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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희 “부탄의 행복지수,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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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들이 안녕하지 못한 세상에서 ‘나만 안녕하면 된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괴물들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가난하지만 행복한 사람들, 사람을 온전히 사람으로 여기는 그들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건 당연한 호기심이 아닐까. 나는 부탄의 가난함을 들춰서 이미 윤택해진 우리가 어째서 여전히 가난한지, 그리고 얼마나 비참하게 살고 있는지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 (『마음을 멈추고 부탄을 걷다』 7~8쪽)

 

그래서 그녀는 부탄으로 향했다. 마흔의 문턱 앞에 서고 보니 열정만으로 삶이 반전되는 일은 흔치 않다는 걸 깨달았다. 십여 년 동안 방송작가로 활동하며 늘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만들어내야 하는 일상도 녹록치 않았다. 피지도 못한 꽃들이 영문도 모른 채 차가운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고, 그 참사를 목격하고도 자신들의 안녕만 지키려는 ‘사람답지 못한 사람들’이 넘쳐났다.

 

그곳이라면 조금 다르지 않을까. 국민의 97%가 ‘나는 행복합니다’라고 망설임 없이 답하는 나라, 첫눈이 오면 모든 관공서가 임시휴일을 맞는 나라, 국왕이 먼저 민주주의 도입을 제안하며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은 나라. 부탄이 소리 없이 그녀를 부르고 있었다.

 

『마음을 멈추고 부탄을 걷다』는 보름간의 부탄 여행기다. 저자인 김경희는 KBS의 라디오와 <수요기획>, EBS의 <세계의 아이들>과 <하나뿐인 지구> 등의 제작에 참여하며 사람, 자연, 문화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선보여 왔다. 2010년 단편소설 「코피루왁을 마시는 시간」으로 ‘동서문학상’ 소설 부문 대상을 수상한 작가이며, 다큐에세이 『제주에 살어리랏다』를 출간하기도 했다.

 

소설가이자 방송작가로서 그녀가 지닌 따뜻하면서도 예리한 시선은 이번 책에도 고스란히 담겼다. 『마음을 멈추고 부탄을 걷다』에서 부탄은 선입견에 갇히지 않은 맨 얼굴을 보여준다. “순박하고 착해 보인다는 흔한 말로는 부족한 정갈한 매력”을 지닌 부탄의 사람들은 “산이 거기에 있고, 별이 그 자리에 있으며 인간이 자연에 해를 끼치지 않기를” 기도하며 살아간다. 여성들은 자신의 직관에 따라 배우자를 선택하는 데 스스럼이 없으며, 같은 이유로 이혼을 선택해야 할 때에도 주저하지 않는다. 인터넷과 휴대전화가 보급되면서 변화가 시작됐고, 이제 부탄의 사람들은 싸이의 「강남 스타일」을 따라 부르며 레스토랑에서 김밥과 매운 라면을 맛본다. 그러나 전통을 지키려는 노력 역시 멈추지 않는다.

 

아직도 부탄은 누군가에게는 낯선 곳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산속의 가난한 나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들에게 『마음을 멈추고 부탄을 걷다』는 있는 그대로의 부탄을 만나게 해준다. 이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묻게 된다. 지금 이곳에 행복이 머무는지, 부탄의 사람들이 지키는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저자 김경희는 부탄을 다녀온 후 “다시 사는 게 재미있어졌다”고 했다. 사람이 다시 좋아지기 시작했고, 자신을 되찾았다고 했다. 부탄이 그녀에게 보여준 것은 무엇이었을까. 대답을 듣기 위해 만남을 서둘렀다. 1월의 첫 번째 화요일, 우리는 ‘행복’에 대한 이야기로 새해를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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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탄은 운명처럼 가게 되는 곳


부탄으로 떠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2012년쯤 『행복한 나라 부탄의 지혜』를 통해서 부탄을 처음 접했어요. 처음에는 ‘이런 나라가 있구나’ 하고 무척 신선했어요. 그리고 그곳이 궁금해졌죠. 그때부터 부탄에 대해서 알아갔던 것 같아요. 그렇게 1년 반 정도가 지났는데, 세월호 사건이 있기도 했었고 개인적으로도 서른아홉이 되니까 여러 가지로 힘든 부분들이 있었어요. 그때 부탄을 다시 생각하게 된 거죠.『제주에 살어리랏다』를 출간할 때도 마찬가지였는데, 그곳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있으면 어떻게든 가게끔 구실을 찾게 되는 것 같아요.

 

『행복한 나라 부탄의 지혜』을 통해서 만나본 부탄은 어떤 곳이었나요?


책을 읽으신 다른 분들도 마찬가지일 것 같은데요. 굉장히 동화 같은 나라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첫눈이 내리면 모든 관공서가 휴일을 맞는다는 것 자체도 그랬고요. 권위나 권력으로 누르는 힘이 없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제가 기본적으로 그런 걸 싫어해서 더 와 닿았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부탄은 국왕이 스스로 권력을 내려놓은 나라이기도 하잖아요. 그건 되게 중요한 문제인 것 같아요. 대부분 조직에서는 무언가 무서운 분위기를 조성해서 어쩔 수 없이 따라가게 만드는데, 위에서 편안하고 부드럽게 이끌어서 사람들이 따라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게 하는 건 굉장히 다른 거잖아요.

 

여행을 가시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다큐멘터리 제작 때문이었나요?


부탄에 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출판사도 만나게 됐고, 소개해주신 부탄 명예영사님과도 이야기를 나누게 됐어요. 그러다가 강병찬 감독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죠. (강병찬 감독은 2002년 월드컵 당시 부탄 축구팀을 이끌었고, 지금까지도 ‘부탄 축구의 아버지’라 불린다) 강병찬 감독님의 이야기를 취재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던 차에 정부에서 지원하는 프로젝트에 지원하게 됐어요. 7~8분 분량의 트레이너를 제출하면 정부에서 몇 편을 선정해서 본편을 제작하도록 지원해주는 프로젝트였는데요, 거기에 뽑혀서 부탄으로 가게 됐죠. 우리나라 사람들은 강병찬 감독님을 다 잊었지만 부탄 사람들은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는 내용을 담아서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거예요.

 

당시 촬영하신 다큐멘터리는 언제쯤 만나볼 수 있을까요?


부탄에서 트레일러를 만들어 왔는데 해당 프로젝트가 없어졌어요. 그래서 본편은 만들지 못하고 있어요.

 

그래도 덕분에 부탄과 소중한 인연을 맺게 되셨네요.


갈 수밖에 없도록 인연 같은 게 있었던 것 같아요. 책에서도 소개했듯이 부탄에서 복싱 감독으로 계시는 한국 분이 계신데요. 그 분도 그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부탄에 오는 사람들은 다 운명처럼 오게 되는 거라고요. 모든 일들이 부탄에 갈 수밖에 없게끔 맞아떨어졌던 것 같아요.

 

『마음을 멈추고 부탄을 걷다』를 읽어 보면 부탄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고유의 분위기 같은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일단 무척 놀라운 게, 거리낌이 전혀 없어요. 제가 먼저 다가가기 전에 일단 와요. 와서 무언가를 달라고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물어봐요. 타인에 대한 경계심도 없고요. 보통은 부탄을 가난한 나라라고 알고 있지만 전혀 움츠려있지 않아요. 학교에 찾아갔을 때도 전교생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제가 누구인지, 몇 살인지 물어봐요. 제가 묻기도 전에요. 그리고 자기랑 사진 찍자고 하고요, 사진 찍으면 보여 달라고 하고 보여주면 다시 찍어달라고 해요(웃음). 그렇게 당당하고요. 공항의 경비원은 경비원대로, 또 농부는 농부대로, 다 기본적인 품위가 있는 것 같아요. 당당함과 자존감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그들을 만나는 동안 “중히 여기어 아끼는 마음”이 느껴졌다고 하셨어요.


특별히 어떤 행동을 해서 그랬다기보다는, 배려 같아요. 배려가 항상 몸에 배어있는 사람들이에요. 제가 부탄을 떠날 때, 여행 내내 같이 다녔던 가이드 ‘점배’가 옷 매무새를 단정하게 했던 것도 배려가 배어있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아요. 함께 사원을 올라갈 때도, 제가 많이 힘들어했는데, 특별한 말은 없는데 계속 저를 살핀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괜찮아요? 힘들지 않아요? 짐을 들어줄까요?’ 이런 말들이 없는데도 불구하고요. 그런 느낌은 어느 여행지에서도 받을 수 없는 느낌인 것 같아요.

 

부탄의 사람들은 배려가 몸에 배어있고, 자존감이 강하고, 품위가 있다고 하셨는데요.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건지, 이유가 궁금해지네요.


일단 자연에서 배운 부분이 있을 거고요. 그리고 종교를 무시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부탄은 종교와 정치가 일치된 사회니까요. 그리고 제 생각에는 타고난 품성이 그런 것 같아요. 그들이 자연에서 어떤 걸 배운다기보다는, 자연 속에서 일상을 살아가면서 자신이 굉장히 작은 존재라는 걸 자연스럽게 느끼는 것 같아요. 자연이 항상 그 자리에 있기를 기도하는 사람들이잖아요. 초등학교에 가도 ‘자연에서 배우라’는 말이 붙어있어요. 학급마다 아이들이 맡아서 기르는 화분이 있고요. 항상 자연에게서 배우라는 게 그 나라의 철학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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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탄의 여성들, 사랑도 육아도 쿨하게 한다!


부탄의 사람들은 “남을 부러워하거나 비교하는 욕망을 에너지로 삼지 않기에 불만을 갖지 않는다”라고 적으셨어요. 우리의 삶이나 사회와는 많이 다른 모습인 것 같습니다.


여행을 하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우리와 많이 다르다고요. 제가 방송 일을 해왔기 때문에 그런 것들이 더 크게 다가왔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방송 일도 치열하잖아요. 항상 다른 사람보다 앞서서 아이템을 찾아야 하고요. 어떻게 보면 그런 맛으로 살았던 것 같아요. 남들은 생각하지 못하는 걸 찾아냈을 때의 만족감 같은 거죠. 그런 마음이 있었을 거예요. 그래서 치고 올라오는 걸 보지 못하고, 겸손하게 이야기하긴 하지만 속으로는 내가 제일 잘하고 있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서른아홉 때쯤 되니까 몸도 조금 힘들기도 하고  ‘이렇게 계속 해서 뭐하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일 힘들 때 부탄에 갔던 건데, 제가 가지고 있었던 생각들을 부탄이 많이 깨준 거예요. 여행을 떠날 때는 ‘부탄은 행복의 나라니까 되게 좋을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갔는데, 여행하는 동안 심적으로는 굉장히 힘들었던 것 같아요. ‘내가 뭐하고 살았지’ 이런 것들을 생각하게 하니까요. 행복해질 줄 알고 갔는데 오히려 내 모습 때문에 초라해지기도 했어요.

 

부탄 아이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도 곳곳에서 묻어납니다. 그곳의 아이들은 어땠나요? 전혀 그늘이 없던가요?


없어요. 12살 소년 ‘점소’ 같은 경우도 부모님이 이혼하셔서 엄마하고 형하고 셋이 사는데요. 어머니는 근처 종(드종, Dzong)에서 청소를 하시고 가난한 형편이에요. 그러면 어두울 수도 있는데 그런 게 전혀 없더라고요. 친구들하고 자연스럽게 매일 뛰어 노니까 그럴 수 있는 거겠죠. 그리고 일단 비교하지 않는 사회인 거예요. 누구네 아빠가 어떻다더라, 그런 이야기들이 도시 사회에서는 입방아에 오르내리기도 하잖아요. 그런 게 전혀 없는 거죠. 아빠가 없을 수도 있는 거고 이혼을 할 수도 있는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점소의 엄마도 이혼했다는 이야기를 당당하게 하셨어요. 남편이 가족을 힘들게 해서 헤어지셨는데, 청소를 하면서 아이 둘을 키우는 게 힘들기는 하지만, 이혼을 후회한 적은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부탄에서는 엄마가 혼자 일을 하면서 아이를 키워도 아이가 방치되는 시간이 없어요. 엄마가 일하는 동안 옆집에 가서 놀기도 하고요, 아이들이 늘 같이 어울려서 다녀요.

 

자연스럽게 한국의 아이들과 비교가 되었을 것 같은데요. 우리 아이들이 측은하게 느껴지셨나요?


지금 우리 아이들은 정말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도 아이를 키우다 보니까 저희가 자랄 때와는 정말 다르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학교 갔다 오면 친구들이랑 어울려서 뛰어 노는 일이 거의 없고요. 엄마들이 만날 약속을 잡아서 아이들을 놀게 해줘요.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뛰어 놀면서 친구를 접하고, 사귀고, 상처 받기도 하고, 나랑 맞는 아이를 고르고, 이런 경험을 할 수가 없어요. 사실은 엄마가 만들어주는 친구를 사귈 수밖에 없거든요. 그리고 일단 아이들이 시간이 없어요. 학원으로 다 가니까, 학원 친구들끼리 학원 끝난 후에 잠깐 노는 것 외에는 뛰어 놀 시간이 별로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놀 줄도 모르고, 친구 사귈 줄도 모르고, 무리 안에서 각자 역할들을 키워갈 줄을 몰라요. 그런데 부탄의 아이들은 생생해요.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부탄과 한국, 두 곳의 엄마들도 차이가 있나요?


한국의 엄마들은 오로지 아이 위주로 생활하는데 부탄 엄마들은 전혀 그런 게 없더라고요. 부탄의 아이들이 한 시간 반, 두 시간씩 걸어서 학교에 가거든요. 그러니까 아침에 동네 아이들이 다 같이 학교에 가고 나면 엄마들은 자기 할 일을 하고, 서로 모여서 차 마시면서 이야기도 나눠요. 아이들은 학교가 끝난 후에도 같이 집으로 오는데요. 그러다가 언덕에 누워서 자기도 하고 쉬었다가 다시 내려오기도 해요. 이 집에 가서 놀 수도 있고 저 집에 가서 놀 수도 있고요. 거의 대부분 아이들은 해질 무렵에 집에 들어오는 것 같은데, 그래도 전혀 걱정이 없죠. 그런 부분들이 정말 부럽더라고요.

 

그렇게 스트레스 받지 않고 마음껏 뛰어 노는데도 영어 실력은 우리 아이들보다 더 좋은 것 같아요(부탄의 학교 수업은 모국어를 제외한 전 과목이 영어로 진행된다). 학습 적극도도 더 뛰어나고요. 교육에 있어서 부탄 사람들의 철학은 무엇인가요?


굳이 어떤 걸 강요해서 가르치지는 않고요. 말씀 드린 대로 ‘자연이 가르치고 자연에서 배운다’는 게 느껴졌어요. 그리고 성장하거나 배우는 힘은 기본적으로 아이들이 다 가지고 있다는 철학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자연 속에서 자라면, 그리고 주변 어른들이 잘 살아가면 잘 될 거라고 생각하죠. ‘점배’도 그런 이야기를 했었거든요. 제가 앞으로 부탄도 변하지 않겠냐고 말하니까, 시간은 그대로인데 사람이 변하는 거라고 말하면서, 우리도 변하겠지만 그래도 속도를 지킬 거라고 하더라고요. 어른들이 그렇게 하는 걸 보고 자랐기 때문이라고 하면서요. 저도 아이를 키우면서 느끼는 거지만, 어른들이 악하지 않게 잘 살고 아이들이 뛰어 놀 자연이 있다면, 아이들은 잘 클 수 있는 것 같아요. 배우고 성장하는 힘은 이미 가지고 태어났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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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렇게 사는 게 사람 같이 사는 거구나


40대에 접어드는 어른 여자로서, 한 아이의 엄마로서, 여성들의 삶도 눈여겨보신 것 같아요. 부탄의 여성들은 우리나라 여성들과 얼마나 다른 삶을 살고 있나요?


저도 동네에서 아이들을 같이 키우는 아줌마들과 만나면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해요. 우리가 무엇을 보고 결혼을 결심했었나, 라는 거죠. 그래서 ‘부탄 여자들은 결혼 생활도 행복하다고 하던데 어떻게 남자를 택할까’ 하는 궁금증이 있었어요. 제가 부탄 여자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느낀 건, 자존감이 높고 당당하다는 거예요. 그래서 상대가 마음에 들면 여자들이 먼저 대시를 하는 경우도 많아요. ‘내가 이렇게 하면 저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그런 생각이 전혀 없는 거죠. 부탄 사람들이 연애할 때 만남이 가장 많이 이루어지는 방식이 ‘나이트 헌팅’이라고 하더라고요. 수도 팀푸 같은 곳에서는 밤에 시계탑 밑에 모여서 만나기도 하고요. 아니면 마을에서 축제 같은 걸 할 때 춤추면서 서로를 보는 거예요. 그건 상대의 배경이나 직업과 상관없이 본능으로 선택하는 거잖아요.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니고 내 마음에 들어서 선택한 거니까, 사랑이 식었다고 해도 매달릴 필요도 없는 거고요. 그래서 부탄의 여자들은 상대가 마음이 떠났다면 쿨하게 보내줄 수 있는 것 같아요.

 

가정 내에서의 발언권이나 결정권은 경제력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잖아요. 모계사회의 전통이 강하게 남아있는 부탄에서는 주로 아내들은 경제활동을 하나요?


경제적인 활동도 같이 하더라고요. 물론 집안일을 하는 여자도 있기는 한데요. 여자들이 일을 많이 하기는 하는 것 같아요. 저희가 시골에 갔을 때 모내기 하는 아주머니들을 만났는데, 다 여자들만 있고 남자가 안 보여서 원래 모내기는 여자들이 하는 거냐고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여자들이 주로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지금 남자들은 뭐 하냐고 하니까 식사 준비를 하고 있대요. 그렇다고 해서 남자들이 일을 안 하는 건 아니에요. 큰 힘이 필요한 일들은 남자가 하는데, 기본적인 일들을 여자들이 하는 것 같아요. 도시의 경우는 같이 일을 하고 집안일도 서로 분담해서 하더라고요. 그런 점에서도 부탄 사람들은 권위나 권력보다는 어우러져서 함께 하는 걸 중요하게 여기는 것 같아요.

 

2010년에 단편소설 「코피루왁을 마시는 시간」으로 ‘동서문학상’ 소설 부문 대상을 수상하셨습니다. 등단 뒤에 아직 첫 작품을 발표하지 않으셨는데요. 언제쯤 선보일 계획이세요?


소설을 계속 쓰고는 있어요. 조금 더 써서 마흔다섯 이전에는 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웃음).

 

어떤 소설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으세요?


최근에 「코 없는 남자 이야기」라는 단편을 발표했는데요. 책으로는 봄쯤에 나올 거예요. 저를 포함해서 일곱 명의 작가가 호텔이라는 테마를 가지고 단편소설을 썼어요. 「코 없는 남자 이야기」는 부부에 대한 이야기인데, 어떻게 보면 권력과 권위에 대한 것이기도 해요. 첫 번째 단편도 그렇고, 저도 모르게 계속 그런 이야기를 쓰고 있더라고요(웃음). 그렇게 인간 사이에 존재하고 있는 권력과 권위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 쓰고 싶어요.

 

소설과 에세이, 그리고 방송 대본을 쓰실 때 각각 다른 점이 있을 것 같습니다.


『마음을 멈추고 부탄을 걷다』를 쓰고 난 뒤에 ‘에세이인데 소설처럼 읽힌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오히려 그게 (저의) 색깔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방송 일은 힘들 때도 있고 그렇지만 제가 생계를 위해서 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고, 그런 면에서 애증을 가지고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죠(웃음). 소설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분야이고요. 에세이는 재미있는 것 같아요. 소설은 저를 조금 숨겨야 하는 부분이 있는 반면, 에세이는 저를 드러내지 않으면 누구의 마음에 가 닿을 수 없잖아요. 그래서 에세이는 있는 그대로 다 드러낼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아요.

 

부탄 여행이 작가님의 삶에 가져 온 변화는 무엇인가요?


완전히 변했다고 할 수는 없는데, 무언가 문턱을 넘은 것처럼, 기본적인 마음가짐은 확실히 변했어요. 10년 넘게 일을 해오다 보니까 ‘내가 감이 떨어졌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초조할 때도 있었는데요. 생각해 보면 그게 당연한 것 같아요.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런 것들에 너무 전전긍긍하지 않고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늙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조급함이나 욕심을 다 내려놓은 건 아니지만 ‘너무 안달복달하면서 살지는 말아야겠다, 편안하게 가자’는 생각을 했죠. 그러면서 아직도 다 내려놓지 못한 제 모습을 보면서 부탄 갔다 와도 많이 변하지는 않았다는 걸 계속 느끼고는 있지만, 기본적인 마음가짐은 확실히 달라진 것 같아요.

 

여행하시는 동안 가장 인상적이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제일 감동받은 순간을 꼽으라면, 거리에서 노래 불러준 소녀를 만났을 때였어요.  그 친구가 가수가 되고 싶다고 해서 노래 불러줄 수 있냐고 했는데, 쭈뼛대지도 않고 흔쾌히 불러주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더니 마치 오디션에서 노래하듯이 온 정성을 다해서 부르는 거예요. 노래를 잘하기도 했지만, 정말 잘 불러주고 싶고 감동을 주고 싶어 한다는 게 느껴졌어요. 그때 정말 울컥하더라고요. 마음이 통하는 것 같았고, 너무 고마웠어요.

 

여행을 통해서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으셨어요?


그런 비결보다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려면 내가 원하는 걸 숨기거나 나 아닌 모습으로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은 해요. 내가 못하는 것들은 받아들이고 내 모습 그대로 살아야 할 것 같아요. 부탄에 다녀오고 나서부터 계속 드는 생각인데요, 이제는 내가 원하지 않거나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데 억지로 하는 일은 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해요. 마음에서 우러나지 않는데 억지웃음 지으면서, 마치 잘하는 일처럼 하려고 하는 건 안 해야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일에 있어서도 그렇고 사회적으로도 명예 같은 거대한 일보다는, 주변 사람들이 되게 소중한 것 같아요. 나의 맨 얼굴을 보여주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다 보여줄 수 있는 사람들과 만나서 소소한 시간을 보내는 게 더 행복한 것 같아요.

 

『마음을 멈추고 부탄을 걷다』를 읽고 부탄 여행을 계획하시는 분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부탄을 방문하기가 쉽지 않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탄에 가야 할 이유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사실 부탄 여행은 비용도 많이 들고, 거리도 너무 멀고, 쉽게 갈 수 있는 것도 아니에요. 그 모든 걸 감수하고 간다고 해도 좋은 먹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볼거리가 많은 것도 아니고, 도로 상태가 좋지 않아서 이동하는 시간도 길어요. 정신적인 변화를 얻는 것 외에 가서 볼 수 있는 거라곤 종(드종, Dzong)과 자연 밖에 없어요. 그런데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고 황폐해지고, 내가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건지 생각이 들면서 기로에 서 있는 사람이라면,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부탄 여행이 행복한 이유는, 그곳에는 사람들이 주는 감동이 있어요. 그들이 어울려 사는 공동체가 있고요. 그런 건 다른 곳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감동인 것 같아요. ‘저렇게 사는 게 사람 같이 사는 거구나’라는 걸 느낄 수 있는 곳이죠.

 

“나는 부탄의 가난함을 들춰서 이미 윤택해진 우리가 어째서 여전히 가난한지, 그리고 얼마나 비참하게 살고 있는지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싶었다”고 적으셨습니다.


그 부분은 아마 세월호 사건이 있고 나서 느낀 감정들이 담겨 있는 것 같은데요. 그 사건 이후에 불과 1년 반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뿐인데, 너무 빨리 잊어버리는 것 같아요. 물론 모두가 마음속에 가지고는 있겠지만요. 그런 걸 보면 우리가 많은 것을 가지고 좋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속은 텅 비어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부탄 사람들은 우리와는 정반대잖아요. 가난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이웃과 같이 나누면서 우리보다 행복하게 만족하면서 살아요. 그 모습을 보시면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어쩌다가 감성도 없고 남의 아픔에도 공감하지 못하는 존재가 되었는지, 당연히 느껴지실 거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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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멈추고 부탄을 걷다김경희 저 | 공명
소설가이자 다큐멘터리 방송 작가 김경희는 문득 삶에 지치고, 사람이 싫어졌다. 바쁜 일상이 끝없이 이어지는 현대인의 삶 속에서 그녀는 더 이상 특별한 꿈을 꾸지 않는 자신을 발견했다. 이제 더 이상 특별한 삶도 없다는 것을 알 만한 나이, 차갑게 식어버린 가슴이 향한 곳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불리는 히말라야의 작은 나라 부탄이었다. 그곳에는 정말 행복한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그녀는 일상의 스위치를 완전히 끄고, 마음을 멈춘 채 부탄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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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운 “더 외로워야 덜 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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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영원히 철들지 않는 남자들의 문화심리학’을 말했던 김정운 저자가 2016년에는 ‘내 삶의 주인이 되는 문화심리학’을 권한다. 4년간의 일본 생활을 마무리하는 책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는 꽤 단호하다. 외로워 미치겠다는 사람들에게 ‘격하게’ 외로워하라고, 사람도 좀 적게 만나고, 바쁠수록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을 갖자고 조언한다. “왜?”라고 묻는 이들에게는 “외로움이 존재의 본질이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김정운은 그간 심리학교수, 지식에듀테이너, 문화심리학자, 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 등으로 살았다.  그러나 많이 유쾌하지 않았다. 주변에 그를 찾는 사람이 들끓었지만 외로움은 여전했다. 결국 4년 전, 교수직을 그만두고 일본 유학을 떠나 미술학도가 됐다. 사람들은 용기가 대단하다며 그를 추켜세웠지만, 김정운은 “용감한 게 아니라 비겁한 거다. 은퇴교수의 비참한 삶이 겁나서 도망갔다”고 말했다.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는 도망자 김정운의 일기다. 50세 중년이 돼서야 진짜 공부를 시작한 복학생 김정운의 가장 정직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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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과 연결되는 심리학, 사회학, 철학


‘그리고 쓴’ 책이다. 그림도 있고 글도 있고 사진도 있다. 심리학 이론도 있고.


책이 자기계발로 분류됐지만, 복합적인 책이다. 정해진 카테고리로 들어가는 게 진부하다는 생각이다. 가장 중요한 건 재미, 그리고 독자들이 공유할 수 있는 내용이어야 한다. 내 주변 인물의 이야기를 섞은 까닭이다. ‘저 사람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구나’라는 공감이 있어야 책을 재밌게 읽을 수 있고 소통할 수 있다. 대화로 초청하는 글쓰기를 하고자 했다.

 

일본 생활이 그대로 담긴 사진들이 특히 인상적이다.

 

중년 남자가 일본에서 혼자 살았으니 얼마나 궁상맞고 구질구질 했겠나. 사람 사는 건 다 똑같다는 이야기를 확인시켜주고 싶었다. 글만 쓰면 책이 논리적이고 계몽적인 느낌을 주지만, 그림이 같이 가면, 설득보다는 말을 거는 형태가 된다. 그래서 그림과 사진을 곁들었다. 또 책의 내용 자체가 논리적인 글이 아니다. 느낀 대로 썼으니까 논리적 비약이 많은데, 그림을 통해 보완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훨씬 재밌는 결과물이 나왔다.

 

표지 그림도 직접 그렸다. 제목이 ‘외로움과 그리움 사이’다. 마음에 드나?


내 그림이니까 당연히 마음에 든다. (웃음)

 

책 제목은 어떤가? 단호한 느낌이 들었다.


가제도 같았는데, 전작 『에디톨로지』의 에필로그에 나온 문장이다. 『에디톨로지』는 학술적인 내용이 많이 들어가서 좀 딱딱한 느낌이 있었는데, 다음 책은 일본 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 일찍부터 마음속으로 정해놓았던 제목이다.

 

『에디톨로지』에서는 창조방법론에 관한 이야기를 썼다. 전작들에 비해 무겁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람들이 창조에 관한 이야기는 많이 하는데, 창조방법론은 말하지 않는다. 한국 사회에 필요한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고 지적 담론을 강조했다.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에도 지적인 이론적인 이야기가 많이 들어있지만, 우리의 일상과 학문적인 내용이 만나는 접점에서의 글쓰기를 보여주고 싶었다. 실험해본 책이다. 지식인의 글쓰기라는 게, 자기들만 알아듣는 언어로 전달되는 경우가 많다. 독자에게는 불친절한 글쓰기다. 하지만 사람들은 글을 쉽게 쓰면 정말 우스운지 알고 우습게 본다. 전문가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책을 폄하한다. 나는 아무리 어려운 철학, 심리학 이론이라고 해도 내 삶과 연관이 없으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모든 챕터가 내 일상의 소재로부터 출발한다. 어렵다고 이야기하는 심리학, 사회학, 철학 이론과 삶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나로서는 굉장히 만족스러운 책이다.

 

쉽게 읽히는 글도 있고 천천히 읽어야 하는 단락도 있다. 심리학 이론을 설명한 부분은 글자 크기가 작게 표시했다.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더 깊이 들어가라는 뜻이다. 책을 꼭 끝까지 한번에 읽을 필요는 없다. 책은 원래부터 다 읽는 게 아니다. 띄엄띄엄 읽는 거다. 그래서 목차가 있는 거고. 어렵게 느껴지면 건너뛰면서 천천히 읽는 게 좋다.

 

출간 4주만에 예스24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했다. 독자들로터 리뷰를 들었나?


다들 재밌다고 하더라. 그렇게 웃기다는 생각은 안 했는데, 웃긴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버스 안에서 읽다가 웃어서 창피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목차만 쭉 읽어도 재밌다. “불안하면 숲이 안 보인다”, “남에 의해 바뀌면 참 힘들다”, “’뒤로 자빠지는 의자’를 사야 한다” 등. 짧은 문장 하나가 주는 파동이 꽤 크다.


내가 광고 카피를 했어도 잘 어울렸을 것 같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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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주인이 돼서 잘 살수 있느냐


4년간 일본에서 혼자 살았다. 주로 그림을 그렸다.


일본 교토사가예술대학 단기대학부에서 일본화를 전공, 지난해에 수료했다. 최종 학력은 전문대 졸업이다. 나에게는 가장 자랑스러운 학위다. 원래는 만화를 공부하려고 했다. 노인용 성인만화, 변태 만화를 그리려고 했는데 지도교수님이 내 그림 실력을 보더니 정말 잘 그린다고 일본화를 배워보라고 했다. 만화는 언제든 할 수 있지만 일본화를 배울 기회는 다시 없을 것 같아서 일본화를 전공했다. 내가 정말 좋아서 한 공부였기 때문에 독일의 박사 학위보다 훨씬 자랑스러운 학위다.

 

그림 그릴 때, ‘오리가슴’이라는 호를 사용했다. 어떤 의미인가?


지적인 오르가슴, 예술적인 오르가슴이라는 뜻이다. 독일에서 공부했을 때부터 사용한 말이다. 진짜 즐거움은 공부하는 즐거움이라고 생각한다.

 

노는 것을 좋아하는 ‘재미스트’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면 공부파다. 그런데 가르치는 일이 몹시 싫다고 고백했다. 듣기로는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교수였다.


강의는 인기 있었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걸 해야 지속적으로 가능하지, 내가 잘된다고 인기 있다고 돈이 잘 벌린다고 해서 지속되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상대적으로 성과가 좋고, 인정을 받으면 대개 잘하는 일에 몰두하게 되지 않나?


그건 일시적이다. 내가 재미가 없으면 계속 잘할 수 없다. 교수되기 어려웠을 때 교수가 됐으니까 열심히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체질에 안 맞더라. 경제학에 ‘지속가능경영’이라는 용어가 있는데, 지속가능한 경제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 삶이 중요하다. 내 삶에 내가 주인이 돼서 잘 살수 있느냐, 이게 중요하다. 그러려면 내가 좋아하는 걸 해야 한다.

 

2012년 1월, 다이어리 첫 페이지에 “난 이제부터 내가 하고 싶은 일만 한다”라고 썼다. 하기 싫은 일의 리스트를 만들었는데, 첫째가 ‘만나기 싫은 사람은 만나지 않는다’, 둘째가 ‘일찍 일어나지 않는다’, 셋째가 ‘쓰기 싫은 원고는 쓰지 않는다’였다. 지금은 정말 쓰고 싶은 원고만 쓰나?


쓰고 싶은 글만 쓴다. 내가 재밌어 하는 일, 좋아하는 일을 하면 실력이 계속 향상된다. 그래서 『에디톨로지』도 쓰고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도 쓰지 않았나? 내가 재밌어 하는 걸 공부하고, 내 안에 일어나는 것들을 밖으로 꺼내는 것. 즉 외화 시키고 생산하는 일이 가장 재밌다. 사람들이 왜 노동을 싫어할까? 노동의 결과물이 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의 소외론에서 나온 이야기인데, 생산과정이 나와 상관 없는 일이 돼버리니까 노동을 고통스럽게 느낀다. 하지만 과정이 아무리 힘들어도 결과물이 제대로 나오면 그것처럼 행복한 일이 없다. 남들로부터 인정 받고 돈도 잘 벌어도, 이게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부터 사람은 절망한다. 스스로 소외됐기 때문이다. 내가 그림 그리는 일이 즐거운 까닭은 결과물이 바로 보이기 때문이다. 내 안의 느낌이 밖으로 드러나니까 너무 행복한 거다. 논문은 아무리 열심히 쓴다 해도 대학원생 몇 명 읽고 끝이다. 그걸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 체질은 아닌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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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춘호

 

프로필 사진으로 그림을 그리는 뒷 모습 사진을 넣었다. 책 제목과 이어지는 사진이다.


내가 보기엔 라면 끓이는 사진으로 보이더라. (웃음) 외로움을 보여주는 사진이긴 하다.

 

나름 폼 나는 사진으로 보였는데, 마지막 장에는 제주도에서 말을 타고 있는 우스꽝스러운 사진을 실었다. 역시 유머를 잃지 않았다.


외로움도 재미있을 수 있다는 의미로 고른 사진이다. 스위스의 심리학자 피아제는 ‘도덕성 발달 이론’을 규칙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설명한다. 가위바위보를 했을 때, 주먹이 가위를 이긴다는 규칙을 인식하는 걸 도덕성이라고 말한다. 나는 유머도 같은 차원으로 본다. 주먹이 가위를 이긴다는 이 가상의 법칙을 받아들이는 것 또한 유머다. 삶은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다. 한발자국 거리를 두고 상대화시킬 수 있을 때, 유머가 생긴다. 고독도 그렇다. 늙으면 누구나 고독해진다. 하지만 미리 연습을 하면 고독조차 상대화시킬 수 있다. 더 외로워야 덜 외롭다.

 

자발적으로 외로워지는 일이 쉽지는 않다.


의도적인 외로움을 경험하면, 당연히 겪을 수밖에 없는 처절한 외로운 상황에서 성찰적인 거리를 둘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그러면 내 삶을 상대화시킬 수 있고. 외로움을 거리를 두고 볼 수 있기 때문에 결국 덜 외롭다. 책을 통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다. 과거 평균 수명이 짧았을 때는 이런 연습이 필요하지 않았다. 바쁘게 살다 죽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매년 건강검진을 받으니까 암에 걸리면 수술을 받고 100세까지도 산다. 대책 없이 100세까지 살게 됐으니, 늘어난 수십 년을 어떻게 채울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문제는 스스로가 외롭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상황이다.

 

‘고독저항사회’로 표현하기도 했다.


한국 사회에서 외로움은 호환마마보다 더 무서운 질병이 됐으니까. 이 강박에서 벗어나는 게 노후준비의 급선무다.

 

일본 생활이 TV 다큐멘터리로 방송이 되기도 했다. 일본 생활을 부러워하는 지인, 독자도 많았으리라 본다. 교수, 베스트셀러 작가 생활을 누려본 이후의 삶 아닌가?


그런 마음이 들 수 있다. 충분히 이해된다. 하지만 반대로 이 질문을 하고 싶다. “당신이 내 삶을 살았더라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겠냐?”고. 누구나 자기 삶에서 뭔가를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 나 역시, 교수라는 사회적 지위와 안정된 월급을 누리고 있는 상황에서 사표를 던졌다. 내가 다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런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가진 사람만 선택할 수 있는 문제인가? 중요한 것은 외로움은 이런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이다. 누구라도 어떤 상황에도 주어지는 게 외로움이다. ‘고독도 사치’라는 말이 있다. 왜냐 먹고 살기 바쁘기 때문이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절대빈곤인 상태에서의 고독은 정말 사치가 맞다. 하지만 정말 그렇게 바쁠까? 이런 질문을 하는 당신이 절대빈곤인가? 묻고 싶다. 내가 말하는 외로움은 돈이 있고 없음을 떠나 누구에게나 해당되는 문제다. 외로움을 돈의 문제로 환원시키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다고 본다.

 

회피하고 싶은 게 아닐까. 이래도 저래도 외롭지만, 외로울 수밖에 없는 상황을 누구에게라도 인정 받고 싶은 욕망일 수도 있다.


절대빈곤이 아니라는 전제 하에 두 가지로 나눠 볼 수 있다. 사회구조적인 문제와 존재론적 문제. 사회구조적인 문제를 존재론적인 질문으로 환원시키는 것을 미국 심리학에서는 ‘심리학주의'라고 한다. 사회구조적인 문제는 전혀 건드리지 않고 모든 문제를 개인 책임으로 환원시키는 매우 바보 같은 논리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사회구조로 환원시킬 수 없는 존재론적 문제가 있는데, 이런 문제조차도 사회구조로 설명하려고 한다. 자기 눈앞에 닥친 문제들을 회피하려는 거다. 외로움이라는 문제는 누구라도 피할 수 없는 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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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을 끊임없이 공부하는 것이 주체적인 삶


지난해 특히 ‘불안’에 관련된 책이 많이 나왔다.


사람들이 과녁을 못 맞추고 있다. 모든 핵심은 외로움이다. 외로워지는 일에 대한 불안이다. 외롭지 않으려고 관계에 도피하는데, 관계 속에 살다 보면 사람들 눈치를 보게 된다. 그러니 관계 속에서 상처 받지 않으려고 애쓴다. 모두 본론을 피해 가는 이야기다. 사람은 어떻게든 외로운 존재인데, 인정하기 싫어한다. 물론 구조적인 문제로 인한 고립도 많다. 이런 고립은 여러 각도로 이야기해야 하지만, 존재론적 불안은 결국 고립에 대한 불안이다. 내 결론은 고립은 피해갈 수 없다는 거다. 내가 박인환의 시를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박인환은 「목마와 숙녀」에서 고립을 피하면 시들어간다고 했다.

 

자발적인 외로움을 택했지만, 저자 역시 일본에서 무수한 외로움을 겪었다. 책 속에 담긴 일상만 봐도 외로움이 다각도로 느껴진다.


일본에서 혼자 있다 보면 너무 외로워서 미친다. 그래서 카카오톡 친구들의 프로필 사진을 하나하나 다 열어본다. 누구 말 걸 사람 없나 하고 말을 걸면, 친구 차단으로 끝났다. 왜냐 내가 말 거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젊은 여자이기 때문이다. (웃음) 나 같아도 일본에 있는 노인네가 말 걸면 대답 안 한다. 이런 에피소드를 책에 쓴 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대개 심리 관련 도서는 여자들이 많이 읽는데, 저자의 주 독자층은 남자다.


남자들이 내 책을 많이 본다. 나는 여자에 대해 관심 없다. 내가 여자가 아닌데 어떻게 여자를 아나? 한국사회에 일어나는 많은 문제는 남자가 찌질해서 생기는 문제라고 본다. 그런데 사회는 이 문제와 직접 대면하지 않는다. 이 문제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를 설명하지 않는다. 나 역시 대한민국의 무수한 찌질하고 허접한 남자다. 그렇기 때문에 내 안에 있는 문제를 성찰하는 과정에서 스스로를 설명하려고 했던 시도들이 책으로 나온 거다. 한국 남자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다.

 

“대한민국은 시기 사회, 인간 문명은 시기 혹은 질투의 역사”라고 했다.


문명의 핵심은 질투 관리다. 질투는 인간의 본성이다. 내가 프랑스 출신의 철학자, 르네 지라르를 높게 평가하는 이유 중 하나다. 르네 지라르의 ‘희생양 이론’은 여느 프랑스 철학자들과는 완전히 다르다. 쉽고 명쾌하다. 지라르 이론의 핵심은 ‘욕망의 모방’이다. 우리가 그렇게 집요하게 추구하고 원하는 것이 실제로는 남들의 욕망을 흉내 낸 것에 지나지 않다는 것이다. 때문에 인간의 욕망은 영원히 충족될 수 없다. 흉내 내야 하는 타인의 욕망은 무한하기 때문이다. 채워지지 않는 욕망의 매커니즘은 사회적 갈등을 끊임없이 야기한다. 이 갈등은 결국 희생양을 찾아 집단 폭력을 가하는 방식으로 해소된다. 나는 한국 사회의 이데올로기 문제를 보수, 좌파 문제로 보지 않는다. 똑같은 이데올로기 틀을 쓰고 행해진다고 본다. 핵심은 질투 관리다. 문명은  질투 관리가 제도화되고 세련돼지는 거다. 그래서 사회보장제도가 등장한 거고. 노베르트 엘리아스의 문명화과정론에서는 날 것의 정서를 순화시키는 것을 문명화 과정이라고 본다.

 

연예인을 쫓아다니는 팬들의 심리를 질투와 샤덴프로이데로 지적했다. ‘샤덴프로이데’는 상처나 아픔을 뜻하는 샤덴(Schden)과 기쁨을 뜻하는 프로이데(Freude)가 합쳐진 독어다. 저자는 ‘쌤통이다, 고소하다’는 말로 해석했다.


인디밴드가 서서히 인기를 얻을 때, 사람들은 열광한다. 하지만 인디밴드가 톱스타가 되면 인기가 떨어지기만을 바란다. 일방적으로 열광했다가 혼자 질투해야 하는데, 망하기를 바란다. 요즘은 인터넷 시대이기 때문에 팬들에게 도구까지 주어졌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톱스타의 인기와 나락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있나? 내 삶의 문제를 도피하기 위한 왜곡된 욕망을 스타에게 투사해서 생기는 결과일 뿐이다. 내가 주체적인 삶을 살면 남의 성공과 실패에 휘둘릴 이유가 없다. 왜곡된 욕망으로 휘둘릴 시간이 없다. 주체적인 삶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내 관심사를 끊임 없이 공부하는 일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분명히 알고, 끊임없이 좋아하는 걸 공부하고 있으면 불안하지 않다. 내 실력이 끊임 없이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면 자신있다. 불안하지 않다.

 

“행복한 사람일수록 사소한 리추얼이 많다”고도 지적했다.


행복은 아주 구체적인 감각적인 경험이다. “당신은 행복하냐?”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행복한 순간들이 곱씹고 떠올려 보는 건, 행복한 게 아니다. 내가 안정된 직장이 있고 돈을 웬만큼 벌고, 자녀들이 잘 자라고 있다는 걸 스스로에게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설득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 아니다. 이 질문을 받았을 때, 감각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바로 떠올라야 한다.

 

저자는 어떤가. 언제 행복감을 느끼나?


지적 호기심이 생길 때, 가장 행복하다. 책을 보다가 내가 원하는 자료를 딱 찾았을 때, 행복하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을 발견할 때도 행복하다. 공부가 가장 행복한 이유다. 사람들이 공부를 싫어하는 건, 남의 돈을 따먹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걸 공부하면, 공부는 재밌고 행복하다. 나는 서점에서 책을 뒤지고 있는 게 가장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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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미술을 공부했는데, 시작은 성인용만화를 그리고 싶어서였다. 언젠가 김정운의 만화도 볼 수 있나.


큰 범주 중에 하나일 수 있다. 여전히 작품 속에 에로티시즘을 담아낼 테니까. 더 과감해질 수 있지만 그게 재밌을까? 생각해보면 모르겠다. 가장 중요한 건 재미다. 내 삶을 상대화시킬 수 있는 재미가 중요하다. 서양 사람들은 장례식장에서 고인을 두고 농담을 한다. 죽은 사람을 애도하는 가장 훌륭한 수단으로 유머를 활용한다.

 

후회하는 일은 없나?


없을 수 없다. 하지만 내가 하는 후회는 뭔가를 선택했기 때문에 생기는 후회다. 한 일에 대한 후회다. 하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는 바보 같은 짓이다. 시키는 삶에서는 후회가 없다. 후회하는 일이 많으면 그만큼 내가 주체적으로 살려고 노력했다는 증거다. 내가 교수를 그만둔 것도 그래서 한 거다. 어쨌든 내가 주체적인 삶을 살았다는 증거이기 때문에 후회가 많은 건 건강한 일이다. 가장 나쁜 건, 하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가 많은 사람이다.

 

전남 여수에 집을 구했다고 들었다.


바닷가 근처에 조그만 아파트를 얻었다. 일본 짐이 다 여수로 들어갈 예정이다. 파도치는 소리를 들으면서 하루 종일 그림 그리고 밤에는 책을 쓸 거다. 그림 그리다 졸리면 마루에 누워 낮잠도 자고, 가끔 찾아오는 친구들과 초등학생 수준의 음담패설이나 하면서 늙어갈 거다. 단 한 번밖에 없는 내 인생 아닌가. 내 맘대로 사는 걸 결코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일본 생활이 그립지는 않을까?


젊었을 때 독일 생활을 그리워했듯이, 일본 생활도 그리워할 것 같다. 독일에서 유학생활을 할 때는 젊었기 때문에 외로워도 그게 외로움인지 몰랐다. 나이가 들어 유학생활을 하니 정말 뼈가 시리게 외로웠다. 하지만 이것 또한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아름답게 기억될 것 같다. 뼈가 시린 만큼 열심히 공부하고 그림을 그렸으니까, 내가 좋아하는 일을 했고 또 책이라는 생산물을 냈으니까. 지금까지 낸 책 중에 가장 만족스러운 책이 『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에디톨로지』다. 두 권 모두 일본에서 낸 생산물이다. 이만큼의 책을 다시 또 쓸 수 있을지 모르겠다. 외로웠기 때문에 가능했던 책이다. 외로우면 정말 많은 걸 얻을 수 있다. 관계에 허덕이는 것보다 훨씬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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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격하게 외로워야 한다김정운 저 | 21세기북스
표지 그림 ‘외로움과 그리움 사이’ 역시 김정운의 작품이다. 나이 오십 넘은 남자가 홀로 밥해 먹고 빨래하며, 남는 시간은 오롯이 그림을 그리고 글을 썼다. 서툴지만 개성 있는 그림은 우리 삶에 대한 통찰을 이끌어내며, 심리학적 분석이 담긴 글을 통해 ‘자아’와 ‘세계’에 대한 주체적 성찰로 완성되었다. 거기에 일상의 찰나를 포착한 사진과 촌철살인의 유머가 더해져, 유쾌하고 편안한 ‘인간 김정운’의 면모까지 친근하게 담아냈다. 각 글의 말미에는 문화심리학자 김정운의 시각으로 새롭게 해석한 키워드들이 수록되어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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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컬코치 노영주 “노래를 얼마나 잘해서 휘성, 윤하를 가르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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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직하고 우렁찬 책이다. CD와 DVD가 수록되어 있고, 핸드북까지 세심하게 담겨 있다. 백과사전에서나 볼 법한 삽화들이 가득하다. 이를 테면 성대진동과정, 공명구조 같은 것들. 뿐만 아니다. 입시곡은 어떤 게 좋은지, 연습 시간은 어느 정도가 좋은지, 성대 결절이 있을 때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은지 상세하게 설명한다. 휘성, 윤하, 나윤권, 린부터 원더걸스, 포미닛, 애프터스쿨, 비스트 등의 보컬코칭을 해온 보컬코치 1세대 노영주는 “이 정도는 알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최대한 친절하게 책을 만들려고 했다고 전한다. 노래 잘하는 사람이 가수의 꿈을 품고 밥벌이를 위해 보컬코치를 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볼 때 많이 속상하고 자존심 상한다고 하면서 말이다. 전문가로서, 보컬코칭에 대한 그의 자부심이 느껴졌다.


한편 “인생에서 뭐가 되는 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는 그의 말이 오래 남는다. 많은 사람들이 보컬리스트의 꿈을 안고 그를 찾지만 막상 그는 무엇이 되는 것보다 열심히 하는 삶의 자세에 대해 고민했던 것이다. 최선을 다하는 하루하루가 길이 된다는 사실을 믿으면 재능이 없다고, 오늘 도무지 되는 일이 없다고, 당장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한다고 좌절할 일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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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를 잘하는 것과 노래를 잘하게 하는 것은 다르다


DVD, CD에 핸드북까지 굉장히 힘주어 쓴 책이란 느낌이에요. 책을 쓰려고 했을 때 구상했던 모습이 어떤 것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처음부터 이런 모습은 아니었고요. 그냥 담고 싶은 게 많았던 것 같아요. 보컬 선생님들에게 보통 공통의 커리큘럼이 없거든요. 이곳, ‘파워보컬’에는 가수들도 찾아오기 때문에 제가 레슨 하는 커리큘럼을 이해하는 선생님이 수업을 하셔야 되는데요. 그걸 도제교육처럼 계속 말로만 전수하다보니 기록할 필요를 느꼈어요. 노래와 보컬코치는 다르거든요. 보컬코치를 하려면 최소한 알아야 하는 것들이 있어요. 그걸 담고 싶었죠. 잘 정리해서 담아놓은 책이 의외로 없더라고요. 아주 깊게는 안 들어갔지만 이 정도는 알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담다보니, 또 친절하게 하려다보니 DVD도 만들고 그렇게 됐던 것 같아요.

 

보컬코치 1세대로서 저자가 갖는 사명감이 있었나요?


좋게 포장하면 사명감이고요(웃음), 자존심이었던 것 같아요. 작곡가로서 곡을 쓸 때 기획사와 미팅을 하면 대우를 해주죠. 반면 가수들 노래 레슨 때문에 미팅을 하면 약간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어요. 당시는 보컬코치라는 개념도 없었고 그냥 노래 선생님이었는데요. 노래는 작곡가도 알려줄 수 있고, 다른 사람도 할 수 있으니 그걸 서브하는 정도로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이건 전문직이고, 체계가 필요하다는 걸 강조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작곡가는 가수에게 주문을 하게 되는데요. 보컬코치는 가수가 주문 받은 걸 할 수 있게 도와줘야 해요. 도와주려면 어떤 원인 때문에 안 되는지 파악해야 하고, 파악하려면 자연스럽게 알아야 할 것들이 있죠. 지금은 물론 인식이 많이 달라졌어요. 아무튼 그런 자존심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아요.

 

책 출간이 2011년이에요. 지금은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고 했는데 그것이 변화한 시점은 언제부터라고 생각하세요?

 

음, 글쎄요.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그런 인식이 바뀌게 되었을까요?


회사가 해결 못하던 것을 해결해줬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웃음)

 

전문가의 역할을 알게 되면서부터군요.


네. 초반에는 회사가 저한테 디렉션을 줬었어요. 어떤 방향으로 가르쳤으면 좋겠다, 하고요. 처음에는 곡 연습을 안 시키거든요. 어떻게 보면 상식적이죠. 노래를 불러서 노래연습을 하는 게 도움은 되지만 효율적이지는 않아요. 안 되는 게 있으면 그것에 맞는 원인을 찾아 연습을 해야 해요. 그런데 노래를 안 하면 노래가 좋아졌는지 알 수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회사 측 불만도 있었죠. 갈등도 있었고요. 그게 바뀐 건 그런 이유가 있는 것 같아요.


나윤권이란 친구가 있어요. 너무 노래도 잘하고 회사에서도 앨범 진행하면 되겠다, 하는데 녹음이 두 시간만 지나면 노래를 할 수 없게 되는 거예요. 그게 해결이 안 됐는데 해결해주니까 보컬코치가 하는 건 다르구나, 이렇게 인식이 된 것 같아요. 한편 속상한 건요. 요즘 미디어에서 보컬코치라고 하는 사람들이 나오잖아요. 노래경연프로그램에도 나오고요. 노래를 하는 건 좋죠. 보컬코치가 계속 곡을 쓰고, 노래하는 건 보컬코치에게도 좋은 자양분인 것 같아요. 그런데 그 모습이 가수 하려다 실패해서 보컬코치 하는 것처럼 비춰지고, 여전히 가수를 꿈꾸고 있고, 보컬코치는 마치 살기 위해 하는 것 같은 모습을 볼 때 되게 많이 속상해요. 자존심도 상하고요.

 

노래를 하는 것과 보컬코치를 하는 것은 확실히 다른 영역이라는 말을 계속 강조하는군요.


그럼요. 내가 노래를 잘하는 것과 노래를 잘하게 하는 것은 달라요. 보컬코치라 하면 ‘노래를 얼마나 잘하기에 휘성을 가르쳐?’ 그렇게들 생각하세요. 제가 휘성을 레슨 하고, 윤하를 레슨 하는 건 그들보다 노래를 더 잘해서는 아니에요. 다만 그들이 더 잘하게 도와줄 수 있는 자신감이 있기 때문에 레슨을 하는 거죠. 왜냐하면 노래는 음악적 기준을 넘어서면 누가 더 잘했다, 못했다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잖아요. 때문에 노래를 잘해서 레슨을 하는 건 아닌 거예요. 다른 부분이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가수 김연우, 김선주 씨처럼 가수로도 인정받으면서 제자를 양성하는 경우도 많죠. 미디어도 애써 보컬코치로서의 역할을 다르게 조명하진 않았지만 대중 역시 그걸 구분할 기회가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우선 노래를 할 때는 몸이 악기에요. 기타리스트에게 기타가 악기인 것처럼요. 그렇다면 이 몸에 대한 이해가 필요해요. 만약 가성이 안 되는 사람이 있다면 여러 원인이 있을 수 있다는 거죠. 성대 상태 때문일 수도, 성대 긴장도 때문일 수도 있죠. 원인에 따라 어떤 연습 방법을 제시해야 하는지도 알아야 해요. 곡을 해석하고, 어떻게 부르면 좋다는 것은 노래를 잘하면 할 수 있는 것 같은데요. 그게 안 될 때, 해결이 안 될 때는 그 대상에 대한 사랑이 필요하고, 몸에 대한 지식도 필요해요. 사랑과 지식을 전달하려면 고민이 필요하고 많은 시간 투자를 해야 하잖아요. 다르죠.

 

의사 역할과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축구 선수 하셨던 분들이 은퇴하면 감독이 되기 위해 공부하러 떠나시잖아요. 그게 당연한 거죠. 이쪽도 그렇다고 생각해요. 기본적으로 노래를 잘하는 사람은 잘 가르쳐줄 수 있는 토양이 있는 거죠. 그걸 잘 전달하기 위해서는 공부를 해야 하고요. 노래하는 사람은 몰라도 되는 것 중에 보컬코치가 알아야 하는 것도 많거든요. 노래하는데 목이 아프다면 왜 아픈지 이유를 찾아야 하잖아요. 진성, 가성으로 소리를 낼 때 성대 상태가 정확히 어떻게 다른지 공부해야 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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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악기다


그래선지 성대 구조, 발성할 때의 성대 변화 등 자세히 ‘악기’에 대해 설명했어요.


