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antcast
Channel: 채널예스 : 만나고 싶었어요!
Viewing all 8510 articles
Browse latest View live

곽정은 “사랑, 행복한 만큼 힘들어질 수 있어”

$
0
0

그녀와의 인터뷰를 정리하며 한 가지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사랑 때문에 아픈 날엔 그녀가 떠오를 것이다. 그리고 ‘그녀라면 어떤 말을 들려줬을까’ 자문할 것이다. 그녀의 조언은 문제의 핵심을 파고들기 때문이다. ‘왜 나의 사랑은 이렇게 고통스러운 건가요?’라고 물으면 ‘어쩌면 사랑은 힘든 것인지도 몰라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상대’와 ‘우리’ 안에서만 문제의 원인을 찾으려고 하자, 그보다 ‘자신’에 대해 아는 것이 먼저여야 하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지난 해 12월, 출판사 달은 사랑 고민을 공개 모집했다. “연애칼럼니스트 곽정은 작가에게 사랑과 관련된 고민을 보내주세요. 보내주신 사연을 채택하여 직접 해결해드립니다”라는 것이 그 내용. 수많은 사연들이 도착했고, 그 중 110여 편에 대한 응답이『우리는 어째서 이토록』안에 담겼다. 사랑을 시작하기 두려워서, 연인의 이성 친구 때문에 괴로워서, 권태기가 힘겨워서, 좋은 상대를 고르는 기준을 알 수 없어서, 현명하게 이별하는 방법이 궁금해서... ‘사랑에 대한 거의 모든 고민’이 실렸다. 마치 나의 이야기인 듯 익숙한 사연들. 그러나 뒤따르는 곽정은의 조언은 번번이 예상을 빗나간다.

 

“권태기가 찾아와서 함부로 행동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매너가 없어진 자리에 권태감이 자리잡는다”고 명쾌하게 정리하는가 하면, 여자 친구를 다른 남자가 낚아챌까 봐 두렵다는 고민에는 “그녀는 다른 남자에게 낚아챔을 당하는 존재가 아니라,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존재예요”라는 말로 허를 찌른다. 당혹감은 이내 후련함으로 바뀐다. 애먼 곳에서 헤매다 제대로 돌파구를 찾은 듯한 느낌이다. 『우리는 어째서 이토록』이 안겨주는 이 개운함은 곽정은과의 인터뷰에서도 계속 이어졌다.

 

크기변환__IM_8316.jpg

 

 

사랑의 핵심은 힘듦과 고통이 아닐까요?

 

독자들의 사랑 고민을 모아 출간된 책입니다. 사연 채택에는 직접 참여하셨나요?

 

네, 당연히 제가 모든 사연들을 봤는데, 상황은 조금 달라도 결국 답은 비슷할 수밖에 없는 부분들이 있었어요. 정리를 하는 과정에서 에디터 분과 작업하는 부분은 필요했고요. 모든 사람의 질문에 답을 해주는 상담집이 아니라, 한 권의 주제가 있고 흐름이 있는 거의 모든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완성된 책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 차원에서 완결성도 있지만 그렇기 때문에 아쉬운 점도 있을 수는 있다고 생각해요.

 

어떤 부분에서 아쉬움이 남으세요?

 

어떤 저자든 시간이 더 있었으면 ‘이것도 넣을 걸’하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을 수 있죠. 그런데 이 책은 제가 사연을 만들어서 혼자 질문하고 답하는 게 아니라 오롯이 사람들의 사연에 기대서 만들어진 거잖아요. 그 사연들을 통해서 제 말이 나올 수밖에 없고요. 그렇다 보니까 시간이 지나고 나서 ‘이 이야기도 넣고 싶었는데 질문이 오지 않아서 못 썼구나’ 싶은 부분들이 생겨나기는 해요. 그런데 그건 또 다른 책을 통해서 들려드리겠죠. 서두에서 밝혔듯이 정말 많은 분들이 상담요청을 보내오세요. 아침부터 새벽까지 메일이 도착하는데, 그 시간까지 고민하시면서 곽정은에게 메일을 보내고 싶다고 생각하시는 것 자체가 저한테는 굉장히 부담이기도 하면서 감사하기도 해요. 그런데 상담 메일을 드리는 건 제 일이 아니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하다가 책이라는 형태를 통해서 답을 전하고 싶었던 거죠. 이건 일대일로 상담을 하는 게 아니잖아요. 완결된 콘텐츠를 갖춘 책을 통해서 또 다른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게 되니까, 사연을 보낸 분이 아니어도 이 책을 통해서 다시 생각을 해볼 수 있죠. 저는 그런 가치가 좋다고 생각했어요.

 

사연들을 읽으시면서 어떤 기분이 드셨어요?

 

글쎄요. 제가 했던 고민들도 있었고, 또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을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는 걸 보기도 했죠. 사랑이란 자기가 선택하는 것이지만, 선택한다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운명적으로 다가와서 인생에 많은 영향을 끼치잖아요. ‘그렇다면 사랑이란 뭘까?’라는 생각이 들었을 때, 사랑의 핵심은 행복이라고 생각하고 다들 시작하지만 결국 사랑의 핵심은 힘듦과 고통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우리는 어째서 이토록』이라는 제목 뒤에 감춰진 의미가 궁금해집니다.

 

굳이 대답을 한다면 ‘우리는 어째서 이토록 고통스러울까’, ‘우리는 어째서 이토록 힘들까’ 정도가 숨어 있을 거예요. 너무 힘들다고 생각해서 사연을 보내신 분들을 통해서 만들어진 책이니까요. 사연들을 쭉 읽어가다 보면 결국은 ‘사랑은 힘든 거구나’라는 생각에 다다르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사랑은 힘든 거구나’라고 생각하면 더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인생의 다른 일들도 달콤할 수만은 없고 만만할 수만은 없잖아요. 그런데 유독 사랑은 분홍분홍 하고 뽀송뽀송하고 행복행복 할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사랑하는 건 힘들 거야, 행복한 만큼 힘들어질 수 있어’라고 각오하는 사람에게는 오히려 수월해지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차원에서도 이 책은 사랑에 대해서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하고요.

 

“좋은 연애를 시작할 수 있는 시점은, 너무 외롭거나 너무 힘들 때가 아니라 혼자서도 재미있게 잘 지낼 수 있을 때일 거예요”라고 쓰셨습니다. 전작들을 통해서도 ‘혼자 있을 때 충만해야 둘이 되어서도 행복하다’고 말씀하셨는데, 같은 맥락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죠. 그래서 『혼자의 발견』『우리는 어째서 이토록』은 거의 같은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하지만, 약간 컬러감이 다른 책이기도 하고요. 메시지가 비슷한 걸 떠나서 애초에 저는 그렇게 생각하니까요. 연애와 관련된 어떤 이야기를 풀든 빠트릴 수 없는 부분인 거죠. 그런데 사연들을 봤을 때 다들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게,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지 못 하는 태도들이었던 것 같아요. 물론 ‘혼자 있는 것이 싫어’라고 느끼는 부분이 좋은 연애를 시작하게 해주는 동력이 될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누구를 만나든 만나지 않든 자기 상태를 부정하려고 하고 벗어나려고만 한다면 그 안의 좋은 가치를 발견하지 못 하는 건데, 그러면 결국 어떤 식의 선택이든 도망치는 것일 수밖에 없거든요. 나로부터 도망치고, 지금 내가 감당해도 좋을 고독으로부터 도망치고, 자신을 직면하는 노력을 하지 않으려고 하는 거죠. 그 상태에서 누구를 만났을 때는 당연히 상대에게 ‘나의 외로움이나 상처를 해결해줘’라는 태도로 일관하게 돼요. 그 사람을 만나려고 한 건 외롭지 않으려고 했던 일이니까요.

 

책에서 반복적으로 이야기하시는 것 중에 하나가 “나는 언제 행복해지는 사람이지?”, “내가 원하는 연애란 어떤 거지?”를 생각해 보라는 건데요. 작가님은 ‘내가 원하는 연애’가 무엇인지 찾으셨나요?

 

그 이야기는 『혼자의 발견』에서도 썼고, 이번 책에도 나와 있는 내용인데요. 예전에는 같이 있으면 나의 고통을 잊게 해주고, 같이 있으면 위로가 되고, 같이 있으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행복한 사람과 있으면 좋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같이 있지 않은 시간에도 나는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행복해야 하잖아요. 그러니까 굳이 같이 있지 않아도 늘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는 사람, 그 느낌에 대해서 나 스스로가 편해질 수 있는 관계, 그런 가치를 같이 공유할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 곁에서 서로가 평온하게 지낼 수 있는 관계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전에 제주도에 갔을 때 비자림에서 연리목을 본 적이 있어요. 저도 한 때는 그런 사랑을 하고 싶었고, 내 존재가 잊혀질 정도로 상대방에게 헌신하고 그만큼 상대도 나한테 헌신하는 걸 꿈꿨던 적이 있어요. 그런데 지금은 예전과는 많이 달라진 것 같아요.

 

지금은 어떤 연애를 꿈꾸세요?

 

제가 좋아하는 시 중에 칼릴 지브란의 「함께 있으되 거리를 두라」는 시를 보면 이런 구절이 나와요. 사원의 기둥들도 서로 떨어져 있다고요. 예전의 저는 연리목 같이 지고지순하고, 얽히고설키고, 가장 극적인 형태로 결합하는 걸 꿈꿨다면, 지금은 떨어져 있지만 두 사람이 똑같이 소중한 존재로 서로를 인정하고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사랑이 좋다고 생각해요. 사원의 기둥처럼, 떨어져 있어도 어쨌든 같은 사원을 이루고 있는 거죠.

 

크기변환__IM_8510.jpg

 

 

‘왜 솔직하게 말을 못해?’ 내 애인의 이중언어

 

책에 실린 고민처럼 다툴 때마다 ‘헤어져’라는 말을 쉽게 하는 연인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들도 있는데요. 그 말은 반어법 적인 표현일 수도 있고, 충격요법으로 사용한 것일 수도 있다고 하셨어요.

 

어떤 사람은 정말 지긋지긋해서 헤어지자고 할 수도 있죠. 마지막 통보 식으로요. 어떤 상황에서는 손을 내민 채로 마음속으로는 ‘나 좀 잡아줘’라고 생각하면서 그렇게 말하기도 해요. 마음의 경우의 수는 너무 많은 것이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그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다고 답을 드렸던 거예요. 그렇게 헤어짐을 쉽게 이야기하는 태도는 잘못 되었지만 ‘네가 이러니까 정말 못 사귀겠다’라고 단칼에 끊어내는 것보다는, 그 말에 숨겨져 있는 메시지를 읽어보려고 노력할 필요는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이유가 있지 않겠느냐고 이야기해 드린 거예요.

 

“A라는 생각을 A라고 표현하지 못 하고 돌려서 A′로 표현하는 것”이 문제의 본질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연인은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라고 할 수도 있는데, 우리는 왜 솔직하게 말하지 못할까요?

 

그게 연애 관계 자체가 갖고 있는 극단성, 양면성이 아닐까요. 부모님한테도 못할 이야기를 연인한테는 하고, 부모님하고는 소원하게 지내는 경우라도 연인한테는 피와 살을 다 내어주고 대신 죽을 수도 있을 것 같은 감정이 들기도 하잖아요. 혈연보다도 더 강렬하게 나를 매혹하지만 끊어지는 순간에는 그렇지 않죠. 책에도 썼듯이 사귀기 시작할 때는 두 사람의 마음이 필요하지만 헤어지자고 할 때는 ‘너랑 못 살겠다’ 말해버리면 끝이에요. 그런 관계라는 걸 우리는 다 알고 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내가 진짜로 원하는 걸 말하면 이 관계에 불편함이 오지 않을까’ 우려해서 조심스러운 것도 있고요. 한편으로는 ‘B라고 말해도 사실은 A라고 말하는 거 알아채 줄 수 있지?’라고 이중언어를 사용하는 것 때문에 그렇게 보일 수도 있어요. 그런데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과의 커뮤니케이션을 배우는 일은 거의 없거든요. 그렇다 보니 메시지를 조금 더 깊이 숨기거나 간결하지 않게 전달하는 상대를 만나고 있는 사람은 불편한 점들이 분명 있겠죠. 하지만 또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이해할 수 없는 커뮤니케이션조차도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는 게 연애 관계 아닐까 싶기도 해요.

 

연애 조언을 해주다 보면 때로 단호한 표현을 하게 될 때도 있으실 텐데요. 걱정이 되실 때는 없나요? 타인의 연애에 대해서 의견을 낸다는 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는 일이잖아요.

 

아뇨, 저는 일대일로 상담을 한 것이 아니니까 걱정되지 않아요. 이건 책이잖아요. 책은 결국 담고 있는 콘텐츠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인데 겁이 났다면 저는 <마녀사냥> 때부터, 아니 그 이전에 <코스모폴리탄> 때부터 조언하는 역할을 하면 안 됐겠죠. 저는 제 조언이 정답이라거나 ‘이거대로 하세요’라고 명령하거나 어떤 가르침을 주는 사람이 아니에요. 저 역시 숱한 연애를 경험했고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을 만나서 13년 동안 취재를 했던 사람으로서 ‘지금 저의 결론은 이런 것인데, 당신이 나를 신뢰하고 질문을 한다면 이 정도의 답이 맞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최종 선택은 당신의 몫입니다’라고 말하는 거죠. 아시다시피 제 생각을 털어놓는 작업이었기 때문에 그것 때문에 부담감을 느낀 적은 없어요.

 

현재 한국에서 연애에 대해 가장 잘 알고 많이 조언해 주는 사람 중 한 명이신데요. 그런 작가님께서는 연애 문제를 누구에게 상담하실지 궁금합니다.

 

저에게도 신뢰할 수 있고 마음을 털어놨을 때 따뜻하게 혹은 냉정하게 이야기해줄 수 있는 친구들이 있죠. 제가 방송이나 책을 통해서 연애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모든 정답을 다 알고 있는 건 아니잖아요. 저도 사랑에 대해서 이야기하지만 사랑 때문에 예상외의 행복과 예상외의 힘든 시간을 보낼 때가 분명히 있거든요. 그렇지만 누군가의 조언에 기대는 경우는 사실 많지는 않죠. 이야기할 사람이 필요하니까 정말 친한 누군가에게 털어 놓을 때는 분명히 있지만, 조언대로 실행을 하는 게 아니라 다양한 방법을 찾죠. 책을 많이 찾아보거나, 열심히 운동을 하거나, 내 마음 속을 들여다보기 위해서 요가나 명상을 하죠. 행복한 일이 있을 때는 그걸 만끽하려고 노력하고, 불행하다는 느낌이 들 때는 그대로 또 나 자신을 마주하려고 노력하는 편인 것 같아요.

 

혼자일 때와 연애할 때, 발견하게 되는 나의 모습도 다르겠죠?

 

연애를 하지 않을 때는 자기 자신과 조금 더 내밀한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장점이 있는데, 연애를 하면 혼자 있을 때는 전혀 알지 못했던 단점을 깨닫기도 하니까요. 그런 부분들이 다시금 나를 돌아보게 하는 것 같아요. 대학교 강연을 가면 많은 친구들이 저한테 물어봐요. 솔직히 자기는 연애 생각도 없고 결혼 생각도 없는데, 다들 연애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분위기로 만들어서 자기가 루저 같이 느껴진다고요. 연애를 별로 하고 싶지 않은데 억지로 할 필요는 전혀 없죠. 그렇지만 연애할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는 굳이 밀어내지 않고 둘이 시간을 보내본다면, 그 안에서 분명히 나 자신도 알지 못했던 나를 깨달을 수 있다고 말해줘요. 그러다 보면 새로운 방향으로 성장이 이루어질 수도 있다고요. 혼자 여행을 다니고 영화를 보는 것도 너무 좋죠. 그런데 둘이 있을 때만 비로소 알게 되는 자신의 영역이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주위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해서 다툼이 생기는 경우도 빈번한 것 같습니다. 친구의 애인과 자신의 애인을 비교하면서 불만이 쌓이기도 하고요.

 

그냥 어린 시절에는 충분히 그런 일들이 더 많이 일어난다는 생각이 들어요. 많은 사람을 만나보고 이 사람과 보내는 시간의 가치가 나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되면 달라지는 거죠. 그런데 사실은 내 남자친구를 친구의 남자친구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자기를 이루고 있는 거의 모든 것들을 다 저주하고 부정해야 되는 거나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어차피 나는 누군가 보다는 돈이 없고, 누군가 보다는 집이 작고, 누군가 보다는 학벌이 낮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옆에 있는 사람을 자신의 트로피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누구를 만나든 불행한 상황이 이어지지 않을까요? 그런 마음이 들지 않을 때야 말로 옆에 좋은 사람을 허락할 수 있는 때가 아닐까 싶네요.

 

기자로 일하시면서 수많은 연애 실용서를 읽으셨잖아요. 그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었거나 가장 많은 영향을 받으신 책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특별히 어떤 책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는 건 맞지 않을 것 같아요. 사랑 때문에 힘들어한 모든 사람들이 저한테 가르침을 준 사람들이었다고 생각해요. 제가 연애 기사를 많이 썼기 때문에 실제로 서른 살 쯤부터는 연애 상담을 해달라고 이야기하는 친구들이 많았고요. 그런 과정들 속에서 아픔의 사연들을 모으고 많은 분야의 전문가 분들과 만나서 취재를 해야 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사랑 때문에 생겨난 아픔을 저에게 이야기해주고, 제가 그 아픔에 대해서 이야기했을 때 전문 분야의 답을 해준 사람들이 잊지 못할 한 권 한 권의 책들이나 마찬가지죠.

 

크기변환__IM_8287.jpg

 

 

다음 연애에도 권태기는 옵니다

 

많은 연인들이 권태기를 겪으며 괴로워합니다. 이 시기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사랑이 식었다는 신호인 건지 의심하기도 하는데요. 어떤 조언을 들려주고 싶으세요?

 

강연 때마다 권태기에 대한 이야기는 끊이지 않고 하는 편이에요. 거의 모든 커플들이 경험하는 일이기 때문이죠. 실제로 통계에도 나와 있어요. 1년 반에서 3년 사이에는 별로 안 만나고 싶다거나 이제는 별로 섹스를 하고 싶지 않다거나, 혹은 다른 이성이 눈에 들어오는 시간을 맞닥뜨리게 된다는 거예요. 그랬을 때 (관계를) 끝내도 돼요. 끝낼 수밖에 없는 사람은 그냥 그 만큼의 사랑을 했던 거죠. 그런데 끝내지 않아야겠다고 판단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이야기를 해줘요. 열정이 식은 자리에 서로의 신뢰나 ‘열정이 끝났지만 우리는 그게 다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마음이 자리한다고요. 바로 그 마음이 소중한 사람을 지키는 힘이 되는 거죠. 권태기가 왔을 때 끝내고 싶다고 생각되면 끝내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억지로 버틸 수는 없으니까요. 단, 그런 식으로 해도 다음 사람과 연애를 할 때 다시 권태기가 올 거라는 거예요. 그러면 그때 또 끝낼 건가요? 문제를 이번 연애에서 해결하지 못 하면 더 나이가 들었을 때 그 부분을 괴로워하다가 ‘서른쯤 됐으니까 결혼을 해야겠어’ 해서 결혼해도 분명히 또 권태기가 올 거거든요. 그때는 어떻게 하겠냐는 거죠. 그러면 또 이혼하나요?

 

열정이 식었다고 해서 사랑이 끝난 건 아니라는 걸 알아야 하는 거군요.

 

결국 핵심은, 사랑이라는 감정이 열정이 전부가 아니라 열정 뒤에 찾아오는 친밀함이 결국 관계를 지속하게 해주는 힘이라는 거예요. 친밀함이라는 건 서로에 대해서 오랜 시간을 함께 했을 때, 그리고 많은 일들을 경험했지만 그 안에서 서로에 대한 신뢰가 있다고 둘 다 느낄 때 생겨나게 되는데요. 그걸 인정 못 하겠다거나 나는 그게 뭔지 모르겠다고 생각한다면 그 사람들은 헤어지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특히나 어린 날에는 열정만이 사랑의 전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떨리는 마음이 사라지면 마음이 식었다고 판단하고 끝내기 쉽죠. 저는 20대 친구들이 ‘권태기인 것 같은데 어떡하죠?’라고 물으면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해요. 그런데 지금 못 배우는 건 괜찮지만, 친밀감이라는 게 존재한다는 걸 알지 못한 채로 중요한 시기에 맞닥뜨렸을 때는 정말 좋은 사람을 또 떠나 보내게 된다고 말해주죠.

 

크기변환__IM_8334.jpg

 

‘잘 싸우는 방법’도 있을까요?

 

싸우기 시작하면 존댓말을 한다거나, 책에도 썼듯이 한 시간 정도 나갔다 오면서 시간을 갖는다거나, 다양한 방법이 있을 수 있겠죠. 제가 썼던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거고요. 그런데 한 시간 나갔다 오는 것에 대해서 상대방은 무시당했다는 기분이 들 수도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정답은 없는 거죠. 다만 왜 싸웠는지를 보면 분명히 커플마다 패턴이 있을 거예요. 상대의 말에 빈정거리거나 화살을 다시 상대방한테 돌리다가 싸우게 되는 식으로요. 매번 다른 주제를 가지고 싸우더라도 사실은 고유한 패턴이 있다는 걸 발견을 해야 되는 거거든요. 그래서 제일 중요한 건 ‘우리가 어떤 때 싸우는지’를 조금 더 넓은 시각에서 지켜볼 줄 알아야 되는 것 같아요. 싸움의 고유한 패턴을 찾아서 깰 수 있도록 해야 되는 거죠.

 

많은 경우 대화하는 과정에서 싸움이 커지는데요.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말 때문에 싸우는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죠. 다른 것 때문에 싸우는 경우는 흔치 않거든요. 편하고 가장 가까운 사람이니까 ‘이 정도는 항의해도 되겠지’ 혹은 ‘이 정도까지 삐쳐도 되겠지’라는 느낌으로 조심하지 않는다면, 일단 자신을 먼저 지켜보세요. 그에 대한 리액션이 어떻게 돌아오는지 보고 ‘우리는 항상 이럴 때 싸우는구나’라고 생각되면 그걸 끊어낼 수 있도록 해야 돼요. 문제의식을 가진 입장 쪽에서 먼저 그렇게 말하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한 거예요. 저는 어느 누구한테나 필요한 대화법 중에 하나가 비폭력 대화라고 생각해요. 상대를 나쁜 사람이라고 판단하고 비난하거나, 책임을 전가하고 명령하는 식으로 대화를 하다 보니까 감정이 격해지고 서로 상처 주게 되는 거잖아요. 그러지 말고 ‘내가 이런 기대를 가지고 있었는데 지금 같은 현상이 나타나서 정말 속상해, 앞으로 안 그래 줬으면 좋겠어’라고 너무 무섭지 않게 이야기하는 거예요. 그렇지만 단호하게, 또 동시에 진지하게 말하는 거죠. 상대에게 상처가 되지 않도록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는 게 중요해요.

 

상대를 비난하지 않으면서 나의 감정을 전달한다는 게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사실 우리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이런 대화법을 배우고 사용하는데, 가까운 사람한테도 친절하게 내 의견을 전달하는 방법을 배워야 하는 거죠. 그게 쉽지 않은 이유는 ‘네가 알아서 나를 만족시켜 주지 않아서 내가 이렇게 불만을 늘어놓을 수밖에 없는 거야’라고 매 순간 자신의 기대치를 높이 올려놨기 때문이에요. 나도 내 마음 같지 않잖아요. 그런데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어떻게 내가 원하는 대로 다 해줄 수 있겠어요. 기대를 조금 느슨하게 해주는 순간 둘 사이는 오히려 더 타이트해지는 것 같아요.

 

믿음에 대한 이야기는 마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문제 같죠. ‘네가 믿게끔 해야 믿지’라는 입장과 ‘나에 대한 믿음이 없으니까 의심을 하는 거잖아’라는 입장이 맞서고, 이야기가 그 안에서 뱅뱅 돌아요. 일단 믿어주는 게 답일까요?

 

나를 아끼고 나를 조금 더 대우해 준다고 생각하면 ‘네가 믿게 해줘 봐, 그럼 내가 믿지’라는 말이 나오기 쉽지 않다고 생각해요. 내가 나를 대우하는 것과는 관계없이 상대의 행동이나 태도에 따라 나의 행복 여부가 정해진다고 생각하면 당연히 거기에 기댈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마음속에 깊은 불안감이 있으면, 혹은 상대에게 좌우되지 않는 고유한 나만의 평안이 없으면, 믿는 척은 할 수 있지만 계속 믿는 관계가 될 수는 없는 거죠. ‘믿게끔 행동해’라고 말하는 사람은 사실은 ‘나는 네가 언제라도 도망갈까 봐 불안하고, 나는 네가 없으면 안 될 것 같아’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가장 가까운 자리를 허락해놓고 그 사람을 믿지 못 하면 결국 자기가 상처 받는 거예요. 그런 패턴은 충분히 깨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노력을 하지 않는 거죠. 계속 ‘네가 잘못했기 때문에 내가 못 믿는 거고, 네가 잘하면 믿을 거야’라고 이야기하지만 믿음의 문제는 자기 내면에 있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믿어주겠다’가 아니라 ‘그냥 믿는다, 저 사람이 눈앞에 보이지 않아도 내 시간과 내가 따로 맺는 관계들이 매우 소중하다’라고 생각해야죠.

 

어쩌면 불신은 ‘배신에 대한 두려움’에서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믿었는데도 불구하고 상대가 믿음을 저버렸다면, 그냥 놓아준다고 생각하면 돼요. 그러면 ‘믿게끔 해’라고 말할 필요도 없는 거죠. ‘믿음을 깨버리는 너라면 나는 너를 곁에 두지 않을 거야’라는 생각을 매일 떠올리고 중심을 자신에게 두는 사람이 관계에서도 조금 더 건강하게 지켜볼 수 있어요. 믿지 못 하겠다면 가장 가까운 자리를 허락하지 말든가, 가장 가까운 자리를 허락했다면 믿든가, 아니면 아무도 안 사귀든가, 셋 중 하나를 선택해야 되는데 그게 쉽지만은 않죠. 연애의 어려운 점일 거예요. 제가 몇 년 전에 책에 이런 비유를 썼었어요. 상대방을 믿을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는데, 그 사람 머리에 헬멧을 씌우고 카메라를 장착하는 거라고요. 그러면 24시간 뭘 하는지 알 수 있죠.

 

24시간 감시하는 방법이 있었군요(웃음).

 

그런데 그걸 계속 보려면 나의 24시간은 온전히 버려져야 돼요. 굉장히 역설적이지 않아요? 내가 원하는 만큼 다 확인하고 싶으면 나의 삶이 없어지면 되는 것이고, 놓아버리는 순간 오히려 내 마음의 평안을 찾는 거죠. ‘나의 믿음에 대해서 네가 책임져, 나의 감정을 네가 다 알아서 해줘’라고 믿는 사람에게는 진짜 행복은 허락되지 않는 것 같아요. 결국은 결정해야 되는 거죠. 불신이 문제가 된다면 둘 중에 하나예요. 마음속에서 믿고 그걸 계속 되새김질하든지, 아니면 카메라를 달든지. 그런데 카메라를 달면 또 그 안의 영상 때문에 매일 전쟁이 벌어지지 않겠어요?

 

크기변환__IM_8306.jpg

 

 

내 사랑은 왜 이토록 힘들까?

 

“지금 당장 잠자리가 부담스럽고 시도조차 하고 싶지 않다면 억지로는 절대 하지 마세요”라고 조언하셨는데요. 그렇다면 소위 ‘의무 방어’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모든 스킨십과 섹스는 두 사람의 동의가 완벽히 필요한 거잖아요. 원치 않으면 내가 왜 원치 않는지 설명할 필요는 있는 거죠. 나는 상대와 똑같은 인격체이고 똑같은 욕구가 있는 사람이니까요. 섹스가 하고 싶지 않다면 뭔가 문제의 포인트가 있는 건데, 그걸 놔둔 채로 그냥 물리적인 결합만 한다면 그게 뭘까요? 저는 사람과 사람의 결합에 대해서 그런 식으로 그냥 해버리면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하기 싫다는 내 의견을 전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중요한 부분에 대해서 가볍게 여기는 사람과 어떤 이야기를 같이 할 수 있겠어요? 그리고 어떻게 같이 길을 걸어갈 수 있겠어요? 섹스를 하고 싶은 마음이 귀한 것처럼 하기 싫은 마음도 귀하다는 걸 스스로 인식하지 못 하면 자기는 그냥 소비되어 버리고 마는 거예요. 침대 위에서 소비 되어 버리고 마는 게 얼마나 슬픈 일이에요. 내 몸과 마음에 대해서 설명하는 것이야말로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면서, 이 관계를 위해 가장 큰 노력을 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우리 사회에는 침대 위에서 침묵하는 여성들이 많은 것 같아요.

 

여성이 자신의 몸에 대해서 설명하거나 섹스에 대해서 불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굉장히 여성답지 못한 것으로 여겨지곤 하잖아요. 혹은 ‘많이 아니까 취향이 있는 거 아니냐’라고 하면서 지식이 곧 경험으로, 취향이 곧 경험의 많음으로 오해되고요. 이런 문화권에서는 자신에 대해서 설명하는 게 쉽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아요. 그래서 특히 여성들한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요. ‘나는 이게 싫어’라고 이야기하는 과정 중에서 내 옆에 있는 남자가 계속 옆에 둘 만한 남자인지 아닌지를 아주 명쾌하게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테크닉 적인 부분에서 부족하거나 둘 다 어색해서 잘 못할 수는 있어요. 그런데 자신의 욕구만 채운다든지, 그래서 나는 이게 뭔지 잘 모르겠는데 그것에 대해서 설명을 하지 못 하게 한다든지, 설명해도 들어주지 않는 관계가 지속된다면 ‘내가 여기에서 왜 이러고 있나’ 하고 생각해 봐야 될 적절한 타이밍이겠죠.

 

아직 『우리는 어째서 이토록』을 읽어보지 않은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세요?

 

책의 띠지에 보면 ‘내 사랑은 왜 이토록 힘들까’라는 메시지가 써져 있잖아요. 이건 제 마음 속에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고, 연애 전문 칼럼니스트라고 하는 저에게도 쉽지 않은 주제예요. 이 주제는 단지 결혼 전까지의 고민거리 혹은 썸남썸녀만의 것이 아니에요. 누군가를 사랑하는 문제는 나와 관계를 맺는 문제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기 때문에 인생을 두고 고민해야 되는 큰 주제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어째서 이토록』에는 그 큰 주제에 대한 사람들의 자잘한 고민들이 거의 다 담겨 있다고 생각하고요. 나와 다르지 않은 고민을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는 걸 보면서 ‘애초에 사랑은 그렇게 쉬운 게 아니었구나’라고 깨닫고 결국에는 ‘나의 생각들은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를 고민해봤으면 좋겠어요. 누군가는 책을 보면서 ‘맞아, 나도 이런 고민이 있었는데, 이렇게 해야겠다’라고 생각하고 문제집이나 Q&A처럼 읽을 수도 있는데요. 그렇게 보셔도 무방하다고 생각해요. 

 

말씀을 들으며 띠지를 바라보다 보니 책 표지에도 눈길이 갑니다.

 

보시면 핑크랑 블루가 예쁘게 섞이잖아요. 중간에는 굉장히 아름다운 그라데이션이 있고요. 한편으로는 서로 다른 두 존재가 만나서, 서로의 영역이 유지되면서도, 중간에 있는 영역이 아름답게 다른 컬러를 만들어낼 수 있는, 그런 관계의 양상을 보여준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런 연애를 하기 위해서는 ‘이 고민 정도는 뛰어넘어야 되는구나’라는 생각을 하면 좋을 것 같아요. 
 

 

 

img_book_bot.jpg

우리는 어째서 이토록곽정은 저 | 달
“연애칼럼니스트 곽정은 작가에게 사랑과 관련된 고민을 보내주세요. 보내주신 사연을 채택하여 직접 해결해드립니다”라는 공모를 진행하였다. 그중 110여 편을 추려 『우리는 어째서 이토록』에 모았다. 물론, 곽정은 작가의 다정하면서도 명쾌한 조언들과 함께.

 

 

 [관련 기사]

- 권비영 “바람에 떨어지는 꽃이 위안부 소녀들 같았다”
- 백두리 “화가가 일러스트레이터가 된 이유는 ‘책’”
- 장호연 “번역가는 모든 책임을 자기가 지는 사람”
- ‘국민 주치의’ 오한진 박사의 건강 노하우, 호르몬을 알자
- 유현산 “자기 운명보다 강한 아이를 창조하고 싶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강헌구 “1등보다 더 행복한 사람이 있다”

$
0
0

이미 지속적인 성장이나 성공의 기존 개념을 회의하는 목소리가 많아졌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타인에게 비쳐 보일 자신의 모습을 의식하고 ‘그래야 한다’는 관념에 얽매여 사는 것 같다. 그러는 동안 사람들은 상처받고, 상처 입은 자신을 돌보지도 못하고, 낮은 자존감으로 자신과 타인에게 피해를 주며 살아간다. 이를 테면, 화가 난 사람들의 사회다.

 

‘아들아, 머뭇거리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 시리즈와 『가슴뛰는 삶』등의 베스트셀러로 꾸준히 꿈과 삶을 말해온 ‘이야기꾼’ 강헌구 교수는 이번 책에서 꿈을 담는 그릇으로써의 ‘인성’을 강조했다. 교수가 말하는 인성은 ‘사람다움’이다. 사람다움이란 무엇일까. 프롤로그에는 한 영국인과 남태평양 원주민의 달리기 시합 이야기가 나온다. 영국인은 최선을 다해 빨리 뛰었고 결승선을 먼저 통과했다. 뒤를 돌아보니 원주민은 바람을 느끼며 팔을 펼치고 춤을 추듯 사뿐히 뛰어오고 있었다. 그렇게 온 원주민은 오히려 자신이 이겼다고 말한다.

 

“당신이 이겼다뇨? 천만에요, 내가 이겼어요. 내가 당신보다 훨씬 더 아름답게 달렸는 걸요?”(11쪽~12쪽)

 

당신은 누가 이겼다고 생각하는지. 빨리 뛰어 결승선에 먼저 들어온 사람? 풍광을 즐기며 가장 아름다운 몸짓을 하고 달린 사람? 이것이 강헌구 교수가 책에서 던지는 질문이다. 질문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이 자기 자신과 깊이 있게 대화하길, 자신을 더 좋아할 수 있게 되길, 진짜 행복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이 한 권의 책은 큰 응원이 필요한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책이다.

 

크기변환__IM_9313.jpg

 

 

꿈은 영혼의 산소

 

굉장한 응원의 글이에요. 응원을 말하려 한 이유가 있었을 텐데요. 지금을 사는 사람들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게 응원이란 생각도 듭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잖아요. 응원을 하면 응원 받는 사람들은 사람들의 기대를 어떻게든 충족시키려는 심리가 있죠. 독자들에게 아는 척 하고, 설명하거나 조언하는 태도를 가져서는 안 될 것 같아요. 독자를 응원함으로써 독자들에게 마음의 변화가 왔으면 하는 생각을 한 거예요. 제 경험을 되돌아 봐도 그래요. 책에 ‘나는 가능성입니다’라는 글이 있어요. 초등학교 6학년 때 선생님이 나를 응원해주신 것이 오늘날 자신을 지탱하는 큰 힘이 되고 있거든요. 지금 우리 시대에 필요한 건 진심 어린 위로와 격하다 싶을 정도의 응원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특히 응원이 필요한 힘든 시기기도 하죠. 많이들 그렇잖아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너무 응원 받을 기회가 많지 않아요. 인성이라는 건 타인을 받아들이고, 타인을 존중하고, 소통하고 배려하는 것인데요. 타인을 존중하려면 나를 먼저 존중해야 해요. 내가 나를 존중해야 하는데 세상이 너무 어렵다보니 많이 상했어요. 내가 아무것도 아니면 타인도 아무것도 아니거든요. 먼저 나 자신을 귀하게 여길 수 있는 그런 마음을 일으켜야겠다 생각하다 보니 계속 응원의 메시지가 되더라고요.(웃음)

 

‘아들아, 머뭇거리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 시리즈로 꾸준히 삶과 삶을 대하는 자세에 대해 이야기해왔어요. 무엇보다 삶에서 가장 필요한 것, 잃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딱 하나가 있다면 ‘꿈’이라고 생각해요. ‘간디학교’라고 있어요. 교가를 보면 ‘꿈꾸지 않는 건 사는 게 아니죠’라는 구절이 있는데 참 공감이 돼요. 꿈이야말로 존재 이유일 수 있거든요. 꿈은 영혼의 산소라고 말하고 싶어요. 육체는 산소를 들이마셔야 살 수 있잖아요. 영혼은 꿈을 마셔야 살 수 있거든요. 마실 수 있는 꿈이 없으면 영혼이 질식하겠죠? 아주 간절한 꿈, 꿈을 이루기 위한 나름의 결단이 있어야 살아 있는 것이죠. 꿈이 잃어버리는 순간 그는 죽음에 이르는 병에 걸린 거예요.

 

제목에서도 밝혔듯 인성을 아주 중요하게 이야기합니다. ‘인성’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인성이란 무엇이며, 어떤 인성이 필요한가요?

 

아무리 꿈이 있어도 꿈을 담는 그릇이 없으면 꿈이 소멸돼요. 그 소중한 꿈을 담는 그릇, 그게 인성이거든요. 사는 데 제일 소중한 게 꿈인데 그만큼 중요한 게 인성이라는 거죠. 정직, 용기, 책임, 참여, 소통, 배려, 협동, 효(孝), 예(禮), 충(忠), 이런 것이 인성이잖아요? 반듯한 그릇에 담기지 않은 꿈은 깨져요. 이루어져도 무산돼요. 불행해요. 인성이란 그릇이 없는 꿈? 그건 위험해요. 차라리 없는 게 나아요. 꿈을 가진 자에게 더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이 인성이다, 그런 뜻에서 이 책을 쓰게 됐죠.

 

사람다움, 그것이 인성이에요. 사람이기 때문에 마땅히, 당연히 갖춰야 할 생각습관, 태도습관, 행동습관, 이런 것들의 합을 인성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거죠. 자기를 대하는 생각, 태도, 행동습관은 자기 존중, 정직, 용기, 성실이고요. 그것을 책에서 ‘I have a Pride, I have a Color’ 라고 썼어요. 타인을 대하는 생각, 태도, 행동습관도 중요하죠. 배려, 소통이 그런 것이에요. 책에는 ‘I have a friend’라고 썼고요. 세상을 대하는 태도로 정의, 책임, 참여도 중요한데 책에는 ‘I have a global passport’이라고 했어요.

 

인성이라는 토양에 꿈이라는 열매가 담겨야 한다는 말씀으로 들리네요.

 

네, 그렇죠. 인성이라는 토양이 없으면 결코 꽃 피울 수 없는 게 꿈이죠.

 

크기변환__IM_9203.jpg

 

 

천천히 생각하면 좋겠다

 

셀프토크 부분이 재미있어요. 독자가 직접 참여하도록 했는데요. 이 장치로 독자가 무엇을 생각하고, 가져갔으면 한 건가요?

 

책이라는 게 필자와 독자 간의 대화 아닙니까. 독자에게 말을 걸기 위해 그런 장치를 해놓은 거예요. 나와 독자 사이에만 대화가 필요한 게 아니죠. 독자 자신과 독자 안에 있는 또 다른 독자의 자아, 외피적인 독자와 내면의 독자가 또 대화할 수 있도록 화두를 던져주려고 했어요. 그게 더 중요한 소통이거든요. 그렇다고 해서 어떤 특정한 답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독자를 유도하는 게 아니고요. 천천히 생각하면 좋겠다는 거였어요. 그냥 읽고 지나가버리는 게 아니라요. 그것이 내게 어떤 의미인가, ‘so, what?’, 어떻게 할 것인가 생각해볼 수 있는 여지를 준 거죠. 그 방식은 벌써 15년 전 이 ‘아들아, 머뭇거리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 시리즈가 처음 나올 때부터 한 거예요.

 

실제로 독자도 그런 부분에 매력을 많이 느끼는 것 같아요.

 

그런 말씀을 많이 하세요. 리뷰도 보면 셀프토크가 있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었다는 내용도 있고요. 반응이 많이 있어요.

 

혼자 책을 읽는 게 아니라 저자가 곁에 앉아 안내를 해주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그렇죠, 질문하고 응답하는 느낌이 오게 만들겠다는 의도였어요. 그래서 제목도 인성‘수업’이죠.(웃음)

 

그림도 커다란 위로가 되거든요. 그러니까 이 책은 보는 것만으로도 휴식이 되는 책이에요. 책을 준비하면서 염두에 뒀던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정직하게 말씀드려서 그림을 생각하면서 휴식, 힐링, 이런 것은 미처 생각 못했어요. 나중에 다른 분들이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제가 그림을 생각하게 된 이유는 따로 있는데요. 글을 쓰다 보면 언어라는 게 한계가 있어요. 글재주가 탁월한 것도 아니어서 뭔가 표현하고 전하고 싶은 게 많은데 그걸 내가 갖고 있는 단어나 구절로 아무리 총동원해도 메시지가 100% 못 나타나는 거예요. 어떻게 보완하지, 음악소리를 나오게 할까, 고민을 많이 했었어요. 그러다가 요즘 음악은 많이 듣지만 그림은 상대적으로 덜 보는 편이라 오히려 이쪽을 하면 설명이 보완될 수 있지 않을까 한 거예요. 그림이 옆에 있으면 자세히 안 읽어도 잘 넘어가고, 이미지 자체로 소통이 되잖아요. 그런 의도였고요. 이왕이면 명화로 보여주게 된 거고요. 한국화를 생각하지 못한 점은 좀 아쉬운데요. 다음 책을 한다면 그땐 한국화를 보여주겠다 생각하고 있습니다.

 

크기변환__IM_9265.jpg

 

 

지폐의 지혜

 

우화나 위인전 같은 이야기로 글을 시작해요. 그런데 간혹 실제 사례들도 보입니다. 이 이야기들은 어디서 만난 이야기인가요? 주변의 이야기를 포착해내려면 늘 열려있어야 할 것 같거든요.

 

연구도 하고요. 아주 적극적으로 채집도 하고 그래요. 독자에게 가장 잘 다가갈 수 있는 건 나 자신의 경험을 말하는 거거든요. 그게 제일 좋아요. 내가 왜 괴로웠으며, 왜 눈물이 났으며, 왜 이렇게 됐는지 필자의 경험을 가감 없이 진솔하게 전할 때 독자와 가장 말이 잘 통하잖아요. 그런데 필자의 경험이란 건 제한이 되어 있어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만나는 모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 듣고, 경험한 모든 것을 되새겨요. 그런 경우가 있잖아요. 사람들이 와글와글한 식당 한쪽 끝에 들어서도 저 끝에서 내 이름을 부르면 와글와글하는 소리는 안 들리고 내 이름을 부르는 그 소리는 들리잖아요. 또 단체사진을 찍으면 다른 사람은 안 보이고 나만 보이고요.(웃음) 그것과 마찬가지로 보이는 모든 게 그런 취재감인 거예요. 뭘 먹어도, 누굴 만나도, 뭘 구경해도, 길을 가도 그렇죠. 항상 열려 있으려고 해요. 사람의 뇌 속에는 RAS(망상활성계, reticular activating system)라는 게 있다고 해요. 관심 있는 것만 뇌 속으로 들여보내고, 관심 없는 건 걸러버리는 거예요. 저는 다른 얘기는 다 흘려버려요. 다른 얘기는 안 들리고 이야기와 관계된 이야기는 아주 잘 들어오죠. 그렇게 체화된 것 같아요.

 

관심이 있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들이죠.

 

뉴스는 뉴스일 뿐이죠. 그걸 받아들이는 내가 더 중요해요. 그런 관점에서 만사를 받아들이니까 글 쓰는 데 유리한 거겠죠.

 

특히 어떤 이야기가 저자를 잡아당기는 걸까요?

 

인성에 관한 이야기죠. 저 사람은 어떤 인성, 어떤 품격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인가 하는 것이에요. 지나가는 얘기도 시각을 그쪽으로 돌리면 이야기가 되겠구나 하는 게 있어요. 저는 설교가도 아니고, 해설가도 아니고요. 설명을 잘하는 이론가도 아니에요. 저는 그냥 이야기꾼이거든요. 저는 사람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가장 탁월한 방법은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한국뿐 아니라 지구 전체적으로 가장 필요한 것은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그런 의미에서 출판과 문화 이런 것들이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젊은’ 이야기들이고요.

 

젊은 사람들이 읽을 책이니까요. 10대, 20대 분들, 사람들과의 관계가 생업에 중요한 요소가 되는 분들을 생각하며 썼어요. 세상을 살다 보면 이기는 사람도 있고 지는 사람도 있죠. 1등을 하는 사람도 있고 동메달 안에도 못 드는 사람도 있고요. 부자가 있고 가난한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승자, 1등, 부자가 다 행복할까요? 중요한 건 ‘많다’가 아니고 ‘행복하다’ 아니겠습니까. 승자가 패자보다 반드시 행복하지는 않을 겁니다. 승자는 됐지만 마음에 거리낌이 있다면 오히려 불행하고요. 부(富)가 지나치면 그 자체가 독약이 되고 불행의 씨앗이 되는 경우도 많아요. 지금 내가 1등이 못 되고, 승자가 못 되고, 부자가 못 된다고 해서 노하거나 슬퍼할 일이 아니에요. 그것을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이것이 중요해요. 그러니까 나는 아직도 가능성이 남아있다, 이 사실에 위로를 받고 가능성에 집중해서 가능성을 키우면 돼요. 그러면서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휘하게 되기를 바라요. 그것이 행복에 이르는 지혜가 아닐까 합니다. 남보다 빨리 가고, 많이 모으고, 더 멋져 보이는 것보다 남보다 아름답게 가고, 내면에 충실한 게 필요할 때가 아닌가 생각해요.

얼마 전까지 ‘어른’들은 승자가 되라, 부자가 되라, 이런 말을 했었죠. 그런데 말씀은 정반대의 이야기네요.

 

지갑 안에 만 원짜리 지폐가 있어요. 만 원을 이렇게 구겨 볼게요. 이것이 오천 원이 됐습니까? 여전히 만 원짜리 지폐잖아요. 비록 조금 구겨졌고 이물질이 묻었고 남루하게 종이가 헐었다고 해서 오천 원이나 삼천 원 된 건 아니거든요. 만 원 가치는 여전하잖아요. 구겨진 건 다시 펴면 돼요. 구겨진 자신의 모습, 뒤틀린 모습, 여기에 너무 연연하지 말고 ‘그래도 나는 만 원이야’ 하는 거죠. 지금 이렇게 있는 것은 아직 나의 시간이 오지 않았을 뿐인 거예요. 저도 그런 느낌을 받을 때가 있는데요. 그럴 때마다 구겨진 지폐의 지혜를 항상 생각하곤 해요.

 

크기변환__IM_9117.jpg

 

 

저런 것이 꿈이로구나

 

책 뒤에 수록된 ‘참고자료’ 목록만 봐도 한동안 어떤 책을 읽을지 고민하지 않아도 될 정도인데요. 특별히 꼭 읽었으면 하고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요, 이 책만 다 읽기도 바쁜데 언제 다른 책을 읽으라고 하나요?(웃음) 그렇게 말하면 독자 분들이 부담스러울 것 같고요. 책도 읽지만 영화를 한 편 추천하고 싶어요. 지난 주에 <독수리 에디>라는 영화를 봤는데요. 너무 감동적이어서 많이 울었어요. 수건이 다 젖었어요. 다리가 아픈 아이가 치료를 받아 회복한 뒤 스키점프 선수가 돼서 올림픽에 나가죠. 91m를 점프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정말 ‘저런 것이 꿈이로구나’ 생각했어요. 꿈을 담는 그 사람의 정직성, 성실, 목표의식을 봤어요. 저런 토양에 꿈을 심으니까 저런 꽃이 피는구나 하는 것을 볼 수 있었거든요. 책도 좋지만(웃음) 영화를 추천하고 싶고요. 그래도 또 책을 더 읽고 싶다고 한다면 『아들아 머뭇거리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다 1』『강헌구의 인성수업』이 두 권을 추천하고 싶어요. 

 

“넌 아주 중요한 일을 하게 될 사람이야. 앞으로 살면서 아무리 힘든 일이 닥치더라도 자긍심을 잃지 말거라.” (중략)

 

이제 어느덧 나는 훌쩍 나이를 먹었고 가정에서는 아버지로서, 강의실에서는 교수로서 살고 있습니다. 그때 선생님의 마음이 얼마나 따뜻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수업 시간에는 결코 배울 수 없는 것을 배웠던 매우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날의 특별 수업이, “너에게서 가능성이 보인다”라는 선생님의 말씀이, 살아오는 동안 나에게 큰 희망이 되어 주었습니다.(34쪽~35쪽)

 

앞서 책에도 언급한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과의 일화가 있죠. 그것 외에도 살면서 큰 응원이 되었던 말이나 순간들이 있었을 것 같아요. 

 

행복을 결정하는 네 명의 사람이 있다고 해요. 첫째는 부모, 둘째는 배우자, 셋째는 친구, 넷째는 스승이라고 하는데요. 저는 그 중에서도 스승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있습니다. 결혼할 때 주례를 서주신 선생님이 지도교수님이었는데요. 경희대학교에 이원설 교수님이라고 계셨어요. 주례 말씀을 하시는데 그러시더라고요. “지금 신랑 입장하는 모습을 보니까 내 제자가 들어오는지 내 아들이 들어오는지 헛갈린다.” 고요. 지도교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참 응원이 됐어요. 지금 생각해도 참 감격적이에요. 모든 가르침은 그 선생님께 배운 거예요. 제가 쓴 책들은 그분의 말씀을 적어뒀다가 풀어낸 것뿐이에요. 그런 분께서 그렇게 말씀을 하시니까 큰 자신감이 생겼어요. 더 잘 살아야겠구나, 품격 있게 책임감 있게 살아야겠구나, 더 큰 희망을 품어야겠구나, 하는 모든 마음이 그 한 마디에서 생긴 거예요. 그런 응원의 한 마디는 참 중요할 것 같아요. 대안의 제시, 지혜의 제공보다 정말 이 시대에 더 필요한 것은 응원이라 생각합니다.

 

무척 애틋하신가봐요. 지금도 생각하면 눈물이 날 정도로요.

 

주례 선생님도 재미있는 분이 많잖아요. 저도 주례를 많이 서곤 하는데요. 제가 그런 말을 들을 줄은 몰랐거든요. 지금도 그 선생님은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나고 그래요. 그 후에도 선생님이 쓰신 글 같은 걸 보면 이야기가 살아서 저한테 오는 걸 느꼈어요. 덕분에 저 자신을 소중히 여기게 됐고, 삶을 소중히 여기게 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책이나 강연, 미술작품이나 긍정적인 이야기들이 사람에게 주는 영향력을 많이 생각했기 때문에 이런 글쟁이가 된 거예요.

 

지금도 그 은사님과 인연이 계속 되고 있나요?

 

선생님은 돌아가셨어요. 은사님을 닮고 싶은데 닮는 게 어려워요. 그분은 정말 비교할 수가 없죠. 지금 제가 쓰는 책상이 선생님께서 생전에 쓰시던 책상이거든요. 그걸 물려받았는데요. 거기 앉아서 일을 하다 보면 선생님의 응원이 전해지는 것 같아요. 저 혼자 선생님과 대화를 하는 거죠. 선생님께 질문도 하고요. 선생님을 만났기 때문에 저는 어느 곳보다도 좋은 대학을 나왔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꿈이 산소라고 하셨는데요. 교수님의 꿈은 무엇인가요?

 

강의하고 글을 쓰면서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는 모티베이터, 동기부여가로 살고 싶어요. 저 같은 동기부여가 백 명을 양성해서 제가 죽고 나서도 그들이 계속 이런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자원을 마련해 놓는 것이 꿈이에요. 언젠가 쓴 적이 있는데요. 꿈은 영혼의 산소고, 책은 영혼의 양식이고, 사랑은 영혼의 안식이에요. 이것들이 있어야 영혼이 살잖아요. 그걸 계속 해야죠. 멈출 수가 없죠.

 

책이나 강연을 통해 응원 받은 분들도 꿈을 새로이 가질 수 있겠지만 그 자체로 교수님의 꿈이기도 하네요.

 

그렇죠, 사람들이 꿈을 가지고 살도록 하는 것, 그게 나의 꿈이에요. 그런데요. 꿈이 이루어진 그때 행복해지는 게 아니에요. 저도 작은 꿈을 한 번 이뤄본 적이 있는데요. 꿈이 이루어지면 구름을 타고 훨훨 나는 흐뭇한 느낌이 계속되는 것인 줄 알았더니 오히려 공허한 게 더 많더라고요. 왜 이렇게 공허한지 돌아봤거든요. 도달한 상태보다는 그곳까지 가는 동안에 내가 행복했던 거였더라고요. 꿈이란 것은 이루어진 때 행복해지는 게 아니라 꿈이 있는 지금, 행복한 거예요. 과정이 행복이에요. 그래서 꿈을 영혼의 산소라고 말할 수 있는 겁니다.

 

흔들리고 괴로워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1등하는 사람이 아닌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 그 사람이 더 행복합니다. 인성이 아름다운 사람이 더 행복합니다. 이걸 기억하세요.

 


 

 

img_book_bot.jpg

강헌구의 인성수업 강헌구 저 | 한언
뛰어나거나 훌륭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세상은 우리를, 우리 아이들을 몰아세운다. 그리고 그 결과, 아이들은 무기력해졌고, 꿈을 잃었다. 점점 지쳐가는 아이들에게 부모가 차마 건네지 못한 말을 전하기 위해 저자는 이 책을 집필하였다.

 

 

 [관련 기사]

- 곽정은 “사랑, 행복한 만큼 힘들어질 수 있어”
- 백두리 “화가가 일러스트레이터가 된 이유는 ‘책’”
- 장호연 “번역가는 모든 책임을 자기가 지는 사람”
- ‘국민 주치의’ 오한진 박사의 건강 노하우, 호르몬을 알자
- 유현산 “자기 운명보다 강한 아이를 창조하고 싶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기호 “우리는 왜,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을까?”

$
0
0

이기호의 신작 소설집을 아직 읽지 않았다면, 표지를 한 번 노려보자.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 왜 이토록 많은 독자가 “제목이 끌려 책을 샀다”고 말했을까. 내 마음을 들켜서? 혹은 아무렇지 않고 싶어서? 아니면 웬만해지고 싶어서? 웃음과 눈물이 적절히 배인 40편의 짧은 소설은 출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읽기에 썩 어울린다. 어쩌면 내 옆에 앉은 사람의 이야기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낮추라는 말과 땀에서 배우라는 말, 그 말들을 들을 때마다 우리는 점점 무표정하게 변해갔고, 결국은 지금 준수가 짓고 있는 저 표정, 그것이 평상시 얼굴이 되고 말았다. 웬만해선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 나도 눈높이를 좀 낮추고 취업하고 싶었다. 하지만 어찌된 게 이놈의 나라는 한번 눈높이를 낮추면 영원히 그 눈높이에 맞춰 살아야만 했다. 그게 먼저 졸업한 선배들의 가르침이었다. 내 땀과 대기업 다니는 친구들의 땀의 무게가 다른 나라. 설령 눈높이를 낮춰 취업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월급에서 학자금 융자 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 나라. 강원도에 갔다 온다 한들 아무것도 변하는 것은 없겠지만, 에라, 모르겠다, 거기 가면 눈높이 따윈 없겠지, 생각하며 나는 두 눈을 감았다.  (「낮은 곳으로 임하라」에서)

 

크기변환_5K5A5586.jpg

 

 

어떻게 사는 게 좀 더 나은 삶인가

 

짧은 소설 40편을 묶었다. ‘작가의 말’을 시조 형식으로 적었는데, “짧은 글 우습다고 쉽사리 덤볐다가 편두통 위장장애 골고루 앓았다네”라고 했다.

