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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진 “초보 엄마를 생각하면서 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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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소유진이 이유식 레시피를 담은 『소유진의 엄마도 아이도 즐거운 이유식』을 펴냈다. 책의 콘셉트는 ‘쉽고 빠르게 뚝딱’. 24시간 육아 전쟁을 치르는 초보 엄마들이 보다 쉽고 빠르게 이유식을 만들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해 책을 썼다. “막연하게 책을 쓰고 싶었다”는 소유진은 지금 3살 용희, 1살 서현이의 엄마이자, 요식사업가 백종원의 아내다. 누군가는 “남편의 인기에 힘입어 ‘이유식 책’을 쓴 게 아니냐?”고 묻지만, 소유진이 쓴 프롤로그를 읽으면 생각이 달라질 것 같다.

 

“보통은 임신 막달에 아기가 살이 많이 오른다는데, 4주간 아기 몸무게가 하나도 늘어나지 않았어요. 마지막에 영양 공급이 잘 안 돼서 몸이 약해 입원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들었고요. 심장에서 잡음이 많이 들린다고 해서 정밀 검사를 했더니, 심장에 구멍이 뚫린 심실중격결손증까지 있었고요. 그 조그만한 용희가 수면 마취 상태로 정밀 검사를 받을 때는 정말 눈물이 쏟아져 제대로 볼 수도 없었어요.”

 

다행히 용희는 수술할 정도는 아니었다. 무조건 잘 먹이고 1년 뒤에 다시 검사를 받기로 했다. 모유 수유를 시작하고 하루 빨리 이유식을 시작하고 싶었던 엄마 소유진. 초기 이유식을 시작하자마자 열심히 레시피를 정리하기 시작했고, 완료기에 들어가자 덜컥 출판사와 계약을 했다. 그래서 탄생한 책이 『소유진의 엄마도 아이도 즐거운 이유식』이다. 최근 드라마 촬영을 시작하며 워킹맘이 된 소유진은 “육아에 서툰 새내기 엄마, 시간에 쫓기는 워킹맘, 수많은 정보 때문에 머리 아픈 초보 엄마에게 도움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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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 엄마 마음으로 쓴 이유식 책


책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고 들었어요. 초판본에서 오타를 발견해서 무척 속상하셨다고요.


정말 많이 봤거든요. 그런데도 오타가 두 개나 나와서, 집에서 이불 킥을 했어요. 물론 2쇄 때는 고쳤고요. 책을 처음 실물로 봤을 때는 기분이 참 오묘하더라고요. 제가 책을 썼으니 내용을 다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첫 장부터 보고 또 보고를 다시 했어요. 책이 출간되기 전 예약 판매를 했는데요. 저도 구매자의 입장이 돼보고 싶어서 예스24에서 인터넷주문을 하고 집에서 며칠 동안 택배가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으니 말 다했죠. 박스를 뜯고 책을 꺼내는데 괜스레 뭉클하더라고요.

 

남편 백종원 씨는 책을 어떻게 보시던가요?


그냥 쓱 보던데요? (웃음) 잘 좀 읽어달라고 했는데, 회사 가서 본다고 책을 가져가더라고요. 지금까지도 봤는지 잘 모르겠어요. 제가 에세이도 꽤 많이 썼잖아요. 우리 집 이야기니까 재밌게 읽을 것 같은데, 구체적인 리뷰는 아직 못 들었어요.

 

아무래도 전문가가 아닌 ‘연예인’이 낸 책이라는 편견이 따라 붙을 텐데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제가 가장 부담스러웠던 부분이에요. 이유식 책이니까, ‘이거 그냥 남편 도움 받아서 쓰는 거 아냐?’라는 소리를 들으면 절대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쓰려면 제대로 써야겠다고 다짐했기 때문에 책에 있어서는 정말 자신감이 있어요. 어쨌든 제가 100% 아들 이유식을 만들었으니까요. 책도 정말 한 글자 한 글자 제가 다 썼어요. 물론 정보나 감수는 전문가 분들의 도움을 받았지만, 정보를 재해석하는 건 제 몫이니까요. 그래서 정말 뿌듯하고 자신이 있어요. 또 제가 지금 3살, 1살 아이를 키우는 엄마니까요. 엄마로서의 공감대도 많이 주고 싶었어요. 평소에 아기 사진도 잘 공개하지 않았지만 제 책이니까요. 지금이다 싶어서 용희 사진도 많이 넣었어요.

 

지금은 둘째 서현이가 한창 이유식을 먹을 때죠?


이유식 초기 단계예요. 책을 쓸 때는 용희가 이유식 완료기를 막 지났을 때였거든요. 지금은 잠시  쉬었다가 다시 하는데, 제 책을 보면서 그대로 따라서 만들고 있어요. 되게 재밌더라고요. 제 책대로 하다 보니까, 옛날 생각도 나고 확실히 더 빨라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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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이유식 책의 레시피는 한 끼 분량을 기준으로 하는데요. 『소유진의 엄마도 아이도 즐거운 이유식』은 두 끼 분량으로 레시피를 소개했어요.


첫째 용희가 이유식을 어찌나 잘 먹는지 하루에 한 번으로는 부족했어요. 그래서 이유식 초기부터 두 번씩 먹였는데요. 용희처럼 이유식을 잘 먹는 아이를 배려하는 한편, 엄마들을 위한 배려이기도 해요. 대개 이유식을 만들 때 한 끼씩 만들지 않잖아요. 2,3일은 냉장 보관을 해도 괜찮기 때문에 적어도 세 끼 정도는 한 번에 만들어도 괜찮아요. 저도 예전에 책을 보면서 이유식을 만들 때, 재료의 분량을 3배씩 곱하면서 만들었는데요. 계산하기가 무척 번거로웠어요. 그래서 제 이유식 책은 그냥 그대로 따라 해도 괜찮은 레시피를 소개하고 싶었어요. 처음에는 출판사에서 반대하셨지만 나중에는 제 의견을 따라주셨어요. 부디 독자 분들이 편하게 생각해주셨으면 해요. (웃음)

 

아이 키우라 살림하느라 굉장히 바빴을 텐데요. 책은 주로 언제 쓰셨나요?


새벽에 많이 썼어요. 5,6시쯤 애들이 다 자고 집이 고요할 때요. 그럴 때 집중이 잘되고 글도 잘 써지더라고요. 글을 한 편씩 써서 편집자 분께 보내고 또 피드백을 받고 수정을 하면서, 많은 걸 느꼈어요. 책을 쓰는 게 정말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또 한 번 느꼈어요. 책을 다 만들기까지 거의 1년이 걸린 것 같아요.

 

아무래도 백종원 씨가 요리연구가이다 보니, 조언도 많이 해줬을 것 같은데요.


전혀요. (웃음) 육아는 정말 많이 도와주는데, 이유식은 한 번도 해준 적이 없어요. 보통 이유식은 남편이 출근한 후에 만드니까요. 제 음식은 정말 많이 자주 해주지만, 이유식은 온전히 제 몫이었어요. 어쩌면 그래서 책을 쓸 용기가 생겼는지도 몰라요. 남편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고 제 힘으로만 했으니까요. 그래도 남편이 장을 보는 걸 무척 좋아해서요. 아이가 생선을 좋아하면 가장 싱싱한 생선을 사오는 건 남편의 몫이었어요. 유아식은 종종 같이 만들어요.

 

백종원 씨와 공동 저자로 책을 쓸 생각은 없었나요? 제안도 꽤 많이 받았을 텐데요.


이미 남편은 책을 많이 냈잖아요. 7,8권을 쓴 것 같은데 지금도 책을 쓰고 있고, 워낙 책을 좋아해요. 그래서 결혼 초기 때부터 저 혼자 마냥 생각했어요. ‘내가 책을 쓰면 어떤 주제로 쓰게 될까?’하고요. (웃음) 와인이나 D.I.Y, 꽃꽂이, 아니면 에세이도 써보고 싶었는데요. 정말이지 이유식 책을 쓸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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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이 평생 식습관을 결정하잖아요


책을 보니, 이유식 레시피도 유용하지만 재료의 성분과 궁합, 손질법, 보관법 등 실용적인 조언이 굉장히 잘 정리되어 있어요.


엄마들이 굉장히 바쁘잖아요. 아이 돌보면서 이유식을 만드는 게 참 쉽지 않은데요. 그래도 꼭 신경 써야 할 부분은 확인하는 게 좋으니까요. 시금치를 다듬으면서 뿌리까지 바짝 자르면 데칠 때 영양소가 다 빠져나간다고 해요. 저도 잘 몰랐는데 이번 기회에 알게 됐어요. 또 무와 요리는 함께 요리하지 않는 게 좋아요. 무에는 비타민이 많이 들어 있는데, 오이에 든 성분이 비타민을 파괴하기 때문이에요. 만약 오이와 무를 같이 조리해야 한다면 식초를 살짝 넣어 주는 게 좋고요. 이외에도 꼭 이유식이 아니더라도 요리를 하면서 알아야 할 유용한 정보들을 소개했어요.

 

이유식을 시작하기 전, 엄마들은 이유식 조리도구 준비물 공포에 시달립니다. 너무 많은 것을 준비해야 할 것 같아서요. 책에도 조리도구 사용법이 나와 있는데요. 이것만은 꼭 좋은 제품으로 구입해야 할 도구가 있다면요?


엄마들마다 개인차가 큰 것 같아요. 그래서 책에는 정말 자주 사용하는 필수 도구만 소개했어요. 꼭 모든 제품을 다 새롭게 구입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다만 도마는 냄새가 많이 배기 때문에 이유식용이 따로 있으면 좋고, 칼과 같은 경우도 고기용과 채소용을 따로 사는 게 좋아요.

 

대개 이유식 재료는 유기농이 인기가 좋습니다. 하지만 모든 제품을 유기농으로 구입하기는 어려운데요. 장 보는 노하우를 알려주신다면요?


아무래도 두부는 꼭 국내산 콩으로 만든 제품을 샀고, 뿌리채소는 농약이 많이 농축되어 있을 수도 있어서 친환경으로 재배됐는지를 꼭 따졌어요. 포장지를 보면 친환경 마크가 찍혀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잖아요. 그 외의 식재료들은 가까운 동네 마트에서 싱싱한 것으로 구입했고요. 공부를 하다 보니 말린 채소나 과일이 영양소가 높아지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식재료를 미리 갈거나 다져 놓고 냉동고에 보관하면서 사용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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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을 거부하는 아이들에게 효과적인 식재료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단호박, 고구마처럼 재료 자체에 단맛이 있는 식재료를 사용하면, 아이가 잘 먹더라고요. 이유식을 거부할 때가 있긴 하지만, 그렇게 길진 않은 것 같아요. 아이가 이유식을 맛있게 잘 안 먹을 때 인공조미료로 간을 해보려는 유혹이 생길 수 있는데, 절대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이유식에 따라 아이의 입맛과 평생 식습관이 정해지기 때문에 최대한 식재료의 자연적인 맛을 느끼게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아이가 가끔 이유식을 거부하면 분유만 먹인 날도 있었어요. 그런데 그렇게 하면 다음날은 무조건 잘 먹더라고요. 아이들은 많이 바뀌잖아요. 잘 먹을 때도 있고, 안 먹을 때도 있고. 조금은 부모가 기다리는 지혜도 필요한 것 같아요.

 

첫째 용희가 가장 좋아하는 이유식은 무엇이었나요?


소고기는 물론이고 특히 닭고기와 버섯, 가지를 좋아했어요. 책에 소개한 레시피로는 표고버섯 애호박 닭가슴 무른밥, 우엉 브로콜리 양송이 닭안심 진밥, 가지 완두콩 당근 쇠고기진밥을 특히 좋아했어요. 지금 용희는 유아식을 먹고 있는데 요즘은 생선을 무척 좋아해요. 굴비, 갈치 등을 구워 밥과 간단한 국을 주면 한 그릇 뚝딱이에요. (웃음) 면도 좋아해서 잔치국수나 파스타를 자주 만들어 주고요. 아직까진 엄마의 요리를 잘 먹어주니 고마운 아들이에요.

 

아빠나 엄마 식성을 많이 닮았나요?


대체로 잘 먹는 편인데 조금 까다로운 면이 있어요. 고급지다고 할까요? (웃음) 용희가 먹는 걸 까다롭게 고르면, 남편이 그걸 그렇게 재밌어 해요. 안 먹는다고 했다가 자기가 만든 음식을 잘 먹어주면 그렇게 뿌듯해하고요.

 

간식은 어떻게 조절하고 있나요?


주로 과일을 줘요. 과일을 말려서 과자처럼 주고요. 요거트에 살짝 쨈이나 꿀을 넣어서 줘도 무척 잘 먹어요. 물론 시판되는 아기과자들도 가끔 주긴 하는데, 일명 ‘용희표 까까통’이 있어요. 작은 통에 과자를 몇 개 넣어주면, 조심조심 거실로 들고 가서 천천히 아껴먹어요. 그 모습을 보면 항상 웃음이 나와요.

 

요즘은 시판 이유식도 잘 나오는데요.


위생적이고 좋은 식재료를 쓰는 검증된 회사면 사 먹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메뉴가 더 다양해질 수 있는 장점도 있을 것 같고요. 하지만 직접 만들어서 먹이는 엄마표 이유식이 아이에게 가장 건강한 음식이고 엄마도 안심되지 않나 싶어요. 제가 책을 낸 것도 이런 이유에서고요. 집에서 아이를 보면서 살림하는 것도 굉장히 버겁잖아요. 요리를 즐겨 하지 않았던 엄마들은 더욱이 어렵고요. 그래서 특히 최대한 빨리 만들면서도 아이의 건강을 챙길 수 있는 레시피를 소개하려고 노력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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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이 되니 오히려 여유가 생겼다


그래도 이제 두 아이의 엄마니, 살림도 육아도 베테랑이 됐을 것 같은데요.


아니요. 전 아직 초보라고 생각해요. 사실 아이가 이유식을 하루라도 안 먹을 때면, 엄청 초조해하기도 했어요. 진짜 답답하더라고요. 하지만 지금은 ‘고작 이유식 안 먹는 걸로 상처받지 말자’라고 생각해요. 아이가 아픈 것에 비하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닌 일이더라고요. 이유식 안 먹는 건, 아주 사랑스러운 현상이었다는 걸 알게 됐어요.

 

태교는 어떻게 하셨나요?


첫째 용희를 가졌을 때는 뜨개질을 엄청 했어요. 옷까지 만들 실력이 됐는데 지금 다시 하라고 하면 생각이 잘 날지 모르겠어요. 확실히 용희가 태교 때문인지 손 근육도 잘 쓰고 집중력이 좋아요. 둘째 서현이 때는 꽃꽂이를 했어요. 손도 많이 쓰고 기분도 좋아지는 꽃꽂이는 참 좋은 취미 생활인듯해요.

 

드라마 <아이가 다섯> 출연을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워킹맘이 되셨는데요.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 위해 어떤 계획을 세우셨나요?


‘욕심내지 말자’가 제 모토입니다. 다 잘하려고 하지 말고 진심으로 최선을 다해서 그때그때 주어진 일에 충실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촬영장에 가서 아기 걱정하거나 또 집에 가서는 대본 보면서 아이 보면서 그러면 아무것도 제대로 못하잖아요? 촬영장에서는 오롯이 일에 집중하고 촬영 쉬는 시간에 대본을 외우던가 해요. 집에 가면 일을 생각하지 않고 아이들과 놀아주는 것에만 집중하지요. 쉬는 날은 웬만하면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엄마와 많은 추억을 쌓으려고 해요.

 

엄마가 되고 나서, 연기를 대하는 자세도 달라졌을 것 같아요.


확실히 예전에는 없던 여유로움이 생겼어요. 조급함이 없어졌다고 할까요? 예전에는 생각할 거리가 너무 많았는데 지금은 정말 중요한 게 생겼잖아요. 내 아이와 내 가정. 정말 중요한 것만 생각하면 되니까 오히려 단순해지는 것 같아요. 해야 할 일이 정말 많으니까 생략해야 하는 건 과감하게 생략하게 돼요. 저 스스로도 좀 깊어지는 것 같고 더 좋아졌고요. 뭐랄까, 지금이 제게는 진짜를 찾는 시간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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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래도 이 책의 독자는 초보 엄마들일 텐데요. 신생아를 키우고 있는 엄마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처음은 뭐든지 참 힘들죠. 엄마라는 자리가 처음이실 텐데, 많이 서툴고 힘들어도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모든 엄마가 똑같다고 생각하며 위로 받으셨으면 좋겠어요. 점점 아이가 커가면서 하는 사랑스런 행동을 보면, 내가 엄마라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을 만큼 행복하고 뿌듯해지거든요.

 

아빠들에게도 한 마디를 하신다면?


퇴근 길에 장 좀 봐줬으면 좋겠어요. 엄마들 애 키우는 정말 힘들거든요. 이유식을 혼자 만드는 것도 오케이, 하지만 장까지 혼자 보면 정말 힘들어요. “여보, 오늘 이런 재료로 이유식 할 거야”라고 사진을 찍어 보내면, 퇴근 길에 시장에 좀 들렀다 오면 좋겠어요. 제 책 제목이 『소유진의 엄마도 아이도 즐거운 이유식』인데요. 처음부터 제가 우긴 제목이에요. 이유식을 만들면서 엄마도 즐겁고 아이도 즐거웠으면 하는 소망이 있어서요. 정말 이유식이 즐겁기 위해서는 남편들이 장만 좀 봐주면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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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진의 엄마도 아이도 즐거운 이유식 소유진 저 | 길벗
배우이자 두 아이의 엄마 소유진이 알려주는 요리에 서툰 초보맘, 시간에 쫓기는 워킹맘, 백과사전처럼 꽉 찬 정보에 머리 아픈 엄마들을 위한 아주 쉽고 친절한 이유식 레시피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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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호 “독서를 통해 기꺼이 혼자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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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도중 ‘패키지 투어 가이드북’이라는 표현이 나왔다. 과연 잘 어울리는 표현이었다. 예술서 담당 MD로 근무한지 오래, 『혼자가 되는 책들』의 저자 최원호는 비교적 ‘군소 분야’인 예술 분야의 책들을 가장 먼저 읽고 좋은 책을 소개하는 일을 꾸준히 해왔다. 『혼자가 되는 책들』은 그가 <프레시안 북스>에 연재한 글과 좋아하는 책에 대해 새로 쓴 글을 모은 서평 에세이다. 클래식, 사진, 명화, 작가 등에 관한 최원호의 폭넓은 관심 덕분에 독자는 ‘혼자가 되는’ 멋진 순간을 경험하게 됐다. 이 안내서를 들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더듬어 나가는 일은 오직 혼자만이 가능한, 오롯이 자기만의 세계를 만나는 일이기에 더욱 특별하다. 매혹의 순간, 시간에 묻힌 찰나를 발견하는 순간, 다른 세계와 내 세계가 만나는 놀라운 순간, 그 모든 순간을 만드는 책들이 세상에 있다는 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그러니 소망한다. 저자의 당부처럼, “기꺼이 혼자가 되기를”.

 

혼자가 되는 책들. 마치 수많은 평행우주처럼, 똑같은 책 속에서 서로 다른 삶의 단서들을 발견하고 그를 통해 더 멀리까지 자신만의 여정을 나아가는 사람들. 이 책을 읽는 이들이 그간 그러했기를, 앞으로도 그러하기를, 독서를 통해 언제나 기꺼이 혼자가 되기를 바란다.(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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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 두 번 하는 기분


한참 책 쓸 때 힘들었을 것 같아요. 직장 생활과 병행해야 하는데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지인들에게 한 얘기가 있었어요. 하루에 출근 두 번하는 기분이라고요. 집에 가도 별로 기쁘지 않아요. 원고를 써야 하니까요. 집에 와서 밥 먹고, 야구 보는 정도 시간 말고는 하루 종일 뭔가를 하고 있어야 했어요.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 생각했어요. 모르고 덥석 하겠다고 했지만 다음부터는 이런 거 하면 안 되겠다고요. 가끔 묻는 분이 계세요. 그럼 또 책 쓰냐고요. 저는 안 돼요.(웃음) 시간이 아주 많이 지나면 모르겠지만 당장 ‘다음 책 해야지’ 이런 생각은 전혀 안 들어요. 아무것도 안 하고 싶어요, 라고 얘기를 하죠. 다른 분들에 비해 유독 힘들었던 것 같기도 하고요. 이쪽 체질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했었죠.

 

연재라든지 다양하게 글쓰기를 해왔잖아요. 책 작업은 전혀 달랐나 봐요?


지금은 잡지 「미스테리아」에 글을 쓰고 있는데 그건 격월간이라 그나마 괜찮아요. 그렇다고 해서 미리 쓰는 건 아니지만(웃음) 고통의 빈도가 덜 하다고 할까요. 타고난 분들이 있는 것 같아요. 그분들이 전혀 고통 없이 쓰는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쓰는 걸 두려워하거나 지나치게 스트레스 받지 않는 분들이 계시는 것 같은데요. 저는 보통 필자 분들에 비해서 굳이 필요하지 않은 괴로움을 많이 느끼는 것 같아요.

 

욕심 때문일까요?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인가요?


그런 것도 있는 것 같고요. 결과물이 안 좋으면 어떡하지 이런 걱정이 있었어요. 성격 문제인 것 같아요. 제 경우 쓰면서도 계속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고, 어떡하지, 잘 될까, 그렇게 근심 걱정을 하며 쓰는 스타일이거든요.

 

새로 쓴 글도 있지만 기존에 썼던 글이 대부분인데 그래도 그랬군요. 혹 그래서 더 그랬을지도 모르겠네요.


그게 제가 예측하지 못했던 점이에요. 안 그럴 줄 알았어요. 3분의 2정도 썼고, 시간은 좀 있으니까 천천히 쓰면 되겠다 했는데 계획대로는 안 된 것 같아요. 처음에 고치면서 ‘이 정도였나?’하고 충격을 받았어요. 이대로는 책 내선 안 되겠다는 게 막상 고칠 때가 되니까 눈에 들어와서요. 그때가 제일 힘들었던 것 같아요. 글에서 안 좋은 점을 본 거잖아요. 나빴던 것을 빼거나 체크하는 것만 두 달을 하니 너무 자신감이 없어지는 거예요. 그래도, 계약이 됐기 때문에 하는 수밖에 없었죠.(웃음)

 

크게 손 안 댄 글도 있고요. 반 정도 새로 쓴 글도 있어요. 반 정도 새로 쓰는 건 그냥 새로 쓰는 것만큼 힘들더라고요. 책을 위해 새 글을 쓰고 이제 8할 정도는 끝나지 않았나 했었는데 50%정도 됐던 거였어요. 고치고, 빼고, 톤 조정도 해야 해서요. 연재할 때는 각각의 글이 아예 독립돼 있다고 봤어요. 각 글의 어조, 높낮이의 편차가 컸는데요. 책 분위기에 맞추고 조정하는 작업도 있었어요.

 

짓궂은 질문인 것 같아 나중에 물으려 했는데 지금 물어볼게요. 서점 MD입장에서 이 책은 어떤 것 같나요?


(웃음)종종 편집자 분들과 새 책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제가 ‘이 책 어떠셨어요?’ 물을 때가 있어요. 솔직히 모르겠다는 대답을 들을 때가 있는데요. 왜냐고 물어보면 교정을 너무 많이 봐서 재미있는 글인지 아닌지 판단이 안 선다는 거예요. 마비가 된 거죠. 저도 지금 그런 것 같아요. 마지막 수정 과정에서 자신감을 많이 잃었던 것도 있고요. 일단 만듦새는 잘 나왔죠. 편집도 깔끔하게 됐고, 표지도 잘 됐고요. 이런 양식의 책이 특이하긴 해서요. 주로 예술 도서로 이뤄진 서평집이 거의 없기 때문에 그런 건 애초에 기획 단계에서 해볼 만하겠다는 판단을 하긴 했어요. 기획 자체는 재미있는 기획 같아요. 글에 대해서는 제가(웃음) 뭐라고 말씀을 못 드리겠네요.

 

본문 디자인이 눈에 띄거든요. 행갈이를 독특하게 했더라고요. 어떤 의도였어요?


편집하신 디자이너 분의 판단이고요. 애초에 도판을 넣을까 말까 고민이 있었는데 안 넣기로, 텍스트만 보여주기로 했죠. 그런데 너무 밀도가 높게 편집하면 피곤해 보일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쉬어가는 페이지가 없기 때문인데요. 그런 부분을 좀 더 신경 쓰신 것 같아요. 여유 있는 느낌이 나게끔 잘해주신 것 같아요. 약간 미국식(웃음) 아메리칸 스타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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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놓는 느낌


기억력이 좋은 편인가요?


종류에 따라 좀 다른데요. 어떤 작품의 어떤 장면(scene), 그런 것에 대해 기억을 오래 하는 경우가 있어요. 보통 기억력에 대해 얘기할 때 말하는 사람 이름이나 얼굴, 전화번호, 이런 것은 심각할 정도의 수준이에요. 어렸을 때부터 그랬대요. 어머니가 자주 얘기하셨어요. 길도 잘 잃어버리고요. 따라오는 줄 알았는데 애가 없어서 돌아가 보면 길가에 앉아서 벌레 지나가는 거 보고 있고 그랬대요. 사회생활을 하면서는 힘든 정도까진 아니지만 좀 죄송스러울 때가 있죠. 전에 만났다고 하시는데 잘 기억을 못해서요. 명사도 잘 기억을 못해요. 요즘 영화배우 이름도 잘 생각이 안 나서 검색을 자주 해야 해요.

 

찰나에 대한 장면 몇이 아주 생생하고 인상적이어서 물어보고 싶었어요.


장면을 기억하는 것에 특화된 것 같아요. 대신 그 외의 보통의 기억은 낮은 편이에요.

 

달리 말하면 관심사에 대해서는 깊게 파고드는 면이 있는 거고요. 공부하기를 좋아하는 것 같더라고요.


자기 관심사에 몰두하는 경향이 옛날부터 있었던 것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요. 혼자 뭐 하는 거 좋아하고요. 타고난 건지 이후에도 계속 그랬던 것 같아요. 전공도 그래서 별로 돈이 안 되는 그런 걸 하겠다고 우겨 사진학과에 가게 된 거고요. 어떻게 보면 운이 좋았던 거죠. 그렇게 하겠다고 해서 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 관심사 목록도 재미있죠. 소설, 영화, 음악, 사진, 미술... 공통의 매력이 있는 것 같기도 한데 이것들의 어떤 점이 저자를 매료시켰는지 궁금해요.


기본적으로 ‘미미(美美)하우스(<프레시안> 연재 코너명)’를 연재할 때는요. 한 달에 한 편을 썼는데요. 가능하면 그달 안에 나온 예술, 대중문화 분야 신간 중 좋은 책을 한 권 골라 소개하자는 취지였어요. 취향이 어느 정도 반영되긴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적당한 난이도를 갖고 있으면서 가능한 좋은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을 소개하려고 했어요. 예술 분야 책들이 다른 분야에 비해 독자군 형성이 덜 돼 있는 편이잖아요. 말하자면 제가 1번 독자가 됐다는 느낌으로 쓴 거예요. 단행본 작업을 하면서 추가한 책들이 완전히 개인적인 취향으로 고른 책들이고요. 그래서 절판된 책을 소개한 부분도 있는 거죠.

 

일관된 정서가 있죠. 인생의 내려놓는 느낌(웃음)의 책들인 것 같은데요. 사실 예술 하는 분들이 궁극적인 성취를 거둬서 ‘이 정도 했으면 더 이룰 것이 없다’ 하고 떠나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거든요. 늘 진행 중에 종료될 수밖에 없는데요. 기본적으로는 안타까운 일이죠. 하지만 슬픈 일이라곤 할 수 없어요. 지속하고자 하는 의지와 그렇지만 어느 순간에 이룰 수 없는 단계에 다다르는 장면들에 그래서 눈이 가요. 마찬가지로 어떤 작품을 감상할 때 어디까지는 내가 이해할 수 있지만 또 어떤 부분은 발을 들일 수 없는 영역이 있거든요. 가능한 영역과 불가능한 영역을 둘 다 보면서 안타까움, 슬픔, 그런 걸 주로 느껴요. 제가 그런 정서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책에도 그런 얘기가 많이 들어있는 것 같고요. 그것이 앞으로도 뭔가 감상할 때 가장 염두에 두게 되는 방향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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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이런 것들 읽었는데 괜찮던데요


목차를 보면 ‘문’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독자를 안내하고 있거든요. 멋진 말이라 생각했어요. 자연히 저자가 처음 들어간 ‘문’도 궁금해지고요.


어릴 때 ‘디즈니명작동화’ 세트 전집이 있었어요. 제가 말을 못할 때부터 엄마나 고모들이 읽어주셨다고 해요. 그 책을 되게 오래 봤어요. 글을 배운 뒤로도 심심하면 계속 봤죠. 최초에 만난 이야기들이 그 시리즈였던 것 같아요. 일본 애니메이션도 있었고요. TV에서 해주던 <독수리 오형제> 같은 거요. 최초의 극을 경험한 거였죠. 그 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들은 보통 슬픈 이야기들이에요. 태어날 때부터 그런 취향이 있지 않았나 싶고요.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하나 들려주세요.


<독수리 오형제>에서 2호기 에피소드예요. 혁이라고, 남박사 아들인데요. 옛날에 헤어진 여자친구를 만나는 에피소드가 있어요. 그 여자친구가 악당의 편에 있어서 혁이와 둘이 결투를 해요. 결국 여자친구가 죽어요. 혁이는 이겼지만 씁쓸한 표정을 짓죠. 그때 제가 초등학교 1학년 정도였는데 그 장면을 보면서 애초에 알던 히어로의 세계가 무너졌어요. 왜 저렇게 영웅은 슬프게 살아야 하지, 그런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나요. 그것도 오랫동안 남아 있는 기억이에요. 


공통의 감성이 느껴지긴 하거든요. 틈새에 민감한 것 같고요. 예술가를 읽을 때도 그렇죠. 예술적 성취, 화려함보다는 이면의 고민, 끝내 떨쳐내지 못한 것들에 관심을 둬요.


제가 그런 쪽에 좀 더 촉각이 곤두서 있는 것 같고요. 제가 그런 쪽에 경도돼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런 쪽을 더 보는 것이고요. 그래서 이런 방식으로 글을 쓰게 됐죠. 제가 소개한 글을 읽고 그 책을 읽었을 때 독자 분은 저와 다른 사람이기 때문에 같은 걸 보진 않을 거예요. 생각보다 그렇게 슬픈 책 아니네, 이렇게 느끼실 수도 있고요. 어떤 책을 객관적으로 소개하는 게 가능한가, 그런 고민을 서평 쓰면서 많이 했어요. 사실 위주로 쓰는 건 보도자료가 이미 있기 때문에 별로 의미가 없겠죠. 그렇다면 첫 번째 독자가 돼서 느낌을 말해주는 대신 너무 거기에만 함몰되지 않고 책 전체 구성도 어느 정도는 병기해서 균형을 맞추자고 하고 글을 썼던 것 같아요. 

 

저자와 전압이 안 맞았을 경우를 생각해볼 수도 있잖아요. 말하자면 최원호라는 안경으로 책을 엿보는 걸 텐데 반응은 예측할 수 없어요. 그런 것에 대한 부담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저도 책을 파는 사람이니까요. 대상 독자층을 어떻게 정해야 하는지 고민이 많이 됐었는데요. 연재할 때는 책을 좋아하는 분들이 있는 사이트에서 하는 거라 크게 의식적으로 난이도를 조정해야겠다는 생각은 안 했었어요. 물론 쓰다 보니 이분들이 예술 분야에는 관심이 없을지도 모르는데 좀 더 소개를 해야 하지 않나 싶었지만 답을 찾진 못했고요. 제 주변 분들의 취향도 천차만별이어서 감상적으로 썼다는 분도 있고, 너무 이론 얘기가 많다는 분도 있어요. 한 가지 분야에 대한 책이라면 관심 있는 분들이 읽으니까 난이도가 있어도 상관없는데 다방면의 분야를 다루다 보니 대체로 일정 이상의 난이도를 갖는 게 무리한 기획이 아니었나, 그렇게 혼자 걱정을 하기도 했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이쪽과 저쪽 극단의 반응이 있다는 게, ‘그럼 중간 잘 맞췄네’ 그런 생각 들기도 해요. 그런 생각은 의식적으로 해야 하는 거죠.(웃음)

 

책에서 다룬 분야에 있어 완전히 초심자인 사람들에게도 이 책이 유효하다고 생각하세요?


그렇진 않고요. 기본적으로는 장르를 불문하고 어느 정도 책을 좋아하시는 분이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소설이든 에세이든 말이에요. 해당 분야에 대한 기초적인 제반 사항을 친절하게 알려주는 책이 아니어서요. 같은 독자 입장에서 접근한 책이거든요. 말하자면 옆에 있는 동료에게 말하고 있는 거죠. 알려주거나 강의해주는 책은 아니어서 입문서로 보는 건 좀 그런 것 같아요. 책을 이것저것 읽고 있는데 또 괜찮은 거 없나, 했을 때 저는 이런 것들 읽었는데 괜찮던데요, 하고 권해주고 싶은 그런 책인 것 같아요.

 

책에 담은 글 중에 저자가 가장 좋아하는 글은 뭐예요?


종종 그런 생각을 할 때가 있잖아요. 원고 작업하면서도 마음에 드는 글이 뭐가 있는지 생각할 때가 있었는데요.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약간씩 바뀌는 것 같아요. 신기한 일이죠. 이제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약간 마비가 된 상태라서, 모르겠어요. 보통은 힘들게 써지는데 쓸 때 신나게 썼던 글이 『안톤 체호프 사할린 섬』에 대해 쓴 거거든요. 사연이 있는데요. 연재 당시 예술 분야 책을 다루는 코너를 하고 있어서 다른 장르의 책을 다룰 수가 없었어요. 그런데 그 해 사이트 특집으로 필진들이 ‘올해의 책’을 꼽아 소개하는 코너가 있었어요. 담당자분이 거기는 꼭 예술 분야가 아닌 책이어도 된다는 거예요. 그래서 엄청 신나게(웃음) 썼어요. 그런 경험이 별로 없는데 정말 즐겁게 썼던 기억이 나요. 읽은 분들도 그때 재미있어하셨고요. 실제로 책 판매도 올라가고 그래서 매우 다방면으로 보람 있었고, 즐거운 작업이었어요. 잘 썼는지는 모르겠지만요.

 

판매가 올랐다니, 정말 기분 좋았겠네요.


정말 뿌듯하더라고요. 도움이 된 것 같아서요. 반응을 보기가 사실 되게 어렵거든요. 인터넷에 연재되는 글에 반응이 많이 올라오는 편도 아니고요. 궁금했어요. 잘 되고 있는 건지, 자리만 채우고 있는 건지, 하고요. 판매가 유의미하게 올라오니까 그때는 충분히 기뻤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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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잘되셨으면 좋겠습니다


확실히 메아리가 많지 않아서 힘들 때도 있을 것 같아요. 벽에 대고 얘기하는 기분이요. 더구나 많이 안 읽는 분야기도 하고요.


군소 분야라고 할 수 있죠.(웃음) 그런 기분 자주 느꼈죠. 연재나 계약이 좋은 이유는 그래서 침울해지건 의기소침해지건 어쨌든 결과물을 내야 한다는 거예요. 혼자 블로그에 쓰는 거였으면 아마 두세 편 쓰고 말았을 것 같아요. 당시 저보다 늦게 그 사이트에서 다른 분야 책을 소개하는 글을 시작하신 분이 있었는데요. 그분이 얼마 지나서 SNS에 그런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반응을 알 수 없어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요. 제가 쪽지를 보냈어요. 다들 그런 것 같다고요. 그렇지만 하는 수밖에 없다는 말이었는데요. 제 나름대로 기준을 세운 게 있었거든요. 정말 글의 질이 받쳐주지 못하고 안 되는 연재라면 담당 편집자나 기자 분께서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말을 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지면을 계속 준다는 건 어쨌든 평타 이상은 치고 있는 거니까 너무 개의치 말자는 거죠. 그만 하라는 말이 있기 전까지는 의심하지 말고 쓰자는 말을 전한 적이 있어요. 다들 겪는 문제인 것 같아요. 아마추어 분들도 다 마찬가지고요. 어느 정도의 작업량이 쌓일 때까지 버티는 능력이 필요한 것 같아요. 혼자서는 매우 힘든 거잖아요. 

 

태도에 관한 이야기네요.


요즘은 거의 안 하지만 MD들이 작가 인터뷰를 할 때가 있어요. 미란다 줄라이(Miranda July, 영화감독, 시나리오 작가) 서면 인터뷰를 한 적이 있었는데요. 한국의 젊은 예술가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물어보니까 가장 중요한 게 커뮤니티를 만들어야 한다는 거였어요. 혼자서는 이 세계를 해쳐나가기 너무 힘들다, 서로 얘기해주고 격려하고 비판해줄 사람이 꼭 필요하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도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라고 하더라고요. 그런 커뮤니티를 사실 찾기 쉽지는 않지만 찾아야 하는 것이죠. 물어볼 사람이 없어서 혼자 벽을 보고 글을 쓰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는 어디로든 나가야 하는 것 같아요. 처음엔 쉬운 일이 아니지만 말이에요. 누구나 그런 것 같아요. 다들 잘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 말, 책에도 적혀 있어요. 모두들 행운을 빈다고요.


습관처럼 하는 말이기도 한데요.(웃음) 거리감을 유지하는 느낌이기도 한 것 같고요. 상대에 대해 어느 이상은 알 수 없기 때문에 그 이상은 접근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나, 생각하는 것 같아요. 이 책의 전체적인 정서도 그렇고요. 이것은 나의 독서고, 책을 소개했고, 그 다음은 여러분의 몫이라고요.

 

제목은 ‘혼자가 되는’ 책들이고요.


그렇죠. 각자 혼자가 되는 거고, 각자 즐거운 경험 하셨으면 좋겠다, 그 정도예요. 앞으론 어떻게 바뀔지 모르지만 이게 지금 사람들이나 세상을 보는 기조라고 할까요. 점점 모르겠는 게 더 많아지는 걸 느껴요. 시간이 갈수록 더 그래요.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아주 나쁜 일도 있죠. 직전 해에는 그렇게 될 거라고 예상하지도 못했던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고요. 저 역시 뒤를 돌아보면 인생이 이렇게 될지 전혀 몰랐죠. 그걸 계속 생각해요.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이 세계의 몇 퍼센트나 되고, 친구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얼마나 되겠느냐 하는 것을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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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순간 고민하고 선택하며 사는 거잖아요. 확신하지 못한 채로요. 그 속에도 지향이나 일관된 방향은 있을 것 같아요.


뚜렷한 주제의식을 가지고 살아오지 않았던 것 같아요. 전공을 정할 때도 충동적으로 했어요. 사진학과를 들어가기 전까지 카메라를 한 번도 안 써봤거든요.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입사도 충동적으로 했고요.(웃음) 인생에 대해 생각은 많이 하죠. 근데 막상 인생의 기로에서 선택을 했을 때는 생각과는 전혀 관계없는 길을 가고 있더라고요. 그것도 제가 인생에 대해 ‘모르겠다’ 이렇게 생각하게 된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인 것 같아요. 그런가 하면 평소에 책도 읽고, 전공 공부도 재미있게 하고 그랬던 것들이 있으니까 이런 책도 나온 거잖아요. 다만 좋아서 준비 비슷한 것을 본의 아니게 하고 있던 셈이 된 거죠. 연재를 결정할 때는 그래서 이전과 좀 달랐던 것 같아요. 그 마음가짐이 첫 연재글에 담긴 것 같은데요. 그게 『내 사진을 찍고 싶어요』에 관한 글이에요. 그래서 ‘자기소개’도 들어간 거죠.(웃음)

 

다음 책, 당분간은 힘들겠다고 했지만 언젠가 책을 쓴다면 어떤 모습의 책을 쓰게 될까요?


잘하는 걸 써야 하잖아요. 많이 본 것들에 대해서 써야 할 텐데요. 그렇게 치면 클래식이나 사진에 관한 것이지 않나 싶어요. 둘 다 장사가 잘 안 될 것 같아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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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가 되는 책들최원호 저 | 북노마드
『혼자가 되는 책들』은 책을 좋아하고, 책을 읽는 걸 좋아하고, 그 책에 대해 쓰는 걸 좋아하는 남자 최원호의 편력을 숨기지 않은 ‘서평 에세이’다. 말하자면 독자들에게 보물섬의 좌표를 알려주고, 거기에 보물이 있다는 증거로 내가 먼저 그 좌표에 다다라 찾아낸 작은 보석들을 보여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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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백영옥 “실패하지 않은 사랑에는 관심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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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백영옥은 더는 ‘나’로 시작하는 말에는 관심이 없다. 과거에는 자신이 너무 중요해 스스로의 내면을 파는 데 집중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누군가 “너는 말이지, 우리는 말이지”라고 대화의 포문을 열 때, 귀를 쫑긋 세운다. 언제나 성공보다 ‘실패’에 집중하는 작가답게 4년 만에 펴낸 소설 『애인의 애인에게』는 사랑에 실패한 사람들 이야기다. 소설 속 주인공은 네 명. 성공에 집착하는 뉴욕의 포토그래퍼 ‘성주’와 그를 짝사랑하는 ‘정인’, 그와 결혼하는 ‘마리’, 그가 정말 사랑하는 ‘수영’이다. 이들은 모두 각자의 사랑을 한다. 공통점이 있다면 자신의 새로운 정체성을 맞닥뜨린다는 사실이다. 백영옥은 “좋은 소설이란, 질문을 확장시킬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소설의 독자들은 과연 어떤 질문을 던지며 책장을 넘기고 있을까, 작가는 몹시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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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소설이긴 하지만 이상한 연애소설

 

소설은 오랜만이시죠? 근 4년 만인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 일이 많았어요. 하지만 소설이 나오지 않은 기간에 글은 가장 많이 쓴 것 같아요. 기자로 복직한 느낌이랄까요? 사실 저를 소설가로 생각하지 않는 분들이 많아요. 이번에 소설이 나온다는 소식을 페이스북에 올렸더니, “어머, 소설 쓰세요?”라고 놀란 분도 계셨어요.

 

의외네요. ‘소설가 백영옥’을 알고 친구 신청을 했을 것 같은데요.

 

그렇지 않은 분이 의외로 많더라고요.(웃음) 제가 소설을 쓰기 전에 다양한 직업을 거쳤잖아요. 광고회사 AE도 했고, 잡지기자도 했고, 인터넷서점에서 일하기도 했고요. 내 생애 마지막 직업이 소설가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꼭 그럴까 싶기도 해요. 요즘은 삶의 조건이 워낙 유동적이니까요. 그리고 저라는 사람 자체가 새로운 일을 좋아하고 일에서는 전투적이에요. 성격으로 보면 소심하고 오히려 보수적인 면도 많은데, 일할 때는 달라지는 것 같아요. 모험을 즐기는 편이라 여러 가지 시도하는 게 즐거워요. 내 인생에 실패가 많아서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작가님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읽었어요. 이번소설 『애인의애인에게』를 두고, 친구분께 “그냥 망한 사람들 이야기”라고 말하셨다고요?

 

(웃음) 저는 실패하지 않은 사랑에는 관심이없어요. 사람들은 대개 사랑의 성공을 ‘결혼’이라고 여기잖아요. 하지만 관계의 지속성이성공을 판단하는 기준은 아닌 것 같아요. ‘작가의 말’에도 썼지만, 실패로 끝난 누군가의 사랑 이야기는 아무리 길어도 귀 기울여 듣게 돼요. 생텍쥐페리가『어린왕자』에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해주는 건 기적”이라고 했잖아요. ‘성주’를 열렬히 사랑한 ‘마리’의 사랑이 그랬듯, 현실에서는 이런 기적이 잘 일어나지 않아요. 토익은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면 점수를 올릴 수 있지만, 사랑은 아니에요. 인풋을 많이 한다고 아웃풋이나오는 게 아니죠. 인과관계가 전혀 작동하지 않는, 정말 어려운 세계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저는 이 소설이 ‘실패한 사랑 이야기’라는 생각을 안 했어요. 마리와 수영, 정인은 모두 각자의 사랑에 충실했으니까요.

 

독자마다 소설을 통해 느끼는 지점이 다른것 같아요. 어떤 독자는 ‘난 절대 마리처럼 사랑하지 않을 거야. 너무 불쌍해’라고 생각할수도 있고, 어떤 독자는 ‘마리는 이 사랑을 통해 나중에 더 깊은 사랑을 하겠구나. 훨씬 더멋진 사람이 되겠구나’라고 느낄 거예요. 작가로서는 후자이길 바라는 거예요. 누군가 제게 “『애인의 애인에게』가 어떤 소설이냐?”고 묻는다면, “어둠 속에서 어둠을 보는 법에 관한 이야기”라고 답할 거예요. 요즘은 사랑도 너무 자기계발화가 됐잖아요. 사랑 안에서 정답을 찾고 매뉴얼을 찾는데, 사실 우리는 알지 않나요? 매뉴얼대로 한다고 해도 성공할 수 없다는 걸요. 그런데 자꾸 왜 매뉴얼을 만들까를 따져보면, 답답해서일 거예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사랑이라는 건 간단치않으니까, 그 답답함을 끌어안자는 거예요. 사랑은 결코 얄팍하고 얇지 않아요. 굉장히 입체적이고 다양한 방식이 있어요. 프랑스의 철학자 알랭 바디우가 쓴 『사랑 예찬』을 보면, 데이트 사이트의 슬로건이 하나 등장해요. “사랑에 빠지지 않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쾌락은 취하고 고통은 버린다는 거예요. 굉장히 많은 프로그램이 사랑을 안전하게 만들고자 하지만, 사랑은 절대 안전할 수 없어요. 사랑에 빠지는 것만큼 위험한 게 없으니까요.

 

소설 속 주인공 ‘마리’가 위험에 빠진 것처럼요.

 

마리도 자신의 일부를 버려야 했으니까요. 사랑은 가장 적극적인 소통의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나와 너가 만나서 ‘우리’라는 정체성을 만드는데, 모든 걸 합칠 수는 없어요. 나의 일부, 너의 일부를 버려야 해요. 마리와 수영, 정인은 ‘성주’라는 한 남자를 사랑하면서 각자 다른 상처를 겪어요. 하지만 이들은 결국 인간적으로 매우 훌륭한 여자들이에요. 자기감정만 보지 않았잖아요. 타인의 상처를 들여다봤고, 좀 더 자신을 내밀하게 바라볼 수 있었으니까요. 인간적으로 성숙할 수 있었어요. 이 소설의 형식은 연애소설이지만, 어떻게 보면 자매애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해요. 연애소설이긴 하지만 이상한 연애소설이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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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여자에게 사랑받는 남자 ‘성주’의 캐릭터는 약간 모호하게 느껴졌어요. 이상과 현실 속에서 끊임없이 방황하는 인물인데요.

 

성주라는 캐릭터에 대해 무게 중심을 잡으려고 노력했어요. 너무 나쁜 놈 같지 않고, 이해할 수 있는 인물로 그리고 싶었어요. 그런데 성주 같은 사람이 어디 있을 것 같지 않아요? 연애할 때 한 번쯤은 통과하게 되는 남자인 것 같아요. 어쩔 수 없이 빠지게 되는 스타일이라고 할까요? 성주는 자기 야망이 있는 사진가인데, 포르노그래피를 찍으면서 돈을 벌어요. 결혼도 사랑하는 사람과 하지 않고요. 이상과 현실이 있으면 그 중간에 있는 사람인 것 같아요. 철저히 이상주의자도 아니고 현실주의자도 아닌, 20대를 대변하는 캐릭터 같아요.

 

현실에서 ‘성주’와 같은 남자를 만난다면, 이 남자와 사랑에 빠지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을 것 같아요.

 

(웃음) 소설을 읽는다는 행위는 ‘빛과 그림자’가 있다고 할 때, 그림자 쪽을 만나는 체험이에요. 다양하게 자기계발화가 된 세계에서 제공하지 않는 어두운 그림자를 경험해보는 거죠. 그림자를 경험하면 인간으로서는 성장할 수 있지만, 현실 속에서는 안전하고 싶으니까요. 대신 소설이라는 세계를 체험하는 거죠. 사랑의 시차와 속도는 같을 수 없는 것 같아요. 먼저 사랑을 시작한 사람이 금방 식을 수 있고, 늦게 시작한 사람이 오히려 더 강하게 사랑할 수도 있어요. 그래서 자주 싸우고 또 이별하게 되는데, “넌 왜 나를 더 이상사랑하지 않니?”라고 말할 순 없어요. 사랑은 누가 피해자고 가해자라고 말할 수 없는 문제예요. 성주도 어떤 면에서 보면 그렇게 사악한 인물이 아니에요. 자기이고자 하는 힘이 강한 사람일 뿐이죠. 나를 양보 안 하려는 사람, 내 캐릭터를 고수하려고 하는 사람인데, 연애라는 문제에 있어서는 나쁜 사람으로 보이기 마련이에요. 상대적으로 ‘마리’는 자기를 많이 포기했으니까요.

 

그런데도 흥미로운 건, 갤러리스트인 마리는 절대 ‘성주’의 사진을 평가해주지 않았어요.

 

마리는 어떻게 보면 엄청난 원칙주의예요. 성주가 그렇게 많은 자기 작품 사진을 집에 붙여놓았는데, 단 하나의 코멘트도 해주지 않아요. 갤러리스트로서의 원칙이 분명한 거예요. 성주의 사진이 자기 원칙에 부합하는 작품은 아니었던 거죠. 마리는 굉장히 현실주의자인데, 격렬한 사랑을 만나서 산산이 부서져요. 마리가 성주에 대한 사랑에 괴로워, 자기 손에 칼을 몇 번 긋잖아요. 일종의 죽는체험을 한 거예요. 마리 이야기를 쓰면서, ‘왜 인생에서 이렇게 훌륭한 교훈은 이기적인 사람에게서 얻게 될까?’ 싶었어요.

 

과연 성공적인 사랑은 존재할까요? 정의를 내릴 수 있나요?

 

정말 모르겠어요. 질문을 던질 수는 있지만, 질문이 답으로 이어지진 않아요. 계속해서 질문이 발화해요. 그래서 소설을 쓰는 것 같아요. 사랑의 성공이 결혼이라면, 결혼은 적합한 제도일까? 인간의 본성에 적합한 걸까? 그런 질문을 하게 돼요. 소설은 결국, 질문이 질문으로 확장하는 형태가 아닐까 싶기도 해요. 굳이 답을 정해주는 소설이 좋은 소설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질문을 확장시키는 소설이 좋은 소설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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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글 노동자인 것 같아요


소설의 화자는 세 명이에요. 정인과 마리, 그리고 수영. 책은 ‘정인’의 이야기부터 시작됩니다. 정인은 뉴욕 지하철 안에서 『순수 박물관』을 읽고 있는, ‘성주’에게 반해요. 성주는 책을 읽으며 울고 있었어요. 이 장면을 읽으면서 궁금해지더라고요. 작가님이 실제 지하철에서 목격하신 장면이 아닐까 하고요.

 

지하철에서 누가 책을 읽고 있으면, 꼭 그 사람의 얼굴을 확인해요. 어떤 책을 읽는지도 살펴보고요. 누군가가 책 읽는 모습을 보는건, 언제나 흥미로워요. 저는 책을 읽는 사람이 어떤 한 공간에서 만들어내는 동선들이 미학적으로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밑줄을 긋는 손, 책장을 넘기는 손, 책에 몰두하고 있는 옆모습을 보는 건, 정말 황홀하죠. 만약 이 인터뷰를 골똘히 읽고 있는 남자 독자가 있다면, 꼭 말해주고 싶어요. 지하철에서 책을 좀 읽으라고요.(웃음) 예전에 뉴욕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남자들을 찍은 사진 작품을 본 적이 있어요. 책에 몰두한 모습이 얼마나 매력적이던지요. 그래서 일부러 책을 읽는 모습을 소설 속에 넣고 싶었어요.

 

요즘은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사람을 보기가 극히 드물어요.

 

작년에 서울 메트로를 취재한 적이 있어요. 3호선을 타고 첫 번째 열차부터 마지막 열차까지 쭉 걸은 적이 있는데,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더라고요. 정말 충격이었어요. 나는 앞으로 책을 몇 권이나 더 쓸 수 있을까 생각했어요. 늘 책을 내면서, 이게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요. 애틋한 마음이 들어요.

 

설마 마지막 책은 아닐 것 같고요.(웃음) 소설을 읽으면서, 영화로 만들어져도 어울릴 작품이라고 생각했어요.

 

판권 문의가 들어오긴 했어요. 책이 나오고 일주일이 채 안 된 시점이라, 놀랐어요. 사실 이 소설에 대한 반응이 좀 의외예요. 『애인의애인에게』는 지금까지 제가 쓴 소설 중에 가장 서사가 없는 작품이에요. 사랑 에세이처럼 인물과 상황에 집중한 소설이라, 플롯이되게 복잡해서 플롯에 따라 의미가 확장되는 소설이 아니에요. 그런데 사람들이 가독성이 뛰어난 소설이라고 해서 되게 의외였어요. 이 소설이 대중적이라는 생각을 못 했는데, 의외였어요. 소설을 잘 읽지 않는 제 동생도 정말 빨리 읽은 소설이라고 해서, 엄청 놀랐어요.(웃음)

 

칙릿 소설 스타일로 2008년에 ‘제4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등단하셨고, 이후 꾸준히 에세이와 소설을 펴내셨어요. 현재는 웹소설 「비정성 로맨스」를 연재 중이고, 여러 매체에 칼럼도 쓰고 계세요. 소설에만 집중하기도 시간이 모자랄 것 같은데요.

 

 자의식 자체가 ‘나는 작가’가 아니에요. 예술을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제게 소설은 밥을 버는 행위예요. 그래서 어떤 선민의식을 갖고 ‘나는 아티스트다’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저는 글 노동자인 것 같아요. 작년에 제가 쓴 원고를 따져봤더니, 8,000매예요. 이건 예술일 수 없죠. 그러니까 제 생각은 이래요. 세상에 많은 일이 일어나잖아요. 길을 걷는데 어떤 여자가 울고 있으면, 멈춰 서서 ‘저 여자는 왜 울지?’라고 궁금해해요. 생각하다 보면, 어제 읽은 책이 떠오르고 그 여자의 삶을 상상해봐요. 또 그 여자가 울고 있는 풍경, 그때 나를 스치고 지나간 사람들의 인상이 떠오르면서 세상을 사진 찍듯이 기록해요. 그 순간순간 그냥 기록하는 거예요. 책을 쓰겠다, 글을 쓰겠다는 목표를 갖고 보는 게 아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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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0매라니. 좌골신경통이 올 수밖에 없었겠네요.

 

다리가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앉아 있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서서 쓸 수 있는 테이블을 사서, 서서 글을 썼어요. 그래도 뭐, 작년에만 특히 심하게 많이 쓴 거예요.

 

글쓰기를 쉰 적이 없으시죠?

 

작가 생활을 시작한 후로는 없는 것 같아요.

