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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민 “이 만화, 웃기려고 정말 노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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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는 만화다. 사소한 실수로 북한까지 넘어간 만화 한 편이 북한에서 엄청난 인기를 끌고, 남한의 국정원과 북한 국가안전보위부가 이 만화를 자신들의 체제 선전물로 이용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만화를 그린 작가 진기한의 어시스턴트로 각자의 요원을 파견한다. 『만화전쟁』은 여기서 시작된다. 주호민의 이 이야기는 북한으로 전단 날리는 행사를 보다가 “차라리 내 만화를 보내면 어떨까”라는 엉뚱한 상상에서 뻗어나갔다. 이 독특한 기본 재료에 올라 앉은 깨알 같은 양념들은 과연 주호민이 훌륭한 요리사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주인공 진기한은 수시로 ‘진정한 만화가라면...’을 읊조리고, 오피스텔에 사는 국정원 요원이 등장하고, 북한 요원이 평양냉면을 처음 먹어보고 감동하는 장면이 나오는 식이다. “공들여 드립을 치고, 이렇게 하면 웃겠지, 하면서 어떻게든 독자를 웃겨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린 게 작가의 의도였다면, 이것은 성공한 만화다. 만화가 세상을 흔드는 세계, 참으로 유쾌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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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내 만화를 보내면 어떨까

 

연재했던 작품이지만 단행본 작업은 또 다른 일이잖아요. <무한도전>에도 출연했고, 많이 바쁘셨을 것 같아요.

 

네, 연재도 계속 하고 있어서요. ‘(주)마왕’, ‘검협전기’ 같은 작품 하고 있고요. 거의 주중에는 계속 원고 작업해요. 그 외에는 사실 더 바빠진 건 딱히 없습니다. 그냥 <무한도전> 나오고 나서 김풍 작가님과 라디오를 하나 하게 됐는데 그렇게 시간 빼앗는 일은 아니에요.

 

<무한도전> 방송되고 주변 반응은 어땠어요?

 

알아보시는 분이 많이 늘었어요. 공원 같은 데 산책하다보면 가끔 알아보시는 분들이 있는데 기분이 좋으면서도 불편한, 그런 게 있습니다. 그 전에도 가끔 알아보시는 분들은 있었는데 요즘은 비할 바 없이 많이 알아보시더라고요. 공중파의 위력(웃음)인 것 같습니다.

 

이번에 책으로 나온 『만화전쟁』은 남북관계라는 꽤 논쟁적인 소재를 썼어요. 이 이야기를 어떻게 시작하게 됐는지 먼저 물어야 할 것 같은데요. 

 

저는 평소 하던 생각이 어떤 발화점을 만나 이야기가 시작되는 경우가 많은데요. 한때 뉴스에 국정원 관련 소식이 굉장히 자주 나왔잖아요. 댓글조작, 간첩조작 사건 같은 거요. 그러던 차에 파주에서 대북전단 날리는 행사 하는 걸 봤어요. 그 안에 든 전단 내용이 북한 체제를 욕하고 이런 ‘삐라’들이잖아요. 모르겠어요, 과연 효과가 있는지는요. 북한에서 엄청 싫어하는 거니까 효과가 있는 거겠죠.(웃음) 그걸 보면서 차라리 내 만화를 보내면 어떨까 생각한 거예요. 북한에서 남한 콘텐츠가 엄청 인기 많다고 하더라고요. 드라마도 다 챙겨보고, 가요도 몰래 다 챙겨듣는대요. 그러니까 차라리 만화책을, 기왕이면 내 만화책을 보내면 어떨까 생각한 거예요. 그 만화가 북한의 국민만화 정도로 인기가 많아지면 남한과 북한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것 같더라고요. 어떻게든 자기 쪽에 유리하게 체제 선전물로 삼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보니까 국정원 사건과 엮어서 블랙 코미디를 만들 수 있겠더라고요. 그렇게 시작하게 됐어요.

 

새터민 취재도 했다고요.

 

인터뷰를 했는데요. 둘 다 고등학생이었어요. 오늘 드라마가 뜨면 내일 북한에서 볼 수 있대요. 그 정도로 전파가 빠르다고 하더라고요. 남한 드라마 봤던 거 얘기하는데 저도 안 본 것들을 다 봤더라고요.(웃음) 남한말 쓰는 게 북한에서 되게 ‘힙’한 거래요. ‘오빠’라는 말 자체가 없는데 오빠라고 하는 게 유행이라고 하더라고요. 콘텐츠의 힘이 무섭다는 생각을 했어요. 만화는 굉장히 대중적인 매체인데 왜 거기에 참전을 못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 작품 안에서나마 해본 거죠.

 

평소 생각에도 여러 갈래가 있잖아요. 주로 어떤 생각들이 만화가 되나요?

 

『무한동력』같은 경우 27살 때 그린 만화인데요. 친구들의 모습을 한 번 그려보고 싶었어요. 취업준비생들이었거든요. 그러던 차에 <세상에 이런 일이>에서 집 마당에 무한동력 장치를 만드는 발명가 이야기를 본 거죠. 발명가와 내 친구들 이야기를 붙이면 되겠다, 싶어 만화가 시작된 거예요. 『신과 함께』도 평소 재개발, 강제이주, 이런 시사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가택 신앙에 대해 알게 되면서 그리게 됐고요. 가택신(神)에게 집이 없어지면 어떻게 되는 걸까, 이런 생각이 결합돼서 이야기가 시작이 된 거죠. 『만화전쟁』이 국정원 뉴스와 파주 전단지 행사와 결합된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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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제, 이슈 같은 것에 레이더를 계속 켜두고 있는 거네요.

 

일단 시사에 관심이 많아요. 재미있어요. <썰전> 같은 프로그램도 굉장히 재미있게 보고요. 세상 돌아가는 일, 그 중에도 논쟁적인 것들이 흥미롭죠. 제게 어떤 명확한 포지션이 있지는 않거든요. 그냥 이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는구나, 저 사람은 저렇게 생각하는구나, 그래서 이런 대립이 있구나, 정도로 받아들이는데요. 그런 여러 가지 관점을 보는 게 흥미롭고 그래서, 관심이 많습니다.(웃음) 

 

요즘 관심 두는 이슈는 뭐예요?

 

여혐(여성혐오) 이슈죠. 여혐 이슈에 관심이 굉장히 많아요. 그것이 창작 면에서도 정치적 올바름과 표현의 제약 사이 어느 지점에서 작업을 해야 하는가, 하는 고민을 많이 주고 있죠.

 

실제로 그런 문제로 비판 받은 웹툰도 있잖아요. 많이 염두에 두고 있군요.

 

의식적으로 어떤 대사나 캐릭터를 만들 때 조심하려고 하고 있는데요. 가령 아무 생각 없이 썼지만 남편은 아내에게 반말을 하고, 그렇게 관성적으로 쓰게 되기도 하거든요. 그런 건 의식적으로 조심하려고 해요. 성 역할 같은 경우도 그렇죠. 고정된 성 역할이 부여된 캐릭터들이 있잖아요. 앵커는 거의 남성 캐릭터고요. 그런 걸 의식적으로 바꿔보려고 하는 편이에요.

 

『만화전쟁』에서도 어머니가 집이 더럽다고 혼내면서 ‘여자 좀 만나라’ 하니까 주인공은 ‘여자는 청소부가 아닙니다’라는 말을 해요. 아주 작은 에피소드지만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그 대사도 그런 노력 중 하난데요. 그것도 욕을 먹던데요.(웃음) 결국은 어머니가 설거지를 하고 있지 않느냐고요. 어쨌든 그런 것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부분 때문에 이야기가 축소되는 것이 걱정되기도 하나요?

 

그런 건 있어요. ‘드립’을 친다고 하잖아요. 이때 이 드립에 의해 기분 나쁠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다면 이 드립을 치지 말아야 하나, 하는 고민이 있어요. 사실은 지금 개그 프로그램에서도 약자나 소수자에 대한 비하가 굉장히 많잖아요. 특히 못생긴 사람, 뚱뚱한 사람에 대해서는 거의 기계적으로 유머 코드를 사용하는데요. 그건 어느 순간 저도 굉장히 불편하더라고요. 그래서 의식적으로 사용하지 않고 있는데요. 그 기준을 어디까지 높이고 낮추는지는 여전히 고민하고 있어요. 과연 단 한 사람도 불편하지 않은 수위까지 내릴 수 있는가, 그게 가능한가, 고민을 하죠.

 

저는 제 헤어스타일을 희화화하는 개그를 많이 하는데요. 자학개그고 저는 재미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또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는 거죠. 그런 고민을 예전에 아예 안 했다면 지금은 많이 하면서 작업하고 있어요. 동료들도 굉장히 많이 하고 있고요.

 

트위터 많이 하시잖아요. 그 영향도 있을 것 같은데요.

 

SNS에서 저는 세상을 배웠어요.(웃음) 아무도 안 가르쳐줬어요. 학교에서도 그런 걸 안 가르쳤죠. 저는 그게 문제라고 생각해요. 이런 건 학교에서 다 가르쳐줬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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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에 머물지 않는 이야기

 

『만화전쟁』의 주인공이 종종 ‘진정한 만화가라면’이라는 말을 하죠. 어떻게 보면 비틀기 같기도 한데요.

 

진기한이라는 캐릭터는 아무런 편견 없는 캐릭터로 만들었어요. 다른 사람의 나이도 궁금해 하지 않고, 똑같이 일하면 똑같이 돈을 줘야 하죠. 어떻게 보면 진보적인 사람인데요. 자기가 하는 만화에서만큼은 굉장히 ‘꼰대’인 걸로 그려본 거예요. 그런 말을 많이 들었거든요. ‘남자라면’, ‘만화가라면’, 이런 식으로 어떤 직업이나 포지션을 규정해서 ‘이래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있어요. 그런 면을 희화화한 거죠.

 

그런 고정된 생각이 작가에게도 있을까요?

 

신인 때는 이런 게 만화지, 하는 것이 있었어요. 십 년 넘게 만화 작업을 하니까 정말 다 훌륭하고, 나름대로 어떤 노력이 들어간 것들이고, 그런 생각이 들어서요. 지금은 그런 게 없어요. 진정한 만화가는 이래야 한다, 만화는 이래야 한다, 이런 건 전혀 없어요. 그냥 모든 만화에서 그 만화만의 특징을 발견하고 나랑 맞다, 안 맞다, 이 정도만 보고 있죠.

 

작가가 좋아하는 이야기는 어떤 건가요?

 

안 되는 걸 알면서 하고 있는 사람들, 이야기를 좋아해요. 끝까지 도달해보려고 하는, 실패에 머물지 않는 이야기요.『무한동력』도 어떻게 보면 그런 이야기고요. 그런 이야기에서 감동을 느끼는 것 같아요.

 

요즘은 그야말로 ‘웹툰전쟁’인데요. 오래 웹툰을 해온 입장에서 웹툰 시장이나 후배들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하세요?

 

굉장히 포화됐다는 느낌을 받아요. 연재처가 엄청 늘어난 상태인데요. 전체 수요에 비해서는 연재처가 많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요. 연재처들이 각자의 색을 가지고 자리를 잡아가는 상황이고, 지망생 입장에서는 연재처가 늘어난 건 좋은 일이죠. 그런데 과연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지가 조금 걱정이 돼요.

 

그럼에도 지망생은 많고, 점점 많아질 텐데요. 책임감 같은 것도 있을 것 같아요.

 

책임감이요? 책임감 그런 건 없어요.(웃음) 원래 선후배 개념, 이런 게 없기도 하고요. 그냥 제 작품이나 잘 해야 된다는 생각만 하고 있고요. 그렇습니다.

 

필모그래피라고 하잖아요. 작품 계획이랄까 지향하는 작품의 형태가 있는지 궁금해요.

 

지향점이 있긴 있는데, 계획대로 안 되더라고요.(웃음) 왜냐하면 제가 자전적인 이야기로 시작해서 친구들 이야기, 판타지, 이렇게 조금씩 확장을 시켜나갔는데요. 아무래도 아이도 생기고 하다 보니 큰 이야기를 하기가 어려워졌어요.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하고 그래서요. 아이가 태어난 이후에는 계속 단 권짜리 작업만 하고 있거든요. 좀 더 긴 호흡의 극화를 해보고 싶어요. 그게 원래 목표거든요. 『신과 함께』정도 되는 호흡의 만화를 그래도 십 년 안에 서너 개는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데요. 잘 될지는 모르겠습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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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공감

 

『만화전쟁』을 ‘가장 만화다운 만화’라고 했다고요.

 

일단 소재 자체가 만화니까 다른 만화 패러디라든지 이런 것들이 들어갔고요. 이 만화는 웃기려고 정말 노력을 많이 했어요.(웃음) 공들여 드립을 치고, 이렇게 하면 웃겠지, 하면서 어떻게든 독자를 웃겨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렸어요. 

 

그러니까 가장 만화다운 것은 ‘재미’인가요?

 

그렇죠, 그런데 사실 ‘재미’는 ‘희노애락’이라고 생각해요. 부정적인 감정들까지도 다 재미라고 생각하긴 하는데요. 일단 기본적으로 만화책은 즐겁기 위해 보는 거라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좀 가벼운 마음으로 그렸죠.

 

‘재미가 희노애락’이라는 건 어떤 의미죠?

 

여러 감정들이 있잖아요. 기쁨, 노여움, 슬픔, 그런 감정들을 제 의도대로 주무르는 게 작가의 재미고요. 주무름을 당하는 건 독자의 재미겠죠. 그런 부분을 신경 많이 쓰고 있어요. 어떻게 하면 마음을 휘저을 수 있을까에 대해서요. 다만 『만화전쟁』은 그런 고민은 안 했다는 거(웃음), 웃기려고 했다는 거예요.

 

슬픈 영화 보고 나와도 ‘재미있다’고 하잖아요. 감정이 움직였으면 그게 재미라고 생각해요. 아무 느낌이 없는 것들은 재미가 없는 거죠. 공감을 했기 때문에 거기서 슬픔이나 분노를 느끼고 즐거움을 느끼게 되기 때문에요. 결국 공감이라고 생각해요.

 

『신과 함께』가 영화화되고 있어요. 다른 장르로 대중들에게 다가갈 기회가 생긴 건데요.

 

영화를 만들자고 한 게 거의 5년 전이에요. 이게 되나 싶었는데 결국 촬영 중이거든요. 일단은 찍고 있어서 너무 다행이고요. 『신과 함께』는 뮤지컬로도 만들어져서 작년에 공연한 적이 있는데요. 제 만화가 다른 매체로 인식 돼서 본 건 처음이었어요. 정말 황홀한 경험이었죠. 그러면서도 괴로운 경험이었는데요.(웃음)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공을 들여서 그런 무대가 만들어졌다는 건 황홀했는데요. 제 대사를 사람들이 육성으로 얘기하니까 힘들더라고요. 그건 어떤 느낌이냐면요. 제가 미니홈피에 쓴 일기를 옆에서 누가 읽는 느낌 있죠? 만화가에게 금기시되는 게 만화 대사를 그 만화가 앞에서 읽는 거거든요. 금기예요, 금기. 너무 민망하니까요. 그걸 꼼짝없이 앉아서 세 시간 동안 당하니까 귀에서 피가(웃음).

 

영화도 그럴 텐데요?

 

그렇겠죠.(웃음) 다만 영화는 많은 부분이 달라져서 새로운 느낌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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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잘하는 일로 욕을 먹어야 하는 어려움

 

다른 장르로 만들어졌으면 하는 작품이 또 있나요?

 

『만화전쟁』을 다른 장르로 바꿔서 해보면 재미있을 것 같아요. ‘드라마 전쟁’, ‘연극 전쟁’ 이런 식으로요. 만화기 때문에 만화라는 소재를 채택한 건데요. 만약 북한에서 엄청 인기 있는 드라마가 있어서 그걸 체제 선전 수단으로 사용한다는 식이 돼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만화전쟁』작업하면서 굉장히 즐거우셨던 것 같아요.

 

작업을 하는 도중에는 다 힘들어요. 끝났을 때 즐겁고요.(웃음) 『만화전쟁』도 그릴 때는 힘들었는데 끝나고 나니까 경쾌한 소품이 하나 나온 것 같아서 좋죠. 선물하기도 좋고요.

 

힘들지만 즐거운, 그 과정이 원동력이겠죠.

 

도피하는 면이 있어요. 현실에서는 육아나 다른 문제들도 힘들잖아요. 그런데 원고를 하고 있으면 차라리 그게 나은 거예요. 그런 식으로 원고가 어느 정도 도피처가 된 것 같아요.

 

한 가지 일을 꾸준히 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요.

 

쉽지 않죠. 근데, 다른 길이 전혀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웃음)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제일 재미있기도 했고요. 오히려 취미가 일이 되면서 생기는 문제들이 있었죠. 마냥 즐겁지 않다는 것, 중압감이 있긴 있어요. 내가 제일 잘하는 일로 욕을 먹어야 한다는 어려움도 있고요. 모든 프로들이 겪는 숙명이겠죠. 그런데 가끔 생각하면 화가 날 때가 있어요. 내가 제일 잘하는 일인데 이걸 욕하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이런 자괴감이 빠질 때가 있는데요. 그런 생각들이 지워지는 순간이 또 원고 하고 있을 때죠. 그래서 계속 그리는 것 같아요.

 

매체 자체가 온라인이라 너무 가깝죠. 악플에도 그대로 노출되어 있어요. 힘든 일이에요.

 

예전 만화는 편집부라는 완충지대가 있었잖아요. 독자 감상이 엽서로 도착하고요. 지금은 바로 댓글이 달리거나 블로그에 찾아와서 글을 남기고, 쪽지를 날리고, SNS로 바로 말을 해요. 접촉하는 면이 너무 많죠. 예전에는 그게 장점이라고 생각했어요. 빠른 피드백이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가끔 댓글창 없는 사이트에 연재해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특별히 참고할 가치가 없는 의견들이 굉장히 많아요. 물론 그것도 만화의 재미 요소 중 하나라고 생각하거든요. 만화를 보고 그 아래에서 댓글 놀이를 하는 것들이요. 그러니 작가로서는 필요악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것 같아요.

 

특별히 화가 났던 댓글이 있나요?

 

굳이 악플을 찾아서 읽진 않는데요. 비평의 수준이 낮은 경우는 화가 나죠. 비평 수준이 높을 때는, 정곡을 찔렸을 때는 너무 부끄러워요. 그런데 수준이 낮으면 화가 나는 거고요.

 

<IZE>에서 이말년 작가와 작화 비교를 한 기사를 봤어요. 그에 대해 트위터에 이말년 작가의 작화가 좋다고도 남겼잖아요.

 

그러니까 그런 게 너무 답답한 거예요. 이말년이 그림을 못 그린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게 그림이냐고 해요. 그런 걸 보면 너무 답답해요. 그림을, 한마디로 모른다는 느낌이 들면서 그런 비평에는 화가 나는 거죠.

 

작가의 작화에 대해서도 그렇다면?

 

저는 실제로 못 그립니다.(웃음) 이말년은 진짜 잘 그리는 거고요. 저는 어제도 원고를 하다 울컥했어요. 왜 이렇게 안 그려질까, 이러면서요. 지금 하고 있는 브랜드 웹툰은 무협 장르라서 되게 액션 장면이 많아요. 그런데 그림 그릴수록 너무 이상한 거예요. 어제 김풍 작가님과 진지하게 크로키 학원을 다니자고 얘기했어요.(웃음) 진짜로 좀 답답해서 방법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주호민 작가의 그림체를 좋아하는 분들도 있는데요.

 

저도 좋아해요. 둥글둥글하고, 가독성에 무게를 실은 그림이라서요. 잘 읽히고, 인물들의 감정을 충분히 묘사할 수 있죠. 좋아하는데, 만족하진 않는 거죠. 표현하고 싶은 게 100% 표현이 안 될 때 너무 답답해요. 더 잘 그리고 싶은 욕구는 항상 있어요. 그러면 더 큰 이야기들을 할 수 있으니까요. 왜냐하면 그림체라는 한계에 갇혀서 못 그리는 이야기들이 좀 있거든요. 더 잘 그리고 싶죠.

 

<무한도전>에서 박명수 씨에게 무한 칭찬을 해주셨는데, 그 부분을 많은 사람들이 좋아했어요. 기사도 많이 됐고요.

 

그 부분을 보고 위로를 받았다는 분들이 있었어요. 제게 직접 SNS로 감사하다고 인사도 주시고요. 놀랐어요. 사람들이 정말 칭찬에 굶주려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당연히 처음 하는 사람이 잘할 수 없거든요. 재미, 흥미를 가지려면 시간도 필요하고 용기도 필요한 거잖아요. 그런 걸 북돋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의 댓글 시스템이 그래서 신인 작가들에게 힘이 되는지 잘 모르겠거든요. 너무 혹독한 말들을 쏟아내니까요. 좀 더 시간을 갖고 연마하면 훨씬 좋은 작가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인데, 그런 댓글에 상처받고 움츠리지 않을까 걱정이 돼요. 칭찬을 많이 해줘야 할 것 같아요.

 

작가의 상상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와 취재를 바탕으로 전개되는 이야기, 어떻게 생각하세요?