 

(웃음) 분량만 보고 좀 쉽겠다고 생각한 건 사실이다. 몇 주 쓰고 나니, 바로 고통이 시작됐다. 가장 어려웠던 건 축약이다. 핵심을 찔러야 하고, 문장의 견고함을 추구할 수 없었기 때문에 힘들었다. 인물의 호흡을 잘 살리려면, 인물을 자주 만져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서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책으로 묶으면서 아쉬웠던 부분을 보완할까 생각했지만, 어떻게 보면 나름의 의미도 있겠다 었다. 말하자면 여백 같은 건데, 독자들의 몫이라고 할까? 읽고 나서 휘발되는 경우도 있지만, 독자들의 영역을 남겨놓는 역할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2014년 1월부터 약 2년간 일간지에 격주로 연재한 소설이다.

 

원래 칼럼을 연재하자는 제안을 받았는데, 허구적 글쓰기라면 하겠다고 역제안을 했다. 2년 전까지만 해도 칼럼, 에세이를 줄기차게 썼다. 그런데 칼럼을 쓰고 나면 나 자신이 한심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삶은 엉망인데, 문장으로는 누군가를 가르치는 모습이니 괴리가 느껴졌다. 스스로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심정이었다. 사실 에세이나 칼럼이 쓰기는 더 편하다. 곁에 있는 것들을 가공만 하되, 세트까지는 짓지 않아도 되니까.

 

맨 첫 장에 ‘이순성 님께’라고 적었다.

 

아버지 이름이다. 아버지께 이야기를 들려드린다는 생각도 있었다. 아버지는 아무래도 신문을 보는 세대셨으니까 다른 소설에 비해 훨씬 쉽게 읽었다고 하셨다. 아들이 소설을 쓴다는 걸 아시지만 현실적으로 와 닿지는 않으셨을 텐데, 이번에는 체감하신 것 같다.

 

크기변환_5K5A5689.jpg

 

그다음 장에 적힌 글도 인상적이었다. “어쩐지 자신이 원고지가 아닌 삶 속에서 소설을 쓰고 있는 기분이었다네.” 이 문장을 읽으니, 어쩐지 소설이 더욱 가깝게 느껴졌다.

 

소설을 쓰면서 여전히 생각하는 것들이 있다. 소설을 위한 소설이라고 할까, 메타픽션이라고 할까, 유미주의적인 태도라고 할까. 나만의 색깔을 찾기 위해 다분히 노력했는데, 지나고 보니 나의 평범하고 소소한 삶 속에도 소설과 같은 맥락이나 핵이 들어 있었다. 이번 소설은 그냥 어떻게 사는 게 좀 더 나은 삶인가, 올바른 삶인가, 좋은 사람인가를 고민하다 나온 것 같다. ‘소설을 이렇게 써야지, 인물을 이렇게 움직여야지’ 하는 생각으로 나온 책이 아니다. 무게 중심이 조금 변한 것 같다. 이 소설집은 어떤 상황을 설명하는 게 아니라 묘사하는 형식으로 던져주면서, ‘같이 한 번 생각해보자’의 개념이었다. 쓰는 순간순간은 힘들었지만, 대화를 거는 느낌으로 썼기 때문에 찝찝하거나 자존심이 떨어지는 느낌은 없었다.

 

집 안에 틀어박혀 살다가 몇 년 만의 외출을 하게 된 남자, 고속도로 졸음쉼터에서 자살을 기도하던 남자, 아들을 축구선수로 키우기 위해 무리하는 아빠 등 현실에서도 충분히 볼 수 있는 인물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주인공이나 소재를 찾을 때, 최대한 어깨에 힘을 빼려고 했다. 작가는 소설을 쓸 때 문제적 인물, 예외적 인물을 다루려는 경향이 있다. 우리 시대의 흔치 않은 경험이나 흔치 않은 윤리의식을 가진 사람을 소재로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소설은 분량이 짧기도 했지만 처음부터 평범함 속에 우리를 울릴 수 있는 예외적 감정이 있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인위적으로 만들려고 하지 않았고, 흔하게 볼 수 있는 사람들, 평범한 사람의 이야기를 많이 쓰려고 노력했다. 그 안에서 우리가 말하지 않았던 풍경, 감정들에 집중하려고 했다.

 

 

평소 집필에 들어가기 전, 전지를 꺼내놓고 캐릭터 구상을 하는 거로 안다. 이번 소설만큼은 예외였을 것 같은데.

 

대신 포스트잇을 많이 썼다.(웃음) 이번 작업은 메모의 힘이 많이 필요했다. 누군가에게 새로운 이야기를 들었을 때마다, 새로운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메모를 했다. 결과적으로 메모로부터 시작된 이야기이기도 하다.

 

소설집은 제목만 들어서는 이기호의 작품이 아닐 것 같은데, 읽으면 읽을수록 되새김질을 하게 되는 제목이다. 우울하기도 유쾌하기도 하다.

 

문자로서의 의미를 보면 ‘나는 어떤 감정, 어떤 정념이 온다고 해도 흔들리지 않을 거야’인데, 이 태도는 굉장히 어려운 거다. 우울하고 슬픔이 느껴지고 나를 괴롭히는 일이 있어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게 훌륭한 삶의 태도일 수 있지만, 사실은 타인을 바라보지 않는 태도이기도 하다. 자기감정만 컨트롤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으니까. 여기에서 조금 더 나아가려면, 아주 작은 일에도 아파하고 슬퍼하고 공감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

 

지금 우리 시대의 지배적인 태도이기도 하다. 훌륭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지금 시대에 이렇게 사는 좋은 삶이 아니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왜 이렇게 살고 있는지, 왜 이런 태도가 생겼는지를 생각해봤으면 한다. 왜 우리가 타인을 바이러스라고 생각하는지, 왜 자꾸 타인을 멀리하는지, 그 사정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오늘 학교 수업에서 은희경 작가의 작품을 이야기했다. 은희경의 초기작 『새의 선물』, 『타인에게 말 걸기』나오는 주인공을 보면 대개 냉소적인 인물이다. 분명 1990년대 후반에는 이런 성격이 굉장히 훌륭한 태도였다. 이전까지는 너무 이데올로기적인 문제에 치우쳐 인간의 감정선이 짓밟혀 왔으니까. 하지만 신자유주의가 극단에 치달은 지금 이때 어떤 일이 일어나도 아무렇지 않은 태도로 사는 건, 제대로 사는 삶이 아닐 수 있다.

 

현재 문예창작학과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이면서, 세 아이의 아빠이고 남편이다. 전업작가보다는 많은 정체성 속에 살고 있는데, 어려움도 크겠지만 장점도 있을 것 같다.

 

간단하게 말해 아이를 키운다는 건, 기쁜 건 더 기쁘고 슬픈 건 더 슬퍼지는 일 같다. 감정의 폭이 넓어지고 알지 못했던 감정의 선까지 보게 되는 것 같다. 물론 힘들고 피로해지는 것도 많지만, 감정선이 깊어지다 보니 타인의 삶과 감정에 대해 공감하는 폭이 넓어진다. 이번 소설집을 보고 많은 사람이 ‘웃프다’고 했다. 웃기면서도 슬프다는 뜻인데, 생각해보면 우리 삶의 많은 일이 한 가지 감정선으로 다가오는 경우는 흔치 않다. 요즘 그걸 더 많이 느낀다. 읽었던 책 중에서 어떤 인물이 조난당해서 곧 죽을 것 같은 상황인데, 자꾸 머릿속에서 유쾌한 음악이 떠올라 당황하는 장면이 있었다. 어떻게 죽을 지경에서 유쾌한 음악이 떠오를 수 있을까? 쉽게 이해할 수 없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어떤 한 가지 감정선이 지배적으로 다가오는 경우는 흔치 않다. 아이를 혼낼 때나 안을 때도 몹시 화가 난 경우도 있고, 기쁜 순간에도 자세히 보면 체념도 있고 분노도 있다.

 

크기변환_5K5A5639.jpg

 

교수로서는 어떤가?

 

소설 쓰기에는 분명 좋은 직업이다. 방학도 분명히 있고 시간을 잘 활용할 수 있다. 하지만 예전과는 달리 교수가 해야 하는 행정적인 일이 많다. 물론 다른 직업을 갖고 글을 쓰는 분들에 비해 엄살을 떨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건 분명하다. 글을 쓸 수 있는 최적화된 직업 중의 하나인 건 맞는데, 그래서 한계도 있다. 어쨌든 학교도 조직이다. 조직 안에서 나도 모르는 검열 체계가 있을 수 있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오는 압박감도 분명히 있다. 전업작가들이 가진 어떤 자유로운 시선에 비해서 부족한 게 많고, 학교라는 세계 속에 갇힌 느낌도 없지 않다. 물론 집 밖의 이웃들도 자주 보지만 학교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고, 학교는 우리 사회와 조금 다른 가치가 작동되는 공간이다 보니 자칫하면 현실의 삶에 무지할 수 있다. 그래서 조심스럽고 한계를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의식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소설은 언제 쓰나? 도무지 생활에 틈이 없어 보인다.

 

학교, 집에서는 쓸 수가 없다. 소설가에게는 공간 같은 게 중요하다. 현실의 이기호가 아닌, 학교 선생, 아빠, 남편의 이기호가 아닌 삶으로 칸막이처럼 넘어갈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경계가 흐릿하면 소설을 잘 못 쓰기 때문에 그럴 때는 공간 자체를 바꿀 필요가 있다. 지금은 광주에서 나주로 가는 길목의 시골 마을에 허름한 공간을 구해 작업실로 사용하고 있다.

 

집, 학교와는 완전히 다른 공간인가?

 

현실의 이기호를 표상할 수 있는 물품이 거의 없다. 책도 없고 달랑 노트북이랑 책상 하나다. 소설가는 자기가 어떤 인물을 창조해낼 때, 약간의 의식이 필요하다. 다른 삶으로 이동하는 것, 화자로서의 의식 같은 게 필요하다. 내 경우는 우선 작업실에 가면 오랫동안 샤워를 한 후, 책상에 앉는다.

 

크기변환_5K5A5702.jpg

 

 

15년 동안 계속 다른 작품을 보여준 소설가

 

“등단 15년이 넘었음에도 어떠한 피로감 없이 소모 없이 새로운 감각의 독보적 이야기꾼”이라는 작가 소개를 읽었다. 작가로서는 피로감이 컸겠지만, 덕분에 독자는 항상 새로운 이기호의 작품을 만났다.

 

이런 생각을 많이 한다. 2000년에 첫 책이 나온 후에 몇 권의 책이 더 나왔는데, 늘 힘들었고 늘 예전 작품과 다른 색깔을 보여주려고 노력했다. 변화해야 한다는 생각은 끊임없이 했고 그것들을 위해 노력한 것도 맞다. 하지만 만족스러웠을 때는 한 번도 없었다. 내가 만든 인물들이 작품 속에서 정말 잘 살아났다는 만족감이 없으니 계속 쓰게 되는 것도 있다. 이번 소설집은 나로서는 쉬어가는 지점이 분명히 있었다. 지금 연재소설에서 전『차남들의 세계사』와 어떤 다른 모습을 보일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다. 작가로서 바라는 게 있다면, 15년 동안 계속 다른 작품을 보여준 소설가로 기억되는 것이다. 때론 실패도 하고 독자의 외면도 받겠지만, 그렇다 해도 변화는 매우 중요하다. 내가 알고 있는 뛰어난 작가들은 그런 모습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최근 몇 년간 베스트셀러 소설이 눈에 띄게 줄었다. 이런 상황에서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는 벌써 4만 부 이상 팔렸다. 꽤 고무적인 반응 아닌가.

 

고맙고 기쁘다. 하지만 작가로서 어떤 차원에서는 자조적인 느낌도 있다. 내가 대중적인 감수성을 따라간 게 아닐까, 뭔가 새로운 감수성을 창조하는 노력을 게을리 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아주 행복하게 문학적으로 새로운 것을 해놓고 같이 기뻐하면 좋았을 테지만, 더 깊이 있게 인물을 파고들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크다.

 

분량과 매체의 한계도 있었지만, 원고지 11~12매 분량의 짧은 소설이 가진 통찰이 독자에게 공감을 얻은 게 아닐까?

 

과거 한국 소설의 특징을 살펴보면, 독자들을 가르치려는 경향이 있었다. 말을 붙이고 대화를 거는 게 아니라, 훈계하려는 작품이 있었다. “너희 이거 아니? 너희는 지금 이런 모습이야”라고 훈계하는 뉘앙스가 셌다. 그래서 독자들을 질식하게 만드는 면이 있었는데, 지금은 달라졌다. 한국의 젊은 작가들이나 소설을 쓰고자 하는 친구들의 작품을 살펴보면, 평범하게 살고 있는 어떤 모습 속에서 핵심을 끄집어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낯익은 데서 낯선 것을 꺼내 보이려는 시선이 있다. 이번 내 소설집이 한동안 한국 소설을 외
면했던 독자들이 다시 우리 작품을 찾아 읽는데 하나의 관문이 된다면, 작가로서는 다소 부족하고 자조적인 느낌이 있더라도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

 

불특정 다수의 독자 가운데, 이 책을 딱 한 명에게만 선물한다면.

 

오랫동안 책을 읽지 않은 사람,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에 없었던 사람, 생활에 쫓기는 사람에게 주고 싶다. 문학이 거창한 것이 아니고, 장벽이 높거나 다가서기 어려운 지점이 아니라는 걸 알았으면 한다. 그런 의지로 책을 드리고 싶은 마음이 있다.
 

 

 

img_book_bot.jpg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 이기호 저/박선경 그림 | 마음산책
등단 15년이 넘었음에도 어떠한 피로감 없이 소모 없이 새로운 감각의 독보적 이야기꾼이라는 신뢰가 여전하다. 2000년대 등장한 이래 희비극적이라 할 그만의 월드를 축조했던 작가 이기호. 그의 특별한 짧은 소설을 한 권에 담았다.

 

 

 [관련 기사]

- 곽정은 “사랑, 행복한 만큼 힘들어질 수 있어”
- 백두리 “화가가 일러스트레이터가 된 이유는 ‘책’”
- 장호연 “번역가는 모든 책임을 자기가 지는 사람”
- ‘국민 주치의’ 오한진 박사의 건강 노하우, 호르몬을 알자
- 강헌구 “1등보다 더 행복한 사람이 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개여울」의 정미조, 37년 만의 귀환

$
0
0

추억의 가수가 컴백을 하는 것은 팬으로서 벅찬 일이다. 1972년 스물 셋의 나이로 데뷔한 정미조가 37년 만에 우리 곁으로 돌아왔다. '70년대 디바'의 컴백은 '반가움'을 넘어 '새로움'과 '도전'이라는 큰 의미를 던진다. 그는 '왕년'이나 '명성'에 머물지 않고 '지금'에 발맞추는 앨범을 내놓은 것이다. 꽃처럼 아름다운 시절은 지나갔지만 그는 여전히 우아하고 아름다웠다. 소녀 같은 표정과 자연스럽게 풍겨 나오는 관록은 대화 내내 감탄과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정미조의 삶과 세월을 그대로 담은 <37년>. 그는 LP세대였기 때문에 본인의 이름으로 나오는 CD는 처음이라고 한다. 지난 4월에는 생애 첫 단독공연을 열었고 라이브클럽데이 공연도 참여하며 정열적인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정미조, 그리고 그의 오랜 잠을 깨우고 음반 제작과 작사를 한 JNH뮤직 이주엽 대표와 함께 했다. 

 

1.jpg

 

 

37년만의 앨범 발매를 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소감이 어떤가요?

 

정미조    꿈인지 생시인지 너무 행복합니다. 주변의 제 나이 또래 분들은 최근에 이런 노래 듣기가 어려웠는데 잘 들었다고 말씀해주시고요. 인터넷에 보면 젊은이들도 '새삼스럽게 나이든 사람이 나왔어' 이런 글들이 아니라 긍정적인 댓글이 달려서 진짠가 싶기도 합니다. 계속 긍정적인 반응들을 접하다 보니 용기가 나고 정말 행복해요! 평론가분들도 변화된 정미조 좋다고 해주셔서 너무 좋아요.

 

은퇴 선언 이후 오랫동안 미술 쪽에서 활동을 했습니다. 이렇게 오랜만에 음악으로 돌아온 계기가 무엇인가요?

 

정미조    저에게 노래란 너무 신나고 행복한 일이에요. 예전에는 누구나 보는 국민 쇼프로그램 TBC의 <쇼쇼쇼>라는 프로그램이 있었어요. 제가 거기에 우연히 나가게 되었는데 거기서 부른 「My way」라는 곡으로 저의 가수 생활이 시작된 거죠. 그 때도 돈이나 성공이나 이런 생각 없이 노래가 좋고 신이 나서 가수를 했어요. 한 7년 정도 노래를 실컷 하다 보니까 이제 내 전공으로 다시 돌아가야겠다 싶었어요. 그래서 불어를 배우고 프랑스로 미술 공부를 하러 가게 된 거죠. 유감없이 떠났지만 음악을 잊고 산 건 아니에요. 항상 음악에 대한 건 머릿속에 생각하고 있었죠. 그러다가 <쇼쇼쇼>에서 듀엣으로 인연을 맺었던 최백호 선생님을 미술 전시회에서 우연히 만나 교류를 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그 분께 앨범 제작자인 이주엽 대표님을 소개받았고요. 저는 이렇게 좋은 환경에서 다시 노래를 할 수 있게 되어 너무 감사해요.

 

앨범 <37년>, 재즈 아티스트 손성제 씨가 작곡을 맡았습니다.

 

이주엽    사실 그 전에 다른 분과 함께 아프로 큐반(Afro-Cuban)스타일의 데모를 만들어봤는데요. 정미조 선생님과는 음악 색이 잘 안 맞았어요. 한동안은 대안도 없어 고민만 하고 있는데 한 페스티벌에서 성제 씨가 연주하는 걸 보게 된 거예요. 손성제 씨가 <누보 송(Nouveau Son)> 앨범을 어레인지한 것도 알고 있었고 팝과 재즈의 감각을 모두 이해할 수 있는 적임자이다 싶어 주선을 하게 되었어요. 

 

오랜만에 앨범 녹음을 해보셨을 텐데 어떠했나요?

 

정미조    내가 제대로 노래를 할 수 있을까 걱정을 많이 했어요. 연습을 해야 하는데 하필 감기가 지독하게 걸렸어요. 녹음 날짜는 다가오지 잠도 잘 안 오더라고요. 그리고서는 첫 녹음 날,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아서 미안한 마음으로 녹음을 한 곡 딱 했는데 손성제 씨하고 이 대표님이 박수를 막 치더라구요. '아 괜찮은 건가?'하고 녹음한 걸 들어봤더니 '어머 그래도 괜찮구나'하고 안심이 됐어요. 그 다음부터는 순조롭게 작업을 했어요. 그런데 저는 몇 번을 더 불러보며 녹음을 하고 싶었는데 많이는 못 부르게 하는 거예요. 거의 원 테이크로 작업을 했고 열심히 불러봐도 처음 부른 걸 거의 쓰시더라고요.

 

1950년생이잖아요. 그런데 목소리가 나이에 비해, 그리고 예전에 비해서도 전혀 손색이 없는 것 같아요.

 

정미조    내 목소리를 창고 속에 집어넣고 37년 만에 꺼내 먼지도 털고 기름칠하고 가동을 시켜보니 옛날처럼 써지는 게 신기해요. 마치 잠자는 숲속의 공주가 잠에서 깬 것처럼 옛날 그대로의 기억, 경험이 살아나는 거죠. 어쩌면 몇 십 년 동안 계속 노래를 했으면 지금의 소리가 신선함을 가지진 못했을 거라는 생각도 들어요. 마모되어서 말이죠. 어떤 면에서는 계속 갈고 닦은 분들에게는 미안한 부분도 큽니다. 잘난 것도 하나 없는 사람인데 노래한답시고 나서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그리고 이렇게 좋은 환경과 사람들과 노래를 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여러모로 미안하기도 합니다.

 

보컬에 행복함이 묻어나기도 하고요. 음악 자체도 은은한 향긋함이 느껴집니다.

 

정미조    행복이라고 하면, 어쩌면 굉장히 정확히 봤어요. 「7번 국도」를 처음 들었을 때는 너무 젊은 풍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안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대표님이 그러지 말고 일단 한 번 불러보라고 하더라고요. 그 때는 음악 따라 어리게 불렀더니 계속 마음에 안 드는 거예요. 몇 주 후에 결국은 내가 부르고 싶은 대로 노래를 불러봤어요. 어떤 느낌으로 불렀냐면요. 교수가 사실 정년퇴임하고 나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고 원래의 생활 리듬이 깨져버려서 건강이나 활기가 확 수그러진다고 하더라고요. (그는 24년 동안 수원대학교 서양화과 교수로 재직했다.) 그런데 저는 반대로 학교를 퇴직하니까 마음이 홀가분했어요. 내 의무를 다하고 학생들 잘 가르치고 이제 또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 거잖아요. 너무 행복한 거예요(웃음) 노래도 새로운 삶의 활력을 찾아서 즐거운 내 기분, 내 목소리대로 노래를 불렀어요. 그러니까 한 번에 오케이가 되더군요(웃음)

 

2.jpg

 

음악 스타일은 예전과 비교해봤을 때 많이 달라졌습니다. 작업은 어떠했나요?

 

정미조    맞아요. 음악 스타일은 많이 달라졌어요. 손성제 작곡가 기반에 재즈가 깔려 있기도 하고요. 「7번 국도」의 경우는 쌈바 리듬을 저 나름대로 해석을 하니 또 다른 질감이 나는 음악이 나왔어요. 「인생은 아름다워」 같은 곡도 고상지 씨의 반도네온 연주가 받쳐주니까 저 같은 사람도 라틴 풍의 음악을 할 수 있게 되었고요. 반도네온이라는 악기만으로 분위기가 딱 잡히잖아요. 처음에는 그 소리가 너무 맛깔나고 힘 있잖아요. 그래서 연주자가 멋진 남자가 아닐까 했는데 알고 봤더니 젊고 아주 예쁜 여인이더라고요. (웃음) 이렇게 좋은 분들과 함께 작업을 하니까 저 혼자는 할 수 없는 어떤 변화가 생기더라고요. 최고의 뮤지션 분들과 함께할 수 있게 해주셔서 소속사 대표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개여울」이나 「휘파람이 부네요」를 이번에 다시 불렀잖아요. 이 노래들을 통해 예전과의 차이를 가장 많이 느꼈을 것 같아요.

 

정미조    그렇죠. 그동안 제가 「개여울」을 얼마나 많이 불렀겠어요. 예전엔 악기들이 정말 가득차 있었어요. 그런데 이번엔 정말 개여울에 앉아 노래를 하는 소박한 시골아낙의 느낌으로 불렀어요. 그래서 악기도 아주 심플해요. 피아노와 베이스, 클라리넷만 편성해서 담백한 느낌으로 갔어요. 저는 이번 버전에 대해 굉장히 만족하고 있어요.

 

가사는 이주엽 대표의 작품입니다. 작업 방식은 어떻게 이루어졌나요?

 

이주엽   정미조 선생님을 화자로 제가 스토리텔링을 했어요. '37년'이란 세월을 앨범으로 담으면 어떤 느낌일까 고민을 했습니다. 「귀로」같은 경우는 프랑스에서 유학을 끝내고 고향으로 다시 돌아온 선생님의 인생 오디세이를 쓰는 기분이었어요. 다행히 가곡같이 아주 심플한 테마와 어울리는 곡을 만나 가사를 쓰게 되었습니다.

 

정미조    저는 「귀로」와 「인생은 아름다워」 가사가 유독 좋아요. 「귀로」 가사를 보면서 어릴 때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아버지한테 야단맞고 창가에 기대서 울먹였던 기억이 떠올라요. 아버지 생각이 너무 많이 나서 마음이 아파 연습을 못할 정도였어요. 가슴이 참 먹먹하더라고요. 「인생은 아름다워」는 '나는 다시 노래를 하고 아직도 노래를 하네'라는 가사가 좋아요. 아니 어쩌면 이렇게 내 마음을 잘 아는지 참 신기하더라고요.

 

녹음 하면서 시스템의 차이도 많이 느꼈을 것 같아요.

 

정미조    정말 많이 달라졌죠. 예전에는 릴테이프 녹음을 했어요. 그래서 한 채널은 반주, 한 채널은 가수로 녹음을 해서 큰 스튜디오에 모두 모여서 악기 연주와 함께 녹음했어요. 그래서 녹음할 때는 절대 틀리면 안 되죠. 녹음 날이면 컨디션 좋게 하려고 노력을 하다가 그게 또 부담이 되어 더 안 좋아지고 결국 녹음 못 하는 경우도 생겼어요. 그런데 그게 연주자들, 녹음하시는 분들께 얼마나 미안해요. 그래서 조금이라도 삐끗하면 안 되니까 정신을 정말 바짝 차렸죠. 어떻게 보면 이번 녹음도 예전 마음 그대로 노래를 부른 것 같아요. 지금은 연주자들이 함께 하지는 않지만요. 한 마디 한 마디 쉬어가는 게 아니라 전체적으로 쭉 원테이크로 노래를 했어요. 물론 지금은 수정이 가능하니까 심적으로 굉장히 편안하긴 했어요. 예전엔 LP로 다 녹음을 했는데 이번에는 CD가 나왔잖아요. 몇 년 전에 LP에서 곡들을 추출한 편집 앨범 한 장 빼고는 정미조 이름으로 CD를 낸 건 처음이죠.

 

이번 앨범이 어떠한 의미로 남길 바라나요?

 

정미조    '정미조'하면 어떤 가수구나 하고 정리가 되는 앨범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어떤 시대의 누구다 이런 추억이 아니라 정미조하면 '아! 어떤 가수다'하고 남길 바래요. 이번 앨범이 그것을 만드는 첫걸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앨범 커버의 사진은 어떤 의미인가요?

 

정미조    삼십년을 넘게 손으로 그림 작업했으니 제 손에 삶이 묻어나 있어요. 제 손이 제 인생을 다 얘기하죠.

 

3.jpg

 

그림을 평생 그렸잖아요. 미술과 음악은 굉장히 다른 작업이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정미조    미술과 음악은 다르긴 하지만 사실 표현하는 방식이나 감각만 다르지 저에겐 같아요. 음악은 소리로 표현하고 그림은 물감으로 표현할 뿐이지 결과적으론 같아서 이렇게 넘나 들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색을 넣는 것은 마치 퍼즐을 맞추듯 어떠한 조합을 이루느냐에 따라 완성되는 색의 향연이기 때문에 음악도 그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죠.

 

예술가로서 '나이'는 어떠한 의미로 다가오나요?

 

정미조    사실 저는 나이를 잘 못 느껴요. 지금도 사람들이 나보고 나이가 많다고 하니까 그런가보다 하는 거지. 항상 젊은 학생들과 지내서 그런지 몰라도 항상 학생보다는 조금 더 많다는 생각으로 머물러 있어요. 지금도 파리에서 공부했던 친구들과 만나면 서로 변한 게 하나도 없어요. 그러다보니까 사람들은 자꾸 내가 나이가 많다고 하는데 저는 한 40대 후반에서 살고 있는 느낌이에요. 아마도 보통사람들과는 환경이 달라서 그런 거겠죠. (웃음)

 

요즘 발매되는 음악들, 뮤지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정미조   시장 규모로 따지면 엄청나죠. 요즘엔 K-POP으로 세계적 히트를 치니까 기업화되고 상품화되었죠. 변화가 있고 그에 맞춰 발전하면 좋은 거라고 생각해요. 노래 잘하는 사람들도 정말 많아요. 그런데 시스템에 맞추다 보니 소리도 정형화된 것 같기는 해요. 요즘엔 소프트하고 달콤하게 잘 부르는 사람들이 참 많잖아요. 아마 제 목소리를 처음 들으시는 분들은 '와! 이렇게 노래를 부를 수도 있구나'했던 거 같아요. 요즘과는 색이 달라서 관심을 가져준 게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고요.

 

젊은 아티스트들 중에 마음에 가장 와 닿은 뮤지션은 누구일까요?

 

정미조    빅뱅은 가수뿐만 아니라 엔터테이너로 사람들 시선을 확 잡아끌더라고요. 노래면 노래, 패션이면 패션 정말 멋있어요. 샤이니도 좋고요. 나름 열심히 앨범도 듣고 텔레비전도 보는데 기억을 잘 못해서 다른 가수들은 더는 생각이 안 나네요. (웃음) 번외로 최근 조용필 씨 「Bounce」 나왔을 때 좋더라고요. 역시 노장은 건재하구나 느꼈어요.

 

끝으로 정미조의 베스트 음악 3개만 추천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정미조   안네 소피 폰 오터(Anne Sofie von Otter)의 「G?ttingen」 너무 좋더라고요. 또 이브 몽땅(Yves Montand)이 있겠고, 패티김의 「초우」도 좋아합니다.


인터뷰 : 김반야, 현민형
정리 : 현민형
사진 : JNH 제공

 


 [관련 기사]

- 곽정은 “사랑, 행복한 만큼 힘들어질 수 있어”
- 이기호 “우리는 왜,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을까?”
- 장호연 “번역가는 모든 책임을 자기가 지는 사람”
- ‘국민 주치의’ 오한진 박사의 건강 노하우, 호르몬을 알자
- 강헌구 “1등보다 더 행복한 사람이 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범죄학자 이창무, 박미랑 “살인자는 왜 친근한 얼굴일까?”

$
0
0

바로 어제도, 잔혹한 살인 사건이 뉴스에 보도됐다. 공개된 피의자의 얼굴은 평범한 이웃의 그것이었다. 영화에 나오는 매서운 눈매나 큰 덩치를 가진 살인자와는 많이 달랐다. 책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살인자는 왜 친근한 얼굴일까?’

 

살인, 강도, 성폭행, 영아살해, 가정폭력, 데이트폭력... 범죄는 공기처럼 주변을 떠다닌다. 그런 소식을 들을 때면 사람들은 공포를 느끼고 주위를 경계한다. 범죄학자 이창무와 박미랑은 범죄의 모든 것을 다룬 책을 쓰면서 첫째, “지나친 두려움을 줄이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둘째, “잘 몰라서 당하지 말았으면” 했다. 그것은 마치 질병의 원인과 예방법을 알면 질병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지는 것과 같다. 두려움에서 아는 것으로 넘어가는 것, 그것이 범죄 예방의 첫 걸음이다.

 

“누군가가 자신의 범죄 전력을 아는 것에 범죄자가 느끼는 두려움을 활용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범죄를 이해하고 예방하기 위해서는 범죄에 대한 우리의 두려움이 아니라, 우리에 대한 범죄자들의 두려움을 이용할 필요가 있다. 각자 개인화된 두려움은 우리 사회의 두려움이라는 그늘이 되기도 하지만, 우리의 두려움을 집단화의 과정을 거쳐 당당한 용기로 승화한다면 범죄가 갖는 영역을 포위하고, 줄일 수 있다.”(376쪽)

 

1.jpg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

 

먼저 왜 범죄였는지 궁금하더라고요. 범죄를 공부하겠다고 결심한 두 분의 첫 장면이 듣고 싶습니다.

 

이창무: 기자 출신인데요. 사회부 기자를 하면서 범죄 전문가의 필요성을 많이 생각했어요. 전문가 멘트를 따야 하는데 당시만 해도 국내에 전문가가 많지 않았어요. 그때 이런 쪽을 공부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죠. 그때 중앙일보에 전문 기자가 막 생겨나기 시작했는데요. 범죄나 치안, 이런 쪽 전문기자는 없어서요. 처음엔 범죄 전문 기자를 생각하기도 했었죠.

 

박미랑: 사춘기 시절부터 약간 관심사가 약자에 쏠려있었어요. 저도 기자가 되고 싶어 언론학과를 갔는데 실망을 좀 했어요. 대학교 다니면서 내가 진짜 원하던 공부가 어디에 있을까 찾다가 사회학과 수업 중 ‘일탈 사회학’이라는 수업을 들은 거예요. 그러면서 이쪽 공부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공부하면서 사회의 최대 약자는 범죄자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범죄학을 공부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예요.

 

박미랑 교수님 이력을 보면 국내 최초로 ‘데이트 폭력’에 관한 범죄학 논문을 발표했다고 적혀있어요.

 

박미랑: 지금은 데이트 폭력이라는 단어가 뉴스에도 소개되고, 사람들도 알고 있지만요. 논문을 쓸 때는 그 단어가 너무 생소했기 때문에 이런 논문을 쓰고 있다고 이야기하면 현직 경찰 분들이나 다른 분들은 ‘왜 없는 범죄 만들어서 연구하느냐’는 반응이었거든요. 모르겠어요, 범죄학자들마다 관심 영역이 다른데요. 저는 작은 범죄, 약자에 대한 범죄, 이런 것에 민감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요. 그러니까 거대한 범죄보다 일상생활에서 발생할 수 있는 크고 작은 폭력이라든지 민감한 것들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던 거죠.

 

뒤에 질문하려 했었는데 이야기 나온 김에 드릴게요. 4부 ‘왜 피해자가 비난을 받는가’에서 다룬 사회적 약자의 범죄 피해 실상은 주목할 만합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없는 범죄’라고 생각했던 것들이죠. 아직도 양지로 올라오지 못한 범죄들이 너무 많잖아요.

 

박미랑: 근데 그게 정말 음지에 있는 걸까요? 다 존재하고 있는데 이름 붙이기가 안 되는 거잖아요. 혹자는 이름을 붙이나 안 붙이나, 법으로 처벌하나 안 하나 실상이 똑같다면 그걸 굳이 처벌할 필요가 있느냐는 반응도 하고요. 데이트 폭력으로 박사 논문도 쓰고 그쪽에 관심을 두고 있지만 형사 사법 체제 자체가 갖고 있는 불합리성이라든지 불평등이 해결되지 않으면 문제라고 생각해서 양형문제에도 관심을 많이 가졌어요. 그러면서 법학 공부도 하게 됐고요.

 

계속 연구를 하면서 선진국이란 무엇일까, 선진사회란 무엇일까 고민을 많이 하거든요. 그것을 데이트 폭력이나 약자에 대한 범죄와 연결해보면 작은 범죄까지도 촘촘히 망을 만들어주는 것이 선진사회라 생각해요. 가해자를 다 처벌하자는 게 아니라 피해를 받는 사람들을 보호할 수 있는 시스템을 촘촘히 만드는 사회가 선진사회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많이 해요. 

 

이름 붙이기 자체가 어느 부분에서는 계속 문제제기를 하고, 피해자의 목소리가 나와야 하는 거잖아요. 하지만 어느 누가 선뜻 목소리를 내겠어요? 흔히 사람이 죽어야 관심을 갖는다고들 하는데 그런 상황을 보는 답답함도 커요. 전문가로서는 훨씬 답답함을 더 느낄 텐데 어떤 방향으로 논의돼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궁금해요.

 

박미랑: 여성학과 맞닿은 범죄를 가르칠 때 학생들에게 늘 이야기하는 페미니즘 운동의 모토가 있어요.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얘기거든요. 매우 개인적으로 여겼던 일들을 공유하면서 그게 사회적 이슈가 될 수 있는 건데요. 그러기 위해서는 에필로그에도 썼지만 우리가 갖고 있는 두려움이나 우리의 경험이 개인화된 것으로 머물러선 안 된다는 거예요. 공동체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도 계속 만들어줘야 하고요. 사소한 것이 아니라고 여기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사람들은 여전히 크고 강한 범죄에만 관심을 갖거든요. 더 변해야죠.

 

이창무: 형사 사법 체계 이런 것들이 지금까지는 지나치게 강자 중심, 남성 중심으로 되어 있었죠. 그렇다보니 숨겨진 범죄까지는 아닌지 모르겠지만 그런 것들이 우선순위에서 많이 떨어져있었던 건데요. 정상화가 되어가는 거죠. 비정상의 정상화죠.(웃음)

 

선진국이 무엇인지 생각한다면 한국 사회는 어느 수준까지 왔다고 볼 수 있을까요? 이제야 우선순위에서 밀렸던 범죄를 조금씩 이야기하는 분위기기도 한데요.

 

박미랑: 가정 폭력 문제를 예로 들면 미국의 경우 1970년대에 법이 본격적으로 가정 안으로 들어갔어요. 경찰과 법원이 80년대에는 본격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거든요. 우리나라도 가정폭력특별법 자체는 1997년에 만들어지고 98년부터 시행됐어요. 그런데 일단 처벌 받는 사람이 없다는 게 문제예요. 공론화가 되고, 사람들이 인지하고, 경찰이 적극적으로 나서죠. 경찰이 체포하고 검찰로 넘겨요. 그러면 검찰이 이 사람들을 법의 심판을 받게 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경찰은 움직여줬는데 검찰과 법원, 판사들은 생각이 바뀌질 않는 거예요. 체포는 됐지만 처벌 받는 이는 없는 시스템이 되는 거죠. 아직 멀었어요.

 

미국의 가정 폭력 판결 같은 걸 보면 그 안에서 판사들이 여성주의적 시각도 많이 가지고, 여성 운동이 판결에도 많이 영향을 끼쳤거든요. 그 1980~90년대 판결을 지금 우리가 인용하면서 공부한다 하더라도 바로 쓸 수 있죠. 4대악 개념에 가정 폭력이 들어오고 했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는 판결문을 보고 있노라면 너무나 가부장적이고 너무나 남성중심적인 판사들의 시각을 볼 수 있어요. 거기까지 바뀌어야지만 뭔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얼마 전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데이트폭력을 다뤄 화제가 되기도 했지만요. 지금 이 사회는 피해자가 용기 내 목소리를 높여도 잘 해결되었다는 경험이 없어요. 그러니까 그걸 본 숨어있는 피해자들은 다시 목소리를 내지 못하게 되는 악순환인 거고요.

 

박미랑: 가해자와 피해자만 신문에 나오죠. 그래서 어떻게 처벌을 받았고, 피해자가 어떤 지원을 받게 됐고, 어떻게 잘 지내게 되었다, 라는 아름다운 스토리가 전혀 안 나오는 거죠.

 

크기변환_5A2A7337.jpg

 

 

살인, 격정 범죄

 

책은 지인에 의한 살인을 가장 먼저 다뤘습니다. 살인의 특성을 잘 보여주기도 하는데요.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다른 어떤 특성이 있는지 간략하게 소개 부탁드려요.

 

이창무: 뒤에서 다룬 미디어와도 관련이 있는데요. <CSI> 같은 각종 범죄 드라마에서 주로 다루는 것들은 대부분 모르는 사람에 의한 살인이잖아요. 연쇄 살인도 영화 같은 데 많이 나오고요. 실질적으로 연쇄 살인범에게 살해당할 가능성은 극히 적어요. 그것이 문제가 안 된다는 게 아니라 확률 측면에서 보면 희박하다는 거예요. 자극적이고, 강렬하니까 그런 것이죠. 또 드라마나 영화는 현실에서 일어나기 힘든 주제를 다뤄야 사람들이 보게 되잖아요. <어벤져스>(웃음)처럼요. 그런 측면에서 현실과는 다르다는 거고요. 팩트는 대부분 아는 사람이라는 거예요. 하지만 이것도 너무 천편일률적인 이야기예요. 사이버 범죄가 아닌 다음에는 기본적으로 범죄가 발생하려면 피해자와 가해자가 만나야 하잖아요.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있어야 범죄가 벌어지니까 아무래도 아는 사람일 수밖에 없죠. 냉혈한, 청부살인에 의한 범죄도 있지만 살인을 격정 범죄라고도 얘기를 하니까요. 애증, 분노에 의한 게 살인이라면 모르는 사람과는 분노를 느끼고 말고 할 게 없어요. 감정이 쌓이려면 아는 사람이어야 하죠. 가까운 사이 중에도 제일 많이 벌어지는 살인은 배우자 살인이거든요. 동거하거나 사귀는 사이를 포함해서요.

 

박미랑: 한편 지인에 의한 살인 발생 확률이 높지만 그 살인 범죄 역시 계획적이지 않다는 게 사람들의 생각과 다른 점이죠. 사람들은 미디어에서 계획된 범죄 같은 걸 많이 접하잖아요. 그런데 실제 범죄 사건은 계획한 것이 아니라 격정적 상황, 즉 싸우다가 집에 있는 흥분 유발 단서, 방망이나 골프채, 부엌에 있는 칼이 보이니까 사용한 거거든요. 의도적으로 저걸로 사람을 죽어야겠다, 하는 경우는 별로 없어요.

 

확실히 언론의 영향이 크죠.

 

이창무: 살인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이 결국 미디어잖아요. 왜곡된 정보를 얻는다는 거고요. 픽션은 말할 것도 없고, 언론 보도가 그렇죠. 저도 기자 출신이지만 기사에 흔히 ‘야마’, 주제나 핵심을 잡아야 하니까요. 또 기자 욕심에 1단짜리보다 2단, 3단, 톱, 이런 걸 하려다보면 훨씬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튀고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기사가 나오게 되죠. 개가 사람을 물면 뉴스가 안 되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뉴스가 된다 하잖아요. 그런 측면에서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엽기 살인, 묻지마살인처럼 공포심을 갖게 하는 그런 것만 보도가 되는 거죠.

 

공포 역시 생각해 볼 문제 같아요. ‘개인화된 두려움과 타자화된 범죄는 우리의 두려움을 먹고 덩치를 키운다. 범죄자의 자유도도 높아진다.’고도 했어요.

 

박미랑: 해결이 아무것도 되지 않고 두려움만 계속 높아지는 상황이 되는 거죠.

 

강도로 버는 돈이 평균 100만원 미만이다, 방화범 중 어머니 없이 성장한 경우가 많았다, 강도가 흉기를 들었을 때보다 맨손일 때 더 위험하다, 등 흥미로운 사실들이 많이 있습니다. 범죄를 대중이 잘 안다는 것, 어떤 효과가 있을까요? 무엇을 기대하고 책을 썼나요?

 

이창무: 두 가지 측면을 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방금 얘기처럼 지나친 두려움, 쓸데없는 두려움을 줄이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 게 첫 번째고요. 또 하나는 잘 몰라서 당하지 말았으면 했어요. 절도뿐 아니라 성폭행 같은 것도 문단속만 잘해도 많은 부분 예방할 수 있거든요. 한때 ‘발바리’ 같은 연쇄 성폭행범으로 시끄러웠는데요. 나중에 진술한 것을 보면 문을 당겨봤는데 열려서 들어갔다, 이런 말도 나와요. 여러 강간 사건도 보면 특히 여름 같은 경우 창문이나 문이 열려 있는 경우 발생했거든요. 사소한 부주의를 조금만 조심하면 예방할 수 있어요. 보이스 피싱 같은 신종 범죄에도 조심하면 예방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요.

 

반론이 있을 수 있죠. 여름에도 문을 꼭꼭 닫고 살아야 하느냐, 편하게 살 수 없느냐 할 수 있어요. 글쎄요, 우리는 모든 걸 다 조심하잖아요? 보도를 걸어갈 때 안전 교육 측면에서 차도 쪽이 아니라 안쪽으로 걸어가도록 교육을 시키잖아요. 조심을 하면 그만큼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측면이 있으니까요. 범죄와 관련해서도 스스로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좋겠죠.

 

박미랑: 비슷한 생각이에요. 책에서 범죄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많이 이야기하고 있지만요. 범죄를 생각할 때 나는 늘 피해자가 될 것이고, 누군가가 날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꾸 남에게 책임을 묻는 거예요. 그런데 많은 범죄 안에는 사실 나의 책임도 있거든요. 당신이 뭘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것도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했고요. 사회구조가 남 탓하는 구조로 되어 있으면 남의 피해, 아픔을 어우르지 못해요. 범죄에 대해서도, 안전에 대해서도 많이 민감해져야만 내가 범죄를 예방하고 남이 피해를 당했을 때 작은 것도 어루만져줄 수 있거든요. 그게 안 되면 뉴스에 보도되는 매우 큰 범죄가 아닌 이상은 너무 둔감해져요. ‘그럴 수도 있지’라면서요. 그런 걸 함께 얘기하고 싶었어요.

 

분명히 반론도 가능할 것 같아요. 문단속을 하지 않아도 안전한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말이에요.

 

이창무: 결국은 그런 자유와 안전, 두 가지가 상충되는 부분이 있으니 판단을 잘 해야 하는 거겠죠. 교통사고 때문에 자동차를 없앨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크기변환_5A2A7386.jpg

 

 

부모 교육이 필요하다

 

개인의 성장배경과 범죄는 얼마나 깊은 관련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이창무: 거의 절대적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여러 연구 결과를 봐도 그래요. 범죄를 저지르는 결정적 변수가 뭐냐, 딱 한 가지를 말한다면 성장배경이라고 봐요. 저는 거기에 동의를 해요. 부모나 양육자의 관심, 애정, 더 나아가서 감시까지 얘기할 수 있을 텐데요. 어렸을 때 보호자가 관심과 감시를 기울이면 나중에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줄어드는 거죠.

 

청소년 범죄를 가르칠 때 그런 걸 강조하곤 했는데요. 우리는 부모가 자연스럽게 되잖아요.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경험으로 애들 키우는 방법을 터득하는데요. 훈육이나 양육은 제대로 된 교육이 필요해요. 악순환이거든요.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이를 낳고, 키우는 기술도 관심도 없으니까 그냥 함부로 하게 되면 그 사이에 학대로 인해 아이가 죽게 되는 경우도 있고, 시간이 지나면 당연히 청소년 범죄, 성인 범죄로 연결될 수 있어요. 그들이 또 아이를 낳고, 악순환이죠.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고, 거기에 부모 교육 같은 국가의 역할이 있다고 생각해요. 아직은 부모의 친권에 대한 국가의 개입이 바람직한 것인가에 대한 반론도 많이 있죠.

 

박미랑: 많은 범죄 이론이 있어요. 어떠한 요인이 범죄와 가장 연관이 깊은가 하는 연구를 많이 하는데요. 범죄 이론 중에도 자아 통제 이론이라는 게 있어요. 자아 통제력이 낮은 사람들이 어떤 상황에 이르렀을 때 범죄자가 될 확률이 높아진다고 설명하기도 하는데요. 그렇다면 자아 통제력이 언제 형성되느냐고 할 때 만으로 세 살에서 여섯 살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때 부모가 어떻게 훈육을 잘했느냐가 되게 중요한 거거든요. 어렸을 때 부모가 잘 교육을 해야 하는데 이창무 교수님 말씀처럼 우리나라에선 어떻게 부모가 교육을 해야 하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단 말이죠. 출산 수당을 그냥 주는 게 아니라 수당을 주면서 부모 교육을 받게 한다든지 그런 건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범죄학 연구를 하면서 교도소, 소년원 이런 곳을 자주 다니는데요. 거기서 만난 학생들 보면 늘 마음이 아픈 게 이들에게도 보통 중산층 부모의 역할을 하는 보호자가 있었으면 여기까지 왔을까 이런 생각을 늘 하게 되는 거예요. 그런 것과 맞닿아서 나도 저럴 수 있었는데 부모님 덕분에 이런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거지 내가 잘나서 된 게 아니구나 이런 생각은 정말 많이 하게 돼요.

 

부모 교육의 필요성은 정말 공감이 돼요. 스스로 학대를 하는지 모르는 경우조차 있잖아요.

 

이창무: 부모의 학력 수준이 높다고 꼭 좋은 부모도 아니잖아요. 예전에 유명했던 과천 토막 살인사건(2000년 발생)만 하더라도 중산층 가정에 명문대 나온 부모들인데 아들이 부모를 토막 살인했잖아요. 부모가 자녀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에 대한 훈련이 안 돼 있고, 자신의 소유물로 생각하면 위험해요. 에이드리언 레인(Adrian Raine)이라는 범죄심리학자가 있는데 영국에 있는 아주 유명한 슬럼에서 자랐어요.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다 범죄자가 됐어요. 왜 자기는 안 됐을까 스스로를 연구한 거죠. 원인이 부모의 사랑이었어요. 가진 게 없어서 슬럼에서 살았지만 친구들과 다르게 사랑으로 키웠다는 거예요. 아까 애정, 관심 등을 얘기했는데요. 사랑을 건조하게 말하면 감시죠.

 

어디까지가 훈육이고 어디까지가 학대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것도 문제예요.

 

이창무: 항상 그렇잖아요. 어떤 종류의 폭력도 그 기준이란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부모가 자신에게 이렇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는 건 자식에게도 똑같이 하지 않아야 할 것 아니에요. 혼날 만하다 생각이 들면 수긍하지만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너무 싫다, 그런 생각이 들면 학대가 되는 거죠.

 

박미랑: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고, 이런 폭력은 없다고 생각하는 거죠. 선생님이 학생을 때리는 건 되고, 학생끼리 싸우는 건 안 되고, 이런 폭력의 기준은 없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아동이고, 학생이지만 하나의 주체자이자 인격체로 평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 기준에서 폭력이 가능한가, 받아들여질 체벌이었고 폭력이었는지 판단해야지 내 가족, 내 아이, 내 애인, 이런 기준은 없어요.

 

크기변환_5A2A7454.jpg

 

 

인공지능의 범죄, ‘알파크리미널’

 

CCTV를 다룬 부분에서 벌써 많이들 잊은 것 같지만 필리버스터 정국까지 불러온 ‘테러방지법’이 떠올랐어요. 사생활보호와 범죄예방,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할까요?

 

이창무: 결국은 자유냐 안전이냐의 문제잖아요. 그런데 좀 다르게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개인의 자유 안에 개인의 안전이 또 있잖아요. 사생활이라는 것도 본인의 보안이 될 수 있어요. 어떻게 보면 개인의 보안과 사회의 보안의 문제인 거죠. 보안과 자유의 문제가 아니라요. 그걸 어디까지 넓힐 수 있는지 생각해봐야 해요. 결국 그에 대한 정답은 있을 수 없고 시대적 상황과 사회적 통념 등에 의해 달라질 수밖에 없거든요. 절충점이 어떻게 돼야 할 것인지 찾아야 하는데요. 역감시가 잘 돼야 하겠죠. 상호감시 시스템이 이루어지면 투명성, 공정성이 담보되지 않겠느냐 생각해요. 걱정하는 것은 CCTV 등이 다른 목적으로 전용될 가능성이니까요. 테러방지법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철저하게 필요한 목적으로 사용되고, 모두 나중에 감사를 받고, 이렇게 해야 될 거예요.

 

박미랑: 저는 CCTV 논의를 보면 항상 이런 생각을 해요. 사회에서 CCTV가 활용도가 정말 많잖아요. 이건 범죄 예방과만 연결돼 있는 게 아닌데 사람들 머릿속에 ‘CCTV=범죄예방’이라는 공식이 자리 잡혔단 말이죠. 이게 영국에서 국가 주도로 CCTV를 설치하면서 범죄 예방을 홍보하면서 인식이 그렇게 됐다고 해요. 그런데 CCTV는 여러 감시 도구 중 하나인 거고, 기술은 계속 발전하면서 감시 기능을 가진 것들은 또 생겨나요. 그래서 저는 CCTV를 논하는 게 아니라 감시를 논해야 한다는 생각이 많아요. 디지털화 되어 있고, 언제든 정보를 꺼내볼 수 있고, 영구성을 가지고 있는 게 문제잖아요. 게다가 사물인터넷 나오고 해서 모든 것을 연동시켜버리면 나라는 사람을 재조합하는 게 가능해지죠. 누구든지 재조합이 가능하다면 사생활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고요. 때문에 정보를 분절시키는 장치가 잘 마련돼야 하는데 거기까지는 안 가는 거죠. 그런 정보 분절이라든지 제한에 대한 기준이 너무 뒤떨어져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경각심을 같이 가져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요. 

 

새로운 게 등장하면 반드시 그걸 이용한 새로운 범죄가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여기에 범죄예방 및 대처의 어려움이 있을 거예요. 새로운 기술을 이해해야 하고, 처벌 규정도 미비하니까요.

 

이창무: 낮에 세미나에 다녀왔는데요. 주된 이슈는 4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변화였어요. 그걸 들으며 생각한 게 인공지능을 이용한 범죄도 가능할 거란 거였어요. 인공지능이 경찰의 수사기법 등을 다 학습하게 되면 그걸 뛰어넘는 ‘알파크리미널’이 나올 수 있을 거예요. 또한 법이란 항상 맹점이 있기 때문에 그것도 학습하면 그걸 이용한 범죄도 가능할 거고요. 각종 증권 거래법부터 시작해 사람은 할 수 없는 것들을 학습하거나 새로운 금융 파생 상품을 만들거나 하는 일이 생기겠죠. 그런 것들이 가져올 폐해라는 건 섬뜩하죠. 강한 인공지능은 지금까지 겪어온 것들을 뛰어넘는 거니까요.

 

박미랑: 근본적으로 생각하면 범죄에 대한 긍정적인 정의를 형성하는 것, ‘이래도 돼’라는 걸 학습하게 되는 게 제일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사람은 늘 창의적이고 활용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에(웃음) 범죄에 대한 정의, 위법한 행동에 대한 정의가 비뚤어지면 어떤 것도 다 활용해서 범죄를 만들어낼 수 있거든요. 그러니까 위법에 대한 태도를 어떻게 교육하는가가 제일 기본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태어나면서부터 가정 안에서 범죄의 정의를 어떻게 형성해나가는지 교육이 필요한 거죠.

 

크기변환_5A2A7296.jpg

 

TV가 범죄에 영향을 준다고 했는데요. 그렇게 본다면 가정 폭력이나 데이트 폭력, 아동이나 여성에 대한 혐오 정서를 너무 쉽게 내보내는 미디어가 큰 문제기도 한데요.

 

이창무: 기자 출신으로(웃음) 말씀드리면 위험성을 인식 못한다고는 생각 안 해요. 그것보다는 시청률이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에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거죠. 아까 얘기했던 부모 교육도 같은 건데요. 결국은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잖아요. 우선순위를 조정하는 일이 필요할 거예요.

 

박미랑: 문자 엄청 보내고, 전화 계속 걸고 이런 게 아침 드라마에 나오죠.(웃음) 여자나 남자에게 집착을 보이는 게 단순히 좋아해서 그러는 것이라고 여기고 그냥 그렇게 보여주는 거잖아요. 미디어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죠. 시청률 중요하니까요. 하지만요, 그걸 보는 시청자들이 그게 아프고, 불편함을 느끼고 항의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인식이 올라가야 해요. 그래서 캠페인도 중요하고 알아가는 게 정말 중요한 거죠. 한국에 돌아와서 개그 프로그램을 보고 너무 놀랐던 게 경상도 아빠가 엄마를 구박하는데 방청객들이 다들 웃고 있는 거예요. 어떻게 저런 폭력적인 모습이 개그가 될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요. 이런 것들이 개그의 소재가 될 수 있다는 현실이 너무 아픈 거죠. 사회가 남에 대한 폭력에 둔감하구나 생각했어요. 약자에 대해선 더욱 그렇죠. 한부모 가정도 그렇지만 드러나지 않은 약자, 성소수자들에 대한 비난이 정말 거침없잖아요. 같이 아파하지 않는 사회가 문제라는 생각을 늘 해요. 

 

최근 일어난 사건 중 가장 우려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었나요?

 

박미랑: 동물학대요. 약자의 층위에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아동, 여성, 장애인, 성소수자, 종교소수자 등 모두 포함해 발언권이 없거나 사회에서 소수 위치에 있는 이들에게 가하는 폭력의 연장이라고 생각해요. 여러 이론이 있지만 동물을 잔혹하게 학대하는 사람을 위험 인자로 보기도 하거든요.

