야기로 비춰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는 ‘꿈을 좇을 것이냐 밥을 좇을 것이냐’ 같은 질문들을 좋아하지 않아요. 당연히 꿈도 좇고 밥도 좇아야죠. 하나를 포기하고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문제는 아니잖아요. 박지성 선수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갈 때 주급이 1억 6천만 원이었어요. 그렇다고 꿈을 포기하고 밥을 좇은 건 아니잖아요. 꿈도 좇고 밥도 좇은 거고, 우리도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는 거죠. 요즘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에게 강요하는 건 ‘너는 그래도 하고 싶은 일을 하니까 그만큼만 받아도 된다’는 식인데, 그건 꿈과 밥을 대척점에 놓고 보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열정페이 같은 것도 생기는 거고요. 그게 아니라 일을 했으면 당연히 돈을 줘야 하는 거잖아요. 좋아하는 일을 했다고 돈을 안 주는 게 어디 있어요.

 

『아무래도 좋을 그림』이라는 책 제목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나요?


그림을 잘 그려야 된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으면 절대 잘 그리지 못하거든요. 그러면 그림 그리는 게 두려워져요. 제가 이 책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것 중의 하나는, 그림을 그리다 보면 대상에 대해서 더 잘 알게 되고 대상에 대해서 우리가 잘 몰랐다는 걸 인정하게 된다는 거예요.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대상도 막상 그리려고 하면 어떻게 그려야 할지 막막하거든요. 사실은 내가 대상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는 걸 알게 되는 거죠. 잘 안다고 지레짐작했던 것들이 사실은 잘 모르고 있는 것이었다는 걸 비로소 깨닫는 거예요. 그걸 깨닫는 데 있어서 잘 그리고 못 그리고는 굉장히 지엽적인 문제예요. 결국에는 아무래도 좋으니까 그려보면 된다는 걸 인정하게 되고요. 『아무래도 좋을 그림』은 그런 의미죠. 아무래도 좋으니까 그려보시라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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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좋을 그림정은우 저 | 북로그컴퍼니
특유의 아날로그적 감수성과 날선 통찰력이 돋보이는 글도 매력적이다. 흔한 블로그 여행기가 어디서 뭘 보고 뭘 먹고 어떻게 이동하고 어디서 잤는지 등의 일상 글이라면, 정은우 작가의 글은 신변잡기적 수다를 일체 배제한 채 여행지의 건물 또는 사물의 역사가 가진 모순이라거나, 거기에서 읽어내야 할 의미 등을 뚜렷한 기승전결을 갖춘 한 편의 에세이로 완성시키고 있다. 그래서 끊임없이 맛보고 수정하고, 보태고 깎아낸 뒤 접시에 담아낸 정갈한 일품요리 같은 맛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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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민 “부끄러움을 아는 게 정말 중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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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다!’
분명 지적을 했는데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때, 사람들은 곧 냉소한다. 지적해봐야 안 변해, 문제제기 나도 해봤어, 하는 심정이 된다. 같은 영역에서 비슷한 문제가 일어나면 ‘아, 저거’하고 눈을 돌려버린다. 비슷하지만 결코 같을 수 없는 문제들이 부수적 피해자들을 만들어도 사람들의 관심은 이미 다른 곳으로 옮겨가 그곳에 더 이상 남아 있지 않게 된다. 문제를 지적하나 해결되지 않으니 문제라고 부르짖는 목소리가 시끄럽게 느껴진다. 시끄럽지만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영역들, 정치, 사회갈등, 소수자 문제 그리고 군대….


문제가 해결되었는지를 알아보려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따져보면 될 것이다. 해결하려는 의지를 엿보려면 저기서 내놓은 해결책을 살피면 된다. 관심 사병이었다는 사람의 자살, 탈영, 총기 난사 같은 심각한 문제들 앞에서 군대라는 조직이 어떤 해결책을 내놓았는지 생각해본다. 글쎄.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이 없는 걸 보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는 말은 무조건 옳다.


좀 서늘하다. 문제가 해결되기까지 발생할 ‘부수적 피해자’들이 내 가족, 동료라고 생각하면 갑자기 불안이 얼굴을 들이민다. 저 불행이 나를 피해가는 행운을 기대할 뿐이다. 어째서? 절대 죽지 않는 영화 주인공이라도 되길 바라는 걸까? 결국 이렇게 가만히 있는 게 터무니없이 어리석게 느껴지는 것이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에는 부조리에 침묵함으로써 부조리에 가담했던 ‘평범한’ 군필자의 적응기가 쓰리게 그려져 있다. “부끄러웠다고 누군가 얘기를 하면 다른 사람들도 그게 부끄러운 일이라는 걸 알게”되므로 “수치를 아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는 최경민 작가는 한 편의 만화로 자신의 경험을 치밀하게 고백했다. 결론이나 해답을 내리려는 건 아니었다.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어서 쓴 책”이라는 작가의 말처럼 책은 우리 모두에게 큰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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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고 싶은 이야기


언제나 가장 중요한 것은 엄정한 자기반성이라고 생각해요. 그것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것이기도 하고요. 그런 면에서 인상 깊은 책이었습니다. 다소 어려운 고백이었을 텐데 말하기까지 고민은 없었나요?


반성을 잘해서요.(웃음) 군대 가기 전부터 군대 갔다 오면 만화 그려야지, 생각하고 갔어요. 그냥 지나가면 아깝잖아요. 그거라도 해야 보상 받는 기분이니까요. 군대 가서도 계속 생각하고 있었죠. 가서는 이런 감정이구나, 하는 것들을 기억하려고 했고요. 책 쓰는 사람들은 책을 쓰면서 자기 치유를 한다고 하잖아요. 저도 쓰다보면 안 좋았던 기억도 나아지는 게 있는 것 같아요. 평소에도 그런 걸 자주 하는 편이어서 이것도 그런 식으로 쓴 거예요.

 

좀 정화가 되셨어요?


뱉어내고 나니까 조금 괜찮아지더라고요. 약간 후련한 거 있잖아요. 말하고 싶었던 걸 말했으니까요.

 

군대에 가기 전에 짐작했던 것과 실제가 많이 다르던가요? 똑같았나요?


많이 바뀌었다고 하던데 비슷한 것 같아요. 똑같네, 그런 생각했죠.

 

결국 내가 일종의 가해자였던 거잖아요. 


처음에는 피해자였다가 점점 가해자 위치로 가는 게 되게 신기했어요. 2년 안에 그걸 다 경험한 거죠. 2년이란 기간 동안 압축적으로 모든 경험을 다 해봤다는 생각이 들어요. 직후에는 몰랐는데 나중에 생각하니 내가 가해자 위치로 옮겨갔다는 걸 알았어요. 신기한 경험이란 생각이 들어요.

 

소위 ‘고문관’이라고 하는 동기를 바라보는 주인공의 심리가 잘 전달됐어요. 처음에는 그저 든든했다가 점점 싫어하게 되고, 동기가 잘못했다고 생각하게 되는 그 과정이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었거든요.


실제로 모델이 있긴 있었는데 그때 감정이 그랬어요. 처음에는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동기였는데 가다보니 원망이 들어요.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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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인물이 있었군요?


섞여있어요. 제 이야기도 있는데요. 다른 친구들의 군 생활 이야기에 대해서 들은 것도 썼고요. 여러 가지 섞였어요. 상사 같은 경우 사람들을 성격마다 분리시켜 놓았어요. 사람의 성격은 다양하잖아요. 그걸 그대로 넣으면 상징성이 없으니까 성격들을 하나씩 뽑아서 캐릭터에 넣었죠.

 

사실 그런 문제들은 한 사람 안에 복합적으로 다 있기도 하니까요.


네. 인상 깊었던 사람들 있잖아요. 도와주는 사람도 있고요. 그런 사람들을 각 캐릭터에 넣어봤어요. 실제일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요. 

 

주변 예비역들에게 읽히고 소감을 물었더니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밖에서 보기에 군대는 ‘그래도’ 변한 부분이 있는 것 같은데 말이에요.


근본 자체는 안 변할 것 같아요. 계속이요.(웃음) 변할 수가 없는 구조기 때문에 바꾸기가 힘들겠죠. 원래 군대라는 곳이 굉장히 폐쇄적이잖아요. 폐쇄적이라는 건 개방을 안 하려고 한다는 것이에요. 군대에서 다 해결한다는 식이니까 무슨 사고가 나도 제대로 해결되기 힘들어요. 군사재판이라는 게 있잖아요. 중대장이 지휘관인데요. 지휘관이 임의로 다 판결을 할 수 있는 그런 이상한 구조예요.