 

일이 되면 모든 게 하기 싫어지잖아요. 너무 좋아하는 일도요. 이제는 정말 지친다, 글쓰기가 싫다는 생각을 하신 적은 없나요?

 

있죠. 하지만 그것보다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일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더 많아요. 전 평소에 계획을 잘 안 세워요. 어차피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너무 잘 알아서요. 그냥 그때그때 제게 주어진 일에 대해 최선을 다하려고 해요.

 

아직 작가님이 신춘문예를 수십 번 떨어졌다는 사실을 모르는 독자도 꽤 있는 것 같아요. 평소 ‘어떻게 하면 작가가 될 수 있냐?’는 질문, 많이 받으시죠?


(웃음) 제가 지금까지 쓴 글 중에 가장 조회수가 높았던 글이 있어요. <조선일보>에 썼는데, ‘신춘문예, 이렇게 하면 떨어진다’는 십계명이에요. 아마 검색하면 쉽게 찾을 수 있을거예요. 작가가 된 지 10년이 됐지만, 좋은 소설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는 전혀 모르겠어요. 하지만 이렇게 쓰면 안 된다는 건 알아요.

 

어쩔 수 없이(?) 작가 지망생들에게 조언을 해야 한다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으신가요?

 

글쎄요. 꼭 작가를 희망하는 사람들에게라기보다 직업에 대해 고민하는 분들에게는 “잘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 중에 선택해야 한다면, 잘하는 일을 선택하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현실적인 답변으로 들릴 텐데요. 결국 잘하는 일을 하다 보면 기회가 많이 생겨 계속 잘하게 되면서, 좋아하게 되는 것 같아요. 가슴 뛰는 일을 직업으로 가지려는 건, 자본주의의 폐해라고 생각해요. 실상 직업은 자아실현의 장이 못돼요. 문제는 저녁이 있는 삶을 사느냐죠. 직업을 꿈하고 연결시키면, 너무 많은 루저들이 생겨요. 다 실패자예요. 예전에 <경향신문>에서 ‘색다른 아저씨’라는 인터뷰 코너(『다른 남자』로 2014년 출간)를 진행하면서 한국 최초의 프로파일러 ‘권일용’ 경감님을 만났는데, 그분 이야기가 굉장히 인상 깊었어요. 본인은 대학을 가고 싶었는데 집안 환경이 좋지 않아 경찰이 됐다고 하셨어요. 경찰로 일하다 보니 프로파일러가 됐을 뿐, 특별한 소명의식이 있진 않으셨대요. 그저 그분은 자기가 주어진 일을 열심히 했을뿐이었어요. 그런데 하다 보니 잘하게 됐고 훌륭한 일을 할 수 있었던 거고요. 직업이란, 이런 게 아닐까 싶어요.

 

소설은 물론, 책을 잘 안 읽는 세상이잖아요.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은 꾸준히 소설로 위안을 받아요.『애인의애인에게』가 어떤 독자에게 닿았으면 하시나요?

 

관계 때문에 상처받은 사람들이 읽으면 좋겠어요. 어쩌면 제가 위안을 받고 싶어서 쓴 책이에요. 제가 정말 힘들고 뭔가 놔버리고 싶었을 때, 곁을 지켜준 사람은 모두 여자들이었던 것 같아요. 전 나이 든 여자들이 굉장히 훌륭해지는 걸 자주 봤어요. 이유가 뭘까 생각해봤는데, 여자는 대개 마이너리티로 살잖아요. 소수자로 살면서 자기 정체성을 끊임없이 바꿔야 해요. 남자는 ‘일이야, 가정이야’라는 문제에서 선택을 강요받지 않아요. 강요받는 대상은 언제나 여자예요. 어느 부분은 버려야 하고, 항상 자기 정체성을 조율해야 해요. 그래서 공감 능력이 커지고 성숙해지지 않나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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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를 짝사랑한 ‘정인’이 성주와 사랑을 나눈 ‘마리’와 ‘수영’을 위해 스웨터를 선물하는 것처럼요.

 

맞아요. 여자들은 누군가의 말을 세밀하게 듣고 공감해주는 따뜻한 지혜가 있어요. 나눠주고 연대하는 법을 알아요. 그래서 그런 여자들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 싶었는지도 몰라요. 아프지만 이런 삶도 있다는 걸 말하고싶었던 것 같아요. 마리와 수영도 언젠가 누구를 위해 스웨터를 떠줄지도 모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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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인의 애인에게백영옥 저 | 예담
흡인력 있는 문체와 생동감 있는 서사로 2000년대 한국 젊은 여성들의 감수성을 대표해온 백영옥 작가가 4년 만의 신작 장편소설을 출간했다. 네 명의 연인들이 경험하는 사랑과 성공, 그리고 쓸쓸한 그 뒷모습을 주목하면서 상처와 실패를 통해 성숙해가는 젊은 예술가들의 심리를 예민하게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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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수 “오직 나만이 내 기분을 망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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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3시간 엄마 냄새』를 통해 현실적인 ‘양육의 법칙’을 제시했던 임상심리전문가 이현수. 그녀가 새로운 책 『오늘도, 골든 땡큐』를 통해 “힘들었던 인생의 조각조각을 빛나는 바꿔주는 마법의 사고의식”을 공개했다. 감사하는 자세만으로도 삶은 한결 ‘살만한 순간’이 된다는 것. 그렇기에 저자는 “감사는 세상에서 가장 쉬운 마음 치료법”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살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나쁜 말을 ‘듣게’ 되겠지만 그 말을 반드시 다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듣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은 다르다. (중략) 우리도 두 개 정도의 필터는 필요하다. 하나는 소음과 소리를 구분하는 필터이고 또 하나는 감사의 필터이다. (『오늘도, 골든 땡큐』 106쪽)

 

‘오늘 하루도 감사합니다’라고 여기는 나의 마음이 현실을 바꿔놓지는 못한다. 경제적인 문제를 해결해줄 수도 없고,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을 멀리 쫓아내 주지도 못한다. 그러나 그것들에 둘러싸여 괴로워하는 나의 마음을 달래줄 수는 있다. 우울의 늪에 빠지지 않고, 내일도 한 걸음 내딛을 수 있도록 힘을 주는 것이다. 『오늘도, 골든 땡큐』가 제시하는 ‘감사 테라피’가 효험을 발휘하는 순간이다. 

 

이현수 저자는 전작 『하루 3시간 엄마 냄새』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심리학과 뇌과학 이론들을 근거로 제시한다. 우리의 뇌가 반응하는 방식을 설명함으로써 같은 상황도 얼마든지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또한 내담자들의 사례를 통해 ‘감사 테라피’가 유의미한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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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기분 나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어요

 

‘골든 땡큐’라는 말 속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나요?

 

그 동안 우리들이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든, 힘들게 살아왔던 조각조각들을 감사로 통합하면 내 인생에 금을 만들 수 있다는 의미예요.

 

‘나를 둘러싼 상황과 인물들이 달라지지 않는데 감사를 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말하는 분들도 계실 것 같습니다.

 

많은 분들이 그렇게 생각하시죠.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무엇을 감사할 수 있겠냐’고요. ‘감사 테라피’에서 가장 어려운 게 시작하기가 쉽지 않다는 거예요. 어려운 상황에 처한 분들이 계시다는 걸 저도 잘 알고 있지만 『오늘도, 골든 땡큐』에서 이야기하는 건 그보다 더 안 좋은 상황도 있다는 거예요. 책에서 “감사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쓴 것도 같은 이유죠. 지금보다 더 안 좋은 상황이 있을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해서 감사하는 거니까요. 우리 마음을 편하게 할 수 있는 하나의 비결로써 ‘감사 테라피’를 생각하셨으면 좋겠어요. 

 

“내 기분을 나쁘게 하는 것은 오직 나만 할 수 있다”라고 쓰신 구절이 생각나네요.

 

제가 우스갯소리가 ‘1인 1뇌’라고 썼는데, 진짜 맞는 말이거든요. 우리가 다른 사람으로부터 나쁜 말을 들으면 ‘저 사람이 나를 기분 나쁘게 했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에요. 그 사이에 나의 뇌가 그 말을 받아들이고 기분이 나쁘다고 판단하는 거거든요. 판단하는 그 과정에서 내가 한 번 더 개입을 해서 ‘이게 정말 기분이 나쁜 건가?’하고 생각을 해보면 얼마든지 마음이 편해질 수 있어요.

 

"감사 테라피가 효과를 보기 위한 핵심 전제는 모든 문제의 원인을 자신에게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씀하신 이유인가요?

 

일맥상통하는 이야기예요. 나의 뇌가 나를 기분 나쁘게 한다는 거죠. 타인이 원인을 제공해서 내 기분이 나빠졌다 하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일 것인가 아닌가의 선택권은 나에게 있는 거거든요. 나의 뇌가 그것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기분이 나쁜 거죠.

 

그래서 ‘전두엽을 속이는 일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신 거군요.

 

우리가 사는 세상은 매우 객관적인 것 같지만 알고 보면 개인들의 주관적인 세상일 뿐이에요. 저는 이것을 '아웃 팩트', '인 팩트'라고 표현하는데요. 예를 들면, 친구와 길을 가고 있는데 학교 선배를 우연히 만났어요.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하려는데 이 선배가 ‘하이고, 못 보는 사이에 폭삭 늙어버렸네, 이젠 지나가는 개도 안 쳐다보겠다’라고 하는 거예요. 내가 선배에게 한바탕 따지려고 하는데 친구가 막으면서 황급히 귓속말을 하는 거죠. ‘참아, 작년에 교통사고로 뇌를 좀 다쳤다고 하더라’ 순간, 모든 것은 멈추는 거예요. 선배가 욕을 한 ‘아웃 팩트’는 여전하지만 전두엽에서 지각하는 ‘인 팩트’는 ‘아무 문제없다’는 것이 되는 거죠. 전두엽의 마술이에요. 우리가 ‘인 팩트’를 최대한 긍정적인 내용으로 재구성하면 마음이 편안해져요. 그런 의미에서 ‘전두엽을 속인다’고 표현을 한 거예요.

 

『오늘도, 골든 땡큐』 에서 위약효과에 대해 설명하기도 하셨는데요. ‘감사 테라피’의 원리와 비슷한 것 같습니다.

 

같은 원리죠. 과거에는 위약효과에 대해서 ‘미신에 취약한 사람들의 비합리적인 사고방식에서 벌어진 우연한 현상’으로 봤지만, 지금은 긍정적인 마음의 힘으로 보는 추세예요. 몸과 마음은 연결되어 있고 긍정적인 사고와 감정에서 파생되는 좋은 호르몬들이 몸도 건강하게 한다는 과학적 증거가 해마다 쏟아져 나오고 있어요. 그리고 전두엽은 ‘인 팩트’에 잘 속아 넘어가요. 주인의 말을 굉장히 잘 듣거든요. 뇌 자체가 그렇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그 동안 우리는 ‘나의 뇌의 주인’이 될 생각을 한 번도 못해 본 거예요. 남이 하는 말만 그대로 따라 한 거죠. 그러니까 이제는 ‘나의 뇌의 주인은 나다’라는 걸 천명해 보자는 거예요.

 

전두엽이 ‘사고뇌’라면 편도체는 ‘감정뇌’라고 하셨습니다. ‘감사 테라피’를 하려면 “항상 편도체를 먼저 달래야 한다”고 조언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예를 들어서 직장 상사가 나를 계속 욕할 때, 긍정적인 의미를 찾는 것도 전두엽의 역할이지만, 하다가 안 되면 현실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전두엽이 하는 일이에요. 그럴 때는 ‘한 번 가서 진지하게 얘기를 해보자’라고 생각할 테고 ‘어떻게 얘기를 할까’ 고민하면서 선배들한테 조언도 받고 거울 앞에서 연습도 하겠죠. 그게 다 마무리되면 ‘내일은 가서 얘기해야지’라고 생각할 거예요. 그런데 다음 날 자고 일어나면 못 가요. 덜덜 떨리고 인사고과의 공포가 몰려오거든요. ‘내가 여태까지 참고 살아온 게 있는데 그걸 무시하면 안 되지’ 싶고요. 이게 편도체가 보내는 신호예요. 그러니까 편도체를 달래야 하는 거죠. ‘괜찮아, 그냥 말하는 것뿐이야’, ‘최악의 경우 인사 불이익이 있다고 해도 괜찮아’ 이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편도체가 먼저 다스려져야 전두엽이 원래 하려고 했던 목표를 실행할 수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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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도 분리수거가 필요합니다

 

감사하는 방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려주셨어요. 그 중 하나가 ‘나의 감사 목록’을 만들어 보라는 건데요. 그 방법과 효과가 궁금합니다.

 

일기를 쓰는 것처럼, 오늘 나에게 벌어진 감사한 일들에 대해서 쓰는 거예요. 감사한다는 자체가 즉시 우리의 신경을 완화시켜주는 효과가 있어요. 그래서 감사 목록을 쓰다 보면 잠이 올 때가 많아요. 수면제 역할도 하는 거죠. 이완이 되거든요. 일기처럼 쓴다고 해서 길게 쓰실 필요는 없고요. 감사하다고 쓰기만 하셔도 효과가 있습니다. 쓰다 보면 나의 삶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실 거고요. 

 

‘마음의 분리수거’는 어떻게 하는 건가요?

 

내 마음 속에 통이 있는 거예요. 긍정적인 생각이 드는 것을 넣는 통, 부정적인 생각이 드는 것을 넣는 통, 그리고 잘 모르는 것을 넣는 통이 있죠. ‘긍정의 통’에 넣어 놓은 건 참 좋았다고 생각하시면서 행복감을 누리시면 되고 ‘부정의 통’에 담긴 것들은 언젠가 한 번 꺼내셔야 돼요. 하루 이틀 지나고 나서 다시 꺼내보니 ‘부정의 통에 계속 있을 필요가 크게 없다’고 생각되시면 ‘모르겠다 통’이나 ‘긍정의 통’에 넣으시면 되고요. 그래도 안 된다면 해결해 봐야겠죠.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고 전두엽을 가동시키고 편도체를 설득하는 거예요. 마음의 분리수거를 하시면 복잡한 머리가 개운해지는 느낌이 드실 거예요. 그리고 긍정적인 건지 부정적인 건지 잘 모르는 일들을 ‘모르겠다 통’에 넣어 놓기만 해도, 그것 때문에 고민할 일이 별로 없어요. ‘모르겠다 통’에 담긴 것들도 언젠가는 끄집어내야 하겠지만, 대부분은 저절로 없어져요. 옷장을 정리할 때와 마찬가지예요. 버릴까 말까 고민하다가 그냥 남겨둔 옷들을 결국에는 버리게 되잖아요. 그런 것처럼 상처를 받았던 사건조차도 분리수거를 해 놓으면 의외로 빨리 청소가 돼요. 

 

같을 일을 경험하고도 감사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고, 불행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타고난 성격이 달라서 그런 걸까요? 아니면 감사 훈련의 유무에 따른 차이일까요?

 

선천적으로 감사를 잘 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어요. 어렸을 때 애착이 잘 되었고 좋은 부모를 만나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자란 사람들이 감사를 잘 하겠죠. 그런데 그러지 못한 사람들도 얼마든지 훈련으로 할 수 있다고 봐요. 

 

“기분이 나빠질 때 해야 할 일” 네 가지도 알려주셨습니다. 첫 번째는 ‘즐겁고 기분 좋은 일’의 목록을 만들라는 거예요.

 

하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는 일이 있잖아요. 그런 일을 50개 꼽아보시라는 거예요. 마음의 분리수거를 매번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한다고 해도 제대로 안 될 때도 있잖아요. ‘부정의 통’에 담긴 것들이 많을 때도 있고요. 결국 기분이 나빠질 때가 있다는 건데, 그럴 때마다 ‘즐겁고 기분 좋은 일’ 50가지 중에 한 가지를 하시면 돼요. 그 일을 하는 동안에는 뇌가 기분 좋은 정보들을 처리하거든요. 슬픔이라는 건 자발적으로 없어지는 게 아니라, 좋은 기억을 위에 쌓으면서 없어지는 거예요. 

 

‘3시간의 리듬을 따르라’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즐겁고 기분 좋은 일’을 오랜 시간 계속 하다 보면 오히려 무력감에 빠질 수도 있어요. 즐거운 일에만 몰두하고 싶은데 현실 세계는 그럴 수가 없으니까요. 그리고 너무 즐거운 일만 추구하다 보면, 편도체를 달래는 걸 넘어서서, 거기에 풍덩 빠져버리거든요. 편도체에서 생성되는 즐거움만 추구하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예를 들면 영화를 보더라도 한 편만 보시라는 거죠. ‘지금 너무 슬프니까 영화를 세 편 봐야지’라고 생각하셔도 전혀 효과가 없어요. 뇌가 한 편의 영화를 볼 때는 즐겁다고 생각하지만, 두 편 세 편 보면 이미 타성에 젖어서 새로운 즐거움이 부가되지 않거든요. 그러니까 영화 한 편을 보신 뒤에는 다시 일을 하시고, 그래도 우울하다면 3시간 정도 지난 후에 다시 영화를 보시는 게 좋아요. 

 

‘하루 10분 마법의 행동요법’, ‘시계바늘을 뒤로 돌리지 말라’는 내용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세요.

 

우울하신 분들을 아무것도 안 하시려고 하세요. 아무것도 못한다고 하시고요. 그런 분들은 ‘딱 10분만 해보자’고 생각하시고 일어나 보시라는 거예요. 10분 동안 해봤는데도 하기 싫다고 느껴지시면 다시 누우셔도 돼요. 그런데 어떤 행동이든 일단 10분을 하면 (계속) 하게 되어있어요. 10분을 하면 1시간을 하게 되고요. 1시간을 하면 3시간을 하게 돼요. 그렇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거죠. ‘시계바늘을 뒤로 돌리지 말라’는 이야기는, 감사로 살아보겠다고 생각했을 때는 현재에서 미래로 가라는 의미예요. 그 동안 얼마나 괴로웠든, 그 사람이 나를 얼마나 힘들게 했든, 일단 멈추고 오늘부터 다시 시작하라는 거죠. 현재에서 미래로 나아가야 ‘감사 테라피’의 효과가 빨리 일어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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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는 그냥 묻어두면 안 될까요?

 

책에 “과거의 봉인”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는데요. 언젠가 한 번은 봉인을 해제해야 하는 걸까요? 과거를 떠올리기 싫어서 묻어두기만 한다면 문제가 될까요?

 

때로는 과거를 그냥 묻어두는 것이 적절할 수도 있죠. 일단 과거에 일어났던 일은 굉장히 복잡하고 양이 엄청 많아요. 그걸 묻어두는 것이 본인에게 너무도 치명적인 상처라면 반드시 파헤쳐야 돼요. 그런데 과거에서부터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너무 힘을 빼면서 오히려 낙담하는 사람들이 더 많거든요. 저는 묻어두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봐요. ‘얼마나 힘들었든 간에 지금 이렇게 건강하고 예쁘게 살아있지 않느냐’라고 생각하는 것부터 시작해도 된다는 거예요. 현재 벌어지는 일들을 먼저 정리한 다음에 과거에 있었던 일들을 끄집어내서 마음을 탈탈 털어버리는 거죠. 어떤 환자들은 과거를 제대로 한 번 끄집어내줘야 되고요. 어떤 사람들은 굳이 그럴 필요 없이 현재에서부터 다시 잘 살 수 있어요. 그건 경우에 따라 다른 것 같아요. 

 

“내가 틈날 때마다 감사의 중요성을 강조하니 “그러면 심리상담이 왜 필요해요?”라고 물었던 제자가 있었다”고 하셨습니다. 같은 질문을 드린다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어요?

 

처음에는 ‘감사 테라피’가 아주 쉬운 치료라고 생각했어요. 심리상담을 받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유능한 전문가를 알아봐야 되고, 찾아가서 기다려야 하고, 돈도 들죠. 그런데 ‘감사 테라피’는 가만히 앉아서 감사하기만 하면 되니까 얼마나 쉬워요? 그리고 감사를 하면 그 즉시 우리 마음이 편해지잖아요. 그래서 처음에는 저도 ‘감사 테라피가 잘 되면 심리상담가들은 상담실 문을 닫을 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어요(웃음).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감사를 시작하기까지도 너무 힘들고요. 이 방법이 정말 좋다고 이야기를 해줘도, 그 말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무의식적이지만 낫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스스로 ‘감사 테라피’를 해서 이겨 낼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그게 안 되는 사람들도 있는 거예요. 방금 이야기한 것처럼 무의식적으로 거부하는 사람들도 있고, 고통이 너무 심각해서 감사할 것을 찾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럴 때는 심리상담을 해야겠죠. 

 

‘감사 테라피’를 얼마나 지속해야 효과를 볼 수 있을까요?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답하기 어렵지만, 평균 3년 정도 걸리는 것 같아요. 굉장히 오래 걸린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 우울증 환자들의 경우를 보면 병원에서 약을 처방 받아도 3년 안에 낫기 힘들어요. 아주 경미한 우울증은 6개월이면 낫기도 하지만요. 그러니까 3년 안에 나을 수 있다면 대단한 거라고 할 수 있어요. 3년 동안 ‘감사 테라피’를 한다고 해서 대번에 좋아지는 건 아니지만, 1년 정도 감사를 하면 우울증의 강바닥에서 치고 올라올 수 있어요. 그 정도만 되어도 살 만해요. 그리고 나머지 잔물결들을 정리하는 데 2년 정도가 더 필요하다고 봐요. 굉장히 우울했을 때 저지른 일들도 있을 것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 것도 있을 거잖아요. 그런 것들까지 정리가 되어야 하니까 최소 3년은 필요한 것 같고요. 이 시간이 그렇게 힘들지는 않아요. 감사를 진심으로 하면 눈을 감게 되거나 미소가 지어지거나, 뭔가 따뜻해지거든요. 그 순간 내 마음이 5분 전에 비해서 평화로워지고, 3시간 전에 비해서 평화로워지고, 어제에 비해서 평화로워져요. 그러니까 3년이라는 시간이 엄청 참아야 되는 시간이 아니고, 아주 재미있는 시간이 될 수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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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테라피’를 시작하려는 분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건 없으세요?

 

꼭 지켜야 하는 게 있다면 ‘감사합니다’라고 자꾸 이름을 불러줘야 된다는 거예요. 그래야 습관이 되거든요. 『오늘도, 골든 땡큐』에서 ‘문을 볼 때마다 내가 지금 감사하고 있는가를 생각 해보자’고 쓰기도 했는데요. 우리 주변에 문이 얼마나 많아요. 속상한 일이 있어도 문을 열고 나갈 때마다 ‘그래도 여기에서 감사한 게 뭘까’ 생각해 보는 거예요. 그리고 문을 열고 나갈 때 ‘여기까지만 슬퍼하자, 여기까지만 화를 내자, 이 문을 열고 나가면 감사할 것을 찾아서 다시 새롭게 시작하자’고 생각하는 거죠. ‘내가 지금 감사하고 있는가, 감사하고 있지 못한 게 무엇인가’를 떠올리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감사는 조용하고 잔잔한 일상의 태도예요. ‘감사 테라피’를 만병통치약이나 거창한 운동으로 여기지 마시고 ‘나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해주는 아주 쉬운 방법’으로 받아들이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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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골든 땡큐이현수 저 | 김영사
심리학 박사 이현수 원장이 뇌과학과 심리학을 통해 밝힌 ‘감사 테라피’의 강력한 효과, 그리고 감사로 인생을 새로이 시작하게 된 사람들의 감동적이고 기적 같은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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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재즈벙커 속 ‘재즈다운 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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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페스티벌에 한 해 몇십만의 인파가 몰리는 기이 현상은 말 그대로 기이현상에 불과하다. 최근 몇 년간 서울 시내의 재즈클럽들은 계속 하나 둘씩 문을 닫고 있는 와중에 재즈 연주자들의 숫자는 계속 늘어간다. 연주자들에게 무대는 접접 비좁아지고 있다. 21세기 들어 급성장한 국내 재즈계에서 10년 가까이 연주 생활을 해온 연주자들에게 현재의 고단한 현실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러한 현실 속에서 최근 연주자들끼리 공동의 연습실을 차리고 매주 일요일 함께 무대에 서는 무리가 생겼다. 기타리스트 옥진우, 베이시스트 김대호, 드러머 김민찬. 이들은 재즈동네에서는 첫 손으로 꼽히는 연주자들이다. 하지만 그들이 단 하나의 무대를 잡기 위해 얼마나 고군분투하는지는 웬만한 사람들은 상상도 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을 만나러 어느 일요일 양재동에 있는 지하 연습실 '재즈벙커'를 찾아 갔다(색소포니스트 김지석도 함께하려 했으나 개인 사정으로 인터뷰 중반에 합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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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쁜 조명등도 있고. 바(bar)도 있고. 칙칙하고 어두운 작업실을 상상했었는데 분위기가 예상 밖이다.

 

김민찬: 일하다가 바에 모여 서로 좋아하는 음악도 들려주고 한 잔씩 하면서 이야기 나누면 좋을 것 같아서 이렇게 만들어 보았다.

 

원래는 인터뷰 서문에 음악인의 간략한 이력을 인터뷰이가 밝히는 게 원칙인데 이번에는 특별히 세 분이고 해서 그럴 수가 없었다. 간략히 한 분씩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옥진우: 기타리스트이고 2003년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임인건, 임달균 밴드에서 연주를 시작했다.


김민찬: 형, 한상원 밴드에서도 연주하시지 않았어요?

 

옥진우: 그건 고등학교 때. (일동 웃음) 고3 때 재즈 아카데미에 들어갔는데 그때 내가 1기였다. 그곳에서 한상원 선생님께 배우고 밴드에서도 연주했다. 한영애 밴드에서도 했었고. 그러다가 네덜란드로 가서 재즈를 더 공부했고 2003년부터 재즈클럽에서 연주를 시작했다. 유학이 완전히 끝나지 않아 한국과 네덜란드를 오가며 연주하다가 2011년 유학을 완전히 끝내고 한국에서 연주 중이다. 박성연 선생님, 이노경 씨, 허소영 씨, 김마리아 씨 음반에 참여했다.

 

옥진우씨 처음 등장했던 2000년대 초반, 비밥을 제대로 연주하는 신선한 기타리스트가 나타났다고 주변에서 이야기 하던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  계속 자기소개 부탁한다.

 

김대호: 베이스 연주자다. 2008~09년부터 활동을 시작했다. 홍대 앞에 있다가 지금은 문을 닫은 클럽 팜에서 전지연 씨의 레귤러 공연 때 베이스를 연주한 것이 첫 일거리였다. 대학 졸업반 때였을 것이다. 작년에 기타리스트 조영덕 씨와 어쿠스틱로지 음반을 발표한 것이 첫 앨범이었고 이전에 진킴 재즈유닛, 김마리아, 황은정, 데이먼 브라운 음반에 참여했다.

 

김민찬: 2005년 대학 들어가고 나서부터 이런저런 밴드에서 연주하다가 대략 2008년쯤부터 진푸름 밴드에서 연주를 시작했다. 이후에 이지영, 임달균 선생님이랑 '옐로 재킷' 스타일의 펑크(funk) 밴드도 몇 달 동안 해보고. 그때 그 밴드에는 대호 형도 함께했었다.

 

김대호: 그땐 야심차게 지미 해슬립(밴드 '옐로 재킷'의 베이시스트) 시그너처 모델도 구입하고 했는데........ 아무나 그걸로 연주하는 게 아니더라. 지금은 팔아버렸다. (일동 웃음)

 

김민찬: 그리고 음반으로는 진푸름 쿼텟, 진킴 재즈유닛 앨범에 참여했다.

 

세 사람은 언제, 어떻게 만났나?

 

옥진우: 대략 2008년쯤으로 기억한다. 한국에서 활동하던 독일인 베이스 주자 마틴 젠커의 무대에서 모두 만났다. 그리고 2011년 내가 한국에 완전히 들어오고 연습실을 같이 쓰면서 매우 가까워졌다.

 

이미 연습실을 함께 썼다는 것은 이전에 뭔가 서로 통했다는 것이 아닌가?

 

김민찬: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 시점에 당시 세 사람이 서로 좋아하는 음악이 비슷하니 이야기도 통하고 하고 싶은 음악이 비슷하니 함께 연주하는 게 너무 당연해 졌다.

 

옥진우: 한국의 재즈 연주자들이 근래 많이 늘었지만 사실 연주자층이 아직 두터운 것은 아니다. 그러다 보니 한 연주자가 이런 스타일, 저런 스타일 모두 연주해야 한다. 펑크스타일도 연주했다가, 모던재즈도 연주했다가....... 그래야 먹고 살 수 있고. 그런데 나 같은 경우엔 좀 마니아적인 기질이 강해서 그런지 한 가지 방향만 계속 파고들게 되더라. 그게 메인스트림 재즈, 정통 재즈 스타일인데.......그러다 보니 다른 스타일을 겸해서 연주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연주에 완전히 만족하기가 어려웠다. 분명히 저보다 연주 잘하는 사람인데도 메인스트림 재즈의 디테일한 부분까지는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쉽게 말해 잘 맞는 연주자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2008~09년 즈음에 비슷한 음악을 추구하는 연주자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고 2011년에 한국에 완전히 들어오니 민찬이가 연주자들이 함께 쓰는 연습실에 자리가 비었으니 나보고 들어와 함께 하자고 연락이 왔다. 그때 이미 대호는 민찬과 함께 연습실을 쓰고 있었고.

 

김민찬: 여러 용어가 있겠지만 우리가 좋아하는 음악을 스트레이트 어헤드(Straight Ahead: 정통적인, 꾸밈이 없는) 재즈라고 표현하고 싶다. 그러니까 스윙 느낌이 있는 재즈다. 사실 그런 음악을 좋아하는 연주자들을 현재 국내에서 만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함께 연습실을 쓰게 된 건데 전에 연습실에 다른 연주자들도 너무 많아서 정신이 좀 부산하고 해서 우리끼리 아담하게 따로 연습실을 만들면 어떨까 생각하다가 1년 8개월 전에 이 장소를 만들게 된 거다. 2014년 7월이었다.

 

'재즈벙커'란 이름이 좋다.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가?

 

옥진우: 원래는 이 근처에 작업실로 꼭 들어가고 싶은 곳이 있었는데 그 자리가 '벙커 피시방'이었다. 결국 그 자리에는 못 들어갔지만 모두들 '벙커'란 이름이 입에 익어서 결국 '재즈벙커'가 된 거다.

 

(웃음) 피시방? 그게 전부인가?

 

옥진우: 재즈가 계속 맥을 이어갈 수 있는 대피소 같은 의미도 있는 거 같고.......

 

그럼 김지석 씨는 '재즈벙커'와 별 상관이 없었나?

 

김민찬: 양재동으로 연습실 얻으라고 계속 꼬신 사람이 지석이 형이다. 그 형은 이 옆에, 가까운 데에 오래 전부터 연습실을 쓰고 있었는데 우리가 이곳에 작업실을 마련하자 와서 일도 많이 도와주고 여러모로 힘이 되어 주었다.

 

김지석씨는 여러 스타일의 재즈를 두루 연주해 왔는데 음악이 잘 통하는 편인가?

 

옥진우: 지석이나 나는 학교 다닐 때부터 정통 재즈를 제일 좋아했다. 커리큘럼에서 의무적으로 공부하는 게 아니라 여러 음악 중에서 이 스타일을 제일 연주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게 이뤄질 수는 없었다. 하지만 대호 민찬은 아예 연주생활 시작하면서 정통 재즈 쪽으로만 고집했고 그게 어느 정도 가능했던 시절에 두 사람은 등장했다. 우리들도 이 친구들을 만나면서 보다 자주 정통 재즈를 연주할 수 있게 된 거다. 왜 이런 음악을 고집하느냐고 묻는다면, 그냥 단순히 내게 이 스타일의 재즈가 가장 잘 맞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럼 보다 구체적으로 자기 악기에 따라서 각자 제일 좋아하는 연주자들을 꼽아 달라.

 

옥진우: 웨스 몽고메리, 케니 버럴, 그랜트 그린 그리고 요즘 연주자로는 피터 번스틴. 너무 뻔하지 않나? (웃음)

 

김대호: 폴 체임버스, 레이 브라운, 샘 존스 그리고 현역으로는 크리스천 맥브라이드. 완전 좋아한다.
김민찬: 단 한 명만 꼽으라면 아트 블레이키. 그다음에 필리 조 존스, 엘빈 존스, 빌리 히긴스. 앨 헤어우드. 많지만 이 정도로.

 

김대호: 교과서 인물 이름 대기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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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계신 연주자들이 이제 프로 연주경력 10년 안팎이 된 것 같다. 그간에 한국 재즈 씬의 변화가 느껴지는가?

 

옥진우: 물론이다. 연주자 숫자도 많아졌고 젊은 연주자들의 실력도 굉장히 빠르게 발전했다. 연주 실력 하나만 놓고 보면 다른 나라의 비슷한 또래 연주자들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그런데 추구하고 있는 정통 재즈 쪽에서도 그러한 변화가 보이나?

 

김대호: 많지 않은 것 같다.

 

옥진우: (잠시 고민하다가) 내 경우엔 아직 못 만났다. 사실 재즈 연주자들이면 모두가 자신들이 비밥을 연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누구나 학교에서 비밥을 배우기 때문이다. 누구나 그 리듬과 화성진행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그 음악을 연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아니다. 그 음악을 계속 파고들어야 진짜 그 스타일의 맛이 나는 연주를 할 수 있는데 정통 재즈 쪽으로 오는 젊은 연주자들은 없는 것 같다. 미국의 경우에는 딕시랜드 재즈(트레디셔널 재즈)만 전문으로 연주하는 사람들도 있지 않은가? 색소폰 주자 에릭 알렉산더는 하드밥 외에 다른 연주는 전혀 하지 않는다. 그의 밴드의 베이스 주자 존 웨버는 팻 메시니의 음악도 참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김민찬: 존 웨버는 4/4 박자 외에는 홀수 박자도 연주 하지 않겠다고 한 사람이다. 그러니까 그들은 그렇게 좋은 스윙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국내 연주자들의 실력이 굉장히 좋아졌지만 전문성은 아직 그러지 못한 것 같다. 연주자의 전문성은 각각의 시장이 어느 정도 돼야 가능한데 그렇지는 못한 것 같다.

 

옥진우: 다시 말하지만 연주자들의 개인 기량은 엄청나게 빠르게 발전했다. 그래서인지 모두 어떤 스타일의 재즈도 다 연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개인 기량이 좋다고 음악이 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어떤 스탠더드 넘버를 알고 있는 것 하고 그 음악을 밴드를 통해 잘 연주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다들 스탠더드 넘버를 알고 있지만 실제 연주해 보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표현하고 음악을 진행 시킬지에 대해 아이디어가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너무 남의 욕을 많이 하나?

 

그런데 연주자의 전문성은 시장의 크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외국처럼 딕시랜드 팬들, 스윙팬들, 비밥팬들, 퓨전팬들이 각각 어느 정도 되면 연주자들도 한 분야에 매진할 수 있는데 한국은 그런 환경이 아니지 않는가? 더군다나 궁금한 점은 클럽들은 하나 둘씩 문을 닫고 연주자들은 계속 늘어나는데 그렇게 되니 점점 더 연주할 기회는 줄어들 것 같다.

 

김대호: 실용음악과 바람이 불어서 현재 한 해에 실용음악과 졸업생들이 적어도 천 명 단위로 나올 것이다. 그중에 재즈를 연주하는 사람은 극소수이겠지만 작은 재즈시장을 놓고 보면 매해 대단한 숫자가 늘고 있다. 더군다나 현재 서울 시내 재즈클럽은 열 개도 채 안 된다. 솔직히 올댓재즈, 에반스, 블루문 세 곳을 빼면 연주자 페이를 제대로 주는 곳은 없다고 봐야 한다. 대신에 연주자들이 직접 판로를 뚫어서 일반 카페나 바, 레스토랑에서 연주기회를 잡고 있다. 그러니까 재즈클럽 일변도에서 지금은 조금 변하고 있는 시점이다. 하지만 그런 장소가 재즈클럽처럼 매일 정기적으로 연주 무대를 세우는 것은 아직 아니다.

 

옥진우: 그런데 한국에서는 재즈를 너무 럭셔리한 문화로 인식하다 보니까 재즈클럽도 대규모로 멋진 인테리어를 갖춘 고급 장소로 차려야 한다는 인식이 많은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적자가 나면 금세 문을 닫는 것을 많이 봤다. 하지만 외국에서도 그런 클럽들은 극히 소수다. 블루노트 클럽과 같은 곳은 극히 일부다. 대신에 소규모 클럽, 일반 식당 등에서도 재즈를 연주한다. 그런 곳에서도 일급의 재즈 연주자들을 볼 수 있다. 대호, 민찬은 밴드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베이스와 드럼이고 그래서 나보다 연주 기회가 더 많은 편인데 여기에 나까지 포함해서 전반적으로 생각해보면 그래도 연주 기회가 10년 전에 비해 준 것 같지는 않다. 재즈클럽은 아니지만 작은 장소에서 연주해달라는 요청이 꾸준히 들어온다. 2000년대 초처럼 클럽 앞에 사람들이 줄을 서 있는 광경은 볼 수 없고 페이도 오르지 않은 채 그대로이지만 그래도 연주를 계속할 수 있다는 것은 다행이다. 관객의 감소는 비단 재즈만이 아니라 모든 라이브 클럽이 겪고 있는 문제고 해외나 국내나 모두 마찬가지라고 본다. 모든 연주자가 학교나 레슨을 통해 수입을 만들고 작은 장소에서 연주하며 살아가는 게 대부분일 것이다. 문제는 그 속에서 어떻게 완성도 있는 자기 음악을 만드는가에 있다.

 

이제 얼마 후 저녁 8시면 근처 바 '크로스비'에서 연주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일단 저녁을 먼저 먹으면서 인터뷰를 계속하자. (이후 근처 순댓국집에서 이야기가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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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클럽이 사라짐에도 불구하고 연주 기회가 줄지 않았다니 정말 다행이다.

 

김민찬: 재즈클럽 말고 연주 장소가 생긴 것은 물론 음악이 있어야 하는 곳도 있지만 연주자들이 직접 뚫은 곳도 많다. 우리가 연주하는 '바 크로스비'도 그렇다. 우리 작업실 근처에 있고 들어가 보니 재즈도 많이 나오고 음반도 많이 있어서 사장님이 틀림없이 재즈를 좋아하실 것 같아 가끔 연주하자고 제안을 드려서 현재는 매주 일요일 저녁 8시에 연주하고 있다. '크로스비'는 전설적인 가수 빙 크로스비를 뜻한다. 국제적으로 명망 있는 색소폰 연주자 제스 데이비스가 한국에 왔을 때도 우리랑 '크로스비'에서 연주했다.

 

비슷하게 매일 연주를 갖지는 않지만 비정기적으로라도 재즈 연주를 하는 곳이 몇 군데나 되나?

 

김대호: 클럽 올댓재즈가 조그마한 바를 한남동에 열었는데 그곳에서도 주말에 연주가 있고 압구정동 '온더그러운드'도 있다.

 

옥진우: 또 이태원 시가 바 '번'도 있다. 그곳도 연주자들이 뚫은 곳이다. 또 근처에 '그랑블루'라는 식당도 있다.

 

김민찬: 한남동 카페 '톨릭스', 홍대 근처에는 '토끼굴', '상수리', '멜피콩', 분당에는 카페 '카레 클린트'가 있다. 우리가 모르는 곳도 많을 거다. 나는 여러 장소 중에서 '크로스비'에서 연주할 때가 가장 좋다. 연주도 마음에 들고 관객들도 음악에 굉장히 집중한다.

 

[식사 후 '크로스비'로 자리를 옮겼다. 예정대로 8시부터 공연이 있었고 대략 10시경에 공연을 마쳤다. 그리 큰 장소는 아니었지만 객석은 완전히 채워져 있었다. 공연 후에 마무리하지 못했던 인터뷰를 이어갔다. 이 자리에는 앞에 인터뷰에 참여하지 못했던 색소포니스트 김지석 씨가 함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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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이렇게 자리가 꽉 차는가?

 

옥진우: 오늘은 그리 많은 편이 아니다. 작년 말에는 밖에서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렸었다.

 

김지석: 아시겠지만 재즈클럽의 숫자가 많이 줄었다. 단지 재즈뿐만이 아니라 여러 라이브 클럽들이 경영난에 허덕인다. 이는 사람들이 기존의 장소를 찾아가는데 더 이상 재미를 못 느끼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하지만 라이브 연주를 듣는 것 자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늘 틈새시장은 있다. 연주자들이 적극적으로 그곳에 접근해야 한다고 본다. 세상이 그만큼 빨리 바뀌는 것이다.

 

이곳에서는 언제부터 연주를 시작했나?

 

김지석: '크로스비'에 처음 온 것이 2014년 12월이었다. 그런데 음악도 너무 좋고 분위기도 좋아서 사장님께 이곳에서 재즈 연주를 해도 되겠냐고 여쭤 보았다. 하지만 사장님께서는 당연히 거절하셨다. 그래서 두 달 뒤인 2015년 2월에 다시 찾아가 요청을 해봤다. 하지만 그때도 역시 거절하셨다. 아시지 않는가. 이 연주가 돈을 많이 못 벌어서 갈급한 게 아니다. 연주자들은 연주를 자주 해야 하는데 그게 안 되니까 답답한 거다. 그래서 그다음 달에 아예 색소폰을 들고 갔다. 그리고 연주 딱 한 곡만 해도 괜찮겠냐고 물었다. 사장님은 대답하기가 곤란하셨는지 저기 테이블에 앉아계신 손님들께 양해를 구해보라고 하셨다. 그날이 일요일이라 손님은 그분들뿐이었다. 그런데 그분들이 연주를 듣자고 했고 그래서 나는 재빨리 '재즈벙커'에 있는 진우, 대호에게 연락했다. 금세 그들은 악기를 들고 왔다. 그리고 딱 한 곡만을 연주하자 손님들은 언제 또 연주를 들을 수 있냐고 묻는 것이었다. 그러자 사장님은 연주와 반응이 마음에 들었는지 매주 일요일에 이곳에서 연주하자고 하셨다. 물론 연주 페이는 없었다. 그런데 그렇게 두 달을 연주하자 한가했던 일요일에 사람이 들어오기 시작하고 나중에는 자리가 없을 지경이 되었다. 그때부터 페이도 받고 연주를 해서 오늘까지 하는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재즈를 음반도 아니고, 라이브 클럽도 아니고 오로지 재즈 페스티벌에서 듣는다. 일 년에 한 두 차례 그곳에서 재즈를 듣고 올해 들을 재즈를 이제 다 들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정작 한국의 재즈 페스티벌은 한국 재즈 연주자들 대부분과 무관하다. 재즈 페스티벌이라고 해놓고 국내 팝 뮤지션들만을 주로 부른다던지, 국내 연주자들은 메인 무대가 아니라 서브 스테이지에만 세운다. 메인 무대에 서는 해외 연주자들이 국내 연주자들보다 잘 하지도 못하는데도 그렇다. 국내에서 열리는 국제 재즈페스티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김지석: 괜히 잘못 말했다가 영원히 우릴 부르지도 않고 매장 당하는 거 아닌가? (웃음) 물론 사람들 많이 오게 하는 것은 페스티벌 주최 측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페스티벌을 비즈니스의 입장에서 접근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아닌가? 그런데 지금 상황을 보면 페스티벌에서 '재즈'란 단어는 빼야 할 것 같다. 음악적인 컨셉이 너무 희박하다. 캠핑 페스티벌이나 그냥 뮤직 페스티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사과가게라고 간판 걸어 놓고 배를 파는 것과 똑같다. 프랑스 마시악 재즈 페스티벌에 가면 그곳도 사람들이 많이 모여 음식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곳에서 재즈를 들으려면 그 내부에 별도의 공간으로 별도의 돈을 내고 들어가야 한다. 그 안에서 사람들은 조용히 음악에 집중하며 듣는다.

 

옥진우: 난 페스티벌 측으로부터 초대받은 일도 없다. (웃음) 그리고 출연진 라인업을 봐도 별로 관심이 가질 않는다. 더욱이 무대가 너무 대형화되고 고출력 사운드로 소리를 내다 보니 정작 재즈 사운드는 들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팝이나 록 페스티벌에 온 것 같다. 재즈라는 음악의 특성을 잘 모르는 것 같다.

 

매주 이렇게 모여서 연주하고 있는데 '재즈벙커' 이름으로 음반 낼 계획은 없나?

 

옥진우: 원래는 다음 주에 녹음 들어가야 하는데 게을러서 준비를 못 했다. 하지만 조만간 꼭 해볼 거다. 모두 학교에 나가서 학생들 가르치고 다른 밴드에서 연주도 해야 하고 이렇게 일주일에 한 번 모이기도 참 어렵다. 하지만 일요일 저녁 '크로스비'에서의 공연이 우리는 소중하기 때문에 가급적 다른 약속을 안 잡고 이곳에 계속 모이고 있다. 오랫동안 계속 모여서 더욱 재즈다운 재즈를 연주해보고 싶다.

 

이즈음에서 김지석 씨가 주문한 위스키 한 병이 테이블 위에 올라왔다. 모두들 기분 좋게 한 잔씩 마셨고 어느새 병이 바닥나자 와인 몇 병을 더 사 들고 다시 지하 '재즈벙커'로 들어갔다. 그때의 이야기들은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하지만 레드 갈런드 트리오의 음악이 흘렀고 모두 유쾌하게 재즈 이야기를 끊임없이 주고받았다. 오랜만에 재즈 천국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 그러던 중 시계를 보니 어느새 아침 다섯 시 반이었다. 나는 가방을 들고 슬며시 그리고 억지로 그 천국을 빠져나와야 했다. 그 천국과는 달리 월요일 아침 양재동 거리는 아직 조용했다.


인터뷰 : 황덕호
정리 : 황덕호
사진 : 이석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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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번역가 권상미가 말하는 ‘주노 디아스’ 소설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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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장편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으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주노 디아스의 신작『이렇게 그녀를 잃었다』가 국내에서 출간됐다. 주노 디아스가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출간 이후 5년 만에, 펴낸 소설집으로 작가 자신의 소설적 자아(alter ego) ‘유니오르’와 그 주변 인물을 주인공으로 펼쳐지는 ‘사랑’에 관한 9편의 옴니버스 단편집이다. 주노 디아스는 2010년 한국 방문 당시 “평생 장편을 3편쯤 쓰면 성공이라는 생각으로 글을 천천히, 완벽하게 쓰려고 애쓰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에서 2012년에 출간된 『이렇게 그녀를 잃었다』에 관한 독자와 평단의 반응은 뜨거웠다. 출간되자마자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2012년 전미도서상 최종 후보, 2012년 스토리 문학상 최종 후보, 2013년 앤드루 카네기 메달 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도미니카 태생의 미국 작가 주노 디아스는 어린 시절부터 엄청난 독서광이었고, 한때 묵시록적 영화와 책에 깊이 빠져들기도 했다. 1996년 첫 단편소설집 『드라운』이 전례 없는 호평을 받으며 미국 전역에서 베스트셀러가 됐고. 2007년, 그는 11년 동안의 침묵 끝에 내놓은 첫 장편소설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으로 퓰리처상을 비롯해 전미비평가협회상 등 다수의 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은 전 세계 28개국에 판권이 팔렸다.

 

『이렇게 그녀를 잃었다』국내 출간을 기념해 주노 디아스의 작품을 연이어 번역한 권성미 번역가와 이메일 인터뷰를 진행했다. 권상미는 한국외국어대학교 통역번역대학원을 졸업한 뒤 캐나다로 날아가 오타와대학교에서 번역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캐나다에서 영어와 스페인어 책을 번역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올리브 키터리지』, 『드라운』, 『에드거 소텔이야기』,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 『리틀 블랙북』, 『빌 브라이슨 발칙한 미국 횡단기』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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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자와 번역자와의 긴밀한 소통

 

『이렇게 그녀를 잃었다』『드라운』,『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에 이어 주노 디아스의 세 번째 작품 번역이신데요. 전작 『드라운』과 동일한 주인공 ‘유니오르’와 그의 가족들, 그리고 『드라운』과 연장선상에 놓이는 듯한 인물들이 『이렇게 그녀를 잃었다』에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전작과 비교하여 이 책만의 매력을 꼽는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아무래도 동시대성이 아닐까요? 『드라운』『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이하 『오스카 와오』)』은 유니오르를 기준으로 본다면 아무래도 80년대와 그후라고 해도 90년대 정도의, 성장소설에 가까운 이야기들일 겁니다. 반면, 『이렇게 그녀를 잃었다』의 「해와 달과 별들」, 「바람둥이의 사랑 지침서」에서는 다소 변화한(아마도 좀더 성숙하고 상실에 아파하는) 유니오르의 현재 모습을 볼 수 있지요.

 

유니오르의 아버지 라몬의 현지처 야스민이 화자로 등장해서 ‘다른 여자’의 목소리를 들려주고, (유니오르의 어머니) 비르타의 모습을 라몬의 편지에서, 미국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된 풍경을 그린 작품 「겨울」에서, 또 라파의 마지막 나날들과 그후(「푸라 원칙」과 「미스 로라」)의 세월 속에서 관찰할 수 있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이 책은 유니오르 주변의 여성들을 눈여겨봐야 하는 소설이 아닌가 싶어요.

 

또한 유니오르의 관찰에 의해서만 접할 수 있는 인물인 형 라파에 대한 이야기가 좀더 자세히 펼쳐집니다. 개인적으로 유니오르의 입을 통해서만 만날 수 있어 더더욱, 가장 개성적이고 독특한 인물이라고 생각해요. 아버지라는 권위 앞에서는 움츠러들고 순종적이었던 어린 소년이었으나, 자라서는 유니오르에게 ‘인간 말종’으로 비쳤던 그의 마지막 나날의 결정들은, 언제나 해답을 주는 대신 ‘왜 그랬을까?’ 생각하게 만드는 주노 디아스의 서사 방식을 잘 보여줍니다.

 

번역 작업 중 작가와 직접 소통하시며 문제를 해결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우선 작업 과정을 간단히 말씀 드리면, (1) 우선 직역에 가깝게 번역을 하고, 의문 나는 점을 표시한 후 개인적으로 조사를 통해서 확인을 합니다. (2) 문장을 다듬고, 언어적인 의문점인 경우 원어민에게 확인을 하고 (3) 마지막으로 작가만이 답변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해 작가와 소통을 시도하여 해결합니다. 물론 (3)단계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작가들도 있어서,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올리브 키터리지』나 제니 다우넘의『나우 이즈 굿』은 (1) (2)단계의 과정을 통해 모든 의문을 해소할 수 있었습니다.

 

주노 디아스 외에도 작가와 직접 소통한 해외 작가들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작가가 생존해 있고, 작가에게 묻는 것 외에 다른 경로로 해소할 수 없는 의문이 있다면 작가와 이메일로 소통합니다. 주노 디아스 이외에도 이언 매큐언, 산드라 시스네로스, 게일 포먼, 스페인어권의 프란세스크 미랄례스 등 여러 작가들과 소통을 통해 의문을 해결한 바 있습니다. 매큐언과 시스네로스는 아직 미출간 작품인데, 편집부에 번역 원고를 송고하기 전에 몇 가지 확인을 위한 질문이었어요. 매큐언의 경우 『Black Dogs』라는 작품인데, 원문에 맥락 없이 ‘Auden’이라고만 표기된 부분이 있어 각주를 넣으려고 작가에게 확인했고, 시스네로스의 경우에는 화자가 여자아이였는데 성장소설처럼 쓰인 작품이어서 각 챕터마다 어떤 연령대를 염두에 두고 쓴 것인지 확인하는 질문이었어요. 우리말 종결 어미에 영향이 있지 않을까 했는데 결국 나이에 따라 어미를 달리하지는 않았으나, 정확한 그림을 그리는 데 도움이 되었지요. 또한, 역자 교정 단계에서 편집부에서 제게 상세 질문을 하는 경우가 있어서, 그럴 경우 편집 단계에서 좀더 구체적이고 긴 질문지를 작가들에게 보내기도 합니다. 그 단계까지 가서 나오는 질문들이라면 제가 답변할 수 없는 부분이 많으니까요.

 

『오스카 와오』와 같이 수수께끼처럼 모든 단어와 문장에 다른 지칭이 있는 건 아닐까 의심해야 하는 경우에는 우선 다른 언어권 번역가들의 질문에 이미 답변된 것이 있는지 확인하는데, 디아스는 세 작품 모두 이미 꽤 긴 답변서가 있었어요. 그 외에도 추가 질문이 많았고요. 디아스는 비속어를 많이 쓰는데 가급적 문체의 수위를 맞추고 우리말에 어의나 어감 면에서 가까운 표현이 있다면(가령 비속어 수위와 어감을 전달하려 ‘fuckface’를 ‘쌍판’으로 옮긴 경우) 최대한 찾으려는 편이에요. 『이렇게 그녀를 잃었다』에서는 ‘Eurofuck’이라는 낱말이 나왔는데, 최고급 리조트의 희멀건 백인들이 백사장에 도미니카 여자를 끼고 있다는 문맥이었어요. 같은 맥락에서 여러 경로로 고민하다가 ‘유로떡’이라는 표현을 생각해봤어요. 운도 맞고 성적인 비속어 수위도 맞추려는 의도이긴 했지만, 도미니카의 해당 리조트에 실제로 가봤더니 백사장이 그런 분위기는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성적인) 행위’에 초점이 맞춰진 게 맞느냐고 디아스에게 이메일로 확인차 다시 물었던 것이 이번 책에는 유용했지요. 오역을 피할 수 있었으니까요. (해당 단어는 원고 최종 단계에 ‘유럽 흰둥이’로 옮겨짐 ? 편집자 註)

 

직접 소통이 불가능한 시대에 쓰인 작품을 번역해야 할 때도 있을 텐데요. 원작자와의 에피소드를 더 들려주신다면요?

 

개인적으로 고전 번역 작업은 좋아하지 않는데, 원작자에게 질문을 확인할 수 없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물론 애로가 있겠지요. 한편, 전혀 소통하지 않기로 유명한 빌 브라이슨과 같은 작가도 있습니다. (편집부를 통해 듣자니, ‘미국 대통령보다 만나기 힘든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물론 그런 경우에는 존중하는 게 예의이겠고, 당연하겠지만 연락을 할 때도 꼭 필요한 내용만을 아주 조심스럽게 질문합니다. 한마디로, 원작자와 소통하지 않아도 어떻게든 번역 작업을 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제 경험에 따르면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이 정확히 번역되는 것을 대단히 반기고, 그 과정에도 대단히 협조적인 경우가 많으므로, 가급적 정확한 답변을 듣고 반영할 수 있다면 좋겠지요. 가령, 「해와 달과 별들」에 ‘바이스프레지던트/부통령’과의 만남이 언급되는데, 그에 대한 설명을 찾아보려고 해도 마땅한 정보를 찾을 수 없고, 세 인물이 그 동굴에 대체 왜 간 건지도 도무지 알 수가 없어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주노 디아스에게 아주 오랜만에 질문을 하기 위해 연락을 했어요. 부통령이 어떤 인물인지 알려달라고. 그러자, 특정한 역사적 인물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며, ‘보이(남자)’들은 원래 그렇게 짓궂은 장난으로 서로에게 도전하길 좋아한다는 답변을 보내왔더군요. 도미니카에 갔을 때 그 동굴에도 찾아가볼까 했었는데, 하마터면 존재하지 않는 곳을 찾아 헤맬 뻔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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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 권상미

 

 

주노 디아스, 치밀하게 천천히 쓰는 작가

 

국내 독자들에게 주노 디아스는 뭐니 뭐니 해도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첫 장편이었던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으로 2008년 퓰리쳐상을 수상하며 미국 현지에서도 화제를 불러일으킨 만큼 차기작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서였을까요. 5년만의 신작은 다소 길었던 공백으로 느껴집니다. 그 시간만큼 그의 작품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궁금합니다. 아울러 데뷔 이후 '작가'로 활동한 시간 대비 '다작'에 속하는 편은 아닌데, 그 배경이나 이유에 대해 생각해볼 만한 지점이 있을까요?