DVD 영상도 그렇고요. 기본적으로 소리를 내는 원리를 모르고 악기를 손봐줄 수 없으니까요. 영상을 찾다가 결국 없어서 직접 제작한 거예요.

 

책을 쓰면서 이 책을 이런 사람은 꼭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것도 있었겠죠?


대놓고 얘기는 안 했는데 우선 레슨 하는 사람들이 봤으면 했어요. 이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이 일을 한다는 사람들과 적어도 이 정도 대화는 나눴으면 하는 마음이었어요. 기본적인 걸 모르면 레슨을 하면서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어요. 소리는 몸 안에서 다 이루어지는데 몸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공부하지 않으면 ‘느낌’을 얘기할 수밖에 없거든요. 사실보다는 느껴지는 것을 말하죠. 거기에는 왜곡이 있을 수밖에 없고 본의 아니게 거짓말을 하게 돼요. 노래를 배우는 사람은 잘못 연습하는 거고요. 보컬이 잘못 연습하면 참 많이 손해인 게, 악기 연주자가 연습을 잘못한다고 악기가 망가지진 않잖아요. 설령 망가졌다 해도 새로운 악기로 교체하면 되고요. 그런데 보컬이 연습을 잘못하면 하나밖에 없는 악기가 망가지고, 그 후에는 악기를 돈 주고 살 수도 없죠. 손해가 아주 커요. 그렇게 레슨을 잘못 받아서 오는 경우도 많았어요.

 

잘못 레슨 받은 사람, 잘못 레슨 하는 사람을 만나면서 느낀 답답함이 전해지네요.


답답함과 함께 해결해줘야겠다(웃음)는 마음이 동시에 있어요.

 

보컬코치를 하면서 경험한 희열도 많았겠죠? 가장 기억에 남는 코칭 결과, 변화, 그런 게 있다면 들려주세요. 고음이 어려웠는데 바른 자세로 교정해서 가능해졌다고 한 사례도 기억에 남거든요.


그건 흔한 일이에요. 그게 원인이 돼서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어요. 한 가수 분이 오셔서 솔직하게 얘기한 적이 있어요. 가수를 포기했다고요. 괴로운 일이죠. 노래하는 사람이 악기가 망가졌다는 걸 스스로 느끼면서 무대에 오르는 건 무척 괴로운 일일 거예요. 그래서 노래를 그만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계셨대요. 마지막으로 만나보러 왔다고 제게 솔직하게 얘기해주셨어요. 그리고 다시 앨범 내셨죠. 많이 좋아지셨고요. 나윤권 씨처럼 앨범을 못 낼 것 같았는데 데뷔하고, 활동하고 있는 것도 기억에 많이 남고요.

 

저자를 거친 ‘제자’들이 왕성하게 활동하고 대중에게 사랑받는 모습 보면 정말 기분 좋을 것 같아요.


예전에 ‘Beyond the Dream’이라는 자선공연을 한 적 있었어요. 꽤 많은 가수들이 출연해줬어요. 윤하, 플라이투더스카이의 브라이언, 이하늬, 다비치, 씨야, 린, 휘성 등 한 10팀 됐던 것 같아요. 그때 제가 이하늬 씨와 사회를 봤거든요. 무대 곁에서 가수들이 노래하는 모습을 보잖아요. 사람들이 환호하는 모습도 보고요. 거의 두 시간 가까이 계속 지켜보는 황홀한 경험을 했어요. 코가 시큰할 정도로 감격스러웠어요. 이 일을 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죠. 또 그런 기회가 왔으면 좋겠네요.(웃음)

 

 

노력하는 사람이 오래 사랑받는다


기초체력, 기본, 기초공사 등의 단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어요. 저자의 의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인데요. 노래를 운동에 비유하기도 했어요. 역시 가장 강조하려는 것은 기본이었던 건가요?


노래를 잘하기 위한 여러 요소가 있겠죠. 기본적 음감, 리듬감, 음악적 지식을 위한 악기 연주, 음악 이론 공부, 이런 것들이요. 그런 부분은 누구나 알고 있다고 생각해요. 꼭 보컬코치가 이야기하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이 얘기해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런 부분을 강조한 건 그게 제일 중요해서는 아니었고요. 나 같은 사람은 이 부분을 강조해야 하지 않을까, 해서 그렇게 썼던 거예요. 아무리 음악적 지식이 뛰어나도 몸이 안 따라주면 할 수 없잖아요. 내 몸을 좋은 악기로 다듬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다른 연주자들과 달리 보컬리스트는 몸이 악긴데, 이걸 돈 주고 살 수 없거든요. 다른 연주자와 달리 필연적으로 몸을 좋은 악기로 만드는 작업 하나가 추가되는 것 같아요. 그 부분이 중요하지 않을 수 없고 보컬코치니까 더 강조했던 것 같아요.

 

좋은 악기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계속 갈고 닦아야 어느 수준에 이르는 악기를 가진 사람도 있는 거잖아요.


만약 신이 제게 타고나게 해줄까, 갈고 닦아야 하게 해줄까라고 묻는다면 후자를 택할 것 같아요. 타고나서 좋은 사람들은 한 번 무너지면 걷잡을 수 없어져요. 제가 볼 땐 그래요. 구조나 소리 특성이 굉장히 안정적인 분들이 있는데요. 톤도 좋고 그러면 당연히 소리에 대한 고민이 없겠죠. 그러다가 성대가 나이를 먹어 탄력을 잃을 수도 있고, 호흡의 힘이 달릴 수도 있어요. 뭔가 문제가 생기면 이제 당황하게 되죠. 가령 비염이 있고, 역류성 식도염이 있다든지 어떤 병리학적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계속 그걸 관리하기 위해서 신경을 쓰잖아요. 때문에 어떤 문제가 생기면 대처를 하죠. 병원 자주 가는 사람들이 건강하다면서요.(웃음) 물론 타고난 사람이 더 연습하고, 노력하면 더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아요. 가수 중에 정말 노래 잘했는데 지금 보면 요령으로 노래하는구나 보이는 경우 많잖아요. 연습을 계속 하는지 아닌지는 보면 바로 보이죠.

 

예를 들면 어떤 분이 있을까요?


송창식 선생님, 연습 안 하면 그렇게 할 수 없어요. 조용필 선생님도 그렇고요. 연습을 안 하고 그렇게 하는 건 불가능해요.

 

오래 사랑받는 가수에 대해 ‘자기 색깔이 있다’, ‘바른 자세’ 등 여러 특징을 꼽았거든요. 좀 더 설명해주세요.


흔한 말로 자기계발이죠. 내 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고, 아주 재미없는 발성 연습을 계속 하는 거예요. 창의적인 감성 가진 사람들에게 발성 연습은 되게 재미없거든요. 같은 걸 반복한다는 게 힘들죠. 설령 데뷔할 때는 대중에게 사랑받고 싶었다 하더라도 성숙함에 따라 세상에 어떤 이야기를 하는가에 대한 자기 고민, 성찰도 필요할 테고요. 음악적 성숙도 계속 필요하고요. 그런 노력 있는 분들이 오랫동안 사랑받는 것 같아요. 한때 사랑받았던 걸 가지고 그 상태에 머무르는 분들은 아무래도 점점 시들해지지 않나 생각이 들어요.
 
노래는 감성 전달이라고 했는데, 그런 측면에서 대중 역시 가수의 변화는 명확하게 설명할 순 없지만 느낌으로 알 수 있는 것 같아요. 계속 사랑받는 가수가 노력한다는 것까지도 말이죠.


그렇죠, 어떤 정서를 내가 느끼는 것과 내가 느낀 정서를 상대방도 느끼게 하는 건 다른 차원의 문제인 것 같은데요. 표현 예술을 하는 사람들, 그림, 글, 연주, 노래 어떤 것이 됐든 정서를 전달하는 거잖아요. 정서를 대상이 느끼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많은 요소가 있어요. 그 요소가 잘 유지되지 않으면 당연히 전달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감동을 줄 수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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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가 되는 건 중요하지 않다


한편 보컬코치 역시 음악을 향유하는 개인이잖아요. 코치마다 좋아하는 음악이 있을 테고요. <K팝스타>를 보면 박진영 씨 경우는 확실히 좋아하는 보컬이 있는 것 같아요.(웃음)


보컬코치는 그걸 조심해야 해요. 제작하는 분들은 제 생각에 제작해서 성공했던 것이 아무래도 기준점이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오감 중에 제일 익숙한 것을 편안해하는 게 청각이라는 말을 들었는데요. 공감되더라고요. 맛있는 걸 하루 종일 먹진 않죠. 영화도 그렇고요. 음악은 좋아하는 걸 하루 종일 들어요. 그만큼 청각은 익숙한 걸 편안해하고, 나쁘게 말하면 고지식한 거죠. 보컬코치도 사람이니 취향도 있고, 좋아하는 음색, 음악 스타일도 있을 수 있는데요. 그렇지만 보컬코치는 가수의 스타일을 찾아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스타일은 만들 수 없죠. 찾아줘야 하는 건데 코치가 선입견이 있으면 절대 안 되죠. 훌륭한 코치의 기준 중 하나로 생각하는 건 그 코치에게 레슨 받은 가수마다 색이 다 달라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비슷한 색으로 가는 건 제가 볼 땐 보컬코치는 아니에요. 작곡가, 제작자라면 이해돼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보컬코치는 절대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귀를 객관적일 수 있도록 하고, 작곡가의 의도, 가수의 색깔, 회사 의도 등을 다 고려해서 자리를 잡아줘야죠.

 

선입견을 갖지 않고, 객관적으로 보컬코치로서 자신을 유지하기 위해 하는 작업도 있나요?


특별한 작업은 없고요. 그냥 음악을 안 가리고 다양하게 들어요. 또 책에도 썼는데 사랑하면 보인다고 생각해요. 모든 원리가 그 안에 다 숨어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진정성을 가지고 대상을 바라보면 뭘 도와줘야 할지 보이고, 대상에 어떤 것이 있는지도 보이는 것 같아요.

 

책에서 방법론을 설명하다 가장 먼저 언급한 가수가 휘성 씨였어요. 특별한 사이라는 게 느껴지기도 했고요. 금방 사랑이라고 말했는데 보컬코치와 가수의 관계라는 것이 그토록 긴밀한 것인가요?


물리적으로도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아주 오랜 기간을 만나잖아요. 상투적인 만남이 아니라 고민을 나누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니까 더 깊어지는 게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다보면 음악적인 부분뿐 아니라 회사와의 관계, 남에게 말 못하는 불안감도 나누게 되고요. 대중의 사랑으로 사는 연예인은 언제 배신당할지 모르는 애인과 사는 것과 같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웃음) 불안하죠. 그런 삶에 대한 힘든 얘기도 함께 해요. 공연 앞두고 목이 안 좋아서 오면 같이 원인을 찾고, 좋아지면 같이 기뻐하고,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다 그런 건 아니지만요.

 

모차르트를 바라보는 살리에리처럼, 재능 있는 사람들을 보며 괴로워하는 많은 살리에리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나요?


인생에서 뭐가 되는 건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몇 년 전 산티아고를 500km 걸었어요. 인생 후반전을 살아야 하잖아요. 불현듯 왜 이 일을 하지, 왜 살지, 맞다고 생각하며 살았던 게 과연 맞나, 이런 의문이 올라오고 해결이 안 되니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 수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떠났던 길인데요. 길을 걸으며 많은 걸 얻었죠. 느낀 것 중 하나가 내가 뭐가 되지 않아도 되는구나, 심지어 내가 믿는 신도 내가 뭐가 되길 원하지 않는구나, 그런 것이었어요. 노래를 접하는 게 가수를 통해서잖아요. 그러니 노래가 좋으면 가수가 되고 싶어지죠. 그걸 위해 연습도 하고, 오디션도 보고, 좌절도 하고, 재능이나 노력에 따라 슬럼프도 있는데요. 저도 앨범을 냈지만 잘 안 됐고, 작곡도 했지만 내놓을만한 히트곡도 없어요. 그렇지만 저는 제가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지금 제 모습을 실패했다고 보는 분들도 없는 것 같아요. 일단 내가 하고 싶은 게 생겼고, 그 꿈을 위해 달려가는데 더 뛰어난 사람들을 보며 좌절할 수 있지만 내가 선택했기 때문에 열심히 하겠죠. 그 ‘열심히’라는 게 삶의 자세가 되는 것 같아요. 그러다보면 또 다른 길이 열리는 것 같아요. 그 길을 가다 또 다른 길이 열리고요. 저는 그걸 믿어요. 그냥 오늘, 이 순간 내가 해야 할 게 뭔지 생각하고 그것에 대해 최선을 다하면 좋겠어요. 될까 안 될까는 너무 고민하지 말라고 해주고 싶어요. 인생은 어차피 뜻대로 안 되잖아요.(웃음) 그러다보면 자기에 맞는 자리를 찾을 수 있다고 믿어요.

 

노래 좋아하는 사람 정말 많아요. 듣기도, 부르기도 좋아해요. 저자 역시 평생을 음악과 함께 살았는데, 도대체 어떤 것에 매료되는 걸까요?


노래가 어떤 감정을 쏟아내는 거잖아요. 마음 맞는 친구와 이야기만 해도 위로가 되는데 그걸 많은 사람들 앞에 쏟아낼 수 있는 기회가 노래 같아요. 그에 대해 아무도 시비 걸지 않고, 그걸 많은 사람들이 들어주고요. 그런 매력이 있지 않나 싶어요. 꼭 가수가 아니더라도 삼삼오오 노래방을 가도 그렇죠.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노래를 부르는 행위는 그런 매력이 있다고 생각해요. 음악 듣는 건 굳이 말씀드리지 않아도 너무 많은 매력들이 있고요.

 

 

천국 같은 곳, 아트키부츠


아트키부츠라는 예술 공동체는 어떤 곳인지 궁금해요.


‘파워보컬’을 만들 때 공간에 대한 꿈이 있었어요. 노래하는 친구들이 왔을 때 연습도 하고, 쉴 수도 있는 천국 같은 곳이었으면 좋겠다고요. 보컬코치기도 하지만 회사의 오너기도 한데요. 함께 일하는 친구들을 생각해보니 깨어있는 동안 제일 많이 보고 있더라고요.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행복하지 않으면 인생의 3분의 1이 불행하구나 생각했어요. 그래서 공동체에 대해 생각해봤어요. 요즘 많은 사람들의 삶이 불안한 것 같아요. 경쟁해야 하고, 연대가 없다는 것 때문에요.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힘이 돼주고, 의지할 수 있고, 서로의 삶을 알고 나누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이곳에 작은 공연장, 카페도 만들고, 휴식 공간도 만들었죠. 히브리어로 키부츠(KIBBUTZ)가 공동체란 말이더라고요. 그렇게 아트키부츠가 된 거죠.

 

공동체 개념은 요즘 많이 익숙해지고 있는 것 같긴 하지만 2011년 아트키부츠를 설립할 때만 해도 생소한 개념 아니었나요?


잘 모르겠는데요. 예수가 돌아가시고 사람들이 공동체 생활을 했다고 해요. 함께 노동하고, 기도하고 살았다 하더라고요. 우리가 일하는 곳도 그랬으면 좋겠다, 사회도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사회는 더 잘 살게 됐다고 하는데 힘든 사람은 많고, 연대도 약하잖아요. 양보하고 연대하는 공동체 의식이 사회에도, 일하는 곳에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아트키부츠라는 곳을 만들게 된 것 같아요.

 

비교적 젊은 층의 사람들이 이곳에 함께 있는 점을 생각하면 일종의 울타리를 생각했던 게 아닌가 싶네요.


솔직히 수강생들의 필요가 뭘까를 생각한 건 비즈니스적인 것이 시작이었어요. 어떻게 보면 수강생들은 고객이잖아요. 이들의 니즈를 많이 고민하고 토론도 했는데요. 거기서 나온 게 말씀하신 울타리가 되어주는 것, 자기편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건 사람의 본질적인 니즈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고요. 그 기본적 니즈는 직원들도 다르지 않고, 저조차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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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워보컬 테크닉노영주 저 | 아트키부츠북(art kibbutz book)
《파워보컬 테크닉》에는 지난 십여 년간 현장에서 터득한 노영주만의 노하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입시 준비생, 가수 지망생, 음악계 종사자, 현직 보컬 코치들이 꼭 읽어야 할 책이다. ‘몸의 악기화를 위한 보컬 테크닉’과 ‘느낌 표현을 위한 보컬 테크닉’이라는 두 개의 큰 주제를 중심으로 열한 가지 테크닉을 위한 주의사항과 호흡, 성대 진동, 공명, 스케일, 셈여림, 바이브레이션, 발음, 성대 접촉률 조절 연습 등의 ‘파워보컬’만의 특화된 연습 방법이 공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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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석 “잘못했을 때, 문을 닫는 회사가 나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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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영업 교육서’가 아니다. 영업의 기법을 알리고자 하는 책은 더더욱 아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영업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바른 가치관을 가지길 바라고 쓴 책이다” 저자의 말처럼 책 속에는 영업 실적을 단기간에 끌어올리기 위한 얕은 수 같은 건 없었다. ‘어떻게 하면 동료들보다 더 높은 성과급을 받을 수 있을까’라는 식의 고민도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영업에서 성공을 거두기 위해 정말 필요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는 것은 분명하다. ‘영업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서 출발해 ‘영업이란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들을 제시해 주기 때문이다. 그것은 영업의 기술 혹은 비결을 알려준다는 여타의 책들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질문이자 해답이었다.

 

『첫 출근하는 영업자에게』의 저자 이장석은 성공한 영업 사원의 표상이라 할 만하다. 30년 동안 IBM에서 근무해 온 ‘정통 아이비애머(IBMer)’인 그는 신입사원으로 입사해 한국 IBM의 부사장 및 대표의 자리까지 오른 인물이다. 그런 그가 자신의 경험을 고스란히 담아낸 이번 책에서 힘주어 이야기하는 것은 ‘원칙 영업’과 ‘정직 영업’이다. “현장에서 30년간 영업을 하면서 불법이 판치는 황당한 현실에 부딪칠지언정 원칙을 잃지 않았던, 그런 영업의 선배가 후배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조언”을 담아낸 것이다.

 

짧은 시간 안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들은 많다. 그에 비하면 『첫 출근하는 영업자에게』가 알려주는 길은 멀리 돌아가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험난한 여정이 될지라도, 제대로 된 길을 걸어가는 일임에는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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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하면 문을 닫는 기업들이 많아져야 한다


‘알래스카에서 냉장고를 팔 수 있어야 진짜 영업자다’라는 말은 영업의 기본을 모르는 사람들이나 하는 말이라고 하셨습니다. 작가님께서 생각하시는 영업의 기본이란 무엇인가요?


영업이라는 것은 고객이 중심이 되어야 하는 거잖아요. 고객이 원하는 것이 시작 포인트이지, 내가 갖고 있는 제품을 파는 게 아니란 말이죠. 결국 영업이라는 것은 갑이 자신의 문제를 풀기 위해서 필요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을이 제공하는 거란 말이에요. 그러면 갑은 기꺼이 그 제품을 구입하거나 대가를 지불하는 거고요. ‘알래스카에서 냉장고를 팔 수 있어야 진짜 영업자다’라는 말은 그 정도로 영업을 잘해야 된다는 뜻으로 하는 이야기인데, 제가 말하는 건 진정한 의미에서 영업은 고객의 니즈가 분명한 곳에 비즈니스를 해야 된다는 거예요. 일단 고객의 니즈를 보는 것이 시작점이 되어야 한다는 게 영업의 1번이고, 그렇게 된다면 고객이 원하는 것과 영업자가 판매하고자 하는 제품 사이의 격차가 점점 줄어드는 거죠. 그래서 가장 첫 번째 시작점은 고객과 시장이라고 보는 거예요.

 

그런 기본이 잘 지켜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저는 습관과 관행이라고 봐요. 우리적인 예의라는 의식이 잘못 변형된 것들이라고 보거든요. 단적인 예를 하나 말씀 드리면, 2011년도에 제가 다니던 회사의 본사에서 회계 감사를 나와서 큰 문제가 발생됐어요. 저희가 2000년대 초에 한국적인 정서에 맞춰서 축의?경조금 제도를 만들었는데, 본사에서 보고 어떻게 고객한테 현금을 줄 수 있냐고 이야기했죠. 그 회사가 전 세계에 140개가 넘는 나라에 진출해 있는데, 축의?경조금을 주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었다는 거예요. 그래서 임원들이 모여서 한 달 간 토론을 한 끝에 더 이상 하지 말자고 결론을 내렸어요. 그리고 2000년대 초부터 이른바 룸살롱 같은 곳에 들어가는 것을 금지시켰어요. 요새는 많은 기업들이 그렇게 하고 있지만 1980~1990년대에는 그런 곳에서 접대가 이루어지곤 했거든요. 그걸 그만두는 게 굉장히 어려웠지만 결국은 하지 않기로 했어요. 저는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예’, ‘정’의 의식이 변형돼서 잘못된 접대와 리베이트들이 생겼다고 봐요. 하지만 의식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해요. 제가 몸 담았던 회사에서 그런 경험을 했고요.

 

말씀하신 것처럼 변화가 필요한데요. 쉽지만은 않을 것 같습니다.


주변 사람을 신경 쓰고 정을 나누는 문화는 좋은 거죠. 그런데 정이라는 것, 그리고 예의라는 것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하는 것이고, 힘 있는 자가 힘 없는 자에게 하는 거잖아요. 아랫사람이 윗사람한테 하는 게 아니고, 힘 없는 사람이 힘 있는 사람한테 하는 게 아니에요. 갑이 을한테 물건을 사고 ‘나한테 이걸 팔아줘서 고마워’라고 하면 괜찮죠. 그런데 을이 ‘이것 좀 사줄래요’ 할 때는 잘못된 거죠. 그 방향성이 끊겨야 되는 거죠. 한꺼번에 되지 않죠. 그런데 제가 몸 담았던 회사에서 했듯이 그런 회사가 하나하나 늘어나고, 또 한 사람 한 사람 늘어나다 보면 접대나 리베이트를 하는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이는 거죠. 과거에는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게 보였지만 점차 시간이 흘러가면 그렇게 하는 게 이상해지는 사회가 되겠죠.

 

이런 문제의 원인으로 성과주의를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회사 측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제품을 팔아오라고 하거나 과정이 어떻든 결과를 잘 내는 직원에게 포상을 하게 되면, 직원들은 그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따라가게 되니까요.


그래서 저는 영업하는 사람들의 DNA를 바꾸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제가 ‘한국영업혁신센터’라는 새로운 회사를 만든 것도, 이런 것들이 혁신에 해당되는 사항이기 때문이에요. 영업 직원들에게는 연봉이나 인센티브, 승진 등 모든 것이 결과에 좌우되죠. 그런데 그런 것들은 길게 보면 아무것도 아닌 거거든요. 단기적인 성과와 평가에 나의 모든 양심을 팔아버리고 기업의 가치를 팔아버릴 것이냐, 아니면 장기적으로 확신을 갖고 지켜갈 것이냐의 게임이죠. 저는 2000년도에 임원이 되고서 2004년부터 지난 10년 동안 한 번도 제 목표를 못 채운 것 같아요. 15~16년 동안 임원으로 있으면서 저한테 주어진 목표를 채운 것은 두 번 정도 됐을까요?

 

그에 따른 불이익은 없으셨나요?


물론 거기에는 금전적인 손실도 많이 있었겠죠. 그렇지만 회사가 계속 저한테 기회를 주고 다른 일을 하도록 해줬던 것은,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을 아는 조직이라는 거죠. 당연히 영업을 하는 사람들은 목표를 달성해야 하고 그래서 기업이 존재하는 거죠. 그런데 오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면 내일 다 망하는 거죠. 성과가 줄어드는 게 아니라 망하는 이야기거든요. 조직도 개인도 마찬가지예요. 그런데 영업을 길게 안 보잖아요. 과거에는 그렇게 봐서 문제가 없었죠. 그런데 이제는 잘못하면 망한다는 거예요. 우리 사회가 점점 투명도가 높아지고 사회의 레벨이 달라지면, 잘못된 영업 때문에 기업이 문을 닫는 일이 생긴다는 거죠. 책에도 그런 예가 나오지만, 미국은 그런 일이 있으면 몇 년이 흐른 뒤에도 파헤쳐서 회사를 문 닫게 한다니까요. 그런 잘못을 했을 때 잠시 문제가 생기는 게 아니라 결국은 문을 닫는 회사가 대한민국에도 나와야 된다고 봐요. 영업을 잘못한 개인을 처벌하는 게 아니라 그 기업을 문 닫게 해야 하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대한민국도 바뀔 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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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잘 ‘듣는’ 영업자가 되어야 한다


한편에서는 ‘상대가 편법을 쓰는데 나라고 별 수 있나, 원칙을 지키는 사람만 바보된다’라고 생각하기도 할 텐데요. 말씀하신 것처럼 처벌을 강화하면 그런 말을 할 필요가 없겠죠.


그럼요. 엄중하게 처벌해야 됩니다. 지금처럼 개인의 실수로 취급하는 게 아니라 기업 자체에 엄중한 처벌을 내려야 돼요. 그러면 무서워지는 거죠. 그래서 저는 이 책을 기업의 최고 경영자들, 임원들이 이 책을 봤으면 좋겠어요. 의식을 바꿔야 됩니다. 영업 직원들만 듣는다고 해서 되지 않고요. 회사 임원들이 들으셔야 되고, 사장님도 들으셔야 되고, 지원 부서의 사람들이 다 들어야 됩니다. 그래야 회사 문화가 형성이 되죠. 영업은 영업부 직원들만 하는 일로 생각하면 잘못이에요. 어떻게 보면 영업 혁신이라는 게 길고 먼 일이지만, 조만간 확산될 큰 주제라고 생각해요.

 

대부분의 영업사원은 제품을 조금이라도 더 홍보하려고 열을 올리잖아요. 그런데 작가님께서는 “고객이 최소 두 배 이상은 말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물리적인 시간에 잘 듣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대로 듣는 게 더 중요해요. 동시에 한 사람의 고객을 만나도 영업자마다 고객의 메시지를 다르게 해석합니다. 정확하게 읽어내려면 고객의 표정이나 평소의 말투, 말의 톤 같은 것들을 전부 알아야 돼요. 그런데 자기 혼자 떠들면 제대로 읽을 수가 없거든요. 그리고 이야기를 많이 듣기 위해서는 질문을 잘해야 돼요. 적어도 내가 물어볼 것들이 무엇인지를 알고 준비해서 가야죠. ‘내가 오늘 왜 가는 거지? 무슨 목적으로 가는 거지? 무슨 이야기를 알아내야 하지?’ 그렇게 알아내야 할 내용을 정리하다 보면 ‘어떻게 파악할까?’ 하고 질문을 하는 거죠.

 

질문하는 방식에도 노하우가 있을까요?


중요한 건 한 번만 이야기하고 끝나면 안 돼요. 만약 ‘이번 토요일에 약속 있으세요?’라고 물어봤는데 있다고 대답하면 ‘그럼 다음 주 토요일은 약속 있으세요?’라고 물어보면 안돼요. 그건 바보 같은 질문이잖아요. ‘혹시 연기 가능한 약속이신가요?’라고 물어보고, 그게 어렵다고 하면 ‘실례지만 무슨 약속인지 물어봐도 될까요?’ 하고 끌고 들어가는 질문을 해야 되거든요. 답변에 따라 질문을 다르게 할 수 있는 시나리오가 있어야 된다는 거죠. 그런 모든 게 다 준비죠.

 

고객이 보내는 언어적, 비언어적 메시지를 예리하게 포착해내야 한다는 말씀이신데요. 경력이 쌓일수록 그런 눈치도 생길까요?


그건 거의 직감이라고 봐요. 그래서 저는 영업을 아무나 하는 게 아니라고 말하는데요. 책에도 하나의 예로 나와 있지만, 제가 영업한지 2년 되었을 때인데, 매니저하고 같이 고객을 만났는데 매니저는 고객의 메시지를 읽지 못했지만 저는 읽어냈거든요. 그건 직감에 의한 것이기도 하지만, 집중해서 잘 듣느냐가 제일 중요해요. 어쨌든 고객은 이야기합니다. 표정으로 이야기하든지, 제스처로 이야기하든지, 말로 하든지, 에둘러서 이야기하든지, 어쨌든 이야기합니다. 그러니까 고객을 알아야죠. 저 사람의 성향이 어떤지, 평상시에 어떻게 이야기하는지 알아야죠. 싫으면 어떤 표정을 짓는지 좋을 때는 어떤 표정을 짓는지, NO라고 말하고 싶을 때는 어떻게 이야기하고 YES라고 말하고 싶을 때는 어떻게 이야기하는지, 그건 웬만하면 다 알 수 있거든요. 처음 만나는 사람이라면 대화를 하면서 빨리 알아내야 하는데, 그건 직감에 의해서 하는 거지만 사람의 차이는 크지 않다고 봐요. 그러니까 얼마나 집중해서 듣고 생각하느냐가 더 중요한 문제죠.

 

영업자가 갖추어야 할 요건 중 하나로 인맥관리 능력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인맥관리에 있어서 작가님만의 원칙이나 방법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어떻게 보면 지금 우리 사회는 지나치게 그쪽에 매몰되어 있죠. 저는 사회에 나와서 만나게 된 사람들과의 모임에서는 절대 비즈니스와 연계되는 이야기를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사회는 그런 걸 비즈니스와 연계시키려고 하죠. 그런 면에서는 균형을 잃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해요. 결국 인맥관리는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어디에 쓸 거냐의 게임이거든요. 그런 면에서 볼 때는 우리사회는 너무나 과도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너무나 많은 모임이 있고, 친목을 빙자한 교류가 너무나 많죠. 그걸 경계한다는 뜻으로 말씀 드린 거예요. 영업하는 사람이 고객을 관리 안 할 수 있나요. 그 방법을 달리 해야 된다는 거죠. 영업 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실수는 비즈니스가 있을 때만 찾아간다는 거예요. 그게 아니라 중요도에 따라서 고객에게 연락할 계획을 세워놔야 돼요. 어떤 고객은 일주일에 한 번 또는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전화를 해야겠다, 어떤 고객은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이나 분기에 한 번씩 접촉을 해야겠다, 이걸 다 계획을 짜서 반영해야죠. 중요한 건 고객 관리라는 이유로 자신의 시간을 매몰시키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현실은 누가 봐도 잘못된 영업을 하는 사람이 찬사의 대상이 되고, 항상 바르고 정직함에도 성과를 내지 못해 좌절하는 영업자가 더 많다”고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작가님께서는 줄곧 원칙을 지켜오셨는데,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 같습니다.


제가 몸 담았던 회사가 고마운 거죠. 그걸 용납하지 않는 회사였으니까요. 『첫 출근하는 영업자에게』에서도 처음 3년이 중요하다고 말씀 드렸지만, 저는 입사하고 처음 3년 동안 세 사람의 매니저를 만났는데 그분들이 DNA를 바로 잡아주셨어요. 그때 제가 어마어마한 프로젝트에서 이겼는데도 주어진 목표의 51% 밖에 채우지 못했거든요. 그렇지만 저의 매니저는 인사고과에서 최상급을 줬어요. 그런 것들을 보면서 느낀 거죠. 금전적으로는 손실을 봤지만 회사는 나의 기여를 인정했다는 걸요. 그리고 저도 그래야겠다고 생각을 했고요. 어떤 사람들은 엄살을 부려서 목표 적게 받잖아요. 저는 리더가 되고 난 뒤에도 그런 직원들은 절대 용납하지 않았어요. 그런 걸 직접 봤고 당해봤기 때문이에요. 제가 그렇게 경험에 의해서 알게 됐듯이 저와 같이 일했던 사람도 알게 되면 조직도 그렇게 되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처음에 어떤 사람들과 어떤 조직에서 일하는가가 정말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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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식 때 ‘카더라 통신’ 오가는 조직이 제일 나쁘다


말씀을 듣다 보니 변화가 불가능하다고 믿으면 변화는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어야 결국 변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아무리 밖에서 좋아 보이고 아무리 대우가 좋아도 기업의 문화가 잘못됐다면 저는 과감하게 사표를 내고 나오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거기에서 배우는 게 뭐겠어요, 못된 짓만 배우는 거거든요. 제가 회사에 감사하다는 것도 그런 거예요. 그런 부분이 통하는 회사였고 그걸 이해하는 후배와 직원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거든요. 그래서 조직의 문화가 정말 중요하다는 거예요. 첫 번째로 중요한 건 오너, 최고경영자예요. 그들이 잘못된 행위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세우고 피해가 있어도 고수하겠다고 하면 그렇게 되는 거죠. 그게 아니라 조직의 생존을 위해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 조직은 썩는 거고요. 그런 회사들이 대한민국에 적지 않지만, 그렇다고 대한민국 기업들이 모두 다 나쁜 건 아니에요. 굉장히 정직하고 솔직한 기업이 많고 바뀌는 기업도 많아요. 그게 대세가 되어야죠. 많은 기업들이 영업에 대한 의식이 바뀌고 있고 바뀐 회사도 많은데, 그런 것들이 자꾸 부각되고 ‘저렇게 하는 게 맞는 거구나’라는 생각을 하는 문화가 되어야 해요.

 

의사결정자보다 실무자의 마음을 먼저 얻으라고 조언하셨습니다만, 실제 현장에서는 실무자로부터 ‘나는 결정 권한이 없다, 의사결정자와 이야기하라’는 말을 듣는 경우도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무자와의 관계를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건 정말 중요한 일이죠. 제가 그렇게 이야기한 데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는데요. 하나는 실무자를 소홀히 하면 당장 비즈니스를 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거고요. 더 중요한 건 그 실무자는 미래의 중역이라는 거예요. 실무자와 관계가 흐트러져도 내가 당장 비즈니스를 하는 데에는 영향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그 사람이 흐트러뜨린 실무자와의 관계는 미래의 후배들과 직원들에게 재앙으로 다가온다는 거죠. 실제로 그런 일도 많았고요. 영업을 하는 데 있어서 당연히 의사결정자도 만나야 하지만 실무자를 존중해야 된다는 거예요. 더 중요한 건, 관계를 잘 쌓지 못했을 때 그 영업 사원을 욕하는 게 아니라 결국은 회사한테 재앙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미래를 위해서 실무자를 존중해야 된다는 거고요. 거창하게 볼 게 아니라 이해 당사자나 고객을 넓혀서 보는 인식은 굉장히 중요하죠.

 

책의 마지막에서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라’고 조언하셨습니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워커홀릭으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일반적인데요. 작가님께서는 일과 삶의 균형을 잘 맞추실 수 있었나요?


못 맞췄죠. 그래서 반성하는 거죠(웃음). 일과 삶의 균형이 중요하다는 걸 깨닫기까지 충격적인 사건들이 여러 번 있었어요. 2000년도에 임원이 되고 난 뒤에 본사에 가서 회의를 하는데, 그때 아시아에서 온 직원은 저밖에 없었거든요. 첫 날 저녁에 자기소개를 하는데 취미가 뭐냐고 물어보면 가족과 여행 가기, 아이 돌보기, 정원 가꾸기 그런 걸 이야기하더라고요. 제 차례가 다가오면서 생각했죠. ‘나는 뭐라고 해야 되지?’ 왜냐하면 취미가 너무 다양한 거예요. 골프라고 해도 되고, 등산이라고 해도 되고, 낚시라고 해도 됐어요. 왜냐하면 고객에 따라서 바뀌었거든요. 제 취미가 없고요. 그때 참 바보 같이 살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충격을 받았어요. 그리고 두 번째는 제가 2006~2007년 동안 상해에 가 있었을 때예요. 거기에는 전부 다 미국계 혹은 호주계 사람들이 근무하고 있었는데요. 2년 동안 있으면서 회사 리더들과 함께하는 행사가 딱 두 번 있었어요. 크리스마스랑 가족파티 밖에 없었어요. 거기 직원들은 같이 일하는 사람들하고 점심 먹으면서 이야기하지, 저녁을 먹지는 않아요. 그렇게 봤을 때 쓸데없이 휩쓸리지 말고 ‘이게 정말 필요한 일인가’를 생각하면 불필요한 시간을 쳐낼 수가 있을 거라는 거죠. 저도 두 번의 경험을 통해서 많이 반성했어요.

 

그러면서 덧붙이신 이야기가 “회사 문을 나서면 일에 대한 생각을 접어야 한다. 근무 시간 외의 자리나 회식 자리에서 업무와 관련된 주제를 입에 올리지 말아야 한다”는 건데요. 직장인들 중에는 ‘회식 자리에서 많은 정보들이 오고 가기 때문에 참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회식을 가지 말라는 건 아니에요. 조직의 구성원으로서 회식이 있으면 당연히 가야죠. 제가 이야기한 건 회사를 떠나서는 일에 대해 생각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거예요. 물론 중요한 일이 있으면 끊임없이 생각이 나겠지만 그걸 끊는 연습을 해야 돼요. 그리고 회식에서 업무 이야기를 하는 건 바보 같은 조직이에요. 대부분 회식에서 오고 가는 건 뒷담화죠. 건설적으로 전략을 논의하는 게 아니에요. 누가 어떻게 된다더라, 누가 어디로 간다더라, 그거 알아서 뭐하겠어요. 그리고 두 번째 주제는 누군가를 흉보는 거예요. 그런 거에 휩쓸리지 말라는 거죠. 회식이라는 게 그야말로 스트레스를 푸는 자리가 되어야 하잖아요. 차라리 노래방 가서 악다구니 쓰고 노래를 부르고 헤어지는 게 낫죠. 회식 자리에서 카더라 통신이 오가는 조직은 제일 나빠요. 회식에 참석은 해야 하지만 그런 이야기는 안 들어도 괜찮죠. 듣는다고 바뀌는 건 없잖아요. 그리고 리더가 됐을 때 그런 자리에서 실수를 하면 회사의 인사 비밀을 누설할 경우가 생길 수 있어요. 리더가 됐을 때는 특히 그런 자리는 조심해야 하는 거죠. 그런 이야기를 안 하는 습관을 들여야 돼요. 습관이 되면 자기도 모르게 이야기하게 되거든요.

 

『첫 출근하는 영업자에게』가 영업에 대한 다른 책들과 차별화되는 부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이 책에는 꾸민 게 하나도 없어요. 전부 다 사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어요. 그리고 이 책은 제가 하고자 하는 영업 혁신의 시작점이에요. ‘영업이 무엇이냐’에 대한 정의를 하고서 시작하자는 거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영업 사원은 어떻게 해야 되느냐를 이야기하는 거죠. 그 다음에 실제 고객과 현장에서 조직 내부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즉 어떻게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고객 정보를 관리할 것인지, 이런 것들이 전부 퍼져 나오는 실용적인 꼭지들을 담고 있는 거예요. 책에 적은 것처럼 ‘전략적인 두뇌를 가지려면 육하원칙만 기억하라’, ‘네트워크 증후군과 관련해서 스케줄 계획을 세워라’ 그런 이야기들이 영업 하는 사람들에게 지침이 될 거예요. 다른 책과 다르기는 하겠지만, 영업 책들이 수없이 많은데 거기에 또 하나 더하고 싶은 건 아니고요. 재미있게 읽고 느끼셔서 생활 속에서 하나하나 실행하면서, 기업 영업을 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일반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도 영업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됐으면 좋겠어요. 그런 면에서 볼 때 이 책은 생각할 화두를 던지는 거죠.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책 제목이 『첫 출근하는 영업자에게』인데, 사실 영업자라는 말은 말 쓰지 않는 말이죠. 그런데 이 단어를 쓰게 된 건, 아직도 세일즈맨이라고 하면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그게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영업 직원, 세일즈맨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호칭인데요. 영업 하는 사람들이 당당해지고 영업이 멋있는 일이 됐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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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출근하는 영업자에게이장석 저 | 다산3.0
영업에 있어 가장 중요한 핵심은 ‘고객’이 필요로 하는 ‘가치’를 전달하는 힘이다.  이 책은 ‘사원에서 임원까지’의 신화, IBM 부사장이 30년간 쌓아온 영업의 핵심 노하우를 전한다. 처음 영업을 시작하거나 지금도 영업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왜 중요한 순간일수록 ‘원칙’을 지켜야 하는지 일러준다. 또 저자가 영업을 하며 겪었던 시행착오들을 진솔하게 이야기하면서 부당한 제안이나 유혹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고객을 지키는 방법을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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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심리학자 김영아 교수 “나를 잘 대접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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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당연한 말이 놀랍도록 소중할 때가 있다. 행복하자, 라든가 그래도 괜찮다, 당신은 소중하다, 같은 말. 『나와 잘 지내는 연습』이라는 제목을 처음 봤을 때 그런 생각을 했다. 너무 흔해서 큰 감흥 주지 못할지언정 이것은 아주 필요한 말이라고. “나와 잘 지내지 못해 갖게 된 건강하지 못한 성격이 빚어내는 문제들을 어떻게 할 건가 하는 문제”라는 김영아 교수의 말을 듣자 그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알았다. 절망이 희망보다 자연스럽게 이야기되는 사회, 이곳에서 모든 개인이 자신과 잘 지내는 것은 삶을 살아내는 주요하고도 가장 근본적인 동력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김영아 교수는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아 코 연골이 녹았고 평생을 안면기형으로 살다 마흔이 넘어 코 재건 수술을 받았다. 초등학생 때 기차에서 떨어지는 사고로 8시간이 넘는 대수술을 받았으며, 자신의 억척스러움으로 스트레스 받은 딸은 불과 7살 때 머리가 빠졌다. 흔들리고, 외로운, 혹독한 삶이었다. 그런데 그는 이 모든 이야기를 “아직까지 아프면 말 못할” 것이라고 담담히 말했다. 자신의 이런 경험을 통해 다른 사람들이 힘을 낼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따름이라면서 말이다. 거기서 자신과 화해한 건강한 개인의 모습을 발견한 것은, 행운이었다.  


김영아 교수의 말처럼 “우리는 다 아픈 사람”일 터. 그러니 우리 모두는 이 아픔을 덜기 위해, 아니 이 아픔을 똑바로 보기 위해서 무엇보다 ‘나와 잘 지내는 연습’이 필요할 것이다. 간곡히 부탁이라도 하고 싶다. 부디, “나를 잘 먹이고, 잘 입히고, 따뜻한 것 마시게 하고, 나에게 좋은 말 해줄 곳을 찾아가”자. 누구보다 나를 잘, 잘 대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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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잘 챙기지 않으면 안 된다


저자가 만난 많은 젊은이들이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고요. 이를 테면 좌절한 사회라 할 수 있을 텐데요. 치유심리학자로서 어떤 위기감이 있었던 걸까요?


저는 젊은이들이 갖는 심리에서 공포까지 느낄 정도예요. 그냥 ‘고민이다’가 아니라 내 삶이 벼랑 끝에 있다는 그 공포 말이죠.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면요, 놓아버려요. 그 놓아버리는 것이 느껴질 때 이건 아니라는 생각을 했어요. 저희 때도 그랬죠. 우리도 너무 힘들었어요. 그런데 그때의 고통보다 지금이 더한 거죠. 사회 저변이 우리는 그래도 성장기였잖아요. 지금은 둔화기, 침체기라 볼 수 있는데요. 이 사회 구조 내에서 갖게 되는 문제니까 더 힘들지 않을까 해요. 지금, 내가 어떻게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을 느낄 때 이들이 오히려 과거보다 더 나를 잘 챙기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과거 개인이 ‘희망’이라는 걸 가질 수 있었다면 상대적으로 지금은 그것이 무척 어려운 상황이에요.


개인이 희망을 갖기엔 상황이 너무 요원해요. 더 나아가서 보면요. 우리 때는 그래도 남이 어떻다는 생각을 덜 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타인을 훨씬 더 의식하죠.

 

제목에서 적듯 ‘나와 잘 지내는’ 것이 힘든 사람들이고요.


제목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어요. 예전에 썼던 책들 『아픈 영혼, 책을 만나다』, 『십대라는 이름의 외계인』, 『내 남자의 그 여자』등이 모두 아픈 사람, 십대 등으로 돌아왔는데요. 결국은 개인이 서지 않으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첫 단어를 ‘나’로 했고요. 바로 그 ‘나’와 잘 지내야 한다는 거죠. 나와 잘 지내지 못해 갖게 된 건강하지 못한 성격이 빚어내는 문제들을 어떻게 할 건가 하는 문제예요. 이걸 바꾸려면 한 가지 밖에 없어요.  연습을 해야 하는 거죠. 이래서 제목을 그렇게 잡았어요. 안 된다고만 할 게 아니라 연습이라도 해서 내 안의 변화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 거예요.

 

전에 비해 타인을 더 의식하게 됐다고 지적한 부분도 좀 더 설명해주세요.


상상 속의 군중에게 놀아나고, 나를 더 괴롭히죠. 일단 나를 들여다보고 내가 편안해져야 해요. 그래야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도 편안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건데요. 편안하게 바라보는 시각 위에서 뭔가를 해볼 수 있는 거예요. 내가 나를 바라보는 시각이 왜곡되면 사회를 바라보는 시각도 왜곡되죠. 왜곡된 시각은 왜곡된 해석을 낳거든요. 결국 시작부터 잘 풀어보자는 거였어요.

 

들어가는 글에서 저자 역시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과 화해하는 법을 깨달았다고 적었어요. 그것이 핵심일 텐데요. 그 화해가 잘 안 되는 개인들이 너무나 많죠. 타인과 비교함에 따라 행복의 폭도 굉장히 좁아지고요.


사람들이 스스로 행복의 기준이나 틀을 작게 만들어서 그 안에 들어가 앉아있는 느낌이 들어요. 흔히 생각하는 행복은 내 아이가 성적을 잘 받아오는 것, 집 평수를 늘려가는 것이잖아요. 보편적으로 얘기하는 이런 기준을 누가 만드는가에 대해 생각이 많았어요. 저도 그런 기준을 갖고 있었고요. 끝내 그게 아니었다는 걸 느끼게 된 일도 있었죠. 결국 이것이 뭘 위해 하려고 했던 건가 봤더니 남의 눈을 의식하는 것 때문이었어요. 어린 딸이 머리가 빠지면서까지 아프면 그건 행복이 아니잖아요. 많이 고민했고, 딸과 깊은 대화를 나눴죠. 지금은 딸에게 ‘엄마가 내 엄마여서 행복하다’는 말을 들어요. 제가 행복의 기준을 다시 세운 건 고통 가운데에서 온 거예요. 딸의 아픔 가운데서 왔어요.

 

고통에서 변화가 시작된다는 것에 공감해요. 그렇지만 모두가 고통의 순간에 변화하진 못하잖아요. 그게 비극인 것 같아요. 

 

빅터 프랭클은 삶의 의미를 알아가는 가치가 세 가지라고 말해요. 첫 번째는 내 안에서 스스로 퍼 올리는 가치가 있어요. 자발적 가치죠. 두 번째, 멘토를 만나거나 관찰을 통해서 알게 되는 가치를 경험적 가치라고 하고요. 빅터 프랭클은 그것보다 중요한 가치를 초월적 가치라고 했어요. 누구나 스스로 깨닫지 못할 수 있죠. 거의 대부분은 경험적 가치에서 와요. 저도 경험적 가치를 통해서 깨달았고, 그 깨달음은 수많은 고난에서 왔어요.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아 코 연골이 녹아버렸고, 초등학교 때는 기차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했어요. 그런 경험이 남들보다 더 혹독했다 할 수 있는데 이것들이 상당히 많은 삶의 의미를 깨닫게 했어요. 어느 순간부터는 자발적으로 깨달음이 올라오기 시작하더라고요. 힘들 때마다 건강하게 해석해내는 힘이 생겼던 것 같아요.


만약 빅터 프랭클이 초월적 가치를 몰랐다면 아우슈비츠에서 몸 사리고 자기 혼자 살아남았겠죠. 그가 그 안에서 목숨을 걸고 자신의 영향력을 타인에게 끼쳐 그들에게 어떤 힘이 된다는 걸 생각하고 힘을 내잖아요. 그 초월적 가치가 제게도 있었던 거죠. 이렇게 상담을 하고, 누군가 내민 손을 잡아줬을 때 그들이 삶을 살아보겠노라고 하는 반응들을 보게 되는데요. 저는 그때 비로소 이 삶을 잘 살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돼요. 그게 제게 있는 초월적 가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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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 아프면 말 못했을 것


마흔 넘어 코 재건 수술을 받고, 기차에 떨어져 8시간 넘는 대수술을 하고, 참 혹독한 삶이었어요.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일어날까 생각 많이 했어요. 어쩌면 치부일 수 있는 얘기를 강의 때도 하잖아요. 그러면 어려운 얘기를 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들어요. 하지만 힘들지 않느냐고 묻는 분들이 있죠. 그 때문에 아직까지 아프면 말 못할 거라고 답해요. 예전엔 참 아팠지만 이제 그것을 어느 정도 견뎌내 하나의 자원으로 남은 것 같아요. 이 자원을 강의에서 말하면 사람들도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를 알게 되잖아요. 그게 지금은 감사할 뿐이죠. 그들에게 내가 하나의 경험적 가치로 남고 싶은 거예요.

 

내면의 힘이 계속 강해지는 인생 과정이었던 거군요.


‘발달’이란 단어가 있어요. 한 사람이 엄마 뱃속에서 나와 첫 울음을 울 때, 그의 인생을 피웠다고 해서 필 발(發)을 쓰고요. 생이 결국 죽음으로 가는데, 동양에서는 죽음에 ‘이른다’고 하잖아요. 바로 그 도달할 달(達)을 쓰는 거예요. 동양학에서 보는 발달의 중요한 속성 중 하나가 과업을 이룬다는 건데요. 그러니까 태어나서 우는 것도 발달, 잡고 일어나는 것도 과업, 결국 죽음도 과업이에요. 내가 죽음까지 잘 도달하는 것으로 발달을 이해할 수 있죠. 발달은 절대 멈추지 않아요. 역행하지 않고요. 그 순간순간 과업이 있는 거예요. 그렇게 보면 발달은 ‘되어가는 것’이에요. 많은 사람들은 대학 졸업하면 발달이 멈추는 줄 알잖아요. 에릭슨(Erik Homburger Erikson)은 평생발달을 이야기합니다. 그가 발달을 얘기할 수밖에 없는 건 본인의 어린 시절 발달에 공백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나이 스물이 넘어서야 공백이 누군가를 만나 채워질 수 있다는 걸 느껴요. 때문에 중년의 발달을 중시하죠. 우리나라가 그게 많이 없어요. 그 개념을 중요하게 여기지 못해요. 우리는 지금도 내면의 성장을 시켜가는 게 맞는 거고, 그렇게 가는 과정은 내가 만나는 여러 사건을 해석해내는 힘과 함께여야 해요. 결국은 역사예요. 오래, 길게, 차곡차곡 쌓이는 힘이 중요해요.

 

많은 사람들이 삶을 포기하고, 자신을 해치는 것은 삶이란 다름 아닌 ‘되어가는 것’, 과정임을 실감하지 못하기 때문이란 생각이 드네요.


우리는 ‘발’에서 ‘달’까지의 과정 안에 있어요. 과정의 점들이 모여 결국은 나를 이루는 것이죠. 과정의 연속성을 대개는 모르고 지금, 이 ‘점’이 내 인생인 것처럼 생각하는 오류를 범하는 거죠. 이 점들이 이어져 어디쯤에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알면 계속 갈 수 있어요. 그걸 느끼면 살아볼 만하거든요.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정말 간절하고 필요한 일이지만 과정임을 깨닫고 넓은 시각을 갖는 게 참 쉽지가 않아요.


점만 보는 오류는 그렇다면 어디서 생기는 걸까요? 사람은 어려서부터 자신의 주양육자를 섭취해요. 그런데 내가 섭취하는 대상, 관찰하는 대상에게서 미성숙하고 부정적인 것까지 섭취해요. 좋은 것만 쏙쏙 섭취하면 좋은데 그들도 외면하고 싶은 것들까지 섭취하거든요. 자신도 모르게 말이죠. 나는 그런 것들의 집합체예요. 그 사실을 봐야 해요. 이런 면은 긍정적이다, 이 점은 건강하지만 이런 점은 건강하지 않다, 라고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하거든요. 나를 알아야 나와 잘 지낼 수 있어요. 나와 상관없이 섭취된 콘텐츠를 쫙 펼쳐놓고 알아야 해요. 꽤 많은 사람이 자기를 몰라요. 점을 보게 되는 건 내 안에 잘나고, 괜찮고, 건강하고, 긍정적인 나를 누르고 다른 것만 보는 데서 비롯돼요. 부정적인 면만 나라고 생각하는 거죠. 자꾸 타나토스 에너지가 나라고 생각하니까 점만 보게 되는 거예요.


나와 잘 지내는 연습을 하려면 내 안의 감각부터 깨우고, 나를 세밀하게 쪼개서 분석하고 통합하는 게 제일 중요해요. 그 작업을 못하죠. 얼마 전 27살 내담자에게 이렇게 물었더니 이런 질문을 한 번도 스스로에게 해본 적이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게 가장 안타깝죠.

 

책에 소개된 사례가 흥미로운 점은 한 사람의 삶을 좌지우지했던 엄청난 문제가 저자의 어떤 질문 하나로 전환을 맞게 되는 모습이었어요. 자기를 분석해서 문제 하나를 발견해내면 놀랍게도 자신과 화해가 되더라고요.


제가 던지는 질문 하나가 나오기까지는 그 앞에 시간들이 필요해요. 자기에 대한 고민, 분석의 시간 중에 어느 날 질문을 던지는 거죠. 그럴 때쯤 내가 도망가지 않고 받아들일 자세가 될 때가 있어요. 이걸 직면의 시간이라고 해요. 그걸 잡는 게 제 역할이죠. 정말 재미있는 건 대여섯 달 지나서 직면을 할 때 뭐라고 하는 줄 아세요? ‘교수님, 이거 첫 주에 한 얘기 아니에요?’라고 해요. 그때는 아무리 말해도 못 알아들어요. 나와 잘 지내는 연습을 왜 해야 하느냐면 내가 그걸 막기 때문이에요. 틀을 만들고 들어가 앉아서 문도 안 열어주고, 남도 못 들어오게 한다는 표현을 쓰는데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래요.

 

이런 사연들은 너무 힘든 이야기들인데요. 상담하면서 어려운 점도 있을 것 같아요. 힘들지 않나요?


상담자가 되기 위해 우리도 훈련을 하잖아요. 웬만한 건 받아요. 그런데 주제가 특수하다든지 감당하기 어려운 얘기들도 있죠. 군 상담을 갔을 땐 더 했고요, 교도소 상담을 했을 때는 정말 아팠죠. 그때는 상담하고 돌아오는 길에 한 번에 운전해서 온 적이 없었어요. 오다가 너무 눈물이 나서 차를 세우고 꺽꺽 울었던 적도 많아요. 그러면 지치고 힘들다고 하는데요. 저 같은 경우는 혼자 정화하는 법을 많이 알고 있어요. 예를 들면 혼자 드럼을 두드리거나, 혼자 걷고, 혼자 찜질방 동굴 같은 데 들어가서 생각하고요. 혼자 노래방도 가고요, 혼자 펍에도 가요.(웃음)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을 애써 마련하는 것이 참 중요한 것 같아요. 지금 말씀은 힌트가 될 수 있겠네요.