 

이창무: 경제범죄, 특히 인터넷을 이용한 사이버 범죄요. 많은 일반 범죄가 형태는 같은데 사이버 상에서 벌어지는 경우가 많거든요. 절도, 사기, 이런 것들이죠. 피싱, 파밍, 큐싱 등 온갖 종류의 새로운 것들이 사이버에서 벌어진다는 거죠. 그것에 의해 피해자도 훨씬 많아질 수밖에 없고 잘 몰라서 당하는 경우도 많아져요. 기술도 계속 진화하니까 큰 문제죠. 최근에는 보이스피싱을 감별하는 소프트웨어도 나오는데요. 그걸 또 뛰어넘는 방법이 나오겠죠. 범죄도 더 많아지고 피해도 점점 더 늘어날 거라고 생각해요.

 

 

 

img_book_bot.jpg

왜 그들은 우리를 파괴하는가 이창무,박미랑 공저 | 메디치미디어
살인, 성폭력, 강도 같은 흉악범죄의 피해자들은 잘못된 상식 때문에 당하는 경우가 많다. 가정폭력과 데이트폭력, 군대 성폭력 같은 ‘보이지 않는 범죄’는 사회의 무관심이 큰 원인이며 주변의 편견 때문에 2차 피해로 이어지곤 한다. 해외의 선진적인 형사사법학을 공부하고 한국의 대표적인 범죄학자로 부상한 두 저자는 무지를 타파하고 공포를 이겨낼 방법을 독자에게 전달한다.

 

 

 [관련 기사]

- 곽정은 “사랑, 행복한 만큼 힘들어질 수 있어”
- 이기호 “우리는 왜,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을까?”
- 「개여울」의 정미조, 37년 만의 귀환
- ‘국민 주치의’ 오한진 박사의 건강 노하우, 호르몬을 알자
- 강헌구 “1등보다 더 행복한 사람이 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언호 한길사 대표 “책방을 열고 싶게 만드는 책”

$
0
0

“이 책을 보는 사람마다 서점을 열고 싶대요.” 『세계서점기행』을 펴낸 김언호 한길사 대표가 요즘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다. 김언호 대표는 그간『책들의 숲이여 음향이여』, 『한권의 책을 위하여』, 『책의 공화국에서』등을 썼지만, 이토록 반응이 뜨거운 책을 만난 적이 없다. “서점의 장대함에 압도 당했다”는 평을 듣고, 그는 비로소 안도했다. 우리에게 이런 책이 필요했다는 방증이었기 때문이다.

 

『세계서점기행』은 한길사가 창립 40주년을 맞아 펴낸 책으로, 김언호 대표가 직접 탐방한 세계 명문 서점 22곳을 소개했다. 1년 반 동안 기획, 취재한 결과물로 600여 쪽이 달아는 매우 획기적인 책이다. 쉽사리 접근하기 어려운 책일지언정 읽다 보면 선뜻 시선을 떼기 어렵다.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의 숲 ‘서점’을 거닐어보자. 프랜시스 베이컨의 말처럼 “책은 소화될지언정 결코 소비되지 않는” 정신의 친구다.

 

크기변환__IM_9845.jpg

 

종이책의 미학을 보여주고 싶었다

 

『세계서점기행』은 <중앙SUNDAY>에 11개월간 연재했던 칼럼이다. 연재 당시에도 반응이 좋았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칼럼 이야기를 했다. 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 것 같아도 꾸준히 보는 사람들은 본다. 기본적으로 <중앙SUNDAY>는 교양인, 지식인 독자들이 많아서 함부로 칼럼을 쓸 수 없었다. 상당히 힘을 들여 썼다. 첫머리부터 끝머리를 쓸 때까지 심사숙고 했다. 인용도 마찬가지다. 주간지에서는 지면의 한계가 있으니까 생략할 수밖에 없는 내용도 있었지만, 책은 한데로 운집되니까 서로가 서로의 이야기를 보완하고 도울 수 있었다. 모아놓으니 책의 정신이 살아나더라. 편집을 통해 더 큰 울림을 창조할 수 있는 게 책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영국, 네덜란드, 중국, 일본, 한국 등 세계 서점 22곳을 다뤘다. 모두 고유한 스토리를 가진 서점이다.

 

평범한 서점은 다루지 않았다. 세계 명문 서점 이야기를 한데 모으니 비교를 하면서 읽는 재미도 있다. 책이 출간되고 다큐멘터리를 찍자는 연락이 왔다. 또 같이 서점 탐방을 하자는 친구도 있었다. 나는 어느 곳을 여행하더라도 근처 서점을 꼭 들린다. 내 삶의 지향이 책이기 때문이다.

 

출판인의 서점 기행은 어찌 보면 일의 연장선이다. 책을 쓰기 위해 수 차례 서점을 방문했다고 들었다.

 

미흡한 내용을 보충하기 위해, 사진을 다시 찍기 위해 새로운 기분으로 서점을 찾았다. 각 서점의 책임자, 창립자를 직접 인터뷰했다. 『세계서점기행』은 앉아서 쓴 책이 아니라 걸어 다니면서 쓴 책이다. 한 꼭지의 분량이 길지 않지만 품이 많이 들어갔다. 한 호흡을 읽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일부러 중제목을 넣지 않았다. 하지만 창립자나 작가의 생년은 정확히 기입했다. 이 작가가 언제적 사람인지를 알아야 인식의 지평이 확장되기 때문이다. 작은 오자 하나라도 잡아내려고 수십 번을 읽었다. 한길사 직원들의 도움이 무척 컸다.

 

명문 서점에 관한 단순 정보 나열이 아니라, 서점의 역사와 현재, 사건, 사람을 담았다. 분량은 짧지만 잘 짜인 단편소설과도 같다.

 

풍경이 그려지니까 재밌다고 한다. 서점 특유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다는 평을 많이 들었다. 나는 세계 서점을 탐방하면서 책의 존귀함, 서점의 역량을 새삼 각성했다. 책 읽기가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했고 책을 위해 헌신하는 서점인들의 정성에 감동했다.

 

사진도 직접 찍었다.

 

평소에도 사진 찍는 걸 좋아한다. 책 사진을 20년 동안 찍은 것 같다. 내 인생의 주제가 책이니까 그냥 찍는 거다. 책이 있는 사진을 보면 책의 합창 소리가 들린다. 서점은 곧 책의 숲이다. 한 권의 책도 아름답지만, 수만 권의 책이 놓인 서점은 또 다른 풍경을 보여준다.

 

책, 서점 사진도 인상적이지만, 서점인들의 인터뷰 사진도 기억에 남는다. 유명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인물 사진을 크게 실었다.

 

중요한 사진이기 때문에 크게 넣었다. 한 사람이 한 직업을 수십 년 이상 해오면 그건 무조건 선생이다. 부산 영광도서나 보수동 책방골목의 할아버지들도 선생이다. 비싼 책, 좋은 책을 팔아야만 선생이 아니다. 학습지를 팔아도 그 일을 평생 하면 선생이다. 서점인들은 대개 지적 수준이 높다. 책을 알아야 책 장사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베스트셀러만 중시하는 건 장사하자는 이야기 아닌가? 서점은 달라야 한다. 일본 도쿄의 크레용하우스 직원들은 한 달에 한 번씩 신간회의를 한다. 읽고 검토한 신간들을 설명하고 추천한다. 크레용하우스는 좋다고 선택한 책은 책임지고 판매한다. 반품을 하지 않는 서점이다. 또 월간 <크레용하우스통신>을 통해 자신의 책에 대한 문제의식을 이야기한다. 현재 통권 414호에 이르렀으니 이 역시도 대단하다.

 

크레용하우스 직원들은 손님에게 특정한 책을 권하지 않더라.

 

한두 책을 집중해서 진열하지도 않는다. 이런 책 저런 책을 두루 진열해서 독자 스스로 선택하게 만든다. 이른바 미디어까지 가담해서 만들어내는 베스트셀러가 없다. 1976년에 크레용하우스를 창립한 작가 오치아이 게이코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우린 많이 팔리는 책이라도 문제가 있다고 판단되면 선택하지 않는다. 좋은 책은 오래오래 팔린다”고 말했다.

 

크기변환__IM_9658.jpg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고집스럽지 않다

 

유럽의 가장 큰 중고서점의 하나인 영국 바터 북스(Barter Books)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폐쇄된 기차역을 서점으로 만들었는데, 소장하고 있는 책만 50만여 권이다.

 

고객들이 하루에 갖고 오는 책이 100박스가 되더라. 독자들이 읽은 책을 갖고 오면 서점 직원들이 갖고 온 책을 검수해서 교환권을 준다. 독자들은 이 교환권으로 다른 책을 갖고 간다. 한동안 영국에서는 전자책이 종이책을 이길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예상이 빗나가고 있다. 바터 북스를 찾는 고객이 하루 1천 명 이상이 된다. 책을 구입하지 않는 사람들도 들르거나 만남의 장소로 이용한다는 사실도 눈여겨봐야 한다. 바터 북스를 방문하면서 우리나라도 철도역들에 서점과 카페를 개설하면 어떨까 싶었다.

 

크기변환_바터북스_1.jpg

영국 바터 북스

 

‘115년 동안 한 번도 문 닫지 않은 서점’ 일본 기타자와 서점에 드나든 지는 20년이 됐다고 밝혔다.

 

책 애호가들은 도쿄의 진보초 서점거리를 사랑한다. 고서점 170여 곳이 있으니 북마니아들에게는 필수 여행 코스다. 진보초 서점거리의 책방들은 각자 전문 주제가 있다. 인문, 예술, 사회과학, 역사와 문명의 세계가 존재한다. 기타자와 서점은 영문(英文) 고서점이다. 1902년에 문을 연 서점으로 처음에는 일본책을 취급했지만 영문학 교수였던 아들 기타자와 류타로가 서점을 맡으면서 영문책 전문서점으로 변했다. 요즘 나는 기타자와 서점이 갖고 있는 서양의 위대한 문학가들의 전집을 살펴보고 있는 중이다.

 

크기변환_기타자와.JPG

일본 기타자와 서점

 

노르웨이의 독서량이 굉장히 높더라. 한 사람이 1년에 평균 17권을 읽는 나라다. 한편 우리나라는 UN 회원국 192개국 중 최하위권인 166위다. 올해 2월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성인 평균 독서량은 9.1권에 그쳤다. 성인 4명 중 1명은 아예 1년에 1권도 읽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압도적인 다수가 책을 읽지 않는다. 스마트폰에 마음을 뺏겨 종이책은 거들떠보지 않는다. 선진 사회라면 대학 앞에 서점 거리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대학 앞에는 서점이 없다. 구내서점 정도만 있다. 책과의 스킨십보다 황홀한 일은 없다. 기계로 쓰는 연애편지가 얼마나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까, 생각해보면 의문이다.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은 고집스럽지 않다.

 

『세계서점기행』은 대형 판형에 활자도 크다. 백과사전 정도의 무게다. 한 손으로 들기도 어렵다.  가격도 비싸 일반 독자가 구입하기에는 부담스럽다. 왜 굳이 고급판을 고집했는지 궁금하다.

 

1차 목표는 책의 미학, 서점의 장대함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전자책이 따라오지 못하는 종이책의 미학을 보여주고 싶어서 일부러 고급판으로 만들었다. 정가가 8만 원이니까 비싼 책이다. 하지만 책을 본 사람들은 비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름다운 서점 안에 있는 것도 행복한 일이지만, 이렇게 멋진 사진을 보는 것도 황홀한 일이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가격을 낮춰 보급형으로 만들까, 하는 생각도 있다. 이 책을 들고 세계 서점 기행을 가는 사람들이 생기면 좋겠다.

 

국내 중소형 서점은 많이 사라지고 있지만, 작은 독립서점은 곳곳에 생겨나고 있다.

 

새로운 조짐이라고 본다. 우리가 잘 가꿔나가야 한다. 아마추어리즘으로는 오랫동안 갈 수가 없다. 프로페셔널리즘이 동시에 일어나야 한다. 서점인의 취향 정도가 아니라, 어떤 주제를 갖고 서점을 여는 게 중요하다.

 

서점의 가치를 정의해본다면?

 

서점은 그냥 물건을 파는 공간이 아니다. 정신과 문화가 교류되는 곳이다. 상하이의 명문서점 ‘지펑’을 창립한 옌보페이는 “서점이란 시대정신이 자유롭게 표출되는 공간이다. 서점은 태생적으로 시민사회”라고 말했다. 이런 책도 있고 저런 책도 있는 곳이 서점이다. 사람이 편식을 하면 건강에 좋지 않듯이, 독서도 마찬가지다. 서점에 가면 하다 못해 돈 버는 비법도 있고,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관한 심오한 철학도 있다. 서점에 가면 내 삶이 열려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모든 걸 수용할 수 있는 곳이 서점이다. 서점에 많이 들락거리면 민주적인 사람이 된다. 내 생각만 옳다고 생각할 수가 없는 거다. 나는 내 생각, 당신은 당신 생각이 있지만 서로를 포용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서점은 한 사회, 한 인간을 도덕적으로 훈련시키는 공간일 뿐 아니라 민주적인 정치 체제를 구현할 수 있는 공간이다.

 

크기변환__IM_9827.jpg

 

 

제대로 만들자, 철저하게 만들자

 

올해 한길사에서 펴낸 책 중에 노르웨이 작가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의 『나의 투쟁』이 큰 주목을 받았다. 창립 40주년 기념기획의 하나로 올해 1월 11일에 펴냈다.

 

2014년부터 세계 문단에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대단한 작가의 작품이다. 노르웨이 최고 문학상인 ‘브라게상’은 물론이고 독일 디 벨트 문학상, 이탈리아 말라파르테상 등을 받으면서 전세계가 주목한 작품이다. 이 책을 펴내기까지 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오랜 준비 과정이 있었고 오자 하나도 없이 펴내려고 노력했다. 책을 읽은 많은 독자가 문학도가 좋아할 책이라고 평했는데, 나 역시 끈질기게 읽힐 책이라고 생각한다. 곧 2권이 출간될 예정이다.

 

정말 좋은 책인데, 빛을 못 봐서 아쉬운 책이 있다면.

 

많다. 너무 많다. (웃음) 지난해 4월에 펴낸 이광주 선생의 『담론의 탄생』은 참 경쾌하고 좋은 책이다. 이광주 선생은 역사학자시지만 문화예술에 대한 식견도 좋다. 원로 학자가 이 정도의 글을 쓰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인문학이 베스트셀러가 되기는 어렵지 않은가. 한길사는 베스트셀러를 추구해서 낸 책이 별로 없다. 중요한 건 스테디셀러를 만드는 일이다. 기본에 근거한 책, 고전적인 책들을 지속적으로 내려고 한다. 문학도 순문학에 초점을 두려고 한다.

 

출판사 대표로서 직원들에게 강조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제대로 만들자, 철저하게 만들자”는 이야기다. 책 내용에 관해서는 확실한 주제를 갖고 만들자는 것이다. 많이 만드는 게 아니라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한길사가 40년 동안 만든 책이 3천여 권이다. 나름대로 많이 만들었는데, 우리는 결코 대충 만들지 않는다. 책이 적게 나가더라도 완벽하지 않으면 새로 만든다. 직원들에게는 크게 간섭하지 않는다. 동서양 고전을 총망라한 ‘한길 그레이트북스’의 경우 공이 많이 드는 시리즈다. 150권 정도 펴내는데 20년이 걸렸다. 우리는 책을 한 권 선택하면, 전력 투구한다. 한 번 찍을 때, 많은 양을 찍지 않는다. 인쇄가 잘못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크기변환__IM_9752.jpg

 

출간할 책을 선택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한 분야에서 나름대로 진지하고 의미 있는 책을 펴내려고 한다. 확실하게 의미와 가치가 있다고 느끼는 책을 택한다. 지금은 선택을 잘해야 한다. 그래서 직원들과 같이 의논한다.

 

간혹, 이런 책은 왜 냈을까? 싶은 책을 볼 때는 없나?

 

그렇지 않다. 우리는 우리의 길이 있고 다른 출판사는 그 출판사의 길이 있다. 여러 책이 공존하는 세상이 좋은 세상이다. 이 책은 좋고, 저 책은 나쁘다는 건 없다. 모두가 각자의 고유성이 있다. 만화도 추리소설도 무협소설도 다르지 않다.

 

한길사에서는 한길책박물관, 북카페 포레스타 등도 운영하고 있다. 새로운 개념의 서점을 만들 계획은 없는지 궁금하다.

 

만들고자 한다. 구체적인 계획이 잡히면 발표하려고 한다. 지금 우리는 책의 영역을 확장해야 한다. 책을 만들어도 갖다 줄 서점이 많지 않다. 어려운 인문학 책이라도 받아주는 서점이 수십 군데가 넘으면 책을 만드는 사람이 용기를 낸다. 서점에서 희망을 보고 책을 쓸 수 있다. 『세계서점기행』에 대한 반응을 보면서, 우리가 이미 서점에 관해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 이미 이런 책을 요구하는 독자가 존재했다는 사실이다. 책은 절대 혼자 존재하지 않는다. 시대와 함께 존재한다.

 

『세계서점기행』이 중국에도 출간될 예정이다.

 

계약을 마쳤고 지금 번역에 들어갔다. 책에 실린 중국 서점은 지펑서원을 비롯해 총 여섯 곳이다. 중국 서점 이야기는 우리 독자들이 꼭 읽어보면 좋겠다. 중국은 문자의 나라이면서 책의 나라다. 중국인들은 현재 독서에 대한 열정이 굉장히 높다. 24시간 문을 여는 싼롄타오펀서점은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독서 지원 정책 역시 뛰어나다. 중국 책을 보면 디자인도 굉장히 뛰어나다. 한자가 아름답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책을 많이 좋아하는 독자가 관심을 가질 책이다. 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독자라면 꼭 참고하면 좋을 책이다.

 

책이 무엇인지, 서점이 무엇인지, 인문정신이 무엇인지. 이 책을 통해서 느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서점의 여러 가지 행사와 전략을 소개하고 있으니, 서점 경영에도 도움이 될 만한 책이다. 어떻게 보면 서점경영학이 될 수도 있다. 또 특별한 사람에게 선물로 주면 좋지 않을까 싶다.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VIP 고객들에게 이보다 좋은 선물이 없을 것 같다. 판형이 크고 글자 크기도 크기 때문에 나이든 사람들이 읽기도 좋다. 40, 50대 독자들이 이구동성으로 글자가 커서 너무 좋다고 했다. (웃음)


 

 

img_book_bot.jpg

세계서점기행 김언호 저 | 한길사
유럽, 중국, 미국, 일본 그리고 한국의 개성 있는 독립서점을 방문하고, 그 서점들을 이끌고 있는 서점인들을 만났다. 책의 정신, 서점의 철학을 토론했다. 이 디지털 문명시대에 서점의 길, 출판의 정신을 이야기했다.

 

 

 [관련 기사]

- 곽정은 “사랑, 행복한 만큼 힘들어질 수 있어”
- 이기호 “우리는 왜,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을까?”
- 「개여울」의 정미조, 37년 만의 귀환
- 범죄학자 이창무, 박미랑 “살인자는 왜 친근한 얼굴일까?”
- 강헌구 “1등보다 더 행복한 사람이 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진송 “연애가 판치는 세상에 비연애를 허하라”

$
0
0

누군가를, 특히 20대를 처음 만나 인사를 하면 습관적으로 ‘남자친구/여자친구 있어요?’를 상대방에게 물어본다. 뭐가 문제냐고 할 수도 있지만, 사람을 알기 위해 먼저 물어보는 정보가 그 사람의 연애 여부라는 게 이상하지 않나. TV에서는 남자 배우와 여자 배우가 같이 얘기만 해도 서둘러 커플 탄생을 축하하고 지나가는 강아지도 성별을 확인 후에 다른 성별끼리 붙어있으면 CG로 분홍빛 하트를 박아 준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만인에 의한 대(大)연애의 시대다.


<채널예스> 칼럼을 연재하기도 한 국내 최초 ‘비연애 칼럼니스트’ 이진송은 솔로로서의 정체성을 온전히 존중하며 말하고 싶은 마음에 혼자 <계간 홀로>라는 잡지를 창간했다. 처음 300부로 시작한 독립출판물은 크라우드 펀딩 후원을 받으며 부수가 점점 늘어났고, 최근에는 『연애하지 않을 자유』라는 책도 출간했다.


책 제목을 놓고 보면 연애하기 싫어하는, 혹은 연애를 못하는 사람의 연애 거부 선언 같지만 인터뷰 내내 이진송 저자는 오히려 ‘자유로운 연애’를 위한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연애하지 않을 자유’란 연애를 거부하는 게 아니라 규정한 연애의 방식만을 강요하는 사회에 날리는 일침이었다.

 
크기변환_815A8906.jpg

 


연애하지 않을 자유는 곧 연애할 자유

 

제목에 대한 이야기부터 할까요. 연애하지 않을 자유라고 하는데, 누가 하지 말라고 했냐는 식으로 딴지를 걸어올 수도 있을 텐데요. 책 제목은 어떻게 정하셨나요?


‘연애하지 않을 자유’는 허먼 멜빌의『필경사 바틀비』에서 따 온 문장이에요. <계간 홀로>의 부제이자 <한겨례21> 칼럼의 제목이기도 했고요. 예전에 저는 연애를 하려는 적극적인 액션을 전혀 취하지 않았는데, 연애 전략서나 자기계발서를 보면 제 상태를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누워서 감 떨어지길 기다리는 게으른 상태로 묘사를 하더라고요. 하지 않는 것도 실천의 일부인데, 왜 항상 뭔가를 안 하는 건 항상 게으르거나 못 하고 낙오됐다고 이야기를 하나 의문이 들었어요. 지금까지 우리는 할 자유만 이야기를 해 왔는데, 하지 않을 자유가 없는 할 자유는 또 다른 강요에 불과할 뿐이거든요.


연애에 대한 오지랖은 특히 20대라면 매일같이 듣고 경험합니다. 비연애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결심하는 계기가 있었나요?


여자가 25살까지 한 번도 연애를 안 하면 학이 된다는 농담이 있어요. 그전까지 저는 연애를 안 해도 제 자신에게 문제가 전혀 없었거든요. 제 친구들도 굳이 연애하라고 구박하는 사람도 없었는데, 부모님까지 포함해 바깥에서는 연애를 안 하는 것에 대해서 말을 많이 하더라고요. 온도차를 많이 느꼈죠. 친구들끼리 사적인 이야기를 넘어서 공적으로 이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할 공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독립잡지가 여기저기 생길 무렵이어서 여기저기 알아보고 준비하고 만들기 시작했죠.


혼자 만들기 쉽지 않으셨을 텐데요.


초반에는 어디서 본 건 있어서 아트 디렉터들을 모셨는데 잘 안됐어요. 이러다가는 못 내겠다 싶어서 편집은 아예 제가 맡고 원고는 초반에 지인에게 많이 ‘뜯었어요’.


잡지를 내고 반응은 어땠나요?


반응은 미미했죠. 300부를 신촌 주변에 뿌리고 인증샷도 받고 설렜는데 2호는 크라우드 펀딩에 실패했어요. 3호는 펀딩에 성공해 버리는 바람에 열심히 만들었죠(웃음). 그 이후에 논문 쓰면서 적당히 안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독립잡지라는 게 안 나오면 그만이고 도서 출판 등록도 안 되어 있으니까요. 그런데 계속해서 연애 관련해서 이슈가 생기는 거예요. 가만히 있으니까 성질이 뻗쳐서 안되겠다 하고 다시 만들었죠.


잡지 발간부터 칼럼 연재, 책 출간까지. 3년 동안 같은 주제를 가지고 얘기하기 지겹지 않으셨나요?


기고가 늘어나면 질리고 소모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자고 일어나면 계속 이야기할 게 생기는 거예요. 하다못해 오늘도 열애설이 터진 연예인 당사자가 실시간 검색어 1위였는데 그게 너무 이상했어요. 도대체 남의 연애가 뭐라고 전 국민이 총동원해서 알아야 하고 온종일 이야기를 해야 하는 걸까?


계속해서 새롭게 이야기할 거리가 생긴다는 점에서도 연애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정치적인 문제거든요. 특히 작년에는 데이트 폭력이 가시화됐잖아요. 그 전부터 주변에 이상한 상황이 많았어요. 좋아서 만나는 건데 남자가 노예 부리듯한다든가, 남녀 공학을 다니는 친구들이 알려주는 미묘한 폭력들, 물리적으로 때리는 건 아니지만 자신이 그 애를 찍었다고 집단에 소문을 내면서 당사자를 곤란하게 만드는 상황이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게 다 연애와 관련해 미시적으로 뻗어있다는 생각을 해요. 어릴 때에도 엄마나 선생님에게 누군가 괴롭힌다고 하면 쟤가 너 좋아해서 그렇다고 말하는 게 너무 열이 받는 거예요. 칼럼을 쓴 적도 있어요. (이진송의 칼럼 “좋아해서 그래” 편 보러가기) 연애 이야기만 해도 끝없이 연관된 주제가 나오다보니, 앞으로도 한동안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상황이 변하지 않는데서 오는 피로함이 있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폭력은 안 된다는 이야기를 늘 하지만 계속해서 데이트 폭력 기사가 난다든지 하는 것들이요.


물론 요새 들어서 더 극성이긴 해요. 그런데도 지치지 않고 목소리를 내는 게 중요해요. 같은 기사가 계속 나오지만 양상이 조금씩 다를 수 있거든요. 하나하나 파서 피곤하게 만드는 거죠. 작년이나 올해 초까지만 해도 개인적으로 불쾌하다고만 생각하고 넘어가는 흐름이었다면, 최근 문제가 되는 기사는 공론화되고 집단적으로 항의하는 흐름이 가능해졌다는 측면에서 계속 이야기를 해야죠.

 

크기변환_815A9142.jpg

 

 

세상의 모든 연애가 인정되는 그 날까지

 

빠순이의 ‘덕질’을 유사 연애관계로 보지 말라는 대목이 인상 깊었습니다.


아이돌이나 배우를 좋아할 경우 유사 연애 관계도 물론 있어요. 하지만 사람들은 빠순이라는 존재를 이야기할 때 오로지 유사 연애 관계로만 생각해요. 연애를 못하는 애들이 환상 속에 빠져서 남자친구의 역할을 그 사람에게 아웃소싱한다고 생각하는데, 덕질을 하나로 단일화할 순 없어요. 사람들이 연예인이 열애설이 터져서 빠순이들이 탈덕을 하거나 실망하면 ‘그래봤자 너네랑 사귈 거 아닌데 착각하더니 꼴 좋다’ 이런 식으로 반응하는데, 내부를 잘 들여다보면 협업의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있고, 본인이 보고 싶은 대상의 모습이 연애하는 실제 모습과 다르기 때문에 실망하는 사람도 있고, 욕망이 다양해요. 연예인을 좋아하는 게 비즈니스 파트너로서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대상을 어머니같이 서포트하는 경우도 있잖아요. 누군가를 좋아하는 감정이 이성이든 동성이든 그게 반드시 에로스라고 생각하는 연애 감정이 아닐 수 있다는 거예요. 덕질에도 이 개념이 통용되는 거죠.


작가님이 좋아하는 아이돌은 누군가요?


남자 아이돌 좋아하지만 남자로서 좋아하는 건 아니거든요. 엄밀히 좀 달라요. 저는 특히 하얗고 작은, 소동물 같은 남자 아이돌을 좋아해요. 우리나라 남자들 중 예쁜 남자라는 게 없잖아요. 꾸미는 거 자체를 비남성적으로 여기고 피해야 하고, 계집애 같다는 건 치명적인 남성성의 훼손인데, 저는 예쁜 남자들이나 자기들이 예쁜 걸 즐기는 남자들을 보면 그게 너무 재밌고 좋은 거예요. 흔히 말하는 남성성이랑 다른 행동이나 외모가 보존되고 존중되는 직업은 거의 연예계밖에 없기도 하고요. 다른 한편으로 여자 아이돌 중에서도 무대 밖에서는 평범하지만 무대만 올라가면 자아가 바뀐 것처럼 빛나는 사람을 좋아해요. 그런 걸 보면 제가 평생 가질 수 없는 재능이니까 경외하는 심정으로 보는 거죠.


연애하지 않을 자유가 누구에게나 가리지 않고, 특히 남자분들에게도 필요한 이유를 말해주신다면요?


에바 일루즈는 연애 시장에서 남자든 여자든 모두 남자의 인정이 중요하다고 했어요. 물론 여자도 이성에게 얼마나 인기가 있는지가 성적 대상화의 의미로 중요하지만, 남성의 경우 연애 경험은 그 사람의 능력을 입증하는 거예요. 남자들 사이에서는 연애 여부와 연애 경험의 풍부함이 남성성의 입증이고 서열의 기준이 되고요.


특히 연애를 많이 안 한 남자분들하고 대화를 해 보면 콘서트에 한 번도 안 가봤다거나, 미술관이나 전시회에 가 본 적이 없다거나, 자기 옷을 자기가 직접 오프라인에서 사 본 적이 없다거나 하는 의외로 평범한 경험이 없는 분이 많아요. 연인들을 위한 장소라고 자연스럽게 여겨지는 공간이어서 그런 것도 있고, 남자가 그런 문화를 혼자 즐기는 건 남성적이라고 여기지 않는 분위기 때문도 있는 것 같아요. 본인이 남자가, 여자가 연애를 하려면 이렇게 해야 된다는 도식에 갇혀 있을수록 그게 자기와 일치하지 않으면 괴롭거든요. 연애를 하지 않는 게 너무 큰 사건이 되다 보니까 자기를 만나주지 않는 상대방에 대한 억하심정 같은 것도 있고요.


저는 최근 10년 사이 심해진 여성 혐오 현상에는 어느 정도 연애지상주의의 문제도 있다고 봐요. 누군가 내가 구애를 했는데 거절하면 내가 저 사람 취향이 아니구나, 정도가 아니라 자기 존재를 부정당하는 느낌을 받는 거죠. 이것도 에바 일루즈가 현대적인 특징이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사적인 관계와 자기 정체성을 엮어버리는 거예요. 그렇게 함으로써 모욕감을 느끼고, 여자들이 선택한 남자들의 조건을 보고 그 여자한테 조건을 보는 김치녀라는 식으로 엮어서 욕을 하는 경우도 있고요. 연애를 남성, 여성의 특성으로 이분해서 일반화할 게 아니라 자기가 좋아하는 대상의 특성을 먼저 보고, 그 사람이 만약에 자기 취향이 아니라고 했을 때는 그건 그 사람의 취향일 뿐이지, 자기가 그 취향에 일치하지 않는다고 해서 모욕감을 느낄 필요는 없어요.

 
크기변환_815A9073.jpg


남자분들이 상처 받는 것도 어느 정도 연애 관계가 위계적으로 잡혀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자기보다 낮은 계급의, 나에게 있어 거절을 해서는 안 되는 존재가 거절했다는 느낌인 거잖아요.


대중가요에서도 ‘내가 이렇게 많이 좋아하는데’ 식으로 불리는 가사가 많아요. 구애 서사를 보면 상대방이 그걸 원하는지 아닌지와 상관없이 집 앞에서 몇 시간씩 기다리는 방식이 자신의 순정을 입증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거죠. 자기도 연애 상대를 고르고 탐색하고 평가할 수 있다면 상대방도 같은 입장이 될 수 있어요.


이렇게 이야기하면 오해하실 분들을 위해 사족을 붙여야 돼요. ‘모든 남자들이 그런 건 아니다.’


계속 얘기하기 조심스럽긴 한데, 여자 솔로랑 남자 솔로의 결이 다르긴 해요. 평생 상대방의 기분이나 상황을 살피도록 훈육된 여자와, 다른 방식으로 교육된 남성은 아무래도 다르죠. 제가 이렇게 낙인을 찍어버리면 이것도 차별이 되기 때문에 말하기는 어려운데, 연애 전략서도 대개 여자들 대상이거든요. 서점 가서 보면 여자들 대상으로만 관계에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가르쳐 주고, 남자들 대상으로는 주로 픽업 아티스트류의 책이 많이 나와요. 어떻게 하면 빨리 원나잇으로 진도를 뺄 수 있는지 알려준다는 책들. 그래서 저는 ‘여자어’라고 매일 조롱당하는 ‘내가 왜 화가 났는지 몰라?’ 류의 농담을 싫어해요. 사실 감정 노동은 오히려 여자분들이 더 하고 있거든요.


다른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요?


요즘에 동아리에 놀러 가면 스무 살, 스물한 살 어린 친구들이 많아요. 매일 외롭다고 얘기하는데, 왠지 만나야 될 것 같아서, 장점이 하나라도 있으면 좋게 평가해서 만나보라는 주변 말 때문에 덥석 만나지 말라고 해요. 안 그래도 괜찮으니까, 안 만나도 괜찮으니까, 네가 진짜 좋은 사람이랑 만나라. 지금까지 많은 사람이 그러다가 서른 되고 노처녀 된다고 겁을 줬잖아요. 사실 모두가 경험이 있겠지만 완벽한 사람을 원하는 게 아니거든요. 내가 견딜 수 있는 지점과 견딜 수 없는 지점이 있는데, 굳이 견딜 수 없는 지점을 눌러가면서 자신을 연애의 장에 나가라고 밀어낼 필요가 있나? 그냥 이 비연애상태를 즐기면 안 되나? 그런 거죠.

 
크기변환_815A8927.jpg

 

 

다양한 관계를 만들기 위해

 

왜 이렇게 모두가 연애를 강조하고 장려하는 걸까요?


연애를 제외한 사회적 관계가 다 파편화되고 불안정해지니까 무조건적인 자기 편, 언제든 시시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존재를 원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스무 살 초중반에 제가 항상 연애를 실패했던 이유 중 하나가 이 사람은 그냥 여자친구라는 표상이 필요한 거라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요. 이 자리에 내가 아닌 누군가가 들어가도 상관없겠구나, 이 사람은 적당하니까 만나는 거구나 싶었어요.


미디어나 이런 데에서 솔로를 희화화하고 불쌍한 존재처럼 만드는 걸 대한 영향도 많은 것 같아요. 솔로에 대한 이야기만 하면 사람들이 파블로프의 개처럼 반사적으로 ‘나는 솔로인데 먼저 눈물 좀 닦고’, ‘울지 말고 얘기해 봐’ 이런 반응을 먼저 보여요. 한 발짝 쉬어서 생각을 해 보면 우리의 슬픔과 기쁨은 굉장히 유동적이고 연애를 하는 사람도 외롭고 안 하는 사람도 행복하고 충만할 때가 있는데 항상 연애는 행복, 비연애는 짠하고 불쌍하다는 도식으로 나누거든요.


저번에 친구를 만나러 지방에 내려갔는데 친구가 차를 태워서 교외 레스토랑으로 데려갔어요. 교외 레스토랑이니까 커플밖에 없었거든요. 제가 들어가서 아무 생각 없이 다들 데이트하네, 했더니 친구가 갑자기 반사적으로 괜찮아, 우린 둘 다 남자친구가 있으니까 당당해, 기죽지 말자,라는 거예요. 그것도 이상해요. 그러면 연애를 안 하는 사람들은 그런데 가면 내심 기죽어 있어야 하나? 그런 사소한 일상에 숨어져 있는 것들이 사람들이 알게 모르게 옥죄고 있다고 생각해요.


연애의 장이 아닌 다른 공간이나 다른 관계의 장이 점점 줄어들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해요.


맞아요. 연애만이 관계의 전부가 됐어요.


연애 관계가 아닌 다양한 관계를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될까요?


일단 기승전썸이나 기승전연애로 몰아가는 게 빠질 필요가 있어요. 어떤 집단에서든 누구와 조금만 친하게 지내면 자꾸 연애 관계로 몰아가잖아요. 그 사람이 반드시 이성애자고 좀 친하면, 친절하면 호감이 있는 관계라는 전제가 바탕인데, 그게 되게 폭력적이거든요. 연애 관계가 아니면 인간적인 호감을 표시하거나 개인적인 친분을 유지하기도 힘들어요.


여러 이유로 미묘한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어요. 우리가 너무 쉽게 사귀는 거와 아닌 거, 썸인 거와 아닌 걸로 갈라서 분리하려는 시도를 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연애가 아닌 친한 직장 동료, 친구, 서로의 정치적인 견해를 응원하는 지인, 이런 많은 이름의 새로운 관계를 만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요새는 비혼이나 솔로에 대한 말이 많습니다. 주로 돈 때문에 연애와 결혼을 포기한 사람들로 규정하고 있긴 하지만, 확실히 솔로와 비혼을 향한 눈길은 점점 변하고 있는 것 같긴 합니다.


비혼을 N포 세대로 호명하는 건 게으른 시선이라고 생각해요. N포 세대라는 말을 할 때 진짜 기회를 박탈당한 사람은 N포 세대라고 부를 수 있겠죠. 그렇다고 해서 연애를/결혼을 하지 않는 선택을 한 모든 사람을 싸잡아서 전부 N포 세대라고 하는 건 그 안에 있는 다양한 선택이나 개인의 차이를 무시하는 거잖아요. 모든 안 하는 선택을 N포 세대로 호명한다는 건 비연애 사람들에게 연애를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거라고, 누가 좋다고 하면 사귈 거라고 비난하는 경우와 똑같아요.


인기 많으면서 연애를 안 하면 또 눈이 높다고 하겠죠(웃음).


나를 좋다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내가 반드시 만나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잡지에서 예쁜 여자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 이 분은 주변에 구애하는 사람이 많지만 연애를 하기 싫은 거예요. 왜냐하면 그 사람들이 마음에 안 들기 때문에. 그러다가 자기가 좋은 사람이 있으면 또 연애를 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그분처럼 예쁘지 않으면 연애하지 않을 자유를 말할 자유조차 없는 거예요. 3년 동안 익명으로 숨어서 잡지를 발간한 이유도 그중 하나인데, 결국 나중에 얼굴 공개하면 결국 못생겨서 연애 못한 거라고 재단할 게 뻔해서요(웃음).

 
크기변환_815A8925.jpg


만약 한국이 누구도 연애 관계에 대해서 왈가왈부하지 않고 ‘니 연애 니나 재밌지’ 하는 세상이 온다면 어떨까요?


그게 최종적으로 도달하려는 목표이자 결코 오지 않을 미래가 되겠죠? 훨씬 더 새롭고 다양한 관계, 다양한 방식의 공동체나 가족이 만들어지고 성 정체성으로 핍박받는 성 소수자들도 훨씬 자유로워질 거예요. 주변만 해도 동성애자는 아예 비가시화되잖아요. 그런 경우도 저는 비연애인구로 넣는데, 세상이 그걸 연애라고 승인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모두가 연애하라고 몰아붙이지만 그 연애는 승인한 연애만 해당돼요. 예를 들어 누군가 장애가 있는 사람을 만나거나 하면 주변에서 발 벗고 나서서 헤어지라고 할 거잖아요. 그런 식으로 비슷한 조건의 비슷한 계층의 남녀가 만나서 결혼을 전제로 한 건전한 교제만, 소수의 승인된 연애만을 권유하는 시대에서 연애하지 않을 자유랑 다양한 연애들의 출현이 중요하다는 거죠.


저출산 얘기도 해 보죠. 비혼 여성과 동성애자들에게 저출산의 비난 화살이 돌아가는 세태도 있습니다.


항상 얘기해요. 있는 애들이나 잘 하라고. 전국적으로 초등학생 사라진 애들 찾는 거 최근에 난리였잖아요. 있는 애들 밥도 제대로 안 주고 있는 애들도 제대로 못 키우는데, 아이를 키울 능력이 안 되거나 본인이 원하지 않아서 출산과 양육을 중단하기 선택하는 사람들에게 화살을 돌리는 일은 굉장히 무책임한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아무리 비혼주의자와 동성애자가 많아도 애들을 낳으려는 이성애자의 수를 초월할 수는 없어요. 이번에 전업주부의 어린이집 무상 이용시간을 제한했는데, 전업주부라는 게 비정규직이나 파트타임, 대학원생까지 포함하는 개념인데 이런 사람들은 고려 대상에서 제외시키고, 낳고 싶은 사람은 낳고 싶어도 낳을 수가 없게 만들고 비난은 다른 데로 하면 안 되죠. 낳고 싶은 사람만 제대로 지원해 줘도 알아서 해결이 될 텐데 비난을 엉뚱한데 돌리는 거잖아요. 프랑스도 우리 나라보다 동성혼과 동거 커플이 훨씬 비율이 높은데, 출생률도 우리나라보다 높아요.

 
크기변환_815A9196.jpg

 

 

자유는 계속된다

 

연애를 하고 계시잖아요. 어떠신가요?


좋아요. 연애를 함으로써 연애하지 않을 자유에 대해서 오히려 폭넓게 이야기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요.


진짜 강조하고 싶은 건 연애도 노동이거든요. 누구를 만날 때는 그 사람에게 집중하고, 아무리 내가 힘들고 바빠도 그 사람을 이용하지 않는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예의가 있는데, 연애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는 않잖아요. 인간 관계의 조건과 예의를 모두 갖췄음에도 연애에 실패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는 언젠가 나타난다고 생각해요. 그 사람에게 인간적인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니까. 연애 여부가 그 사람의 가치와 매력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는 없어요.


이 책을 추천하고 싶은 사람들을 마지막으로 물어볼게요.


자기도 모르게 연애를 하지 않는 자신을 불쌍하게 여기는 사람들, 연애 안 하는 사람들을 괴롭히는 오지라퍼들, 연애 오지라퍼들에게 시달리는 사람들, 결혼이나 출산처럼 사회적으로 반드시 해야 한다고 강요되는 통과의례에 놓여 있는 사람들. 왜냐하면 연애를 한다고 해서 결코 이 오지랖이 끝나지 않아요. 연애하면 결혼할 거야? 결혼하면 애는 언제 낳을거야? 첫째가 아들이면 딸은 있어야지, 딸이면 아들은 언제 낳을거야? 끝나지 않아요(웃음). 그리고 나서 끝나나요? 딸 결혼 안해? 가 이어지고 손주는 언제 보나? 하고 영원히 끝나지 않을 테니까 여기서 끊어야 해요.


2080 모두에게 어울리는 책이네요.


1080 모두에게요. 연애를 억압받는 사람들도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청소년의 연애도 이 사회에서 금기시되고 있잖아요. 청소년들도 자유롭게 연애를 하고, 하고 싶지 않으면 안 하는 자유가 있었으면 해요.

 

 

이진송의 <나는 하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 칼럼 보러 가기

 

 

 

img_book_bot.jpg

연애하지 않을 자유 이진송 저 | 21세기북스
[연애하지 않을 자유](21세기북스)는 ‘행복한 비연애생활자를 위한 본격 싱글학’을 표방한다. 저자는 연애 여부가 곧 그 사람의 가치인 양 치부되고, 연애 이외의 관계는 무시되는 우리 사회의 연애지상주의에 이의를 제기한다. 타인의 삶에 무차별적으로 개입하여 훈수를 두는 세상의 모든 오지라퍼들에게는 뜨끔한 일침을 가한다.

 

 

 [관련 기사]

- 곽정은 “사랑, 행복한 만큼 힘들어질 수 있어”
- 이기호 “우리는 왜,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을까?”
- 「개여울」의 정미조, 37년 만의 귀환
- 범죄학자 이창무, 박미랑 “살인자는 왜 친근한 얼굴일까?”
- 강헌구 “1등보다 더 행복한 사람이 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이설 “행복하고 화목한 가족, 저만 불편한가요?”

$
0
0

김이설의 소설은 불편하다. 노숙자 소녀는 길 위에서 엄마가 되고(「열세 살」), 지적 장애를 가진 어머니는 남성들의 폭력과 성폭행에 노출된 삶을 살다 떠난다(『나쁜 피』). 생계를 위해 매춘부가 되거나(『환영』) 대리모를 선택하고(「엄마들」), 화염상모반이라는 선천성 질환을 안고 살아가는 인물도 있다(『선화』). 그들이 살아가는 현실은 너무도 어둡고 축축해서, 가슴을 무겁게 짓누른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소설이 남기는 불편함의 잔상은 훨씬 더 길다. 방점은 ‘현실’에 찍혀야 한다. 그들과 같은 이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곁에 있다는 걸 깨달을 때 ‘이 소설은 왜 이토록 불편한 것인지’ 답할 수 있다. 그래서 김이설의 소설은 아프다.

 

소설가 김이설이 6년 만에 펴낸 두 번째 소설집 『오늘처럼 고요히』에서도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진다. “약한 건 쓸모없다. 쓸모없는 건 죽어야지. 죽지 않고 버틴 놈만 사는 거야”라고 말하는 아버지로부터 아들이 물려받은 것은 폭력뿐이고(「미끼」) 열심히 살아 온 대가로 해고 통보와 산업재해를 떠안은 가족은 와해된다(「아름다운 것들」). 먹고 사는 문제는 비정한 선택으로 이어지거나(「흉몽」) 가정 내에서 폭력적으로 군림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한파특보」). 모성까지도 위협하는 생계의 문제 앞에서 그들은 “사는 것이 사는 것의 전부가 되는 게 옳은 것인지, 나는 확신할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아름다운 것들」).

 

책에 실린 아홉 편의 소설들은 ‘고요한 일상’이 얼마나 위태로운 것인지 보여준다. 참담한 현실에서 벗어나려 할수록 점점 더 나락으로 떨어질 때, 다가올 날들에 희망을 걸 수 없을 때,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남은 날들도 오늘처럼 고요히 지나가기를’ 간절히 바랄 수밖에. 소설집 『오늘처럼 고요히』는 그 절박한 마음으로 삶을 버텨온 인물들이 당신의 이웃임을 알려주는 동시에, 그런 세계에서 오늘의 안녕이란 얼마나 깨지기 쉬운 것인지 깨닫게 한다.

 

 

815A9060.jpg

 

 

내 소설을 찢어 불쏘시개로 쓰겠다


작가님의 소설에는 비극적인 사건과 인물들이 등장하는데요. 최근의 뉴스들을 보면 현실에서는 그보다 더 참혹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죠. 특히 아이를 키우는 엄마 입장이다 보니까 아이에 관련된 사건 사고를 들으면 정말 힘들어요. 아이를 낳기 전에는 아이들이 피해자로 나오는 영화나 소설을 볼 수 있었는데, 아이를 낳고부터는 못 보고 못 읽겠어요. 몰입이 너무 강하게 되니까요. 그런 부분이 힘들어지는 것 같아요. 정말 필요에 의한 게 아니면 꺼리게 되죠. 제 소설 중에도 아이가 피해를 보는 이야기들이 두세 편 있었는데, 그런 작품들을 쓸 때가 제일 힘든 것 같아요. 그리고 쓰고 나서도 잘 못 읽어요.

 

「열세 살」과 같은 작품들인가요?

 

「열세 살」도 그렇고요. 그런데 「열세 살」은 하도 퇴고를 많이 해서 덜했는데(웃음), 소아성애자에게 피해를 입은 아이 이야기를 쓴 적이 있거든요. 물론 화자는 아이가 아니라 외부에 있는 시선이었지만, 그 작품을 쓰고 나서도 굉장히 힘들었죠. 이번 소설집에서도 「아름다운 것들」에 아이가 피해를 입는 장면이 있는데, 퇴고를 할 때까지는 냉정하게 작업하니까 그렇게 힘들거나 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이건 설정이고 내가 만든 인물들을 사건 안에 넣어서 움직여야 하잖아요. 그런데 발표를 하거나 책으로 묶인 후에는 굉장히 힘들어져요. 그제야 인물들이 살아있는 느낌이 들거든요. 책으로 묶여서 나온 걸 볼 때는 몰입이 되어 버리거나 감정이 들어가요. 그래서 힘들죠.

 

집필하실 때는 인물들과 거리를 둔다는 말씀이신 것 같은데요. 이유가 궁금합니다.

 

제 소설 속에는 온화한 일상을 사는 사람들이 없잖아요. (인물들의 삶이) 다 힘든데, 작가마저도 밀어내려고 해요. 쓰는 사람인 저마저도 인물의 편을 들지 않고 불쌍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밀어내는 거예요. 독자들이 읽을 때 작가도 내친 인물이라는 느낌이 들어야 한 번 더 눈길이 가지 않을까 싶어요. 제가 화자를 감싸 안으면 자꾸 징징거리게 되죠. 너무 힘들어 보이지 않느냐고, 우리가 손을 잡아주는 게 어떻겠냐고, 자꾸 구걸을 하거나 감정을 억지로 끌고 오는 느낌이 들 것 같아요. 그래서 쓸 때는 아주 모질게 내몰아요. 정말 모르는 사람처럼요. 살아있지 않은 존재처럼 계속 밀쳐내야 소설을 쓸 수 있죠.

 

작가의 말에서 “내가 만든 소설 속 인물들을 모두 한자리로 불러들이고 싶다”고 하셨어요. 막 끓여온 미역국을 대접하고 싶으시다고요.

 

소설을 쓰고 있을 때는 인물들의 감정을 만져주지 못해요. 그런 것보다는 기술적인 부분도 필요한 거죠. 이야기가 매끄러워야 되고 설정에도 맞아야 하는 부분들이 있으니까요. 제가 몰입이 되면 독자들에게 자꾸 손을 벌리게 되기도 하고요. 저는 계속 상황을 만들어주고 인물들을 내쳐야 되는 거죠. 그러고 나서 이야기가 책으로 묶이면 그제야 살아있는 인물 같아요. 저도 읽는 사람 입장에서 공감이 되니까요. 『오늘처럼 고요히』의 인물들은 ‘내일은 행복할 것인가, 내일은 웃을 것인가’에 대해서 자신할 수 없는 인물들이 대부분이잖아요. 제가 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 거죠. 그들을 다 불러다가 미역국이라도 한 그릇 같이 먹으면 어떨까 생각이 들죠.

 

인물들과 모여 앉아 화톳불이라도 피운다면 “기꺼이 내 소설이 박힌 책들을 찢어 불쏘시개로 쓰겠다”는 말도 덧붙이셨는데요. 어떤 의미인가요?

 

문제의 상황이나 사안들에 대해서 실천을 하시는 분들이 계시잖아요. 그런데 저는 아기 엄마라는 핑계로, 지방에 산다는 핑계로, 매체를 통해서 보고 분개하지만 항상 책상 앞에만 앉아 있다는 거죠. 혼자 고민을 하고 있고, 이게 굉장히 큰 뭔가를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아무것도 소용이 없는 일인 거예요. 정말 책상머리에 앉아있는 것밖에 되지 않으니까요. 늘 말로는 ‘그들을 보듬어주겠어, 그들의 이야기를 쓰겠어’라고 말하지만 실질적으로 실천하는 게 없잖아요. 그게 늘 송구스럽고 죄송하죠. 내가 직접적으로 행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물론 모두가 투사가 될 수는 없고 모두가 돌을 던질 수는 없어요. 각자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것들로 실천을 하고 연대를 할 수밖에 없겠죠. 그런데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배부른 사람 같은 거예요. 따뜻한 방 안에서 아이들이 웃는 거 보면서, 남편이 출근 잘 하는 거 보고 안심하면서 지내잖아요. 사실은 그것이 아무렇지 않아야 할 일상인데, 요즘 우리 사회가 아무렇지도 않은 일상이 죄스러운 세상이 되어버렸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하고 있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 자꾸 무용한 소설 같고, 할 수 있는 건 소설밖에 없고... 그런 생각을 늘 하죠.

 

815A9172.jpg

 

 

‘어떡하지?’라고 묻는 목소리를 듣고 싶어요

 

『오늘처럼 고요히』를 읽고 나서 든 생각은 ‘어떡하지? 어떻게 해야 되지?’라는 거였어요. 지금도 우리 곁에는 소설 속 인물들과 같은 사람들이 있는데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제가 소설을 쓰면서 바라는 건 그거예요. 읽는 분들이 그런 고민을 하길 바란 것 같아요. 소설 안에 답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거든요. 소설은 질문을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저는 질문을 하고 독자들은 같이 고민하고, 그러면서 ‘우리는 왜 이렇지? 우리는 왜 이렇게 살지?’라고 질문을 하는 게 제가 가장 바라는 목소리인 것 같아요. 그래서 불편한 이야기들을 쓸 수밖에 없는 거고요. 웃으면서 끝나는 이야기들은 고민할 여지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저는 그런 이야기들이 안 써지는 거죠. 웃고는 있되 문제가 많은 상황에서 웃고 있는 모습이라든지, 그렇게 끝날 수밖에 없는 거죠. ‘지금은 웃고 있어서 괜찮은 것 같지만 이 사람들의 내일은 어떡하지?’ 고민하게 되는 거예요. 「열세 살」 같은 경우에도 아이가 죽지는 않았지만 살아갈 일상이 어떨지 걱정되잖아요. 그런 고민들을 같이 시작할 수 있는 계기, 아니면 자기한테 던지는 질문이 되길 바라요.

 

인물들이 처한 현실을 보면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들도 발견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아름다운 것들」에 보면 해직과 산재로 고생하는 부부가 나오는데, 이 사람들은 정말 열심히 살았거든요. 아무도 함부로 돌을 던질 수 없어요. 그런데 이 부부는 결국 내 손으로 내가 낳은 아이를 죽여야만 하는 상황으로 몰릴 수밖에 없다는 거죠. 이 이야기는 가상으로 만든 게 아니거든요. 현실에 존재하고 있는 이야기이고 저는 각색만 했을 뿐이에요. 소설이라고 하기도 죄송할 정도로요. ‘이들이 정말 열심히 살았는데 왜 불행해야 되지, 왜 스스로 죽어야 하지’ 이런 질문을 해보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이나 사회의 문제인 거죠. 아무도 이들에게 ‘너의 잘못이야, 네가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이야’라고 몰아갈 수 없다는 거예요. 그런 것들이 가장 답답하고 속이 상하죠. 소설가의 자아로서도 힘든 부분이고, 그걸 배제하고 대한민국의 한 시민으로서도 굉장히 힘든 거고,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는 더 힘든 문제예요.

 

「미끼」와 「한파 특보」에 등장하는 아버지는 생존에 대한 강박에 사로잡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것이 폭력에 대한 무감각으로 이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 세대는 부모한테 받은 것 없이 다 자신이 일궈서 이뤄냈잖아요. 그걸 전부 사회에 환원하지 않고 자신의 아이에게 물려줘야만 했고요. 없는 데에서부터 시작해서 모으고 모아서 물려줘야 하니까 악착같을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해요. 잠깐 정신을 놓쳤다가는 뺏기기 십상인 세상이니까요. 그러기 위해서 나와 힘이 비등한 사람과는 같이 갈등하고 싸웠을 테고, 나보다 약한 사람은 빨리 없애려고 했겠죠. 그래야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으니까요. 그 세대 분들을 보면 안타깝죠. 먹고 살기가 힘들고 일단 살지를 못하는데 대의나 인권 같은 것들이 어떻게 들어가겠어요. 물론 모든 분들이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그 세대의 특징이 그런 부분도 있지 않나 생각이 들어요.

 

소설 속 인물들이 극단으로 치닫게 되는 건 본인들의 선택인가요? 아니면 작가님께서 밀어붙이시는 건가요?(웃음)

 

단편 같은 경우에는 제가 컨트롤이 돼요. 단적으로 이야기하면 ‘이 인물은 죽어야겠구나, 살아야겠구나, 사는 데 아프게 살아야겠구나’ 이렇게 결정을 할 수가 있는 거죠. 그런데 장편의 경우는 인물들이 스스로 간다는 걸 알 것 같기도 해요. 제 뜻대로 잘 안 될 때가 분명히 있더라고요. 그런데 단편은 워낙 분량이 적고 그 안에서 압축해서 보여줘야 하니까 대체적으로 제가 결말을 만들어낸 상태에서 정해진 길로 가게끔 쓰기는 해요.

 

‘정말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야속하게 느껴지는 인물은 없으세요?