 

『이렇게 그녀를 잃었다』의 경우 국내에는 올해 나왔으나 미국 현지에서는 2012년에 출간된 책이에요. 디아스는 스스로도 ‘아주 느리게 쓰는 작가’라고 평하고 있기도 하고, 『오스카 와오』에서 보듯이 단어와 문장이 매우 함축적이어서, 적은 분량에 최대한 많은 것을 담는 작가입니다. 또한 작가의 에이전트에게 듣기로 첫 작품 『드라운』당시부터 『이렇게 그녀를 잃었다』등을 포괄하는, 앞으로 낼 여러 작품의 청사진을 가지고 있는 듯했습니다. 장기적인 집필 계획을 큰 그림으로 짜놓고, 동일한 인물들을 중심으로 하는 연작소설 형식의 소설집을 낼 예정인 것으로 보아, 치밀하게 천천히 쓰는 작가가 아닌가 싶어요.

 

다른 이유로는, 2012년에 『이렇게 그녀를 잃었다』번역 초고를 작업하면서 접한 인터뷰 자료에서 유추해보자면, 개인사가 몇 년 동안 힘들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교제한 연인과 결별한 뒤 추간판탈출증으로 인한 허리 통증, 부분적 마비 증상 등 건강 문제가 있었고요. 이번 책의 마지막 단편 「바람둥이의 사랑 지침서」의 소재가 된 듯한 일련의 사건들을 실제 겪은 것으로 보아, 작품 속 유니오르의 표현을 빌리자면, 오랜 연인을 잃은 원년부터 5년에 이르는 ‘사랑의 반감기’가 주노 디아스의 작품 활동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오스카 와오』의 헌사와 오스카 가족의 성(姓)을 기억하는 독자라면 그 반감기가 개인에게는 진정 핵폭탄급 영향이었을 거라 쉽게 짐작이 될 것입니다.

 

질문 때문에 몇 년 만에 주노 디아스에게 연락을 했을 때 “지난 몇 년이 네게 친절했기를 바란다”는 인사말을 제게 건넸어요. 그 인터뷰를 읽은 뒤라 그랬는지, 그의 인사가 “내게는 친절하지 않았지만”처럼 들렸던 기억이 나네요. 

 

『이렇게 그녀를 잃었다』에서 가장 인상적인 인물은 누구였나요?

 

단연 『오스카 와오의 짧고 놀라운 삶』을 사랑한 분들이겠지요. 장편의 함축적인 서사와는 다르지만 『오스카 와오』에서 화자일 뿐 주인공이 아니었던 유니오르와 주변 인물들의 더 많은 이야기를 만날 수 있으니까요. 이번 책의 ‘옮긴이의 말’에도 드러나듯, 개인적으로 제일 좋았던 작품은 「오트라비다 오트라베스」였어요. 지극히 현실적이고 냉정하다시피 한 라몬(유니오르의 아버지)과 야스민의 관계를 현란한 수사 없이 담담하게 풀어낸 이야기가 한 편의 시처럼 읽힙니다.

 

라몬과 야스민은 절절하고 열정적인 커플이 아니에요. 그들은 추운 아파트에서, 얼음장 같은 침대 시트 속에서, 방금 추위에서 떨다 온 상대방의 차가운 몸을 덥혀주지도 않고, 야스민은 연인의 옷을 병원 환자들의 피고름이 묻은 환자복과 함께 세탁하는, 어찌 보면 피도 눈물도 없는 여자입니다. 그러면서, 며칠 동안 그의 작업복에서는 내 일터의 냄새가 날 테지만 ‘빵은 피보다 진하다’고,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는 그들의 사랑법에 대해 말합니다. 사랑은 ‘악마도 엉덩이를 걷어차이는’ 미국에서 그들이 생존하기 위한 방법이겠지만 마음을 주는 정도마저 생존을 염두에 두고 있어요. 야스민은 언제라도 가족에게 돌아가버릴 수 있는 남자에게 너무 마음을 뺏겨서는 안 되었을 테지요. 라몬은 지붕 골조에서 떨어지는 사고를 당한 동료 얘기를 하면서, 야스민에게 자신이 같은 일을 겪는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그녀를 떠봅니다. 라몬이 가족에게 돌아가기로 결심한 것도 이런 맥락이 아니었을까 짐작해본 적이 있어요. 이들은 상대방을 너무 헌신적으로 사랑하지 않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임으로써 자신을 지키려는 게 아니었을까요.

 

장면을 꼽아주신다면요?

 

개인적으로는 유머를 잃지 않고 있는 그대로 ‘제3세계스러움’을 묘사한 장면들을 좋아합니다. 불치병에 걸려 죽어가는 라파의 ‘시민권자 정자’로 임신해 팔자를 고쳐보려 한, 눈치 없고 무식한 여자 푸라를 미우나 밉지 않게 그린 장면, 「바람둥이의 사랑 지침서」에서 미국에서 온 손님에게 어떻게 해서든 ‘프리마(여자 사촌)’를 붙여주려 하면서 손님이 조금이라도 생활고를 해결해주고 가기를 바라는 시골의 모습이 카리브 지역의 정확한 현주소가 아닌가 합니다. 다른 온라인 매체에 연재중인 ‘도미니카공화국 여행기’에도 이 장면들을 인용하고 싶었는데요, 몇 문장만 따로 선택할 수가 없을 정도로, 개인적으로는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었어요. 불쾌한 사건을 유쾌하게 서술하는 작가의 문체를 여실히 드러내는 장면들이지요. 가난하지만 나름대로 기지를 발휘하고, 문제가 있어도 크게 문제 삼지 않으면서 살아내는 모국에 대한 비판과 애정을 동시에 엿볼 수 있지요.

 

『이렇게 그녀를 잃었다』를 번역하시면서 소설의 배경이자 작가의 고향인 도미니카 공화국을 직접 여행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계기로 여행을 가시게 된 것인지 궁금합니다. 

 

빌 브라이슨의 여행기를 작업하면서 작업한 작품의 배경이 된 곳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어요. 특히 미국은 캐나다에 사는 저로서는 비교적 가기 쉬운 곳이니까요. 그러다가 몇 년 전에 일 때문에 멕시코에 가게 되었는데, 스페인 건물 양식의 안뜰이나 물 길어 붓는 항아리 등, 다니다 눈에 띄는 사물을 보면서 당시 작업 중이었던 산드라 시스네로스의 『Caramelo』에 대입해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그때도 혹시 나중에 도움이 될지 몰라서 정확히 작품의 배경인 오아하카 같은 곳은 아니었지만 사진을 찍어두기도 했어요.

 

도미니카공화국 여행은 우연히 출간 일정과 맞아떨어졌어요. 작년 여름에 쿠바에 처음으로 갔다가 그 여행기를 페이스북에 잠깐 남겼는데, 오랫동안 연락이 안 되던 지인이 그걸 보고는 다음에 꼭 도미니카에도 놀러오라고 해서 비행기 표를 끊어 크리스마스 휴가 때 다녀왔고, 여행지에서 짬짬이 역자 후기 초고를 썼어요. 어쩐지 거기서 써야 더 의미가 있을 것 같아 돌아오기 전날, 섣달그믐 밤에 초고를 썼지요.

 

물론 가족 여행이었고 지인들도 있어서 제가 원하는 만큼 디아스 작품 배경지의 답사 기행처럼 할 수는 없었지만, 눈에 띄는 모든 것이 예사롭지 않게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더라고요. 위에 말씀드린 도미니카 식 사랑을 이해하고픈 고민도 줄곧 있었고요.  

 

『올리브 키터리지』,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유럽산책』 등 다수의 작품 번역을 하셨습니다. 경험해보지 않았지만 소설을 번역하는 작업은 고충이 많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번역하시면서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인가요?
 
‘고충’이라고 할 만한 것은 사실 번역 외적인 문제들이에요. 가령 송고한 원고가 출판사 사정으로 몇 년이고 출간이 안 된다든지, 역자 교정을 하면서 편집부와 의견 조율이 어렵다든지. 하지만 이런 고충은 제가 제어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고, 질문하신 의도는 번역의 애로를 가리키시는 듯하네요. 사실 번역에 ‘대한’ 얘기는 잘 안 하는 편이에요. 

 

그래도 좀 궁금합니다(웃음).

 

『올리브 키터리지』는 사실 작업의 난이도로 따진다면 무난한 편이었어요. 3인칭 시점이고, 작가의 의도를 염두에 두고 심리 묘사만 잘 따라가면 되었으니 문학적인 표현만 고민하면 되었지요. 많은 사람들이 문체를 살리는 게 어려울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건 외려 쉬운 편이에요. 요즘 탱고가 다시 주목 받고 있으니 탱고를 비유로 들자면, 영화 <여인의 향기>에서 알 파치노가 탱고를 추듯, 원작이 ‘땡길’ 때 끌려가주고, 놓아줄 때 힘을 빼면 된다고 할까요? 예를 들어, 「알마」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19금 욕설이 난무하는 장면이 있는데, 수위야 원작에 맞추면 되지만 단어를 모두 하이픈(-)으로 연결한 수식어구를 어떻게 해야 비슷한 효과를 줄까 고민하다가 띄어쓰기를 없애는 방법을 택했지요.

 

특히 고민이 되는 부분이 있나요?

 

‘시제’예요. 영어인 경우에는 언어의 특성상 과거의 일을 현재로 기술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스페인어였다면 분명 과거형으로 쓰였을 문장이 영어에서는 현재형으로 쓰이는 거지요. 그런데 화자의 시점이 현재이면서 먼 과거의 얘기를 하는 게 분명하며, 또 현재의 상황에 대한 진짜 ‘현재 시제’의 서술도 뒤에 나온다면, 과거의 시점을 현재형으로 쓴 것은 우리말에서는 과거형 어미로 쓰는 게 맞지요. 그러나 원작과 ‘가깝게’ 하는 것이 늘 가장 안전하므로 편집부에서는 ‘같은 시제’를 쓰고자 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말은 시제가 서양어와 일대일 대응이 가능할 정도로 세분화된 게 아니에요. 구두점도 마찬가지지요. 우리말과 서양어의 구두점 쓰임새가 다른데 똑같이 가져가려고 하면 외려 독이 된다고 봅니다. 편집부와 이런 의견 차가 있을 때 ‘고충’이 발생하지요.

 

시제 선택 외의 어려움은 없나요?

 

비슷한 맥락에서, ‘2인칭 주어’일 때도 상당히 고민되지요. 가령 『오스카 와오』에서 롤라가 화자로 등장하여 ‘you’를 주어로 쓴 부분이 있었는데, 그 ‘you’가 롤라 자신이므로 실은 내용상 일인칭이거든요. 아시다시피 우리말은 어미가 발달한 언어이므로 가령 편지글처럼 직접 누군가에게 말을 건넬 때는 ‘~어/~지’를 쓸 테지만 이 경우에는 (1) 편지글이 아니라고 작가가 확인을 해주기도 했고, (2) 내용상 혼잣말과 마찬가지였으며, (3) 일반 주어 대신 ‘you’를 쓰는 것은 영어에서 너무나 보편적인 화법이고, (4) 결정적으로 ‘~어/~지’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 문장들이 몇몇 있었기 때문에 결국은 일인칭을 택했어요.『드라운』에서도 「브라운 걸, 블랙걸, 화이트걸, 하피와 사귀는 방법」에서 2인칭 주어가 나왔는데, 이 경우에는 십대 소년이 여자를 사귀는 법에 대해 (자랑하듯) 말하는 것이라 거의 대화체처럼 완전히 입말체로 썼어요. 『이렇게 그녀를 잃었다』의 「미스 로라」 같은 경우에는 성인이 된 후에 과거를 돌아보는, 서정적이고 다소 성찰적인 문체이므로 의미상 ‘나’를 뜻하지만 ‘너’를 주어로 쓰되 어미는 ‘~다’로 선택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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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 권상미

 

 

토니 모리슨, 조이스 캐롤 오츠의 작품, 번역하고 싶다

 

『이렇게 그녀를 잃었다』의 언론 서평에서 “거리의 지혜가 돋보이는 리드미컬하고 유희적인 언어를 한국어로 제대로 바꿔낸 이 소설의 번역가는 상찬을 받아 마땅하다”라는 언급이 있었습니다. 고충도 있겠지만 보람과 기쁨이 없다면 지속할 수 없는 작업이실 텐데요. 이제까지 번역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작품이나 크게 보람을 느낀 적이 있으셨다면 들려주세요.

 

물론, 모든 단어를 의심해야 했던 『오스카 와오』작업이 가장 힘들었기 때문에 애착이 갑니다. 이 작품은 한국어판뿐 아니라 다른 언어도 역주가 백 몇 개씩 달려있는 걸 봤으니 아마 그 역자들도 같은 심정이었으리라 짐작이 되네요. 역자를 언급하지 않고 작품에 반해서 열변을 토하는 독자 리뷰를 접할 때, 역자의 존재를 잊을 정도로 오롯이 몰입할 수 있었다는 뜻인 것 같아 내심 흐뭇해하지요. 위와 같은 언론사 리뷰에 기운이 솟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고요. 아, 인세로 작업한 책이 잊을 만하면 인세가 들어올 때도 꾸준히 사랑 받고 있구나, 싶어 뿌듯하지요. 한국에 살고 있지 않아 그런지, 안타깝게도 이 이상으로 썩 재미있는 에피소드는 없네요.

 

번역가의 책 고르는 법이 궁금합니다. 눈길이 가는 책, 우연히 서점에서 집어 들게 되는 책은 어떤 책들이신가요? 공통점이 있을까요?

 

제가 한국에 사는 것이 아니라 좀 특수할 텐데요, 한국에 살았다면 팟캐스트에서 소개되는 책들을 많이 사게 될 것 같아요. 사람들은 책을 읽고 마음에 들면 나누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팟캐스트는 아마도 북클럽의 한 형태가 아닐까 싶어요. 얼마 전에도 조이스 캐롤 오츠의 책을 e-book으로 사려다 결제가 복잡해서 포기했는데, 독자로서 문학 작품만큼은 한글로 된 것을 읽고 싶거든요. 

 

캐나다에 살면서 책은 도서관을 더 많이 이용하고요, 제가 서점에서 사게 되는 책은 현재의 관심사에 따라 달라요. 김영하 작가의 책을 우리말로 구하기가 어려워 못 읽고 있다가 영어판으로 나온 걸 보고 산 적도 있고, 도미니카에 여행 가서는 기념품 대신 도미니카 출신 작가 훌리아 알바레스의 기행 에세이 『A Wedding in Haiti: The Story of a Friendship』이라는 책을 샀어요. 쿠바와 도미니카의 비슷한 듯하면서도 큰 차이를 확인하고 요즘은 카리브와 제3세계, 개발, 이런 문제에 관심이 많거든요. 그림이 예쁜 책을 보면 소장하고 싶어서 사기도 하고, 한마디로 책을 고르는 기준은 그때그때 즉흥적이에요.

 

번역가로서, 번역하고 싶은 책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면 어떤 책들을 번역하고 싶으신지요?

 

번역하고 싶은 책은 물론 제가 좋아하는 책이겠지요. 많은 문학 작품이 그러하듯이, 역사가 개인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엿볼 수 있는, 서사가 뛰어나고 수사가 적은 작품을 좋아해요. (어떤 번역가께서 복식에 대한 묘사가 싫다고 하셨던 생각이 나네요.) 그러니 판타지 팬은 아니겠네요. 위에서 잠깐 언급했던 고전 번역 작업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는 한마디로 말하면 ‘김이 새서’예요. 실수를 피해 가기 위해서는 기존 번역 작품을 참고해야겠고, 또 그러면서도 기존 작품에서 사용하지 않은 표현을 골라 써야겠고, 그러다 보면 김이 다 새버리죠. 좀더 진득해야 할 텐데, 아직 하산하려면 멀었나 봐요.

 

작가를 굳이 언급하자면 토니 모리슨, 조이스 캐롤 오츠, 마거릿 애트우드의 작품에 관심이 있고, 언제나 치밀한 전개로 철학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이언 매큐언의 작품도 기회가 된다면 다시 작업해보고 싶어요. 스페인어권 작가로는 이사벨 아옌데의 스토리텔링을 좋아해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직업 선택의 자유가 주어진다면, 번역가 외에 어떤 일을 하고 선택하고 싶으신지요?

 

상상력이 풍부했다면, 이야기를 지어낼 수 있었다면, 드라마 작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해요. 번역가처럼 혼자 일하는 직업 말고, 밴드나 연극처럼, 여러 사람이 무언가를 함께 만들어가고 대중과 직접 상호작용 하는 일이라면 보람도 더 클 것 같아요. 현실적으로는 지금으로서는 출판 번역이 아닌 다른 일을 더 많이 하는데, 재미있어요. 새로운 분야를 접할 때마다 세상에 내가 잘 모르는 분야가 이렇게 많구나, 하면서 새로이 배우는 걸 좋아하거든요.

 

책을 좋아하고, 번역에 관심이 많은 독자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정확한 표현은 기억나지 않지만 어떤 번역가께서 돈은 다른 데서 벌고 책은 좋아서 한다고 하셨던가요? ‘알파고’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는 요즘 같은 변화의 시대에 출판, 문학 번역이 쉽게 동기부여가 되는 분야는 아니지요. 하지만 모든 콘텐츠의 기본은 ‘텍스트’이니, 누군가와 무엇을 만들어가는 창의적인 활동으로서(위에서 말한 ‘좋아서 하는 일’에 해당하겠지요) 한동안은, 번역가들이 문학 번역하는 알파고로 대체되기까지는 저도 어떤 식으로든 이 일을 계속하겠지요. 모두가 힘들다는 때에 묵묵히 자리를 지키며 열심히 책을 쓰고 만들고 팔고 또 읽는 모든 분들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냅니다.

 

『이렇게 그녀를 잃었다』를 특히 추천해주고 싶은 독자 대상이 있으실까요?

 

번역 작업하면서 특히 역자 후기를 써야 하니 내내 고민되었던 지점이 (소설의 주된 독자층으로 알려진) 여성 독자들의 ‘공감’이었어요. 고결한 사랑이라는 통념을 비웃듯, 즉흥적이고 본능에 충실한 사랑을 비속어 충만한 문장으로 전달해야 했고, 저 자신도 그들의 사랑법을 이해하기 어려웠으니까요. 그런 고민이 아직 해소되지 않은 채 도미니카공화국으로 여행을 떠났는데, 문득 작품에서 이야기하고자 한 것은 바람기를 주체할 수 없는 유니오르(어쩌면 남성 일반)가 아니라 상대방 여성들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교사, 간호사, 착하고 참한 여성, 유니오르 못지않게 리비도가 강한 여자, 유니오르보다 더 똑똑한 하버드 여대생, 다른 인종간의 사랑을 믿지 않는 듯한 유니오르가 자꾸만 밀쳐내는데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백인 여자, 그리고 필생의 사랑 엑스. 이 넓은 스펙트럼의 여자들이 모두 나쁜 남자와 언제라도 사랑에 빠질 수 있는 걸까요? 독자께서는 어떤 여성에 해당하시는지 궁금해지네요. (저는 야스민에 가까운 듯.)

동물적인 면모와는 달리 의외로 부적절한 관계에 대해 수치심을 느끼고 상실의 고통에 몸부림치는 남자들의 사랑이란, 인생을 꽤 살았다 싶은데도 저 자신 새로이 알게 되었던 일면이었어요. (남자들은 정말 그런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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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그녀를 잃었다주노 디아스 저/권상미 역 | 문학동네
『이렇게 그녀를 잃었다』는 전작 『드라운』에도 등장했던 주노 디아스의 소설적 자아 유니오르와 그 주변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펼쳐지는 ‘사랑’에 관한 9편의 옴니버스 단편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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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정 “500만원으로도 결혼식 준비, 충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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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몰웨딩 붐’이 일고 있다고들 한다. 한편에서는 원빈과 이나영, 조정치와 정인 등 유명인들의 사례가 이 같은 ‘유행’을 부추겼다고 진단한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 ‘작은 결혼식의 꿈’은 훨씬 더 오래 전부터 시작됐다. 결혼식이 서로의 친분을 확인하는 장이 된 순간부터, 축의금이 품앗이로 치부되기 시작한 시기부터, 신랑 신부가 꿈꿔왔던 결혼식은 예식장 밖으로 밀려났다. 과장을 조금 보태서 이야기하자면, 이제 결혼을 앞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작은 결혼식을 떠올린다. 두 사람의 추억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과 모여서, 하나가 될 미래를 그려보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작은 결혼식의 주인공이 되기란 결코 쉽지 않다. 누군가는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히고, 누군가는 비용의 벽에 가로막힌다. ‘결혼식은 부모님을 위한 행사더라’, ‘작은 결혼식이 비용은 더 많이 든다’는 이야기가 심심찮게 들려오는 이유다. 그렇다고 일찌감치 포기하자니, 신랑 신부 입장에서는 지울 수 없는 아쉬움이 남는다. 시간에 쫓기며 예식 홀을 비워줘야 하고, 하객의 절반은 얼굴도 잘 알지 못하는 부모님의 지인으로 채워지며, 일부 사람들은 축의금을 내자마자 식사만 하고 떠나는 공간에서, 일생에 한 번뿐인 소중한 시간을 보낸다니. 못내 억울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모두가 만족할 만한 결혼식이란 환상에 불과한 걸까.

 

『나의 작은 결혼식』은 그 꿈이 현실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저자인 칼럼니스트 김민정은 지난 해 6월에 ‘나다운 결혼식, 나만의 결혼식’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신랑 신부의 가족과 친척들, 가까운 친구들과 함께 레스토랑에 모여 그야말로 ‘작은 결혼식’을 치렀다. 500만원이라는 많지 않은 예산으로 모든 준비를 마쳤고, 셀프 웨딩 촬영부터 뉴욕으로 떠난 신혼여행까지 1000만원 안에서 전부 해결했다. 어떻게 가능했던 걸까? 『나의 작은 결혼식』안에 해답이 있다. ‘작지만 로맨틱한 스몰웨딩’을 만들기 위해 그녀가 활용한 모든 정보와 팁들을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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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은 비용과 규모는 ‘작은 결혼식’의 목적이 아니다

 

‘작은 결혼식’을 꿈꿨지만 부모님을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고 이야기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작가님께서는 어떻게 부모님을 설득하셨나요?

 

예전부터 작은 결혼식을 하고 싶었고, 저희 결혼식을 그렇게 해보자고 생각했을 때는 어려운 게 없을 줄 알았어요. 양가 부모님 모두 그다지 보수적인 분들이 아니시거든요. 그래서 저희 의견을 말씀 드렸을 때도 ‘너희 뜻대로 해라’라고 하셔서 생각보다 쉽게 넘어갔어요. 그런데 결혼식의 규모가 작으니까, 하객을 초대하는 부분에서 문제가 생겼죠. 그때 신랑이 서너 번에 걸쳐서 저희 부모님을 뵙고 말씀을 드렸어요. 신랑은 제주도 토박이인데, 제주에서는 관례적으로 육지에서 결혼을 하면 제주에서 피로연을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어머님 아버님께서도 그렇게 하시면 어떠시겠냐고 말씀을 드렸는데, 저희는 피로연을 따로 하지 않고 식사 대접을 하는 걸로 조율을 했어요. 답이 정해져 있는 건 아니겠죠. 그런데 신랑 신부가 행복한 결혼식을 하겠다고 하면 부모님께서도 반대만 하시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반대하시는 이유가 있을 거예요. 그 부분에 대해서 열린 대화를 많이 하다 보면 될 것 같아요.

 

예식 이후에 따로 식사 대접을 해야 한다면 ‘역시 작은 결혼식이 비용은 더 너무 많이 든다’는 이야기도 나올 것 같은데요. 경험해 보니 어떠셨나요?

 

작은 결혼식이라고 하면 ‘비용이 적은 결혼식’, ‘소규모 예식’이라고 많이 생각하시는데요. 저는 작은 결혼식의 가장 중요한 의미는 두 사람인 것 같아요. ‘둘만의 결혼식, 두 사람다운 결혼식’이 작은 결혼식의 출발인 것 같거든요. 비용이나 규모가 작다는 건 조건이 될 수 있을지언정 목적은 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사실 시장의 원리가 그렇잖아요. 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보면 그걸 이용해서 돈을 벌려는 활동도 발전할 수밖에 없죠. 저도 ‘셀프 웨딩, 스몰 웨딩을 하는 데 더 많은 비용이 든다’는 기사를 많이 봤어요. 그런데 작은 결혼식은 비용에서 출발하는 게 아닌 것 같아요. 두 사람이 만들고 싶은 결혼식의 콘셉트에 따라서 얼마든지 조율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고요. 비용적인 부분에 얽매여서 작은 결혼식을 포기하는 건 조금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남들 다 하는 결혼식은 싫다”는 생각에 ‘작은 결혼식’을 준비하게 됐다고 하셨는데요. 어떤 부분이 싫으셨던 건가요?

 

결혼 적령기가 되면 결혼식장에 많이 가게 되잖아요. 그런데 친구를 축하해 주러 가도 친구랑 눈 맞출 수 있는 시간이 별로 없고, 하객들이 겹치니까 식사도 빨리 먹고 일어서야 되잖아요. 그런 걸 경험하면서 ‘과연 이렇게 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싶었어요. 한 번은 제가 신부 들러리를 했었는데, 식장 안에서는 주례가 계속 이어지고 있는데 밖에서는 이미 다른 신랑 신부가 입장하려고 대기하고 있더라고요. 그렇게 찍어내는 듯한 결혼식이 과연 맞는 걸까, 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작은 결혼식을 하기로 마음먹었어요. 사실 비용적인 부분도 무시할 수 없었고요.

 

비용으로 따지자면 일반 결혼식장에서 진행하는 게 가장 저렴하지 않나요?

 

일반 결혼식장에서 예식을 하는 비용은 최저 금액, 최고 금액이 어느 정도 나와 있잖아요. 예식장 서너 곳만 둘러봐도 대략 알 수 있죠. 그런데 작은 결혼식은 얼마든지 조율이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원빈과 이나영은 결혼식 비용이 110만원이었다고 하잖아요. 저희는 1000만원 중에서 500만원은 신혼여행에 썼기 때문에, 결혼식에는 500만원만 들었어요.

 

‘남들과 다른 결혼식’을 하겠다고 하면 ‘유별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까 봐 걱정이 되기도 할 것 같아요.

 

저희 시댁 어르신들이나 친정의 친척 분들은 이렇게 결혼식을 하신 분들이 아니세요. 평범한 결혼식을 하셨던 분들이에요. 그래서 처음에는 ‘참 유별나게 한다’ 하셨던 분들이 계셨는데, 직접 결혼식에 오셔서 보시고는 다들 좋다고 하시더라고요. 사진도 찍어 가시고요. 그래서 약간 희망을 본 것 같기도 해요.

 

작가님께서도 결혼을 준비하시면서 많은 우려와 만류의 이야기를 들으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럴 때 어떻게 대처하셨어요?

 

일단 부모님을 설득하는 데 있어서는, 비용 부분에서 도움을 받지 않아야 주장을 펼 수 있고요. ‘유별나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별로 응수를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내 결혼식이잖아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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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토랑 예식, 새로 문을 연 가게를 공략하라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우리가 잘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는 점”이라고 하셨어요. 그런 경험이 『나의 작은 결혼식』을 쓰게 된 계기가 되었나요?

 

결혼 준비하는 데 들였던 시간 중에 90% 정도는 자료를 찾는 데 썼던 것 같아요. 그런 이야기도 들었어요. ‘너는 프리랜서니까 할 수 있지, 직장에 다니는 사람들은 어떻게 할 수 있겠니’라고요. 그런데 제가 결혼 준비를 한 달 동안 했거든요. 약간 벼락치기라고 할까요(웃음). 한 달이니까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제가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자료를 찾는 데 투자했으니까, 그 내용들을 집약해 놓으면 그만큼의 시간은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 이 책을 쓰게 됐어요.

 

작가님께서 프리랜서가 아니라 직장인이었다고 하더라도 ‘작은 결혼식’이 가능했을까요?

 

그래도 작은 결혼식을 했을 것 같기는 해요. 물론 제가 했던 것처럼 그대로 이루어졌을지는 미지수이지만, 했을 것 같기는 해요. 저도 인터넷에 존재하는 정보들을 찾아서 했던 거잖아요. 최선을 다해서 찾은 만큼 결과물이 나온 것처럼, 직장인이었다고 해도 다르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열심히 찾은 만큼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최근에는 ‘작은 결혼식’을 컨설팅 해주는 업체들도 많으니까, 잘 이용하면 직장인에게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죠?

 

‘스몰웨딩’도 좋지만, 저는 ‘셀프 스몰 웨딩’을 조금 더 강조하는데요.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하지는 못하더라도 일부만이라도 셀프로 해보는 게 어떨까 생각해요. 작은 결혼식을 해서 가장 좋았던 건 제가 꾸민 식장에서 결혼한다는 거였거든요. 일생에 결혼을 두 번 할 거라고 예정하지 않는 한, 한 번밖에 없는 결혼식이잖아요. 그 소중한 날을 위해서 나의 소중한 사람들이 같이 도와주고, 그렇게 해서 레스토랑이 조금씩 식장이 되어 가는 과정이 너무 감사하고 벅차더라고요. 그 날 밤을 새서 준비하느라 다음날인 결혼식 당일에 엄청 붓기는 했지만(웃음) 정말 행복했어요. 꼭 시간이 많아야만 작은 결혼식을 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결혼식은 걷어낼수록 풍성해진다. 그러고 나면 진짜 봐야 할 것들이 보인다”고 하셨습니다. 걷어내야 할 것들의 우선수위를 정한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결혼의 의미를 먼저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아요. ‘내가 왜 이 결혼식을 하는가’를 생각해 보면, 다 걷어내야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돈 문제도 마찬가지이고요. 결혼이 시작이지 끝이 아닌데, 결혼식에 돈을 굉장히 많이 써버리고 그 대출금을 갚는 신혼 생활을 하는 경우도 있잖아요. 과연 그게 신랑 신부가 행복한 결혼식인지 의문이 들죠. 그리고 하객의 입장에서도, 정말 친한 친구면 마음을 담아서 가지만, 건너 건너 아는 사람의 결혼식이라면 안 가기도 뭐하고 서로가 부담스럽잖아요. 그런 것도 걷어내야죠.

 

레스토랑 예식을 준비하는 분들은 우선적으로 예식을 진행한 적이 있는 장소들을 물색하잖아요. 그런데 작가님께서는 신장 개업한 가게를 공략하셨더라고요.

 

처음에는 알고 있는 곳들에 연락을 했어요. 그런데 스몰웨딩이 트렌드가 되니까 200만원하는 생화 장식을 필수로 해야 된다거나, 1인당 85000원하는 코스요리부터 주문이 가능하다거나, 그런 조건들이 필수로 되어 있는 데가 많더라고요. 그래서 차라리 입 소문이 필요한 곳, 신장 개업한 곳을 공략해보자고 생각하고, 그런 곳 위주로 찾았어요. 가게 주인의 입장에서는 한 번에 많은 손님들에게 모든 음식을 내어보고 싶은 마음이 있잖아요. 아무래도 많은 사람들이 오다 보면 입 소문이 나기도 하고요. 저희가 결혼식을 치렀던 레스토랑에서도 저희 예식 사진을 찍어서 (인터넷에) 올리기도 하신 것 같아요.

 

책에서 소개하신 스몰웨딩 장소가 굉장히 다양합니다. 레스토랑, 펜션뿐만 아니라 시골집, 영화관, 놀이터, 공공기관도 포함되어 있어요. 가장 생소한 건 ‘수목 예식’입니다.

 

‘수목 예식’은 수목원에서 이루어지기도 하고요. 산에 올라가서 나무 앞에서 맹세하는 경우도 있어요. 제주도에서는 ‘비자림’이라는 숲길에서 나무 테이블 하나 놓고 식구들 앞에서 서약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 중에서 가장 추천하는 장소가 있다면 역시 레스토랑인가요?

 

예산이나 콘셉트에 따라서 다를 것 같아요. 작은 결혼식 하는 데 가장 중요한 건 콘셉트인 것 같거든요. 저희가 처음 했던 생각은 레스토랑에서 결혼식을 하겠다는 게 아니었어요. 가족식을 하고 싶다는 거였죠. ‘가족식을 할 것이고 예산은 500만원이다’ 이렇게 정하고 나니까 레스토랑이 제일 괜찮은 장소였어요. 그러니까 장소보다는 콘셉트를 결정하는 게 먼저인 것 같아요. 두 사람이 대화를 통해서 어떤 걸 하고 싶은지 정하고, 장소가 결정됐으면 콘셉트에 맞춰서 어디를 집중적으로 꾸밀 것인지도 선택해야 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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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프 웨딩 촬영, ‘마법의 시간’은 일몰 전후!

 

셀프 웨딩 촬영도 하셨잖아요. 이때 가장 중요한 것으로 ‘샘플 사진’을 꼽으셨어요.

 

그 생각을 하게 된 건 청첩장을 받고 나서부터였어요. 고등학교 동창과 직장 동료에게 온라인 청첩장을 받았는데, 사진이 똑같은 게 왔더라고요. 알고 보니까 같은 스튜디오에서 촬영을 했던 거예요. 저는 저만의 사진을 찍고 싶었어요. 그런데 제가 카메라랑 별로 친하지 않거든요(웃음). 그래서 ‘차라리 따라 하자, 따라 할 수는 있겠다’ 싶었던 거예요. 셀프 웨딩 촬영을 할 때는 포즈를 잡아주는 사람이 따로 없으니까 인터넷에서 샘플 사진을 찾아봤던 거고요.

 

부모님의 웨딩 사진을 들고 촬영하기도 하셨는데, 정말 탁월한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혼식 때 많은 분들이 감동하셨을 것 같아요.

 

어르신들이 좋아하셨어요. 샘플 사진을 찾다가 본인들의 어린 시절 사진을 들고 있는 사진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은 건데요. 사실 부모님께 계속 죄송한 마음이 없지는 않았거든요. 많이 이해해 주신 거잖아요. 그래서 저희 어릴 적 사진보다는 부모님의 사진을 들고 촬영하자고 생각했고요. 친척 어른 분들이 포토 테이블에서 아시는 얼굴을 보시면 가깝게 느끼실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정말로 어르신들의 반응이 좋더라고요. 저희끼리 찍은 사진은 ‘아, 예쁘네’ 하고 지나가시는데, 그 사진은 한참 보시더라고요.

 

소규모로 가족, 친지, 친구 분들만 모여서 치르는 예식인 만큼, 모든 세대가 같이 즐길 수 있는 시간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겠네요.

 

그래서 네임 카드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거였어요. 신랑 측 신부 측 하객들이 나누어 앉을 수밖에 없는데, 하객 분들은 누가 누구인지 모르시잖아요. 저희가 일일이 가서 소개해 드리기도 힘들고요. 그래서 ‘신랑의 고모’, ‘신부의 이모’ 이런 식으로 네임 카드를 만들었어요. 그랬더니 지나가시다가도 인사를 나누시더라고요. 식순 안에 어른들과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오락 시간 같은 걸 넣을까 생각하기도 했는데요. 하객 분들의 연령대가 다양한데 자칫하면 분위기만 어색해질 수 있을 것 같아서 뺐어요.

 

셀프 웨딩 촬영에는 ‘마법의 시간’이 있다고 하셨어요. 일몰 전후에 촬영을 하는 게 좋다고요.

 

사실 부부가 사진작가이거나 스타일리스트가 아닌 이상은 사진 콘셉트를 잡는 게 어렵잖아요. 그러니까 ‘전문적으로 잘 나온 사진을 찍기보다 감성에 기대보자’라고 했을 때, 일몰 전후에 촬영을 하면 좋은 점이 있다는 거예요. 빛이 쨍하지 않으니까 낭만적이고 로맨틱한 분위기를 만들어주니까요. 특히 바닷가 같은 자연을 배경으로 했을 때는 더 좋아요.

 

“타인의 시선까지 기꺼이 즐기는 마음”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하셨습니다. 촬영을 하는 동안 오고 가는 사람들이 흥미롭게 쳐다볼 텐데, 그 어색함을 견디지 못하면 사진이 결코 잘 나올 수 없겠죠.

 

촬영 하시다 보면 (사람들의 시선이) 엄청 신경 쓰이실 거예요(웃음). 저희는 일단 촬영계획표가 도움이 됐어요. 계획표에 따라서 한 장소에서 빨리 찍고 이동을 해야 하니까, 주위 사람들을 눈 여겨 볼 생각은 별로 하지 않았어요. 저희가 촬영을 할 때는 5월이라 정말 사람이 많았거든요. 저희 모습을 사진으로 찍으시는 분들도 계셨고요. 그래서 굉장히 어색했는데 그것도 익숙해지더라고요. 그러다가 뉴욕으로 신혼여행을 가서 웨딩 사진을 찍는 커플을 봤는데, 지나가는 사람들이 ‘저 사람들 뭐야?’ 하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게 아니더라고요. 바라보는 시선이 너무 아름답고 즐거워 보였어요. 그 에너지가 저한테도 전달이 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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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첩장과 방명록은 ‘엽서’로 바꿔보세요

 

『나의 작은 결혼식』을 보면서 몇 가지 ‘훔치고 싶은 아이디어’가 있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청첩엽서’였어요. 신랑 신부의 사진을 담아서 엽서 형태로 청첩장을 만드신 건데요. 어떻게 이런 청첩장을 만들 생각을 하셨어요?

 

언제부터라는 게 없이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조금 더 비용도 절약할 수 있으면서 우리들을 노출시킬 수 있고,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으면서 그다지 화려하지 않은 걸 바랐어요. 저희 결혼식 콘셉트가 심플이었거든요, 정말 단순하게 하는 거니까 청첩장을 화려하게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죠. 가지고 있는 자료를 최대한 활용하려다 보니까 저희 사진을 가지고 제작을 했던 거예요.

 

결혼식장의 사진 현수막을 캔버스 액자에 담으신 것도 기발한 아이디어 같습니다. 현수막을 제작하실 때부터 액자로 만들 계획이셨어요?

 

네, 어차피 큰 사진을 또 뽑아야 되잖아요. 보통 스튜디오 촬영을 하면 패키지에 포함되어 있는데, 셀프 촬영은 그렇지 않으니까 새로 주문을 해야 하죠. 그때 마침 캔버스에 관심이 있던 차였어요. 요즘 명화를 따라서 그리는 캔버스도 많이 판매되고 있잖아요. 거기에 현수막을 입히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던 거예요.

 

현수막에 인화된 사진은 일반 사진보다 선명도가 떨어지지 않나요?

 

그걸 더 노렸어요. 저희는 다 셀프 촬영이니까, 너무 쨍하게 나온 사진이 아니었고, 부족해서 더 풋풋한 느낌이었거든요. 그래서 사진도 너무 전문적인 것보다는 현수막 사진의 질감이 주는 느낌이 더 좋더라고요.

 

방명록 대신 하객 테이블마다 작은 엽서를 놓아두셨어요. 방명록을 놓았을 때보다 많은 분들이 축하 메시지를 남겨주셨을 것 같습니다.

 

거의 다 쓰셨던 것 같아요. 짧게라도.

 

엽서에 몇몇 질문들을 적어 놓으셨잖아요. 답변은 다 읽으셨나요?

 

신혼여행 떠나는 비행기에서 봤거든요. 다양한 연령대의 분들이 오시니까 안 쓰시는 분들도 계실 거고, 쓰고는 싶은데 무슨 말을 해야 될지 모르는 분들도 계실 것 같았어요. 그래서 엽서 뒷면에 질문을 써놨던 건데요. 생각보다 정말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고, 그게 참 재미있었어요.

 

또 하나 독특한 점이 “하객들의 사진으로 결혼식 추억을 남기는 일”을 계획하신 거예요. 실제로 많은 하객들이 직접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셨나요?

 

네, 받았어요. 정말 생각했던 그대로였어요. 정말 다양했어요. 초점이 저희한테 맞춰져 있지 않은 사진도 있고요(웃음). 그래서 정말 재미있었는데 그 중에 소장할 사진을 고르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으니까, 스냅 사진을 함께 촬영하길 잘했다고 생각했죠(웃음).

 

‘작은 결혼식’이 좋은 이유 중의 하나가 ‘상대방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다는 점’이라고 하셨잖아요. 결혼 준비하시면서 남편 분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되신 부분이 있었나요?

 

저희는 연애도 짧게 했고, 친구들 말에 의하면 가장 뜨거울 때 결혼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하는데, 싸우지를 않았었어요. 그런데 결혼식을 준비하면서 많이 싸웠죠. 신랑도 주변에서 ‘다른 사람들이 다 하는 대로 (결혼식을) 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나 봐요. 그렇게 생각이 돼도 제 친구들은 말을 아끼는 편인데, 남자들은 더 편하게 이야기를 하나 봐요. 그래서 연애할 때는 발생하지 않았던 문제들이 조금 생겼었어요. 그런데 싸워보니까 저는 이 사람이 너무 좋은 거예요(웃음), 싸운다고 해도 계속 감정적으로 몰고 가지 않더라고요. 또 싸우고 나면 더 괜찮은 아이디어가 나왔고요. 오히려 결혼을 결심할 때에는 ‘이 사람일까, 아닐까’ 하는 생각을 안 했는데, 결혼 준비를 하면서 ‘이 사람이면 결혼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작은 결혼식은 그게 참 좋았던 것 같아요. 플래너든 누구든 둘 사이에 제3자가 끼어 있으면 진솔한 대화를 할 수가 없잖아요. 결정을 위한 결정만 하게 되죠. 그런데 작은 결혼식은 둘이서만 정말 많은 대화를 하게 돼요. 그러다 보니까 싸움도 나고 좋기도 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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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분께서 적으신 글도 실려 있습니다. 스몰웨딩을 하려는 예비부부, 특히 예비신랑에게 조언하고 싶은 내용을 적으셨는데요. “서로를 무조건 믿어주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예비신부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예비신랑의 결연한 의지(!)는 필수적이다”라고 쓰셨어요. 동의하시나요?

 

말씀 드린 것처럼, 사람들이 신부한테는 말을 아끼는데 신랑한테는 편하게 이야기하는 것 같아요. ‘(결혼식을) 뭘 그렇게 하느냐’ 이런 이야기들을 여과 없이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신랑도 많이 힘들었을 거예요. 그래서 더 예비신랑의 의지를 강조하더라고요.

 

작가님께서는 어떤 조언을 들려주고 싶으세요?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대화를 너무 본인 위주로 끌고 가기 보다는 같이 생각을 나누는 게 중요한 것 같고요. 나의 결혼식이기는 하지만 우리니까 할 수 있는 결혼식이잖아요. 그러니까 대화를 많이 나누고 상대의 의견을 많이 존중해 줘야죠. 대화가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결혼식 준비도 데이트처럼 즐겁게!” 하려고 떠났던 드라이브도 대화하는 데 윤활유가 되었나요?

 

네, 그러다 보면 정말 뜬금없는 이야기도 많이 나오거든요(웃음). 그게 정말 좋았던 것 같아요. 그냥 책상에 앉아서 하면 결혼식을 위한 결혼식의 구상에 들어가잖아요. 그게 아니고 놀고 즐기면서 하는 게 좋았던 것 같아요. 그게 즐거워야 작은 결혼식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 즐겁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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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은 결혼식김민정 저 | 21세기북스
얼굴 도장 찍기 바쁜, 여느 웨딩홀의 형식적인 결혼식에 염증을 느끼는 이들이라면 한 번쯤 꿈꿔보는 작은 결혼식. 저렴한 비용의 로맨틱한 스몰웨딩을 손수 꾸릴 방법은 없을까? 하나하나 내 손을 거친, 나만의 작은 결혼식이 가능한 ‘셀프 스몰웨딩 가이드북’이 드디어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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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인간의 과학 지식이 축적된다 해도 여전히 밝혀내지 못한 미지의 영역은 넓고도 깊다. 그것이 인류가 놓인 처지다.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는 것, 지난 경험에서 발견한 지식을 바탕으로 빠르게 대처하는 것뿐이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바이러스. 이제 미래는 바이러스 전쟁이라 할 만큼 바이러스로 인한 예견하지 못한 신종 전염병을 어떻게 막아내는가가 중요해졌다. 매년 뉴스를 장식하는 조류 인플루엔자와 구제역을 비롯해 신종플루, 메르스, 지카바이러스까지 한국이 경험한 신종 전염병은 현재진행형이다. 그러므로 바이러스가 무엇이고 이것에 어떻게 대응하는가를 아는 것은 더욱 중요해진다.

 

현재 농림축산검역본부에서 근무하는 최강석 연구원은 책 『바이러스 쇼크』를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바이러스를 이해하길 바랐다. 알면, 두려움은 줄어들 것이라 생각했다. 부지불식간에 바이러스를 전파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무엇보다 개인 차원에서 위생 수칙을 준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2009년 신종플루 때 워낙 호흡기 감염이 심하니까 손 씻기, 마스크 쓰기 등이 중요했어요. 그게 어느 정도 지켜지니까 많이 줄어들었고요. 그렇게 되면 신종플루만 없어지는 게 아니라 일반적으로 국내에서 도는 전염병도 같이 줄어요. 옮겨 다니는 건 뻔하니까요.”

 

콜레라, 홍역이 더 이상 무서운 얼굴의 전염병이 아니게 됐듯 새로운 바이러스가 나타나도 사회가 ‘쇼크’ 상태가 되지 않는 방법은 분명히 있다. 답은 지식이다. 이것은 모두를 위한 바이러스 입문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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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에서 오는 공포

 

지금도 구제역, 조류인플루엔자에 관한 뉴스가 눈에 띕니다. 바이러스는 늘 현재진행형인데요. 지금, 한국에서 경계해야 할 가장 위험한 바이러스는 뭔가요?

 

그 질문은 상당히 일반 독자분들이 궁금해 할 사항이에요. 어떤 질병이 들어올까, 궁금하죠. 사실 지구상에는 엄청나게 많은 종류의 바이러스들이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그 부분은 전문가조차도 답하기 쉽지가 않아요. 예를 들어볼게요. ‘메르스’를 언제 처음 들어봤나요? 2014년 전에는 들어본 적이 없죠. 2016년 ‘지카’, 그 전에 들어본 적 있어요? 없죠. 다음에 어떤 질병이 국내에 올 수 있겠지만 그게 어떤 바이러스일까요? 모른다는 거예요. 일반적으로 경계해야 할 질병을 얘기할 때 함축적인 의미가 있어요. 제2의 메르스 사태를 일으킬 바이러스를 이야기하는 거잖아요. 그건 과거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바이러스일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겁니다. 그 바이러스가 뭐냐고 물었을 때 답을 하기는 곤란하다는 거죠.

 

바이러스의 특성을 이해하면 답변이 이해가 됩니다. 워낙 종류도 많고, 아직 발견되지 않은 것도 많죠.

 

해외 여행객을 통해서 국내에 없는 질병이 자주 들어옵니다. 그렇지만 콜레라가 들어온다든지 홍역이 들어온다고 신경 쓰지 않잖아요. 알고 있는 질병이니까요. 대비책이 있고, 두려워할 이유가 없어서 그런데요. 제2의 메르스 사태가 일어난다면 그것은 여태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바이러스가 들어왔을 때 문제가 될 거예요.

 

제2의 메르스 사태를 일으킬 만한 바이러스라면 첫째, 우리가 경험하지 못할 새로운 바이러스 둘째, 그 바이러스의 특징은 사람 간 접촉을 통해 쉽게 전염될 수 있는 바이러스라고 함축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지난 3월 22일, 국내에서도 지카바이러스 확진 환자가 발생했죠. 전염 위험은 낮지만 소두증 아이 출산 등 치명적인 위험이 있어 많은 사람들에게 공포를 줬어요. 이 바이러스는 어떤가요?

 

과장된 부분이 좀 있어요. 언론을 통해 들어도 전문가들은 대개 크게 문제가 안 되는 질병이라고 얘기를 해요. 독감처럼 통증이 오는 증상이 있는데요. 그렇게 병증으로 나타날 수 있는 확률이 상당히 낮고요. 소두증도 좀 자극적이에요. 아기를 가진 산모 입장에서는 끔찍하죠. 하지만 지카바이러스에 감염돼서 소두증이 나타날 확률은 1%도 안 돼요. 연구 결과도 있어요. 극히 일부에서 그런 부분이 나타나는 건데 어쨌든 위험성은 있는 거죠. 첫 임신 3개월에 지카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소두증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고 하고요. 국내에서 지카바이러스 감염자가 3월 22일에 발생했지만 오래 못 갔어요. 이유는 뻔해요. 전염성이 없거든요. 전문가들은 별로 위험성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워낙 소두증 이미지가 강해서 그런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지카바이러스는 숲모기가 전염시키는 건데요. 일반 독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한두 마리가 날아다닌다고 해서 걸리는 문제가 아니에요. 모기가 대량으로 서식한다는 기준이 돼야 가능한 거거든요. 국내에는 이집트숲모기가 없고요. 흰줄숲모기는 제주 쪽에 약간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거의 없어요. 국내에 환자가 발생한다 하더라도 유행할 전제조건이 안 갖춰진다는 거죠. 크게 우려할 필요는 없다고 보고 있어요.

 

신종 전염병은 ‘푸시&풀’ 여건이 지속되는 한 언제든지 출현할 수 있다고 했어요. 이 여건을 이해하는 것이 무지에서 오는 공포를 없애는 중요한 정보 같아요. ‘푸시&풀’ 여건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신종 전염병 출현에 핵심이 되는 부분이 ‘푸시&풀’입니다. 여러 포인트가 있지만 이것이 매우 중요해요. 먼저 ‘푸시’는 야생 동물이 서식하던 터전에서 쫓겨난다는 이야기예요. 특히 산업화가 되고 인구가 엄청나게 급증하면 산림구역을 침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져요. 인구가 증가하면 당연히 먹거리도 많아져야 하니까 자연 상태를 파괴할 수밖에 없죠. 야생동물을 쫓아내는, 밀어내는 거예요. 밀려난 야생동물이 어디로 가겠어요? 사람이 사는 환경에 침범하는 상황이 벌어지겠죠. 그 상황에서 그 야생동물이 미지의 바이러스를 가졌다면 병이 나타날 수 있어요. 또한 ‘풀’은요. 당긴다는 의미잖아요. 인간이 먹거리를 위해 공장식 축사라든지 대량으로 농지를 개간하고 곡식을 키우면 야생동물 입장에서도 먹거리가 많아지는 거예요. 야생 상태에 먹거리가 적을 때 인간 영역을 침범하니까 또 바이러스에 노출될 수가 있죠. 이 ‘푸시’와 ‘풀’은 신종전염병 출현과정에서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두 개념을 함께 이해해야 해요.

 

거의 대부분의 신종 전염병이 그런 상황에서 발생했어요.

 

니파바이러스라고 있어요. 1998년 당시 말레이시아에서 계엄령까지 선포할 정도로 상당히 심각했어요. 인도네시아에서 팜유가 경제적 이득이 되니까 주민들이 산불을 내서 나무를 심어요. 지금도 가끔 뉴스에도 나오죠. 그곳에 살던 과일박쥐가 서식지를 잃고 말레이시아로 온 거예요. 여기까지 보면 ‘푸시’가 되죠. 한편 말레이시아는 밀림에 양돈장을 지었어요. 30만 마리를 키우는 엄청난 규모였어요. 그 가운데 망고나무를 잔뜩 심어놓고요. 왜 그걸 심었는지(웃음) 잘 모르겠지만요. 과일박쥐가 좋아하는 게 과일이잖아요. 서식지를 잃은 과일박쥐들이 그곳까지 와서 과일을 먹었고, 그 과일을 돼지가 또 먹어 바이러스가 전염됐어요. 이 부분은 박쥐를 농장으로 끌어들였으니까 ‘풀’개념이죠. 결국 돼지에서 인부로 전염이 돼서 사건이 발생했어요. 이게 전형적인 ‘푸시&풀’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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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자주 씻는 건 상당히 중요해요

 

특히나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인간도 ‘비행’을 하기 때문에 물리적인 거리가 의미가 없어요. 그러니 지카바이러스가 브라질에서 크게 유행했다고 해도 안심할 수가 없죠.

 

1년에 전 세계 여행객이 10억이 넘는다고 해요. 한국만 해도 3천만 명이에요. 그 무지막지한 인구가 들어왔다 나갔다 해요. 그런 상황에서는 바이러스를 본의 아니게 가지고 있다 퍼뜨릴 수도 있는 거죠. 항상 그런 위험은 잔존하고 있어요.

 

그래서 개인위생이나 발병 의심 단계에서 취해야 할 조치들을 아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 같은데요. 필수적으로 알고 있어야 할 지침은 무엇이 있을까요?

 

일반적으로 말할 수밖에는 없는데요. 기본적으로는 어쨌든 걸리지 않도록 해야 하는 거죠. 첫째가 해외여행 부분인데요. 말했듯 수천만 명이 매년 해외를 다녀와요. 국내에도 원래부터 있는 전염병이 있잖아요. 수두처럼 말이죠. 해외에도 국내에는 없는 풍토병이 많이 있어요. 여행 전에 방문국가에 어떤 풍토병이 있는지 알고 가면 좋겠죠. 실시간 보건지도를 다룬 사이트들이 하나씩 생기고 있는데요. 그곳에 방문하면 그 나라에 어떤 풍토병이 유행하는지 알 수가 있어요. 그걸 조금이라도 공부하고, 안전수칙을 알고 가면 위험에서 조금은 자유로울 수 있어요. 또 질병관리본부나 주변에 있는 보건소에서 정보를 얻고 가면 좋겠죠. 둘째, 국내에서 전염병이 발생하기 시작하면 개인 수준에서는 제일 중요한 게 위생 안전 수칙이에요. 전염병마다 다르거든요. 메르스, 지카가 위생 수칙이 달라요. 그래서 어떤 전염병이 돌기 시작할 때는 그 수칙을 나름대로 공부를 해야겠죠. 2009년 신종플루 때 워낙 호흡기 감염이 심하니까 손 씻기, 마스크 쓰기 등이 중요했어요. 그게 어느 정도 지켜지니까 많이 줄어들었고요. 그렇게 되면 신종플루만 없어지는 게 아니라 일반적으로 국내에서 도는 전염병도 같이 줄어요. 옮겨 다니는 건 뻔하니까요.