요즘은 나를 들여다보는 여유가 없는 것 같아요. 어렸을 때 외할머니 집에 다락이 있었어요. 곶감도 있고, 거의 모든 게 있는 보물창고였어요. 몰래 다락에 들어갔다가 밖에서 소리가 들려서 혼날까봐 못 나가고 그 안에 있게 됐어요. 거기서 잠이 들었다가 깼는데 그때 많은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나요. 이런 공간, 골방 같은 공간에 혼자 있는 게 얼마나 나를 돌아볼 여유가 생기는지 몰라요. 그래서 저는 자발적 갇힘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천주교의 피정처럼요. 혼자만의 여행도 그렇죠. 산티아고의 길을 높게 평가하는 건 혼자 험난한 길을 걸으며 나와의 대화를 하기 때문인 거잖아요. 그게 참 중요하죠.

 

자기만의 방이 모두에게 필요한 거죠.


그렇죠, 자기만의 방이 필요해요. 어머니들과 강의할 때도 항상 얘기해요. 부엌 옆에 조그마한 책상이라고 내 공간을 만들라고 말이에요. 남편을 위한 공간도 물론이고요.

 

사소하지만 굉장히 중요한 장치들이에요. 그것만으로도 많은 게 달라질 수 있을 거예요. 


저희 집에 다락이 있는데요. 그 공간이 너무 좋아서 그 집에 살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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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혼자 갇히지 말기를


무엇을 원하는지 아는 것만으로도 삶의 방향이나 질이 달라진다고 했어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에서 윤수도 유정이도 너무 막 살아요. 삶의 의미가 없어요. 그 삶이 자기 삶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내가 원하는 게 뭔지도 모르죠. 내가 성폭행을 당했지만 내 감정은 무시되고, 집안을 위한 도구일 뿐이라는 생각을 하는 한 내 삶은 없어지고 유린되는 거잖아요. 윤수도 마찬가지죠. 그런데 이 둘이 진짜 이야기를 하는 순간 내 삶이 내 안으로 들어와요. 그러면서 진짜 내 삶이 되니까 살아보고 싶은 거예요. 내 삶에서 원하는 게 뭔지 알기 때문에 절박해지고, 삶의 자세를 바꿀 수 있는 거거든요. 이거예요.


영화 <굿 윌 헌팅>도 보면 윌이 자기 자신과 잘 지내지 못하다가 교수를 만나 자기와 잘 지내는 법을 아는 순간 여자친구를 찾아 차를 끌고 떠나잖아요.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아는 순간 가게 돼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그걸 못하는 거죠.

 

교사 연수 강의에는 꼭 참여한다고 한 부분에서 저자의 교육에 대한 철학을 엿볼 수 있었는데요.


에릭슨에게 안나 프로이트(Anna Freud)라는 스승이 있었듯, 제게도 그런 스승이 있어요. 초등학생 시절에 무척 가난했어요. 방 한 칸에 화장실도 없어 공중화장실을 가야 하는 그런 집이었어요. 5학년이 됐는데 친구들이 하나씩 없어져요. 파주에 살았거든요. 선생님께 물었어요. 서울로 간대요. 대학을 가려면 서울로 가야 한다고요. 그 말을 듣고 제가 ‘저도 서울 가서 공부하고 싶어요, 나도 대학가고 싶어요’라고 했더니 그 선생님 하는 말이, ‘우리 영아가 가야지 누가 가겠니’였어요. ‘우리 영아가 대학가면 참 잘할 텐데’라는 말을 해주셨는데 그게 정말 힘이었어요.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강의할 땐 이 얘기를 해요. 여러분도 누군가에게 그런 스승이 되시면 좋겠다고요.

 

흔히 엄마도 엄마가 필요하다고 하듯, 모두에게 좋은 스승이 있어 최소한 경험적 가치를 삶에서 찾을 수만 있게 돼도 좋겠어요.


제발 혼자 갇히지 말라는 말 많이 해요. 보웬(Murray Bowen)이라는 학자가 정서적 단절이란 말을 했어요. 이 말이 지금 이 세대에 딱 맞아요. 부모에게 아무리 기대를 해도 아무것도 오지 않는 상황에서 개인이 단절을 해버리는 거거든요. 그렇게 된 개인이 다 감옥 같은 방에 들어가서 안 나와요. 이들에게 부모가 주지 못한 것을 줄 수 있는 곳을 찾아보라고 말하고 싶은 거예요. 내담자들에게도 여기 와준 것이 고맙다고 늘 얘기해요. 저를 찾아온 거잖아요. 상담을 오는 것도 감사하죠.


나와 잘 지내는 첫 걸음은 나를 대접해야 한다는 거예요. 정서적 단절인 채 나를 가두고 방치하는 건 나를 대접하는 게 아니에요. 방치일 뿐이죠. 가두고, 방치하는 게 나를 학대하는 첫 걸음이에요. 학대하지 않고 나와 잘 지내기 위한 첫 걸음은 나를 대접하는 거예요. 혼자 있어도 나를 잘 먹이고, 잘 입히고, 따뜻한 것 마시게 하고, 나에게 좋은 말 해줄 곳을 찾아가는 거예요.

 

나를 대접하고, 나와 잘 지내도 바뀌지 않는 것들이 있잖아요. 구조적으로 접근해야 하는 부분이 분명 있어요. 이에 관한 질문도 당연히 있을 수 있을 텐데 어떻게 말하고 싶은가요?


사회 구조는 개인이 어쩔 수 없죠. 그걸 건드리지 못해 좌절하지 말라고, 구조는 두더라도 그 앞에서 내가 어떤 자세를 가질 것인가는 내가 선택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어요. 저는 그것에 방점을 둔 거예요.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분명히 알고 나서 그걸 찾기 시작하면 되는 것도 있어요. 그 부분이 저는 안타깝죠. 사회 구조적 문제라고만 할 것 또 아니니까요. 조심스럽긴 해요. 수저론 얘기 나오고 할 때마다 조심스럽긴 한데요. 그래도 그 문제를 안고 자신을 단정지어버리고 말면 어떻게 해요. 누군가는 그게 아니라고 말해줘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제 경험과, 제 고난 속에서 온 해석과 쌓아가고 있는 것들을 나눠주면 그게 아니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걸 통해서 힘을 내는 사람도 있을 테니 그것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세상엔 다양한 목소리가 필요하고, 이 책이 전하는 메시지도 큰 의미가 있으니 더 많이 읽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이 책이 필요한 곳에, 필요한 사람에게 꼭 전달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요. 잘 모르겠어요.(웃음) 오래 전에 한 강의에서 ‘내 아픔이 네 아픔보다 크다는 말은 하지 마라, 크기 비교를 어찌 할 수 있겠냐, 그러나 나도 아팠다고 말할 수는 있을 거다’라고 하면서 제 과거를 털어놓고 삶이 그리 만만하지 않더라는 얘기를 했어요. 우리는 다 아픈 사람일 뿐이라고요. 강의를 들은 한 친구가 한 얘기에 제 생각이 확 깨졌어요. ‘교수님은 아픔이 되게 많았는데요, 하나님이 교수님을 속성재배 하셨나봐요’라는 거예요. 그 말을 듣고 그동안 고난을 해석했던 것들이 감사함으로 바뀌었어요. 고난이 제 자원이 됨을 알았던 거잖아요. 그 뒤부터는 어떤 것이 와도 자세가 좀 다른 것 같아요. 이 책도 그렇죠. 제 고난이 없었다면 허울뿐인 책이었을지도 몰라요.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독자가 꼭 가지고 갔으면 하는 메시지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나와 잘 지내는 연습의 첫 걸음은 나를 대접하는 건데요. 나를 대접한다는 건 다른 게 아니에요. 내 삶의 주인은 나라는 것만 알면 돼요. 내 삶의 주인이 다른 누구는 아니에요. 딸의 삶도 딸이죠. 그렇기 때문에 딸과 내가 동행할 수 있는 거예요. 그것만 명심하면 좋겠어요.

 

홀로 남겨져 바위를 들어올리고, 운석과 싸우는 일생을 산다는 것은 정말이지 사무치게 외로운 일이다. 그리고 누구나 그런 삶을 산다. 하지만 버티고 또 버티는 순간, 그것이 바로 삶을 살아내는 방식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길고긴 인생이란 레이스를 포기하지 않고 그간 살아왔다는 것. 그 자체로 우리는 완주한 것이 된다. 그러니 우리 모두 제발 살아 주길 바란다.(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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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잘 지내는 연습김영아 저 | 라이스메이커
태어난 후 1개월 만에 가지게 된 안면기형이나, 열두 살에 겪은 끔찍한 기차사고, 이후에도 이어지는 크고 작은 삶의 부침 속에서도 김영아 교수는 빅터 프랭클의 로고테라피를 마치 실천이라도 하듯, 스스로 살기를 택했고 결국 삶의 유의미를 찾았다. 그녀는 자신의 쓰라린 경험 속에서 얻은 소소하지만 숭고한 삶의 의미들을 책을 통해 전한다. 또한 지금 청춘들이 보이는 자기 파괴적인 행동과 타인을 혐오하는 행동의 심리학적 원인을 알아보고, 쓰러진 자신을 일으켜 세우는 방법을 전한다. 더불어 앞으로 어떤 고난이 닥치더라도 박차고 일어날 수 있는 ‘내면의 힘’에 대해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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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 대통령’ 손남목 “재미를 늘 고민하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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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촬영을 위해 인터뷰를 하던 사무실에서 나와 극장으로 이동하는 길이었다. 한 젊은 남자가 손남목을 향해 인사를 건넸다. 반갑게 인사 나누는 그들의 활력이 대학로와 잘 어울렸다. 자연스럽게 ‘대학로 대통령’이라는 재미있는 별칭이 떠올랐다. 그가 제작하고 연출한 연극 <보잉보잉>은 350만 명의 관객의 선택을 받은 입지전적의 연극이다. 극단을 만들고, 밤새 연습할 수 있는 극장을 하나 갖는 게 소원이었던 그가 일곱 개의 극장에서 연극을 올리는 연극계 ‘미다스의 손’이 되기까지 그를 이끈 건 바로 ‘재미’였다.

 

“재미있게 산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요. 자기 전에 ‘오늘 하루 정말 재미있었다’라고 할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큰 행복이라고 생각해요. 재미를 늘 고민하며 살아요.”

 

세상은 내일을 준비하라고 말한다. 참고 노력하면 괜찮은 미래가 올 거라는 신기루 같은 말을 한다. 손남목은 여기에 반대한다. 『나는 내일 행복하고 싶지 않다』는 지금, 이 순간을 충분히 즐겨도 죄책감 가질 필요 없다는 손남목의 선언이자 세상에 던지는 당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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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장 행복해도 된다


‘행복’이라는 단어를 무척 많이 사용해요. 사는 동안 행복에 대해 아주 열심히 고민한 사람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행복을 고민하는 사람들 특유의 에너지가 있는 것 같아요.


저도 남들과 거의 똑같은, 이유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었어요. 다들 돈을 이렇게 모으니까 모았고요. 제 꿈을 위해 계속 노력하긴 했지만 말이죠. 사실은 돈에 대한 강박을 좀 더 얘기하고 싶었어요. 그에 대한 반성문 같은 이야기도 있고요. 돈을 쫓아왔고, 돈이 행복의 상당히 중요한 요소라 생각했지만 이제는 많이 깨달은 거죠. 이런 깨달음을 동네 형이 진실하게 말하는 것처럼 얘기하고 싶었어요.


지금 당장 행복함을 맛볼 수 있을 때 맛보는 게 훨씬 중요할 것 같다, 우리는 너무 나중의 행복을 위해 고통을 감내하는 교육만 많이 받은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그런 논리에서 벗어난 행복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던 거예요. 그게 틀렸다는 게 아니라 이렇게 생각해도 죄짓는 게 아니라는 걸 말이에요. 지금 당장 맛있는 거 먹는 게 그렇게 죄스러울 일은 없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거죠. 죄까지는 아니어도 그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사람들을 많이 봤는데요. 지금 이렇게 놀아도 돼? 여행 다녀도 돼? 그런 두려움이 있잖아요. 그런 생각에 대한 반발감이었어요.

 

돈에 대한 강박을 더 다뤄보고 싶었다고요?


통장에 돈이 모이는 걸 보고 행복하다고 착각할 수 있거든요. 그런 친구들에게 종종 물어요. 적금이 잘못된 건 아니죠. 그렇지만 그 다음이 문제라는 거예요. 완성됐을 때 뭘 하고 싶은지 물으면 대부분은 없어요. 다들 깜짝 놀라더라고요. 열 명 중 여덟 명이 생각 안 해봤다고 답하는 거예요. 너무 놀랐어요. 그렇게 보니 나도 그런 삶을 지나왔더라고요. 우리는 숫자가 커가는 것에 현혹되어 있어요. 숫자놀음에 잘못 빠져있는 거죠. 제일 하고 싶은 얘기가 사실 이런 얘기였어요.

 

‘청개구리’ 손남목의 면모도 흥미로웠어요. 어떻게 하면 남들과 다를까를 고민하고, 그런 선택을 하더라고요. 안 그래도 될 법할 때도 말이죠.


출판기념회 할 때도 남들이 안 하는 걸(웃음) 골똘히 생각하다 패션쇼와 콜라보를 했거든요. 되게 신선하다고 하면서 재미있어 하더라고요. 이런 책을 썼다고 잘난 체 하는 건 싹 다 빼고 패션쇼도 보고, 가수도 보며 함께 놀았어요. 연초였으니까 만나서 밥 한 끼 해요, 이런 의미였어요. 재미있었어요.

 

판을 만드는 것에 재미를 많이 느끼는 편인가요.


맞아요. 어떻게 보면 귀찮은 일이죠. 그런 일을 많이 벌이는 편인데요. 사실 그런 일을 처음부터 엄청 행복해하고, 즐거워하고 그런 건 아니에요. 그 일이 지났을 때, 단 1%라도 그것이 성공적이었다, 자부심 느낄 만한 게 있고 보람되는 일이 있었다면 그 정도 고통은 가치 있다고 판단하는 거예요. 연극도 그렇죠. 이곳이 온통 행복 덩어리라서 이걸 한다, 그런 건 아니죠. 프로들의 세계에서 그럴 수만은 없잖아요. 굉장히 짜증나고, 고통스럽고, 때려치우고 싶은 일도 너무 많지만 결과가 아주 조금이라도 뿌듯하고, 가치 있는 일이 있기 때문에 참고 견디는 힘이 있는 거죠. 제 인생관이기도 해요.

 

솔직한 얘기네요. 이 일 자체에 순수하게 행복감을 느낀다고 포장할 수 있을 텐데 말이에요. 그건 아니라는 거죠.


그건 아니에요.(웃음) 제 최대 장점이 솔직함인 것 같아요. 없는 얘기를 하거나 말을 돌리거나 이런 걸 잘 못해요.

 

책에서도 ‘나는 언제나 실수하는 사람’이라고 했어요. 잡지나 연기학원, 화장품 사업 실패 등도 솔직하게 적었고요. 책도 처음 도전하는 일인데 대체 어떤 동력으로 이런 일들을 계속 해보고, 실수하는 건가요?


‘재미있다’는 네 글자를 정말 좋아해요. 이 ‘재미’가 굉장히 가벼운 단어 같지만 우리에게 가장 큰 원동력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재미있게 산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요. 자기 전에 ‘오늘 하루 정말 재미있었다’라고 할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큰 행복이라고 생각해요. 재미를 늘 고민하며 살아요. 확실히 깨달은 게 어떤 목표가 하나 생기면 그 시간이 정말 재미있더라고요. 결과를 상상하고, 노력하게 되는 거잖아요. 결과에 대한 기대감이 생기니까 재미있어져요. 재미를 위해서 한 번 씩 해보는 거예요. 책 쓰기 전 6개월 정도 사실 무척 무료했는데요. 책을 쓰기로 한 그때부터 정말 재미있어지더라고요. 그 전에는 작가 분들 만나도 진지하게 대화한 일이 없었어요. 관심이 생기니까 작가들에게 물어도 보고, 논쟁도 하게 됐고요. 이런저런 질문 때문에 모임이 생기는 것도 재미였고요. 일을 만드는 것, 목표를 만드는 건 다른 말로 하면 내가 재미있기 위해서예요.


당연히 실패할 수 있죠. 그러나 과정 동안 정말 재미있었잖아요. 성공하면 훨씬 더 큰 행복이 있겠지만 실패했다 해도 손해 본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재미있었으니까요. 무모하더라도 목표를 정하고, 돌격하라는 말을 하고 싶어요.

 

어떤 동력으로 이런 일들을 한다기보다 이 모든 일들 자체가 저자에게 동력이군요.


네, 그런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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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난 삶을 많이 살았으면


중학교 2학년 때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고 받은 충격에서부터 연극인 손남목의 삶이 흘러왔을 텐데요. 삶의 전반부에 이토록 좋아하는 일을 찾아내고, 그 일을 하며 살 수 있었던 것은 축복이에요.


조금 건방진 얘기를 하나 하자면 제가 세운 큰 목표 몇 가지를 37살쯤 거의 다 이뤘어요. 39살에 거의 마지막 세운 목표까지 이뤘죠. 그러다 슬럼프가 왔어요. 한 4~5년 동안 심한 슬럼프였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목표가 없었기 때문이었어요. 목표를 다 이뤘다고 건방을 떨었던 거죠. 소소한 목표라도 새로 만들었어야 했는데 그걸 못했어요.


마음 맞는 친구들과 극단을 만들고 싶다는 게 최초의 목표였죠. 그걸 이미 스무 살 때 조직해버렸어요. 그러다보니 우리가 마음껏 연극할 수 있는 극장이 하나 있으면 좋겠더라고요. 극장 하나만 있으면 진짜 극장에서 살 텐데, 그런 생각했거든요. 그 꿈을 이룬 정도가 아니라 극장을 나중엔 일곱 개나 만들어버렸죠. 좋은 차를 갖고 싶은 꿈, 예쁜 아내와 결혼해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꿈, 좋은 집에 사는 꿈, 이것들이 다 이뤄졌어요. 그 목표들 이후에 다른 목표 설정이 안 되니까 나태해지고, 나락으로 떨어지더라고요. 그 시간 동안 정말 많은 걸 깨닫고 배웠죠. 오늘 하루를 더 알차게 보내지 못한 것에 대한, 그 4~5년 기간에 대한 반성도 있어요.

 

내가 좋아하는 것을 꾸준히 해서 일가를 이룬 사람이 들려주는 말이라는 게 현실이 무겁고, 하루가 전쟁 같은 사람들에게는 꽤 멀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거든요.


강연을 하면 대부분 직장인들을 만나게 돼요. 그들에게 이런 얘기가 안 맞을 수도 있는 거예요. 세상 사람들 모두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사는 건 아니니까요. 진짜 극소수일 거란 말이에요. 저는 그래서 행운아란 표현을 썼어요.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을 어렸을 때 찾았다는 것 자체가 행운이고, 행복이죠. 중고등학생들에게는 한 번 쯤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생각해보라고 말할 수 있지만 직장인들에게 지금이라도 당신이 잘할 수 있는 걸 찾아 떠나라고 할 순 없죠. 그런 얘기도 아니고요. 그렇지만 직장이 불행은 아니잖아요. 그곳도 꿈터가 될 수 있고, 꿈을 찾을 수 있는 밑거름이 될 수도 있어요. 그 외에도 세상에는 재미있는 일이 많고요.

 

작은 취미라도 좋아하는 것이 있는 삶과 그렇지 않은 삶은 무척 다르겠죠.


얼마 전에 학교에서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했어요. 연극 한 편, 뮤지컬 한 편, 전시회 관람 한 번 하는 게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는 거란 얘기를 했는데요. 그 직업을 택하게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세상에는 이렇게 놀 수 있는 방법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는 의미였어요. 학생들이 연극이라는 존재를 알게 되고 어느 날 혼자 연극 티켓을 구하려는 행동을 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그의 삶을 바꿀 수 있는 거예요. 그건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아주 중요해요. 책 한 권을 읽고 뭔가 느끼는 것도 중요하지만 오늘 어떤 책을 살까 하면서 검색해보는 것도 어마어마한 일이잖아요. 그 삶은 대단한 삶은 아니라 하더라도 최소한 재미와 행복을 느끼는 삶일 거예요. 그런 재미난 삶을 많이 살았으면 좋겠어요.

 

그런 경험을 더 빨리, 더 많이 경험한다면 더욱 좋을 거고요. 꼭 학생들뿐 아니라도 말이에요.


그 얘기를 지금 30대, 40대 분들에게 하면 반발할 수도 있어요. 먹고 살기 너무 힘들다고요. 물론 그래도 저는 맞서서 계속 얘기 할 거고, 찾아보면 재미난 삶이 있다고 알려드릴 건데요. 학교에 가서는 이런 얘기를 정말 하고 싶었어요. 그랬더니 선생님들이 무척 좋아하시더라고요.


문화예술을 즐길 수 있는 삶을 잘 모르시는 것 같아요. 그게 좀 안타까운데요. 이 책이 한편으로는 연극에 대한 재미를 조금 느낄 수 있도록 했으니까요. 즐겁게 봐주시면 좋겠어요.

 

책 뒷부분에 연극 해설을 해두었어요. 아무래도 연극이 낯선 사람들에게는 아주 편안하고 재미있게 연극을 바라볼 수 있는 요소예요. 쉽게 접해보지 못한 내용이기도 하고요.


이런 상반된 평가가 너무 재미있는 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 그렇게 말씀을 하세요. 뒷부분 코멘터리가 너무 신선하다고요. 그런데 연극계에 있는 사람들은 뒷부분이 너무 지루하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아예 못 읽겠다는 거예요. 다들 그 얘기를 해요. 연극계 안에 있는 선수들이 봤을 때는 이 내용이 오히려 일상적이니까요. 지쳐있기도 하고요. 그래서 저는 말씀하신 평가가 요즘 정말 재미있어요. 솔직히 저도 쓰면서 뒷부분이 제일 걱정스러웠거든요. 이거 진짜 재미없을 텐데, 하면서 말이에요. 좋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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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업’이란 수식이 합당한가


연극에 대해 조금 더 얘기하면요. 연극을 하던 배우들에게 방송계로 떠나라고 했어요. 어떤 속내가 있었는지 궁금해요. 오히려 반대로 얘기했다면 의아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어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당연한 논리가 아닐까요.(웃음) 연극인에 국한된 얘기가 아니고요. 프로야구 선수도 마찬가지로 메이저 리그 가야한다고 생각하고요. 그런 얘기도 했었잖아요. 외국 리그에서 선수들 다 빼 가면 우리 프로야구, 프로축구가 인기 없어진다고요. 충분히 그렇게 볼 수 있지만 멀리 내다보면 순화된다고 봐요. 그런 선수들이 또 돌아와서 다시 붐을 일으키기도 했잖아요. 박찬호 선수도 그랬고요. 또 막는다고 막을 수 있는 문제도 아닌 것 같아요. 그냥 너무 당연한 일인 것 같아요.

 

연극배우 출신 연기자들이 특히 요즘 많은 사랑을 받고 있잖아요.


지금 잘 돼서 뿌듯한 친구가 <응답하라 1988>의 정봉이에요. 안재홍이요. 그 친구에게 책 홍보 부탁도 했는데요.(웃음) 재홍이에게는 절대 안 될 이유가 없다, 너는 무조건 잘 된다고 매번 얘기했었어요. 다른 친구들에게도 그렇게 얘기를 했지만 그 친구는 정말 특별한 느낌이 있었어요. 일단 사람이 얄팍하지 않아요. 실제로 <응답하라 1988> 배역 느낌이 그 친구에게 있어요. 술수를 아예 쓸 수 없는 사람이고요. 술수로 잘 되는 사람도 무척 많지만 지금 시대에는 너 같은 사람이 된다고 얘기했었어요. 그걸 사람들이 알아봐줄 거라고요. 그 친구는 화려한 기교가 있는 사람이 아니거든요. 재홍이는 언제 봐도 질리지 않고, 대충 해서 넘어가지 않고 될 때까지 우직하게 해요. 이 친구가 잘 돼서 너무 기뻐요. 지금 이렇게 관심을 받지만 그 정도 재료가 다 준비돼 있었던 거예요.

 

연극과 다른 분야가 충분히 상호작용 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더 자신 있게 방송계로 떠나서 증명 받고, 다시 와라, 이렇게 얘기하는 거군요.


물론 장단점이 있죠. 스타 마케팅이라고 비난 받을 수도 있고요. 참, 가슴이 아파요.

 

자연스럽게 연극의 예술성, 상업성 논란과도 연결 지어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렇죠. 저는 예술성, 상업성 구분이 뭐가 중요한가부터 출발하는 거거든요. 뭐가 중요한가요? 예술적이고 상업적인 것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 그 경계가 궁금해요. 작가도 그렇잖아요. 작가면 작가지 예술작가, 상업작가가 있는 건 아니잖아요. 연극은 다 연극이죠. 제가 비판했던 건 ‘상업’이란 수식이 붙는 게 합당한가에 대한 물음이었어요. 다 상업이에요. 상업도서라는 말이 합당한가요. 누구나 다 책이 잘 팔리길 원하고, 누구나 관객이 많이 들길 원하죠. 모든 게 마찬가질 텐데요. 그런 것에 대한 반발감으로 지적한 거예요.

 

인상적이네요. 연극은 다 연극이라는 말이요.


저는 제 책이 많이 팔렸으면 좋겠어요. 안 팔리더라도 가치 있는 책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이런 인터뷰를 하고 싶지 않단 말이에요. 과연 이게 잘못된 논리냐는 걸 묻는 거예요. 우리가 연극을 한 편 만들었을 때는 다 상업이고, 다 관객들이 많이 와주길 바란 거죠. 다양한 장르로 구분은 할 수 있으나 상업이라는 단어로 구분하는 건 좀 아닌 것 같아요. 탤런트, 영화배우가 연극하면 다 상업연극이냐는 거예요. 아니죠. 그런 구분 없이 다양한 상품을 전시하는 게 대학로에서의 역할이 아니겠는가 생각해요.

 

다양성을 인정하자고요.


네, 대신 사정이 어려운 건 정부에서 지원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그냥 시장 논리로만 두면 다양성이란 건 없어지잖아요. 진짜 대중성이 없어 보이는 연극은 정부에서 지원해서 균형을 맞추는 노력이 있어야 하는 것 맞아요. 의외로 그런 예술들이 실제로 보면 안 지루하거든요. 그런 연극에 진짜 스타들이 나오면 정말 근사하겠죠. 체호프 작품에 유아인이 나온다, 정말 금상첨화겠죠. 그런 교류가 활발하게 되고, 서로 가져갈 수 있는 것들은 가져가는 당당한 연극계가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생각만 해도 멋지네요. 유아인이 연극을 한다면요.
 


다양하게 해볼 생각


대학로에 연인들이 데이트하러 올 수 있게 하자, 는 모토로 재미있는 실험들을 하고 <보잉보잉>의 흥행으로 결과를 확인했는데요. 지금은 또 정체된 것 같다고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잖아요. 앞으로 대학로가 어떻게 체질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억지로 뭔가 바꾸는 건 쉽지 않다는 것은 이미 <밀키웨이>라는 작품을 할 때 한계를 느끼긴 했어요. 돌아가는 게 쉽지 않구나, 또 고난의 길을 가야하는구나, 했는데요. 애초에 제가 하고 싶었던 건 대학로에 데이트하러 와도 돼, 지성인들만 오는 곳이 아니야, 이런 거였어요. 누구나 다 볼 수 있고, 특히 연인들이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어, 생각했어요. 그렇게 시작한 게 맞아떨어졌죠. <보잉보잉>이 흥행했고, 대학로로 엄청나게 연인들이 왔어요. 그러다 요즘은 오히려 예전에 생각했던 관객 유형을 찾아보기 어려워요. 대부분 데이트족이죠. 그러니 또 심한 청개구리 같은 생각이 발동하더라고요.

 

또 청개구리가 등장하네요.


일단 대학로에 로맨틱코미디가 판을 치니까 나는 제일 슬픈 걸 만들어보자는 생각부터 시작이 되는 거죠. 데이트용에 맞으면서도 진짜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로 울려보자고요. 현대물은 조금 식상하니까 시대를 알 수 없는 옛날로 설정해보자, 여기까지 생각이 됐어요. 만약 이 슬픈 게 히트를 치면 장담컨대 또 막 나올 거란 말이에요. 그러면 대학로에 어느 정도 또 균형이 살짝 잡히겠죠. 웃음, 눈물, 사극, 현대물이 다양하게 공존하는 거죠.

 

토크콘서트도 재미있는 기획으로 여러 회 진행했어요. 그걸 통해 찾으려고 했던 건 무엇이었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이끌어갈 계획인지 궁금합니다.


토크콘서트는 책 내기 전에 계속 하고 있었던 거예요. 이걸 하면서 저는 또 재미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어요. 좋은 얘기도 재미있게 해야 꽂히잖아요. 꼰대처럼 좋은 얘기 해주고 가면 누가 듣겠어요. 그러다보니 저 혼자 하면 비슷해질 것 같더라고요. 저 혼자 어마어마한 변신을 계속할 순 없는 거죠. 게스트를 계속 바꿔서 그들이 잘할 수 있는 것들로 기획을 했어요. 처음에 개그맨 이정수 씨와 함께 했어요. 그 친구는 말로만 하는 게 아니라 진짜 관객과 놀아요. 그런 건 한 번 해봤으니 다음엔 작가 분과 진지한 것도 해보고요. 탤런트 이승연 씨와 관객 고민상담 포맷으로도 하고요. 호응이 좋았어요. 계속 진화하고 있는 거죠. 3월 초에는 북콘서트를 기획했고요. 다른 재미난 콜라보도 생각하고 있어요. 사람들이 안 하는 구성을 고민하면서요.(웃음)

 

계속 다르게 하려면 고민이 많을 것 같은데요.(웃음)


저도 좀 벗어났으면 좋겠어요, 진짜. 남들과 똑같이 해도 괜찮다는 생각을 한 번 쯤 해도 되는데 사실 용납이 잘 안 돼요. 다 하는 거다 싶으면 안 하고 싶거든요. 그런 건 별로 재미가 없어요. 이 청개구리가 괴롭긴 해요. 올해 다양하게 해볼 생각이에요. 강연에 매력을 많이 느끼기도 해서요. 올해는 좀 더 많이 떠들 수 있게 됐으면 좋겠어요. 이곳저곳에서 좀 더 재미난 행복에 대한 이야기가 듣고 싶다 하시면 언제든 연락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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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일 행복하고 싶지 않다손남목 저 | 가연
이 책에서 손남목은 두레홀에서 관객들과 함께했던 ‘당신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라는 토크쇼의 내용을 바탕으로 그 자신이 연극계에서 행복의 파랑새를 어떻게 찾고 있는지의 드라마틱한 과정과 함게 삼포시대 헬조선을 헤쳐가야 하는 이 땅의 청춘들이 어떻게 하면 행복을 끌어안고 누릴 수 있는 지를 이야기 하고 있다. 셰익스피어의 연극 〈로미오와 줄리엣〉에 나오는“장미는 다른 이름으로 불려도 여전히 향기로울 거야.”라는 대사에 매료되어 연극인이 되었다는 그는 자신의 남다른 경험을 통해 기존의 멘토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행복의 민낯을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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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서초동 최과장 “음악은 내게 해방구고 위로의 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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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은 최영규. 현재 을지로에서 근무한다. 인터뷰가 있던 날도 점심시간을 쪼개 만났고, 다음 날은 홍콩 출장이 잡혀 있다고 했다. 요즘은 특히나 아침 8시 출근, 일요일에도 근무할 정도로 바쁘다. 외모도, 말투도 그저 평범한 ‘최과장’인 이 사람. 그가 특별한 것은 “정체성을 안 놓치려는 발악”을 하는, 고민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그는 최근 ‘서초동 최과장’이라는 이름으로 앨범을 냈다(앨범을 만들 때는 서초동에서 근무했다). 이전에도 ‘로맨스 초이’나 ‘몽환섬’이라는 이름으로 음악활동을 꾸준히 했었다. 이번 앨범에서는 무엇보다 함께 지친 일상을 살아가는 ‘서초동 최과장’으로서 “소소한 일상과 사람들에게 던지는 응원의 메시지”를 편안하고 밝은 음악으로 전하려 했다.


직장생활과 음악활동, 양립이 가능한가? 가장 궁금했던 질문을 던지자 돌아온 답은 “지금 음악은 저에게 해방구고 위로의 수단인데 음악으로 생계를 잇거나 이윤을 창출하려고 하는 순간 음악이 자연스럽게 안 나올 것 같아요. 그 경계를 항상 많이 생각하는데요. 아직까지는 지금 상태가 좋은 것 같아요.”였다. 건강한 생활인, 성실한 음악인, 서초동 최과장의 음악이 당신의 지친 마음을 위로하면 좋겠다.

 

 

건조함에 지지 않으려는 움직임


직장인이면서 소설도 쓰고, 음악도 꾸준히 발표하는 모습을 보면 안에 이야기가 무척 많다는 생각이 들어요.


올해가 회사 생활 10년 차예요. 회사를 통해 나오는 감성과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던 감성들이 있었는데요. 그것들이 어디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내재돼 있잖아요. 그걸 표현하는 기제로 음악이나 문학을 활용한 것 같아요. ‘서초동 최과장’을 통해서는 직장인으로 10년 간 느꼈던 울분과(웃음) 회한과 직장인의 소소한 일상 등에 대해서 하고 싶은 얘기들을 담았어요. 곡이 서너 곡 나오다보니 앨범으로 내게 됐고요. 음악을 전문적으로 배운 건 아니기 때문에 가사를 먼저 쓰고 어느 정도 쌓여야 음악이 나와요. 그 기간이 있는 것 같아요. ‘로맨스 초이’나 ‘몽환섬’이라는 이름으로도 활동을 했었는데요. 그때는 또 다른 감성이었죠. 보통 사랑에 대한 얘기를 했고요. 결국 텍스트화 되는 과정인 것 같아요. 텍스트를 소설로 하느냐 음악으로 하느냐의 두 가지 경계가 있었던 것 같아요. 직장을 다니면서 소설 쓰기가 너무 힘들어서 지금은 음악만 하고 있어요.

 

하고 싶은 말들이 쌓이는 기간, 주기가 있나요? 어떨 때 말들이 많이 고이는지 궁금해요.


여유로울 때보다 바쁘거나 하면 표현 욕구가 강해지는 것 같아요. 밤 11시까지 야근을 하고 늦게 귀가했을 때 어떤 감정들이 한 번에 텍스트화 되면서 멜로디로 나와요. 곡들을 오랫동안 공들이거나 음악적으로 분석해서 만들진 않고요. 가사가 나오면 저절로 음악이 돼요. 그래서 작곡하는 데는 시간 투자를 많이 안하는 것 같아요.

 

곡을 만들면서 생긴 재미있는 일화도 많겠어요.


<순환선 인생>가사가 이래요. ‘덜 마른 머리카락 사이로 차가운 새벽 공기가’ 이런 식인데요. 진짜 그날 아침이 그랬거든요. 대충 머리 말리고 나오는데 새벽 공기 마시니까 저절로 이야기가 떠올랐어요. 마침 지하철을 탔는데 순환선이라 ‘아, 순환선 인생이다’ 생각했죠. 그 가사를 지하철에서 바로 썼어요. 그날 퇴근하고 아침에 있던 멜로디를 기억해뒀다가 곡을 썼죠. 그러면서 ‘서초동 최과장 프로젝트’가 시작됐어요.

 

그래서인지 곡을 들으면 무엇보다 가사가 잘 들려요. 편안한 멜로디에 올라앉은 가사들이 참 잘 들렸던 이유를 알 것도 같네요.


네, ‘주경야락’이라고 직장인밴드 콘테스트에 나갔었는데요. 최종 파이널을 해야 하는데 리허설 할 시간이 없는 거예요. 전날이 회식이었는데 회식 자리에서 리허설을 했어요. 삼겹살집에서요.(웃음) 공연 시간이 너무 없다보니 그런 에피소드도 있었어요.

 

회식 자리에서의 공연, 반응 뜨거웠겠네요.


폭발적이었죠.(웃음) 같은 부서 분들은 또 제 노래를 좀 아셔서요. 다 같이 노래를 불렀어요. 호응을 많이 해주셨어요.

 

직장 생활과 음악 활동이 서로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는지 궁금해요. 너무 바쁠 때 음악이 더 된다고 했는데 직장 생활이 음악에 주요한 요소기도 한 것 같거든요.


그렇죠. 학창 시절 때는 감성이 너무 많아서 주체가 안 될 정도였어요. 머리도 기르고, 공대생인데 혼자 문학 수업도 들으러 가고, 여행도 혼자 다니고 그랬어요. 그런데 회사 10년 차가 되니까 감성들이 점점 깎여나가 지금은 거의 없는 상태가 된 것 같아요.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음악, 예술 행위는 제게 마지막 남은 끈 같아요. 정체성을 안 놓치려는 발악 같은 거죠. 최영규란 정체성에서 이걸 놓치면 진짜 아무것도 안 남게 된다는 그런 마음이 있는 것 같아요. 아직까지는 더 표현하고 싶은 것들이 남아 있어서 계속 잡고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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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조함에 지지 않으려는 움직임이라고도 표현했죠. 생활 때문에 감성이 증발해버리는 것에 대한 불안함이 있는 거군요.


그런 건 항상 있어요. 최근엔 바빠져서 아침 8시까지 출근을 해요. 거의 밤 9시까지 계속 업무만 하다보면 다른 것들이 생각이 안 나거든요. 그러다보니 내가 음악을 하긴 했나 할 정도로 잊어버리고 있다가 퇴근길에 조금 환기를 해요. 계속 그런 마음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바쁘거나 하면 더 음악이 많이 된다고 했던 건데요. 이런 걸 안 잊어버리려는 생각을 하다 보니 좀 더 표현욕구가 강해지는 것 같아요. 작업실이 있어요. 늦게 퇴근하면 오히려 작업실로 가요. 조금이라도 더 하고, 바로 안자고 환기를 하려고 해요.

 

 

지금 상태가 좋아


서초동 최과장이라는 음악인에 호기심을 느끼는 가장 큰 이유는 현재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는 점일 텐데요. 역시 쉽지는 않은 일이니까요.


가끔 클럽에서 공연을 해요. 유명하지 않기 때문에 공연 보는 사람은 열 명 남짓이지만요. 클럽 사장님한테 ‘오늘 공연 할래요?’하고 연락이 가끔 오는데 항상 대답은 ‘야근해요’(웃음)예요. 시간을 조절하기가 힘들어요. 방송 섭외가 들어올 때도 있거든요. 그런 경우는 거의 못하죠. 평일에 방송 녹화가 있으니까 그냥 죄송하다고 할 뿐이에요.

 

그러면 음악에만 집중하고 싶다는 욕심도 생길 것 같아요. 어떠세요?


항상 그런 생각을 하는데요. 만약 음악에만 전념하면 또 힘들어질 것 같아요. 음악이 제게 직업이라고 느껴지는 순간 또 괴로움이 있겠죠. 지금 음악은 저에게 해방구고 위로의 수단인데 음악으로 생계를 잇거나 이윤을 창출하려고 하는 순간 음악이 자연스럽게 안 나올 것 같아요. 그 경계를 항상 많이 생각하는데요. 아직까지는 지금 상태가 좋은 것 같아요.

 

평균적인 일주일의 생활을 요약해주세요. 보통의 직장인들과 어떻게 다른지 궁금해서요.


되게 간단해요.(웃음) 요즘은 일요일도 출근을 해서 일주일에 토요일 하루 쉬어요. 토요일에 반나절은 쉬고 나머지 시간에 가사 쓰고, 음악을 하죠. 일주일에 서너 시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내일 또 홍콩 출장을 가야 해요.

 

어떤 것에서 영감을 받나요? 자신을 자극하는 것들이 있을 테죠.


예전에는 우울한 톤이 많았어요. 실연을 당했거나 이별 후에 감정이 깊어진 상태에서 보통 음악을 했어요. 서초동 최과장은 재미있는 음악이 더 많은 것 같아요. 멜로디도 더 흥겹고요. 최근 만든 <한 잔 하자 김과장>이라는 곡도 그래요. 옆에서 김과장이 머리를 싸매고 있는 거예요. 한 잔 하자고 가서 진짜 한 잔을 하면서 만든 노래였어요. 결국은 소소한 일상을 많이 다뤘어요. 서초동 최과장이 만든 음악은 그렇고요. 다른 캐릭터로 음악을 만들 때는 또 그 캐릭터에 집중이 돼요. 이름도 하나의 정체성이니까요. 그래서 최근에는 거의 회사생활에 관한 곡이죠. <119>라는 곡이 있는데요. 회사 캠페인이에요. 1, 한 가지 술로 1, 1차까지 하고 9, 9시 전에 집에 가자고요. 그걸로 캠페인송처럼 만들었어요.

 

그대를 보면 난 힘이 나죠 그댈 좋아하나 봐요 김대리님
나를 바라보며 웃으며 인사하네요 좋은 아침입니다 최과장님
회사생활 십년 차 드디어 찾아온 사랑 우리 이제 시작하는 건가요 사내커플
(중략)
그대가 내게 할 말 있다며 수줍게 내민 편지 가슴이 떨려오네요
나를 바라보며 용기 내 얘기하네요 축가 부탁해요 최과장님
(곡 <사내커플> 가사 일부)

 

<사내커플>이라는 곡, 실화예요?


실화 아니에요.(웃음) 그 곡 발표 후에 김대리가 대체 누구냐, 질문을 많이 받았어요. 아는 김대리 없다고 대답했죠. 그 비슷한 일이 있긴 했었겠지만 다 픽션이에요. 논픽션이라도 말하면 안 돼요. 김대리가 결혼을 했기 때문에요.(웃음)


캐릭터도 긍정적인 최과장으로 하려고 해요. 왜냐하면 음악을 통해 표현하고 싶은 건 소소한 일상과 사람들에게 던지는 응원의 메시지니까요. 너무 힘들고,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만 얘기하고 싶진 않거든요. 저는 제 일도 좋아하고 있고요. 많은 것이 생각하기에 따라 달라지잖아요. 그런 것들을 전파해서 스트레스도 덜고 하면 좋겠죠. 직장인들 워낙 스트레스 많이 받으니까요. 가사는 현실적이지만 조금 더 밝은 멜로디로 만든 것도 그런 이유예요. 곡이 슬픈듯하면서도 흥겹고 그런 부분은 있는 것 같아요. 제 음악 듣고 힘이 난다는 말 들을 때 참 좋아요. 그런 이유로 음악을 하고 있기도 하기 때문에요.

 

어떤 사람들을 떠올리며 곡을 만들까, 어떤 사람들에게 곡을 들려주고 싶을까 궁금했는데 지금 말씀을 들으니 주변의 지친 직장인들을 많이 생각하고 있네요.


네, 가끔은 주변 동료 분들 중에 저를 보고 ‘나도 해보고 싶다’는 분들이 있어요. 가사를 써서 보여줄 때도 있고요. 최근엔 두 분에게 앨범을 내드렸는데요. 노래를 만들어드린 거죠. 한 분이 ‘서판교다둥이아빠’인데요.(웃음) 결혼 10주년이라 노래 선물을 한다고 하기에 <니가 좋아>라는 곡을 하나 써드렸죠. 결혼기념일에 곡을 등록했어요. ‘을지로이책임’도 <우리 사이>라는 곡을 내드렸고요.

 

직장생활에서 이렇게 음악을 하는 동료가 있다면 생활에 굉장한 활력소가 될 것 같아요.


그 분들은 좋아하시더라고요.(웃음) 주변에 시인도 있고, 그림 그리는 친구도 있어요. 최근엔 시인과도 함께 작업을 했거든요. 낭송앨범도 같이 만들어봤어요. 저는 배경음악을 만들고 시인 친구는 낭독을 하고요. 그런 건 다 소소한 저의 취미죠.

 

 

즐겁게 하려고 해요


자신의 곡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곡이나 작업하면서 재미있었던 곡이 있다면요?


아무래도<순환선 인생>이 그래요. 말씀드렸듯이 출근할 때, 퇴근해서 만든 곡이거든요. <사내 커플>이라는 곡에 관한 일화도 있는데요. 제가 노래를 막 잘하진 못하거든요. 그 곡이 ‘2옥타브 시’까지 음이 올라가요. 머릿속으로 곡을 만드니까 그렇게 됐는데요. 막상 녹음을 하니까 안 올라가는 거예요.(웃음) 그 곡은 녹음 시간이 엄청 오래 걸렸어요. ‘난 아무 문제없어요’ 하는 부분이 있는데 ‘문제없어요’만 하루 종일 했어요. 보통은 그걸 감안해서 노래를 책 읽듯이 하는데요. 이번 곡은 멜로디가 좋은 것 같아서 욕심을 냈더니 녹음할 때 참 힘들었어요.

 

동생이 인디밴드 요술당나귀 라마예요. 곡 편곡을 해준다고 들었는데 보통 작업 과정이 어떻게 되는지 말씀해주세요.

 
제가 가사와 멜로디를 만들어서 뼈대를 만들어요. 음악 작업이 세부과정이 무척 많거든요. 저는 그 과정 전체에 다 참여할 순 없어서 음악을 만들고요. 녹음이나 그런 부분은 음악 하는 친구들이 있으니까 주변에서 많이 도와줘요. 동생도 밴드를 하니까 드럼, 베이스 녹음 같은 걸 동생에게 도움 받으며 작업하고 있어요. 그래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 음악 하는 게 가능한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작업이 마음처럼 안 될 때도 있을 것 같아요.


그렇진 않아요. 왜냐하면 하고 싶을 때 하기도 하고요. 음악에 관해서는 스트레스 안 받는 방향으로 결과물을 항상 만들기 때문이에요. 물론 더 잘하고 싶은 욕심은 늘 있어요. 앨범들을 보면 그 안에서 조금씩 발전을 해오고는 있지만요. 음악에 있어서는 완벽한 프로패셔널은 아니니까 더 잘하고 싶은 욕심은 있죠. 한 번도 음악을 배워본 적이 없고 다 독학으로 해서요. 진짜 음악을 본격적으로 하시는 분들이 보면 수준이 못 미칠 수도 있어요. 하지만 하는 동안에는 즐겁게 하려고 해요.

 

그렇기 때문에 갖는 장점도 있을 거라 생각해요.


음악을 업으로 하시는 아는 형님이 가끔 제 음악 칭찬해줄 때가 있어요. 어떻게 이렇게 나오느냐면서요. 제게 절대 회사 그만두지 말라고 해요. 회사를 다니면서 하기 때문에 음악이 이렇게 나오는 것 같다는 말을 하더라고요.

 

반드시 음악적인 완성도가 있어야 좋은 음악은 아니니까요. 이런 선에서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가 같은 입장에서 자극해주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대로 정말 좋죠. 아마 주변의 동료들도 그래서 서초동 최과장의 음악을 좋아하는 게 아닐까요? 


음악을 발표하니까 아무래도 그런 부담은 있어요. 최소한의 수준을 확보하고 싶은 건 있거든요. 발표를 하는 곡이니까요. 제가 잘할 수 있는 부분에 초점을 맞추려고 해요. 가사나 멜로디를 더 잘 만들려고 노력하고요. 편곡이나 이런 부분은 같이 협업을 하고 있어요.

 

나만의 공연에 대한 꿈도 있을 것 같은데요.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나가보고 싶어요.(웃음) 서른 살 되기 전에 목표를 세웠던 게 있어요. 책을 쓰는 것, 앨범을 내는 것, 공중파에 출연하는 것이었어요. 서른 살 생일 전에 그 세 가지를 다 했어요. 그래서 지금 목표가 있다면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출연하는 거예요. 락페스티벌 무대에 서보고 싶기도 하고요. 음악적 욕심은 그게 제일 큰 것 같아요. 좋은 음악을 만들고, 그런 무대에 서보는 것이요.

 

더 유명해지고, 인기를 얻고 싶은 생각도 있나요? 그렇게 되면 좋아하는 음악을 마음껏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 부분도 많이 생각해봤는데요. 아주 많이 유명해지고 싶진 않고요. 제가 만든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100명 정도만 있었으면 좋겠어요. 공연도 큰 공연보다 소규모 클럽이나 관객과 직접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공연이 좋더라고요. 제가 만든 곡들도 소소한 이야기를 담은 곡들이니까 그런 이야기를 공연에서 나누는 걸 좋아하거든요. 최근에 ‘모나콘(모발나눔콘서트)’이라는 자선 콘서트가 있었는데요. 조그만 클럽에서 공연을 했어요. 60명 정도 와서 이야기도 하고 노래도 하면서 진행했는데 그 느낌이 너무 좋았어요. 음악 하는 또 다른 목적을 하나 더하자면 교감하는 것이니까요. 사람들의 표정이나 반응을 직접적으로 볼 수 있잖아요. 그런 게 큰 쾌감이에요. 말하면서 좀 정리가 되는 것 같은데요. 제가 하고 싶은 공연은 제가 조명을 받기보다 관객들에게 조명을 비추는 공연인 것 같아요. 그들이 누군지 알고, 서로 눈을 마주치면서 교감할 수 있는 공연 말이에요.

 

말씀을 쭉 들으니 현실에 단단히 발붙이고 서서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을 하는 건강한 생활인이란 생각이 들어요.


건강해 보이려고 노력하죠. 이러다가 사무실 들어가면 또 일에 절어서 있을 거예요.(웃음)

 

앞으로도 계속 음악을 하겠죠?


네, 그건 확실해요. 음악을 하려면 돈이 들잖아요. 음악을 통해 돈을 만들어내기는 엄청 힘들어요. 그래서 음악하시는 분들이 참 대단하단 생각을 해요. 한국 음악계가 그런 부분에선 개선이 많이 돼야 할 것 같아요. 음악으로 어느 정도 수입이 돼서 음악 하는 분들에게 정당한 대가가 될 수 있게 플랫폼들이 개선되어야 할 것 같아요. 최소한의 어느 정도라도 보장이 된다면 사람들이 좀 더 행복하게 음악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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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은 “실패담을 읽고 싶었는데 못 찾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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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만난 사람이 눈앞에 앉아 있는데, 다른 인물 같았다. 『익숙한 새벽 세시』속 오지은은 ‘머뭇거리기 선수’ 같았는데, 눈앞의 오지은은 매우 프로페셔널한 태도를 가진 인터뷰이였다. 그는 질문에 답하기 전 종종 머뭇거렸지만, 틈이 길진 않았다. 상대를 불편하게 만들기 싫어하는 성격이 곳곳에 보였다. 배가 고프다며 카페에서 샌드위치를 시키면서도 자책했다. “좀 참아도 되는데 결국 시켰네요. 이런 행동이 용서받을 거라고 생각하는 어리광이 아직도 있나 봅니다”라고 말했다. 책 속 오지은과 눈앞의 오지은이 같은 인물이라는 사실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가수 오지은의 두 번째 산문집 제목은 『익숙한 새벽 세시』다. 출간되자마자 많은 독자가 기다렸다는 듯이 서둘러 책을 샀다. 출간 한 달 만에 5쇄를 찍었다. “아껴 읽는다”는 독자평이 줄을 잇고 있다. 이들은 가수 오지은의 팬이기도, 작가 오지은의 독자이기도 하다. 오지은은 2006년 ‘유재하음악경연대회’ 동상을 수상하며 데뷔했다. 대학에서 서양어문학을 전공한 그는 음악으로 돈을 벌기 전에는 번역도 하고 날품팔이 기사도 썼다. 때문에 필자가 『익숙한 새벽 세시』를 ‘연예인이 쓴 책’이라고 분류하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제 책이 연예인이 쓴 책으로 분류된 것에 생소한 마음이 있습니다. 하지만 별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에요. 제 정체성을 어떻게 두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아요. 제가 자꾸 말을 끊죠?”

 

‘어른 적응기’라는 가제로 썼던 원고가 263쪽짜리 책으로 만들어졌다. 1981년생, 음악을 만들고  글을 쓰는 사람 오지은은 “별 뾰족한 수는 없는 책이지만 구멍을 감추고 있는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바랄 것이 없겠다”고 작가 후기를 썼다. 오지은의 자기검열은 올해도 어김없이 계속될 것이다. 스스로 어른답지 못하다며 자책하는 순간도 줄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독자는 그런 오지은의 모습 속에서 어른스러움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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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친한 친구가 재밌게 들을 법한 이야기


12월 말에 책이 나오고, 한 달도 채 안 지났어요. 그간 어떻게 지내셨어요?


이렇게 말하고 싶진 않지만, 마지막 원고를 보낸 후부터 음악인 모드로 바뀐 것 같아요. 오랜만에 곡이 나왔어요. 마치 부서를 옮긴 것처럼, 대부분의 시간을 앨범 만드는 시간으로 채우고 있어요. 지금 인터뷰를 하는 시간은 보너스 스테이지 같은 느낌이에요. 책 모드, 저자 모드는 마지막 원고를 보냈을 때 끝난 것 같아요. 남은 에너지가 있다면 전부 앨범에 쏟아야죠.

 

『익숙한 새벽 세시』는 오지은 씨의 두 번째 산문집입니다. 쓰면서 무척 힘들었다고 들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굉장히 편안하고 밝은 느낌입니다.


엇? 그런가요? 전 굉장히 긴장한 상태인데요.

 

그래요?


네. 저는 지금 ‘네! 옙’ 이런 느낌입니다.(웃음)

 

책을 내고 첫 인터뷰인가요?


그렇진 않은데요. 매번 인터뷰할 때마다 이 상황 자체가 어색함의 극치예요. 처음 만나는, 전혀 의도를 알 수 없는 사람과 마주하고 있으니까요.

 

의도를 알 수 없다고요? 저는 지금 정확한 의도가 있는데요.(웃음)


하지만 이 인터뷰가 어떻게 쓰일지는 제 영역이 아니잖아요. 제가 뭔가를 던져줄 수는 있지만 어떻게 해석될지는 모르는 문제니까요. 만약 제가 머리가 좋다면, 인터뷰어와 줄다리기를 할 수 있겠죠. 하지만 못해요. 저는. 그래서 굉장히 긴장한 상태입니다.

 

대개 인터뷰를 많이 하다 보면, 뻔한 질문과 뻔한 답변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나요?


그러면 안 되죠. 왜냐면 티가 나잖아요. 지면 하나가 돈이 얼마인데요. 지면을 저라는 인물로 채웠을 때, 그만큼의 성의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인터뷰 질문지를 다 짠 후, 오지은 씨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봤습니다. 과거 기사가 눈에 띄었는데 패션 화보였어요. 왠지 화보 촬영은 어색해 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어떤가요? 새로운 작업도 즐기는 편인가요?


