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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훈 “나는 잡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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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하는 동안 김훈의 휴대폰 벨 소리가 여러 번 울렸다. 히히힝~ 2년째 울리고 있는 벨 소리는 사람의 ‘말’이 아닌, 동물 ‘말’의 울음 소리다. 누군가는 깜짝 놀라며 “이게 무슨 소리인가요?”라고 김훈에게 물었고, 그는 “광개토대왕의 말 소리”라고 우스갯소리를 날렸다. 김훈의 일산 작업실에는 각종 전집과 평전, 판례법전, 돋보기, 침상, 자전거, 등 대단한 물건들이 꽤나 많이 전시되어 있다. 그러나 그 중 가장 귀한 것을 꼽아본다면 철가방이다. 그가 ‘글’로 인정한 원고들이 철가방 속에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기 때문이다. 김훈의 새 산문집 『라면을 끓이며』에는 맛있는 라면 끓이기의 비법이 들어 있고 ‘밥, 돈, 몸, 길, 글’이라는 주제 안에 살아남은 전작의 글들과 새 글이 실려 있다. 다섯 단어의 순서를 조금 바꿔 김훈에게 질문을 던졌다. ‘지극한 말’을 기록한다는 건, 어쩌면 불가능한 일일 터. 다만 말 소리만큼만 솔직하고 정기가 있기를 바랄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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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산문집 『라면을 끓이며』가 나왔습니다. 독자들에게는 반가운 책인데, 작가님은 정작 책이 나오면 거들떠도 안 보신다고요?


거들떠도 안 봐요. 거의 열어보질 않으니까요. 책이 나오면 그것으로부터 떠나려고 하는 거죠.

 

절판된 산문집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밥벌이의 지겨움』, 『바다의 기별』에 실린 글 일부를 이번 책에 수록하셨는데, 세 권의 책에 남은 글들은 모두 ‘버린다’고 하셨어요. 독자 입장에서는 배신감, 혹은 서운한 감정이 듭니다.


저로서는 어쩔 수 없어요. 하지만 결국 버려지지 않을 테니, ‘버리고 싶다’가 맞을 지도 몰라요. 그래서 말을 고쳐야 하나도 생각해봤지만. 저로서는 버린 거예요. 여느 독자들이 서운하다고 말해도, 제가 어떻게 하겠어요.

 

살아남은 글들은 지금의 생각과 동일하기 때문인가요?


아니요. 지금의 생각과 일치하기 때문에 건져 놓은 게 아니라, 덜 낡았기 때문이에요. 그래도 유효하다고 생각한 글들인데, 몇 년이 지나면 또 버려야겠다고 생각할지도 모르죠.

 

낡았다고요?


글은 대개 낡아지는 거예요.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가 지금 백 명이 넘었지 않습니까? 하지만 상을 받은 작가들이 다 살아있지 않아요. 낡고 퇴색했고, 우리와 관련이 없는 작품도 많아요. 그 책들을 다 읽을 필요는 없죠. 우리 한국문학사에서 문학상을 받은 작품은 얼마나 될까요? 수천 편일 거예요. 그 역시 다 읽을 필요가 없어요. 모두 풍화가 되고 없어지는 거예요. 내가 쓴 글 또한 같은 운명입니다. 자꾸만 새롭게 써서 앞으로 나갈 수 있느냐, 그게 문제죠.

 

작가의 말에 “함부로 내보낸 말과 글을 뉘우치는 일을 여생의 과업으로 삼되, 뉘우쳐도 돌이킬 수는 없으니 슬프고 누추하다”고 쓰셨습니다. 어떤 심정이셨습니까?


나는 갈등이나 자기 분열이 많은 편이에요. ‘내가 왜 이것밖에 안 되나?’ 이런 생각을 합니다. 글쎄,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저는 이런 것들이 견디기 어려워요. 내가 왜 책을 썼나 싶기도 하고.

 

독자들의 리뷰 같은 건, 전혀 안 보시나요?


안 봐요. 컴퓨터가 없으니까요. 저는 스마트폰을 쓰지 않아요. 구석기 시대에 쓰는 휴대폰을 갖고 사니까 못 보죠. 안 봐요. 들여다본다고 해도 백해무익하다고 생각해요.

 

‘소통’도 작가들이 갖고 있어야 할 중요한 덕목일 수 있는데요.


독자들의 요청이 있으면 가끔 작가강연회 같은 곳을 갑니다. 이건 그 분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예요. 그러나 기계, 매체를 통해서는 안 합니다. 나는 시끄럽게 막 떠드는 건 소통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냥 소음이죠. 소통을 하려면 적당한 거리로 떨어져 있어야 해요. 한 존재로서 적절한  거리로 떨어져 있어야만 이성적 사유나 판단이 가능해요. 뒹굴고 부둥켜안는 게 소통이라고 한다면, 이런 점에서 저는 소통이 안 되는 사람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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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을 끓이며」가 이번 산문집의 표제작입니다. 라면의 태생부터 시작해서 사회적 의미, 김훈의 라면 레시피에 대해 굉장히 구체적으로 쓰셨습니다.


전부터 쓰려고 했던 글이었어요. 금방 썼어요. 내가 쓰고 싶은 것의 빙산의 일각이에요. 라면만 가지고 책 한 권을 쓸 수 있어요.

 

라면 이야기는 독자들이 책을 통해 직접 읽는 게 더 좋을 것 같고요. 전 ‘김밥’ 이야기가 더 인상에 남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김밥은 그 속에 단무지와 시금치 또는 우엉 한 줄만 넣은 것”이라며 “청량감이 느껴지는 김밥”이 좋다고 하셨는데, 작가 김훈의 문장론도 이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김밥에 여러 가지 재료를 넣으면 아무 맛도 안 나요. 뒤섞여버려서 계통이 없어져서 어떤 맛도 느낄 수 없어요. 배가 부르고 여러 가지 영양소를 골고루 먹을 수 있다는 장점은 있겠지만, 맛의 계통은 전혀 없죠. 단무지를 햄이랑 같이 넣으면 완전히 망하는 거예요. 어떤 맛도 안 나요. 쓰레기를 집어 먹는 느낌이에요. 김밥이라는 항목을 보면 20, 30개가 넘어요. 햄, 참치, 어묵이 들어가는 김밥도 있고 마치 햄버거 같은 불고기를 넣은 김밥도 있는데, 난 그런 건 안 먹습니다. 한 두 가지 재료만 들어가야 맛이 납니다. 우엉은 흙 냄새가 나서 좋아요. 당근도 좋은 당근은 흙 냄새가 나요. 흙의 질감이 느껴지는 게 좋습니다.

 

김밥의 ‘김’도 꽤 중요하지 않습니까?


너무 고급 김은 맛이 없어요. 딱딱하고 뻣뻣한 김이 맛있어요. 김에 참기름은 절대 바르면 안 되요. 김밥을 망치는 거예요. 김밥은 싸서 바로 먹어야 해요. 한 시간이 지나면 김이 눅눅해져서 맛이 없어지기 때문에 바로 먹어야 해요. 일본 식당에서 파는 마끼가 참 맛있는데, 마끼를 잘하는 요리사는 절대 재료를 이것저것 넣지 않아요. 오징어젓갈이나 무순만 넣어도 진짜 맛있죠. 이것도 역시 빨리 먹어야 해요. 일류 요리사들은 절대 여러 가지를 안 넣어요.

 

작가님이 글을 쓸 때, 수식을 피하는 것과 관련이 있을까요?


그건 모르겠어요. 나의 식성은 유년의 가난에서 오는 것이 대부분이에요. 단순한 식재료를 먹고 자라왔으니까요. 물론 서양 음식을 먹고 싶었던 때가 있었죠. 고기나 버터, 치즈, 우유 같은. 그런데 나이를 먹으니까 돌아가게 돼요. 나이가 들면 고기를 먹기가 싫거든요. 생선도 기름이 많지 않은 게 좋고요.

 

 


『라면을 끓이며』는 ‘밥, 돈, 몸, 길, 글’, 총 5부로 나눠져 있습니다. 분량만 놓고 보면 밥과 돈에 대한 글이 많습니다. 작가님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우선순위로 보이기도 합니다. 또 독자들의 서평을 보면 “먹고 사는 게 여전히 힘들다”는 이야기가 압도적입니다.

 
저는 젊은이들을 걱정합니다. 나는 먹고 살 수 있거든요. 내가 젊었을 때는 우리나라가 너무 가난했어요. 1인당 소득이 83달러였고 캄보디아, 에티오피아와 같이 세계 최빈국이었죠. 우리는 필리핀의 원조를 받고 살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1인당 소득이 3만 달러를 눈앞에 두고 있어요. 잘 살게 됐고 먹을 게 넘치는 세상이 됐는데, 젊은이들은 이 세상 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 있어요. 온갖 풍요로움을 다 만들어놓고 젊은이들은 외곽에서 변두리에서 방랑하게 만든 거예요. 이 모든 사태는 나 같은 기성세대들의 책임이고 그들의 죄악이에요. 역사 앞에 저지른 끔찍한 죄악이죠.

 

‘기회의 부재’, 젊은이들이 맞닥뜨린 현실입니다.


내가 젊었을 때 겪었던 밥벌이의 고통보다 더하죠. 접근조차 못하게 해놓았으니까요. 노량진 고시촌에서 취직 못하고 헤매고 있는 젊은이들, 자기소개서를 50번이나 넘게 쓴 사람들과 여러 번 이야기를 나눠 봤어요. 기성세대를 증오하고 저주하고 있는 걸 알게 됐어요. 이 시대는 세대 간의 전쟁이 싸움처럼 번져 있는데, 나는 이 싸움의 구도가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이건 기성세대가 전적으로 양보해야 해요. 안 그러면 해결할 길이 없어요. 왜냐면 우리는 금방 자연사 해서 없어질 운명이기 때문에 돈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앞으로의 시대는 젊은이들의 몫임을 인정해야 해요. 기성세대는 돈도 있고 권력도 있고 여유도 있고 채용의 자유도 있는데, 이것을 포기하지 않는 한 문제 해결이 안 되는 거예요. 자기가 세상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면 안 되요. 우리는 지나가는 세대라는 인식을 분명하게 가져야 해요.

 

“능력 있으면 해봐라. 왜 못하냐?”고들 하는데요.


물론 개인의 능력이 출중한 사람들이 있어요. 그러나 극소수밖에 안 되고, 대개 그런 자들은 좋은 혜택을 갖고 태어난 사람들이 많아요. 부모를 잘 만났다거나 특출한 재능이 있거나 유산이 있거나. 어른이라면, 몇 명의 젊은이들을 본보기로 삼아서 모두에게 “너 그렇게 해야 해”라고 말하면 안 되는 거죠. 개인의 능력으로는 이미 할 수 없는 세상이에요.

 

그럼 그들은 지금, 무엇을 해야 하나요?


젊은이들의 지옥이 오래 계속되고 있잖아요. 대량으로 소외되고 있는데, 그렇다고 나라를 저주하고 기성세대를 미워하면 우린 희망이 없는 거예요. 젊은이들은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저항해야 해요. 배척당하고 소외 당한 자리에서 욕이나 하고 있으면, 기성세대들은 자기의 것을 절대 스스로 내놓지 않을 거예요. 정치적인 행태가 됐건, 사회적인 행태가 됐건 젊은이들은 저항해야 해요.

 

밥벌이를 고민하면서 동시에 인문학 열풍입니다. 고전 읽기가 유행인데요.


고전을 읽으면 물론 좋아요. 책을 읽지 말라는 것도 아니고요. 그러나 인문학이란, 자기 주변을 반성하고 자기를 반성하는 힘을 갖는 거예요. 가령 자연과학, 생물학, 화학 등이 훌륭한 학문이지만, 이 학문들은 인간 자신을 반성하는 기능은 없어요. 물리학으로 자기 자신을 반성할 수 있나요? 사회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능력이 있나요? 이건 인문학이 할 수 있는 거예요. 물론 인문학만 가지고 현실의 문제를 해결할 순 없어요. 자연과학, 경제학 같은 학문과 합쳐져야 가능하죠. 인문학의 가장 기본은 인간과 자기 환경을 반성하는 데 있어요. 고전을 아무리 읽어도 자기 주변을 반성할 수 없으면 인문학이 아니에요.

 

그간 문학의 효용성보다는 노동의 가치에 대해 강조하셨습니다. 문학은 사람에게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십니까?


크게 두 가지가 있을 겁니다. 하나는 심미적 만족인데, 아름다움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어요. 건전한 것, 퇴폐적인 것, 고전적인 것, 전위적인 것 등이 있을 거예요. 또 하나는 삶이나 현실을 반성하게 되는, 그 세계를 개조할 수 있는 힘을 준다는 겁니다. 그러나 나는 현실을 적극적으로 조금이라도 개선하려는 실천적 노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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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많이 읽지 못한 일은 부끄럽지 않지만. 못이 휘는 일은 부끄럽다”고 쓰셨는데, 보통 사람들은 거꾸로 생각하지 않습니까?


나의 독서는 ‘잡박(雜博)’이에요. ‘잡’은 계통이 없다는 것이고, ‘박’은 넓고 박식하다는 뜻도 있지만 피상적이라는 뜻도 있어요. 나의 경우에는 후자예요. 내가 읽은 책들이 지금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냐를 생각해보면, 등에 식은 땀이 나는 거예요. 대체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나? 그걸 반성해야 하는데. 책을 읽는 것보다 더 중요한 대목이죠. 『자전거 여행』을 쓸 때, 시골에서 농부들을 많이 만났어요. 한글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도 많이 만났는데, 그들은 자신과 이웃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 자신과 환경과의 관계에 대해서 나보다 훨씬 잘 알고 있었어요. 자기가 키우는 소, 말과의 관계에 대해 잘 알고 있을 뿐 아니라 평생 실천하고 있는 분들이 많아요. 이런 분들을 만나면 책을 읽는다고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 사회의 수많은 부정부패, 범죄가 있잖아요? 권력형 범죄를 살펴보면 다 공부 많이 한 놈들이 한 거예요. 일류 대학 나오고 책 많이 읽은 사람이 한 거예요. 너무나 분명해요. 나는 증거를 댈 수 있어요.

 

“일은 나를 나 자신으로부터 소외시킨다. 부지런을 떨수록 나로부터 멀어진다”고도 하셨어요. 『밥벌이의 지겨움』에서 어찌됐든 살아남은 글인데요.


우리 세대는 가난을 돌파한 세대잖아요. 젊었을 때, 잔혹한 노동에 혹사 당해서 무지비한 훈련을 받은 거예요. 노동이 나를 소외시킨다는 걸 뼈저리게 알았죠. 농부, 어부를 보면 힘든 작업을 하는데 그들의 노동은 비록 고달파도 소외된 노동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우리가 바친 노동은 자본의 시스템 안에 들어가서 한 부품이 돼서 일하는 거잖아요. 1차산업 노동자들을 보면 자신의 몸을 갖고 일하는데 작더라도 자신의 소출을 가져요. 어떻게 보면 노동과 인격이 분리가 되지 않았던 시대의 노동이 아니었나 싶죠. 이런 이야기를 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말밖에 안 되겠지만, 우리는 잔혹한 노동 속에 살고 있어요. 그렇게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나로부터 멀어져요. 하지만 우리가 정말 즐거운 노동을 한다면 자유로부터 멀어지지는 않겠죠.

 

여전히 원고지와 연필로 글을 쓰고 계십니다. 기계를 다루는 것은 오직 자전거 뿐이고요.


나는 기계를 안 만져요. 카메라로 사진을 찍은 적도 없고 운전도 안 합니다. 육필로 원고를 쓰는 가장 큰 이유는 컴퓨터를 못하게 때문이에요. 나의 체질과 안 맞기 때문에 컴퓨터 근처를 가는 것도 싫어해요. 제일 싫어하는 건 비행기입니다. 비행기를 타면 너무 빡빡합니다. 인구 밀도가 너무 높아서 가축을 수송하는 느낌이 들어요. 사람을 묶어 놓고 밥을 갖다 주는 게 너무 모욕적이에요. 메놓고 밥을 주니까 답답해요. 육필로 쓰는 건, 제가 기계로부터 멀기 때문이에요. 육필은 몸의 리듬감이 살아 있어서 좋아요. 앞으로도 나는 컴퓨터를 배울 생각이 없어요. 여생의 시간이 많지 않은 사람이 굳이 고칠 필요도 없고요. 불편을 즐기면서 살면 돼요. 이건 나의 자랑이 아니고 나의 낙후됨을 말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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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에서 또 하나 눈에 끄는 문장이 있었습니다. “지극한 말은, 말의 굴레를 벗어난 곳에서 태어나는 것이리라” 입니다. ‘지극한’이란 표현을 작가님의 여러 글에서 본듯한 기억이 있습니다. 좋아하는 단어인가요?


글쎄요. 이 또한 과장된 언어가 아닌가 하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어쨌든 말은 말이 없는 곳에서 태어나는 것 같아요. 지난 추석 때, 달을 봤습니다. 슈퍼문(Super moon)을 봤죠. 동네 산에 올라가서 봤는데 정말 깜짝 놀랐어요. 달이라는 단어와 관련이 없는, 어떤 객관적인 실체가 내 마음속에 딱 들어오더라고요. 언어의 매개가 없이 사물이 딱 들어오는 느낌을 받았어요. 내가 세상에서 태어나 처음으로 달을 본 느낌이에요. 내가 그동안은 ‘달’이라는 글자를 쳐다보고 살았구나, 싶었어요. 지금 쓰고 있는 글이 달에 관한 이야기예요. 달과 사물, 인간의 직접성에 대해 쓰고 있어요. 그런데 이게 또 써놓고 보니까 말이란 말이에요. 그래서 쓰게 된 문장이에요. 지극한 말이란 것이, 말이 없는 곳에 있더라는 겁니다.

 

글에 대한 두려움 못지않게 ‘말’에 대한 두려움도 있지 않습니까? 인터뷰 또한 말이 기록되는 것인데요.


그래서 되도록 하지 않으려고 하는데 어쩔 수 없이 해야 할 때도 있죠. 인터뷰할 때 가장 무서운 게, 거짓말을 하게 될까 봐예요. 사실 따져보면 거짓말과 과장된 말은 같은 거라고 볼 수 있어요. 과장을 심하게 하면 거짓말이 되는 거잖아요. 적극적으로 진실을 말하지 않은 것도 일종의 허위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런 오류에 빠지지 않으려고 해요. 대개 정치나 사업을 하는 사람들은 기자와 인터뷰를 할 때, 과장을 많이 합니다. 백 퍼센트는 아니겠지만 자신의 소망을 업적인 것처럼 말하니까요. 그런 과오를 저지르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나의 오판에 의해서 남에게 잘못 전달되는 것들도 있을 거예요. 나는 그런 것을 두려워합니다. 인터뷰는 힘든 일이에요.

 

하루에 원고지 5매는 꼭 쓰려고 노력한다고 하셨습니다.


다섯 매는 못 써요. 도달할 수 없는 일이에요. 하루에 다섯 매만 쓰면 만사가 해결됩니다. 한 달에 150장을 쓰면 열 달에 장편 하나를 끝낼 수 있는데,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산문은 소설과 다르지 않나요?


산문은 길게 쓸 수 있어요. 하루에 20, 30장을 쓸 수 있어요. 내 주관적 내면을 그대로 드러내면 되니까요. 그런데 소설은 불가능해요. 소설은 등장인물을 통해서 말해야 하니까, 내가 직접 말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어요. 작가는 없고 인물만 존재하니까, 3인칭 객관에 의한 표현이니까 어렵죠.

 

책장 아래에 놓여 있는 철가방은 뭔가요?


안산에 있을 때 선감도라는 곳에서 글을 썼습니다. 서해안인데 그 동네 쓰레기통에서 주웠어요. 가방이 3층이잖아요? 원고를 써서 거기다 둡니다. 책상 위에 있는 원고들은 다 미완성이에요. 나만 알아볼 수 있는 글이죠. 철가방에는 완성된 원고만 갖다 넣어요.

 

아버지의 시대를 긴 글로 쓰고 싶은 소망이 있으나, 여러 번 실패했다고 하셨어요. 지금도 요원한가요?


아직 못하고 있는데, 아주 힘든 일이에요. 우리 아버지는 1910년에 태어났으니 식민지의 아들이었어요. 식민지를 유산으로 받은 세대죠. 저는 그 아버지로부터 야만적인 가난과 권력으로부터의 억압을 유산으로 받았고요. 아버지의 생애와 나의 생애에는 한국 현대사의 질곡, 고통이 들어가 있어요. 그런 것들은 표현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에요. 그러나 한 번 해볼 생각은 있어요. 앞으로 나는 소설 두어 편, 혹은 세 편이나 네 편 정도를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 이상은 아마 힘들 겁니다. 그렇잖아요. 한없이 할 수 없으니까요.

 

최근에는 어떤 생각들을 하고 계신가요? 작가 김훈을 떠나 한 개인으로서의 생각들이요.


나의 내면에 있는 모순이라든지, 인간의 죽음 같은 것들을 생각해요. 요즘 문상을 자주 갑니다. 한 달에 서너 번 가요. 문상을 가면 다들 저의 형뻘입니다. 예전에는 우리 아버지뻘 되는 분들의 문상을 갔는데 이제는 형뻘이에요. 죽음은 누구에게나 다가오는 거잖아요. 죽음을 마주하고 보면, 인간이 시간 앞에서 삶 앞에서 경건하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까불면 안 되는구나, 까불 시간이 없구나, 누구의 생애나 경건하고 경건해야 하고 까불면 안 되는구나’ 생각해요. 나는 말을 쓰는 사람이니까, 말을 더욱 조심하고 아끼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 그런 생각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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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면을 끓이며김훈 저 | 문학동네
여전히 원고지에 육필로 글을 쓰고, 자가용에 몸을 싣는 대신 자전거를 타고 두 발로 바퀴를 굴려 세상을 나아가는 그가 기록한 세상과 내면의 지난한 풍경들. ‘밥벌이의 지겨움’ ‘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 등 길이 회자되는 김훈의 명문장들을 읽는 기쁨과 함께, 국가가 국민을 지켜주지 못하는 시대에 진영 논리에 휩싸여 악다구니를 벌이는 권력가들에게 그가 ‘슬프고 기막혀서’ 써내려간 글, 여전히 ‘먹고살기의 지옥을 헤매고 있’는 보통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김훈 산문의 정수’가 이 책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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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어 닥터 이장우 “책을 수집하려고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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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의 퍼스널브랜드 ‘아이디어닥터(Idea Doctor)’를 창조한 주인공 이장우. 그가 수많은 강연에서도 들려주지 않았던 자신의 진짜 이야기를 담아 『세상은 문밖에 있다』를 펴냈다. 평범한 회사원(공저자 이지용)과 나눈 인터뷰를 바탕으로 쓰여진 책은, 3M의 수세미 영업사원으로 시작해 지금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저자가 지나온 시간들을 되짚는다. 물론 그 속에는 이장우만의 성공 비법이 감추어져 있다.

 

아이디어닥터로서 이장우 박사가 만나는 고객들은 유수의 기업들이다. KT&G와 블랙야크, 불스원, 와바(WABAR), 대웅제약, JTBC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기업들이 그와 함께 브랜드 전략을 논의해왔다. 급변하는 시장의 흐름을 미리 읽어내야 하는 상황 속에서 그들이 저자를 필요로 했다는 사실은 조금 의아하다. 더 이상 이장우 박사는 3M과 같은 다국적 기업에 속해 있지도 않으며, 그들이 겨냥해야 할 타겟층인 2030 세대와도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 번째 스무 살을 맞은 저자는 아직도 젊은 감각을 자랑한다. 패션, 맥주, 커피, 치즈, 향수, 외국어, SNS 등 새로운 세계에 뛰어들어 배우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그 열정은 이장우 박사를 강력한 퍼스널브랜드로 만들었고, 30만 명과 소통하는 “SNS 리더”로 자리 잡게 했다. 『세상은 문밖에 있다』에는 긴 세월이 저자에게 선물한 통찰과 그것을 렌즈 삼아 들여다 본 현 시대의 모습들이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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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가 된 수세미 판매원의 비결 ‘자기 성장’


‘아이디어닥터 이장우 박사’라는 브랜드를 갖고 계신데요. 생소하게 느끼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아이디어닥터’를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브랜드 코치예요. 제가 아이디어를 100% 만들어주는 게 아니고 클라이언트가 가진 아이디어를 끄집어내는 겁니다. 그 분들은 평생을 한 분야의 일만 하셨기 때문에 다른 차원으로 움직이기가 쉽지 않으시거든요. 그렇지만 저는 (제3자의 시각으로 바라보니까) 새로운 차원을 제시할 수가 있죠. 그렇다고 제 생각을 전달해주기만 해서는 성공할 수 없어요. 자신의 생각을 찾아나가야 하잖아요. 그래서 저는 아이디어를 큐레이션하고 생각을 도발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거예요. 브랜드의 콘셉트를 정리하기도 하고 함께 전략을 짜기도 하죠. 컨설팅 강의도 하고 있고요.

 

『세상은 문밖에 있다』에서 “지금은 큐레이션의 시대”라고 하셨습니다. 더불어 큐레이션과 카피는 다르다고 말씀하셨는데요. 큐레이션이란 무엇인지, 카피와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다른 사람의 생각 없이 나의 생각을 가지기는 어렵습니다. 우리도 성장하면서 누군가로부터 세상을 배운 것이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스스로 생각을 해서 얻는 바도 있고요. 그 자체가 큐레이션이에요. 스티브 잡스는 ‘창의력이란 그저 사물들을 서로 연결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조지 로이스는 ‘창의력은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찾는 것이며 발견하는 힘이다’라고 했고요. 이 모든 게 다 연결하는 거죠. 그에 비해서 카피는 단순하게 베끼는 거예요. 큐레이션과의 결정적인 차이는 한 가지입니다. 나만의 색깔, 즉 콘셉트가 있으면 큐레이션이지만 그것이 없이 그대로 옮겨오면 카피인 거죠. 카피는 기능적인 복사일 뿐인데, 그렇게 해서는 크게 실패하죠. 디자인이 똑같지 않더라도 기능을 그대로 베껴오면 카피예요. 자기 색깔이 없잖아요. 빈티지를 바탕으로 콘셉트를 입혀서 새로운 걸 만들어내야 큐레이션 된 창조라고 할 수 있죠.

 

책을 함께 집필하신 이지용 저자님은 평범한 회사원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두 분은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셨는지, 인터뷰를 함께하신 계기가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이지용 씨가 저를 인터뷰하러 왔었어요. DID라는 교육을 받는 과정에서 인터뷰가 필요했다고 하더라고요. 저와 함께 『퍼스널 브랜드로 성공하라』를 집필하셨던 조연심 저자님이 DID 수강생들과 인터뷰를 하신 적이 있었는데, 아마 그 분이 저를 추천하신 것 같아요. 그래서 이지용 씨와 만나가지고 몇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눴죠. 그런데 한 달 후에 사진과 인터뷰 내용을 정리해서 저희 집에 앨범을 보냈더라고요. 그때 제가 책을 출간할 생각도 가지고 있었고, 저희 가족들도 많이 감동을 받아서, 이지용 씨와 함께 작업을 해보면 어떻겠냐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그래서 제가 이지용 씨에게 『세상은 문밖에 있다』를 함께 써보자고 제안했고, 1년 반 정도 이야기를 주고받은 끝에 책이 나오게 됐죠.

 

수세미 영업사원에서 시작해 글로벌 기업의 CEO가 되셨고, 이제는 퍼스널브랜드로 큰 성공을 이루셨습니다. “인생은 비선형적이다”라고 하신 말씀은 경험에서 얻으신 깨달음이 아닐까 싶은데요. 어떠신가요?

 

직장 생활도 그렇고, 미국 본사에 가서 근무한 것도 그렇고, 필연 같기도 한데 우연 같기도 해요. 그런데 우연이 또 필연을 만들잖아요. 우리가 필연에 의해서만 살아가면 세상에는 변화도 없고 재미도 없을 것 같아요. 제가 커피를 공부하면서 바리스타와 커피 감별사가 된 것도 다 우연이었어요. 남산을 지나가다가 브라운하우스에서 커피를 마셨는데, 그때 커피를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죠. 맥주 공부도 OB 강연을 계기로 시작하게 됐고요. 다른 사람들은 자기 계발이나 자기 성장이 필연이라고 생각하지만, 반드시 그런 건 아니에요. 필연만 움직이면 변화가 없고 지루해요. 필연은 재미없잖아요. 우연이 재미있죠.

 

『세상은 문밖에 있다』에서 ‘자기 성장’을 강조하셨는데요. 그것이 박사님의 성공 비결이었나요?


그렇죠. 자기 계발이 조금 기능적인 의미를 가진다면, 제가 볼 때 자기 성장은 감성적이고 철학적인 것 같아요. 내면을 키우는 거니까요. 우리가 자기 계발에 지쳐있다고 하는 이유는 기능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요. 반드시 몇 권의 책을 읽어야 된다고 목표를 정하고 고등학생과 다름없이 노력하는데, 어른의 자기 성장은 내면의 세계를 키우는 거니까 그런 것과는 다르잖아요. 필요한 책을 읽고 탐구하는 거죠. 그리고 책뿐만 아니라 사람도 굉장히 중요해요. 저는 모든 변화의 원천이 사람이라고 봐요.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책에서 더 많은 것을 얻지만, 한 사람은 나를 일순간에 바꿀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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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의 문화를 바꾸는 독서 경영


이메이션코리아의 CEO로 계실 때 독서경영을 도입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목적은 조직 문화 개선에 있었다고요.


많은 회사들이 직원 교육도 하고 MBA도 보내주는데, 독서는 훨씬 더 저렴한 비용으로 효과를 얻을 수 있어요. 책을 통해서 변화와 아이디어를 찾아낸다면 굉장한 거잖아요. 책을 읽는 게 아니라 생각을 읽는 거죠. 생각을 읽는 게 쉬운 게 아니거든요. 실제로 독서경영이 조직 문화를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됐다고 생각해요. 저는 (독서경영을 할 때) 책을 사줄 뿐 강요하지 않았어요. 리포트도 요구하지 않았고요. 1~2년 동안 기다렸어요. (초기에는) 직원들이 책을 사준다고 해도 안 사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술은 회사 돈으로 마시면서 책은 자기 돈으로 사서 보는 건 말이 안 된다고 했죠. 회사 돈으로 무한대로 사줄 테니까 마음껏 사서 읽으라고 했어요.

 

박사님만의 독특한 독서 방식도 눈에 띕니다. 당장 필요하지 않은 책들도 구입해 놓는다고 하셨어요.


저는 책을 읽으려고만 사지 않고 수집하려고 사요. 미리 사놓는 거라고 할 수 있는데요. 첫 번째 이유는 우리나라의 경우 절판이 빠르니까 미리 구해놓는 거고요. 또 다른 이유는 책을 사서 옆에 두면 읽어야 된다는 압박이 생기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지금은 관심이 가지 않아서 읽지 않는 책도 언젠가는 관심을 가지고 읽기도 하고요.

 

가방에도 늘 책이 들어 있다고 하셨는데, 지금은 어떤 책들을 지니고 계신가요?


<비즈니스위크> 같은 잡지도 여럿 있고요. 와바(WABAR)에서 발행한 「왓츠비어(What’s beer)」라는 책도 있어요. 맥주든 치즈든 강연 한 달 전부터 준비하면서 계속 공부하거든요. 기본적인 정보는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기억이 흐려지잖아요. 지식이라는 게 시간이 갈수록 하향 곡선을 그리다가도 다시 공부하면 상향 곡선을 그리거든요. 그리고 저는 책 못지않게 잡지를 좋아해요. 한 달에 20권정도 읽을 때도 있어요. 지식은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얻을 수도 있지만 지혜를 불리기는 어렵거든요. 그런데 잡지는 실마리를 많이 줘요. 그런 점에서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는 테마가 필요한 거예요. 한 분야에 정통하면 폭이 좁아지는데 다른 영역으로도 관심을 확장시킬 수 있거든요.

 

책의 많은 부분을 할애해서 여행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저에게 여행은 아이디어 탐방입니다”라고 하시면서요. 여행에서 아이디어를 찾아내는 박사님만의 방법이 있으세요?


저는 테마를 정해서 여행을 떠나요. 이번에는 이탈리아와 체코를 3주 정도 다녀왔는데요. ‘Flavor&Fragrance’가 테마였어요. 불스원과 미팅을 갖다가 최근 디퓨저 회사를 론칭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향에 관심을 갖게 됐거든요. 그래서 지금은 향수에 대해서 배우고 있고, 앞으로 프랑스에 있는 향수 학교에도 갈 생각이에요. 테마를 정해서 여행을 떠나면 여행지에서 보는 모든 것이 아이디어의 단초가 되는데, 서울에도 그런 곳이 많아요. 홍대 앞, 청담동, 이태원, 가로수길처럼 가는 곳 모두가 아이디어 탐방지죠. 그렇다고 여행하는 동안 아이디어만 고민하는 건 아니에요. 여행을 즐기면서 각종 학교에 가서 배우기도 하는 거예요.

 

『세상은 문밖의 있다』의 핵심 키워드로 “REAL”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박사님께서는 그 의미가 ‘본질’이라고 밝히셨는데요. 본질이란 무엇이며 어떤 방법으로 찾을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브랜드와 SNS에 대해서 코칭하면서 사람들이 본질을 오도하는 걸 많이 느꼈어요. 외양이나 기능보다 중요한 게 콘텐츠거든요. 로고만 바꿔서 되는 게 아니라 제품의 본질이 중요한 거죠. 고객과의 접점에서 제품과 서비스가 감성적으로 완벽한 경험을 제공해야 하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기능적으로만 접근하는 거죠. 제가 와바(WABAR)를 리브랜딩하면서 ‘리얼 크래프트 비어’를 제시한 것도 진짜 수제 맥주의 본질에 집중하자는 의미였어요. (책을 통해서도) 인생의 본질을 강요하는 건 불가능해요. 본인이 찾게 해야 하죠. 그런 점에서 『세상은 문밖에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에요. 사람은 지혜를 깨치고 세상을 배울수록 ‘내가 정말 부족함이 있었구나, 지금이라면 더 잘할 텐데’라고 생각하기 마련이죠. 끊임없이 배우고 연마하고 실패하고 좌절하기 때문에 시행착오를 겪는 거예요. 그게 “REAL”이죠. 자기 삶의 깊이를 탐구하는 거고요. 곧 자기 성장이기도 해요.

 

‘아이디어닥터’로서 어떤 영향을 미치고 싶으신가요?


영화 <인턴>을 보니까 로버트 드 니로가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음악이 사라지지 않는 한 뮤지션에게 은퇴란 없다고요. 저는 브랜드가 멸망하지 않는 한 브랜드맨에게 은퇴는 없다고 생각해요 지금 우리 사회는 모든 게 경직되어 있어요. 저는 그게 가장 걱정스러워요. 고등학생부터 대학생, 취업준비생, 취업이직생, 직장인, 50~60대 퇴직자까지 모든 분들이 경직되어 있잖아요. 저는 그 분들을 말랑하게 해드리고 싶은 거예요. 제가 추구하는 건 ‘말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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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여러분, 2030 세대가 입을 열게 하세요


경쟁을 하려면 “자신의 룰과 프레임 안에서 자신만의 무기로 싸워야 한다”고 하신 말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스펙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스펙을 죄악시하는 건 잘못됐어요. 그건 우리가 거짓말하는 거죠. 정직하지 못한 거예요. 저는 상담 받으러 오시는 분들에게 스펙을 쌓으라고 말씀 드려요. 그런데 자신의 스펙이 뭔지, 본질을 몰라요. 스펙은 남달라야 해요. 나만의 무기가 필요한 거죠. 남이 가지고 있는 건 아무 소용없어요. 빠른 시간에 나를 각인시키기 위해서 스펙이 필요하지만, 스펙에는 토익만 있는 게 아니거든요. 다양한 스펙 중에서 다른 사람에게 없는 걸 만들어내야 돼요. 그런데 결국 끝에 가면 책을 많이 본 사람이 이겨요. 책을 많이 본 사람은 출신 학교나 학위와 상관없이 머리가 말랑말랑해요. 스펙은 잠시 머물다 가는 구름이에요. 영원하지 않아요. 자기 성장만이 스스로를 키울 수 있는 거예요. 

 

CEO를 대상으로 강의하실 때마다 들려주시는 이야기가 있다고 하셨어요. “2030 세대가 입을 열고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드십시오”라고 말씀하신다고요.


젊은이들을 보면 정말 아이디어가 기발해요. SNS에서는 물론이고 창업하는 것만 봐도 우리 세대와는 확연하게 달라요. 그런데 그런 아이들이 회사에만 오면 말을 하지 않아요. 제가 볼 때는 윗사람들과 언어부터가 다르기 때문이에요.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회사를 이끌어가는 중역들은,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지만, 말랑하지 못해요. 회사를 창의적으로 재미있게 만들고 끌고 나가는 게 어려운 거죠. 그런데 2030 세대는 그런 자질을 가지고 있어요. 그렇다면 윗사람들이 어떻게 해야겠어요? 젊은 세대의 기를 살려주고, 아이디어를 받아주고, 휴가도 가게 해주고, 책도 많이 읽게 도와줘야 되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양으로만 일하다 보니까 형식적으로 억지로 하게 되죠. 스트레스가 될 수밖에 없어요. 회사도 재미있어져야 돼요. 그래야 판타지와 콘텐츠가 있는 재미있는 제품을 만들 수 있어요. 

 

은퇴 이후의 삶을 고민하시는 분들에게는 박사님이 롤모델이 되어 주실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으세요?


지금 세대의 어려움은 풍요 속의 빈곤인데, 기성세대는 빈곤 속의 빈곤이었어요. 사회 자체가 다 어려웠으니까요. 일자리는 많았지만 야근도 많았고, 가정은 없고 회사와 야근과 술자리가 많았어요. 은퇴를 앞둔 사람들에게 은퇴 후에 뭘 하고 싶은지 물어보면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하는데, 가족들은 각자 놀자고 해요. 그런데 지금의 기성세대는 놀 줄도 모르거든요.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뭘 하고 싶은지 생각을 해보지 못했고 책도 많이 읽을 수 없었어요. 그래서 지금이라도 책부터 읽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책도 좋고 학원도 좋고 다시 배우는 데 투자를 해야 돼요. 이런 말씀을 드리면 ‘이 나이에 시작해서 뭐하나’ 싶은 생각이 드실 텐데요. 그런 직선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돼요. 비선형적 사고를 해야죠. 그냥 하면 돼요. 그러다 보면 우연히 발견되는 길이 있고 그 길로 나아가면 되는 거예요.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으시다면 들려주세요.


꿈을 세우는 데 늦은 건 없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세상에 어려움이 많지만 시련과 난관은 극복하라고 있는 것이고, 뛰어넘으라고 있는 것이고, 안 되면 피하라고 있는 거예요. 그것이 나를 덮치라고 있는 건 아니거든요. 그리고 그것 때문에 나를 강하게 만들 수도 있어요. 거친 폭풍우가 위대한 선원을 만든다는 이야기가 있듯이, 우리한테 주어져있는 상황들은 어렵고 경직되어 있지만 이것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면 좋겠어요. 그럴 때 진정한 인생을 느끼고 본질을 깨달을 수 있어요. 사람은 어려움이 닥치면 자신을 들여다보게 되고, 그때 한 단계 올라서는 거예요. (삶은) 그런 일들이 비선형적으로 계속 일어나는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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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문밖에 있다이장우,이지용 공저 | 올림
이 책은 평범한 직장인(공저자 이지용)과의 인터뷰 형식을 취하고 있다.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 진솔한 이야기를 털어놓듯, 이장우 박사는 한국3M 수세미 판매사원 시절부터 글로벌 기업 CEO로서의 경험, 1인 기업가로서의 길에 대해 꾸밈없이 이야기한다. 아이디어닥터로서 아이디어의 탄생과 실현에 대해서도 친절하게 설명하고, SNS 리더의 눈으로 바라본 이 시대의 코드와 ‘실질적’ 성공의 조건에 대해서도 명쾌하게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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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싱글 발표한 전인권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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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음악계를 훑을 때 전인권이란 이름은 필수 통과의례다. 특히 록을 언급할 경우, 그와 들국화의 스탠스는 거의 절대적이다. 한국 록이 맞닥뜨린 영욕의 역사처럼 그도 환호와 질곡의 삶을 반복했다. 록 스피릿의 화신이 따로 없다. 새 싱글 「너와 나」를 가지고 막 돌아온 그를 10월2일 홍대 부근 카페에서 만났다. “음악 하는 사람은 테크닉 아닌 역사와 멋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지긋한 나이가 됐지만 그는 여전히 록의 정신과 개성적 예술성이 지니는 가치를 신봉하고 있었다. “우리 모두는 대작(大作)이다” “대중음악은 대중과 함께 가야 한다!”, “음악은 대중의 애환을 담아낼 줄 알아야”, “예술 하는 사람은 결국 쟁이어야” 등등 그의 잇단 변에는 대중에의 포용, 삶에 대한 긍정이 짙게 묻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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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전부터 카카오뮤직에 음악 관련 글을 기고하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넷 댓글을 찬찬히 살펴보았을 때 '나'를 너무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들고 났을 때 '이거 작품인데!' 싶은 노래, 예를 들어 「행진」이나 「돌고 돌고 돌고」 같은 곡으로라도 기억해줬으면 하는데 현 세대가 나를 너무 인정하지 않는 느낌입니다. 「행진」 같은 경우 건전가요로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고(웃음). 그래서 나를 알려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느꼈고, 댓글 팔로워 팬클럽 같은 것들은 잘 모르지만 젊은 세대와 소통하고자 마음먹었지요.

 

전인권을 몰라요? 인터넷 댓글에 어떤 것들이 있었는데 충격을 받으셨나요?


저번 들국화 인터뷰 때 <나는 가수다>를 도살장으로 표현했습니다. 대중과 뮤지션들이 서로 존경하는 게 낫지 않느냐? 가수가 존경받는 것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나아가 사람 대 사람으로서 모두가 존중받는 것이 낫지 않을까라는 어조로 말했어요. 그런데 인터넷 댓글을 보니 “우리가 미쳤다고 가수를 존경 하냐? 가수는 갖고 놀고 즐기는 대상일 뿐이지.”라는 글이 달려있더라구요. 비교를 하자는 건 아니지만 미국에선 밥 딜런이라는 존중을 넘어서 인격적 완성된 모델이라 평해지는 뮤지션도 있는데 말이죠. 이런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주위에서 자유롭게 생각을 펼칠 수 있는 장이자 정치색이 없는 깨끗한 곳으로 카카오뮤직을 권해주어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발표한 새 싱글 「너와나」는 세월호 참사와 연관이 있는 메시지 맞지요?


살아가면서 전 '힘든' 일이 많았죠. 나뿐만 아니라 팬클럽 같은 주위 사람들도 정말 힘겨워하는 것을 보고 '힘듦의 전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어요. 그러다 어느 날 바다를 보았고, 그 때 휘몰아친 감정을 곡으로 이양시키고 싶어 만들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여자 보컬이 필요하겠다 해서 주위에서 윤미래를 추천해주었는데 최고의 선택이었죠. 좋은 후배들이 많이 도와주었는데 특히 밴드들,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갤럭시 익스프레스, 서울 전자음악단 같이 잘하는 후배들이 너무 많아요. 자이언티는 프로의식이 굉장하고 잘하는 친구에요 이번 작업에서도 새벽녘에 우리들 다 조는데도 두 마디 가지고 끝까지 '다시, 다시' 하며 완벽주의를 보여주었습니다. 대단한 친구에요. 최근에는 갤럭시 익스프레스 베이시스트 이주현을 위해 곡도 하나 만들어놨습니다. 곧 발표할거에요.

 

「너와 나」를 들은 첫 인상은 공연이나 라이브 무대에서 부르기 위해 만든 곡이라는 느낌이었어요. 그런데 음악적으로는 버즈(Verse)가 좀 짧고 코러스가 과도한데 힙합 등 여러 요소가 섞이다보니 질서가 부족하다는 느낌도 없지 않던데요.


태어나서 버스, 코러스라는 것을 처음 들어서 그 부분은 잘 모르겠네요.(웃음) 음악적으로 코드나 반음 스케일 건드는 것이 가장 힘든 건데 신윤철 같은 기타리스트들이 잘 도와줬어요. 질서가 부족해도 곡이 지루하지 않게 중간에 코드가 메이저로 갔다가 다시 반음스케일로, 또 사비는 C코드로 가는데 그게 어려우면서도 재밌는 멋진 곡이라 생각해요. 여러 번 들으면 그런 생각이 사라질 겁니다. 자신합니다.

 

작년 < 2막1장 > 앨범을 전인권 밴드로 냈고 높은 평가를 받았지요. 다음 앨범 계획은 언제가 되는지.


1년에 한번 씩 무조건 앨범 발표할 생각이에요. 그래도 앨범 발표에 대해 조금만 더 신중해지기로 했어요. 작년에 총 11곡을 냈는데 조금만 신중하게 생각하고 발표했다면 다 히트할 수 있는 곡이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후 싱글 전략을 펴는 게 그 경험도 작용했겠네요.


정확합니다. 앨범 수록곡 중 디지털 싱글로 냈으면 성공했을 것 같은 곡들이 많았어요. 그때는 주위에서 그렇게 하자고 한 말을 무시하고 거부했죠. 그런 고집이 있었죠. 추세는 따라야겠다는 생각을 최근에서야 해요.

 

전인권 밴드 얘기를 해보죠. 전인권 밴드는 전인권에게 무슨 의미로 다가오나요?


전인권 밴드는 밴드이자 친구에요 제가 예전에 밴드는 남자끼리 하는 연애라는 말을 했죠. 이번 밴드에는 여성분들도 들어와서 약간 애매하네요(웃음). 음악적인 연애라 해둡시다. 밴드를 결성하고 모아서 몇 가지 약속을 했어요. 약속 잘 지키자. 신뢰를 갖자. 거짓말 하지말자. 짜증내지말자. 거짓말처럼 완벽히 지켜지고 있어요. 그 이후에 '신비'가 찾아왔습니다. 지금은 음악이 '신비'할 정도로 잘 나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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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3년 들국화 재결합했던 시점에 “어떻게 목소리가 돌아온 건가요?” 물었더니 “어느 날 갑자기 돌아왔어!”라고 답하셨던 것 기억하시는지요.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딸이 결혼한 2012년 겨울 눈 오는 날에 집에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밖에 나가서 이글스의 명곡 「Desperado」를 마음 놓고 목청껏 부르는데 'It gets cold in the winter time, the sky won't snow when the sun won't shine' 부분에서 소리가 확 터지면서 감정이 증폭되었어요. 소리가 맑아졌어요. 그때 “감정이 돌아오면 소리가 따라오는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환갑이 넘은 만만치 않는 나이에서 전인권이 추구하고 싶은 음악을 표현하자면요.


“대중성”, “정확도” 두 가지라고 하겠습니다. “대중성”을 추구해야죠. 대중의 애환을 모르고 그들에 대해 얘기한다는 건 불가능합니다. 관객이 없는 공연이 있을 수 없듯이 말입니다. 대중의 애환을 멋으로 승화시킨다는 것이 목표죠. 어떤 식인지 궁금하다면 최헌의 「오동잎」을 들어보세요. 음악이 기예화되면서 지금은 대중이 술 한 잔 기울이며 애환을 풀 때 들을 노래가 사라지고 있어요. 대중을 조금 더 고급화시켜주고 대중을 멋있게 만들어주자는 마음입니다.

 

정확도는 무슨 의미죠


“정확도”는요 개인적으로 음악에서 “감정”에 우선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어린아이가 처음 걷기 시작할 때, 3살 때, 5살 때 다 운동 신경이 다르잖아요. 근데 이건 자연스레 발달하는 겁니다. 운동 신경을 음악적으로 비유하자면 구조 자체, 즉 리듬 워크 같은 기본기에요. 이 박자가 엉터리가 된다면 결국 다 헛된 것이 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런 정확도에서 '뿌리'가 부족해요.

 

'뿌리'라는 말은 어떤 것을 지칭하시는지요?


외국 록 아티스트들을 보면 각자 지미 헨드릭스, 닐 영 같은 뿌리가 있는데요. 사실 이런 '뿌리'급 아티스트들을 보면 처음에는 배고파서 잊기 위해 음악을 만들었거든요. 펑키(Funky)가 숨어있는 블루스랄까. 그게 결국 지금 제가 생각하는 뿌리에요. 뿌리를 찾고 '자기 소리'를 내는 아티스트가 필요해요. 요즘 연주보다 옛날 연주에는 손 때 묻은 '자기 소리'를 내는 아티스트가 많았어요.

 

청소년 청년들이 어떤 음악을 들어야 할까요.


청년들에게 리드벨리(Leadbelly) 그리고 블라인드 윌리 존슨(Blind Willy Johnson), 엘빈 비숍(Elvin Bishop)을 들어보기를 추천합니다. 블루스, 가스펠의 시작이자 정통이라고 할 위대한 싱어 기타리스트들이지요. 그리고 최근 후배에게 자랑스러운 '뿌리'가 될 수 있기 위해 두 가지를 결정했어요. 첫 번째 음악에 미칠 거예요. 당연히 약은 손에 대지도 않고 건강을 위해 그 좋아하던 술마저 끊었어요.

 

정말 약은 완전 손 뗀 건가요?


그럼요. 완전히! 술도 끊었는데요. 더 이상 술 먹으면 내가 하는 음악 못할 것 같습니다. 다른 때는 다 괜찮은데 솔직히 공연 끝나고 시원한 맥주 딱 두 캔만 먹고 싶을 때가 있어요. 요즘 힘이 나기 때문에 목소리도 좋아지고 3옥타브 도#까지 쉽게 음이 올라갑니다. 이렇게 좋은 '목소리'를 내기 위해 술을 참습니다.