작년 윤일병 사태 직후 만화 내용이 많이 바뀌었어요. 원래는 코믹하게 그려보려고 했는데 말이에요. 그 사건 때 라디오도 듣고, <그것이 알고 싶다>도 보고 하면서 자세히 알고 보니까 정말 말이 안 된다는 걸 알았어요. 그때 이런 것들에 대해 많이 생각했어요. 말 그대로 보수를 상징하는 곳이에요. 자연스럽게 사건을 묻어버리고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하지 않고요. 앞으로도 안 될 것 같아요.(웃음) 해체할 수도 없는 거고요.

 

 

사회를 보수적으로 유지하게 하는 곳, 군대


원래 군대 문제에 관심이 좀 있으셨던 건가요?


군대 가기 전에도 군대 얘기를 좋아했어요. 재미있는 거예요. 군대에 관련된 만화책은 거의 다 봤어요. 윤종빈 감독의 영화<용서 받지 못한 자>도 재미있게 봤고요.


이 만화를 하면서 방송이나 라디오를 많이 봤어요. 이것저것 찾아보면서요. 군사 전문가들이 나와서 얘기하는 걸 들으면 되게 새로운 내용인 거예요. 그 후 군대 생활을 회상해보니 그게 그거였구나, 생각하게 되는 것도 있었고요. 그 안에 있을 땐 잘 몰랐어요. 밖에 나와서 보니 그런 문제도 있었구나 싶었어요.

 

책을 쓰면서도 정리된 부분들이 있었겠네요.


원래 이것 말고 단편이 하나 더 있었어요. 뒷부분에 여자 후배가 나오잖아요. 여자 후배의 동생 이야기가 있어요. 나중에 자살 한다는 그런 이야기가 있는데요. 그걸 그릴 때 많이 정리된 게 있었어요. 라디오에서 듣고, 방송에서 했던 내용들을 많이 넣은 단편이에요. 그건 내용이 너무 우울하다 해서 이 책에 안 실었어요. 제가 봐도 너무 다큐 식이고 딱딱해서 책과 좀 안 맞더라고요. 대신 영창 이야기를 넣었어요.

 

군대 문제에 대한 뉴스는 지금도 계속 나오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직도 똑같구나, 싶어요. 바뀐다고 하는데 해결책들이 말도 안 되는 것만 나오니까요. 내무반에서 뉴스 나오는 걸 보잖아요. 군대 관련 내용이 나오면 상사들이 ‘너희는 수류탄 던지지 마, 나쁜 짓이야’하면서 그냥 비꼬듯이 말해요.

 

군대와 사회, 가장 결정적인 공통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한국 사회에서 ‘개념 있다’는 말을 쓰잖아요. 군대 갔다 온 애들은 개념 있다, 미필자는 개념 없다 하는데요. 그 개념이 ‘군대식 개념’과 완전히 연결돼 있어서 말이죠. 한국 사회에서 말하는 개념이라는 게 군사적인 것과 너무 닮아 있어요. 말도 안 되는 건데 그것을 개념 있다는 식으로 한국 사회에서는 받아들이니까요. 진짜 사소한 걸 계급으로 나눠서 ‘네 짬밥에 그런 걸 하느냐’고 하죠. 그게 사회에서도 당연하게 쓰니까요.

 

일반적으로 회사 조직에서도 군대 다녀온 남자 부하 직원을 좋아하죠.


시키는 대로 하니까요.(웃음) 군대 안 다녀온 사람이나 여성은 모르거나 왜 그래야 하는지 모르는데 그걸 당연하게 강요하면서 ‘이래서 여자는 안 돼’, ‘이래서 미필은 안 돼’라고 하니까 문제인 것 같아요. 군대라는 게 사회를 보수적으로 돌아가도록 유지해주고 있어요. 군대 없어지면 그 사람들도 피해를 많이 보겠죠. 그동안은 편했잖아요. 눈치만 주면 굴러가는데 그게 안 되니까요.

 

사실 주제를 조금 넓혀도 유효한 이야기들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악의 없이, 혹은 잘못된 판단으로 부조리에 편승하잖아요. 이른바 ‘악의 평범성’인데,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제가 그 답을 말할 수 있는 건 아니고, 그냥 그 문제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어서 쓴 책이라서 아직 결론은 못 내리겠어요. 환경에 딱 밀어 넣으면 사람은 어쩔 수 없이 환경에서 살아남으려고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생존이 달린 문제니까요. 거기서 자기 생존을 넘어선 행동을 하느냐, 안 하느냐에서 갈리는 것 같아요. 일제 때 친일 했던 사람들이 있잖아요. 독립운동을 하면 바로 죽으니까 생존의 문제예요. 그 안에서 능동적으로 친일을 하는가, 최소한만 하고 조용히 살아가는 사람인가를 따져보면요. 둘 다 친일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조금은 다르다고 봐요. 뭔가를 조금 더 획득하기 위해 능동적인 행동을 했느냐 살기 위해 가만히 있었는가는 차이가 있겠죠. 물론 저항한 사람들도 있죠. 제 입장에서는 그 사람들이 정말 대단해 보이는 거죠. 그 정도까지는 안 되니까요. 제가 만약 그 상황이라면 저항하거나 그 정도까지는 아닌 것 같아요. 조용히 있겠죠. 그런데 그게 부끄러운 거죠. 그 부끄러움을 아는 게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그걸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안 되는 거고, 수치를 아는 게 중요하죠.

 

부끄러움을 아는 것,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같은 일을 하고 ‘어쩔 수 없었다’고 하는 것과 ‘잘못 했었다’고 말할 수 있는 건 분명 다르니까요.


부끄러웠다고 누군가 얘기를 하면 다른 사람들도 그게 부끄러운 일이라는 걸 알게 되니까요. 이야기 뒷부분에 여자 후배의 역할이 그런 거였어요. 그 전까지는 이게 당연하다고 쭉 흘러오다가 누구 하나 제지하는 캐릭터를 넣고 싶었거든요. ‘그거 아닌데?’이렇게요. 다른 의견을 말하는 거죠. 보통 남자들끼리 군대 얘기하면 결론은 원래 그렇다, 어쩔 수 없다, 가 돼요. 거기에 대해 그건 아니라고 하면 이상한 사람이 되어 버리거든요. 그러면 너는 그렇게 했냐고 질문이 되돌아와요. 그렇게 하진 않았으니까(웃음) 그런 역할이 되기 힘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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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과 개인의 관계


그간 발표한 작품들을 보면 작가의 문제의식이 엿보이는 것 같기도 하거든요. 그런 이야기들을 하게 되는 이유가 뭔가요?


그냥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건데요.(웃음) 저는 그런 것 같아요. 제가 경험한 이야기를 말하고 싶은 거 있잖아요. 어떤 경험을 혼자 삭이면 응어리지는 게 있으니까요. 말 한 번 하면 시원해서 계속 하는 것 같아요. 그것들이 20대에 겪은 일이니까 20대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싶은 거예요. 제가 결론을 내기는 싫어요. 결론은 못 내리는 거고, 내 경험은 이랬고, 내 생각은 이랬는데 너희들은 어떠냐고 물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그런 이야기들을 했던 것 같아요.

 

단지 경험한 이야기라서 한 것은 분명 아닐 테고, 작가를 끌어당기는 이야기나 주제가 분명히 있어 보이거든요.


주로 집단과 개인의 관계를 고민한 것 같아요. 저는 항상 혼란스러워하는 편이에요. 혼자 있고 싶으면서도 집단에 들어가고 싶고, 참 갈팡질팡해요. 집단에 못 어울려서 혼자 있는 건데도 그게 싫어서 혼자 있는 거라고 할 때도 있고요.(웃음) 그러다 보니 마녀사냥에 대한 이야기도 한 것 같아요. 사람과의 관계를 보면서 신기하고 느껴지는 게 있어서 그런 얘기를 자꾸 하는 것 같아요.


특히 자기가 ‘정의’라고 말하는 게 너무 싫었어요. 우리가 하고 있는 게 정의롭다는 말이 굉장히 위험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요. 주로 집단이 그렇죠. 혼자 있으면 고민할 수 있는데 집단에 있으면 그렇지 못해요. 당연히 우리가 정의라는 분위기가 있는데요. 어차피 각자의 이익에 부딪치는 것이죠. 그걸 정의라고 말하는 게 싫었어요. 정치도 그렇잖아요. 서로가 정의라고 해요. 정책, 성향으로 나누는 게 아니잖아요. 결국 이들도 기득권이 되면 똑같이 하겠죠. 정의를 위한 게 아니라 생존을 위한 거예요. 자리 뺏기 싸움이죠.