 

각자 스타일이기 때문에 작가의 머릿속에 있는 것만으로 뭔가 만들어냈다고 그게 비난 받을 일은 아닌 것 같아요. 자전적인 얘기만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영화감독도 있는 거고요. 다만 우려되는 건 어쨌든 캐릭터를 묘사할 때 실제 사람을 관찰하고 그걸 가공해서 묘사한 것이 아니라 이미 다른 사람이 만들어낸 캐릭터를 다시 재가공하고, 재가공한 캐릭터를 또 재가공하고, 이런 식으로 다른 창작물에 영향을 받아 끊임없이 그리는 건데요. 그것은 마치 소가 소를 먹는 것처럼, 광우병처럼, 뭔가 좀 문제가 있을 수 있겠죠.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그런 말을 했었거든요. 실제 인간 관찰을 기반으로 하지 않고 캐릭터를 만들기 때문에 지금 일본 애니메이션이 오타쿠 소굴이 되었다고요. 오타쿠 소굴이 된 걸 비난하거나 그게 꼭 나쁘다는 건 아니지만요. 캐릭터를 만들 때 인간 관찰을 기본으로 하는 것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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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전쟁 주호민 글,그림 | 위즈덤하우스
무명 만화가 진기한. 준비 중이던 「우주괴수 용지라」 연재를 퇴짜 맞고 돌아온 날, 북한에 날려 보낼 풍선에 넣을 만화를 그려달라는 외할아버지의 부탁을 받는다. 「우주괴수 용지라」가 북한으로 날아가고, 한 달 후 다음 편이 궁금해서 탈북한 사람까지 생겨날 정도로 북한 인기 만화가 된다. 국정원은 이 만화를 대북 선전매체로 이용할 계획을 꾸미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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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이나 “정규직이 아니어도 재밌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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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윤’은 14년간 한 번도 정규직이 되어본 적이 없다. 오랫동안 준비하던 방송사 PD 시험에 낙방한 이후 4대 보험의 혜택을 누린 적도 없고 적금을 든 적도 없다. 통장 잔고가 남아있는 날은 손에 꼽을 정도다. 여태껏 어떻게 살아남은 건지 스스로 궁금하기도 하다. 한국의 시급과 노동을 견디지 못해 워킹 홀리데이 신청이 가능한 가장 마지막 해에 기회의 땅, 호주로 떠나기도 했다. 닭 공장, 선글라스 판매, 꽃 포장, 방청객 알바, 뮤직바 서빙 등 서른 개에 가까운 불안한 아르바이트를 거쳐 지금은 프리랜서 마감 노동자로 자신을 정의한다.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않아 직장도, 직책도 없는 『미쓰윤의 알바일지』저자 윤이나는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언제든 지금의 밥벌이를 잠시 내려놓고 바르셀로나를 갈 수도 있고,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는’ 사람으로 활동할 수도 있다. 기회는 많아졌지만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긴 건 아니다. 그저 오늘도 무엇이 되고 싶진 않고, 무엇이든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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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간의 알바일지, 책으로 엮이다

 

이제까지 직종별로 알바를 몇 개나 하신 것 같으세요?

 

정리해 본 적이 없어요. 과외도 종류가 나뉘잖아요. 개수가 많았다기보다는 상황 자체가 특이했던 것 같아요. 보통 알바를 편의점 근무, 바 서빙이나 판매 등 어딘가에 소속이 되고 정착이 되기 전까지 임시로 거쳐가는 일로 생각하잖아요. 하지만 저는 프리터로 계속 소속 없는 상태를 유지했어요. 『미쓰윤의 알바일지』는 직종별 아르바이트 특징을 소개하는 책이라기보다 넓은 개념의 소속되지 않은 상태를 유지한 기록으로 봐주시는 게 더 좋겠어요.

 

<IZE>(아이즈)에서 연재한 칼럼을 바탕으로 책이 나왔습니다.

 

서른 살에 호주로 워킹 홀리데이를 갔어요. 알바 경험이 다른 사람들보다 유난히 많으니 호주에서의 실시간과 알바 경험을 엮어보면 어떠냐는 제안을 받았죠. <IZE> 창간이 그해 7월 즈음이었는데 창간과 동시에 연재한 칼럼이에요.

 

호주에서의 경험이 전체 내용을 관통하고 있어요.

 

편집자랑 기자 분들이 직장을 잃고 차린 매체가 <IZE>였어요. 그분들도 그렇고 저도 연재처를 잃은 상태였고, 이런 식의 반복이 의미도 없고 더는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직장을 다니고 있었으면 그런 생각 못 했을 텐데, 당장 다음 달에 들어올 돈도 얼마 안 되니 (한국을) 나갈 수 있잖아요. 완전히 다른 삶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워킹 홀리데이는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렵지만 끝이면서 시작이었던 것 같아요. 저는 ‘홀리데이’ 보다는 ‘워킹’, 돈 버는 일에 방점이 찍힌 시간이었긴 하지만 그래도 휴가의 시간이었어요. 이전의 생활과 아직 놓지 못한 것을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했는데,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해요.

 

워킹 홀리데이에 대한 환상을 가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스파드의 웹툰 <선천적 얼간이들>에서도 나오지만 돈, 영어, 휴가 이 세 가지 중에 하나만 선택해야 해요. 두 가지도 병행이 안 돼요. 워킹 홀리데이를 가면 한국에서는 못 보는 현상을 볼 수 있어요. 그런 생각만 가지고 가도 좋을 것 같아요. 나와서 한국인들끼리 놀기만 한다고 나쁘게 보는 경우도 있잖아요.

 

놀면 안되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그러게요. 안 놀면 거기까지 가서 뭐해요. 워킹을 하든 홀리데이를 하든 그건 자기 마음이에요. 뭘 해도 되는데 대신 한국이 아닌 곳에서 사는 경험을 해보라는 거죠. 삶을 꾸리는 건 여행이랑은 다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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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은 기본이지만 후회는 없다

 

비정규직으로 살아가면서 왜 이렇게 불안정하게 사느냐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을 것 같아요.

 

불안에 관한 걱정은 누구나 있는 것 같아요. 특히 부모님은 안 걱정하실 수가 없어요. 대학 때도 공부 잘했으니 부모님도 기대가 있으셨을 텐데, 결코 원하시는 방향으로 간 건 아니잖아요. 다행히도 제가 선택에 있어서 불안을 의식하지 않는 타입이기도 했고 부모님도 잔소리하는 성격이 아니었어요. 무엇보다 적은 돈이어도 손 내미는 일 없이 살았던 게 부모님이 간섭하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였어요. 살고 싶은 대로 산다는데 막을 방법이 없으니까요(웃음). 그리고 적어도 원하는 일을 하고 내가 선택한 길을 가면서 누굴 원망하거나 불안감을 누구한테 전가하지 않겠다는, 내 삶은 내가 책임지겠다는 의지가 있었기에 부모님이 봐주셨던 것 같아요.

 

불안을 전가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스스로 느끼는 불안이 있었을 텐데요.

 

통장 잔고의 자릿수가 정말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죠. 회사 다니는 사람들은 한 달에 100만 원을 쓴다면 저도 똑같이 100만 원을 쓰거든요. 다만 그 사람들은 200만 원 버는데 100만 원 저축한다면 저는 취업준비 이후로 100만 원 벌고 100만 원 쓰는 상황이 반복됐던 거죠. 안 불안할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늘 미지수가 생기잖아요. 아플 수도 있는데 예외가 허용되지 않는 빡빡한 통장인 거예요.

 

주거 문제도 큽니다.

 

결국 독립하려면 주거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는데, 저 같은 삶을 사는 사람들은 목돈을 모을 수가 없잖아요. 보증금이 없으면 월세를 아주 많이 내면서 살아야 하고요. 그런 불안이 계속 있어요. 그래서 워킹 홀리데이로 닭공장에서 번 돈이 입금되었을 때 넉넉한 통장 잔액이 확실히 사람을 덜 불안하게 한다는 생각을 했죠.

 

생애 전반에 걸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꼽으라면요?

 

굳이 꼽아야 한다면 PD 시험 준비를 3년 했을 때 힘들었어요. 그때 힘들었기에 지금의 좋아진 내가 있다는 생각은 안 해요. 힘든 건 힘든 거예요. 결국 불안을 견딜 수 있는 근육이 남들보다 조금 더 발달해서 어떻게든 소속이 되고, 취업하는 삶 대신 지금의 삶을 선택했다고 생각해요. 후회는 없어요.

 

일을 하고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한 순간에는 화나지 않으셨어요?

 

당연히 화나죠. 후회는 없는데 분노는 심하게 일어나요(웃음). 보통 월급을 떼먹히면 소송까진 안가잖아요. 저는 돈을 받기 위해서라기보다 화와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해서라도 소송을 해야 했어요. 글 쓰는 사람들을 후려치거나 일하는 사람들에 대해 합당한 대우를 해주지 않는다고 느낄 때, 지금도 그런 것에 대해서는 분노하고 있어요.

 

그나마 덜 불안해 보이는 정규직이나 돈을 많이 주는 일자리에 대한 부러움은 없으셨나요?

 

결국 기회비용이잖아요. 오래 준비했던 시험에 떨어지고 방송국에 들어가는 준비를 하는 것이 더는 의미가 없다고 판단 했을 때, 될지 안될지 모르지만 다시 회사에 들어갈 준비를 하느냐, 아니면 이대로 어떻게든 삶의 방법을 찾아가느냐 두 가지 선택이 있었어요. 첫 번째를 선택하지 않은 이유는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라 제가 잘해낼 수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꼬박꼬박 출근하고 월급을 받아가는 삶이었다면 저는 회사에 들어갔어도 금방 그만뒀을 것 같아요. 제 시간의 운용과 정기적인 돈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면, 돈은 물론 너무나 중요하지만 후자를 포기했을 거란 거죠. 대기업 다니고 새벽같이 나가 종일 일하는 친구들을 봐도 부럽다고 느꼈던 적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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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 선택도 있겠지만, 일자리 문제는 사회 요건이나 세대 간 갈등 때문이라는 생각도 하셨나요?

 

욕먹어도 할 말은 없는데, 일자리 문제는 윗세대 탓이 큰 게 맞아요. 물론 제 경우는 선택이었지만 02, 03학번 정도가 선택할 수 있는 마지막 세대였던 것 같아요. 이제는 저처럼 살기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떠밀리는 사람들이 더 많잖아요. 의도하지 않았어도 저보다 젊은, 특히 20대들은 정규직을 선택하고 싶어도 그렇지 못하는 상황이 올 거라는 거죠. 비정규직이라든지 계약직이라든지, 프리랜서의 삶을 택하더라도 기본적인 사회적 안전망은 갖춰져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마감 이야기를 해 보죠. 마감 노동자로 살면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합니다.

 

마감이 들쭉날쭉하니 하루 일정은 매일 엉망진창이고요(웃음) 예를 들어 원고를 청탁받으면 언제 시작해서 첫 번째 원고를 언제 보내야겠다는 계산을 할 수 있잖아요. 그럼 항상 계산을 못 맞추는 순간이 와요. 마감을 못 지킨다는 게 아니라 오늘 저녁까지 끝나야 하는데 못 끝내고 다음 날 새벽까지 가는 거죠. 마감을 지키는 게 마감 노동자의 1차 관문이니까. 최근에는 원고뿐만 아니라 일을 다양하게 하다 보니 일의 균형을 맞추는 게 중요해졌어요. 자질구레한 일도 많아지고요.

 

특히 마감 노동자로서 불합리하다고 생각하는 지점이 있나요?

 

원고료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는데요. 저는 원고지 1매당 만 원이 최저라고 생각하거든요. 2000년대 초반에도 만 원이었어요. 그 이야기는 만 원이 반드시 지켜져야 할 마지노선이라는 거죠. 호주 가기 전 1매당 팔천 원에 청탁했던 매체에서 호주 갔다 온 뒤에도 같은 금액으로 일을 부탁했는데 그때는 썼지만 지금은 도저히 못 쓰겠다고 했어요. 이렇게 하면 외부기고만으로는 도저히 먹고 살 수 없어요. 그래서 매체마다 원고료에 대한 합리적인 책정이 필요해요.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돈 이야기를 잘하는 팁이 있나요?

 

예전에는 돈 이야기를 먼저 못 했어요. 하지만 프로가 되는 건 결국 돈 받고 일하는 거잖아요. 어느 경우는 금액이 너무 적어서 이 정도는 주셔야 한다고 미리 말씀드린 적이 있어요. 금액이 적더라도 의미있는 일이면 할 수는 있어요. 하지만 적정한 돈을 미리 요구하는 이유는 프리랜서가 이 정도 일했을 때 이 정도 돈을 받아야 적정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에요. 다른 기고자도 있고, 넓게는 방송작가 알바라든지 해서 이 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겠어요. 그분들도 생각해서 하는 만큼 받아야 하는 게 옳아요.

 

그리고 큰소리쳤으면, 해야 돼요. 못할 수가 없어요. 이 정도 금액은 주셔야 한다고 큰소리쳤는데 일을 엉망으로 했어(웃음), 그럼 다신 일이 들어오지 않아요.

 

프리랜서는 특히 일이 몰아서 오잖아요.

 

돈도 몰아서 오죠. 책에 수입이 0원일 때도 있다고 쓴 걸 보고 슬퍼해주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렇게 슬퍼할 일은 아니에요. 어느 달 수입이 0원이라는 건 다음 달에 많이 들어온다는 이야기거든요. 일은 계속하고 있으니까 그저 몰려 들어올 때가 있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불안을 견뎌야 해요. 일을 하면서도 당장 월세를 내고 생활비를 유지할 수 있는 다른 일을 생각해야 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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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라

 

와일드 블랭크 프로젝트를 진행하시기도 했습니다. 프로젝트 소개를 해주세요.

 

작년 1월, <그라치아> 48호에 김태훈 씨가 ‘IS보다 무뇌아적 페미니즘이 더 위험해요’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쓴 이후에 장동민 씨가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서 한혜진 씨한테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는 게 싫다’고 말한 사건이 다시 조명받았어요. 여자는 말하는 것도 싫고 생각하는 것조차 싫다는 거잖아요. 너무 위험한 발언이라고 생각했는데 SNS 사용자 중 한 분이 그 발언을 토대로 ‘Go wild, Speak loud, Think hard(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라)’라는 페미니즘 구호를 만들었어요. 이 구호를 크게 써 붙이고 다닐 수 없나 생각하다가 친구와 에코백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SNS 상에서 이슈가 됐었죠.

 

 ‘Go wild’에서 ‘Go’ 사이가 비어 보여서 괄호를 넣었는데, 사람들이 괄호에 세월호 배지도 달고 좋아하는 캐릭터 배지도 달면서 자신만의 의미로 빈칸을 채워서 확장해 나가더라고요. 그래서 와일드 ‘블랭크’ 프로젝트라는 이름이 만들어졌고요. 티셔츠, 파우치, 겨울용 에코백 제작까지 진행하고 지금은 쉬고 있어요. 수입이 들쭉날쭉해서 제일 아쉬웠던 게 정기적으로 후원을 못 하는 거였는데, 프로젝트 수익 일부를 꼬박꼬박 후원할 수 있어서 감사하게 생각해요.

 

요즘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고 있어요.

 

특히 올해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라’ 중에서 말하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요. 더 크게 말하고 발언권을 더 가져와야겠다는 생각이요. 페미니즘에 대해서 발언권은 여자한테 먼저 있는 게 맞고, 미디어에서도 일련의 사건에서 젠더 문제를 읽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발언권을 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요.

 

랫동안 20대로서, 여성 노동자로서 일했던 경험도 페미니즘을 생각하는 데 영향을 끼쳤을 것 같습니다.

 

방송작가로 일한 경험도 있겠지만, 엔터테인먼트, 영화, 미디어 매체에서 작품을 내놓고 콘텐츠를 만들 때 콘텐츠 자체의 성 불평등도 계속해서 나타나요. 불평등에 대해 말할 기회도 별로 없었고 사실 그렇게까지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었어요. 하지만 작년부터 일련의 심각한 이야기가 촉발됐을 때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된 거죠. 그러면서 더 많이 이야기하게 되고, 페미니즘에 대해 조금 더 크게 이야기하게 된 게 자연스럽게 이어진 것 같아요.

 

최근에는 ‘페미니즘은 돈이 된다’라는 슬로건도 나왔습니다. 직관적으로 페미니즘은 모두에게 필요하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문장이지만, 한편으로는 페미니즘 이슈조차 자본주의로 풀어나가려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도 들었어요.

 

와일드 블랭크 프로젝트를 시작했을 때 유의미한 소득이 나온 건 아니었어요. 저희가 오히려 제일 중요하게 생각한 건 예쁘게 만드는 거였어요. 영화나 TV 같은 콘텐츠도 못 만들고 재미없는데 의미를 담았으니 보라고 강요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작게는 파우치 하나를 만들고 에코백 하나를 만들어도 페미니즘 이슈가 담겨 있으니까 사라고 한다면 그거야말로 의미가 있는 척하면서 의미 없는 일이죠. 최근 메갈리아에서 진행한 페이스북 소송을 위한 티셔츠 판매도 1억 넘게 모금됐잖아요. 물론 운동에 힘을 실어주고 싶어 하는 분들의 움직임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디자인이 예뻐서 샀다고 생각하고요, 소비 지향적인 문화라거나 그렇게 생각하진 않아요. 페미니즘이 돈이 된다는 걸 보여줘야 결국에는 시장이 움직이거든요.

 

여성혐오 콘텐츠가 들어간 광고 불매 운동도 포함될 것 같습니다.

 

자본주의로서의 시장만이 아니라 방송이나 미디어 같은 매체들도 움직일 거라고 생각해요. 돈이 된다는 걸 보여줘야 적어도 여성혐오 논란을 일으킨 연예인들을 광고에 고용하지 않을 거라는 거죠. 단지 페미니즘으로 돈을 벌었다고 자랑하는 게 아니라 소비자로서, 여성으로서, 페미니스트로서 여성을 혐오하는 콘텐츠, 시선, 젠더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는 매체를 구매하지 않을 권리, 시청하지 않을 권리를 보여주는 운동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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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미스들이 자신의 이름으로 살기를

 

자기소개를 ‘어찌됐든 윤이나’라고 썼습니다.

 

황정은 작가의 『계속해보겠습니다』에서 작가 소개가 ‘황정은’이라고만 나와요. 그게 가장 멋있다고 생각했는데, 저는 윤이나라고만 쓰면 아무도 모르니까 그렇게 할 수 없었어요. 예전에는 꼭 작가였으면 좋겠다, PD였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기는 했어요. 어느 명칭으로도 저를 정의할 수 없다는 게 지금의 제 소개예요. 기자, 칼럼니스트, 평론가, 사장님, 온갖 직함들로 불리는데 제가 어딘가 소속이 되고 호칭을 받은 게 아니어서, 대표할 수 있는 건 제 이름밖에 없어요. 제 이름을 스스로 좋아하는 편이에요. 결론적으로 나를 소개할 때 이름만 남는, 결국 윤이나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서문에 ‘자신만의 알바 일지를 찾아 나가는 미쓰윤을 위해’라고 썼는데, 독자들도 자신의 이름을 찾길 바라신 건가요?

 

누군가 미스로 부르는 게 좋은 의미나 그 사람을 대우하는 의미의 호칭은 아니잖아요. 일종의 풍자로 받아들여 주길 바라서 미’쓰’윤이었던 건데, 모두가 각자의 이름으로 살기를 바라는 마음은 있었어요.

 

특히 여성 독자들을 향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상상했던 독자는 항상 여성이었어요. 여성이기 때문에 겪은 경험이라고 한다면 책에 실린 빼빼로 데이 에피소드 정도지만, 그 외에도 당연히 여자라서 겪었던 경험들이 있었겠다 싶어요. 그런 부분을 공감하는 면에서도 여성분들께서 읽어주시면 좋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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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되고 싶다’라고 쓰셨지만 ‘무엇이든’이 ‘아무거나’는 아닌 거잖아요.

 

분명 ‘무엇’이 되고 싶었던 시점이 있었어요. 특정 직업을 가진 사람, 돈을 더 많이 버는 사람, 이 정도까진 불안하지 않은 사람일 수도 있었을 테고요. 다행히 지금은 여러 가지 여건으로 제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 길을 걷고 있고, 적어도 제 삶의 몫은 책임질 수 있는 시간까지 어렵게 온 것 같아요. 이 상황에서 내가 무엇이 되고 싶진 않아요. 순간순간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가고 싶어요. 저에게 정말 중요한 일은 좋아하는 사람들과 조금 더 일상을 재밌게 사는 거예요. 연기를 배울 수도 있고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도 있고, 축구를 좋아하니까 바르셀로나에 가서 축구만 한 3개월 볼 수도 있겠죠. 전보다는 훨씬 가벼워졌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윤이나의 알바일지를 쓴다면 어떤 내용이 들어갈까요?

 

이미 쓸 게 몇 개 있어요. 여성영화제 매거진 편집장도 있고, 케이트 블란쳇 만나러 LA 간 이야기도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어쨌든 알바일지에서 중요한 건 돈이 되는 뭔가를 계속해나가는 거죠.

 

건강이 뒷받침되어야 할 텐데, 건강은 괜찮으신가요.

