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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연 박사 “아빠 육아가 성공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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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는 왜 말문이 트지 않을까?” “왜 이렇게 말이 느리고 말수가 적을까?” 영유아 자녀를 둔 부모들이 자주 하는 고민이다. 그러나 김수연 박사는 잘못된 고민이라고 지적한다. 영유아기(0~5세) 아이들의 언어 발달은 ‘언어 표현력’이 아닌 ‘언어 이해력’으로 평가해야 하기 때문이다. EBS <육아일기>, <60분 부모> 등을 통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아기 성장발달 평가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는 김수연 박사는 최근 『0~5세 말걸기 육아의 힘』을 펴냈다. 이스라엘 아동발달연구소에서 발달평가 및 조기발달 프로그램을 운영한 경험을 살려, 각 발달 단계별로 아이가 어떻게 세상을 이해하는지를 설명했다. 아이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을 알아야 아이에게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 나오기 때문이다.

 

영유아기 자녀를 둔 부모라면, 두 가지는 꼭 기억하자. 아이가 ‘이해’할 수 있도록 말을 걸고, ‘이해’할 수 있는 표현방법으로 반응하자. 또 하나, 아이의 아빠에게는 잔소리를 끊자. 이론보다 본능이 육아에는 더 쓸모가 있다. 어린이집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김수연 박사의 따끔한 조언에 귀를 기울여보자. 뜨끔한 엄마들이 꽤 많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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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유아기 언어 발달의 핵심은 ‘이해력’


현재 ‘김수연 아기발달연구소’를 운영하고 계세요. 육아 상담을 위해 연구소를 찾는 부모들이 많은데요. 대개 어떤 문제를 풀기 위해 찾아오나요?


24개월 전후의 아이들이 가장 많이 옵니다. 하지만 생후 4,5개월 아이부터도 발달평가를 할 수 있어요. 진단도 중요하지만, 제가 하는 건, 부모교육을 위한 발달평가예요. 부모가 아이의 행동을 옆에서 보라는 거죠. 아이의 반응을 보면서 무엇을 느꼈는지를 전문가와 이야기하다 보면, 아이를 이해하는 힘이 커져요. 제가 하는 발달평가는 부모교육을 위한 것인지 진단을 위한 게 아니에요.

 

『0~5세 말걸기 육아의 힘』의 핵심은 “아이가 얼마나 말을 잘하는가가 아니라, 상대방의 말을 얼마나 잘 이해하는지에 초점을 맞춰라”입니다. 보통 부모들은 내 아이가 말문이 늦게 트이면 무척 불안해 하는데요.


언어발달은 말을 하는 것과 말을 이해하는 것으로 나뉩니다. 아이큐와 직접적으로 상관이 있는 건, 어떻게 말을 이해하는 가예요. 영유아기는 말이 잘 트이지 않는 시기이기 때문에 ‘얼마나 말을 잘 이해하는가’가 핵심입니다. 말은 곧 운동성이에요. 입으로 말하기 위해서는 턱관절과 구강 구조 등 물리적인 신체 발달이 선행되어야 해요. 또한 입술과 혀의 움직임, 숨쉬기, 밥 넘기기 등 여러 운동성을 요하는 동작들 간의 협응이 원할하게 이뤄져야 입술을 움직여서 입으로 말할 수 있어요. 말이 늦는 현상은 혀와 입술 주변 작은 근육의 움직임, 호흡을 하는 근육의 움직임, 음식을 넘기는 식도의 움직임 등 여러 운동들이 통합되지 않아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아이의 운동 발달에서 원인을 찾아야 해요. 노인들이 말할 때, 입가에 침이 많이 고이잖아요. 말을 하면서 반사적으로 침을 삼켜야 하는데, 못 삼켜서 사래가 걸리고 하는 거예요. 영유아기 때는 이 운동성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언어 이해력’에 초점을 두는 게 맞아요.

 

아기발달평가는 꼭 해야 하나요?


발달평가는 종합건강검진처럼 모든 아이들이 해야 해요. 치과는 아플 때 가는 게 아니라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으러 가야 하잖아요. 발달평가도 마찬가지예요. 엄마가 진단할 수 없기 때문이에요. 문제가 있어서 오는 게 아니라, 잘 발달하고 있느냐를 보는 게 핵심이에요. 요즘 소아과에서 영유아검진을 개월 수에 따라 하고 있잖아요. 검사도구의 신뢰도가 아직 썩 높은 편은 아니지만, 부모들이 더 하셔야 신뢰도가 높은 검사도구가 나올 수 있어요. 적극적으로 하시라고 권합니다.

 

책이 굉장히 이해하기 쉽게 쓰여졌습니다. 그림 설명도 많고요.


줄줄이 말로 풀어 쓰면, 다 읽고 나서 뭔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분들이 많으세요. 그림만 보고도 학습 효과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책에 나오는 모든 예시를 사진으로 찍거나 그림으로 그려서, 일러스트 작가에게 줬어요. 해부학적으로 신체를 그릴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에요. 부록으로 언어이해력 평가 지침서를 만들었는데요. 가정에서 아이의 언어이해력을 확인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아이가 이해할 수 있는 방법으로 말걸기를 시도한다면 아이와의 애착 관계 형성과 효율적인 의사소통에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성격상 말이 많지 않은 부모들이 있습니다. 부모의 성격을 닮아 말이 늦나? 말수가 적은 건 아닐까 염려를 하는데요.


반복해서 말하지만, 영유아기 때는 표현력이 아니라, 이해력입니다. 이해하는 힘을 키워줘야 하는데 자꾸 표현력을 강조하니까 이런 고민을 하는 부모들이 많아요. 가족구성원이 많으면 아이의 언어 이해력은 저절로 높아집니다. 하지만 요즘은 외동을 키우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러니까 어린이집이 필요해요. 아이의 언어 발달을 위해서라도요. 이스라엘의 경우에는 생후 4개월부터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냅니다. 엄마가 쉬기 위해서 보내라는 게 아니라, 전인적인 발달을 위해서 보내라는 거죠. 아무리 엄마가 열심히 놀아줘도 전통적으로 만들어진 어린이집 프로그램을 따라갈 수는 없습니다. 언어 이해력은 어린이집을 보냈을 때, 더 좋아집니다.

 

아이가 너무 어린 나이에 어린이집에 다니면, 사회성은 좋아질지 몰라도 집단생활 속에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나요? 감기 등의 건강상의 문제도 있고요.


어린이집을 어떤 기관이라고 생각해서 생기는 문제예요. 내 친척의 집, 시누이의 집처럼 아이를 함께 돌봐준다는 개념으로 어린이집을 생각해야 해요. 학교, 기관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물론 아직 환경이 따라주지 못하는 면도 있죠. 옛날에는 서울 한복판에서 아이를 키워도 동네가 있는 사회였기 때문에 사람들과 많이 소통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니까요. 점차 나아지고 좋아져야겠죠.

 

지나치게 정적인 분위기에서 아이를 키우는 건 아닌가, 고민하는 가정도 있습니다.


엄마들이 자신이 아이를 키운다고 생각하니까 이런 질문이 나오는 건데요. 아이는 사람들 속으로 집어넣어야 합니다. 집에 아이랑 둘 밖에 없으면, 자꾸 거리로 나와야 해요.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보게 한다든지, 시장에 가는 것도 좋고요. 엄마가 사람을 접하는 모습을 아이가 볼 수 있도록 하는 게 좋습니다. 그래서 저는 재래시장에 자주 가라는 말을 많이 해요. 엄마 혼자서 애착관계를 만든다고 책을 100권 읽어봐야 소용이 없어요. 지식으로만 아이를 키우려고 하면 안돼요.

 

반대로 목소리가 너무 크거나 말이 많아서 아이에게 소음으로 들리진 않을까, 고민하는 부모도 있습니다.


6개월 이전의 아이들은 부드러운 소리를 선호해요. 강한 소리가 나면 놀라죠. 그 소리의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우니까요.

 

12개월 아이인데 소리에 굉장히 예민합니다. 초인종 소리만 나도 깜짝 놀라면서 엄마한테 와서 안기는데요. 부모가 어떻게 반응해야 옳은가요?


5,6개월 아이가 초인종 소리에 자지러지게 울면 초인종을 떼야죠. 하지만 7,8개월 이후의 아이는 그 소리의 원인이 알려주면 어느 정도 이해를 합니다. 초인종을 누르면 ‘띵동’이라는 소리가 나온다고 설명해주면 됩니다. 어떤 엄마는 아이가 상처를 받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서, 아이가 조금이라도 놀라면 너무 감싸고 돕니다. 그래서 알면서도 일부러 놀라는 척을 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를 보면 너무 엄마들이 아이를 오냐 오냐 키우는 건 아닌가, 걱정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아이가 돌이 지나면 훈육을 해야 하나 고민하는 부모들이 많습니다. 훈육을 하기 가장 적당한 시기는 언제인가요?


아이가 상대방 입장을 이해할 수 있을 때, 훈육이 가능해요. 만 5세 정도가 되면, 엄마가 왜 화가 나는지를 이해할 수 있어요. 그 전에는 아무리 전후 과정을 설명해줘도 이해를 못해요. 초콜릿을 먹으면 안 되는 이유를 아무리 자세히 길게 설명해줘도 아이는 엄마가 이걸 허락하지 않는다고 생각할 뿐이에요. 엄마들이 너무 길게 이야기하는 건 좋지 않아요. 분명한 메시지만 주면 돼요. 5살 이전의 아이에게는 여러 가지에 관심을 갖게 해서 다른 쪽으로 주의를 기울이게 하는 편이 현명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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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들에게도 칭찬이 필요합니다


영유아기 때는 어떻게 그림책을 읽어주는 게 효과적인가요?


저는 그림책을 많이 안 보여줘도 된다는 입장이에요. 실제 강아지를 보여주는 게 좋지, 그림으로 보여주는 게 더 좋을까요? 강아지를 직접 보여줄 수 없기 때문에 보조적인 수단으로 그림책을 보여주는 건데요. 결국 그림책도 전통적인 육아법이 아니에요. 우리나라는 서양의 것을 잘못 받아들인 게 너무 많아요. 그림책을 많이 보여준다고 아이의 발달이 눈에 띄게 좋아지는 건 아니에요. 악어 같은 동물은 직접 보여주기 어려우니까 그림책을 활용하지만, 무엇보다 직접 보여주는 게 좋아요. 책은 아이의 언어 이해력 수준에 맞춰 선택하는 게 좋아요. 24개월이 됐는데, 아이가 단어밖에 모르면 ‘강아지’ ‘토끼’ 이렇게 단어로 말해야지, “여기 있는 게 뭘까? 얘가 강아지인가 봐? 어머, 너무 귀엽지?”라고 말하면, 아이에게는 ‘두두두두~’ 같은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아요.

 

책을 읽어준다고 무조건 언어 표현력이 향상되는 건 아니라는 말씀이죠?


생후 15~23개월 정도 아이가 아직 말을 하지 못하면 부모는 큰 스트레스에 시달립니다. 하지만 언어 자극을 많이 받았다고 해서 말이 빨리 트이는 건 아니에요. 아까도 말했지만 운동 발달에서 원인을 찾아야 해요. 간혹 아이의 머리가 나빠서 말이 늦게 트인다고 생각하는 부모들이 있는데, 아이의 지능지수는 언어 능력만 나타내는 게 아니에요. 언어 능력분만 아니라 비언어 영역의 문제 해결 능력까지 측정하는 게 지능 지수예요. 말에 대한 예민성이 떨어지는 아이는 시각 자극이나 청각 자극을 인지하는 능력이 뛰어날 수도 있어요. 말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더라도 구멍에 막내 넣기, 단순한 퍼즐을 좋아하거나 다양한 자동차, 공룡에 관심을 가진다면 언어 놀이보다 비언어적인 놀이를 더 좋아하는 특성을 가진 거예요.

 

생후 6~14개월 아이가 공격적인 행동을 할 때, 부모가 대처하는 방법으로 ‘멀리서 지켜보거나 다른 방으로 피하기’를 제시하셨어요. 아이가 이 사인을 이해할 수 있나요?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송일국 씨가 아이가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 자신에게 건너오지 못하도록 차단을 하잖아요. 아빠의 감각으로 한 행동이지만 상당히 잘한 거예요. 부모가 원하지 않은 행동을 했을 때, 아이를 차단하는 건 아이한테 대단히 충격적인 일이죠. 아이에게 가장 큰 보상은 부모가 애정을 주고 다가오는 일인데, 그렇지 않을 때는 아이도 느끼죠. ‘부모가 뭔가 마음이 불편한 상황’이라는 걸 인지할 수 있어요. 그런데 엄마들은 책을 너무 많이 봐서 본성이 활성화가 안 되어 있어요.

 

너무 이성적으로만 생각하고 판단하는 게 문제인가요?


그렇죠. 아빠들은 육아 책을 많이 안 봐서 본능적으로 아이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를 몸으로 느껴요. 의사소통을 하죠. <슈퍼맨이 돌아왔다>가 성공한 이유는 잘못된 육아 정보로 아이를 키웠던 엄마들을 제외시켰기 때문이에요. 아빠들의 본능에 맡겼으니까요. 또 다른 성공 이유는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아빠들의 대다수가 비언어적인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에요. 배우나 개그맨들은 상대방의 표정을 읽는 힘이 강해요. 아이 엄마랑 함께 있을 때는 맨날 잔소리를 들으니까 그 힘을 못 썼는데, 엄마가 빠지니까 아이랑 커뮤니케이션이 되는 거예요. 추성훈 씨 같은 경우는 운동선수잖아요. 운동을 하는 사람은 눈빛으로 심리전을 할 줄 알아요. 상대방이 자신감이 떨어졌는지, 겁을 먹었는지를 금방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요. 그 능력들이 발휘되니까 아이와 소통이 잘 되는 거예요.

 

간혹 아빠들이 아이에게 “임마, 녀석, 이놈”과 같은 호칭을 사용해서, 엄마들에게 잔소리를 듣곤 하는데요. 애정표현의 하나로 봐도 괜찮은 건가요?


말은 에너지예요. 아이를 부르는 호칭이 부정적이면 좋지 않아요. 아무리 애정이 담긴 표현이라 해도 자존감을 떨어뜨릴 수 있어요. 아이를 부를 때는 아이를 낮추는 형태로는 부르지 않는 게 좋아요. 다만 엄마들이 너무 아빠에게 잔소리만 하는 건 옳지 않죠. 아빠들이 잘하는 것에 대해서는 칭찬을 하면서, “이건 좀 고쳐주면 어떨까?”라고 제안을 하는 게 좋아요. 한국의 엄마들은 육아의 주체는 오직 엄마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아이를 낳으면 내가 대장이다’는 생각이 있어서, 아빠들에게 잔소리를 많이 하는데요. 아빠들의 행동이나 습관을 고치고 싶으면, 우선 존중을 해줘야 해요. 잔소리도 칭찬을 해가면서 해야 효과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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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시청이 문제 아니라, 사람과의 접촉이 관건


직장맘들의 고민에 대해서도 좀 묻고 싶습니다. 아이랑 함께 있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적으니까 불안한데요. 아이의 언어이해력이나 언어습관에 대해 알고 싶어도 쉽지가 않아요. 조부모나 베이비시터들과 이야기를 나눌 시간도 부족하고요.


무조건 베이비시터와 조부모와 협의를 해서 집에 CCTV를 설치해야 해요. 아이와 대화하는 걸 들을 수 있도록 해요. 녹화를 해서 시간이 날 때마다 보는 것도 좋고요. 어린이집은 CCTV 설치가 의무화가 돼서 정말 다행인데, 집에서는 아직 보편화되지가 않았어요. 조금도 불쾌해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누구의 아이를 보는 입장에서 당연히 동의해야 해요. 할머니가 아이를 봐주는 집의 경우도 무조건 설치를 해야 해요. 부모는 아이가 보고 싶잖아요. 직장 생활하다가도 가끔 볼 수 있어야죠. 하지만 부모는 양육자에게 어떤 경우도 잔소리를 하지 말아야 해요.

 

잔소리로 들리는 게 문제지만, 조금도 안 할 수는 없는데요.


요즘 엄마들이 책을 많이 읽고 인터넷 정보도 많다 보니까, 마치 과학적으로 검증된 정보를 갖고 있다고 착각을 하는데요. 쉽게 말해 요리라는 건 자격증이 없고 영양학 박사가 아니어도 잘할 수 있거든요? 아이를 키우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전문지식이 필요한 게 아니에요. 절대로 잔소리를 하면 안되고, 주양육자는 할머니, 엄마는 서브양육자로 인정하는 게 현명해요.

 

주양육자가 잘못된 정보로 아이에게 반응하는 경우도 있을 텐데요.


할머니의 경우, 손주도 자기 자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정도를 넘어서는 학대와 방임을 하지 않아요. 만약 그렇다면, 양육자를 바꿔야죠. 잔소리를 한다고 그게 바뀔까요? 사람은 안 바뀝니다. 나이가 많으신 분들은 더욱 그렇고요. 그래서 절대 잔소리를 하면 안돼요. 할머니가 아무리 ‘오냐 오냐’로 키운다고 하더라도, 아이가 정상 범위 안에서 성장하고 있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어린이집을 일찍 보내도 괜찮다는 게, 일반적이고 전인적인 자극을 많이 받고 오기 때문이에요. 주양육자인 할머니의 성격에 영향을 덜 받을 수 있으니까요.

 

쌍둥이를 둔 가정의 경우에는 베이비시터와 함께 친할머니, 외할머니가 모두 양육자인 경우가 있는데요. 주양육자가 2명 이상이면 아이가 혼란스러워하진 않을까요?


아무 상관 없어요. 미숙아의 경우에는 강력한 스킨십을 해줬을 때, 체중이 늘어요. 체중 증가는 곧 뇌 발달을 의미하고요. 1.5킬로 미만으로 태어난 미숙아의 경우에는 강한 스킨십을 필요로 하지만, 정상 체중으로 자라는 경우는 뇌 발달과 스킨십이 아무런 영향이 없어요. 자폐아의 경우는 가족이 똑같은 매너를 보여주는 게 중요하지만, 아이큐가 정상 범위에 속하는 아이의 경우에는 학대와 방임이 제공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는 양육 방법이라면, 두 양육자의 차이를 인지할 수 있어요. 외할머니와 친할머니가 자신의 행동에 대해 다른 반응을 보여도, 그걸 두 할머니의 차이로 인지할 수 있는 거죠. 이게 뇌 발달이거든요.

 

영유아기 때의 TV 시청에 대한 고민도 많습니다. 언제부터 TV를 보여줘도 되나요?


2세 이전에는 보면 안 된다 등의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사실 성인 뇌에 대한 연구 결과도 많지 않고, 아이의 뇌 발달 연구도 이제 막 시작해서 자꾸 정보가 바뀌고 있어요. 그래서 부모들은 혼란스러운데요. 대가족에서 자라 사람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충분히 얻은 경우에는 애니메이션을 조금 많이 본다고 하더라도 뭐가 문제가 있겠어요? 사람과의 접촉은 드물고 애니메이션만 많이 봤을 때가 문제죠. 하지만 지금은 핵가족 사회잖아요. 그러니까 어린이집이 없이는 전인 발달이 어렵다는 거예요. 또 하나, 애니메이션은 아이의 언어 이해력과 맞는 수준으로 고르는 게 중요해요. 대부분의 애니메이션이 상업적으로 만들어지니까 시청 연령대를 넓게 잡는데, 말의 속도나 화면 전개가 너무 빠르면 아이에게 좋지 않아요. 24개월 전후의 아이들이 보기에는 어려운 화면이죠. 이스라엘에서는 아이가 아프면 어린이집에 못 가기 때문에, 학습용 애니메이션을 보여줘서 집에서도 인지 발달을 할 수 있도록 해요. 동물 하나를 보여줘도 천천히, 반복적으로 보여주면서요. EBS 같은 방송에서 영유아기에 맞는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줬으면 하는데 요즘 부모들은 TV 자체를 보면 안 된다고 생각하니까요. 방송사에서 일하는 분들도 고민이 많더라고요.

 

양육자 스트레스에 대한 문제도 책에서 지적하셨는데요.


아이를 키우는 건 엄청난 노동력을 필요로 해요. 정신적인 노동과 엄청난 신체적인 노동력이 있어야 해요. 아이한테 말을 거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언제 어떻게, 어떤 말투로 말을 걸까?를 생각해보려면 아이를 관찰해야 하잖아요. 관찰한다는 것 또한 엄청난 정신적인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이고요. 그 다음에는 어떤 매너로 어떤 연기력으로 말을 걸까를 생각해야 해요. 말로 할 것인가, 표정으로 할 것인가도 생각해야 하고, 아이가 알아듣는 수준의 문장으로 말하는 것도 어렵고요. 부모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건, 제발 혼자 하려고 하지 말고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많이 받으라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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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세 말걸기 육아의 힘김수연 저 | 예담friend
정작 영유아기 아이의 언어 발달에 관한 객관적인 정보는 많지 않다. 그래서 대다수의 엄마들이 언어 발달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접하고 그릇된 훈육 방식을 선택하게 되곤 한다. 김수연 박사는 0~5세 아이의 언어 발달은 ‘말을 얼마나 잘 이해하느냐’에 초점을 두어야 하며, 아이의 발달 단계를 고려한 체계적인 말걸기 육아가 아이의 미래를 좌우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이 책은 0~5세 연령?월령별 발달 단계에 따른 말걸기 육아법을 상세한 일러스트와 함께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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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난도 “행복의 반대말은 불행이 아니라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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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니까 청춘이다』『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이후 3년 만에 다시 만나는 김난도 교수의 에세이 『웅크린 시간도 내 삶이니까』. 책 속에서 저자는 고백했다. “이 책은 내가 웅크리고 있던 시간 동안 연기처럼 자꾸만 갈라지고 흩어지는 삶을 붙들어 내 마음과 일상의 구석구석을 되돌아보면서 써내려간 기록들이다” 그가 버텨낸 통증이, 그 끝에서 찾아낸 깨달음이 독자들에게 말을 걸어온다. 때로는 그저 웅크린 채로 견뎌내야 하는 순간들이 있다고. 누구도 예외일 수 없는 시련 앞에서 필요한 것은 ‘이 또한 찰나의 행복으로 이어지는 과정’이라는 인식이다. 그리고 저자가 인용한 대니얼 고틀립의 문장처럼 “기꺼이 내 곁에 다가와 나와 함께 어둠 속에 앉아 있어줄 사람”이다.

 

김난도 교수에게는 책 속의 H씨로 대변되는 독자들이 있었다. 그의 책 속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힘을 얻는 사람들이 있기에 펜을 쥐었고 웅크림의 시간 밖으로 걸음을 떼었다. 『웅크린 시간도 내 삶이니까』역시 또 다른 이들에게 작은 다독거림이 되어줄 것이다. “웅크린 것들은 완전히 주저앉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웅크린 것들은 결국 다 일어선다”는 그의 응원에 기대고 싶어진다.

 

나침반이 없던 시절, 뱃사람들은 북극성을 향해 돛을 매달았다. 북극성까지 가려고 그런 것이 아니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북극성만이 흔들리지 않고 우리를 이끌어주었기 때문이다. 간절한 꿈은 우리를 어디로든 이끌어준다. 그러므로 지금 잠시 웅크린 채 표류하고 있을지라도 북극성에서 눈을 떼지 말아야 한다. (『웅크린 시간도 내 삶이니까』 3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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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크린 채 견디는 건 ‘도약의 때를 준비하는 것’


3년 만에 발표하신 에세이입니다. “한동안 붓을 꺾고” 지냈다고 적기도 하셨는데요. 지난 3년은 어떤 시간으로 기억되시나요?


붓을 완전히 꺾은 건 아니고요. 트렌드 관련해서는 매년 책이 나왔고(『트렌드 코리아』), 에세이를 안 쓴 거죠.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나온 게 5년 전이거든요. 그런데 5년 동안 너무 경제도 안 좋아지고 청년들 상황도 너무 나빠졌잖아요. 옛날에는 격려를 하면 사람들이 용기를 내는 데 도움이 되고 그게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믿었어요. 그런데 지난 3, 4년간은 저 스스로 ‘이렇게 힘든 상황에서 희망을 갖자고 이야기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거의 손을 놓고 있었죠.

 

다시 글을 쓰게 된 건 ‘H 씨’를 만난 이후부터라고 하셨습니다. 교수님으로 하여금 다시 글을 쓰게 한 이들은 누구였나요?


책에는 H씨가 유일하게 등장했지만, 여러 차례 그런 경험이 있었어요. 자포자기 직전까지 갔다가 제 책을 읽고 돌아오게 됐다고, 고맙다고 말해주신 분들이 계셨는데요. 그런 말씀을 해주셔서 너무 감사했죠. 당신 글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고, 다음 책은 언제 나오는지 물어보기도 하세요. 그런 말씀을 들으면서, 절망에 빠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런 글은 가치가 있겠다고 스스로 납득을 했죠. H씨는 『웅크린 시간도 내 삶이니까』가 나오고 나서 직접 만났는데 너무 좋아하시더라고요.

 

H씨는 모야모야병이라는 희귀병을 앓고 계시잖아요. 마찬가지로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고 계신 분들이 많은데, 그런 분들을 통해서 ‘웅크리면서 견딘다는 것’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셨을 것 같습니다.


그렇죠. 제 자신이 좀 웅크리고 있었어요. 올해 초에 디스크 때문에 굉장히 고생을 많이 했고, 7월에는 어깨 수술을 받아서 외출이 힘들었어요. 저희 둘째 아이는 고3이라서 매일 도서관과 집을 오갔고 큰 애는 군대에 있어서, 가족들 모두 웅크리고 있는 기간이었죠. 그리고 주변을 보면 굉장히 다양한 이유로 자신의 뜻을 활개 치지 못하고 웅크리고 있는 분들이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러다가 어느 책에서 “히말라야에서의 모든 날들이 위대한 것은 아니다”라는 구절을 읽은 거예요. 헤르만 불이라는 등산가가 한 말인데, 굉장히 울림이 컸습니다.

 

『웅크린 시간도 내 삶이니까』에서도 직접 소개해 주셨죠.

 

책 속에서 제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말 중에 하나고, 이 책을 쓰게 만든 말이에요. 우리는 히말라야를 오른다고 하면 폭풍우 속에서 등정을 하고 정상에서 만세를 부르는 것만 상상하잖아요. 그런데 날씨가 정말 나쁠 때는 어떻게 하겠어요. 텐트 안에서 커피나 마시면서 날씨가 좋아질 때까지 무작정 기다릴 수밖에 없겠죠. 그런 기간도 등정의 아주 중요한 일부라는 걸 깨닫게 됐어요. 그런 깨달음을 우리 아들들뿐만 아니라 사람들과 같이 공유하고 싶었어요.

 

‘웅크린 채 견디는 것’은 수동적인 태도로 보이기도 하지만, 이번 책에서는 다른 시각이 읽힙니다.


도약의 때를 준비하는 거죠. 제가 이런 종류의 글을 쓸 때 굉장히 경계하는 것 중에 하나는, 자신의 나태를 합리화하는 단초로 쓰이지 않아야겠다는 거예요. 죽비로 얻어맞은 것처럼 깨달음을 줄 수 있는 글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헤르만 불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죠. 날씨가 좋아졌는데도 텐트 밖으로 나가지 않으면 안 되잖아요. 날이 개면 텐트를 걷고 나갈 수 있는 용기를 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북극성이나 응내성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함께 한 거죠. 저는 책을 쓸 때 하나의 주장을 끌고 나가는 걸 조금 두려워해요. 인생이라는 게 다양한 것이잖아요. 무조건 성취를 해야 된다거나, 무조건 만족하면서 지금 자족해야 된다는 말은 다 맞지 않는 것 같아요. 성취가 필요한 순간이 있고 만족이 필요한 순간도 있는 거죠. 젊을 때는 성취 지향적이다가 나이가 들면 만족할 줄 알게 되기도 하고요. 그런 여러 가지 기복과 조화, 균형이 필요하죠. 그래서 책을 읽는 분들이 열린 결론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그러면서도 무책임하지 않게 들리도록 글을 쓰려고 애를 많이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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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반대말은 불행이 아니라 일상이에요

 

말씀하신 ‘응내성’이라는 단어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웅크리고 견디는 시간들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말해주니까요.


응내성이라는 건 자극을 받고 그걸 견디면서 생겨나는 새로운 힘을 말해요. 우리가 운동을 할 때 무거운 걸 반복적으로 들어 올리면 아프잖아요. 그게 근육이 살짝 다쳐서 그렇다고 해요. 그 상처를 회복하는 과정에서 근육이 조금씩 커지는 거고요. 방사선 치료를 할 때도 처음부터 너무 많은 방사선에 노출되면 사람들이 더 아프거나 심지어 죽는데, 아주 조금씩 견딜 수 있을 만큼만 주면서 양을 늘려 가면, 나중에는 꽤 강한 방사선에도 몸이 견딜 수 있게 되고 암 세포를 죽일 수 있죠. 우리가 삶에서 부딪히는 여러 어려움도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작은 아픔들에 스스로를 단련시켜 나가면 성장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거죠. 

 

『웅크린 시간도 내 삶이니까』에서 강조하시는 키워드 중 하나가 ‘성장’이 아닐까 싶습니다.


맞습니다. 보통 성장이라고 하면 해외로 어학연수나 배낭여행을 가고 학교에서 수업을 열심히 듣고 학점을 잘 받는 걸 떠올리는데, 물론 그것들도 중요한 성장이지만, 꼭 그런 건 아니라는 거죠. 심지어는 텐트 안에 웅크리고 있는 기간도 본인이 그 시간들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서 굉장히 중요한 성장의 시간이 될 수 있는 거죠.

 

“행복에의 강박이 오히려 우리를 불행하다고 느끼게 만드는 근원인 것은 아닐까?”라는 질문은 위안이 되기도 했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행복의 반대말이 불행이 아니라는 거예요. 행복의 반대말은 일상이에요. 행복이라는 감정은 일상 속에서 아주 소중하고 조금 느낄 수 있는, 이내 사라져 버리는 감정이거든요. 현대사회가 지나치게 행복을 강조하는 거예요. ‘너는 행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남보다 덜 가지고 있고 덜 여행하면 불행한 것이다’라는 이데올로기를 자꾸 넣는 것 같아요. 특히 SNS를 통해서 내가 오늘 새로 산 물건, 새로 가 본 카페, 새로 먹은 음식 사진을 올리면 서로가 서로의 행복에 대해서 과대평가하게 되는 거죠. 행복에 대한 강박관념이 너무 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부분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지금 행복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도 일상이라는 거죠.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게 아무 문제도 없다는 건 아니지만, 그게 곧 불행하다는 건 아니라는 거예요.

 

이전과 달라진 시각도 들려주셨습니다. 꿈이 확고한 사람을 ‘화살파’ 확실하지 않은 사람을 ‘종이배파’라고 이야기하신 적이 있는데, 이번 책에서는 “인생은 화살처럼 목표를 향해 날아가는 것도, 종이배처럼 이리저리 흔들려 자신도 모르는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도 아니다”라고 하셨어요.


한 번 책에서 쓴 것과 다른 이야기를 쓰면, 읽는 분에 따라서는 ‘순 엉터리다, 이번에는 다르게 말한다’고 말씀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뒤집어서 이야기하면 저도 성장을 하고 있잖아요. 더 많은 깨달음을 얻고 있고, 심지어 같은 깨달음이라고 하더라도 때에 따라 다른 측면을 강조해서 쓸 수 있는 거고요. 그런 측면에서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런데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거의 같아요.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은 여러 가지일 수 있다는 거죠. 인생은 생각보다 계획대로 되지 않고, 그렇다고 해서 나쁜 것도 아니에요. 계단을 오를 때는 그 계단 위에서 보이는 세계를 알지 못해요. 끝까지 올라서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세계가 보이고 거기에서 또 작은 목표를 이뤄서 가는 거죠. 화살과 종이배가 계속 엮이고 섞이면서 진행되는 게 인생이 아닌가 생각해요.

 

글을 쓴다는 건 “외롭고 고통스러운 작업”이라 고백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의 남은 기간 내내 “쓰다가 죽고 싶다”고 하셨어요. 글 쓰는 시간이 가진 “중독적인 힘”이란 무엇일까요?


제일 중요한 건 글쓰기에는 자신을 치유하는 힘이 있어요. 머릿속의 고민이 종이 위로 옮겨가는 측면이 있거든요. ctrl c, ctrl v가 아니라 ctrl x, ctrl v인 거예요. 글을 쓰고 나면 머릿속에서 혼란스러웠던 것들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고, 그 문제에 대한 번민과 고통이 확실히 줄어듭니다. 그래서 저는 힘든 일이 있으면 써요. 새벽 2시에도 잠이 안 오면 일어나서 내가 왜 힘든지, 그 상황에 대해서 쓰는 거예요. 그러면 편히 잘 수 있어요. 글쓰기는 그렇게 치유하는 힘이 있습니다. 고민이 많거나 힘들 때 제가 찾은 가장 확실하고 좋은 방법은 글을 쓰는 거였어요. 글을 잘 썼다는 성취감이나, 글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한테 좋은 깨달음을 주었다는 보람은 부차적인 문제예요. 특히 올해는 제 자신이 글쓰기를 통해서 치유 받는 상황이었죠. 책을 쓰게 된 것도 그런 깨달음이 많이 작용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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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크린 시간도 내 삶이니까』는 3040 세대에게 전하고 싶은 책


『웅크린 시간도 내 삶이니까』에는 올해 서울대 입학식에서 들려주신 축사도 함께 실려 있는데요. ‘세대 이기주의’에 대한 내용이 눈에 띕니다. 「딴 나라 사람과 같이 살기」에서도 세대 간 갈등에 대해 말씀하셨고요.


입학식에서 축사를 하게 된 건 정말 영광이었다고 생각해요. 정말 잘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마지막 날 1분 전까지도 고쳐 썼어요. 그때 제자들에게 ‘이건 어른들의 책임이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어요. 노블레스 오블리주라는 말이 있잖아요. 가진 자의 의무가 있다는 건데, 마찬가지로 더 나이 먹은 자의 의무가 있는 것 같아요. 어느 신문에서 읽은 표현을 빌리자면 세니오르 오블리주(senior oblige)죠. 신참과 고참이 경쟁하면 고참이 이기죠. 경험도 많고, 가지고 있는 것도 많고, 지위도 높으니까요. 계급장을 떼고 붙어도 다르지 않아요. 그러니까 배려해줘야 되거든요. 왜냐하면 그들이 우리의 다음 세대이고 우리 사회를 이끌어갈 사람들이니까요. 내리사랑이 가족 내에만 있는 게 아니고, 사회에서도 내리사랑하는 게 당연한 거거든요. 제가 어릴 때는 그런 세니오르 오블리주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의 국면을 보면 ‘우리는 너만 할 때 더 힘들었다’ 그렇게 말해버리면, 사실은 젊은 세대한테는 꿈이 없는 거죠. 세대적 내리사랑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매년 출간하는 『트렌드 코리아』시리즈를 통해 달라지는 움직임을 예측해 오셨습니다. 최근에도 『트렌드 코리아 2016』이 화제가 됐는데요. 『웅크린 시간도 내 삶이니까』에서는 “‘파괴적으로 혁신’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어떤 의미인가요?


옛날에는 소득으로 격차가 발생했다면 이제는 디지털 능력으로 격차가 발생해요. 이른바 디지털 디바이드라고 부르는 것인데요. 아날로그 세대에게 디지털 디바이드가 있듯이 디지털 세대에게는 아날로그 디바이드가 있는 것 같아요. 아날로그적 능력은 본질에 대한 사유와 성찰인 것 같은데, 그런 것들은 포털사이트나 SNS에 있지 않고 책과 생각 속에 있습니다. 보통은 ‘이제 디지털 세상이 됐으니 아날로그적인 구시대적인 발상을 파괴적으로 혁신하자’고 착각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중요한 것은 여전히 중요한 것이고, 그 중요함을 지켜나갈 수 있는 것이 오히려 디지털 세상을 성공적으로 사는 역량일 수 있다는 거죠.

 

이번 책에서 ‘나이 듦’에 대한 성찰들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짧게나마 병상에 머무르셨던 시간 때문일까요? 


병상이랄 것 까지는 없고요. 사실 저한테는 더 큰 트라우마랄까, 공포가 있어요. 저희 아버지께서 당신 나이 쉰다섯 때 돌아가셨는데, 제가 지금 쉰셋이거든요. 가끔 나도 그 나이에 죽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어요. 사람들은 끔찍한 소리 하지 말라고 하지만(웃음), 저희 아버지도 정말 건강하셨는데 갑자기 암으로 돌아가셨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사람이 살고 죽는 건 절대 알 수 없다는 생각이 기본적으로 있어요. 지금의 저에게 아직 청춘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일면으로는 메멘토 모리라고 할까요, 계속 죽음을 생각하게 하는 계기들이 있어요. 작년에 저희 장인어른이 돌아가셨어요. 제가 저희 장인을 굉장히 좋아하고 존경하고 스스로 아들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가까운 어른의 죽음을 보면서 ‘나 역시도 죽는다, 어쩌면 굉장히 빨리 죽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들을 무의식 중에 하는 거죠.

 

그래서인지 지나간 시간과 남은 시간을 가늠해 보곤 하시는 것 같아요. 남은 시간 동안 무엇을 해야 할지 성찰하기도 하시고요.


자기 인생의 시간을 객관적으로 보는 게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은 지금 이 시간을 굉장히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리고 앞으로 올 시간에 대해서 별로 생각을 안 하든가 지나간 시간에 대해서 지나치게 압축적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죠. 그건 좋은 삶의 태도예요. 지금 이 순간은 굉장히 중요한 거니까요. 그런데 인생 전체에서 내 위치를 정확히 알 필요는 있는 것 같아요. 그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요. 그래서 『아프니까 청춘이다』를 쓸 때 인생 시계도 만들고 『웅크린 시간도 내 삶이니까』에서 인생 모래시계도 만들면서 여러 가지 비유를 한 거죠. 현재를 사는 카르페디엠의 태도도 좋지만, 현재에 충실하면서도 내 삶 전체를 길게 보는 안목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 거예요.

 

앞서 출간하신 에세이들과 『웅크린 시간도 내 삶이니까』의 차별점을 궁금해 하는 독자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기본적으로는 대학생을 위한 책입니다.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는 대학을 졸업하는 시점부터 직장을 갖고 가정을 갖는 시점까지, 굳이 나이로 이야기하자면 스물다섯에서 서른다섯 살의 독자들을 대상으로 썼고요. 『웅크린 시간도 내 삶이니까』는 청춘이나 직장 초년생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3040 세대의 독자들이 주로 읽을 거라는 느낌으로 썼어요. 인생은 화살처럼 날아가는 게 아니라 한 구비 한 구비 돌아갈 때마다 새로운 세계가 보인다는 말씀을 드렸는데, 그렇게 새로운 세계에서 만나는 고민들을 같이 나누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이번 책에는 그런 이슈들이 많습니다. 또 하나는, 우리 사회는 인생에 정답이 여러 개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나이 때마다 맞춰야 하는 정답들이 있어서 거기에서 어긋나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려고 하죠. 그런데 서른이 지나면 그런 인생의 정답에서 조금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런 깨달음과 계기가 될 수 있는 글들을 많이 모았습니다. 20대 대학생 친구들도 이 책을 읽을 수 있겠지만, 사회에 나가고 인생을 살아가면서 하게 되는 삶의 질문들의 답을 구하는 분들께 드리고 싶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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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크린 시간도 내 삶이니까김난도 저 | 오우아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사람들은 자잘한 실망을 견디고, 저마다 무거운 절망을 감당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 책은 저자 자신이 실망과 절망을 품고 웅크렸던 시간 동안 마음과 일상의 구석구석을 되돌아보면서 써내려간 기록들이다. 삶이란 그렇게 마음속에서 피어오르는 화를, 우울을, 절망을 달래고 다스리면서 살아가는 것이리라. 이 책에는 어떤 이유로든 지금 웅크리고 있는 이들이 희망의 상자를 열어볼 용기를 낼 수 있는 소중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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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결국은 사랑의 문제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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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시대 젊은이들을 위한 소설


『해질 무렵』과 만난 후 바라보는 도시의 풍경은 이전과는 다르다. 빼곡하게 들어선 고층빌딩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멀지 않은 과거에 이곳에는 낮고 오래된 집들이 있었겠지, 그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조금만 고개를 틀면 볼 수 있는 곳, 하늘과 가장 가까운 동네로 비켜 앉았을까. 『해질 무렵』속에서 주인공 박민우가 품었을 법한 질문이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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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황석영이 『여울물 소리』이후 3년 만에 발표한 작품 『해질 무렵』은 60대에 접어든 건축가 박민우의 기억을 따라간다. 그는 산동네 ‘달골’에서 성장했지만 “어떻게든 이런 곳에서 벗어나야겠다는 굳은 결심”으로 일류 대학에 입학함으로써 성공의 길목에 들어선다. 유신독재가 시작되면서 동급생들의 빈자리는 늘어갔지만 “눈가리개를 한 노새처럼” 한눈 팔지 않은 덕분에 시대의 질곡은 장애가 되지 않았다. 때마침 시작된 도시재개발은 그에게 순풍으로 작용했다.

 

“1970~80년대를 거치면서 소위 말해서 중산층에 올라선 사람들이 다 비슷한 세월을 겪었단 말이에요. 자기는 성공했다고, 가난으로부터 빠져 나왔다고 생각했죠. 박민우만 그런 게 아니고요. 이른바 성공했다고 하는 사람들이 다 그런 게 있지만, 개발독재 시절에 다들 눈 감았단 말이에요. 그러면서 이득을 얻는 게 조금 생기니까 그런 거에 간섭하고 끼어드는 것이 굉장히 철없는 짓이고, 나는 다행스럽게도 내 삶을 선택해왔다고 생각하면서 살아온 거예요.”

 

박민우로 하여금 지나온 시간을 떠올리게 하는 인물은 ‘달골’에 남겨졌던 첫사랑 차순아다. 갑작스럽게 박민우의 삶에 등장한 그녀는 자신이 살아온 삶에 대해 고백한다. “어쩐지 지난 세월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오랜 친구에게 옛이야기 하듯 들려주고 싶었습니다”라는 말로 시작되는 그녀의 이야기는 박민우와는 다른 길을 걸었던 동시대 인물들에 대한 기록이다. 차순아의 목소리를 따라 과거로 회귀하는 박민우는 자신의 손으로 세상의 모든 고향들을 밀어버렸음을 직시한다. 그리고 깨닫는다. “나는 오랫동안 산동네의 초라하고 구질구질한 삶에서 운좋게 빠져나왔다고 생각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 시대를 통과한 모두가 자신은 낙오하지 않고 이제는 잘살게 되었다고 보람을 느끼는 것처럼”

 

박민우의 과거에 기대어 완성된 이곳은 정우희에게 있어 오늘의 현실이다. 스물아홉 살의 연극연출가인 그녀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기약 없는 희망을 붙든 채 살아간다. 박민우의 손끝에서 탄생한 건물들은 하늘을 찌를 듯 솟아있지만, 그녀의 보금자리는 장마철이 되면 곰팡이가 까맣게 벽을 채워가고 여차하면 빗물에 잠기고 마는 반지하방이다. “수도권 변두리의 숙소를 돌아다니면서” “밀림 속의 맹수들 틈에서 잔뜩 움츠린 채 눈치만 발달한 작은 포유류” 같은 처지를 벗어나지 못하는 그녀의 시간은 박민우의 그것과 교차되며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박민우와 같은 세대가 이뤄놓은 근대화 과정에서 해결하지 못한 것들이 그대로 있으니까, 그것이 박민우에게는 회한으로 남아있지만, 젊은 세대에게는 현재의 현실이란 말이죠. 그러니까 현재의 젊은이들이 겪는 지옥 같은 현실은 우리가 다 만들어 놓은 거란 말이에요. 『해질 무렵』의 화자가 박민우와 정우희 두 사람인데, 한 사람은 60대 초반의 윗세대이고 또 한 사람은 현재의 2030 세대잖아요. 그 세대의 과거와 현재가 같이 있는 거죠. 그러면서 지금의 울적하고 씁쓸한 삶을 보여주면서 ‘우리가 행복해?’라고 묻고 있는 거예요. ‘잘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돌아보니까 별 거 아니잖아, 행복하지도 않고’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거죠.”

 

박민우와 정우희, 좀처럼 접점이 없을 것 같았던 두 사람을 잇는 인물은 김민우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정우희와 인연을 맺은 그는 청년세대의 또 다른 자화상이기도 하다. 비정규직으로 재계약만을 바라보며 근무하다, 그마저도 해고되어 여러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삶을 버텨낸다. 정우희와는 “둘 다 연애질이나 하고 노닥거릴 처지가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기에 약속이라도 한 듯 적당한 거리를 유지”해 오고 있다. 김민우와 정우희, 박민우와 차순아, 네 사람의 성긴 인연은 작품의 결말에서 드러난다.

 

『해질 무렵』은 젊은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어요. 이건 현재의 젊은 사람들을 위한 소설이에요. 소설을 읽고 변화해야 된다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어요. 파편화된 채로 그냥 현실을 받아들여서 하나의 부속품처럼 순응하면서 살아갈 것이 아니라 변화해야 되잖아요. 과거를 미화해서는 절대로 변화하거나 나아지지 않거든요. 비판적인 시선으로 봐서 바꿔야죠. 이 소설은 변화의 출발점으로 보여주고 있는 거예요. 이렇게 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는 어떻게 해야 되냐는 거죠. 변화해야죠.”

 

근대화와 도시개발의 과거, 그 끝에 남겨진 현실을 비추며 ‘그래서 행복하냐고’ 물었던 작가는 『해질 무렵』에 감춰진 또 다른 이야기로 ‘사랑’을 말했다.

 

“누군가 『해질 무렵』에서 인상적이었던 문장이 두 개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하나는 김민우의 엄마가 우희한테 ‘우리 민우 좀 사랑해주지 그랬어’ 하는 부분이고, 또 하나는 맨 마지막에 나오는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몰라 망설이는 사람처럼 우두커니 서 있었다’라는 문장이었대요. 그 두 문장이 윗세대와 젊은 세대를 보여주는 것 같아요. 결국은 사랑의 문제 아니에요? 모든 게 사랑해주지 않아서, 제대로 사랑해주지 않아서 젊은 사람들이 저렇게 힘들어하는 거죠. 업보를 저지른 세대들은 어디로 가야 될지 모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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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이 끝나지 않는 한 서사도 끝나지 않는다


소설가 황석영은 한 인터뷰를 통해 “당대 청년 이야기를 내가 소설로 다룬 건 처음인 듯하다”고 밝힌 바 있다. 『해질 무렵』안에서 작가가 시도한 변화는 그뿐만이 아니다. 200페이지의 경장편임에도 풍부한 서사를 쌓아 올리고, 동시에 속도감 있게 읽힐 수 있도록 새로운 구성 방식을 택했다.

 

『해질 무렵』은 아주 짧은 소설이죠. 그런데 서사는 풍부하게 가지고 있죠. 종래에 쓰던 서술적 소설이 아니라 씬으로 이어진 소설이에요. 60개 정도의 씬을 만들어서 얽었거든요. 이 소설은 디렉션이 많이 들어가 있지만 시나리오 같은 거예요. 장면전환이 이루어지고 서로 다른 장소와 시간이 엇갈려 있죠. 씬에 나타난 장면이 다 미쟝센으로 이어져 있는 거고요. 요즘 젊은 사람들한테 길고 서술적인 이야기는 지루하잖아요. 그러니까 압축된 씬과 씬으로 이어져 있는 거죠.”

 

서사의 힘은 줄곧 작가가 강조해 오던 문학의 생명력이자 경쟁력이다. 한국소설 또는 출판시장이 위기라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려오는 가운데에서도 그의 믿음은 흔들린 적이 없었다.

 

“한국소설뿐만 아니라 현대 세계 문학이 위기예요. 20세기 초반에 소설이라는 양식이 출발할 때부터 그랬어요. 그 이후로 문학이 위기가 아니었던 때가 없어요. 항상 위기죠. 뒤집어 놓고 이야기하면 문학은 시대적 위기의 반영인 거예요. 위기 그 자체죠. 미디어나 매체가 하도 빨리 변하니까 종이 매체가 사라진다는 말로 위기를 진단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나는 위기일지언정 인간이 가지고 있는 서사에 대한 능력과 욕구는 끝나지 않는다고 봐요. 만약 서사에 대한 인간의 욕구가 사라진다면 마땅히 꿈도 꾸지 말아야 돼요. 꿈이라는 건 자기가 현실에서 겪었던 것을 무의식 속에서 재편성하고 재구성해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거거든요. 사람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유일한 동물이에요. 그러니까 인간의 삶이 끝나지 않는 한 서사도 끝나지 않아요.”

 

올해 초 『황석영의 한국 명단편 101』을 출간한 후, 작가는 한국문학이 가진 저력을 높이 평가했다. “실제로 한국문학은 일본문학과 중국문학에 비교한다면 여전히 서사가 가진 힘이 있다”는 것. 이 역시 소설가 황석영이 변함없이 지켜온 한국문학을 향한 애정이었다. 그 마음은 우리 소설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조언 속에 고스란히 담겼다.

 

“요즘 만화가 드라마로 바뀌어서 나온 걸 보면 그 현실 인식이나 생동감에서 굉장히 놀라게 되거든요. 그들이 오히려 (소설보다) 더 가까이 가 있는 거예요. 이렇게 이야기하면 반대하는 말들도 많이 있겠지만, 나 스스로도 마찬가지고 젊은 작가들을 포함해서 자괴감이 들기도 해요. 그 만화가들보다 현실적 서사에 가까이 가 있지 못한 거니까요. 그 위기는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삶에 제대로 접근해서 그리지 못하기 때문에 오는 거예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책을 안 사는 거죠. 자기가 살아가는 이야기가 빠져 있는데 누가 돈까지 주고 사서 읽겠어요. 책을 사서 볼 사람들의 삶을 그려줘야죠. <미생>이나 <송곳> 같은 드라마를 보면서 나는 굉장히 놀랐어요. 얼마나 현실에 가까이 가 있는지 몰라요. 물론 매체가 다르기는 하지만 한국 현대 문학, 특히 젊은 사람들의 문학이 과연 동시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릴 수 있고 그들과 같이 가고 있는가에 있어서는 조금 자괴감이 든다는 거예요.”

 

아울러 작가는 ‘좋은 이야깃거리’란 무엇인지, 놓쳐서는 안 될 소설의 본질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제일 중요한 건 재미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재미있는 이야깃거리 없을까?’에서 출발을 해야 된다는 거죠. 그래야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소설을 쓸 수 있어요. 어떤 관념을 하나 정해서 소설을 쓴다면, 예를 들어서 이번에는 죽음에 대해서 쓰겠다든가, 이런 식으로 써서는 안 된다는 거죠. 재미있는 이야깃거리에서 시작하는 거예요. 소설의 출발이 그래요. 저잣거리에서 떠돌아다니는 재미있는 이야깃거리를 가지고 시작을 해야죠. 소설이 사회적으로 미치는 영향은 부수적으로 주어지는 거예요. 그런 이야기를 잘 그리면 저절로 주어져요. 현실을 그대로 잘 그려내면 현실이 잘못되었다는 게 보이죠. 그걸 먼저 강조해서는 이야깃거리가 되지 않아요.”

 

현재 작가는 내년에 출간될 자서전을 집필 중이다. 한국전쟁과 베트남전쟁, 방북과 투옥 등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온 몸으로 겪어낸 생생한 체험을 담아낼 예정이다.

 

“집필은 2/3 정도 마친 상태예요. 내가 겪은 광주항쟁이라든가 방북, 투옥, 그런 경험들을 보강해서 마치려고 해요. 처음에는 자서전 같은 걸 쓰기 싫었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이런 전쟁이나 혁명, 망명 등을 경험한 작가가 살아있는 사람 중에는 내가 유일해요. 2차 대전 직후에는 많이 있었는데 선배들이 다 가고 나니까 그런 작가가 없는 거죠. 얼마 전에도 파리에서 테러가 발생했는데, 세계는 아직도 고통스러운 이행기에 있거든요. 그래서 나의 삶을 통해서 이런 이야기를 함으로써 한국 독자들뿐만 아니라 세계를 향해서 증언을 해야 된다는 생각이 있어요. 나는 냉전이 해체될 때에도 베를린에 있었고 유럽에서도 10년 가까이 살았으니까, 세계사적 변화를 대부분 다 봤다고 할 수 있잖아요. 그런 부분을 자세히 쓰면 중요한 증언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국내에서는 정치적, 사회적으로 여러 가지 억압이 있으니까 밖에 나가서 쓰려고 해요. 억압이 머리를 짓누르니까 자꾸 살피게 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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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질 무렵황석영 저 | 문학동네
거장 황석영이 신작 장편소설 『해질 무렵』으로 돌아왔다. 장편소설 『여울물 소리』 이후 3년 만이다. 성공한 건축가 박민우는 인생의 해질 무렵에 서서 길 위에 드리워진 긴 그림자를 돌아보며자신이 살아온 날들을 되짚어본다. 더는 변화할 무엇도, 꿈꿀 무엇도 없을 것 같은 그의 일상에 ‘강아지풀’ 홀씨 하나가 날아든다. 그 작은 씨앗은 그가 소년시절를 보냈던 산동네 달골, 아스라한 그 시절 가슴 설레게 했던 소녀를 불러오고 달골에서 함께 부대끼던 재명이형, 째깐이, 토막이, 섭섭이형 같은 사람들을 불러내어 견고하게만 보이던 그의 세계에 균열을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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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왕 김리뷰 “익명을 고수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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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만 팔로워의 페이스북 페이지 ‘리뷰왕 김리뷰’에는 어떤 특별함이 있나. 45만이라는 숫자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궁금했다. 모든 것을 리뷰한다는 김리뷰의 리뷰 목록을 살펴본다. 흥미롭다. 리뷰 대상은 영화, 스포츠를 망라하는데 최근에는 과자 후레쉬베리를 리뷰했다. 리뷰에 항의해오는 업체의 연락도 모두 까발린다. 솔직한 B급 정서가 매력적이다.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고 싶다는 김리뷰답다.