 

바이러스마다 대응 수칙이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것만 잘 지켜도 여러 바이러스에 대응할 수 있다는 거군요?

 

대부분의 병원균들은 손을 통해 몸속으로 침투해 들어갑니다. 생활하면서 손으로 안만지는 데가 없잖아요. 나만 만지는 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만져요. 악수도 하고요. 또 손으로 항상 얼굴 등을 만지고요. 바이러스가 들어가는 경로가 대개 눈, 코, 입이거든요. 여기 저기 손으로 계속 접촉을 하니까 병원균이 손에 묻을 수 있죠. 손을 자주 씻는 건 상당히 중요해요. 

 

서로 다른 바이러스를 뒤섞는 능력을 가진 믹서기동물이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에요. ‘푸시&풀’과 더불어 신종 전염병을 아는 데 도움이 될 것 같고요. 우리가 가까이 만날 수 있는 믹서기동물에는 뭐가 있나요?

 

신종 전염병의 배경이 ‘푸시&풀’이라면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출현하는 과정, 경로의 핵심은 믹서기동물입니다. 독감바이러스를 거꾸로 계속 추적하면 야생 철새가 나오거든요. 주로 청둥오리 계통인데요. 그런 야생 철새들이 모든 독감바이러스 경우의 수를 다 가지고 있어요. 독감바이러스의 저장고 역할을 하는 거죠. 그런데 야생 조류에 있는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직접 넘어오느냐 하면 그렇지가 않아요. 수용체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바로 넘어온다 하더라도 전염이 되지 않죠. 어떻게 사람에게 전염되는 구조가 되느냐면 사람과 같은 수용체 구조를 가진 동물이 감염되면서예요. 그 동물이 믹서기 역할을 한다는 거죠. 독감바이러스 경우 그 역할을 돼지가 합니다. 독감바이러스가 돼지에는 두 가지 수용체를 가지고 있는 거예요. 조류와 같은 수용체도 있고, 사람과 같은 수용체도 있어요. 그러니까 돼지에서 바이러스가 버무려져서 잡종 바이러스가 생기죠. 사과와 배를 믹서기에 갈면 전혀 다른 생산물이 나오듯이 조류의 바이러스와 돼지의 바이러스가 섞여 제3의 바이러스가 만들어진다는 거예요. 그 바이러스가 사람에게 전염되는 상황이고요. 2009년 멕시코에서 발생한 신종플루가 그 예입니다. 야생조류 바이러스가 수 십 년에 걸쳐 돼지라는 믹서기동물을 거쳐 사람에게 넘어왔던 거죠.

 

메르스 때는 낙타가 감염 경로로 지적되기도 했잖아요. 낙타도 믹서기동물로 볼 수 있나요?

 

메르스는 근데 사실 아직도 밝혀진 게 그렇게 많지는 않아요. 낙타가 그 역할을 하긴 하는데 어떻게 믹서기 역할을 했는지 아직 규명이 안 됐어요. 그 전에 사스가 있었잖아요. 사스는 박쥐에 있는 두 종의 바이러스가 사향 고양이에게 전염되고, 사향 고양이가 믹서기 역할을 해서 사람에게 전염된 거예요. 그 고양이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애완 고양이가 아니고 보양식으로 먹는 식용 고양이입니다. 자주 접하는 동물이죠. 믹서기 동물의 특징이 사람과 자주 접촉하는 동물이라는 거거든요. 메르스도 보면 낙타는 우리에겐 생소하지만 중동에서는 소와 같은 존재예요. 접촉이 많죠. 그런 특징이 있어요.

 

앞으로 제3의 바이러스가 출현한다면 분명히 또 다른 믹서기동물이 등장할 수 있어요. 그런데 그 믹서기동물이 무엇이냐 하고 물으면 지금은 알 수 없다는 거예요. 그 과정을 모르기 때문에 신종 바이러스를 예측할 수 없는 거고요. 상당히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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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성과 치사율은 반비례한다

 

미지의 영역이 아직 많다는 점이 소설이나 영화에서 바이러스라는 소재를 종종 사용하는 이유 같아요. 책에서도 영화 <감기>를 분석한 대목이 있었죠.

 

그 영화는 변종 독감이 사람에게 치명적으로 전파된다는 설정이죠. 나름대로 개연성은 있어요. 광둥성 밀입국자가 타깃이었잖아요. 실제로 그 지역이 변종 독감의 발원지거든요. 반면 치명성, 전염성 부분은 영화에서 상당히 공포스럽게 다뤘지만 실제는 좀 달라요. 학자의 관점에서 보면 전염의 효율성과 치명성이 양립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 전염성이 강하다면 바이러스와 사람 간에 어느 정도 공생 관계로 접어든 거예요. 바이러스가 유지되려면 숙주를 죽이면 안 되거든요. 퍼져나가야 하니까요. 그렇다면 치사율 부분은 많이 줄어들죠. 치사율이 너무 강하면 전염이 안 되고요. 보건 개입이라고 해서 당국이 개입을 하고, 국제기구가 개입해서 어떻게든 차단하려고 엄청난 노력을 하는 것도 있고요. 그러니 영화 <감기>의 설정은 현실적으로는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전염성과 치사율이 반비례한다는 점은 무척 흥미롭네요.

 

가장 대표적인 게 에볼라죠. 에볼라는 일단 걸리면 최소 둘 중 한 사람은 죽었어요. 또 엄청나게 고통스럽게 죽잖아요.  무서워서 사람들이 근처를 못 가요. 바이러스가 퍼지려면 접촉을 하고 옮겨가야 하는데 그런 여건이 제한돼요. 덕분에도 통제가 되고요. 에볼라는 1976년에 발생한 바이러스인데요. 과거에는 밀림 오지에 있는 몇몇 마을에서 발생하고 끝났어요. 퍼지지 않았죠. 반면 이번에는 도시에 터져서 난리가 났지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 몇 나라에서만 문제되고 많이 못 퍼지잖아요.

 

저자는 중동과는 다른 문제해결능력으로 메르스 사태를 잘 넘겼다고 말했는데요. 이견이 있을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어떤 이유에서 이렇게 진단하는 건가요?

 

메르스가 전형적인 블랙스완(도저히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일이 일어나는 것)이잖아요. 문제는 발생했지만 결론적으로는 병원 감염으로 끝났죠. 중동은 지금도 제2의 유행기라고 해서 지금도 계속 확산되고 있거든요. 통제가 안 돼요. 그런 관점에서 우리나라는 상대적으로 잘 넘겼다고 이야기하는 거죠. 전체적으로 봤을 때 부분적인 전술 부분에서는 미흡한 부분이 분명히 있죠. 어쨌든 처음 부닥친 사태기 때문에 우왕좌왕한 건 어쩔 수 없어요. 어느 나라도 마찬가지일 텐데요. 그런 것까지 다 지적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요. 결론적으로 마지막 환자발생까지 47일간 문제되고 종식이 됐다는 거죠.

 

만약 다시 메르스가 한국에 유행한다면 같은 상황이 발생하지 않으리라고 볼 수 있을까요?

 

최소한 저번보다는 낫겠죠. 그때 경험으로 배운 게 있잖아요. 정부를 두둔하는 게 아니라 최소 한 번은 겪었기 때문에 실책은 최소화되지 않을까 합니다. ‘쇼크’라는 표현을 쓴 이유도 그거예요. 사회적인 공감대에 충격으로 온다는 의미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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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헬스(one-health)

 

몽골에서 브루셀라병이 거의 통제될 수 있었다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어요. 결국 바이러스로 인한 전염병이라는 게 개인위생은 물론 사회 문화, 국가 차원의 공통된 문제의식이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을 했고요.

 

브루셀라는 사실 바이러스는 아니고 세균인데요. 인수공통 감염병이죠. 되새김질하는 양, 소 같은 동물에서 전염되는 병이고요. 쉽게 말해 가축 단계에서 유행하는 것을 통제하지 않으면 결국 사람에게 넘어온다는 거예요. 여기서 원헬스(one-health)라는 개념이 중요한데요. 통합적으로 봐야 한다는 겁니다. 공중보건이라면 사람의 영역이잖아요. 가축 영역은 수의학, 동물보건이죠. 이걸 별개의 개념으로 접근하는 게 아니라 협력해서 같이 나가야 해요. 그런 의미에서 원헬스라는 개념이 작동해야 해요. 특히 신종 바이러스는 기본적으로 야생에 있는 바이러스가 동물을 통해 넘어오기 때문에 각 단계를 차단하기 위해서는 서로가 협력하고, 정보를 공유해야 해요.

 

한국에서 원헬스는 얼마나 작동하고 있나요?

 

이게 설득력을 가진 계기가 2003년 사스 때입니다. 사향 고양이를 통해 넘어왔고, 그 전에 야생 동굴에 사는 중국 관박쥐를 통해 전염되고 그런 게 서로 유기적으로 알아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공감대가 생긴 거예요. 그때부터 세계보건기구와 세계동물보건기구, 세계식량농업기구라는 큰 세 개의 국제기구가 중심이 돼 움직이기 시작한 거고요. 그런 개념이 서서히 한국 학문에서도 도입이 돼 논의 단계에 있어요. 이 책의 핵심 주제도 사실은 원헬스 개념이에요. 단순히 국내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는 거예요. 

 

<정글의 법칙> 등 TV에서 타지의 낯선 음식 먹는 장면을 보면 바이러스 전문가로서 우려되는 부분이 있을 것 같아요. 해외 길거리 음식은 가능한 먹지 말라는 조언도 했잖아요.

 

저도 보면서 약간 우려되는 부분이 있었어요. 한 번은 그 프로그램에서 출연진이 과일박쥐를 들고 있는 모습이 나오더라고요. 과일박쥐는 신종 바이러스를 일으키는 주범이에요. 에볼라, 니파 등 질병을 일으키는 상당히 위험한 동물인데 그걸 들고 있어서 진짜 깜짝 놀랐어요. 풍토병을 항상 조심해야 해요. 국내에는 없으니까 여행자에게는 면역이 없잖아요. 가끔 보면 아프리카나 동남아시아에서 촬영 혹은 구호활동을 하다 병에 걸려오는 경우가 있는데요. 그런 게 우려스럽죠.

 

저도 그런 경험이 있어요. 몇 년 전 베트남에 갔다가 호기심으로 현지 음식을 먹었어요. 골목길에 있는 진짜 허름한 식당이었거든요. 먹으면서도 좀 불안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탈이 나더라고요.
 
신종 바이러스에 대해서는 사후약방문 식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고, 결국 후폭풍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지금 상황에서 실천할 수 있는 최선의 예방법은 무엇일까요? 박쥐 바이러스를 많이 수집하고 있다고도 했는데, 가까운 미래에 보다 적극적인 대응이 가능해질 거라 보나요?  

 

예측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일단 지역 사회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퍼지면 그때서야 대응하는 식인데요. 그건 어쩔 수 없는 사안입니다. 가장 근본적으로 국제 사회가 해야 할 부분은 어떻게 하면 바이러스가 출현하는지 그걸 빠르게 탐지하는 거예요.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이죠. 그렇지만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어렵고, 계속 노력해야 하는 거겠죠. 박쥐 바이러스를 계속 수집하는 이유도 박쥐가 가장 위험성 있는 동물로 지목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많이 하고 있는 건데요. 그것에도 여러 장벽이 있어요. 지금도 전 세계적으로 많은 학자들이 바이러스를 많이 수집하고 있지만 그 바이러스가 진짜 사람에게 위협이 되는지 판단을 못한다는 어려움이 있거든요. 믹서기동물을 통해 이 바이러스들이 뒤섞이는 과정을 거치잖아요. 그 과정에 위험성이 있는 거지 그 전에는 사실 위험성이 거의 없거든요. 위험이 없는 단계에서 이걸 평가할 수 있느냐, 지금 기술로는 어렵다는 거예요. 아무리 많이 수집하고 평가해도 위험성은 아무도 얘기할 수 없어요. 

 

21세기 들어서면서 사스, 메르스, 에볼라, 최근에 지카까지 여태까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생소한 바이러스들이 문제를 일으켰어요. 우리 인류는 경험을 하나씩 쌓아가고 있어요. 그게 축적되면 상대적으로 신종바이러스가 출현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봐요. 전파 과정을 알고, 대응을 하니까요. 이미 경험했기에 다시 출현하지 못하도록 대응하고 있으니까 출현할 수 있는 위험성은 제거가 돼요. 하지만 그 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바이러스에 미리 대응하는 기술은 아직 부족하죠.

 

인류의 경험을 뛰어넘는 바이러스와 신종 전염병의 발생 위험도 늘 잔존해 있잖아요.

 

그렇죠, 블랙스완과 같은 경험은 늘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서 벌어져요. 지카바이러스도 이미 아프리카에서 발생했었죠. 알고 있었는데도 당했단 말이에요. 예측을 전혀 못했거든요. 향후 새로운 전염병이 유행한다면 그것도 예측하지 못한 방향에서 나타날 거예요. 어려워요.

 

그 어려운 와중에 책을 냈는데요. 가장 강조하고 싶었던 내용은 뭔가요? 

 

알고 있다면 두려움을 안 느껴요. 모르니까 두려운 거잖아요. 바이러스를 대중들이 기본적으로 알았으면 좋겠다는 점에서 책을 썼어요. 재작년 에볼라가 아프리카에서 유행을 할 때 국내에서 에볼라 바이러스에 관한 대중강연을 한 적이 있어요. 그때 사실 엄청나게 힘들었어요. 대중들이 전염병의 기초 지식에 많이 취약하단 생각을 했어요. 이런 기본적인 내용을 알게 되면 더 깊은 이야기를 해도 받아들일 사회적 여건이 될 거란 생각을 해서 이 책을 쓰게 됐던 거고요. 책을 통해 바이러스를 조금이라도 알게 된다면 내가 뭘 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될 거예요. 그걸 모르면 겁부터 먹게 되죠. 그런 부분이 폭넓게 인지되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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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 쇼크 최강석 저 | 매일경제신문사
사회와 국가를 뒤흔들고 전 세계를 위협하는 바이러스의 출현, 우리는 이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어떻게 막아야 할 것인가? 이에 대한 대책으로 동물전염병 국제전문가이자 수의바이러스 학자가 풍성한 연구를 바탕으로 혜안을 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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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대수 “우리가 양호한 인생을 살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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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액션 합시다.” 한대수의 한 마디로 인터뷰가 시작됐다. 시종일관 “양호합니까? 양호하죠.”, “하하하, 껄껄껄.”로 이어진 대화. 그는 여전히 노래도 부르고 사진도 찍고 글도 쓰는 ‘히피 아빠’ 한대수였다. 새롭게 펴낸 산문집 『바람아, 불어라』는 과연 한대수답다. 경제, 사회, 예술을 넘나들며 우리 사회의 민낯을 유머와 깊이로 담아냈다. 읽는 재미와 함께 보는 맛도 있다. 뉴욕에서 사진가로 일했던 그는 지금도 사진을 찍고 시를 쓰는 보헤미안이다. 동시에 22살 연하 아내와 사는 남자, 9살 딸을 키우는 걱정거리 많은 아빠다.

 

“어떻게 역사상 가장 교육 수준이 높은 이때에 인류는 가장 원시적인 행동을 하고 있는가? 왜 서로 강탈하고 죽이고 멸망의 밤으로 향해 가고 있는가? 이는 우리가 착하지 않아서다. 배운 것은 많은데, 느낀 것이 없어서다.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마음은 유치원생이란 말이다. 착해져야 한다. 그러려면 상대방의 차이를 인정하고 공부를 해야 한다. 그래야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게 되어 타협의 선을 더욱 넓게 그리게 된다. 관념의 문을 열어야 한다. 당신의 가족도 내 가족만큼 중요하고, 당신의 나라도 내 나라만큼 중요하고, 당신의 생명도 내 생명만큼 중요하다.” (『바람아, 불어라』 머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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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는 지원제, 직장은 6시간 근무

 

책 제목이 딱 한대수스럽다고 할까요?

 

하하하. 저도 무척 마음에 듭니다. 제 노래 「고무신」 가사에서 따온 말이에요. 책을 편집해주신 국장님이 제 노래 가사를 다 찾아보다가 발견했어요. 제목은 항상 어려워요. 제목만으로 어느 정도의 분위기를 만들어야 하니까요. 곧 앨범도 나올 예정인데, 제목을 아직 못 정했어요. 9집 앨범을 만들 때도 제목 때문에 한참 고생했죠. 결국 고민이 너무 많아서 ‘고민’으로 했어요. 하하하. 인생은 고민의 연속이잖아요. 고민거리를 영어로 말하면 ‘source of trouble’이에요. 아, 고민이 모든 문제점의 근원이구나 싶었죠.

 

애초에 ‘봉사활동’이라는 제목도 염두에 뒀다고 들었어요.

 

그랬죠. 제 나이가 되면, 결혼생활을 비롯해 모든 게 봉사활동으로 여겨질 때가 있어요. 여자들도 그렇겠지만 남자도 서로 봉사하면서 사는 거예요. 무엇보다 육체적으로 너무 힘드니까요. 창작도 힘들지만 제목을 정하는 일조차 쉽지 않아요. 몸의 기능이 하나하나가 위축되고 뇌세포도 줄고 있으니까 말이죠.

 

그런데 책의 감각은 상당히 젊게 느껴졌습니다. 직접 찍으신 사진도 그렇고요. 한대수의 노래를 전혀 모르는 젊은 독자도 재밌게 읽을 것 같아요.

 

그렇다면 좋겠지요. 세상이 너무 어지럽잖아요. 크고 작은 전쟁이 계속 일어나고요. 교육 수준은 계속 높아지고 있는데 인류는 가장 원시적인 행동을 하고 있어요. 박사학위를 받는 사람은 많아졌는데 아직 마음은 유치원생이에요. 상대의 차이를 인정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관념의 문을 열고 공부를 해야죠.

 

그래도 음악 이야기부터 시작될 줄 알았는데, 돈 이야기부터 책이 시작됩니다. 분량도 꽤 많아요.

 

돈, 세금, 재벌과 정치 이야기를 가장 앞에 놓았어요. 왜냐, 요즘 우리 사회는 너무 전문화됐어요. 음식 관련 TV 프로그램이 굉장히 유행이잖아요? 칼럼을 읽어도 TV를 봐도, 꼭 전문학교 코스를 밟은 사람이 등장해요. 그런데 그 분들의 요리가 우리 할머니보다 뛰어나나요? 아니거든요. 경제도 그래요. 하버드대학에서 경제학 박사를 취득해야 전문성이 생긴다고 하지만, 캠퍼스에서 한 평생을 산 사람이라면 얼마나 경제를 잘 알까요? 시장에서 식당에서 일해본 경험이 없이 통계 자료만 잘 해석하면 전문가인가요?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실제 현실에 부딪혀 끼니를 굶어보고 스스로 학비도 벌어봐야 진짜 경제를 안다고요. 제가 험악한 도시 뉴욕에서 살 때, 참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서울에 와서 음악을 할 때도 쉽지 않았고요. 큰 공연장에서 콘서트를 열어도 수익이 크게 없어요. 손해보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이죠. 제가 오랫동안 신촌 원룸에서 살고 있지 않습니까? 초등학생 딸을 키우면서 말이죠. 그래서 피부로 느끼는 걸 그냥 말로 풀어 썼어요. 굉장히 솔직하게 직설적으로요. 나는 각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이 여러 목소리를 냈으면 합니다. 가정주부가 쓰는 경제 이야기도 얼마나 좋습니까? 훨씬 이로울 거라 생각해요.

 

청년들의 가장 큰 문제로 ‘군대’를 지적하였어요. 없애야 한다고요.

 

사람이 창의성이 가장 많이 나오는 시기가 언제인지 아세요? 18세에서 25세입니다. 저 역시 136곡 중 반 이상을 이 시기에 만들었어요. 히트곡은 물론이고요. 가장 에너지가 많고 창작의 불꽃이 튈 때, 군대에서 총을 쏘고 구보하고 냄새 나는 집단 생활을 하라니요. 말도 안 되는 정신적, 육체적인 고문은 또 말도 못하지 않습니까. 군대는 지원제가 답이라고 생각해요. 양보다 질이 중요해요. 즉, 미사일 엔지니어나 스텔스 정비공이 기관총을 멘 사병보다 더 중요하다는 말이에요. 2년 동안 하기 싫은 복무를 억지로 하는 사병보단, 군 생활을 즐기고 전문 지식을 가진 군인이 훨씬 더 효과적입니다.

 

해군으로 복무하셨죠?

 

DD-91, 해군 기함인 ‘충무함’을 1년 동안 탔어요. 해군 본부에 있었는데 마지막 2년을 참모총장실에서 근무하지 않았다면 전 아마 탈영, 아니면 죽었지 않나 싶어요. 군대 시절에 무척 맞았습니다. 그래서 인간에 대한 믿음이 없어요. 그래도 인간은 선하게 태어났다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아니다는 걸 군에서 깨달았어요. 악하게 태어났는데 착해지려고 노력하는 게, 인간이더라고요.

 

직업 군대가 현실 가능성이 있다고 보시나요?

 

충분히 가능성 있습니다. 20년 전까지는 미친 소리였지만 지금은 달라졌어요. 군대는 더 이상 숫자가 아닙니다. 미국을 보세요. 델타포스, 네이비실 등 다 전문 지식을 가진 특수부대가 전쟁을 치릅니다. 젊은 남자들이 다 군대에 가야 하니 비용이 얼마나 많이 듭니까? 군복 값만 해도 그래요. 그런 비용을 전문군인을 훈련시키는 데 써야 효율적이죠. 충분하다고 봅니다. 시대가 달라졌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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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OECD 주요국 기준으로 1인당 평균 노동시간이 멕시코 다음으로 깁니다. 하지만 구매력평가(PPP) 기준 시간당 평균소득은 최하위권입니다. 노동 시간은 길지만 생산성은 낮다는 분석이죠. 우리나라도 스웨덴처럼 노동 시간을 하루 6시간으로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셨는데요.

 

줄여야죠. 책에도 썼지만 노동자의 집중력은 6시간이 한계예요. 시간이 길면 창의성은 나오지 않아요. 노동자에게 개인 시간을 많이 주면 여유 있게 가정생활과 취미활동을 할 수 있어요. 국민들이 행복해지면 자연히 범죄가 줄죠. 쓸데없는 회의를 줄이면, 직원들이 더욱 집중하면서 일합니다. 당연히 회사의 이익은 높아지고요. 출퇴근 시간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으니 교통체증도 사라지고요. 제가 뉴욕에서 사진가로 일할 때는 점심도 여유롭게 먹지 못했어요. 우리나라에 오니까 사람들이 점심시간에는 전화도 안 받아요. 뉴욕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죠. 또 점심시간이 끝나면 담배도 피고 커피도 마신다고 자리를 비워요. 어차피 긴 시간 동안 사무실에 있어야 하니 굳이 압축적으로 일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거죠. 6시간으로 업무 시간을 줄이면, 시간이 빠듯하니까 일을 훨씬 효율성 있게 해요. 주어진 시간에 끝내야 하니까 다른 생각도 안 하죠. 유럽 국가와 미국도 상당히 호의적으로 6시간 노동을 바라보고 있어요. 세상은 변합니다. 우리도 같이 변하지 않으면 무지의 절벽에서 떨어져요. 6시간 노동을 시행하면, 저출산 문제, 청년 실업 문제가 다소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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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계를 위한 일, 어쩌면 축복

 

‘성공의 길’ 4가지로는 “약속을 지켜라, 고맙다는 표현을 자주 해라, 바로 사과하라, 유머감각을 가져라”라고 하셨어요. 어떻게 보면 많이 어려운 일은 아니거든요?

 

그렇죠. 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인사에 참 인색해요. 굉장히 기본적인 건데 안 지킵니다. 약속도 그래요. 항상 늦어요. 차가 막혔다면서요. 언제 차가 안 막힌 적이 있었습니까? 그리고 고맙다는 말을 너무 안 해요. 외국 사람들은 인사가 몸에 배어 있어요. 물 한 잔 갖다 줘도 그렇게 “땡큐, 땡큐”라며 고마워 합니다. 상대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표현하면 이 사람에게는 다음 번에 더 큰 걸 주고 싶어요. 물이 커피로 변하는 거죠. 그렇게 관계가 좋아지고 서로가 덕을 봅니다. 이번 제 책도 그래요. 작년 4월에 제 가사집 『사랑은 사랑, 인생은 인생』도 북하우스에서 출간했는데, 출판사 분들이 그렇게 인사를 잘해주셨어요. 당신 같은 작가를 만나서 고맙다면서요. 그러니 제가 얼마나 기분이 좋고 감사합니까? 그래서 또 함께 작업을 한 거죠.

 

사과도 참 인색해요. “미안하다”는 말을 하면 진다고 생각합니다. (웃음)

 

너무 무겁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서양 사람들은 그냥 “I’m sorry”정도인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제가 잘못했습니다”하면서 눈물을 뚝뚝 흘리는 걸로 생각해요. 또 지하철 출근 시간에도 ‘툭’ 치고 지나가면서도 말 한 마디 하지 않아요. 아무래도 열등감이 아닐까 생각해요. 사과를 하면 자기가 항복했다는 느낌을 가지는 것 같아요. 오랜 외부의 침략 때문에 무릎을 꿇는다는 것과 사과하는 걸 심리적으로 연결하는 거죠. 하지만 사과는 그냥 자기 잘못을 인정하는 거예요. 자존심과는 전혀 관계가 없어요. 유머도 그래요. 유머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몰라요. 유머는 인생의 꽃이에요. 매일 재미없게 사는데 웃으면 얼마나 좋아요. 문화예술 발전이 있으려면 유머가 있어야 가능합니다.

 

중학생을 대상으로 한 강의에서 ‘로커’를 꿈꾸는 학생에게 “음악은 민주주의가 아니니, 먹고 살 수 있는 기술도 연마해야 한다”고 하셨다고요.

 

서태지, 조용필은 천만 명 중의 한 사람 아닙니까? 백만 명도 아니고, 만 명의 한 명도 아니란 말이죠. 꿈과 현실이 너무 안 맞는다고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현실을 제대로 알 필요도 있어요. 저 역시 가수이지만, 공연을 하는 데서 얻는 수익보다 다른 수익이 더 많습니다. 책도 쓰고 사진도 찍고 저작권도 있죠. 퍼포머로서 들어오는 수입은 얼마 안 됩니다. 화가나 소설가도 마찬가지예요. 물론 한 가지만 하면 좋겠지만, 그것이 안 된다고 좌절하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난 아티스트니까 다른 일은 할 수 없어”라는 건, 정말 잘못된 생각입니다.

 

그래도 음악인으로서, 음악만 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을 것 같은데요.

 

아주 없다면 거짓이겠지요. 하지만 모든 게 음악의 영양분이 돼요. 비료 역할을 하죠. 뉴욕 식당에서 일할 때, 엄청나게 많은 사람을 매일 같이 만났어요. 사람과 부딪히는 고통 속에서 작곡이 나왔죠. 만약 제가 성공한 작곡가라면 큰 저택에 앉아 하루 종일 커피를 마시면서, 식모에게 밥을 얻어먹고 있지 않겠어요? 그러면 오히려 비료가 없을 것 같아요.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생계를 위해 일해야 하는 인생이 축복이라고 생각해요. 엘튼 존, 폴 매카트니를 봐봐요. 엄청 일찍 성공했잖아요. 그런데 최고의 명곡을 꼽으면 다 20살 초반에 쓴 작품이에요. 재벌이 되고 나서도 곡을 썼지만 대곡은 아니죠.

 

평소 대중교통을 이용하시는 걸로 압니다.

 

버스도 타고 지하철도 타요. 차 안에서 사람들의 표정을 읽죠. 전화 통화하는 내용을 듣기도 합니다. ‘돈 이야기를 하고 있구나, 남편과 오늘 싸웠구나’를 알 수 있죠. 세상이 돌아가는 이야기도 듣고요.

 

산문집의 상당 부분이 일간지에 연재했던 글인데요. 칼럼의 제목이 ‘사는 게 제기랄’이에요.

 

제가 지은 제목은 아니에요. 신문사에서 정해준 제목인데, 2000년에 출간된 제 책 『한대수 사는 것도 제기랄 죽는 것도 제기랄』에서 따왔어요. 제목을 정하거나 이런 일은 주로 전문가에게 맡겨요. 대중들의 커넥션은 그 분들이 더 잘 아니까요. 저는 자아에 빠진 사람이고요.

 

(웃음) 따님 이름이 ‘양호’예요. 평소에도 ‘양호하지, 양호하다’라는 말을 자주 하시잖아요.

 

좋아합니다. 오늘은 꽤 양호하지 않아요? 하하하.

 

갑자기 궁금한데요. 지금 가수 한대수의 인생을 바라봤을 때, 양호하다고 생각하세요?

 

하하하. 한 평생 동안 양호했던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부산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지금도 가끔 부산에 가는데, 바닷가 앞에 앉아 있는 걸 좋아해요. 파도가 계속 밀려오는데, 반복적이지만 항상 새롭잖아요. 인생도 그래요. 항상 양호하지 않은 파도가 생겨요. 이제 곧 우리 딸이 초등학교를 졸업합니다. 그러면 중학교를 입학해야 하고 또 고등학교에 들어가야죠. 학교 졸업했다고 인생이 끝나나요? 취직도 하고 결혼도 해야 하고, 또 아이를 낳겠죠. 언젠가 할머니가 될 거고요. 인생은 기대한 만큼의 양호함, 절대 만족은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69년 인생을 되돌아봤을 때, 지금은 상당히 양호한 편이에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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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만큼 좋은 게 없다

 

다시 뉴욕으로 이사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이고. 이 이야기가 어떻게 나왔는지를 살펴보면요. 작년 크리스마스 때 경주에서 공연을 하다가 같이 무대에 오른 후배에게 “뉴욕을 다시 가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했어요. 딸 양호를 한국 교육 시스템에 맡기는 게 불안해서요. 그런데 그 이야기가 언론에 퍼져서 ‘한대수가 다시 뉴욕 간다’로 됐더라고요. 아, 정말 인터넷이 무섭긴 무섭구나 싶었어요. 그나저나 뉴욕 생활이 어디 쉽습니까? 집값도 너무 비싸고요. 떠나긴 떠나야 할 것 같지만 때가 언제가 될지는 저도 몰라요.

 

가장 심각한 교육 문제는 무엇으로 보고 계신가요?

 

속도가 너무 빨라요. 아이들의 발달에 맞춰 교육해야 하는데, 너무 빨리 몰입을 시키니까 정작 대학교에서는 뛰어난 연구생이 모자라요. 유럽이나 미국은 천천히 갔어요. 어릴 때는 충분히 놀게 하고 공부에 특별한 재능이 보이면 그 때부터 교육을 시켜요. 한국은 지나치게 필요 이상으로 고학력자가 많아요. 전 세계에서 제곱미터당, 대학졸업자, 석사, 박사가 많죠. 외국에서 학위를 받고 오는 사람까지 합치면 박사들이 너무 많아요. 우리에게 일자리가 없진 않아요. 그들의 학력에 맞는, 그들이 원하는 직업이 없는 거죠.

 

교육부에 한 가지 제언을 한다면요?

 

초등학교 교육을 천천히 하라고 주장하고 싶어요.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요. 자동차 정비, 셰프, 출판 일도 충분히 고등학교 졸업장만으로도 가능해요. 미국은 대학교 진학률이 40% 정도예요. 우리나라는 너무 과잉 교육을 합니다. 그래서 산업이 안 돌아가요. 정부의 정책도 중요하지만 학부모들의 관념도 바뀌어야 해요. “너는 꼭 어떤 직업을 가져라”가 아니라, “네가 원하는 일을 하라, 그리고 즐겁게 살아라”라고 말해줬으면 합니다.

 

과잉 교육, 과잉 보호에 시달리다가 청년이 되면 다들 ‘포기자’가 됩니다. 연애, 결혼, 출산에 이어 이제 인간관계까지 포기한다는 ‘사포세대’입니다.

 

이유를 살펴보면 다들 돈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결혼을 왜 하지 않느냐의 문제는 나쁜 예를 많이 보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다들 억지로 산다, 황혼 이혼을 꿈꾸고 있으니 결혼에 대한 절망이 들 수밖에 없어요. 결혼에 관한 희망을 보지 못하는 거죠. 요즘 이혼율이 30%라고 하는데, 옛날 같으면 정말 상상할 수 없죠. 또 출산을 생각했을 때는 경제적인 문제뿐만이 아닙니다. 뉴스를 한 번 보세요. 너무 끔찍한 뉴스가 끊임없이 등장합니다. 무서울 수밖에 없어요. 국제적인 테러, 아동학대, 교통사고를 보고 있으면 정말 자식을 낳기가 무섭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제게 문제를 극복하는 가치관이 뭐냐고 묻는다면, 사랑이에요. 사랑같이 좋은 게 없어요. 특히 남녀 사랑은 강아지, 고양이 사랑과 비교할 수 없어요. 또 하나는 바로 자녀를 낳는 일이에요. 하늘의 선물이에요. 그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어요. 생명체가 탄생하는 데서 오는 기쁨은 상상할 수 없어요. 나누고 돌보는 데서 행복감을 느끼는 게 바로 사람이에요.

 

곧 세월호 2주기입니다. ‘세월호 추모공원’ 설립을 제안하셨어요.

 

오드리햅번 재단 이사장인 아들 숀 햅번이 세월호 추모숲을 제안했다고 들었어요. 좋을 것 같아요. 세월호가 왜 일어났습니까? 인간의 탐욕 때문이죠. 돈을 아끼려고 아마추어 선장을 고용했고 돈을 더 벌기 위해 과도한 짐을 배에 실었어요. 누가 자식을 잃은 부모의 고통을 다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인양도 꽤 오래 걸릴 거라 봐요. 법적 소송도 길겠지요. 이 모든 게 마무리되고 비극의 장이 내려오면, 추모공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5월 초에 14집 앨범이 발매될 예정인데요. 10년 만의 정규 앨범입니다.

 

녹음은 이미 끝났어요. 국내 정상급 연주자 여덟 분과 콜라보레이션을 했는데, LP로도 같이 제작될 예정이에요. ‘오디오가이’라는 상당히 좋은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했기 때문에 기대가 무척 큽니다. 아마 타이틀곡은 젊은 아티스트인 최고은 씨와 함께 부른 노래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뮤직비디오까지 찍었습니다. 하하하.

 

『바람아, 불어라』는 어떤 독자들이 읽으면 좋을까요?

 

남녀노소, 특히 젊은 사람이 많이 읽으면 좋겠어요. 요즘 배낭 여행을 참 많이 하잖아요. 낯선 땅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기쁨이 참 커요. 그때 우리가 나누는 대화가 있는데 그건 철학도 진실도 아니에요. 나름의 관념이죠. 이 책으로 하고 싶은 말은 “내가 옳다”가 아닙니다. “내 생각은 이런데 당신 생각은 어떻습니까?”하고 묻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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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아, 불어라한대수 저 | 북하우스
한국 포크-락 음악의 대부 한대수가 써내려간 날 것 그대로의 세상 이야기. 『바람아, 불어라』는 이 시대의 한국에서 살아가면서 느끼고 경험한 것을 꾸밈없이 솔직하게 담은 에세이다. 과감하면서도 설득력 있고, 가벼우면서도 무겁고, 유머러스하면서도 진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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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지애 “예시보다 좋은 훈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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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란 무경력, 무경험에서 생겨나는 수많은 일의 연속이다.” 글로벌 저널리스트 손지애가 자신의 첫 책『손지애.CNN.서울』 에필로그에 쓴 문장이다. 동양인 최초 CNN 서울 지국장, <뉴욕타임스> 기자, 청와대 홍보 비서관, 최연소 아리랑 국제방송 CEO 등 자신을 따라온 수많은 타이틀을 두고, 그는 “자격, 경험이 없다고 주저앉았다면 아무런 모험도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25년간 직장맘으로 일하면서 딸 셋을 낳은 이유도 같다. 몰라서 무작정 뛰어들었지만 결국 후회하지 않는 선택이었다.

 

“누가 나에게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이 이토록 진 빠지고 초조함과 아픔의 연속이라고 미리 가르쳐주었다면 아이를 셋이나 낳았을까? 그러나 나는 별생각 없이 흔쾌히 부모라는 역할을 맡았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내가 진정 이 세상에 태어나 제일 잘한 일, 내 딸을 셋이나 얻지 못했을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나이 들면서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할수록 이런 모험을 시도하는 일이 점점 줄어든다는 것이다. 그러니 무경험, 무경력의 장점을 십분 활용하기에는 젊을 때가 제일 좋다. 젊을 때는 미래를 생각하면 비어 있는 컴퓨터 페이지를 들여다보는 느낌이라는 걸 잘 안다. 그러나 비어 있는 게 아니라 아직 쓰지 않았을 뿐이다.” (『손지애.CNN.서울』에피로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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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딸과 책을 쓰고 싶었다

 

언론인 지망생들이 특히 잘 읽었다는 리뷰를 봤습니다.

 

그랬다면 다행인데요. 너무 가볍게 쓰지 않았나? 고민도 좀 했어요. 외신기자로 오래 일하다 보니, 한국말로 글을 쓰는 게 익숙하지 않아요. 문체가 좀 멋있고 화려해야 하는데, 구어체로밖에 안 되더라고요. (웃음) 책을 읽은 지인들은 “딱 네 말투랑 똑같이 썼네”라고 하더라고요.

 

‘손지애. CNN. 서울’은 교수님의 클로징 멘트였지요?

 

CNN 서울지국장 겸 특파원으로 일할 때, 수천 번 했던 멘트라 지금도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단어예요. 책 제목에 이름이 들어가는 게 좀 낯설었지만, 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니까 그렇게 이상하지도 않다고 생각했어요.

 

책은 어떻게 쓰게 되셨나요?

 

2014년에 미국 남가주대학에 방문교수로 있었어요. 만 30년 만에 처음으로 풀타임 직장이 없었던 거라, 상대적으로 한숨 돌릴 수 있는 기회가 됐어요. 6개월쯤 지나 미국 생활에 적응했을 때, 이제 책을 써봐도 되겠다 싶었어요. 아이들을 일찍 학교에 등교시키고 나서 혼자 카페에 앉아서 900자를 쓰기 전까지는 무조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어요. 적어도 평일은 그렇게 하려고 마음먹었더니 이렇게 책이 나왔네요.

 

특히 담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나요?

 

요즘 젊은 사람들이 너무 움츠러들잖아요. 한국은 대외적으로는 역동적이지만, 개개인으로 들어가보면 너무 위축되어 있어요. 그게 좀 안타깝다고 생각했어요. 젊은 세대들이 읽고 조금 와 닿을 수 있는 희망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결국 제 살아온 인생을 나누게 됐어요. 처음에는 큰딸이랑 같이 책을 써보고도 싶었어요. ‘엄마가 본 딸, 딸이 본 엄마’를 주제로 우리 둘이 커온 과정을 글로 담고 싶었는데, 딸이 반대했어요. 자기는 학자가 될 거라서 자기 이름으로 나온 첫 책은 자신의 전문분야가 돼야 한다고요. 엄마 이름을 빗댄 책이면 안 된다고 해서, 딸 의견을 존중해줬어요. (웃음)

 

엄마의 책은 어떻게 읽었다고 하던가요?

 

엄청 냉정해요. (웃음) 처음 가제를 봤을 때는 “엄마는 그냥 엄마에 관한 이야기를 썼는데 왜 제목은 마치 청소년에게 뭔가를 주장하는 느낌이야?”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만 26살에 결혼해서 27살에 첫째를 낳았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딸이랑 같이 성장했어요. 시행착오가 많았기 때문에 지금 직장맘들의 입장을 정말 이해할 수 있어요. 이건 보통의 두려움이 아니라 정말 강한 두려움이에요. 실수도 많이 했고, 다른 사람들처럼 직장을 그만두려고도 했지만 결국 30여 년을 직장맘으로 살았어요. 그래서 나중에 딸이 사회에서 인정하는 성공하는 사람이 되면, 같이 책을 써보고 싶었어요. 특별한 교육을 안 했어도 직장맘 자녀로 이렇게 잘 컸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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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나올 수 있는 책이네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주변 분들이 제게 자주 말해요. “딸을 업고 다녀야 한다”고. 저는 저 나름대로 노력했는데,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렇지 않나 봐요. 보통 엄마들만큼은 신경 쓰지 않았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웃음)

 

사회적으로 성공한 엄마들의 자녀를 보면, 대개 자존감도 높고 잘 자랐어요. 다만 궁금한 건, 성장기의 결핍인데요. 아무리 엄마가 노력해도 함께 있는 시간이 적다 보면, 정서적 결핍이 많지 않았을까 걱정이 생기는데요.

 

아마 많았을 거예요. 저 역시 상처 받는 아이들을 보면서 엄청나게 혼란을 겪고 무너진 적도 많고요. 하지만 아이들은 반드시 상처를 극복해요. 다시 사랑을 채워주면 새로운 용기를 가져요. 아이가 커서 사회에 나가면, 더 큰 상처를 만나잖아요. 그럴 때마다 쿨하게 극복할 수 있는 용기와 융통성은 결코 작은 자산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조금만 상처도 전혀 안 겪은 것보다는 딛고 일어서서 자기 삶을 꿋꿋이 살아가는 모습이 훨씬 좋다고 봐요. 어떤 상처도 없이 큰다면, 더없이 좋겠죠.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잖아요. 오히려 부모가 더 상처를 받지, 아이들은 오히려 잘 극복한다는 믿음을 부모들이 가졌으면 좋겠어요.

 

30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면서 딸 셋을 키우셨는데요. 자녀교육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아이 각자마다의 성향에 따라 맞춤교육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부모의 바람이 아니라, 내 아이의 성격을 토대로 ‘아이가 뭘 하면 평생을 즐겁게 살 수 있을까’를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우리는 알잖아요. 명문대를 나왔다고 행복한 인생을 사는 게 아니라는 걸요. 아이가 재능을 잘 살릴 수 있도록 지지하는 것보다 중요한 부모의 덕목은 없는 것 같아요. 또 아이에게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학교 선생님과 상의를 하는 게 맞아요. 학원 선생님과 상담을 하면 공부를 더 가르치라고 말하겠죠. 물론 좋은 학원 선생님도 많지만, 그래도 학교 선생님을 더 신뢰하는 게 맞다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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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부한 여성성을 드러낼 때, 지원군이 생겼다

 

요즘 젊은 세대는 대개 큰 조직에서 첫 직장생활을 하기 바라는데요. 교수님의 경우 첫 직장이 작은 영문 잡지 <비즈니스 코리아>였습니다. CNN, <뉴욕타임스>에서 일하기 전, 7년이라는 긴 시간을 보내셨는데요. 처음부터 더 큰 조직에서 일할 생각은 없었나요?

 

<비즈니스 코리아>에 기자로 들어간 게 1985년이에요. 당시에는 몰랐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정말 잘한 선택이에요.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있을 때, 여러 고려 사항이 있었어요.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갈 수 있는 큰 언론사가 당시에도 몇 개 있었어요. 하지만 대학에서 동아리를 함께한 선배가 극구 말리더라고요. 영어를 못하는 선배 기자가 영어를 잘하는 후배 기자가 들어오면, 잘못된 영어로 기사를 고쳐놓고는 후배 이름으로 기사를 내보낸다면서, 제가 여기에 입사한다고 하면 짐 싸서 말릴 거라고 했어요. 그래서 아예 시도조차 안 했어요. 그 선배는 결국 그 언론사를 관뒀고요. <비즈니스 코리아>는 작은 잡지사였지만 제대로 교육 받은 기자들이 많았어요. 아마 제가 큰 언론사에 들어갔다면, 이렇게 오랫동안 언론인 생활을 못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뉴욕타임스> 서울 주재 기자가 될 수 있었던 건, 좋아하는 영어에 승부를 걸었기 때문이었어요.

 

1988년 서울 올림픽이 열린 후, 세계가 한국을 주목하기 시작했어요. 외신에 진출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동안 한국의 여러 산업에 대해 쓴 기사를 복사해서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의 사무실로 보냈는데, <뉴욕타임스>에서 연락이 왔죠. 내가 쓴 기사를 잘 봤고 마침 서울에서 글을 쓰던 기자가 떠나게 됐다고 면접을 보자고 했어요. 처음 영어로 기사를 쓸 때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이죠.

 

서울 주재 기자로 일하다, CNN에서 ‘서울 특파원’으로 러브콜을 했고 30대 초반의 나이에 CNN 최초로 동양인 지국장이 되었어요. 방송기자와 신문기자는 꽤 차이점이 큰데요.

 

방송에 미래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새로운 걸 해보고 싶다는 끼가 발동한 거죠. 무모한 도전이었지만 부딪히고 싶었어요. 방송 경험이 부족했던 터라 기사 작성부터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아시아의 가장 경험 있는 특파원이 운영하는 방콕 지국에서 연수도 받았고, 여러 분께 도움을 받았어요. 카메라 기자가 갑자기 그만뒀을 때는 녹음기사와 직접 촬영, 편집을 하기도 했고, 목소리가 자주 갈라진다는 지적을 받고 발성에 관한 원서도 탐독했어요. 치열하게 공부하고 부딪혔던 때예요.

 

지금은 여기자가 많지만, 1980년대 중반만 해도 많은 숫자는 아니었는데요. “풍부한 여성성을 드러낼 때, 오히려 지원군이 많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하셨어요.

 

기자직으로 첫 직장에 입사했지만 ‘미스 손’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으니 말 다했죠. 하지만 여자라는 게 눈에 띄어서 더 질문을 많이 할 수 있었던 취재 현장도 있었어요. 불리할 거라 생각하는 것보다 더 준비하는 게 현명한 방법이에요. 지금은 과거 남자만 했던 많은 일을 여자들이 함께하고 있잖아요. 하지만 여자가 경찰이 되고 군인이 된다고 해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지는 않아요. 이제는 여성 경찰서장과 여성 군 장성이 어떻게 남자와 다른지를 보여줘야 해요. 몇 년 전 한 기사에서 여성 장교에 대한 부하들의 의식을 조사했는데, 눈에 띄는 답변이 하나 있었어요. “남자처럼 행동하는 여성 장교보다 여성임을 굳이 숨기려 하지 않는 장교가 좋다”는 이야기였어요. 많은 여성이 남성 지배 사회에서 성공하려면 남성과 똑같이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오랜 사회생활 끝에 제가 내린 결론은 오히려 여성임을 드러낼 때 더 인정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에요.

 

예를 들면요?

 

술자리 같은 경우에도 그래요. 예외도 있지만, 여자는 체질적으로 남자 만큼 주량이 세지 못해요. 그런데 똑같이 마시겠다고 부어라 마셔라 하면, 다음 날 출근은 어떻게 하나요? 우선 첫 잔은 함께 마시는 게 좋지만, 자신의 주량을 생각해야죠. 일로서 인정 받겠다고 생각하되, 다른 직장생활을 남자와 똑같이 하겠다고 나서면 오히려 역효과가 생겨요. 지금도 주변 여성 후배들을 만나면, 아직도 그들의 롤모델이 없다는 게 아쉬워요. 언론에 나오는 롤모델은 많아도, 실질적으로 내 옆, 내 앞에 있는 롤모델로서의 여자 상사는 없으니까요.

 

청와대에서 모유 짠 일화를 공개하기도 하셨어요.

 

2000년이었을 거예요. 둘째가 태어난 지 6개월이 됐을 때였는데, 당시 김대중 대통령을 인터뷰하기 위해 청와대에 들어갔어요. 첫째 아이 모유 수유를 6개월 밖에 못했기 때문에, 둘째는 꼭 1년 이상 모유를 먹이고 싶었어요. 급한 인터뷰가 생겼는데 집에 사놓은 분유는 없었고, 또 미리 유축을 하지 않으면 상당히 곤란한 일이 일어나잖아요. 어쩔 수 없이 인터뷰 전에 잠시 짬을 내서 화장실에서 몰래 모유를 짰어요. 아마 모유 수유를 안 해본 사람은 모를 거예요. 분유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모유를 먹인다는 게 그저 자연스럽게 되는 일이 아니라는 걸요. 셋째도 우유를 뗄 때까지 모유를 먹였는데, 제가 생각해도 참 유별나나 싶지만 분유보다 더 좋다는 게 명백한 사실이니까요. 한국과 미국의 책들을 샅샅이 보고 내린 결정이기 때문에 제 나름의 최선을 다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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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동반자가 좋은 커리어를 만든다

 

“좋은 동반자가 좋은 커리어를 만든다”는 이야기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직장맘으로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결혼을 잘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단연코 가장 중요해요. 아무리 국가 복지 제도가 발달해도 아무리 훌륭한 어린이집이 많아져도 부부가 아이를 어떻게 키울 것인지, 각자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그리고 이런 역할과 각자의 커리어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를 제대로 소통하지 않으면 온전한 결혼 생활을 영위할 수 없어요. 저희 부부는 같은 잡지사에서 기자로 만나 사내 결혼을 했어요. 그 뒤로도 20년 넘게 같은 직업을 갖고 살았고요. 서로의 커리어를 인정했고 결혼 전부터 서로의 미래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눴기 때문에 각자의 꿈을 지지하면서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요즘은 운동을 하나 펼칠까 해요.

 

무슨 운동인가요?

 

젊은 여성들이 결혼 조건으로 ‘미래의 남편에게 육아 휴직을 쓸 것’을 약속 받는 거예요. 육아휴직을 쓸 생각이나 할 수 있는 용기가 없다면, 나와 결혼할 생각을 하지 말라고 선언하는 거예요. 우리나라의 많은 직장맘이 의지하는 건, 친정엄마나 어린이집이잖아요. 하지만 그건 친정엄마 몫이 아니에요. 아버지의 권리이자 몫을 대신하고 있는 거예요. 지금 우리나라도 남성의 육아휴직제도가 있지만 전체 육아휴직자의 5.6%에 불과해요. 언제까지 정부 정책만 믿고 기다릴 수는 없잖아요. 정부가 못하면 우리끼리라도 해야 해요. 국민이 나서서 사회적 운동으로 펼치면, 국가도 가만히 있을 수 없어요.

 

스웨덴 아빠들은 육아휴직을 평균 100일을 쓴다고 들었어요.

 

6개월 동안 육아휴직을 쓴 스웨덴 아빠를 만난 적이 있어요. 다른 일을 하면서 아이를 돌본 게 아니라, 오로지 아이를 위한 6개월을 보냈는데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라고 하더라고요. 핀란드 부부를 만나서 이야기한 적도 있는데, 아이를 낳으면 부부가 동일하게 육아 휴직을 쓸 거라고 했어요. 육아휴직을 쓰지 않을 남자라면 결혼하지도 않았을 거라고 단정짓더라고요. 제도가 중요한 게 아니라 생각이 중요한 것 같아요. 먼저 생각을 바꾸려고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직장맘에게 특히 강조하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어딜 가나 직장맘은 죄인이잖아요.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죄인이 되는데, 저는 직장맘이 절대 사회 약자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나라를 이루는 건 국민인데, 국민은 어떻게 만들어지나요? 엄마가 아이를 낳고 키워야 하잖아요. 엄마들은 가장 위대한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모두 상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예시보다 나은 훈교는 없다고 단언해요. 내 일을 소중히 여기고 열심히 사는 엄마를 보면서 자라는 아이는 더 건전한 사회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이에게 본이 될 수 있는 삶을 사는 것보다 훌륭한 일은 없지 않을까요? 어렵지만 두 가지 일을 잘 이끌어가는 엄마를 보면서 자라는 아이들은 어른스럽고 예의 있는, 남을 배려하는 아이가 돼요. 사회에 있어서도 명문대생 10명보다 더 나은 존재가 될 거라고 믿어요.

 

또 다른 독자 ‘언론인 지망생’들에게 강조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사회에 나가서 직접 체험하는 경험도 좋지만, 풍부한 간접 경험도 절대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때문에 정말 책을 많이 읽어야 해요. 저도 목표치 만큼은 잘 못 읽어서 아쉽지만, 기자들을 보면 책을 너무 안 읽어요. 오히려 글쟁이들이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읽는 것과는 담을 쌓는 것 같아요. 사람에 대한 존중은 많이 알면 알수록 깊어진다고 하잖아요. 사람은 만나는 일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풍부한 경험을 만들기 위해서는 책을 꼭 읽어야 해요. 또 젊은 세대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글로벌 시민의식을 가졌으면 하는 점이에요. 국제무대에서 활동하는 한국 젊은이들을 자주 만나는데, 능력도 좋고 똑똑하고 외모까지 정말 멋진데 한 가지 아쉬움이 있어요. ‘글로벌 시민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어떤 도움을 줘야 하는지’에 관한 고민이 좀 부족한 것 같아요. 탁월한 능력에 시민의식까지 있으면 얼마나 그들이 환영 받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종종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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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모교인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국제대학원 초빙교수로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는데요. 일상은 어떻게 보내고 계신가요?

 

두 번째 학기를 보내고 있는데, 아직도 수업이 있는 날은 긴장해요. 9시 30분 수업인데,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준비해요. 우리나라 학생 4명을 포함해서 프랑스, 미국, 영국, 멕시코. 콜롬비아, 핀란드 학생을 가르치는데 교환학생이라서 더 부담이 돼요. 짧은 시간 동안 한국에 있는 학생들인데, 한국 교수 꽝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안 되잖아요. (웃음)

 

앞으로의 계획도 궁금합니다.

 

국제소녀운동을 대내외적으로 소통하는 일에 집중할 예정이에요. 연구 결과에 따르면 세계 저개발국에서 가장 취약한 계층이 9살부터 18살까지의 여자 아이라고 해요. 사회국제운동을 통해서 이들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여러 사람과 고민하고 있어요. 우리나라의 경험을 토대로 실질적인 도움을 주려고 계획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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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지애.CNN.서울 손지애 저 | 김영사
이 25년간의 외신 기자 생활, G20 정상회의를 통한 공무원으로의 변신, 최연소 최초의 여성 아리랑 국제방송 CEO까지. 그녀의 성공 뒤에 숨은 노력과 도전의 과정을 솔직하게 기록했다. 끝없는 도전으로 존경받는 멘토의 자리에 선 그녀가 대한민국의 청년들에게 보내는 따뜻한 위로와 열정의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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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석 셰프 “아빠들에게 권하고 싶은 이유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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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프니까 이유식도 ‘뚝딱’ 만들어냈을 줄 알았다. 그럴 리 없었다. 소금, 후추를 충분히 사용하고 버터를 쓰는 프렌치셰프 이유석에게 이유식은 전혀 새로운 영역이었다. 간도 할 수 없고 영양소도 지켜야 하는 요리. 셰프도 처음에 불안하고 힘들었다. 그럼에도 이유식을 꾸준히 만들고, 책까지 내게 된 데에는 아들 ‘다복이’의 영향이 컸다. 내가 만든 음식을 먹는 모습이 그토록 가슴 저리고 행복한 일이라는 걸 아들을 보며 처음 알았다. 이유식은 셰프 이유석까지도 성장시킨 셈이다.