전혀 즐기진 않아요. 다만 해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오늘도 인터뷰를 하기 전, 사진부터 찍었잖아요. 아주 아주 어색해요. 무대에서 노래하는 일이야말로 어색할 수 있지만, 지금은 누군가 ‘하나 둘 셋’ 하면, 노래할 수 있게 트레이닝한 상태예요. 사진도 그래요. 초반에는 어쩔 줄 몰라 했던 때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진 않죠. 제가 빨리 적응해야 모두가 빨리 퇴근하고 좋잖아요. 잘해봐야 저고, 못해봐야 저니까요. 할 수 있는 한 잘해야죠.

 

『지승호, THE INTERVIEW』에서 오지은 씨 인터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여러 답변이 인상적이었는데요. “음악은 약간 이상할 때 잘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한데, 글은 정말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있어야 오랜 시간 잘할 수 있는 것 같다”고 하셨어요. 어떤 의미인지는 이해했지만, 본업은 뮤지션이니까, 글은 조금 힘을 빼고 써도 괜찮지 않나요? 취미처럼요.


요령이 좋다면요. 하지만 저는 2년을 꼬박 바쳐서 이만큼, 겨우 요만큼 쓴 거라서요. 취미라면 좀 더 재미있는 일을 하겠어요. 게임을 하거나. 글을 취미로 쓴다는 건 상상이 안돼요.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는 의미는 어떤 걸까요?


음악은 흐트러진 마음 같은 데서 뭔가 나오기도 해요. 맨 정신으로 돌이켜보면 부끄러워할 마음 상태를 갖고 음악을 만들 수 있어요. 이래야 좋은 재료가 나오기도 하고요. 그래서 스스로를 무의식으로 몰아가기도 해요. 낙지처럼 늘어져 있는 게 도움이 될 수 있어요. 하지만 글은 이런 마음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아요. 늘어진 마음 상태로 글을 쓰면, 분명 다음 날 그 글을 지우게 돼요. 『익숙한 새벽 세시』를 쓸 때, 마지막 두 달은 거의 새벽에 일어나서 글을 썼어요. 밤 9시, 10시에 자려고 노력했고요. 저 스스로도 납득이 안 됐기 때문에 계속 글을 또 고치고 고친 게 아닐까, 싶어요.

 

가제도 『익숙한 새벽 세시』였나요?


첫 제목은 ‘어른 적응기’였어요.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오히려 제한될 수 있는 제목이더라고요. ‘어른 적응기’라고 하기엔 다른 이야기도 많이 한 것 같아서요. 어른이 이미 됐든, 될 생각이 없든, 아니면 어른과 전혀 상관이 없든, 새벽 3시와 익숙한 사람들과 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제목을 정할 때 많이 고민했는데, 그간 노래 제목은 되게 쉽게 정했더라고요. 용감하게 잘 지었더라고요. 새삼스럽게 생각났어요.(웃음)

 

요즘도 새벽에 자주 깨어있나요?


오늘은 새벽 5시에 잤어요. 오전 9시에 알람을 맞췄지만 최종적으로 일어난 시간은 10시입니다. 외부 생활이 흔치 않게 있는 시즌이라서요.

 

1월입니다. 새해라는 느낌은 있나요?


전혀 없어요. 책에 사인을 할 때, 2016년이라고 쓰는 생소함 정도요?

 

사인 이야기를 하셨으니까 물을게요. 독자나 팬들이 무척 서운할 이야기인데요. CD, 책에 사인을 할 때마다 버려질 것을 예상한다고 하셨어요. 저는 사인본을 버리지 않는 팬이 더 많을 거라고 짐작하는데요.


저도 그런 생각했어요. 서운해 하실 분도 있을 것 같고요. 하지만 이런 식으로 생각하다 보면 점점 할 말이 없어져서요. 자꾸 방패를 치다 보면 할 수 있는 말, 해도 되는 말이 없어져요. 그래서 ‘약간 섭섭해 한다면 미안해’ 그런 느낌으로 쓴 글이에요. 책을 준비할 때, 아무 것도 못 쓰는 시간이 있었어요. 할말은 너무 많은데 자꾸만 검열하게 돼서요. 써놓고서 ‘이건 의미 없을 거야, 자뻑일 거야’라고 생각했는데, 계속 검열만 하다 보면 아무 글도 못 쓰겠더라고요. 그래서 진짜 친한 친구가 재밌게 들을 법한 이야기를 쓰려고 했어요.

 

오지은 씨와는 오늘 처음 알게 된 사이니까. 저는 친한 친구가 아닌데요. 지은 씨의 글이 되게 재밌었어요. 특히 초반부 교토 이야기가 흥미로웠어요. 글을 읽는데 교토 풍경이 떠올라서 좋았어요. 퇴근길에 책을 읽었는데 내려야 할 정거장을 지나쳤어요.


우아, 감사합니다.(웃음) 음악은요. 누가 싫어하든 좋아하든, ‘뭐 누구누구는 싫어하고, 누구누구는 좋아할 수 있지’라고 생각을 하는데요. 직업인으로 하는 일이니까요. 하지만 글에 있어서는 제가 신참이니까요. ‘아 정말 괜찮아요?’ 하는 신인의 마음이 있어요. 음악을 처음 시작했을 때, ‘아, 내 음악이 좋아? 정말 공감이 돼?’라고 묻던 시기가 있었으니까요. 그런 마음이에요.

 

교토 여행을 떠난 시점이 결혼 후 한 달이 지난 때였어요. 달콤한 신혼을 즐길 때, 혼자 여행을 떠나는 일이 흔한 경우는 아니에요. 남편(스윗소로우 성진환)과 함께 떠날 수도 있었을 텐데요.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진짜 재밌는 이야기는 친구랑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물론 배우자와 모든 걸 함께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많은 걸 함께하면 좋지만, 모든 것은 아니에요. 이를 테면 제가 영화 <바닷마을 다이어리>를 너무 보고 싶은데 남편 스케줄과 안 맞아서 함께 못 볼 수가 있어요. 그래서 못 본다? 하면 억울하잖아요. 이 영화를 나만큼이나 좋아할만한 사람이랑 보는 게 더 좋을 수도 있고요. 다행히 남편은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 저를 이해해주는 부분이 많아요. 하지만 분야는 약간 달라요. 제 음악을 듣는 사람을 제가 충족해주는 것과 그의 음악이 그의 팬을 충복해주는 방식이 달라요. 저는 팝가수 남편이라고 부르는데요. 남편은 조금 더 꿈을 파는 사람 쪽인 것 같아요. 제 음악은 꿈이 깨졌을 때 들으면 좋은 음악이고요. 서로의 업계는 알지만, 장르가 다르기 때문에 완전히 겹쳐지진 않아요. 그래서 좋아요. 만약 같은 장르의 음악을 했으면 작업실에서 들려오는 음악이 거슬렸을 거예요. “저 후렴구는 이렇게 불러야 하는데”라면서 지적할 수도 있고요. 서로가 어떤 고생을 하는지는 잘 알지만, 직접적으로 내 고생이랑 같지는 않아서요. 오히려 균형감이 있는 관계라고 생각해요.

 

여행을 간다고 했을 때, 남편의 반응은 어땠나요?


다행히 그가 좋아하는 제가 이런 저예요. 그렇지 않다면 연애만 하다 헤어졌겠죠. 남편은 제가 안 그래도 되는 일을 자꾸 고민하는 성격,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걸 잘 알아요. 뭔가를 두고 꾸물거릴 때, “왜 그렇게 복잡하게 살아”라고 말하지 않는 사람이라서요. 감사해요. 여행을 간다고 했을 때는 “서운하지만 어쩔 수 없지”라고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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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를 하는 게 더 용감한 행동


책 프로필에 출생연도를 쓰셨더라고요. 의외라고 생각했어요. 요즘 굳이 나이를 잘 안 밝히는 세상인데요.


그래서 썼나 봐요.(웃음) 저는 책을 읽을 때 작가의 나이를 알면 재밌더라고요. ‘이 사람이 몇 살 일 때 이런 생각을 했구나’ 짐작할 수 있어서요. 반면에 숨겨서 매력적이게 된다면, 오히려 그걸 드러내고 싶은 생각도 있어요. 또 이 책은 나이와 관계가 있기도 해요. ‘36세 한국 여성은 이런 생각을 해’가 아니고요. 내 입장에서 35, 36세 때 ‘나는 이런 생각을 했어’의 의미예요.

 

트위터에 종종 글을 올리시는데요. 책이 출간됐을 때 홈페이지 ‘지은닷컴’에 이런 글을 쓰셨더라고요. “트위터에서는 홍보랍시고 책 관련 얘기나 상황을 자주 쓰는데 얼마나 공해일까 싶기도 하고…” 글을 읽다가 픽 웃었습니다. 자기검열을 많이 하는 편이라고 생각했어요.


(웃음) 최근에 알았어요. 제가 자기검열을 많이 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보면 비겁한 일일 수도 있어요. 이미 민폐를 끼쳐놓고는 “민폐 끼쳤네. 죄송해요”라는 거잖아요. 하지만 검열만 하다 보면 아무 것도 못하니까요. 그래도 뭔가를 하는 게 더 용감한 행동이라고 생각해서요. 하긴 하는데 어려워요.

 

간혹 “2년 전 내 글을 보면 낯간지럽다”는 저자들이 있어요. 동의하나요? 『익숙한 새벽 세시』도 2년간 쓴 책인데요.


지금 시점에서 낯간지럽고 오글거린다고 생각하는 글은 전부 뺀 것 같아요. 인쇄 전날까지도 계속 고쳤거든요. 작년 11월 말에 제게 통과된 글들이 살아남았어요.

 

마감 압박에 대한 이야기가 기억이 나네요. 지은 씨의 친구 분은 “마감 일이 지났어도 납득이 갈 때까지 작업하라”고 조언했어요. 지은 씨는 정신과에서 상담을 받았고 ‘번아웃신드롬, 탈진증후군’이라는 진단도 받았어요. 지금은 어때요?


많이 괜찮아졌어요. 번아웃신드롬은 일을 완성을 못 시키는 병이에요. 책에도 썼지만 내 한계를 아는 게 정말 중요해요. 더 잘하려고 하는 마음이 무조건 더 좋은 결과를 주는 게 아니라서요. 어떤 사람은 정말 잘해내지만 나는 여기까지밖에 못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게 중요해요. 이게 용기더라고요. 한계를 뛰어넘는 게 오히려 너무 오만한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책을 쓰면서 ‘내가 이만큼까지 할 수 있구나’를 깨달았어요.

 

한 달간 교토 여행에서 쓴 글이었나요? “외부에서 무언가를 얻으려 했을 때에는 실패했고, 바라지 않았던 순간에 얻었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몇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또 뭔가를 얻으시려는 모습이 읽혔어요.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항상 놀랐어요. 스스로의 한심함에 대해서요.(웃음) 요즘은 “아, 또 이랬네?”하고 그냥 포기하게 됐어요. 20대 초반 패기가 많은 사람이 보면 한심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죠. 하지만 제가 이런 사람이니까요. 후회를 해도 한 번에 코트를 두 번 사는 일이 앞으로는 없을 거라는 장담은 못해요.

 

만약 지금 자기소개서를 써야 한다고 가정할게요. ‘장점’이라는 빈칸을 채워야 한다면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어요?


그래도 조금은, 우울해하는 사람에게 위로가 되는 것 같아요.

 

단점은요?


한심해요. 약간 진상인 것도 같은데요. 가장 자괴심을 느낄 때는 스스로의 이기심 때문에 친구에게 어떤 이야기를 끊임없이 할 때예요. 이 친구는 제 이야기가 엄청 재미없을 수도 있잖아요. 또 말실수라든지, 어색해 하는 것, 예민한 것도 단점이에요. 책에도 썼지만, 음악을 한다는 이유로 용서 받는 게 있다면 그게 너무 부끄러워요. 지금 인터뷰를 하면서도 마찬가지예요. 만약 제가 용기가 난다면 인터뷰 영상을 볼 텐데요. 만약 기자님의 말을 끊거나 조리 있게 말을 못하는 장면을 본다면 스스로를 엄청나게 혐오하게 될 거예요.

 

전혀 그렇지 않아요.(웃음) 오지은 씨의 글을 읽으면서 계속 느낀 점이 있어요. “나 대단한 사람 아니에요.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보다 더 위대한 일, 대단한 음악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절대 생각 안 해요”라고 속삭이는 것 같았어요.


맞아요. 항상 저는 회사원의 딸이라고 생각해요. 출근을 하지 않는데 벌어먹는 삶에 대한 죄책감을 떨쳐버린 게 얼마 안 됐어요. 오히려 무가치하다는 생각도 많이 하고요. 이 강박을 조금 버려볼까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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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나를 위로 받은 기분


요즘 독자, 팬들은 눈치가 정말 빨라요. 저자가 조금이라도 겉멋을 드러내면 싫어하죠.


정말 무서워요. 정말 귀신같이 알아요. 음악을 할 때도 그래요. 가수가 자신의 음악에 취해서 부르는 것 같지만, 취하면 안 되거든요. 잘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생각해요. 저는. 내가 먼저 울어버리면 남이 못 우니까요.

 

『익숙한 새벽 세시』를 읽은 총평은 이래요. 망설이고 망설인 끝에 한 줄을 쓰고, 또 지우고. 그러다 이러면 아예 못 쓰겠다 싶어서 솔직하기로 작성하고 쓴 글. 독자들도 이 마음을 읽을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어요. 


2년이라는 시간 동안 쓴 글이잖아요. 기왕이면 남에게도 가치가 있으면 좋잖아요. 또 돈을 받고 파는 책이니까요. 사실 이 책은 실패담을 읽고 싶어서 쓴 글이에요. 솔루션을 내주는 책 말고 실패담을 읽고 싶었는데, 제가 능력이 부족해서인지 못 찾았어요. 저는 직장생활을 안 하니까 남들보다 시간이 많아요. 또 재주가 있다면 쓸데없는 걸 오래 생각하는 재주가 있어요. 누군가는 이별하고 빨리 잊을 텐데, 저는 뭔가를 길게 생각하고 곱씹고 음악으로 만들게 되는 인간이니까요. 베짱이가 사회에서 밥을 빌어먹는 방식인 거예요. 아침부터 밤까지 일하고, 출퇴근 하는 사람들과 별반 다르지 않아요. 단지 그들은 주구장창 생각할 시간이 없죠. 그러니까 압축적으로 음악이나 책으로 되새김질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요.

 

“무라카미 하루키의 『먼 북소리』를 읽고 과거의 나를 허락 받은 기분, 현재의 나를 위로 받은 기분, 미래의 내가 겪을 막막함을 미리 건네 받은 기분이었다”고 쓰셨잖아요. 지은 씨 말처럼, 만 원이 조금 넘는 돈, 500쪽짜리 글로 이렇게 많은 감정을 얻을 수 있는 물질은 책밖에 없는 것 같아요.

 

이제 내가 엄청나게 대단한 사람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요. 그렇다면 한심한 나를 잘 데리고 살 방법을 찾아야 하잖아요. 어떻게 하면 덜 미워하고 덜 추해질까를 고민해야 해요. 이런 제게 하루키의 글은 고마운 존재였어요. 자신의 막막함을 털어놓는다는 게, 독자에게는 힘이 될 수도 있는 것 같아요.

 

가수 오지은의 음악을 기대하는 팬들도 있을 텐데요.


이제까지 해 온 노래들은 소위 뱃심을 많이 쓰는 음악이었어요. 사람을 '절규'라고도 이야기하는, 과한 창법을 쓰는 곡이 많았는데요 지금 준비하는 노래들은 낮은 음역대에서 힘없이 부르면서 더 슬프게 들리게 하려는 곡들이에요. 할 수 있다면 너무 좋을 것 같아서요. 책 띠지에 적은 문구가 다음 앨범 주제예요. “한줌도 되지 않아 꺼낼 수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작고 하찭은 마음.” 어쩌면 이 책과는 대구가 될 수도 있어요. 청춘이 반짝이는 시절이라고 한다면, 이 반짝임이 없어진 후의 창작자에 대해 증명하고 싶은 게 있어요. 원숙미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치부하고 싶진 않아요. 파도 타는 것 같은 감정의 격랑은 없지만, 격랑이 있어야만 음악이 힘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래서 그렇지 뭐”라고 이야기하는 것 안의 묵직함, 빠져나갈 수 없는 절망을 노래로 만들고 싶어요. 언뜻 들으면 쉽지만, 가사를 곱씹다 보면 약간 멈추게 되는 그런 류의 음악을 하고 싶어요. 하게 된다면 올해는 성공한 해일 텐데요. 지금 생각해보니, 이 힘을 갖기 위해 도망을 가야만 했던 것 같아요.

 

앨범은 언제 나오나요?


실제 나오는 일정과 상관 없이, 계획은 3,4월쯤이에요.

 

최근에 읽은 책 중에 좋았던 작품이 있나요?


히가시무라 아키코의『그리고 또 그리고』를 재밌게 읽었어요. 일본 만화가의 작품인데요. 자기가 시골에서 그림 공부하던 시절의 이야기예요. 쉽게 읽히고 웃기지만, 사실은 엄청 묵직한 작품이에요. 젠체하지 않고 자신의 직업에 충실할 뿐인데, 결실이 좋을 때 박수치게 되잖아요. 이 만화가 그래요. 올해 5권이 나온다고 해서 기다리고 있어요.

 

수많은 여행책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다고 하셨는데요. 오지은의 독자들은 오지은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할 거예요.


새로운 한심함이 저를 괴롭히지 않을까요? 새삼 팬케이크가 먹고 싶어서 사먹었는데, 예상한 맛이 아니었을 때. 새삼 놀라진 않겠지만요. 그래도 뭔가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것 같아요.

 

『익숙한 새벽 세시』는 어떤 독자에게 추천하고 싶나요?


나이는 먹고 있는데, 자기가 꿈꿔온 어른의 모습과 다르다는 사실에 당황하고 있는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아요. 사실 중요한 이야기는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해요. 바보 같은 농담이, 트위터에 올린 귀여운 고양이 사진, 멍청한 드립 같은 게 삶을 구원할 수도 있어요.(웃음)


자신을 믿을 수 없어서 너무 노력하게 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착해서 호구라는 말을 듣기도 하고, 넌 대체 왜 그래?라는 말을 들어도 웃는 것밖에 못하는 사람들. 도무지 자연스러워질 수 없는 사람들. 어두운 부분은 꼭꼭 숨기고 밝은 곳을 동경하지만 발이 닿지 않는 사람들.

 

나는 기원한다. 스스로를 부정하는 것, 스스로의 아픔에 오히려 허용하고 있던 어리광, 이해받고 싶어서 오히려 세우고 있는 가시, 그런 것들을 조금씩 털어내고 걸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그리고 그런 과정에서 부디, 있는 그대로 당신을 바라봐주고, 가끔 당신이 항상 빠지는 구멍에 또 빠져서 허우적댈 때, 아무 일도 아니라고 말해주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기를. 구원은 있으니까. 나는 그렇게 믿는다. (『익숙한 새벽 세 시』 121~122쪽)

 

장소협찬: 카페 베를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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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새벽 세시오지은 저 | 이봄
그는 회색의 세계, 성장이 없는 세상, 단단하게 박힌 돌이 가득한 길을 용기 있게 대면하여 얻어진 것들로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그 말은 세상이 하찮다 여긴 마음과 그런 작은 마음을 드러내면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는 큰 외침의 방패막이 되어준다. 그래서 그가 체념 대신 용기를 선택했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새삼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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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브 클럽이 살아야 뮤지션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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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빵'이 오픈한 지 어느새 22년이 되었다. 처음에는 연극, 무용, 영화 등 다양한 문화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복합 문화 커뮤니티'로 시작하였지만, 지금은 홍대의 대표적인 라이브 클럽으로 자리를 잡았다. 2004년에 이대 후문 쪽에서 지금의 산울림소극장 주변으로 이사를 왔고, 클럽의 이름은 먹는 '빵'이 아니라 감옥 '빵'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푸른 새벽', '이장혁' 등 초창기 멤버부터 현재 '코가손', '사람 또 사람'까지 아직도 '모던록'이라는 정체성을 분명하게 지키고 있는 라이브클럽 '빵'. '문을 닫는다'는 소식이 연일 쏟아지고 있는 라이브클럽들 사이에서 반갑고 고마운 소식을 하나 내놓았다. 8년 만에 네 번째 컴필레이션 앨범 < 라이브클럽 빵 컴필레이션 4 >를 발매한 것이다. 관객들이 눈에 띄게 줄어 조금은 휑한 공연장에서 김영등 대표를 만났다. 그도 예전보다는 조금 더 야윈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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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대중음악 씬에서는 '싱글' 발매 형식이 대세이다. 그런데 46곡을 가득 채운 '앨범'을 발매한 이유가 무엇인가?


빵 컴필레이션 앨범이 4번째다 보니까 음반을 기다리는 팬들의 기대가 높아졌고요. 지금 빵에서 활동하는 뮤지션들도 많기 때문에 싱글 방식보다는 앨범으로 발매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CD를 내지 않고 온라인으로만 낼 것도 생각했지만 손에 잡히는 기록물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4집이 무려 8년 만에 나왔다. 그동안 어려움도 많았을 것 같은데, 어떤 과정을 통해 나오게 됐나?


버릇처럼 2, 3년에 한 번은 '올해는 꼭 낸다.'라는 말을 했어요. 결국 2015년 초에 결심을 했어요. 관객들 활력이 약해진 것에 어떤 전환점이 되지 않을까 생각을 했습니다. 이번에는 3집과 달리 참여하는 뮤지션이 컨셉이나 주제를 알아서 정하고 각자 녹음하는 방식으로 만들었습니다. 최대한 뮤지션의 자율에 맡겼고 마스터링은 총괄 프로듀서를 맡은 일렉트로닉 뮤즈 대표 김민규 씨가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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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클럽 컴필레이션 앨범'이 많이 나왔다. 하지만 현재 지속적으로 발매가 되는 곳은 '빵' 밖에 없는 것 같다. 각 앨범이 가지는 의미가 다를 것 같은데?


빵 컴필레이션 1집은 제가 오히려 신의 유행을 따라가다 보니 늦은 감이 있었습니다. 당시 환경이 열악한 상황이어서 '여자화장실'이라는 녹음실에서 장비를 빌려와 빵에서 녹음을 했어요. 클럽에서 레코딩을 했기 때문에 빵 초기 음악 스타일이 기록되어 있죠. 2집은 뮤지션들 각자 녹음해온 것을 취합하는 형식을 택했어요. 현재 '빵'하면 팬분들이 그리는, 어쩌면 빵의 근간을 이루는 이미지가 담겨 있어서요. 온라인 유통을 하지 않았음에도 반응이 괜찮았어요. 2004년 홍대로 이사 온 후 2007년에 3집을 발매했는데요. 이때는 인디 신이 전반적으로 탄력이 붙은 상태여서 앨범 반응이 상당히 좋았습니다. 카바레 사운드, 비트볼 등 여러 레이블과 협업을 했던 아름다운 기억이 나네요. 그 수익으로 이번 4집의 제작비 일부를 충당하기도 했고요. 4집은 아무래도 현재를 기록한다는 의미가 크긴 한데…. 앞으로 의미가 부여되지 않을까요.

 

요즘 라이브 클럽이 참 어렵다. 끈기를 갖고 빵 운영을 지속하고 있어 감사한 마음이 든다.


주변에 기업에서 하는 공연장들이 참 많이 생겼어요. 확실히 찾는 사람도 줄고 어려운 상황입니다. 예전에는 강한 자가 오래가느냐, 오래가는 자가 강한 것이냐는 질문에 자신 있게 후자를 택했어요. 개인이 신념을 지니고 정진할 때 인디신의 활력을 더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요. 그런데 최근에는 실패하더라도 최대한 열심히 불태워보는 게 좋은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산소호흡기로 생명만 유지만 하는 것보다는 달려보는 게 낫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서 빵뿐만이 아니라 프리마켓도 진행하고 컴필레이션 앨범도 만들고요. 활동가들도 다시 모집하면서 새로운 지속 시스템을 만들고 유지하려는 고민을 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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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라이브 클럽만의 역할이 있었다. 개인적으로도 우연히 공연을 왔다가 특별한 신인을 보물처럼 찾아낸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은 인디 뮤지션들이 데뷔할 수 있는 경로가 많지만 예전에는 별로 없었어요. 선택지가 많지 않았기에 많은 팀이 빵에서 오디션을 보고 활동했죠. 그래서 신인을 발굴하는 공간으로 역할을 많이 했습니다. 빵 출신 밴드는 어디 가서 욕은 먹지 않는다는 자신감이 있어요. '쌈싸페(쌈지 사운드 페스티벌)'가 활발할 때도 빵 출신들이 많이 활약했죠. 넬도 있었고 김사월X김해원, 얄개들, 오지은도 기억이 나네요.

 

'빵' 오디션의 선별 기준은 무엇인가?


물론 잘한다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겠죠. 저는 팝적인 음악을 좋아하는 경향은 있지만 '느낌'을 가장 중시하는 것 같아요. '실력파 뮤지션', 물론 좋은 말이지만 연주는 잘하는데 개성이 없다면 팬들이 먼저 알아차리더라고요. 보자마자 느낌이 충만하다 싶었던 뮤지션은 원맨 밴드 '아마추어 증폭기', 부산에서 올라와 멋대로 노래를 부르던 '김일두'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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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빵'에서는 해고에 맞서 투쟁하는 콜트콜텍기타 노동자들을 위한 '콜트-콜텍 문화제'도 계속하고 있다. 이도 다른 라이브클럽이나 공연장과 큰 차이 아닌가?


기본적으로 록은 저항입니다. 최근에는 음악인들이 사회적 발언을 하는 것을 터부시하는 문화가 있는 것 같아요. 음악을 일종의 순수문학으로 보고 '참여는 배제되어야 한다' 이런 의미로 말이죠. 빵은 이 점은 예전부터 다른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대중가요를 흥얼거리고 즐기는 것도 좋지만 사회를 살아가는 이상은 날카로운 시선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오랜 시간 동안 인디씬을 지켜봐 왔다. 현재 인디씬의 음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전반적으로 연주나 여러 가지 측면에서 계속 진보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새로운 개성은 좀 정체되어 있는 과도기라는 생각은 들어요. 요즘은 많은 뮤지션들이 혼자 노트북으로 음악을 만들고 공연을 해요. 그러다보니 예전보다 신스팝과 슈게이징도 많이 나오고 있고요. 우리나라 음악이 세계적인 트렌드를 따라가는 경우는 예전에도 많았고 앞으로도 계속 존재하겠죠. 단지 여기에 밴드만의 유니크한 색채는 꼭 필요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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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지만 반드시 풀어나가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라이브 클럽의 활기와 발전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라이브 클럽의 공생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2004년에 '라이브 음악문화 발전협회(라음협)'가 설립되어 초기에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궤도에 이르고 나서는 이해관계 중심으로 운영된 것 같아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친목을 위주로 하는 소박한 활동이 아니라 공동의 이익을 위해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어요. 라이브클럽이 잘 되어야 더 많은 뮤지션에게 무대와 기회가 더 생기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매체나 마케팅에 의지하지 않아도 인디 생태 자체가 더 건강해질 거고요.

 

앞으로 클럽 '빵'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인디씬 초기부터 몸담은 관계자들이 있잖아요. 1990년대 초반부터 활동하던 사람들은 이제 거의 40대가 넘었는데 나이가 먹으면서 자연스레 경험도 쌓였죠. 그것을 허투루 버리지 않고 꼰대가 아니라 친근한 어른으로서 제 역할을 하면 좋겠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 김반야, 윤은지, 이기찬
정리: 이기찬, 김반야
사진 : 윤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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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장우철 “그때만 알았던 것들이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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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Q Korea>의 에디터 장우철이 두 번째 에세이 『좋아서 웃었다』를 출간했다. 책의 부제는 ‘오늘, 편애하는 것들에 대한 기록’. 지난 200일 동안 그의 시선과 마음이 머물렀던 순간들을 찍고, 써서, 남겨놓았다. 어떤 날은 오래된 기억을 환기시켰고, 어떤 날은 일상에서 스쳐가는 것들이 ‘그냥 좋아서’ 바라봤다. 덩그러니 한 장의 사진만 남겨놓고 말을 아낀 하루도 있었다. 창문을 타고 넘어 들어온 햇살, 그 아래 놓인 이불, 그 곁에 있는 꽃과 그릇, 오래된 음반… 눈길이 닿는 곳마다 이야기가 있다.

 

책장을 넘기며 남다른 그의 감성에 놀랐고,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것이 그만의 것이 아니라서 놀랐다. 투박하다거나 평범하다는 말 안에 가둬둘 수 없는, 누구와도 같지 않은 하루가 나에게도 당신에게도 있다는 걸, 그가 일러주었기 때문이다.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씨가 예상됩니다’라는 익숙한 이야기로 시작되었던 날, 그러니까 지난 19일, 그를 만나러 가는 동안에도 특별할 것 없는 생각들이 떠올랐다. 귀가 떨어져 나갈 것 같다든지 뺨의 감각이 없어지고 있다든지 하는. 물론 장우철이라면 이렇게 뻔한 말들을 늘어놓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물었다. ‘오늘은 어떤 하루였나요?’ 돌아온 대답은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역시 그에게는 남다른 감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 이야기는 분명 장우철의 마음에 들지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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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팍한 일상이라는 게 있을까요?


오늘은 어떤 하루였나요?


오늘 제가 인스타그램에도 잠깐 올렸는데, 아침에 너무 기온이 쌀쌀하니까 얼음으로 맞는 것 같은 기분이 들잖아요. 그런데 제가 올해 1월 1일에 계획이 있었거든요. 눈을 보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연말에 잠깐 갔던 전북 진안 쪽을 가고 싶었어요. 당시에 눈이 와서, 아마도 응달이나 산 밑에는 남아있겠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그래서 ‘눈 보러 1월 1일 아침에 무조건 일찍 일어나서 가야지’ 생각을 했고, 어머니가 끓여 주신 국을 먹고 아직 어두운데 차를 운전해서 진안으로 갔어요. 그러다가 결국 눈이 나왔고, 제가 제일 하고 싶었던 일을 했죠. 계곡에 내려가서 세수를 했어요. 그때 그 차가운 느낌하고 오늘 아침에 느낀 차가움하고 비슷했어요. 그래서 뭔가 1월 1일 같기도 한 날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대부분 일상은 평범이라는 단어와 한 쌍으로 쓰이잖아요. 그런데 작가님에게는 매일 특별한 순간들이 있는 것 같아요. 말씀을 들어보니 그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저는 ‘누군가 평범한 사람이 있고 나는 특별한 사람이다’라는 식의 생각을 전혀 할 수가 없고요. 누구나 다 특별하다고 생각해요. 누구나 다 평범하고요. 그런 것들이 저는 참 안타까운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어떤 사람에 대해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대로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선입견이 누구에게나 있잖아요. 그런데 그 사람이 그런 모습이 아닌 것을 보게 됐을 때, 그것마저도 ‘아 새롭구나’하고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왜 아니야? 왜 내가 생각했던 모습하고 다르지?’ 이런 식의 느낌들이 대중들에게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그게 참 이상해요. ‘누군가는 평범하게 무리 지어 있고 평범하지 않은 누군가가 따로 있는 걸까’ 생각해 보면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요. 누구나 그런 것들이 있는데, 다만 저는 그것들을 모아가지고 책으로 내놨으니까 조금 더 그렇게 보이는 것일 수 있어요. 그런 건 그냥 다른 것이라고 생각해요. 더 예쁜 것도 있고 덜 예쁜 것도 있는 것처럼, 그런 거죠. ‘다 평범한데 당신은 특별합니다’라는 건, 저는 되게 부끄러운 이야기인 것 같아요.

 

추운 날씨만으로 과거의 어떤 순간을 떠올리시는 걸 보면, 남다른 감각을 갖고 계신 것 같은데요.


누구하고도 다르겠죠. 저는 저니까요. 오늘도 그냥 그 날이 생각났다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사람들이 날 특별하게 볼 테니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 말하지 말아야지’ 할 수도 없잖아요. 그런 건 있는 것 같아요. 평상시에 사물을 대하거나 날씨를 대하는 데 있어서 조금 더 생각해 보는. 그런 측면에서 보면 사람들이 팍팍한 일상이라고 말할 때 ‘정말 그 사람들에게 일상이란 게 팍팍한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어요. 그런 사람도 즐기면서 맛있는 걸 찾아서 먹기도 하잖아요. 누구한테 기분 나쁜 얘기 들었으면 기분 나빠하기도 하고, 꽃을 샀으면 기뻐하고, 그런 게 다 일상이잖아요. 그런 걸 오로지 팍팍하다는 말로만 단정하고 있는 건 아닌가, 그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예요. 제가 서문에도 썼듯이 당신 옆에도 지금 꽃이 있고 예쁜 종이컵이 있어요. 그걸 보려는 마음이 하나도 없었던 거지, 제가 갖고 있는 게 특별한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미 옆에 있는, 내가 좋아하고 있는 것들을 돌보려는 마음을 가지고 한 번 더 다시 보고 싶은 시간을 갖는 게 저한테 조금 더 습관이 되어 있는 것뿐이에요. 

 

보통 ‘오늘 하루 어땠어?’라고 물으면 대답의 주가 되는 건 사건이고 감정은 곁들여지는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좋아서 웃었다』의 이야기는 다른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 말씀은 제가 글을 쓸 때 약점이기도 해요. 저는 정말 이야기에 약해요. 친구들과 만나서 이야기하는 건 잘 하는데, 하필 글로 쓰려는 순간 혹은 영화나 소설을 대하는 순간에는 이야기를 정말 잘 못 알아들어요. 영화를 볼 때도 중간 중간에 혹은 끝나고 나서 계속 옆 사람들한테 물어봐야 돼요.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보자면 저는 좀 이야기를, 더군다나 쓰는 것에 있어서는 잘 못해요. 기억에 있어서도 어떤 일이 있었다고 기억하지 않고 그때의 인상 같은 것들이 확실히 더 중요하게 남아있는 것 같고요.

 

책 속의 어떤 글들은 시(詩)처럼 느껴졌어요.


운문형 인간과 산문형 인간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확실히 산문형 인간이 아니거든요. 어쨌든 시라는 형식에 더 습관이 되어 있어요. 소설을 읽는 것보다 시집을 읽는 걸 훨씬 좋아하고, 소설을 써 본 경험은 없지만 시를 써 본 경험은 있고, 그런 식의 배워온 시간이 있으니까 당연히 그렇게 드러나는 거라고 생각해요. 이건 에세이고, 이건 일기고, 그런 식으로 제가 쓴 글을 규정한 적은 없어요. 어떤 분들은 ‘이 사람은 왜 이렇게 썼지’라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그게 저예요’라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게 제 눈에는 더 좋아 보이고 잘 읽히니까 그렇게 쓴 거예요.

 

시를 쓰신 적이 있다고요. 문청 시절을 보내셨던 건가요?


꿈꾼 적은 없고요. 대학교 때 시 쓰는 동아리 이런 거 있잖아요. 시를 빙자해서 낮이고 밤이고 술을 먹는 모임. 거기에서 스무 살들끼리 겉멋이 들어가지고 다른 시인이 했던 말들을 마치 우리의 말인 양 하고 그러잖아요. 그런 식의 무드에 휩쓸려 다니던 시절이 있었던 거죠. 거기에서 걸러져 가지고 있는 게 있고요. 그런 치기까지 갖고 있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좋아하던 시인이 한 사람은 남았을 거고 ‘나는 이런 시들을 좋아해’라는 건 가지고 나왔겠죠. 그런 식으로 저한테 영향을 주는 게 있는 거죠. 시라는 매체가 주는 감이라든지, 저한테 소설이 아직까지 주지 못하는 그런 부분이 당연히 있죠.

 

말씀하신 것처럼 ‘운문형 인간’에 가까우신 것 같은데, 시를 계속 쓰지는 않으셨네요.


옛날에 시 동아리에서 합평을 할 때 제일 많이 들었던 이야기가 ‘쟤는 시작(詩作) 메모로 쓴 게 훨씬 더 좋다’는 거였어요. 저는 시는 못 써요. 1행이나 1연은 쓸 수 있을지 몰라요. 하지만 시가 가져야 하는 완결성에 있어서 저는 턱없이 부족한 것 같아요. 책에서 쓴 글이 시처럼 보인다고 말씀해 주시는 건 저한테 굉장한 칭찬으로 들리기는 합니다만 사실 마음속에서는 너무 너무 부끄러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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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서 웃었다』는 다시 1년을 던져주는 책

 

집필을 시작하시기 전에, 어떤 책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셨나요?

 

오히려 그건 책이 나온 다음에 느꼈던 것 같아요. 처음으로 책을 받아서 처음부터 끝까지 읽기 전까지는, 솔직히 이야기하면 약간 의심이 있었어요. 첫 책 『여기와 거기』를 굉장히 공을 들여서 만들었거든요. 『좋아서 웃었다』는 그만큼 공을 들이지 않았다고 생각했었어요. 왜냐하면 『여기와 거기』를 만들 때는 하나도 (내려)놓은 게 없어요. 사진도 잘 찍는 사람이어야겠고, 냉정하기도 해야겠고, 솔직하기도 해야겠고, 누군가를 인터뷰할 때는 냉철하기도 해야겠고, 하지만 뭔가 푸근한 면도 보여줘야겠고… 그때는 그게 에디터이고 그게 나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게 다 모여있는 책이다 보니까, 제 친구들 같은 경우에는 굉장히 많이 비웃어요. ‘풉’ 이러는 거 있잖아요. 제가 보기에도 그럴 만한 요소들이 있어요. 하지만 제가 거짓말을 한 건 아니기 때문에, 그만큼의 민망함은 있을지언정, 그것대로의 아름다움이 있을 수 있고 추억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좋아서 웃었다』에서는 많이 달라졌나요?


조금 더 수월하다면 수월하게, 쭉 흘러가는 느낌으로 구성됐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책이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내가 이전 책에 비해서 공을 덜 들였다’는 생각을 하게 됐었던 건데요. 책을 처음 읽으면서 제가 훨씬 더 부드러워졌다는 생각을 했어요. 제 글을 읽으면서 턱턱 걸리지도 않았고, 어깨의 힘을 조금 빼고 썼다고 할까요. 뭔가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게 있었어요. 그래서 ‘이 책에 이런 미덕이 있구나’라고 스스로 생각한 순간이 있었어요. 그러고 나서는 괜찮았죠.

 

<GQ Korea>의 기사와는 또 다른 문체를 보여주신 것 같습니다.


그렇죠, 당연히. 포맷이 바뀌면 원고도 바뀌어야죠. 저는 수정, 첨삭이라는 부분에 있어서 굉장히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사진을 예로 들면, 내가 사람들한테 어떤 것들을 내보내는데 왜 카메라 회사가 만들어낸 규격대로만 사진을 찍어야 되는지 모르겠어요. 내가 내 것을 보여주는데, 내 솔직함으로 내 꿈과 생각대로 보여줘야 하잖아요. 그때그때 마음이 바뀌면 당연히 글도 바뀔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잡지에 실린 글들이 호흡도 빠르고 빽빽하게 들어차 있다는 느낌이라면, 이번 책에 실린 글들은 호흡도 느리고 여백도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의 작가가 확연히 다른 두 개의 문체를 가진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저한테 그건 되게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이를테면 기사 원고는 마감 때 막 쓰잖아요. 그리고 빽빽한 기사 형태의 글은 제가 굉장히 어려워하는 글이에요. 저는 기사 쓰는 걸 굉장히 어려워하는데요. 어느덧 제가 쓰는 투가 생기다 보니까 조금 수월해진 면은 있지만, 여전히 취재 기사를 쓰는 형식을 굉장히 어려워해요. 제가 취재 기사를 굉장히 고민해서 잘 썼다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니라, 제 기사도 잡지 기사의 일반적인 톤이나 사람들한테 권장할만한 톤하고는 조금 달라요. 그래서 저를 모범 삼아서 보여줄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러기에는 굉장히 이상한 답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GQ>에서 해 온 색깔이 있고 제가 보낸 시간이 있으니까 스타일이 생겼을 뿐이지, 기사답게 쓴다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그렇게 보면 회사에서 저는 일을 하고 있는 거고요. 이건 제 작품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달라요.

 

『좋아서 웃었다』는 손으로 꾹꾹 눌러 쓴 편지 같고 <GQ>에 실린 기사는 빠르게 키보드를 두드려서 끝마친 원고 같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시간은 말씀하신 것과 비슷했을 수도 있어요. 기사 원고를 쓰는 데 들이는 시간이 더 짧은 건 맞아요. 사실 이 책은 굉장히 두고두고 썼다고 말하는 게 맞아요. 책을 쓰면서 글을 고치기보다 그 날을 진짜 겪으려고 했어요. 그게 제 태도 중에 있었던 것 같아요. 1월 10일의 글을 10월에 쓴다거나 하는 식으로 미루거나 당기거나 하면서 썼지만 정말 거의 1년 동안 썼어요. 그래서 9월 27일에 생각난 것들을 메모라도 해두었다가 9월 27일에 넣으려는 마음이 있었어요. 9월 26일에 넣지 않으려는 마음이 있었어요. 그 마음과 생각을 가지고 정말 1년 동안 쓰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죠. 특히 그 마음이 진해졌을 때가 지난 해 가을 추석 즈음이었거든요. 그래서 책에서 그 부분을 보면 제가 어떤 기분으로 이런 글을 썼는지 기억이 나요. 어떤 식으로든 더 집중하려고 하면서 뭔가를 했던 기억이요. 어떻게 보면 한 사람의 독자인 저에게는 『좋아서 웃었다』가 다시 1년을 던지는 책이에요.

 

책 속에 담긴 건 굉장히 개인적인 기록인데, 구구절절 앞뒤 상황을 설명하지도 않았어요. 독자 입장에서는 이야기를 이해하거나 감정을 알아채기가 쉽지 않을 수 있는데, 그런 데에 연연하지 않으신 것 같아요.

 

그 마음은 맞아요.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고요. ‘모르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아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라는 기분이 있었어요. 그게 저예요. 제가 어떤 에세이를 느끼면서 제일 싫어하는 느낌이 있어요. ‘당신도 이런 일이 있지 않나요?’라는 식의 투예요. 저는 일상의 어떤 순간에도 내가 알지도 못하는 어떤 사람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싶다거나 그런 생각은 해 본 적이 없어요. 저는 책을 쓰는 게 누군가를 향해서 제 손을 잡으세요, 라고 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여태까지 감동을 느꼈던 글들도 저한테 ‘나처럼 해봐요 이렇게’라고 이야기한 적이 없었어요. ‘나도 이 사람처럼 공감했어, 이 사람도 나랑 똑같은 생각을 하는구나’ 하는 식으로 감동을 느껴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어요. 그런데 제가 어떻게 그런 식의 사기를 쳐요? 그건 제 언어로 이야기하면 사기 치는 거거든요. 그럴 수 없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당신에게 이 글을 바치는 거예요, 여기를 추천해요, 같이 읽어보세요’ 이런 마음은 조금도 없었어요. 그게 어떤 독자에게는 쌀쌀맞다 앞뒤가 없다 등 여러 가지로 느껴질 거라고 생각해요. 그건 어쩔 수 없죠. ‘아니에요, 저는 당신에게 따뜻한 마음을 드리고 있는 거예요’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게 아니에요 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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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는 나의 힘


한편으로는 작가님의 감성을 알 듯 모를 듯 해서 조급증이 나기도 했어요(웃음).


그건 제 태도하고 관련이 있는 건데요. 솔직하게 쓰고 계절을 겪으면서 쓰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많이 덜어내는 쪽으로 가게 됐어요. 일기는 써놓고 나서 일기장을 닫으면 고칠 수도 없고 편지를 써도 버리면 끝이지만, 저는 이걸 써놓고 나서 계속 보게 되잖아요. 어제 써 놓은 편지가 오늘 아침에 마음에 들 확률이 적듯이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어도 뭔가를 더하고 싶은 건 아니었어요. 이건 이야기 안 하는 게 맞아, 라는 식으로 가게 됐죠. 그게 제 나름대로 사기를 덜 치는 방법이라고 생각을 하다 보니까 빼게 되는 거예요. 예를 들어서 코스모스를 봤을 때 당연히 여러 기분이 들었죠. 그렇지만 내가 모르는 독자들에게 전하는 방식에 있어서 그 이야기를 하는 건 오히려 더 거짓말 같았어요. 그럴 때 사진이라는 건 굉장히 유용하죠. 말로 뭔가를 괴롭히지는 않잖아요. 그냥 시각적 이미지만 주니까 받아들이기가 조금 더 수월한 건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사진의 도움을 많이 받은 편이고요. 그러다 보니 언어와 말은 될 수 있으면 덜어내는 쪽으로 갔던 것 같아요.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삼다 보면, 문득 ‘말과 글이라는 게 쓸데없이 많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도 있을 것 같은데요. 어떠세요?


데없이 많은 글이 있고 쓸데없이 많지 않은 글도 있죠. 다만 제가 글로 써서 저를 표현하고자 할 때는, 저는 긴 글은 저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건 알아요. 제가 긴 글을 잘 못 쓰는 스타일이라고 해서 ‘나는 긴 글을 싫어해’라고 이야기할 필요는 전혀 없어요. 그런데 대부분은 그런 식으로 자기를 규정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어딘가에 글을 쓸 때 ‘저는 이게 싫고 이게 좋습니다’ 하고 단정적으로 표현하게 되는 거죠. 그것이야말로 자신한테 솔직하지 못한 방식인 것 같아요. 제 입으로 이야기하기 조금 민망하기는 하지만, 제가 이 책에서 독자로서 좋았던 부분이 있었어요. 확신이라는 말을 쓸 때마다 제가 ‘쓸데없다’는 표현을 수식으로 달았더라고요. 저도 모르게 쓴 건데요. 정말 좋았다는 확신이 들 때면 쓸 데 없는 확신이 들었다거나 헛된 느낌이었다고 썼더라고요. 독자로서 저는 그게 좋았어요. 왜냐하면 그게 나라는 걸 저는 알거든요.

 

‘사실 필요한 말들은 이렇게까지 많지 않은데’라는 생각이 들 때는 없으세요? 단 몇 줄의 문장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고, 많은 설명들이 부질없다고 생각될 때가 있잖아요.


정말 공들여서 찍었다고 생각하는 사진들인데 모아놓고 보면 ‘이게 정말 내가 좋아하는 건가?’ 생각이 들 때가 있죠. 제가 지금까지 좋아한다고 생각한 사진작가들의 작품들하고 언뜻 뭔가 통해야 될 것 같은데, 아닌 거예요. 감상자로서 내가 찍은 사진을 보면서 ‘이런 사진이 실린 사진집이 있었으면 내가 샀을까?’ 라는 생각을 갖게 만드는 거예요. 물음표가 생기는 거죠. 글도 마찬가지인데요. 저는 그렇게 물음표가 생기는 순간이 좋아요. 내가 조금 더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어떤 영화를 대하든 음악을 듣든 ‘이게 뭐지?’ 싶은 부분이 있을 때가 너무 좋아요. 저를 모르게 만드는 것, 또는 제가 가지고 있는 것과는 다른 걸 이야기하는 것들에서 훨씬 더 많은 쾌락을 느끼는 것 같아요. 그래야만 하고요.

 

요즘 많이 하는 생각들은 것들은 무엇인가요? 이따금씩 떠오르는 질문들이 있나요?


아주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세월호예요. 문득 문득 계속 생각하는데, 저를 감성적인 상황으로 이끌어가는 주제는 아니고요. 지금이 책을 낸 시점이기도 하고 연말연초 기분이 있다 보니까, 저한테는 ‘돌아보려는 마음’이 조금 더 큰 주제인 것 같아요. 연연한다는 말이 굉장히 부정적으로 쓰이는데, 저는 과거에 연연해요. 저한테는 과거가 너무 중요해요. 단적으로 비교를 한다면 저한테 미래는 하나도 안 중요해요. 나중에 무엇을 하겠다든지 어떤 사람이 되겠다든지 어디로 여행을 가고 싶다는 식의 에너지보다, 과거를 살피는 마음이 훨씬 더 좋은 에너지가 돼요. 예를 들면, 지난해 갔었던 여행지를 다시 떠올려보는 마음이나 그때 누나하고 했던 이야기들을 더 잘 떠올려 보려는 마음, 엄마가 떠 주신 옷을 보는 마음, 그게 훨씬 더 큰 에너지가 되는 거예요. 그러다 보면 새삼스럽게 무언가를 더 보게 되는 게 있어요. 문득 ‘이게 어쩌다 나한테 와서 이렇게 되었지’라는 마음이 드는 건데, 요즘에는 부쩍 더 그런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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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알지 못하는, 그때만 알았던 것들이 있죠


『좋아서 웃었다』에는 작가님의 취향을 짐작하게 하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것들도 과거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하세요?


과거로부터 많은 면들이 오죠. 드리스 반 노튼이라는 디자이너를 좋아하는 방식도 지금하고 10년 전하고는 너무 너무 다른 거거든요. 저는 그 사실 자체를 재미있게 생각해요. 조금 다르게 이야기하자면 ‘나는 옛날부터 좋아했어’ 라는 이야기는 저하고 안 맞는 거예요. 물론 좋아한 건 옛날부터였지만 그때 좋아하는 것하고 지금 좋아하는 것하고 너무 다른데, 그건 ‘옛날부터 좋아했어’라는 문장으로는 표현이 정확하게 되는 게 아니에요. 어떤 의미에서 굉장히 사기 치는 거예요. 그렇게 표현하고 싶지 않아요. ‘지금 제가 제일 좋아하는 디자이너는 드리스 반 노튼입니다’라고 이야기하는 게 맞아요. 그런 게 제가 확고한 취향을 가진 것처럼 보이게 하는 면일 수도 있고요. 혹은 ‘이 사람 취향을 잘 모르겠어’라고 이야기하는 부분일 수도 있는 거죠. 솔직한 제 마음은, 계절이 오듯이 바뀌는 제 기분이나 취향이나 관점을 스스로 들여다보고 싶고, 의심하고 싶고, 호기심을 갖고 싶다는 거예요.

 

책의 부제가 ‘오늘, 편애하는 것들에 대한 기록’입니다만, 단순히 개인적인 취향을 보여주고 싶으셨던 건 아닌 것 같아요.


에디터로서 혹은 이 책을 쓴 사람으로서 조금 더 사람들한테 보였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면 취향보다는 관점이에요. ‘나는 이런 취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 것만 좋아하고 이건 싫어’ 라고 이야기하는 게 아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는 에디터는 그런 사람이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면 디올의 옷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잖아요. 그런 사람의 입장에서는 인터뷰하는 여배우한테 디올 옷을 안 입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겠죠. 하지만 그 여배우에게 디올 옷이 너무 잘 어울리는데 그걸 선택하지 않는 건 굉장히 잘못된 거예요. 그럴 때 필요한 건 관점이에요. 그걸 가진 사람이 에디터라고 생각하고, 그게 제가 에디팅을 하는 입장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사물을 보는 느낌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책에서 의도적으로 줄을 바꾸기도 하셨어요. 때로는 질서를 깰 때 글의 맛이 더 산다고 느껴질 때도 있죠. 그런데 에디터로서 글을 쓸 때는 허용되지 않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네, 당연히. 책에서 행을 바꾼 부분에 대해서는 서문에도 잠깐 썼는데요. 매거진에서 하던 게 너무 답답해서 그렇게 하고 싶었다기보다는, 이게 저한테 더 맞기 때문이에요. 저한테 더 솔직한 이야기이기 때문이에요. 이렇게 쓰면 ‘이 사람 멋 부린다, 시 쓰고 싶은가 봐’ 그런 이야기를 듣기도 하죠. 그런데 그 말이 맞아요. 저 멋 낸 거예요. 그리고 어떤 부분은 시처럼 읽히게 하고 싶었고요. 또 어떤 부분은 제가 독자로서 읽을 때 읽기 싫기도 한데, 그나마 이렇게라도 해 놓으면 제가 스스로 느끼기에 나은 거예요.

 

『좋아서 웃었다』에서 사진과 글로 남기신 부분들의 공통점이 있을까요? 개인적인 호불호를 떠나서 그 자리에 있는 모습 그대로가 너무 좋았던 것들을 담으신 건가요?


그렇게 딱 나눌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계속해서 봐왔던 것을 ‘어떻게 표현하는 게 제일 좋을까’라고 생각해서 제일 예쁜 곳에 놓고 찍은 사진도 있죠. 그렇게 찍으려고 했는데 설거지감에 쌓여 있는 게 더 예쁘다고 생각했을 때는 그 사진을 찍었어요. 그게 더 예쁘면 바꾸는 거죠. 표현하는 데 있어서 더 좋은 앵글이 있었을지도 몰라요. 후회한 부분도 당연히 있어요. 그런데 저는 ‘그때만 알았던 것들’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인 것 같아요. 사람들이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이렇게 이야기하잖아요. 지금은 마치 모든 것을 더 잘 알고 있는 것처럼, 그래서 그때도 그걸 알았더라면 훨씬 더 좋았을 것처럼 생각하는 거죠. 그 말도 맞아요. 그런데 저는 오히려 거꾸로 생각해요. 그때는 그때만 알았던 게 있어요. 오히려 지금은 그때 알았던 걸 몰라요. 그래서 저는 그런 것들을 보여주는 순간들을 되게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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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서 웃었다장우철 저 | 허밍버드
오늘, 나를 웃게 하는 것들에 대한 캘린더 형식의 기록 오늘 유독 좋아진 물건과 꽃, 나무, 풍경, 장소……. [GQ Korea] 에디터 장우철, 그가 홀로 꺼내 보며 비밀처럼 웃던 일들을 성심껏 매만지고 찬찬히 걸러, 1년 365일 중 약 200일을 캘린더 형식으로 나날이 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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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욤 뮈소 “내가 가장 집착하는 소재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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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지, 스릴러, 서스펜스로 가득한 이야기 를 전개하는 프랑스 작가 기욤 뮈소의 새 책 『지금 이 순간』이 지난 2015년 12월에 출간 되었다. 격정적이고 빠른 전개의 소설과는 달리 프랑스, 그의 작업실에서 만난 작가 기욤 뮈소는 매우 편안하고 온화한 인상을 풍기는 남자였다.

 

소설 『지금 이 순간』의 주인공 아서는 시간과 공간을 여행하는 응급의학과 레지던트 2년 차다. 아서의 인생이 어떻게 펼쳐질지는 책장을 넘기기 전까지는 절대 알 수 없다. 극도의 긴장감과 반전, 호기심으로 가득한 이야기는 손에서 책을 뗄 수조차 없게 한다. 한 편의 숨 막히는 영화를 본 듯한 그의 소설이 우리에 게 전해주는 메시지, 그것은 다름 아닌 지극 히 인간적이고도 단순 명료한 삶의 지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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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현실과 판타지, 스릴러, 사랑을 말하는 소설

 

『지금 이 순간』이 2015년 12월 한국에 출간되었어요. 한국에서 매우 반응이 좋은데, 소식 들으셨나요?