팔로워의 “절반은 안티”라 웃으며 말하는 그는 『1인분의 삶』에서 “가장 쓰고 싶었던 글”을 썼다고 했다. 책이라는 매체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쓰고 싶었다는 것. 가벼운듯하나 좀처럼 하기 힘든 개인적인 이야기까지 꾹꾹 눌러 담았다. 과거 일베에서 활동한 사실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고백했다. “과거에 한 행동이라는 건 그 자리에 있고, 사라지지 않는”것이기 때문에 지금도, 앞으로도 자신의 잘못된 과거를 마음에 품은 채 달라진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자신을 증명하고 싶다고 했다.


새롭고, 재미있는 글을 지향하는 김리뷰. 그의 신념처럼 이 책은 ‘라면받침’으로도 쓸 수 있다는 전언이다. 나무에게 너무 미안하지는 않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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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감이 들 수도 있어요


이번 책을 ‘가장 쓰고 싶었던 글에 가깝다’고 하셨어요. 그 전에 쓴 글도 있고, 앞으로도 글을 쓸 텐데 가장 쓰고 싶었던 글은 어떤 것이었는지 묻고 싶어요.


그냥 나오는 대로 쓰는 것? 예전부터 시키는 대로 쓰는 걸 잘 못했거든요. 물론 쓰긴 했는데요. 그걸 쓰면서 즐겁다는 느낌이 들고 그렇진 않았어요. 책과 온라인 글이 다르긴 하죠. 블로그에 개인적인 걸 아무렇지 않게 쓰는 글이랑 책이라는 매체에서 정제해서 쓰는 글이랑 보통은 굉장히 다르잖아요. 저는 그걸 똑같은 감성으로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예전부터 계속 했었어요. 그래서 뭔가 정신 사나운 글이 된 것 같긴 해요.(웃음) 어쨌든 쓰고 싶던 글을 쓰게 돼서 작업할 때 굉장히 즐거웠던 것 같아요. 밤에 2만 자 씩 쓰고 그래서 힘들긴 했지만요. 단기간에 효율적으로 쓴 것 같아서 무척 마음에 들었습니다.

 

글을 빨리 쓰는 편이라고요.


원래도 좀 빨리 쓰는 편이에요.

 

가장 빨리 쓴 챕터는 어느 부분인가요? 


챕터를 따로 정해서 쓰진 않았고요. 소재를 막 늘어놓은 다음 거기에 하나씩 골라서 썼어요. 비교적 3장(리뷰)이 좀 빨리 쓴 것 같아요. 명확한 주제고, 평소 했던 생각들이 있으니까요.

 

<불행>과 <행복> 같은 글은 좀 다른 글쓰기였거든요. 진짜 빨리 썼거나 가장 고민을 많이 했거나 둘 중 하나일 것 같아요.


진짜 빨리 썼어요.(웃음) 갑자기 생각이 나서요. 쓰고 싶은 대로 쓴 책이잖아요. 이 기회가 아니면 시도하기 어려운 형태의 글 같은 것을 많이 시도하려고 했어요. 실험이었죠. 좀 끊어 쓰긴 했는데요. 그래도 생각나는 대로 쭉쭉 썼어요. 페이스북 메시지로 책 잘 읽었다는 연락을 받는데 특히 이 글에서 감동 받았다는 분들이 꽤 있더라고요. 잘 썼나(웃음) 하는 생각도 들고 그랬어요.

 

확실히 시선을 끄는 글이긴 해요.


네, 전혀 다른 형태의 글이었으니까요. 저로서도 실험적인 시도였어요. 원래 책에서 그런 방법이 잘 시도되는 건 아니잖아요. 저한테도 신선한 방식이었던 것 같아요. 그게 잘 전달이 된 것 같아서 기분도 좋아요. 실험적인 걸 했을 때 ‘뭐 이딴 걸 해’라는 반응이 있을 수도 있잖아요. 의외로 반응이 좋았기 때문에(웃음) 좋죠.

 

온라인에서 쓰는 글과 책에는 아무래도 차이가 있잖아요. 그것을 통일해보고 싶다고 하셨는데 정확히 그 대목에서 불편해하는 독자도 분명 있을 수 있거든요.


창작이라는 건 여러 가지를 시도하면서 나오는 거잖아요. 이전에 시도하지 않은 방식이고, 이질적인 형태의 글쓰기였죠. 어떻게 보면 블로그에 아무렇게나 지껄이는 말들을 모아서 책으로 낸다는 발상 자체도 하기 힘든 거고요. 그래서 그건 당연한 반응이라고 생각해요. 내 실험적인 태도를 왜 이해해주지 못하지 이런 것보다는 말이에요. 기존의 책이라는 매체에 익숙하신 분들에게는 너무 낯선 느낌도 들고, 거부감이 들 수도 있어요. 그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너무 일기 쓰듯이 쓴다는 피드백을 보긴 했지만 일기 쓰듯이 쓴 게 맞는 거라서요.(웃음) 그냥 신변잡기식 글을 쓴 거니까요. 분명한 건 형태보다 그 안에 있는 메시지라고 생각을 했어요. 결국 글의 가치라는 건 독자들에게 모종의 메시지를 전해주느냐 못하느냐의 문제라고 생각을 해서요. 형태보다는 그 안에 제가 어떤 감성을 담으려고 노력했는지,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노력을 기울였는지에 초점을 맞춰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죠.

 

그 메시지라는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제가 가장 많이 읽은 책은 아무래도 만화책이거든요. 만화책은 삶에 도움이 되거나 그렇진 않잖아요. 그냥 재미로 읽는 거고요. 읽다가 모종의 임프레션 같은 걸 얻을 수 있죠. 전 그런 느낌으로 쓴 거예요. 나는 이렇게 살았고, 이런 상황에서 어떤 생각을 했었다, 이런 걸 적은 거죠. 메시지를 강요하는 건 좀 폭력적이라고 생각했어요. 생각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으니까요. 내 생각을 부여한다기보다 진정성에 초점을 맞춰서 보여주려 한 거예요. 궁상스러우면서도 진정성이 묻어나는 것, 이것들을 통해 사람들이 여러 가지를 느낄 수 있도록 쓰려고 했던 것 같아요. 같은 드라마를 봐도 사람마다 거기서 얻는 메시지는 다를 수 있잖아요.


어떤 메시지를 전했으면 좋겠다고 한다면 아무래도 나는 흘러오는 대로 살다보니 이렇게 됐고, 지금 어느 정도 행복하다, 이런 것들을 얘기하고 싶었어요. 결국에는 제가 의도한 대로 전달이 되지도 않고, 해석하고 메시지를 찾아내는 것도 읽는 사람의 몫이라고 생각해요. 그건 독자들의 특권 같은 거죠.

 

독자는 늘 작가의 의도와 글 쓸 때의 생각이 궁금한 것 같아요. 물론 다양하게 읽힐 수 있지만 말이죠. ‘흐르는 대로 살아왔고, 지금 어느 정도 행복하다’ 여기에 방점을 두면 될까요?


흐르는 대로 살았고, 어떤 목적도 없었다, 유일한 목적이라면 지금보다 좀 더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는 것이었다는 거죠. 요즘은 돈으로 할 수 있는 게 워낙 많아지다 보니 사람으로서의 행복과 사회적 성공을 동일시하는 사람이 많잖아요. 저도 아직 사회초년생이고, 원룸 월세에 살고 있어요. 사회적으로 성공했다고 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진 않잖아요. 그렇지만 지금 굉장히 행복하다고 느끼고 있거든요. 동물은 종족 번식의 목적으로 사는 족속들(웃음)이잖아요. 그런 측면에서 사람은 동물에서 좀 벗어났다고 생각했어요. 사람은 원한다면 자식을 안 낳을 수도 있고요. 결국 사람은 본질적으로 행복해지려는 목적이 있다, 바로 그걸 쫓았으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수치화, 형체화된 것들만 맹목적으로 쫓다 보니 지나친 경쟁을 하게 되고, 그 속에서 자기계발서 같은 것들이 나와서 ‘나처럼 해라, 이렇게 해서 성공했다, 생각만 하면 다 된다’ 이런 것들을 말하는데 저는 거기에 반감을 갖고 있기도 했고요.

 

자기계발서에 반감이 큰 것 같네요.


사람들은 각자 다른 생각을 갖고 있고, 다른 삶을 살아왔고, 다른 사고방식과 행동을 취하는데 왜 사회적 성공이라는 기준 하나로 사람들의 행복을 한 가지로 정의하려는지 이해가 안 됐거든요. 어떻게 보면 그게 지금 많은 사람들이 불행하다고 느끼는 이유 중 하나라고 느끼기도 했고요. 그래서 이 책을 읽고 사람들이 느꼈으면 하는 한 가지가 있다면 ‘정말 행복해져야겠다’ 같은 게 생겼으면 좋겠어요. ‘사람은 행복해지려고 사는 것’ 저한테는 이게 본질적인 메시지였어요.

 

가장 마지막 글이 <R=VD(Realization=Vivid Dream)>이기도 했죠.


이름을 X자로 표기할까도 생각했는데 그건 재미도 없고, 이 작가님을 인격적으로 디스하는 것도 아니니까 그냥 썼죠. 그 분이 쓰신 자기계발서의 내용이 제 입장에서는 이해 안 되는 부분이 많았고, 개인적으로는 그 내용에 상처 받은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으로 제 얘기를 풀어나가 보자는 의도였기 때문인데요. 그게 명예훼손일 거란 걱정은 하지 않아요. 음악 하는 분들은 음악으로 디스를 당하면 음악으로 답변하잖아요. 저는 그 분에 비하면 초짜 작가지만 제가 쓴 글을 읽으셨고 거기에 대해 이해 안 되는 부분이 있다면 글로 쓰실 거라 생각해요. 그래서 걱정 안 하고 대놓고 막 쓰기도 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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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을 고수하는 이유


개인적인 이야기를 솔직하게 쓰셨는데, 이것 역시 말씀하신 전하려던 메시지를 위해 일부러 적으신 건가요?


얘기하다보니 그냥 나왔다고 하는 게 더 적절할 것 같아요. 우울증은 의도한 측면이 있죠. 전 우울증을 아무렇지 않게 말하거든요. 지금도 약을 먹고 있고요. 요즘은 굉장히 살기 어려운 때라 대부분 어떤 형태로든 정신적 문제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정신 질환에 대한 편견 같은 게 있잖아요. 우울증은 지속적으로 상담 받고, 약물로 교정을 하면 평범한 생활이 가능해요. 그런 걸 말하고 싶은 의도는 있었죠. 개인사나 가족 얘기는 얘기를 하다 나왔다는 게 더 적당할 것 같아요. 그것이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이야기에 진정성을 불어넣어준 것 같아서 책의 완성도 측면에서 좀 좋은 결과였던 것 같고요.

 

얼굴도 공개하지 않고, 이름도 필명을 사용하는 등 철저하게 익명을 추구하는 부분과 솔직한 개인적인 이야기를 글로 쓰는 부분은 다소 불균형적이라는 생각도 드는데요. 이 두 가지는 어떻게 공존하고 있는 건가요?


익명이기 때문에 더 솔직하게 얘기할 수 있는 요소가 분명히 있잖아요. 보통은 저처럼 정말 사적인 부분까지는 드러내지 못하는데요. 저는 일단 믿는 거죠. 나는 얼굴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에요. 지금은 사람들도 저에 대해 그렇게 궁금해 하지 않아요.(웃음) 그냥 인터넷에 글로만 드러나는 자아니까요. 실제 제가 얘기하는 방식과 김리뷰가 말하는 방식도 달라요. 담고 있는 메시지는 같을지언정 방식도 다르고, 대면해 얘기하는 무게감도 다르고요. 익명 상황에서 어디까지 깊게 얘기할 수 있을까 라고 했을 때 저는 한계가 없는 것 같아요. 이름, 얼굴, 나이, 성별, 이런 것들도 수치화된 거고 이분법적인 거죠. 이것들이 메시지 자체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어요. 누군가 여자인 걸 알고 군대 관련 글을 쓴 걸 본다면 어떤 식으로든 편견이 생길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 측면에서 저는 그런 조건을 다 뺀 상태에서 제가 겪었던 이야기,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가장 순수한 형태로 전달하려는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의 상태가 이상적이라고 생각하고요. 저의 속성에 비춰 메시지를 본다기보다 메시지를 통해 저를 보니까요.

 

이렇게 상황을 통제하기 위해 익명으로 활동을 시작한 건가요? 의도된 바인지 궁금해요.


전혀 아니었고요.(웃음) 그렇지만 원래 인터넷을 어렸을 때부터 했으니까요. 익명으로 글을 쓰는 게 굉장히 익숙했고, 그러다보니 사고도 많이 치기도 했는데요. 익명이라서 줄 수 있는 모종의 감동이나 생각, 감성 같은 것들이 있다는 생각은 계속 했어요. 의도하진 않았지만 무의식적으로 그런 생각을 계속 한 것 같아요. 시작은 뜬금없었어요. 모든 게 계획했던 것이었다고 하면 그냥 갖다 붙이는 거지(웃음) 사실은 아니고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운이 잘 따랐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앞으로도 신상은 절대 공개하지 않을 작정인가요?


아마 그럴 것 같아요. 계획이라면 북 콘서트 같은 걸로 제 신상이 드러나지 않는 선에서 소수와 교류를 가지면 좋겠다는 게 있는데요. 기본적으로는 이대로일 거예요. 글은 결국 메시지고, 어떤 감성을 전달하느냐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요. 사실 쉽지 않잖아요. 이렇게 개인적인 정보가 완전히 차단된 사람이 쓴 글이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는 게 말이죠. 또 사람들이 궁금해 해야 저라는 캐릭터도 가치가 있는 거니까 계속 유지하게 될 것 같아요.

 

자연 상태 그대로의 ‘나’와 ‘김리뷰’로서의 자아가 서로 어떤 식으로 영향을 주나요?


굉장히 영향을 많이 줘요. 현실의 저는 정말 소심했거든요. 편의점에서 물건 살 때 어떻게 말을 해야 안 어색할 수 있을까, 영화관에서 어느 자리에 앉아야 자연스럽게 녹아들 수 있을까 같은 걸 고민할 정도로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누구나 하고 싶은 말이 있잖아요. 저도 그런 욕구는 있는데 본질적으로 소심해서 현실에서 표현하지 못했죠. 그게 인터넷이라는 공간에 튀어나와서 자아와 욕구가 섞여 발현이 됐다고 생각해요. 솔직하거나 주관적이기 어려운 세상이잖아요. 사실은 저만 그런 게 아니었던 거죠. 사람들이 김리뷰에 열광하고, 관심 가져주는 것도 거기에 있다고 생각했어요.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다 이랬구나 하고요. 그래서 솔직하게 말하고, 정말 뒤를 생각 안 하고 막 지껄이는 김리뷰 캐릭터가 매력적으로 다가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제게도 그렇고요. 김리뷰가 제게도 영향을 주죠. 솔직해도 큰 일이 일어나지 않는구나, 신념을 있는 그대로 얘기하면 공감을 해주는구나, 이걸 느낀 후에는 저도 덜 소심해졌죠. 이런 인터뷰에서 솔직하게 제 얘기를 할 수 있는 것도 김리뷰에게 영향을 받았다는 증거기도 하고요.(웃음) 서로 영향을 준 것 같아요.

 

사람들이 기대하는 김리뷰와 저자가 생각하는 김리뷰는 다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요구가 많아지고, 다양해지니까요. 저자가 생각하는 김리뷰의 정체성은 뭔가요?


쓰고 싶은 글을 쓰고,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거죠. 누가 시키는 것 안 하고, 눈치 안 보고요. 요즘은 눈치를 많이 보고 살아야 하잖아요. 직장 동료와 밥을 먹으러 가면 내가 제일 어리니까 수저를 놓아야 하나, 밑에 휴지를 깔아야 하나, 물을 따라줘야 하나(웃음), 이런 게 있잖아요. 사소한 것까지 눈치를 봐야 하죠. 그런데 김리뷰는 그렇게 하지 않아요. 인터넷 공간이긴 하지만 아무런 눈치 안 보고, 브랜드 이름도 여과 없이 얘기해버리고요. 그게 매력인 것 같아요. 끝없이 새로운 것을 하고, 끝없이 파격적인 것을 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을 넘지 않는 것이죠. 제가 예전에 그런 것을 지키지 못한 과거가 드러나면서 고생을 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에 좀 더 사회가 용인할 수 있는 선 같은 것을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선을 지키는 한에서 새로움을 주려고 해요. 진중함이 있는 코믹함에 초점을 맞춰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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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베


일베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적으셨어요. 언뜻 얘기도 하셨는데 지금 저자에게 그 사건은 무엇인지 묻고 싶어요.


책임지는 걸 배우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해요. 익명이라서 할 수 있는 말들이 있다고 말씀 드렸는데요. 그때는 그것에 굉장히 취해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현실은 묶여있는데 온라인은 그렇지 않잖아요. 아주 자유롭고요. 그 보호막에 취해있었던 셈이죠. 현실에서는 입에 담지도 못할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하고요. 그게 어떤 식으로 돌아올지, 내가 한 말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상처가 될지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었어요. 그런 것이 후회가 됐죠.


단순히 어렸을 때 저지른 과오라고 말하면 변명이라고 생각하고요. 예전에 했던 말들과 상처 준 행동에 대해 확실하게, 끊임없이 반성해야겠죠. 그런 과거가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는, 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는 약이나 원동력 같은 게 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당시에는 회사에도 들어가고 조금 잘 되니까 사실 오만한 게 있긴 했어요. 겉으로는 아닌 척 했지만 마음 깊은 곳에는 늘 자존감이 억눌려서 살아왔으니까요. 그런 것들이 이상하게 변형돼 오만함으로 있었는데요. 이 사건들이 제동을 걸어주면서 주제파악을 하게 됐죠. 앞으로 어떤 식으로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해준 것 같아요. 그때 일베를 하지 않았더라면 하는 생각도 하긴 했는데요. 지금은 안 들어요. 했다는 게 잘했다는 게 아니라 그런 행동을 계속 후회해봤자 소용이 없는 거니까요. 

 

잃은 것도, 얻은 것도 많은 사건이었네요.


이미 그런 행동을 했고, 그때 잘못된 생각과 행동을 했던 게 맞지만 그걸 지금이라도 깨달은 게 너무 다행스러워요. 그런 사건이 일어난 후에도 반성할 수 있는 자신이 된 게 다행이라고 느끼죠. 과거를 세탁한다는 의견도 있었어요. 그래서 계속 얘기하는 거거든요. 그 내용을 빼고 얘기할 수 없더라고요. 세탁, 청산, 이런 말은 적절하지도 않고 있을 수도 없다고 생각해요. 과거에 한 행동이라는 건 그 자리에 있고, 사라지지 않는 거니까요. 정말 용서 받기 어려운 과거가 있기 때문에 좀 더 발전하려는 스스로가 되려고 하는 게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진심으로 반성하게 됐지만 제가 반성하는 것과 상관없이 사과의 진정성이라는 건 결국 받아들이는 사람의 재량이잖아요. 다행스럽게도 많은 분들이 제가 반성하고, 발전하려는 모습에서 진정성을 느끼신 것 같고요. 저는 그걸 배신하지 않는 게 앞으로의 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 일이 지나가고, 해결된 과거라기보다 계속 여기에 남아 김리뷰와 같이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네, 계속 같이 가야죠. 왜냐하면 그걸 빼고 제 인생을 설명할 수 없을 것 같아요. 거기 있는 거예요.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그런데 거기 계속 있는 일이라고 하면, 없던 일로 치부할 수 없다고 하면 그것이 주는 에너지 같은 것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풀어낼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게 가장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좀 더 발전하자, 좀 더 멋진 사람이 되자, 이런 노력을 많이 하죠. 제 모습을 통해 사람들이 느꼈으면 하는 것도 있어요. 잘못 하나로 모든 게 망가지고, 물거품이 되고, 사회에서 매장되어야 하는 것이라기보다 그것을 용서하는 과정이 또 다른 자신을 만들어준다는 것, 그걸 앞으로의 제 행보를 통해 보여주고 싶은 욕심도 있죠. 계속 반성해야죠.

 

예전보다 발전하는, 더 멋진 사람이 된다는 건 어떤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건가요?


발전에 여러 방향이 있잖아요. 저는 정신적인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노력하겠다는 거고요. 지금 김리뷰가 쓰는 글처럼 가감 없고, 솔직하고, 메시지가 날것 그대로 있는 그런 글을 계속 써서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제 감성을 여과 없이 전달하는 것이 발전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책도 계속 쓰다 보니까 늘더라고요.(웃음) 이번 책을 쓰면서도 더 발전했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더 발전한, 메시지 있는 글을 쓰고 사람들과 소통해야겠죠.

 

 

가장 트렌디한 글을 쓰는 작가가 목표


가장 쓰고 싶었던 글은 이번 책으로 써봤으니, 지금 상태에서 궁극적으로 쓰고 싶은 글이라면 어떤 게 있을까요? 작가로서의 꿈이 있다면요.


장르에 구애받지 않는 글을 쓰고 싶어요.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어 내는 것, 이전에 없었던 글을 쓰는 것이 꿈이죠. 새로운 뭔가의 등장이라는 건 매체나 사회를 어떤 식으로든 변화시키잖아요. 누구나 그런 욕심이 있을 것 같은데요. 저는 이제 막 걸음마를 뗀 상태니까 작가로서는 아무래도 이 시점에서 가장 트렌디한 글을 쓰는 작가로 목표를 잡았어요. 사실 매번 쓰고 싶은 글을 바뀌어요.(웃음) 개인적으로는 SF소설을 써보고 싶은 꿈이 있고요. 어렸을 때 아주 초보적인 소설을 써봤는데, 다시 읽어보니 되게 파멸적이더라고요. 일단 여러 장르에 도전해보고 싶어요. 아직 어리고, 잃을 것도 별로 없으니까 그래서 많은 것에 도전할 수 있는 시기란 생각이 들어요.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려고요. 어떻게든 되겠죠. 안 팔린다고 출판사가 저를 때리기야 하겠어요.(웃음)

 

트렌디한 글을 쓰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정보에 열려있어야 하잖아요. 공부랄까, 정보 수집은 어떻게 하시나요?


보통은 인터넷이에요. 책이 일반적으로 주는 느낌은 클래식하고, 아날로그적인 느낌이잖아요. 도구나 장식 같은 느낌도 있죠. 책이 시대와 발맞추는 매체라고 생각하기는 힘들죠. 인터넷은 공간의 제약 없이 많은 사람들이 소통할 수 있는 곳이니까 그곳에 글도 많이 쓰고, 다른 사람의 글도 읽고 하는 거죠. 인터넷 문화에 정통하다는 게 굉장히 도움이 된 것 같긴 해요. 앞으로도 인터넷 하면서 글 쓰고, 만화 보고, 게임하고 그러지 않을까요? 계속해서 새로운 것을 쓰는 것이 가장 큰 숙제예요. 그러기 위해 더 많이 노력해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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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분의 삶 김리뷰 저/노선경 그림 | 알에이치코리아(RHK)
점점 스케일 크게 ‘모두까기’ 인형이 되어가는 것으로만 보이던 김리뷰가 예상과 전혀 다른 리뷰를 끄적거리기 시작했다. 두툼하여 라면받침으로도 안성맞춤인 이번 책에서 김리뷰가 리뷰하고자 하는 것은 바로 헬조선의 태백(20대의 태반은 백수), 20대 자신의 모습이다. 이제는 ‘현실에서 기대는 버렸다’며 스마트폰, 인터넷, 게임 속으로 녹아버린 그들 중 한 사람으로서 김리뷰는 자기 자신을 투영하여 20대 모두의 마음을 리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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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연복 셰프 “왜 자꾸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냐고요?”
- 만화가 허영만 “나에게 커피란, 사랑할 수 없는 여인”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최강록 셰프 “만화책, 요리 공부에 도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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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 셰프 코리아>(이하 <마셰코>) 시즌 2의 우승자 최강록. 그는 어수룩한 말투와 반전 요리 실력으로 심사위원과 시청자들을 사로잡으며 단숨에 유명 인사가 됐다. 이후 ‘셰프테이너’라는 신조어가 생겨날 정도로 요리하는 남자들의 전성시대가 도래했지만, 어찌된 일인지 더 이상 매스컴에서 최강록을 만날 수는 없었다. 2년 전, <마셰코> 시즌 2의 우승자로서 본인의 이름을 내걸고 진행했던 프로그램 <최강食록>이 마지막 방송활동이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은 그의 요리를 기억하고 그리워한다. 인터넷에는 ‘최강록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에 대해 알고 싶다’ ‘다시 한 번 <마셰코> 시즌 2를 정주행했다’는 글들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반가운 소식은 한 권의 책을 타고 전해졌다. 『이건 왜 맛있는 걸까』『최강록 레시피 노트』이후 1년 만에 선보이는 최강록의 두 번째 ‘요리 에세이’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일상생활에서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는, 그러나 최강록만의 비법이 녹아있는 가정식 레시피를 모았다. 여기에 더하여 요리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재료 선택과 보관 방법, 양념의 제 맛을 끌어올리는 활용법까지 소개한다. <마셰코>의 심사위원들을 유혹했던 달걀찜과 닭날개고추장조림의 비결도 엿볼 수 있다.

 

그를 만나기 위해 논현동에 위치한 작은 레스토랑 ‘육미’를 찾았다. 오픈한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은 정갈한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익숙한 얼굴이 반겨준다. 최강록 저자와 함께 ‘육미’의 문을 연 김경민 셰프다. 두 사람은<마셰코> 시즌 2에서 처음 만나 지금까지 끈끈한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수많은 매체와 대중의 관심을 뒤로 한 채, 다시 요리사의 자리로 돌아온 그들이 반갑다. 흔들림 없이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모습은 ‘기본’을 떠올리게 한다. 『이건 왜 맛있는 걸까』가 전하는 ‘요리의 본질’과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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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 프로그램, 출연할 의향은 있지만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마셰코> 출연 당시 근무하던) 참치 회사에서 같이 일하던 분이 불러주셔서 회사에 다녔어요. 이번에는 참치를 제대로 배워보고 싶었거든요. 회사에 들어가기 전에는 취미요리학원 ‘인리원’에서 강의하기도 했는데, 회사 일과 대학교 강의를 시작하게 되면서 정리했어요. 그런데 회사 일이 생각만큼 되지 않았어요. 김경민 셰프와 함께 ‘육미’를 시작하게 된 건 11월부터예요.

 

방송 출연을 하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최근 한 매체에서는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꼭 보고 싶은 셰프 5인방” 중 한 사람으로 최강록 셰프를 꼽기도 했습니다.


그동안 출연 요청은 있었는데 회사를 다닐 때는 일절 하지 않았어요. 회사에 집중해야 하니까요. 저는 그게 회사에 대한 의리라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모르겠어요. 요리와 관련해서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생각해 볼 수 있겠지만, 일단은 가게에 조금 더 집중해야 되지 않을까 싶어요.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리지 않고 김경민 셰프랑 저랑 둘이서, 가족들과 함께 운영하는 거라 해야 할 일들이 많거든요.

 

레스토랑 오픈 소식을 반가워하실 분들이 많을 텐데요.


좋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굉장히 급해져요. 무섭다고 해야 하나요. 제가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큰 기대를 가지고 찾아오시는 분들도 계시니까요. 하지만 가게를 운영하는 건 길게 내다보고 하는 일이니까, 굳이 홍보를 하지 않고 제가 할 수 있는 걸 만들어 가면 좋을 거라고 생각해요.

 

부담감도 있으시겠죠?


그때도 저는 똑같이 요리를 하는 사람이었거든요. 일반 사람들이 하는 요리들, 요리사라면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요리를 했던 사람이고, 모두를 놀라게 할 요리를 하는 사람은 아니거든요. 흥행성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고요. 요리에 대한 흥행성이라고 하면 ‘그 집 메뉴 대박이다’라는 반응이 나올 만한 건데, 아직은 그런 게 없어요. 천천히 하다 보면 뭔가 하나 나오겠죠.

 

『이건 왜 맛있는 걸까』에는 채널예스의 칼럼 ‘최강록의 맛 공작소’에 연재하셨던 글들도 실려 있습니다


맞아요. 칼럼에서는 10개 정도의 에피소드를 소개했던 것 같은데요. 그 글들을 바탕으로 내용을 더 보충했어요. 『이건 왜 맛있는 걸까』는 첫 책 『최강록 레시피 노트』보다 먼저 준비를 시작했어요. 그런데 제가 알고 있는 내용을 책에 옮겨 담았더니 생각보다 양이 많지 않아서, 찾아보고 공부하는 데 시간이 걸렸어요. 책 내용 중에서 2/3 정도는 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습득된 부분이지만, 나머지는 내용을 더 보강하기 위해서 찾아보면서 공부했어요.

 

이번 책에서 “맛있다는 건 ‘재료 자체의 맛이 살아 있다’는 뜻”이라고 하셨는데요. 요리 경력이 쌓일수록 기본에 충실해야 된다는 생각이 드시나요?


하면 할수록 그런 생각이 계속 들어요. 최근에도 생선을 진짜 잘 굽는 방법을 알고 싶어서 숯과 소금만 가지고 요리해보고 있거든요. 이건 취향인 것 같아요. 꼭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각자가 가지고 있는 개성에 의해서 추구하는 게 달라지는 거죠. 어떤 분들은 조금 더 많은 재료를 한꺼번에 아름답게 담는 걸 추구하시잖아요. 저도 예전에는 그런 게 너무 멋있어 보였는데, 지금은 튀김은 제대로 튀기고 구이는 제대로 굽는 것부터 다시 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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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조림 달걀은 6분만 삶으세요


『최강록의 레시피 노트』와 마찬가지로 집에서 쉽게 만들어볼 수 있는 메뉴들을 소개해 주셨어요.


네, 이번 책은 조금 더 요리를 처음 접하시는 분들을 생각하면서 만든 것 같아요.

 

굳이 요리를 하지 않아도 음식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이 많이 있더라고요. 김치찌개에 달걀프라이를 곁들여 먹어보라는 작은 팁 같은 것들이요.


기름이 들어가니까 맛있다고 느껴지는 거예요. 달걀프라이에 있는 기름기의 풍미가 맛있다는 느낌을 주는 거예요.

 

6분 동안 삶은 반숙 달걀로 장조림을 만들면 부드럽게 즐길 수 있다고요.


반숙으로 삶아진 달걀처럼 맛있는 달걀이 없는 것 같아요. 어려운 게 있다면 껍질을 벗기는 건데요. 시간 맞춰서 삶는 건 쉽지만 흰자가 부드럽기 때문에 껍질을 까기는 쉽지 않죠. 그럴 때는 찬물에 담가서 완전히 차갑게 식힌 다음에 물속에서 까는 게 좋습니다. 그 다음에는 양념간장에 담가서 하루 정도 두시면 돼요. 이때는 다시 졸이지 않는 게 좋아요. 달걀이 부드러운 상태인데 다시 졸이면 ‘오버쿡’ 상태가 되거든요. 그러니까 게장을 담글 때처럼 양념간장을 끓여서 식히신 다음에 달걀을 담가 두시는 게 좋아요.

 

생경한 요리법들도 눈에 띕니다. 그 중에 하나가 두부를 얼려서 활용하는 거예요. 특히 국물 요리에 넣으면 좋다고 추천해 주셨죠.


두부가 얼었다가 녹으면 안의 수분이 빠집니다. 그러면 공간이 생기는데, 그 두부를 국물 요리에 넣으면 공간 사이사이에 국물이 들어차게 되는 거예요. 씹으면 국물이 배어 나오는 거죠. 유부와 비슷하다고 생각하시면 되는데요. 유부보다 두껍게 썰면 또 다른 식감을 느끼실 수 있어요.

 

생선회를 ‘콩피’ 방법으로 요리하는 것도 신선했어요.


회는 시간이 지나면 탄력이 없어지잖아요. 그걸 다시 돌리려면 초창기에 잡지 않으면 안 돼요. 만약 거기에서 조금 더 시간이 지났다면 다음 단계의 조리 방법을 생각해야 됩니다. 그게 ‘콩피’예요. 깊은 냄비에 기름을 담아서 굉장히 약한 불에서 생선회를 가열하는 거죠. 그러면 진짜 색다른 식감이 나와요. 굉장히 부드럽죠.

 

대파 아이스크림은 맛을 상상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대파 맛이에요. 대파의 구수한 향만 나죠. 대파는 생으로 사용하면 거슬리는 맛이 있기 때문에, 아이스크림으로 만들 때는 가열을 해야 됩니다. 가열해서 향과 맛을 추출한 다음에 아이스크림으로 만드는 거예요. 이런 음식은 맛보다는 아이디어적인 측면에서 점수를 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샐러드 같은 다른 음식과 조합해서 요리를 더 돋보이게 만들 수 있어요.

 

『이건 왜 맛있는 걸까』를 보니까, 요리 경연대회에 출전하신 게 <마셰코>가 처음이 아니던데요. 일본 요리대회의 후쿠오카 지역예선에 참가하신 적이 있다고요.


그때는 일본 요리학교에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었는데요. 삶이 무료해서 도전을 해보면 어떨까 해서 응시했었어요. 그런데 서류가 통과돼서 예선에 참가하게 됐죠.

 

이후에 다시 한 번 출전 제의를 받았다고 하셨어요. 하필이면 <마셰코> 결승 날이었죠(웃음).


그런데 <마셰코>에서 하도 힘들어서, 요리 경연은 다시 하지 말자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 가게 문을 닫은 직후라 빚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심적으로 조금 힘들었죠. 돈이 많고 생활이 여유가 있으면 요리대회만 찾아 다니면서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마셰코>에 출연하면서 공부를 많이 하게 됐거든요. 요리에 대한 생각도 계속 할 수 있었고요. 탈락하지 않는 한 혼자 단절된 생활을 하게 되니까 바깥 생각은 잠시 잊을 수도 있었어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제가 2개월 반 정도 단절된 공간에 있으면서 외부와 연락도 하지 못하고 지냈는데, 서른이 훨씬 넘은 나이에 그런 시간을 갖는다는 건 상상도 못 했었어요. 그런데 의외로 편하더라고요. 바깥 세상은 너무나 힘드니까요. 빚도 많고 다음 달이면 또 얼마를 결제해야 된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는데, 그 안에서는 잠깐 잊을 수 있잖아요. 처음에는 그런 식으로, 약간의 도피처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일단 탈락은 안 했으니까 갈 데 까지 가보자, 그런 생각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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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셰코> 최고의 요리로 자평하는 건 ‘맑은 아구탕’


『이건 왜 맛있는 걸까』에서 소개하신 닭 가슴살 ‘저온조리’ 방법은 다이어트를 하시는 분들에게 반가운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온도계와 지퍼백이 있으면 저온조리 방법으로 요리하실 수 있어요. 닭 가슴살을 살짝 간을 하셔서 지퍼백에 넣으신 다음 공기를 빼주면 진공 상태가 되는데요. 완벽한 진공 상태는 아니지만 효과를 얻을 수 있어요. 그걸 냄비에 넣고 온도계를 꽂아서 58~60도로 맞춰준 상태에서 30분 정도 가열하시면 돼요. 두께나 크기에 따라서 시간은 조금씩 다른데, 30분 정도 가열하시면 부드러운 닭 가슴살이 됩니다. 아무래도 직접적으로 열이 닿으면 퍽퍽해지거든요.

 

<마셰코>에서 심사위원들의 극찬을 받았던 메뉴인 ‘닭날개고추장조림’을 변형해서 ‘닭날갯살매운조림’을 만드는 방법도 알려주셨어요.


‘닭날갯살매운조림’ 레시피에 고추장을 첨가하시면 <마셰코>에서 만들었던 ‘닭날개고추장조림’이 돼요. 이미 그 메뉴는 많은 분들이 만들어서 드시는 것 같더라고요. 인터넷에서 보니까 제가 방송에서 만들었던 요리 중에 ‘닭날개고추장조림’을 가장 많이 해 드시는 것 같아요.

 

당시 방송에서 선보이셨던 요리 중에, 스스로 최고의 요리였다고 생각하시는 게 있나요?


‘맑은 아구탕’이요. 저는 그 요리가 굉장히 많이 칭찬받을 줄 알았어요. 국물을 먹어봤을 때는 정말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건더기 간을 더 세게 했어야 했던 것 같아요. 저는 국물만 맛보고 맛있다고 생각했는데, 심사위원 앞에 나가자마자 오만하다는 평을 들었죠(웃음).

 

『이건 왜 맛있는 걸까』를 보면서 음식 재료의 보관법에 대해서도 많이 배웠습니다. 일례로, 감자를 전자렌지에 가열해서 보관하는 방법은 처음 알게 됐어요.


가열을 해서 냉동실에 넣는 게 좋아요. 식감이 변하는 건 수분이 빠지기 때문이거든요. 그러니까 수분이 빠지지 않도록 하는 게 제일 중요해요. 밀폐를 시킬 수도 있지만 해동하면서 문제가 생기거든요. 그래서 가열을 해서 보관하시는 게 조금 더 나은 거죠. 감자 껍질을 벗긴 다음에 용도에 맞게 썰고, 익히는 방법은 전자렌지에 돌리셔도 되고 물에 익히셔도 돼요. 전자렌지에 익히시면 모양이 덜 흐트러지겠죠. 익힌 다음에는 식은 다음에 소량씩 나누어서 냉동실에 보관하시면 됩니다. 

 

고기는 밑간 해서 냉동하라고 귀띔해 주셨는데요. 생고기로 보관할 때와 차이가 있나요?


결국은 용도에 맞게 선택해야 하지만, 양념으로 코팅을 해주면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상태 보존에 도움이 돼요. 고기를 냉동시켰다가 해동할 때 수분이 빠지면서 퍽퍽해지는 걸 방지할 수 있죠. 밀폐 용기를 잘 선택하시는 것도 중요해요. 오랜 시간 보관하기에는 랩을 씌우는 것만으로는 부족할 수 있어요.

 

육수용 멸치를 고를 때에는 생멸치를 말린 것인지 쪄서 말린 것인지 살펴보라고 하셨죠. 


생멸치를 말린 건 약간 거친 맛이 나고요. 육수용으로는 쪄서 말린 게 조금 더 낫지 않나 싶어요. 눈을 보면 생멸치를 말린 건지, 쪄서 말린 건지 알 수 있는데요. 쪄서 말린 멸치는 눈이 하얘요. 생선이 익으면 눈이 하얘진다는 걸 기본적으로 알아두면, 구이를 할 때나 탕이나 찌개를 끓일 때도 익었는지 안 익었는지 알 수 있죠. 기본적으로 눈알이 하얘지면 어느 정도 익었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그리고 쪄서 말린 멸치는 따로 프라이팬에 볶아서 사용하지 않으셔도 돼요. 만약 보관을 너무 오래 해서 조금 냄새가 난다면 프라이팬에 살짝 볶으시는 게 좋죠. 아니면 살짝 굽듯이 그을리게 볶아서 사용하셔도 좋아요. 그러면 국물에서 불의 향이 나거든요. 닭 육수도 마찬가지예요. 그냥 뼈를 넣고 우려내면 담백하고 뽀얀 국물이 나오는데, 뼈를 직화로 구워서 넣으면 약간 갈색 빛의 향이 더 진한 국물이 나와요. 손을 한 번 더 더하면 이런 요소들을 하나씩 집어넣을 수 있죠. 피곤하기는 하지만요(웃음).

 

『이건 왜 맛있는 걸까』에서 알려주신 ‘맛을 좀 더 쉽게 발견하기 위한 방법’이 생각나네요. 그 중 하나가 ‘귀찮음을 감수하자’잖아요.


맞아요. 그 밖에도 ‘소금간을 마스터하자’ ‘제철을 알아두자’ ‘도구를 활용하자’ ‘육수의 감칠맛을 이용하자’라는 이야기를 했는데요. 저는 제일 중요한 게 소금인 것 같아요. 균형을 생각하는 센스가 중요한 것 같거든요. 반찬이 각각 다 간이 되어있을 텐데 국까지 짜면 안 되잖아요. 밥 위에 한 가지 요리만 얹어서 먹을 때에도 어느 정도로 간을 해야 할지 생각해야 하고요. 그렇게 생각을 더하고 더하다 보면 그런 부분도 조금 쉬워지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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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이 불 땐 ‘샤브샤브’를


<마셰코> 출연 당시 『미스터 초밥왕』을 보며 요리를 시작하신 걸로 알려지셨는데요. 사실은 한국의 스시 아카데미와 일본의 ‘츠지 요리사 전문학원’에서 공부 하신 경력이 있으시죠. 이런 부분이 가려져서 아쉽지는 않으셨나요? 


『미스터 초밥왕』이라는 만화는 장사를 하게 된 계기가 된 거예요. 초밥으로 장사를 해서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던 거죠. 그런데 아무것도 모르니까 스시 아카데미를 다니면서 공부를 한 후에 가게를 오픈했고요. 일본에서 학원에 다닌 건 30대 때였어요. 2년간 공부했죠. 방송에는 만화책을 보고 요리를 시작한 걸로 나가서, 뭔가 과정이 빠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그런데 그게 나쁘게 작용하는 것 같지는 않았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해요. 가끔 저를 보시고 ‘초밥왕, 초밥왕’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세요. 지금 저는 초밥은 만들지 않는데 말이죠(웃음). 매스컴을 통해 전해지는 이야기들이 굳어지면 무섭기는 하더라고요. 조심하게 되고, 더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요리와 관련해서 공부를 하거나 아이디어를 얻을 때 도움이 된 책이 있나요?


주로 옛날에 산 책을 많이 봐요. 아무래도 일본 요리에 관심이 많으니까 옛날에 나온 일본 요리 책들도 보고요. 『어시장 삼대째』 같은 만화책도 좋거든요. 『맛의 달인』은 이미 많은 분들이 아시는 책이죠. 그런 책에서 음식별로 찾아보다 보면 팁이 나와요. 장어는 가스불이 아닌 숯불에 구워야 한다든지, 그 이유는 무엇인지, 배우게 되죠.

 

<마셰코> 결승전에서 ‘여름을 준비하는 마음’을 테마로 한 요리를 보여주셨는데요. 요즘처럼 찬바람이 불기 시작할 때 추천하고 싶은 메뉴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샤브샤브’가 좋을 것 같아요. 일단 분위기가 오붓해지는 것 같거든요. 꼭 샤브샤브가 아니더라도 같이 보글보글 끓이면서 먹는 전골 요리라면 지금 시기에 딱 좋지 않을까 싶어요. 사람들이랑 이야기도 잘 통하는 것 같고요. 고기를 굽는 건 한 사람이 수고를 감수해야 되잖아요(웃음). 그런 점에서 ‘샤브샤브’ 같은 메뉴가 좋을 것 같습니다.

 

사람들에게 어떤 음식을 만들어 주는 요리사가 되고 싶으세요?


지금 제 단계는 추울 때는 따뜻한 음식을 드리고 더울 때는 시원한 음식을 드리는 정도인 것 같아요. 마음의 힐링까지는 아직 단계가 아닌 것 같고요. 김경민 셰프와 공동으로 가게를 운영하게 됐으니까, 지금은 처음이라 쉬지도 못하고 정신 없기는 하지만, 마음 추스르면서 하나하나 해 나가려고 해요. 혼자가 아니니까 앞으로 더 노력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요. 그냥 마음이 든든합니다. 혼자 할 때와 달리 외롭지도 않고요.

 

<마셰코> 시즌 2의 애청자들에게는 두 분의 레스토랑이 성지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웃음).


와주시면 감사하죠. 저는 <마셰코>가 끝난 이후로, 시간이 지나면서 달라지는 반응들을 다 기억해요. 그래서 젖어 들지 말자는 생각을 하고요. 그렇게 흘러가는 거니까 아쉬울 필요도 없다고 생각해요. 프로그램이 끝나고 나니까 입을 사용하는 일이 많아지더라고요. 손도 많이 놀게 되고요. 그런 점에서 가게가 필요하다는 걸 느꼈어요. 지금 오픈한 가게는 포장마차 식의 식당이에요. 화려한 음식이 아니라 무겁지 않은 걸 하려고 해요. 산지에서 좋은 생선을 가져와서 적정선의 가격에서 제공하는, 편안한 음식점을 하고 싶어요. 너무 많은 사람들의 기대 때문에 나는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데 지금 작은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아요. 김경민 셰프도 저도 할 수 있는 건 많다고 생각해요. 일단은 둘의 개성을 조금씩 죽이고서 이곳에 맞는 음식을 만들자는 생각에서 천천히 가려고 합니다. 천천히 오래 가고 싶어요.

 

책에 소개된 음식 중에서 ‘꼭 한 번 만들어보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 메뉴가 있나요?


‘닭다릿살맑은조림’ 같은 경우에는 생선을 요리하실 때도 응용하실 수 있을 것 같고요. 닭을 맵게 요리해서 드시는 분들도 시도해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닭고기 자체는 맑은 상태에서도 충분히 맛이나 향이 잘 우러나오거든요. 맑은 국물로 요리하시면 국물과 고기를 같이 드실 수도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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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왜 맛있는 걸까최강록 저/김계란 그림 | 클
[마스터셰프 코리아 2]의 우승자이자 개성 있는 요리로 주목받은 셰프 최강록이 독특한 요리 에세이를 썼다. [이건 왜 맛있는 걸까]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책에는 레시피 공개나 맛집 소개가 아닌 재료와 맛에 대한 꼼꼼한 설명을 담았다. 저자 최강록은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부엌의 냉장고와 찬장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재료와 양념들, 그리고 조리기구의 특성과 활용법을 알려준다. 독특한 캐릭터만큼이나 재미난 에피소드와 함께 자연스럽게 건네는 깨알 같은 팁들을 챙겨가다보면 요리에 대한 ‘원칙’에 한걸음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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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희, 조선족 문단의 현실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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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어(母語)인 한국어로 소설을 쓰면서도 한국 문단은 생각할 수 없었다는 조선족 작가 금희. 그는 ‘어떤 소설을 쓸 것인가’가 아닌 ‘소설을 계속 쓸 것인가’를 고민해야 했다. 중국 문단도, 한국 문단도 아닌 쇠락해가는 작은 조선족 문단에서 활동하면서 ‘다음’을 기대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질문 하나가 떠올랐다. ‘뭐가 되어야 쓰는 것인가’.

 

“일단 결과 생각하지 말고 쓰자, 좋은 소설 쓰자, 생소하거나 낯설거나 신선감이 있거나 그건 모르겠고 어쨌든 사람 이야기 쓰면, 잘만 쓰면 되겠지, 그 다음에 번역이나 다른 걸 생각하지 아직 아무것도 안 하고 미리 이런 걸 걱정하지 말자, 생각했죠.”

 

금희는 현실을 미화하지 않는다. 조선족이 탈북자를 바라보는 태도, 시장 경제에 휩쓸려 망가지는 조선족의 삶을 조명하는 태도는 지극히 현실적이다. 중국과 북한, 남한의 바깥에서(혹은 내부 깊숙한 곳에서) 나부끼는 아슬아슬한 삶이 무척이나 섬세하게 그려진다. 인물은, 작가는 이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여도 좋을지 끝없이 망설인다. 이 불신이 참 뜨겁다. 그리고 알 수 있다. 이것은 모두 작가의 몸에서 나온 이야기다. 그 이야기가 여기에 닿은 건 큰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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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 문단의 현실


중국 장춘에서 작품 활동을 하셨죠.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소설집이 출간되었는데, 기분이 어떠세요?


좋았어요.(웃음) 조선족 문단에서만 활동했으니까요. 한국은 처음부터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염두에 두고 한 것도 아니고요. 하다가 계기가 돼 이렇게 책이 나왔습니다.

 

한국은 생각하지 않으셨다고요?


굳이 이쪽으로 해보겠다는 생각은 없이 일단 소설만 잘 써보자고 생각했었죠. 거의 포기한 상태에서 했으니까요.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생각했어요.

 

염두에 두지 않았다,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생각한 이유가 있었을 것 같은데요.


조선족 문단에서 소설을 시작하는 것 자체가 그렇죠. 원래 조선족 인구가 적기도 하고요. 중국이라는 사회 안에서도 조선족 사회는 특수한 소수 집단이거든요. 중국에 여러 소수민족이 있지만 조선족만 모어(母語)로 소설을 창작해요. 다른 소수민족들은 다 중국어로 창작해요. 원래 본인들의 문자, 언어 다 있죠. 큰 민족들도 있고요. 티베트, 위구르, 몽골족 같은 경우도 자기 문자와 언어가 엄연히 있고 인구도 우리보다 훨씬 많아요. 그런데 중국 작가들과 접하며 보니까 모어로 창작하는 작가들이 이제 거의 없더라고요. 중국 문단에 나오면서는 특히 중국어로 활동을 하고요. 몽골이나 위구르족이 자기 언어로 창작하는 경우가 조금 있는데요. 전업 프로 작가들은 전부 중국어로 창작해요. 조선족만 모어로 창작하니까 참 교제하기가 힘들어요.

 

한국뿐 아니라 중국 문단에 대해서도 벽을 느끼셨겠네요.


제 소설이 중국 문단에 알려지려면 번역을 거쳐야 하는데요. 조선족 학교를 쭉 다녔으니 스스로도 중국 작가들보다 언어구사력이 떨어진다는 걸 알아요. 다른 작가들 작품을 읽는 건 충분히 할 수 있지만 제 소설은 그쪽에서 읽어보질 못하니까요. 고립된 것 같은 느낌이었죠. 게다가 한국도 생각하지 않았고요. 한국과 엄연히 다른 조선족의 생활이 있잖아요. 그런데 과연 우리 이야기를 써서 한국에서 관심을 가져줄까 그런 생각도 많이 했었어요. 그렇다고 제가 한국 생활을 쓸 수 있는 것도 아니죠. 한국 작가들의 세련된 언어를 따라갈 수 있을까, 한국 독자들이 받아들일까, 재미있을까 고민이 됐어요. 한국에서도 작가 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한국에서 해봤자 게임이 되겠나, 그럴 바에는 생각하지 말자고 했던 거죠.

 

조선족 문단의 사정도 여의치는 않았을 것 같아요.


워낙 덩치가 작고, 점점 중국에 동화되어가고, 사람들 자체가 이제 없어지는 상태예요. 쇠락해가는, 곧 꺼져가는 불빛을 두고 굳이 거기서 시작을 한다는 게 거의 가능성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작품 활동을 하셨죠. 그러면서 드는 작가로서의 고민이 있었다면 무엇이었을까요?


제게 있어 제일 큰 고민은 소설을 어떻게 쓸까 하는 게 아니라 소설을 계속 쓰느냐 마느냐 하는 것이었어요. 곧 없어지는 거고, 잡지도 몇 개 남지 않았고, 독자들은 거의 다 떨어져나가고, 문단 안에서만 서로 읽어주는 상태니까요. 대중과 소통이 전혀 안 되는 상황에서 이 일을 하고 있다는 자체가 웃기잖아요. 현실적으로 도움도 전혀 안 되고요. 중국 작가들은 원고비로 살아갈 수 있어요. 열심히 써서 실력이 어느 정도 되고 인정받으면 인세도 많고, 상도 있고, 원고비도 많아요. 글로 생활을 유지할 수 있어요. 우리는 전혀 그렇지 않거든요. 거의 생활이 안 된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잡지들도 정말 너무 어려워요. 쓰는 사람이 없으니까요. 중국이나 한국 같은 경우 안 된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작가 군체들이 있으니까 원고가 많이 들어오잖아요. 조선족 문단은 작품을 써준다고 하면 편집자들이 너무 고마워하고, 부탁하는 상황이에요. 돈도 안 되고, 명예도 안 되고, 그렇다면 이 일을 왜 하느냐는 거죠.(웃음)

 

왜 하고 계세요?(웃음)


개인적인 것도 있고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요.(웃음) 다양한 직업을 해봤는데요. 재미도 없고, 보람도 없고, 아무것도 안 되겠더라고요. 그렇지만 이 일은 제가 전업으로 하겠다는 생각 안 하고 한 거예요. 꾸준히 써왔거든요. 또 제 환경이 신랑 도우면서, 아이들 보면서, 개인적인 시간을 조절할 수 있는 환경이었으니까 개인적인 아쉬움이 있어서 계속 한 것 같아요. 학교 다닐 때는 그림을 좋아했어요. 마지막에 와서는 이 일을 할까 그림을 그릴까도 고민을 했었죠. 그림은 제한이 없잖아요. 누구나 다 볼 수 있잖아요. 그런데 이건 문자로 해야 하니까 딱 제한이 되죠. 이 한계가 보이니 하지 말자, 고민도 했고요. 교회를 다니니까 기도도 많이 했어요. 나중에는 그런 것이 오더라고요. 꼭 뭐가 되어야 쓰는 것인가 하는 질문 같은 것 말이에요. 일단 결과 생각하지 말고 쓰자, 좋은 소설 쓰자, 전혀 다른 나라의 소설에도 공감하는 것처럼 소재야 어찌됐든 나만의 이야기를 쓰자고 생각했어요. 생소하거나 낯설거나 신선감이 있거나 그건 모르겠고 어쨌든 사람 이야기 쓰면, 잘만 쓰면 되겠지, 그 다음에 번역이나 다른 걸 생각하지 아직 아무것도 안 하고 미리 이런 걸 걱정하지 말자, 생각했죠.
 