 

다른 한 가지는 뭐죠?


또 하나의 결정은 사람들을 기만하고 쉽게 가는 음악을 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음악계에 뿌리를 전달하고 싶은 거예요. 「Where did you sleep last night」을 너바나가 부른 곡이라 기억하면 슬퍼요. 그 뿌리 리드 벨리(Leadbelly)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에릭 클랩튼의 뿌리가 로버트 존슨(Robert Johnson)인 것처럼. 우리나라도 뿌리를 따지고 보면 국악, 민중음악, 민주음악이 현대음악, 록, 힙합의 뿌리라 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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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음악은 자기를 표현하기보다는 자신을 알리기 위한 것으로 변질된 것처럼 보여요. 어찌 보면 전인권의 음악이 거대한 자아를 표현하기 힘든 이 시대에 거울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요즘 음악인들의 마음가짐을 바로잡아야 할 것 같습니다. 단순하게 뜰 생각만 하기 보다는 '밀물'이 있으면 '썰물'이 있다는 마음가짐을 가져야합니다. 배드 컴패니(Bad Company)의 「Shooting star」라는 곡의 가사를 보면 비틀스의 「Love me do」를 들으며 열심히 연습해 슈팅스타 급으로 뜬 아티스트가 결국 밀물이 떠나가면서 술과 마약으로 점철되며 죽어가는 과정을 담고 있어요. 이 노래가사를 염두하고 음악 했으면 좋겠습니다. 결국 음악 하는 사람은 최선을 다하는 '쟁이'가 되어야 해요. 집을 질 때 완벽한 토대에 완벽한 재료를 써서 오래갈 집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풍토는 질보다 양을 중시하고 있어요. '너 한 곡 할 때 나 열 곡해'가 아니라 '너 열 곡할 때 나 한 곡해'가 자랑이 되어야 합니다. 가수의 기술과 물량을 보는 것이 아니라 역사와 멋을 볼 때 대중음악이 진일보 할 수 있을 겁니다. 아, 한 가지 후배들에게 말해주고 싶은 게 있어요. 팝을 할 때는 원곡보다 더 잘할 생각이 아니면 안 했으면 좋겠습니다. 아예 하지 말라는 소리가 아니라 마음가짐의 문제에요. 물론 모방 없이 창작은 불가능합니다. 실상 더 잘할 수 없을 수도 있어요. 1970년대 그레이트풀 데드(Grateful Dead)의 제리 가르시아(Jerry Garcia)가 음악으로 전파하고 싶은 메시지를 카피로서 전달할 수 없을지 모릅니다. 어렵겠지만 카피를 통해 원곡을 넘어설 생각을 해야만 발전할 수 있습니다.

 

전 마초는 아니지만 세상의 등불은 야성(野性)의 음악이라 생각합니다. 척 베리, 엘비스 프레슬리 이후 야성을 잃는 순간 록은 록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요새는 야성이 없어진 것 같은데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거세된 남성성에 대해 고민해보자면, 언젠간 다시 돌아올 겁니다. 현재 록이 침체기라 생각하는데 용기를 갖자는 것일 수도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부터 이를 극복할 수 있어요. 비행기가 이륙할 때의 굉음, 트럭이 언덕을 붕 하고 넘을 때의 쾌감이 지속되는 한 로큰롤은 절대 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요 '로큰롤 네버 다이!'지요.

 

들국화 첫 앨범부터 비틀스 < 렛 잇 비 > 커버와 비슷했고 음악 역시 비틀스는 전인권과 땔 수 없는 관계입니다. 비틀스는 어떤가요?


애틋한 보호 본능을 일으키고 세계가 좋아하는 요소를 다 가졌죠. 머리도 비상하고. 전 비틀스 중에서는 존 레논과 조지 해리슨을 좋아해요.

 

속설에 전인권은 존 레논, 최성원은 폴 매카트니라고 하는데 맞나요?


맞는 말입니다. (5월2일 폴 매카트니 내한공연은 갔냐고 묻자) 가지 않았어요. 당시 시기가 안 좋기도 하고 마음이 내키지 않았습니다. 음악 처음 시작할 때 저는 비지스의 「Holiday」나 존 레논의 「Oh my love」, 「Love」 같은 조용하게 울리는 노래 부르기 좋아했죠. 실제로 1989년 낸 솔로 2집에서 두 곡을 부르기도 했구요. 그런데 당시 워낙 그랜드 펑크 레일로드(Grand Funk Railroad) 같은 음악이 유행하다보니 친구나 선배들이 '더 멋있는 거' 하라고 강요했죠.(웃음) 그래서 톰 존스(Tom Jones) 노래를 연습하기 시작했고 목소리가 갈라지고 굵어져버렸네요.

 

전인권이 말하는 전인권, 전인권에 대한 자신의 정의를 듣고 싶습니다.


제게 두 자아가 있다면, 하나는 '사회와 어울리고 싶어서의 나'이고, 다른 나는 '비지스적인 나'입니다. 간단히 '사회적인 나', '감성적인 나'라고 해야겠지요. 비지스는 노래라는 측면에서 제 평생 가는 숙제에요. 「Words」 같은 노래를 들어보세요. 어떻게 노래를 그렇게 할 수 있는지. 비지스의 베리 깁은 정말 대단한 천재고 막내 모리스 깁은 아무 우려 없이 편안하게 노래한 순수 그 자체에요. 비지스 3형제 보컬의 여림과 존 레논의 거침성이 함께 하는 나를 추구합니다.

 

다른 좋아하고 영감을 준 뮤지션이 있다면요?


외국 뮤지션 중에는 닐 영과 폴 로저스. 닐 영은 닮고 싶고 폴 로저스는 공부하고 싶습니다. 닐 영이 방랑자의 마음을 담아 부르는 곡들의 울림은 상당해요. 소아마비를 극복한 스토리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소아마비 하니 갑자기 생각났는데 조니 미첼(Joni Mitchell)도 대단하죠. 왼손에 소아마비가 왔는데 기타를 치기 위해 곡을 죄다 오픈코드 튜닝으로 만들어냈죠. 2년 동안 조니 미첼 음악만 듣기도 했어요. 폴 로저스는 3년 동안 7곡을 썼습니다. 그 완성도는 들어보면 알거에요.

 

우리나라 뮤지션 중에는 누가 노래를 잘한다고 생각하나요?


조용필이죠. 노래는 그분이 잘하지요. 그는 밴드에 기반을 두었기에 균형 감각이 있습니다. 내 공연에서도 조용필 노래 「사랑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네」가 세트리스트에 들어있어요. 예전에는 「그 겨울의 찻집」을 했는데 이 곡이 더 애환 가득합니다. 미아리에 사는 가난한 청년이 부잣집 아가씨를 사랑하는 이야기에 맞을 그런 곡이랄까요.

 

전인권의 노래 중에서 최고를 꼽는다면요?


당연히 「너와 나」죠. 곧 그렇게 될 겁니다. 음, 그리고 우선 「걱정말아요 그대」. 작년에 후배들이 불러주어서 다시금 주목을 받기도 했죠. 원래 버전은 태백산맥을 넘어가는 것 같은 웅장함이 있었는데 이제 편곡이 되어 그런 곡이 아니에요. 들길을 걸으며 피어있는 들국화 한 송이를 감상할만한 편안한 리듬을 넣었어요. 음악하다 보면 가끔 태백산맥을 오르고 싶을 때도 있지만 매일 등산만 한다면 나뿐만 아니라 주위도 힘들어요. 호랑이가 산 정상에서 밑을 보고 있는 것은 멋 때문이 아니라 주위를 먹여 살리기 위한 것이에요. 최근 이와 관련된 가사도 쓰고 있습니다.

 

「돌고 돌고 돌고」는 콘서트 단골 레퍼토리지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곡입니다. 공연에서 전주만 나와도 관객이 미치는 곡이죠. 그러면 부를 때도 미쳐요. 사이키델릭한 가사의 「돌고 돌고 돌고」 도입부를 부르다 보면 성남시의 출근하는 회사원들 모습이 눈앞에 펼쳐져요. 최근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에서 4번을 돌렸는데 또 돌자고 해서 5번째는 옆에 있던 시나위 김바다까지 같이 돌았어요.

 

근래에 라디오에서 「사랑한 후에」가 많이 나오던데요.


「사랑한 후에」는 정말 특별합니다. 미국에 있을 때 광활한 도로를 차를 타고 가는데 라디오에서 「베르사유의 궁전(The palace of Versailles)」을 통기타로 연주한 곡이 나왔어요. 듣는데 무슨 성가의 전주인 듯해 뒤통수가 아리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1차로 영감을 받았고 더 찾아서 알 스튜어트(Al Stewart) 가 부른 버전을 참고해 이를 옮긴 곡이죠. 아름답습니다.

 

저는 「노래여 잠에서 깨라」를 정말 인상 깊게 들었습니다. 잠에서 깨야할 대상이 단순히 '노래'뿐만이 아니라 '나' 나아가 '이 세상'이라는 생각마저 드는 가사가 정말 인상 깊었는데요. 창작과정이 궁금합니다.


TV에서 우연히 들은 '음악은 테크닉이 아니라 감성이다'라는 말을 메모해놓고 창작 모티프로 삼았습니다. 삶은 아까 말했듯이 애환 가득한 것이고 이를 야성으로 전환하는 연결고리와 의미를 찾는 과정이라는 생각을 담은 곡이에요. 예를 들어 요즘 인기 많다는 신인 밴드가 최근에 공동 작업을 제의했는데 거절했어요. 왜냐면 아직 그들에게 '애환' 같은 것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한번 생각해봤어요. 그들의 노래가 지금 길거리를 분주하게 운전하며 고생하는 택시기사 분들과 무슨 연관이 있는가? 애환을 모르면 음악은 '수학'이 되어버립니다. 코드를 많이 안다는 것은 자랑에 불과해요. 내가 나를 다시 사랑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음악을 하자 마음먹었어요. 과감하게 올바른 생각을 하자. 그런 곡이요.

 

2004년 인터뷰했을 때 제게 '인생은 슬픈 거야'라고 하셨는데 지금도 같은 생각인지요?


그 때 한말이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맞죠. 인생은 슬픈 거예요. 그 애환을 모르면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요새 한 단계 발전한 것이 있다면 모든 사람이 걸작을 넘어 '대작'이라는 생각입니다. 다른 말을 생각해보자면 '명작', '시인'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네요. 사람들이 태어나서 아버지 어머니가 되고 아이를 기르고 살아간다는 것, 일종의 '대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러한 대작들을 모르고 속이고 음악하면 안돼요. 함께 걸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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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공연이 꽤 잡혀있는 것 같던데요.


일단 10월23일에 과천에서 'Second Chance' 공연에 나서구요. 10월30일부터 11월1일까지 3일간 이태원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에서 '너와 나'라는 제목으로 공연해요. 크지 않은 무대에서 싼 가격에 관객들을 모시기로 했어요. 대중음악 하는 사람이면 대중과 함께 가야하해요. 최근 경기도 안 좋은데 비싸면 안 됩니다. 공연비는 조금 받아도 세트리스트, 시스템, 엔지니어링, 사운드, 연주자는 모두 국내 최고 수준으로 진행할 생각이에요. 이제까지 전인권 그리고 들국화가 강한 메시지의 반향이었다면 이제는 아까 말한 정확한 음악, 애환을 담은 음악으로, 실력으로 승부를 거는 모습을 보여줄 것입니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인터뷰: 임진모 김반야 이기찬
사진: 이한수
인터뷰 정리: 임진모


2015/10 임진모(jjinmoo@iz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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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주 “조부모 육아, 엄마들이 꼭 알아야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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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 농사 끝, 자식의 자식 농사 시작.” 최근 엄마들 사이에서 화제를 모은 한 CF의 카피다. CF는 손녀의 머리를 질끈 묶어주는 할머니의 모습에서 시작된다. 이어, 모기장 안에서 손주의 이마에 부채질을 해주는 할머니, 후둘 거리는 팔과 다리로 손주와 비행기 놀이를 하는 할머니, 손주의 강력한 축구공을 골대에서 받아주는 할머니의 모습이 차례차례 등장한다. 이 CF를 본 할머니들은 대부분 씁쓸해 했고, 내 엄마에게 아이를 맡긴 직장맘들은 속이 쓰렸다. ‘이런 CF는 왜 만들어서 마음 아프게 하냐”며 죄책감을 느낀 직장맘들에게 『엄마, 내 아이를 부탁해』를 권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직장맘의 71%가 조부모의 손에 아이를 맡긴다. 그래도 믿고 맡길 수 있는 건, 내 ‘부모’라는 뜻이다. 『엄마, 내 아이를 부탁해』는 부모에게 자식을 맡긴 직장맘과 손주 육아로 힘겨워 하는 조부모를 위한 책이다. 두 사람 사이에 당연히 존재하는 갈등의 원인, 해결 방법에 대해 차분하게 꼼꼼히 조언한다. 저자 임영주는 부모교육연구소를 운영하며, EBS <부모광장>, <부모> 등에 부모교육 전문가로 출연했고, 신구대학교 유아교육과 겸임 교수로 여러 유아교육기관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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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탁하는 엄마의 겸손한 자세


“엄마도 할머니도 아이 잘 키우고 싶은 마음은 같은데, 깊어만 가는 갈등이 안타까워” 책을 쓰셨다고 하셨어요.


조부모 육아는 날이 갈수록 늘고 있는데, 부모와 조부모 사이에 낀 아이들의 문제는 많이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황혼 육아’라는 말이 유행을 했는데 지금도 다르지 않아요. ‘손주병’을 겪고 있는 조부모들이 많은데, 너무 고통, 애로사항 쪽으로만 가는 거예요. 엄마들 입장에서는 신식육아, 구식육아를 말하는데 정작 애들은 빠져 있어요. 누가 맡든, 아이를 잘 키우자는 게 근본 취지잖아요. 부모와 조부모가 갈등하면 그 사이에서 가장 힘든 건, 아이예요. 그래서 “내 아이를 부탁해요. 잘 키워주세요”도 있지만, 부탁하는 엄마의 겸손한 자세도 필요해요.

 

예전에는 조부모들이 으레 당연하게 손주들을 봐주셨는데, 지금은 선택입니다. 거절하는 분들도 많고요.


맞아요. 우리 부모 세대와는 정서부터가 달라졌어요. 보통 감사하는 마음 갖고는 안 될 일이에요. 부모가 선택하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해요. 다 키워놓고서 ‘그 때 그럴 걸’은 아니에요. 지금 행동해야죠.

 

책 첫 부분에 ‘육아서를 선물하는 부모 이야기’가 나오던데요. 정작 조부모들은 ‘노안’으로 책 읽기를 힘들어 하신다는 이야기가 기억에 남습니다.


아이 엄마 입장에서는 선물일 수 있어요. “엄마, 이렇게 해”라고 말하면 충돌할 수 있지만, 전문가들이 쓴 책을 선물하면,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완곡하게 전달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그 의도는 순수하더라도 때때로 왜곡되기도 합니다. 평소에 잘 지내는 관계라면 부드럽게 이야기가 전달될 수 있지만, 자꾸만 부모를 가르치려고 하고 안 그래도 서운한데 육아서를 주면서 이러쿵저러쿵 말을 하면 조부모님들이 서운한 거예요. 요즘 할머니들은 젊잖아요. 대부분 50, 60대이신데 그런 게 안 반가운 거예요.

 

신식육아, 전통육아에 대한 갈등이 가장 크지 않나 싶은데요. 이를테면, 간식을 너무 많이 주는 할머니 때문에 고민하는 엄마들이 많습니다.


책에도 썼지만 ‘움큼 문화’라는 게 있어요. 계량컵으로 음식을 만드는 게 아니라 눈대중, 손맛으로 음식을 한다는 건데요. 조부모님들은 육아서를 경험하지 않은 세대이지만, 우리보다 많은 자손을 키웠기 때문에 경험이 무궁무진해요. 어떤 육아서를 뛰어넘는 거죠. 할머니, 할아버지들 입장에서는 손주가 너무 예뻐요. 해할 의도가 전혀 없다는 걸 믿어야 해요.

 

그렇지만, 젊은 엄마들 입장에서는 할머니 앞에서 무장해제가 되는 아이를 보면 걱정이 됩니다. 겨우겨우 적당한 선을 만들었는데 기준이 흐트러지니 고민이 돼요.


정말로 할머니들이 너무 많이 주는 걸까요? 방송에서 다루는 모습은 대개 극단적인 게 많죠. 요즘, 틀니로 음식을 씹어 주는 할머니들이 몇 명이나 될까요? 오히려 젊은 부모들에게서 농익지 않은 육아가 나올 때가 많아요. 할머니의 육아가 정말 아닐 때는 대화의 기술을 잘 살리면 돼요. 남에게 하듯이 정중하게 요청한다면 절대로 고깝게 듣지 않으세요. 내용보다 형식을 너무 무시하는 건 아닐까도 생각해봐야 해요. 책에도 썼지만 따뜻한 한 마디가 중요해요. “엄마, 이렇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아”보다는 “엄마, 내가 책에서 보니까”가 나아요. 객관적인 데이터를 의지해 의견을 전달하면 어머니가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요.

 

“부탁의 말을 할 때도 순서가 있다”는 이야기에 꽤 공감을 했습니다.


어머니의 장점부터 언급하는 게 좋아요. 그 다음에 부탁의 말을 하고 다시 어머니의 장점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거예요. “어머니는 어쩜 그렇게 아이 맘을 잘 헤아려 주세요. 정말 최고예요”라고 장점을 말한 후에 “그런데 할머니가 다 들어주니까 아이가 스스로 하지 않고 할머니한테만 의지하는 것 같아요. 이제 혼자 해 보라고 하는 건 어떨까요?라고 말하는 거예요. 물론 마지막 말도 어머니에 대한 감사로 끝나야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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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하지 마세요. 할머니들은 안간힘을 쓰고 있어요


아이를 할머니에게 맡기게 돼서 너무나 죄책감을 갖는 직장맘도 많습니다. 아이한테도 미안하지만, 이제 편하게 사셔야 할 부모에게 육아를 맡겼으니까요.


아이를 맡김으로써 좋아지는 관계도 있어요. 할머니, 할아버지의 부부 관계도 좋아지고요. 할아버지들은 연세가 드시면 여성성이 많이 발휘되잖아요. 젊었을 때 드러나지 않았던 잠재력이 나타나요. 더 꼼꼼하게 세심하게 손주를 보세요. 내 자식을 키웠을 때 못해봤던 것들도 하시고요. 목소리도 부드러워지니까 할머니 입장에서는 자기 남편을 새롭게 보게 되죠. 아이를 보니까 냄새에도 신경을 쓰고 심지어 담배를 끊는 분도 계시고요. 50, 60대도 남녀 맞거든요. 그런 게 살아나는 거예요. 금슬이 좋아졌다는 이야기를 현장에서 제법 들어요. 무기력에서 활력이 넘치는 거죠. 손주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에 서로의 장점을 보는 시각도 생기고요.

 

현장에서 조부모들도 많이 만나실 텐데요. 젊은 엄마들이 모르는 ‘조부모의 생각’들이 궁금합니다. 조심해야 할 것들을 포함해서요.


내가 아이를 맡겼다는 사실이에요. 시간이 지나면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어요. 어렵게 맡긴 과정을 잊어버리고, 부모한테 “엄마 아빠는 손주 없으면 어떡할 뻔했어?”라고 말하는 거예요. 그건 착각이에요.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안간힘을 쓰고 있는 거거든요. 젊은 엄마들도 육아 너무 힘들다고 하잖아요. 이 분들은 더 힘들어요. 체력이 안 되니까요. 그런데 젊은 엄마들은 어느 순간 당연하게 생각해요. 착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 때가 위험해요. 늘 감사하라는 걸 잊지 않았으면 해요. 일회성이 아니라 매사에 늘 진행형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전해야 해요. “너는 입만 열면 빈말을 하니?”라는 말을 들어도, “엄마 진짜 고마워서 그래”라고 말해야 해요. “애 볼래, 밭 갈래?”라고 하면 모두 밭을 간다고 하잖아요. 그걸 대신 해주고 계신다는 걸 잊지 않아야 해요.

 

직장맘들은 퇴근 길이 바쁩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현관문을 열고 아이를 찾는데, 정작 자신의 부모에게는 안부 인사를 잊는다는 이야기를 읽고 뜨끔할 직장맘들이 많을 것 같아요.


엄마들이 자기 부모 생각을 안 하진 않아요. 그런데 표현을 너무 안 하세요. 자기 엄마한테는 언제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굳이 말을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하시는데, 그래도 해야 해요. “엄마, 비타민 챙겨 먹었어요?”라고 물어야 해요. 항상 용건이 너무 앞서는 것도 문제예요. 회사에서 전화를 할 때도 자기 아이만 챙기잖아요. 뭔가 시키려고 전화를 하는 건데, 할머니 입장에서는 은근히 서운해요. 손주도 예쁘지만 자기 새끼가 나를 챙겨주는 게 좋은 거예요. 아이 안부는 살짝 미뤄놓으면 할머니가 더 챙겨줘요. 애는 어차피 엄마가 회사에 있으니 못 챙기잖아요. 엄마는 할머니가 챙기고, 할머니는 그 힘으로 손주를 챙기는 거예요. 우리 엄마들이 우선순위를 다시 매겼으면 좋겠어요.

 

아이와의 대화법에 대해서도 강조하셨습니다. 아이한테는 존댓말을 하고, 오히려 자기 부모에게는 반말을 하는 엄마들이 많은데요.

 

내가 하고 싶고 키우고 싶은 대로 부모한테 하면, 아이들이 그걸 보고 자라요. 교육적으로 시켜서가 아니라 옆에서 보고 배우는 거예요. 대화할 때 할머니를 먼저 존중하고 존댓말을 잘 쓰면, 아이에게는 롤 모델이 될 수 있어요. 특히 두 돌 전후는 어휘력이 폭발하는 시기예요. 이 시기부터 존댓말을 듣는다면 아이는 존댓말의 문법과 다양한 어휘를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어요.

 

양육비에 대한 꽤 예민한데요. 어떻게 주느냐, 얼만큼 주느냐도 생각의 차이가 있습니다.


손주를 돌봐 주는 조부모들이 모인 공개 토론 자리에 참여한 적이 있어요. 자발적으로 무대에 나와 마이크를 잡은 할머니들은 한결같이 ‘어떻게 양육비를 받냐”고 하셨어요. 다섯에 한 분 정도가 ‘왜 안 받냐, 떳떳이 받아야 한다’고 했지만. 대부분의 할머니들은 ‘못 받고, 안 받고’였어요. 그런데 지면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얼마나 받았으면 좋겠냐’는 질문에 ‘많을수록 좋다’가 가장 많았어요. 가정형편에 따라 액수는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부모님들은 자녀로부터 무언가를 받으면 기뻐해요. 부모님을 생각하는 마음이 ‘존중’으로 전해지기 때문이에요. 또 줘도 그만 안 줘도 그만인 양육비가 아니라 ‘생계형 양육비’도 있어요. 반드시 챙겨 드려야 해요. ‘무임금 노동은 없다’고 생각해야죠. 때에 맞춰 액수에 마음도 담아 드리세요. 정기적인 날짜에 부모님이 편하게 생각하는 방법으로 드리고, 양육비를 드리는 날에는 작은 선물을 준비하는 것도 좋아요.

 

‘주말 시간을 어떻게 보내냐’에 대한 문제도 있습니다. 평일에는 기껏 손주를 열심히 봐줬더니 주말에 나들이나 외식을 할 때는 할머니를 안 불러서 서운해 하셔요.


두 번은 권해야 해요.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염치가 있어서 자기네들끼리 간다고 할 때, 선뜻 따라나서는 경우가 많지 않아요. 그런데 “엄마, 옷 안 갈아입고 뭐 하세요?”라고 말하면 이야기가 달라져요. 주말에는 무조건 부모님께 시간을 드리라는 말이 있는데, 때때마다 달라요. 부모님들도 바깥바람을 쐬고 싶을 때가 있어요. 가족의 일원이 되고 싶으신 거죠.

 

배우자의 부모가 내 아이를 양육하는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더 조심스럽고 어려운 부분도 있습니다.


자칫하다 보면 이런 이야기를 할 때가 있어요. “장모님은 왜 그러셔? 자기 키울 때도 그랬어?” 같은 말을 사위들이 하는데, 늘 상대방의 집안과 어른을 존중하는 걸 잊지 말아야 해요. 못마땅한 게 있으면 정말 웃는 얼굴로 이야기를 하셔야 해요. 젊었을 때는 표정 관리가 잘 안 되는데, 자기 자식들한테는 그래도 잘하거든요. 표정 관리가 필요해요. 아이들한테 자기 엄마가 예쁜 기준이 높은 코와 예쁜 눈이 아니에요. 상냥한 목소리와 웃는 얼굴이 있으면 우리 엄마 예쁜 거예요. “어머니, 제가 잘 몰라서 그래요. 어머님 많이 가르쳐주세요”라고 살갑게 말을 걸 줄 알아야 해요. 집에서는 내가 사회에서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건 다 똑같이 며느리고 딸이고 엄마인 거예요. 겸손함이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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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한테 하면 안 될 말은 부모한테도 하면 안 돼요


요즘 쌍둥이 자녀를 둔 부모가 많습니다. 친정엄마와 시어머니가 번갈아 가면서 아이를 양육하는 가정도 꽤 있는데요. 양육자가 여러 명일 경우, 아이가 혼란스러울 수도 있을 텐데, 부모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어릴 때, 양육자는 통일되는 게 가장 좋아요. 하지만 어쩔 수 없을 때는 조율을 해야 하고 부모가 정말 많이 노력해야 해요. 일단 두 어머님과 엄마가 다같이 함께 있는 시간을 많이 만드는 게 필요해요. 같이 티 타임도 갖고 육아 사례도 이야기하고, 교대하는 시간도 갖는 거예요. 우리도 업무 인계를 하잖아요. 사실 근본은 다 같아요. 사랑하고 잘 키우고 싶은 거예요. 소중한 내 핏줄이지 남의 아이 맡는 거 아니잖아요. 우리가 자꾸 의심을 갖고 보면 불안해서 아이를 볼 수가 없어요. 잘 키워주실 거라는 확신을 갖고, 부모를 잘 모실 생각을 해야 해요.

 

자식이 부모에게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말이 있다면요?


비난이죠. 아이한테 하면 안 될 말은 부모한테도 하면 안 돼요. 정말 격려와 칭찬이 필요해요. 어른일수록 노여움이 커요. 왜냐면 신체적으로 이미 쇠약해져 있기 때문에 젊을 때만 못하거든요. 어떻게 보면 발목이 잡힌 거예요. 이제 와서 안 봐준다고 할 수 없고, 봐주자니 너무 힘들고요. 아들 오면 이야기해야지 싶다가도 아들을 보면 불쌍한 거예요. ‘내가 못 봐준다고 말하면 내 아들의 입장이 얼마나 난처해질까’ 걱정을 하세요. 비난은 서로 절대로 하면 안 돼요.

 

‘할머니 앞에서는 아이를 훈육하면 안 된다’는 조언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습니다.


중요한 문제예요. 아이가 할머니 앞에서 엄마한테 혼날 때, 할머니가 가만히 있으면 아이가 서운해 하거든요. 그렇다고 아이가 잘못을 했는데 가만히 있으면 교육의 일관성이 떨어지고 엄마의 권위도 없어지고요. 그럴 땐 자리를 피해서 훈육하는 게 좋아요. 할머니가 안 보이는 곳에서 훈육을 해야 아이가 서운한 마음을 갖지 않아요. 할머니가 아이를 훈육할 때는 어머니가 자리를 비켜주는 게 좋아요.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할머니에게 반론을 피면, 아이는 눈치를 보게 됩니다. 갈등 요소만 보이게 돼서 훈육은커녕 아이가 정서적으로 불안해질 수 있어요. 동조하는 말은 삼가는 게 좋고요. 이건 교육의 일관성과는 다른 문제예요. 엄마에 대한 반감으로 할머니의 훈육 내용이 희석될 수 있어요.

 

현재 부모교육연구소를 운영하시면서 전국을 돌며 ‘밥상머리교육’ 특강을 하고 계신데요. 실제로 가족과 식사를 하면서 하는 교육이라고 들었습니다.


30분 강연하고 실제로 부모와 아이가 함께 식사를 해요. 조부모님들이 오시는 경우도 있고요. 많은 분들이 ‘밥상머리교육’이라고 하면 밥을 먹을 때 가져야 할 매너 같은 것을 생각하시는데, 저희가 하고 있는 건 인성교육의 일환이에요. 어른과 아이가 함께 밥을 먹을 때, 음식을 남기지 않고 잘 먹는지, 음식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면서 먹는지, 그런 걸 함께 생각해보는 시간이에요. 계란 프라이가 세 개 있을 때는 가족 한 명씩 먹는 거잖아요. 말하지 않아도 아는 배려, 정당한 나눔을 체험하는 시간이에요. 부모교육연구소에서 가장 많이 활동하는 건, 결국 부모교육인데요. 자녀들 나이에 따라 부모님의 눈빛이 달라요. 관심 분야도 다르고요. 중 고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들은 공부나 진학에만 관심이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에요. 부모교육이 절실하다는 걸 더욱 절감하고 있어요.

 

한 셰프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데요. 자녀들에게 “잘 커줘서 고맙다”고 이야기를 했더니, “엄마 아빠가 얼마나 열심히 사는지 아는데, 당연한 거 아니냐”고 대답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럼요. 부모가 잘 지내면 아이는 잘 커요. 좋은 부모는 곧 좋은 사람이에요. 좋은 부모가 뭐냐고 물으면, 좋은 사람이에요. 길가에 휴지 안 버리고 쓸데없이 경적 울리지 않고, 남 비난하지 않으면서 부부끼리 행복하게 살면 아이가 잘 자랄 수밖에 없어요.

 

아무대로 이 책을 읽을 독자들은 ‘젊은 엄마’ 또는 ‘직장맘’들일 텐데요. 선배 엄마로서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실까요?


아, 뭉클하네요. 아이를 키우고 나면 ‘지금 알고 있는 걸 그 때도 알았더라면’ 싶어요. 육아서 같은 걸 읽으면, ‘이게 뭐야? 시야?’ 라고 생각했어요. 너무 당연한 이야기가 써있어서요. 그런데 나중에 보니 구구절절 맞는 이야기예요. 아이랑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아이와 더 많이 들판을 뛰어다니고 벼를 바라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달아요. 피곤에 지치는 하루가 많겠지만, 오늘 같은 날 아이 손을 잡고 아파트라도 한 바퀴 돌았으면 좋겠고, 멀리 바다를 못 가는 걸 아쉬워하지 말고 하늘을 좀 보면서 아이에게 “어제 바람이랑 또 다른 것 같지?”라고 말해줬으면 좋겠어요. 젊었을 때는 젊은 맛에 몰랐는데, 너무 소중한 거였던 거예요. 내 아이의 손이 내 손에 들어가는 시간이 정말 빨리 지나간다는 거 아셨으면 좋겠어요. 아이랑 눈을 많이 마주쳤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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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내 아이를 부탁해임영주 저 | 물주는아이
일도 육아도 성공적으로 하고 싶어서 어머니에게 맡겼건만 육아 갈등으로 다투다 보니 둘 다 엉망이 되어 버린다. 갈등 속에서 우리 아이는 과연 제대로 클까? 어떻게 하면 갈등을 줄일 수 있을까? 이 책에는 실제 조부모 육아 갈등의 다양한 사연과 해결 방안을 담았다. 책 속의 생생한 사연들과 구체적 지침들은 앞으로 닥칠 육아 문제를 여유롭게 헤쳐 나갈 나침반이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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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훈 기자 “경제도 다양한 2등이 존재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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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경제야,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
1992년 미국 대선에서 빌 클린턴을 승리로 이끈 이 문구는 20년이 훌쩍 넘은 시간동안 거의 빛을 잃지 않은 듯 유효하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경제는 어쩌면 가장 중요한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경제는 국가의 현재와 미래를 진단하는 가장 확실한 지표 중 하나가 아닌가. 그런 경제가 지금 뜨거운 용암처럼 들끓고 있고, 이는 비단 한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세계 경제는 계속해서 위기의 신호로 깜박이고, 경제적 요인들은 세계 열강 구도를 바꾸기까지 하는 중이다. 

 

각종 경제 지표들이 하나같이 우울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지금, 경제학 박사기도 한 박종훈 KBS 경제부 기자는 한국 경제가 지향해야 할 방향을 9가지 키워드로 정리했다. ‘재벌 우선주의가 경제에 치명적인 이유’, ‘사기극을 닮은 부동산 부양책’, ‘청년을 버린 나라는 어떻게 무너지는가?’ 등 쉬운 언어로 세계 각국의 경제 정책들과 사례를 인용해 문제를 꼼꼼하게 짚었다. 무엇보다 그는 “우리 경제의 10년~20년 뒤 동력이 될 아동과 청년, 미래세대에 투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라고 거듭 강조했다. 청년 정책은 사람이 거의 유일한 자원인 한국에서 그 자원에 투자하는 가장 합리적인 정책이라는 것이다.


최저임금 6,030원, 청년층 체감 실업률 22.4%(한국경제연구원 9월 발표), 절반에 달하는 노인빈곤율 등 한국 경제는 깊은 수렁에 빠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은 있다.’ 박종훈 기자가 말하는 희망에 귀 기울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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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계상태


무엇보다 ‘임계상태’라는 단어에 집중하게 되는 내용들이었습니다. 국내 사정을 보면 거의 대부분의 분야, 아니 거의 모든 분야가 임계상태에 가까워지지 않았나 생각하게 돼요.


박사학위 받을 때 전공이 진화경제학인데요. 복잡경제학과 직접적 관계가 있어요. 이쪽의 경제학에서 굉장히 관심 많은 게 임계상태예요. 정통 주류 경제학에서는 사실 크게 관심이 없어요. 경제가 균형에서 벗어나 있어도 돌아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임계상태 자체를 연구할 필요가 없죠. 그러나 역사에서 경험했지만 임계상태에서 아주 작은 변화만으로도 변하는 게 정말 많거든요. 대표적인 예로 든 것이 베를린 장벽 붕괴잖아요. 동독 서기장이었던 귄터 샤보브스키(Gnter Schabowski)라는 사람의 한 마디로 그렇게 됐죠. 기자회견에서 ‘베를린 장벽 언제부터 개방하나?’ 물었더니 이 사람이 너무 피곤하고, 짜증나니까 ‘당장’이라고 아주 작게 말했거든요. 이탈리아 기자가 현장에 있다 그걸 잘못 이해하고 오보를 냈죠. 평상시였다면 수많은 오보들의 하나로 우습게 지나갔을 거예요. 문제는 당시 동독 상황이 임계상태, 즉 언제든 아주 작은 충격만으로도 무너질 상태였기 때문에 그렇게 된 거죠.


임계상태를 쉽게 말하면 물이 끓기 직전의 상태, 어떤 물성이 변하기 직전 상태예요. 그런 상태에서 거대한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는 거예요.

 

한국 경제를 예로 들어 설명해 주신다면 어떨까요?


끊임없이 양적완화를 하고, 금리를 낮추고, 빚더미로 경제 위기를 막는 일을 해왔어요. 끝없이 반복하니까 이제는 더 이상의 정책을 쓸 수 없는 상태가 된 거예요. 쓸 만한 것을 다 쓴 거죠. 이걸 엔드게임(endgame) 상태라고 얘기해요. 체스 게임에서 말을 다 잡아서 움직일 수 있는 말이 거의 없는 상태를 말하는데요. 이제는 경제에서도 가끔 사용해요. 지금 엔드게임이라 할 수 있는 게 모든 정책을 다 썼는데 경제가 안 살아나요. 그렇다면 이제 작은 충격에도 무너질 수 있는 상태가 된 거죠.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그래요. 거의 모든 정책을 다 썼거든요. 남은 정책이라고는 금리를 조금 더 낮추는 정도일 텐데, 이런 상태에서는 지금 혹시 다시 경제에 문제가 생긴다면 쓸 수 있는 정책 수단이 거의 없어요. 상당히 위험한 상태라고 할 수 있죠.

 

대안이 될 만한 제안들을 책에 내놓으면서 이것이 ‘백신’, ‘예방주사’지 치료책이 아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기 전에 미리 준비를 해야 한다고 하셨잖아요.


경기 부양책이 무조건 나쁜 건 아니고 필요할 때가 있지만요. 반복적으로 사용하다보면 마약처럼 돼요. 경기가 일시적으로 나빠졌을 때 부양책으로 경기를 살리는 건 괜찮지만 구조적으로 경제가 굉장히 안 좋은 상탠데 여기에 끊임없이 경기 부양책을 쓰면 딱 마약처럼 아주 위험하거든요. 언제든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위험한 상황에서는 예방주사, 백신을 놓아야 해요.


가장 중요한 것은 종의 다양성을 확보하는 거예요. 1등만 중요한 게 아니라 다양한 2등이 경제 내에 존재해야만 경제가 위기에 강해지고 어떤 위험이 닥쳐도 극복할 수 있는 상황이 돼요. 우리 경제는 1등에게 몰아주는 정책을 쓰고 있잖아요.

 

여러 2등을 키우는 방법들에는 뭐가 있을까요?


첫 번째가 사회안전망 확보라 할 수 있겠죠. 한 번 낙오 돼서 다시는 극복하지 못하는 상태라면 2등은 다 죽어요. 그렇게 1등만 살아남은 경제는 1등 자체가 죽어버리면 핀란드에서 노키아가 무너졌을 때처럼 나라 경제 전체가 무너지게 돼요. 1등만 키우는 정책이 얼마나 위험한 정책인지 깨닫지 못하는 것 같아요. 두 번째는 패자부활전이에요. 미국 같은 경제 강국들의 가장 큰 특징이 재기가 쉽다는 것이거든요. 패자부활전을 통해 끊임없이 재도전이 가능하니까 종의 다양성이 유지되고 건강한 생태계가 되는 거예요. 세 번째가 공정한 분배인데요. 이건 똑같이 나누자, 이런 것과 전혀 관계가 없어요.(웃음) 노력하고 최선을 다한 만큼 자기 몫을 가져갈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그래야 최선을 다할 것 아니에요? 지금은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해도 보답 받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어요. 1등은 노력한 이상을 가져가는데 말이죠. 그러니까 중견기업, 중소기업이 도태되고, 대기업만 살아남는 구조가 되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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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중요한 자원은 사람


실업부조, 아동수당, 공공보육, 공공주거 등을 미래 세대에 투자 하는 정책들로 명명했어요. 사실 이것들은 지극히 상식적이고, 이미 선진국 등에서 실행되고 있는 정책들이지요. 각종 지표가 긍정적인 방향을 가리키기도 했고요. 이런 정책들을 우리는 그저 좌편향 되었다, 는 식으로 정치적인 구분만 할 뿐이에요. 답답함은 없으신가요?


우리가 잊고 있는 게 뭐냐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이 사람이라는 점이죠. 사람이 중요한 나라에서 사람에 투자하는 게 정치 문제가 돼버리는 것, 너무 저는 안타까워요. 지하자원도 없고, 그렇다고 금융 강국이라 엄청난 자본력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사람밖에 없거든요. 제가 보기에는 청년이 21세기에 가장 강력하고, 소중하고, 희소한 자원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청년을 자원으로 본 대표적인 나라가 독일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독일은 자국 청년들에게 아낌없이 투자하고 있고, 그 청년들이 결국 생산성을 향상시키고, 마이스터가 돼서 기업에도 보답을 하고 있죠. 그들에게 투자한 기업, 국가 전체에 보답하고 있는 거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청년에게 투자하는 것을 자꾸만 정치 프레임으로만 접근해요. 이건 앞으로 백 년 안에 국가가 생존하느냐 아니냐의 문제기 때문에 더 이상 정치문제로 보지 말았으면 해요.

 

최근 청년희망펀드가 이슈죠. 재벌들에게 펀드 기금을 기부하라고 하고 있는데, 사실 그 재벌들이야말로 청년 고용이나 노동 구조를 개선할 수 있는 주체들이에요. 기금을 따로 만들 필요 없이 기업이 바로 행동으로 옮기면 된다는 지적도 나올 수 있잖아요.


청년희망펀드는 이렇게 평가하고 싶어요. 우리나라처럼 청년의 가치에 대해서 망각하고 있던 나라가 그나마 청년희망펀드라도 한다니까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그렇지만 청년희망펀드는 구조적 접근이 아니에요. 구조 개선이 아니라 일종의 보여주기 식이 되어버릴 수 있는 거죠. 일시적인 정책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 정책으로 정말 청년들을 발굴하는 구조적인 접근은 불가능해요. 한계가 너무 명확한 거예요. 구조적인 모순이 해결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어찌 보면 회피하는 길이 될 수 있어요.


청년 문제를 해결하는 길은 딱 하나밖에 없어요. 제도 설계라고 하죠. 매커니즘 디자인, 인간 심리에 기초한 행동경제학을 기반으로 해서 청년들이 정말 자신감을 되찾고 다시 떳떳한 경제 주체로 활약할 수 있는 경제적 시스템, 제도를 설계해서 만들어내야 하는 거예요. 그걸 회피해선 안 돼요. 청년희망펀드 같은 것으로 면죄부를 받아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 시스템을 만들지 못하는 이상은 말이죠.
 
일본의 사례를 많이 다루셨어요. 보면 일본의 과거도 그렇지만 마쿠도 난민, 사토리 세대 등 일본의 현재가 우리에게 시사점을 주는 부분이 무척 많은 것 같아요.


89년부터 일본 경제가 무너지기 시작하니까 얼마나 일본을 놀렸는지 몰라요.(웃음) 선진국도 그렇고, 우리도 그랬죠. 『일본은 없다』이런 책도 유행하고요. 일본은 사실 같은 방식으로 먼저 무너진 나라가 없어요. 즉, 청년 인구가 감소해서 경제가 무너지는 것을 일본보다 먼저 경험한 나라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그야말로 예측하지 못한 충격을 받은 거죠. 25년 정도 흐르고 난 지금, 우리 경제 구조도 같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어요. 우리에게는 일본 사례가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일본이 무너지는 방식을 봤잖아요. 어떻게 청년을 잃었고, 청년을 버린 나라가 어떻게 경제가 무너져서 지금까지 25년에 걸친 장기 불황을 겪고 있는지를 봤어요. 일본이 그렇게 고통 받는 걸 보면서도 똑같은 길로 가서 똑같이 무너진다면 그건 정말 바보 같은 거예요. 그런 실수를 하지 말아야 해요. 같은 실수를 한다면 이제 변명의 여지도 없어요. 우리에게는 일본뿐 아니라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스 등 같은 방식으로 무너진 사례들이 있으니까요. 청년 자원이 얼마나 소중한지 몰랐기 때문에 무너진 나라들을 보면서 우리는 정확하게 원인 분석도 못하고 있는데, 진짜 중요한 건 바로 청년 문제예요.

 

그런데 우리는 이른바 ‘골든타임’을 헛되게 보내고 있다고도 하셨죠.


일본에 아무 노력이 없었던 게 아니에요. 출산율이 1.57로 떨어졌을 때 그걸 ‘157쇼크’라고 부르면서 노력을 했어요. 그런데 돈을 투자하지 않고 캠페인을 했죠.(웃음) 신엔젤플랜, 그래서 주로 언론사에 돈을 줬어요. 광고비용으로 쓰고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정책을 안 내놨거든요.


출산율 제고 정책은 단순히 돈만 줘서 되는 게 아니에요. 지금은 모든 걸 현금으로 해결하려고 해요. 당장 가시적인 효과를 낼 수 있고, 인기를 얻을 수 있으니까요. 진짜 애를 낳게 하는 정책은 역시 구조적으로 접근해야 해요. 제도 설계가 참 중요해요. 아이를 낳으면 프랑스처럼 국가가 키워준다는 정도가 돼야 출산율 제고가 되는 거지, 한 20~25만 원 줬다고 해서 애를 낳는 건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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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이 더 거센 도전을 하느냐


무엇보다 재벌문제에 대해서 질문 드리고 싶습니다. 앞서 종의 다양성을 말하기도 하셨고요. 1970년 기업하기 혹독했던 환경에서 지금의 재벌들이 성공한 것이라는 진단 등이 눈에 띕니다. 결국 지금 재벌은 오히려 ‘적’자본주의의 모습을 갖고 있는 게 아닐까 해요.


흔히 아담 스미스에 대해 오해하는 게 ‘보이지 않는 손’이라 하니까 시장만 강조했다고 생각해요. 당시 경제 상황은 대상공인, 대재벌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왕권과 결탁해 있었던 상황이에요. 그러니 뛰어난 기업가 정신을 가지고 신규 창업이 이뤄지면 왕권과 결탁한 대재벌이 권력을 이용해 신규 기업 성장을 저해시켰거든요. 아담 스미스가 그걸 보니 너무 답답한 거예요. 영국이 경제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왕권과의 결탁이 깨져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시장에 맡기라고 한 거거든요. 세월이 흐르니까 그런 역사적 배경은 다 사라지고 시장만 남았어요. 그런 면에서 정말 답답하죠.


현재 재벌을 지원하는 다양한 정책들이 있죠. 대표적인 게 삼성 법인세 실효세율이 중소기업의 그것보다 낮은 거예요. 같은 것도 아니고 심지어 낮아요. 그렇게 재벌을 밀어주면서 ‘재벌을 키워야 한다’고 말하죠. 그런데 재벌이 더 거센 도전을 하느냐 되묻고 싶어요. 지금 재벌 2세, 3세들은 커피 전문점을 한다든가 빵 가게를 하는 식이에요. 도전은커녕 영세 자영업자들과 경합을 하고 있어요. 재벌하기 편한 환경은 오히려 온실을 만들어요. 온실에서 누가 박차고 나가 바이킹처럼 세계 바다를 제패하겠어요. 재벌이 소중한 만큼 적절한 텐션은 필요해요. 

 

우리나라에서 가장 흔히 하는 착각이 ‘기업하기 편한 나라를 만들어야 국가 경제가 더 발전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중략)하지만 이는 마치 자녀를 온실 속의 화초처럼 키우면서 아이를 망치는 부모와 같다. 오늘날과 같은 글로벌 경쟁 시대에 기업들이 너무 편하게 장사할 수 있도록 하면 더욱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작은 환경 변화에도 무너질 만큼 나약해진다. (270쪽)

 

그럼에도 여전히 ‘낙수효과’ 같은 말로 친 재벌정책이 계속되고 있어요.


낙수효과는 가난한 나라, 경제발전 초기 단계에는 일시적으로 적용이 돼요. 초기 단계에는 사회간접자본(SOC)이 없으니 이때는 저축이 더 중요하거든요. 우리나라처럼 자본 시장이 고도화된, 경제발전이 고도화 된 나라에서는 낙수효과는 일어나지 않아요. 소비가 훨씬 중요하니까요. 외환위기 처음 터졌을 때 이런 위기에도 젊은이들의 소비가 줄지 않는다는 리포트들이 있었어요. 그때만 해도 소비의 중요성을 몰랐던 거예요. 외환위기 같은 상황에서 젊은이들조차, 돈 있는 사람조차 소비하지 않는다면 경제는 진짜 마비되는 거였어요. 하지만 그때는 이런 의견이 설득되지 않았죠. 사실 우리 경제는 1998년 외환위기 때부터도 소비가 중요한 단계였어요. 이 단계로 접어들면 소비가 견인차가 돼야 하고, 낙수효과보다 분수효과가 중요한 세상이 되는 거죠. 중산층들이 소비를 하고 이를 통해 기업도 더 잘 살게 되는 식으로요.


헨리 포드(Henry Ford)를 강조했는데요. 1914년 컨베이어 벨트 설치를 완료하고 제일 먼저 한 일이 노동자 임금을 두 배로 높인 거예요. 자기가 생산하는 자동차를 이 노동자조차 사지 못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었죠. “노동자의 임금을 올리는 것은 자선이 아니라 가장 이윤을 많이 내는 비즈니스”라고 포드가 말을 하거든요. 우리나라처럼 이미 개도국을 벗어나 선진국으로 넘어가는 나라에서 낙수효과를 적용하려 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에요. 세상은 변해가고 있는데 정부의 눈은 계속 과거에만 향해 있는 거죠.

 

‘한강의 기적’이라고 할 만큼 한국 경제가 무척 빠르게 성장했잖아요. 혹시 경제 성숙 기간이 너무 짧았기 때문에, 아직도 개발도상국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정책 결정권자들이 많기 때문에 이렇게 제자리걸음인 걸까요?


그건 저도 생각 못했는데 좋은 지적이신데요.(웃음) 선진국들은 길게, 100년 가까이 발전해왔기 때문에 변화에 적응할 시간이 있었다면 우리는 빨라봐야 1970년부터 발전했다고 본다면 50년도 안 됐으니 그 경험을 하신 분들이 지금도 과거의 방식으로 성장하려고 하니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놀랍습니다.(웃음) 강력하게 동의합니다.

 

제대로 된 진단, 그 진단을 바탕으로 한 제대로 된 경제 정책의 부재가 그 긴급성에 비해 너무 미흡한 상황이란 생각이 거듭 드네요.


청년 정책을 제대로 쓰지 않는 건 전형적인 님티(NIMTE, Not In My Terms)라고 생각해요. ‘내 임기만 아니면 돼’라는 전형적인 생각이죠. 예를 들어 건설경기 부양책을 쓰면 임기 내 1~2년 안에 성과가 나오니까 자꾸 돈을 거기에 쓰고자 하는 거죠. 그런 정책들은 일시적인 효과밖에 없어요. 그에 비해 청년 정책, 국가 미래의 기둥을 세울 정책들은 슬프게도 최소한 5년, 10년은 지나야 효과가 나타나기 때문에 임기 내에 결과를 볼 수 없는 거죠. 너무 안타까워요.