 

건강 검진을 예약했는데 더 싼 데서 해야 하나 고민이에요. 회사에 다녔다면 2년마다 해줄 텐데 저는 한 번도 안 받아봤어요. 생각보다 너무 비싼데 거기다 수면 내시경 받으려면 10만 원을 추가하래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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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윤의 알바일지윤이나 저 | 미래의창
서른 개에 가까운 아르바이트를 거쳐 결국 프리랜서 마감 노동자에 이른 알바생의 잔잔하지만 치열한 생존의 기록. 지금도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않지만 어디에나 가능성의 씨앗을 뿌리고 있다. 그래서 오늘도 무엇이 되고 싶진 않고, 무엇이든 되고 싶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빈지노 “자의식 과잉이어도 음악의 중심은 내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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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걸 그대로 드러내는 동시에 대중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언뜻 양립할 수 없는 것 같지만 예술가에게 있어서 이상적인 경지임에 틀림없다. 래퍼 빈지노(Beenzino)는 화려하고 개성적인 플로 등 그만의 래핑과 가사 그리고 미술적 소양이 결합한 음악성으로, 대체 불가능한 영토를 확보한 '부러운' 인물이다. 훅 만들기의 귀재라고 할 그의 존재감은 가히 독보적이다. 이제야 정규 1집을 낸 그는 군 입대를 앞두고 있다. 항상 즐거운 일만을 좇고 싶다는 그의 진솔한 인생관을 들여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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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로서 첫 정규앨범이다. 감회가 새로웠을 것 같은데 느낌이 어땠는지.L-(18).jpg

 

느낌이 크게 다르진 않았다. 앨범 만들 때 어려운 건 예나 지금이나 똑같지만 지금은 사람들이 더 많이 필요하다 보니까 아트워크나 프로듀서 팀을 직접 꾸려서 진행하고 있다.

 

앨범 기획 과정이 궁금하다.

 

2013년도에 프로듀서 피제이(Peejay)와 만나 'Dali, Van, Picasso'를 기점으로 작업을 시작했다.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트랙 리스트는 계속해서 바뀌었다. 원래는 14곡을 생각했는데 너무 길어서 11곡으로 줄였다. 빠진 곡들에 대한 애정이 크지 않았고 앨범 콘셉트에도 어울리지도 않아 나중에 언제라도 가볍게 공개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넣지 않았다.

 

제목을 숫자로 지은 의도는?

 

보통 음악 작업을 하면 내가 살고 있는 현재 나의 인생이 주로 담기는데, 그걸 표현할만한 적절한 단어를 찾기가 힘들더라. 뭔가 영어로든 한국어로든 풀어냈을 때 오그라들었고 그걸 스스로 제목으로 짓는다는 게 '느끼하게' 느껴졌다. 그 의미를 함축할 수 있는 무언가를 계속 찾다가 앨범을 들어보니 시간에 대한 내용이 많았다. 실제로 군대 때문에 시간에 쫓기고 있기도 했다. 그러던 와중 같이 일하는 형이 “우린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하고 빨리 해야 한다.” “Time is not a friend” 라는 말을 했는데 그 말에 영감을 받았다. '12'라는 숫자는 시간과 연관이 깊은 숫자인 것 같다. 시간의 단위로써 12시간, 1년이 12달이고 낮과 밤이 각각 12시간이다.

 

앨범 커버의 의미가 궁금하다.

 

전체적인 의미에서는 시침이다. 다른 의미로는 이 세상에 떨어진 나, 바로 '정자'다. (웃음) 처음 작업 시작할 때부터 정자라는 생각을 하고 만든 것은 아니다. 앨범 커버 첫 번째 시안이 나왔을 때 가운데 머리 부분이 굉장히 컸었고 꼬리 부분이 좁아지는 느낌이었는데 여자 친구인 스테파니에게 보여줬더니 “멋있긴 한데 솔직히 정자 같다.”라고 말해주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진짜 정자 같았고 수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자면 어때. 정자인 것도 말이 맞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노란색 머리 부분이 내가 세상에 떨어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노래를 들으니 재미있었다. 그래도 팬들이 빈지노의 앨범을 생각했을 때 첫 번째로 떠오르는 것이 '정자'인 건 좀 아닌 것 같아서 정자처럼 안 보이게 수정했다.

 

한 시 방향쯤을 가리키고 있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여러 방향을 해봤는데, 이게 제일 예쁘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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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트랙 'Time travel'이 인상적이다. 훅(Hook)을 잘 만드는 아티스트라는 평판 그대로다.

 

훅 만드는 걸 좋아한다. 버스(Verse)는 안 나오고 훅만 나온다. 옛날에 비기(Notorious B.I.G.) 랩을 들은 사람들의 코멘트를 봤는데 '비기는 랩을 만들 때, 랩을 훅처럼 만든다'라는 말이 있었다. 거기서 감명을 받아서 나도 그렇게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던 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훅만 나오더라. (웃음) 멜로디를 잘 만들어서 사람들이 좋아할 때 그 쾌감이 있다. 특히나 우리나라 사람들이 랩을 철저히 이해하고 듣는 타입은 아니기 때문에 훅이 중요한 장치라고 생각한다. 미니멀한 느낌의 멜로디를 잘할 자신이 있기 때문에 싱잉을 통해 랩을 더욱 풍성하게 하고 재미를 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 상업적으로 잘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훅을 쓴 건 아니다.

 

멜로디적인 감성의 축적을 도와준 음악이 있다면?

 

어렸을 때 음악을 많이 들었는데 너무 잡다해서 음반 단위로는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시네마 천국〉 OST의 엔니오 모리꼬네(Ennio Morricone)라든가 카니예 웨스트(Kanye West), 양동근, 버벌진트가 있다. 좀 더 커서는 위즈 칼리파(Wiz Khalifa)의 훅 메이킹이나 멜로디, 키드 커디(Kid Cudi) 등을 꼽을 수 있겠다.

 

수록곡 'January'는 양동근이 피처링했는데 그의 매력은.

 

양동근의 어투나 모션이 어디서부터 시작돼서 정립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자기 자신으로부터 나오는 것 같다. 연기나 랩이 꾸미지 않은 듯 자연스럽다. 꾸미지 않은 듯한 느낌이 옛날 랩이든 지금 랩이든 일맥상통하는 게 있어 팬으로서 인상 깊었다.

 

수란과의 작업은 어땠나.

 

수란의 역할은 되게 작은 역할이었다. 'Imagine time'에서 내 목소리에 덧칠을 할 수 있는 높은 음이 필요했는데 그런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 누가 있을까 생각하다 보니 수란이 떠올랐다. 곡의 집중도를 방해하지 않기 위해 수란의 지분을 최소화해서 참여시켰다.

 

타이틀 '토요일의 끝에서'의 피처링이 블랙넛(Black Nut)이다. 블랙넛은 최근 집중관심 대상인데 그를 어떻게 보는가.

 

일단 개인적으로 블랙넛을 좋아한다. 그 친구가 하는 음악은 듣기 거북하지만 그 친구와 같은 사고를 하는 사회 계층, 그런 생각에 공감하는 부류 또한 분명히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걸 굳이 부정할 필요는 없다. 우리 사회의 아쉬운 점은, 못생긴 면도 분명히 존재하는데 그걸 가리고 예쁜 것들로만 포장하려고 하는 것이다. 나 자신도 징그럽고 그로테스크한 걸 좋아하진 않지만 그런 선택, 취향 자체도 인정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I don't mind', 'Break' 등 록 감성을 지닌 곡들이 눈에 띈다.

 

여자 친구를 사귀고 얼마 지나지 않아 'I don't mind'를 만들었다. 여자 친구가 독일인이다 보니까 주위에 밴드 하는 친구들이 있다. 그분들이랑 어울리면서 영향을 받았고 차에서 저니(Journey)같은 1980년대 밴드 음악을 듣기도 했다. 어릴 적엔 그린 데이(Green Day)를 들었고 타블로가 라디오에서 추천해서 위저(Weezer)도 들었다.

 

'젖고 있어'는 성적인 은유를 담은 건가?

 

아니다. 그냥 이별에 관한 이야기다. 당연히 제목만 봤을 때는 성적인 메타포를 연상시키겠지만, 야한 느낌의 '젖고 있어'라는 단어를 이렇게 쓸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제목만 봐서는 사람들이 분명 음란마귀가 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 역(逆) 재미를 주고 싶었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버스(Verse)는?

 

'January'의 랩이 좋았다. 사실 영어도 많고 말도 안 되는, 별 내용 없는 랩인데 그렇게 하는 게 재밌더라. 보통 이런저런 생각이 담긴 가사를 쓸 때, 라임마다 말이 잘 이어지기 위해 노력하다 보니까 말 토씨 조금만 틀려도 랩이 무너지는 곡들이 굉장히 많다. 그런데 'January'는 본능에 맡긴 개소리를 랩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거기서 오는 쾌감이 재밌었고 그런 것들이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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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곡 'We are going to'를 호평하는 사람이 많다.

 

굉장히 좋아하는 비트라 많은 시도를 했던 곡이다. 2013년도에 비트가 처음 나왔을 때는 거기에 돈 자랑 질을 해보려고 했다. 호텔에 가서 하루 묵으면서 곡을 써보려고도 했는데 재미도 없고 잘 안됐다. 그러다가 IAB 친구들과 여행을 가고 해외 투어도 하고 나서 다시 들어보니 감이 오더라. 미국, 파리 등 다녀온 곳을 훑자 싶어서 태국, 미국, 파리로 정했다. 마지막 파리 비트는 원래 다른 곡의 비트였다. 태국이랑 미국 버스가 나온 후, 3절을 해야 하는데 이 비트로 끝까지 이어가기가 너무 지겹더라. 그래서 피제이가 만든 예전 비트를 쭉 들어보고 잘 어울릴 것 같은 곡을 찾아 바로 잘라 붙여 랩을 해봤더니 좋았다. 피제이에게 말했더니 바로 이해하고 좀 더 견고하게 완성시켜주었다. 실제로 피제이와 파리 패션 위크를 갔었기 때문에 더욱 의미 있는 곡이다.

 

빈지노 음악세계에서 피제이를 빼놓을 수 없다. 빈지노에게 피제이란 어떤 존재인가.

 

피제이와 작업을 하면 내가 하고 싶은 것,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준다. 마인드가 굉장히 열려있고 틀이 없는 성격이다. 내가 마니아를 싫어하는 이유는 너무 닫혀 있고 그들만의 그것만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다. 피제이도 어렸을 때 미술을 한 경험이 있어서 나와 통하는 점이 많고 나에 대한 이해도도 상당히 높다. '내가 나일 수 있는' 환경을 감정적으로 많이 만들어준다.

 

피스쿨(P'Skool), 재지팩트(Jazzyfact) 등 재즈 장르에 두각을 나타냈었는데.

 

재지팩트를 작업할 때도 재즈 힙합에 맞게 스타일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시기적으로 2009년, 2010년도의 빈지노 느낌이 그거였고 점점 발전하고 변화를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재즈 스타일에는 할 말이 별로 없다. 나는 계속 변한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그대로이길 원하고 그때 느낌으로 쭉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나 스스로 지겨울 것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느끼는 새로운 감정들 혹은 새로운 세계로부터 받은 영감을 기반으로 삼는다. 항상 새로운 내 모습에 감탄하고 그 재미로 음악을 하는 것이다. 예전과 같은 것이 나오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빈지노 음악의 핵심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내 음악에 있어서 주는 '나'다.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고 모든 사람의 인기를 끌고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음악을 하는 건 포기했다. 인생이랑 비슷하다고 생각하는데, 주위에 나를 좋아해주는 부류들이 많았다. 주로 리더가 된다던가, 학교에서 인기가 많다거나, 여자들에게 차인 적이 별로 없다던가. 나 스스로 인간적으로 갖고 있는 카리스마가 있다고 생각한다. 실생활의 스타일들이 음악에 확실히 반영이 많이 되고 내가 느끼는 것은 다른 사람들도 느낀다고 생각하고 쓴다. '자의식 과잉이다'라는 이야기도 있는데 사실 어려서부터 자의식이 굉장히 강하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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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exin'에서 '너네 다 존나 똑같아서 나는 좋지 절대 굶어 죽을 리가 없으니'라고 했다.

 

힙합의 틀에 있어서 래퍼들이 하는 이야기가 굉장히 비슷할 때 진부함을 느꼈다. 내 앨범이 힙합적이지 않은 이유는 힙합을 기반으로 한 음악이지만 힙합 자체가 내 삶과 완전히 일치하진 않기 때문이다. 내 인생과 힙합의 다른 점은 분명히 존재하는데 그것을 부정하고 힙합이란 틀에 맞추기는 어려웠고 그런 비트들이 와 닿지도 않았다. 근데 많은 아티스트들은 그 힙합이라는 틀에 맞추기 위해서 자기가 사는 삶을 그렇게 포장하거나 진부한 힙합의 논리로만 풀어내려고 한다. 도끼, 더 콰이엇은 그걸 이뤄내서 노력하고 실천하기 때문에 와 닿는데 많은 친구들은 코스프레처럼 느껴진다.

 

도끼와 더 콰이엇이 출연 중인 〈쇼미더머니〉에 대한 생각은.

 

재밌는 프로라고 생각한다. 일리네어로 섭외가 왔을 때 나는 앨범 작업에 집중도 하고 싶고 워낙 좋아하지도 않아서 안 하겠다고 했다. 둘은 음악 생활도 오래됐고 본인들 스스로 자극도 필요하다고 해서 나갔다. 사람들이 너무 힙합을 이상한 시선으로 비추는 것이 많았는데, 나간 김에 재밌고 멋있게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많이 바꿔놓은 것 같다.

 

일각에서는 〈쇼미더머니〉가 힙합씬을 망쳐놨다고 혹평하는 사람도 많은데.

 

망치긴 한다. 그게 아니면 새롭게 살아남기 힘들게 됐으니까. 무명 래퍼 뿐만 아니라 현존하는 현역 래퍼들도 그런 것들을 통해 자기 음악에 탄력을 주려고 하는 이들이 분명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쇼미더머니〉라는 루트를 사용하지 않고 자기 음악을 하는 뮤지션들이 잘 되는 걸 보여줌으로써 귀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렇다. 어렸을 때부터 오디션 프로그램을 안 좋아하는 부류에 속한 애였다. 그런 건 언쿨(Uncool)하다고 생각했고 나 말고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고 본다. 본인이 잘한다면 티가 날 것이기 때문에 불만을 갖기보다는 아티스트 스스로 엄격해져서 각자가 용기를 갖고 나아가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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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앨범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곡, 지금까지의 작업물 중 가장 좋아하는 곡을 뽑자면?

 

'Time travel' 그리고 'Always awake'(재지팩트 싱글, 2011.)이다.

 

같이 작업해보고 싶은 국내 아티스트가 있다면.

 

이상은 선배와 작업하고 싶다. 작년쯤 진짜 힘들 때 우연히 라디오에서 '비밀의 화원'을 들었는데 기분을 확 바꿔놓더라. 강렬하게. 찾아봤더니 '담다디'를 부르신 분이었다. 그분이 가장 큰 인기를 얻었을 때 미술 유학을 가신 용기를 지닌 아티스트라는 걸 듣고 나도 같이 용기를 얻었다. '그냥 연예인이 되지 말자', '늘,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에 따라 움직이자'라는 마음가짐을 가지며 살다가도 약해지곤 하는데 이상은 선배의 행보를 보면서 '나도 그렇게 될 수 있겠다'라는 용기를 얻었다.

 

입대를 앞둔 심정이 어떤가.

 

작업을 못한다는 것,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지 못한다는 것이 막막하다. 어렸을 때부터 혼자서 작업하고 글 쓰고.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서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는데 타의에 의해서 멈추게 되는 것이라 나 스스로도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모르겠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사회생활이고 어려서부터 이사를 많이 다녔기 때문에 새로운 곳에 적응하고 하는 데 큰 문제는 없을 것 같다.

 

평소 즐거운 인생을 사는 것 같은데 음악 이외의 어려움이 존재하는지.

 

어려움은 되게 많다. 아는 동생들한테 힘들다고 하면 “형이 힘들어? 형이 어떻게 힘들어!”라고 하는데 힘듦은 모두가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렸을 때 힘들었던 느낌은 지금도 존재한다. 주변 사람과의 관계, 여자친구와의 관계, 가족의 일 등 내가 하는 일이 잘 된다고 그런 게 해결되진 않는다. 돈이나 유명세가 내 행복을 책임져주진 않는다.

 

성공한 지위에서의 하락이 걱정되진 않는가.

 

그런 걱정도 있긴 한데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만 확실히 있고 그것에 따라 정직하게 움직이며, 항상 그걸 추구한다면 사실 돈이 없어진다고 치더라도 그게 인생에 크게 문제가 되진 않을 것 같다. 애초부터 돈을 먼저 생각하고 움직인 게 아니기 때문이다. 음악은 하겠지만 계속 이것만 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IAB도 만든 거고, 요새는 40살까지 내가 하고 싶은 게 뭘지 생각하는 기간이기도 하다. 분명 새로운 제2의 인생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아서 기대된다. 내가 원하는 무언가 있을 건데 그것에 대해 고민하는 재미가 있다.

 

현재 시점에서 꿈이 있다면.

 

음악 작업, 미술 작업, 사진 작업 등 모든 창작 작업을 다 할 수 있는 큰 건물이 있었으면 좋겠다. 유니버설 스튜디오 같은 느낌이다. 나 혼자만의 창작이 아닌 그걸 잘하는 사람들, 그걸 같이 하고 싶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작업을 할 수 있는 공간을 가지는 게 꿈이다.

 

 

인터뷰 : 김반야, 이택용, 임진모, 정민재, 현민형
정리 : 현민형(musikpeople@naver.com)
사진 : 김정변지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윤지회 “결혼을 그렸더니, 결혼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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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빠는 어떻게 결혼했어요?” 문득, 내 아이 입에서 이런 질문이 나온다면? 윤지회 작가의 『엄마 아빠 결혼 이야기』를 함께 보면 어떨까. 유치원생 아들 ‘준이’의 사랑 고백으로 시작하는 이 그림책은 엄마 아빠의 벚꽃 흩날리던 봄날의 프러포즈, 결혼 준비 과정, 결혼식 당일의 풍경 등 현실의 결혼 이야기를 고스란히 옮겨 놓았다. 햇수로 3년이라는 시간을 거쳐 완성된 이 그림책에는 재밌는 사연이 하나 있다. 당시 연애를 하지 않았던 작가와 담당 편집자가 책을 만들면서 연애를 시작했고 결혼까지 했다는 사실. 윤지회 작가는 “분명 결혼 기운이 있는 그림책”이라며 “아이들뿐 아니라 미혼 남녀가 꼭 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2004년에 ‘제5회 서울동화일러스트레이션’ 우수상을, ‘한국안데르센 그림자상’에서 특별상을 수상하며 데뷔한 윤지회 작가는 지금까지 『엄마 아빠 결혼 이야기』를 비롯해, 『방긋 아기씨』,『뿅가맨』, 『구름의 왕국 알람사하바』등을 쓰고 그렸다. 2014년에 펴낸 『방긋 아기씨』는 엄마들의 마음을 울린 그림책으로도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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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혼 남녀가 봐도 재밌는 그림책

 

『엄마 아빠 결혼 이야기』가 “결혼 운이 있는 그림책”이라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웃음) 책을 만들면서 저도 편집자도 결혼을 했거든요. 책을 계약할 당시, 저나 편집자나 애인이 없었어요. 그런데 책 작업을 하다 둘 다 신기하게도 갑자기 결혼을 했어요. 확실히 결혼의 기운이 있는 책인 것 같아요.

 

처음에는 ‘지식 그림책’으로 접근하셨다고요.

 

결혼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그림책을 만들고 싶었어요. 작가가 돼서 아이들을 보니까, 지식 그림책을 꽤 많이 읽더라고요. 창작 그림책도 좋지만, 실질적으로 지식이랑 섞인 이야기를 해봐도 좋겠다 싶었어요. 그런데 출판사에서 약간 스토리 형으로 가보자고 하셔서, 절충을 하는 과정이 좀 길었어요. 더미북을 네 번 정도 갈아엎은 것 같은데요. 포맷도 조금씩 바뀌면서, 이러다 책이 못 나오는 거 아닌가 싶었죠.

 

왜 ‘결혼’을 다룰 생각을 하셨나요?

 

노처녀였으니까요. (웃음) 스스로 마흔 전에는 결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잘 안 풀리니까 책이라도 만들어보자고 생각했어요. 편집을 맡은 편집자 분은 저랑 한 살 차이예요. 이번 책을 인쇄한 다음 날, 결혼식을 하셨어요. 정말 결혼 마지막까지 함께한 그림책이에요.

 

자연스레 작가님의 이야기가 책에 들어갔을 것 같은데요.

 

겹쳐지는 부분이 있어요. 책에 등장하는 강아지는 제가 13년간 함께한 강아지고, 고양이는 남편이 오랫동안 키웠어요. 강아지랑 고양이가 앙숙인 이미지가 있잖아요. 그러면서도 서로 좋아하고 그런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사실 결혼을 준비하는 게 만만치는 않더라고요. 집이라든지, 예식장 선택이라든지. 자꾸 ‘결혼’을 현실적으로 접근하게 돼서 좀 우울한 내용이 나올 것 같았어요. 그래도 아이들이 더 많이 볼 그림책이니까 좀 긍정적으로 바꾸려고 했었죠.