어려움을 느꼈다고 했지만 중국 문단 활동을 생각하긴 했을 것 같아요.


지금도 생각은 있어요. 어차피 조선족이고, 중국이란 나라에서 살고 있으니까요. 중국 문단, 한국 문단 둘 다 포기할 수 없어요. 중국 문단은 워낙 큰데 이에 비해 조선족 문단을 솔직히 너무 힘이 없어요. 첫 세대 작가들은 정말 잘했는데 지금은 고립되고, 많이 떨어졌죠. 시장 경제 충격도 너무 컸고요. 제가 보기엔 보호를 받지 못했어요. 내던져진 건데요. 이 일은 어떤 후원 없이 개인의 힘으로 하기란 너무 힘들어요. 특히 인구도 많지 않은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죠. 어쨌든 번역을 한 번 거치고 나면 많이 떨어져나가잖아요. 방법이 없다, 일단 작품 실력을 키우자, 그래야 번역이 돼도 70%라도 건지지 않겠나(웃음) 해요.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역시 한국 문단으로의 진출이 작가에게 의미가 있겠네요.


그마나 번역이라는 걸림이 없으니까요. 생각도 안 했는데 이쪽으로도 가능하겠구나 생각이 들어요. 저는 소재 때문에 많이 걱정하고 그랬는데 말이에요. 어차피 다른 나라도 염두에 두고 한다고 작품을 한다고 하면 중국어로 번역이 돼 또 번역이 되는 것보다는 한 번 번역 거치는 게 낫잖아요. 한국어는 그런 애착심도 더 있어요. 문학 분위기도 자유롭고요. 그게 크게 한 몫 했죠. 중국에서 쓸 수 있는 분위기와 여기는 많이 다르니까요. 중국에서 다룰 수 있는 주제들보다 한국에서 훨씬 투명하게, 쓰고 싶은 것을 다를 수 있거든요.

 

중국 문단과 조선족 문단의 관계나 현실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중국 작가 협회가 있어요. 그 아래 성(省) 작가 협회가 있고, 그 아래 시 작가 협회들이 있어요. 전국 단위는 다 성급이죠. 연변 작가 협회라고 있는데 여기는 성급에 속하지 않아요. 연변은 길림성의 한 자치구거든요. 시 정도의 규모인데 중국 작가 협회 직속으로 되어 있어요. 연벽 작가 협회와 신강 위구르 작가 협회가 직속이에요. 초창기 때 우리는 정말 실력 있었거든요. 『소금』을 쓴 강경애, 윤동주 시인 등이 있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사라졌어요. 건국이 되면서 많은 작가들이 남한이나 북한으로 돌아가고 남은 작가들이 많이 없었어요. 그 후 새로운 세대가 올라온 거죠. 그 세대들은 공산주의체제에 동의를 많이 한 사람들이 대부분 남았겠죠. 그러다가 문화대혁명 등에 휘말려서 많이 꺾였죠. 김학철 선생님처럼 작가적 양심으로 끝까지 소신을 지켰던 분들이 있지만 다음 세대들은 혼란기를 겪으며 타격을 많이 입었죠. 문화대혁명이 끝나면서 조금 번성기를 보이다가 시장경제 터지면서 다 내쳐진 거죠. 그 파도를 그냥 맞았어요. 자유로운 것 같지만 사실 경쟁만 더 치열해진 거잖아요. 개인의, 집단의 실력이 제대로 되지 않은 쪽에서 경쟁 속에 내쳐진다는 건 굉장히 위험한 일이에요. 한참 창작해야 할 세대들이 생활난에 너무 시달려서 다 버리고 나가니까 공백이 생기고, 악순환이죠. 그러니 중국 안에서 갖고 있던 명성도 많이 떨어진 상황이에요. 중국 문단에 진출하기가 쉽지 않죠.

 

중국 문단에서 활동하는 조선족 작가는 없나요?


있긴 있어요. 어떤 작가들은 어렸을 때부터 중국 학교 다니고 성장해 작품 활동을 하고, 전국적으로도 인기 있는 작가도 있고요. 중국에서도 알아주는 작가가 우리 길림성에도 있죠. 그런 작가 분들은 조선족 문단과 거의 교류를 안 하죠. 우리만 조선족이라는 걸 알고, 어쩌다 한 번 같이 밥 먹고 그렇지만 전혀 교류가 안 돼요. 한국에도 진출하고 싶어 하지만 가치관이나 공감대가 많이 떨어지니까, 본인 스스로도 중국인이라고 너무 많이 인정하니까 조선족 작가로서의 의미가 있나 싶을 정도가 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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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할 수 없는 기억들


경계인으로 가지고 있는 고민들이 한국 독자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 거라 생각하세요?


중국이나 외국에 자주 왔다 갔다 하는 한국 분들은 다른 나라 문화에 대해 잘 이해해요. 그 외 대부분의 한국 대중들을 보면 제 생각에는 중국인보다 많이 닫혀있는 것 같아요. 중국은 다민족, 다문화 국가니까 훨씬 열려있어요. 한국도 어쩔 수 없이 다문화 시대를 맞게 됐잖아요. 아시아국가, 조선족을 비롯해서 들어오고, 나가고 하니 민족에 대해 조금 더 열렸으면 좋겠어요. 동아시아에서의 위치, 북한과의 대화, 조선족 문제, 다문화 가정 등의 문제들을 처리하는 데 있어 한국이 잘 대처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체성 지키는 게 절대 나쁜 건 아니지만 오로지 나만 사랑한다는 게 문제죠.


민족에 대해 많이 생각해요. 선천적인 것도 있지만 후천적인 습관이라는 게 무척 중요해요. 후천적인 것도 있잖아요. 그런 걸 공유했으면 좋겠어요. 결국 껍데기 안에 담는 건 한 개인의 영혼이 아닌가 생각해요. 그렇다 하더라도 구체적인 육체, 국적을 입고 살아가야 하니까 그것에도 충실해야 하겠죠.

 

작가의 말에서도 비슷한 말을 적으신 것 같아요. 하나의 독특한 개인들인데 국가나 외모, 언어 등이 어떤 정체성을 만들고, 개인을 덧씌우잖아요. 작품은 그것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요. 이런 이야기를 쓰게 한 최초의 물음이 어떤 것이었는지 궁금해요.


한국에서 생활하며 느낀 것들이에요. 같은 민족인데 많이 달라요. 핏줄은 같은데 살아온 배경이 너무 다르고, 기억도 참 달라요. 한국에서 겪은 건국 시절, 박정희 시절, 광주 혁명, 이런 것에 대한 기억이 저희는 거의 없어요. 문화대혁명, 대약진, 이런 것들이 기억에 있는데 이건 중국인들과 공유할 수는 있지만 한국인들과 공유할 수 없는 기억들이잖아요. 사람에게 동년 시절의 기억이 참 중요한 것 같아요. 어느 작가도 동년 시절을 떠나 작품을 쓸 수 없어요. 그게 전부예요. 거기서부터 시작되어 나오는 거죠. 그래서 아무리 써도 나는 조선족 작가구나, 한국 작가가 될 수 없구나 생각했어요.

 

잠깐 세대에 대한 언급도 하셨는데, 작가의 자녀 세대, 지금 젊은 조선족 세대의 고민은 또 다를 것 같아요. 자녀들이 느끼는 경계인으로서의 감각은 또 어떻게 다를까요?


아마 조금 더 지나면 한국도 ‘경계인’이라는 말을 잘 안 쓸 거예요. 경계인이라는 말 자체가 경계를 느끼면서 나온 말이잖아요. 국적, 민족처럼 어떤 것에 묶여서 ‘이것은 우리의 것’이라고 했을 때 이 경계와 저 경계가 생기는 거고 부득불 경계를 넘나드는 사람이 생겨서 경계인이라는 말이 생기는 거죠. 만약 경계 자체가 없어진다면 경계인이란 말도 없어지겠죠. 점점 공동체의 색깔보다 개인의 색깔을 먼저 보게 되겠죠. 어떤 개인이 잠시 그 공동체에 속해있는 정도로 생각할 거예요. 개인의 가치가 더 우선시 되는 건데요. 제 아래 세대가 지금 그런 것 같아요. 아직도 지하철 타고 가면 중국 사람들이 제 아이들에게 묻긴 해요.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하면 한국 사람이라고 얘기를 해요.(웃음) 너는 중국의 조선족이라고 어릴 때는 말을 못해주겠더라고요. 이제 좀 커서 얘기해줬어요. 듣고는 그냥 그런가보다 해요. 소수 집단으로서의 유대감 같은 것은 우리 보다 많이 약해요.

 

「노마드」라는 작품에 눈길이 갔던 이유도 그 때문인데요. 작가는 ‘계속해서 이동하는 삶’에 집중한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정착하는 사람과 이동하는 사람의 대비를 통해 하고자 했던 말이 있다면요?


계속 생각했어요. 왜 조선족들은 이렇게 떠다니는 걸까 하고요. 농촌을 떠나 도시로, 도시를 떠나 한국으로 옮겨 다니는 현장을 보면서 작품을 시작했으니까요. 그런데 한국을 보니 한국 사람들도 이사 엄청 많이 다니더라고요.(웃음) 멈춰있지 못하고 말이에요. 이게 민족성이란 생각을 했어요. 물론 사회 환경도 있겠지만요. 똑같은 중국에서 같은 시장 환경을 만났는데 조선족들은 다 쌰하이(下海, 본업을 그만두고 창업을 하거나 다른 상업활동을 하다)했는데 왜 중국 사람들은 그렇게 많이 쌰하이하지 않았나, 그래도 공무원 자리를 지키고 있느냐 물을 수 있겠죠. 저는 정말 그걸 많이 느껴요. 조선 민족과 중국 민족은 정말 달라요. 저는 중국 민족을 정착 민족, 조선 민족을 유목 민족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쪽에서 바이킹과 흡사하죠. 중국에 중원 사상이 있잖아요. 이동하는 민족을 천스럽게 봤어요. 정착, 농경민족을 문명스럽다고 생각하고 굉장히 자부심을 느꼈어요. 한편 지금 한국인들 어느 유행이든 얼마나 빨라요. 인터넷도 그렇고요. 앞장서 개척하는 정신이 있어요. 굉장히 자유롭고, 창의성이 있죠. 이런 차이를 느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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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고여야 쓴다


책에 실린 작품들은 진짜 작가의 몸에서 나온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장 작가에 가까운 화자나 이야기를 꼽는다면 어떤 작품인가요?


「세상에 없는 나의 집」이 그렇겠죠. 실제로 닝, 연주도 있어요.

 

한국 작품들도 많이 읽으시나요?


많이 읽고 싶어요. 어차피 한국어로 써야 하니까 연습을 해야겠더라고요. 그 방면에 있어서는 특히 그렇죠. 제가 쓰는 언어랑 지금도 조금 다르지만 너무 거부감 없이 독자들에게 읽히려고 노력해요. 그렇지만 거기서는 많이 접할 수 없어요. 어쩌다 친척들 집에서 보거나 인터넷 뒤져서 정말 보고 싶은 작가를 대표적으로 뽑아서 볼 뿐이죠. 그래서 많은 작가, 많은 작품을 보진 못했어요. 관심은 가지고 있는데 어려운 점이 있어요.

 

혹시 그렇게 해서 만난 특별한 작가가 있을까요?


1910년~1930년대의 작품들이 좋아요. 김동리 선생님 작품 같은 것 봤을 때 전율이 오더라고요. 중국 작가들과 얘기할 때도 얘기해요. 이상의 「날개」도 굉장히 소름끼치게 봤어요. 시인은 기형도를 우연치 않게 봤는데 정말 천재라고 생각했어요. 이런 시인이 한국에 있었다는 게 정말 자랑스럽고요. 한국 작품이 세상에 너무 소개가 안 되는 것 같아요. 중국에서도 한국 작품 거의 몰라요. 일본 작품도 많이 알리고 있는데 한국은 거의 전무한 상태예요. 드라마, 영화 등 대중성은 인정하는데 문학은 조금 아쉽죠. 저는 그때 소설들을 당당히 중국 작가들에게 추천해요. 저평가 되고 있지만 정말 좋은 작품이라고요.


어렸을 때 정말 재미있게 읽은 게 『삼국연의』예요. 그렇게 서사가 있는 이야기를 좋아해요. 작은 일도 좋은데 서사적 배경 없이 딱 일부만 나왔을 때 얼마나 탄탄하게 설까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 면에서 황석영 작가도 좋아해요. 기회가 되면 정말 만나보고 싶어요.

 

앞으로 쓰고 싶은 작품도 그런 서사 중심의 이야기가 될까요?


저는 모르겠어요.(웃음) 생각만 이렇게 하고 있을 뿐이지 실제로 썼을 땐 그렇지 못할지도 몰라요.

 

이제 금희라는 작가를 처음 만난 독자들이 많을 테고, 자연히 다음 작품이 기다려지게 마련인데요. 어떤 작품을 보여줄지 작가의 말을 듣고 싶어요.


쓰기 시작했을 때부터 독자는 의식 안 하고 쓰기로 했거든요. 조선족도 그렇고 중국, 한국도 그렇고요. 어느 특정한 독자에 포커스를 맞추는 건 안 하려고 했어요. 물론 한국을 다니면서 조금 염두에 둘 수는 있어요. 조선족 이야기밖에 쓸 수 없으니까 쓰지만 작품을 쓰면서 항상 그런 생각은 하고 있어요. 다른 나라, 민족 사람들이 봤을 때 어떤 느낌일까에 대해 항상 생각하며 쓰고 있어요. 하지만 독자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선보이겠다, 하는 신경은 안 쓰고요. 지금 소설을 쓸 때도 대부분 내 마음에 와서 닿을 때 써요. 단편, 중편 끝나고 한동안 쉬면서 다른 일을 하다보면 이야기들이 마음에 고여요. 그때 쓰는 거고 마음에 닿는 게 없으면 일부러 쓰려고 안 해요. 일부러 몇 번 써보니까 안 좋더라고요.(웃음) 독자를 의식하려고 해도 그렇고요. 누군지 기억이 안 나는데 누군가가 ‘익명의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라고 하더라고요. 그 말이 참 와 닿았어요. 누가 내 작품을 읽을지, 어떤 생각을 할지, 나와 같은 느낌일지, 내 작품이 도움이 될지, 뭔가가 있을지 저는 전혀 모르는 거예요. 그 선에서 저는 손을 끊은 거예요. 그렇지만 나는 모르는 그 누군가를 위해 내 진짜 얘기를 하고, 그도 그대로 받아들이는 거죠.

 

지금 마음에 닿는, 고이고 있는 이야기가 있나요?


미리 얘기하면 안 되는데(웃음) 아직은 모르겠어요. 많이 아파야 쓸 수 있는데요. 나중에 기회 되면 성장 소설, 판타지 소설을 써보고 싶어요. 판타지 소설을 정말 좋아하거든요. 아주 자유롭게 판타지를 써보고 싶어요.


저 자체가 굉장히 약하거든요. 저는 사회적 약자보다 심리적 약자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사회는 현실, 체제, 환경이 만들어주는 거고 그건 우리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거죠. 물론 반드시 건드려야 하는데 건드릴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 여기에는 조금 더 용기가 필요해요. 현명하게 해야겠죠. 불합리는 짚고 넘어가야 하니까요. 한편 개인으로, 심리적 약자를 생각해요. 이렇게 풀어보고 싶어요. 보편성도 있는 것 같고, 확실히 그게 먼저인 것 같아서요. 이 두 가지, 개인과 사회 이야기를 하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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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없는 나의 집금희 저 | 창비
조선족 작가 금희(본명 김금희)가 한국에서 처음으로 소설집 『세상에 없는 나의 집』을 선보인다. 금희는 2013년 소설집 『슈뢰딩거의 상자』를 중국에서 출간한 뒤 2014년 봄, 계간 『창작과비평』에 조선족 사회의 탈북 여성 이야기를 다룬 단편 「옥화」를 발표하며 한국 문단에 신선한 활력을 불러일으켰다. 현실을 뚫고 나가는 박력있는 서사와 섬세한 심리묘사로 조선족 사회에서 바라보는 탈북자 문제, 중국의 소수민족으로서 체감하는 정체성의 갈등 과정 등을 핍진하게 그려낸 일곱편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한국문학의 시야가 금희 이후 또 한번 넓어졌음을 절로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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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희영 “나는 레어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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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희영 작가가 새로운 작품집 『키요미즈 무대에서』를 발표했다. 책에 실린 두 개의 중편에는 상실을 경험한 이들이 등장한다. 소중한 이의 부재 속에서 흔들리면서도, 서로에 기대어 다시 이어나가는 삶의 이야기가 있다. 첫 번째 단편집 『컬트동화』와 후속작 『순정동화』를 통해 삶의 아픔과 희망을 전했던 작가의 목소리는 『키요미즈 무대에서』안에도 담겨있다. 장편소설 『만능해결사 나비』에서 발견되었던, 인간을 향한 따뜻한 시선까지도 그대로 이어진다.

 

2006년 <문학과 의식>의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등단한 남희영 작가는 시나리오를 집필했던 경력을 가지고 있다. 문단에 데뷔한 이후에는 공연 제작사에서 근무하며 오페라 제작을 함께했고, 편역서 『AIDA : 베르디 오페라 아이다』『비제 오페라 카르멘』을 출간하기도 했다.

 

사전 인터뷰에서 작가는 스스로를 ‘레어템’이라 소개했다. “나의 독자들이 혼자만 취하고 싶은 희귀 아이템”이라는 것. 그녀에게는 자신의 작품을 손꼽아 기다리는 고정 독자들이 있다. 그들이 있기에 지금까지 소설을 써올 수 있었노라고 작가는 말한다. “감동과 재미, 이 두 가지가 내 작품세계를 정리하는 단어”라고 말하는 그녀에게서 망설임을 찾아볼 수는 없었다. “평범한 것을 비범한 시선으로 관찰하고 해석한다. 나만의 화법으로 색다른 깨달음과 감동을 준다”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렇기에 남희영 작가는 힘주어 덧붙인다. “좋지 않은 평가도 많이 받았지만 적어도 뻔하다는 평은 없었다. 그것에 만족한다”. 확실한 취향을 가진 이들이 좋아하는 작가, 그 위치에 만족한다는 그녀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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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잃는 이야기, 가장 저항이 심했던 테마였어요


『키요미즈 무대에서』에 실린 두 개의 중편은 어떤 과정을 거쳐 되었나요?


두 가지 다 아기에 대한, 자식에 대한 이야기예요. 제가 가장 저항이 심했던 테마예요. 제가 결코 쓰지 못할 것 같다고 생각했던 테마이기 때문에 한 번은 스스로 깨고 싶었어요. 아이 둘을 키우는 엄마로서 이걸 못 깨면, 앞으로 무서운 게 더 많아지는데,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을까 생각했거든요. 무섭기 때문에 오히려 더 부딪혀 보겠다는 투지를 가지고 쓰게 됐어요.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두려워하셨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아이를 키우면서 항상 아이를 잃을까 봐 무섭고 두렵기 때문이죠.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아이를 낳지 않았다면) 이런 걸 알 수 있을까 싶은 막연한 두려움도 있는데, 너무 예쁘고 귀해서 그런 거예요. 물론 화나게 하는 순간들도 많지만요. 그런데 아이로 인해서 나 자신을 계속 깨고 극복하는 과정을 겪게 되거든요. 그러면 지금은 아이에 대해서 두려움이 없느냐 하면 그건 아니고, 한 발 나갔을 뿐이에요. 어쨌든 제가 가장 두려웠던 주제였고 그걸 정면으로 한 번 써보고 싶었어요.

 

집필하시면서 괴로우셨던 순간들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키요미즈 무대에서』에는 아픈 아이를 둔 부모, 아이를 잃고 힘들어하는 부모가 등장하잖아요.


저희 둘째가 생후 24개월이 되었는데, 그 전에 한 번 아이를 잃었던 적이 있어요. 비슷한 상황을 보면 견딜 수가 없죠. 작품을 쓰면서 그렇게 괴롭지는 않았고, 탈고하는 동안에는 ‘너무 많이 슬프지 않았나’ 하는 생각은 해봤어요.

 

특히 두 번째 작품 「로비 윌리암스. MTV. 인터뷰 中」에는 아픈 아이를 둔 부모가 느끼는 양가감정이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아이가 있어 자신이 버틸 수 있다고 믿으면서도, 때로는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도 하죠.


한편으로는 이면에 있는 조금은 건드리기 힘든 이야기도 하고 싶었어요. 저는 서울대 어린이 병동에서 2년 동안 취재를 했어요. 친한 친구가 지금은 그곳의 연구 간호사로 있는데, 당시에는 소아병동 중환자실에 있었어요. 그 친구한테 이야기를 많이 들었고 덕분에 취재가 쉬웠죠. 어머님들은 경계를 많이 할 수밖에 없거든요. 저는 호기심으로 다가가는 사람으로밖에 안 보이니까요. (보통) TV 다큐멘터리 같은 데에서는 한 쪽 면만 보여주잖아요. 양가감정이 아니고요. 그게 아닌 진짜 이야기를 담고 싶었어요. 다른 쪽을 담지 못하면 아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아픈 아이 때문에 힘들고 안쓰러워하다가 아이를 잃고 더 슬퍼하는 이야기를 써서 (독자를) 울릴 수도 있겠지만, 제가 느끼기엔 그건 진짜 이야기가 아닌 것 같아서 깊게 취재를 했습니다.

 

소설에 담긴 부모들의 솔직한 마음은 취재 중에 직접 들으신 건가요?


아뇨, 전적으로 관찰이에요. 제가 그 분이 되어보는 방법 밖에는 없죠. 저한테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은 있어요. 책에도 나오는데 ‘(아이가) 중병인 게 나은지 지병인 게 나은지’에 대한 거였죠. 그건 실제로 제가 들은 이야기이지만, 대부분은 제가 시간을 할애해서 관찰하면서 그 사람이 되어서 아는 거예요. 작가들은 많은 부분 타인이 되어보는 게 체화되어 있을 거예요.

 

첫 번째 중편 「키요미즈 무대에서」에는 ‘키요미즈 무대에서 뛰어내릴 각오로’라는 속담이 등장하는데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나요?


그 문장을 처음에 들었을 때 완전히 다른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고 느꼈어요. ‘키요미즈 무대에서 뛰어내릴 각오로’ 다시 태어난 것처럼 살아가라는 의미도 있고, 정말 절벽 끝에 서 있다는 의미도 있고요. 뛰어내릴 각오로 살라는 이야기인지, 아니면 그런 각오가 안 되어 있으면 죽으라는 이야기인지, 그건 받아들이는 사람이 판단하는 걸 텐데요. 전형적인 열린 문장이잖아요. 저는 개인적으로 열린 결말을 싫어합니다. 스토리도 그렇고 문장도 그렇고 완벽한 걸 좋아해요. 그런데 이 문장 자체는 굉장히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요.

 

「로비 윌리암스. MTV. 인터뷰 中」은 제목부터 독특한 작품입니다.


제가 음악을 좋아해서 MTV를 자주 봤었거든요. 그때 ‘테이크 댓’의 다큐멘터리를 봤어요. 팀 해체 후에 함께 활동하던 네 명의 멤버가 로비 윌리암스를 만나러 미국에 가는 내용이었죠. 재결합해서 앨범을 내자고 이야기하려고요. 그 중에 로비 윌리암스가 발코니에 앉아서 그런 이야기를 한 거예요. 인생이란 지루하고 무섭고 외로운 것이라고요. 그 문장을 정확히 기억해요. 너무 충격 받았거든요. 제가 느끼기에는, (인생에 대해서) 한 문장으로 완벽하게 정리한 문장이라고 느껴졌거든요. 그 문장 자체를 좋아해서 10년 가까이 간직하고 있다가 이번에 인용을 한 거예요.

 

「로비 윌리암스. MTV. 인터뷰 中」에서 주인공 최동우는 “아티스트면 자기철학이 있어야만 성공해”라고 이야기합니다. “나만의 테마가 있어야 되고 나만의 메시지가 있어야” 된다고 하죠. 작가님께서도 같은 고민을 하셨을 것 같은데요. 어떠세요?


‘평범한 소재를 독특하게 풀어내는, 잘 읽히지만 묵직한 이야기를 쓰는 소설가’가 저의 정체성이고 저를 설명하는 문장이에요. 쓰고 싶은 이야기도 결국 그거예요. 너무 가볍고 휘발되는 이야기 말고요. 그냥 휘발되어서 사라져버릴 수 있는 이야기조차도 휘어잡아서 구성할 수 있는 재주는 타고났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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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이 절절하게 공감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키요미즈 무대에서』에 수록된 두 작품 모두 일본인과 일본을 배경으로 한 사건이 등장합니다. 이유가 있나요?


일본 문화를 워낙 좋아해요. 음악이든 책이든 모든 문화에 대해서 굉장히 애착을 가지고 있어요. 이건 취향일 수도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함부로 배경으로 설정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조금 더 진지한 이야기를 쓸 때 배경으로 삼고 싶었죠. 단지 무대가 필요할 때가 아니라, 내가 알고 있고 공부했던 문화를 제대로 풀어낼 수 있는 작품으로 쓰고 싶었어요. 그래서 일부러 아껴두었어요.

 

시나리오 작가에서 소설가로 변모하시면서, 아사다 지로와 야마다 에이미의 작품에서 영감과 동기를 얻었다고 하셨죠.


야마다 에이미의 『120% cool』를 절친이 선물해줬었어요. 그때가 1998년쯤이었는데, 당시에는 절판됐던 책을 어렵게 찾아서 선물해준 거예요. 작풍이 저와 굉장히 비슷하다고 하면서요. 그 책을 읽고 나 같은 사람도 소설가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때부터 요시모토 바나나를 비롯해서 일본 작품을 그 파고들기 시작했고요. 저는 조금 가볍게, 너무 어렵지 않게, 쉬운 화법으로 다가갈 수 있는 작가라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물꼬를 튼 게 야마다 에이미의 작품이었어요.

 

“적어도 뻔하다는 평은 없었다. 그것에 만족한다”고 말씀하신 바 있는데요. 작가님께서 생각하시는 뻔한 작품이란 어떤 건가요?


아무래도 예측 가능한 전개라든지 너무나 상투적인 소재 같은 거죠. 어쩌면 제가 보편적인 감동이라든지, 이런 코드를 싫어하나 봐요. 그걸 피하고 싶다는 의미였어요. 보편적이지 않은 이야기에도 분명 감동이 있거든요. 저는 굉장히 독특하다는 평을 많이 듣는데요. 소재가 독특하다기보다 그냥 일상의 소재이고, 어떻게 보면 조금 음지에 있는 소재가 될 수 있을 거예요. 사람들이 원하는 밝고 예쁘고 화려한 종류의 이야기는 아니죠. 그런 소재를 가지고 다르게 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확실한 취향을 가진 이들이 좋아하는 작가인 지금의 내 위치에 아주 만족한다”고도 하셨는데요. 작가님을 좋아하는 독자들의 ‘확실한 취향’은 무엇일까요?


이왕이면 너무 어렵지 않은 걸 추구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단순한 내러티브만큼은 비틀고 싶어요. 누구나 쓸 수 있는 이야기에서 조금은 비틀고 싶은 거죠.

 

시나리오와 소설의 차이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소설 속의 그림은 무조건 내 머릿속의 환상인데, 영화는 실제로 구체적인 그림을 보여주잖아요. 그래서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보다 직선적으로 할 수 있죠. 제가 봤을 때 소설은 직선적이지는 않아요. 그렇게 쓴 소설은 사실 의미가 없는 거고요. 영상은 대화나 내레이션 등을 통해서 아주 직선적으로 갈 수 있는 게 매력이죠. 그리고 제가 음악을 좋아하니까 (영화에는) 어떤 식으로든 저의 취향을 더 넣을 수 있다는 매력도 있을 것 같고요.

 

각각의 매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시나리오가 아닌 소설을 선택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자기 이름을 걸고 작품을 발표하고 싶거나 만들어낸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만의 왕국이 있어요. 나만의 왕국이 있는 사람으로서 저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 남희영의 이름을 걸고 작품 활동을 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고요. 그런 욕심을 내다보니까 시나리오는 한 순간에 매력을 잃더라고요.

 

『키요미즈 무대에서』를 읽으면서 시나리오와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각장의 제목이 시간과 장소, 인물의 이름으로 구성되어있고(「키요미즈 무대에서」), 대화체 위주로 이야기가 전개되잖아요.


신인 때부터 그런 평을 자주 들었어요. 그래서 저의 작법이 조금 독특하다고 느껴지는 걸 수도 있는데요. 실제로 시나리오를 썼던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작법이 익숙한 것도 있고, 제가 잘 읽히는 책을 좋아하고 추구하기 때문에 그런 화법을 택할 때가 많이 있어요. 그런데 이렇게 쓸 때도 있고 또 아닐 때도 있거든요. 『키요미즈 무대에서』는 조금 그런 측면이 있을 것 같고요. 작품이 아주 길지는 않지만 저한테는 길게 느껴지기 때문에, 조금 더 깔끔하게 정리하고 싶은 생각에 이런 서술 형식을 택했어요. 하지만 이전에 발표한 단편에는 다른 내러티브도 많이 있거든요. 굳이 다른 방식으로 하겠다는 각오는 없어요.

 

첫 책 『컬트동화』부터 이번 작품까지, 일관되게 이어지는 소재나 주제의식이 있나요?


저는 항상 남들이 보지 못하는 걸 보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진짜 뻔한 것에서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저만의 독특한 시선이 있을 것 같아요. 완전히 다른 시선을 제시했을 때 놀랍지만 납득할 만하고, 감동도 느끼고, 그런 걸 원하나 봐요. 마루야마 겐지는 『소설가의 각오』라는 에세이에서 “작가는 감동을 찾는 사람이다”라고 했는데, 그 표현에 동의해요. 저 역시도 뻔한 건 싫지만 그래도 어쨌든 감동을 찾는 사람이에요. 제가 일상에서 받은 감동을 사람들한테 소개하고 싶고요. 다른 시선으로 바라봐서 평범한 것에서 다른 걸 느끼면 재미있잖아요. 저는 그런 하나의 시선을 제시하는 거죠. 10명의 작가들이 보편적인 느낌으로 9가지의 글을 쓴다면 저는 다른 한 가지를 쓰고 싶어요. 아주 다르니까 새로운 맛이고, 이질감이 들 수도 있지만 약간 중독되는 느낌을 갖게 하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그렇게 남고 싶고요.

 

『키요미즈 무대에서』를 읽고 ‘후회 없는 세 시간’이었다고 말씀하신 분들도 계시던데요. 기대하시는 독자들의 반응이 있을까요?


아이가 없거나 특별히 그 부분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않았던 분들까지 ‘만약에 나라면’이라고 감정이입이 돼서 절절하게 공감할 수 있으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생각해 볼 거리가 있었으면 좋겠고요. 여운은 당연한 거고요. 생각해 볼 거리가 있어야 여운이 있는 거니까 여운이 남는 걸 원했는데, 그런 반응을 많이 얻었어요. 또 좋았던 평 중에 하나는, 이건 여자가 쓴 게 아니라는 이야기였어요. 여자인데 남자의 마음을 남자의 말투로 엮는 작가라고 평가해 주신 건데, 그게 가장 좋았어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보는 것 역시 제가 도전하고 싶었던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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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요미즈 무대에서 남희영 저 | 바움
'키요미즈 무대에서'에서는, 고아원 출신으로 제법 큰 교회의 목사가 된 김용건과 역시 고아 출신으로 파일럿이 되었다가 지금은 오사카 간사이공항에서 경양식집을 경영하는 최태원, 그리고 한국인 어머니와 일본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한때 사이비 게이샤였던 김용건의 아내 김미자(미코) 사이의 얽히고설킨 이야기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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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요조, 책방의 쓸모에 관해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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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조는 요즘, 집에서 1분 거리인 작은 책방으로 출근한다. JTBC <김제동의 톡투유> 녹화가 있는 화요일만 빼면, 대부분 책방을 지킨다. 요조가 진짜 있을까 싶어 북촌 산책길에 나선 사람들은 책방 주인이 된 요조를 신기하게 여긴다. 7평짜리 작은 책방의 이름은 ‘무사(無事), “무사히 망하지 말자”라는 의미로 지었다. 무사에서 파는 책에는 바코드가 따로 없다. 책이 한 권 팔릴 때마다, 요조는 뭉툭한 연필로 작은 노트에 책 이름과 책값을 적는다. 2시간 남짓 인터뷰를 하는 동안, 책방에는 손님이 끊이지 않았다. 좁은 공간임에도 불편한 기색 없이 손님들은 책을 척척, 펼쳐 들었다. 요조가 공저자로 참여한 『연애소설이 필요한 시간』이 1권 팔렸고, 『출판, 노동, 목소리』가 2권, 『채소의 신』이 3권 팔렸다. 책방 주인이 누군지 알고 온 손님이든 모르는 손님이든, 꽤 오랫동안 책을 펼쳐보다 사라졌다. ‘무사’는 얼마 동안 무사할 수 있을까? 요조에게 책방의 쓸모에 관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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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 오고 싶은 사람들만 오는 책방


책 좋아하시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책방 주인이 되실 줄이야, 깜짝 놀랐어요.


오랫동안 꿈꿨던 일이었어요.

 

‘무사’를 연 게 정확히 언제인가요?


사실 드문드문 열기는 했는데 공식적으로 날짜를 박은 건 10월 11일이에요. 벌써 한 달이 조금 넘었네요.

 

한 달 동안 어떠셨어요?


재밌기도 하고 정신이 없기도 하고, 많이 바빴어요. 책방 준비도 그렇고 제겐 모두 처음 있는 일이잖아요. 공간을 운영하는 것도 처음이고 책을 파는 일도 처음 해보는 거니까요. 되게 좋으면서도 정신없이 보낸 것 같아요.

 

독립출판물과 헌책, 새 책을 골고루 판매하고 있어요. 책은 어떻게 선택하세요?


우선 독립출판물을 많이 소개하고 싶었어요. 일반 서적도 입고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경제적 여건이 그렇게 넉넉하지는 않아서요. 정말 필요한 책들은 위탁해주시는 출판사의 책들을 놓고, 헌책방도 좀 돌아다니면서 책을 사왔어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런 그림이 그려진 것 같아요. 책방을 열고 보니 헌책을 선호하는 분들이 꽤 있더라고요. 그래서 요즘도 시간이 나면 헌책방을 둘러보고 있어요. 제가 인터넷을 잘 못 하거든요. 영 소질이 없어서 주문 같은 걸 해도 좀 오래 걸려요.(웃음)

 

‘요조의 책방’이라는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손님들도 많을 것 같은데요.


잘 모르겠어요. 그냥 우연히 들어오신 것 같았는데 계산할 때 보면 아는 척하시는 분도 계시고, “배우세요?”라고 묻는 분도 계세요. 아무래도 책방이라는 간판이 없으니까요. “여기 미용실이에요? 뭐 하는 곳이에요?” 하고 물어보는 분도 많아요.

 

그러게요. 미용실 간판을 떼지 않아서 착각하는 분들도 있겠어요.


미용실 이후에는 커피 공방으로 사용되던 공간인데요. 그때도 간판을 떼지 않고 위에 새로운 간판을 붙여서 사용하셨더라고요. 저는 그 간판을 떼버린 거예요. ‘진 미용실’은 건물주인 복진 할머님께서 몇십 년 전 직접 운영하셨던 미용실이라고 해요.

 

책방이 대로변과는 거리가 상당히 멀어요. 굳이 찾아오지 않으면 오기 힘든 곳인데요.


너무 번화하지 않았으면 했어요. 딱 오고 싶은 사람만 오는, 그런 골목에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지금 위치가 괜찮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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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손님들에게 책을 추천해주시기도 하나요?


물어오시면요. 그런데 생각만큼 쉽지 않아요. 얼마 전에는 어떤 중년 남성분이 ”노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 책”을 추천해달라고 해서 한참을 고민했어요. 이해가 안 가는 거예요. “책을 읽는데 노는 것처럼 느껴지지 않는 게 무슨 의미죠?”라고 물으니까, 본인은 노트북을 앞에 놓고 일을 하는 사람인데 “몇 시간 일하고 나면 가시적인 성과가 있는데, 책은 오랜 시간 읽어도 보이는 게 없으니까 노는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주문이 너무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잡지 『책』을 추천했어요. “이건 책에 관한 책인데 매달 나오는 월간지이지만, 방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고 말하면서요.

 

예전에 한 인터뷰에서 “서점에 가면 몸이 떨린다”는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어요. 지금은 어때요? 책방의 주인이 되셨잖아요.


(웃음) 아무래도 무사는 제 공간이다 보니까 뭔가 더 편안하고 익숙한 느낌이 들어요. 이 책방에 있는 책들을 제가 다 읽지 못했어요. 그래서 욕심이 나요. 제가 읽고 싶어서 들여놓은 책도 상당히 많아서 다 읽고 나서 소개도 하고 싶어서요.

 

내가 먼저 읽고 싶은데 팔리는 책도 있겠네요. 많은 서점이 어렵다고 하지만, 최근 작은 책방이 유독 많이 생기고 있는데요.


책을 사는 행위가 어떻게 보면 문화를 습득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읽고 싶은 책을 메모했다가 인터넷 서점에서 주문할 수도 있지만, 직접 책을 보고 사고 싶은 분들도 많잖아요. 어떤 책을 생각하고 집을 나서서 책방에 도착하는 순간까지의 모든 행위와 생각들. 이를테면 날씨를 감상하거나 음악을 들을 수도 있겠죠. 책을 사는 맛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분들은 책방을 선호하지 않을까요? 독립출판물을 판매하는 작은 서점들이 많이 늘고 있는데, 어떻게 보면 수요의 증가가 아니고 공급의 증가로 온 것 같아요. 뭔가를 쓰고 싶고 만들고 싶은 사람들이 많이 생긴 거죠. 굵직굵직한 출판사를 거치지 않아도 요즘은 어렵지 않게 책을 만들 수 있잖아요. 돈을 벌려고 만드는 게 아니라 창작에 대한 욕구니까요. 그런 욕구로 만든 사람들의 책을 소개하는 중간자 역할을 작은 책방들이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앨범을 낸 뒤로도 여러 아르바이트를 해보셨잖아요. 책방을 운영하시는 데 도움이 되던가요?


판매직을 해본 적은 있지만, 제가 뭔가를 설득하면서 파는 일은 아니었어요. 누군가를 설득하는 일은 잘 못 해요. 그리고 그런 걸 싫어하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잖아요. 편안하게 혼자서 책을 보고 싶어서 들어오는 분들도 있을 거고요. 무관심이 필요한 상황도 많은 것 같아요. 저도 가게에 들어갔을 때 그런 기분을 많이 갖거든요. ‘제발 나를 괴롭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한테 말을 걸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고요.(웃음) 도와달라고 하면 도와주지만 그전까지는 내버려두는 게 좋을 때가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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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방 주인, 백치미가 필요해요


아까 계산대 책상에서 『박물관 보는 법』을 읽고 계시더라고요.


한 매체에 리뷰를 쓰기로 해서요. 몇 권의 책 목록을 받았는데, 그중 이 책을 골랐어요. 표지도 예쁘고 만듦새도 좋고 재밌을 것 같아서요. 지금 읽는 중이에요.

 

최근 에세이집 『연애소설이 필요한 시간』에 공저자로 참여하셨어요. ‘달달함에 지친 당신을 위한 그와 그녀의 연애 혹은 소설’이 책의 부제더라고요. 20명의 글이 실렸는데 필자분들이 정말 화려하던데요?


그래서 처음에는 많이 망설였어요. 제안을 받고 필진 이야기를 들었는데, 어휴, 제가 쓰면 안 될 것 같더라고요. 제가 누가 될 것 같아서 고민을 좀 했어요. 그런데 거듭 권유를 해주셔서요. 결국 수락을 했는데 쓰고 나서도, 제 글이 되게 도드라지겠다, 걱정했어요. 안 그래도 구린데, 더 구린 티가 많이 나겠다 싶었죠. 완성된 책을 받아보니 제 글이 맨 먼저 들어갔더라고요. 저자도 ‘요조 외’로 들어가고요. 진짜 깜짝 놀랐어요. 부끄럽기도 했고요.

 

재밌게 읽었는데요?


(웃음) 정말요? 뭐랄까, 이 글을 쓸 때는 심정적으로 최고의 바닥이었어요. 그래서 고른 소설이 김승옥 작가의 『무진기행』에 들어 있는 「야행」이란 소설이었어요.

 

‘무사의 무사’라는 제목으로 책방에서 매달 1명의 작가를 소개하고 계세요. 11월의 작가는 김소연 시인이네요.


좋아하는 시인이에요. 김소연 시인의 책도 소개하면서 시인이 추천하는 책도 함께 전시하고 있어요. 12월에는 황현산 선생님께 부탁을 드리고 싶은데 요즘 번역을 하시느라 바쁘셔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어요.

 

근래에 인상 깊게 읽으신 시집이 있나요?


최근에 읽은 건 아니지만, 되게 좋아하는 시집이 있어요. 이규리 시인의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라는 시집인데요, 좋은 시가 너무 많아서 한두 편으로 정리하기가 어려워요. 누구나 자신의 삶에서 갖고 있는 신조가 있잖아요. 저 같은 경우는 최선을 다하고 성실한 것에 의의를 두고 있거든요. 이규리 시인의 「특별한 일」이라는 시를 보면 도마뱀 이야기가 나와요. “도망가면서 도마뱀은 먼저 꼬리를 자르지요. 아무렇지도 않게 몸이 몸을 버리지요. 잘려나간 꼬리는 얼마간 움직이면서 몸통이 달아날 수 있도록 포식자의 시선을 유인한다”라는 시구가 있어요. 다음에 나오는 말이 “최선은 그런 것이에요”인데, 인상에 많이 남아서 심심하면 그 시집을 찾아봐요.

 

좋은 시집도 많이 소개하고 싶으시겠어요.


워낙 좋아하니까, 시집을 좀 많이 쟁여놓고 싶지만, 오히려 욕심이 커서 뒤로 미뤄두고 있어요. 곧 해야죠.

 

10월에 소극장 콘서트를 하셨는데 제목이 ‘개입’이었어요. 제목을 지은 배경으로 "쉴 새 없이 참견하는 자기 자신에게 말려들어 가지 않도록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노래해야만 한다. 그래서 가수의 덕목 중 하나는 분명 꿋꿋함일 것"이라고 설명하셨는데요.


다들 내 속의 내가 너무 많잖아요. 어떤 목표가 있어서 이걸 해야지, 마음먹었다가도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비아냥도 나와요. 애초의 내가 계획한 의도와는 달리 ‘돈이 되겠어?’ ‘사람들이 좋아하겠어?’ 이런 부정적인 말이 튀어나오고요. 특히 음악을 할 때, 공연을 할 때 장난 아니거든요. 너무 생각이 많아서 생각 자체를 안 했으면 좋겠는데 이게 또 마음대로 안 돼요. 노래를 하면서도 머릿속으로는 딴생각을 하는 거예요. ‘너 그 부분에서 삑사리가 난다’라면서요. 아무 생각 없이 노래에 몰입해야 하는데, 내가 나를 막 가르치고 있어요. 내가 나를 지키려면 꿋꿋해야겠다, 꿋꿋해야 한다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어요. 

 

책방을 열기까지도 많은 개입이 있으셨을 텐데요.


8월부터 열 곳을 보러 다녔는데 부동산에 가면 다들 저를 이상하게 쳐다보셨어요. 책방을 할 거라고 하니까, 세상 물정을 모르는 사람으로 취급하면서 “누가 요즘 책방으로 돈을 버느냐?”면서 걱정하시더라고요.(웃음) 정말 가는 곳마다, 이야기하는 사람마다 그러니까, 저도 불안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초조하고 괜히 시작했나 싶은 생각도 들고 스트레스도 받으면서, 그 과정에서 꿋꿋하려고 정말 용을 썼어요.(웃음) 안 그러면 포기할까 봐요. 미쳐 있을 때 그 여세를 몰아 빨리 해치워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책방 주인으로서 갖고 있어야 할 덕목은 뭐가 있을까요?


고집을 좀 버리면 좋겠다 싶어요. 너무 다양한 책들이 들어오고 읽게 되는데, 원래 내가 가지고 있었던 취향이라는 게 있잖아요. 충분히 매력이 있는 책인데 내 취향이 아니면 지레 ‘이 책은 별로일 거야’라고 단정을 지어버리더라고요. 고집을 좀 놓아두면 훨씬 더 다양하고 괜찮은 책들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음악을 할 때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약간 편협하지 않은 상태라고 할까요? ‘그래 너도 옳고 쟤도 옳고 다 좋구나’ 하는 백치미를 갖는 것도 책방 주인으로서 좋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최근에 했어요.

 

너무 책을 좋아해서 ‘가수 요조’라는 정체성이 조금 잊히면 어쩌나, 고민되진 않으시나요?


아직 그런 생각은 안 해본 것 같아요. 요즘은 음악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요. 책방을 준비하면서 너무 정신이 없었는데 팔까지 다쳐서 한 달 동안 깁스를 했거든요. 기타 연주를 못 하니까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제한이 많았던 거죠. 갈증이 오더라고요. 기타도 치고 싶고 곡도 쓰고 싶고요. 내년 초쯤 책방 운영이 조금 안정되면 그간 준비하고 있었던 것들을 차근차근 시작하려고 해요. 원래 엄마 앨범을 내드리려고 오랫동안 준비했는데 책방을 열면서 완전히 뒷전이 됐어요. 내년에는 꼭 하려고요.

 

가사는 쓰고 계시나요? 


‘이건 가사야’ 하고 쓰는 건 아니고요. 뭔가를 끄적이면서 가사로 다듬어볼까? 시로 써볼까? 아니면 살을 더 많이 붙여서 산문으로 써볼까? 그런 생각을 해요. 휴대폰에 메모는 항상 하고 있어요. 

 

‘무사’라는 책방 이름을 듣고 처음에는 요조랑 안 어울리지 않나 싶었어요. 그런데 계속 듣고 보니 썩 어울리네요. 무사의 앞으로의 그림을 어떻게 그리고 계시나요?


딱히 어떻게 만들어보겠다는 건 없어요. 청사진 같은 게 있는 건 아니고 솔직하고 단순하게 제 꿈을 현실화시키겠다는 목적이었어요. 단순 무식하게 시작한 거라서, 지금은 마냥 좋은 상황인 것 같아요.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신부 같다고나 할까요? 잘되든 안 되든 지켜봐야겠지만, 꿈을 이룬다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요. 이뤘다는 그 자체에 지금은 취해 있는 상황이고, 조금 시간이 지나면 현실적으로 변하겠죠. 한 달 한 달 매상도 체크하게 되고 오시는 손님들을 운운할 수도 있고요. 그런데 아직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고 마냥 좋아요.

 

곧 동화책을 낼 예정이시라고요.


스토리는 다 나왔고요. 지금 그림 작가님이 그림을 그려주고 있어요. 텀블벅에서 후원을 받을 수 있으면, 받아서 독립출판물 형태로 만들려고 해요. 일단 내년 봄에 내는 게 목표예요.

 

책방에 들어올까? 말까? 책을 살까? 말까? 고민하는 분들에게 하고 싶으신 말이 있다면요?


우선 책방에는 들어오라고 말하고 싶어요. 다른 데도 들어갈까? 말까? 고민이 된다면 들어갔으면 하고, 뭔가를 할까? 말까? 고민되면 하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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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소설이 필요한 시간요조,김보통,박현주,정지돈,김소연 외저 | 부키
스무 명의 필자는 ‘읽기’라는 ‘만남’을 통해 자신들과 지극히 사적인 관계를 맺은, 그래서 완전히 새롭게 보이는 연애소설들을 우리에게 소개하고 있다. ‘책꽂이에 꽂지 않고 서랍 속에 넣어 둔, 연애가 끝나고 나 혼자만 읽고 싶었던 이야기’다. 그들이 했던 연애, 그들이 읽은 소설, 그리고 그들이 필요했던 시간에 대한 이야기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읽기’라는 만남, 새로운 방식의 ‘연애’를 읽는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연애 부재중’의 헛헛함, 건조해진 마음을 따뜻한 글에 푹 담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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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강백수 “중요한 가치는 회사 밖에 존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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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서 뭘하고 있나요?”
어린왕자가 신입사원에게 말했어요.
신입사원은 서류 한 무더기와 유에스비가 꽂힌 컴퓨터를 앞에 놓고 말 없이 앉아 있었어요.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지.”
신입사원이 침울한 표정으로 대답했어요.
“일을 왜 하나요?”
“대출금을 갚기 위해서야.”
어린왕자는 어쩐지 측은한 생각이 들어서 물었어요.
“왜 대출을 했나요?”
신입사원이 고개를 떨어뜨리며 고백했어요.
“대학교 학비가 부족했기 때문이야.”
“왜 대학을 나왔는데요?”
어린왕자는 그를 도와주고 싶었어요.
“회사에서 일을 하기 위해서야!”
신입사원은 말을 끝내고 입을 꾹 다물어버렸어요.
어린왕자는 당황해서 그 별을 떠났어요.


                                        (「어린왕자와 신입사원의 별」, 『사축일기』 82쪽)

 

사축(社畜), 회사의 가축처럼 일하는 직장인. 이 새로운 인류의 생존 방식을 어린왕자가 이해할 수 있을까. 아마 그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일 것이다. 회사에 길들여진다는 건 ‘하나뿐인’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니라 ‘언제든 대체 가능한’ 노동력이 되는 일이니까. 장미가 아닌 게임 아바타를, 사랑과 정성만으로는 모자라 캐시템까지 동원해가며 키우는 이유도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내 옷은 비싼 걸 사봐야 입고 나가 놀 시간이 없고 기운도 없고 너라도 좋은 걸 입고 다녀라”는 눈물겨운 마음을 그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사축들에게 있어 이 이야기는 자신의 것이고 친구의 것이고 가족의 것이다. 퇴근 10분 전 일거리를 던져주는 대리를 보며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다’라는 사실을 배우는 건 일상다반사다. 퇴근 후에 팀장님으로부터 문자메시지를 받을 때, ‘지금 통화 괜찮아?’라는 일곱 글자를 보면서, 그 짧은 순간에도 오만  가지 생각이 스쳐간다는 건 경험으로 알고 있다. 모든 일의 이유는 ‘요즘 것들이 해이해서’라고 믿는 부장님도, 퇴사한 후배를 대신해 없던 일까지 떠안게 된 사수도, 모두가 익숙하다.

 

한참 동안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 못하면서, 이따금씩 짧은 한숨을 내쉬면서 『사축일기』의 책장을 넘긴다. 문득, 우리 사는 이야기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묘한 안도감이 밀려오는 한편 쩝쩝 쓴 입맛을 다시게 된다. 고단한 사축의 삶을 멈출 수 없는 나와 그대에게 묻고 싶어진다. 그래서 우리 괜찮은 건가, 하고.

 

그를 만나야 했다. 『사축일기』의 저자, 강백수. 인디밴드 ‘강백수밴드’를 이끄는 음유시인이자, 2008년 <시와 세계>를 통해 등단했으나 아직 세상에 첫 시집은 내어놓지 않은 진짜 시인. 강백수는 “당신들을 안아주고 싶은 마음으로” 사축 친구들의 이야기를 모아 책 속에 담아냈다고 했다. 그의 이야기를 귀동냥하며 깨달았다. 강백수의 시선은 사축들의 삶 바깥에 머물고 있지 않음을. 지금까지 그의 음악이 그러했던 것처럼, 지난해 발표한 산문집 『서툰말』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와 우리의 일상은 분리된 채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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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쯤 번만큼 쓰면서 행복해질 수 있을까?


사축이라는 말이 직장인들 사이에 통용되는 걸 아셨을 때, 어떤 생각이 드셨어요?


직장인이 아닌 사람들이 직장인을 호명하기 위해서 만든 말이 아니라, 직장인들 스스로가 만든 말이라는 점에서 굉장히 인상적이었고요. 안쓰럽기도 했어요. 사실 그런 말들이 많지는 않아요. 어떤 세대나 계층을 지칭하는 은어가 발생했을 때 자신들을 자조하거나 비하하는 의미로 그 말을 쓰는 경우는, 저는 사축이랑 군바리 밖에 못 봤거든요. 정말 특수한 은어라고 생각했어요. 스스로 별명을 만들었는데 그게 멋있는 게 아니라 굉장히 초라한 말인 거예요. 사축이라는 말이 일본 사람들이 만든 건데 우리나라 사람들도 공감하고 있잖아요. 그건 그만큼 자신의 직장생활에 대해서 긍지나 자부심을 느끼기 보다는 뭔가 애잔하고 슬픈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거겠죠.

 

작가님은 직장인이 아니신데, 사축 친구들의 이야기에 쉽게 공감하실 수 있었는지 궁금해요. 1년 남짓 학원 강사로 근무하셨던 경험이 도움이 됐나요? 