 

예, 사람들이 그러더군요. 책이 좋은 성과를 내고 있고 한국 독자들이 제 책을 매우 좋아해준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제겐 큰 기쁨이죠. 제게 한국은 매우 특별한 나라예요. 지금까지 제가 출간한 모든 소설이 6개월 뒤 한국에서도 번역 출간되었고 또 사랑받았죠. 그러다 보니 한국 출판시장과 독자들을 늘 생각하게 되죠. 5년 전인가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때를 아직도 잊지 못해요. 한 서점에서 사인회를 했는데, 사인을 받기 위해 밖에까지 길게 줄을 선 독자들의 모습을 봤어요. 저는 편안히 앉아 있는데 말이죠. 정말 몸 둘 바를 모르겠더라고요. 매우 감사했고 마음이 따뜻해졌어요.

 

다른 아시아의 나라들에서도 반응이 좋은가요?


 

한국과 비교할 수 없어요. 일본에는 단 한 권의 책만이 번역 출간되었고, 중국에는 몇 권인가 번역 출간되었는데 이번에 출간된 이 책은 호응을 얻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중국이나 일본에 비해 유독 한국에서 인기가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글쎄요. 전혀 모르겠어요. 다만 제 한국 독자들의 나이가 매우 젊다는 것은 알아요. 제 필체가 현대적이고 쉽다고 이야기하곤 하는데그런 점과 젊은 세대의 다이내믹함이 만난것이 아닐까요? 저 또한 젊은 독자층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이 매우 기분 좋아요. 제가 읽고 싶은 이야기를 책으로 쓰곤 해요. 책장이 넘어가는 줄 모르는 박진감 넘치는 소설에 늘 흥미를 가졌어요. 복잡한 성격의 주인공들과 이야기 구조들, 그리고 다음이 기다려지고 결말이 궁금해지는 그런 소설 말이죠. 제 소설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아요. 책장을 넘기는 즐거움, 즉 서스펜스가 가득하고 드라마처럼 중독성이 강한 줄거리라는 점, 그리고 두 번째는 책이 가진 주제를 좀 더 세밀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이죠. 예를 들어『지금 이 순간』의 경우 아버지의 역할, 부성애라는 것이 묘사돼요.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매우 복잡한 심경을 전해줘요.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또 가장 강하게 만들어주죠. 하지만 동시에 가장 취약점이 되기도 해요. 자신의 사랑하는 아이를 통해 아버지가 공격받을 수도 있거든요. 저 또한 2년 반 전 처음으로 아버지가 되는 경험을 했어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요. 『지금 이 순간』을 쓰게 된 것도 아들의 탄생 때문이었어요.

 

아들이 태어나는 순간을 실제로 지켜보셨나요?

 

물론이죠. 처음부터 끝까지요.

 

그렇다면 책에서 주인공이 자기 아들을 지켜보는 모습은, 즉 작가 자신이 느꼈던 감정 그대로라고 생각해도 되겠네요.


그럼요. 그때 제 가슴을 채웠던 느낌들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어요. 아들의 탄생은 저의 삶의 방식도 송두리째 바꾸어놓았어요. 매일 가족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려고 노력하고 아이에 맞추어 시간표를 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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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을 매우 빠른 시간 안에 읽을 수 있었어요. 특히 시간 여행을 한다는 설정 자체가 많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잖아요. 그래서 중간에 책을 놓기가 쉽지 않았어요. 시간 여행이라는 소재를 다른 책에서도 자주 사용하셨어요.

 

맞아요. 시간은 항상 제가 가장 집착하는 소재에요. 시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죠. 우리는 바꿀 수도, 돌이킬 수도 없는 과거에 집착해 살아가곤 하죠. 아무것도 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요. 다른 나머지 시간은 미래를 걱정하거나 계획하며 시간을 보내죠. 그래서 우리는 지금 이 순간이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매번 잊어버리곤 해요. 오래전에 심각한 자동차 사고를 당한 적이 있어요. 그때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제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되었어요. 지금 제가 잡고 있는 이 순간은 과거나 미래가 범접할 수 없는 저만의 고유한 영역이죠. 그 어떤 것도 제가 살아가는 지금 이 순간을 방해할 수는 없어요. 따라서 과거나 미래로 불안해하거나 초조해 할 필요는 없어요. 지금 이 순간이 저와 함께 있으니까요. 소설 속 주인공 아서는 시간 여행을 통해 매우 한정된 현재를 살아야만 해요. 미래에 대한 걱정과 과거에 대한 후회, 그러나 소설 속 메시지는 그 모든 것을 제치고 지금 이 순간에 중점을 두고, 이 순간을 살며, 또 이 순간을 만끽하라고 전하죠. 우리는 한 번의 삶만을 살죠. 그 삶이란게 매우 깨지기 쉬워요. 삶이 언제 시작하는지, 또 언제 끝나는지도 정할 수 없어요. 그렇다고 깨지기 쉬운 삶을 매번 의식하며 살 필요는 없어요. 그렇게 되면 항상 두려움과 초조함으로 살아야 하거든요. 삶을 소중히 여기고 용기를 내는 것, 거기에서 각자 자신에게 맞는 균형을 찾는 것이 중요해요.

 

시간 여행을 소재로 한다는 표지 소개글과 앞부분의 줄거리로 봤을 때 이 책이 판타지나 스릴러 소설일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책을 읽어가면서 느낀 것은 이 소설이 결국 사랑 이야기라는 거예요.

 

맞아요. 소설 속에는 매우 많은 것이 혼합되어 있어요. 초현실과 판타지, 스릴러, 사랑, 주인공과 그의 아버지, 그의 조부로 얽힌 한 가족의 이야기,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주인공에게는 24일, 그를 둘러싼 다른 이들은 24년이라는 시간을 걸쳐 전개돼요. 매우 많은 소재가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다 보니 오히려 각각 다른 취향을 가진 독자들을 한 번에 모을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생각도 하죠. 어쨌든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면, 아들의 탄생 이후 저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저와 아들과의 관계, 그리고 저와 제 아버지, 또 할아버지와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보는 거였죠. 그리고 개인이 처한 환경이 다른 이들에게 서로 어떤 영향을 주고받으며, 사랑하는 관계가 어디까지 이해하고 함께 갈 수 있는지 등을 파헤쳐보고자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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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여행, 오히려 답답함과 불안을 연출하고 싶었다

 

『지금 이 순간』은 파리가 아닌 뉴욕이 배경이에요. 뉴욕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공간들과 거리들이 등장해서 읽는 동안 뉴욕 구석구석을 여행하는 기쁨도 있었어요.

 

뉴욕은 매우 좋아하는 도시고 또 잘 아는 도시예요. 18살 때부터 그곳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왔거든요. 그래서 제가 잘 알고 있는 뉴욕을 책에 넣어보고 싶었어요. 가끔 매우 유명한 장소와 사건들이 책 속에서 묘사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잘 알려지지 않은 장소들이 등장해요. 또 24년 동안 많은 변화를 거친 도시를 시간의 흐름에 맞게 보여주고 싶기도 했어요. 처음 18살에 발견한 뉴욕은 약간은 폭력적인 구석이 있는 강하고 야심만만한 도시였어요. 지금은 9.11사태 이후 도시 전체가 뭔가 차분해지고 안정된 모습으로 그려져요. 뉴욕은 제게 미국의 한 도시가 아닌 매우 특별한 장소예요. 그 안에서 모든 것이 가능하고 어떤 일이든 일어날 수 있죠.

 

시간 여행을 한다는 것은, 예를 들어 책이나 영화 속에서 시간을 여행하는 일은 언제나 타인보다 유리한 무언가를 지니는 것이었어요. 누구도 가질 수 없는 능력 같은 것이죠. 그런데 주인공 아서는 시간 여행을 통해 극도로 불리하고 불행한 처지가 되죠.


절대적으로 그렇죠. 시간 여행이라는 도구를 통해 행복을 그리고 싶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답답함과 불행 같은 상황을 연출하고 싶었어요. 시간 여행이 아서의 인생을 망치죠. 사람들과의 관계, 일, 또 그의 사랑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망쳐버리죠. 정말 끔찍하다고 할 수 있죠. 아서는 이 괴롭고 무거운 현실에 정면으로 맞서요. 다른 이들의 1년을 하루에 살아야 하는 아서는 극도로 시간이 부족하고 어떤 상황을 맞이할 때 감정의 정리조차 제대로 할 수 없어요. 그는 시간과의 싸움에서 고군분투하며 모든 고통을 이겨내려 해요. 하지만 결국 최고의 승자는 시간이에요. 아서는 시간에 붙잡히고 말아요. 다행히 그의 조부가 그를 옆에서 돌봐주긴 하지만요. 제 소설들은 항상 시간 여행과 같은 초현실적인 무언가와 병들고 늙고 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일상들을 표현하는 로마네스크적 무언가와 결합하도록 시도하죠.

 

소설을 읽으면서 영화를 보는 느낌이었어요. 영화로 만들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소설 대부분이 영화와 잘 어울리는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렇잖아도 2016년에 한국에서 제 책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가 영화로 만들어질 예정이에요. 제가 좋아하는 한국 배우 김윤석 씨가 출연한다고 들었어요. 김윤석 씨는 영화 <추격자>를 통해 알게 되었어요. 매우 인상깊은 연기를 펼치는 배우라고 생각했어요. 유럽과 미국 등에서 영화로 만들고 싶다고 했었는데 그동안 거절해왔어요. 그러다 결국 한국의 제안을 받아들이게 되었죠. 이전에도 여러 작품이 영화로 만들어졌는데 『그 후에』에는 존 말코비치가 영화에 출현했어요.

 

소설 『지금 이 순간』의 결말에 엄청난 반전이 숨어 있어요. 다른 소설에서도 자주 등장하는 결말의 방식이죠?


처음 소설부터 항상 그래 왔어요. 독자들이 매우 좋아해주었고요. 이제는 저와 제 독자들 사이의 하나의 게임 같은 작용을 하죠. 독자들은 반전의 결말을 통해 새로운 창을 들여다보게 되죠. 지금까지의 긴 이야기들을 뒤집는 무언가가 결국 많은 생각을 정리하게 해준다고 할까요? 기사에는 어떤 결말인지 쓰시면 안 돼요.(웃음) 제 생각에 소설은 그것을 읽는다는 생각만으로 기쁨을 주어야 하고 계속 읽고 싶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어떤 결말로 마무리되는지를 지켜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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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로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인가요?

 

글쎄요. 글을 쓴다는 것, 그것을 위해 고민하고 노력한다는 것은 변화가 없어요. 단지 제가 원하지 않으면 가벼운 마음으로 수많은 제안을 거절할 수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그것에 대해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지니 제가 원하는 멋진 공간에서 작업할 수 있다는 것도 좋아요.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고 상상력에 제한을 받는 것은아니에요. 단지 몸과 마음이 편할 뿐이죠. 또한 가지는 공항이나 지하철을 탈 때 사람들이 제가 쓴 책을 들고 읽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는 거죠. 한번은 공항에서 한 여성을 만났어요. 그녀는 제 책을 손에 들고 있었죠. 저는 그녀가 제 소설에 빠져들었는지를 관찰하기 위해 오랫동안 그녀를 쳐다봤어요. 그런데 그녀는 제가 그녀를 꼬시려는 줄 착각한 거예요. 그녀는 제게 이렇게 말했어요. “이봐요, 그렇게 바보짓 하는 대신 책을 한 권 읽는건 어때요? 예를 들어 기욤 뮈소의 책을 읽어 봐요.” 그래서 저는 “아 그래요? 기욤 뮈소의 책이 그렇게 재미있나요?”라고 물었죠. 그러자 그녀는 자신의 명함에 ‘기욤 뮈소’라는 이름을 적어주며 이렇게 말했어요. “서점에 가서 한번 찾아보시죠.” 그렇게 이야기는 끝났어요. 전 참 행복했죠.

 

다음 소설이 잘 안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없으시나요?

 

물론 있죠. 제 상상력이 계속 사람들을 즐겁게 만들어줄 것인지, 또 사람들이 계속 저의 소설을 좋아해줄 것인지, 제의 입지가 흔들리지는 않을지, 소설의 좋은 소재가 더는 떠오르지 않으면 어떻게 할지 등등. 그렇지만 그런 불안감은 또 자신을 발전하게 하는 요소로도 작용하죠. 그런 불안감들이 있기 때문에 더욱 노력하고 싶어지고 지금의 성공으로 거만해지지 않게 만들죠. 매 순간 촉각을 곤두세우고 아이디어를 찾으려 하고 시간의 공기가 가진 느낌을 이해하려 노력하죠.

 

현재 집필 중인 소설은 어떤 것인가요?

 

지금 제가 살고 있는 앙티브를 배경으로 한 소설을 작업 중이에요. 역시 시간 여행을 소재로 다루고 있는데 이번에는 주인공의 여행폭과 장소가 훨씬 넓어지죠.

 

끝으로 이 글을 읽는 한국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우선 제 소설을 사랑해주셔서 매우 감사드립니다. 다음번에 나올 책에는 한국도 등장한답니다. 읽으시면서 작은 즐거움이 있을 거예요. 그리고 한 가지 드리고 싶은 말이 있어요. 『지금 이 순간』의 주인공 아서는 매우 한정된 시간과 장소들을 살아야 하죠.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긴 시간인 듯하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아요. 지금 이 순간, 현재를 살도록 하세요. 현재의 시간은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선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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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기욤 뮈소 저/양영란 역 | 밝은세상
사랑과 감동의 마에스트로 기욤 뮈소의 판타지 심리스릴러! 2015년 프랑스 베스트셀러 1위! 전 세계 40여 개국 출간! 《지금 이 순간》은 기욤 뮈소가 새로운 스타일의 작품을 쓰기 위해 얼마나 섬세하고 치밀하게 연구하는지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빈틈없이 잘 짜인 플롯, 잠시도 한눈을 팔 수 없을 만큼 긴박감 넘치는 스토리 전개, 전매특허인 허를 찌르는 반전 등으로 새로운 스타일의 소설을 기대하는 독자들의 바람을 충족시키기에 부족함이 없다.


 

[추천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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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준희 “육아의 해법은 똑똑하고 게으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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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육아서 『똑게육아』가 출간됐다. ‘똑게’란 ‘똑똑하고 게으르게’의 줄임말. 『똑게육아』의 저자  김준희(필명: 로리)는 ‘똑게육아’의 창시자이자 네이버 인기 육아카페 ‘똑게육아’ 운영자, 그리고 두 아이의 엄마다. 저자는 국내 금융회사에서 맹렬히 일하다 2011년, 첫째 딸을 낳으며 실미도 극기훈련 버금가게 혹독한 엄마 세계에 입문했다. ‘독박 육아’에 갇혀 그야말로 생고생을 경험했지만 용감하게 곧바로 둘째 아들 ‘연우’까지 출산, 이후 안 보이던 행복육아가 보이기 시작했다.『똑게육아』는  눈물 섞인 독박육아, 그 안에서 깨닫게 된 참된 행복과 수백 권이 넘는 국내외 육아 전문서를 독파한 간접 경험, 그리고 풍부한 리서치를 바탕으로 탄생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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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성 있는 똑똑한 게으름


필자도 출산 전부터 ‘똑게’ 얘기를 많이 들어왔다. 육아하는 엄마들 사이에서도 “우리 아기가 이러이러 한데, 어쩌죠?” 라는 질문에 다들 “똑게 카페 한 번 가보세요” 하는 엄마들이 있더라. 똑게 카페를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똑게 카페는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시작은 블로그였다. 첫째 딸을 낳았을 때, 낳자마자 든 생각이 이 아이도 크면 나처럼 애 낳고 이런 힘든 고생을 하게 된다는 것에 너무 허무했다. 아기를 낳고 얼마 안 되었을 100일 무렵, 이러한 복잡한 심경이 많이 느껴졌다. 이렇게 금지옥엽, 애지중지 키워봤자 나중에 애 낳고 난 뒤, 전혀 상상도 못했던 엄마세계에 빠져 고생하겠구나 하고 생각하니 싫었다.


그래서 블로그를 시작했다. 내 딸이 나중에 엄마가 되었을 때, ‘우리 엄마는 이때 어떻게 나를 키웠을까? 우리 엄마는 어떤 생각을 하면서 이 힘든 변태(딸→엄마로의 변환) 과정을 극복해나가고, 적응했을까’가 궁금할 때마다 내가 쓴 글들을 보면서 힌트를 얻을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MBA, 직장생활 경험을 토대로 엄마 세계를 ‘JOB’으로 보고, 전략적인 팁을 블로그에 풀어나갔다. 한마디로 ‘일기 전략팁’이었던 셈인데, 핵심 팁을 주며 공감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둘째를 낳은 후 엄청난 변화가 생겼다. 기존에 내가 알던 것과 다른 육아 세계(의도해서 행한 것이 아니었는데 모든 것이 너무나 수월했다)가 펼쳐졌고, 육아 패러다임이 나도 모르게 확 바뀌어 있었다. 유난스레 작은 것에 걱정할 이유가 없어진 엄마가 된 것이다. 책에서 서술한 How to guide 방법으로 계산해서 키우려고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둘째는 그냥 물 흐르듯 자연스레 그렇게 되더라. 그것이 너무 신기하고 뒤통수를 망치로 맞은 듯한 경험이었기 때문에 이것을 다른 어머님들과 공유하고 싶었다.


그리하여 만 4년 동안 ‘두 명’을 연달아 키운 독박육아, 돈으로도 환산할 수 없는 뼈저린 경험과 국내외 육아 전문서를 독파한 경험, 리서치를 바탕으로 만든 ‘똑게육아-수월하게 엄마 되기’라는 제목의 포스트 연재를 2014년 9월에 시작했고, 그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연재 1개월 만에 포털사이트로부터 ‘설레는 신인상’을 받았고, 독자가 2만 명에 육박했다. 포스트 댓글로 예상치 못했던 상담글이 폭주하여 ‘게시판’이 필요한 상황이 되었고, 결국 보다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똑게육아 카페’까지 개설하게 됐다. 이후 어머님들의 요청에 의해, ‘읽는 것’이 힘든 육아 환경에서 ‘듣는 것’이 좋다는 의견으로 음향 편집부터 모든 것을 독학으로 시작해 팟캐스트까지 열게 됐다. 나도 노력을 많이 했지만, 팬분들의 격려와 응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국내외 많은 육아서적들을 섭렵하신 걸로 보인다. 요즘 엄마들이 출산 전부터 수많은 육아서적들을 보고, 듣고, 인터넷으로도 각종 정보들을 수집하는데도, 어떻게 육아를 해야 하는지 결정하기가 쉽지 않은데, ‘똑똑하고 게으르게’ 육아를 해야겠다고 결심한 특별한 계기가 있는지?


‘똑똑하고 게으른 육아’ 즉 ‘똑게육아’라고 네이밍을 했다고 해서 이것이 무슨 특별한 육아법은 아니다. ‘똑게육아’는, 엄마들이 좀더 쉽게 육아를 이해할 수 있도록, 쉽고 정확하게 엄마들이 원하는 정보를 빠르게 습득할 수 있는 정보 채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일터에 처음 갔을 때 찾아 듣게 되는 동영상 강의, 업무지침서, 족집게 강사라고 생각해주면 좋겠다.


처음 아이를 낳은 후 어떻게 육아를 해야 하는지 결정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나는 첫째 때 ‘극 애착주의’ 쪽으로 쏠려 있었고, 둘째를 키우면서 양 옆 시야를 가린 가리개가 사라지면서 큰 시각을 가질 수 있었다. 사실 아이를 둘 이상 키워봤다면 동일하게 느낄 텐데, 조금만 힘을 빼고, 조금만 신경을 덜 쓰면 훨씬 현명하고 행복하게 아이를 키울 수 있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똑게’에서 ‘게으르게’는 나태하거나 안일하게 아이를 키우자는 것이 아니라 육아에서도 여유를 갖자는 긍정적인 의미다. 즉 내가 말하는 게으름이란 ‘생산성 있는 똑똑한 게으름’이다. 더불어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부모가 대신 해결해주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여유가 필요한데, 이것들을 의미한다고 보면 된다.

 
아이가 정말로 아이 인생의 주인공이 되길 바란다면, 부모는 올바른 방향을 설정해 아이에게 적절한 경험과 기회를 주고 ‘기다려주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똑게육아의 모토는 아이의 모든 문제를 부모가 나서서 해결해주기보다는, 아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기초체력’을 길러주는 것이다. 나는 똑게육아가 처음 엄마가 되신 분들에게 ‘내 몸 하나 부서지고 말지 뭐~’ 하는 식의 희생정신 가득한 상황에서 아이를 키우며 놓치는 부분, 하지만 알고 나면 행복한 육아가 가능한 부분들을 볼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역할을 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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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태교를 위해 ‘수학 문제’를 푸는 사람도 있고, 어려운 퍼즐 등을 푸는 등 아기의 두뇌 개발, 두뇌 교육에 초점을 맞춘 예비, 초보 엄마들이 많은데, ‘수면 교육’을 특히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태교를 위해 수학문제를 풀거나 하는 등의 행위는 크게 중요치 않다고 생각한다. 그저 엄마 마음이 편안한 것이면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첫째 때는 임신 막달까지 일을 했는데, 그것 또한 마찬가지로 내가 스트레스 받지 않고 그렇게 열심히 사는 생활 자체를 즐기면 아이도 똑같이 즐긴다고 생각한다. 결국 태교는 엄마의 평온한 마음상태와 정신을 유지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똑게육아는 수면교육이 핵심이 아니었고 포스트를 처음 연재할 때만 해도 이유식이나 그 외의 주제를 먼저 다루었다. 그런데 연재를 하면서 아이를 잘 재우는 게 이슈가 되는 걸 보고, 역시나 근본적인 문제가 이것임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육아가 왜 힘든지, 주변 스트레스 요인 등을 다 제외하고서 정말 근본적인 걸 찾아보면, 바로 아기의 ‘잠’과 ‘먹이기’다. 아이가 잠을 못 자면 엄마도 당연히 못 자니까 피곤이 엄청나게 쌓일 수밖에 없다.


아이가 깨지 않고 꿀잠을 자는 것 만으로도, 육아의 삶에서 어마어마한 차이를 가져오기 때문에, 가히 이것만으로 육아의 신세계 진입이 가능하다. 아이가 잠을 푹 자니, 행복하고, 소위 말하는 ‘순둥이’ 아기가 되는 건데, “정말 이런 아이라면 거저 키우겠다” “어쩜 아이가 이렇게 순하니” “정말 너는 복 받았다” “이렇게 착한 아기 처음 봤다” 등의 찬사를 받게 된다. 하지만 똑게육아를 제대로 이해하신 어머님들은 이런 말을 들을 때, 마음 속으로 생각한다. “내가 만들었소이다~! 이 순둥순둥 둥글둥글 이쁜 아기~! 내 노력으로 만들었소이다~~~”라고 말이다. 


아이에게 꿀잠을 선물하고 싶다면, 엄마 자신의 양육 태도와 함께 아이에 대해서도 깊이 이해해야 한다. 엄마와 아이 모두에게 알맞은 방법을 적용해야만 아이에게 꿀잠을 선물할 수 있다. 결국 어떤 방법이든 관건은 엄마 마음이 편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정의 평화로운 분위기를 선물하는 것이 가장 큰 선물이라 생각한다. 이게 되려면 역시 부모의 ‘건강한 정신 상태’가 가장 중요하다.

 

현재 필자도 갓 100일이 지난 아기를 키우고 있는 중인데, 요즘 들어 잠투정이 많이 늘어 재울 때마다 난처할 때가 있다. 아기한테 자꾸 끌려가는 듯한 생각에 고민이 되면서도 어르고 달래고 하기 일쑤다. 잠투정이 최고조로 이르던 시기를 잘 이겨낼 수 있었던 본인만의 노하우가 있다면?


사실 둘째는 그런 적이 없었고 정말 의도한 것이 아니었는데, 너무나 잠을 잘 잤다. 내버려둬서이다. 아이가 ‘둘’이니 아이가 ‘하나’일 때와 체제 자체가 바뀐 것. 그냥 그 아이가 순한 기질이라서가 아니다. 내가 안다. 역으로 추산해서 다 검증했다고 하지 않았나. 잠투정이 있는 날도 있었지만, 첫째 때와 달리 내가 마음이 안정되어 있어 아이 투정에 크게 동요되거나 하지 않고 걱정이 많이 되지도 않았다. 또 경험이 있기 때문에, 아무리 아기가 울더라도, 이것이 아기가 피곤해서, 잠을 자고 싶어서 우는 것인지, 배고파서 우는 것인지, 자극이 많아서 우는 것인지, 지루해서 우는 것인지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나는 13개월 이후에는 둘째, 첫째와 함께 잤는데, 가끔 둘째가 잠자리에서 울 때가 있었다. (당연히 울 때도 있는 것이다.) 첫째 키울 때였다면, 아이가 자꾸 문을 가리키면서 나가겠다고 울면서 손가락질하면, 아이와 함께 나가서 고구마 간식도 먹고 책도 읽어주고 하면서 새벽을 보냈겠지만, 둘째 때는 그런 것들이 ‘잠’을 자야 하는 아이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옆에서 평온하게 버티며 의연하게 안아주면서(괜찮다는 느낌과 지금은 잠을 자는 게 맞다는 평온한 기운을 마음껏 풍기며) 잠을 잤다. 그러고 나면, 아이는 금세 안정을 취하고 잠에 스르륵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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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리님이 저를 살렸어요

 

일하는 워킹맘은 본인이 육아를 하는 경우보다 친정엄마, 혹은 도우미, 어린이집 등 다른 사람 손을 빌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경우에도 성공적인 수면교육이 가능할까? 다른 사람과 함께 육아를 하고 있는 엄마들에게 수면교육 조언을 해준다면?


다른 사람과 육아를 하고 있다면, 짬을 내기 힘들겠지만, 원활한 의사소통을 먼저 해야 한다. 내가 왜 이렇게 생각하고 왜 이런 방향으로 키우고 싶은지를 소탈하게 이야기해보는 것이다. 여기서 너무 비장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너무 많은 걱정이나 근심을 털어버리고, 그 상태에서 내 생각을 상대방에게 전하고, 또 다른 양육자가 생각하는 바가 또 있다면 그걸 들어본 뒤, 절충이 가능한 부분이 있으면 그렇게 시행해볼 수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에도 지난 7월부터 회사에 복직하게 되어 이모님이 아이들을 보고 계신다. 처음에는 아이를 재우는 것을 잘 못하셨지만, 금세 따라오셨고, 우리 아이들은 늦어도 저녁 7시에는 잠을 잔다. 우리 아이들은 저녁 7시에 자서 새벽 6시에 일어난다. 내가 출근할 때 같이 시간을 보내고 주말에 마음껏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똑게육아 팬들을 만나 보면, 친정엄마 분들도 많다. 딸들이 똑게육아를 알려줘서 그대로 했더니 정말 너무나 신세계였다는 평이 많다. “로리님이 저를 살렸어요!”라고 말씀하시는 똑게맘의 어머님들도 꽤 만났다. 처음에는 설사 이해를 못할지언정, 이게 어떤 건지 직접 눈으로 보여주고 체험하게 해준다면, 나중에는 아기 잘 키웠다고 하시는 분들 또한 그분들이다. 똑게육아를 제대로 이해한 사람들은 이렇게들 이야기한다. 눈으로 직접 보여주면 된다고 말이다. 잘 먹고 잘 자고 잘 노는, 행복해하는 순한 아기의 모습을 직접 보여주면 모든 말은 쏙 들어가게 된다. 울린다고? 그런 표현을 쓰는 것 자체가 똑게육아를 잘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다. 그냥 보여주면 되는 거다.


잠깐씩 애 맡길 때 “이렇게 순한 모범생 아기, 정말 이런 애면 열도 키우겠다”, “효자다 효녀다” 등 이런 말들을 기본으로 듣게 되는데, 이는 양육자(처음 키워보는 부모)가 치밀한 똑게식 전략을 체화해 성공적으로 운영한 결과임을, 체험한 사람이면 다 알게 된다.

 

요즘엔 각종 꿀육아 아이템들이 지천에 널려있는데, 막상 구매하려고 하면 고민들이 너무 많다. 특히 ‘공갈젖꼭지’ 등 써도 된다, 쓰면 안 된다. 의견 분분한 것들도 있는데, 갈팡질팡하는 엄마들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처음 엄마가 되었을 때 생기는 0.1%의 그 걱정이 문제다. 둘째라면 별 생각 없이 정말 자연스럽게 쓰게 된다. 하지만 첫째 때는 그게 죽어도 안 되는 것. 그 부분만 해결해주면 되는데, 그래서 관련 백업 자료를 많이 보게 되었다.


예를 들어, 공갈 젖꼭지의 경우 내가 첫째 아이 70일경에 너무 힘들고 모유수유로 인해 몸이 건조해져 온몸에 급성 두드러기가 나서, 버티고 버티다 어쩔 수 없이 치료를 위해 (두드러기 치료약을 먹으면 그 동안은 모유를 먹여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 인간 공갈젖꼭지 신세를 이전까지 계속 해오다가 젖을 못 물리는 5일간 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공갈젖꼭지를 처음으로 사게 되었다. 아기가 자는 상황에서 공갈젖꼭지를 계속 물릴까 말까 고민하다 울면서 공갈을 물렸는데, 마치 독약을 먹이는 듯한 느낌이더라.


하지만, 둘째 때는 산후도우미 이모님이 공갈을 물려보자고 하시는 제안에 크게 걱정되지 않았다. 물려도 괜찮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물리게 되었고, 동시에 책을 보며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첫째 때는 그 0.1%의 걱정이 너무 심하게 느껴지는데, 그렇다면 그 0.1%의 걱정을 없애주면서 동시에 아이템을 써도 무방하고, 이 시기에 유용하다는 근거자료를 제시하면 되는 부분이었다.


속싸개도 마찬가지이다. 왠지 모르게 첫째 때는 아기를 꽁꽁 싸매면 안 좋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또한 찾아오는 손님들도 한마디씩 불편할 것 같다고 얘기하고 그러다 보면 뭔가 운동신경에도 안 좋을 것 같고. 별의 별 걱정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이것에 대한 과학적인 근거와 전문가들의 의견을 조사하면서 확신을 가지게 되었고, 그렇게 되면 비로소 처음 해보는 분들은 0.1%의 걱정 없이 쓸 수 있게 된다.


화이트 노이즈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청력에 해를 끼칠 수도 있다는, 어디서 어떤 근거로 어떤 실험결과로 인해 나온 말인지를 모른 채 그저 청력에 안 좋다로 생각해버려 제대로 활용을 못하게 되는 거다. 그런 것을 제대로 알지 못해 눈덩이처럼, 산처럼 불어난 걱정더미로 인해 유용한 것들을 사용하지 못하고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는 식) 고생을 사서 한다면, 같은 엄마로서, 너무 애처롭다. 육아를 좀 더 수월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물건들을 올바른 방법으로 활용한다면, 육아를 좀 더 즐기고 행복하게 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번 책에는 ‘잠’에 대해서만 서술했지만, ‘육아용품은 한 템포만 일찍 제대로 사용해, 아이가 스무스하게 적응하게 된다면 또다른 신세계가 열린다’고 썼던 연재글이 있었다. 궁금하신 분들께는 이 글과 똑게 아이템 소개글이 도움이 될 것 같다.

 

책에서도 똑게육아를 위한 좋은 아이템들이 소개가 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 ‘이것만은 반드시 필요하다’라고 강조하고픈 아이템이 있다면?


5s를 할 수 있는 공갈, 스와들미, 스와들업 같은 속싸개, 화이트노이즈, 캠 설치, 똑게식 안전한 잠자리 환경 조성 관련 물건들이다.


*5S란: 하비 박사(Dr. Harvey)가 아기를 효과적으로 진정시켜주기 위한 방법으로 제시한 것. 5s는 속싸개(Swaddle), 옆구리나 가슴을 대고 자는 자세(Side/Stomach Position), 쉬~ 소리(Sound), 스윙(Swing), 빨기(Sucking)를 뜻한다.


개인적으로 추천하고 싶은 아이템들은 스와들미, 스와들업, IP카메라, 똑게식 안전잠자리에 필요한 물건들이다. 잠과 관련된 아이템 이외에 다른 것들이 궁금하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직접 여러 어머님들께 여쭤보며 만든 ‘육아에 유용한 똑게식 아이템 관련’ 글을 똑게육아 카페에서 참고하셨으면 좋겠다.


아이 울음 앞에 쫄지 말고 ‘기다려라’고 말한 부분이 있는데, 사실 아이에 대한 정이 남다른 한국 엄마들에게 ‘기다림’이라는 게 쉽지 만은 않다. 아기 발달 과정에 있어서도 내 아기가 남들보다 느린 듯 하면 불안해 하는 엄마들도 심심찮게 있는데, ‘인내심’ 없이 불안한 엄마들에게 한 마디 해준다면?


행복한 것이 중요하다. 기억하자. 내가 아이이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나의 건강한 정신상태와 행복한 가정환경, 그 화목한 분위기라는 것을. (물론 이것들은 자신의 인생 가치관에 따라 다를 수 있는 부분이다.) 아이의 울음을 그 울음의 정황과 원인을 생각하지 않은 채 지금 당장 막바로 막아내는 것이 앞으로의 울음을 더 많이 초래한다는 사실을 알아채는 것이 중요하다. 한번만 경험하면 이게 무슨 말인지 뼛속으로 피부로 느낄 수 있게 된다.


LUV라는 미국기저귀의 유튜브 광고를 한번 꼭 봤으면 좋겠다. 정말 공감되는 부분이 많더라. 이 광고는 첫째 때와 둘째 때 극명히 달라지는 엄마의 모습을 잘 묘사하고 있다. 첫째 때는 엄마가 자다 말고 귀신에 홀린 듯 갑자기 확 일어나서 잘 자고 있는 아기를 손전등으로 비춰보는 반면, 둘째 때는 안대를 한 채 숙면을 취한다. 베이비모니터는 이미 없어진 지 오래다. 모니터가 있던 자리에는 기저귀박스가 놓여 있다. 이렇게 별 신경쓰지 않고 편안한 마음으로 자면, 아기도 잘 잔다.


한국에서는 사회 분위기가 희생하는 모성애나 온몸 헌신하는 모성애 같은 게 알게 모르게 강요되는 분위기다. 그러니까 일부러 의도해서 틈을 주지 않고서는 24시간 밀착방어, 24시간 풀타임 엔터테이너, 풀타임 VVIP 고객(=아기를 말함) 대응자, 이런 식으로 치닫게 된다. 처음 엄마가 되신 분들에게는 그냥 “좀 틈을 주세요~” “좀 내버려두세요~”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그래서 아예 플랜을 ABC로 짜, ‘틈을 조금이라도 내어줄 수 있는 플랜’을 제공해서 보여주게 된 것이 똑게육아다. 왜 해야 하는지 근거도 명쾌하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우투 가이드도 따라할 수 있게 세세히 보여주어, 힘든 엄마들이 바로 떠먹을 수 있는 수준으로 자료들을 만들어 제공했기 때문에 쉽게 실행이 가능했다. 그 방법으로 그제서야 나와 같은 효과를 다른 엄마들도 체험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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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는 ‘코치’, 실제 경기를 뛰는 ‘플레이어’가 아니다

 

일찌감치 수면 교육을 하지 못해 교육을 포기한 엄마들도 주변에 많은데, 돌 이후에도 혹은 그 이후에 수면 교육에 도전해도 가능할까? 늦게 시작한 이들에게 꼭 필요한 게 있다면?

 

돌 이후에도 가능하다. 늦게 시작했더라도 가장 중요한 것은 일관성이고 엄마의 의지이다. 그 의지는 엄마의 평온한 마음, 즉 내가 책에서 말한 봄바람 냄새 맡듯 사뿐히 걸어가는 듯한 느낌으로 행할 수 있는 ‘마음 편함’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본인의 감정을 투영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가끔 아이가 힘들어 할까봐 지금 아이에게 필요한 것이 ‘잠’인 것을 알면서도 잠을 선물하지 못하고 끌려다니는 경우도 있는데, 이것은 엄마 내면 속 아이의 울음소리나 과거의 트라우마를 투영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 이는 자신이 주관을 가지고 육아를 해나가는 것을 힘들게 만들기도 한다. 사실 아이들은 그들 스스로를 믿어주고, 스스로 해낼 수 있게 북돋워준다면 쉽게 해낼 수 있는데, 부모가 자신이 아팠던 옛날 기억 때문에 생긴 ‘내 아기는 조금이라도 울릴 수 없다는 잘못된 극 애착주의 방식’이 문제가 된다. 그래서 똑게육아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엄마가 본 게임의 플레이어가 돼서는 안 된다. 부모는 ‘코치’이지 실제 경기를 뛰는 ‘플레이어’가 아니다”라고. 직접 경기를 뛰는 플레이어는 당연히 아이가 되어야 한다.

 

지금도 저자 본인 아이들의 수면 교육은 계속 되고 있는지?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게 되면 수면 교육을 놓아도 될까? 최근 가지고 있는 육아 관심사는 무언지 궁금하다.


현재 나는 감정 읽어주기, 공감하기 등의 훈육에 관심이 있고, 어떻게 하면 아이와 잘 통할 수 있는 대화를 할 수 있는지, 또 두 명 이상 키울 때, 유의해야 할 점, 둘을 키울 때 라이벌 의식 없이 키우는 법 등, 두 명 이상의 형제자매를 키우는 육아에 관심이 있다. 이것과 함께 나 자신이 평온한 감정을 유지하는 법도 고민 중이다. 나 자신이 평정심을 유지하면 아이들에게 화낼 일도 없고, 집안의 평온이 유지되며 아이들에게도 평화로운 기운을 전달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유식에 대해서도 지금 꿀잠 프로젝트처럼 체계적으로 똑게식으로 풀어내는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여전히 육아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쩔쩔매는 엄마들에게 꿀 같은 응원의 한 마디를 전한다면? 혹은 꼭 ‘이것만은 명심해라’ 하고 싶은 것은?


지금 이 순간을 반짝반짝 빛나도록 즐기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지금은 너무너무 힘들 것이다. 그것이 정말 당연하다. 그러나, 계속 그런 것이 아니다. 그 과정을 행복하게 풀어나갈 수 있도록 똑게육아가 도와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 길목에 든든한 동반자가 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만들었다.


또한 주체적이었던 한 여성이, 능력 발휘를 할 생각을 못하고 그저 육아의 산더미 속에, 폭설 속에 파묻혀서 그저 체제에 순응하는 식으로 가느다랗게 숨을 쉬면서는 아이가 스스로 해낼 수 있는 기초체력, 기초환경을 제공할 수 있는 ‘탄탄한’ 기본적인 부모의 그릇, 그 건강한 그릇/터전/환경을 만들어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것들이 가능해지면 정말 행복한 육아가 가능하다. 결국 부모 내면의 건강, 정신건강의 성숙도 등이 중요하며, 체력에 앞서 건강한 철학이 내재되어 있어야 육아는 좀 더 수월해진다.


똑게육아는 어느 한쪽에 치우친 육아법이 아니라, 처음 엄마가 된 분들에게 큰 시각, 탁 트인 시각을 제공하는 툴이다. 이런 처음 엄마가 되었을 때 갇히게 되는 좁은 시각에서 벗어나게 똑게육아가 도와줄 수 있다, 한쪽으로 치우치고, 봐야 할 것을 보지 못하고, 들어야 할 것을 듣지 못해 맞게 되는 비극적인 결말. 즉 ‘너무너무 피곤해 죽겠는 좀비엄마 & 행복하지 않은 아기, 피곤에 쩔은 아기’. 이것이 자신의 최상의 노력이 들어갔는데 이런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면 너무나 비극적이다. 이것을 막아주는 역할과, 처음임에도 불구하고 베테랑처럼 할 수 있게끔, 길을 잡아주는 ‘새로운 바퀴’의 역할을 똑게육아가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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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게육아로리(김준희) 저 | 아우름
수만 명의 엄마들에게 ‘육아의 신세계’를 열어준 행복육아법! 내 아이가 스스로 ‘통잠’ ‘꿀잠’을 잘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부모 조연 육아’! “아이가 잠만 잘 자도, 육아가 행복해진다!” 4년 동안 ‘두 명’을 연달아 키우며 눈물 콧물 섞인 독박육아, 그 안에서 깨닫게 된 참된 행복, 그 뼈저린 직접 경험과 함께 수백 권이 넘는 국내외 육아 전문서를 독파한 간접 경험, 그리고 풍부한 리서치를 바탕으로 ‘똑게육아’를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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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천 PD “EBS 교재로도 수능 만점 가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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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공부특강』은 대입을 앞둔 수험생과 학부모를 위한 지침서라 할 만하다. 10여년 이상 교육 분야에서 활동해 온 5명의 수능 스페셜리스트로 구성된 ‘EBS 공부연구팀’이 길잡이를 자처하고 나섰다. 5년간의 ‘공부법 연구 프로젝트’, 500만 EBS 수능 회원들의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탄생한 『EBS 공부특강』은 입시의 맥을 짚어준다. 달라진 수능 제도에 대한 설명은 물론 영역별?수준별 학습 방법, 최상위권 학생들의 공부 노하우, 인터넷 강의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비결, 수시와 정시 공략법까지 한 데 모았다. 공부 습관을 익히는 방법, 꿈과 진로를 설정하는 데 필요한 조언도 빼놓지 않았다.

 

EBS 강의, 교재와 수능의 연계율은 평균 70%에 달한다. 2016년도 수능의 경우 영어 영역의 일부 문항이 EBS 지문과 주제, 소재, 요지가 유사한 형식으로 대체됐다. 입시를 준비하는 데 있어 EBS 학습은 선택이 아닌 필수로 자리 잡은 것이다. 문제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EBS가 제공하는 수많은 콘텐츠들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모른다는 것인데, 그 점에서 『EBS 공부특강』은 ‘현실적인 솔루션’을 제시한다. 나의 학습 수준과 스타일에 맞는 강의, 교재를 찾는 방법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EBS 공부특강』의 독자를 현역 고3으로만 한정 짓는 것은 섣부르다. 수시를 목표로 내신 쌓기에 만전을 기하고 있는 고1, 고2 학생을 포함해서 N수생에 이르기까지, 대학입시를 준비하고 있는 모두에게 유용한 정보가 담겨있다. 본격적인 입시 전쟁에 돌입하기 전에 『EBS 공부특강』과 만나시기를, 그 보다 앞서 이어지는 인터뷰를 살펴보시기를 추천한다. ‘EBS 공부연구팀’을 대표해 인터뷰에 응한 김재천 저자는 서울신문 교육 전문 기자를 거쳐 현재 EBS에서 기자로 근무하고 있다. 그를 만나 책 속에 담긴 ‘입시 준비의 A to Z’를 간략하게 짚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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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사람)’ 졸업하는 방법

 

공부법에 대해 알려주는 기존의 책들을 보면서 안타까웠던 점이 있으셨나요?


『EBS 공부특강』은 그 발로로 나온 책이에요. 물론 이 책이 완벽하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시중에 공부법에 대한 책들이 많은데, 대부분 이른바 SKY 진학에 성공했거나 상위 1%에 포함되는 학생들의 이야기잖아요. 그런 공부법을 따라 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실제로 학생들이 그런 하소연을 많이 해요. ‘책을 쓴 저자는 공부를 잘 하는 사람이지 않냐, 실천을 하고 싶은데 따라 하기가 쉽지 않다’라고요. 그리고 초등학교 혹은 중학교 때부터 준비하라고 이야기하는 책들도 많은데요. 그러면 그 시기를 지나버린 학생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래서 저희는 그럴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겁니다. 고3 중반이라고 해도 상관없고, 대학 입시에 있어서 늦은 건 없다는 거예요.

 

그런 점에서 『EBS 공부특강』이 다른 책들과 차별화되는 부분이 있을까요?

 

중요한 건 당장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 거잖아요. 이 책에는 38가지의 방법이 실려 있습니다. 그걸 전부 실천할 수는 없을 테지만, 아주 쉬운 하나라도 실천해서 성공하면 자신감이 생겨요. 교육학적 용어로는 자아효능감이라고 하는데요. 자신감이 생기고 나면 또 다른 도전을 할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죠. 그렇게 자꾸 용기를 북돋워주는 공부법 책이라고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다른 책들을 폄하하는 건 아니지만, 어떤 책들은 보면서 좌절하게 되기도 하잖아요. 이 책은 읽을수록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고, 그 점이 차별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학생들이 가장 큰 부담을 느끼는 과목이 수학이 아닐까 싶습니다.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사람)’라는 말이 낯설지 않은 이유이기도 한데요. 그 가운데에는 ‘기초가 부족해서 어디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학생들도 있습니다. 『EBS 공부특강』은 “자기가 약한 부분이 있다면 과감히 중학교 과정에서 해당 부분을 다시 공부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하고 있고요.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학원을 다니는 방법이고, 두 번째는 과외를 받는 방법이죠. 그런데 학원을 다니면, 요즘에는 선행 학습을 하기 때문에, 서너 살 어린 친구들하고 같이 수업을 듣게 돼요. 예를 들어서 고2 학생이 고1 과정이 부족하다면 중2 학생들하고 같이 공부하게 되는 거죠. 그럴 때 느끼게 되는 모멸감, 좌절감도 무시할 수 없어요. 수학뿐만 아니라 모든 과목이 그렇습니다. 영어도 마찬가지고요. 반면에 과외를 받게 되면 선생님이 맞춤형으로 해줄 것 같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잘 가르치는 강사라고 하더라도 학생과 궁합이 맞아야 돼요. 공부 스타일이 맞아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비싼 돈만 날리고 또 좌절을 하죠. 엄마는 만족할지 몰라요. 자신이 할 도리를 다 했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러면 공부를 잘하지 못하는 건 아이의 책임으로 돌아가게 되는데, 이건 문제가 있죠. 저희가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건, 문제집을 사서 볼 수도 있고, 여러 가지 솔루션이 있다고 알려주는 겁니다.

 

중학교 과정의 교재, 참고서부터 공부를 시작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것 같습니다. 학생 나름대로는 용기도 필요하겠죠.


보통 용기가 아니죠. 그래서 EBS 차원에서는 수능 교재를 만드는 팀에서 ‘수포자’들을 위한 교재를 준비하고 있어요. 학생들 입장에서는 문제집이나 강의를 보고 혼자서 공부할 수 있으니까 전혀 좌절을 느낄 필요가 없게 되는 거죠. 예를 들어서 수학은 분수 통분이 안 되면 진도가 안 나가지 않습니까? 그런데 고등학생들 중에서도 통분이 안 되는 아이들이 많아요. 초등학교 3, 4학년 때 배우는 부분인데도 불구하고요.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 고등학생용 교재를 만드는 겁니다. 아주 쉽고 간단하게 설명해서 혼자서 공부할 수 있도록 하는 거죠. 그래서 학생들이 어느 부분에서 막힌 건지, 그 부분을 연구?분석하고 있습니다. 강의와 교재는 올해 안에 선보일 거고요.

 

‘수학 공식은 아는데 문제에 적용을 할 줄 모르겠다’는 이야기도 흔한 고민이죠. 이때 필요한 건 개념의 정립이라고 하셨어요. 개념을 공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개념을 이해했다는 정의를 잘 아셔야 됩니다. 이 책에서도 중간 중간에 소개가 되어 있기는 합니다만, 개념을 이해했다는 건 그 공식이 왜 나왔는지, 왜 필요한지,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A부터 Z까지 설명할 수 있어야 됩니다. 많은 선생님들이 수학이 암기 과목이라고 지적하시는 게 그런 부분이에요. 암기를 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해를 해야 하잖아요. 보통 개념 공부라고 하면 굉장히 쉽게 생각하고 다 이해했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거죠. 개념 공부가 되어 있지 않은 채 수학 공부를 하는 건 사상누각을 쌓는 겁니다. EBS의 수능 강의나 개념 특강도 전부 그 부분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는 게 그래서예요. 그런 부분을 잘 따라오면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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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소’ 기사를 보면서 언어 영역을 대비한다?

 

반면 국어는 ‘비교적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아도 되는 영역’으로 인식되는데요. 그렇기 때문에 간과하는 부분이 있을까요?


국어는 우리글 우리말이기 때문에 학생들이 조금만 공부하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거죠. 그렇기 때문에 꾸준히 공부해야 되는 거고요. 국어 능력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국어를 잘해야만 수학이나 사회탐구, 과학탐구도 잘할 수 있거든요. 이른바 스토리텔링형 문제라든지, 상황을 주고 문제 해결력을 보는 문제들이 있어요. 그럴 때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면 문제를 풀 수 없겠죠. 결국은 국어를 만만하게 보지 말라는 거예요. 그리고 평상시에 조금씩 준비하되, 교과서가 지루하다면 신문이나 잡지를 봐도 좋습니다. 만약 학생이 엑소의 팬이라면 엑소에 대한 기사를 봐도 돼요. 우리 학생들이 활자 매체 자체에 익숙해져 있지 않습니다. 영상에 익숙하기 때문에, 활자 매체에 익숙해지는 연습부터 하는 것이 더 중요하죠.

 

영어의 경우 2018년도 수능부터 절대 평가제가 시행됩니다. 제도가 바뀌면서 시험은 쉬워질 거라고 예측하셨는데요. 동시에 “확실한 1등급을 받을 수 있을 만큼의 실력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도 덧붙이셨습니다.


동전의 양면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죠. 학생 수를 계산해 보면, 절대평가에서 1등급을 받아야 서울 안에 있는 대학을 들어갈 수 있어요. 바꿔서 이야기하면 ‘시험이 쉬우니까 2등급 받아도 되겠지’ 하고 생각하다가 자기가 원하는 대학을 못 갈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문제 난이도는 쉬워졌지만 그만큼 소홀히 할 수 없는 부분도 있다고 말씀 드린 거고요. 결국 난이도가 쉬워진다는 것은 실수하면 안 된다는 거죠. 기초를 탄탄히 닦아야 해요. 그리고 고난이도의 어휘를 알 필요는 없지만, 책에도 1800개의 어휘표를 넣어놨습니다만, 그걸 어떤 식으로든 완벽하게 소화해 낸다면 1등급은 무난히 맞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어 공부의 기본은 어휘를 익히는 것일 텐데요. 대부분은 어휘 책을 한 권 사서 달달 외우잖아요. 그런데 『EBS 공부특강』은 “독해 지문을 통해 자연스럽게 단어의 의미를 익히고, 문장 구조 속에서 그 용례를 함께 기억하는 것이 좋다”고 이야기합니다.


들고 다니면서 볼 수 있는 어휘 책도 필요합니다. 문제는 무엇이 우선이냐는 거죠. 지문을 보고 공부를 하다가 문장 구조 속에서 어휘를 이해하는 게 첫 번째가 되면 좋을 것 같고요. 어휘가 어떤 의미로 쓰였는지 알았으면 그 단어들을 어휘 장에 표시해서 들고 다니면서 수시로 보는 게 좋죠. 그러면 어휘를 볼 때 지문이 떠오르게 됩니다. 자연스럽게 복습이 되는 거죠. 지문 공부 없이 어휘부터 공부하면 많은 시간을 들여서 고생했는데 효과는 별로 보지 못해요. 그래서 지문을 먼저 보라고 말씀 드리는 거고요. 지문을 통해서 공부하되 계속 지문만 볼 수는 없으니까, 이동 중이라든지 쉬는 시간에는 단어장 같은 걸 통해서 지문을 떠올리면서 공부하면 아주 큰 효과가 있죠.

 

영어 독해를 위한 어법을 공부하는 데 있어서 최선은 ‘예문 암기’라고 조언하셨습니다. 예문을 통째로 외워야 하는 건가요?


방식은 학생들의 수준이나 계획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 책에 나온 38가지 방법들이 정답은 아닙니다. ‘이렇게 해보면 훨씬 더 효율적인 공부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거죠. 이것저것 다양하게 시도해 보고 자기한테 맞는 걸 찾으면 되는 거거든요. 변형해서 써도 되고요. 예문 암기를 이야기한 건, 숙어나 어구는 예문을 통해서 암기하는 게 훨씬 더 효과가 높다는 겁니다. 그렇지만 기초가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예문을 암기하려고 하면 너무 힘들겠죠. 그러니까 자기한테 맞는 목표부터 설정하는 게 중요하죠. 예문을 하루에 한 개씩만 외울 수도 있고, 지문 공부를 더 한 다음에 예문을 외울 수도 있고요. 그건 응용하기 나름입니다.

 

“수능에서 가장 빠지기 쉬운 함정이 양치기다”라고 하셨어요. 덮어놓고 문제만 많이 푸는 게 능사는 아니라는 말씀이시죠.


‘질이냐 양이냐’라는 이야기를 할 때 결론은 항상 질로 귀결되지 않습니까? 공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양으로 공부하면 자기만족은 됩니다. 친구들한테 과시할 수도 있고요. 그런데 스스로한테 남는 게 없어요. 그걸 뒤늦게 깨닫게 되면 시험을 망치고 난 뒤에 좌절하게 되죠. 양으로만 승부하는 공부도 중요할 수 있습니다만, 그건 최상위권 학생의 경우에 적용될 수 있는 거죠. 대부분의 학생들은, 아마도 99% 정도는 아는 것도 다시 한 번 보는 게 더 도움이 됩니다. 같은 책을 반복해서 보면서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드는 방법이 성공 확률이 높습니다. 실제로 EBS 수능 교재를 가지고 공부한 아이들 가운데에서 매년 ‘꿈 장학생’을 뽑는데요. 지방에 살아서 학원을 다니기 힘들거나 경제적인 이유로 다양한 교재를 사기가 어려운 학생들 중에 EBS 교재만 반복해서 보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 학생들도 좋은 대학 원하는 대학을 갑니다. 그런데 양치기를 한 건 아니거든요. 하나라도 제대로 본 거죠.

 

탐구 영역을 선택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알려주셨습니다. 과학탐구는 응시 인원수가 많았던 과목을 선택하는 것이 좋고, 반대로 사회탐구는 선택자 수가 많은 과목보다는 나에게 맞는 과목을 고르는 게 좋다고요.