 

작업적인 부분에 있어서 특히 신경 썼던 부분은 무엇인가요?

 

아무래도 처음에 지식 그림책으로 접근했던 작업이라 스토리를 만드는 게 어려웠어요. 부드럽게 이야기가 연결되어야 함과 동시에 지식도 넣어야 하는데, 아무리 수정해도 내용이 매끄럽지가 않은 거예요. 편집자와 고민 고민하다 해답을 사랑이야기에서 찾기로 하고 마무리 할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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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면서 가장 행복했던 장면이 있었나요?

 

벚꽃이 날리고 장면이요. 실제 저는 무미건조한 프러포즈를 받았지만, (웃음) 책에서는 더없이 사랑스러운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그림책은 수시로 꺼내 보면서 읽는 책입니다. 인쇄나 만듦새 부분이 상당히 중요한데요. 저자로서 만족하시는지요?

 

그림책 작가로서의 욕심은 늘 만드는 과정에서 아쉬움이 남아요. 아무리 예쁜 색감으로 그림을 그려도 교정 인쇄과정에서 100%를 재현하는 건 힘들어요. 저 같은 경우에 보통 80% 정도 나오면 만족하는 편이예요. 이번 책도 원화 색감을 최대한 살렸지만 자꾸 비교가 되더라고요. 기회가 된다면 원화 전시로 독자들과 만나보고 싶어요.

 

아무래도 아이들이나 부모들이 『엄마 아빠 결혼 이야기』를 많이 볼 텐데요. 작가가 소망하는 의외의 독자가 있나요?

 

결혼하고 싶어하는 미혼 남녀가 많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웃음) 프러포즈를 할 때 줘도 좋고, 결혼하고 싶어하는 친구들에게 선물을 해도 좋고요. 왜냐면, 저랑 편집자가 이 책을 만들면서 배우자를 만나고 결혼에 골인했으니까요. 또 아이들이 부모님과 같이 봐도 좋을 것 같아요. 요즘은 앨범을 잘 안 보잖아요. 가족들이 도란도란 앉아서 이야기할 수 있는 소재 거리가 된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순 없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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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은 그림책에 왜 안 나와요?

 

전작 『방긋 아기씨』는 ‘아이가 좀처럼 웃지 않자 엄마가 갖은 노력을 다 하지만, 결국 엄마가 웃자 아이도 웃는다’는 이야기예요. “엄마가 웃을 때까지 기다리지 못한 딸이 엄마에게 드립니다”라는 작가의 말이 엄마 독자들에게 굉장한 울림을 줬어요.

 

이 작품은 저에게도 특별한 작품이에요. 제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제가 어릴 적 많이 우울한 성격이었어요. 왜 이렇게 나는 우울할까, 고민하다가 아이의 심리 상담 사례를 듣게 됐어요. 한 유치원생 아이가 표정이 어두운 이유가 엄마의 표정에 있었더라고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제 어린 시절을 되돌아보게 됐어요. 아이에게 엄마의 존재가 얼마나 소중한지, 엄마의 웃음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알게 됐죠. 왜 그동안 제가 이렇게 힘들었는지도 깨달았고요. 그래서 꼭 만들어 보고 싶은 작품이었어요.

 

작가님의 어머님께도 의미가 있는 책이었을 것 같은데요.

 

그렇죠. 이 책을 하면서 화해한 부분도 있고 많이 이해도 됐던 것 같아요. 엄마가 안 웃었어도 제가 먼저 웃어줄 수도 있었으니까요. 제 상처만 보느라 미쳐 엄마의 상처를 보듬어주지 못한 거죠. 이런 마음이 들어, 적은 글이기도 해요.

 

그림책작가들은 아이들을 상대로 강연회나 작가와의 만남을 많이 갖는데요. 아이들 질문 중에 특히 기억에 남는 질문이 있는지 궁금해요.

 

전작 『방긋 아기씨』를 냈을 때는 주로 “어떻게 연필로 그렸어요?”, ”‘왜 엄마랑 아기랑 얼굴색이 달라요?”라는 질문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한 친구가 “왕은 그림책에 왜 안 나와요?”라는 질문을 했어요. 예리한 질문이었죠. 그래서 아빠의 부재가 엄마의 슬픔으로 연결되어있다는 걸 이야기 해줬어요.

 

어른들은 쉽게 못하는 질문이네요. 『방긋 아기씨』는 왜 연필로 그리셨는지, 저도 궁금한데요.

 

모든 사람이 그림을 그릴 때, 처음으로 사용하는 도구가 연필이잖아요.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생각으로 그린 그림이에요. 글, 그림을 함께한 게 당시에는 4년 만이었어요. 첫 마음으로 시작하자고 결심했는데 쉽지 않았어요. 연필이 헛나가거나 자국이 찍히면 다시 그려야 했으니까요. 연필은 아무리 밀도를 올려도 시간이 지나면 그림이 날라가기 때문에 전체 그림을 계속 만져줘야 했어요. 원화 작업은 주로 연필 드로잉이었고 엄마와 아이 얼굴만 수채화로 작업했어요. 미세한 색이 깔린 작품이기 때문에 인쇄도 어려웠죠.

 

 

아이들 질문을 또 듣고 싶어요.

 

『방긋 아기씨』에서 왜 엄마 얼굴을 파란색으로, 아기 얼굴은 분홍색으로 그렸냐고 묻더라고요. 아이는 따뜻한 체온이 느껴지게, 엄마는 차가운 이미지를 주려고 했다고 답했어요. 아이들 질문을 듣다 보면, 어른들이 함부로 아이의 생각을 재단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가 판단해서, ‘아이가 이해 못하겠지, 어렵겠지’라고 생각하면 안 돼요. 아이들이라고 꼭 밝은 이야기만 봐야 하는 건 아니거든요. 넓게 열어 두었으면 좋겠어요. 교육적인 것만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너무 딱딱해요.

 

2010년에 출간된 『뿅가맨』도 아이들에게 사랑을 많이 받았어요.

 

이것도 제 어릴 때 이야기예요. 초등학교 때, 친구 집에서 보았던 미미의 집을 무척 갖고 싶었는데 부모님이 사주질 않으셨어요. 1년을 졸랐는데도요. (웃음) 결국 생일날, 선물을 받긴 해요. 생각했던 ‘미미의 집’이 아니라 ‘쉬라의 집’이었는데, 종이로 만들어진 거예요. 그리고 인형도 이등신 인형이어서 굉장히 실망했던 기억이 있어요. 그 때 기억이 강렬해서 『뿅가맨』을 만들게 됐어요. 책 속 주인공 준이 역시 최신 모델 로봇 장난감 ‘뿅가맨’을 무척 사고 싶어하는데, 준이 엄마는 사줄 생각이 전혀 없죠. 그러다 준이가 유치원 소풍을 가기 위해 버스에 올라 타는데, 그 때 뿅가맨이 나타나요. (웃음) 결국 준이는 뿅가맨을 갖게 되지만 얼마 안 있어 또 새로운 멋진 로봇이 나오고, 뿅가맨은 더 없이 작아 보이죠. 어릴 때는 한 번쯤 이런 기억이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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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작가가 가져야 할 ‘예민함’

 

대학에서는 회화를 전공하셨어요. 그림책작가가 된 계기가 있었는지 궁금해요.

 

사실 대학생 때만해도 출판 쪽은 잘 몰랐어요. 졸업할 때쯤 나는 뭘 해야 하나 고민했는데, 문학동네 출판사에서 ‘서울동화일러스트레이션’ 공모전이 열렸어요. 그래서 그렸던 그림들을 연결해서 응모했어요. 운 좋게도 『몽이는 잠 꾸러기』가 우수상을 받았고, 그 기회로 그림책을 만들게 됐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운명이었던 것 같아요. 처음부터 공모전을 의도한 것은 아니었거든요. 그동안 글, 그림을 같이 하기도, 중간에는 그림만 그린 작품들도 많아요. 글, 그림을 같이 한 건, 평균 3년 주기였어요.

 

그림책을 만들면서 가장 재밌는 것은 무엇인가요?

 

독자들이 이 책을 어떻게 볼까?를 상상해보면 재밌어요. 그림을 그릴 때도 좋고요. 좋아하니까 이런 직업을 가질 수 있는 것 같아요. 또 사실 나는 이 정도까진 아니었는데, 다양한 시각으로 책을 읽어주시는 분들이 종종 있어요. 깊이 읽어주는 독자들의 리뷰를 읽을 때면 되게 뭉클하고 감사하죠.『방긋 아기씨』를 갖고 심리 상담을 했다는 독자도 있었어요.

 

한 달 전에 엄마가 되셨잖아요. 작품 세계가 조금 달라질까요? 그림책은 아무래도 아이들이 많이 보니까,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약간은 달라질 것 같아요. 출산 전에는 보통 제 이야기가 많았어요. 어릴 때 강렬하게 남았던 기억, 그간 내가 풀어내지 못한 이야기에 초점을 맞춰 접근했는데요. 임신을 하면서부터는 내가 관찰자 입장으로 보는 소재를 다뤄보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접근 방식이 다르면 방향도 아마 달라지겠죠? 모든 게 제 이야기일 수밖에 없지만, 저한테만 초점을 맞추진 않을 것 같아요.

 

태교는 당연히 그림책과 함께했겠어요.

 

태교를 하려고 한 게 아니라, 일이 있으니까 안 할 수가 없었어요. (웃음) 임신 중에는 작업하는 게 정말 힘들더라고요. 배가 나오니까 오래 앉아있기가 힘든 거예요. 배가 눌리니까 자세도 안 좋고요. 일러스트레이터들은 대개 오른쪽 허리랑 팔이 많이 안 좋아요. 임신하면서 더 안 좋아진 것 같아요. 임신 전에는 하루에 8시간 정도는 크게 무리가 없었는데, 지금은 반 정도 밖에 시간을 못 써요.

 

『방긋 아기씨』를 그렸으니까, 의식적으로라도 아이한테 더 많이 웃어주려고 노력하실 것 같은 같은데요.

 

생각은 많이 하는데 쉽지가 않네요. 몸이 너무 지치니까 아이한테 마냥 방긋방긋 웃어주기가 어려워요. 엄마가 가끔 “네가 그런 책을 썼는데, 이러면 되냐?”고 하세요. (웃음) 이상과 현실은 이렇게 다르구나, 쉽지 않다는 걸 깨달았어요. 제가 좀 감정기복이 심한 편이에요. 특히 작업할 때도 많이 처지는 편이예요. 너무 밝고 들뜬 상태면 작업 자체에 몰입하기도 어렵고 해서, 많이 가라앉히고 작업을 하는 편이에요.

 

그림책을 만들기 위해서는 소재, 즉 재료가 있어야 하잖아요. 작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일단 예민해야 해요. 항상 안테나가 서 있어야 해요. 재료를 항상 발견해야 하니까요. 똑같은 일도 더 깊이 공감하고 느껴야 소재로 만들 수 있으니까요. 많이 예민해야죠. 사실 일상생활에서는 이 예민함이 불편할 수 있지만 작업하는 데는 도움이 돼요. 어쩔 수 없이 장점도 있어요. (웃음).

 

 

그림책은 어떻게 보는 게 가장 좋을까요?

 

한 장 한 장의 그림을 먼저 쭉 본 다음 글을 읽어도 좋을 것 같아요. 그림책은 글밥이 작잖아요. 스토리가 단순해 보여도 막상 압축하는 과정이 어려워요. 작은 글밥 속에서 내용이 연결이 돼야 하고, 그림으로 설명이 돼야 하니까요. 글, 그림을 다같이 천천히 보면 좋을 것 같아요. 글만 쭉 읽으면, 작가가 그림으로 설명한 내용을 포착하기 어려워요. 부모님들이 책 읽는 방법을 조금 알려주셔도 좋겠어요. 안 그러면 “엄마, 나 다 읽었어”라고 훅 보고 말 테니까요.

 

요즘 그림책을 좋아하는 성인 독자들이 많이 늘고 있는데요. 실감하시는지요?

 

조금 느껴요. 보통 강연회를 하면 그림책작가가 되고 싶은 준비생 분들이 많이 와요. 아이들을 키우면서 그림책을 접하게 된 부모님들도 오시고요. 한 번 매력에 빠지면 계속 강연회를 따라 오시는 독자 분들이 있어요. 확실히 소수지만 어른 독자들이 늘었어요. 어쩔 수 없이 인터넷서점이나 온라인 샵에서는 그림책이 유아 분야로 구분돼 있는데, 오프라인 서점을 다니다 보면 어른 독자가 꽤 많아진 걸 느껴요. 요즘은 책을 만들 때조차 꼭 어린이에게만 초점을 맞추지 않아요. 대상을 열어놓고 좀 더 자유롭게 작업하는 결과물들이 늘어나고 있고 그림책 전문 서점이나 카페도 늘어나고 있어서 성인독자들이 접할 공간이 늘어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그림책 독자들은 소수잖아요. 그림책작가로 어려운 부분은 없나요?

 

어렵죠. 그래서 생활형 작업도 많이 해요. 하고 싶은 책 작업을 위해서죠. 제가 좋아하는 그림책 작업을 하려면 몇 년이 걸려요. 이 몇 권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건 정말 어렵죠.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요. 그림책을 좋아해서 작가를 꿈꾸는 분들이 많은데, 이 점을 알고 시작했으면 좋겠어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을 벌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없겠지만요. 다 욕심 낼 순 없어요. 어쩔 수 없이 종이책은 불황이 길어지고 있고요. 가끔 “일러스트레이터로 성공해서 돈을 벌고 싶다”는 메일이 와요. 조언을 구하시는데, 딱히 드릴 건 없어요. 대신 현실적으로 이야기해줘요. “성공은 좀 힘들 것 같다, 좋아서 하는 게 아니라면 이 에너지를 다른 데 쏟으면 돈은 더 벌 수 있을지 모른다”고요. 좋아서 해야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림책을 처음 작업할 때, 작가들이 염두에 둬야 할 게 있을까요?

 

처음 작업할 때는 무엇보다 출판사와 충분한 소통이 가장 중요할 것 같아요. 그림책은 인쇄매체이기 때문에 혼자만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위험한 접근이고, 자신의 의도와 맞지 않아도 출판사의 의견에 따라가는 것 또한 조심해야 될 것 같아요. 아무래도 신인의 경우에 의견이 다를 경우 출판사와 조율이 쉽지 않은 점이 있어요.

 

좋아하는 그림책작가나 작품이 있는지 궁금해요.

 

멋진 작업을 하시는 분들이 많아 손에 꼽기 어려운데 소윤경 작가의 『레스토랑 살』을 재밌게 보았어요. 그림책으로 풀어내기 쉽지 않은 주제를 식상하지 않게 잘 풀어냈더라고요. 아, 어릴 때 즐겨 읽은 책은 『엄지공주』였어요. 그림책이란 게 귀했을 때였고, 한글을 배우기 전이라 엄마가 읽어 주시던 『엄지공주』가 제일 기억에 남아요. 엄마의 목소리로 매일 매일 듣고 싶어서 카세트 테이프에 녹음해서 들었어요. 그런 추억이 있어서 지금의 제가 있지 않았나 생각이 들어요.

 

기획 중인 차기작은 있나요?

 

전혀 없어요. 이번 결혼 책 하면서 모든 에너지를 다 쏟았어요. 그간 받아서 하는 작품도 못해서 쉬엄쉬엄 하려고 해요. 다만 앞으로는 좀 신나는 느낌의 작업을 하고 싶어요. 그동안 빡빡하고 심각한 내용이 많았는데, 재밌는 작품, 아이들이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언젠가 느낌이 팍 오겠죠. 가끔 새벽에 ‘앗, 이걸 그려야겠네’ 싶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거든요. 이런 계시가 있으면 시작할 수 있겠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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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빠 결혼 이야기 윤지회 글그림 | 사계절
엄마 아빠처럼 결혼하겠다는 아이. 그 아이의 눈에 비친 결혼에 대한 기대와 설렘이 『엄마 아빠 결혼 이야기』에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온가족이 함께 읽으며 가족 간의 따뜻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그림책입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은희경 “책이라는 게 나의 허세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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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집 『중국식 룰렛』에서 은희경의 손끝은 일상의 사물들을 더듬는다. 술, 옷, 신발, 가방, 책 , 음악 사이를 오가며 이야기를 들춰낸다. 그 속에는 행운과 불운이 교차했던 순간이 있고, 스치듯 인연을 맺었던 사람들의 풍경이 있다. 낯설지 않은 소재만큼이나 기시감을 불러일으키는 감정들이 빼곡하다. 은희경 작가와 나눈 이야기 또한 다르지 않았다. 술과 책에서 시작된 대화는 바뀌지 않는 세상과 바람과 달리 흘러가는 삶, 고독한 존재에 대한 것으로 가지를 뻗어갔다.『중국식 룰렛』이 그러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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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라는 게 나의 허세로구나

 

소설집에 실린 여섯 작품 중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건 말하나 마나 술”에 대한 이야기였다고 하셨어요(웃음). 표제작인 「중국식 룰렛」에 위스키가 등장하는데, 평소에도 좋아하신다고요(웃음).


네, 좋아하는데 바에 가서 마신 경험은 별로 없고요. 그냥 가끔 면세점에서 사와서 마시는 정도인데 그래도 좋아해요. 「중국식 룰렛」에 위스키 종류가 많이 나오니까 다 맛보고 쓴 줄 아시는데 상상하면서 쓰는 게 재밌어요. ‘아, 맛있겠다’ 하고(웃음).

 

2008년부터 올해 봄까지 발표하신 작품이 실려 있는데요. 오래 전 작품을 다시 만나는 기분은 어떠셨어요?


진짜 재밌더라고요. 저는 한 번 쓰고 나서는 절대 안 읽어보거든요. 쓸 때 지겨울 만큼 그 사람이 되어봤고, 결별을 해야 또 다른 작품을 쓸 수 있으니까요. 소설을 쓰는 건 사랑이 식고 다시 생겨나는 과정이라고 이야기한 적도 있어요. 그래서 다시 안 보는데, 이번에 소설집으로 묶으면서 8년 전에 썼던 걸 다시 보니까 재밌었어요. 그 사이에 제가 변했다는 것도 느꼈고요. 중국식 룰렛이랑 마지막 작품(「정화된 밤」) 사이에 8년이라는 차이가 있으니까 조금 다른 것 같기는 했어요.

 

일상의 사물을 소재로 한 작품들만 엮으신 이유가 있나요?


제가 술에 관심이 있으니까 술에 대한 이야기를 썼었는데, 쓰고 나니까 재밌더라고요. 저는 이야기를 넓은 데에서부터 좁혀가기 때문에 시작할 때 많이 힘들거든요. 시간이 많이 걸리고. 그런데 이건 좁은 데서 넓혀가는 이야기라 재밌었어요. 그래서 ‘이렇게 어떤 물건을 정해서 쓰는 것도 재밌겠다’고 생각했는데 잡지사에서 수트에 대한 이야기를 써달라는 청탁을 받아서 쓰게 됐고요. 아예 이 컨셉으로 책을 묶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신발, 가방에 대한 이야기도 청탁을 받고 쓴 거예요.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묶이니까, 각각의 작품을 볼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이 드세요?


그렇게 크게 다른 것 같지는 않아요. 그런데 친근한 소재에서 이야기를 상상해 내는 거니까 독자 분들이 ‘나도 가방 하면 떠오르는 이야기가 있는데, 나도 신발 하면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는데’ 하는 식으로 서로 생각을 떠올리면서 읽으면 재밌을 것 같아요.

 

「중국식 룰렛은 책 전체의 이야기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인 것 같았어요. 선택에 따라 행운과 불운이 교차하는 순간을 보여주잖아요.


맞아요. 우연, 행운, 불운, 그런 것들을 각자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다른 것 같아요. 그것이 찾아왔을 때 자신이 행운이라고 생각하는지 불운이라고 생각하는지에 따라 다른 거고, 그런 상황에서 게임처럼 ‘이게 나한테 행운일까 불운일까’를 시험해보는 이야기라고 할까요. 

 

「별의 동굴」의 인물들은 그냥 스쳐 지나가는 인연일 수 있는데, 절체절명의 시기에 만나게 되죠. 인연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하더라고요.


그 전의 장편에서도 여러 번 썼지만, 우리가 너무 커다란 틀 속에 갇혀있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그래서 ‘인생이 이렇게 다 정해져 있는 건가, 이런 일만 죽도록 하면서 끝나는 건가, 이런 걸 원하게 되어 있는 건가, 내가 개인적으로 선택하는 건 없나’ 이런 식의 생각을 소설에 많이 썼는데요. 그렇지만 조그만 우연 같은 것들이 우리 인생에 조금씩 길을 내주고, 바꿔주고, 위로를 주기도 하고, 같이 가기도 하는 것 같아요.

 

「별의 동굴」에서 주인공이 책장을 정리하는 장면이 있잖아요. 굉장히 긴박하고 속도감 있게 진행되던데, 작가님께서도 감정 이입이 되셨을 것 같아요. 어떠셨어요?