비슷한 부분들이 많았어요. 제가 일했던 곳이 입시학원이라 다른 직장이랑 다른 면이 없지 않지만, 저는 프리랜서 강사로 일한 게 아니라 학원에 소속된 전임 강사로 일했었거든요. 아무래도 일반 직장이랑 비슷하게 운영되는 조직 안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공감되는 부분들을 많이 찾을 수 있었어요.
 
인디밴드로 생활하시는 것과는 많이 다른가요?


아니요. 오히려 직장생활 하던 당시의 기억을 끄집어내서 쓴 것들보다, 지금 현재의 상황을 직장에 대입해서 쓴 에피소드들이 더 많이 있었던 것 같아요. 「카톡 지옥」 같은 글도 그랬어요. 매 프로젝트마다 새로운 카톡방이 형성되는데, 또 하나의 사무실이 차려진 것 같은 느낌인 거예요. 문제는 이 사무실은 퇴근이 없다는 거죠(웃음). 프로젝트 별로 카톡방이 생기는 경우에는 조금 더 여러 군데의 사무실에 출근하는 느낌이 있어요.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그 분들 못지않게 고충이 있는 것 같아요(웃음).

 

제3자의 눈으로 보시기에 직장이란 어떤 곳인 것 같으세요?


프리랜서가 직장인보다 제일 좋은 점은 일하기 싫은 사람이랑은 일 안 하면 된다는 거예요. 그런데 직장인들은 좋으나 싫으나 한 사람이 직장을 포기하고 월급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계속 같이 가야 되는 상황이잖아요. 그래서 그 관계 속에서 생기는 부조리한 부분들이 많이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프리랜서 같은 경우에는 권위적인 누군가에 대해서 굴복할 이유가 별로 없거든요. 세상에 클라이언트가 하나만 있는 건 아니니까요. 물론 굴복해야 되는 순간이 있죠. 너무나도 좋은 조건이 주어졌을 경우라든가. 그런데 직장인들은 그런 일들이 일상화되어 있다는 거죠.

 

직장인의 애환을 들으면서 ‘직장인이 아니라 다행이야’라고 생각하신 적은 없었나요?


친구들이랑 저는 항상 서로 부러워했다가 안쓰러워했다가 반복하는 것 같아요. 서로의 장단점이 있는 거니까요. 그런데 『사축일기』에서는 주로 친구들의 고충에 대해서 이야기하다 보니까, 제가 다행스럽다고 생각하는 부분들 위주로 쓰게 된 것 같아요. 그런데 직장인들에게는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이라는 너무나 큰 메리트가 있잖아요. 그런 면에서는 친구들이 조금 더 편안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일 수도 있죠. 일의 자유도 면에서는 제가 훨씬 더 편하게 지내고 있는 걸 수도 있고요.

 

책에 실린 「사원과 바다」라는 글이 기억나네요. 산티아고가 ‘급여’라는 청새치를 잡는 데 성공하지만 월세, 학자금 대출금, 생활비를 내느라 “통장에만 작은 흔적이” 남잖아요.


집사면 대출금 갚느라 뜯기고, 자녀들 교육 자금 모으느라 또 뜯기고, 노후 대비하느라 또 뜯기죠. 친구들을 보니까 연봉을 받아도 정작 주머니 속에 있는 돈, 쓸 수 있는 돈은 얼마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자기가 얼마를 벌고 있는지 아직도 실감이 안 난다고 말하는 친구들을 많이 봤어요. 그런 걸 보면서 ‘언제 행복해지나’ ‘우리는 언제 번만큼 쓰고 즐겁게 지낼 수 있는 거지’라는 생각을 했어요. 항상 미래를 대비했는데도 그 미래에는 과거에 진 빚을 갚거나 아니면 또 다른 미래를 준비하는 데 번 돈을 다 쓰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물론 저도 그런 고민들이 많아요. ‘들쭉날쭉한 수입이지만 그렇게 해야 되나’라는 생각도 들고, 저게 뭐야 라는 생각도 들고요. 「뭐가 맞는지」라는 에피소드에서 드러나듯이, 다들 그 고민 사이에서 지내고 있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어요.

 

동기 A가 동기 B를 흉본다.
“야, 쟤 봐라. 한 달에 50 남기고 다 적금 붓는대.
저게 사는 거냐? 적금 넣는다고 술 한번을 안 사잖냐.
구두는 저거 하나인가? 젊어서 좀 즐기는 거지 나이 들어서
돈이 다 무슨 소용이라고.”

 

동기 B가 동기 A를 흉본다.
“우리 나이에 중형차가 가당키나 하냐? 쟤 입사해서 4년 동안
얼마 모았다는지 알아? 천만 원도 못 모았단다. 늙어서
돈 없으면 서러워지는데 진짜 한심하지 않냐?”

 

글쎄, 나는 뭐가 맞는지 잘 모르겠다.
                                           (「뭐가 맞는지」, 『사축일기』 9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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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회사 생활, 왜 하는 걸까?


‘지금 행복할 것인가, 나중에 행복할 것인가’라는 선택의 문제로 볼 수도 있는데요. 작가님만의 대답은 찾으셨나요?


저는 음악을 하고 글을 쓰기로 결정한 시점부터 어느 정도는 편향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지금 위주로 지낼 수밖에 없는데, 그 와중에 미래에 대한 불안이 없지는 않죠. 그래서 조금 대비를 해야 되나 싶기도 하고, 주변에 너도 대비해야 된다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 외면하는 부분들도 있고, 그런데도 계속 마음에 걸리기도 하죠. 저희 나이 때의 사람들이 다들 하고 있는 고민이 아닐까 생각해요.

 

『사축일기』를 보면서 ‘이렇게 힘든데도 나는 왜 회사 생활을 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 법도 합니다.


그렇죠. 그런데 대부분 회사 생활의 이유는 회사 안에 있는 게 아니라 회사 밖에 있죠. 가족이나 하고 싶은 다른 일을 위해서 하는 경우들이 많은 것 같아요. 『사축일기』의 내용이 괴로운 이유는 회사 안의 이야기를 그렸기 때문인 것 같아요. 사람들이 추구하는 더 중요한 가치들이 회사 밖에 존재하니까요. 이 사람들이 자꾸 불행해지는 이유는 회사에 있는 시간이 너무 많기 때문이에요. 다른 걸 하고 싶어서 돈을 버는데 그 돈을 쓸 시간이 없는 거죠. 주변에 그런 친구들도 많았어요. 조금 덜 벌더라도 덜 일하는 데로 이직하고 싶다고요. 보너스도 필요 없고 인센티브도 필요 없고 무조건 칼퇴하고 싶다는 거예요.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같은 바람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친구들 보면 참 착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시간 외 근무를 해야 하고, 다른 눈치도 봐야 되고, 심지어 회식도 일처럼 해야 되고, 이런 걸 다 순하게 따라주고 있잖아요. 그런데 회사라는 공간은 이들에게 무엇을 해주고 있느냐, 라는 생각도 들죠. 자신들이 월급을 준다고 해서 집에도 안 보내주고, 돈은 주는데 돈 쓸 시간은 안 주잖아요.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에서 멕시코 다음으로 근무 시간이 가장 길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우리나라 기업들이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축일기』에는 얄미운 인물들이 많이 등장하잖아요(웃음). “별을 먹은 슈퍼마리오처럼 종횡무진”하는 사장님 아들도 있고 “왜 안 돼요? 하면 되지 않나?”라고 말하는 금수저, 모든 일의 이유를 “요즘 것들이 해이해서”라고 믿는 부장님도 있어요. “인센티브를 가로채며 살아남기 위해서 비열해진다는” 팀장님이나, 현금이 없다며 매일 커피 값을 ‘삥’ 뜯는 박 대리도 있고요.


이 책에 대한 피드백 중에 제일 재미있었던 게 있는데요. 제 친구가 말하길, 자기가 진짜 얄미워하는 상사가 있는데 『사축일기』를 보면서 공감을 하고 있더라는 거예요. 그 사람은 자기가 책에 나오는 얄미운 상사라는 걸 전혀 모르고 있는 거죠. 자기의 얄미운 상사만 보이는 거예요. 책에 무능한 후배들도 많이 나오는데, 그런 후배만 보이는 거예요. 제가 라디오에서 들은 이야기인데, 우리나라 직장인한테 당신을 동물에 비유한다면 어떤 동물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어봤대요. 그랬더니 모든 사람들이 자기는 소라고 그랬다는 거예요. 직급에 상관 없이요. 자기 상사는 호랑이나 여우에 비유하고요. 자기가 소라고 여기는 사람도 다른 사람에게는 여우일 수 있고 호랑이일 수 있는데, 다들 자기가 제일 뼈 빠지게 일하고 부려먹음을 당하고 있는 존재라고 느끼고 있더라고요.

 

친구분의 이야기를 듣고 어떤 생각이 드셨어요?


저는 되게 신이 났어요. 이 책이 제가 할 수 없었던 기능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만약 자기 상사가 『사축일기』을 보면서 공감을 하고 있다면, 그 사람은 자기가 얄미운 상사인 걸 모르는 거잖아요. 그러면 나도 그런 사람일 수 있다는 거죠. 그래서 한 번쯤 자기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지 않을까 싶고, 그건 제가 생각지도 못한 기능이라서 그런 가능성을 봐서 신기하고 재미있었어요.

 

책 말미에 실린 「사축 소설 1 - 영업2부 표류기」는 설정이 너무 잔인한 거 아닌가요(웃음). 직원들이 다 함께 무인도에 갇히잖아요.


조금 극대화하고 싶었어요. 극한 상황을 설정해 놓고 팀 안에서 존재하는 라인과 부당한 권력 같은 것들을 보여준 건데요. 사실 그런 욕망들이 있잖아요, 계급장 같은 거 떼어보고 싶다는. 그래서 계급장을 뗄 수밖에 없는 상황에 한 번 던져본 거예요. 그런데 높은 사람들은 그 계급장이 아직까지 자기한테 붙어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이 이야기를 보고 어떤 분들은 통쾌함을 느끼셨을 수도 있고, 어떤 분들은 읽고 나서 더 답답해지셨다는 분들도 있어요.

 

저는 통쾌했어요. “아니 씨발, 여기가 사무실입니까?”라고 반기를 드는 부분이요(웃음). 만약 현실이었다면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겠죠.


그렇겠죠. 「나는 무슨 죄」도 반기를 든 상황을 담은 에피소드인데요. 호기롭게 사표를 던지고 회사를 나갔는데, 오히려 고생하는 건 내 동료였던 거죠. 그들에게는 고려할 것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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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나 야망이 없어도 당신은 완성된 사람이에요


직장 내에서 갑의 위치에 계신 분들은 『사축일기』를 보고 이렇게 말씀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렇게 한탄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냐, 너희가 너무 약해 빠져서 이런 이야기하는 거야’라고요.


그런 분들 많이 봤죠. 취업이 어려운 부분에 대해서도 ‘노오오오오력’을 안 해서 취업이 안 된다고 하고요. 그런데 사실 경제성장률 지표가 너무 다르잖아요. 그런 분들도 많거든요. 대학 때 별로 열심히 안 했는데도 시대를 잘 만나서 쉽게 취업하고, 그때 나라 경제도 활황이었으니까 회사에서도 순탄하게 지내다가, 지금의 높은 위치까지 올라가신 분들도 많이 계세요. 그런 분들도 나름의 애환이 없지는 않았겠죠. 그런데 과거는 항상 미화되기 마련이니까 그 애환은 조금 더 극대화되는 거고, 마치 지금의 성공이 있기 위한 노력이었던 것처럼 왜곡돼서 기억 되겠죠. 시대가 변한 걸 생각 안 하고 그 상황 그대로 신입사원이나 사회 초년생들한테 적용하다 보니까 그렇게 이해가 결여된 발언들이 나올 수 있는 것 같아요.

 

만약 그런 분들이 ‘신세한탄 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이야기한다면 뭐라고 답변하실 것 같으세요?


이 책을 읽고 ‘어쨌거나 아이들이 힘든데도 착하게 하고 있구나’라는 것만 알아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그런 따뜻한 마음이라도 한 번 가져주신다면 직장이라는 공간 자체가 조금 더 긍정적으로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사축일기』을 읽고 기성세대들과 사회초년생들이 같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야기의 실마리만 되어준다고 해도 이 책이 충분히 가치 있는 책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어요.

 

에필로그에서는 일종의 피로감이 느껴집니다. 우리를 둘러싼 거창한 이야기들에 대한 건데요.  열정과 긍정, 성공을 말하는 목소리들이 너무나 많은 거죠. 


사람이 계속 열정적이면 정신병자라고 생각해요. 휴대폰도 충전을 해야 되고 자동차 엔진도 식히는 시간이 필요한데, 계속 열정만 강요하는 게 맞는 건가 싶어요.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하는 분들이 정말로 그렇게 해야 된다고 생각하는지 붙잡고 물어보고 싶어요. 어떻게 보면 『사축일기』는 아무런 해결책도 제시해 주지 않고, 푸념투성이잖아요. 그들의 관점에서 봤을 때 이건 진짜로 불건전한 책이고 쓸모 없는 책일 수 있어요. 그런데 저는 ‘어떻게 모든 것들이 다 쓸모 있나, 쓸모 없는 시간도 필요하고 시간낭비도 필요하고 숨을 돌리면서 살아야 된다’는 생각이 있어요. 이 책이 그렇게 숨 돌릴 수 있는 시간에 함께 해주면 좋을 것 같아요.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에 출연하셨을 때도 ‘꼭 꿈이 있어야 하나’ 하고 반문하셨어요. 반드시 어떤 위치에 올라야 한다거나, 무언가를 획득해야 한다는 생각과는 거리가 먼 것 같아요. 


네. 그냥 그냥 사는 사람들, 원대한 꿈이나 야망 없이 사는 사람들이 절대로 잘못 됐다거나 미완성적인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대로 완성된 사람들인데, 이미 잘 살고 있는 사람들한테 괜히 채찍질을 하고 있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매스미디어나 서점가의 이상한 책들이 말이죠.

 

첫 번째 앨범이 네이버 ‘이 주의 발견’에 선정된 바 있습니다. 당시 김성대 한국대중음악성 선정위원은 “앨범 [서툰 말]은 문학과 음악의 경계를 지우는 데 나름 방점을 찍고 있다”고 하셨어요. 실제로 작가님에게는 문학과 음악의 경계가 존재하지 않을 것 같은데요. 어떠세요?


제 음악은 문학처럼 읽혔으면 좋겠어요. 말에 소리를 보탠 정도로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고요. 옛날에 분명 그런 음악들이 있었어요. 문학 같은 음악들이요. 그런데 점점 그런 걸 하는 분들이 드물어지고 있는 게 사실이고, 저는 그 안에서도 계속 그런 걸 해나가고 싶어요. 또 제가 할 수 있는 게 문학성을 가진 음악이더라고요. 그래서 계속 해보고 싶어요. 어떤 식으로 또 할 수 있는지.

 

노래하실 때 가수 윤종신 씨 못지않게 발음이 분명하시더라고요(웃음). 의미 전달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게 아닌가 싶어요.


윤종신 선배님께서도 국문과를 나오셨더라고요. 분명히 가사에 대한 자의식이 있으실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 가사를 다 들려주고 싶으신 거예요. 저도 그렇거든요.

 

『사축일기』는 작가님 본인의 이야기가 아니었잖아요. 최근 발표한 디지털 싱글 「남자사람」은 어떤가요?


각색이 있죠(웃음). 상황은 온전히 사실이 아닐 수 있는데요. 감정은 제가 느꼈던 거예요. 상황은 조금 다를 수 있죠.

 

노래 속에 ‘오빠 남자 새끼들은 다 그런가요’라는 가사가 있는데요(웃음). 


남자들은 다 그렇게 착하지 않아요(웃음). (노래 속) 그 남자는 착하잖아요. 안 착한 사람들도 많죠. 어디에나 예외는 있으니까요. 자연스럽게 신사적인 행동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인내해야 되잖아요(웃음). 향후의 관계라든가 윤리적인 것이라든가, 이런 것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잖아요. 그런 면에서 봤을 때 적어도 남자들한테만큼은, 특히 그런 욕망의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남자들에게는 성악설이 맞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웃음).

 

이번 싱글은 가수 토니 안, 김재덕 씨와 함께한 첫 번째 작업입니다. 많은 분들이 세 분의 만남을 의외라고 생각했을 것 같은데요. 작업은 어떠셨어요?


일단은 제가 하고 싶은 음악을 지지해 주셨어요. 약간의 방향성만 조금씩 제시해 주셨고, 디테일한 부분들을 챙겨주셨고요. 어쨌거나 제가 쓴 노랫말이나 멜로디 같은 부분에 대해서는 제 개성을 남겨두는 방식으로 진행해 주셨어요.

 

작가님은 계속 인디 음악을 해오셨고. 두 분은 상업적 음악의 최전선에 계셨던 분들이잖아요. 서로 잘 맞을지 우려하는 목소리는 없었나요? 


우려보다는 의외라는 이야기가 많이 있었는데요. 저도 그 의외적인 상황이 흥미로웠어요. 같이 있을 때 제가 뭘 만들 수 있을까 궁금해서 시작하게 된 것도 있었어요.

 


결국은 시인이고 싶은 거예요


다음에 출간하는 책은 반드시 시집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는데요. 현재 집필 중이신가요?


시는 항상 있어요. 시집으로 엮어도 남을 만큼이 항상 있는데, 계속 욕심인 거죠. 조금 안 좋은 작품은 더 쳐내고, 더 좋은 시를 또 써볼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계속 써보고 싶은 욕심이 있는 거예요. 열정의 차이가 아니라 시인으로서 첫 시집이 가지는 의미 때문에, 첫 시집에 대해서 엄격하고 까다로울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이제는 시집을 반드시 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시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조금 흔들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예요. 제 마음 속에서는 흔들리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받아들이기에 ‘시는 안 쓰나?’ 하고 우려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웃음). 전에도 산문집이 나왔고 이번에는 『사축일기』를 썼으니까, 다음 책이 또 산문집이라든가 다른 종류의 책이면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을 것 같거든요. 그래서 이제는 저도 이 정도 선에서 타협하고 시집을 내야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결국은 시인이고 싶은 거예요 저는.

 

지금까지 선보이신 음악과 책에 비추어서 ‘아마 시집도 비슷한 색깔일 거야’라고 예상하시는 분들도 계시지 않을까요? 걱정되지는 않으세요?


그렇게 예상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 틀에서 벗어날 거거든요. 예상을 뛰어넘고 싶은 거죠. 제 시에는 조금 더 많은 상상력이 들어가 있어요. 예를 들면 그런 거예요. 어떤 상황을 통해서 어떤 감정을 느꼈어요. 그러면 제 마음 속에는 그 감정이 남아 있잖아요. 그걸 더 잘 표현해줄 수 있는 다른 상황을 만들어서 시를 쓰고 있어요. 상황을 그대로 옮기지 않고요. 방식 자체를 다르게 하고 있어요.
 
“김광석 선배님처럼 되고 싶다. 김광석 선배는 이름 자체가 하나의 장르다. 저도 훗날 제 자체가 하나의 장르가 되고 싶다”고 말씀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시인으로서 닮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누구인지 궁금합니다.


좋아하는 시인도 많고 존경하는 분들도 많이 있지만, 그 분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시인은 없어요.

 

어떤 시인을 좋아하세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시인은, 지금은 시를 쓰지 않으시지만, 유하 시인님이에요. 지금은 감독님이죠. 석사 논문도 그 분 작품으로 썼고요. 너무 좋아해요. 왜냐하면 시 속에서, 사람도 사람이지만, 시대의 냄새가 나요.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까지의 냄새를, 그게 좋은 향이건 역한 냄새건, 그대로 담고 있다고 생각해요. 제 시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작가님의 노래에 대한 평론에는 늘 시대정신이라는 말이 들어가는데요. 의도하신 건가요?


제가 시대정신이라는 단어를 생각해본 적은 없었는데요. 그 단어를 듣고 나니까 그게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문학도 리얼리즘 문학들을 좋아해요.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사축일기』를 내고서 그런 이야기를 들었어요. 작가가 직장인이 아니라서 이 이야기들을 쉽게 할 수 있는 것 같다고요. 그게 제가 이 책을 쓴 이유인 것 같아요. 쉽게 하고 싶었거든요. 슬프지 않게. 독자들에게 ‘너도 힘들지? 나도 그래’라는 말이 아니라 ‘내 주변에 그런 애들 되게 많아, 네가 힘든 게 이상한 게 아니야, 이 시스템이 이상하고 이 세상이 이상한 거야’라고 말해 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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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축일기강백수 저 | 꼼지락
사축(社畜)이란, ‘회사의 가축처럼 일하는 직장인’을 뜻한다. 일본의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유행하게 된 이 단어는 주인에게 길들여진 가축처럼, 직장인은 회사에 길들여졌다는 자조를 담은 말이다. 우리나라의 직장인들 역시 크게 공감했던 것일까. ‘사축’이라는 키워드는 소개된 즉시 각종 포털사이트 검색어 순위에 오르며 화제가 되기도 했다. [사축일기]는 사축들이 겪고 있는 현실을 한마디로 ‘웃프게(웃기면서도 슬프게)’ 보여주는 글을 담은 책이다.


[추천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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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남중 “모험이 어린이들의 본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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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멀리 보는 시야를 가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어린이든 어른이든 간에 말이다. 비행기로 세계 어디라도 짧은 시간 안에 갈 수 있는 세상에서, 인터넷으로 세상 모든 소식을 찾아볼 수 있는 현재에서, 멀리 보는 시야를 갖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여수 바닷가 작은 마을에 살던 13살 소년 해풍이는 마을에 터를 잡고 살던 하멜과 홀란드 사람들이 배를 타고 떠난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다. 이들이 떠나는 날 몰래 배에 잠입하는 데 성공해 이들과 함께 세상으로 나가는 주인공 해풍이. 어리고, 자기가 살던 작은 마을이 그가 아는 세계의 전부였던 해풍이는 이후 일본, 인도네시아를 거쳐 유럽을 여행하며 상상할 수 없는 모험을 겪는다.


총 11권으로 기획된 김남중 작가의 『나는 바람이다』가 그리는 드물게 큰 이야기를 따라 세계를 돌다보면 발 딛고 선 세상이 전부라고만 생각했다는 사실이 따갑고 가깝게 다가온다. ‘성공한 삶’의 기준, 성공하기 위한 무수한 조건들 안에 모두들 짓눌려 살아온 것은 아닌지 되묻게 되는 것이다. “요즘 같이 뒤엉키고 엉망이 된 세상에서는 어린이문학이 주는 메시지가 정말 강력”하다는 사실을 이 작품이 보여주는 것 같다. 세상의 바다에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마침내 큰 사람으로 돌아올 해풍이가 무척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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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이 보장되어야 건강한 사회


2013년 1, 2권 출간 후 이제 5권이 나왔고, 총 11권 기획이죠. 어떻게 이 이야기를 시작하게 됐는지가 가장 궁금했어요.


처음엔 이렇게 큰 작업일 거라 생각을 못했어요. 1, 2권으로 정리가 되는 계획이었고요. 바다 이야기를 좀 써보고 싶어서 시작한 거였어요. 우리나라가 너무 바다로도, 대륙으로도 공간감이 확대가 안 되고 있잖아요. 우물 안 개구리처럼 말이죠. 특히 아이들한테 좀 심해요. 아이들에게 공간감을 확대시켜주고 싶어 바다 이야기를 쓰려고 했어요. 우연치 않게 코리아나 호라는 배를 타고 나가사키에서 열리는 국제범선대회를 가게 됐는데요. 그곳에서 하멜의 흔적을 발견했어요. 하멜이 1666년 여수를 탈출해 도착한 곳이 나가사키예요. 나가사키 항구에 데지마(出島)라는 인공섬이 있는데 네덜란드 사람들의 상관(商館)이 있던 곳이에요. 데지마에 가면 네덜란드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거죠. 하멜은 우리와 관련이 깊은 사람이어서 취재를 하다 보니 이걸로 바다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겠다 싶었어요.

 

처음부터 11권으로 계획한 건 아니라고 들었는데 그 얘기도 해주세요.  


1, 2 권은 조선과 일본이 주 배경인데 일본을 떠나는 장면으로 이야기를 끝내고 나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주인공인 열세 살 해풍이가 유럽을 향해 떠나는데 배웅만 하기가 아까운 거예요. 목숨을 걸고 모험을 떠난 아이가 만나게 될 세상이 궁금하기도 했고요. 많이 망설이다가 출판 기념 간담회 때 좀 더 쓰겠다고 일단 터트렸죠.(웃음) 그 뒤로 계속 이어지는 작품을 쓰기 위해 취재, 작업을 병행하고 있어요. 5부, 11권으로 전체 작품이 정리될 거예요.

 

힘들 것 같아요. 쉬운 작업이 아니잖아요.


힘든데 재미있어요. 동화를 쓰다가 슬럼프가 좀 길게 이어졌어요. 내가 쓰는 동화가 이 시대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고민하던 시기였죠.『나는 바람이다』가 호흡이 긴 작품이라서 여기 매달려 정신없이 작업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시기를 잘 넘기고 있는 것 같아요.

 

이 작품을 하면서 그 사이에 다른 작품도 출간이 되었죠. 굉장히 바쁘게 작업하고 계신 느낌이거든요.


1년에 몇 권씩은 내고 싶다는 작업 목표가 있는데 그 목표가 변하지는 않았어요. 서너 권 씩 내고 있는데 거기에 이 작품의 비중이 커지면서 다른 책들이 조금씩 뒤로 순서가 밀린 거죠. 내년에도 비슷하게 나올 것 같아요.

 

하루 작업량이 얼마나 되세요? 꾸준하게 작업하시나요?


책상 앞에 오래 앉아있는 게 힘들어서 짧은 기간 동안 몰아서 작업을 해요. 취재와 구상을 오래 한 다음 글을 쓸 때는 외진 곳에 들어가서 한두 달 안에 집중해서 쓰는 식이에요. 구상을 충분히 하면서 머릿속에서 이야기가 완성이 되었을 때 책상에 앉아서 빨리 써내는 거죠.

 

국내 문학의 공간에 대한 상상력이라는 게 말씀처럼 협소한 것 같긴 합니다. 그에 비해 『나는 바람이다』의 세계관은 꽤 넓어요. 이전부터 ‘작은’ 이야기에 대한 아쉬움이 있으셨던 걸까요?


크고 작은 이야기가 다양하게 나왔으면 좋겠어요. 다양성이 보장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잖아요. 그런데 현실이 각박하고 힘드니까 사람들이 점점 더 고개를 숙이는 느낌이 들어요. 자기 앞만 보고 가는 거죠. 문제는 아이들한테도 그런 걸음걸이를 강요한다는 거예요. 보폭이 짧아지고, 길게 보지 못하고, 검증된 대로만 가게 하고요. 하지만 그렇게 산다 해도 결과가 모두에게 보장된 건 아니죠. 결국 변화를 위해서는 좀 더 멀리 보는 시야를 가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른들에게도, 아이들에게도요.


함축적으로만 이런 이야기를 하면 아이들은 이해하기가 힘들어요. 다른 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직접 가보고, 만나고, 꿈꾸면서 아이들 머릿속 세계를 조금씩 넓히면 시야도 자연스럽게 넓어지고, 그것이 결국은 모두의 삶과 미래를 바꾸는 결과로 돌아올 거라고 생각해요. 아이들한테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고, 같이 가보자고 유혹을 좀 해보고 싶었죠. 그런 이야기가 우리에게 좀 더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모험을 지양하는 분위기가 사회 전반에 있기 때문에 주인공 해풍이의 모험 이야기가 낯설고도 의미가 있는 작품이란 생각이 들어요.


모험이 어린이들의 본능이에요. 삶이란 게 세상을 알아가는 과정인데 모두가 안전이 확인된 길, 다른 사람이 갔던 길로만 가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몸으로 부딪치고, 넘어지고, 생채기도 나면서 하나씩 세상을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해요. 그것이 평생 잊지 못할 방법이기도 하고 그 과정에서 얻는 즐거움도 크죠. 우리 사회가 모험하는 즐거움, 기회 등을 아이들한테서 많이 뺏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 우리는 어렸을 때 지금처럼 자라지 않았잖아요. 지금 아이들은 학교와 학원, 집이라는 강철 삼각형을 벗어나기 힘들어요. 아이들한테 모험하는 즐거움을 보여주고 싶고, 스스로 나가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요.

 

지나치게 안전한 세상은 오히려 안전하지 않은 거겠죠.


어른들은 현실을 미화해서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는데요. 아주 어릴 때는 그럴 수도 있지만 어느 정도 자란 아이들에게는 방법이 달라져야 해요. 아이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나이가 되면 자연스럽게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화장하지 않은 모습들, 날 선 모습들을 보여주고 판단하게 해야 하죠. 그런 부분들을 창작 동화들이 상당 부분 감당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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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의 즐거움을 되찾자


작가의 작품 목록을 보면 그런 생각이 작품 전반에 담겨있는 것 같아요. 주인공들의 모험, 도전에 대해 관심이 많이 있으신 거죠?


제 작품 가운데는 현실적인 소재를 다룬 작품들이 꽤 있어요. 거기에 더해 공간의 확대와 모험에 대해 좀 더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 몇 년 전부터예요. 그 전부터 현실적인 문제에 대해 고민했던 부분이 이쪽으로 확대되고 연결 되는 것 같아요. 현실적인 문제를 어떻게 풀어낼 것인가 고민하다가 좀 더 넓은 시야를 가지고 다른 각도에서 우리가 가진 문제를 바라보자 그런 생각을 했어요. 물론 이런 의도는 안 드러날수록 좋아요. 아이들이 빼앗긴 모험의 즐거움을 되찾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체화되었으면 해요.

 

방금 말씀하신 ‘현실적인 문제’는 경쟁이나 통제된 상황에 놓인 삶 같은 것들일까요?


인간성을 포기하게 강요하는 모든 것들이죠. 지금까지 써온 작품들을 정리하면 자연, 역사, 보통 사람 등의 주제를 통해 현실적인 문제를 반영했는데 지금도 그 관심은 계속되고 있어요. 그걸 표현하는 방식을 달리해 모험을 통해서도 그런 이야기를 써낼 수 있겠다 생각했어요. 독자들에게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겠단 생각도 들고요. 제 자신도 모험 이야기를 쓸 때 즐겁거든요. 동화가 반드시 밝고, 즐겁고, 따뜻한 이야기만 있는 건 아니에요. 힘든 동화를 쓸 때는 쓰는 사람도 힘든데요. 모험 이야기를 쓸 때는 저도 두근거리고, 즐겁고, 기대가 되는 부분들이 있어요. 이런 것들이 독자들에게 자연스레 연결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죠. 현실적인 문제를 다른 방법으로 이야기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모험으로 영역이 확장 된 것 같아요.

 

작가가 생각하는 아동문학의 역할이 궁금해요. 어떤 소명의식을 가지고 아동문학을 하고 계시는지 본질적인 질문을 잠깐 드리고 싶네요.


어린이문학의 역할이 문학의 역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지만 어린이문학만의 특수성이란 게 있어요. 그 특수성 가운데 교육적인 측면에만 방점을 두면 교조적이 돼요. 어린이들이 꼭 배워야 할, 어른이 되기 위해 알아야 할, 사회 구성원으로서 습득해야 할 규범과 가치를 녹여내는 게 어린이문학이라고 착각하기가 쉽거든요. 그러나 어린이문학의 가장 큰 역할이 저는 특유의 즐거움이라고 생각해요. 어린 아이들에게 세상을 보여줄 때는 날 것 그대로 줄 수 없어요. 아직 소화시킬 능력이 안 되니까요. 그럴 때 어린이문학이 아이들에게 문학적인 완성도가 주는 고유의 즐거움을 전제로 사회와 접점을 찾게 해주고, 시야를 넓히는 역할을 하는 거죠. 혀의 즐거움, 눈코의 즐거움도 중요하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역시 아이들이 바르게 설 수 있고, 스스로 달려 나갈 수 있도록 뼈와 근육을 튼튼하게 해주는 거죠. 성인들에게도 문학이 그런 역할은 일정 부분 하겠지만 아이들이 보여주는 반응과는 큰 차이가 있어요.

 

가능성이란 측면에서 본다면 아동문학이 훨씬 넓은 부분을 담당하고 있단 생각이 들어요.


그래요. 어른들의 눈으로 보면 어린이문학이 오밀조밀하고, 지엽적이고, 성장하며 지나가야 하는 단계이긴 하지만 머물러서는 안 되는 과정으로 생각되기 쉬운데요. 사실 어린이문학의 영역은 그보다 훨씬 넓어요.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함께 공감하며 읽을 수 있는 장르가 어린이문학이거든요. 흔히 학년별로 구분해 놓은 필독 동화를 보게 되는데 그런 접근법이야말로 어린이문학을 단순하게 내려다보는 거라고 생각해요.


모든 어른들 몸속에는 어린이가 들어 있어요. 그 어린이를 소중히 간직하고 기억하는 분들에게는 어린이문학의 느낌이 전해지죠. 어린이었던 것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슬픈 어른들에게는 어린이문학이 느낌을 주지 못하는 거고요. 어린이문학을 어린이와 함께 읽는 어른들이 늘어날수록 함께 눈높이를 맞출 수 있는 기준을 가질 수 있게 될 것 같아요.

 

사회적으로도 의미를 갖고 있네요.


어린이문학이 우리 사회 문제에 대한 해답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가진 문제들 대부분은 아이들에게 가르친 대로 어른들이 행동하지 않기 때문이거든요. 과정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사람이다, 최선을 다했으면 만족하자, 모두에게 지켜야 할 규범이 있다, 사람은 평등하다, 생명은 소중하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이렇게 얘기하죠. 하지만 어른들의 행동은 그 반대예요.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큰 사람일수록 그래요. 사람보다 돈이 우선이고, 차별은 당연한 게 됐어요. 요즘 같이 뒤엉키고 엉망이 된 세상에서는 어린이문학이 주는 메시지가 정말 명료해요. 아이들에게 가르친 대로 어른들이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면 많은 문제들이 풀릴 것 같아요. 문제가 복잡할수록, 복잡하게 만들어서 그 안에 숨는 사람들이 있을수록 원론적인,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원칙을 제시한다면 숨기고 싶은 꼼수들이 드러나게 되는 거죠. 요즘 같은 시대일수록 어린이문학이 주는 메시지가 정말 크다고 생각해요. 그 메시지를 반드시 들어야 하는 사람들이 어린이 문학을 안 읽는다는 게 슬플 뿐이죠.

 

자연스럽게 처음 아동문학을 쓰겠다고 다짐한 이유가 궁금해집니다.


스물여섯 살에 동화를 처음 시작했어요. 우연찮은 계기로 어렸을 때 읽은 동화를 다시 읽는데 좋아요. 행복해요. 그때 내가 동화에 반응하는구나, 이걸 느꼈고요. 그럼 이걸 쓰는 게 맞겠다 싶어서 그때부터 동화를 썼죠. 행복한 글 읽기에서부터 글쓰기가 시작되는 거잖아요. 저한테는 그게 동화였어요.

 

특별히 좋아하는 작가나 작품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미하엘 엔데 좋아해요.  요즘도 힘들 땐 가끔『끝없는 이야기』를 읽고 충전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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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우리는 어디 있는지


프라무카 섬에서도 해풍이에게 ‘작가의 말’을 통해 편지를 쓰셨고, 해풍이의 여정 곳곳을 함께 따라 가셨어요. 취재하면서 겪은 에피소드가 궁금해요. 어려운 일들은 없었나요?


해풍이가 세계를 한 바퀴 돌아요. 어린 나이에 선원이 되어 범선을 타고 도니까 아주 힘든 여정이죠. 저도 가급적이면 그렇게 한 번 돌아보고 싶었는데 기회가 없어서 주로 해풍이가 찾아가는 지역에 점을 찍고 선을 잇듯이 취재를 하고 있어요. 프라무카 섬은 자카르타, 예전 바타비아 앞 바다에 있는 섬이에요. 그 곳을 지나갔을 해풍이의 마음을 느껴보고 싶어서 배를 타고 작은 섬에 가본 거죠. 3부에 등장하는 네덜란드의 텍셀 섬도 해풍이를 생각하면서 돌아봤고요. 작품도 쓰기 전에 미리 찾아가서 둘러보고 작가의 말을 쓰는 게 재미있어요.(웃음) 그래도 뭐 주인공만큼 고생하진 않죠. 돌발적으로 생기는 일들은 있지만요. 1부  취재 때는 배가 고장 나서 하룻밤 정도 바다에 표류한 적이 있었는데 일본 해경이 출동해서 예인선을 불러 나가사키까지 끌어줬고요. 자카르타에서는 코디네이터와 연락이 안 돼서 혼자 돌아다녀야 했고 한 달 전에는 멕시코와 쿠바를 다녀왔는데 그쪽 취재가 좀 힘들었어요. 치안이 안 좋은 지역을 가야하는데 멕시코인 코디네이터가 취재 일정을 몇 달씩 연기하며 만류를 했거든요. 결국은 만나서 둘이 머리를 싸매고 작전 짜듯 계획을 세운 다음 잘 다녀왔어요.

 

해풍이 덕분에 작가도, 독자도 세계 여행을 하고 있어요.(웃음)


해풍이와 함께 여행을 하는 거죠. 17세기의 대양 항로는 세계사적으로도 많은 의미가 있어요. 그런데 21세기의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 입장에서는 역사적으로 어떤 접점이 있는 항로가 아니거든요. 17세기에는 세계를 한 바퀴 돌 수 있는 무역 항로가 이미 개통이 돼 있었고, 세계가 그 항로로 교역을 하고 있었는데 우리만 울타리를 닫고 아시아의 변방에서 조용히 숨죽이고 있던 시기였어요. 우리만의 상황이 있기는 했지만 결국 근대화를 자주적으로 해낼 시기를 놓친 결과가 되었어요. 해풍이가 여행한 경로를 통해 독자들, 특히 어린이들이 우리가 그냥 흘려보냈던 그 시기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지금 우리는 세계사의 흐름 가운데 어디에 있는지를 자연스럽게 생각해보면 좋겠어요. 우리 아이들이 미칠 듯이 공부하는 목적이 결국 좋은 학교, 좋은 직장, 넓은 아파트, 대형 자동차 같은 것들이잖아요. 그렇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그걸 다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결국 다른 사람을 위한 경쟁에 매몰돼 인생에서 놓치는 부분들이 많아서 안타까워요. 한 번 사는 인생인데 말이에요.

 

그만큼 세상에서 생존하는 게 힘들어졌다고 하면 어떨까요?


정확히 말하면 우리나라가 유독 힘든 거죠. 어느 사회든 경쟁은 있고, 경쟁한 결과에 따라 삶의 내용이 달라지는 건 같은데요. 우리나라는 그 경쟁이 비정상적이라는 게 문제에요. 우리나라가 예전처럼 배 곪아가며 못사는 나라도 아니고, 세계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는 나라거든요. 그런데 우리의 삶, 우리 사회가 나아가는 방향을 보면 이게 정말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는 방향이 맞는지 의심스러워요. 눈이 좀 열렸으면 좋겠어요. 이 경쟁은 경쟁을 시키고 있는 부모 세대도 안 해본 경쟁이란 말이에요. 더 나은 다른 사회, 혹은 더 힘들게 살고 있는 사회를 보고, 저들은 어떻게 해서 저렇게 살고 있는지 고민한다면 시행착오를 직접 겪지 않고도 우리는 좀 더 행복한 미래에 가까이 갈 수 있거든요. 지금 우리는 발가락 앞만 보고 티격태격 하느라고 놓치는 게 많아요.

 

다름 아닌 이 시기에 유년 시절을 보내야 하는 삶이라는 게 참 우울한 시작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어요.


참 딱해요. 우리 어렸을 때와 비교하면 아이들에게는 인터넷, 스마트폰, 먹고 소비할 여유가 있지만 대신 자유를 놓친 것 같아요. 빈둥댈 수 있는 자유, 상상하고 뛰놀고 모험할 수 있는 자유가 없는 거죠. 잘 먹지만 가장 중요한 걸 빼앗긴 사육장의 동물들 느낌이 들어서 안타까워요.

 

아이들이 스스로 결정하는 것에 굉장히 소극적이거나 거의 무능력해진 것 같단 생각이 드는데 해풍이는 무척 주체적이고, 용기 있거든요. 작가가 기대한 해풍이의 모습, 해풍이를 통해 그리고 싶은 아이들의 모습이 있었을 것 같아요.


해풍이가 모든 것을 적극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결정해서 스스로 문제를 풀어나가는 그런 완벽한 아이는 아니에요. 중요한 결정이 본인 의지 외에 주변 환경에 의해 결정되기도 하고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지만 충동적으로 결정하기도 해요. 중요한 것은 그 경험들을 통해 해풍이가 성장한다는 거죠. 장사는 어떻게 하는 것인가를 홀란드 사람들을 통해 배우는 것처럼 말이에요. 자신이 결정한 선택의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그 다음 선택의 위치에 가기까지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할 것인가 이런 부분들이 계속 펼쳐져요. 결국 성장의 기록이죠.


해풍이의 마음가짐도 계속 달라져요. 해풍이가 13살에 떠나서 17살에 돌아오거든요. 초반의 선택이 충동적이었다면 수많은 선택을 하면서 세계를 한 바퀴 돈 해풍이는 아주 큰 사람이 되어 돌아와요. 요즘 아이들은 사실 대학생이 되어도 경제적으로 부모님에게 예속되어 있다 보니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잖아요. 스스로 결정할 줄 알고, 책임질 줄 아는 어린이들이 되기 위해 어렸을 때부터 뭔가 자꾸 저질러봤으면 좋겠어요.(웃음) 부모님들이 별로 안 좋아하시겠지만요.

 

 

울고 있는 모습들


무엇보다 장면들이 생생해요. 좀 더 선명하게 보여줘서 공간에 대한 상상을 넓히고 싶다는 앞의 이야기와도 의도가 닿아있을 것 같아요.


네, 저는 그림이 분명히 떠오르는 게 좋아요. 주위의 상황들이 해풍이의 마음속에 있는 뭔가를 움직이게 되는데 그게 독자들에게 전달이 되기를 원해요. 내면의 이야기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해풍이를 둘러싼 세계의 그림을 좀 많이 보여주고 싶어요. 사람 사는 모습은 기본적으로 어딜 가나 똑같은데 그것이 다채로운 색깔, 환경을 통해 해풍이에게 다른 자극으로 다가와요. 일본, 인도네시아, 네덜란드, 쿠바, 멕시코, 태평양의 이름 모를 섬을 지나는 모험을 하면서 세상을 보는 눈이 넓어지고, 세상을 이해하는 마음이 되죠. 독자들이 해풍이의 시점에서 상상하도록 돕기 위해서 좀 더 다양한 모습을 담고 싶었어요.

 

이 생생한 장면들은 이곳이 다른 세상임과 동시에 다르지 않은 세상임을 느끼게 해주죠. 해풍이가 각지에서 만난 사람들의 외모, 삶의 방식은 다 달라도 엄마 같은 사람도 있고 친구가 되는 사람도 있는 것처럼 말이에요.


이 세상 사람들을 크게 누군가의 위에 있는 사람과 밑에 있는 사람으로 나눈다면 해풍이는 밑쪽에 있는 사람이에요. 해풍이가 여행하며 만나는 사람들 역시 다 누군가에게 눌리고 있는 사람들이거든요. 일본 도예촌의 도공들이 그랬고, 인도네시아의 주민들이 그랬고, 멕시코와 쿠바에 가게 되면 흑인 노예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들 역시 그렇죠. 이들을 누르고 이들로부터 뭔가를 강제로 빼앗아가는 일본과 네덜란드, 스페인 사람들조차 그들 안에서 높고 낮은 위치로 나뉘게 돼요. 해풍이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누르니까 나쁜 놈’이라고 단순하게 생각하기보다 사람이 사람을 대하는 방법에 대해 생각을 하게 되죠. 피부색이 다르고, 먹는 음식이 다르고, 처한 상황이 다르지만 사람은 어디까지나 사람이라는 것, 이런 부분을 설명하지 않고 보여주고 싶었어요.

 

어떤 장면, 어떤 이야기가 작가를 사로잡나요?


아픈 사람들을 봤을 때 마음에 울림이 커요. 즐겁고, 예쁘고, 행복한 사람들도 좋지만 힘들고, 아프고, 울고 있는 모습들을 봤을 때 뭔가가 마음을 흔들고 그 느낌이 작품을 쓰게 만들어요.

 

그게 해풍이가 만나는 사람들이네요. 도예공, 흑인 노예처럼요.


그러게요.(웃음)

 

역시 작가란 좀 약하고 비주류의 존재들에 관심을 두게 마련인 것 같습니다.


작가가 그 중 하나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해요.(웃음) 대통령이나 재벌이 글을 쓰면 또 그들만의 이야기를 쓰겠죠. 작가가 찾으려는 건 어디까지나 사람 자체잖아요. 인간성인데요. 그걸 찾아내기 쉬운 곳이 보통 사람들 가운데고요. 아픈 사람들 이 그 모습을 분명히 드러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지고 있는 인간의 어떤 모습들이 있으니까요.


문학의 기본적인 접근 방법이 ‘그럼에도 불구하고’란 생각이 들어요.

 

바다 이야기 외에 꼭 써보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일단 『나는 바람이다』말고 또 다른 바다 이야기가 내년 여름쯤에 책으로 나올 예정이에요. 내년 하반기쯤『나는 바람이다』시리즈 집필이 끝나면 모험이나 공간감의 확대와 관련된 또 다른 시도를 하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작가들은 작품 나오기 전에 구상하고 계획하다 보니까 대부분 몇 년을 먼저 살아요. 저도 3~4년 쯤 뒤의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대륙 쪽에서 또 다른 모험을 해보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계획만 세우고 있는데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대양이거나 바다거나 어쨌든 우리나라의 지리적인 한계를 벗어나 달려보고 싶고, 그런 글을 앞으로도 더 쓰는 게 목표예요. 그러다 쉬고 싶으면 생각을 깊이 할 수 있는, 내면으로 파고드는 작품도 쓰게 되겠죠. 그것 역시 새로운 도전이니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제대로 해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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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람이다 1 김남중 글/강전희 그림 | 비룡소
17세기 일본으로 가려다 제주도에 난파당해 오랜 세월 조선에 살았던 네덜란드인인 하멜에게서 영감을 받은 동화입니다. 이른바 "하멜 표류기"로 불리는 조선에 대한 그의 자세한 안내서도 있었는데 작가는 하멜이 조선을 벗어나 나가사키로 탈출할 때 함께 배에 올라 떠나게 된 조선의 아이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력에서 이 이야기가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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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 아는 건 중요한 무기가 될 수 있다. 대응을 고민하고, 준비할 시간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교육처럼 삶에 끼치는 영향이 지대하고, 복합적인 요소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한 치 앞을 예측하기 힘든 분야라면 더욱 그렇다. 교육이 백년지대계라 했던가. 하지만 한국의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는 사실은 모두가 안다. 한국뿐 아니다. 지금의 사회는 장소를 불문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중이다. 스마트폰이 생활을 바꾼 게 얼마 안 된 이야기 같은데 사물인터넷이니, 빅데이터니 또 다른 거대한 바람이 불어온다. 중국의 등장도 가벼이 생각하면 안 될 중요한 요소다. 그러니 트렌드를 살피고, 무엇이 중요한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당신은 알아야 한다. 이병훈교육연구소가 내놓은 『트렌드 에듀 2016』는 여기에 집중한다. 


이병훈교육연구소 대표 이병훈 저자는 트렌드를 아는 것을 일기예보 보는 것에 비유했다. “트렌드를 알면 과거에 대한 이해도 가능하고, 미래 예측도 가능해요. 좀 더 전략적으로 대비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이디어를 얻는 데 도움이 거죠.”라고 말한다. 2016년, 주목할 트렌드 13가지 중 저자가 꼽는 것은 중국, 코딩 그리고 스마트 교육이다.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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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예보


시의성이 높은 책입니다. 지금도 교육에 관한 새로운 이야기들이 쏟아지고 있는데요. 어떤 부분에 가장 중점을 두고 저술했는지 궁금합니다. 


정보 제공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건 학부모님들이 알아두어야 할 테마들에 대해 공개적으로 화두를 던진 측면이 많다는 거예요. 코딩 같은 건 강남, 목동, 분당 엄마들은 관심 많지만 다른 분들은 뭔지도 모르거든요. 전문가 분들의 경우도 그렇죠. 교육 전문가라고 해서 모든 분야를 다 아는 건 아니잖아요. 그런 분들에게 이런 부분이 요즘 이슈가 되고 있다고 알리는 측면도 있고요. 또 비교육 분야에 있는 분들에게도 의미가 있죠. 요즘은 교육 분야와 콜라보 많이 하시잖아요. 강연도 하고, 직원 복지도 교육 분야로 많이 하니까요. 그런 타 분야 분들이 교육에서 어떤 부분을 중점적으로 봐야 하는지 짚어드리는, 편리한 도움을 주는 책이에요. 


학부모뿐 아니라 일반에 충분히 읽힐 수 있는 책이네요. 


그렇죠. 어떻게 보면 일반인 중에 교육과 관련한 일을 하거나 상관은 없지만 교육과 협업해야 하는 분들에게는 정말 좋은 책일 것 같아요. 


화두를 던진다는 측면에서도 연결이 돼요. 코딩 같은 건 사실 잘 모르는 분들이 더 많으니까요. 


많이 모르시죠. 그런 분들도 있어요. 수시를 보면 수능을 안 봐도 되냐고요. 그런 분들의 기본적 이해도도 높이고, 생각지 못한 분야에 대한 정보도 드리는 거죠. 요즘은 정보 홍수라 다른 사람들은 알고 공부하는데 나는 모르고 나중에 후회하는 경우도 많잖아요. 적어도 기회의 균등이란 측면에서 그런 뒤처짐은 없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큽니다. 


입시 정책이 다양해지고, 정보가 넘칠수록 ‘전략’이라는 게 굉장히 중요해지는 것 같아요. 


좋게 말하면 전략이고요. 나쁘게 말하면 꼼수죠.(웃음) 교과라는 명확한 결과를 비교과로 보완할 수도 있는 거니까요. 노력하는 자세와 태도에 대해 평가절하 되었던 것이 이제는 다른 방식으로 보완이 돼서 인정받을 수 있는 거라고 볼 수도 있죠. 단점이라면 컨설턴트나 전략가의 비즈니스 모델이 강화된다는 거고요. 노력해서 찾아내면 참 좋은데 그렇지가 않아요. 그냥 돈 내고 전문가에게 맡기죠. 그러니 사다리가 부서졌다, 금수저다, 이런 말이 나오는 건데요. 보기 나름인 것 같아요. 저는 교육 당사자가 좀 더 주도적으로 생각하고, 찾아봤으면 좋겠어요. 변호사에게 사건을 의뢰해도 알아서 해주겠지 해버리면 패소할 확률이 높거든요. 자기 상황이 어떤지, 어떻게 할 건지 논의해야 승소 확률이 높은 것처럼 생각하길 바라요. 자문 서비스에 대해 좀 더 오픈 마인드로 다가갔으면 좋겠지만 다 맡겨버리지는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교육 정책이나, 입시 정책, 더 나아가서는 탐색할 수 있는 직업들이 모두 빠르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의 트렌드를 안다는 것,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일기 예보 보는 것과 비슷해요. 현재가 어떻고, 앞으로 어떻게 될 건가에 대해 아는 거죠. 사실 몰라도 되죠. 추우면 그냥 감기 걸리고, 비 오면 맞고요. 하지만 미리 알면 대응하고, 변화에 능동적으로 준비할 수 있어요. 트렌드라는 건 현재의 추이니까요. 트렌드에 뒤처지면 오늘은 살아요. 근데 내일은 고달파지겠죠. 트렌드를 알면 과거에 대한 이해도 가능하고, 미래 예측도 가능해요. 좀 더 전략적으로 대비하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이디어를 얻는 데 도움이 되는 거죠. 


90년대 수능 도입 당시 새로운 트렌드에 대해 공교육이 잘 대응하지 못했어요. 우왕좌왕했죠. 그 사이에 사교육이 수능에 맞게 적응력을 높이면서 공교육이 무너진 거거든요. 2000년대에는 하나만 잘하면 대학 간다, 교과 외의 것들에 대해서도 인정한다, 이런 트렌드가 왔는데 또 공교육은 대응하지 못했죠. 공교육이 계속 트렌드에 지면서 지금의 현실을 가져온 거예요. 결국 트렌드란 거대한 흐름인데 추후 10년, 20년을 준비하려면 흐름을 알아야 대비할 수 있죠.


특별히 학부모 입장에서 주목할 부분이 있다면요? 


학부모들은 20세기를 살았어요. 그 기준의 인재상이 지금도 이미 큰 의미가 없어졌는데 앞으로 10년 후 자녀가 30대가 됐을 때도 지금 같을 것인지 의문이 들어요. 지금도 창의력, 문제 해결 능력, 주도성, 대인 관계, 네트워킹, 문제 구성 능력 등이 있어야 인정받는 사람이 되잖아요. 앞으로는 또 어떤 역량이 요구될 것인지 이해하면 자녀를 미래시점에서, 정말 인정받아야 할 때 각광 받을 수 있는 사람으로 키울 수 있는 거죠. 지금 코딩 안 해도 먹고 살아요. 그렇지만 지금 사람들이 영어 하듯이 자녀가 30대가 됐을 때 다들 코딩을 해야 인정받는다고 한다면 지금 해놓아야 그때 우왕좌왕 안 하겠죠. 


