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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영 “돈 벌고 싶다면 50%는 저축, 20%는 자기계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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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많이 있다고 하여 삶이 행복한 것도, 우리가 완전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경제적 자유를 추구한다는 명목 하에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싶어 하고, 욕망에 끌려 다니면서 돈의 노예가 되고, 돈만 추구하다 건강을 잃고 사랑하는 사람들까지 떠나게 하는 경우도 있다.


결국 돈은 우리가 삶의 가치와 목표를 분명하게 세우고 나서야 비로소 빛을 발하는 수단이 된다. 돈이 행복한 삶을 위한 도구가 되고, 자신이 스스로를 존중하며 주관대로 삶을 살아갈 때 비로소 진정한 행복이 찾아온다.(193쪽)

 

돈이 많으면 왜 좋을까? 돈만 많으면 좋을까? 잘 모르겠다. 그저 습관처럼 “돈 좀 많았으면 좋겠다”고 내뱉을 때, 돈의 용도는 선명하지 않다. 사고 싶은 옷이 있을 때도 돈은 많았으면 좋겠고, 몸이 아프거나 집 주인이 전세를 올려달라고 할 때도 돈은 많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돈만 생각하다 때론 돈에 지기도 하고 돈을 원망하기도 한다. 돈은 잘못이 없다. 돈을 대하는 내 마음, 늘 그것이 문제다.

 

10년 차 직장인이자 두 아이의 엄마인 이지영은 돈에 지고 싶지 않았다. 돈 때문에 아등바등 살지 않기 위해 돈 공부를 했다. 그는 현재 총자산 20억의 ‘평범하지 않은’ 엄마다.


그가 무엇보다 강조하는 것은 ‘5:3:2법칙’이다. 소득의 50%는 저축을 하고, 30% 안에서 지출을 통제하고, 20%는 자신을 위해 투자하라는 것. 이는 또한 생애주기에 따라 집중도가 달라지는데 지출이 비교적 적은 출산 전에는 50% 저축에, 출산 직후에는 30% 지출 통제에 집중하고 아이가 좀 큰 뒤에는 20% 자기계발에 더 노력을 하라고 말했다.


이것만 하면 누구나 저자처럼 돈에 지지 않을 수 있을까? 몇 가지 지침이 더 있다. 궁금하다면 인터뷰에서 답을 찾으시길 바란다. 저자의 응원도 물론, 함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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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돈은 긴밀하게 연관된 것


‘엄마로서’ 우울했던 경험을 솔직하게 적었어요. 출산 후 우울감을 겪는 분들도 많으니까 어떻게 극복하게 됐는지, 변화의 계기를 먼저 들려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아기 낳을 때 진통을 이틀 동안 했거든요. 48시간을 진통하다 결국 제왕절개를 했어요. 수술하고 났더니 몸이 너무 아픈 거예요. 저는 원래 책 읽는 것도 좋아하고 여행하는 것도 좋아하는데요. 몸 아픈 와중에 아기는 계속 돌봐야 하고 그러니까 심리적으로 굉장히 위축도 많이 되고 우울했던 것 같아요. 우울증이 좀 나으면 좋은데 복직 하면서 더 심해진 것 같고요. 회사 생활과 육아를 병행해야 하니까요. 그러다 어느 순간 내가 힘들어만 해서는 안 되겠다, 아이들을 생각해서라도 힘을 내야겠다, 싶었어요. 마음을 바꾸자 생각해서 그때부터 책도 다시 많이 읽고 일기 같은 글도 많이 쓰고 좋아하는 사람들 만나서 이야기도 많이 나눴죠. 그런 과정을 지나면서 점차 회복했던 것 같아요.

 

책에도 다양한 추천 도서를 적기도 했죠. 저자에게는 어떤 글들이 힘이 되던가요?


자기계발서가 굉장히 힘이 많이 됐어요. 사람들이 자기계발서는 다 비슷한 이야기 아니냐고 하는데요. 저한테는 자기계발서가 저마다 다르게 느껴졌어요. 한 사람의 인생이 담겨 있잖아요. 저자의 생각, 저자가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하는 내용이 담긴 자기계발서가 읽으면 읽을수록 힘이 되더라고요. 소설처럼 오히려 긴장감을 주는 이야기가 힘든 상황에서는 더 힘들게 느껴졌고요. 지금도 자기계발서 제일 좋아해요. 요즘은 시집도 좋아하고요.

 

저자의 첫 책인데요. 책을 쓰겠다고 결심한 이유도 궁금하네요.


사실은 통번역사로 10년 동안 회사 일을 하면서 영어책을 써보고 싶었어요. 그렇다면 책은 어떤 방식으로 출판이 되는 건지 궁금하더라고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주위에서 자기계발서 써보는 건 어떻겠느냐고 얘기를 했어요. 그렇게 자기계발서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어떤 얘기를 쓸 수 있을까 확신이 없었는데 질문을 받게 됐어요. 가장 즐거웠던 일, 가장 힘들었던 일이 뭔지 묻는 거였죠. 그런 감정을 담으면 글이 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쓰게 된 거예요.

 

그중에서도 소재로 선택한 것이 ‘돈 공부’예요.


재테크 책을 많이 읽긴 했는데 제가 써보고 싶다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았어요. 보통 재테크 서적을 보면 얼마 벌었다든가 어떻게 해서 돈을 불렸다든가 이런 얘기가 많이 나오잖아요. 그런 얘기들이 자랑 같기도 하고 그다지 큰 의미를 못 느꼈어요. 물론 읽으면서 도움을 많이 받았지만요. 그래서 자기계발서로 투고를 했는데요. 그 안에 재테크 내용을 살짝 넣게 된 거예요. 여섯 챕터 중 한 챕터가 돈에 대한 저의 생각이고 나머지는 아이들, 가족, 나 자신에 관한 내용이에요. 그 중에 돈에 대한 내용이 부각되면서 전체적으로 이런 컨셉의 책이 나오게 된 거예요.

 

원래 저자의 의도는 재테크 관련 내용보다 책 후반부에 다루는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을 다루고자 했던 거군요?


처음에는 그랬어요. 출판사에 투고 할 때도 여섯 챕터 중 하나 정도가 돈에 관한 거였고요. 그것도 돈을 어떻게 버는가 하는 얘기가 아니라 ‘5:3:2법칙’이라는, 20%는 반드시 자기 자신에게 써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어서 들어갔던 건데요. 이렇게 재테크 책으로 방향을 바꾸고 원고를 쓰면서 저도 새롭게 깨달은 게 있어요. 자기계발서가 어떻게 보면 겉으로 보이는 추상적인 얘기만 할 수 있잖아요. 어떻게 살아야 한다, 극복해야 한다, 하고요. 그런데 사실 삶과 돈은 긴밀하게 연관된 것 같아요. 돈을 어떻게, 누구를 위해 써야 하는지 돈을 왜 버는지 하는 내용들이 자기계발서의 뼈대라는 걸 쓰면서 깨달았어요. 만약 그 얘기가 없었으면 굉장히 추상적인, 다른 자기계발서와 비슷한 피상적인 얘기만 하고 끝났을 수도 있는데요. 돈 문제가 들어가니까 조금 더 실질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돈은 나를 위해서 써야 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벌고 모아야 한다는 이야기죠. 이것들이 연결되는 걸 쓰면서 깨닫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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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주기에 따른 돈 공부


‘5:3:2법칙’은 아무래도 저자가 강조하는 부분일 거예요. 이 법칙이 저자에게는 나침반이었다고 얘기했어요.


‘5:3:2법칙’은 수익의 50%는 저축을 하고, 30% 내에서 지출을 통제하고, 나머지 20%는 과감하게 자기계발에 돈을 쓰라는 건데요. 아기가 태어나면 지출이 많아져요. 유모차부터 시작해서 분유, 기저귀 등 지출이 많아지죠. 그래서 아기를 낳기 전, 후에 이 법칙이 적용되는 것이 달라요. 아기 낳기 전에는 50% 이상 저축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맞벌이 부부가 한 사람 분의 돈은 예금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아기 낳은 후에는 저축보다는 30% 내에서 지출을 통제하는 것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데요. 그때는 남에게 보이는 것에 신경 쓰지 말고 자신에게 필요한 건지를 판단해야 해요. 과시하고 싶어서 비싼 유모차나 명품 아기 옷을 사는 게 아니라 진짜 필요한 것만 사면 지출이 통제될 수 있어요. 아기 낳고 몇 년 동안은 지출이 많죠. 새로운 물건도 구입해야 하고, 직장을 다닌다면 도우미 혹은 부모님께 돈도 드려야 하고요. 이런 시기가 지나고 아기가 어린이집을 가고 하면 지출이 조금 줄어들 수 있는데요. 그때부터는 20%, 자기계발에 돈을 써야 해요. 엄마도 자기가 하고 싶었던 일, 배우고 싶었던 일, 자기 성장에 필요한 일에 20%의 돈을 할애해야 한다는 거예요.


언제나 5:3:2를 지켜야 한다는 건 아니에요. 단계별로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요. 생애주기에 맞게 아기 낳기 전에는 50% 저축에 초점을 맞추고, 아기 낳은 후에는 30% 지출 통제, 아기가 조금 성장한 후에는 20%는 엄마 본인의 성장을 위해 써야 한다, 이런 이야기예요.

 

어떤 재테크 책들은 종잣돈 마련 전까지는 무조건 돈을 모으라고 얘기해요. 그에 비하면 20%를 자기계발에 돈을 쓰라고 하는 저자의 조언은 좀 다르게 느껴지는데요. 저자는 실제로 그 법칙을 어떻게 실천했는지 들려주세요.


돌아보면 50% 저축을 하기 위해 아기 낳기 전까지 빌라에서 살았어요. 빌라는 관리비가 없거든요. 또 특별히 집들이 같은 거 안 하고 가구도 중고로 시작했었어요. 그렇게 50%는 꼭 저축하려 했는데요. 아기가 태어나고 저도 처음에는 비싼 걸 많이 샀어요. 아기한테는 좋은 거 해주고 싶더라고요. 결혼할 때 세탁기는 중고로 샀어도 아기한테 중고 유모차는 하기 싫은 거죠. 허름한 집에 살았어도 아기 낳고는 아파트로 가고 싶고, 아기 방도 만들어주고 싶고요. 하지만 30% 안에서 지출을 통제하려고 책 같은 것은 중고로 사주기 시작했어요. 중고 알아봐서 전집도 사고요. 20%는 제 경우 책을 많이 샀어요. 여행도 일 년에 한 번 씩은 꼭 돈이 없어도(웃음) 가고 싶었어요. 또 운동을 꼭 했어요. 운동 하면서 기분도 전환하고 스트레스도 풀고요.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돈을 쓰면서도 뿌듯하게 느꼈던 것 같아요. 20%라는 게 반드시 비싼 화장품이나 명품 가방을 사거나 하는 게 아니었고요. 짧게라도 해외여행을 가고 하는 부분에 돈을 많이 썼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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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준다고 생각했나요?


살아있다는 감정을 느꼈어요. 똑같은 생활을 반복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잖아요. 회사 갔다가 저녁 되면 아이 챙기고 주말이면 밀린 일 하면서 한 주 준비를 하고요. 그런데 여행을 감으로써 상황이 다 바뀌고 내가 잠시라도 평화로울 수 있을 때가 되면 ‘내가 이렇게 살아있구나, 내 시간이 의미 있게 쓰여질 수 있구나’ 이런 생각이 굉장히 많이 들더라고요.

 

돈은 수단이라는 생각을 확실하게 가지고 시작했던 거네요. 오직 돈이 목적이었다면 힘들었을 테니까요.


그런 생각은 처음부터 있었어요. 돈을 많이 벌어서 갑부가 되고 싶다는 생각보다 굳이 돈을 모으지 못해도 여행 가고 싶으면 여행을 갔고요. 조금 무리가 되더라도 고급스러운 곳에도 한 번 쯤은 가고요. 너무 아끼면서 하고 싶은 것도 안 하고 다 참고 돈만 모으기 위해서 사는 생활은 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런 건 권하고 싶지도 않아요. 차라리 돈이 없더라도 하고 싶은 일을 하면 좋겠어요. 돈을 조금 벌더라도 자기 시간이 많고 행복할 수 있는 일을 하면 그 사람이 더 행복한, 잘사는 사람인 것 같아요.

 

‘5:3:2법칙’처럼 책에서 이야기하는 내용을 따라가면 누구나 저자처럼 “돈 때문에 가족끼리 싸우지 않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하나요?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요. 쉽다고 말하진 못할 것 같아요. 누구나 가능할 수는 있죠. 사람들이 모두 마음속에 자신만의 꿈이 있잖아요. 하고 싶은 일이 있고요.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노력이 필요해요. 저도 지난 십 년을 돌아보면 그 길이 쉽지만은 않았던 것 같아요. 항상 행복하고 즐거웠느냐 생각하면 그렇지 않았어요. 사실은 과정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나를 위해서 이렇게라도 써야겠다, 그런 결심을 하게 된 거거든요. 꿈을 이루려면 하고 싶지 않아도 필요한 일이면 할 수 있어야 하고 다른 일에 신경을 더 많이 써야 하는 상황에서도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진짜 내가 가야 하는 방향이 어딘지 계속 자기 자신에게 상기시키고 이런 과정이 필요할 것 같아요.


또한 저축하고 지출을 통제하고 자기계발에 돈을 써도 그 안에서 반드시 또 다른 것이 필요할 것 같아요. 돈을 굴리는 자신만의 방법이 필요한데요. 그 방법이 부동산이 될 수도 있겠죠. 디자이너라면 디자인 쪽으로 사업을 다시 연계시킨다든가 하는 식으로 꼭 자기만의 사업을 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아요. 단지 아끼고 저축하고 자신을 위해서 쓰는 이상으로 말이에요. 재미있어 하는 분야의 1인 기업가가 됐을 때 돈이 더 많이 불어날 수 있는 것 같아요.

 

저자의 경우 그것이 ‘부동산 투자’였잖아요. 요즘은 워낙 부동산 흐름을 예측할 수 없다고 하고, 부동산으로 돈을 벌기도 쉽지 않다고 해요. 저자의 방법이 지금은 가능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가이드를 줄 수 있을까요?


저는 부동산 조사하는 걸 되게 좋아해요. 앉아서 컴퓨터로 알아보는 것 좋아하고요. 친구 한 명은 시나리오 작가가 되는 게 꿈이었는데요. 공모에도 안 되고 했어요. 그러다 언젠가 네이버에 글을 연재하기 시작했거든요. 지금은 연재한 글을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보면서 매달 수입이 엄청 많이 들어온대요. 그런 식으로 자신이 좋아하고 재능 있는 부분을 돈으로 바꿀 수 있다면 좋겠죠. 꼭 부동산을 해서 부자가 되는 시기는 이제 끝난 것 같아요. 과거에 열 명 중 아홉이 부동산으로 부자가 되거나 재산을 상속 받아 부자가 됐다면 지금은 아니에요. 정말 다른 방법이 많아요. 페이스북 같은 플랫폼을 이용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소득을 얻고, 부자가 되는 거죠. 다만 그것을 남을 위해 쓰려고 할 때 부자가 되는 것 같고요. 예를 들어 홍석천 씨처럼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 때문에 고통을 받았지만 자신의 독창성, 개성을 내려놓지 않고 비슷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을 도우려고 하면서 사업하고 돈을 많이 벌게 된 것처럼 말이에요. 지금은 약간만 생각을 바꾸고 자기 자신의 모습을 직시해보려고 하면 오히려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는 시대가 온 것 같아요.

 

기존의 것을 깨는 게 의외로 좋은 방법이기도 해요.


네, 남들이 ‘너 그거 해서 뭐해?’ 이렇게 말하는 것들 말이에요. 남들은 그렇게 얘기하지만 나는 꼭 해야만 하고, 하고 싶은 일, 그 일이 바로 그 사람에게 행복도 주고 성공도 주고 더 나아가서는 부를 주는 그런 일인 것 같아요.

 

지금 저자에게 그런 일은 뭐예요?


(웃음)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저는 사실 여행 작가가 되는 게 꿈이에요. 사람들이 많이 말을 해요. 여행 작가가 쉬운 일이 아니라고요. 그런데 그냥 그런 꿈이 있어요.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새로운 세상을 느끼고 싶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어요. 새로운 시각을 주는 그런 일을 하는 게 꿈인데 다들 쉽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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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 대한 믿음


후반부에 담은 메시지는 자신을 믿는 것, 자신의 삶과 건강을 잃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에요. 『엄마의 돈 공부』라는 제목에 끌려서 책을 연 독자들은 좀 의아할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실제로 제목에 끌려서 책을 봤는데 돈 내용보다 자신을 잃지 않는 방법에 대해 적혀 있는 것에 깜짝 놀라시는(웃음) 독자 분도 있으신 것 같아요. 사람을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성실하게, 남들한테 특별히 주목도 받지 않고, 눈에도 나지 않게, 안전한 삶을 추구하는 사람과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자유를 추구하는, 이런 두 부류로 나눈다면요. 제 생각에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은 자유를 추구하는 사람들인 것 같아요. 자유를 추구하다보면 리스크를 안아야 하는데요. 그러려면 자신에 대한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하거든요. 가령 이 집을 살까말까 고민할 때 사야 한다는 자신의 생각을 스스로 믿지 못한다면 절대로 그 리스크를 안으려고 하지 않고 남들이 말하는 안전한 곳에 돈을 묻어요. 리스크 없이 돈을 불리긴 힘든 것 같거든요. 나 자신을 믿지 못한다면 한 걸음을 나가기가 힘들 것 같아요. 파워블로거가 되어 돈을 벌어볼까, 했을 때도 자기 스스로를 믿지 못하면 결국 하지 못하고 그렇게 되면 돈도 벌지 못하는 거죠. 더 크게는 부동산이나 사업도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없다면 한 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고 리스크를 안을 수 없겠죠.

 

도전하지 않으면 다른 국면으로의 변화도 쉽게 일어나지 않으니까요. 꿈이라 했던 여행 작가에 도전하셔도 될 것 같은데요?(웃음)


저는 손미나 작가를 좋아하는데요. 그분처럼 글을 쓰고 그런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그분도 인기 있는 아나운서였고, 안정적이었고, 돈도 많이 벌었잖아요. 그렇지만 자신이 진짜 하고 싶었던 일에 도전 하면서 새로운 삶이 시작됐죠. 그런 것처럼 저도 여행도 다니고 글도 써서 책도 쓰게 되면(웃음) 좋을 것 같아요.

 

결국 ‘부자’의 정의를 다시 내려야 할 것 같아요. 세상이 말하는 부자와 저자가 생각하는 부자가 조금 다른 것 같거든요. 돈을 조금 벌어도 행복할 수 있는 일을 하면 그 사람이 더 잘사는 사람인 것 같다는 말처럼 말이에요.


맞아요. 그런데 꼭 자기가 하고 싶은 일만 한다고 모든 의무를 팽개치면 안 될 거예요. 화가가 되고 싶어 갑자기 다 그만 두고 그림만 그리는 사람도 있고, 요리사가 되고 싶다고 갑자기 요리를 배우러 떠나기도 하잖아요. 그렇게 극단적으로 하는 건 특히 가정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 번 쯤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남아 있는 사람이 충분히 자기의 꿈을 지원하고 그 꿈에 대해 공감할 수 있을 때 자신도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너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위해 의무나 책임을 무시하면 안 돼요. 성공은 할 수 있겠지만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는 후회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균형을 맞춰야 할 텐데 그러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가족들을 위해 돈도 벌어야 하고 힘들고 하기 싫어도 일도 해야 하고 하고 싶지 않은 것도 참을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한 것 같아요.

 

가장 인상적이었던 내용은 “상한선을 놓아야 한다”는 이야기였어요. 그 내용에 아차 싶었던 분들 많을 거예요. 쉽지 않은 일이니까요.


쉽지가 않죠. 하나를 가지면 둘을 가지고 싶고 둘을 가지면 참 행복한데 그 마음이 금방 사라지잖아요. 그 다음에는 셋을 가져야 행복하고요. 끝이 없는 것 같은데요. 그래서 돈이 많아도 돈을 더 갖고 싶어 하고, 돈이 없어지지 않을까 긴장하고 불안하게 살기도 해요. 저는 자신의 일을 할 수 있고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하게 살 수 있을 정도의 상한선이 있으면 좋겠어요. 『하와이로 간 젊은 부자 성공 비밀 38』을 보면 저자가 어느 정도 돈을 번 후 하와이로 떠나요. 서핑을 할 때 살아있는 걸 느끼고 자연 속에서 지내는 게 너무 좋아서요. 하와이의 방 두 개짜리 집에 살며 점심은 도시락을 싸서 다녀도 그곳의 생활이 좋은 거죠. 저자는 돈 많은 사람이 부럽지 않다, 생계를 책임지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다면 더 많은 부는 필요하지 않다고 해요. 저는 그 말에 동감해요.

 

상한선은 사람마다 다를 거예요. 또 자신의 욕심이 진짜 자신이 원하는 건지 따져봐야 할 거고요. 내가 진짜 방이 다섯 개 있는 집에 사는 걸 원하는지 남에게 보여주고 싶은 건지 한 번 질문해야죠. 그게 진짜 자신이 원하는 거면 그것이 상한선이 될 수 있는 거예요. 주관적인 개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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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과정도 반드시 지나간다


이 책이 나를 찾고, 재테크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유효한 책이라면 다음 단계에 있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책도 있을 것 같아요. 책에 ‘처음 시작하는 돈 공부 참고 도서’를 수록한 것처럼 또 다른 책을 추천해 준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이 책의 시작은 시각을 바꾸고 싶다는 거였어요. 평생, 직장에서 열심히 일을 해서는 원하는 삶을 살 수 없다는 이야기였는데요. 내 아이들 또는 사랑하는 사람과 떠날 수 있는 자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자유, 이런 게 필요하잖아요. 그런데 시각을 바꾸지 않으면 늘 돈을 위해 그 자리에서 그 일을 해야 하잖아요. 한 번 쯤은 근로 소득이 아닌 자신의 재능을 돈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었어요. 무조건 아끼고 열심히 하는 것에 더해 어떻게 하면 자신의 재능을 돈과 연결시키면서 살 수 있는지 개념을 바꾸는 책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고요.


‘처음 시작하는 돈 공부 참고 도서’ 안에는 경매 관련 책이나 『세상 모든 왕비를 위한 재테크』처럼 실질적인 책도 있고, 『지금까지 없던 세상』처럼 시각을 바꾸게 하는 책도 있어요. 자신이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지 생각해보게 하는 책을 추천했어요. 그런 책을 보면 시각을 좀 더 미래지향적으로 바꿀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책을 읽은 후에 그런 책을 읽으면 좀 더 실질적으로 느껴질 거예요.

 

지금 저자가 읽고 있는 책도 궁금하네요.


요즘은 사실 책을 출간하고 나서 한동안 생각도 굉장히 많아지고 여러 감정이 많이 생겼었어요. 책을 세상에 내놓고 나니 혼자만 생각하던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게 된 거잖아요. 혼자 생각했던 걸 다른 사람한테 얘기함으로써 피드백을 받고 하다보니까 여러 감정이 생기기도 했어요. 요즘은 솔직히 전처럼 재테크 책을 많이 안 읽는 것 같고요. 마음에 평안을 주는 책을 많이 읽는 편이에요. 혜민 스님 책 처럼요. 그런 책은 마음이 편안해지기도 하죠. 작가가 되었다는 것이 제게는 새로운 환경이고, 좋으면서도 불안하기도 하고, 그렇거든요. 그런 마음을 다스려주는 책들 위주로 읽고 있어요. 이 책을 생각하면 아직도 재테크 공부 많이 하고(웃음) 그래야 할 것 같은데 다른 책들을 읽고 있어요.

 

돈 때문에 고민하는, 생활에 묻혀 힘들어 하는 모든 ‘엄마’들에게 한 마디 해주세요.


저도 어렸을 때 그리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지 못했어요. 반지하에서 살았고, 결혼도 빌라에서 시작하고, 여러 과정을 거쳤지만요. 그래도 제가 불행하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그건 부모님이 항상 큰 사랑을 보여주셨기 때문인 것 같아요. 비록 돈이 없어도 저희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마음이 있으셨죠. 사랑한다는 말도 자주 해주셨고요. 신혼 때도 그랬던 것 같아요. 부유하진 못했어도 그렇게 힘들다고 느끼지 못했던 것도 사랑 덕분이었던 것 같아요. 아이들 키우면서 힘들 때도 많았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한 것도 제가 받았던 사랑을 이제는 아이들에게 주고 싶다는 마음을 깨닫게 됐기 때문이에요. 지금 정말 힘든 과정을 거치고 계시다면 어떤 방법으로 돈을 벌면 부유해질 수 있다는 조언도 물론 중요하겠지만요. 지금까지 받아온 사랑, 받고 있는 사랑, 마음속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에 대한 사랑, 이걸 한 번 더 생각하시면 좋겠어요. 힘든 과정도 반드시 지나간다는 사실을 확신하면서 이겨내셨으면 좋겠어요.


이 책은 내 이야기, 언니나 직장 동료의 이야기로 읽을 수도 있을 거예요. 삶이 그런 것 같아요. 내 얘기가 주변의 이야기기도 하고 내가 느끼는 감정을 바로 옆 사람도 느끼는 감정이라는 것 말이에요. 사람들은 다 비슷한 감정들을 갖고 있고 느끼고 있는 것 같아요. 표현하지 않을 뿐이죠. 내가 느끼는 불안, 어려움, 심지어 행복과 기쁨도 다른 사람 역시 느끼는 감정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 힘들어도 자신만 힘든 게 아니고 누구나 살아가면서 느끼는 감정의 하나란 생각을 하면 좋을 것 같아요. 그러면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되고 주변 사람에 대해서도 열린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게 될 것 같아요. 나와 똑같은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라는 것, 우리가 똑같이 인생이라는 길을 함께 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고 나면 더 이상 힘든 일도 나만 그런 것처럼 느껴지지 않겠죠. 또 힘든 사람도 돌봐줄 수 있는 마음도 생기고요. 그러면 또 자신이 행복하게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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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돈 공부이지영 저 | 다산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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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은 다가올 미래를 예고했다. 인간보다뛰어난 능력을 가진 로봇의 등장을 지켜보며 사람들은 희망과 불안을 동시에 경험했다. 로봇과 인간의 경쟁이 불가피하다면, 우리는 일자리를 잃게 될까. 아니면 힘든 일은 모두 로봇에게 맡겨두고 한가롭게 여가를 즐기며 살게 될까. 만약 로봇이 인간의 감정까지 학습하게 된다면, 그들은 우리에게 호의적일까 적대적일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세상이 도래했고, 그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은 너무도 적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필요 없다』는 ‘인공지능 시대의 부와 노동의 미래’를 전망한다. 저자인 제리 카플란 교수는 인공지능학자로서 스탠퍼드대학교 법정보학센터에서 컴퓨터 공학과 인공지능의 영향, 윤리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 그는 인공지능 기술이 불러올 변화들을 예측하고 대응방안을 고려해 『인간은 필요 없다』를 집필했다.

 

“미래는 자산 대 사람의 투쟁이 될 것이다”라고 단언하는 저자는 인공지능을 통해 창출된 부가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축적될 것이라 예상한다. 소득 불균형은 더욱 심각해질 것이고, 해결 방법에 대한 논의가 빠르게 시작돼야 한다. 이를 위해 저자가 제안하는 것은 ‘공익 지수(PBI : Public Benefit Index)’다. “정부에서 인증하는 객관적인 기준으로 기업의 소유 구조를 평가하자는 것”이다. “사업 이익을 얼마나 많은 수의 주주들이 나누어 갖는지를 기준으로” 법인세를 부과하면 “더 많은 대중들이 자산을 움직이는 경제에 참여하도록 이끌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실업 문제에 대한 해법도 제시한다. “기술의 발전 속도가 노동자들이 적응하는 속도보다 훨씬 빠르므로, 교육 방식에 대대적인 변화를 주지 않으면 노동자들이 기술 발전을 따라잡지 못한다”고 우려하는 저자는 ‘직업대출(Job mortgage)’이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토지를 담보로 주택 대출을 받듯이, “미래의 노동(근로 소득)을 담보로” 교육을 위한 대출을 해주자는 것이다.

 

『인간은 필요 없다』는 다양한 예를 들어가며 곧 현실이 될 미래의 모습을 세밀하게 그려낸다. 변화의 물결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은 더욱 명징해진다. 그러나 실체를 알게 된 이상, 그것은 더 이상 불안의 대상이 아니다. 저자 역시 “나는 여전히 우리 미래를 낙관한다”고 말한다. 우리에게 남은 희망의 근거는 무엇일까. 지난 17일, 제리 카플란 교수와 만나 직접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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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에는 관계 형성을 위한 일자리가 살아남을 것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을 앞두고 “이번 대결의 결과가 어떤 식으로 판명 나든지 상관없이, 체스나 다른 게임들에서와 마찬가지로 결국 인간을 능가하는 컴퓨터가 나오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셨죠. 알파고가 승리할 거라고 생각하셨던 건가요?


누가 이기는 대결 결과에 대한 기대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종국에 가서는 인간을 능가하는 컴퓨터프로그램이 나올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번 대국이 한국과 이외 지역의 일반 대중들로부터 오해를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요점은 ‘사람에 대한 기계의 승리’가 아닙니다. 기계는 처음 만들어질 때 모든 분야에 있어서 사람보다 더 잘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디자인되었습니다. 알파고가 승리한 것은 사람과 차의 경주에서 차가 승리하는 것만큼 중요성을 가지지 못합니다. 어떤 감정적인 의미도 없습니다. 오히려 저는 왜 이렇게 사람들이 우려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이것은 기술의 큰 업적인 거죠. 그리고 미래의 인류에게 시사할 수 있는 업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대국 기간 동안 『인간은 필요 없다』의 판매량이 전주 대비 2배 이상 증가했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이 현상의 이면에는 어떤 심리가 감춰져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구글에서 프로그램을 만들었던 분에게 고마워해야겠네요(웃음). 사람들이 『인간은 필요 없다』를 읽는 것은 알고자 하는 마음 때문이지 않나 생각됩니다. 과연 거기에는 어떤 기술이 있는 것인지, 그 기술이 표명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것을 알고 싶어서 책을 사신 것 같아요. 하지만 이건 특별한 의미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바둑을 둔다는 특정 업무를 수행하도록 프로그램이 되어 있기 때문에 큰 차이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런 기술은 다른 문제에도 충분히 적용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알파고가 거둔 승리의 의미는, 1997년에 체스 챔피언을 상대로 IBM의 ‘딥 블루’가 승리를 한 것과 똑같습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하거나 덜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도 1997년에 경기를 봤는데 사람들이 많은 우려를 했습니다. 지금 한국 사람들이 우려하는 것만큼이요. 하지만 그 우려는 현실화되지 않았죠.

 

다섯 번의 대국 중에 한 차례 이세돌 9단이 승리를 거두기도 했습니다. 그 사실에서 희망을 봤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에 대해서 특별하게 드릴 대답은 없습니다. 아직 프로그램이 첨단이 아니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 날 프로그램이 너무 피곤했나 봅니다(웃음).

 

최근 한 인터뷰에서 “인간과 경쟁하거나 인간을 능가하는 로봇에 대한 논의는 잘못됐다고 생각한다”고 밝히셨습니다. 인공지능 로봇의 발달로 일자리가 줄어들고 노동의 종류가 급격하게 변화할 텐데, 로봇이 인간의 경쟁자가 아니라고 볼 수 있을까요?


로봇의 정의는 자동화의 연장선이라고 봅니다. 자동화는 몇 세기 동안 진행해왔죠. 전혀 새로운 것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자동화는 일의 성격을 바꾸는 것이고, 인간이 했던 것을 기계의 힘으로 대체합니다. ‘우리 대 너’, ‘나와 타인’의 식으로 바라보고 ‘그들이 우리 일자리를 빼앗는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사람들이 지게차를 봤을 때 ‘사람을 위협한다, 우리와 경쟁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지게차를 만든 목적은 사람이 하지 못하는 일을 더 잘할 수 있게 하려고 한 것입니다. 똑같은 이유로 로봇도 만들었습니다. 빠르고 더 저렴하게 더 잘 해내는 로봇을 만들어야 사람들이 사용하죠. 그렇지 않으면 로봇을 쓰지 않을 것입니다.

 

인공지능의 발달로 없어지는 일자리들이 있는가 하면, 새롭게 만들어질 일자리들도 있을 거라고 하셨는데요. 새로 만들어질 일자리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자동화에 거부하는, 자동화 추세에 역행하는 일자리는 남겠죠. 한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감정이나 감각적인 것에 관한 일은 대부분 남아있을 것입니다. 보통의 일자리를 생각해 보세요. 돈을 지불했으니까 물건을 살 수 있는 거죠. 거래라는 개념이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미래의 일자리는 관계 형성을 위한 것입니다. 신뢰와 설득을 필요로 하는 일자리는 계속 남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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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지능이 집필한 책, 읽고 싶으세요?


『인간은 필요 없다』에서 인공지능 분야를 ‘인조노동자(Forged laborer)’와 ‘인조지능(Synthetic intellect)’으로 분류하여 설명하셨습니다. 이유가 있나요?


우선 한국의 독자 분들께 너무 죄송하다고 말씀 드리고 싶어요. 글을 쓸 때는 이렇게 번역이 이렇게 될 걸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인조노동자’와 ‘인조지능’이라는 말은, 영어 원문으로 읽어 보면 굉장히 웃긴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각 단어가 부차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거든요. (원문에서는) 제목도 굉장히 많은 의미로 해석이 가능합니다. 인공지능을 두 가지 개념으로 분리한 것은 ‘육체적인 노동을 대체하는 로봇(인조노동자)’과 ‘정보를 활용하는 일을 하는 인조지능’으로 대비를 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인조지능이란 ‘정신적인 일을 대신할 기계’라고 하셨는데, 정신적인 일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궁금합니다. 예술이나 철학 등 창의력을 필요로 하는 분야는 인공지능의 발달과 무관하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는데요.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창의력을 필요로 하는 분야는 AI의 발달과 무관하다는 생각에 현재로서는 동의합니다. AI로 인해서 자동화로 대체되는 몇몇 특정한 일들이 있습니다. 사람에게 쉬운 일이 있고 어려운 일이 있죠. 그 기준을 똑같이 기계에게 적용했을 때 똑같이 쉽다거나 어렵다는 상관관계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두 살짜리 아이가 하는 일을 쉽다고 생각해서 자동화로 옮기면 안 되는 거죠. 정말 고도의 전문 지식이 필요한 일인데 오히려 자동화로 쉽게 되는 것도 있습니다.

 

먼 훗날에는 『인간은 필요 없다』와 같은 책도 인조지능이 집필하게 될까요?


할 수 없습니다(웃음). 인조지능이 쓴 책에 도움이 될 만한 목적이 있을까요? 차가 사람보다 운전을 더 잘하고 로봇이 오페라 음악을 연주하는 걸 사람들이 보고 싶어 할까요? 마찬가지로 인공지능을 쓴 책을 사람들이 읽고 싶어 할까요?

 

스탠퍼드 인공지능 연구소에서 ‘인공지능의 역사와 철학에 관한 수업’을 진행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기술적 측면이 아닌 철학적 측면에 관심을 가지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제가 과학의 역사와 철학에 관련된 학위를 받았기 때문에, 당연히 기술보다 철학적 측면에 관심을 가지게 됐죠. 더 구체적인 이유를 이야기하자면, 제가 스탠포드에서 일한 적이 있었는데 대부분 기술적인 측면만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기술을 배우면서 학생들은 사회, 경제, 철학적인 측면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요. 그래서 제가 학부에 제안을 했죠. 철학적 측면에 대해서도 가르치면 좋겠다고요. 그랬더니 ‘당신이 제안했으니 당신이 가르치라’고 하더군요(웃음).

 

인조노동자와 인조지능은 윤리적인 판단을 하지 않는데, 그로 인해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까요?


윤리적 판단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인조지능이나 인조노동자 자체가 도덕적이지는 않습니다만, 도덕적으로 행위를 하는 거죠. 그 행위를 할 때 탑재되어 있는 프로그램이 인간 사회에서 적절하게 행동할 수 있는 윤리 원리와 통합되도록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윤리에 관한 프로그램이 탑재되어 있어야 가능한 일이겠죠. 어떤 행동이 옳고 어떤 행동이 그른지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줘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프로그램에 포함되어 있지 상황에서는 윤리적인 잘못을 저지를 수도 있는데,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겠습니까?


기계는 항상 나쁜 행동을 합니다. 그렇다고 기계에 책임을 물을 수는 없습니다. 현재는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기계의 디자인 결함이라고 말합니다. 책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우리는 기계에 책임을 물을 수 없고, 대신 기계에 책임감을 할당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오늘날 법적인 체계가 잘 정비되어 있죠. 차가 사고 났을 때도 잘못된 책임을 세밀하게 나눌 수 있습니다. 에어백이 터지지 말아야 할 상황에 터져서 교통사고가 났다면, 그 이유를 세 가지 정도 생각해볼 수 있죠. 디자인 결함이 있을 수 있고, 프로그램의 잘못된 부품이 원인이거나, 사용자의 잘못된 행위가 원인일 수 있습니다. ‘차에 책임을 묻는다’는 것이 조금은 이상한 표현이지만, 제조상의 결함이 있을 때 차를 고치는 것을 ‘차에게 책임을 묻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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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이 창출한 부를 분배하라


“미래는 자산 대 사람의 투쟁이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인공지능의 발달로 부의 양극화가 더욱 심해질 거라는 말씀이신데요. 노동을 전부 로봇에게 맡기고 인간은 순수한 즐거움만을 추구하며 사는 것도 가능할까요?


‘어떤 방식으로 사회 전반에 걸쳐서 기술의 효익을 공평하게 분배할 것인가’는 전적으로 사회가 해야 할 일입니다. 우주의 자연법칙에 의해서 저절로 결정되는 게 아니라는 뜻입니다. 정책이나 집단적인 결정을 통해서 우리가 살고 싶은 세상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모두가 살고 싶어 하는 세상이 어떤 모습인지에 대해서는 조금 더 신중하게 생각해야 할 것 같습니다. 소수의 사람들이 기술이 가져다 주는 효익을 누리고 있는데요. 그걸 바꾸기 위해서는 전면적인 변화 필요하고, 그것은 경제적 사회적인 정책을 통해서 가능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죠. 우리가 바꿔야 할 것은 사회의 더 많은 사람들에게 기술의 효익을 공평하게 분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책에서 제안하신 ‘직업대출’이 현실화 되려면 대출 보증을 서 줄 기업의 협조가 필요합니다. 그런 점에서 현실화되기 어려운 정책이 아닐까요? 그들이야말로 인공지능을 이용해서 가장 큰 이득을 볼 수 있는 사람들 중 하나이잖아요. 더 이상 인간의 노동력은 필요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요.


그건 너무 단순화시킨 질문인 것 같습니다. 없어지는 일자리를 가진 사람에 대해 직업 대출을 제시하는 게 아닙니다. 자동화가 대체하는 일자리는 없어지지만 다른 일자리가 있을 것이기 때문에 그 일을 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 사람들을 트레이닝 시켜야 하기 때문에 저는 고용주들에게 엄청나게 많은 인센티브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쉽게도 미국에서는 이러한 시스템이 작동되지 않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정부가 이런 일을 뒷받침할 수 있는 정책 자체를 수립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몇 년 전에 책을 쓸 때 있었던 일인데요. 제 책의 내용을 본 회사에서 제안을 현실화 시켰습니다. 특정 직업 훈련소를 졸업한 사람을 채용하겠다고 한 기업들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해당 기업들에 취직하기 위해서 돈을 내고 훈련 과정을 이수하고, 만약 채용되지 못하면 트레이닝 했던 회사들이 학원비를 환불해주는 거죠. 

 

소득 불평등을 해소할 또 다른 방안으로 ‘공익 지수’를 이야기하셨는데요. 많은 주주들과 이익을 나누는 기업일수록 법인세를 낮춰주자는 것이 핵심인가요?


그 내용은 하나의 예로 든 것입니다. 소득의 불평등을 해소할 방법이 있고, 전통적인 방법이 아닌 이런 방법이 있다고 예를 든 거죠. 전통적인 방법은 부자세를 부과해서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이지 않습니까. 그렇게 하는 것보다는 민간 기업들에 인센티브를 주어서 소득 불평등을 해소하려고 제안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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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의 발달로 사회가 큰 혼란을 겪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를 낙관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희망의 근거는 무엇인가요?


저는 미래를 아주 낙관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경제적인 발전은 우리 인간에게 굉장히 좋은 역할을 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는 느끼지 못하죠. 너무 작은 시간의 틀 속에 살기 때문입니다. 100년 전의 사람들과 비교해 보면 힘들게 벼농사를 짓지 않아도 됩니다. 그리고 당시 사람들은 빨리 죽었고 안락한 생활을 못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죠. 편안하게 살고 있고 여행도 자유롭게 할 수 있죠. 엄청난 차이가 있는데 깨닫지 못할 뿐입니다. 그런 변화는 멈추지 않고 계속될 것입니다. 수십 년 동안 변화를 이어갈 수 있는 동기 요인이 바로 AI라고 생각합니다. AI를 잘 활용함으로써 부가 생길 것이고, 쌓여진 부를 다른 목적으로 사용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AI를 사용함으로써 부를 창출하고, 일을 덜할 수 있고, 오히려 일을 더 할 수도 있습니다.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에 더 많이 노력할 수도 있겠죠. 저는 부를 많이 창출하는 자체에 대해서 거부감이 없습니다. 가지고 있는 부를 자원으로 사용해서 새로운 투자를 하면 더 쾌적한 생활이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물론 부작용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 때문에 미래를 부정적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기술의 사용을 현명하게 관리한다면 얼마든지 미래가 낙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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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필요 없다제리 카플란 저 | 한스미디어
인공지능 기술 시대의 빅뱅을 앞둔 지금, 갈수록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인공지능 기술이 인간의 생활방식과 일하는 방식을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를 예측하고 있는 책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대식 “나만의 질문을 찾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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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봄, 우리는 이세돌 9단 덕분에 알파고를 눈앞에서 목격했고, 알파고의 승리 덕분에 인공지능의 가까운 미래를 내다볼 수 있게 됐다. 2018년으로 예정된 초중고 코딩교육은 전혀 시기상조가 아니었다. 알파고 사건 이후, 대학가에서는 소프트웨어 교육 열풍이 불고 있고 기업들은 곧 다가올 인공지능 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 초미의 관심을 집중하고 있다. 알파고의 승리를 예언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뇌과학자로 유명한 인공지능 연구자, 김대식 카이스트 교수조차 이세돌 9단의 승리를 예측했다. 이제야 뇌과학, 빅데이터가 조금 친근해 졌다 싶었는데,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이 코앞에 다가왔다. 인공지능 시대에는 사라질 수밖에 없는 직업군이 상당하니, 누구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다.

 

김대식 교수는 최근 『김대식의 인간 vs 기계』를 펴냈다. ‘인공지능은 무엇인가’에서부터 딥러닝의 진화, 인지자동화, 강한 인공지능에 이르기까지 미래산업의 전반을 예측했다. 우리의 예상보다 훨씬 강력했던 인공지능은 일찍이 현실이 됐다. 다만 우리가 가깝게 목격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김대식 교수는 “알파고의 승리는 어쩌면 그동안 경쟁자 없이 지구를 지배하던 호모 사피엔스의 시대가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우리는 이미 선택할 수 있는 시점을 넘겼다.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역사 속에서 사라질 일만 남았다. 인공지능 시대를 맞닥뜨린 우리의 현실을 바로 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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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싫다고 해서 피할 수 없는 문제


지난 3월,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결에서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타났다. 뇌과학자로서 알파고의 승리를 목격한 소감이 궁금하다.


점점 기술의 발전을 예측하기 어렵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꼈다. 앞으로 기술이 더 급속도로 발전할 텐데, 특이점에 도달하면 연구자들조차 발달 속도를 예측할 수 없다. 알파고와의 대결을 목격한 것은 우리나라의 역사적 행운이다. 독일, 일본, 인도, 브라질 등 모두가 앞으로 인공지능 기반의 산업혁명을 준비해야 하지만, 인공지능은 대부분의 사람에겐 공상과학으로 느껴질 거다. 하지만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결을 지켜본 우리 국민은 다르다. 미래에 대한 눈을 크게 떴다.

 

인공지능의 미래에 관한 관심이 굉장히 높아졌다.


엄청나게 높아졌다. 문제는 여전히 외국 사람들에게 의지한다는 점이다. 알파고 사건 이후 외국에서 저명한 인사만 오면 기자들이 하나같이 ‘인공지능의 미래’를 질문한다. 최근 베르나르 베르베르, 유발 하라리 등이 내한했는데 이들은 인공지능 전문가가 아니다. 소설가와 역사학자에게는 문학과 역사를 물어야 하는데, 인공지능을 묻고 있다. 왜냐하면 이들에게 정답을 듣고 싶기 때문이다. 그동안 우리는 교과서에 나오는 산업화, 민주화를 공부했다. 인공지능은? 교과서가 없다. 모두가 처음 경험하기 때문에 누구도 답을 모른다. 그래서 우리 국민이 패닉에 빠졌다. 롤모델이 사라진 거다. 지구에 존재하는 수많은 문제를 살펴보자. 이를 테면 환경, 동물보호, LGBT 등을 봐도 우리가 만든 문제가 아니다. 남들이 이미 발견한 문제에 정답까지 제공했다.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해석의 문제로 싸웠는데 인공지능은 모두가 처음이니까 정답이 없다. 그래서 패닉 상태다. 진정한 선진국이 되려면 답을 모를 때 질문을 찾아가야 한다. 그런데 한 번도 직접 답을 찾아본 적이 없으니까 외국 손님이 한국에만 오면 질문하기에 바쁘다. 어른이 됐으면 문제를 직접 발견하고 답을 파악해야 하는데, 우리는 문제를 먼저 봤음에도 불구하고 답을 바깥에서 들으려고 한다. 안타까운 현실이다.

 

최근『김대식의 인간 vs 기계』를 펴냈다. 알파고부터 시작해 딥 러닝(Deep learning), 빅데이터(Bic Data) 등 미래 산업 전반을 다뤘다. 인공지능 시대를 기대하는 사람도 있는 반면, 두려워 하는 사람도 많다. 특히 기업들의 위기 의식이 크다.


기업은 경쟁이 심하니까 미래를 모르면 바로 망한다. 그나마 우리가 행운인 게, 알파고의 승리를 봤다는 사실이다. 다른 사람들이 문제로 느끼기 전에 우리는 문제를 봤다. 하지만 안다는 것이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아니다. 먼저 문제를 봤기 때문에 질문할 기회가 생겼을 뿐이다. 아쉬운 건은 앞서 말했다시피 우리가 얻은 기회를 형편없이 다른 사람에게 묻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에게 왜 답을 묻고 있어야 하나? 우리가 알려줘야지. 보물지도를 봤으면 그 보물을 찾아야 한다. 남들보다 지도를 먼저 봐 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보물 어딨어요?”라고 묻는 건 정말 창피한 일이다.

 

책을 읽으면서 상상했다. 기사를 대신 써주는 소프트웨어 ‘워드스미스(Wordsmith)’가 탄생한 것처럼, 언젠가 책도 기계가 쓰는 세상이 오지 않을까?


물론 상상할 수 있다. 하지만 책의 의미가 단순히 정보 전달만은 아니니까 한계도 있다. 시집 같은 경우는 정보를 위해 보는 책이 아니다. 읽는 순간, 그 자체가 중요한 책이기 때문에 당연히 기계가 할 수 없다. 미래를 이야기하자면 뭔가를 직접 만들어내는 일은 기계가 도맡게 될 거다. 250년 전 산업혁명을 통해 많은 육체적 노동을 기계가 하게 됐다. 많은 불평등 문제를 야기했지만 육체적 노동에서 해방된 것은 무척 대단한 일이다. 이후 인간은 교육을 받고 여유도 생겨서 지적인 노동에 집중하게 됐다. 50년 이후의 미래를 가까운 미래라고 할 때, 기계도 상당 부분의 지적인 노동을 할 수 있다. 구글은 알파고를 100만 번도 넘게 복사할 수 있다. 기계가 지적인 노동을 하게 되면 인간이 가진 단점을 극복할 텐데, 고장이 나면 고칠 수 있고 하드웨어도 계속해서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기계가 지적인 노동을 하는 순간, 기계는 인간을 이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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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인간은 어떤 대안이 있나?


기계가 대부분 생산적인 일을 한다면 인간은 비생산적인 일을 해야 한다. 왜냐, 기계는 비생산적인 일을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 인간은 서로를 이해한다. 몸을 가져서 즐거움을 느낄 수 있지만 기계는 즐거움을 모른다. 인간이 비생산적인 일을 하면서 산다는 건, 사이언스 픽션에 나오는 유토피아다. 그런데 이게 얼마나 유토피아적인지 모르겠다. 우리가 일을 한다는 건 돈을 벌기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아실현의 의미도 있다. 바쁘게 일하다 하루 이틀 노는 건 좋지만 실업자가 돼서 계속 노는 건 무의미하다. 실제 미국 중부에 원주민, 인디언들이 사는 도시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주정부가 그들을 먹여 살리고 있다. 학교도 의료보험도 무료다. 그렇다면 이 도시에서는 철학과 문화가 번창할까? 그렇지 않다. 마약 범죄가 잦고 알코올중독자도 많다. 결국 인간을 공짜로 먹여 살려주는 것이 유토피아가 아닐 수 있다. 그러므로 기본 소득을 제공하는 일이 경제적으로 가능해도 무료로 줘서는 안 된다.

 

조건이 없다면 위험하다는 뜻인가.


그렇다. 미래에는 모든 사람이 본인의 노동으로 먹고살만큼 일자리가 많지 않을 것 같다. 직업 없는 소득을 가능하게 해야 하는데, 국가가 모든 국민을 먹고살 수 있을 만큼 해주되 이 권리를 누리기 위해서는 마땅히 해야 할 의무도 있어야 한다. 기본 소득을 제공하면서 소득이 없는 직업도 동시에 만들어야 한다. 인간은 돈을 벌기 위해서만 일하지 않는다. 자아실현의 의미도 있다. 자아실현을 포기해버리면 인간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직업 이야기도 묻고 싶다. 인공지능 시대에 위험한 직업군으로 화이트칼라족과 데이터를 가지고 일하는 직업을 꼽았는데, 교수도 마찬가지 아닌가? 어떻게 대비하고 있나?


당연히 대비해야 한다. 다만 조심할 건 어차피 미래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다. 옥스퍼드대학 경제학과에서는 약한 인공지능이 인간 수준으로 발전한다면 직업의 47%가 사라질 것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건 가설이다. 내가 만약 인공지능 시대에 안전하게 살아남을 방법을 안다면 왜 지금 교수를 하고 있겠나? 대치동에서 학원을 세우지. 우리는 일기예보처럼 정확하게 한 시간 후에 일어날 상황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인공지능이라는 거대한 판도라 상자는 이미 열렸다. 싫다고 해서 피할 수 없는 문제가 됐다.

 

어떻게든 발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만약 할 수만 있다면 이 판도라의 상자를 닫았으면 좋겠다. 뇌과학자로서는 사실 이 학문이 굉장히 재밌다. 반전도 있고. 하지만 사회적인 타격이 너무 크다. 특히 실업자 문제는 누구도 책임질 수 없다. 20세기 초, 물리학이 인류의 미래를 위해 원자의 비밀을 찾아냈지만 40년 후 핵폭탄이 됐다. 핵폭탄은 누구도 원했던 게 아니다. 독일의 나치 정권이 핵무기를 먼저 개발할까 봐 두려워서 시작했고 한 단계, 한 단계 그럴 수밖에 없는 순간으로 간 거다. 시대 흐름이 만든 거다. 이제는 딥러닝이 만들어졌고, 한 번 안 지식은 다시 잊힐 수 없다. 내가 안 해도 남들이 할 것이기 때문이다. 과학자로서 제대로 책임감 있게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람들이 가장 궁금한 질문일 것 같다. 인공지능 시대에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과연 있을까?