 

이유석은 무엇보다 소중한 기회임을 강조했다. 이유식을 직접 해보지 않았다면 몰랐을 아이의 음식 취향, 요리의 새로운 기쁨을 얻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아빠’들에게 책을 권하고 싶다.

 

“아이가 먹는 걸 보면 하루 종일 웃음이 가시지 않을 정도로 너무 기분이 좋았어요. 이런 기회가 평생 자주 오는 건 아니잖아요. 매번은 아니더라도 가끔씩 해보면서 소중한 경험을 함께 공유하면 좋을 것 같아요. 게다가 요즘은 맞벌이도 많이 하니까 육아 분담도 될 거고요. 이 책은 아빠가 해줄 수 있는 특별한 이유식이라는 컨셉을 담은 거예요.”

 

이유식이 낯설기는 엄마나 아빠나 마찬가지다. 아빠가 만드는 이유식, 그것이 아이와 자신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더 많은 사람들이 경험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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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손길이 담긴 단순한 이유식

 

제목이 재미있어요. 실제로 10대 시절 내내 ‘이유식’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고요. 시간이 지나 결국 이유식 책을 내게 됐네요.

 

이름 때문에 정말 많은 에피소드들이 있었어요. 10대 때는 이름이 너무 싫었어요. 이름 바꾸고 싶다고 부모님께 매일 부탁드릴 정도로요. 전학을 다녀도 항상 제 별명은 ‘이유식’이었어요. 그런 에피소드가 지인들과의 자리에서 우스개로 나왔고, 그 자리에 함께 계셨던 이 책의 편집장님께서 제안을 주셨어요. 그때 마침 저희 아이가 6개월 정도 됐을 때였거든요. 이유식을 할 시기고, 실제로 제가 이유식을 만들고 있었으니까 그 과정을 책으로 만들어보지 않겠느냐고 하시는 거예요. 그렇게 2014년 11월부터 작업실에서 책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올 초까지 거의 1년 4개월의 준비시간을 가지고 만들었습니다.

 

직접 자녀의 이유식을 만들면서 책을 만들게 됐다고 했는데 이 책만이 가지는 강점이라면 뭐가 있을까요? 다른 이유식 책과 어떤 차별점을 갖는다 생각하나요?

 

국내에 출간된 이유식 책을 거의 다 탐독했어요. 대부분 쌀 위주로만 되어 있더라고요. 한편 유럽 각 국가, 중동, 일본, 미국 등 외국에서 출간된 이유식 책도 거의 다 봤는데요. 굉장히 카테고리가 넓더라고요. 물론 체질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이유식을 줘도 괜찮다는 보장은 전혀 없어요. 하지만 국내의 이유식이 쌀 기본으로 되어 있으니까 적어도 제 이유식은 좀 달랐으면 했어요. 어차피 이유식이란 게 모유나 분유를 먹고 난 후 먹는 보충적인, 첨가적인 의미가 있거든요. 이 책은 약간 별식으로 먹을 수 있는, 특별하게 한 번 정도 해먹으면 좋은, 셰프이자 아빠의 손길이 담긴 단순한 이유식을 담은 거예요.

 

요리 시작한지 15년, 경력은 10년 정도 됐어요. 그런데도 이유식을 처음 만들었을 때 굉장히 긴장을 많이 했어요. 별의별 상상이 다 드는 거예요. 찌고 강판에 갈고 할 때 불순물이 들어가지 않을까, 갑자기 돌멩이가 들어가지 않을까, 하면서요. 간을 열 번 씩 보면서 했어요. 계속 먹고 탈이 나지 않았는지 확인하고요. 요리하면서 이렇게까지 긴장한 적이 없었거든요. 식당에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 와도 말이에요. 그런데 계속 확인하게 되더라고요. 심지어 요리를 해온 나도 이렇게 긴장하고 힘든 작업이었는데 다른 아빠들은 얼마나 부담이 될까 생각했어요. 이 책은 아빠들에게 권유해보고 싶은 책이거든요.

 

아빠들에게 추천해주고 싶다고요? 요리 초보인 아빠들이 이유식을 만들겠다고 한다면 먼저 경험한 입장으로서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은가요?

 

자신 있게 한 번 해보라고 말하고 싶어요. 만들어보면 좋을 거예요. 처음엔 저도 긴장하고, 떨리고 그랬어요. 이유식은 기술이 아니라 정성이에요. 좋은 재료를 쓰고, 그 재료에 정성을 들여 만드는 게 중요하지 TV에 나오는 셰프들처럼 현란한 손놀림이나 칼질이 중요한 게 아니거든요. 부모의 마음이 담겨 있는 게 제일 중요한 거예요. 정성은 기술을 압도한다고 생각해요. 마음이 담긴 게 중요하죠.

 

이유식을 너무 아내에게만 일임한다거나 시중에 파는 걸 먹인다거나 하면 인생에 있어 굉장히 중요한 걸 놓치게 되는 거예요. 이유식을 만들어서 먹이는데 아이가 먹는 것 자체가 너무 신기하더라고요. 모유나 분유만 마시던 아이가 그걸 떠서 입으로 삼키고 한 그릇을 비우는 게 너무 신기한 거예요. 살면서 제가 한 음식을 먹는 걸 보고 그렇게 기뻤던 적은 처음인 것 같아요. 어떤 대단한 사람이 와서 극찬해주고, 박수를 받았어도 그 정도까지 마음이 벅차오르게 기쁘진 않았거든요. 그런데 아이가 먹는 걸 보면 하루 종일 웃음이 가시지 않을 정도로 너무 기분이 좋았어요. 이런 기회가 평생 자주 오는 건 아니잖아요. 매번은 아니더라도 가끔씩 해보면서 소중한 경험을 함께 공유하면 좋을 것 같아요. 게다가 요즘은 맞벌이도 많이 하니까 육아 분담도 될 거고요. 이 책은 아빠가 해줄 수 있는 특별한 이유식이라는 컨셉을 담은 거예요. 퓌레 같은 것도 별식으로 너무 좋죠.

 

방금 언급한 퓌레나 가스파초처럼 확실히 기존 이유식과는 다른 이유식들이 눈에 띄어요.

 

일본 같은 경우는 사시미나 스시가 후기 이유식에 들어있더라고요. 놀랍죠. 미국 이유식 중에는 땅콩잼도 들어가요. 프랑스 이유식은 왜 이렇게 버터가 많이 들어가는지(웃음) 허브도 다섯 종류씩 들어가고요. 이래도 되나 싶기도 하고, 그것들을 물론 다 실험해보진 못했어요. 어쨌든 이 책에서는 기존과 다른 특별한 이유식을 만들고 싶거나 아빠들이 만들어봤으면 하는 이유식들, 쌀 위주의 이유식에서 탈피한 이유식을 담았죠. 유럽이나 미국, 일본 등 각 나라의 이유식 연구를 많이 했으니까요. 체질, 건강적으로 문제가 없는 선에서 여러 가지 재미가 있는 이유식을 만들어봤어요. 퓌레가 들어가기도 하고, 스프가 들어가기도 하고, 시원한 과일이 들어간 스무디 같은 형태도 있고요. 스무디 형태는 여름에 입맛 없을 때 별식으로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이 책이 절대적인 지침서가 된다거나 이 한 권이면 된다고 말씀드리고 싶진 않고요. 부담 없이 한 번 해보시기 좋은 것들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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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리법이 큰 틀에서 거의 비슷해요. 기본 규칙만 익히면 재료만 바꿔서 다양하게 만들어볼 수 있겠더라고요.

 

이유식이 너무 화려하거나 기술이 들어갈 이유가 없죠. 지금도 제 요리 철학이긴 한데요. ‘simple is the best’라는 문구가 저희 주방에 적혀 있어요. 단순함의 미학이죠. 좋은 재료로 단순함을 살렸을 때 그보다 훌륭한 게 과연 있을까 싶어요. 성인도 마찬가지죠. 최상급의 고기를 소금 해서 숯불에 구워먹는 게 제일 맛있어요. 그렇잖아요. 접시 위에는 꼭 필요한 것만 올라가야 한다는 게 제 철학이거든요. 마찬가지로 이유식을 하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재료만 들어가면 돼요. 너무 많은 엑스트라가 필요 없어요. 이유식은 단순해야 해요. 대신 정성은 충분히 들여서요. 또 대부분 찌는 방식을 많이 선택했어요. 그래야 영양 손실이 거의 없거든요. 이유식은 맛보다 영양 보충이 제일 중요한 거니까요. 그런 걸 신경을 많이 썼어요.

 

뒷부분에 수록된 칼 쥐는 법처럼 기초적인 조리법도 초보자들에게 더욱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테고요.

 

칼 쥐는 법, 재료 손질법을 뒤에 넣어서 도움이 많이 되길 바라고 있어요. 많이 잘못 알고 계시는데요. 칼질은 빨리, 멋있게 하는 게 중요한 게 절대 아니에요. 깨끗하고, 잘 드는 칼로 안정감 있게 칼질하는 게 제일 중요한 거예요. 그래야 자신감도 더 생기고요. 저는 지금도 요리의 제1원칙이 위생이거든요. 동료들에게도 늘 그렇게 얘기해요. 음식은 맛없게 나가도 상관없는데 위생적으로 문제 있으면 그건 절대 용서 못하는 거라고요. 도마도 굉장히 강한 세척액을 써요. 결벽증이 없지 않아 있어서요. 도마에 박테리아가 되게 많이 묻어 있는데 그 위에서 감자를 썰어서 요리를 한다면 찝찝함은 어쩔 수가 없거든요. 소중한 사람이 먹는 거고, 특히 이유식 같은 건 면역력이 떨어지는 아기들이 먹는 거니까요.

 

강박적일지언정 위생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는 거군요.

 

세제로 한 번 닦거나 물로 한 번 헹궈서 물이 뚝뚝 떨어지는 상태로 흥건하게 두면 수억의 박테리아가 증식한 상태에서, 박테리아 파티장이 된 상태에서 음식을 하는 거나 마찬가지거든요. 칼질만 멋있게 한다고 능사가 아니에요. 눈에 안 보이는 부분들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부모님이나 아내, 아기에게 요리를 해줄 때 그런 건 상상도 하고 싶지 않거든요. 지저분한 환경에서 요리를 해주고 싶진 않아요. 무엇보다 소중한 사람들에게는 제일 위생적인 음식을 드려야 하는 게 아닐까요.

 

식당을 운영하는 오너 셰프로서의 철학이기도 하겠죠.

 

저는 또 저희 식당에오는 모든 손님이 VIP라고 생각해요. 저는 상류층이나 셀러브리티라고 특별한 혜택을 더 드리거나 하지 않으려고 해요. 그건 다른 손님에 대한 역차별이 될 수 있잖아요. 자주 와주시는 단골손님께 좀 더 혜택을 드리는 편이죠. 근데 저희도 VIP가 한 분 있어요. 저희 건물주인 오치균 화백님이신데요.(웃음) 저희를 항상 많이 응원해주시는 분이세요. 2014년 메르스 때는 경기가 안 좋아서 저희 걱정된다고 월세도 많이 내려주시고요. 제게는 피카소보다 더 대단한 화가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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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을 만들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들

 

이유식이라면 가장 많이 고민하는 게 아기가 이유식을 안 먹는다는 거거든요. 이럴 때 저자만의 비법이 있다면요?

 

그게 굉장히 부담되고 스트레스죠. 첫 번째로 제일 좋은 방법은 같이 먹는 거예요. 이왕이면 식사 시간에 같이 먹여주는 게 제일 좋아요. 이유식을 안 먹으려고 하면 내가 한 입 먹는 모습을 보여주거나 같이 먹는 모습을 보면 쳐다보게 되잖아요. 그러면서 아기에게도 한 입 자연스럽게 주거나 하는 거죠. 또 아기는 집중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한참 틈을 주면 안 돼요. 음식을 삼켰을 때 바로 떠서 넣어줘야 해요. 맛있다, 맛없다, 판단하게 하면 안 돼요.(웃음) 그런 생각을 할 때 또 음식이 입에 들어와서 삼켜야겠다, 생각하도록 말이에요. 간격을 짧게 줘서 계속 삼키고 씹고, 삼키고 씹도록 하는 거죠. 너무 체할 정도로 그러면 안 되겠지만 안 먹는 것보단 낫잖아요. 안 먹고 울고 그러면 영양 결핍이 되는 거니까요. 다만 그럴 경우엔 목 넘김이 부드러운 이유식을 하면 좋죠. 스프나 퓌레 계열로요. 타락죽 스타일로 만드는 크림이 있는데 그것도 되게 잘 먹어요. 소화도 잘 되고 목 넘김도 편하니까 좋죠. 안 먹더라도 한 입 물꼬를 트고 집중력 있게 먹이는 거예요. 버릇 들이는 것도 중요하잖아요. 억지로는 절대 안 되지만 가급적 먹도록 유도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자녀에게 만들어 준 이유식 중에 가장 좋아한 이유식은 뭔가요?

 

먼저 장모님이 해주시고 제가 거기에 영감을 받아서 한 게 스페니시 이유식이라고요. 대구, 피망, 감자로 만드는 이유식이 있어요. 퓌레처럼 만드는 건데요. 스페인에서 대구와 감자로 요리를 해서 많이 먹거든요. 그걸 응용해서 만들어봤는데 그 이유식을 제일 잘 먹었어요. 그 밖에 콜리플라워를 이용한 이유식이 있는데요. 그것도 좋아했고요. 저희 아이는 크게 가리지 않고 다 잘 먹었던 것 같아요. 오일 풍미 때문인지 참기름이나 들기름 같은 건 조금만 들어가도 안 먹어서 그건 극도로 배제를 했고요.

 

이유식을 만들지 않았다면 몰랐을 것들을 많이 알게 됐네요.

 

맞아요, 어떤 것을 잘 먹는다고 얘기를 들어도 금방 까먹잖아요. 그런데 자기가 만들어서 해준 건 경험으로 남아요. 제가 대구를 제일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아이가 또 대구요리를 유독 잘 먹으니까 좋았죠. 알아가는 재미가 있었어요. 입맛이란 게 또 유전되는 게 있는 것 같더라고요. 반면 저는 고구마를 별로 안 좋아하는데 아내는 고구마를 되게 좋아해요. 겨울 되면 집에 고구마가 쌓여 있어요.(웃음) 근데 아이가 고구마를 되게 좋아하는 거예요. 돌 지나서부터는 혼자 두 개 씩 먹더라고요. 그걸 보면서 아내도 좋아하더라고요. 이런 게 재미있었어요.

 

일찍부터 음식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아이와 교감을 할 수 있었어요.

 

음식이란 추억이자 소통인 것 같아요. 아이는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저는 심지어 책까지 냈잖아요. 이런 것이 추억이죠. 또 아이가 비록 대화는 못하지만 먹는 걸로 “아빠 나 이거 좋아해요, 아빠 나는 고구마가 좋아요, 아빠 나도 생선 요리가 좋아요”라고 말하는 걸 알 수 있었던 거잖아요. 소통이죠. 추억과 소통의 매개체로써 음식을 하는 행위 자체가 굉장히 큰 의미가 있는 거죠. 이 시기가 지나고 커서 좋은 레스토랑에 데려가서 음식을 사줄 수도 있겠지만 그것과는 좀 다른 느낌의 추억이 되지 않을까 해요.

 

그러니 더 많은 분들, 특히 육아에 상대적으로 덜 참여하는 아빠들도 시도해보라는 거고요.

 

요즘은 다행스럽게도 쿡방 열기 때문에 남자도 요리하는 게 창피하지 않은 시대가 됐어요. 저도 나이가 많은 편은 아닌데요. 제가 고등학생 때 요리를 한다고 했을 때만 해도 요리사란 직업은 호텔 요리사를 제외하고는 여자들이 하는 직업이라는 인식이 많았어요. ‘셰프’라는 단어도 안 썼고요. 지금은 남자들이 부엌에서 음식 하는 자체를 상당히 멋진 행위로 보니까 음식 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그것이 요리사로서도 힘도 많이 되고요. 또 한 번 하면 아내에게 굉장히 큰 힘이 되거든요. 육아 휴직을 내는 남자 분들도 있지만 쉽사리 그런 여건이 못 돼요. 사회적으로 눈치도 많이 받는 분위기고요. 그런 와중에라도 가끔씩 음식을 만들면 아내에게 굉장히 큰 힘이 되죠. 육아에서 큰 부담을 덜어주는 거기 때문에 잘 안 하던 분들이라도 한 번 씩 해보시길 바라요. 한 번 만들면 김치냉장고에 보관해서 이틀 씩 가거든요. 재료 열 개 씩 놓고 어렵게 팬에 불붙이고 칼질해야 하는 것도 아니에요. 하나 만들 때 재료 세 가지 정도면 되거든요. 칼로 잘 자르고, 찌고, 잘 으깨거나 익혀서 용기에 담아두면 전자레인지에 돌려 그때그때 먹이면 되는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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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기별 분류는 절대적인 게 아니야

 

대파, 당근과 오렌지, 양파와 배처럼 이유식 식재료로는 선뜻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의 과감한 사용이 독특하거든요. 

 

저는 보통 음식의 궁합을 경험에서 찾는데요. 당근과 오렌지, 양파와 배 이런 것들은 모두 유럽에서 유학할 당시, 2000년대 중후반이었는데, 파리의 몇몇 다이닝에서 유행하던 맛의 궁합들이었어요. 그중에서도 양파와 배 궁합은 제가 무척 좋아하는 파리의 ‘알랭파사르’라는 유명 조리장의 궁합이에요. 흥미로운 건 자료를 조사하다보니 과거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조합을 썼다는 자료가 있더라고요. 그걸 보고 무척 놀랐던 적이 있었죠. 음식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통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무엇보다 양파는 익힘 정도에 따라 당도를 굉장히 많이 끌어올릴 수 있는 식재료거든요. 그래서 입맛을 잃은 아기들에게 종종 별식으로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렇게 만들게 된 거예요.

 

요리 경력 10년이 넘는 셰프지만 프랑스, 스페인 요리를 하는 저자에게 이유식은 전혀 새로운 영역이었을 텐데요. 어려운 점도 있었을 것 같거든요.

 

저는 요리의 뿌리를 유럽에 두고 있다 보니 버터와 올리브오일이 제 모든 요리의 시작점이에요. 그냥 쓰는 것도 아니고 꽤 많은 양을 쓰거든요.(웃음) 심지어 간도 세게 해요. 그런 게 제 방식인데 이 스타일을 완전히 부정하는 장르가 바로 이유식이었어요. 처음에는 좀 어렵더라고요.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도 많이 하고요. 그래도 하다보니 재미도 붙고 그랬죠. 무엇보다 요리의 스펙트럼이 넓어지더라고요. 아마 이유식을 안 만들었다면 이렇게 제 요리의 폭을 넓히는 계기는 없었을 거 같아요.

 

레스토랑을 하면서 제 스타일대로 요리를 하니까 라이트한 요리들은 굳이 안 하게 됐거든요. 요리프로그램에서 여성을 위한 채식요리를 해달라는 제의도 두어 번 받은 적이 있었는데요. 그때도 저는 ‘고칼로리음식을 추구하는 요리사라 맞지 않네요’(웃음)하고 고사 했었어요. 물론 방송에 뜻이 없기도 했었지만요. 그런데 소금, 후추 간을 해도 안 되고 칼로리가 높아도 안 되는, 그야말로 제 요리스타일에 반하는 이유식이란 장르를 하게 된 거잖아요. 힘들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제 요리의 폭을 크게 넓혀준 것 같아요. 스타일을 허물고 다시 새로 만들어가는 느낌이 있었던 것 같고요. 지금은 매장에서 가끔 채소 요리도 해요. 이건 큰 변화죠. 결과적으로 무척 긍정적인 부분이 많았던 거예요.

 

많은 사람들이 시기별 이유식이 있고, 어떤 이유식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아요.

 

아기의 성장이나 발육 상태가 모두 다르기 때문에 시기별 분류는 절대적인 게 아니에요. 치아 상태나 식사속도, 소화상태에 따라 맞춰서 조금씩 변화를 줘야 하거든요. 너무 욕심낼 필요가 없을 것 같아요. 조금씩 질감에만 변화를 주면 되고요. 너무 큰 부담을 안 가져야 하기도 좋잖아요. 반드시 해야 된다는 부담감보다는 일단 한번이라도 해보자는 마인드가 좋을 것 같아요. 이유식을 직접 만들고 먹이는 경험 자체가 소중한 추억이고 아기와의 소통이기도 하니까요.

 

편의상 시판 이유식을 먹이는 양육자들도 많잖아요. 이건 어떻게 생각하나요?

 

여행을 간다든지 하는 특별한 상황일 경우에는 편의성 때문에 이유식을 사서 먹이는 경우가 가끔 있을 수 있겠죠. 그런데 매번 이유식을 사서 먹이는 게 직접 만들어 먹일 수 있는 ‘기회’를 놓치는 거라고 생각하면 다소 아쉬울 거 같아요. 선택은 개개인이 처한 상황에 맞춰 할 몫이겠죠. 하지만 시판 이유식에만 너무 의지하는 건 안 좋다고 봐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하나의 키트에 재료를 모두 담아놓고 집에서 조리할 수 있는 방식이 그마나 제일 유용할 것 같아요. 위생 문제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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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흥미로운 부분인데요. 저자는 떠먹는 치즈 특허를 보유하고 있거든요. 개발하게 된 이유가 있었을 것 같아요. 

 

신체에서 제일 지저분한 부위중 하나가 손이잖아요. 그런데 보면 대부분 그 손으로 치즈를 떼어서 아기 입에 넣어줘요. 손이 얼마나 더러워요. 그건 아기에게도 위생적이지 않을뿐더러 어른입장에서도 참 불편하더라고요. 그래서 치즈의 맛은 똑같이 유지하면서 질감만 푸딩 같은 형태로 변화시켜서 스푼으로 떠먹을 수 있게 해보자고 생각했던 거예요. 그것으로 올해 2월 특허청에서 정식 특허를 받았어요. 물론 프렌치셰프라는 이력도 영향이 있었을 거예요. 이걸로는 앞으로 기업과의 전략적 제휴도 진행해보려고 하고 있어요. 참고로 2015년 EU와 프랑스낙농협회에서 주관한 유럽치즈캠페인의 <한국>편 치즈레시피 소책자를 담당해서 만든 적도 있어요.

 

『맛있는 위로』라는 에세이를 출간한 적도 있어요. 요리와 글, 어떤 매력이 있다고 생각하나요? 또 책을 출간할 계획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글 쓰는 일은 제가 10대 때부터 좋아했던 일이거든요. 원래 글을 쓰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그러다가 IMF 때 워낙 경기가 안 좋아서 포기했죠. 요리사를 선택한 뒤로는 생각도 안하고 있었는데요. 다행히 좋은 기회들이 찾아와서 글을 쓸 수 있었어요. 책까지 내게 됐을 때는 정말 기뻤어요. 앞으로는 제 아들 다복이의 성장과정에 맞춰 영유아기 간식 요리책도 생각해 보려는 중이에요. 마침 이 책의 출판사인 BR미디어의 김은조 편집장님도 계속 격려와 응원을 해주셔서 더 긍정적으로 고려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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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석의 이유식이유석 저 | 비알미디어
이 책에는 ‘이유식도 맛있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맛있는 레시피들로 가득하다. 국내에서는 다소 생소하지만 유럽의 많은 아기에게 검증받은 유럽식 이유식 레시피가 단연 눈길을 끈다. 스페인의 냉수프인 가스파초를 재해석한 이유식, 프랑스식 디저트 히오레의 이유식 버전 등 맛있는 유럽식 이유식 레시피가 아기들의 입맛을 사로잡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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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나 “외로울 때 생각나는 동화였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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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 책 전문 출판사 비룡소가 ‘제5회 비룡소 문학상’의 대상 수상작으로 김진나 작가의 『디다와 소풍 요정』을 선정했다. 김진경, 김리리, 김지은 심사위원의 만장일치로 결정된 만큼 작품은 단연 뛰어난 필체와 주제의식을 선보인다. 심사위원들은 “아이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과 어른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 담겨 있는 수작”이라는 평가와 함께 “기존 가족 판타지를 뛰어넘는 새로운 가족 이야기”, “아이와 함께 부모가 꼭 읽어봐야 할 놀라운 작품”이라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김진나 작가는 2011년 청소년 소설『도둑의 탄생』으로 데뷔한 이후 두 번째 작품 숲의 시간을 발표한 바 있다. 판타지 세계 안에 현실의 이야기를 충실하게 담아냈던 탁월한 능력은 『디다와 소풍 요정』에서도 빛을 발한다. 두 편의 단편 「디다와 소풍 요정」, 「기억을 잃어버린 디다」으로 구성된 작품 속에서 주인공 디다는 소풍을 가기 위해 요정을 불러내기도 하고, 기억을 잃어버려 온 몸을 종이로 감싼 채 하루를 보내기도 한다. 아이들 특유의 순수함과 엉뚱한 상상력이 엿보이는 부분이지만, 그것을 거울삼아 비춰지는 현실은 웃어넘길 수만은 없는 이야기다.

 

어른들의 갖가지 사정으로 한 번도 소풍을 가본 적이 없는 디다는 ‘소풍 요정’의 도움으로 꿈에 그리던 소풍을 떠나게 된다. 이른 아침부터 들뜬 아이는 줄곧 소풍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지만 엄마 아빠에게는 그보다 중요한 일들이 ‘너무’ 많다. 디다가 이를 닦았는지, 김밥 재료에 무슨 문제가 있는 건지, 어떤 옷을 입을지, 자외선을 어떻게 차단할 것인지... 쉴 새 없이 이야기가 오고 가는 가운데 디다가 기다리는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아이의 입을 통해 세상에 나온 말들은 벽에 부딪힌 듯 허공을 떠돈다. 

 

두 번째 이야기 「기억을 잃어버린 디다」에서도 디다는 목소리를 잃은 아이처럼 느껴진다. 아빠는 기억을 잃어버린 딸에게 종이 옷을 입히고 “여기에 네가 누구인지 써 둘 테니 자꾸 읽어”라고 말한다. “사람들을 만나면 너와 관련된 것은 무엇이든 종이 옷에 적어 달라고 해”라는 당부도 잊지 않는다. 종이 옷은 수많은 ‘어른들의 말’로 채워진다. 그곳에는 디다를 향한 어른들의 시선과 평가와 바람이 묻어있다.

 

우리 아이들은 『디다와 소풍 요정』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할까. 디다와 다르지 않은 자신의 일상을 떠올리지는 않을까. 그 끝에서 남는 것은 통쾌함일 수도 서글픔일 수도 있다.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은 한 가지, 성인 독자들에게는 ‘뜨끔한’ 순간이 찾아올 거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야기를 너무 무겁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풍선 껌을 씹으며 ‘소풍 요정’을 불러내는 깜찍한 상상력은 작게 미소 짓게 하고, 마침내 ‘보물 상자’를 찾아내는 결말은 따뜻한 위로를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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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도 ‘영원히 부서지지 않는 맑음’이 있지 않나요?

 

『디다와 소풍 요정』에서 어른들은 디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잖아요. 자신들의 시각으로 디다를 평가하기도 하고요. 이런 이야기를 구상하게 된 계기가 있으셨나요?

 

예전에 지하철을 탔다가 맞은편에 앉은 엄마랑 아이를 본 적이 있어요. 엄마가 뭔가 말을 시작하니까 아이의 표정이 점점 굳어지면서 너무 지루해하더라고요. 엄마 말이 끝나니까 아이가 엄마를 향해서 싱긋 웃어 보이고요. 그리고 저희 가족이 캠핑을 많이 가는데요. 아이들이 엄마를 도와주려고 할 때, 엄청나게 중요하거나 꼭 그 방식대로만 해야 되는 부분이 아닌데도, ‘이건 꼭 이렇게 해야 되고 저건 꼭 저렇게 해야 돼’라고 말하는 걸 볼 때가 있어요.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우리가 관계를 맺는 방식에서 말하는 것에 주목하게 됐어요. 말이 과도하게 사용된다는 느낌이 들었고요.

 

이전과 비교해서 말을 사용하는 방식이 달라진 걸까요?

 

전통적인 공동체 문화가 있을 때는 관계 속에서 말을 배우고 그 말을 관계를 맺을 때 썼잖아요. 그런데 이제는 시대가 달라졌죠. 급변하는 사회이고 정보 과잉의 사회여서 우리가 쓰는 말이라는 게 정보로 채워져 있어요. 앞날을 예측할 수가 없다 보니까 새로운 정보에 민감할 수밖에 없기도 하고요. 그래서 현재 우리가 쓰는 말이 너무 뿌리 없이 떠돌아다닌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딘가에서 이주해 온 말, 훔친 말, 떠돌아다니는 말들로 일상생활이 채워지는 거죠. 말을 조금 더 신중하게 써야 하는데, 사회가 복잡해지고 엄마 아빠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니까 쉽지는 않은 것 같아요. 체력적으로 달리다 보면 아이와 관계를 맺는 방식에 있어서 자꾸 말에 의지하게 되잖아요. 말로 해결하려고 하고요. 그래서 말을 제자리에 돌려놓고 싶은 생각이 있었어요. 『디다와 소풍 요정』은 말의 중요성을 알고 우리가 과도하게 사용하는 말의 무게를 조금 덜어내고 싶다는 생각으로 쓰게 됐어요.

 

생각해 보니, 정보성 이야기는 많이 하지만 감정을 전달하고 읽어내기 위해서 하는 말은 상대적으로 적은 것 같습니다.

 

그렇죠. 아이한테 어떤 습관을 가르쳐 주려고 할 때도 요약 상식을 이야기하잖아요. 어디에서 어떤 전문가가 이렇게 이야기했다고요. 하지만 몇 달 후에는 그 상식이 변하기도 하잖아요. 사실은 굉장히 근거가 희박한 말들을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그 말을 할 때는, 아무래도 어른들은 아이에게 명령어처럼 말을 하게 되죠. 아이는 그 말을 전적으로 받아들이게 되고요. 그런 관계 속에서 (어른들이) 자신이 하는 말이 근거가 희박한 말이라는 걸 조금 더 의식을 하고 이야기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작품 속에서 디다는 자신이 생각하고 원하는 걸 이야기하는데, 그것이 자꾸만 벽에 부딪히는 느낌이 듭니다. 지금 우리 아이들이 부모와 맺는 관계도 크게 다르지 않을까요?

 

예전에는 한마디를 하더라도, 이미 그 말을 관계 속에서 배웠기 때문에 그렇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지금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 파편적인 정보로 모아진 말들, 사실은 내용 없는 말들을 사용하니까 어긋나는 면들이 많이 있는 것 같아요.

 

책에 실린 두 번째 작품 「기억을 잃어버린 다다」에서는 어른들의 잣대로 평가 받고 어른들의 바람을 강요 받는 아이의 모습이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이야기의 끝에서 디다는 마침내 ‘보물 상자’를 찾게 되는데요. ‘보물 상자’는 어떤 의미를 상징하고 있나요?

 

‘영원히 부서지지 않는 맑음’이에요. ‘어떤 식으로도 파괴할 수 없는 맑음’이요. 조금 전에 지하철에서 봤던 아이 이야기를 해드렸는데요. 그 아이는 엄마가 말을 할 때는 표정이 안 좋아졌지만, 엄마 이야기가 끝났을 때 엄마를 어떤 식으로 판단하지도 않았고 ‘엄마 이야기가 너무 지루했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잖아요. 그냥 자기의 맑음 속으로 들어가서 샘물에서 씻고 나온 것처럼 엄마를 보고 웃어 보인 거예요. 그런 마음은 저희한테도 다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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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는 모든 이야기가 필요해요

 

어른들이 동화나 청소년 소설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 같은 것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아이들에게는 밝고 교훈적인 이야기만 들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저도 (『디다와 소풍 요정』의) 리뷰를 본 적이 있는데, 어떤 엄마가 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다고 쓰셨더라고요(웃음). 그걸 보고서 깜짝 놀라고 약간 상처를 받기도 했는데요(웃음). 그런데 정말 교훈적이기만 하고 밝기만 한 이야기가 있을까요? 일부 어른들이 갖는 환상이나 강박 관념이 아닌가 싶어요. 그리고 삶이라는 건 우리가 ‘정말 알 수 없다’고 말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깊이가 있는 건데, 그 삶의 단면을 잘라서 은쟁반에 담아서 주면 아이가 굉장히 끔찍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어요. 만약 삶을 토끼에 비유한다면 ‘길쭉한 귀는 토끼답고 개성적이어서 보기 좋고 코는 너무 평범하고 축축해서 기분이 나쁘다’고 생각해서 귀만 잘라서 아이한테 보여준다면 어떨까요? 아이한테는 잔인하게 잘려진 단면이 다 보일 거예요. 그런 식으로 어른의 잣대를 가지고 어떤 작품에 대해서 ‘이건 아이한테 적합하다’ 혹은 ‘이건 적합하지 않다’를 판단하는 건 누구한테도 도움이 되는 방식은 아닌 것 같아요. 아이의 이해도에 따라서 노출 범위를 조절하거나 복잡한 내용을 단순화 해주는 건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고요. 그렇게 하는 건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지금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저는 모든 이야기가 다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길에 있는 간판이나 옷에 있는 표시 같은, 읽을 수 있는 모든 것들이요. 한 아이가 자라기 위해서는 지구 전체가 필요하잖아요. 아주 작은 생명도 필요하고, 우주가 필요하고, 수백만 광년 전에 소멸한 별빛도 필요해요. 그래서 아이들한테는 이미 쓰여진 이야기, 쓰여지지 않은 이야기, 앞으로 쓰여질 이야기, 사라진 이야기, 누군가의 마음속에만 있는 이야기, 그런 모든 이야기가 다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전작 『도둑의 탄생』숲의 시간을 통해서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으셨어요?

 

아이들한테 이런 이야기를 들려줘야지, 하는 생각이 없었던 것 같고요. 어떤 면에서 생각을 해보면 저를 위해서 썼던 것 같아요. 사실 제가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모르겠어요. 막막한 기분이 들 때가 많고요. 앞이 캄캄하게 느껴지기도 해요. 겨우 한 발만 걸을 수 있을 정도의 빛이 있는 것 같고, 그렇게 겨우 한 발 한 발 딛고 살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청소년 소설을 쓸 때는 청소년의 눈으로 저의 현실을 보는 거고, 동화를 쓸 때는 아이의 눈으로 저의 현실을 봤던 것 같아요. 오히려 글을 쓰는 동안 그 안의 등장인물이 저에게 ‘이렇게 살면 돼, 이렇게 살아도 돼’ 하고 가르쳐주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스스로 용기를 얻고요.

 

성인 독자들을 대상으로 한 작품을 쓰신다면 성인의 눈으로 현실을 보시게 될 것 같은데요. 그럴 계획은 없으신가요?

 

쓰고 있는 작품이 있기는 해요. 그동안에도 쓰기는 했고요. 제 마음이 파편화 되어 있을 때 청소년 소설이나 동화를 쓰면, 등장인물이 저보다 훨씬 내면이 찬란해서 저를 도와줘요. 글을 쓰다가 중간에 그만두지 않고 끝까지 갈 수 있는 힘을 받는 것 같아요. 그런데 성인의 시각으로 글을 쓸 때는 제가 같이 헤매는 거죠. 그래서 아직 작품을 발표하지는 못한 것 같은데요. 지금은 기억에 관한 소설을 쓰고 있어요. 만약 이 소설이 세상에 나오게 된다면 『디다와 소풍 요정』에서 기억을 다룬 방식과 비교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작가의 말’에서 어른은 잠에 빠져 있는 존재로, 아이는 자신의 여름을 만끽하는 존재로 비유하셨어요.

 

어떤 면에서는 비유가 아니에요. 진짜로 낮잠을 자다가 번쩍 정신이 드는 경험을 했었거든요. 그 날 낮잠을 자다가 책을 반납해야 해서 집을 나섰는데, 날씨가 너무 추워서 움츠리고 빨리 걸어가고 있었어요. 마침 아이들 하교 시간이랑 겹쳐서 아이들이 학교에서 쏟아져 나오고 있었고, 그때 어떤 아이를 봤어요. 그 아이는 어깨까지 흘러내린 점퍼를 입고서 얼굴이 새빨개져 있었는데, 추운지도 모르고 친구한테 열심히 이야기를 하고 있더라고요. 그 아이를 보면서 순간 정신이 드는 거예요. ‘진짜 추운 건가, 진짜로 여기에 있는 게 뭐지, 내가 춥다고 생각만 하는 거 아닌가’ 싶었어요.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점과 점이 주어져 있는데 저는 그사이는 보지도 않고 직선이라고 생각하는 태도로 걸어가고 있었다면, 아이는 점과 점 사이를 직접 몸으로 가보고 있었던 거죠. 아이들은 이 순간을 직접 밀고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예요.

 

어른들은 알지 못하는, 아이들만이 보고 느낄 수 있는 것들이 있다고 생각하세요?

 

올해 3월에 학교가 막 개학했을 때, 길에서 초등학교 2학년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 두 명이 하굣길에 나누는 대화를 들었어요. 한 아이가 옆에 친구한테 ‘학교 오니까 어때?’라고 물으니까 옆에 있는 친구가 조금 생각해 보더니 ‘네가 있어서 좋아’ 그러는 거예요. 그 이야기를 듣는데 정말 깜짝 놀랐어요. 저도 학교가 끝나고 친구랑 헤어지지 못해서, 저희 집과 친구네 집을 오가면서 서로 데려다주다가, 날이 어두워져서 중간에서 헤어졌던 적이 있거든요. 두 아이들을 보면서 그 기억이 떠오르면서 ‘그때는 뭔가 좋으면 정말 온 마음을 다해서 좋아했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이들한테는 사랑이 훨씬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그 눈으로 바라볼 때는 순간순간 정말 찬란한 세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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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다’는 현실을 사랑하는 방법을 알고 있어요

 

『디다와 소풍 요정』을 읽다가 문득 ‘지금 우리 아이들은 행복할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행복한 아이를 만들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궁금해지기도 하고요.

 

아이들이 순간순간은 행복할 것 같아요. 환경이 어떻든 자기가 가진 순수함과 천진함으로 행복할 것 같아요. 그렇지만 인간은 수많은 동물과 식물을 멸종시켰잖아요. 그런 것처럼 아이들도 자기들한테 맞지 않는 환경 속에서 뭐라고 저항도 못하고, 자기 처지를 호소하지도 못하고, 작별 인사도 못하고, 어떻게 되어버릴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우리 자신을 돌아본다면, 내 속에 있는 아이가 그 환경 속에서 어떻게 다루어졌는지 그 아이가 지금도 살아 있는지 아니면 멸종해 버렸는지 살펴보면, 아이들이 어떻게 될지 미루어서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른의 입장에서 아이한테 더 적합한 환경을 만들어 주려면, 먼저 내가 행복해야 될 것 같아요. 그냥 별 이유 없이도, 별로 그렇게 잘하는 것 없이도, 내가 먼저 웃고 설레고 즐거운 순간을 느끼면 아이도 더 행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이들은 『디다와 소풍 요정』을 어떻게 읽을지 궁금합니다.

 

저는그냥 소소한 재미를 느꼈으면 했어요. (작품 속에서) ‘아침에 귀신 공포 주스 한잔’이라는 책 제목을 재미있게 느낀다거나, (디다가) 종이 옷을 입고 다니는 게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하거나, (디다처럼) 폐허가 된 자동차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싶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죠. 그런 부분에서 재미를 느끼면서 읽어줬으면 좋겠어요.

 

『디다와 소풍 요정』은 어른들에게도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는 작품입니다. ‘나도 작품 속의 어른들처럼 아이들을 대하지는 않았나’ 싶은 생각에 뜨끔하기도 하고요(웃음). 성인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도 있었나요?

 

아니요. 저는 동화책을 읽을 때 언제나 아이한테 감정이입을 하면서 읽어요. 그래서 당연히 다른 어른들도 그렇게 읽어줄 거라고 생각했어요. 저도 조카들에게는 따라다니면서 잔소리를 하는 이모인데요(웃음). 그래도 동화책을 읽을 때는 저랑 아주 비슷한 캐릭터가 있다고 해도 그 캐릭터에 감정이입을 하지 않고 아이한테 감정이입을 해요. 아이는 어떻게 이 세상을 느끼고 헤쳐 나가는지 느끼면서 읽거든요. 그래서『디다와 소풍 요정』을 쓸 때도 어른들도 디다가 되어서 읽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 동화를 읽고서 뜨끔했다는 평을 보고 깜짝 놀랐어요. 어른들에게도 각자가 처한 한계적 상황이 있잖아요. 소통도 되지 않고 원치 않는 상황에 처해 있죠. 그런 상황 속에서 디다가 하는 방식을 통해서 어른들도 위안을 얻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디다에게 작가님의 모습도 투영되어 있을까요?

 

저에게 디다는 희망사항이라고 할 수 있죠. 제가 되고 싶은 모습이요. 디다는 엄마 아빠의 행동에 대해서 아무런 판단도 하지 않아요.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걸 끊임없이 해 나가요. 맞는 방법이든 아니든 자기가 할 수 있는 걸 하는 거죠. 저는 그게 옳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어른으로서 살면서, 외부에서 한계를 느끼는 많은 상황에서, 디다처럼 행동하고 싶은 거예요. 그리고 ‘소풍 요정을 부르는 건 불가능해, 무슨 헛소리야’라고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정말 부를 수 있다고 생각하면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싶어요. 믿지 않기 때문에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든요. 게다가 디다는 소풍 요정이 자신의 마음에 꼭 드는 요정이 아니라 해도 과도하게 실망하지 않고 자신이 해나갈 수 있는 방식을 찾잖아요. 어떻게 보면 디다는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을 가장 사랑하는 방식을 알고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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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울 때 생각나는 동화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성인이 아닌 아이들을 대상으로 소설을 쓰시는 이유가 있으세요?

 

제가 동화책을 좋아해서요. 마음이 복잡하고 엉망진창인 상태일 때 제일 많이 의지할 수 있는 게 좋아하던 동화책이었어요. 그림이랑 글을 한참 보고 있으면 굉장히 행복하니까, 자연스럽게 그런 느낌을 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은 욕구가 생긴 것 같아요.

 

동화책에 어떤 힘이 있었던 걸까요?

 

동화책은 아주 단순하면서도, 어떻게 보면 시라고 할 수도 있는데, 가장 풍부하게 담아내는 것 같아요. 문장은 단순해서 쉽게 들어올 수 있는데 그 문장이 표면적이지 않고 담고 있는 깊이가 깊죠. 어떻게 보면 자연하고 무척 닮아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우리가 바닷물을 한없이 바라볼 수 있는 것처럼, 동화책이 탁 트인 풍경 같은 생명력을 전달해 주는 면이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말씀하신 것처럼 동화에는 다층적인 의미가 응축되어 있잖아요. 그래서 한편으로는 ‘정말 아이들이 이걸 다 이해할까’ 의문스럽기도 해요(웃음).

 

저는 아이들이 동화 속의 모든 의미를 이해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어떤 한 부분이 재미있게 여겨져서 그것만 마음에 남아도 아주 좋다고 생각해요. 일단 그렇게 한 부분이 남으면 살면서도 계속 떠올리고 이해하게 되잖아요. 당시에는 표면적으로만 이해하고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지만 그게 어딘가에 남아있는 거죠. 자신이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그 이야기가 떠올라서 힘을 얻고요. 그래서 저는 딱 한 부분이라도 재미있다고 생각해서 마음에 드는 부분이 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자라면서 『디다와 소풍 요정』을 떠올리고 새롭게 이해하게 될 아이들도 있겠죠. 아이들이 이 작품을 어떻게 기억하길 바라세요?

 

외로울 때, 아무도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할 때, 원하는 대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들 때, 그럴 때 이 이야기가 생각이 났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자신이 숨겨놓은 보물 상자를 찾을 수 있다는 걸 기억해 냈으면 좋겠고요. 내 안에 내가 원하는 걸 이룰 힘이 있다는 걸 믿었으면 좋겠어요.

 

마음이 힘들 때 동화를 읽는다고 하셨는데요. 위로가 되는 동화가 있나요?

 

유리 슐레비츠의『월요일 아침에』라는 동화책이 있어요. 내용은 아주 단순해요. 주인공 남자아이가 사는 곳은 아주 일상적인 공간이에요. 약간 우중충하고 무거운 현실의 그림이 있어요. 그곳에 아주 밝은 세계에 사는 사람들, 화려하게 차려입은 왕과 왕비와 어린 왕자가 찾아와요. 주인공 아이를 만나기 위해서요. 그런데 월요일 아침에 ‘나’는 집에 없었고, 왕과 왕비와 어린 왕자는 다음 날 다시 와요. 이번에도 ‘나’는 집에 없었어요. 하루하루 지날수록 점점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요. 요리사도 오고 광대도 오고요. 마침내 일요일 주인공과 만나는데, 어린 왕자는 ‘잠깐 인사나 하려고 들렀어’라고 말해요. 일주일 내내 찾아왔으면서도 ‘내가 너를 찾아오기 위해서 이렇게 노력했어’도 아니고 ‘잠깐 인사나 하려고 들렀어’라고 말하는 거예요. 그 가벼움과 자유로움 말로 다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좋았어요.

 

어떤 동화를 좋아하세요? 그 이야기들 사이에 공통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그때그때마다 다르지만, 풍부하게 쓰여진 이야기면 다 좋아하는 것 같아요. 권정생 선생님의 『강아지똥』도 굉장히 좋아하고, 구드룬 파우제방의 할아버지는 수레를 타고도 좋아해요. 아놀드 로벨의 개구리와 두꺼비가 함께, 집에 있는 부엉이도 무척 좋아하고요. 그 작품들 사이의 공통점이라면... 다 좋은 작품이라는 게 아닐까요(웃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는 작가가 되고 싶으세요?

 

『숲의 시간』의 리뷰를 읽은 적이 있어요. 그 글을 남긴 아이가 2월 28일에 친구를 만났는데, 그 날 눈이 너무 많이 내려서 우산을 살까 하다가 서점에 갔대요.『숲의 시간』을 보고 표지가 마음에 들어서 책을 사서 읽었는데 정말 재미있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마지막에 ‘우산을 포기할 정도로’라고 말해줬어요. 그래서 굉장히 기뻤어요. 우산을 포기하고 그 눈을 그냥 맞으면서도 책을 산 게 더 기쁨이 컸다는 거잖아요. 우산을 포기할 정도로요.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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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다와 소풍 요정 김진나 글/김진화 그림 | 비룡소
『디다와 소풍 요정』은 엄마, 아빠, 디다 3인 가족이 보내는 평범한 일상을 단면으로 잘라 각각 2편의 단편에 담은 단편집입니다. 현실과 판타지를 능수능란하게 오가며 오늘날 가족 안에서 어른과 아이가 맺고 있는 관계의 현실, 날것의 가족의 모습을 예리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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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 엄기환 “연주자와의 소통이 작곡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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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오래 전에 작곡한 거라….” 한창 활발하게 활동하는 작곡가 엄기환은 사전에 조율하지 않았던 연주 요청에 당황해 눈웃음을 지었지만 피아노 앞에 앉자 진지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어렸을 때부터 모짜르트에 빠져 다른 사람들이 가요를 들을 때 그는 모짜르트만 팠다.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녔지만 늘 작곡을 손에 놓지 않았고 클래식 작곡으로 대학에 들어갔지만 늘 장르를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했다. 프로필을 보면 제 1회 <CJ 영페스티벌> 음악부문 입상, 영화 <걷지 말고 춤추듯>의 음악감독, 뮤지컬 <반짝반짝 빛나는> 음악감독, 연극 <소나기 in Gallery> 음악감독 등 영상, 영화, 연극과 뮤지컬에 이르는 폭넓은 협업이 눈에 띈다.

 

대부분의 작곡가는 빼어난 연주 실력은 기본이지만 연주자에 비해 그늘에 가려져 있다. 무대 위로 올라온 작곡가는 과연 어떤 곡을 연주하게 될까. 클래식 매니지먼트사 툴뮤직 대표 정은현과 함께 무대 뒤에서 음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물어보았다.

 

(인터뷰 중간중간마다 작곡가 엄기환은 직접 피아노로 자신이 작곡한 곡을 시연하며 인터뷰를 진행했다. 연주 장면은 맨 하단 연주 영상 및 채널예스 동영상 갤러리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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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싹부터 시작한 재능

 

부모님이 원래 음악에 관심이 있으셨나요?

 

부모님 두 분 다 음악을 좋아하셨는데 여건이 안 돼서 음악이나 예술 쪽을 전공할 기회는 없으셨어요. 유치원 때 식사 감사 노래를 부를 때 애들은 노래를 따라 부르는데 저는 젓가락이나 숟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리는 동작을 해서 선생님이 눈여겨보시고 어머님께 말씀을 드린 것 같아요.

 

여섯 살 때 피아노를 시작하고 아홉 살 때 첫 작곡 발표를 했다는 내용을 봤습니다. 굉장히 어렸을 때부터 작곡에 관심을 가진 것 같은데, 정식으로 교육받기 전에 바로 작곡을 하신 건가요?

 

초등학교 2학년 때였는데, 슈베르트 즉흥곡을 듣고 감동을 받아서 비슷비슷하게 쓴 적이 있어요. 소심하게 피아노 선생님한테 조금조금씩 제가 만든 걸 들려드렸어요. 그 때 보통 선생님이라면 그런 거 하지 말고 레슨받는 것만 쳐라 할 텐데 그 선생님은 다행히 장려해주시고, 그 당시에는 제가 악보를 그릴 수가 없으니까 매번 선생님이 듣고 악보를 다 적어주시는 거예요. 저는 그걸 보고 또 연습을 하고.

 

1년에 한 번씩 그 선생님이 홀을 빌려서 제자들 발표회를 했었어요. 다른 아이들이 한곡씩 치고 내려갈 때 저는 제가 작곡한 것까지 치라고 해서 저만 한 10분 쳤던 기억이 있어요.

 

언제부터 작곡을 업으로 삼겠다고 생각을 하셨나요?

 

어렸을 때는 막연하게 피아노를 잘 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가, 중학교 2학년 때 모짜르트 피아노 협주곡 17번을 들은 게 갑자기 계기가 됐어요. 그 당시 듣던 가요 테이프를 다 정리하고 모짜르트만 들었어요.

 

돌이켜 보면 피아노 연습은 하기 싫어했고 책상에서 뭘 듣고 쓰는 일을 밤에 안자고 몇 시간씩 했어요. 앞으로 작곡을 하고 싶다는 말을 힘들게 부모님께 꺼냈는데 어머니도 같은 생각을 하셨죠. 그래서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작곡 레슨을 받게 됐어요.

 

상당히 일찍 시작하신 셈이네요.

 

여름방학 즈음 작곡을 하기로 결심하고 레슨을 받기 시작한 사이에 제가 혼자서 듣고 적거나 악보를 구해서 보는 경험을 토대로 앙상블 곡이나 피아노 몇 대를 위한 곡, 그런 걸 혼자 밤에 썼던 기억이 있어요. 그 때 썼던 건 아직도 악보를 가지고 있어요. 본격적인 수업은 겨울방학 때부터 시작했죠.

 

그럼 정식적으로 교육을 받기 전에 작곡을 한 건가요?

 

아까 말씀드렸던 모짜르트 피아노협주곡 17번, 그걸 토대로 모차르트 협주곡들을 많이 들었는데 곡을 외웠다기보다 멜로디가 등장하는 순서나 형식, 폼을 외워서 그 폼에 맞게 멜로디를 넣다 보니 곡이 나왔던 거죠.

 

모짜르트 말고 영향을 준 다른 작곡가가 있었어요? 베토벤이라든가.

 

저는 그때 모짜르트만 엄청 좋아했어요. 그리고 나서 고등학교에 들어가고 여전히 이것저것 흉내내면서 쓰다가, 고등학교 이학년 때쯤에는 삼국지 같은 역사 게임들을 많이 했었어요. 친한 바이올린 하는 형하고 아마추어들과 모여서 연주했던 기억이 나요. 삼국지에 나오는 초선이라는 여자 캐릭터의 이야기를 담아서 썼는데 제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지금 들어도 괜찮지 않나 싶어요(웃음). 동양풍의 가요들이나 드라마들이 유행할 때였어요.

 

고등학교 이학년 때면 입시를 준비하실 때였을 텐데요.

 

돌이켜 생각해 보면 선생님 복이 있다고 생각하는 게, 레슨해 주신 선생님도 입시레슨을 해주시기보다는 많이 기다려주셨던 것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작곡을 한 분한테만 배웠는데, 겨울방학 때부터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작곡만 배우기에는 시간이 좀 길어서 다른 영역도 많이 해볼 시간이 있었어요.

 

보통의 사람들은 예중-예고 트랙을 거쳐서 음악 커리어를 시작하잖아요. 다른 길을 간다는 불안감은 없었나요?

 

그래서 저도 중학교 삼학년 때 예고를 가야 하나 싶었는데 작곡 선생님께서 강력하게 피아노를 전공했다면 예고를 가야 하지만 작곡 전공이라면 굳이 갈 필요 없다,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음악 쓰고 또래의 다른 일반적인 애들과도 어울려야지 시야가 넓어질 수 있다고 말씀하셨어요. 저는 선생님만 믿고 과감하게 안 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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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과 다른 길, 같이 가는 길

 

한국가곡콩쿨 2위, 성남시향 창작관현악곡 공모전 입상, CJ영페스티벌 입상 등 수상경력이 다채롭습니다. 본인이 찾아서 지원했나요?

 

CJ영페스티벌은 좀 특이했던 케이스에요. 항상 고정된 장소에서만 연주하는 게 사고(思考)를 막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바이올린을 전공한 적이 있는 작곡과 선배랑 기타 치는 친구랑 셋이서 팀을 만들어서 무대를 벗어나 거리 연주를 한 적이 있는데, 피아노는 장소의 구애를 받잖아요. (그것 때문에) 교본을 구해서 아코디언을 일 년 정도 독학을 했어요. 그 즈음 CJ에서 음악, 국악 등 여러가지 장르에서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팀을 공모한다는 걸 보고 지원을 했죠. 수상경력이긴 하지만 아코디언을 연주해서 받았던 상이지 작곡으로 받은 상은 아니었어요.

 

나머지 두 개 가곡대회는 한국 가곡 연주하는 분들이 의외로 창작 가곡을 많이 찾는다고 해요. 한국 가곡을 고르려고 해도 너무 옛날에 만들어진 교과서에 나오는 것들이 대부분이라 노래하시는 분들이 무대에서 부를 수 있는, 규모가 있는 한국 창작가곡을 공모하는 형식이었죠. 거기서 좋은 결과를 받았어요.

 

인디라고 불리는 마이너한 장르에 관심이 있으셨던 것 같아요. 독립영화 음악감독 경력이나, 프린지 페스티벌도 같이 하신걸로 알고 있습니다. 정통 클래식이 아닌 장르에 관심을 많이 갖고 계셨던 건가요?