 

정치 영역에서 특히 그런 모습을 많이 보게 되는 것 같아요.


일상에서도 그래요. 대학교에 가보니까 정말 많더라고요.(웃음) 친한 무리들이 다른 무리가 딱히 잘못한 것이 없는데 싫어하죠. 웃긴 건 저 무리가 없으면 이 무리가 안 생겨요. 적이 없으면 우리가 없잖아요. 그런 관계가 재미있어서 이런 이야기를 계속 하는 것 같아요. 타자를 증오해서 결속이 생긴다는 게 재미있어요.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문제 같아서 계속 얘기하게 돼요. 저도 잘 모르고 함께 얘기해보고 싶으니까요.

 

책에도 결국 또 다른 정병수가 등장하잖아요. 정병수라는 개인이 잘못이라기보다는 그 조직에서 정병수의 자리를 차지할 누군가는 늘 필요한 거죠.


정병수가 있다면 나는 묻히니까요. 정병수를 등신으로 만들면 나는 평균이 될 수 있죠. 정병수가 실수를 많이 하면 내 실수는 가려져요. 한 번 실수해서 욕을 먹으면 계속 실수할 수밖에 없어요. 긴장이 되니까요. 얼어붙어서 또 실수하고 욕을 먹어요. 그 사람은 앞으로 1의 실수를 해도 10의 욕을 먹죠. 나머지는 10의 실수를 해도 가려지죠. 그런 식으로 정병수가 필요한 거죠. 과녁처럼 말이에요. 어떤 무리에서든 그런 사람들이 계속 있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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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에코가 책 『적을 만들다』에서 역사적으로 인간이 계속해서 적을 만들어왔음을 짚었는데, 말씀을 들으니 그 책이 떠오르네요.


이런 장면을 처음 봤던 게 만화책이었어요. 권가야 작가님의 『남자 이야기』라고 진짜 좋아하는 만화책인데요. 고2땐가 고3때 처음 봤어요. 서로 편 갈라 싸우는 얘기가 나와요. 전쟁 장면에서 내레이션으로 나온 말이 있어요. ‘저들이 아니었으면 우리가 어떻게 서로를 사랑할 수 있을까’라는 말이었는데 그게 무척 와 닿더라고요. 그때부터 항상 거기에 대해서 생각을 했어요. 나 역시 그게 싫다고 하면서도 계속 그렇게 하고 있잖아요. 계속 반복되는 것 같아요.

 

작가의 말에서 “지켜야 할 것과 변화해야 할 것을 구분할 수 있는 사회이길” 바란다고 하셨어요. 지켜야 할 것, 변화해야 할 것들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지켜야 할 것은 총이겠죠.(웃음) 뺏기면 안 되니까요. 기본적, 군사적인 것들은 지켜야죠. 진짜 필요한 명령체계들 말이에요. 그런 것 말고 한국 군대는 진짜 필요 없는 게 많아요. 사소한 것들 있잖아요. 이등병은 하지 말아야 할 게 정말 많았어요. 이등병끼리 말도 하면 안 돼요. 불평불만을 서로 이야기할 테니까요. 군화도 꿇어앉아서 신어야 해요. 편하게 신으면 이등병이 아닌 거죠. 이등병이 편하면 긴장을 안 하니까요. 담배에 관한 이야기도 엄청 많아요. 담배를 피운 후 털어서 끄면 안 되고, 조용히 꿇어앉은 다음 발뒤꿈치로 꺼야 해요. 안 그러면 욕 엄청 먹어요. 이유를 모르겠어요.(웃음) 진짜 쓸데없는 게 많아요. 그런 게 없어지면 좋겠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당했던 애들이 큰 다음 이등병이 자기랑 똑같이 하면 열 받아 해요. 나는 그렇게 안 했는데 너는 뭐냐고 하면서요. 똑같이 시키는 거예요. 그걸 누가 끊어야 하는데 쉽지 않죠. 또 한 명이 끊는다고 되는 것도 아니에요. 내무반에 보통 20명이 있는데 착한 고참이 한 명 있어요. 이 고참이 그런 거 하지 말라고 해도 밑에 있는 애들이 몰래 해요. 당한 게 있으니까 고참이 모르게 해요. 말하지 말라고 하면 되죠. 저 고참 나가면 내가 고참이니까요. 고참이 편하냐고 물어도 편하다고 할 수밖에 없어요. 좋은 사람이 있어도 나쁜 사람 때문에 계속 변하지 않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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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싶은 욕구


정보들은 주로 어디서 얻으세요? 책도 많이 읽으시나요?


지금까지는 제가 경험한 이야기들을 써서 따로 자료 수집한 건 없었던 것 같고요. 팟캐스트를 들은 건 얼마 안 됐는데 그런 걸 듣다가 답답한 게 있으면 기억해놨다가 이야기로 재구성해보곤 해요. 대학교 다닐 때는 학교에만 있어도 사례들이 많이 보이니까 편했는데요.(웃음) 다양한 사람들이 많잖아요. 지금까지 제가 그렸던 만화들은 다 실존인물이 있어요. 흥미로운 사람이 있으면 그려봐야겠다고 생각하고 그렸어요. 지금은 SNS도 많이 봐요. 일부러 이상한 소리 많이 하는 애들은 친구를 안 끊어요. 그 사람은 항상 뭔가를 제공해주니까요.(웃음) 욕하면서 계속 보는 거예요.

 

역시 인물에 관심이 많으신 거군요.


사람들의 싫은 모습을 저와 많이 섞어서 봐요. 나의 싫어하는 면을 거울처럼 비춰주는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그걸 제 경험과 섞어서 유추해보는 것 같아요. 나중에 써보려고 그런 식으로 글을 많이 써놔요. 나중에 쓸 기회가 있겠죠.

쌍팔놈코믹스 소개 좀 해주세요. 그곳을 보면 일러스트는 물론이고 <쑈!미더머니>라는 작품도 연재중인데요.


원래 일러스트를 올리고 싶어서 시작한 건데 하다 보니 짧은 단편, 4컷 만화 이런 것도 올리게 됐어요. 제가 힙합을 좋아해서 원래 팬아트를 올렸어요. 하다 보니까 좋아하던 마음이 애증 같은 걸로 바뀌었어요.(웃음) 좋아하는 거였고, 항상 작업할 때 힘이 되었던 것이었는데 보고 있으면 답답하니까 거기에 대해 비판하는 만화를 그렸던 거죠. 올리고 싶은 걸 올리는 공간이에요. 공식적으로 발표하긴 애매한 것들을 개인적으로 발산하는 공간인 것 같아요.

 

일기 쓰듯이 작업을 매일 계속 하시는 건가요?


여유 있을 때는 그렇게 했는데 요즘은 웹툰 연재하고 그런 것 때문에 많이 못했어요. 계속 하려고 했는데 작업하던 것이 몇 번 날아가다 보니까(웃음) 이걸 할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요즘은 웹툰만 하고 있어요. 한 번 몰아치는 기간이 또 있어요. 그게 안 떠오르면 굳이 매일 그리지 않고요. 일부러 부담감을 느끼지 않으려고 해요. 어떤 사람은 매일 하나씩 올리는데 저는 그게 신기해요. 따라하려다가 일주일 하고 관뒀어요. 힘들어서요.(웃음)

 

언제부터 그리는 것에 관심을 갖게 됐는지 궁금해지네요.


어렸을 때부터 그리고 싶은 욕구는 있었던 것 같아요. 계속 뭔가 해봐야지 생각했었고요. 비록 끈기가 없어서 시작만 하고 끝을 맺지는 못했지만요.(웃음)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애들이랑 공책에 만화 그리고 했었어요. 만화가가 돼야겠다는 마음은 있었는데 어떻게 되는지 몰랐다가 고2때 가서야 만화 입시학원이 있다는 말을 처음 들었어요. 부모님 반대가 너무 심했거든요. 두 분 다 만화를 안 좋아하셨고요. 대학을 붙으면 허락해준다고 해서 그때 열심히 그리고, 부모님이 원하는 대학교를 붙었어요. 그때부터는 많이 믿어주셨어요. 한 번 이겨보면 방법을 알게 된다는 걸 처음 깨달았던 것 같아요.