 

「복기」에서 ‘정미’는 조금 안타까워요. 물론 소설 안에서는 각각의 마땅한 논리가 있고 그에 따라 결정을 내려서 선택을 하지만, 실제로 제 옆에 그런 인물이 있었다면 그것이 아닐 수도 있다고 잡을 것 같아요. 잡아야 될 인물인 것 같아요, 정미는. 사실 소설을 쓸 때는 정미보다는 정미가 죽고 나서 남편의 행동들을 보여주는 데 포커스를 맞췄었는데요. 소설의 인물들 중에서 안타까운 사람이 누구냐고 질문하신다면 정미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정미를 보면 ‘아무리 이해 받지 못하고 어떤 문제가 있더라도 조금 더 뻔뻔하게 살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이해를 못하는 건 아니지만 조금 안타까워요.

 

「아름다운 것들」의 주인공은 어떤가요? 자신의 손으로 아이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데, 같은 엄마로서 밉지는 않으셨어요?

 

그 소설은 두 가지 버전이 있었어요. 밤새 죽이려고 생각만 하다가 끝나는 결말도 고민했었는데, 저는 최악의 상황을 선택한 거죠. 소설을 위해서는 선택을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 소설을 쓸 무렵에 일가족이 다 같이 죽는 상황이 많았거든요.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그때는 매체에서 동반자살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사실은 자살이 아니잖아요. 부모가 아이들을 살해하고 자기가 죽은 건데, 살해 후 자살인 거죠. 그런데 부모라면 내 아이 손톱에 박힌 가시 하나를 봐도 가슴이 아픈데, 내가 내 아이를 죽여야만 하는 상황이라는 건 정말 갈 데가 없는 상황이거든요. 그래서 「아름다운 것들」에서 여자의 선택도 안타깝지만 마땅한 결정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것이 마땅한 결정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회에 살고 있는 게 속상하고 화가 나는 일인 거죠. 우리나라에서 아이가 홀로 남겨졌을 때, 이 아이가 과연 제대로 클 것인가에 대해서 우리는 아무것도 확신을 못 하잖아요. 그런 상황이라면 이것은 과연 누구의 문제인지 고민할 수 있는 거죠. ‘그 엄마한테 과연 돌을 던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말씀하신 것처럼 주인공을 탓할 수만은 없는 이야기였어요. ‘오죽하면 저런 선택을 할까’ 싶더라고요.

 

「아름다운 것들」은 책에도 명시한 것처럼 <시사IN> 기사를 보고 쓴 소설이에요. 제가 가상으로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기사에 있던 여러 에피소드들을 짜깁기한 거거든요. 실제로도 이렇게 다치고 상처받고 가족이 와해된 분들이 더 많다는 거죠. 그 분들은 실제 삶 속에 살고 있는데 저는 있는 이야기들을 가지고 와서 소설로 쓰기만 한 거예요. 그렇게 따지면 저는 정말 아파하고 있는 것도 사치인 것 같고 죄스럽죠. 그런데 그 분들 이야기를 꼭 한 번 하고 싶었어요. 그 분들에게 엄청난 손해배상을 요구하고, 경찰들도 파손에 대한 책임을 묻고, 이런 현실들이 너무 안타까워요. 그것도 강자가 자기 밥그릇을 챙기기 위해서 약자를 누르는 일인 거죠. 그런 구조에 우리는 계속 소비되고 있는 거잖아요. 큰 집단의 한 마리 개미로 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데, 그런 개미의 삶도 하나하나 들여다보면 다 사연이 있고 아프잖아요. 그런 것들을 자꾸 봐야 하는 게 제가 소설을 쓰는 일이지 않나 생각이 들어요.

 

815A8997.jpg

 


행복하고 화목한 가족, 저만 불편한가요?

 

작가님의 소설에는 가족 안의 문제들이나, 그로 인해 고통 받는 인물들이 많이 등장하는데요. 가족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가족이라는 게 사회의 가장 작은 단위잖아요. 우리는 가족에 대해서 행복해야 하고, 하나로 뭉쳐야 되고, 쉬어야 할 곳이고, 모든 걸 다 믿어도 되고 기댈 수 있는 혈연 집단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주변을 보면 가족이 다 그렇지는 않잖아요. 가족이 수렁이 되어서 개인이 발목 잡히게 되는 가족이 분명히 있거든요. 사실 저는 항상 행복한 가족, 화목한 가족이라는 그림이 굉장히 불편했었어요. 제 안에는 그에 대한 반발력이 있었던 것 같아요. 엄마와 아이 둘만 살든, 할아버지 할머니와 아이가 살든, 이혼한 부모와 사는 아이든, 가족처럼 잘 사는 게 좋은 거잖아요. 그리고 가족보다 친한 친구가 더 위로가 되고 더 기댈 수 있는 경우도 많잖아요. 그런 걸 생각해 보면 가족이 대물림을 위한 기계적인 공간 같은 느낌도 들어요.

 

가족 안에서 비롯되는 문제들에 관심을 가지시는 이유가 있나요?

 

제가 아이를 키우면서 든 생각인데요. 아이들은 처음에 정말 백지와 같거든요. 그런 아이에게 감정을 입히고 가르치고 아이를 만들어가는 역할이 집이고 가정이고 부모예요. 저는 환경에 따라서 분명히 한 개인이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어떤 인물을 그릴 때, 이런 인물이 나올 수밖에 없는 구조를 항상 가정에서부터 시작하게 된 것 같아요. 인물의 문제적인 부분이나 처하게 된 상황이 가정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보는 거죠. 제 소설에서는 부모라든지 자식이라든지 다 엮여 있잖아요. 그런 부분이 필요하지 않은 소설도 분명히 있는데 제 소설에는 그게 빠져 있지를 못해요. 제가 이미 전통적인 가족관에 길들여져 있고 그것이 때로는 불편하고 힘들어서 ‘이게 아닐 수도 있지 않나’ 하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것 같기도 해요.

 

작가님 개인에게 가족이 가지는 의미는 어떤 건가요?

 

소설 쓰는 김이설에게 가족이라는 건 개인의 악의 기원일 수도 있고, 상처의 뿌리일 수도 있고, 사건 상황의 시발점일 수도 있는데요. 소설 쓰지 않는 생활인으로서 저에게 가족은 일을 할 수 있게끔 하는 공간이거든요. 그러니까 굉장히 이율배반적인 거예요(웃음). 제가 등단하기까지 10년 정도 걸렸는데, 아버지가 저한테 ‘왜 돈을 안 벌어 오냐’ 라거나 ‘왜 나잇값을 못하냐’고 말씀하신 적이 없어요. 고급 룸펜이라고 이야기하시기도 했지만(웃음), 뭐라고 하시거나 내보내지 않으셨거든요. 제가 골방에 파묻혀서 소설을 쓰겠다는 열망을 키울 수 있었던 건 부모님의 아량 덕분이었던 거죠. 그리고 소설을 쓰기 시작한 이후에는 집에서 글을 쓰다 보니까 보통의 전업 주부들과 조금 달라요. 집안일은 완벽하게 해내기 어려운 부분이 있고, 그래서 아직도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는 것 같아요. 결과적으로 저는 가족들의 이해, 믿음, 희생을 받아서 소설가로 살고 있는 거죠. 그런데 가족의 힘을 받아서 가족들이 와해되는 소설을 쓰고 있으니까, 이런 것들이 조금 아이러니하죠.

 

불행한 가족사를 가진 인물들에 대해 쓰시니까, 독자 분들 중에는 ‘혹시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이 녹아든 건가’ 하고 짐작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 같아요(웃음). 

 

『나쁜 피』와 두 번째 단편집이 나왔을 때는 가끔 기자님들이 물어보셨어요. 조심스럽게 ‘혹시 작가님의 성장기에…’ 하고요(웃음). 그런데 제가 ‘아니요, 저는 너무 밝게 자랐어요’라고 말하는 것도 조금 아닌 것 같고, 그렇다고 ‘저도 암울했어요’ 할 수도 없잖아요. 그래서 제가 사람들을 만나면 가족 이야기, 남편과 아이들 이야기를 많이 해요. 아줌마이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지만(웃음), 누가 이야기하길 ‘너는 너의 소설과 너의 삶이 다르다는 걸 계속 밝히고 싶은 욕망이 있는 것 같아’라고 하더라고요. 그럴 수도 있겠구나, 싶은 생각도 들더라고요.

 

2011년에 한 인터뷰에서 말씀하시길 “10년쯤 지나면 아이에게 엄마가 쓴 소설을 읽어보라고 할 생각”이라고 하셨어요. 아직 아이들은 소설을 읽어보지 못했겠네요.

 

그렇죠. 큰 아이가 궁금해 해요. 언제 읽을 수 있냐고요. 그 인터뷰를 할 때는 ‘10년 뒤에 읽을 수 있어’라고 했다면 지금은 ‘네가 똑똑한 소녀로 자라면 고등학교 때도 읽을 수 있어’라고 말해요. 책도 안 읽고 독해력이 부족하면 성인이 돼서 읽을 수 있다고요. 지금은 왜 못 읽냐고 물어보면 ‘무서운 장면도 많고 그래’라고 하죠. 그러면 ‘왜 무서운 장면들을 많이 만들어?’라고 물어보는데, 그러면 ‘만화 보면 항상 악당이 나오지 않냐’고 하면서 ‘이야기를 재밌게 만들고 극적으로 만들기 위해서, 그리고 힘든 상황이 닥쳤을 때 주인공이 어떻게 헤쳐 나가는지를 보여주고 같이 생각하기 위해서 나쁜 상황들과 나쁜 인물들을 만드는 거야’라고 설명해요. 그래서 저희 딸은 빨리 고등학생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죠. 엄마 소설을 읽고 싶어 하죠. 아이들이 어려서 잘 모를 때는 파지 뒷장에 그림을 그리기도 했어요. 그런데 언젠가부터 파지도 관리를 해요. 딸이 읽을 수도 있으니까요. 내용 자체는 문제는 없는데 대사에 나오는 욕이라든지 세밀한 묘사를 아직은 접하면 안 될 나이니까요. 그런 부분들은 조심하고 있죠. 그런데 작은 아이는 관심이 없어요(웃음).

 

아이들이 엄마의 작품을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생각해 보셨겠죠?

 

그럼요, 많이 하죠. 어떤 반응이라기보다, 아이가 ‘엄마가 이런 소설을 쓴 이유를 이해할 것 같아’라고 말할까 봐 더 걱정이죠. 제가 여자로 살아온 40년과 저희 딸들이 살아갈 40년은 달라야 할 텐데 그 차이가 크지 않을 것 같아요. 그게 걱정이고 안타깝죠. 우리 아이들이 똑똑한 어른으로 컸다면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은 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해해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해를 못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인 거고요. 이건 엄마의 영역이라기보다는 소설 쓰는 김이설의 영역이니까요. 다만 아이가 커서 소설을 읽을 때도 달라지지 않은 세상이라면, 그 점이 더 절망스러울 것 같아요. ‘엄마, 예전에는 정말 이랬어?’라고 질문해야 되는데 ‘맞아, 요즘 이렇지’라고 읽히면 먼저 산 세대로서 미안해할 일인 것 같아요. 속상한 일인 거죠. 나아지지 못했으니까.

 

아이들이 소설을 읽은 후에는 ‘세상은 아름답지만은 않은 곳’이라고 이야기해주실 건가요?

 

그렇죠. ‘세상은 아름답지 않고 힘들어, 그런데 힘든 상황에서도 가치를 찾는 건 너 자신이어야 돼’라고 가르쳐야 할 것 같아요.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는 ‘세상은 무지갯빛 찬란한 곳은 아니고, 밝은 곳이 있으면 어두운 것이 있고, 항상 이면들이 있다’고 이야기하죠.

 

815A9043.jpg

 

 

‘더 날카롭고 많이 불편한’ 단편을 쓰겠습니다

 

「미끼」와 관련해서 “그동안 보여준 소설의 정점 같은, 더이상 비슷한 작품을 쓸 수 없도록 여한 없이 쏟아부었다”라고 말씀하셨어요. 쓰고 싶으셨던 작품과 가장 닮은 모습이라고 봐도 좋을까요?

 

그런 건 아니고요. 아주 많이 거친 작품이라는 의미로써 정점이었던 거예요. 아주 난폭한 소설을 한 번 써보고 싶었어요. 그런 의미에서 이야기한 거고요. 제가 난폭한 이야기를 추구하는 건 아니에요. 「미끼」는 ‘아주 기분 나쁘고 불편한 이야기를 작정하고 써보고 싶어서’ 썼던 거예요. 그런데 그것만을 위한 이야기는 아니었던 거고요. 내재되는 폭력, 폭력을 유지하기 위한 부분들, 폭력은 결국 폭력으로만 극복할 수 있는 부분들, 그런 걸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낚시를 하다 보면 바늘이 물고기를 채야 끌려오거든요. 그러면 물고기들이 바늘에 걸린 부분이 너덜너덜해져요. 바늘이 입에 물려야 하는데 가끔 지느러미에 물리기도 하고요. 「미끼」는 그런 의미로 작정을 하고 써봤던 소설인데, 표현하는 부분들이 굉장히 되게 힘들었어요. 자연스러운 욕설을 써야 하는 게 가장 힘들었고요. 말로는 자연스러운 욕인데 글자로 썼을 때는 맛이 안 나는 부분도 있어서, 대화를 만들 때 제일 힘들었던 것 같아요.

 

사회적 약자로서 여성이 폭력에 노출되는 순간도 종종 묘사하시잖아요. 그런 장면을 쓰실 때도 많이 괴로우실 것 같아요.

 

그렇죠. 괴로워요. 그런데 쓸 때는 괴로워하지 않으려고 해요. 말씀 드렸던 것처럼 인물들과 거리를 두고 무생물 다루듯이 해야 하거든요. 작가가 여자라거나 남자라는 걸 인식하지 못한 채 상황으로만 보여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그래서 쓸 때는 이 인물이 아이인지 여자인지 제가 인식을 안 하려고 하고요. 감정을 넣지 않으려고 애를 많이 써요. 독자들이 제 소설 속의 여자들을 보고 불쌍한 존재들, 약한 존재들이라는 측은한 마음을 갖기를 바라는 것 같지는 않아요. 소설을 쓸 때 제 인식 안에서는 사회의 한 약자일 뿐인 거지 여자라고 표현은 안 되는 것 같아요. 제 스스로의 느낌은 그래요. 그게 어떻게 전달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제가 쓸 때의 입장은 약자 혹은 끝에 있는 가장 연약한 존재, 이런 느낌인 것 같아요.

 

작가님의 소설은 짧은 문장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 느낌이에요. 술술 써 내려가신 게 아니라, 굉장히 많이 다듬고 깎아내는 과정을 거치셨을 것 같은데요. 실제로는 어떠셨나요?

 

퇴고할 때 최대한 많이 버리려고 하죠. 정말 경제 원칙에 입각해서 쓰고 싶어요. 되도록이면 수식어를 안 넣고 싶고요. 물론 그게 소설마다 달라야 하는 건 맞아요. 아름다운 장면, 부드러운 장면에서는 수식어도 넣어야 하고 부드럽게 써야 하는 게 맞죠. 그런데 저의 소설은 대체적으로 핍진한 이야기들이 많고 건조한 느낌이기 때문에 문장을 그렇게 쓸 수밖에 없으니까 하는 거예요. 퇴고를 할 때는 되도록이면 접속어도 빼내고, 가장 기본적인 문장 연습을 하는 것처럼 해요. 이 문장이 없어도 이야기가 된다고 판단되면 버리고요. 어려운 한자어도 안 쓰고 싶어 하죠. 최대한 짧고 건조하고 수식어 없고, 그래야 그 상황이나 인물이 건조하고 핍진하다는 게 더 잘 부각될 거라고 생각이 들어요. 되도록이면 군더더기가 없기를 바라죠.

 

등단 후 당선소감을 쓰실 때 ‘계속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등단 10주년을 맞은 지금은 어떤 생각을 하고 계세요?

 

10년 뒤에도 살아남아 있어야 할 텐데, 라는 생각을 하고요(웃음). ‘좋은 소설이 무엇일까’라는 고민이 깊어지는 것 같아요. 말씀 드렸던 것처럼, 지금은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 좋은 소설 같아요. 그런데 조금 더 시간이 지나고 나면 생각이 바뀔 수도 있을 테고, 조금 더 견고해지는 생각들이 생기겠죠. 그런데 계속 그 고민들을 해야 될 것 같아요. 이제 하면 너무 늦었나 싶기도 한데 ‘좋은 소설이 무엇일까’가 늘 큰 문제이고 걱정거리이고 ‘좋은 소설은 어떻게 써야 하나’라는 개인적인 고민도 계속 깊어가겠죠. 그런데 나이 들어서까지도 계속 현장에서 쓰고 있는 사람이고 싶어요. 어떤 큰 걸 바라는 게 아니라, 쓸 수 있으면 좋겠어요.

 

815A8943.jpg

 

『오늘처럼 고요히』라는 제목으로 여덟 편의 서로 다른 작품이 엮였습니다. 이 한 권의 책이 가지는 단일한 색깔이라든지 느낌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하나의 색깔로 보여서 그게 김이설의 색깔이 되는 것도 좋은데, 그것이 자기 복제처럼 보일까 봐 염려되는 부분이 있기는 해요. 스토리가 다 다르지만, 여하튼 현실의 문제로 궁지에 몰려서 나락으로 빠지는 인물들의 이야기라고 했을 때, 다 거기에 부합되는 작품들이잖아요. 자기 복제라는 지적을 받는 것이 걱정이죠. 그러지 말아야 할 텐데, 하고 고민하고 있고요. 어떤 분이 쓰신 글을 보니까 자기 복제라는 이야기를 하셨던데, 그 표현이 오히려 시원한 느낌 같은 걸 줬던 것 같아요. ‘남들이 알면 어떡하지’ 하고 혼자 속으로만 조심하던 부분을 탁 터뜨려 주니까 오히려 시원했다고 해야 할까요. 그런 점에서 ‘계속 정신을 번쩍 차려야겠구나, 안일하면 안 되겠구나’ 하고 자각하고 다잡는 계기가 되는 단편집이기도 한 것 같아요. 『선화』 같은 경우는 많이 유한 작품이었는데, 유해지겠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같은 시선을 쫓되 색깔만 조금 다르게 해도 되지 않을까, 그렇게 해야 되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고 있죠.

 

다음 작품도 준비 중이신가요? 

 

<악스트 Axt>에 연재 중인 소설이 노인 분들에 대한 이야기예요. 그래서 지금은 늙음에 관한 이야기를 읽고 노년의 삶에 관한 책도 보고 있고요. 다음 작품은 그 소설이 완결이 돼야 할 것 같아요. 가을까지는 완결을 할 계획이고요. 단편들도 올해 써야 될 것들이 있는데, 책도 나오고 하니까 마음이 조금 흐트러진 부분이 있어요. 마음을 빨리 다잡아서 더 날카롭고 많이 불편한 단편들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웃음). 
 

 

 

img_book_bot.jpg

오늘처럼 고요히 김이설 저 | 문학동네
제3회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부고」와 2016년 이상문학상 우수상으로 선정된 「빈집」을 포함해 총 9편의 소설이 수록된 이번 소설집을 통해, 김이설은 그 벗어날 길 없는 세계에서 삶은 어떻게 이어질 수 있는가, 아니 그런 삶도 과연 지켜나갈 만한 것인가, 라는 둔중하고도 무서운 질문을 던진다.

 

 

 [관련 기사]

- 곽정은 “사랑, 행복한 만큼 힘들어질 수 있어”
- 이기호 “우리는 왜,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을까?”
- 「개여울」의 정미조, 37년 만의 귀환
- 범죄학자 이창무, 박미랑 “살인자는 왜 친근한 얼굴일까?”
- 강헌구 “1등보다 더 행복한 사람이 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미움 받을 용기 2』를 펴낸 진짜 이유

$
0
0

베스트셀러가 된 책에는 갖가지 이유가 있다. 저자, 콘텐츠, 편집, 마케팅 등 여러 요인이 있다. 지난 2014년 11월에 출간된 『미움 받을 용기』는 역대 최장기간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하면서 현재까지 115만 부가 팔렸다.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았던 ‘아들러 심리학’의 본질을 이야기한 책으로, 출간 이후 한동안 아들러 돌풍이 일었다. “책 때문에 인생의 가치관이 바뀌었다”, “남들 시선을 예전만큼 의식하지 않게 됐다”는 리뷰도 쏟아졌다. 하나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는 독자도 있었다. 알 것 같으면서도 어려운 ‘아들러 심리학’에 의문을 던지는 사람도 있었다.

 

『미움 받을 용기 2』는 3년 전 아들러의 사상에 감화됐던 청년이 철학자를 다시 찾아와 항의하면서 시작된다. “당신의 말은 모두 거짓말이다. 아들러의 사상은 현실 사회에서는 적용하기 어려운, 그저 이상론에 불과하다”며 청년은 분노한다. 아마 많은 독자가 이 장면에서 뜨끔할 것이다. 나와 다르지 않음에 위안을 받을지도 모른다. 『미움 받을 용기 2』는 애초 계획한 책이 아니었다. 두 저자 기시미 이치로와 고가 후미타케를 만나, 출간 이유와 우리는 왜 변하지 못하는가에 대해 물었다.

 

1.jpg

고가 후미타케, 기시미 이치로(오른쪽)

 

 

이제는 행복해질 용기를 가질 때


『미움 받을 용기 1』이 출간된 후, 한국 독자들을 직접 대면할 기회가 많았다. 한국 독자들이 저자에게 가장 많이 던진 질문은 무엇이었나?

 

기시미 이치로가장 많다기보다는 특징적인 것이 있었다. 자기 인생을 걸어가고 싶은데, 주변의 저항이 너무 심해서 힘들다는 이야기였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일본 청년들도 많이 한다. 하지만 한국 청년들은 저항의 상대로 부모님을 많이 꼽았다. 어떻게 하면 효도할 수 있는지, 불효자가 되기 싫어하는 독자들이 많았다. 일본 청년들이 부모를 우습게 생각하진 않지만, 이렇게까지 부모의 의견을 크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질문 중에 부모 이야기가 많았던 게 놀라웠다.

 

고가 후미타케작년 3월에 처음 한국에 왔는데, ‘헬조선’이라는 표현이 있더라. 놀라웠다. 이런 상황에 있는 청년들에게 어떤 말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해 많이 생각했던 것 같다.

 

전작의 성공이 있었지만, 처음부터 후속작을 쓸 생각은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편을 쓴 이유가 궁금하다.

 

고가 후미타케『미움 받을 용기 1』이후 한국에도 아들러를 다룬 책이 상당히 많이 나왔다. 하지만 제대로 아들러 심리학을 연구하지 않은 사람이 쓴 책도 있었고, 아들러의 생각이 잘못된 방향으로 해설된 부분도 있었다. 아들러의 생각이 오해 되는 게 두려워서 결정판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기시미 이치로아들러 심리학의 기법만 배우려는 사람이 많았다. 그런 사람들은 “칭찬을 하면 안 된다. 감사의 인사를 해야 한다” 정도로만 아들러를 해석하고 끝냈다. 왜 칭찬을 하면 안 되는지, 고맙습니다라는 인사를 왜 해야 하는지. 의미를 모르는 사람이 많았다. 그것을 제대로 배우지 않으면 아들러 생각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2편을 쓰자는 이야기에 동의했다. 2편은 아들러 심리학을 이해할 뿐 아니라 실천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서 시작되어 ‘행복해질 용기’를 갖도록 집필했다. 책을 통해 독자들이 인생의 과제에 용기 있게 대응할 수 있는 계기가 생긴다면, 그 이상 기쁜 일이 없을 거다.

 

2편 역시 철학자와 청년의 대화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아들러 심리학을 접한 청년은 직업을 교사로 바꾸면서까지 인생의 변화를 시도하지만, 3년 후 다시 철학자를 찾아온다. “아들러를 버리느냐, 마느냐”로 고민한다는 청년에 모습에 독자들은 당혹스럽다.

 

고가 후미타케 3년 동안 아들러에 대해 배운 것들을 실천했지만 잘 안 됐으니, 청년 입장에서는 화가 났을 거다. 배신 당한 느낌도 들었기 때문에 과격한 모습도 보였다. 어떤 사람이 짝사랑을 하는 상대에게 고백했지만 사귐을 거부 당했을 때, 상처도 받지만 화가 나면서 상대가 미워진다. 이와 마찬가지였을 거다.

 

삶에 자신감이 없고 위축됐던 청년은 꽤 노력했다. 하지만 왜 변하지 못했을까?

 

기시미 이치로조금도 변하지 않은 건 아니다. 아마 배신 당했다고 생각했으면 철학자 앞에 나타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청년이 철학자를 다시 찾아온 시점에서 이미 결과가 나온 것과 마찬가지다. 아들러 심리학이 가능성이 없다고 했으면 청년은 철학자를 찾아오지 않았을 거다. 이건 청년뿐 아니라 아들러 심리학을 배운 많은 사람이 경험하는 일이다. 독자들은 청년이 예전과 다르지 않다고 느낄지 모르지만, 맨 처음 철학자와 만났을 때보다는 발전한 상태에서 있었을 거다. 우리가 나선계단을 올라갈 때, 다시 돌아온 것 같으면서도 전보다는 높은 데 있지 않나? 그래서 철학자가 청년이 나타났을 때, “당신은 이전의 당신과 다르다”고 말할 수 있었다.

 

4.jpg

 

독자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했으면 2권을 찾지 않았을 것 같다.

 

고가 후미타케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도저히 못 하겠거나 알고 싶지 않다면, 2권을 읽을 필요가 없을 테니까.

 

1권에서 “트라우마라는 표현을 자제하자”고 강조했다. “과거의 일이 영향을 아주 안 미치진 않지만, 너무 쉽게 트라우마 때문이라고 말하지 말라”고 했다. 중요한 지적으로 보였다.

 

기시미 이치로트라우마가 크다고 말하는 사람은 자기가 선택하지 않은 데서 큰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정신의학자 아들러는 의사가 된 후 사회의학에 관심을 가졌지만, 세계1차대전에 군의관으로 참전하면서 전쟁신경증을 진단하는 일을 해야 했다. 사람을 죽이는 일에 대해 마음 아파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들러는 “트라우마는 없다”고 단정하게 된다. 사람은 뒤가 아닌 앞으로 보고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아들러 심리학이 대중에게 많이 알려진 후, “아들러 심리학은 너무 정이 없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많았다. 하지만 슬픈 일을 겪더라도 앞을 보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게 사람이다. 가족이 큰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고 치자. 세상이 뒤바뀔 만큼 무척 힘든 일이지만, 유족이 그 일 때문에 너무 힘들게 살아가면 하늘에 있는 가족이 더 슬퍼하지 않을까. 그래서 미래를 향한 발전으로 방향을 맞춰야 한다.

 

극복을 잘하는 사람도 있고, 시간이 극히 많이 걸리는 사람도 있다. 두 사람의 차이는 무엇일까? 성격, 노력의 강도 때문일까?

 

기시미 이치로 인생의 과제를 해결해 나가야 하는 사람은 재난이나 전쟁을 겪고서 회복하는 속도가 더 빠르다. 아들러를 연구한 학자가 한 말에 의하면, “일을 안 하거나 직장을 다니지 않는 사람은 큰 사건을 핑계로 삼아 회복 속도가 느리다”고 말했다. ‘전쟁신경증’은 전시에 군대 내에서 발생한 신경증의 총칭이다. 사람들이 필요 이상으로 전쟁신경증 증상이 심해지지 않도록 도울 필요가 있다. 아들러는 전쟁신경증이 있는 사람의 생활방식을 잘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인생의 과제를 풀어가려는 자세가 소극적이면, 다른 증상까지 겪을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필요에 따라 새로운 생활방식을 택할 필요가 있다. 과제에서 도망가지 않고 맞서나갈 용기를 갖도록 재교육을 해야 한다. 재교육을 받은 사람은 상처를 더 빨리 회복할 수 있다.

 

5.jpg

 

 

고가 후미타케쉬운 사례로 이야기한다면, 연애를 하다가 헤어진 사람이 있다고 치자. 여자는 헤어진 남자친구의 안 좋은 버릇을 이야기하면서 욕을 한다. 하지만 새로운 남자친구가 생기면 전 남자친구 이야기를 전혀 안 하고, 그러다 새 남자친구와 관계가 원만하면 전 남자친구와의 좋은 일도 떠올린다. 그래서 아직도 전 남자친구를 욕하고 있으면 아직 그 남자친구에게 집착하고 있는 거다. 또 전 남자친구의 좋은 점이 생각난다면 그 남자친구에게 해방되고 새로운 길로 걸어가고 있다는 증거다. 대인관계에서 얻은 상처는 대인관계에서 치유할 수밖에 없다. 혼자 방에 갇혀 있으면 상처는 점점 곪는다.

 

기시미 이치로 연인이면 조금 쉬울 수 있지만, 상대가 부모라면 어려울 수 있다. 어릴 적 나는 아버지와의 관계가 좋지 않았다. 아버지한테 계속 얻어 맞은 일을 계속 생각해냈다. 왜 이런 생각을 했냐면, 아버지와 관계를 좋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늙고 치매증이 걸리셨다. 자신의 과거를 다 잊어버렸다. 그래도 자식이니까 나는 아버지를 간호할 의무가 있었다. 사이 좋게까지는 아니더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했다. 아버지와 안 좋았던 기억을 말한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고 생각했다. 기억도 없어졌기 때문이다.

 

성격은 생존 본능과 관계가 있다는 이야기가 있다. 생존하기 위해 이런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는 의미다. 두 저자는 이 이야기에 동의하는지 궁금하다.

 

고가 후미타케 성격을 안 바꾼 게 아니라 안 바꿔야겠다고 결심한 거다. 성격을 바꾸려면 다음 순간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상치 못하니까, 불편하더라도 지금 성격을 유지하면 편하니까, 그래서 ‘생존 본능’이란 표현이 나온 것 같다. 나는 초등학교 6학년까지 전학을 다섯 번 해야만 했다. 아버지의 직업 때문이었는데 새로운 학교에 갈 때마다 성격이 바뀌었다. 어떤 학교에서는 우등생, 다른 학교에서는 개그맨이 됐다. 시골 학교로 전학 갔을 때는 나를 도시 아이라며 괴롭히려고 했다. 괴롭힘을 당하지 않으려고 대인관계를 위해 성격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어떤 성격으로 지내야 잘 적응할 수 있을지, 좋은 캐릭터를 연구한 거다.

 

기시미 이치로 선생도 작가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성격을 바꿨을 것 같나?

 

기시미 이치로새로운 학교에 가면 아는 사람이 전혀 없기 때문에 새로운 사람으로 되려고 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일주일 정도 시도하다가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웃음) 학교를 전학하면서도 성격을 크게 바꾸긴 어렵지 않았을까 싶다. 항상 같은 지역에서 살았기 때문에 예상밖에 할 수 없다.

 

고가 후미타케다섯 학교를 다니면서 어떤 성격이 나에게 더 잘 맞고, 안 맞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일종의 다 내 성격이다. 다만 상황에 따라 어떤 성격이 더 도드라진 것일 거다. 지인 중에 굉장히 내향적인 성격이었는데 뉴욕으로 이주하면서 완전히 성격이 외향적으로 변했다. 소극적인 성격으로는 뉴욕에서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이었을 거다. 일종의 환경, 대인관계가 바뀌면서 성격이 바뀐 경우라고 볼 수 있다.

 

7.jpg

 

 

진지하게 사는 사람은 고민하지 않는다


고가 후미타케 작가는 영화감독을 꿈꾸다 출판사에 들어간 후 작가의 길을 걷게 됐다. 아들러를 알게 된 후, 인생의 변화가 있었다면 무엇인가.

 

고가 후미타케아들러를 알게 되면서 ‘모든 일은 내가 택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내향적인 성격을 갖게 된 이유는 어린 시절에 전학을 자주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또한 내가 택한 성격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앞으로 내가 살아가는 모습은 내가 결정할 수 있다는 매우 중요한 진리를 깨달았다.

 

기시미 이치로 선생은 아들을 키우면서 아들러를 알게 됐다고 밝혔다.

 

기시미 이치로그렇다. 서른 살에 아들이 태어났는데 양육이라는 게 너무 어려웠다. 부모가 말하는 대로 아이가 따라주지 않았다. 아이를 키우면서 너무 고생을 하니까 친구가 아들러 심리학을 추천했다. 몇 가지 실천하던 중에 아들하고 관계가 좋아지면서, 아들러를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들의 인생에 있어서도 아들러가 영향을 미쳤나?

 

기시미 이치로매우 크게 영향을 미쳤다. 우선 아주 자립적인 아이가 됐다. 아들이 초등학생 때 열쇠를 목에 걸고 다녔다. 집에 갔을 때 부모가 없으니까 열쇠를 항상 가지고 다녀야 했는데, 어느 날 아들이 열쇠를 빼먹고 학교에 가려고 했다. 아버지로서 열쇠를 다시 챙겨줘야 하나, 자신이 발견하도록 기다려야 하나 고민했다. 그러다 아이에게 물어봤다. “너 목에 열쇠 안 걸었는데 괜찮니?”라고. 아들이 답했다. “아빠, 그런 걱정은 아빠가 안 해도 돼요.”라고. (웃음) 너무 자립적인 아이가 된 거다. 아이는 이런 상황을 대비해서 학교 책상에 또 다른 열쇠를 넣고 다녔다. 부모가 일일이 챙기지 않아도 자기 일을 스스로 하는 아이로 자랐다.

 

책에서 철학자는 행복의 본질은 ‘공헌감’이라고 계속 강조한다. 두 저자는 저자는 월 『미움 받을 용기』를 통해 공헌감을 많이 느꼈을 것 같다.

 

고가 후미타케공헌감을 가질 수 있도록 기원하면서 썼다. 목이 마른 말을 물가로 데리고 갈 수는 있지만 물을 마시는 건 말의 몫이다. 독자 역시 마찬가지다. 물가로 데리고 갈 수는 있지만 물을 마시는 일은 독자의 선택이다.

 

기시미 이치로작년 봄에 한국에서 만난 독자가 기억에 남는다. 우리의 강연을 듣고 일본에서 새로운 공부를 하기로 결심했다고 했다. 올해 일본 대학에 입학할 예정이라고 들었다. 이 분이 일본 유학을 결심한 건 우리의 책 때문이 아니다. 약간의 도움은 줬더라도 선택은 그 분이 했다. 한국에서 책이 100만 부 이상 팔렸다고 좋아하고 있으면, 그건 인정욕구에 불과하다. 하지만 한 사람 한 사람이 이 책을 통해 변화의 계기를 만들었으면, 공헌감을 가질 수 있다. 우리가 감사의 인사를 들을 필요도 없다.

 

6.jpg

 

 

관계나 인생에 있어서 고민이 많은 독자가 아무래도 이 책을 읽을 것 같다. 두 저자는 고민이 생길 때 어떻게 하나? 고민을 조금 가볍게 여길 수 있는 방법이 있나?

 

고가 후미타케 (웃음) 글쎄. 요즘 동업자들이 내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으니 인세를 많이 받겠다”는 말이다. 대개 질투심으로 하는 말인데, 이런 말을 언제까지나 신경 쓰고 있으면 나는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관계 속에서 피로감을 느낄 거다. 그래서 대충대충 무시해 가면서 살고 있다. 10년 후에 “나는 10년 전에 밀리언셀러를 썼어”라고 자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기시미 이치로 고민하는 목적을 알아야 한다. 고민한다는 건 결정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보통 A와 B라는 선택지 안에서 고민한다. 고민하는 동안에는 결정을 안 해도 된다. 언젠가 결정해야 한다면 고민할 필요가 없다. 둘 중 하나를 골랐는데 잘 안되면, 그 때가서 또 생각하면 된다. 너무 심각해하지 않는 게 중요하다. 그렇다고 엉망으로 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진지하게 사는 사람은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는다.

 

책을 읽고 인생이 바뀔 만큼의 변화가 있는가 하면, 예전과 똑같은 사람이 있다. 왜 이렇게 차이가 있을까?

 

고가 후미타케바뀌고자 하는 결심을 제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A를 골랐으면 B는 버려야 하는데, A를 골랐음에도 불구하고 한 쪽으로는 계속 B를 생각하고 있는 거다. 만약 A를 선택했다면 양손으로 A를 잡아야 한다.

 

기시미 이치로 A를 선택했다면 A가 더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이 눈앞에 케이크를 무시하지 못하고 케이크를 먹은 건, 케이크를 먹는 게 더 좋은 행동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0년 전에 나는 큰 병을 앓았다.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몸무게 10kg을 감량해야 한다고 했다. 목숨이 걸린 문제였기 때문에 나는 식사량을 급격하게 줄였다. 먹고 싶은 케이크가 있어도 절대 먹지 않았다. 판단을 못하고 있는 사람은 변할 수 없다. 예전의 모습을 버리고 새로운 사람이 된다는 건, 재생하는 일인데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변하고 싶기 때문에 2편을 집어 든 독자들이 많을 것 같다. 『미움 받을 용기 2』의 키워드는 무엇일까. 어디에 초점을 두고 읽으면 좋을지 조언한다면.

 

고가 후미타케 자립이다. 무언가를 상대에게 받는 게 아니라, 내가 사랑을 줄 생각을 해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읽으면 좋겠다.

 

기시미 이치로 역시 자립이다. 고통이라는 문제에 있어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다. 평범해지라는 게 아니라 있는 자신의 가치를 느꼈으면 한다.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 가치를 못 느끼니까 남들에게 자꾸 인정 받으려고 한다. 내 가치를 누군가가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자립할 수 없다. 이 점을 독자에게 말하고 싶었다. 특별히 좋아질 필요도 나빠질 필요도 없다.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img_book_bot.jpg

미움 받을 용기 2 기시미 이치로,고가 후미타케 공저 | 인플루엔셜
역대 최장기간 베스트셀러 1위, 문화계 파워 100인이 선정한 2015년 올해의 책, 네이버 2015년 검색어 책 분야 1위 등 2015년을 ‘아들러’와 ‘용기’ 열풍으로 물들인 『미움받을 용기』가 더 새롭고, 더 강렬하게 돌아왔다.

 

 

 [관련 기사]

- 곽정은 “사랑, 행복한 만큼 힘들어질 수 있어”
- 이기호 “우리는 왜,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을까?”
- 「개여울」의 정미조, 37년 만의 귀환
- 범죄학자 이창무, 박미랑 “살인자는 왜 친근한 얼굴일까?”
- 김이설 “행복하고 화목한 가족, 저만 불편한가요?”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비주얼 머천다이저 이랑주, 시장 매출을 200% 성장시킨 노하우

$
0
0

과일 가게에 싱싱한 사과가 놓여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았다. 근처 꽃집에 가서 잎사귀를 한 줄 사와 사과 주변에 테두리를 쳤다. 그러자 사과는 금방 다 팔려나갔다. 좋은 것을 ‘좋아 보이게’ 만든 이랑주의 ‘신의 한 수’였다.


한국 최초의 비주얼 머천다이징 박사 이랑주의 손을 거친 기적의 사례는 너무나 많다. 교보문고, 총각네야채가게, LG전자, 풀무원은 물론 전국의 시장과 지자체를 환골탈태시킨 이랑주. 그가 만난 세상은 세상의 이로움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의 세상이었다. 그 모든 사람에게 자신이 몸으로 터득한 비법을 전하고자 책을 썼다. “인테리어 업자나 건축업자, 디자이너들이 알려주지 않는 노하우를 만천하에 공개해버린”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좋은 제품을 만들었는데 잘 알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다녀보니 너무 많았으므로, 그들이 비싼 비용을 치르지 않아도 이 책으로 알아서 할 수 있게 하고 싶었던 것. 그가 꼽은 첫 번째는 ‘철학’이었다.

 

‘좋아 보이고 예뻐 보이는 것’은 겉모습만 치장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본질을 느껴서 ‘좋다’라는 감탄사가 나오게끔 하는 게 중요하다. ‘왜 나는 사람들에게 말을 걸려고 하는 거지?’ ‘나는 이 제품으로 사람들에게 어떤 가치를 전달하려는 거지?’ 이런 고민들을 하지 않으면 어떤 비주얼도 소용이 없다. 그리고 그 질문을 던질 때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사람에 대한 배려다. 모든 것은 사람을 향해야 한다. (11쪽~13쪽)

 

패턴, 색의 조합과 배치, 조도와 조명 대비, 각도, 거리, 동선, 철학, 여기 그가 전하는 아홉 가지 법칙을 기억하자. 당신이 가진 좋은 것을 더욱 좋아 보이게 할 수 있을 것이다. 

 

크기변환_5A2A9520.jpg

 

 

VMD는 ‘사이 학문’이다


VMD(visual merchandiser)로서, 이 책은 어떤가요? 상품으로 접근한다면 말이죠. 책을 만들면서 생각한 이미지도 있을 것 같거든요.


과정이 많았어요. 제 철학이 ‘약은 약사에게’예요. 원고 넘기고 1차본 나올 때까지 한마디도 안 했어요. 그러다 표지 디자인과 본문 편집이 와서 딱 봤는데, 처음으로 화를 냈어요.(웃음) 보는 순간 “담당자분 남자죠? 나이는 저보다 많을 것 같네요” 했어요. 맞았죠. 담당자분이 깜짝 놀라는 거예요. 본문 이미지 하나가 중학교 때 봤던 디자인 책에 있던 거였어요. 이런 감성이라면 저와 비슷하거나 저보다 나이가 많을 거라 생각한 거죠. 이 책의 주 독자층은 청년 창업가나 기업을 하는 젊은 사람들인데 조금 올드하지 않겠느냐, 그림을 시원시원하게 쓰자, 그런 픽토그램은 빼자, 는 의견을 처음 제시했었죠. 그러면서 사진을 모두 다시 촬영하게 된 거예요. 표지도 본질을 왜곡하는 의미 없는 그림은 다 빼자고 했고요. 표지 가지고는 아침에 긴급회의를 하기도 했거든요. 그렇게 절충안을 찾아서 나온 거예요. 이 작은 표지 안에도 경영학에서 보는 관점, 디자이너가 보는 관점에 너무 많은 차이가 있다는 걸 느꼈죠. 그 절충안을 찾아 만들었기 때문에, 괜찮게 나온 것 같아요.

 

본문을 보고 담당자 나이를 가늠했다니 신기하네요. VMD라는 게 무엇보다 감각이 없으면 어려운 일일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남들과 다른 시선을 갖게 된 게 정상적인 코스로 공부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아요.(웃음) 일부터 하고 나중에 공부한 경우라서요. 집이 어려워져서 여상을 갔는데 도무지 맞지 않았어요. 제가 캔디 그림을 잘 그렸어요. 시골 간호대학에 처음으로 디자인과가 생겼는데 제 성적이면 장학생으로 들어갈 수 있는 거예요. 거길 들어갔는데 친구들은 다 입시 미술을 배우고 들어왔더라고요. 전 한 번도 안 배웠거든요. 데생 수업 시간에 교수님이 제 것을 보시더니 “네 선에는 구정물 소리가 들린다”는 거예요. 너무 자존심 상했어요. 도서관에 가서 독학으로 공부했죠. 두세 달 지났나? 그 교수님이 그림을 보더니 똑같은 사람이 그린 건데 “네 선에는 땀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고 하셨어요. 그때 그림이라는 작은 것에도 마음이 담긴다는 걸 알게 됐어요. 책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우쳤고요. 책이 제 인생에 선생님이 돼준 것 같았어요. 학교 도서관에 있는 디자인 관련 책은 거의 다 본 것 같아요.

 

대학 졸업 후 바로 일을 시작한 거죠?


졸업하자마자 이랜드에 취직했어요. 3개월 계약직이었는데 한 달에 한 번 보고하는 시간이 있었어요. 다른 사람들은 브리핑 자료를 자기가 일한 순서대로 쭉 붙였는데 그게 보는 사람 입장에선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더라고요. 저는 자료에 평가를 담았어요. 팀장님이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듣고 싶은 얘기를 한 번에 들을 수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1년 계약을 하자는 얘기를 들었어요. 본사로 가게 됐고, 이후 2년 계약직으로 일하게 됐죠. 그때 현장에서 정말 많이 배웠어요. 그곳에서 거의 다 배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열심히 일했던 것 같아요. 그때 일한 자료로 현대백화점 정직원에 합격해 그때부터 백화점에서 일하게 된 거고요. 저는 입사해서 ‘아르마니’ 브랜드를 처음 알았는데 동기들은 아르마니를 입고 출근했어요. 충격을 받았죠. 당시 과장님이 저더러 현장을 알아야겠다고 하더라고요. 자존심도 상했지만 재미있었어요. 백화점 입구에서 고객 따라다니면서 어디로 가는지 체크하는 일을 했거든요. 그러면서 사람을 보면 그의 연령대, 라이프스타일 등이 보이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크기변환_5A2A9589.jpg

 

감각이 그냥 길러진 건 아니었네요.


네, 일하면서 부족한 걸 인식하고 직장을 다니면서 야간대학을 다니기 시작한 거예요. 디자인 관련 학과를 나왔으니까 마케팅이나 심리학 지식이 부족하다는 걸 알고 더 공부했죠. 야간대 졸업하자마자 바로 석사 들어갔어요. 석사에서 심리학, 경영학을 배우기 시작했고요.

 

그렇게 한국 최초 VMD 박사가 되기까지, 상상만 해도 무척 힘들었을 거란 짐작이 돼요.


박사 논문이 한국 비주얼 머천다이징의 역사를 정리하는 내용인데요. 한 번은 정리해보고 싶었어요. 누가 처음 시작했고, 꽃을 피웠고, 어떻게 진행됐는지에 대한 걸 보고 싶어서 연구했죠. 1900년대 화신 백화점(신세계 백화점 전신)이라고 일본 사람들이 버리고 간 것을 1932년에 신세계가 샀어요. 그것이 지금까지 오고 있는 거고요. 그런 식으로 전반적인 역사를 보면서 앞으로 비주얼 머천다이징과 유통이 어떻게 접목돼 갈 것인가를 보는 안목이 생긴 거죠. 국내에 VMD라는 개념이 처음 1990년대에 들어와서 95년에 한국VMD협회라는 게 생겼거든요. 바로 IMF가 터지면서 쇼윈도 비용을 줄이게 됐고, 손님이 구매하는 시점에 VMD가 어떻게 접촉하게 할 것인가를 집중하게 된 거죠. 이전에는 예쁘게 치장하는 쇼윈도에 관심이 더 많았다면 실용성으로 바뀌게 된 때가 1997년이었어요.

 

분야 특성상 심리학 이론이나 마케팅 등 여러 분야를 다뤄야 하는 직업이라 더 어렵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가능성이 크기도 한 영역이겠네요.


그래서 이것이 디자인이냐, 경영학이냐, 심리학이냐, 이런 질문이 되게 많아요. 저는 통합 디자인이라고 생각해요. 쉽게 생각하면 ‘사이 학문’이죠. 마케팅과 디자인 사이, 경영과 디자인 사이, 심리학과 디자인 사이에서 작용을 일으키게 하는 학문이 VMD가 아닌가 하는데요. 공부를 하면서 느낀 건 VMD 영역이 참 넓은데 우리 선배들은 왜 영역에 한계를 뒀을까, 였어요. 동선, 조명, 색채, 심리, 커뮤니케이션, 이 모든 걸 결합해야 장사가 되는데 왜 한계를 뒀는지 의문이었어요. 백화점 근무할 때도 그랬거든요. 시즌에 따라, 가격에 따라 얼마든지 유동성 있게 바꿀 수 있는데 왜 기존의 것에 목숨을 걸까, 이게 너무 답답했던 거예요. 백화점은 매뉴얼대로 움직이거든요. 그 안에서 갈증을 많이 느꼈고 백화점 안에서 이것저것 해보면서 매출이 오르는 포인트를 알게 됐죠.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시장을 알게 된 거예요. 완전히 엉망이었어요.(웃음) 지금까지 배운 것으로 매출을 올려야겠다, 생각했죠. 처음엔 반대하던 상인들이 매출이 100%, 200% 되니까 놀라는 거예요. 결국 백화점에서 배운 걸 펼친 데는 소상공인들의 점포였던 거죠. 이게 진짜 된다는 걸 알게 됐고 정리해서 강의하기 시작했어요. 그 강의 영상이 교보문고 북모닝CEO 최다 조회수를 기록한 거고요. 제가 잘해서라기보다는 그런 갈증이 많은 분께 있었던 것 같아요.

 

책을 쓰게 된 이유도 같은 이유였을 거고요.


인테리어 업자나 건축업자, 디자이너들이 알려주지 않는 노하우를 제가 만천하에 공개해버린 거잖아요. 그래서 강의를 한 거고, 제 강의를 보면서 글로 썼어요. 한 달 쓰고 출판사 대표님에게 얘기했죠. 좋은 제품을 만들었는데 잘 알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다녀보니 너무 많더라, 그런데 내가 다 다닐 수가 없다, 컨설팅 이제 안 하고 이 책으로 알아서 할 수 있게 하고 싶다, 라고요. 그게 웃겼나 봐요. 보통 이런 책 내서 돈 더 많이 벌겠다고 하는데 이제 컨설팅 안 할 거다, 누구든지 이거 가져가서 자기 마음대로 자기 제품을 잘 알렸으면 좋겠다고 하니까요. 그래서 그 자리에서 바로 계약하자고 해서 책이 나오게 된 거예요.

 

크기변환_5A2A9501.jpg

 

 

이제는 ‘온오프믹스’의 시대다


백화점에서 시도한 것들 중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요? 경직된 조직은 바꾸기 어렵잖아요.


당시 백화점 양복 매장에서는 양복을 옷장에 걸어놓은 것처럼 옆으로 다 진열해놨었어요. 양복은 정면이 중요하잖아요. 원 버튼인지, 투 버튼인지 그런 것들이 중요하죠. 그래서 ‘페이스 아웃’으로 하자고 해서 얼굴이 보이도록 진열을 했어요. 핵심 되는 제품들만 정면으로 진열하자고 했죠. 어떻게 됐을 것 같으세요? 욕을 얼마나 많이 먹었는지 몰라요.(웃음) 그때만 해도 남성복 점장님은 거의 신이었거든요. 건드리면 안 되는 거였죠. 교육을 했지만 하루아침에 안 바뀌었어요. 정면으로 진열하면 다시 복귀시켜놓고요. 그걸 1년을 한 것 같아요. 끊임없이 욕을 먹으면서 계속 했어요. 나중에는 한 매장만 집중적으로 계속 했어요. 그런데 손님들에게 반응이 온 거예요. 정면으로 진열한 걸 사가는 거죠. 그 매장 매출이 오르기 시작하니까 다른 매장으로 확대됐어요. 지금은 다 페이스 아웃으로 진열해요. 그때 느낀 건데요. 사람이 변화하는 걸 진짜 두려워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기존 방법을 바꾸는 게 정말 두렵다는 걸 알게 됐죠. 그 두려움은 익숙하지 않은 데서 와요. 낯설어서 그냥 기분이 나쁜 거예요.

 

경제 성장에 따라 소비자의 욕구도 변하고, 그것에 맞춰 마케팅 방법도 달라져야 할 텐데요. 그런 것에 빠르게 대응하기가 힘든 면이 있어요. 큰 조직일수록 그럴 거고요. 앞으로 변화할 소비자의 욕구와 그에 맞는 VMD는 어떤 모습이라고 생각하나요?


저는 오래 살고 싶은데요.(웃음) 이유가 세상이 바뀌는 걸 보는 게 너무 재미있기 때문이에요. 이제는 ‘온오프믹스’의 시대가 왔어요. 오프라인 매장이 결국 미끼가 돼요. 거기서 체험하고 느낀 것을 온라인에서 구매하는 거죠. 그런데 지금 온라인 매장은 2D거든요. 평면에 제품을 놓고 보는 건데, 저는 이게 조만간 3D로 바뀔 거라고 생각해요. 예스24 사이트에 들어가면 실제 오프라인 매장처럼 서가에 책이 진열되어 있고, 책을 클릭하면 책장이 넘어가는 식으로요. 그렇게 3D 매장이 나오면 그곳이 VMD의 꽃이라고 봐요. 그래서 앞으로 이 직종이 유망하다고 생각해요. 거기까지 내다보고 VMD를 연구하고 있는 거죠.

 

실제로 온라인 거점의 사이트들이 오프라인 매장을 내고 있죠.


공간이 그 회사의 성품을 결정해요. 공간에 가보면 그 회사가 어떤 철학을 가지고 있는지가 보여요. 얼마 전에 한 소셜 커머스 업체에서 강의 의뢰가 왔어요. 물론 경쟁 업체 앱까지 다 깔고 조사를 했죠. 그 업체에서 오픈한 매장에도 갔거든요. 매장을 둘러보니 이 매장은 남자가 설계했고, 현재 여자 친구가 없다, 결혼했다면 아내와 쇼핑을 다니지 않는다, 라는 결론이 나왔어요. 강의를 가서 그 얘기를 했더니 다들 난리가 났어요. 매장에서 립스틱을 사서 바르려고 보니 거울이 위에 있더라고요. 그래서 알았죠.(웃음) 오프라인 매장은 온라인과 다름이 없어요. 그래서 오프라인에서 하는 것들을 온라인에 어떻게 접목시킬 것인지 비교하는 강의를 했었어요. 저도 그런 게 이제야 보이는 것 같아요.

 

크기변환_5A2A9571.jpg

 

첫 번째는 철학이다


청년창업이나 소상공인 사례를 보면 공통적으로 못하는 것이 무엇이던가요?


너무 많은데요. 철학은 브랜드의 생각을 담는 그릇이에요. 소상공인 점포를 가면 그 사람의 생각이 보여요. 아무 생각이 없구나, 생각이 너무 많구나, 욕심이 너무 많구나, 이런 생각들이 보여요. 제일 문제는 생각이 없다는 거예요. 생각이라는 건 결국 철학인데요. 이 해장국집을 해서 무엇을 할 것인지 하는 생각이 없어요. 그냥 해장국집이에요. 처음에는 돈이 있으니까 백 평짜리를 얻어요. 안 돼요. 당연히 안 되죠. 50평으로 줄여요. 지금 20평으로 와 있어요. 그러는 동안 퇴직금 다 쓰고요. 그런데 20평부터 시작했으면 백 평으로 갔을 거예요. 책에 색상, 조명, 기호, 이런 것들을 말했는데요. 이것은 자기가 어떤 업종을 하느냐에 따라 다 달라지는 거예요. 그보다 먼저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고 이걸 어떻게 담을 것인지를 고민해야 해요. 그게 제일 중요해요. 첫 번째가 철학이에요. 이 장사를 해서 무엇을 할 것인지 생각이 있으면 돼요. 그러면 쉬워져요.

 

보통은 그냥 돈을 벌겠다는 생각이잖아요.


보통은 돈이죠. 그러니까 통닭집을 하죠. 염지한 닭 한 마리에 1,500원 주고 사와요. 기름 한 통에 26,000원이에요. 세 번 써요. 그러면 한 50마리 튀길 수 있어요. 한 마리 튀길 때 500원이에요. 그러면 원가 2,000원 됐죠. 거기에 양념값 천 원 하면 돼요. 그래서 보통 시골 통닭을 6,000원에 팔아요. 50%가 남죠. 프랜차이즈는 가맹비, 인테리어비 다 떼기 때문에 2,000원도 안 되는 닭이 16,000원에 팔리죠. 그런데도 소상공인이 가져가는 돈은 2,000원밖에 안 돼요. 그걸 줄여주기 위해 책을 쓴 거예요. 가맹비, 인테리어비 줄일 수 있어요. 그러면 우리도 6,000원에 사 먹을 수 있어요. 소비자에게도 유리한 거죠. 과도하게 뭔가를 덕지덕지 붙이지 않으면 가능해요.

 

모든 일이 다 그렇겠지만 즐기지 않았으면 힘든 일이었을 텐데요. 가장 기억에 남는 컨설팅 이 있다면요?