세 가지다. 첫째는 이세돌 9단이 사용한 방법이다. 인공지능을 무시하는 거다. 나 역시 알파고가 등장했을 때, 인간을 이길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무시한 거다. 그런데 결과가 좋지 않다. 하루아침에 당할 수 있다. 둘째는 죽을 둥 살 둥 싸우는 거다. 처음에는 효과적일 수 있다. 불도저가 처음 등장했을 때 삽질은 어떻게 됐나? 초반에는 선전했지만 점점 발달하는 불도저를 도저히 이길 수는 없다. 인공지능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마지막 방법, 이세돌 9단과 알파고가 서로 협업하는 것이다. 알파고는 이세돌을 이겼지만 이세돌이 또 다른 알파고와 협업하면 이길 수 없다. 인공지능의 장점과 인간의 장점을 결합하면 우리는 살아남을 수 있다. 기계랑 효율적으로 협업하는 기술을 배우는 게 가장 현명하다.

 

인공지능 시대가 되면 이런 인터뷰도 기계와 함께 진행할 수도 있겠다. 기계가 녹취도 풀어주고 오타, 비문도 잡아준다면 꽤 효율적이겠다.


기사를 기계 혼자서 쓴다면 글의 수준은 평범할 것이다. 가장 현명한 방법은 깊은 생각이 크게 필요하지 않는 부분은 기계에게 넘겨주고, 인간은 이외의 일을 맡으면 된다. 사람이 지적인 노동을 한다고 해도, 하루 중에 자신의 전문지식을 100%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하루 종일 연구보고서, 예산과 스케줄을 짜느라 하루 중 연구하는 시간은 10%에 불과하다. 나머지는 잡일이다. 기자나 작가도 마찬가지다. 이들을 만나면 다들 하는 소리가 비슷하다. 직업이 글을 쓰는 사람인데 글을 쓸 시간이 없다고 한다. 이들의 말이 맞는 것이, 우리가 하는 지적인 노동의 90%는 할 수 없이 해야 하는 노동이다. 지적인 잡일 때문에 바쁜 건데, 이 잡일을 기계에게 시키면 인간은 여유 시간이 생긴다. 기계는 투덜대지 않으니까 관리만 잘해주면 된다. 인간은 여유 시간을 잘 활용하면 되는데, 이 여유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 지에 따라 자신의 경쟁력이 만들어진다. 이 여유 시간을 제대로 활용하는 게 우리의 숙제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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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질문을 찾을 수 있는 길


뇌과학을 전공하게 된 계기를 만들어준 책이 있다고 했다. 독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읽은 인지과학자 ‘더글라스 호프스태터’의 『괴델, 에셔, 바흐』다. 이 책은 ‘튜링-테스트'을 필두로 인공지능에 대한 역사를 설명한 논픽션이다. 이 책을 보지 않았더라면 뇌과학을 공부하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 아닌가? 아니면 더 늦게 접할 수도 있었을 테고.


책의 역할에 대해 잘못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 책은 정보 전달을 위해서만 있는 게 아니다. 정보를 찾으려면 인터넷을 보는 게 가장 빠르다. 책의 큰 장점 중 하나는 나만의 질문을 찾을 수 있는 길을 뚫어준다는 점이다. 정말 내가 제대로 살고 싶으면 남들이 던지지 않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망하더라도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야 하는데, 이때 책이 길잡이 역할을 할 수 있다.  인터넷은 어떠한 정보의 정답일 뿐이지 가이드가 아니다. 우리가 평생 부모, 친구의 손을 잡을 수는 없지 않나. 지적인 길은 혼자서 가야 한다.

 

지적인 길을 갈 때, 가장 도움이 되는 존재는 책이다. 


물론이다. 『괴델, 에셔, 바흐』의 내용은 지금 인터넷에 다 나와 있다. 17살 때 특정 시간에 천 쪽짜리 책을 읽은 경험이 나에게 길을 마련해준 거다. 지금은 너무 오래 돼서 내용은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는 공부할 때 정답을 주고 정답을 달달 외운다. 잘 외우면 시험은 잘 본다. 하지만 배운 건 하나도 없다. 책 없는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정보는 많이 알지만 지식은 없다. 지식을 채팅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정보는 곧 나의 한계가 될 수 있다. 책을 읽고 지식이 있다면 그 문제를 갖고 내가 더 깊은 생각을 할 수 있다. 내가 왜 역사인물을 알아야 하는지, 왜 알파고를 알아야 하는지 내가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개인적으로 뇌과학을 공부해서 얻는 이점은 무엇인가?


뇌과학도 결국 뇌를 연구하는 일이다. 지금 우리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것도 뇌 덕분이다. 뇌를 이해하는 건 곧 나 자신을 이해하는 일이기 때문에 나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뇌과학을 이해하면 자신에 대해 겸손해질 수 있다. 내가 극단적으로 믿는 많은 것이 대부분 뇌의 착시 현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내 선택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  누구나 자신의 인생을 마음대로 계획하고 운영할 수 있지만, 내 선택이 사회적 규범을 뛰어넘어 타인의 자유를 침범할 때는 정말 조심스러워야 한다. 뇌과학이 주는 큰 메시지 중의 하나는 개인의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는 점이다. 어차피 절대적으로 옳고 그른 것은 없으니까, 뭘 믿더라도 그것이 정말 맞는지 모르기 때문에 본인 취향대로 각자의 삶을 계획해야 한다. 거꾸로 이 시스템 자체를 위협하는 체제는 강력하게 반항해야 한다.

 

교육 문제도 짚고 넘어갈 수밖에 없다. 지금 정작 위기의식을 느껴야 하는 세대는 10대라고 지적했다. 10대들은 기계가 못하는 것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하는데, 현재 교육 시스템으로 과연 가능할까?


지금 교육 시스템으로서는 희망이 없다. 고칠 수가 없다. 자동차도 고장이 나면 고칠 수 있는 수준이 있고 없는 수준이 있는데, 우리나라 교육은 고칠 수 없는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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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불가능할까?


어떤 분이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 “우리나라 공교육이 성공하려면 어머니들이 사라져야 한다”고. 100%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웬만큼은 맞는 이야기다. 대한민국 사회는 아직 여성이 자아실현을 하기에 어려운 구조다. OECD 국가들 가운데 교육 수준은 상당히 높지만, 높은 교육을 받은 여성들이 아직도 집에서 살림과 육아만 한다. 이만큼 배운 사람이 종일 아이랑만 싸우고 있어 봐라.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지 못하니까 대리만족을 위해 아이에게 포지셔닝한다.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점을 말할 때, 누구나 언급하는 게 창의성이다. 뭐가 문제인지를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 그런데도 변화가 없다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왜 불가능하냐, 수능 문제가 창의적이지 않으니 창의적인 교육을 할 수 없다. 수능을 없애면 일렬로 줄 세우기가 어려우니 없애질 않는다. 유럽에는 수능이 없다. 왜 없냐? 안 세워도 되니까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모든 국민을 상대로 줄을 세운다.

 

줄 세운만큼 사회에서 혜택을 받으니, 무시할 수도 없다.


성공 위주의 사회라서 그렇다. 우리나라 교육 시스템을 바꾸려면 성공 위주의 사회가 아니어야 한다. 인생의 성공이 특정한 사람, 특정한 기관이 정해 놓은 성공이 아니어야 한다. 개인 각자가 나만의 성공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 하버드대학교, 서울대학교를 들어가는 것만이 성공이 아니라 도자기를 잘 구워도 성공이고 머핀을 잘 구워도 성공이 돼야 한다. 성공의 기준은 자신에게 있어야 한다. ‘나는 내 인생에서 여기까지 도전하겠다, 여기까지 살겠다’는 기준이 있으면, 이게 성공이다.

 

성공의 기준이 바뀌면 교육도 변할 수 있다.


나 자신이 누군지를 알고 스스로가 원하는 걸 알면, 다른 사람을 쫓아갈 필요가 없다. 성공의 기준이 달라지니 사람들을 일렬로 세울 필요가 없고, 곧 수능이 불필요하다. 그렇게 되면 수업은 창의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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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식의 인간 vs 기계김대식 저 | 동아시아
전통적인 인공지능과 현재의 인공지능 사이의 유일한 공통점은 인간의 지능을 모방했다는 점이다. 전통적인 인공지능은 인간이 이해한 지능을 기계에게 구현하려 했으며, 현재의 인공지능은 인간의 학습방법과 인간의 신경세포층의 구성을 모방하여 기계에 구현하고 있다. 결국 인간의 뇌를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인공지능을 이해하게 되는 시작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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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풀 “더 만화 같은 이야기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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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풀이 12번째 단행본 『무빙』을 펴냈다. 『무빙』은 '한국형 히어로'를 그리고 싶다는 마음으로 작업한 액션만화. 강풀은 '더 허황된 이야기, 더 뻥 같은 이야기, 더 만화 같은 이야기'를 쓰고 싶어 『무빙』을 그렸다. 평소의 페이스대로라면 30화로 막을 내렸을 텐데, 처음으로 장편 45화에 도전했고, 장기 휴재를 거쳤고 결말을 바꿨다. 오는 9월 새 작품 연재를 앞둔 강풀을 그의 성내동 작업실에서 만났다. "육체적으로 지금이 가장 편안한 때"라는 강풀은 동료 만화가들과 운동을 하고 오는 길이었다. 작업실은 굉장히 깨끗했고 강풀의 책상 옆에는 4살 딸아이의 인형놀이 책상이 놓여 있었다. 웬일인지 만화가 포스보다 아빠 포스가 더 강렬했던 그는 올해로 데뷔 14년을 맞았고, 2006년에 강풀이 그린  『26년』의 5.18은 10살을 더 먹어, 36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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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초능력자 이야기

 

『무빙』 연재가 작년 9월 말에 끝났는데, 단행본이 꽤 늦게 나왔어요.

 

그러게요. 원래 연재 마치고 바로 나올 예정이었는데 좀 시간이 걸렸어요. 


웹툰 연재가 끝났을 때와는 좀 다른 느낌인가요?

 

연재가 끝났을 때는 뭔가 허전함이 있어요. 유형의 물질이라는 게 없으니까. 아, 내가 웹 창에 다 채웠구나 싶죠. 하지만 책이 나오면 비로소 내 작품이 끝났구나 싶어요. 이 만화가 이제 내 손을 떠났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무빙』은 평소 강풀 만화와 달리 45화였어요.


늘 30편을 고집하다가 이야기 구성상 45화를 했는데, 정말 힘들더라고요. 중간에 휴재 기간도 있었지만 아, 진짜 45화는 어렵구나 싶었어요. 다시 하라면 못할 것 같아요. 최선을 다한 것 같아요. 앞으로는 30화만 하려고요. (웃음)
 
전작 『타이밍』에 이어 또 한 번 초능력자들이 등장하는 웹툰입니다. 주인공 '봉석'은 아기 때부터 공중에 뜰 수 있는 능력이 있고, 봉석이의 친구 '희수'는 한 번도 아파 본 적이 없는 고등학생이에요. 하지만 이들은 자신의 능력을 숨기고 살아요.


점점 더 허황된 이야기, 뻥 같은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쓴 작품이에요. 웹툰이 아니라면 쉽게 다룰 수 없는 소재를 그려보고 싶었고 나 자신이 즐겁고 재밌는 만화를 하고 싶었어요. 기획이 꽤 오래 걸린 작품인데요. 막연히 한국형 히어로를 다루고 싶다, 히어로에 빗대어 가족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고등학생인 봉석이와 희수를 주인공으로 그들의 부모 세대 이야기도 담아보고 싶었고요.

 

5권이 한꺼번에 출간됐어요. 후반부가 더 재밌다는 평이 많지만 저는 1,2권이 더 인상 깊었어요.


그래요? 의외네요.

 

초반에 봉석이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뜰 수 있는 능력을 감추고 모래주머니를 차고 살아야 하는 봉석이가 안쓰럽더라고요. 봉석이 캐릭터는 어떻게 구상하셨나요?


되게 평범하면서 좀 비만이었으면 했어요. 살쪄서 무거워서 못 뜬다는 이미지를 주고 싶었어요. 초능력자라고 너무 잘나가고, 슈퍼히어로는 아니었으면 했어요. 인간적이고 평범한 얼굴, 길거리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뚱뚱한 고등학생 이미지를 주고 싶었어요.
 
항상 지인의 이름을 등장인물로 사용하시는데요.『무빙』주인공 ‘봉석’은 문화평론가이자 에이코믹스 ‘김봉석’ 편집장이에요. 허락은 물론 받으셨죠?


허락은 항상 받아요. 나 당신 이름 쓰겠다, 그런데 어떤 캐릭터인지는 안 알려줘요. (웃음)
 
후반부의 주요 배경은 국정원의 전신인 안기부입니다. 다소 작품이 무거워질 수 있는 요소였는데요.
 
초능력을 가진 사람이 현실에 있다면, 가장 관심을 가질 만한 곳이 어디인가를 생각해봤더니 자연스럽게 떠올랐어요. 분단 국가라는 현 시대적 배경도 있었고요. 이번 작품은 사전조사를 철저히 했어요. 안기부 건물이 지금 남산애니메이션센터 자리잖아요. 조사를 자유롭게 할 수 있어서 사진도 많이 찍고 했어요. 관련 직종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취재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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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션만화잖아요. 그리기 힘들었던 장면이 있나요?


마지막에 봉석이가 하늘을 날잖아요. 위에서 바라봐야 하는 장면이라 드론을 띄어서 사진도 찍었는데, 힘들더라고요. 어차피 저는 인물을 그리고 배경은 어시스턴트가 맡는데, 이 장면은 저도 따라붙을 수밖에 없었어요. 제가 만화를 많이 했지만 액션을 할 줄 몰라요. 서 있는 것도 잘 못 그리는데(웃음), 사람을 때리면 어떻게 날라가는지가 궁금하더라고요. 그래서 동네 형이기도 한 류승완 감독님한테 도움을 청했어요. 바로 김제동 씨를 불러서 액션을 보여주더라고요. 서울액션스쿨에서 정두홍 감독님의 도움도 받았어요. 그렇게까지 해주실 줄은 몰랐는데, 무술감독님이랑 액션배우 분이 직접 와이어 액션을 보여주셨어요. 카메라 4대를 들고 가서 몇 천장은 찍은 것 같아요. 정말 열심히 해주시더라고요. 저에겐 정말 소중한 자료가 됐죠. 책도 나왔으니 따로 인사를 드려야 할 것 같아요.

 

연재 후기에 고마운 사람들을 쓰셨는데, 못 본 것 같아요.


서울액션스쿨만 쓰고 따로 이름을 밝히진 않았던 것 같아요. 너무 유명하신 분들이니까 좀 잘난 척 하는 것 같잖아요. 너무 유난 떠는 것 같아서 안 썼죠. 후기에 이름을 남긴 분들께는 모두 사인을 해서 책을 보내드렸어요. 액션스쿨 분들께는 그것만으론 안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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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석이 엄마는 아들에게 “넌 많은 걸 느끼며 살아야지”라고 해요. 만화를 쭉 보다 보면, 부모가 아니라면 쓰기 어려운 대사들이 종종 등장합니다. 과거에 “아빠가 됐다는 사실이 작품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는데요.


부모가 됐더니 많은 분이 이런 질문을 하셨어요. “이제 육아 만화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아마 제가 그 때 했던 답은 육아와 작품 방향성은 별개라는 뜻이었어요. 나는 내 만화를 계속 해야겠다는 생각이니까요. 하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정말 많은 영향을 끼쳤어요. 봉석이 엄마가 “육아는 실전이야”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정말 육아를 하다 보니 진짜 실전이더라고요. 아내와 함께 육아를 하지 않았더라면 몰랐던 세상이 있어요. 제가 작가로서 일도 철저히 하고 노동량도 많은 편인데도 육아에 비하면 아니더라고요. 엄마들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아마, 아이를 낳지 않았더라면 이런 대사는 못 나왔을 것 같아요.
 
육아 포털사이트를 통해 육아 웹툰을 잠깐 그리기도 하셨잖아요. 아이 엄마의 혼잣말이었던가요? “당신은 퇴근이라도 하지”라는 대사가 강렬했어요.


남편이 퇴근해서 저녁 밥을 찾자, 아내가 하는 말이었죠? (웃음) 저는 아무래도 다른 아빠들에 비해 시간 활용이 자유로운 직업이니까, 육아를 다 볼 수 있어요. 육아는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 같아요.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에요. 아이가 사랑스러운 것과는 정말 별개더라고요. 진짜 아빠들이 아이 엄마에게 최소한 해야 할 일은 미안해 하고 고마워 해야 하는 일이에요. 아마도 아빠들이 경험을 안 해봐서 그런 것 같은데요. 옆에서 지켜보니까, 정말 아내한테 서운한 말을 하면 안 되겠구나 싶더라고요. 엄마들은 정말 위대하구나 싶은 게, 저도 모르게 작품에 그걸 쓰고 있더라고요.
 
희수의 아빠 '장주원'이 등장하는 장면이었던가요? “가족이 협박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라는 대사도 있었어요. 살다 보면 가족 때문에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할 때도 있는데, 그것이 그렇게 싫지만은 않지 않나요?

 

기쁘게 하죠. 일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니까요. 예전에는 장편 만화가 끝나고 나면 다른 일은 거의 안 했어요. 그런데 애가 크고 나서는 예전 같으면 안 했을 일을 제가 하고 있더라고요. 그래도 많이 하는 편은 아니에요. 제가 하나에 올인하지 않으면 집중하지 못하는 편이라서요. 한꺼번에 여러 일을 할 수 있는 타입이 아니에요. 하나라도 제대로 해야죠.

 

장주원이 딸과 함께 떠나면서 혼잣말을 해요. “딸과 함께 떠났다. 나는 다 가지고 떠났다”라고.


가끔 이런 생각을 해요. ‘내가 일을 열심히 하는데 왜 열심히 하지?’ 결국 내가 행복하자고 하는 건데, 일이 행복의 영역을 침범할 때가 있어요. 일을 너무 많이 하면 아이가 커가는 걸 옆에서 못 볼 수 있잖아요. 가족과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에 무리하게 다른 일을 하진 않으려고 해요. 돈도 행복하자고 버는 건데, 행복의 근본은 가족이랑 같이 있는 시간에 있으니까요. 이런 생각들이 작품에 많이 담긴 것 같아요.
 
유치한 질문이지만, 『무빙』의 주인공들처럼 초능력이 주어진다면, 어떤 초능력을 갖고 싶나요?


(웃음) 시간을 멈추는 초능력이요. 마감 때 너무 미치겠어요. 마감 시간은 쫓아오고 손은 더디고 한 컷이라도 더 그리고 싶고. 시간을 멈추게 하고 싶을 때가 정말 많아요.

 

평소 댓글은 어느 정도 읽으세요?


연재 중에는 잘 못 봐요. 베스트 댓글 같은 건 읽지만 다 읽긴 어렵고, 연재가 끝나면 1화부터 정주행하면서 다 읽어봐요. 댓글만 쭉 보는데도 1주일은 걸리는 것 같아요. 긴 댓글은 많지 않지만 가끔 내 의표를 찌르는 글을 만날 때가 있어요. ‘내가 이런 생각으로 그렸는데 이 사람도 이렇게 봤구나’ 싶으면 정말 고마워요. 웹 작가이다 보니 메일도 많이 와요. 응원의 메일도 자주 받고요.
 
답장은 어느 정도 쓰시나요?


연재할 때는 거의 못 쓰지만 답장을 요구하는 메일이 있으면 답장을 하죠. 그래도 읽기는 다 읽어요. 10년 전 받은 메일을 아직도 가지고 있으니까요. 매년 용량을 무제한으로 갱신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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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냥 희망적인 이야기를 할 수 없어요


엔씨소프트 공식 블로그 ‘우주정복’에서 영화 웹툰 ‘강풀의 조조’를 연재하고 있어요. ‘당일 관람, 당일 발행’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매주 조조 영화를 보는 게 쉽진 않을 것 같은데요.


5회까지는 아침에 조조를 보고, 그날 밤에 작업했어요. 그런데 아무래도 시간에 쫓기다 보니까 아쉬운 점이 많더라고요. 요즘은 수요일에 개봉하는 영화가 많잖아요. 그래서 수요일에 개봉하는 영화는 수요일에 보고, 목요일에 개봉하는 영화는 그 날 보고 그 날 마감해요. 동료 만화가 세 명이랑 같이 보러 가는데, 영화 장면이 기억나지 않을 때 많이 도와줘요. 만화가들이 기억을 잘 하잖아요. 네 명 주 한 명은 걸리니까요. 항상 넷이 보러 가요.
 
최근에 영화 <곡성>을 그리셨더라고요. “무엇을 예상하건 의외의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압도적이며 신선하다”고 평하셨어요.


(웃음)<곡성>은 아직도 이해가 안 돼요. 무섭거나 그러진 않은데 압도적이긴 하더라고요.
 
영화 웹툰이 처음은 아니시죠?


16년 전쯤인가요? 다음 만화속세상이 생기기 전에 『영화야 놀자』라는 작품을 연재했어요. 다음에서 제가 첫 외주작가였는데, 다음이 생겼을 때 만화 섹션에서 연재했어요. 영화를 워낙 좋아해서요. 재밌게 하고 있어요. 
 
연재 중에는 새벽 출근을 하시잖아요? 지금은 어떤가요?


8시까지는 출근해요. 그림책 작업도 있고 하니까요. 아침잠이 없는 편이라서 보통 6시쯤 일어나서 아이랑 좀 놀아주다가 작업실에 와요. 요즘은 가장 편한 때죠. 3,4시쯤 퇴근해서 집에 가는데 대개 저녁을 가족들이랑 먹으려고 해요.
 
출근해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뭔가요?


다짜고짜 작업부터 시작해요. 메일 확인하고 트위터 하고 인터넷 기사 쳐다 보고 있으면, 두 세시간은 그냥 가서요. 일상적인 소소한 일을 잘 안 해요. 작업실 문을 열고 포토샵을 열기까지 5분도 안 걸려요. 인터넷 들여다보지 않고 바로 작업해요. 그게 제 작업방식이라면 방식인 것 같아요.
 
그림책도 두 권 펴내셨잖아요. 작년에 나오길 기다렸는데요,


초안은 다 잡았는데 올해 나올지 내년이 될지 모르겠어요. 가을에는 웹툰 장편이 들어가야 하니까 장담을 못하겠네요. 그림책 작업이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려요. 1년에 한 권씩,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7권을 만드는 게 목표였는데 쉬운 일은 아니네요. 뭐 더 낼 수도 있는 거고요.
 
2014년에 두 번째 그림책 『얼음 땡!』을 내셨을 때, “개인적인 아이로 키우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셨어요. 지금도 마찬가지신가요?


네, 같아요. 우리 딸이 개인적인 아이였으면 좋겠어요. 자기 생각이 있는데 이 집단에 뭔가 문제가 생길 것 같다고 자기 이야기를 안 하고 눈치를 보는 아이가 되지 않았으면 해요. 틀리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우리 사회는 자꾸 집단화를 시키고, 다같이 같은 생각을 해야 한다며 바로잡으려고 달려들잖아요. 저는 제 아이가 그런 거 눈치 안 보고 개인의 생각을 언제든지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해요. 다른 사람과 생각이 달라도 서슴없이 이야기하는 아이가 됐으면 좋겠어요.
 
만화가를 지망한다고 해도 지원해주실 거라고 하셨죠?


만화가뿐이 아니에요. 뭘 한다고 해도 너 하고 싶은 거 하라고 할 거예요. 걱정은 하고 싶은 게 없다고 할까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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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무빙』휴재 기간이 길어지면서 악플이 많이 달렸어요. 작가님의 아버지께서 세상을 떠나시면서 어쩔 수 없이 휴재를 했는데, 악플러들의 댓글이 정말 심각한 수준이었습니다. 처음으로 악플러들을 고소하셨는데요.


지금도 진행 중이에요. 민,형사 소송 다 걸었어요. 정말 많은 숫자를 할 수 있었는데, 애매모호한 댓글이나 작품에 대해 평가하는 댓글은 많이 걸려냈어요. 미성년자도 많아서 끝까지 고민했는데 결국은 뺐어요. 저희 아버지를 두고 너무나 폐륜적인 말을 하고 있고 입에 담지도 못할 말을 하고 있는데, 이걸 봐줘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했는데요. 어머님의 권고가 컸어요. 사실 처음에 시작할 때는 이렇게 길게 갈지는 몰랐어요. 소송을 한다고 하니, 댓글이 청정지대가 되더라고요. 아, 이 사람들은 정말 짓지 않는 개는 개무시 하는구나 싶었어요. 이 정도까지 별 것 아닌 사람들이었나 싶고. 허탈한 마음도 많이 들었어요.
 
웹툰작가들이 많이 겪는 일이기도 하잖아요.


많죠. 사실 저만큼 인터넷 바닥을 오래 굴러 다닌 사람도 없을 텐데요. 그동안 아무리 심한 악플이 있어도 소송은 안 했어요. 그런데 내 아버지, 가족을 걸고 넘어지는 건 못 참겠더라고요. 일반 사람은 이런 일을 처음 겪으면 되게 혼란스럽고 어려울 텐데, 저는 이제 해봤으니까 어떤 건지 알게 됐어요. 후배들이 같은 경우를 겪으면 어떤 과정으로 소송을 진행할 수 있는지 설명해줄 거예요. 이제 과정을 확실히 알게 됐으니까 앞으로는 절대 용서 안 할 거예요.
 
지겹게 많이 들으신 질문일 수도 있는데요. 그래도 궁금합니다. 웹툰작가를 꿈꾸는 분들이 굉장히 많은데요. 선배로서 해주실 조언이 있나요?


할 말이 없어요. 어느 순간 자칫하면 “나는 이렇게 됐는데 너는 왜 안 돼?”라고 말하는 걸로 느껴질 수 있어서요. 강연할 때도 되게 조심스러워요. 마냥 희망적인 이야기를 할 수 없어요. 15년 전, 제가 웹툰을 시작할 때와 지금은 너무 달라졌으니까요. 또 개인의 상황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에 쉽게 포기하지 말라는 소리를 못하겠어요. 이야기해줄 수 있는 건, 습작만 하지 말라는 거예요. 하나의 이야기를 끝까지 완성시키고 누구 한 사람이라도 보여줘야 작품이라는 사실이에요. 혼자 쓰는 건 일기일 뿐이에요. 완성시키고 보여주는 게 중요해요. ‘어떻게 하시라’는 말씀은 못 드리겠어요.
 
지금 만약에 작가님께 대한민국 국민의 80% 이상이 보는 일간지의 1면을 통으로 드린다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으세요?


글쎄요. 되게 어려운 질문인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월호 이야기를 할 것 같아요. 이슈라서 문제가 아니라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작년부터 지겹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어떻게 지겹다는 말을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고요. 아무리 많은 사람이 지겹다고 생각한다고 해도 세월호 이야기를 할 것 같아요. 
 
『무빙』도 영화 판권이 팔렸죠? 아직 영화화 계약이 안 된 작품은 없나요?


없어요. 모든 작품이 다 진행 중이에요.
 
가장 기대되는 미개봉작이 있다면요?


제 작품이니까 다 기대되죠. 어렵네요. (웃음)
 
웹툰 독자와 단행본 독자는 조금 다를 수 있잖아요. 『무빙』을 읽었으면 하는 독자가 있나요?


다 보셨으면 좋겠는데요. 그래도 10대 친구들이 많이 봤으면 좋겠어요. 히어로 이야기인가보다, 그냥 재밌는 이야기겠니, 하고 봤으면 좋겠고요. 강풀이 하는 만화는 재밌다, 만화라는 매체는 참 재밌다고 생각하면서 보시면 가장 좋겠어요. 편하게 보셨으면 하고요. 웹툰은 재밌게 봐야죠.
 
다음 작품을 예고해주신다면.


『무빙』, 『타이밍』주인공 중에 한 명이 나올 거예요. 새롭게 펼쳐지는 이야기가 『무빙』, 『타이밍』 속 사건의 발화점이 되게 끝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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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빙 강풀 글,그림 | 위즈덤하우스
정원고등학교 3학년 5반에 공중부양 능력이 있는 김봉석, 상처 치유 능력을 가진 장희수, 엄청난 힘과 스피드를 지닌 이강훈을 모아놓고 지각, 청소, 수능, 체육수업 등의 에피소드만으로 독자들을 팽팽한 긴장감 속으로 몰아넣는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데프콘 “형돈이와 대준이 성공은 아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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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사람 일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 하드코어 랩의 선두주자가 전 국민의 사랑을 받는 프로 예능인이 되었다. <1박2일> 뿐만 아니라 <마이 리틀 텔레비전> 등 다수의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바쁜 와중에도 작년 <I'M NOT A PIGEON>과 올해 <맹금류>를 발표하는 등, 꾸준한 음악 활동도 선보이고 있는 래퍼 데프콘. 언더그라운드의 래퍼에서 공중파 예능의 블루칩이 되기까지의 심정들과 고민들에 대해 물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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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박2일>에서의 자기 자신의 모습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역사가 깊은 예능 프로그램이고 전 연령층이 시청하고 볼 수 있는 국민 예능이다. 여기에 멤버로 참여하게 된 것 자체가 참 큰 인연이고 행운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1박2일>은 다른 예능과 조금 다르다. 멤버들이 꾸며가는 <1박2일>은 나를 보여주는 예능이기보다는 우리가 먼저 되는 예능이라 절대 계산적일 수 없다. 나와 마찬가지로 다른 멤버들의 성향 또한 앞으로 나서는 성향이 아니다. 그래서 처음 섭외가 되었을 당시, 중심이 되는 MC가 없어 걱정의 소리가 많았다. 이 난파선 같은 이미지의 프로그램이 제작진들의 참신한 기획과 함께 점점 멤버들과의 합과 묘한 호흡이 생기면서 지금의 모습처럼 잘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기적이다.

 

현재 <1박2일>에서의 데프콘의 이미지, 위상과 위치는.


<1박2일>의 특성상 그 지역의 주민들을 대하는 대민활동이 중요하여 나의 강점 중 하나인 친화력을 발휘하려 노력하고 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의 나는 힙하고 멋있는 이미지보다는 친화적인 이미지, 또한 공격과 수비를 같이 할 수 있는 중간 역할이 되고 싶다.


데프콘이 대중적으로 유명해진 결정적이 순간이 언제라고 생각하는가.


역시 <무한도전>과의 인연이 가장 결정적이었다. 든든한 방송 선배이자 친한 동생인 정형돈 씨를 알게 된 계기이기도 하고. 잠깐 등장해 미친 듯이 노를 저은 <무한도전> 조정 편의 장면이 시청자분들에게 신선함으로 다가간 것 같다. 당시엔 예능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니까 그저 죽을힘을 다해 노를 저었다. 또한 미사리까지 20분이면 간다는 터무니없는 내용의 짧은 통화에 <무한도전>이라는 큰 흐름에 참여하고 싶은 절박한 심정이 묻어났던 것 같다. 미친 듯이 발버둥 치는 모습이 시청자분들에게 산뜻하게 각인되었던 것 같다.

 

그리고 2012년, '형돈이와 대준이'가 큰 히트를 기록했다. 너무 타협적인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을 것 같다.


아이러니했다. 미친듯이 발버둥 치면서 준비했던 앨범들, 4집 <Macho Museum>과 5집 <The Rage Theater>가 모두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상업적으로 실패했다. 정말 원망스러웠다. 매번 다음을 기약하는 것이 정신적으로 힘들었고 혼자 계란으로 바위 치는 느낌도 강하게 들었다. 지쳐서 모두 그만두고 고향에 내려갈 생각도 했다. 그러나 그때 형돈 씨가 나를 붙잡았다. 서로 술잔을 기울이는 중, 형돈 씨가 자신에게 아이디어가 하나 있는데 스트레스 하나 받지 않고 편하게 작업해보는 게 어떠냐고 제안했다. 그렇게 '형돈이와 대준이'를 하게 됐는데 그게 미친 듯이 대박이 났다. 그 이후로 많이 풍요해지고 여유가 생겼다.


'형돈이와 대준이'로 활동했을 당시 몇몇 분들이 일종의 배신이 아니냐고 했던 반면, 몇몇 팬분들은 '이젠 좀 잘 되어야 하지 않겠냐, 데프콘도 이제 양지로 나와야지'하며 동정도 많이 해주셨다. 나와 형돈씨는 '형돈이와 대준이'의 앨범들을 힙합의 범주에 넣지 않았다. 그저 다수의 대중을 위한, 쉽게 즐길 수 있는 대중음악이었다.

 

'힙합 유치원'을 발표했을 때도, 많은 비난이 있었다.


'왜 유아용 랩을 만드냐'는 비난도 있었지만 그 곡을 만들 때 난 굉장히 진지했다. 내가 뭐 마이클 잭슨은 아니지만, (웃음) 아이들을 위한 힙합 동요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어렸을 땐 친구들하고 어디서 놀 것인지에 대한 고민만 했던 것과는 달리, 요즘 아이들이 학교와 학원에 찌들어 마치 연예인처럼 스케줄이 짜인 생활을 하는 것을 보며 순수한 의도로 곡을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5집 <The Rage Theater>에 'A song for sad kids'이라는 스토리텔링 곡에 가슴 아픈 이야기를 담기도 했다. 항상 아이들이 희망을 가지고 살아갔으면 하는 소망을 가지고 있다. 지금도 매번 아동 단체에 후원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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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리틀 텔레비전>에 출연해 랩의 역사에 대해 알려주는 노력을 보이기도 했다.


현재 많은 분들이 <Show Me The Money>를 통해 힙합을 알아가는 것 같다. 이것이 부정적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대중이 힙합에 대해 관심을 가져주는 것이니까. 그래서 힙합의 역사에 대해 쉽고 재밌게 풀어서 얘기를 해보자 했다. 리드머의 강일권 편집장과 함께 힙합에 대하여 쉽게 설명해보자는 취지에서 초기 힙합의 대표적인 음악들을 소개하기도 했다. 현재 힙합이 확실히 대세긴 하지만, 힙합을 소개할 수 있는 방송은 한정적이다. 이런 프로그램이 많이 개설되고 알려졌으면 한다.

 

<Show Me The Money>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좋아하지도 않고 싫어하지도 않는다. 어쨌든 이 씬의 바깥에 있던 실력자들 혹은 아마추어 래퍼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프로그램이기에 부정적이진 않다.

 

디스 전 당시, 힙합 비둘기라는 수식어까지 유행하기도 했는데.


당시 기자들에게 전화가 엄청 왔다. 내가 디스를 한 것도 아니고 그것에 대해 밑밥을 깔지도 않았는데 (웃음) 딱히 할 말이 없었다. 디스전에 얽혀있는 관계들이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 '잘 좀 풀렸으면 좋겠네', '저 래퍼 랩 잘하네'라며 관전하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당시, 공교롭게 <해피투게더>에서 소개한 '닭갈비 만두'가 검색어로 올라가며 화제가 돼서, 누리꾼들이 '힙합 비둘기'라는 재밌는 수식어와 이미지를 만들어주었다. 지금 조세호 씨에게 '프로 불참러'라는 수식어가 생겼듯이. (웃음) 어쩌면 내가 컨트롤 대전의 최고 수혜자 같다. 대중의 사랑을 먹고 사는데, 그분들이 나를 비둘기로 만들든, 두더지로 만들든 즐거워하실 수만 있다면 상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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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틀 곡 '아프지마 청춘'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싶다.


현재 나의 위치 자체가 젊은 사람들에게는 희망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특히 지방에서 큰 꿈을 가지고 서울로 올라와 의지할 곳 없이 반지하, 옥탑방, 고시원에서 꿈을 위해 달리고 있는 청년들에게 내가 어떤 좋은 목표처럼 되었으면 했다. 그래서 '아프지마 청춘'이란 노래를 만들게 됐다. 저번에 내 모습이 본인에게 매우 큰 힘이 된다는 메일이 와 보람을 느꼈다. 매일 정진하고 있다.

 

이번 EP <맹금류>에서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나의 현재 그리고 과거, 또는 누군가의 현재를 이번 <맹금류>에 담고 싶었다. 지금 나의 현재는 어떠한가, 그 현재를 느끼고 있는 나의 감정들은 어떠한가에 대한 것들이 담겨있다. <맹금류>의 트랙들마다 이러한 부분과 굉장히 감격스럽고 복합적인 상황들이 담겨져 있다. '아파트'라는 트랙도 보면 사실 그 비트에 이런 주제가 담기면 안 되는 곡이다. 하지만 현재 내가 고민하고 있는 집 문제, 많은 사랑을 받고 조금의 재정적 여유가 생기면서 눈에 띄게 된 집 문제에 관한 나의 복합적인 심정이 '아파트'의 트렌디한 비트 위에 담겨있다. 앞으로도 이러한 부분을 보여주고 싶다.

 

<맹금류>엔 피처링이 없다.


요즘 피처링이 수익을 내기 위한 수단 중 하나로 전락해버렸다. 물론 잘못된 방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서로 다른 뮤지션이 좋은 시너지를 만들어 보이지도 않는가. 그러나 나는 별로 필요를 못 느꼈고 이제는 다른 사람에게 피처링을 부탁하는 게 조금 귀찮아졌다. 또한 지금 같은 타이밍에 피처링 하나 없이 오직 내 목소리로만 꾸밀 수 있는 앨범을 만드는 것이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솔직히 <주간 아이돌>을 진행하는 MC로써 잘 이야기하면 콜라보도 충분히 가능했을 거라 생각하지만, 그보다는 이게 '간지' 아니겠나. 내 나름대로의 귀여운 '깡'을 부려봤다.

 

예전에 비해 많이 달라졌다는 의견에 대해.


나는 현재 활동하고 있는 래퍼들에 비해 스킬이 확실히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현재의 나는 스킬로 승부하는 래퍼가 아닌 것 같다. 화려한 스킬을 보여줄 생각도 지금은 없다. 데프콘은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즉 소재의 다양성으로 승부를 보는 래퍼이다.


내가 랩을 좋아하게 된 이유는 랩은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메시지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요즘 스마트폰으로 어떤 가사를 썼고 어떤 펀치라인이 있는지 확인하며 공부하듯 랩을 듣는 사람들이 있다. 이것도 시대의 현상일 수 있어 인정, 그러나 난 예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음악을 들을 때 귀로 듣는다. 귀부터 시작해 심장으로 내려오는. 한 번 듣고 어떠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바로 파악되는 것이 랩의 기본이라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기본을 꾸준하게 지키고 있고 또한 이것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초기의 'Velociraptor'나 4집의 '그녀는 낙태중'과 같은, 하드코어 힙합을 하는 래퍼의 이미지가 강하다.


센 노래들 같은 경우엔 오해를 많이 받기도 한다. 그래서 지금은 오해의 소지가 있는 노래와 욕설이 많이 들어가는 노래는 자제하고 있다. 욕설보다는 다양한 소재와 거기에 맞는 좋은 가사들을 써볼까 생각 중이다. 예전 '청년'의 이미지보단 '중년'의 이미지로 바뀌어가는 것 같다.


사실 <I AM NOT A PIGEON>을 발매했을 때 전 트랙이 모두 19세 청취불가 딱지가 붙어 데프콘의 예능 이미지와 달라 보일까 우려하기도 했지만, 다행히도 데프콘의 음악을 해서 좋다는 긍정적인 피드백이 많아 앞으로도 계속해서 꾸밈없이 정진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다면 지금의 예능인 이미지의 급격한 차이를 만들 때 고민이 많았겠다.


사실 마스터플랜 소속 당시 한번 씩 방송에 출연할 때, 나를 알리는 홍보 차원에서 출연을 하였는데 그때는 정말 방송이 어려웠다. 텔레비전에서 보던 사람들을 대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방청객이 된 느낌이랄까? 박수치는 것 빼고는 한 것이 전혀 없으니까. 한번 다녀올 때마다 좌절감과 굴욕감을 많이 느꼈다. 그러나 점점 잘하고 싶은 욕심이 생겼고 동시에 라디오 게스트 섭외도 여럿 들어와 조금씩 입담이 늘었다. 일주일에 14개나 되는 라디오 고정이 생기고 점점 실력이 늘어가는 것을 느꼈다. 전혀 계산적인 과정이 아닌, 어려움과 극복의 반복으로 여기까지 온 것 같다. 나름의 노력 과정을 거치며 현재까지 오기까지 괴리감을 느낄 시간이 없었다. 예능인들은 많은 리스펙트를 받아야 한다. 남을 울리는 건 쉽다. 하지만 남을 웃기는 건 어렵다. 또한 방송이라는 것이 나간다고 잘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붙어있는 것이 잘하는 것 같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아직까지 붙어있다.

 

그래도 아직 래퍼로써 활동을 하고 있는데, 대중에게 어떤 인정을 받고 싶은가.


사실 현재 예능 프로그램들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결정적으로 '형돈이와 대준이'가 상업적으로 히트하면서 이젠 굳이 내 음악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여유가 생겼다. 그저 현재 이 상태를 유지만 하면 되는 상황에서, 나는 내 이름을 걸고 내 음악을 꾸준히 발표해왔다. 이젠 성공과 실패하고는 상관없이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이나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꾸준하게 하는 것이 내 나름대로의 가치 있는 일이 아닐까 하여 작년에도 <I'M NOT A PIGEON>을 냈었고 올해도 <맹금류>를 냈다.


예전부터 지금까지 똑같은 얘기를 하지 않았다. 같은 이야기들을 계속 돌려가면서 하는 아티스트도 많은 반면, 나는 새로운 소재를 계속 찾아가면서 이야기꾼으로 있으려 노력하고 있다. 앞으로도 이런 음악을 보여주고 싶다. 도서관 같은 뮤지션이 되고 싶다. 내 노래들이 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소재를 찾고 거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스토리텔러, 랩하는 배우, 랩하는 영화감독이 되고 싶은 꿈이 있다.


예능인 데프콘은 알지만 래퍼 데프콘은 모르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다. 데프콘의 디스코그래피 중 권할 수 있는 음반이 무엇인가.


1집의 타이틀곡, 불독맨션과 함께한 '길'. 지금 들으면 오그라들 정도로 풋풋하지만 당시의 내가 담겨있는 '길'이라는 노래를 권한다. 버벌진트와 다이나믹 듀오와 함께한 '두근두근 레이싱' 또한 추천한다.

 

그렇다면 가장 자랑스러운 앨범은 무엇인가.


5집 <The Rage Theater>는 내가 봤을 때도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다채로운 트랙들이 진열되어 있는 백화점 같은 앨범이다. 혼자만의 오랜 시간을 가지며 매진했던 앨범이다.

 

나를 음악하게 했던 사람은.


무조건 투팍(2pac). 아르바이트하다 투팍의 사망 소식을 신문 기사로 접했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떨어지더라. 엄마가 알면 큰일 났을 일이다. (웃음) 존재는 사라져도 음악은 남으니 음악이 위대한 것 같다. 특히 학교 다닐 때 미친 듯이 들었던 정규작들, <Me Against The World>와 <All Eyes On Me>을 좋아한다. 사후에 곡이 분별없이 발매되어 정이 떨어지기도 했지만 (웃음)

 

그렇다면 예능인으로써 같이 활동한 사람들 중에 정말 잘한다 싶은 사람은 누구인가.


팔이 안으로 굽어서가 아니라 정형돈 씨라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기본적으로 프로그램에 필요한 말들을 맛깔나게 잘한다. <주간 아이돌>을 5년 동안 같이 하면서 형돈 씨에게 영향을 많이 받고 그 덕분에 내가 많이 다듬어졌다고 생각한다. 사람 간의 케미를 맞추는 능력과 본인만 돋보이는 것이 아닌 우리가 모두 돋보이게 하는 것은 아무나 가지고 있는 능력이 아니다. 또한 형돈 씨는 쓰러져가는 데프콘을 살린, 인간적으로 굉장히 따뜻한 친구다. 굉장히 여리고, 굉장히 착하다.

 

앞으로의 목표는.


이번에 여러 대학들에서 축제 섭외로 전화가 많이 왔지만 모두 방송 스케줄과 겹쳐 나가지 못 했다. 그러나 아쉽지 않았다. 지금은 방송이 우선인 것 같다. 사람이 사랑을 받으면 변하는 것 같다. 전에는 그 사람에 대해 욕을 하고 싶었던 것들이 전부 그 사람을 이해하는 태도로 변했다. 또한 굉장히 편협했던 시각이 방송을 하며 좀 넓어지며 좋은 사람으로 변한 것 같다.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에너지, 웃음을 나누어 주고 싶다. 내가 하려고 한 것이면 미친 듯이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그래야 앞으로 하고 싶은 음악을 꾸준히 할 수 있을 것 같다.


인터뷰 : 이수호, 이택용, 임진모, 홍은솔
정리 : 이택용
사진 : 이한수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최향랑 "미술교육보다 나만의 장난감이 더 중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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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정말 선생님이 만든 거예요?” 최향랑 그림책작가가 아이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다. 책을 만든 작가를 만나는 것만큼 신기한 일이 없다는 아이들. 그림책의 탄생 과정을 눈으로 본다면? 더없이 흥미롭다. 아기자기한 콜라주 그림으로 꾸준히 사랑 받고 있는 최향랑 작가가 신작 그림책 『숲 속 재봉사의 꽃잎 드레스』를 펴내고 전시회를 열었다. 『숲 속 재봉사의 꽃잎 드레스』는 전작  『숲 속 재봉사』, 『숲 속 재봉사와 털뭉치 괴물』에 이은 ‘숲 속 재봉사 시리즈’의 3번째 책으로 작가가 실제 채집한 꽃잎, 나무껍질을 사용해 콜라주 기법으로 만든 작품이다. 숲 속에 살면서 옷을 만드는 재봉사는 아이들에게 묻는다. “무슨 색깔 옷을 입을까?” 아이들은 저마다 좋아하는 색깔을 떠올리며, 나만의 색깔 옷을 상상한다.

 

『숲 속 재봉사의 꽃잎 드레스』그림책 전시회는 오는 6월 15일까지, 서울 마포구 서교동에 위치한 ‘까페 창비’에서 열린다. ‘현실의 재봉사’ 최향랑 작가의 도슨트도 진행된다. 눈으로 직접 작품을 본 독자들은 어른, 아이 구분 없이 손이 간지럽다. 나만의 장난감을 만들어 보고 싶은 욕구가 새삼스레 찾아온다. 전시회장에서 최향랑 작가를 만났다. 작가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자연의 모든 것이 귀히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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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예쁜 것들을 자세히 봐주세요


1차 전시회를 마치고, 2차 전시를 하는 소감이 어떠신가요?


그림책의 작업에는 두 가지 결과물이 나오게 됩니다. 바로 책과 원화죠. 출간을 위한 그림이다 보니 책이 완성된 후 임무를 다한 원화는 원화전이라는 이름으로 전시가 되곤 합니다. 저는 원화전이라는 말에 담긴 책의 부속물의 전시 같은 느낌이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또한 그림책 안의 세계는 그토록 재미있는데, 왜 전시는 평면적이어야 할까? 벽에 그림만 걸리는 전시 기획이 재미없다고 생각했어요. 책과 더불어 전시 그 자체로도 평가 받고 싶었어요.


도슨트도 직접 하셨어요. 갤러리도 항상 지키셨고요.


1차 전시를 했던 DPPA갤러리는 전시만을 위한 공간이라 그야말로 흰색의 입체 도화지가 제게 주어진 것 같았죠. 그림의 한 부분을 실제 장면처럼 커다랗게 확대한 입체 작업도 해보고 싶었고 작업의 세세한 과정 영상들과 자연의 재료들이 어떻게 작업에 쓰였는지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전시가 시작된 이후에는 매일 관람객과 만나고 도슨트를 하면서. 제가 의도하고 기획했던 모든 것이 잘 전달되도록 도왔죠. 마치 제가 구현해 낸 작은 세계의 주인으로서 손님들을 초대한 기분이었다고 할까요? 멀리 지방에서도 전시를 보러 와주신 분도 많았는데요. 대부분의 관람객이 준비된 마음으로 오셔서 귀 기울여 주셨기 때문에 도슨트를 하는 일이 정말 즐거웠어요. 어떤 의도로 책을 만들었고 이런 전시를 하게 되었는지 독자들과 이토록 가까이 호흡하며 매일 직접 전달할 기회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작은 공간이지만 독자들의 반응이 무척 좋았습니다. 특히 아이들의 집중력이 대단했어요.


공감해 주시는 분들의 반응이 제게 큰 격려와 보람이 되었어요. 좋은 에너지를 많이 받았고 새 책 작업에 들어가기 전 큰 동력이 될 것 같아요. 2차 전시를 하는 '까페 창비' 전시실은 카페를 겸한 복합공간이기 때문에 큐레이팅이 훨씬 까다로웠어요. 전시의 동선도 순서도 모두 완전히 달라졌는데 수많은 결정의 순간들에 정확한 판단을 내려야 하는 일은 좋은 경험이 됐어요. 제 작품 전시가 진행되고 있는 공간에 사람들이 앉아서 책을 읽고, 공부하고, 서로 만나 이야기를 하며 몇 시간이고 오래오래 머무는 모습을 보니 여기 전시실의 주인이 이 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들이 무심하게 공간을 채우고 있는 모습이 아름답다고 느껴졌어요. 정식 갤러리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는 공간이에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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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의 작품을 실제로 보면 감상의 차원이 달라집니다. 이번 작품을 만드시면서 특히 많이 한 생각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숲 속 재봉사의 꽃잎 드레스』는 색깔 책이에요. 그 동안 자연의 재료를 다루면서 그 색깔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깊이 느꼈기 때문에 독자들에게 그 느낌을 꼭 전하고 싶었어요. 주변에서 수없이 만나지만 관심 없는 사람들의 눈에는 좀처럼 들어오지 않는 자연의 작은 것들, 그 섬세한 아름다움을 다시 보게 만들어 주고 싶었어요. 식물들을 채집하거나 꽃시장에서 한 묶음을 사와 잎을 따서 가지런히 배열해 말리고 일주일쯤 후 다 말린 것들을 열어 볼 때는 정말 두근두근 설레요. 얼마나 예쁜 자연의 색종이들이 생겨났을까 기대가 돼요. 작업할 때면 늘 의욕이 차오르면서 즐겁고요. 자연의 재료에는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북돋는 힘이 있어요. 이 작은 나뭇잎, 꽃잎들이 얼마나 예쁜지 모두에게 보여 줄 테야! 작업하며 그런 생각을 가장 많이 했죠. (웃음)


전작 『숲 속 재봉사』, 『숲 속 재봉사와 털뭉치괴물』과 달랐던 점이 있다면요?


‘숲 속 재봉사 시리즈’의 1,2번째 책인 『숲 속 재봉사』『숲 속 재봉사와 털뭉치 괴물』은 각 각 숲 속 재봉사의 등장과 그를 찾아온 강아지의 특별한 사연이 담긴 서사가 있는 책이었다면 『숲 속 재봉사의 꽃잎 드레스』는 놀이책으로 기획이 되었어요. 그래서 어디를 펴서 먼저 보고 놀아도 상관없을 만큼 각 색깔 장면의 개별적인 완성도에 공을 들였어요. 꽃이 담고 있는 미묘하고 다양한 색깔을 잘 표현하기 위해 이전의 어떤 작품보다도 식물을 이용한 콜라주 기법이 많이 사용되었어요. 화면을 구성하고 있는 꽃과 잎들이 모두 한데 모여 한 가지 색깔의 이미지를 보여주도록 힘썼습니다.