 

만화를 그리고 싶어 하는 사람도 많고, 요즘은 웹툰의 인기도 대단한데 아직 갈피를 못 잡고 있는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제가 데뷔한 게 잡지 지원 사업을 된 거예요. 그런 게 은근히 많아요. 동기나 후배들 보면 막연하게 열심히 그리는데 어디에 내보겠다는 생각을 잘 안 해요. 찾아가보고 계속 붙으면 되는 것 같아요. 저도 지원 사업에 여러 번 떨어지고 된 거거든요. 그런 식으로 찾아보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플랫폼도 많고, 일단 지원 사업이 많기 때문에 꼼꼼하게 하다보면 하나씩 붙어요. 일단 데뷔가 열리고 어떤 플랫폼에 들어가고 나면 경력이 쌓이고, 그리면서 연습이 되거든요. 항상 돈 받으면서 연습하는 기분도 있기 때문에(웃음) 그게 중요한 것 같아요. 막연히 되겠지 하는 사람도 있는데 저는 그걸 못해요. 막연하면 불안해서 못하거든요. 공모전에 내보고, 당선되면 뭔가 되긴 되는 것 같아요.
 
요즘 가장 관심 있는 이슈는 뭔가요?


힙합 만화를 꼭 해보고 싶어요. 힙합 동아리도 했었고, 주변에 힙합하는 친구들도 많아요. 거기서 있었던 일 가지고도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 밖에 꼭 해보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어떤 것인지 들려주세요.


단편집을 내보고 싶어요. 한국 소설을 좋아하는데 장편보다 단편을 좋아하거든요. 특히 천명관 작가님 진짜 좋아하는데 상상력도 좋고 정말 재미있어요. 그런 식으로 그려보고 싶어요. 만화적으로는 생활 느낌이 나는, 공감이 되는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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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최경민 글,그림 | 휴머니스트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는 작가가 경험한 군대 내 왕따 사건을 큰 줄거리로, 일상화된 폭력과 부조리에 자신도 모르게 젖어드는 군대 문화를 날카로운 시선으로 보여준다. 무거운 소재이지만 코믹한 그림체와 대사, 다양한 패러디로 씁쓸한 웃음을 남기는 블랙코미디다. 작가는 모두에게 상처가 되는 심각한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폭력과 방관으로 유지되는 군대 문화에 문제를 제기한다. 외전 《말년 병장 영창 일지》는 본편에서 폭력에 가담했던 가해자가 영창에서 겪는 에피소드를 유쾌하게 다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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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희한한 시골빵집에서 ‘세상’을 보는 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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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빵집에 찾아갔는데, 문을 닫았던 데요?” 올해 초, 일본 오카야마현으로 여행을 떠난 한국 독자들은 허탕을 많이 쳤다. 빵집 ‘다루마리’가 최근 돗토리현으로 이전한 것을 미처 몰랐던 것. 덕분에 일본의 고단샤 출판사는 한국 독자들의 문의 전화를 꽤 많이 받았다. 2014년 6월에 출간된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는 한국에서만 4만 부가 팔렸다. 일본 변방의 작은 시골빵집 ‘다루마리’에서 일어난 조용한 경제혁명은 이웃나라 한국 독자들의 마음까지 훔쳐, 지난해 각종 언론사로부터 ‘올해의 책’, ‘출판인들이 뽑은 숨어있는 최고의 책’ 등으로 선정됐다.

 

균을 연구했던 할아버지, 마르크스를 탐닉했던 아버지의 역량을 물려받은 와타나베 이타루 씨는 유기농산물 도매회사에서 동료로 만난 아내 마리코 씨와 8년째 희한한 시골빵집 ‘다루마리’를 운영하고 있다. 이들 부부는 올해 6월, 일본에서 인구가 가장 적은 현인 돗토리현으로 이주해 새롭게 빵집을 열었다. 빵이 잘 팔리니까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서가 아니다. ‘궁극의 빵’을 만들기 위해, 지역 내 순환이 가능한 경제 활동을 하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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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가 1년 만에 10쇄를 찍을 정도로 한국 독자들에게도 큰 사랑을 받았는데요. 최근에 한국 독자들과 만나셨다고요.


이타루_ ‘와우 북 페스티벌’에서 토크를 했는데요. 젊은 분들이 굉장히 큰 관심을 갖고 질문을 해주시더라고요. 일본으로 직접 찾아오는 독자 분들도 꽤 많았어요. 일주일에 한 두 분 정도는 만난 것 같아요. 며칠 전에 출판사에서 보여주셔서 한국 독자들의 리뷰도 읽어봤습니다. 굉장히 공감을 하면서 읽으셨더라고요. 일본 독자들은 대개 한 발 뒤에 물러서서 평가를 하는데, 한국 독자들은 자기 입장에서 진정성을 갖고 보셔서 인상 깊었습니다.

 

돗토리현으로 빵집을 옮긴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타루_ 오카야마현에서 빵집을 할 때는 제분기가 안에 들어갈 수가 없어서 잘라서 썼어요. 그러다 보니 고장이 났는데, 제분을 못하다 보니 순환이 안 됐어요. 제분기가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찾다 보니 조금 큰 장소가 필요했고, 좋은 물을 가까이에서 얻을 수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어요. 맥주를 팔기로 했으니 좋은 지하수가 필요했거든요. 새로 꾸려진 다루마리에서는 화덕피자를 팔아요. 좋은 나무가 있어야 피자를 잘 구울 수 있는데, 돗토리현에서는 산이 가깝거든요. 저희가 제대로 돈을 지불하고 나무를 사오면 임업가들도 산을 좋게 할 거고, 그러면 비가 내리면 좋은 지하수가 생길 거 아니에요? 지역 내 순환이 가능한 곳이라고 생각했어요.

 

시골빵집의 맥주를 기대하는 손님들도 많겠네요.


이타루_ 맥주를 만들게 된 건, 거의 필연적입니다. 4년 전부터 맥주효모를 만들어 빵을 굽기 시작했는데요. 효모로 사용할 수 있는 양은 한정적이고, 거의 80%가 그냥 맥주예요. 맥주를 판다면 아무 것도 버리지 않아도 되죠. 맛도 굉장히 오묘하고 깊어요.

 

책은 어떻게 쓰게 되셨나요?


이타루_ 빵을 만들면 만들수록 행복이 크게 느껴졌어요. 2년 정도 빵집을 운영하니까 균을 채취하는 과정에서부터 빵집 경영 일련의 과정들이 눈에 보이는 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했고요. 사람들에게 우리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토크 라이브’를 해보기로 했죠. 일본에는 하라주쿠 같은 곳에서 자리를 빌리면, 15분 정도 이런 저런 말을 할 수 있어요. 어느 날, 오모데산도에서 토크 라이브를 하던 중에 고단샤 출판사 관계자 분을 만났고 책 제안을 받았습니다. 준비 과정이 꽤 길었어요. 빵집 성과도 없이 책을 낼 수는 없으니까요. 2년 반쯤 걸린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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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_ 다루마리 페이스북

 

‘작아도 진짜인 일’을 하고 싶어 빵집을 여셨습니다. ‘빵’을 만들게 된 건, 꿈 속에 나타난 할아버지의 음성 때문이었다고요.


이타루_ (웃음) 원산지 허위 표기니 뒷돈 거래를 하는 회사에 염증을 느끼던 때였어요. 한창 고민을 하고 있는데 아주 어렸을 때 전시하셨던 할아버지가 꿈에 나와 ‘이타루, 너는 빵을 만들어보렴’이라고 하셨어요. 신기하게도 그 한마디에 금세 마음속 짐을 내려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4년 반 동안 네 군데를 옮겨 다니면서 제빵 기술을 배웠습니다. 이후 아내와 치열한 경영회의 끝에 빵집을 열었는데, 리먼 쇼크가 터지면서 금융 위기까지 찾아왔죠. 호두, 피넛 등 수입 자재가 급등하면서 불안할 때 아버지께서 마르크스를 읽어보라고 권하셨어요. 그 때서야 『자본론』을 읽게 됐죠.

 

천연균과 마르크스가 책을 관통하는 주제입니다.


이타루_ 마르크스는 약 200년 전에 태어났고 인생의 후반기를 영국에서 보냈어요. 산업혁명의 발상지였던 만큼 자본주의 선진국이었죠. 『자본론』을 읽는데, 마르크스가 묘사한 빵집 상황이 지금과 똑 닮아있다고 생각했어요. 가혹한 노동에 시달렸던 사람들의 모습이 우리의 현재와 겹쳐 보였어요. 상품, 임금, 노동력에 대해 고민하게 됐고, 자기 소유의 생산수단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죠. 부패하지 않는 돈을 탄생시킨 자본주의 경제의 모순을 극복하는 길을 ‘균’에서 찾았고요. 발효라는 신비한 작용을 하는 균을 통해, 이윤이 아니라 순환과 발효에 초점을 맞춤 ‘부패하는 경제’에 도전 중이고요.