주택 정책만 해도 그래요. 당장 내 임기 때 주택 가격을 올리는 정책은 굉장히 많이 있었는데요. 저 역시도 주택 가격이 떨어지는 것은 무척 위험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부동산 정책 자체를 잘못됐다고 말하기는 힘들죠. 그럼에도 10년~20년 뒤 집값을 올리는 정책은 청년들이 돈을 모아 그 집을 살 수 있어야 하는 거예요. 지금의 정책은 당장 집값을 지탱하는 정책일 뿐이죠. 요즘 서울에 있는 집을 중위 소득자가 사는 데 최소 40년 이상 걸린다잖아요. 지금 같은 경우는 내일의 집값은 올릴 수 있어도 10년 뒤의 집값은 폭락시키는 정책인 거죠. 이런 식으로 근시안적인 정책만 나오고 있으니 많이 답답한 거예요.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앵거스 디턴 교수의 『위대한 탈출』의 국내 번역책 오역 문제가 최근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앵거스 디턴은 국내 번역서에 대해 전량 회수를 요구하기도 했고요. 정치, 경제 영역에서 이 ‘오해’를 다분히 의도적으로 크게 홍보하기도 했지요. 이런 일련의 촌극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도 매우 관심을 가졌던 사안인데요. 아무래도 경쟁 책(웃음)인 관계로 좀 조심스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시대가 이미 바뀌었는데 우리의 시각이 얼마나 과거의 프레임에 갇혀 있는지를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라고 생각돼요. 이렇게 경제 생태계가 세계적으로 급변하면서 석학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시각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는데 과거에 얽매인 색안경으로 지금의 세상을 바라보다가는 마치 과거에 멸종한 공룡처럼 시대에 도태되어 퇴보의 단계로 들어서지 않을까 걱정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최저임금이 1달러 늘어나면 근로자 가구의 분기당 소비 지출이 800달러 증가한다는 시카고 연방준비은행의 경제학자들의 연구 결과 같은 것들은 꽤 의미 있는데요. 이런 대목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침묵으로 일관하는 언론에 대한 분노였습니다. 언론인으로서 어떤 생각을 갖고 계신지 궁금해요.


그래서 책의 제목이 ‘대담한 경제’가 된 건데요. 세계 언론들에서 최저임금 인상이 주는 좋은 효과와 부작용에 대한 보도가 절반씩 나오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부작용만 보도되고 있어요. 이렇게 천편일률적으로 모두 같은 방향으로 뛰는 상황, 전 세계 언론과 우리 언론이 굉장히 다른 거죠. 시카고 연방준비은행 같은 경우, 시카고는 신자유주의의 본산이죠.(웃음) 거기 있는 학자들조차 그런 연구를 내놨고, 미국에 있는 650만 경제학자들이 백악관으로 탄원서를 냈어요. 적절하게 최저임금을 올리면 경제활성화에 큰 도움이 된다고요. 거기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가 5명이나 포함돼 있었어요. 그런데 이런 보도들은 우리 언론에 솔직히 잘 나오지 않아요. 사실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어요. 이런 중요한 연구결과들이 잘 보도되지 않는 이런 상황에서 다른 얘기를 전하는 데 ‘대담함’이 필요했어요. 저는 원래 굉장히 소심하거든요.(웃음) 소심한데 모든 언론이 하지 않는 얘기를 하려니까 제목을 ‘대담한 경제’라 붙이고 제 스스로 매일 대담해져야겠다고 되뇌는 거죠. 계속 채찍질하고, 다짐해요. 어려웠어요. 저도 쉽지 않았어요.


안타깝죠. 다른 나라 언론들이 보도하는 만큼이라도 비슷한 비율로 보도를 했으면 좋겠어요. 아쉬움이 좀 있죠.

 

언론이 대중에게 끼치는 엄청난 영향력을 생각한다면 책무를 더 무겁게 느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죠. 대표적으로 청년 이슈를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청년실업률이 높은 게 청년의 눈이 높아서라는 진단이 있었잖아요. 최근 3년 간 저도 정말 열심히 노력했어요. 9시 뉴스 통해서도 계속 내보내고, 칼럼을 통해서도 많이 말을 했죠. 청년들을 전적으로 비난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요. 그렇잖아요. 청년이 아무도 일을 하지 않으려 한다면 시장 원리에 의해 청년이 노동력을 기꺼이 공급할 만큼 임금이 올라야죠. 그게 우리가 배운 시장 논리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3D업종에 최저임금을 주고 있단 말이에요. 대표적인 예로 호주를 들었죠. 호주 광부들은 평균 연봉이 1억2천만 원이에요. 호주 청년들은 광부를 기피하지 않아요. 충분히 대우를 받고, 직장이 안정적이라면 3D업종이라고 해서 우리 청년들이 꺼릴 리 없다고 생각해요. 나약한 청년들이라며 모든 문제를 청년들에게 뒤집어씌워 왔는데 그걸 뒤집는 데 걸린 시간이 3년 정도인 것 같아요. 정말 최선을 다했어요. 개인적으로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부분이에요.(웃음) 이제는 그런 진단이 많이 줄어든 것 같고, 이런 변화들을 볼 때 저도 굉장히 기뻤습니다.
 


가장 시급한 문제, 빚 관리


경제정책, 기업, 부동산, 복지, 청년 등 모두 아홉 개의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 중 가장 개선이 시급한 주제를 꼽는다면 무엇인가요?


경중을 가리기는 힘든데요. 가장 중요한 문제와는 또 다르지만 시급한 문제는 빚을 관리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빚더미는 정말 무서운 거거든요. 아까도 말했지만 경기부양책 자체가 나쁜 건 아니에요. 그러나 경기가 둔화됐을 때 끊임없이 경기부양책을 쓰면 옐로스톤과 똑같은 문제가 생겨요. 옐로스톤에 화재가 날 때마다 인위적으로 불을 껐더니 옐로스톤 내에 불에 타기 쉬운 수종으로 나무들이 바뀌어버렸어요. 보통 수준의 벼락이 내리쳤는데 공원 3분의 1을 태울 만큼 대재앙이 일어났거든요.


빚을 점점 축소시켜 나가야 하는데 너무 슬프게도 빚을 급속도로 키워왔어요. 빚이 사상 최대를 기록하는 건 당연한 거예요. 경제규모가 커지면 빚은 항상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게 돼 있어요. 문제는 빚이 증가하는 속도가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는 거예요. 증가 속도가 이렇게 빠르다면 언젠가 문제가 생기거든요. 시급한 문제는 빚을 통제하는 거예요.

 

가장 중요한 문제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미래에 투자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 경제의 10년~20년 뒤 동력이 될 아동과 청년, 미래세대에 투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예요.

 

개별 사안보다 구조적인 부분을 계속 짚으시는데요. 아이슬란드와 그리스의 사례를 보면 국가 정책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시민들이 바뀌어야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너무 쉽게 정부 탓만 해요. 국민들은 무력하고, 할 수 있는 게 없다고요. 큰 착각인 것이, 대부분의 나라에서 그렇지가 않았어요. 아이슬란드 정부는 경제 위기가 닥치자 너무도 당연하게 그리스와 똑같은 정책을 내놨죠. 은행을 구제하겠다고요. 그런데 ‘주방용품 혁명’이라고 하는 시민의 반대가 있었던 거예요. 시민들이 깨어있었기 때문에 다른 정책으로 갈 수 있었고, 아이슬란드가 그리스와 같은 실패를 하지 않을 수 있었죠.


독일 취재를 갔을 때 독일 상원의원과 인터뷰를 했어요. 독일 정부가 잘한 게 아니라고 하더라고요. 독일 청년 스스로 개혁을 했고, 시민이 주도한 거고, 그 과정에서 많은 갈등, 싸움이 있었지만 끝없는 대화와 노력이 개혁을 만들어낸 거지 결코 정부가 해낸 게 아니라는 거예요. 그런 문제들을 계속 제기하고, 깨어있는 시민들이 의견을 냄으로써 지금의 독일을 만들었다는 거예요. 아이슬란드와 독일의 사례를 보듯이 깨어있는 시민들이 지금을 만들었지 정부가 지금의 구조를 거저 준 게 아니라는 거죠.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어려움도 있죠.


안타까운 건 자신감이 없을 뿐이에요. 성공한 적이 많이 없잖아요. 역량은 충분한데 작은 성공의 경험이 없기 때문에 성공에 목마른 거예요.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으니까 패배감이 있거든요. 아주 작은 것에서부터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제도를 설계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대안들을 자꾸 찾아나간다면 윈윈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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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훈의 대담한 경제 박종훈 저 | 21세기북스
때로는 냉철하게, 때로는 대담하게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저자의 글을 두고 사람들은 “시간을 내서 봐야 할 글이 아니라, 시간을 내서라도 봐야 할 글”이라며 추천했다. 경제학 박사이자 오랫동안 경제 분야를 취재해온 박종훈 기자는 이 책에서 각 출입처를 거치며 직접 체득한 한국 정부의 경제 정책 흐름과 함께 현재 경제 상황을 날카롭게 진단한다. 또한 해박한 경제 지식과 이론을 바탕으로 해외의 다양한 사례를 통해 여러 가지 경제 현상의 원인을 분석하고 곧 우리에게 다가올 최악의 장기 불황의 위협 속에서 한국 경제를 구할 대안을 모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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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럭시 익스프레스, 솔직하고 거침없는 사나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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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날 것 같았던 그때, 안타깝지만 시간은 간다

 

많은 이들이 알다시피 10년 넘게 록 팬들을 태우고 우주를 유영하던 특급선은 선로를 이탈하고 말았다. 단순한 사고가 아니었다. 해리포터 시리즈에 등장하는 '이름을 말할 수 없는 그 자'처럼 공식적으로는 사건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을 피하는 분위기까지 있었다. 사실 작년 공연장 뒤편에서 우연히 그들을 만났다. 당시 그들은 여름쯤이면 4집이 나올 것이라고 말을 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1년여가 흐르고, 드디어 갤럭시 익스프레스의 4집 앨범 <Walking On Empty >가 발매되었다.

 

얼마나 고심하고 고민했을까. 4집은 잃어버린 시계추를 돌려 위기에서 기회를, 절망에서 희망을 찾는 시간을 담고 있다. 예전처럼 굉음을 내며 폭주하지도, 힘겹게 달리지도 않는다. 4집의 변화에 당황한 팬도 있고 환영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이것이 현재 갤럭시 익스프레스가 달리는 속도이고, 선로임은 틀림없다. 2008년, 2012년, 그리고 2015년 그들과의 세 번째 인터뷰다. 조심스럽고 경직된 첫 표정과 달리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이들은 갤럭시 익스프레스! 여전히 솔직하고 거침없는 사나이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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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6월에 앨범이 나온다고 들었는데, 많이 늦어졌네요?


희권 : 작년에 연주는 다 되어 있었으나 프로듀서와 새로운 작업 시도 때문에 결국 1년 넘게 더 걸렸어요. 연주 녹음은 작년 5월쯤에 끝났는데 보컬 녹음이 오래 걸렸어요.


최근에 단독 공연도 했어요. '공연에서 셋이서 합주하는 게 아니라 이렇게 함께하니 좋다', 이런 소회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희권 : 3년 만에 단독 공연이라 전날 잠을 설칠 정도였어요. 긴장이라기보다는 묘한 기분이었어요. 막상 공연장에 가니 많은 사람들이 온 걸 보고 기분이 편해졌네요. 아직도 찾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안도감과 고마움을 느꼈습니다.


이번 앨범은 '갤럭시 익스프레스가 변했다'는 의견이 가장 많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섭섭하다는 이야기도 있고요. 밴드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희권:좋은데요. 변해야하지 않을까요? 안 그래도 음악이 여유가 생긴 것 같다는 사람들이 많아요. 신작에서는 조금 자연스럽고 편한 것이 뭘까? 라는 질문을 스스로 했어요. 이 질문에서 배운 것과 얻은 것이 많았기 때문에 예전처럼 무턱대고 달리지 않고 한 템포 쉬고 내려놓은 기분이에요.

 

주현 :기존 방식이 아니라 재밌게 했기 때문에 모든 것이 달랐겠죠. 이걸 우리가 만들었어? 이 정도로 만족할만한 결과물이 나왔기에 상관없어요.

 

종현 : 기본적으로 저희는 사람들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작업하지 않아요, 앨범은 저희가 그 시점에서 느끼는 감정을 가장 흡사히 담아내는 것이 목적이라 생각합니다. 그 앨범을 어떻게 느끼는지는 각자의 몫이겠죠.


최근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인터뷰에서 구남은 스스로 변화 이유를 멤버 영입으로 인한 케미 변화라고 말했습니다. 갤럭시 익스프레스의 가장 큰 변화 요인도 궁금하네요.


종현 :새 프로듀서로 카바레 사운드의 이성문 대표와 함께 했어요. 처음으로 앨범 작업에서 프로듀서를 모셨습니다. 그러고보니 이성문씨가 구남 2집까지 프로듀싱 하셨던 분이기도 하네요. 앨범 레코딩을 하다가 스스로에게 생기는 질문이 있어요. 그게 '난 지금 일을 위해서 일을 하고 있는건가?'하는 의문점인데요. 성문이 형과 함께 이야기를 하다보면 결국 '재밌으려고 하는거지. 재밌게 하자'라는 답을 하게 되더라고요.

 

주현 : 맞아요. 그동안의 작업은 연주를 원-테이크로 진행했고 앨범 작업도 우리가 했지만 이번에는 프로듀서와 함께 새로운 것을 하니까 배우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희권 : 1,2,3집에서는 로-파이(Low-fi) 사운드 레코딩이라 호불호가 갈렸었요. 그런데 이번에는 사운드가 굉장히 좋아졌는데 그러니까 또 다른 불만들을 사람들이 이야기하기 시작해요. 하지만 전 앨범이 없었다면 이번작이 변화했다는 평가조차 없겠죠? 이번 앨범 사운드 좋지 않은가요? 저희는 듣는 매력, 듣는 재미도 좀 알게 됐어요. 이번 앨범을 통해 다음 앨범 작업에 대한 자신감까지 생긴 상태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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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 사건이 터진 후 많은 분들이 걱정을 했어요. 특히 < 밴드의 시대 >라는 프로그램으로 한창 주가가 상승하고 있을 때라 안타까웠습니다. 밴드 자체도 다시 작업하기까지 힘이 들지 않았을까 이런 짐작도 해보게 되는데요?


주현 :저희 세 명은 음악을 너무 사랑해서 음악에 눌러 앉아버린 사람들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일이 있어도 결국은 모여서 다시 음악을 만들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하나, 정말 죄송한 것은 '인디밴드하면 대마' 이런 편견이 생길까봐, 그런 잘못된 시선을 만들었을까봐 괴로웠습니다. 그 점은 정말 죄송하고 아쉽습니다. 이제 진심으로 '준법 록앤롤'을 모토로 삼아 정진하겠습니다.

 

종현 : 그 사건을 통해 분명 한 템포 쉬게 되었죠. 그러다보니 현재와 장래에 대한 고민이 많아졌고 이번 앨범을 통해 많이 풀어냈어요.

 

희권 : 힘든 시기에 주위에서 도와준 분이 참 많았습니다. 근심과 애정 어린 말들도 많이 주셨고요. 워낙 주변에 좋은 분들이 많다보니 저희 멤버들 간에는 서로 더 털어놓고 편해졌어요.


이번 앨범은 작업과정이나 마음가짐이 그 전과 완전히 달랐겠네요.


주현 :어차피 목적지에 보물이 있는 것도 아니기에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담담하게 가자는 거에요. 앨범 만들 때 작곡 방식이 바뀌었어요. 원래는 앨범 녹음실을 예약해서 시간이 제한된 합주를 했지만 이번에는 잼 형식으로 기분 좋게 하고 싶은 대로 했어요. 원래 목적지를 향해 내달렸다면 이젠 족적과 불어오는 바람 같은 그 때의 느낌에 집중했죠. 행복했어요.

 

종현 :녹음하면서 경계한 것은 너무 잘하려고 하다가 갑갑해지는 상황이에요. 그래서 기타 솔로도 다 즉흥연주로 쳤습니다. 생각 없이 허공으로 가려는 감정이 많이 담긴 것 같아요. 앨범명은 원래 < Running on Empty >로 지었는데 생각해보니 뛰는 것도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 Walking On Empty >로 바꿨어요.

 

희권 :예전에는 낮술을 먹고 치는 파워풀하고 광기어린 드러밍 스타일, 그 넘치는 에너지를 동경했어요. 하지만 깨고 나서 들어보면 '투 머치'더군요. 또, 존재감을 드러내기 힘든 드럼에서 벗어나기 위해 에너지를 쥐어짜내 존재감을 표출하는 편이었는데 결국 릴렉스, 힘을 빼고 치는 것이 정답이더라고요. 이렇듯 음악을 하는 것은 현재 상태와의 싸움이자 과정에서 발전해나가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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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럭시 익스프레스는 보컬이 주현씨 종현씨 두분이잖아요. 어떤 기준으로 보컬은 나눠지는 건가요?


주현 :종현이는 기타를 치고 저는 베이스를 치죠. 서로 손악기가 있기 때문에 곡의 리듬에 따라 들어가기 좋은 사람이 불러요.

 

종현 :그리고 스케치를 많이 해온 사람이 더 부르는 것도 있어요.

 

희권 : 저는 종현, 주현 누가 부르든 각자 매력이 있기 때문에 별 상관없는 것 같아요. 사랑과 록이 전부인 러브락 컴패니의 일원으로서 「아무 생각없이」, 「허공 속으로」, 「불타올라」하는 마인드로 불렀을 거에요.


각자 아끼는 곡들이 있으세요?


희권 : 저는 우리 세 명의 목소리와 이야기가 가장 잘 담겨있는 「시간은 간다」입니다.

 

주현 : 연주 측면에서는 「아무 생각 없이」, 가사의 완성도로는 「순간을 위해」를 꼽겠습니다.

 

종현 : 연주가 가장 빛나는 「날 내버려둬」가 좋아요.


갤럭시 익스프레스하면 떠올리는 이미지가 '파워풀한 하드록'이긴 하지만요. 생각해보면 1집부터 조용한 명곡들도 참 많아요.


주현 :앨범마다 슬로우 템포의 록발라드 곡을 계획적으로 하나씩 넣긴 했습니다. 1집 < Noise On Fire >의 「향수」, < 개구쟁이 > 앨범의 「지나고 나면 좋았어」가 생각나네요. 사실 30분 정도하는 공연에서는 느린 세트리스트를 잘 포함하지 않아요. 그러다보니 사람들은 하드록, 강한 밴드의 이미지가 박힌 것 같아요.

 

종현 : 제가 가지고 다니던 믹스테이프 중에 가장 아끼는 것은 록발라드 모음집이에요. 오지 오스본(Ozzy Osbourne)이 부른 「Goodbye to Romance」, 머틀리 크루(Motley Crue)의 「Home sweet home」을 들어보세요. 너무 아름답지 않나요? 결국 다크하면서도 부드러운 제 모습을 표현했기에 저희 음악도 그런 면이 있겠죠. 어차피 지구는 태양이 터지는 동시에 멸망할 거에요. 항상 그 점을 염두하고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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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를 결성하신지 어느덧 10년이 넘었습니다. 요즘 인디씬은 어떻다고 느끼시나요? 예전과 좀 달라졌나요?


종현 : 어차피 우리가 음악 하는 관점은 그저 록앤롤이에요. 인디씬의 대세나 조류에 휩쓸리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하기에 힘들지는 않습니다. 대한민국은 '힘듦은 돈이 없다'를 기준으로 삼잖아요. 우리는 원래 돈 없는 사람들이기에 상관없어요. 10년 동안 달라진 점은 밴드와 장르가 훨씬 다양해졌다는 것입니다.

 

주현 : 어차피 10년 전에도, 20년 전에도 우리나라 음악씬은 똑같이 힘들었던 것 같아요. 오히려 요즘엔 음악 찾아 듣기도 쉬워졌고 레코딩도 편해졌죠. 힘듦의 가치관을 어디다 두는지에 따라 느끼는 게 모두 다를 것 같아요.

희권 : 음악하는 사람들 보다 힘든 것은 사실 직장인들이죠. 우리는 하고 싶은걸 하고 살아요. “언제까지 그러고 살거니?”라는 질문에 자신 있게 “평생”이라고 대답하고 싶네요.


이즘(IZM) 공식 질문이죠. 인생 앨범은 무엇인가요?


종현 : 초등학생 때는 아버지와 함께 윤수일 선생님의 노래를 즐겨 따라 불렀어요. 본격적으로 듣기 시작한 것은 너바나의 < Nevermind >에요. 숨소리까지 놓치지 않고 듣다가 매일 밤을 지새웠습니다. 고등학생 때 빠져있던 곡은 귀청을 찢던 스테판울프(Steppenwolf)의 「Born to be wild」네요. 믿기 힘드시겠지만 전 원래 홍대 살롱바다비에서 통기타를 치던 싱어송라이터였어요.(웃음) 그 길로 이끌어준 라몬즈(Ramones)의 곡들도 추천합니다.

 

주현 : 저는 정말 가리지 않고 다 좋아해요. 하루 종일 이동시간에도 이어폰을 끼고 살았죠. 가장 처음 테이프를 샀던건 초등학생 때 닐 세다카(Neil Sedaka)고 밴드로 이끈 건 너바나에요. 커트 코베인의 자유로움 보며 “당장 기타 사고 머리 길러야겠네!“라고 생각했어요. 밴드를 시작하면서 초보 시절에 쉽게 카피할 수 있는 클래쉬(The Clash)같은 쓰리코드 펑크에 빠졌죠.

 

희권 : 저는 소녀시대를 좋아합니다.(웃음) 원래는 퓨전재즈, 클래식이 전공이었어요. 그런데 밴드를 시작하고 나서 그랜드 펑크 레일로드(Grand Funk Railroad), 레드 제플린이 우상으로 삼았죠. 최근에는 블랙 레벨 모터사이클 클럽(Black Rebel Motorcycle Club), 테임 임팔라(Tame Impala), 퀸스 오브 더 스톤 에이지(Queens of the Stone Age), 더 바인스(The Vines) 같이 긴 이름을 가진 밴드 노래를 듣네요. 처음에 전 펑크 못 좋아할 줄 알았지만 이제는 없으면 못 삽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앞으로의 활동계획은 어떻게 되세요?


주현 : 계획이라 하면 계속 여러분들을 만나는 것이죠. 11월부터 전국 12개 도시 순방하는 투어를 해요. 전국 각지 친한 밴드들과 협연을 계획하고 있어요. 와중에 신보 준비도 쉬지 않아야겠죠. 부처님이 사색이나 고민에 잠기기 전 잡념을 없애기 위해 힘쓰는 수련을 하셨다는 말을 들었어요. 내년부터 저희도 진짜 갤럭시 익스프레스로 돌아갑니다. 첫 시작인 1월에는 공연을 매일, 정말 하루도 빼놓지 않을거에요. 2016년은 몸이 허락하는 한 정말 달려볼 예정입니다.

 

인터뷰 : 김반야. 이수호. 이기찬
정리: 이기찬
사진 : 이한수
2015/10 이기찬(Geechanle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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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유석 “개인주의자들이여, 싫은 건 싫다고 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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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리트머스 종이 같아요.” 문유석 인천지방법원 부장판사가 『개인주의자 선언』을 두고 한 말이다. 제목을 읽었을 때 느낌이 팍 오는 사람이 있는데, 그들 대부분이 이 책의 독자가 되었다. 9월 말에 출간한 책이 벌써 5쇄를 찍었으니, 반응자들이 꽤 많았던 모양이다. 왜 한국사회는 ‘개인주의자’들을 사랑하지 않을까. 아니 사랑 받는 것은 원하지도 않는데, 왜 이들에게 자유를 허락하지 않을까. 선언까지 해야 하는 판국 속에서 문유석 저자는 “감히 합리적 개인주의자들의 사회를 꿈꾼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합리적 개인주의는 공동체에 대한 배려, 사회적 연대와 공존한다. “자신의 자유를 존중 받으려면 타인의 자유도 존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개인주의자 선언』은 ‘인간 혐오’라는 글에서부터 시작한다. 저자는 “세상에서 제일 싫은 것이 회식이고 행사”라며, “오히려 인간 혐오증이 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철저한 비관에서 출발하면 낙관주의자가 될 수 있다는 그의 지론은 ‘우리가 잃은 것들’이라는 마지막 글에서 여지없이 드러났다. 저자는 ‘범상한 무심함 때문에 우리가 잃은 것들’을 지적하며, “내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는 서로의 아이를 지켜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합리적 개인주의자의 결론은 이성적이면서도 따뜻했다.

 

문유석 저자는 “내 MRI에 ‘뽀샵’을 하고 싶은 욕구가 앞설 때쯤이 글쓰기를 집어치워야 할 시기”라고 말했다. 자기검열이 내면화된 그는 최근 KBS <아침마당> 섭외 전화를 받았다. 책 판매에 지대한 영향이 미칠 것임이 분명한데, 정중히 거절했다. 모르는 사람이 길거리에서 알아보는 걸 끔찍하게 싫어하기 때문이다. ‘개인주의자’라는 단어에 반응이 오는 독자라면,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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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자 선언, 커밍아웃이 필요한 이유


2014년에 출간된 첫 책 『판사유감』의 반응이 꽤 좋았습니다. 그런데 인터뷰는 한 번도 안 하셨어요. 『개인주의자 선언』으로도 지금이 첫 번째 인터뷰시라고요.


겁을 좀 먹었던 것 같아요. (웃음) 요즘 사회를 보면 책을 즐겨 찾는 사람들이 정말 소수잖아요. 열심히 보는 분들이 5만 명 정도 되지 않을까요? 대개 합리적이고 점잖은 분들이 많으시니까, 인터뷰를 해도 그리 큰 문제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동아리 사람들끼리 이야기하는 느낌이랄까요.

 

독자 리뷰를 모두 읽어보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재밌게 읽은 리뷰가 있나요?


어떤 아내 분이 “이 책을 남편에게 주면서 ‘딱 너 같은 사람들 이야기’라고 말했다”고 하시더라고요. (웃음) 재밌는 건, 많은 독자가 책을 읽고 나서 ‘나도 이런데? 나도 개인주의자인데?’라는 생각을 했다는 거에요. 저랑 비슷한 성향을 가진 사람은 소수, 박해 받는 소수라고 생각하면서 글을 썼는데 의외로 ‘내 이야기다’라는 분들이 많았어요. “우리 회사 부장도 맨날 회식하자고 팀원들을 괴롭히는데, 사석에서는 자기가 개인주의자라고 말하더라”는 댓글도 봤어요. 원래 자신을 인식하는데 있어서는 누구나 그런 성향이 있잖아요. 모두가 스스로를 내성적이라고 말하는 것처럼요. 너도 나도 커밍 아웃을 하는 분위기랄까요? 재밌었어요.

 

전작의 독자들이 두 번째 책으로도 많이 이어진 것 같더라고요. 반응은 어떤가요? 좀 다른가요?


의외로 많이 다르진 않은 것 같아요. 이번 책은 저의 개인적인 성향이 많이 드러나는 글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욕을 먹을 각오를 하고 썼는데, 다수가 공감을 해줬어요. 비교적 무난하고 편안하게 큰 저항감 없이 받아주셔서, ‘내가 지레 겁을 먹었나?’ 싶더라고요.

 

최근에 출판사에서 주최한 작가와의 만남 ‘페친 벙개’를 하셨어요. 개인주의자들은 이런 모임, 안 좋아하지 않나요? 좀 놀랐습니다.


(웃음) 다른 활동들은 딱 선을 그어놓고 있어요. 성향인지도 모르겠지만, 판사라는 직업상 신뢰를 잃는 일을 하면 안 되고, 지금도 재판하는 게 더 중요하니까요. 저는 길을 가다가 제가 모르는 사람이 아는 척을 하면, 치가 떨리게 싫어요. 물론 그럴 일은 거의 없죠. (웃음) 첫 번째 책을 내고 느낀 점이 하나 있는데, 생각보다 사회가 크다는 거예요. 제가 뭘 하나 했다고 누가 많이 알아보는 게 아니라는 거죠. 그리고 어차피 이런 책을 읽는 분들은 저랑 비슷한 사람이에요. 페이스북으로 친구를 맺은 사람들도 마찬가지고요. 애초부터 저와 성향이 너무 다르거나 센 분들은 페친을 맺지 않았어요. 마음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분들이라서 벙개도 하게 됐고요. 재밌었어요.

 

책 제목에 대한 반응은 어떤가요?


‘헬 조선’이라는 말이 나오는 세상이잖아요. 사는 게 너무 빡빡하고 힘든데, 직장에서도 치이니까 개인의 행복에 대한 관심이 많아지는 것 같아요. 이를테면 회식에 강제로 참여해야 하는 건 개인에게는 큰 일이잖아요. 저 역시 조직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겪는 어려움이 있고요. 오래 전부터 합리적 개인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이게 결코 사회를 해치는 나쁜 게 아니란 말이에요. ‘개인주의자의 고백’이라는 제목도 생각했는데 ‘선언’이 낫겠다 싶었어요. 스스로의 성향을 당당하게 밝히자는 의미로 정했는데 의외로 거부 반응이 별로 없더라고요. ‘한국사회가 그래도 이만큼은 왔구나’ 생각했죠. 책 추천사를 손석희 앵커님이 써주셨는데, 본인의 성향도 저와 굉장히 일치한다고 하셨어요. 이동진, 임경선 작가님도 같은 말을 해주셨는데, 사실 이 분들이 무난한 분들이잖아요. 아주 양극단의 색깔이 뚜렷한 분들을 제외하면 중간 다수는 모두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판사 문유석의 일상유감’이 책의 타이틀입니다. 전작에 이어 ‘유감’이란 단어를 또 사용하셨어요. 현재 <중앙일보>에 ‘일상유감’이라는 칼럼도 연재 중이시고, 페이스북에는 가끔 ‘기사유감’이라는 제목으로 기사 리뷰도 올리고 계신데요. 유감이 너무 많으신 것, 아닌가요?


(웃음) 유감이란 단어를 전혀 좋아하지 않아요. ‘유감’을 자꾸 꺼낸 것도 유감입니다. 『판사 유감』이란 제목은 21세기북스 한성근 팀장님이 정해주신 제목이에요. 평소에 즐겨 쓰는 단어도 아니라서 망설였는데, 프로들의 말을 듣는 게 낫겠다 싶었어요. 그런데 제목 때문에 책을 샀다는 분들이 꽤 있더라고요. 많은 사람들이 유감이 많다는 거죠. 『판사 유감』을 낼 때, ‘유감’의 두 가지 의미를 밝혔는데요. 판사로서 재판하면서 느낀 인간으로서의 감정을 뜻하는 유감(有感). 많은 사람들이 판사에게 느끼는 아쉬움과 불만을 알기 때문에 이를 고민하고 반성한다는 의미의 유감(遺憾)이에요. 『개인주의자 선언』도 비슷해요. 저는 어쨌든 낙관주의가 되자는 입장이니까요. 일상에서 느껴지는 모든 게 유감이다, 이런 게 아니에요. 

 

책을 읽으면서 떠오른 단어가 있습니다. ‘개인의 취향’, 줄임말로 ‘개취’라고들 부르죠? 요즘은 무슨 말을 할 때마다, ‘개취예요’라는 부언 설명을 붙이게 됩니다. 내 발언에 대한 과한 공격, 오해가 두려워서죠.


사실 ‘개인의 취향’은 말이 안 되는 말이에요. 취향은 원래 개인적인 거잖아요. “개인적으로 삼겹살을 좋아해요”, “개인적으로 빨강색을 좋아해요”라는 말을 들으면 웃기죠. 대개 사람들은 이 말을 변명으로 사용하는 것 같아요. 자기 의견을 이야기하면 상대방이 아주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반박하고, “왜 너는 다른 사람들과 의견이 다르냐?”고 반응하니까요. 취향이 개인적인 건 너무나 당연한 건데, 우리 사회에서는 서열이나 직급에 따라 취향도 ‘옳고 그름’으로 판단되는 경우가 많아요. 이 사회가 얼마나 획일적인 것을 강조하는지를 보여주는 단어라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라는 말을 덜 썼으면 좋겠어요.

 

두려운 마음도 있는 것 같습니다. 자기 표현을 하고는 싶은데, 잘못 전달이 될까 하는 염려도 있고요. 특히 상사에게 말을 할 때는 더욱 경계를 합니다.


윗사람들은 자신의 말 한 마디에 팀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길 원해요. 그런데 거기에 순응하면 평생 그렇게 살아야 해요. 나는 조금 다른 성향이라는 걸, 커밍아웃 하려면 스스로도 불편함을 감수해야죠. 조직에서 예쁨도 받으면서 자유도 누리는 건, 아직 이 사회에서는 어려운 것 같아요. 어느 정도는 타협해야 할 것 같아요. 물론 “너도 나도 들이대라”는 건 아닙니다. 그렇게 하면 회사에서 잘리는 상황에 있는 분들도 있을 거고요. 다만 자기 일을 똑 부러지게 잘하면서 싫은 건 싫다고 말하면, 예쁨을 좀 못 받더라도 자유는 얻을 수 있죠.

 

법조계는 특히 더 보수적인 집단이잖아요. 판사님 역시 비슷한 고민을 하셨을 텐데요.


이렇게 책을 내는 것도 튀는 행동이죠. 다만, 너무 막 나가다 보면 책임을 다할 수 없으니까, 현명하게 선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선을 넘지 않으면서 내가 추구하는 가치관과 색깔을 보여주면, 조금씩 자유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내 가치관을 남들이 좌지우지할 수 없다는 걸 보이면, 상대에게는 조금 불편함을 제공하겠지만 그들도 명분이 없으니까요. 나는 내 일을 잘하면 되는 거고요. 중요한 건, 서로서로 거들어주는 거예요. 1:1 게임은 어려우니까, 어떤 사람이 다른 의견을 냈을 때, 옆에서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 분 말도 맞다”고 맞장구를 쳐주는 게 중요해요. 거창한 노동조합만 연대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윗사람한테도 웃으면서 물러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해야죠. 그래서 커밍아웃이 필요해요. 오심즉여심(吾心卽汝心)이라고, 생각해보면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어요. 한마디씩 거들어주는 행동, 이런 게 용기고 필요한 것 같아요.

 

“만국의 개인주의자여, 싫은 건 싫다고 말하라”라고 하셨는데요. 이 문장을 읽고 꽤나 위로를 받았습니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라는 말이 있잖아요. 개인주의자는 단결하는 종족이 아닌데, 뭐랄까. 싫은 걸 싫다고 말하지 않으면 평생 노예처럼 살게 되는 것 같아요. 따져보면 ‘싫은 건 싫다’는 건 되게 소심한 표현인데 이게 참 어려운 거죠. 물론 조직에서는 까다로운 존재로 보일 수 있지만, 어떡하겠어요? 감수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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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개인주의자 중에 가장 성공한 사람


심리학자 스티븐 핑커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를 언급하면서, “철저한 비관에서 출발하면 낙관주의자가 될 수 있다는 내 지론과도 통해 무척이나 재밌었다”고 밝히셨는데요. ‘철저한 비관’에서 출발한다는 게, 어떻게 보면 참 슬픈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관주의자가 된다면 희망이 있겠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키워드가 계속 튀어나올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제 성향이 워낙 시니컬하기도 했고, 직업상 인간의 가장 안 좋은 면을 보게 되니까요.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다고 하잖아요. 강간범, 살인범을 20년쯤 보고 나면, 소매치기나 도둑이 천사로 보여요. 오히려 재판을 하면 할수록 피고인들이나 재판 받는 사람들이 그렇게 나쁘게 보이지만은 않아요. 그 사람들도 어린 아이와 같은 순수한 면이 없지 않거든요. 극악무도한 악마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사람에게는 여러 성향이 있는데, 내버려주면 남에게 큰 피해를 끼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역할과 위치가 주어졌을 때 특정한 성향이 발현돼서 남에게 큰 위험을 끼치는 경우도 있어요. 물론 소시오패스나 사이코패스 같은 인격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 고만고만해요. 주어진 상황이나 위치에 따라서 더 탐욕스러워지는 면도 있기 때문에 사람을 함부로 재단하지 않으려고 해요.

 

동시에 누군가를 대단히 좋아하거나 존경하지는 않으시겠어요.


그렇죠. 그 사람의 어떤 면이 좋아 보이는 거지, 본질은 모르는 거니까요. 저 역시 마찬가지예요. 『판사유감』을 읽고 저를 과도하게 좋은 선입견으로 보시는 분들이 계시는데, 솔직히 부담스러워요. 저는 이기적이고 쾌락주의자고 남에게 못되게 군 것도, 잘못한 것도 많거든요. 다만 제가 감명 받은 부분에 대해 글을 쓰다 보니까, 느낌이 그렇게 된 거예요. 제가 뭐 루소도 아니고 『참회록』을 쓸 필요는 없잖아요.

 

내 자신이 대단하지 않은데, 남들이 대단하게 평가하는 것. 되게 싫어하시죠?


완전 안 좋아하죠. 자유에 대한 구속이라고 생각해요. 겸손이 아니에요. 기대에 맞춰 살라는 강박이잖아요. 글쓰기에 대해서도 그래요. 자유가 중요해요.

 

책이 너무 잘 팔려서, 생각보다 훨씬 유명해지면 어떡하죠? 자유를 누리지 못할 정도의 유명세가 생길 지도 모르는 일이잖아요.


(웃음) 이렇게 말하는 게 오만일 수도 있는데요.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지나칠 만큼 조절하고 조심하려고 해요. 제가 컨트롤할 수 없는 범위에서 나머지 삶을 좌지우지 하는 경우는 만들지 않으려고요.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일이 없도록요. 제 정체성에 대해 생각해요. 사실 ‘개인주의자 선언’을 한 건, “나 이런 사람이에요. 건드리지 마세요”라는 뜻도 있어요.

 

“무라카미 하루키가 가장 부럽다”고도 하셨는데요.


개인주의자 중에 가장 성공한 사람이니까요. 하루키가 대중 앞에 잘 안 나서는 작가잖아요. 일본을 아예 떠나서 부평초처럼 살면서, 자유를 포기하지 않은 인물인데요. 하루키를 싫어하는 사람은 재수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자유에 예민한 사람은 그렇게 살아야 숨을 쉬는 거잖아요.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받을 필요는 없고, 내가 생각하는 범위 내에서만 사회적 관계를 갖고 살겠다는 게 하루키식 사고방식인데요. 제게도 그런 사고방식이 조금 있어요. 하지만 저는 직업이 판사니까요. 하는 일에 대해 일정 부분 사회적 관계를 맺고 있으니까, 그 이상으로 할 필요는 없다는 게 제 마음이에요.

 

글을 읽다 보면, 판사라는 직업에 대한 만족도가 꽤 크신 것 같지만요. 혹 글이 무척 잘 써지고 반응까지 좋아서 전업작가로 살 수 있게 된다면, 어떠실 것 같나요?


(웃음) 오래 전에 하루키의 『먼 북소리』를 읽으면서 너무너무 부럽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도 코즈모폴리턴처럼 전 세계를 여행하면서 그 나라의 역사, 문화에 대한 글을 쓰면 어떨까, 생각해보기도 했고요. 그런데 저 같은 성향의 사람은 사회와의 연결고리가 너무 없으면 풍선처럼 붕붕 떠다닐 것 같고 글도 웃겨질 것 같아요. 역설적으로 저라는 풍선을 땅에 붙들어 매는 건 제 직업이에요. 일을 하면서 사람들과 연결이 되니까 사회에 관한 고민을 하게 돼요. 저 혼자 떠돌아다니면서 글을 쓰면, 아무 의미 없는 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밸런스라는 단어를 좋아하는데요. 균형감각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로서는 판사로서의 의무를 다하고 최선을 다하는 게 먼저니까요. 이 일에 피해를 줄 만한 일을 하지 않으려고 해요. 글쓰기를 아무리 좋아해도 본업 다음인 거죠.

 

‘자기검열’을 많이 하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물론 직업상 많이 할 수밖에 없기도 한데요. 너무 지나치게 자기검열을 하면 자유로운 글쓰기가 어려워지지 않나요?


저 같은 경우는 자기검열이 내면화된 정도예요. 힘들이지 않아도 될 정도인데요. 프롤로그에도 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대나무숲에라도 가서 마음속 구석에 쌓인 외침을 토해내고 싶을 때가 있어요. 무지무지 야한 이야기, 인간 혐오에 극에 달한 것들을 소설로 쓰고 싶은 욕구도 있고요. 한국 사회의 틀에 박힌 정서들이 너무 답답하지만, 조금씩 범위를 넓혀가려고 해요. 10년쯤 시간이 흐르면 면역이 생기는 것처럼 서로가 익숙해지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사회도 저에 대한 수용범위를 넓히고, 저 또한 표현범위도 넓어지고요. 점진적으로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요. 줄타기 같은 느낌이랄까요?

 

페이스북에 관한 이야기도 여쭙고 싶습니다. 페이스북을 통해 그 동지들을 많이 만나셨잖아요. 페이스북 글쓰기의 효용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페친 분들이 서운해 하실 수도 있지만, 저는 페이스북이 실제 사회나 인간관계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각자 독백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서로의 일기장으로 교환일기처럼 돌려 읽는다고 할까요? 각자 성향대로 얻어가는 것이 있고 재미있으면 좋고, 싫은 건 차단하고 안 보면 되는 거니까요. 자유가 있어서 좋은데 자유가 있는 만큼 한계도 분명한 매체라고 생각해요. 취사 선택을 잘하면 너무 큰 의미를 갖지 않고 잘 이용할 수 있겠죠. 좋은 정보의 소스라든지, 영감이 되는 글을 발견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이걸 통해서 세상을 바꾸려고 하거나 대단한 인간관계를 얻으려고 하는 건 망상이라고 생각해요. 오로지 재미로 하는 거예요. 단지 재미요. ‘단지’를 강조하는 이유는 착각하지 않으려고요. SNS를 통해서 뭘 하려는 생각을 하면 재미가 없어지니까요. “SNS는 인생의 낭비”라는 명언이 있는데, 사람들이 자꾸 하는 실수가 여기서 누구한테 잘 보이려고 할 때예요. 그러는 순간, 부작용이 생겨요.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만큼, 한계도 분명하다는 걸 인식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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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듣는 판사가 되고 싶다


‘문학의 힘’이라는 글에서 “문학은 인간의 개별성과 예외성, 비합리성을 체험하게 해준다. 겉으로 드러나는 세계에 머물지 않고 인간의 숨기고 싶은 속내 깊숙한 곳을 파헤쳐 보여주곤 한다”고 말하셨는데요. 재판을 하는 데 있어서도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꼭 문학을 해야만 알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사람들이 갖고 있는 예외적인 측면, 본성을 보기에는 더없이 좋은 수단이라고 생각해요. 문학 작품의 주인공들을 보면 대체로 평범하지 않잖아요. 특이한 일도 많이 벌어지고요. 제가 워낙 추리소설도 좋아하고 세고 사이코적인 작품도 많이 읽어서, 인간사에 대한 수용 범위가 조금은 넓은 것 같아요. 판사 일을 떠나서 다른 일을 하는데 있어서도 문학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요. 대단한 순문학뿐 아니라, 대중문학, 만화, 무협소설도 다 도움이 돼요. 영화 <타짜>를 열심히 봤는데, 언젠가 피고인에게 “이거 환목이나 병목이겠네요?”라고 말하니까 바로 자백을 하더라고요. (웃음)

 

영화<카트>, <제보자>를 언급하면서 ‘사람들이 꼭 봤으면 하는 영화’라고 강조하셨습니다. 단순한 리뷰로 읽히지 않았는데요.


저는 글을 쓸 때도 실용적인 목적을 중시해요. 글의 아름다운 완결성보다 ‘내 글을 보고 이 영화를 정말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더 큰 거죠. 책에 관해서는 앞으로 권독사 역할을 하고 싶어요. 책을 안 보면 세상이 멸망할 것 같아서요.

 

초고에는 ‘육아 일기’를 포함한 더욱 사적인 이야기들도 포함됐다고 들었습니다. 왜 빼셨나요?


모든 편집자들이 말리셔서요. 독자 분들이 아직 저에게 원하는 건, 법과 사회에 관련된 이야기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일기는 일기장에 쓰세요’라는 뜻 아닐까요? (웃음) 육아 일기를 포함해 저의 성장기, 여행에 관한 이야기도 있었는데요. 언젠가는 책으로 낼 수도 있겠죠.

 

판사라는 타이틀이 없었더라도, 책은 언젠가 내셨을 것 같아요.


아마 더 빠르지 않았을까 싶어요. 주제나 소재는 달라졌겠지만요. 파산부에 있을 때, 파산이 뭐길래’라는 글을 법원 회보 <법원사람들>에 기고했는데, 그 글이 알려진 게 2005년이에요. 이후에 쓴 ‘하버드 연수기’도 일간신문에 게재되면서 책을 써보자는 연락을 꽤 많이 받았어요. 그 때는 젊은 판사라 조심스러워서 다 거절했는데, 시간으로 따지면 10년 정도를 망설인 셈이에요.

 

『판사유감』추천사를 고등학교 후배인 가수 유희열 씨가 써주셨잖아요. “지금, 당신은 어떤 판사가 되고 싶으세요?”라고 물었는데, 같은 질문을 드리고 싶어요.


이것도 소심한 이야기일 수 있는데요. 잘 듣는 판사가 되고 싶어요. 올바르고 현명한 판단이 정말 중요한데, 이건 제 노력만으로는 안 되는 영역인 것 같아요. 판단이라는 영역은 신의 영역인 것 같아요. 최선을 다해도 오판이 있을 거라는 생각 때문에 늘 두렵거든요. 이미 많이 했을 거고요. 결과는 제가 100% 책임질 수 있는 부분이 아닌 것 같아서, 인간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은 잘 듣는 일인 것 같아요. 근데 이거 정말 어렵거든요. 진심으로 듣는 판사가 되고 싶은데, 정말 어려워요. 개인주의자라서 더 그렇고요. 저는 천성이랑 싸워야 해요.

 

전작이 법원 사람들에게 많이 읽혀서 오히려 서운했다고 들었습니다. 젊은 사람들이 많이 읽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고요. 그렇다면 『개인주의자 선언』은 어떤가요? 어떤 독자들이 읽으면 좋을까요?


솔직히 말해서 별로 없어요. 그냥 이 책에 마음이 가는 분들이 읽으면 좋지 않을까요. 이것도 건방진 이야기인데요. 모든 사람이 이 책을 읽었으면 하는 바람은 없어요. 그저 이 이야기에 마음이 끌리는 분들이 읽고 공감해주면 좋을 것 같아요. 세대적으로 한계가 있을 것 같진 않아요. 이미 연세를 많이 드신 분들도 뭔가 와 닿는 부분이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좁지만 깊은 관계가 좋아요. 방송에 나와서 한 방에 유명해지는 것도 원치 않고요. 그냥 진심으로 서로 통하는 사람들이 “맞아 맞아”라면서 서로의 이야기를 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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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자 선언문유석 저 | 문학동네
『판사유감』을 통해 현직 판사로서 법과 사람 그리고 정의에 대해서 이야기했던 저자가 이번에는 대한민국 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이야기한다. 판사 문유석의 일상유감이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 『개인주의자 선언』은 소년시절부터 현재까지 저자가 보고 겪었던 사회 문제에 대한 생각들이 담겨 있다. 책과 음악만 잔뜩 쌓아놓고 홀로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하며 개인의 행복을 중요한 가치로 삼는다는 저자는 자신을 개인주의자로 명명한다. 그리고 책은 이러한 개인을 불행하게 만드는 굴레인 한국 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주제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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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근용, 책만 읽는 바보가 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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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근용 저자의 이력은 독특하다. 청소년기에는 우범 청소년 관리 대상이 될 정도로 문제아였고, 대학 시절에는 게임 중독에 빠져 시간을 허비했다. 그러나 30대에 접어들면서 억대 연봉의 영어 강사가 된 그는, 현재 독서 경영 컨설팅 CEO로서 활발한 강연 활동을 하고 있다. 1만 명 이상의 회원을 보유한 독서 카페 ‘어썸피플(Awesome People)’의 운영자이기도 하다. 엄청난 도약이라고 할 수밖에 없는 이러한 변화의 비밀은 단 하나, 책이었다. 군대에서 우연히 만난 한 권의 책이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것. 당시를 회고하며 저자는 말한다. “한 권의 책을 다 읽었을 때의 희열”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고.

 

이후 저자는 하루 한 권 책 읽기를 목표로 1년에 520권의 책을 읽으며 무섭도록 책에 빠져들었다. 그의 신념은 일독일행, “한 권의 책을 읽고 한 가지만 실천한다면 당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었다. 책을 읽은 후에는 반드시 좋은 구절을 기록해 놓았고, 실천해야 할 미션을 정해 직접 행동으로 옮겼다. 그렇게 직접 몸으로 읽어 내려간 책의 숫자가 2000권이 넘는다.

 

『일독일행 독서법』에 담긴 저자의 경험은 ‘책으로 삶을 변화시키는 비결’이라 할 만하다. 하루 한 권, 1년에 520권이라는 방대한 독서량에 겁먹을 필요는 없다. 스물한 살에 이르러서야 책 읽기의 즐거움을 발견했을 정도로 책과는 거리가 멀었던 저자인 만큼, 그가 알려주는 방법은 누구나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것들이다.