작업하는데 어려움은 없나요?


작업실이 집에 있기 때문에 주부로서의 일이 작업과 분리되어 있지 않아 집중하는데 조금은 특별한 노력을 필요로 해요. 마음속 스위치를 켜고 끄면서 그 때 그 때의 역할에 따라 모드를 바꿔 임하죠. 작업 전에는 항상 채집의 시기가 있어요. 그 때에만 꼭 피고 나는 것들이 있기 때문에 미적거리다가는 금세 시기를 놓치게 되죠. 나들이를 가고, 여행을 가고, 산책을 다니면서 조금씩 조금씩 다람쥐가 도토리를 모으듯 재료를 모아요. 곧 다시 올 것만 같고 내일 채집해도 될 것 같아 지나친 것들은 다시는 못 만나기 일쑤라서요. "지금 아니면 안돼"하는 도도함 때문인지 자연의 재료들은 더 소중하고 예쁘게 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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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집한 식물을 잘 관리하는 것도 어려울 것 같은데요.


변색되지 않도록 잘 말리고 갈무리해서 분류해 놓는 것도 큰 일과 중에 하나죠. 때로 자수라던가 뜨개질이라던가 다음 작업에 필요한 일들을 배우러 다니기도 해요. 딱 작업에 필요한 만큼만 배우는데요. 공예적으로 전문가스러워질 때 생겨나는 무거움을 경계하기 때문이에요. 작업 책상에 앉을 때는 항상 최상의 컨디션이 되도록 힘씁니다. 피곤하거나 졸리면 의욕이 떨어지니까요. 원화 작업하는 시기에는 외출도 잘 안 하고 전화도 안 하고 집안일도 가볍게만 해요. 스위치가 작업 모드로 켜져 있으면 생활의 모든 것을 작업에 맞추고 있어요.


작품을 만들면서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머릿속에만 있던 이야기나 이미지가 누구나 보고 읽고 만질 수 있는 물성을 가진 책이 되어 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이 정말 매력적인 일이에요. ‘숲 속 재봉사 시리즈’를 통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크게 두 가지 입니다. 


첫 번째는 “자연의 예쁜 것들을 자세히 좀 보아 주세요”입니다. 우리 곁에 늘 있지만 무심히 지나치는 자연의 작고도 아름다운 모습들을 ‘숲 속 재봉사’를 통해 다시 발견하고 만나게 해주고 싶어서요. 두 번째는 “우리 함께 만들어 볼까요?”입니다. 책을 보고서 무언가 만들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는 독자들을 종종 만나곤 해요. 만들기의 주체는 바로 나 자신이에요. 내가 주인이 되는 활동, 놀이가 점점 사라지고 있거든요. 사람들의 마음을 일으키고 북돋아 손을 움직이게 해서 이세상의 하나 밖에 없는 것을 만들어 내는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이런 저의 마음이 그대로 전해질 때, 그리고 실제로 그런 일들이 일어날 때 정말 보람되죠.


독자들이 이 책을 어떻게 감상하면 좋을까요?


아이들에게 색깔을 처음 알려줄 때는 빨강은 사과, 노랑은 바나나 하는 식으로 색깔과 사물의 이름을 서로 짝 지으면서 가르쳐주는 것이 일반적인 방식일 거예요. 『숲 속 재봉사의 꽃잎 드레스』는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연이 지닌 색깔의 풍성함을 느끼고 그 안에서 놀기를 청해요. 빨강 안에는 사실 얼마나 많은 빨강이 존재하는지, 초록 안에는 또 얼마나 다양한 초록이 있는지요. 그 풍성한 아름다움을 즐겁게 감상하면서 각 각의 장면 안에 들어있는 꽃잎 드레스를 찾아보고 색깔 동물들을 찾아보세요. 그리고 아이들이 그 옷을 입었을 때의 자신의 기분을, 책에 나오는 아이들처럼 표현해보기를, 이 색깔 옷을 입으니 어떤 기분인지, 무얼 하고 싶은지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이야기 하는 시간을 많이 갖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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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도 평생 아이처럼 그리기 위해 노력했다


작가님이 어렸을 때, 어머니께서 특별한 계획 없이 미술학원을 보내시면서 미술에 관심을 갖게 되셨다는 이야기가 인상 깊었어요. 


제가 늦둥이로 태어났는데, 그 때 엄마는 나이가 40세였어요. 당시 젊은 엄마들의 양육 방식이나 유행을 잘 모르셨어요. 집이랑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유치원 대신 5살부터 미술학원에 보내셨으니까요. 초등학교 졸업 때까지 매일 다녔던 미술학원에서는 더 가르칠 것도 할 것도 없어 선생님 밑천을 곤란하게 하는 학생으로 하다 하다 쌀과 팥으로 모자이크까지 하며 그냥 매일 가서 뭐든 그리고 만들고 놀았어요.


지금 아이들은 꿈꾸기 힘든 일인 것 같아요. 부모들은 대개 교육을 시킬 때 뭔가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원하잖아요.


그렇죠. 하지만 저희 엄마는 제 그림 실력이 나날이 향상되는 걸 기대하지 않았고, 대회를 나가서 상을 받아 오기를 바라시지도 않았어요. 그냥 제가 재미있어하고 좋아하니까 보내주셨어요. 오늘은 뭘 했니? 얼마나 잘했나 보자 그런 말씀은 전혀 없었죠. 아마도 집안 식구들 치다꺼리로 여념이 없으셔서 그러셨을 거예요. 적당한 관심 속의 무관심 속에서 천천히 화가의 꿈을 키워나간 것 같아요. 매일 그림을 그리는데 어찌 실력이 늘지 않을 수 있었겠어요? 잘하는 일을 어찌 재밌어 하지 않을 수 있었겠어요? (웃음) 어린 시절 나는 당연히 그림 그리는 사람이 될 거라는 생각을 했고 화가가 아닌 다른 길은 한 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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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도 좋아하셨나요?


제가 아직 한글도 깨치지 못한 5살 때, 엄마가 읽을 수도 없는 책 100권을 사주신 적이 있어요. 어린 저는 그 안의 내용이 너무 궁금했어요. 아름다운 책의 표지와 흑백의 드로잉 삽화 몇 점이 전부인 책을 들춰보고 상상의 나래를 펴고 애 닳아 하다가 결국 글씨를 깨치고 한 권 한 권 읽어 나가기 시작했는데, 그 당시의 독서는 저를 멀리멀리 끝이 없는 곳까지 데리고 가줬어요. 메리 포핀스와 별의 눈동자가 옆에 있었고, 15소년과 무인도에 표류하고, 꿈을 찍는 사진관에 드나들다 보면 아무리 혼자 있어도 하나도 심심하지가 않았어요. 초등학교 시절 내내 100권의 책을 반복해서 읽고 또 읽고 했답니다. 엄마는 작정한 것도 아니면서 잘 모르는 채로 저를 지금의 그림책 작가가 되기에 꼭 필요한 것들을 주셨죠. 

 

요즘 부모들은 목적 없는 교육은 잘 못하는 것 같아요.


물론 옛날이기에 가능했던 일이겠지요. 요즘 아이들은 상황이 훨씬 좋지가 않아요. 아이들이 너무 바빠요. 아이들에게 스스로 놀고, 생각하고, 책 읽을 수 있는 시간을 좀 줬으면 좋겠어요. 지나가다 새로 핀 꽃, 돋아난 나뭇잎을 한 번이라도 들여다 볼 수 있는 시간을 좀 주세요. 당장은 꼭 가르쳐야 할 공부고, 꼭 보내야 할 학원인 것 같아서 아이들 몰아붙였는데,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너무 많은 정보로부터 귀를 좀 닫고 대신 아이의 마음에 귀를 기울여 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러려면 엄마가 불안에 잠식 당하지 않을 튼튼한 마음의 중심이 있어야 하지요. 아이에게 시간을 주는 일은 방치된 시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관심과 사랑을 전제로 한 아이가 그것을 충분히 알고 느끼고 있는 가운데서 주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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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는 게 참 부족한 부모들이 많아요. 아이가 조금이라도 지루해 하면 뭔가 새로운 걸 줘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을 느끼고요.


사람의 마음은 늘 무엇인가를 향하기 마련이어서 아이의 마음에 무관심과 외로움이 싹튼다면 그것을 대신 채워 줄 곳으로 마음이 흐르게 되죠. 마음의 허전함을 잊게 해 줄 너무 완벽한 장난감, 현란한 게임 속에서 아이들은 스스로 생각해서 놀 힘을 잃고, 엄마들은 잠깐의 편안함을 위해 영영 아이들을 그것들에 내어주고 말죠. 지나고 보니 아이들의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내는 일은 인생에 있어서 너무 짧은 시간이더군요. 엄마가 세상 전부인 것 같던 아이들도 결국은 제 세상을 향해 떠나기 마련이지요. 아이가 정말 부모를 필요로 하는 그 시간들을 함께해줬으면 좋겠어요. 그 빛나는 때를 누렸으면 해요. 피곤하고 귀찮아도 조금 더 아이와 함께 놀고 이야기하고 관심사를 공유하고 존중 받고 있다는 느낌을 항상 주도록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일하는 엄마라 함께 있는 시간이 짧을지라도 부모의 사랑에 대한 믿음이 있는 아이는 부모의 형편을 배려할 줄 알게 되죠. 부모와 깊은 유대가 형성된 아이는 부모가 일일이 함께하고 제어해 줄 수 없는 세상의 유해함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킬 힘을 가지게 됩니다. 부모가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가장 큰 것이 그런 것 아닐까요?


미술은 어떻게 즐기면 좋을까요? 미술교육에 관한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책을 읽고 자연을 자주 접하고 몸을 움직여 노는 모든 것이 그림을 잘 그릴 수 있는 비결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머릿속의 생각의 재료가 풍부해야 그려지는 그림도 풍성해지는 법이니까요. 어린 시절의 심심했던 시간을 채워주었던 여러 놀이와 책을 통해 빚어진 상상력들이 저를 그림책 작가로 만들어 준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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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재능이 보이면 전문적인 교육을 시켜야 하지 않나요?


생각한 것을 시각적으로 구현해 내는 일은, 물론 재능의 차이도 있고 훈련이 필요한 일이기도 해요. 하지만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까지는 그런 훈련을 받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본인이 좋아하고 원한다면, 그림 실력이 느는 것에 대한 압박 없이 자유롭게 받는 미술 교육라면 나쁘지는 않겠죠. 하지만 아이가 너무 일찍 정식 미술교육을 받게 되면 아이의 그림이 어린이다운 천진함이 많이 사라져요. 대상을 그대로 묘사하려고 하다 보니 창의적인 표현에 제약이 생기기 마련이고요. 그 또한 당연한 성장의 과정이고요. 피카소는 평생 아이처럼 그리기 위해 노력했다고 하잖아요. 그러니 피카소도 부러워하는 아이들의 그림이 다듬어 지기 전, 그 거침없는 표현력이 사라지기 전 마음껏 솜씨를 발휘하도록 북돋아 주면 어떨까요?


그동안 많은 강연회를 통해 어린이 독자를 만나셨는데요. 아이들이 가장 자주 하는 질문은 무엇인가요?


"이 책을 정말 만들었냐?"는 질문을 자주해요. 어떻게 이 책을 만들었느냐, 어떻게 작가가 되었느냐는 질문도 하고요. 아마 자기가 읽은 책의 작가가 곁에 있다는 것이 신기한 모양이에요. 그림책 작가가 되고 싶은 친구들이 있냐고 물어보면 갈수록 손드는 아이가 제법 많아집니다. 제가 만난 아이 중 누구라도 저와의 만남이 마음에 박혀 인생의 중요한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늘 아이들을 정성을 다해 대하려고 해요. 강연 중에는 책이 만들어지기 까지를 담은 작업실의 작업 과정 사진을 보여주며 한 권의 책이 나오기까지의 궁금증을 풀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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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스스로 장난감을 만들어 보라고 권유하신다고 들었어요.


강연회를 가면 책에 나오는 주인공 인형을 만들어 본다든가 작은 옷을 만들어 패션쇼를 벌인다든가 아이들과 책과 연계한 만들기 활동들도 꼭 함께해요. 스스로 장난감을 만들어 보는 일이 중요한 이유는 소박하지만 스스로가 주인이 돼서 놀 수 있는 놀이감을 만들라고요. TV 프로그램과 연계된 마트에서 파는 비싼 장난감들은 딱 그 역할 밖에 못하지 않냐며 말이죠. 아이들은 집에 가서도 만들어 보겠다고 남은 재료도 다 싸가지고 갑니다. 지난주 화성 수기초등학교에서 만난 2학년짜리 남자친구는 쉬는 시간에 저에게 따로 와서 “숲에서 나뭇잎을 채집할 때는 거미를 조심하라”고 충고를 해주더니, 제가 집에 갈 때는 눈을 바닥에 깔고는, 작은 소리로 "또 만나고 싶다"고 그러더군요. (웃음) 같은 활동으로 아이들과 만나더라도 늘 다른 상황, 다른 반응에 즐겁습니다. 아이들이 주는 생기발랄한 에너지가 또 다른 힘이 되곤 합니다.

(웃음) 정말 재밌는 에피소드네요. 앞으로 작품 활동 계획이 궁금합니다.


'숲 속 재봉사 시리즈'는 지금으로서는 다섯 번째 이야기까지 계획되어 있어요. 일단 내년에는 시리즈의 네 번째 이야기 『숲 속 재봉사의 옷장』을 펴낼 예정이에요. 『숲 속 재봉사의 꽃잎 드레스』와 짝이 되는 놀이책이 될 것 같아요. 그 동안은 작품의 텀이 너무 길었다는 생각이 들어 이제부터는 조금 더 부지런을 떨어 보려고 해요. 처음으로 성인을 대상으로 한 재미있는 책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몇 년간의 작품 구상이 촘촘히 있어요. 제게 허락된 이야기를 투명한 매미 껍질처럼 다 비워 낼 때까지 열심히 작업해 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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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 속 재봉사의 꽃잎 드레스최향랑 글그림 | 창비
꽃잎과 나무껍질 등 우리 주변의 자연물을 가지고 이 세상의 다양한 색채와 색채에 따른 감정의 변화를 특유의 밝고 따뜻한 시선으로 잘 풀어냈습니다. 아름다운 자연의 색을 통해 아이들의 정서를 섬세하게 자극합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도언 “시인이야말로 자본에 민감한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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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세속에 맨주먹으로 맞서거나 혹은 그 반대로 은둔해 버리는 존재로 여겨진다. 또한 그들만의 세계 안에서 공고하게 자신의 작품을 쌓아나가며, 더욱 첨예한 문학으로 나아갈 뿐 자본과 생계, 정치 등에는 등을 돌린 존재로 비치기도 한다.


<채널예스>에 2015년 여름부터 2016년 1월까지 15명의 시인을 만나 인터뷰한 ‘김도언의 시인의 얼굴’ 칼럼이『세속 도시의 시인들』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웬만한 사람들은 알 만한 이름의 시인도, 십수 년 동안 한 권의 시집만 낸 시인도, 등단하자마자 많은 관심을 받은 젊은 시인도 있다.


소설가 김도언은 “편협하게 알려져 있는 시단 주류의 생태를 바로 알리는 동시에 자발적인 소회를 감행하는 비주류 시인들의 목소리를 골고루 담기 위해 노력”했다고 서문에 적었다. 말마따나 인터뷰를 하는 동안에도 시종일관 문단과 자본, 주류와 비주류, 시인과 시 세계에 대한 노력이 눈 안에 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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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 인터뷰


처음 시인을 인터뷰하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원래부터 시인들에 대한 관심이 많았어요. 그래서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잡지에 내가 좋아하는 시, 내가 좋아하는 시인, 이런 류의 글도 많이 써 왔어요. 어찌어찌 하다 보니 뒤늦게 시인으로 등단하기도 했고요. 그런 것들이 합해져서 김도언이라는 소설가가 시에 애정이 많다는 게 외부에 알려진 모양이에요. 연재와 책을 내자는 제안은 출판사 대표님이 먼저 했어요.


제안 받았을 때 어떠셨어요?


상당히 반가웠죠. 기분 좋게 흔쾌히 받아들이고 인터뷰를 할 만한 시인들의 리스트를 짰어요. 공교롭게 작년 딱 오늘이 첫 번째 인터뷰를 한 날이에요. 페이스북에 보니까 1년 전 오늘 내용으로 김정환 시인을 인터뷰했다고 나오더라고요.


섭외도 다 작가님이 하셨다고 들었어요.


출판사나 저 둘 다 할 수 있는데, 워낙 제가 네트워크를 다져놓았으니까. 제가 하면 훨씬 효율적이더라고요. 편하고, 설득하기도 좋고.


섭외하면서 사심도 들어갔을 것 같습니다.


친함의 여부는 가급적 배제하려고 노력했어요. 인터뷰를 한 열다섯 분 중에는 전혀 친분이 없는 분들도 많아요.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평소에 시를 좋아한다는 걸 평소에도 아시니까 인터뷰 하고 싶다고 하면 대부분 받아주셨어요.


이미 친한 문인은 친밀감 때문에 생기는 위험성은 없었나요?


친한 경우에는 이미 너무나 많은 걸 알고 있기 때문에 질문을 던지면 튕겨 나갈 수 있거든요. 뭐 그런 새삼스러운 질문을 던지냐는 식으로. 하지만 냉담할 정도로 진지하게 물어보면 사람들도 자연스럽게 공적인 작업으로 받아들이더라고요. 스킬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인터뷰할 때 아무리 친해도 이건 공적인 차원의 질문이고 당신은 이것에 대해서 성실하게 대답을 해야만 한다는 분위기를 만들려고 노력했어요.
 
사정상 싣지 못하거나 인터뷰하지 못한 분도 있었나요?


시인들의 작품이 가지고 있는 문학성, 작품성, 문학세계도 중요했지만, 그보다 중요했던 건 그분이 얼마만큼 고유하고 독자적인 태도로 시인으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가를 고려했어요. 4, 5년 전쯤에 세속적 삶과 절연하고 출가해서 스님이 되친 차창룡 시인이나, 여러 가지 건강상의 문제로 본의 아니게 폐쇄적인 삶을 사는 최승자 시인이 개성적인 시인으로서의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고 생각해 인터뷰를 요청 했는데, 그분들의 상황이 맞지 않아서 못하게 됐어요.


인터뷰라는 형식이 어렵다는 생각을 합니다. 특히 문단의 선배, 혹은 선생님이라고 불릴 만한 분을 인터뷰할 때는 인터뷰어로서 인정을 받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도 하셨을 것 같은데요.


10년 전쯤 서평 전문잡지 <출판저널>에서 기자 생활을 했었어요. 서평 전문 잡지다 보니까 문학 분야의 저자뿐만 아니라 인문, 예술 분야의 저자를 많이 만났어요. 저자들과 인터뷰하는 자세는 다른 게 없더라고요. 그분들의 지적인 작업의 흐름을 성실하게 쓸 준비를 하고, 책을 꼼꼼하게 읽으면 자연스럽게 인터뷰를 하는 과정에서 제가 숙지하는 작품 세계와 문제의식을 질문 속에 담아내게 되죠. 그러면 인터뷰이도 굉장히 좋아하고 이 사람이 준비를 잘 해왔다고 알게 돼요. 의도적으로 인정을 받으려고 하는 왕도는 없는 것 같아요. 얼마나 성실하게 읽었느냐, 그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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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타자에 대한 몰입과 지적인 에너지가 많이 투여된 작업의 결과물이다”라고 쓰셨는데, 인터뷰 작업에서 특히 힘든 점이 있으셨나요?


다른 인터뷰어보다 유리했던 게, 저 역시 소설을 쓰는 문단 동료이자 후배, 선배였기 때문에 소설 작업을 하면서 제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잖아요. 그분들도 제가 어떤 작업을 해 왔는지 아는 분들도 계시니까 상호 신뢰가 어느 정도 만들어진 상태이지 않았나 싶어요.


책을 읽는 내내 인터뷰를 즐겼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인터뷰한 열다섯 시인이 현재 한국 시단에서 열심히, 개성을 가지고 작품활동을 하는 시인의 대표성을 띄고 있다고 판단해요. 물론 제가 만나보지 못한 분 중에도 훌륭한 분들이 많으시겠지만.


시인을 정하면서 나름대로 균형을 고려했어요. 시단의 주류, 큰 영향력을 가진 주류 시인이 있고, 반대로 상당히 비주류적인, 자신을 자발적으로 소외시키는 분들도 있고. 또 어떤 분은 현대 시의 담론을 주도적으로 만들고 이끌어가는 시인도 있고요. 이야기하면서 이런 다양함이 축적되다 보니까 제 머릿속에 1980년대 이후부터 2000년대까지 시단의 그림이 그려지는 거예요. 시단이 일종의 정원이라면 인터뷰 전에는 소나무라든가, 장미라든가, 아니면 귀퉁이 민들레라든가 눈에 먼저 띄는 것만 봤는데 인터뷰를 하니까 정원 전체가 보이는 거예요. 다양한 나무와 어떤 총체성 같은 것이 나름대로 정리가 되는 것이 상당히 즐거웠어요.


시인이 쓴 시와 시인의 이미지가 괴리되거나, 매치되지 않는 순간도 있었나요?


매치가 안 됐다기보다, 시인의 이미지가 독자들에게 만들어지는 과정을 경계하는 시인이 있었어요. 예를 들면 문태준 시인은 중요한 문학상 같은 것도 받고, 한국 정통 서정시의 맥을 잇는 시인으로 많이 알려져 있거든요. 그런데 이야기를 해 보니 그분이 자신의 서정적인 관계와 상당히 긴장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을 많이 하더라고요. 서정적으로만 당신의 시가 읽히고 소비되는 것도 나름대로 경계를 하고. 그런 점이 상당히 멋있어 보였어요. 그 이미지를 유지하고 강화해도 얼마든지 시인으로서 유리할 텐데 본인의 위치와 항상 긴장 관계를 유지하는 거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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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과 자본


서문에 “물신주의의 광풍에 시인들이 자신을 어떻게 방어하고 있는지도 관심사였다.” 라고 적으셨습니다. 독자분들도 흔히 시인은 자본에 취약할 거라고 생각을 합니다.


시인이 실질적으로, 실존적으로 자본에 취약한 존재인 건 맞아요. 개인적으로 자본에 취약해야지만 그런 위치에서 그 시대에 대해서 당당한 발언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여기서 발언은 시를 통한 발언이죠. 실제로 시인 중에는 사회생활을 영리하게 하는 분들, 계세요. 교수도 하고 책도 경제적으로 다양하게 내고요. 물론 그렇지 않은 분들도 많죠.


제목의 세속도시에서 세속이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함유하는 뜻이 자본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자본에 취약하든 덜 취약하든 시인은 자본에 대해서 굉장히 민감해요.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않은 시인은 자본이 베풀고 있는 편리에 휩쓸려 사는 삶이 어떻게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가에 대해서 시를 통해 발언하고, 또 반대로 경제 활동을 비교적 잘해서 여유가 있는 시인들은 자본에 여유가 있는 것에 대한 죄책감과 분열을 가지고 있어요. 왜냐하면 내가 자본에 대해서 나름의 거래를 하고 긴장 관계를 맺고 있어야지만 시적 발언을 할 수 있으니까요. 시는 소설하고는 다르게 세태나 풍속에 대해서 그대로 재현하는 장르는 아니에요. 비판을 할 수밖에 없는 내용이고.


시인의 공통점으로 ‘자유와 용서’를 꼽으셨습니다. 비교를 한번 해보고 싶은데, 시인과 소설가 혹은 시인과 비시인 간의 차이는 뭘까요?


외국 같은 경우에는 이 사람이 시인이다, 소설가이다, 이렇게 나누는 일은 없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에서만 시와 소설이 상당히 일찍 서로의 이해관계와 문학적인 담론을 서로 가지면서 독립적으로 장르의 진화를 이루어내서 구분되는 게 있더라고요.


소설가들은 동류의식 같은 게 희박해요. 상당히 공격적이에요. 말하자면 아프리카의 정글에서 혼자 돌아다니는 동물의 느낌? 왜냐면 소설은 자신만의 독립된 세계의 총체성을 혼자 건축하는 장르거든요. 자신이 그 세계 안에서 총체적인 생태를 구현하는 게 소설가라면 시인들은 자기가 관심이 있는 세계의 어느 한 영역, 어느 한구석을 집중적으로 파고들어요. 시인들은 자기가 파고든 세계 안에서만 안전한 존재예요. 그 울타리만 넘어가면 상당히 불안하고 위태롭죠. 그래서 시인들은 다른 쪽에 있는 시인과 연대하고 결속하려는 의지가 강해요. 내가 가지고 있는 영역을 보여주면서 서로 교류하는 거죠. 그래야지만 내가 더 강해지고 안전해질 수 있으니까. 시인들은 술자리에서도 혈족처럼 끈적끈적해요. 술자리가 깊어져도 서로를 끝까지 챙겨주고. 소설가들은 그냥 화장실 갔다가 가버리고 이런 게 있더라고요(웃음).
 
소설가나 다른 문인을 인터뷰하고 싶은 생각은 있으세요?


소설가로는 17년째입니다. 소설가에 대해서는 별로 궁금한 게 없어요. 한다면 세속 도시의 시인들 시즌 투, 쓰리 버전을 하고 싶어요. 작가들이 외연을 유연하게 넓혔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소설가는 소설만 쓰고 시인은 시만 써야지 인정하는 분위기고, 다른 장르를 쓰면 한눈팔지 말라고 해요. 소설가와 시인들이 독자들과 사회에 다채롭게 기여할 가능성을 오히려 막는다고 생각해요. 저는 소설가나 시인이 우리 사회를 관찰하는 기록 문학이나 르포르타주 같은 것에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어떤 저자 그룹이 그런 글을 유연하게 독자들과 같이 호흡하면서 쓸 수 있겠어요. 기회가 주어진다면 독자들의 눈높이에서 문학적으로 우리 사회를 관찰하고 기록하는 그런 글쓰기를 하고 싶어요.


황현산 선생님과 신형철 선생님이 추천사를 써 주셨습니다.


두 분이 요새 가장 ‘핫’한 평론가분들이잖아요. 황현산 선생님은 가장 어른이시고. 추천사를 받으면서 부담을 느꼈어요. 책 내용이 시단의 풍요로운 생태계를 담아내는 걸 이야기하면서 자발적인 소외에 처해있는 비주류적 시인들의 문학 세계와 글쓰기에 대해서 애정을 가지고 썼는데, 정작 추천 글은 상당히 권위 있는, 영향력을 갖춘, 상품으로 어필할 수 있는 분한테 받은 거잖아요. 제 글쓰기 지향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었어요. 출판사에서는 책을 내고 많이 팔아야지만 자본을 회수해서 또 다른 기획에 투자할 수 있기에 당연히 적극적으로 상업적인 욕망을 가져야 하니까, 그러한 장치로 추천사를 받는다면 제가 그걸 거부할 순 없죠. 개인적으로 귀하고 고마운 추천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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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 시인


현 문단 제도로는 문예지 기고나 신춘문예 등을 통해서 주로 등단하게 됩니다.


빛과 그늘이 상존하는 시스템인 것 같아요. 확실히 지금의 문단 시스템은 문학 엘리트주의라는 혐의를 벗어날 수 없지만, 필요악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왜냐하면 우리나라 같은 경우 현대 문학의 이론과 체제가 전통을 계승한 게 아니잖아요. 서양의 문학을 이식한 이식문학사죠. 소설의 형식, 내용, 이론, 시의 형식, 다 서양 것이거든요. 조선 시대 쓰였던 가사나 시조도 있긴 하지만. 이식 문화라는 건 당대 최고 수준의 지식인들이 이식할 수밖에 없죠.


또 우리나라 문학은 처음에 계몽적인 역할을 했어요. 전반적인 사회 구성원들의 인식 수준을 끌어올리기에는 문학이 제일 효율적이에요. 그런 역사가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엘리트주의가 굳어지면서 문학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생활과 유리된 고고한 지적 유희, 특정한 사람들만의 그들만의 리그로 배타적인 권위 같은 게 생겼거든요. 문학이 원래 사회적인 권위라든가 권력을 추구해선 안 되는데 엘리트주의다 보니 필요 이상의 배타적인 권위와 권력이 핵심 세력에게 주어진 거죠.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편집 위원이나 공모전 같은 시스템을 유지하고. 그런 측면에서는 조금 더 문학이 유연하게 열려 있어야 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시집 한 권 분량을 투고하면 심사해서 출간하는 기획을 하셨다고도 들었습니다.


현재 제가 하고 있는 기획은 아니지만, 권력을 확보하려고 만들어놓은 기준을 계속 충족시켜야지만 시를 발표하고 시집을 출간할 수 있다는 게 너무 자의적이잖아요.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기준은 아닌거죠. 자기 나름대로의 소신을 가지고 쓰는 시인들은 억울하게 영문도 모르는 채 기회의 공평함 같은 걸 갖지 못해요 그런 의미에서 등단을 했든, 등단 했지만 시집을 못 낸 시인이든, 시집 한 권 분량이면 작품성과 시인으로서의 경쟁력을 판단할 수 있겠다는 판단으로 시집 출간을 하는 거죠. 그러면 훨씬 더 동의할 수 있는 기준 같은 것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최근 독립출판에서 나오는 시도 꽤 있는데, 이런 시도도 비슷하게 읽혀질 것 같습니다.


그렇죠.


사람들이 SNS로 시를 공유한다, 최근 시집을 읽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합니다. 사회가 시를 필요로 하는 이유는 뭘까요?


평소에 생각해왔던 걸 말씀드릴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모든 인간은 생존하는 방식과 실존하는 방식으로 존재해요. 생존은 말 그대로 물리적으로 생을 유지하는 거죠. 결혼하고, 아이도 낳고, 자기 일자리를 찾고. 실존은 내가 왜 사는지, 궁극적으로 내가 이 삶에서 어떤 메시지를 던질 것인 것, 내 삶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인지 보는 삶이거든요. 그 실존적 삶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당신이 어떻게 생존하고 있는지는 이미 알고 있어. 어떻게 실존하는지는 당신도 아직 모르고 다른 사람들도 몰라. 당신이 실존하고 있는 방식이 어떻게 되는지 돌아봤으면 좋겠어.’ 하고 생각할 기회를 제공하는 게 시라고 생각해요. 문학작품이 실존적인 차원에서의 삶을 각성시키는 것인데, 시가 소설보다 훨씬 직접적으로 자각하는 느낌을 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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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원이 아닌 온리 원


SNS 활동을 활발히 하고 계세요. 온라인 상으로 만났던 분과 교류한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페친(페북친구)과는 별 교류가 없어요. 말 그대로 소셜 미디어가 됐는데, 홈페이지를 운영하지 않으니 이걸 1인 미디어로 사용합니다. 가급적이면 페이스북에 쓰는 글에 공적인 성격을 입히려고 노력해요. 누가 읽든 안 읽든 제 창구를 잘 이용해서 독자들에게 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중요한 거고, 그것만으로 충분히 제 욕망이 실현되죠.


최근 그림도 자주 그리시더라고요.


미술치료를 배운 적도 없고 개념에 대해서도 이론적으로 알지는 못하지만, 저한테는 그림을 그리는 게 인간으로서 가지고 있는 고통이라든가 상처를 치유하는 방법이에요. 그림을 그리면 마음이 편해지고, 위로가 되는 것 같고. 글 쓸 때와는 다른 위안이 있어요.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둘 다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이잖아요. 글쓸 때와 그림을 그릴 때와 다른 점이 있나요?


글은 개념과 의미를 가져요. 아무리 난해하고 어려운 시라고 해도 나름대로 글쓴이가 집어넣은 의미나 메시지가 들어가잖아요. 또 글쓴 사람은 글에 집어넣은 메시지나 개념이 독자에게 전해지기를 욕망하고, 독자는 메시지를 개념화하고. 상호 욕망이 개입될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그림은 훨씬 자유로워요. 의미나 메시지, 개념을 안 넣어도 돼요. 예를 들어 제가 기린 그림을 그렸는데 제가 의도한 대로 예쁘고 쿨하게 나오면 그냥 그게 기쁜 거예요. 또 글에서는 제가 집어넣은 메시지가 독자들에게 잘 전달되면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느끼는데 그림은 상당히 나이브하고 자유로운 쾌감이 있는 거죠.


오늘 기린 모자도 굉장히 귀엽습니다.


기린 모양 스티커를 사서 직접 꿰맸어요.


좋아하는 술친구 시인은 있으세요?


어울리면 편한 친구들이 두세명 있어요. 주로 시인이죠.


작가님도 어쨌든 자본과 타협하거나 싸워야 하는 문인입니다. 주로 어떤 방식으로 자본과 대결하고 있나요?


1999년도에 신춘문예에 등단했는데 동시에 출판사 편집자 생활을 시작했어요. 2014년까지 작가와 편집자로서의 커리어가 동시에 간 거죠. 큰 출판사에서 문학 파트 편집장까지 하고 그만뒀는데, 말하자면 직장 생활을 병행했던 게 나름대로는 분명한 이유가 있어요. 자본에 대해서 제가 찾은 대안, 나름대로 저항하는 방법이었거든요. 사회생활, 직장생활을 해서 고정적인 월급을 받으면 생활이 되잖아요. 그럼 제가 쓰고 싶은 글만 쓸 수 있는 거예요. 여기저기서 다양한 원고 청탁이 들어오는데 고정적인 수입이 없으면 10만 원, 20만 원을 벌기 위해 쓰고 싶지 않은 원고도 써야 돼요. 글을 팔아야 하니까. 하지만 고정적인 수입이 있으면 정말 쓰고 싶은 글만 쓰고, 쓰고 싶지 않은 글은 거절하는 거죠. 저는 이게 진정한 의미로 작가로서의 독립이라고 생각해요. 작가가 어디 속해있더라도 지속적인 수입이 있으면 쓰고 싶지 않은 원고를 쓰면 돈이 생긴다는 자본의 유혹을 거부할 수 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후배 소설가나 시인들이 정기적인 노동과 고정적인 수입을 갖는 구조를 택했으면 좋겠어요. 그게 자기 문학 세계를 지키는 길이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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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강의도 하고 계십니다. 글쓰기 수업을 들으려는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문학이 기본적으로 경쟁의 영역이 아니라고 늘 강조해요. 모든 사람은 자신만의 고유한 개인 서사를 가지고 있고, 그 개인 서사는 고유하기 때문에 비교할 수 없는 거예요. 여러 가지 문학상이 있어서 마치 1등을 뽑는 것처럼 어떤 사람에게 상을 주고 후보작들을 책으로 묶잖아요. 그건 상업적인 차원에서 출판사와 언론사가 벌이는 일종의 프로모션이죠. 상업적인 차원에서의 액션이고 문학의 본질과는 상관없는 거예요.


에곤 실레는 이런 말을 했어요, “이 세상에는 훌륭한 사람들도 많고 앞으로 훌륭해질 사람들도 많겠지만, 나는 나 자신의 훌륭함이 마음에 든다.” 글쓰기는 같은 출발 선상에서 똑같은 표시 라인으로 달려나가는 게 아니에요. 글쓰기는 각자가 360도 방향으로 뛰어가는 거죠. 그 방향에서 자기의 세계를 만드는 거예요. 베스트 원이 아니라 온리 원이죠. 글 쓰는 사람이 내가 누구랑 경쟁해서 더 좋은 글, 더 인기 있는 글을 쓰겠다는 생각을 가지면 이미 씁쓸할 경쟁의 논리에 빠져들게 되고, 그럼 행복한 글을 못 쓰죠.


요새 읽은 시집, 최근에 읽은 시집 하나 소개해 주시겠어요?


가장 손 가는 데에 가까이 두고 늘 들춰보는 시집이 이면우 시인의 『아무도 울지 않는 밤은 없다』라는 시집인데,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따뜻한 시예요. 그냥 당의정처럼 겉만 쓴맛을 달래주는 게 아니고 깊이가 있는 따뜻함이랄까. 독자 분들도 보셨으면 좋겠어요.


다음 출간 예정인 글이 있나요?


로고폴리스 출판사 대표님이랑 산문집을 한 권 또 하기로 했어요. 개인적인 차원에서 경험했던 이별, 사적인 경험과 아울러서 이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이별을 이야기하면서 만남과 사랑이 빠질 수 없겠죠. 남자의 이별과 만남을 주제로 쓰게 될 것 같습니다.

 

‘김도언의 시인의 얼굴’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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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 도시의 시인들김도언 저/이흥렬 사진 | 로고폴리스

소설가 김도언이 시단의 원로라 할 수 있는 김정환, 황인숙 시인부터 젊은 시인을 대표하는 서효인, 황인찬 시인까지 15명의 시인들을 인터뷰한 내용을 묶은 인터뷰집이다. 15명의 시인들은 “자신의 말과 얼굴을 또렷하고 구별되게 드러내는 시작과 자기 방식의 행보라고 부를 수 있는 행보로 한국 시단의 가장 내밀한 풍경을 구성한다는 점에서 한국 시인들의 인생을 대표”(황현산)하는 시인들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출판계 사람들] 오직 그림책만 내고 싶다 - 민찬기 그림책공작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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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곧 콘텐츠가 되는 세상이다. 좋은 책을 만들었어도 알리지 않으면 독자를 만날 수 없다. 2014년에 문을 연 1인출판사 '그림책공작소' 민찬기 대표는 열혈 편집자이자, 마케터, 영업자다. 오직 그림책만 내고 싶어 출판사 이름부터 직구를 날린 그는 발행인인 동시에 그림책공작소장이다. 민찬기 대표는 자식 같은 그림책을 내놓고 눈 밝은 독자들이 그저 발견해주기만을 기다리지 않는다. 직접 SNS, 블로그를 통해 독자를 만나고 편집 일지를 기록한다. 1인출판사를 운영하는 일이 녹록하지 않아 때로는 하소연도 늘어놓지만 그림책에 대한 애정과 철학만큼은 누구도 부럽지 않다.
 
그림책공작소는 첫 책 『로켓 펭귄과 끝내주는 친구들』을 시작으로 『세상에서 제일 바쁜 마을』, 『내 친구 어디 있어요?』, 『춤을 출 거예요』, 『비에도 지지 않고』등 그림책 16권을 출간했다. 국내 작가의 창작 그림책은 5권, 나머지는 그간 어린이책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면서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았던 포르투갈, 네덜란드 등 해외 작가의 그림책이다. 올해 6월은 그림책공작소가 딱 2년이 되는 달이다. 쉼 없이 달려왔지만 "별 일이 좀 생겼으면 한다"는 민찬기 대표를 서울 마포구 상수동에 자리한 그림책방 '베로니카 이펙트'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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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시장에 직구를 던지고 싶었다

 

최근 그림책공작소에서 펴낸 그림책 『나의 엄마』의 반응이 무척 좋습니다. 예스24 ‘오늘의 책’에도 선정됐는데요. 엠디들이 책을 보고 울었다는 후문을 들었습니다. ‘펑펑 울었다’는 독자 리뷰도 많이 봤어요.

 
저도 만들면서 울컥했던 책이에요. 사람의 마음이 이렇게 같구나 싶었고, 고맙기도 했어요. 『나의 엄마』를 그리신 강경수 작가님하고는 10년 지기예요. 작가님은 만화 작업을 하다가 ‘2011년 볼로냐아동도서전 논픽션 부문 라가치상 우수상’을 수상한 『거짓말 같은 이야기』로 데뷔를 하셨는데요. 제가 어린이 그림책 출판사에서 일했을 때, 인연이 닿았어요. 출판사에서 그림책 공모전을 열었을 때 강 작가님이 작품을 출품하셨어요. 본심에는 올랐지만 아쉽게 탈락하셨는데, 출판사로 전화를 주셨어요. 작품에 대한 피드백을 받고 싶다고요. 제가 심사위원은 아니었지만 담당자로서 의견을 드렸더니, 본인도 작업하면서 문제라고 생각했던 부분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때부터 친해졌어요. 매니저 같은 편집자라고 할까요? 그림책공작소를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작업을 함께하게 됐어요. 

 

각별한 사이로 보이는데, 작가님께 미안한 마음이 있다고 블로그에 글을 올리셨어요.

 

네임 밸류가 높은 작가님이신데 제가 선인세를 많이 못 드리고 있으니까요. 사실 작가에게는 선인세가 월급인 셈인데, 더 많이 못 드리는 형편이라 죄송한 마음이 있어요. 만약 강경수 작가님의 그림책이 큰 출판사에서 나왔더라면 더 많이 조명을 받을 수 있을 텐데, 그림책공작소는 아직 신생 출판사니까요. 전파력이 좀 아쉽죠. 제가 보기엔 너무 좋은 책이니까 속상하고 아쉬워요. 정말 공부도 잘하고 착한 자식인데, 부모가 대학을 못 보내는 심정이라 할까요? 그런 마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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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출판사의 이점도 있을 것 같은데요.

 

가장 잘 통하고 재밌다고 하세요. 예전에 격주간지 <기획회의>에 편집 일지를 기고한 적이 있는데요. 강경수 작가님과 제가 또래이기도 하고 목소리나 톤, 자주 쓰는 어휘들이 좀 비슷해요. 그래서 편한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이번에 펴낸 『나의 아버지』는 표지에 타공을 했는데, 강 작가님의 의견이었어요. 되게 미안해 하시면서 타공을 하고 싶다고 말씀하셔서 제가 되려 죄송하더라고요. 책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작업인데 비용이 많이 드는 일이니까 작가님도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신 거죠. 솔직히 저도 얼마나 비용이 드는지 몰랐어요. 하지만 책의 의도에 맞는 제작방식이라면, 작가의 의견을 따라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정가를 산정할 때 가격을 조금 높여야 하나? 고민했지만, 요즘 도서정가제로 인해 독자들이 책을 비싸다고 생각하잖아요. 출판사가 조금 덜 이익을 보더라도 좋은 책을 만드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어요. 

 

『나의 아버지』는 그림뿐만 아니라 글에도 시선이 가더라고요.

 

군대에서 팔고 싶은 그림책이에요. 군인들이 아마 많이 공감할 것 같아요. 『나의 엄마』 같은 경우는 ‘엄마’라는 글 외에 다른 문장이 없잖아요. 텍스트를 넣으면 독자들의 공감을 해칠 것 같았어요. 반면 아버지는 늘 말 없이 있는 존재잖아요. 어떠한 이야기가 있는 게 더 나을 거라 생각했어요. 작가님의 생각도 같았고요. 같은 듯하지만 조금 다른 작품인 것 같아요.

 

그림책공작소가 문을 연 게 2014년 6월이니, 딱 2년이 됐습니다. 그림책 편집자로서 오랫동안 일하셨는데요. 1인출판사를 시작한 계기가 있었나요?

 

학습지를 개발했던 ‘노벨과 개미’와 주니어플라톤 교재를 개발했던 ‘한솔교육’ 근무 기간을 제하고도 그림책을 만든 지, 10년이 넘었어요. 저 나름으로 그림책에 대한 개념이 명료해지고 호불호가 확실해지더라고요. 창업을 하기 전 해에는 어린이책 출판사에서 총괄로 일했는데요. 총괄임에도 불구하고 제가 생각하는 좋은 그림책을 마음껏 출간하기는 어렵더라고요. 좀 답답했습니다. 고용된 편집자로서 절대 충족되지 않는 편집 욕구랄까요? 작가와 최선을 다해 그림책을 만드는 것은 어느 출판사에서든 편집자의 소임을 다하면 되는데요. 출간 이후 판매와 후속 관리까지 확실하게 처리하는 것, 작품과 작가에게 끝까지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는 자율권과 책임감은 늘 고민이 됐어요. 결국 이런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발행인이 되는 일이라 생각했고 일을 벌였죠. 예상한 것보다 정말 많이 힘들지만, 후회는 안 합니다. (웃음) 

 

그림책공작소라는 이름은 어떻게 탄생했나요?

 

야구로 치면 직구라고 할까요? 출판 시장에 직구를 던지고 싶었어요. 그림책만 하고 싶다고요. 저희 출판사 로고를 보면 펜과 붓이 있어요. 그림책을 만들 때 꼭 필요한 도구잖아요. 로고만 봐도 이 이 출판사가 어떤 책을 만드는 곳인지 알았으면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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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책이 2014년 10월에 펴낸 『로켓 펭귄과 끝내주는 친구들』인데요. 네덜란드에서 나온 그림책입니다. 표지 그림만으로도 되게 궁금해지는 책이에요.

 

익숙한 동물들의 놀라운 비밀을 알려 주는 그림책인데요. 총 24마리 동물이 등장해요. 네덜란드 원서에는 총 50마리의 동물이 소개됐지만, 국내 번역판은 우리에게 익숙한 24마리 동물 친구들을 선별했어요. 생태와 예술이 결합된 아름다운 그림책이라 출간을 하면서도 뿌듯한 마음이 컸어요. 이 책은 수익금 일부를 자연환경국민신탁을 통해 서울대공원 지정 멸종 위기 12종에 기부했어요. 첫 책인 만큼 의미가 컸던 작품이에요.

 

해외 그림책은 어떻게 발굴하시나요?

 

“난 한 놈만 패!”라는 영화 대사가 있잖아요. 제가 그림책만 보다 보니 좋아하는 작품 성향이 명확해요. 그래서 그림책공작소만의 정체성, 방향과 비슷한 성향의 작가 또는 해외 출판사를 늘 예의주시해요. 신생 출판사가 분명한 기준도 없이 시류나 인기 작가를 따라가면, 자금력부터 시작해 모든 부분에서 기성출판사와 경쟁할 수 없어요. 방향성 없이 몇 년 가다 보면 어느 날 출간한 책 로고를 가렸을 때 어느 출판사 책인지 가늠할 수조차 없게 되겠죠. 시간이 걸리겠지만 로고를 가려도 ‘그림책공작소 책인가?’ 싶은 그림책을 찾고자 노력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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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후에도 좋은 그림책을 만드는 출판사

 

대학에서는 국문학을 전공하셨는데요. 학창시절에도 출판에 관심이 많으셨나요?

 

고등학생 때 기형도 시인의 시집을 읽을 때는 시인이 되고 싶었고, 야간 자율 학습하면서 라디오를 몰래 들을 때는 방송작가를 꿈꾸기도 했습니다. 굉장히 막연했지만 글을 쓰고 싶었죠.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는데, 작가적 소양이 없다는 사실은 일찍이 파악했어요. (웃음) 자연스럽게 글을 가까이 할 수 있는 편집 업종을 생각하게 됐죠. 

 

편집도 여러 분야가 있는데요. 그림책 편집자가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다시 대학 때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지지리 책 안 읽는 국문학도였지만 사 본 책 중에 열린책들에서 나온 레제르의 『원시인』이라는 카툰집이 있었어요. 글 없이 4컷, 8컷, 16컷의 카툰으로 강렬한 메시지를 담아 전달하는 매력에 흠뻑 빠졌어요. 그러다 학습지 회사에서 한글교재를 개발하면서, 그림책 작업과 비슷한 부록을 만들었는데, 그때 결정적으로 그림책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어찌 보면 기형도 시인의 『입 속의 검은 잎』, 『원시인』처럼 제가 매력을 느꼈던 책들이 결국 저를 그림책 편집자로 이끈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림책은 아이들만 보는 책이라는 편견은 이제 많이 옅어지지 않았나 싶은데요.

 

아직까지는 많은 분이 그림책은 '글과 그림이 조합된 책'으로 인식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이러한 정의는 단순 물성비만을 이야기하는 차원이에요. 책에는 작가가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을 텐데요. 저는 이 메시지를 전달하는 데 있어 그림의 역할이 두드러지는 책을 그림책으로 간주해요. 그림책공작소에서 출간하고자 하는 책은 분명한 메시지를 효과적인 그림으로 전달하는 그림책입니다. 또한 그림책을 아이들만 보는 책이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작품 주제나 그림 표현에 있어서도 가급적 제약을 덜 두는 편이에요. 

 

앞으로 그림책공작소의 비전은 무엇인가요?

 

‘세상을 담고, 세상을 바꾸는 그림책’을 만드는 것이 모토예요. 그림책이 ‘어린이 책’이란 생각은 배제하고 세상의 모든 것을 이야기하고 조금 더 나은 세상을 그리는 그림책들을 만들려는 의지의 표현이죠. 독자들에게 ‘그림책공작소’라는 브랜드만으로도 믿고 보는 출판사로 인정받고 싶어요. 지금이야 ‘어떻게든 이렇게 계속할 수만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 뿐이지만, 50년 동안 그림책만 만들어 온 네덜란드 ‘렘니스카’처럼 50년, 100년 후에도 좋은 그림책을 만들어가는 한국의 대표적인 그림책 전문 출판사가 되는 것이 궁극적인 바람입니다.

 

출판시장은 어렵다고 하지만, 책을 내고 싶고 출판사를 열고 싶어 하는 분들이 꽤 많습니다.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진짜 만들고 싶은 책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요. 아동, 학습, 문학, 자기계발 등 분야만 정할 것이 아니라 책의 방향, 출판사의 방향 등 롤모델을 생각하고 시작해야 합니다. 자금은 분야마다, 전략마다 다릅니다. 저는 운 좋게도 제 명의 아파트가 있는데, 지금 주방과 거실은 신한은행 겁니다.(웃음) 매입처 지불 결재일인 월말마다 ‘안방’만큼은 지킨다는 각오로 일을 하고 있어요. 출판은 생각보다 큰돈이 들고, 회수 기간이 깁니다. 영영 회수를 못할 수 있는 건 당연하고요. 지금 가진 돈을 출판에 다 쓸 수 있을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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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출간 예정인 책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신인작가의 책을 ‘뚝딱뚝딱 나래책’이라는 시리즈로 낼 계획이에요. 윤태규 작가의 『소중한 하루』, 한연진 작가의 『빨강 자동차』가 출간 예정이고요. 강경수 작가의 신작 『배고픈 거미』도 준비 중이에요. 외서는 ‘뚝딱뚝딱 누리책’으로 내고 있는데요. 구스 고든의 『허먼과 로지』, 이사벨라 버넬의 『사라지는 동물 찾기』 등을 준비하고 있어요. 아마 올해에 다 펴내긴 어렵겠지만 조금 시간이 걸려도 충실하게 작업해서 내려고 해요.  

 

그림책 독자들에게 특히 강조하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그림책을 보실 때 찬찬히 봐달라고 말하고 싶어요. 쓱쓱 넘기지 말고, 그림에는 뭐가 있고 글에는 뭐가 있는지 천천히 보셨으면 해요. 조금만 찬찬히 보시면 책을 만든 작가, 출판사의 의도가 보일 거예요. 그 다음은 독자 스스로 더 많은 걸 느끼실 겁니다. 작가와 편집자, 디자이너가 1년, 2년 동안 공들여서 만든 작품인데 10초, 20초 만에 섣불리 판단하는 건 슬프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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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엄마강경수 글그림 | 그림책공작소
곁에 있어 주는 엄마의 모습과 그 순환적 운명을 반영한 세로 띠지 구성에 이르기까지, 언젠가 그 이름을 부르기만 해도 눈물이 날 것 같은, 모두의 첫 번째 친구 엄마의 사랑을 이 책에 담았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 부모님을 만나고 그 사랑을 받아 다시 부모가 되는 과정, 그 보통의 삶에서 발견하는 애틋하고 뜨거운 감동을 만나 보세요.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혜정 “아이들이 보고 배울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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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게 살지 않는 것은 죄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책에서 만난 이 문장은 작가에게 지금까지 삶의 지침이 되어주고 있다. 즐겁게 사는 것, 즐거운 일을 찾는 것, 그것을 앞에 두면 선택이 한결 쉬워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가 자신이 어른이 되고, 주변에 있는 어른들을 만나면서 그 쉬운 선택을 못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는 걸 알게 됐다. 이른바 ‘시시한 어른’이었다.