 

일본 기준으로, 벌써 책이 나온 지가 2년이 지났습니다. 지금은 무엇을 고민하고 계신가요?


이타루_ 사람을 키우는 것에 대한 문제가 가장 큽니다. 빵을 만드는 일은 도제식으로 가르칠 수밖에 없으니 젊은 분들은 대부분 힘들어 합니다. 물론 기술을 배워 독립한 사람도 있지만, 견디지 못한 분들이 많아요. 그래서 사람들마다 스스로에게 맞는 방식으로 일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도제식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은 빵을, 현대적인 일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에게는 카페를, 지적인 노동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에게는 맥주를 맡기려고 해요. 맥주 같은 경우는 균에 대한 연구가 매우 중요하거든요.

 

마리코_ 정말 어려운 게 사람을 뽑는 일입니다. 처음 이력서를 받으면 대부분 학력이 좋은 사람일수록 문장력이 좋아 저희가 설득을 당해요. 그런데 서류만 놓고 볼 수 없는 게 빵을 만드는 일은 체력도 좋아야 한다는 점이에요. 그래서 체력이 좋은 사람을 뽑으면, 또 그 분들은 저희의 철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요. 그러다 보면 불만이 생기고 즐겁게 일하기가 어렵죠. 우리는 지금 정말 아무나 뽑아서는 안 되는구나를 자각한 상태예요. 지속성과 밸런스가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에요.

 

현재 다루마리는 일주일 중 이틀이 휴무입니다. 어떻게 시간을 보내시나요?


이타루_ 경영이 안정되는 기간 동안에는 강연 자료를 만들고 책을 보는 시간이 많았어요. 스태프들과 여행을 가기도 했고요. 책을 쓰게 되면서부터는 빵만 만드는 게 아니라 빵을 표현하면서 세상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고,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어요. 물론 가족들과 충실한 시간도 보내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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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_ 더숲 출판사

 

자녀들에 대한 글도 기억에 남습니다. “부모가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보고 자란 아이들은 자기 안에 있는 힘을 비축해서 건강하게 자란다”고 쓰셨는데요. 교육 철학이 궁금합니다.


마리코_ 엘리트 같은 이미지는 아예 갖고 있지 않아요. 건강하게 자라는 것이 제일 중요해요. 진짜를 접하고 진짜를 먹으면서 자라면, 나중에 커서 가짜를 접해도 수정하는 힘이 생길 거라고 생각해요. 시골에 와서 기쁜 것 중 하나는 우리 아이들이 이 나물이 어떻게 키워지고, 누가 만들었는지를 알 수 있다는 거예요. 삶과 직접적으로 연계할 수 있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만족합니다.

 

이타루_ 생각하는 힘과 창의력, 이 두 가지가 있으면 제대로 자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와타나베 이타루 씨가 글을 무척 잘 쓰셔서 혹시 전업작가가 되면 어떡하나? 걱정하는 독자들도 있더라고요. 계속 빵집 주인으로 남았으면 하는 바람으로요.


이타루_ (웃음) 돗토리현으로 빵집을 옮기고 난 후로는 실제로 빵 만드는 시간이 예전보다는 줄어든 게 사실이에요. 하지만 빵 레시피를 완전히 바꿨기 때문에 다시 빵에만 주력할 수 있는 시간도 생겼어요. 결론적으로는 빵을 만드는 장인으로서도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강연하는 일도 큰 도움이 되기 때문에 독자들을 만나는 일도 계속할 예정입니다.

 

마리코_ 독자 분들의 걱정을 이해할 수 있어요. 그런데 이거 하나는 말씀 드릴 수 있어요. 우리의 강점은 모든 판단의 기준에 균과 가족이 있다는 거예요. 매일 균에 대해 공부하는 것이 저희들의 주 업무인데 이 일을 하다 보면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가 없어요. 우리는 매일 생산하는 사람이에요. 아무리 바빠도 사와서 음식을 먹는 건, 있을 수 없고요. 계속 음식을 만들고 가족들과 함께 있을 것이기 때문에 딴 방향으로 샐 일은 없어요. (웃음)

 

한국에도 작은 빵집들이 많이 생기고 있습니다. 동지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이타루_ 일을 하다 보면 너무 힘들겠지만요. 그럴 때일수록 고개를 15도 정도 들고 있는 게 중요해요. 비과학적인 이야기지만, 정말 장사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기본이 되는 자세예요. 정말 좋은 운이 들어올 수 있거든요. (웃음) 또 모든 일의 중심에는 가족이 있으니까요. 남자가 생각하는 방식, 여자가 생각하는 방식이 어우러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빵을 만드는 사람으로서 공유하고 싶은 이야기는 상품을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는 거예요. 자본주의 사회 속 대기업들은 마케팅을 먼저 내놓고 세상을 장악한 후에 상품을 내놓잖아요. 그런 방법에 지지 않는 우리의 방법이 필요해요. 우리의 상품은 우리가 추구하는 것, 우리가 어떤 사람이라는 인간성이 표현돼있어요. 작은 일을 하는 분들도 물건을 통해 세상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의 의식을 내놓는 게 중요해요. 이게 개인이 살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싶어요.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를 통해 또 어떤 독자들과 만나고 싶으신가요?


마리코_도시에서 열심히 일하면서 커리어를 쌓고 싶어 하는 젊은 분들이 많잖아요. 그러다가 한계를 느끼는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아요. 이 책이 굉장히 느긋한 시골 생활, 여유로운 삶을 이야기한 책이 아니잖아요. 생명력이 막 넘치는 데도 불구하고 굳이 무대를 시골로 선택해서 사는 이야기인데요. 아직 기존 성공 사례는 도시 속에서 많이 일어나지만, 그걸 뒤엎어서 시골을 선택해서 성공하는 예를 보여주고 싶어요.

 

이타루_자본주의 안에서 젊은이들은 어쩔 수 없이 시스템상 착취를 당하고 있는데요. 이건 일본이나 한국 모두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계속 수긍하면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만의 기술이나 생산 수단을 갖고, 새로운 표현 방법을 개척해나갔으면 합니다. 그런 변화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다면, 이 책도 보람이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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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와타나베 이타루 저/정문주 역 | 더숲
기존 사회로부터 벗어나지 않으면서 자신의 생활도 지켜나가며 삶의 균형을 찾아가는 그의 모습은 많은 일본인들에게 커다란 울림을 전해주었다. 이를 보여주기라도 하듯,『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는 출간 후 일본 아마존 사회,정치, 경제 분야에서 단숨에 1위를 차지하였고, 언론과 독자들로부터 관심과 격려, 칭찬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양심 있는 자본가로서의 그의 모습은 불안정하고 모순 가득한 현실을 애써 피하며 살고 있는 많은 이들에게 진정한 삶의 가치와 노동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고 대안적 삶의 방식을 제시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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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주 “작은 성공을 부각시켜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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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파문, 지난 6월 이 역설적 수식이 어울리는 인물이 진보진영에서 작은 화제가 됐다. 신문들은 그에 대해 여러 논평을 냈고, 혹자는 박원순, 손석희 등과 그의 이름을 한 자리에 놓기도 했다. 이른바 ‘대안’으로 조성주라는 이름을 주목하게 만든 것은 바로 정의당 당 대표 출마선언문 덕이었다.

 

보수양당체제의 협소한 민주주의를 평범한 시민들을 위한 민주주의로 확장한 것은 1세대 진보정치의 정치적 성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루어낸 성과에 안주하고 서로 다투는 사이에 민주주의의 광장은 좁아졌고, 우리가 보호해야 할 시민들은 광장 밖으로 쫓겨나고 있습니다. 2세대 진보정치는 그 광장 밖의 사람들의 삶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새로운 시선으로 현실을 냉정히 진단하고, ‘민주주의 밖의 시민’들을 대변해야 합니다.(214쪽)

 

조성주는 ‘광장 밖의 사람들’에 주목했다. 2010년, 청년유니온을 설립해 청년 문제를 양지로 끌어올린 그답게 ‘좁아’진 ‘민주주의의 광장’을 가리키며 많은 사람들의 인식을 확장시켰다. 알려진 대로 청년유니온은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를 이끌어왔다. 피자배달 30분 제한을 폐지시켰고, 미용실 인턴 노동자 문제를 지적해 ‘열정 페이’에 대한 문제제기에 앞장섰다.


『청춘 일기』는 그가 청년유니온 정책기획팀장으로 일하며 만난 청년들의 솔직한 이야기다. 내밀한 민낯은 따갑고 시렸다. 그러나 그는 절망보다는 희망을 말한다. 세상은 “느리지만 좋아지고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이다. 절망할 수 있다. 다만 절망만 하지 말자는 것.