 

독서의 필요성은 절감하지만 책 읽는 시간이 힘겨운 이들을 위해 ‘책 근육을 위한 운동 지침’을 제시하고, 자신에게 맞는 책을 고르는 방법도 알려준다. 책 읽을 시간이 없어 안타까워하는 이들에게는 시간 관리법을, 저자와 같이 삶을 변화시키고 싶은 이들에게는 ‘일독일행 실천 방법’을 귀띔한다. 인문 고전과 소설, 자기계발서 등 분야별로 달리해야 하는 독서법과 ‘독서 슬럼프’를 극복하는 노하우도 실려 있다. 책을 흠모하는 모두에게 건강한 자극이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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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시간이 아닌 독서 양을 정해라


요즘도 하루 한 권씩 책을 읽으세요?


지금까지 1년에 520권도 읽어보고, 5년 동안 2천 권 넘게 읽기도 했잖아요. 그런데 어느 순간 빈 곳이 많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지금은 많은 책을 읽기보다는 한 권을 깊이 있게 읽어보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현재 『천천히 깊게 읽는 즐거움』이라는 책을 읽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하루에 한 권 이상씩 읽었던 습관이 있기 때문에 천천히 읽는다고 해도 일주일에 4~5권 정도는 읽고 있어요.
 
『일독일행 독서법』에서 “책 근육”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 알려주기도 하셨는데요. 아직 “책 근육”을 만들지 못한 분들에게는 다독을 권장하시나요?


독서할 시간보다는 독서할 양을 정해놓고 꾸준히 지키려고 노력하시라는 말씀을 많이 드려요. 아직 책 근육이 붙지 않은 상태에서 책 한 권을 다 읽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부담이 크거든요. 그러니까 하루에 5페이지나 10페이지를 읽겠다고 정해놓고, 목표한 분량만 읽고 나면 멈추는 거예요. 그러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빠져드는 순간이 와요. 책이 술술 읽히는 거죠. 그러면서 즐거움을 찾아갈 수 있는 부분이 있어요. 많이 읽는 데에만 초점을 맞추는 분들에게는 역효과도 나는 것 같더라고요. 저로서는 그게 너무 안타까운 거예요. 저도 처음 몇 년 동안은 한 달에 3권~5권 정도를 읽었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하루에 한 권 이상씩 읽을 수 있었던 거예요. 마찬가지로 책을 잘 접하지 않으셨던 분들이 ‘나도 하루에 한 권씩 읽어야 돼’ 하고 생각하면서 오히려 책과 더 멀어지는 경우들이 있어요. 그래서 하루에 5페이지나 10페이지 정도로 적은 양을 정해 놓고 읽으시라는 거예요.

 

“책 근육”을 만드는 또 다른 방법은 무엇인가요?


예전에 영어 학원을 다닐 때 아침 6시 40분부터 밤 10시까지 수업이 있었어요. 온종일 학원에서 영어공부만 해야 했죠. 그때도 저는 하루에 한 권씩 책을 읽고 싶었는데 도저히 시간이 안 나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든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을 만들려고 분 단위로 시간 관리를 해봤어요. 그랬더니 굉장히 많은 자투리 시간들이 나오더라고요. 그 시간들만 더해도 책 읽을 시간은 충분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6개월 동안 매일 기록하면서 시간 관리를 했었죠. 그런데 제가 경험해본 바로는 모두가 그렇게 할 필요는 없는 것 같고요. 평일에 한 번, 주말에 한 번, 기록해 보면서 자신이 어떻게 시간을 쓰고 있는지 살펴보는 건 좋지 않을까 싶어요.

 

대부분의 경우, 책을 고를 때 가장 먼저 찾는 곳은 베스트셀러 코너가 아닐까 싶은데요. 이와 달리 작가님께서는 스테디셀러 위주로 읽으라고 하셨어요.


무엇이 먼저라고 이야기하기는 어려울 것 같고요. 베스트셀러는 그 시점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책인데, 제가 보기에는 흐름이라는 게 있는 것 같아요. 최근 몇 년 간만 보더라도 자기계발서가 주목 받다가, 자기계발에 지친 사람들을 위한 힐링 이야기가 인기를 끌었고, 이후에는 문학, 그리고 지금은 필사 책들이 많이 나오잖아요. 그런 흐름 속에서 너무 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오는 듯한 생각도 들어요. (베스트셀러 중에는) 한 번 붐이 일었다가 금방 열기가 식어버리는 책들도 있는데, 그런 책들은 읽다 보면 흥미를 못 느낄 수도 있죠. 아무래도 스테디셀러는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계속 사랑 받고 있는 책이니까, 베스트셀러보다는 한 단계 더 발전된 부분이라고 볼 수도 있겠죠. 그래서 스테디셀러를 읽다 보면 책을 선정하는 데 있어서 크게 실패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저자가 추천하는 책을 찾아 읽어라”라고 조언하기도 하셨죠. 


한 작가의 책을 읽는다는 건 그 작가를 어느 정도 믿고 있다는 거잖아요. 제 경우에도 그렇게 믿음이 생기고 나면 ‘작가가 괜히 이 책을 추천하지는 않았을 거야’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추천한 책을 읽어 보니까 좋았고요. 물론 그 중에서 안 좋은 것도 있지만, 그래도 책 선택의 폭을 넓힐 수 있으니까, 그런 점에서는 굉장히 좋은 방법이 아닌가 생각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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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만 읽는 바보가 되지 마세요


『일독일행 독서법』에서 분야별 독서법도 제시해 주셨는데요. 특히 인문 고전에 대한 내용이 눈에 띕니다.


유치원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책부터 고등학생 도서까지, 단계별로 읽으시길 권해드렸죠. 인문학 책을 읽고 싶다면 조금 더 쉽게 설명되어 있는 책부터 읽어나가거나, 많지 않은 분량으로 시작해 보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하루에 3페이지나 5페이지만 정해놓고 읽는 거죠. 인문학 책을 하루에 한 권씩 읽기는 쉽지 않거든요. 저도 지금까지 인문학 책을 계속 읽어왔는데, 아침에 일어나면 무조건 5페이지든 10페이지든 읽었어요. 그 이후에는 제가 읽고 싶은 다른 책들을 읽었고요. 그리고 인문학 책은 천천히 깊게 읽어야 하니까 필사를 하는 등 많은 노력을 했죠.

 

지금도 여러 권의 책을 동시에 읽고 계세요?


그런 경우들도 많이 있죠. 여러 분야의 책을 읽으려고 그렇게 하기도 하고요. 한 책만 읽다 보면 지루해질 때도 있으니까요. 요즘에는 경제 신문을 열심히 읽고 있어요. 그 동안 너무 경제 분야에 무지하지 않았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읽으려는 노력은 계속 하죠. 그리고 저는 서로 다른 책들을 연결하는 걸 좋아하는데, 그런 식으로 읽으니까 또 다른 재미가 있어요. 전혀 다른 분야의 책이라고 하지만 그렇지만은 않거든요. 어느 순간 어떻게 만날지는 모르는 거예요. 그런 부분이 재미있죠. 책을 읽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라고 할까요. 신문이나 잡지를 읽든, 인문 고전을 읽든, 자기계발서를 읽든, 시를 읽든, 연결고리가 생기는 부분들이 다 있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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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책에서 나를 일깨우고 피와 살이 되는 단 하나의 문장을 얻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적으셨습니다. 그런 문장을 얻은 후에 삶이 달라지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요?


모든 사람에게 적용하기는 힘들겠지만, 제 경험에 비추어보면, 우선 문장을 하나씩 외워야 돼요. 문장을 계속 떠올리면서 입 밖으로 꺼낼 수 있게끔, 끊임없이 외워서 체화를 시켜야 돼요. 좋은 문장을 보고도 감탄에서 끝나버리면 결국 잊어버려요.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니까요. 그런데 문장을 깊이 체화시키려고 노력하다 보면 어느 순간 불현듯 떠오르죠. 그래서 저는 하루에 한 문장만이라도 우선 외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외우는 문장이 많아질수록 글도 잘 써지더라고요. 『대통령의 글쓰기』저자 분의 블로그에 자주 찾아가면서 배운 건데요. 명문장 100개 정도만 알면 글은 술술 써질 수밖에 없대요. 그걸 끊임없이 인용하고 자기 생각을 덧붙이다 보면 글이 길어질 수밖에 없고, 글의 신뢰성도 높아질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저도 『일독일행 독서법』을 쓰기 위해서 100권이 넘는 책을 읽었어요. 책에 인용된 문장들만 보더라도, 제가 책을 읽지 않았으면 찾지 못했을 거예요. 체화될 정도로 문장을 외우면 삶에 굉장히 큰 영향을 미치는 거죠.

 

책에서 말씀하신 “책만 읽는 바보”란 어떤 사람들인가요?


책을 눈으로만 읽으면서 ‘나는 왜 변하지 않지?’ 하고 안타까워하시는 분들도 계시잖아요. 제가 이야기하는 건 책을 읽지만 말고 기록해서 실천하라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많은 사람들은 글을 잘 쓰고 싶어서 관련된 책을 읽으면서도 단 한 편의 글도 쓰지 않아요. 그게 어떻게 보면 ‘책만 읽는 바보’잖아요. 자신이 읽은 책에서 말하는 핵심은 무조건 써보라는 건데 ‘이런 기술이 있었구나, 이런 방법은 좋다’ 하고서 끝인 거예요. 그러면서 글을 쓰려고 할 때마다 ‘역시 글쓰기는 어려워, 나는 소질이 없나봐’ 하고 몇 달 뒤에 또 비슷한 책들을 사서 읽어요. 악순환의 반복인 거죠. 무조건 실천해야 돼요. 읽기만 해서는 안 되죠.

 

책을 읽는다고 해서 삶이 달리지는 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죠. 그들은 때로 ‘진짜 세상은 책 밖에 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무언가를 배우고자 할 때 가장 효과가 좋은 건 어떤 사람에게 배우는 거죠. 책으로 배우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실제 상황과 맞지 않는 부분도 있을 수 있잖아요. 가장 중요한 건 실천이고, 끊임없이 배우려는 노력과 함께 책이 결합되면 굉장히 효과가 좋은 거죠.

 

책만 파고들기보다는 실제 경험과 책을 결부시켜야 된다는 말씀이신가요?


그렇죠. 논문 한 편을 쓸 때도 책만 읽어서는 안 되잖아요. 실험, 연구도 하고 여러 가지를 종합해서 쓰는 거죠. 책만 쌓아놓고 읽고 적어서 발표할 수 있는 게 아니죠. 책을 읽고 하나라도 변하려고 노력하고, 실천하면서 발전하려고 노력해야죠. 읽기만 해서는 변하지 않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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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에 대한 부담감을 떨쳐라


“완독에 대한 부담감과 의무감”을 떨쳐버리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필요한 부분만 읽으라고 목차가 있는 거잖아요. 나한테 필요한 부분이 목차에 나와 있으면 그 부분만 읽더라도 충분히 얻었다고 생각해요. 물론 저도 처음 책을 읽을 때는 부담감이나 압박감이 너무 컸고, 책을 다 읽지 않으면 찝찝해서 고민을 했었어요. 그런데 지금까지 2000권 넘게 읽다 보니까, 웬만하면 다 읽으려고 하지만, 굳이 완독에 의미를 두지는 않아요. 나한테 필요한 부분이 어떤 것인지 안테나를 세운 다음에 안테나에 걸린 부분만 흡수해도 굉장히 많은 도움이 되는 거죠.

 

‘독서 슬럼프’가 찾아왔을 때는 책 읽기를 중단했다고 하셨어요. 요즘은 어떠세요? 


지금은 책 읽기가 일상이 되어서 지겹거나 힘들지는 않아요. 책이 싫증나면 신문을 읽는다든지 하는 식으로 끊임없이 읽어요. 읽는 것 자체가 피로하다고 느껴지지는 않거든요. 지금은 책 근육이 많이 붙어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 것 같아요. 그런데 슬럼프가 찾아온다면 뭔가 새로운 일들을 해보는 게 좋죠. 여행을 떠날 수도 있고, 운동을 하거나, 전혀 다른 분야의 책들을 읽을 수도 있죠. 그런데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다시 돌아오게 되더라고요. 왜냐하면 책을 집었다는 건 책을 통해서 얻고자 하는 게 있는 거고, 책을 읽고 싶다는 마음이 계속 있는 거잖아요. 리프레시 된 상태에서 다시 읽다 보면 지속적으로 책을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같은 책을 다른 사람과 돌려 읽어라”는 말씀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독서가 지극히 개인적인 행위로 여겨지기도 하니까요.


성향의 차이가 있으니까 무조건 강요하고 싶지는 않은데요. 다른 사람과 함께 읽는 것도 한 번 해보시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렇게 하면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다른 사람의 생각을 발견하게 되고, 서로의 생각이 합쳐지거든요. 책을 함께 본 사람들이 흔적을 많이 남길수록 생각은 더 커져요. 생각이 덧대어지면서 전혀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고, 그 안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이 굉장히 많아지죠. 시야도 더 넓어지고 깊이도 깊어지면서 감동도 더 커지는 효과가 있는 것 같아요.

 

책의 부록으로 독서 멘토들과 함께하신 인터뷰를 실으셨어요. 조승연 작가님과 나누신 대화도 소개하셨는데요. 인터뷰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무엇이었나요?


조승연 작가님을 뵙고 굉장히 자극을 많이 받았어요. 정말 말씀도 잘하시고 지식의 양이 엄청나시더라고요. 자신의 분야에 일가견이 있는 분이시기 때문에 자신감이 넘치시고, 그래서 작가님 말씀을 더 신뢰하게 되더라고요. 그렇다고 거만하시지는 않아요. 최근 방송에서 기승전자기자랑이라고 나오기도 했는데, 직접 만나보면 그런 부분이 없고 하나라도 더 알려주려고 하세요. 일에 대한 사명감도 투철하시고요. 에너지를 주는 분이셨어요. 그래서 저도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웃음). 정말 배울 점이 많은 분이었어요.

 

독서 모임도 운영하고 계신데요. 『일독일행 독서법』에서 말씀하시길 “허전함” 때문에 찾아오는 분들이 많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나’를 잃어버렸다는 생각과 삶을 바꾸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할 때가 바로 책을 읽어야 할 때”라고 적으셨죠. 그런 점에서 『일독일행 독서법』어떤 분들에게 필요한 책이라고 생각하세요?


청소년들에게도 들려주고 싶은데, 아직 청소년들은 이런 이야기가 크게 와 닿지 않을 것 같고요. 대학생 분들이나 직장인 분들, 그리고 책을 읽고 싶은데 어떻게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에게 꼭 추천해 드리고 싶어요. 덧붙여서 발전적인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 모임에 자주 참여하시라고 말씀 드리고 싶고요. 허무함이라는 게 매일 반복되는 일상을 살면서 인생이 지겹게 느껴지고 ‘내가 뭘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어떻게 해서든 조금이라도 발전할 수 있는, 내가 자극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을 계속 만나기 위해서 노력한다면 인생이 즐거워질 거라고 생각해요. 거기에서 깨달음을 얻으니까 삶에 활력도 생기고요. 익숙한 환경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꾸준히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마지막으로 독자 분들께 드리고 싶은 말씀은 수불석권, 손에서 책을 놓지 말아 달라는 거고요. 하나가 더 있다면 일독일행, 단 한 권의 책을 읽고 꼭 한 가지는 실천해서 보다 나은 삶을 사셨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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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독일행 독서법유근용 저 | 북로그컴퍼니
책의 강력한 힘을 경험하며 1년에 520권의 책을 독파한 후, 지금까지 2000권 이상의 책을 읽어온 독서 고수 유근용은 “책을 읽는 것과 책을 내 것으로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자칫 잘못하면 책만 읽는 바보가 될 수 있다.”고 말하며 책을 읽는 것에서 끝내지 말고 ‘쓰고 행동해야만’, 즉 ‘일독일행’해야만 진정한 독서 고수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일독일행 비법으로 독서 달인의 길로 나서보자. 더불어 원하는 인생에 한 발 더 나아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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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피라이터 김하나 “일단 하자,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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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정한 듯, 감각적인 듯, 담백한 만듦새의 책이다. 제목을 적은 손 글씨도, 『파이 이야기』의 한 장면을 그린 그림도 무척 잘 어울린다. 책에서 저자가 느껴진다. 물론 저자의 글도 그 예감을 배신하지 않는다. 재미있는 것을 기꺼이 흥미로워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소중한 것을 아는 사람이라고, 느꼈다.

 

SK텔레콤 현대생활백서, 네이버 세상의 모든 지식 등 히트 광고의 카피를 쓴 카피라이터 김하나는 “나뭇잎을 들어 햇볕에 비춰보면 잎맥이 보이는데 그 잎맥은 나무의 모양을 하고 있다”며 “한 번도 연결 지어 본 적 없는 것들을 연결 지었을 때 새로운 것이 나온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바로 “이것이 책의 미덕이라면 미덕”일 것이다. 과연 그의 글은 다름 아닌 ‘새로움’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가전제품으로 시작해 조르주 페렉을 얘기하는가 싶더니 기타리스트 이병우가 등장하고 마침내 16이 없는 달력으로 끝난다. 의외의 것들을 연결하는 것만으로 풍성한 이야기가 펼쳐지고, 정말 재미있는 농담이 시작된 듯했다.

 

순풍에 돛 단 듯, 책을 만들 때 하나도 걸림돌 없이 진행되는 책이 얼마나 될까.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만일 그런 책을 찾는다면 바로 이 책이다. 14년차 담당 편집자의 전언이다.


아주 잘 만들어진 책에서 팀워크를 읽을 수 있다는 건 이런 느낌일 것 같았다. ‘관계’ 그 자체가 하나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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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단어, 한 단어가 다 기분이 좋다


책을 읽는 혹은 보는 방법은 다양하다고 생각해요. 책의 물성 자체를 좋아하는 분들도 많은데 이 책은 만져보는 재미, 살펴보는 재미가 있어요. 그림을 해치지 않도록 그 부분에는 쪽수를 매기지 않았고요. 책을 준비하면서 책의 만듦새가 어땠으면 좋겠다, 생각한 것이 있었는지 궁금해요.


그림 부분에 쪽수가 빠져있는 건 몰랐어요. 그래서 비어있는 느낌이 더 강한가 보네요. 지금 알려주셔서 처음으로 알게 됐어요.(웃음) 책이 딱 나왔을 때 마음에 들었는데요. 책 준비하는 동안 무라카미 하루키의『오자와 세이지 씨와 음악을 이야기하다』에 대해 트위터에 칭찬이 있는 걸 보고 부산역 서점에서 사서 올라오는 기차에서 탐독을 했거든요. 근데 그 책이 딱 느낌이 좋은 거예요. 표지도 그렇고, 겉표지를 벗기면 나오는 표지, 표지를 접은 방식이나 본문 디자인도 너무 단정하고요. 그게 김영사 책이었던 거죠. 혹시 그분이 제 책 작업하는 게 가능하실지 했더니 된다고 하셔서 그분이 해주신 거예요.


본문에 들어갈 그림을 그리고 있는 동안에도 디자이너 님이랑 같이 상의하고, 조언도 해주시고 그랬죠. 그게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책 제목도 제가 쓴 줄 아는 분들이 많은데 제가 아니라 디자이너 님이 쓰신 거예요. 젓가락에 잉크 묻혀서요. 이게 그림체와 잘 맞아서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요.

 

제목도 참 좋죠. ‘농담’이란 말도 좋고요.


원래는 ‘지의 연결’이란 제목이었어요. 개론서처럼요. 제목을 바꾸니 책의 색깔이 확 달라지면서 그게 책을 더 반영하고 있는 말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편집자 분이 이 제목을 갖고 오셨을 때 디자이너 분도 좋다고 하시면서 뭐라고 했냐면 한 단어, 한 단어가 다 기분이 좋다고 했어요. 그러고 보니 진짜 좋은 거예요. 좋은 제목이죠.(웃음)

 

“친구들은 사회적 정서적 안전망”이라고 한 말처럼 책 작업에서도 ‘사람’이 중요한 요소였던 거네요.


그런 것 같아요. 어제도 추천사 써주신 김명남 님과 서촌에 앉아있는데, 그 안에서도 사람을 만나고, 지나가는 누구를 또 만나고, 동네 인기 강아지가 지나가서 또 나가서 인사하고, 계속 이랬어요. 진짜 여기는 사람들이 퍼진 가족처럼 지내고 있거든요. 저희 사무실에도 하도 사람들이 놀러오니까 ‘우리 일한다’고 할 정도였어요. 친구인데, 가족 같기도 한 그걸 기본으로 서로 도와주는 관계들이 돈독하게 있어요. 그 관계들이 저한테 영향을 많이 미치는 거죠.

 

예전에는 사람을 좁게 사귀었어요. 몇 마디 듣고 판단을 내리기도 하고요. 한 번은 너무 힘들었는데, 어느 날 눈물을 닦으며 동호회를 만들었어요. 그 모임의 수장으로 3년 간 있었는데요. 너무 활발하게 잘 됐어요. 처음부터 그렇진 않았지만 제가 살겠다고 만든 모임이니까 새로운 사람이 오면 제가 먼저 적극적으로 관심을 갖고, 얘기를 하고, 재미있게 하려고 했죠. 그런 생활을 3년 간 했더니 체질개선이 일어난 것 같아요. 과거의 제가 너무 오만했던 것 같아요.

 

변한 지금, 나의 어떤 면이 확실히 좋아졌다고 생각하세요?


말 잘 통하면 몇몇 친구들만 사귀잖아요? 너무 편하고, 무슨 얘기를 해도 길게 설명할 필요 없이 알아듣고, 잘 통하죠. 그 대신 같은 얘기만 해요. 그게 좁은 화분 안에 있는 것이라면 다양한 사람과 있는 것은 세계가 훨씬 넓어지는 거예요. 그런 게 이어지다 보니 사람을 이해 못할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 거지, 그것도 재미있네, 이렇게 됐어요.

 

책에서 말씀하신 ‘유연성’이 바로 그런 것이겠군요. 


제게 굉장히 큰 영향을 준 친구가 있는데요. 그 친구는 아이스크림 가게에 괴이한 뭔가가 나오면 눈을 반짝이면서 얼마나 이상한지 먹어보겠다고 해요. 저는 초콜릿만 먹거든요. 제가 맛있는 것을 취하는 게 돈을 지불하는 가치라고 생각한다면 그 친구는 실패를 하더라도 이런 시도를 했다는 걸 돈을 주고 맛보고 싶어 하는 거예요. 이런 것들을 보면서 진짜 수많은 사람들에게 많이 배웠어요. 그래서 예전처럼 판단 내리는 게 되지 않아요. 그럴 수가 없는 거죠.

 

흔히 나이가 들면 싫어하는 게 많아지고, 고집도 강해지는데 반대로 가셨네요.(웃음)


그런 것 같아요.(웃음) 아빠는 고집의 화신이고요, 엄마는 개방성이 화신이에요. 엄마는 어려서부터 어떤 얘기도 잘 들어주는 편이고, 대화가 잘 되는 편이었어요. 아빠랑은 거리가 있었고요. 살면서 개방성과 주관성이 함께 조율되는 게 무척 중요할 텐데요. 나이가 들면서는 자기가 모르는 것들이 훨씬 많아지잖아요. 그렇다면 개방성이 중요할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사실 아빠를 정말 많이 닮았고, 아빠를 보면서 경계했던 부분이 있었으니 엄마를 보면서 더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매일 요가를 하면 유연성이 늘어나는 것처럼 노력하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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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나면 아는 것들


“책이라도 어설프게 읽지 않았더라면 훨씬 더 똑똑했을 사람”에 밑줄을 그었어요. 지식에 갇힌 상태를 경계하는 거겠죠. 다만 새로움에 열려있기, 매순간 유연한 상태를 유지하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 어떻게 하세요?


예전에는 나는 뭘 좋아하고, 이런 취향이고, 이런 게 정말 명확했던 것 같아요. 요즘은 누가 뭘 좋아한다고 하면 데리고 가달라고 얘기해요. 좋아하게 될지 안 좋아할지는 모르지만 일단 경험해요. 한 번은 친구가 승무를 보러간다고 해서 같이 갔었거든요. 지금까지 그렇게 강렬한 인상은 없어요. 잊기가 힘들어요. 승무에 빠져들고 이런 건 아니지만 그걸 한 번 본 저와 보지 않은 저는 완전히 다르기 때문에 그 친구한테 정말 고마운 거죠. 보고 나면 어쨌든 뭔가는 달라요. 내 취향이 아니라는 것조차 봐야 아는 거예요. 어쨌든 같은 것만 하는 것보다는 이득이죠.


구체적으로는 트위터에 ‘BBTT_NOTE’라는 계정을 운영하고 있어요. 하루에 하나씩 우리에게 영감 주는 아이디어를 적어둡니다, 라고 해서 온갖 것들을 올려요. 거기서 건졌던 것들이 책에도 많이 수록되어 있어요. 재미있는 건 친구들이 제보를 해줘요. 아무리 작아도 우리가 좋아할 만한 각도가 있다는 걸 친구들도 알고, 친구들도 그걸 좋아하게 되는 것 같아요. 

 

친분 있는 김민철 작가나 박웅현 작가처럼 카피라이터의 책 출간이 눈에 띄거든요. 이 책들은 독자들의 관심을 많이 받는데,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맞는지 모르겠지만 박웅현 CD님의 힘인 것 같아요. 다른 카피라이터도 많이 만나잖아요. 근데 박웅현 사단에 들어가면 어떤 색을 갖게 돼요. 유행어가 뭐고, 힙한 사람이 누구고, 이것들로 쌔끈한 광고를 만들겠다, 하는 쪽이 전혀 아니에요. 『인문학으로 광고하다』라는 책을 쓰신 것처럼 인간의 보편적인 어떤 것에 꽂아 넣을 수 있는 이야기를 개발하고 만드는 것을 계속해서 배우니까요. 좀 더 본질적으로 생각하게 돼요. 귀에 탁 걸리는 말, 감각적인 것들을 중요시하는 팀들이 있다면 여기는 본질적으로 하려고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무척 중요하게 생각하는 훈련을 받아요. 기초 체력을 정말 많이 배운 것 같아요. 이제는 각자 다른 방향을 갖고 있죠. 저는 박 CD님 책 보면 저와 생각 정말 다르다고 생각해요.(웃음) 그럼에도 기본적인 생각은 많이 배웠고, 고마운 일이죠. 만약 다른 카피라이터가 쓴 책을 제가 다 읽었다면 질문에 대해 제대로 답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으니 저의 개인적인 생각으로 들어주세요.

 

“글자를 읽은 뒤엔 다 잊어버려도 좋다. 내가 이 책을 통해 진짜로 하고 싶은 얘기는 글자가 아니라 문단과 문단 사이에 있다”고 했어요. 진짜로 하고 싶은 얘기를 들려주신다면요?


광고 쪽 사람들 강연을 가끔 보면 세계적으로 정말 트렌디했던, 아주 혁신적인 캠페인을 보여주거든요. 어린 친구들은 ‘와, 멋있다!’ 하겠지만 그걸 보고는 당장 회사에 가서 뭘 해야 될지 알 수 없어요. 너무 어마어마하고, 거창하고, 이미 완성돼 있기 때문이죠. 우리가 회사에서 해야 되는 건 아주 조그만 단어 선택, 생각의 각도 차이, 이런 것들인데 너무 거대한 것들만 계속해서 보여주면, 물론 의미가 있겠지만, 현실과 차이가 있다고 생각해요. 첫 책에서 했던 얘기가 나뭇잎을 들어 햇볕에 비춰보면 잎맥이 보이는데 그 잎맥은 나무의 모양을 하고 있다는 거였어요. 프랙탈 이론(Fractal theory)처럼 아주 조그만 것도 아이디어가 반짝인다면 그 자체가 거대한 것과 같은 반짝임을 갖고 있다는 거죠. 작은 반짝임을 얘기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건 공감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죠. 거대한 것은 높이 볼 수는 있겠지만 공감하고, 용기를 주기에는 다른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문단과 문단 사이를 말하고 싶었던 건, 이것과 저것이 차이가 있지 않다는 거였어요. 그러니 이것을 바꾼다면 저것까지 바꾼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죠. 책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미터법 같은 척도 얘기를 하다가 사랑의 크기로 가서 정지용의 시 「호수」가 나오고, 보고 싶은 마음은 호수만 하다로 끝날 수 있다는 것이에요. 그것이 다른 게 아니라는 거죠. 한 번도 연결 지어 본 적 없는 것들을 연결 지었을 때 거기서 새로운 것이 나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것이 책의 미덕이라면 미덕이라고 생각해요. 문장력도 아니고, 지식 전달도 아니에요.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위대한 천재였고 다행히 생전에도 대단한 명성을 누렸다. 그는 예술과 과학의 수많은 분야에서 어마어마한 업적을 남겼다. 또한 하늘을 나는 기계를 만드는 일에 대단한 열정을 쏟아서 여러 종류의 비행 기계를 고안하고 제작했지만 모두 하늘을 나는 데 실패했다. 그는 실패에 낙담했다. (중략)그의 실패한 착상과 설계는 미래의 기술자들에게 중요한 유산이 되었다. 로버트 A. 하인라인의 멋진 시간여행 소설 『여름으로 가는 문』에 나오는 문장을 인용할 때다. “철도를 놓을 수 있는 시대가 되어야 철도가 생기는 게 아닌가. 그전까지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178~180쪽)

 

<언어는 사고를 프레이밍한다> 라는 글을 무척 즐겁게 읽었어요. 카피라이터로서 더 많이 고민하는 부분이기도 할 텐데, 긍정적 프레이밍 혹은 부정적 프레이밍을 의도적으로 썼던 사례가 있나요?

 

사례들을 다 모아서 글로 쓴 거라 다른 사례가 떠오르진 않고요.(웃음) 그 글을 썼을 때는 조지 레이코프(George Lakoff)의 책을 눈덩이로 빌려다 읽던 때였어요. 오바마가 선거 때 토론에서 누가 그에게 질문을 던졌죠. 그 질문은 대답을 어떻게 해도 상대가 공격할 수 있는 질문이었어요. 그때 오바마가 일어나서 “바로 그런 질문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겁니다”라고 말을 했대요. 프레임을 깨서 벗어나는 거였죠. 얼마 전 트윗한 내용도 있는데요. 공화당 후보 경선에서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가 칼리 피오리나(Carly Fiorina)에게 외모 공격을 했죠. 칼리 피오리나(Carly Fiorina)가 “Look at that face”라는 말을 뒤집어서 “Look at this face”라고 하는 캠페인을 만들어서 프레임을 확 바꿔버렸잖아요.


프레임에 대해 한 번 고민하면 그런 것들이 많이 보이는 것 같아요. 여성을 가리키는 ‘된장녀’, ‘김치녀’ 같은 말은 엄청 많은데 남자를 가리키는 단어는 없죠. 언어가 이미 기능하고 있다는 거예요. 프레임을 인식하는 게 중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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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중구난방이에요


영화 대사나 책 인용한 부분이 많아요. 『파이 이야기』는 두 번이나 언급이 됐고, 표지 그림도 그 작품에 관한 장면인데요. 좋아하는 책, 영화 대사는 어떤 종류인지 들려주세요.


워낙 많아요. 『파이 이야기』는 특별히 정말 많이 생각했던 작품이에요. 영화도 그렇고, 책도 그렇고요. 저는 종교적인 것을 흥미롭게 생각하고, 종교를 믿지 않음에도 내게 위로를 주는 효과에 대해 굉장히 존중하거든요. 종교가 발생하지 않았다면 인간 삶이 어떨 것인가도 상상해보고요. 그에 대해 『파이 이야기』는 너무나 절묘한 방식으로 뒤집으면서 “어떤 이야기가 마음에 듭니까?”라고 딱 질문을 던지잖아요. 제가 종교에 대해 상상했던 것들을 다 모은 대사예요. 파이가 온갖 종교를 섭렵하는 데서부터 어떤 일을 겪고, 어떤 식의 구원을 받고, 살아남게 되고, 어떤 식으로 인생을 이어나가는지 그 관점에서 책을 읽으면서 마지막 질문을 보니 너무 좋더라고요. 그게 제게는 절대 잊을 수 없는 대사가 되겠죠.

 

이를 테면 많은 생각을 불러오는 그런 대목에 끌리시는 거군요?


그렇기도 하지만 또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서 로켓이 일어나서 ‘됐냐? 한심한 녀석들이 빙 둘러서 있다고.’ 이렇게 얘기하는 것도 너무 좋거든요. 그것도 관습을 알고 있는데 내가 여기 정착해야 하냐고 생각하는 쿨한 캐릭터가 ‘What the hell’을 내뱉고 일어나는 그 장면이 진짜 재미있어요. 그건 절대 인생의 질문도 아니고, 엄청난 질문도 아니지만 너무 반짝반짝하잖아요. 저는 중구난방이에요. 너무 무거우면 그게 또 싫거든요. 좋다가도 싫고, 계속 왔다 갔다 하는 거죠. 

 

농담에 대해 얘기를 하니 갑자기 농담 없는 세상을 상상해봤어요. 『1984』처럼 말이죠. 말하자면 지금은 우리에게 농담이 필요한 시기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떠세요? 요즘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검정치마’ 1집의 명곡 <Antifreeze>를 들어보면 ‘춤을 추며 절망이랑 싸울 거야’라는 말이 나오잖아요. 농담이 그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이번에 국정화 때문에 난리가 났을 때 ‘련세대’학생들, ‘리화여대’학생들이 써놓은 대자보를 보면 그렇죠. 저는 사회운동 할 때 혼자 고매하고, 사람들에게 호통 치는 거 정말 싫어요. 무관심을 탓하는 것만큼 못난 게 없어요. 학생들이 했던 농담 섞인 방식이 사람들을 웃게 만들면서 넓게 퍼뜨리죠. 그게 더 강력한 힘이 있는 거잖아요. 춤을 추며 절망이랑 싸우고 있는 거잖아요. 이 에너지를 갖고 있지 않으면 모두가 패배해버릴 것 같아요. 물론 압력밥솥처럼 꽉 물고 있으면 나중에 폭발할 수는 있겠지만요. 어쨌든 계속해서 농담과 춤과 노래를 섞어서 이 힘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질력이 너무 나버리면 아예 닫아버리잖아요. 그나저나 노래 정말 좋아요.(웃음)

 

흥미로운 것들을 기꺼이 좋아하는 눈을 가진 것 같아요. 글에서 그런 게 많이 읽혀서 반가웠다고 할까요. 반면에 저자가 싫어하는 것들은 뭐가 있나요?


엄청 많아요. 뭐가 있을까요. 음악을 들을 때 새롭고 좋은, 새롭고 안 좋은, 뻔하고 좋은, 뻔하고 안 좋은, 네 분류로 생각해요. 새롭고 좋으면 제일 좋겠죠. 진짜 뻔하지만 좋은 것도 있어요. 이를테면 샤이니의 <View>는 진짜 뻔하게 만들었는데 들을 때마다 좋아요. 제일 안 좋은 건 뻔하고 안 좋은 거겠죠. 그건 나한테 아무런 뭐가 없기 때문에 이런 걸 되게 싫어해요. 시간 낭비 같아요. 하지만 저는 긍정적이기 때문에(웃음) 만약 그걸로 시간을 보낸다면 ‘내가 이런 걸 얼마나 싫어하는지 깨달았군’이라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블로그 글을 보니 ‘삼성’ 때문에 가족과 싸운 이야기가 있더라고요. 싫어하는 것이 어떤 것들인지 엿볼 수 있는 일화예요.


신입 사원 시절에 사회공헌 활동 비디오 교육을 막 시키는데 너무 보기 싫어서 그냥 집에 가버렸어요. 다음 날 인사팀에서 불러서 ‘자네 신입사원 교육 받다 가버렸나?’하더라고요. 치과 약속이 있었다고 했죠.(웃음) 이게 어떤 교육인지 아느냐고 막 혼을 내더라고요. 제가 물었어요. ‘팀장님 이게 애사심을 고취시키는 교육이 맞습니까?’하니까 그렇대요. ‘그러면 제가 나가는 게 맞습니다’하고 왔거든요. 그땐 어려서 무슨 짓을 하는 건지 몰랐죠. 그때 팀장님이 박웅현 팀장님이었는데요. 위에서 아주 싫은 소리를 듣고 왔을 거예요. 신입 교육을 어떻게 시켰느냐면서 말이에요. 그런데 제게 와서 ‘하나야, 너 멋있다?’라고 하고는 아무 말도 안 했어요.


어렸을 땐 그랬는데 지금은 절대 안 그래요.(웃음) 현명해진 것이기도 하고 그만큼 패기는 없어진 것이기도 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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얕은 지식 모임


‘얕은 지식 모임’을 특별히 책 뒷부분에 별도로 할애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이 모임이 좋은 가장 큰 이유는 뭔가요?


CJ E&M에서 발행하는 <트렌드 C>에서 동네 작은 모임에 관한 특집이 있었어요. 그때 ‘얕은 지식 모임’에 대해 쓴 거죠. 이 글을 편집자 님에게 보여드렸더니 글이 책과 결은 다르지만 전체적으로 이야기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 같다는 의견을 주셔서 뒤에 따로 빼서 넣게 된 거예요.


나는 한 번도 관심 안 뒀던 건데 어떤 사람은 좋아하고 있는 거죠. 자기가 그걸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우리한테 설명해주면 일단 얘기하는 사람 눈빛이 달라요. 그게 너무 인상적이에요. 그 사람의 관심사를 알게 되면서 그의 표정을 보는 게 일단 즐겁고요. 그 사람의 관심사를 들여다보면 새로운 걸 알게 되는 것도 참 좋아요. 그걸 또 편안하게 얘기하잖아요.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부담 없고요. 원래 모여서 늘 수다 떨고 그랬어요. 어차피 만나 수다 떠는 거, 주제를 가지고 수다를 떨어보자, 이렇게 된 거죠. 그렇게 됐어요. 기획을 한 건 아니었어요.

 

그렇게 됐다, 는 말이 많은 걸 설명해주네요.


모임을 애써 조직하지 말고 그냥 어차피 보게 되는 사람들이 해보는 거죠. 제 친구들도 다 비루해요. 그럼에도 그가 관심 있는 얘기를 들으면 나에겐 지식이 되는 거죠. 잘난 사람이 있어서 그의 얘기를 듣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모여 있으면 그 사람의 마음 씀씀이건 태도건 배울 게 있으니까요. 전 무조건 좋다고 생각해요.


책에 ‘준비, 조준, 발사’를 뒤집어서 ‘준비, 발사, 조준’이라고 했는데요. 그것처럼 일단 시작해보면 뭐가 되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모임을 통해 새롭게 관심 갖게 된 분야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패션이요. 한 사람의 철학이 반영된, 주위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추구하는 바를 옷으로 구현해낸 걸 보고 있으면 너무 매력적이에요. 르네상스 때 잘 나가던 화가들 있잖아요. 마크 제이콥스가 그 역할을 지금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거죠. 패션과 예술, 미술이라는 것에 대한 생각도 달라질 수 있고요.


영화도 그래요. 옛날 흑백영화나 6, 70년대 뮤지컬 영화 잘 보는데요. 모임에서 오즈 야스지로(小津安二郞, Ozu Yasujiro), 미조구치 겐지(溝口健二, Mizoguchi Kenji), 나루세 미키오(成瀨巳喜男, Naruse Mikio) 세 명의 일본 영화 거장들에 대해 영화를 보여주면서 설명해줬는데 그 세계가 또 너무 매력적이더라고요. 일본 영화 한 편이 아니라 그 시기의 일본 영화라는 일종의 장르를 소비하게 되는 거잖아요. 그 부분에 대해 눈을 뜨게 된 거죠. 이런 게 너무 좋으니까 다른 사람에게도 이런 걸 여러 사람과 느껴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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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정말 좋아하는 농담김하나 저 | 김영사
[네이버-세상의 모든 지식][SK텔레콤-현대생활백서][SK텔레콤-사람을 향합니다][현대 카드]등 마음을 움직이는 문장으로 광고계를 흔드는 카피라이터 김하나. 수많은 히트 광고에 카피를 올린 그녀가 아이디어의 원천을 얻는 방식을 훔쳐볼 수 있는 책이다. 문학, 음악, 미술, 정치까지 장르를 넘나드는 촌철살인의 문장 뒤에는 다양한 생각의 도구들이 숨어 있어 읽는 즐거움은 물론 활용하고 싶다는 의지마저 자극한다. 굳어진 사고의 패턴, 프레임에 갇힌 두뇌의 흐름을 깨는 지식의 신선한 조합이 가득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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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인류학자 진주현 “뼈 이야기가 재밌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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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가 들려준 이야기』의 저자 진주현은 법의인류학자다. 고고학, 인문학, 해부학적 지식을 활용해 뼛속에 감춰진 정보를 찾아내는 것이 그녀의 역할이다. 현재는 하와이에 있는 미 국방부 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기관(DPAA)에서 근무하면서, 전쟁 때 실종된 미군의 유해를 발굴해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일을 하고 있다. 수십 년 전의 뼛조각만 가지고 신원을 확인하는 일이 가능한 것은 모두 ‘뼈의 증언’ 덕분이다. 뼈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사실들을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오랜 세월을 견뎌내면서 자신이 품고 있는 진실을 들려준다.

 

성별과 나이, 신장과 병력은 물론 어떤 음식을 주로 섭취했는지도 알 수 있다. 쉽사리 믿을 수 없는 이야기이지만, 1500년이 지난 아이의 뼈를 통해 모유 수유 기간을 유추해내는 것도 가능하다.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 진화의 흔적을 되짚을 수도 있고, 최근 범죄 수사에 활용되듯 폭행의 단서나 사망 원인을 밝혀낼 수도 있다. 그렇기에 저자는 뼈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뼈를 통해 의미 있는 일을 하며 누군가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넬 수 있다”는 점에서 그녀에게 뼈는 더없이 소중한 존재다.

 

『뼈가 들려준 이야기』는 자연과학과 인문학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지문과 마찬가지로 신원을 확인하는 데 유용한 자료가 되는 ‘쇄골’, 인종 구분에 가장 많이 사용되는 ‘광대뼈’에 대한 설명은 그 자체로 흥미롭다. 뼈는 살아있는 조직이며 30대 초반에 이르러서야 완전한 형태로 굳어지는 뼈도 있다는 이야기는 놀랍기까지 하다. 외부의 힘이 가해지지 않는 한 뼈의 상태는 변하지 않으며 뼈의 성장은 청소년기에 멈춘다는 오해가 널리 퍼져있는 까닭이다.

 

그런 점에서 『뼈가 들려준 이야기』는 뼈의 진실을 밝혀주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법의학 드라마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사체에 기생하는 곤충을 통해 사망 시간을 측정하는 일이 현실에서도 가능할까? 과연 얼마나 정확할까? 백인 여성들이 한국 여성들보다 출산의 고통이 덜하다는 건 사실일까? 그것은 산모의 골반 크기와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일까? 이어지는 진주현 저자의 이야기 속에 정답이 감춰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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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뼈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싶어요


『뼈가 들려준 이야기』를 보면 뼈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무궁무진한 것 같습니다.


굉장히 많은 정보들을 얻을 수 있죠. 동물 진화의 역사도 알 수 있고요. 진화의 역사라고 말하면 지루하게 들리지만, 나와 다른 동물 또는 나와 다른 사람의 관계를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유용해요. 그리고 옛날 사람들이 무엇을 먹었는지, 어떻게 살았는지도 알 수 있으니까 재미있고요. 그런 정보들도 얻을 수 있지만 뼈로써 할 수 있는 일들이 정말 많아요. 가족을 찾아주는 일도 할 수 있고, 뼈를 매개로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거든요. 그런 부분들을 책을 통해서 꼭 말씀 드리고 싶었어요.

 

1500년 전 가야 사람들의 뼈를 통해서 모유 수유 기간까지 유추해 낸다는 건 정말 놀라웠습니다. 


뼈에 무엇을 먹었는지 다 남아있으니까 가능한 일이죠. 아이가 엄마 뱃속에 있을 때 뼈에 있는 성분은 엄마와 똑같아요. 태어난 후에 모유를 먹는 동안에도 마찬가지고요. 그러다가 모유를 끊으면 엄마와 다른 음식을 먹다 보니까 뼛속에 남아있는 신호도 달라져요. 학자들은 그 원리에 착안해서 연구한 거고요.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뼈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책에서도 말씀하셨듯이 일단 무섭다는 인식이 강하고요. 그래서 뼈를 보존하려는 노력도 거의 없죠. 이런 부분들이 책을 집필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나요?


맞아요. 뼈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재미있는데 많은 분들이 잘 모르시니까 알려드리고 싶었어요.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주위 사람들에게 소개해주고 싶은 마음이랑 비슷한 것 같아요(웃음). 말씀하신 대로 우리나라에서는 고고학 유적에서 뼈가 발견되어도 문화재로 분류되지 않아요. 그래서 보호를 받지 못하죠. 그냥 버린다고 해도 아무런 법적 제재가 없거든요. 뼈 역시 귀중한 연구 자료가 된다는 걸 알지 못해서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일단 무서우니까 가까이 가지 않으려 하고, 그렇다 보니까 수습할 사람도 없고, 그래서 사람들이 갖다 버리는 게 되는 것 같아요. 물론 그런 사고의 전환이 한 권의 책으로 일어나기는 힘들겠지만, 일조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뼈가 들려준 이야기』에서 말씀하시길, 해외의 경우에는 사체를 연구하는 기관들도 있고 그곳에 시신을 기증하는 분들도 있다고 하셨는데요.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일이 전무 하다시피 하잖아요. 이 역시 뼈의 가치를 알지 못해서겠죠.


왠지 모르게 뼈가 무섭고, 자신이 기증한 뼈가 실험용으로 쓰인다는 것도 어딘가 께름칙하다고 느낄 수 있겠죠. 그건 자신의 몸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부분이기도 할 것 같은데요. 아무래도 뼈를 기증함으로써 다양한 정보를 줄 수 있다는 걸 알면 달라지지 않을까 싶어요. 알면 사랑하게 된다는 말이 여기에도 적용되는 것 같습니다.

 

신체적 성장은 청소년기에 멈춘다는 게 널리 퍼져 있는 생각이고, 뼈도 예외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데 30대 초반이 되어서야 하나의 형태를 이루는 뼈도 있다고요?


‘천골’이라고 해서 척추뼈 바로 밑에 있는 어른 손바닥만 한 크기의 뼈가 있는데요. 천골은 오랫동안 붙지 않는 경우도 많아요. 저 역시 뼈에 대해 공부하기 전에는 뼈가 살아있다는 걸 몰랐어요. 그런데 부러진 뼈가 그냥 놔둬도 붙는다는 사실만 봐도 뼈가 살아있는 조직이라는 걸 알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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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CSI>와 현실 사이


전쟁에서 실종된 미군들의 유해를 발굴하고 계시잖아요. 다양한 사연들을 접하게 되실 것 같은데,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이야기가 있으신가요?


저희의 일은 유해를 감식을 해서 신원을 확인하는 것에서 끝이 나요. 이후에 유족들을 찾아가서 과정을 설명해 주고 유해를 인계해 주는 건 국방부에서 하죠. 육해공군마다 전사 통지를 하는 부서가 있거든요. 제 경우에는 미디어를 통해서 사연을 듣게 되는데, 그럴 때는 기분이 정말 좋죠. 오늘도 신문 기사로 소식을 들었어요. 그 분은 다리뼈 두 개만 가지고 신원을 확인했는데, 굉장히 결과가 좋은 경우였어요. 핵 DNA를 채취해서 확인에 성공할 확률이 50% 정도거든요. 그런데 놀라울 정도로 결과가 잘 나와서 신원을 확인할 수 있었어요.

 

한국전쟁에서 실종된 미군들을 감식할 때는 느낌이 남다르시겠어요. 작가님께서 한국인이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지만, 할아버지께서 한국전쟁 참전용사이기도 하시잖아요. 


그렇죠. 너무 부끄러운 이야기이지만, 예전에는 할아버지의 경험이나 전쟁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지 못했었거든요. 그런데 신원 감식을 하기 시작하면서 전쟁 역사를 공부하게 되니까 알게 되는 부분들이 있어요.

 

유해 발굴을 위해서 세계 곳곳을 누비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바쁘신 중에 책을 쓰시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아요.


저희 남편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할 수 없는 일이었죠. 제가 발굴을 하러 베트남에 가야 했을 때도 당연히 가야 하는 거 아니냐고, 자신이 아이를 돌볼 테니까 다녀오라고 말해줬어요. 저희 아이가 만 세 살이어서 아직도 손이 많이 가는 나이인데, 남편 혼자서 40일 동안 돌본 거예요. 『뼈가 들려준 이야기』를 쓰는 동안에도 많이 도와줬어요. 주로 주말과 밤에 썼는데 그때마다 아이를 데리고 외출해주곤 했어요. 그렇게 해주지 않았다면 아직도 집필을 끝내지 못했을 거예요. 고맙다고 이야기하고 싶죠.

 

작가님의 경험을 들으면서 <CSI>같은 법의학 드라마를 연상하는 분들도 많으실 것 같아요. 드라마와 현실은 얼마나 다른지 궁금한데요.


일례로 뼈에서 DNA를 얻는 일은 굉장히 어려워요. 사망한지 오래되지 않은 시신의 뼈라면 괜찮을 텐데, 저희 기관에서 하는 것처럼 60년 이상 시간이 흘렀다면 쉽지 않죠. 유기 물질이 썩기 시작하면서 DNA도 같이 없어지니까요. 

 

책에서 들려주신 ‘법의곤충학’에 대한 내용이 기억납니다. 드라마에서는 파리 유충을 근거로 사망시간을 유추하곤 하잖아요. 그런 일이 실제로도 가능한가요?


제가 너무 오래 전에 드라마를 봐서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는데, 상당히 비슷할 거예요. 파리가 알에서 깨어나 유충이 되기까지 여러 단계를 거치는데, 각 단계마다 얼마나 시간이 걸리는지 계산이 되어있는 거예요. 법의곤충학을 공부하신 분들은 딱 보면 어떤 단계인지 알아차리시는 거고요. 그렇게 사망 시간을 유추하는 거죠. 사망한지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났다면 적용하기 힘들지만요.