 

청소년 소설 『하이킹 걸즈』, 『다이어트 학교』등과 동화 『오늘 나 아빠 버리러 간다』, 『여름날 초록처럼 너를 사랑해』등을 써온 김혜정 작가가 첫 에세이로 『시시한 어른이 되지 않는 법』을 쓴 데는 그런 이유가 있었다. 학교 강연을 많이 다닌 작가는 반드시 빨리 어른이 되고 싶지 않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자신이 10대 때 너무나 어른이 되고 싶었던 까닭이다. 그런데 지금의 아이들은 ‘아니’라고 대답했다. 아이들은 자신들의 삶에도 만족하지 못했지만 어른의 삶을 딱히 기대하지도 않았다. 도대체 왜?

 

"아이들 눈에 지금 어른들 모습이 너무 힘들어 보이기 때문인 것 같더라고요. 너무 안타까운 거잖아요. 힘들어도 버티는 힘은 내일은 나을 거라는 믿음인 건데 이 아이들은 내일이 없는 아이들인 거예요.”

 

시시한 어른을 보며 자신의 미래를 비관하지 않길, 삶을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무겁게 느껴지는 문제가 훗날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말길, 즐겁게 살 권리가 너희들에게 있다는 것을 알아주길, 작가는 간절히 바랐다. 자신의 자녀 역시 ‘내일을 기대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작가가 전하는 응원과 위로, 통렬한 반성과 솔직한 경험담, 『시시한 어른이 되지 않는 법』은 그야말로 우리 모두가 고민해볼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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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란다’는 건 ‘잘한다’는 것


맨 앞에 ‘열다섯 살의 이연수에게’라고 했어요.


네, 저희 아이에요. 아직 아기예요. 원래 이 얘기를 계속 쓰고 싶었어요. 소설, 동화만 쓰다 보니 에세이를 쓰기 쉽지 않아서 생각만 했었어요. 그동안 학교에 강연을 많이 다녔는데요. 아이들에게 한 시간 동안 해줄 수 있는 얘기는 한계가 있더라고요. 그러다 임신을 했어요. 나중에 아기가 컸을 때 바로 이 얘기를 해주고 싶었어요. 왜냐하면 제가 엄마가 되고 나면 엄마 입장에서 얘기를 하게 될 것 같더라고요. 다른 청소년 소설이 ‘어른이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라면 제 소설은 ‘제가 아이들 입장에서 대변하고 싶은 얘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부모나 어른들에게 ‘우리는 이런 마음이다’ 하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어서 소설을 쓰는데요. 제가 아기를 낳고 엄마가 되면 어른 입장에서 아이를 키울 것 같더라고요. 그러기 전에 10대의 마음으로 아이에게 해주고 싶은 얘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에 책을 쓰게 됐어요. 태교일기처럼(웃음) 임신 기간에 쓴 거예요.

 

실제 출산 전과 후에 생각이 많이 변했나요?


솔직히 그 전에는 아이들의 대단함을 잘 몰랐어요. 아기가 조금씩 움직이고 자라는 걸 보면 이것도 대단한데 중고등학생으로 성장한 아이들은, 정말 너무 예쁜 거예요. 대단한 거잖아요. 그런 아기가 커서 스스로 밥도 먹고(웃음), 생각도 하고, 친구들과 어울리기도 하고, 공부도 하고요. 이게 되게 기특한 건데 아이들이 그걸 모르는 거예요. 그래서 글 안에 “‘자란다’는 건 ‘잘한다’는 것”이란 얘기를 했고요. 이건 아기를 낳고 나서 아이들에게 해주기 시작한 말이에요. 10대들이 그 말을 실제로 좋아해요. 멍하게 있다가도 이 말을 해주면 ‘나도 잘하는 게 있구나’ 생각하는 것 같더라고요.

 

전에는 기특함 보다는 친구 같은 마음이 더 많았던 거군요.


친구 같고, 나 같고 그랬어요. 대단한 건 사실 몰랐어요.

 

학교에 강연을 많이 다녔다고요. 책도 그 계기로 나왔단 말을 듣고 가장 궁금했던 게 학생들에게 받은 질문은 어떤 것들이었을까 하는 거였어요. 


질문이 거의 비슷해요. 글 잘 쓰려면 어떻게 해요, 작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요, 이런 것들이죠. 그런데 인상 깊은 질문이 있었어요. 한 아이가 울먹이면서 질문을 한 적이 있거든요. 하고 싶은 게 있는데 부모님이 시키는 것과 다르다는 얘기였어요. 저는 당장 하고 싶은 걸 못한다고 영원히 못하는 건 아니다, 부모님 말이 무조건 아니라고 생각하지 말고 조금씩 준비해라, 스무 살 이후 본격적으로 네 인생을 살 수 있을 때 하면 된다, 그래도 늦지 않다, 이런 대답을 했던 것 같아요. 강연이 끝나고 그 아이가 왜 울었는지 선생님께 들었는데요. 이 아이가 공부를 잘하니까 엄마가 전교 몇 등 안에 들면 하고 싶은 걸 시켜주겠다 약속을 했대요. 아이가 그 성적이 나왔는데 엄마가 약속을 안 지켰어요. 더 욕심이 났던 거죠. 성적을 더 올리면 들어주겠다고 한 상황이었던 거예요. 그 일이 기억에 많이 남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엄마가 너무 나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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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식으로 신뢰가 깨졌을 때 받는 상처는 정말 클 거예요.


성적이 더 오르면 또 욕심이 나서 아이가 원하는 걸 안 해주겠죠. 또 요즘 아이들이 많이 질문하는 게 작가님은 금수저예요, 은수저예요, 이런 건데요. 작가 강연이니까 작가가 되고 싶은 아이들이 많이 와요. 그런데 부모님이 작가는 돈 못 버니까 하지마, 했겠죠. 그러니까 아이들은 그걸 확인하고 싶은 거예요. 저한테 얼마 버느냐고 물어요. 그런 걸 보면 어른들이 참 나쁘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이들은 어른들을 통해 세상을 알아 가는데 그런 걸 먼저 가르쳐주는 게 안 좋은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그런 얘기는 금수저인 사람들이 만든 논리 같거든요. 올라오지 못하게 계층화 시켜서 미리 싹부터 자르는 것 같은데요. 그걸 아이들이 그대로 받아들이니까 참 안타깝죠. 어른들이 나쁘단 생각을 많이 해요.

 

이른바 ‘수저론’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거네요.


자기도 모르게 세뇌된다고 해야 할까요. 그게 무서운 것 같아요. 물론 우습게 얘기하긴 하지만 내심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아요. 그건 어른들도 마찬가지겠죠. 그렇지만 어렸을 때부터 그런 생각을 하게 되면 학습된 무기력이 더 심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답하기 어려운 질문도 많이 있었겠죠? 


한 번은 이메일로 너무 죽고 싶다고 한 아이가 있었어요.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해서 몇 번 메일을 주고받은 적이 있어요. 책 『수다쟁이 장따민의 행복한 생활』에 나오는 내용 중에 제가 좋아하는 부분이 있어요. 아들이 아버지한테 ‘왜 사느냐’고 묻자 아버지가 하는 말인데요. “누군가가 와서 총을 쏴서 너를 죽여, 그러면 죽을 수밖에 없어,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너는 사는 거야, 아주 잘 사는 거야”라는 얘기를 해주는데요. 저는 그 구절을 너무 좋아해요. ‘왜 살지?’ 라는 질문 많이 하잖아요. 하지만 그 질문은 해서도 안 되는 거죠. 살아가는 건 너무 당연한 거고요.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그런 이야기를 메일로 주고받으면서 주변 친구들이나 어른에게 도움을 청하면 어떻겠느냐고 얘기해줬던 기억이 나요.

 

현장에서 듣는 그런 이야기들이 작가로서도 큰 재산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런 목소리를 작품에 담을 수도 있겠고요.


그렇죠, 고민을 들으면 요즘 아이들이 이런 고민을 하고 있구나, 알 수 있죠. 특히 친구에 대해 저는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 안 해봤어요. 그런데 돌이켜보면 제가 했던 10대 시절 했던 고민 중에 친구 문제가 제일 컸던 것 같아요. 그걸 다 잊은 거죠. 이 책을 쓰면서도 많이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제가 10대 때 제일 힘들었던 건 관계 문제였거든요. 그래서 앞으로는 친구와 관계된 소설도 써보고 싶어요. 강연 다니는 게 많이 도움이 되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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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어른 되는 걸 싫어해


즐겁게 살 의무와 권리를 얘기했는데요. 직접 만난 10대들이 즐겁지 못하단 의미기도 하겠죠?


저는 어른이 빨리 되고 싶었어요. 그렇지 않으셨어요? 주변에 물어보면 다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고 얘기해요. 근데 요즘 아이들은 어른 되는 걸 되게 싫어해요. 저는 강연 때 꼭 물어보거든요. 어른 되고 싶지 않느냐고요. 그러면 당연히 그렇다고 할 줄 알았는데 아니에요. 삼분의 이 정도는 되고 싶지 않다고 해요. 초등학생은 그나마 그렇다고 하는데 고등학생 쯤 되면 거의 없어요. 어른 되면 좋을 게 없다는 거예요. 그럼 지금이 좋은지 물어보면 그것도 아니라고 하고요. 왜 그럴까 생각했어요. 아이들 눈에 지금 어른들 모습이 너무 힘들어 보이기 때문인 것 같더라고요. 너무 안타까운 거잖아요. 힘들어도 버티는 힘은 내일은 나을 거라는 믿음인 건데 이 아이들은 내일이 없는 아이들인 거예요. 10대부터 그러면 어른이 돼도 그렇지 않을까 싶고요. 10대란 인생을 연습하고 자신을 만들어가는 나이잖아요. 그때 행복해지는 연습, 내일을 만들어가는 연습을 하지 못하면 어른이 되어서도 어려울 거라 생각해요. 10대 아이들에게 좀 더 즐겁게 살 권리를 얘기해주고 싶죠. 실제로 그 얘기를 하면 눈이 초롱초롱해져요.

 

나는 십대들이 책임보다는 자신의 권리를 떠올렸으면 좋겠다. 사실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해야 할 일은 딱 하나뿐인지도 모른다. 학교에 다녀야 하는 까닭, 친구를 사귀어야 하는 이유, 돈을 벌어야 하는 필요 등등 사람이 살아가면서 해야 할 일들이 많아 보이지만, 이런 것들을 하는 이유는 한 가지 때문이다. 바로 우리가 더 즐겁게 살기 위해서다. 내 앞에 놓인 어른의 의무들을 보면서 막막하다고 느끼기 전에, 진짜 너희가 누려야 할 권리를 잊지 말기를. (227쪽)

 

행복한 어른들이 별로 없어요.

 
그래서 어른들이 흔히 그때가 제일 좋을 때라고 하는데요. 그건 기억력이 나빠서 하는 얘기 같아요. 10대라는 나이가 제일 힘든 것 같거든요. 어른은 그나마 좀 다른 것들을 무시할 수 있는 나이잖아요. 직장 상사가 싫으면 무시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아이들은 너무 마음이 말랑말랑 하니까 상처를 너무 많이 받거든요. 사실 친구 별 거 아닌데, 선생님 별 거 아닌데 그게 전부라고 생각하고 상처 받아요. 나쁜 선택도 하고요. 그렇게 힘든 나이라는 걸 어른들이 잊어버리고 제대로 된 가르침을 못 주고 있는 것 같아요. 제대로 사는 모습도 못 보여주는 것 같고요. 아이들이 보고 배울 수 있는 게 별로 없다고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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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선지 책에도 보면 ‘친구 따위 없어도 괜찮아’, ‘모두 저마다의 인생을 살아간다’ 같은 이야기를 많이 해요. 


위로도 해주고 싶었고요. 그렇지 않아도 되는 게 많은데 왜 그렇게 인생을 안달복달하며 살아야 하는지 자주 생각했거든요. 어릴 때부터 부모가 학습시키는 거잖아요. 친구는 몇 명 있어야 하고, 어떤 학교를 가야하고, 이런 식으로요. 어떤 부모는 몸매까지 다 체크한다던데 말이에요. 경제 상황이 안 좋은 것도 문제겠죠. 내 자식이 혹시 밥벌이 못 할까봐 걱정되는 마음에서 그럴 텐데요. 아이들이 너무 어린 나이부터 자신을 틀에 가둬 생각하는 게 과연 맞는 걸까 싶어요. 다들 똑같이 살 수는 없는 거잖아요. 왜 정답을 정해놓고 아이들에게 주입시키는지, 안타까워요. 그런데 어른들도 그걸 잘 모르는 것 같아요. 그래서 시시해지는 것 같아요.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 못 하면 어른들도 자기 자신을 낮게 보잖아요. 남들 하는 건 다 해야 하고요. 그건 너무 피곤한 것 같아요. 많이 달라졌으면 좋겠어요.

 

다른 걸 받아들이면 되는데 틀렸다고 생각해요.


맞아요, 다름을 틀림으로 가르치는 세상인 것 같아요. 나이만 들었다고 어른은 아니잖아요. 정신적으로 어른이 되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 많고, 그런 사람들을 보고 아이들이 자라니까 어른 되기 싫다는 말이 나오는 거죠. 악순환인 것 같아요.

 

같은 의미에서 ‘시시한 어른’이라는 말이 참 좋아요. 실패한 혹은 나쁜 어른이라고 하지 않아서요. 그냥 멋있지 않은 거예요.


실패하지 않는 어른, 이게 예전 패러다임인 것 같아요. 성공과 실패로 판단하니까 직업의 기준, 성공의 기준처럼 온갖 갖춰야 할 기준들이 생기죠. 그렇게 우리도 자라왔던 것 같아요. 하지만 그걸 또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건 아닌 것 같거든요. 인생은 성공이냐 실패냐가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자신에 대해 만족하고, 멋있게 사는 게 중요한 거잖아요. 저는 ‘일베’ 같은 걸 아이들한테 직접적으로 얘기하진 않아요. 다만 그런 것은 생각이 짧은 거라고 얘기해요. 깊게 생각하면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거죠.

 

이 책을 통해 ‘다른 목소리’로 새롭게 삶의 지침을 찾은 10대들이 이제는 더 많아질 거라 생각해요. 앞으로 더 많아져야겠고요.


그랬으면 좋겠어요. 너무 정해진 틀 안에서 답을 찾지 못했다고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요즘은 또 진로 교육이 많아져서 직업을 미리 정하지 않으면 큰일 날 것처럼 생각을 해요. 하지만 대학에서 진로 찾는 사람도 많고 삼십 대에 직업을 바꾸는 사람도 많아요. 아이들이 너무 작은 틀에서 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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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겁게 살지 않는 것은 죄


작가의 어린 시절에 지침이 되어 주었던 것은 무엇이었나요?


좋아하는 작가들이었던 것 같아요. 무라카미 류를 좋아했고요. 김영하 작가, 박민규 작가 좋아했어요. 인생의 한 마디가 되었던 것은 ‘즐겁게 살지 않는 것은 죄다’였어요. 고등학교 2학년 때 그 말이 적힌 무라카미 류의 『69』를 읽고 정말 인생 헛살았다(웃음)고 생각했어요. 아직도 그 문구가 제 인생의 목표예요. 책 내용은 아니었고 작가의 말이었는데요. 나를 괴롭혔던 선생님이나 친구에게 복수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내가 즐겁게 사는 거다, 즐겁게 살지 않는 것은 죄다, 라는 글을 읽었을 때 많은 생각을 했어요. 10대는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잘 생각하지 못하잖아요. 저도 친구들이나 부모님, 형제들 때문에 힘들 때마다 내가 세상에서 없어지면 저들이 나한테 미안해하겠지, 이런 생각도 하고, 죄책감도 많았거든요. 잘 못하면 엄마한테 미안하단 생각도 들고요. 그랬는데 그 문구 하나로 모든 걸 내 중심으로 생각하게 됐죠. 인생이 사실 별 거 아니잖아요. 즐거움은 인생에 정말 중요한 거잖아요. 아직도 무엇을 선택할 때 그게 얼마나 경제적 도움을 줄 건가, 이런 게 아니라 재미있을까, 즐거울까, 이 생각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작가라는 직업도 재미있지 않으면 언제든지 그만두겠다고 했죠.


작가도 비정규직이고(웃음) ‘경제적 능력’이라는 것도 삶에서 무척 중요하긴 하지만요. 즐거움과 행복의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에요. 그런 걸 생각하면 작가라는 직업도 할 만하죠. 경제 조건이 2순위, 3순위는 될 수 있지만 절대 1순위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많은 아이들이 그걸 1순위에 두는 경우가 많아요. 안정적일까, 잘 먹고 살 수 있을까, 부모님이 인정해줄까, 하고요.

 

지금의 고민은 뭔가요? 작가의 현재가 궁금해요.


작가는 제가 즐겁기 때문에 하는 거지만 작가라는 직업이 과연 지속가능한 것인가 하는 고민이 제일 많아요. 아이들이 작가 언제까지 할 거예요, 죽을 때까지 할 거예요, 물을 때가 있거든요. 저는 내일이라도 글 쓰는 게 재미없으면 안 할 거라고 말해요. 즐겁지 않으면 안 할 거라고요. 작가라는 직업이 정말 즐겁긴 한데 제 인생 여러 요소에서 절반 이상을 빼앗고 저를 힘들게 하면 이 직업에 큰 미련이 없을 것 같아요. 어른의 기준에는 경제적 독립이라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최소한의 돈을 벌 수 없는 정도라면 직업으로 삼기는 힘들지 않을까도 생각하죠. 그래서 미래에 대해 고민을 하긴 하죠. 요즘은 그거네요.(웃음)

 

역시 균형이 중요한 거겠죠.


그걸 계속 생각하려고 노력을 많이 해요. 오히려 20대 중반까지는 몰랐던 것 같아요. 그때 작가가 되고 나서 슬럼프를 크게 겪었거든요. 그 다음부터 어떻게 하면 좀 더 말랑말랑해질 수 있을까 생각해요. 재미있는 건요. 책도 안 팔리고(웃음) 인생이 재미가 없다, 싶어질 때가 있잖아요. 그러다 강연을 가면 이런 얘기를 제가 하죠. 그런 걸 잊고 있다가 강연에서 떠올리고 기분 좋게 집에 와요. 어른들도 다 알면서 잊고 사는 게 많아요. 인생이란 게 그렇게 힘들고 어렵기만 한 건 아닌데 힘든 부분에만 주목을 하고 있으니까 더 힘든 게 아닐까 싶어요.

 

딱딱해지고 사는 대로 지내다가도 나를 내가 좋아하는 나로 다시 되돌려놓는 장치가 필요한데 10대를 만나는 일은 그렇게 보면 아주 좋은 스위치네요.


동료 작가 분들이 저를 항상 부러워하세요. 이유는 딱 한 가지예요. 젊어서.(웃음) 그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이해가 잘 안 갔어요. 그런데 제가 10대들을 보면 딱 그 마음인 거예요. 작가 선생님들께서 제게 해주신 얘기가 제가 아이들을 보니까 진짜 맞는 말이었구나 싶었죠. 그래서 아이들에게 나도 아직 젊다고 말해요. 앞으로 할 수 있는 것도 많다고요. 아이들은 제가 지금 작가니까 평생 작가만 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저는 제가 평생 작가만 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아직 한참 젊으니까요. 전혀 다른 장르의 글을 쓸 수도 있고, 아예 다른 일을 할 수도 있고, 다른 공부를 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걸 아이들을 보면 생각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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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한 어른이 되지 않는 법


시간이 지나 10대가 될 자녀에게는 어떤 말을 해주고 싶으세요?


내일을 기대하는 아이가 됐으면 좋겠어요. 다음을 기대하는 아이요. 내일이 없는 어른들, 내일이 없는 아이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그것만 있다면 인생이 시시해질 수 없지 않을까 생각해요. 내일이 있는 사람은 절대 시시해지지 않을 거예요. 무엇이 아니라 어떻게 살지가 중요하다, 꿈의 리스트를 만들어라, 실패를 두려워하지 마라, 이 모든 게 딱 한 마디로 말하자면 내일을 기대하는 사람이 되자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것이 ‘시시한 어른이 되지 않는 법’이네요.


네. 시시한 어른들이 왜 이렇게 많을까요? 너무 자기 기준 없이 사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다른 사람의 기준에서 판단하는 거죠. 책을 보더라도, 영화를 보더라도 그래요. 취향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잖아요. 다른 사람이 하니까 하는 건 너무 재미없잖아요. 저는 그게 무서워요. 우리나라 인구가 오천만인데 천만 명이 같은 영화를 보고 좋아한다는 게 말이에요.(웃음) 재미없는 사회가 아닌가, 생각해요.


사실 저는 재미없게 사는 어른을 보면 그렇게 안타깝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그런데 아이들이 그렇게 사는 건 너무 안타까워요. 아이들은 변할 수 있잖아요. 안 시시해질 수도 있고, 더 재미있어질 수 있는데 말이에요. 특히 아이들이 죽으면 너무 안타까워요. 살만큼 살아보지도 않았는데 단순하게 내 인생 끝났다 생각하고, 가고 싶은 학교 못 갔다거나 친구랑 싸웠다거나 해서 홧김에 나쁜 선택을 하면 너무 안타까워요. 안 그럴 수 있는 아이들이니까요. 다른 가능성도 많고요.

 

그게 아니라고 해주는 어른이 한 명만 있었더라면, 하고 생각하는 대목이 있어요.


진짜 시시하지 않은 어른은 약자를 보호하는 어른이라고 생각해요. 부모님, 선생님 혹은 다른 어른들이 아이들을 보호하고, 제대로 된 길을 알려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려면 우선 자기 인생이 똑바로 갖춰져야 하겠죠. 그렇지 못하니까 약자도 돌보지 못하는 것 같아요. 어른이 인생을 잘 살면 아이들 같은 약자를 보호하는 것도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요. 자기 인생을 제대로 사는 어른들이 많아져야할 거예요.


아이들에게 늘 하는 얘기가 너희들이 어려움을 겪을 때 어른들 무시하지 말고 도움을 청하라는 거예요. 너희를 보호하는 것도 어른의 의무라고요. 어른들이 의무를 다할 수 있게 제발 도움을 요청하라고 하는데요. 친구들끼리 해결하지 못하는 일이 많잖아요. 학교 폭력이나 낙태 같은 건 아이들끼리 고민한다고 되는 게 아니니까요. 그럴 때도 아이들은 어른들이 혼내기나 할 거라고 생각해요. 어른들이 먼저 제대로 된 모습을 많이 보여줘야만 아이들도 어른을 믿고 자기들도 저런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사회 전체적인 문제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단순히 개인의 문제는 아니죠. 사회적인 문제기도 할 텐데요. 참여할 수 있는 어른이 많아져야 하는 거잖아요. 저는 개개인은 약하더라도 그 개인이 뭉치면 충분히 사회는 좋아질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앞으로 더 좋아져야 하고요. 한편 사회가 나아지려면 미래를 이끌 아이들을 잘 가르치는 것이 어른의 몫이죠. 그것만 잘해줘도 어른들은 시시해지지 않을 거예요. 나만 잘 사는 게 아니라 다음 세대를 준비하는 어른이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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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이 주인공인 이야기를 써왔고, 하고 싶었던 얘기를 에세이로도 담았는데요. 이런 이야기를 하는 작가로서 갖고 있는 과제, 앞으로의 계획이 듣고 싶어요.


청소년 문학이라고 해서 특별한 게 있다고 생각하진 않고요. 10대 아이들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단순히 오락적인 재미가 아니라 읽으면서 생각하는 재미인 거죠. 그게 문학의 역할이잖아요. 아이들이 책을 재미있고 자연스럽게 읽으면서 자기 삶과 다른 삶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글을 쓰는 게 제 역할이 아닌가 싶어요.

 

첫 에세이였는데 에세이로 또 독자를 찾을 계획도 있나요?


이 책에서 큼직하게 얘기를 해서 다음에는 좀 더 세세한 아이들의 고민을 더 쓸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런 것도 한 번 해보고 싶어요. 구체적인 고민에 대해 상담하는 이야기도 쓰고 싶고 그래요. 또 인권 같은 주제로 교양서를 써보고 싶기도 하고요. 어른들 대상으로 하는 책은 많은데 아직까지 청소년을 위한 책은 많이 없거든요. 10대, 특히 중학생들은 아직 어른들 대상의 책을 읽으면 많이 힘들어 하거든요. 긴 글 읽는 걸 어려워하고요. 그 아이들을 위한 책이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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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한 어른이 되지 않는 법 김혜정 저 | 자음과모음
『시시한 어른이 되지 않는 법』은 청소년소설의 대표적인 작가로 손꼽히는 저자가 작가가 되기 위해 해왔던 위한 많은 도전과 실패 등의 경험을 바탕으로 어른의 삶을 준비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십대는 멋진 어른의 삶을 준비하는 기간임을 깨닫게 도와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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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 강병철 “소아과 가기 전에 알아야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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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라도 모르면 뒤처지는 것 같아요. 알고서 어떻게 안 챙길 수가 있나요?” 열혈 육아를 자처하는 부모들의 변이다. 하지만 냉정히 생각해보자. 좋은 비타민을 챙겨 먹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을까? 성장호르몬 주사를 맞는다고 아이는 행복해질까? 육아에 정석은 없다. 하지만 부모가 ‘중심’을 잘 지키면 아이는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자란다.

 

기생충 박사 서민 교수와 강병철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서민과 닥터 강이 똑똑한 처방전을 드립니다』를 펴냈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동기인 두 사람은 “가감 없이 솔직하게 올바른 소아과 책”을 쓰고 싶어, 펜을 들었다. “인터넷에서 좋다는 건 다해줬는데 우리 아이, 왜 자꾸 아프냐?”는 부모를 위해 정직하고 현명한 처방전을 썼다. 처방전에 포함된 내용은 감기, 설사, 성조숙증, 알레르기성 질환, 예방접종, 모유 수유, 항생제 및 비타민 등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흔하게 맞닥뜨리는 고민 14개다. 똑같은 문제로 소아과를 계속 찾으면서도 불안한 엄마, 아빠라면 꼭 읽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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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친 영양 공급은 오히려 아이에게 해롭다


서민 교수님이 육아서를 쓰셔서 놀라는 분들이 많습니다. 책을 먼저 기획하셨다고 들었는데요. 계기가 있었나요?


서민너무 비의학적인 책이 범람하니까요. 아이한테 이걸 안 하면 큰일난다는 식으로 근거 없는 것을 강요하는 책이 많아서요. 이건 아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생각해봤는데요. 의사들이 책을 별로 안 쓰는 거예요. 그래? 그러면 내가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의대를 나왔지만 과 별로 전문지식은 없으니까요. 소아과에 대해서는 강병철 선생이랑 같이 책을 좋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강병철 선생님과는 대학 동기라고 들었습니다.


서민친했어요. 지금 이 친구는 번역을 하면서 의학서적을 내는 출판사 대표인데, 제주도에서 소아과 개원의를 했을 때 명의로 소문났던 친구예요. 

 

서민 교수님이 책을 같이 쓰자고 했을 때, 강 선생님은 흔쾌히 수락하셨나요?

 

강병철캐나다에 있는데 어느 날 전화가 왔어요. 같이 책을 써보자고요. 그런데 육아책이라고 하는 거예요.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죠. 서민 교수는 아이도 없고 소아과 의사도 아니고 환자 본 경험도 없으니까 농담인 줄 알았어요. (웃음) 본 마음을 들어보니 가독성이 있는 쉬운 건강 육아책을 쓰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저 역시 소아과 의사를 하면서 부모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상당했던 터라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어요.

 

강병철 선생님은 현재 캐나다 밴쿠버에 거주하며 번역가이자 출판인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과거 제주 서귀포시에서 소아과 전문의로 계실 때는 명의로 굉장히 유명하셨다고요.

 

서민강 선생은 소아과 개업의 생활을 하는 동안 되도록 약에 의존하지 않는, 교과서대로 진료를 해온 양심적인 의사였어요. 대개 의사들이 의료 현실 때문에 타협을 하는데 이 친구는 끝까지 타협하지 않고, 병원에 환자도 구름처럼 많았던 의사였어요. 한 마디로 명의였어요. 정말 훌륭한 친구죠. 현실과 타협하지 않은 정절을 지킨, 논개 같은 친구라서 이 친구를 선택했어요.

 

왜 의사를 그만두셨는지, 독자들이 궁금할 것 같습니다.

 

강병철 한 두 가지 이유로 그만둔 건 아니었는데요. 우선 우리나라에서 원칙과 양심을 지키면서 의사 생활을 하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너무 싫기도 했고요. 의사로서는 신망도 받고 돈도 벌었지만, 올바른 의료 시스템이 부재하는 상황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너무 힘들었어요. 환자와 의사가 다 견뎌야 하니까요. 서로에 대한 증오가 커지고, 진료에 대해 올바로 설명할 여유도 없고 또 환자들은 듣고자 하질 않으니까, 너무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밴쿠버로 갔어요. 

 

책은 어떤 과정으로 집필하셨나요?

 

서민내용을 보셔서 아시겠지만 아이를 키울 때 가장 흔히 맞닥뜨리는 14개 질환을 정확하고 쉽게 설명했어요. 주로 강병철 선생이 주제를 정하고 저한테 강의를 해줬어요. 

 

강병철 일선에서 떠난 지가 몇 년 됐으니까, 저도 공부를 많이 했죠. 주제를 정한 후에 최근 잘 정리된 논문도 살펴봤고 진료했을 때의 기억도 떠올려보고 그랬습니다. 

 

서민강병철 선생은 12년 동안 현역으로 활동했잖아요. 조금 쉬었더라도 전문의로서의 지식은 당연히 갖고 있습니다. 지금 개업의로 활동하는 분들을 보면 현역에 있다고 특별히 공부를 더 하거나 그런 것 같진 않아요. 차이가 있거나 아주 뛰어나다, 그런 생각은 안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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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자주 겪는 질환에 대해 이렇게 쉽게 설명한 육아서는 지금까지 없었던 것 같은데요.

 

서민그래서 쓴 거예요. 육아백과 같은 책들은 많잖아요.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완독하긴 어려워요. 막상 일이 닥치면 애를 업고 병원으로 달려가지 책을 찾아보게 되진 않죠. 의학에는 한계가 있어요. 현대 의학으로는 아직 못 고치는 병이 많고 이 책 역시 그 점을 흔쾌히 인정해요. 이 책에 나오는 치료법은 완치를 뜻하는 게 아니라 현 단계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뜻이에요.
 
“아이는 신제품과 같다. 신제품은 오래된 제품에 비해 고장이 잘 나지 않고, 설령 작동이 잘 안 될 때가 있더라도 간단한 처치만으로 금방 회복된다”고 지적하셨는데요. 아이를 키우면서 너무 작은 증상에도 병원을 가는 것이 문제가 되기도 해요.

 

강병철인간은 오랜 기간 동안 진화했어요. 그냥 생긴 동물이 아니에요. 환경에 맞춰 진화했기 때문에 우리가 낳은 자식은 완벽에 가까운 생물체예요. 어지간해선 새 제품은 고장이 안 나잖아요. 지금 나온 치료법을 꼭 해야 하는 경우는 없다고 보면 됩니다. 소아과에서 유명한 격언이 하나 있습니다. “신약이 나오면 제일 먼저 쓰는 의사가 되지도 말고, 제일 나중에 쓰는 의사도 되지 말라.” 의사들끼리 하는 말인데요 그만큼 새롭게 나온 뭔가는 우리에게 위험할 가능성이 있어요. 가습기살균제 문제도 그렇잖아요. 이 책은 아이에게 불필요한 약을 쓰거나 지나친 영양 공급을 하는 행위는 오히려 아이에게 해롭다고 말합니다.
 
비타민 문제가 그렇잖아요. 요즘은 생후 3개월만 지나도 비타민을 먹입니다. 과잉 섭취라는  의견도 많은데요.

 

강병철헷갈리면 안 되는 게 바로 이거예요. 모자란 건 채워줘야 합니다. 당연한 거예요. 모자라면 제대로 클 수 없어요. 그런데 안 모자란 걸 더 주면 좋을까요? 식물이 물을 안 주면 죽잖아요. 그런데 물을 많이 줘도 죽습니다. 비타민 문제도 비슷합니다. 비타민과 비타민 제제는 다르다는 걸 알아야 해요. 종합비타민제를 통해 섭취하는 비타민은 음식을 통해 섭취하는 것과 효과가 같지 않아요. 더욱 어린이용 비타민 제제는 거부감을 없애기 위해 사탕이나 젤리처럼 만들어져 있어요. 부모가 잘 지켜보지 않으면 과량을 복용할 위험이 있어요. 또 성인 대상 연구를 보면, 비타민을 보충해서 수명이 늘어났다거나 만성 질병이 예방됐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습니다. 비타민 결핍증이 있는 환자에게는 비타민을 투여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는 불필요할 수 있습니다.
 
서민엄마들 마음이 그렇잖아요. 설마 모자라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싶어서 이것저것 챙겨 먹이는데 안타깝죠. 의사들이 비타민을 권하는데, 알고 보면 자기 회사에서 비타민을 팔고 있어요. 최소한의 객관성을 갖기 어렵죠.
 
강병철저는 엄마들에게 비타민을 먹일 정성으로 이것저것 다양한 식품을 먹여보고 균형 잡힌 식단을 고민해보라고 권합니다. 이유기의 아이라면 이런 노력을 통해 편식하지 않는 습관을 익힐 수 있죠. 어느 정도 큰 아이라면 시장에도 함께 가 재료를 사고, 요리할 때도 참여시키면 더없이 좋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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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만 잘 씻어도 질병의 70%를 예방할 수 있다

 

소아과에 가면 대부분의 아이들이 감기 때문에 오는데요. “열이 난다고 무조건 병원에 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서민아이가 열이 나는 원인은 대부분 감기입니다. 열이 나면 부모들이 긴장을 하고 곧바로 병원에 달려오는데, 반드시 병원에 올 필요는 없습니다. 일단 해열제를 먹여본 뒤 열이 떨어지고 아이가 잘 논다면 굳이 병원에 갈 필요가 없습니다. 병원에 가면 다른 환자로부터 병이 옮을 수 있으니 차라리 해열제를 쓰면서 2,3일 정도 지켜보는 게 낫죠. 단 아이가 심하게 토하거나 착란을 일으키고 경기를 한다거나 일체 먹지 않는 경우에는 신속하게 병원으로 데려가야 합니다.

 

해열제는 아이 몸에 해롭지 않나요?

 

강병철해열제는 비교적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약입니다. 어린이 해열제는 보통 아세트아미노펜(타이레놀)이나 이부르로펜(부루펜) 계열의 약을 쓰는데, 최소 4시간 정도 간격으로 투여할 수 있습니다. 4시간이 안 되어 다시 열이 오르면 해열제를 더 먹이는 것보다 따뜻한 물수건으로 닦아주는 게 좋습니다. 해열제가 해롭다는 이야기는 잘못된 정보입니다. 물론 과량을 복용할 경우 매우 위험하고 자칫 생명을 위협할 수 있죠. 하지만 이건 모든 약이 그렇습니다. 중요한 건 아이들 손이 닿는 곳에 두어서는 절대 안 된다는 점입니다. 어린이용 해열제는 맛이 좋아 아이들이 한 번에 모조리 마셔 버리는 일이 종종 생깁니다.

 

백신에 대한 논의가 많지만, 그래도 예방접종은 꼭 해야 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우리나라는 필수 예방접종률이 높은 편이고, 영유아 예방접종의 경우에는 98%로 전세계적으로도 높은 수치예요. 하지만 청소년, 성인의 접종률은 비교적 낮습니다.

 

서민과학이 발전하면서 사람들의 과학적 지식도 많아졌다고 하지만 실제로 보면 미신적인 걸 믿는 경우가 많아요. 스티브 잡스도 수술이 가능한 췌장암에 걸렸지만, 대체의학을 지나치게 의존하면서 수술 가능 시기를 놓쳤잖아요. 우수한 과학자도 이러니 일반인은 더 해요. 갑상선에 좋다고 개구리를 삶아먹고 이상한 치료를 많이 하는데요. 영국 같은 나라는 백신을 불신해서 홍역에 걸리는 환자가 갈수록 늘어난다고 해요. 안전한 예방접종을 위한 모임도 있는데, 가만히 살펴보면 백신을 맞지 말라는 주장을 해요. 언뜻 들으면 맞는 말 같아서 헷갈리는데요. 이 책을 기회로 정확한 의료 지식 알려주자는 측면도 있었습니다.
 
손 씻기도 강조하셨습니다.

 

강병철첨단이 중요한 게 아니라 기본이 중요해요. 특히 어린이의 경우는 더 그렇고요. 손만 잘 씻으면 우리가 앓는 질병의 70,80%를 예방할 수 있다고 해요. 서양 사람들을 보면 재채기나 기침을 할 때, 손으로 막고 합니다. 그리고 손을 바로 씻고요. 하지만 우리나라는 지하철을 타보면 대부분 기침을 막 합니다. 불쾌하고 유쾌하고를 떠나서 불안하죠. 아주 기본이 되는 것들이 중요합니다.
 
서민남자들은 특히 더 하죠.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본 후 손을 제대로 씻는 사람이 없어요. 오른손만 살짝 물을 묻히는 정도죠.
 
강병철사람이 건강하게 살려면 잘 먹고 잘 사고 잘 싸고 잘 뛰어 놀아야 해요. 그런데 요즘 애들은 하루 종일 앉아만 있어요. 먹는 건 대부분 정크푸드고요. 그러니 잠을 잘 못 자죠. 부모들도 '새로 나온 약이 뭐가 좋지?'를 챙기면 안 돼요. 9시 전에 잠을 자게 해야죠. 요즘은 아이들이 너무 늦게 자고 스마트폰만 찾아요. 정말 안타깝습니다.
 
아토피 문제도 다루셨는데요. 부모들 입장에서는 정보는 너무 많고, 좋다는 제품도 쏟아지니까 어떻게 치료해야 할지, 더 혼란스럽습니다.

 

강병철소아과를 할 때 엄마들이 병원에 와서 항상 하는 이야기가 있었어요. "선생님, 스테로이드제 말고 좋은 약도 있다던 데요. 비싼 보습제를 썼더니 좋아지던 데요." 이런 말을 들으면 제가 가장 먼저 하는 게 뭐냐면, 아이 손톱을 봅니다. 아토피를 갖고 있는 아이를 보면 대부분 손톱이 길고 때가 껴 있어요. 실험을 한 번 해보세요. 긴 손톱으로 피부를 긁는 것과 짧은 손톱으로 긁는 건 천지 차이거든요. 아토피를 예방하려면 손톱을 짧게 깎고 손을 자주 씻는 게 1번이에요. 또 엄마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때수건으로 아이 목욕을 시킨다고 해요. 아토피 때문에 피부가 거칠거칠하고 지저분하니까, 싹 밀고 나면 깨끗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하지만 이건 우리 피부가 가지고 있는 보호막을 싹 다 벗기는 행동입니다. 때밀지 말고 열심히 씻기라고 하면 엄마들이 어떻게 씻겨야 하냐고 묻는 데요. 약한 비누로 땀이 많이 나는 부분만 씻으면 됩니다. 이렇게 해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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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호르몬의 명암에 대해서도 지적하였습니다. 요즘 부모들은 키 큰 자녀를 만들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는 데요.

 

서민엄마, 아빠의 키가 작은 경우, 즉 유전적으로 작게 태어난 아이는 아무리 성장호르몬을 맞아도 별 효과가 없어요. “지금은 작지만 나중에 왕창 클 아이” 역시 성장호르몬을 맞으나 안 맞으나 최종 신장이 달라지지 않아요. 성장호르몬 주사가 효과가 있는 경우는 특별한 저신장, 즉 엄마 아빠의 키가 웬만한데 아이가 꾸준히 3백분위수 만큼의 성장을 할 때예요. 그래도 4살이면 일러도 너무 일러요. 초등학교 1,2학년은 되고 나서 시작하는 게 낫습니다.

 

서민 또 하나, 키가 클 수 있다고 광고하는 모든 식품이나 물건은 전부 거짓말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속상한 것 중 하나가 커피를 안 마시면 키가 큰다는 이야기를 듣고 서른 살까지 커피를 안 마신 일이거든요. 그런데 나중에 연구 결과를 보니, 허무맹랑한 이야기였던 거예요. 서른이 지나고서야 커피를 마셨는데 너무 맛있어서 억울하더라고요. 진작부터 먹으면 더 좋았을 텐데 싶었어요. 키가 큰 편이라 다른 사람들한테 "커피 안 마셔서 다리가 길어졌다"는 말도 했는데, 부끄럽습니다.
 
강병철우리 인간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요. 뭐를 해준다고 뭐가 되지 않아요. 진짜 아이를 위한다면 행복한 가정을 이루려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아이를 하나의 대상으로 보고, 이렇게 저렇게 할 수 있다고 재단하면 절대 안 됩니다. 중요한 건, 가족이 한 팀이 되는 일이에요. 아이를 키우다 보면 엄마, 아빠의 의견이 다를 수 있거든요. 그래서 다투게 되고요. 싸움을 예방하려면 대화가 많이 필요합니다. 안 그러면 아이가 혼란스러울 수 있어요. 엄마의 방침, 아빠의 방침이 제 각각이니까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나 고민할 수밖에 없어요. 아이와도 충분한 대화를 해야 하고요. 가족도 사회의 일원이잖아요. 건강한 사회인으로 만드는 일이 매우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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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한 부모 말고 괜찮은 부모가 되자

 

요즘은 알아야 할 육아 상식이 너무 많은 세상입니다. 엄마들은 끊임없이 죄책감이 생기고요.

 

강병철  그래서 육아를 아빠랑 같이 해야 해요. 이게 정말 중요해요. 지금은 엄마들이 일도 하고 아이도 키우고 음식도 하잖아요. 하는 일이 너무 많기 때문에 어떻게 키우라는 말을 하기가 어려워요.
 
서민요즘 아빠들은 잘 도와준다고도 하지만, 애가 잘못되면 여전히 엄마 탓을 하는 것 같아요. 엄마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죠.
 
강병철 세상이 바뀌었으면 사고도 같이 바뀌어야 하는데, 생각은 그대로니까 문제예요. 육아서를 찬찬히 살펴보면 자기계발서랑 너무 비슷해요. 부모가 부족하니까 부모가 더 해야 한다, 이것도 저것도 챙기라고 하니까 숨이 막히죠. 최근에 이유식 책을 하나 봤어요. 궁중요리를 기반으로 한 책인데 보면서 감탄을 했어요. 정말 잘 만들었더라고요. 그런데 이유식을 궁중요리로 만들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요? 상위 1%나 될까요? 그런데 마치 평범한 엄마들도 만들 수 있는 것처럼 마케팅을 하고 있으니, 엄마들은 박탈감을 느낄 수밖에 없어요.
 
서민죄책감을 이용하니까 문제예요. 점점 악순환이죠.
 
강병철아이한테 꼭 해줘야 하는 건 없어요. 부모가 열심히 살면 돼요. 부모가 건강하게 바람직하게 살면 돼요. 예를 들어 아이가 TV를 안 봤으면 해요? 그러면 부모가 TV를 안 보면 돼요. 아이가 스마트폰을 너무 많이 해요? 그럼 부모가 스마트폰을 사주면 안 되죠.
 
요즘은 유기농 식품을 애용하는 엄마들이 많아요. 몸에 안 좋은 군것질을 되도록 먹이지 않으려고 하는데, 나중에 폭식을 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고 해요. 어떻게 조절해야 할까요?

 

강병철원칙을 정해주면 돼요. 집에서는 먹이지 않지만 밖에서는 어느 정도 허용하는 것도 방법이에요. 저는 세 아이를 키우는데, 작은 원칙 두 개가 있었어요. 첫째는 부모로서 아이들과 최대한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했어요. 바빴을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조금이라도 시간을 같이 보내면 아이는 '부모가 나한테 관심이 있구나' 생각해요. 둘째는 부엌에 항상 과일을 수북이 쌓아 놓았어요. 애들이 배고파 하면 과일을 먹게끔 했어요. 가장 쉽잖아요. 씻기만 하면 되니까요.
 
서민아이 건강을 위한 책이기도 하지만, 엄마들을 위한 책이기도 해요. 엄마들이 아이한테 이것저것 다 해줘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벗어났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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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과에 대한 부모들의 스트레스도 큽니다. 아이가 아파서 안 그래도 불안한 마음인데, 환자가 많으니 충분한 설명을 못 듣고 진료를 받는 경우가 많아요.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의사를 찾기가 어려운 것 같습니다. 부모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지 무척 어려울 때가 종종 있습니다.

 

강병철 핵심은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의 문제에 있기 때문에 한 두마디로 정리하기는 어렵습니다. 의사들을 위해 변명하고 싶은 건, 학교에서 사회적인 스킬을 많이 못 배웠다는 점이에요. 의학교육이 문제인데요. 공부도 잘하고 머리는 너무너무 똑똑한데, 사회적인 스킬은 부족한 의사가 많아요. 요즘은 대학에서도 많이 변했다고 하지만, 역할극 등을 통해서 다양하게 가르쳤으면 좋겠어요. 저 같은 경우는 어렸을 때부터 맨날 아파서 병원을 무척 자주 다녔어요. 병원에서 환자 노릇을 많이 해보니까, 의사나 간호사가 어떤 행동을 했을 때 기분이 나쁜지, 마음이 불편한지를 자연스럽게 알게 됐어요. 그래서 환자를 볼 때 조금 더 유연할 수 있지 않았나 싶고요.

 

강병철또 하나, 진료를 서비스라고 여기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의사를 찾아가는 건 식당에서 밥 먹는 일이랑은 좀 달라요. 환자는 설명을 잘 들어야 하고, 그게 합리적으로 이해가 되고 실증적으로 증상이 좋아져야 하죠. 그리고 사람이 너무 많은 병원은 현실적으로 친절할 수가 없어요. 친절한 설명을 듣고 싶으면 한가한 병원을 갈 수밖에 없어요. 병원에 사람이 많은 건 의사가 치료를 잘하기 때문일 테니 어느 정도 불편을 감수할 수밖에요. 그게 싫으면 한가한 병원을 가야 하는데요. 이 문제는 결국 시스템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어요. 절대 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서민과 닥터 강이 똑똑한 처방전을 드립니다』는 무턱대고 조언만 하는 게 아니라, 현실적인 책이라서 부모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요?

 

서민책을 쓰면서 육아 인터넷카페를 자주 들락거렸어요. 정말 수없이 많은 육아 정보가 올라오는데, 그 중 정확한 정보는 그렇게 많지 않아요. 아이 건강을 잘 지키려면 부모가 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정도 건강에 대한 지식을 갖추고 있으면 아이가 심각한 증상을 보여도 당황하지 않을 수 있고,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증상에도 서둘러 병원을 감으로써 병의 진행을 막을 수 있어요. 사람들의 말에 현혹되지 말고, 제대로 된 건강 지식을 알고자 노력했으면 합니다.

 

강병철 아이를 키우는 게 굉장히 큰 스트레스인데, 생각해보면 스트레스를 느낄 필요가 없어요. 너무 완벽하게 키우려고만 하지 않으면요. 완벽한 부모가 되겠다고 목표를 세우지 말고, 괜찮은 부모가 되겠다고 생각하면 아이를 조금은 쉽게 키울 수 있지 않을까요? 혹시라도 이 인터뷰를 읽는 아빠 독자가 있다면, 한 가지라도 좋으니까 엄마들을 도와줬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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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과 닥터 강이 똑똑한 처방전을 드립니다서민,강병철 공저 | 알마
병원은 갈수록 번쩍번쩍한 장비로 채워지고, 건강 정보도 발에 채일 정도로 넘쳐나는데 왜 우리 아이들은 여전히 자꾸 아픈 걸까? 과연 무엇을 믿고 무엇을 믿지 말아야 할지 고민에 빠진 엄마들을 위해, 의학 대중서를 쉽고 흥미롭게 쓰기로 소문난 서민 교수와 약에 의존하지 않고 기본을 챙기는 강병철 소아과 의사가 ‘똑똑한’ 소아과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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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새난슬 “그냥 모난 돌로 살아가자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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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새난슬, 독특한 네 글자 이름만큼이나 그녀의 삶은 평범함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가수 정태춘과 박은옥의 외동딸, 온몸에 그려진 타투, 펑크록 밴드 보컬과의 (조용하지만은 않았던) 결혼과 이혼, 싱글맘, 서른이 넘어 데뷔한 싱어송라이터… 그녀의 책 『다 큰 여자』를 펼치며 “문제적 여자의 파란만장 멘탈 성장기”라는 부제 앞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책장을 덮을 때 즈음, 그녀의 이름 앞에 붙은 ‘문제적 여자’라는 수식어를 떼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뜨겁게 사랑한 후에 차가운 이별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그녀만의 일도 아닐뿐더러, 모성 앞에 여성성이 희생되는 사회 속에서 겪게 되는 심각한 산후우울증도 낯선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진짜 ‘문제적’인 건 그녀와 같은 삶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 안의 시선, 그 속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편견이다. 타투를 새긴 여성의 몸을 바라보며 “저래서 시집이나 가겠어?”라고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는 것처럼.

 

『다 큰 여자』가 정새난슬의 ‘성장기’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그녀는 자신을 바라보는 곱지 않은 시선들 사이에서도, 흔들릴지언정 ‘나다움’을 잃지 않았다. 여전히 사회는 이혼녀를 향해 “이혼이 자랑이냐”고 힐난하고 “애도 있는데 네가 더 참고 살지 그랬니”라고 책망하지만, 정새난슬의 대답에는 주저함이 없다. “모든 계절을 겪고 이렇게 튼튼하게 지내는 게 나는 너무 자랑스러워요” 그렇게 그녀는 흔들려도, 불안해도, 우울해도, 스스로의 목소리를 따라 걷는 길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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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벌린 상처로 노래를 불러봐

 

『다 큰 여자』에서 아주 솔직한 이야기들을 들려주셨어요. 산후우울증과 자살기도, 이혼에 대한 부분들까지요. 짐짓 모른 체 하거나 에둘러 말하실 수도 있었을 텐데, 힘들게 이야기를 꺼내신 이유가 있나요?

 

제가 한창 산후우울증에 걸렸을 때 생각한 건데요.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네가 유별나서 그래’라거나 ‘네가 지금 미쳐가고 있는 거야’라고 말을 하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사실 그게 아니거든요. 많은 여성들이 그런 일을 겪고 있지만 수면으로 많이 드러나지 않는 거잖아요. 그래서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우울에 침잠한 채로 사라져 가는 거죠. 자존감도 떨어지고 정체성에 큰 혼란을 겪게 되고요. 그렇다면 차라리 그런 것들을 기록으로 남기자고 생각했어요. 네가 미친 거라는 소리를 듣고 있는 다른 여성들을 위해서라도. 그 사람들이 미친 게 아니잖아요. 인생의 어떤 지점에서 누구나 우울할 수 있고, 누군가 어둠 속에 잠겨 있을 수도 있는 거니까요. 이 책이 훌륭한 사료가 되는 것도 아니고 개인의 기록이기는 하지만, 누군가 ‘이런 여자도 있었구나, 나보다 더 유난스러웠구나’ 하고 마음을 놓을 수 있다면, 이 이야기가 기록으로 남을 필요가 있다고 느꼈어요.