 
부산 전자상가 이야기를 또 안 할 수가 없는데요. 전기세도 못 내는 전자상가를 갔어요. VMD 하는 사람이 전자상가에서 할 일이 뭐가 있겠어요. 그런데 처음 들어서는 순간 상자가 가득 쌓여있는 걸 봤어요. 매장 사이를 막아둔 거예요. 예전에 백화점도 똑같았어요. 옆집으로 갈 수 없도록 막았죠. 저는 항상 쇼핑하는 사람 입장에서 생각하는데요. 이 집에서 청바지 보고 옆집으로 가고 싶은데 막아놓았다, 그러면 처음부터 그 매장에 안 들어가요. 전체 청바지 매장이 잘 되는 방법을 강구해야죠. 고객들이 청바지를 쉽게 입어보고 비교해가면서 살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렇게 통로를 개방하게 된 사례를 전자상가에 가서 얘기해줬어요. 상인들이 눈을 마주쳐야 이 시장이 발전한다고요. 결국은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요. 그렇게 빈 상자를 다 거뒀어요. 레이아웃을 조정한 거죠. 그거 하나로 상인들이 서로 인사를 하기 시작했고 거기서 변화가 시작된 거죠. 전기세도 못 내던 작은 시장이 대통령상을 받게 됐고요. 지금도 잘 되고 있어요. 그 회장님과 제일 친해요. 함께 짐 옮기다 제가 다쳐서 꿰매기도 했거든요. 피를 좀 봐야죠.(웃음)


저도 디자이너인데요. 모든 디자이너가 디자인을 책상 위에서 해요. 보기 좋게요. 그렇지만 매출이 일어나야 보기 좋은 거죠. 매출이 일어나야 그들을 이롭게 하는 거거든요. 그래서 저는 현장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를 바라요.

 

크기변환_5A2A9615.jpg

 

 

밥은 먹으니까 같이 나눠 먹어야겠다


한국VMD협동조합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고, 청년창업에도 힘을 쏟고 있는데요. 한 인터뷰에서 ‘이로움’이야기를 한 걸 보고 저자의 어떤 신념을 엿볼 수 있었어요.


인터뷰만 보면 되게 괜찮은 사람일 수 있는데요.(웃음) 마흔 전까지는 먹고 살기 바쁘게 지냈어요. 요즘 ‘흙수저’ 얘기하잖아요. 저희 부모님은 수저도 아니고 흙만 주셨어요.(웃음) 마흔 전까지는 흙을 수저로 만드는 것으로 살았어요. 이제 그 흙수저로 밥을 떠먹고 살 수 있게 됐는데요. 마흔이 넘어 세계 일주를 하면서 다양한 계층의 삶을 봤어요. 옷이 없는 사람들, 집이 없는 사람들, 샤워를 일 년 내내 못하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본 거예요. 절대적 빈곤에 있는 사람들을 마주하게 된 거죠. 그러면서 세계 안의 나를 봤어요. 다른 나라의 사람보다는 금수저더라고요. 여행하면서 내 자리에서 내 주변의 이웃을 돕는 일이 뭘까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남편이 또 결정적인 이야기를 했어요. 재능을 돈 버는 데만 쓰지 말고, 이제 밥은 먹으니까 같이 나눠 먹어야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협동조합을 만들었어요. 디자이너가 많이 열악한데 조합 형태로 의미 있는 일을 해보자고 해서 여덟 개 회사가 모였고요. 대신 재능을 나누는 조건으로 공동 프로젝트를 하는 거죠.


또 백화점에 있을 때 집기를 많이 버렸어요. 버리면서 늘 아깝다고 생각했지만 어디에 써야 할지를 몰랐어요. 그런데 보니까 집기가 필요한 사람이 정말 많은 거예요. 그래서 버려지는 집기를 가져다 2013년부터 조금씩 돕기 시작했는데 그런 게 사회적 기업이래요. 아는 분 통해 사회적 기업 육성 재단이 있다는 걸 알게 돼서 교육을 받았어요. 지금까지의 마케팅 교육과는 완전히 다른 관점을 보게 되고, 그 교육을 받으면서 새롭게 알게 된 게 정말 많았어요.

 

시장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같은 맥락이었던 거죠?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어요. 강의 의뢰가 와서 현장을 가보니까 엉망진창이었어요. 그래서 한 집, 두 집 바꾸기 시작했고 교육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싶어 현장에서 직접 해야겠다 생각해서 퇴사하고 ‘이랑주VMD연구소’라는 작은 회사를 차렸죠. 7년 동안 정말 고생했어요. 전국 전통시장을 다니면서 할머니들한테 욕도 먹고, 맞기도 하면서요. 그거 하다가 2013년에 ‘현대카드 전통시장 활성화 프로젝트’도 같이 하게 됐고요.

 

시장에서는 어떤 가치를 본 건가요?


저는 다양성이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마트와 백화점만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시장이 사라지면 박물관에서만 봐야겠죠. 사라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했어요. 시장을 바꾸면 젊은이들이 다시 시장에 오겠죠. 가봐야 다시 가게 되거든요. 가보면 청년들이 아이디어를 갖고 ‘나도 시장에서 장사를 해볼까’ 하게 될 거고, 그러면 시장은 자연스럽게 살아나겠죠. 지난 십 년 간 그 역할을 했던 거고요. 지금은 제가 아니라도 잘할 사람이 굉장히 많아요. 이미 시장에 VMD라는 개념도 생기고요. 그래서 요즘 관심을 가지는 게 청년들과 사회적 기업가들이에요. 국내에 번듯한 사회적 기업이 없잖아요. 청년들이 그런 걸 할 수 있는 데 제가 도움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하는 거예요. 그러다 보면 또 어떤 전환점이 생기겠죠.

 

크기변환_5A2A9537.jpg

 

‘좋은 것을 좋아 보이게 만들고 싶지 좋지 않은 것을 좋아 보이게 만들고 싶지도, 만들 수도 없다’고 했어요. 그런 저자의 철학이 이런 행보를 뒷받침하는 것 같은데요. 그 때문인지 앞으로 어떤 길을 걸을지도 사뭇 궁금해져요.

 

저도 제가 어떤 방향으로 갈지 궁금해요. 사회적 기업가가 될 거라고는 저도 상상을 못 했던 거예요. 어떤 순간에 생각이 바뀌는 계기가 왔기 때문에 이런 사회적 기업을 하게 됐고, 청년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이게 됐거든요. 어떤 일을 앞으로 하게 될지는 저도 모르겠는데요. 계속 좋은 물건이나 좋은 상품을 세상에 알리는 일을 하겠죠? 컨설팅 의뢰가 정말 많이 오는데요. 일 년에 컨설팅을 두 곳만 해요. 제가 하고 싶은 브랜드를 하고 싶어요. 올해는 이미 정했고요.


사회적 기업을 하면서 느낀 게 많아요. 젊은 친구들이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습을 보면서 ‘나이 많은 사람들은 다 뭐하는 거야?’(웃음)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제일 나이 많았어요. 어느 분야에서 10년, 15년 일한 사람들은 완전 베테랑이잖아요. 이제 밥은 먹고 살아요. 그런 전문가들이 그 능력으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면 사회가 정말 좋아질 거라고 생각해요.

 

국내 자영업 인구를 생각하면 이 책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읽어도 좋을 책이네요.


세상을 위해 이로운 제품을 만드는 모든 사람을 위해 썼어요. 2006년부터 전국을 다니고 전 세계를 다니면서, 철학 있는 상인들을 만나고 사회 문제를 해결하려는 젊은 청년들을 만나면서 이로운 제품을 만드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 모든 분들이 읽었으면 좋겠어요. 대기업 중에도 이롭게 하는 제품을 만드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 기업들도 이 책을 많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죠.

 

다른 책을 써보고 싶은 생각도 있나요?


‘해도 해도 안 되는 것들의 비밀’(웃음)이요. 왜 안 되는지 너무 궁금해요. 왜 실패하는지 궁금하잖아요. 제목은 너무 괜찮지 않아요?(웃음) 꿈은, 제가 무료로 컨설팅했던 회사들을 묶어서 변화 과정을 책으로 내보고 싶다는 생각은 있어요.

 

 

 

img_book_bot.jpg

좋아 보이는 것들의 비밀 이랑주 저 | 인플루엔셜
색상, 빛의 색온도, 빛의 각도, 동선 등 작은 것 하나로도 확실한 차이를 만들어내는 9가지 법칙을 알아보자. 이제 보는 즉시 끌리고, 사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좋아 보이는 것들의 비밀’이 공개된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강병융, 강태희 부녀 “행복은 장소가 만들어주지 않아요”

$
0
0

지극히 현실의 이야기인데 꿈 같은 책을 만났다. 제목만 읽어도 마음이 울컥하는 에세이 『사랑해도 너무 사랑해』, 소설가 강병융과 초등학생인 딸 강태희 양이 함께 쓴 책으로 서울, 모스크바, 류블랴나 등 세 도시에 살며 겪은 부녀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짧지만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한 강병융 작가는 딸에게 “네 인생이 너에게 최고의 놀이였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사랑, 눈물, 표현 등에 관해 종종 조언하지만 12살 딸에 대한 존중이 면면에 배어 있다. 아빠는 끊임 없이 딸에게 질문하고 딸의 이야기를 정성스레 귀담아듣는다. 딸 또한 다르지 않다. 아빠의 마음을 세밀히 들여다본다. 그저 사랑스럽고 다정한 에세이로만 읽히지 않는 이유다.

 

책장을 펼치면 펼칠수록, ‘이렇게 사랑해야겠다’고 다짐하게 되는 책의 두 저자를 서면으로 만났다. 소설가 강병융은 현재 슬로베니아 류블랴나대학교에서 아시아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고, 올해로 초등학교 5학년이 된 강태희 양은 세계를 돌아다니며 행복하게 사는 작가가 되는 것이 꿈이다.

 

1.jpg

 

“딸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미안하다’는 말을 아끼면 안 된단다. 미안하다고 말하는 것은 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이기는 거야. 아빠가 (혹은 엄마가) 잘못을 하고도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거든 언제든 말해주렴. 꼭!”(20쪽)

 

“서울에 남아있던 엄마가 딸에게 물었다. 도대체 왜 그렇게 ‘수영복’을 고집했는지. (어린) 딸은 또박또박 이렇게 말했다. ‘아빠랑 마지막 날이니까 가장 예쁜 옷을 입고 싶었어. 내 눈에는 수영복이 가장 예뻤다고!’ 그랬다고 했다. 딸의 눈에는 알록달록 수영복이 가장 예뻤다고. 그래서 꼭 입고 싶었다고, 아빠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었다고. 그랬다고 말이다.”(46쪽)

 

“딸아, 사랑하는 사람이 네 옆에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면,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꼬옥 안아주렴. 체온이야말로 공감을 표현하는 가장 훌륭한 방법이거든. 아빠가 울 때도 놀리지 말고, 안아줘.”(54쪽)

 

 

크기변환_작가사진 (2).jpg

 

 

아들, 행복하게 살아줘서 고마워

 

딸과 함께 낸 책이라 기쁨이 더할 것 같습니다.

 

기뻐도 너무 기쁩니다. “사랑해도 너무 사랑하는” 딸과 함께 쓴 책이니 어찌 기쁘지 않겠습니까? 더군다나 전작인 『류블랴나를 닮은 아내』역시 자기 책인 양 행복해 합니다. 그러니 기쁨은 자연히 두 배가 됩니다. 무엇보다도 기뻤던 순간은 제가 쓴 소설은 단 한 자도 이해할 수 없다며 답답해 하셨던 어머니께서 『사랑해도 너무 사랑해』를 다 읽고 이렇게 말씀하셨을 때입니다. “아들, 행복하게 살아줘서 고마워! 이번 책은 꼭 사람들이 많이 읽었으면 좋겠어.”

 

현재 슬로베니아의 수도 류블랴나에 거주하시며, 류블랴나대학교에서 한국 문학을 가르치고 계시죠? 한국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도시인데요. 작가님의 일상이 궁금합니다.

 

일상은 말 그대로 일상이기 때문에 서울과 류블랴나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수업은 주로 오후에 있기 때문에, 아침에 적당히 일어납니다. 그리고 뭔가 챙겨먹고, 학교에 갑니다. 학교에 갈 때는 주로 바퀴 달린 무언가를 타고 가는데, 퀵스쿠터, 페니보드, 롱보드, 바이크 중에 기분과 날씨에 따라 제 마음대로 골라 탑니다.

 

아무래도 학교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시겠죠?

 

강의는 (당연히) 학교에서 하지만, 강의 시간 외에는 연구실 대신 학교 근처 단골 카페에 앉아 있습니다. 거의 매일 가기 때문에, 제가 카페에 등장하면 바리스타가 바로 에스프레소를 내려줍니다. 점심 약속이 없으면, 거기서 끼니도 때우고, 책도 읽고, 작품도 쓰고, 번역도 하고, 보고서도 쓰고, 심지어 학생 면담도 합니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두 번째 연구실’로 통하죠. 간혹, 카페가 답답하게 느껴지면 바퀴 달린 ‘그’ 무언가를 타고, 류블랴나 강가로 갑니다. 답답함이 사라질 때까지 음악을 들으며 강이 흘러가는 것을 봅니다. 저녁 식사는 87.5% 이상 가족들과 함께 하고, 가족들이 모두 잠들면, 독서를 하거나, 영화를 보거나, 뭔가를 씁니다. 4시 전에는 꼭 잠들려고 노력합니다. (새벽) 일찍 잠드는 좋은 습관을 가진 아저씨지요. (하하하) 조금 이상한 패턴의 직장인 아저씨이기도 하고요.

 

3월에 출간된 『사랑해도 너무 사랑해』는 딸의 탄생부터 지금까지를 기록한 책입니다. 일기를 쓰지 않았더라면 쉽게 쓰기 어려울 만큼, 생생한 추억들이 들어 있습니다.

 

“무언가를 기억하기 위해 별도로 기록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뛰어난 기억력의 소유자입니다. 그러니 일기 따위는 써 본 적이 없습니다”라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여러 형태로 딸에 대해 여기저기 기록해두었습니다. 싸이월드, 네이버 블로그, 페이스북 그리고 아무데도 공개하지 않은 소소한 메모들이 제 일기와 같은 역할을 하지요. 유행에 따라 딸의 기억이 기록된 공간이 다른 셈이죠. 그리고 어릴 적 기억은 ‘류블랴나를 닮은’ 제 아내의 육아 일기를 많이 참조했답니다. 아내가 꽤 오랫동안 육아일기를 아주 꼼꼼히 썼답니다. 그래서 책에도 ‘특별히 감사’하다고 실은 것이고요.

 

프로필 사진을 색다르게 찍으셨어요. 엄마 얼굴도 나오게, 누가 생각한 아이디어인가요?

 

아, 그 아이디어요! 제 딸 아이디어지요! 라고 했다면, 태희가 참 좋아했겠지만, 제 아이디어였습니다. 카메라를 들고, 가족 산책을 하던 중에 찍게 된 사진입니다. 우리 가족의 모토 같은 것이 담겨있죠. 각자의 프레임을 지키지만, 하나의 틀 안에 있자! 살짝(?) 개성 있지만, 남들 눈에 보기에 싫지는 말자!

 

짧게나마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하였는데요. 정확한 기간이 궁금합니다.

 

기러기 아빠의 정의가 뭔지 정확히 모르겠지만, 제 경우는 아내가 서울에서 돈을 벌면서 딸과 함께 있었고, 제가 공부하러 모스크바에 갔었으니까 ‘역’기러기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암튼) 3년 간 혼자 있었습니다. 모스크바에서 총 5년 조금 넘게 있었는데, 3년은 홀로, 2년은 함께 있었습니다.

 

나홀로 유학 시절,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유학 1년 차, 여름방학 때, 딸이 보고 싶어서 귀국했는데, 공항에 만난 딸이 저를 보고 얼어있던 그 모습을. 딸은 울지도 웃지도 못하고, 제가 안아주니 그냥 인형처럼 무표정하게 있었습니다. 그 표정이 참 슬퍼 보였습니다. 그 때, 제 마음도 슬픔으로 얼었지요. “이 친구가 내가 아빠인 것을 모르는구나!”라는 생각이 드니 너무 미안했고요. 한 달 남짓의 기간 동안 간신히 친해진 후엔 다시 헤어져야 했지요. 딸에게 자꾸 이별을 준 것, 딸에게 아빠의 존재를 각인(?)시키지 못한 일이 가장 슬프고, 미안하고, 견디기 어려웠던 일이죠.

 

누군가 기러기아빠 생활을 앞두고 있다면,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나요?

 

짧고 굵게 이렇게 말씀 드릴게요. “하지 마세요!”


크기변환_크기변환_작가사진 (1).jpg 크기변환_크기변환_작가사진 (3).jpg 크기변환_크기변환_작가사진-(5).jpg

 


저는 딸에게 그런 믿음이 늘 있습니다


딸 태희 양이 슬로베니아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어요. 책을 보니 학교 생활에 꽤 만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요. 학부모로서 어떤 점이 가장 좋은가요?

 

8시까지 등교해서 오후 3시까지 학교에 있는데요, 그 동안 먹거리를 세 번이나 줍니다. 잘 먹게 해주니 그것보다 좋은 게 있을까요? 참, 그리고 태희 학교의 경우는 치과가 교내에 있습니다. 치과가 교내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이 치아 건강에 신경 쓰게 되지요. 건강하게 해주니 그것보다 좋은 게 있을까요?

 

만약, 태희가 한국에서 학교를 다녔으면 어땠을 것 같나요? 

 

행복하게 잘 지냈을 것 같습니다. 행복은 장소가 만들어주지 않습니다. 본인이 만드는 것이죠. 조금 더 스트레스를 받았을 테고, 조금 더 공부를 많이 해야 했을 테고, 어쩌면 조금 더 학원비가 많이 들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행복했을 겁니다. 그 안에서 행복한 사람이 되는 방법을 찾았을 겁니다. 저는 딸에게 그런 믿음이 늘 있습니다.

 

태희가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길 소망하고 계신가요?

 

자신의 꿈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꿈’이라고 말했지만, ‘하고 싶은 것’이라고 해도 좋겠어요.) 꿈을 갖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꿈을 다른 사람에게 말할 수 있을 만큼, 확신하고 준비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아요. 미래에 대한 확신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종국에는 그 ‘꿈’을 꿈이 아니게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자신의 꿈을 깨버리는 사람! 꿈을 현실로 만들어버리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된다면 정말 멋질 것 같아요! 정.말.

 

태희에게 가장 고맙고, 가장 미안한 점은 무엇인가요?

 

제가 아빠인 게 가장 미안하고, 제 딸인 게 가장 고맙습니다. 많이 부족한 아빠라서 미안하고, 부족한 아빠를 늘 행복하게 해주는 내 딸이라서 늘 고맙습니다.

 

『사랑해도 너무 사랑해』를 읽은, 또 앞으로 읽게 될 독자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지금 당장 ‘사랑’하면 떠오르는 그 사람에게 전화를 하세요. 전화하기가 싫다면 달려 가세요. 그리고 “사랑해도 너무 사랑한다”고 말해보세요. 물론, 그 사람은 몹시 황당해하겠지만, 당신은 그 사람에게 잊을 수 없는 ‘사랑의’ 추억을 선사한 셈입니다. 독자들은 물론이고, 사람들이 더욱 많이 사랑을 표현했으면 좋겠어요. 가까운 사람에게 더 많이! 표현하지 않는 사랑은 전달되지 않는 법이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독자 여러분, 사랑합니다.


아이3.jpg 크기변환_크기변환_크기변환_아이 (2).jpg 아이2.jpg

 


강병융 작가의 딸이기 전에,
한 명의 저자인 ‘강태희’ 양에게 묻다


책을 쓰자고 해서 놀랐다고요? 아빠를 더 많이 알게 되어 놀랐다고 했는데, 특별히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요?

 

네! 엄청 놀랐어요. 제가 책을 쓸 자격이 있나 싶었어요. 처음에는 조금 떨렸지만 아빠가 많이 도와줘서 잘 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작업할 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인터뷰예요. 아빠와 둘이 앉아 ‘달달한’ 것을 먹으면 이야기를 했거든요. 그 때, 그 ‘달달한’ 기분을 잊을 수 가 없어요. 참, 그리고 아빠가 ‘슈퍼맨’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내색을 하진 않았지만, 힘들 때가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거든요.

 

요즘 태희 양은 고민은 무엇인가요?

 

저는 고민이 없어요. 그러니까 고민이 너무 없어서 고민이에요. 대신 간절히 원하는 소원이 있어요. 우리 가족 세 명이 지금처럼 오순도순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아주 오래 오래 오래!

 

아빠가 소설가가 아니었더라면, 이런 책을 쓰긴 어려웠을 텐데요. 어떻게 생각하나요? 친구들이 이런 책을 쓰겠다고 하면 추천해줄 마음이 있나요?

 

네. 꼭 추천해주고 싶어요. 이 책 덕분에 아빠와 얘기를 아주 아주 많이 했답니다. 그래서 책을 쓰면서 제 자신과 우리 아빠에 대해서 많은 걸 알게 되었으니까요. 그리고 아빠가 작가라는 사실이 더욱 자랑스러워졌어요. 작가가 되고 싶은 제 꿈도 더 커졌지요.

 

아빠를 너무 사랑하지만, 이것만은 아니다! 싶은 게 있나요?

 

아빠를 아주 아주 좋아하지만 아주 가끔 아빠가 “너는 아직 몰라도 돼.” 라고 말하면 기분이 ‘완전’ 안 좋아져요. 물론, 어른들 얘기라는 걸 알지만, 가끔은 너무 너무 궁금하거든요.

 

근래 읽은 책 중에 재밌게 읽은 책 2권만 소개해주세요.

 

벨기에에 다녀 온 뒤, 아빠가 사주신 벨기에 만화 ‘땡땡이의 모험 시리즈’를 아주 재미있게 읽고 있어요. 그리고 매 맞으러 간 아빠』라는 책도 재미있게 읽었어요.

 

또 다른 책을 써보고 싶은 생각이 있나요?

 

혹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아빠에 관한 책을 써서 아빠에게 선물 하고 싶어요. 그러면 아빠도 아주 좋아하실 것 같아요.

 

『사랑해도 너무 사랑해』가 세상에 딱 1권만 있다고 가정할 때, 어떤 사람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싶나요?

 

저의 친할머니 정순자 여사께 드리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제 아빠를 잘 키워 주셨으니까요!


 

 

img_book_bot.jpg

사랑해도 너무 사랑해강병융,강태희 공저/Fab 그림 | 지콜론북
소설가 아빠와 그의 딸이 서울, 모스크바, 류블랴나에서 만든, 12년간의 사랑과 행복이 고스란히 담긴 가족 에세이. 12년간 일상이 차곡차곡 담긴 『사랑해도 너무 사랑해』를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이 더 편안해지고 행복해지는 이유는, 이 책이 부모와 아이가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는지를 깨닫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로버트 파우저 교수 “이번 총선에서 희망을 봤다”

$
0
0

『미래 시민의 조건』의 부제는 ‘한국인이 알아야 할 민주주의 사용법’이다. 책 속에는 한국 사회의 문제와 원인을 찬찬히 짚어가는 목소리가 담겨있다. 놀라운 사실은, 이토록 객관적인 분석을 들려주는 저자가 미국인이라는 사실이다. 로버트 파우저는 1980년대 초에 서울대학교에서 한국어를 공부했고, 1988년부터 1992년까지 고려대학교 영어 교육과에서 영어를 가르쳤다. 2008년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외국인 국어교육학과 교수로 임용되어, 2014년까지 서울대학교 국어교육과에서 수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1980년대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한국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곁에서 지켜봐 온 저자의 시선은 민족이나 국가에 얽매여 있지 않다. 『미래 시민의 조건』을 통해 우리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이유다. 현대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은 그 어느 때보다 높은 교육 수준을 자랑하고, 전체 부의 총량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질적인 문제들은 남아있다. 늘어난 자원은 분배되지 못했고, 사회 통합은 요원하다. 문제의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 로버트 파우저는 ‘민주주의’를 말한다. 지금 이곳에 필요한 ‘민주주의의 올바른 사용법’을 설파하기 위해, 한국의 지난 역사를 되짚고 나아가야 할 청사진을 제시한다.

 

크기변환_5A2A9324.jpg

 

 

‘헬조선’이요? ‘헬미국’도 있어요!

 

『미래 시민의 조건』을 쓰게 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미국으로 돌아가신 후에, 한국의 상황을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으셨나요?


멀리 떨어져 있으니까 한국의 상황도 객관적으로 보이기 시작했고요. 오랜만에 돌아간 미국에서도 공통적인 문제를 보게 됐어요. 예전에 살았던 일본의 상황도 봤고요. 그 문제들 사이에는 한국과 공통적인 부분도 있고, 한국만의 특유한 문제도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요즘 한국에서는 ‘헬조선’이라는 말이 널리 퍼져 있는데요. 미국에서도 ‘헬미국’의 분위기를 느끼셨다고요.

 

‘헬일본’도 있죠. 지금은 일본에 살지 않지만요. 미국에도 제도에 대한 불만, 변화에 대한 요구들이 있어요. 제도에 대한 불만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죠. 그중 하나는 양극화예요. 한국에도 있는 문제이지만, 미국에서는 더 많이 보이는 것 같아요. 중산층 출신의 사람들은 자신이 계속 중산층에 머무를 수 있을지, 걱정을 하고 있는 거죠. 또 다른 문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자리 잡은 체제가 변하고 있다는 거예요. 소련이 붕괴한 후에 미국은 유일한 강대국으로 남았고, 미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맺는 나라들이 있었잖아요. 유럽이나 일본, 한국, 대만 같은 나라들이죠. 그런데 지금 미국 자체도 변화하고 있고 유럽도 변하고 있어요. 특히 미국의 경우에는 윗세대는 미국이 강대국으로서 세계 무대에 참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미국을 경찰국가로 생각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젊은 사람들의 생각은 다르죠. 미국 안의 문제부터 생각하자는 거예요. 그 밖에도 중국이 강대국으로 등장하고,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비롯되는 문제들도 있어요. 그런 부분도 한국, 일본, 미국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죠.

 

지난 4월 한국에서는 총선이 치러졌습니다. 작가님께서도 그 즈음에 한국으로 돌아오셨는데요. 이번 총선을 지켜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미래 시민의 조건』에서 젊은 사람들이 투표하고 정치에 참여하면서 변화를 요구하라는 이야기를 했잖아요. 그런 점에서 이번 선거는 20~30대의 젊은 층이 투표했기 때문에 기뻤어요. 그중에 한 명이라도 『미래 시민의 조건』을 보고 투표했다면, 이 책은 성공적으로 끝난 거라는 생각도 했고요. 일단 많이 청년들이 투표에 참여해서 변화를 요구했다는 사실이 정말 좋아요.

 

“변화를 요구하는 세력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낡은 1980년대 투쟁 방식의 틀에서 벗어나 어렵게 도입한 자유선거를 통해 승리한 뒤 시민의 대표 자격으로 변화를 실현하는 것이다”라고 쓰기도 하셨죠.

 

이번 선거에서는 그렇게 됐기 때문에 시원하죠(웃음). 광화문에서 시위를 하고, 그 시위가 뉴스화되고, 일부 매체는 그런 소식을 보도하지 않고, 진보적인 신문은 크게 보도하고.... 그런 건 일회성 이벤트잖아요. 국회의 정치 제도에 영향을 미치지 않아요. 그런데 이번에는 선거를 통해서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봤으니까요. 자신감을 주는 결과였다고 생각해요.

 

1980년대에 한국에서 공부하셨고, 카이스트와 고려대에서 영어 강사로 일하기도 하셨어요. 2000년대에는 서울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셨고요. 시간이 갈수록 한국 청년들의 정치적 관심이 줄어들었다고 보시나요?

 

그렇죠. 시간이 갈수록 조금 관심이 없어지는 것 같아요.

 

크기변환_5A2A9396.jpg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요?

 

그것도 미국이나 일본, 유럽과 비슷한 것 같아요. 일단 이슈가 있는 부분이 있죠. 특히 미국과 유럽의 경우는 1960년대 말에 베트남 전쟁으로 인한 갈등이 있었고, 그것이 학생 운동의 불씨가 됐어요. 일본에서도 미국과의 안보 관계, 베트남 전쟁이 영향을 미쳤고요. 이슈가 뚜렷하면 젊은 사람들이 참여하게 되는 경향은 있어요. 한국에서도 1980년대에는 이슈가 뚜렷했잖아요. 독재가 있으니까 민주화를 하자는 거였죠. 당시에는 선거를 통해서 뽑은 사람도 없었고, 언론 통제도 있었고, 지하철을 탈 때도 가방 검사를 했으니까, 민주주의가 아니라는 걸 피부로 느낄 수 있었던 거죠. 학생들이 민주화를 외치면 지지를 얻을 수 있었던 거예요. 지금은 이슈가 여러 가지이거나, 이슈는 많은데 눈에 뚜렷하게 보이지 않아요. 그리고 1980년대 민주화 운동 이후에 90년대에는 한국의 생활 수준이 올라갔거든요. 지금 많은 한국 사람들이 사는 방식이 90년대에 형성됐어요. 그로 인해서 조금 더 만족감을 느끼게 된 것도 영향이 있죠.

 

“한국 사람이 지배 계층에 진입하고 싶어 하는 이유”로 불안을 이야기하셨습니다. 무엇에 대한 불안일까요?

 

그건 미국과 조금 다른데요. 한국 사람들은 남이 잘되면 배가 아프다는 문화 풍토가 있어요, 좋든 나쁘든. 자신이 중산층이어도 더 올라가지 못하면 불안한 거예요. 주류가 못 된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위쪽에 자리해야 자신의 입지에 안정감을 느끼는 거예요. 일제 시대와 독재라는 역사적 경험이 ‘힘이 없으면 당할 수 있다’는 생각을 남겼다고 볼 수도 있죠. 교육과 관련해서도 가능하면 좋은 학교에 가라거나, 소위 SKY를 가야 한다는 부모의 압력이 있잖아요. 그런 문화적 풍토에서 불안을 느끼는 부분도 있어요.

 

경제적 양극화는 세계적인 현상이기도 합니다. 미국의 경우는 어떤가요?

 

아직까지 미국의 양극화 원인은 제조업 분야의 축소예요. 제조업은 굳이 대학을 졸업하지 않고도 비교적 보수가 괜찮은 일자리였어요. 그래서 미국의 중산층을 버티게 하는 원인 중 하나였죠. 그런데 지금은 대부분 중국에서 만든 물건을 수입하잖아요. 그렇게 제조업이 약해지면 중산층 자체가 약해지는 거죠. 아직 한국은 심각한 상황이 아니지만, 그렇게 될 수도 있죠. 한국에서도 고학력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제조업은 안전한 일자리였어요. 제조업이 줄어들면 그들이 일할 수 있는 곳은 서비스 분야가 될 텐데, 임금이 적다는 문제가 있는 거죠.

 

크기변환_5A2A9329.jpg

 

 

지금 한국은 IMF 때보다 희망이 사라진 분위기

 

최근에도 ‘조선업 구조조정’이 커다란 문제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그렇죠. 그런 점에서는 IMF가 첫 경험이었죠. 갑자기 구조조정이 이루어졌고, 해고된 사람들이 새로운 일을 찾기 힘들었고, 그래서 사업을 시작하게 됐지만 어려움을 겪었고요. 그때 중산층이 위기에 빠진 거죠.

 

『미래 시민의 조건』에서 말씀하시길, IMF 때만 하더라도 한국 사람들이 낙관적이었다고 하셨습니다. 오히려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이후에 한국에서 “미래에 대한 희망이 사라진 허망한 사회 분위기”가 심해졌다고요.

 

IMF 때도 힘들었죠. 지금보다 훨씬 더 힘들었어요. 경제는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고, 구조조정 대규모로 이루어졌잖아요. 사실 한국은 2008년의 세계 금융 위기를 비교적 잘 버텼어요. IMF 때와는 느낌이 반대인 거죠. IMF 당시에는 국민이 희망을 가지고 힘을 모아서 극복하자는 운동이 있었잖아요. 금 모으기 운동도 했고요. 그런데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이후에 한국은 그냥 버티는 거죠. 희망을 가지고 해내자는 목소리를 사라진 것 같아요. 그래서 더 심각하게 느껴지는 거죠. 통계상으로 보면 IMF 때 피해가 훨씬 더 컸지만요.

 

IMF 때는 ‘빚을 갚으면 된다’는 해결 방안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렇죠. IMF 때는 열심히 극복하면 된다는 생각들을 했어요.

 

하지만 세계 금융 위기 이후에는 ‘이건 세계적인 흐름이니까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그래서 버티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거죠.

 

네, 그런 부분은 있어요. 그런데 이번 선거를 통해서 조금 희망이 보이는 것 같아요. 버티는 것보다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 거죠.

 

성장보다 분배를 이야기하는 목소리가 높아진 것이 희망일까요?

 

네, 그렇죠.

 

크기변환_5A2A9359.jpg

 

“20세기에 여러 선진국이 사회주의적 정책을 도입하기 시작했을 때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였다”는 지적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원래 사회주의적 정책이 약한 상태에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균형을 이루기 어려웠”기 때문에, 지금 분배에 대해 논의하는 것도 쉽지 않은 거겠죠.

 

쉽지 않아요. 분배하자고 이야기하면 빨갱이라고 말하는 코드가 있죠. 『미래 시민의 조건』에서 전달하고 싶었던 건, 그렇다고 해서 빨갱이가 아니라는 거예요. 공산주의와 사회민주주의는 달라요. 사회민주주의는 정부가 개입함으로써 불합리한 부분의 균형을 잡자는 건데, 이미 유럽의 많은 나라가 하고 있고 심지어 미국도 하고 있어요. 미국은 1936년에 국민연금이 생겼고, 실업수당은 그 이전에 생겼어요. 일본도 하고 있죠. 결국에는 자본주의 시장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정부의 개입으로 해결하자는 거예요. 그렇게 하면 건전한 논쟁이 될 수 있는데, 한국에서는 사회주의 자체가 빨갱이나 북한과 연결되는 경향이 있죠. 그건 전혀 아니거든요. 그런 화두를 던지고 싶었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한국 사회는 ‘레드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비롯되는 세대 갈등도 있고요. 미국에도 이와 비슷한 현상이 있나요?

 

미국도 마찬가지예요. 책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저는 버니 샌더스를 지지하는데요. 처음에 버니 샌더스가 관심을 끌기 시작했을 때 기성 언론은 버니를 사회주의자라고 했어요. 그런데 버니는 자신이 사회민주주의자라고 이야기하고, 계속 그걸 강조했거든요. 그러면서 버니 샌더스가 관심을 끌고 점차 지지자가 많아지니까 언론이 사회주의라는 말을 쓰지 않더라고요. 너무 그런 식으로 코드화하면 안 된다는 거죠. 저는 원래 언어학자니까, 그 모습이 굉장히 재밌었어요. 미국의 ‘레드 콤플렉스’를 엿볼 수 있는 거죠. 역사적으로 미국은 소련과 경쟁했었기 때문에, 미국의 기성 세대는 사회주의 자체에 대한 거부감이 강해요. 공산주의는 말할 것도 없고요. 반면 젊은 사람들은 사회주의에 대한 느낌이 없어요. 지금의 30대가 1980년대에 태어났잖아요. 그들은 소련을 기억도 못 하고 이전 세대와는 다른 역사 교육을 받았어요. 그러니까 버니가 무슨 사회주의자냐, 그게 무슨 문제가 되냐, 이런 반응이죠. 그런데 한국은 아직 분단되어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레드 콤플렉스나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아쉽게도 한국의 진보 중에 아주 극단적인 사고방식 가지고 있는 사람도 활동을 하고 있고요.

 

버니 샌더스가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될 수 있을까요?

 

어려울 것 같아요. 그건 거의 결정된 것 같기도 한데,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되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버니 샌더스가 진보적인 개혁을 이야기하는 것도 놀랍지만, 도널드 트럼프가 내세우는 배타적 애국주의에 미국 시민들이 반응하는 모습도 놀랍습니다. 미국 사회의 문제점, 미국 사람들의 요구가 투영되어 있는 것 같기도 한데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버니 샌더스와 도널드 트럼프 사이에 비슷한 부분이 없지는 않아요. 공통점이 있다면 지금까지 해온 것에 대해서 변화를 요구한다는 거죠. 그리고 두 사람 다 미국의 소위 엘리트에 대한 저항을 대변하는 거예요. 힐러리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보면 경제적으로 잘 살거나 나이가 많은 민주당 당원, 그다음이 흑인, 그리고 약간의 윗세대 여성들이거든요. 오히려 버니 샌더스는 중산층이거나 젊은 백인들이 지지해요. 약간 경제적으로 두려워하는 백인들이라고 할까요. 젊은 사람들은 수익이 적으니까, 그중에 젊은 사람도 많죠. 힐러리는 근원적으로 오바마의 제3기를 주장하기 때문에 흑인들한테 매력이 있는 거예요. 민주당 안에서 강력한 변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면, 그건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부인이 될 수도 있는 거거든요. 오바마 대통령이 해온 대로 계속 유지하겠다고 하면 사실 보수적인 이야기인데, 힐러리가 말하는 게 그거거든요. 그러니까 흑인들의 표도 모이고, 너무 큰 변화가 오면 곤란하다고 생각하는 잘 사는 계층의 민주당 사람들의 지지를 받는 거죠.

 

도널드 트럼프가 내세우는 변화는 어떤 건가요?

 

마찬가지로 공화당에서 이전에 나온 후보들은 기업가들의 지지를 받았어요. 그런데 트럼프는 서민의 지지를 받았죠. 트럼프는 사업가이기 때문에 마케팅을 잘해요. 한 번은 연설에서 교육을 잘 받지 못한 사람들을 사랑한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그래서 교육 수준이 낮은 사람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죠. 돈 있는 공화당의 기업가들, 부자 세력에 대한 저항으로 볼 수 있는 거예요. 트럼프는 한국에서의 미군 철수 등 여러 가지로 변화를 이야기하죠. 버니 샌더스도 변화를 외치는 거고요. 오바마가 해온 대로 이어가자고 말하는 힐러리는 보수적인 거죠.

 

지금 미국의 시민들은 변화를 원하는군요.

 

변화를 원하는 사람이 많아요. 저는 오바마에 대한 불만은 없는데, 지금 세금이 너무 비싸고 물가가 높아요. 집 임대료도 비싸고요. 집을 사는 가격도 비싼 데다가, 집을 구입한 후에 내야 하는 재산세도 비싸요. 그런 부분들이 또 임대료에 반영이 되잖아요. 그러니까 경제적인 부담이 커졌다는 걱정들이 있죠. 그리고 젊은 사람들은 미국이 강대국으로서 해외에서 권력 행사해야 된다는 것에 대한 불신이 있어요. 이라크 전쟁은 역사적으로 보면 다른 나라를 침략한 건데, 무기가 있다는 걸 명분으로 내세웠지만 사실이 아니었잖아요. 대통령이 국민 앞에 거짓말을 한 거죠. 그렇기 때문에 정부에 대한 불신도 있어요.

 

크기변환_5A2A9376.jpg

 

 

한국의 유권자, 권력 집중에 대한 거부감 갖고 있어

 

『미래 시민의 조건』서문에서 “‘국민’의 사고에서 ‘시민’으로서 의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의미인가요?

 

국민은 개인이 국가에 속한다는 개념이 강해요. 그런데 시민은 개인이 국가와 계약을 맺는다는 개념이라서, 개인의 전제가 더 강한 거죠. 한국은 유신 시대 때 지도자가 국민을 생각하고 뭔가 주려고 하는 사람으로 인식됐고, 국민은 지도자 밑에서 따라와야 한다는 식이었잖아요. 그럴 때의 국민이 소극적인 대상이라면, 시민은 조금 더 개인의 전제가 있어서 국가와 계약하는 주체예요. 시민이 국가의 주인이지, 어떤 지도자나 군주가 주인인 건 아닌 거죠. 그런데 지금 현직 대통령은 국민 개념으로 가고 있는 것 같아요. 민주화된 한국의 많은 사람은 시민의 개념으로 생각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요. 이들은 자신이 먼저 있고, 국가와 계약을 맺은 거라는 생각이 강해요. 그렇기 때문에 국가에게 불만이 있으면 떠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헬조선’이나 ‘탈조선’ 같은 이야기가 나오는 거죠. 그런 건 넌센스 같은 이야기이기는 하지만요. 그런데 현직 대통령은 약간 국민의 패러다임으로, 지도자가 국민한테 무언가를 주는 패러다임으로 운영하고 있어요. 그건 나쁘다기보다, 시대에 뒤떨어진 부분이 있는 거죠.

 

민주주의라는 개념 자체가 시민에게 주권이 있다는 것인데, 한국에는 프랑스 혁명과 같은 경험이 없습니다. 민주주의를 학습할 시간도 부족했고요. 그런 점에서 선진국보다 한국의 민주주의 성숙도가 낮은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건 당연하다기보다 피할 수 없는 이야기이죠. 보통 우리가 배운 역사는 4.19 혁명 이후에 민주주의를 하려고 했다가, 나라가 흐트러지고 발전이 없어서 박정희가 5.16 군사정변을 일으켰고, 발전의 길을 터주면서 나라가 커졌다는 건데.... 잘 모르겠어요. 4.19 혁명 이후에 계속 민주주의를 했다면 어떻게 됐을지 모르죠. 비교적 한국은 민주화 이후에 민주주의를 빠르게 도입했어요.

 

한국이 민주주의 선진국의 발전 속도를 빠르게 따라잡을 수 있다고 보세요?

 

그렇죠. 지금도 선거의 결과를 보면 민주주의가 정착한 거죠. 그런데 한국은 독특한 여건이 있죠. 미국과의 독특한 관계도 있고, 20세기에 일제 시대와 독재 시기를 경험했어요. 그 과정에서 미국의 민주주의를 벤치마킹했어요. 미국과의 관계가 있었으니까요. 프랑스의 경우는 세계적 환경이 바뀌어서 정권이 없어진 게 아니라 스스로 혁명을 일으킨 거잖아요. 사실 미국도 그래요. 그런 면에서 보면 한국은 빨리 민주주의를 도입한 건 맞아요. 미국을 만나고 나서 ‘좋은 나라는 민주주의국가이다’라는 사고가 생긴 거죠. 좋은 나라의 전례로 여겼던 미국이 독재와 손을 잡았기 때문에, 그 모순 때문에 비판하게 된 거고요. 중요한 건 ‘좋은 나라는 민주주의 국가’라는 사고가 있었다는 거죠. 그래서 1980년대까지는 계속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존재했던 거예요.

 

선거철마다 ‘투표한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냐’는 이야기도 들려오는데요. 우리 스스로 민주주의를 성장시킬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일단 자주 바꿔야 돼요. 여당과 야당이 계속 바뀌어야 하죠. 지금까지 한국의 선거 결과를 보면 그렇게 해왔어요. 흥미롭게도 한국의 유권자는 권력 집중에 대한 거부감은 있어요. 한쪽 당에 권력을 많이 주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어서, 조금 분산시키려고 해요. 그게 재밌는 것 같아요. 하나의 희망일 수도 있고요.

 

“한국의 정치 구도에선 민주주의를 근본적으로 이해 못하는 세력이 강해서 더 깊은 민주주의를 기대하기가 어렵다”고 하셨는데요. 한국의 보수와 진보는 각각 어떻게 민주주의를 오해하고 있나요?

 

민주주의는 결과가 아니라 절차이죠. 그리고 과반수의 의견을 따르기 때문에, 소수의 권리를 지키면서 다수의 방향으로 가야 돼요. 예를 들면, 일부 과격한 집단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구호로 외쳐요. 지금의 정권은 선거를 통해서 구성된 것이고, 그들은 선거가 문제가 있었다는 증거가 없어요. 그렇다면 대다수의 결정에 어긋나는 거죠. 선거를 통해서 뽑은 대통령을 하야시키려면 커다란 증거가 있어야 돼요. 매커니즘은 탄핵인데, 탄핵할 수 있는 길도 있지만, 그러려면 뚜렷한 증거 있어야 되는 거죠. 대통령으로서는 부적절하다는 걸 입증해야지, 단순히 정책이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그냥 마음에 안 든다고 해서 정권 퇴진을 이야기한다면 넌센스죠. 근본적으로 그런 극단 좌파는 민주주의를 모르는 거예요. 그런데 아마 보수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민주주의는 대다수의 결정을 따라가야 하는데, 소수 의견을 낸 사람들도 자신의 의도를 전달할 수 있는 부분이 마련되어야 하죠.

 

크기변환_5A2A9366.jpg

 

한옥 사랑이 남다른 것으로 유명하시잖아요. ‘서촌주거공간연구회’ 회장을 맡기도 하셨고, ‘한옥 지킴이’로 불리기도 하셨습니다. 얼마 전에는 『서촌홀릭』이라는 책도 출간하셨는데요.『미래 시민의 조건』과는 사뭇 다른 이야기가 담겼을 것 같습니다. 어떤가요?

 

『서촌홀릭』은 에세이예요. 저의 개인적인 생활, 살아온 길을 이야기했고요. 한국에 살면서 느낀 것에 대한 이야기도 있어요. 도시 문제와 관련해서 보존과 개발, 골목의 의미, 한옥에 대한 관심, 한옥에 살면서 느낀 점, 서촌이라는 지역, 그리고 다른 도시의 오래된 지역에 대한 이야기도 있어요.

 

오래된 집이나 골목에 대해서 애정을 갖게 되신 건 한국에 오신 이후의 일인가요?

 

아마 한국에 살 때도 애정이 생겼을 테지만, 교토에 살 때 많이 생겼죠. 교토에서 그런 동네에 살았기 때문에 장점을 느낄 수 있었던 거죠.

 

일본에도 잘 보존된 전통 집들이 많을 텐데요. 한옥과 다른 매력이 있나요? 한옥의 매력에 빠지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일본의 오래된 집도 좋아하지만, 한옥 자체보다 한옥 동네가 좋아요. 골목이 있고, 마당이 있고, 조용하고, 나무도 심을 수 있고, 자연과 땅이 있잖아요. 지나친 간섭도 없고요. 그래서 차분한 생활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자동차가 없는 사람이기 때문에, 아파트에 살면서 주말에는 차를 타고 큰 마트에 가서 물건을 많이 사가지고 돌아오는 생활은 좋아하지 않아요. 그런 건 저와는 맞지 않고요. 슬로우 라이프 좋아하는데, 아마 그게 가치관일 거예요. 한옥을 보고 예쁘다고 생각하거나 낭만을 느낀다기보다, 제 가치관에 맞는 환경인 것 같아요. 한옥이 아름답고 좋기는 하지만, 주위의 경관이나 환경이 저와 맞는 것 같아요.

 

『미래 시민의 조건』을 계기로 어떤 담론들이 활발해지면 좋을까요?

 

이 책이 총선 전에 나왔는데요. 일단 투표를 많이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리고 미래에 조금 더 주도권을 갖고, 자신이 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감각으로 미래에 대해서 고민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그런 간곡한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요. 시민으로서 주인의식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나라를 만드는 데에 참여하라고요. 
 

 

 

img_book_bot.jpg

미래 시민의 조건로버트 파우저 저 | 세종서적
80년대의 민주화 운동과 코리안 드림부터 90년대 IMF 외환위기를 거쳐 지금 부의 집중 현상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영고성쇠한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면서 오래되었지만 피할 수 없는 한국 사회의 결점들을 진지하게 응시한다. 오늘날 한국 사회 문제의 원인을 민주주의의 문제라고 인식한 그는 우리의 실상과 속내를 섬세하게 본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임성순 “이 소설, 사실 불쾌할 수도 있어요”

$
0
0

전립선염에 걸린 대기업 부장이자 기러기 아빠인 이 부장이 치료 과정에서 알게 된 드라이 오르가슴. 바로 이것이 사건이었다. 이 부장은 욕구불만이 무엇이었던가 비로소 깨달음을 얻는다. 삶이 무척 풍요로워졌음을 느낀다. 하지만 뭔가 불안하다. 그가 이해하지도 못하는 수학 공식을 씹어 먹을 듯 외웠던 것처럼 이 기쁨에도 해답이 있길 바랐다. 정석을 찾아야 했다.

 

이해 가능한 세계의 풍경이 넓어지며 이 부장은 멀미를 느꼈다. 아직 정리되지 않은 것들이, 예정되지 않은 대로 움직이는 세상. 그것은 이 부장에게 두려움이었다. 그럼에도 그가 원했던 것은 확실한 약속이나 분명한 보장, 혹은 거창한 미래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에게 보상은 오르가슴으로 충분했다. 다만 이 낯선 새로운 세계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만이라도 알고 싶었다. 그러니까 이 부장에겐 정석이 필요한 것이었다.(101쪽~102쪽)

 

이 부장은 정석을 찾았을까? 혹 소설에서 답을 기대했다면 실망할지도 모른다. 작가는 답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 소설을 쓴다고 했다. 맞다, 임성순의 소설을 읽으면 언제나 질문이 생겼다. 『자기 개발의 정석』도 마찬가지다. 중년 남성의 고독한 삶, 발병과 치료 과정에서 발견한 의외의 기쁨, 기러기 아빠의 외로움을 따라가다 보면 가족이란 무엇인가, 어떤 삶이 가능한가 하는 데까지 생각이 뻗치는 것이다.


작가 임성순은 ‘회사 3부작’(『컨설턴트』, 『문근영은 위험해』, 『오히려 다정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 과『극해』등으로 예측 불가능한 다양한 작품 세계를 보여줬다. 아직 임성순을 읽지 않았다면 반드시 읽어보기를 권한다. 『자기 개발의 정석』으로 임성순을 처음 읽은 독자라면 꼭 다른 책을 찾아 읽어보길 권한다. 같은 작가의 소설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른, 아주 흥미진진한 세계를 만나게 될 테니까.

 

크기변환_5A2A9921.jpg

 

 

자기계발 의무, 일종의 불안


주인공이 ‘이 부장’ 이죠. 이름이 없어요. 네이버 출간 전 연재 당시에도 공감된다는 댓글이 많이 달렸거든요. 세상 모든 이 부장을 생각하게 하기도 하는데, 이 호칭이 주는 대표성에 대해 먼저 이야기 나누고 싶어요.


가장 흔한 성 씨가 ‘김’, ‘이’, ‘박’이잖아요. 그중 하나를 골랐어요.(웃음) 거기에 더해 ‘부장’이라는 것이 중년 남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잘 보여주죠. 중년 남성은 가장, 아버지라든가 자기 믿음을 갖고 있다든가 하는 것보다 오히려 직장의 직급으로 대표되는 경우가 더 많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직급이 들어간 이름을 해야지, 생각해서 쓰게 된 게 ‘이 부장’이라는 캐릭터고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다른 캐릭터들도 가능하면 이름이 안 나오게 해야겠다고 해서 이름 없이 모두 특징들로 호칭을 붙여서 만들었어요.

 

‘여드름’처럼요.(웃음)


네, ‘수염’이라든가.(웃음)

 

그런가 하면 이 부장은 ‘정석’이 필요한 사람이잖아요. 결정되지 않은 것을 불안해하죠. 이 점도 주목하게 되거든요. 이를 테면 지금 사람들의 심리죠.


개인적인 생각이긴 한데요. 자기계발서가 무조건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다르긴 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같은 것도 당시 비극을 쓰는 극작가를 위한 일종의 실용서였거든요. 그런 것 자체가 나쁘진 않다고 생각하는데요. 사람들이 너무 과하게 자기계발 의무에 시달리는 것을 일종의 불안이라고 봐요. 왜냐하면 현대의 자본주의 사회가 사람을 계속 시대에 뒤처지는 느낌이 들도록 만들거든요, 가만히 있으면요. 그래서 재테크도 해야 되고, 자기계발도 해야 해요. 나쁘게 말하면 노동력을 착취하는 거고, 좋게 말하면 좀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웃음) 채찍질을 하는 그런 사회인데요. 어쨌거나 그런 것 때문에 불안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불안에 대해서 얘기하는 게 반대로 욕구를 억압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 방향에서 작품을 쓰게 된 거죠.

 

극단적인 대비예요. 가장 사적인 영역, 가장 내밀한 것조차 방법이나 정석을 알아내고 싶어 하는 심리라는 것 말이에요.

 

그렇죠, 한국 사회에서 그런 방향의 사람이 되는 게 굉장히 바람직하다고 가르치는 것 같아요. 대놓고 교육하진 않지만 경쟁에서 지면 안 되고, 언제나 틀리면 안 되고, 어디에 들어가서도 최선을 다해라, 요즘 하는 말로 ‘노오력’을 해라(웃음), 노력이 부족해서 그런 거다, 하잖아요. 이 부장은 그런 것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기화시켜서 성장한 한국인의 전형 같은 거라고 생각해서요. 그 부분에 있어 늘 정석을 찾고, 늘 바른길을 찾고, 그럼으로써 안정감을 얻는 캐릭터를 만들었습니다.

 

지식마저도 소비되는 경향이 너무 많잖아요.


지식뿐 아니라 요새는 진정성도 소비되는 걸요.(웃음)

 

크기변환_5A2A9965.jpg

 

 

재미있게만 읽었다면 다행


자기 ‘개발’이라는 제목도 그렇고, 소제목이 재미있어요.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을 차용했어요.


작품을 완성하고 챕터 제목을 붙여야 하는데 고민을 하다가 자기계발서 제목을 붙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부장이 읽었을 만한 책이 뭐가 있을까, 라고 생각해서 챕터를 끌어 왔는데 배치를 하니까 의외로 잘 맞아서 약간 분량만 조정하고 그대로 가져와서 쓰게 된 거거든요. 그런 걸로 소소한 재미랄까 아이러니랄까 그런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자기계발서가 말하는 법칙을 그대로 적용한 듯한 챕터가 진행되는 전개가 독자들한테 어떤 재미를 주지 않을까 생각해서요.

 

아이러니라면 특별히 어떤 것을 비꼬는 장치라고도 생각했던 건가요?


그런 생각을 했거든요. 자기계발서의 특징이 항상 옳은 말만 하고, 단지 지키기가 힘들 뿐이고 그렇죠. 그래서 지킨다고 해도 바람직한 사람이 되는지 사실 저는 잘 모르겠거든요. 그렇지만 만약 이 부장이 그런 삶을 살아왔다면 지금 닥친 이 상황도 자기계발서의 한 챕터처럼 느끼겠구나, 그렇게 행동하겠구나, 하는 것을 바닥에 깔고 보여주는 장치였어요. 그런 규칙으로 이 부장이 움직이고 있다면 자기계발서가 있으면 좋을 텐데, 해서 고민했던 게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이랑 몇 가지가 있었어요.(웃음) 그중에 이 부장이 가장 열심히 읽고, 이 책을 피와 살로 삼아야지 생각했을 법한 게 딱 보니까 스티븐 코비 책일 것 같아서 그걸 챕터 제목으로 쓰게 됐죠. 개인적으로 그 자료를 찾아보면서 재미있는 것도 많았어요.

 

인터뷰 준비하다가 눈에 띄는 리뷰를 발견했어요. 한 줄인데요. 읽어드릴게요. ‘본격 전립선오르가슴다단계개망신 소설’(웃음) 이거 어떤가요?


그렇게 읽으실 수도 있죠.(웃음) 사실 『극해』『오히려 다정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가 굉장히 진지하고 무겁잖아요. 그걸 본 어떤 분과 차 마시며 이야기를 하는데 사람들이 제 책을 많이 안 읽는 걸 굉장히 안타까워 하시면서(웃음) 이런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본인 생각에도 실제 사는 세상이 이렇게 힘든데『극해』 같이 꿀꿀한 소설 읽고 있으면 기분이 더 안 좋아진다, 사실 네가 독자를 약간 고문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고요. 그래서 다음에는 정말 읽기 쉬운 소설을 한 번 써봐야지, 해서 이 소설을 쓰게 된 거예요. 쓸 때는 이런저런 의미나 상징을 생각하고 쓰긴 했지만 그냥 코미디 장르로써 재미있게 읽혔으면 하는 바람에서 썼고요. 그런 의미에서 이런 ‘본격 전립선...’(웃음) 그렇게 보셨더라도 저는 재미있게만 보셨다면 되게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작품의 무게감이나 분위기와는 상관없이 쉽게 읽히는 소설이라고 쉽게 쓰이는 건 아니잖아요. 워낙 묘사도 많고 한데 쓰기 힘든 점은 없었나요?