제가 작년 여름에 책장 정리를 했는데, 그 주인공과 비슷한 심정을 느낀 거예요. 책장에 책이 정말 많은데 ‘다 읽을 것도 아닌데, 책이라는 게 나의 허세로구나’ 이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책의 권위에 의지해서 나를 어떤 식으로 보이고자 했던 불안함이 마음속에 있었던 것 아닌가 싶더라고요. 그리고 남들한테 어떻게 보이고 싶다는 마음은 내 스스로가 별 볼일 없기 때문에 갖게 되는 거잖아요. 그런 마음 같은 걸 생각하니까 갑자기 왈칵 하는 거예요. 내가 너무 부족한 사람이기 때문에 허세를 부리는 심리가 너무 안쓰러운 거예요. 모르겠어요, 더 젊을 때 썼으면 그런 나를 비판하는 식으로 썼을 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그 인생에 대한 연민 같은 걸 많이 쓴 걸 보니까, 제가 힘들었던 것에 대해서 감정이입이 됐던 것 같아요. 그래서 「별의 동굴」을 읽을 때 주인공이 책을 던져버리고 짓밟고 하는 장면에서 저도 자기 파괴적인 충동 같은 게 생기면서 스스로 시원한 감정이 조금 느껴졌어요(웃음).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이야기일 것 같습니다. 저 역시 책의 권위에 기대려 했던 마음을 들킨 것 같았어요(웃음).


이 소설에서는 책이 나오지만, SNS에서도 사람들이 어떻게 보이려고 하는 행동들이 많잖아요. 그래서 자꾸 어떤 걸 연출하고, 스스로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하려고 하죠. 그런데 역설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보이고 싶어 하는 것 자체가 그 시스템에 영향을 받고 있는 거잖아요. 거기에 갇혀 있는 거잖아요.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토닥토닥 해주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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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책상에 앉으면 도망가고 싶어요

 

작가의 말에서 “책상에 앉아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도망치고 싶어 하는 것”이라고 하셨어요. 이번 책의 원고를 정리하면서 조금 변했다고도 덧붙이셨고요. 이제는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하시는 건가요?


항상 도망가고 싶죠. 첫 책, 둘째 책 정도가 안 그랬던 것 같아요. 첫 장편은 공모에 응모했던 작품이었으니까, 정말 읽는 사람을 의식하지 않고 내가 쓰고 싶은 이야기가 뿜어져 나오듯이 썼거든요. 그때는 진짜 재밌었어요. 이후에는 너무 자기검열이 많아졌어요. 그리고 일단 직업으로 글을 쓰는 건 다르죠. 일기 쓸 때는 도망가고 싶지 않잖아요.

 

자기 검열이 심해졌다고 하셨는데, 이유가 있을까요?


일단 작가는 새로운 걸 써야 되잖아요. 그런데 경력이 많이 될수록 이미 쓴 작품이 있기 때문에 ‘이게 새로운 이야기인가’에 대한 검열이 많고요. ‘다른 사람이 다 했던 이야기 아닌가’, ‘다른 사람이 충분히 한 이야기인데 무엇 때문에 또 하나’ 싶기도 하죠. 그리고 ‘이게 지금 동시대인들에게 말이 되는 이야기인가, 나만의 독백이 아닌가’ 이런 검열도 심하고요. 타인의 것, 다른 세계하고 비교해서 ‘이건 다른 사람이 하면 훨씬 잘 하고, 다른 사람이 이미 한 이야기인데 또 할 필요가 있나’ 이런 검열도 있죠. 

 

20년 넘게 작품 활동을 하시면서 꾸준히 사랑을 받아오셨잖아요. 거기에서 비롯되는 부담감이 자기 검열을 부추기지는 않나요?


그런 건 거의 없어요. 소설을 쓸 때 ‘내가 중견 작가니까 이런 정도는 써야 되는데’라는 생각은 전혀 없고요. ‘완성할 수 있을까, 완성만이라도 됐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으로 쓰기도 해요(웃음). 후배 작가들하고도 동료라고 생각하지 ‘나는 선배작가니까’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내가 도저히 쓸 수 없는 작품을 썼다고 생각되는 후배들도 많고요. 그래서 경력에 걸맞은 작품을 써야 된다는 부담은 별로 없어요.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 이 작품은 처음 써보는 거니까 초보잖아요. 그리고 예전에 썼다고 해서 지금 또 쓸 수 있다는 건 절대 보장되는 게 아니기도 하고요(웃음).

 

일부에서는 이번 작품과 함께 작가님의 변화를 이야기하더라고요. 이전의 작품들을 위악이나 불편한 소설로 설명할 수 있었다면 이제는 달라졌다는 건데요. 어떤 영향을 받으신 것 같으세요?


지금 새로 장편 소설을 구상하고 있는데, 그게 30년 전 여자대학교 기숙사 이야기예요. 그런데 최근에 여러 가지 사회적 이슈, 여성 이슈를 봤을 때 그때의 그 이야기를 왜 지금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아팠어요. 우리 세대의 잘못인가 하는 생각도 조금 하게 됐고요. 지금까지 제 소설 속에 드러나는 인물들은 이런 문제를 충분히 알고 있지만 ‘세상이 바뀔 수 없으니 나라도 바뀌겠다, 나만 잘하면 돼’ 하는 식으로 자기 안에서 해결하려는 태도였는데, 그런 게 너무 안이한 선택이었나 생각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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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의 소설에서는 달라질까요?


아직 소설이 쓰여지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 쓰여질지는 모르겠지만, 다음 소설이 크게 바뀔 것 같지는 않아요. 하지만 쓰는 사람이 이런 생각을 가지고 쓰는 거랑 어차피 연대해도 소용없으니까 나나 잘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쓰는 거랑은 굉장히 다르거든요. 그런 변화가 소설 속에 어떤 식으로 반영될지는 모르겠지만, 변화가 있어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썼어요. 그런데 아시다시피 제가 하루아침에 무슨 일을 겪었다고 해서 소설이 달라진다거나 하는 건 아니잖아요. 저는 인간이 무슨 일을 겪어서 바로 달라질 것 같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어떤 식으로든 제 삶 속에 녹아 든 영향이 있고 제 소설 속에도 그런 것들이 반영됐으면 좋겠어요.

 

1970년대 후반의 여자대학 기숙사를 배경으로 집필 중이시라면, 작가님의 개인적인 경험도 반영이 되나요?


제가 기숙사에 살았었기 때문에 그 사회를 묘사할 때 디테일에는 들어가 있겠지만, 전하고 싶은 건 지금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이니까 새로 만들어지는 부분이 있겠죠. 마치 『새의 선물』이 시대적 배경이나 디테일은 1969년이지만 작품에서 하는 이야기들은 제가 1995년에 느꼈던 문제의식인 것처럼요. 

 

「별의 동굴」과 「불연속선」은 개인적 경험이 영향을 미친 작품인데요. 일상의 이야기를 소설 속으로 끌고 들어오는 작업을 경계할 때는 없으세요?


별로 없어요. 왜냐하면 저는 조금 소심해서 누구랑 관련된 일을 소설로 잘 못 써요. 누구한테 들었다든지 누군가의 사생활에 해당되는 일들을 글로 쓰는 게 굉장히 조심스러워요. 어쨌든 발상은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가지고 시작되는 것이지만, 여러 사람들과 여러 가지 사건을 섞어서 하나의 이야기로 만드는 거라서 시작이 너무 어렵긴 해요. 가령 제가 『아름다움이 나를 멸시한다』라는 소설을 썼는데 뚱뚱한 사람이 다이어트를 하는 이야기거든요. 그런데 제 주변에 뚱뚱한 사람이 없어요. 그렇지만 뚱뚱한 사람이 겪을 만한 불편 같은 걸 끊임없이 상상을 해요. 사람들도 관찰하고요. 만약에 제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으면 저는 그 사람 이야기는 못 쓰는 거예요. 지금은 기숙사 이야기를 쓰려고 하는데 옛날 기숙사 친구를 못 만나겠어요. 자기 이야기를 썼다고 생각할까 봐요. 그래서 저는 앨리스 먼로 같이 자기 고향이나 살고 있는 곳 주변의 이웃들에게 일어났던 일을 소재로 쓴 사람을 보면 정말 한 번 물어보고 싶어요. 이웃들하고 사이 좋게 지내냐고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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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까?


『중국식 룰렛』의 해설을 쓴 황정아 평론가는 “이런 삶이 아니어야 했는데 결국 이런 삶이 되어버렸어, 라는 희미한 탄식이 어울릴 인물”이 많다고 썼더라고요.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별의 동굴」 인물이 조금 그렇죠. 「장미의 왕자」는 어렸을 때부터 나는 미움 받는 아이야 라고 생각했던 인물이 나오고요. 「불연속선」의 남자는 자기 한계를 정해 놓은 사람인데, 그런 면에서 약간 「대용품」의 주인공과 비슷하죠. ‘결국 이런 삶이 되어버렸구나’ 하고 생각하는 건 「별의 동굴」의 회한과 비슷한 것 같은데요. 그런데 인생의 회한이라기보다 삶이, 각자의 지선이라고 할까요, 그런 걸 따라서 흘러갔다가 만났다가 하는 것 같아요. 어차피 자기가 생각했던 인생이 아니라는 건 다른 인물들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이기도 하죠. 「정화된 밤」의 여성도 자기가 좋아했던 남자가 아닌 사람하고 결혼해 버리고 거기에 맞추려고 하는 인물이니까요.

 

어차피 누구의 삶도 생각했던 바와는 다르다는 말씀이신 것 같은데요. 진실이라서 서글픈 이야기 같아요.

 
「중국식 룰렛에도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단지 조금 불행한 것처럼, 그래서 단지 약간의 행운이 더 필요할 뿐인 것처럼”이라는 부분이 나오잖아요. 이렇게 말하면 그래도 인생이 그렇게 불행하지는 않다는 이야기 같아요. 그런데 왜 나는 거기에서 그치지 못하고 “우리에게 주어진 불운의 총량은 어차피 수정될 수 없는 것이니까”라고, 어차피 인생은 불행한 것이라는 말을 기어코 하는지 모르겠어요. 이상하게 인생은 아름다운 거야 같은 말을 하고 나면 불안해요. 그렇게 믿는 사람들이 금방 실망할까 봐요. 그래서 이렇게 행운을 받아들이고 불운에 대해서 경계하자고 말하고 싶은가 봐요. 그게 예전부터 일관된 태도 같아요. 어떤 소설에서는 비관주의라는 건 너무 좋은 거라고, 나쁘게 생각해 보면 그보다는 다 좋아질 것 아니냐고, 그런 식으로 말하기도 했어요. 이게 소심한 사람의 자기 관리법 같아요. 「정화된 밤」의 인물 같죠. 누구랑 같이 무언가를 하려고 할 때 나쁜 점을 너무 많이 예상해서 그룹에서 환영 받지 못하잖아요. 그게 어쩌면 저의 모습일 수도 있는데요(웃음). 그렇게 예상해 놓고 나면 행동력이 없잖아요. 이 소설집에서는 「불연속선」의 여성이 행동력 있는 사람인데요. 그 여성은 자기에 대해서 말하면서 나는 경솔한 게 아니라 확신을 가지고 한 가지 선택을 하면서 살아왔다고 해요. 그런 인물에 호감을 느끼게 된 것 같아요. 제가 그러지 못하니까.

 

 

2014년에 <채널예스>와 인터뷰하셨을 때 ‘지금 고민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 여쭤봤어요. 작가님께서는 “아무도 잘못이 없는데, 서로 다 사랑하는데 왜 우리는 고독할까? 서로의 고독에 대해 왜 해줄 게 없을까?”라는 문제를 생각한다고 하셨고요. 그 질문에 대한 나름의 대답은 찾으셨나요?


고독에 대한 이야기는 오랫동안 썼어요. 사실은 그 문장 자체가 『소년을 위로해줘』에 나오는 문장이에요. 엄마하고 아들이 각자 자기 방에 있는데 엄마는 혼자 식탁에서 술을 마시고 있고 나는 내 방에서 거울을 보면서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도 상대의 고독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줄 수가 없다고 말하는 부분인데요. 『다른 모든 눈송이와 아주 비슷하게 생긴 단 하나의 눈송이』에서는 그 사람의 고독을 존중해야 된다고, 저 사람이 고독하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고독한 사람끼리 서로 연대하는 방법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답은 알 수 없는 거겠지만, 저의 중간 결론은 인간은 육신을 갖고 태어났기 때문에 고독할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육신은 공유할 수 없는 거잖아요. 아무리 사랑해도 그 사람이 아플 때 나는 안 아프잖아요. 육신을 갖고 있는 한 인간은 개인적인 존재고, 그래서 공유할 수 없는 자기만의 부분이 있는 거고, 그래서 고독은 타고난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고독은 싫으니까 어떻게든 서로 해소하려고 하는데, 고독을 해소하는 방식이나 시간이 서로 딱 맞을 수가 없어요. 저 사람이 고독할 때 나도 고독할 수는 없는 것이고, 서로 각자 다른 존재이기 때문에 어차피 맞춰줄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고독을 받아들이고, 고독한 채로 저 사람의 고독을 존중해 주자는 거죠. ‘내가 있는데 왜 고독해, 내가 있는데 뭐가 고독해’라고 하는 순간 폭력이 될 수도 있는 것 같아요. 물론 ‘우린 어차피 고독한 사람들이니까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없어’라는 태도는 아니겠지만, 저 사람한테도 고독이 있다는 걸 인정하는 게 연대의 시작이 아닌가 싶어요. 그러니까 개인을 존중하자는 이야기일 거예요. 그런데 개인들이 가장 맞추기 어려운 부분이 고독이 아닐까 싶은 거죠. 

 

최근에 붙들고 계신 화두는 무엇인가요?

 
요즘 안 좋게 보는 일들이 많아요. SNS에서 사람들에게 듣는 이야기 중에 불편한 일들이 많은데요. 제가  『소년을 위로해줘』에서 그런 이야기를 쓴 적이 있어요. 요새 말로 아재라고 하는 아저씨들 있잖아요. 그런 사람이 공식적인 자리를 떠나서 개인적으로 모르는 사람하고 있게 됐을 때 자기 이야기를 하는데, 자기는 그렇게 사는 게 옳은 거라고 배워왔기 때문에 잘못된 옷인 줄 알지만 피부처럼 돼서 벗을 수가 없다고 하는 거예요. 이게 편해서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고요. 예전에는 모든 사람의 안에는 자기 개인이 있는데 입혀진 옷 때문에 저렇게 할 수밖에 없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 옷을 벗어버리면 자기는 너무 나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저렇게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요즘에는 ‘저런 사람한테까지 그렇게 개인이라는 것을 적용해야 될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조금 극단적인 경우들을 보게 돼요. 그래도 저는 휴머니스트로서의 태도를 버리지 않으려고 해요.

 

요즘 들려오는 소식들을 보면 분노를 일으키는 이야기들이 많죠.


그리고 저는 뉴스 댓글 같은 걸 많이 보거든요. 왜냐하면 제가 겪고 상대하는 세계 안에서만 생각할 수가 있는데, 저는 세상을 더 많이 알고 동시대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써야 하는 소설가잖아요. 그래서 ‘나랑 정반대인 사람들은 어떤 생각들을 할까’ 생각하면서 뉴스 댓글 같은 것들을 많이 보는데요. 너무너무 놀랄 때가 많아요. 그래서 ‘내가 이 사람을 이해할 수 있을까’ 싶을 때가 있어요. 인간을 이해하는 게 나의 직업인데 이런 사람까지 이해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내가 아직 세상을 완전히 못 보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 싶기도 하고요. 그런 것들이 요즘 저의 질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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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식 룰렛 은희경 저 | 창비
꾸준히 세련된 감각을 유지하며 작품활동을 이어온 은희경은 빛나는 문장들로 독자들의 외롭고 지친 마음을 보듬어주었다. 이번 소설집 역시 각기 다른 성광과 매력을 뽐내며 일상의 우연들이 얼마나 소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행운과 불운이 교차하는 날들이 얼마나 공교롭게 우리를 이끄는지를 은희경 특유의 섬세하고 정련된 필치로 펼쳐 보인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유범희 “무의식의 영향력은 거의 절대적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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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프로이트, 내 마음의 상처를 읽다』는 아픈 마음을 들여다보기 위해 정신분석이라는 돋보기를 제시한다. “한 뼘도 채 안 되는 작은 뇌 속에 담긴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는 일은, 저 광활한 우주를 이해하는 것만큼 어렵고 힘들 수 있”기에, 인간 정신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무의식에 주목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저자인 유범희 정신과 전문의는 다시 프로이트를 이야기한다. 프로이트 심리학에 대한 묵은 오해를 벗겨내고, 변화를 거듭해 온 정신분석학의 현주소를 알려준다. 다시 만나는 프로이트의 이야기이자 새로 만나는 정신분석의 이야기인 셈이다.

 

“한국에서 정신분석이라는 학문 분야를 대중들에게 친근하게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에서 책을 쓰게 됐다”고 밝힌 저자는 지난 30년간 정신질환 환자들을 진료?연구해왔다. 『다시 프로이트, 내 마음의 상처를 읽다』안에는 그가 진료실에서 만난 실제 환자들의 치료 사례가 풍부하게 담겨있다. 그들을 통해 무의식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과 그 결과 나타나는 증상, 정신분석학적 치료 과정을 엿볼 수 있다.

 

유범희 저자는 세계 최초로 특정 유전자가 공황장애 발병과 치료반응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규명한 바 있으며, 한국정신분석학회 회장과 범불안장애 연구회장 등을 역임한 바 있다. 현재는 ‘유범희 정신건강의학과 의원’을 운영하며 아픈 이들의 마음을 돌보고 있다.

 

그는 <채널예스>와의 인터뷰를 통해 우리 사회에 수많은 상담소와 상담가들이 있지만 그에 대한 제대로 된 검증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며, 그 결과 발생하는 부작용에 대해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정신분석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제대로 된 치료자를 찾는 일이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것. 그를 만나 정신분석이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방식에 대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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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 심리학에 대한 해묵은 오해들


책 제목이 『다시 프로이트, 내 마음의 상처를 읽다』입니다. ‘왜 프로이트인가’라는 질문부터 드려야 할 것 같아요. 최근 몇 년 동안 아들러의 심리학이 대중의 관심을 받기도 했는데요. 프로이트의 심리학이 다른 심리학과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20세기와 21세기에 활동한 수많은 심리학자들 중에 프로이트의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거예요. 아들러나 융처럼 대중들이 잘 아는 유명한 심리학자들도 프로이트의 제자였고, 프로이트와 함께 정신분석 운동을 같이 했던 사람들이잖아요. 이후에는 각자 뿌리를 내려 독자적인 학문분야로 나아간 것이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 대중들에게 프로이트는 조금 더 어려운 대상으로 여겨지는 것 같아요. 게다가 프로이트에 대해서 잘 모르거나 오해하고 있는 부분도 많죠. 전 세계적으로 봤을 때는 프로이트의 심리학이 갖고 있는 영향력이 압도적이에요. 그리고 프로이트가 세상을 떠난 후에 수많은 사람들이 수정을 거듭했어요. 현대 정신분석학은 굉장히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고 프로이트 시대의 정신분석학과는 엄청나게 달라져 있죠. 그 사실을 더 많이 알리고, 현대의 정신분석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릴 수 있다면 좋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프로이트와 정신분석에 대한 오래된 오해도 있는 것 같습니다. 책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성에만 집착하는 구시대적 심리학”이라는 인식이 대표적인데요. 이에 대해 현재의 정신 분석학자들은 어떻게 생각하나요?


굉장히 큰 오해가 있는 거죠. 프로이트가 성적인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를 했던 건 맞아요. 처음에 프로이트는 성적인 억압이나 갈등에서부터 모든 문제가 시작된다고 보았어요. 프로이트가 주로 활동했던 19세기 말의 유럽은 성적으로 굉장히 억압돼 있는 사회였고, 그로 인해 생기는 수많은 문제들이 있었거든요. 소위 말하는 노이로제 환자들을 많이 봤던 거예요. 그래서 프로이트는 사회가 성이라는 중요한 문제를 터부시하고 있다는 걸 깨닫고 용감하게 주장하기 시작했죠. 그러다 보니까 굉장히 큰 사회적 파급효과를 가져왔고, 사람들은 프로이트를 성에 미친 사람이라고 매도했어요. 프로이트는 평생에 걸쳐서 자기 이론을 조금씩 수정해나갔는데, 그러면서 단순히 성적 욕망이라는 것만 가지고 모든 걸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했어요. 성적 욕망과 공격성이라는 두 가지가 인간의 마음을 이루는 중요한 축이라고 보게 됐고요. 리비도라는 개념도 단순한 성욕이 아니라 삶의 에너지, ‘행복해지고 즐겁게 살고 싶어 하는 원초적인 욕망’이라고 확대했어요.

 

앞서 프로이트의 심리학은 변화를 거듭해 왔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어떤 과정을 거쳐 변화해왔나요?