 

책을 다 읽고 보니 ‘어물쩍 넘어가는 건 정새난슬의 스타일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사실 이혼하고 나서 많이 다운돼 있었어요. 이혼은 굉장히 고통스러운 일이니까요. 그때 저를 구해준 책이 『정희진처럼 읽기』였어요. 그 책에 프란츠 파농의 『검은 피부 하얀 가면』의 독후감도 실려 있었는데, 그런 이야기가 있더라고요. 어떤 얼룩을 뒤집어씀으로써 얻게 되는 인식론적 자원이 있다고요. 제가 이혼을 하고 자살 기도를 했다는 상처를 밖으로 드러내면, 사람들이 저를 멀쩡한 부류가 아닌 바깥의 사람으로 바라볼 수도 있죠. 그런데 그곳에 서서 안쪽을 들여다보면서 깨닫는 것들이 있는 것 같아요. 내 안에 차오르는 새로운 말들도 있고요. 제가 노래 가사에도 썼는데 “입 벌린 상처로 노래를” 하라는 게, 상처에서 벗어난 뒤에 다시 그곳으로 걸어 들어가서 바라보는 거예요. 그런 후에는 정말로 단어들을 얻게 돼요. 오히려 저는 (그런 게) 힘이 되는 것 같아요. 제가 타투를 많이 한 것과도 관련이 있는 저의 성향 같기도 해요. 누군가가 ‘왜 타투를 하고 그래’라고 하면 더 (타투를) 하거나, 그런 식으로 부딪혀가는 거죠.

 

‘타투녀’, ‘이혼녀’라는 이유로 사회의 편견에 부딪힐 때가 있으시잖아요. 그럴 때는 ‘그럼 평범하게 사는 게 어떤 건데?’라는 생각도 들 것 같은데요. 어떤가요?

 

저는 오히려 제가 모난 돌 같지 않고요. 사람들이 조금 신기한 것 같아요. 어떤 통념이 지배하는 사회에 사느냐에 따라서 사람의 삶이 너무 다르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그것에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있나 싶기도 하고요. 물론 ‘모난 돌이 되지 말고 동글동글하게 섞여 나가서 문제를 일으키지 말고 살자’는 것도 방식의 하나이긴 하죠. 그런데 사실은 제가 이상한 게 아니잖아요. (스스로를) 이상하다거나 문제적 여자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는 것 자체가 오히려 그 이상함에 맞대응 하기 위한 제 나름의 단어 선택이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제 깊은 속마음에서는 제가 정말 자연스러운, 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게 있는 것 같아요. 영국 같은 데에서도 살아봤지만 이런 정도로 해서 눈에 띄는 사람은 아니거든요. 다만 나라마다 상황이 다르니까,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이런 것에 대한 논의가 많이 되지 않았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그렇다면 지금 이야기하자고 생각하는 거예요. 앞으로는 바뀔 거니까요.

 

책 제목이 『다 큰 여자』예요. 스스로 ‘다 큰 여자’라고 생각하세요? 아니면 ‘다 큰 여자’이기를 기대하는 외부의 시선이 있는 건가요?

 

<다 큰 여자>라는 동명의 일본 영화가 있거든요. 제가 20대 후반에 봤는데, 30대의 결혼한 여성과 미혼 여성의 일상들을 다루고 있었어요. 그런데 ‘다 큰 여자’라는 말이 일본 제목을 번역한 것이다 보니까, 약간 이질감이 들면서도 ‘성인 여성’하고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잖아요. 어떤 면에서는 반어법 같기도 하고, 해석의 여지가 많은 단어라고 생각했어요. ‘나는 다 큰 여자야’라는 애틋한 선언 같기도 하죠. 기본적으로 저는 모든 인간이 완료가 되는 시점은 없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다 큰 여자’라는 말은 내가 완전히 완료가 되었다는 게 아니라 일종의 선언이죠. 이면을 바라보면 다른 의미로 해석될 수도 있고요. 저는 이 제목이 함의하는 바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정한 것 같아요. 저한테 ‘사회가 부과하는 책임이나 의무를 다하고 있는 성인 여성이냐, 어른이냐’고 물으신다면, 거기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어요.

 

‘정태춘 박은옥의 딸’, ‘펑크록 밴드 보컬과의 결혼과 이혼’ 등을 이유로 많은 주목을 받아오셨어요. 그렇기 때문에 더 괴롭다고 생각하신 적은 없나요?

 

그건 이미 정새난슬이라는 이름을 가졌을 때부터 시작된 일이라서, 거기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맷집이 생겼다고 해야 하나요. 어렸을 때부터 뭔가 특별한 것도 없는데 정새난슬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다 쳐다봤으니까요. 제가 그런 부모님 밑에서 태어나서, 남편과 그런 일을 겪어서, 편견을 더 겪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요즘 여성 혐오와 관련해서 쏟아져 나오는 증언들, 이제야 쏟아져 나오는 여성의 진실들을 보면 저라서 그런 게 아닌 거예요. 더 특별한 경우라기보다는 다 다른 경우들이지만 맥락은 같은 거죠. 너무나 딱딱하게 이 사회에 뿌리 내린 편견들이 있는 것이고, 어떤 여성이라고 고단하지 않겠어요. 다들 고단할 거예요, 정말. 저는 이제라도 이렇게 들끓는 상황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단계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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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평판 나쁜 엄마예요

 

책에서 페미니즘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셨잖아요. 생각해 보면 여성들 스스로 남성 중심적인 시선에 길들여져 있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저 역시 그런 것 같아서 많이 뜨끔했어요(웃음).

 

저도 그랬어요(웃음). 어려운 일이잖아요. ‘저 페미니스트예요’라고 이야기하려면 (페미니즘에 대한) 모든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요.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부터 쉬운 일이 아니죠. 거울을 보고 자신을 사랑하기가 참 힘들어요. 바깥의 시선, 남성들의 시선이 내면화되어서 거울을 보면서 괴롭단 말이에요. 그러다 보니까 ‘내가 페미니스트라고 할 수 있을까’ 싶은 거죠. 그런 작은 것부터 걸리는 거예요. 그런데 결국은 페미니스트라고 선언하는 것 자체가 내 인식을 바꾸고 각성하는 일인 것 같고, 그런 과정에 있는 사람이라도 그렇게 발언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해요.

 

여성의 권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여자라고 해도 ‘좋은 엄마 콤플렉스’는 버리기 힘든 것 같아요. 작가님은 어떠셨어요?

 

저는 대놓고 이야기하잖아요. 저는 평판 나쁜 엄마라고요. 처음부터 저는 모성애 경쟁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생각했어요. 오늘 우리 아이 이유식을 어떻게 만들어줬는지 사진으로 찍어서 올리시는 분들도 있잖아요. 그 분들도 좋은 엄마예요. 아이에 대한 사랑이 그만큼 큰 거죠. 그런데 사람이 모두가 같지 않잖아요. 일로써 성취하고 싶은 여성들도 있고, 엄마라는 것 자체가 한 여성의 모든 정체성을 차지하는 건 아니거든요. 그런데 자꾸 모성 신화를 들이대면서 ‘엄마는 다르다’라거나 ‘아이 엄마가 되더니 달라졌다’고 해요. 저는 엄마가 되어도 똑같거든요. 여전히 클럽에 가고 싶고, 술을 마실 수도 있어요. 저는 그런 시선들을 조금 거부하고 싶어요. 제가 그렇게 나쁘지 않은 엄마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평판 나쁜 엄마라고 이야기하는 건 엄마들의 세계에 숨구멍을 트여주고 싶은 거예요. 여자는 뭘 해도 부족한 엄마잖아요. 맞벌이를 해도 부족한 엄마이고, 집에서 아이와 있어도 부족한 엄마죠.

 

주변 사람들이나 사회에서 요구하는 것들에 흔들리지 않기란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그런 점에서 자의식이 굉장히 단단한 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부모님으로부터 영향 받은 바도 있으셨나요?

 

그런 것 같아요. 제가 어렸을 때 아빠가 사전 심의 철폐 운동을 하셨는데, 그건 사실상 아빠 혼자 하셨거든요. 누가 편을 들어주지도 않고 싸움에 동참해 주지 않아도, 혼자 ‘검열 받지 않는 영혼’ 도장을 만드셔서 찍으러 다니셨어요. 그때 사전 심의 신청을 안 했기 때문에 불법 음반이었는데, 그 음반을 싸들고 다니시면서 공연하실 때마다 팔았거든요. 그런 걸 보고 자란 사람이니까, 그런 영향은 있었던 것 같아요. 

 

책에서 들려주신 아버지의 사랑 방식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자식을 대하시는 데 있어서 가부장적이거나 권위적이지 않으시고, 눈높이를 맞추시고 부드럽게 소통하시더라고요.

 

저는 엄마랑은 많이 이야기하지 않아요(웃음). 엄마랑은 정말 갈등이 심해요(웃음).

 

세상 모든 모녀가 그렇죠(웃음).

 

네, 육아 갈등부터 시작해서 요즘에는 장난 아니에요(웃음). 그래서 엄마하고는 정말 일상적인 이야기로 투닥투닥 하는 반면에, 아빠하고는 두 시간씩 계속 이야기를 나눠요. 어렸을 때부터 그랬어요. 아빠가 직장을 다니지 않으셨으니까 저와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셨고요. 저는 아빠가 걸어왔던 길을 보면서 한 남성이 시대에 따라서 변해간 모습, 계속 성장하는 모습을 본 것 같아요. 제가 느끼기에는 지금도 멈춰있지 않으시고 계속 성장하시는 거예요. 그런 아버지를 바라보면서 존경스러운 거죠. 누가 저한테 ‘너는 좋은 아버지를 만나서 그래’라고 하면, 거기에 대해서는 ‘응’이라고 답할 수밖에 없어요. 아빠와는 각별한 사이죠.

 

작가님도 한 아이의 엄마가 되셨잖아요. 어머니에 대한 느낌도 달라졌을 것 같아요.

 

제 전남편도 음악을 하는 사람이었잖아요. 그렇다 보니까 아이를 낳고 나서 엄마 모습이 겹쳐서 떠오르더라고요. 매니저처럼 아빠를 따라다니면서 챙겨주시던 엄마 모습이 생각나는 거죠. ‘엄마처럼 살지 말아야지’가 모든 딸들의 돌림노래인데, 어느새 나도 모르게 엄마처럼 살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어요. 그게 나쁘다는 게 아니라, 저는 그런 (엄마 같은)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했거든요. 저희 엄마는 집안의 카우보이 같은 성격이신데 저는 아니거든요. ‘나는 뭔가 내 걸 하고 싶은데 한 남자의 세계에, 가정 안에 함몰되고 말까’ 그런 불안감도 있었던 것 같아요. ‘나도 이렇게 엄마의 인생을 대물림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런데 엄마랑 다른 게 있다면, 저는 그걸 박차고 나온 거죠. 

 

작가님의 이름 앞에 항상 ‘정태춘 박은옥의 딸’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데, 불편하지는 않으세요?

 

그런 수식어가 붙어서 사람들한테 더 많이 회자되니까, 그게 장점이고 좋은 시작이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다른 한편으로는 ‘지금 친정집에 얹혀살고 있는데, 엄마 아빠 이름에도 얹혀서 가는구나’라는 자괴감이 약간 들죠. 그런데 (부모님에 대해서) 물으시는 것에 관해서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저 자신도 그런 질문에 대답하는 데에 익숙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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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조각난 저를 기워주셨어요

 

책에서 말씀하시길, 부모님의 음악적 재능을 많이 물려받은 편이 아니라고 하셨는데요. 앨범을 들어보니까 엄살이신 것 같던데요(웃음).

 

재능은 아니에요. 저희 아빠 같은 경우는 멜로디를 들으면 바로 악보로 옮겨 적으시고, 엄마 같은 경우는 정말 화려한 가창력을 가지신 분이란 말이에요. 그런 집안에서 내가 음악적인 재능이 있다고 느끼기가 정말 힘들어요(웃음). 오히려 저는 음악적으로 두각을 나타낸 적도 없고 노래를 잘 부르는 편도 아니었기 때문에 제가 재능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지금도 재능이 있다고는 이야기 안 해요. 정말 그건 신이 저한테 빠트린 부분이에요. 음악적인 재능 없어요. 그래도 생활 속에서 음악이 있었다는 게 제일 큰 것 같아요. 삶의 방식으로써 음악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저한테 그것이 높은 문턱이 아니었죠. 작사 작곡도 그냥 앉아 있다가 ‘배가 고프구나’ 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 것 같아요. (음악을) 삶의 방식으로써 물려받은 거지, 재능을 물려받지는 않았어요.

 

이번 책의 출간과 함께 동명의 앨범 『다 큰 여자』도 발표하셨는데요. 아버지께서 편곡에 참여하셨어요. 부녀가 함께한 작업은 어땠나요?

 

아빠가 많이 맞춰주신 것 같아요. 음악적인 정서가 완전히 다르잖아요. 세대 차이도 있고요. 제 음악 같은 경우는 저의 보컬을 고려하거든요. 작은 텃밭이에요. 제가 심을 수 있는 것도 아주 작은 농작물들이고요. 그런데 아빠는 큰 정원을 생각하시고 음악을 만드시는 거죠. 그러니까 저는 ‘나의 소박함을 짓누르는 편곡이다’라고 이야기하고, 아빠는 ‘편곡 자체가 훌륭해야 한다, 네가 이야기하는 건 제대로 된 음악이 아니다’라고 하시고, 이런 식으로 계속 부딪혔어요. 음악적인 정서를 맞추는 게 많이 힘들더라고요. 정말 갈등이 심할 때는 아빠도 저도 ‘안 해’ 이렇게 돼요(웃음). 아빠도 너무 스트레스 받으신다고 하고요(웃음). 그래도 서로 많이 타협하니까 중간 지점이 찾아지더라고요. (이번 작업은) 저희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어요. 사실 이혼한 상황에서 그렇게 하기가 힘들잖아요. 그런데 아빠가 먼저 같이 해보자고 하셨어요. 딸이 이혼하고 넝마가 되어서 왔으니까요. 사실은 음악 작업 이상이죠. 조각조각 난 저를 기워주신 거죠.

 

다음에도 함께 작업하실 생각이 있으세요?

 

일단 제 음악 가지고는 못하겠고요(웃음). 아빠랑 동료를 해볼까, 그런 생각은 해요. 사실상 제 목소리는 동료에 적합한 목소리이기 때문에, 같이 동료를 해볼까 싶기는 해요. 딸 서하가 있으니까 그렇기도 하고요. 생각에서 그칠지 실천을 하게 될지는 모르겠어요.

 

『다 큰 여자』의 수록곡을 들으면서, 어머니의 음색을 닮으셨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특히 고음 부분에서요.

 

그래서 엄마도 조금 이상하다고 하시더라고요. 어렸을 때는 안 그랬는데,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모르겠어요. 고음이라든지 어떤 부분에서 음색이 비슷할 때가 있는 것 같더라고요.

 

책에도 앨범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각각의 곡에 얽힌 에피소드를 들려주셨는데요. 아버지와 작업하실 때도 말씀하셨던 부분들이죠?

 

그렇죠. 특히 「다 큰 여자」 같은 경우는, 음악은 조금 책이랑 다른데, 음악 자체는 약간 각성하는 내용이에요. 이를테면 저는 약간 애니메이션 주제가처럼 생각했어요. 그때가 가장 산후우울증이 심할 때였고 자살 기도 하는 일들이 있을 때여서, 정말 벗어나기 힘든 상황이었거든요. 노래에 등장하는 다 큰 여자도 저 자신이고, 혼자 침묵에 잠겨 있던 것도 저 자신이고, 사실 굉장히 개인적인 노래예요. 그 곡도 드라마틱하게 편곡을 갔는데 ‘유치하거나 말거나 이건 나의 성장노래니까 이렇게 가겠다’고 생각한 부분들이 있었죠. 제가 상상력 빈곤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경험했던 것이 아니면 잘 쏟아져 나오지는 않아요.

 

한 앨범에 담긴 모든 곡에 대해서 이면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게 흔한 일은 아니잖아요. 작품 외적인 이야기를 언급하고 싶어 하지 않는 뮤지션들도 있고요. 작가님의 경우는 어땠나요?

 

그것도 맞는 말이에요. 어떤 작업물을 내 놓고서 이런 방향으로 읽혀야 된다고 말하는 게 대중한테는 폭력적인 일이 될 수도 있거든요. 그런데 저 같은 경우는 서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고, 제 인생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났을 때마다 적었던 곡들이기 때문에, 앨범만 들으시는 분들은 자기 방식대로 음악을 소화하고 즐겨주시면 될 것 같아요. 저로서는 ‘이러저러한 일들이 있을 때 이 노래를 만들었습니다’라고 적어보고 싶었던 거죠. 특히 「아기가 되었다」 같은 곡은 가사에 있는 그대로거든요. 누군가는 함축적이라고 하는데 그렇지 않아요. 진짜로 새벽에 한강 수영장에 갔고, 전남편이 어디에서 오토바이를 가지고 왔고, 그러다가 아기가 된 내용이에요. 제 곡들이 전부 다 그런 것 같아요. 그 이야기를 한 번 해보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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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큰 여자』는 기록이죠

 

독자들이 『다 큰 여자』를 어떻게 읽으면 좋을까요?

 

저는 산후우울증 같은 이야기가 인터뷰에서 더 많이 다뤄지기를 원했었거든요. 산후우울증 또는 우울증을 겪거나, 배우자한테 ‘네가 유별나서 그래’라는 소리를 들으시는 분들이 있다면 제 책을 보여주셨으면 좋겠어요. ‘이것 봐, 나보다 더 이상한 여자도 있잖아’라고 사용해 주시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했어요(웃음). 그리고 기본적으로는 ‘그냥 모난 돌로 살아가자’는 거예요. 이것 역시도 정희진 선생님 책에서 봤던 내용인데, 모난 돌들이 소통할 수 있는 사회가 좋은 사회이지 모난 돌을 깎아서 둥근 돌들이 사는 사회가 좋은 사회가 아니라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이 책에서 저의 다름을 어떻게 다루는지, 어떻게 소화하고 있는지 보실 수 있었으면 좋겠고요. 그런 부분에 있어서 모난 돌로 살아가자는 거죠.

 

집필하시는 동안 ‘나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새로 알게 되신 부분도 있었을 것 같아요.

 

글을 쓰면서 조금 선해지는 것 같아요. 자기 자신과는 다르게. 글 속에서 자신을 재발견하게 되잖아요. 정말 악에 받친 날은 ‘내가 좋은 사람일까’ 하는 고민에 휩싸일 때가 많잖아요. 그런데 글을 쓰다 보면 정리가 되고 정화가 되거든요. 위악보다 위선이 낫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글을 쓰면서 자신을 발견하게 되니까 ‘나한테 이런 면이 있었나?’라고 생각되기보다는 ‘그래, 이렇게 살아야 돼’ 하고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특히 딸에게 하는 말 같은 경우는 사실 저 자신한테 하는 이야기죠.

 

딸 서하가 커서 『다 큰 여자』를 읽을 수도 있을 텐데요. 책에 담긴 솔직한 이야기를 알게 되더라도 두렵지는 않으세요?

 

어차피 저는 우리 모녀 관계가 정말 환상적일 거라는 기대는 안 해요. 물론 그렇게 되면 좋죠. 하지만 인간관계는 복잡하고 서하가 어떤 인물로 자랄지 모르잖아요. 서하의 인생관이 나와 다를 수도 있는 거고요. 하지만 저는 ‘엄마는 완벽한 사람이 아니야, 미안해’, ‘나는 그랬어, 나는 복잡한 여자로 이해해 줘’, ‘엄마이기도 하지만 나는 수많은 정체성들이 있어, 나를 여성으로 봐 줄래?’ 이렇게 말하고 싶은 것 같아요. 딸한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나중에 가서 생각하기로 하고요(웃음).

 

엄마도 여자이고, 엄마도 부족할 수 있다는 걸 받아들이기가 쉽지는 않잖아요. 작가님은 그런 딸이었나요(웃음)?

 

아뇨(웃음). 저는 오히려 엄마가 일을 포기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해요. 엄마가 엄마로 남아있기를 선택했기 때문에 저랑 갈등이 생겼다고 생각하거든요. 저희 엄마가 바라는 엄마는 귀여운 일러스트 같은 거 그리면서, 예쁜 그릇 모으고, 엄마랑 같이 요리도 배우러 다니고, 그런 모습인데 저는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저는 엄마가 자기 일을 하고 야망이 있었다면, 물론 거기에서 얻어지는 섭섭함도 있었겠지만, 그랬다면 지금보다 덜 부딪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해요.

 

훗날 서하에게 『다 큰 여자』는 어떤 의미가 될까요?

 

‘우리 엄마아빠가 왜 이혼하게 됐을까’를 생각했을 때 한 번 읽어 보면, 제 버전의 이야기를 읽게 되겠죠. 그리고 자기가 알아서 해석하겠죠. 아빠를 보면서 자라기도 할 테니까요. 그 균형을 잘 잡아주도록 제가 이야기를 많이 해야 될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남편과 헤어지기는 했지만 한 때 정말 사랑했던 사람이니까, 저는 그것까지 엉망으로 만들어 버리고 싶지는 않거든요. 그래서 전남편한테 보냈던 편지도 그대로 실려 있는 거예요. ‘우리는 사랑해서 결혼했고 그래서 너를 낳았어, 그것만큼은 변하지 않아’라는 건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다 큰 여자』는 ‘정새난슬의 이야기’를 담고 있잖아요. 독자들이 정새난슬을 어떤 여자로 이해하길 바라세요?

 

딱히 어떻게 생각해줬으면 좋겠다는 건 없고요. 첫 책이라서 그런지 대중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사실 잘 모르겠더라고요. 일단 저는 ‘지금이 어떻게 생각될 것인가’는 잘 생각 안 하고요. 시대가 조금 더 많이 바뀐 뒤에, 그때도 헌책방 같은 게 있다면, 어린 여자 아이들이 이 책을 집어 들고 ‘세상에 이것 좀 봐, 옛날에는 이랬대, 어이없다’ 그랬으면 좋겠어요. 그런 책으로 남았으면 좋겠어요. 기록이죠. 풍속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고 이혼한 여성, 타투한 여성, 빨갱이 딸로서의 기록이기도 하고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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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큰 여자정새난슬 저 | 콘텐츠하다
서른 중반의 몸만 커버린 여자로, 어느 누구보다 아팠던 시간과 부족했던 스스로를 인정하는 용감한 고백이자 우울하고 상처받은 영혼의 치유담, 그녀처럼 남들의 시선에 정의되고 싶지 않은 이 시대 여자들에게 보내는 독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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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오키 “공간이 없어지면 싸울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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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흥적으로 걸음을 뗐고 전위적으로 걸음을 옮겼다. 비애가 만든 냉소가 스며들어있었고 분노가 만든 열기가 배어있었다. 숨죽인 울음이 있었고 목이 찢어지는 외침이 있었다. 나의 어제를 이야기했고 우리의 오늘을 이야기했다. 그것은 재즈처럼 보이기도 했고 재즈가 아닌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심지어 그것은 음악처럼도 보였고 음악이 아닌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현재 우리나라 음악 신의 또 다른 괴작가 김오키를 처음 마주했을 때 들었던 느낌이었다. <Cherubim's Wrath (천사의 분노)>, <격동의 시간여행>, 아방 트리오에서의 <Blue Suns> 등에 걸린 그만의 사운드는 늘 각양의 감상을 불러일으켰고 여러 호기심을 자극했다. 조금은 다른 영역에 있는 아티스트의 표현법에 대해 직접 들어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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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시간여행>이 소리 없이 나왔다.


원래는 재작년 5월에 나왔어야 했다. 중간에 문제가 있어서 다 만든 상태였는데도 발매는 못 했다.

 

그럼 다음 앨범은 언제 나오나. 근황도 궁금하다.

 

빠르면 올해 6월, 아니면 7월이나 8월까지 갈 듯싶기도 하다. 요즘 여러 밴드를 꾸려서 하고 있다. 얼마 전에 시작한 김오키 스피릿 선발대라는 팀에서도 앨범을 준비 중이고 김오키 뻐킹매드니스라는 팀에서 새로 앨범을 낼 예정이다. 노선택과 소울 소스라는 레게 팀하고 김오키 쿼텟이라는 스탠다드 재즈팀도 하고 있다. 생각해보니 방백도 하고 있다.

 

팀 소개를 더 부탁한다.

 

앨범 계획으로 이야기하는 게 편하겠다. 올해 나올 앨범이 총 다섯 장이다. 처음이 스피릿 선발대 앨범. 아프리카에서 기우제 지내는 듯한 아프로 사운드를 낸다. 두 번째가 뻐킹배드니스 앨범. 동양청년에서 했던 것처럼 때려 부수는 식으로 방향을 잡았다. 숨의 박지하 씨와 둘이서 하는 콜래보레이션이 세 번째고 동양청년에서 드러머만 바꿔서 하는 프로젝트가 네 번째다. 네 번째 음반의 경우에는 동양청년과 약간 다른 스타일의 음악을 할 것 같은데 아직 구체화는 안 됐다. 그리고 중간에 옛날 가요를 재즈로 재해석하는 앨범이 나간다. 비트볼레코드 이봉수 사장님의 기획으로 만드는 음반이다.

 

멤버도 대체로 비슷하다. 소울 소스 멤버에서 네 명 나와서 선발대를 같이하고 있다. 박지하 씨도 거기에 있다. 그리고 뻐킹매드니스에서는 소울 소스의 노선택 씨가 베이스를 치고 있다. 라인업은 약간씩만 바뀐다. 맞는 사람들끼리 자주 하게 된다.

 

동양청년은 해체인가.

 

해체다. 드럼 치는 친구가 아무래도 음악으로는 생활이 안 되다 보니 그만두게 됐다. 원래 했던 디자인, 그림 쪽으로 일을 더 할 거라 한다. 재즈 밴드는 사실 오늘과 내일의 멤버가 바뀌어도 활동에 큰 변화가 없다. 하지만 동양청년은 그런 식으로 만든 팀이 아니었다. 원래부터 멤버가 바뀌게 되면 해체하겠다고 했다.

 

많은 아티스트들과 작업하고 있는 것 같다. 머리 복잡하지 않나.

 

되게 힘들다. 머리가 굉장히 아프다. 매일 음악 생각만 하게 되니까. '어떻게 뭘 만들지' 식으로. 이번에 했던 것도 예전부터 어느 정도 생각했던 걸로 했고, 1집과 2집의 구상과 작곡도 본 작업보다 앞서서 이뤄졌다. 미리 짜놓은 채로 있다가 좋은 멤버 생기면 그때 하게 된다. 음악 생각을 계속하다 보니 스트레스로 다가온다.

 

팀마다 나타내려 하는 주제도 다른가.

 

얼마 전에 김수영 시인에 관한 연극을 했다. 그때 대본을 받아보면서 이걸 음악으로 만들면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네 프로젝트가 곧 김수영 시인에 관한 네 편의 책을 의미한다. 각각 연관이 있다. 김수영 시인의 내용이 다 들어가 있기도 하고. 주제도 따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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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인생은 어떻게 시작했나.

 

초등학교 때 흑인음악을 좋아했다. MC 해머나 마키 마크, 바닐라 아이스 식의 뉴잭스윙을 AFKN을 통해 특히 많이 들었다. 그런 음악을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레 춤이 따라왔다. 방송 댄스도 하고 스트릿 댄스도 했다. 그렇게 춤추다가 고등학교 무렵에는 아예 나와 살게 됐다. 당시에 집안에서 음악 하는 걸 많이 반대했다. 할아버지랑 아버지께서 음악을 많이 좋아하시다 보니 음악으로 먹고사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고 계셨던 거다. 그래도 독립해서 계속 춤을 췄고. 색소폰을 하기 시작한 건 군대 다녀와서. 우연히 마일스 데이비스 앨범을 듣다가 관심이 갔다. 배우러 바로 학원에 갔다.

 

색소폰을 2개월 정도만 배웠다는 얘기가 있다.

 

배우다 보니 혼자서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학원 수업이 일정 기간 지나면서부터는 과제와 검사의 반복이지 않나. 스스로 하다가 직장인 밴드에서 연주했다. 조금 지나니 밴드에 외국인 친구들이 들어왔다. 그 애들에게 많이 배웠다. 자기네 나라에서 음악 전공하고 그 쪽으로 진로가 잘 안 풀려 어학 강사로 우리나라에 온 애들이 많았다. 씨제이 킴 형도 그 밴드에서 만났다. 특히 씨제이 킴 형하고 친해지면서 가르침을 엄청 받았다. 그 외에도 동생들에게도 많이 물어보고 공부했다.

 

그나저나 춤은 왜 그만둔 건가.

 

춤에도 저마다의 릭이 있고 라인이 있다. 그걸 조합해 끼워 맞추면서 한 곡의 춤을 완성하는 거다. 춤을 그만둔 건 그 조합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고 느꼈을 때였다. 어떤 것에 대해 원하는 대로 표현이 안 됐을 때 답답해했다. 춤이 정말 자유로워 보이지만 그 안에 자유롭지 않은 지점들이 많이 있다. 그래서 그만뒀다. 그런데 재즈도 비슷하다. 박재천 선생님께서 '너네 재즈 뮤지션들은 자유는 있는데 구속돼있다”고 자주 말씀하셨다. 연주에서든 돈에서든 공간에서든. 그런 걸 다 탈피해야 자유롭다. 사실 이 세상에 정말로 자유가 있나 싶기도 하다.

 

주변에 흔히 있는 정규 과정을 거치지 않고 재즈계에 입문한 셈 아닌가. 정규 과정을 밟아온 사람들의 불만은 없었나.

 

뭐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고 되게 좋아하는 사람도 있었다. 아무래도 호불호가 갈리는 음악을 하다 보니. 특히 처음 앨범 나왔을 때 그랬다. 그 사람들도 화가 많이 났을 거 같긴 하다. 외국에서 돈도 많이 쓰고 공도 많이 들였는데도 국내에서 잘 안 풀리는데,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온 사람이 앨범 내고 그러면 아무래도 샘나지 않겠나. 그런 얘기들을 들으면 나도 막 재즈 하는 사람들 욕하기도 했다. 사실 이런 반응은 새로운 무언가가 나오면 당연히 생긴다. 나중에 당시에 자기가 잘못 생각했던 것 같다고 얘기한 사람들도 있었다. 또 생각해보면, 좋아했던 사람들은 이미 이런 저런 음악을 하고 성공을 경험한 자리에서 내 음악을 신선하게 들었던 사람들이었고 불편하다 얘기했던 사람들은 그 무렵 같이 고생했던 사람들이었다.

 

김오키라는 이름의 유래가 궁금하다.

 

재즈 긱을 처음 한 곳인 일본 오키나와에서 따왔다. 오키나와 가서 내 이름 얘기하면 다 안다. (웃음)

 

오키라는 이름을 붙일 정도로 오키나와를 좋아했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재즈 얘기를 다들 많이 하고 재즈 클럽에서 공연할 때도 내게 잘 해주고. 심지어 길에서 공연하는데 술 취한 아저씨가 존 콜트레인 하나 해달라고 하고선 자기가 밥 사겠다면서 돈 주고 가고 그랬다. (웃음) 그게 오키나와에 처음 갔을 때 일어났던 일이다. 그곳 국제거리 백화점 앞에서 카혼 연주하던 일본인 친구한테 무작정 함께 연주해보자고 해 저녁 여덟 시부터 새벽 여섯 시까지 같이 하다가 그렇게 돈도 받고. 또 거기 있던 자위대 사람들이 공연 너무 좋다고 빵 이만큼 사 오고, 또 순찰하던 경찰도 지나가던 폭주족도 손뼉 쳐주고. 좋았다. 원래는 일본을 되게 싫어했다. 막 친일파 청산 이러면서. 막상 가보니 싫어할 사람만 있는 건 아니었다.

 

일본어를 굉장히 잘하겠다. 즉석에서 함께 연주하고 오랫동안 생활했을 정도면.

 

전혀. 국제거리에서 그 친구랑 공연했을 때도 2G 핸드폰 사전 뒤져가며 의사소통한 거다. 하고 싶은 말을 한영사전으로 찾아 보여주면 걔가 다시 영어사전으로 일본어 뜻 찾아 알아듣고, 또 반대로 일본어를 영어사전으로 찾아서 내게 보여주고.

 

그럼 그곳 생활이 잘 맞았나. 특히 음악 하기에.

 

잘 맞았다. 재즈클럽이 있어서 들어갔는데 너무 잘해주더라. 연주자들과도 재밌는 얘기 나누고 어떤 아저씨는 자기가 마시던 위스키 한 병 통째로 주고 그랬다. 여기서 연주해도 되겠냐고 물었을 때도 와서 하라고 좋게 얘기해 줬다. 그러면서 정이 많이 쌓였다. 서로 많이 좋아했다. 일본어랑 오키나와 말 배우려 노력했고 오갈 때마다 김 이런 거 박스로 사다가 선물해주기도 했다. 거기서 살아야겠다며 결심까지 하고 이름도 바꿨다. 그런데 한국에서 앨범이 은근히 잘 되는 바람에.... (웃음) 정착은 안 했다.

 

우리나라로 돌아와 적지 않은 시간 활동했다. 요즘 음악 신에 있으면서는 무얼 느끼는지.

 

홍대로 넘어와서 처음 공연했던 바다비, 씨클라우드 같은 공간이 지금은 없어졌다. 이런 곳이 없어지면 결국 내가 할 곳이 없어지게 된다. 게다가 없어지는 이유가 타당한 것도 아니다. 테이크아웃드로잉도 마찬가지다. 그곳에선 내가 공연할 수도 있고 커피 한 잔 공짜로 얻어 마실 수도 있고 근처 지나가다가 화장실 가고 싶을 때 들를 수도 있다. 그런 곳이 없어지는 거다. 내 입장에선 싸울 수밖에 없다. 물론 노래로 싸워서 크게 바뀌는 게 있겠냐만 그래도 할 말은 하고 죽고 할 건 하고 죽는 게 맞지 않나.

 

고민이 많겠다.

 

합정동에 있는 ‘1969’에서도 연주를 많이 하는데 그곳마저도 요즘 오락가락한다. 외국에서 해야 하나 싶기도 하다. 얼마 전 도쿄에 있는 재즈 클럽에 다녀왔다. 엄청 오래된 곳이다. 크기도 여기(인터뷰 장소)의 3분의 1만 하다. 그렇게 조그맣고 오래된 공연장인데 계속 유지를 한다는 게 너무 부럽다. 요즘 우리나라에선 조그맣고 잘 안 된다 싶으면 다 밀어버린다. 미친 짓이다.

 

사실 많이들 힘들다고 얘기한다. 자본에 많이 묶여있는 상태고.

 

다들 힘들 거다. 나도 마찬가지다. 굉장히 많이 연주한다. 한 달에 약 20일가량을 공연에 들어간다. 그리고 그게 다 내 돈 들여 하는 거다. 누가 보면 내가 뭐 굉장히 돈 많이 버는 줄 안다. 실제로 보면 차 기름값 빠지고 밥값 빠지면 크게 남는 게 없다. 그렇다고 관객이 많이 오는 것도 아니고. 사람들 많이 모이는 페스티벌 무대에는 그냥 샤방샤방한 음악 하는 뮤지션들이나 음악 가지고 장난치는 사람들이나 오른다. 굳이 이렇게 해야 하나 싶기도 하다.

 

주변에도 그런 경우가 많은가.

 

학교 강사로 나가면서 돌아와서는 알바하고 배달 나가는 친구들이 많다. 물론 음악 생활을 굳이 그렇게 안 해도 된다. 하고자 하는 음악과 다른 음악을 하면 된다. 그런데 그러면 정말로 음악을 하고 있다고 보기가 힘들지 않나. 장사하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걸 하는 거니까. 이 문제는 정말로 모르겠다. 어떻게 해야 할지 깜깜하다. 돈을 벌어야 하는데 오히려 쓰고만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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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앨범에 대해 얘기해보자.  <격동의 시간여행>은 록 느낌이 강하게 나는 음반이었다.

 

원래 록 스타일로 가려고 했는데 많이 바뀌었다. 같이 했던 사람들이 다들 재즈를 하고 있어서 그런지 진짜 록 느낌이 안 나왔다. 게다가 요즘 록 하는 사람들하고 자주 다니다 보니 그게 첫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만들어졌다는 것도 더욱 느끼게 됐다.

 

한편으로 다양한 사운드를 실험적으로 구사하기도 했다. 재즈와 록적인 요소 뿐만 아니라 한국 전통 민요와 현대음악 식 전자음악도 있었다. 대화라는 또 다른 즉흥연주도 존재했고.

 

앨범에 있는 다양한 사운드의 경우에는, <격동의 시간여행>이라는 제목대로 한국 현대사에 있던 잊혀가는 여러 역사들을 표현하려다 보니 그런 식으로 만들게 됐다. 그 당시 사건의 느낌을 장르로 나타내보고 싶었다. 「上놈타령」은 좀 더 옛날 느낌을 낸 거고, 타이틀 트랙 「나는 겨드랑이가 문득 가렵다」는 이상 시인 단락에서 가져와 만든 거다. 「5월의 형제」는 5월 18일에 관한 거고. 각각 스타일이 그렇게 잡히지 않았나 싶다.

 

'하고 싶은 말'에 있는 형제간의 대화는 어떻게 만든 건가.

 

둘 다 연극을 한다. 형 파트 맡은 친구는 영화도 찍었고 동생 파트 맡은 친구는 뒷판 연극까지 했다. 그 트랙 녹음도 악보만 준 것처럼 상황만 던져줬다. 이어지는 트랙이 「5월의 형제」라는 것도 함께. “너는 형이고 너는 동생이야. 이런저런 대화를 하는데 웃기면서도 슬퍼야 해.” 그러고 나서 아이폰 두 대를 양손에 쥐고 둘 앞에 갖다 댄 채 녹음했다.

 

만족스러운 음반이었나.

 

얼마 전에 1집, 2집 둘 다 다시 들어봤는데 전체적으로는 1집이 훨씬 더 좋았다. 1집에 돈을 더 많이 들여서 그런가 싶다. 녹음 상태도 그 앨범이 더 잘 잡혀있고. 구성은 2집을 더 좋아한다. 2집 곡이 안 좋아서 그런 걸까(웃음)

 

평소 레코딩 방식과 협연 방식이 궁금하다. 다른 연주자들과 합을 자주 맞추고 구상에 대한 이야기를 충분히 하고 가나.

 

나오는 느낌을 본다. 공연으로 1,2년 같이 연주하기도 하고 곡을 쓰면서 영향을 받았던 책을 같이 읽기도 했는데도 그 느낌이란 게 안 나오면 결국 맘에 안 들게 된다. 그러면 다른 사람들하고 다시 팀을 짜 연주한다. 여러 번 같이 작업했던 사람들하고는 그 점에서 쉽게 작업했던 것 같다. (김)성배 형도 그렇고 1집에서 피아노 치는 친구랑 드럼 치는 친구도 그렇고 연주하는 방식이 스탠더드 하는 분들과 많이 다르다. 이 사람들하고는 잘 맞았다.

 

작곡은 어떻게 하는가.

 

그림을 먼저 그려놓는다. 예를 들어 텔레비전을 보다가 굉장히 마음에 드는 사람이 나오면 그 사람에 대한 노래를 만들자고 생각한다. 그럼 인물에 대해 앞뒤를 다 보고 제목을 만든다. 제목이 그래서 길어지는 것 같다.

 

유독 트랙 제목이 길다. 제목으로 많은 걸 표현하는 듯한데, 김오키의 음반에서 제목은 어떠한 기능을 수행하나.

 

가사가 없는 대신 제목으로 어느 정도 나타낸다. 긴 제목은 어떤 것에 대해 말할 때 이런저런 단어들을 섞어 쓰는 걸 좋아하기 때문에 나오는 결과 같다. 막 고상하게 제목 짓고 하는 건 잘 모른다. 싫기도 하고. 그런데 이런 경향이 요즘엔 약간 깨졌다. 방백 앨범 보면 제목이 두 글자씩 들어간다. 그 정도로도 충분히 이미지를 그려내는 걸 보면서 그 또한 좋은 방법이겠다 싶었다. 나 또한 해온 방식들을 무조건 고수하는 사람도 아니니.

 

제목이 가사를 대신한다는 느낌도 있다.

 

보컬이란 걸 싫어한다. 연주자의 고집이다. 통기타 하나 들고나와서 가사 한 번 읊으면 이야기 전달이 다 끝나지 않나. 연주자들이 여러 가지 소리로 이야기를 표현할 때의 효과가 떨어진다. 그리고 모든 신경이 메시지에 가기 때문에 음 자체에 대한 집중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 제목을 보고 음악을 들으며 그림을 상상하는 일이 어렵게 되는 셈이다. 그걸 꼭 왜 해야 하나 싶다(웃음) 하지만 다음 앨범에는 보컬이 나온다. 보컬과 가사에 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다.

 

자유, 독립, 평화 같은 단어가 제목에서 많이 보인다. 사회 속 개인에 관한 이야기들도 많이 하고 있고. 텍스트의 소재들은 어디서 가져오는 건가.

 

1970년대, 1980년대에 자랐던 사람들은 집 안에서 억압을 받고 자랐지 않나. 나 또한 그 시절부터 오랫동안 가슴에 응어리져있던 걸 밖으로 표출해내는 식으로 음악을 만든다. 또 당시의 상황이 지금 사회와도 조금씩 맞아들어가니 특히나 더 그렇게 보였던 것 같다. 1집 앨범 커버를 찍었던 장소가 내가 초등학교 때 살았던 동네다. 그리고 지금은 재개발 구역으로 확정돼서 마을 자체가 다 없어진 동네이기도 하다. 내 얘기가 이런 식으로 사회 문제와 맞물린다.

 

김오키의 음악에서는 재즈라는 형식이 크게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코드 진행, 리듬 구성, 악기 구조 등 최소한의 정도에서만 이뤄지는 느낌이랄까.

 

구조적인 부분이나 코드 진행, 악보 같은 실재적인 요소들은 다 있다. 단 그걸 잡아놓긴 잡아놓되 실제 연주할 때에는 이대로 똑같이 하지 말라고 얘기한다. 그저 느낌대로 연주하고, 그러다 원치 않는 무언가가 나오면 또 그것대로 연주하고. 1집 작업할 때에는 악보를 연주 당일에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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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흥성과 전위성이 돋보인다.

 

꼭 장점으로 볼 필요는 없다. 자기가 나오는 걸 그대로 표현하는 거니까. 그리고 하고 싶은 말이 많은 사람인 내게 그게 어울리는 거고. '에이, 비, 씨, 디'를 얘기할 때 “에이, 비, 씨, 디”라고 얘기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디, 씨, 비, 에이”를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후자의 경우에 있는 셈이다. (백)현진이 형도 마찬가지다. 매일 뭔가를 흥얼대고 있다. 자기를 계속 이야기하는 거라 보면 된다. 숨의 박지하 씨는 반대로 전자의 경우에 해당한다. 그 사람은 국악 중학교 나와서 정규 클래스를 그대로 밟아온 사람이다. 그러다 보니 방식이나 스타일을 자유롭게 하는 날 되게 신기해한다. 어떤 게 더 맞다고 할 수는 없는 얘기다. 다 장단이 있다.

 

이러한 스타일은 어떻게 만들게 됐나.

 

원래 되게 말랑말랑한 음악을 좋아하기도 했다. 재즈도 사실 쳇 베이커 식의 스탠더드 스타일을 좋아했다. 그러다 박재천 선생님께서 하시는 60인 프리재즈 오케스트라 프로젝트 SMFM에 참여했는데 선생님께서 좋게 봐주시고 가르쳐주셔서 이 방향으로 하게 됐다. “한 번 미친놈처럼 해볼 생각 없냐”는 말씀, 여기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톤에 대해서도 많이 배웠다. 조용하게 소리를 낸다고 해서 톤이 부드러워지는 건 아니다. 크게 낸 소리도 부드러울 수 있고 작게 낸 소리도 강할 수 있다. 선생님 연주가 그렇다. 작게 쳐도 음이 빡빡 들린다. 많이 배웠다. 그전까지 씨제이 킴 형이 기반을 닦아줬다면 그 다음으로 박재천 선생님께서 스타일을 잡아주셨다.

 

정통적인 재즈보다도 더 듣기 쉽다는 감상을 들은 적 있다. '이러한 연주', '어떠한 스타일'을 고려하지 않고 들어도 되니까.

 

몇 년 전 작은 클럽에서 아주머니랑 할머니들 앞에서 연주한 적 있었다. 한 시간 동안 즉흥으로만 연주했는데 너무들 재밌게 들어주셨다. 사실 이분들 대다수는 음악을 많이 듣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대안학교 연주에서도 어린애들이 되게 좋아했다. 고리타분하게 가지 않고 원초적으로 음을 내다보니 그랬던 것 같다. 음악이란 게 사실 그렇다. 그냥 들으면 된다.

 

그래서인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여러 아티스트들에게 환영받는 것 같다. 요즘 피쳐링을 많이 하지 않았나. 어땠나.

 

로다운은 되게 섬세하게 작업했다. 가장 어려운 피쳐링이기도 했다. 여태까지 다른 사람들하고 같이 무대에 올라서 에너지를 만들어왔는데 이 작업에선 혼자 스튜디오에 들어가 혼자 듣고 혼자 불어서 에너지를 내야 했다. 공연장에서의 연주와는 달랐다. 김사월 음반에 들어갈 때는 조금 편했다. 프로듀서 (김)해원이가 대강의 이미지를 주고 내가 연주하는 식이어서 수월하게 했다. 문제는 20대 처녀의 마음을 표현하는 작업이었던 지라. (웃음) 막 내가 20대 여자였을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그랬다. 녹음은 두 번만 했다. 성배 형이나 (방)준석이 형이랑 할 때도 비슷했다. 그 사람들 모두 그림을 그리는 식으로 음악을 만든다. 서사무엘 같은 힙합 쪽 뮤지션이랑 할 때에는 아무 생각 없이 했다. 그 장르에서는 프로듀싱이 어떻게 잘라 붙이느냐에 따라 곡 느낌이 많이 좌우되니까. 오히려 더 쉽게 연주했다.

 

피쳐링이 어렵진 않았나.

 

모든 피쳐링이 어렵다. 내게 익숙하지 않은, 다른 사람의 음악을 하게 되는 거니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마음에 안 맞는 음악을 연주하고 있구나 싶을 땐 미안하기도 하다.

 

연주할 때 김오키는 어떤 생각을 하는가.

 

때마다 다르다. 슬픈 감정에 빠져서 연주하기도 하고 술에 취해 연주하기도 하고 그렇다. 구체적인 생각에 맡기기보다는 그 순간에 막 소리를 내는 식인 것 같다. 공연하다가 아예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공연이 잘 되는 날에 소리를 많이 지른다.

 

자신의 음악적 정체성, 그리고 앞으로의 음악적 방향을 표현한다면 어떻게 말하고 싶은가.

 

스피리츄얼한 음악을 하고 싶다. 현재도 추구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런 음악을 계속할 거고. 또 나만이 낼 수 있는 한국의 노래를 만들고 싶은 마음도 있다.

 

자신에게 영향을 끼친 세 아티스트를 꼽아달라.

 

항상 꼽는 세 명이 있다. 파로아 샌더스, 조 헨더슨, 아치 셰프. 파로아 샌더스는 아프리칸 스피리츄얼 음악을 했고 조 핸더슨은 보사노바와 프리재즈 아방가르드 음악을, 아치 셰프는 아프리칸 아방가르드 음악을 했다. 이 셋의 앨범은 뭘 들어도 다 좋다.

 

인터뷰 : 김반야, 이수호, 정민재
사진 : 정민재
정리 : 이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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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나무 “내 음악은 오래된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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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마치자마자 달려왔다는 그는 밤 10시가 지나서야 서울에 도착했다. 서천에 있는 초등학교에서는 권경렬 선생님으로, 서울, 아니 각지에서는 뮤지션 권나무로 불린다. 1집 <그림>을 내자마자 '포크의 신성'으로 주목 받았으며 2년여만에 2집 <사랑은 높은 곳에서 흐르지>를 발매하며 바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권나무는 반듯하게 기계로 도려내진 원목이 아니다. 나무의 까칠까칠한 질감과 딱딱한 껍질까지 두루 갖췄다. 알루미늄에선 느낄 수 없는 '온기'와 플라스틱에선 찾을 수 없는 '견고함'이 목소리에 담겨있다. 그는 꾸며지거나 부풀려지지 않은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 나이테처럼 촘촘한 철학들을 풀어놓았다. '물', '사랑은 높은 곳에서 흐르지'는 물에서 태어난 노래라고 한다. '물'과 관련된 음악들을 이제는 물이 '없는' 행화탕에서 권'나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현재 서울과 서천을 왔다 갔다 하신다고요?

 

금요일까지는 학교일 때문에 서천에 있고요. 주말이면 상경해 공연을 합니다. 그래서 거의 매주 서울에 올라와요. 서울과 서천은 세 시간 정도 거리인데 체력적으로 부담이 될 때도 있죠. 돈도 많이 들고. 그래도 떨어져 있으니까 좋은 것도 있고 그래요. 조용하니까. 지역적으로도 직업적으로도 분리가 되는 느낌도 있고요.

 

가르치는 학생들은 선생님이 노래하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요?

 

별로 관심이 없어요. 로이킴 하고 같은 공연에 서면 그 때는 대단하다 그러죠. “선생님 '양화대교' 부르는 자이언티 아세요?” 라고 물어보기도 했어요. 그런데 저는 아이들이 오히려 무관심해서 좋아요. 저도 계속해서 별다른 게 없다고 이야기를 하고 있고요. 특별히 애들에게 노래를 불러주거나 하지도 않아요. 그저 '니들은 내 노래를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는데 선생님은 이런 거 부르는 사람이다.' 이렇게. 농담으로 '너네 생각하는 것보다는 유명하다.' 이런 식으로 말을 할때는 있죠(웃음)

 

나무라는 이름을 김광석의 '나무'에서 따왔다고 들었어요. 이름이 나무라서 그런지 나무와 참 잘 어울리는 얼굴, 목소리를 가진 것 같아요.

 

원래는 나무라는 이름을 별로 안 좋아했어요. 나무에 대한 이미지가 너무 선명하니까, 왠지 자연적인 노래를 할 것 같고 그렇잖아요. 그런데 사람들이 제 이름을 좋게 만들어줬어요. “나무씨 음악은 나무처럼 넓어요” 이런 이야기를 해주시는데 어떻게 제가 안 좋아할 수 있을까요. 그러다보니 이름을 잘 지었네 이런 생각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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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연속 한국대중음악상 포크 노래부문 수상자로 선정되셨습니다. 데뷔하자마자 <스페이스 공감> '헬로 루키'로 뽑히기도 했고요. 출발부터 순조롭게 가고 있다고 생각이 드네요.

 

제가 잘하는 것도 있지 않겠습니까? (웃음) 그런데 확실히 사람이 시기가 있는 것 같아요. 저는 27살까지, 그러니까 음악을 하기 직전까지 무척 힘들었어요. 선생님이 되고 싶어 교대를 갔는데 이것도 재수를 하고 졸업하고도 임용고시 3번 떨어지고.. 개인적으로도 부모님, 친구들과의 관계로 여러 문제가 겹쳐 너무 힘들었어요. 사실 그 전에는 별로 악기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그 시기에 갑자기 기타를 치게 되고 노래도 만들게 되었죠. 그런데 갑자기 또 임용고시가 되고 새로운 상황을 준비하게 되고, 우연찮게 공연을 해달라고 초대를 받게 되었어요. 그런데 그게 홍대였고 한 두 번 공연하다가 갑자기 이름이 알려지고, <EBS 스페이스 공감>도 덜컥 걸리게 되고 말이죠. 앨범을 냈는데 대중음악상을 받고.. 그동안은 문이 다 닫혀있었는데 갑자기 확 열리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음악을 하면서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저에 대해서 더 많이 알게 되었어요. 생각보다 내가 무대 체질이구나, 생각보다는 뭔가를 할 때 흔들림이 많이 없다는 걸 알았어요. 일종의 긍정적인 자기 회복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어요. 그러니까 내 단점도 보이고 그걸 보완해나갈 기회도 생기더라고요. 세션을 꾸리면서 '이렇게 해야 같이 할 수 있는 거구나' 하고 배우게 되고요. 뭘 선택해야 하고 과감히 무엇을 놓아야 하는지도 배웠어요. 여기저기서 인터뷰 요청이 들어오고, 방송 섭외도 들어오고, 책을 보내주고…. 처음에는 마냥 신기했어요. 이제는 그런 작업을 하면서도 여러 가지를 배우고 있어요.