사회탐구의 경우에는 학생들이 많이 선택하는 과목들, 이른바 공부하기 쉬운 영역들이 정해져 있습니다. 사회문화나 윤리 같은 과목들이 그렇죠. 경제는 어렵기 때문에 잘 선택하지 않아요. 그렇게 다수의 학생들이 몰리는 과목은, 전체 모변수가 늘어나기 때문에, 표준점수로 비교해 보면 오히려 손해를 볼 수 있는 경우가 있죠. 그래서 다른 학생이 선택하는 대로 따라가지 말고 자신의 전공과 관련이 있는 과목을 선택하는 게 좋다는 거예요. 그러면 내용은 조금 어렵지만 동기 부여도 되니까요. 결국 그런 친구들이 표준점수도 높게 나와요. 반대로 과학탐구는 항상 쉽거나 항상 어려운 과목이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해마다 난이도 조절이 있습니다. 사회탐구와 반대되는 부분이죠. 학생들이 어느 과목으로 몰릴지 모르는 거예요. 물론 자연계 학생들이 선택하는 Ⅱ부분은 조금 다릅니다. 화학과 생물이 어려운 경우가 많았어요. 그렇지만 트렌드가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예상하기가 어렵습니다. 과학이나 사회나 탐구영역에서 공통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부분이라면, 유행에 따라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지원하려는 과에서 요구하는, 혹은 앞으로 전공을 공부하는 데 있어서 도움이 될 만한 과목을 선택하는 게 중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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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스스로 공부하는 아이를 만든다

 

한국사는 올해 11월에 치러지는 수능부터 필수과목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수험생과 학부모의 입장에서는 “출제 경향을 파악할 수 있는 기출문제가 아직 없다”는 점이 불안 요소일 텐데요. 『EBS 공부특강』은 “최근 3개년 기출문제를 보면서” 대비하라고 명쾌하게 조언합니다.


그렇습니다. 입장을 바꿔 놓고 생각해보면 원리는 아주 간단합니다. 역사는 바뀌지 않는 것이지 않습니까? 필수 영역의 문제라면,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알아야 되는 역사적 지식을 묻는 것이어야 하고요. 그건 기존에 나왔던 문제들도 마찬가지겠죠. 학생들이 반드시 알아야 하는 내용을 문제로 냈을 거잖아요. 그러니까 이미 나왔던 문제들이 당연히 다시 나오겠죠. 그러니까 겁내실 필요 없이 기존 3개년을 기준으로 보시면 됩니다. 그리고 필수 영역이 되었기 때문에 아주 어렵게 낼 수는 없거든요. 기출 문제를 분석하면서 아주 기본적인 것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한국사가 필수 영역으로 지정되면서, 한편에는 초등학생 때부터 사교육을 시작하기도 하는데,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봐요. 어차피 고등학교 과정에서 배우는 역사는 중학교 때 배운 내용을 조금 심화하는 거니까요. 그 정도만 해도 충분합니다. EBS 교재와 강의로도 만점 맞을 수 있습니다. 그건 장담합니다. 

 

입시 전형과 관련해서는 수시에 초점을 맞추라고 조언해주셨어요. 재수생과의 정면 대결을 피할 수 있는 기회가 많고, 갈수록 수시 모집 인원수도 증가하고 있으니까요.


약간의 변수는 있죠. 요즘에는 전형이 워낙 다원화되어 있잖아요. 그렇다 보니까 생각지도 못한 기회가 많이 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논술이라든지 구술 면접 같은 대학별 고사를 생각해야 되기 때문에, 고2 겨울방학 정도 됐을 때는 수시를 지원할 건지 정시를 지원할 건지 생각해 봐야겠죠. 수시에 지원할 거라면 논술전형 위주로 할 건지 학생부 전형 중심으로 할 건지 포트폴리오를 분석해봐야 할 거고요. 그런 부분들은 미리 준비하는 것이 유리하겠죠. 고2가 끝나가는 시점이나 고3 초기에 허겁지겁 준비하면, 아무래도 조금 손해죠.

 

정시 지원은 정보력의 싸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EBS 공부특강』에 소개된 내용을 보면, 이때도 EBS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정보들이 많더라고요.


상담은 주로 인터넷을 통해서 이루어지고 있고요. 올해는 고품질의 상담을 늘리려고 계획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 야심차게 준비하고 있는 것이 ‘입시 정보 큐레이션 서비스’인데요. 수시와 정시를 모두 합쳐서 3,000여 개 정도의 전형이 있다고 하는데, 자신에게 유리한 것이 무엇인지 알기가 쉽지 않잖아요. 자기소개서도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고요. 그래서 저희는 자기소개서를 쓰는 방법, 논술에 대비하는 방법, 학생부 관리하는 방법, 학과 소개 등의 내용으로 해서 방송과 인터넷으로 제공하려고 합니다. 그 내용을 시기별로 큐레이션해 줄 거예요. 지금 시기에 해야 될 것들은 무엇인지 콘텐츠를 모아 놓는 거죠. 무료로 서비스할 생각이고요. 학생들한테 많이 도움이 될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인터넷 강의를 들을 때 유의해야 할 점도 눈에 띄었습니다. “일주일에 서너 개 강좌를 넘지 않는 선에서 수강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하셨는데, 같은 이유로 ‘프리패스(사이트에서 제공하는 모든 강의를 일정 기간 동안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상품) 구입이 꼭 필요할까’라는 의문도 듭니다.


‘일주일에 서너 개의 강좌’라는 것도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는 없습니다. 최상위권 학생들은 그 정도는 아주 쉽게 소화하거든요. 그런 학생들은 더 많은 강의를 들어야죠. 그런데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렇지 않잖아요. 『EBS 공부특강』은 최상위권 학생들을 위한 공부법을 알려주는 책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게 쓴 거고요. EBS에서도 중학교 과정의 유료 콘텐츠에 한해 프리패스를 판매합니다만, 일부 사교육 업체들이 마케팅 상품으로써 프리패스를 만드는 경우가 있죠. 전과목 프리패스라고 하는데, 과연 그걸 다 소화할 수 있냐는 거예요. 기초가 다져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 무조건 완강만 한다고 끝나는 건 아니라는 거죠. 하나를 들어도 제대로 듣자는 의미로 이해해주시면 될 것 같아요. EBS 수능의 경우에는 모든 강의가 무료이기 때문에 프리패스라는 개념이 없는데요. 사교육 업체의 강의를 듣지 말라고 말씀 드리는 건 절대로 아니고, 하나라도 제대로 들을 거라면 EBS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그건 이미 수능과의 연계율을 통해서 검증이 됐잖아요. 그리고 EBS의 콘텐츠가 점점 고도화돼서, 다른 사교육 업체의 콘텐츠와 비교했을 때 결코 뒤지지 않아요. 특히 교재는 평가원의 감수를 받기 때문에 검증된 문제가 실려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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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마지막은 꿈을 찾는 방법에 대한 조언으로 채워져 있는데요. 학생들에게 가장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닐까 합니다.


지금까지 저희가 이야기한 국영수, 사회, 과학, 한국사 모두 중요하지만 『EBS 공부특강』의 핵심은 꿈과 관련해서 쓴 부분입니다. 사실상 그게 책의 처음이자 끝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저희가 매년 실시하는 조사 결과나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오는 글들을 보면 학생들의 하소연들이 많아요. 그래서 아이들을 다독여줄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꿈은 바뀌는 거잖아요. 그리고 계속 꾸고 있어야 하는 거고요. 그래야 꿈을 구체화하면서 동기부여가 되고 공부가 되죠. 대학에 잘 가려는 목적만 가지고 공부를 하면 답답해지죠. 결국 꿈을 가진 학생이 진로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고, 진로에 대해서 고민을 하게 되면 전공도 결정하게 돼요. 전공이 결정되면 (수능에서) 어떤 영역을 선택해야 할지 결정할 수 있고요, 구체적인 목표 등급이 설정되니까 동기부여도 됩니다. 그래서 저는 꿈에서 진로로, 그리고 자기주도학습으로 이어진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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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공부특강EBS 공부연구팀 저 | 비아북
수험생의 ‘절대지침서’ EBS 『수능특강』, 『수능완성』에 이어 공부법의 국가표준을 제시한다. 『EBS 공부특강』은 ‘교육’이라는 공통 주제 아래 10여년 이상 활동하며 쌓아온 수능 스페셜리스트 5인의 경험과 내공을 바탕으로 기획된 공부법이다. 예비 고등학생부터 N수생까지 수능을 앞둔 모든 학생이 활용 가능한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공부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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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형 “내 소설은 건강을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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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소설뿐 아니었다. 일기 한 줄, 블로그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문장을 쓰는 것 자체가 어려웠던 시기”였다. 오래 직장 생활을 하다 2005년 등단하게 된 후 그의 앞에는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는 독자”가 버티고 있었다. 그들을 만족시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고통스럽기까지 했다. 윤이형의 세 번째 소설집 『러브 레플리카』는 그 시기를 꿋꿋하게 통과한 작가의 소산물이다. 이에 대해 작가는“일단 쓸 수 있다는 것만으로 너무 좋았”다며 해사하게 웃었다.

 

완성도는 다음 문제라고 생각했다지만 세상은 크게 응답했다. 2014년 「쿤의 여행」으로 제5회 젊은작가상을, 2015년 「루카」로 제6회 젊은작가상과 제5회 문지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렇다면, 그 무섭던 독자들은 어디로 갔을까.

 

“누가 뭐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저는 제가 재미있어서 지금 이런 걸 하고 있습니다.”

 

전에 비해 조금 건강해진 것 같다는 윤이형 작가. 그의 ‘재미’가 그대로 독자의 ‘재미’가 된다는 사실을 얘기해주면 그의 건강에 좀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장르에 대한 생각, 언젠가 꼭 쓰고 싶은 이야기, 그의 작품이 바라보는 곳과 육아에 관한 이야기까지 윤이형 작가와 다양한 이야기를 하면서 발견한 것은 ‘일상적인 사람’이자 같은 시간을 살고 있는 한 개인의 작은 성취들이었다. 그 성취가 모여 큰 우주를 만들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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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적인 요소

 

세 번째 소설집 『러브 레플리카』출간 후 인터뷰가 많았던 것 같아요.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 뭐였어요?


왜 SF적인 요소를 차용하느냐?(웃음) 저도 몰라요. 모르겠다고 했죠.

 

역시 그 질문이었군요.


괜찮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해요. 제가 그런 걸 쓰고 있기 때문에 뭔가 이상하니까 자꾸 질문을 하는 거겠죠.

 

전에 비해 ‘SF적인 요소’라는 소재가 독자들에게는 그리 낯설지 않거든요. 윤이형이라는 작가에게만 해당하는 질문도 아닐 텐데요. 또 그렇기 때문에 할 필요 없는 질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질문 하시는 분이 말하자면 순문학, 본격문학 장에 속해있는 경우는 그렇게 낯설어 하시고, 신기해하시고 그러는데 장르독자라면 전혀 신기할 것도 없고, 묻고 싶지도 않을 거예요. 그것까지 제가 어떻게 하겠어요. 다양한 독자가 있는 것인데요.

 

장르를 구분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요?


장르 구분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요. 여러 장르가 있는데 서로 존중해주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도 아무것도 모를 때는 순문학과 장르문학의 구분이 없어질 것이다, 없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생각한 적도 있는데요. 그건 아닌 것 같아요. 구분을 없애려면 먼저 각각의 장르에 대해서 확실하게 이해를 하고, 존중한 다음에나 그런 작업이 가능할 텐데요. 잘 모르겠어요. 서로 이해를 많이 하면 그런 일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아직은 차이가 더 큰 것 같고요. 차이가 존중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렇다면 작가에게는 어떤 장르를 쓴다는 정체성이 있을까요?


저는 제가 순문학 작가라고 생각해요. 둘 중 하나를 얘기하라고 한다면요. 일단 순문학 시스템에 속해있기도 하고요. 제가 쓰는 건 인간의 내면에 관한 이야기가 많기 때문에 그렇기도 해요. 사실은 자의식도 많이 들어가 있기도 하고요. 장르문학이라고 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그렇습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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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적 활동이 잘 안 되는 시기

 

반가운 소설집이에요. 흩어져 있던 글을 책으로 엮어 내는 것이 작가로서 굉장히 기쁜 일일 것 같은데 어땠나요?


이 책을 내면서는 되게 기쁨이 컸던 것 같아요. 안 써지는 시기가 있었는데 그 다음에 다시 써서 모은 거거든요. 일단 쓸 수 있다는 것만으로 너무 좋았고요. 완성도나 그런 건 다음 문제였어요. 쓰는 사람으로서는 다시 쓰는 게 너무 기뻤기 때문에 책을 낼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2010년 이후를 이야기하는 거죠? 안 써지는 시기라는 것은요.


네.

 

이유가 뭐였을까요?


글쎄요.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어느 순간부터 잘 안 되더라고요. 소설뿐만 아니라 글, 일기, 블로그 같은 것도 그랬어요. 문장을 쓰는 것 자체가 어려웠던 시기가 있었어요. 심리적인 문제였던 것 같기도 하고요. 언어적 활동이 잘 안 되는 시기가 오더라고요. 아마 다른 작가들도 말은 안 해서 그렇지 다들 한 번 씩 거치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 시기를 거친 후 발표한 작품들이 수상도 하고, 책으로 묶여 독자들의 반응도 받았어요.


지금은 쓰는 게 무척 재미있어요. 전에는 사실 재미를 잘 모르고 그냥 막 왔던 것 같은데요. 옛날에는 독자가 있고, 그 독자를 만족시키지 못하면 어떡하나 이런 생각이 되게 컸기 때문에 안 써지기도 하고, 고통스럽기도 하고 이랬던 것 같아요. 이제 제1의 독자가 제가 된 것 같아요. 저요. 누가 뭐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저는 제가 재미있어서 지금 이런 걸 하고 있습니다.

 

수록된 단편이 발표순은 아니에요. 어떤 이유가 있었나요?


편집부랑 상의해서 정한 건데요. 글쎄요, 왜 이렇게 됐을까요?(웃음) 보통 단편집 처음에 놓는 건 큰 거부감 없는 것으로 놓거든요. 제가 맞게 알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요. 그런 것 같아요.

 

표제작을 책 제목으로 정한 이유는요?


그것도 의견을 조율해서 한 건데요. 이 단편집 전체에 사랑에 관한 얘기가 많이 있고 전체를 포괄할 수 있는 제목을 찾다보니 ‘러브 레플리카’가 된 것 같아요.

 

원래 생각했던 표제작도 있었나요? 협의과정에서 좌절된(웃음) 이유도 궁금하고요.


세 개 중 하나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러브 레플리카」, 「굿바이」, 「루카」 중 하나였으면 했는데요. 「루카」는 비슷한 제목이 있었고요. 「굿바이」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좀 약한 것 같고요. 마케팅의 영역이라서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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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중요한 화두


각 단편 자체로도 새로운 이야기지만 공통적으로 읽히는 부분도 있었어요. 「러브 레플리카」, 「굿바이」, 「대니」나 「핍」에서도 그랬는데, ‘기억’이라는 주제에 작가가 많이 천착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기억이라는 게 지금의 저한테 중요한 화두인 것 같아요. 내게 기억이 많지는 않지만 계속 살아오기는 했죠. 기억이 없는 사람은 존재 기반이 흔들리게 되잖아요. 불안이 많고, 공허하고요. 그런 느낌이 많이 들어서 왜 그럴까를 생각도 많이 했어요. 내가 기억을 왜곡하거나 삭제한 것일까, 이유가 있었을까, 이런 식으로도 생각해보고요. 기억에 대해 생각하다보니 다른 질문들이 나오는데요. 살았느냐 죽었느냐도 사실 기억과 관련된 것이죠. 진짜냐 가짜냐도 비슷한 것 같거든요. 그것들이 지금 저한테 유효한 질문들인 것 같아요.

 

존재의 유무가 기억에 기반한 것이라는 아이디어가 곳곳에서 많이 읽혀요.


다른 사람들이 기억을 못해주면 그 사람은 존재한 게 아닐 수도 있고 그렇잖아요.    

 

이야기들은 또한 ‘어떤 순간’을 포착하고 있어요. 「루카」에서 두 주인공이 다투는 장면에서 나오는 대사로 상징되기도 하는데요. 사실 우리 모두는 확신하지 못하고, 흔들리는 순간을 살아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작품들이 아주 중요한 부분을 짚어낸다는 생각을 했어요. 

 
항상 우리는 자기가 확신을 가지고, 분명한 입장을 취할 수 있는 그런 존재가 되기를 소망하잖아요. 누구나 그럴 텐데요. 사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이 있고, 사람이기 때문에 타협도 하죠. 자기 기억도 분명치 않은 마당에 모든 걸 그렇게 정당화하고, 확실하게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그래도, 그렇게 살아도 괜찮지 않을까, 저는 그런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모호하고, 불확실하고, 이렇게 보이기도 하고, 저렇게 보이기도 한 게 사람이란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나는 이해할 수가 없어서 더욱 화를 냈다. 말하기조차 싫을 만큼 가고 싶지 않다면 왜 간 건데? 너는 고개를 들고, 처음으로 정말로 상처받은 표정으로 내 두 눈을 마주보았다. 너는 그런 적이 없니, 너는 물었다. 가고 싶지 않은 곳에 가본 적이, 없어?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을 때가, 너에게는 정말로 한 번도 없었니. (중략) 네가 지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모든 일이 그렇게 칼로 베어낸 것처럼 분명할 수 있다고 너는 생각하는구나.(「루카」, 134쪽)


심지어 나 자신에 관한 문제에서도 그렇다는 거고요.


네.

 

만약 이 책에서 한 문장을 꼽는다면 저는 이 문장을 꼽을 거예요. “나는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110쪽) 「쿤의 여행」의 한 문장이에요. 많은 개인이 자신을 충분히 사랑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다고 반드시 모든 사람이 자신을 사랑해야 하는 걸까 싶기도 하고,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문장이었어요.


이제 저는 40대잖아요. 얼마 전부터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대로 된 성장과정을 못 밟았구나, 하고요. 성숙하지도 않았고, 성장도 안 됐고(웃음) 껍데기만 어른의 모습을 하고 있을 뿐이지 아이 같은 면도 너무 많고, 누구를 책임질 수 있는 위치가 아니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항상 그게 너무 괴로웠어요. 내가 성숙하지 않은 존재라는 게 말이에요. 그 얘기를 「쿤의 여행」에서 한 번 해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이런 사람도 있다고요. 이 작품을 읽은 분들은 ‘성장은 불가능한 것이다’ 이런 식으로 읽던데 쓸 때는 성장하고 싶다(웃음)는 마음으로 쓴 거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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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저 이야기를 좀 해줘야 하지 않을까


작중 인물에 작가의 자아가 얼마나 투영이 되나요? 거리감이 어느 정도 되는지 궁금해요.


작가마다 다를 텐데 저는 기본적으로 제 이야기를 많이 쓰는 것 같고요. 나랑 아주 다른 타인의 이야기는 아직까지는 쓴 적 없는 것 같아요. 그게 좀, 작가로서 모자란 부분이죠. 내가 아닌 것을 보려고 한 번이라도 노력을 해야 할 텐데 결국에는 나의 시선 속으로 가져와서 쓰니까요. 다른 인물이라도 나와 비슷한 면이 있어 보이는 사람들을 주로 썼던 것 같아요.

 

스스로가 그런 점을 한계로 느끼는 건가요?


한계라고 많이 느끼고요. 너무 내면에 갇혀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많이 들었고, 다른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많이 들긴 하는데요. 노력을 해야겠죠.

 

어떤 장면에서 이야기가 시작되나요? 방금 ‘나와 비슷한 면이 있어 보이는 사람들’이라고 했어요.


보통 하나의 장면을 이미지로 떠올리고 시작되는 경우가 많은데요. 행복한 상태에 있는 사람들은 아니고요.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것 같은 고통이나 난감한 상태 안에서 괴로워하고 있는데 아무도 몰라주는 것 같은 그런 사람들이에요. 누가 저 이야기를 좀 해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아이를 키우니까 놀이터에 나가보면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이 계시더라고요. 제가 보기에는 엄청 힘들어 보이거든요. 그런데 그게 너무 당연한 것이 되어 있잖아요. 저분들도 힘들 텐데 저분들은 어디에 호소할까, 이런 생각도 해보고요.(「대니」)


「루카」 같은 경우는 두 사람이 사랑해서 같이 살지만 행복한 장면이 아니죠. 서로 등 돌리고 앉아 있는, 아무래도 왠지 슬픈 장면을 상상하게 됐어요. 왜 그런지는 모르겠어요. 제가 외로움이 많은 사람인가봐요. 쓸쓸하다거나 마음대로 안 된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지만 참 냉정하구나, 마음을 전할 수가 없구나, 이런 것이 저한테는 많이 남는 것 같아요. 행복한 순간들이 많으면 좋을 텐데 왠지 모르게 그런 게 마음에 남고 내가 뭔가를 더 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왜 잘 안 됐을까, 이런 걸 자꾸 생각하는 종류의 인간인 것 같습니다.

 

그런 감각, 공감해요. 이렇게 대화를 하면서도 내 말이 충분히 전달되고 있을까, 상대의 얘기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을까, 이 기억이 사실일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하게 돼요.


사실은 엄마가 된 다음에 너무 정신이 없어요. 순간순간이 정말 전쟁이고요. 계속해서 뭔가를 해야 하는데 그것에 대해 하나하나 깊은 생각을 할 수가 없으니까요. 그냥 대처는 하고 있는데 오늘이 또 어떻게 지나갔지, 이런 생각이 들고 그래서요. 이렇게 지나가도 되는 것인가 하는 것도 많이 생기기도 해요. 불안하기도 하고요.

 

작품들은 대부분 쓸쓸하고, 외로운 장면들인데요. 그렇다고 반드시 윤이형의 소설이 그쪽을 바라보고 있다고 해석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작가의 작품은 어느 쪽을 바라보고 있나요? 고통이나 희망, 또는 어떤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 궁금해요.


그것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데요. 건강이에요. 건강을 바라보고 있고요. 나 자신도 그렇고, 사람들이 건강해졌으면 좋겠어요. 사회도 많이 병들어있고 그것에 영향 받아 사람들도 많이 병들어있다고 느끼기 때문에요. 그래서 아프기도 하고, 잘못 살고 있는 부분도 있잖아요. 어쨌든 건강한 게 좋은 것 같아요. 건강한 사람들이 부럽죠. 완벽하거나 눈부시거나 선하거나 이렇기만 한 건 아닌데 말이에요. 그냥 자기 자신에 대해 어느 정도 만족하는 게 건강인 것 같아요. 나의 지금을 받아들이고,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는 것 말이에요.

 

「엘로」가 떠오르네요. 정말 ‘엘로’처럼 병든 부분이 눈에 선명하게 보이는 것이라면 지금은 건강하지 못한 것들이 우리 안에 아주 많이 고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참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면서 살았던 것 같아요. 최근에는 조금 사랑하게 된 것 같지만요.(웃음) 스스로가 대견할 때도 있고, 자신감이 조금은 생긴 것 같기도 해요. 쓰는 사람이건 안 쓰는 사람이건 간에요. 그렇게 조금씩 건강해지는 게 좋은 것 같고, 다른 사람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나를 사랑하게 된 그 변화의 순간은 언제였어요?


어떻게 들으실지는 모르겠는데요. 엄마가 되면서 아무래도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런 일은 제가 할 수 없을 줄 알았는데 했거든요. 그게 자존감에 많은 도움을 주었어요. 물론 많은 어려움도 있지만 계속해서 아이라는 존재와 좋건 싫건 사랑을 주고받아야 하거든요. 그게 일상이 되다보니 감정적으로도 많이 풍부해진 것 같고, 내 안에 있던 결핍도 많이 해소가 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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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상적인 사람


「핍」에서는 어른들이 사라진 평행우주를 상상하게 하는 장면이 있었고요, 「캠프 루비에 있었다」는 다른 행성에서의 삶을 엿보기도 했어요. 어딘가에서 어슐러 K. 르귄을 이야기하기도 했는데 작가가 매혹되는 소설이나 장면, 작가가 있다면 얘기해주세요.


본격 문학, 장르 문학 다 좋아하는데요. 한국 소설도 많이 좋아해요. SF도 좋아하고요. 취향이 여기저기 편재되어 있어서요. SF 팬덤만큼 전문적인 건 아니지만 보통의 독자로서 SF도 좋아하고요. 어슐러 르귄 같은 경우는 너무 완벽하기 때문에 거론을 하면 오히려 제가 민망한(웃음) 상황이라 대체로 SF 작가는 잘 거론하지 못하겠어요. 그냥 두루두루 좋아해요. 작가를 말하는 게 참 어렵더라고요.

 

한국 소설은 어떤 걸 좋아하나요?


요즘 활동하는 젊은 작가들도 좋아하고요. 정통 리얼리즘이라고 말하는 것들 있잖아요. 저는 그런 부분을 많이 안 읽어봤었는데요. 요즘 들어 조금 읽었는데 정말 좋더라고요. 와, 이런 세계가 있었는데 무지해서 몰랐구나 그런 생각 많이 했어요. 특별히 가리는 게 없어요.

 

독자와 만나는 행사에 가보면 늘 나오는 질문이거든요. 어떤 작가를 좋아하는지, 처음 소설을 쓰겠다고 생각한 순간은 언제였는지, 하는 식으로요. 이를 통해 사람들은 작가를 엿보고 싶어하는 것 같기도 해요.


처음 소설 쓰겠다고 마음먹은 순간은, 이 얘기를 하면 다들 좀 뜨악하는데요. 무라카미 하루키예요, 저는. 하루키 팬이었고, 이것에 전혀 부끄러움이 없어요. 이런 식으로 마음을 전할 수도 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마음을 건드린다는 것에 대해 하루키에게 많이 배웠어요. 너무 많이 좋아해서 이웃집 아저씨 같은 느낌 있잖아요. 거기 속하는 사람이에요.

 

하루키 만난 게 언제였어요?


아마 세대적 특성인 것 같은데 하루키를 처음 읽었던 게 고등학교 때였거든요. 『노르웨이의 숲』이 노란 색 표지로 처음 나온 판본으로 읽었는데 너무 충격이었던 거예요. 이거 너무 좋다(웃음) 하고 빠져들어서 그때부터 팠죠. 디깅(digging). 그때는 그런 사람이 많았던 것 같아요. 하루키 키드라고 해야 할까요.

 

소설을 쓰는 것이 타인에게 말을 건네는 행위라면 작가가 하루키에게 영향 받았듯 작가에게 영향 받을 독자를 생각하게 될 텐데요.


그냥 저는 대화를 좋아하고요. 수다 떠는 걸 좋아해요. 항상 누군가와 이야기를 계속 하고 싶어하기 때문에 아마 저한테 걸리는 사람은 제 얘기를 계속 듣게 될 것인데요.(웃음) 가능하면 나쁘지 않은 기억으로 남았으면 좋겠다는 마음 정도예요. 저는 일상적인 사람이에요. 평범하고요. 전문적으로 뭔가를 전해준다든가 무슨 통찰을 줄 수 있다든가 그런 건 아마 없을 거예요. 그냥 편한 옆집 사람, SNS 친구 같은 느낌이겠죠. 대체로 친구한테 얘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쓰는 것 같아요.

 

쓸 때 생각하는 가상의 독자가 있나요?


전에는 그게 되게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는 독자였데요. 지금은 그냥 저예요. 나를 만족시키고 싶다, 쓰면서 재미있으면 됐다, 다른 건 다음에 고민하자, 해요.

 

이 책에 담긴 단편들은 다 작가를 만족시켰나요? 괴롭게 한 녀석도 있었을까요?


대체로 즐거웠던 것 같아요.

 

이상적이네요.


이상적이지만 그냥 저 혼자만의 생각인 거죠.(웃음)

 

꼭 쓰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어렵네요. 한국 사회에 대해, 직설화법으로 하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는 마음은 있어요. 제 세대, 40대가 된 사람들에 대해서요. 생각만 있고, 언제 하게 될지는 잘 모르겠는데요. 나이가 드니까 점점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것 같아요. 이 공허한 세대에 대해 말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조금은 있는데요. 전혀 준비는 안 했어요.

 

공허함이 있다고요?


네, 저만 그런지도 모르겠는데요. 사회에 대한 부채감일 수도 있고요. 우리 세대는 뭘까, 생각을 해보면 잘 모르겠더라고요. 요즘엔 세대론도 낡은 틀이라는 얘기가 많긴 하지만요. 그런 담론을 떠나서 아주 사소한 공감대를 생각해볼 때 사회에 대해 뭘 했는지 잘 모르겠는, 존재감이 별로 없는 세대 같아요. 생존이 너무 힘들기도 했는데 한편으론 누릴 건 많이 누렸고요. 그런데 사는 양상은 다들 너무 다양하게 다르고, 대체로는 좀 공허해하는 것 같아요. 제가 느끼기엔 그래요.

 

이 단편들도 한국 사회의 어떤 장면들을 그린 부분이 분명히 있어요.


전부터 그런 얘기를 계속 해왔는데 장르적인 코드를 많이 담고 있어서 사람들이 그렇게 받아들이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하고 싶은 얘기는 거의 지금, 여기서 일어나는 일이에요. 내 눈에 보이는 것들 말이죠. 조금 더 깊이, 조금 더 알아듣기 쉽게 써보고 싶단 마음은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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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레플리카윤이형 저 | 문학동네
국내 굴지의 문학상 후보로 거듭 거론되며 한국 문단의 중심에서 묵직한 존재감을 발산하고 있는 소설가 윤이형의 세번째 소설집 『러브 레플리카』가 출간되었다. 기발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인간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꼼꼼하게 응시하면서 그 치유의 대화적 지평”(우찬제)을 모색한 『셋을 위한 왈츠』(2007), “견고한 현실의 장벽에 대응하여 환상의 공간을 한껏 확장시키는 모험의 서사”(백지연)를 펼친 『큰 늑대 파랑』(2011) 이후 꼭 5년 만에 묶어낸 단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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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만화가 단지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은 없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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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식으로 보상받는구나. 기쁘기도 씁쓸하기도.” 만화가 ‘단지’가 자신의 첫 단행본을 펴내며 작가 프로필에 쓴 글이다. 작가에게 이 같은 상반된 감정을 준 만화 『단지』는 가정폭력을 소재로 한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가 담긴 작품이다. 웹툰 플랫폼 ‘레진코믹스’에서 연재 44일 만에 누적 조회 수 300만을 기록하며, ‘최단 기간 최다 조회수’ 타이틀을 걸었다. 『단지』는 오빠와 남동생 사이에서 심한 차별을 받으며 자라난 ‘단지’의 이야기로, 작가의 필명 또한 ‘단지’다.

 

『단지』에는 가상 댓글(“뭐냐 이 만화는 왜케 찡찡대냐. 개선을 위해 노력은 해봤냐”)을 보는 단지의 이야기가 나온다. 실제 비슷한 악플이 달리기도 했다. 작가가 서른이 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왜 이제 와서 과거를 탓하냐”는 독자도 있었다. 반면 작가의 고백으로 위로를 받았다는 독자들도 상당했다.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 단지 작가를 마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빨강머리 단지를 쏙 빼 닮은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현재 휴재 중인 단지 작가는 『단지』시즌2를 위해 독자 사연을 받고 있다. 대개 가족들에게 차별 받거나 학대 당한 사연이다. 작가는 사연을 읽을 때마다 “기가 빨리는 느낌을 받는다“고 했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단지’는 오늘 또 어떤 차별을 겪고 있을까. 단지 작가는 “누군가 당신에게 『단지』를 보여주면서 ‘나도 얘랑 비슷해’라고 한다면, 그의 아픔을 가벼이 여기지 말아달라”고 말했다.

 

크기변환_단지1_본문_143.jpg크기변환_단지1_본문_144.jpg

 

언젠가 가족에게도 만화를 보여주고 싶어요


연재 초반에 악플러가 꽤 많았다고요.

 

오빠, 남동생 사이에서 차별을 받는 이야기니까요. 남자, 여자가 싸울 수 있는 소재잖아요. 악플러가 되게 많았어요. 개인 홈페이지까지 와서 욕을 다는 분들도 많았고요. 악질적인 글도 있었어요. 조금 돌려서 “작가가 스무 살짜리 꼬꼬마인 줄 알았는데 서른이 넘었네?”라고 쓴 글도 있었고, “왜 그렇게 남 탓만 하냐, 나는 너보다 훨씬 더 힘들게 살았는데 지금 잘살고 있다”, “고작 만화로 가족 욕밖에 못 하냐?”는 분도 있었어요.

 

불쾌했을 텐데요.


작가 입장에서 맞받아치기는 또 애매해서요. 보통 내버려둬요. 가끔은 독자 분들끼리 싸우세요. 그러면 전 조용히 댓글에 ‘좋아요’를 누르고요. 『단지』를 놓고, 작가의 현재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꽤 많은 것 같아요. “왜 아직도 당하고 사냐?”는 거죠. 하지만 전 지금 집에서 나와 혼자 살고 있어요. 부모님께 끌려 다니지도 않고요. 응원해주시는 분들도 많아요. “앞으로 잘하려는 작가에게 왜 그러냐”고 대신 화도 내주시고요.

 

『단지』를 그리면서 가장 힘들었던 장면이 있나요?

중학생 때, 은따를 당했던 에피소드를 그릴 때 가장 많이 울었어요. 후반부에서는 엄마와 대화하는 장면을 그릴 때 그랬고요.

 

정신과 상담을 받기도 하셨는데요.

 

재작년이었어요. 본가에서 나와 독립하고 1년이 안 된 시점에서 갔으니까요. 만화 연재를 준비해야 하는데 스트레스가 많았어요. 불안하더라고요. 친구가 가볍게 생각하고 정신과에 가보라고 조언을 해줘서 가게 됐어요. 약을 먹기 시작했는데 확실히 기분이 나빠지지 않았어요. 그런데 병원에서는 약만 주더라고요. 제게 더 필요한 건 약보다는 대화라는 생각이 들어 상담센터에도 다녔어요.

 

상담은 도움됐나요?


8개월 정도 다녔는데요. 도움이 많이 됐어요. 만화에 상담 선생님이 등장하잖아요. 단행본이 나오고 나서 선물로 책을 드렸더니, “내가 이렇게 생겼어요?”라면서 반가워하시더라고요.

 

단지는 “문제 제시만 하다 끝내고 싶지 않아”라고 말합니다. 단지가 온갖 차별을 다 받았지만 계속 부모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엄마의 어릴 적 성장 배경을 만화에 담기도 했고요. 지금 작가님의 심경은 어떤가요?


이제는 끝났죠. 사실 만화를 그리면서도 알았어요. 개인의 성장 배경이나 환경이 상당히 중요하지만, 결국은 개인의 성향, 기질이 가장 크다고 생각해요. 교육적인 부분도 마찬가지예요. 같은 교육을 받아도 사람은 다르게 성장하잖아요. 성격인 것 같아요.

 

가족들이 만화를 우연히 보게 된다면, 어떤 반응일까? 상상해본 적이 있나요?


만화 도입부에 “따져 묻고 싶지만 아마 못 할 거다. 그래서 이 방법을 생각했다”고 썼어요. 하지만 실제 엄마를 찾아가서 이야기를 시도해봤어요. 포문이 약간 싸우는 느낌으로 시작돼서 제대로 터놓지는 못했지만요. 실제로 엄마나 아빠가 만화를 보신다고 하더라도 큰 깨달음 같은 건 없으실 것 같아요. 모든 일이 그렇잖아요. 당한 사람만 기억하니까요. “네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그걸 상처로 갖고 있냐”고 하실 것 같아요.

 

말로 듣는 것과 그림(장면)으로 보는 느낌이 다를 것도 같은데요.


친구들도 그러더라고요. 예전에 우리 가족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그런가 보다’ 싶었는데, 만화를 보니까 느낌이 다르대요. 너무 쉽게 말했던 걸 미안해하는 친구도 있었어요. 엄마도 만화를 보면 조금 충격을 받으실까요? 책은 언젠가 보여드리고 싶어요. 보여드리려고 생각도 했고요. 다만, 먼저 순수하게 말로 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긴 했죠.

 

드라마 <응답하라 1988>를 보셨는지 궁금해요. 굉장히 애틋한 가족애를 다룬 작품이었는데요.


봤어요. 처음에는 가족 코미디인줄 알고 보기 시작했는데 아니더라고요. 1회였던 것 같아요. 덕선이가 언니 보라랑 싸우는 장면인데, 덕선이가 너무 불쌍했어요. 언니가 동생 머리끄덩이를 잡는데, 엄마 아빠는 그냥 한숨만 쉬면서 외면하는 거예요. 제가 보기엔 덕선이가 너무 불쌍한데, 연출은 코믹적이고 배경은 웃기게 깔리니까 너무 슬펐어요. 마지막엔 덕선이가 터지더라고요. ‘나도 덕선이처럼 소리를 질렀어야 했나?’ 싶었어요.

 

부럽다는 느낌도 들었나요?


보기 불편했어요. 예쁘고 따뜻한 장면들을 보면서, 이게 정상적인 가족의 모습 같은데 아닌 경우가 많으니까요. 다 저래야 할 것 같은데 세상 속 가족들은 아니니까요.

 

작가님이 과거를 극복했기 때문에 『단지』를 작품화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잘 모르겠어요. 다만 생각이 많이 정리된 것 같아요. 보통 가족이랑 다퉈도 그냥 기분이 나쁠 뿐이지 그 상황이나 이유에 대해 분석하지 않잖아요. 그것도 스트레스니까 어떻게든 감정을 털어내고 잊으려고만 하는데요. 만화를 그리다 보니, 여러 입장에서 생각해보게 됐어요. 내가 왜 기분이 나빴는지, 정리하다 보니까 확실해졌어요. 내 감정이 어떤지, 엄마를 어떻게 생각했는지에 대해서요. 예전처럼 가족들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흔들리는 일이 줄어든 것 같아요.

 

만화에서 인상 깊었던 단지의 혼잣말이 있습니다. “성격 형성 얘기는 사실 가정환경의 영향이 지대하다고 말하기 어려워. 내 기본 성격과 가정환경의 영향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겠지.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실히 가정환경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는 게 있지. 그건 바로 결혼관”이라는 문장이었어요.


결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못하고 살았던 것 같아요. 최근에는 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좋은 사람이 있으면 하고 싶다’ 이런 단순한 느낌은 아닌 것 같아요. 결혼을 한다고 해도 아이를 낳을까? 잘 키울 수 있을까? 라는 문제에서는 머뭇거려져요. 보고 자란 게 있으니까 잘 키울 자신이 없어요. 아이에 대한 생각은 더 어려워요. 바뀌기 어려울 것 같아요. 이기적인 생각이지만 스트레스가 클 것 같아요. 억지로 해야 하는 부분, 의식해야 하는 부분이 생길 테니까요. 그건 제 진짜 모습이 아닐 거고요.

 

만약 부모가 된다면, 자녀에게 어떤 이야기를 많이 해주고 싶나요?


글쎄요. 그냥 이름을 자주 불러 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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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가 위로를 만들었다


 

작품 제목도 ‘단지’, 주인공 이름도 ‘단지’, 작가의 필명도 ‘단지’예요. 어떤 뜻인가요?


단지는 잘린 손가락이에요. 잘라서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란 뜻이죠.

 

『단지』를 보고, 작가님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눈치챈 지인들도 있나요?


몇몇 친구들이 알았어요. 만화를 보고서 “이거 네 작품 아니냐고?” 묻더라고요. 평소에 가족 이야기를 종종 했으니까요. 하지만 제 가족들은 몰라요. 친척들도 모르고요.

 

만화가 데뷔는 어떻게 하셨나요?


네이버 도전만화에 작품을 몇 편 올렸어요. 그러다 연이 닿아 연재를 시작했고요. 되게 오래 전 일이에요. 그림을 좋아했지만 꼭 만화가가 되겠다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대학에서는 프로그래밍을 했어요. 부모님이 제가 만화 그리는 걸 싫어하셔서, 관련 학과에 진학하진 못했어요. 졸업하면서 처음 연재를 시작했는데 집에서 매일 만화만 그리고 있으니까, 좀 싫어하셨어요.

 

‘단지’라는 필명을 사용하고 있지만, 다른 작품을 연재할 때는 또 다른 필명이 있다고 들었어요. 전작들은 어떤 소재였는지 궁금해요.  


『단지』는 네 번째 작품이에요. 예전 작품은 밝은 만화가 대부분이었어요. 4컷 만화도 있고 순정만화도 있고요. 『단지』와는 너무 다른 작품이죠. 전작들을 그릴 때는 재미적인 부분에 대해 많이 고민했어요. 하지만 『단지』는 어떻게 하면 내 감정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전할 수 있을까, 좀 더 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어요. 많이 달라졌죠. 되게 힘들었어요. 아마 독자 사연을 받지 않았다면 시즌2는 생각하지 못했을 거예요.

 

지금 휴재 중이신데요.


독자 분들 사연을 받고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는데, 너무 어렵더라고요. 대개 가족들에게 차별 받거나 학대 당했던 사연들을 보내주시는데, 제 이야기가 아니니까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고민이 많아요. 사연을 읽는 것만으로도 기가 빨리는 느낌이에요. 거의 범죄에 가까운 이야기도 많고요. 『단지』를 읽고 위로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시는데, 결국엔 저를 위로하며 끝을 맺어주시더라고요. “작가님 힘내시라”고요.

 

어떤 독자들이 『단지』를 읽으면 좋을까요?


저처럼 상처가 있지만 미처 말을 꺼내지 못한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말하지 못한 걸 만화로 그렸듯이, 가족 안에 상처가 있는 친구가 있다면 『단지』를 주면서 “이 책, 한 번 읽어봐”라고 손을 내밀어줬으면 좋겠어요. 되게 어려운 일이거든요.

 

다음 작품은 어떤 필명으로 발표할 계획인지 궁금합니다.


고민이 많아요. 원래 쓰던 필명을 써야 할지, 단지라는 이름을 갖고 가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나름 그림체를 바꾼다고 했지만, 한계도 있을 테니까요. 제가 원래 하던 이야기는 순수 창작인데, 사람들은 『단지』를 더욱 기억할 테니까요. 아직 정해진 건 없어요. 다만 어느 분야에 있어서 인정받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막 대중적인 작가가 되길 꿈꾸진 않아요. 만화가로서는 지금이 딱 좋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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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1단지 글,그림 | 레진엔터테인먼트
레진코믹스에 첫 회가 업데이트 되자 최단 기간 최다 조회수를 기록하며, 2015년 화제작으로 떠오른 〈단지〉. 가정폭력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를 처음 접한 독자들은 위안을 받았다는 긍정적 반응과 일방적인 폭로라는 부정적인 반응 등을 쏟아내며 온라인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이 만화는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로, 일상이 돼 인지하지 못했던 지난 시절의 가정 내 차별과 폭력을 다루고 있다. 특히 ‘딸’이어서 받았던 차별과 학대에 관한 이야기는 한번쯤 겪어본 많은 여성들의 공감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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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더글라스 케네디 “당신은 배우자를 알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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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변했다고 배신이라 할 수 있을까요?

 

소설을 읽는 동안 몇 번이나 아찔함을 느꼈다. 감쪽같이 나를 속여 온 남편, 거짓말이 발각됨과 동시에 시작된 숨바꼭질, 끝없이 밝혀지는 그의 과거, 그 안에 숨어 있던 나의 상처… 결혼과 관련해서 가장 떠올리기 싫은 이야기들이 총망라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한 ‘파국의 이야기’가 아니다. 믿고 싶은 대로 믿어버리는 실수 때문에 자신뿐 아니라 상대의 모습까지 왜곡시키는, 그 결과 주어지는 불행에 대한 ‘성찰’이다.

 

『빅 픽처』, 『파이브 데이즈』, 『파리 5구의 여인』, 『모멘트』의 작가 더글라스 케네디가 새로운 소설 『비트레이얼』을 발표했다. ‘배신’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주인공 로빈의 비극은 남편 폴의 거짓과 기만에서 시작된다. 아이를 갖기 위해 함께 노력하기로 했던 남편이 자신 몰래 정관수술을 받았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그녀는 마흔을 앞두고 있었고, 더 늦어지면 임신을 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절박했다. 그 간절한 바람을 알면서도 폴은 독단적으로 수술을 결정했고, 그 사실을 비밀에 부쳐왔다. 폴의 제안으로 함께 떠난 모로코 여행에서 진실을 알게 된 로빈은 배신감에 몸을 떨며 호텔방을 나선다. “당신은 살 가치도 없는 인간이니까 차라리 죽어” 증오가 가득 담긴 한 장의 메모를 남

기고.

 

홀로 해변에 앉아 울음을 쏟아낸 뒤 그녀가 돌아왔을 때, 방에는 폴이 남긴 메모가 놓여 있었다. “당신 말이 맞아. 나는 죽어야 해” 그리고 그는 흔적 없이 사라졌다. 아니, 너무도 뚜렷한 흔적을 남기고 사라졌다는 게 문제다. 벽에는 선명한 혈흔이, 바닥에는 엉망으로 뒤섞인 옷과 소지품들이 남아있었다. 한 순간 범죄현장에 남겨지게 된 로빈은 모로코 경찰로부터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되고, 말도 통하지 않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선 땅에서 남편을 찾아 나선다. 폴을 만나기 전까지는 진실을 알 수도, 둘의 관계를 정리할 수도 없다.

 

젊은 시절 폴은 모로코에 머문 적이 있었다. 화가로서 미술대학의 학생들을 지도할 때였다. 로빈은 당시에 폴과 알고 지냈던 이들을 만나기 위해 카사블랑카, 에사우이라, 와르자자트, 사하라사막, 마라케시까지 모로코의 곳곳을 떠돈다.

 

비트레이얼』을 펴내며 방한한 작가 더글라스 케네디를 만나 소설의 뒷이야기를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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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여행을 많이 다녀요. 모로코에는 2012년에 당시 여자친구였던 지금의 아내와 갔었어요. 마침 다음 소설을 구상하고 있었는데, 모로코가 적격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곳은 광활해서 잘못하면 길을 잃어버릴 수도 있는 곳이죠. 단순히 길을 잃는 것으로 그치는 게 아니라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곳이에요. 사하라 사막 같은 곳도 있으니까요. 모로코가 낯선 곳이라는 사실도 중요했습니다. 저는 모험 이야기를 쓰고 싶었고, 로빈이 극한의 상황에서 어떤 힘을 발휘해서 어디까지 헤쳐 나갈 수 있는지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모로코는 북아프리카이지만 프랑스의 문화가 섞여있는 매력적인 곳이에요. 저는 모로코에 갔을 때 너무나 특별하고 이국적인 모습에 흠뻑 빠졌습니다. 신비로운 세계처럼 느껴졌어요. 그래서 소설에 대한 영감이 번개처럼 머리에 스쳤죠.”

 

폴을 찾아 헤맬수록 로빈이 알게 되는 것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던 그의 과거다. 자신의 회계사무소에서 폴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첫눈에 강한 이끌림을 느꼈던 그 순간부터, 로빈은 알고 있었다. 폴이 충동적으로 소비를 하는 무책임한 사람이라는 걸. 하지만 그녀는 결혼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저지르는 ‘흔한’ 실수를 피해가지 못했다. ‘나와 함께 사는 동안 이 사람도 조금은 바뀌겠지’라는 착각에 빠진 것이다.

 

“로빈도 폴이 어떤 사람인지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보이는 대로 본 게 아니라 자신이 보고 싶은 걸 보았던 거죠. 상대를 변화시킬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보니까 실수를 하게 된 거예요. 하지만 배신과 결혼이 불가분의 관계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꼭 결혼이 아니어도 사람 사이에는 늘 배신이 있죠. 결혼 생활을 하다 보면 사랑관 자체가 변하게 되죠. 살다 보면 사랑이 변하는 거잖아요. 그걸 배신이라고 생각하는 건 맞지 않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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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사이의 진실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지나치게 정돈되고 이성적인 내가 자기 파괴적인 충동을 지닌 남자를 무의식 중에 골랐고, 그 남자를 변화시킬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로빈은 고백한다. 사실 그녀는 안정된 삶을 위해 신문기자를 그만두고 회계사가 되었을 만큼 유동적이고 가변적인 삶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다. “인생을 대차대조표를 확인하듯 살피며 손실을 없애는 데에 끝없이 매달려왔고, 뭐든 정확하게 되어 있지 않으면 늘 불안해했”던 그녀가 폴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어디로 튈지 알 수 없을 만큼 즉흥적인 남자, 순간의 감정에 충실한 나머지 계획을 어그러뜨리는 일이 잦은 남자, 그를 사랑한 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과거는 사라지는 게 아니라 가슴 속에 남아있는 거죠. 프로이드의 말대로 성인이 된 후의 모든 일들이 일종의 과거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지 않습니까? 『비트레이얼』에서도 드러나듯이, 로빈의 엄마는 이성적이기는 하지만 냉소적이고 차가운 분이었습니다. 반면에 아버지는 따뜻하기는 하지만 재정 문제를 가지고 있었죠. 로빈은 굉장히 이성적인 사람이지만 모로코를 떠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폴을 찾아 다닙니다. 아마도 과거의 자신이 아버지를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때문에 신기루처럼 폴을 찾아 다닌 게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가 항상 이성적으로 생각하는 건 아니잖아요. 합리적이지 않은 판단을 하기도 하지만 그때는 알지 못하죠. 한참 지나고 나서야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에세이 『빅 퀘스천』안에서 작가는 이야기했다. “삶의 덫에 갇혀 더없이 소중한 인생을 불행하게 보내기로 결정한 사람은 결국 자기 자신이다” 『비트레이얼』의 로빈에게도 그대로 적용 가능한 이야기다. 그녀는 폴을 두고 미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고, 그곳에서 이혼 절차를 밟으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사랑했던 기억과 연민 때문에 상처 입은 폴을 두고 떠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무의식 중에 그를 지켜내지 않으면 안 된다고 여긴다. 자신의 아버지와 닮은 남자인 그를 다시 잃는 것은 과오를 되풀이하는 것이기 때문에. 또한 『빅 퀘스천』에서 작가는 적고 있다. “우리는 타인의 행복까지 책임질 수는 없다. 누구나 자기 자신의 행복에 대해서만 책임이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로빈에게 주어진 고통은 전적으로 자신의 책임인 걸까. 폴로 인해 느끼지 않아도 됐을 배신감을 맛보고 경험하지 않아도 좋았을 모험에 빠지게 되었는데도, 폴에게는 책임이 없는 걸까.

 

“어차피 로빈은 폴이 책임감 없는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결과는 결국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것이죠. 가정폭력 상황에서도 그곳에 가만히 있을 수도 있지만 자리를 박차고 나올 수도 있잖아요. 그런 상황을 로빈한테 적용한다면 책임을 폴한테 돌릴 수만은 없죠. 폴이 그런 사람인 줄 알면서도 결혼한 로빈에게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깨닫는 건 우리 삶을 달라지게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인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질문하면 삶의 덫에 빠지지 않아요.”

 

폴의 흔적을 따라가는 동안 로빈은 오해받기와 해명하기를 반복한다. 로빈보다 폴을 먼저 만났던 이들은 하나 같이 폴의 진술을 통해 재구성된 사건을 진실이라 믿는다. 왜곡된 진실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은 로빈도 마찬가지다. 그녀 역시 폴이 남긴 단서들을 토대로 자신이 추측한 바가 사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근본적으로 사람들 사이의 진실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똑같은 사안을 두고도 내가 이야기하는 것과 다른 사람이 이야기하는 것이 다를 수 있죠. 두 가지 모두 진실입니다. 결혼생활에서도 서로 자신이 맞다고 주장하지만 누가 옳고 그른지는 중요한 것이 아니죠. 저 역시 첫 번째 이혼을 겪으면서 그 과정에 대한 저의 진술과 아내의 진술이 다르다는 걸 알았습니다. 그게 다 각자의 진실이라고 생각해요. 하나의 사건이지만 보는 관점이 다른 거니까, 진실은 두 개일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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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at Do I Want?


전작 『파이브 데이즈』를 통해 “What Do You Want?”라는 질문을 던졌던 작가는 『비트레이얼』을 이야기하며 “What Do I Want?”를 묻고 있었다.

 

『비트레이얼』의 집필을 앞두고 가장 기본적으로 떠올렸던 질문은 ‘과연 우리는 타인을 진정으로 알 수 있을까?’라는 것이었습니다. 로빈은 폴을 알고 있었던 걸까요? 그리고 타인에 대해 아는 것뿐만 아니라 ‘과연 나는 어떤 사람인지 진정으로 알 수 있을까?’라는 질문도 품고 있었습니다. 로빈은 아는 사람이 하나 없는 낯선 곳에서 극한의 상황에 처하게 되는데, 그녀가 이 상황을 헤쳐 나갈 수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사람이 극한 상황에 처하면, 평범하게 살 때는 못할 것 같았던 일도 해내게 되죠. 그런 의미에서 『비트레이얼』은 사람이 어떻게 더 강해질 수 있을까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뉴욕에 있는 제 이웃 중에 암 투병 중인 여성이 있습니다. 그녀에게 『비트레이얼』을 건네줬더니 무척 좋아하더군요. 소설을 읽으면서 힘을 얻었다고요. 로빈이 낯선 상황에서도 결국 헤쳐 나가니까요.”

 

『빅 픽처』, 『파이브 데이즈』, 『비트레이얼』에 이르기까지 더글라스 케네디의 작품 속에는 결혼생활에서 크고 작은 문제를 겪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 바탕에는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이 자리하고 있다. 그는 끊임없이 마찰을 겪으면서도 결혼을 유지해 온 부모님 밑에서 자랐고, 자신도 한 번의 이혼을 경험했다. 그렇지만 결혼에서 비롯되는 문제들을 소재로 삼는 가장 큰 이유는, 결혼을 통해서 나 자신의 문제뿐만 아니라 그로 인한 관계의 문제들을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결혼생활은 주인공들의 갈등을 잘 보여주고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공통적 주제이기 때문에 작품 속에서 그와 관련된 문제들이 등장한다”는 것.