아니요, 구성 자체는 보시면 아시겠지만 모더니즘 소설을 그대로 따랐어요. 캐릭터가 있고, 캐릭터가 전이를 하죠. 돌아다니면서 다른 캐릭터들을 하나씩 만나고, 마지막에는 모더니즘 소설론에서 늘 배우는 ‘에피퍼니(epiphany, 단순한 사건이나 경험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것)’를 하는데요. 그 형태 그대로예요. 단지 에피퍼니 끝에 약간 엔딩을 비틀었을 뿐이죠. 그런 식으로 써야겠다고 생각해서 구성 자체는 힘들진 않았고요. 처음 구상할 때 엔딩부분은 정해놓았거든요. 그렇다면 블랙코미디로 가고, 모더니즘 소설 구조를 그대로 가져와야겠다, 한 거예요. 이것이 현대사회에 대한 내용이니까 모더니즘 소설을 공부할 때 배우는 대표적인 영미의 모더니즘 소설 구조를 그대로 가져와서 써야겠다 했던 거죠.


읽어보시는 분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취재 시간을 훨씬 더 많이 썼어요. 처음 소설을 쓰게 된 것도 누가 인터넷에 올린 전립선 치료 경험을 보고 찾아보면서였거든요. 의외로 많더라고요. 또 책에 나오는 그런 제품들을 파는 사이트에 가면 경험담이 엄청나게 많아요.(웃음) 그것들을 다 받아서 정리해서 쓰게 된 거였거든요. 의외로 취재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던 것 같아요.

 

모더니즘 소설 구조 역시 ‘정석’이네요.


네, 정석인 거죠. 이를 테면 모더니즘 문학의 정석 구조를 그대로 가져온 거죠.

 

본격적으로 쓰는 데는 얼마나 걸렸나요?


자료 찾는 시간이 오래 걸려 그렇지 쓰는 데는 석 달 정도 걸린 것 같아요. 제일 빨리 쓴 소설에 속해요. 예전 인터뷰에서 차기작이라고 했던 SF는 아직도 쓰는 중이거든요. (웃음) 먹고 살려고 시나리오 쓰느라 1년에 6개월 정도밖에 소설을 못 써요. 많이 못 쓰긴 하는데 그건 아직도 3고까지 쓰고 4고 작업을 위해서 기다리고 있요. 이건 의외로 무척 빨리 끝났어요.

 

크기변환_5A2A9867.jpg

 

 

해피엔딩이라고 본다


마지막 장면 말인데요. 이 부장 인생 최대의 위기를 맞은 장면이죠. 부부 간에 제대로 된 대화를 하지 않아서 발생한 사건인데, 말하자면 소통의 부재가 문제였어요.


저는 나름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하고 쓴 거였거든요. 물론 독자들은 동의하지 않겠지만(웃음) 『오히려 다정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가 저는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던 것처럼요. 이것도 일종의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가족 안에 분명히 존재하는 문제고 그것에 대해 가족 모두가 서로 불편하지 않으려고 의도적인 소통의 부재를 겪은 거죠. 그것을 생각하면 피차 불편해지니까 그 부분은 일정 부분 접고 지금 상황에서 최선이라 생각하는 쪽을 가게 됐는데요. 어쨌거나 모든 가족 구성원이 문제를 정면으로 인식하게 된 거잖아요.(웃음) 그런 의미에서 해피엔딩이라고 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해피엔딩이라는 데 이견은 있을 수 있겠지만요.


특히 해피엔딩이라면, 그러면 딸은 빼줘야 하지 않느냐고 하더라고요.(웃음) 그런데 가족 구성원으로서 딸이 배제될 수 없다고 생각하고요. 이 소설이 가부장적이고 윤리적인 엄숙주의를 비꼰다는 측면에서 반대편에 있는 소설이라고 한다면요. 그렇다면 딸을 빼면 그 의미가 약간 희석될 것 같아서 딸이 꼭 봐야 한다고 저는 생각했어요.

 

작가의 그런 의도를 막연하게나마 짐작했던 것 같아요. 마지막 장면을 덮고, 그러면 그 이후에 어떻게 됐는지 생각해봤거든요. 그랬을 때 이제야 비로소 이 가족이 이 문제를 서로 이야기하고 해결해나갈 수 있겠다는 상상을 했어요.


그렇죠, 사실대로 말할 수밖에 없죠. 물론 많은 뒷부분은 생략하겠지만(웃음) 어쨌든 앓고 있는 병에 대해서는 사실대로 말하게 되겠죠. 그런 의미에서 병 자체, 전립선염이라는 것보다는 기러기 아빠라는 게 더 문제예요. 우리 사회의 어떤 단면을 볼 수 있는 현실인 동시에 가족으로서는 굉장히 비정상적인 거잖아요. 그런 문제를 보게 됐다는 점에서 저는 해피엔딩이라고 생각해요.

 

크기변환_5A2A9955.jpg

 

쓰면서 독자 생각도 했을 것 같거든요.


그냥 여러 가지 측면에서 최대한 많은 의미를 담으려고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재미있게 읽으셨으면 좋겠어요. 그게 이 소설 애초의 의도에도 굉장히 부합하는 거고요. 『자기 개발의 정석』을 자기계발서의 정반대에 있다고 생각하며 썼는데 막 이 소설의 의미가 뭐고, 이런 생각을 하면 자기계발서랑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그냥 재미있게 읽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고, 재미있게 읽으시면 좋겠어요. 제가 생각했던 주제나 의미나 여러 가지를 떠올리는 건 부차적인 문제라 생각하거든요.


솔직히 읽는 독자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저는 모르잖아요. 작가도 여러 가지를 걸고 열심히 쓰는 거긴 하지만 독자도 독자 나름의 삶이 있고, 그 삶 속에서 책을 읽는 거잖아요. 사실 불쾌할 수도 있어요. 어떤 분들은 의미 있게 느낄 수도 있는데 그걸 제가 일일이 이렇게 읽어야 한다, 이게 맞다, 너는 이 책을 읽었으니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라고 생각하고 의도하는 건 약간 주제넘은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최대한 제가 생각하는 선에서 완성도 있게 쓰고, 최대한 책값에 부합하는 재미를 드리려고 노력해서 썼죠.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몫이고요. 독자들이 제 의도에 부합하게 읽었다면 저로서는 감사한 일이고, 그렇게 읽지 않으셨다 해도 어쩔 수 없는 거죠. 

 

다른 작품들과 확실히 다른 느낌이거든요. 특히 가장 최근에 나온 장편 『극해』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예요. 변화의 이유가 있었을까요?


작품마다 색깔이 약간씩 다른데요. 사실 제가 작가로서 아직 완성됐다고 생각하진 않거든요. 가능하면 개인적으로는 작품을 쓸 때마다 안 해봤던 것을 해보고 다른 형태로 시도해보려고 해요. 그래서 지금까지 나온 작품들이 색깔도 다 다르고 문체도 미묘하게 다 다르고 이야기하는 주제가 어느 정도 일치하는 측면이 있긴 하지만 형식이나 기법도 조금씩 다르거든요. 개인적으로는 최대한 안 해봤던 걸 많이 해보고 싶어서 다르게 쓰는데요. 누가 그러더라고요. 필모그래피(filmography) 관리를 개판으로 한다고요.(웃음) 그래서 고정 독자층이 안 생기는 거라고요. 사실 작가가 문체도 일정하고 작품색도 비슷해야 브랜드로서의 작가 이미지를 만들 수 있는데 그걸 제대로 못하고 있다고 뭐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그것보다는 아직은 최대한 많이 이것저것 해보고 싶어요. 그걸 독자들에게 판다는 게 약간 미안하긴 하지만요.(웃음)


우리나라에선 문체라는 걸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잖아요. 저는 그 작품에 적합한 문체냐 아니냐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일부러 의식적으로 작품에 따라 문체를 달리 해요. 예를 들어 『극해』 같은 경우 굉장히 하드보일드하고, 문장도 압축적으로 건조하게 썼고요. 『자기 개발의 정석』같은 경우는 최대한 심리 묘사에 충실하게 썼어요. 그런 것도 작품에 따라 독자들이 읽는 데 더 좋은 쪽으로 맞춰 쓰는 게 낫다고 생각해서 일부러 다르게 쓰는 거예요. 


그것은 계속 새로운 도전이었을 텐데요. 그중에서도 작가가 지향하는 글쓰기나 편안하게 썼다고 하는 작품이 있다면 어떤 건가요?


글쎄요. 그나마 『자기 개발의 정석』이 가이드가 충분히 있었으니까요. 모더니즘 소설의 정석대로(웃음) 쉽게 쓴 편이긴 한데요. 쉽게 써본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매번 쓸 때마다 약간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었죠. 그래서 작품 쓸 때마다 여러 고를 쓰게 되는 것 같아요. 써가면서 ‘이런 방향으로 써야겠다’ 생각하고, 엎고 다시 쓰고 하니까요. 굉장히 비생산적이죠.

 

작가의 작품을 읽고 팬이 되어 다음 작품을 기다리는 독자들에게 응답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글쎄요, 그러는 것이 작가로서 독자를 배려하고 충실한 거겠죠. 그런데 제가 독자들이 제 소설을 어떻게 읽는지 간섭 안 하는 것처럼(웃음) 저도 독자들의 요구에 부합하는 좋은 작가는 못 되는 거죠. 제가 독자에게 좋은 독자이길 강요하지 않는 것처럼 저도 좋은 작가는 못 되는 것 같아요.

 

크기변환_5A2A9884.jpg

 

 

사람이라는 게 뭔가


하고 싶은 이야기도 있을 것 같아요. ‘회사 3부작’으로 자본주의와 구조 안의 개인을 이야기했다면, 『극해』역시 외부에 의해 결정되는 인간의 운명을 보여주고 있죠. 이번 작품도 굉장히 개인에 집중하게 되는 작품인데요. 그렇게 본다면 작가의 주된 관심사가 읽히기도 하거든요. 어떤 이야기를 쓰고 싶어지는지 궁금해요.


공통적으로 굳이 얘기하자면 구조 속에 있는 어떤 개인의 실존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는 측면이 있는데 구체적으로 보면 그 형태가 다 다르긴 하죠. 넓게 얘기하자면 그렇게 볼 수도 있겠네요. 그런데 솔직히 ‘구조 속 개인의 실존’(웃음) 이라면 거의 모든 인간에 대한 이야기나 마찬가지라 이걸 묶을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이를 테면 지금 쓰고 있는 SF 같은 경우는 자본주의에 대한 얘기가 거의 안 나올 것 같거든요. 그러니까 꼭 반자본주의 소설 쓴다거나 이런 건 아니고요. 그냥 인간이라는 게 어떻게 이루어지고, 사람이라는 게 뭔가, 이런 것에 대한 얘기를 하는 편이긴 하죠. 그렇지만 얘기했듯이 이게 무엇이라고 얘기하기에는 굉장히 넓은 주제라서요.

 

사람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면 사실 이런 이야기를 계속 쓸 수 없는 거겠죠.


그렇죠. 작가가 되기 전에 그런 생각을 했었거든요. 작가가 되는 것보다 작가로서 계속 작품을 써나가는 게 더 힘들 거란 생각을 했었어요.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최대한 뭔가 방향을 정해놓고 어떤 것을 파는 작가가 되기보다는 열어놓고 최대한 가능성을 많이 모색해보자, 그러는 편이 오히려 더 많은 걸 써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했어요. 그래선지 쓸 얘기가 떨어져서 못 쓴다기보다 시간이 없어서 못 쓰는 좀 행복한 작가 축에 들거든요.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일부러 그때 생각했던 것대로 지금 최대한 열어두고 작업을 해가려고요. 그러다보니 늘 고정된 독자층이 생길만 하면 배신을 하고(웃음) 말죠. 가령 『컨설턴트』를 보고 굉장히 장르와 순문학 중간의 그런 작품을 써줄 거라고 기대하고 『문근영은 위험해』를 봤더니 ‘이건 뭐야?’하는 거죠. 『문근영은 위험해』를 보고 코믹한, 키치적인 작품을 쓰는구나 생각했는데『오히려 다정한 사람들이 살고 있다』로 또 한 번 독자들을 쫓아내고요. 이런 식이었던 것 같아요. 아마 다음에 나올 SF도 그런 의미에서 굉장히 다를 거예요.

 

그 SF 이야기를 해주실 수 있나요?


1고, 2고, 3고가 완전히 다 달라서 뭐라고 말씀 드리기가 그런데요. 처음에는 SF 장르에 충실한 형태로 쓰기 시작했는데 점점 산으로 가고 있습니다.(웃음) 점점 애초에 구상했던 것과 다른 얘기가 되고 있어서 저도 뭐가 어떻게 나올지는 잘 모르겠어요. 어떻게 보면 보르헤스 소설과도 비슷하게 가고 있고, 그러면서도 굉장히 골치 아픈 과학 이론 얘기가 많이 나오고 있어서요. 이대로는 읽기 힘든 소설이 될 것 같은데요. 저는 기본적으로 소설은 재미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수정하고 있는 중인데 뭐가 나올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언제 탈고하려고 기한을 두고 있는 거예요?


어차피 걸려있는 계약이 없기 때문에 언제 써도 상관이 없긴 한데요. 가능하면 올해 말이나 내년 초쯤 원고를 탈고해서 내년 하반기에는 책이 나오게 하고 싶어요. 그렇게 될지 잘 모르겠어요. 왜냐하면 먹고 살려고 다른 일을 해야 하니까 시간이 빠듯해서요.

 

시나리오 작업 말씀하시는 거죠?


네, 시나리오 쓰고 다음 달은 소설 쓰고 이런 식으로 번갈아가며 작업하고 있어요.

 

크기변환_5A2A9846.jpg

 

 

소설가 임성순, 시나리오 작가 임성순


먹고 살기 위해 다른 일을 하면서도 소설을 쓰는 이유는 뭘까요?


소설 쓰는 게 재미있어서 그런 것 같아요. 물론 힘들긴 한데요. 제가 되게 게으른 사람이거든요. 숨 쉬는 것도 귀찮을 정도로요.(웃음) 글 쓰는 건 재미있어요. 힘들고 괴롭긴 한데 그래도 재미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쓰는 것도 있고요. 시나리오 작업은 굉장히 대중적이고 여러 제약에 맞춰 써야 하거든요. 그러다보니 반대급부로 마음껏 쓰고 싶은 욕구가 있는데 그런 걸 소설에서 해볼 수 있으니까 그런 면에서도 두 작업을 병행하는 게 은근히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영화화된 소설은 다시 관심을 받고 널리 읽히기도 하잖아요. 마음껏 상상을 뻗어나갈 수 있는 것이 소설이라면 그런 면에서 작가의 작업은 장점이기도, 단점이기도 할 것 같아요.


기본적으로 제 소설들은 다 영화화하기 굉장히 어려워요. 물론 영화를 잘 모르시는 분들은 굉장히 영화적이다 혹은 영화로 만들기 쉽겠다고 하시는데요. 예산 측면이라든가 엔딩이 상업적이지 않다거나 배우 캐스팅이 힘들거나 영화적으로 표현할 수 없는 부분들 때문에 사실 영화화하기 굉장히 힘든 소설들이죠. 그래서 아직 영화화된 게 없을 거예요.(웃음)

 

욕심도 있지 않나요? 


그런데, 영화화하고 싶다고 그런 소설을 쓰고 싶지는 않아요. 시나리오를 쓰면 되니까요. 물론 소설로도 쓰고 싶고, 영화화도 좋겠다는 얘기가 떠오르면 그렇게 작업할 수도 있겠지만 아직은 그냥 소설 쓸 때는 마음대로 쓰고 싶어요. 그 두 가지가 우연히 겹치지 않는 이상은 아마 영화화하기 좋은 소설을 쓰는 건 시간이 걸리지 않을까 싶어요. 다음 나오는 소설도 아마 100% 영화화는 불가능할 거예요.

 

『극해』는 영화 이야기가 있지 않았나요?


있었는데 기본적으로 예산이 엄청나게 필요한 소설이고요. 그런 의미에서 손익 분기점을 넘기기가 쉽지 않아서 영화화하기가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요. 배가 나오니까 짐벌(움직임에 관계없이 카메라를 일정한 기울기로 유지시키는 장치)이 있어야 하고, 남극 비슷한 곳에서 현지 촬영도 해야 하고, 필리핀 해전이야 어떻게 CG로 넘어간다 해도 그런 식으로 돈 들어갈 게 굉장히 많아서요. 물론 영화와 관련된 얘기가 많이 나오긴 했었어요. 영화사에서 몇 번 문의가 있기도 했고요.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런 이유에서 쉽지 않죠.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세요?


아마 예의상 질문을 안 하셨겠지만 가장 궁금해 하실 부분이 이 얘기일 것 같아요. 경험담이냐(웃음). 사실은 그것에 대해 할 얘기가 굉장히 많은데 노코멘트라고 답하는 게 책을 파는 데 더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요.


 

 

img_book_bot.jpg

자기 개발의 정석임성순 저 | 민음사
동시대적인 소재, 대담하고 독창적인 서사, 흡입력 강한 문장으로 강력한 팬덤을 형성하고 있는 작가 임성순의 다섯 번째 장편소설 『자기 개발의 정석』이 출간되었다. 상황마다 새롭게 등장하는 독특한 캐릭터와 긴장감 넘치는 상황은 영화적 재미를 극대화하며 소설과 매력적으로 조화를 이룬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외로운 뉴잭스윙, 기린의 마음가짐

$
0
0

가치의 정도와 시류의 형태가 이루는 상관관계는 사실 헐겁다. 작품에 담긴 의미와 유행의 양상이 완벽하게 대응하고 비례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빠른 속도와 거대한 부피를 안고 흐름을 연속해 밀어내는 트렌드의 안에서는 좀처럼 다양한 스타일들에 내재된 진가들을 온전히 파악하기 어렵다.

 

그래서 외로운 음악들이 있다. 뉴잭스윙도 분명 그 중 하나일 것이다. 장르의 황금기는 일찍이 먼 과거에서 완료된 일로 취급받는데다, 옛 음악을 재조명하는 최근 레트로 실험들에서도 아직은 크게 다루고 있지 않다. 묘하게 설정된 이 사각지대 위에서 1990년대에 팝과 가요를 주름잡았던 뉴잭스윙은 현재 꽤나 촌스러운 음악으로도 치부된다.

 

기린은 뉴잭스윙을 주요 음악 테마로 잡은 아티스트다. 사운드와 패션, 영상 등에서 보이는 콘셉트들의 대다수가 뉴잭스윙이 큰 인기를 끌던 1990년대의 모드에 맞춰져 있다. 이러한 시대감각에서 나온 '촌티'라는 통시적 효과 때문인지 유머와 웃음기, 패러디가 그의 주된 음악 코드로 인식되기도 한다. 그러나 과연 그것으로 기린의 음악을 적확히 설명할 수 있을까. 이 아티스트가 음악에 임하는 모습은 실로 진지하고 또 충실하다. 기린의 터치에는 유머보다는 오마주가 더 짙게 묻어난다.

 

크기변환_1.jpg

 

콜래보레이션 음반 <The Funk Luv> 작업을 같이한 아티스트와 음반에 대해 소개를 부탁한다.

 

서로 생각하는 게 많이 비슷한 젠라락(ZEN-LA-ROCK)이라는 일본 뮤지션이 있다. 그 뮤지션이랑 <The Funk Luv>라는 EP 앨범을 내기로 했고 한일 동시 발매를 앞둔 상태다. 음악적 공통분모가 뉴잭스윙이나 펑키한 음악이라 그러한 방향으로 초점을 맞추었고 전반적으로는 일본에서 진행을 많이 했다. 또 평소에 좋아하던 그루브맨 스팟(grooveman Spot)에게서 곡을 받게 돼 재밌게 작업하기도 했다.

 

음악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2010년서부터 지금까지 오며 결과물이 많이 쌓였다. 작품을 낼 때마다 드는 감정이 궁금하다. 만족감도 느끼는 편인가.


매번 음악을 만들 때마다 많은 걸 배운다. 그리고 배운 것을 다음 차례에 어김없이 써먹곤 한다. 또 '이렇게 하고 싶다'라는 스타일적인 레퍼런스나 방향 같은 것도 많이 만나게 되면서 할 때마다 재미를 느끼기도 한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음반이나 음악을 다 만들고 나면 허무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비슷한 걸 또 하기는 싫으니까. 이런 감정이 들 때에는 또 재미가 떨어지기도 하고. 여러 감정을 느낀다.

 

아무래도 스타일이 뚜렷한 음악을 지향하다보니 고민이 많을 것 같다.


조금씩 고민을 한다. 처음에 1집을 발매한 뒤 리믹스 음반을 다시 낼 때에는 어느 스타일에 구애받지 않고 아무렇게나 해보자는 생각을 했었다. 리믹스 앨범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 뒤 2집을 만들 때에는 보다 편곡이나 보컬 부분을 탄탄하게 만들어보고 싶다는 고민을 했다. 정작 그 무렵부터는 뉴잭스윙 자체에 대한 고민은 많이 하지 않았다. 뭐랄까. 이렇게 얘기하면 내 음악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웃기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웃음) 어떤 음악이 좋은 음악일까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어떻게 해야 들었을 때 좋은 음악을 만들 수 있을까.

 

2집에서 다른 프로듀서를 기용한 것도 그런 고민의 연장선상에 있나.


아니다. 1집과 2집 모두 여러 프로듀서들과 해왔다. 다만 프로듀싱의 비중을 나누는 비율의 측면에서 1집과 2집의 작업 방식이 다르다. 1집의 경우에는 디제이매직쿨제이 형이 리믹스와 편곡, 여러 작업들에 많은 도움을 줬다. 전반적인 작품의 방향성이나 완성도 설정에 형의 힘이 많이 실려 있었다. 반면 2집의 경우에는 프로듀싱을 내가 많이 주도했다. 본격적으로 좀 더 많은 걸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크기변환_2.jpg

 

보통 작곡은 어떻게 하나. 영감을 받는 방식이 따로 있나.


여러 가지다. 일단 멜로디나 가사를 쓸 때에 마음에 드는 코드웍이 떠오르면 곡을 좀 빨리 만드는 것 같다. 그러고 나서 편곡을 마무리하는 식으로 작업을 한다. 영감이라 한다면, 특별하거나 대단하게 영감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보통의 인간관계들이나 주위의 사소한 일들에서 주로 테마를 가져온다. 여러 평소의 관계에서 느껴지는 감정들로 곡을 쓰는 게 좋다. 드라마나 시트콤도 결국 정말 사소한 사건들을 주제로 다룬다고 생각한다. 물론 요즘 힙합 트렌드를 따라 신나는 파티나 스웩, 자랑 같은 것도 노래로 쓸 수는 있겠지만 내게 와닿는 주제는 아니라 잘하진 못 하겠다.

 

사운드 스타일링을 할 때 중점에 두거나 의도로 두는 지점들에 대해서도 궁금하다.


1집을 작업할 때엔 사운드에서 장르적인 특성을 잡아내려고 믹싱, 마스터링 할 때 노력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런데 2집으로 넘어오면서부터는 앞서 얘기했던 대로 더 좋게 들리자하는 의도를 갖고 작업했다. 예를 들어 1집은 사운드에서 좀 더 단단하고 살짝 먹먹한 부분도 있는데 2집은 사운드를 더 라이트하고 조금 펼쳐서 잘 다가가게끔 하려는 부분이 있다. 페스티벌 같은 큰 곳에서 틀거나 다른 트렌디한 가요들과 섞여있어도 특별히 무리가 없도록 하려는 생각이었다.

 

사실 뉴잭스윙이 지금 들으면 소리나 음질 면에서 안 좋게 들릴 수도 있지만, 그 때만 해도 최고로 유행했던 장르라 당시의 최선으로 사운드를 뽑아내려 했을 테다. 그랬던 것처럼 나도 지금의 대중들이 좋게 들리게끔 깔끔하게 음악을 만들고자 했다. 그래서 믹스에 중점을 많이 두게 된다. 일부러 옛날 악기를 쓰고 그러진 않는다.

 

리듬파워나 던 밀스, 비프리 등 피쳐링으로 참여했던 래퍼들 모두 각자의 색이 뚜렷한데 기린의 음악에 들어오면 기린의 컬러에 동화되는 느낌이다. 피쳐링에 가이드 같은 걸 하는 편인가.


나랑 나이가 비슷한 주변 친구들이 대체로 어렸을 때부터 이런 스타일을 들어왔던지라 내가 하는 음악을 좋아하는 것 같다. 한 번씩은 해보고 싶은 욕구들을 갖고 있어서 그런지 제안하면 다들 호감 있게 작업을 받아준다. 다만 내 색깔이 다소 튀는지라 자신들 각자의 앨범에서 내 스타일을 활용하기보다는, 내 앨범으로 들어와 같이 작업하는 경우가 많다. 특별히 가이드를 주거나 하진 않는다.

 

힙합 음악도 요즘 신을 보면 트렌드에 많이 맞춰가는 편이다. 그 가운데서 혼자 시류를 타지 않는 독특한 음악을 하고 있다. 외롭지 않나.


외롭다. 여름까지만 해도 혼자 여러 일 하면서 외로움을 많이 느꼈다. 여름에 'Summer holiday (‘97 in love)' 싱글 낼 때까지만 해도 홀로 고민하고 문제 있어도 딱히 얘기할 곳이 없었다. 일도 일일이 다 하고. 다행히 이번에 레이블 에잇볼타운(8Balltown)을 만들어 여러 사람들이랑 일을 같이 하게 됐다. 디지털 싱글로 단체곡이 곧 나오는데 멤버 각자 자기 일을 맡아 해오니 혼자 일할 때보다 훨씬 좋았다.
(에잇볼타운의 싱글 '8BallTown (You are not alone)'은 12월 30일에 발매됐다.)

 


기린 ‘Summer holiday(’97 in love)’

 

문제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히 듣고 싶다.


예를 들어 편곡이 무너져서 다른 편곡을 해야 할 때나, 다른 사람에게 일을 맡겼는데 일이 잘 안 됐거나, 문제가 생겨 일정이 늦어지거나 하는 문제들. 그리고 작곡에서부터 유통, 자료 제작, 자켓 제작 등 이런 일들을 다 혼자 해야 했다. 물론 스스로 할 수 있는 영역이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하려면 쉽지 않다.

 

크기변환_3.jpg


본토의 뉴잭스윙 뮤지션인 가이(Guy)나 키스 스웻(Keith Sweat), 테디 라일리(Teddy Riley) 같은 이들이 내는 사운드보다는 듀스 식의 한국적인 뉴잭스윙, 1990년대 댄스 사운드에 기린의 음악이 맞춰져있는 것 같다. 음악적 방향을 그렇게 설정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방향을 일부러 맞췄다기보다는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왔다. 물론 가이나 키스 스웻 같은 아티스트들의 음악을 많이 듣기도 하고 이들에게 많이 영향을 받기도 했지만 막상 그 느낌을 받아 작업을 하면 조금 다르게 나온다. 습관적으로 그런 결과물이 나오는 건지 어릴 때부터 들어온 경험이 있어 그런 결과물이 나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의도 없이 자연스레 지금 내 음악들이 나오는 것 같다. 촌스럽게 하는 걸 지향하는 것도 아니다.

 

촌스럽게 하고 있진 않지만 사람들은 1990년대 가요 풍의 이미지에서 오는 촌스러움을 기억하는데 이런 쪽에서 오는 갈등은 없나.


그런 쪽으로의 고민이나 갈등보다는 다른 종류로 고민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아무래도 초창기에 유브이(UV)와 활동기간, 음악 스타일이 어느 정도 겹치다보니 '너도 웃기려고 이런 음악 하는 거 아니냐'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물론 나도 재밌는 걸 좋아한다. 그리고 유브이가 그런 콘셉트를 갖는 게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난 일부러 웃기려고 하는 게 아닌데'하는 생각이 몸에 쌓이다 보니 어느 순간서부터는 스트레스로 고민이 왔다. 시간이 꽤 지난 지금은 이런 고민을 잘 안한다. 또 내가 갑자기 멋있는 걸 한다고 해서 바뀔 문제도 아니고.

 

그러한 느낌 때문에 주변에서 “장난 식으로 음악 만드는 거 아니냐”는 얘기도 들었을 것 같다. 2집 앨범 추천사에서도 이현도가 기린의 음악으로부터 '패러디의 느낌'을 받았다고 했었고.


그 때까지만 해도 (이)현도 형을 가끔 만나면 형이 그런 부분에 대해 장난 반 진심 반으로 충고를 해주기도 했다. 사실 당시 아티스트들은 최첨단을 따랐던 건데 요즘 후배들이 하는 걸 보면 조금 웃기게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듯하다. 정작 현도 형이나 테디 라일리는 스스로 뉴잭스윙 같은 장르를 지금 와서 다시 만지지 않는다. 그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늘 트렌드를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옛날 게 멋있고 좋아서 당시 사운드를 만들어보는 나와는 아예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다.

 

기린의 나이와 지금 하고 있는 음악을 놓고 보자면 음악에 일찍 빠진 편으로 보인다.


또래들 보다 조금 일찍 음악에 빠졌던 것 같다. 당시에 가요를 많이 들었다. 또 어머니께서 집에서 팝 음악을 많이 감상하셔서 깊게 듣지는 않았어도 팝 음악도 자주 접했다. 맨날 씨디 꺼내서 앨범 자켓 구경하고. 어렸을 때에는 뭐든 깊게 인식해 받아들이지 않나. 앨범 하나하나 열심히 구경했던 기억이 있다.

 

옛날 음악을 가져오는 것에 대한 고민도 있을 듯하다. 2012년의 싱글 '뉴잭스윙 (Feat. 요요)'를 시작하는 '시대와 감성을 시간으로 비교하지마라'라는 가사도 같은 맥락에 있는 텍스트로 해석되고.


그 무렵 그런 고민을 하고 있었다. 뉴잭스윙이 한창 유행했을 때 대학생이나 고등학생도 아니고 초등학생이었던 애가 그런 것에 대해 왜 얘기하냐, 너보다 더 옛날에 나온 걸 왜 얘기하냐 그런 소리를 듣기도 했다. '아 꼰대들 짜증나' 하면서 썼던 가사였던 거 같다. (웃음)

 

크기변환_4.jpg

 

최근 <무한도전>의 '토토가'나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와 같이 복고에 테마를 둔 콘텐츠들이 유행을 이끌고 있다. 그보다 조금 앞선 시점에서 음악으로 복고풍의 작품을 만들어온 사람으로서 든 생각이 궁금하다.


같이 작업하던 사람들끼리는 시기상 이 맘 때쯤 이런 유행이 오겠다고 계속 예상했었다. 하지만 그런 흐름으로 인해 내 인생이 바뀔 것이라 생각한 적은 없었다. 실제로 바뀐 것도 없었고. 옛날에는 유행의 파급력이 컸지만 요즘에는 그렇지 않다. 커다란 흐름이라기보다는 잠깐잠깐 느끼는 감정의 움직임에 가깝다. 예를 들어 H.O.T. 장갑만 해도 이곳저곳에서 막 팔고 많이들 샀지만 지금은 그런 모습들이 안 보인다. 소비하는 방법도 당시와 달라지고 무언가에 쉽게 매진하는 시대가 아니다보니 그런 것 같다.

 

협업 제의가 많이 오진 않았나.


피쳐링도 장르 상관없이 서너 번 정도 했던 것 같고. 다른 가수들 곡 작업도 했다.

 

중간에 잠시 언급했던 에잇볼타운(8BallTown) 레이블을 소개한다면.


여러 아티스트들이 소속돼있다. 싱어송라이터 재규어 중사, 프로듀싱 팀 위키즈(WEKEYZ), 디제이 플라스틱 키드(Plastic kid), 댄스팀이기도 한 요요(YOYO) 등이 있다.

 

향후 활동은 어떻게 계획돼있나.


재규어 중사도 EP나 미니 앨범을 낼 거 같고 플라스틱 키드랑 디제이 (김)윤우가 믹스셋을 만들어 재미있는 프로젝트를 많이 진행할 계획이기도 하다. 나 역시 여름에 하나, 가을에 하나 이렇게 두 번 앨범을 낼 거 같다.

 

끝으로 기린의 음악 인생에 영향을 끼친 아티스트들, 음악들에 대해 듣고 싶다.


일단 이현도의 1집 <Do It>을 가장 많이 들었고 듣고 있다. 팝쪽에서는 드루 힐(Dru Hill)의 1집 <Dru Hill>을 많이 들었고. 중고등학교 때 음반을 매일 들고 다녔다. 디제이 솔스케이프 형 음악도 자주 찾는다. 음악뿐 아니라 개인적으로 만났을 때 해주는 이야기나 (솔스케이프) 형이 하는 행보, 행동들로부터 영감을 많이 받기도 한다.


인터뷰 : 이수호 이택용
정리 : 이수호
사진 : 이한수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베르나르 베르베르 “인공지능보다 무서운 인공의식”

$
0
0

‘한국인이 제일 사랑하는 작가’라는 타이틀답게, 『제3인류』완간을 기념으로 방한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스케줄은 놀라웠다. 입국에서부터 사인회, 프로야구 시구, 서울예술고 강연, JTBC <뉴스룸> 출연과 이세돌과의 만남까지. <채널예스>의 인터뷰에도 응한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피곤한 와중에도 자신의 작품세계에 대해 진지하게 말했다.

 

크기변환_5A2A0198.jpg

 

『제3인류』는 인간 전의 인류, ‘호모 기간티스’를 발견한 샤를 웰즈의 아들 다비드 웰즈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인간이 점점 작아지는 방향으로 진화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주인공은 마침내 인간의 유전자를 사용해 신장이 17cm에 불과한 새로운 인류를 ‘창조’해 낸다. 다른 한편으로 인간은 끊임없이 경제를 성장시킴으로써 발전한다는 자들과, 광신적인 종교의 길, 우주로 진출해야 한다는 사람 등 서로 다른 일곱 가지의 길로 인류를 인도하려는 자들이 각축하며 세상은 혼란에 빠지게 된다. 『개미』이후 항상 놀라운 상상력으로 독자를 만족시켰던 작가의 이번 작품은 특히 ‘지구’에 집중한 작품이었다.

 

크기변환_5A2A0085.jpg

 

 

『제3인류』에 대해

 

『제3인류』각 서문에는 ‘뱅자맹을 위해’, ‘프레데릭 살드만에게’, ‘상상력 리그를 위해’라고 쓰셨습니다. 이 분들은 누구고 작품에 어떤 도움을 줬나요?


뱅자맹은 어린 제 아들 이름이고, 프레데릭 살드만은 제 주치의입니다. 『아버지들의 아버지』에서도 많은 도움을 받은 제 오래된 지인이기도 하죠. 상상력 리그는 스릴러와 SF소설을 쓰는 프랑스 작가들의 모임입니다. 역시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서기 몇 년이 아닌, 독자가 책장을 펼친 순간으로부터 10년 후와 20년 후로 시대를 설정하고 있습니다. 절대적인 시간이 아니라 상대적인 시간으로 배경을 설정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어렸을 때 조지 오웰의『1984』를 읽었는데, 진짜 1984년이 되었을 때는 그 소설에서 명시한 상황이 일어나지 않더라고요. 영화를 볼 때도 어떤 절대적인 시간을 상정하고 이야기를 풀면, 실제로 그 연도가 도달했을 때는 그 이야기가 아닌 거예요. 어떤 특정 연도를 정하면 실제 그 연도에 도달했을 때 벌어지는 상황이 전혀 아닐 수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설정했습니다. 그래서 2500년에 제 소설을 읽는다 해도 말이 되게끔 하고 싶었습니다.


책에서 나오는 일곱 개의 진영 중 호모 콘수메리스(Homo consumeris) 진영으로 불리는 각국의 지도자들은 더욱 많은 소비가 더 좋은 세상을 만들 거라고 낙관합니다. 지금의 지도자들에 대한 풍자인가요?


현재 여러 국가들을 봤을 때 정치보다는 경제가 세상을 이끌어나간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국가가 우주 사업을 주도하기보다는 스페이스엑스라는 민간 항공우주기업이 로켓을 발명하고 있습니다. 민간 기업들이 시대의 흐름을 주도하고, 국가 원수들은 사기업의 흐름에 편성해 따라가고 그 기술을 사용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습니다. 이 상황 자체가 나쁘다는 건 아닙니다. 문제는 기업들이다 보니 사람의 복지나 미래 전망보다는 기업의 이윤을 추구할 수밖에 없게 되겠죠. 이게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책에서는 일곱 개의 진영이 서로 각축하면서 인류의 진화를 만들어 갑니다. 대량 소비, 종교, 기계 개발, 우주 정복, 수명 연장, 여성화, 소형화 등의 길로 나뉘는데요. 나중에 여덟 번째 선수로 등장하는 지구까지 합해 작가님이 가장 마음이 가는 쪽을 묻고 싶습니다.


가이아, 즉 지구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거대한 지구 위에 존재하는 작은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죠. 인간은 지구 역사에 비하면 얼마 되지 않은 신생 종이고, 언젠가는 소멸하고 멸종될 수도 있습니다. 지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살아남을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살아가고 있는 지구에 대한 책임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지구는 인간이 없어도 살아갈 수 있지만 인간은 지구 없이 살아갈 수 없습니다.

 

크기변환_5A2A0107.jpg


 
책에서 나오는 여성주의자 진영은 현실 세계의 페미니즘과는 다른 정의에 의해 움직입니다. 현실세계의 페미니즘이 남성과 여성, 정상과 비정상 간의 격차를 없애는 이상이자 운동인 반면 책에서의 여성주의자들은 여성이 남성을 지배해야 한다는 목적을 가진 집단으로 나오는데요. 페미니즘을 어떻게 이해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전세계에서 여성의 지위는 오히려 낮아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주로 이슬람을 비롯한 종교적인 이유들이 큰데요, 이슬람 종교에 따르면 어린 소녀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는 걸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문제는 점점 더 많은 나라가 이슬람에 편입되면서 더 많은 어린 소녀들이 학교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얼마 전에 파키스탄 출신 소녀가 노벨평화상을 받은 일을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이 소녀는 다른 이슬람권 소녀들에게 학교에 가고자 하는 욕구를 부추겨줍니다. 그런 점에서 이 소녀야말로 진정한 페미니즘을 상징하는 인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서양에서 하는 페미니즘적 운동만이 페미니즘이 아니라 아프리카, 아시아, 남미 같이 여성 인권이 보장되지 않는 국가에서의 움직임이 진정한 페미니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소형화(개미), 우주로의 탈출(빠삐용), 뇌 등 기존 작품에서 자주 보이는 소재가 『제3인류』에서도 나왔습니다. 일부는 같은 주제를 계속 쓴다는 비판도 있는데요. 이런 주제를 계속 이야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특별히 좋아하는 주제가 있는 건 사실입니다. 개미나 페미니즘, 지구와의 소통, 종의 진화, 그리스 신화 등이 제가 특별하게 생각하는 주제기 때문에 거의 모든 작품에 이 소재를 언급합니다. 돌고래나 한국도 자주 등장하는 소재고요. 이 소재를 여기서 썼다고 다른 소설에 쓰지 말란 법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제 세계관을 보여주는 소재이기 때문이죠. 그냥 제 스타일입니다.


아가사 크리스티 같은 경우에도 시리즈마다 항상 같은 탐정이 등장하는 왜 같은 탐정이 등장하냐고 비판 받진 않잖아요. 그리고 항상 추리 소설에는 범죄가 등장하는데 왜 항상 범죄 이야기를 하냐고 말할 수 없는 거랑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의도적으로 배치하는 이유도 있고요. 그 작가의 스타일인 거죠. 『파피용』의 경우 우주 정복이 주 소재인데, 이건 미래를 이야기함에 있어서 오히려 더 많이 이야기를 해야 하는 소재라고 생각합니다.


성냥개비 문제도 작가님의 이야기에 자주 나타납니다. 특별히 쓰시는 이유가 있나요?


아뇨, 특별한 이유가 있다기보다는 그냥 제가 그 수수께끼를 좋아합니다.


성냥개비 문제의 해답은 다 본인이 만들어내는 건가요?


아뇨(웃음). 그렇게 똑똑한 편은 아니라서요.


각 장마다 문장을 잇는 형식이 많이 보입니다. 가령 어느 장 마지막 문장이 ‘고통을 겪지 않으셨습니다’, 였다면 그 다음 이야기는 바로 ‘나는 고통을 겪었다’라고 시작하는 식으로요. 각 이야기를 한 번에 다 쓰고 나중에 잇는 건가요? 아니면 쓰면서 떠오르는 반대편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이으시는지?


일단 다비드 웰즈의 이야기를 썼습니다. 그걸 개발하고 발전시킵니다. 그런 다음 가이아 이야기와 백과사전을 추가해서 덧붙입니다. 그렇게 첫 번째 틀을 만들고 재시작합니다. 그런 식의 반복을 열 번 정도 합니다. 다비드 웰즈 이야기로 다시 돌아와서 10번 정도 고치고, 가이아 이야기를 10번 고치고 하는 식으로요. 소설 한 권을 완성시키기 위해서 10번을 쓰는 셈입니다. 그 10번의 글쓰기가 각각 다 다르고요. 물론 동일한 주제와 동일한 콘셉트 아래 씁니다.


『제3인류』를 쓰기 위해 참고한 책이나 영화가 있나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영화가 영감을 많이 줬습니다. <듄>도 그렇고요.


작가님 소설은 한국 이야기가 나오는 걸로 유명합니다. 특히 이번 소설에 나오는 단군 신화 자료는 어떻게 찾으셨는지 궁금합니다.


도서관에서 문서와 책을 읽고 인터넷을 검색했습니다.

 

크기변환_5A2A0186.jpg

 


비포 앤 애프터

 

한국 여성이 이상형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제3인류』의 등장인물 중에서는 프랑스 남자와 한국 여성 간의 로맨스가 짧게 나오기도 하는데요, 이건 ‘사심’으로 봐도 좋을까요?


(웃음) 소설에서 뭔가를 썼다는 건 머릿속에 있기 때문에 쓰여진 거겠죠? 제가 생각하는 것들과 제 자신을 소설에 반영하는 편입니다.


“어떤 작품이든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더 좋은 결말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항상. 나는 결말 부분이 ‘마술’같이 보이길 원한다. 마술사가 모자에서 흰 토끼를 꺼내듯, 불가능해 보이는 것을 ‘짠’ 하고 이루어내 독자들을 깜짝 놀라게 하고 싶다.”(2009년 <채널예스> 인터뷰 중)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이번 작품의 결말은 만족하시나요?


『제3인류』는 결말을 쓰면서 언젠가 여력이 된다면 후속편을 쓸 수 있게끔 결론을 지어야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깜작 놀라는 결말보다는 후속편에 해당하는 3부작을 나중에 이을 수 있게끔 열린 결말로 썼습니다.


2008년 월드사이언스포럼에서 인간의 뇌와 인공지능의 출현에 대해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서 컴퓨터와 로봇과 같은 우수한 인공지능이 나온다 해도 사람에 미칠 수는 없을 것. 의식할 줄 아는 뇌의 능력은 인공지능과 처음부터 비교대상이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최근 방한에서 40년 내에 인공지능이 인간을 위협하는 세계가 올 것이라 판단했는데요. 이번 작품에서는 인간처럼 꿈을 꾸는 로봇이 나옵니다. 지금 인공지능에 대한 생각은 어떠신가요?


사실 진짜 문제가 되는 건 인공지능이 아니라 인공 의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공지능은 그 자체로서는 도구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 사용할지는 전적으로 인간의 프로그래밍에 달려 있습니다. 인간이 다른 존재에게 해가 되는 식으로 프로그램을 짤 수도 있겠죠.


그렇지만 인공 의식으로 가면 문제가 되는데, 기계가 의지를 가질 수 있게 되면 스스로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기계가 스스로 자신을 어떻게 사용할 지 결정하게 되겠죠. 우리가 흥미를 가져야 할 중요 문제인데, 제가 생각했을 때는 10년 이내에 인공 의식이 나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 멀지 않았죠.


2015년 방송된 KBS 다큐멘터리 <넥스트 휴먼> 프리젠터를 하셨습니다. 소회를 듣고 싶습니다.


잘 만들어진 좋은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이었습니다. 한국 촬영 팀이 프랑스에 직접 오셔서 촬영을 했는데, 완벽주의적인 성향으로 작업을 하셨죠. 그런 기회가 다시 생긴다면 프랑스에서 다시 해보고 싶습니다.

 

크기변환_5A2A0061.jpg

 


앞으로의 계획

 

한국을 배경으로 한 소설을 집필하고 싶다고 밝힌 적이 있습니다. 여전히 쓰고 싶으신가요?


이미 한국을 배경으로 한 작품을 두 개 정도 써 놨습니다. 이후에도 한국을 배경으로 할지는 잘 모르겠네요.


백 번쯤은 들으셨을 질문인데요, 한국 소설 중 재미있게 읽은 소설이 있나요?


한국 소설은 제가 잘 모릅니다. 한국 영화에 오히려 더 관심이 많습니다. 프랑스 만화가 원작이었던 <설국 열차><올드 보이>등을 흥미롭게 봤습니다.


앞으로 집필 예정인 내용을 간략하게 소개해 주셨으면 합니다.


아직 가제이지만 『여섯 번째 수면』이라는 책이 곧 한국에 소개될 예정입니다. 프랑스에서는 이미 출간되었고 한국 출간을 앞두고 있습니다. 다음 작품은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실 지금 한국에 와서도 계속해서 쓰고 있어요. 이번에 프랑스 돌아가기 전에 완성해서 메일로 보내야 합니다. 고양이를 한 마리 키우고 있는데, 고양이 관점에서 이야기를 해 보는 게 재밌을 것 같아 시작한 작품입니다.

 

예전 인터뷰 보러가기


베르나르 베르베르 명사의 서재 보러가기


 

 

img_book_bot.jpg

제3인류베르나르 베르베르 저/이세욱 역 | 열린책들
류인류가 끝없이 어리석은 선택으로 자멸을 향해 치닫는 미래의 어느 시점, 기상천외한 시도로 그 위기를 넘어서려는 일군의 과학자들이 있다. 그들은 인류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생물학적으로 진화해야 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그들은 마침내 생명 공학의 힘으로 새로운 인류를 창조하는 신의 영역에 도전하기에 이르는데…….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노희준 “죽음을 생각해야만 삶을 살아갈 수 있다”

$
0
0

핵폭발로 끝나버린 세상, 깊은 바다에 잠수함이 하나 살아남았다. 그 안에 생존한 사람은 단 세 명. 심해 생태에 집착하는 나이 지긋한 남자 ‘피셔’, 무엇을 조사하는지 밝히지 않는 조사관이자 최후의 여자 ‘셀린’, 패기 넘치는 듯 유약한 듯 존재감 발휘하는 젊은 남자 ‘이삭’이 그 주인공이다. 커다란 잠수함에, 바다 안에, 세상 속에 살아남은 사람이 자신들 셋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좌절한다. 과연 최후의 세 사람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노희준 작가는 이들이 많은 이야기나 영화에서처럼 생존경쟁을 벌이지는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혼자 살아남기 위해 애쓰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시스템이 무너지면, 생존자들은 공동체 의식을 회복할 거라고 생각했다.

 

만에 하나, 잠수함에 남은 세 명이 현재 지구에서 가장 건강한 인류라면? 그들은 루시만큼이나 보호받아야 할 생물종이었다.(94쪽)

 

작가는 『깊은 바다 속 파랑』에서 세상 끝에 살아남은 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삶이란 무엇인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사회가 어떤 것이었는지, 윤리는 어떻게 변화하는지 다양한 검토를 한다. 셀린이 살았던 도시를 보여주고, 피셔가 사랑하는 심해 생물의 생존 방식을 보여주고, 이삭과 피셔와 셀린이 서서히 다른 모습의 가족이 되는 장면을 그린다. 소설이 전하는 다양한 층위의 이야기만큼 인터뷰에서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마치 깊은 바다 속 잠수함에 잠시 머물렀던 것처럼 그랬다.

 

크기변환__IM_0254.jpg

 

 

공동체 의식을 되찾지 않을까


핵폭발 이후 심해 잠수함에 남겨진 ‘세상 끝’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이야기를 하게 된 이유가 뭐였을까, 제일 궁금했어요.


제 성격이, 힘들다고 잠수 타고 이런 성격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너무 힘들어서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잠수나 좀 타볼까, 싶었어요. 잠수 탄 김에 잠수함 이야기나 써볼까, 하다가 시작된 거고요.(웃음) ‘아포칼립스(aporkalypse)’잖아요. 재난 영화나 아포칼립스 영화를 볼 때마다 항상 불만스러웠던 게 있었어요. 항상 갇힌 사람들이 생존경쟁을 해서 한 사람만 살아남고 나머지는 다 죽잖아요. 인간의 폭력성이 드러나는 얘기들이 많죠. 재난 영화에서도 재난이 닥치면 갑자기 시민들이 폭도로 둔갑해서 습격하고 이런 일들이 벌어지잖아요. 저는 그게 불만이었어요. 그렇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재난이 닥치면 공권력을 벗어난 시민들이 공동체 의식을 되찾지 않을까 했거든요. 몇 명만 살아남으면 생존경쟁을 하는 게 아니라 서로를 살리기 위해서 이타심을 발휘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들을 했었어요. 그래서 이런 설정이 된 거죠.

 

공동체 의식이요.


예전부터 생각한 거지만 윤리란 고정불변이 아니잖아요. 사회 시스템에 맞아 떨어지니까 윤리가 생기는 건데요. 윤리가 바뀌면 사람이라는 개념도 바뀌겠죠. 그런 얘기를 쓰고 싶었어요. 쓰던 중에 이문재 선배님이 『이 폐허를 응시하라』라는 책을 한 번 읽어보라고 하시더라고요. 읽었는데 제 생각이랑 똑같은 거예요. 미국에 있던 수많은 테러와 재난 사건을 조사했더니 오히려 공동체 의식이 생겨나고 사람들이 서로를 도우려는 움직임이 생겼지, 폭도로 둔갑하거나 이런 게 아니었다는 거죠. 상점에 들어가 총에 맞아 죽은 경우도 있지만 그들이 상점에 들어간 이유는 누군가를 살리기 위한 것이었다, 이런 자료들을 찾아놓은 게 있거든요. 그래서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구나, 생각했죠.

 

인간의 선한 의지를 믿는다는 건가요?


인간이 원래 선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데요. 선한 면도, 악한 면도 있겠죠. 그렇지만 사실은 우리를 이기적으로 만든 건 우리 자신이 아니고 시스템이라는 거죠. 공동체가 깨졌으니까 이 사회가 돌아가고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만약에 그런 시스템이 마비돼버리면 오히려 공동체 의식이 생기겠죠. 저는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곁에 있는 사람을 과연 우리가 죽일 수 있을까요? 머리 위에 시스템이 있으니까 이건 어쩔 수 없다, 너와 나의 생존경쟁이지 인간적인 관계가 아니다, 이렇게 얘기할 수 있지만 시스템이 없어져버리면 인간관계만 남잖아요. 그러면 해칠 수 없겠죠.

 

디스토피아를 상상할 때 도움이 됐던 것들이 있었나요? 금방 영화도 언급했는데 장면 그리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 같거든요.


디스토피아가 나오나요? 디스토피아라면 ‘셀린’이라는 등장인물의 과거 이야기 정도일 텐데요. 도시는 정말 그렇게 갈 것 같아요. 새로운 에너지 수급에 실패해서 더 이상 문명이 발달하지 않는다면 그렇겠죠. 석유 같은 에너지가 또 생기면 그렇게까지는 안 가겠죠.

 

심해 생물이나 고래 생태라든지 잠수함 내부 조사도 많이 했겠죠? 얼마나 걸렸어요?


그냥 책 싸들고 가서 외딴 집에서 읽었죠. 하루에 두 권 씩 읽어요. 한 열흘 가 있으면 스무 권 이렇게 읽어버리니까요. 오래 안 걸려요. 자료 조사는 빨리 하는 편이어서요. 『킬러리스트』쓸 때는 자료 정말 많이 읽었거든요. 첫 장편인데요. 그때는 읽은 책이 200권 돼요. 그건 오래 걸렸죠. 지금은 금서(禁書)라는 말 잘 안 쓰지만 특수 자료들이 있거든요. 빼내기 힘든 것들이요. 그 경우 사 개월 걸린 것 같아요. 이 책은 한 달도 안 걸린 것 같은데요. 평소에 원래 관심이 많았어요.

 

주인공이라 할 만한 인물 ‘피셔’가 생태계에 대해 가진 철학이 돋보이거든요. 그것은 아마 작가의 목소리였겠군요.


‘피셔’가 저죠. 원래부터 해양 생물이나 생태계에 관심이 많았고요. 잠수함은 모르니까 그건 전문서적을 구해 연구를 했고요. ‘유체역학’ 이런 것 있잖아요.(웃음) 잠수함 조사 굉장히 많이 하고 막상 쓴 건 별로 없어요. 원래 소설은 취재를 쓰려고 하는 게 아니고 안 틀리려고 하는 거니까요. 어떤 분이 쓰신 단편 앞부분이 참치배 이야기였어요. 그들끼리 나누는 굉장히 전문적인 대사들이 있어요. 그거 보고 알았죠. 이런 건 절대 하지 말아야겠다(웃음)고요. 더 전문적으로 쓸 수 있지만 수위 조절을 잘 해야죠. 이것도 어떤 독자 분들은 용어 어렵다고 하시더라고요. 예를 들면 ‘중성 부력’ 꼭 그렇게 써야 하느냐고 하시는데 그런 건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해양 생물, 생태계에 원래 관심을 가졌던 이유가 궁금하네요.


이런 거죠. 자본주의의 대안을 생각하다가 그러면 호모 사피엔스를 알아야 한다, 하고 관련 책을 읽어요. 그러다가 농경 사회를 읽으면 생태계에도 관심을 갖고, 이런 거예요. 그냥 계속 넓어지는 것 같아요. 특별한 이유가 있진 않고요.

 

크기변환__IM_0262.jpg

 

 

이제 아무도 안 속죠


작가의 말에서 ‘이것은 SF이자 젠더에 관한 소설’이라고 명시했어요. 어떤 의미인지 듣고 싶었어요.


여기 나오는 로맨스는 현재 우리에게 익숙한 로맨스는 아니죠.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얘기한 거예요.

 

후반부에 ‘셀린’이 고민하는 부분을 가리키는 얘기죠?


그렇죠. 그리고 마지막에 해안에 도착했을 때 보이는 모습들도 그렇고요. 이건 스포일링이 될 것 같은데, 해볼까요?(웃음) 일부일처제가 사실 잘못됐잖아요. 어렸을 때부터 훈련을 받아서 그게 맞다 생각하지만 많은 결혼한 사람들이 불행한 이유가 배우자 때문이 아니고 결혼제도 때문이잖아요. 이제 아무도 안 속죠. 그리고 우리나라 같은 경우 가정을 이끌어나가는 게 너무 힘든 나라가 되어버리니까요. 사람들이 이제 속으려고 하지 않죠. 이건 개인을 옥죄어서 노동력을 재생산하기 위한 시스템이지 낭만적 사랑 이런 거 아무도 안 믿잖아요.