 

작가님께 ‘법의곤충학’을 가르쳐주신 교수님은 그리썸 반장의 실제 모델이시라고요.


맞아요. 두 분의 외모가 비슷하기도 해요. 교수님은 강의할 때 정말 열정적이셨어요. 잠자리채를 휘두르시면서 파리 유충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알려주기도 하셨고, 잡은 다음에는 바로 알콜에 담가야 한다는 것도 가르쳐주셨어요. 잠깐 사이에 유충이 탈바꿈 해버리면 시간 계산이 달라져버리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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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이 힘든 건 골반이 작아서가 아니에요


우리나라 산모들은 서양인보다 산후 조리 기간이 길고 많은 부분을 조심하면서 지내는데요. 백인과 달리 골반이 작아서 출산이 더 힘들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뼈가 들려준 이야기』를 보면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그 말이 사실인지 확인해 보려고 정말 열심히 논문들을 찾아봤어요. 아마 그때 제가 임신 중이어서 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아시아인이 다른 인종에 비해 골반이 작다는 연구 결과는 없더라고요(웃음). 골반 크기만 놓고 본다면 더 작기는 할 거예요. 왜냐하면 체구가 더 작으니까요. 그런데 아이들의 머리 크기를 비교해 봐도 한국 아이들이 다른 인종 아이들보다 더 작거든요. 그러니까 산모들의 골반은 작은 데 반해 아이의 머리는 커서 출산이 힘들다는 건 맞지 않는 이야기라는 거죠. 진화학적으로 보더라도 한국인들이 골반은 작은데 머리는 크다고 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그렇게 해서 출산이 어려워지면 점점 인구가 줄어들게 되잖아요. 그리고 출산에 있어서 중요한 건 골반의 크기보다 산도의 넓이예요. 결국 산후 조리는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간혹 경찰에서 의뢰한 시신을 확인할 때도 있다고 하셨어요. 시신에서 살점을 다 떼어내고 뼈를 추려낸 적도 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런 순간이 두렵지는 않으세요?


어떤 분들은 제가 담이 크다고 생각하기도 하시는데요. 막상 일을 시작하면 뼈를 깨끗하게 추려내야 된다는 목적을 가지고 몰두하게 되니까 별 생각이 없어요. 시신이 부패하면서 나는 냄새는 견디기 힘들다고 생각되지만, 빨리 끝내고 나가야 되니까 무섭다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어요. 직업인데 못하겠다고 할 수도 없잖아요(웃음).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에는 이미 부패가 심각 하게 진행돼서 (사람의) 형상이 남아있지 않은 상태예요. 징그럽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 거죠.

 

대학에서 고고미술사학을 전공하시다가 『최초의 인간 루시』를 만나면서 삶의 방향이 바뀌셨잖아요. 어떤 부분에 강하게 이끌리셨던 건가요?


『최초의 인간 루시』를 너무 재미있게 읽었어요. 저는 그런 학문이 있는 줄도 몰랐거든요. 뼈를 찾아서 발굴을 떠나고, 그런 일들이 있는지 몰랐어요. 그 모습이 멋있어 보이더라고요. 재미도 있을 것 같고요. 그래서 하게 된 거죠. 저는 늘 재미있는 일을 따르는 사람이거든요(웃음).

 

『뼈가 들려준 이야기』에는 고고학, 인류학, 생물학 등 전문지식이 많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 대중을 상대로 평이하게 쓰신 데에는 이유가 있으시겠죠.


저에게는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니까 많은 분들에게 알리고 싶었어요. 학자들은 이미 다 아는 이야기잖아요. 그런데 대중에게는 생소한 거니까 제가 아는 이야기들을 종합해서 들려드리고 싶었죠. 그러다 보면 이런 분야를 공부하는 분들도 많아지실 거고 학문도 발전하게 되잖아요. 그렇게 되지 않고 저만 재미가 있으면 안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학자의 의무라고 생각하기도 했고요. 물론 모든 학자가 그럴 여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런 일을 좋아하는 것도 아니지만, 저는 글 쓰는 걸 좋아하거든요. 제가 쉽게 읽히는 글을 좋아하기 때문에 쉬운 글을 쓰고 싶기도 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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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가 들려준 이야기진주현 저 | 푸른숲
이 책을 쓴 진주현 박사는 현재 하와이에 있는 미 국방부 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기관(DPAA)에서 전쟁 때 실종된 미군의 유해를 발굴해 분석한 후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일을 하는 법의인류학자다. 우리에게 다소 생소한 ‘법의인류학’은 고고학, 생물학, 해부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뼈를 분석해 사망한 사람의 나이, 키, 성별, 사망한 시점, 원인 등을 밝히는 학문이다. 법의인류학자는 죽은 사람의 뼈뿐 아니라 동물 뼈와 사람 뼈를 비교분석하기도 하고, 살아 있는 사람의 엑스레이로 뼈의 상태를 관찰해 범죄의 증거를 찾아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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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원 “언제나 대중적인 창작자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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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원 작가는 인터뷰 전날, 메일 한 통을 보내왔다. 제목은 ‘양해의 말’이었다. 그는 자신의 세 번째 책이자 두 번째 산문집인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을 펴내고, “무수한 질문 공세에 직면해 있다”고 밝혔다. “책의 이야기가 모두 사실이냐? 책에 등장하는 그 작가는 아무개가 아니냐?” 등의 질문을 들으며 그는 생각했다. “책은 책에서 머물러야 하고 이야기는 그 안에서 끝나야 하는 게 아닐까?” 하여, 책 내용에 대한 답변은 제한적일 수 있음을 양해해달라고 부탁했다.

 

“책을 덮은 이후에 그들의 감상에 방해가 될 어떤 이야기도, 혹 그들이 아무리 궁금해한다고 하더라도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 책을 쓰는 동안의 제 결심이었습니다.”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은 마흔을 훌쩍 넘긴 한 남자가 한 여자와 소개팅을 하고 겪게 되는 이야기를 담은 산문집이다. 마치 100분짜리 짧은 단편 영화를 본 듯한 느낌이다. ‘이게 다 작가의 이야기라고? 모두 사실이야?’ 이런 건 어쩌면 독자들에게 중요하지 않았을지 모른다. 저자가 그랬듯, 독자들에게도 중요한 건 자신만의 감상이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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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해. 다정하지 않을 뿐’


책이나 음악 작업이 끝나면 그간 못 만났던 사람들을 만나신다고요. 요즘은 어떠신가요?


만나지 못해서 슬픈 상황이에요. 이상하게 나이가 먹을수록 사람들을 만나는 게 힘들어져요. 새로운 사람이 아니라도, 기존에 관계가 있던 사람인데도 새롭게 힘들고 불편한 상황이 생길 때가 왕왕 있는 것 같아요.

 

최근에 독자와의 만남도 하셨잖아요. 독자 분들과 만나는 자리는 좋아하시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아무래도 작가와 독자 사이는 서로 예의를 갖추고 배려하잖아요. 그래서 특별히 힘든 부분이 없는데요. 다른 어떤 인연, 인간관계에서는 되게 사소한 말들이나 상황들이 신경 쓰일 때가 있어요.

 

작가님이 운영하고 있는 블로그를 오랜만에 방문했더니, 셀카 사진이 올라와 있더라고요. 놀랐습니다. 평소 사진 찍는 걸 안 좋아하시는 걸로 알고 있어서요.


가끔 블로그에 오시는 분들이 이석원이라는 사람이 사적으로 어떻게 지내는지를 궁금해 하세요. 그런데 제 모습은 일절 없고, 항상 짧은 글이나 질문을 써놓으니까 좀 죄송하더라고요. 그렇다면, 나의 사적인 모습을 다 보여줘야 하는 필요나 의무가 있나? 그런 걸 생각하다가, 문득 사진이 너무 오래됐다는 생각을 했어요. 30대 때 찍은 사진을 아직도 프로필로 사용하고 있으니, 이건 반 사기가 아닌가? 싶더라고요. 그래서 겸사겸사 프로필 사진을 스튜디오에서 찍었어요. 사진이랑 좀 친해져 볼까 해서요.

 

2013년에 첫 소설 『실내인간』을 내고 딱 2년 만에 두 번째 산문집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을 펴내셨어요. 소설을 내고 뵈었을 때는 뭔가 초조한 느낌을 받았거든요? 그런데 오늘은 표정이 밝아 보입니다.


일단 쓰는 과정이 달랐어요. 이번 책은 전작에 비해 훨씬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시간도 짧았고, 덜 힘들었어요. 하지만 결과에 대한 부담감은 소설을 냈을 때랑 비슷한 것 같아요. 결과적으로 사람들이 제 소설을 받아들여주지 않았다고 판단했거든요. 이번 산문집이 또 그렇다면 제가 글을 쓰는 동력이나 상황 같은 게 만들어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기질상 잘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 하기 때문에 두려운 마음이 있었어요. 앞으로도 글을 쓰는 일을 너무 하고 싶으니까요. 

 

소설이 3만여 권 팔렸다고 들었습니다. 지금 출판계 상황으로는 꽤 많은 부수인데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권수는 제게 큰 의미가 없어요. 제가 바라는 건, 꾸준히 이 책을 찾는 사람들이 있었으면 하는 거예요. 『보통의 존재』가 2009년에 나온 책인데, 이 책은 지금도 꾸준히 찾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게 바로 제 입장에서는 '받아들여진' 것이죠.

 

산문집에 이런 대화가 나옵니다. 친구 분이 작가님께 “야, 이런 말도 안 되는 거 말구 『보통의 존재』같은 걸 쓰라니까. 넌 그래야 팔려”라고요. 그런데 사람들의 반응이 어떻든 저자로서, 작가로서 자기만족감이 큰 글을 쓰고 싶은 마음도 있지 않나요? 그게 소설이었을지도 모르는데요.


소설을 쓰고 나서 내가 얼마나 소설에 관심이 없고, 애정이 없는지를 절실히 깨달았어요. 내가 왜 소설을 썼지? 라는 생각도 많이 했고요. 사람들은 제가 책을 많이 읽을 거라고 생각을 하시지만, 완독한 책이 정말 몇 권이 없어요. 소설은 더욱 없고요. 소설을 쓰고 나서, 반성과 회의감이 너무 많이 들었기 때문에 어떤 시간을 가진 상태에서 또 소설을 쓴다는 게 저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그렇다면 “앞으로 소설은 절대 안 쓰겠다”고 생각하시나요?


산문보다 형식적으로 엄격한 장르의 글을 쓰게 되진 않을 것 같아요. 그동안 저는 음악을 하든, 장사를 하든, 하고 싶은 대로 제 방식대로 했거든요. 소설을 쓸 때는 그렇게 못했던 것 같아요. 제 자신도 만족하지 않았기 때문에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진 않을 것 같아요.

 

산문집 이야기를 좀 물어볼게요. 처음 가제는 ‘수연산방’이었다고요. 성북동의 유명한 찻집이지요?


주인공과 처음 만난 장소라서 그렇게 가제를 정했는데, 두 번째로 생각한 제목은 ‘좋아해. 다정하지 않을 뿐’이었어요. 『보통의 존재』에 나오는 글귀인데, 주위에서는 다 좋다고 했지만 출판사에서 반대했어요. 출판사를 엄청 원망했죠. 저는 제목을 지을 때, 철칙이 모든 사람이 좋아해야 한다는 만장일치 조건이 있거든요. 출판사 분들이 반대를 하니까 버렸죠. 그 다음에 지은 제목이 『언제 들어도 좋은 말』이에요. 거의 만장일치였어요. 저는 이래야 마음이 편안해지고 결정할 수가 있어요.

 

“나를 좋아할만한 사람만을 좋아한다”는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방어적인 느낌인데요?


그런가요? 제목은 좀 예외적인 것 같아요. 글은 당연히 만장일치가 있을 수 없는데, 제목만은 그렇게 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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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대중적인 창작자가 되고 싶다


2부에 짧은 소설이 들어가 있습니다. 주인공이 철수인데, ‘불운 올림픽’에 도전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운이 없는 사람을 뽑아 1백 억 원을 주는 요상한 대회인데요. 사람이 아무리 운이 없어도, 행운이 하나도 존재하지 않을 순 없을 것 같습니다. 작가님의 경우는 어떤가요? 내 생애 가장 큰 운이 있다면요?

 

책을 내게 된 일 자체가 저에겐 큰 운이죠. 안 믿는 분들이 많지만, 저는 책을 정말 못 읽어요. 그런 사람이 책을 썼으니까, 누가 장난을 친 것 같기도 하고 아직도 실감이 안 나요. 책은 못 읽지만, 서점은 너무 좋아해요. 서점에 있을 때 굉장히 큰 행복감을 느끼니까요. 책을 만드는 사람들을 만나면, 너무 오글거리지만 제게는 너무너무 기적처럼 느껴져요.

 

4부에서는 첫 책 『보통의 존재』를 내게 된 계기를 상세히 소개하셨어요. 잡지 <페이퍼>의 황경신 편집장을 만나 거의 강요에 가까운 출간 권유를 받게 됐고, 발행인 김원 이사의 “아, 글을 쓰세요. 노후 준비를 해야죠”라는 한 마디에 충격을 받으셨다고요.


마흔이 넘으면 더 이상 곡이 나오지 않을 거라고 늘 두려워했거든요. 책에도 썼지만 이 말은 마치 새로운 출구를 알려주는 다급한 안내방송처럼 들렸어요. 막연하게 그럼 마흔이 넘으면 뭘 하지? 하고 있다가 노후 대비란 말이 그렇게 와 닿을 수가 없더라고요.

 

최상의 미적 가치로 ‘담백함’을 꼽으셨어요. 글도 마찬가지인가요?


담백한 글을 써야겠다고 설계를 하고, 방향을 정해서 쓴 적은 한 번도 없는 것 같아요. 마음이 가는 대로 쓰는데, 계속 걸리는 부분이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질 때까지 계속 고치는 편이에요. 내 마음이 자연스럽게 원하는 쓰는 게, 저한테는 맞는 것 같아요.

 

문예지에 기고한 글의 토씨가 수정되지 않아, 화가 났던 에피소드를 밝히기도 하셨는데요. 이번 책을 보면 ‘저자 고유의 글맛을 살리기 위해 표기와 맞춤법은 저자 고유의 스타일을 따릅니다’라고 써있어요.


맞춤법이 잘못 되어 있으면 제가 아니라 편집자가 욕을 먹게 되니까요. 내가 뒤집어쓰겠다, 그러니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해달라, 이런 소통의 과정이 있었어요. 저는 말하듯이 글을 쓰는 편인데, 실생활과 동떨어져 있는 우리나라의 맞춤법과 표기법에 많은 의아함을 갖고 있어요.

 

이번 책은 어땠나요?


일단 초고는 빨리 썼고, 수정 과정은 조금 길었지만 원 없이 만족스럽게 작업을 했어요. 실물을 받아 보고는 감사한 마음이 많이 들었고요.

 

책에 등장하는 친구 ‘나리’ 씨는 작가님을 두고 “일생 아이 같은 놈”이라고 표현했어요.


‘순수’가 아니라, ‘미성숙’의 뜻이에요. 정신적인 성장이 아이 때로 멈춘 것 같다고요. 제가 토시 하나 안 틀리고 똑같은 걸 물어본대요.

 

이런 상황의 자신이 싫거나 좋나요? 아니면 그냥 받아들였나요?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는 불편하죠. 성장을 하고 경험을 해야 더 나은 판단과 행동을 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창작할 때는 엄청난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제 또래 창작하는 사람들이 제게 “너는 아직도 그런 고민을 하냐”고 하는데, 의도한 게 아니라 저로서는 자연스러운 방향이에요. 이번 책의 경우도 그래요. 실상은 마흔다섯 먹은 이혼남의 이야기인데, 사람들은 “싱글로 보이는 어린 남자가 소개팅을 하고 좌충우돌하면서 바보 같은 고민을 하는” 이야기로 많이 보시더라고요.

 

아직도 하는 ‘그런 고민’은 뭔가요? 주변인에게 주로 하는 대표적인 질문이 있다면요?


이를 테면 누군가와 썸을 타기 시작하면, “이 사람이 나한테 마음이 있는 거 맞냐?”는 질문을 많이 해요. 나이를 먹었으면 이 정도는 이제 판단할 수 있어야 하는데, 아직 모르겠어요.

 

본인을 두고 ‘과정에 집착하는 사람’이라고 했어요. 책이 나오는 과정도 특별하게 여길 것 같아요.


제가 즐겁게 썼기 때문에 책을 읽는 분들도 즐거우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렇지 않으면 망한 거잖아요. 이번 책은 『보통의 존재』와는 일부러 다른 느낌으로 썼는데, 독자 분들이 예전 느낌만 찾으면 어떡하나? 고민이 많았어요. 그런데 『보통의 존재』좋아해 주셨던 분들은 물론, 제 글을 한 번도 읽어보지 않은 분들까지 이 책을 사주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으니까요. 기적 같아요. 저는 항상 무엇을 만들든 대중적인 창작가가 되기를 소망했기 때문에 대중적인 반응이 좋다는 것, 이상의 기쁨이나 평가가 없어요.

 

내가 인정하고 존경하는 사람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는 것도 중요하지 않나요? 전문가의 평가와 대중의 반응을 놓고 본다면, 어떤가요?


비교할 수 없어요. 제가 존경하는 건 대중이에요. 대중의 안목과 평이 제겐 중요해요.

 

소설에 비해 힘을 많이 뺐고 솔직하게 썼기 때문에 대중과 통한 걸까요?


제가 생각하기엔 그래요. 『보통의 존재』이야기를 또 하게 되는데요. 그때는 정말 제 안에서 글이 쑥쑥 나왔거든요. 『언제 들어도 좋은 말』도 그냥 쑥 나왔어요. 억지로 쥐어 짠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나왔기 때문에, 사람들이 알아보는구나 싶어요. 자연스러움의 위력이란 게 얼마나 무서운지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행복’에 대한 이야기도 많았는데, 뭐랄까요? 행복한 일이 생기면 낯설어 한다고 할까요? 행복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 이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런데 되게 슬프잖아요. 행복을 익숙해 하지 않는다는 게.


갑자기 행복해지면 불안해하는 편이긴 한데, 행복감은 자주 느끼면서 살아요. 작은 것에 행복이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요. 『보통의 존재』를 쓸 때, 궤양성대장염이라는 지병을 갖고 있었어요. 계속 출혈을 해서 거의 1년간 피를 흘리면서 살았어요. 병원에서는 평생 못 낫는다고 했고요. 지금도 몸이 안 좋으면 물 한 잔도 못 먹어요. 하지만 물 한 모금을 마실 수 있을 때는 그 행복감이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 물 한 잔이 마약과도 같아요. 『실내인간』을 쓸 때는 시력이 너무 안 좋았는데, 지금은 괜찮아졌어요. 내 눈이 잘 보인다는 걸 느낄 때마다 행복해요.

 

눈은 어떻게 좋아졌나요?


제가 너무 진상인 게, 오른쪽 눈이 너무 안 좋아서 병원을 세 군데 다녔거든요. 막판에 간 안과에서는 망막 정밀검사까지 받았는데 멀쩡하다는 거예요. 그 때부터 눈이 너무 잘 보여요. (웃음)

 

이 책의 쓸모는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세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바라는 게 명확히 있어요. 저는 문학이 뭔지도 모르고 제가 어떤 대단한 문학적 행위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아니 소설을 쓴 후로 내가 추구하는 것은 대단한 문학일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그건 제가 추구하는 바가 아니기 때문이에요. 저는 대중적인 글쓰기를 하고 있고, 쓰고 싶은 대로 써야 해요. 그렇기 때문에 독자 분들이 이 책을 붙들고 있는 순간에 그저 재밌게 읽으면 좋겠어요. 그게 이 책에서 제가 바라는 전부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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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들어도 좋은 말 이석원 저 | 그책
『보통의 존재』로 큰 사랑을 받았던 작가 이석원이 두 번째 산문집 『언제 들어도 좋은 말』로 독자들을 찾아왔다. 현실적인 소재로 보편적인 공감을 이끌어내는 능력이 탁월한 그답게 이번 산문집 또한 밑줄을 그어가며 읽고 싶은 이석원의 언어로 가득하다. 그의 대표작이자 첫 번째 산문집인 『보통의 존재』는 출간하자마자 연애와 결혼, 일과 미래 등 모든 것이 불투명한 젊은이들의 불안감을 따뜻하게 보듬으며 단숨에 베스트셀러로 등극했다. 『보통의 존재』를 읽고 저마다의 사연을 간직한 독자라면 그가 6년 만에 선보이는 이번 산문집이 더욱 반가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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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특집] 박준 “비뚤어지자, 지자, 이기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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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의 시집이 베스트셀러에 오르기까지 참, 힘겨웠다. 그러나 일단 읽히기 시작한 시집은 쉽게 자리를 내주지 않는 모양새다. 박준 시인의 2012년 출간 첫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이야기다. 시인에게 물었다. ‘당신’은 누구인가. 시인은 ‘제가 그리운 사람’이라고 답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그 사람은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가상의 나’기도 하다고. 그런 물음표를 앞에 두고 시인은 시를 쓴다. 발신자가 되어, 알기도 하고 모르기도 한 세상 수많은 수신자들에게 이야기를 건넨다. 수신자가 있기에 감정과 시가 떠오르니 그 수신자는 시인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자 시인의 말을 만들어내는 사람인 것 같다고 시인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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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비(非)건설적인 걸 하자


시집 출간일이 2012년 12월입니다. 다시 많은 관심을 받고 있는데 기분이 어떠세요?


일단 좋아요. 시는 방에서 혼자 쓰는 거지만 타인에게 읽힐 것이라 상정하고 쓰는 거잖아요. 제가 발신자라면 가상의 수신자가 있을 테죠. 그 수신자가 많아지는 건 좋은 것 같아요. 그런데 3년 동안 조용하다가 방송 한 번으로 이렇게 관심 받는 걸 생각하면 좀 씁쓸하죠. 출판과 문학의 인프라가 그만큼 줄었구나 생각하는 거예요. 방송으로 독자층이 넓어진 거잖아요. 시 독자에서 일반 독자로 넘어가는 차이가 굉장히 크다고 생각했고요. 그건 또 대중 매체가 하는 일이었다고 깨달았어요. 방송 아니어도 시 독자들은 신간이 뭐가 나왔는지 다 알고 있잖아요. 그 독자 말고 일반 대중 독자에게 전달하는 건 대중 매체가 하는 거라는 걸 말이에요.

 

시를 시작했을 때 ‘문학의 인프라’가 척박하단 건 아셨을 텐데 이런 서운함은 좀 새삼스럽기도 하네요.


물론 그렇죠. 시를 써서 큰돈을 벌거나 권력을 얻거나 유명해지는 건 애당초 불가능하다고 알고 하는 거잖아요. 서운함은 어디서 오느냐면요. 기대도 안한 것들이 생겨난 이후의 소외예요. 답변을 드리기가 어려운데요. 좋은 답을 드릴 수가 없는 게 굉장히 애매한 감정들이 있기 때문이에요. 다 말씀드릴 순 없지만 서운함도 있고, 정말 좋은 것도 있죠. 이런 관심이 부정한 것 같은 생각도 들고, 다른 시인들에 대한 미안함도 있고, 이렇게라도 관심을 받으면 넓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들까지 다 섞여서 ‘좋지만 씁쓸하다’ 이렇게밖에 정리가 안 되는 것 같아요.

 

주변 반응은 어떤가요?


축하 말을 많이 들었고요. 장난 섞인 비아냥의 말도 약간 들었어요.(웃음)

 

용기가 없어 시 쓴다는 인터뷰를 봤는데요. 이런 세상에 시를 쓴다는 것, 시인에게는 어떤 의미인가요?


처음 시를 쓸 땐 단순히 선배 시인들이 멋있다는 느낌 같은 것이었는데요. 현실은 시를 써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이 거의 없더라고요. 시를 잘 써서 취직이 되는 것도 아니고요. 실질적으로 피부에 와 닿는 미래에 대한 보장이 아무것도 없죠. 이유는 모르겠지만 저는 일종의 패배의식을 늘 갖고 살았거든요. 공부도 별로 못하고, 잘하는 게 별로 없었어요. 그래서인지 몰라도 시가 무용(無用)한 일이기 때문에 확 끌리는 게 있었어요. 부모님도 한 번도 돈을 많이 벌어라, 훌륭한 사람이 돼라, 말씀하신 적이 없어서 정말 그런 것들을 꿈꾸지 않았거든요. 그 시기에 치기 비슷하게 빠지는 일탈, 비뚤어짐에 가장 좋은 게 시였어요. 가장 비(非)건설적인 걸 하자는 치기가 가득했거든요. 그때 선택한 것이 시예요. 세상은 자꾸 생활에 도움이 되는 걸로만 돌아가니까요. 깊은 철학은 없어도 느꼈던 것 같아요. 자꾸 돈이 되는 것만 하고, 그럴싸한 것만 하려고 하니까 나는 반대로 하자고요. 그렇게 치기로 시작한 거죠. 치기가 오기가 된 거고요.   

 

시인으로서 뭔가 이루겠다는 포부 같은 게 시작단계에서는 없었던 건가요?


시인으로서는 있었죠. 그때 좋아했던 90년대 시인들, 함민복, 손택수, 김선우, 이런 분들보다 더 좋은 시를 쓰겠다고 생각했었어요. 또는 기형도보다 난해하고, 어려운, 좋은 시를 쓰겠다는 포부는 있었죠. 그 포부는 지금도 변하지 않은 것이지만요. 그런 욕망으로 살았던 것 같아요. 그보다 먼저는 등단하고 싶은 욕망으로 지냈고요.

 

 

신기섭, 김광규


몇 명 시인을 언급하셨는데, 처음 본 시집은 무엇이었나요?


시기가 좀 다른데요. 양성우, 문병란, 김지하 이런 분들 시집을 윗집 형이 버렸어요. 책이란  버리면 안 될 물건처럼 생각이 들어 그 시집들을 갖고 왔죠. 뒤늦게 보니 그렇게 80년대 저항시인들의 시집을 봤던 거예요. 김정환 선생님의 시집도 있었고요. 이것들은 처음 봐서 강렬한 게 아니라 주워온 시집들을 못 버린 것이죠. 초등학교 고학년 때쯤이에요.


그 외에 처음 읽고 좋아한 시들을 생각해보면 뭐랄까, 맥락이 없어요. 동시다발적으로 하루에 몇 권 씩 읽었던 것 같아요. 문학 공부를 대학 가서 시작했으니 좋은 시 목록을 선배들에게 받아 그 시기에 한 번에 다 읽었던 것 같아요. 가방에 시집만 넣고 다녔어요. 하루에 30권 씩 들고 다니면서 술자리에서 후배들에게 한 권 씩 주고요.(웃음) 헌책방 가서 시집은 다 사왔어요. 어떤 시인이 유명한지, 어떤 계열의 시인지, 심지어 어떤 경향의 출판사인지도 몰랐어요. 밀린 한국 현대시를 학습하듯 특정 시기에 다 봤어요. 

 

그렇게 만나 특별히 좋아하게 된 시인이 있나요?


신기섭 시인의 시집인데요. 유고시집이에요. 요절하셨죠. 그 시집이 하드커버인데요, 하드커버가 닳아 없어질 때까지 가방에 들고 다녔어요.(웃음) 손으로 봐서 하드커버가 없어질 수가 없거든요. 근데 정말 겉지가 벗겨지니까 종이가 다 떨어졌어요. 몸만 있는데, 그 정도로 갖고 다녔던 시집이에요. 김광규 시인의 문지에서 나온 시집도 있어요. 그분은 참 쉽게 쓰세요. 일상어들을 가지고요. 그 시집을 무척 좋아했는데 시는 이렇게 쉽게 써야지, 하는 생각을 그분 통해서 한 것 같아요. 시가 어려우면 안 된다는 생각을 그때 했어요. 지금도 좋아하죠.

 

실용이 중요한 시대 분위기에서 시를 읽고 쓴다는 게 굉장히 독특한 일처럼 느껴지는데, 그런 대학시절을 보냈다니 좀 놀랍네요.


그 지점이 좋았어요. 특별하다고 스스로 마취도 하고요. 글 쓸 때 개성 있는 글을 쓰라고 하잖아요. 시 쓸 때도 개성을 담으라 하죠. 처음에 시를 쓰려는데 선배가 개성 있는 시를 쓰래요. 전 개성이 하나도 없는 사람인데 말이에요. 유행가 좋아하고, 영화 보는 눈도 없어서 추석 특집 영화 보고 그래요. 예술적 취향, 이런 게 하나도 없는데 무슨 개성이 있나 생각했어요. 그래서 태도로 삶에 대한 개성을 취한 것 같아요. 도움 되는 것 하지 말자, 생산적인 것 하지 말자, 비뚤어지자, 지자, 이기지 말자, 이런 것들이요. 그러니까 당연히 학점도 멀리하게 되고, 미래를 위한 생산적 활동도 다 멀리하게 됐죠. 시만 파고들었던 게 그런 의미가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 말라니까 더 하고 싶은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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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선택 해야겠다


마트 배달,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 등의 경험이 있으신데 이것들이 시에 어떤 영향을 끼쳤다 생각하세요?


너무 강렬한 경험은 시가 되지 못하는 것 같아요. 거리 조절이 안 돼서요. 시에 소재적으로 들어오진 않지만 상대를 이해하는 데는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제 시에 사람에 대한 얘기가 많잖아요? 일하던 편의점이 노숙인들도 많고, 전투경찰도 많고, 윤락가로 이어지는 위치에 있는 곳이었어요. 엄청 무섭죠.(웃음) 편의점도 그렇고, 마트 배달도 그렇고, 거기서 본 것들을 시의 소재로 바로 소비한다기보다 그냥 타인을 이해하는 데 많은 데이터로 쌓아두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사람의 행동과 말을 관찰하고 저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았기에 지금 저 위치에서 저 말을 내뱉을까 상상하게 될 테니까요.

 

생활에 도움이 안 되는 걸 하기 위해 선택한 게 시라면 그럼에도 생활을 해야 하니 선택한 것들이 그런 경험들이군요.


부모님이 등록금을 안 주셔서요.(웃음) 입학금만 주셔서 일을 해야 했어요. 부모님은 교육도 많이 못 받으셨고, 평생 일만 하셨던 분들인데요. 뛰어봤자 벼룩이다, 이런 슬픈 사실들을 체득하셨는지 인생에 대해 터치를 안 하셨어요. 기대도 안 하시고, 반대도 안 하시고요. 시 쓴다고 하면 반대하는 부모님들 있을 수 있잖아요. 그냥 두셨어요. 어차피 잘 못살 거니까요.(웃음)

 

낮은 수준의 그 현실인식이라는 게 조금은 다른 가능성을 열어 준 것 같네요.


적어도 사기꾼은 되지 않을 거고요, 거짓말쟁이는 되지 않을 거예요. 그런 인식을 하고 살면 남에게 대단한 사람처럼 보일 필요가 없잖아요. 남에게 미안할 줄 알고요. 좋은 태도 같아요.

 

직장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시인으로서의 삶과 생활인으로서의 삶, 균형 잡는 비법이 있나요?


일단 술(웃음) 도움을 받아요. 저한테 시간을 많이 주면 시 쓰는 감성으로 넘어갈 수 있죠. 여행을 3박 4일 정도라도 보내주면 가능해요. 편집자 일을 하니까 글자를 많이 봐야 하는데요. 그렇게 일을 하고 와서 시를 쓰려고 백지를 보면 ‘이게 뭐야?’하는 생각이 들어요. 일상인, 생활인 마인드에서 시인 마인드로 넘어오려면 그냥 쓰자고 해서 쓰는 게 아닐 테죠. 사물을 바라보거나 사건을 생각하는 눈부터 달라져야 하는데 변하는 게 쉽지 않아요. 그래서 잘 못 쓰고 있어요. 저뿐만 아니라 글과 관련된 일을 하는 시인들을 보면 다들 고전하고 있더라고요. 생활은 해야겠고, 마감은 해야 하는 그 사이에서 말이에요.


억울한 마음도 있죠. 언젠가 선택 해야겠다 생각해요. 남들처럼 먹는 거 먹고, 입는 거 입고, 타고 다니는 거 타고 살 것이냐 좋은 시를 쓸지는 모르겠지만 시만 쓸 것이냐 하는 선택을 언젠가 해야 할 것 같은데요. 지금은 아직 남 하는 것처럼 살아보려고 노력하는 부분이 있어서 고민하고 시를 쓰려고 하고, 잘 못 쓰고 그렇게 있는 것 같아요.

 

시만 쓰는 시인이 없다는 건 좋은 신호는 아닌 것 같습니다. 한 시인은 그렇기 때문에 시가 자유로울 수 있다고도 했지만요.


소비를 아무리 줄여도 최저생계비가 되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일찌감치 직장들을 잡고 시를 쓰시죠. 한편으로는 시가 대단한 것이 아니니까 시만 쓰며 살 필요 있나, 이런 생각도 들어요. 시가 ‘직업’은 아닐 테니까요. 무용한 것들을 끝까지 계발하면 그런 기백이 생기는 것 같아요. 시를 써서 진짜 얻어지는 게 없다는 걸 오랫동안 겪으면 오히려 자유로워지고 편해지는 느낌을 갖겠죠.

 

 

애매함과 어중간함


시가 어렵다, 고들 많이 하죠. 시를 어려워하는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나요?


대부분의 독자 분들이 시에 대한 업데이트가 안 되셨어요. 정지용, 김소월, 서정주, 김춘수 같은 분들에서 업데이트가 끝났다면 지금 시는 어려울 수밖에 없거든요. 한때 시를 읽으셨던 분도 마찬가지고요. 일단 시를 이해하고 싶으시면 시기적인, 물리적인 업데이트를 해야 할 것 같아요. 그런 게 아니라 그저 몇 편의 시를 읽고 싶다 하시는 분들은 컬렉션이 돼 있는 시인 중에 잘 고르시면 될 것 같아요. 음반 사러갈 때 ‘노래 들어야지’만 하고 안 가잖아요. 그런데 서점에 ‘시집 사야지’하고 가신단 말이에요. 굉장히 성긴 그물이죠. 젊은 시인, 여성 시인의 시 같은 정도의 분류도 없이 시집을 사러 가는 건 불가능한 일이에요. 장르를 고르셔도 좋겠죠. 거칠게 말해 낭만적인 시, 모던한 시, 리얼리즘 시, 이렇게 고르시는 방법도 있어요. 시는 미술, 음악 같은 범위잖아요. 그걸 구체화시켜 마음에 드는 시를 찾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나는 정호승, 안도현 시는 꾸준히 읽는다, 이런 것만 하셔도 시가 그렇게 어렵진 않을 것 같아요.


그렇게 시인 한두 명 정도는 향유하는 인생이 좋지 않을까 생각해요. 게다가 그것이 자기와 동시대 시인이면 더 좋겠죠. 비슷한 생애주기를 살 거니까요. 그래서 본인이 더 이상 작은 글씨를 읽기 힘든 노안이 오면 그 시기의 시인들도 비슷한 생리적 현상을 겪으면서 비슷한 고민들을 써줄 테니(웃음) 큰 위안이 될 거예요.

 

그런 방법은 굉장히 재미있는 시 읽기가 될 수 있을 것 같네요.


가수와 팬들이 같이 늙듯이, 그렇게요.

 

출간 3년이 지나서 시집이 새로이 생명력을 얻을 수 있었던 것 역시 시인이 같은 세대 시인이라 가능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어중간함이 있는 것 같아요. 시적으로 성취를 이루려고, 목표하는 작업을 두고 그 작업에 도달하려고 시를 끝까지 밀고 가서 만족을 얻는 스타일도 아니고요. 쓰다가 수신자가 이해 못하면 어떡하나 해서 에둘러 쉽게 얘기하기도 해요. 또 너무 쉬워지면 어떡하지, 너무 대중적이면 어떡하지, 너무 슬프면 어떡하지, 너무 기쁘면 어떡하지, 고민하죠. 그렇게 어떤 특정한 하나의 위치에 속하지 않으려는 어중간함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 시를 처음 읽는 독자도 일부는 좋아하실 만한 부분이 있는 것 같고요. 평론가처럼 한국 문학사를 다 꿰뚫고 있고 예술의 극단에 있는 시도 읽는 분들도 제 시를 폄하하지 않고 좋은 시라고 말해주시는 분이 계시고요. 뒤늦게 보니 다양한 영역의 다양한 지점들을 건드리는 게 제게 있는 것 같아요. 그게 다 제가 가진 애매함과 어중간함에서 오는 힘이 아닐까 싶어요. 방송에서 ‘사랑’이란 코드를 짚었는데 시에 그것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슬픔만 있는 것도 아니고요. 그런 게 도움이 된 것 같아요.


박준이라는 시인에게도 일군의 독자들이 생겼다고 생각하면 어떨까요?


세 번째 시집 정도까지 잘 내면 가능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웃음) 두 번째, 세 번째 시집까지 잘 내면, 독자 분들이 실망하지 않으면 저도 그렇게 고유 명사 시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웃음) 물론 두 번째, 세 번째 시집이 이렇게 잘 팔릴 거라고 생각도 안 하고요. 그래서도 안 되겠죠. 다만 일차적인 시 독자, 문학 독자들이 좋아해주실 만한 시적 수준을 유지하는 게 목표예요. 문학 작품들이 약간 공공재가 되는 느낌이기도 해요. 그러니 잘 써야죠. 잘 쓰면 잘 읽어주시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시를 쓰는 것은, 행복하기 위해서인가요?


행복하기 위해서 시를 쓴다고 얘기할 수는 없는데요. 좋은 시를 한 편 쓰고 나면 엄청 행복해요. 이성으로 시를 가늠하고, 시의 수준을 판단하는 눈으로 봤을 때 일정 정도 이상의 시가 써졌고 마음에도 들면 정말 행복해요. 그 쾌감이 살면서 누리는 어떤 쾌감보다 큰 것 같아요. 길게 가진 않지만요. 발표하고 나면 후회되는 것도 있고, 쓴 다음 날 바로 후회할 수도 있고, 시집을 엮고 나서 후회할 수도 있지만 그 성취감과 쾌감은 정말 크죠. 이 쾌감이 끊임없이 향정신성의약품처럼(웃음) 작용하는 것 같아요. 치기로 시작했다가 지금은 중독됐다고 할까요?

 

시인으로서의 꿈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앞으로 어떤 시를 쓰고 싶으세요? 


이야기가 있는 시를 쓰려고 노력해왔고, 쓰고 싶어요. 사람들은 어느 시대든 이야기에 대해 굉장히 목말라 하는데 이야기를 들을 곳이 없어요. 대화는 있어도 그게 이야기는 아니잖아요. 그렇다면 부족한 이야기를 어디서 얻는지 생각해요. 소설, 특히 긴 분량의 소설은 많이 안 읽잖아요. 그런 것과 별개로 요즘 시가 다시 읽힐 수 있다면 긴 글을 읽지 않는 대중들에게 시라는 분량은 굉장히 매력적이죠. 저는 시가 몸집은 짧아도 긴 이야기를 넣고 싶다는 생각이 늘 있었어요. 짧은 글 속에 아주 긴 이야기를 담아서 여운도 많이 담는 그런 시를 쓰고 싶어요. 그것은 꼭 세대론의 얘기는 아닌 것 같아요. 다만 요즘 시뿐 아니라 다른 장르에서도 이야기가 많이 줄어들었다는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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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끝 등대 2」


마지막 수록 시 「세상 끝 등대 2」는 사진입니다.


사고로 먼저 떠난 누난데요. 원래 시집 디자인에 쓰는 걸 고려해달라고 하면서 보낸 사진이에요. 편집자께서 표지에 써준 것은 물론이고 마지막에 넣은 거죠. 제게 동의를 구한 다음 생몰연도를 묻고 넣더라고요. 전 사실 시에 사진, 그림, 기호 넣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보통 안 하는 일인데 의견을 주셔서 넣었어요.


사진이 누나임이 밝혀지면 이게 재미가 없는 게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다른 시에 있는 ‘미인’이나 ‘당신’이 누나로 읽히면 안 되는 시들이 많거든요. 그런데 시집 나오자마자 알려졌죠.

 

한 가지 이미지로 읽히는 것에 대해 경계하는 감정인가요?


너무 강렬하면 시가 되지 않는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여기는 슬픔도 있고, 사랑도 있고, 허무함 이런 것도 있는데 그것들이 친족의 죽음이라는 사건에 다 귀결될까봐 그게 무서운 거죠. 다른 건 없어요. 누나의 죽음 자체를 숨긴다거나 이용하려는 생각은 없어요. 숨길 거면 넣지도 않았겠죠.

 

그렇다면 이 사진은 시집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 걸까 궁금해집니다. 


방금 부정했지만 절반 정도로 하면 좋겠네요. 절반 정도는 누나를 생각하며 쓴 시고, 절반은 아닌데요. 제가 등단하던 해에 누나의 사고가 있었어요. 그 전부터 당연히 시를 썼죠. 적어도 등단작들은 누나 사고 이전에 쓴 시들이니까요. 거기도 ‘미인’이란 말이 나오고요. 여하튼 그 이후에 쓴 시는 누나의 죽음이라는 영향 안에서 꾸준히 쓴 시니까 어떤 장면이든 다른 상상이든 누나의 영향을 크게 받은 거죠. 이렇게 시집으로 묶이게 해준 고마움도 있었고요. 과거를 이런 방식으로 재생해야 하는 슬픔도 있었어요. 어쨌든 한 권으로 털고 넘어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요. 그래서 ‘같이 썼다’는 심경으로 넣기도 했어요. 헌시, 헌사 같은 것이죠. 누나가 만든 슬픔이니 누나가 가지고 가, 이런 마음도 있었고요. 그런 복합적인 감정들 때문에 사진을 넣었어요. 혼자 쓴 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시를 쓸 때만 해도 세상에서 가장 많이 나를 울린 사람이 누나더라고요. 어렸을 땐 맞느라 울었고, 싸우다 져서 분해서 울었고, 죽음 이후에는 슬퍼서 울었고요. 그러니 슬픔이란 감정의 가장 큰 주인공은 누나니 시집이 이렇게 된 것 같습니다. 다음 시집은 조연쯤 하겠네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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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은 먹었다 박준 저 | 문학동네
2008년 ‘젊은 시의 언어적 감수성과 현실적 확산 능력을 함께 갖췄다’는 평을 받으며 『실천문학』으로 등단한 박준 시인의 첫 시집이 출간되었다. 시인은 당시 한 인터뷰에서 “촌스럽더라도 작고 소외된 것을 이야기하는 시인이 되고 싶어요. 엄숙주의에서 해방된 세대의 가능성은 시에서도 무한하다고 봐요”라 말한 바 있다.  모름지기 성장이란 삶의 근원적인 슬픔을 깨닫는 것일 터, 이번 시집에 이 세계를 받아들이고 살아간다는 것, 그리고 그 안에서 마주하는 죽음의 순간들에 대한 사유가 짙은 것은, 박준 시인의 깊어져가는 세계를 증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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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시우 “유영철 사건에서 모티프 얻은 작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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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락 붉게 피던 집』의 송시우 작가가 선보이는 두 번째 소설 『달리는 조사관』은 미스터리 장르만이 안겨줄 수 있는 쾌감에 충실한 작품이다. 미궁에 빠진 사건을 둘러싼 진실 게임이 빠른 속도로 전개되고, 허를 찌르는 반전이 거듭되며, 그 끝에서 마주한 실체는 묘한 공포감을 안겨준다. 기존의 추리소설이 애용해온 이러한 얼개는 『달리는 조사관』 안에서도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독자들을 흡입력 있게 빨아들이며 이야기를 추격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송시우 작가는 낡은 문법을 답습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는다. 지금까지의 추리소설이 진실과 거짓, 선과 악의 경계를 뚜렷하게 구분 지은 데 반해 『달리는 조사관』은 애써 그 경계를 뭉그러뜨린다. 놀라운 사실은, 그 결과 남겨지는 것이 ‘사건이 완전하게 해결되지 않은 것 같은 미진함’이 아니라 ‘잊히지 않는 질문’이라는 것이다. 작품을 통해 증명되듯 기억이란 왜곡되고 조작되기 쉬운 것이다. 그러한 바탕 위에서 확인된 사실을 진실이라 부를 수 있을까. 법과 원칙이라는 이름으로 범죄자는 보호받고 피해자는 구제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선을 수호하는 정의일까.

 

『달리는 조사관』이 선사하는 공포는 범행 방식의 잔혹성이나 미스터리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범인의 실체를 확인할 수 없다는 불안에서 생겨나는 것도 아니다.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존재가 너무나 또렷하게 보이기 때문에, 그것이 현실의 우리 곁을 지키고 있기 때문에, 모골이 송연해지는 것이다.

 

‘인권증진위원회’라는 가상의 조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담은 이번 소설에는 다섯 편의 연작 이 실려 있다. 각각의 사건에는 성희롱, 위법한 체포, 강압 진압 등을 이유로 인권 침해를 호소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들의 권리를 수호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네 명의 조사관들은 스스로의 의지와 상관없이 진실에 한 발짝 다가서게 된다. 누구의 말을 믿을 것인지, 수사에 어디까지 개입할 것인지, 쉽지 않은 선택이 혼란과 갈등을 야기한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독자들은 기시감에 사로잡힌다. 인물들 앞에 놓인 ‘문제적 사건들’이 낯설지 않은 까닭이다. 노조 내 성희롱, 연쇄살인범의 드러나지 않은 범행, 허위자백 논란 등은 과거 우리 사회를 들썩이게 했던 사건들을 환기시킨다.

 

데뷔작 「좋은 친구」와 첫 번째 장편소설 『라일락 붉게 피던 집』, 단 두 편의 이야기만으로 ‘한국 장르문학의 기대주’로 떠오른 작가 송시우. 그녀는 『달리는 조사관』을 통해 그 수식어가 허울에 그치지 않음을 입증해 보였다. 벌써부터 다음 행보가 기다려지는 작가 송시우와의 인터뷰를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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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 사찰 이야기, 쓰고 나서 걱정 많이 했어요


『달리는 조사관』은 ‘인권증진위원회’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에서 소재가 독특합니다. 인권을 수호하는 자들의 이야기에 주목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그 질문을 당연히 받을 줄 알았어요(웃음). 제가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일하고 있어요. 추리소설을 쓰기 시작할 때부터 ‘소재를 찾기 좋은 직장에 다닌다, 그 이야기를 꼭 써라’라는 말을 계속 들었는데요. 저는 그런 생각이 전혀 없었어요. 항상 하는 일이다 보니까 저한테는 재밌지 않은 거예요. 일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에피소드를 겪지만, 이야기로 만들면 재밌을 것 같지 않았어요. 국가인권위원회가 전국에 딱 한 곳뿐이니까 이 이야기를 쓰면 주변 사람들한테 누를 끼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래서 전혀 생각을 하지 않다가 2012년에 황금가지에서 출간한 『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4』에 시험 삼아 작품을 실었어요. 「그곳에 누군가 있었다」라는 단편인데 『달리는 조사관』에는 「보이지 않는 사람」이라는 제목으로 실렸죠. 그런데 의외로 반응이 좋아서 연작을 써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예요.

 

매력적인 소재인 만큼 ‘이 이야기를 벌써 꺼내기엔 아깝다’는 생각도 하셨을 것 같은데요(웃음).


그런 생각은 안 해봤어요. 아마 『라일락 붉게 피던 집』을 좋아해주셨던 분들에게는 이번 작품이 굉장히 의외였을 것 같아요. 전혀 다른 소재의 이야기니까요. 그런데 계속 이런 이야기만 쓸 것도 아니고 새로운 소재를 계속 찾고 싶기 때문에, 더 아껴둬야겠다는 생각은 안 했어요.

 

‘국가인권위원회’ 조사관들의 현실을 잘 알고계신 만큼, 그 모습이 왜곡되어 전달되지 않도록 많은 주의를 기울이셨을 것 같습니다.


실제 있었던 사건에서 조금씩 모티프를 따오기는 했는데요. 비슷하지 않게 쓰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혹시나 내부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 아니냐고 생각할까 봐 걱정됐거든요(웃음). 국가인권위원회에서 다뤘던 진정 사건과 똑같은 건 없을 거예요. 등장인물도 실존 인물을 모델로 해서 만들지 않았어요.

 

네 명의 조사관들은 각자 결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완벽한 해결사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데요. 이렇게 설정하신 이유가 있나요?


『달리는 조사관』의 인물들은 서로 모자란 부분을 채워가면서 협업으로 사건을 해결해 나가죠. 고전적인 추리소설에 나오는 명탐정처럼 완벽한 인간은 아니에요. 그런데 실제로 사람들은 다 단점이 있고 결함이 있잖아요. 그런 부분을 살린 거죠. 특별히 결함이 있는 인물을 만들겠다고 작정한 건 아니고요(웃음). 현실에 가까운 인물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라일락 붉게 피던 집』과 여러 단편들을 통해 한국사회의 다양한 현실들을 보여주셨습니다. 이번 작품도 예외가 아닌데요. ‘사회파 추리소설’을 추구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어렸을 때는 셜록 홈즈나 애거사 크리스티의 작품처럼 고전적인 추리소설을 좋아했어요. 그러다가 어른이 되고 나서 본격적으로 추리소설을 접하기 시작하면서 일본 작품들을 많이 읽었어요. 당시에 일본 추리소설이 번역되어 국내에 활발하게 소개될 때였거든요. 미야베 미유키의 『이유』라든지 히가시노 게이고의 다양한 작품들처럼 사회파적인 걸 반영한 소설들도 읽었는데, 그런 작품들을 통해서 많은 감동을 받았어요. 예전에 고전적인 추리소설을 읽을 때와는 굉장히 다른 느낌이었죠. 추리소설이 장르적인 재미를 주는 것 외에 묵직한 사회적 메시지도 담을 수 있다는 점에 반했어요. 저도 그런 작품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고요.