 

『비트레이얼』에서도 로빈과 폴의 결혼생활에는 과거의 상처가 투영되어 있고, 그것을 극복하고자 만들어낸 이상이 덧칠되어 있다. 이상은 상대에게도 그대로 투사되어 자신이 바라는 모습대로 배우자를 인식하거나, 혹은 그렇게 바뀔 거라는 기대를 버리지 못한다.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지난 사랑의 망령에 사로잡혀 있는 셈이었다”는 로빈의 고백은, 그래서 의미심장하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비트레이얼』에서도 작가는 탁월한 이야기꾼의 면모를 보여준다. 400페이지를 웃도는 긴 이야기임에도 이어서 전개될 사건이 궁금해서 책을 내려놓을 수가 없다. 마치 모로코 여행기를 읽은 듯한 착각을 안겨주는 생생한 묘사 역시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다. 더글라스 케네디의 작품은 흥미로운 전개, 섬세한 묘사, 삶의 단면을 포착하는 날카로운 시선까지 두루 갖춘 덕에 더글라스 케네디의 작품은 영화계의 관심과 사랑까지도 한 몸에 받아왔다. 『빅 픽처』, 『The Dead Heart』, 『파리 5구의 여인』총 세 편의 작품이 영화로 제작된 바 있다. 활자만으로도 이미지를 펼쳐 보이는 작품들인 만큼 스크린 위로 자리를 옮긴다고 해서 놀라울 것은 없었다. 과거 희곡을 집필했던 작가의 경험 덕분일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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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구조 잡는 데에는 도움이 됐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희곡은 대화를 통해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비트레이얼』에서도 대화체로 전달되는 부분이 많잖아요. 그런 점에 있어서도 희곡을 썼던 경험이 도움이 됐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소설 속에는 더 많은 것들이 녹아 들어 있죠. 저는 연극이나 재즈 공연을 많이 관람하고 책도 많이 읽습니다. 그리고 일상생활 속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을 계속 관찰해요. 무엇을 하는지, 어떤 사람인지, 주의 깊게 살펴보죠. 그런 모든 것들이 소설 속에 담기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더글라스 케네디는 자신의 이야기를 책 속에만 붙들어 둘 생각은 없어 보였다. 그는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소설 읽기의 방식도 변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소설의 독자층이 점차 줄어드는 현상은 당연한 거라고 볼 수도 있죠. 흥미를 잃었다기보다는 선택할 수 있는 매체가 너무 많은 거예요. 인터넷이나 스마트폰과 같은 새로운 매체들이 등장하면서 모든 것들이 진화하고 있죠. 반면에 책은 항상 똑같은 가격에 부모에게서 자식으로, 선생님에게서 학생들에게로 전달됩니다. 심지어 책장에 그대로 있는 경우도 있고요. 그렇지만 독서의 교육적 가치는 변함없어요.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서 소설 읽기도 변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고심해야 할 문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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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레이얼더글라스 케네디 저/조동섭 역 | 밝은세상 | 원제 : The Heat of Betrayal
《비트레이얼》은 어드벤처, 스릴러, 로맨스 장르의 특징을 모두 포함하고 있는 소설이다. 주인공 로빈이 모로코 곳곳을 떠돌며 남편 폴을 찾아 헤매다 벌어지는 온갖 모험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로드무비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버펄로에 회계사무소를 열어 사회적으로 성공한 로빈이 결혼을 통해 더욱 행복해지기보다는 남편 폴의 배신으로 낯설고 위험한 모로코에서 절체절명의 위기를 겪으며 다양한 모험을 펼쳐나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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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 이민아 “올리버 색스의 환자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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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8월 타계한 올리버 색스의 자서전 『온 더 무브』가 번역 출간됐다. 신경과 전문의로서 자신이 만났던 환자들의 이야기를 따뜻한 시선으로 들려주었던 그는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나는 침대에서 내 다리를 주웠다』, 『색맹의 섬』, 『편두통』등의 저서를 통해 국내 독자들에게도 친숙한 작가다. 그는 환자들을 치료의 대상으로만 보지 않았다. 우리와 조금 다른 세상 속에서 저마다의 자각을 가지고 살아가는 ‘동등한 존재’로 바라봤다.

 

색스의 모든 책들은 이러한 ‘눈 맞춤’에서 시작되었고, 타고난 이야기꾼이었던 그의 재능과 맞물려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그는 뇌 과학과 정신질환의 이론들을 평이한 언어로 풀어내는 동시에 유머를 잃지 않았다. 덕분에 우리는 어렵지 않게 그의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었고, 병원과 연구실 안에 갇혀있던 어떤 삶에 대해 무지하거나 침묵하지 않을 수 있게 됐다.

 

『온 더 무브』는 색스가 세상을 떠나기 약 4개월 전, 세상에 나왔다. 어렸을 때부터 써 온 1000권의 기록을 바탕으로 자신의 삶을 진술하는 그의 목소리는 덤덤하다. 동성애자로 살아온 삶, 마약중독에 빠졌던 경험 등 ‘파격적인 최초의 고백’을 들려주면서도 시종일관 차분하다. 과도한 자기연민이나 세상을 향한 날 선 원망은 찾아볼 수 없다. 끝내 감추고 싶었을 법한 이야기들까지 있는 그대로 끌어안는 것, 그것은 타인과 세상을 사랑했던 ‘진정한 휴머니스트’로서 색스만이 보여줄 수 있는 모습이다.

 

책은 색스의 삶과 저서들에 대한 이해와 호기심을 동시에 불러일으킨다. 한 때는 모터사이클에 열광했던 스피드광으로, 또 한 때는 인간 힘의 극한에 도전하는 짜릿함에 매료됐던 역도인으로 살면서 한 순간도 지적 탐구를 게을리 하지 않았던 그는 끊이지 않는 열정의 소유자였다. 그 엄청난 에너지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온 더 무브』는 알려준다. 따뜻한 시선으로 환자들을 살피고 그들의 이야기를 책 속에 담아내는 데 바탕이 된 개인적 경험들도 들여다볼 수 있다.

 

"이 아름다운 행성에서 의식 있는 존재, 생각하는 동물로서 살아온 사실 자체가 크나큰 특권이자 모험이었다"는 고백을 남긴 채 다른 행성을 향해 떠나간 올리버 색스. 그를 대신해 『온 더 무브』의 이야기를 들려준 이는 번역가 이민아였다. 그녀는 『온 더 무브』를 포함해 『색맹의 섬』, 『깨어남』, 『마음의 눈』까지 총 네 권의 색스의 저서를 번역했다. 작가와 번역가라는 독특한 인연으로 색스와 만나온 그녀는 인터뷰 내내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책의 안과 밖에서 자신이 만난 색스에 대해 회고하는 모습이 마치 오랜 친구를 추억하는 이의 그것 같았다. 그 모습이 너무도 다정해서 이유에 대해 물었다. 이민아 번역가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누구라도 색스의 책을 번역하면 그렇게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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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더 무브』는 색스에 대한 재발견


올리버 색스와는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셨나요?

 

제가 색스 선생님 책을 처음 번역한 게 『색맹의 섬』이었어요.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읽고 팬이 되었고요. 그 다음에는 『깨어남』을 찾아서 읽게 됐는데, 당시에는 최승자 선생님께서 발췌 번역하신 책이 있었어요. 최승자 선생님은 제가 워낙 좋아하는 시인이기도 하지만, 번역을 훌륭하게 하시는 분이시죠. 선생님께서 번역하신 책 중에 까치글방에서 출간됐던 『빈센트 반 고흐』라는 책이 있었는데, 그 책을 대학교 때 읽었어요. 저에게는 번역을 의식하게 해준 거의 첫 번째 책이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어떻게 하다 보니까 『색맹의 섬』이 저한테 오게 됐고요. 그때 올리버 색스의 신상정보를 처음으로 자세히 들여다봤는데, 집이 거의 식물원 같다는 소개 글이었어요. 살아서 꼭 한 번 그 식물원에 방문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었죠. 나중에 알고 보니 세계적으로 유명한 분이시더라고요. ‘우리나라에도 독자가 많이 생기면 강연을 하러 오시지 않을까, 그러면 좋을 텐데’ 하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되지는 않았죠. 만나 뵈면 좋겠다고 상상은 했지만, 기대를 하거나 그런 건 아니었어요.

 

올리버 색스의 타계 소식을 듣고 상실감이 크셨을 것 같습니다.

 

뭐라고 말을 하기가 어려운… 그런 거죠. 색스 선생님께서 80세 생신 때 인터뷰를 하신 게 있는데, 그때 실감이 났어요. ‘아, 젊은 분이 아니셨지’ 그래서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는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돌아가시기 직전에 제가 즐겨 듣는 팟캐스트에 출연하신 적이 있는데, 그때 어린이 주기율표를 준비하고 계신다고 하시더라고요. 아마 며칠 후에 <뉴욕 타임즈>에 그 주기율표가 나왔을 거예요. 마치 준비된 죽음처럼, 모든 게 서서히 진행이 됐었죠. 그리고 색스 선생님과 아주 가까웠던 분들의 말씀으로는, 마지막 순간에 고통 없이 아주 편안하게 가셨대요. 이틀 전까지 글을 쓰셨고요.

 

독자로서 『온 더 무브』를 처음 읽으셨을 때는 어떤 느낌을 받으셨어요?

 

재미있죠.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빨리 책장을 넘기고 싶고요. 선생님께서 쓰신 책들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니까, 번역할 때의 느낌도 기억이 났어요. 『온 더 무브』를 번역하는 데 시간이 충분하지는 않았어요. 책의 분량도 있고, 부고 소식이 워낙 크게 회자돼서 ‘빨리 독자들에게 책을 읽게 해드려야겠다’는 마음도 있었거든요. 그래서 정신 없이 번역을 했었죠. 번역가가 아닌 독자라면 편하게 읽을 수 있잖아요. 충분히 즐기면서 여러 가지 생각도 해보면서. 특히 선생님의 책은 많은 걸 생각하게 해주니까요. 많은 책을 읽어보게 만들고요. 색스 선생님의 독자들은 다 그렇게 생각하실 거예요. 그런데 번역을 하게 되면 시간적인 여유가 별로 없어요. 책이 출간된 후에도 또 다음 작업이 진행되고요. 그런데 이번에는 채널예스와의 인터뷰를 준비하면서 예전의 책이나 자료들을 찾아보게 됐어요. 그 동안은 추모할 시간 없이 번역에 매달려 있었는데, 이제야 나름의 명복을 빌어드리는 시간을 갖게 된 것 같아요.

 

이번 책은 자서전인 만큼 번역하시면서 색스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신 부분도 있을 것 같은데요. 어떠세요?

 

굉장히 많았죠. 수영을 좋아하신다는 건 이따금씩 말씀하셔서 알고 있었는데, 그게 중증 이상이라는 걸 이번 책을 통해서 알 수 있었고요(웃음). 역도광이셨다는 것도 알게 됐죠. 특히 동성애와 관련된 부분은 처음 밝히신 거라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데요. 글을 읽어보면 가장 조용한 목소리로 가장 강조하지 않고 고백을 하시거든요. ‘이 문제가 너무 힘드셨겠구나’ 싶기도 했어요. 선생님께서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가시게 된 이유 중 하나가, 당시 영국의 고급 지식인들이 살아갈 길이 별로 없었던 정체된 환경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떻게 보면 성적으로 보수적인 사회의 분위기도 크게 작용했을 것 같아요. 그리고 글을 많이 쓰셨다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죠(웃음). 일기 천 권, 임상진료기록 천 권을 쓰셨다고 하는데, 지인들과 주고받으신 편지도 책으로 엮으면 천 권 이상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웃음).

 

말씀하신 것처럼 색스는 『온 더 무브』를 통해 자신이 동성애자라고 최초로 고백했습니다. 출간 후에 적지 않은 파장이 일었을 텐데, 어땠나요?

 

처음에 책이 나오고 나서 영어권 독자들 사이에 언쟁도 있었어요. 동성애나 마약에 대해서 반감을 가지고 있는 분들은 배반감을 느꼈다고 하고, 오히려 더 팬이 됐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죠. 이번 책은 거의 ‘색스에 대한 재발견’이라고 할까요. 독자들뿐만 아니라 과학계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도 충격을 받은 사람이 굉장히 많았어요. 작년에 동성 결혼 합법화가 이루어지면서 동성애에 대해 조금 더 관용적인 분위기가 만들어져서, 조금 더 편하게 고백하실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 평생 그 비밀을 지키기 위해서 많은 애를 쓰셨더라고요.

 

분명 쉬운 고백은 아니었겠죠.

 

『온 더 무브』에 ‘렌 웨슐러’로 등장하는 선생님의 친구 분이 계신데, 이분이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예요. 원래는 선생님의 전기를 쓰기로 하셨는데 마지막까지 선생님께서 머뭇거리신 부분이 있었다고 해요. 커밍아웃에 대한 거였죠. ‘그 부분에 대한 이야기 없이 전기를 쓸 수 있을까’ 고민을 하시다가 접으시고 『온 더 무브』를 쓰신 거죠. 그 친구 분도 회고록을 쓰실 계획이라고 해요. 두 분이 함께 쌓으신 추억과 자료를 모아서 조만간 책으로 내신다고 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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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색스는 모순된 인물

 

『온 더 무브』를 통해 알게 되신 색스의 또 다른 면모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굉장히 모순된 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색스 선생님은 엄청난 이야기꾼이잖아요. 그런데 글을 잘 쓰면 말은 잘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TED 강연이나 팟캐스트에서 말씀하시는 걸 들어보면 이야기를 굉장히 재미있게 하세요. 그런데 말을 더듬으세요. 그런 모순이 있죠. 또 엄청난 관찰력을 가진 분이신데 얼굴맹이고요. 심지어 길치이기도 해요. 여러 가지 모순을 가지고 계신 분이에요. 환자들을 그렇게 사랑하고 접하는 모든 것들에 애착을 가지셨는데 본인은 35년 동안 외롭게 살기도 하셨고요. 두 번의 사랑을 거절당하고 외롭게 사시다가 마지막에 너무 좋은 연인을 만나서 떠나실 때는 행복하게 가셨죠. ‘선생님께서 그런 모순들을 갖고 계시지 않았다면, 독자들에게 이런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하실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이전과 달라진 생각은 없었나요?

 

저는 굉장히 외로우실 줄 알았거든요. 책에서 항상 혼자 사신다고 하고, 실제로도 혼자 사셨을 테고, 환자들과 가까운 곳에서 살기는 하셨지만 개인으로서는 외로우실 것 같았어요. 그런데 『온 더 무브』를 보고 ‘그렇게 외롭지는 않으셨겠구나, 항상 충만하셨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리고 저는 선생님이 날 때부터 인간과 생명을 사랑하게 태어난 분인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선생님이 톰 건에게 자신의 글을 보여주고 ‘작가가 될 수 있을지, 글을 써도 될지’ 물어봤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처음에는 톰 건이 많은 한계가 있을 것 같았다고 생각했대요. 젊은 날에는 지적인 오만함 같은 게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런데 『깨어남』의 원고를 보고 생각이 달라졌다는 거예요. ‘부족할 거라고 생각했던 한계가 완전한 방식으로 너무나 아름답게 극복이 되어 있었다’고 말씀하시거든요.

 

『온 더 무브』에는 정신분열증을 앓았던 형에 대한 이야기도 실려 있습니다. 색스가 환자들을 치료 대상으로만 보지 않았던 건, 이런 경험에 영향을 받은 게 아닐까요? 

 

말씀을 들으니까 맞다는 생각이 드네요. 형에 대해서는 『엉클 텅스텐』에서 조금 언급됐을 거예요. 그런데 저도 그렇게까지 집안의 골칫거리이고 제정신이 아닌 사람처럼 행동했는지는 몰랐어요. 선생님도 형의 일이 자신이 의사로 생활하는데 큰 영향을 줬다는 말씀을 어디에선가 하셨던 것 같은데요. 죄의식이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온 더 무브』에서도 형이 필요로 할 때 자신은 도망쳤다고 적으셨잖아요. 나중에 가서 후회하고요. 그런데 기본적으로는 아주 엄정한 관찰자의 태도가 환자를 대상화하지 않는 데 더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대상으로 바라본다는 건 내 눈으로 본다는 거잖아요. 자신의 입장에서 바라보지 않는다는 건 환자 주관의 입장에서 보는 것에 가까운 것 같아요. 엄정한 관찰을 하기 위해서 타인의 시선을 배제하는 훈련이 되신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실제 환자들은 색스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지 궁금합니다.

 

『마음의 눈』에서 크게 다뤘던 사례 중에 ‘수 배리’라는 환자의 이야기가 있어요. 그 분이 선생님을 추모하는 방송에 초대돼서 이야기를 들려주신 적이 있는데요. 자신이 피험자로서 많은 사람들과 의사들을 만났는데, 스스로가 진료 대상이나 연구 대상으로 느껴지지 않은 건 처음이었다는 거예요. 색스 선생님은 ‘환자가 자신의 상태를 어떻게 볼까’를 이해하려고 무척 애를 쓴다는 거죠. 대상화하고는 전혀 다른 관점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게 의사로서 가장 특별한 점이었던 것 같아요.

 

그와 관련해서 『온 더 무브』에서 가장 좋아하는 일화가 있으세요?

 

하나는 오토바이를 타고 산길을 누비고 싶다는 할머니 환자의 소원을 들어준 이야기이고요. 또 하나는 23병동의 자폐소년을 데리고 나가서 식물원을 구경시켜준 이야기였어요. 두 경우 다 병원 규정에 어긋나는 일이었고, 해고를 무릅써야 했죠. 23병동에선 아주 치욕적으로 쫓겨나셨고요. 이런 사례들은 선생님이 환자를 어떻게 대하셨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아요. 환자가 행복을 느끼고 경험하는 것 또한 치료의 중요한 부분으로 여기셨던 거죠. 그러니까 환자를 어떤 결함이나 문제를 지닌 치료 대상으로 보지 않고 사람으로 보셨고, 환자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내기 위해 애쓰셨던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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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꺼이 색스의 환자가 되고 싶다

 

색스가 보여주었던 휴머니즘은 본인에게도 해당되는 것 같습니다. 그의 삶에도 명과 암이 있었지만 외면하거나 감추지 않고, 있는 그대로 감싸 안잖아요.

 

그렇죠. 세상이 허락하지 않는 사랑을 했고, 하려고 하는 일들은 자꾸만 실수로 어긋나고, 그런 여러 가지 일들이 크게 작용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온갖 병을 앓으셨잖아요. 편두통이라는 고질적인 질환, 여러 가지 맹, 나중에는 암으로 입체시각을 잃기도 하셨어요. 시력을 거의 상실하셨고요. 본인 스스로 결함이 많았기 때문에 환자를 환자로 보지 않고 본인의 아픔과 같이 바라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처음부터 동료 의사들의 환영을 받은 건 아니었죠. 이유가 무엇이었나요?

 

『깨어남』이 나올 때까지도 의사로서는 이렇다 할 커리어가 없으셨죠. 어떻게 보면 이단아 취급을 받으셨으니까요. 의사로서 임상윤리라는 게 있잖아요. 환자들의 이야기를 밝히면 안 된다는 비밀주의요. 게다가 진료 방식 자체가 옛날 방식이었던 거죠. 그 두 가지 측면에서 공격을 받으셨고, 의사로서 발붙이기도 어려우셨어요. 그리고 원래는 과학자가 되려고 했는데 반복해서 실수도 하고 사고를 일으키니까 ‘자네는 환자들을 만나게’라는 권유를 받아서, 그때 굉장히 좌절감이 컸다고 하시더라고요. 본인은 글 쓰는 의사가 될 생각은 전혀 없었고, 의사보다 연구하는 과학자가 되고 싶으셨다고 하거든요. 덕분에 저희는 좋은 이야기꾼 의사를 만나게 됐고, 아직도 다 밝혀지지 않은 뇌와 신경의 세계에 대해서 알게 됐죠.

 

당시의 심경이 기존의 저서에서도 드러나나요?

 

『깨어남』을 보면 인정받지 못하는 의사로서의 설움이 굉장히 강하셨어요. 왜 내가 이단이 아닌지를 서문에 굉장히 절절하게 적으셨죠. 개정판이 대여섯 번이 나왔는데 그때마다 서문의 분량이 늘어날 정도예요(웃음). 그 내용들 중 대부분이 ‘환자들을 대할 때 문제 부위에 대한 국소적인 접근이 아닌 맥락으로 접근해야 되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 사람의 살아온 내력을 알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것이 질환을 이해하고 답을 찾는데 어떻게 도움을 주는지’에 대한 거예요. 독자들이나 젊은 과학자들은 이런 새로운 접근법에 열광하죠. 그렇지만 의사들은 그때도 ‘이상한 침묵’을 지켰고, 그 뒤로도 열띤 반응은 별로 못 본 것 같아요. 그런데 이후에 나온 새로운 신경 과학이나 뇌 과학 책들은 색스의 전통을 이야기해요. 환자의 역사를 추적해가면서 그것을 현재의 증상 또는 질환과 연결시키는 글이 하나의 큰 맥으로 자리 잡은 거죠. 적어도 과학 저술에 있어서 만큼은 그런 것 같아요. 선생님이 그 길을 개척한 거죠.

 

앞서 ‘임상윤리’에 대해 말씀하셨는데요. 환자들과의 이야기를 책에 담는다는 이유로 색스를 향한 비난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환자들의 가족들에게 항의를 받으실 때가 있었대요. 어떻게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책에 쓸 수 있느냐는 거죠. 그렇지만 환자 본인은 누군가 그 이야기를 해주기를 굉장히 바랐다고 해요. 선생님은 책에서 환자들 이야기를 할 때 되도록 가명을 쓰고, 최대한 신원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고 애를 썼다고 말씀하셨고요. 80세 생신 특집 방송에서는 이런 이야기도 들려주셨어요. 그때 진행자가 ‘만약 당신 또는 가족이 환자라면, 환자의 이야기를 많이 하는 의사에게 맡기고 싶을 것 같으냐’라고 물었거든요. 그랬더니 한 가지 경험을 들려주셨어요.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시다가 간질 발작이 일어난 여성을 보게 되셨는데, 뇌 안에서 출혈이 일어나서 발작이 일어난 것 같았다는 거죠. 그래서 바로 기장을 찾아서 상황을 설명하셨대요. 환자가 위험한 상태니까 빠른 시간 내에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요. 결국 비행기는 비상착륙을 했고, 환자는 병원으로 이송됐다고 해요. 이 이야기를 들려주시면서 선생님은 자신이 의사로서 그렇게 못 믿을 사람은 아니라고 하셨어요.

 

만약 번역가님께 같은 질문을 드리면 어떻게 답하실까요? 의사와의 상담 내용이 다른 사람에게 알려질 수도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색스와 같은 의사를 찾아가시겠어요?

 

저는 번역하면서 ‘나에게는 왜 이런 질환이 없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요(웃음). 선생님을 만나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죠. 제가 환자가 돼서 책에 기술될 거라는 생각은 해보지 못했는데요.  아마 선생님이라면 책에서 다른 이름으로 써주시지 않았을까 싶고요. 환자이기 때문에 느끼거나 인지하지 못했던 마음을, 저보다도 더 적확하게 짚어서 알아주시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래서 저는 기꺼이 선생님의 환자가 되고 싶었을 것 같아요. 선생님의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믿음이 있다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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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번역가는 애증의 관계죠

 

작가와 번역가는 어떤 관계로 맺어진 사람들일까요?

 

일할 때는 애증의 관계죠(웃음). 때로 원망스러울 때도 있고요. 책에 따라 다르다고 할 수 있어요. 제가 출판사에 먼저 제의해서 번역을 한 적도 있고, 출판사로부터 의뢰를 받아서 번역한 책도 있는데요.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책이라서 출판사에 먼저 번역을 의뢰한 책도 막상 번역을 시작하면 ‘내가 왜 이 일을 시작했을까’ 싶을 때도 있어요(웃음). ‘부지런한 독자들이 원서를 읽도록 할 걸, 내가 죄를 짓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는 거죠. 색스 선생님의 책은 저한테 결코 쉬운 책은 아니었어요. 확실하게 (전문)분야가 있으니까요. 선생님께서 어려운 이론들을 독자들에게 알려주시려고 노력을 많이 하신 덕분에 다른 뇌 과학 책들보다 쉽기는 하지만, 물리학 같은 이론적인 부분이 어려워요. 그렇지만 색스 선생님의 책은 번역을 하면서 책장이 넘어가는 게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던 유일한 책이었던 것 같아요. 좋은 책은 아껴서 읽게 되잖아요. 그런 마음이죠. 한편으로는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빨리 읽고 싶은 마음도 들고요. 그 두 가지 마음이 공존하는 거의 유일한 책이 색스 선생님의 책인 것 같아요. 선생님의 책을 번역을 하면서, 제가 이 책을 먼저 읽을 수 있다는 게 항상 감사했어요. 그리고 누구보다 꼼꼼하게 읽을 수 있어서 행복했어요.

 

번역을 하시면서 가장 즐거운 순간은 언제인가요? 번역이 끝났을 때인가요?

 

번역을 끝마쳤을 때는 느낌이 없어요. 무감각한 상태가 돼요. 순간 정적 같은 게 찾아오고요. 기쁠 때는 누군가 이 책에 대해서 언급을 하면서 괜찮았다고 말해줄 때죠. 그 전까지는 내가 제대로 한 건지 아무런 확신을 할 수가 없거든요. 저희 집에서는 아버지가 첫 독자이시고 제가 번역한 책을 열심히 읽어주시는데요. ‘이번에 번역 좋더라’라거나 ‘그 책이 번역한 책인지 몰랐다’라고 말씀해주실 때 너무 기쁘죠. 물론 아버지이기 때문에 그러신 거겠지만요(웃음). 특히 색스 선생님의 책만큼은 항상 어머니의 반응이 뜨거웠어요. 어머니는 책을 거의 읽지 않으시고 제가 번역하는 것에 대해서도 아무 반응이 없으셨거든요(웃음). 그런 분이 『색맹의 섬』을 완독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 의사 이름이 뭐더라, 감동적이더라’라고 하셨을 때 정말 놀랐어요.

 

『온 더 무브』에 대한 반응은 어떠셨나요?

 

어머니께 책을 드렸더니 한동안 방에서 계시다가 나오셔서 ‘그 의사 돌아간 줄 몰랐구나, 아까워서 어쩌니’ 하면서 눈물을 글썽이셨어요. 며칠 후에는 ‘이번 책은 이상하다, 자꾸만 마음에 떠올라’라고 하시더라고요(웃음). 예전에는 색스 선생님 이름을 발음하지 못하시더니 이제는 ‘올리버 색스 참 특이한 사람이야, 자꾸 생각나’라고 말씀하세요.

 

번역가로서 가장 절망적인 순간이 있다면 언제일까요?

 

가장 절망적인 순간이라면, 내가 확신했던 것이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될 때죠. 그리고 조금 더 속물적인 상황에서는, 제가 너무 아끼는 책이었는데 독자들이 찾아주지 않을 때고요(웃음). 『색맹의 섬』같은 경우가 그랬어요. 예전에 예스24에서 책이 출간되고 시간이 조금 흐른 후에 관련 글을 써주셔서 굉장히 행복했었어요(웃음). 색스 선생님도 가장 애착이 가는 책은 『색맹의 섬』이었다고 말씀하셨거든요.

 

글을 우리말로 옮기는 데 있어서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이 있으세요?

 

책에 따라 다른 것 같아요. 어떤 책은 작가의 본래 호흡이 있는데, 그 호흡을 우리말로 맞춰주는 게 가장 어렵기도 하죠. 또 어떤 책은 용어, 개념을 정확하게 해야 돼요. 책에 따라서 집중해야 될 부분이 조금씩 다른 거죠. 정확한 용어를 써야 하는데 학계에서 통일된 용어가 없으면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단어가 가장 무난할지 묻기도 해요. 그러다가 다른 생각을 가진 독자 분들에게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그런 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그리고 아주 정확하게 번역을 해야 하는 것과 읽기 좋게 번역을 해야 되는 것 사이에서 판단을 해야 하죠. 아마 색스 선생님의 책은 정확하면서도 읽기 좋아야 하는 책인 것 같아요(웃음). 특유의 호흡도 있고요.

 

올리버 색스의 저서 중에서 독자들에게 가장 권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아무래도 『깨어남』이 될 것 같아요. 『깨어남』『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쓸 수 있게 기본 작업이 된 책이기도 해요. 『편두통』은 조금 더 임상기록에 가깝고요. 선생님의 책을 평가하는 글들을 보면 대부분 『깨어남』을 가장 선구적인 작업으로 이야기하더라고요. 아마 읽기가 쉽지는 않으실 거예요. 그런데 책의 앞부분에 있는 주류에게 외면당했던 설움을 조금 이해하면, 왜 그런 말씀을 계속 하셨어야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는 워낙 많은 분들이 아시니까 가장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는 책일 거고요. 『뮤지코필리아』에서 이야기하는 음악환각도 드물지만은 않은 신경 증상이라고 해요. 그 책도 굉장히 좋고요. 색스 선생님의 어릴 적 이야기는 『온 더 무브』에는 많이 나오지 않고 『엉클 텅스텐』에 많이 나와요. 사실 버릴 책이 없어요. 『환각』은 『환각』대로, 『마음의 눈』『마음의 눈』대로 좋죠(웃음). 어떤 책을 버리겠어요. 책마다 색깔이 있잖아요. 올리버 색스의 전작을 찾아서 읽는 독자 분들은 ‘이번 책은 재미없으면 어떡하지?’하고 생각했는데 ‘이번 책도 재미있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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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더 무브 올리버 색스 저/이민아 역
“나는 모든 신경학이, 세상 모든 것이 일종의 모험이라고 믿습니다.” 우리 시대의 위대한 지성이자 의학계의 큰 별 올리버 색스. 그가 타계 직전 남긴 자서전 《온 더 무브》는 올리버 색스가 추구한 끝없는 모험, 중단 없이 나아가는 삶의 뜨겁고 생생한 기록이다. 모터사이클과 속도에 집착했던 젊은 날로 시작하는 이 회고록은 휴식을 모르는 에너지와 열정으로 넘쳐난다.


 

[추천 기사]

- 만화가 단지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은 없다는데???”
- ‘김준희 “육아의 해법은 똑똑하고 게으르게”
- 더글라스 케네디 “당신은 배우자를 알고 있습니까?”

- 기욤 뮈소 “내가 가장 집착하는 소재는 ‘시간’”
- 윤이형 “내 소설은 건강을 바라보고 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변호사 이은의 “예민하다고요? 정말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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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민’이라는 단어에 긍정이든, 부정이든 반응하게 된다면 『예민해도 괜찮아』를 읽어보자. ‘불쾌한 터치와 막말’에 분노한 과거, 혹은 현재를 살고 있다면 변호사 이은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빠르게 읽히는 책인데, 잔향은 꽤 크다.

 

지난해 봄, 변호사사무실을 연 이은의 저자는 과거 ‘삼성맨’이었다. 상사의 성희롱 문제를 고발했다가 회사로부터 불이익을 받고, 4년간의 투쟁 끝에 승소했다. 지금은 성희롱 피해자가 아닌 차별과 갑질에 맞서는 변호사가 됐다. 저자는 지금 ‘피해자’ 편에 서는 변호사가 됐다. 가해자 전문 변호사로 사는 것보다 더 많은 감정노동과 더 적은 대가를 감수하지만, 그는 ‘자부심 있게 사는 길’을 선택했다. 이은의 저자는 “다수의 행동이 옳지 않다고 생각될 때, ‘노’라고 말한다고 해서 내 인생에 큰일이 나지 않는다.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 때 유리한 쪽보다 유익한 쪽에 설 때 내 인생도 더 단단하게 다져진다”고 말한다. 『예민해도 괜찮아』는 이 시대 ‘을’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다. 하지만 ‘갑을’이 함께 읽어야 마땅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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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좀 예민한 게 낫지 않겠니?

 

어제도 밤을 샜다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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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부터 철야를 했다. 급성 스트레스 장애를 심하게 앓고 있는 성폭행 피해자 의뢰인이 가해자와 대질신문을 앞두고 연락이 두절됐다. 너무 걱정스러워서 업무를 전면 중단하고 의뢰인 소재 파악에 나섰다. 자정이 돼서야 겨우 연락이 닿아, 새벽부터 다시 일을 시작했다. 이 성폭행 사건은 책에도 등장하는데, 특별히 애정과 안타까움을 갖고 있다.

 

특별히 눈여겨보는 이유가 있나?

 

한국이 가지고 있는 여러 문제점을 보여주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순수하고 착한 피해자들을 가해자들이 어떻게 악용하는지, 얼마나 가해자가 자기 변명에 능수능란한지를 보여준다. 어떤 한 성실한 개인이 준강간과 같은 성폭행 사건으로 인해 삶이 어떻게 유린되는지, 그게 너무 안타까워서 꼭 이기고 싶고 이겨야만 하는 사건으로 보고 있다.

 

2011년에 출간된 『삼성을 살다』이후, 만 4년만에 두 번째 책 『예민해도 괜찮아』를 펴냈다. 전작 때와 비교해 책을 펴낸 소감이 궁금하다.

 

『삼성을 살다』가 20,30대 직장여성으로서의 삶, 삼성에서의 싸움을 정리하는 책이었다면, 『예민해도 괜찮아』는 변호사가 된 후 제2의 삶이 시작되면서 쓴 책이다. 내 입장에서는 타임머신을 탄 책이기도 하다. 전작은 싸움이 끝난 상태에 대해 썼지만, 이번 책은 현재 속에서 내 과거를 만나고 미래를 생각하면서 썼다. 그래서 감정기복이 심했다. 더 냉철하게 쓸 수 있었지만, 과거의 이은의를 만나고 미래의 이은의를 만나면서 쓴 책이기 때문에 지금 인터뷰를 하는 상황에서도 마음이 알록달록한 느낌이다.

 

한 줄 한 줄 꼼꼼히 기록했다는 느낌보다는 한 호흡으로 쭉 썼겠다고 생각했다.

 

두 가지가 그렇게 만들었다. 어느 정도의 감수성이 차기 전까지는 쓸 수가 없었고, 한 호흡으로 뽑아내지 않으면 마음이 아파서 쓸 수가 없었다. 책에 등장하는 많은 사건의 피해자들을 현재도 만나고 있는데, 이 사람들의 삶을 한자 한자 담다 보면 쓰지 말아야 할 것 같았다. 물론 당사자 특정 사건이 되지 않기 위해 많은 걸 혼재했지만, 나는 그 사람을 생각하면서 썼으니까 마음이 어려웠다. 『삼성을 살다』는 나만 보면 됐는데, 이번 책은 그럴 수가 없었다. 내가 현재 느끼는 소회를 포장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몇 번 더 고치면 더 신중하고 차분한 문장이 됐겠지만, 현장감을 살리는 게 더 나을 거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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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등장하는 피해자들도 이 책을 읽었나?

 

먼저 읽고 “다섯 권쯤 샀어요” 하신 분도 있고, 선물로 준 분도 있다. 자기 이야기가 나올 줄 모르고 보신 분도 있을 거다. 남들은 몰라도 자신은 알 수밖에 없으니까.

 

반응은 어땠나.

 

대개 양가 감정이 있다. 사건이 알려지길 바라는 부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다. 한 피해자가 이 책을 읽고 집에 놔뒀는데, 아버지가 보시고는 내게 전화를 주셨다. “우리 딸 잘 부탁한다”고 하셔서, 내가 왜 이 사건을 애틋하게 바라보는지를 설명해드렸더니 나중에 많이 우셨다. 마음이 아팠다. 이런 과정을 함께 밟는 책인 것 같다.

 

초고를 쓸 때, 가제도 『예민해도 괜찮아』였다고 들었다.

 

사건을 진행하면서 욱 하는 마음에 “예민할 테다”, “예민하면 어때서”로 하면 어떨까도 생각했지만, 처음의 기획 의도에 따르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피해 당사자나 여성에게만 하고 싶었던 말이 아니다. 사회는 혼자 사는 게 아니지 않나. 나는 성추행, 성희롱, 성폭력이 젠더의 문제보다 인간의 문제로 벌어진다고 생각한다. 갑을을 둘러싼 모두에게 말하고 싶었다. 갑에게 “너도 좀 예민한 게 낫지 않겠니?”라며, “네가 살짝 던진 돌에 을은 이렇게 고통 받고 그 주변은 이렇게 병 들고 종래에는 그 화살이 너에게도 아프지 않겠니? 네가 좀 예민할 수 있다면 을을 배려하지 않겠니? 그럴 수 있지 않겠니?”라고 말을 건네고 싶었다. 갑을을 떠나 주변인들에게도 내 일이 아니라고 배제하지 말고, 더욱 관심을 갖고 약자의 어깨에 손 한 번 얹어줄 수 있는 인권 감수성이 있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좀더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한 사람을 두고 ‘예민하다’고 하면, 썩 긍정적인 평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맞다. 하지만 ‘예민하다’는 형용사는 부정적인 언어가 아니다. 과민한 게 나쁜 거다. 예민, 과민, 과도가 있다고 생각한다. 과민은 히스테리를 부리는 태도를 말하지만, 예민은 그렇지 않다. 느끼고 분석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빠른 것을 말한다. 나는 많은 사회문제가 예민해서 일어나는 게 아니라, 과도하거나 둔감해서 생긴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지금 사회는 예민한 게 나쁜 것처럼 돼버렸다. ‘예민’이라는 단어가 청년, 노동자에게 ‘닥쳐’를 말하는 키워드가 됐다. 이 책을 통해서 내가 말하고 싶었던 건, ‘예민한 게 어때서’다. 첫 번째 포문으로 여성을 차용했을 뿐이다. 내 변호사 사무실에는 여성문제뿐만 아니라 많은 갑을 소송이 있다. 두 사람만 모여도 권력이 생기는데, 그 권력의 헤게모니 안에서 을의 입장에 처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을만이 해결하길 바라는 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보면서 라미란의 존재를 피부로 느꼈다. 만약 라미란처럼 예민하고 섬세하게 이웃을 배려하는 인물이 없었더라면, 이 드라마는 어땠을까? 사람은 누구나 때론 을이 되고 갑이 되고 주변인이 되지 않나? 독자들이 이 책을 여성의 문제로만 바라보지 않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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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컵에 마시면 뺏어 마셔도 될까?

 

책의 카피가 ‘불쾌한 터치와 막말에 분노하는 당신을 위한 따뜻한 직설’이다. 우선 ‘불쾌한 터치’에 대해 좀 묻고 싶다. 삼성에서 성희롱 사건을 겪었고, 지금도 실제 많은 성희롱, 성폭행 사건을 변호하고 있다. 피해자들의 신고가 늘어나면서 가해자에 대해 처벌이 강화됐지만, 가장 문제는 사건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각이다. 아직도 성폭력을 ‘갑을’ 문제가 아닌 ‘성’의 문제로 인식하는 사람이 많다. 어떻게 하면 성폭력의 발단을 제대로 인식할 수 있을까?

 

애초에 추행은 상대의 성적 매력이 유발하는 것이 아니다. 잘못된 망상에서 태어나 힘의 불균형에서 꽃피는 거다. 단적인 예를 들면, 한 나라의 대통령이 여성인데 굉장히 아름답다고 가정해보자. 국무총리가 장관이 대통령을 만지고 성적 농담을 할 수 있나? 그렇게 따지면 수많은 여자 연예인은 희롱 받다가 닳아서 없어진다. ‘만지고 싶어서 만진다’가 아니라, ‘만질 수 있어서 만진다’의 문제로 생각해보면 어떨까? 성희롱 문제도 남자 상사에 의한 여자 부하직원의 추행으로 보면 곤란하다. 여자 상사가 남자 부하에게 성희롱 하는 경우도 매우 희박하진 않다. 이를 테면, 여자 상사가 남자 부하에게 도를 넘어서 추근댈 때, 을 쪽에 있는 남자가 ‘허허, 이 여자가 나한테 이렇게 하네. 어 재밌네?’ 이렇게 안 한다는 거다. 짜증나는데 말하기 어려우니까 참는 거다. 받는 상처는 결코 다르지 않다.

 

성희롱 또한 다르지 않을 텐데.

 

성희롱은 희롱의 범주에 있고, 희롱은 모욕의 범주에 있다고 생각한다. 권력이 같지 않은 거다. ‘내가 너를 흔들 수 있어’ 이게 모욕이라고 생각한다. 희롱이라는 범주 안에 성적인 제스처로 나타나는 것뿐이다. 성폭력 또한 물리적 강자가 약자에게 하는 행동이다. 준강간의 99%가 남자에 의해 벌어지는 이유가 물리력도 권력이기 때문이다.

 

책에서 유리컵 비유를 했는데, 굉장히 설득력 있게 들렸다.

 

영화 <피고인>을 보고 성폭력의 인정 기준과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논의하는 모임에 참석한 적이 있다. 한 후배가 내 눈치를 보면서 머뭇거리더니 “그런 정도면 사실상 허락이 아니냐”고 했다. 내 대답은 이랬다. “만약에 우유를 먹고 싶은데 누가 옆에서 우유를 먹어. 누군가는 불투명한 플라스틱 컵에, 누군가는 유리컵에, 그런데 우유가 빤히 보이는 유리컵에 마시면 뺏어 마셔도 될까?” 부끄럽지만 대학생 때가 더 똑똑했던 것 같다. 더 예민했던 거다. 그 예민이 사회를 달려오면서 대장간에서 쇠를 두드리듯이 평편해진 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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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출산휴가를 끝내고 복직을 한 후배가 있다. 상사와 면담을 하는데,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대개 여자 사원들이 남자 사원에 비해 업무 강도와 실적이 낮다. 육아와 병행하다 보면 아무래도 뒤처지기 마련인데 더 노력하길 바란다”고. 이 이야기를 듣고 후배나 나나 기분이 몹시 나빴다. 우리가 예민한 건가?

 

예민한 건 좋은 일이다. 당연히 기분이 나쁠 수 있다.

 

연차가 많이 차이 나지 않은 상황이라면, “기분이 나쁘다”고 표현할 수 있는 발언 아닌가?

 

물론이다. 다만 상대의 캐릭터에 맞게 부드럽게 대응할 필요는 있다. “부장님, 조금 불편해요”와 “부장님, 저 지금 굉장히 불편합니다!”가 다르니까. 사실 상대 캐릭터를 보지 않고 대응하는 게 가장 좋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성폭력, 강제 추행의 문제도 그렇고 직장 성희롱, 모욕 등의 사건을 진행할 때, 피해자가 거부 의사를 표현했는지의 여부가 참작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의사표현을 하는 게 좋다. 종래의 싸움으로 불거질 때도 필요하지만, 현재를 해결하는 데도 필요하다.

 

데이트폭력에 관해서도 묻고 싶다. 최근 경찰청은 “데이트폭력 피해 집중 신고기간 운영, 일주일 만에 376건의 신고가 접수됐다”고 발표했다. 저자는 책에서 “데이트폭력은 없다. 그냥 폭력이 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남자가 여자를 때리든, 여자가 남자를 때리든 폭력은 문제가 있다. 뭐가 됐든 각각은 다 폭력이다. 물론 정당방위는 다르다. 하지만 1대 때렸는데, 방어한다고 100대를 때리면 이건 다른 문제다. 또 데이트폭력을 당했다고 문제를 제기하는 입장에서 중요한 건, 폭력을 당했을 당시에도 폭력이라고 느꼈는지 사후구성에서 제기된 문제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안 좋게 헤어진 후, 이 과정이 서로에게 납득되지 않았을 때 한 쪽에서 사후구성이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문제 때문에 진짜 데이트하는 관계에서 발생하는 폭력, 성폭력 문제가 묻히는 경우가 많다. 사실은 피해자가 더 많은데, 구분을 못하니 수면 위로 떠오르지가 않는다. 안타깝다. 그래서 교육이 필요하다.

 

어떤 교육을 말하는가?

 

국어, 영어, 수학 같이 시험을 보는 과목 말고 사랑에 대해서도 가르치고 배워야 한다. 서구사회에서는 사랑, 이별에 대한 담론이 자연스럽게 이뤄지는데 우리나라는 너무 딱딱한 성교육만 가르치고 있다. 청소년기에 연애를 시작했을 때, 남녀가 원하는 스킨십의 정도는 다를 수 있지 않나? 남녀 간의 차이를 이해하고 존중하고 배려하기 위해서는 사랑에 관한 담론이 풍성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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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민해서 말을 걸면 소통의 고리가 된다

 

‘막말’에 대해서도 묻고 싶다. 언어적 성희롱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꽤 많다. 말하는 입장에서는 희롱이 아니라고 하고, 당하는 입장에서는 희롱인지 아닌지 헷갈리는 경우가 있다.

 

계속 같은 귀결이다. 예를 들어보자. 어떤 회사의 회장에 미꾸라지 같이 생겼다고 치자. 비서실장이 “당신, 미꾸라지 같이 생겼어요”라고 말하나? 못한다. 하지만 말단직원이 미꾸라지 같이 생겼으면, 말한다. 말할 수 있다. 때문에 이 또한 권력의 문제다. 어떤 사람은 반문할 수 있다. 서로 친하면 이런 이야기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하지만 진지하게 생각해보자. 정말 친해서 그런 건지, 그냥 웃기면 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지. 말하는 사람이 듣는 사람의 입장, 느낌을 생각해보자는 이야기다. 또 듣는 입장에서도 기분이 나쁘면 어느 정도는 표현하는 게 좋다. “저는 이런 이야기 좋지 않은데요”라고.

 

기분이 나쁘지만, 내가 ‘을’이니까 표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래서 ‘갑’이 마음을 고쳐 먹는 게 중요하다. ‘을’이 기분 나쁘다고 표현하는 반응을 나를 무시해서 하는 행동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버릇이 없다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 한국은 태어나서부터 장유유서에 노출되는 사회다. 존댓말이 있는 사회이기 때문에 권력을 가진 연장자에게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하나의 인격체다. 어리다고 다 만져도 되는 게 아니다. 상대에게 물어봐야 한다. 가장 좋은 건, 자연스럽게 사회 안에서 체화되는 것인데 현재는 그렇지 못하니까. 많이 담론이 되고 교육하는 게 절실하다.

 

“마녀가 다수가 되면 마녀들이 아니다. 그냥 여성이 된다”고 했다. 연대가 정말 필요하다.

 

예민해서 말을 걸면 소통의 고리가 된다. 이 예민을 조금만 마음을 열고 받아들일 수 있으면, ‘친함’이 발생한다. 윗사람들은 소위 부하 직원들을 자기만 친하다고 생각한다. 막말, 터치가 허용되니까 “나는 이 대리랑 꽤 친해”라고 하는데, 이거 다 개소리다. 절대 건강한 관계가 아니다. 많은 중년들이 퇴사를 하고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 있다. “과장, 부장 타이틀 다 버리고 나니까 정말 남는 사람이 없다”고. 계급장을 뗐더니 연락을 끊는다고들 하는데, 필요 없어서 안 만나는 게 아니라 애초에 친하지 않았던 거다. 애당초 관계가 일방적이었던 거다. 권력이라는 고리 안에서 서열화된 상황에서 갑이 봤을 때, 편안했던 상황은 단지 갑에게만 해당된다. 을은 힘들고 피곤했다. 결국 더 외로워지는 건 갑이고 주변부는 몸을 사리게 된다.

 

악순환이다. “너 예민해”라는 평이 너무나 부정적이니까.

 

사람들은 예민해서 피곤해지는 것처럼 말하지만, 예민해서 피곤한 게 아니라 예민하지 못한 둔감함에서 우리 사회는 피곤해졌고 청년들은 병이 들었다. 그러니 아픈 청년에게 ‘괜찮아’를 말하는 세상이 됐다. 나는 『예민해도 괜찮아』가 이 담론의 포문을 여는 책이 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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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독자만 읽으면 안 되는 책

 

한때 드라마작가를 꿈꾸기도 했다. 『예민해도 괜찮아』가 드라마로 만들어진다면, 더 많은 사람에게 반향이 있지 않을까? 언젠가 드라마로 쓸 계획은 없나?

 

『삼성을 살다』를 썼을 때, 드라마를 쓰시는 분이 각색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언제라도 원하면 쓰시라고 했는데, 아직 소식이 없다. (웃음) 지금 1년에 5백 만원씩 적금을 붓고 있는데, 언젠가 좀비를 다룬 독립영화를 만들어서 부산국제영화제에 출품하고 싶다.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다. (웃음)

 

독립영화는 한계가 있지 않나? 『예민해도 괜찮아』와 같은 소재는 좀더 대중적인 매체로 접근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할 수만 있다면 하고 싶다. 다만, 조심스러운 게 드라마작가를 아무나 하는 게 아니지 않나. 지망생들이 올인해서 하는 직업군을 두고 “언젠가 하고 싶어요”라고 말하기가 머뭇거려진다. 겸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도 하고. 하지만 항상 꿈은 있다. 영상이든 책이든, 내가 보고 듣고 느끼는 것에 대해 떠들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

 

아무래도 이 책은 여성 독자들이 많이 볼 것 같다. 저자로서 어떻게 보나? 책을 읽은 남성의 리뷰를 읽은 적이 있나?

 

아무래도 전작을 읽고 찾아준 남성 독자들이 꽤 있다. 주변에 있는 남성들은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경우도 많고. 재밌게 읽었다고 하더라. 저자로서 바라는 건, 대한민국의 사장님과 여성들이 이 책을 사서 남자들에게 선물해줬으면 한다. 표지가 분홍색이라, 남자들이 서점에서는 딱 집어 들기는 조금 힘들지 모른다. 남자들은 “또 여자 이야기야?” 하고 오해할 수 있지만, 이 책은 비단 여자들에게만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여자 독자만 이 책을 읽는 건, 책을 펴낸 의도와도 맞지 않다.

 

“나는 여자로 조직 생활하는 게 전혀 어렵지 않았어”라고 말하는 독자들도 있을 텐데.

 

물론이다. 여성이라고 무조건 이 책에 호의를 갖긴 어려울 수 있다. ‘세상은 그렇게 나쁘지 않은데’라고 생각하는 20대들도 있을 수 있고, ‘이 사람은 나와 다른 사람인데, 똑같이 행동할 수 있을까?'하는 심리적 장벽을 갖는 분도 있을 거다. 사회생활 할 때는 마케팅을 했으니까, 저자 입장을 떠나 이 책을 어떻게 포장해야 하는지를 오랫동안 고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20, 30대  심지어는 40대 여성이 일하는 과정에서 겪는 문제를 담았기 때문에, 그 변수로 ‘약자들과 우리는 어떻게 지내야 하는가’에 대한 담론을 던지고 싶었다.

 

에필로그의 제목이 ‘피해자 편에 서는 변호사로 산다는 것’이다. 유리하게 사는 것보다 자부심 있게 사는 길을 선택했다. “유리한 쪽보다 유익한 쪽에 설 때 인생도 단단해진다”는 이야기가 크게 와 닿았다.

 

삼성과 싸우면서도, 지금 변호사 일을 하면서도 나를 버티게 하는 힘이다. 당장 여러 사건을 잡다하게 하면 변호사로서는 유리할 수 있다. 서면 작성 같은 일은 다음에 보강하면 되니까 조금 대충 써도 된다. 하지만 당장에 유리함이 아니라 후에 유익할 것인가를 생각해보면, 작은 것도 허투루 할 수 없다. 지금은 불편한 일이 발생할 수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발을 쭉쭉 내딛는 힘이 생긴다. 내 삶도 나아지고 남의 삶도 나아지는 경험이 있으면, 그 경험에 발을 딛고 살아갈 수 있지 않겠나.

 

독자들에게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사람들이 흔히 “괜찮다”는 말을 자주 하는데, 이것 또한 양가적인 말이 아닐까 싶다. 그냥 묵직하게 건네는 “괜찮아”가 있고, 얼른 이 상황을 회피하려고 하는 “괜찮아, 괜찮아”가 있는데, 이 “괜찮아”도 항상 옳은 게 아니다. 우리는 “괜찮아”라는 말을, 지금 너무 힘들고 약한 존재들을 향해 하는데, 이런 “괜찮아” 말고 진짜 용기 낼 수 있는 한 마디를 던지고 싶다. 당신의 불편한 상황이 괜찮다는 말은 이제 하지 않는 게 낫지 않을까. 지금 한국사회는 불편한 사람을 계속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약한 사람들을 계속 약하게 만들면서 괜찮다고, 왜 이렇게 예민하냐고 말한다. 진짜 “괜찮아”가 되려면, 괜찮지 않은 일들에 대해 “괜찮지 않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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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민해도 괜찮아이은의 저 | 북스코프
우리 사회에 성범죄와 성희롱 문제가 끊이지 않고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예민해도 괜찮아』의 저자 이은의 변호사는, 직장이나 학교에서 일어나는 성희롱이나 강제추행은 단지 성적인 문제가 아니라 권력관계의 문제라고 잘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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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채사장 “세상을 단순하게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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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을 들려주었던 작가 채사장이 『시민의 교양』으로 돌아왔다. 복잡한 세계의 구조를 단순하고도 명쾌하게 정리한 이 이야기는 보통의 시민들을 위한 것이다. 세금, 국가, 자유, 직업, 교육, 정의 등 우리 앞에 쌓여있는 서 말의 구슬을 단 두 줄의 실로 일목요연하게 꿰어냈다. 시장의 자유를 보장할 것인가, 정부의 개입을 강화할 것인가. 선택에 따라 정부의 형태, 경제 체제, 노동과 교육 환경이 달라진다. 『시민의 교양』은 그 과정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보수와 진보를 나누기 전에, 세금 인상과 노동 유연화를 결정하기 전에, 시민이라면 응당 집어 들어야 할 교양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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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단순하게 볼 필요가 있어요


이번 책에서 세금, 국가, 자유, 직업, 교육, 정의까지 다양한 주제들을 다루셨는데요. 이 모든 이야기를 ‘시장의 자유’와 ‘정부의 개입’이라는 두 가지 개념을 가지고 풀어내신 게 놀랍습니다.


시장의 자유와 정부의 개입으로 세계를 정리하는 내용은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이하 『지대넓얕』) 1권에 나오기도 하는데요. 굳이 찾아낸 게 아니라, 그것이 본래 기본적인 구조라고 생각해왔어요. 실제 현실은 다양한 사람들도 있고, 그러다 보니까 복잡하게 살이 붙어서 그 구조가 보이지 않는 거죠. 시장의 자유, 정부의 개입이라는 용어가 낯설기는 한데 단순하게 이야기하면 ‘개인의 재산권을 계속 인정해줄 것이냐, 아니면 빈부 격차나 소득 격차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냐’하는 것이 기본적인 내용이에요. 재산권 보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측면에는 부유층의 이익이 있을 거고, 분배와 관련해서는 노동자나 가난한 사람들의 이익이 있을 텐데요. 두 계급의 대립은 현대사회의 문제가 아니라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이어져 왔어요. 부유층의 재산을 지켜주는 방향으로 국가를 운영하다가 몇 년 후에는 대부분의 대중들의 이익을 반영하는 방향으로 바꿨죠. 특별한 구조를 찾았다기보다는, 우리가 잊고 있었던 가장 본질적인 구조이기 때문에 선택할 수밖에 없었어요.

 

완독률이 높은 책을 쓰고 싶었다고 밝힌 바 있는데, 『시민의 교양』에서 그 목표를 달성하신 것 같습니다(웃음). 스토리텔링 형식을 더하셔서 결말이 궁금해지더라고요.


이 책을 읽기 시작한 분들이 지치지 않고 끝까지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최대한 책장이 쉽게 넘어가게 하려고 여러 군데 장치를 했고요. 일부러 이야기가 이어지도록 했습니다.

 

책은 선택의 순간에서 이야기를 시작하고 끝을 맺습니다. 우리 사회에 시민으로서 선택을 유보하는 이들이 많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두 가지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첫 번째로는 ‘대중이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 수 있을 것 같고, 두 번째로는 ‘왜 선택을 하지 못하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우리가 대중을 두고 어리석다거나 잘 모른다고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런 건 아닌 것 같아요. 사람들을 모아 놓으니까 문제가 되어 보이지만, 실제로 한 명 한 명을 만나보면 그들이 가지고 있는 전문적인 지식이나 경험의 양이 어마어마하거든요. 그러니까 집단 지성이 계속해서 옳은 방향을 선택해 간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사람들이 왜 선택을 하지 못할까’를 생각해 보면, 복잡하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해요. 무엇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세상이 단순화되어 있어야 하는데 복잡한 거죠. 미디어에 나오는 피상적인 이야기들을 보면 무엇을 어떻게 선택해야 하는지 기준점을 잡아주지 않잖아요. 그래서 세상을 조금 단순하게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았고 『시민의 교양』도 그런 목적에서 쓰게 됐어요.

 

“세계를 복잡하게 이해하려다 지치지 말고, 세계를 관통하는 단순함에 집중해야 합니다”라고 쓰신 문장이 기억나네요.