 

이제는 세상이 달라져서 프로이트가 활동하던 때처럼 성적으로 억압되어 있지 않잖아요. 그런 변화에 맞춰서 굉장히 많은 변화가 일어났죠. 더 이상 정신분석학이 성적인 억압만을 다루는 학문이 아니고, 인간이 갖고 있는 여러 가지 본능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이 되었고요. 발달심리학이 발달하면서 프로이트가 처음 생각했던 인간의 발달 단계에도 변화가 일어났어요. 뇌 과학, 인지 과학 쪽의 연구가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해당 분야의 지식들이 많은 영향을 주기도 했고요. 아마 프로이트가 다시 살아나서 지금 시대를 산다면 ‘내가 만들어 놓은 정신분석학이 맞아?’라고 이야기할지도 모르겠어요. 그만큼 많이 달라져있고 굉장히 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주죠.

 

“정신분석 치료를 인간 정신에 미치는 무의식의 영향력을 매우 중시한다”고 하셨어요. 무의식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궁금합니다.


소위 말하는 ‘무의식의 심리학’을 본격적으로 대두시켰다는 게 프로이트의 가장 큰 업적일지도 모르겠어요. 물론 그 전의 심리학자들이 비슷한 개념을 가지고 있었지만 프로이트처럼 본격적으로 무의식을 연구하고 체계화한 사람은 없었죠. 무의식은 인간의 행동에 거의 절대적인 영향을 준다고 봐요.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도 무의식은 항상 작동하고 있거든요. 우리는 내가 언제 무의식적인 상태에 있는지 거의 못 느끼고 살지만 사실은 무의식은 계속 의식에 신호를 보내고 있고, 우리의 의식은 그 영향을 받아서 조금씩 계속 변해요. 그 변화가 굉장히 미세하기 때문에 잘 못 느낄 수 있지만, 특정한 경우에는 무의식이 굉장히 결정적인 역할을 해서 의식 세계를 뒤집어엎어 놓을 때도 있어요. 프로이트는 그런 순간들을 잘 포착해서 이것이 무의식의 증거라는 걸 보여줬던 거죠.

 

책에 실린 환자들의 사례만 보더라도, 무의식의 영향력을 결코 무시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책에서 들었던 예 중에 하나로, 결혼식을 앞둔 남자가 푸른색 신호등을 붉은색으로 잘못 본 경우가 있었는데요. 프로이트가 정신분석을 제시하기 이전에는 그냥 실수라고 이야기했던 행동인데, 사실 단순한 실수라는 건 없다는 거죠. 거기에는 다 원인이 있는 것이고, 무의식이 계속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에 그런 실수를 하게 되는 거라는 이야기죠. 책에 사랑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지만, 우리가 누군가와 사랑에 빠질 때 왜 그 사람을 좋아하는지 설명이 안 되잖아요. 그냥 좋다, 왠지 좋다, 라는 식으로 말하죠. 그건 설명할 수는 없지만 미묘하게 내 마음을 흔드는 뭔가가 있다는 거거든요. 그런 게 무의식의 영향이죠. 그리고 시대와 인종과 국적을 불문하고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예술작품이 나오는 이유도, 모든 인간에게는 무의식이 있고 작품 속에는 예술가의 무의식이 담기고 그걸 보는 사람들의 무의식이 건드려지기 때문이에요. 소위 공명 현상이 일어난다고 보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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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를 너무 사랑하는 그 사람, 열등감 때문일까?


책에 소개된 환자들의 경우를 보면, 각각 증상은 다르지만 대부분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에서 영향을 받은 바가 큰 것 같아요.


그럼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부모의 영향이 굉장히 크죠. 자기가 가장 약하고 성장하는 시기에 자기를 절대적으로 보호해주고 돌봐주는 사람이 대부분 부모니까요. 물론 양육자가 부모가 아닌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부모가 가장 많은 시간을 아이와 보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가장 많은 영향을 주는 거죠. 한 사람의 마음의 나이테에는 부모가 갖고 있는 색깔이 그대로 담겨 있는 경우가 많아요. 물론 똑같지는 않죠. 부모와는 다른 사람이기 때문에 부모의 영향을 받아서 자기 식으로 달라지는 모습을 갖게 되지만, 아무도 부모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이 없죠.

 

부모의 영향으로 낮은 자존감을 갖게 되었거나 부모에게 양가감정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많더라고요. 말씀하신 것처럼 부모는 나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사람이고, 거기에서 벗어난다는 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는 일일 텐데요. 그게 가능할까요?


그게 가능하다는 게 정신분석의 힘이죠. 바뀌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기도 해요. 생각을 바꾸기 위해서는 수많은 과거의 경험들을 계속 현재의 경험과 연결시켜 가면서 치유가 일어나야 되거든요. 현재의 자기 모습을 기준으로 해서 과거의 상처를 조금씩 치유해야 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을 통해서 과거를 보고, 과거에 있었던 일을 다시 현재에 대입하면서 고쳐나가야 돼요. 과거를 고치는 게 아니라 현재를 고치는 거죠. 그러다 보면 어느 날 자신이 달라졌다는 걸, 더 이상 과거의 영향을 많이 받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는 거예요.

 

정신분석 치료를 통해서 어떤 변화를 겪게 되는 건가요? 예를 들어주실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서, 부모가 너무 미워서 자신의 인생을 잘 살고 싶은 생각이 없다는 사람이 있다면, 부모가 밉다고 해서 왜 당신의 인생을 망가뜨리냐고 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아요. 그런데 치유가 일어나면, 객관적으로 봤을 때 부모가 조금 밉지만 부모 때문에 내 인생을 포기할 필요는 없고 이제는 다른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죠. 그렇다고 부모를 좋아하게 되는 건 아니겠지만 적어도 부모를 이전보다는 더 객관적으로 보게 되고 더 이상 자기파괴적인 행동을 안 하게 되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인생이 완전히 달라지는 거죠. 그게 정신분석의 힘이에요.

 

그렇다면 정신분석 치료는 ‘문제 행동의 원인을 무의식 속에서 찾아서 보게 해주는 것’에서 출발하는 건가요?


그렇죠. 자기 자신에 대한 통찰력을 키워주는 거죠. 궁극적으로는 내가 나 자신을 훨씬 잘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거고요. 단순히 지적인 이해가 아니라 실제로 마음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단계까지 가야 달라져요. 머리로만 이해하는 게 아니라 가슴으로 이해해야 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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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 조절 장애는 사회적 문제로 떠오른 지 오래입니다. 2015년에 대한정신건강의학회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한국인의 절반이 분노조절이 잘 안 돼 노력이 필요한 상태라고 하죠. 이쯤 되면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하기도 힘든 상황이 아닐까 싶은데요. 사회 환경적 요인이 있지 않을까요?


사회적인 문제가 있죠. 분노 조절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들의 어린 시절을 보면 부모로부터 또는 가까운 가족들로부터 적절한 돌봄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많아요. 특히 정서적인 돌봄이요. 책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분노 조절 장애를 겪고 있는 분들 중에 자기애적 손상을 겪은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 사람들은 결과적으로는 자기애가 건드려지는 상황이 되면 폭발적으로 반응하는 거거든요. 분노 조절 장애를 겪고 있는 사람들을 정신 분석적으로 평가해 보면, 아마 다수가 자기애적 성격 장애나 자기애에 손상을 입은 문제를 갖고 있을 거라고 봐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부모가 조금 더 아이들하고 많은 시간을 보내고 돌봐줄 수 있도록 사회적으로 뒷받침해줄 수 있는 시스템이 있어야 하고요. 그것이 굉장히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라고 생각해야 돼요. 그런데 불행히도 아직 우리나라에는 그런 개념이 부족한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자기애적인 손상을 입은 사람들이 많아지고, 그럴수록 사회는 굉장히 불안해지고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기죠. 사회적인 낙오자가 된 사람들이 많아질 수 있고요.

 

병적 자기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자신을 너무 사랑할 것 같아요. 스스로를 굉장히 과대평가하는 거죠. 그런데 책에서 말씀하시길, 오히려 “어린 시절 자존감이 심하게 손상되는 경험을 겪으면서 생긴 무의식적 열등감이 원인인 경우가 많다”고 하셨어요.


일종의 방어죠. 일종의 열등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걸 절대 다른 사람들한테 들키고 싶지는 않은 거예요. 그러니까 자신은 굉장히 자신만만한 것처럼 잘난 척하고 센 척하는데 사실 마음속에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미숙한 자기 모습이 숨어 있는 거죠. 그걸 방어하기 위해서 마치 자신은 굉장히 센 사람처럼 행동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 거죠.

 

작가님께서는 특정 유전자가 공황장애 발병과 치료반응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최초로 밝혀내셨잖아요. 공황장애를 일으키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비율은 얼마나 되나요?

공황장애가 발생하는 데 여러 유전자가 관여할 거라고 봐요. 제가 발견한 건, 그 중 특정한 한 유전자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한테서 공황 장애가 훨씬 더 많이 생긴다는 건데요. 공황장애라는 건 자율신경계 이상과 관련된 병이에요. 특히 교감신경계의 기능이 일시적으로 과잉 활성화되는 게 공황장애라는 병인데요. 교감 신경계가 활성화될 때 나오는 대표적인 신경 호르몬이 카테콜아민이에요. 그리고 우리 몸에는 카테콜아민을 자동적으로 분해하는 효소가 있어요. 어떤 효소는 분해를 잘 하고 어떤 효소는 분해를 잘 못하는데요. 잘 분해하지 못하는 효소를 갖고 있는 사람은 잘 분해시키는 효소를 갖고 있는 사람에 비해서 몸 속의 카테콜아민 농도가 평균적으로 더 높겠죠. 공황장애와 관련해서 더 위험한 그룹이 되겠고요. 실제로 카테콜아민을 잘 분해시키는 효소를 가진 사람들과 못 분해시키는 효소를 가진 사람들의 분해 정도를 비교해 보면 3~5배 차이가 나요. 그런 연구 결과를 토대로 해서 특별한 유전자를 갖고 있는 사람들한테서 공황장애가 발병할 위험이 높아진다는 걸 보고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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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정결핍이 폭식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흔히 폭식증의 이유로 짐작하는 건 외모콤플렉스잖아요. 그런데 작가님께서는 “폭식증 환자들에게는 어릴 때 어머니의 심리적 부재 경험이 흔하다”고 하셔서 놀랐습니다. 폭식의 심리 기저에는 엄마와 하나 되고 싶은 마음과 엄마를 밀어내버리고 싶은 마음이 공존한다고 하셨죠.


폭식의 이유를 물어보면 허전해서,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런데 허전하다는 게 진짜 배가 고프다는 것과 꼭 같지는 않은 거거든요. 자세히 들여다보면 배가 고파서 먹는다기보다는 뭔가 정서적으로 속이 허한 느낌이 들어서 먹는 경우가 많아요. 단순히 배가 고파서 먹는 게 아니라 정서적인 허기를 채우기 위해서 먹는 거죠. 무의식적으로 배를 채워놓으면 정서적인 허기도 메꿔진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문제는 먹고 나면 금방 후회한다는 건데요. 병적인 폭식증의 경우 폭식과 함께 토해내는 행동이 동반돼요. 그런데 폭식증 환자들을 오랫동안 정신분석 하다 보면 이런 사례들이 굉장히 많아요. 애정결핍이 정서적 허기를 느끼는 원인으로 작용하는 경우인데요. 마치 엄마의 사랑으로 배를 채워놓으려고 하는 것처럼 음식을 허겁지겁 먹고, 이후에 조금 안심이 되고 나면 불안해지면서 자기 마음속에 있는 나쁜 엄마를 밖으로 던져버리는 것처럼 행동을 하는 거예요. 그 사실을 자기가 깨닫게 되면 그런 행동들을 덜하게 되거나 안 하게 될 수가 있게 되죠.

 

에필로그에서 “정신분석에 대한 요구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라고 하셨습니다. 일반 심리 상담이 아닌 정신분석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정신분석은 사람의 무의식을 탐색하기 때문에 일반 심리 상담에 비해서 훨씬 더 깊은 상담이라고 할 수 있거든요. 우리나라도 점점 더 깊은 수준의 상담을 원하는 사람들의 수요가 늘고 있어요. 흔히 정신분석은 국민소득 3만불 이상이 되어야 가장 크게 늘어난다고 하는데요. 어느 정도 경제적인 여건이 갖춰져야 한다는 거거든요. 그런데 우리나라도 이제 국민소득 수준이 3만불 정도가 됐고요. 그 정도가 되면 심리적인 문제 해결에 대한 지적인 요구도 조금 더 많아지고 관심도 많아져요. 그런 층이 두터워진다는 거죠.

 

“정신분석의 대중화”를 목표로 책을 집필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정신분석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가 깊어지면 어떤 변화들이 일어날 거라고 보시나요?


아주 원시적인 수준의 갈등의 틀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상대 때문이라고 투사를 해요. 그런데 실제 인간 사회의 모든 갈등을 깊이 들여다보면, 누가 일방적으로 잘못하는 경우는 드물고 대개는 쌍방의 문제가 있죠. 그런데 자기는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너무나 많아요. 그리고 다 남 탓을 하죠. 정신분석에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 중에 하나는 자기를 돌아보는 거예요. 정신분석 상담을 하다 보면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유도를 하거든요. 그래서 정신분석적인 자기 통찰이 인간관계 안에서의 갈등을 대하는 데 상당히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해요. 누군가 나를 자극해서 화가 난다면 ‘물론 저 사람도 잘못이 있지만 이렇게까지 화를 낼 필요는 없는데 왜 이럴까, 나의 열등감이라든지 자기애가 손상된 부분을 자극해서 더 화를 내는구나’ 하고 생각해볼 수 있게 되는 거죠. 그리고 사람들이 조금 더 자기를 많이 성찰할 수 있게 된다면 사회적인 갈등도 누그러질 거라고 생각하고요. 정신분석에 관심을 갖고 자기 내면에 관심을 갖게 된다면 사회적인 갈등의 고리를 푸는 데 단서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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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프로이트, 내 마음의 상처를 읽다유범희 저 | 더숲
저자는 정신분석학이 심각한 정신질환자나 반사회적 성격장애자에게만 적용되는 특수한 학문이 아니라, 우울 불안 공포증과 같이 우리 주변에 흔히 발견되는 문제를 가진 일반 대중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박재민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면 무엇이든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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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평균 370만 명의 기록적인 방문자수를 자랑하는 문화예술 블로그 ‘마이 모던 멧(My Modern Met)’에는 매일 세계 각지의 사진작가들과 그들이 찍은 사진에 대한 사연이 소개된다. 블로그 설립자 앨리스 유와 유진 킴은 <타임>에서 ‘2013년 가장 따뜻한 뉴스’로 꼽은 백혈병 소년 ‘배트키드’ 이야기나 암 투병 중인 아내의 웃음을 위해 분홍 튀튀(발레용 스커트)를 입은 남편의 사연 등 “나쁜 뉴스들로만 넘쳐나는 세상의 불균형을 바로 잡기 위해 보다 많은 이에게 소개할” 이야기를 골라내 책으로 엮었다.


한편 『사랑이 구한다』역자 박재민은 TV 프로그램 <출발 드림팀 시즌2>, <짝>, <섹션TV 연예통신>, 연극 <헤이그 1907> 등 여러 방면에서 얼굴을 알린 배우로 더 유명하다. 언뜻 생각하면 배우와 포토에세이 번역은 별 관계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책이 전하는 가치와 배우의 신념은 놀랍도록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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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도전한 번역


번역 작업은 처음이었나요?


네, 통역은 많이 해봤어도 번역을 통해 책을 출간한 건 처음이에요.


책을 처음 받고 기분이 어떠셨어요?


굉장히 영광스럽죠. 영어와 한국어 실력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보다 원문하고 조금 다른 단어여도 감정을 전달하는 단어를 찾는 데 공을 많이 들였습니다. 수백 가지 한국어 단어 중에 가장 적합한 단어를 골라 느낌을 오롯이 전달하는 과정이 재밌었어요.

 

번역하시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제목이 특히 번역하기 어려웠어요. 영어는 한 단어로도 문장이 그려지는 경우가 있는데, 한국어에 비슷한 단어가 없으면 풀어써서 문장으로 만들어야 했어요. ‘시한부 아빠의 마지막 신부 입장’이라는 소제목도 ‘신부 입장’이라는 단어가 국어 문법에 안 맞는 것 같아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포토에세이 책입니다. 사진을 전공하신 것도 아닌데 이 책을 어떻게 만나게 된 건지 궁금해요.


사진 찍는 걸 좋아해요. 장비도 많이 가지고 있고, 렌즈에도 관심이 많아요. 다른 사람의 사진을 찍어주는 것도 좋아하고요. 사진은 문자나 육성이 들어가는 게 아니잖아요. 인간이 사용할 수 있는 기호가 아무것도 없는데 시각적인 재료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사진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찍은 사람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했을까 생각하는 것도 매력적이고요.


포토에세이의 장점은 뭘까요?


책에 실린 25편의 에세이가 전부 다른 메시지를 주는데, 거기에 글이 첨가되면서 큰 감동이 와요. 사진에 관심 없는 사람이라도 이 사진에 푹 빠질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표지에 나온 튀튀 아저씨 사진도 참 독특해요. 어두운 초록빛, 파란빛, 흙빛 가운데서 유별나게 튀튀가 튀게 사진을 찍었단 말이죠. 이걸 보고 사람들이 웃는데 정작 아저씨는 웃지 않아요. 사진 하나로도 다양한 메시지를 느낄 수 있다는 게 포토에세이의 큰 장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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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의 베스트 에피소드를 꼽는다면요?


‘딸과 함께 다시 찍은 결혼사진’ 번역을 하다가 운 적이 있어요. 타이핑하는데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더라고요. 내가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 평생 옆에 있을 거라고 믿었던 사람이 같이 있던 공간에서 없어지고, 딸아이가 유산으로 남은 거잖아요. 나의 운명이자 인연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이제는 꼬마 아이로 남았다는 현실을 맞닥뜨렸을 때 이 남편의 감정이 어땠을까. 저는 결혼을 안 하고 애도 없지만 분명 저와 비슷한 또래의 남자일 거란 말이죠. 사진을 찍는 동안에도 힘들었을 수 있는데 그걸 극복하는 과정이 이 시대에 필요한 메시지가 아닐까 생각해요. 딸아이에게도 큰 재산이 될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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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겨 읽는 책 분야가 따로 있나요?


딱히 정해져 있진 않아요. 궁금한 걸 못 참는 성격이라 궁금한 게 생기면 관련 책을 바로 사요. 미국의 역사가 궁금하면 역사책을 사고, 문득 맥주가 궁금하면 관련 책을 보는 식으로요. 어느 특정 분야에 국한해서 읽고 있진 않아요.


번역하시면서 이 책처럼 만들고 싶었다는 롤모델 책도 있었나요?


없었어요. 연기할 때도 연기 들어가기 전에는 다른 작품을 잘 안 보려고 해요. 모방과 표절의 경계선에서 제가 길을 잃을 것 같아서 모티브 삼을 수 있는 건 배제하고 가려는 편이에요. 책도 작업하기 전에 비슷한 책을 일부러 읽지 않으려고 했어요.
 
책에서 사랑의 힘이 두드러집니다. 사랑의 힘이란 무엇일까요?


인간에게 많은 요소가 있지만 대표적으로 이야기하는 게 사랑이잖아요. 인간이 근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욕심이 소유인데, 사랑 앞에서는 항상 뭔가를 버려야 해요. 사랑하는 여자 앞에서 건국한 나라를 버리고, 내가 번 돈을 사랑 때문에 버리는 식으로요. 사유를 포기하는 유일한 장치가 사랑이라고 배워왔어요. 하지만 사랑은 위대하다기보다 아주 사소해서 잊고 사는 것 같아요. 제가 본 사랑은 공기처럼 주변에 항상 있지만,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판단의 가치라고 생각해요.


진정성이 에피소드를 관통하는 공통점이라고 하셨는데, 진정성이란 결국 사랑의 다른 말이 아닐까 싶었어요.


사랑을 구성하는 여러 요소 중 하나가 진정성이라고 생각해요. 오롯이 나의 모든 것을 다 열어젖히고 진심을 드러내잖아요. 사랑 앞에서는 유치해지고 싶고 부끄럽지만, 사랑하기 때문에 신경쓰지 않는 게 진정성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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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에서 영웅을 찾다


어렸을 때부터 위인전이나 영웅이 나오는 이야기를 좋아한다고 하셨어요.


어렸을 때부터 한 번도 부모님이 말씀하신 나쁜 걸 해본 적이 없어요. 담배도 나쁜 거라고 해서 안 폈어요. 그래서 그런지 항상 나쁜 것은 벌 받고 좋은 것은 승리하는 권선징악 이야기에서 큰 희열을 느꼈어요. 정의를 구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역시 나와는 다른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안중근이나 윤봉길 이야기를 들으면 불과 100년 전 사람들인데도 이 사람들은 뭔가 다를 거라고 느끼잖아요.


하지만 그분들이 나와 얼마나 달랐을까 생각해보면 그분들도 저와 같은 누군가의 친구고 누군가의 아들인 거예요. 나중에야 영웅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일반 사람들이 영웅적인 일을 하는 거라고 느꼈어요. 그래서 영웅전을 여전히 좋아하지만 그걸 읽으면서 받는 메시지는 조금 달라진 것 같아요.


책에 나오는 주인공들을 ‘영웅’이라고 칭했습니다. 작가님의 인생에서도 힘들 때 구해준 사람이 있었나요?