 

목소리나 곡의 느낌이 맑고 순수한 느낌이 듭니다. 그런데 이건 어떻게 보면 권나무를 얽어매는 굴레가 되지 않을까 생각도 됩니다.

 

제가 항상 그런 수식어들을 거부하고 있어요. 어떤 면에서는 순수하기도 하겠죠. 하지만 그것만 있는 건 아니에요. 재미없잖아요. 그런 건. 물론 학교에서 아이들 하고 있으면 순수해지긴 합니다. 교사로서 보람도 있고요. 그리고 음악에서 순수함을 느낀다는 건 제가 분명 그런 면이 있다는 것일 수도 있죠. 그것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아요. 그런데 그게 다는 아니라는 거죠. 순수함이란 여러 가지가 있죠. 제가 가진 순수함이 있을 거고 전자음악과는 다른, 음악 스타일의 단순함도 있을 것이고요.

 

권나무가 생각하는 포크는 어떤 음악인가요?

 

나름 세련된 리스너라는 자부심은 있어요. 세련되다는 게 힙한 게 아니고 언제 들어도 괜찮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제가 좋아하는 말 중에 '오래된 미래'라는 말이 있어요. '옛날 것들이 배울 게 있어' 이런 말이 아니라, 아무리 새로운 장르를 표방해도 옛날 것의 연장선에 있잖아요. 제가 생각하는 포크는 '오래된 미래' 같은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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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집과 1집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지나고 나니까 1집은 굉장히 건조한 앨범이구나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까 곡의 멜로디나 이런 것들 보다는요. 정서적으로. 내 정서가 찐득찐득하게 밀착된 노래들이 아닌 거죠. 시기적으로 예전에 만든 곡이기도 하고 당시에 복잡하고 피곤하니까 좀 깔끔하고 거리를 두는 노래가 필요했어요. 1집 마지막 공연 이름이 <투명해져 버린 것>이었는데요. 내가 투명해져서 의미가 없고 공허하구나 싶어서 공연 타이틀을 그렇게 붙였어요. 공연이 끝나고 1집은 여기까지다 라고 생각하니까 맥이 풀렸어요. 그러면서 한동안 1집은 부르기가 힘들고 예전같이 안 불러지더라고요. 그래서 1, 2월까지 진짜 애먹었어요. 마음이 안 실리니까 연주에 몰입이 안 되고 그 때부터 기타가 안쳐지기 시작하고요. 내가 치는 게 거슬리고 내가 노래를 어떻게 불러야 하는지 생각하게 되고. 그러다보니까 몇 백번을 부른 노래 가사를 잊어버리고 이상한 부작용들이 쏟아지는 거예요. 계속 회복이 안 되는 상황에서 2집 작업을 시작했어요.

 

지금은 회복이 되셨나요?

 

지금은 80%정도. 그래서 제가 강구했던 대책이 사비를 들이더라도 되도록 세션과 같이 공연하는 방향으로 잡았어요. 그래야 제가 의지도 할 수 있으니까요. 기타도 두 번이나 바꿨어요. 처음에는 내 문제지 악기가 중요한 게 아닐 거야 고집을 부렸어요. 그런데 제주도에 공연을 하러 갔다가 진짜 좋은 기타를 잡았는데 잘되는 거야(웃음). 그래서 뭐든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되는구나 싶어 좋은 기타도 샀는데 그 기타는 너무 가벼워서 안 맞았어요. 결국 그 기타는 반값에 팔고 그 돈으로 지금 기타를 샀어요. 반값인데 훨씬 좋아요. 그리고 최근에 인이어 모니터도 샀어요. 모니터 이게 중요할 수도 있다 싶어서 투어할 때 쓰고 있는데 좋더라고요. 지금은 85%정도 올라온 것 같아요. 이제는 '내가 이런 시기인가 보다' 싶고 정면 돌파를 해서 뚫고 나가든지, 여기서 무너지거나 인데.. 만약 그렇다고 해도 이 85%가 내 실력이겠거니 이렇게 편한 마음으로 공연을 하고 있어요. 사실 3월 까지만 해도 죽을 맛이었어요. 그 때는 이런 문제들을 말하면 진짜 문제가 될 것 같아서 말을 안했어요.

 

하지만 이런 우여곡절이 있었기 때문에 더 자신을 들여다 볼 수 있지 않았을까요?

 

그렇죠. 어떤 계기들이 계속 생기더라고요. ‘약간은 방향을 틀어야 돼’ 라든지, ‘이걸 이렇게 해봐’ 라든지, 제주도에서 만난 기타도 운이 좋았죠. 그 기타를 쳐보면서 생각을 넓혀가게 됐으니까요. 저로서는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우연히 간 공간의 주인이 의미 있는 말을 던져서 뭔가를 느끼기도 하고요. 큰 그림으로 봤을 때는 순조롭게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도 그렇고 '흐른다'도 그렇고 2집의 키워드는 '물'인 것 같아요?

 

1집 녹음을 마칠 때부터 2집에 대한 구상이 다 끝나 있었어요. 2집의 가제가 '물'이었어요. 그런데 '물'이라는 곡은 1집의 연장선에 있던 곡이고 이렇게 가면 1집과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죠. 더 적극성을 띄고 싶고 내가 말하고자 하는 '물'이 무엇인가를 설명해야 한다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생각이 난 것이 '물'은 저에게 습도였고 자연스럽고 원초적인 거였어요. 그 노래는 처음엔 이성적인 가사로 도배가 되어있어요. 정말 하고 싶은 말은 마지막 구절입니다. “너무 무언가를 하려 하지 말아요. 그냥 가만히 있는 것도 좋을 텐데”

 

2집을 작업하면서 또 자연스러워지는 게 뭘까 고민을 했어요. 물은 위에서 밑으로 흐르잖아요. 바람도 닫혀있는데서 문을 열면 나가는 거지 뻥 뚫린 데서 좁은 데로 나가는 게 아니거든요. 우리가 말하는 자연이라는 것은 깊고 모여 있는 곳에서 옅고 부족한 곳으로 가요. 사랑도 물처럼 나를 채우고 내 고도를 높여야 부족한 곳으로 흘러 보낼 수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 노래는 내 사랑이 높은 곳에 있다는 것이 아니라 내 사랑의 고도를 높여서, 그러니까 내가 위쪽으로 높이 올라가있어야 밑쪽으로 물을 흘려보낼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사랑은 높은 곳에서 흐르지'가 그렇게 탄생한 거군요?

 

네, 그런데 사실 이 노래는 제가 만든 노래 중에 가장 슬픈 곡이에요. 목이 메어서 부를 수가 없을 때가 있었어요. 그랬던 곡에 현악기를 넣으니까 의외로 밝은 분위기가 되었고 사람들이 듣기 좋다고 하는 거예요. 그래서 타이틀이 되었어요. 만약 기타만 쳐보면 막막함과 슬픔이 느껴지는 분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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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 작업 방식은 어떤가요?

 

직관적인 편입니다. 직관적이어서 불필요한 것들을 어떻게 다듬고, 내가 말하고자 하는 걸 어떻게 자연스럽게 이야기할까를 배워가고 있습니다.

 

보컬로서 재능은 언제 발견했나요?

 

어릴 때부터 노래를 좋아했어요. 노래를 부를 때는 행복하고 즐거웠죠. 학교 다닐 때 보면 가수와 비슷하게 부르는 친구들이 있었는데, 저는 그것과는 좀 다르다는 이야기를 들었죠. 그래서 그런지 제가 듣는 노래가 꽤 인기가 많아, MP3 플레이어를 친구들이 돌려 듣기도 하고요. 그럼 또 신이 나서 음악을 열심히 들었죠. 그 때 들었던 음악은 거의 가요였어요. 그러다가 대학을 갔는데 노래를 하고 싶어서 밴드 동아리에 들어갔죠. 밴드 오디션을 보는데 다른 애들은 'She's gone' 같은 노래를 부르는데 저는 발라드를 부르고 그랬어요. 밴드에 뽑히고 나서 밴드 음악을 듣기 시작했죠.

 

그럼 밴드에서는 어떤 음악을 불렀나요?

 

메탈 밴드였어요. 들어가자마자 선배들이 메탈리카(Metallica), 메가데스(Megadeth), 판테라(Pantera)만 들려줬어요. 그런데 노래방에서 노래하던 사람이 그렇게 센 곡을 어떻게 부르겠어요. 선배들한테 호흡이 안 된다고 매일 야단 듣고 그랬죠. 그래서 열 받아서 발성, 호흡 이런 걸 찾아보고, 록도 듣기 시작했어요. 레드 제플린이나 건즈 앤 로지즈. 그런데 좋은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이거 말고 없어요?' 했더니 브릿팝을 추천해줬어요. 그리고 브릿팝에 좀 빠졌다가 그 다음에는 너바나에 빠졌어요. 처음에는 그렇게 공부하듯이 음악을 들었어요. 그 시기가 지나고 나니 학습이 아니라 진짜로 좋아서 찾아 듣기 시작했어요. 그 때부터 확 넓어지게 되었죠. 그러니까 노래 부르는 것도 훨씬 좋아졌어요. 그러다가 졸업을 하고 혼자서 기타를 들고 노래를 하니 동요 같은 곡이 나오는 거예요. 그게 놀라웠고 충격적이었어요. 아이가 크레파스에 막 그린 그림처럼. 그런데 그게 너무 재미가 있어 하루에 7곡도 만들고 그랬어요. 그 때 1년 정도 가사가 폭발적으로 나오더라고요. 제가 악보를 못 그리거든요. 그래서 종이에 가사만 적었어요. 가사를 보면 멜로디는 모두 기억이 나니까요.

 

악보가 없으면 합주나 이런 건 어떻게 하나요?

 

비올라 켜는 친구한테 '따라라라라라~~'하고 허밍을 해서 줘요. 그러면 악보를 기록해서 저한테 주죠. 지금은 이게 좋지만 무리가 생기면 나중에는 배울 것 같기도 해요.

 

2집은 전반적으로 '과정', '흘러간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다음 앨범은 그동안의 이야기가 이어진다기보다 제가 달라지는 변천을 보여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권나무 앨범은 지금의 제가 변하면 달라질 수 있는 음악이에요. 지금도 변하고 있는 중이고요.

 

1집 만들면서 2집의 구상이 끝났다고 했잖아요. 3집 구상은 어떤가요?

 

곡의 70% 정도, 개수는 만들어진 것 같은데 모르죠. 아직 '물'처럼 제 머리를 치는 건 없어요. 큰 틀에 모여는 있는데 그것들이 끈끈하고 강렬하게 네트워크 되지는 않은 상태죠.

 

마지막으로 이즘 공식질문입니다. 추천하는 노래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트래비스(Travis)의 노래를 좋아해요. 그들의 음악을 들으면 맑은 물을 바라보는 것 같아요. 그 물에 발을 담그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노래도 있는데 'Turn'과 'Sailing away'입니다. 이 곡들은 제가 대학생때 처음 들었는데 당시 기분이 떠올라서 그런지 들으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인터뷰 : 김반야(10_ban@naver.com)
사진 : 정민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도종환 “문학 진흥이 앞으로의 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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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시꽃 당신』, 『그때 그 도마뱀은 무슨 표정을 지었을까』,『사람은 누구나 꽃이다』…. 이름만 대도 알 만한 베스트셀러의 시인으로, 수필가로 도종환을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만 그에 비해 그가 의원으로 국회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은 낯설다.

 

2004년에 출간됐던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가 12년 만에 개정판으로 나왔다. 그동안 도종환은 꾸준히 책을 내고, 19대 비례대표로 국회에 들어가 현재는 청주시 흥덕구 지역 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의원실에서 만난 도종환 시인은 여전히 맑은 웃음을 짓고 있었다. 정치에 대한 불신이 가득한 이때, 시인이자 국회의원으로 사는 건 어떤 의미일까. 정반대일 것으로 생각한 정치와 시가 그에게는 모두 연결된 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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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읽히는 책이었으면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가 다시 나왔습니다.

 

에세이집을 내면 잠깐 반짝하다가 이내 죽잖아요. 그러기보다는 오래오래 읽히는 책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어요. 그래서 다시 낸다고 했을 때 독자들에게 어필하는 부분이 있었으면 했죠. 읽으면서 사소하고 하찮은 것들이 소중하다, 그래서 사람도 마찬가지로 누구나 소중한 존재라는 걸 느꼈으면 좋겠어요.

 

예전에 쓴 글을 다시 보면 기분이 어떤가요?

 

‘내가 옛날에 이렇게 생각했구나’, ‘예전에 생각한 게 지금 생각보다 더 깊었네’ 이런 생각을 해요. 예전에 쓴 글, 예전에 낸 책 중에서도 더 애정이 가는 책이 있어요. 이번에 다시 나온 『사람은 누구나 꽃이다』는 구구산방이라는 영혼의 집에서 쓴 글들이라 그런지 애정이 가는 글이에요.

 

책에서도 구구산방에서의 의미가 각별하게 느껴졌습니다.

 

구구산방은 아파서 요양 차 들어간, 흙으로 지은 집이에요. 동네에서도 몇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첩첩산중 집이었어요. 처음에는 고독하고 외롭고 적막하고 답답했는데, 지내면서 점차 제 생애에서 가장 좋은 집을 만났다고 생각되는 시간이었어요.

 

건축가들에게 어떤 집이 가장 좋은 집인가 물어보면 여러 가지 대답을 하죠. 하지만 가장 좋은 집은 사는 동안 영혼이 성숙하는 집이에요. 사람에 따라서 가격으로, 위치로, 디자인으로 가치를 따지기도 하는데 모양이 어떻든 가장 좋은 건 영혼이 성숙하는 집이라고 생각합니다.

 

토끼를 키우는 이야기, 자녀분들이 어렸을 때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미 자식은 장성했고 토끼에게는 너무나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요. 처음 책을 냈을 때부터 개정판을 낸 지금까지의 간격이 많이 느껴지시나요?

 

당시 키우던 토끼는 이미 다 숲으로 헤어지고, 지금쯤 새끼를 낳고 잘살고 있겠죠. 그사이 은거하면서 안으로만 침잠하는 시간을 5, 6년 보냈고, 바깥으로 나왔을 때는 고요의 한복판에서 남들이 이야기하는 소요의 한복판으로 옮겨갔기 때문에 매우 큰 변화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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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으로서의 삶

 

외국에 나갔다 오셨다고 들었습니다.

 

미 국무부 초청으로 미국 대통령재단에서 지은 도서관을 보고 왔어요. 국가에서 노무현 대통령 기념관 센터를 만들려고 하는데, 외국은 어떻게 하는지 참고차 방문했습니다.

 

의원이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정치하겠다거나 의원을 하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제19대 국회를 꾸릴 때, 그것도 비례대표 의원심사를 다 끝낸 직후에 문화 예술계 비례대표로 들어와 달라는 제안을 받았어요. 여야 다 합해서 300명 중에 문화예술계 직능대표가 없었단 말이에요. 장애, 여성, 의료, 체육, 탈북자 등 한 분야를 대표하는 게 비례대표거든요. 발표만 남겨두고 문화예술계 대표가 없다는 문제 제기가 나와자 급하게 대표하는 사람을 찾아서 연락했던 게 저였던 거죠.

 

진작에 정치계에서 문화예술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있었으면 미리 대처해서 여러 가지 준비를 하고 들어왔을 텐데, 급하게 결정되느라 첫 해는 많이 헤맸어요. 대변한다는 당위성은 동의했지만 제가 준비가 안 되었던 거예요.

 

문학진흥법을 대표로 발의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문학진흥법은 무슨 내용인가요?

 

예술 중에 가장 기초가 되는 게 문학이에요. 드라마 대본을 쓰는 사람, 영화 시나리오, 연극 희곡을 쓰는 사람, 방송 대본을 쓰는 사람 모두 작가예요. 문학을 제대로 공부해내는 작가를 배출해내면 다른 예술의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는 요지였습니다. 국가나 기업이 문학을 지원하고 진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한류 드라마 때문에 화장품, 자동차, 핸드폰이 엄청 팔렸어요. 외국에 나가 기업을 경영하는 분들, 교민들 만나면서 드라마 덕분에 많이 팔았으니 문학을 위해서 지원하고 투자해달라는 말을 하면 뜨악하게 쳐다봐요. 기업이 못 한다면 국가에서 행정적으로 문학 진흥을 뒷받침해주자는 거죠.

 

한국 영화가 외국에 나가면 세계적인 상도 많이 받고 인정도 많이 받아요. 이십 년 동안 영화를 끌고 온 건 영화진흥법이에요. 우리나라 만화도 수준이 굉장히 높아졌어요. 이 또한 만화진흥위원회가 있었잖아요. 앞에 있던 사례들처럼 문학진흥법으로 문학을 지원해주자는 거죠. 그러기 위해서 출판 진흥과 도서관 진흥을 병행하고 번역원 예산도 확충하고, 다양한 경로로 지원이 필요해요.

 

문학진흥법은 통과되었지만 많은 일이 남아있을 것 같습니다.

 

5년 단위로 문학진흥을 위한 기본 계획을 세울 때도 문인들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했어요. 5년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5년 단위로 10년, 20년 계속해나가는 거죠. 그 중심에 국립한국문학관이 있어요. 전국의 흩어져 있는 문학관을 네트워크화하고, 특히 근대문학 자료를 다 수집하고 보존해서 국립한국문학관에 오면 자료를 다 확인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고 봐요. 시설 건립은 이미 공모 절차에 들어갔어요. 이번에 한강이 맨부커상도 받고, 동시에 일이 잘 됐어요.

 

진행하시는 다른 업무가 있나요?

 

교육문화진흥위원회의 간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교육 쪽에서는 한국 역사 교과서 국정화 문제도 있고, 누리과정 축소, 대학 구조개혁 등 해나가야 할 일이 많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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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하는 마음

 

사람들은 국회와 정치인을 믿지 못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시인으로 알고 있었던 독자들이 의원이 되었다는 소식에 배신감을 느낄 수도 있겠는데요.

 

글 쓰던 사람이 왜 정치판에 들어오느냐, 문학가로서 도종환은 이제 끝났다면서 근조(謹弔)가 붙은 화분이 온 적도 있어요. 살면서 그런 소리 많이 들었어요. 『접시꽃 당신』내고 감옥 갔을 때 끝났다는 소리 들었고요. 나중에 다시 결혼했을 때도, 왕성하게 활동하다 건강이 나빠져서 직장이고 뭐고 다 내려놓았을 때도 이제 끝났다는 말을 들었어요. 사실 6?25 전쟁의 폐허 위에서, 가난한 부모 밑에서 태어났을 때부터 이미 끝났는지도 몰라요. 결혼하고 2년여 만에 아내가 어린 남매를 남겨 두고 세상을 떴을 때도 세상이 끝나는 줄 알았어요. 그러나 한 번도 거기서 끝나지 않았어요. 다시 문학세계로 들어가고 문학과 함께 일어났어요.

 

국회 들어와서도 여전히 글을 썼어요. 그 사이 몇 번 책을 냈고 공초문학상과 신석정 문학상도 받았어요. 비례대표였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봐요. 그리고 9월 초쯤에 그동안 쓴 시를 모아서 시집을 또 낼 거예요. 참 끈질기다고 이야기하지 않을까 싶은데, 남들이 끝났다고 했을 때 끝났다고 받아들인 적은 없어요. 근조 화분을 받고 나서도 매일 화분을 보면서 다시 시작했어요.

 

의원직 이후 쓴 글이 그 전에 썼던 글과 달라졌는지도 궁금하거든요.

 

책이 나오면 읽어보고 판단해주셨으면 해요(웃음). 독자들이 기대하는 것 중에 유리되는 게 있는지, 변화되고 폭이 넓어지거나 깊어진 게 있는지 작품을 보고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평가해주시면 참 좋겠다 싶어요.

 

지금은 지역구 의원으로 활동하십니다. 지역에서 특히 하고 싶은 일이 있으셨나요?

 

교사로, 또 시인으로 살아왔어요. 국회에서는 우연히 이 두 개 영역이 합해진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일하고 있어요. 청주를 말로는 교육문화 도시라고 해요. 내실 있는 교육 도시를 위해 제가 가지고 있는 장점이나 경험을 지역 변화에 접맥시키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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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과 정치의 접점

 

『도종환의 교육 이야기』를 쓰기도 하셨죠. 핀란드 교육사례를 모범으로 꼽으셨는데요.

 

PISA(Program for International Student Assistant)라는 세계 학생 학력 프로그램에서 2000년대부터 1위를 놓치지 않은 게 핀란드에요. 핀란드는 태어날 때부터 정서적, 지적, 신체적 발달에서 국가가 뭘 해줘야 하는지 관심을 가지면서 상향 평준화 시키는 방식이에요. 뒤처지는 아이들에 대한 배려와 맞춤형 교육을 시키면서 한 사람도 낙오시키지 않고 아이들의 특성과 학습 속도를 존중해 주는 거예요.

 

우리는 잘하는 애들을 어떻게 특별한 학교에 보낼 것인가가 학부모의 주요 관심사에요. 공부 못하는 애들이 우리 애랑 같은 반에 있어서 성적이 떨어진다는 게 가장 큰 이슈죠. 과학고나 외고 말고도 자사고, 영재고, 자율형 사립고 이런 것들을 계속 만들어서 공부 잘하는 학생들을 어떻게 특화해줄 것인가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어요. 그런 상황에서 일반고가 슬럼화되거나 실업 교육이 파탄 난 것에 대해서는 아무리 투자를 해도 교육적 효과가 나오지 않아요.

 

핀란드는 정권이 바뀌어도 교육체제를 이십 년간 안 바꿨어요. 사교육비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는 우리나라에서도 국가위원회 같은 걸 통해 합의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들어서 일관된 교육체제를 가져가야 해요. 교육체제를 단단히 하는 게 선진국이 되는 가장 빠른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동시를 특히 좋아하신다고 들었어요.

 

중국의 사상가 이지는 ‘동심은 하늘로부터 받은 것이다’라고 해요. 다른 말로 천심이라고도 하고 진심이라고도 하죠. 동시는 이러한 마음으로 글을 쓰는데, 이때 마음이 문학 하는 사람으로서는 제일 예쁜 마음이에요. 나이 들어서까지 동심을 유지하는 사람은 다시 말해 철이 안 든 사람인데, 이런 사람들은 철들지 말고 계속 자기가 하늘로부터 받은 마음을 잘 유지해야 한다고 봐요.

 

아이들에게 동시를 읽히면 좋을까요?

 

물론이죠. 지금까지도 술 한 잔 먹으면 동요를 흥얼거려요. 동요를 부르는 마음, 동시를 좋아하는 마음을 아이들이 잃지 않게 해주는 것, 교육은 이 고민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훌륭한 교육자들도 자기 자식의 교육에서는 죄의식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의원님은 어떤가요?

 

모든 부모는 내 아이가 특별해야 한다는 기대를 해요. 저는 아이들이 어릴 때 엄마가 세상을 뜨고 늘 보통의 아이들로 자라게 해달라고 기도했어요. 아이들의 상처가 튀어나와서 잘못되면 어떡하나 걱정해서 큰 욕심을 가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아이들이 대학교 갈 나이가 되니까 간사해지더라고요. 반에서 4, 5등 하면 좀 더 잘했으면 하는 생각을 하고요. 대신 아이들을 채근하고 질책하지는 않았어요. 보충수업도 하기 싫으면 하지 말라고 하고. 스스로 판단해서 하고 싶지 않은 건 안 해도 된다고 했죠. 부모로서 욕심을 많이 부리지 않을 것이 한편으로는 미안하기도 해요. 의도적으로 끌고 가서 더 잘하게 할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하진 않았어요.

 

가족 분들은 잘 지내시나요?

 

아이들은 다 잘 컸어요. 아들은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고 딸은 디자인하면서 같이 업무를 진행하기도 해요. 집사람은 여성운동단체에서 정년으로 퇴임하고 지금은 가끔 강의 나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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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잘한 일은 시를 쓴 것

 

교사, 시인, 의원. 이제까지의 발자취를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생각하시기에 이제까지 가장 잘한 건 무엇이었는지 듣고 싶습니다.

 

잘한 건 별로 없고요(웃음). 그나마 꼽아보자면 시 쓰기를 잘했다는 생각은 해요. 학창 시절부터 가고 싶은 학교 못 가고, 하고 싶은 거 못 하는 좌절이 많았어요. 가난, 절망, 가정적인 어려움, 해직이라던가 투옥, 질병으로 쓰러진 상황이라던가……. 그 많은 고비를 시를 쓰지 않았으면 못 넘어왔을 것 같아요.

 

왜 하필 시였을까요.

 

왜 시였는지 모르겠어요. 운명처럼 왔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어요. 안도현(시인)처럼 학교 다닐 때부터 시를 잘 쓰고, 선생님이 칭찬해주니까 어렸을 때부터 시인 되겠다고 결심하는 문인들이 있거든요? 저는 그런 것도 아니었고, 어렸을 때는 오히려 그림을 그리고 싶어 했어요. 집안 사정으로 그림을 그리지 못한다는 좌절 때문에 헤매다가 우연한 기회로 문학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어요. 문학으로 가라고 지독하게 실패와 좌절이 많게 설계해 놓으셨다 보다, 이렇게는 생각해요.

 

광주 민주항쟁도 큰 영향을 주었을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 80년대는 격변의 시대예요. 민주화운동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달라진 시대였어요. 판화가 주류 미술의 주도적인 장르로 진입한 게 우리나라 문화사 자체에서 드문 일이었고, 운동권 노래가 광범위하게 새로운 형식으로 불리는 시대, 문학이 시대적 역할을 하기 위해 최전선에 서는 시대였어요. 저도 초기에는 이른바 민중 시를 썼어요.

 

문단에서는 이후의 시에 대해 ‘나이브해졌다’, ‘김소월식이다’라고 평가하기도 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에 꽃이 핀다』 이후에 한겨레에서 나왔던 평가였어요. 『접시꽃 당신』을 출간했을 때에도 비판이 많았었죠. 격렬하게 싸워야 하는 시기에 무슨 개인과 슬픔을 가지고 시집을 내느냐고요. 이건 대중시고 본격적으로 문학이라고 분류할 수 없다는 말도 있었고요.

 

평가가 서운하진 않으셨어요?

 

서운한 게 있어도 칭찬이든 비난이든 있는 그대로 받는다는 생각을 해요. 작가는 칭찬에도 비아냥에도 흔들리지 않아야 해요. 맞는지 아닌지는 시간이 지나면서 문학사의 평가가 증명하게 돼요. 비난하는 평론을 썼던 사람 중에는 나중에 잘못 썼다고 다시 이야기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여전히 30년간 한 번도 원고 청탁을 안 하는 분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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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꽃, 자연을 이야기하는 서정이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는 받아들여지지 않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서정시가 나아갈 방향은 무엇일까 듣고 싶습니다.

 

꽃과 자연은 이른바 문학에서 이야기하는 객관적 상관물이에요. 퇴계 선생은 격물치지(格物致知)를 설명하면서 아들에게 매화나무를 만져보라는 이야기를 했어요. 나무 한 그루를 만지는 것이 사물의 본질에 이르는 이치를 깨닫는 데 중요했던 거예요. 제가 꽃과 나무를 이야기하는 건 그것을 통해 사물의 이치에 이르고자 하는 거죠.

 

한시나 시조를 보면 항상 강물 이야기, 새 날아가는 이야기를 해요. 선경후정이라고 가르쳤잖아요. 먼저 하고 싶은 이야기를 꺼내지 말고 정경을 이야기하라. 그다음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게 우리의 전통적인 문예 창작의 방법이자 서정의 방법이었어요. 꽃과 나무를 이야기하면 젊은 사람들은 물론 재미없어하죠. 문학 자체도 재미없어해요. 정보화 사회가 되면서 SNS와 소통은 해도 문학작품과 소통하는 방식은 점점 밀리는 거예요. 하지만 그렇게 하면서 사유가 깊어졌는지, 삶이 더 충만해졌는지 묻고 싶어요.

 

문학이 삶을 충만하게 한다는 말씀이시군요.

 

책이 사유를 깊게 만들어요. 많은 걸 아는 것보다 많은 걸 사랑하는 게 더 중요해요. 많이 알면 굉장히 잘 살 것 같지만, 많이 사랑하는 것의 백 분의 일도 못 미쳐요. 이런 태도는 책을 통해서 배워야 한다고 봅니다. 어떤 사회가 되어도, 아무리 과학이 발달하고 문명이 진보해도 책을 읽고 사유하고 성찰하는 삶이 결여되어 있으면 그 삶은 붕 떠 있는 삶이 되고 사막을 걸어가는 삶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책을 읽어야 해요.

 

다시 여쭤보면, 교사, 시인, 의원 중 앞으로 가장 잘하고 싶은 건요?

 

욕심을 내서 큰 역할을 더 맡겠다는 마음은 없어요. 큰 잘못을 하지 않고 주어진 역할이라도 제대로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지금 역할도 너무 크고 버거워요. 글 쓰는 사람으로 해야 할 일과 동시에 예술인들을 대변해서 그들의 복지, 창작, 작품에 대한 유통과 향유의 과정이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출판 진흥과 도서관 건립에 더 힘써야 할 거예요. 최소한 공공도서관이 1,500개는 지어져서 초판은 너끈히 도서관에 비치될 수 있도록 하면 출판사가 책임지고 양질의 도서를 만들게 될 거예요. 책을 읽는 삶, 책을 읽는 인문 정신이 많이 확산하는 사회를 만들자, 제가 있는 동안 그 역할이라도 하고 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 이상은 분에 넘치는 욕심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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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꽃이다도종환 저 | 알에이치코리아(RHK)
자신의 시처럼 ‘흔들리며 피는’ 삶을 살아온 도종환 시인이 잠시 하던 모든 일을 멈추고 속리산 황토집에 1년여 간 머무르던 시기 발견한 행복의 모습을 담았다. 그는 ‘내 영혼이 성숙하는 집’이라 말하는 황토집에서 나무와 숲이 하는 말에 귀 기울였으며, 별들의 깜빡이는 눈빛에 주목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유시민 “당신은 왜 글을 쓰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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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은 힘이 세다.” 작가 유시민이 자신의 사인과 곁들인 문장이다. 직업정치를 떠나 전업작가가 된지도 벌써 4년. 유시민은 2013년에 펴낸『어떻게 살 것인가』이후, 단독 저서를 5권 냈고 공저로 참여한 책만 4권이다. 명함에 '지식소매상'이라는 타이틀을 적은 후, 그는 꾸준히 책을 썼다. 『표현의 기술』은 만화가 정훈이와 함께 쓴 책으로 강연과 온라인 상담실에서 주고 받았던 글쓰기, 말하기, 토론하기 등에 관한 질문을 토대로 집필했다. 유시민은 글을 쓸 때, 항상 "Why?", "Why not?"을 따져본다. 『표현의 기술』의 제1장 제목이 '왜 쓰는가'인 까닭이다. 

 

유시민은 "나를 표현하는 것과 세상을 더 좋게 바꾸는 것 사이에 울타리를 세우지 말라”고 조언한다. 자신을 표현하는 글쓰기와 여론 형성을 목적으로 한 글쓰기를 선명하게 나누긴 어렵기 때문이다. 아마 독자들은 글을 잘 쓰고 싶어서, 그림을 잘 그리고 싶어서, 소통을 잘하고 싶어서  『표현의 기술』을 집을 것이다. 곳곳에 만화가 등장하는 이유에서일까, 책은 무척 편안하고 쉽게 읽힌다. 재미도 있다. 문제는 마지막 책장을 덮었을 때, 책을 통해 얻은 질문이 있느냐다. 유시민은 결국, 표현의 기술은 "자유롭고 자신 있게 내면을 표현하려는 마음"에서 나온다고 했다. '마음, 생각, 질문'. 세 가지 키워드로 『표현의 기술』을 읽어보면 어떨까. 마음을 열지 않으면 기술을 배울 수 없듯이, 책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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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글쓰기의 열쇠, 문장 기술이 아니라 '마음'에 있다

 

정치적인 글쓰기에 성공한 듯하다. "지금까지 정치적 목적 없이 쓴 책은 단 한 권도 없었다"고 밝혔는데, 『표현의 기술』을 읽고 나니 그 속뜻을 확실히 알겠더라.

 

책에도 썼지만 사람들은 정치와 정치인을 특별하게 불신한다. 정치와 글쓰기는 분리해야 하고 정치적 목적으로 쓴 글은 가치가 적다고 믿는 사람이 많은데, 정치적 목적이 있다고 해서 글쓰기의 다른 목적을 해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바람직할 수 있는데, 정치적 목적을 잘 이루려면 미학적 열정을 담아 아름답고 멋진 글을 써야 하기 때문이다. 글쓰기에 있어 정치와 예술은 서로 배척하지 않는다. 작가는 세상사를 있는 그대로 보면서 사실에 근거를 두고 진리와 진심을 담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쓴 글이라야 많은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고 오래 살아 남을 수 있다. 

 

만화가 ‘정훈이’와 함께 쓴 책이다.

 

만화가 삽화로 들어간 책이 아니라 공저로 쓴 책이다. 정훈이 작가는 이 책을 두고 “두 권을 붙여 놓은 책”이라고 말했는데, 그렇게 볼 수도 있지만 내 생각으론 그림이든 글이든 본질적으로는 동일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주제를 표현할 때, 문자가 더 호소력이 있고 그림이 더 접근성이 높을 수 있는데, 이 두 가지를 같이 사용했을 때 배가 되는 경우도 있다.

 

글과 만화를 동시에 썼는지 궁금하다.

 

기획 단계에서 의견을 같이 나눴고, 내가 글을 먼저 썼다. 4달 정도 먼저 끝낸 것 같다. 정훈이 작가의 에필로그에 나오기도 하지만, 콜라보 작업은 처음이라서 좀 힘들었던 부분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끝내고 나니 서로가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왔다. 과정이 재밌었다. 다른 프로젝트를 또 한 번 같이 해도 좋겠다.

 

정훈이 만화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나?

 

그의 만화를 보면 명랑만화 같기도 하고 풍자만화, 생활만화 같기도 하다. 굉장히 독특한데, <씨네21>에서 만화를 연재할 때부터 눈여겨봤던 작가다. <씨네21>은 영화 잡지 아닌가. 그래서 영화에 관한 만화일 줄 알았는데, 모티프만 영화로 했을 뿐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더라. 내 텍스트와 같이 작업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번 책을 작업하면서 그림에 대한 매력을 톡톡히 느꼈다. 텍스트는 여러 문단을 써야 이해가 되는 반면, 그림은 한 컷만으로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 직관이라고 볼 수 있는데, 책에서 정훈이 아버지에 관한 에피소드가 나오지 않나? 기쁠 때나 화낼 때나 표정이 똑같은 아버지를 설명할 때, 글로 표현하면 여러 문장이 필요하지만 그림은 세 컷으로 충분하다. 그림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깨닫는 작업 과정이었다.

 

책을 만들면서 그림을 한번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겠다.

 

늘 한다. 글 쓰는데 쫓겨서 엄두는 못 내지만 항상 하긴 한다.

 

강연이나 온라인 상담실을 통해 받은 '글쓰기'에 관한 질문이 다수 소개됐다. 글쓰기를 직업으로 하지 않은 사람들의 고민도 꽤 많아서 놀랐다. 이를 테면, 한 교사는 화장실 사용법에 대해 학생들을 지도해 달라는 공지문을 쓰다가 혹시 동료 교사들이 불편해 하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좋은 표현법을 가르쳐달라고 했다.

 

그 교사에게는 이런 답변을 했다. 상대가 번거로워할 만한 글을 쓸 때는 되도록 짧고 명확하게 쓰고, 읽는 사람이 웃을 수 있도록 유머를 집어넣으라고. 생활 글쓰기의 열쇠는 문장 기술이 아니라 마음에 있는 경우가 많다. 아이를 지도하는 교사부터 시작해서 일상에서 누군가에게 축하의 글을 남기는 일 등은 누구나 평범하게 겪는 일이다. 글쓰기 상담을 하면서 매주 연재를 했는데, 연재 글은 오랫동안 손보기가 어려웠다. 시간에 쫓겨서 미처 말하지 못했던 내용을 포함해 다양한 질문을 다뤘다. 꼭 글쓰기에 국한하지 말고 어떤 미디어, 장르를 통해 나를 표현하고자 할 때 부딪히는 문제를 이야기하고자 했다. 

 

소제목도 재밌다. “왜 쓰는가”라는 진지한 물음도 있지만, “악플을 어찌할꼬”, “감정이입? 어쩌란 말인가”, “베스트셀러는 특별한 게 있다” 등 흥미로운 제목이 인상적이었다.

 

글 쓰다 보면 모두가 부딪히는 문제일 거다. 전작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이 논리적 글쓰기에 관한 책이었다면, 이번 책은 달콤 씁쓸한 글쓰기의 맛을 즐기려는 독자를 생각하면 쓴 글이다. 작년에는 유독 강연을 많이 다녔는데 글을 잘 쓰기 위해 고민하는 분들이 정말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한 번은 건축디자인을 하는 분들의 모임에 초대 받아, 글 쓰는 능력을 기르는 훈련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는데 한 젊은 분이 “디자인을 하면서 제가 부딪치는 문제와 똑같았다. 내 고민을 해결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고 하더라. 이 말이 『표현의 기술』을 쓰게 된 계기가 됐다. 

 

제목은 어찌 보면 조금 평범하다. 비슷한 제목의 책도 여럿 있다.

 

'기술'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책 제목이 무지 많다. 튀는 제목도 생각해봤는데, '표현의 기술'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이 책이 담고 있는 어떤 문제의식을 잘 표현한 제목이라고 느꼈다. 평범해 보이지만 나쁘지 않은 제목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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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건, 열 받음에 대처하는 나의 태도

 

"정치인들이든 시민이든 말과 글로 싸울 때, 창의적으로 개성 있게 예술적으로 쓰라"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장의 아름다움, 독창적인 논리의 미학이 필요한데 앞서 ‘생각과 감정에 자유의 날개를 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어떤 문제에 대해 자유롭게 생각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없지 않나?

 

물론이다. 어렵다. 글을 쓸 때, '이 말이 맞나?'도 중요하지만 '이게 말이 되나?'도 중요하다. 확실한 건 없으니까 옳고 그름을 결정하는 것은 후순위이고, 일단 말이 되야 한다. 이 글이 얼마나 사람이 동의하나, 이 자체로 말이 되는 게 중요하다. 사실 말도 안 되는 주장도 많다. 또 확신이 안 드는 관념들도 많다. 익히 봐 왔고 들어 왔고 읽었기 때문에 당연히 그럴 거라 생각하는데, 아이를 키우다 보면 엉뚱한 질문을 받곤 하지 않나? 최근에 소설가 김형수 선생이 쓴 『소태산 평전』을 읽었는데, 원불교 창시자인 소태산이 어릴 적 동네에서 콜레라를 예방하기 위해 대문에 고양이 그림을 붙이는 걸 보고, "왜 고양이인가? 호랑이 정도는 돼야 콜레라가 무서워할 것이 아닌가?"라고 물었단다. 이 질문은 어떻게 보면 생뚱하게 보이는데, 고정관념이 없는 아이였기 때문에 가능한 질문이다. 우리는 사회화를 거치면서 대부분 순치된다. 아이의 사고방식으로 살면 불편하기 때문인데, 글을 쓸 때만이라도 "Why?", "Why not?"을 생각해야 한다. 이게 맞나? 왜 맞지?를 생각해보면 알아서 검색하게 되고 새로운 사실을 얻게 된다. 지금은 정보가 넘치는 시대 아닌가. 넘치는 정보 중에서 어떤 정보를 왜 찾느냐가 중요하다. 

 

“진보적 원칙을 글쓰기 어떻게 반영하냐?”라는 물음에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중요한 것은 ‘문장의 정확성, 논리적 결함이 없는가, 내가 하고 싶은 말인가? 독자의 마음에 공감을 일으킬 수 있는지’ 등 4가지를 살핀다고 했다. 이 중에 가장 어려운 것은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것은 ‘독자의 공감을 받을 수 있냐’다. 독자와 얼마나 교감, 소통했냐가 중요한데, 실제 가장 어려운 건 문장을 잘 쓰는 일이다. 매번 표현하려는 감정이나 메시지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문장을 쓰는 게 가장 어렵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안 어려울 수도 있지만, 직업적 글쓰기를 하는 사람에게는 가장 어려운 일이다. 마크 트웨인은 "꼭 맞는 말과 대충 맞는 말의 차이는 반딧불이와 번개만큼의 차이"라고 말했다. 아마 내가 전업작가라서 더 그럴 테지만, 글을 쓰다 보면 맨 마지막 단계에 이르기 까지 끊임 없이 뜯어고치게 된다. 더 이상 지겨워서 어떻게 할 수 없을 때, 손을 털게 된다.

 

저자 개인의 이야기도 많이 등장한다. 어떻게 보면 해명으로 읽힐 소지가 있는 글들도 많다. 이를 테면 2015년  JTBC <밤샘토론>에서의 저자의 발언을 두고 논평한, 문학평론가와 칼럼니스트의  글을 비평했다.

 

해명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물론 있을 거다.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거다. 토론이나 논쟁을 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자기를 지키는 요소가 표현될 수밖에 없다. 그 점을 중시해서 보는 독자가 있다면 내 글을 변명으로 볼 거고, 논쟁으로 보는 사람은 반격으로 볼 거다. 이 문제는 독자에게 달렸다. 사람들은 보고 싶은 걸 보니까, 나로서는 상관하기 어렵다.

 

해석에 있어서 논란의 소지가 될 수 있는 이야기도 있지 않나? 생략할 여지는 없었나.

 

꼭 하고 싶은 말이었기 때문에 그렇지 않았다. (웃음)

 

악플 대처법에 대해서는 민간요법을 추천했다. 무시하는 것이 정말 쉽지 않은 일인데.

 

요즘은 일반인들도 악플 스트레스가 많다. 댓글의 대댓글이라는 것이 있지 않나. 누구라도 악플을 마주할 수 있는데, 악플을 보고 열이 받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중요한 건, 열 받음에 대처하는 나의 태도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나 역시 한 저명인사가 나를 두고 끊임 없이 악플을 달았을 때, 한 번쯤은 반격하고 싶은 유혹을 받았다. 하지만 이럴 때 바로 반응하면 안 된다. 하루쯤 더 생각해봐야 한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면, ‘이걸 끝까지 기억하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이런 문제에 매달리면 삶이 소모된다. 내 삶을 지키는 것이 더 소중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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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 독자의 태도도 중요하지 않을까. 아무리 정확하게 표현해도 곡해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건 어쩔 수 없다. 우리가 아무리 올바르게 써도 상황에 따라 인식하는 경우가 다르다. 읽는 사람의 태도는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바꿀 수 없는 일을 두고 계속 에너지를 쓰면 나만 괴로울 뿐이다. 사람은 자기가 정말 필요할 때 바뀐다. (웃음) 사람의 성정이 모두 다른 것과 비슷한 이치다. 

 

감정이 실린 글을 읽을 때, 더 어려운 것 같다. 요즘은 말보다 메신저, 메일을 많이 쓰니까. 

 

어떤 이치를 말한 게 아니고 감정을 실었다고 생각하면, 곡해하는 경우가 있다. 이럴 때는 감정을 빼고 쓰면 된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되도록 감정은 다른 쪽에서 해결하는 게 좋다. 운동을 하거나 게임을 하는 것도 좋다. 글에 있어서 감정이 오가면 더 고조될 수밖에 없다. 감정에 소모 당하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에 내가 느끼는 감정의 10%만 표현하는 게 좋다. 

 

그래도 말이 안 통하는 사람도 있지 않나? 해결 방법이 있을까?

 

사람은 안 고쳐진다. (웃음) 이해하려고 하지 않아야 한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내 감정도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 표현하는 게 좋다. 분노조절장애가 생기면 힘이 없는 사람은 자기 인생을 괴롭힌다. 반면 힘이 있는 사람은 남을 괴롭히게 되고. 둘 다 안 좋은 일이다.

 

윗사람과 소통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표현의 기술을 조언해준다면?

 

마음이 중요하다. 아무리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라도, 최대한 그 사람 입장에 서보는 거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지 않은가. 거짓말을 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생각과 성격이 다른 사람이라도 상대가 내 입장을 생각해주면, 상대에게 적대감이 생기지 않는다. 나 역시 많은 시행착오 끝에 좌절 끝에 깨닫게 된 사실이다. 중요한 건, 내가 실제로 그 마음을 갖는 일이다. 마음 없이 ‘그 사람이 이렇게 느끼도록 만들겠다’고 생각하면 할 수 없다. 상대의 장점을 자꾸 봐주려고 하면 감정이입을 할 수 있다. 내가 어떤 적대감을 갖고 있으면, 상대방도 반드시 그 감정을 느낀다. 

 

다독가로 보이는데, “완전히 재미없고 난해한 책은 읽지 않는다”고 말했다. 평소에 읽는 책은 어떻게 선택하나?

 

주로 신문에 소개된 신간을 주목해서 본다. 아내가 구입해서 같이 보는 경우가 많은데, 사고 나면 출판사에서 같은 책을 보내주는 경우도 있다. 최근에는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굉장히 인상 깊게 읽었다. 엄청난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간 인류사에 관한 책들이 꽤 나왔지만, 철학적 깊이와 함께 문장도 좋은 책은 오랜만이다. 읽은 사람이 자꾸 권해주게 되는 책이다. 정보량이 상당히 많은 책이기 때문에 한 번 읽어서는 모든 걸 이해하기 어렵다. 여러 번 볼만한 책이다. 1만 몇 천원에 이런 책을 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축복인지 모른다. 출판은 위대하다. ‘세상에 이런 일이?’ 차원이라고 본다. 옛날에는 고수를 찾아서 천리 길도 마다하지 않았나. 지금은 고수를 만나지 않아도 책으로 모든 걸 배울 수 있다. 인간이 만든 문화양식 중에 이런 게 어딨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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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을 갖고 접근하라

 

요즘 일상은 어떤가.

 

일주일 단위다. 월요일에는 <썰전> 녹화가 있고, 화요일부터 금요일은 파주 작업실에서 글을 쓴다. 주말에는 가족과 시간을 보내고. 3달에 한 번 정도는 여행을 간다. 유럽 도시 기행 프로젝트 때문인데 대개 2주 일정으로 진행하고 있다. <썰전> 방송이 시의성이 있는 시사 문제를 다루는 프로그램이라서 장기 여행을 떠날 수 없다. 첫 여행지는 아테네, 이스탄불이었다. 내년 정도에 1권이 출간될지, 좀 더 쌓아서 나중에 책이 나올지는 아직 모르겠다.

 

역사 기행물인가? 여행 에세이인가?

 

글쎄. 평소 내가 가보고 싶었던 도시를 중심으로 다룰 예정이다. 유발 하라리 강연에서 마지막 말이 “너 자신을 알라”였는데, 여행을 가는 것도 마찬가지다. 나를 알고 싶어서 간다. 경치 좋은 곳이 아니라 옛날 사람들의 흔적이 있는 곳, 나에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 공간을 눈으로 보고 싶은 거다. 아마 독자들도 아크로폴리스 같은 곳은 누구나 한 번쯤 가보고 싶어 하지 않을까. 

 

앞으로 갈 여행지는 어디인가?

 

7월은 더우니까, 조금 덜 더운 곳으로 가려고 한다. 빈이랑 부다페스트를 가볼까 생각하는데, 시간이 너무 빠듯하다. 프라하랑 드레스덴을 묶어서 가야 하나, 고민 중이다.

 

올해 1월부터 JTBC 시사교양 프로그램 <썰전>에 출연 중이다. 정치에서 은퇴하고 전업작가로 살겠다고 밝힌 터라, 의외라는 반응이 있다. 출연 동기가 궁금하다.

 

동기는 명료하다. 정치적 글쓰기를 하는 이유와 같다. 사람들이 대중적으로 관심을 갖는 정치, 사회, 문화적인 현상에 대해 이런 시각, 이런 해석도 있다는 걸을 보여주고 싶다. 나 역시, 모든 이슈에 대해 전문적인 견해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매번 새롭게 정보 검색을 해야 한다. 토요일쯤 제작진이 “다음주에 이런 주제를 갖고 이야기할 예정입니다”라고 연락을 주면, 그 때부터 자료를 검색한다. 일요일 오전에는 방송국에서 대본이랑 자료를 보내오는데, 그 자료를 그냥 읽지 않고 좀 더 깊이 들어가본다. 나 스스로의 질문을 만들어보는 거다. 

 

질문을 갖고 검색을 하라는 뜻인가?

 

질문이 없는 상태로 인터넷에 들어가면 그야말로 정보의 바다다. 헤엄만 치다 나온다. 낚싯대를 던질 때도 뭘 낚고 싶은 게 있어야 하지 않나. 어종의 생태는 어떠하고 수심은 어떤지, 먹이를 먹는 습성은 어떤지를 알아야 적절한 위치, 적절한 타이밍에 맞춰 낚싯대를 던질 수 있다. 예를 들어 ‘브렉시트’를 검색한다고 치자. 영국은 왜 유럽연합을 탈퇴한다고 밝혔을까? 생각해보니 영국만 유로화를 쓰지 않고 파운드화를 쓰고 있네? 그렇다면 유럽연합은 왜 만들어진 거지? 한중일은 공동 사법 정치 군사제도를 만들어서 주권의 일부를 양도하는 건 상상할 수 없는데, 유럽은 왜 이렇게 됐지? 하고 질문을 던져 보면, 유럽연합의 경제적 이해관계나 과거 역사가 줄줄이 나온다. 그래서 질문이 있어야 의미 있는 검색이 된다. 의미를 갖고 질문을 하다 보면 할 이야기가 생긴다. 질문 없이 정보를 보는 건 시간 낭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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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은 편집이 반이다. 잘못 편집될 염려도 있을 것 같은데.

 

편집은 제작진의 몫이다. 일체 관여하지 않는다. 내가 말한 맥락을 잘 이해하지 못해도 어쩔 수 없다. 잘못된 정보나 논리적인 오류가 있을 때는 CG로 이야기하려고 하고, 편집할 때 참고가 될 만한 자료들을 정리해서 녹화가 끝나고 제작진에게 드리고 간다. 그러니까 대개 큰 오류 없이 방송이 나온다. <썰전>에 출연하는 두 번째 이유는 밥을 먹고 살만큼 돈을 주기 때문이다. 내 기준에서는 출연료가 꽤 높다. 광고 수익이 얼마나 되는 프로그램인지, 제작진은 얼마를 받는지 모르지만, 1주일에 1번 출연하는 비용으로는 높다. 그래서 다른 방송이나 인터뷰, 기고 등을 안 하고 방송에 집중한다. 덕분에 해마다 책을 한 권씩 펴내야 한다는 압박에서 조금 자유로워졌다. 나한테도 좋고, 사회적으로도 의미가 있고, 시청률도 괜찮은 편이니까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말하고 글 쓰는 직업을 갖고 있다. 어떤 게 더 편한가?