코딩, 사물인터넷 등 책에서 다루는 교육 트렌드에 대해 잘 모르는 분들도 많이 있을 거예요. 


예전부터 아는 사람들은 미리 대비해서 알아서 잘 했어요. 일상에 파묻혀서 귀찮음과 두려움이 있는 분들은 외면하다 나중에 후회하고요. 늘 그래왔죠.(웃음)

 

책을 보며 느낀 점은, 이미 교육(그 중에서도 특히 공교육)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학부모들도 사교육비 쓰고 싶어서 쓰는 게 아니에요. 문제는 공교육만 시킨 우리 아이와 사교육 시킨 옆집 아이 중에 옆집 아이가 더 잘하는 것 같으니 안 할 수 없다는 거죠. 그런 경쟁의식이 팽배해졌고요.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건 모든 변화에 대해 항상 사교육이 앞서 대응했기 때문이죠. 저는 공교육이 좀 더 신속해지면 좋겠어요. 몸집을 줄이고, 대응하는 스피드는 높이고요. 방향은 두 가지죠. 사교육을 아예 못하게 하든지 공교육이 빨리 움직이든지 말이에요. 이 결정을 못하면 지금의 불합리는 계속 유지될 거라 생각해요. 


학부모로서 이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고민이 많을 것 같아요. 


일단 부모가 우리 아이가 어떻게 생겼는지 관찰을 많이 해야 해요. 많이 관찰해서 부정하지 말고 그 좋은 역량을 잘 조합할 수 있는 진로, 적성 탐색을 부모와 함께 해야죠. 아이에게 의도적으로 만나거나 읽거나 볼 기회를 많이 줘야 해요. 직접, 간접 경험과 대인 경험을 많이 해봐야 아이의 진로 의지가 형성될 수 있다고 봐요.


입시로 말하자면 요즘은 교과를 비교과가 뛰어 넘을 수도 있거든요. 수능 6~8등급이면 갈 수 있는 대학이 별로 없는데요. 그 학생을 인서울 시킬 수 있는 힘이 비교과에 있어요. 봉사, 독서, 진로, 창의성, 체험활동, 리더십, 수상경력, 성적의 일관성, 리더십 경험, 각종 활동 등이 비교과인데요. 이것들을 고등학교 들어가면서부터는 일관되게 관리를 해야 해요. 그러면 설사 성적이 낮아도 인서울 할 수 있어요. 이 부분에 대해 부모님들의 인식이 낮아요. 생각까지 한다 해도 실천을 못해요. 반장만 리더십이 아니라 동아리를 만들어서 활동해도 리더십이에요. 이걸 알려면 교육청에서 나온 수시 사례집을 읽어보면 돼요. 읽으면 힌트가 많이 보여요.  


저자가 보는 공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은 뭔가요? 


우선 예산이 없어요. 그런데 이상한 곳에 예산을 써요. 연구 개발 용역을 맡길 때도 이미 결론이 난 걸 맡겨요. 두 번째, 선생님들이 좀 더 보상을 받고, 학교가 노력하면 충분히 더 많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직장이었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선생이라는 게 안정적인 직장으로써의 가치가 더 높잖아요. 그렇게 되면 안 된다고 보고요. 정말 능력 있는 선생님들이 뜻을 펼칠 수 있는 곳이 되면 좋겠죠. 반드시 수업 잘해 아이들에게 인기 있는 선생님만 말하는 건 아니에요. 행정적인 것일 수도 있고, 학교 마케팅일 수도, 프로그램 기획일 수도 있는 거죠. 가진 능력을 펼칠 수 있는 인프라를 공교육도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지금도 학교 가보면 예전과 똑같아요. 학교가 바뀌면 막차라는 얘기가 있을 정도예요. 출판사나 문화 센터가 트렌드에 가장 빠르고요, 사기업이 그 다음으로 빠르죠. 다 하고 마지막에 가야 학교가 움직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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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코딩, 스마트 교육


13가지 교육의 트렌드를 짚었어요. 이 중 가장 주목하고 있는 트렌드 항목을 꼽는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중국과 코딩 부분을 잘 보셨으면 좋겠어요. 가장 가까운 미래에 갖춰야 할 소양으로 이 두 가지는 정말 중요하거든요. 전문가들끼리 이런 얘기를 해요. 정부가 아이들이 똑똑해지는 걸 원치 않는다고요. 만약 그걸 원했다면 중국어와 코딩 교육은 지금보다 훨씬 빨리, 훨씬 더 의무적으로 가르쳤을 거라고 이렇게 과격하게 얘기하시는 분들도 있는데요. 그만큼 이 두 가지가 중요한 거죠. 스마트 교육도 중요한데요. 앞으로 이걸 거스르기는 어려울 거예요. 스마트 디바이스를 어떤 식으로든 학교 교실에 도입할 겁니다. 그건 정책이나 사업을 떠나 지금 학생들이 터치 세대기 때문인데요. 이 세대에게는 스마트 교육이 훨씬 받아들이기 편할 거예요. 만지고, 확대하는 것들이 말이죠. 이 세 가지에 대해서는 관심 있게 봐야 하지 않을까 해요. 또 이 책뿐 아니라 관련 내용과 흐름을 많이 검색도 하시고 공부 하셔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스마트 교육은 책에서 말한 플립 러닝과도 닿아있어요. 


플립 러닝이란 기본적인 학습 내용에 대해 학생이 스스로 학습하고 교사와 다른 학생과의 상호 작용을 통해 생각하고, 표현하는 거죠. 입력을 스스로 하고 출력을 북돋아주는 방식인데요. 출력을 해봐야 입력이 잘 됐는지 알 수 있으니 좋은 방식이죠. 실제로 학교와 워크샵을 할 때 이런 ‘거꾸로 방식’으로 하면 아이들의 성적대와 상관없이 굉장히 능동적으로 움직이는 걸 볼 수 있어요. 미리 공부하는 영역에서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스마트 디바이스의 활용이 가능하겠죠. 출력하는 과정 역시 이런 디바이스를 통해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재미와 흥미를 불러일으킬 수 있고요.


이런 트렌드에도 불구하고 미래로의 전환을 막는 장애물도 많이 있습니다. 저자가 생각하는 장애물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우리가 아직 20세기라는 게 제일 커요. 20세기 패러다임의 낡은 사고방식이라는 거죠. 학교, 정치, 경제가 모두 20세기에 갇혀 있어서 그 이상 생각을 못해요. 우리는 말로만 2015년이지 사실은 1995년 수준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봐요. 입시 위주, 경쟁 위주의 교육도 문제죠. 자원이 부족하던 시절에는 집중 투자를 해야 하니까 솎아 내는 게 중요했어요. 지금은 자원 과잉 공급의 시대인데도 예전과 똑같이 해요. 솎아 내기 위해서 말이에요. 청소년기 학업 성취도만으로 낙인을 찍는 건 벗어나야 된다고 생각해요. 


성급한 제도화도 문제예요. 내 임기 안에 해야 한다는 욕심이요. 정부나 정치인, 경제인도 마찬가지죠. 뭘 할 때 학생이나 학부모에 대한 배려가 없어요.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는 고민 안 하고 만드는 사람은 만들기만 해요. 게다가 열심히 가르치는 것보다 평가하는 데만 목을 매죠. ‘안 할 거야? 시험 본다!’이러면 다 하거든요.(웃음) 편의주의죠. 


트렌드에 입체적으로 접근한 것이 흥미로웠습니다. 명암을 모두 짚고 있거든요. 그만큼 고민이 커지는 책입니다. 특히 어떤 대책이 결과적으로 사교육의 양을 증가시키는 결과만 낳는 경우를 많이 봐왔는데요. 이것은 장기적인 비전의 부재라는 측면도 있겠죠.


맞습니다. 근데 원래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는 정부나 기업은 흔치 않죠. 말로는 다 장기적이라고 말은 하지만 대부분 단기적이에요. 또한 지금은 이해 관계자가 너무 많거든요. 정책 입안자, 대학, 사교육 관계자 등의 이해관계가 워낙 복잡해요. 도로 사정과 똑같아요. 그때그때 덕지덕지 보수해놓고 장기적인 비전이 전혀 없죠. 


결국 현재 상황은 장기적인 비전을 수립, 수행할 수 있는 특출 난 누군가가 등장해 해결해주리라 기대를 해요. 역사는 항상 그런 사람 한 명 때문에 발전하거든요.(웃음) 계속 이 상태가 유지되진 않을 거예요. 늘 변화하고 발전해왔으니까요. 누군가 해답을 찾아줄 거예요. 그게 지금 당장이 아니라고 해서 포기할 순 없는 거죠. 


변화는 시작되고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지금 학교 현장에서는 마이스터고 진학에 대한 관심처럼 다양한 방향으로 실용적인, 현실에 맞는 선택들을 한다고 하거든요. 


드물게 그런 현상들이 생기고 있죠. 불량맘, 자연주의 교육도 비슷한 맥락인데요. 그렇다 하더라도 여전히 마이너리티라는 거죠. 우리나라가 마이너리티에 대해 잔인하잖아요. 선진국이란 건 소수도 살기 용이하고, 사람에게 큰 가치를 두는 건데 우리는 아직 거기에 못 미치고 있죠. 말씀하신 그런 친구들이 다수가 될 수 있을까 묻는다면 저는 가능하다고 봐요. 그리고 생각보다 급격하게 그렇게 될 거라고 보고 있어요. 영어 교육도 마찬가지예요. 지금은 정말 생활로써 배우거든요. 그렇게 배운 아이들이 선생님이 될 때쯤에는 확실히 바뀌겠죠. 


이 한 주제를 꼽아 묻는다면, 인성 교육에 대한 궁금증입니다. 인성교육을 평가한다는 것, 가능한 일일까요? 앞서 이야기했듯 부작용도 우려가 되고요. 


일단 인성 교육은 충분히 평가 가능해요. 학생부 역시 충분히 주관적이거든요. 평가하고 있죠. 문제없어요. 정성 평가를 자세히 뜯어보면 정량 평가로 한다는 겁니다. 주관식 서술형 답안지 채점하는 경우를 생각하면 돼요. 인성 교육도 마찬가지예요. 지극히 정성 평가지만 정량 평가화 할 거예요. 마치 김연아 피겨 스케이팅 평가하듯이 말이에요. 평가는 충분히 가능하고요. 


인성을 정성이든 정량이든 평가하는 게 올바르냐고 한다면 저는 올바르진 않지만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인성 평가는 평가라기보다 메시지예요. 설사 그것 때문에 사교육이 생기는 한이 있더라도 해야 한다고 봐요. 중요한 건 사교육까지 가지 않게 키우는 것이 중요한 거죠. 평가 한다는 게 탐탁하진 않지만 인성이라는 건 중요해, 그렇다면 부모가 어떻게 해야 할까를 많이 생각해야 해요. 착한 아이처럼 보이도록 말하는 걸 배울 게 아니라요. 


교육이란 사회적 요구를 반영하는 것이니까요. 인성에 대한 요구가 높아졌다고 볼 수 있겠죠. 


다음 세대에 물려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유산은 독서와 타인에 대한 태도라고 생각해요. 부모가 남에게 보이는 애티튜드, 결국 그것이 인성 교육이에요. 경비원, 청소부, 상담사, 국회의원 앞에서 똑같이 배려하고 평등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이는 게 인성 교육의 전부라고 생각해요. 물론 가정과 학교, 사회가 다 같이 잘하는 건 중요하지만 인성 교육은 가정을 학교나 사회가 이길 수 없어요. 특히 인성 교육은 입시 차원에서 생각하지 말고, 이 기회에 우리 세대가 구성원들끼리 대하는 태도에 있어 좋은 롤모델을 보여준다는 문제의식의 계기였으면 좋겠어요. 그런 차원에서는 부모 교육 같은 것을 확산해서 자연스럽게 밑으로 내려갈 수 있게 하는 것도 좋겠죠. 아이는 부모의 뒤를 보고 자란다고 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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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가질 수 있는 시스템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요. 교육 분야는 정치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가 없죠. 정책적인 제안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하실 것 같아요. 


정책 제안을 해본 적은 없는데요. 제일 제안하고자 하는 건 이거예요. 지금은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방향이잖아요. 엔트로피를 감소시키면 돼요. 어떻게 하느냐?(웃음) 특목고, 자사고 다 없애고, 수시 다 폐지하고, 수능과 논술 다 폐지하고, 학력고사를 원상 복구 시키면 간단해요. 그러면 울릉도에서도 교과서만 파서 서울대 과 수석 하는 것이 가능해요. 제 제안은 간단합니다. 당연히 저도 알아요. 시대가 요구하는 능력이 분석적 사고력, 논리력 등이니 평가가 다양해졌다는 것 잘 알죠. 그런데 대한민국이라는 곳의 입시정책이라는 건 인재를 뽑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어요. 기초한 환경과 상관없이 나도 인재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줘야 하거든요. 그런 차원에서 현재 시스템은 아주 최악의 시스템이죠. 희망을 잃게 되는 시스템이잖아요. 그래서 학력고사 원상 복구를 원하는 거죠.


굉장히 현실적인 이유지만 실현 불가능한 제안이기도 하네요. 


전문가들과 이렇게 얘기하면 핏대를 세워요. 자기들이 수시로 돈 벌고, 진로로 돈 벌기 때문에요. 입시로 돈 벌고, 컨설팅으로 돈 버는 사람들인데 절대 싫어하죠. 저는 스스로의 기득권을 놓는 한이 있어도 대의를 위해 일반 대중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고 진짜 필요한 인재 육성은 대학이 담당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 대학은 편의주의죠. 성적 좋은 학생을 뽑아서 내버려두고 알아서 인재가 되길 바라잖아요. 고등학교에서 대학은 희망을 균등하게 주고, 대학에서 시대가 요구하는 것들을 정말 열심히 가르쳐야 해요. 할 수만 있다면 이런 제안을 하고 싶어요. 


이병훈 교육연구소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떤 비전을 가지고 계신지 함께 답변 부탁드립니다.  


창업한 사교육 회사를 마무리하고 학교와 기업을 통해 청소년들에게 진로, 입시, 학습 멘토가 되어주고자 시작한 연구소입니다. 저는 이런 생각이에요. 적어도 몰라서 못했다는 아쉬움은 안 생기게 하고 싶어요. 학생들에게 꿈을 향해 도전하기 위한 용기를 주고, 정확한 진학입시 정보를 통해 공부의 이유와 방향을 찾아, 제대로 된 학습법으로 자립하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비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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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의 가치를 짓다이병훈교육연구소 저 | 다산에듀
2016년 교육 트렌드를 4가지로 나눠 전망한다. 첫 번째, ‘미래 교육’에서는 ‘소프트웨어 코딩 교육’과 ‘거꾸로 교실, 플립 러닝’이라는 테마로 접근한다. 두 번째, ‘인성?감성 교육’에서는 인성교육법 시행과 관련한 ‘인성 교육’과 강남을 떠나 자연으로 돌아가는 ‘아날로그 교육’에 대해서 알아본다. 세 번째, ‘학교 안 교육’에서는 ‘진화한 학교의 진로교육, 자유학기제’와 달라진 수학 및 영어절대평가, 그리고 영수의 자리를 노리는 국어에 대해 알아본다. 마지막으로 ‘입시 제도’에서는 변화된 고입과 대입 생태계 및 새로운 사교육의 등장, 글로벌 인재 육성의 보고, 국제학교에 대해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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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 기고] 중년 탐정 김상중이 말하는 ‘그것이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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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알고 싶다』는 대한민국 대표 시사 프로그램인 SBS <그것이 알고 싶다>가 포착한 다양한 아이템을 주제별로 더듬어, 한국의 지난 20여 년의 격동의 현대사를 읽어낼 수 있도록 구성한 책이다. 책에서 다루는 방영분은 약 80개이며, 성격이 비슷한 29개의 꼭지로 분류했다. 이형호 군 유괴 사건, 화성 연쇄살인 사건 등 유명한 미제 사건은 물론, 강기훈 유서 대필 조작 사건, 재야인사 장준하 의문사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들, 형제복지원, 세 모자 성폭행 사건 등 현재에 닿아 있는 사회적 이슈들을 다양하게 포함하고 있다. 각각의 주제 글 뒤에는 해당 분야의 전문가, 실제로 취재를 한 담당 PD 등이 해당 이슈에 관해 좀더 깊이 있게 파고들어 전문성을 높이는가 하면 당시의 생생한 숨결까지 함께 전한 원고를 실었다.


또한 역대 진행자 문성근, 정진영, 김상중을 만나 <그것이 알고 싶다> 진행 경험에 대해 나누고, 함께 <그것이 알고 싶다>가 걸어온 역사와 만들어갈 미래를 이야기한 내용을 책 안에 담았다. 현재 진행자인, ‘중년 탐정’이라는 별명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는 김상중은, ‘세월호’ 관련 내용을 방송하며 마지막 멘트를 하며 눈시울을 붉힌 사연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김용언 <미스테리아> 편집장과 이현 엘릭시르 편집자가 <그것이 알고 싶다> 1000회를 맞아 김상중을 만났다. 아래 인터뷰는『그것이 알고 싶다』책에서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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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방송 때는 쉽지 않았다


엘렉시르(이하 ‘엘’)_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이 어떻게 처음 제안을 해왔는지 궁금하다.


김상중(이하 ‘김’)_실은 오래 전, 문성근 선배께서 첫 진행자로 활약하시고 물러나실 때 처음 제안을 받았다. 그 무렵 나는 SBS에서 생방송 프로그램 〈추적 사건과 사람들〉을 진행했기 때문에 잘할 수 있겠다고 생각하셨던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다양한 이슈를 다루는데, 그런 프로그램을 진행하기에는 내 연륜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나는 30대였으니까. 여담으로 이야기하자면, 아무리 잘해봐야 문성근 선배의 아성을 넘을 수는 없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웃음)


시간이 꽤 흐른 후 2008년에 다시 제안을 받았고, 이 정도 나이를 먹었으면 프로그램 진행을 하는 데에 무리가 없을 거란 판단이 섰다. 그때는 당연하게, 흔쾌히 받아들였다. 2008년 3월 1일, 659회의 ‘숭례문 화재’에 대한 내용을 처음으로 진행을 시작했다. 〈추적 사건과 사람들〉의 경험 덕분에 어느 정도 내공이 쌓였던 것 같다. 이런 시사 프로그램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자세, 태도, 생각 등이 큰 도움이 되었다. 물론 그전에 〈그것이 알고 싶다〉에 대해서 공부를 안 할 수가 없었다. 이전 진행자들 스타일도 상세하게 모니터링하며 공부했다.


엘_ 안 그래도 〈추적 사건과 사람들〉의 예전 방송분을 찾아보니 대본을 손에 쥔 채 진행했어야 했더라. 시청자 입장에서 진행자가 불편하고 힘들어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_방송 전에 대본을 보거나 프롬프터를 쓸 수가 없던 상황이었다. 생방송인데다 제보가 들어오면 즉각적으로 제보를 받고 추적을 해야 되는 상황이었다. 자료 화면이 나오는 동안을 이용해서 제작진이 다음 대본을 써서 건넸다. 나는 그 ‘쪽대본’을 쥐고 계속 흘끔흘끔 내려다보며 진행해야 했다. 그때는 그게 조금 용서가 됐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보면 상당히 불편해 보일 수 있다.

 

엘_ 아무래도 생방송이다 보니 진행자로선 애가 타는 상황이었을 것 같다.

 

김_긴장을 많이 했고, 자료 화면이 거의 끝나가는데도 대본이 안 넘어올 땐 답답했다. 내가 나름대로 필요한 멘트들을 막 써보기도 했다. 어쨌거나 그러한 경험이 〈그것이 알고 싶다〉를 할 수 있게 되는 기본적인 바탕이 되어줬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역시 고마운 프로그램이다.

 

엘_ 〈그것이 알고 싶다〉는 시사 보도 프로그램으로선 독특하게 배우들을 진행자로 선정해왔다. 앞선 진행자로 문성근, 박상원, 정진영 배우들이 거쳐갔는데, 이전 진행자들과 어떤 차별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을 했는지, 혹은 어떤 부분은 앞선 진행자의 스타일을 그대로 따라가도 되겠다 생각했을지 궁금하다.

 

김_ 따라간다는 생각은 없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누구든지 자기만의 개성을 보여줄 수 있는 진행 방식을 고민할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앞선 진행자들이 워낙 프로그램을 잘 이끌어왔고 또 잘하셨다. 그분들이 해왔고 만들었던 것들에 누가 되지는 않아야겠다는 것이 첫 번째 생각이었다. 나름대로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줘야 되겠단 생각도 들었다. 그분들과 나는 어차피 배우이기 때문에, 같은 배역이라도 누가 맡느냐에 따라서 인물이 전부 다르게 보인다. 각각 하나의 인물을 창조해내고 해석했던 입장에서, 나 역시 진행자로서 나만의 스타일을 보여줘야 하지 않겠는가 싶었다.


배우가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장점은 시청자들을 조금 더 집중시킬 수 있다는 부분이다. 나도 진행하면서 연기를 한다. 대사의 강약을 조절하고, 말을 늘였다 줄였다 하는 템포도 신경쓴다. 사실 그래서 〈그것이 알고 싶다〉를 시작할 때 큰 부담감은 없었다. 더군다나 녹화 방송이니 더욱 부담 없었다. (웃음)

 

엘_ 〈그것이 알고 싶다〉는 카메라 앞에서 일종의 기나긴 독백을 해야 하는 진행이다. 그래서 혼자 움직일 때 타인에게 자연스러워 보이는 사소한 디테일이 더 중요해질 것이다. 예를 들면 손을 어떻게 움직일까, 혹은 여기서 일어나는 것이 나을까 등을 판단해야 할 텐데, 어떻게 구성했는지 궁금하다.

 

김_ 사전 리허설을 통해서 구성한 대로 하는 건 아니다. 어떻게 보면 모노드라마 같은 느낌을 줄 수 있겠다. 카메라 앞에서 어떻게 움직이느냐, 그리고 움직임에 어떤 디테일을 줄 것이냐는 진행자가 결정할 몫이다. 손동작을 비롯한 사소한 움직임들을 굳이 계획한 대로 의지를 가지고 내보이는 건 아니다. 대사를 읊으면서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동작일 뿐이지, 그런 것까지 계산해서 할 수는 없다. 어떻게 보면 그것 또한 배우로서의 장점이다. 무대에서 연기하면서 이리저리 이동하는 것에 훈련되어 있기 때문에 시청자들이 보기에 불편하거나 어색함이 덜할 것이다. 배우가 진행자인 〈그것이 알고 싶다〉의 큰 장점이 아닐까 싶다.

 

엘_ 시청자들이 가장 인상적인 진행으로 꼽는 모습은 ‘세월호 사건’ 방송 당시 마지막 멘트에서 내비쳤던 눈물이다. 혹은 범죄 아이템에서 범죄자들이 말도 안 되는 행동을 보여줄 때 “그런데 말입니다” 라고 말하는 순간 보일 듯 말 듯한 냉소가 얼굴에 스쳐 지나가기도 한다. 진행자가 감정을 내비칠 때 시청자들은 그 감정에 깊이 공감하게 된다. 감정을 노출하는 데에 제작진들과의 조율이 있나

 

김_제작진과 감정선까지 조율하지는 않는다. 무대에서 진행하는 것만큼은 내가 해야 할 몫이다. 제작진들이 피와 땀을 쏟으며 취재해온 것들을 편집해서 방송을 준비하면, 내 몫은 그 내용을 스튜디오에서 온전하게 전달하는 일이다. 제작진들이 레시피를 짜오면, 그걸 잘 요리해서 맛있는 내용으로 전해주는 것. 다만 항상 〈그것이 알고 싶다〉의 최초의 시청자이기 때문에, 내가 어렵다고 생각하거나 잘 이해가 안 가거나 한 번에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제작진에 수정 제안을 한다. 내가 어렵다고 느낀다면 시청자도 그럴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에게 방송 내용을 잘 전달하기 위해서, 어렵지 않은 말로 쉽게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방송에서 어려운 말을 쓰는 일은 자제하고 있다. 진행자이기 때문에 중립을 지켜야 하는 것이 맞다. 하나 때때로 나도 시청자와 같은 감정을 가질 때가 있다. 내용에 따라 화도 나고 슬퍼진다.


감정을 어느 정도 조절하면서 진행을 하는 편이지만 세월호 방송 때는 쉽지 않았다. 녹화에 들어가기 전, 대본을 읽기만 하는데도 가슴이 꽉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아, 이건 안 되겠구나, 싶었다. 담당인 배정훈 PD에게 “이 부분에서 감정이 좀 걸린다. 진행을 하다가 감정 조절이 안 될 수도 있다. 만약에 그렇게 된다면 편집해서 그 부분은 자르든가, 아니면 그냥 가야겠다”고 이야기했다. 역시 아니나 다를까 대본을 보면서 북받쳤던 부분에서, 진행을 하던 도중 또다시 울컥해버렸다. 진행자로서 중립을 지키지 못했던 모습을 어쩌다 보여드리게 된 그 부분에서 시청자들이 많은 공감을 해주신 것 같다.


그 외에 필리핀 납치 살인 사건 방송분에 내 의견이 반영되었던 것이 기억이 난다. 피의자들은 안양 환전소에서도 살인을 저질렀던 죄질이 나쁜 친구들, 아니 나쁜 놈들이다. 그런 놈들이 필리핀에 가서 한국 여행객들을 납치하고 고문하고 죽이기까지 했다. 시신은 자신들의 거주지 바닥에 묻고, 가족들에게 연락해서 피해자들이 아직 살아 있는 것처럼 말하며 돈을 요구했다. 사람이 아니라 악마라고 표현해도 되겠다. 방송에서는 범인들의 얼굴을 모자이크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나는 이들의 인권을 고려해주는 게 용납되지 않았다. 그래서 제작진에게 제안했다.


“최소한의 예의만 지켜서 모자이크를 해주되, 모자이크를 해도 누구인지 알아볼 수 있도록, 실눈 떠서 보면 누구인지 보이도록 살짝 하자.”


방송이 나가고 피의자의 인권에 대한 문제 제기가 올라올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런 이야기는 전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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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락 없이 악하기만 한 역할은 하지 않는다


엘_ 매회 방송마다 모습이 달라진다. 안경을 쓰고 진행할 때도 있고, 앞머리를 내리거나 올리는 등의 변화가 있다. 방송 내용에 따라 이런 분장이라든가 목소리 톤이라든가 제스처나 억양 등이 달라지는 건가.

 

김_ 하나의 프로그램을 같은 사람이 너무 오래 시간 진행하면 정형화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 늘 같은 모습, 같은 목소리 톤, 비슷한 의상으로 진행을 하다 보니 도식화된 모습으로 시청자들이 볼 것 같다. 그래서 〈그것이 알고 싶다〉 1000회 기자 간담회 때도 “지금도 〈그것이 알고 싶다〉는 계속 진화하고 있다”는 표현을 썼다. 프로그램과 마찬가지로 저 역시 계속 진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날그날 방송 아이템의 성격에 따라서 의상도 바꾸고 목소리 톤도 바꾸곤 한다. 무거운 아이템을 진행할 때는 검은 의상, 좀더 가벼운 내용을 진행할 때는 밝은 의상을 선택한다. 또한 사건 현장으로 나가서 진행하는 것을 선호한다. 그러면 화면이 좀더 생생해지고 시청자들의 집중도도 높일 수 있다. 변신할 수 있다는 건 연기자의 장점이다. 역할에 따라서 머리도 바꾸고, 안경도 껴보고, 의상도 바꿔 입을 수 있다. 늘 이렇게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다.

 

엘_ 최근 들어 야외 촬영 비중이 상당히 커졌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 중 하나가 800회 특집이었던 화성 연쇄살인 사건 편이다. 사건의 재구성 화면에서 당신이 범인이 걸었을 법한 길을 걷고 범인이 이용했던 버스를 같이 타는 등의 적극적인 개입이 흥미로웠다.

 

김_ 진화하고 있는 PD들의 모습 중 하나이다. 예전에는 사건을 단순하게 재연해서 보여주기만 했는데 이제는 재연도 상당히 드라마틱해졌다. 지금의 제작진들은 미국의 수사 드라마 등을 참고하며 어떻게 컷을 잡을 것인지, 미국 드라마에 익숙한 요즘의 시청자들을 어떻게 잡을 수 있을지를 고민한다. 시청자들은 〈그것이 알고 싶다〉를 보면서 “미드를 보는 것 같다”, “미드보다 더 재미있다”고 이야기한다. 이런 이야기가 나올 수밖에 없다. 제작진은 방송 구성을 촘촘하게 하기 위해서, 디테일을 살리기 위해서 정말 다각도로 노력한다. 탐정이 수사를 하듯이 ‘내가 범인이라면 여기서 이렇게 했을 것이다’ 하고 추리하고 취재해서 보여준다. 시청자들은 자연히 연출자의 방향을 따라가며 함께 추리한다.

 

엘_ 야외에서 세트장을 꾸며서 찍을 때도 있지만 한밤에 저수지 근처에서 촬영을 한다든지 한겨울에 시골 억새풀 숲에서 촬영하기도 했다. 뉴스 기자들이 생방송 리포팅을 하는 것처럼 진행해야 하는데, 야외 촬영의 어려움은 어떤가.

 

김_당연히 어렵고 힘들다. 스튜디오에서 할 때는 프롬프터에 흐르는 대사를 보면서 읽을 수 있는데 야외로 나가면 대본의 많은 분량을 외워야 한다. 진행의 흐름 때문에 NG를 많이 낼 수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 전달력과 집중도를 위해서 기꺼이 야외로 나가자고 제안한다. 물리적으로는 힘들지만, 그 외에는 힘들지 않다.


처음 진행하게 됐을 때 제작진에게 당부했던 점은 〈그것이 알고 싶다〉 앞에 내 이름을 넣지 말아달라는 것이었다. 왜냐면 이 프로그램은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지, ‘김상중의 〈그것이 알고 싶다〉’가 아니기 때문이다. 적어도 내 이름을 붙이려면 내가 기획, 아이템 선정, 취재부터 일정 부분 참여했어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내 이름을 붙여도 부끄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제작진들이 가지고 온 레시피를 보고 요리를 하는 역할에 불과하다. 그래서 몸이 힘들어도 야외에 나가서 진행을 하자는 주의다. 그것이 시청자들로 하여금 생생하고 긴장감 있게 내용이 전달되는 좋은 방법이니까. 앞으로도 야외 촬영이 필요하면 계속 나갈 생각이다. 

 

엘_ 매주 같은 날 정해진 시간에 녹화와 녹음을 마쳐야 한다는 것이 배우에게는 제약일 수 있다. 매주 금요일에는 다른 일정을 잡을 수 없다는 점 때문에 곤란한 건 없었나.

 

김_금요일에는 다른 일을 전혀 할 수 없다. 드라마든 어떤 다른 방송을 하든 나는 금요일을 무조건 양보 받는다. 다른 분들도 다 아신다. 드라마 제작진들이 ‘저 사람은 금요일에는 〈그것이 알고 싶다〉 촬영이 있기 때문에 다른 일은 못 한다’고 이해해준다. 물론 4박 5일이 넘는 여행도 가지 못한다. (웃음)지금까지 시사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를 진행하면서 지식인의 이미지를 얻었다. 나름대로 보람도 느끼고 의무감도 느낀다. 배우이지만 배우로서는 할 수 없는 이야기를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서 하고 있다. 금요일을 활용하지 못하는 일정의 한계는 아쉽지만 내가 희생하고 감수해야 할 부분이다. 이런 점 때문에 연기를 할 때 배역 선정에서 폭이 좁은 건 사실이다. 〈그것이 알고 싶다〉 진행에 걸림돌이 될 것 같으면 그 배역을 선택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이 알고 싶다〉에 애정을 가지고 있고, 프로그램의 진행자로서 많은 것을 얻고 있기 때문에 불편하다고 여기지 않는다.

 

엘_ ‘중년 탐정’이라는 별명도 생겼는데 연기자로서 이런 고정된 이미지가 부담스럽지는 않은가.

  

김_배우 김상중 하면 〈징비록〉의 류성룡, 〈개과천선〉의 차영우 변호사, 아니면 〈추적자〉의 대통령 후보 강동윤보다 〈그것이 알고 싶다〉가 먼저 떠오른다. 그리고 “그런데 말입니다”도. 그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감사하게도 드라마 제안도 많이 들어온다.

 

엘_ 진행자의 이미지 훼손을 꺼린다고 했는데 그럼에도 그동안 맡은 역의 폭이 넓다. 악역을 맡는 것도 그리 꺼리지 않는 것 같다.

 

김_악역을 맡더라도 맥락 없이 악하기만 한 역할은 하지 않는다. 〈추적자〉에서도 강동윤이라는 인물은 일개 형사의 딸을 살해한 범죄와 연관이 있는 사람이지만 나름의 진정성이 있다. 악역이라고 해도 단순히 나쁜 사람이 아니라 악하게 된 과정을 납득할 수 있기에 거기서 이야기를 끄집어낼 수 있는 인물이 있다. 〈나쁜 녀석들〉의 오구탁처럼 딸을 잃고 복수의 칼날을 세우는 인물도 그렇다. 그런 역할들은 〈그것이 알고 싶다〉를 진행하는 데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고 여긴다.

 

엘_ 배우들은 고통스러운 역할을 맡으면 거기서 빠져 나오기 위해 노력을 많이 기울인다고, 매일매일 촬영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서도 역할과 자신을 분리해야 한다고 들었다. 당신은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매주마다 너무나 괴로운 이야기를 날것으로 가장 먼저 보고, 그런 괴로운 이야기를 시청자들에게 전달까지 해야 한다. 어떻게 극복하는지 궁금하다.

 

김_ 방송이 끝나면 바로 잊어버리는 편이다. 방송 후에도 계속 떠올리면서 도대체 이걸 어떻게 해야 할까, 정의를 위해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고민하지 않는다. 나는 드라마가 끝나도 빠져나오는 과정 없이 바로 잊고 지워버린다. 머릿속에 다 담아두고 있는다면 끝날 때마다 정신과에 가서 상담받아야겠지. 어떤 드라마를 하더라도 역시 빨리 잊어버린다. 끝남과 동시에 시작이기 때문이다. 내 일이 계속 과거의 무엇에 구애받아서는 안 된다. 그러다 보니 〈그것이 알고 싶다〉에 대해서도 한 주제가 끝나면 바로 잊고 새로운 것을 곧바로 시작한다.

 

엘_ 다행이다. 가끔 볼 때마다 제작진과 진행자가 괜찮을까 걱정스러울 때가 있다.

 

김_ 제작 PD들은 나가서 피의자와 피해자를 모두 만나고 관계자들을 찾아내 취재한다. 그 와중에 예상하지 못한 일들도 겪고, 쫓고, 쫓아가야 하니 그들이 더 힘들겠지.

 

엘_ 다른 시사 프로그램이나 비슷한 역할이 나오는 영화 등을 참고하는 경우도 있나.

 

김_다른 시사 프로그램들을 볼 때는 어떤 아이템을 어떻게 풀어가는지를 본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다루지 않은 사건들을 이렇게 풀어가는구나, 하는 부분을 중점적으로 본다. 진행자가 어떻게 하는지를 의식하며 보진 않는다. 가끔 내 ‘짝퉁’ 같다는 느낌이 올 때도 있지만. (웃음)

 

엘_ ‘중년 탐정’이라는 별명답게, 혹시 탐정이나 형사가 등장하는 미스터리 소설도 읽는지 알고 싶다. (웃음)

 

김_소설은 가끔 읽고 주로 에세이, 인문학 서적을 많이 읽는다. 탐정이라는 별명을 지어주신 것은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런 것 역시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이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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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생활을 하게 되었다


엘_ 8년 전 〈그것이 알고 싶다〉를 처음 시작할 때와는 시청자와 제작진 모두 크게 달라졌다. 또한 〈그것이 알고 싶다〉에 대한 인식과 김상중이라는 진행자에 대한 인식도 달라졌다. 진행자에 대한 시청자들의 열띤 반응이 오기 시작한 것을 체감한 순간이 혹시 기억나는가.

 

김_기억이 잘 안 난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그것이 알고 싶다〉가 하나의 브랜드가 되어 브랜드 파워를 발휘하고, 열성 팬들이 방송 내용을 두고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었다. 시사 프로그램에서도 사람들이 이렇게 재미를 발견해서 딱딱하게 보지 않고 열띤 응원도 보낼 수 있음을 알았다. 내가 진행자로서 역할을 무사히 수행하고 있다는 의미도 있겠지만, 역시 현장에서 발로 뛰는 PD들의 열정이 계속 진화해가면서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게 된 게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다.

 

엘_ 특별히 기억에 많이 남는 회차가 있다면 무엇인가.

 

김_ 〈그것이 알고 싶다〉 350여 회를 진행하면서, 비슷한 말을 참 여러 번 반복했다. “정부와 관계 당국에 촉구합니다”를 비롯, “○○를 해야 합니다”라고 거듭 당부했다. 그 문장을 지난 8년 동안 계속 반복했다는,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반복해야 할 것 같은 슬픈 예감이 들어 허무하다.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물론 많은 사회 이슈들이 공론화되고 법제화되어 바뀌기도 했다. 알려야 할 것을 알렸고, 잡아야 할 사람을 잡았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야 한다는 비애감이 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릴 때까지 두드리자는 것이 〈그것이 알고 싶다〉의 취지이다.한일 관계, 범인을 잡지 못한 살인 사건, 세월호같이 하나의 사건 사고이긴 하지만 뜯어보면 우리 사회의 총체적인 문제를 담고 있는 사건들 모두가 기억에 남는다. 하나하나 다 소중한 아이템들이다.

 

엘_ 〈그것이 알고 싶다〉를 가장 처음 보는 시청자로서 ‘어, 오늘 재미있겠는데’라는 생각이 들거나 개인적으로 매력을 느끼는 분야가 있나

 

김_ 이 프로그램은 우리 사회의 모든 내밀한 부분을 아우를 수 있는 총체적인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때문에 특정 아이템을 선호하기보다는, 시청자들이 아이템들을 재미로 분류해서 편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예를 들어 매니아들이 방송을 보고 가장 이야기를 많이 나누는 때는 미제 사건으로 남은 미스터리한 살인 사건이나 풀지 못한 수수께끼 등이다. 확실히 의문의 범죄 사건이 화제성이 높다. 그런 내용을 진행하게 되면 ‘시청률이 잘 나오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결과적으로도 그 예측이 종종 맞는다.


하지만 재미없을 것 같은 소재에도 시청자들이 관심을 좀 가져주고 갑론을박을 해줬으면 하고 바란다. 예를 들어 한일 관계에 대해서라면 위안부, 역사관, 일본 우익들이 한국을 보는 시선, 일본에 가 있는 우리나라의 문화재 등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예전에 독도에 대해서 2부작 특집으로 방영했었는데, 시청률도 낮고 관심도 받지 못했다. ‘참 괜찮은 주제를 다뤘다’고 호평을 받을 수 있지만, 호평으로 끝나는 것이 문제다.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고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가 되어야지만 폭넓은 이야기를 다룰 수 있을 텐데 아무래도 방송 프로그램이다 보니 시청률을 무시할 수가 없다. 시청률이 있어야지만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보게 되고, 시청률이 있기 때문에 〈그것이 알고 싶다〉가 계속 진화하는 것이니까. 여기서 더 발전을 하려면 편향된 이야기에만 관심을 가지지 않고 다양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


엘_ 〈그것이 알고 싶다〉 진행한 후 개인적 삶에 변화가 있었나.

 

김_바른 생활을 하게 되었다. 진실을 이야기하려는 사람이 바르지 못하면 어떻게 바른 이야기를 할 수 있겠는가.

 

엘_ 사소한 규칙, 예를 들어 운전할 때 규정 속도를 매번 지킬지, 주황색 신호에 엑셀을 밟을지 브레이크를 밟을지 이런 것들에도 주의하는 편인가? (웃음)

 

김_ 갈등이 될 때가 있다. 〈그것이 알고 싶다〉 진행자를 하면서 혜택을 받을 때가 있는데, 방송 일을 할 때 내가 직접 운전하지는 않지만 타고 다니는 차가 교통법규를 완벽하게 지키지는 않는 경우가 있다. 신호 위반을 할 수도 있고 차선 위반을 할 수도 있다. 그러다가 경찰에 잡히면 그분들이 이해를 해준다. “아유, 바쁘셨나 봅니다. 가시죠” 하면서. 식당을 가더라도 알아보고 좋아해주시고 더 잘 대해주신다. 연예인을 두고 공인이라는 사람들도 있지만 엄밀히 얘기하면 공인보다 유명인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대중의 많은 관심을 받고 많은 혜택을 누릴 수 있다. 그러니까 지켜보는 분들에게 실망을 주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 특히나 내가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으니 더더욱 유의한다. 전에는 바르게 살지 않았다는 건 아니지만 지금은 더더욱 바르게 살려고 노력한다.

 

엘_ 문성근 배우는 〈그것이 알고 싶다〉를 진행할 때 강남의 고액 과외 관련 방송 준비 과정에서 돈이 들어 있는 케이크 상자가 배송됐다는 추억을 들려주었다. 혹시 비슷한 일은 없었나.

 

김_ 나한테 뇌물이 들어오는 경우는 없었다. 1000회 특집 같은 경우, ‘대한민국에 정의를 묻다’라는 주제가 소위 사회 지도층이라고 일컬어지는 이들에 관한 이야기였다. 많은 관심을 받은 만큼 굉장히 예민할수 있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혹시 신변에 위험이 있지 않나, 하고 걱정해주시는 분들이 많다. 그런 일은 없었다. 돈 봉투가 전달된다든가, 간접적으로 위협을 받는다든가 하는 일은 전혀 없었고, 잘 봤다며 팬이라고 부산에서 어묵 세트를 보내주신 적은 있다. (웃음)


음, 주변 사람들을 통해서 ‘이런 것 좀 취재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오긴 했다. 그런데 개인적인 문제들이기 때문에 들어줄 수는 없었다.

 

엘_ 1000회 특집 3부작을 보며 이야기가 너무 강해서 놀랐다. 정말 고생이 많다.

 

김_ 그런 것이 〈그것이 알고 싶다〉의 고유한 특성이다. 다른 시사 프로그램에서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이렇게 강한 이야기를 해왔기 때문에 지금의 〈그것이 알고 싶다〉가 될 수 있었다. 수위에 대한 고민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굴하지 않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해왔다. ‘사모님의 이상한 외출?여대생 청부 살인 사건’에 대해서 MBC의 〈시사매거진〉에서 먼저 다루었었다. 그렇지만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방송한 것과는 방향이 달랐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방송한 이후 전 국민의 공분이 일어나 결국 형 집행정지 제도에 문제를 제기하는 성과도 이루었다.

 

엘_ 〈그것이 알고 싶다〉가 이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김_〈그것이 알고 싶다〉가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거창하게 얘기하고 싶지는 않다. 〈그것이 알고 싶다〉가 20년 동안 방송을 하면서 쌓아온 것이 〈그것이 알고 싶다〉의 의미이지, 그 이상의 무언가를 부여하고 싶지는 않다. 지금껏 해왔듯이, 시청자가 느끼는 것이 〈그것이 알고 싶다〉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이 프로가 국민 신문고라느니, 대한민국 방송 중의 유일한 양심이라느니 이야기할 수는 없다. 〈그것이 알고 싶다〉도 사람이 만들고 있기 때문에 시행착오를 겪을 때가 있다. 사실이 아닌 걸 사실이라고 착각하고 잘못 내보낼 때도 있었다. 그럴 때는 당연히 우리도 채찍질을 받아야 한다.

 

엘_ 시청자와 책의 독자들에게 한마디 부탁드린다.

 

김_ 1000회까지 오기 위해 많은 PD, 작가, 그리고 수많은 제작진이 수고해줬다. 시청자도 함께 참여하고, 비판할 일에 있어서는 비판하고, 잘한 일에는 칭찬해주셨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시청자와 함께 만들어왔다. 너무 재미있는 아이템만 보려고 하지 말고 사회 전반의 모든 것들을 이야기할 수 있도록 관심을 부탁드린다. 앞으로 2000회까지 가려면 제작진의 노고도 있어야겠지만 시청자들도 함께 힘을 내주어야 한다. 좀더 알고 싶은 것, 미처 듣지 못한 것은 1000회를 기념하며 나온 이 책을 통해 느껴달라. 〈그것이 알고 싶다〉가 한 방송국의 대표 시사 프로그램이 아니라 우리 국민 모두에게 진실을 알릴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하길 바란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함께 해야 할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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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알고 싶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 저 | 엘릭시르
단행본 [그것이 알고 싶다]는 이 프로그램의 탐구적 자세와 범죄 추적에 관한 다각도의 시각과 밀도 있는 진행을 사랑하고 열광하는 2000년대 중후반부터 새롭게 유입된 젊은 시청자들에게, 프로그램의 역사와 의의를 프로그램 자체만큼이나 흥미진진하게 펼쳐줄 수 있는 입문서의 역할을 하고자 기획되었다. 1000회 방송 목록 중 대중적 화제를 고려하여 편집부가 제안한 목록과, [그것이 알고 싶다] PD들이 꼭 들어갔으면 하고 바랐던 목록을 결합하여 28개의 주제를 선정했다.



신현림 “책을 내고 나니 시가 자꾸 써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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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으니까요.” 시인 신현림이 라이팅북 『글 쓰고 싶은 날』을 펴내면서 보탠 말이다. 다소 진부해 보이는 책 제목은 책장을 여는 순간, 다른 얼굴을 한다. 시인이 오랫동안 좋아했던 시와 세계적인 화가들의 명화와 드로잉의 조합은 조금도 낯설지 않다. 김종삼의 「북 치는 소년」과 오딜롱 르동의 드로잉이, 황지우의 「나는 너다」와 시냐크의 그림이 이토록 잘 어우러질 줄을 누가 알았을까. 시인으로 사진가로 전방위로 활동하고 있는 신현림은 여전히 로댕의 "감동하고, 사랑하고, 희구하고 전율하며 사는 것이다"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철학이든 예술이든 어려워 봤자 인생 얘기”라고 말하는 신현림 시인, 언제나 시대와 호흡하는 작가가 되길 꿈꾸는 그에게 “글 쓰고 싶은 날은 언제냐고” 물었다. 


글쓰기의 기본은 솔직함이다.

그 솔직함이

명확한 비유와 어울려 매혹적이면 더 시적이고,

예술적이 되니까.

자신을 감추지 마렴.

말하듯이 써보렴.


사람은 원래 불안한 거야.

불안할 때 예술을 즐기고

따라 쓰다 보면

불안은 자신감과 빛으로 바뀌고 만다.


(「불안의 솔직함」, 『글 쓰고 싶은 날』 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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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예술도 시적인 아름다움이 있어야


‘신현림의 라이팅북’이라는 부제를 달았는데, 평범한 라이팅북과는 조금 다릅니다. 


‘비밀 상상력 노트’라는 가제가 있었어요. 제 청춘 노트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책이라서요. 그간 잊고 지냈던 제 스케치와 쓰기 노트, 세계 최고 화가들의 명화와 드로잉, 명시들을 묶었어요. 아트 디렉터로도 참여한 책이에요. 책을 만들면서 초심과 다시 만났어요. 책을 엮고 나니까 시가 자꾸 써지고, 시에 대한 각오가 달라졌어요. 좋은 시와 산문은 발표 시기와 상관 없이 언제 봐도 좋은 것 같아요. 


‘신현림의 글 생각, 예술 생각’이라는 짧은 산문부터 책이 시작됩니다. ‘낙서부터 시작할까’라는 제목이 정겹더라고요. “따라 쓰기 전에 바스키아나 키스 해링도, 뱅크시도 울고가게 낙서해줘. 그래피티가 따로 없게”라고 쓰셨는데요.


그동안 낙서처럼 글을 쓴 게 권 수로 따지면 스무 권쯤이 될 거예요. 시를 쓰고 좋아하는 이미지를 옮겨 그리는 일을 사랑했던 것 같아요. 피톤치드가 가득한 숲이라고 할까요? 사과밭 같은 곳에서 숨을 쉬는 느낌이에요. 요즘도 사과를 놓고 여러 사람의 사진을 찍고 있는데요. 지방 촬영도 가고 전시도 하고 있어요. 사진은 사진대로, 글은 글대로, 시는 시대로 쓰고 있어요. 


“요즘 누가 시를 외워?” 라는 말도 하지만, 여전히 좋은 시들을 많이 발표되고 읽히고 있습니다.


시는 모든 예술 분야의 밑바탕이에요. 땅과 같은 존재죠. 어떤 예술도 시적인 아름다움이 있어야 제대로 꽃피운다 생각해요. 시인으로 데뷔 전에 지금은 정신과의사인 남동생과 시를 배우러 다닌 적이 있어요. 함께 시를 외었던 날의 기억은 생생합니다. 그만큼 시는 인간 영혼의 고향이에요. 고향에서 비로소 마음을 누이고, 땅과 나무와 하늘 등 대자연 속에서 숨을 제대로 쉰다고 할까요? 자신의 영혼을 마주할 수 있는 장소가 시의 땅이에요. 좋은 시들은 그렇게 잊었던 영혼을 찾아줘요. 이번에 책을 쓰면서 20, 30대 초반에 좋아했거나 자극을 받았던 시들을 많이 꼽았어요. 동시대 시인들의 뜻깊은 시 한 조각들도 골라봤고요. 필사를 해도 좋고 그냥 읽어도 좋다고 생각해요. 흰 밥알을 천천히 씹듯 음미하면서 따라 쓰다 보면, 자기만의 글도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오랫동안 창작 노트를 써왔기 때문에 이 책도 탄생할 수 있었겠어요. 


노트 기록이 없었더라면 지금의 창작 활동이 다소 더디고 힘들었을 것 같아요. 책이나 영화를 보더라도 꼭 짧게라도 감상과 대목대목 메모해 남겼으니까요. 본격적으로 시 공부를 할 때는 철학. 미학이론서, 영성책까지 본 것들을 꼼꼼하게 기록했어요. 사람은 글을 씀으로써 인식이 생긴다고 생각해요. 읽었다는 느낌을 너머서 기록을 해야, 인생을 바라보는 관점이 제대로 잡히고 그 진폭이 넓어져요. 아무 기록도 남기지 않으면 아무런 기억도 존재하지 않아요. 쓴다는 것은 은 곧 영혼을 새기는 일이에요. 나만의 것으로 남기려면, 또한 상상력을 가지려면 자기만의 노트 쓰기가 절실하죠. 


프란츠 카프카의 “어떠한 자기 인식도 쓰는 것에 의해 결정 난다”는 말과 이어집니다.


심리학에서도 말하잖아요. 쓰는 행위만으로 기억의 힘이 배가 된다고요. 그런데 사람들은 막상 실감을 크게 못하는 것 같아요. 겪어본 자들만 아는 거죠. 지금은 SNS 시대이기 때문에 글을 안 쓰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항상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쓰는지를 고민하잖아요. 문제는 좋은 글, 좋은 책을 봐야 한다는 것인데, 사람들은 그냥 잘 쓰기만을 바라죠. 글을 쓰다 보면, 내가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어떤 상황인지, 무엇을 원하는지를 깊게 들여다보게 돼요. 뭔가를 결정할 때도 도움을 받을 수 있고요.


세계 명시를 모아놓은 책은 꽤 많은데요. 『글 쓰고 싶은 날』의 특징은 세계적 화가들의 숨겨진 뎃생이 곳곳에 실려 있다는 점입니다. 


20대 초반이었을 거예요. 잡지 부록으로 명화 노트를 받았는데, 그 때부터 책을 읽으면 꼭 메모를하기 시작했어요. 공들여 나의 흔적이 된 노트는 절대 못 버려요. 세계적 화가들의 숨겨진 뎃생을 보기만해도 너무 좋아요. 얼마나 혼신을 다해 그린 그림인가요. 그 노트에 최고의 시와 산문 자신의 상상력을 키워가는 팁까지 있으니 얼마나 마음이 부자가 되는지요. 평생 함께할 노트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아무리 애써도 잠이 오지 않을 때, 시 쓰는 법을 배웠다고 하셨어요. 왜 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셨어요? 


자신의 영혼을 만나고, 힘들다면 영혼을 쉬게 하는 쉼터가 시라 생각해요. 


책에 실린 시 중에서 지금 생각하는 시가 있다면요?


신동엽의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 서화랑, 랭보의 「감각」을 참 좋아했고, 지금도 여전히 좋아요. 바람냄새, 흙 냄새 꽃 냄새 나서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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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인들이 무엇을 고민하고 꿈꾸는가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많은 소양이 필요할 텐데요. 어떤 소양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진정성이지요. 부끄러워하는 마음. 윤동주 시인의 「서시」처럼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기도하고 낮아지려는 자세 아닐까요? 신성함에 가까이 하고 그것이 중심이 되지 않는 한, 진정한 감동을 주긴 어렵다고 생각해요. 


‘세계적 작가들이 전하는 글쓰기 조언’에서 수전 손택의 말 “내게 작가란 모든 것에 관심을 갖는 사람을 뜻한다”를 인용하셨어요. 왜 작가들은 모든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하나요?


여기서의 ‘관심은’ 동시대인들이 무엇을 고민하고 꿈꾸는가에 대한 관심이에요. 그것을 모르고 쓴다는 것은 근무 태만이며, 작가로서의 자격미달이라 생각해요. 동시대 사람들과 함께 숨쉬고, 함께 꿈꾸고 실천하는 일은 무척 중요해요. 적어도 함께 하려는 노력이 작가의 양심과도 이어지고요.