 

가장 먼저 부모님을 꼽고 싶어요. 연예계 생활을 하면서 혹독한 시련을 맞이한 적이 한 번 있었어요. 사실이 아닌 게 사실이 되어버리면서 마음이 굉장히 힘든 적이 있었는데 그때 조건 없는 사랑을 보여주셨던 분이 부모님이었어요.


결혼을 앞두고 TV 프로그램 <짝>에 출연했다는 비방성 기사가 나왔을 때 말씀이시군요.


네, 결혼한다고 말한 적이 없는데 결혼한다고 기사에 나오니까,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그럴 수 있는 일이었다고 생각하면서도 제 손을 떠나 버린 일이 된 거예요. 그런 일을 겪으면서도 부모님께서는 믿어주시고, 다 잘 될 거라고 기다려주셨어요. 그리고 영웅을 또 하나 꼽자면 저 자신을 꼽고 싶어요.


작가님 자신이요?


네, 이 책을 번역하면서 받은 중요한 메시지 중 하나에요. 요즘에 사랑이 없고 많은 사람이 남을 배려할 줄 모른다고 하는데 저는 반대로 생각해요.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못 배워서 세상이 각박해진 것 같아요. 나를 사랑할 줄 알아야 남을 사랑할 수 있잖아요. 경제적으로 힘들고 시간이 없다 보니 자기조차도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데 어떻게 남을 사랑하겠어요. 결국 남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자기를 오롯이 사랑해야 하는데 너무 많은 사람이 시스템 속에서, 쳇바퀴 속에서 휩쓸려 끌려간단 말이죠. 나를 이해하고 나를 사랑하는 훈련 과정에서 저 자신을 극복하는 좋은 요인이 되었던 것 같아요. ‘나’라는 게 자만심이나 자부심이 아니라 오롯이 저 자신을 경험할 수 있었다는 시간이라는 의미로요.


여러 매체에서 불심이 깊다고 나왔습니다. 종교가 실패의 경험을 잊는데 도움이 되었나요?


절대 불심이 깊은 게 아니에요. 절에 4년째 살고 있지만 법당에 잘 안가요. 종교도 결국 자기 자신과의 약속이자 철학이 되어야지, 맹목적인 믿음은 잘못하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이 인터뷰를 보면 스님께서 굉장히 실망하시겠지만(웃음) 우울증을 오래 앓고 있을 때 절에 거주한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된 건 하나도 없어요. 물론 스님과 좋은 말씀 나누고 두 칸짜리 방에서 힘든 생활 하면서 느낀 것도 많지만 결국 해답은 저에게 있더라고요. 절에 산다고 하면 안 좋게 보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기독교도 천주교도 다 좋다고 생각해요.


좋은 부모님 밑에서 좋은 대학을 나온 ‘엄친아’로 성공만 하는 삶을 살다 하나의 조그마한 사건으로 무너진 경험을 하신 거잖아요. 현재는 그런 실패가 와도 버틸 수 있을 것 같나요?


네, 확실히요. 조만간 또 고비가 닥치지 않을까 생각은 해요. 일반적이지 않은 사건을 겪으면서 연예인이라는 직업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됐는데, 저도 특별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고비를 극복하는 방법과 평소에 스스로 관리하는 방법을 많이 배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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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연기자라는 호칭을 늘 SNS에 붙입니다. 현충일과 같은 국가 공휴일을 챙기기도 하고요. 작가님의 애국심은 어디서 나오는 건가요?


미국에서 태어나서 유년기를 보내고 한국에 왔어요. 시골 동네에서 애들이랑 뛰어놀고 반딧불이랑 지렁이 잡으며 다녔는데 한국에 오니까 너무 도시화 되어 있고 공기도 안 좋고, 문화충격이 컸어요. 성인이 되어서도 한국을 거부했던 것 같아요. 그랬었는데 가족 중에 독립운동 한 분이 있다는 걸 알게 되고 한국사 수업을 들으면서 우리나라 역사가 많은 분의 희생으로 만들어진 나라라는 걸 알게 됐어요. 경복궁만 해도 몇십 년 전까지 왕이 살던 곳인데, 희생을 통해 제가 그 자리에 있는 거잖아요. 내가 사는 이 나라가 정말 대단한 나라구나, 숭고한 희생을 통해 지금 수준까지 올라온 나라임을 느끼면서 역사 공부를 많이 했어요. 누가 주입한 것도 아니고 누구한테 드러내기 위한 것도 아니에요. 젊은 사람으로서 선배들에게 감사하다고 말하는 게 애국심인 것 같아요.


비보이 댄서, 강의, 방송인, 배우, 번역가 등 여러 가지 일을 넘나드는 게 힘들진 않나요?


원래부터 글쓰기를 좋아했어요. 비보이 관한 칼럼을 많이 써서 크게 어렵진 않았지만 이번 책은 논리적으로 이론과 근거를 대는 글쓰기였다기보다 감동을 주는 글이기 때문에 색달랐죠.


번역하면서도 연기 일정이 있었을 텐데요.


SBS 일일드라마 <내 사위의 여자>를 찍는 중에 이 책이 너무 재밌어서 대기실에서 대본은 안 읽고 계속 책을 읽고 번역을 한 적이 있어요. 감독님께 굉장히 죄송합니다. 하여튼 촬영 다니면서도 계속 노트북 들고 다니면서 번역 작업하고, 애착이 가는 책이었어요.


번역 말고 본인만의 책을 쓰고 싶은 생각도 있나요?


출판사에 먼저 제안해서 쓰고 있는 원고가 있어요. 여행이랑 사진을 좋아하니까 수필 같은 여행 사진집을 내고 싶어요. 정확한 건 말하면 안되니까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웃음)


글쓰기도 글쓰기지만, 배우로서도 연기를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것 같아요.


배우도 결국에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직업이잖아요. TV 매체를 활용하는 연기에만 엔터테이너란 직업이 한정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면 그게 봉사활동이 될 수도 있고, 책 한 권을 쓰는 일이 될 수도 있고, 사진 한 장이 될 수도 있고요. 여러 가지 의미에서 대한민국 연예인으로 제 삶을 설정하고 있어요. 물론 연기로 많은 분께 인사를 드리고 감동을 주는 것도 좋지만, 기회가 된다면 거기에 국한하지 않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대중과 호흡하면서 각박한 삶에서 잊고 지낼만한 감정을 회생시키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순위를 매기기는 힘들겠지만, 작가님이 감동을 줄 방법 중 가장 잘하는 방법은 뭘까요?


현재는 연기예요. 물론 많은 경험이 쌓이면 어느 때는 책이 될 수도, 그림이 될 수도 있겠죠. 지금은 연기가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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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 감동을 주는 사람


근황이 궁금합니다.


대학원 다니면서 드라마랑 광고도 찍고, 강의도 하다 보니까 모든 일이 겹치면서 이번에 석사 논문에 불합격했어요. 그래서 대학원은 수료했지만 요새 도시 정책에 관한 논문을 쓰고 있어요.


도시문화정책을 공부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고등학교 때부터 스포츠 정책을 하고 싶었는데, 대학원에 진학하려고 보니까 스포츠 정책을 배우는 과가 없는 거예요. 고등학교 때 5년, 10년 후면 블루오션이 되겠다 싶었는데 블루 오션이 아니라 아예 오션 자체가 형성이 안 되더라고요. 스포츠 정책만으로는 너무 작은 학문이라 포괄적으로 공부하는 문화정책을 위해 행정대학원으로 진학했어요.


하시는 일이 많잖아요. 작가님만의 우선순위나 시간 분배 방법이 궁금합니다.


시간 낭비를 안 하는 편이에요. 술,담배도 안 하고 연애도 안 한 지 조금 됐어요. 대학원 논문 공부, 촬영, 운동 등 여러 가지 일과가 있잖아요. 보통 사람들은 업무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이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시간으로 여가가 필요한 건데, 저는 모든 일이 서로 보상작용을 해서 여유 시간이 필요 없어요. 촬영하면서 받은 스트레스는 글로 풀고, 글쓰기 스트레스는 운동하면서 풀고, 운동 스트레스는 또 촬영하면서 풀어요. 어떤 분은 일 너무 많이 하는 거 아니냐, 언제 노느냐 하는데 저는 매일 노는 거고 모든 일이 재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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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춤은 안 추세요?


얼마 전에 <남남북녀> 2주년 콘서트 때 비보이팀이랑 같이 무대에 올라갔고, 가끔 추고 있어요. 그런데 이제는 몸이 안 돌아가서요.


비보잉으로도 유명하신데, 춤을 계속하고 싶다는 생각은 없나요?


비보이인데 춤을 안 추면 어떻게 비보이 커리어를 계속할 수 있나 질문할 수도 있는데, 비보이 문화는 외형적인 춤도 중요하지만 비보잉의 역사, 팀을 운영하는 경영 능력, 팀을 가르치는 교수법, 교육학 등 여러 가지 내면적 소양도 중요하거든요. 여전히 비보잉에 욕심이 있고, 굳이 춤을 추지 않더라도 그쪽으로 꾸준히 경력을 쌓아나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앞으로 작가님의 욕심은 무엇인가요?


목표나 욕심이라기보다 누군가 박재민 씨의 인생이 뭐냐고 묻는다면 삶은 ‘추억 만들기’라고 정의하고 싶어요. 지금은 너무 힘들어도 나중에 돌아봤을 때 웃을 수 있는 일이라면 무조건 ‘Go’ 하거든요. 앞으로 목표는 더 많은 삶의 추억을 만들어서, 나중에 결혼하고 자식들과 이 좋은 것들을 공유하면서 좋은 유산을 남기고 싶어요. 글이든 연기든, 논문이든 강의든지요.

 

 

댓글로 박재민 배우를 응원해주세요! 추첨을 통해 한 분에게 박재민 저자가 직접 싸인한 증정본 책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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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구한다앨리스 유,유진 킴 공저/캠브리아 그레이스 사진 /박재민 역 | 공명
최고의 방문자수를 기록해온 문화예술 블로그 [마이 모던 멧]이 7년간 찾아 모은 ‘이 시대 가장 감동적인 사랑 이야기 25’ 행복이 특별한 것에서 찾아지지 않듯, 때로 사랑의 위대한 힘도 보통사람들이 오직 사랑의 힘으로 이루어낸 소소하지만 특별한 일들에서 더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강유석 “중고차 팔기 전에 수리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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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석의 착한 중고차』는 중고차시장에 가기 전에 꼭 한 번 읽어봐야 할 책이다. 중고차를 구입하려는 사람과 타던 차를 판매하려는 사람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알짜 정보가 가득하다. 중고차를 저렴하게 매매할 수 있는 시기와 방법부터 중고차를 살 때 확인해야 할 부분들, 허위매물과 미끼매물을 가려내는 방법, 제 값 받고 팔 수 있는 차로 관리하는 비법까지 소개한다.

 

책의 저자는 XTM의 프로그램 <더 벙커>의 공식 딜러로 활약한 강유석 씨. 10여 년 동안 중고차시장에서 딜러로 활약해 온 그는 자동차전문평가사, 국가 공인 자동차진단평가사 자격을 취득하며 ‘국내 중고차 전문가 1호’라는 호칭을 얻었다. 중고차 매매업체 ‘착한차집’을 운영하며 직원들에게 자동차진단평가사 자격 취득을 필수 조건으로 내걸기도 했다. 딜러라면 자동차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어야 하고, 그 내용을 고객에게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중고차 딜러로서 그가 느끼는 책임감은 책 속에서도 드러난다. 중고차시장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어떻게 바꾸어나갈 수 있을지, 고민한 흔적들이 빼곡하다. 그 안에는 중고차시장의 생리에 대한 설명이 담겨 있다. 이를 통해 독자들이 착한 딜러와 나쁜 딜러, 착한 중고차와 나쁜 중고차를 구별할 수 있는 감각을 기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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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차를 사느냐보다 누구한테 사느냐가 더 중요하다


“차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20대 여성이 혼자 중고차를 사러 가도 문제 없이 좋은 차량을 구입할 수 있도록” 돕는 책을 쓰고 싶으셨다고요.


차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르는 분들이 이 책을 보시고 맥락을 짚은 후에 중고차시장에 가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면 딜러가 나한테 제대로 설명해 주고 있는지 아닌지 제대로 보이거든요. 그래서 최대한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풀어서 썼죠.

 

중고차시장이나 중고차 딜러에 대한 오해와 편견도 집필을 결심하신 이유였을 것 같아요. 어떠셨나요?


예전에 한 고객이 그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집 다음으로 큰 금액의 계약을 하는 거라 떨린다고요. 그때 제가 판매하는 물건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고, 뭔가 바뀌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중고차시장도 부동산시장과 같은 맥락의 시장이고 금액도 엄청나잖아요. 그런데 중고차딜러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보니, 중고차시장이 스스로 성장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누구나 와서 일할 수 있다는 게 잘못됐다기보다, 뭔가 진입장벽이 있어야 시장 자체가 깨끗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커요. 그리고 저는 어느 정도는 시장과 소비자의 수준이 같이 간다고 생각하거든요. 저희처럼 아는 사람이 볼 때는 말도 안 되는 금액인데 소비자는 잘 모르니까 그런 매물에 접근할 때가 있잖아요. 그렇다 보니까 서로 악순환을 반복하게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안 좋은 방법으로 일을 하는 사람들은 전체 딜러의 10~20% 밖에 안 되거든요. 그런데 그들의 매출이 워낙 높아요. 그러니까 당하시는 분들도 많고 시장 전체가 안 좋게 보이는 거죠. 곪은 곳은 아프더라도 수술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정당한 방법으로 판매해야 중고차시장이 건강해지고 손님들이 찾아오실 거라고 생각해요.

 

안 좋은 방법으로 중고차를 판매하는 딜러들의 실적이 좋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 친구들이 통화하는 걸 들어보면, 저라도 만나러 갈 것처럼 이야기해요. 예를 들면, 손님이 ‘이 차는 왜 이렇게 싸요?’라고 물어보면 경매에서 낙찰을 받았다는 등의 이야기를 해요. 그래도 손님이 ‘경매에서 그렇게 낙찰 받을 수 없다던데...?’ 하고 ‘저렴한 차 찾으시는 거 아니에요? 그렇게 의심하실 것 같으면 그냥 비싼 차 사세요, 저는 안 팔아도 돼요’라고 말하는 거죠. 그리고 한 번 와서 보시는 게 뭐가 어렵냐고, 만약 실제로 그 차가 없으면 왕복 교통비와 보상금을 드린다고 말해요. 그러면 손님은 속는 셈 치고 가보자고 생각하게 되죠. 오신 후부터는 별의별 일들이 생기는 거고요.

 

그런 불량 딜러들에게 속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방법은 없어요. 가격이 너무 싸다고 생각되시면 전화를 안 하시는 게 방법이에요. 오히려 제일 비싼 차의 가격을 깎아서 살 생각을 하시는 게 나아요. 아니면 제대로 된 금액대에서 찾아보셔야죠. 일단 전화를 하시면 혹하실 수밖에 없어요. 흔히 허위 딜러라고 하는 그 친구들은 음성이나 말투가 너무 차분해요. 믿음직스럽게 이야기하고요. 그리고 차에 대한 교육도 엄청나게 받기 때문에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정말 차를 잘 아는 딜러라고 생각하게 돼요.

 

‘중고차 시장에서는 믿을만한 딜러를 만나기 어렵다’는 생각은 뿌리 깊은 오해 중 하나일 텐데요. 현장에서 체감하실 때가 있나요?


그럼요. 제가 운영하는 업체에는 조금이라도 믿음을 가지고 접근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세요. 그런데 다른 업체의 경우에는 처음 보는 사람한테 맡겨야 하는 거니까요. 거기에서 비롯되는 불안감이 제일 크다고 봐요. 저는 늘 ‘어떤 차를 사느냐보다 누구한테 사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이야기해요. 소비자는 차가 마음에 들면 딜러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을 하지 않는데, 저는 조금 다르게 생각해요. 차에 대한 내용을 정확하게 설명해 주는지를 중점적으로 봐야죠. 번지르르한 차에 혹해서 사시면 다시는 중고차 안 산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후회를 하실 수 있어요.

 

중고차 딜러에 대한 불신은 왜 생겨난 걸까요?


열심히 하려는 딜러들이 생각보다 많아요. 그런데 찾기가 어려우실 거예요. 왜냐하면 허위 매물을 판매하는 사람들이 한 달에 광고비를 몇 천 만원씩 써요. 광고가 쉽게 노출되는 매체는 다 그들이 섭렵하고 있으니까, 혼자서 열심히 하려는 친구들이 끼어들지 못하는 거예요. 그래서 계속 악순환인 건데요. 직접 만나보시는 방법 밖에 없는 것 같아요. 처음에 갖고 있었던 의심을 점점 줄어들게 만드는 사람을 찾으셔야죠. ‘뭔가 미심쩍은데 차는 마음에 드니까’ 구입하시지는 말라는 거죠. 그 차는 다른 딜러한테도 살 수 있어요. 부동산처럼 매물이 다 공유가 되거든요.

 

좋은 딜러를 알아볼 수 있는 방법도 있을까요?


차를 팔기 위한 말만 계속 하는지, 아니면 소비자 입장에서 같이 차를 골라주는지 생각해 보세요. 이 차는 정말 좋아요, 문제 없을 거예요, 제가 보증할게요, 등등 팔기 위한 멘트들을 자꾸 하는 딜러는 피하시는 게 좋아요. 소비자와 같이 차를 고르는 딜러라면 내가 이 차를 산다면 이런 부분을 고치겠다, 나라면 이 차는 안 사겠다, 그런 말들을 하겠죠. 정직한 딜러, 착한 딜러는 이윤이 적게 남더라도 제대로 된 차를 팔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딜러 본인이 판단했을 때 이 차는 팔아도 괜찮겠다고 생각되는 차를 팔아야 하고, 팔아도 문제가 안 생기게끔 수리도 해줘야 하는 거죠. ‘내가 조금 덜 벌더라도 나중에 문제되지 않는 차를 팔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제대로 된 딜러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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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차, 비싸다고 좋은 건 아닙니다


‘물건을 모르면 값을 많이 줘라’는 말이 있잖아요. 중고차시장에도 해당될까요?


아뇨, 지금은 안 돼요. 어떤 사람이 중고차시장에 차를 내놓으면서 ‘내 차는 사고도 있고 주행거리가 많으니까 조금 낮은 가격에 내놔야지’ 생각할 수도 있어요. 그러면 그게 시세가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만은 않아요. 그런 차만 찾아서 더 비싸게 파는 안 좋은 딜러들이 있거든요. 더 많은 수익을 남길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차마다 감가율이라는 게 있어요. 기본적으로 출시되고 나서 1년 미만의 차들은 신차 금액의 15~20% 정도가 마이너스 되고 팔린다고 보시면 돼요. 이걸 기준으로 계산을 하시면 얼추 가격을 아실 수 있고, 거기에서 100만원 혹은 200 안팎의 차이만 생각하세요. 그 예산 범위 안에서 믿을 수 있는 딜러를 만나서 구입하시면 돼요. 평균적인 가격보다 비싸다고 해서 좋은 차라고 생각하시는 건 맞지 않아요. 중간에서 딜러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거니까요.

 

책에는 ‘중고차를 구입할 때 확인해야 할 부분들’도 실려 있는데요. 빠른 시간 내에 확인 가능한 부분이 있다면 어디일까요?


사실은 그런 걸 딜러가 해줘야 하는 거예요. 소비자가 찾는 차종을 알려줬을 때 한 대만 보여주고 ‘정말 이런 차 없습니다, 다 좋잖아요’ 하고 팔려는 딜러보다는 소비자가 마음에 들어 하더라도 ‘한 대 더 보시죠’ 하고 두세 대 정도를 비교해 주고, 그 중에서 제일 나은 차를 객관적으로 이야기해줄 수 있는 딜러를 만나야 믿고 맡길 수 있죠.

 

그런 딜러를 만나지 못했다면, 어떤 부분을 확인해 봐야 할까요?


제일 중요한 건 엔진과 미션이잖아요. 제일 좋은 방법은 차를 정비소에 가져가서 진단을 받는 건데, 요즘은 그런 서비스를 해주는 딜러들도 많아요. 그러니까 의외를 하셔도 되고요. 대부분은 안 해주니까, 스스로 알고 싶으시다면, 엔진 소리를 들어보세요. 차마다 소리가 조금씩 다를 거예요. 동일하게 똑같이 소리를 낸다면 다 문제가 없는 차고요. 그 중에 분명 이상한 소리를 내는 차가 있을 거예요. 엔진의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운 걸 확인하는 방법은 일차적으로 소리밖에 없어요. 미션 상태를 확인하시려면 후진, 전진, 중립으로 기어를 변속해 보면서 느껴보세요. 어떤 차나 기어를 변속할 때 울컥울컥거리는 충격이 있는데요. 동종의 차를 두세 대 시험해 보시면 부드럽고 격한 느낌의 차이가 있을 거예요. 그리고 엔진룸을 둘러보시면 누유 흔적은 눈으로 쉽게 보여요. 그걸 찾는 액션만 취하셔도 딜러가 차를 조금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거예요. 그때부터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보고도 판단을 하실 수 있겠죠. 이렇게 세 가지 정도만 확인하시면, 나머지는 수리를 한다고 해도 큰 돈이 들어가는 건 아니에요.