“이 시대의 전태일이란 지금 여기 있는 친구들”이다. 작고 미미해 보이지만 분명히 이룬 변화들은 훗날 선명한 역사가 되어 있을 것이다. 불안하게 발 딛고 선 땅일지라도 “정직하게 절망하고, 적당하게 희망하”는 태도는 그 자체로 어떤 구원보다 의미가 크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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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실패가 훈장이 아니라 낙인


제목 먼저 따져볼게요. ‘청춘’이라는 단어가 주는 이미지가 있잖아요. 어떤 면에서는 요즘 가장 논쟁적인 단어란 생각도 들거든요. 어느 작가는 그만 징징대라고, 청춘은 누구나 힘들었다고 하던데, 청춘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가요?


요새는 청춘이란 단어가 참 슬픈 단어가 된 것 같아요. 애틋하고요. 심지어 저는 최근에 청춘이란 단어를 탁 떠올리면 비정하다는 느낌까지 들었어요. 옛날에는 ‘청춘예찬’이라는 소리도 했죠. 싱그럽고, 봄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단어였는데요. 이제는 외롭고, 쓸쓸하고, 병 든 것처럼 좀 아픈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는 것 같아요. 시대가 보여주는 것 같아요. 옛날보다 당연히 훨씬 풍요롭죠. 커피 한 잔도 그렇죠. 단순히 물질적인 부의 차이나 편리성에 있어서는 월등하겠지만 지금 청춘이라고 할 때 아프고, 비정해지고, 쓸쓸해지는 것은 물질적 부에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미래. 지금 가난해도 발전할 가능성, 삶의 변화, 개선, 이게 너무 막혀있고 가능성이 너무 좁아졌다는 걸 청춘들이 다 인식하기 시작하면서 그때부터 남는 건 자학, 자조였던 것 같아요.


예전에는 다 가난해도 꿈은 크고, 실패해도 또 도전하고 그랬잖아요. 마치 실패가 훈장처럼 인식됐죠. 지금은 실패가 훈장이 아니라 낙인이 되어버렸어요.

 

번만 실패해도 바로 낭떠러지잖아요.


네, 그게 완전히 달라진 것 같아요.

 

청춘이라는 단어의 이미지가 말씀처럼 변화한 시점을 언제로 보고 계세요?


연도로 딱 자르는 것은 어렵겠지만요. 한국 사회에서는 아마도 1997년 IMF 사태가 지금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경제, 사회 시스템에도 많은 변화를 주었고,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에 변화를 준 게 아닐까 생각해요. 한일합방 때 그런 걸 느꼈을까요? 나라가 망할 수 있구나, 누구나 노숙인이 될 수 있고, 부모님이나 나도 길거리에 나앉을 수 있구나, 세상이 이럴 수 있는 거구나, 하는 것을 느꼈죠. 그동안 몇 십 년은 성장만 해온 거잖아요. 그게 아니고 떨어질 수도 있다는 걸 사람들이 느꼈을 때 가지는 심리적인 부분을 생각하죠. 그 이후 경쟁이나 생존 본능이 심해졌잖아요. 비난할 수도 없죠. 기점은 1997년, 충격이 본격적으로 특정 세대에게 내면화되기 시작한 건 2000년대 초중반 시점이 아닐까 생각해요.

 

굉장히 생생한 이야기들입니다. 밖에서는 알 수 없는 얘기들도 많아요. 청년유니온을 통해 만난 청년들의 이야기인데요. 이야기를 들으며 혹은 쓰며 가장 안타까웠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모두 그 세대의 문제를 해결해보겠다고 나선 조직인 청년유니온에서 일을 하면서 만난 친구들이고요. 가깝고, 깊은 속 얘기를 많이 나눴던 친구들이었는데요. 제일 안타깝고 답답했던 건 이 친구들의 삶이 당장에 개선되지 않을 거라는 걸 서로가 알 때였어요. 나도 이 친구의 삶에 큰 개선을 가져다주지 못하는 걸 알고요. 결국 다른 방식으로 삶이 변화할 수밖에 없고 당분간은, 적어도 오랜 기간 이 친구가 스스로의 힘으로 버틸 수밖에 없다는 거죠. 같이 하는 동료, 친구가 생기게 되면 그 안에서 좀 보호 받을 수 있고, 안정을 느끼겠지만 어쨌든 결정적인 부분은 스스로 해결할 수밖에 없단 걸 결국 인정할 때가 제일 답답했죠. 해줄 수 있는 게 없을 때요.

 

그런 공감이 서로에게 있는 거군요?


네, 서로가요. 어느 순간이 지나면 알게 되죠. 사람이란 존재는 겉으로는 다 밝고, 때론 용기 있는 척해도 누구나 내면의 어떤 아픈 부분들이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이 친구들도 결국 그걸 인정하게 되는 과정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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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안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자존감 무너지는 경험들이었는데요. 그게 결국은 연대를 막거나 사회에 대한 불신을 심화시키는, 혹은 그런 사람들을 양산해내는 것 같았어요.


정확하게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냉소로 빠질 때 연대가 잘 안 돼요. 냉소에서 혐오로 빠지는 바로 전 단계가 자존감이 무너지는 때예요. 냉소나 혐오가 아니면 지근거리에 대한 공격성으로 나타나는 것들을 많이 봤어요. 청년유니온의 어떤 조합원은 가는 곳마다 임금체불을 경험하고, 계속해서 자존감이 떨어지는 상황에 처하고, 미래는 너무 불투명한 상황에서 청년유니온을 만났어요. 조금씩 다 자기가 잘못한 것이 아니란 걸 깨달으면서 회복하긴 했지만 언젠가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청년유니온을 만나지 않았으면 나도 일베가 됐을지 몰라”라고요. 그때 진짜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했어요. 한 사회가 병든다는 건 단순히 물질적인 부분만 있는 건 아닐 수 있구나, 그런 생각이 많이 들었죠.

 

그렇다면 청년유니온은 사회나 구조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세요?


감상적으로 얘기하면 용기를 갖게 해준 것 같아요. 당장 내 삶이 크게 변하지 않을 테지만 우리의 힘을 모으면 사회의 불합리한, 우리를 억누르는 어떤 부분을 개선해낼 수 있다는 용기요. 아주 큰 개선은 아닐 수 있거든요. 대단한 법 제도가 바뀐 건 아니지만 어쨌든 싸움에서 이겨본다는 게 무척 중요해요. 그게 크죠. 한 발이라도 가본 사람이 할 수 있거든요. 그런 경험을 갖기 너무 힘든 사회가 됐기 때문에 대부분이 모르는 거죠. 또 작은 성공을 했다 하더라도 사회는 크고 신화적인 성공과 비교해서 별 것 아닌 걸로 치부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 소중한 것을 깨닫고 용기를 갖게 되고 자존감을 찾게 된 것, 감상적인 부분에선 이게 컸던 것 같아요.


두 번째는 사회적 메시지겠죠. 특정 청년 세대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에 대한 메시지요. 그것은 우리 사회의 근간을 잇는 문제라는 인식이었죠. 이 사회를 굴러가게 하는 노동의 일부분을 이 친구들이 이미 담당하고 있는 거라는 인식 말이에요. 사람들은 자꾸 청년들이 밖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미 안에 있는 사람들인 거예요. 우리가 그것을 노동으로 불러주지 않고, 노력으로 불러주지 않았을 뿐이죠. 그걸 인식시키게 했던 게 제일 컸던 게 아닐까 싶어요.

 

‘노동’이라고 이름 붙여주는 것이 정말 중요했던 것 같아요. 이름을 붙이는 순간 문제가 양지로 올라올 수 있잖아요.


그게 첫 걸음인데, 또 그게 제일 힘들었어요. 시간제 노동, 아르바이트가 모두 노동이라고 얘기했을 때 기존 노동계에 계신 분들조차 ‘그게 어떻게 노동이냐, 사회 경험이지’라고 하셨거든요. 평생 노동운동을 하신 분들도 말이에요. 그것이 처음 맞닥뜨린 가장 큰 벽이었어요. 우리가 스스로를 호명하지 못하고, 남들이 ‘88만원 세대’니 뭐니 해서 이름 붙여주는 이유를 알게 됐죠. 우리도 노동자다, 우리가 하는 것도 노동입니다, 이걸 처음에 이름 붙이기 시작했죠. 제일 넘기 힘들었던 첫 걸음이었어요.