 

『달리는 조사관』에는 민간인 사찰 논란을 떠올리게 하는 에피소드도 실려 있습니다. 민감한 사안일 수 있는데, 염려하신 부분은 없었나요?


말씀하신 단편은 2012년에 발표된 작품인데요. 그보다 1년 정도 전에 완성했을 거예요. ‘인권증진위원회’를 배경으로 어떤 이야기를 쓸까 고민하다가, 당시에 민간인 사찰 이야기가 한창 나올 때여서 소재로 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일단 썼죠. 걱정은 나중에 했고요(웃음). 작품을 발표할 때는 모티프가 된 사건이 발생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으니까 걱정을 많이 했죠. 저 뿐만 아니라 주변의 작가 선배들도 괜찮겠냐고 걱정을 많이 해주셨어요. 그런데 아무렇지도 않더라고요(웃음). 하지만 염려가 되었던 건 사실이에요. 실제 있었던 정치적인 사건이니까 아무래도 민감한 부분이 있었죠. 그런데 이번에 『달리는 조사관』에 실을 때에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어요. 사건이 발생한 시점 이후로 시간도 많이 흘렀고 다른 작품들도 같이 실려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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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철 사건에서 모티프 얻은 작품은…


『달리는 조사관』에서 각각의 단편들은 열린 결말로 끝이 납니다. 또 다른 연작에서 뒷이야기를 들려주실 계획인가요?


『라일락 붉게 피던 집』에서도 마찬가지였는데, 제가 조금씩 열린 결말로 이야기를 끝내는 버릇이 있어요(웃음). 왜 그런지는 모르겠어요. 완전히 결말을 짓는 게 잘 안돼요. 미스터리라는 장르에 충실해야 하니까 이야기에서 제기된 중심적인 의문들은 해결해 놓는데요. 마지막 부분에서 이어지는 인물의 행동, 선택 같은 건 살짝 열린 결말로 끝맺죠. 그게 제가 좋아하는 방식인 것 같아요.

 

이번 작품은 소재도 독특하지만 중심인물들의 캐릭터도 뚜렷하잖아요. 연작으로 이어질 또 다른 에피소드가 기다려집니다.


또 다른 연작을 구상하고 있지는 않은데요. 시리즈는 작가가 만드는 게 아니고 독자가 만드는 거니까요. 독자 분들의 반응을 보고, 이어지는 이야기를 원하신다는 확신이 들면 얼마든지 시리즈가 이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마 『달리는 조사관』중에서 「푸른 십자가를 따라간 남자」가 가장 애매모호한 결말로 끝났을 텐데요. 만약 시리즈를 이어간다면 다른 결말을 보여주고 싶어요.

 

집필하시는 동안 인권 혹은 정의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하셨을 것 같습니다. 나름의 정답을 찾으셨나요?


답을 가지고 있지는 않고요. 우리가 인권은 보편적인 것이라고 이야기하지만, 무엇이 인권인지 정해진 건 없다고 생각해요. 윤리나 정의라는 개념도 마찬가지고요.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찾아나가야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인권 침해를 둘러싸고 수사기관과 조사관, 진정인의 입장이 서로 다른데 누구의 말은 절대적으로 옳고 누구는 반드시 단죄되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조금 자유로워져야 할 것 같아요. 작품 안에도 그런 특성을 담으려고 했어요.

 

작품 속 네 명의 조사관 중에서 특별히 애착을 갖고 계신 인물은 누구인지 궁금합니다.


처음 만들었던 인물은 한윤서 조사관이었어요. 가장 주인공 격인 인물이기도 한데요. (지금은) 오히려 다른 인물들, 배홍태나 이달숙 조사관에게 더 애정이 가요. 한윤서는 저와 닮은 부분이 있어서 답답하고요(웃음). 조금 더 발랄한 인물이 좋아요. 좌충우돌하고 서로 싸우기도 하고, 그렇게 감정 표현도 하면서 상황을 만들어가는 캐릭터가 매력 있는 것 같아요.

 

배홍태와 한윤서는 전혀 다른 성향의 인물이 아닌가 싶습니다. 배홍태가 감정이 앞선다면 한윤서는 냉정할 만큼 이성적이죠. 중립과 정의의 문제를 두고 충돌하기도 하고요. 작가님은 누구의 손을 들어주고 싶으세요(웃음)?


두 사람 다 필요한 것 같아요. 배홍태처럼 (중립을 지키기보다는) 약자의 편에 서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필요하고, 한윤서처럼 냉정한 태도로 사실 관계부터 정확하게 밝히려는 사람도 필요하죠. 그렇게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있으면서 균형을 찾는 게 아닐까 싶어요. 배홍태의 경우에는 다른 사람의 눈에는 조금 거칠고 편향적이고 억지를 부리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와 같은 주장하는 사람도 있어야겠죠.

 

『달리는 조사관』의 네 번째 단편 「푸른 십자가를 따라간 남자」는 G.K. 체스터튼의 작품 「푸른 십자가」를 오마주한 작품인데요.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일부러 단서를 남기는 범인’이라는 설정이 매력적으로 느껴지셨나요?


처음에는 오마주라는 생각을 못했어요. 말씀하신 설정은 집필 중에 생각난 거고요. 「푸른 십자가를 따라간 남자」는 유영철 사건에 착안해서 쓰기 시작했어요. 유영철에게 살해당한 피해자 중에 두 명의 신원이 아직까지도 밝혀지지 않았거든요. 그 사실을 알게 되면서 ‘피해자들의 신원을 찾기 위한 수사는 계속되고 있을까’ ‘이미 재판도 끝났고 모든 사건이 종결되었으니 수사도 멈춘 걸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두 피해자들의 존재가 잊히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연쇄살인범에게 살해당한 피해자 중에 시체가 발견되지 않은 피해자가 있고, 시체는 있지만 신원이 확인되지 않은 피해자가 있다’는 설정을 떠올리게 됐죠. 쓰다 보니 「푸른 십자가」에 나오는 ‘단서를 남기는 범인’에 대한 이야기가 떠올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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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에서 중요한 건 ‘울림이 있는 소재’


데뷔작 「좋은 친구」와 첫 장편 『라일락 붉게 피던 집』으로 단숨에 ‘한국 장르문학의 기대주’로 떠올랐습니다. 큰 기대가 부담되지는 않으셨나요?


『라일락 붉게 피던 집』이 출간되기 전에도 1년에 2~3편씩 단편을 발표해왔지만, 저라는 작가가 알려진 건 『라일락 붉게 피던 집』이 나오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죠. 첫 장편이었는데 제가 기대했던 것 이상의 반응이 돌아왔어요. 물론 굉장히 좋았지만 부담도 많이 됐죠. 특히 ‘두 번째 작품은 어떻게 써야 하지’라는 부담은 엄청났어요. 『라일락 붉게 피던 집』은 구상에서 집필, 출간까지 3년이 걸렸는데요. 제가 쓰는 속도도 굉장히 느린데다가, 직업이 있으니까 시간이 많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그런 속도로 쓰다가는 안 될 것 같았고, 1~2년 안에 두 번째 작품을 선보이고 싶었어요. 사실 뭘 써야 되는지, 어떻게 써야 하는지 결정하는 게 힘들었어요.

 

예전에 한 인터뷰에서 말씀하시길 「좋은 친구」를 쓰기 전까지 습작을 거의 해본 적 없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어떻게 계간 <미스터리> 신인상을 수상하실 수 있었나요?


대학에서 문학동아리 활동을 했는데, 그때는 주로 시를 썼어요. 소설도 써보기는 했지만 졸업한 이후에는 거의 안 썼어요. 추리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 품고는 있었는데, 언젠가 내공이 쌓이면 저절로 써지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런 날은 절대로 오지 않더라고요(웃음). 서른 즈음이 되어서야 그걸 깨닫게 됐죠. 책상에 앉아서 쓰기 시작하지 않는 한 소설은 써지지 않는다는 걸요. 그때 쓴 작품이 「좋은 친구」인데, 좋아하니까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열망의 힘이라고 할까요. 타고난 재능이 있다거나, 그런 생각은 절대 하지 않습니다(웃음).

 

『라일락 붉게 피던 집』은 출간과 함께 영화화가 결정되어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언제쯤이면 극장에서 『라일락 붉게 피던 집』을 만날 수 있을까요?


작년에 판권 계약이 성사됐고 지금은 시나리오까지 나온 걸로 알고 있어요. 시나리오와 소설 작업은 다르니까 저는 그 과정에 참여하지 않았는데, 시나리오 작업이 힘들었다고 들었어요. 제가 생각하기에도 그랬고요. 등장인물이 너무 많은데다가 1980년대와 2010년이 교차하면서 이야기가 진행되니까 어려운 부분이 있죠. 그래서 아마 저한테 하라고 했으면 못했을 거예요(웃음). 영화로 완성되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은데요. 제가 만든 이야기가 영화로 나오면 정말 신기할 것 같아요.

 

추리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집필 과정에서 가장 고심하시는 요소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일단 소재에서 울림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사실 굉장히 기발한 트릭들은 이미 다 나왔고, 그런 걸 현대적인 이야기 속에서 변형해야 되는 과제가 있죠. 그러려면 지금 사람들이 읽고 싶어 하는 새로운 소재들을 써야 하니까, 그 부분에 제일 신경을 많이 써요. 계속 단편을 쓰다가 처음으로 장편 『라일락 붉게 피던 집』을 쓸 때도 ‘도대체 어떤 이야기를 써야 원고지 1000매 이상이 될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아무리 물어보고 생각해도 답은 없는 거예요. 그러다가 ‘내 안에 울림이 있는 소재를 쓰면 긴 작업을 해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어렸을 때 살던 다가구 주택의 이야기를 쓰면 되겠다고 생각했죠. 다행히도 저한테서 출발했지만 독자들도 원하는 이야기이더라고요. 그런 점에서 보편적인 감성을 건드리는 이야기였던 것 같아요.

 

『달리는 조사관』의 소재에서 어떤 ‘울림’을 받으셨어요?


전작에서는 예상할 수 없는 작품을 쓰고 싶었어요. ‘인권증진위원회’ 조사관이라는 역할도, 저한테는 굉장히 익숙하지만, 많은 분들에게는 새롭게 느껴질 수 있겠다고 생각했고요. 추리소설 작가 중에 ‘인권증진위원회’ 조사관을 주인공으로 쓸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죠(웃음). 쓰면서 찾아보니까 이야기를 만들 수 있는 여지가 많더라고요. 범죄와도 연관시킬 수 있고, 인권위가 다루는 분야가 워낙 방대하다 보니까 경찰, 교도소, 성희롱 등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 수 있겠더라고요. 작품을 쓰는 동안 그런 부분을 느꼈어요.

 

이번 작품은 『라일락 붉게 피던 집』과 많이 다른 느낌일 거라고 말씀하셨어요.


『라일락 붉게 피던 집』은 보편적인 감성을 건드리는 부분이 있었고, 미스터리를 좋아하지 않거나 익숙하지 않은 독자도 쉽게 읽을 수 있는 드라마틱한 요소가 있었다고 생각돼요. 『달리는 조사관』에서는 미스터리 장르에 조금 더 충실했어요. 『라일락 붉게 피던 집』은 장르적인 특성이나 쾌감이 약하다는 이야기도 들었기 때문에 조금 속상했거든요. 미스터리가 좋아서 미스터리 소설을 쓰겠다고 생각한 거니까, 거기에 점점 더 충실하고 싶은 마음이에요.

 

‘한국적인’ 서정을 담은 추리소설을 쓴다고 평가 받으시는데요. 외국의 추리소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히가시노 게이고 같은 뛰어난 작가가 한국을 배경으로 한국적인 사회 문제를 끌어들여서 소설을 쓴다 한들 한국어로 쓸 수는 없잖아요. 그런데 한국 작가들은 할 수 있어요. 지금 한국 추리소설은 이 중의 편견에 시달리고 있는데, 일단 장르소설을 바라보는 편견이 있고 장르소설 안에서도 국내작은 수준이 떨어진다는 편견이 있죠. 그래서 번역서에만 많이 열광하시는데요. 한국 작가만이 쓸 수 있는 한국 미스터리를 내보이면 번역서에서 얻을 수 없는 쾌감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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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조사관 송시우 저 | 시공사
《달리는 조사관》은 경찰도 탐정도 아닌, 다소 생소한 직업인 ‘인권증진위원회 조사관’들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인권침해와 차별행위를 다루는 준사법기관인 인권증진위원회에서, 진정인의 인권보호를 위해 움직이는 ‘인권위 조사관’은 공무원이긴 하지만 형사나 경찰과는 달리 공권력을 동원할 수 없는 한계를 지닌다. 서로 간의 엇갈린 증언 속에서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은 모든 추리소설의 공통된 부분이지만 《달리는 조사관》에서의 진실은 ‘인간으로서의 기본 권리가 침해되었는가?’ 하는 문제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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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리스트 함춘호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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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음악계에서 톱스타 못지않게 분주한 인물이 기타리스트 함춘호다. 연주자 개인적 명망이 높아 이름 자체가 브랜드인데다 무수한 가수들이 수십 년간 변함없이 자신의 노래 혹은 공연에 기타 세션을 요청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연주가 브랜드임은 얼마 전에도 국악 관현악의 외연을 넓히기 위해 국악 산조와 피아노 협주곡의 접점을 찾는 <산조하조(散調何造)> 무대를 재즈 피아니스트 로랑 권지니와 협연한데서 알 수 있다. 세시봉의 주역인 송창식 공연의 단골 세션으로 그를 볼 수 있다는 것은 세션 플레이어로서의 정점을 알리는 사례일 것이다. 이 공연에서 그의 위치는 세션이 아니라 거의 '듀엣'급이다.

 

송창식만이 아니라 자신의 백업밴드가 없는 스타가수들은 거의가 함춘호 기타에 신세를 진다. 세션 연주자로서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말까지 전성기를 누리면서 매년 국내 차트 순위 20위권에 오른 히트작의 기타연주를 도맡았지만 그의 이름은 듀엣 '시인과 촌장'의 멤버로도 찬란하다. 현재 한국연주자협회와 기독음악인연합회의 회장이면서 서울신학대학교의 교수로 후진 양성에 힘쓰고 있다. 경기 부천 소재의 서울신학대학교를 찾아가 그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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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이 넘게 음악적 중심을 레코딩 세션 활동에 두는 이유는


음악을 하는 사람이기에 자유기질도 있고 각자 선호하는 음악적 색채가 있죠. 세션 활동을 좋아한다는 것은 '특정한 장르에 머무르지 않겠다'라는 고집에서도 기인합니다. 밴드에 일원으로 있다 보면 음악에 대한 대중적 통념에 사로잡히게 되요. 시인과 촌장을 떠올려보죠. 그 시대 음악 중심이 포크였기에 포크밴드라 규정되었지만 되돌아보면 저희가 과연 포크였는지 자문합니다.

 

사실 시인과 촌장 LP를 들어보면 다양한 스타일이 혼재하는 작품이지요. 그럼에도 시대 때문일까요, 함춘호 옆에는 '포크 기타리스트'라는 수식어가 아교같이 따라붙습니다.


오히려 세월이 흐를수록 '그 각인을 벗어나기 참 어렵겠구나.'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어찌 보면 그 수식어 덕분에 좋은 세션의 자격을 갖춘 것 같기도 합니다. 세션을 하며 음악을 섬세하게 만드는 과정에서 남다른 희열을 느꼈습니다. 아직까지 스튜디오를 고집하는 이유 또한 스스로에게 관대하지 못하기 때문이죠. 저는 공연 무대에서 관객과 함께 숨 쉬는 퍼포먼스가 뛰어난 아티스트도 존경하지만 음악 내용의 완성도로 감동시키는 뮤지션을 추구해요.

 

저도 1991년 제작자로서 세션으로 함춘호씨를 요청한 기억이 있습니다. 포크곡이 아닌 블루스 풍 「꿈꾸는 도시」(박헌종 노래)를 맡겼는데 참 기분 좋은 작업이었습니다. 세션 맨은 제작자 혹은 가수와의 공감대 형성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친 시간이었죠.


세션을 한다는 것은 대중에게 알려지기 참 힘든 일입니다. 연주인으로서 기능만 가지고 있다고 세션을 시작할 순 없어요. 클라이언트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여유, 나아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지식이 꼭 필요합니다. 세션을 하는 아티스트들은 다들 건축공이라 생각합니다. 음악가라는 개인이 정말 살고 싶은 집을 지을 때 그 집을 지어주는 시공자 역할이죠. 저는 평소 일주일에 15건 이상 세션 요청이 들어오지만 물리적으로 불가능해 2~3곡을 합니다. 그래도 시간적여유가 부족해 음악적 교류와 공감대형성이 점점 힘들어져서 아쉽습니다.

 

제작자와 음악적 비전의 차이로 충돌한 사례가 있었는지


아주 많죠. 연주를 하는 사람들이라면 다들 하는 고민입니다. 그걸 잘 풀어나가는 방법을 많은 경험을 통해서 얻어진 데이터로 체득했어요. 충돌했을 때 가장 편한 방법은 의견을 무시하는 것이에요(웃음). 하지만 저는 '관계의 미학'을 염두에 두고 힘들더라도 노력해서 맞춰주는 편이에요. 저도 사실 제작자가 '불가능한 연주'를 요구할 때는 '그것보다는 이게 맞다.'고 우길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땐 확고한 고집이 없는 제작자라면 최대한 제 의견을 맞춰주더라고요. 최대한 이런 상황은 자제하죠. 제 주장만 고집했으면 음악적 시야가 매우 좁았을 겁니다. 제작자들이 요구하는 것에 맞추면 일종의 음악공부가 됩니다. 음악을 한다는 것은 이러한 공부를 통해 독특한 개성을 가진 하나의 주도적 아티스트로 성장해나가는 과정이었어요.

 

30년 세션 인생의 하이 포인트를 꼽아볼까요.


무엇보다 김광석과 함께 작업했다는 것은 역사적 축복이죠. 3집 < 나의 노래 >앨범 전체, 그 중에서도 곡 「나의 노래」가 떠오르네요. 광석이는 그 자체가 소리꾼이죠. '나의 노래는 나의 힘, 나의 노래는 나의 삶..' 이렇게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운 노랫말을 여과 없이 전달하기 어디 쉬운가요. 원래 가수가 세션들 반주녹음과정에서 연주하기 편하도록 가이드녹음을 해놓잖아요. 그 단번에 녹음한 가이드 보컬을 앨범에 그대로 쓰는 그런 가수에요.

 

지금도 활동하는 아티스트들 중에서는


그 후에 발라드 시대가 열렸죠. '이문세 이영훈' 시대 앨범을 전부 참여했어요. 현장에서 연주하면서 영광이라는 느낌이 들었죠. 또 대전에서 올라온 신승훈이라는 신예를 만났을 때가 기억나네요. 아침에 녹음을 시작했는데 밴드가 자리 잡고 마이크를 갓 잡은 신인가수의 설렘 가득한 눈빛을 잊을 수 없어요. 그리고 울려 퍼지는 「미소속에 비친 그대」의 '너는 장미보다 아름답지 않지만...' 첫 대목이 시작되는 순간, 머리가 맑아지며 '아'라는 느낌이 들더군요. 김종서의 「겨울비」를 녹음할 때도 비슷했습니다. 이런 곡들이 실제로 빅 히트하는 것을 보며 기뻐했던 추억이 남습니다.

 

공연으로도 여러 역사적 순간을 함께했죠. 기억에 각인된 공연은 고른다면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시인과 촌장 시절 '꿈나무 소극장'에서 2집 < 푸른 돛 >의 앨범 수록곡 처음부터 끝까지 그대로 진행한 공연이에요. 「고양이」 시작 부분 무대에 조명이 켜지지 않아 베이스를 맡았던 조동익이 전주만 계속 반복해 연주했죠. 최초로 관객 만 명 시대를 연 이승철 체조경기장 공연에서는 첫 곡 연주를 시작할 때 앞에서 울리는 함성이 연주소리와 맞닥뜨렸을 때 소리가 감쇄되는 현상을 처음으로 느꼈어요. 그리고 지오디(god) 전국공연을 함께 하며 새로운 세대의 세계에 돌입했음을 실감했죠.

 

송창식 선생님과 함께한 무대는 전부 잊을 수 없습니다. 2012년 호주 오페라하우스에서 했던 세시봉 공연에서 시작 전 스텝들이 우리를 한국의 올드 팝 가수로 여겨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어요. 공연이 끝난 후, 그들은 송창식을 보며 저런 소리꾼은 처음이라 말하며 경탄했죠. 가장 최근 공연으로는 올해 5월 달에 CCM 가수 송정미와 함께 한 카네기홀 공연이 대단했습니다.

 

송창식과의 공연은 정말 인상 깊었습니다. 음악적 거장과 함께해도 밀리지 않는 기타. 훌륭한 판소리꾼이 제대로 된 고수를 만난 느낌이었어요.


사실 저는 송창식 음악을 듣고 기타를 시작하고 노래한 '송창식 키즈'에요. 심지어 제가 같은 고등학교에서 같은 과(성악)를 전공한 후배죠. 처음 만났을 때는 영웅을 만나 정말 떨렸던 기억이 납니다. 그 분은 음악을 울타리로 본다면 이미 뛰어넘으신 분이죠. 최근에는 일종의 정형화된 리듬을 강제하는 '밴드'라는 틀에서 벗어나고 싶어 기타리스트인 저와 듀오를 제의하셨어요. 저희는 같이 음악을 하지만 같이 논다는 표현이 가장 적절합니다. 제 기타의 선을 타며 리듬을 가지고 노는데 제가 막 애가 타더군요. 이 맛에 저도 음악 하는 게 아닐까요? 최근에는 전인권 선생님께서 '송창식, 전인권, 함춘호 셋이 명작을 만들었으면 한다.'라고 제의하셨어요. 저도 극진한 예우를 갖추며 같이 음악하고 싶어 잘 조정하고 싶어요.

 

함춘호 기타의 비밀이자 생명력은 어디서 나오나요


어릴 때부터 함께해온 친구의 비밀, 매우 어려운 질문이네요. 답을 하자면 기타로 얘기하기, 스토리텔링을 살리는 겁니다. 사실 기타의 생명인 블루스는 간단하게 펜타토닉 스케일에서 결정이 납니다. 그렇기에 함께 하는 밴드들의 구성이 중요하고 뭐랄까 연륜이 중요해요. 저의 경우는 스토리텔링을 위해 구성을 간단히 하는 것을 선호하죠. 기본적으로 기타, 드럼, 베이스, 건반 그 이상이 들어가면 경험적으로 과욕으로 나타나곤 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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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리스트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노래하듯이 기타를 치면 좋겠다.' 노래방에서 노래할 때는 분위기 잡고 부르면서 기타만 치면 작아지고 맹맹한 느낌이 들면 금물입니다. 결국 공연장에서 세션은 노래를 따라가기에 그 노래가 주는 느낌을 기타가 잘 살려줘야겠죠. 이런 것들을 후배, 그리고 학생들에게 전달해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벌써 실용음악과 교수로 재직한지 5년이 넘었네요. 화려함도 좋지만 '생각'을 하면서 음악을 할 수 있게끔 현장경험이 많은 교수들과 함께 특화된 교육을 하고 있어요.

 

하덕규씨는 함춘호를 두고 '내가 끼적거린 시를 연주로 풀어준 사람이지'라고 평했습니다. 단 한 장의 앨범이었음에도 '질기게' 시인과 촌장의 일원으로 기억됩니다.


당연히 감사하죠. 시인과 촌장을 하기 전엔 전인권 선생님과 듀오를 하고 있었죠. 그 때도 형용할 수 없이 좋았지만 하덕규를 만나서 음악을 하며 또 다른 세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실 처음 만나기 전엔 하덕규의 너무 세련된 느낌을 질투하기도 했어요. 저는 투박한 질그릇이었으니까요. 그러다 '종이비행기'로 활동하던 1979년, 하덕규와 함께 대구 수성호텔에서 기타연주를 하게 되었어요. 그러자 지금껏 그려보지 못한 새로운 스타일의 명작이 머릿속에 그려졌고, 이를 함께 그려나간 건 커다란 행복이었죠. 아쉽게 그 진척이 마감된 건 너무 아쉽습니다. 당시 전 '연주'에 초점이 있었기에 상호 지향이 균형을 맞추지 못했던 거지요.

 

생각보다 젊은 세대들도 시인과 촌장도 많이 알고 함춘호를 자주 언급하던데요.

 
원래 공연장에 서는 것을 즐기지는 않았어요. 완벽주의 적 측면에서 그 정제되지 않은 느낌 때문에 무대를 등한시한 경향이 있었죠. 그런데 이제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이다보니 공연 세션으로 참가할 때 주도하진 못하더라도 끌려가지는 않은 수준이 됐다고 봅니다. 그러다보니 가수 뒤에 숨기보다는 '콜라보'를 하게 되어 제가 보여드릴 수 있는 역량이 예년에 비해 배가 되었죠. 그걸 즐길 줄 아는 젊은 세대도 좋아해준다고 봐요.

 

우리나라에서 세션으로 성공하긴 정말 힘들죠.


한국 연주자 협회 회장을 6년째 맡고 있습니다. 그 동안 작지만 정기적으로 세션만의 공연도 기획했죠. 제 모토는 '연주자가 폼이 나야 한다.'에요. 힘든 만큼 좌절감에 빠지는 후배들이 많은데 자존감을 잃지 말고 대접받는 것을 자연스레 여기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합니다. 물론 음악인들도 세션을 돈 주고 쓰는 객체로 여기지 않고 대우해줘야 하고요. 사실 세션들의 아이디어가 음악이 완성되는데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모두가 알아요. 세션과 음악 평론이라는 분야도 '순수함'이라는 측면에서 통하는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평론은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을 역사로 남기는 작업이죠. 우리도 순수하게 좋은 곡들을 역사로 남깁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요즘 대한민국 대중음악이 나아가는 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두 가지 생각이 듭니다. 첫째, 대중음악이 편집광적 음악이 되고 있습니다. 음악을 제작할 때 주안점이 감성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흥행을 위해 계획된 시스템에 맞추는 것 같아요. 그런 곡에 참여할 땐 제 기타도 영혼이 빠져나가는 것 같아 슬펐습니다. 뭐 요새는 밴드 사운드를 다 컴퓨터로 처리하기도 하죠. 우리가 연주하던 민족적 감성들, 예를 들어 애환과 슬픔, 그리고 기쁨이 제대로 표현되지 않습니다.

 

여기서 야기되는 두 번째 생각, 그 안타까움을 승화시켜 발전해 나가야해요. 유행과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면 결국 대중의 감성과 멀어지기에 도태됩니다. '내 분야에서 난 최고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계속 제 음악을 해서 사람들의 관심을 잃지 않을 겁니다. 유행은 돌고 돌아요. 현재 유행도 언젠가는 또 대체되어 제게 유리한 시대가 오겠죠. 최근 영화< 인턴 >을 인상 깊게 봤어요. 끝나고 나오면서 든 생각, 음악가에게 은퇴는 없습니다. 아마 죽는 날이 제가 은퇴하는 날이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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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임진모, 이기찬
사진 : 이한수
정리 : 임진모
2015/10 임진모(jjinmoo@iz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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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특집] 황인찬 “한 번에 읽히는 시가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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묶여버린 생각에서 달아나기. 시인 황인찬과의 인터뷰는 그 지점에서 시작되었고, 또 끝을 맺었다. 시와 시인에 대한 고착화된 이미지, 좋은 시에 대한 정형화된 기준, 그 모두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시인은 바라고 있었다. “새로운 시적 경험을 제공한다”는 평가를 받으며 평단과 독자들을 주목시켰던 첫 시집 『구관조 씻기기』는 그 ‘조용한 변혁’의 기반 위에 세워졌다. 이후 3년 만에 선보인 두 번째 시집 『희지의 세계』에서도 황인찬은 ‘남다른’ 시선과 사유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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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인으로 현 시대를 산다는 건 ‘손해 보는 장사’


시인에 대한 편견 혹은 고정화된 이미지가 있다고 느끼시나요?


(시인이) 왜 이렇게 젊냐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요. 대부분 시인은 나이가 많을 거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고, 젊은 시인이라고 하면 식민지 시대의 시인들을 떠올리시는 것 같아요(웃음). 지금 21세기에 젊은 사람도 시를 쓰고 있다는 걸 잘 생각해 보지 않으신 것 같아요. 진지함이나 엄숙함에 대한 생각들도 있죠. 시인은 매일 술 마시고 사랑에 죽고 사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부분도 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거든요(웃음). 먹고 살기 힘들어서 술은 좋아해도 잘 못 마시고요. 돈이 없어서 죽고 살겠지, 사랑에 죽고 살겠어요? 다들 똑같이 사는데 그 중에 시를 쓰는 것뿐이죠. 그렇다고 그런 시선들 자체가 불편하지는 않아요.

 

시라는 문학 장르에 대한 고정관념 때문에 그런 것 아닐까요?


맞아요. 항상 제가 갖고 있는 생각이에요. 독자들한테는 시인이라고 하는 것도 업데이트가 안 되고 있는 셈이죠. 그 자체는 크게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기도 한데, 시 쓰는 사람들에게 벗어나기 어려운 지점이 되는 것 같기는 해요. 생활적인 면에서 이야기하자면 ‘시인이 왜 그런 일을 해?’라는 태도들은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하죠. 다들 먹고 살기 힘든 와중에도 열심히 입에 풀칠하면서 시를 쓰고 사는 거니까, 시인처럼만 살려고 하면 굶어 죽거든요. 그 외에도 시란 이런 것이다, 이런 시가 좋은 것이다, 라는 생각들은 시 자체 내부에서도 업데이트가 안 된 것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시다움, 시적인 것이라고 하는 게 생각보다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런 고정관념들의 자리는 저한테 조금 불편하다고 느껴지는 지점들인 것 같아요.

 

지금 시대의 사람들은 어떤 시를 ‘좋은 시’라고 생각할까요?


사람들은 어떤 시도 좋은 시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고요. 시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기 때문에 정보가 업데이트되지 않는 것이기도 하고, 관심이 없기 때문에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들만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해요. 이런 식으로 말하면 너무 젠체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으니까 조심스러운데, 어떤 것이 좋은 시라는 생각을 딱히 갖고 있지 않으니까 옛날의 생각을 그대로 유지하게 되는 것 아닌가 싶어요. 몇 년 전부터 하상욱 시인의 작품이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데, 하상욱 시인은 지금 이 시대가 요구하는 모든 것들이 아주 적절하게 배합된 새로운 양식을 발명해냈다고 생각해요. 짧고, 분명하고, 모두가 이해할 수 있고, 잠깐 재밌을 수 있고, 공감을 할 수 있어요. ‘좋아요’를 누르기 좋은 건데, 그게 지금 시대가 원하는 텍스트의 형태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보다 조금 더 불편해지고 복잡해지면 그때부터는 여러 종류의 삐걱댐이 발생하게 되는 것 같아요.

 

시인에게 있어 반가운 현상만은 아닐 것 같습니다.


쓰는 사람으로서는 ‘좋아요’를 누를 수 있는 시를 쓰는 것만을 욕망하진 않는 것 같아요. 저한테 있어서도 독서, 시 쓰기, 시 읽기의 즐거움은 충돌에서 오거든요. 텍스트와 제가 부딪치게 돼서 어긋나는 불편한 순간들, 그 충돌들이 문학을 시작한 이유이고 즐거움을 느끼는 이유예요. 그런데 이제는 그런 식의 불편함을 만들어내는 걸 원치 않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어떤 괴리가 발생한다고 생각되기도 하고요. 그건 저와 독자의 괴리라기보다는, 현대 예술로서 시와 독자들이 기대하는 시 사이의 괴리인 것 같아요. 시뿐만 아니라 모든 고도화된 예술 양식들이 마찬가지인데, 그건 그것대로 지켜가는 동시에 다시 맞닿을 수 있는 면을 고민하는 방향으로 형태를 바꿔가고 있는 것 아닌가 싶어요.

 

“요즘 부쩍 시의 독자가 늘어난 게 느껴진다. 특히 젊은 사람들이 시를 읽기 시작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요. SNS에서 많이 체감하시나요?


네, 비교적 그런 것 같아요. 그렇다고 해서 절대적인 수치가 늘어난 건 아니에요. 일단 독서 시장이 10년 전과 비교하면 거의 반 토막이 나버린 상황이나 다름없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시가 갖고 있는 위상이 변했다고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이제는 한 편의 시가 온전히 소비된다기보다 한 구절이 떼어져서 소비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렇게 되면 어떤 충돌도 가능한 배제되고, 마음을 울릴 수 있는 한 마디의 문장에 집중하게 되죠. 그런 식으로 20대를 중심으로 젊은 층에게 조금 더 쉽게 퍼지게 되고 다가갈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그 자체에 대해서는 흥미로우면서 고마운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점차 시인들을 알아가게 되고 시집도 읽게 되니까요.

 

이런 시대에 젊은 시인으로 살아간다는 건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손해 보는 장사인 것 같은데요(웃음). 20대 초중반에 같이 데뷔한 친구들이 있는데, 막 데뷔했을 때는 시에 대한 이야기도 더 많이 편하게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20대 후반에 접어드니까 확실히 먹고 사는 이야기를 많이 하게 돼요. 시인이 아닌 누구를 만나더라도 크게 다르진 않은데, 너무 갑갑한 거죠. 시를 아무리 열심히 쓰고, 잘 쓰고, 모두에게 사랑 받는 시인이 돼도 먹고 사는 게 해결되지는 않아요. 그러니까 젊은 시인으로 이 시대를 살려면 자력구제가 급선무인 것 같아요. 이 또한 문학만 그런 건 아니죠. 거의 모든 현대 예술들은 그런 식이니까요. 그런데 먹고 살기 힘들다고 징징대도 결국 제가 선택한 거잖아요. 다른 일을 하면 돈을 더 벌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시를 쓰는 건, 저에게 있어서 돈을 많이 버는 일이 중요한 건 아니라는 거겠죠. 시를 쓰는 게 즐겁고, 제 시를 보고 사람들이 좋다고 말해주는 것도 즐겁기 때문에 시를 쓰고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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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어야 할 곳은 생경함과 놀라움의 자리


이번 시집에서 「너는 이제 시인처럼 보인다」는 작품을 읽으면서 이런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어떤 변화를 겪으면 ‘이제 좀 시인 같다’는 말을 들을 수 있는 걸까요?


그런 통과점은 딱히 없는 것 같고요. 스스로가 시인이라고 생각하는 데에 어색함을 느끼지 않게 되는 순간이 오는 것 같기는 해요. 계속 시를 쓰고 그걸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과정들 자체가 시인임을 자각하고 내재화하는 과정인 것 같은데요. 「너는 이제 시인처럼 보인다」는 시인이라고 하는 자리를 빨리 도망가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쓴 거예요. 시와 시인에 대해 갖고 있는 태도나 관념에서 빨리 도망가는 게 지금 해야 될 일이겠다고 생각됐거든요. 첫 시집을 내고서 반성문 내지 포부 밝히듯이 쓴 시들이 몇 편 있는데 「너는 이제 시인처럼 보인다」도 그 중 하나였던 것 같아요. 시인을 그만두겠다거나 시인처럼 살지 않겠다는 게 아니라, 시라고 하는 것 혹은 시적인 것에 대한 고정된 관념을 무시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출발하게 된 거예요.

 

매일 커피숍에서 밤새워 시를 쓰신다고 들었습니다. 이제는 그곳도 편해져서 집중이 잘 안 된다고 하셨는데요. 익숙하지 않은 공간에서 시를 쓰시는 이유가 있나요?


편하다는 게 내 방 같다는 이야기거든요. 방에 있으면 늘어지게 되지, 허리를 세우게 되지는 않잖아요. 제가 원래 산만하고 오래 집중을 잘 못하는 편인데, 방 안에서는 제대로 집중을 할 수가 없으니까 일의 효율이 떨어지거든요. 약간 어색하고 불편한 쪽이 머리가 굴러가기가 좋아요. 저는 도서관처럼 완전 조용한 곳에서는 집중이 전혀 안 되고요. 약간 시끄러운 곳이 좋아서 카페를 찾아간 것도 있어요. 어쨌든 카페는 내 방이 아니니까 누울 수 없잖아요(웃음). 누울 수 없다는 게 너무 편한 것 같아요. 조금 긴장을 만들어야 집중할 수 있으니까요. 저는 편하면 일을 잘 못하는 것 같아요.

 

“모든 것이 생경하고 새삼스러운 태도가 시를 쓰기 좋은 태도”라고 말씀하신 것과 같은 맥락인가요?


그건 조금 다르다고 할 수 있는 것 같은데요. 공감을 한다는 건 ‘난 이걸 알아’라는 태도잖아요. 그러면 생각은 거기에서 멈춰요. 어떤 생각을 새롭게 만들어내지 못하거든요. 그런 점에서 시의 자리는 공감의 반대편에 있다고 생각해요. 끊임없이 생각을 만들어내려면 ‘이게 내가 알던 건가? 내가 알던 게 이게 맞나?’라고 생각하게 되는 생경함의 자리, 놀라움의 자리로 가야 되는 것 같아요. 그것이 좋은 지점이라는 생각은 굳어져 온지 오래돼서, 한편으로는 어떤 식으로든 거기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도 들기는 하는데요. 저 역시 그런 이상함과 생경함에 끌려서 시를 시작하게 됐으니까, 끊임없이 공감할 수 없는 것들을 만들어내는 게 제가 시를 만들어내는 방식인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쓴 시가 ‘이거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라고 생각되는 건 아니기도 해요(웃음).

 

『희지의 세계』는 이자혜 작가의 만화 『미지의 세계』에서 제목을 빌려왔다고 밝히셨는데요. 두 작품 사이에는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이자혜 작가님 팬인데요. 『미지의 세계』라는 만화와 (표제작) 「희지의 세계」라는 시가 관계 있는 건 아니고요. 『미지의 세계』라는 제목이 좋아서 갖다 쓴 건데, 제가 착각을 해서 미지가 희지로 바뀐 거예요. 그런데 저는 그게 오히려 제 시랑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생각보다 미지의 자리가 폭이 넓지 않은 것 같더라고요. 미지는 무한한 거지만 결국에는 하나인 거나 다름없거든요. 그게 희지로 바뀌어버리는 순간 오히려 더 많은 뜻이 생겨나는 것 같은 거예요. 왜냐하면 희지라는 말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훨씬 더 많은 폭을 갖게 되잖아요. 그 지점이 너무 재밌고 좋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모르는 것보다 착각을 하는 게 더 좋고, 착각을 하는 게 새로운 것들을 더 많이 만들어낼 수 있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가장 좋아하는 시인은 누구인가요?


이승훈 시인을 제일 좋아해요. 좋아하는 시인에 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이승훈 시인 이야기를 꼭 해요. 이미 세상을 떠난 시인들 중에 한 사람을 꼽으라면 어려울 것 같은데, 살아있는 시인 중에 제일 좋아하는 시인은 이승훈 시인이에요. 그 분이 만들어 놓은 아주 확고하면서 아주 불분명한 지점을 너무 좋아하고요. 진짜 사랑하는 시인이에요.

처음으로 읽은 시집은 무엇이었나요?


제일 처음 읽은 시집은 기억이 잘 안 나고요. 저는 문창과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시를 읽었거든요. 그 전까지는 소설만 읽었고 원래 소설을 쓰려고 했었으니까요. 시를 써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시집을 읽었던 건 아니고, 문창과에 들어왔으니까 소설을 쓰더라도 일단 시를 좀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본 것 같아요. 도서관에서 종종 시집 빌려서 보고 했어요. 제가 처음으로 읽고 나서 ‘이거 좋다’라고 느꼈던 시집은 신대철 선생님의 『무인도를 위하여』였어요. 너무 아름답고 탁월한 시집이에요. 그걸 보면서 ‘시가 이렇게 좋은 느낌이 있는 거구나’라는 걸 처음으로 느꼈어요. 그 시집이 좋았기 때문에 이후로 조금씩 더 읽어나가면서 눈이 넓어지게 됐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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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이 시키는 대로 쓰면 자위하는 작품만 나올 뿐


시인에게 있어 가장 두려운 일은 감성이 무뎌지는 것 아닐까 싶은데요. 어떠신가요?


감성이 무뎌지는 것에 대한 걱정은 없어요. 감성을 가진 말들은 그 사람의 내면에서 나오는 거지만 동시에 머리를 쓰는 일이에요. 사람들을 기분 좋게 만드는 글을 쓰는 건 지극히 머리를 가동시키는 일이에요. 가슴으로 쓰면 자기만 기쁜 글이 나와요. 제 시집에도 말랑말랑한 부분들이 많이 있는데, 그건 당연히 머리를 쓰는 거예요. 저만 이렇게 생각하는 건 아닐 것 같아요. 가슴이 시키는 대로 쓰면 나 혼자만 기쁜, 자위하는 작품이 나올 수밖에 없어요. 제 생각에는 감성으로만 글을 쓰는 건 미숙한 것 같고요. 프로는 머리로 하는 것 같아요.

 

작가 지망생들에게 지표가 될 법한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그 분들도 알고 있을 걸요. 알아도 머리로 어떻게 써야 할지 생각을 못하거나, 자기 진정성이 포기가 잘 안 되는 걸 거예요.

 

혹자는 이렇게 말할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의 욕구가 아닌 나의 감성에 충실하기 위해서 예술을 선택한 거라고요.


그러면 일기를 많이 쓰시면 될 것 같아요. 뭔가를 만들어내는 건, 어쨌든 소통 행위예요. 다른 사람들 신경 안 쓰고 나만 만족하는 거라면 소통이 아니고 일기죠. 심지어는 일기도 나하고 하는 소통이잖아요. 그런 식으로 작업을 해서 잘 되는 사람들은 그것이 가능한 형태를 만들어내는 운 좋은 사람이거나, 혹은 그런 척을 하고 있거나 둘 중 하나일 거예요. 자기가 뭘 하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거나 연기를 잘 하는 사람이죠.

 

시를 쓸 때 독자에게 전할 메시지를 중요하게 생각하시나요?


메시지를 던지는 건 정말 의미가 없어요. 아주 일시적이고, 심지어는 내가 무슨 메시지를 갖고 있었는지 나도 잘 몰라요. 그런 건 다 착각이에요. 내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고른 말이, 오히려 그 말을 선택하는 순간 훼손돼요. 손상되고 아무것도 아닌 덜 떨어진 종류의 말로 메시지가 갈 수밖에 없어요. 말하자면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이것이오’ 하고 짚어서 전달하는 게 아니고, 그물을 더 넓게 펼쳐서 던지는 거예요. 그러는 편이 원래 내가 갖고 있던 문제의식, 생각, 진정성을 덜 훼손시켜요. 창작이란 깎아나가는 작업이기 때문에 훼손될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러면 메시지를 깎지 말고 구조를 깎아야 되는 거예요. 구조가 알아서 메시지를 더 크게 만들거나, 더 다양하게 만들거나, 더 힘 있는 형태로 만들어줄 테니까요.

 

구조를 깎는다고 하셨는데요. 그런 이유에서 다른 장르의 문학이 아닌 시를 선택하신 건가요? 시는 간결한 구조로 많은 여백을 확보하잖아요.


어떤 장르든 구조를 통해서 확장되지 않은 여백을 만들어 두는 건 마찬가지인 것 같고요. 다만 시는 조금 다른 방식을 갖고 있는 게, 정보를 적게 주는 것이 곧 정보를 많이 주는 일이 돼요. 디테일이 길게 늘어날수록 그물이 아주 작아지는 거죠. 언어는 애매한 거잖아요. 내가 기쁘다고 말을 해도 상대는 어느 정도의 기쁨인지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처럼요. 그런데 불명확한 거라고 해서 가능한 수사를 모두 동원해서 묘사해 버리면, 오히려 더 전달이 안 돼요. 언어를 활용하는 데 있어서 정말 이상한 지점인데요. 소설은 더 큰 구조 단위로 소통이 오고 가는 거니까 그런 면이 조금 덜해요. 그런데 시가 활용하는 언어는 다른 매체들보다 조금 더 애매한 측면이 있죠. 불확정적이고 임의적인 매체여서, 말을 많이 하면 손해를 보게 되는 것 같아요. 꼭 그래서 시를 썼다기보다는 시를 쓰려고 하다 보니까 그런 언어의 측면들을 더 의식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정보를 많이 주면 오히려 정보가 적게 전달되는 미묘한 장르라는 생각이 들어요. 

 

시가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 중에 하나는, 작가의 생각을 읽으려 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희지의 세계』를 이해하는 데 단초가 될 만한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저는 이미 충분히 드린 것 같고요. 시를 읽을 때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고 생각되는 건, 시에서 활용된 언어들이 어색한 게 이유일 수 있어요. 언어의 층위나 밀도 같은 게 다르잖아요. 그 층위에 접촉할 수 있으려면 어느 정도 훈련이 되어야 하는 것 같아요. 클래식을 듣거나 미술 작품을 볼 때에도 나름의 규칙이나 맥락들을 알아야 더 많은 걸 볼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죠. 독자들은 뜻을 알려고 하지 말고 그냥 즐겨도 될 것 같아요. 보이는 말들만으로도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을 테니까요. 더 많은 걸 알고 싶으면 그걸 받아들이는 화법과 독법을 공부하면 되죠. 시험공부 하듯이 공부하는 게 아니고요. 그냥 많이 보면 어느 순간 읽고 만들어지는 법들이 머릿속에 맞춰져서 경향성 같은 게 생기는 거예요.

 

“술술 읽히되 뭔지는 금방 안 들키는 시를 쓰고 싶었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제가 시를 쓸 때 가장 먼저 생각하는 건 읽었을 때 바로 쓱 읽혀야 된다는 거예요. 시의 층위가 미로라고 생각하면 출구가 있어 보이고, 암호가 있어 보이면 암호를 푸는 순간 다 알았다고 생각하게 되거든요. 그 순간 생각이 멈춰요. 그래서 저는 한 번에 읽히는 시를 쓰는 게 좋아요. 시가 가진 방향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게 되니까요. 텍스트 자체는 쉽게 읽히되 그것이 무엇인지는 들키지 않게 만들고 싶은 거죠. 그게 제가 시를 쓰면서 갖고 있는 태도 중에 하나인 것 같아요.

 

아이러니하게도, 작가님께서 가장 들키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을 독자들은 가장 알고 싶어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웃음)


그렇다고 완전히 미궁에 빠뜨리는 건 아니고요. 결국에는 말과 생각들이 모여 있는 거라서 ‘이런 경향의 이야기구나’라는 건 충분히 받아들이실 수 있을 것 같아요. 거기까지면 됐죠(웃음). 영원히 풀리지 않는 비밀을 두겠다는 게 아니라, 이렇게도 읽을 수 있지만 다르게도 읽을 수 있다는 태도에 훨씬 가깝거든요. 제가 생각하기에 답이 없다는 건, 처음에는 이것이 답이었다가 다시 보면 다른 게 답이 되는 거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확정 짓기 어려운 상태, 애매한 상태에 도달하는 게 시가 오래 사는 길이라고 생각하기도 해요. 어느 방향이어도 제가 생각한 큰 방향성 위에 같이 놓여있는 것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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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지의 세계황인찬 저 | 민음사
이번 시집 『희지의 세계』를 통해 시인은, 한국문학사와의 대결에 돌입한다. 그것은 ‘매뉴얼화’된 전통과의 다툼이며, 전통에 편입하려는 본인과의 사투이기도 하다. 주체가 퇴조한 동시대 젊은 시인의 움직임 중에서 황인찬의 시는 돋보이는 사유와 감각을 보여 준다. 치밀한 싸움을 멈추지 않는 젊은 시인 황인찬이 구축한 『희지의 세계』로 독자 여러분을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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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특집] 김소연 “마음껏 아슬아슬하기 위해 시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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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시집이 나온 것도 아닌데, 김소연 시인에게 인터뷰를 청했다. 제목은 ‘시인 특집’. 시인으로 사는 일상이 궁금하다고 묻자, 시인은 흔쾌히 수락을 하며 “시인을 돌봐주셔서 무엇보다 기쁘고요.”라고 말했다. 돌봐준다, 돌봐준다?! ‘돌보다’의 뜻을 곰곰이 살피게 됐다. 우리는 분명, 처절했을 때 한 편의 시를 읽고 상처에 연고를 바른 기억이 있지 않은가. 시인으로부터 돌봄을 받았던 우리가 아니었나? 외지는 못해도 한 편의 시에 대한 빚이 있지 않을까. 상투성이 없는 시인에게 상투적인 질문을 해보고 싶었다. 먼저 안부를 물었다.

 

1993년 계간 <현대시사상>을 통해 등단한 김소연 시인은 1996년 첫 시집 『극에 달하다』를 펴낸 후, 2006년 『빛들의 피곤이 밤을 끌어당긴다』, 2009년 『눈물이라는 뼈』, 2013년 『수학자의 아침』등 세 권의 시집을 더했다. 최근에는 에세이집 『연애소설이 필요한 시간』의 공저자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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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감응하고 변할 때마다 쓰는 시도 변했으면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친구 시인 유희경, 송승언, 신해욱, 하재연이랑 디자이너 김재연 씨와 함께 독립출판으로 잡지를 만들고 있어요. 지금 제작 단계에 있어요. 12월 말에 나올 예정인데, 소셜펀딩 사이트 ‘텀블벅’이랑 SNS에서 홍보를 하기 시작했어요. 재밌게 하고 있어요. 2년동안 준비를 했는데, 텀블벅에 내건 첫 문장이 ‘우리는 1년동안 회의만 했다’예요. 회의를 오래 해서 지난했기도 했지만, 모두의 의견을 반영하고 세세하게 의논하면서 합의를 보는 과정들이 좋았어요. 굳이 우리가 새로운 잡지를 만드는 이유가 무엇인지부터 찬찬히 헤아려나갔어요. 우리의 작품들을 받아줄 지면이 없는 것도 아니고, 자주 마감에 허덕이기까지 하는 가운데에서도 우리만의 매체가 필요했어요. 왜지? 하고 계속 질문을 해왔던 것 같아요. 그러니 회의만 1년 넘게 하다가 이제 원고를 모두 취합했고 어떤 잡지가 나올지 가늠할 수 있게 됐어요. 우리는 '눈치우기'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하기로 했고, 창간호 제목은 『조립형 text』예요. 서로의 텍스트에 마음껏 영향을 받아서 텍스트에 꼬리를 무는 내용들로 채워졌어요. 앞으로 원하는 글을 원하는 때에 원하는 분량만큼 마음껏 써나갈 생각이에요.