오래 전에 읽은 책인데『가족 사유재산 국가의 기원』이라는 책이 있어요. 엥겔스가 쓴 책인데요. 거기 프라이라고 하는 인류학자가 하와이 친족어 연구를 하다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어요. 하와이 친족어에 ‘아버지’라는 말이 없어요. ‘푸날루아(punalua)’라는 말이 있는데 아저씨와 아버지를 통칭하는 말이거든요. 되게 이상한 말이잖아요. 그런데 여성 쪽은 다 있어요. 세분화된 용어들이 있는데 남성 쪽은 ‘푸날루아’ 밖에 없는 거예요. 파고들었더니 엄마는 확실히 알지만 아버지는 모르는 상황이라는 그림이 나오는 거죠. 집단혼 상태인데요. ‘푸날루아혼’이죠. 예전에는 집단과 집단이 결혼을 했다고요. 근친상간 금기는 있었지만 다부다처제였다는 거죠. 사실은 그게 자연스럽지 않을까요?

 

크기변환__IM_0181.jpg

 

지금 이야기는 시스템이 무너지면 공동체가 회복될 거라고 한 것과 같은 이야기 같은데요. 이야기를 현재로 끌어온다면 지금, 시스템이 무너지는 상황이라고 보는 거죠?


무너져가고 있죠. 그런데 우리는 아무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아요. 그러니까 다 공포를 느끼는데요. 저는 준비 필요 없다고 생각해요. 공동체는 순식간에 회복될 것 같거든요. 지금도 지역 문화 이런 얘기 나오는 이유가 사실은 중앙의 어떤 시스템이 지역 공동체 다 깨먹었기 때문이죠. 중앙은 시스템 자체가 중앙에 있고 거기에 맞는 사회가 있으니 상관없어요. 비교적 괜찮죠. 그런데 지역은 시스템이 보호해주지 않으면서 공동체를 파괴하니까 방법이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다들 불만이 많은 것 같아요. 하긴 서울도 대책이 있진 않죠.

 

그것은 꼭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고요.


굉장히 중요한 말씀을 하셨는데요. 많은 사람들이 한국이 망했다고 얘기해요. 한국 자본주의의 문제 아니냐, 한국 사회가 너무 부가 편중되었다, 이런 얘기를 계속 하잖아요. 제가 봤을 때 그건 한국 사회의 문제가 아니고요. 석유 문명의 몰락이 시작된 거라고 생각해요. 석유 문명의 몰락을 심하게 겪고 있는 나라가 한국인 거죠. 우리는 너무 빨리 성장했으니까요. 안정망 없이 말이에요. 안정망을 쌓아두지 않은 것의 대가를 혹독히 치르고 있는 거죠. 아마 다음 세기 가기 전에 한국이 선진국에게 망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는 국가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농담으로 선진국이 아니라 ‘선망국’이라고 하잖아요. 먼저 망하고 어떻게 하면 잘 망할 수 있는지 가르치는 국가가 돼있지 않을까 해요.

 

유발 하라리 교수의 말이 떠오르네요. 현재 인류가 당면한 문제들은 국가 차원에서 해결할 수 없는 전지구적 문제라 국가 체제를 유지하려다보면 그에 대응하지 못할 거라고 했죠.


그게 계산을 하면 나오는 거예요. 이를 테면 ‘포드주의’라는 게 있어요. 직원들에게 월급을 많이 주면 포드 자동차를 살 것이고 그렇게 경기가 돌아갈 것이라고 하는 건데요. 생각해보면 제작 원가, 제품의 가격을 노동자가 받는 급여는 절대 넘어설 수 없거든요. 그러면 포드 회사에 다니는 직원들이 포드 자동차를 전부 사는 건 불가능하죠. 잉여분은 누군가 돈 많은 다른 사람들이 사야겠죠. 이런 식으로 확산해보면 자본주의는 계산 딱 나와요. 자체적으로는 자본주의를 유지할 수 없어요. 외부에서 가져와야 하거든요. 그 외부는 저개발국이거나 아직 자본주의 시스템이 정착되지 않은 곳이죠.

 

식민지가 필요한 거죠.


식민지가 반드시 필요하고 저개발국이 있어서 가치가 하락된 곳이 있어야 이윤이 남죠. 그런데 지금은 전지구가 개발되어 있기 때문에 지구가 하나 더 있지 않은 이상 자본주의가 종속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건 누가 봐도 알잖아요. 그런데 대안이나 획기적인 발전의 계기를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가 AI 얘기가 나오니까 노동의 종말 이야기가 나오고 갑자기 난리가 난 거죠. AI가 통용되는 사회가 오면 노동으로 월급 받는 사람이 현저히 줄어들겠죠. 그러면 소비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대기업은 망하겠죠. 방법은 이것밖에 없어요. 세계 정부 이야기도 하지만 어쩌면 국가의 역할이 더 강력해져야 할지도 모르는데 기본소득을 다 보장해줘야 해요.

 

크기변환__IM_0324.jpg

 

 

큰일 났다


작가의 분신이기도 한 ‘피셔’가 저는 궁금해요. “끝내기 위해 살아온 사람”이라는 얘기도 나오는데요. 이 절망은 무엇인가요?


제가 좀 성격이 그래요. 제가 이래저래 안 풀린 케이스거든요.(웃음) 어느 날 그런 생각이 드는 거죠. 이런 것 때문에 고통스러워해서 뭐가 남을까, 어차피 인간 다 죽는데, 하고요. 나는 어차피 죽을 거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생각의 영역이 넓어지는 거예요. 인간 사회에 갇히는 게 아니라 멀리 보게 된 거죠. 인간도 없어질 수 있고, 지구가 소멸할 수도 있는 거고요.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에서 의미를 찾아야 할까, 이런 생각을 안 할 수가 없는 거예요. 너무 나 자신에 대한 비관주의가 일상화되다보니 오히려 범생명주의자가 되어가고 있는 거죠.

 

소설 후반부는 확실히 ‘삶이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해요. 등장인물들의 목소리도 무척 철학적이죠.


그런가요? 다행이네요.(웃음) 전달이 안 될까봐 많이 쓴 것도 있거든요. 상당히 많은 분들이 ‘사람은 어차피 죽을 건데 왜 그런 걸 고민하느냐’라는 말에 대해 이해를 못하시는 것 같아요. 저는 많이 봐왔거든요. 한때 권력을 가졌건 지금 많은 돈을 가지고 있건 간에 노인들은 다 비참해요. 본인도 어차피 죽을 거고 그렇게 쌓아놓은 것이 아무 소용없는데 무엇 하러 남들을 그렇게 괴롭히나요. 웃기는 일이잖아요. 또 생각해보면 인간이 그러고 살죠. 어차피 소멸할 거면서 온 지구와 동물을 학대해요. 웃기죠. 그런 것들을 소설에 담고 싶었어요. 그러니까 죽음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면 범생명주의자가 안 될 사람이 없는 것 같아요. 죽음을 생각해야만 우리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거죠. 죽음에 대해 생각을 할 수 없게 된 사회에서 우리는 아무도 생명을 생각하지 않죠. 나도 힘들어 죽겠는데 남을 생각하겠어요?

 

어쨌든 모든 사람은 늙어요. 이런 현실 인식을 갖고 있는 작가의 경우는 어떤가요? 행복한 노인이 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책 같은 걸 읽으면 농촌 사회의 노인들은 불행하지 않대요. 농촌 사회가 옳다고 얘기하고 싶은 건 절대 아니고요. 지역 공동체가 남아 있는 사회의 노인들은 불행하지 않다고 해요. 수렵 채집 사회의 노인을 생각해봐요. 노인이 불행했을까요? 많은 인류학자가 얘기하는 거지만 그 공동체에 노인이 없었다면 아이들의 양육이 불가능했다고 얘기하거든요. 노인은 그 공동체에 필요한 사람이죠. 노인이 행복하게 사는 방법은 딱 하나죠. 젊은 사람들한테 사랑을 나눠줄 수 있는 위치를 되찾아야죠. 근데 지금 우리 사회는 아니죠. 노인들을 다 싫어해요. 꼰대라고 싫어하잖아요. 제 나이만 돼도 꼰대라고 싫어하는데요.

 

소설에 나온 한 마디가 떠오르네요. 인간에 대해 “언젠가는 저주를 받고 말 거야”라고 말하죠.


몇 년 전만 해도 ‘요즘 경제가 어렵다’ 이런 말을 많이 했어요. 금년 들어오면서 느끼는 게 뭐냐면요. 사람들이 뭔가 심각하게 잘못됐다고 인식하고 있는 거예요. ‘큰일 났다’라는 말을 해요. ‘헬조선’도 다 마찬가지죠. 심지어 저희 어머니가 납득하시기 시작했어요. 제 형과 누나가 열 살이 많은데요. 어머니가 이제 제가 형이나 누나와 같은 세대에 태어났으면 지금처럼 살고 있지 않았을 거라는 걸 아시는 거예요. 그건 제 잘못이 아니거든요. 모든 사람들이 십 년 전에 ‘내가 뭘 잘못했나? 최선을 다하지 않았나?’라는 생각을 하다가 작년부터는 처음부터 될 수가 없는 싸움이었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된 것 같아요. 인식이 바뀌었어요. 이런 게 정말 큰일인 거거든요.


‘기대이론’이라는 게 있죠. 어떤 사회에 미래에는 잘될 것이란 기대가 넘쳐나면 그 사회는 지금 당장 가난해도 문제가 없어요. 예를 들어 힘들게 막노동을 해라, 대신 십 년 후에 잘살게 될 거야, 라고 하면 십 년 막노동해요. 그런데 희망이 없다면 누가 하겠어요? 지금 젊은 세대가 처한 상황이 딱 그거죠. 아버지 세대가 갈 길이 없는 걸 지금 눈으로 보고 있잖아요.

 

한편 소설의 결말은 해피엔딩이에요.


우리는 어차피 죽을 거야, 라는 생각을 하게 되면 그 뒤에 남는 건 뭐겠어요. 내가 죽은 뒤에도 사라지지 않을 생명이고, 생명이 사라진다 해도 존속할 지구고, 지구가 사라진대도 계속될 우주고, 그 우주에서 또 다시 탄생하게 될 생명, 이런 거잖아요. 그런 얘기를 하고 싶은 거죠. 만약 내가 나의 생존과 나의 행복만을 따진다면 잠수함 밖으로 나가면 안 되죠. 그런데 내 이후에도 계속되어야 할 생명을 생각한다면 나가야 하는 거예요. 그런 얘기를 쓰고 싶었어요.

 

그래서 ‘루시’라는 이름 자체가 의미가 있죠.


아시겠지만 라틴어로 ‘빛’이라는 뜻인데요. 루시는 가상의 물고기예요. 최소한의 에너지를 가지고 살아가는 생물이고요. 최소한의 에너지라는 건 내가 살아가기 위해 다른 생명체의 에너지를 빼앗지 않는다는 거예요. 최소한으로 빼앗는다는 건데요. 갑자기 개체가 늘어난 건 위기가 닥쳤기 때문이에요. 평소에도 개체를 늘리지 않으니까요. 어쨌든 생존 자체가 죄악이잖아요. 내가 산다는 건 누군가를 죽여야 하는 일인데 루시는 최소한으로 죽이면서 살아가는 시스템에 대한 은유죠. 그런데 이들은 위기에 닥쳤으니까 루시처럼 살아야겠죠. 그게 ‘빛’이라고 표현을 하고 싶었던 거고요. 이름이 촌스럽다고 욕 많이 먹었어요.(웃음)

 

크기변환__IM_0172.jpg

 

 

그렇다면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할 것인가


언젠가 꼭 하고 싶은, 마음에 담아둔 이야기가 있나요?


장편을 구상해놨는데요. SF고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가 감옥행성이라는 설정이에요. 외계인이 스토리를 만들기 위해 우리를 모두 감금해놓고 살게 한 스토리 뱅크죠. 이 소설에 나오는 얘기들은 다 허구지만 소설에 가져다 쓰는 이론들은 진짜예요. 그 이론들을 다 퍼즐처럼 맞춰서 지구가 외계인의 음모라는 걸 제가 증명할 거예요.

 

종교와 닿는 얘기일 것 같네요.


종교 얘기도 나와요. 인터넷 얘기도 다 나올 거예요. 최대한 그렇게 노력해보려고요. 그 소설을 읽으면 진짜 지구는 외계인의 음모구나 하고 믿어지는 느낌이 들도록 쓸 생각이고요. 그렇다면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은 소설이에요. 보면 재미있으실 거예요. 내년에 집필 시작해서 내년 안에 끝내려고요.

 

지역 작은 책방들을 돌면서 콘서트를 했다고 들었어요. 재미있는 일을 많이 하는 것 같은데 어떤 준비를 하는 건가요?


그렇죠, 보는 거죠. 수익이 생기거나 이런 건 아닌데요. 가능성이 있는가를 보는 거죠. 일부러 공연 장소도 책방으로 해본 거고요. 이번에 느낀 건요. 사람들이 심각하게 문학에 관심이 없어요. 큰일 났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한 십 년 전이라면 이런 분위기는 아니었거든요. 그런데도 사람들이 많이 왔어요. 그런 걸 보면 문화에 대한 욕구가 없진 않아요. 왜 이렇게 된 걸까요. 문학의 미래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있어요. 지방 서점 다니면서 느낀 게 있어요. 예를 들어 ‘남해의 봄날’ 같은 책방은요. 원래 문학 코너가 없었대요. 대전 ‘도어북스’ 같은 경우도 가면 독립출판물 밖에 없어요. 출판사에서 나온 책을 다루지 않아요.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시장이 조금씩 이동하고 있는 거죠. 작은 책방들은 아예 찾아볼 수 없는 책도 되게 많아요. 독자들이 이제 문학을 소비하지 않게 되는 거예요.


한국 사람들이 왜 책을 안 읽을까 하잖아요. 뭐가 문제냐고요. 예전에 어떤 평론가가 제게 묻더라고요. 제 대답은 대한민국 고용 구조의 문제라는 거였어요. 아홉 시에 출근해서 여덟 시, 아홉 시에 퇴근하고 집에 오면 열 시잖아요. 열한 시에는 자야 하는데 그 한 시간 동안 TV보지 누가 책을 읽느냐고요. 주말에 놀아야죠. 독자가 뭘 잘못했어요? 나도 바빠서 책을 못 읽는데요.(웃음)

 

확실히 독립출판물이 많이 나오고 있는 것이 눈에 띄어요.


독립출판이 희망이라고 보는 게요. 플랫폼이 생기면 책을 어떻게 제작하게 되느냐면요. 작가랑 일러스트레이터만 있으면 돼요. 그러면 제작비가 훨씬 줄어들겠죠. 그렇게 해서 플랫폼에 탑재가 되면 그 뒤부터는 인세가 발생할 거잖아요. 앞으로의 출판 형식은 디지털 독립출판이 상당 부분 차지하지 않을까요. 그게 대안이지 않을까요.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지금 출판사 시스템으로는 어려울 것 같아요. 


 

 

img_book_bot.jpg

깊은 바다 속 파랑노희준 저 | 자음과모음
장르를 넘나드는 다양한 시도를 통해 문학의 외연을 넓히는 실험을 계속하고 있는 노희준의 네 번째 장편소설. 인류의 모든 것이 사라져버린 심해의 한가운데에서, 우리를 절망과 희망이라는 경계선 위에 세워놓는다. 구세계의 마지막 날, 인류 앞에 나타날 단 하나의 희망은 무엇일까?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생후 6개월 아이와 유럽여행 떠난 ‘미루 엄마’ 최승연

$
0
0

『노마드 베이비 미루』는 아주 특별한 여행기를 들려준다. 생후 6개월 만에 유럽여행을 떠난 아기 ‘미루’의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지극히 노마드 적이고 별난 부모를 만난 탓에” 미루는 독일, 프랑스, 스페인, 폴란드, 네덜란드, 포르투갈로 이어지는 길 위에서 성장했고, 올해로 네 살이 되었다. 누군가는 이들 가족의 여행이 무모하다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찾고자 했던 삶의 가치를 듣다 보면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미루 엄마’ 최승연 씨는 무대디자이너로 활동하던 중 네덜란드인 남편 카밀을 만나 세계 자원봉사여행 ‘체리티 트래블’을 떠났다. 1년 동안 이어진 프로젝트를 통해 두 사람은 같은 꿈을 꾸게 됐다. “자연 속에서 마음 맞는 이웃과 함께 작은 공동체를 이루어 오손도손 자급자족하고 예술 활동을 하며 사는 소박하면서도 거창한 삶” 그 꿈속에서 미루가 잉태됐고, 부부는 또 한 번의 여행을 계획했다. 아이에게 이상적인 삶을 선물해주기 위해 ‘정착을 위한 여행’을 떠나게 된 것이다.

 

엄마가 된 후 달라진 것 중 하나는 다음 세대의 세상에 대해 더 생각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미루가 살아야 할 세상이기에 지금의 우리가 어떤 책임을 지고 행동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환경을 만들어줘야 하는지 고민하고 또 고민하게 된다. 우리의 여정은 이 고민으로부터 출발했고 어려울 때마다 계속 나아갈 힘과 답을 줄 거라 믿는다. (『노마드 베이비 미루』 346쪽)

 

미루 가족의 여행은 현재 진행형이다. 처음의 목적지였던 스페인을 거쳐 포르투갈까지 이르렀지만, 대안적인 삶이 뿌리 깊게 정착한 곳은 아직 만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자 최승연은 “새로운 곳으로 떠날 수 있는 바로 이 순간, 우린 행복하다”고 말한다. “쉽지 않은 길이지만 결국 우리가 선택한 길”이기 때문이다.

 

지난 12일 오후, 서교동에 위치한 트래블 카페 ‘We.AN’에서 미루와 엄마 최승연 씨를 만났다. ‘네가 미루구나, 안녕’하고 인사를 건네자 아이가 대답하듯 폭 안겨왔다. 온 몸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아이를 바라보며 깨달았다. 긴 여행이 미루에게 남긴 것은 행복한 기억임을. 『노마드 베이비 미루』에 담긴 꿈은 이미 현실이 되었음을.

 

크기변환_5D3_6998.jpg

 

 

아이에게 이상적인 환경을 주고 싶었어요


생후 6개월의 미루와 여행을 떠나겠다고 하셨을 때, 주변 분들의 우려와 반대도 있었을 것 같아요. 어떠셨나요?


저희 부모님은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해주시는 편이라서 괜찮았는데요. 주변의 친구들이 걱정을 많이 했어요. 아이가 무슨 죄가 있어서 부모 따라다니면서 고생해야 하느냐고요. 그런데 저는 솔직히 미루가 겪는 일이 고생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왜냐하면 여행을 하게 되면 저희 세 가족이 온전하게 함께 있을 수 있잖아요. 여행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같이 느낄 수 있고요. 그 안에서 미루가 안정감을 느끼고, 가족이라는 틀 안을 확보할 거라는 생각이 컸어요. 고생이야 저희 부부가 하는 것이지, 미루는 그런 걸 느끼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생후 6개월에 떠났으니까 미루가 아직 질문을 하기 전이었잖아요. 왜 오늘은 여기에서 머물러야 하고 왜 내일은 저기로 떠나야 하는지, 이런 질문을 할 겨를도 없이 변한 거죠. 그런 점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걱정하셨던 부분들이 있었겠죠?


아무래도 아플까 봐 걱정이 됐죠. 혹시나 아이가 아프면 외국에서 병원은 어떻게 가야 되는지, 그런 것들이 맘에 걸리잖아요. 그런데 아주 다행스럽게도, 미루가 선천적으로 건강한 건지 모르겠는데, 아주 건강하게 잘 자라줬어요. 여행을 하는 동안 두 번 정도 감기에 걸렸었고, 열이 올라도 하루 이틀 앓은 후에는 나았어요. 알아서 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웃음). 아이가 아프거나 많이 예민하면 이동하는 자체가 스트레스였을 테고, 여행을 멈출까 하는 생각도 들었을 텐데, 다행히 잘 따라와 줬어요. 사실은 미루 덕분에 가능한 여행이었죠.

 

0.jpg

 

대안적 삶에 대한 바람은 미루가 태어나기 전부터 갖고 계셨던 거잖아요. 미루가 태어난 후에는 그 욕망이 더 절실해졌다고 하셨는데, 이유가 있나요?


제가 늦은 나이에 엄마가 됐잖아요. 마흔에 엄마가 됐기 때문에, 아무래도 다른 엄마들보다는 일찍 미루 곁을 떠날 거라는 생각이 컸어요. 그것 때문이기도 한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자원봉사 여행을 해서 그런지, 냉소적이기도 했던 것 같아요. 세상은 점점 더 나빠져 가고, 희망이 잘 보이지 않고, 이런 세상에 아이를 남겨놓고 떠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임신 때부터 했어요. 그렇기 때문에 아이에게 이상적인 환경을 주고 싶은 마음이 더 컸던 것 같아요. 그런 환경에서 자란다면 아이가 커서 저희 부부가 바람직하게 생각하는 세상을 만들 수 있는 마인드를 갖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고요.

 

두 분이 꿈꾸셨던 삶이 어떤 모습이었기에 이곳을 떠나게 되신 건지 궁금합니다.


스페인에는 비교적 공동체 마을이 많고 대안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다고 이야기를 들어서 떠나게 된 거고요. 한국에서 대안적 삶을 찾기에는 남편이 마음에 걸렸어요. 너무나 다른 환경이잖아요. 언어는 남편이 한국말을 열심히 공부하고 있고 또 제법 잘 하니까 크게 문제가 안 된다고 해도, 그래도 남편이 조금 안쓰러웠던 것 같아요. 그런 개인적인 이유가 더 강했던 거예요. ‘우리나라에서는 대안적인 삶을 이룰 수 없다’는 생각은 안 해봤어요. 한국에서도 그런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고요. 여행은 개인적인 이유로 가게 된 것이지, 한국에는 무언가가 없다고 판단해서 간 건 아니었어요.

 

스페인에서 공동체 마을이 발달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우선은 아주 현실적인 이유예요. 스페인 위쪽에 있는 다른 나라들보다 전반적으로 물가가 싸죠. 그리고 버려져 있는 땅들도 많아요. 그래서 북쪽에 사는 유럽 사람들이 밑으로 내려오는 거죠. 날씨도 더 따뜻하고요. 그런 현실적인 이유에서 스페인이나 포르투갈로 많이 모여드는 것이지, 스페인 문화 자체가 공동체가 더 다양하다거나 그런 부분은 딱히 찾지 못했어요. 저희는 다양한 정보들을 입수해서 (스페인이나 포르투갈을) 찾아간 거였는데, 막상 실제로 보는 것과는 또 다르잖아요. 생각했던 것과 실제가 다른 괴리감도 있을 수 있는 것이고, 전혀 새로운 면을 발견할 수도 있죠. 그런 부분을 조율하는 과정이 있었어요.

 

‘이런 곳에서 미루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있으셨을 것 같아요.


마음 맞는 가족들과 같이 자연 속에서 조그만 마을을 이루어서 살고 싶었어요. 각자의 프라이버시가 보장되어 있고, 마을 안에서 자급자족하고,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또래 집단이 형성 되고, 부모들의 참여로 아이들을 교육할 수 있는 곳이요. 저희가 꿈꿨던 이상적인 환경은 그런 거였어요.

 

 

1.jpg

 

 

기다리고 있으면 아무것도 오지 않아요


유럽을 여행하시면서 비슷한 꿈을 가진 가족들을 많이 만나셨잖아요. 그들은 어떤 방식을 시도하고 있던가요?


공동체 생활을 꿈꾸는 사람들은 시스템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마인드를 가지고 있죠. 이렇게 말하면 너무 선정적일지 모르겠는데, 조금 히피적인 사람들이 많고요. 영적인 것을 찾아 다니는 사람들이나 진보적인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이 많은 편이에요. 그런 사람들이 많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그들이 플랫폼이 생기게 되고요. 대부분은 인터넷을 통해서 모임이 만들어지고요. SNS에도 여러 그룹이 생겨요. 자신이 찾고 싶은 마을에 대해서 글을 올리고, 거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런 식으로 정보를 구하고 돌아다녀요. 아니면 집시처럼 캐러밴 같은 데 몽땅 짐을 넣고 이동하기도 하고요. 산 속 어디든 차를 세워두고 캠핑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돌아다니는 거예요. 그런 가족들도 많아요.

 

책에서 본 바로는, 버려진 집을 수리해서 사는 경우도 있더라고요.


다른 나라는 모르겠지만, 스페인의 경우에는 아예 버려진 마을도 있어요. 경제적인 이유로 사람들이 도시로 다 가버린 거죠. 그러면 젊은 친구들이나 마음 맞는 가족들이 그곳에 들어가서 고쳐서 살아요. 유럽에서는 일정 기간 동안 설면 거주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 돼요. 주인이 있더라도 함부로 나가라고 하지 못하는 거죠. 그런데 지금은 서서히 규제가 시작되고 있어서, 그렇게 하기가 힘들어진다고 하더라고요. 마을 전체를 헐값에 파는 경우도 있어요. 사람들이 와서 마을을 다시 살려주기를 바라는 거죠. 그런데 그런 마을은 사람의 발길이 닿기가 힘든 곳에 있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가기를 꺼려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과감하게 시도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꿈꾸셨던 모습과 가장 흡사했던 공동체는 어디였나요?

 
『노마드 베이비 미루』를 쓰고 나서 있었던 일인데요. 포르투갈 중부에 있는 산 속에서 여름을 보낸 적이 있었어요. 그곳 마을이 자연적으로 참 좋았어요. 커다란 계곡이 있고, 계곡을 따라서 집들이 모여 있는데, 하나하나 아주 자연스럽게 생긴 공동체예요. 대안적인 삶을 추구해서 영국이나 독일에서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요. 그 안에서 학교도 생기고, 아이들이 날짜를 정해서 또래 친구들과 만나서 노는 시스템이 만들어지고 있더라고요. 그곳을 ‘해피델리’라고 불렀는데, 저는 그곳이 이상적으로 보였어요. 그런데 아쉽게도 이미 너무 꽉 차버린 느낌이 있었어요. 쉽게 근접할 수 없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리고 남편은 마을 자체가 너무 외진 곳에 있다고 걱정하더라고요. 그들이 현지인(포르투갈인)과 어울려서 살기보다는 동떨어져서 살고 있는 듯한 느낌도 받은 것 같고요.

 

3.jpg

 

제대로 된 공동체로 자리를 잡지 못한 경우도 많이 보셨을 것 같아요.


아쉽게도 실패한 케이스들을 많이 봤어요. 그 이유는 굉장히 다양한데,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으면 여러 가지 문제들이 생길 수밖에 없잖아요. 그런 이유가 가장 크고요. 아무리 마음이 맞는다고 하더라도 의견이 100% 일치하기는 어렵잖아요. 인간관계에서 어쩔 수 없이 생기는 부분이라고 하더라도, 갈등을 처리하는 방법을 보면 대부분 작은 싸움에서 시작했다가 참 예쁘지 않게 끝나더라고요. 그리고 자기 것이라고 생각되는 공간이 없으면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는 마음 때문에 끝까지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더라고요. 그런 걸 보면서 사적인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하게 됐죠. 좋은 의미로 모였다가 해체된 공동체들을 많이 보면서 공동체라는 게 정말 어렵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런데 레인보우 개더링을 보고 공동체 생활이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레인보우 개더링이란 무엇인가요?


히피들 모임인데요. 전 세계 곳곳에서 산발적으로 일어나고 있어요. 어디에서 레인보우 개더링이 열린다고 공지가 뜨면 전 세계 히피들이 모여요. 그들끼리 나름 유동적으로 움직이면서 같이 살죠. 미루를 데리고 일주일 동안 포르투갈 깊은 산골에 있을 때 가봤는데, 텐트를 치고 같이 지내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딱히 누가 명령을 하는 게 없어요. 다 같이 모인 자리에서 필요한 걸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만들어요. 그게 정말 신기했어요. 이런 일이 가능하구나, 싶지만 회의가 들기도 하죠. 과연 언제까지 지속될까, 싶은 거예요. 하지만 공동체 생활이 전혀 불가능한 건 아니라는 생각은 해요. ‘열심히 찾으면 그런 곳이 나올까’ 싶기도 하고, 그러다가도 ‘너무 허황된 꿈을 꾸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도 하죠. 어쩔 수 없이 항상 갈등을 해요(웃음).

 

‘혹시 불가능한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 들 때도 있으신 거군요.


우리가 너무 맞는 사람만 찾아서 돌아다니는 거 아닌가, 우리가 그냥 (공동체를) 만들어 버리면 되는데, 하는 생각도 들죠. 약간은 철없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그리고 너무 사람에게 기대게 되니까 ‘만약 그런 사람들이 없으면 어떻게 해야 하나’ 싶죠. 그런 점에서 차라리 우리가 먼저 시작을 해버리면 어떨까 생각도 하고요.

 

포르투갈에서 만난 맬린이 들려줬던 이야기가 떠오르네요. ‘사람을 찾아 다니지 말고, 날 부르는 곳을 먼저 찾으라’고 했었죠.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정말 생각 많이 했거든요. 남편은 동의를 하지 않았어요. 그래도 희망은 사람이어야 된다고 주장했죠. 제가 생각할 때는 사람이라는 게 언제 바뀔지 모르는 건데, 우리도 여행하면서 1순위로 생각하는 것이 계속 바뀌는데, 언제까지 사람의 마음이 같을 수만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요. 그건 아직도 고민하는 부분이에요. 그런데 재미있는 건, 자연 속에 정착해서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뭔가 느낌이 왔다고 말해요. 어떤 곳을 봤는데 ‘여기야!’하고 느낌이 왔다는 거예요. 맬린의 경우도 인터넷에서 땅을 보고 느낌이 왔대요. 대부분 그런 경우거든요. 그런데 우리에게는 그런 느낌이 안 왔어요. 그렇다면 언제까지 감을 기다려야 하나, 싶은데 마냥 기다릴 수만도 없잖아요. 그게 딜레마예요(웃음). 저는 우리가 ‘여기다!’하고 만들어야 하지 않나 생각도 해요. 기다리고 있으면 아무것도 오지 않잖아요.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처럼) 고도를 기다리는 것도 아니고, 고도 씨는 오늘도 오지 않아요(웃음). 그런데 남편은 아직도 사람을 찾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래서 상처를 많이 받고요. 정답은 없겠죠. 길에서 살면서 사람들이 운명론자가 되나 봐요.

 

4.jpg

 

 

아이가 앞으로 살 세상이니까, 계속 가야죠


곧 한국을 떠나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어디로 가시나요?


제가 베를린에서 체류권을 받았거든요. 베를린에서 남편 여권도 재발급 해야 되고, 서류 처리할 것들이 많아서 우선은 베를린으로 다시 가요. 여름 동안에는 베를린에 있었으면 좋겠어요. 베를린의 여름이 아주 좋거든요. 일단은 조금 편히 쉬고 싶고요(웃음). 이후에는 어떻게 될지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많은 사람들은 불확실성 때문에 불안을 느끼잖아요. 작가님의 경우는 어떠세요? 불안하지 않으세요?


왔다 갔다 해요. 특히 체력이 달리면 짜증이 확 밀려오죠. ‘계획을 했는데 왜 계획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는 것인가’라는 생각도 들고요. 그런데 그건 여행을 해도 여행을 안 해도 항상 있는 거잖아요. 어떤 때는 너무 피곤하고 미루를 안기도 버겁고, 그럴 때는 짜증이 나요. 왜 우리는 이렇게 돌아다니면서 살아야 하나, 왜 우리는 쉽게 결정을 못하고 이렇게 돌아다니나, 그런 생각이 안 드는 건 아니죠. 그런데 또 미루를 보면 힘을 얻어요. ‘미루가 앞으로 살 세상인데 계속 가야지’ 하는 생각이 들고요(웃음).

 

『노마드 베이비 미루』를 읽으면서 ‘집이란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많은 이들에게 집은 상황에 맞춰서 구하는 ‘주택’이 아닐까 싶은데요. 작가님은 그 하나의 ‘공간’을 위해서 세계를 돌아다니고 계시잖아요.


‘집’ 하면 무슨 생각이 드세요?

 

‘집’이 ‘짐’이 된 게 지금의 현실이 아닐까요. 대출을 받기도 힘들고, 그걸 갚기 위해서 인생의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고요. 작가님에게 집은 어떤 의미인가요?

 

말씀하신 것처럼 시스템 안에 있으면 렌트비 내려고 아등바등해야 되죠. 그건 어딜 가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유럽의 대도시도 점점 렌트비가 비싸지고 있어요. 그걸 감당할 수 없으니까 사람들이 떠나는 거죠. 제가 아직 순진한 건지 모르겠지만, 저는 ‘집’ 하면 그냥 따뜻하다는 생각 밖에 안 들어요. 휴식, 포근함, 뿌리, 그리고 가족하고 더 연관돼서 생각하게 돼요. 그래서 전세니, 월세니, 이런 생각은 아직은 안 들어요. 나잇값을 못해서 그런 건지, 너무나 순진해서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는데요(웃음).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으니까 집에서 우리 가족끼리, 정말로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 님과 우리 가족과 살고 싶은 이상적인 모습이 그려져요(웃음). 그걸 찾아서 가고 싶은 마음이 더 커지게 되고요. 그리고 남편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기본적으로 삶의 질에 대한 기준이 굉장히 낮아요.

 

6.jpg

 

행복하기 위해서 많은 것을 가져야 할 필요는 없다는 말씀이세요?

 

네, 굳이 뭐가 많이 필요하지 않잖아요. 만약 남편이 어떤 기준을 갖고 있었다면, 예를 들어서 집은 최소 40평 이상이어야 한다든지, 그런 기준이 있었다면 힘들었을 거예요. 그런데 어디든 우리 셋이 같이 있을 수 있는 공간이면, 그게 단칸방이든 으리으리한 저택이든, 상관이 없으니까요. 그런 부분이 서로 맞아서 가능한 여행이었지 않나 싶어요. 그리고 미루의 가치관도 그렇게 됐으면 좋겠어요.

 

책에서 ‘여행하며 미루에게 미안한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셨는데요. 가장 안타까웠던 순간은 언제였는지 궁금합니다.


미루에게 친구를 만들어 주고 싶은데, 그게 어려워서 제일 아쉬워요. 미루가 혼자 잘 놀거든요. 그런데 저는 마음이 짠해요. 혼자 노는 걸 좋아하는 건지, 아니면 상황에 스스로를 맞춘 건지... 이번에 한국에 있으면서 처음으로 어린이집을 갔어요. 그런데 친구가 그리웠었나 봐요. 첫날부터 아주 쿨하게 ‘엄마 빠빠이’ 하고 어린이집에 들어갔는데, 정말 거부감 없이 잘 지냈다고 하더라고요. 나중에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시기를, 아이가 많이 돌아다녀서 새로운 환경에 아주 익숙하거나 아니면 엄마와의 애착 관계가 아주 잘 형성이 돼서 떨어져 있어도 안정적이거나 둘 중에 하나일 것 같대요. 기분이 좋았지만, 그래서 짠했어요.

 

반대로 ‘여행을 하면서 미루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환경에 대한 내성(웃음)? 적응력이 좋고 새로운 사람을 만났을 때 친화력도 좋아요. 그리고 엄마 입장에서는 여행의 모든 순간을 온전하게 같이 공유하고 즐길 수 있는 게 좋죠. 아이는 못 느끼겠지만, 나중에 이 책을 보면 알지 않겠어요?

 

5.jpg

 

 

아이와 함께 떠나는 여행 “많이 내려놓으세요”


미루는 또래 아이들과는 다른 특별한 경험을 하고 있잖아요. 만약 미루가 ‘나는 왜 다른 아이들과 다르게 자랐어요? 왜 친구들과 같은 경험이 없어요?’라고 묻는다면,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시겠어요?


뜨끔한 질문인데요(웃음). ‘왜 나는 평범하지 않아요?’라고 물었을 때 저는 그냥 ‘평범한 게 뭔데?’라고 말하고 싶어요. 친구들은 다 하는 경험을 왜 나는 안 해봤냐고 한다면, 글쎄요. 뭐라고 해야 할까요... ‘그건 네 팔자 아니겠니, 거기에 대해서는 내가 어떻게 해줄 수가 없단다, 네가 잘 생각하고 받아들여야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하고 비교하지 말아라, 비교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니’라고 말해줄 것 같아요. ‘그 친구들이 그런 경험을 했을 때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고, 네가 이런 경험을 했을 때는 이럴 만한 이유가 있고, 다르다고 생각하지 말고 받아들여라’라고 이야기하겠죠(웃음).

 

『노마드 베이비 미루』를 읽고 꿈꾸는 삶을 찾아 어린 아이와 함께 여행을 떠나려는 가족이 있다면, 어떤 조언을 들려주고 싶으세요?


많이 내려놓으세요, 라고 말씀드릴 것 같아요(웃음). 당장에 이루어질 거라는 기대감도 내려놓으시고, 무조건 아이를 데리고 떠나면 힘들 거라는 불안감도 내려놓으시라고요. 꼭 5성급 호텔이 아니어도 되고, 꼭 좋은 레스토랑에서 먹어야 되는 것도 아니거든요. 생활의 수준에 대한 그런 걱정을 내려놓으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엄마들에게는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는 이야기를 꼭 드리고 싶어요. 아이는 스스로 잘 크더라고요. 그러니까 이렇게 하면 나쁜 엄마인 걸까, 나는 좋은 엄마일까, 이런 생각도 내려놓으시면 좋지 않을까 싶어요. 그냥 아이를 믿으시고 기다려 주시면 여행 속에서도 아이는 스스로 잘 큰다는 이야기를 해드리고 싶어요. 육아 자체도 힘들잖아요. 다들 힘들게 육아하잖아요. 그런데 여행이라는 상황 자체가 아이한테만 온전하게 신경을 쓸 수 없게 만들어요. 해결해야 될 것들이나 불규칙적인 순간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그런 일에 신경을 쓰다 보면 온전히 아이에게만 눈이 갈 수는 없어요. 어느 정도는 믿고 놔두는 상황이 어쩔 수 없이 벌어지거든요. 거기에 대해서 너무 미안해하거나 불안해하는 마음을 내려놓으시면 조금 더 수월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렇다면 여행이 고생으로만 느껴지지는 않으실 것 같고요.

 

7.jpg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또 다른 이야기는 없으세요?


책을 보시면서 미루가 안쓰럽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 같아요. 그 느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그런 편견은 버려주셨으면 좋겠어요. 미루는 정말 잘 크고 있다는 걸 알려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미루는 행복하다고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떨 때 ‘이 아이는 행복하구나’ 하고 느끼세요?


아이가 웃는 게 다 똑같나요? 저는 비교 대상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웃는 걸 보고 있으면 ‘이 아이가 정말 행복해서 웃는구나’라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반짝반짝 웃을 때요.


 

 

img_book_bot.jpg

노마드 베이비 미루최승연 저 | 피그마리온(PYGMALION)
생후 6개월 아기가 여행을 떠났다. 카우치서핑, 서블렛, 공항 노숙, 히피 공동체 체험, 스쾃팅까지 아기가 경험하고 체험한 세상은 다 큰 어른에게도 버거울 정도로 이색적이다. 그런데 아기 미루는 여행자로 타고난 덕분인지 운이 좋은 것인지 보채지도 아프지도 다치지도 않고 씩씩하게 길고 쉽지 않은 여행을 해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만화가 탁영호 “4.19혁명은 박제화된 혁명이었다”

$
0
0

폭넓은 이야기가 만화로 그려지고, 많은 사람들이 만화를 즐기는 일본이 부럽다고 말하자 그 말을 들은 일본 만화가는 도리어 너희가 부럽다고 했다. “역사가 엄청난 소재”라는 이야기였다. “우리 현대사를 꼭 한 번 그려야겠다, 이것이 내가 만화를 하는 이유다”라는 다짐으로 만화를 시작했던 탁영호는 그 말에 다시 한 번 예전 마음을 확인했다. 지금도 그 생각에 변함이 없다는 작가가 이번에 그린 것은 4.19혁명에서 5.16쿠데타로 이어지는 험난한 두 번의 봄이다.


1960년 봄은 척박한 땅에 민주주의의 싹이 움트는 시기였다. 이승만 정권의 장기집권을 위해 자행된 부정선거에 분노한 민중은 이를 규탄하며 시위를 벌인다. 3월 15일, 선거 당일 마산에서 일어난 유혈시위에서 총에 맞아 사망한 김주열의 시신이 4월 11일, 마산 앞바다에 참혹한 모습으로 떠오르고 분노의 물결은 곧바로 4월 19일, 혁명으로 이어진다. 이승만은 결국 무릎을 꿇었다. 민중의 승리였다. 하지만. 역사는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박정희 소장을 필두로 한 군사 세력의 정권 장악. 바로 1961년 5월 16일 벌어진 5.16쿠데타였다.


인터뷰는 공교롭게도 5월 16일에 진행되었다. 맑은 날씨가 무색하게 역사의 한 순간이 명백한 감각으로 다가왔다. 작가는 거듭해 기억하라고, 계속 이야기하라고 말했다. 그것으로 역사의 진보를 조금이나마 이룰 수 있을 것이었다. 과연 ‘기억하겠다’는 약속은 과거도, 현재도 모두 감싸는 것이 아닐까 싶다. 

 

크기변환_160516-탁영호_IMG_4724.jpg

 

 

역사는 진보하는가


지난 4월에 문득 시간이 너무 빠르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해결되지 않은 시간들은 더 빠르게 가는 것 같아요. 선생님께서는 그런 생각을 더 많이 하시겠죠?


네, 오히려 시간이 간다기보다 세월호 같은 경우는 2년 전에 멈춰있는 것 같아요. 그냥 모든 게 굳어있는 것 같아요. 머리도 그렇고, 사고도 그렇고요. 그런데 세상은 그것과 무관하게 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죠.

 

인터뷰를 하는 오늘은 공교롭게도 5월 16일이에요. 역시 세상은 아무 일 없던 듯 돌아가는 것 같은데요. 그럼에도 여러 징후들이 있잖아요. 요즘 어떤 생각을 하며 지내세요?


5.16, 4.19, 세월호, 다 어떤 역사고 사건이고 삶의 모습인데요. 자기 생활이나 자기가 속한 조직에서의 생존을 위해 급하고 바쁘게 살다보니 잊고 지나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역사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회는 뭐랄까요. 발전이 더디다고 할까? 그런 생각을 많이 하고 있어요. 역사 발전이 안 되니까 역사에 대한 반성도 없고 그래서 정치 현실이 아직도 저급하지 않은가 생각해요.

 

질문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역사는 진보하고 있는가, 이 물음에 어떻게 답하시겠어요?


진보하고 있지 않다고 보는 쪽인데요. 역사에 잘못된 점이 있으면 충분히 단죄를 해야 한다고 보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봉건 시대, 식민지 시대 지나면서 특히 식민지 시대 때 잘못됐던 점들조차도 그대로 안고 현대로 왔으니까요. 그게 지금까지도 진행 중이고요. 때문에 진보한다고 생각 안 해요. 민주주의를 지키고 만들려는 소수의 사람들이 노력은 계속 하고 있지만 사회 자체로 봤을 때 우리 역사의 수준은 진보성을 띠고 있지 않다, 저는 그렇게 보고 있죠.


이번 책도 그런 맥락에서 만든 거예요. 당시에는 혁명이었지만(4.19혁명) 박제화된 혁명이었다, 그게 제 주제였어요. 

 

그 말, 작가의 말에도 쓰셨어요. “박제화된 역사는 거짓도 참으로 만드는 오류를 범할 것”이라고요. 혁명의 빛나는 순간만 얘기하고 기억하는 건 편하고 좋아요.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이후를 재차 이야기하셨거든요.


상징이죠. 4.19혁명은 한국 사회에서 최초로 시민의 힘으로 나라를 바꾼 사건이었고, 역사적인 사건인데요. 그것들이 굉장히 희석화 되었어요. 물론 그 이후 우리 역사가 진보적이고 민주적으로 흘러왔다면 4.19의 현재적 가치는 더욱 높게 평가를 받았겠죠.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요. 오늘이 5.16이에요. 군사 정권에 의해 민주주의가 좌절되었고, 그러니까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희생당한 사람들조차도 잊히게 되었죠. 무엇보다 중요한 건 4.19혁명의 가장 큰 가치가 우리의 민주주의 경험과 훈련, 교육이었거든요. 혁명 이후는 그런 것조차도 다 흩트려 놓은 거죠. 현재도 우리는 민주주의 경험과 교육, 이런 측면이 굉장히 미약하거든요. 그런 것에 대한 아쉬움을 만화를 통해 그리려고 했어요.

크기변환_봄봄봄-151.jpg크기변환_봄봄봄-153.jpg

 

내가 만화를 하는 이유


사회나 역사 이야기를 계속 해오셨는데요. 어떤 의무감 같은 게 있는 건가요?


처음 만화를 할 때부터 그랬는데요. 주변에서 저더러 만화를 하라고 권유를 했을 때 생각한 게 있어요. 우리 현대사를 꼭 한 번 그려야겠다, 이것이 내가 만화를 하는 이유다, 라는 거였거든요.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고요. 예전에 어느 일본 만화가를 만났어요. 즐겁게 이야기를 하다가 제가 소재에 대한 얘기를 했어요. 일본은 만화의 다양성이 풍부하고 소재도 많아서 참 부럽다고요. 그랬더니 일본 작가가 나는 너희들이 부럽다는 거예요. 너희는 역사가 엄청난 소재가 아니냐, 이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거기서 한 번 또 찡한 걸 느꼈어요. 내가 잘 선택했구나, 그렇게 생각했었죠.

 

처음 만화를 하겠다고 생각하셨을 때가 1980년대잖아요. 시대적 분위기와도 관련이 있을 것 같아요.


네, 처음 만화를 그린 게 대학생 때였는데 한국가톨릭농민회를 우연히 알게 됐어요. 그림 그릴 사람을 찾더라고요. 그렇게 시작해서 전단지 그리고, 대자보 그리고 하다가 기왕이면 단 컷으로 그리지 말고 이야기 있는 만화를 그려보라는 선배의 제안을 받았어요. 그것도 재미있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한 달 정도 농촌 돌아다니면서 자료 수집하고 사람들과 같이 생활하면서 경험을 쌓고 와서 중편 만화를 하나 그렸고요. 그게 「학마을 사람들 이야기」였어요. 그렇게 시작이 돼 지금까지 만화를 그리게 된 거예요.

 

크기변환_160516-탁영호_IMG_4753.jpg

 

우연한 기회가 삶을 바꿨어요.


다시 보니 짜증이 날 정도로 너무 못 그렸고(웃음) 그랬지만 한 가지 좋은 것은 진짜 열심히 그렸다는 거예요. 땀 냄새는 나더라고요. 진심과 열심히 한 흔적이 있더라고요. 군대를 다녀와서는 그때가 1985년이었는데 문화 운동하던 선배들이 다시 만화를 그리라고 권유를 했어요. 영화를 하고 싶어서 준비하고 있었는데 말이에요. 또 그것도 필요하겠더라고요. 당시 만화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으니까요. 1987년에 6.10항쟁이 일어났어요. 그때 국민운동본부에서 나온 전단지 만화는 제가 다 했었어요. 이것까지만 하고 만화 은퇴하자, 하고 했던 거예요.(웃음) 그러면서 기왕이면 프로가 돼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기성 작가들과 교류도 하고, 만화 기술도 배우고, 그때 처음으로 만화책이라는 걸 보면서 연출, 캐릭터, 이런 것들을 혼자 연구했죠. 몇 달 동안 습작을 하다가 만화 잡지에 등단도 하고요. 그렇게 본격적인 만화가의 길이 시작된 것 같아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오랫동안 변함없이 만화를 그리게 한 힘은 무엇이었을까요? 전공도 다르고, 영화를 꿈꾸기도 했잖아요. 다른 선택이 가능한 순간도 있었을 텐데요.


보통 만화가들이 연재 만화, 장편 만화, 그런 것들을 많이 하는데 저는 단편 만화를 주로 했거든요. 잡지에 연재할 때도 단편을 했어요. 단편 만화는 이 안에서 모든 이야기가 끝나는 거죠. 시작과 반전, 결말까지 말이에요. 제가 마음대로 소재도 정하고 주제, 캐릭터도 잡고요. 거기에 완전히 재미를 붙인 거였어요. 세어보니 단편을 거의 삼백여 편을 했더라고요. 만약 영화로 찍으려면 일 년은 걸릴 거예요. 저는 열흘이면 단편 한 편이 나오거든요. 수없이 소재를 개발하고,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배경과 인물을 창출해내는 것이 좋았어요. 예전에 흑석동에 산동네가 있었어요. 우연히 지나다가 밤에 너무 좋더라고요. 달도 있고, 멀리 한강도 보이고요. 그래서 여기를 배경으로 만화를 그리자, 해서 또 스토리를 만들고요. 그런 식으로 작업을 하면서 만화라는 작업에 큰 재미를 느낀 거죠. 약간의 보람도 느끼고요.

 

보람이라면요?


제 만화에 대해 사람들이 높게 평가하거나 그런 건 원치 않는데요. 가끔 어떤 사람들이 제 만화를 보고 제가 그린 주제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그런 얘기를 해요. 그때는 내색은 안 하지만 기분은 되게 좋았죠.(웃음) 저는 주로 우리에게 가장 가까이 있는 삶, 역사, 정치를 그리려고 했어요. 세상의 주역은 아니지만 이들에 의해 지탱이 되고 흔들리지 않는 그런 모습, 그 사람들의 얘기, 이들이 얼마나 훌륭하고 강한가, 그런 것이 제 작품의 축이었던 것 같아요.

 

이번 만화도 그래요. 역사가 늘 다루는 승자가 아니라 주변인의 이야기, 이야기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예요. 그런 게 선생님을 많이 끌어당기나 봐요.


항상 그래요. 역사적 주류, 사건에 직접 영향을 끼친 사람들보다 주변 사람들, 이들에 의해 역사가 어떻게 발전 또는 퇴화되어 왔는가 하는 것에 더 관심이 많아요. 오히려 그렇게 연출을 하고 이야기를 풀어나갈 때 독자들에게 훨씬 더 가깝게 다가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많이 하고 있거든요. 내일 모레면 또 5.18이잖아요. 그걸 다룬 책이 또 나와요. 시국 사건으로 수배당한 어느 대학생 이야기예요. 그가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서 겪는 이야기들인데요. 주인공 동생이 광주에서 시민군으로 죽었죠. 그것을 회상을 하면서 자신의 수배 생활과 광주를 서로 교류하고요. 폭력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 도식화되죠. 큰 정치 세력이 폭력화되었을 때 그것이 인간을 얼마나 참혹하게 만드는가에 대해 썼어요. 광주 이야기는 그냥 중간중간 나오죠. 그러면서도 이런 식으로 연출했을 때 광주의 참혹함이 더 강조되는 거예요.

 

크기변환_160516-탁영호_IMG_4711.jpg

 

 

봄을 기다리는 겨울


이야기를 시작하는 장면, 첫 장면이 아무래도 가장 중요할 것 같아요. 이 책의 시작은 상갓집 풍경이거든요. 보여주고 싶었던 건 무엇이었나요? 


상가가 암시하는 건 민주주의의 장래죠. 계절은 혹독한 겨울이에요. 봄을 기다리는 겨울이고요. 그걸 처음에 의도했던 거죠. 그 안에서 봄을 생각하고 느끼게 하기 위해서요.

 

박정희라는 인물이 아주 잠깐 조연으로 등장해요. 사실 이 책 전체에 많이 등장하지 않죠. 그런데 그것이 더 강렬한 인상을 남겨요.


가상의 공간과 상황에서 그 사람이 그런 일을 했다는 역사적 사건은 없죠. 제가 만든 이야기인데요. 복선을 하나 넣은 거죠. 하지만 사람들은 알잖아요. 그 장면을 깔아주면서 나중에 있는 자유당의 횡포, 온갖 부정 선거, 혁명으로 치닫는 이야기를 보게 되는데 뭔가 사실 불안한 거죠. 불안한 마음을 깔고 싶었던 거예요. 그 총소리요. 결국은 이것조차도 보수 정당이 권력을 잡아서 모든 게 다시 회귀되는 그런 과정이잖아요. 계속 답답한 거죠. 끊임없이 답답하면서도 불안한 요소예요.

 

크기변환_봄봄봄-41.jpg크기변환_봄봄봄-44.jpg크기변환_봄봄봄-46.jpg

 

특히 지금 시점에서 그 이야기를 봤을 때 느끼는 답답함이 있죠. 희망적인 사건을 보지만 결국 좌절되었던 경험을 계속 해왔던 거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잖아요.


물론 제가 패배주의, 그런 건 아니에요. 그렇지만 현실은 그대로 보여줘야겠다, 의도한 거예요. 희망은 있죠. 패배주의가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는 거죠. 분석도 하고요. 잘못된 게 있으면 고쳐나가고요. 그랬을 때 희망이라는 게 생기겠죠. 좌절을 한 번 겪었으니까요. 아까 말했지만 민주주의 훈련과 교육, 그런 것이 한국 사회에 얼마나 필요한가, 또한 민주주의 철학이 완고한 지도부가 있는 조직이 서로 앙상블을 이뤘을 때 비로소 혁명이라는 게 완성되겠구나, 하는 것들을 이를 통해 배우는 거죠. 그때는 이게 없었거든요. 민주주의 훈련도 안 되어 있지, 그런 철학을 가진 지도부나 조직도 안 가지고 있었지, 때문에 혁명이 좌절되지 않았나 하고요. 그걸 저는 여기서 보여주고 싶은 거였죠.

 

어떻게 여기에 왔는지 계속 역사를 되짚다보면 청산되지 않은 과거가 남아요. 친일세력이라든지 말이죠. 해방공간에서 제대로 단죄하지 않은 역사적 과오가 지금까지 작동하는 것인데요. 이 숙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고민하게 되거든요.


일단 사실을 알아야죠. 공부를 해야죠. 제 만화가로서의 사명은 그런 것을 사람들이 편히 볼 수 있게 하는 거예요. <모래시계>, <여명의 눈동자> 같은 드라마도 있었잖아요. 그런 것 보면 그런 부분들이 다 나오거든요. 사람들이 아주 재미있게 보면서도 반민특위가 좌절되면서 친일파들이 다시 경찰이 돼 독립운동 했던 사람들을 고문하던 일을 알게 돼요. 사람들에게 그런 걸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거죠. 우리 역사가 이랬다, 이런 것들이 두 번 다시 거듭되지 않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는 걸 말이에요. 물론 제가 보는 관점이 있겠죠. 만일 제가 그 시대에 살았으면 나는 어떤 행동과 생각을 했을까, 어떤 조국의 미래를 꿈꿨을까, 생각하죠. 그런 작가의 철학으로 극을 꾸미면서 이야기 흐름을 만들어 나갈 텐데요. 언젠가 그런 이야기를 꼭 해보고 싶어요.

 

해방공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요?


네. 해방 직전부터 6.25 직전까지 벌어지는 이야기를 구상해놨어요. 한 번 완성해 보려고요. 그러니까 자꾸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해요. 이런 만화가 나오면 고등학교나 중학교 같은 데서 학생들이 이걸 보고 토론하게 하고요. 왜 이때 우리가 민족적 자존심을 포기해야 했는가,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 바로 그것이 민주주의 훈련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그런 훈련이 너무 안 되고 있죠.


요즘 학생들이야 많이 좋아졌지만 특히 예전 세대는 진짜 안 됐죠. 오로지 반공 교육만 받아왔으니까요. 무조건 북한 사람은 다 늑대였고, 빨간색이고 그랬죠.

 

크기변환_160516-탁영호_IMG_4702.jpg

 

 

완전히 짓밟힌 비극적인 사건


4.19혁명 이후를 현재의 관점에서 볼 때는 물론 사람들이 꿈꿨던 모습보다 많이 축소된 결과였지만 혁명을 통해 좋아진 점도 분명히 있어요. 언론, 출판의 자유나 국가보안법 개정처럼 말이에요.