예를 들면 정치적인 선택을 할 때, 정당을 선택하는 기준도 사람마다 달라요. 어떤 사람들은 청렴도를 기준으로 선택하고, 어떤 사람들은 선과 악으로 나누려고 하기도 해요. 너무나 많은 정보들이 계속 주어지기 때문이죠. 미디어에서는 정치인의 부정부패에 대해서만 강조하고 있으니까, 무엇을 기준으로 선택해야 할지 헷갈리는 거예요. 그런데 실제로는 『시민의 교양』에 나와 있듯이 세금과 복지 문제가 기준이 되는 거거든요. 그래서 조금 돌아갈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너무 많이 알고 있는 복잡한 지식들 말고, 가장 근본적인 최소한의 지식들에 대해서 환기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시민의 교양』에서도 복잡한 이야기들을 단순하게, 어려운 이야기들을 쉽게 풀어서 설명해주셨습니다. 한편으로는 얕음에서 깊음으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셨을 것 같은데요. 어떠셨나요?


실제로 그랬어요. 『지대넓얕』때 얕은 지식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뭔가를 보여줘야겠다 싶었고, 어렵고 심도 있게 써보려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이미 많잖아요. 깊고 전문적인 지식을 갖고 계신 분들이 많이 계신데,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분야만 이야기하려고 해요. 그렇지 않은 분야에 대해서는 잘못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 같으니까요. 그러다 보니까 시민들만 힘든 상황에 놓여있거든요. 그 많은 전문가들의 생각을 종합해야 되는 역할을 하고 있잖아요. 그런데 시민들한테는 시간이 충분하지 않죠. 그래서 저는 사람들이 잘 보여주지 않으려고 하는 것, 대부분의 독립된 분야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를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그걸 말해주는 사람이 너무 없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결과적으로는 『지대넓얕』에 썼던 방법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분야들을 연결시켜서 최대한 쉽게 써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마 앞으로도 고민을 많이 할 것 같아요. 어깨에 힘을 빼고 많은 분들이 기대하시는 방식으로 글을 써나가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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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는 탈탈 털린다

 

최근 한 인터뷰에서 ‘보수적 자유주의자에 가깝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시민의 교양』에서 설명하신 내용에 비춰보면, 보수란 시장의 자유를 보장하는 야경국가가 세금을 적게 걷고 복지 수준도 낮게 설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인데요.

 

기본적으로 그렇게 생각해요. 이 이야기를 하면 많은 분들이 오해를 하시거든요. 먼저 한국사회에서 보수와 진보라는 어휘가 사용되는 방식과 전 세계 사람들이 공유할 수 있는 방식을 구분해야 할 것 같아요. 한국사회에서 보수와 진보에 대한 논쟁이 첨예한 이유는 단순히 시장과 정부의 개입에 대한 문제를 넘어서 독재 문제, 군부정권에 대한 문제, 친일에 대한 문제가 섞여 있기 때문이죠. 제가 보수에 가깝다고 이야기했던 건, 한국적인 상황을 배제하고 일반적인 측면에서 보수와 진보를 나눌 때 보수에 속한다는 의미였어요.

 

그렇다면 일반적으로 보수와 진보를 나누는 기준은 어디에 있다고 보세요?

 

보통 자유주의적인 이념을 토대로 하면 보수라고 하고 사회주의적인 이념을 토대로 하면 진보라고 부르잖아요. 그렇게 일반적인 개념으로써 보수와 진보, 자유주의와 사회주의로 나누어서 생각한다면 실제로 한국 사람들은 대부분 보수예요. 그런데 근현대 한국사회의 역사적인 문제가 보수, 진보의 문제와 연결되어 왔기 때문에 보수라고 이야기하면 거부감이 드는 거죠. 저는 일반적인 측면에서 보수, 자유주의자라고 밝혔던 거예요. 다만 한국의 근현대 역사를 고려하면 현재의 한국사회에서 보수를 지지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역사에 대해서 이해하는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한국사회에서 보수 정권을 지지하는 건 조금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시민의 교양』에서 중립을 지키려고 많이 노력하셨잖아요. 그래서 ‘당신은 어느 쪽이냐’는 물음에 답하셨다는 게 굉장히 의외였습니다(웃음).


계속 안 했었는데, 자꾸 물어보세요(웃음).

 

당시 인터뷰에서 대통령이 된다면 “부유세를 도입하고, 복지를 강화하지 않을까 한다”고도 말씀하셨어요.

 

이론적인 측면에서는 자본주의라고 하면 어느 정도의 빈부 격차가 유지되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의무를 준수하고 경쟁에서 노력한 사람에 대한 보상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서 어느 정도 차별할 수 있는 것이, 어떤 면에서는 정의라고 볼 수도 있거든요.『시민의 교양』에서 적었듯이 아리스토텔레스도 그걸 정확히 알고 있었어요. ‘정의란 같은 것을 같게 다른 것을 다르게 대우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잖아요. 어느 정도 적절히 조율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기본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는 방향이 옳다고 생각하는데, 현재를 기준으로 놓고 보면 너무 치우쳐 있는 건 사실이니까요. 균형을 잡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복지를 강화하고 세금을 인상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시민의 교양』에서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자는 자신을 위해 일할 수 없다. 노동자는 탈탈 털린다”고 하셨습니다.

 

가치가 생산되기 위해서는 노력과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나의 노력과 시간이 만들어낸 생산물의 총량에서 내가 배제된다는 것에 대해서는 우리가 잘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복잡하기도 하고 허상처럼 보이기도 하니까요. 그건 제 개인적인 생각이라기보다는 마르크스가 했던 이야기거든요. ‘물질이 인간을 어떻게 소외시키는가’에 대해서 이야기했잖아요. 그중 하나가 임금에 대한 이야기고요. 임금에서 소외된다는 이야기는, 어떻게 보면 독특한 건 아니고, 일반적으로 마르크스주의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내용들인 거죠.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잖아요. 자신과 가족을 위해서 일한다고 생각하고, 임금 역시 자신과 가족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서 쓰인다고 생각하죠.

 

그렇죠. 인간은 기본적으로 보수화될 수밖에 없잖아요. 개인은 사회보다 너무나 작고, 사회가 견고한 상태에서 개인이 등장하기 때문에, 개인은 계속해서 사회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회사라는 시스템이 있고 월급을 받는 시스템이 이미 준비되어 있었으니까 이것 자체가 부조리하다거나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개인의 문제로 생각하는 거죠. 노력을 통해 나의 월급을 더 올리는 것에서 만족하게 되지요. 이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그런데 『시민의 교양』이 됐든 마르크스의 생각이 됐든, 그 부분에 대해서 누군가 쉽게 이야기해주면 그때서야 환기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개인 스스로가 생각하고 극복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특히 임금노동자의 경우에는 노동에서 얻을 수 있는 성취, 보람, 임금 모두에서 소외되고 있다고 하셨는데요. 그렇다면 우리는 일하는 즐거움이나 이유를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요?

 

개인과 집단으로 나누어서 생각해야 할 것 같아요. 개인은 자신이 좋아하는 걸 찾아갈 수 있어요. 비임금노동자가 될 수도 있고요. 일에 보람을 주는 소수의 직업들이 있으니까, 그것들을 선택할 수도 있어요. 견고한 시스템 안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걸 찾아낼 수 있는 방법들이 있는 거죠. 그러니까 개인적 차원에서는 일의 보람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가능한 것 같아요.

 

집단의 경우는 어떤가요?


노동자 집단의 측면에서 생각하게 되면, 그건 불가능해요. 원천적으로 안 되는 거죠. 왜냐하면 자본주의는 기본적으로 산업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고, 산업화는 공장의 탄생을 기반으로 하잖아요. 공장은 기본적으로 분업이 전제되어 있는 거고요. 그 안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하나의 작업 중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일부분인 거예요. 그러면 어쩔 수 없이 개인은 일의 결과로부터 멀어지게 되는 것 같아요. 일의 결과 전체에서 얻을 수 있는 만족은 없을 수밖에 없고요. 그래서 『시민의 교양』에서 노동자가 보상받을 수 있는 건 임금밖에 없다고 한 거예요. 문제는 실질임금이 계속 낮아지고 있는 상황이라는 거고요. 일에서 보람을 얻을 수 없는 대신 그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필요하니 실질임금을 높여야 하고, 빈부 격차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정치적인 선택이 중요해지기 시작한다는 게 ‘직업’에서 하고자 했던 이야기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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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서울(in seoul)’에 목을 매는 진짜 이유

 

‘주주 자본주의’와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의 개념에 대해서도 설명하셨습니다. 어쩌면 노동시장 유연화를 둘러싼 논란의 핵심에는 이 두 가지 개념, 그에 따른 시각의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기본적인 마인드는 그럴 것 같아요. 개인이 노동시장 유연화에 대해서 이것이 정의롭다 정의롭지 않다를 말할 때 ‘기업이 어떤 목적을 갖고 존재하는가’의 차이에 따라서 판단이 달라질 것 같은데요. 조금 복잡한 것 같아요. 『시민의 교양』은 현실을 추상화시켜서 단순화해 놓은 것이기 때문에 이 문제를 단순하게 다루고 있어요. 어떻게 보면 노동시장 유연화라는 것이 기업이 져야 할 리스크를 노동자에게 돌리는 거라는 내용이 ‘직업’과 관련된 장에 나오죠. ‘교육’ 부분에서는 덴마크의 사례를 통해서 노동시장 유연화가 실제로 어떻게 진행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요. 이 주제는 심도 있게 논의되어야 합니다. 지금 한국의 현실과 직결된 문제이므로 합의나 대화의 장이 필요합니다.

 

덴마크의 사례를 통해 엿볼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아주 쉽게 생각하면 둘 중의 하나가 피해를 봐야 하는 거죠. 기업이 이익을 포기하거나 노동자가 이익을 포기하거나, 그 두 가지 밖에 없잖아요. 그런데 놀랍게도 정부가 중간에서 역할을 함으로써 문제를 해소할 수도 있거든요. 덴마크와 마찬가지로 기업이 아닌 정부가 노동자의 고용 불안정성을 보장해준다면 문제가 조율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노동시장 유연화에 대한 문제는 집중적으로 제대로 논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교육’의 장에서는 평가의 내용이 아닌 방식 자체가 아이들을 가르친다고 하셨어요. 객관식 평가에 노출된 경험이 진리관에 영향을 미친다고요.

 

오랫동안 학생들을 가르치다 보니까 그런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입시 논술을 가르치다 보니까, 다행히도 객관식으로 평가할 필요가 없고, 항상 토론하고 대화하는 수업이 가능했는데요. 생각보다 학생들이 굉장히 똑똑해요. 그런데 처음에는 토론도 못하고 말을 잘 하지 못해요. 자기가 하는 이야기가 틀릴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내가 지금 모르고 있을지 모르지만 어딘가에 정답이 있을 거라는 걸 전제하고 있는 거예요. 그런 생각이 객관식으로 문제를 푸는 연습을 반복하면서 습관이 되고요. 선입견이 되기도 해요. 문제는 그렇게 성장한 아이들이 어른이 된다는 게 아닐까 싶어요. ‘교육’과 관련된 부분에서 그런 아쉬움에 대해서 써보려고 했어요.

 

책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절대주의적 진리관을 가진 어른”이 된다는 말씀이신데요. 우리 사회의 많은 담론들이 ‘내가 옳고 네가 그르다’는 식으로 귀결되는 이유도 거기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죠. 개개인의 시민들이 토론을 하고 대화를 해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옳고 그름에 대한 논쟁이 돼요. 그런데 자기가 잘 모른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자꾸 전문가들의 이야기를 빌려오려고 하는 거고요. 정치나 경제적 분배의 문제는 가치의 문제이지 정답의 문제가 아닌데도 불구하고 자꾸만 결정적인 근거를 찾으려고 하죠. 그 점이 아쉬운 것 같아요.

 

과도한 입시 경쟁이나 사교육 때문에 아이들이 불필요한 패배감을 느끼는 것도 심각한 문제인데요. 『시민의 교양』은 경제적인 구조를 바꿈으로써 이런 현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말합니다.

 

대학 입시에 있어서 평균의 기준이 ‘인 서울(in seoul)’이 되어 있어요. 책에도 나와 있지만, 실제로는 65만 명 중에서 7.5%가 서울권 안의 대학에 진학하거든요. 그러면 절대 다수는 ‘인 서울’을 하지 못하는 거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생님들이나 부모님들은 ‘인 서울’이 항상 기준인 거예요. 학생들도 그런 생각을 갖거든요. ‘인 서울’에 성공하면 어른으로서 성장의식을 잘 치른 거고, 실패하면 공부를 못했던 학생인 거예요. 그러니까 한국사회의 대다수가 콤플렉스를 가져요. ‘내가 공부를 못했던 사람이구나’라는 콤플렉스를 갖게 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는 거죠. 수능이 9등급이니까 5등급의 학생이 평균이 되어야 하는데 왜 상위 7.5%를 기준으로 삼을까, 저는 항상 그게 궁금했어요.

 

그런 기준이 경제적 구조와 어떤 관련이 있는 건가요?


개인의 중위소득 분포를 보면 재미있다는 거죠. 동국대 김낙년 교수의 자료에 의하면, 한국사회에서 중간에 있는 사람들의 월 소득이 90만 원이 채 안 돼요. 반면에 상위 10%의 사람들은 약 4000만 원 정도의 연봉을 받고 있거든요. 이런 조사결과를 ‘인 서울’이 기준이 되는 현실과 병렬적으로 나열해 보면, ‘인 서울’이 강조되고 상위 7.5%의 학생들만이 인정받는 건 경제 때문이라는 거죠. 상위 10% 안으로 들어와야지 최소한의 인간적인 경제적 수준을 향유할 수 있다는 믿음이나 체감이 있는 것이고, 그것이 학생들에게 7.5% 안에 들어야 한다는 요구로 이어진 게 아닌가 생각해요.

 

그것이 소수 엘리트에 대한 순응으로 이어지기도 할까요? 자신이 공부를 잘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90%의 사람들은 ‘상위 10%의 사람들은 나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할 테니까요.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콤플렉스를 가진 사람들을 양성해내는 사회인 거예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공부에 대한 아쉬움을 평생 갖고 살아가거든요. 나는 공부를 못했다고 생각하는 건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죠. 한국은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학력 수준도 높고, 인류 전체로 놓고 보면 너무 많이 배운 사람들이에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콤플렉스가 가득한 사람들이 태어나게 되죠. 그리고 익숙해져 있어요. 소수의 상위권에 대해서 계속해서 칭찬을 하고 보상을 해주는 것에 대해서 사회나 부모가 정당하다고 인식하니까 자신도 그렇게 되는 거죠. ‘저 사람들에게 보상을 해주는 것이나 저들이 하는 말을 인정해주는 것이 올바른 거구나’ 하고 학습하게 되는 것 같아요. 오랫동안 공부를 해야 되고 개인의 지능이 중요한 영역들은 분명히 있죠. 그런 건 중요하고 사회적으로 지켜져야 해요. 하지만 그런 사람들이 분배에 대한 문제나 세금에 대한 문제에 정답을 제공해 주는 건 아니잖아요. 그런 문제는 우리가 합의를 통해서 도출해야 되는 거죠. 그걸 조금 분리해서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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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은 ‘세상의 기본 구조를 단순하게 바라보는 눈’

 

경쟁 과정에 문제가 없었다면 결과는 정당한 것이며 책임은 온전히 자신에게 있다는 믿음은 보편적입니다. 작가님께서는 그것이 “사회적 위선”이라고 하셨는데요. 어떤 의미인가요?

 

저는 경쟁이 중요하다고 믿어요. 경쟁에 따라서 차별적인 대우를 하는 것도 필요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한테 많은 보상을 하고, 경쟁에서 진 사람들한테는 적은 보상을 하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라는 생각이 들어요. 문제는 너무 과하다는 거죠. 우리가 ‘경쟁에서 승리한 사람은 잘했고 경쟁에서 패배한 사람들은 잘 못 한 거야’라고 이야기하려면, 그 중간에 있는 사람들을 봐야 해요. 만약 중간에 있는 사람들이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고 열심히 살지 않아도 그들이 먹고 살 수 있는 사회라는 게 전제된다면, 노력한 사람을 보상하고 노력하지 않은 사람을 처벌하는 사회는 건전한 사회인 거예요. 그런데 중간에 있는 사람들이 아무리 노력을 해도 먹고 살 수 없는 사회라고 한다면 평가 방식 자체가 잘못됐다는 거예요. 지금 한국이 그런 모습에 가까운 것 같아요. 중위소득이 월 90만원이 되지 않는데, 그 사람들이 노력하지 않았다고 비판할 수 있는 게 아니죠. 왜 그들의 소득이 이렇게 적은 것인가, 하고 사회에 대한 문제를 제기해야 돼요. 중간에 있는 사람들이 먹고 살 수 있을 정도의 구조가 갖춰진 가운데에서 이루어지는 경쟁이어야만 타당하다는 거죠. 그것이 제가 말하고자 했던 내용의 골자입니다.

 

시민의 교양이란 무엇일까요?

 

시민은 어떤 이상향이나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할 무엇이 아니에요. 어쨌든 우리가 시민인 거예요. 내가 잘 모르고 선택을 하든, 어리석게 생활을 하든, 열심히 살든 게으르든 상관없어요. 우리는 미래를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을 담지하고 있는 시민으로 존재하고 있는 거죠. 시민은 그냥 우리들, 다수의 사람들, 나를 이야기하고 있는 거예요. 시민이 가진 권한을 활용해서 미래를 정확하게 선택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어떤 정당이나 경제 체제가 나 또는 집단에게 이익을 주는지’ 정도는 구분했으면 더 좋겠다는 거고요. 최소한 세상을 단순하게 볼 수 있는 눈, 기본적인 구조를 보는 눈을 단순하게 교양이라고 이름 붙인 거거든요. 그러니까 다수의 사람들이 최소한으로 가져야 하는 것이 ‘시민의 교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민이 교양을 쌓고 난 다음에는 무엇으로 나아가야 할까요? 무엇을 위해서 교양을 쌓아야 하는 걸까요?

술어가 잘못됐어요. 저는 지식이라는 단어에 붙어 있는 술어도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지식이나 교양을 ‘쌓는다’는 말에는 선입견이 있는 거예요. 계속해서 무엇인가를 중첩해 나가는 게 지식이고 교양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아니거든요. 이미 너무 많이 가지고 있고, 조금 제거해 가야 해요. 불필요하거나 비본래적인 것은 잘라내고 본질만 남겨야 하죠. 그 본질을 저는 시장의 자유와 정부의 개입으로 봤던 거고요.

 

그렇다면 ‘갖춘다’라는 술어를 쓰면 괜찮을까요?


그 정도가 제일 나을 것 같아요. 시민이 가져야 하는 교양은 그 정도인 거죠. 어마어마한 게 아니고요. 단순하게 시장의 자유라는 것이 있고 정부의 개입이라는 것이 있고, 그거에 대한 본질적인 내용은 ‘세금을 높일 것인가 낮출 것인가, 복지를 높일 것인가 낮출 것인가’예요. 그게 사실 전부인 거거든요. 너무 단순한 이야기니까 어떤 분들은 그렇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세상은 조금 더 복잡하지, 내가 알고 있는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라고 생각해서 자꾸만 겁을 내시는 건데요. 어른들의 세상에서는 그게 전부인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가 이미 알고 있었던 시장의 자유와 정부의 개입이라는 개념을 분명하게 구분해서 볼 수 있는 교양을 갖춘 다음에 정치적 선택을 해야 되겠죠. 정당을 선택하고, 정당을 토대로 해서 경제 체제를 선택하고요. 그러면 더 좋은 세계가 된다고 장담할 수는 없는데요. 조금 더 합리적인 세계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시민의 교양』에서 앞으로 우리 사회는 디플레이션을 겪게 될 거고, 빈부격차는 심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하셨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저성장과 경기침체가 아니라 “성장만이 정상이고 경제적 성공만이 유일한 목표라는 지난 시대의 가치관”이라고 덧붙이셨어요. 우리에게 필요한 새로운 가치관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새로운 이념이나 가치관을 만들어낼 필요는 없고, 이미 젊은이들이 갖기 시작한 것 같아요. 소비에 대해서 거부하기 시작하고, 미래를 쌓아나가는 것이 아니라 현재를 즐기려고 하는 방식으로요. 그게 어른들에게는 문제가 있어 보이기도 하는 것 같아요. 조금 더 노력하고 극복하고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구조적으로 그게 가능한 사람들도 있지만 소수의 사람들만 가능하겠죠. 대다수의 젊은이들은 그러기 힘들 것 같아요. 하지만 그럼으로써 긍정적인 면이 있을 거예요. 성공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순간순간을 꾸려나가기 시작할 거고,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가치나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 걸 체감하게 될 거예요. 젊은 층은 부모 세대가 삶에서 배웠던 것과 다른 방식으로 많은 것들을 배울 거라고 생각되거든요. 그렇게 새로운 사람들이 나타났을 때 어른들이 그걸 이해했으면 좋겠어요. 그들을 안타깝거나 불쌍하게 여기는 게 아니라, 새로운 경제체제 안에서 성장한 인류의 모습으로 받아들이고 응원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작가님의 책을 읽다 보면 ‘얼마나 많은 책을 읽어야 이렇게 통섭적 사고를 할 수 있는 걸까’ 궁금해집니다. 그런데 독서에 대한 강박관념을 갖고 계시지는 않은 것 같아요. “독서에 대한 강박관념은 산업화, 자기계발 담론과 연결된다고 봐요. 책 내용이 좋아서 읽는 게 아니라 읽지 않으면 뒤처진다는 불안감에 시달린다는 겁니다”라고 말씀하신 적도 있잖아요.


책을 읽어야겠다는 의무감은 가지고 있어요. 제가 비판하고자 하는 건 자기계발 담론과 연결되어 있는 독서예요. 그럴 때 책을 읽고 싶다는 건 자신의 생각이 아니잖아요. 산업화 이후 개인한테 모든 경쟁의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 사회적 분위기 안에서 책을 읽어야겠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거죠. 그거에 대해서 비판을 하는 거예요. 그런 이유가 아닌 재미로 책을 읽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한 거죠. 어떤 분들은 (책을) 종교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책이 하나의 종교가 돼서, 책을 읽으라고 누군가를 강요하거나 스스로 책을 읽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위안을 얻는 분들이 있어요. 책을 강요하는 분위기도 조금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삶을 풍요롭게 하는 데 책만큼 좋은 게 없는 건 사실이잖아요. 그러니까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여유를 가지기 위해서 또는 재미있기 위해서 책을 선택하고 읽는 게 가장 좋은 것 같아요. 같은 이유에서 영화를 선택하거나 음악을 듣는다거나 미술을 감상하는 것도 책과 동일하게 가치를 갖는다는 생각이 들어요. 책을 읽는 건 매우 좋지만 이것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거나 유일하게 영혼을 확장하는 방법인 양 생각하는 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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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의 교양채사장 저 | 웨일북
《시민의 교양》은 ‘선택’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대통령의 비서실장이 이 선택을 결정할 국가의 주인을 찾아 길을 떠나며 이야기는 뻗어나간다. 그 과정에서 지금 이 시대에 자유란 무엇인지, 자본주의 시대에 직업의 의미는 무엇인지, 정말로 중요한 교육의 문제는 무엇인지, 다양하게 부딪히는 사회 문제들의 본질은 무엇인지 알아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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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아 “노장 취급은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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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가 중국을 중심으로 동남아권에서 발화하고 있을 때 더 큰 대중문화 시장인 일본을 정복해 한류의 확산력, 폭발력, 파괴력을 주도한 인물은 말할 필요 없이 보아(BoA)다. 공인 수식이 '아시아의 별'이다. 어쩌면 진정한 의미의 K팝 글로벌 비상은 보아가 일본을 흔든 시점과 궤를 맞춘다고 할 수 있다. 올해는 그가 일본에 진출한지 15년이 된 해다.

 

이제 막 30대에 들어섰지만 중견이라는 타이틀이 어색하지 않은 보아의 스탠스는 견고하다. 지난해 발표한 통산 8집 <Kiss My Lips>는 이즘의 올해 베스트10 앨범에 선정됐고 서울가요대상에서도 '올해의 앨범상'을 수상했다. 이에 대해 그는 고생한 데 따른 보상이라고 밝힌 바 있다. 중견으로서의 음악지향과 갈등, 지금의 심경 등 전반이 궁금했다. 13년 만에 이즘과 만난 보아는 음악이야기에 즐겁게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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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Kiss My Lips>앨범이 평단과 음악관계자들 사이에서 반응이 좋았다. 노력하고 고생한 만큼 보상받은 것 같아서 행복하다고 밝혔는데, 앨범 작업하면서 고생스러운 게 있었다면 무엇인가.

 

아무래도 전체 노래를 다 쓴다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7집<Only one>을 냈을 때 「Only one」도 제가 쓴 노래였는데 많은 분이 제가 작사, 작곡하는 것을 모르더라고요. 8집 때, 데뷔 15주년 기념으로 재밌는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내가 직접 만든 앨범을 팬들에게 선물하면 어떨까’하는 판단을 했죠. 될지 안 될지 모르겠는데 최선을 다해서 혼자 한번 써보겠다고 회사에 얘기를 했어요. 혼자 쓴 노래들도 있고 또 외국 작가들이 와서 캠프를 진행할 때 저도 같이 참여해서 쓴 노래들도 있어요. 편곡자들도 지속적으로 만났고. 시간 할애하는 것이나 계속 아이디어를 내는 게 가장 어려웠던 것 같아요.

 

앨범 작업은 어느 정도 걸렸나.

 

시작한 건 2014년 초반인 1, 2월 정도부터였으니까 1년이 넘게 걸린 거죠. 앨범이 5월에 나왔으니까요. 말씀드린 대로 정성스럽게 만든 선물 꾸러미를 팬들에게 바친다는 생각에서 작업시간이 꽤 길었죠.

 

경력이나 위치 때문에 앨범 접근 방식도 달랐을 거로 본다. 우선 수록곡을 12곡으로 빼곡히 채워 대단했다.

 

사실 7집의 수록곡이 7곡 밖에 없었어요. 그때 기자분들, 관계자들로부터 이건 미니 앨범인데 왜 정규라고 하는 거냐는 말을 너무 많이 들었어요. 제 나름대로는 정말 좋은 노래만 내고 싶어서 한 건데. 그때 마음에 뭔가가 남았나 봐요. 그래서 이번에는 풀로 열두 곡을 채워서 내겠다고 그랬죠(웃음). 사실 만든 노래는 20곡 가까이 있었고요.

 

한일 양국을 왔다갔다 하고 워낙 스트레스도 많은 슈퍼스타인데 굳이 자신이 곡을 쓴다는 게 힘들 것 같다. 왜 작사, 작곡을 꼭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가? 뮤지션으로서 인정받고 싶은 욕망인가?

 

그렇지는 않았고요, 이번 앨범은 팬들에게 선물이라고 말씀을 드렸지만 저를 위한 선물이기도 했어요. 왜냐면 아이돌이란 타이틀로 데뷔했던 10대 소녀가 자신의 손으로 만든 앨범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게 된다면 저 또한 '내가 열심히 잘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 것 같은 거예요. 욕심이라면 그게 욕심이어서 조금 무리를 하긴 했죠. 이제는 또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는 항상 일을 할 때 일에 대한 흥미를 찾아가고 싶은 스타일이라서, 다음에 또 노래를 내게 된다면 내 노래가 아니라 다른 작가의 노래를 나만의 방식으로 꾸며서 색다른 옷을 입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앞으로 '꼭 내가 노래를 쓸 겁니다!'라고 고집하는 건 아니에요.

 

8집의 12곡 중에서 후크가 명확한 「Shattered」와 「Fox」가 좋았던 기억이 있다. 「Shattered」는 곡 진행의 변화폭도 크고 몽환적이기도 하다. 노래를 작업한 과정을 듣고 싶다.

 

저랑 '언더독스' 팀하고 처음 같이 작업을 한건데요, (스스로 요청한 것이냐고 묻자) 네. 이번에 작업을 했던 팀이 ‘언더독스’랑 '스테레오타입스'랑 테디 라일리 등등이었는데, 테디 라일리 캠프와 하니까 너무 마이클 잭슨 같은 노래가 나오는 거예요. (웃음) 저 또한 마이클 잭슨의 광팬이었기 때문에 사실 그 노래를 리패키지로 내려고 했는데 여의치가 않아서 아직 발표를 못 한 상태입니다. 언젠가는 나오겠죠? 근데 언더독스가 한국에서 캠프를 갖는다는 얘기를 듣고 저도 욕구가 솟구쳤죠.

 

어떤 측면에서?

 

그 팀에 대해서 좋은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프렌들리하고 즐거운 환경에서 일을 한다고 해서 어떨까 궁금한 마음으로 간 거죠. 캠프를 가면 되게 즐거운 게 트랙을 막 들려줘요. 그럼 뭔가 쇼핑하는 기분인거예요. (웃음) 근데 「Shattered」를 딱 들었는데 '아, 이건 꼭 써야겠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한국 A&R 분들은 좀 어려운 곡이라고 하셨는데, 몽환적인 것을 제대로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고집했죠.

 

곡이 몽환적이지만 후크가 확실하다.

 

네. 그게 제가 멜로디를 쓸 때 습관 아닌 습관이기도 한데, 코러스 부분은 좀 확실하게 캐치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요. 같이 탑 라인을 해준 티파니라는 친구도 저랑 동갑에 잘 통해서 금방 나왔던 노래예요.

 

앨범을 딸에게 들려준다면 아델에게 선수를 뺏겨서 그렇지(웃음) 보아의 「Hello」도 만만치 않다. 예쁜 곡이다.

 

(웃음) 감사합니다. 사실 우리가 너무 바쁘게 살면서 몸 다치는 건 신경 써도 마음 다치는 건 신경을 많이 안 쓰잖아요? 그런데 내 마음에게 내가 한번이라도 진정성 있게 안부를 물어본 적이 있나, 내가 누구한테 받은 상처에 대해서 정말 진심어린 사과나 위로를 나 자신에게 해본 적이 있냐는 생각이 들어서 '내가 나 자신에게 하는 위로'로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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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들을 때는 감성적이다가 글을 쓸 때는 냉철해야 하는 게 평론가들이다. 그래서 감성과 이성이 동거해 이중적이다, 심지어는 때로 변태성이 있다는 말을 듣는데 예술가도 그렇다고 생각한다.

 

네, 다들 조금 변태성이 있죠. (웃음) 저희 직업도 맨정신으로 하기에는 힘든 부분이 많아요.

 

백 스테이지에서 보아는 되게 침착할 것 같다. 그런데 막상 온 스테이지에서는 최선을 다해서 춤춘다. 한마디로 상상과 현실의 차이가 커 보인다. 거기서 어떤 괴리를 느끼지 않나?

 

저는 사실 백 스테이지 일이 더 잘 맞는 성향 같긴 해요. 스튜디오에 있는 시간과 곡을 만드는 일을 너무 좋아하고. 무대에 올라가기 전 그 긴장감 때문에 '나는 정말 무대를 올라갈 때마다 수명이 1년씩 줄 것 같다.'고 항상 얘기해요. 어렸을 때는 멋모르고 시작했던 게 이제는 사람들이 '보아가 연말에 무대한대', '뭐 어떻게 할까', '당연히 라이브 하겠지?', '보아는 라이브 해야지. 미친 듯 춤추면서 그래도 라이브 해야지.' 이런 기대감이 있잖아요. (웃음) 항상 그런 기대감이 저에겐 점점 부담이 되고 강박이 되니까 무대가 이제 더 어려워지죠. 하지만 그걸 하면 너무나 뿌듯하고. 그런 면에서 저도 그런 이중적, 변태성을 갖고 있다고 해야 할까요. (웃음)

 

패티김 여사도 공연을 앞두고 너무 긴장되고 떨려서 '화재가 나서 공연이 취소됐으면' 하고 기도하곤 했다고 한다. 어마어마한 사람들 앞에서 무대에 선다는 게 일반인은 하기 어렵다,

 

그렇죠. 근데 저는 공연은 조금 더 안심이 돼요. 왜냐면 만회할 기회가 뒤에 스물 몇 곡이 있으니까. 생방송 무대를 비롯한 TV 프로그램이 더 힘들어요.

 

<케이팝스타>는 너무 잘했다.

 

케이팝스타는 앉아서 듣는 입장이니까. 제가 직접 올라가서 하는 거랑은 다르죠.

 

그래도 여유 있게 하던데. 그래서 그때 '멘토 언니'가 되지 않았나.

 

멘토 언니요?(웃음) 프로그램 하는 게 재밌었어요.

 

「Kiss my lips」는 만들고 나서 이게 타이틀이다 하는 생각을 바로 했나.

 

사실 노래 12곡을 회사에 던지고 타이틀을 골라달라고 맡겼어요. 대중가수로서 앨범에 객관적일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들으시고 판단을 해달라고 했는데, 압도적으로 「Kiss my lips」의 선호도가 높았다고 하고 그다음이 「Fox」, 「Smash」 그렇게 갔어요. 저는 솔직히 「Kiss my lips」를 내면서도 이 노래는 음원으로 많은 사랑을 못 받을 거라고 예상했어요. 너무 생소한 음악이니까요.

 

좀 어렵게 들릴 수도 있겠다.

 

뚜렷한 훅도 없고 이게 어디가 코러스인지 구분이 안 되는 노래기 때문에. 근데 한번쯤은 시도를 해야 하는 음악이지 않나 싶었어요.

 

「Hurricane venus」, 「Only one」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았지만 「Kiss my lips」 때도 본인이 빅 스타, 월드 스타인 것에 대한 부담이 너무 큰 것 같다. 대중가요는 소통이다. 편하게 가도 욕먹을 나이도, 위치도, 상황도 아니다. 너무 자기 위치에 따른 강박이 작용하지 않나 생각이 들었다. 「Hurricane venus」도, 「Kiss my lips」 때도 쉽게 해도 되는데 월드스타가 이 정도는 해줘야 한다는 압박을 느꼈다. 차라리 「Fox」나 「Clockwork」, 「Who are you」로 가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고려할 게 많은 것은 사실이죠. 하지만 결국은 음악적 선택입니다.

 

「Who are you」를 선공개로 발매한 이유는 무엇인가?

 

「Kiss my lips」가 조금은 어려운 음원이라는 판단 하에 부담 없이 가자는 판단이었어요. 더 솔직하게 「Who are you」는 100% 음원 잘 될 노래니까 한 방 치고, 「Kiss my lips」로 무대에서 보여준다는 전략이었죠. 어차피 저희는 앨범을 프로모션 하는 거고 싱글 프로모션을 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음악 방송을 2곡씩 할 때도 방송 3사마다 모두 다른 노래로 했어요. 안타까운 건 우리나라 음악 방송의 시청률이나 관심도가 예전만하지 못하다는 것과 이제 그런 모습을 보여드려도 많은 분들이 찾아서 보시지는 않는다는 점이죠. 점점 음악자체가 인스턴트화 되는 게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도 제 안에서는 8집 앨범이 중요한 해에 나온 앨범이기도 하고, 15년 이상 음악을 했던 사람으로서 이런 정규 풀 앨범을 꼭 내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어요.

 

그래서 한편으로는 「Kiss my lips」가 첫 싱글이었을 때 '보아는 여전히 앨범 아티스트다!' 하는 생각은 들었다. 그 정도의 무게감, 존재감은 있어야 하니까.

 

그래서 이제는 자주 하려고요. 아까 말씀하신 「Hurricane venus」도 5년 만에 한국에서 다시 내는 거였기 때문에 저도 회사도 너무 부담이 많았던 앨범이긴 했어요. 3D 티비 때문에 뮤직비디오를 3D로 찍어야 하는 등 굉장히 많은 시도를 했던 앨범이었어요. 그런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나오긴 했는데, 성과를 떠나서 그 노래는 지금 공연할 때 써도 너무 좋은 노래에요. 「Only one」은 더 캐주얼하게 냈던 노래기는 해요. 그래서 사람들이 더 대중적으로 들어주셨던 것 같고. 근데 저는 다른 가수들에 비해서 공백기가 길잖아요. 그 기간을 좀 줄여가면서 편하게 음악을 낼 수 있는 싱글 체제를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들더라고요.

 

「Only one」 할 때 마이크를 끄고 안무만 한 적이 있다. 내가 알던 보아라면 어떻게든 노래와 춤을 다 해냈을 것 같은데 하나를 포기하고 춤, 퍼포먼스 측면을 극대화하는 것을 봤을 때 다 잘해야겠다는 강박관념을 좀 벗어난 게 아닌가 생각했다. 음악적으로도 「Hurricane venus」 이전은 컨셉트를 연기하는 보아가 노래를 부르는 거라면 「Only one」부터는 진짜 인간 보아가 자기 노래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캐주얼하게 받아들이는 게 아닌가 하는데, 그 중간 기점에 뭔가 터닝 포인트가 있었던 것 아닌가. 6, 7집 사이의 간극이 있었던 것 같다.

 

음, 뭐가 바뀌었을까요. 나이가 들어서 유해졌나? (웃음)

 

그때 6, 7집 사이가 일본 활동에서 국내활동으로 무게중심이 좀 이동할 때 아니었나.

 

네, K팝스타를 2011년에 시작했었죠.

 

그런 것도 큰 변화라고 생각한다. 사실 2007-8년까지 보아는 거의 일본 가수이지 않나. 2010년까지는 일본에 임대한(?) 상황이었으니까. 일본에서는 많이들 보아를 일본 사람이라고 여긴다고 들었다.

 

초반에는 한국 출신이라는 얘기도 했었고 신문에도 '한국 출신의 가수 보아' 이렇게 나는데 사람들에게는 제가 그냥 어디 출신이건 상관이 없는 거예요. 그냥 '보아는 일본에서 일본어로 노래하는 가수'라고만 생각을 하는 것 같더라고요.

 

일본어 싱글이나 앨범 낼 때하고 한국어로 낼 때 어느 것이 더 편한가.

 

마음이요, 아님 노래 할 때요? 사실 2000년대 후반까지는 일어가 조금 더 편하다고 느꼈어요. 왜냐면 우리말로 부를 일이 5년 정도 없었으니까. 근데 또 한국에서 활동을 더 많이 하고 일을 하니까 이제는 한국어가 더 편하고 역으로 가끔 일본 가면 일본어가 막힐 때도 있어요.

 

일본에서 활동하면서 음악적으로 크게 얻은 소득은?

 

일단은 제이팝 나름의 캐치한 멜로디 감성이요. 8집을 들으면 굉장히 제이팝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맞다. 약간 뽕끼가 전반적으로 흐른다. (웃음)

 

근데 그게 케이팝 뽕끼는 아니잖아요. (웃음) 꼭 코러스 부분에서는 알기 쉬운 멜로디여야 한다는 강박이 무의식중에 좀 있나 봐요. 어쨌든 그런 노래들이 많이 기억에 남고 좋잖아요. 또 초반에는 일본에서 음악을 더 많이 냈고, 제 목소리 컬러를 믹스 과정 등에서 좀 더 명확하게 잡아준 게 일본 쪽이어서, 그 영향이 그 이후에 많이 있었죠. 엔지니어링이라든지.

 

「아틀란티스 소녀」 들을 때 놀란 건 유난히 숨소리가 많이 들어갔다. 숨소리는 위험해서 보통은 지우려고 한다. 괜찮았기 때문에 놔둔 것 아닐까.

 

우리나라에서 90년대만 해도 가성을 쓰는 가수는 노래를 못하는 사람처럼 많이 인식됐잖아요? 그래서 한국에서는 진성으로 어디까지 올라가냐는 게 정말 중요했던 시기였는데 저는 가성을 쓰는 게 더 편했던 목소리였어요. 어렸을 때 소프라노를 조금 했거든요. 진성이 너무 어려웠는데 일본에서 코러스도 녹음해보고 발라드도 하면서 제 가성의 장점을 찾아준 거죠. 저는 진성, 가성을 섞는 게 너무 편했어요. 한국에서 강타 오빠가 2집 때 「늘」이라는 노래를 줬는데, 녹음을 하러 갔다가 키가 너무 높아서 “오빠 이거 키가 너무 높아서 내렸으면 좋겠어요!” 했더니 “야, 시간이 없어서 스트링을 녹음해버렸어 못 내려.” 이렇게 된 거예요. “그럼 오빠 제가 이거 가성을 좀 섞어서 불러 봐도 될까요?” 하고 불렀더니 그 목소리를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그리고 이수만 선생님도 '아, 보아한테 이런 목소리가 있었어?'라고 하면서 놀라셨고요. 다른 분들도 가성을 쓰는 게 사실은 노래를 못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아주셨던 계기였죠. 그래서 곡을 쓴 (황)성제 오빠도 저의 그런 가성이나 숨소리를 좋아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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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겠지만 그럼에도 보컬 측면에서 8집 가운데 이 노래는 잘한 것 같다는 곡이 있다면 어떤 노래인가.

 

어려운 질문인데요? 저는 「Shattered」도 톤을 잡는 게 되게 힘들었어요. 그게 진, 가성을 섞어야 나올 수 있는 목소리라 보컬 잡는 게 어려웠어요. 또 노래를 만들면서 가이드를 만들잖아요? 그때 목소리가 훨씬 좋아요. 소리가 너무 열려있고 아무런 부담이 없으니까. 제가 「Love & hate」는 가이드 느낌이 안 살아서 녹음을 세 번 했어요.. 그래서 '우리 이거 그냥 가이드 갖다 쓰면 안 될까? 어차피 콘덴서 마이크에 했으니까 갖다 쓰자, 가사 몇 개만 고치자' 그랬어요. 그 톤이 안 잡히니까. 다 열심히 불러놨는데 어떡하죠. 너무 어렵다.

 

그런 면에서 「Kiss my lips」가 잘한 노래라고 본다. 그 정도는 해줘야 하는 게 보아다. (웃음)

 

「Kiss my lips」 믹스를 23번 했어요. 제 앨범 때문에 저희 엔지니어 기사님들이랑 녹음실이 마비가 됐었어요. 데드라인은 정해져 있지, 믹스는 밀려있지, 통과는 안 나지, 엄청 힘들어하셨어요. 근데 스테레오타입스만의 믹스 방법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친구들이 트랙을 줬을 때의 그 느낌이 안 사는 거예요. 제 목소리 톤도 그렇지만 기타 루프나 이런 소리가 왜 안 살아날까, 그래서 고집도 많이 부리고 수정도 많이 보고, 마스터를 두 번 했거든요. 탐(드럼 파트) 소리 하나 때문에 '다시 해주세요~' 하기도 하고.

 

일반인으로 따지면 보아는 너무 젊다. 그런데 사람들은 완전 노장 취급을 한다.

 

저는 정말 젊게 살고 나이를 잊고 사는데, 제 나이를 주변 분들이 더 잘 아는 느낌이에요. 저는 정작 잊고 사는데 자신이 나이 먹는 건 생각 안하고 ‘벌써 보아 걔가 그렇게 됐어?’ (웃음) 하시고.

 

이것도 묻고 싶다. 「Kiss my lips」, 「Who are you」, 「Shattered」, 「Fox」란 노래도 그렇고 「Double jack」, 「Love & hate」, 「Green light」도 그런데 대체로 노래가 퍼스널(personal)한 느낌이 든다. 듣는 이에게 희망을 준다든가 하는 공적인 주제가 있을 법한데 사적인 접근이 대부분이다.

 

확실히 여자 감성이라 그런 류의 노래가 많은 것 같긴 해요. 그리고 여전사 같은 이미지를 하고 싶지 않아서. 항상 SM에서 하던 의미를 잘 모르는 '센' 가사들 있잖아요. 그 가사들을 별로 안 좋아했어요. 그냥 제 나이 여자들이 느끼는 걸 쓰는 게 가장 솔직하고 나다운 게 아닐까 싶었어요. 자켓도 보면 굉장히 편안해요. 화장을 진하게 하거나 약하게 한 여자, 그거 두 개밖에 다른 게 없죠. 「Double jack」의 경우 <비긴 어게인>의 그 '더블 잭'있잖아요? 저도 더블 잭이 있긴 했는데 영화를 보면서 저렇게도 쓸 수 있구나 싶었어요. 저희는 이어폰으로 모니터링을 해야 하는데 빨리빨리 진행을 해야 하니까 동시에 못할 때는 그거 꽂아서 같이 듣고 그렇게만 썼지 그렇게 로맨틱하게 쓸 것이라고는 생각 못했어요. (웃음) 그걸 보면서 더블 잭이 Y모양인데 사람의 심장이 이어진다고 생각하면 어떨까, 라고 생각해 공유한다는 느낌이 있어서 그렇게 썼어요. 그렇다고 가사가 100% 가상은 아니죠.

 

사적인 질문인데, 보아씨 부모님은 활동에 대해서 어떻게 받아들이시는지, 자랑스러운지 걱정하시는지 궁금하다. 일본에 오래 활동하면서 가장 예쁠 때 제대로 딸을 곁에 둬본 적이 적으시니까.

 

그래서 저희 엄마가 절대 독립 못 하게 하세요. 다 같이 살거든요. 부모님은 굉장히 개방적인 분이세요. 그래서 한 번도 뭐 해라 하지마라 강요를 받아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오빠들도 바이올린을 하던 사람이 갑자기 피아노가 하고 싶다고 해서 피아노로 대학을 갔고 작은 오빠는 춤이 좋다, 만화 그리는 게 좋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자기 영상을 하고 싶다고 해서 스스로 공부해서 가고. 그런데도 (저의) 독립생활을 허용하지 않으시죠. 연예활동은 좋아하시고 정신건강 상태가 좋은 거에 가장 안심하세요. 사실 연예계 쪽에 오래 있으면 생각하는 거나 행동하는 거나 좀 일반적이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 근데 널 보고 있으면 평범한 30살 여자 같다는 얘기를 많이 하시죠.

 

독립하는 걸 싫어하신다면 시집가는 것도 그렇게 달가워하시진 않겠다.

 

그거랑은 좀 다른 것 같아요. 결혼하는 건 괜찮은데 혼자 사는 건 안 돼, 그런 거죠. 혼자 살면 제가 너무 놀러 다닐까 봐 안 된다는 걸까요(웃음)

 

2003년 인터뷰 마치고 '보아 저 사람은 춤추고 노래하기 전에 책 읽고 조용히 있는 문학소녀가 어울릴 것 같다'는 얘기를 했다. 아까 백 스테이지에 더 어울린다는 얘기를 했을 때 그때 공부를 하는 게 더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러게요, 원래 꿈이 의사였는데. 의사할 걸 그랬나. (웃음) 2003년 무렵에는 책도 많이 읽었어요. 요즘에는 사람이 점점 나태해진다니까요. 점점 책을 안 보게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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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아의 베스트 곡은 무엇인가? 본인한테는 안 맞아도 대중적으로 어필하기 위해서 또는 시류에 맞추기 위해서 한 곡이 아니라 진짜 내 취향, 내 감성, 내 스타일을 반영한 곡.

 

8집의 경우 「Who are you」랑 「Fox」인 것 같아요. 저는 좀 밝으면서도 감성적인 노래를 좋아하거든요. 사실 「Only one」이나 이런 노래를 참 좋아해요.

 

「Only one」은 좋아하면서 부른 것 같았다.

 

네, 어렸을 때부터 미디움 템포 알앤비 노래를 많이 들어왔고 좋아했어요.

 

그럼 오늘날 보아를 음악하게 만든 사람들 중 결정적인 아티스트는 누구인가? 테디 라일리는 들어갈 것이고.

 

테디 라일리도 있고, 어렸을 때 보면 남들이 안 듣는 거 찾아듣고싶고 그렇잖아요. 도넬 존스라든지. 'U know what's up' 같이 되게 감미로운데 사람들 잘 모르는 노래. 지금은 많이 알려진 어셔의 댄스 노래도 슬로우 잼 감성에 끌렸죠. 이번 저스틴 비버 앨범이 너무 맘에 드는데 거기에 「Love yourself」라는 노래가 특히 좋았어요. 저스틴 비버의 EDM도 좋은데 비트가 강한 노래보다는 그런 감성적인 노래를 좋아해요.

 

한동안 SM의 간판이었고 톱스타였지만 지금은 모든 상황이 말해주듯이 주력 상품이라고 볼 수는 없다. 팬들로부터는 기획사로부터 홀대 받는 것 아니냐는 불평 아닌 불평이 있기도 했다. 본인으로서도 이제 내가 회사의 중심이 아니다, 후배들에게 자리를 양보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가 있을 것이라고 보는데, 그런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아직 나이로 볼 때 힘들지 않았나.

 

주력 상품이라는 건 항상 바뀌지만 그 회사의 가장 핵심 상품은, 농심도 '너구리' 말고도 신상 라면이 널려 있지만 너구리는 스테디셀러잖아요. 그냥 물 흘러가듯 항상 그 자리에 있는, 하지만 우리가 언제든 먹고 싶을 때 찾아 먹을 수 있는, 진짜 주(主)가 되는 상품. 그래서 사실 저는 주력 상품이 아니라는 부담은 없어요. 왜냐면 SM=보아지만 다른 누구를 SM은 누구다라고 얘기하진 않잖아요. 그거에 대한 자부심이 있어요.

 

앞으로 SM이 아니라 대한민국 또는 아시아 가수로서 앞으로 보여줘야 할 것은 뭐라고 생각하나?

 

전 정말 오래오래 이 일을 하고 싶거든요. 많은 분들이 보아는 국가대표 운동선수 같은 느낌이 있다고 하세요. 그리고 가장 많이 듣는 얘기가 마돈나처럼 60대에 육박해도 무대에 서줬으면 좋겠다는 말인데, 요즘은 여자 댄스가수의 수명이 점점 길어지는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 또 저희 회사에서 '스테이션(Station)'이라는 시스템을 도입했는데, 노래를 내는 데 저조차도 부담감이 많이 없어진 것 같아요. 예전에는 그래도 정규를 내야 한다는 부담이 있었는데 그러다보니 한 곡 한 곡 내는 거에 너무 부담이 많이 생기는 거예요. 그래서 좀 더 캐주얼하게 내가 어떨 때는 정말 밝은 것도 내보고 어떨 때는 발라드도 내보고 부담 없이 많은 공을 던질 수 있는, 그런 활동을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10집은 꼭 채우기 바란다.

 

그럼요. 해야죠. 이제 싱글을 내고 그 싱글들을 모아서 정규를 내는 옛날 일본식 시스템이 되는 것 같아요. 미국은 싱글을 냈다가 앨범을 내고 이걸 1, 2년에 걸쳐서 리컷해가면서 프로모션을 하는데 사실 저는 이번 앨범에서 그게 하고 싶었거든요. 근데 잘 안 되더라고요.

 

장기적으로 많은 공을 던져보고 싶다고 했는데 단기적으로는 어떤 음악을 하겠다는 계획이 있는지. 앨범이 나온 지 얼마 안 됐지만 '스테이션' 잡혀있는 게 있나.

 

잡혀 있는 게 있긴 한데 아직 진행이 안 됐어요. 확실하게 뭘 할 거라는 말씀은 못 드리는데 확실하게 제 노래는 아니에요. (웃음) 왜냐면 저는 작년에 과다출혈을 했거든요. 너무 많이 썼고, 한번 하면 정말 몇 년은 '로직(작곡 프로그램)'을 열지도 않아요. 다른 사람들의 감성이나 멜로디나 음악을 통해서 충격도 많이 받고 싶고, 노래하면서 그런 음악들을 꾸미는 재미가 또 있거든요.

 

2003년부터 해온 공연이 현재 98회를 했고 100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처음부터 밴드라이브를 하고 있는데, 밴드 라이브를 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조영남씨가 감탄하기도 했다. 밴드 라이브를 고집하는 이유, 앞으로 어떤 퍼포먼스나 공연을 만들고 싶은지 말해 달라.

 

제가 태어나서 처음 가졌던 공연도 밴드 라이브였고, 밴드 라이브가 없는 공연 자체를 상상해본 적이 없어요. 다른 아티스트들은 MR 공연을 하기도 하는데 저는 밴드 공연만의 드라이브감이 너무 좋고, 그게 있어야 제 에너지가 2시간 반을 채울 수 있어서 앞으로도 밴드는 계속 고집할 것 같아요.

 

100회 공연은 가능하다면 예술의 전당에서 해보고 싶어요. 얼마 전에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을 했는데 아마 대관을 안 해주시지 않을까요. (웃음) 댄스가수 쪽은 좀 더 박하다고 들었어요. 사실 세종문화회관에서 할 때도 폭죽 같은 게 하나도 없었어요. 그래도 예술의 전당에서 하게 된다면 너무 뿌듯할 것 같아요.

 

8집을 신보라고 간주하고 '이 앨범은 이렇게 들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해야 한다면?

 

8집은 보아라는 여자가 담겨있는 것 같아요. 멋있는 보아, 귀여운 보아, 여러분이 상상하시는 보아가 있겠지만 그냥 제 나이에 맞는 여자 보아가 표현하는 앨범이에요. 사실 제 앨범을 저도 아직 CD로 못 들었어요. ('무서워서 못 듣는 거죠' 라고 했더니)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 확실히 mp3랑 CDP는 음질이 다르니까. 이제는 듣고 싶네요.

 

보아는 아티스트로서 어떤 사람인가.

 

보아라는 사람은, 일을 참 좋아하고 항상 재밌게 살고 싶은 여자요. 그래서 어떤 걸 하더라도 스스로 흥미를 못 느끼면 100% 몰입을 할 수 없는, 그래서 항상 자신이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재미를 찾아가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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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 춤에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현재 추고 있는 춤은 노력의 결과인가, 아니면 천부적인 건가.

 

노력인 것 같아요. 왜냐면 저는 정말 라이브를 못하던 가수였거든요. 일본에서 2001년에 데뷔를 하고 어떤 공연에서 라이브를 보고 에이벡스(SM과 계약한 일본 소프트회사)에 어떤 분이 '쟤는 단독 콘서트 하려면 10년은 걸릴 것'이라고 했대요. 너무 못해서. 그래서 춤추면서 노래하는 걸 정말 많이 연구하고 연습했어요. 그래서 이만큼 할 수 있게 됐죠.

 

'ID; Peace B'는 잘했지 않나?

 

그때는 립싱크 세대잖아요. 진짜 노래를 하면서 춤을 소화하는 건 정말 못했어요.

 

서태지와 아이들의 이주노씨가 인터뷰에서 보아가 가장 춤을 잘 추는데 그 이유는 춤에 감정을 집어넣기 때문이라고 했던 게 기억난다. 이게 무슨 말인가?

 

해석에 대한 차이가 아닐까요? 저는 음악을 들으면서 들리는 소리가 많으니까 거기에 맞춰 춤을 느낀다고 해야 하나? 뒤에 해주시는 분들도 다 잘하시는 분들이고 한데 그냥 제가 센터에 있어서 저만 보인다고 하신 것 같아요(웃음)


인터뷰: 임진모, 황선업, 이수호, 정민재
인터뷰 정리: 임진모
사진 제공: SM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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