 

네, 졸업하고 나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다니면서도 불안하거든요. 그래서 본능적으로 사람을 많이 알아야겠다는 생각이었는데, 다른 장르 사람들을 만나려면 그 쪽 장르 음악을 제가 알아야 하잖아요. 학교에 영상원이랑 연극원이 있어서 그 쪽 수업을 무작정 청강하러 가서 만나고 다녔죠. 내 곡을 보여주면 영화감독이나 뮤지컬 연출이 나를 써주겠다는 막연한 자신감이 있었어요. 그 때 인연이 생겨서 작업을 하다 <걷지 말고 춤추듯> 감독님하고도 같이 작업을 하게 됐어요. 

 

타 장르하고 협업하는 작곡가들이 많진 않잖아요. 본인이 음악활동을 하면서 같이 만드는 것에 재미를 느낀 건가요? 영화 음악감독을 하면 화면 연출과 어떤 식으로 조율해서 음악을 작곡하는지도 궁금합니다.

 

보통 감독님이 장면을 찍은 다음에 보여주시기보다는 찍는 것과 동시에 진행이 되더라고요. 감독님은 음악하신 분은 아니었으니까 막연한 단어로 본인이 원하는 느낌을 설명해요, 그러면 저는 그걸 듣고 어떤 음악 진행을 원하는 건지 파악을 해야죠.

 

음악을 입혔을 때 영화감독은 뭐라고 했나요?

 

처음 한 번에 맞는 경우는 드문데 저는 오히려 한 번에 맞지 않아서 조율해 가는 과정이 재밌었어요. 같이 예술을 창작하는 분이지만 완성까지 도달하는 과정이 굉장히 다르다는 걸 그 때 경험했던 것 같아요. 연극도 그랬고.

 

영화음악을 작업하면서는 주로 썼던 화성이나 영향을 받은 작곡가가 있나요? 고등학교 때 모짜르트의 영향이라든지 동양적인 사운드에 심취했다는지 하는 식으로요.

 

제가 원하는 것보다는 연출과 감독이 생각하는 음악의 수준에 작곡을 맞춰야 해요. 감독님이 예를 들어 ‘환상적’이라고 표현을 하면 그게 제가 생각하는 환상적인 거랑 차이가 나거든요.

 

김민숙 감독님의 영화 <사과>를 작업할 때는 그런 음악을 들어보지도 못했는데 트로트 같은 걸 원하시는 거예요. 약간 코믹한 느낌이었는데 거기에서 클래시컬한 화성을 입힐 수는 없죠. 그래서 곡을 쓰긴 썼는데 그 전날 밤잠이 안 오는 거예요. 이걸 어떻게 하지 고민하고.

 

그런데 안무가랑 감독님이 결과물을 듣고 너무 좋아하시는 거예요. 딱 이게 필요한 거였다고. 그 뒤로 무용수가 나올 때 국악 느낌을 원하시는 경우도 있었고, 재밌는 경우가 많았죠.

 

대학 이후로는 프랑스 음악을 많이 좋아해서 라벨, 꼬렐 등 프랑스 작곡가의 음악을 많이 들었어요.

 

프랑스 음악에 영향을 많이 받으셨다면 특별히 영향을 받은 곡이 있을까요?

 

드뷔시의 영상이라는 곡이 있어요. 이 음악에 맞춰서 안무를 하는 동영상을 보고 다른 장르와 함께 작업하는 음악에 매력을 느꼈던 것 같아요. 제목 그대로 그림을 보고 있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무대 조명이나 무용수의 옷, 동작 모든 게 음악하고 하나가 되어서 기존에 있던 음악이 다른 장르에 합쳐졌다는 이질감이 전혀 안 느껴졌어요. 그 강렬함이 계속 잔향으로 남아있던 것 같아요.

 

작곡가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에 영향을 받잖아요. 본인 곡 중에 그 곡과 비슷한 느낌의 곡이 있나요?

 

일본 소설 『반짝반짝 빛나는』을 토대로 만든 뮤지컬 <반짝반짝 빛나는> 작업을 한 적이 있어요. 첫 무대가 암전된 상태에서 조명이 하나씩 켜지는 장면에서 주인공들이 하얗게 등장하는 장면이었는데 그 때 드뷔시 느낌을 살려서 음악을 만든 적이 있어요. 불이 하나씩 켜지면서 새하얀 무대에 주인공이 하나씩 등장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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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의 즐거움

 

편곡 작업도 하시는데, 기억나는 편곡이 있나요?

 

편곡도 의뢰를 하시는 분의 요청에 맞춰야 하는데 대부분 간단한 선율을 가지고 5분짜리 연주곡으로 만들어 달라든지 하는 작업이 많았어요. 교회 다니는 연주자 분들이 많이 있으니까 짧은 찬송가 선율을 가지고 연주곡을 만든다든지, 애니메이션 음악을 무대 연주회용으로 만들어 달라는 작업 요청도 있었고, 그런 작업들이 기억에 남아요.

 

편곡과 작곡 중에 어려운 건 뭔가요?

 

작곡이 어렵죠.

 

그럼 편곡과 작곡 중에 재밌는 건요?

 

작곡이 재밌죠(웃음) 편곡은 의뢰인 때문에 하는 거고, 저도 삶을 유지해야 되니까…….

 

편곡을 하면서 재밌는 점은 뭔가요?

 

편곡을 요청하는 연주자 분들도 스스로 생각하고 있는 판타지들이 있어요. 그걸 구음으로 불러주는 데 그걸 제가 기억했다가 최대한 반영을 하는 거예요. 본인이 생각하는 걸 구현했을 때 너무 좋아하시는 게 기억에 남아요. 그 밖에 선율 악기를 다루시는 분들은 기존 곡에 화음을 조금만 다르게 해도 새롭게 받아들이시더라고요.

 

세계적인 연주자들하고 많이 작업을 했잖아요.

 

작년에 <7인의 바이올리니스트>라는 공연 편곡을 맡았었어요. 솔로 바이올리니스트 유명하신 분들이 일곱 분 출연하시는 데다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하는 공연이다보니 많이 신경을 썼죠. 그 때는 피아졸라 탱고곡 위주로 작업했어요.

 

기억에 남는 게 제가 작업했던 부분 중에 카덴차 (악곡이나 악장이 끝나기 전 독주자나 독창자가 연주하는 기교적이고 화려한 부분)가 있었는데, 편곡을 하면서도 너무 어렵지 않을까 걱정했었어요. 그런데 퍼스트 바이올린 하시는 중국의 댄 주라는 분이 제가 만들었던 카덴차를 토대로 덧붙여서 더 화려하게 연주를 했어요. 그게 되게 놀라웠어요.

 

자신이 작곡한 내용과 연주자가 연주하는 내용이 다른 경우가 많잖아요. 실제로 자기가 쓴 곡이 연주자를 통해서 발현된 걸 들었을 때 기분이 어때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연주력에 의해서 질이 달라지는 느낌에 대해 놀랄 때도 있고요, 어쩔 때는 제가 생각했던 것과 너무 다르게 연주하는데도 나름 설득력 있게 다가와서 놀란 적도 있어요.

 

한국 가곡 콩쿨에서 작곡 부문에 입상하면 그 다음 해 성악 부문 콩쿨에 그 곡이 지정곡으로 나와요. 콩쿨 참가하시는 분들 중 어떤 분이 제 곡을 지정곡으로 택해서 부른 걸 나중에 동영상으로 봤어요. 제가 쓴 곡인데도 너무 다르게 느껴지는 거예요. 그게 좋다 나쁘다를 떠나서 내가 만든 선율이 이렇게 다르게도 해석할 수 있구나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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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가의 미래

 

작곡가로서 직업을 갖겠다라고 결심하고 작곡가로서 살아가고 계시잖아요. 한국에서 작곡가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자질은 뭘까요?

 

가장 중요한 건 음악을 잘 해야 되지만, 가장 어려운 건 곡이 전달되려면 항상 연주자들과 관계가 원만하게 유지되어야 해요. 작곡가라는 이미지가 폐쇄적이고 골방에서 두문분출하면서 곡을 써야하는 직업인 건 맞는데, 아무리 곡이 좋더라도 연주자들도 사람이고, 연주자들도 자기가 무대에서 보여지는 건데 컨셉이나 관계가 안 맞으면 아무리 곡이 좋아도 연주를 잘 안 하거든요. 연주자하고 소통할 수 있는 마인드? 그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작곡가가 선호하는 직업으로 많이 떠오르고 있습니다. 작곡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으로서 후배 작곡가 지망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대학교에 들어가면 사 년이 엄청 길 것 같지만 이십 대 초반, 스물 셋, 넷 나이는 너무 어린 나이에요. 학교에서 뭔가를 다 끝내고 사회로 나오겠다는 생각을 하기보다 학교 다니면서도 사회 어디에서 작곡가를 필요로 할까, 내 능력을 다른 사람이 돈과 시간을 투자하면서까지 필요로 하는 곳이 어딜까 끊임없이 돌아봐야 할 것 같아요.

 

주변에 일찌감치 눈을 떴던 사람들은 처음부터 뮤지컬 음악으로 가거나, 방송으로 가거나, 가요 음악을 하는 식으로 자기 컨셉을 정하면 길이 생각보다 빨리 잡히더라고요. 작곡가가 생각보다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부분이 많아요. 제 친구 중에도 사운드 디자인 쪽으로 길을 터서 대기업에 취직한 친구도 있고, 광고 음악회사에 취직하는 경우도 있고요.

 

엄기환이라는 아티스트로서 활동을 시작하는 시점입니다. 목표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클래식 연주자들에게 무대는 전쟁터거든요. 조금만 실수하거나 잘못해도 이미지가 안 좋아져요. 그런 클래식 연주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곡을 쓰는 게 제 목표에요. 올해에는 작년의 편곡 위주의 활동이 아닌, 연주자들의 악기 편성까지도 고려해서 연주자와 작곡가가 상생할 수 있는, 그리고 연주자들이 무대에서 엄기환이라는 작곡가의 곡을 연주했을 때 연주자 스스로 자신이 빛이 난다고 생각할 수 있는 곡을 쓰는 게 제 목표입니다.

 

지금 성악 앨범도 준비하고 계신데, 타이틀로 생각하고 계신 곡이 있나요?

 

이해인 수녀님 시를 되게 좋아하는데 그중에 봄편지라는 시가 있어요. 그 시를 가지고 작업한 곡을 타이틀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을 다르게 여쭤볼게요. 앞으로 하고 싶은 영역. 클래식 작곡가로서 최종적으로 어떤 음악을 만들고 싶나요?

 

(최종적으로는) 교향곡, 관현곡, 오케스트라 연주곡을 쓰고 싶어요. 서양음악사 20세기 초쯤에 가장 부각이 되었던 게 발레 음악이나 무용음악이거든요. 내년 상반기에도 예정된 공연이 하나 있지만, 무용단이나 기타 다른 장르를 위한 오케스트라 곡을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그 이외에도 한국의 솔리스트와 앙상블을 위한 무대 연주용 곡을 쓰는 게 큰 목표입니다.

 

작곡이 자신을 표현하는 창작예술이라면, 클래식과 장르를 구분하지 않고 어느 연주자들과도 소통할 수 있는 작곡가 엄기환은 혼자 작품을 만들어내는 솔로 아티스트라기보다 다 다같이 작품을 만드는 무대예술 아티스트에 가까웠다. 앞으로 그의 무대가 어느 곳으로 뻗어나갈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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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터 퍼엉 “해외 팬들, 진짜 놀랍고 신기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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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캐릭터는 저와 제 남자친구를 모티브로 만들긴 했는데요. 하지만 이 캐릭터에게 이름을 지어주거나 하지 않았어요. 연인이다, 부부다, 하는 관계 설정도 하지 않았고요. 집 구조도 매번 바뀌어요. 구체적인 설정을 하지 않은 이유는 제 그림을 보는 사람들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기 이야기라고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거든요. 그림은 퍼엉의 이야기일수도 있고, 철수와 영희의 이야기일수도 있고, 샘과 줄리아의 이야기일수도 있는 거죠.”

 

퍼엉 작가의 그림은 힘이 있다. 날 서고 공격적인 힘은 물론 아니다. 부드럽고 다정하고 아주 작고 그래서 가장 소중한 힘. 그 힘은 물리적 공간을 넘어 세계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고 있다. 2015년 6월, 작가는 자신의 일러스트 상품을 제작하는 크라우드 펀딩을 진행했다. 패브릭 포스터, 아트북, 엽서집 등을 주는 펀딩에서 작가는 무려 2시간 만에 목표액 1만 달러를 달성하고 한 달 동안 12만 6천 달러 이상을 모아 역대 일러스트레이션 분야 3위에 올랐다. 엄청난 반응이었다. 퍼엉의 일러스트를 한 권의 책으로 묶은 『편안하고 사랑스럽고 그래』는 작가의 작품을 사랑한 많은 사람들에게 또 한 번 큰 선물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부드럽다. 이 부드러움은 어디서 왔을까. 내내 그것이 궁금했다. 작가는 스스로를 “어수룩한 편”이며 때문에 “사람들에게 많이 의지하게” 된다고 했다. 글쎄. 짧은 만남이었어도 그에게 받은 느낌은 좀 달랐다. 작가는 좋아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고, 필요한 것을 알고, 하고 싶은 것을 정확히 아는 ‘힘 있는’ 사람이었다. 그저 그림이 좋다는, 계속 좋아하는 그림을 그릴 거라는 퍼엉 작가. 아직 시간이 많이 남은 만큼 작가의 그림이 어떻게 변화하며 말을 건넬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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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쁘고 감사한 순간들

 

책이 참 예뻐요. 출간 소감이 어떤지 궁금해요. 좋았을 것 같아요.

 

너무 좋죠.(웃음) 책 나오기 전에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드디어 책으로 만나게 돼서 너무 기쁘고 감사하고 그래요.

 

우여곡절이라면, 무슨 일이 있었나요?

 

제 그림을 상품으로 구매하고 싶다는 분들이 많았는데 상품화된 게 하나도 없었어요. 고민하던 와중에 작년 여름, 킥스타터(Kick Starter, 미국 소셜 펀딩 사이트)로 상품을 만든 적도 있었고요. 그 외에 다양한 시도를 해봤는데요. 공식적으로 출판된 건 책이 처음이어서 정말 감격스러웠죠.

 

‘빛나는 순간’. 퍼엉의 일러스트를 보며 계속해서 떠오른 단어입니다. 사소하지만 소중한 일상을 포착해내는 아주 멋진 그림들이에요. 이것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 이유기도 하겠죠. 작가는 주로 어떤 순간을 담으려고 하는 편인가요?

 

좋아하는 사람과 밥을 먹다가 젓가락을 떨어뜨렸다, 같은 소소한 경험들을 그림으로 옮겨내고 있어요. 찰나, 순간에서만 느낄 수 있는 놀랍고, 기쁘고, 화나거나 설레는 감정들을 그림으로 옮겨내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겠죠. 제 이야기뿐 아니라 가족들의 이야기나 친구들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담기도 하고요. 그런 ‘순간’들을 옮겨내고 있어요.

 

그 장면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이 있을 것 같습니다.

 

생활을 이어가고 삶을 살아낸다는 게 늘 행복할 수만은 없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행복하고 기쁘고 감사한 순간들이 있어요. 저 또한 그런 순간들을 포착해내려고 노력하고 있고요. 제 그림을 보는 순간만큼은 모두가 제 그림 속 캐릭터들을 통해 작지만 따뜻한 감정들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그런가 하면 환상적인 요소도 많이 있어요. 공간도 그렇고, 일상적이지는 않은 느낌이거든요. 작가의 그림에 현실이 얼마나 담겨있을까요?

 

두 캐릭터는 저와 제 남자친구를 모티브로 만들긴 했는데요. 하지만 이 캐릭터에게 이름을 지어주거나 하지 않았어요. 연인이다, 부부다, 하는 관계 설정도 하지 않았고요. 집 구조도 매번 바뀌어요. 구체적인 설정을 하지 않은 이유는 제 그림을 보는 사람들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자기 이야기라고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거든요. 그림은 퍼엉의 이야기일수도 있고, 철수와 영희의 이야기일수도 있고, 샘과 줄리아의 이야기일수도 있는 거죠.(웃음)

 

그림을 처음 그릴 때부터 이건 특정 캐릭터를 지정한 게 아니라는 생각을 했던 건가요?

 

처음부터 그렇게 시작되진 않았는데요. 그림을 그리다보니 ‘이름이 뭐냐’, ‘부부냐 커플이냐’하는 질문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굳이 설정해주고 싶지 않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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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엉

 

나를 위한 그림

 

그런 이유 때문일까요. 해외 팬들도 무척 많다고 들었어요. 작가에게는 정말 멋진 일일 것 같습니다. 어떤가요? 부담도 있나요? 의식하기도 하나요?

 

그렇죠. 이렇게 많은 분들이 제 그림을 좋아해주시고 사랑해주시고 하는 게 진짜 놀랍고 신기한데요. 그만큼 부담도 확실히 되는 것 같아요. 더 잘 그려야겠다고 생각하게 되고요. 메시지도 많이 신경 쓰게 될 수밖에 없는데요. 여자를 너무 약한 모습으로 그리는 게 아니냐는 의견도 많이 받았었어요. 사실 제가 많이 어수룩한 편이고(웃음) 그래서 사람들에게 많이 의지하게 되거든요. 여자 캐릭터가 저를 닮다보니까 그렇게 느끼시는 것 같아요. 여자의 모습을 그릴 때는 조금 조심스럽게 느껴지기도 해요. 하지만, 죄송하지만 모든 분들의 의견을 다 받아들일 수는 없거든요. 이 시리즈는 그릴 때 행복한 저를 위해 그리자는 다짐에서부터 시작한 거라 탐탁지 않은 분들도 계시겠지만 아직까진 그 다짐에는 변함이 없어요. 어찌됐든 그냥 제가 좋아하는 그림을 그려나가려고요.(웃음)

 

솔직한 이야기 같아요. 그런 의견들 때문에 그림이 바뀌거나 달라진다면 그것대로 아쉬움이 있겠죠.

 

네, 맞아요.

 

‘나를 위한 그림’을 그리자는 마음에서 시작된 작업이라는 말은 서문에도 적었어요. 작고 소소한, 사랑스러운 일상이라는 소재 외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또 있다면요?

 

사실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학교를 졸업하고 조금 더 여유가 생기면 제가 사랑하는 가족들의 이야기나 제가 좋아하는 동물들의 이야기나 제가 소중하게 여기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담아보고 싶어요. 그 그림들 역시 제가 좋아하는, 저를 위한 그림들이 되겠죠.

 

학생 신분이고 이 작업만 하는 게 아닐 텐데 무척 바쁠 것 같아요.

 

바빠도 워낙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서 그렇게 힘들진 않아요.(웃음)

 

이 작업은 일과 중 언제 주로 하나요?

 

정해놓고 그리진 않고요. 이 그림을 그릴 때는 한 그림 당 약 다섯 시간 정도 잡고 그리거든요. 그냥 생각날 때 아무 때나 그려요. 때를 정해놓진 않고요. 스케치부터 채색까지 쭉 이어질 때도 있고, 끊어질 때도 있는데요. 정말 제 마음 가는대로 하는 것 같아요.

 

정말 좋아해서 시작한 그림이 많은 사람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어요.

 

제 주변에만 봐도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게 뭔지 찾지 못한 친구들도 참 많아요. 정말 어려운 문제거든요. 그렇게 생각하면 저는 정말 복 받은 사람이구나 싶어서 진짜 감사해요. 저는 어릴 때부터 워낙 그림을 좋아해서 어려서부터 나는 평생 그림을 그리며 살겠구나 하는 확신이 있었던 것 같거든요.

 

대부분 가상의 공간이에요

 

무엇보다 배경, 건물들, 공간이 눈에 띕니다. 공간 구성은 어디서 영감을 얻어 그리는 건가요?

 

건축분야에 관심이 많거든요. 학교 도서관에서 건축 관련 책을 자주 빌려보곤 해요. 책을 통해 공간, 소품, 구조, 이런 것의 모티브를 많이 얻곤 하거든요. 외국 서적이라 글보다는 사진 위주로 보게 되는데 되게 재미있어요. 생각해보면 누구나 자기 집이나 방에 대한 로망이 있잖아요. 예쁘게 꾸미고 싶고요. 그런 게 담기기도 해요.(웃음)

 

다락 같은 곳이나 층고가 아주 높아 여유로운 공간들, 정말 좋더라고요.

 

저도 그런 공간들 너무 좋아하고 관심도 많아요. 그래서 그렇게 그리게 되는가 봐요.

 

실제 공간은 아니었군요.

 

네, 대부분 가상의 공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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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엉

 

공간뿐 아니라 장면에 담긴 이야기도 궁금합니다. 얼마나 현실이 담겨있는지 말이에요. 실제 작가 자신의 이야기도 많이 담고 있겠죠?

 

그림 속에 담은 감정선 이외에는 대부분 상상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워낙 단순한 편이라 작은 일에도 쉽게 감동을 하거든요. 밥을 먹는다거나 벚꽃을 본다거나 눈싸움을 한다거나 그런 별 것 아닌데 저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순간들, 감정들을 표현하게 되는 것 같은데요. 공간은 상상이고, 그런 거죠.(웃음) 생활 속에서 영감을 많이 얻긴 해요. 소재도 그렇고요.

 

작가를 잘 아는 지인들 반응은 어때요?

 

다들 저를 많이 놀려요.(웃음) 예전에 광고를 찍은 적이 있었는데요. 유튜브를 보든 영화관을 가든 TV를 보든 제 얼굴이 엄청 크게 나오고, 막 손 흔들고 있으니까 웃겼나 봐요. 친구들이 많이 놀리기도 했고요. 교수님들도 참 짓궂은 분들이 많아서요. 중요한 발표를 하는 시간이었는데 그때 제 그림 이야기를 꺼내면서 분위기를 완전히 우스꽝스럽게 바꿔버리기도 하셨어요. 대체적으로 좋아하세요.

 

지금, 만난 지 얼마 안 됐지만 무척 차분하고 조용한 성격 같거든요. 어쨌든 의도치 않게 유명인이 됐는데 이런 상황이 모두 만족스럽지 않을 수도 있잖아요. 어떤가요?

 

조금 부담스러울 때도 있고, 어떻게 해야 될까 그런 마음도 들곤 하는데요.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그래도 일단 제가 좋아하는 그림을 계속 그리는 것뿐이니까요. 계속 그렇게 해나갈 거고요.

 

자기만의 작업을 꿈꾸는 분들이 많이 있어요. 그런 분들에게 작업이 잘 안 될 때는 어떻게 풀어내는지 힌트를 줄 수 있을까요?

 

제 경우는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지쳐있을 때 작업들이 잘 안 풀리거든요. 워낙 단순한 편이라 또 금방 회복할 수가 있어요. 맛있는 거 먹고, 입에 초콜릿 가득 물고, 놀거나 산책하거나 하면 금세 힘이 나거든요. 방 안 공기가 나빠지면 창문을 열고 환기를 시키잖아요. 그거랑 똑같은 것 같아요. 지치니까 자기가 하고 싶은 거 하면서 그냥 쉬는 거예요. 자기를 즐겁게 하셨으면 좋겠어요. 몰아세우지 않고요.

 

그림에도 간식이 가끔 나와요. 진짜 좋아했던 거군요.(웃음)

 

네, 먹을 것에 관심도 많고 좋아해서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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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그림을 계속 그려나갈 것

 

먼저 물었어야 하는데, 이 ‘퍼엉’이라는 이름은 어떻게 탄생한 건가요?

 

퍼엉은 사실 아무 의미가 없어요. 블로그 닉네임부터 처음 사용하게 됐는데요. 닉네임을 입력할 때 생각나는 게 없어서 아무 의성어나 집어넣은 거거든요. 가끔 후회도 많이 돼요. 정말 아무 의미도 없거든요.(웃음) 조금 더 생각하고 지을 걸, 후회도 해요.

 

그렇다면 본명으로 활동하고 싶은 생각도 있나요?

 

아무래도 퍼엉이라는 이름이 많이 알려지기도 했고요. 이 이름의 어감도 좋아서요. 저는 이 이름을 좋아해요. 또 외국인들은 ‘뿌엉’이라고도 읽으시더라고요. 그것도 어감이 귀엽고 마음에 들어요. 의미만 없을 뿐이죠.(웃음)

 

책을 기다렸던 분들도 많을 텐데요. 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책은 2년 전부터 저를 위해 그리기 시작한, 제가 좋아하는 모든 것들이 담긴 그림들을 모아놓은 책이에요. 좋아하는 것들을 그리다보니 자연스럽게 연인의 소소한 일상의 모습을 그리게 됐는데요. 이 책은 지금 사랑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읽어도 좋고, 이별을 한 사람들에게도 위로가 될 수 있는 책이기도 해요. 또 오랜 사랑을 한 사람들에게는 추억을 상기시켜주는 책이 될 수 있을 것 같고요. 누구나 볼 수 있는 책이에요. 많이 읽어주세요.

 

류근 시인과의 작업이 『싸나희 순정』이라는 책으로 나오기도 했는데요. 이 작업은 어떻게 하게 된 거예요?

 

류근 선생님이 우연히 페이스북에서 제 그림을 보게 되셨어요. 그림이 마음에 드셨는지 먼저 연락이 와서 한 번 작업을 같이 해보자고 하셔서요. 그렇게 시작하게 됐어요.

 

그런 책 작업을 또 하게 될까요? 퍼엉의 작품을 기다리는 분들에게 앞으로의 계획도 들려주세요.

 

그런 구체적인 목표는 아직 없어요. 저는 그냥 앞으로도 제가 좋아하는 그림을 계속 그려나갈 것 같아요. 이왕이면 많은 분들이 제 그림을 봐주셨으면 좋겠고요.(웃음)

 

저희는 이 일러스트 작업 때문에 만났지만 원래 전공이 애니메이션이잖아요. 전공 분야에서도 어떤 계획이 있는지 궁금해요.

 

지금이 대학원 마지막 해거든요. 졸업 작품으로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야 하는데요. 지금까지 애니메이션을 만들 때는 이것과는 완전히 별개로 짜임새 있는 스토리와 관통하는 메시지가 담겨 있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어요. 그러다 지금은 주변 여러 좋은 스승님들 덕분에 그런 강박이 많이 깨지게 됐거든요. 이번에 만들 애니메이션도 『편안하고 사랑스럽고 그래』연장선에서 서사 없이 흐르는 애니메이션이 될 거예요. 장면들이 이어지는 식으로요. 앞으로도 일러스트 작업을 하면서 계속 애니메이션 단편 작업도 계속 해나갈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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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엉

 

저는 앞으로도 제가 좋아하는 그림 그려 나갈 거고요. 『편안하고 사랑스럽고 그래』시리즈 역시 계속해서 그려 나갈 거예요. 물론 살다보면 사랑의 다른 모습, 다른 방식에 대해서도 알게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다른 모습을 또 그리게 되겠죠. 제 이야기와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긴 그림이 어떻게 변해갈지 계속 지켜봐주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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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안하고 사랑스럽고 그래퍼엉 저 | 예담
수많은 독자의 사랑과 관심으로 그라폴리오 최고의 스토리픽 작가가 된 퍼엉이 연재중인 작품들을 선별해 한 권으로 알차게 담아낸 책이다. 액정 화면으로만 감상하던 퍼엉의 작품을 따뜻한 종이의 질감으로 느낄 수 있다. 퍼엉은 “제 그림을 보면서 팬들의 마음에도 따뜻한 사랑의 감정이 ‘퍼엉’ 터졌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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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희나 “이상한 엄마로 위로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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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을 구름으로 감춘 ‘이상한 엄마’가 호호네 집 현관에 서 있다. 호호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하늘에서 날라온 선녀 엄마. 무심한 표정의 선녀는 호호를 위해 달걀국을 만들고 달걀 프라이를 부친다. 판타지인가? 범상치 않은 얼굴의 선녀는 호호엄마가 퇴근하기까지, 호호를 살뜰히 보살피다가 선녀 옷을 남기고 하늘로 떠난다.

 

그림책작가 백희나의 신작 『이상한 엄마』는 보고, 또 보게 되는 작품이다. 한 번 보는 그림책은 없겠지만, 이상스럽게도 연거푸 보고 싶다. 아픈 호호의 발그레한 뺨, 연지로 얼굴을 꾸민 다소 코믹한 선녀가 자꾸 눈에 아른거린다. 매일 보는 컴퓨터 그림에 지쳐서 일까. 장면 구석구석을 살피며 현실의 집, 현실의 엄마를 떠올리게 된다.

 

『구름빵』으로 유명한 백희나 작가는 『구름빵』 독자들에게 미안함이 컸다. 전형적으로 너무 완전한 가족의 모습을 그렸다는 아쉬운 마음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보다 현실의 가족을 담고 싶었다. 허술해도 덤벙거려도, 사랑만 있다면, 똑같이 소중한 가족의 이야기를 그리고 싶어 『이상한 엄마』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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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희나

 

사랑만 있다면 똑같이 소중한 가족

 

1년 7개월 만의 신작입니다. 출간되자마자 반응이 무척 좋아요.

 

최근에 몸이 안 좋아서 병원 신세를 좀 졌는데, 그래도 책을 좋아해주시는 독자 분들이 있으니 기운이 나요. 출판사에서도 많이 도와주셨어요. 메이킹 영상도 재밌게 찍어주시고 북트레일러도 멋지게 만들어줘서 참 고마웠어요.

 

책 작업이 예상보다 오래 걸린 게 아닌가 싶었어요.

 

1년에 1권은 규칙적으로 내고 싶은데 그렇게 편안한 스케줄은 아니에요. 다행히 손이 빠른 편이라서 작업에 들어가면 속도가 붙는데, 『이상한 엄마』는 그동안 이야기를 만든 방식과는 좀 달랐어요. 그동안은 소재가 떠오르면 이야기를 만들고, 스토리보드를 그린 다음에 더미북을 만들고 거의 수정 없이 한 큐에 진행했는데요. 이번 책은 제 현실이 담긴 이야기다 보니 좀 어렵더라고요.

 

아픈 호호를 위해 선녀가 하늘에서 내려온다는 설정은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둘째 아들이 아파서 병원에 입원했는데 그때 떠올렸던 이야기예요. 가져간 책을 다 읽고 나니 할 일이 없어서 멍하게 있다가 생각이 났어요. 처음에는 무척 장황했어요. 전지적 작가 시점이라고 하기에는 모호하지만, 이 책은 주인공이 딱 한 명이 아니잖아요. 호호와 호호엄마, 선녀가 나오는데 모두의 비중이 비슷하고 이 3명 외의 인물이 없으니까요. 또 제한된 공간에서 일어나는 단조로운 에피소드라서 이야기를 쳐나가는 게 쉽지 않았어요. 덧붙이는 건 쉽지만 넘친 이야기를 정리하는 건 힘들더라고요. 작업을 하는 와중에 번역서『시작, 그림책』를 다시 읽었어요. 그림책을 만든 지가 12년이 됐는데 아직도 가장 기본적인 걸 까먹을 때가 있다는 걸 깨달았죠.

 

기본이라면 어떤 게 있을까요?

 

그림책은 5살 아이가 봤을 때도 쉽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해요. 꼭 필요한 이야기만 해야 한다는 게 쉽지 않았어요. 팽팽하게 스토리를 이어가다 보면 속도가 붙지만 그 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단점도 있어요. 다른 가지로 뻗어나갈 가능성, 변화의 여지를 두고 작업해야 했는데 긴장을 많이 했어요. 약간 풀어줬어야 하지 않았나 싶어요.

 

2012년작 『장수탕 선녀님』을 떠올릴 독자도 많을 것 같아요.

 

장수탕 선녀님이 다시 나타난 것 같아서 반가웠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화장도 의상도 다르지만, 자매인가 모녀인가? 같은 인물인가? 궁금해 하는 분이 있었어요. 책을 보고 친정엄마가 생각났다는 분도 많았고, 일하는 엄마들은 뭉클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셨어요.

 

‘엄마’라는 이름이 들어가는 그림책이 꽤 많잖아요. 작가님의 전작 중에 『삐약이 엄마』도 있고요. 『이상한 엄마』는 제목만으로도 호기심이 일어요. 특히 아이나 엄마 독자라면요.

 

처음부터 ‘이상한 엄마’를 제목으로 짓고 시작했어요. 우연인지 필연인지, 요즘 ‘엄마’가 여러모로 이슈가 많이 되고 있잖아요. 일단 엄마들이 살기가 너무 힘들고, 모두에게 기대를 받는 존재이기 때문에 조금만 잘못해도 굉장히 큰 가해자가 되는 것 같아요. 또 사회적으로 진짜 이상한 엄마도 있잖아요. 아이들 학대하는 엄마도 있으니까요. 회자되는 뉴스를 보면서 또 제 삶을 통해서, 엄마에 대해 많이 생각했어요.

 

전작들과 비교해보면, 이번 작품은 어떻게 달랐나요?

 

이번 책은 엄마로서의 제 상황이 절절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나왔고, 또 『구름빵』에 대한 미안한 감정이 많았어요. 너무 표본처럼 완전한 가정의 모습을 보여줬다는 미안함이 컸기 때문에, 어떤 형태의 가족이든 사랑만 있다면 좋다는 마음으로 작업했어요. 부모가 세상을 떠나 조부모와 사는 아이라도, 입양 가족이라도, 다문화가족이라도 모두 사랑이 있다면 똑같이 귀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책이 이야기가 되는 과정을 보면, 당시 내 마음을 차지하고 있는 것들이 표현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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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완전한 존재가 아니에요

 

주인공 ‘호호’의 표정이 참 정겨워요.

 

호호의 모델은 우리 둘째 아이예요. 호호가 입은 티셔츠와 청바지의 디자인은 실제 우리 아이의 옷이에요. 아이한테 “이게 너야”라고 했는데, 별 반응은 없었어요. (웃음) 더미북을 보여주면 좋아하는데, 장난감 정도로 바라보는 것 같아요.

 

‘호호’는 어떻게 나온 이름인가요?

 

둘째 아이의 동네 친구 이름이 ‘호건’인데, ‘호호’라는 별명이 있었어요. 호호가 이 책에서 아프기 때문에 ‘호호~’하고 입김을 불어주는 느낌도 주고 싶었고요. 그림책을 만들 때 주인공의 이름을 짓는 게 참 힘들어요. 너무 현실적이지 않으면서도 지나치게 시대를 반영하는 이름은 피하고 싶어서요. 약간 촌스러우면서 귀여운 이름이 좋은 것 같아요. 『장수탕 선녀님』에서 ‘덕지’의 경우도 때가 덕지덕지 붙었다는 느낌도 있지만 귀엽기도 하잖아요. (웃음)

 

선녀는 호호에게 달걀국을 끓여주는데요. 왜 달걀국이었나요?

 

달걀은 어느 집에나 항상 있는 식품이잖아요. 달걀과 김이 없이는 육아는 어려운 것 같아요.

 

달걀 프라이 사진도 직접 찍으셨죠?

 

8개의 달걀을 깬 끝에 완성된 사진이에요. 해보셔서 아시겠지만 노른자가 사진처럼 투명하지가 않아요. 흰자 때문에 표면이 하얗게 보여서, 수란처럼 익혀 보이고 하도 조금 애를 먹었어요. 작업실에 계란을 한 판 사다 놓고 시작했는데, 그래도 꽤 빨리 성공했어요.

 

백희나 작가님의 책을 처음 본 독자라면, 이게 사진인가? 컴퓨터그래픽인가? 헷갈릴 수도 있어요. 지금 작업실에 보면, 『이상한 엄마』에 등장하는 모든 캐릭터의 모형, 소품들이 다 있어요. 책장을 열자 마자 등장하는 달걀 더미도 만드신 거죠?

 

주로 스컬피(sculpy)라는 재료를 사용해요. 찰흙이랑 비슷한 성질인데, 오븐에 구우면 딱딱하게 굳어져요. 기본 색깔이 살색이라 그 위에 색깔을 입혀 사용해요. 소품 같은 경우는 직접 만들거나 장난감을 리폼하기도 해요. 3D 프린터로 제작을 의뢰하기도 하고요.

 

특별히 어려웠던 장면이 있었나요?

 

마음처럼 느낌이 살지 않아서 사진을 전체적으로 다시 찍었어요. 특히 선녀가 하강하는 장면을 촬영할 때가 어려웠어요. 천장에 구름을 달았는데 솜 무게가 많이 나가니까 자꾸 주저앉더라고요. 기술적으로는 이 장면이 가장 힘들었고 세심하게 찍었던 장면을 꼽으라면 표지 그림이랑 호호엄마가 선녀와 통화하는 장면이에요. 전화선을 먼지 같은 철사 덩어리로 표현했는데, 두 사람의 말풍선 역할을 하기도 해요. 이 장면은 상상할 수가 없는 그림이잖아요. 상징적인 장면이기도 해서 고민이 많았어요. 또 표지는 어느 책이나 가장 중요한 그림이니까, 책에 대한 강렬한 첫인상, 호기심을 주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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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희나

 

호호엄마가 집에 도착해 호호와 함께 구름 위에 누워 있는 장면은 동화 같으면서도 현실의 모습 같아요.

 

호호엄마가 처음으로 마음을 놓는 장면이잖아요. 평범함 속에서 마음에 와 닿는 연출을 하고 싶었어요. 어떻게 생각해보면 엄마가 불안한 마음으로 퇴근하자마자 집에 와서 갑자기 편안하게 잠을 잔다는 게 이상할 수 있어요. 몇몇 장면이 생략이 됐기 때문에 어느 하나도 소홀할 수 없었어요. 하나하나의 역할이 지나치면 안 된다고 생각했고, 변수가 너무 많아 연출이 어려웠어요.

 

‘구름빵’은 캐릭터가 평면이었지만, 『이상한 엄마』는 입체 인형이기 때문에 촬영하기도 쉽지 않았을 텐데요.

 

빛이나 각도에 따라 너무 많이 바뀌니까, 도저히 남의 손을 빌려서 촬영할 수 없더라고요. 『구름빵』, 『달 샤베트을 작업할 때는 스케치와 최대한 비슷하게 구성할 수가 있었는데, 입체 인형은 불가능해요. 최대한 테스트를 많이 하는 수밖에 없어요.

 

마지막 장면을 보면, 선녀가 자신의 옷을 호호 집에 흘려 놓고 떠나요. 『이상한 엄마』의 2편이 나오는 게 아닐까 기대됩니다.

 

시리즈를 생각해서 일부러 설정한 건 아니에요. 다만 사람도 사랑도 완전할 수 없잖아요. 많이 바쁘니까 깜빡깜빡 하면서 사는데, ‘그래도 다 괜찮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호호엄마도 직장을 다니는 엄마지만, 선녀도 하늘에서 일기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거든요. 일을 하다 호호엄마의 전화를 받고 하늘에서 내려왔으니 얼마나 정신이 없었겠어요. 호호네 집만 해도 다르지 않아요. 거실을 보면 되게 어지럽혀 있는데, 우리는 다 완전한 존재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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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만들며 나 자신도 치유됐다

 

최근 그림책을 보는 성인들이 늘었다는 뉴스를 접했는데요. 그림책작가로서 체감하시나요?

 

20대 여성들이 그림책을 많이 본다고 하더라고요. 희망이 느껴졌어요. 또 할머니들이 손주를 키우면서 자기 자신을 위한 그림책을 찾아 읽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척 기뻤어요.

 

선배 작가로서 후배들에게 조언을 하신다면요?

 

일단 제가 겪은 일이 있으니까, 계약을 잘하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요. 스스로가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갖고 너무 겸손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너무 낮은 자세, 낮은 조건으로 일하지 말고, 올바른 대접을 받았으면 해요. 낮은 자세로 일한다고 절대 상황이 나아지지 않으니까요. 기성 작가이든 초보든 시작부터 정당한 대우를 받고 시작했으면 해요. 시작이 조금 늦더라도 제대로 만드는 데는 찾아보면 있거든요. 작품에 대한 충고는 글쎄요. 모두 각자의 길이 있기 때문에 정답이라고 말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구름빵』의 저작권 소송은 현재 어떻게 진행 중인가요?

 

작업 때, 사진 촬영을 맡았던 분이 자신도 원작자라고, 저랑 같이 저작권을 돌려받아야 한다고 주장해서, 저작자 확인 소송을 했어요. 올해 초 단독 저작자로 인정받았을 뿐이지, 저작 재산권을 돌려받는 문제는 아직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했어요. 이제부터 협의를 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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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출판사를 운영하기도 하셨어요. 책도 반응이 좋았고요.

 

혼자 모든 공정을 다한다는 데 의미를 둔 건 아니었어요. 『구름빵』 저작권 사건 이후로 너무 자신감이 없어져서요. 내가 좋은 책을 만들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 컸고, 누가 제 작품을 두고 평가하는 게 두려웠어요. 너무 약해져서 한 발자국도 못 움직이는 상태였는데, 그림책 작업을 안 하면 제가 살 수 없었어요. 낙이 없고 에너지도 없고 의미도 없어서, 혼자라도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 방식에 있어서 1인 출판을 택할 수밖에 없었어요. 책이 망하더라도 일단 작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책이 잘 팔렸어요. 천만 다행이었죠. 덕분에 작업실도 마련할 수 있었고 촬영 장비도 살 수 있었고, 무엇보다 책 살 때 망설임이 없었어요.

 

망설임이라면요?

 

비싼 책을 사고 싶을 때, 망설여야 했거든요. ‘이거 사? 말어?’ 고민을 많이 했는데 그 때는 한 장면이라도 도움이 될 것 같으면, 책을 다 샀어요. 그게 너무 좋았어요. 그렇게 4권을 만들었는데, 그간에 책읽는곰 출판사에서 알게 모르게 많이 도와주셨어요. 신뢰를 회복했고 이후 『장수탕 선녀님』 작업을 같이 하게 됐죠.

 

『장수탕 선녀님』도 아이 독자들에게 반응이 대단했어요.

 

이 책 덕분에 제가 얼른 나았던 것 같아요. 그림책에서 선녀가 덕지에게 ‘일단 나아라’라고 말하잖아요. 그 장면처럼 저도 그동안 받았던 상처들이 치유됐어요. 작업 자체만 두고 봤을 때, 가장 행복했던 책은 『장수탕 선녀님』인 것 같아요.

 

후에 『이상한 엄마』는 작가님께 어떤 작품으로 기억될까요?

 

글쎄요. 1년 정도 지나야 아쉬운 것, 좋은 점이 보이기 시작할 것 같아요. 『장수탕 선녀님』에 대한 생각도 최근에 든 거예요. 3년 정도 지나야 내 작품도 제대로 보이는 것 같아요.『이상한 엄마』는 작업 방식에서도 새로운 시도를 했지만 성장의 의미도 있어요. 엄마가 엄마로서 성장해나가는 것처럼, 이 책도 작가로서의 성장 과정이 아닐까 싶어요.

 

후속작도 궁금합니다.

 

‘이상한’ 시리즈를 한 번 해볼까, 하는 생각이 있는데 잘 모르겠어요. 아무래도 이야기의 소재는 아이한테 더 맞춰질 것 같고요. 또한 제 마음을 사로잡은 문제를 다루지 않을까요?

 

혹시 작가가 기대하는 의외의 독자가 있을까요?

 

물론 가장 소망하는 대상은 아이들이지만, 40, 50대 아저씨가 읽어줘도 되게 기쁠 것 같아요. ‘이 책 내 꺼야. 아무도 안 빌려줘’하면 너무 예쁠 것 같아요. (웃음) 또 바라기는 육아로 힘든 엄마, 아빠가 보면 위로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사실 아이를 키우는 모습을 슬프게 그리는 작품은 많지 않잖아요. 살다 보면 행복하지 않고 힘들 때가 많은데, 그 순간이 얼마나 슬프고 절망감이 큰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 같아요. 비록 아이를 키우는 일이 너무 힘들어도, 아이랑 같이 그림책을 보면서 따뜻한 위로를 받았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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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비영 “바람에 떨어지는 꽃이 위안부 소녀들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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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혜옹주』, 『은주』의 작가 권비영이 새로운 작품 『몽화』와 함께 돌아왔다. ‘1940, 세 소녀 이야기’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소설은 세 소녀를 중심으로 일제강점기의 현실을 되살려낸다.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징용의 문제를 심도 있게 파고드는 한편, 1940년대 혼란의 시기를 전체적으로 조망한다.

 

채 꽃피우지 못한 열다섯 살의 소녀들-영실과 은화, 정인은 운명처럼 만난다. 경성 이모네 집에 맡겨진 영실은 만주로 부모를 떠나 보냈다. 아버지는 주재소 순사를 때린 죄로 고향을 등지고 만주로 향했고, 어머니마저 아버지를 찾아 나서면서 가족은 기약 없는 이별을 하게 됐다. 우연히 만나 친구가 된 영실과 은화는 경성의 소문난 집 자제들이지만, 녹록지 않은 현실 속을 헤매는 것은 매한가지다. 영실은 일본 앞잡이 노릇을 하는 아버지에 대한 반항을 누를 길이 없고, 은화는 기생이 될지도 모르는 처지에 놓여 있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나날들의 연속이지만 세 소녀는 서로에게 기대어 하루하루를 버텨낸다. 그러나 국운을 흔든 거센 바람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영실은 생존을 위해, 은화는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 일본으로 향하고 정인은 아버지의 뜻을 이기지 못하고 불란서로 떠난다. 위안부와 강제징용, 조국을 잃은 지식인의 죄책감은 그들의 일상 속으로 깊게 침투한다. 어느 것 하나 선택할 수 없고, 무엇도 예측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소녀들의 삶은 갈 곳을 모르고 흘러간다.

 

시간은 흐르고 그들은 점점 사라져 간다. 사라져 가는 것이 잊히는 것이라면 그들이 사라지기 전에 그들의 이야기를 살려 놓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역사의 광풍 앞에서 자신을 지켜 내기 위해 몸부림쳤던 가녀린 소녀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다. (『몽화』 383쪽, ‘집필 후기’ 중)

 

권비영 작가에게 있어 『몽화』는 ‘언젠가는 꼭 꺼내야 하는 이야기’였다. 한국 작가로서 “우리가 끌어안아야 할 이 상처를 위해 문학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라는 고민을 지우기 어려웠다. 뿐만 아니라 『덕혜옹주』를 준비하는 동안에도 위안부와 강제징용의 문제가 불쑥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역사와 사회에서 소외되고 상처받은 영혼들에 꾸준한 관심을 가져온” 그녀에게 『몽화』의 이야기는 차마 눈 감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게 영실, 은화, 정인의 삶은 세상 밖으로 나왔다. 세 소녀로 대변되는 ‘이름 없이 스러져 간 수많은 이들’의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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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떨어지는 꽃이 위안부 소녀들 같았어요

 

『몽화』는 오래 전부터 구상하셨던 작품으로 알고 있습니다. 『덕혜옹주』를 쓰시는 동안에도 위안부 문제에 대해 생각하셨다고요.

 

저만 오래 전부터 생각한 게 아닐 거예요.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위안부나 강제동원에 대해 알고 있었잖아요. 해결책을 찾아내야 한다는 것도 다들 알고 있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하거나 어떤 방향을 제시하는 건 다소 두려워하지 않았나 싶어요. 해결하기가 쉽지 않은 문제이고, 그래서 저도 어떻게 해야 한다고 강하게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그럴 때일수록 이 문제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고 의견을 모아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다 보면 의외로 좋은 물꼬가 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본격적으로 집필하게 된 계기는 몇 해 전, 일본의 어느 폐탄광을 살펴보고 나서다”라고 쓰셨습니다. 폐탄광은 어떻게 가게 되신 건가요?

 

『덕혜옹주』자료 조사를 할 때 위안부와 폐탄광(에 강제징용 된 사람들)의 이야기도 많이 보게 됐어요. 그런 자료들은 따로 모아 놨었고 이후에도 관련 자료를 보면 해당 카테고리에 저금하듯이 넣어 놨고요. 『은주』가 출간된 후에 2년 정도 『몽화』를 썼는데, 자료수집부터 집필까지 걸린 시간은 2년보다 더 긴 거예요. 일본에는 『은주』를 쓰고 나서 위안부 문제와 강제징용 당한 사람들의 자료를 조사하려고 갔었어요. 당시 동행했던 가이드가 폐탄광을 보여줬고요. 그곳에 가면 강제징용 왔던 분들이 살던 집도 있고, 위안부들이 머물기도 했던 곳이라고 하더라고요.

 

『몽화』의 집필을 결심하게 되신 사건이 있었나요?

 

폐탄광에 가니까 위령비가 있었는데, 그 앞쪽에 꽃이 피어 있더라고요. 살구꽃 비슷한 빛깔의 꽃이었어요. 처음에는 ‘꽃이 참 예쁘다’는 생각을 했죠. 그런데 바람이 살랑 부니까 꽃이 툭 떨어지는 거예요. 아래를 보니까 떨어진 꽃잎이 흩어져 있고요. 그걸 보는 순간 탁 하고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어요. ‘바람에 떨어지는 건 위안부, 떨어진 꽃잎은 위안부들의 피’라는 등식이 생기는 거예요. 그래서 ‘아, 이제는 써야 되겠구나’ 싶었어요. 그동안에도 위안부 문제를 어떻게 접근해서 풀어가야 할지 고민했었는데, 그 일이 꼬투리가 된 거죠. 결정적인 계기가 됐어요. 책 속에도 정민교의 시조가 나오는데 “간밤에 부던 바람에 만정도화 다 지거다 / 아이는 비를 들고 쓸오려 하는고야 / 낙환들 꽃이 아니랴 쓸어 무슴하리오”에서 떠오르는 그림하고 똑같은 거예요.

 

떨어지는 꽃송이에서 어린 소녀의 이미지가 떠오르셨어요?

 

꽃이라는 게 몽우리가 졌다가 폈다가 떨어지는데, 소녀는 몽우리잖아요. 폐탄광의 나무에도 이제 막 예쁘게 피는 꽃이 있었는데 바람이 휙 부니까 똑 떨어지더란 말이에요. 그렇게 떨어진 꽃잎들이 너무 많더라고요. 책 표지에 그려진 그림처럼요. 위안부 소녀상을 보면 다 맨발이에요. 만져 보면 얼마나 차가운지 몰라요. 그 겨울에 신발도 못 신고 맨발로 헤매야 되는 소녀를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할 정도로 아프잖아요. 폐탄광에서 떨어진 꽃을 보면서도 ‘제대로 피어보지도 못하고 스러진 이 꽃이 바로 너희들이로구나’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게 『몽화』라는 제목과 맞아떨어졌고, 표지의 일러스트에도 담긴 거예요. 저는 일러스트레이터 분께 폐탄광에서 봤던 모습을 말씀드린 적이 없는데 어떻게 이렇게 만들어 내셨는지 모르겠어요. 그림을 보면서 탄복했어요.

 

강제징용 문제도 마찬가지이지만, 특히 위안부 문제는 다루기가 조심스러우셨을 것 같습니다.

 

일본의 폐탄광을 갈 때 일본어 교수님한테 가이드를 부탁했었는데, 그분께서 제발 왜곡은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시더라고요.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생각해 보니까, 일본은 일본대로 우리는 우리 대로 서로 부풀리는 부분들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 그런 것들에 휘둘리지 말고 써달라고 하셨던 것 같고, 저 역시 그런 점에서 굉장히 많이 신경을 썼어요. 그리고 저는 르포 작가가 아니라 소설가니까, 이 문제를 다루되 위안부 할머니들을 만난다거나 그분들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건 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렇게 하지 않아도 책이나 방송을 통해서 그런 자료들은 이미 다 알고 있잖아요. 오히려 한 발짝 떨어져서 들여다보자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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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도 고통이라고 생각해요

 

지난 해 12월 한일 위안부 합의가 이루어졌습니다. 『몽화』의 출간을 두고 “협상에 둘러싼 논란을 염두에 두고 소설을 쓴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었는데요. 이런 상황이 부담스러우실 것 같기도 합니다.

 

2년 정도 『몽화』를 썼으니까, 그때는 그런 일이 일어날 줄도 몰랐죠. 의도하거나 생각한 것도 없었고요. 작품이 나올 때쯤 되니까 그렇게 된 거예요. 작품을 읽어 보셨다면 아시겠지만 제가 주인공을 빌려서라도 어떤 색깔을 드러내거나 강성적인 발언을 한 게 없잖아요. 저는 어떤 일에도 앞서서 나가는 걸 못하는 스타일이에요. 한 발짝 떨어져서 관망한 후에 판단하는 편이에요. 우리가 제대로 보는 게 중요한 거잖아요. 누가 이기고 누가 지는 식으로 몰아가고 싶지 않았어요. 어떤 분은 영실이가 너무 밋밋하다고 말씀하시기도 해요. 너무 힘이 없고, 아무것도 하는 게 없고, 그 시대를 살면서 울분도 별로 토하지 않는다고요. 은화는 나름대로 고통을 겪고 정인이는 나름대로 색깔이 있는데, 영실이가 너무 밋밋하다고요. 그런데 제가 고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저는 영실이를 그렇게 만들고 싶었어요.

 

‘영실’이 무력한 인물처럼 보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처음의 설정을 바꾸시지 않은 데에는 어떤 이유가 있나요?

 

그 시대 상황에서 그런 아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는 거죠. 위안부로 끌려가고 잘못된 경우도 있지만, 아무것도 안 했으면서도 자기 존재도 못 찾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여성들도 많았다는 거예요. 그들은 물리적으로 위안부가 안 된 거지, 정신적으로는 위안부만큼 다 힘들게 겪었다는 거죠.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도 고통이라 게 제 생각이에요. 영실이라는 인물이 너무 의기소침하고 힘도 없는 것처럼 그려졌지만 그건 저의 의도예요. 강경하게 독립 운동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훌륭하지 않은 것도 아니고 애국심이 없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 사람이 처한 상황에 따라서 달라지는 거죠. 오히려 저는 그렇게 무능력하고 힘없는 사람들이 살았던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그 사람들이 ‘나는 위안부가 안 돼서 참 다행이야’라고 생각하지 않잖아요. 위안부는 안 됐지만 정신적으로는 그들만큼 고통을 받았고 그들의 입장을 충분히 아프게 여기고 있어요. 몸만 더럽혀지지 않았을 뿐이지 나라가 없는 설움은 똑같이 겪었는데, 그런 의미에서 일부러 영실이를 그런 인물로 그린 부분도 있어요.

 

몽화』의 세 소녀와 같이, 누구나 거대한 역사의 흐름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우리가 주체적이고 능동적으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는 건 환상에 지나지 않는 걸까요?

 

환상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소설의 마지막에 보면 영실이가 스스로 아버지를 찾아가기 위해서 나름대로 노력을 하잖아요. 일반 사람들이나 열사의 입장에서 볼 때는 별것 아닌 일 일지 몰라도, 야학을 한다거나 독립 운동 기사를 보면서 자기를 조금이라도 찾아가려고 애를 쓰죠. (당시의 여성들처럼) 여성이 공부도 하지 못하고, 자기 자각도 없고, 자존도 없다 보면 세상과 마주쳤을 때 판단 능력도 없고 어떤 행위를 할 수 있는 힘이 안 생기잖아요. 이 작품에서도 영실이는 공부를 하고 싶어도 공부를 못했어요. 그래서 자기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깨우치고 나름대로 미미하나마 노력을 하는 거죠. 그래서 어쩌면 이후에 영실이의 후일담이 써질 지도 모르겠어요.