그렇죠, 그 후 일 년 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가를 그렸는데요. 나중에 군사 정권이 들어서면서 이것을 ‘혼란이었다’라고 했어요. 사실은 혼란이 아니거든요. 저는 이것이 민주주의의 과정이었다고 봐요. 수많은 데모, 그것은 수많은 국민들의 의견이죠. 꽉 닫혀있던 민의가 표출된 거예요. 출판, 정당, 모두 마찬가지죠. 누구나 출판할 수 있고 정치에 참여할 수 있고 그런 거잖아요. 물론 과정에서 혼란도 있을 순 있었겠지만 그 과정을 통해서 민주주의의 틀을 잡는 것이 아니었는가, 이것이 조금만 더 길었으면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았을 것이다, 생각해요. 그런 것을 욕심 많은 군인들이 와서 자기 식대로 파시즘을 만든 거죠. 그게 진짜 아쉬운 거죠. 역사에 새싹이 돋고 꽃이 피려고 봉우리가 맺혔는데 그게 잘려나가고 완전히 짓밟히고 그 위에 아스팔트까지 깔린 그런 비극적인 사건이다,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어떤 사람들은 그 혼란기에 군인들이 나라를 바로 세웠다는 관점을 갖기도 하겠죠. 

 

다양한 관점이 나오고 서로 이야기해야 할 텐데 관심조차 많이 없는 것 같아요. 현재의 하루살이가 너무 힘들기도 할 테고 지금도 어떤 이야기는 자유롭게 하지 못하는 분위기기도 하고요.


그럴수록 자꾸 해야죠. 유신 시대, 전두환 시대 이후에도 그런 식으로 자꾸 해왔기 때문에 점차 환경들이 좋아진 거잖아요. 지금도 많이 좋아졌죠, 사실. 그러니까 지금도 계속 해야 한다고 봐요. 그러기 위해서는 만화뿐 아니라 여러 작가들이 그런 것을 학습할 수 있는 요소를 제공하는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작가들도 공부를 많이 해야겠죠. 습득을 하고 여과시켜서 대중들이 학습할 수 있게 제공해야 해요.

 

이야기 사이에 신동엽의 시 「봄의 소식」과 김수영의 시 「푸른 하늘을」을 보여주었어요.


김수영의 시가 진짜 압축적이죠. 봄을 기다리는 사람들, 완성되지 못한 혁명을 이야기하는데 기승전결이 딱 나오더라고요. 만화는 상황으로 보여주는 건데요. 이것들을 압축해서 정리해주는 의미에서 시를 도입한 거예요.

 

그런 요소가 무척 영화적이기도 해요. 장면 사이에 마치 음악이 흐르는 것처럼 감정을 증폭시키는 느낌이거든요.

 
제 만화를 다들 영화적이라고 해요. 영화나 만화나 흡사하거든요. 영화가 종횡비가 같은 프레임 안에서 모든 것들이 이어진다면 만화는 프레임 자체가 자유롭죠. 그런 차이지 나머지 연출은 거의 비슷한 것 같아요. 영화적이라고 할 때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일정한 시간 내에 모든 것을 다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연출을 빨리 해야 하는 거예요. 의외의 인물과 의외의 장소가 튀어나고 의외의 대사가 나오죠. 이것들이 하나의 복선이 되고요. 복선이 많을수록 극은 더 재미있어지는 거거든요. 제 만화도 그런 면들을 많이 깔다보니 영화적이라고 하는 얘기를 듣는 것 같아요.

 

 크기변환_160516-탁영호_IMG_4743.jpg

 

 

더 기대가 되고, 신난다


노동 현장 이야기를 담은 『송곳』, 『미생』이나 삼성 반도체 사건을 다룬 『먼지 없는 방』, 용산 참사를 이야기한 『내가 살던 용산』등 만화가 지금도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는데요. 다른 장르보다 만화라서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는 것 같아요.


만화는 일단 혼자서 할 수 있거든요. 영화나 연극 같은 다른 장르는 혼자 못해요. 그런데 만화는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꽹과리 치고 할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작업 과정이 아주 편리하게 되는 것 같아요. 시간적으로도 장점이 있죠. 빨리 할 수 있고요. 시간적으로 빠르다는 건 그만큼 순발력 있다는 거죠. 어떤 사건을 만화로 다루자면 2~3일 걸릴 수도 있거든요. 그렇다면 이 사건에 바로 대처하거나 투입될 수 있는 거죠. 이런 순발력과 작업의 편의성이 현장 만화에 어울리는 것 같아요. 또 민주화 과정 속에서 좋은 엘리트 현장 만화가들을 많이 키웠고요. 덕분에 리얼리즘을 추구하는 만화가들의 저변이 요즘은 집약되는 면이 있어요. 그런 건 참 좋은 것 같아요.


지금 언급한 만화를 그린 친구들을 다 알거든요. 그림을 보면 놀라울 정도로 엄청나게 성장했어요. 성장이란 말이 건방진데요. 처음 시작할 때부터 봐왔기 때문에요. 보면 깜짝깜짝 놀라요. 저는 이 사람 현재의 작품뿐 아니라 미래의 작품까지 보는 거죠. 그러면 더 기대가 되고, 신나죠. 거기에 자극을 받아 나도 더 신나게, 재미나게 해야겠다 하는 마음을 갖게 되고요.

 

아쉬운 점도 있을 것 같은데요.


아쉬움은 없는데요. 굳이 아쉬움이라면 출판이나 만화계에 대한 아쉬움은 좀 있죠. 특히 만화를 웹툰으로 많이 보고 있잖아요. 웹툰이 사망 직전의 만화를 살렸다고 보는데요. 진짜 아쉬운 건 만화는 그래도 책으로 나왔을 때 더 가치가 있다고 봐서요. 웹툰이 굉장히 감각적이고 말초적이고 개그적이잖아요. 그런 것들은 아무 생각 없이 볼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이런 리얼리즘 만화는 뭔가 생각을 하면서 봐야 하는데 아무래도 집중력이 떨어지겠죠. 읽었는데 뒤돌면 ‘어? 내가 뭘 읽었지?’ 그렇게 되니까요. 책이 더 확장되었으면 좋겠어요. 일본은 아직도 웹툰보다는 종이 만화를 더 많이 보잖아요. 여전하거든요. 손으로 느끼는 것, 눈으로 보는 것, 인지하는 것, 이런 시간이 필요하죠.

 

크기변환_봄봄봄-117-118.jpg

 

마지막 질문인데요. 많이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하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선생님께서 꼭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우리 현대사에 이렇게 혁명이라는 멋있는 일이 있었다는 것을 꼭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그 혁명을 많이 생각했으면 좋겠고요. 한 10년, 15년 전만 해도 4월 19일이 되면 각 대학에서 4.19마라톤대회도 하고 시위도 하고 그야말로 축제였는데요. 요즘은 다 사라졌죠. 봤더니 재작년부터 각 대학의 4.19행사가 다 없어졌더라고요. 심지어 고대에서까지 그게 없어졌어요. 그런 점이 참 안타깝죠. 대학이라는 게 취업 공간으로 전락하고 만 것 같아서요. 우리도 혁명을 경험했었다, 그걸 많이 생각했으면 좋겠다, 4.19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알았으면 좋겠다, 그런 정도를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img_book_bot.jpg

침묵의 봄 희망의 봄 혁명의 봄탁영호 글,그림 | 휴머니스트
탁영호 작가는 한국 현대사의 가장 치열하고 험난했던 시절을 살아낸 인간 군상들의 사연을 씨줄날줄로 엮어 만화로 지어냈다. 혁명에서 쿠데타까지 393일의 역사적 사실 위에 생동감 있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구성하여 독자로 하여금 역사적 진실에 다가서게 한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태원준 “엄마가 세계를 여행하는 동안 나는 엄마를 여행했다”

$
0
0

『엄마, 일단 가고봅시다!』, 『엄마, 결국은 해피엔딩이야』의 두 주인공 태원준 저자와 어머니가 세 번째 여행을 떠났다. 아시아와 유럽 여행에 이어 다시 한 번 시작된 대장정의 무대는 중남미. 모자는 200여일 동안 멕시코, 쿠바, 코스타리카, 페루, 칠레, 브라질 등을 거치며 지구의 나머지 절반을 여행했다.

“베테랑 여행자조차 애를 먹일 만큼 상당히 높은 여행 난이도를 자랑하는 곳이자 치안과 관련된 무시무시한 괴담이 가득한 곳”으로 떠난 만큼,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를 정도로 아찔한 순간들도 있었다. 하지만 보석 같은 자연과 문화 앞에서 잠깐의 고생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앞서 300일 동안 이어졌던 유라시아 여행을 통해 ‘캡틴’으로 거듭난 어머니는 “태어나 처음으로 내일이 궁금해 밤잠을 설치던 행복에 비하면 그깟 고단함은 밥알에 씹히는 작은 모래알이었다”고 회상한다. 그리고 태원준 저자는 “엄마가 세계를 여행하는 동안 나는 엄마를 여행했다”고 고백한다.

 

크기변환_160516-태원준_IMG_4656.jpg

 

 

한계를 넘어서는 데에는 나이가 필요 없더라고요

 

앞서 두 권의 책을 출간하신 후 어머니와 다시 여행을 떠나게 되더라도 ‘오랜 기간은 힘들 것 같다’고 하셨는데요(웃음). 결국 다시 떠나셨네요.


실제로 긴 여행을 갈 생각은 없었고요. 책이 나온 후에 나름대로 바쁜 삶을 살고 있었기 때문에 어머니와 여유롭게 여행을 가는 꿈은 꾸지 않았어요. 취재나 촬영을 위해서 해외로 가는 일이 워낙 많았고, 지방 강연도 많았거든요. 거의 집에 머무는 시간이 없었을 정도였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어머니께서 조금씩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이전에 300일을 여행하고 돌아오셨기 때문에 아직도 그 불씨가 남아있으셨겠죠. 또 다른 여행을 가고 싶으셨을 거고요. 유라시아 여행을 마칠 때도 어머니가 너무 아쉬워하셨어요. 조금 더 보고 싶으시다고요. 그런데 제가 바쁘다는 핑계도 있었고, 저는 나름대로 계속 여행을 떠났었기 때문에 어머니를 신경 못 쓴 거죠. 제가 나쁜 아들인 거죠. 그런데 계속 시간을 두고 그러다 보니까 어느 순간부터 어머니께서 슬그머니 여행 이야기를 하실 때가 많았어요.

 

이번 여행을 시작하게 되신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나요?


TV프로그램에 출연한 적이 있었는데, 제가 강연을 마치고 나서 방청석에 계신 어머니와 MC 분께서 대화를 나누셨어요. 그때 처음으로 남미에 가보고 싶으시다고 하시더라고요. 어머니께서 나중에 말씀하시길, 더 이상 여행을 가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하면 재미가 없을 테니까 그냥 한 말이라고 하시는 거예요. 신경 쓰지 말라고요. 그때까지만 해도 마음이 일렁이기는 했어도 결심한 건 아니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TV에서 마추픽추를 보시고는 엄청 흥분을 하시면서 저를 깨우시는 거예요. 그때 어머니가 정말로 다시 가고 싶어 하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뒤의 일정들을 정리하고 최대한 빨리 떠날 수 있는 날짜에 덜컥 비행기표를 예약했죠.

 

처음 계획하셨던 여행 기간은 어느 정도였나요?


5개월 정도 후에 돌아오는 표를 예약했었어요. 중남미는 워낙 큰 대륙이라 최소 4개월 정도는 여행해야 될 것 같았거든요. 그리고 미국도 경유해서 둘러보다 보면 5개월은 걸리겠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결국 또 길어졌죠(웃음). 여행이 끝날 때쯤 되니까 어머니께서 더 보셔야 될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때까지 절반 정도 밖에 보지 못했거든요. 그래서 제가 한국에 있는 누나에게 연락을 해서 여행을 연장했죠. 8개월 가까이 늘어났어요.

 

이전의 유라시아 여행과는 달라진 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머니께서 주도적으로 계획하시고 이끌어 주시는 모습도 보이더라고요.


그렇죠. 이제는 어머니도 베테랑이 되셨으니까요. 300일 동안 배낭여행을 하셨잖아요. 웬만한 젊은 친구보다 더 베테랑이 되셨죠. 더 이상 낯선 곳에 대한 두려움이 없으시고 ‘일단 가서 해결하면 되지’ 하고 생각하시는 스타일이세요. 그리고 유라시아 여행을 갈 때는 제가 어머니를 모시고 다녔다면, 중남미에서는 그냥 같이 다닌 거죠. 친구랑 여행하는 것처럼요. 또 소위 각개전투가 가능해져서(웃음), 유라시아 여행 때는 무조건 어머니와 같이 다녔지만 남미에서는 달랐어요. 서로 보고 싶은 게 약간 다르면, 완전히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건 아니지만, 한 지역 내에서는 각자 보고 와서 다시 만나는 일들이 가능했어요. 제가 늦잠을 자고 있으면 어머니 혼자 동네 한 바퀴를 산책하시거나 아침을 드시고 오시기도 했고요. 유라시아 여행 때는 그런 일 자체가 없었거든요. 이번에는 파트너로써 같이 여행을 했던 것 같아요. 때로는 어머니께서 저를 이끌고 가기도 하셨고요.

 

크기변환_160516-태원준_IMG_4615.jpg

 

어떤 여행자보다도 용감하게 도전하는 모습을 보여주신 것 같아요. 특히 온두라스는 너무 위험한 곳이라고 만류했지만 어머니께서 선택하셨잖아요.


그렇죠. 중남미 같은 경우에는 사실 치안이 안 좋은 곳들이 조금 있어요. 그 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곳이 온두라스라고 하는데, 그래서 저는 온두라스를 건너뛰려고 했어요. 그런데 어머니께서 어차피 여행 나왔는데 1박 2일이라도 들르면 좋지 않겠냐고 하시더라고요. 어머니께서 대단하신 거죠. 두려움이 없으신 것보다 저보다 호기로우세요. 여행과 새로운 곳에 대한 열정도 넘치시고요. 여행을 가서 한 곳에 오래 머무는 분들도 계시고, 여행의 방식이 다 다르기 때문에 뭐가 더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어머니는 최대한 많은 곳에 발자국을 남기고 싶어 하셨어요. 용기도 많으시고, 새로운 곳을 탐험하고자 하는 열정도 대단하시니까, 누구보다 뛰어난 여행자이시죠.

 

물 공포증을 떨치시고 직접 바다에 뛰어들기도 하셨던데요. 그렇게 스스로 틀을 깨시는 모습을 보면서, 아들로서 자극도 많이 받으셨을 것 같습니다.


자극도 받고 정말 대단하시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러면서 저도 많이 배웠죠. 물 공포뿐만 아니라, 유라시아 여행 때부터 계속 한 꺼풀씩 넘어서셨거든요. 예전에는 오토바이가 굉장히 위험하다고 생각하셔서 저한테도 절대 못 타게 하셨는데, 베트남에서 오토바이 택시를 타보자고 제안하시기도 했고요. ‘송끄란’이라는 굉장히 격한 축제가 있는데, 자칫하면 다칠 수도 있는 축제라서 저는 어머니가 즐기실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어머니는 숙소에 모셔다 드리고 혼자 가려고 했더니 뛰어나오시더라고요. 왜 데려가지 않느냐고 하시면서요. 그리고는 젊은 친구들이랑 어울려서 축제를 즐기셨어요. 그건 어머니 입장에서도 넘어서신 거고, 저 스스로도 ‘엄마는 안 될 거야’라고 생각했던 관념조차 없어진 거죠. 그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정말 엄마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생각했어요.

 

하늘을 날기도 하셨죠.


짚라인이라고 불리는 ‘캐노피’도 타셨고요. 끝나고 나서는 패러글라이딩을 하시자고도 했어요. 아쉽게도 바람이 너무 세서 하실 수는 없었지만요. 유라시아 여행 때는 어머니께서 환갑이셨고 이번 남미는 63세에 떠나신 거였거든요. 그런 분이 하늘을 날고 바다 속에서 스노쿨링을 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우리 엄마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고, 한계를 넘어서는 데에는 나이가 없다는 사실도 절절하게 느꼈어요. 그리고 어머니가 새로운 것에 도전하실 때 제가 옆에서 같이 하는 것도 재밌었지만, 어머니가 도전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기록하는 게 더 재밌었어요. 덕분에 책에도 어머니의 사진이 많이 실릴 수 있었고요. 

 

크기변환_160516-태원준_IMG_4694.jpg

 


비로소 어머니를 여행한 것 같아요


“엄마가 세계를 여행하는 동안 나는 엄마를 여행했다”고 하셨어요. 이번 여행을 통해서 어머니를 더 이해하게 된 부분이 있다면, 어떤 건가요?


유라시아 여행보다 속 깊은 대화가 훨씬 더 많았어요. 아시아는 여행의 출발지였기 때문에 서로 정신이 없었거든요. 적응 기간이 필요했던 거예요. 그리고 어머니께서 첫 여행을 나오셨기 때문에 멋진 모습들을 보시면서 감탄하시느라 바쁘셨죠. 유럽의 경우는 현지 친구들 집에서 주로 묵었기 때문에 단 둘이 같이 있는 시간들이 없었어요. 그런데 중남미 여행은 시작부터가 많은 대화가 오고 갔죠. 유라시아 여행을 떠나기 전에는 어머니는 가게를 하셨고 저는 대학에 진학하면서 누나랑 서울에서 살았기 때문에 대화가 깊을 수가 없었거든요. 그런데 여행 이후에는 어머니와 같이 살면서 대화가 많아졌어요. 그런 상태에서 남미까지 같이 다녀왔기 때문에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눴죠. 어머니랑 저랑 둘만 알 법한, 둘만 알아야 할 비밀 이야기까지도 하게 됐고, 예전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기도 했어요. 일상 속에서는 낯 뜨거워서 하지 못할 속 깊은 이야기도 하고요. 유라시아에 여행 때보다 훨씬 더 마음을 터놓고 속 깊은 이야기를 많이 나눴기 때문에, 이 여행을 마치고 나서야 비로소 어머니를 여행했다고 고백한 거예요.

 

어머니께서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말씀하신 곳은 어디였나요?


아르헨티나를 굉장히 좋아하셨어요. 아르헨티나에서 네 개 정도의 지역을 돌아봤는데, 다 좋았어요. 남미의 스위스라고 불릴 정도로 풍경이 예쁜 산악 호수 마을, 빙하가 있는 곳, 땅끝 마을, 부에노스아이레스, 이렇게 네 군데를 봤는데 다 너무 좋으셨대요. 또 아르헨티나가 소고기가 맛있고 싸요(웃음). 정말 질이 좋은 고기인데 한 근에 5000원이 안 해요. 어머니께서 고기를 좋아하시거든요. 그런 점도 작용한 거 같아요(웃음). 그리고 풍경도 좋았고요. 소고기뿐만 아니라 아르헨티나 음식이 맛있었어요. 심지어 좋아하시는 고기까지 싸서, 호스텔에서 매일 요리해서 드실 수 있었으니까, 아르헨티나를 굉장히 좋아하셨던 것 같아요.

 

크기변환_160516-태원준_IMG_4642.jpg

 

작가님께서는 어디가 제일 좋으셨어요?


저는 갈라파고스가 제일 좋았어요.

 

책에서 말씀하시길, 파라다이스 같은 곳이라고 하셨죠.


제가 자연과 동식물을 진득하게 보는 걸 좋아하거든요. 그런데 갈라파고스는 동물들이 사람을 보고 겁을 내지 않아요. 태어날 때부터 사람이 자신들을 해치지 않는다는 걸 아니까요. 경계하는 느낌은커녕 먼저 놀자고 다가오는데, 너무 신기하고 재밌는 거예요. 그리고 갈라파고스는 굉장히 특색 있는 곳이잖아요. 지형이나 형성 과정도 흥미로운 부분이 많고요. 본토와는 또 다른 토착문화도 있어요. 우리나라도 섬에 사시는 분들만 가지고 계신 문화가 있듯이, 자신들의 문화를 지키려고 하고 자부심이 강해요. 동식물의 보존은 국립공원에서 하고 있는 일이지만, 시민들이 동참해서 잘 돌봐주기도 하시고요. 사람들도 너무 착했고 두루두루 좋았어요.

 

‘우유니 소금 사막’은 일생에 한 번은 꼭 봐야 할 풍경이 아닐까 싶었어요.


그곳은 지구상에서 제일 비현실적인 풍경이거든요. 그리고 마침 저희가 갔을 때가 우기였어요. 제가 건기 때도 촬영차 가봤는데, 건기와 우기 때 풍경이 많이 달라요. 건기 때는 정말 메마른 사막이에요. 물론 그 풍경도 독특하기는 하죠. 전 세계에 온 사방이 하얀 곳은 없으니까요. 그런데 우기에는 비가 와서 하늘이 반사가 되거든요. 그곳에 서 있으면 ‘내가 지금 여기 있는 게 맞나’ 하고 혼란이 와요. 말도 안 되는 풍경이어서요. 시각적으로는 우기의 우유니 사막 풍경을 따라올 만한 곳은 없는 것 같아요. 갈라파고스가 최고라고 말씀 드렸던 건, 제가 여행지를 시각적으로만 따지지 않기 때문에, 저에게는 우유니 사막이 1순위는 아닌 건데요. 시각적인 걸로만 따진다면 우유니 사막이 압도적인 1위죠.

 

마추픽추는 어머니께서 오랫동안 꿈꿔 오신 곳이었잖아요. 그런데 막상 가셨을 때는 허탈함을 느끼기도 하셨어요. “영원한 꿈으로 남겨둘 걸” 하고요.


그 말씀을 듣고 이제는 정말 여행자가 되셨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뭐든지 좋다고 감상을 하는 게 아니라, 지금까지 쌓아온 여행 내공과 봐 왔던 풍경들을 종합해 가면서 어머니의 생각으로 풀어낼 수 있으신 거잖아요. 진정한 여행자라는 느낌이 들었죠. 그리고 ‘그냥 나의 로망으로 남겨둘 걸’ 하고 생각하시는 것도 대단한 거잖아요. 여행이라는 게 보고 느끼는 것만 반복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때로는 기대가 너무 커서 실망이 커지기도 하는 게 여행인데, 어머니를 보면서 그걸 다시 한 번 느꼈어요. 저도 장기간 여행을 하다가 가끔 매너리즘에 빠지거든요. 어느 순간 설렘이 없어질 때가 있어요. 실망이라기보다 감흥이 덜 한 순간이 있는 거예요. 이제 어머니도 그런 걸 알게 되시겠구나, 싶기도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 곳곳에는, 제가 알지도 못하고 가보지도 않은 그곳에, 무언가 더 대단한 것들이 계속 나와요. 그래서 여행을 계속할 수밖에 없어요(웃음). 

 

크기변환_160516-태원준_IMG_4682.jpg

 

 

애틋했던 ‘엄마의 여행 노트’

 

『엄마, 내친김에 남미까지!』에는 아버지와의 여행을 회상하는 순간도 담겨 있습니다. 아버지와의 여행이 “지금 내 여행의 토양”이라고 하셨는데요. 어떤 의미인가요?


어릴 때 아버지를 잘 따랐다기보다는, 아들들은 암묵적으로 그런 게 있어요, 아버지의 말씀은 무조건 명령인 거죠(웃음). 친근한 존재이기도 하지만요. 아버지 입장에서는 뭐든 시키면 잘하고 말 잘 듣는 아들이 예쁘셨겠죠. 그래서 어디 가실 일이 있으면 많이 데리고 다니셨어요. 어디 간다는 말씀도 안 하시고 그냥 차에 태우고 가셨어요. 대화도 없이 그냥 음악 틀어 놓고 가시는 거예요. 그때는 가기 싫었던 적도 있었고 지루하기도 했는데, 지나고 보니까 아버지께서 아들이 예뻐서 더 많이 데리고 다니고 싶으셨던 거죠.

 

당시의 경험이 작가님께 미친 영향은 무엇인가요?


제가 중학교 때 미국으로 캠프를 갔었는데, 너무 큰 세상을 보고 충격을 받았었어요. 그때의 경험이 여행을 좋아하고 많이 다니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됐죠. 그런데 원초적으로 들어가 보면, 아버지와 계속 어딘가를 여행했기 때문에 세상에 더 큰 게 있다는 걸 뼈저리게 느꼈던 것 같아요. 미국에서 낯선 환경에 적응하고 즐길 수 있었던 것도 그래서 가능한 일이었던 것 같고요. 그리고 대학교에 간 이후에는 방학마다 배낭여행을 떠났죠. 그때 아버지가 여비를 보태주기도 하셨고, 아버지 공장에서 일을 하고 정당하게 월급을 받아갈 기회도 주셨어요. 제가 귀국했을 때 공항에 마중을 나오시기도 했고요. 제가 지금까지 많은 여행을 다녔지만, 귀국했을 때 공항에 마중 나왔던 분은 아버지가 유일해요. 두 번 마중을 나오셨었는데, 여자친구가 있을 때도 공항에 마중을 온 적은 없었거든요(웃음). 아버지가 표현은 하지 않으셨지만 특별하셨던 거죠. 관심 없는 척하시지만 엄청나게 마음이 따뜻하셔서 결국에는 다 챙기시는 분이셨던 것 같아요. 공항에 마중 나오셨던 기억만 떠올려도 마음이 찡한데, 지금은 그런 아버지가 안 계시니까 가슴이 아프죠.

 

이번 여행에서 아버지를 떠올리신 이유가 있으세요?


이번 남미 여행이 저한테는 조금 더 ‘여행다운 여행’이었거든요. 유라시아 여행도 재밌었지만, 예전에 유라시아 지역을 꼼꼼하게 본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중남미는 촬영 차 한 나라 정도만 갔었고 다 돌아본 적이 없었거든요. 다 처음 가본 곳이었고 너무 좋았던 거죠.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저도 내일이 기대되는 거예요. 그런데 새로운 걸 보고 좋은 걸 보다 보면 사랑하는 사람이 생각나잖아요. 그럴 때 아버지 생각을 많이 했죠. 어머니와는 그래도 많이 여행하면서 다양한 것들을 봤지만, 아버지는 더 이상 보여드릴 수 없는 상황이라... 아쉽기도 하면서 많이 생각이 나서 책에서 고백을 한 거죠. 보고 싶다고.

 

<엄마의 여행 노트>에서 어머니는 이렇게 적으셨어요. “당신이 눈을 감던 날은 내게 없는 날이야. 내 인생에 그 하루는 없는 날이지”라고요. 이 문장을 읽으시고 가슴이 먹먹해지셨을 것 같아요.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은 있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의 흑백이라고요. 어머니가 참 밝고 유쾌하신 분인데, 길가에 핀 꽃만 봐도 좋아하시는 분이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세상이 흑백이라고 보인다고 말씀하시니까... 그래서 제가 모시고 떠나게 된 거죠. 어머니를 보듬어드리고 치유해 드리기 위해서요. 저도 여행을 하면서 고민이나 스트레스가 희석되거나 없어졌거든요. 어머니도 새로운 풍경을 보고 리프레시를 하면 저와 같은 감정을 가지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예상이 맞아 떨어진 거죠. 맞아 떨어지다 못해 철철 흘러 넘쳤죠(웃음). 그래서 500일 넘게 여행을 하게 된 거고요.

 

<엄마의 여행 노트>를 읽고 어떤 느낌이 드셨어요?


어머니가 글을 잘 쓰신다는 생각도 들고요(웃음). 제가 쓴 대여섯 페이지의 글보다 어머니의 한 줄이 임팩트가 훨씬 더 크다고 느껴졌어요. ‘어머니의 연륜에서만 나올 수 있는 글이구나’ 하는 생각도 들죠. 어머니에 대해서 몰랐던 점들도 알게 되고요. 할머니에 대한 애틋한 감정들은 잘 몰랐던 것 같아요. 물론 할머니가 얼마나 그리우신지, 또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지만 <엄마의 여행 노트>에서 정말 솔직하게 고백하시잖아요. 여행지에서 할머니를 떠올리신 적도 있다고 하시는데, 그 순간에 저한테 말씀을 하시지는 않았거든요. 그런 점에서 특히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들은 많이 와 닿았죠. 저도 완벽히 알고 있었던 게 아니니까요. 누구나 엄마 하면 애틋함이 있잖아요. 저는 엄마를 떠올리면 웃음이 나오지만, 대부분 엄마 하면 애틋하잖아요. 어머니도 자신의 엄마를 그렇게 생각할 텐데, 저는 그걸 알 리가 없었거든요. 그냥 할머니라고 생각하지 ‘엄마의 엄마’로 생각하지는 않잖아요. 그러다가 비로소 ‘아, 우리 할머니가 엄마의 엄마였구나’ 하고 깨닫게 되는 거죠. 그런 생각을 하면서 애잔해지고 애틋해지고... 그랬죠.

 

크기변환_160516-태원준_IMG_4632.jpg

 

 

중남미 여행은 블록버스터 영화와 같아요


유럽, 아시아, 중남미를 모두 여행하셨는데요. 부모님과 배낭여행을 떠나기에 가장 좋은 곳은 어디라고 생각하세요?


아시아죠. 일단 부모님을 모시고 가신다고 하면, 그 분들의 부모님은 대부분 50대 이상이실 텐데, 체력적인 측면이나 경험적인 측면에 있어서 장시간 이동은 부담이 될 수밖에 없잖아요. 유럽만 해도 가는 데 열 시간 넘게 걸리고, 남미는 서른 시간 정도 걸리거든요. 그리고 부모님을 모시고 가신다면, 저처럼 오래 떠나시기 보다는, 휴가를 이용한 짧은 여행일 거예요. 그런데 아시아는 어디를 가나 이동에 무리가 없고, 그게 체력적으로도 도움이 돼요. 이동 시간이 짧다는 건 더 오래 여행을 할 수 있는 거니까, 그런 점에서도 좋을 것 같고요. 주어진 시간 내에서 최대한 길게 여행하시는 게 좋잖아요. 그리고 유럽은 물가가 비싸서 경제적인 측면에서 부담이 되실 수 있어요. 특히나 부모님을 모시고 가면 조금 더 편한 곳에 모셔야 하잖아요. 숙소도 그렇고 식당도 그렇고요. 물론 경제적인 문제가 없으시다면 유럽도 추천해요.

 

아시아를 추천하시는 또 다른 이유가 있나요?


장점이 꽤 많죠. 음식 같은 것도, 곳곳에 향이 강한 음식이 있기는 하지만, 심한 거부감 없으실 거고요. 생각보다 볼거리가 많아요. 중국 같은 경우도 그렇죠. 저는 전 세계 볼거리의 1/3 또는 1/4은 다 중국에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워낙 면적이 크고,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고, 다양한 문화를 가진 나라니까요. 중국을 포함해서 동남아시아 곳곳에는 부모님이 충분히 감탄하실 만한 볼거리가 많아요. 그래서 부모님과 여행을 가신다면 아시아 지역이 좋죠.

 

『엄마, 내친김에 남미까지!』를 읽고 부모님과 떠나는 중남미 여행을 계획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아요. 그 분들에게는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으세요?


스페인어를 몇 마디라도 아시는 게 도움이 될 거예요. 스페인어 단어장 정도만 가져가도 좋으실 것 같아요. 남미에서는 몇몇 나라를 빼고는 스페인어를 쓰는데 영어가 잘 통하지 않거든요. 의사소통이 안 돼서 길 위에서 헤매게 되면 부모님은 체력적으로 힘들어하세요. 저는 여행을 할 때 언어 걱정하지 말고 일단 가보시라고 말씀을 드리는 편인데, 중남미는 영어가 잘 통하지 않는 곳이어서 스페인어가 꼭 필요해요. 그리고 중남미는 아무래도 치안적인 문제들을 많이 걱정하시니까, 가급적 혹은 절대, 밤에는 나가시지 않는 게 좋습니다. 그리고 이건 어떤 여행이든 공통되는 이야기인데요. 부모님과 여행하실 때는 식사를 잘 챙겨드려야 돼요. 어르신들이 ‘당 떨어진다’는 표현을 하시잖아요. 그게 진짜예요. 제때 끼니를 안 드시면 당이 확 떨어지시면서 신경도 예민해지세요. 그러니까 가급적 부모님의 식사 시간을 지키셔야 조금 더 수월하게 여행을 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중남미 여행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일까요?


여행지에 대해서 기대하는 모든 것을, 그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보실 수 있을 거예요. 중남미는 정말 여행계의 블록버스터거든요. 제가 종종 여행을 영화에 비유하는데, 아시아는 역사 다큐멘터리라면, 유럽은 로맨틱 코미디 같아요. 아시아는 워낙 역사가 오래 된 나라들이 많고 유적이나 볼거리가 많거든요. 유럽은 달달하고요. 남미는 규모로 밀어붙이는 블록버스터 같은 곳이에요. 일단 모든지 규모로 압도해요. 우유니 소금 사막도 전라북도만한 크기이고요. 수십 미터에 달하는 피라미드 유적이 여기저기 있어요. 그래서 블록버스터라고 하는 것 같아요. 볼거리가 많기도 하지만 규모가 압도적으로 크니까요. 그리고 우리가 이전에 경험해 보지 못한 문화와 사람들이 있죠. 도시나 유적 같은 것도 생각보다 크고, 아름답고, 멋져요. 무엇을 기대하시든 최소한 그 기대치까지는 미칠 거고요. 남미를 처음 가보신 분이라면 웬만해서는 실망하실 일이 없으실 거예요. 아마 남미를 다녀오신 분들은 저와 같은 이야기를 하실 것 같아요. 여기저기 다녀봤지만 여행의 끝판왕은 남미라고요. 저도 남미를 다녀오고 나서 남미 예찬론자가 됐어요.


 

 

img_book_bot.jpg

엄마, 내친김에 남미까지!태원준 저 | 북로그컴퍼니
아시아편 《엄마, 일단 가고봅시다!》가 여행 초반 모자의 설렘을 담았다면, 유럽편 《엄마, 결국은 해피엔딩이야!》는 사람 사이를 여행한 모자의 유쾌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출간 전부터 화제를 모은 이번 책은 보는 것만으로도 압도되는 중남미의 장대한 자연 속에서 500일간의 여정을 아름답게 마무리한 모자의 코끝 시큰한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조성준 “요요 없는 다이어트, 1년만 참으세요”

$
0
0

 

헬스장의 운동기구와 트레이너의 도움 없이도 몸 만들기가 가능할까? 지난 2월 출간된 『닥치고 데스런 DeSLun』(이하 『닥치고 데스런』)은 그 가능성을 입증해 보였다. 저자 조성준은 11년 동안 헬스트레이너로 일하면서 터득한 운동법을 가감 없이 공개했고, 이른바 ‘맨몸 운동 열풍’을 이끌어냈다. 그가 유투브, SNS, 블로그에서 공유한 영상들에는 별다른 운동기구가 등장하지 않는다. 대부분 자신의 체중을 이용한 동작들이며, 도구라고 해도 철봉과 평행봉처럼 동네 공원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것들이 전부다.

 

‘따로 시간과 비용을 들이지 않아도 헬스트레이너와 같은 몸을 가질 수 있다’는 『닥치고 데스런』의 약속은 허황되지 않다. 오히려 솔직하다. 저자가 5년 동안 실제로 활용했던 운동법을 담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수개월 내에’ 체중 감량을 보장한다든가 몸짱으로 만들어주겠다는 섣부른 장담은 하지 않는다. “천천히 2년!”을 내다보라고 말한다. 요요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을 줄이면서 건강하게 운동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새롭게 출간된 『닥치고 데스런 DeSLun 우먼스』(이하 『닥치고 데스런 우먼스』)에서도 저자의 원칙은 변함이 없다. 덤벨과 가방을 활용하는 몇몇 동작들을 제외하고는 전부 맨몸으로 할 수 있는 운동들이고, 단 기간의 다이어트는 지양한다. “딱 1년만” 무리하지 않고 따라오면 슬림하고 탄력 있는 몸매를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

 

『닥치고 데스런』이 남성들을 위한 운동법을 알려줬다면 『닥치고 데스런 우먼스』는 ‘여성 맞춤형’ 운동법을 소개한다. 조성준 저자의 아내인 신영주 씨가 직접 모델이 되어 그 효과를 경험했다. 결혼 이후 전업주부가 되면서 활동량이 줄어든 데다, 서른이 넘으면서 나잇살이 생겨났던 그녀는 1년 반 동안의 맨몸 운동을 통해 “탄탄한 11자 복근과 업된 힙”을 갖게 됐다.

 

지난 12일, 분당에 위치한 ‘데스런 휘트니스 카페’에서 조성준 저자와 아내 신영주 씨를 만났다. 두 사람은 맨몸 운동의 효과와 방법, 식단 조절의 원칙에 이르기까지 책에 담긴 노하우를 들려주었다.

 

크기변환_5A2A0197.jpg

 

 

요요 없는 다이어트, 1년만 참으세요


맨몸 운동법을 개발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조성준 : 개발했다기보다는 기존에 사람들이 대부분 알고 있는 운동들의 조합인데요. 요즘 트렌드 자체가 우락부락하고 큰 몸이 아니라, 옷을 입었을 때는 티가 안 나고 (옷을) 벗었을 때는 조금 섹시한 몸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몸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운동법들을 여러 가지 해보고 조합을 한 거예요. 평소에 집에서 할 수 있게 체력 별로 진도를 만들어 놓은 것뿐입니다.

 

헬스장에 가거나 트레이너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몸을 만든다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아요. 

 

조성준 : 혼자서 운동하는 것과 퍼스널 트레이닝을 하는 것의 차이는 옆에서 시키고 안 시키고의 차이예요. 의지의 차이입니다. 방법으로 접근하면 똑같은 운동이라는 거죠. 제가 이 운동법을 똑같이 지도했었고, 그 분들이 어느 정도 기간이 지났을 때 분명히 효과를 보셨어요. 그렇게 ‘데스런’이라는 운동을 만들고 4년 동안 회원들과 함께 호흡하면서 맞춰봤기 때문에 효과는 충분히 있다고 봅니다.

 

머신 운동이나 웨이트 트레이닝과 비교했을 때 맨몸 운동의 장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조성준 : 첫 번째 장점은 접근성이죠. 웨이트 트레이닝과 머신 트레이닝은 어느 정도 시설과 기구가 있어야 할 수 있고 그 시설을 쓰려면 결국은 그곳에 가야 되잖아요. 그런데 시간이 없는 현대인들 또는 학생들은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을 수 있죠. 그리고 솔직히 말씀 드리면, 조금 외람된 말씀인지 모르겠으나, 헬스장에 갈 여력이 안 되는 분들을 위해서 처음 이 운동이 탄생한 거예요. 물론 과부하를 걸어서 몸을 크게 만드는 데에는 조금 모자랄 수 있겠지만 저와 같은 몸까지는 가능하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슬림하고 건강하게 사는 몸까지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저는 지금도 단기간에 몸을 만들겠다고 오시는 분들과는 함께 운동을 하지 않습니다”라고 적으셨어요. 이유가 있으세요?


조성준 : 이것도 외람된 말씀일 수 있지만, 제가 수업을 하지 못해서 한 시간이라도 수업을 해야 된다면, 일단 오는 사람은 다 받을 거예요. 그런데 이제는 그러고 싶지 않거든요. 어렸을 때는 솔직히 그렇게 했습니다. 영업을 해야 했고 돈벌이를 해야 했기 때문에 한 달 만에 10kg을 빼고 싶다는 분이 계셔도 수업을 했습니다.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장기적으로 보면 100% 다시 돌아옵니다. 그래서 권유하지 않는 거고요. 체중이 왔다 갔다 하면 몸도 상당히 혼란스러워져요. 세 번 정도 그렇게 반복하다 보면 나중에는 몸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비추합니다.

 

올 여름을 위해서 몸을 만들어야 하는 분들에게는 책에서 이야기하는 1년 혹은 2년의 기간이 길게 느껴질 것 같은데요. 2~3개월 동안의 맨몸 운동만으로도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까요?

 

조성준 : 남자 분들의 경우에는 근육의 형태나 모양이 다 보이는 몸을 원하시는데요. 여자 분들의 경우에 제가 적어도 1년이라고 이야기한 것은 굳히기까지의 기간입니다. 살이 빠지고 몸이 만들어지는 것은 3개월이면 가능할 수 있어요. 그러나 그 상태에서 이전처럼 먹고 운동도 안 하면 다시 예전의 몸으로 돌아가요. 그걸 요요 현상이라고 하죠. 그걸 아예 안 겪을 수는 없죠. 그러나 조금 겪으면서 시행착오를 최대한 줄여서 1년 동안 버틴다면 앞으로 살아가면서 다시 예전 몸으로 돌아가지 않을 확률이 큰 거죠. 그래서 1년이라고 말을 한 겁니다. 그 전에도 달라진 몸을 가질 수는 있어요. 그런데 갖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말씀 드리고 싶어요.

 

크기변환_5A2A0150.jpg

 

 

많이 먹고 많이 운동하면 0칼로리?


운동을 할 때 횟수와 세트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궁금해 하는 분들이 많잖아요. 책에서도 이 질문에 답하셨는데, 정답은 없다고 말씀하셨던 것 같아요.


조성준 : 사람마다 각자 체력이 다릅니다. 체형, 체질, 근육량, 근육의 길이, 골격이 다 달라요. 예를 들어서 푸시업을 최대 개수까지 해보라고 하면, 어떤 사람은 50개를 하고 어떤 사람은 30개를 할 수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한테 똑같이 100개를 하라고 말하면, 한 사람한테는 과부하가 걸릴 수 있고 다른 사람한테는 간지러울 수 있죠. 그렇기 때문에 똑같은 운동량을 요구하는 건 조금 말이 안 되는 거예요. 이 이야기를 책에 쓸 때, 솔직히 고민을 많이 했어요. 지금까지 나온 운동에 관한 실용서는 정확한 횟수와 세트를 명시해 줬으니까요. 그런데 저는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가, 저희 회원들한테도 그런 말씀을 드리거든요. 예를 들어서 ‘저는 왜 다른 사람보다 횟수를 적게 해요?’라고 물어보시면 50개라도 해보시라고 말씀 드려요. 그러면 못하세요. 그렇기 때문에 점진적으로 조금씩 늘려가서 나중에는 결국 한 곳에서 만나게 하는 거거든요. 그 기간의 차이인 거죠.

 

그렇다면 운동을 멈춰야 하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고통을 느끼는 순간에 멈추면 될까요?

 

조성준 : 힘들기 전까지는 노동이고 힘들 때부터가 운동입니다. 그렇게 생각하시면 돼요. 더 힘을 써야 된다고 계속 인지를 하고 그렇게 신호를 주면 영양과 휴식과 운동이 결합돼서 근육이 생겨나는 건데요. 대부분 혼자 운동을 하라고 하면 힘들 때까지만 하고 적당히 하거든요. 쉬면서 다른 일도 하고, 그러다 보면 운동 마치고 씻게 되니까 다들 거기에서 실패를 경험해요. 운동은 힘든 순간이 오고 나서 적어도 5개, 10개를 더 해야 돼요. 그때만 운동이 되고 그 전까지는 준비 운동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정체기를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운동의 강도를 높이는 방법 밖에 없을까요?


조성준 : 정체기를 두 가지로 표현할 수가 있어요. 첫 번째는 정말 몸에서 한계를 경험하고 ‘잠깐만, 나 너무 버거워’하고 버티는 기간인 거고요. 두 번째는 심리적인 정체기입니다. 본인이 지친 거예요. 더 이상 이렇게는 못 먹겠고, 운동도 너무 힘들고, 몸도 힘든 거죠. 저희 아내도 그걸 겪었고 지금도 두세 달에 한 번씩 겪고 있어요. 저 또한 말을 안 할 뿐이지 마찬가지이고요. 사람이니까, 의지가 약해서 힘들고 지칠 때마다 정체가 오는 거죠. 방법은 있어요. 그냥 계속 하시면 돼요. 그것밖에 없어요. 뚫어줘야 돼요. 조금씩 강도를 줄여 나가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계속 똑같은 강도에서 버티세요. 버티다 보면 어느 순간 몸도 회복을 하고 정신적으로도 어느 정도 리프레시가 돼서 다시 운동을 하고 있어요. (몸이) 망가지기 전에 하는 게 중요해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서 시작하면 너무 늦고요. 한 번 짧은 기간 안에 자기가 원하는 몸을 갖고, 그 다음에 그걸 지키기 위해서 노력을 하는 거예요.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정체기를 돌파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유산소 운동으로는 절대 먹은 칼로리를 다 태우긴 힘듭니다”라고 단언하셨어요. 먹는 즐거움을 절대 포기할 수 없다고 판단되면 ‘양껏 먹고 미친 듯이 운동하면 된다’고 생각하잖아요. 그건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세요?


조성준 : 이렇게 말씀 드리면 제가 참 얄미우시겠지만, 없습니다. 저희 어머니께도 그런 말씀을 드렸는데요. ‘먹는 게 좋으세요, 날씬한 게 좋으세요?’ 하고 여쭤봤더니 먹는 게 좋으시대요. 그래서 ‘그러면 그냥 드세요, 대신 운동을 하세요’라고 말씀 드렸어요. 몸 안에 근육량이 있으면 골격이나 아픈 데가 없으실 테니까요. 대신 저희 어머니는 정말 운동을 열심히 하세요. 그런데 배가 나오셨어요. 솔직히 하나만 선택을 하면 돼요. 인생은 늘 선택이잖아요. 외적으로 날씬하고 멋있고 사람들의 이목을 받는 게 즐겁다면 운동을 선택하시면 되고요. 그래도 나는 먹는 게 좋다고 하시면 그냥 드시고 운동을 포기하시면 돼요. 그런데 항상 그 중간에 걸쳐있는 분들이 더 힘들어 하시죠. 저 같은 경우는 누구한테나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라고 합니다.

 

크기변환_5A2A0210.jpg

 

 

여자들이 원하는 몸은 다르잖아요


남자와 여자의 운동법에 차이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조성준 : 강도의 차이라고 보시면 돼요. 운동은 똑같고 강도의 차이입니다. 남자 분들이 저와 같은 몸을 원하신다면 여자 분들은 제 아내와 같은 몸을 원하시잖아요. 만약 제 팔이 제 아내 몸에 달려 있다면, 여자 분들은 운동하기 싫으시겠죠. 그 차이입니다. 남자의 운동법은 조금 더 강한 자극을 줘서 어느 정도 과부하가 걸리게 하는 것이고요. 물론 자신의 체중을 이용한 과부하이지만요. 여자들은 그냥 예쁜 몸을 만들 때까지만 운동을 하면 됩니다. 여자 분들도 저와 같은 몸을 원하신다면 제가 하는 운동법대로 하시면 되죠. 저보다 운동을 잘하는 여자 분들도 많아요. 그런데 여자 분들의 운동 목적은 ‘날씬하고 예쁜 몸’이기 때문에 그때까지의 과정을 담은 거죠. (운동법이) 다르지 않습니다.

 

운동을 하다가 근육이 붙어서 몸이 비대해 질까 봐 걱정하시는 여성 분들도 계신데요.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식이조절을 같이 하면 되나요?


조성준 : 근육이 붙어서 몸이 커지기는 쉽지 않습니다. 보디빌딩을 하는 여성 분들을 보면, 아마 제 몸과 같은 상태라면 시합에서 1등 하실 거예요. 그런데 그 분들은 단백질을 먹는 양이 엄청나고 운동량조차 남자 분들 버금갑니다. 그렇게 심하게 과부하 되지 않고 영양을 계속 과하게 먹지 않는 이상, 여성 분들은 평소대로 먹고 운동을 해서는 절대 근육이 커지지 않아요. 오히려 몸 안에 있는 근 밀도가 높아지고 근 선명도가 좋아져서 피하 지방이 빠졌을 때 얇고 슬림한 몸을 만들 수 있는 거죠. 피부가 얇아지면 혈관도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함정이 있어요. 먹는 양은 그대로이고 운동만 한다면, 겉에 있던 지방층은 그대로 있고 안에서는 근육량이 치고 올라오죠. 그래서 몸이 두꺼워진다고 생각이 드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책에서 표현하길, 운동을 하면서 먹는 건 그대로 먹으면 근육 돼지가 된다고 한 거예요. 그럴 때는 몸이 점점 불어나간다고 느끼는 게 맞는 거죠. 근육이 생기고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운동과 음식 조절은 꼭 병행하셔야 됩니다.

 

아내 분께서 운동을 시작하신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신영주 : 저는 결혼한 후에 일을 그만두게 됐어요. 그런데 제가 과자 같은 걸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아무래도 집에 있으면서 과자를 계속 먹다 보니까 옆구리 같은 데 살이 붙더라고요. 그때 마침 남편이 『닥치고 데스런 우먼스』를 쓰고 싶다고 하면서, 저한테 제안을 했어요. 본인이 직접 시연을 하면 여자들이 봤을 때 남편 몸처럼 될까 봐 따라하지 않을 거라는 거예요. 전문가한테 맡기면 ‘저 사람은 전문가니까‘ 하고 생각할 거고요. 그래서 저한테 제안을 했던 건데, 사실 고민을 정말 많이 했어요. 몇 달은 고민했던 것 같아요. 저는 운동이라는 걸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더 고민이 됐죠. 그런데 자연스럽게 시작하게 됐던 것 같아요. 운동을 하다 보니까 점점 내 몸이 만들어지는 것도 재밌고, 그래서 스스로 더 열심히 하게 된 것 같아요.

 

몸이 달라지고 나서 가장 만족하시는 부분은 어떤 건가요?


신영주 : 조금 건강해졌다고 해야 되나요. 그 전에는 매운 것도 좋아하고 술도 조금 마셨는데, 그래서 항상 위가 조금 안 좋았어요. 그리고 예전에는 무분별하게 먹다 보니까 식사 시간대도 늘 안 맞았고, 새벽까지 깨어있을 때도 있었어요. 그런 식으로 하다 보니까 몸 상태가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식단 관리를 철저하게 하니까 위가 깨끗해지더라고요. 그것 때문인지 확실하게는 모르겠지만, 건강해졌다는 게 굉장히 만족스러운 부분 중에 하나이고요. 11자 복근도 조금 생긴 것 같아서 좋아요.

 

함께 운동을 하시면서 가장 힘든 순간은 언제였나요?


신영주 : 처음 운동을 할 때는 정말 많이 울었어요. 누구를 위한 운동인가, 하고 원망도 많이 했고요. 무엇보다 저는 운동을 안 해봤던 사람이라 한 동작 한 동작이 너무 힘들었어요. 스쿼트를 할 때도 계속 뒤로 자빠지고, 푸시업하다가 울기도 했어요. 오히려 식단 조절은 덜 힘들었던 것 같아요. 먹다 안 먹다 하는 일이 자주 있었거든요. 저는 운동하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아직까지도 그렇게 푸시업을 잘하는 편은 아니지만, 부들부들 떨면서 했던 기억이 나고요. 그때 제일 힘들었던 것 같아요. 지금도 물론 힘들어요.

 

크기변환_5A2A0071.jpg

 

 

생리 후 열흘, 다이어트의 황금기!


『닥치고 데스런 우먼스』에서 다이어트 식단을 공개하기도 하셨어요. 식단을 짤 때 나름의 원칙이 있으셨나요?


신영주 : 일단 골고루 먹자고 생각했어요. 저도 인터넷을 많이 찾아봤었거든요. 누가 알려줬던 게 아니었어요. 그래서 단백질, 탄수화물, 식이섬유 같은 것들을 골고루 섭취하자는 생각을 늘 머릿속에 염두 해 두고 있었고요. 남편 같은 경우에도 채소를 정말 좋아해서 먹는 건 아니니까, 더 챙겨주려고 했어요. 단백질을 먹어야 한다고 해서 무조건 고기를 넣어서 요리를 하지는 않았고요. 채소를 많이 넣고 골고루 먹자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항상 냉장고에 다 채워놨던 것 같아요.

 

『닥치고 데스런 우먼스』에서 말씀하시길 “가장 크게 체중 감량의 효과를 볼 수 있는 다이어트의 황금기”가 있다고 하셨어요. 생리주기와 관련이 있다고요.


조성준 : 저는 의사가 아니기 때문에 제 말이 진리는 아니라는 것 먼저 말씀을 드리고 싶고요. 생리주기와 관련해서 크게 전, 중, 후 세 시기로 나눌 수 있는데요. 대부분 28일 주기이기 때문에 열흘씩 나누어볼 수 있어요. 그 중에서 생리 전 열흘이 가장 힘듭니다. 상당히 우울하고 기분도 오락가락하게 되죠. 그렇기 때문에 대부분 식욕으로 스트레스를 푸는데, 그러다 보니까 가만히 있어도 2kg 정도 체중이 늘어요. 이 사실을 알고 생리 전에 열흘 정도만 잘 참으시면 돼요. 아마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시는 기간은 3~4일 정도일 거예요. 생리 직전의 3~4일만 잘 참으시면, 그 다음에는 가만히 있어도 붓기가 계속 빠져요. 다시 배란 주기를 맞으면서 몸에서 필요 없는 에너지를 내보내는 시기이거든요. 그때 운동을 열심히 해서 살을 빼 놓는 거예요. 생리 전에 운동을 심하게 한다고 해서 효과가 있는 건 아니고요.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되 식욕을 잘 달래시고, 생리 기간에는 움직이기 싫고 힘드시겠지만 그래도 운동을 해주시면 돼요. 

 

책에서 자신만의 운동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닥치고 데스런』을 활용해서 프로그램을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세요.


조성준 : 일단 남자들은 여자보다 신체적으로 조건이 강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실제로 남자 분들이 제 수업에 오시면 일단은 (운동을) 시킵니다. 푸시업을 예를 들면, 20개를 할 때와 40개를 할 때 몸에서 느끼는 게 달라요. 내가 어느 부위를 자극 받고 있는지, 또는 몸의 어느 곳이 발달했는지를 느끼는 정도가 달라요. 운동을 3개월 했을 때와 6개월 했을 때, 1년 했을 때와 2년 했을 때가 다 다릅니다. 그것처럼 책에도 순서를 정해놨고요. 다섯 단계로 나눠져 있는데, 푸시업 턱걸이 하체 복근 평행봉으로 크게 나눠놨어요. 철봉이나 평행봉은 학교나 공원에 찾아가시면 있으니까, 일단은 순서대로 한 세트씩 하세요. 그 뒤에도 체력이 남아 있으면 한 바퀴를 더 돌아도 되고요. 익숙해진 뒤에 자신이 어느 정도를 하는지 분명히 파악이 되면, 그 다음에는 운동량을 늘리셔도 되고 개인적으로 목표를 세우시면 됩니다. 그런데 그만큼 체력이 안 되는 분들도 많이 계시잖아요. 그래서 다음 책으로 ‘남자 운동의 기본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닥치고 데스런 우먼스』의 경우는 어떤가요?


조성준 : 여자 분의 경우에는 운동을 잘 하려고 하실 필요 없어요. 꾸준히만 하시면 됩니다. 여자 운동도 종류가 너무 많은데, 책에는 34가지 정도가 실려 있어요. 선별하는 데 너무 힘들었지만, 제가 수업에서 정말 많이 사용했고 제 아내가 지금도 계속 하고 있는 운동들을 기준으로 뽑았어요. 복잡한 운동 또는 다양한 운동을 해야 효과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버리세요. 책에서 소개한 ‘데스런 베이직’에 8가지 동작이 있는데, 전신 운동입니다. 그것만 1년 내내 하셔도 몸은 만들어져요. 하지만 운동이 심심하다고 느껴지시거나, 조금 더 신선한 근육통이나 자극을 받고 싶으시다면 다른 동작으로 넘어가시면 됩니다. 그것도 너무 쉬워지셨다면 거기에서 응용 파생되는 동작들로 구성을 해보세요. 프로그램을 짜는 기본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책에서 가이드라인을 잡아 놨고요. 횟수는 체력에 따라서 다르게 정하시면 돼요. 직접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만들어 가시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img_book_bot.jpg

닥치고 데스런 우먼스조성준 저 | 더디퍼런스
출간과 동시에 맨몸운동의 열풍을 일으킨 『닥치고 데스런』의 저자 ‘한국의 프랭크 매드라노’ 조성준이 이번에는 건강하고 섹시한 몸매를 가지기 원하는 여성들을 위한 『닥치고 데스런 우먼스』를 펴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Viewing all 8510 articles
Browse latest View li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