 

숨이 막히네요. 기존 노동계의 시선에서조차 벗어나 있었다는 사실이 말이에요.


처음에 저도 정말 숨이 막혔었어요. 그건 무슨 말이냐면 이름을 붙이기 전에는 나의 존재를 개별적으로 설명해야 한다는 거예요. 모든 행위 하나하나를 다 설명해야 하니까 그때는 정말 숨이 많이 막혔던 것 같아요.

 

“현실이 변화하는 속도가 느린 것은 미치도록 짜증나는 일이지만 변화 자체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19쪽)이라고 하셨어요. 세상이 과연 바뀌었느냐,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라고 반론하는 분들도 있을 것 같은데요.


세상이 나빠지는 속도가 좋아지는 속도보다 빠른 것 같아요. 목도하는 게, 세상이 점점 나빠지는 것들이잖아요. 노동의 질도 계속 나빠지고요. 나빠지는 건 빠른데 좋아지는 건 안 보이니까 상대적으로 세상이 안변하고 나빠지는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요, 사실은 느리지만 좋아지고 있어요. 사회의 아주 중요한 부분들이 바뀌고 있는 거예요. 그걸 인정하지 않으면 안 돼요. 아주 느리지만 굉장히 큰 역사의 변화고 사회의 전진이라는 거죠. 어렵기 때문에 여기에 힘을 많이 쏟아야 해요. 그게 나빠지는 속도를 회복시키는 유일한 힘 아니겠느냐, 이렇게 생각해요. 상황에 대한 건 정직하게 비관할 수 있죠. 그러나 변화의 가능성을 기각하는 건 안 돼요. 그 순간 냉소와 허무로 가고, 그건 반드시 정치적 편집증을 낳는다고 생각해요.

 

정치적 편집증이요?


일베 같은 거죠. 극단적인 형태로요. 좌든 우든 마찬가지예요. 저는 좌의 정치적 편집증을 개인적으로 더 위험하다고 생각하고 더 비판하는데요. 그쪽에 날을 많이 세우기도 하고요. 어쨌든 양 극단의 정치적 편집증은 너무 위험하죠.


『디 마이너스』손아람 작가가 <한겨레> 인터뷰에서 멋진 말을 했더라고요. 정치나 운동이나 가장 심각한 것은 무관심과 냉소와 싸우는 것이라고요. 진보나 보수와 싸우는 것보다 그것과 싸우는 게 더 중요하다고 했는데 그 말이 정말 많이 와 닿았어요.

 

세상이 나빠지고만 있다고 생각하다가 ‘아, 그런 게 있었지’하게 된 일들이 있어요. 청년유니온에서 일궈낸 성과들, 가령 피자 배달 30분 제한 폐지나 미용실 스태프 노동 문제 등을 다시 떠올리면 분명 좋아진 것들이 있는 거였어요. 분명히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 역시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작은 성공들을 많이 부각시키는 게 중요해요. 그게 모여서 사람들에게 용기가 되고, 그것들이 쌓여서 결국은 큰 성공이 되는 거죠. 이론적으로는 정치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하는데요. 한 번에 큰 변화, 큰 한 방에 대한 경향이 심한 것 같아요. 민주주의의 역사가 짧아서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요. 그러나 민주주의는 느린 변화만을 허용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느리지만 확실한 변화죠. 우리는 민주주의 역사가 워낙 짧고 민주화 과정에서 한 방에 변화한 경험들이 크다보니 그런 면이 많이 남아있는 것 같아요. 그것이 역설적으로 다이나믹 코리아를 만드는지 모르겠지만요.(웃음) 느리지만 지속되는 변화가 있죠.


저희가 했던 것 중에 커피 전문점 주휴수당 지급 문제가 있었거든요. 1958년 근로기준법이 만들어질 때 있었던 주휴수당을 커피 전문점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은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었던 거예요. 지금은 거의 다 주거든요. 그걸 금액으로 따지면 전체 월급의 16%예요. 작은 게 아니죠. 아무리 센 노동조합도 16% 임금인상 한 번에 못 해내잖아요. 우리는 그걸 한 거예요.(웃음) 어떻게 보면 우리 삶과 가까이 있어서 안 느껴질 수도 있는 것 같아요. 역설적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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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의 비용을 치르지 않으면 변화는 오지 않아


정치인을 무조건 욕하거나 특정 정치인을 무조건 지지하는 것은 둘 다‘구원’을 바라는 마음의 연장일 수 있을 것 같아요. 영웅이 모든 문제를 말끔히 해결해준다, 는 상상은 문제를 쉽게 해결하려는 게으름의 반증이기도 한 것 같고요. 여기에 ‘구원은 없다’고 하셨죠. 


정치에 대한 시선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바라보는 정치는 그렇습니다. 메시아를 바라는 순간 비참해진다고 생각해요. 그의 구원을 기다리는 비참한 존재들이 되어버리죠. 정치는 그렇지 않거든요. 민주주의는 모두가 평등하다는 기초 아래, 때로 최선이 나오지 않더라도, 변화의 넓이가 대단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모은 힘으로 바꾸는 거예요. 그 안에서 우리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어요. 우리가 좋은 사람이 되지 않고 메시아가 세상을 바꿔준다? 있을 수도 없고, 바람직하지도 않아요. 참여의 비용을 치르지 않으면 변화는 오지 않죠.


반대로 정치인들도 바뀌어야죠. 자기가 메시아, 구원자처럼 굴면 안 돼요. 그러는 순간 내면에서 동정과 시혜의 시선으로 사회의 약자를 바라보게 되니까요. 평등한 존재가 돼서 때로는 싸우더라도 그렇게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영웅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도 언제나 완벽하지 않죠. 그렇다면 그가 무슨 얘기를 하느냐, 어떤 정책을 내놓느냐를 봐야 하는데 지금까지는 안 그랬던 것 같아요. 어떤 사람이 등장하면 그가 세상을 바꿔줄 것처럼 여기죠. 이런 것들이 사회적인 성장을 저해하고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한국 정치의 비극인 것 같아요. 민주주의는 결사의 자유에 기초해요. 다양한 결사체를 만들 수 있죠. 나의 권리를 위해 사람들을 모을 수 있다면, 수만 조직할 수 있다면 이것이 이 사회에 의미 있는 목소리가 될 수 있는 거잖아요. 계급이 아니라, 수만 조직할 수 있다면요. 그런 조직, 정당에 기초하지 않고 의인화된 정치인에만 기대면 그 순간 강력한 팬심(웃음) 같은 것만 남죠. 그건 순식간에 다른 집단에 대한 증오로 돌변할 수도 있고요. 그렇게 해서 사회가 좋아진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국회에서 보좌관 생활을 그만두고 청년유니온을 하면서 오히려 정치를 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국회에 있을 땐 정치를 몰랐던 거예요. 법안을 만들면서도 정작 정치의 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공학적으로만 생각했죠. 진보정당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에요. 청년유니온을 하면서 정치의 본질이 뭘까 생각했어요. 우리 같은 존재들한테 정치인들이 무슨 의미를 가지는가를 진짜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한 거예요. 왜 이 목소리들은 정치에 반영되지 않는가, 왜 이 목소리가 정치에 반영될 때는 팬으로만 돌변해서 참여할 수밖에 없는가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정작 겪고 있는 사회적 문제 그 자체로는 왜 목소리가 되지 못하지? 이게 청년유니온을 마치고 정치로 넘어오면서 가졌던 가장 큰 고민이었어요.

 

책 뒷부분에 실린 당 대표 출마 선언문에서 좁아진 광장, 민주주의 밖의 시민을 가리킨 것이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그것이 많은 청년들의 그와 같은 질문을 건드린 것 같기도 해요.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때 세운 몇 가지 원칙이 있어요. 먼저 거짓말 하지 말자, 못하는 것을 할 수 있다고 얘기하지 말자는 거였죠. 또 정치 언어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왜 한국에는 정치인의 글이 아름답지 못하고 센 언어, 공격적이고 조롱하는 언어만 존재할까 생각했죠. 그렇다면 이 존재들, 우리가 만난 사람들을 어떻게 표현할지가 아주 오래된 고민이었어요. 비정규직이라는 표현은 너무 일면적이죠. 노동문제를 다룰 때는 쓸 수 있겠지만 그게 모든 정체성을 담아주진 않잖아요. 그때 광장 밖으로 추방된 사람들을 처음 생각했고, 그렇게 표현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그러면 청년 세대만이 아니라 다양한 존재들을 같이 표현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순간 연대의 가능성을 상상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생각이었죠. 언어라는 건 상상력을 넓혀주잖아요. 그게 말의 힘이고 글의 힘이라고 생각하고, 정치는 말과 글로 싸우는 거라고 생각해요. 주먹으로 싸우지 않지 않습니까. 그런데 정치의 말과 글이 나빠진다는 건 곧 상상력이 부족해진다는 것이고 그만큼 사회와 유리된다고 생각해요.