 

편하긴 말이 더 편하다. 말은 함량이 낮으니까 비약이 있거나 논리적인 모순이 있어도 사람들이 다 알아채지 못한다. 하지만 글은 반복해서 보게 되니까 제대로 하기가 더 어렵다.
 
책에서 “말을 잘하는 사람이 글도 잘 쓴다”고 했는데, 극과 극인 경우도 있지 않나 싶다.

 

말에 가치를 크게 부여하지 않아서 그렇다. 심지어 말을 잘하는 걸 나쁘게 보는 시각도 있다. 글로는 속이기 힘들어도 말로는 속일 수 있다. 우리는 문자 없이 산 세월이 길지 않은가. 말 잘하는 사람을 두고는 “저 사람 말을 잘한다”고 평가하지만 존경하진 않는다. 반면 말을 잘 못해도 글을 잘 쓰면 ‘훌륭한 작가’라고 치켜세운다. 그래서 사람들이 말에는 노력을 크게 하지 않는다. 글을 잘 쓰는 사람은 조금만 더 노력하면 대부분 말을 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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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과 같이 “정치적 글쓰기를 예술로 만드는 것”이 큰 소망이라고 밝혔다. 글쓰기에 관한 미학적 열정은 앞으로 어떻게 펼칠 예정인가?

 

지금은 다른 계획을 세우기 어렵다. 향후 5년 정도는 작업량이 빠듯하게 있기 때문에 그 후를 내다 봐야 할 것 같다. 요즘은 젊을 때처럼 숨가쁘게 일하기 어렵다. 7,8년 전까지만 해도 새벽 2,3시까지 글을 쓰는 게 어렵지 않았는데 지금은 아니다. 나이가 들면서 좋아지는 것도 있지만, 집중력과 지구력은 예전 같지 않다. 작업시간이 길지 못하기 때문에 적당히 숨을 돌리면서 작업을 해야 할 것 같다.

 

지금, 유시민의 최대 관심사는 무엇인가? 만약 일간지 1면을 통으로 준다면 어떤 주제로 글을 쓰고 싶나.

 

'인간'에 대해 쓰고 싶다. 우리 인류 역사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이 '나는 누구인가'다. '나는 무엇인가, 우리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수만 년 전부터 가졌던 물음이다. 모든 문명과 과학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우리 인류가 우리 자신에 대해서 어디까지 알게 되었나, 우리가 알고 있다고 느끼는 것 중에 확실한 것은 무엇이고 불확실한 것은 무엇인지가 나의 관심사다.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를 읽으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다. 인간의 여러 모순적인 측면에서 우리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을 끝까지 추구하고, 우리가 역겹다고 생각하는 것을 끝까지 배척할 때 한 인간의 삶이 어떻게 되는가?, 이것이 이 소설의 테마가 아니었을까 싶다. 우리는 "이러면 안 돼"라는 관념을 갖고 있는데, 이것이 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끝까지 없애지 못한다. 한강의 소설을 두고 '인간의 폭력성을 탐구한 작품'이라고만 단정지을 수는 없을 것 같다. 그의 소설 『소년이 온다』는 너무 힘들어서 못 읽겠더라. 우리 세대는 너무 고통스러워서 페이지가 잘 넘어가지 않는다. 한강은 그만큼 독자를 힘들게 하는 작가다. 요즘 나는 "왜 이렇게 살지, 생각은 이런데 내 삶은 왜 이렇지?, 남루한 이 삶을 어떻게 대해야 하지?, 나는 어떤 태도로 인생을 살아가야 하지?"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소설을 읽거나 교양서, 인문서를 읽을 때도 늘 이 질문을 갖고 책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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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기술유시민 저/정훈이 그림 | 생각의길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려면 그에 필요한 기술을 익혀야 한다. 평소 많은 독자들이 온오프라인을 통해 문의해 온 글쓰기뿐만 아니라 말하기, 토론하기, 안티 대응 등, 표현을 잘 할 수 있는 모든 궁금증에 대해, 막힘없는 대한민국 대표 작가 유시민이 그만의 ‘표현의 기술’을 아낌없이 전수한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홍신애 “집밥, 식당에서 쌀은 정말 중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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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을 잘 아는 사람 같았다. 어찌나 음식을 맛있게 묘사하는지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꼭 그 음식이 먹고 싶어졌다. 음식 이야기를 하는 그의 눈은 언제나 반짝였다. TV와 라디오에서 자주 만나고 있는 요리연구가 홍신애 이야기다. 무엇보다 그가 집중하는 것은 쌀. 홍신애의 집에는 어려서부터 도정기가 있었다. 갓 도정한 쌀로 밥을 지어야 한다는 할머니의 철학 덕분에 진짜 맛있는 밥맛을 일찍 알았다. 그러니 바깥에서 먹는 밥은 대개 맛이 없었다. 가장 기본적인 것, 쌀이 중요하다는 것을 몸으로 느꼈다. 요리를 본격적으로 하면서는 쌀이 얼마나 중요한지 더 크게 깨달았다.

 

홍신애는 정말 집에서 먹는 것 같은 잘 지은 밥을 주인공으로 한 식당을 차려보자고 생각했다. 식당이 잘 될 거란 기대는 없었다. ‘쌀가게 by 홍신애’는 그저 소박하게 탄생했다. 신사동 골목에 위치한 그 식당은 모르는 사람이라면 무심코 지나쳐버릴 정도로 소박하고 단아한 모습이다. 홍신애의 생각이 잘 담긴 그릇 같다. 그곳에서 홍신애를 만났다.

 

『홍신애의 제대로 집밥』은 ‘쌀가게 by 홍신애’의 지난 3년을 담은 책이다. 식당에서 선보인 메뉴들을 정성껏 정리했다. 소고기 미역국, 고추장찌개, 감자 달걀국처럼 아주 일상적인 메뉴부터 데리야키 오징어 통구이, 명란젓구이, 풋마늘튀김 같은 별미 음식이 가득 놓여있다. 보는 것만으로 커다란 환대를 받는 느낌이다. 주말에는 홍신애를 따라서 ‘제대로 집밥’을 한 번 해먹어봐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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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밥 천 원

 

책에 담긴 요리들은 제목에서 말하는 ‘제대로 집밥’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 같아요. 홍신애가 생각하는 제대로 된 집밥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걸까요?

 

제가 한동안은 케이터링도 하고, 카페도 하고, 방송 스태프로 일하거나 남의 식당 요리 개발하는 일도 하고 그랬어요. 그런 일로 전국을 돌아다녔는데요. 다니면서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가면 먹을 수가 없는 거예요. 요리를 하는 사람이고, 맛있는 것 먹는 걸 좋아하는 사람인데 막상 일을 하러 가서는 어떻게 보면 음식 같지 않은 것들을 돈을 내고 먹어야 했던 거죠. ‘쌀가게 by 홍신애’를 할 때 처음에는 그냥 집에서 해먹는 것과 똑같은 음식을 한다는 생각이었어요. 밥에 관한 문제였어요. 제대로 된 식당을 내보자, 해서 시작한 거고요. 잘될 줄은 몰랐어요. 정말 처음에는 하루에 백인 분 정도 팔면 남는 장사고 백인 분을 못 팔더라도 우리끼리 먹으면 되니까 식당을 열면 된다, 이렇게 간단하게 생각한 거예요.

 

오늘 낮에 강지영 선생님을 만났는데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저희 식당이 생기고 나서 다른 백반집이나 한식당에서 ‘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화가 생긴 것 같다고요. 이전에는 솔직히 밥이나 쌀에 대해서는 당연하게 생각하고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죠. 왜냐하면 공기밥이 천 원이니까요.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이 주인공이 된 식탁을 찾아줘서 고맙단 말씀을 하셨어요. 다행이다, 싶었어요. 그런 거예요. 집에서는 갓 지은 밥 먹는 것처럼 말이에요.

 

밖에서 사먹는 밥이 힘들었던 경험이 많았군요.

 

90%가 넘죠. 그런데 요즘은 많이 좋아졌어요. 도정을 직접 하는 식당도 많고 심지어 도정 날짜를 써놓는 분들도 계시고요. 일단은 사과처럼 껍질을 까먹어야 하는 게 쌀이다, 쌀도 상한다는 개념이 많이 퍼진 것 같아요.

 

책을 내게 된 것도 비슷한 이유였겠네요.

 

식당 시작하고 6개월부터 책은 기획이 됐어요. 무조건 책을 내자고 생각했어요. 원래 제 목표가 일 년에 한 권 씩 요리책을 내는 거였는데요. 2013년 마지막 요리책을 낸 후에는 식당을 하고, 일이 생기면서 사정이 여의치 않았어요. 그렇지만 ‘쌀가게 by 홍신애’ 레시피를 정리한 책은 꼭 내고 싶었어요.

 

원래 쌀이나 밥에 관심이 많이 있었던 거죠?

 

엄청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스스로 다른 사람보다 쌀에 대한 기준이 높다고는 생각하지 않았고, 그냥 나는 맛있는 밥이 좋아, 따뜻한 밥이 좋아,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요. 요리를 시작하고 보니까 제가 쌀에 관해서는 너무나 깊이 관여를 하고 있더라고요. 집 문화였을 수도 있어요. 할머니와 오래 같이 살았는데요. 할머니께서 쌀에 관한 생각이 남다르셨던 것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집에 도정기가 있었으니까요. 갓 도정한 쌀을 먹는 게 최고 좋아, 이렇게 늘 주입을 받았거든요. 집에서는 늘 그런 정도의 밥을 먹었는데 밖에 나가면 밥이 먹을 수 없는 음식인 거예요. 우리집에서 먹는 음식이 특별했다는 걸 항상 느끼며 살다가 제가 요리를 하고, 일을 하다보니까 크게 깨달은 거죠.

 

갓 도정한 쌀로 지은 밥을 먹는 경험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겠다는 의식도 있었겠어요.

 

그렇죠, 식당을 하게 된 것도 행운인 거고요. <수요미식회>도 그래요. 비교군이 있는 상태에서 여러 경험을 하는 것과 그냥 주입 받아서 아는 것과는 다를 텐데요. 특히 한식이 그런 것 같아요. 한식 하는 사람들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발효, 밥, 국에 관해서 솔직히 제대로 보고, 겪고, 알고 하는 경우가 많이 없거든요. 대부분 다 주방에만 있었기 때문이죠. 저는 아니라고는 얘기 못하지만요, 저는 주방 말고도 집에서도 혹은 방송국에서도, 아니면 남의 집 주방에서도 지금 셰프라고 하는 사람들보다는 더 바닥에서부터 경험을 조금 더 많이 했을 수 있어요. 저는 제가 하는 요리에 관해서는 설명을 다행히 할 수 있죠. 이게 왜 너희 요리와 다르다, 라는 얘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어서 책이 의미가 있고, 방송도 아마 할 수 있지 않나 싶어요.

 

방송에서 봐도 어떤 메뉴를 어떻게, 어떤 순서로 먹으라고 아주 구체적으로 말할 때가 있는데, 그게 또 설득력이 있거든요. 

 

당연해서 그런 거거든요. 김치는 발효식품이고 유산균이 많다고 해요. 당연히 그래요. 그런데 언제부터 언제까지가 유산균이 많고 어떻게 발효되는 건지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잘 없다니까요. 그것에 관해 생각하다보니 책도 낼 수 있었고 식당도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운도 좋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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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별 밥상

 

오늘 홍신애의 집밥 메뉴는 뭐였어요?

 

곤드레밥이요.(웃음) 항상 아침을 먹어야 하는데 그게 너무 힘들어요. 그래서 밤에 나물 삶은 것을 밥통에 같이 넣고 취사예약을 눌러둬요.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쉬운 거, 참기름과 좋은 간장이 있는데 그것 넣고 비벼서 김치나 식당에서 남은 반찬 가져간 거 있으면 같이 먹고 그래요.

 

거의 한식인가요?

 

아침에는 꼭 밥을 먹어요. 점심에는 오히려 빵을 먹거나 하지만요. 식구들 다 빵을 너무 좋아해요. 오늘 점심도 샌드위치 먹었고요. 그렇긴 한데 아침은 주로 밥을 먹죠. 아침을 대부분 먹는 편이고요.

 

여름이잖아요. 제철음식의 이로움은 여러 곳에서 많이 얘기하는데요. 여름철에 꼭 챙겨먹는 음식이 있는지 궁금해요.

 

민어요. 되게 좋아해요. 없어서 못 먹는 건데요. 민어를 서울에서 구하려고 보면 대부분 냉동으로 살 바른 것을 많이 팔아요. 그런 것 말고요. 증도나 무안에 가면 속을 빼서 슬쩍 말려놓은 것들이 있어요. 지금은 약간 이르고요. 12kg 정도 되는 큰 민어들이 8월에 나오거든요. 그때가 되면 내려가서 먹어요. 요즘은 오이지 먹죠. 사실 제가 오이를 안 좋아해요. 그런데 오이지를 기가 막히게 잘 담그거든요.(웃음) 주변에서 제가 만든 오이지를 너무 맛있다고 하시니까 아예 두 접 정도 담갔다 선물도 하고 그래요. 물기 꽉 짜서 마늘, 참기름에 무쳐서 밥만 비벼줘도 아이들이 먹고요.

 

책에도 ‘계절별 밥상’으로 구분을 둬서 이런 내용이 궁금했어요.

 

지금은 계절별 재료의 의미가 거의 없어졌어요. 하우스도 있고, 사철 나오는 재료가 많으니까요. 약간은 기억한다는 의미에서 넣은 거예요. 심지어 이제는 제일 맛있는 계절도 없어요. 가지도 겨울에 맛있고, 오이도 겨울에 맛있어요. 비싸서 그렇죠. 다만 자연의 힘을 빌렸을 때 제일 맛있는 계절이 이때입니다, 하는 것을 기억하도록 기록이 많이 있어야 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저희 식당이나 집에서 하는 것들을 그렇게 정리해본 거예요. 

 

제철음식, 좋은 먹을거리에 대한 욕구가 많잖아요. 그에 비해 시장은 얼마나 따라왔는지 모르겠거든요.

 

많이 따라온 것 같은데요? 양분 현상이 있는 거지 시장이 따라온 건 오래된 것 같아요.

 

하지만 돈이 많이 드는 거죠.

 

맞아요, 돈이 많이 들죠. 

 

재래시장을 무척 좋아한다고 했는데 시장을 찾는 이유는 뭔가요? 어디를 가면 좋은 식재료를 잘 구할 수 있는지도 함께 알려주시면 어떨까요.

 

인터넷도 괜찮은 것 같아요. 재래시장 나오시던 분의 자제 분들이 대부분 인터넷 마트를 열잖아요. 산지 직송 마트들을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 같고요. 시장은 너무 많아요. 고사리만 해도 제주 다르고, 지리산 다르고, 서울, 경기, 양평 다 다르잖아요. 시장에 가세요, 라는 건 그런 의미보다는 정말 정직하게 제일 싸게 잘 살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인 것 같아서예요. 마트는 공급 시간이 너무 긴 게 문제예요. 달걀만 해도 마트가 수급을 해서 포장을 해서 유통을 하다보니까 재래시장에서 알 주워다 파는 것보다 두세 배 이상 걸리는 시스템이잖아요. 가장 신선한 건 생산자와 직접 연결된 재래시장이죠. 그게 좋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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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에 대한 확신

 

저평가 되고 있다고 생각하는 식재료가 있나요? 사람들이 잘 모르는 의외의 재료요.

 

국수요. 이 책은 ‘쌀가게 by 홍신애’ 레시피 기반으로 만든 거라 면 요리가 거의 없는데요. 작년에 예산 ‘쌍송국수’라는 곳을 다녀왔어요. 예산 국수가 원래 유명했지만 원조가 그곳이라는 건 몰랐어요. 이분들은 국수 공장만 하고 리테일, 레스토랑 아무것도 안 해요. 그런데 제가 국수를 먹고 깜짝 놀란 게 사람 손으로 이렇게까지 국수를 만들 수 있구나 싶은 거예요. 일반적으로 ‘국수 한 그릇’이라는 말이 너무 저평가 되고 있는 것 같아요. 국수는 일단 모양, 형태를 다양하게 줘서 아주 재미있게 만들 수 있도록 한, 그 자체가 하나의 요리인 건데요. 근데 아무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밥 같은 느낌이거든요. 육수나 양념에 따라 좌지우지되고 심지어는 밥보다 국수가 싸야 하는 그런 위치에 있죠. 그게 안타까워요. 반면 서양 국수는 비싸도 되죠. 파스타 말이에요.

 

예산에서 맛본 국수는 어떤 점 때문에 깜짝 놀랐어요?

 

뭐라고 말을 할 수가 없어요. 맛이랑 질감이 일반적인 그런 국수가 절대 아니어서요. 그 집은 제가 어딜 가든지 항상 얘기를 하는데요. 지금 3대 째 하고 계시거든요. 그 아드님에게 왜 레스토랑을 하지 않느냐, 이 정도 국수면 가져다 끓이기만 해도 사람들이 줄 서서 먹을 텐데, 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자기들은 국수를 만드는 사람이지 요리하는 사람들이 애초에 아니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만 한다, 하시더라고요. 보통 사람이라면 어떤 요리사라도 데려와 어떻게든 돈을 벌 생각을 할 텐데요. 이분들은 할 수 있는 것을 하면서 살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있는 장인들인 거예요. 맛도 있지만 그런 정신 때문에 그곳 국수를 정말 좋아하게 됐어요.

 

국수도 그렇고 밥도 그렇고, 친숙한 것이라 싼 것이 되어버렸어요. 새삼 안타깝네요.

 

국수가 산업화 시대의 산물이라는 자리를 잡고 난 뒤 이런 현상이 생긴 것 같아요. 옛날엔 오래 살라고, 아이가 태어나고 잔치할 때만 국수를 뽑아 먹었잖아요. 어려운 요리였는데 지금은 아니죠.

 

말씀을 듣다보니 역시 가장 기본적인 것의 중요함을 많이 생각하게 돼요.

 

많이 먹으니까요. 한국 사람이 단백질 섭취를 제일 많이 하는 게 쌀이에요. 고기나 달걀, 우유, 콩이 아니고요. 그 정도로 쌀을 많이 먹는 거예요. 흔한 공기, 소금, 물 무시하듯이 그런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은 이런 기본적인 재료를 무시하면 오래 못 살거든요. 저는 그것을 남들보다 조금 빨리 깨달은 것 같아요. 저희 식당도 그래요. 9,900원 받으면 업계 사람들은 안 남는 걸 알아요. 하지만 일반적으로 백반집에서 밥 드시던 손님들은 이 가격의 백반이 이해가 안 되시는 거죠. 그런 차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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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소개한 메뉴 자체는 잘 아는 것들이에요. 아는 메뉴에 담긴 홍신애만의 특별함을 찾는다면 어떨까요?

 

이렇게 하면 왜 안 되는지, 이렇게 하는 게 왜 맛있는지, 원칙이 있어요. 그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거든요. 일반적인 돼지 불고기인데 왜 다르냐면 양념 순서나 들어가는 양이 정확하게 어떻게 해야 맛있는지 알고 만들기 때문인 거예요.

 

말하자면 비법일 그 레시피를 그대로 담았잖아요.

 

그건 노하우가 아니에요. 누구나 할 수 있는 거죠. 도정기 있으면 도정할 수 있고, 고추장 있으면 버무릴 수 있어요. 두 가지를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누구나 할 수 있는 걸 누가 어떻게 정리했는지에 따라 원칙이 되거나 중요도가 바뀌잖아요. 그것에 대해서는 내 이름을 걸고 했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첫 번째로 있었고요. 두 번째, 그 원칙에 대해서는 제게 확신이 있었어요. 왜 설탕을 항상 먼저 녹여야 하고, 나중에 기름이 들어가야 하는지 이런 것들을 다 써놨거든요. 그런 기본적인 원칙을 지키면 제가 한 거랑 맛이 거의 비슷할 거예요.

 

게다가 쉽거든요. 저는 요리를 정말 못하는데 해볼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웃음)

 

요리는 잘하고 못하고 차이가 진짜 종이 한 장이에요. 누구나 다 이렇게 요리하는 법을 알지만 설탕을 어느 시점에 넣느냐, 기름을 언제 뿌리느냐에 따라 맛이 완전히 달라지거든요. 그런 걸 세세하게 정리해서 이 책이 된 거예요. 특별한 노하우는 없어요. 하지만 그 자체가 굉장히 큰 노하우죠.

 

확실히 뭐가 맛있는지 잘 알려주는 것 같아요. 언젠가 라디오에서 샤브샤브 먹는 순서를 맛깔나게 설명해서 넋 놓고 들은 적이 있어요. 이 자리에서 한 번 더 얘기해주세요.

 

그렇게 먹으면 맛있어요.(웃음) 샤브샤브의 본질은 물에 익혀 먹는 건데요. 뭐 하나 버릴 게 없어요. 원래는 아무렇게나 좋아하는 것을 익혀 먹으면 돼요. 하지만 육류나 해물이 들어가면 얘기가 달라지는데요. 육수를 버리면 상관없지만 나중에 먹을 거란 말이죠. 육수까지 요리가 잘 되면서 좋아하는 재료를 맛있게 먹으려면 가벼운 것부터 시작하는 게 좋아요. 이파리 채소, 숙주, 이런 것들이죠. 이파리 채소 중에서도 제일 먼저 넣어야 하는 게 안 익지만 익으면 익을수록 단맛이 많이 빠지는 애들, 알배기 배추나 양파, 파 이런 것들이죠. 이건 끓게 두고요. 파란색 채소를 익히는데요. 이걸 익힌다고 생각하지 마시고요. 색만 변하면 먹어야 해요. 젓가락을 뺄 필요도 없어요. 그냥 넣었다가 3초 후에 빼서 먹으면 되고요. 그 다음 버섯을 넣으면 버섯 육수가 풍성하게 우러나요. 고기나 해물은 마지막에 먹는 거죠. 그렇게 드신 후에 국수 드시고, 밥 드시면 돼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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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가게 by 홍신애

 

‘쌀가게 by 홍신애’를 하면서 뜻 깊은 순간도 많았을 것 같아요.

 

일단 이 골목에 아무것도 없었어요. 이제는 밥집 골목이 됐죠. 많은 지인들이 저를 놀린다고 옆집 식당 간다고 했었어요.(웃음) 그런데 저는 가서 드시라고 했죠. 옆집 식당이 생긴다는 건 완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경쟁자라고 생각하는 게 이상한 거예요. 여기 밥집이 많이 생겨서 좋고요. 어느 밥집에 가나 쌀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고 있는 것도 좋아요. 이제는 사람들을 만나면 우리 식당에 안 다녀간 사람이 없어요. 저를 만나면 ‘쌀 도정하는 분’이라는 얘기가 나오기도 하는데 그런 게 제일 좋은 것 같아요.

 

앞으로도 계속 하실 계획이죠?

 

쌀가게 형태로는 모르겠어요. 이 정도 했으면 밥집은 괜찮지 않나 하는 생각이 있어요. 영업적인 면에서 밥으로는 승부를 볼 수 있는 시장이 아니에요. 밥에 관한 인식이 충분히 올라섰기 때문에요.

 

그렇다면 다음 단계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외식 트렌드와 요리 트렌드가 다르게 가요. 저는 공부를 좀 더 하고 싶은 생각이 있어서 연구소를 하나 만들려고요. 그곳에서 본격적으로 요리에 대한 것들을 공부하고 싶고요. 식당은 계속 유지를 하긴 할 거예요. 그게 어떤 형태가 될지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공부를 더 한다니 좀 의외인데요.

 

방송이 채찍질이 많이 되는 것 같아요.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니까요. 특히 <수요미식회>에서 여러 가지 경험을 하다보니까 생각이 좀 달라졌어요. 배울 점이 진짜 많거든요. 이 사람이 왜 이런 포인트로 이 식당을 가라고 했는지, 이 식당에서 왜 이런 요리를 내놓을 수밖에 없는지, 고기 숙성을 왜 이렇게 하는지 하는 것들을 너무 많이 경험하고 알게 돼서 좋아요. 어디서도 가르쳐주지 않는 것들을 알아갈 수 있는 좋은 방송인 것 같아요. 한동안 요리 좀 잘한다고 생각했던 게 엄청나게 부끄러워지는 순간들이 되게 많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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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여행 에세이에 대한 꿈도 살짝 언급했어요. 만약 쓴다면 꼭 담고 싶은 이야기는 뭔가요?

 

국내도 워낙 좋은 곳이 많은데요. 해외에도 신기하고 배울 수 있는 식당들이 많이 있거든요. 일본도 있고, 홍콩도 있고요. 이런 곳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 수 있는 책이라면 좋을 것 같아요. 남들 다 가는 관광지를 저는 못 가봤어요. 마카오를 가도 시장은 가봤지만(웃음) 성당은 가본 적이 없어요. 요즘은 저처럼 여행을 먹으러만 가는 분들도 많잖아요. 맛집 소개를 넘어선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데요. 일본 후쿠오카 같은 경우 일본 사람들은 하카타와 구루메 라면을 구분해요. 우리에게는 그냥 ‘일본 라멘’이잖아요. 이 두 가지를 따로 놓고 먹어봤더니 너무 다른 거예요. 마치 진주냉면과 평양냉면 같은 느낌인 거예요. 이런 재미있는 요소들을 모르고 여행을 하잖아요. 그렇지 않은, 저처럼 음식에 큰 열망이 있거나 사원 두 시간 걷고 이런 것이 필요 없는 사람들을 위한 책을 한 번 해보고 싶어요.

 

마지막 질문인데요, 어떤 사람들에게 집밥이 필요할까요? 그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요리하는 사람들이 모이면 화두가 되는 게 집밥이에요. 왜냐하면 그 누구도 집이 없거든요. 엄마가 있지만 그 누구도 엄마가 집에서 밥을 해주지 않아요. 지금 학생들은 식탁에 가족이 모여 밥을 먹거나, 우리집 김치말이 국수는 이렇고, 우리집 곰탕은 이렇고, 우리집은 밤에 비빔국수를 이렇게 해먹어, 하는 ‘문화’가 없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얘기가 없어요. ‘젊은 사람들은 맛을 몰라’라는 얘기를 하는 게 아예 집안의 음식 문화가 없기 때문이거든요. 집밥이라는 단어가 나온 것도 그런 배경이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집밥이 필요한 사람은 모든 사람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 모든 사람이 왜 집밥이란 단어를 쓰고 그것을 그리워하느냐, 집이 없어서예요. 갈 곳이 없어요. 저희 아이들만 해도 그렇고요. 다 똑같아요. 저도 매일 집에서 밥 해먹는 것 같지만 실상은 안 그렇거든요. 때문에 밖에서 돈을 주고라도 그 집밥을 사고 싶은 욕구가 있는 것 같아요. 모든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집밥 식당이 돼서 좋고, 그런 레시피를 만들 수 있는 게 어떻게 보면 행운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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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신애의 제대로 집밥홍신애 저 | 로지
tvN 〈수요미식회〉에 출연해 전문가다운 조언과 섬세한 맛 표현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요리연구가 홍신애 저자가 가족을 위해 준비했던 365일 집밥을 그대로 재현한 책이다. 맛있는 밥을 짓는 법부터 시작해, 기본 양념장과 육수, 김치, 장아찌, 과일청 만드는 법, 제철 재료로 깔끔한 맛을 낼 수 있는 32개 정식 세트, 총 127가지 메뉴들을 공개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형태 “성공한 예술가와 기업의 공통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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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경제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은 “예술과 경제를 움직이는 ‘공통된 힘’이 있다”고 말한다. 다섯 가지로 집약된 비결은 현상 너머의 것을 꿰뚫어 볼 수 있는 ‘투시력’, 상황을 새롭게 정의하는 ‘재정의력’, 근원적인 형태인 원형을 파악해 활용하는 ‘원형력’, 항상 성장하고 소용돌이치는 ‘생명력’, 무거움과 가벼움이 충돌하는 ‘중력과 반중력’이다.

 

책은 다양한 예술작품을 통해 이들 다섯 가지 힘이 예술과 경제를 관통하며 작용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화가, 조각가, 건축가들이 문제와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던지는 기발한 질문과 경이로운 대답은 위기에 처한 경제와 기업경영에도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는 것이다. 저자인 김형태 조지워싱턴대학 객원교수는 이것이 바로 “저성장이 고착화된 위기의 경제가 예술에 길을 물어야 하는 이유”라고 힘주어 말한다.

 

서울대학교 경영학과와 동 대학원에서 금융과 재무학을 전공한 김형태 교수는 자본시장연구원 원장과 IMF 객원연구위원을 거쳐 현재 조지워싱턴대학에서 연구활동을 하고 있다. 미국의 ‘글로벌금융혁신연구원’ CEO 겸 원장이기도 한 그는 예술적 관점에서 경제 이슈를 풀어내는 강의로 학계와 기업에서 명성을 얻고 있다. 전공은 경제와 금융이지만 그는 28년 차 미술작품 콜렉터이기도 하다.

 

『예술과 경제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은 세 가지 놀라움을 안겨준다. 예술과 경제가 “서로 다른 힘에 의해 움직이는 전혀 다른 세계”가 아니라는 사실에서 한 번 놀라고, 오랜 시간 경제경영을 연구해 온 저자가 놀라우리만큼 깊은 예술적 식견을 보여준다는 데에서 두 번 놀란다. 무엇보다, 따로 떼어 놓고 보아도 어려운 경제와 예술의 이야기를 쉽고 흥미롭게 들려준다는 점이 가장 놀랍다.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경제의 원리, 예술의 역사, 두 분야를 가로지르는 통찰력까지 엿볼 수 있는 ‘세 가지 즐거움이 있는’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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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을 거듭할수록 글은 쉬워진다

 

<조선일보 위클리비즈>에 연재하셨던 칼럼을 바탕으로 쓰여진 책입니다. 새로 추가된 내용들도 있나요?

 

‘예술과 금융’이라는 제목으로 2년 반 정도 연재했던 칼럼이 기본이 됐지만, 대부분의 내용은 새로 고민해 새로 쓴 것들입니다. 미국의 대학들과 연구소에서 강의했던 내용들이나 미국에서 CEO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이야기했던 내용들도 포함되어 있고요. 이번 책을 준비하면서 새롭게 쓴 내용들이 많습니다.

 

예술과 경제는 서로 상반된 영역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요. 둘 사이에 접점이 있을까요?

 

근본적으로 들어가 보면 예술과 경제를 움직이는 힘의 원리, 작용되는 에너지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나라도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있는데 책에서 예로 들고 있는 미술가, 조각가, 건축가들 대부분이 비주류로써 인정받지 못하던 시기에 처절한 몸부림을 통해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했습니다. 그 가운데 성공한 사람들의 비결을 생각해 보면, 그들에게는 다섯 가지 힘이 있었다고 생각돼요. 새로운 아이디어로 판을 뒤집는 능력, 즉 ‘재정의력’이 있었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투시력’이 있었죠. 그리고 무엇보다도 오래된 전통 속에 있는 뿌리, 그로부터 파생되어 나오는 새로움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원형력이 있었습니다. 생명력 또한 가지고 있었죠. 생명이란 일종의 에너지흐름입니다. 에너지라는 건 힘과 힘이 부딪힐 때 용솟음치면서 소용돌이치는 건데 예술의 거장들은 그 과정을 보고 흐름을 탈 수 있었어요. 마지막으로 항상 끌어당기는 관습과 편견이란 중력으로부터 떨쳐나가는 반중력의 힘이 있었죠. 반대로 가볍고 피상적으로 떨쳐나가는 걸 잡아주는 중력의 힘도 있었고요. 이 다섯 가지의 힘은 성공한 예술가들과 성공한 기업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힘’이라고 봅니다.

 

경제경영 전문가이신데 예술적 안목도 무척 뛰어나세요.『예술과 경제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을 보면 예술사의 흐름이 명료하게 정리되어 있고, 각 시기별 특징과 예술가들에 대한 분석까지 들려주시더라고요.

 

사실 고등학생 때 건축가가 되고 싶었어요. 멋지고 경이로운 건물을 짓고 싶어서였죠. 결국 부모님의 중력을 벗어나지 못해 건축과 진학의 꿈을 접고 경영학을 전공하게 되었지만 마음 한편에는 그림과 건축에 대한 애정이 있었죠. 책에서 생명과 뇌에 대한 이야기도 했지만, 우리 뇌는 좋아하는 것에 관심을 갖고 집중하게 되어 있잖아요. 저 역시 그림을 좋아하니까 집중하게 됐고, 흥미를 느끼니까 스스로 공부하게 된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보는 눈도 생긴 거고요. 아무래도 제가 경영학을 전공했고 금융 공부를 계속 했으니까, 예술 작품을 보면서도 비슷한 부분들이 눈에 띄더라고요. 마이너스 금리 이야기를 들으면 비잔틴 성상화가 생각나고, 양적 완화 이야기가 나오면 드레이퍼의 ‘오디세우스와 세이렌’ 그림이 생각나는 거죠. 복잡한 경제이슈를 보면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이 생각나고요. 그러면서 경제와 예술이 관련이 없는 것 같지만 사실은 굉장히 비슷하고, 그 안에서 작용하는 힘의 원리도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것들이 축적돼서 이번 책도 나오게 된 거고요.

 

경제와 예술 모두 쉽지만은 않은 분야잖아요. 그런데 작가님의 책은 술술 읽혀서 놀라웠습니다.

 

경제와 예술은 저를 받치고 있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두 분야예요. 좋아하니까 흥미를 갖게 됐고, 그렇게 공부를 하다 보니까 점점 깊이 이해하게 됐죠. 제가 이해를 하지 못하면 글이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조금 더 곱씹으면 뿌리가 보이면서 쉬워지고요. 이렇게 저렇게 고민을 거듭할수록 글은 쉬워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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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시력’과 관련해서 마우리츠 에셔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어요. 에셔에게서 배울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제가 생각하기에 에셔의 작품은 서로 다른 이질적인 것과 갈등을 포용해서 조화를 이끌어냈습니다. 에셔의 그림 중에는 모순적인 것들이 많죠. 책에 실려 있는 「하늘과 바다」를 보면 아래쪽에 그려져 있는 물고기가 위로 갈수록 새가 되잖아요. 「천사와 악마」라는 그림에서도 악마가 천사가 되고 천사가 악마가 돼요. 에셔의 작품에는 이렇게 이질적인 것을 하나의 프레임 속에 넣어서 조화를 이룬 것들이 많아요. 어떻게 보면 현재와 같이 이해관계 집단들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시대에 우리가 나가야 할 길을 가르쳐주는 화가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기업일 수도 있고, 국가 경제일 수도 있고, 어떤 조직일 수도 있고, 세계 경제일 수도 있는 거죠.

 

말씀하신 작품 「하늘과 바다」에 빗대어 월마트와 아마존의 관계를 분석하기도 하셨죠.

 

월마트는 오프라인 유통업의 최강자잖아요. 아마존은 최고의 전자상거래회사고요. 책에서는 아마존을 에셔의 물고기로, 월마트를 에셔의 새로 비유했는데요. 물속(온라인 시장)에 잠겨있던 아마존이 독수리처럼 하늘(오프라인 시장)로 비상하려고 하니까 월마트는 비상이 걸린 거죠. 그래서 월마트도 온라인을 강화하는 거예요. 아마존에서 조금만 수수료를 지불하면 48시간 내에 주문한 물건을 받을 수 있게 하니까, 월마트도 경쟁하기 위해서 36시간 안에 배송이 가능한 시스템을 도입했어요. 그러자 아마존은 24시간 안에 배송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했고요. 서로의 사업 영역이 다른 것 같지만 궁극적으로 따져보면 본질은 같은 거죠. 그 본질을 꿰뚫고 볼 수 있는 화가가 에셔였고, 사업의 본질을 볼 수 있는 기업은 성공하는 거예요. 서로 다른 걸 하나로 볼 수도 있고, 같은 걸 분리해낼 수도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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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답을 찾으려면 새로운 질문을 던져라

 

‘재정의력’의 핵심은 ‘질문을 달리하면 전혀 다른 대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인가요?

 

우리가 어떤 문제를 풀 때, 대부분은 그 프레임 안에서 문제를 풀게 돼요. 문제가 특정하게 주어져있다는 것은 이미 우리의 사고방식과 솔루션을 제약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인 거죠. 그러니까 문제가 달라지면 즉 색다르게 질문할 수 있으면 해답이 달라지는 겁니다. 책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어떻게 하면 식량을 많이 생산할 수 있는가’라고 질문하면 식량을 더 많이 생산하는 방법에만 몰두하기 마련이죠. 그런데 동일한 경작지에서 생산량이 2배 늘어났다고 하더라도 가뭄 때문에 전세계에서 생산 가능한 면적이 1/4로 줄었다면 아무 소용이 없는 거잖아요. 그럴 때에는 ‘어떻게 하면 물 없이도 살 수 있는 식물을 만들까’라고 질문하면 전혀 새로운 답이 보이게 됩니다. 질문을 달리 한다는 것은 사고의 프레임을 완전히 바꾼다는 겁니다. 새롭게 상황을 재정의하고 새로운 질문을 함으로써 전혀 새로운 답을 끌어내는 거죠. 우리 기업이나 경제에 제일 필요한 게 바로 그런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에서 던롭사의 창업자인 존 보이드 던롭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는데요. ‘재정의력’의 중요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가 아닐까 싶습니다.

 

던롭은 자전거 타이어를 재정의했죠. 예전에는 나무로 깎아서 바퀴를 만들었기 때문에 덜컹거리는 충격이 다 머리까지 전달이 됐어요. 당시에 던롭의 아들도 매일 자전거를 타고 나면 머리가 아프다고 했죠. 자전거가 계속 덜컹거려서 뇌가 흔들렸던 거예요. 그래서 던롭은 ‘어떻게 하면 바퀴를 개선시킬 수 있을까’를 생각하다가 충격을 그대로 흡수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냈어요. 그 이전까지는 바퀴의 크기를 키워 충격을 타고 넘으려 했거든요. 바퀴가 클수록 장애물에 잘 걸리지 않고 넘어갈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우리가 흔히 빈폴 자전거라고 이야기하는 앞 바퀴가 엄청 큰 형태의 자전거가 나온 거예요. 그 자전거의 문제점은 넘어질 때 앞으로 고꾸라진다는 거였어요. 그래서 목뼈가 부러져 죽는 사람도 많았고, 별명이 넥브레이커(neck breaker)였죠. 사람들은 ‘바퀴의 크기로 충격을 타고 넘기 위해 어떻게 하면 바퀴를 크게 만들까’라는 질문에 함몰되어 있었던 거예요. 그런데 던롭은 ‘충격을 크기로 타고 넘는 것이 아니라 탄력성과 유연성을 통해 흡수해 버리자’라고 생각해서 고무 튜브로 만든 바퀴를 만들어냈죠. 질문이 바뀌니까 아이디어가 나온 거예요.

 

던롭의 이야기를 경제 상황과도 연결시켜 볼 수 있을까요?

 

한국 경제도 과거에는 크기를 통해서 경제 위기를 극복하고 운영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러니까 대기업 중심의 운영이 이루어졌던 거예요. 당시에는 그럴 수밖에 없었어요. 이런 저런 충격을 타고 넘기에는 대기업이 유리하니까요. 그런데 이제는 중소기업, 혁신기업, 젊은 기업들이 나오면서 ‘충격을 타고 넘지 말고 흡수하자’라고 생각하게 됐죠. 충격을 흡수한다는 건 그만큼 다양한 기업이 많아서 한 기업이 무너져도 다른 기업이 보충해 준다는 거잖아요. 던롭의 이야기와 연결해서 생각해 보면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어요.

 

‘재정의력’과 관련해서 굉장히 흥미로운 상상이 눈에 띄더라고요. ‘예술의 거장들이 조직의 리더라면?’이라는 가정인데요. 에셔, 모네, 세잔, 몬드리안, 미켈란젤로, 피카소, 고흐 등 다양한 스타일의 리더 가운데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유형이 있으세요?

 

누가 최고라고는 생각할 수는 없는데요. ‘인사가 만사다’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미켈란젤로형 리더가 아닐까 싶어요. 책에는 미켈란젤로의 작품 중에 ‘노예상’이라는 미완성 작품이 소개되어 있는데요. 제가 그 작품을 피렌체의 아카데미아 미술관에서 봤을 때 충격을 받았어요. 작품 안의 노예가 튀어 나올 것 같더라고요. 이미 완성된 조각품이 안에 있고, 미켈란젤로는 회반죽만 털어낸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실제로 미켈란젤로는 미리 스케치를 하거나 석고상을 만드는 과정 없이 처음부터 조각을 시작했다고 해요. 제 해석대로라면, 돌 안에 이미 자기가 형상하는 모습이 정확히 들어있었던 거죠. 그러니까 불필요한 부분만 쳐냈던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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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리더와 미켈란젤로의 공통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미켈란젤로형 리더라면 조직의 구성원에게 자기 칼을 들이대서 마음대로 조각하려 들지 않을 거예요. 그 안에 있는 완성품 그대로를 인정해주고 흙만 털어주는 거죠. 그 사람이 가진 능력을 발휘할 수 있게 해주는 거예요. 조직원이 능력 발휘를 못한다면 그건 CEO의 책임이에요. 조직 안에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는데, 다양성을 인정해주고 그 사람이 잘하는 걸 발견해 내는 게 경영자의 능력이죠. 물론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에요. CEO도 자신의 목표가 있기 때문에 그와 맞지 않는 사람을 자기 칼로 조각하려고 해요. 그 과정에서 조직의 구성원은 상처를 받죠. 그런 관점에서 보면 미켈란젤로의 노예상처럼 미완성이 완성이라고 생각돼요. 미켈란젤로처럼 있는 모습 그대로를 끄집어내는 리더라면 어떤 조직도 잘 리드할 수 있다고 봅니다.

 

책에서 세 번째로 꼽으신 힘은 ‘원형력’입니다. 레고의 사례를 보면 기업이 원형, 즉 본질을 간직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알 수 있는 것 같아요.

 

레고의 본질은 확장가능성과 분리가능성이라고 볼 수 있어요. 또 다른 레고 제품을 사더라도 기존 제품과 얼마든지 확장해서 연결시킬 수도 있고 반대로 분리시킬 수도 있는 거죠. 그런데 컴퓨터가 보편화되고 컴퓨터 게임과 경쟁자에 밀려서 기업이 어려워지니까 레고는 그 본질을 버리기 시작했어요. 아이들의 마음을 뺏을 수 있고 제품이 팔리기만 한다면 기존에 샀던 제품과 연결이 되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한 거죠. 그게 바로 기업을 지켜왔던 뿌리, 즉 ‘레고스러움’을 버린 거예요. 그렇게 하다 보니까 기존에 있었던 디자이너들도 해고했죠. 그들은 레고를 좋아하고 레고에 몰두해 있던 사람들이었는데, 그들 대신 레고뿐만 아니라 완구를 잘 모르는 디자이너들을 채용했어요. 그 결과 새로 만든 제품은 기존 제품과 연결도 안 되고, 부품은 자꾸 늘어나게 된 거예요. 판매가 부진하니까 재고 관리 비용도 늘어났고요. 

 

위기에 빠진 레고를 구한 건 외르겐 비크 크누트슈토르프였죠. 책에서도 그를 ‘구원투수’라고 이야기하셨어요.

 

외르겐 비크 크누트슈토르프가 CEO가 된 후에 혁신을 이루었죠. 제가 볼 때 그가 한 일은 ‘레고스러움’을 회복한 거예요. 원형을 회복한 거죠. 어렸을 때 레고를 가지고 놀아본 적이 있고 레고에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디자이너로 채용했고요. 기존 제품과 확장이 안 됐던 제품들을 과감하게 포기하고, 확장가능성이란 원형 속에서 혁신을 시도했어요. 혁신은 혁신이되 과다혁신이 아닌 ‘관리된 혁신’을 추구한 것이죠. 그렇게 원형을 되찾으면서 경영 상태를 회복시켰죠. 원형이라는 건 고리타분함이 아니라 미래를 창출해 내는 뿌리예요. 뿌리에서 출발해서 다양성을 펴 나가는 거죠. 뿌리 없는 다양성은 사상누각이라는 거예요. 레고는 원형을 잃으면서 실패했고 원형을 회복함으로써 복귀한 대표적인 기업이죠.

 

그렇다면 한국 경제의 원형은 무엇일까요?

 

요즘 그런 이야기들 많이 하죠. 수출 중심의 한국 산업은 죽었으니까 소비 중심 성장모델로 전환해야 한다고요. 제가 생각할 때, 우리나라는 소비 중심 성장이 될 수 없는 나라예요. 일본이나 미국 정도는 경제규모가 돼야 소비중심으로 돌아갈 수 있죠.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경제) 원형인 수출을 지켜야 해요. 다만 수출은 수출이되 지나친 상품 중심의 수출모델에서 벗어나 서비스 수출, 자본수출 쪽으로 다변화하는 게 맞는 방향이고요. 소비 중심 모델로 바꾸자는 건 한국경제의 원형을 잃는 거예요. ‘한국스러운’ 걸 잃는 거죠. 기업이든 국가경제든 원형을 잃으면 실패하기 마련입니다. 뤼 꼬르뷔제가 건축한 롱샹성당이 신비롭게도 ‘오래된 미래’를 보여주듯, 경제도 미래지향적이되 원형을 유지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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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에 필요한 힘은 ‘재정의력’

 

‘생명력’을 보여주는 기업으로 GE를 꼽으셨는데요.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생명력이라는 건 계속 살아나갈 수 있는 힘이잖아요. 책에서 정의하길 ‘영원히 살기 위해서 스스로를 죽임으로써 새롭게 태어날 수 있는 힘’이라고 했는데요. GE의 전설적인 CEO인 잭 웰치는 항상 직원들한테 ‘우리 기업이 어떻게 하면 죽을 수 있는지’ 레포트를 내라고 했어요. 그는 영원히 사는 방법을 알고 있었던 거죠.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더라도 자신감이 없고 리더십이 없는 조직이었다면 그런 지시를 못 내렸을 텐데 잭 웰치는 해낸 거예요. 그런 점에서 존경스럽죠. 어떻게 하면 죽게 되는지 알고 있으니까 어떻게든 살아남을 방법을 강구한 거예요.  문제를 재정의했다고 볼 수도 있죠. 보이지 않는 적은, 말 그대로 보이지 않게 접근하기 때문에, 성공한 과거의 자신한테만 몰두하면 이런 적에게 대응할 수 없어요. 그러니까 GE처럼 자신을 죽이는 방법을 생각해야 되는 거죠. GE는 처음 다우존스 주가지수가 출범하면서 포함됐던 우량기업 중에서 현재까지 유일하게 남아있는 기업이에요. 그 비결을 생각해 보면, 계속 죽고 새롭게 태어났기 때문이죠.

 

‘예술과 경제를 움직이는’ 다섯 번째 힘은 ‘중력과 반중력’입니다. 경제 혹은 경영에 있어서 이 둘 사이에 균형을 맞추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중력과 반중력은 예술이나 경제와는 전혀 관련 없는 물리학적인 용어 같지만, 그림에도 가벼운 그림이 있고 무거운 그림이 있듯이, 경제에도 중력 반중력이라는 개념이 있어요. 중력이라는 게 단순히 물리적인 힘이 아니라 경제적인 힘, 정치외교적인 힘일 수도 있고요. 잡아끈다는 의미에서 사람 관계에서 매력일 수도 있어요. 그런데 정상과 비정상, 균형과 비균형의 개념을 다시 정의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균형이라고 하는 건 흔히 일어나는 일이 아니에요. 아주 예외적으로 일어나는 일이죠. 대부분의 경우에 우리는 비균형 상태에서 살고 있는 거죠. 책에 썼듯이, 균형은 우리의 목표이기는 하지만 현실의 출발점은 아닌 거죠. 균형이 항상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건 잘못된 것 같아요. 너무 거기에 매여 있으면, 안정적인 환경에서는 좋을 수 있지만, 틀을 깨고 나가지 못하게 돼요. 무거워야 될 때는 무겁게, 가벼워야 될 때는 가볍게 잘 맞추는 것이 중력과 반중력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는 방법이겠죠.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나 그랩의 돌쌓기는 절묘한 군형과 조화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마그리트의 그림 중에는 중력에 저항하는 그림이 많죠.

 

책에서 꼽으신 다섯 가지 힘 가운데, 현재 한국의 경제 상황에서 가장 우선적으로 필요한 힘은 무엇일까요?

 

‘재정의력’이죠. 어떤 문제가 있을 때 첫 번째 단계는 기존의 틀 속에서 개선과 발전을 모색하는 건데, 제가 볼 때 한국은 경제 성장 모델에 관한 한 최소한 이 단계는 넘어섰어요. 이제는 틀을 바꿀 때이고, 틀을 바꾸기 위해서는 한국 경제에 관한 문제를 새롭게 재정의해야 하죠. 앞서 이야기한 대로 새롭게 정의해야 새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고 기발한 새 답도 나오니까요. 한국 경제도 근본적인 재정의가 모색이 되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무엇이 잘 사는 것인가’에 대한 정의부터 새롭게 해야 한다고 봐요. 과연 우리가 맹신하고 있는 국내총생산(GDP)이 높으면 잘 사는 것인지, 질문해 봐야 할 때죠. 물건이 모자라서 생산만 하면 전부 팔리던, 그렇게 수요가 넘쳐나던 시절에는 GDP로 측정된 생산이 높으면 잘 사는 것이었죠. 하지만 이제는 수요가 부족하잖아요. 그리고 GDP를 개발한 쿠즈네츠 교수가 경고했었어요. GDP는 잘 살고 행복해져야 한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지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요. 그런데 목표가 되어버린 거예요. 그런 점에서 잘 사는 것에 대한 정의를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경제 문제를 해결해줄 방법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도 맞다고 생각해요.

 

‘가난에 대한 재정의’도 기억해둘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가난에서 빠져나오려면, 경제적 여유뿐 아니라 뇌와 정신에 여유가 있어야 한다”고 하셨죠.

 

지금까지는 가난한 이들에게 돈을 보조해주고 재취업 프로그램을 제공해줬잖아요. 그런데 최근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하는 연구자들은, 가난이 단순한 경제적 빈곤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뇌의 빈곤이라고 이야기해요. 가난한데 부양해야 할 가족이 많은 사람들은 아이들 돌보고, 아픈 부모 병수발 들고, 직장에서 일할 때도 집에서 부모님이 쓰러지셨다고 연락이 오고, 퇴근해서 집에 가면 공과금 청구서가 와있고, 아이들은 등록금을 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그런 상황이란 말이에요. 그렇게 뇌의 연료가 소진된 사람이 어떻게 직장에서 집중해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겠어요. 그러니까 빈곤 문제는 단순히 돈을 많이 주는 문제가 아니라 그들 뇌의 여유를 회복시켜주는 문제예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문제도 마찬가지죠. 비정규직에게 정규직만큼 돈을 더 주겠다고 하는데, 이건 돈의 문제가 아니라 뇌의 문제라니까요.

 

독자들에게 『예술과 경제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이 어떤 의미를 가지면 좋을까요?