 

독립출판이 지금 붐이라고 하는데요. 독립출판물을 파는 작은 책방이나 카페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어요.


이렇게 많아질 줄은 몰랐어요. 우리가 회의를 시작한 2년 전까지만 해도 붐이라는 게 올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고 방법이 많이 보이는 시기이긴 했어요. 시집을 비롯해서 자기 책을 꾸준히 출간하고 있다지만, 완전히 자유롭지 않거든요. 가령 시집을 낼 때도 대개 출판사의 시인선에 포함돼서 나오잖아요. ‘여기에 사진을 쓰겠다, 테두리는 안 하고 판형은 다르게 하겠다’ 등의 의견을 시인이 제시하게 되더라도 관철되기가 어려워요. 출판사의 시리즈 형식에 맞춰 내는 게 대부분인데, 내용에서부터 책이라는 물성에 이르기까지, 자발적이고도 자유로운 작업을 해보고 싶어요.

 

<한겨레>에 ‘김소연의 볼록렌즈’를 연재 중이신데, 글자수가 딱 떨어져야 하는 짧은 칼럼이라 쓰기 어려우실 것 같아요.


725자를 맞춰야 해서, 글 쓰는 시간보다 글자수를 맞추는 데에 시간이 더 걸려요. 이 칼럼은 아주 작은 이야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구상하고 시작했어요. 생활과 밀접한 이야기, 아주 당연하게 여겨오던 이야기를 적되 뒤통수가 켕기는 이야기를 챙겨보고 싶었어요. 제 의견을 보태는 건 최대한 절제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나한테 이런 일이 있었는데, 별 것 아닌 일이긴 한데, 어딘가 이상하다 싶은 것들을 보여주기만 하려 해요. 그게 어디가 어떻게 이상한지를 신문 독자가 생각할 수 있게 이야기를 남겨두고 싶어요.

 

최근 『연애소설이 필요한 시간』에 필자로도 참여하셨어요. ‘연애’를 주제로 한 에세이인데 재밌게 읽었습니다.


서평가 금정연 씨가 제안을 해줘서 쓰게 됐는데, 재밌는 기획이라고 생각했어요. 흔쾌히 썼어요.

 

출판계의 불황은 차치하더라도 시집은 다른 분야에 비해 소외 받는다고 생각했는데, 최근 몇 권의 시집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화제가 됐어요. 생각보다 많이 팔리고 있는 책이 ‘시집’이라는 기사도 보았는데요.

 

출판계와 독자들이 시를 너무 소외시키고 있다는 의견은 1990년대부터 쭉 있었던 것 같아요. 저는 그때부터 지금껏  “그렇지 않을 거야”라고 주장하는 쪽이에요. 우리나라에선 시집은 너무 많이 출판되고 있고 시인도 너무 많아요. 그 많은 시인의 그 많은 시집들의 총량은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닐 거예요. 몇몇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누구의 어느 시집에 편중되지도 않고요. 다양성 같은 게 살아 있는 편이어서 제법 건강한 생태계라 생각해왔어요. 집중적으로 어느 시인의 시집이 많이 팔리는 현상 자체가 부재했기 때문에 ‘안 팔리네, 소외됐네’ 그런 이야기가 나왔던 게 아닐까요. 지금은 출판  불황이라잖아요. 늘 그만큼 팔렸고 지금도 그만큼 팔리고 있는 것인데, 다른 출판물들이 워낙 소비되지 않으니까 시집이 상대적으로 팔리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싶어요. 그런데 만약에 시집이 정말로 부쩍 잘 팔리는 것이라면, 혹은 그만큼 시가 발전하고 있는 것이라면, 우리 시대의 나쁜 징후를 반영한 거 아닐까요. 억압이 심한 나라에서 언제나 위대한 시가 탄생해왔듯이요.

 

시인은 소설가와는 또 다른 정체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시인으로부터 “낯선 자리에서 시인이라고 소개 받을 때의 당혹스러움’에 대해 들은 적이 있는데요. 작가님의 경우는 어떠신가요?


어디를 가더라도 웬만하면 시인이라는 걸 굳이 말하지 않아요. 머리가 짧다 보니까 한 달에 한 번 정도 미용실에 가는데, 머리를 잘라주시는 분이 직업을 물어보실 때가 많아요. 사람마다의 헤어 스타일을 추구하기 위해서죠. 옛날에는 순진하게 문학을 한다고 답했더니, 지나치게 위엄 있게 잘라주더라고요. (웃음) 그 다음부터는 발레리나라고 하기도 하고 포토그래퍼라고도 말해요. 여행을 가서 게스트하우스 같은 곳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도 시를 쓴다고는 말하지 않아요. 거짓말을 많이 하고 다녔죠. 제가 시인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는 사람들과 만날 때마다 조금씩 느껴지는 것은, 괴짜 취급을 한다는 거예요. 저는 이 괴짜 취급이 편한 면도 있어요. 시인으로 20년 넘게 살아오면서 시 쓴답시고 주변사람들에게 허용 받은 게 되게 많았던 것 같거든요. 그들이 관용을 좀더 열어둔 채 저를 대해주었지 않았나 생각해요. 어떤 룰을 안 지키고 조금 제멋대로여도, 자연스레 안착되지 못하고 다소 이상하게 굴어도, ‘시인이니까’하고 받아들여줄 때가 있었어요. 그런 종류의 혜택을 많이 누리며 살았다고 생각해요.

 

불편함이 더 많을 거라 생각했는데요.


부모님은 늘 저를 기다리고 계세요. 제가 앞으로 뭘 하며 살아갈지 아직도 궁금해 하세요. 저는 여태껏처럼 제가 바라는 시를 계속 쓰고 살면 된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아직도 입시 준비생, 취업 준비생을 대하듯이 ‘우리 딸이 언젠가 뭔가는 하겠지’하고 기다리세요. (웃음)

 

1993년에 등단하셨으니 벌써 20년이 훌쩍 넘었습니다. 그간 시를 대하는 태도와 마음에도 변화가 있었을 텐데요.


내 얘기로 시작하여 내 얘기가 아닌 것들로 흘러가고 있어요. 내가 누구인지 점점 더 잊어가고 있어요. 자아 자체를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고요. 텅 빈 인간이 되고 싶어요. 투명해지는 인간. 물을 닮은 액체 같은 인간. 이 세상에 내가 만나는 접촉면들에 어떤 식으로든 물들고, 더 그 접촉면을 젖게 만들고 싶어요. 내가 감응하고 변할 때마다 내가 쓰는 시가 변했으면 해요. 물론 이 세상도 변했으면 해요. 처음 시를 쓸 때는 제가 쓰는 언어를 잘 다루고 싶었다면, 지금은 언어 자체에게 자리를 더 많이 내어주려고 하는 것 같고요.

 

평생 시를 쓰고 살면 어떻게 될까요? 미래에 어떤 시인이 되어 있을까요?


맨 처음 시를 쓰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내가 이걸 평생 할 수 있는 직업인가?’ 이런 계산은 아예 안 했어요. 헤아림 자체를 아예 할 줄 모르는 인간이라서 그랬을 수도 있어요. 5년 정도 시를 쓰다가 시집 한 권이 나오면 요절할 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어요. 지금도 미래에 대한 생각은 안 해요. 할 겨를이 없기도 하고요. 다른 직업을 가진 고등학교 동창생을 만나면, “나이가 60세가 되면 뭘 하고 살 거다” 같은 이야기를 벌써부터 해요. “너는?”하고 나를 쳐다봐요. (웃음) 그런데 나는 그런 생각이 불필요해 보여요. 지금 당장 내가 감응한 것들을 시에 어떻게 쓸지, 그런 생각들을 하느라 정신을 못 차리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주변에서 나를 위태롭게 생각한다는 게 느껴져요. 우리가 미래에 뭘 하겠다는 그림을 근사하게 그린다고 해서 그것에 가 닿을 수 있을까? 어쩌면 가 닿을 수도 있을 거예요. 아마도 형식적으로는요. 그 내용까지 꿈꾸던 것일 리는 없어요. 미리 절망하고 있는 편이기도 한데요. 미래에 대한 그림 자체를 그리지 않아요. 미래라는 시간을 생각해야 할 사람은 그 미래라는 시간을 살아갈 미래의 나예요. 지금의 나는 아니에요. 오늘만 내가 쓰고 싶은 시를 쓸 수 있다면 그게 다예요.

 

언젠가 시에 대해 ‘비밀을 받아주는 장소’라고 표현하신 적이 있어요.


한 문예지에서 ‘내 시의 비밀’이라는 열쇳말로 시인들이 시론을 연재했어요. “나의 시에는 비밀이 없는데, 왜냐면 내 시가 내 비밀을 다 받아주는 장소이기 때문”이라고 썼어요. 현실에서 차마 말하지 못한 것들, 말이 되지 않는 것들, 대화에서 누락된 것들, 말하면 안 되는 것들을 시에다 말한다고 썼어요. 말해도 되나 싶은 것들을 시에다 제대로 적어두고 싶어요. 말할 수 없는 것들을 선연하게 보여주고 싶어요. 시인은 시 속에서 얼마든지 아슬아슬할 수 있는 존재예요. 그 순간이 가장 특별한 순간이에요. 마음껏 아슬아슬하기 위해 시를 쓰는 것 같아요.

 

최근 SNS에서 시를 표방한 짧은 글이 많이 소비되면서, 인기를 얻은 작가들이 많습니다. 단행본으로도 출간됐고 반응도 썩 좋습니다. 시인은 이 같은 현상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큰 관심은 없어요. 하지만 어떤 시인이 “그것도 시야? 대중적으로 너무 소비되는 시는 시가 아니야”라고 비판적으로만 본다면 “시인이 쓰는 것만 꼭 시라고 할 수 있나?”라고 반문해보고 싶긴 해요. 사실 노래라는 것도 아무나 불러도 되죠. 부르고 싶다면 마음껏 불러도 되죠. 시도 그렇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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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황스럽고 부끄럽고 이상해요


문학과지성 437번째 시인선 『수학자의 아침』은 2013년 11월에 출간됐어요. 딱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는데요. 작가의 말에 남긴 “애도를 멎게 하는 자장가가 되고 싶다”는 글이 기억에 남습니다. 49편의 시를 쓰면서 가졌던 마음이실 텐데요. 이 문장을 썼을 때의 심정은 어땠나요?


그 시집은 유난히 다양한 타자들이 등장해요. 제가 만났던 사람들이었어요. 그들이 나에게 끼친 영향들을 시로 쓰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유독 귀가 기울여지고 시로 쓰고 싶은 이야기들은 신음이거나 절규, 비명이거나 기도 같은 것과 유사한 데가 있었어요. 횡설수설과 울먹임 사이에 존재하는 말들이었는데, 시집 원고를 정리하면서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싶었어요. 소용이 없어서 다행일 수 있겠다고 생각하기도 했고요. 지상의 모든 지친 말들이 잠시 멈추고 잠시 휘발되는 자리에 이 시집이 조용히 놓여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자장가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된 것 같아요.

 

예전에는 많은 사람들이 시를 외우고, 누군가에게 적어서 선물로 주곤 했어요. 왜 그랬을까요?


옛날 시들은 저절로 외워졌어요. 시의 문장에 박자가 딱딱 맞았으니까요. 지금의 시들은 랩 같아요. 외울 이유도 없고 외워지지도 않겠죠. 선물용이라기보다는 흉기에 가까워진 것 같기도 하고요. 작년 이맘때 아기를 낳은 지인으로부터 축하 선물로 시집을 달라는 요청을 받았어요. 고르다 고르다 결국 다른 책을 줬어요.

 

“아무도 내게 시를 써보라고 권하지 않았기 때문에 시를 썼다”고 말하신 적이 있어요. 누가 쓰라고 했으면 시를 안 썼을까요?


안 썼을 것 같아요. (웃음) 어렸을 때에 글쓰기에 재주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재주가 있었는지 없었는지를 느껴볼 만한 기회도 별로 없었어요. 제가 어릴 때 자주 들었던 이야기는 “피아노를 한 번 해봐라, 키가 크니까 운동선수를 해봐라” 같은 권유들이었어요. 아무도 시인이 되라고 한 적은 없었어요. 시인이 어떤 삶을 사는 길인지 관심조차 없었어요. 그래서 저에겐 가장 식상하지 않은 세계였을지도 모르겠어요. 너무 하고 싶은 것도 누가 시켜서 의무가 되고 나면 갑자기 하기가 싫어지잖아요. 신바람이 식어버리죠. 그런 가벼운 마음으로 표현한 말이었어요.

 

평소 시인들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오래 전에 내가 쓴 시를 생각지도 못했던 낯선 공간에서 우연히 발견하게 될 때, 어떤 기분이 드시나요?


늘 당황해요. 언젠가 지하철역에 제 시가 붙어있는 걸 본 적이 있어요. 시를 전혀 좋아하지 않았던 어릴 때 친구가 “네 시가 여기 붙어 있다”면서 논현역인가에 게재된 내 시를 사진으로 찍어서 메시지로 보내줬어요. 당황했어요. 작년에는 세월호로 인해 숨진 단원고 박예슬 학생을 위해 마련된 전시를 보러 서촌 갤러리에 간 적이 있는데요. 시 한 편이 프린트돼서 작품 아래에 붙어 있었어요. 관람객 중 누가 붙여놓고 간 듯했는데, ‘시가 있네’하고 보고 있다가, 내 시라서 깜짝 놀랐어요. 당황스럽고 이상하고 부끄러웠어요. 내가 쓴 시가 맞지만 내가 쓴 적 없는 시를 보는 것 같았어요.
 

잘 지내요,
그래서 슬픔이 말라가요

 

내가 하는 말을
나 혼자 듣고 지냅니다
아 좋다, 같은 말을 내가 하고
나 혼자 듣습니다

 

내일이 문 바깥에 도착한 지 오래되었어요
그늘에 앉아 긴 혀를 빼물고 하루를 보내는 개처럼
내일의 냄새를 모르는 척합니다

 

잘 지내는 걸까 궁금한 사람 하나 없이
내일의 날씨를 염려한 적도 없이

 

오후 내내 쌓아둔 모래성이
파도에 서서히 붕괴되는 걸 바라보았고
허리가 굽은 노인이 아코디언을 켜는 걸 한참 들었어요

 

죽음을 기다리며 풀밭에 앉아 있는 나비에게
빠삐용, 이라고 혼잣말을 하는 남자애를 보았어요

 

꿈속에선 자꾸
어린 내가 죄를 짓는답니다
잠에서 깨어난 아침마다
검은 연민이 몸을 뒤척여 죄를 통과합니다
바람이 통과하는 빨래들처럼
슬픔이 말라갑니다

 

잘 지내냐는 안부는 안 듣고 싶어요
안부가 슬픔을 깨울 테니까요
슬픔은 또다시 나를 살아 있게 할 테니까요

 

검게 익은 자두를 베어 물 때
손목을 타고 다디단 잔물이 흘러내릴 때
아 맛있다, 라고 내가 말하고
나 혼자 들어요.

 

('박예슬 전시회'에 누군가가 붙여둔 시, 김소연의 시집 『수학자의 아침』에 실린 「그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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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쓰고 싶다는 사람, 안 말릴 것 같아요


“시를 잘 모르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만, 시를 읽고서 ‘이 사람이 거짓말을 하고 있네’라는 생각을 한 적은 없습니다. 다소 과한 표현일지 모르지만 처절함이랄까요? 시인의 목숨이 느껴질 때가 있어요. 시는 거짓말로 쓸 수 없으니까요.


사람들은 영혼을 장롱 속에 처박아 놓고 살아요. 눈에 보이는 너무 많은 것들을 돌보느라 정신 없이 살아가요. 누구나 눈에 보이는 성과를 획득하고 싶어하고 눈에 보이는 성공을 욕망해요. 그러나 그런 것들을 거의 다 포기하고 영혼 하나 건사하고 사는 사람인 것 같아요. 시를 읽는다는 것은 영혼이 말하는 걸 영혼으로만 들어야 하는 작업에 가깝죠. 그래서 다는 몰라도 뭔가를 전달받겠죠.

 

시를 배우고 싶어하는 분들의 공통점이 있을까요?


20대 젊은 친구들을 보면, 영혼이 너무 반짝 반짝해서, 시가 아니면 이 사람을 이 세상에서 살게 할 힘이 없을 것 같을 때가 있어요. 30, 40대 분들은 대개 아주 훌륭하게 살았는데, 영혼을 너무 돌보지 않아서 그 영혼을 장롱에서 꺼내지 않으면 더 이상 못 살 것 같아서 찾아오신 것 같고요.

 

부모님께서는 아직도 ‘내 딸이 언젠가 뭔가를 하겠지’라고 기대하고 계신다고 하셨잖아요. 만약 정말 아끼는 누군가가 시인이 되고 싶다고 하면, 말리실 건가요?


안 말릴 것 같아요. 환영할 수 있어요.

 

산문집 『마음사전』, 『시옷의 세계』등이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요. 나는 시인인데 산문집이 더 인기가 있을 때, 속상하거나 서운한 마음은 없나요? 소설가들도 유독 에세이가 더 잘 팔리고 사랑을 받는 경우가 있는데요.


소설가 같은 경우는 둘 다 산문이니까 뭐가 더 사랑을 받고 상업적으로 반응이 있을 때, 소설과 산문이 비교 대상이 될 수는 있겠어요. 그렇지만 저는 시와 산문이니, 경우가 좀 다르겠죠. 내 산문집을 좋아해주는 독자들은 대부분 내 시집도 읽고 산문집도 읽은 게 아니라, 산문집만 읽은 경우예요. “둘 다 읽었는데, 시집은 후진데 산문집은 좋더라”라고 여길 리가 없어요. 그럴 리는 없어요. (웃음)

 

대중적으로 많이 읽히는 시와 시인에게 더 각별한 시, 이 둘 사이의 거리도 존재하겠지요?


독자들이 어느 시를 좋아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고, 시인이 자신의 시 중에 어느 시를 각별해하는 것도 시인의 몫이죠. 사람들이 좋아하는 시는 사람들의 것이 되는 것 같아요. 변형되는 것 같아요. 빛이 바랠 수도 있고 설탕이 묻어날 수도 있고 부풀려질 수도 있고 만만한 무언가로 훼손될 수도 있고요. 닳고 삭아가겠죠.

 

김소연 시인의 새 시집은 언제 나오나요?


아직 계획이 전혀 없어요. 발표한 시는 30편쯤 되고요. 독립출판물의 형태로 조금 이상하고 소박한 시집을 가볍게 내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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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자의 아침 김소연 저 | 문학과지성사
1993년 등단한 후 지금까지, 세 권의 시집을 통해 서늘한 중에 애틋함을 읽어내고 적막의 가운데에서 빛을 밝히며 시적 미학을 탐구해온 시인 김소연이 네번째 시집 『수학자의 아침』을 출간했다. 시인은 묻는다. “깊은 밤이란 말은 있는데 왜 깊은 아침이란 말은 없는 걸까”. 그래서 오늘 아침에는 조금 “낯선 사람이 되는 시간”을 가져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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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철 교수 “영어는 구구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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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를 언제부터 배우는 것이 좋을까?

모국어를 익히는 시기부터 영어를 함께 공부하는 것이 얼마나 도움이 될까? 혹은 방해가 될까?


영어 앞에서 사람들은 많은 질문을 한다. 어떻게 하면 영어를 더 잘할 수 있는지 묻는다. 그렇지만 늘 어렵다. 생활영어의 대명사 민병철 교수가 영어그림책을 내놓게 된 이유는 이런 질문에 대한 민 교수의 대답이다. 민병철 교수는 “어린 아이의 영어를 하는 게 영어의 기본이 된다”고 조언하며 “마치 걷듯이, 수영하듯이, 기타를 치듯이” 꾸준히 연습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연습은 이르면 이를수록 좋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엄마, 아빠의 말소리, 형제자매의 이야기 소리, 냉장고 문 여는 소리, 발자국 소리, TV 소리 등 세상의 갖가지 소리를 듣게 되는데요. 영어도 그 소리 중 하나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어린 아이가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말, 놀이에서 할 수 있는 말처럼 아주 기본적인 내용을 담은 『민병철의 하루 5분 베이비 영어』의 독자는 아이뿐 아니라 영어로 간단한 대화를 자유롭게 하고 싶은 모든 사람이 될 것이다. 익숙하지만 막상 생활에서 사용하려면 곧바로 떠오르지 않는 말들이 빼곡하게 담겨 있다. 하루 5분, 시도해볼 만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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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살 버릇 백 살 간다


책을 쓰게 된 계기로 손자 분을 언급하셨어요. 

 

저는 그동안 생활 영어에 관한 책을 많이 썼습니다. 10년에 걸쳐 MBC-TV와 KBS-TV에서 생활영어 방송을 했고, 현재는 대학생들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창조모바일 앱 프로젝트’에 관한 영어 교재를 쓰고 있고요. 그런데 출판사에서 3살짜리를 위한 영어책을 써달라는 제안이 왔어요. 손자가 마침 3살이라, 3살짜리 어린이를 위한 영어책을 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 언어가 형성되는 시기는 인성의 형성되는 시기와 같은 시기죠. 세 살 버릇 백 살 가잖아요. 예전에는 세 살 버릇 여든 간다고 했는데, 수명이 연장돼서 백 살 가는 때예요. 외국어도 어릴 때부터 가르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생각입니다.

 

손자 서준이도 영어를 잘하나요? 영어에 관심이 있는지 궁금하네요.


서준이는 영어에 관심이 아주 많습니다. 요즘 인사하는 법을 가르치고 있는데요. 휴대폰으로 서준이 엄마가 그 모습을 찍어 보내요. 매일 아침 ‘할머니, 할아버지 Good morning, I love you.’이렇게 보내오는 거예요. 그 모습이 너무나 귀엽고 즐겁습니다. 또 밖에 나가면 이웃 분들에게도 인사를 잘한다는 거예요. 이것도 인성 교육이죠. 영어는 역시 어릴 때부터 해야 해요. 서준이는 어린이 영어 만화를 자주 보는데 그것들이 많은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아이가 어릴 때부터 영어 공부를 한다면 양육자들도 영어를 배우시겠는데요?


아이가 태어나서 첫 번째 듣는 소리가 무슨 소리일까요? 엄마, 아빠의 말소리, 형제자매의 이야기 소리, 냉장고 문 여는 소리, 발자국 소리, TV 소리 등 세상의 갖가지 소리를 듣게 되는데요. 영어도 그 소리 중 하나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중요한 것은 어릴 때부터 영어를 배우게 되면 나중에는 거의 원어민 수준으로 영어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싱가폴 같은 곳은 영어를 아주 어릴 때부터 가르치고 있습니다. 요즘 영어 사교육비도 많이 드는데 집에서 엄마가 영어를 배워서 가르치는 게 좋겠다는 생각입니다.(웃음) 바로 그런 관점에서 이 책을 쓰게 됐습니다. 어머니들에게 영어를 배우시라고 하면 못 배워요. 바쁘시잖아요. 집안일도 해야 하지, 아이도 돌봐야 하지, 바깥일도 봐야 하지, 무척들 바쁘신 데요. 만약 이 책을 공부해서 아이에게 가르친다면 돈 안 들고, 교육 효과도 좋고, 엄마 스스로도 영어 공부를 할 수 있겠죠. 농담입니다만, 이웃집 아이들까지 가르치게 되면 부업도 될 수 있을 겁니다.(웃음) 엄마뿐 아니라 아이를 돌봐주시는 할머니, 할아버지, 아빠도 함께 아이를 위해 영어를 배우시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말씀대로라면 책의 대상 독자는 아이, 엄마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될 수 있겠네요.


어린 아이의 영어를 하는 게 영어의 기본이 된다는 거죠. 이 책은 ‘왕초보’도 아니고 ‘왕왕초보’입니다. 이걸 공부하면 기본적인 영어를 다 할 수 있어요. 아이와 함께 엄마, 아빠도 영어 실력이 늘겠죠. 이 책으로 기본적인 영어 대화를 할 수 있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예를 들어 이런 내용인데요. time to go night-night(이제 잘 시간이야)이나 You pooped(응가 했네)과 같은 영어표현들을 들어본 적 없는 분들이 많습니다. 어린이들이 이런 것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영어의 기초 중 기초를 이 책에서 배울 수 있다는 것이에요. 이걸 공부하다보면 모든 기본적인 대화체 영어를 익힐 수 있게 될 겁니다. 아이도 가르쳐주고, 본인도 영어를 배우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상에 자주 사용하게 되면 실력향상에도 큰 도움이 되겠죠.


이 책은 3살짜리 아이를 둔 우리 엄마들이 사용하는 말과 미국 엄마들이 사용하는 말을 취합하고 그 내용들을 분석해서 제가 책으로 쓴 것입니다. 저는 3살짜리 아이의 언어를 잘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 어머니들이 하시는 표현들을 분석해서 만든 겁니다. 다시 말씀 드려서 정말 실생활에서 엄마들이 아기들에게 매일 하는 말들을 적은 것이기 때문에 책이 실제 생활에 많은 도움이 되실 겁니다. 

 

어릴 때 영어를 사용하는 환경에 있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언제부터 영어 공부를 시작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시나요?


영어권 국가에 살다 온 부모님이 제게 이런 얘기를 했어요. 8살짜리와 10살짜리 자녀들이 함께 외국에 살다 왔는데 둘째가 항상 영어를 더 잘한다는 거였어요. 그게 무엇을 의미할까요? 어릴수록 외국어를 잘 배울 수가 있다는 것이죠. 나중에 또 보니 한국에 돌아와서 우리말을 배우는 것도 10살짜리 형은 좀 더디고, 8살짜리 동생이 더 잘 배운다고 해요. 그것은 어릴 때부터 영어를 배우는 것이 좋다는 것이죠.

 

‘어릴 때’라고 하면 3살 이전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말을 배울 때부터 영어를 함께 배워야 한다는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말씀드렸습니다만 어린 아이는 이 세상의 모든 소리를 듣기 때문에 외국어 역시 세상에서 들리는 소리 중 하나라고 생각하시면 훨씬 더 이해가 쉽습니다. 물론 6, 7살부터 본격적으로 영어 공부를 할 수도 있겠지만 더 어릴 때부터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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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표가 뚜렷해야 한다


남녀노소 불문, 영어는 모두의 고민이에요. 어떻게 하면 영어를 잘할 수 있는지 조언 부탁드립니다.


영어를 가르치는 분들 중에는 3개월 만에 영어를 잘 할 수 있다, 6개월 만에 잘 할 수 있다, 이렇게 주장하는 분들이 계시는데요. 사실, 3개월, 6개월 만에 영어를 잘 한다는 것은 어렵고요. 다만 어린이인 경우, 영어가 모국어로 사용되는 곳에서는 가능합니다. 우리 같이 한국어가 모국어인 나라에서는 눈만 뜨면 한국어가 들리잖아요? 그런 곳에서는 짧은 기간에 영어를 잘 할 수는 없겠죠. 그래서 영어는 어릴 때 습득하는 것이 좋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또 한 가지는 목표가 뚜렷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영어는 구구단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구구단을 어떻게 배웠나요? 암기로 익힌 것이죠. 김연아라는 세계적인 선수도 연습하다가 엉덩방아를 수천 번 찧었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다른 세계적인 선수들도 수업이 많은 피나는 연습을 통해 그 위치에 간 것인데요. 영어는 사실 아주 쉽습니다. 걷듯이, 운동하듯이 하다보면 영어의 기본량을 채울 수 있게 됩니다. 언어의 기본적인 표현을 1. 이해하고, 2. 암기 하고 3. 대화로 연결 하는 것이죠.

 

특히 언어는 ‘기본’이 중요하기 때문에 기초가 되는 내용을 잘 익혀야 한다는 의미겠죠?


이해를 동반한 암기가 없으면 안 된다는 거예요. 한국에 계시는 외국 분들 중 우리말 잘하시는 분들 많잖아요. 기본적으로는 외우는 거죠. ESL(English as a Second Language), 영어가 제2언어로 사용되는 영어권 국가에서는 자연스러운 습득이 가능하죠. 영어가 계속 들리니까요. EFL(English as a Foreign Language), 우리는 영어가 외국어인 한국에 살고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이것을 연습하고 언어습득의 기본량을 익혀야만 영어를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기본적으로 식사를 해야 활동을 할 수 있듯이, 언어 습득의 기본량을 채워야 그 다음부터 응용이 되는 것이지 처음부터 영어를 잘하기는 어렵다는 것입니다.


엄마들이 아이에게 가르치기 가장 쉬운 이유는 행동으로 보이기 때문이에요. 잠자라, 이불 덮어라, 밖이 춥다, 이런 여러 가지가 실제 행동으로 옮겨지고 아이에게 가르치기 때문에 배움이 아주 쉽게 일어나는 것이고, 엄마 역시 쉽게 영어를 배우실 수 있게 됩니다. 영어의 기본을 가지고 계시면 나머지는 얼마든지 영어를 쉽게 구사 하실 수 있습니다.

 

영어 공부를 걷기 같은 운동에 비유하니 이해가 쉬운 것 같습니다.


수영을 처음 배울 때 어떤가요? 저도 처음 수영을 배울 때 물을 많이 먹었어요. 허우적거리느라고 말이죠. 그런 많은 과정을 거쳐 몸이 물에 부양되잖아요. 영어도 마찬가지예요. 하루아침에 바로 이해해서 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Good morning? How are you? 이 표현을 얼마나 많이 연습했습니까. I love you는 다 알잖아요. 무수히 반복했기 때문이에요. 간혹 영어는 외우서는 안 된다고 하는 분들이 계시는데요. 그 경지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기본적인 영어는 암기로 익혀야 하죠. 마치 걷듯이, 수영하듯이, 기타를 치듯이 말이에요. 가수가 노래를 얼마나 많이 연습할까요? 백 번, 천 번도 아닙니다. 더 많이 연습해야 가왕이 나타날 수 있죠. 그렇듯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열심히 연습하시면 됩니다.

 

한 인터뷰에서 영어에서 중요한 것은 정확한 발음보다 콘텐츠라고 하셨습니다. 완벽한 문법과 원어민 수준의 발음을 완벽하게 해야 한다는 강박이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있는 것 같아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어떤 분의 영어를 들려드렸어요. 그랬더니 한국 사람들은 영어가 틀렸다, 발음이 틀리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런데 영어 원어민들이 듣고는 정말 영어를 잘한다, 세계적인 수준이다, 이렇게 얘기했어요. 바로 반기문 UN 사무총장님의 얘기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내용이 중요하지 영어 발음은 크게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국식 발음도 괜찮습니다. 다만 발음이 틀리면 안 되겠죠. 그러므로 발음에 신경 쓰는 것보다 하고자 하는 내용에 신경 쓰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로 자기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것인데요. 내 아이, 내 생활, about my story, 이런 이야기를 하면 영어를 쉽게 구사 할 수 있는데 전부 자기와 거리가 먼 이야기를 외워서 하려니까 힘든 거예요. 자기 이야기를 할 때는 누구든지 You're going to be a great storyteller,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굉장한 영어 이야기꾼이 될 겁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식당에 여러 명이 가서 누구는 설렁탕, 누구는 된장찌개, 이렇게 여러 가지를 시키는데 종업원이 따로 적지도 않고서도 다 기억을 합니다. 어떻게 가능할까요? 자신의 직업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거예요. 그 분은 천재가 아닙니다. direct relationship, 나와 직접 관련이 있는 내용을 공부하시게 되면 훨씬 더 쉽게 영어를 배우실 수 있습니다.

 

또 조기 유학이 필요하지 않다는 말도 하셨는데요. 이것들의 단점은 무엇인가요?


많은 분들이 조기 유학을 생각하고, 보내시는데요. 첫째는 영어만을 위해 보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그럴 필요가 없는 세상에 살고 있어요. 무료로 인터넷에서 영어를 배울 수 있고, 영어책을 사면되고, 외국인들도 많이 볼 수 있잖아요. 교육방송도 있고요. 가족이 이민을 떠나는 경우는 다른 이야기지만 자녀의 영어교육만을 위해서 조기 유학을 보낸다는 것은 옳은 선택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둘째는 가족해체의 문제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어릴 적에 유학을 떠난 아이는 그 나라의 문화에 적응되어서 그 나라가 편한 것이죠. 그런 외국환경에서 사는 부모님들이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집안에서 한국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겁니다. 엄마가 ‘점심 먹었니?’하면 아이는 ‘Yeah, I had lunch’라고 답해요. ‘뭐 먹었니’ 하고 되물으면 ‘Some sandwiches’이렇게 대답을 하게 됩니다. 이러면 나중에 정작 중요한 얘기를 할 때 한국어로 대화가 안 되죠. 부모와 자녀 간의 대화 단절이라는 정말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영어만을 위해서 외국에 가는 것은 좋은 판단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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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플운동본부


선플운동본부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계신 것을 알고 다소 의외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2007년 봄에 유명 여가수가 악플 때문에 자살했다는 뉴스를 들었어요. 너무 놀랐습니다. 그때 가르치던 대학생들에게 과제를 냈어요. 인터넷 세대인데 이런 일을 좌시해선 안 된다고 말했던 겁니다. 한 명이 열 명 연예인의 웹사이트, 블로그에 찾아가서 악플을 읽고 그 악플이 왜 잘못되었는지를 적은 다음 악플에 시달리는 사람에게는 용기와 희망을 주는 선플을 달자는 과제였어요. 그 결과, 순식간에 5,700개의 선플이 달리게 됐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학생들이 그 과제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악플의 폐해와 선플운동의 필요성을 깨달았다는 것입니다. 그때 큰 울림을 받아서 선플운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영어와 선플이라는 두 키워드가 크게 연관이 없어 보이거든요.


영어를 배우는 학생들이 기본적으로 관심 두시는 건 에티켓입니다. 뒤에 오는 분을 위해 문을 잡아둔다든지 여성에게 의자를 권한다든지 하는 것인데요. 영어를 하게 되면 그런 기본적인 에티켓을 익히게 됩니다. 그런데 인터넷상에 악플을 다는 것은 에티켓이 아닙니다. 영어를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학생들에게 에티켓을 가르치다보니 자연스럽게 인터넷 상의 에티켓을 생각하게 된 거예요. 비판은 좋지만 비방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죠. 영어와 선플은 이런 점에서 공통점이 있습니다.

 

언어에 대한 감각이란 점에서 닿아있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평소 언어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맞습니다. 언어를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좋은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과 기왕이면 아름다운 언어를 사용하는 것이 자기를 높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상대방에게 좋은 언어를 건네면 상대방도 내게 좋은 언어를 건네요. 그런데 상대에게 기분 나쁜 얘기를 하면 기분 나쁜 얘기가 돌아오죠. 이처럼 영어를 하는 사람이 특히 유의해야 할 점은 좋은 단어와 표현을 선택해서 상대방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또 사업을 하는 경우에는 협상을 유리하게 끌어낼 수도 있다는 것이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악플로 고생합니다.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우리말에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말이 있습니다. 반복되는 이야기지만 상대에게 좋은 얘기를 건네면 좋은 이야기가 돌아와요. 대화할 때 상대가 웃으면 내 기분이 좋잖아요. 또 상대방의 표정은 내 표정에 의해 달라지고요. 내가 웃으면 상대방이 웃는 거예요. 언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선플을 달면 세 사람이 행복해집니다. 한 명은 선플을 받는 사람이 정말 기쁘죠. 또 한 명은 선플을 전달하는 사람입니다. 저 사람이 당신 정말 칭찬하더라, 이런 얘기 전달하면 얼마나 기분 좋아요? 그 중에서도 가장 행복한 사람은 선플을 남기는 사람입니다. 선플로 상대를 칭찬함으로써 그 칭찬이 나에게 오는 것이죠. 이 기사를 보시는 채널예스 독자 분들께서도 상대에게 좋은 응원의 말씀과 배려의 언어를 사용하셔서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또 책 많이 읽으시길 바라고요.(웃음)

 

독서를 권하셨으니 책에 대해서도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위인들을 쉽게 만나는 방법, 시공을 초월하여 세계적인 리더들을 만나는 방법, 만델라, 간디, 빌 게이츠, 스티브 잡스, 이런 분들을 만나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책을 읽는 것입니다. 책을 통해 과거와 현재를 공명하고, 미래를 지향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보물은 바로 책이라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책을 많이 읽되 또 한 가지 제가 강력하게 추천하는 것은 바로 책을 쓰시라는 것입니다. 내 자신의 이야기를 쓰라는 것이에요. 책을 쓰려면 관련된 책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책을 읽는 분들이 점점 더 많이 생겼으면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책을 많이 읽고, 책을 많이 쓰는 국민이야 말로 가장 막강한 국력을 가진 국민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방점을 찍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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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철의 하루 5분 베이비 영어민병철 저/송소영 그림 | 중앙북스(books)
『민병철의 하루 5분 베이비 영어』는 우리나라 영어 교육의 산 증인 민병철 교수가 엄마와 아이가 영어를 쉽게 배울 수 있도록 쓴 책이다. 아이들의 발달 단계에 맞춰 내용을 구성하여 흥미롭다. 일상생활, 오감발달, 놀이, 신체?인지, 두뇌발달, 감정?기분, 사회성 총7개 파트로 구성했다. 36개월 이하 아이가 보는 것에 초점을 맞췄지만, 개인차가 있어 그 이상의 아이들이 봐도 유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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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정선희 “하루에 딱 세 줄, 일기를 써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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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적으로 자기 성찰을 하는 사람이 일기를 쓰면? 방송인 정선희는 올해 봄, 한 출판사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예전에 욕 일기를 쓰신 적이 있다면서요? 이번에는 좀 다른 일기를 써보시면 어때요? 번역을 좀 부탁합니다.” 한때 울화를 이기지 못해 욕 일기를 썼던 정선희는 요즘, 잠자리에 들기 전 ‘하루 세 줄’ 일기를 빠짐없이 쓰고 있다. 자기계발서는 쳐다보지도 않았던 정선희는 왜 『하루 세 줄, 마음정리법』을 번역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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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연애하는 기술서


번역이 벌써 세 번째죠?


'드라마 일본어' 책을 낸 적이 있지만, 정식 번역으로 생각하는 건 이번 책이 두 번째예요. 언어를 워낙 좋아해서 번역을 하게 됐는데, 정말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요. 2년 전에 번역한 책은 일본 작가의 에세이였는데 재밌었어요. 작가의 일상 이야기를 들여다 보는 것도 흥미로웠고요.

 

『하루 세 줄, 마음정리법』은 자기계발서예요. 일본 의사가 쓴 책이고요.


사실 자기계발서를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니에요. 말 맛을 좋아해서요. 뭔가 이야기가 재미없으면 구미가 당기지 않아요. 더구나 일기 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거든요. 욕 일기야 뭐, 그 때 너무 힘들어서 그랬던 거고요. (웃음) 문구병이 있어서 펜이나 수첩을 모으는 건 좋아하는데, 쓰는 건 영 아니에요. 그래서 제안을 받고 고민을 좀 했어요. 우선 책을 읽어보겠다, 나도 한 번 일기를 써보고 효과가 있으면 번역을 하겠다고 출판사 대표님께 이야기를 했어요. ‘하루 세 줄’ 일기가 정말 딱 세 줄만 쓰는 거잖아요. 그런데 쓰면 쓸수록 패턴이 보이더라고요. 내 행동의 패턴, 이유, 성격이 보여요. 내가 어디에 포커스를 둔 인간인지, 어떤 걸 안 좋아하는지, 어떤 평판을 두려워하고 무엇에 갈증을 느끼는지 등. 눈으로 보이니까 개선의 여지가 스며들어요. 지금도 6개월째 일기를 쓰고 있어요.

 

어떤 패턴이 보이던가요?


하나의 예를 들자면, 제가 빵이랑 커피를 좋아해요. 문제는 피부, 두드러기인데, 이 음식이 피부에 안 좋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 끊임없이 먹고 있는 거예요. 속이 안 좋으면 하루 종일 컨디션이 안 좋잖아요. 그래서 안 좋았던 일을 일기에 적으면서, 문제 파악을 하기 시작했죠. 일기 덕분에 4개월 동안 커피랑 빵을 끊었어요. 피부는 좋아졌고요.

 

일기의 내용을 보면 굉장히 간단해요. ‘오늘 가장 안 좋았던 일, 오늘 가장 좋았던 일, 내일의 목표’를 각각 한 줄로 정리하는 거예요. 정말 마음이 정리가 되시던가요?


처음에는 정말 이게 뭔 효과가 있겠어? 의심했어요. 저자 고바야시 히로유키 씨는 일본 자율신경 분야의 일인자예요. 신경에 관한 연구를 통해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람이고요. 저자는 세 줄 일기가 흐트러진 자율신경의 균형을 바로잡는다고 말하는데요. 심신을 최상의 상태로 만들기 위한 방법으로 ‘세 줄 일기’를 발견한 거예요. 책을 보면 정말 많은 사례가 나와 있어요. 설득이 되더라고요. 사람은 누구나 변하고 싶잖아요. 성장하고 싶고요. 변화를 위해서는 안정이 필요한데, 세 줄 일기를 쓰다 보면 하루하루 ‘회복 시스템’이 작동되면서 자율신경이 안정된다는 거예요. 책에 의학용어가 꽤 많이 나오는데요. 글이 쉽게 쓰여져서요. 깐깐한 저도 설득이 되더라고요. ‘세 줄 일기는 자율신경의 전환 스위치’라는 말이 나오는 데요. 노력하지 말고 ‘스위치’를 켜라는 말이 인상 깊었어요. 책을 읽다 보면 정말 설득을 당해요. 되게 쉽고 간단한 방법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실천을 안 하잖아요. 하지만 왜 무엇이 어떻게 효과가 있는지를 알고 시작하면, 확실히 반응이 있는 것 같아요. (웃음)

 

일본의 야구선수 마쓰이 히데키는 경기 결과에 연일 혹평을 해대는 언론에 대해 이런 말을 했다고요. “신경 쓰지 않습니다. 기자들이 뭘 쓰는지가 제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저는 제 힘으로 조절할 수 없는 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되게 인상적인 글귀였는데 정선희 씨도 많이 공감하셨을 것 같습니다.


기억나요. 자기 일은 스스로 조절할 수 있지만 타인의 말과 행동은 자기 능력 밖의 문제니까요. 자신이 조절할 수 없는 것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거죠. 자신이 변화시킬 수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잘 분별해서 변화시킬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것, 정말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게 아닌가 싶어요.

 

평소 스트레스를 받을 때는 어떻게 대처하시나요?


스트레스를 피할 수 있는 삶은 없다고 생각해요. 버릴 수 없고 끼고 살아야 하는 게 스트레스예요. 어떻게 인테리어를 잘하느냐가 관건인 것 같아요. 제가 선택한 건 유머예요. 제가 가진 본능 중에서 가장 연마가 잘됐고 활용할 수 있는 게 유머 코드예요. 전 타고나길 재밌는 걸 좋아해요. 장난 치는 것도 좋아하고요. 타고난 것과 접목하는 게 가장 편하니까요. 누구로부터 스트레스를 받았으면, 그 사람의 특징을 파악해서 이해하려고 해요. 조금 거리를 두는 거예요. 멀리 떨어져서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해요. 나를 부감해서 보면, 유머가 스며들 확률이 높아요. 그런 경험을 한 적이 많아요.

 

어떤 경험이요?


제가 크게 힘들었을 때가 있었잖아요. 기자분들이 맨날 집 앞에서 진을 치고 있는 거예요. ‘어휴, 왜 이렇게 나를 못살게 구느냐! 난 사람도 아닌가?’ 그런 생각을 했는데, 거리를 두고 보니까 그분들도 안타까운 거예요. 회사에서는 뭐라고 찍어 오라고 하지, 저는 집 밖을 절대 안 나가지. 얼마나 답답하고 짜증이 나겠어요. 예전에는 카메라 장비가 좋지 않아서 썬건 같은 걸 들고 다녔는데, 밤이 되면 조명에 하루살이가 엄청나게 많이 꼬이거든요. 무척 괴로웠을 거예요. 그런 모습을 하나하나 들여다 보니까 삶의 애환이 보이더라고요. 내가 맞닥뜨린 상황에서 나를 좀 떨어놓으니까 숨을 좀 쉬겠더라고요.

 

‘하루 세 줄’ 일기를 조금 더 일찍 쓰셨더라도 좋았겠어요.


그랬을 것 같아요. 자신을 객관화 할 수 있으니까요. 번역하면서, 이 책은 ‘나와 연애하는 기술서’라고 생각했어요. 강연회 같은 곳을 가면 사람들이 제게 “어떻게 그런 일을 견뎠어요?”라고 물어요. 그런데 하루 아침에 어떤 극적인 사건에 의해서 사람이 강해지고 단단해지는 게 아니거든요. 나에게 누군가가 불어주는 자존감, 이건 스스로 만들어 놓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기도 해요. 자존감이 자신감, 자존심이랑은 다른 문제잖아요. 요즘은 부모가 자식을 좋아할 때도 이유를 달아야 하는 세상이고, 인정을 받으려면 뭔가가 있어야 하잖아요. 그게 너무 당연해졌으니까요. 내가 나를 볼 때도 뭔가가 없으면 좋아하기가 어려워요. 특히 연예인은 더 그래요. 대중의 반응이 먼저 오니까, 박수가 떠나면 나는 필요 없는 존재라고 인식하는 거예요. 저는 무너진 자존감을 확립하는 게 시급했어요. 저자의 말이 맞는 게, 내 스트레스가 어떤 형체를 갖고 있는지, 어떻게 다가오는지를 봐야 해요. 내가 무엇에 기가 죽고 눈치를 보고, 힘들어하는지를 알아야 거기에 대한 대책을 세울 수 있으니까요. 펜으로 쓰고, 눈으로 보는 게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홀로 나를 마주하는 용기도 필요하지만, 사람으로부터 받는 힘도 있지 않나요?


있죠. 힘들 때 많은 사람에게 도움을 받았는데요. 영철이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저도 자기애가 많은 편인데, 개그맨 김영철은 절대 못 따라잡아요. 자기애를 두고는 제가 압도적으로 밀려요. (웃음) 영철이의 열정적인 자기애는 못 따라가요.

 

김영철 씨도 책을 내신 적이 있잖아요. 느꼈어요. 엄청난 자기애를요.


영철이랑 가까워진 이유가 있어요. 제가 너무 힘들 때 영철이나 너무 어색한 얼굴로 “누나 괜찮아?”라는 거예요. 너무 웃겨서 “야, 넌 그런 거 안 어울려. 그냥 네 이야기 해”라고 했더니, “어, 누나 그래도 돼?”라면서 자기 근황을 쫙 풀더라고요. 그 때부터 가까워졌어요. 나에 대한 과도한 관심보다 그냥 평범한 일상적인 대화가 필요했던 시기였거든요. 내 미래에 대해 유난스럽게 걱정해주는 것보다 나를 일상으로 돌아가게 하는 힘이 필요했어요. 어떤 사람은 지나치게 걱정을 해줘서, ‘내가 앞으로는 정상적으로 살 수 없구나’를 생각하게 했거든요. 지금도 영철이한테는 항상 이렇게 말해요. “내가 너 때문에 참 많이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너는 내 일 따위는 궁금해하지 않은 유일한 아이야”라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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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방향성을 본다


‘하루 세 줄’ 일기 중에서 두 번째로 써야 할 게 ‘하루 중 좋았던 일’이잖아요. 책에서 일기는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말라고 했으니까, 내용은 물을 수는 없겠고요. 정선희 씨가 지금까지 하신 일 중에 자신을 가장 칭찬해주고 싶은 일은 뭔가요?


눈에 보이는 일은 아니고요. 내 중심을 옮기는 데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은 뭔가 특별한 일이 생겨야 기쁘고 감사하다고 하지만, 저는 그냥 이대로 아주 고맙고 감사해요. 내 삶에서 행복이 차오르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생각의 축이 많이 바뀌었어요. 아주 치열한 전쟁을 통해서 얻어낸 선물 같아요. 사람들이 ‘내려놓는다’는 행위에 대한 말을 많이 하는데, 남이 도와주지 않으면 못하는 게 ‘내려놓음이’에요. 남이 뺏어가기도 해야지, 가지고 있는 모든 걸 100% 내려놓을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저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많은 것을 내려놓게 됐는데요. 모두 남의 탓만은 아닌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고마운 면도 있어요. 내가 평생 가지고 있었으면 큰일 날 뻔한 것도 있으니까요. 여태껏 살아온 게 다 헛발질은 아니었구나 싶어요.

 

깜냥이라고도 하고, 주제파악이라는 말도 하죠. 어찌됐든 나 자신을 똑바로 보는 훈련이 필요한 건 맞아요.


번역을 하고 또 세 줄 일기를 쓰면서 느낀 게 많은데요. 그동안 참 많은 일을 겪고 많이 털어놨다고 생각했는데, 잠재적으로는 아직도 뭔가를 향해 오해를 풀고 싶고 증명하고 싶은 게 남았다는 사실이었어요. 초월할 수는 없다는 걸 깨달았죠. 그렇다면 이걸 인지하는 게 중요하잖아요.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확실히 나눠서,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할 수 있는 것의 비중을 키워서 압도시켜버리는 게 현명하다는 판단이었어요. 나한테 맞게, 내가 먹을 수 있는 크기로 먹는 게 중요하지 않나 싶어요.