 

‘영실’의 이야기가 이어질 수도 있다고 하셨는데요. 다음 작품을 구상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항상 머릿속에는 서너 가지 이야기가 있어요. 비유하자면 이런 거예요. 빨간 실, 파란 실, 노란 실을 생기는 대로 넣어 놓는 거죠. 그러면 어떤 때에는 빨간 실이 커지고, 어느 순간 멈추고 노란 실이 커지기도 해요. 그러다 보면 ‘노란 실이 너무 커졌다, 이걸로 뭘 짜야 하지?’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그게 작품으로 나오는 거예요. 지금도 머릿속에 몇 가지 이야기가 있는데, 어느 것이 먼저 커져서 이야기로 짜여지는 시기가 될지 저도 모르죠.

 

‘권비영의 소설’은 어떻게 비유할 수 있을까요?

 

제 작품을 보고 너무 쉽다고 이야기하시는 분들도 계세요. 좋은 의미에서 그렇게 말씀하시기도 하시고, 비판적으로 말씀하시기도 해요. 그럴 때 저는 ‘커피가 몇 가지 종류가 있는지 아세요?’라고 이야기해요. 원두는 하나인데 에스프레소를 먹는 사람도 있고, 아메리카노를 먹는 사람도 있고, 카페라떼를 먹는 사람도 있잖아요. 같은 원두를 가지고도 내 취향대로 다른 걸 만드는 거죠. 밀가루를 가지고 빵만 만들어야 되는 건 아니잖아요? 국수를 만들 수도 있죠. 내가 할 수 있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만들면 돼요. 그러면 빵을 좋아하는 사람은 빵을 먹을 거고요. 국수를 좋아하는 사람은 국수를 먹을 거예요. 독자마다 취향이 있고 그에 따라서 선택을 하는 거니까요. 똑같은 재료를 가지고 어떻게 녹여서 어떤 음식을 만드느냐는 작가의 몫이고 작가의 취향이나 생각이 들어가는 거죠. 제 소설이 쉽거나 다른 작가의 소설이 어렵다면,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독자가 읽고 쉬우면 쉬운 대로 독자가 읽는 거예요. 각자 만들고 싶은 걸 만드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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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호 감독의 <덕혜옹주>, 기대하고 있어요

 

‘역사와 사회에서 소외되고 상처받은 영혼들에 꾸준한 관심을 가져온 작가’로 평가 받고 계십니다. 특히 이런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되신 이유가 있을까요?

 

특별하게 관심을 갖는 건 아니었어요. 『덕혜옹주』를 쓸 때도 투철한 역사 의식이 있거나 역사학에 관심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요. 그런데 저는 작가잖아요. 작가는 다방면에 있어서 조금씩 조금씩 알아야 되고 모르면 그 부분에 대해서 공부를 해야 하지만, 저는 작가마다 쓸 수 있는 영역 같은 게 있다고 봐요. 사실은 저도 ‘덕혜옹주’에 대해 잘 알지 못했었어요. 고등학교 국사 시간에 선생님이 지나가는 이야기처럼 해주신 걸 들은 게 다였어요. 그런데 나중에 제가 자료 조사를 하다 보니까, 제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 ‘덕혜옹주’ 마마가 창덕궁에 살고 계셨더라고요. 그런데 그걸 전혀 몰랐잖아요. 나중에 자료조사 하면서 죄송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 고초를 겪은 사람이 있었다는 걸 우리 국민들이 모르고 있었잖아요. 그나마도 더 시간이 지나가면 사장이 되어버릴 거고요. 그런 생각을 하니까 ‘덕혜옹주만 그랬겠나’ 싶은 거죠. 잊혀진 존재는 다 그렇게 잊혀져 가는 거잖아요. 모든 작가가 그럴 거예요. 낮은 자들 혹은 소외된 자들에 대한 관심이나 애정이 다 있을 거예요. 그중에 저는 ‘덕혜옹주’를 잡았던 거고요. 제가 특별히 상처받은 영혼에 대한 관심이 많은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개인에 국한되어 있는 문제에 집중하는 작가들도 있잖아요. 죄의식이나 복수 같은 감정들이 그렇죠. 그에 비하면 작가님은 ‘사회나 국가와의 관계에서 개인이 받는 상처’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아요.

 

그 질문을 하시니까 언뜻 생각이 나는데요. 제가 그런 데 관심을 가진 건 아니었는데, 지금 짚어 보면, 저희 아버지가 가진 건 꼭 나눠주셔야 하는 분이었어요. 두 개를 갖고 계시면 하나는 남을 줘야 하고, 하나가 있으면 반을 쪼개서 줘야 되는 삶을 사시다 가신 분이거든요. 입었던 옷도 벗어주고 오시고, 연고 없이 아이스께끼 장사하는 아이들을 데려와서 공부도 시키시고...그때는 아버지의 그런 행동이 이해가 안 됐어요. 그런데 아마 그때부터 상처 받은 영혼이나 힘들게 사는 사람들에 대한 시선이 은연중에 생긴 게 아닌가 싶네요. 한 번도 아버지가 ‘내가 하는 행동을 배워라, 인간은 이렇게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면서 살아야 된다’라고 말씀하신 적은 없지만,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는 것처럼 알게 된 게 아닌가 싶기도 해요. 아버지가 하시는 행동을 보면서, 물질적으로 많이 도와주지 못했더라도, 마음으로나마 ‘어떻게 도울 방법이 없을까’하는 생각이 생긴 것 같네요. 지금 생각해보면요.

 

아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니까 궁금해지는 게 있습니다. 『몽화』의 등장인물 중에서 특히 아픈 손가락이 있으세요? 특히 안쓰러운 인물이 있다면 누구인가요?

 

‘점순이’요. 점순이는 밑바닥 삶을 산 아이잖아요. 열 몇 살밖에 안됐는데 벌써 자신이 일하는 여관에 드나드는 사람들의 이유를 다 알아요.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는 어떻게 해서든지 취해야 된다는 생각을 하고요. 그런 걸 보면 가장 불쌍한 영혼은 점순이 같아요. 자기가 그렇게 불쌍한 존재라는 걸, 그 자체를 모르잖아요. 영실이에게 ‘너도 위안부인데 왜 나만 이런 취급을 받아야 되냐’고 화를 내기도 하는데, 그렇게 너무 당당한 건 모르기 때문이에요. 그래도 영실이는 자신이 처한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면 안 된다는 것도 알고 공부를 하고 싶은 열망이라도 있는데, 점순이는 오로지 눈에 보이는 것에만 집중해요. 그렇게 너무 당당한 게 불쌍한 거예요. 아마 상처 받은 영혼의 전형이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들죠. 점순이는 ‘무조건 잘 살아야 된다’는 생각에 빠져있는데 그런 삶을 ‘무조건’ 살아야 된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너무 불쌍하다고 생각해요.

 

영화 <덕혜옹주>가 올해 하반기에 개봉될 예정입니다. 허진호 감독이 연출을 맡은 데다, 손예진 박해일 등 캐스팅도 화려해서 벌써부터 큰 기대를 모으고 있죠.

 

허진호 감독의 <8월의 크리스마스>를 보고 정말 좋았어요. 촬영지인 군산에 있는 사진관에도 가봤고요. 그런데 허진호 감독이 연출을 맡는다고 하니까, 너무 좋았죠(웃음). <8월의 크리스마스>를 만든 감성을 보면 정말 잘할 것 같아요. 저도 영화 <덕혜옹주>가 너무 기대되고요. 저보다 주변에서 더 많은 기대를 해요.

 

시나리오 작업에는 참여하지 않으셨나요?

 

그럼요. 그건 그분들의 영역이지, 제가 감히 덤벼들 일이 아니죠. 덤벼들어서도 안 되고요. 제 작품을 원작으로 만들어지지만 각색되는 부분도 있고 영화로 보는 시선이 또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 부분은 영화를 만드는 분들만의 고유한 영역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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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화권비영 저 | 북폴리오
일본제국주의의 핍박이 심해지는 1940년대의 세 소녀 영실, 은화, 정인. 부모를 다시 만날 기약은 없고, 눈앞에 놓인 운명이 기생이며, 아버지가 일본 앞잡이라 손가락질 받는 저마다의 상처 속에서 영그는 우정은 서로에게 살아가는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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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현산 “자기 운명보다 강한 아이를 창조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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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운명보다 강한 사람들’

 

오랫동안 곱씹게 되는 말이었다. 고대 문명과 인간의 삶을 조사하던 중 작가가 발견한 문장이었지만 놀랍도록 현재성을 확보한 문장이었다. 지금, 여기는 신의 자리를 대신한 지상 최대의 어떤 가치 때문에 많은 것이 정해져있다고 믿어버리는 세상이다. 이곳에서, ‘운명보다 강한 사람’을 이야기하면 금방 이상주의자 취급을 받게 마련. 어른들은 같은 이야기를 반복해 다음 세대에 전한다. 흔하게 ‘미래’라는 말로 수식하는 어린이들은 그렇게 일찍부터 ‘늙어간다.’ 바꿀 수 없는 것들만 하나씩 확인해나가는 셈이다. 그러니 이 이상적으로 보이는 문장이 더욱 소중해진다. 

 

제20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 대상작 『도둑왕 아모세』의 작가 유현산은 자유를 이야기하고자 했다. 현실에 부딪치지만 굳센 의지를 갖고 싸우는 ‘아모세’는 그렇게 탄생했다. 이 사랑스러운 소년은 어른도, 왕도, 심지어 세상도 마냥 두려워하지 않는다. 의심스러운 것은 당당하게 따져 묻고, 파헤쳐야 할 것은 온 힘을 다해 연구한다. 진짜 자유는 그렇게 “싸워나가면서” 쟁취해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도둑질을 하던 친구가 스핑크스를 만나고 호루스의 눈을 찾으러 떠나면서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것을 생각하게 돼요.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는 하나의 성장기라고도 볼 수 있어요.”

 

몸으로 세상을 생생하게 체험하고 옳고 그름을 탐구하는 이 소년이 큰 사람이 된 미래, 그곳은 얼마나 희망적인지. 드물지만 가능한 세계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아모세를 읽은 많은 사람들이 아모세를 꿈꾸고 아모세를 지향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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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체적인 이집트의 일상과 현실

 

제20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 대상작이에요. 수상 소식 듣고 기분이 어땠나요?

 

책이 나올 수 있단 생각이 들어서 기뻤어요. 책을 우리 아이들한테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원래 써온 게 무서운, 잔혹한 추리나 스릴러물이라 아이들한테 보여줄 수가 없었는데요. 특히 큰 아이가 고대문명 같은 걸 좋아해요. 수학 관련한 학습 만화도 좋아하고요. 고대문명을 배경으로 수학문제를 트릭 삼아 한 번 재미있게 모험동화를 써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자녀분들 반응, 좋았나요?

 

재미있다고 하는데요. 오히려 초등학교 2학년 둘째가 더 좋아하는 것 같아요. 초등학교 5학년 큰 아이는 요즘 게임에 빠져서요. 그래도 읽긴 다 읽었어요. 예의상인지 모르겠지만(웃음) 재미있다고는 해주더라고요.

 

왜 이집트였을까 궁금했었는데 자녀의 관심사라는 커다란 이유가 있었네요.

 

큰 아이가 특히 고대 이집트에 관심이 많았고요. 저 역시 고대 이집트 외에도 여러 가지를 생각해봤어요. 고대 그리스, 메소포타미아 같은 곳으로 또 쓸 계획도 있습니다. 특히 고대 이집트 문명이 매혹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이유가 일단 이집트 문명은 고대 문명 중에서도 굉장히 풍요로운 문명이잖아요. 가장 화려하고 장대한 문명을 갖고 있거든요. 제 동화 세계를 먼저 그걸로 시작해보자고 생각한 거예요.

 

아, 앞으로도 동화를 계속 쓸 계획인가요?

 

출판사에서 내주기만 한다면야(웃음) 가끔씩 쓸 생각은 있어요. 성인 소설도 생각하고 있는데요. 여러 가지 시간문제로 언제 나오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두 가지를 병행하고 싶어요.

 

추리소설과 동화, 의외의 행보긴 하거든요.

 

아무래도 고생을 많이 했어요. 동화는 처음 써보는 거고, 습작을 전혀 안 해본 상태였거든요. 그런 상태에서 동화를 쓴다는 게 굉장히 어렵더라고요. 성인물과 달리 단어 선택부터 구성이라든가 캐릭터, 플롯, 이런 것 자체가 전부 다르니까요. 처음에는 되게 많이 헤맸던 것 같아요. 말도 안 되는 것도 써보고 하다 많이 고쳐보니까 조금 감이 왔어요. 그 와중에 어렸을 때 읽었던 『톰 소여의 모험』, 『허클베리 핀의 모험』 같은 모험동화들을 많이 참조해가면서 썼죠. 추리동화도 많이 참조했고요.

 

많이 헤맸다고 했는데, 이 작품은 쓰는데 얼마나 걸렸어요?

 

사업차 인도네시아에 갔었는데요. 그곳에서 썼어요. 사업이 잘 안 됐어요.(웃음) 마음은 막막하고 그랬는데 울적한 마음에 스릴러를 쓰면 더 울적해질까봐 즐거운 동화를 써보자는 생각을 했죠. 동화는 우리 아이들에게도 보여줄 수 있고 하니까요. 그렇게 시작했는데 한 일 년 정도는 헤매고 이것저것 써보면서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일과 병행해야 하다 보니 진척이 안 되고 그런 것도 있었고요.

 

서사가 무척 힘이 있거든요. 미지의 사건을 풀어가는 이야기인 만큼 쓰면서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원래 추리소설을 써왔기 때문에 어떤 트릭을 짜고 그것을 해결해나가는 방법들은 익숙해 있었습니다. 이걸 동화에 응용해보자고 생각했고요. 서사를 만들 때 가장 중점을 둔 것은 아무래도 역동성이에요. 지나치게 교훈을 강조한다든지 내면세계만을 강조한다든지 하는 경향은 별로 달갑지 않게 생각했거든요. 특히 모험동화기 때문에 끊임없이 고난을 해결해나가면서 성장하는 과정을 한 번 그려보자는 생각이었어요.

 

배경이 배경이니만큼 이야기가 벌어지는 공간도 무척 다양하고, 무엇보다 크죠.

 

일단 모험동화 자체가 한 공간 안에서 이뤄질 순 없거든요. 공간이 넓어야 역경을 겪으면서 성장하는 이야기를 그릴 수 있기 때문에 그 부분이 제일 골치가 아프죠. 참고 서적도 많이 읽고 제 나름대로 조사를 많이 해서 썼다고 생각했는데요. 편집자께서 꼼꼼히 읽으시고 굉장히 많은 오류를 지적해주시더라고요.(웃음) 그래서 또 수정을 많이 했습니다.

 

자료 조사는 어떻게 한 거예요? 힘든 일이었을 것 같습니다.

 

고대 이집트는 좀 낫습니다. 출간된 책들이 꽤 많거든요. 고대 이집트는 자료를 읽는 게 문제지 자료를 찾는 건 큰 문제가 아니거든요. 근데 다음에 수메르나 메소포타미아 문명으로 간다면 굉장히 어려워지겠죠.(웃음) 다행히도, 고대 이집트는 굉장히 관심들이 많기 때문에 크게 문제는 아니었어요. 게다가 동화에 있는 사실들은 상식적인 부분들이에요.

 

이집트 하면 떠오르는 왕가의 화려함 외에 『도둑왕 아모세』에는 서민들의 모습, 시장 풍경 같은 것도 많이 나와요. 흔히 보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던 작가의 의도가 있었겠죠?

 

그렇죠, 아무래도 고대 이집트를 다룬 동화나 영화, 소설은 왕가의 화려함이나 권력 투쟁에 집중하고 있다거나 아예 넘어가서 판타지의 세계, 신의 세계 쪽으로 가거든요. 그런 것들은 이미 너무 많이 나와 있으니까요. 저는 구체적인 이집트의 일상, 현실, 그 속의 한 소년, 그 소년이 겪는 고난, 이런 것들을 재미있게 전달하는 게 훨씬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특히 요즘 어린이들에게 부족한 부분이 그런 것들이 아닌가 싶어요. 학습 만화 많이 읽고요. 판타지 많이 읽다보니까 구체적으로 주어진 역사적 사실이나 지금의 현실보다는 환상의 영역이나 만화적인 모험 혹은 지식 습득을 위한 짜 맞춘 스토리들을 많이 접하게 돼요. 때문에 저는 현실을 많이 생각해보려고 했어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공들여 화장을 한다거나 기름을 바른다거나 하는 모습은 확실히 이야기의 생생함을 더합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화장을 굉장히 좋아했어요. 서민들부터 왕족까지 화장은 필수였어요. 그것은 첫째, 태양이 너무 뜨거우니까 피부를 보호하기 위한 이유도 있고요. 두 번째는 주술적인 의미도 있죠. 악령을 쫓아준다는 의미가 있거든요. 자료를 찾으면 찾을수록 고대 이집트인들은 외모를 꾸미는 데 굉장히 오랜 시간을 들였다는 걸 알 수 있어요. 현대인들보다 훨씬 많이요. 남자건 여자건 그래요.

 

무엇보다 삽화가 이야기와 맞물려 책을 읽는 데 큰 즐거움을 주거든요. 내용을 상상하는 아주 훌륭한 장치예요.

 

그건 편집자분의 공이 커요.(웃음) 그림을 처음 봤을 때 정말 좋았어요. 무척 반가웠어요. 생각하던 그림은 아니었는데요. 오히려 진짜 이집트 벽화 같은 느낌이 나오니까 훨씬 좋은 거예요. 정말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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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라는 문제

 

작가의 말에서 주인공 아모세에게 깊은 애정을 드러냈는데요. 아모세는 투지가 있어요. 삶에의 의지도 아주 강하고요. 이 캐릭터를 통해 하고 싶은 말도 있었을 것 같아요.

 

거창하게 말하자면 이런 동화로 어린이들과 ‘자유’라는 문제를 이야기해보고 싶었어요. 고대 이집트 같은 경우 원초적인 제약들이 있는데요. 그 제약을 공포나 신의 문제로 치환시키게 되죠. 원형적인 삶이에요. 신관과 왕은 신이 임명한 것이고, 왕에게 모두 바쳐야 하고, 내가 겪고 있는 현실은 수긍해야 할 것으로 생각되죠. 자유라는 것은 그런 문제들에 부딪치면서 시작되는 거잖아요. 절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고 계속 의지를 가지고 싸워나가면서 하나씩 획득하는 것이죠. 그런 문제를 이야기하고 싶어서 아모세라는 캐릭터를 만들어본 거예요. 특히 모험동화에서는 의지가 굳센 그런 캐릭터가 나와야겠죠.

 

또 하나는 아모세가 하나씩 깨달아가는 게 있잖아요.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도둑질을 하던 친구가 스핑크스를 만나고 호루스의 눈을 찾으러 떠나면서 삶의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것을 생각하게 돼요.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서는 하나의 성장기라고도 볼 수 있어요.

 

아모세 시리즈로 가도 좋을 것 같은데요.(웃음)

 

아마 다른 동화를 써도 아모세와 비슷한 유형의 친구가 될 것 같아요. 의지를 가진 아이, 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아이겠죠. 어떤 책을 보면 이런 말이 나와요. ‘고대 그리스인을 한 마디로 말하면 자신의 운명보다 강한 사람들이었다.’고요. 그런 것이죠. 고대에서 가장 자신을 속박하는 것은 내 운명일 텐데 자기 운명보다 강한 아이, 그런 아이를 창조하고 싶었어요. 

 

교육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걱정하고 있는 부분도 많을 것 같거든요.

 

그렇습니다, 동화를 써보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비슷한 이유예요. 큰 아이가 굉장히 책을 좋아하고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였는데요. 어쩔 수 없이 학원도 보내고, 주로 학습만화를 읽게 되고, 게임 같은 것들을 하게 되면서 점점 아이의 상상력에 제약이 오는 게 아닌가 싶어요. 조금 다른 시각으로, 고대 문명이라고 해도 그 현실을 조금 다른 시각으로 재미있게 보여주는 동화를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그래서 들었고요. 다만 재미가 있어야겠죠. 너무 교훈을 강조한다든가 지식을 강조하는 건 좀 아니고, 같이 신나게 모험을 떠날 수 있는 동화를 생각했어요. 그 뒷골목에서부터 말이죠.

 

특히 교육에 대해서 문제의식이 많이 있죠. 이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불안입니다. 특히 중산층들은요. 나와 내 가족의 존재가 언제 아래로 떨어질 것인가 하는 불안인데요. 그 아래가 우리 사회는 굉장히 깊어요. 중산층과 그 아래, 그 위 사이에 엄청난 거리가 있습니다. 심리적으로도 현실적으로도 점점 깊어지고 있어요. 그 불안을 아이에게 투사하고 있는 거예요. 반드시 중산층으로 살아남기 위해 모든 것을 공격적으로 주입시키잖아요. 그게 우리사회의 가장 큰 문젠데 사실 해결방안이 거의 없어요. 이 문제에 대해서는 뭔가 설익은 걸 계속 바꾸는 것보다 일단 멈추고 성찰해볼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해요. 부모, 학교, 교육 관료가 성찰을 통해 답을 찾아야지, 지금처럼은 안 돼요.

 

가장 기초적인 단계인 부모의 철학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는데요. 그게 없으면 주변의 불안에 전염되고 함께 공격적으로 되는 거잖아요.

 

좋은 부모, 좋은 엄마가 되는 법, 굉장히 많은데요. 그것도 이 사회의 불안 중 하나 같아요. 저는 두 가지만 얘기해주고 싶어요. 일단 아이를 가만히 놔둬보자는 건데요. 요즘 아이들은 심심함을 잘 몰라요. 학습만화 읽거나 게임하거나 학원 뺑뺑이 도는데 언제 심심하겠어요. 그래서 아이들이 소비하는 콘텐츠라는 게 대부분 도피예요. 현실이 너무 바쁘니까요. 일단 가만히 놔두는 게 필요할 것 같고요. 또 한 가지는 다양한 것들을 경험하게 해야 하지 않나 싶어요. 밝은 것, 지식 이런 것들만 강요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종류의 문화 콘텐츠를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게 필요해요. 다양한 것을 경험할 수 있는 시간과 여유를 줘야 하지 않나 생각해요.

 

‘학습’이 지상최대의 목표가 되고 상상력 뛰어난 친구가 변화하는 모습을 보면 너무 안타깝죠.

 

요즘 친구들은 우리 어릴 때보다 지식이 훨씬 많아요. 학습만화를 엄청나게 읽고, 읽히기 때문에요. 뭘 물어보면 바로 나올 정도의 지식을 갖고 있지만 그걸 넘어선 어떤 상상력은 굉장히 부족하죠. 그래서 모험동화를 많이 읽어야하지 않을까(웃음) 그런 생각을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어쨌든 머릿속으로라도 신나게 뛰어노는 거잖아요. 그럴 기회가 별로 없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저는 작가의 말 끝부분에 ‘같이 한 번 신나게 놀아보자, 나일강의 사람들이 반겨줄 것이다’라고 했는데요. 바로 말씀하신 그걸 해보고 싶었어요. 책을 읽으면서 신나게 노는 거죠. 그 시간만큼은 학습이라든가 게임이라든가 이런 걸 다 잊고 말이죠.

 

원래 이야기, 책을 읽는 행위는 그렇게 마음껏 즐거워야 하는 거잖아요.

 

책을 읽는 건 탐험과 비슷한 거죠. 미지의 세계, 낯선 세계, 신비의 대륙 같은 곳을 탐험하는 거예요. 어릴 때는 수준에 맞지도 않는 아빠의 서가에 꽂힌 책을 꺼내 보기도 했어요. 그런 미지의 세계에서 하는 탐험이 있었다면 요즘 친구들은 그보다 지식을 얻어가려는 경향이 굉장히 강하죠. 독서라는 행태가 굉장히 왜곡돼 가는 것 같아요. 낯선 것을 탐험하고 상상하고 감정에 이입돼보는 게 아니라서 아쉽긴 해요. 독서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억지로 해야 하는 의무가 된다든가 이렇게 돼서는 절대 안 될 것 같고요. 계속 동화작가들이 노력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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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슬픔을 너무 기피하는 것 같아요

 

고대 이집트는 풍요로운 곳이었지만 모두가 행복하지는 않았을 거라고 적었어요. 작가의 마음이 엿보이기도 하는 부분이었어요.

 

지금도 풍요의 시대죠. 어렵다고 하지만 지금의 한국도 풍요의 시대고, 고대 이집트도 마찬가지였고요. 다만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풍요롭지만은 않을 테고 여러 어려움이 많을 겁니다. 아이들에게 고대라는 문명을 보여줄 때 신화적으로, 너무 신비롭고 아름답고 풍요로운 곳이라고만 보여주긴 싫었어요. 풍요로운 곳이지만 억울한 일도 있고, 어려운 일을 당하는 사람도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지금, 현재처럼 말이에요. 사람들이 아모세처럼 자신의 어려움을 극복해내기 위해 모험도 하고 의지를 갖고 무언가를 해결해나가기도 하고 그런 세계일 것이다, 이런 것들을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작가가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주제라고 봐도 될까요?

 

동화작가로서의 저는 모험과 자유, 이런 문제에 관심이 있고요. 성인 추리작가로서의 저는 아무래도 우리가 사는 사회에 관심이 있죠. 사회의 그늘진 부분들 말이에요. 동화를 쓸 때가 훨씬 행복하고 좋아요.(웃음) 어린이들에게 현실에는 이런 면도 있고, 저런 면도 있는데 중요한 것은 자기 의지를 갖고 하나씩 해결해보려는 것이다, 이런 것들을 얘기하고 싶었어요. 결국 모든 모험동화가 하는 이야기는 아마 그런 이야기일 것 같습니다. 설령 실패한다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굉장히 소중한 일이고요.

 

소설을 본격적으로 쓰기 전에 기자 생활을 오래 했잖아요. 이것이 소설 쓰기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11년 가까이 기자 생활을 했고요. 기자 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것들을 가지고 처음엔 추리소설을 세 권 정도 썼고, 이후 동화를 쓰게 된 거예요. 기자 생활을 했다는 것이 동화를 쓰든 추리소설을 쓰든 도움이 되는 것은 뭐냐면 팩트를 확인하고 정확히 쓰는 것을 다른 사람들보다 집중해서 하게 되는 것일 거예요. 제 문장을 보시면 알겠지만 미사여구가 많고 화려하고 문장이 재치 있어서 재미있고 이런 건 아닙니다. 그냥 사건 위주로 흘러가는데요. 저는 타고난 미문가로서의 재능은 없어요. 전장에 나갈 때 남들은 대포를 들고 나간다면 저는 소총 하나인 셈인데요. 제가 이 전장에서 최대한 이길 수 있으려면 정확하게 쓰는 수밖에 없어요. 문장이나 팩트를 정확하게 쓰려고 많이 노력해요. 대신 약점이라면 내면으로 천착해 들어간다든가 감정 변화의 미묘함을 찾아내서 이야기가 흘러간다든가 이런 부분이에요. 능력에도 안 맞고 하기도 싫습니다. 다만 여러 가지 사건들을 통해 그 캐릭터가 혼자 성장해가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여주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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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작가의 다양한 이야기가 더 많이 나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렇습니다, 한국의 문화 산업 자체에 다양성이 부족한 건 사실이고요. 시장도 작은데다 대중의 관심도 획일화 되어 있잖아요. 쏠림 현상도 심하고요. 동화도 마찬가지예요. 한국인이 외국의 고대 문명을 가지고 쓴다는 게 참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그것이 또 우리 동화의 다양성을 위해서는 아주 중요한 일일 거예요. 중요한 정도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기여를 하진 않을까(웃음) 생각해요. 한국, 한국의 현실, 한국의 어린이, 이런 것에만 집중할 필요는 없지 않나 생각하는 거죠. 상상의 나래를 넓게 펼쳐서 자유롭게 보여줘도 좋지 않나 싶고요. 이런 생각은 해외에서 살아보니 많이 들더라고요. 한국인이라고 굳이 한국 캐릭터만 창조해야 하는가, 좀 더 써볼 수 있겠다,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동화를 쓰든 다른 무엇을 쓰든 말이에요.

 

동화작가로서 꼭 써보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지금은 나름대로 준비한 게 있어 이런 고대 문명의 이야기들을 써보려고 하고요. 과거의 어린이에 대한 이야기도 써보고 싶어요. 90년대라든가 한국전쟁이라든가 이런 과거의 어린이가 겪은 현실들을 써보고 싶기도 하고요. 또 하나는 상실인데요. 어머니에 대한 상실 같은 거요. 굉장히 슬프지만 감동 있는 이야기도 한 번 써보고 싶고, 그런 생각이 드네요.

 

다시 약간 슬픈 이야기네요.

 

제가 쓰는 이 동화 자체는 밝고 명랑한데요.(웃음) 좀 슬픈 주제의 동화도 써보고 싶어요. 요즘은 슬픔을 너무 기피하는 것 같아요. 밝아야 하고, 명랑해야 하고, 상실 같은 심각한 주제는 다루려고 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요. 모든 문화 자체는 밝은 면이 있으면 어두운 면도 있는 것이고, 특히 어린이들에겐 슬픔이나 어두운 면들을 독서를 통해 간접적으로라도 체험해야 자신의 상상력이나 인격을 형성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너무 밝은 면만 가르치는 게 아닌가 싶어서요.

 

슬픔의 감정을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하죠.

 

슬픔, 공포, 이런 감정들을 경험할 기회를 아이에게 빼앗다 보면 아이의 상상력이 굉장히 제약됩니다. 우리 아이는 너무 겁을 내니까 무서운 책을 아예 안 읽히면 안 되겠죠. 그 아이가 그렇게 무서워하는 것은 남들보다 탁월한 공감 능력, 탁월한 상상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거든요. 그렇다면 이런 기회들을 빼앗는 게 아니라 오히려 기회를 많이 만들어야 하는 거죠.

 

그런 체험이 부족한 사람들이 성장한 사회라는 것도 무척 불안할 거예요.

 

그렇죠, 그런 사람은 타인의 아픔이나 슬픔에 공감을 잘 하지 못하죠. 경쟁에서 이기는 것만 생각하게 되고요. 밝은 것만 생각하며 자란 아이들만 있다면 사회는 더 어두워지겠죠.

 

이 책 『도둑왕 아모세』를 어떤 상황에 있는 어떤 독자가 읽었으면 하는 기대가 있다면요?

 

학원과 학습에 지친 모든 친구들이 읽어줬으면 좋겠어요. 색다른 배경이기도 하고, 밝고 명랑하면서도 생각해봐야 할 현실을 담고 있기도 하고요. 저는 큰 꿈을 꾸고 있진 않습니다. 그냥 잠시 휴식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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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왕 아모세유현산 글/조승연 그림 | 창비
3,400년 전의 이집트를 배경으로 소년 도둑 아모세가 친구들과 함께 사라진 보물을 찾는 과정을 그린 모험 동화입니다. 실감 나는 배경, 매력적인 등장인물, 짜임새 있는 전개로 어린이들을 신비하고 생생한 이야기 세계로 데려다줄 작품입니다.

 

 

 [관련 기사]

- 권비영 “바람에 떨어지는 꽃이 위안부 소녀들 같았다”
- 작곡가 엄기환 “연주자와의 소통이 작곡의 시작”
- 일러스트레이터 퍼엉 “해외 팬들, 진짜 놀랍고 신기해요”
- 백희나 “이상한 엄마로 위로 받았다”
- 김진나 “외로울 때 생각나는 동화였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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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리 “화가가 일러스트레이터가 된 이유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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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속마음을 온전히 드러내는 법을 잊어가는 게 어른이라면, 우리는 점점 완벽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나는 안녕한가요?』는 제목만으로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삶을 잘 살아내기란 여전히 어렵고, 도무지 정답을 찾기가 쉽지 않다. 미래는 불확실하고, 현실은 버겁고, 확신은 점점 희미해진다. 그러나 짐짓 괜찮은 척 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낸다. 그렇게 끊임없이 흔들리며 살아가는 오늘의 어른들을 위해『나는 안녕한가요?』는 작은 위로를 건넨다.

 

일러스트레이터 백두리가 읽어낸 책과 그림들 속에는 당신과 나와 작가를 꼭 닮은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말하자면 좋은 사람』, 『너는 나에게 상처를 줄 수 없다』, 『서른 살엔 미처 몰랐던 것들』, 『어른으로 산다는 것』등에서 그림을 통해 말을 건넸던 작가 백두리가 전작 『혼자 사는 여자』에 이어 다시 한 번 직접 쓴 글과 그림을 엮었다. 마치 나의 이야기인 듯 깊이 공감하게 되는 고백들이 가득하다. 그녀가 ‘위로 전문 그림 작가’로 불리는 이유를 짐작하고도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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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토닥이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요

 

『나는 안녕한가요?』라는 책의 제목을 보면 저절로 스스로에게 묻게 되죠. ‘나는 안녕한가?’하고요. 망설임 없이 그렇다고 대답하기가 쉽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그렇죠. 특히 요즘은 개인적인 문제를 넘어서서 사회적인 구조도 그렇고, 안녕하지 못한 게 당연하다는 듯이 살아가잖아요. 그래서 나를 조금 더 돌아보자는 마음에서 책을 쓰기도 한 것 같아요. 힐링을 말하는 책들이 많기는 하지만 다른 사람을 토닥여주는 걸 넘어서서 스스로한테 해답을 찾고자 하는 이야기를 알려주고 싶었거든요. 더 자극적인 것만 찾거나 누군가에게 충고나 조언을 들으려는 것에 멈추지 말고, 스스로 해결점을 찾고 토닥여주자는 의미에서 쓰게 된 거죠.

 

‘나는 안녕한가요?’라는 질문을 받으신다면, 작가님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어요?

 

대답은 자신이 어떤 곳에 기준을 놓고 보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것 같은데요. 그런 면에서 보면 저는 안녕하다고 말할 것 같아요. 지금 삶에 만족하고 있고 행복하니까요. 어떤 상황에서는 분명히 안녕하지 못할 때도 있고, 힘들거나 좌절할 때도 있고, 고통스러울 때도 있죠. 그렇지만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이번 일주일은 어땠는지 생각해 보면 ‘힘든 점도 있었지만 즐거운 일도 있었지, 이 정도면 잘 살고 있는 것 같아’라는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장 큰 만족을 느끼고 있고요.

 

전작 『혼자 사는 여자』는 블로그에 쓰셨던 그림일기가 바탕이 됐잖아요. 이번 책 작업은 어떻게 이루어졌나요?

 

출판사 편집자 분께서 제 블로그를 보시고 제안해 주셨어요. 제가 그 동안 작업했던 책들을 짧은 서평과 함께 써 놨거든요. 그 글을 보시고 시각이 재밌고 색다르다고 하시면서, 책에 대해서 조금씩 다른 시각을 보여주면 어떻겠냐고 하시더라고요. 저도 원래 책과 그림을 좋아하니까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블로그에서 개인적으로 작업하신 그림들을 보여주기도 하셨는데요. 일러스트레이터로서 그리신 것들과는 많이 다른가요?

 

다른 부분이 있긴 하죠. 일은 확실히 일이에요. 출판사가 원하는 방향에 맞춰줘야 되는 부분도 많고, 작가가 의도하는 바를 제 마음대로 재해석할 수는 없으니까, 어느 정도 틀이 있어요. 그리고 제가 해왔던 작업 중에 착한 그림들이 많았어요. 다독이고 위로하는 그림들이요. 물론 저도 좋아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뭔가 다른 식으로 표출하고 싶을 때도 있었어요. 다른 감정들을 이야기하고 싶기도 했고요. 그런 부분에 대한 억압을 개인 작업할 때 풀죠. 예전에 전시회에서 보여드렸던 그림들은 색감을 훨씬 더 세게 쓰기도 하고 약간 부정적인 내용을 내포하고 있거나 위트가 가미되어 있는 경우도 있어요. 개인 작업을 할 때는 그렇게 재미 요소가 있는 그림들을 그리기도 해요. 그림일기도 그 중에 하나라고 볼 수 있는데요. 제가 하고 싶은 대로 그리는 것 같아요.

 

『골든애플』의 그림을 그리실 때는 ‘자기검열을 하지 말아달라’는 요구도 받았다고 하셨어요. 책에서 그 글을 읽고『골든애플』을 보신 분들 중에서, 생각했던 것보다 약하다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시더라고요(웃음). 그 작업을 할 때 ‘최대한 세게 그려봐야지’라고 생각했던 건 아니었어요. 소설이 바탕이니까 그 안에서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죠. 평소에 제가 치유와 관련된 책들을 많이 작업하다 보니까, 그림이 너무 쓸쓸해 보인다든지 색감을 조금 밝게 해달라는 요구들을 받을 때가 있어요. 책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죠. 그런데 『골든애플』은 그런 욕구가 없었어요. 굳이 대중들한테 착하게 보일 필요가 없었으니까요. 장르에서 오는 재미였던 것 같기도 해요. 책에 따라 맞춰줘야 하는 부분이 있고, 덜 맞춰줘야 되는 부분이 있는 거죠.

 

그 결과 얻은 작품들은 만족스러우셨나요?

 

『골든애플』 때는 그냥 러프 스케치가 그대로 반영된 경우예요. 처음에는 표지만 작업하기로 했었는데, 다른 러프 스케치들도 좋아서 내지에 싣고 싶다고 하시더라고요. 저한테는 굉장히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죠. 원래 작업 과정에서 수정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런데 그런 부분도 없었고, 작품을 좋게 봐주셔서 다 실을 수 있었어요. 그리고 대부분은 제가 그린 아크릴화를 보시고 의뢰를 해주시는데, 『골든애플』출판사에서는 그룹전에서 제 그림을 보시고 의뢰를 해주셨어요. 그런 점에서 기존에 해왔던 작품들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이기는 한데요, 저는 좋았어요.

 

기존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게 쉽지만은 않은 일이잖아요. 걱정되는 부분은 없으셨어요?

 

저는 한 가지 이미지가 고착된 상태였거든요. 착한 그림, 따뜻한 그림, 힐링하는 그림을 그리는 작가로 인식되고 있었던 거죠. 어느 순간 그게 너무 부담이 되더라고요. 저도 사람인데 죄도 짓고, 그렇게 착하지만은 않거든요(웃음). 그런데 저한테 너무 많은 걸 기대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런 그림을 너무 많이 그리다 보니까 소재의 고갈도 왔고요. 그러다 보니까 오히려 확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많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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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리

 

‘30대의 오춘기’를 겪고 있나요?

 

때로는 “같은 자리를 맴도는 기분”, “제자리걸음”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고 쓰셨어요. 마지막 부분에서 “나는 사실 해결 방법을 이미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하셨고요. 어떤 해결 방법을 찾으셨는지 궁금해요.

 

해결 방법이라기보다 다른 방법을 택했던 것 같은데요. 계속 정체되어 있는 것 같고 더 위로 올라가지 못하겠으면, 차라리 틀을 깨고 나와서 다른 스타일의 그림을 시도해 보거나 아예 다른 기법이나 소재를 그려보자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어쨌든 저는 한 장르에 너무 고착되어 있었고 거기에서 인정을 받았고 사람들이 그런 그림을 계속 찾으니까, 계속 그 방향으로만 해보려고 했던 거죠. 『나는 안녕한가요?』에서 이야기하는 것들도 그런 내용인 것 같아요. 명예나 다른 여러 가지 것들 때문에 해보고 싶었던 것들을 못하고 있으면 차라리 한 번 저질러 보자는 거예요. 아니면 마는 거고요. 그게 방법이지 않을까 싶어요.

 

그 이야기의 끝자락에 그려 넣으신 그림이 인상적입니다. 통과해야 할 문에 비해서 너무 큰 짐을 끌어안고 있는 사람을 그리셨죠.

 

그 짐이 나에게 정말 필요한 걸 수도 있고, 필요한 게 아닌데 집착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걸 표현한 거였어요. 만약에 그 문을 통과하지 못한다면 가져갈 수 있는 것만 남기고 어쩔 수 없이 몇 개는 버려야 하잖아요. 그렇게 통과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죠. 버리지 못하고 있으면 결국 갇혀 있는 상태라고 생각해요.

 

무엇에 집착하고 있는 걸까요?

 

그때 글에 썼던 내용은 이런 거예요. 30대 초중반이 되면 지금까지 쌓아온 경력, 경험, 지식들을 바탕으로 해나가는 일들이 있고 이제까지 믿었던 것들이 있는데, 알고 보면 다 잘못된 것일 수도 있잖아요. 그러면 ‘내가 이만큼 쌓아왔고 이제까지 믿어왔는데, 이제 와서 놓으라고?’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그런 부분에 대한 집착이 있겠죠.

 

책에서 말씀하신 “30대의 오춘기”와도 맥락이 닿아 있는 것 같습니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에는 쉽지 않은 시기죠.

 

맞아요. 그렇다고 쭉 나아가지도 못하겠고, 그런 지점에 있죠.

 

뭉크의 「사춘기」와 함께 “30대의 오춘기”를 이야기하셨어요. 그림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떠올리신 이유가 있을까요?

 

그림을 보면 소녀는 경계선에 앉아 있는 느낌이에요. 정신적, 육체적으로 혼란스러워하고 한편으로는 경직된 느낌도 들죠. 우리 또한 사춘기를 겪을 시기에 그랬잖아요. 질풍노도의 시기가 지나고 나면 큰 혼란기는 없을 것이라는 식의 이야기를 듣죠. 하지만 요즘 제 또래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사춘기 시절보다 더 혼란스럽고 때론 어지럽고 여전히 갈팡질팡하곤 해요. 어른이 되어 경계선을 넘어왔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의 우리는 뭉크의 그림 속 소녀와 별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알 수 없는 두려움 앞에서 경직되어 있는 모습이죠.

 

오춘기를 겪는 어른들의 고충이 있죠. “조심성이 생기면서 도전이 어려워진다”는 말씀에 공감하는 분들이 많을 것 같아요.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도 항상 그런 생각을 해요. 최근에는 팝적이고 패셔너블하고 캐릭터적인 그림을 그리는 작가들이 주목을 받잖아요. 그런데 그 사람들 따라서 기법을 바꾸자니 내 가치관과는 다르고, 유행을 쫓는 것 같아서 싫고, 그렇다고 하고 있는 걸 계속 고집해서 밀고 나가자니 시대에 뒤처지는 것 같기도 한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방향을 잘못 튼 건가, 그러면 싫어하는 일을 억지로 해야 하나’ 하는 고민을 항상 하죠. 되돌아가자니 ‘지금까지 쌓아온 게 있는데 다시 시작해야 되나’ 싶은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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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리

 

다들 그렇게 사는 걸까요?

 

그런 것 같아서 ‘안녕한지’ 물었던 것 같아요. ‘겉으로만 잘 지내는 척 하고 있는 건 아닌가’ 싶은 거죠.

 

『나는 안녕한가요?』를 읽으면서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어요. 작가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동질감이 주는 위안”을 얻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나만 이렇게 고민하는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에서 위안을 받았으면 좋겠어요. ‘내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게 아니구나, 원래 이런 거구나’ 하고 생각하기를 바랐고요.

 

그림을 통해서 전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전체적으로 보면 일상에서 작은 즐거움이나 행복을 찾기를 바랐어요. 『나는 안녕한가요?』에도 힐링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그림이 있지만, 일상의 이야기들도 나오거든요. 한강에서 맥주를 마신다거나, 그림을 보고 ‘고양이를 키워 볼까’라는 생각을 한다거나, 그런 거죠. <무한도전>에서도 윤태호 작가가 이야기했었잖아요. 사람들의 일상이 무너지고 있다고요. 제가 그림일기에서 하는 이야기들도 다르지 않아요. 예를 들어서 ‘벚꽃을 너무 보고 싶은데 나는 일을 해야 된다’ 그런 이야기를 하면서 서로 공감하고 웃고 좋아하는 걸 원하는 거죠. 하루하루 정말 작은 것에서 행복을 찾았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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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리

 

 

서로를 ‘다독다독’ 해주었으면 좋겠어요

 

예전에는 삽화를 부수적인 부분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글을 받쳐주는 역할을 한다고 여긴 건데요. 최근에는 많이 달라졌다고는 하지만, 그런 느낌을 받으실 때도 있었나요?

 

저희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은 굉장히 자부심이 강해요. 저희도 화가이고 작가라고 생각하고요. 예전에 일러스트레이터는 예술계에서 가장 을의 대우를 받는 직업이라는 이야기가 기사에 나온 적이 있어요. 저희는 창의적인 사람들이고 표현하고 싶어 하는 직업인데, 다른 사람을 서포트 해주는 존재처럼 대하는 클라이언트들도 있죠. 가장 중요한 건 편집자와 작가라고 생각하고요. 그래도 출판계에서는 작가로 대우해주는데, 대기업의 경우는 훨씬 심해요. 그림 그리는 기계처럼 대하는 경우도 많고요. 그런 부분 때문에 초반에는 힘들었죠.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과 달리 매번 수정을 요구 받을 때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저는 이 일을 하면서 대중과 소통하는 게 너무 재밌더라고요. 하고 싶은 것만 하려고 했으면 순수 회화를 했어야 하지 않나, 싶은 생각도 하고요. 정말 내 마음대로 하고 싶다면 개인적으로 하면 되죠. 함께 작업하는 분들이 제 그림을 훼손하려는 게 아니잖아요. 최상의 컨디션으로 만들어내려는 거죠. 그 과정도 받아들이게 되니까 재밌어지더라고요.

 

『혼자 사는 여자』와 마찬가지로 『나는 안녕한가요?』의 모든 글과 그림을 혼자 작업하셨습니다. 일러스트레이터로 그림만 그리실 때와는 많이 다를 것 같아요.

 

일러스트레이터로 일을 시작할 때부터 제 글과 그림이 다 들어간 책을 만드는 게 꿈이었어요. 확실히 제가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면 시너지가 훨씬 커져요. 더 합일화가 되니까요. 작업하는 입장에서도 훨씬 재밌고 애착도 더 크고요. 그래서 사실은 이런 작업이 훨씬 더 재미있기는 해요(웃음).

 

독자 입장에서도 글을 읽고 나서 그림을 보니까 울림이 더 길게 남는 것 같더라고요.

 

그렇게 말씀해 주시면 너무 감사하죠. 그러기를 바랐거든요. 요즘 글과 그림이 함께 실려 있는 책들이 많은데, 제 책의 그림은 조금 무겁고 순수 회화에 가까워서 걱정도 있었어요. 독자들이 어렵게 느낄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그렇지만 다른 책들과 비슷하게 흘러가는 건 싫었고 제 그림의 색이 조금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염려하면서도 밀고 나갔어요. 독자 분들이 그림을 보고 다양하게 해석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꼭 제가 의도한 대로 읽지 않으셔도 그게 좋아요. 오히려 다르게 해석하시는 걸 들으면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었구나,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창의적이다’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그림을 감상하는 데 있어 정해진 방법은 없다고 생각하세요?

 

제 직업이 그림을 그리는 거니까 그런 질문을 정말 많이 받아요. 그런데 저는 정답은 없다고 봐요. 똑같은 노란색을 보고도 누구는 발랄하고 귀엽다고 할 수 있고, 당시에 슬퍼하고 있었던 사람이라면 그 그림을 슬프다고 느낄 수도 있는 거잖아요. 자기 상황에 맞게 해석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이 책을 보시는 분들도 다양한 생각과 해석이 있을 수 있고 이렇게도 그림을 볼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셨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책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어떤 사람은 「모나리자」를 보고 명화라고 할 수 있지만, 나는 그 그림을 별로라고 느낄 수도 있잖아요. 그렇게 생각해도 틀린 게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어요.

 

책에서 고흐가 첫사랑이라고 고백하셨어요. 고흐를 가장 좋아하세요?

 

지금 가장 좋아하는 화가는 아니지만 계속 밑바닥에 깔려 있는 느낌일 수밖에 없죠. 첫사랑이니까. 『골든애플』에 발튀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요즘 한창 좋아했던 화가예요. 제가 그런 그림을 잘 못 그려서 그런지 반대라서 끌리더라고요. 『나는 안녕한가요?』를 준비하면서 그림을 많이 보다 보니까 처음 알게 된 작가도 있어요. 「그림의 노래 또는 노래의 그림」에서 이야기했던 미칼로유스 츄를료니스예요. 처음 그림을 봤을 때부터 너무 좋더라고요.

 

『나는 안녕한가요?』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있다면 다독임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 이대로의 나여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듯한 느낌이에요. 마침 두 번째 장의 제목도 “다독다독, 도닥도닥”이더라고요(웃음).

 

맞아요. 네가 나를 다독다독해주고 내가 너를 다독다독해주자는, 그런 느낌으로 썼어요. 1장은 ‘내 안을 조금 들여다보고 스스로 내 상황이 어떤지 지켜보자’라는 이야기였다면, 2장은 거기에 대해서 위로해주고 다독다독해주는 느낌으로 썼어요. 3장은 함께 살아가는 방법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고요.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셨는데요. 어떻게 하면 나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걸까요?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것이 아닐까요. 항상 자신을 책망하는 부분에서 만족을 못하게 되는 것 같아요. 거기에서 고통이 생기고 불안이 생기고요. 그런데 그냥 상황을 관망하고 나를 받아들이는 과정이 중요한 것 같아요.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받아들이고, 그 부분에 대해서 고민을 해봤는데 힘들어서 못 버티겠다면 그대로 두는 거고, 나아질 것 같으면 노력하면 되잖아요. 그런데 그걸 받아들이기 전에 무조건 책망부터 하고 ‘나는 왜 이러지, 나는 안 될 거야’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태도가 많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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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리


서툶에 대하여

 

“서툶과 미숙함이 부끄러워 자책하게 될 때”마다 정이현 작가의 『말하자면 좋은 사람』을 떠올리신다고요.

 

『말하자면 좋은 사람』은 제가 신인 때 기획이 됐었어요. 작업 중간에 정이현 작가님께서 임신하셨고 글을 더 모아서 책을 내기로 돼서 공백이 있었고요. 그래서 몇 년이 흐른 뒤에 작가님께서 새로 쓰신 글들에 맞는 그림을 추가로 그리게 됐는데요. 이미 그려놓은 그림들과 톤을 맞춰야 하니까 예전 그림들도 보게 됐어요. 처음에는 ‘옛날에 그린 그림은 너무 창피할 것 같아’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생생하고 펄떡펄떡 뛰는 느낌이 드는 거예요. 추가로 그린 그림은 근래의 작업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느낌을 주고요. 그래서 ‘내가 창피하다고 생각했던 과거가 이렇게 소중하구나, 오히려 더 싱그러울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나는 안녕한가요?』를 쓰시는 동안에도 그때가 생각나셨나요?

 

저는 두 권의 책에서만 글을 써봤고 글을 배운 적도 없어서, 편집자 분들이 제 글을 보실 때면 너무 창피했거든요. 그런데 그 분들께서 하시는 말씀이, 오히려 글을 배우지 않았고 초기이기 때문에 더 자유롭게 다른 시각으로 생각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 『말하자면 좋은 사람』의 그림을 그릴 때가 생각나더라고요. 오히려 서툰 부분이 또 다른 매력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제는 어떤 분야에서 시작을 할 때 서툶에 대해서 창피해하거나 부끄러워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해요. 그냥 그 시간을 즐겨야겠다고 생각하죠. 나중에는 추억이 될 테니까요. 그런 생각을 하면서 글을 쓰게 됐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처음 시작할 때는 자기 검열로부터 자유로운 것 같아요.

 

맞아요. 제가 작업한 많은 치유 관련 책들 중에 『서른 살엔 미처 몰랐던 것들』이 있는데, 지금도 그 책의 그림이 좋아요. 많은 분들이 그 그림을 가장 좋아하시기도 하고요. 『서른 살엔 미처 몰랐던 것들』에 실린 그림은 우리가 치유 책에서 많이 봐오던 그림이 아니에요. 그래서 좋았다고 이야기하시는 분들도 있는데요. 일부러 그렇게 그리려고 하니까 잘 안 되더라고요. 그때는 잘 모르고 하고 싶은 대로 그렸던 건데 말이에요.

 

가장 마음에 드는 그림은 무엇인가요?

 

『서른 살엔 미처 몰랐던 것들』은 제가 내지를 처음 작업한 책이었어요. 그래서 남다른 애정이 있죠. 그 책 때문에 많이 알려지기도 했고 이후에도 치유 관련 책들에 그림을 그리게 됐으니까요. 사실,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자식도 있기는 해요(웃음), 그런 그림도 있어요. 그렇지만 그림마다 좋은 이유가 다 있어요. 그래서 어떤 그림이 제일 좋다고 말하기는 힘들어요. 그래도 꼽아보자면 지금 상태에서는 『나는 안녕한가요?』예요. 전부 아크릴화로 작업한 게 처음이어서 물리적인 시간이 너무 많이 들었는데, 거기에 비례하나 봐요(웃음). 작년에는 온전히 이 책에만 매달려 있었어요. 글 쓰고 책 읽고 그림 그리는 데에만 시간을 썼어요. 그래서 애정이 가는 글도 많고 그림도 많죠. 당분간은 『나는 안녕한가요?』가 가장 마음에 드는 작업이 아닐까 싶어요.

 

「쇼핑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글에서 책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들려주셨어요. 책을 선택하는 기준이나 소장하는 방식에 있어서 취향이 뚜렷하신 것 같던데요.

 

누구나 그럴 것 같은데요. 이번 책에서 다양한 장르의 책을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대부분은 소설이에요. 제가 소설을 제일 좋아하고 거의 소설만 읽거든요. 어떤 사람은 소설이 허구라서 싫다고 하는데, 저는 소설이 작가를 가장 잘 알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인물이나 대사, 문장 하나하나에 작가의 생각이 다 담겨 있잖아요. 그래서 소설을 읽으면 작가가 어떤 생각을 갖고 이런 이야기를 했는지 느껴져요. 이어질 이야기를 혼자 상상하는 재미도 있고요. 그래서 소설을 가장 많이 읽어요.

 

책에 대한 소유욕도 강하신 것 같습니다. 중고 서점에서 이미 절판된 책을 보고 잠까지 설친 적이 있으시다고요(웃음).

 

한때는 정말 많이 책을 사던 시절이 있었어요. 어떤 사람들은 쇼핑하면서 스트레스 푼다고 하는데 저는 서점에 가요. 표지가 예뻐서 사고, 알고 있는 작가의 신작이 나와서 사고, 그런 식이에요. 그러다 보니까 안 읽은 책이 너무 많아지더라고요(웃음). 지금은 읽고 나서 사자는 생각에 책을 사고 있지는 않아요.『혼자 사는 여자』에서 힘들 때 서점에 간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서점에 가는 걸 정말 좋아해요. 서점에 가면 요즘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사는지를 알 수 있어요. 그리고 저는 종이의 느낌이 좋더라고요. 그래서 그림도 그리는 것 같아요. 요즘 그림 그리는 사람들은 컴퓨터 작업을 많이 하는데 저는 전부 수작업으로 하거든요. 부스럭거리는 촉감도 너무 좋아요. 그래서 서점에는 책을 사러 간다기 보다는, 놀러 가고 쉬러 가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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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대한 단상들도 눈에 띕니다. 그 중 하나가 『냉정과 열정 사이-Blu』『오래 오래』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작가님께서는 『냉정과 열정 사이』의 쥰세이보다 『오래 오래』의 가브리엘에게 후한 점수를 주신 것 같아요(웃음).