 

예술가의 고민을 많이 같이 곱씹어 봄으로써 우리의 마음뿐만 아니라 뇌를 촉촉하게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예술적 시각에서 경제를 바라볼 뿐 아니라, 경제적인 시각에서 예술을 바라보는 일도 있었으면 좋겠고요. 이 책이 조그만 징검다리가 되어서 경제와 예술 사이에 교류가 많이 이루어지고, 서로가 상대방에게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특히 경제에서도, 예술처럼, 아름답다, 자연스럽다, 기발하다,따뜻하다는 말이 많이 사용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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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과 경제를 움직이는 다섯 가지 힘김형태 저 | 문학동네
미술, 건축, 문학 등 예술과 경제, 금융, 경영이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분야를 접목해 새로운 인사이트를 제시하는 김형태 조지워싱턴대 교수. 자본시장연구원 원장을 역임한 ‘경제 전문가’답게 어렵고 복잡한 경제와 금융을 누구라도 쉽고 재미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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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 “젊은 친구들, 자기가 얼마나 빛나는지 모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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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애송이는 기상 캐스터 지망생이었다. ‘활동할’과 ‘활동하는’은 엄연히 다르다. 언제나 지망생이 문제였다. 지망생은 뷔페에 놓인 아이스크림 같은 존재였다. 있어도 없어도 그만. 누구나 쉽게 퍼서 먹다가 남기고, 남으면 녹아서 없어지기 마련이었다. (중략)

날씨연구소에서 배운 또 한 가지는 지망생이라는 사실을 세상이 눈치채게 해서는 안 된다는 거였다. 굳이 스스로 싸구려 아이스크림이라는 걸 알려줄 필요는 없으니까.(42쪽)

 

참으로 냉소적인 주인공이 등장했다. 기쁠 때도 흠, 힘들 때도 흠, 마치 자기 일이 아니라는 듯 자기 자신과도 거리를 두는 인물. 다정한 말을 건네는가 하면 속에는 늘 다른 목소리가 들어있는 이 사람. 이 젊은 친구가 안타까운 것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그의 처지를 알기 때문이다. 삶의 비밀을 일찍 알아버린 청춘들, 이것은 참으로 슬픈 이야기다.

 

제7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 『담배를 든 루스』는 201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얼룩, 주머니, 수염」으로 등단한 작가 이지의 작품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다양한 아르바이트 가운데 작가 자신의 경험이 담긴 것도 있을 정도로 그는 ‘여러 다른 일을 기웃거렸’다. 젊음이 마냥 푸르고 밝지만은 않다는 것을 잘 알기에 주인공의 이야기를 외면했던 시간이 미안하다고 말하는 이지 작가. 내내 인물들에게 사과했다는 작가는 ‘첫 책이 이 작품이어서 고맙고 행복하다’고 했다. 그렇다면 인물들은? 그들은 작가의 사과를 받았을까. 오랜 시간,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어준 작가에게 인물들은 뭐라고 했을까. 어쩌면, 아주 어쩌면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지 않았을까. 그들의 목소리가 이제 세상으로 나왔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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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하는 습관

 

작가의 말에서 ‘여러 다른 일을 기웃거렸’다고 했어요. 등단까지의 삶이 궁금해져요.

 

사회초년생 때부터 하면 정말 많아요. 직업 관련 책을 써볼까, 싶을 정도로요.(웃음) 등장인물이 한 아르바이트 중에 제가 한 것도 있어요. 한국어 가르치는 일이나 인형극 아르바이트, 이런 것들이요. 잡지사 기자를 오래 했고요. 칼럼도 쓰고 그랬어요. 짧게 방송도 하고요. 방송은 정말이지, 잘하지 못하는 걸 할 때 겪을 수 있는 걸 다 겪었죠. 운이 좋은 거라고 하지만 많이 원하지 않은 사람이 쉽게 얻었을 때 오는 어려움 같은 거겠죠. 저는 소설 쓰면서 너무 힘들었거든요. 공모에 내기도 많이 내고요. 하지만 이건 내가 정말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거잖아요. 그래서 반성 많이 했어요. 쉽게 얻었던 어떤 것이 실은 아주 간절한 사람에게서 빼앗은 것일 수 있겠구나 싶어서요. 그땐 어렸죠.

 

소설에 대한 열망은 그 안에 계속 있었던 거고요?

 

대학교 가면서는 글을 거의 안 썼는데요. 중고등학교 때 진짜 문학에 너무 빠졌었어요. 밤새 정말 많이 썼어요. 시도 많이 쓰고요. 책상 앞에 까뮈 사진 붙여놓고 그랬죠. 고등학교 졸업할 때 공로상도 받았어요. 백일장에서 상을 많이 받았다고요. 하지만 그건, 다 안 쓰는데 쓰니 잘하는 거였겠죠. 너무 간단한 결론이에요. 저는 그냥 한국소설의 성실한 독자였어요. 언저리에 계속 있던 셈인데요. 한 선생님께서 그래도 네가 계속 글을 썼기 때문에 된 거지 아예 너무 먼 일을 했다면 그럴 수 없다, 라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그 말도 맞는 것 같고요.

 

본격적으로 등단을 위해 쓴 순간은요?

 

이렇게 힘들 줄 알았으면(웃음). 이제 경험은 많이 해봤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저는 극단을 경험해본 사람은 아니지만요. 시험해보고 싶었어요. 이 정도면 취재는 좀 된 것 같으니까 그만 생각하고 좀 써봐야겠다, 했던 것 같아요. 더 이상 하고 싶은 일이 별로 없고, 글을 쓰고 싶고, 그랬던 것 같아요.

 

교통사고가 났었어요. 그날도 계약한 일 때문에 취재를 하던 중이었어요.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본 것 같아요. 나오는데 문득 이런 일이 너무 재미있던 때가 있었는데, 싶더라고요. 의무로 하고 있던 거예요. 너무 재미가 없었죠. 이 일이 즐거운 새내기도 있을 텐데 그걸 숙제처럼 하고 있는 거예요. 사고라도 났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며 운전하다 진짜 대형사고가 났어요. 차는 폐차할 정도였어요. 얼마간 입원을 하고, 일을 그만두고 누워서 계속 생각하고 그랬던 것 같아요. 병원에 누워 <슈퍼스타K>를 보다가(웃음) 저렇게 열정을 갖고 사는데 나도 죽기 전에 한 가지 해보자 생각했어요.

 

그게 정확히 언제예요?

 

5년 전인가요. 존박에게 투표를 했거든요.(웃음) 그러고 나서도 바로 소설을 쓴 건 아니고요. 학교를 갈 생각은 못 했고, 그냥 여기저기서 강의 들었어요. 사실 소설을 배우고자 한 건 아니죠. 누구든 알 거예요.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고요. 중요한 건 그룹인 것 같아요. 글을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 사이에 간 거예요. 써보니까 희열이 느껴지더라고요. 오늘 내면 내일 되겠지, 했는데 절대 아니었고요. 그렇게 몇 년이 지났어요. 한국일보 신춘문예가 2014년 겨울에 발표된 건데요. 저는 내게 주어지지 않은 일을 너무 오래 탐하면 사람이 상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떻게 보면 영리한 거고 어떤 면으로 보면 의지가 박약한 거죠. 마지노선이 있었어요. 거기에 딱 걸려서 등단했죠.

 

원래 이 작품은 단편 ‘예술 하는 습관’에서 시작된 거라고요. 단편이 장편『담배를 든 루스』가 되기까지의 이야기도 재미있을 것 같거든요.

 

처음에 70매를 썼어요. 그때는 주인공 이름도 있었어요. 쓰고 넣어뒀었죠. 잊어버리고 있다가 캐릭터가 자꾸 생각이 나서 중편으로 고쳤어요. 하나도 쓸 줄 모를 때 쓴 거라 인물도 너무 많았고요. 단편으로 하기엔 그냥 막 재미있어서 썼구나 싶어 250매를 만든 거죠. 흑형이나 예비 감독은 그때 없었어요. 하지만 여전히 떨어지는 많은 일들 중 하나로 떨어졌죠. 마음에 있긴 했지만 너무 습작 초반에 쓴 거라 기대가 없었어요. 그러다가 하성란 작가님의 소설 강좌를 듣게 됐는데요. 선생님이 이 작품을 예심에서 인상 깊게 봤다, 그게 너였구나, 그 소설 참 좋았는데, 이렇게 된 거예요. 꺼져가던 불씨가 살아난 거죠. 그 사이 등단을 하고, 등단은 했지만 작가는 아닌 그런 허탈함에 있었어요. 그 즈음 선생님과 연락을 하는데 빨리 ‘예술 하는 습관’을 다시 썼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누가 나의 소설을 이렇게 지지해줄까, 정말 고마워서, 그래서 다시 썼어요. 250매였던 것을 600매 정도로 만들었죠. 물론 또 한 번 떨어졌죠.(웃음) 우여곡절이 많았어요.

 

이야기를 들으니 선명해지는데요. 곱씹게 되는 문장이 많았거든요. 장편이라기보다 단편 호흡에 가까운 문장이 많았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런 연유기도 했겠네요.

 

감사하네요. 쓸 줄 몰라서 단편처럼 썼죠. 정말 원고를 딱 털고 보약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매번 이렇게 써야 한다면, 그런 걸 알았더라면 작가가 된다고 했을까, 싶은 거예요. 등단 당시에도 다른 강의를 듣고 있었는데 소식 들은 선생님의 첫 마디가 “지옥문을 연 것을 환영한다”였어요.(웃음) 원래 단편 같은 장편을, 장편 같은 단편을 쓰고 싶다는 말을 하긴 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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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그들이 살고 있을 거란 생각

 

작품이 풍기는 ‘젊음’에 대한 감각이 눈에 띄어요. 주인공은 ‘십 년 쯤 팔아버리고 싶다’는 말도 내뱉는데요.

 

자기가 얼마나 빛나는지 모르죠. 나이를 워낙 강조하는 사회다 보니까요. 상대적인 건데 말이에요. 게다가 어른들이 속이죠. 거짓말을 많이 해요. 잘될 것처럼 거짓말할 필요도 없지만 겁을 줄 필요도 없거든요. 물에 들어가 보지도 못하게 한다니까요. 얼마나 물이 무서운지 밤낮으로 얘기해서요. 설거지도 못할 정도예요. 진짜 그런 느낌이에요. 실제 자신이 아는 세계보다 남들이 주입한 것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것 같아요.

 

작가가 젊은 시절 갖고 있던 생각이기도 하겠죠?

 

그렇긴 한데 요즘 젊은 친구들 보면서도 많이 느꼈어요. 경험만이라면 이렇게 쓰지 못했을 거예요. 제게는 다른 현실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깜짝 놀랄 만큼 지금 20대도 그때의 저와 똑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20대 친구들과 많이 이야기를 했었는데요. 더 똑똑해졌는데 겁도 더 많아진 것 같아요. 그것 외에는 정말 비슷해요.

 

주인공의 냉소, 세상과 거리두기가 대체 어디서 비롯됐는지 끊임없이 궁금해 하며 읽게 돼요.

 

그러지 않으면 견딜 수 없기 때문인데요. 그만큼 예민하고 자존심은 있는데 상황은 나쁘잖아요. 계속 나를 분리해서 보지 않으면 살 수 없기 때문에 주인공은 그게 너무나 연습이 된 거죠. 불행도, 행복도 남의 것처럼 바라보고, 나는 괜찮다고 생각하는 게 습관이 된 것 같아서 그 부분이 되게 마음이 아프고 그랬어요.

 

마음이 아프죠. 어쩌면 그런 태도가 생존의 문제와 결부돼 더 확대되고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생각보다 훨씬 우울과 분노, 화가 많은데요. 그렇게까지 많은 줄 사실 잘 몰랐어요. 너무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250매 쓸 때까지는 아무것도 몰랐어요. 600매로 늘릴 때 우사단로에 200에 20만 원짜리 방을 실제로 얻어서 작업했거든요. 매일 그곳을 가는데 언덕을 오를 때 계속 눈물이 나는 거예요. 너무 얘(주인공)를 오래 내버려뒀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너무 미안해서 진짜 미안하다고 얘기를 많이 했어요. 사실 얘는 너무 기다리고 있었는데 치근대지 않으니까 저를 안 찾는다고 생각했던 거예요. 얘 성격이 그런 거예요. 시크한 척 하지만 거절당할까봐 겁이 나서 두드리지 않는 거죠. 제가 그 방에 갈 때마다 거기 얘가 혼자 있는 것 같아서 나중엔 그냥 그 방에 살았어요. 얘를 혼자 두고 나오기가 싫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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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인물들에게 정면으로 사과했다는 작가의 말이 진짜였군요.

 

너무 기가 세서 진짜 힘들었어요. 얘들은 몇 년의 한을 품고 저를 빌려서 나온 거예요. 그래서 그렇게 쓴 거예요, 정말로.

 

작중 인물이 항의하다니, 놀랍기도 해요.

 

사장이 꿈에 나와서 자기 말투가 너무 마음에 안 든다고(웃음) 해서 어이가 없었어요. 다다가 위안이 됐고요. 순수가 늘 마음에 밟히고요. 어디선가 그들이 살고 있을 거란 생각도 하게 되고 그래요. 이제 그들의 몫이겠죠. 그렇지만 소설이 성공할 필요는 없죠. 실패하는 게 소설이죠. 그 실패가 소설이니까 그게 좋아요. 누구의 인생이 성공이겠어요. 다 실패죠. 그런 의미에서 너무 편하고요. 

 

우사단로 배경도 이야기와 잘 어울리는 요소예요. 여러 존재들이 뒤섞인 곳, 겉과 속이 다른 곳이잖아요.

 

이게 그렇게 부각될 줄 몰랐어요. 등단했으니까, 작가라는 걸 인정받았으니까 글만 써도 돼, 라는 확신을 위해 작업실을 얻은 거예요. 매일 출퇴근을 하다보니까 너무 익숙해지고 그래서 디테일이 생긴 것 같아요. 의외의 소득이었어요. 그곳에 살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옆방에는 진짜로 할아버지가 사셨어요. 방이 뚫려있는지 몰랐는데 어느 날 담배 냄새가 나더라고요. 너무 창피했어요. 라디오 틀어놓고, 가끔 친구도 오고 그랬는데 말이에요. 저분은 너무 외로워서 이 소리가 나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그때 했고요. 돌아가시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진짜 했고요. 그런 건 살았기 때문에 알게 된 거예요. 그 부분은 그냥 주인공 팔자(웃음) 같아요.

 

이 작품 안에 작가는 얼마나 들어 있어요?

 

저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는데요. 저는 어쨌든 사람 만나는 일을 많이 했고, 그러다보니 다른 사람들에게서 많은 걸 받았어요. 주인공과는 어느 정도 비슷한 성향은 있겠죠.

 

가령 웃음을 참거나 화를 참을 때 고무줄을 손끝에 감는 습관이 나오거든요. 이건 정말 자기 것이 아니면 모르는 거잖아요.

 

그렇죠.(웃음) 회사 생활 오래하면 누구나, 고무줄을 굳이 감지는 않지만요. 신입 때 생각하면 상 차리는 것도 얼마나 어려워요. 몇 만 원 주면서 먹을 걸 사와보라고, 네 센스를 보겠다고, 그런 거 있잖아요. 그럴 때의 이미지들이 와서 박히죠. 정말 고무줄을 감는다, 이런 건 아닌데요. 표현이 그렇게 된 것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그냥 어른들 말이 너무 듣기 싫었던 것 같아요. 누가 마음에 들었던 적이 없던 것 같은데(웃음) 그런 습관이 묻어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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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친구 런더너와 즐겨했던 놀이도 그렇고 작품 전반에 ‘양가감정’이 두드러져요. 

 

아마 전반적인 주제에 그것도 있을 거예요. 모든 사람이 그렇다고 생각하는데요. 자기가 있는 곳이 가장 흐리죠. 이곳은 맑지도 않고, 비가 오지도 않아요. 차라리 비가 오면 포기할 텐데, 빛이 나면 희망을 가질 텐데, 모두 그래요. 그런데 옆 사람을 보면 맑거나 비가 와요. 하다못해 정치 성향도 그래요. A는 좋은데 A′는 싫고 그걸 하루 종일 생각하다 하루가 가요. 상사의 말에 멋있게 ‘아니’라고 하고 싶지만 그건 너무 비인간적인 것 같고, ‘예’라고 하기엔 너무 비굴한 것 같고요.

 

어쩌면 그 자체가 진실일 거예요.

 

이 작품이 시작은 주인공과 감독의 연애소설이다가 예술가 소설이다가 하면서 점점 주제가 다층적이 되었던 것 같아요. 양가감정이 그 중 하나죠. 아주 쉽게는 문학의 기본이잖아요. 성녀와 창녀는 하나고 그런 것들이요. 극과 극은 통한다는 것이요.

 

또 작가의 경험이 담긴 일화가 있나요?

 

밝히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요. 실제로 ‘팬 사인회’ 말고 ‘팬 싸움회’ 하자는 것은 어느 잡지의 편집장이 하신 말씀이에요. 진짜 매니악한 잡지거든요. 제가 그 잡지를 사서 뒤에 있는 정보를 통해 메시지를 보냈어요. 너무 재미있게 읽었다고 했더니 엄청 좋아하시면서 이 잡지를 사는 분이 있다니 너무 놀랍다고 하시더라고요. 이런 잡지를 계속 만들어주셨으면 좋겠다고 하니까 읽는 분이 한 분 더 생기면 만나서 팬 싸움회라도 하죠(웃음), 그러셨어요. 이 얘기를 소설에 써도 되냐고 하고 쓴 거예요.

 

이 작품을 단호하게 ‘해피엔딩’이라고 말하긴 어렵겠지만 ‘어쩌면 해피엔딩’일 거란 생각은 했어요.

 

엔딩 때문에 진짜 고민 많이 했어요. 더 갈 수 있었어요. 더 비극적으로도, 더 해피하게도 갈 수 있었는데요. 감당할 수 있는 게 어떤 건지 생각했어요. 그리고 주인공에게 내가 책임을 질 수 있는 것이 어떤 건지요. 한계를 제가 알아야 하니까요. 그래서 딱 그 정도까지밖에 못 한 것 같아요. 그게 제 한계고요.

 

딱 주인공답다고 생각했어요.

 

가슴도 키워줬고(웃음) 좋은 사람 만나야 할 텐데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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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써야할 소설

 

이제 막 새로운 장을 또 하나 연 셈인데요. 지금 많이 생각하고 있는 주제가 있나요?

 

여러 가지를 많이 생각하는데요. ‘주제’로 한정시키면 허술해지는 것 같아요. 어떤 주제든 그런데요. 이 작품의 주제도 하나로 말할 수 없듯이 그런 식으로 진전시키고 싶은 주제들은 마음에 있어요. 단순하게 말하면 가족이 될 수도 있지만 가족소설이라고 하면 너무 재미없잖아요. 무엇이라고 딱 말하긴 어려운데요. 계속해서 가져갈 것은 언어에 대한 것이에요.

 

언어요?

 

정말 고민 많이 했어요. 제가 단어수가 좀 많아요. 색을 화려하게 쓰지 않아서 너무 아름다운 그림이 있잖아요. 언어도 그런 것 같아서 다음엔 언어가 제한된 소설을 써볼까 했었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소설은 시간 예술이기 때문에, 액자에 넣어 보여주는 게 아니니까 그런 단순함은 굳이 선택할 필요 없다는 생각을 하고요. 그런 형식적 고민을 계속 하고 있어요. 시소설 같은 것도 정말 쓰고 싶은데요. 많은 것이 수반되어야 할 거고요.

 

저는 제가 하고 싶은 것보다 허락 받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하고 싶은 거야 많죠. 그렇지만 하고 싶은 것보다 허락된 것이 어떤 건지 생각하죠.

 

내용적인 면에서 하는 고민은 어떤 거예요?

 

기본적으로 관계에 대해 고민하는 게 많아요. 아마 그 ‘관계’의 고민은 지속적으로 가지고 갈 것 같아요. 그것이 ‘외면’이 될 수도 있고, ‘들킴’이 될 수도 있고요. 다만 주제가 그것 하나가 아니도록 고민을 해서 쓰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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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적으로 쓰고 싶은 소설도 그런 것일까요?

 

어떤 소설을 쓰겠다, 라고 하는 순간 그 말에 갇혀버리게 되는 것 같아요. 내가 써야할 소설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써내려가고자 해요. 나는 쓰되, 소설은 소설 자체가 움직이겠지, 하고 마음을 비우면 소설이 작동하는 면이 있거든요. 한 가지 정확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내가 모르는 것을 쓸 수는 없다는 것이고요. 이 말은 쉽지만 어려운데,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실제로 되짚어보면 실제로는 모르고 있을 때가 많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남의 말을 빌리지 않고 최대한 내 언어를 사용해야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내가 위치한 지점, 아까도 말씀드린 그 애매하다고 생각하는 자신의 자리에서 발 딛고 써 가면 된다고 생각해요.

 

책 앞에 세 번 이름 부른 ‘난나’는 어떤 존재였어요?

 

그 친구는 작년에 세상을 떠났어요. 자기 죽음을 많이 알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유언을 해서 조심스러운데요. 제게는 무척 중요한 존재였죠. 부음을 며칠 후에 들었는데 제가 수상소식을 받은 날이었어요. 호텔에서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어요. 배신감 느끼기도 했죠. 아쉽고, 미안한 마음도 많아요. 저를 정말 많이 알아봐준 사람이었어요. 처음 만난 날 다짜고짜 ‘나는 너랑 친구할 거야’했던 사람이에요. 소설 등장인물인 런더너처럼요. 제가 글을 안 쓸 때는 화를 내기도 했어요. 재능을 낭비하고 있다면서요. 이 말이 어떻게 보면 잘난 척 같은데요. 그 친구에게 들었을 땐 들킨 것처럼 가슴이 아팠어요. 분명히 엄청 질투했을 거고, 흠을 엄청 잡았을 테지만 가장 좋아했을 친구여서 되게 아쉬워요. 이 책을 정말 난나 언니한테 보여주고 싶더라고요. 내 20대 소설인데 나의 20대에 어쩌면 가장 중요했을 사람이니까요. 이 이야기에도 언니가 많이 들어있어요. 많이 안타까워요. 이 작품은 죽음에 관한 소설이기도 한데 그런 일을 겪었으니.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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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를 든 루스이지 저 | 웅진지식하우스
삶의 무기라고는 질긴 생활력과 잡다한 알바 경력이 전부인 스물셋의 ‘나’가 ‘날씨연구소’에서 일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루는 이 소설은 N포 세대 혹은 흙수저로 대변되는 이 시대 청춘들의 고유명사를 거부하고, 주류 사회에서 철저하게 주변화된 청춘에 대해 본질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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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달 “백수로 살면서 지켜본 세상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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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이례적인 인기를 얻은 그림책이 하나 있다. 일러스트레이터 ‘안녕달’이 그리고 쓴 『수박 수영장』. 풀장 대신 수박 안에서 수영을 한다는 기발한 상상력은 어린이 독자는 물론, 성인 독자들의 마음까지 흠뻑 시원하게 만들었다. 최근 출간된 안녕달 작가의 후속작 『할머니의 여름 휴가』는 휴가를 떠나지 못하는 할머니를 위해 손자가 ‘소라’를 선물하면서 시작된다. 소라를 통해 파도 소리, 갈매기 소리, 게가 움직이는 소리를 듣게 되는 할머니는 강아지 ‘메리’와 함께 바다 햇볕과 시원한 바닷바람을 느낀다. 연필과 색연필의 간결한 필치로 완성된 『할머니의 여름 휴가』는 다정하고도 평안하다. 꽃무늬 수영복을 입고 뒤뚱뒤뚱 조심스레 바닷가를 거니는 할머니의 몸짓은 한없이 푸근해, 잠시 잠깐 더위를 잊게 만든다.

 

얼굴을 공개하지 않는 ‘안녕달’ 작가를 서면으로 만났다. 그림책이 탄생한  계기가 무척 흥미롭다. 유년 시절 조부모와의 추억을 담았으리라 예상했는데, “어린 시절의 추억보다는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면서 거의 백수로 살면서 지켜본 세상 이야기에 가깝다”고 한다. 작가는 현재 바닷가 근처 학교에서 일러스트를 배우고 있다. 후속작으로는 “왜요?”라는 엄마와 아이의 대화로 이뤄진 이상한 책과 시골 할머니와 강아지의 따뜻한 이야기를 그린 책을 펴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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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 수 차례 탈락, 책 나와서 기뻐요

 

최근 『할머니의 여름 휴가』, 를 출간하셨는데요. 어떻게 만들게 된 그림책인지 궁금합니다.

 

5~6년 전 공모에 내려고 만들었던 그림책이에요. 공모에 다 떨어지고 다시 원고를 수정해서 개인적으로 여러 출판사에 투고도 했는데 다 거절 당했어요. 너무 많이 거절 당해서 세상에 못 나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책이 나와서 너무 기뻐요.

 

전작 『수박 수영장』에 이어, 할머니 할아버지가 등장합니다. 유년시절 조부모님과의 특별한 추억이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친할아버지와 할머니는 명절 때 집에 방문해서 뵙는 정도여서 직접적인 추억은 많지 않고요. 제가 사는 동네가 독거노인들이 많이 사는 곳이었는데요. 제가 거의 백수이다 보니까 제가 밖에 나갈 때는 그나마 있던 몇몇의 젊은 사람들은 일하러 가서 없고 한적한 동네에는 할머니와 할아버지 들이 많이 있는데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의 느릿느릿한 움직임을 보고 있으면 왠지 마음이 편안해져서 그분들 보고 있는 걸 좋아했어요. 어린 시절의 추억보다는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면서 거의 백수로 살면서 지켜본 세상 이야기에 가까워요.

 

할머니가 꽃무늬 수영복을 입은 모습이 너무 다정하고 예쁩니다. 할머니, 캐릭터는 어떻게 탄생했나요?

 

학교 다닐 때 교수님이 과제로 어떤 노래를 들려주며 거기에 맞는 홍보물 같은 걸 만들라고 하는 수업이 있었는데요. 그때 저는 그 노래가 할머니 할아버지가 싱크로나이즈드 스위밍을 하는 느낌이라고 생각해서 CD 케이스와 함께 만든 애니메이션이랑 홍보용 모빌을 만들었어요. 그 작품 속 할머니들이 『할머니의 여름휴가』에 나오는 할머니랑 비슷하게 생겼어요. 나중에 그 교수님이 주신 노래가 원래는 여자가 남자를 유혹하는 노래라고 해서 살짝 놀랐어요. 나중에 『할머니의 여름휴가』를 그리는데 그때 만든 모빌이 제 집에 걸려 있었고 자연스럽게 그 모빌 속 할머니가 주인공이 되었어요.

 

그리면서 가장 즐거웠던 뿌듯했던 장면은 무엇인가요?

 

바다로 가는 첫 장면이요. 모래사장이랑 에메랄드 색 바다가 펼쳐지는 장면이요. 갑자기 화면이 변하면서 시원한 느낌도 들지만 작은 소품 하나하나 다 그려야 되는 저로서는 별로 그릴 게 없어서 더 좋았어요.

 

작년 여름에 출간된『수박 수영장』이 1년도 안 지나 6쇄를 찍었습니다. 정말 큰 인기를 얻었는데요. 혹시 기억에 남는 리뷰가 있었나요?

 

음, 아기들이랑 책 읽고 진짜 수박으로 노는 분들도 있고 아기가 그림 그린 거 올리는 분도 있었는데 재미있었어요. 아기가 그린 그림 보고 너무 웃기고 귀여워서 빵 터진 적도 있어요. 아기들은 참 이상하고 재미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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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달 작가

 

『수박 수영장』을 그리게 된 계기도 궁금합니다.

 

그게 너무 오래 전부터 구상한 거라 자세히는 기억이 안 나요. 수박 씨를 빼려고 수박에 손가락을 넣었다가 시원해지면서 물이 고이는 걸 보고 거기서 확장된 이야기였던 것 같은데요. 원래는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어서 스토리 보드를 짜다가 계속 몇 년을 미루다 미루다 귀찮아져서 그냥 그림책을 만들었어요. 그래서 카메라 움직이는 걸 상상하면서 만든 이야기라 책인데도 영상 같은 느낌이 조금 남아 있어요.

 

그림 작업을 하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나요?

 

제가 별달리 특별한 신념을 가지고 그림을 그리는 건 아니라서, 별로 할 말이 없는데요. 다만 그림책 그리면서 저는 어떤 장면이나 흐름을 독자가 이해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난해하다고 편집자 분이 언급해 주실 경우가 있는데요. 그때 의견을 듣고 다시 고치고 그러면서 점점 그림이 나아지는 것 같아요. 원래 완벽주의랑 거리가 너무 먼 저로써는 피드백과 수정 과정이 그림으로 이야기를 잘 전달하는 데 중요한 부분이었던 것 같아요.

 

일러스트 작업과 그림책 작업은 어떻게 다른가요?

 

그림책은 제가 제일 좋아하고 익숙한 걸 그리게 돼서 좀 더 편하게 그릴 수 있어요. 일러스트 작업은 글을 보고 맞춰서 그리면 제가 평상시에 잘 안 그려 보던 소재나 이야기를 그리게 돼서 새로운 걸 하고 재미있는데 슬프게도 제가 잘하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일러스트 작업할 때 일이 별로 없었어요.

 

두 권의 그림책이 작품도 좋지만, 그림책의 만듦새도 참 좋다는 느낌이 들었는데요. 제본이나 종이 인쇄 등등이요. 작가님이 보시기엔 어떠신지요? 그림책을 펴낼 때, 저자로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신 부분이 있나요?

 

그림책의 만듦새에 대해서는 제가 한 건 반짝이는 종이 싫다고 투정 부린 것밖에 없어요. 그건 다 편집자와 디자이너 분들이 알아서 잘하셨어요. 저도 책 받아 보고 놀랐어요 너무 예뻐서. 제가 인쇄로 구현되기 힘든 색을 많이 써서 인쇄할 때 원화 색대로 인쇄하기 힘든데 디자이너 분이 색을 진짜 잘 살려 내시는 것 같아요. 저는 종이 선택을 중요하게 여기는데 번번이 원하는 종이에 색이 잘 안 나오거나 비싸서 원하는 종이를 못 쓰다가 이번에는 소원 성취해서 엄청 만족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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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그때 생각나는 그림책

 

‘안녕달’은 어떻게 짓게 된 이름인가요?

 

라디오에서 어느 인디 밴드가 초창기에 이름이 예뻐서 가끔 공연 불러 줄 때가 있었다고 들은 적이 있어요. ‘아! 나도 이름이 예뻐서 날 좀 써 줬으면 좋겠다.’ 해서 저도 예쁜 단어 조합을 했어요. 급하게 지은 것치고 괜찮은 것 같아요.

 

작가님의 평상시 일상이 궁금합니다. 일상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은 무엇을 할 때인가요?

 

전 엄청 게을러요 거의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날이 많아요. 진짜 아무것도 안 하는데 하루가 다 가 버려서 항상 신기했어요. 침대에서 빈둥거리다가 멍하니 창 밖을 보다가 밥 해 먹는 무의미한 시간을 좋아해요. 침대에 누워서 노트에 낙서하는 것도 좋아하는데 그럴싸하게 완성하는 건 별로 안 좋아해요. 그래서 마감할 때쯤에는 불행해요.

 

현재 해외에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잠깐 공부하러 바닷가 근처 학교에 와서 일러스트를 배우고 있어요. 학교 근처에 바다가 있다고 해서 학교 끝나고 친구들과 다 같이 수영하러 가는 것을 상상하기도 했는데 전혀 그러진 못하고 있어요. 제가 상상한 바다가 아니고 여기는 날씨도 추워요. 어서 한국 돌아가서 제주도에 가고 싶어요.

 

작가님 홈페이지(http://www.bonsoirlune.com)에 가보니 ‘재료’ 라는 제목으로 여러 작품들이 올려져 있던데요. 평소 스케치를 한 작업물을 모두 홈페이지에 올려 놓으시는지요?

 

그거 스케치가 아니라 일러스트예요. 초창기 그림이라 완성도가 조금 떨어져서 스케치로 보이나 봐요. 프리랜서 시작했을 때 홈페이지 만들고 주기적으로 그림을 올려 보려고 단편적인 그림 자주 올렸었는데 일을 하기 시작한 후로 잘 안 올리고 있어요. 일이 있으면 뭔가 안심이 돼서 개인 작업을 안 하게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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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한창 수박의 계절입니다. 혹, 가장 좋아하는 과일이 ‘수박’인지요? 여름을 사계절 중에 가장 좋아하시는지요?

 

네 과일 엄청 좋아하고 수박도 엄청 좋아해요. 여름이면 수박을 슈퍼에서 사기엔 너무 비싸서 수박 트럭 아저씨 오기만 기다리곤 했어요. 여름을 제일 좋아하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여름이 되면 떠나고 싶어 하는 것 같아요. 나뭇잎이 초록색이 되면 왠지 설레요.

 

앞으로 어떤 그림책을 만들고 싶나요?

 

전 계획하고 체계적으로 이야기를 쓰는 것이 아니라 그냥 제가 떠오르는 이야기를 쓰는 편이어서 별 계획 없이 그냥 그때그때 생각나는 그림책을 만들 것 같아요. 그래도 저의 먹고 살 걱정이 좀 덜어지고 혹시 내 주시겠다는 출판사가 있으면 좀 더 어른용 그림책도 내 보고 싶어요.

 

그림책의 매력을 표현해주신다면요.

 

글을 잘 못 써도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어요. 그래서 저한테는 가장 쉬운 이야기 전달 수단이에요. 근데 그림 그리는 건 조금 귀찮아요.

 

어린이, 엄마 아빠, 젊은 독자 외에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이 그림책들을 읽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가님께서 특히 소망하는 독자층이 있는지요?

 

집에서 손자 손녀 보느라 힘드신 할머니들이 잠시나마 이 책을 읽는 동안 작은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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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 수영장 안녕달 글,그림 | 창비
뜨거운 여름날, 커다란 수박 안에 들어가 수영을 한다는 시원하고 호방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그림책입니다. 사람들이 수박 안에서 수영하는 모습이나 수박씨와 수박 껍질을 이용해 다양하게 노는 모습들이 즐겁게 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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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여름휴가 안녕달 글,그림 | 창비
더운 여름날, 바닷가에 다녀온 손자가 혼자 사는 할머니를 찾아옵니다. 손자는 휴가를 떠나지 못하는 할머니를 위해 바닷소리가 들리는 소라를 선물합니다. 할머니는 소라를 통해 뜻밖의 여름휴가를 떠나게 됩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알렉상드르 졸리앙 “고통이 내 삶의 최우선 요소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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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가 정신없이 흘러간다. 겨우 잠만 깨고 출근했건만 온갖 메일과 메시지에 대응하느라 하는 일 없이 시간이 다 간다. 퇴근 후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직장 상사 욕을 하고 집에 오니 개운한 한편 진이 빠진다. 겨우 무거운 몸을 침대에 누인다. 그러고 보니 가족은커녕 나 자신과도 한 마디 대화를 나누지 못했단 사실을 깨달았다. 하는 수 없다. 다들 그렇게 산다.

 

사람들은 너무 바쁘다. 수시로 온갖 군데에서 상처받지만 돌볼 틈도 없이 내일이 온다. 몸도 마음도 건강하지 않다. 당신은 방전 직전의 배터리 같다. 방법이 없을까. 당신에게 한 권의 책을 소개한다.

 

『상처받지 않는 삶』의 세 저자는 프랑스에서 인기 있는 베스트셀러 작가들이다. 철학자, 스님 그리고 정신과 의사. 독특한 이력의 세 사람이 열흘 동안 한 집에서 함께 지내며 상처받은 채 사는 현대인들의 삶을 이야기했다. 3년 전부터 한국에 거주해 참선과 기독교 공부를 한 철학자 알렉상드르 졸리앙은 시종일관 ‘명상’을 강조한다.

 

“머릿속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관찰하는 데 하루 십 분만 할애 한다면 어떨까요. 지하철 안에서든, 침대에서든, 소파에 앉아서든 십 분의 시간은 충분히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시간 동안 머릿속에 스치는 수많은 생각들을 한 번 씩 돌아보는 거죠. 특히 내가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 또다시 판단하는 일 없이 단순하게 있는 그대로의 생각을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중요한 것은, 바쁘게 돌아가는 일들의 속도를 늦추는 것입니다.”

 

숨쉴 틈도 없는데 명상이라니. 너무 철학자다운 말이 아닌가. 이에 그는 “우선 편안한 자세로 앉아, 들려오는 주변의 소음을 듣고, 어떤 소리가 들리는지 신경쓰다보면 판단하지 않고 소리에 집중할 수 있어요. 지금 들리는 소리에 집중할 때만큼은 ‘현재’라는 시간을 사는 겁니다.”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소중한 조언은 자신이 언제 행복한지 생각해보라는 것이었다. 목욕탕에 가면 행복하다는 철학자의 말을 들으니 잘 마른 빨래를 갤 때 행복한 나 자신이 생각났다. 상처받은 일을 곱씹고 살찌우는 일을 중단하자. 나를 행복하게 하는 일을 곱씹어보자. 너덜너덜했던 마음이 조금 상쾌해지는 것을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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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은 현실로 돌아가는 것

 

철학자, 스님, 정신과 의사, 이렇게 다른 인생을 산 저자들이 밀도 높은 대화를 나눈 경험은 잊지 못할 기억일 것 같습니다. 새로운 깨달음도 많았을 테고요. 가장 좋았던 것은 무엇이었나요?

 

마티유(스님)의 평정심에 강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낙관주의가 강한 분이거든요. 그는 스트레스가 전혀 없는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그의 정신 수행 과정이라든지 그 결과로 나타난 마음의 평화와 스트레스 없는 모습이 함께 시간을 보내는 동안 강하게 느껴져서 무척 감동 받았어요. 한번은 차로 이동을 하는데 마티유에게 계속해서 전화가 왔어요. 인권 단체 같은 곳에서 수도 없이 전화가 오는데 모든 전화를 전혀 짜증내지 않고 응답하며 일처리를 하더라고요.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일이 그토록 많고 바빠도 스트레스 없이 사는 것이 가능하다는 걸 그때 느꼈습니다.

 

크리스토프(정신과 의사)는 굉장히 차분한 분이에요. 저녁이 되면 환자들에게 전화가 왔어요. 모든 전화에 환자를 안심시키고 위로하는 모습이더라고요. 보통 정신과 의사들이 직업으로 일을 하면서 환자들에게 ‘나는 8시부터 5시까지 일을 한다, 근무시간이 끝났다, 더 이상 연락하지 마라’라고 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크리스토프는 시간에 상관없이 환자들의 일이라면 세심하게 신경을 쓰고 사려 깊게 생각해줬어요.

 

세 분의 대화는 어땠나요? 대화를 나눈 기간 동안 있었던 사소한 사건, 작지만 행복한 기억도 궁금해요.

 

열흘 동안 24시간 함께 있었는데요. 누구도 다른 사람을 비난하거나 험담하는 일이 전혀 없었어요. 정말 스트레스가 전혀 없는 시간이었습니다. 책에 담긴 각 주제를 이야기할 때도 우리 모두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내용을 전달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어요. 두 분 덕분에 이 책을 인정받는 작가가 되어야지, 하는 생각이 아니라 진짜 도움이 되는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목적을 갖고 쓸 수 있어서 정말 좋았습니다. 보통 책을 쓸 때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신경 쓰고 걱정하느라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는데 두 분 덕분에 지금은 책을 그런 스트레스 없이 쓸 수 있게 된 거죠. 글을 쓰는 건 그야말로 읽는 사람을 위해 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무엇보다 명상 이야기가 듣고 싶습니다. 명상을 ‘세상과 더불어 사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 하셨어요.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 명상일 텐데 이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제게 명상의 첫 번째 의미는 영혼을 생각하는 것, 영혼에 익숙해지는 것입니다. 영혼에 관심을 갖지 않고 살면 남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고민하는 것으로 자신을 판단하고, 자신의 이미지를 의식하게 돼요. 비가 오면 비를 바라보며 옷이 젖겠구나, 불편하겠구나, 이런 갖가지 생각들을 하게 되는 것처럼요. 사람을 볼 때도 그렇죠. 명상을 하지 않으면 그 사람 외에 다른 많은 것들로 그를 판단하고 편견을 갖게 돼요. 명상을 하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됩니다. 사람을 그 사람 자체로 보게 되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보면 명상이 세상과 자신을 단절시키는 것과는 정반대의 의미를 갖는 거예요. 생각으로 세상과 나를 단절시킬 수 있는 것처럼 생각을 바꾸면 다시 세상과 나를 연결시킬 수도 있습니다. 물론 저도 ‘명상’이라고 하면 세상과 단절되는 것처럼 생각한다는 걸 알아요. 마치 ‘스님’이라고 하면 산 속에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말이죠. 그렇지만 제가 생각하는 명상은 현실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명상은 특별한 사람만 하는 게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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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점검하는 것, 잠시 쉼표를 두는 것, 현대 사회는 이를 적극적으로 방해합니다. 거기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필요할 텐데요. 일상인들이 바로 지금 실천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요?

 

현대사회에서 사람들은 자주 시간이 없다는 말을 하는데요. 사실 우리가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을 하며 보내는 시간을 생각한다면 진짜 시간이 없는 걸까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제 생각에는 시간이 굉장히 많은데 그 시간을 잘 관리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내 머릿속에서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관찰하는 데 하루 십 분만 할애 한다면 어떨까요. 지하철 안에서든, 침대에서든, 소파에 앉아서든 십 분의 시간은 충분히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시간 동안 머릿속에 스치는 수많은 생각들을 한 번 씩 돌아보는 거죠. 특히 내가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 또다시 판단하는 일 없이 단순하게 있는 그대로의 생각을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중요한 것은, 바쁘게 돌아가는 일들의 속도를 늦추는 것입니다.

 

생각을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눈을 감고 있어도 계속 뭔가가 보이죠. 제 경우 눈을 감고 있으면 아이들 생각이 나요. 수많은 걱정이 밀려옵니다. 아이들이 집에 잘 도착했을까, 학교에서 잘 지냈을까, 사고는 없었을까, 하고요. 이것은 생각을 살찌우는 것인데요. 바로 이것이 사람을 지옥으로 이끄는 과정입니다. 중요한 것은 스치는 생각을 다시 판단하고 살찌우지 않고 지나가도록 내버려두는 것입니다. 참선을 할 때 ‘지나가는 생각을 잡지 말고 지나가도록 둬라, 그것을 거부할 필요도 없다’는 말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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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세요.

 

아이들에게 명상을 가르치면서 시도하는 방법인데요. 우선 편안한 자세로 앉아, 들려오는 주변의 소음을 듣고, 어떤 소리가 들리는지 신경쓰다보면 판단하지 않고 소리에 집중할 수 있어요. 지금 들리는 소리에 집중할 때만큼은 ‘현재’라는 시간을 사는 겁니다. 그 다음으로 몸의 각 부분, 팔과 다리 등에 집중하라고 해요. 그때도 그냥 관찰하는 자세로 다른 생각을 섞지 않고 보라고 합니다. 허리가 아프면 허리에 느껴지는 통증을 관찰하는 자세로 내가 지금 무엇을 느끼는가 생각하는 거죠. 뭔가를 변화시키려고 하거나 다른 생각을 섞지 않고 그냥 보는 것, 이것이 바로 제가 말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세입니다. 현실 앞에서 ‘네’라고 얘기하는 자세예요.

 

한 번은 딸이 “내 머릿속 생각이 꼭 기차 같아요.”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때때로 그 기차를 타고 싶기도 하지만 이런 충동이 생각을 살찌우는 것이죠. 만약 그 생각이 화가 나는 생각이라거나 좋지 않은 생각이라면 그 기차를 타는 게 아니라 떠나보내는 것을 배워야죠. 걱정거리를 지나가도록 두어야죠. 이런 식으로 수 천 번 머릿속에 일어나는 생각을 떠나보내는 것이 명상입니다.

 

분명 쉽지 않은 일인데,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명상은 절대로 나를 한 번에 싹 고쳐주는 요술지팡이가 아닙니다.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해요. 사람들은 빠른 시간 안에 모든 걸 해결하고 싶은 마음으로 명상을 합니다. 하지만 안 좋은 생각 습관을 고치는 데는 몇 년이 걸리기도 해요. 저는 원래 걱정, 불안이 많은 성격입니다. 어린 시절 내내 두려움을 느끼며 살았기 때문인데요. 저도 처음엔 이 문제를 두 달 안에 해결하겠다는 생각이었어요. 두 달이 지나도 해결이 안 돼서 굉장히 실망했죠. 그런 방식으로는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이런 마음 때문에 명상 이후에 더 안 좋게 되는 사람도 있어요. 

 

구체적으로 명상을 습관화하기 전 저자의 삶과 이후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나요?

 

저는 걱정, 불안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사람인데요. 지금은 그 걱정이 오래 가지 않아요. 걱정이 지나가도록 내버려두는 법을 알기 때문입니다. 걱정이나 불안 없이 살게 된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오래 갖고 있지 않는 것, 그것이 변화예요. 예전에는 어려운 문제가 있으면 이 문제로 또 어려움을 겪겠구나, 다른 걱정거리가 생기겠구나, 하면서 생각이 불어났는데요. 지금은 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 즉시 생각하는 식으로 바뀌었습니다. 명상이 사람을 소극적으로 만드는 게 전혀 아닌 이유도 이거예요. 오히려 삶의 자세를 더 적극적으로 만들어준다고 생각합니다. 명상을 한 이후로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더 좋은 생각을 빨리 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요. 명상은 기적적인 변화를 가져온다기보다는 일상에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닐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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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조건

 

또한 우정과 연대를 강조하셨습니다. 나 중심의 시야를 세상으로 넓히는 것, 이것이 내 삶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명상이나 기도 같은 영적인 수행과 더불어 선한 일을 함께 할 수 있는 친구들과 지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어도 주위에 이런 친구들이 없다면 혼자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또한 이웃을 돌보는 마음이 있어야 행복해질 수 있죠. 이것이 바로 ‘연대’입니다. 우리는 타인의 존재 덕분에 더 인간적이 돼요. 중요한 것은 타인이 내 삶의 적이 아니라 한 배를 탄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싫은 사람이든 원수든 모두가 나처럼 행복해지기를 원하는 사람인 거죠. 행복이란 모두가 찾는 무엇이라는 걸 이해하는 게 중요해요. 내가 행복을 느끼는 순간 내 가족이 불행하다면 어떨지 생각해보세요. 연대는 나의 행복을 위해 아주 중요한 거예요. 많은 사람들이 행복을 개인의 것으로 생각할 때가 있는데요. 좋은 직업과 돈이 있으면 행복할 것 같지만 겪어보면 그게 행복의 조건이 아닌 것을 알 수 있죠.

 

그렇지만 행복하기 위해서는 돈이 있어야 한다고 대부분 생각해요.

 

행복을 방해하는 큰 요인 하나는 남의 시선에 신경 쓰는 거예요. 한국에 와서 놀랐던 것이 남들의 시선에 너무 신경 쓰는 분위기였는데요. 반면 연대에 있어서는 한국인들이 더 적극적인 것 같습니다.

 

3년 전 한국에 와서 현재까지 한국에 거주 중이신데요. 어떻게 오게 된 건가요? 

 

서강대학교에 가톨릭 신부님이 한 분 계세요. 참선과 기독교를 함께 가르치시는데요. 저에게 이 두 가지를 배우는 것이 무척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그분 덕분에 한국에 와서 더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이제 공부가 끝나서 곧 한국을 떠날 예정입니다.

 

그동안 지내면서 가진 한국에 대한 감상이 궁금하네요.

 

가장 놀랐던 것은 목욕탕이었어요. 정말 충격적인 장면이거든요. 모든 사람들이 다 벗은 채로 한 곳에서 목욕을 할 수 있다는 게 말이죠.(웃음) 그런데 그것이 너무 좋았어요. 목욕탕 안에서만큼은 아무도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았거든요. 유럽에 목욕탕이 있었다면 계속 서로를 쳐다보며 의식했을 것 같아요. 건전하지도 않았을 테고요.

 

저는 목욕탕이 너무 좋아서 거의 매일 아들과 가는데요. 목욕탕은 저희에게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는 학교예요. 목욕탕에서 나이 지긋한 분이 20분 넘도록 자신의 몸을 씻는 모습을 본 적이 있어요. 그때 저는 몸이란 신에게 더 가까이 가기 위해 이용하는 교통수단이라는 생각을 했죠. 몸이 단순한 물질이 아닌 신성한 어떤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사실 신체장애가 있으면 자기 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목욕탕에서만큼은 내 몸을 받아들이는 것을 배워요. 곧 한국을 떠날 텐데 한국에서 가장 그리운 것은 목욕탕이 될 것 같습니다.

 

그토록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한국 사람들에게 목욕탕이라는 공간이 있다는 게 굉장히 생각할 거리를 주네요.

 

목욕탕에서는 사회적 이미지를 의식하지 않죠. 그곳에서는 누가 사장이고 직원인지, 누가 부자고 가난한지 생각하지 않잖아요. 저도 어떻게 이렇게 남을 신경 쓰는 사람들이 목욕탕이라는 문화를 가질 수 있는지 이해가 잘 안 됐어요. 그와 비슷한 것이 또 있죠. 목욕탕에서 서로 때를 밀어주는 장면인데요. 그것도 일종의 스킨십이잖아요. 그런데 일상에서 인사를 할 때는 오히려 스킨십이 별로 없어요. 유럽에서는 악수를 하고, 뺨에 뽀뽀를 하기도 하는데 말이에요. 그 차이도 놀랍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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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이 내 삶의 최우선 요소는 아니다

 

과연 ‘상처받지 않는 삶’은 가능할까요?

 

2주 전에 우연히 한 스님을 만났어요. 스님의 아버지가 자살을 하셨죠. 스님은 그에 대해 참 슬픈 일이지만 그 일로 고통스러워하지는 않는다고 하시더군요. 그 말을 듣고 정말 감동했습니다. 아까도 말했듯 저는 걱정과 불안을 많이 느끼는 사람이에요. 아이를 키울 때도 걱정을 많이 했죠. 한때는 이 모든 불안을 떨칠 수 있는 날이 올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런 날은 오지 않았어요. 그러나 걱정을 떨칠 수는 없지만 그 걱정으로 고통을 받지 않을 수는 있는 것 같습니다. 바로 그 생각만 할 수 있다 해도 엄청나게 큰 변화겠지요. 문제가 발생했을 때 고통을 받는 건 어쩔 수 없겠지만 삶의 양식을 가꾸어 나간다면 이 고통이 내 삶의 최우선 요소는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겁니다.

 

삶의 고통에 괴로워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저는 고통에 빠진 분들에게 꼭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행복에 필요한 세 가지에 대해서요. 첫째는 영혼에 관심을 갖고 영적인 수행을 하는 것입니다. 아주 단순하게 시작할 수 있는 방법이 있어요. 나를 기분 좋게 하는 것들을 생각하는 것이죠. 어떤 목적을 가지고 하루를 산다면 행복해질 수 없어요. 나를 정말 행복하게 만드는 일이 무엇이었는지 하나하나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명상을 할 때 행복하고요. 목욕탕에 가면 행복합니다.(웃음)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행복하고, 매일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좋습니다.

 

두 번째는 선한 일을 함께 할 수 있는 친구들과 지내는 건데요. 현대인들은 너무 외롭게 지내요. 카페에 가면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SNS로 수많은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지만 그들 중 누구와 정말 가깝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진실한 나의 모습을 보여주고 나눌 수 있을까요. 그런 점을 생각해봐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이웃을 돌아보는 마음입니다. 연대를 실천하며 사는 거죠.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할 때 나도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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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지 않는 삶 알렉상드르 졸리앙,마티유 리카르,크리스토프 앙드레 공저/송태미 역 | 율리시즈
뇌성마비 장애를 가진 철학자 알렉상드르 졸리앙, 촉망받는 과학자에서 승려로의 삶을 택해 40년간 수행해온 마티유 리카르, 심리치료에 최초로 명상법을 도입한 정신과 의사 크리스토프 앙드레. 베스트셀러 작가들이자 절친인 세 사람이 모여 마음껏 ‘인생살이’를 논한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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