 

일본에서 이 책이 누적 판매 부수가 192만 부라고요. 대단한 수치인데요. 번역자로서 한국에서는 어느 정도 팔렸으면 좋겠나요?


언제부턴가 제 인생에서 정확한 수치를 안 내기 시작했어요. 왜냐면 수치를 내기 시작하면 강한 실망감을 느끼게 돼요. 불안함의 여지를 일부러 열어 놓아요. 잘되면 좋은 거고, 뭐 잘 안 되면 아쉽겠죠.

 

그래도 번역자로서 이 책을 특히 더 추천해주고 싶은 대상이 있으실 텐데요.


글쎄요. 전 뭐든지 알아서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 주변 사람들에게도 책을 몇 권 선물했어요. 사인은 했지만 상대의 이름을 적진 않았어요. 안 읽고 다른 사람한테 줄 수도 있으니까요. 활용도 높은 방법을 선택하는 게 좋지 않아요? 우연히 책을 보다가 확 끌려서 읽게 되고 또 실행해본다면 분명 좋을 것 같긴 해요. 이것도 자기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강요하면 뭐든지 어긋나버리니까요.

 

최근에는 방송을 많이 안 하셨어요.


자꾸 저의 상처를 상기시키려고 하니까요. 자꾸 안 괜찮은 걸로 생각하게 하고, 자꾸 드라마를 쓰려고 하시니까요. (웃음) 제가 괜찮다는 걸 알리기 위해서는 안 해야겠더라고요. 자꾸 그쪽으로 몰고 가시니까요.

 

출연을 결정하실 때, 선택의 기준이 있나요?


일단 부담감은 항상 느끼고 출발해요. 제게 벌어졌던 일을 외면할 건 아니니까요. 어떤 사람들과 그것을 공유했을 때 그 결실이 우리 삶을 조금이라도 이해할 수 있게 만들 것인가, 그걸 생각해요. 신세 한탄이 되면 안되니까요. 방향성을 봐야죠. 요즘은 사람들이 자극적인 방송을 무척 좋아하니까요. 만드는 것도 수요가 있기 때문이니까 알아서 피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했는데, 원하는 대로 편집이 안 됐을 때도 많으실 텐데요.


녹화가 끝나면 이미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방송이 내 의도대로 나오지 않았으면, 그 다음부터는 알아서 내가 편집해야 하는 거예요. 편집자에게 의존할 수 없음을 인식하고, 피할 길을 찾아야죠. 방송은 이제 노하우가 많이 쌓여서 분노만이 답이 아니라는 걸 알아요. PD에게는 섭섭해도 그럴 수 있다, 어쩔 수 없는 경험으로 생각해요.

 

평소 책을 많이 읽기로 유명하신데요. 30대 때는 일본 작가들의 작품에 빠졌자셨었다고요.


요시모토 바나나의 『키친』이나 『N.P』, 에쿠니 가오리의 『낙하하는 저녁』, 츠지 히토나리와 함께한 『냉정과 열정 사이』 등의 감수성에 빠져든 시기도 있었어요. 요시모토의 소설이 소녀의 무릎같이 담백하고 생동감 있다면, 『N.P』는 좀 도발적인 면이 있었죠. 히가시노 게이고의 『범인 없는 살인의 밤』, 『용의자 X의 헌신』, 『악의』, 온다 리쿠의 『흑과 다의 환상』등 추리나 판타지로 힘을 좀 받기도 했네요.

 

요즘은 어떤 책을 읽고 계시나요?


예전에는 마음을 살찌우는 책을 많이 안 좋아했어요. 어느 순간부터 사람을 만날 때도 열정적이지만 불안하고 독한 사람보다는 심심하지만 편한 사람이 좋아요. 책도 그래요. 자기계발서를 보면 ‘왜 자꾸 나를 가르치려고 들어?’라고 생각했는데, 일종의 편견이었던 것 같아요. 요즘은 예전에 좋게 읽었던 책들을 다시 꺼내보고 있어요. 스캇 펙 박사의 책을 좋아하는데, 다시 읽어도 여운이 크더라고요. 『어린 왕자』같은 고전도 나이에 따라 받아들이는 게 너무 다르잖아요. 저는 『짱구』가 그렇게 무서운 만화인지 최근에 알았어요.

 

한국 작가로는 성석제 소설가의 작품을 좋아하신다고요.


열혈 독자예요. 신간이 나오면 죄다 먹어 치워요. (웃음) 성석제 작가는 타고난 이야기꾼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글에도, 어떤 냉소에도 온도가 있어서 좋아해요. 『번쩍하는 황홀한 순간』같은 책은 자기 전에 한 구절씩 읽기도 해요. 정말 잔인한 장면을 묘사할 때도 해학과 코미디가 있어서 읽을 때마다 재밌고 새로워요. 또 천명관 작가도 좋아해요. 작년에 나온 『칠면조와 달리는 육체노동자』도 재밌게 봤어요. 아, 정유정 작가의 소설도 좋아하고요. 스토리 전개가 무지 빠르잖아요. 작가님도 매력적인 분 같고요.

 

에세이집을 내자는 제안을 많이 받으실 것 같은데요.


아직까지는 뭐를 쓰고 싶은 갈증이 없어요. 기운이 다 입으로 몰려 있어서요. (웃음) 백지 공포 같은 게 조금 있어요. 읽고 싶은 갈증은 많은데 아직 책을 쓰는 건 생각해보지 않았어요. 나중에 그림을 그리는 동화작가가 되고 싶은 꿈은 있어요. 전 엄마들이 동화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엄마와 아이가 함께 볼 수 있는 동화를 그려보고 싶어요. 엄마들 마음속에 잭과 콩나무가 있어야 하는데, 아이들 학원 문제만 있는 것 같아서요. 엄마도 좋고 아이도 좋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지금 세상은 너무 어른 문화, 아이 문화 사이에 막을 쳐놓은 것 같아요. 그 막을 조금이라도 허물 수 있는 재밌는 동화를 써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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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세 줄, 마음정리법 고바야시 히로유키 저/정선희 역 | 지식공간
생활 속에서 누구나 간편하게 할 수 있는 '스트레스 리셋법'을 찾았다. 하루 세줄 쓰기다. 저자 역시 10년 넘게 실천하고 있다. 두통, 어깨결림, 불면증, 우울증, 자율신경실종 증상을 겪는 사람들이 하루 세 줄 쓰기로 건강을 되찾았다. 방법은 단순하다. 세 가지를 생각한 다음 한 줄씩 적으면 된다. 이 단순한 로직에 강력한 스트레스 리셋 효과가 숨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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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 원을 들고 떠난 세 사람의 ‘미친 방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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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투를 틀고, 갓을 쓰고, 한복을 차려입고, 등장한 사람들. 이들은 막 과거에서 온 듯 점잖은 말투로 “안녕하십니까, 허허허”하며 인사를 건넸다. 이 모습에 미소가 떠오른 건 이들이 ‘미친방랑’ 내내 만난 많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인사했으리라는 짐작 때문이었다. 문방랑과 김방랑, 그리고 정수리, 이 셋의 뜨거웠던 방랑은 상상하지 못한 빛나는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길에서 만난 사람들, 아무 이유 없이 도움을 건넨 사람들, 그들의 다채롭고 특별한 삶 이야기는 방랑을 떠나기 전에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평범한 사람들의 깊은 철학, 이것이 세 사람의 방랑에 가장 큰 수확이었다.


단돈 이십 원을 들고, 한복을 차려입고, 2014년 뜨거웠던 여름, 서울에서 부산까지 16박 17일의 여행을 떠난 세 사람은 입을 모아 얘기한다. “No Plan is the Best Plan”이라고. 그리고 “성공이냐 실패냐는 중요하지 않”다고. 이토록 계획적이지 않고, 그저 부딪치는 사람들이 세상에 또 있을까 싶을 정도다. 그런가 하면 한편 이들을 부러워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이 대목에서 물음표 하나가 떠오른다.


당신의 여행은 즐겁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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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가보자


바로 내 곁에 있는 보통의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았어요.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어서요. 참 멋진 경험을 하셨다 싶었습니다.


김광섭:떠나면서 청춘에 대해 응원하고 싶은 마음도 있고, 누굴 만나게 될지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일단 가보자는 마음이었는데요. 방랑 떠나기 전에도 저는 여행을 하면서 외국 사람들도 참 따뜻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우리나라 사람들도 어디 가서 정(情)하면 지지 않죠. 확인해보고 싶었어요. 카우치 서핑이나 히치하이킹이 분명 가능할 텐데 세상이 점점 각박해져간다 하면서 서로를 멀리하고 있으니까요. 만나보면 따뜻한 사람이라는 걸 확인해보고 싶었던 마음이었죠. 역시 내 생각이 맞았구나, 우리나라가 따뜻하고 아름다운 곳 맞구나 하는 것이 확 와서 정말 좋았어요. 또 정말 좋은 친구를 얻게 됐죠. 이것들이 원동력이 돼서 음반도 내고, 다양한 것들을 준비하고 있어요. 그걸 하려고 떠난 건 아닌데 하고 싶은 걸 하는 그 재미가 저를 계속 하도록 끌어가주는 탄력적인 에너지가 돼 주고 있어요.

 

문정수: 저희가 하는 활동들 어느 하나도 예정된 게 없었어요. 기대도 없었고요. 아주 담백하게 이십 원 가지고 떠나자, 뿐이었어요. 우리 역시 대한민국에서 청춘으로 살아왔잖아요. 그러면서 갑갑하고, 안타깝고, 아픈 지점들이 있었죠. 자본주의가 원하는 규칙 말고 진짜 본질, 청춘다움을 찾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십 원을 가지고 간 거거든요. 이와 반대되는 의미의 상징적인 돈이었죠. 길에 떨어진 십 원짜리 같은 인생이라고 하잖아요. 이십 원은 아무것도 아니죠. 하지만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라는 거예요. 그 마음이 전부였어요. 그리고 지금 우리 곁에 있는 사람들은 똑같다, 아름답다,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이다, 라는 걸 느끼게 됐죠. 저희가 느꼈던 것,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 기적처럼 벌어진 일들이 그냥 보여서 아마 공감을 얻으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려워하지 않았으면, 외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방랑을 시작하기 전부터 저자 세 분에게 비슷한 공감이 있으셨던 건가요?


김광섭:저희가 그에 대해 깊이 얘기를 해본 건 아니고요. 왜 여행을 가는지 했을 때 이것을 보여주는 게 가능할 거라 생각했어요. 힘들겠지만 결국 부산까지 갈 거란 것도 알았고요. 해보지도 않고 말하긴 싫었어요. 청춘들 역시 계속 그렇게 말하는 어른들의 정서 쪽으로 가는 게 싫었고요. 그런 생각이 있던 찰나에 이런 얘기가 툭 나왔고,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생각이 맞아 떨어졌죠.

 

문정수:그게 진실인 것 같아요. 저희가 각자 살며 느꼈던 현실, 세상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했던 부분은 지금 청춘들도 똑같이 느끼고 있는 부분일 거란 거죠. 거기 매몰돼 있고 싶지 않다, 허상에 소비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세상에서 말하는 열정, 꿈, 희망이 마음에 안 드는 부분도 있죠. 꼭 도달해야 하고, 쟁취해야 하는 혹은 1등이 되기 위한 도구로만 생각하고 그걸 청춘들에게 요구하잖아요. 우리가 무엇 때문에 힘든지 조각내고 찢어서 속살을 마주해보아야 할 것 같아요. 이십 원을 들고 방랑을 하며 그런 걸 느꼈죠.

 

너무 좋은 말들이잖아요. 열정, 청춘, 행복, 이런 것들이요. 그런 걸 얻고 싶지 않은 사람은 당연히 없을 텐데 거기서 멀어졌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죠. 현실은 너무 엄혹해요. 도태되면 바로 아웃이라는 불안이 있고요. 그런 사람들에게 ‘당신들도 우리처럼 해봐’라고만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단 생각도 드는데요.


문정수:이십원 쁘로젝트가 말하는 건 ‘우리처럼 이십 원 가지고 너희도 해봐’가 아니에요. 각자 기준에서 하고 싶고, 즐거워하는 사소한 소박한 것들이 무엇인가 생각해봤으면 좋겠다는 거죠. 그걸 돈 같은 것이 막고 있다면 그냥 할 수 있다는 거예요. 돈에 얽매이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건 중요하지 않아, 라고 하고 싶은 거예요. 여건은 타인의 기준이라는 거죠.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척 사소하고 섬세한, 내가 정말 좋아하고 즐기는 것을 할 수 있어요. 그림을 그리고 싶으니 꼭 비싼 레슨을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죠. 내가 그림을 그리고 싶은 건지 남들에게 보여주는 그림을 그리려는 건지 내면의 욕망을 잘 들여다봐야 한다는 거죠. 그런 걸 지워도 됩니다, 라고 말하고 싶어요. 하고 싶은 게 있다면 아주 작은 것부터 방랑을 하는 거죠. 일상 안에서, 방 안에서 나만의 위트있고, 즐겁고, 사소한 방랑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공유하고 싶은 정도예요.

 

김광섭:출판사가 원고를 안 받아준다면 자필로 써서 책을 내자고 생각했었어요. 유명한 작가가 되기 위해 글을 쓴 게 아니라 우리가 경험한 것 중에 사람들과 공감하고 싶은 가치가 있으니 그걸 보여주고 싶을 뿐이었거든요. 또 책이 나왔으니 끝, 이게 아니라 저희는 계속 할 거예요. 더 이상 이 일이 재미없어질 때까지요. 한 번만 보여주고 사람들에게 ‘너희도 해’가 아니라 계속 하고 있다면 분명히 사람들도 알게 될 것 같아요. 타인의 시선과 상관없이 재미있는 걸 계속 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겠죠. 또 이런 것들은 그 순간에 최선을 다해 열심히 하면 되는 거거든요. 미리 저 높은 곳을 보고 겁먹을 필요는 없죠. 물론 힘들죠. 하지만 힘들다고 해서 가만히 있을 건 아니잖아요. 대신 편하게 보여주고 싶은 거죠.

 

내 안의 어른이 하라는 대로
세상의 누군가가 시키는 대로
어느덧 말 잘 듣는
어른이 되어버렸나.

 

우린 우리에게 너무 어른이지 않나.
내 안의 그 천진난만 아이는 어디로 갔을까. (95쪽)

 

 

길에서 만난 사람들


세 분의 관계가 흥미롭습니다. 원래 친했던 사이가 아니었다고요? 솔직하게 떠나기 전에 정말 걱정되는 게 없었나요?


김광섭: 갈등 걱정은 안 했어요. 갈등은 풀면 되고, 안 되면 따로 가면 되는 거지 걱정할 일은 아니니까요. 제가 걱정한 건 먹고, 자는 문제였어요. 전 상대를 의식하지 않을 땐 굉장히 편안하게 잘 지내는데 상대와의 관계라는 것 안에 들어서면 긴장이 생겨요. 타인의 기준으로 나를 바라보는 거죠. 노잣돈 벌기 위한 아이디어를 형(문정수)이 내는데 걱정이 있었죠. 나는 짐이 되긴 싫지만 분명 불편해하고 있을 테고, 이것들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나중엔 편안해졌지만요.

 

문정수: 김방랑과 성향이 달라서 그런지 저는 솔직히 걱정이 하나도 없었어요. 저는 재미있겠다 싶어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포기하지 않거든요. 또 저는 다툼을 너무 싫어하는데 그걸 또 너무 좋아해요. 무슨 말이냐면요. 가는 길에 생기는 갈등, 다툼은 제게는 놀이인 거예요. 그래서 치열하게 싸우고, 찾고, 힘들어해요. 그것은 제게 생명력이에요. 이건 정말 아름다운 다툼인 거죠. 이것이 진짜 살아있는 것이고, 파닥거리는 거죠. 지금도 어떤 결정을 할 때 서로 끝까지 싸우고 추적해요. 그건 힘든 게 아니에요. 싸우는 게 아니죠. 교감하고, 소통하는 놀이인 거죠.

 

이정수: 저도 솔직히 걱정은 하나도 없었어요. 먹고 자는 것에 대해서는 (문)정수 형을 믿었어요. 광수 형은 그 부분을 걱정했다고 하는데 저는 오롯이 다 믿었어요. 한두 끼 굶는 건 문제가 아니었으니까요. 다만 환경이 걱정이었어요. 출발하기 전에 생각한 이미지가 있거든요. 이런 장면은 꼭 만났으면 좋겠다 했던 게 있었는데요. 지금도 이십 원 방랑에 대한 이미지가 있어요. 아무것도 없는 길에 우리가 걸어가는 모습이에요. 그리고 아주 비가 많이 오길 바라기도 했는데 한 번을 안 오더라고요. 단 한 번도 제가 원하는 어떠한 상황도 오지 않았어요.(웃음) 태풍이 오고 있다가도 저희가 갈 때마다 태풍이 밀려나갔으니까요. 하지만 생각지도 않았던 연금정 장면 같은 것도 있죠. 한복 입고 그곳까지 가는 게 정말 힘들었을 텐데 하고 싶은 대로 하자고 했기 때문에 그곳이 나왔을 때 그냥 형들에게 ‘저거다, 가’ 한 거죠. 그럼 형들은 ‘그러면 해야지’하고 순순히 가는 식이었으니까 그런 건 진짜 좋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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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궁금했어요. 갈등이 없었는지, 어떻게 해결했는지 말이죠. 심지어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사이기도 하니까요.


문정수: 치열하게 싸워야 그 안에 진짜 우리다움이 나온다는 거죠. 돌덩이를 조각내고 부시면 밀가루처럼 언어와 생각이 깨지거든요. 그건 기상천외한 우리다운 그림을 만들어낼 수 있어요.

 

김광섭:장호항에서 시작한 이후로 결정을 할 때 동전을 던졌어요. 출발 전에 회의 장면을 촬영한 게 있는데요. 그걸 보니 우리가 들고 가는 십 원짜리를 어떻게 써먹을까 얘기한 적이 있더라고요. 여행하면서는 그걸 까먹고 있었는데 돌아보니까 십 원짜리를 갈등을 해소하는 데 썼더라고요.

 

이정수:저는 약간 관조자, 관찰자의 느낌으로 간 거였어요. 형들이 뭘 하고 있으면 저는 주변 사람들 사이에 파묻혀 들어가 있었어요. 일부러 많이 듣기도 하고요. 점점 객관적으로 이 사람들이 뭘 하는지 보이는 거예요. 그러면서 말을 잃게 됐어요. 제가 무슨 말을 하면 방해하는 것 같기도 했고요. 재미있는 건 그러나 결국 내가 뭘 하자고 해도 뭐든 해줬다는 거죠. 다른 건 없었고요. 콜라 사준 게 최고로 좋았어요.(웃음) 그날 진짜 진지하게 걸어가는 형들을 붙잡고 할 말이 있다고 했던 건데 그때 형들의 떨리던 눈동자를 잊을 수가 없어요.

 

길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직접 질문을 하기도 했고,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들었잖아요. 지침을 새롭게 준 말들이 있었는지,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 무엇인지 궁금해요.


김광섭:고모부가 해주신 말씀이요. “꿈? 내 가족 잘 사는 게 꿈인 거지”라고 얘기했을 때 정말 놀랐어요. 그전까지 많은 어른들은 가족에 대해 핑계 삼는 말들만 했어요. 그게 아니라 당연히 가족을 위해 산다는 고모부의 말씀이 멋있었어요. 멋있는 어른이죠. 전 부모님이 안 계시기 때문에 부모가 되는 것, 자녀와의 관계 등에 기본적으로 관심이 많거든요. 과연 부모가 된다는 건 하고 싶은 걸 다 포기하는 건지 의문이 있었어요. 결국은 내가 용기 없음을 앞에 자식을 내세워 숨어 있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렇게 하지 않고 이 자체에 대해 ‘꿈’이라고 말해주는 고모부가 참 좋았죠.

 

이정수: 엄 선생님(김광섭의 고모부)은 특이한 어른이었어요. 흔한 어른인데 그런 말을 한다는 것 자체가 참 대단하게 느껴졌어요.

 

그게 이 책이 빛나는 점 같아요. 평범한 사람들이 가진 깊은 철학 같은 것을 곳곳에서 엿볼 수 있거든요.


문정수: 저희가 느낀 것도 그런 지점이에요. 누가 잘났고, 못난 건 없다는 거죠. 다 똑같고, 아름답고, 모두가 철학자라고 생각해요. 각기 다른 언어와 경험으로 얘기하고 있는 것뿐이죠. 방랑 다니면서 만난 분들은 사회적 기준에서 지식인, 배움과는 전혀 가깝지 않은 분들이거든요. 할머님들이 하신 말씀도 정말 기억에 남는 거예요. ‘세상 뒤치다꺼리만 하다가 이제 살만하니까 오라하네’라면서 그러니까 지금처럼 즐겁게 살라고 하셨거든요. 그게 제겐 가장 큰 메시지였고, 세상 사람들에게도 전해주고 싶은 말이에요. 하고 싶은 것 하라는 말이 대단한 걸 이룩하라는 의미가 아니잖아요. 그게 정말 가슴에 와 닿은 말씀이었어요. 우리가 길 가다 만난 사람들, 아주머니, 아저씨들 모두 철학자예요.

 

책에 담지 못한 이야기도 있을 것 같아요.


문정수:진짜 죽을 뻔했어요. 신축 원룸텔이었어요. 아직 시멘트 청소도 안 돼 있고, 비닐도 안 뜯고, 분양 직전의 상태였는데요. 그때 들어간 거예요. 저희를 재워주겠다고 하신 분이 거기에 재워주신 거죠. 우리는 너무 감사했죠. 밤에 잘 데가 없었거든요. 갔더니 새 건물에 신축 빌라잖아요. 기가 막힌 거예요. 이불이 없으니 가지고 다녔던 이천 원짜리 돗자리를 깔고 잤죠. 아침에 일어났더니 방사능에 오염된 것처럼(웃음) 셋이 똑같이 너무 아픈 거예요. 그건 말로 설명할 수 없어요. 그 척박한 여행 환경에서 하룻밤을 그 좋은 건물에서 재워주겠다고 하면 ‘감사합니다’ 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하루 더 자라고 하시는데 셋 다 도망갔어요. 길에서 자는 한이 있더라도 여기는 안 되겠더라고요.

 

이정수: 시멘트 독은 정말 무섭더라고요.(웃음)

 

길에서 만난 분들이 책 나온 걸 알면 정말 좋아하시겠어요.


김광섭:전부 다는 아니고 좀 특별했던 분들은 차를 렌트해서 한 번 가볼까 해요. 만나서 또 얘기하고, 맛있는 거 먹고, 놀려고 하고 있어요.


다음 프로젝트가 있어요. 저희가 한옥을 지을 거예요. 장소는 모르고요. 책, 제작한 볼펜, CD 등을 다 모아서 처음에 가지고 갔던 이십 원 동전 두 개를 모아서 물물교환을 할 거예요. 이 물건들이 방랑을 떠나는 거죠. 계속 한옥이 될 때까지 물물교환을 하는 거예요. 물물교환을 하면서 만나는 사람들과 이야기도 나눠보고 어느 날 한옥이 되면 처음 물건을 가져간 분이 입주식에 오시는 기회를 가지시는 거죠. 그 한옥은 청춘 문화 복합 공간으로 사용할 거고요. 지금도 저희 수익의 10%를 따로 모아두고 있어요. 저희 씨드머니는 20원이었지만 어떤 친구에게는 필요한 돈이 다르잖아요. 그걸 빌려주는 거죠. 기가 막힌 보고서는 필요 없어요. 눈빛을 보고 결정할 거예요. 그건 문방랑(문정수)이 체크할 거예요.

 

문정수:이십 원의 주술사죠.(웃음) 교육, 여행 등 다양한 작당 모의를 하고 있어요. 이십 원이 바라는 세계가 있어요. 

 

이정수:형들이 좋은 게 주도적으로는 형들이 하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하지 말자고 하면 안 해요. 모두가 영혼의 울림이 있어야 해요. 마음이 가는 것만 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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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을 즐겁게


일종의 생태계를 상상하시는 것 같네요.


문정수: 네. 지금 있는 청춘들의 꿈 융성이라고 하는 제도들은 정말 아름답지만 그 또한 경쟁이고, 시스템인 게 느껴져요. 저희는 돈을 지원하는 게 아니에요. 이십 원으로 상상하지 못했던 콘텐츠가 만들어지고 있고, 즐겁잖아요. 이런 문화가 펼쳐졌으면 좋겠어요. 물물교환도 꼭 ‘한옥을 짓자’가 아니라 이 정신을 정말 좋아하고, 청춘들을 응원하고 싶다는 사람들이 동참하는 것이 중요해요. 그 안에서 파생되는 이야기가 있을 테고요. 한옥으로 갈 때까지 돈이 아니라 마음으로 응원하는 사람들이 생기는 거죠. 일종의 운동처럼 말이에요. 그 결과 공간이 딱 지어지면 그 과정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의 이름을 동판에 기록할 거예요. 

 

이십 원 쁘로젝트, 이 ‘미친 방랑’은 성공했나요?


김광섭: 여러 갈래에서 의미가 달라요. 그런데 성공이냐 실패냐는 중요하지 않거든요. 이 방랑은 그런 것과 상관없이 내가 어떤 가치를 새로 알게 됐고, 알고 있던 걸 확인했고, 그게 중요해요. 제일 중요한 건 저희 셋이 이 방랑을 통해 하나가 된 것, 이게 가장 큰 가치거든요. 앞으로 살면서 같은 생각을 가진 세 명이 같은 방향으로 에너지를 썼을 때 훨씬 더 좋을 테니까요. 그냥 말하자면 이십 원 들고 서울에서 부산 갔으니까 성공한 건 맞죠. 저희가 정한 건 그것밖에 없으니까요. 그런데 매일 즐겁지는 않았으니까 실패했을 수도 있어요. 다투지 않고 싶었는데 한 번 쯤은 다퉜으니 실패했다고 할 수도 있고요.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이정수: 부산 도착해서 서울 올라오는 순간, 챕터 하나가 끝났고 다음 국면으로 넘어가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1차 방랑은 도착했으니까 성공인 거죠. 계획은 했던 거니까요. 그렇지만 약간 다른 의미가 있어요. 저는 성공, 실패 생각은 안 해봤고 계속 갈 거니까요. 다음 국면에 접어들었다, 이 생각밖에 안 했어요.

 

문정수:저도 비슷해요. 성공, 실패라는 단어 자체는 나쁘지 않아요. 아름다운 단어죠. 그런데 세상의 오물이 덕지덕지 묻다 보니 저는 성공이나 실패라는 단어가 싫어졌어요. 이십 원에는 그런 걸 생각해보지도 않았고요. 또 성공, 실패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냥 우리가 즐거웠는가 안 즐거웠는가 그것인 것 같아요. 인생도 그렇다고 생각해요. 죽을 때 저는 제게 ‘여행이 즐거웠니?’라고 물어볼 거예요. 좌충우돌이었는데 나답게 즐겁게 여행했다고 하면 웃을 수 있을 것 같아요. 거기엔 어떤 단어도 필요 없어요. 그래서 지금도 즐거운 길을 가고 있는 거예요. 기꺼이 덥고, 비오고, 돌풍이 부는 길에서 넘어져도 그걸 다 만나면서 걸어가는 거죠. 그게 너무 즐겁고, 아름답고, 이 친구들에게 고맙고, 무엇보다 재미있고요. 이십 원은 그렇게 우리의 기준, 생각으로 걸어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 ‘아이다움’이 우리 셋의 공통점인 것 같아요.

 

아까 말씀하신 이십 원의 다음 프로젝트, 한옥 짓기도 세 분의 철학과 무척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김광섭:그런 생각을 했어요. 이 책이 정말 저희 마음을 잘 담아서 썼는데, 이 책이 필요하지 않은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이런 거 읽을 필요 없는 세상이요. 다 그렇게 살면서 ‘옛날에는 사람들이 이렇게 안 살았나?’ 하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어요.

 

문정수: 맨날 이 얘기를 해요. 멋있어요.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다 주체적이고, 경중을 떠나서 성공이나 실패라는 것 없이 각자 내 삶을 즐겁게 사는 거예요. 모두 그렇게 살고 있다면 이런 책은 필요 없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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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원 쁘로젝뜨 미친방랑문정수,김광섭 공저/이정수 사진 | 북하우스
그들은 그렇게 20원 들고 방랑길에 나섰고, 홍대 정문 앞을 출발한 지 16박 17일 만에 부산에 도착했다. 서울과 부산 사이에, 그리고 열여섯 밤 열일곱 낮 사이에 각기 다른 빛을 뿜어내는 밤하늘의 별과 같은 사람들을 만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자신이 품고 있는 진실된 욕구와 제대로 마주볼 수 있었다. 그로부터 1년 후, 인생의 커다란 전환점과도 같았던 16박 17일의 방랑 에피소드가 드디어 한 권의 책에 담겨 나왔다. 책 제목은 그들의 프로젝트명이기도 한 [이십원 쁘로젝뜨: 미친방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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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어앤라이터’ 김현성 “일단 제 고백을 해야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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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취를 감춘 것이 아니었다. 늘 책을 읽었고, 글공부를 원했고, 작가를 꿈꿨다. 행운이 함께 한 덕에 한예종에 들어갔고, 여행을 떠났고, 마침내 책을 썼다. 제목은 『당신처럼 나도 외로워서』. 이 책은 18년 전 세상에 나타나 가수로 이름을 알린 김현성이 “다시 세상 앞에 서겠다는 출사표”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야 있겠냐만 삶에 대한 뜨거운 고민 앞에 김현성은 아주 성실했고, 성실한 만큼 솔직하게 자신의 생각을 기록해나갔다. 힘든 가족사와 아버지에 대한 솔직한 마음, 연인과의 이별 등을 가감 없이 적은 이유를 묻자 “나도 똑같이 이런 시간을 지났고, 아팠던 시간도 많았던 사람입니다”라는 말을 건네기 위함이었다고 답했다. 가수라는 화려함 뒤에서 자신이 진짜 원하던 것을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한 한 사람의 솔직한 고백이자 당신에게 건네는 악수, 이것은 쑥스럽지만 반드시 해야 했던 김현성의 인사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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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살고 있는 걸까?


오랜만에 만나게 됐는데, 그것이 책을 통해서일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어요. 반갑기도 하고요. 어떻게 지내셨어요?

저도 책으로 인사드릴 줄은 생각 못했어요. 그동안은 활동 쉬면서 글 작업을 많이 했고요. 글에 대한 욕심이 있어서 문학 공부도 하고 그랬어요. 여행을 가게 되면서 그 계기로 저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는데요. 이제 나이가(웃음) 다른 숫자가 붙기 직전인 시기에 오면서 ‘잘 살고 있는 걸까? 좋은 선택일까?’를 많이 고민했어요. 그 고민들을 글로 남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책을 쓰게 됐죠.

 

고민과 여행이 함께 묶인 거군요.


네, 어떻게 보면 그 고민을 더 깊이 하기 위해 여행을 떠났던 것 같아요.

 

여행 떠나기 직전 친구와 나눈 대화 내용이 나오잖아요. 보통의 생활인들은 늘 여행자를 부러워하죠. 물론 여행이 저자에게도 특별한 의미였으리란 짐작도 가능했고요.


안 그래도 그 친구에게 얼마 전 문자가 왔어요. ‘이거 내 얘기 맞지?’하면서요.(웃음) 누구에게나 여행은 굉장히 즐겁고 행복한 순간이겠지만 저한테는 더 뜻 깊다고 할까요. 공부하면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어요. 가수 활동을 할 때는 아무래도 사람도 많이 만나고 하지만요. 글공부에 마음을 품고는 혼자 작업을 하는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특히나 외로움, 고독함 같은 것들이 제 안에 많이 쌓여있었거든요. 고민 같은 것도 많이 있었고요. 이번 여행은 그 혼자 있고, 외롭던 시간을 제가 많이 탐닉했던 예술가들의 작품을 보고, 발자취를 따라가 보고 하면서 혼자 고민하던 것들에 대한 답을 얻어 보려한 시도였던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도 제게는 굉장히 뜻 깊었죠. 앞으로의 시간에 대한 계획을 세우는 시간이기도 했고요.

 

큰 전환점이 되었겠네요.


그렇죠. 이번 책 같은 경우가 제게는 다시 세상 앞에 서겠다는 출사표 같은 의미가 있거든요. 제2의 인생이라는 말은 어찌 보면 조금 거창할 수도 있지만요. 노래도 그렇지만 책도 저 혼자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하는 작업만은 아닐 거예요. 대중에 보여드리고, 어떤 반응을 받고, 그 안에 제가 같이 섞여서 그분들의 인생과 함께 흘러가는 거죠. 노래가 그랬던 것처럼 책도 같은 의미예요. 이번엔 책으로써 다시 인사를 드리고, 다시 대중 앞에 선 김현성의 모습을 보여드리겠다는 의미가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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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로서 있는 상태


문학에 대한 욕심을 말씀하셨는데요. 한예종에서 공부를 하셨다고요. 글에 대한 욕망을 꽤 오랜 기간 품고 있었던 것 같아요.


이렇게 말씀 드리면 좀 배신감이 드실 수 있는데요.(웃음) 가수를 하고 싶지 않았다, 이런 건 절대 아니고요. 어렸을 때 가수가 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못 했어요. 감히 나 같은 사람은 사람들 앞에 서서 노래, 쇼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거든요. 가수보다는 나이가 들면 글을 쓰는 사람이 되어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막연한 상상은 있었죠. 어릴 때도 책을 워낙 가까이 했고요. 가수 활동을 할 때도 차 안에 이동할 때는 거의 책을 많이 봤거든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그 꿈이 연장이 되었던 것 같아요. 본격적으로 뭔가 좋은 작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을 하다가 혼자 공부하는 것보다는 함께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서 학교에 가게 됐죠.

 

공부하는 동안 정말 순수하게 행복했다고도 적으셨죠.


계산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이걸 통해서, 활용해서 미래를 어떻게 한다는 생각보다 정말 그냥 순진하리만치 좋아서 공부한 거죠. 어린 친구들이 과학 기구 조립하면서 상을 타면 언론에 노출되겠지, 이런 생각 잘 안 하잖아요. 정말 그게 그냥 좋아서 하잖아요. 그런 마음으로 공부를 했고, 그래서 더 깊이 빠져들 수 있었고, 그래서 더 행복했던 게 아닌가 생각이 들어요. 너무 이렇게 얘기하니까 좀 부끄럽네요.(웃음)
 
여행 이야기가 주를 이뤄요. 졸업 후 여행을 떠나며 기대했던 건 무엇이고, 그것들을 얻었는지 묻고 싶습니다.


핀란드 호숫가에서 미소를 짓는 대목이 나오는데요. 너무 순진한 발언인지는 모르겠지만요. 정말 마음으로부터 나오는 미소랄까요. 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다시 사회 속에서 싸워나가는 시간들이 있었을 텐데요. 그런 시간들, 현실 안에서 너무 위축되고, 긴장 속에 살았던 시간들에서 벗어나서 다시 본연의 자연스러운 내 마음 상태를 되찾았다는 게 제게는 무척 큰 의미인 것 같아요. 현실 속에서 살다보면 잃게 되는 것들이 있잖아요. 본연의 내 마음의 평정상태라든지 가장 자연스럽게 내가 나로서 있는 그런 상태 말이죠. 그런 걸 찾게 된 시간이었어요. 이 상태를 내가 알았으니까 다시 사회로 돌아가더라도 이 마음 상태를 기억하고, 잊지 않고, 다시 힘을 얻어서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을 갖게 된 게 이번 여행에서 얻은 가장 큰 소득이었어요. 이 여행을 통해 제 스스로 중심을 좀 잡을 수 있게 된 시간이 있었지 않나 생각이 들어요. 그렇지만 이걸 제가 예상하고 갔던 건 아니고요. 떠나기 전에 가장 느끼고 싶고, 보고 싶었던 가장 큰 목적은 조토의 작품들이었죠.

 

‘조토’에 관해 여러 장을 할애하셨어요. 저자에게 이 예술가는 어떤 큰 의미가 있는 것 같거든요.


너무 보고 싶었어요. 조토에 관심 가졌던 것 역시 앞으로 내가 어떤 작업을 하더라도 그들이 깨달았던 것들을 알면 그것을 통해 좀 더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많이 있던 거예요. 실제로는 제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이 깨달았던 것 같고요. 책이나 글로 보면 그냥 마법 같잖아요. 천재라는 닿을 수 없는 차이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요. 실제로 가서 그들의 작품을 보니까 이러한 시간과 노력, 생각을 통해 이루어졌구나 하는 것을 깨달을 수 있어서 참 좋았어요. 저의 작업을 해나가는 데 있어서도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다는 점을 얻게 된 것 같아요. 이를 테면 그림만 봤을 때 ‘너무 단순한데 느껴지는 이 힘은 뭐지?’라고 느꼈던 것이 실제로 보니 이 작가가 무엇에 집중했는지 실제적인 노하우를 생각할 수 있게 되더라고요. 그게 제게는 큰 도움이 됐어요.


그 외에도 보고 싶은 미술작품들이 정말 많았었는데 직접 보면서 흐름도 많이 정리가 되어서 참 좋았죠.

 

그저 좋아하는 예술가일 뿐 아니라 삶에 있어 어떤 특별한 지침을 준 존재였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어떻게 그렇게까지 한 작가에게 매료가 되었을까요?


저도 왜 이렇게 매료되는지 모르겠어서 찾아간 거였어요. 수많은 예술가들이 있는데 왜 하필 이 사람에게 끌릴까 하는 물음에서 시작된 것이기도 한데요. 그러니까 사실은 모호한 질문이었죠. 확신이 있어서 갔던 것도 아닌데 직접 보고 나서 더 큰 확신이 생겨서 온 거예요. 이게 책에 실릴 거란 예상조차 한 게 아니고요. 가서 보고 나니 너무 좋고, 이 사람이 정말 대단한 일을 해낸 작가구나 알게 됐어요. 또 국내에 덜 알려진 것이 아쉽기도 했어요. 스크로베니 예배당은 동양인이 거의 오지 않는 곳이라고 하더라고요. 사실 관람도 너무 어렵죠. 미리 예약도 해야 하고요. 그러나 정말 좋은 곳이어서 또 보러 가고 싶고, 많이 알리고 싶은 마음이에요.

 

결국 이 책은 김현성이라는 사람이 해온 고민의 발자취라 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책을 내서 작가로 발돋움 한다, 이런 것보다 공부의 연장선에 있는 거예요. 이를 테면 내가 지금 이 나이에 이런 고민이 있고,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당신들은 어떠신지 묻는 그런 느낌이죠. 서로 공감했으면 하는 생각에서 쓴 책인 것 같아요.

 

 

진솔하게 건네는 말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는데요. 답을 하시면서 좀 쑥스러워 하시는데, 왜 그러세요?(웃음)


아, 너무 촌스러운 것 같아서요.(웃음) 음, 아! 이래서 그런 것 같아요. 이 질문 자체가 신선한 것 같아요. 저는 가요계 인터뷰를 많이 해오다보니 이런 답을 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어요. 그래서 좀 낯설고, 이런 답을 하는 게 부끄럽고 그런 것 같아요. 이것도 제가 경계인 아닌 경계인이라 그런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이제 글도 쓰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하고 출사표를 낸 거니까요. 그런 데서 오는 혼란 같은 게 제게 좀 있나 봐요. 책으로 인터뷰하는 경우가 많지 않았으니까요. 적응기라 그런 것 같아요.

 

사진도 눈길을 끄는데, 역시 여행과 사진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인가 봐요.


영화나 잡지를 워낙 많이 보다보니 그런 것들이 안에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림도 좋아하고요. 사실 사진은 완전히 아마추어 수준이죠. 여행 다녀와서 사진에 재미를 좀 붙였어요. 여행 초반과 후반의 사진이 느낌이 달라요. 후반으로 갈수록 담고 싶은 것들도 생겼고요. 앞으로도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다면 더 좋은 여행기나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박물관, 성당 외에, 책에서 다루지 않은 여행에서 있었던 사소하지만 특별한 기억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일단은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기억들이 제일 많아요. 줄리안이라는 이탈리안 호텔리어도 그렇고요. 너무 인상 깊었어요. 20년 동안 호텔리어 일을 하셨는데 7년 동안 4개월 계약직 자리밖에 얻지 못했다고 해요. 기차표를 살 돈이 없어서 표를 사지 않고 플랫폼에 서 있던 남자의 모습을 멀리서 바라볼 때의 기억을 지울 수가 없거든요. 게다가 그 사람이 제가 외국 사람이니까 길을 모를까봐 먼저 말을 걸어줬죠. 그것 역시 굉장히 감격스러운 일이었죠. 그 사람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무엇보다도 좋아하는 그림을 보고 예술 작품에 매료되고 했지만 사실은 그 감흥들은 사람을 만나면서 느꼈던 감흥에 비교할 바가 되지 않아요. 책에는 이 작품 하나 본 것만으로도 다른 것 아무것도 하지 않을 만큼 좋았다고 말을 하기도 했지만 그건 그 작품이 그렇게 좋았다는 말을 하기 위함이었고요. 여행에서 사람을 만나고, 낯선 사람들과 교류하고, 친해지고, 다녀와서 연락을 나누고 하는 일들이 정말 즐겁죠. 그것들이 여행이 줄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일 거예요. 일상에서는 도저히 생길 수 없는 인연이잖아요. 

 

연인과의 이별, 아버지의 병, 가정 폭력 등 무척이나 내밀한 이야기들이 담겼는데요. 이런 이야기까지, 아픈 상처들까지 적은 이유가 있었을 것 같아요. 


저도 그 부분을 고민 많이 했어요. 아버지가 어떻게 받아들이실까 걱정이 됐고요. 당연히 보실 테니까요.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었죠. 일단은 먼저 제 고백을 해야 했어요. 털어낸다는 표현은 적합하지 않지만 이걸 좀 덜어내고 싶었던 마음이었어요. 밝혀서 온전히 나란 사람이 어떤지 보여주고 싶었어요. 대중가수는 어쨌든 한 꺼풀 덧씌워져서 다가갈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한참 뜨겁게 활동하던 시기가 지나고 나이도 어느 정도 들고 다시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거니까 좀 더 진솔하게 말을 건네고 싶었어요. 제목도 그렇고요. 나도 똑같이 이런 시간을 지났고, 아팠던 시간도 많았던 사람입니다, 라고 말하는 게 맞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어요. 일단 쓰기 시작하니 거짓말을 쓸 수는 없었고요. 제 성격이 그렇듯 그냥 솔직하게 아버지에 대한 여전히 이기적인 마음 같은 것들이 솔직하게 써져버렸어요. 그렇게 쓰지 않은 건 내 글이 아닌 것 같아서 그냥 그대로 실었고요.

 

아버지께서는 책을 읽으셨나요?


당연히 읽으셨는데요. 제가 보내드리기 전에 먼저 사서 읽으셨더라고요. 그런데 ‘고맙다’는 말을 하시더라고요. 의외였는데요. 그 안에 아픔, 쓰라림은 있으시겠죠. 그걸 참고 아들을 위해 그렇게 말씀해주셨으리라 생각이 드는데요.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려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렇지만 여기 쓴 글은 화해하고 싶고, 더 다가가고 싶다는 의미에서 쓴 거란 걸 아실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쓴 거고요. 그 방식이 여전히 좀 차갑게 드러났을 뿐이지 그 마음은 아셨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런 고백을 통해 작가 김현성의 한 페이지가 시작되는 거겠죠.


많이들 책을 내시고, 사실 누구나 책을 낼 수 있는 시대잖아요. 저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 됐고요.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어쨌든 편견 같은 것들이 있을 수 있잖아요. 만약 산문집이 아니라 소설을 들고 나왔다면 정말로 더 많은 편견이 들어갔을 것 같아요. 그것들이 예상됐기 때문에 시작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왜 아니겠어요. 등단하려고 많이 노력도 했고요. 그렇게 해야 사람들이 더 편안하게 받아들여주지 않을까 생각했었죠. 그 작업에 시간을 많이 보내곤 했었는데요. 아쉽게 잘 되진 않았어요. 그래서 더 산문집을 통해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앞으로 작가로 활동을 시작하는 데 있어 조심스러움, 걱정이 무척 컸어요.


지금 책을 냈다고 완전히 사람들 마음에 찼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요. 앞으로 보여드릴 수 있는 글을 통해서 계속 조금씩 노력해나가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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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겠다


너무 조심하시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그렇죠?(웃음) 정말 제일 처음 했던 생각은 내 책 한 권을 갖고 싶다는 거였어요. 그러다 소설에 완전히 빠져버리게 된 거예요. 이걸 할 수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 생각이 들었고, 정식으로 배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학교에 들어갈 기회를 얻은 거예요. 함께 공부하는 친구들, 주변 작가 분들이 얼마나 고생하고 노력하는지 알게 됐고, 원하는 걸 이루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자기와의 싸움을 하는지 알기 때문에 책 한 권을 내는 게 사실은 너무 조심스러웠어요. 이 책을 내면서도 ‘나도 이제 작가야’(웃음) 이런 마음에 있어서도 많이 조심스럽죠. 글 앞에서 자만, 오만하지 않는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하게 돼요.


앞으로는 제가 쓸 수 있는 미지의 글들을 찾아나가는 작업이 아닐까 해요. 한 작업, 한 작업이 다른 작가 분들에게 누가 되지 않게 최선을 다하는 작업이 되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가수 활동에 대해 ‘전보다 더 잘하지 못할 거라면 안 하는 게 낫다’고 단정한 문장이 있거든요. 가수 김현성의 활동은 어떻게 계획하고 계신 건가요?


그 문장이 제가 예전에 가졌던 생각이에요. 표지말에도 썼지만 노래에 대한 부분은 제게 주어진 달란트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그 부분도 소홀히 하진 말아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노래를 다시 준비하고 있는 시기고요. 노래와 책이 별개라고 생각하진 않으려고요. 어차피 감성과 느낌을 전달하는 것들이기 때문에요. 다만 매체가 다를 뿐이지 보완재란 느낌이 들어요. 노래를 통해 느낄 수 있는 감정이 있고, 책을 통해 받을 수 있는 저에 대한 느낌이 있겠죠. 제가 내거는 정체성은 ‘싱어앤라이터’거든요. ‘싱어송라이터’라고 많이 하잖아요. 저는 ‘싱어앤라이터’, 이런 모습으로 비춰져도 좋지 않을까 해요.

 

앞으로는 어떤 활동으로 ‘김현성’이라는 이름을 세상에 보여줄 계획인가요?


지금 상태에서 새롭게 보여줄 수 있는 작업을 다시 하려면 저는 고달프겠지만 그렇게 하는 게 앞으로 남은 삶에서 내가 더 행복한, 꼭 해야 할 일들이 아닌가 하는 새로운 깨달음이 있었어요. 거기에 작가로서의 이력도 포함이 됐으니 최선을 다해야 할 것 같아요. 고꾸라지더라도 시원하게 부딪쳐보겠다는 생각이에요.(웃음)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인생일까. 어떻게 하면 좋은 여행이 될 수 있을까. (중략)

이 책은 그런 고민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고백하고 싶고, 반성하고 싶고, 사과하고 싶고, 고민을 말하고 싶고, 발악 같은 의지를 피력하고 싶었다. (중략)
어차피 정답이란 없을 것이고, 이것은 최근에 내가 얻은 나름 근사치의 답이다.
줘도 줘도 아깝지 않은 한 사람과
해도 해도 질리지 않는 일 하나를
갖는 것. (8쪽)

 

마지막 질문은 꼭 이 내용으로 해야겠네요. 어떻게 사는 게 잘사는 인생인가 하는 고민에서 책이 시작되었다고 하셨는데, 그것은 무엇이라 생각하세요? 답을 찾으셨나요?


근사치의 답을 아래 적어두기도 했지만요. 그 답은 제가 마음에 담아두고 살아야 할 것들이에요. 흔하고, 상투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어쩌면 상투적이어서 정답에 가까운 답이라고 마음에 품고서 갈 거예요. 여전히 정확한 ‘답’까지는 아니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답을 하자면요. 제가 가수로서 다시 노래를 열심히 하고, 제 몫으로 쓸 수 있는 글을 최선을 다해 세상에 만들어내는 것, 그래서 내 역할을 최대한 충실히 하는 것이 제게 주어진 숙제이자 잘살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이 들어요. 보편적으로 말하자면 주어진 소명을 잘 해나가는 것이 좋은 삶의 방법이 아닐까 생각하는 거죠.


또 과거에 했던 실수를 다시 하지 않는 것이 핵심인 것 같아요. 제게도 가수 활동에 대해 왜 그렇게 미진했을까 싶은 부분들이 있는데요. 가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지만 그런 실수들을 다시 하지 않는 것, 조금이라도 더 나아질 수 있으면 하는 바람 같은 것, 그것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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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처럼 나도 외로워서 김현성 저 | 세종서적
많은 사람들에게 가수로 기억되고 있는 김현성이 작가로 새롭게 변신했다! 긴 공백기만큼이나 팬들의 기다림이 컸는데, 그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책 속에는 그가 또 다른 삶을 시작하는 작가로 서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오롯이 담겨 있다. 이 책이 출간되기까지 그는 한국예술종합학교 대학원 서사창작과에서 수학하고 수 년 동안 철학과 예술학을 공부했다. 그렇게 전문적인 문장 수련을 마친 후에 새로운 인생 2막을 열기 위해 유럽으로 떠났다. 작가라는 새로운 인생을 맞이하기 위한 유럽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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