 

그렇죠(웃음). 쥰세이 같은 남자는... 제가 아오이(『냉정과 열정 사이』의 여주인공)라면 상관이 없죠. 그렇게 한 사람이 오래도록 나를 잊지 못하고, 다른 사람을 만나도 첫사랑의 기억을 잊지 못하고... 그런데 현실에서 그런 사람을 만나기가 쉽지 않잖아요(웃음). 그리고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는 두 사람이 서로를 잊지 못하는 거니까 아름답게 보이는데, 현실에서는 제가 헤어진 연인을 못 잊을 것 같지도 않아요. 사실 『오래 오래』의 가브리엘에게도 부인이 있었는데 여주인공과 사랑하게 된 거였거든요. 그 부분이 마음에 걸리기는 했어요. 그런데 전 부인을 사랑한 게 아니라는 식으로 나오고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기 전에 부인과의 관계를 정리한데다가, 부인과의 이야기는 짧게 나오는 반면 여주인공과의 사랑 이야기가 끝까지 이어지기 때문에 좋게 보였던 것 같아요. 지금 순간에 충실한 가브리엘의 사랑관이 제 인생관이랑도 맞았던 것 같고요. ‘지금의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고 다독여주자’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사랑도 마찬가지였던 거죠. 지나간 과거가 너무 힘들었던 게 아니라면 그냥 흘려 보내고 지금 옆에 있는 사람과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좋지 않나, 라고 생각해요.

 

『나는 안녕한가요?』는 어떤 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인가요?

 

저와 비슷한 30대 초중반의 분들, 어느 정도 자신의 일을 해왔는데도 여전히 불안하고 잘 모르겠고 힘들고 지쳐있는 분들과 같이 봤으면 좋겠어요. 책을 읽으시면서 ‘내가 지금까지 해오고 있는 길이 그렇게 잘못된 것만은 아니구나’, ‘누구나 겪을 수 있고 누구나 힘든 길을 가는 거고, 나 또한 하고 있는 거구나’, ‘우선 나를 더 믿고 앞으로 나아가봐야겠다’라는 생각을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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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안녕한가요?백두리 저 | 생각정원
지금의 나를 가장 솔직하고 가장 따뜻하게 위로하는 백두리 작가의 그림과 글, 《나는 안녕한가요?》. 저자는 그림과 책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을 벗어나, 그 작품들의 속마음을 꿰뚫어 자신만의 그림과 글을 통해 ‘여기, 오늘’을 살아가는 ‘나’를 위로하고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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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호연 “번역가는 모든 책임을 자기가 지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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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어려운 외국서적을 번역가의 수고로 쉬 접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 외서를 대할 때 번역가는 저자에 비해 덜 드러나지만 실제로 우리가 읽는 것은 저자의 아바타라고 할 옮긴이의 문체와 섬세한 내용 정돈이다. 능히 예상할 수 있지만 정확한 표현과 의미 전달을 위해 번역가가 겪는 산고는 이루 말할 수 없다.

 

장호연은 그중에서도 주로 음악 관련 원서를 번역하는 인물이다. 서울대 미학과(89학번)와 대학원 음악학과를 졸업한 뒤 한때 평론 활동에 몸담았던 그는 1999년 『대중음악 사전』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음악이란 무엇인가』, 『록 음악의 미학』, 에릭 클랩튼 자서전 등과 소설을 포함, 50여권 정도의 번역서를 냈다. 얼마 전에는 데이비드 버클리가 쓴 『엘튼 존』 전기를 번역했다.

 

번역과 관련한 전반 환경이 어떤지 궁금했다. 번역 일로는 첫 인터뷰라는 그는 “음악 공부를 위해 책을 읽다가 이건 재미있겠다 싶은 책을 내게 되면서 번역에 발을 들였다”며 지금은 자신의 직업을 번역가로 여긴다고 했다. 국내 독자들이 한 번도 접하지 못한 부류의 책, 음악을 넓게 보는 책을 번역한 게 자랑스럽고 또 지속적으로 그런 책을 내고 싶은 소망도 피력했다. 그가 꼽는 번역가의 조건은 뭘까? “성격, 혼자 있는 것을 견디는 성격이 제일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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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태까지 낸 번역서 가운데 음악 아티스트에 대해 다룬 건 몇 권 정도인가

 

50여권 중에서 아티스트에 대해 다룬 건 존 브림(John Bream)의 『레드 제플린(Whole Lotta Led Zeppelin)』과 에릭 클랩튼이 직접 쓴 『에릭 클랩튼』, 그리고 막 나온 데이비드 버클리의 <엘튼 존> 이렇게 딱 세 권이다. 비슷한 걸로는 우드스탁 페스티벌에 대해 마이클 랭(Michael Lang)이 쓴 책 『우드스탁 센세이션(The Road To Woodstock)』도 있고. 그때쯤 우드스탁 40주년이다, 우드스탁 코리아가 열린다 해서 번역서가 우르르 쏟아진 적이 있다. 그 공연 계약한다고 그러던 도중에 번역 제안이 들어왔다. 공연은 취소됐지만 책은 어쩌다 나오게 됐다.

 

니콜라스 쿡(Nicholas Cook)의 『음악이란 무엇인가(Music-A Very Short Introduction)』와 같은 이론서나 개론서 번역은 언제부터 한 건가

 

이론서나 개론서 번역은 10년 전인 2006년 무렵부터 시작했다. 전업 번역이 올해로 10년째인 셈이다. 대학원 나오고 2002년 영국 뉴캐슬 대학에서 1년 정도 공부할 무렵에 읽었던 책들을 다룬 것이다. 사이먼 프리스 책도 그때 공부했던 것들과 관련이 있는 거고 미네소타 대학교에 교수로 있는 시오도어 그래칙(Theodore Gracyk)의 저서 『록 음악의 미학 (Rhythm And Noise: An Aesthetics Of Rock)』은 그 즈음 영국으로 가기 전에 번역했던 책이다.

 

그때 진지하게 직업으로서의 번역을 고려했나.

 

번역가는 아니었다. 번역가로서의 자의식은 그때에는 없었으니까. 공부했던 책들을 조금씩 번역하다가 그다음 대중적인 소설, 에세이 같은 분야로 넓히면서 스스로 번역가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번역가가 되고 나서 낸 음악 책들은 나 자신의 공부보다 대중에 타깃을 두고 있다.

 

음악 아닌 다른 분야 책들로는 뭐가 있나

 

소설이 여덟 권정도. 그중엔 레너드 코헨이 1960년대에 냈던 소설 『아름다운 패자』도 있다. 출판사 '책세상'에서 나온 건데 이건 거의 모더니즘 소설이다. 또 헌터 S. 톰슨(Hunter S. Thompson)의 책 중에 조니 뎁이 나온 망한 영화 『럼 다이어리(The Run Diary)』의 동명 원작 소설도 번역했었고, (웃음) 『라스베이거스의 공포와 혐오(Fear and Loathing In Las Vegas: A Savage Journey To The Heart Of The American Dream, 1971)』라고 밤 문화 쪽과 관련해 되게 잘 알려진 책도 번역했다.

 

헌터 톰슨,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은데 누군지 소개해 달라

 

사실 헌터 톰슨이라고 하면 카운터컬처 계열에서 굉장히 유명한 사람이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우리가 그 사람을 모른 채 빼먹고 있었다. 이즘에서나 얼터 바이러스에서나 예전에 한창 카운터컬처에 관심을 가지고 관련 자료 공급하고 그랬는데 말이다. 미국에서는 그 분야로 전설적인 위치에 선 인물이다. '곤조 저널리즘' 창시자이기도 하고 약물 문화 쪽으로도 전문가이기도 하고. 그의 책을 번역한 게 자랑스럽다. 『롤링 스톤』에서도 그 사람 글을 엮은 책(『Fear And Loathing At Rolling Stone: The Essential Writings Of Hunter S. Thompson』)을 냈다.

 

와우, 그런 책을 번역했단 말인가.

 

한국에 안 먹히는 소재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마약이다.

 

사실 자서전 『에릭 클랩튼』만 보더라도 우리나라에서 먹힐 수 있나 싶긴 하다. 그런 쪽으로 보면 시대가 아무리 자유로웠던 1960-70년대였다고는 해도 완전 엉망으로 산 사람에 대한 내용이지 않나.

 

그것뿐 아니라 『레드 제플린』도 말도 못 할 정도다. 그런데 사실 그 시절에는 그게 문화였지 않았나. 전혀 이상한 문화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런 그루피들이 자서전도 내고 회고록도 내고 스타가 되기도 했다. 폭로도 하고. 영국에는 가십만 전문적으로 다룬 회고록들도 있다. 특히 축구스타, 팝스타 옆에 붙어있던 여자들이 낸 걸로 말이다.

 

번역을 출판사에다 제안하기도 하나. 또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이는 편인가.

 

음악 관련 책들은 거의 그렇다. 음악 쪽으로는 스무 권정도 했는데 그중에서 출판사가 내게 의뢰한 책은 서너 권밖에 없다. 좀 놀랍다. 보통은 그렇게 흔쾌히 받지 않으니까.

 

질문에 이유가 있다. 사실 우리의 경우, 음악이든 문학이든 사회 과학이든 관련 번역 분야가 활성화되어 있지 않다 보니 보통은 번역 제안을 긍정적으로 받지 않나

 

다 그렇지는 않다. 여기엔 역사적인 설명을 붙여야 할 것 같다. 1990년대에는 번역이란 게 직업이라 인식이 되기 힘들 정도로 번역가가 드물었다. 그때는 공부하는 사람들이 읽다가 아는 출판사에게 이거 번역해보자고 해서 내는 경우가 굉장히 많았다. 출판 기획이라는 게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다 2000년대에 오면서 외서(外書)의 판권을 갖고 있는 사람과 한국 도서의 판권을 갖고 있는 사람을 연결해주는 에이전시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고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 무렵에 출판사들에 외서 전문 담당 부서가 생긴 것이다. 출판사와 맞는 책들을 선별하고 기획해서 외서를 번역해 내는 역할이 그 이전에는 거의 없었다.

 

음악 책이 상당히 늘어난 게 그때쯤인 것 같다.

 

그렇다. 원래 출판 기획은 출판사가 하는 일이다. 프랑스 소설이나 영국 소설, 역사, 인문, 과학, 어린이, 경제, 경영 다 출판사마다 전문적인 역할이 있는데 음악만 유독 그런 게 없다. 국내에서 소개되는 책들도 보면 거의 다 번역가가 “한 번 해보지 않겠습니까?”해서 번역을 해서 나온 게 아닐까 싶다. 음악에 관해 단발성으로 책들을 내는 곳은 많지만 체계적으로 내는 곳은 다섯 군데 정도 밖에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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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비평모임 '얼트 바이러스' 그리고 웹진 '웨이브'에 몸담았던 이력이 있다. 그 즈음 『얼트 문화와 록 음악』이라는 저서도 나왔지 않았나.

 

학교 사람들끼리 공부하려고 만들었던 얼트 바이러스에서 2년 정도 함께 했다. 웨이브는 초기에만 잠깐 있었다. 웨이브로 가면 젊은 친구들이 많았다. 『얼트 문화와 록 음악』은 그건 책을 낼 목적으로 쓴 게 아니었다. 우리끼리 공부하다고 (신)현준 형이 기획해서 나온 책이었다. 처음부터 뭘 하나 써내야겠다고 낸 건 아니었다.

 

15년 전 막 음악 공부를 할 때에는 번역을 해서 이 정도에 오를 줄 알았나. 뭐가 번역 활동의 결정적 계기였나?

 

아예 생각을 못 했다. 원래 난 음악 공부를 하려고 했던 사람이다. 첫 번역은 오히려 출판사로부터 의뢰를 받아서 했다. 그게 (이)정엽이랑 했던 로이 셔커(Roy Shuker)의 『대중음악 사전(Popular Music: The Key Concepts))』이다. 이후 원서를 읽고 공부하면서 재밌다 싶었던 책들을 내기 시작해 번역을 처음 알게 됐다. 그렇게 출발했다. 그러고 나서 다른 시각을 갖고 다른 분야 책도 자연스럽게 하게 된 거고. 요즘은 전과 달리 처음부터 번역가라는 직업을 삼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많다. 내가 한창 공부할 무렵에는 번역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던 것 같은데. 나도 그걸 목표로 하지 않았고.

 

그럼 장호연은 자신을 번역가라고 생각하나.

 

번역가다. 번역으로 생활하니까.

 

얼마 전, 데이비드 버클리(David Buckley)가 쓴 번역서 『엘튼 존(Elton John)』이 나왔다.

 

이 얘기를 많이 해야 한다. (웃음) 책이 팔려야 하니까. 이와 관련해서 좀 슬픈 얘기가 있다. 내가 막 번역할 때에 엘튼 존이 내한을 왔다. 출판사에서 비상이 걸렸다. “이거 빨리 낼 수 없느냐”라고. 공연 뉴스 나갈 때 책 뉴스도 같이 나가야 하니까. 하지만 또 책을 빨리 내고 싶다고 해서 빨리 낼 순 없는 노릇이다. 이게 서글프다. 화제가 있어야 책이 나간다. 게다가 소식도 금방 꺼진다.

 

타이밍이 중요한 건가.

 

책이 총 몇 권 나가는가도 중요하지만 책이 어떻게 얼마나 나가는가도 중요하다. 그래야 시작에 제작비가 얼마나 빠지는가가 결정된다. 이게 몇 년에 걸쳐서 조금씩 팔리면 환장한다. 초반이 바로 소화되어야 한다. 그래야 돈이 빨리 회수된다.

 

『엘튼 존』의 원서 난이도는 어떤 편인가.

 

‘스탠더드' 하다. 여기엔 이유가 있다. 아티스트의 자서전, 평전 이런 책이 되게 매력적이다. 그런데 자서전은 아예 그 사람 아니면 쓰질 못 하는 거니 희귀한 반면, 전기는 밥 딜런 한 사람만 따져도 되게 많지 않나. 개중에서 한국 사람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게 뭘까 생각하고 골라야 한다. 그랬을 때 정석적인 게 맞지 않을까 해서 스탠더드 한 걸 택하게 됐다.

 

묻기는 그렇지만 번역료는 충분히 받았나.

 

충분히 받았다. 나는 굉장히 운이 좋은 편이다. 나를 믿고 내 기획을 해주는 출판사가 있다. 번역가가 성장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시행착오도 많이 나고 번역을 하며 생기는 실수도 많이 난다. 이 수준을 시작으로 점점 단계가 올라가면서 전문 번역가가 탄생한다. 이는 출판사도 마찬가지다. 처음 책 낼 때는 아무것도 모른다. 책을 더 내고 카탈로그가 생기면서 독자가 생긴다. 나는 그 지점에 있던 출판사를 만나서 같이 컸다. 그래서 내가 기획한 책들이 잘 나올 수 있었다. 우연한 기회에 운 좋게 일을 할 수 있었던 셈이다.

 

그럼 번역으로 생활하기에 전반적으로 수입이 충분한가.

 

혼자 살기에는 충분하다. 사실 나는 기획을 하면서 번역을 한다. 여기엔 좋은 면도 있고 나쁜 면도 있다. 출판사가 하는 일을 내가 어느 정도 하는 셈이다. 과학 분야를 예로 들면 출판사가 책 찾아서 자기네들끼리 검토하고 도장 받고 번역가를 쓰면 된다. 번역가는 글 받아 원고 넘기기만 하면 되는 거고. 그건 시세대로 받으면 끝나는 일인데 나는 내가 찾고 검토하고 출판사를 설득하기까지 해야 한다. 이게 할 일이 많다. 내 경우엔 그러고 나서 번역료를 잘 받는 편이다. 하지만 그렇게 작업 다 했는데도 “이런 책 내주는 게 어디냐”며 불합리하게 계약을 하고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 음악 쪽에서 단발로 나오는 서적들에 그런 사례가 보인다.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열정페이'의 논리에 있는 거다.

 

『엘튼 존』도 그럼 직접 기획해 고른 건가.

 

일단 출판사가 내게 리스트를 주기도 했고 내가 찾아서 보기도 했다. 그렇게 검토하면서 재밌겠다 싶은 걸 골랐다.

 

그 직전에 말한 번역의 시스템, 이것이 제대로 돌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다른 분야는 다 시스템이 잘 돼있다. 그런데 음악은 그렇지 않은 게 음악 쪽 시장이 작으니까. 요즘 점점 잘 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제대로 돌아가려면 출판사가 기획을 해야 한다. 출판사가 기획하고 가격대로 매절에 따라 번역료 주고. 매절로 받는 것도 중요하다.

 

번역가 스스로가 자기 몫을 잘 챙겨야 할 것 같다.

 

당연하다. 열정페이 식으로 계속 가다 보면 시스템이 그렇게 굳어진다. 번역가의 절박함을 볼모로 출판사가 책을 내는 건 정상적이지 않다. (여기서 스스로 출판사를 만드는 것 어떠냐고 물었더니 웃으며) 그건 좀 다른 얘기다. 내 돈 들이는 순간부터는 내가 냈던 책들 못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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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하며 고통스러울 때는 언제인가.

 

잘 못 쓴 책을 번역할 때다. 번역을 하려면 책을 사랑해야 하는데 책이 마음에 안 들면 괴롭다. 좋아하는 책만 할 수는 없으니. 또 막상 책이 검토했을 당시의 느낌과 차이가 났을 때도 그렇다.

 

현재 가장 번역하고 싶은 책이 있나.

 

출판사가 내게 먼저 부탁을 해서 지금 검토하는 게 하나 있다. 데이비드 보위에 관한 책. 요즘 데이비드 보위에 관한 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데 그중에서 사이먼 크리츨리(Simon Critchley)라는 영국의 철학자가 쓴 작품이다. 상당히 짧은 책인데 내용이 독특하다. 보통 전기와 다르다. 사춘기 시절에 보위를 처음 접하고 지금까지 오면서 보위가 내게 얼마나 영향을 미쳤는가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러면서 1960년대 말부터 지금까지에 이른 보위의 노래들에 대해 가사를 분석하고 음악을 분석해놓았다.

 

그러면 거의 전기(傳記)지 않나.

 

전기처럼 보이면서도 우리가 생각하는 전기와 가장 거리가 먼 모습을 보인다. 전기라고 하면 찾은 자료, 인터뷰 언급하고 주변 사람, 동료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나. 하지만 이 책 속에는 나와 보위 밖에 없다. 그런데 구성은 연대순으로 있어서 전기처럼 읽히기도 한다. 이걸 변역할지 말지 고민 중이다. 요즘 보니 데이비드 보위의 국내 파급력이 꽤 크더라. 관심 있는 사람들이 되게 많다.

 

그러고 보면 얼마 전에 타계한 이글스의 글렌 프라이와 같은 책이 나올 법도 한데 이 경우는 그렇지 않다. 국내에서의 인기를 떠나서 말이다.

 

아직 소개 안 된 사람이 많다. 이번에 이글스 일들 보면서 되게 짠했다. 물론 사람들이 데이비드 보위를 더 좋아하고 데이비드 보위가 더 유명한 것도 알겠지만, 데이비드 보위 사망했을 때 엄청 일었던 추모 분위기가 글렌 프라이가 사망했을 때에는 거의 없었다. 너무 짠했다.

 

맥락은 조금 다르지만 나의 경우는 그렇게 소개 안 된 책들 가운데서 사이먼 레이놀즈의『레트로 마니아』가 번역서로 나왔을 때 꽤나 놀랐다.

 

그 책 나왔을 때 되게 충격받았다. 대체 그걸 누가 냈을까. 게다가 반응도 꽤 있었다. 솔직히 잘 안 될 걸로 예상했는데. 관련해서 생각이 많다. 10년 전이었다면 과감하게 냈을 거 같다. 지금은 스케줄도 많고 일도 많다 보니 함부로 기획하기가 무섭다. 또 출판사에 폐 끼치는 것 같기도 하고.

 

조수의 필요성은 없나.

 

몇 년 전에 잠깐 그런 생각을 했다. 일이 어느 순간 많이 들어온 때가 있었다. 개중에 조건이 안 맞아서 못 했던 책들도 몇 권 있었다. 그만큼 책이 많이 들어올 시기였다. 그때는 그걸 다 놓치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서 보완책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지금은 다르다. 혼자서 모든 걸 책임지는 게 맞는 것 같다. 그리고 그게 번역가 본분에 가장 가깝다. 또 조수를 둔다는 게 자식을 키우는 거랑 비슷하다. 조수한테 경제적으로든 뭐든 간에 보상을 해줘야하는데 그게 힘들다.

 

번역가가 가져야 할 기본 자질은?

 

번역가는 모든 걸 자기가 책임을 져야 한다. 책에 자기 이름이 들어가고 텍스트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모두 맡는다. 다른 사람들과 상의를 해서 일을 만들어가는 걸 재미있어하는 사람도 있지만 혼자서 모든 일을 만들어가는 걸 재미있어하는 사람도 있지 않나. 번역가는 혼자 하는 데서 재미를 느껴야 한다.

 

그럼 번역가가 되기 위한 조건이 있다면

 

앞에 얘기한 것과 관련 있는데 제일 중요한 건 성격이다. 혼자 있는 걸 견뎌야 한다. 하루에 혼자 있는 시간이 대부분이다. 그렇게 있어도 심심하지 않을 성격, 오래 앉아있어도 괴로워하지 않을 성격. 그 외는 다음 문제다. 그리고 하고 싶은 책만 번역할 수 없다. 그냥 음악 책만을 번역하는 건 다른 직업을 하면서도 가능하겠지만 번역가를 한다면 다루고 싶은 것만 한다고 해서 되지 않는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문학, 과학, 경제, 경영 심지어 말도 안 되는 글까지 파고들어서 번역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다가 관심 가고 좋아하는 몇 개를 번역하는 거다.

 

소재에 딱히 구애받지 않으니 번역가로서는 책이 없어서 일을 하지 못하는 건 아닐 것 같다. 조금은 마르지 않는 샘이겠다.

 

놀랍다. 내가 원하는 책이 계속해서 마르지 않고 나오게 될 줄 몰랐다. 음악이란 것도 그렇다. 사실 옛날부터 있어왔던 것인데다가 특히 대중음악에서는 새롭다 할 게 딱히 있는 게 아니지 않나. 음악에 대한 해석이나 음악을 듣는 방식은 계속해서 바뀌고 있지만. 이 상태에서 재밌는 책이 계속해서 나올까 생각했었는데 막상 요즘 나오는 추세를 보니 신기하다.

 

대중음악이 전설이 되려는 경향 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아닐까.

 

맞다. 그런 것 같다. 역사가 되고 있다. 그리고 요즘에는 뮤지션들이 은퇴하면서 일제히 자서전이나 회고록 같은 책을 쓴다. 패티 스미스, 엘비스 코스텔로도 그랬고 또 브루스 스프링스틴도 올 9월인가에 책을 낸다고 한다. 이게 장난이 아니다. 자신과 같은 세대를 살았던 사람들을 겨냥한다. 전성기 지난 밴드들이 나이 들어서 공연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 세대 즉, 베이비부머들이 책에 익숙한 사람들이지 않았나. 그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책이 팔리는 것 아닐까. 반면 지금 자라나는 세대는 책보다는 화면에 익숙한 세대다. 음악 도서에 대한 수요와 공급의 추이가 달라지지 않을까.

 

그거는 또 모르는 일이다. 책에 있는 글도 텍스트고 화면에 나온 글도 텍스트다. 오히려 문자 해독률이 더 높은 지금 세대가 더 나을 수도 있다. 물론 이러한 해석 또한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른다. 또 한편으로는 이쪽 일을 점점 더 많이 하다 보니 좋은 책들이 내 눈에 많이 띄어서 그렇게 해석하는 걸 수도 있다. 객관적으로 많은 걸 수도 있고 내 눈에 많이 보이는 걸 수도 있고. 요즘처럼 음악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고 책이 나오고 했던 적이 없는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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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로서 힘든 점은?

 

내가 하는 일이 사회적으로 없어서는 안 될 만큼 중요하지는 않다. 의사나 정치인, 연예인들처럼 양적, 질적으로 누구를 꼭 만족시켜야 할 필요는 없다.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좀 더 의미 있는 곳에 쓰고 싶다 정도의 일인 것이다. 그런 맥락에 있어 번역은 사회적 파급력이라는 측면에 있어 상당히 제한돼있다. 책이나 번역이 아무 사람들에게라도 영향을 좀 준다면 힘이 날 텐데 딱히 그렇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좀 맥이...

 

섭섭할 수도 있겠다. 나만 해도 『음악이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얘기할 때 저자 니콜라스 쿡을 꺼내지, 번역가 장호연을 꺼내진 않는다.

 

의외로 그런 건 없다. '나라는 번역가 아니면 누가 이런 책을 내' 같은 생각도 한다. 섭섭한 건 없다. 하지만 좀 더 크게 보자면 보람을 크게 못 느낀다는 게 아쉽다. 앞에서 얘기한 것과 비슷하다.

 

번역의 퀄리티나 효과적인 내용 전달, 문체, 대중의 소화력 등 여러 요소를 고려했을 때 지금까지의 번역서들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을 하나 꼽아 달라.

 

생각해본 적이 없다. (오래 생각하다가) 대충 한 권이 보이긴 한다. 제일 많이 팔렸던 책. 존 파웰(John Powell)의 『과학으로 풀어보는 음악의 비밀(How Music Works)』이다. 만 권이 팔렸다. 이건 원서 자체의 난이도가 같다. 그냥 번역해놓으면 술술 읽힌다. 질문이 당혹스러웠다. (웃음) 번역의 퀄리티나 그런 걸 생각해본 적이 없다.

 

원래의 콘텐츠를 전체적으로 얼마나 우리말로 잘 전달했느냐가 번역의 기준 아닌가.

 

놀라운 것 중 하나는 번역에 대한 생각이 어느 시점부터 계속해서 바뀐다는 것이다. 어떨 때는 이러이러한 식으로 번역하는 게 맞으면서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아닌 거 같다. 여기엔 정답이 없다. 번역에 대해 많이 알고 많이 생각한다고 해서 번역이 잘 되는 건 아니다. 쉽게 말하면 이건 타협과도 같다. 완벽하게 우리말로 바꾸는 게 이상적이지만 불가능하다. 여태까지 냈던 책들 보면 호흡상으로는 죽 읽히는데도 세세하게 보면 이상한 문장이 많이 보이는 일이 있다.

 

그런 점에 있어 자서전 『에릭 클랩튼』은 굉장히 눈에 잘 들어왔다.

 

번역가는 선택해야 하는 것 같다. 정확성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해서 원문을 맘대로 고치는 걸 싫어하는 번역가도 많다. 그런 사람들은 사족 같고 오해도 불러일으킬 것 같고 우리 정서와 안 맞는 문장도 꼭 가져간다. 그에 반해 흐름에 관심을 두는 사람도 있다. 나는 '속도'에 관심을 둔다. 한 문단을 쭉 읽었을 때 쭉쭉 들어오는 연결에 중점을 둔다. 또 유명한 작가라고 해서 글을 잘 쓰는 건 아니지 않나. 거친 글마저도 살리는 게 맞는다고 생각하는 번역가도 있다. 그럴 때에는 내 경우엔 '최소한의 개입'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가급적으로는 원문을 안 건드리는 게 좋지만.

 

그럼 번역에 대한 만족도를 떠나서 낸 것 가운데 자랑스러운 책이라고 한다면.

 

내가 좋아하는 책들을 냈을 때. 우리나라에서 내가 기획하고 소개해서 낸 책들. 이에 대한 기준이 뭘까 하고 생각해봤는데 그간 우리나라에서 없었다는 것이 그 기준이었던 것 같다. 국내 독자들이 한 번도 접하지 못 했던 부류의 책을 내고 싶다는 게 소망이다. 음악 분야 책들이 요즘 전성기를 맞았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음악 책이 무지막지하게 쏟아진다. 음악을 다양하게 분석하는 일이 많아지면서 읽을 책이 많아졌다. 그중에서 국내 독자들에게 신선하게 읽힐만한 책들을 위주로 보고 음악을 굉장히 큰 시각으로 바라본 책들을 위주로 본다. 2004년에 낸 니콜라스 쿡의 『음악이란 무엇인가』도 그런 기준에 맞는 책이었다.

 

관심을 갖는 게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책이라고 했는데 그중에서도 구체적으로 어떤 책을 가리키는 건가.

 

음악을 넓게 보는 책이라고 할까. 여기서 넓다는 것은 음악의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포괄적으로 음악을 논하는, 쉽게 말해 대중음악, 클래식을 다 포괄한다는 의미다. 음악의 소리뿐 아니라 음악을 둘러싼 수용, 사용의 맥락도 보는 책을 말한다. 그와 관련해서 제가 특히 애착을 갖는 책이 음악평론가 알렉스 로스(Alex Ross)의 『리슨 투 디스(Listen To This)』와 음악가 하워드 구달(Howard Goodall)이 쓴 『하워드 구달의 다시 쓰는 음악 이야기(Story Of Music)』라는 책으로 모두 '뮤진트리' 출판사에서 나왔다. 이 작업을 한 건 자랑스럽다. 두 권 다 클래식 관련 공부를 한 사람이 쓴 책이지만 대중음악을 적극적으로 포섭하고 있어서 애착을 갖고 있다. 예전에 내가 공부하려고 했던 것도 이런 관점이었다.

 

나온 책들 말고 현재 작업 중인 책들 중에서 악센트를 두고 싶은 게 있나.

 

아직 나오진 않았다. 토킹 헤즈(Talking Heads)의 데이비드 번(David Byrne)이 낸 『How Music Works』라는 책이 있다. 우리말로 옮기자면 '음악은 어떻게 작동하는가'쯤 될 텐데 스티비 핑커의 『How The Mind Works』를 패러디한 거 같기도 하다. 원고를 넘기지 3년이 됐는데 아직도 안 나왔다.

 

인터뷰 : 임진모, 이수호
정리 : 임진모
사진 : 이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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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튼 존데이비드 버클리 저/장호연 역 | 뮤진트리
뮤진트리의 뮤지션 시리즈 여섯 번째 책으로, 음악 전문 작가 데이비드 버클리가 쓴 엘튼 존 전기이다. 진정한 의미의 글로벌 슈퍼스타이자 가장 존경받는 뮤지션 가운데 한 명인 엘튼 존은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2억 장이 넘는 앨범 판매고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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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주치의’ 오한진 박사의 건강 노하우, 호르몬을 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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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 씨’가 아침에 지각한 이유, 상사에게 혼나고 속이 더부룩해지는 이유, 그럼에도 오후가 되면 나른해지는 이유, 또 사랑을 하고 출산과 육아를 거쳐 노년에 이르기까지 한진 씨의 일생에서 겪는 모든 일들이 ‘다 호르몬 때문’이라면? ‘국민주치의’ 오한진 박사는 우리 삶과 호르몬이 얼마나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지 살피기 위해 한진 씨를 등장시켰다.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노라면 과연 우리는 일생 호르몬의 절대적인 지배를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코르티솔(cortisol)의 분비로 아침에 눈을 뜨고, 아드레날린(adrenaline)이 분비돼 집중력이 높아지며, 렙틴(leptin) 분비로 음식을 먹다가 숟가락을 놓을 수 있다니 그야말로 놀랍고 치밀한 호르몬 세계가 아닌가.

 

오한진 박사는 ‘행복 호르몬’ 세로토닌과 ‘수면 호르몬’ 멜라토닌의 관계를 따져 “잠을 못자면 행복도 올 수 없다”고 말한다. 식사를 할 때는 기분을 좋게 해야 소화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필요하다면 적극적으로 호르몬 치료를 통해 보다 건강한 후반생을 살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강조한 것은 폐경기 여성의 여성호르몬 관리다.

 

“갱년기는 아주 적극적으로 관리를 해야 할 상황이 됐어요. 여성 평균 수명이 조금 있으면 90세가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 얘기는 폐경 이후에 40년 이상을 살게 된다는 의미예요.

 

여성의 경우 폐경 전까지는 심장병, 뇌졸중이 거의 없거든요. 여성 호르몬이 그렇게 좋은 역할을 해요. 그러니까 폐경이 되고, 남은 시간을 이 호르몬 없이 지낸다는 것은 대단히 힘든 일입니다. 때문에 의사와 잘 상의해서 필요하다면 반드시 여성 호르몬을 사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불규칙하고 불균형한 식사 습관, 환경호르몬 등 건강한 호르몬 균형을 방해하는 요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거친 음식을 소박하게 먹는 것,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것, 오한진 박사가 전하는 가장 기본적이고 시급히 실천해야 할 건강 노하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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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레스, 내 마음의 상처

 

많은 분들이 건강에 대한 관심은 많은데 지식은 의외로 적어요. 의사로서 느끼는 부분도 많을 것 같아요.

 

그렇죠, 우리가 건강에 대한 건 대단히 많이 압니다. 요즘은 건강 이야기하는 TV 프로그램을 안 보죠. 지식 전달은 이제 싫다,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똑같은 얘기를 왜 TV에서 하느냐, 내가 힘든 부분, 내가 문제가 있는 걸 말해 달라, 이게 현재 트렌드예요. 그런데 그런 정보 중 제일 안 되는 게 호르몬입니다. 종류도 대단히 많고, 이름도 복잡하고 그래서요. 병을 알면서도 호르몬 부분은 잘 모르겠다는 분들이 많으세요.

 

책을 보면 일생을 호르몬의 지배를 받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란 생각이 들었어요.

 

호르몬은 태어나기 전부터, 부모에서부터 호르몬의 작용에 의해 우리가 만들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일생뿐 아니라 후대의 일생까지도 호르몬이 지배를 하는 겁니다. 호르몬을 잘 알지 못 하면 내 몸의 건강도 잘 챙기기 어려운 상황이 되는 거죠.

 

그런 이유에서 호르몬을 다룬 책을 쓰신 거고요.

 

호르몬에 대한 책자는 대단히 많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호르몬을 알리기 위해 썼고요. 어린 아이들을 위한 호르몬 책도 꽤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책이 나왔어도 일반인 중에 호르몬을 정확하게 알아듣거나 종류가 이렇게 많다는 걸 알고 있는 분들이 적어요. 나의 하루, 일생이 호르몬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를 잘 만들어놓은 책이 별로 없더라고요. 그렇다고 호르몬을 하나씩 설명하면 너무 어렵고, 의과대학 교과서 같으니까 쉽게 쓰려고 했어요. 내가 하루를 살면서 어떤 호르몬과 연관이 되고, 일생을 살며 어떤 호르몬과 연관이 되는지를 설명해주는 책이면 좀 쉽겠다고 생각했고요. 그래서 이런 식으로 책을 써보기로 한 거예요.

 

현대인의 가장 큰 어려움이 스트레스죠. 호르몬 관점으로 스트레스를 관리한다면, 어떤 처방이 가능할까요?

 

스트레스는 개념부터 더 잘 알아둘 필요가 있어요. 보통 스트레스라고 하면 나를 괴롭히는 사람, 일, 돈, 이런 것들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사실 스트레스의 진짜 정의는 그런 사람, 일, 돈을 겪으며 받은 내 마음의 상처를 말하는 겁니다. 스트레스는 타인이나 물건, 사건 자체가 아니라 내가 그걸 어떻게 겪었느냐 하는 바로 그것이거든요. 그걸 알면 스트레스 때문에 내 몸이 어떻게 변하겠구나 하는 것이 금방 나와요. 그 경험이 좋았느냐 나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반응을 하게 되거든요. 그걸 내 몸에 기억하게 하는 것도 호르몬의 일종이고요.

 

뇌 어느 부분에 저장되느냐 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뇌의 ‘해마’라는 부분이 기억을 저장하고 되살리는 부분인데요. 나쁜 기억은 거기에 저장이 안 돼요. 정말 강하고 나쁜 기억은 ‘편도체’라는 곳에 저장돼서 주기적으로 계속 다시 올라옵니다. 잊어버리지 못 하게 자꾸 올라와요. 나쁜 기억을 가진 분들이 트라우마로 인해 병이 생기잖아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라고 하는 병은 기억이 편도체에 저장돼 있기 때문이거든요. 스트레스는 언제 경험했느냐와 해결할 수 있는 자원 즉,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친지나 단체가 있느냐, 그리고 감정적인 수준이 어느 정도냐 등에 따라 굉장히 달라집니다. 이런 차이에 의해 호르몬이 전혀 다르게 나오는데요. 그 다양한 호르몬 때문에 내 몸에 변화가 생겼단 걸 모르니까 극복을 못 하고 병들어서 상당히 오랜 기간 고생을 하시는 거죠. 죽을 때까지 고생하시는 분들도 굉장히 많아요. 우리가 호르몬을 잘 이해하면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개인이 스트레스를 해석하는 방식에 따라 저장되는 부분이 다르고 호르몬도 달라진다는 말씀이군요?

 

그럼요, 시어머니가 나를 괴롭히면 내가 볼 때는 시어머니가 스트레스 같지만 다른 사람이 보면 그 시어머니는 스트레스가 아니잖아요. 그것처럼 내 몸, 생각, 감정 속에서 생기는 일, 그 기억이 스트레스기 때문에 그것을 내 호르몬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내 몸은 어떻게 기억하느냐에 따라 다른 거예요. 내 몸의 반응 정도를 만들어주는 것이 호르몬이기 때문에 호르몬을 잘 알아야 하고요. 기분 좋게 밥 먹으라고 하는 것도 똑같습니다. 위장의 움직임도 호르몬, 신경의 작용을 받기 때문에 그런 거죠.

 

그렇다면 호르몬에 관한 지식 없이 그저 몸에 이상을 느껴 병원을 찾은 사람에게는 어떻게 의학적인 처방을 내릴 수 있을까요?

 

우리가 호르몬을 만들어 쓸 수 있다면 호르몬을 주면 되겠죠.(웃음) 행복해지는 세로토닌(serotonin)이라든지 사랑을 느끼는 도파민(dopamine)이라든지 또는 남을 끌어안으면서 친밀감을 느끼게 하는 옥시토신(oxytocin)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만들어 넣어주면 참 좋을 것 같은데, 아직까지 그런 시도는 없어요. 결국 그럴 수 있는 상황, 그럴 수 있는 경험을 만들어주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요. 약재들은 좀 있습니다. 세로토닌을 몸에 더 오래 남아있게 하는 약재들이 있어요. 그런 것을 쓰면 우울증이나 불안 등이 상당히 좋아집니다. 그런 약재들은 지금 이용을 하고 있죠.

 

근본적으로는 좋은 상황을 만들고,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문제 해결 방법이겠네요.

 

그렇죠. 예를 들어 지하철을 타고 가다 불이 난 상황을 한 번 겪은 사람은 지하철만 쳐다봐도 괴롭지 않겠어요? 이런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지하철이 정말 안전해지고 편안해져서 이 정도면 만족스럽다는 것을 알려주는 거겠죠. 이것이 훨씬 중요한 거죠. 상황을 다시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고요. 그러기 전에는 내 몸의 반응이 먼저 나타나니까 그걸 해결할 수 있는 약물 같은 걸 좀 이용해야겠죠.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확실히 몸에 나타나는 반응들이 있잖아요. 제 경우 스트레스를 갑자기 받으면 피부에 이상 반응이 나타나거든요.

 

여성들은 남성보다 감정이 열 배 정도 많아요. 예민하고요.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여성의 경우 제일 처음 나타나는 반응이 피부에 뾰루지가 나는 겁니다. 대부분의 여성이 다 그렇고요. 조금 더 심해지면 생리불순이 와요. 더 심해지면 머리가 빠집니다. 원형탈모가 오고 그보다 더 심하면 당뇨병이 옵니다. 당뇨는 스트레스 때문에 자율신경이 영향을 받아 췌장이 일을 못 하게 되면서 시작되거든요. 이형 당뇨병을 앓는 대부분의 사람은 아주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은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스트레스는 우리 몸을 완전히 망가뜨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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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을 못자면 행복도 올 수 없다

 

무엇보다 수면의 중요성이 크게 와 닿았는데요. 특히 요즘은 밤낮 바뀐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늦게 잠드는 경우도 많고요. 이때 겪을 수 있는 호르몬 문제는 뭐가 있을까요?

 

밤낮이 바뀌어 계속 살면 몸에는 굉장히 심각한 문제가 많이 생깁니다. 밤낮을 바꿔 일을 오랫동안 하신 분들은 정상적인 생활을 하신 분들보다 암 발생률도 훨씬 높고요. 만성 질환을 가질 확률이 굉장히 높습니다. 우리들은 하루를 살면서 수도 없는 선택을 해요. 아침밥을 먹을지 말지, 먹는다면 주스를 먹을지 된장국을 먹을지, 점심은 누구와 먹을지, 몇 시에 먹을지, 얼마나 먹을지, 별의별 결정을 다 하게 됩니다. 이런 결정을 내일도 또 하게 되어 있어요. 모레도 또 하고요. 이 결정을 할 때마다 조금씩 후회하기도 하고 결정을 잘 못 하기도 하거든요. 잠은 ‘당신이 오늘 한 결정은 상당히 옳았습니다, 내일도 이런 결정을 하시면 됩니다’ 하고 우리에게 확신을 만들어줘요. 그러니 잠을 못자면 또 갈등에 휩싸이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헤매게 됩니다. 잠을 잘 자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죠.

 

잘 때 뇌에서는 멜라토닌(melatonin)이라는 물질이 나오면서 잠을 유도해요. 이 물질은 세로토닌에서 만들어지고요. 낮에 세로토닌이 풍부해야 밤이 되면서 멜라토닌으로 바뀌어서 나를 재워줍니다. 밤낮이 바뀌면 낮에 세로토닌도 없고, 밤에 멜라토닌도 없죠. 그러면 잠을 자면서도 잠이 정말 해야 할 역할을 다 못 하기 때문에 우리 몸이 굉장히 불편하게 돼요. 세로토닌은 행복 호르몬, 멜라토닌을 수면 호르몬이라 이름 붙일 수 있다면 잠을 못자면 행복도 올 수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울과 불안이 반복되고 나아가서는 수많은 질병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잠자는 시간뿐 아니라 잠의 질도 굉장히 중요할 것 같아요.

 

그럼요, 질이 더 중요하죠. 시간보다는 질이 훨씬 중요합니다. 그런데 질은 관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요. 당신의 수면 질이 1점입니다, 5점입니다, 이렇게 점수를 매길 수가 없어요. 그래서 시간만 가지고 계속 이야기하는 겁니다. 사실 수면의 질이 훌륭하면 즉, 깊은 잠을 잘 잘 수 있으면 평균 수면시간 5~6시간만으로도 충분한 거예요. 멜라토닌이 보통 새벽 2시 정도에 최고로 많이 나옵니다. 그러니까 12시부터 2시 사이에는 최소한 잠을 자고 있어야 다음 날도 일을 더 잘할 수 있습니다. 이 시간에 공부를 해봐야 다음 날 아침이 되면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집중력이 많이 떨어지기 때문이에요. 아이들 시간 없어서 공부하더라도 이 시간에는 재워야 합니다.(웃음)

 

잠의 질이 좋았는지 여부를 개인이 판단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수면 다원 검사 같은 것을 해보면 알 수 있는데요. 그보다 더 쉬운 방법이 있어요. 세 번만 물어보면 됩니다. ‘잘 잡니까?’ 물어보고요. 그렇다는 사람에게는 한 번 더 묻습니다. ‘꿈을 많이 꾸십니까?’ 했을 때 많이 꾼다는 사람은 못 자는 거예요. 꿈도 안 꾸고 잘 잔다는 사람에게 또 물어요. ‘아침에 개운하세요?’라고요. 아니라고 하면 못 자는 겁니다. 아주 쉬워요. 이렇게 세 번만 물으면 잘 자는지 못 자는지 알 수 있어요.

 

폐경이 되면 적극적으로 치료받기를 권고하기도 했는데요. 몸이 아프거나 이상이 생겼을 때, 호르몬 문제임을 자각하고 병원을 찾기가 쉽지 않습니다. 자신의 몸 상태에 집중하는 노력이 필요하겠죠. 어떤 조언을 해줄 수 있을까요?

 

정말 쉽지 않아요. 아직 대부분이 무슨 호르몬 때문에 아픈가보다, 무슨 호르몬이 모자란 것 같아, 이러고 병원에 오시기는 어렵습니다. 의사 선생님들도 그걸 다 맞추시기가 어렵고요. 하나씩 순서대로 따져 봐야 하고, 또 호르몬 자체가 복합적이기 때문에 그래요. 그건 좀 어려울 거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갱년기는 아주 적극적으로 관리를 해야 할 상황이 됐어요. 여성 평균 수명이 조금 있으면 90세가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그 얘기는 폐경 이후에 40년 이상을 살게 된다는 의미예요. 여성 호르몬이 없어지면 초기에는 갱년기 증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얼굴이 달아오르고, 식은땀이 나고요. 기억력이 자꾸 떨어져서 전화기를 냉장고 안에 넣어놓는 사람, 밥을 했는지 모르는 사람도 있어요. 짜증을 굉장히 많이 내게 되고요. 그 시간이 지나면 결체 조직에 힘이 빠져서 소변을 참지 못 하고 요실금 같은 병이 생기고, 더 시간이 지나면 심장병, 뇌졸중, 골다공증이 옵니다. 폐경 여성은 뚱뚱하든 그렇지 않든 시간이 지나면 콜레스테롤이 올라가요. 여성 호르몬이 콜레스테롤에서부터 만들어지는데 더 이상 안 만드니까 콜레스테롤이 올라가기 시작하고 그것이 혈관에 아주 해로운 일을 합니다. 여성의 경우 폐경 전까지는 심장병, 뇌졸중이 거의 없거든요. 여성 호르몬이 그렇게 좋은 역할을 해요. 그러니까 폐경이 되고, 남은 시간을 이 호르몬 없이 지낸다는 것은 대단히 힘든 일입니다. 때문에 의사와 잘 상의해서 필요하다면 반드시 여성 호르몬을 사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알려진 바로는 석류같이 음식에도 여성 호르몬이 많이 있다고 하는데요. 음식 섭취로는 부족한가요?

 

음식 섭취가 왜 문제가 되느냐면요. 어떤 날은 많이 먹어서 충분하지만 어떤 날은 조금 먹어서 모자라는 경우가 생긴다는 거예요. 이건 좋은 일이 아니잖아요. 늘 비슷한 양의 여성 호르몬이 몸에 맞게 있어야 하는데 그게 안 되면 어떤 날은 괜찮지만 어떤 날인 안 괜찮죠. 또 석류를 매일 규칙적으로 일정량을 먹었다 하더라도 거기 포함되어 있는 여성 호르몬이 똑같다고 생각할 수 없잖아요. 그래서 음식으로 관리하는 것보다는 여성 호르몬이라고 만들어진 약물을 이용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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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음식을 소박하게

 

고혈압과 호르몬의 관계도 주의 깊게 봐야 할 부분이에요. 고혈압 증상을 들여다보면 원인이 호르몬 이상에 있는 경우가 많다고요?

 

고혈압의 원인이 세 가지 정도 됩니다. 소금을 많이 먹어도 혈압이 올라갈 수 있고요. 콩팥에서 만들어지는 레닌(Renin)이라는 호르몬 때문에도 혈압이 올라갈 수 있고, 스트레스 때문에도 혈압이 올라갈 수 있어요. 이 세 가지 중에 소금만 자꾸 얘기를 하고 있어서 국민 모두가 소금만 원인이 되는 줄 아는데요. 사실은 스트레스가 굉장히 큰 부분을 차지하고요. 레닌이라는 호르몬도 한 원인이에요. 레닌은 혈중에서 안지오텐신(angiotensin)이라는 물질을 만들고 안지오텐신은 알도스테론(aldosterone)이라는 호르몬을 많이 분비시켜 그것이 혈압을 올라가게 만듭니다. 이건 검사를 안 해보면 알 수 없기 때문에 확인을 해야 하는 거죠. 또 급성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예를 들면, 전철의 문이 닫힐 때 타려고 나를 뛰어들게 만드는 호르몬이 에피네프린(epinephrine), 노어에피네프린(norepinephrine) 같은 건데 이런 호르몬이 계속 많이 나오면 혈압이 확 올라가요. 그런 문제가 있을 때도 혈압이 오를 수 있기 때문에 고혈압 환자는 이런 것도 다 확인을 해볼 필요가 있는 겁니다.

 

고혈압이 호르몬에서 비롯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면 훨씬 도움이 되겠네요.

 

원인을 몰라, 고혈압이야, 그냥 이렇게 알고 있는 분들이 많은데요. 그중에 이런 분들도 틀림없이 있을 거라는 거죠. 그러니까 한 번씩 확인을 해볼 필요가 있는 거고요.

 

많이 관심 가질 부분이 다이어트와 호르몬일 텐데요. 호르몬과 다이어트의 상관관계에 대해 쉽게 설명 부탁드립니다.

 

배고픔을 느끼는 호르몬이 그렐린(ghrelin)이라는 호르몬이고요. 포만감을 느껴서 밥을 더 못 먹게 하는 것이 렙틴(leptin)이라는 호르몬인데요. 이 두 호르몬이 균형을 잘 이루어서 배가 고프면 먹게 만들고, 배가 부르면 그만 먹게 만들어야 해요. 그런데 그게 깨지는 거예요. 음식 섭취에 변화가 많이 생겼거든요. 예전에는 잡곡, 채소 같은 천연식을 많이 했는데 지금은 설탕도 많이 먹고, 지방도 양이 많아지고, 소금 섭취도 너무 많아져서 호르몬의 변화가 많이 생긴 겁니다. 그렐린이 아무 때나 나오거나 렙틴이 나와도 몸이 반응을 하지 않는 거죠. 또한 인슐린(insulin)은 당분을 섭취하면 당분을 세포 속으로 넣어서 세포가 이용하게 만드는 호르몬인데요. 뚱뚱해지면 인슐린을 많이 분비하게 됩니다. 그런데 역할을 못해요. 당을 세포 속으로 못 넣어요. 그러니 당이 혈액 속에 너무 많아지게 되고 소변으로 나와 당뇨병이 되는 거죠. 역할을 못 하는 이유가 비만과 관련이 많습니다. 당분이나 지방을 너무 많이 먹어서 살이 찌면 인슐린이 역할을 못 하게 되고 그로 인해 당뇨병이 오게 되는 거거든요. 이런 호르몬의 변화를 측정, 확인할 필요가 있고요. 이것을 더 해결하기 위해서는 식습관을 똑바로 찾아야 해요. 자기 몸이 그렐린과 렙틴을 잘 분비하게 만들고, 인슐린이 역할을 잘할 수 있는 정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거죠. 규칙적인 식사, 균형잡힌 식사, 적당한 운동, 이런 것들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겁니다.

 

핵심은 ‘거친 음식을 소박하게 먹는 것’(214쪽)이라는 말에 담겨있는 것 같습니다.

 

통곡류, 우리가 잘 아는 현미라든지 콩, 여러 가지 잡곡을 넣은 밥이 거친 음식에 속하고요. 채소도 많이 있죠. 살짝 데쳐서 무쳐 먹는 나물들도 있고요. 생으로 먹는 과일도 여기에 포함이 됩니다. 너무 단 과일은 피하시는 게 좋을 것 같고요. 육류도 빠지면 안 됩니다. 육류는 면역성을 유지하는 데 굉장히 중요한 성분이에요. 면역은 여러 세포가 담당하는데 세포를 만들려면 단백질이 필요하고요. 면역 단백질을 만드는 데에도 굉장히 필요합니다. 단백질 섭취가 줄면 면역 단백질, 면역 호르몬, 면역 세포를 못 만들어서 우리 몸이 쉽게 병들게 되고 건강을 해치게 됩니다. 지방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데요. 트랜스지방, 포화지방 말고 불포화지방이 많이 들어있는 견과류를 중간중간 자주 섭취해주시는 것이 거친 음식으로 내 몸을 살리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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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몬에 대한 이야기들

 

박사님은 이런 것들을 실생활에서 어떻게 실천하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저는 우선 아침 5시 반이 되면 운동장에 갑니다. 한 시간 정도 운동을 하고요. 아침밥은 아주 적게 먹습니다. 아침을 많이 먹으면 불편해서요. 그런데 아침밥을 안 먹으면 뇌가 잘 깨지 않아요. 탄수화물이 조금 포함되어 있는 아침 식사를 하는 것은 학생뿐 아니라 성인들에게도 좋겠고요. 점심은 될 수 있으면 비빔밥 종류로 된장국과 함께 먹습니다. 비빔밥에는 여러 채소들이 들어가고 계란으로 단백질도 좀 들어가죠. 된장국에 두부도 많이 있으니까 그런 식으로 콩과 두부를 통해 단백질 섭취도 좀 하고요. 저녁은 회식이 많아서 제가 추구하는 식사를 못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웃음) 고기도 먹고, 생선도 많이 먹고, 과식도 할 수 있는 자리죠.

 

간식도 하세요?

 

전혀 하지 않습니다. 배가 안 고프니까 간식을 꼭 먹어야 할 이유를 못 찾고요. 다만 너무 연세가 드신 분들은 당이 떨어지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이때는 꼭 참을 필요가 없습니다. 약간의 간식을 하시는 게 좋죠. 될 수 있으면 과일을 이용하면 더 좋겠고요. 천연당이니까요. 그 외에 과자를 먹는다든지 밥을 간식으로 먹는다든지 과도한 빵이나 설탕을 먹는다거나 이런 건 좀 피하시는 게 좋습니다.

 

특별히 이 책을 추천하고 싶은 분들이 있나요?

 

글쎄요, 누구에게 꼭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쓴 게 아니고 아직 호르몬에 대한 이야기들이 전체적으로 충분치 못 하다고 생각해서 쓴 것이기 때문에요. 건강에 관심이 있고, 연세가 들면서 조금씩 힘이 빠지거나 왠지 모르게 아픈 것 같다는 분들이 꼭 읽어보시고 호르몬의 역할을 아셨으면 좋겠어요. 호르몬은 아직까지 홍보도 너무 안 되어 있고, 많이 아시는 분이 적습니다. 굉장히 다양하고 많은 일을 호르몬이 하고 있다는 걸 아시고 병과도 연관을 지어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어요. 호르몬은 신경과 아주 밀접하게 연관을 짓고 있어요. 신경이 호르몬을 관장하기도 하고 호르몬이 신경을 관장하기도 해요. 근육 신경까지도 호르몬과 연결이 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을 잘 배우셔서 연관을 잘 지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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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을 살리는 호르몬오한진 저 | 이지북
호르몬은 인체의 활동이나 생리적 과정에 필요한 정보를 전달하고 자극하여 균형을 유지하는 물질이다. 요즘은 신경조직이나 면역계에서 분비되는 다수의 물질들도 호르몬 범주에 포함한다. 알면 알수록 호르몬은 우리 몸을 지키는 데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호르몬이 우리의 건강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쉽고 재미있고 명쾌하게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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