“우울하지 않으면 당신은 진지한 작가가 될 수 없다.” 미국의 소설가 커트 보네거트의 말도 꼽아주셨어요. 


시대나 세상에 대한 고뇌가 깊어야 한다는 이야기예요. 달짝지근한 이야기만 해서는 시가 될 수 없어요. 우리가 왜 윤동주, 백석, 김소월, 김영랑을 사랑했겠어요. 그 어조와 리듬 속에서 우리 가락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대학생 때 서정주의 시를 친일파 시인의 작품이라고 밀쳐낸 적이 있어요. 그런데 이번 책을 엮으면서 다시 읽게 됐어요. 문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시들이었어요. 또 다시 보게 된 시인들이 많아요. 이상화, 김영랑, 박인환 같은 시인이에요. 일제 시대 때 쓴 시들이 지금에 와서 더 절절하게 와 닿고, 요즘 시인들보다 더 순정적이라할까, 절박해서 감동적이었어요. 상상력도 현대의 어떤 시인들보다 절대 뒤처지지 않아요. 마치 세계미술사에서 휴버트 보스와 피테르 브뤼겔의 상상력과 장인정신은 은 아주 뛰어나서 영원히 현대적이라는 것입니다. 밀레의 웅숭깊은 인간미의 깊이나 고흐의 열정과 개성이 주는 감동이 늘 새롭듯이요. 


창작이 고픈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면 좋겠어요. 


빈 공간에 낙서를 해도, 시를 써도 좋아요. 시를 쓰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진실을 설명하는 게 아니니까요. 사람들은 자꾸 설명을 하려고 하는데요. 말을 아껴야 해요. 정리되지 않은 시들이 세상에 너무 많아요. 저는 항상 “서툰 예술은 독자를 타락 시킨다”는 말을 마음에 새겨요. 엄청나게 고민하고 치열하게 다듬지 않으면 안 되니까요. 소근소근거리는 내면적인 독백이라고 새로워야 해요. 기존의 것들과 똑같지 않나를 늘 고민해야 해요. 


『미술관에서 읽은 시』라는 새 책을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12월 말쯤에 나올 것 같아요. ‘바람난 그림, 시에 빠지다’가 책의 콘셉트예요. 오래 전 교과서 속에서 만난 동서양 시부터 한국 문단을 이끌 젊을 작가들의 현대시들과 시에서 연상되는 그림을 엮었어요. 이를 테면 윤의섭 시인의 「청어」를 파울 클레의 「황금 물고기」와, 장석주의 「수그리다」를 이인상의 「설송도」과 연결시켰어요. 미술이 문학이 한 데 어우러진 퓨전 교양서라고 말할 수 있어요. 


앞으로 어떤 작업들을 하고 싶으신가요?


사심 없이 즐겁게 하는 게 최고로 좋은 것 같아요.『딸아 외로울 때 시를 읽으렴』이 그랬어요.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을 줄은 몰랐거든요. 최근에 엮음집인 태교시 라이팅 컬러팅 북 『꽃을 기다리는 시간』이 서점에 놓였고, 이달 말에는 ‘사랑’을 주제로 2년간 기획한 문화예술인들의 에세이 『선물 우체통』도 이달 말에 나오는데, 저자들의 사진을 갤러리 ‘사진 위주 류가헌’에서 전시할 예정이에요. 또 내년 1월쯤에는 제게 매우 특별한 책이 나와요. 세계명화 미술사와 시를 함께 맛보는 인문학의 색다른 백미가 될만한 책이에요. 올해는 책을 만들다 한 해를 다 보낸 것 같네요. 이제 제 다섯 번째 시집도 준비해야죠. 지난 가을은 쓸쓸할 새도 없이 시를 썼어요. 연애를 안 해도 사랑시도 쏟아지더라고요. 하느님께 감사하니 모든 게 잘 풀리리라 믿으면서 시를 더 잘 써보려고 해요. 시 작업 말고, 다른 작업은 아직은 저만의 군사 비밀이에요. 


책을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커피 값을 아껴 책을 사서 보길 바라요. 생활비를 아껴야 해서 고민되지만, 책은 사서 보면 좋지요. 책을 사보는 안목과 책을 안 사보는 안목은 다릅니다. 그만큼 책을 사랑하느냐 아니냐의 차이기도 하지요. 저는 아직 전자책보다는 종이책의 촉감, 향기가 존재의 향기라고 느껴져요. 


작가님께 ‘글 쓰고 싶은 날’은 언제인가요?


매일이지요. 매일 책을 안 읽고 음악을 안 듣고, 사진이나 그림을 보지 않으면 잠이 안 와요. 애인이 생기면 애인 생각을 많이 하게 될 텐데요. (웃음) 작업 생각과 배분을 잘해보려고요. 


미적이라 할 때

미(美)는 순전히 아름답고 예쁘다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미적이란 어느 순간 혼자 힘으로 느끼고 생각하고,

자기만의 길을 내는 것이라 생각해.


지나친 경쟁시대에서 지치고 불안한 우리를

구원할 구원투수가 바로

종교, 곧 신앙심이라고 봐.

한쪽 발이라도 종교에 담가보라고 나는 늘 권하곤 하지.

그러다 제대로 믿으면 인생이 달라진다고.

그나마 다행스런 일은 자신만 믿는 ‘나신교’ 신자들에게

신앙을 닮은 예술이 구원투수가 되고는 했었지.

예술은 

전통을 뿌리로 두지 않으면

어떤 독창성도 제대로 서기가 힘들지.

그렇게 아름다움을 향한 것은

영원에 대한 꿈이며 열망이야.


(「미적이란 것, 그리고 예술,, 글 쓰고 싶은 날 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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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고 싶은 날신현림 저 | 마로니에북스
이 책은 국내외 명시는 물론이고 철학, 성경 등의 다양한 장르를 담고 있다. 시인과 작가를 꿈꾸거나 자신만의 글을 써보고 싶은 이들에겐 하나의 방법론과 힌트를, 그리고 지루한 일상에 지친 이들에겐 달콤하면서도 유익한 휴식의 시간을 제공해줄 것이다. 또한 오랫동안 간직해온 미술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토대로 세계적인 화가들의 작품들을 엄선해 실었으며, 오래전 디자인과를 다니며 습작했던 신현림의 오래된 낙서와 그림, 판화, 사진까지 담겨 있어 그녀의 예술 세계 전반과 독보적 감성을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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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 전 대법관 “‘최초’라는 수식의 무게감이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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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라는 수식어는 축복이기도, 저주기도 하다. 대체할 수 없는 존재라는 점에서 최초라는 수식은 무게감이 다를 터. 그 중 최초의 여성 대법관이라는 수식을 가진 김영란 전 대법관은 특히 여러모로 남다른 행보를 보이며 수식의 무게감을 실천하고 있다. 대법관 출신이 변호사 개업을 하면 3년 안에 빌딩을 세운다는 말이 흔한 세상에, 그는 “안 하는 것으로 어떻게 해보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다만 자신이 다룬 판결들을 ‘다시’ 생각해보고자 했다. 아쉬운 판결 앞에서 “‘대과’가 여기저기서 보였고 ‘소과’는 일일이 말하기도 민망할 지경이었다.”(13쪽)고 겸손하게 고백한다. 


대법관 시절 그는 김지형, 박시환, 이홍훈, 전수안 대법관과 함께 소수 의견을 많이 내 ‘독수리 5형제’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그 스스로도 ‘다른 생각이 있다’는 소수자의 역할을 잊지 않았으니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법원의 보수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지금, 그를 만나 법과 사회, 우리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그러므로 무척이나 소중하고, 특별한 일이었다. ‘다시 생각’할 것은 판결뿐이 아닌 시절이니 더욱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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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하고만 산다


일반이 쉽게 읽어내기 힘든 판결문을 쉽게 생각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썼다고 하셨습니다. 대중서인만큼 ‘다시 생각’하면서 고민한 부분이 많았을 것 같은데요. 책을 쓰면서 가장 고민이 많았던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사람들이 읽을 수 있는 책, 읽히는 책을 써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쓰는 부분보다 사실 제일 어려운 부분이 판결 부분이었어요. 판결을 다시 쉽게 풀어 쓰는 그 작업이 진짜 어렵더라고요. 어디까지 써야 읽힐 수 있는 글인지를 잘 모르겠더라고요. 판결문만 많이 살펴봤었으니까요. 그래서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고 말해주시는 분이 제일 반가워요.(웃음) 판결은 다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생각보다는 괜찮더라, 이렇게 말해주면 제일 고마워요. 


판결을 톺아보는 일을 반드시 한 번 해야겠다고 생각하셨다고요. 


대법관 시절부터 그랬어요. 그만 두고 나가면 무수하게 쏟아 내린 판결에 대해서 뭔가 얘기는 해야겠다, 생각했어요. 그래서 강의를 하나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무턱대고 쓰려면 안 써지니까요. 그런 강좌를 열기를 원했어요. 마침 그런 강좌를 열어서 해봤더니 그래도 바로 쓴 것보다는 나았던 것 같아요. 참 힘들었어요.(웃음)


마침내 책이 나왔고, 하려던 일을 마친 기분은 어떠세요? 


개운할 것 같은데 그렇지가 않고요.(웃음) 남을 심판하던 사람이 심판대에 올라간 거잖아요. 다 좋게 봐주셔야 하는데 싶고요. 막바지에 오니까 생각이 없어지더라고요. 잘 써야겠다, 좋은 책을 내야겠다는 생각보다 너무 힘들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거든요. 그래놓고 나서 뻔뻔하게(웃음) 사람들이 잘 봐주기를 바라는 게 이상한 일이기는 하지만요. 그래도 재미있게 읽어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작업하시는 데는 얼마나 걸리셨어요?


2년 걸린 것 같아요. 여름방학과 겨울방학에 집중해서 썼고요. 지난 겨울방학에 절반 정도 쓴 것 같아요. 


모두 10가지의 사건을 다루셨어요. 특별히 이 사건들을 다룬 이유가 있을까요? 이 외에 더 다루고 싶은 사건도 있을 것 같습니다.


몇 개 더 끼워 넣을 수도 있는 것들이 있기는 했어요. 근데 너무 욕심내지 말자고 생각했어요. 처음 쓰는 책인데, 그리고 문장도 잘 안 나오는데, 이렇게 생각을 했죠. 


그렇다면 추후에라도 또 책으로 만날 수 있게 될까요? 


이런 형식을 다시 쓰기는 너무 지쳐서 힘들 것 같고요. 쓴다면 뭘 써야할까, 라는 생각을 요즘 하고 있어요. 이 책의 반은 판결문으로 채울 수 있었는데 다음에 책을 쓴다면 못 채우잖아요.(웃음) 이런 농담을 하고 있는 중이에요. 


퇴임 후 회고록 형식은 쓰지 않겠다고 하셨고, 변호사도 하지 않겠다고 하셨어요. 보통의 행보와 다르게 가려는 어떤 신념 같은 게 있으셨던 것 같더라고요. 


개인적으로는 판사든 변호사든 남의 사건을 계속 들여다보고 하는 게 너무 힘들어서, 그거 그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두 번째는 안 하는 것도 좋겠다, 너무 사람들이 하고만 산다, 뭔가 안 하는 것으로 어떻게 해보는 것도 좋겠다, 이런 식의 생각도 해봤고요. 거창한 목표는 세우지 않았어요.(웃음) 너무 많은 판결을 평생 쏟아냈으니 그것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것만 정했어요. 그 대신 다른 것은 뭘 해야 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었고요. 지금도 그래요. 


책 출판도 그렇다면? 


책도 나서서 여기저기 두드린 게 아니고요. 강의를 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어요. 그게 시간적으로 맞았던 거죠. 첫 번째 강의는 그냥 했고, 두 번째 강의부터 녹음을 했거든요. 강의 하면 또 잊어버리니까요. 마침 녹음해놨고, 출판사 연락이 왔고, 해서 녹취를 풀어서 뼈대를 살려 책을 썼어요. 사실 이런 형식의 책 밖에 생각한 것이 없었거든요. 뭔가 쓰고 싶은 걸 찾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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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생각이 있다는 것을 알리는 것


최초 여성 대법관으로서 사명감 혹은 문제의식이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  


수식이 주는 무게가 있잖아요. 그러니까 사명감이 없어도 끌어올려야 하는 거죠. 사명감이 많이 있었어요. 일단은 대(對)사회적인 것도 있지만 법원 내부에 대해 그랬어요. 여성 판사도 많고, 여성 법률가들이 많은데 내가 어떤 전범이 될 것이냐, 어떤 롤모델이 될 것이냐, 그 생각을 많이 했어요. 여성 후배들에게 인정받아야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거죠. 내부 사람들에게 인정 못 받고는 인정받을 수도 없으니까요. 그런 생각에서 자유로워지지는 않았어요. 


구조상 남성들이 전부 의사 결정하는 그런 자리에 쭉 있어왔던 사회잖아요. 특히 여성 판사들은 수가 굉장히 늘어나고 있는데 의사 결정 기구 속에 못 들어가고 있었죠. 수가 늘어난다고 해서 발언권이 늘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어떻게 하면 그런 상황을 타계할 수 있을 것이냐 하는 것과도 닿아있었고요. 법원에서 뭔가 제대로 전범을 보여주지 못하면 다른 조직도 영향을 받겠다, 생각했어요. 여기서 보여줘야 다른 조직에서도 법원이 모델이 될 수 있는 거죠. 개인적으로 롤모델 역할도 고민이었지만 사회 다른 조직에 대한 파급력도 생각을 좀 했어요. 별로 한 건 없어도(웃음) 생각은 했어요.  


아마 그렇기 때문에 자기 검열이 더 필요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네, 그래서 후배들한테 뭘 해줘야 하나, 뭘 보여줘야 하나 생각을 많이 했어요. 후배들과 모임도 많이 가지고, 그런 얘기도 많이 나누고요. 주입을 많이 시켰죠. 아이 키우고, 어려운 일 하느라 고생하는 친구들한테 그래도 해야 된다, 이런 식으로 볶아대는(웃음) 역할도 많이 했고요. 


좀 더 구체적으로, 그런 사명감 때문에 세웠던 의식적인 지침이 있었다면요?  


조직에서 의사 결정하는 기구 속에 소수자가 꼭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었어요. 그러니까 여자 판사들에게도 그런 기회가 생기면 힘들더라도 후배들을 위해 마다해선 안 된다고 했었어요. 어쨌든 뭐든지 새로, 처음 하는 게 많았잖아요. 그래서 그런 의식을 계속 한 거죠.  


진보적인 성향의 판사라도 ‘여성 문제’에 대해서는 보수적인 판결을 내리는 경우를 많이 봤다고도 말씀하셨죠. 그렇기 때문에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네, 그렇게 생각을 해요. 이 경우 여성은 꼭 ‘섹스’로서의 여성이 아니라 ‘젠더’로서의 여성이에요. 여성이라고 해서 또 반드시 여성 문제에 진보적이지는 않거든요. 그래서 두루두루 소수자의 생각이나 역할을 염두에 둬야 하는 그런 시간들이었죠. 


소수의견에 대한 의식적인 지향을 말씀하셨는데요. 8장 새만금 사건에서 반대의견을 내자 ‘이상에 치우친 감성적인 접근’이라는 비판을 받았다고도 했습니다. 종종 그러한 지적을 받은 경험이 있으실 텐데요. 그럴 때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결국은 우리 사회에서 여성으로서의 젠더도 그러한데요. 견고한 다수의 구조 속에서 소수자의 역할은 ‘다른 생각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에요. 그것만 해도 일단은 역할이 되고요. 그것들이 어느 정도 모이면 견고한 다수의 생각, 쌓여온 관습, 그 무엇이 변해야 한다는 걸 느끼게 해주겠죠. 그 다음에 결국 변하게 만드는 거고요. 항상 일종의 소수자 역할에서 생각해보는 역할이 주어진 거라고 생각을 했어요. 결국 그것이 궁극적으로 다수자들 삶의 건강성을 보존해주고, 키워주는 것이니까요. 보호하면서 소수자들이 다수 사회에 들어와서 다수의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알아들을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거예요. 그렇지 않고 자기네끼리만 말하면 못 알아들으니까요. 미국에 이민 가 한국말을 하는 그룹을 생각하면 그렇죠. 그런 역할을 누군가는 다수의 목소리로 해줘야 하는 거죠. 당장 받아들여지지는 않아도 그 목소리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목소리가 커져갈 경우에는 커져간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결국 바뀌어야 한다면 바뀌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이런 단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생각을 했던 거죠.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판결이나 소수의견을 많이 내 독수리 5형제라 불리던 시절이 있었죠. 현재 대법원이 보수화 되고 있다는 비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계세요? 여전히 성비 불균형(대법원장 포함 14명 중 2명이 여성) 상태기도 하고요.


역시 ‘젠더’의 문제인데요. 어쨌든 뚜렷한 젠더로서의 소수의 목소리도 별로 나오지 않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 어느 정도 보수화된 판결도 보이기는 해요. 제가 근무하던 시기는 변화에 대한 요구가 굉장히 강하던 때였어요. 조심스럽기는 한데요. 사회가 휘몰아치며 변화할 때는 그동안 지켜온 견고한 부분이 함께 변화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지금은 약간 숨 고르고 있는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을 해요. 늘 변하고 있으면 그것도 따라가기 힘들지 몰라요. 


변화의 속도가 조금 느려졌을 뿐이라고 생각하시는 거죠? 


속도가 좀 빠를 때도 있고, 느릴 때도 있는 것이다, 하는 생각이죠. 너무 빠르니까 사람들이 조금 숨을 골랐으면 좋겠다고 하는 때가 있고, 또 너무 잠잠하면 이제는 좀 변했으면 좋겠다고 할 텐데요. 이런 사회적 흐름에 결국 법은 쫓아가는 게 아닐까 해요. 법원이 보수화돼서 사회가 그렇게 됐다기보다 사회가 숨 고르고 있으니까 법원도 숨 고르고 있는 거 아닌가, 저는 그냥 이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변하라는 목소리가 높아지면 또 변하겠죠. 


지금, 그런 목소리가 좀 높아지고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사람들이 그런 요구를 표현할 수 있도록 표현의 자유가 많이 보장 되고, 표현하고, 그런 요구가 많아지면 또 정치권이나 사법부가 변하는 거고 그런 것이죠. 민주주의니까요. 그런 것인데 지금 당장 눈에 띄게 그렇지 않은 시기도 있을 거예요. 저는 좀 거시적으로 보자, 생각해요. 


법원에 몸담은 동안에도 그런 속도 차이를 경험하셨을 테죠. 


그러니까요. 70년대부터 80년대, 90년대를 다 산 사람이어서요. 그런 걸 크게 보면서 우리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잘 인식하고 나가자는 거죠. 그래서 제가 영화 <매트릭스>의 빨간약 얘기를 했던 거예요.(웃음)



대과도 있고, 소과도 있다


법이라면 응당 보편타당해야 할 것 같은데요. 책을 보면 우리나라만의 특수성이랄까 관습법적인 면이 작용한 지점들이 많이 보입니다. 상지대 사건에도 아쉬움을 많이 적으셨고요.  


상지대 사건은 너무 아쉬웠는데 조금만 표현한 거예요.(웃음) 상지대 사건은 자기 돈을 많이 투자해 학교를 설립한 사람한테 사회에 환원한 것이니 손 떼고 나가라고 하는 목소리와 재산을 투입해 학교를 세웠으니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끝까지 운영하겠다는 목소리가 부딪친 거거든요. 저는 그 두 목소리 다 지나치다, 중간 지점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 사람이거든요. 소수 의견을 제가 썼는데요. 다수 의견에 대해 방어를 하기 위해 쓴 것이에요. 결국 왜 중간 지점을 못 찾아냈는가가 굉장히 아쉬운 거죠. 무조건 소수 의견이 다수 의견을 이겨내지 못해 아쉬운 게 아니고, 왜 의견이 충분히 화학적 결합을 이뤄내 중간 지점을 못 찾았는지가 아쉬워요. 왜 극단의 의견밖에 표현을 못 해내는가, 라는 것에 대한 깊은 의문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래서 결론에는 어느 쪽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적었죠. 아무리 사회적으로 좋은 일을 하겠다고 학교를 지었지만 손을 다 떼고 나가라면 그 사람을 최대한 존중해주면서 할 수 있는 것을 조금 더 찾았어야 하지 않나 생각해요. 물론 법원이 그런 걸 다 할 수는 없지만 그것을 염두에 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 판결 이유가 달라지거든요. 


그 사건은 지금까지도 잡음이 끊이질 않고 있어요. 


그러니까 말이에요. 뭐든지 선택의 문제로 결론을 내리라고 하면 문제가 해결이 안 되는 경우도 많은 거죠. 책에 다룬 것은 전부 커다란 사회적 문제인데요. 사회적 문제들이 슬기롭게 해결되지 않아 특히 상지대 사건은 안타까웠어요. 


그런가 하면 삼성 사건은 사회적 관심도 높았고, 치열하게 논의하는 분위기였는데 판결 이후 이건희 회장이 사면 복권 되면서 허무하게 끝나버렸잖아요. 


사면 복권은 문제가 아니고요. 필요해서 그렇게 했다 치면, 그 사건은 삼성만 처벌하면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렇게 치열하게 다퉜던 거죠. 우리나라 재벌의 지배구조는 굉장히 비민주적 지배구조예요. 지배주주가 경영권도 행사하잖아요. 미국은 주주와 경영권이 견제하는 관계인데 우리는 같은 권력이란 말이에요. 그랬는데 이 사건은 마치 주주와 경영자가 분리되어 합리적으로 경쟁하는 것처럼 전제하고 판결을 내렸다는 거죠. 다수 의견, 소수 의견 모두 그랬죠. 우리 사회 지배구조의 문제를 보겠다고 해서 이 사건을 시민단체나 법학교수협의회에서 제기한 문젠데 본질은 안 보고 법률해석에만 그친 게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아쉽다고 한 거예요. 설득력 있나요?(웃음) 삼성에 대해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은 저밖에 없더라고요. 


무척 설득력 있습니다.(웃음)


삼성 판결을 어떻게 쓸지 방향을 잡지 않고는 이 책을 쓸 수 없겠더라고요. 삼성을 빼면 뺐죠. 그런데 그냥 다수 의견, 반대 의견, 소수 의견 해설해버리고 말아서는 쓰나마나 한 게 되겠다, 본질은 무엇인가를 고민을 했어요. 이런 저런 책도 찾아보고요. 다들 미국식 주식회사만 머리에 두고 쓰고 있으니까 본질이 안 보였던 거예요. 우리나라 주식회사가 미국식으로 되고 있느냐 하면 아니잖아요. 거기는 오히려 경영자들이 주주보다 더 많은 권한을 누리고, 월급을 많이 가져가서 비난받는 구조였잖아요. 우리는 경영자가 지배 주주에 대해 독립성이 있는지 의심 많이 가잖아요. 우리는 독립된 경영자가 성공한 케이스가 거의 없다고 보이거든요. 그래서 굉장히 여러 생각을 한 끝에 이 문제는 바로 그 문제인데 그에 대해 사건을 다룰 때는 생각을 못했구나, 이렇게 된 거죠. 


삼성 외에 다른 사건도 책을 쓰면서 새롭게 생각하게 된 부분들이 많이 있었나요? 


꼭 생각을 못했다기보다는요. ‘제사주재자’를 어떻게 할 것인가에서 장남으로 가게 되면 전원합의 하나마나였다는 게 제 생각이었고요. 저는 김지형 대법관이 내신 의견에 동의해서 법원에서 여러 사정을 고려해 정해주자고 했었죠. 그걸 다른 분들이 가정 법원의 규칙을 개정해서 가정 법원에서만 할 수 있는 것처럼, 다수 의견 측에서 보충 의견에 그런 말들이 나왔는데요. 이 사건도 가정 법원이 아니고 민사 법원에서 한 사건이거든요. 법원에서 당연히 어차피 할 수 있는 사건인데 거기에 대해 적절한 반격을 못했구나(웃음), 다시 읽다가 그런 아쉬움이 들었어요. 시간에 쫓겨 판결을 쓰다보면 적시에 적절한 반격을 못하는 경우가 생겨요. 


제가 대과도 있고, 소과도 있다고 했는데요. 그런 게 다시 읽어보니까 좀 눈에 띄긴 하더라고요. 


우리나라는 대륙법 체계를 따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책에는 미국 사례가 많습니다. 서두에도 미국 로스쿨행을 준비하다 국민권익위원장 역임 등의 사정으로 무산되었던 것에 대해 아쉬움을 말하기도 했는데요. 미국 법체계가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 메시지가 될 수 있는지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책에서 미국, 영국의 사례를 많이 인용한 것은 다른 사례를 보여줌으로써 설득력이 생기기 때문에 그렇게 한 거고요. 미국에 가보려고 한 이유는 말이죠. 우리는 미국과 법체계는 굉장히 다르거든요. 독일, 일본이 대륙법 체계고 미국이나 영국은 영미법 체계예요. 기본적으로 우리는 성문법(written law) 시스템이고, 영미법은 불문법 시스템이잖아요. 불문법이란 것은 개념적으로 문자화되지 않은 거니까 해석에 있어 법의 기본적 원리를 항상 찾아가는 방법론이죠. 보통법 정신이라고 말하기도 해요. 늘 법의 기본 원리를 찾아가는 해석이 많이 있어요. 판결문도 좀 더 자유롭고요. 우리나라는 법관들이 있는 법을 해석하는 훈련을 많이 받았거든요. 그것은 그만큼 틀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거잖아요. 좋은 점은 자의적으로 흐르지 않는다는 거죠. 불문법은 자의적인 해석도 어쩌면 가능할 수 있으니 장단점이 있는 것이에요. 그렇지만 우리나라의 견고한 법 해석학을 뚫으려면 미국 같은 불문법 시스템에서는 도대체 무슨 기준을 갖고 판결을 할까, 라는 것을 아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우리와 다른 시스템이기 때문에요. 그것이 궁금했어요. 


사담이지만 이언 매큐언의 『칠드런 액트』에서 주인공이 판결문을 무척이나 공들여 쓰는 장면이 나오는데, 말씀을 들으니 그 장면이 떠오르네요.  


재미있죠? 저도 재미있게 읽었어요. 워낙 이언 매큐언의 팬이에요.(웃음) 그 법도 우리와 비슷해요. 결국 우리도 비슷해요. 우리도 백혈병 아이들이 종교적 신념 때문에 수혈을 받지 않았던 사건이 있어요. 그렇지만 그 주인공은 피아노도 잘 치고(웃음) 다르죠. 


소설 좋아하세요? 


소설을 많이 읽어요. 한동안 안 읽다 요새 조금 읽었더니 역시 소설이 제일 좋은 책이구나(웃음) 싶더라고요. 사회과학서는 너무 머리가 아프구나,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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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


9장 출퇴근 사고를 산재로 인정할 것인지에 관한 문제처럼 대법원 판결이 오히려 불합리한 제도 유지를 정당화하거나, 공고히 하는 결과를 낳기도 합니다. 사법소극주의 또는 사법적극주의에 대한 고민이 많으실 것 같아요.   


당시 판결은 재정적 부담이 너무 커지니까 그것은 입법부와 행정부에서 정해주는 게 좋겠다, 이렇게 간 거죠. 공론화되어야 해요. 결국 소극주의를 취할 것이냐 적극주의를 취할 것이냐는 이 시대에 필요한 시대정신을 읽고, 거기에 맞는 헌법정신을 해석해내야 하는 문제거든요. 정답이 있는 게 아니고요. 


사회적으로 많은 토론이 있어야 하고, 그런 사회적 분위기가 법원에도 반영이 된다면 사회적 분위기가 경직됐을 때는 법원도 거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잖아요.


지나고 보니까 그런 것 같아요. 


입법, 행정의 영역도 물론이지만 아무래도 사법부가 비난을 더 받는 면도 있는 것 같고요.  


사법부에 대한 기대가 있으니까 그럴 수도 있고요. 또 지나간 뒤에 결론을 내려주니까 더 그럴 수도 있겠죠. 또 사람들이 당사자가 되어서 구체적인 사건에 대한 결론을 요구하는 거니까 더 그럴 수도 있을 거예요. 여러 가지로 그럴 수 있겠네요. 


다른 인터뷰에서도 언급하셨지만 ‘김영란법’에 대한 의견을 여쭙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웃음) 내년 9월 시행을 앞두고 있는 이 법, 아직 계류 중인 부분도 있고 발의 당시보다 의미가 많이 퇴색됐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지, 애초 가지고 있던 생각은 무엇인지 편하게 말씀해주세요.  


이 법을 처음에 제안했을 때부터 일종의 문화를 바꾸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흔히 더치페이 안 하고, 한 사람이 다 사잖아요. 반드시 돈 많은 사람이 사는 것도 아니에요. 또 명절 되면 인사할 사람에게 고가의 선물을 한다든지 그런 식의 허세부리는, 청탁하는 문화에 대해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이 정답이라고 뚝딱 해서 내놓는 게 굉장히 두려운 일이었거든요. 저는 그냥 사람들이 생각해봐주길 원했어요. 과연 이게 옳은 건가, 하고요. 그래서 모두가 바뀌자고 말할 때는 사실 이 법이 없어도 저절로 바뀐 거겠죠. 그렇게 사회에 문제를 던진 거예요. 시간이 많이 걸려도 좋으니 토론만 해달라고 얘기를 해왔어요. 그러는 사이에 우리가 바뀌니까요. 부패다 뭐다 하지만 많이 깨끗해졌어요. 그럼에도 왜 사람들은 부패하다고 생각하는가, 부패지수는 왜 안 바뀌는가를 생각해볼 때 제일 어려운 걸 바꿔야 하는 문제가 남아있더라고요. 어려운 걸 바꾸는 문제니까 이것은 일단 여기서부터 시작, 이렇게 하는 것보다 많이 찬반토론을 하는 게 좋겠다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는 더 많이 비판하고, 토론했으면 좋겠어요. 계속 토론하면서 우리가 바뀔 것 같아요. 


계속 계류를 하더라도 논의가 많이 되었으면 한다는 말씀이시군요. 


예. 선심 쓰듯 카드 긁는 거 안 했으면 좋겠다, 무슨 일 있으면 전화 걸어서 부탁하는 거 안 했으면 좋겠다, 그런 거예요.(웃음) 문화를 바꾼다는 게 제일 큰 거예요. 공무원들은 동네 어르신이 전화하면 참 곤란한 경우가 많거든요. 어르신은 누가 부탁을 하는데 가까운 사이라고 전화 한 통은 해야지, 그렇게 돼요. 저는 커다란 부패 문제라기보다 그런 것부터 고쳐나가기 시작하면 커다란 부패도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사람들은 고위공직자들에게만 이걸 적용하자고 해요. 이건 문화 자체를 바꾸는 거니까 고위공직자만 적용해서는 실효성도 떨어질 거라 생각하고, 이 문화가 정착되면 고위공직자도 함부로 어디 전화 걸어서 부탁하는 이런 걸 못할 거예요.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작은 것부터 바꿔나가기 시작하면 10년 안에는 나아질 거라고 생각해요. 문화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가랑비에 옷 젖듯 선을 잠깐씩 넘기가 너무 쉽잖아요. 반드시 공무원 사회뿐 아니라 말이에요. 


그래서 제가 이 법은 핑계를 댈 수 있게 하는 법이라고 말했어요. 구체적인 법 조항을 따져서 이건 위반 아니니까 해도 돼, 이런 문제가 아니라 이런 법에 걸릴지도 모르니까 이제는 ‘안 됩니다’라고 말할 수 있게 이 법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얘기를 하는 거죠. 이렇게 주장을 하는데(웃음)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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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을 다시 생각한다김김영란 저 | 창비
저자가 재직 당시 참여한 중요한 판결들을 꼽아 판결의 의미와 배경, 논쟁의 과정을 꼼꼼히 되짚고 개인적인 견해와 반성까지 솔직하게 밝힌 이 책은 대법관 스스로 자신의 판결에 대한 의견을 조목조목 밝힌 귀한 발언이자, 대법원 판결을 통해 우리 사회 법과 민주주의의 의미를 탐구하는 의미 깊은 작업이다. 또한 우리 사회의 흐름, 우리의 일상과 밀접하게 연관된 법의 논리를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어 일반인을 위한 법률 교양서로도 유익하게 읽힌다.



오한숙희 “지속 가능한 행복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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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 방랑기’, 여성학자 오한숙희가 책을 펴내며 보탠 말이다. 힐링은 뭐고 방랑은 뭘까? 방랑은 안 좋고 힐링은 좋은 게 아닌가? 궁금한 독자라면 『사는 게 참 좋다』를 펼쳐봐도 좋겠다. 언제나 호탕하게 여자들의 이야기를 대변했던 여성학자 오한숙희는 지난해, 돌연 제주에 터를 잡았다. 팔순 넘은 어머니를 모시고 자폐성 장애를 가진 작은딸을 키우면서도 언제나 1초의 망설임 없이 “난 행복해요”라고 말했던 그가 매일 새롭게 아팠기 때문이다. 한 선배는 그를 두고 “동의보감 맨 첫머리에 적힌 말이 뭔지 알아? 모든 병은 마음에서 생긴다”고 말했다. 오한숙희는 이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가족을 떠나 강원도로 옥천으로 방랑을 시작했다. 내륙을 돌고 돌다, 며칠 놀다 가라는 선배의 권유에 들린 제주 서귀포. 그곳에서 ‘신의 한 수’를 가진 사람들을 만났다. 방랑은 그에게 꼭 필요한 시간이었다. “사는 게 참 좋다”고 말할 수 있게 된 오한숙희는 지금, 인생의 변곡점을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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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이야기를 교환하는 일이 필요한 시대


2010년에 출간된 『너만의 북극성을 따라라』이후, 5년 만입니다. 『사는 게 참 좋다』는 그간의 책들과는 좀 달라요. 


‘내 인생의 책’ 같은 느낌이에요. 그동안 책을 쓰면 ‘내가 쓴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그냥 내가 쓰고 있구나’ 싶었어요. 『사는 게 참 좋다』는 제가 만났던 신의 한 수를 가진 사람들 이야기예요. 한동안 마음과 몸이 힘들어 주변 사람들에게 연락을 잘 못했는데요. “그동안 저 이렇게 살았어요”라고 안부를 전하는 책이기도 해요. 책을 보신 분들이 “지금까지 여성학자로서 쓴 책이라기보다 한 인간으로서 쓴 책이라서 더 마음이 따뜻해지고 촉촉해진다. 너에 대해서도 안심이 된다”고 말하시더라고요.


“사는 게 참 좋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흔치 않은 시대라서 제목이 오히려 낯선 느낌이에요


제목을 놓고 친구들에게 물었어요. 4,5개 정도 후보가 있었는데, 막판에는 ‘오늘이 좋다’와 ‘사는 게 참 좋다’로 축약 됐어요. 제목이 결정되고 친구들에게 문자를 보냈더니, “어, 내가 좋다고 해서 이 제목으로 한 거야?”라고 하더라고요. (웃음) 그 때는 설왕설래했는데, 책이 나오고 보니 딱 맞는 제목이었구나, 싶어요. 


프롤로그 제목은 ‘내가 사는 게 참 좋은 이유’예요. 강연을 하러 가서 자주 듣는 단골 질문이 “지금 행복하세요?”라고요.


많은 분이 물으세요. “지금 행복하냐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힘든 문제가 있잖아요. 그래도 티를 안 내고 사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는 게 참 좋은 거다”라는 결론을 내렸어요. 지금은 위로가 필요한 시대가 아니라, 자기 이야기를 교환하는 시간이 필요한 시대예요. 주변 친구들을 보면 다 아파요. 내가 약해지면 나만 아파하는 것 같은데, 세상 사람들은 다 아프고 다 안 좋아요. 모임에 한 번 나가봐요. 다들 아프대요. 그런데 어떡해요? 그러면서 사는 거죠. 하지만 사람들이 서로 이야기를 털어놓을 때, 감동과 힘을 얻어요.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다들 그렇구나’ 하고요. 


책에 등장하는 ‘신의 한 수’를 가진 분들의 이야기가 재밌습니다. 언제나 호쾌하게 웃는 하하 여사, 항상 ‘콜’을외치는 태권도 사범님, 눈 밝은 친구 ‘우영’, 마사지사 동생, 기다림의 지혜를 아는 식당 주인 ‘송희’ 씨 등. 책을 읽는 내내 유쾌했고 찡했고 고마운 마음이 들었어요.


책을 다 쓰고 나서, 몇몇 분을 다시 만났어요. 힐링 방랑 복귀 여행을 한 거죠. 하하 여사는 여름에 사줬던 팥빙수를 겨울에도 똑같이 사줬어요. “이렇게 나를 잘 써놓으면 앞으로 내가 어찌 사노?”라고 하더군요. 


어떤 질문에도 ‘콜’이라고 답하는 태권도 사범님은 잘 계시나요?


(웃음) 잘 지내세요. 이 분은 강원도 영월 산골에서 태어나 한 번도 육지로 나와본 적이 없는 분이에요. 보통 우리는 도시를 선망하고 열망하잖아요. 그런데 사범님은 아니에요. 강원도의 바위 같은 사람이에요. 제가 책을 보냈더니, 한과를 한 가득 보내줬어요. 검정 비닐에 싸져 있었는데, 완성품이 아니라 방앗간에서 모양을 만들기 직전인 한과였어요. (웃음) 선물을 받고 사범님과 전화 통화를 했어요. “언제 또 놀러 갈게요”라고 하니까, “콜! 만사형통”이라고 답하셨어요. 사범님이랑 전화를 하면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도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나눈듯한 아쉬움이 없는 충만감이 느껴져요. 이 분을 통해 배운 건 굉장한 단순함이에요.


우영이라는 친구 분 이야기도 인상에 깊게 남았어요. “친구의 이죽거림이 내겐 안심이 되었다”고 하셨어요.

 

저에겐 되게 특별한 친구예요. 남다른 가족사에 20대부터 긴 터널을 지나온 친구라서, 우리랑은 역방향에 앉은 경우예요. 우영이는 지금 어떤 것도 자기를 심각하게 만들 수 없대요. 어릴 때부터 워낙 많은 일을 겪어서요. 우영이는 정신 없이 팽팽 돌아가는 사람을 뚫어봐요. 저 사람 ‘조증’이라는 거죠. 이 친구한테 받은 선물은 관점 이동이에요. 저로서는 몸이 너무 아프고 행복하지 않으니까 큰일이 났다 싶었는데, 얘는 이러는 거예요. “넌 길을 잃은 게 아니라 새 길로 가야 하는 거야. 죽음의 길에서 삶의 길로 가는 거야. 지금까지 내가 본 네 모습 중에 지금이 진짜 좋은 모습”이라고요. 당시에는 얘가 나를 위로하려고 이런 말을 하나 싶었는데, 지금 돌이켜보면 그게 아니었어요. 우영이의 명언은 “인생, 너무 심각할 거 없다”는 말이에요. 


“인생에서 낄낄대는 시간은 아주 중요하다”는 말도 해주셨고요.


우영이의 낄낄거림은 마음을 쓰다듬는 소리였어요. 자신의 마음을 쓰다듬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쓰다듬는 소리였어요. 우영이의 꿈은 소설가였는데, 자기 꿈을 이루지 못한 걸 전혀 아쉽다고 말하지 않아요. 요즘은 대학에서 글쓰기 강의를 하는데, 자기 몫은 저마다 제 삶의 소설을 쓸 수 있도록 돕는 거래요. 우영이를 통해 멈추는 걸 두려워하면 안 된다는 걸 깨달았어요. 멈춰 서는 건, 자기 내면을 여행할 때가 왔음을 알리는 축복의 메시지니까요. 


부럽더라고요. 이런 분들과의 인연이.


그래서 사람이 재산이에요. 아이고, 갑자기 눈물이 나려고 하네요. 사실 사람들이 좋을 때는 친구가 많아도, 힘들 때는 친구가 되어주기 어렵잖아요. 특히 저처럼 세상에 조금 알려진 경우에는 힘든 모습보다 재밌고 즐거운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경우가 많아요. 대개 힘든 사람을 보는 건, 피하고 싶은 즐겁지 않은 일이잖아요. 그런데 이분들은 저를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오게 해줬어요. 이런 게 인생의 내공인 것 같아요. 자기가 힘들어 봤기 때문에 고마움도 알게 되는 거잖아요. 1년간 책을 쓰면서 다시 그 사람들을 봤을 때, 고마움이 몇 배로 증폭돼서 실감이 났어요. 나를 변함없이 똑같이 받아준다는 게, 얼마나 감동스러운 일이에요. 돈이 부자가 아니라 사람이 부자다, 재복보다 인복이 더 중요하다는 걸 실감했으니, 나는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 싶어요. 


책을 읽으면서 3부작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어요.


예전에는 자아가 너무 강했어요. 내가 느끼고 체험한 것을 사람들에게 준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번 책은 바깥에 있는 것들이 나에게 들어왔다는 느낌이 들어요. 여기저기에서 한 바가지씩 물을 길러와서 내가 흡수한 느낌이랄까요? 또 이 책을 쓰면서 느낀 건, 편집자는 저자에게 ‘러닝 메이트’ 같은 존재라는 거예요. 글을 쓰다 보면 자기 속에 빠지거든요. 그런데 책은 돈 주고 팔아야 하잖아요. 나는 재밌고 유익해도 상대에게는 효용과 가치가 있을까 의문이 드는데, 그럴 때마다 편집자의 피드백이 큰 도움이 됐어요. 글 한 꼭지가 끝날 때마다, 자기도 비슷한 인생을 사는 사람으로서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를 덧붙여줬거든요. 


“이야기를 교환해야 한다”는 말과 이어지네요.


사람하고 소통할 때, ‘그래도 살아있으니까 이런 것도 나누는구나, 사람이 행복이구나’를 느껴요. 저는 일용직 노동자잖아요. 강의도 한 달에 한 두 번 할 때가 있고 안 할 때도 있으니까, 계절 고용도 아니죠. 더욱이 근 1년 동안은 강의를 안 했고요. 일종의 아르바이트 같은 개념인데, 이 직업도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을지는 몰라요. 사람은 직업으로 일로, 자기의 삶을 지탱해 나간다고 하는데, 저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내 삶을 지탱해가는 건, 결국 하루 24시간 동안 무엇을 하고 사느냐예요. 의식주를 해결하는 것 말고 뭐가 있을까 생각해보면, 책에 ‘말 무당’이라는 표현을 쓴 것처럼 사람들과 말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에요. 거기서 만족이 오고 의미가 부여될 때, 다른 가치들의 결핍이 결코 부럽지 않아요.

 

순간순간 결핍이 느껴지기도 하실 텐데요. 


결핍이라고 느끼기보다, ‘다 그런 거지 뭐’하고 넘어가게 되는 것 같아요. 요즘은 돈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악의적인가를 생각해요. 사람들이 모든 것의 초점을 돈으로 맞추잖아요. 걱정의 90%도 돈, 싸움의 90%도 돈, 대개 돈과 얽힌 갈등과 충돌이 많은 것 같아요. 제가 지금 살고 있는 동네는 제주 난산리예요. 여기는 정말 돈이 크게 필요 없는 동네예요. 그냥 간단히 먹고 살면 되는 거예요. 도시에서 살면 돈이 많이 필요하지만, 시골은 돈이 적어도 사는 데 전혀 불편함이 없어요. 자연이 무상으로 베풀어주는 게 꽤 많기 때문이에요. 사람들이 제가 제주에 있다고 하면 “뭐하고 먹고 사냐?”고 하는데, 그래도 굶지 않아요. 강연을 하면 노동 단가는 나름 고액이란 말이에요? 그 고액의 노동 단가를 가지고 와서 이렇게 평범하게 일상으로 녹여서 살 수 있다는 게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해요. 늙으면 점점 죽음을 향해 가는데, 그 사실이 전혀 두렵지 않아요. 어차피 늙고 죽을 거니까, 하루하루 살아있는 날이 참 좋다는 걸 느끼면서 살아야지 싶어요. 


불과 2년 전만 해도 건강 염려증 환자였다고 하셨는데요. 피가 가려운 병, 뇌가 곪는 병이라는 병명을 지었을 만큼요. 


제주에서 처음 알게 된 사람이 제 첫인상을 “얼굴에 다섯 컬러가 있다”고 표현한 적이 있어요. 노랗고 검고 붉고 푸르스름하다고요. (웃음) 마사지를 받으면서 피까지 가려웠던 그 길었던 건강 염려증의 끝이 보였어요. 그것도 따지고 보면 생각의 병이었어요. 마사지를 해주는 동생이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뭉친 데를 풀 때, 손님이 누구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서 이렇게 되었다고 남 탓을 하면 잘 안 풀린다. 그런데 자기 잘못이라고 인정하면 풀기가 쉽다”고요. 


지금은 어떠세요?


근본 불안, 이라는 건 아주 없어지는 게 아닌 것 같아요. 그런데 이것도 결국 일종의 허상이에요. 그동안 살면서 조금씩 두려워하고 불편했던 것들이 뭉쳐져서 근본 불안으로 자리 잡는 게 아닐까 싶어요. 근본 불안이 엄청난 게 아니라는 건 감을 잡았지만, 그럼에도 수시로 불안해지기도 하죠. 징검다리를 건널 때 사뿐히 갈 때도 있지만, 머뭇거리게 될 때도 있잖아요. 모든 사람의 불안도 마찬가지예요. 특별하지 않은데 자꾸 뭔가가 있다고 생각하면, 살이 붙으면서 눈덩이처럼 커지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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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을 이동해야 지속 가능하게 행복하다


강연장에서 청중에게 자주하는 질문은 “언제 행복하세요?”라고 하셨어요. 보통 어떤 대답을 하시나요?


“네, 행복해요”라고 하세요. 지금 강연을 들으러 온 순간이 너무 좋은 거예요. 그런데 “이 행복이 얼마나 지속적인 행복인가요?”라고 물으면, “에이, 여기서 일어나면 다 끝이죠”라고 해요. 실제로 사람들이 살면서 좋은 순간만 있는 게 아니잖아요. 하루에 한 번이라도 ‘그래도 사는 게 참 좋은 거야’라고 느끼면, 그걸로 사는 것 같아요. 걱정만 살짝 내려놓으면 이게 크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걱정의 90%도 돈, 싸움의 90%도 돈”이라고 하셨는데요. 돈 때문에 행복한 일들도 꽤 많아요. 


그렇죠. 많은 것이 주어지고 돈으로 교환하는 재미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돈도 좋은 사람과 나눌 수 있을 때 가치가 있어요. 며칠 전에 딸이랑 친한 후배랑 같이 아구찜을 먹으러 갔어요. “야, 이거 너무 맛있지 않냐?”라면서 호들갑을 떨면서 먹었는데, ‘아 돈이 있어서 참 좋구나’ 싶었어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돈으로 이 행복을 산 게 아니라, 이런 것들을 누릴 수 있을 때 돈이 촉매가 되는 것 같아요. 조금 더 추동력이 커지는 거죠. 돈이 조금 부족해서 다른 메뉴를 먹었더라도 우리는 재밌고 즐거웠을 테니까요. 사람들은 ‘지금은 돈을 많이 벌고 나중에 분위기 좋은 데 가서 밥 먹어야지’라고 하는데, 가치관이 전도된 게 아닐까 싶어요. 우리는 사람과의 관계에 포커스를 못 맞춰서 좋은 순간, 의미 있는 걸 많이 놓치는 것 같아요. 


돈이 없어서 누리게 되는 것, 더 소중하게 여기게 되는 것도 있으니까요.


사는 게 좋다라고 느낀 것도 관점 이동이에요. 이를 테면, 지금 인터뷰를 하면서도 머릿속으로 ‘내 책 어필을 잘해야 해’라는 목적의식보다는 ‘내가 책을 낸 덕분에 어떤 사람과 인생 이야기를 잠깐 해보는 시간이 있었어’라는 생각을 한단 말이에요. 현대사회는 모든 걸 목적주의로 몰아가는데, 오히려 목적을 내려놓을 때 얻는 것이 꽤 많아요. 


“1년짜리 연셋집에 살지만 나는 아무 걱정이 없다”는 책의 마지막 글귀가 생각납니다.


제주에 산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이왕 제주에서 살 거면 집을 지어라. 전망 좋은 곳에 땅을 사라”고 해요. “땅값 오르기 전에 2년만 더 일찍 내려오지 그랬어?”라면서요. 전 이렇게 생각해요. 제 몸이 가서 있으면 그게 다 제 거라고요. “누리되 소유하지 않는다”고 책에 썼는데, 특정한 땅과 집과 전망을 소유하지 않았기에 제주에 펼쳐진 자연을 누릴 수 있는 자유가 있어요. 


아무래도 이 책은 조금 인생을 산, 나이가 좀 든 사람들이 더 공감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저자로서는 어떤 생각을 하시나요?


40, 50대 분들이 읽으면 “맞아, 이게 인생이야”라고 공감할 것 같아요. 그런데 어떤 면에서는 제 딸을 생각하면서 쓴 책이기도 해요. 딸이 지금 백수인데, 딸에게 자주 하는 이야기가 있어요. “숨 길게 쉬어, 너무 바쁘게 살고 뛰어다녀도 만나는 지점은 대개 같아. 모든 사람들은 만나기 마련이야.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힘 빼고 살아. 숨찰 때는 잠깐 부채질을 하면서 가야 해. 그래야 인생이 쉬워”라고요. 모든 사람이 시간에 휘둘리고 사는데요. 1분이라도 ‘아 사는 게 참 좋다’라고 생각이 들면, 나머지 23시간 59분을 견딜 수 있는 것 같아요. 


선생님께 1분은 ‘신의 한 수’를 알려준 분들과의 인연이겠네요.


대개 사람들은 “당신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누구입니까?”와 같은 질문을 하는데요. 누구 한 명이라기보다는 이렇게 만난 모든 사람들 하나하나가 다 저를 변화시키고 새로운 나를 만들어 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사는 게 참 좋아요. 죽어서는 변화할 수 없잖아요. 살아 있기 때문에 사람을 만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다른 나를 경험할 수 있으니까요. 


‘여성학자, 방송인이’라는 타이틀이 책에서는 많이 드러나지 않아요. 예전의 오한숙희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조금 놀라기도 할 것 같아요.


그럴 거예요. 근데 이게 인생인 것 같아요. 젊은 시절의 저는 여성이라는 정체성 때문에 주어지는 내 삶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하는 마음이 강했어요. 지금도 그 마음이 없지 않고요. 다만 인생과 늙음이라는 숙제가 더해져서 새로운 과제가 생겼어요. 20대 때는 사회적 활동, 사회에 놓여진 장벽이 과제였다면 지금은 삶이 계속되는 과정에서 내 앞에 놓인 과제들이 있어요. 20, 30대 때는 여성운동을 학교와 교과서, 선생님들에게 배웠다면 지금은 세상의 평범한 사람들이 제 스승이 됐어요. 교과서의 범위가 넓어졌다고 생각해요. 또 제주라는 자연이 얼마나 큰 교과서인지 몰라요. 사람들이 가끔 “왜 요즘은 TV에 안 나오세요?”라고 물으면, “이제 제 시대는 갔어요”라고 말해요. 방송인으로서는 흘러간 사람인데, 나라는 관점에서는 방송이 흘러간 거예요.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여성학자로서 기대했던 것과 다른 이야기를 썼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어머 이 사람이 이렇게 다르구나’하고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는 것, 너무 당연하게 생각해요. 사람의 표현방식은 달라지는 거니까요. 예전에 가해자 남성들을 공격하는 일이 제 역할이었다면, 지금 그 역할은 다른 젊은 친구들이 하고 있어요. 제가 앞으로 해야 할 역할은 가해자가 지속 가능한 가해자가 되지 않도록 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제주에 작은 집필실을 겸한 게스트하우스를 마련했어요. 방랑 끝에 찾아온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어서요. 


지금, 행복하시죠?


(웃음) 네, 저는 지속 가능하게 행복해요. 예전에는 행복 앞에 ‘지금 붙었다면, 이제 ‘지속 가능’이라는 단어를 붙일 수 있어요. 행복이 유지돼야 행복한 게 아니라, 어떤 상황이 닥쳐도 살아 있는 동안은 사는 게 참 좋다고 말할 수 있어요. ‘비로소’라는 제주 게스트하우스에서 글을 쓴 적이 있어요. 비로소(秘路笑), ‘비밀의 길 끝에서 웃음짓다’는 뜻을 가진 곳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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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참 좋다오한숙희 저 | 나무를심는사람들
삶의 무게를 1g이라도 줄이고 싶었다. 그래서 불현 듯 생각나는 사람들을 찾아 풍선처럼 전국을 떠돌았다. 서울, 경기, 전라, 충청, 강원, 경상도를 지나 대한민국 맨 끄트머리 제주까지. 그 길에서 만난 인생 고수들에게 한 수 제대로 배웠다. 《사는 게 참 좋다》는 오한숙희의 방랑의 기록이며, 그 길에서 자신을 회복하게 된 힐링의 기록이다. 방랑길에서 만나 인생을 가르쳐 준 사람들의 신의 한 수에 대한 기록이다.




정의석 “죽음을 지켜보는 일, 나에게는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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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중간 중간 마주앉은 그의 전화벨이 울렸다. 짧은 통화가 이어졌고, 의미를 짐작할 수도 없는 생경한 단어들이 연이어 들려왔다. 하지만 알 수 있었다. 수화기 너머의 누군가가 애타게 그를 찾고 있다는 것을. 지금 또 다른 누군가는 생과 사의 경계에 서 있다는 것을. 자신에게 있어 죽음은 “더없이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현실’”이라 했던 그의 고백이 피부로 와 닿았다. 그는 ‘심장이 뛴다는 말’을 가장 사랑하는 흉부외과 의사였다. 