 

소외당한 목소리들이 다시 광장에 들어서도록 하려면 가장 먼저 무엇이 준비되어야 할까요? 


너무 많아요. 그만큼 우리 사회 곳곳이 무너졌다는 얘기겠죠. 요즘 많이 주력하고 있는 건 실업안전망인 것 같아요. 모두 당장 정규직이 될 수 없고, 고용시스템이 당장 바뀔 수 없다는 걸 인정하는 가운데 개혁해 나가야 하지만요. 당장 실업 상태에 있는 사람도 그렇고, 일을 하고 있어도 일상적으로 실업의 공포에 사람들이 놓여 있잖아요. 이직도 많고요. 그 이직이 비자발적인 경우도 많아요. 사람들이 이런 불안과 공포 속에 계속 있는 거잖아요. 그걸 일단 줄여주는 게 첫 번째가 실업안전망이라고 생각해요.

 

당분간 직장에 다니지 않아도 다음을 준비할 시간을 국가가 준다면 불안, 분노도 훨씬 줄어들고 더 건강한 직업 선택도 가능하겠죠.


선택의 기회가 생기죠. 어떤 분들은 왜 멋진 출마 선언문을 써놓고 그렇게 작은 정책 의제를 던지느냐고 하세요. 저는 ‘이게 작아 보이느냐, 그게 우리 존재가 서 있는 곳이다, 당신과 우리의 차이다’라고 했어요. 정년이 보장된 직장을 다니는 사람에게 실업이란 회사가 망하거나 퇴직하는 경우뿐이겠지만 이곳에서 실업은 일상화된 것, 당장 내일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요. 진짜 속상했었어요. 이 의제가 작은 건가, 싶어서요.

 

그러나 밤 10시에 수업이 끝나게 되면서 강사들이 집에 가기 시작했다. (중략)술자리가 있어도 자연스레 12시를 넘기지 않게 되면서 학원 강사들의 건강은 날이 갈수록 좋아져갔고 혈색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정작 진보교육감의 밤 10시 이후 학원 수업 금지 정책의 최대 피해자는 학원버스 운전사들이었다. 밤 10시에 학원 수업이 끝나면서 학생들이 추가로 돈을 내고 학원버스를 탈 필요 없이 마을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128쪽)

 

‘구조’ 안에서 문제는 한 가지만 바꾼다고 해결되진 않잖아요. 가령 학원 수업 10시 제한의 엄청난 나비효과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더 크게 다가오죠. 이것이 정책 수립이나 제안의 어려움일 텐데요. 언제나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고, 부수적 피해를 필연적으로 발생시켜요.


그런 것들이 제게도 좋은 경험이었어요. 이 입장에 서서 얘기하지만 이것도 일면적일 수 있는 거구나, 생각했죠. 세상에는 여러 존재들이 여러 상황에 연쇄적으로 있기 때문에 말이에요. 어떤 것을 추진하면 늘 부수적 피해자들이 생기는 것 같아요. 부수적 피해자가 약자일 수도, 강자일 수도 있고, 여러 문제가 발생하죠.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용기 있는 타협이 중요하다, 생각해요. 원래 원하던 것을 100% 밀어붙일 것인가? 그렇게 될 수는 없어요. 내가 추구하는 것은 있지만 이것은 상대나 나, 누구 하나가 죽어야 하는 싸움이 아니기 때문에요. 정치가 싸움의 성격이 있긴 하지만 상대를 죽이는 싸움이라기보다 스포츠에 가깝죠. 룰 안에서 더 나은 대안을 선택하고, 다른 좋은 대안이 나오면 그걸 또 선택할 수 있어요. 결국 용기 있는 타협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거죠. 타협하고 다음을 잘 준비하는 게 중요해요.

 

 

투사가 되라는 게 아니야


우리 일상이 정치적이어야 한다고 하셨죠. 정치에 대한 오해가 워낙 넓고 깊기도 한데요. 일상을 정치적으로 산다는 것, 어떤 것인가요?


특별한 의미를 담은 건 아니고요. 정치를 정치인들만 하는 특별한 영역으로 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물론 정치 엘리트는 필요해요. 모두가 정치인이 될 순 없잖아요. 우리는 일상의 삶을 살아야 하니까요. 누구나 정치인이 된다면 오히려 돈 많고 시간 있는 사람들이 좌지우지하게 되겠죠. 그래서 엘리트주의는 반대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을 대표하는 정치 엘리트는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이 말은 사람들은 평범하게 자기 일상만 살고 어떤 사람에게 모든 걸 위임한다는 뜻이 아니에요. 연결되어 있어야 해요. 일상이 정치적이라는 건 결국 아주 고전적으로 조직으로밖에 가능할 수 없다는 거예요. 공동체를 통해 일상이 정치적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걸 두려워하지 말자고요. 노동조합에 가입하라는 건 투사가 되라는 게 아닙니다.(웃음) 내가 경험하고 살아가는 세계가 이 사회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정말 많은 지혜를 얻을 수 있어요. 좋아하는 표현은 아니지만 정치가 일상으로 내려와야 한다고 하잖아요. 그건 우리 일상도 정치의 영역으로 올라간다는 의미 같아요. 더 나은 시민이 되고자 하는 거죠. 그 길을 기존 정치가 막고 있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을 중요한 사람으로 만들어줘야 하고, 호명해줘야 해요. 정치를 혐오하면 안 된다, 그러면 좋아하는 사람들이 따로 있다(웃음)는 거죠.

 

각 일기 앞에 전태일의 글을 인용했어요. 특별한 의도가 있었을 것 같아요.


연재 당시는 청년유니온을 할 때였어요. 우리를 어떻게 호명해야 할지가 제일 어렵고 가장 중요한 문제였어요. 노동계에서도 너희가 하는 건 노동이 아니라고 얘기하니 고민을 많이 했죠.


노동운동에서 전태일이라는 이름은 상징이잖아요. 『전태일 평전』을 전에도 여러 번 읽었지만 문득 다시 읽으니까 또 달랐어요. 생각해보면 전태일 열사가 분신한 게 스물세 살이에요. 40~50대의 노련하고, 산전수전 다 겪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던 거예요. 바로 이 옆에 있는 청년유니온 조합원 보다 더 어렸던 거죠. 전태일이라는 이름을 어쩌면 우리조차 다르게 전유해온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됐어요. 『전태일 평전』을 다시 읽으면서 굉장히 많은 영감들을 얻었어요. 지금 하고 있는 일이 그때 전태일 열사가 하던 일과 다르지 않다는 걸 알았죠. 오히려 책을 보면 그 당시 스물세 살 청년이 가진 허세와 이상이 있거든요. 이런 면은 그동안은 별로 조명되지 않았던 건데요. 그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죠. 이 시대의 전태일이란 지금 여기 있는 친구들이란 걸 느꼈어요. 그렇게 연결 짓고 싶었어요.

 

『청춘일기』를 누가 읽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나요?


당연히 지금 젊은 친구들이 많이 읽었으면 좋겠어요. 이제 막 사회에 발 딛는 사람들이 많이 읽었으면 해요. 책이 좀 우울해서 미안하기도 한데요.(웃음) 경험할 얘기들, 피할 수 없는 얘기들이기 때문에 읽어주길 바라요.

 

책으로 계속 만날 계획도 있으신가요?


욕심은 있어요. 글에 대한, 책에 대한 욕심은 있는데 어떤 책을 쓸까에 대한 고민이 많이 돼요. 계속 글을 좋은 글을 쓰고 싶고, 그렇게 독자와 만나고 싶은 욕심이 가득 있습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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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일기조성주 저 | 꽃핀자리
진보정치 2세대 조성주의 청춘르포, 『청춘일기』가 출간되었다. 고시원 방세를 마련하기 위해 바닷가 피서객들을 상대로 한 철 장사를 하는 ‘들치기’ 알바생, 가계부까지 써가며 투잡을 뛰는데도 좀처럼 적자 인생에서 벗어나지 못해 울상 짓는 대학생, 인간 컨베이어 벨트가 되어 비인간적인 환경에서 마치 그랜드캐니언을 드는 것처럼 혹독한 무게의 짐을 밤새 나르는 일당벌이 청년 등 이 책에는 조성주가 만난 우리 시대 청춘들의 ‘쌩얼’이 아플 만큼 생생하게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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