급한 대로 검지 끝으로 심장에 난 구멍을 막았다. 심장 근육의 움직임이 그대로 느껴졌다. (중략) 처음에 검지 끝으로 막을 수 있었던 구멍은 점점 벌어졌다. 내 엄지손가락을 심장 안으로 밀어넣고 손바닥으로 압박을 가해도 샐 만큼 커져버렸다. 나는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숨을 크게 쉴 수도 없었다. 내 손이 흔들리면 그에 따라 피가 철퍽철퍽 심장 밖으로 튀어나왔다. (『심장이 뛴다는 말』 12~13쪽)


『심장이 뛴다는 말』에서 저자 정의석은 오래된 일기를 펼쳐 보인다. 흉부외과 의사인 그가 전공의 시절부터 10년 넘게 기록해 온 것이다. “시간이 지난 뒤에 무엇이 문제였는지 그리고 그때 내가 어떻게 했는지 객관화해서 돌아보고 생각할 기회를 스스로에게 주고 싶어서” 결심한 일이었다. 이 내밀한 고백이 저자 이외의 사람들에게도 의미가 있는 것은 삶에 대한 성찰과 의지, 인간으로서의 짙은 고뇌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그를 찾아와 자신의 생명을 의탁한다. 그 역시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이들을 위해 사활을 건다. 그들의 만남은 또 다른 삶의 시작이 되기도 하고, 기약 없는 이별이 되기도 한다. 그 기로에 서서 저자는 묻는다. “그와 나는 어떤 관계일까?” 떨칠 수 없는 긴장감은 늘 곁을 맴돈다. “만에 하나 내가 판단을 잘못해 다른 사람의 일생을 망쳐버린다면?” 이어서 그는 고백한다. “내가 그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지 두려워지곤 했다”


결국 『심장이 뛴다는 말』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죽음 앞에 선 인간의 맨 얼굴이다. 의사로서, 그리고 한 사람으로서, 저자가 느끼는 불안과 쓸쓸함이 낯설지 않다. 그것은 ‘죽음이란 무엇인가’를 묻게 하고, 동시에 ‘산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그렇다면 생의 마지막에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저자가 만난 환자들은 저마다 다른 얼굴을 보여줬다. 흔들림 없는 생의 의지를 보여주는 이가 있는가 하면 ‘편하게 떠날 자유’를 말하며 서서히 삶을 정리하는 이도 있었다. 당신과 나는 어느 쪽일까.『심장이 뛴다는 말』이 우리에게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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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지켜보는 일, 저에게는 일상이에요


책에 실린 일기를 보면, 가장 오래된 기록은 2004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더라고요. 


아마 그때는 레지던트 2년차였을 거예요. 책에는 실리지 않았지만 그 전부터 일기는 써왔고요. 매일 쓴 건 아니지만 생각날 때마다 끄적거리면서 남긴 거예요. 중환자실에 갈 때면 매일 써야겠다고 의도적으로 생각하기는 했어요. 그래서 책에도 중환자실에서 쓴 일기가 많죠. 그때 폴더명을 난중일기로 써놨었어요(웃음). 


집필하시면서 일기를 다시 읽어보셨을 텐데요. 느낌이 남다르셨을 것 같아요.  


어떤 면에서는 조금 나아졌다는 생각도 하고, 한편으로는 예전하고 똑같다는 생각도 했어요. 진찰하고, 우울해지기도 하고, 똑같죠. 달라진 건 이제 제가 집도를 한다는 건데, 제가 수술을 엄청 잘하는 사람도 아니고 이런 책을 쓸 만큼 훌륭한 흉부외과 의사는 아니에요. 그냥 제가 느낀 걸 이야기하고 싶을 뿐이에요. 흉부외과에 발을 들여놓은 순간부터 지금까지 느낀 것과 제 일상을 쓴 거죠. 이 책은 의사로서 쓴 건 아닌 것 같아요. 우리나라에 흉부외과 의사가 굉장히 적으니까, 그렇게 드문 일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쓴 거죠. 


환자들과의 이야기도 실려 있는 만큼 조심스러운 부분도 있으셨겠죠. 


맞아요. 그래서 어떤 환자 분들께는 동의를 얻기도 했고요. 책을 전해드리기도 했어요. 정말 쓰고 싶었지만 환자 분들의 프라이버시가 있으니까 싣지 않은 이야기들도 있어요. 


일기라는 건 개인적인 기록이잖아요. 과연 이 이야기가 다른 사람들에게도 의미가 있을지, 고민하지는 않으셨나요?


죽음을 지켜보는 일이 흔하지 않잖아요. 그런데 저는 일상이거든요. 생로병사에서 생로병까지는 현실인데, 사는 상상의 세계예요. 죽음을 보는 일도 거의 없고 실제로 경험하는 건 평생에 한 번뿐이니까, 공고한 상징으로 만들어내는 거죠. 그런데 저에게 있어서 죽음은 조금 더 리얼하고, 조금 더 비참하고, 조금 더 괴로운, 그렇지만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그런 부분을 다른 분들과 같이 느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죽음은 피상적인 게 아니고 더 현실적인 거라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심장이 뛴다는 말』을 읽으면서, 환자와 의사의 인연이 참 묘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이 환자와 나는 무슨 관계일까’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돼요. 만나게 되는 이유는 굉장히 다양한데, 사실 수술 결과가 안 좋은 경우도 있죠. 심장 수술이라는 게 100명을 수술하면 100명이 다 사는 수술이 아니거든요. 환자 분께서 돌아가실 때도 있고, 그럴 때 환자와 저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죠. 아마 저뿐만 아니라 어떤 의사든 가지고 있는 생각일 거예요. 환자와 의사의 관계를 이야기할 때 ‘라뽀(rapport)’라는 말을 쓰는데요. 그런 신뢰 관계가 유지되지 않으면 진료를 할 수 없는 거죠. 그래서 저를 포함해서 모든 의사들이 환자에게 신뢰를 주려고 노력하는 거고, 환자들도 신뢰할 수 있는 의사를 선택하는 거예요. 그렇지만 너무 가까워지면 안 된다고 되어 있기도 해요. 


책에서 말씀하신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가까운 사이가 된 환자를 수술할 때 “가족을 수술하는 느낌이 들어 부담스럽다고” 고백하기도 하셨죠. 


그 분은 지금 뵈어도 가족 같아서,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저와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항상 조심하고요. 조금 멀어지려고 애쓰죠. 그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요.


의사와 환자 사이의 적당한 거리란 어느 정도일까요?


정답은 없는데, 객관성을 유지하면서 친밀한 관계 정도가 아닐까 싶어요. 그런데 그게 어렵죠. 저는 병원 안에서만 환자들과 관계를 이어가는 게 맞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하는데요. 물론 그렇지 않은 의사들도 있어요. 



의사가 환자를 살린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자신에 의해서 타인의 생과 사가 결정된다고 생각하면 부담감을 떨치기 어려울 것 같아요. 


보통 ‘환자를 살렸다’고 많이 표현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요. 의사는 가이드와 같은 것 같아요. 여행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에서 쉬운 길로 가게 해주는 게 가이드의 역할이잖아요. 수술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현재 나와 있는 약이나 기술, 수술 방법 등을 활용해서 살 수 있는 길로 가이드해주는 것이 의사의 역할인 것 같고요. 살린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때로는 운명이나 초월자의 존재를 믿고 싶을 때도 있지 않으세요? 어떤 환자가 살고 죽는 건 의사의 능력 밖에 있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잖아요. 


비슷한데 조금 다르죠. 저는 무신론자에 가깝거든요. 신의 존재에 대해서 관심이 별로 없어요. 물론 힘들 때는 절대자가 있어서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분들은 바쁘니까 일일이 도와주실 수 없겠죠(웃음). 그러니까 좀 아니라는 생각이 들고요. 사람의 운명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닌 것 같아요. 그러면 아무것도 안 해도 되죠. 그냥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걸 하는 사람인 거예요. 물론 환자 상태가 좋지 않으면 괴롭죠. 내가 더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나, 하고 복기해 보면서 고민해요. 모든 의사들이 그럴 거예요. 


“모든 환자를 살리려고 하지 마. 네가 살리는 게 아냐. 환자가 사는 것이지”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고 하셨는데요. 그 말은 어떤 의미였을까요?  


제가 정말 존경하는 선생님께서 항상 그런 말을 하세요. 그 분은 환자를 살리려고 엄청 노력하시거든요. 살 수 있는 사람을 못 살게 하면 안 된다는 사명감이 있는 거예요. 10명의 환자 중에서 살 사람은 3명뿐이라고 생각하고 수술하는 게 아니라, 모두가 살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수술하는 거죠. 그런 말씀을 들어도 ‘그래도 뭔가 해야 하지 않나’라고 생각이 돼요. 이번에는 안 될 줄 알고 했지만, 다음에는 미리 생각할 수도 있잖아요. 준비를 많이 할수록 제가 할 수 있는 일도 더 많아지는 거고요. 그 편이 조금 더 효과적이고, 살 사람도 늘어나는 거죠. 


‘임계점’이라는 제목의 글이 생각나네요. 모든 객관적 지표들이 ‘이 환자는 더 이상 가망이 없다’고 말한다 해도, 냉정하게 상황을 판단하기가 쉽지 않으시겠죠. 


그런 순간은 아무리 반복 되도 익숙해지지 않죠. 그렇게 훈련이 되는 게 싫을 때도 있고요. 며칠 전에 환자에게 에크모(ECMO. 심정지 환자에게 쓰는 기계로, 몸 밖에서 환자의 혈액에 산소를 공급한 후 체내로 다시 넣어준다)를 시도하고 있었는데, 다른 환자가 왔어요. 에크모를 넣은 환자는 생존 확률보다 돌아가실 확률이 많았고, 새로 온 환자는 수술하면 살 수 있었어요. 수술을 안 하면 오늘 내일 돌아가실 것 같았고요. 그런데 병원에 수술할 사람이 저밖에 없었거든요. 그럴 때는 선택을 해야죠. 저는 계속 에크모를 시행했고 나중에 온 환자는 다른 선생님이 봐주셨는데, 제가 수술하는 동안 돌아가셨어요. 두 환자를 비교해 봤을 때는 에크모 시술을 받으신 분이 임계점을 넘었더라고요. 만약 다른 환자가 오지 않았다면 임계점을 넘지 않았다고 생각했겠죠. 제가 항상 이야기하고 싶은 건, 대부분의 흉부외과 의사들이 자기 환자에 대한 애착과 집착이 무척 강하다는 거예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하겠다고 생각하죠. 


다시는 수술실에 들어가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셨던 적은 없나요? 


그렇지는 않아요. 일상이니까요. 저는 수술이 좋아요. 그 과정이 흥미로워요. 아침에 수술실에 들어가면 1시, 2시 정도가 돼야 끝나거든요. 아주 심각한 상황일 때는 저녁 12시가 넘어서 끝날 때도 있어요. 이번 주말에도 8시간 반 동안 수술을 했어요. 그 일이 정말 좋지 않으면 여덟 시간씩 서서 계속할 수는 없어요. 싫으면 못하죠. 대부분의 외과 의사들이 그런 생각을 해요. 좋지 않으면 그만두죠.


“어떤 의사도, 환자의 생명을 보장하지 못한다. 보장한단 말을 서슴없이 하는 의사가 있다면 그는 사기꾼일 것이다”라고 단언하셨어요. 


환자를 만나면 손을 꼭 잡으면서 ‘제가 살려드리겠습니다, 제가 보장하죠’라고 말씀하시는 분도 계시겠죠. 그런데 저는 환자에게 절대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아요. 어떻게 제가 하는 일을 보장해요, 저는 보장 못해요. 대신 위험성을 과장하지도 않아요. 요즘에는 심장 수술을 할 때 위험도를 알아볼 수 있는 툴이 있어요. 사망에 이를 가능성이 계산되거든요. 저는 있는 그대로 환자 앞에서 보여주고 이야기해요. 아주 예전에는 그런 툴이 없었기 때문에 (위험성을) 경험에 비추어 이야기했을지 몰라도, 지금은 그렇게는 안 하실 거예요. 대부분의 의사들이 과장하지 않고 객관적으로 알려주는 걸로 알고 있어요. 그런데 보호자들 중에 ‘(수술 성공을) 보장하면 수술 할게요’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시거든요. 제가 생각할 때는 객관적인 사실을 알려주지 않는 의사나, 보장해주지 않으면 수술하지 않겠다고 말하는 보호자나, 다른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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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한 죽음이라는 건 없어요


사람의 본 모습은 죽음의 문턱에 이르렀을 때 여실히 드러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까지 많은 환자들을 봐 오셨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두려워하는 분들도 있는데요. ‘정말 저 분은 훌륭하다’라고 느끼게 되는 분들도 만나게 돼요. ‘나는 나중에 저럴 수 있을까’라는 생각도 하게 되고요. 얼마 전에는 어떤 목사님께서 수술을 받으셨는데, 그 분은 정말 성직자 같으시더라고요. 퇴원하고 2주 만에 본인 교회에 가셔서 새벽 예배를 보셨대요. 본인이 아파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가야 된다는 거예요. 참 훌륭하신 분이라고 생각했어요. 더 초조해하는 분들도 많거든요. 죽음 앞에서 사람의 맨 얼굴이 드러난다는 데에 동감해요. 책에서도 이야기했던 비행기 조종사 분을 보면서도 ‘저렇게 훌륭한 사람도 있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어요. 아마 끝까지 재활 훈련을 받으셔서 다시 비행하고 계실 텐데요. 그 분만 그런 게 아니라, 굉장히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분들이 계세요. 어쩌면 그 정도로 건강이 나빠지면 삶의 의지들이 또 생기나 봐요. 우리가 모르는 능력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겨우 55세밖에 안 된 어머니를 편히 돌아가시게 하고 싶다고 말했던 보호자도 있었죠. 결국 참지 못하고 화를 내고 말았다고 하셨어요


제가 느끼기에는 어차피 편하게 죽는 건 없어요. 그러면 고민을 해야죠. 예를 들어서 호스피스 병동에 가실 분들이라면 그 고민을 해야죠. 그렇지 않은데 나는 편하게 죽겠다고 하면 말이 안 되죠. 지금은 기술이 많이 발전했기 때문에 심장 수술이 그렇게 위험하지 않아요. 그런데 어머니를 편하게 해드리고 싶어서 수술을 안 하겠다고 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그러면 저는, 아주 못되게 이야기할 때는, 자식들이 편하지 어머니는 편하지 않으시다고 말씀 드려요. 누가 편한 건지 잘 생각해 봐야 돼요. 저는 외과 의사니까 수술하고 잘 회복하는 게 편하게 사시는 거라고 생각해요. 편한 죽음이라는 건 안 아픈 상처라는 말과 똑같은 건데, 완전히 비문 같은 이야기를 하는 거죠. 치료보다 편한 죽음이라고 말할 수도 있는데, 세월이 바뀔수록 치료가 더 편할 수도 있거든요. 


10년 전의 일기에는 ‘도망을 가리라’ 굳은 결심을 적으셨습니다(웃음). 7년 전 일기에는 ‘흉부외과가 싫어졌다. 정말 지긋지긋하다. 그만할 때가 됐다’고 쓰셨고요(웃음). 이런 고백까지 솔직하게 들려주신 이유가 있나요


지금 이 일을 하고 있지 않다면 부끄러울 텐데, 저는 계속 흉부외과 의사로 있으니까요(웃음). 그리고 이후에 가치를 찾은 것 같아요. 환자들의 죽음을 지켜보는 일은 힘들지만, 그것보다 좋은 게 더 많아요. 괴로움이 있지만 그래도 좋아하는 순간들이 더 많으니까, 그러니까 계속 남아있겠죠. 대부분의 직업이 그렇지 않을까요. 


스스로 이렇게 물으신 적도 있죠. “일주일에 적어도 몇 명의 사람은 살릴 수 있게 되었다. 돌아가시는 것을 늦추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그래서 그게 어떤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다” 지금 같은 질문을 드린다면 어떻게 답변하시겠어요? 


그때는 엄청 우울했고 ‘내가 이런 걸 할 수 있어봤자 뭐가 바뀌겠어’라는 생각을 했던 건데요. 지금은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예전에 라디오에서 들은 이야기인데요. 미국의 어떤 바닷가가 불가사리로 뒤덮인 거예요. 해변에서 불가사리는 죽어 가는데, 나름 장관이니까 관광지가 돼서 사람들이 찾아와서 보는 거죠. 그때 어떤 노회한 사업가도 바다를 보러 갔는데, 한 청년이 계속 불가사리를 바다에 던지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네가 이런다고 뭐가 달라지겠니’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청년이 불가사리를 보여주면서 ‘이 불가사리한테는 다르죠’라고 말하는 거예요. 이 이야기가 저한테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환자 개개인마다 다 의미가 있잖아요. 그런 과정이 저한테도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내가 바닷가에서 구경만 하는 게 아니라, 불가사리를 던질 수 있는 사람이 됐구나’ 싶기도 하고요. 


메르스 사태 때, 환자 치료에 에크모 장비를 투입할 수 있도록 지원을 호소하기도 하셨습니다. 의료진의 시각에서 본 당시 상황은 어땠나요? 


저희 병원에 메르스 환자가 세 분 오셨었는데, 결국 에크모를 시행하지 않았어요. 당시에 좋지 않은 결과도 있었지만 그래도 병원의 모든 의료진이 정말 열심히 했어요. 결국은 제대로 된 보상이란 건 없고요. 책에도 썼지만 선배 한 분은 자신이 메르스 감염 환자와 접촉했다는 걸 나중에 알았어요. 몰랐을 때는 매일 집에서 아이 넷을 껴안고 잤거든요. 그래서 사실을 알았을 때 정말 손이 벌벌 떨렸다고 하더라고요. 친구 한 명은 나중에 격리가 되기도 했고요. 


에크모 관련 기자 간담회를 준비할 때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잖아요. 메르스와 관계된 일이라서 장소를 섭외하기도 쉽지 않았고요. 


그때 예약했던 커피숍에서 일방적으로 취소를 통보해 와서, 커피숍 주인과 싸우기도 했죠. 그런데 화를 내다보니까 그 분에게 뭐라고 할 수도 없겠더라고요. 누가 안 그러겠어요. 걸리면 너무 무섭잖아요. 그런데 제가 그런 상황이라면 환자와 보호자들은 어떻겠어요. (감염돼서) 정말 슬픈데 거기에 혐오까지 더해지는 거죠. 그게 슬픈 거죠. 결국엔 다 약자에 대한 혐오잖아요. 그런데 자신의 일이 되면 또 달라지겠죠. 그때 간담회는 제가 주도한 건 아니었고, 여러 병원에 있는 흉부외과 의사들이 모여서 에크모를 사용하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던 거예요. 정부에도 이야기하고요. 그래서 많은 환자들에게 에크모를 시행했는데, 아마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제일 많이 했을 거예요. 결과가 나쁘지 않았고, 덕분에 몇 분의 환자들이 살 수 있었죠. 사람들이 (메르스로 인해) 패닉으로 빠지는 걸 조금 막은 측면도 있어요. 의사의 사회적인 역할도 했다고 생각하고요. 


『심장이 뛴다는 말』을 읽은 독자들이 어떤 시간을 가지면 좋을까요? 


이 책은 제가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알게 된 것에 대해서 써 놓은 거예요. (죽음이라는) 피상적인 걸 물질감 있게 써 놓은 글이니까, 읽으시면 (죽음에 대해) 조금 더 고민을 하시지 않을까 싶어요. 마지막에 실린 ‘질문’이라는 제목의 글이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인 것 같은데요. 결국은 모두가 극적으로 죽게 되잖아요. 대부분의 사람이 그래요. 준비 없이 죽음을 맞게 되죠. 책에 실린 이야기는 결국 ‘나의 것이 될 타인의 삶’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읽으시면서 같이 뒤돌아보고 내다보실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또 하나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책에 실린 저의 그림을 꼭 봐주셨으면 좋겠어요(웃음). 제가 그림을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지금 김중혁, 오기자, 정유미 작가님과 함께 소설집을 준비하고 있는데 그 책에 실릴 그림도 직접 그리고 있어요. 소설도 쓰고요. 『심장이 뛴다는 말』에 실린 그림들은 제가 평소에 그리는 것과는 느낌이 다르지만, 어떤 그림은 수술 마치고 나서 밤새워 그린 것도 있고, 애착을 많이 가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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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이 뛴다는 말정의석 저 | 스윙밴드
종합병원 중환자실과 수술장에서 보낸 어느 흉부외과 의사의 치열한 10년의 시간에 관한 기록 “그대, 심장을 생각해본 적 있나요? 심장이 뛰는 동안, 우리는 살아 있습니다. 심장이 멈추면, 우리의 삶도 멈추죠.” 그는 매일 심장을 봅니다. 아픈 심장을 고치는 것이 그의 일입니다. 그는 흉부외과 의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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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언 리틀 교수, 삶의 질을 높이는 ‘성격’에 대한 모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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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건배하자! 당신을 위하여, 누가 뭐라 해도 당신 자신을 위하여! 그리고 ‘우리’를, 당신의 인생 여정을 함께할 우리를 위하여! 당신의 성격을 만드는 데 일조하고, 당신의 삶의 질을 높이고, 당신의 농담에 웃고, 가장 절실한 순간에 당신을 꼭 붙잡아주는 우리 모두를 위하여!(311쪽) 


‘성격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아주 상투적이지만 의외로 새삼스러운 느낌을 준다. ‘당신의 성격은 무엇인가’라면 몰라도 ‘성격’ 그 자체에 대해 궁금해 할 일은 별로 없었다. 성격, 동기심리학 분야의 세계적인 학자 브라이언 리틀 교수는 그 틈새를 파고든다. 성격이 무엇인지, 어떤 성격이 어떤 경우에 좋은지, 성격을 어떻게 이해하면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지, 성격에 대한 설명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분석한다. 오해는 말자. 그리하여 ‘행복해지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의미 있는’ 삶을 이야기한다. 각자가 가지는 궁극적인 삶의 ‘핵심 목표’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한다. 이것은 참으로 새삼스럽고, 놀랍다. 


그러고 보면 자신에 대해, 자신의 성격에 대해 사람들은 의외로 정확히 알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외향적인 사람인지 내향적인 사람인지조차 헷갈린다. 혼자 있는 시간에 스트레스가 풀리는지, 풀린다면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 보내면 스트레스가 더 잘 풀리는지 깊이 생각할 여유가 없던 것일까. 


브라이언 리틀 교수는 하버드에서 3년 연속, “학생들이 직접 뽑은 인기 교수”에 선정되었다. 흥미로운 사례와 자기 테스트 항목도 있으니 성격이라는 것에 대해 좀 더 깊이 알아보고 싶다면 이 책을 펼쳐 봐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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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적이 되어라


성격에 관한 다양한 이론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논쟁적이라는 의미겠죠. 성격이 삶의 질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일반 대중이 이런 이론들에 어느 수준까지 접근해야 하는지 궁금해집니다. 


인간 성격은 복잡합니다. 성격의 복잡성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이론이 필요합니다. 어떤 성격 이론이 어떤 성격을 설명하기도 하고, 다른 성격 이론이 또 다른 성격을 설명하기도 하죠. 따라서 성격의 복잡성을 받아들이는 데 이론은 중요합니다. 일반 대중은 인간 성격의 복잡한 양상을 이해하기에 충분히 지적입니다. 책에 학문적인 내용만 담지는 않았으니 인간 성격에 깊은 관심이 있는 독자들이라면 충분히 읽을 수 있습니다. 성격을 그저 재미있는 게임으로 여기지 않는다면 말이죠. 


한국에서는 혈액형으로 성격 유형을 판단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재미로 여기지만 의외로 믿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있고요. MBTI에 대해서도 비판적으로 말했는데 이와 같은 성격 유형 검사 도구들에 대해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지 조언 부탁드립니다. 


저는 사람들이 회의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성격 유형에 강한 흥미를 느낍니다. 어떤 유형에 해당하는지 찾아내는 것에 큰 즐거움을 느끼죠. 그러나 개개인의 인간은 고정된 유형 이상의 복잡한 존재입니다. 저는 사람들이 간단히 개별 유형을 판단하는 것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혈액형이나 MBTI 같은 것으로 규정지을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런 것들을 사용할 방법은 있습니다.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대화를 시작하는 내용으로는 삼을 수 있겠죠. 예를 들어 누구를 만나서 ‘당신은 소극적인 줄 알았는데 적극적인 것 같네요, 혈액형이 뭔가요?’라고 할 수 있어요. 저는 이것이 대화의 시작은 될 수 있지만 대화의 결론이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에 도달하려고 하는지, 무엇이 중요하고, 그가 누구고,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 데 있어 이것들의 방해를 받으면 안 됩니다. 대신 대화를 풍부하게 하는 정도는 가능할 거예요. 


나를 정확히 알고, 스트레스 상황의 대처법을 생각해 두는 것이 얼마나 도움이 되는 일인지 새롭게 알게 됐어요. ‘자유 특성 합의서’ 같은 아이디어를 제시하기도 하셨잖아요. 


네, 그 이야기를 책의 후반 몇 챕터에서 다뤘는데요. 사람은 고정적인 특성과 자유 특성을 가지고 있지만 개인적인 과제, 목표에 의해 자유롭게 변화가 가능합니다. 개인들이 자신의 성격에 대한 이해를 높임으로써 보다 유연한 특성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삶에서 여러분이 과제라고 부르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면, 당신의 특성을 안다면 당신이 왜 그런 방식으로 행동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것을 아는 것도 중요하죠. 그러나 자신의 삶의 핵심 목표를 아는 것이 보다 중요해요.


가끔은 스트레스를 받고 본성에 반하는 상황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제가 독특하게 화장실에서 사람들을 피했던 것처럼 곤란한 상황에 있으면 좋을 ‘자유 특성 합의서’를 만들었어요. 우리가 자유 무역 합의서처럼(웃음) 자유 특성 합의서를 작성하면 좋겠죠. 친구나 동료를 대할 때 사람들은 때로 자신의 성격을 벗어난 행동을 합니다. 이것이 바로 자유 특성 합의서예요. 이를 통해 스트레스도 줄이고, 평정을 찾을 수 있어요. 명상이 한 예가 될 수 있는데요 이것은 특히 내향적인 사람들에게 좋은 자유 특성 합의서가 될 수 있을 겁니다. 싸이의 음악을 듣는 것 또한 외향적인 어떤 사람에게는 도움이 될 수 있겠죠.(웃음)


하지만 지금 진행 중인 삶에서 중요한 것들, 가령 핵심 목표라든가 꾸준히 몰입하는 것 그리고 미래의 포부 같은 것들은 남에게도 이야기하자. 그런 것들에 초점을 분명하게 맞추면, 자신의 비교적 고정적인 특성과 좀 더 전략적인 자유 특성이 달리 보인다.(1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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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인 조화


외향적인 면을 미덕으로 여기는 사회 분위기가 있는데요. 요즘은 반대로 내향적 성향을 소리 내 말하는 사람들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여러분이 더 잘 판단하실 수 있겠지만 제가 받은 인상은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들이 갖고 있는 외향성에 대한 개념 자체가 미국의 개념과도 다르다는 것입니다. 좀 더 내성적인 개념이 더 있는 것 같아요. 홍콩은 아시아 국가들보다 LA와 더 가깝겠죠.(웃음) 중국, 일본, 한국 모두 각자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수십 년 간 외향성의 가치가 높게 인정받았던 것은 사실이죠. 미국 문화의 영향을 한국이 많이 받기 때문에 한국인들이 성격에 대해 생각하는 방식도 미국이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합니다. 제 생각에 한국은 외향성에 가치를 두기 시작했고, 미국은 내향성에 가치를 두기 시작한 것 같아요. 


곧 있을 컨퍼런스에서 발표할 주제 역시 한국에서 느낀 것에 대한 내용이에요. 한국은 두 가지 면이 동시에 있습니다. 하나는 현대적이고, 빠르고, 기술주도형이고, 강남스타일에(웃음), 신세계적인 혁명을 원하는 쪽이고요, 다른 쪽은 보수적이고, 차분하고, 사려 깊고, 동양적인 것들이에요. 저는 두 가지 면이 모두 가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창조적인 조화(creative harmony)’라는 이름으로 발표하려고 합니다. 


사회 분위기에 대한 긍정 혹은 피로감이나 반감 같은 것이 개인의 성격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증거일까요? 


미국에서 여러 청중들에게 40년 동안 내향성의 가치에 대해 강의를 해왔는데요. 재미있는 점을 발견했어요. 분명 외향적이라고 여길만한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내향적인 사람이라고 말한다는 점이에요.(웃음) 여기에는 수잔 케인이 말한 조용한 혁명(Quiet revolution)도 영향이 있겠죠. 그 나라에서 어떤 것에 가치를 두는가도 의심의 여지없이 중요하겠고요. 그러나 현재 그것은 유동적이에요. 상황은 변화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누구인가 하는 감각과 정체성은 문화적 요소만큼이나 미디어의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정체성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어요. 


수잔 케인의 책이 그렇게 인기를 끌었던 이유도 그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북미에서 스테레오 타입 즉, 큰 소리를 내고, 책상을 치고, 적극적인 모습에 대해 깊이가 없다고 생각하는 면도 있어요. 그래서 수잔 케인의 책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내향성의 조용한 힘(Quiet strength)에 대해서도 사람들이 많이 얘기하는 것 같습니다. 


어떤 경우에 유리한 특정 성격이 있다는 사실은 자기계발을 독려하는 사회의 요구와 자연스럽게 연결이 됩니다. 개인들에게는 어떠한 상황에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지 지침이 필요할 때가 있으니까요. 성격에 대한 이와 같은 실용적 접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무척 흥미로운 질문입니다. 지침이 필요하다는 말에 동의해요. 어떤 상황에서 어떤 행동을 하는가에 따라 충분히 자기계발이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가령 학생들은 시행착오를 통해 발전하죠. 비디오테이프를 보면서 말하기 연습을 하면 타인 앞에서 발표를 뛰어나게 하는 사람이 되기도 하고요. 저는 이것이 새로운 기술의 아름다움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내가 캐나다에서 공공정책학을 가르치는데요. 포크와 나이프를 어디에 두는가와 같은 테이블 매너까지 가르칩니다.(웃음) 저는 훌륭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해요. 멋있어요. 


하지만 사회적인 요구에 너무 맞출 필요도 없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항상 옳은 일만 했다면 우리에게는 애플이 없었을 거예요. 우리는 사회적인 기대와 압력, 거물들에게서 느낄만한 것들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합니다. 옥스퍼드에서 개인들에게 사회적 스킬을 가르친 적이 있었는데요. 특정한 상황에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를 가르쳤어요. 질문과 비슷한 톤으로 대답하거나 정형화된 답하기를 가르쳤습니다. 그때는 그것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젊고, 창의적인 버클리 학생이었거든요.(웃음) 관습적인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죠. 그렇지만 점점 이런 훈련이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대중 앞에서 긴장하지 않기 위해 숨 쉬기, 생각 중단하기처럼 해결책을 설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긍정적 사건도 스트레스 요소이고 창조적 삶에도 큰 고통이 수반된다는 사실을 짚었습니다. 이를 테면 장단점을 모두 보여주려고 하신 건데요. 어떤 특별한 의도가 있을까요? 


최근 15년 간 긍정심리학에 많은 관심이 쏟아지고 있어요. 사람들이 관심 갖는 것들을 보면 과학적으로 행복한 얼굴에 대한 것이라든가 행복해야 한다, 이런 종류의 것들이에요. 하지만 그것은 인간들이 겪는 여러 조건을 모두 설명하지 못해요. 친구를 잃거나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 것처럼 노력을 해도 실패하는 일은 생기죠. 저는 책을 통해 그런 양면을 다 보여주려 했습니다. 행복한 일만 있는 게 아닙니다. 저는 ‘의미 있는’ 삶을 이야기합니다. 긍정적인 면만 강조하는 긍정심리학의 개념을 수정하고 싶어요. 아이가 다치거나 부모나 조부모가 치매에 걸렸을 때 행복하냐고 하면 그렇지 않을 수는 있어요. 하지만 그런 삶이 의미 있느냐고 물으면 그럴 수 있어요. 가족과 연결되어 있고, 서로를 좋아하니까요. 이렇게 개념을 수정하고 싶었던 거예요. 읽는 분들도 책에서 그런 의미를 가져가셨으면 좋겠습니다.  


말씀하신 부분이 독자들에게 강조하려던 내용이겠군요?  


제가 긍정심리학자로 간주되고 있어요. 딜레마예요. 전 아닌데 말이죠. 긍정심리학자 그룹에서 저를 긍정심리학자라고 하는데, 그건 저를 놀리는 것 같아요.(웃음) 물론 긍정심리학을 공격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분야의 거물들이 상업적으로 이용되는 경향이 있어요. 행복하지 않다면 당신을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식의 상업적 경향이 있죠. ‘행복해지는 다섯 가지 방법’처럼 말이에요. 그건 긍정심리학의 학문적 측면이 아니에요. 삶이란 복잡하고 ‘행복한 얼굴’만으로 설명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삶을 의미 있게 사는 게 더 중요하죠. 


결국 ‘문제는 맥락’이라고 하셨어요. 한 가지 기준으로 판단할 수 없는 것이 성격이라는 의미겠죠. 책도 한쪽으로만 읽히지 않기를 원하시는 것 같고요. 


개인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은 너무나 많기 때문에 한 가지 기준으로 판단할 수는 없어요. 창조적이고, 영향력이 있는 반면 건강하지 않을 수도 있죠. 엄청나게 유명하고, 큰 영향력을 가졌지만 그 스스로는 그것을 불편하게 생각할 수도 있고요. 유명세나 영향력이 기준이라면 그는 행복해야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거예요. 행복하다는 것이 반드시 의미 있는 삶을 말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단 한 가지가 아닌 복수의 기준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행복한가 하는 것만으로 자신을 보지 말라고 말하고 싶어요. 


중요한 것은 개인이 스스로의 삶을 풍족하게 변화시켜나가는 데 있어 지속가능한 핵심 과제를 추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그런 것들에는 사회적인 힘의 영향도 있을 수 있고, 개인적인 동기가 될 수도 있어요. 결국은 지속가능성에 도전하는 것이 개인이 중심에 두어야 할 핵심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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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과의 화해


현대인들은 타인의 평가에 늘 노출되어 있잖아요. 이런 스트레스 상황에서 건강한 대응 태도란 어떤 것일까요? 


우리는 다른 사람의 기대에 따라 살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어야 합니다. 타인의 의견에 굉장히 상처 받기 쉬운 사람도 있고,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굉장히 예민한 사람도 있죠. 내향성이 강한 사람일수록 더욱 그러한 경향이 있기는 하고요. 또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의견에 전혀 신경 안 쓰기도 하잖아요. 그런 사람들은 자신이 추구하는 목표나 맡은 임무를 잘 해내요. 그렇지만 그것은 지속가능하지 않죠.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망치거든요. 일만 하느라 아내와 사이가 좋지 않게 되는 것처럼 말이에요. 자신이 추구하는 핵심 과제의 지속가능성을 위험에 빠뜨려선 안 돼요.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자신과 타인의 성격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지면 좋을지 말씀해주세요.   


자신과의 관계에 대해 먼저 얘기해봅시다. 사람들은 종종 자신을 평가절하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스스로에게 너그러워질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종종 타인과 어울리고, 타인보다 앞서나가기 위해 자신을 바꿉니다. 다른 사람처럼 행동해야 하고, 스스로를 압박해야 해요. 한국도 그렇죠. 교육에 열을 올리고, 대입에 대한 스트레스도 너무 높아요. 엄청난 스트레스죠. 하지만 자신이 절망의 나락까지 가지 않도록 심하게 하지 않아야 해요. 너무 자신을 몰아붙이지 않기 위해 자신과 화해하고, 자신을 용서해야 해요. 또한 우리가 염려하는 다른 사람들 역시 그렇죠. 삶이 너무 지치고, 피곤해서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자기 자신과의 화해를 통해 활기를 찾고, 자신에 대해 다시 생각해봐야 합니다. 화해, 활기를 되찾기, 우리가 지향해야 할 자세는 이 두 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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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이란 무엇인가 브라이언 리틀 저/이창신 역 | 김영사 | 원제 : Me, Myself, and Us
나는 어떤 사람인가? 성격은 고정된 것인가, 바뀔 수 있는가? 왜 나는 가정과 직장에서 전혀 다른 사람이 되는가? 내 미래는 내 손에 달렸는가, 아니면 운명의 바다에서 파도타기를 하는가? 하버드 학생이 직접 뽑은 인기 교수, 브라이언 리틀이 전하는 성격과 삶의 질의 상관관계. 나와 타인을 이해하는 ‘개인 구성개념’부터 성격의 ‘고정된 특성’과 ‘자유 특성’. 우리 삶을 더욱 능동적, 긍정적으로 바꾸는 ‘개인 목표’, 성격과 장소의 궁합까지! 나와 나 자신, 우리의 성격을 바로 이해하고 더 자유롭고 더 행복한 삶으로 안내하는 본격 성격 탐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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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미나 “페루, 다 괜찮다고 위로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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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딛고 선 땅이 답답하고 지칠 때 다른 세상을 상상한다. 잠시 ‘영혼에 바람이’ 불어오는 느낌이다. 상상만으로 그러한데 두 발 열심히 굴려 진짜 다른 세상에 발 딛고 서면 어떨지. 시들었던 영혼은 방금 씻은 아이 얼굴처럼 말갛게 피어오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여행을 꿈꾼다. 여행을 떠난다. 길 위에서, 끊임없이 길 위에서 다른 나를 경험한다. 


이제는 ‘여행 작가’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은 손미나. 이번에는 페루였다. 그의 페루는 ‘치유’의 장소, “세계의 배꼽”, 깨달음을 준 곳, 그 모든 것이었다. 아프고, 바빴던 시간에 페루가 떠오른 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그만큼 간절한 일이었다. 페루에서의 한 달, 페루를 알게 된 손미나와 그렇지 않았던 손미나는 전혀 달랐다. 이제 그는 “마치 월급에서 저축할 돈을 떼놓고 사용하는 것처럼” 의식적으로 휴식하는 시간을 만든다. “내 삶 전체에 대한 그림을 생각할 여유”를 찾았기 때문이다. “천천히 가는 주사”를 페루에서 맞고 왔다며 그는 맑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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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나눌 의무


책을 내면 종종 “이거 정말 사실이야? 지어낸 얘기 아니야?”라는 말을 듣는다고요. 그럴 만한 이야기들이에요. 아무리 여행지라도 특별한 일이 매번 일어나진 않잖아요. 


네, 맞아요. 왜 나한테 이런 일이 벌어질까 생각할 때도 있어요. 처음 책을 쓰려고 마음먹었을 때 이런 행운을 나 혼자 겪고 그냥 넘어가면 안 된다, 사람들에게 나눠줘야 한다는 의무 같은 게 있었거든요. 그런 의무를 운명으로 갖고 태어난 걸까, 생각했었어요. 내 이야기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는 생각이 『스페인 너는 자유다』를 쓸 때 많았거든요. 그래서 대학 시절 이야기를 꼭 포함시키고 싶었고, 책이 그렇게 된 건데요. 그 운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여행할 때마다 항상 그런 좋은 분들을 만난 거예요. 가끔은 신기할 정도로 먼저 다가가지 않아도 사람들이 다가오고요. 굳이 조르거나 애원하지 않아도 자기 인생 얘기를 털어놓으니까 정말 신기해요. 그런 일이 계속 벌어지고 있어요. 페루에서도 역시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그런 것들에 정말 감사해요. 하여튼 뭔가 제가 이 삶에서 행해야 하는 임무 중 하나 같아요.(웃음) 


특별한 사건들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고 반복된다는 것이 참 운명적으로 느껴지네요. 


또 그런 것들이 쌓여서 저라는 사람을 또 그렇게 만들고 있는 거겠죠? 소명이라고까지 한다면 거창하지만 어쨌든 그런 운이 따르고 있는 건 사실인 것 같아요. 그걸 혼자 독식하기는 싫고요. 사람들에게 세상에 이렇게 생각보다 좋은 사람들이 많이 있다, 우연히 만나는 사람들에게서 이런 것도 얻을 수 있다, 내 삶의 양식으로 삼고 성장할 수 있다, 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요. 무엇보다도 책을 쓰면서 인생이란 이렇고, 이래야 한다는 그 틀을 깨고 싶었어요. ‘인생학교’ 프로젝트도 마찬가진데요. 이렇게 사는 게 인생의 전부 같지만 그렇지 않잖아요. 안데스에 이런 사람들도 있고, 이렇게 살고 있다는 걸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열게 하고 싶어요. 마음이 열리고, 사고가 열리고, 영혼이 열리는 경험을 나누고 싶은 거죠. 그런 일을 하라고 자꾸 그런 행운이 따르는 것 같아요.


생각만으로 사고가 열리는 경험을 하기란 쉽지 않죠. 다른 삶에 대해 구체적인 모습으로 알게 된다면 훨씬 다른 삶을 상상하기는 쉬워지겠고요


맞아요. 심지어 몇 백 년 전에 있던 유명한 철학자의 말도 지금 우리 현실과 맞추기는 어려워요. 현재 실제로 살고 있는 나와 다른, 그러나 나와 또 같은 한 사람의 인생 이야기만큼 설득력 있고 호소력 있는 게 없거든요. 내 환경이나 배경, 높낮이를 다 떠나 완전히 내려놓고, 마주하고, 스펀지처럼 흡수할 수 있는 건 여행자 신분으로 떠나는 일밖에 없는 것 같아요. 


압권은 그레고리와의 인연이거든요.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인연이었는데 다시 만나기 위해 애를 써요. 저자에게는 특별한 사건을 만드는 능력도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저도 좀 적극적인 면이 있죠. 맞아요, 그것도 분명히 있을 거예요. 제가 그냥 가만히 있는데 사람들을 자석처럼 끌어당기는 건 아니고요. 저도 보고 어떤 스토리가 있는 사람이고, 호기심을 유발하는 사람이라면 적극적으로 다가가죠. 사실 쿠스코를 다시 가지 않았을 수도 있고, 다시 가도 굳이 그 여행사에 가서 그레고리를 다시 만나겠다고 안 했을 수도 있고, 전화 기다리고 이런 것을 안 했을 수 있었어요. 그런데 그런 마음을 아니까 그도 움직였을 테죠. 상호작용이 있어야 해요. 


그레고리를 다시 만난 것도 굳이 설명을 하자면 어느 동네에 묵고 있다는 정도는 말을 했지만 그 시간에 교회에 있을 거라고는 말한 적이 없고, 다른 데 가려다 숨이 차서 그곳에 있던 것이고, 소나기가 내릴 것 같아 어정쩡하게 서 있던 건데 거기서 마주쳤어요. 정말 신기하죠. 


『스페인 너는 자유다』, 『다시 가슴이 뜨거워져라』등 다른 여행기에서도 특별한 만남은 계속 있었잖아요. 책에 담지 못한 추억이 있다면 하나만 들려주세요. 


『다시 가슴이 뜨거워져라』에는 쓰지 않았지만 정말 말도 안 되는 만남들이 많았어요. 에피소드로 책에 담기에는 다른 스토리가 없어서 담지 않았지만 말이에요. 아르헨티나에서 큰 길에 서 있는데요. 제 앞에 택시가 멈췄는데 그 안에서 아는 사람이 내린 거예요. 그것도 미국에 살고 있는 한국 사람이요. 너무 놀랐어요. 알고 보니 그녀도 갑자기 티켓 프로모션이 있어서 계획하지 않고 그냥 비행기 표를 샀고, 호텔에서 택시를 타고 기사님 마음대로 내려주세요, 했는데 제 앞에 내려줬다는 거예요. 진짜 그런 식으로 만나야 할 사람은 다 만나는 것 같아요. 


페루도 마찬가지였죠. 친구 이야도 그곳에 살고 있다고는 하지만 과테말라에서 시간 많이 보내는 애고, 자기 인생 흐름에 따라 프랑스에 살고 있었을 수도 있는데 그 시기에 그곳에서 만난 거죠. 그랬기 때문에 친구의 할머니나 가족에게서 좋은 얘기도 들을 수 있었고, 정말 특별한 마추픽추 여행을 할 수도 있었어요. 가이드나 길에서 만난 상인들조차도 다 이유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한 번 씩 각자의 삶에서 교차되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그런 걸 놓치지 않고 눈 여겨 보려고 하는 편이죠. 


세린디피티(serendipity)라고, 여행에서 그런 경험을 하다보면 행운 같은 것들을 믿게 되는 것 같아요. 


네, 맞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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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을 안고 떠난 페루


콘도르 장면은 정말 경이로운 순간이었어요. 자연마저도 특별한 행운을 안겨 주던 걸요.


정말 놀라웠어요. 우주 비행체처럼 유영하잖아요. 날갯짓을 하지 않고 날아요. 연처럼 나는 모습이 정말 신기해요. 


책 제목을 수식하는 ‘그리움을 안고 떠난’은 콘도르를 보며 아버지를 떠올린 그 그리움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프롤로그에 적은 것처럼 아버지는 페루 여행의 강력한 동기 부여가 됐어요. 짐을 꾸리기까지, 너무 바쁘고 사실 쉽게 움직일 수 없었던 여행길인데 그걸 가능하게 한 거죠. 콜카캐니언에서 콘도르 보고, 하는 여행은 흥미진진하다기보다 참을성을 가지고 기다려야 하고, 운이 따라줘야 하죠. 찰나의 순간이 몇 달, 며칠의 기다림을 지배하고 보상하는 순간인 거잖아요. 인내심이라고 하긴 그렇지만 제가 말한 ‘그리움’ 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죠. 간절함이 없으면 갈 수 없는 장소들인 거예요. 결국 여행의 확실한 동기도 됐고, 여행의 재료도 됐고, 에너지였고, 여행의 이유와 목적이기도 했어요. 결국은 그 전부 다였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 그리움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지만 안정된 빛깔이 되어서 제 마음에 담겨 돌아온 거죠. 


좀 더 평화로운 상태의 그리움인 거네요. 


어차피 성인들은 모든 걸 다 떨쳐내고 아기가 태어났을 때처럼 해맑은 얼굴로 아무 생각 없이 잘 수 있는 상태로 살아갈 수 없어요. 자기가 겪는 여러 경험들 중 괴로운 것, 고민하는 것, 슬픈 것, 좋은 것, 이 모든 것을 어떻게 잘 품고 에너지 삼아 살아가느냐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예요. 어떤 사람은 그걸 잘 살아나갈 수 있는 밑거름으로 승화시키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그걸로 인해 파괴되고 좌절해서 어긋나는 경우도 있죠. 그런 걸 다스리기 위해 가끔은 한 템포 쉬어주고, 여행지에서 마음을 정화하는 게 중요해요. 페루 여행이 좋은 게 그렇게 멈출 수 있는 시간들을 만들어주거든요. 콘도를 보기 위해 숨죽이고 있던 며칠, 몇 시간, 그런 것들이 진짜 사람을 깨끗하게 해주는 것 같아요. 진짜 영혼에 바람을 불어넣는 느낌이 들었어요. 


왜 페루였는지 질문하며 책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저자가 나와 인간 존재의 근원에 대해 사색하는 부분이 눈에 띄더라고요. 다른 여행지와 페루가 다른,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 무엇이었을까요? 


일단 다양성이죠. 페루에는 정말 많은 것들이 있잖아요. 한 가지 색을 보고 가기에는 일단 지역적으로도 다른 곳과는 다르죠. 광활해요. 생각보다 굉장히 넓은 땅이거든요. 사람은 또 적고요.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정말 많은 것을 초월한 것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있는 집합체 같은 그런 나라예요. 다양한 경험을 하고, 인간의 한계를 시험해볼 수 있는 장소죠. 고산지대, 아마존, 사막지대처럼요. 그렇지만 고생스럽다는 느낌이 아니라 어려움을 이겨낼 때 한 번 쯤 밟아야 하는 과정인 것 같단 생각이 들어요. 극한의 슬픔이나 괴로움, 스트레스를 이겨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체력적인 한계를 뛰어넘거나 음악 활동을 하는 것이라고 해요. 페루는 다만 육체의 한계가 아니라 인간의 한계, 아마존에 있는 나보다 더 큰 나뭇잎을 보면서 존재의 한계를 알게 되잖아요. 나무가 웬만하면 몇 천 년이 됐대요.(웃음) 그런 것들 앞에서 나를 겸손하게 하죠. 


페루의 독특하고 유서 깊은 문화도 크게 한 몫 하는 것 같아요. 


그곳은 음악, 악기, 춤, 문화 이런 것들이 공기 중에 녹아있어요. 짧은 역사의 나라가 아니기 때문인데요. 진짜 음악을 매개로 신과 소통하며 살아왔던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곳이에요. 자연과 문화, 이 두 가지가 치유의 힘을 발휘하는 나라 같아요. 아르헨티나만 해도 이민자들이 만든 나라기 때문에 같은 남미라 해도 조금 역사가 달라요. 페루와 대적할 곳은 멕시코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은데 그 외의 다른 곳과는 깊이가 조금 다르죠. 세계의 배꼽이라는 표현을 했잖아요? 딱 중심 같은 느낌이에요. 지금 세계의 수도는 파리다, 뉴욕이다 하지만 사실 인류 역사를 모두 놓고 봤을 때 중심, 배꼽의 역할을 한 건 페루였던 것 같아요. 인류 역사의 보물 상자 같은 곳이라 한 번 다녀오면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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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궁 안처럼 평화로웠다


페루에서의 감정에 대해 종종 ‘완벽에 가까운 평화로운 행복’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이게 과연 어떤 걸까 궁금하면서 직접 들어보고 싶었어요. 


엄청난 규모 앞에서 특히 그랬어요. 돌 하나가 몇 백 톤이고(웃음),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는 광활함에, 도인에 가까운 사람들의 말까지 그랬죠. 하늘도 다르고요. 쿠스코가 하늘과 굉장히 가까운 느낌의 도시예요. 광활함과 푸르름의 깊이가 말로 표현이 안 돼요. 그런 것들에서 마치 엄마의 자궁 안에 다시 들어간 것처럼 평화로웠어요. 걸어가고 있지만 잡음, 잡생각 없이 태초의 모습으로 돌아가서 자궁 안에 유유히 떠 있는 듯, 그런 편안함이 있었어요. 뭔가가 나를 보호해주고 있는 느낌이요. 인류 역사의 고향이기 때문에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간 것 같은 편안함이 있었어요. 다 괜찮다고 위로하는, 그런 치유의 느낌이 있었던 것 같아요. 모든 것들이 그랬어요.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한마디가 새어 나왔다. 

“아주머니, 행복하세요?”

그녀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이내 내 손을 꼭 쥔 채로 이렇게 말했다. 

“젊은 아가씨, 우리의 땀이 곧 우리의 삶이에요. 인생은 그런 거지요. 어디에서 살든 부자든 가난한 자든 똑같아요. 중요한 건 가슴에, 그리고 우리의 영혼에 있죠. 난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해요. 당신도 부디 행복하세요.”(92쪽)


시기적으로 ‘지금’ 이 사회에 살면서 페루라는 공간에 눈을 돌리는 것이 또한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워낙 바쁘고, 다들 힘들어하는 사회니까요. 


그러니까요. 사람들이 너무 스트레스와 분노가 많은 것 같아요. 저도 아무리 조절하려고 해도 점점 바빠져요. 내리막길을 달리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발이 움직이는 것처럼 그런 상태가 됐어요. 지나친 경쟁, 스트레스로부터 사람들을 구해줄 방법이 별로 없죠. 그렇지만 그것은 나라가 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한 명의 멘토가 해줄 수 있는 것도 아니에요. 사람들 스스로 치유해야 해요. 그런 것들을 하기 위해 이런 이야기를 공유하는 것이 조금 위안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에요. 그런 분이 계신다면 정말 다행이고요. 


페루에 가기 전의 나와 다녀온 후의 나는 어떻게 달라졌을까요


그나마 저에 대한 생각을 좀 바꿀 수 있게 됐어요. 브레이크를 조금 걸고 살아도 되는데 왜 이랬을까 하는 자기반성도 하게 되고요. 다녀온 후로 노력을 해요. 마치 월급에서 저축할 돈을 떼놓고 사용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저축할 돈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은 진짜 없는 게 아니고 돈을 다 쓴 다음 나머지를 저축하려니까 없다고 하는 거잖아요. 휴식도 마찬가지죠. 내게 주어진 시간에서 얼마만큼 휴식에 쓸 건지 원칙을 정하는 거예요. 이 시간만큼은 무조건 가족과 보낸다, 이때는 일하지 않는다, 이걸 정해놓고 나머지 시간을 조율해요. 회사를 만든 게 얼마 안 됐는데요. 페루 가기 전에는 어딜 가든 일을 안고 다녔어요. 지금은 주말에는 무조건 일을 놓고 가버리니까 하고 싶어도 할 수 없어요. 스스로 그런 장치를 만들어야 해요. 성인이 되면 아무도 해주지 않잖아요. 사실 80% 이상의 한국 사람들은 일중독에 빠져있을 텐데요. 내 삶 전체에 대한 그림을 생각할 여유가 없기 때문일 거예요. 이번 달, 올해 당장 이뤄야 할 목표만 있잖아요. 승진, 월급 인상 같은 것만 생각하기 때문인데요. 인생을 길게 보고, 그 안에서 지금 보내고 있는 이 시간이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거죠. 페루 같은 여행지가 그런 깨달음을 줬어요. 확실히 주사를 맞고 온 거죠.(웃음) 천천히 가는 주사를 말이에요. 


고소공포증이 있는데 케노피 투어를 결국 하게 됐어요. 그 외에 여행지에서 한 특히 나답지 않은 행동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워낙 호기심이 많아서 어떻게든 안 되는 것도 해보고 그래요. 안 된다면 더 해보고 싶죠. 정말 호기심이 많아서 참지를 못해요. 모험적이라 남들이 안 하는 것, 위험하다는 것 해보는 걸 좋아해요. 정말 못하는 건 번지점프 같이 높은 곳에서 하는 건데 케노피 투어를 하게 됐죠.(웃음)  


치차(전통 방식으로 발효시킨 페루 서민 술)는 어땠어요? 


치차도 실체를 알고 나서는 먹기가 힘들었는데 결국 마셨잖아요. 그런데 한국에 돌아와서 우연히 다큐멘터리를 봤어요. 이 책을 쓰고 있을 때였는데요. 할머니가 그걸 어떻게 입에 넣고 씹는지 클로즈업으로 나오는 거예요. 안 보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그들의 전통적인 것이니까 비아냥거리거나 폄하하고 싶진 않아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여러 생각이 들었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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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야하는 길


활발하게 아나운서 활동을 하다가 변신을 시도한 순간에 지금의 손미나를 얼마나 예상하고 있었는지 갑자기 궁금해지네요. 


어떤 건 꼭 이루고 싶었던 목표였고, 어떤 건 하다보니 해야 할 일이구나 싶은 게 있는데요. 가령 ‘인생학교’의 경우 2008년 알랭 드 보통에게 처음 그 얘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도와주고 싶었지만 제가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서 적극적으로 돕긴 했었는데요. 요즘 하는 표현으로는 내 운명의 파트너를 모르고 자꾸 내 친구를 소개시켜주려 했던 거라고 하고 있어요.(웃음) 알고 보니 내 짝이었던 거죠.<허핑턴포스트>는 사실 제가 저널리즘 쪽으로 다시 돌아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것은 그냥 저널리즘이라고 하기엔 뉴미디어고, 국내 매체도 아니잖아요. 제게는 글로벌 프로젝트라는 것에서 오는 매력이 있었어요. 이런 것들이 다른 일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세상에 새로운 변화를 일으킨다는 점에서는 비슷한 일이기도 하죠. 


작가로서의 활동은 어떤가요? 


책 쓰는 일은 하고 싶었던 일이기 때문에 회사 그만둘 때도 앞으로 10권의 책을 쓰겠다고 했었어요. 여행기로는 이번이 다섯 번째고요. 어쨌든 중도 포기하지 않고 가고 있으니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기쁘게 생각해요. 아나운서 시절 제 동기들 말을 빌리면 “나는 10년 정도 열심히 하고 그만 둘 거야”라는 말을 가끔 했다고 하더라고요. 제 나름대로의 계획이 있었던 것 같아요. 


손미나라는 사람의 색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해요. 잘 닦인 길을 가기도 하지만 남이 가지 않은 길을 만들어보려는 의지도 보이고요. 


고집이 세서 그래요.(웃음) 좋게 말하면 주관이 확실한 거고요. 다른 사람들 말에 잘 흔들리지 않아요. 페루도 <꽃보다 청춘>이 가서 간 게 아니라 제가 3년 전부터 너무 가고 싶어 했는데 희한하게도 영석PD가 갔더라고요. 그것도 좋았고요. 내가 가야하는 길이라고 생각하면 두렵고, 실패할 가능성이 있어도 저는 가는 편이에요. 아니라고 생각하는 건 억만금을 준다고 해도 못하고요. 


앞으로 어느 곳에 가고, 어느 곳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으세요? 


뉴욕은 그냥 대도시라 하기에는 너무 많은 것이 들어있는 곳 같아서 가보고 싶어요. <허핑턴포스트> 일을 하면서 매력을 더 느꼈고요. 뉴욕이란 도시는 내가 누구와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굉장히 달라진대요. 저는 <허핑턴포스트>일로 뉴욕을 가서 그런지 그렇게 멋있는 도시가 없더라고요. 그 경험을 담은 책을 빠른 시일 내에 쓰고 싶어요. 


궁극적으로는 아프리카에 있는 나라도 한 번 쓰고 싶고요. 중남미를 한 번 더 가서 머물 기회가 있다면 반드시 멕시코를 쓰고 싶어요.


소설도 쓰셨는데, 소설가로서의 꿈은 또 다르겠죠? 


나중에는 정말 소설을 쓰며 살고 싶어요. 좋은 소설을 써보고 싶고요. 처음 쓴 소설이 초보다보니 겁이 많아서 안전하고, 착한 소설이 됐어요. 필명을 써서라도 파격적인 소설을 한 번 써보고 싶긴 해요. 사이코패스 이야기나 아주 진한 사랑 이야기도 써보고 싶죠. 진짜 스케일이 큰 가족사 이야기도 써보고 싶고요. 


사람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이상하잖아요. 근본적인 면을 파고들어보고 싶어요. 첫 소설도 완벽하지 못한 현실 때문에 갈등을 겪는 모습을 넣고 싶었던 건데요. 또 쓴다면 완벽하지 못한 면에 대한 고찰을 하고 싶어요. 사람이 갖고 있는 이상한 면이 극에 달했을 때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관찰해보고 싶은 마음이에요. 그런 사람들이 타인과 관계를 맺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해 얘기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다양한 사람을 만나니까요. 책에는 좋은 사람들 이야기만 쓰지만 이상한 사람들도 많이 알고 있어서요.(웃음)


명함에 ‘교장선생님’이라고 적혀있는데요. 교장선생님이 그리는 ‘인생학교’의 모습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2008년 2월에 알랭 드 보통을 인터뷰하러 한 잡지사와 런던에 갔어요. 한 시간 약속한 인터뷰였는데 세 시간을 했어요. 너무 얘기가 잘 통했어요. 두 가지 테마를 얘기했는데요. 주요한 테마가 인생에 대한 것이었어요. 알고 보면 캠브리지를 졸업한 사람이나 공부하지 않은 사람이나 인생에서 하는 질문은 같고, 고민도 같아요. 똑같이 어렵잖아요. 박사 학위를 땄어도 사랑하는 사람과 대화하는 방법은 배운 적이 없고요. 죽음을 어떻게 맞이하는지, 늙는 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외로움은 어떻게 달래야 하는지 배운 적이 없죠. 알랭 드 보통이 이런 것들이 답답해서 프로젝트를 하고 싶다는데 제가 박수를 친 거죠. 이후 교류를 하면서 ‘인생학교’를 만들었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저는 그 무렵 회사를 만들고, 알랭 드 보통이 본격적으로 한국에 파트너를 찾고 있단 소식을 듣고 정식으로 제안을 했고, 결국 저희가 된 거죠. 


사람의 마인드를 바꾼다는 건 어느 곳에 고속도로를 뚫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잖아요. 하지만 다행스러운 건 이것이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는 것이죠. 이건 인문학 강의가 아니고요. ‘영혼의 찜질방’이라는 표현을 해요. 일상이 아무리 안정돼 있어도 빈곤한 구석이 있잖아요. 그런 분들을 위한 장소라고 보시면 돼요. 영혼을 시원하게 찜질해줄 수 있는 곳이니까요. 이곳이 사회 변화의 시작점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많은 분들이 도와주시면 좋겠고, 그런 분들이 있을 거라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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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내 영혼에 바람이 분다손미나 저 | 예담
일생에 꼭 한 번쯤은 가보고 싶은 곳, 신이 숨겨둔 마지막 여행지, 열대 우림과 사막, 바다와 고산 등 세상의 거의 모든 자연환경이 어우러져 있는 특별한 장소. 페루를 수식하는 말은 다양하지만 단순히 낯선 나라를 넘어 진짜 페루의 모습이 궁금한 사람들한테는 늘 부족하게만 느껴진다. 자연과 삶 본연의 모습이 살아 숨 쉬는 페루, 그 속살을 들여다보고 싶어 하는 독자들에게 반가운 여행 에세이가 예담에서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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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영, 김병수 “불안은 불안이고 내 삶은 내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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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겪은 김동영 작가와 그의 주치의로서 7년간 진료를 해온 김병수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두 사람이 환자와 주치의로서 진료실에서 나누지 못한 이야기를 『당신이라는 안정제』에 털어놓았다. 김동영 작가가 한 편의 글을 쓰면, 그 글에 대한 답변을 김병수 교수가 다는 형식이었다. 작가는 속내를 그대로 드러냈고, 교수는 ‘환자 대 주치의’의 관계를 뛰어넘어 한 개인으로 작가를 바라봤다. ‘근사한 병’이라는 제목을 단 작가의 글에 교수는 ‘용기는 두려움으로부터’라는 답글을 썼고, ‘미안해, 내가 이런 사람이라서’라는 글에는 ‘당신이 필요하다는 고백’이라고 답했다. 진료실에서 교수는 작가에게 질문만 했고, 작가는 대답만 했다. 작가는 가끔 교수와 나누는 대화가 짜증났지만, 한 달에 한 번 혹은 이주에 한 번, 그렇게 7년을 만났다. 항상 거리감을 가져야만 했던 두 사람의 관계는 책을 쓰며, 더 이상한 관계가 됐다. 


환자와 의사가 공동 저자가 되다니, 참 신기한 노릇이다. 그간의 과정을 들어보았다. 심각하고 우울한 이야기만 나누지 않았다. 우리의 일상이 계속 우울할 수는 없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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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작은 불꽃이라도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


이런 책은 처음 봤어요. 


김병수고민을 많이 했어요. 과연 이런 책을 써도 되는 건가? 생각도 했고요. 외국에 이런 사례가 있었는지 찾아보기도 했는데, 못 찾았어요. 어떻게 보면 윤리적이지 못하다고 보는 분들도 계실 거예요. 정신과의사라면 환자와 적당한 심리적 거리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하니까요. 사실 아직도 조심스럽고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어요. 그런데 동영 씨 입장에서는 작가로서 모든 약점을 다 드러냈고, 저도 정신과의사로서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것들은 지켰다고 생각해요. 


집필 제안은 누가 했나요?


김동영원래 개인적인 아픔에 대한 책을 2부작으로 쓰고 싶었어요. 3년 전에 어머니가 암으로 돌아가셨는데, 어머니 이야기를 먼저 쓰려고 했어요. 그런데 쓰다 보니 너무 감정이 복받쳐서 신파로 흐를 것 같더라고요. 그것보다 내 개인적인 정신적인 아픔에 대해 쓰는 게 나을 것 같았죠. 처음에는 혼자 작업을 시작했는데 힘들었어요. 어느 선까지 가야 하는 지도 모르겠고, 모든 걸 다 보여주는 것도 부담스러웠어요. 아프다는 이야기가 너무 징징대는 소리가 될까 우려도 했고요. 그 때 가수 루시드폴 형님이 마종기 선생님이 쓰신 서간집을 읽었는데, 주치의 선생님과 비슷한 형태의 책을 내보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김병수 7년 전에 병원에서 동영 씨를 처음 봤을 때, 작가인 줄 몰랐어요. 한참 후에나 알게 됐어요. 저는 책을 쓰기 시작한 게 고작 3년이 채 안 됐으니까요. 책을 한 번 써보면 어떻겠냐고 하길래, 그냥 하는 소리인 줄 알았어요. (웃음) 반신반의하면서 “뭐 기회가 되면 할 수 있죠”라고 했는데, 사람의 일이라는 게 이렇게 흘러갈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저는 동영 씨가 훨씬 큰 용기를 냈다고 생각해요. 자기의 정신질환을 밝히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책이 나오고 인터뷰를 하면서도 제가 많이 머뭇거리고 주저했는데, 그러고 나면 동영 씨한테 미안해졌어요. 이 사람도 판단 능력이 있는 사람인데, 내 상황만 너무 고려해달라고 한 건 아닌지 해서요. 


그동안 진료실에서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들로 책이 채워졌습니다. 작가님은 서문에 “이것이 당신(선생님)과 내가 함께 찾아가는 내 병에 대한 또 다른 치료법으로 생각한다”고 쓰셨어요. 


김동영병원에 갔을 때, 사실 큰 기대가 없었어요. 너무 힘들었으니까 약을 처방 받아야겠다고 생각 했지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눈다, 상담을 받는다는 생각은 못했어요. 언젠가 선생님이 “끝이 없는 고통은 없다”는 말을 하셨는데 그 말을 믿고 싶었어요. 


김병수가끔 상담이라는 게, 무모한 도전이 아닌가 싶을 때가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건, 말이 담고 있는 진실보다는 말을 통해 전달되는 관심과 애정으로 그 사람의 마음속에서 아주 작은 불꽃이라도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일 거예요. 


지금은 어떤가요?


김동영요즘은 심호흡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난 아픈 사람이니까’이라는 전제 조건이 붙었는데, 이제는 그런 생각을 하는 것조차 질려 버린 것 같아요. 예전에는 우울증이 심해지면 약을 찾던지, 사람을 찾던지 두 가지 중 하나를 선택했는데 지금은 혼자 이겨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김병수정신과에서 이런 걸 ‘탈융합’이라고 해요. 우리가 왜 고통스러워 하냐면 아픈 것과 자기 자신이랑 섞여 있어서 그래요. 상태가 좋아지면, 아픈 건 아픈 거고 나란 사람은 나로 분리가 되요. 심리치료의 궁극적인 목적 중 하나가 아픈 것과 나 자신을 분리시키는 거예요. 동영 씨한테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까 좋네요. (웃음) 진작 좀 이런 이야기를 해줬으면 얼마나 좋아요. 저는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해요. 글 쓰는 사람은 숙명적으로 불안한 부분이 커요. 베스트셀러 작가라도 현실적인 문제가 있으니까요. 내가 작가라는 직업을 선택했으면 안고 가야 하는 힘든 문제도 분명히 있는데, 그것에 너무 큰 무게를 느끼지 않고 지금처럼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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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병을 통해 나는 글을 쓸 원동력을 얻는다. 한없이 가라앉아 바닥에 침잠해 있거나 세상에서스스로를 고립시키는 일은 내게 많은 것을 다른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게 한다. 그렇게 쓰여진 글들은 건강한 사람들이 써내려 간 글들보다 더 호소력이 있는지도 모른다. 마음의 고통을 아는 내가 쓴 글이 비록 어둡고 궁상스럽긴 하겠지만 누구나 공감할 만한 구석이 있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하다.” - 김동영



글로 읽으니까 오히려 명확해졌다


작가님은 책을 통해 ‘내 질병의 역사’를 고스란히 밝혔습니다. 털어낸 후련함도 있었겠지만 발가벗은 느낌도 들었을 것 같은데요.


김동영 힘들었어요. 그간 숨겨놓았던 걸 계속 확인한 느낌이랄까, 좋지 않은 기억들을 되새겨야 했으니까요. 제가 평소에 불안장애나 공황장애를 두고 ‘3불’이라고 말해요. 불쾌하고 불안하고 불편해서요. 책을 쓰면서 그 불쾌한 것들의 스위치를 다시 켜야 했으니까요. 불쾌했던 게 어찌 보면 당연한 것 같아요. 하지만 최대한 그 감정들을 미화시키지 않고 싶었어요. 저만 이런 병을 겪은 게 아니라는 전제 하에 쓰고 싶었어요. 어렸을 때는 저는 항상 아픈 아이였어요. 학교에서 가장 약한 아이, 동네 병원 의사 선생님이 이름을 외우는 아이가 바로 저예요. ‘질병의 역사’를 쓰는데, 정말 생생하게 기억이 나더라고요. 저는 아픔으로 그 시절을 기억하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학교에 너무 가기 싫어서 엉덩이에 자국이 날 정도로 변기에 앉아 있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해요. 하지만 나쁜 기억만 있는 건 아니에요. 친구들과 방구석에 모여 책이랑 앨범을 실컷 읽고 들었던 추억도 많아요.


솔직함의 정도라고 할까요? 굉장히 강도가 셉니다.


김동영 식구들한테 “이제 너는 아픈 걸로 글을 쓰냐?”는 말을 농담조로 들었어요. 책을 쓰기 시작했을 때 두 가지 고민이 있었어요. 하나는 식구들이 마음 아파하면 어떡하지?였고, 두 번째는 결혼을 못하면 어떡하지?였어요. 배우자는 어떻게든 저를 이해할 수 있겠지만 아내가 될 사람의 가족들은 다르게 생각할 수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저는 계속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이라서요. 조금 건방지게 느껴질 수 있지만, 에세이는 무조건 솔직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솔직하지 않으면 소설로 가야 하는데, 거짓말을 잘하면 소설가로 칭찬을 받겠지만. 이 책은 거리낌없이 모든 이야기를 털어 놓은 거라서요. 에세이는 솔직하면 솔직할수록 칭찬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7년 전에 공황장애라는 진단을 처음 받았다고 하셨는데요. 김병수 선생님과는 어떻게 만나게 되셨나요?


김동영몸이 너무 아파서 종합검진을 받으러 병원에 갔어요. 정밀검사까지 받았는데 아무런 이상이 없었어요. 식도암 같은 병조차 없었는데, 문진 작성을 하다 보니까 스트레스성 신경장애라는 진단이 나왔어요. 병원에서 스트레스센터 클리닉으로 보내더라고요. 그 곳에서 선생님을 만났어요. 


아무리 상대가 정신과의사라도 모든 걸 다 털어놓기가 어려웠을 텐데요.


김동영그 때는 너무 절박해서, 누구라도 다 털어놨을 것 같아요. 처음에는 믿는다는 느낌보다는 검증을 해본다? 그런 느낌이 있었어요. 여태껏 웬만한 병원은 다 다녀봤으니까요. 정신과의사라고 뭐 다를까? 생각했죠. 그런데 약 처방과 상담을 통해서 어느 정도 상태가 좋아졌어요. 이야기를 하면서 선생님에 대한 신뢰가 쌓였어요. 라디오 방송작가를 하다 보니, 주변에서 소위 ‘명의’라고 불리는 선생님들을 많이 추천 받았어요. 그래도 다른 선생님에게 가볼 생각은 절대 없었어요. 다 똑같다고 생각했으니까요. 제 이야기를 또 다른 누군가에게 또 하는 것도 싫었고요. 


작가님만의 가제는 「우울하다는 거짓말」이었다고요.


김동영글의 폴더 이름이었어요. 출판사와 함께 지은 가제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왔고 우리는 만났다」였어요. 너무 길다고 해서 『당신이라는 안정제』로 정했는데, 중의적인 표현이 들어 있어서 좋은 것 같아요. 


책이 완성되기 전까지는 선생님의 답장을 한 번도 읽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한꺼번에 답장을 읽었을 때, 어떤 느낌이 들었나요?


김동영제가 생각한 방향대로 선생님도 책을 이해해주셨다고 느꼈어요. 또 환자로서는 알지 못했던 것도 많이 알게 된 것 같아요. 「입원」이라는 제 글에 선생님께서는 「입원의 의미」라는 글로 답장을 주셨는데, 저로서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이라서요. 당시 저에게는 입원이 절실했는데, 선생님은 입원을 탐탁지 않게 여긴 적도 있으셨더라고요. 퇴원할 때 마음에 뭔가를 가지고 돌아갈 수 있을 거라고 묻기도 하셨는데, 저로서는 그 때 입원이 하나의 도피처였다는 걸 알게 됐어요. 이런 이야기가 말로 전해졌다면 기분이 나쁠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글로 읽으니까 오히려 명확해 지더라고요. 


비슷한 질병을 갖고 있는 분들이 작가님께 조언을 구하면, 어떤 이야기를 해주시나요?


김동영치료를 받으라고 해요. 사실 제 주변에 있는 친구들의 성향은 저와 크게 다르지 않아요. 일반 직장인들처럼 출퇴근하는 삶이 아니니까요. 프리랜서니까 비교적 자유가 많은데, 그만큼 의지력도 좀 약해요. 사람들이 우울하고 불안하면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운동을 하는 게 좋다고 말하잖아요. 저나 그 친구들이나 그런 방법을 모르는 게 아니에요. 의지력이 약할 뿐이죠. “힘내”, “괜찮아질 거야”라는 말을 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저는 가끔 울면서 연남공원을 달려요. 집에 있기 너무 싫어서요. 이러다가 무너져 버리겠다, 갇히겠다 싶으면 나가서 뛰어요. 선생님이 뛰라고 했으니까 뛰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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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모든 행복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찾아오는 것이라고 믿어요. 불안하고 우울하다고 해서 행복해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우울해서 죽을 것 같아도 행복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우울하지 않고 불안하지 않아야만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죽을 만큼 우울하고 불안해도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행복해질 수 있는 기준자와 불안을 가늠하는 기준자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겹치지 않게 움직여요. - 김병수



타인의 아픔에 더 깊이 공명할 수 있다


단순히 주치의로서만 쓴 글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김병수환자들이 병원까지 오게 되는 과정을 보면, 웬만큼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오는 게 아니에요. 공황을 경험한 사람들은 자신이 겪었던 그 절박한 느낌을 죽음의 순간과 비교해서 말하곤 해요. 공황을 겪게 되면 그 증상을 어떤 방식으로든 이해하고 싶은 욕구가 생기고요. 실체가 알지 못한다면 더 두려울 테니까요. 마음속 불안을 언어로 적확하게 표현할 수만 있어도 위안이 되는 거죠. 동영씨의 글이 개인에게만 의미 있는 글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어요. 저로서도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시간도 있었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개인적인 자극도 많이 받은 작업이었어요.


김동영 작가님이 먼저 글을 한 편을 쓰면, 김병수 선생님이 답장을 쓴 형태로 읽혔습니다. 


김병수글을 쓸 때의 전제였어요. 동영 씨의 글을 보고, 생각나는 걸 제가 쓰기로 했어요. 꽤 오랜 시간 진료실에서 만났지만 제가 몰랐던 동영 씨 이야기도 많았어요. 굳이 이렇게까지 써야 하나? 너무 감상적이라는 느낌이 들었을 때도 있었고, 내가 어떻게 반응해야 하나? 고민될 때도 많았어요. 도저히 공감하기 어려운 내용도 있었고,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아픔이 깊었다’는 생각도 들어 미안한 느낌도 가졌어요. 


“공황은 필연적인 요소와 우연적인 요소를 모두 갖는다”고 하셨는데요.


김병수견고하지 않은 삶을 살아왔다면 그 대가를 필연적으로 치러내는 과정인 것이고, 규정된 삶을 성실하게 살아냈다 하더라고 피할 수 없는 사고처럼 찾아오기도 해요. 제가 가장 안타까운 건, 자신이 겪은 공황의 의미를 진지하게 사유하지 않으려는 사람을 만났을 때예요. 공황이 던져준 흔들림의 흔적을 손쉽게 덮어버리려고 하거나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안간힘을 쓰면서 숨기려고만 하는 사람을 만날 때 그렇죠. 공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것의 실체와 의미를 제대로 인식하려는 노력이 중요해요. 


그런 의미로 보면, 이 책이 김동영 작가에게는 꼭 필요한 작업이었겠습니다. 


김병수공황의 진짜 의미를 제대로 알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자기 자신밖에 없으니까요.


진료실에서 작가님께 가장 많이 했던 말은 무엇이었나요?


김병수너무 불안에만 집착하지 말라는 이야기였던 것 같아요. 6년 전쯤인가? 동영 씨가 이런 말을 했던 기억이 나요. 본인은 누군가가 자기에 대해 분석하는 걸 너무 싫어한다고요. 이해가 됐어요. 작가로서의 자존심도 있을 것이고, 약한 모습을 상대에게 보여주기 싫은 마음도 있겠죠. 하지만 의사로서 집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부분도 있었어요. 


글을 쓰는 사람이기 때문에 더 자신에게 집착하고 파고드는 면도 있을 텐데요.


김병수예술을 하거나 창조를 열망하는 사람을 만나면 자세히 관찰하려고 애써요. 어떤 사람인지도 궁금하지만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한 호기심도 있어요. 제가 내린 결론 중 하나는 창조적인 사람은 보통 사람보다 어려움을 더 많이 겪고 그것을 더 많이 참아낸 사람이라는 거예요. 용기 없이 창조적일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내면의 끊임없는 충동을 생활 속에 표현하는 것이나 자신의 나약함을 드러내고도 그것을 부끄러이 여기지 않기 위해서도 용기는 꼭 필요할 거고요. 


“우울증과 조울증은 공감 능력, 현실감각, 창조성, 회복탄력성을 키워준다”고도 말씀하셨어요.


김병수우울증을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타인의 아픔에 더 깊이 공명할 수 있으니까요. 우울의 경험은 시대정신을 냉철하게 읽어내는 현실감각을 유지하게 도와줘요. 마음의 고통을 이겨낸 경험은 현실의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회복탄력성이 되기도 하고요. 


책에서 김동영 작가님를 두고 “지시를 잘 따르지 않는 환자”라고 하셨어요. 의사가 아무리 진료를 잘해도 환자가 수용하지 못하면 도루묵인데요. 


김병수이상과 현실과는 분명 차이가 있어요. 저도 의사로서 조언은 하지만, 강요하진 못해요. 좋은 방법을 이야기해주기는 하지만, 그 조언대로 행동하지 못하는 환자들의 입장도 이해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방향으로 갔으면 좋겠다는 건데. 아무리 훌륭한 의사가 있더라도 한계는 있을 수밖에 없다는 걸 말하고 싶기도 했어요. 안 할 수 있는 이야기도 있지만 솔직하고 싶었으니까요. 당시에는 제가 한 조언들이 동영 씨에겐 유효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근래에 와서는 많이 달라졌어요. 다행스러운 일이죠.


주치의와 환자로 만나 이제는 저자와 저자가 됐습니다. 관계의 변화가 진료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지 않나요?


김병수책 쓰기 전에 사적으로 만났던 적은 없었어요. 진료실에서만 순수하게 만나왔고, 예전에 홍대 카페에서 우연히 마주친 적은 있지만 핫도그만 하나씩 나눠 먹고 헤어졌어요. (웃음) 어떤 분은 책을 같이 냈으니까 관계가 끊어지는 게 아니냐? 동영 씨가 상태가 좋아지면 진료도 끝나는 거 아니냐?고 말씀하시는데요. 동영 씨가 완쾌되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는 거죠. 그건 고려할 상황은 아닌 것 같고요. 인간적인 부분에 있어서도 미묘한 변화가 있을 수 있겠지만, 책을 통해서 서로가 얻은 것도 분명히 있으니까요. 결론적으로는 좋은 게 더 많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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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은 불안이고 내 삶은 내 삶


말하기는 좋아하지만 듣는 일은 힘들어 합니다. 간혹 “제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줘서 감사합니다. 그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하는 분들이 있는데요. 작가님의 경우는 어떠셨는지요? 


김동영저는 어릴 적부터 많이 아파서요. 부모님한테도 아프다는 이야기를 워낙 많이 했기 때문에 “그래, 또 아프구나”라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선생님께 이야기를 하면 우선 들어주고 왜 아픈지에 대한 설명을 해주셨어요.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픈 이유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대단한 반응이 없어서 서운했을 때도 있었어요. 위로 같은 건 없거든요. “그럴 수도 있다”면서 넘겨버리시는데, 어쩔 수 없는 부분인 것 같기도 해요. 공감을 해주기도 하지만, “제가 치료해드리겠습니다”라고 섣불리 말할 수도 없는 입장이실 테니까요. 처음에는 잘 이해가 안 갔지만 7년이라는 시간을 보내면서 서로의 스타일을 알게 됐으니까요. 선생님을 만나고 나면 약을 먹은 것처럼 편안한 느낌이랄까요? 안정감이라는 게 확실히 생기긴 했어요. 


김병수비슷한 생각을 많이 했어요. 동영 씨도 나름의 기대한 반응이 있었을 텐데, 저 역시도 반응을 해주면서도 ‘원하는 반응이 이게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을 했으니까요. 저로서는 위로의 말도 조금 아껴야 한다고 생각한 것 같아요. 동영 씨는 아직 젊고 한창 생활할 시간이잖아요. 책에도 썼지만, “항상 챙겨줄게”라는 말이 마치 안정제 같은 느낌을 줄 수 있지만, 내성이 생기고 의존성도 생길 수 있어요. 모든 걸 해결해주는 건 아니기 때문에 동영 씨의 심정을 알면서도 못 채워준 부분도 있었어요. 


작가님은 “이제는 그것들을 이겨내려는 마음이 없다. 그저 달래면서 살고 싶을 뿐”이라며, “완치가 없는 병이기 때문”이라고 하셨어요. 


김동영예전만큼 절박하지 않아요. 많이 아파 보니까 저만의 방식을 찾은 것 같아요. 스위치가 켜지면 그걸 피하는 방법을 찾았다고 할까요? 예전에는 스위치가 켜지면 약부터 찾았는데, 이제는 좀 버텨보려고 해요. 스트레스를 안 받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고 기분전환을 하려고 노력해요. 많이 하면 내성이 생긴가도 하잖아요. 피하기보다는 그냥 그렇게 조금 달래 보려고 해요. 우울이라는 감정이 평생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면, 그냥 뭐 같이 살아가는 거죠. 예전만큼은 아니길 바라면서요. 


김병수이런 이야기를 듣고 싶었어요. 어차피 불안은 완전히 사라지는 게 아니에요. 평생 있다가도 사라지고, 없다가도 생겨요. 사람이 불안에 너무 집중하면 아무 것도 못해요. 불안은 불안이고 내 삶은 내 삶인 거예요. 어떤 독자가 이 책을 읽고 “불안과 행복이 공존할 수 있는 걸 보여준다”고 쓴 리뷰를 봤어요. 맞아요. 대부분 사람들은 이 두 감정이 공존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요 몇 주간 우리는 진료실에서 만나지 않았어요. 동영 씨의 상태가 나쁘지 않기 때문이에요. 그러나 계속 편안하리라는 보장도 없어요.


선생님께서는 ‘고통 총량의 법칙’이라는 글에서 “내 고통은 다른 사람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괴로운 것이다’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너무 특별한 존재로 여기고 있거나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어하는 욕망의 삐뚤어진 표현일 수 있다”고 하셨어요. 작가님께 묻고 싶어요. 이 이야기에 동의를 하시는지. 


김동영자기 자신을 조금 특별하다고 생각하면 안 되나요? (웃음)


김병수사람은 누구나 어느 정도 자기 자신을 특별하다고 생각해요. 요즘은 허세나 자뻑이 필요한 세상이기도 하고요.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고통에 있어서도 이렇게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이었어요. 내 고통을 너무 특별하게 여기면, 나만 아프고 그 누구도 내 고통을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김동영 맞아요. 한편으로는 내 고통을 특별하다고 느끼지만,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을 만날 때는 되게 반가워요. 내가 공황장애를 겪고 있는데 나랑 같은 증세를 갖고 있어 같은 약을 먹고 있는 사람을 만날 때, 고통이 나눠진다고 할까요? ‘나만 아픈 게 아니구나’를 객관적으로 확인하게 되는 순간, 고통이 덜어지는 느낌이 있어요. 


김병수자신의 고통이 다른 사람에게도 있는 공통적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같은 배를 타고 있다’는 안도감을 느끼는 것을 정신과 치료에서는 ‘보편성’이라고 부릅니다. 아마 많은 분이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심리적 문제나 괴로움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자기 이야기를 나누고, 중간에 있는 치료자가 대화 과정을 조율해나가는 모습을 보셨을 거예요. 집단으로 모여 상담하는 과정이 치료적인 효과를 나타내는 것도 내면에서 보편성을 촉진시키기 때문이에요. “누구나 아플 수 있고 나름의 고통이 있다.” 책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이기도 했어요.


용기를 내지 않았더라면 이 책이 나올 수 없었을 텐데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책이기 때문에 더 용기를 내셨을 것 같아요. 


김동영 ‘나만 아픈 게 아니다’, 그걸 알았기 때문에 책을 쓸 수 있었어요. 자기 몸이 아프면 되게 서럽잖아요. 내가 당신들의 아픔을 대신할 수는 없지만, 나도 아팠기 때문에 그 마음을 안다. 그냥 이 책을 읽는 분들에게는 당신만 아픈 게 아니라는 걸, 이야기해주고 싶었어요. 


김병수의사로서 진료를 하면서 하고 싶었지만 못한 이야기가 많았어요. 환자로서는 그 때 상황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조언도 있었으니까요. 아마 동영 씨 한 사람을 향한 글이라면 책을 낼 이유가 없었을 거예요. 의사가 조언하듯이 각을 잡고 이야기하고 싶진 않았기 때문에 제 이야기를 배제하지 않았고요. 동영 씨 말대로 새로운 치료법으로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당신이라는 안정제』의 ‘당신’이 두 분께는 무엇을 의미하나요?


김동영제가 만났던 여자친구들과의 기억이요. 제가 떠나 보내기도 했고 떠나기도 했는데, 좋았던 기억들이 많아요. 그 기억들로 안심이 되는 것 같아요. 나도 이렇게 행복했던 시간이 있었으니까,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았던 기억들이 있으니까요. 상대가 지금은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었더라도 우리의 추억은 사라지는 게 아니니까요.


김병수결국 사람인 것 같아요. 세상에 아무리 좋은 게 넘쳐나도 결국 사람이 해결할 수밖에 없어요. 동영 씨가 말한 여자친구와의 기억도 사람이 남겨 놓은 기억이니까요. 그 힘으로 살아낼 수 있는 거고요.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했으면 해요. 서로가 서로에게 ‘당신’이지 않을까 싶어요. 고통을 나누고 도움도 받기도 하는 존재로, 서로를 확인 받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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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라는 안정제김동영,김병수 공저 | 달
이 책 『당신이라는 안정제』는 환자와 그 환자의 주치의가 공동으로 집필했지만 절대 조울증이나 불안장애 그리고 공황장애를 다룬 의학도서로 봐서는 안 된다. 그저 서로 다른 시각으로 그것을 바라보는 일기 정도가 어울릴 것이다. 그들이 진료실에서는 차마 드러내지 못했던 진솔한 속내를 서로 마주하면서 찾아가는, 새로운 치료법이라고 보는 것이 좀더 정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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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우, 나의 불안은 정상적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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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불안은 반갑지 않은 손님이다. 예고 없이 찾아오는 이 불쾌한 감정 앞에서 우리는 늘 흔들린다. 그러나 『불안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은 “불안은 단어가 내포한 부정적인 느낌과는 상관없이 생존을 위해 필수 불가결한 본능”이라고 말한다. 불안에는 두 가지 유형, 즉 ‘정상 불안’과 ‘병적 불안’이 있다는 이야기다. 정상과 불안, 결코 어울릴 것 같지 않은단어들이 모여 하나의 질문을 떠올리게 한다. ‘내가 경험하는 불안은 정상적인 것일까, 병적인 것일까?’

 

『불안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은 불안장애의 다양한 유형들을 소개한다. 동물, 높은 곳, 질병, 죽음 등 특정 대상에 대해 느끼는 공포(특정공포), 과도한 불안이나 걱정이 오래도록 지속되는 상태인 범불안장애(GAD), “특정 대인상황을 비합리적으로 두려워하거나 회피하는 증상”을 보이는 사회불안이 그 대상이다. 저자 유상우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실제 사례를 바탕으로 각각의 불안장애가 발생하는 원인, 증상, 치료 기법을 소개한다. TV 프로그램 <쌈닥굿닥>, <아침마당>, <기분 좋은 날> 등과 저서『공황장애에서 벗어나기』, 『부자가 되는 뇌의 비밀』등을 통해 대중과 호흡해 온 만큼, 평이한 설명으로 독자들에게 다가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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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 불안’과 ‘병적 불안’의 차이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금의 불안도 없는 상태’를 바랄 텐데요. 『불안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은 불안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


그 정도를 넘어서서 불안은 꼭 필요한 거죠. 필수불가결한 감정이에요. 노후에 대한 불안이나 시험에 대한 불안을 생각해 보면, 적절한 불안은 우리로 하여금 미리 준비하고 대비할 수 있게 만들죠. 그런 건 정상적이고 꼭 필요한 불안이에요. 『불안에 대한 거의 모든 것』에서 이야기하는 건 그와 대비되는, 과도하고 병적인 불안입니다. 굉장히 많은 분들이 불안하면 안 좋은 거라고 생각하시고, 그래서 불안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상태를 꿈꾸시는데요. 그건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아요.

 

‘정상 불안’과 ‘병적 불안’을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먼저 ‘급성불안’과 ‘만성불안’을 구별하는 게 중요해요. 예를 들어서, 회계팀에서 일하는 직장인이 있다면, 갑자기 국세청에서 세무 조사를 나온다는 연락을 받으면 불안 정도가 확 높아질 거예요. 그건 급성불안이에요. 그런데 세무조사가 언제 나올지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항상 불안해하고 초조해 한다면, 만성적 불안에 해당되겠죠. 잠깐 스쳐 지나가는 불안은 누구나 경험할 수 있어요. 갑자기 다리가 무너지면 어떻게 하나, 지하철에 화재가 나면 어떻게 하나, 걱정할 수 있죠. 그런 불안이 잠깐 생겼다가 없어지는 것인지, 아니면 항상 그런 걱정을 달고 살아가는지 생각해 봐야 돼요.

 

또 다른 기준도 있나요?


정도의 차이도 있어요. 방금 전에 이야기한 회계팀 직원을 예로 들자면, 세무조사를 앞두고 불안 상태가 확 높아졌잖아요. 그래도 준비를 잘 마쳐서 효율적으로 대비를 했다면, 실제로 세무조사 과정도 큰 문제없이 마쳤다면, 정상 범위 내의 불안이라고 볼 수 있어요. 그런데 세무조사 이야기를 듣자마자 혼비백산해가지고 평상시에 하던 대로 제대로 준비를 못한다거나, 세무조사원들 앞에서 너무 떨려서 평소라면 쉽게 답할 수 있는 내용도 제대로 말하지 못한다면, 병적 또는 과도한 불안으로 정의할 수 있는 거죠. 이 경우에는 지나친 불안 때문에 결과에 큰 지장을 초래한 거거든요. 불안 때문에 고통을 겪거나 결과에 악영향을 초래한다면 불안장애에 해당되는 증상으로 해석이 가능하죠.

 

자신의 불안을 과소평가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습니다. ‘내가 불안장애일 리 없어, 나는 정신과 치료를 받을 필요가 없어’라고 생각하는 거죠.


『불안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이 출간된 지 일주일도 안 돼서 찾아오신 환자 분이 계세요. 이 분의 증상은 항상 뒷목과 등, 허리가 아프고 두통이 수시로 찾아오는 거였어요. 쉽게 피곤해지고 늘 쫓기는 느낌이 있어서 마음이 조급했고요. 그런데 진통제를 먹어도 그때뿐이고 병원에서 검사를 받아도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나오는 거예요. 혈압만 조금 높다고 하고요. 그래서 오랜 기간 동안 증상을 달고 살아오셨는데, 이 책을 보시고 ‘이게 범불안장애구나’ 하는 생각이 드셨대요. 그래서 찾아오셨던 거예요. 자신의 문제가 불안 때문에 생겼다는 건 전혀 생각 못하셨던 거죠.

 

예상대로 ‘범불안장애’ 때문이었나요?


치료를 시작하기 전에 정확히 진단해 보니까 이 분은 ‘범불안장애’였어요. 2~3주 동안 치료를 받으시니까 만성 통증이 싹 없어졌고요. 표정도 부드러워지시고 얼굴에 윤기가 돌더라고요. 불안하고 몸이 경직되면 혈류순환이 잘 안 되면서 낯빛이 좋지 않거든요. 그래서 이 분도 자세도 편안해지시고 낯빛이랑 표정이 좋아지신 거예요. 긴장이 풀리니까요.

 

‘특정공포’의 경우는 어떤가요? 책에는 나방을 보고 공포를 느끼는 환자의 사례가 소개되어 있는데요. 대부분의 경우에는 병원 치료를 떠올리지 않잖아요.


‘나방공포’ 같은 경우도 현재 제가 치료하고 있는 분들이 꽤 여러 분 계신데요. 그런 분들은 나방이 그냥 무서운 정도가 아니라, 정말 소스라치게 놀라요. 아마 강도를 만난다고 해도 그보다 심하지는 않을 거예요. 그래서 그 끔찍한 곤충을 마주칠까 봐 펜션도 못 가고, 오토캠핑도 못 가고, 아이들이 야외로 놀러 가자고 해도 같이 안 가요. ‘나방이 무서우면 그냥 피하면 되지, 뭐가 문제야’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요. 나방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활동하는 데 지장이 생기는 거예요. 활동 반경, 인생의 폭이 좁아지는 거죠. 그런데도 ‘내 문제는 별 거 아냐, 오랫동안 이렇게 살아왔으니까 그냥 이렇게 살래’라고 생각하는 건, 결과적으로 불안을 과소평가하는 거라고 할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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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 보기’가 일상화된 사회, 불안을 부추긴다


‘불안장애에 대한 불안’도 있을 것 같은데요. 자신이 불안장애 환자일까 봐 불안해하고,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치료받는 걸 두려워하는 분들은 없나요?


불안이나 불안 장애에 대해서 불안해하고, 공포를 느낄까 봐 미리 두려워해요. 증상 자체가 워낙 고통스러우니까 불안해하기도 하고요.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치료받는 걸 금기시하고 두려워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다양한 매체에서 왜곡된 모습을 다루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환자가 묶여있는 모습, 피해망상 또는 정신분열증 환자가 살인을 하는 장면, 이런 것들이 주된 내용으로 나오면 마치 다 그런 것처럼 잘못 인지하게 되죠.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치료하는 증상들의 스펙트럼은 굉장히 다양해요. 피해망상이나 정신분열병 환자도 치료하지만 가벼운 불면, 스트레스, 우울, 불안도 치료하거든요. 스스로 내원하시는 분들이 대다수이고 치료를 거부하시는 분들(타인에 의해 입원한 환자)은 소수예요. 내과의 경우에도 감기뿐만 아니라 암도 치료하잖아요. 그렇다고 해서 내과에 가면 다 큰 병에 걸린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듯이, 정신건강의학과도 똑같은 거예요.

 

‘사회불안’이란 무엇인가요?


‘사회불안’은 특정 사회적 상황에서 불안을 느끼는 건데요. 사람마다 불안을 느끼는 상황이 달라요. 윗사람이나 이성을 대할 때처럼 일대일 상황에서 불안을 느끼기도 하고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나 보고를 할 때, 또는 노래를 부르거나 연주를 하는 상황을 불안해할 수도 있어요. 이런 불안은 누구나 다 있을 수 있는데, 과도한 불안과 두려움 때문에 수행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다면 사회불안 장애라고 합니다. ‘사회불안’은 결코 드물지 않습니다. 대단히 흔할 뿐만 아니라 거의 전 연령대에서 문제가 돼요.

 

‘사회불안’은 비교적 흔한 증상인 만큼 경미하게 여기는 경향도 있는 것 같습니다.


한 개인만의 괴로움으로 치부할지 모르지만, 이런 증상들을 갖고 계신 분들에게는 삶의 향방이 좌우되는 문제예요. 10대의 경우에는 학교에서 낭독, 발표를 할 때 문제가 생기고요. 윗사람에 대한 불안이 있으면 선생님과 눈도 제대로 맞추지 못할 수 있어요. ‘횡시불안’이 있다면 옆에 앉아있는 친구들이 신경 쓰여서 옆을 못 보고요. 특히 예술계 학생들의 경우에는 ‘무대공포’가 심하면 대학 입시를 망칠 수도 있죠. 대학에 가서도 발표?토론 수업을 듣기가 어려울 텐데, 이때는 수업에 조금 빠지고 학점을 손해 보는 데에서 그칠 수 있어도, 직장에서는 그럴 수도 없잖아요. 관리자가 되면 회의도 주재해야 하고, 임원이 되면 사장에게 직접 보고 해야 하죠. 그러다 보니까 50대에 임원이 되어서 병원을 찾아오시는 경우도 있어요.

 

무엇보다 좌절감이 큰 문제가 아닐까요. 불안 때문에 실패하는 경험이 쌓이면 ‘나는 해 봤자 안 돼’라는 생각을 하게 되니까요.


그럼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자신감을 점점 잃어가죠. 그런데 그걸로 끝나지 않아요. 40~50% 정도의 환자들은 우울증을 겪어요. 또 많은 경우에는 알코올이나 약물 의존으로 이어지고요. 사회불안의 종류가 굉장히 많은데 그 중에 ‘회식공포’가 있어요. 회식 자리에 가면 굉장히 경직되어 있는 거예요. 그런데 술이 몇 잔 들어가면 괜찮아지거든요. 그런 경험을 몇 번 하다 보면 회식 전에 미리 알코올을 섭취하기도 해요. 친구들과 식사하는 자리에서도 그럴 수 있어요. 별로 친하지 않은 친구들이 있으면 경직되는 거죠. 자리를 피하면 대인관계에 문제가 생길 거고요. 피할 수 없다면 치료를 해야죠. 그렇지 않으면 알코올에 의존하게 될 수 있으니까요.

 

‘사회불안’의 사회환경적인 요인으로 ‘눈치 보기가 발달할 수밖에 없는’ 우리사회의 특징을 꼽기도 하셨습니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수직사회잖아요. 유교 문화가 발달해서 장유유서를 엄격하게 지켜야 하고, 경어는 극도로 발달되어 있죠. 군사독재를 경험하기도 했고요. 그래서 우리는 윗사람의 눈치를 엄청나게 봐야 하는 구조 속에서 살고 있어요. 개인주의가 발달한 수평사회인 서구와 비교하면, 훨씬 더 눈치를 보게끔 훈련이 되어 있죠. 그런 부분이 전반적인 ‘사회불안’을 만들거나 악화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어요. 일차적으로는 ‘시선불안’을 경험하게 할 수 있고요. ‘수행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어요. 예를 들면, 은행에 가서 서류를 작성해야 하는데 앞에 앉은 직원이 너무 신경 쓰여서 글씨를 제대로 쓸 수가 없는 거예요. 평상시에는 혼자서 잘 쓰는데, 누군가 지켜보는 상황에서는 떨려서 글씨를 쓸 수가 없는 거죠. 본인도 알고 있어요. 자신이 떨거나 상대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는 걸요. 아는데도 불안 공포를 조절할 수 없는 거예요. 그래서 ‘쓰기공포’가 생겨요.

 

“‘반드시’라는 함정에서 빠져 나오자”라고 말씀하신 건 어떤 의미인가요?


‘잘해야 한다’고 말할 때 틀린 내용은 없어요. 잘하면 좋은 거잖아요. 그런데 ‘반드시 잘해야만 한다’고 하면 오류가 있는 거죠. 잘못하면 큰일 나는 거고, 내 인생이 끝장나는 거잖아요. ‘반드시 잘해야 한다’는 인지에는 왜곡이 들어 있어요. ‘잘하면 좋은 거지만, 내가 준비한 만큼, 남들 하는 것만큼 하면 되지’라고 생각하면 준비한 만큼 하게 되어 있거든요. 그런데 ‘반드시 잘해야 된다’는 생각은 오히려 과도한 불안과 긴장을 일으켜서 오히려 수행 능력을 갉아먹어요. ‘절대로 실수하면 안 된다’는 말도 마찬가지죠. 실수하면 큰일 나는 거잖아요. 물론 실수하면 안 되는 일도 있죠. 의사가 수술을 하는 상황에서는 실수가 치명적이잖아요. 그런데 그런 경우는 극히 예외적이고 많지 않아요. ‘실수를 할 수도 있지 뭐, 내가 신도 아닌데’라고 생각하는 편이 낫죠. 그와 동시에 실수를 만회할 수 있는 나름의 대안을 가지고 있으면 돼요. 그렇다면 실수를 지나치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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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순간에는 호흡과 근육을 조절하세요!


‘범불안장애(GAD)’의 정의가 궁금합니다. 불안을 발생시킬 만한 요소가 없는데도 항상 불안 상태에 있다면 ‘범불안장애’로 볼 수 있을까요?


두 가지로 나눠서 볼 수 있어요. 전혀 불안해할 만한 일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항상 불안해하고 초조해하는 경우가 있고요. 또 하나는 불안을 느낄 수는 있지만 사소한 일인데, 그것 때문에 항상 노심초사하고 지나치게 걱정하고 있는 경우예요. 어떤 상황에 대해서 지나친 불안을 느끼는 일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어요. 예를 들어서 서해대교에 철탑을 연결하는 선이 끊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앞으로 한강 다리 건널 때도 조심해야 되는 거 아냐’ 이런 생각을 하는 거죠. 하루 이틀, 또는 1~2주 정도는 그럴 수 있어요. 그런데 시간이 많이 지난 후에도, 몇 달 몇 년씩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면 과도한 걱정이 들어가 있는 거죠. 가령 자녀가 집을 나선 후에 한 시간 마다 전화해서 아무 일이 없는지 확인할 수도 있고요. 이런 증상이 심각하면 옆에 있는 사람을 다 같이 불안하게 만들어요. ‘범불안장애’는 전반적으로 불안이 높아진 상태에서 최소한 지난 6개월 이상 걱정과 불안을 달고 사는 경우라고 볼 수 있죠.

 

『불안에 대한 거의 모든 것』에서 소개해주신 ‘인지행동치료’는 무엇인가요?


‘인지행동치료’는 편의상 ‘인지치료’와 ‘행동치료’를 결합해 놓은 거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고요. 간략하게 설명을 드리면 ‘인지치료’는 과도한 불안을 만드는 왜곡된 생각을 찾아내고 반복적으로 교정해 나가는 거예요. 그러다 보면 과도한 감정도 줄어들게 되죠. ‘행동치료’의 기법은 굉장히 여러 가지가 있는데요. 제일 널리 쓰이는 방법이 (불안을 느끼는) 상황에 점진적으로 노출을 시키는 거예요. 실제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 중에서 제가 제일 강조하는 건 ‘호흡훈련’과 ‘이완훈련’인데요. ‘범불안장애’ ‘사회불안’ ‘특정공포’ 모두에 효과적이고요. ‘범불안장애’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항상 쫓기는 느낌이 있거나 마음이 편치 않고 여유가 없는 상태라고 한다면 도움이 될 거예요. 평소에 스스로를 안정시키는 노력을 꾸준하게 하면 출발점이 달라지죠. 안정적인 상태에서 불안 정도가 높아지는 것과, 항상 불안해하는 상태에서 불안 정도가 높아지는 것은 다르잖아요. ‘호흡훈련’이나 ‘이완훈련’은 짧은 시간을 내서 할 수도 있고요. 불안이 치솟을 때 바로 바로 효과를 볼 수 있어요.

 

“이 책을 교과서처럼 여기지는 말아달라”고 하셨어요. “가벼운 소설책을 읽는 마음으로” 접하는 게 더 이해가 잘 될 거라고요.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도 독자 분들이 편하게 읽으실 수 없으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고민 끝에 두 가지에 초점을 뒀어요. 하나는 가능한 한 사례를 많이 들자고 생각했어요. 이론적인 설명을 백 번 하는 것보다 실제 사례 하나를 제시하는 게 이해하기 쉬우니까요. 『불안에 대한 거의 모든 것』에 나온 사례들은 모두 제가 경험했던 진짜 사례예요. 그리고 또 한 가지는, 가능한 쉽게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해왔던 일도 어려운 의학정보를 가능한 쉽게 풀어서 전달하는 것이었거든요. 『다나박사의 공황장애』에서 만화를 활용하고 그 내용을 DVD에 애니메이션으로 담은 것도 그런 이유였어요. 『불안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은 치료 방법을 알려주는 책일 수 있지만, 긴장한 상태로 읽지는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책을 읽고 나서 스스로 과도한 불안이 있다고 판단되신다면, 책을 수시로 펼쳐 보시고 머릿속에 떠올리셔야 돼요. ‘인지치료’가 효과를 발휘하려면 엄청난 횟수의 반복이 필요하거든요. 그렇게 반복해서 읽으시려면 내용이 쉽게 쓰여 있어야 하니까, 그걸 계속 염두 해 두고 썼습니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세요?


최근에 개그맨 정형돈 씨가 ‘불안장애’로 인해서 방송을 전부 중단하게 되셨잖아요. 그와 관련해서 제가 인터뷰를 하면서 했던 이야기가 있는데요. ‘불안장애’는 하나의 병이 아니라는 거예요. 이 책에서 다룬 ‘사회불안’, ‘특정공포’, ‘범불안장애’는 물론이고 ‘공황장애’까지 모두 ‘불안장애’에 포함되거든요. 그런데 지금까지는 ‘불안장애’가 갖는 의미가 간과되어 왔어요. 이것이 문제인지 모르고 살아가시는 분들도 너무나 많아요. 『불안에 대한 모든 것』을 통해서 독자 분들이 불안에 대해서 재발견을 하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자신의 문제뿐만 아니라 주변 분들의 문제를 발견하게 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면 더 바랄 나위가 없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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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에 대한 거의 모든 것 유상우 저 | 소울메이트
자가평가를 위한 체크리스트도 수록해 스스로 점검해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했으며, 일러스트도 곁들여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이 책은 처음부터 순서대로 읽어나가도 되지만, 중간중간 건너뛰며 필요한 부분부터 읽어도 무방하다. 특히 5장과 6장은 불안의 극복방법에 관한 내용이므로, 하루라도 빨리 증상 완화에 도움을 받고자 한다면 1장에서 5장, 6장 순서로 읽어나가도 좋다. 이 책을 통해 과도한 불안으로 힘들어하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이 편안해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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