 

“운전 경험이 없는데 심지어 사회 초년생이라면 절대 신차를 권하고 싶지 않다”고 하셨어요.

 

무조건 중고차가 좋다기보다, 저는 지인들에게는 절대 첫차의 가격을 200만 원대를 넘기지 말라고 말해요. 그런 차를 구입해서 1년 정도 탄다고 생각하시면 크게 감가가 될 수 없거든요. 감가된다고 해도 50~100만 원이에요. 보험료도 굉장히 저렴하고요. 면허를 딴 지 얼마 안 돼서 처음 차를 사시는 분은, 차에 따라서 다르긴 하지만, 보험료가 상당히 높아요. 그런데 200만 원대의 중고차를 사시면 다른 차를 사셨을 때보다 절반 혹은 30~40%는 보험료가 저렴해져요. 그리고 제가 봤을 때 1년 동안 사고가 날 확률은 99.9% 거든요. 그러니까 어차피 이건 연습용 차라는 생각으로 1년만 버티시고 돈도 모으시라는 거죠. 그러고 나서 새 차를 사시든 중고차를 사시든 그건 본인의 선택인데, 그때도 저는 새차보다는 중고차가 낫다고 말씀 드려요. 출시된 지 1년 정도 된 차들은 신차 가격 대비 15~20% 정도 저렴하고, 취등록세를 비롯해서 각종 세금도 20% 정도 저렴해요. 보험료도 저렴하고요. 그리고 요즘 대부분의 제조사들은 3년에 6만 km 정도는 AS가 가능하기 때문에, 2년 정도는 마음 편하게 타실 수 있어요.

 

중고차 시장에도 성수기와 비수기가 있다고요. 차를 살 때와 팔 때, 가장 좋은 시기는 언제인가요?


12~2월은 조금 비수기예요. 그때 차를 사시는 게 유리해요. 차를 파실 때는 휴가철을 앞둔 6~7월이나 사람들이 많이 사려고 할 때 파시면 좋은 값을 받으실 수 있죠. 말씀 드린 건 전반적인 흐름이고요. 차의 종류에 따라서 달라지기는 해요. 생계형 차량은 봄부터 많이 판매가 되고요. 지금은 컨버터블이나 냉동 탑차 같은 것들이 많이 판매될 때예요.

 

중고차는 옵션이 있을 때 더 가치를 인정받는다고 하셨어요. 특히 파노라마 썬루프와 스마트 키를 갖추고 있다면 차량 가격을 더 받을 수 있다고요.


맞아요. 그런데 차를 교환하는 주기나 사용 기간에 따라 달라져요. 거의 대부분의 중고차가 그렇다고 보시면 되는데요. 대부분 3~5년 정도 타신다고 봤을 때, 차를 바꾸는 주기가 짧은 분들은 옵션이 많은 차를 사시는 게 좋고요. 주기가 긴 분들은 깡통차(옵션이 거의 없는 차량)를 사시는 게 나아요. 출고된 뒤부터 1~3년까지는 옵션이 많이 있는 차를 더 비싸게 파실 수 있어요. 신차에서 중고차로 넘어가는 황금기, 그러니까 3년 안에 차를 바꿀 것 같다고 하시면 옵션이 많은 차를 사시는 게 좋고요. 차를 폐차할 때까지 타실 거라면 깡통차가 좋은데,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에서만 해당되는 얘기예요. 10년 뒤에 차의 가치를 따지는 건 의미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타시는 동안 많은 옵션들을 사용하실 거라면 정말 필요한 옵션만 넣어서 타시면 돼요.

 

특이한 색상의 차는 같은 조건이라도 더 저렴하게 살 수 있다고 알려주셨잖아요. 그렇다면, 차를 계속 바꾸시는 분들은 특이한 색상의 차를 사시는 게 좋을까요?


아니에요. 거꾸로 생각하시는 게 나아요. 1년 뒤에 차를 바꾸신다고 가정해 보면, 사실 때는 다른 차들보다 더 저렴하게 사셨으니까 이익이지만 판매할 때는 그 이상 저렴해져요. 특이한 색상의 차량이니까요. 마음에 드는 차량의 색이 특이하고 10년 이상 타실 계획이라면, 그럴 때는 저렴하게 사실 수 있겠죠. 10년 뒤에는 차량 가격이 색상과는 크게 상관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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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차 수리해서 판매하면 바보


차를 팔기 전에 사고 났던 부분을 전부 수리하시려는 분들도 계실 텐데요. 책에서 “싹 수리를 해서 판매하려는 사람은 바보”라고 하셨어요.


그렇죠. 차 안의 기름도 남기지 말고 다 쓰시고 파세요. 남은 기름은 차량을 사 가시는 분이 쓰시는 건데, 그게 차 값에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하지 않아요. 그런데 파시는 분의 입장에서는 아깝죠. 수리도 마찬가지에요. 얼마 전에 새 타이어로 교체하셨다고 해서 그만큼 값을 더 받을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예를 들어서 차가 고장이 나서 움직일 수 없을 때, 그때 판매하시는 것도 현명한 거예요. 다 수리해서 파실 생각은 하지 마세요. 개인적으로 수리를 맡기셨을 때의 비용보다 저희가 매입해서 수리할 때 드는 비용이 더 적거든요. 200만 원을 주고 수리한 차를 1000만 원에 파실 수도 있지만, 수리비용을 50만 원으로 책정한 딜러한테 950만원을 받고 파실 수도 있는 거예요. 타이밍 벨트 같은 부분이 수리비용이 가장 비싼 소모품인데, 일반적으로 50~100만 원 정도 나와요. 그런데 저희가 고치면 20~60만 원선이에요. 부품이 달라지는 건 아니고 공임비에서 차이가 나는 거예요. 판금도색도 마찬가지예요. 소비자들은 한 부위 당 15~20만 원선에 수리하지만 저희는 반값 정도, 아니면 2/3정도에 고칠 수 있어요. 그러니까 고장이 나거나 사고가 난 부분은 무조건 수리하지 마시고 파세요.

 

간단한 접촉사고가 났을 때, 성능상태점검기록부에 무사고로 체크되게 하는 방법도 있던데요.

 

접촉사고가 났을 때 보험회사를 불러서 수리를 맡기잖아요. 그럴 때 수리하는 업체에서는 찌그러진 철판을 새 걸로 교체해서 도색하면 편해요. 비용도 많이 받을 수 있어요. 그런데 찌그러진 부분을 다 펴서 복원하면, 시간도 많이 들고 더 힘든데 보험회사에서 받는 돈은 더 적어요. 그러니까 무조건 교환을 하려고 하겠죠. 그런데 중고차시장에 나오면 가치가 엄청 달라져요. 판금만 한 차는 성능상태점검기록부에 사고이력이 나오지도 않아요. 그래서 저는 차 사고가 난 사람한테 ‘보험회사와 정비소에 연락해서 교환하지 말라는 얘기를 하라’고 해요. 꼭 교환을 해야 되는 상황이 아니라면, 판금 도색으로 하라는 거죠. 5년~10년 정도 된 차들은 교환을 하든 판금을 하든 가격 차이가 크지 않아요. 그런데 3년 미만이나 5년 미만이라면 한 군데 교환한 것 가지고 몇 십만 원씩 차이가 나거든요.

 

<더 벙커>는 중고차를 튜닝해서 경매에 붙이는 방식으로 진행되잖아요. 중고차 딜러로서 사람들이 원하는 차, 인기 있는 튜닝 스타일을 알게 되셨을 것 같아요.


튜닝이라는 것 자체가 굉장히 개인취향에 영향을 받죠. 그래서 늘 호불호가 갈려요. 중고차를 다루는 사람 입장에서 제가 생각하기에는, 개인의 취향에 맞는 튜닝을 하고 싶으면 팔 때를 생각하지 말고 해야 돼요. 예를 들어서 정말 비싼 바디 킷을 장착하셨다면 ‘팔 때 반값은 받겠지’라는 생각은 절대 하시면 안 돼요. 개인적인 취향이나 성향에 따라 달라지는 거라서, 튜닝은 자기만족을 위해서 하시는 게 좋아요. 튜닝도 하고 차를 팔 때도 가치를 보전할 수 있는 튜닝이 몇 가지가 있기는 해요. 대표적인 게 신형 버전으로 페이스 리프트를 하는 거고요. 실용성, 편의성 위주의 업그레이드도 좋아요. 그리고 요즘 판매되는 수입차의 경우에는 워런티를 연장시켜주는 상품들이 있거든요. 그런 것도 좋죠. 소비자도 그런 차를 먼저 사니까요. 퍼포먼스와 관련된 튜닝은 순수하게 개인 취향이기 때문에 가치를 보전하기는 힘들어요. 그럴 때는 부착했다가 팔 때 떼어낼 수 있는 업그레이드를 하세요. 휠 같은 경우가 그렇죠. 순정 휠을 가지고 계시다가 팔 때 끼워 놓는 거예요.

 

<쿨까당>, <법대법> 등 다수의 프로그램에 출연하셨어요. 방송 출연을 하시면서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출연을 결심했던 첫 번째 이유는 제가 알고 있는 정보를 알려드릴 수 있다는 점 때문이었어요. 두 번째는, 방송을 보고 저를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신 분들이 찾아오시면 매출로 연결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고요. 그런데 제가 몰랐던 세 번째가 있더라고요. 억울한 게 정말 많아요. 예를 들면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시는 분들이 간혹 계시는 거예요. 그런데 그런 요구들을 어쩔 수 없이 다 들어드려야 돼요. 조금 알려진 업체이고 유명한 사람이기 때문에. 1년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 한 일들이긴 하지만 억울하긴 해요. 솔직히 제 상식으로는 저희가 해드릴 수 있는 최선은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이상의 것들을 요구하시는 분들이 계시는 거죠.

 

연식이 오래됐지만 주행거리는 상대적으로 짧은 차량과, 연식은 얼마 안 됐지만 주행거리가 비교적 긴 차량이 있다고 가정해 볼게요. 더 비싼 값을 받고 중고차시장에 팔 수 있는 차는 어떤 건가요?


매입하는 딜러가 어떻게 이야기를 하고 매입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지기는 해요. 제 개인적인 생각일 수 있는데, 너무 주행 거리가 짧아도 차가 좋지는 않아요. 제가 연식이 7년에 주행거리가 2만km밖에 안 되는 차량을 매입한 적이 있는데요. 차를 가지러 갔더니 차 바깥에 거미줄이 쳐져 있더라고요. 배터리 점프를 해도 시동이 안 걸려서 겨우 가져왔어요. 상품화 작업을 한 후에는 좋은 금액에 판매됐지만, 그런 차가 좋은 것만은 아니에요. 그렇지만 저는 주행거리를 중점적으로 봐요. 3년 된 10만km 차와 4년 된 5만km 차가 있다면, 저는 후자를 선택하라고 해요. 왜냐하면 연식이 많은 차량들은 관리가 잘 되지 않은 경우가 많거든요. 주행거리가 많아질수록 관리해야 될 것들이 많아지는데 그대로 관리하시는 분이 많지 않아요. 물론 관리가 잘 된 차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고 보시면 돼요. 똑같은 모델인데 1~2년 정도 연식이 차이 난다면, 주행거리가 더 적은 차를 조금 더 저렴하게 사는 게 좋다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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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 사고 차량, 알고 보면 ‘득템’


차를 제 값 받고 판매하려면, 평소 어떻게 관리해줘야 할까요?


하셔도 소용없는 것부터 말씀 드릴게요. 고급 휘발유랑 합성유로만 5천km에 한 번씩 관리해줬다고 해서 차 값을 더 받을 수 있는 건 아니에요. 그것도 어떻게 보면 자기 만족이에요. 물론 엔진 상태가 더 좋을 수 있고, 관리를 잘 한 차라는 부분으로 어필하실 수는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런 이유로 가격을 더 받기는 힘들어요. 거꾸로 이야기하면, 딜러 입장에서는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도 없잖아요. 보통 딜러가 소비자를 속인다고 생각하지만 소비자도 딜러를 속이는 일이 많아요. 사고가 있었던 차량인데 없었다고 하는 식이죠. 차 값의 손해를 줄이시려면 사고를 내지 않는 것, 그리고 주행거리를 늘리지 않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사항이에요. 웬만하면 지하주차장을 이용하시는 게 좋고요. 햇빛 아래 오래 서 있었던 차는 지하에 있었던 차랑 확연히 다르거든요. 차의 색상도 그렇고, 내구성도 떨어져요. 그리고 소모품들을 제때 교환해 주시는 게 가장 좋아요.

 

단순 사고 차량은 큰 문제도 없으면서 싸게 살 수 있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어디까지를 단순 사고로 봐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차량에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 사고의 유형이 있나요?


트렁크 리드, 보닛, 문, 펜더 같은 부분들은 교체가 돼도 크게 문제가 안 돼요. 차체(프레임)에 얹어있는 부분들이거든요. 차체에 손상이 갔다면 사고라고 보고요. 그런 차들은 구입을 피하시는 게 좋아요. 사실 1년 이내에 단순 교환 이력이 있는 차들은 감가율이 엄청 커요. 특히 고급차, 수입차일수록 더 그래요. 1년 미만의 AS가 가능한 차를 원하시는 분들은 새 차 같은 차를 원하시는 거거든요. 그래서 단순 교환도 싫어하세요. 딜러가 차를 매입할 때도 감가할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런데 제가 볼 때는 그런 차가 ‘득템’이에요. 단순 교환 됐다고 해서 차에 문제가 있거나 AS가 안 되는 게 아니거든요. 가볍게 긁힌 자국도 보험 처리 요청하면 교환될 수도 있는 거예요. 그런 차는 저렴하게 사서 3~5년 정도 타면서 AS도 받을 수 있죠. 더 대박인 건 3~5년 뒤에 차를 팔 시점이 되면 단순 교환된 차들이 많아요. 많이 감가가 되지 않는 거죠. 다른 차들이랑 비슷한 값에 팔 수 있는 거예요. 믿을 수 있는 딜러를 만나서 이런 차를 구입하시면 정말 ‘득템’하시는 거죠.

 

또 다른 경우도 있을까요?


예산이 적으시다면 차량 뒤쪽에 사고가 난 차도 싸게 사실 수 있어요. 이런 사고는 차량 결함과는 크게 상관이 없다고 볼 수 있고요. 후륜 구동 차량에는 해당이 안 되지만, 전륜 구동 차량은 뒷부분에 중요한 장치가 거의 없어요. 뒤쪽에 사고가 나서 생기는 문제라고 하면 트렁크에 물이 새는 경우가 있을 수 있는데, 그런 게 아니라면 크게 문제될 게 없어요. 그런데 요즘은 수리나 정비 기술이 좋아서 그럴 일은 거의 없어요. 뒤쪽에 사고가 난 차들은 시운전을 하실 때 뒤쪽에 소음이 있는지 체크해 보셔야 돼요.

 

독자들이 『강유석의 착한 중고차』를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까요?


차를 매매하실 때 이 책이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게 첫 번째 바람이고요. 두 번째는 중고차 시장에서 딜러로 일하는 데 있어서 진입장벽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공인중개사처럼 자격 제도가 도입이 돼서 중고차 딜러도 책임지고 팔 수 있는 제도적인 개선이 됐으면 좋겠어요. 판매업체도 지금의 등록제에서 허가제로 바뀌었으면 좋겠고요. 지금 상황을 보면 중고차 시장이 수술대 위에 올라가야 할 것 같아요. 아프고 힘들더라도 곪아있는 부위를 도려내고 제도적으로 안정돼야 시장이 깨끗해질 것 같아요. 소비자들도 이런 책 없이도 편하게 중고차 시장에 가고, 아무 딜러나 만나서 거래를 할 수 있을 거고요.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는 게 개인적인 바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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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유석의 착한 중고차 사전강유석 저 | 42미디어컨텐츠
《강유석의 착한 중고차》는 국가 공인 자동차진단평가사 자격을 취득하여 ‘국내 1호’ 중고차 전문가로 불리는 강유석이 중고차 시장에서 직접 딜러로 활동하며 얻은 중고차 시장의 모든 지식을 총망라한 책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전승환 “사람들이 위로받기를 원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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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글 속에서 사람들이 위로와 공감을 받길 바라며 만든 SNS 계정이 있다. <책 읽어주는 남자>라는 이름으로 꾸준히 글을 올리던 계정은 점점 인기를 얻으면서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인스타그램 등에서 매주 100만 명이 넘는 독자가 보는 책 소개 채널이 되었다.


<책 읽어주는 남자>의 에디터이자 작가인 전승환의 『나에게 고맙다』는 공감의 글이 주를 이룬다. 어쩌면 흔한 말이지만, 정작 자신에게는 한 번도 건네지 못했던 “고마워”, “괜찮아”, “오늘도 수고했어” 같은 위로와 감사의 표현이 담겨 있다. “내가 쓰고 싶은 글보다는 독자들이 읽어서 위로를 받는 글”을 더 쓰고 싶다는 전승환 작가는 읽은 책마다 좋은 구절을 꾸준히 모은 다독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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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쌓이면서 ‘책 읽어주는 남자’가 되다


<책 읽어주는 남자>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오래 전부터 좋은 글을 가지고 싶고, 또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 자신이 책의 글귀로 많이 치유받기도 했고, 행복했던 기억이 강해서 책을 읽고 발췌한 글을 개인적으로 페이스북에 올리기 시작했죠. 사람들이 많이 공감했기에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게 아닐까 싶어요.


다른 에디터분들도 있나요?


많지는 않아요. 다들 ‘책 읽어주는 남자’ 말고도 각자 본업이 있고, 취미로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여 만든 거라서요. 친한 친구도 있고, 아내도 에디터로 활동하고 있어요.


일하는 방식이 궁금해요. 요일마다 다른 사람이 올리는 건가요?


다들 생계로 하는 일이 있어서 시간이 될 때 몰아서 글을 뽑아요. 그중 예약을 걸어서 올려 놓고 시간과 그 날 감정에 따라서 추가로 올릴 때도 있죠.


글을 편집하는 기준도 궁금합니다.


올리는 기준은 철저하게 제 마음대로에요(웃음) 그날 느낌에 따라 마음가는 구절을 올려요.


예전부터 글귀를 모으는 습관이 있었나요?


네, 싸이월드 다이어리에 적었던 내용도 많았고, 모은 글을 가지고 있기만 하긴 뭐해서 하나씩 올리기 시작했죠. 예전에 저장한 글귀는 거의 다 소개해 드렸어요. 요새는 여러가지 발췌해서 쓰고 있어요. 비오는 날에는 비오는 내용을 올리고, 금요일이나 토요일에는 술과 관련된 걸 주로 올리는 식으로요.

 

채널 이름은 어떻게 정하셨나요?


‘OO 읽어주는 남자’라는 이름이 워낙 자주 쓰이기도 했었고, 상업적으로 발전시키겠다는 생각도 없어서 저작권이 있더라도 위반하지 않을 정도라고 생각했어요. 온라인에서 봤을 때 거리감 없이 쉽게 다가설 수 있는 이름이고 직관적이라는 생각에 선택했죠.


본격적으로 구독자가 늘어난 시기가 있었을 것 같아요.


2011년부터 2014년까지 페이스북에서 많이 활동했어요. 그 당시에도 비슷한 채널이 많았는데, 카카오스토리에도 채널을 만들어달라는 제안을 받아서 같이 운영했죠. 당시 카카오스토리를 전략적으로 많이 밀어주던 때여서 운좋게 노출도 많이 됐고, 그 덕분에 많은 분께 알려진 면이 있어요. 이후로 광고나 제휴 등의 제안이 많이 들어오긴 하는데, 다른 채널처럼 기업에서 운영하고 있는 게 아니라서 지금도 큰 광고는 안 하고 출판사도 잘 될 수 있는 양질의 콘텐츠 위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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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하는 양을 봐서는 책을 많이 읽으셔야 할 것 같아요.


중고등학교 때 열린글방이라고 책 빌려주는 곳이 있었는데, 고등학교 때만 읽은 책이 만화책 포함해서 오천 권이더라고요. 그 당시에 많이 읽었죠. 요즘은 주말에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서 읽고 싶은 책을 훑어보다 마음에 드는 책을 사서 글을 발췌합니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카카오스토리 셋 중에 가장 애착이 가는 채널이 있나요?


카카오스토리에 애착이 많이 가요. 이용하는 연령이 30대 이상이 많아서 진솔한 피드백을 남겨 주시기도 하고요.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은 소모성으로 읽는 느낌이 많은데, 카카오스토리는 감수성 예민한 30대 이상이 많다 보니 공유도 많이 하시고요. 독자들에게 감사하죠.


운영하시면서 가장 기쁘거나 보람있는 때는 언제인가요?


글을 올리고 반응을 보여주실 때가 가장 기뻐요. 지금도 그 행복 때문에 글을 올리기도 하고요. 답글은 다 못달지만 댓글은 대부분 읽어요. 제가 느꼈던 감정을 이렇게 많은 사람이 같이 느끼는구나 싶기도 하고요. 글귀로 힘든 감정을 치유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채널을 운영해요.


개인 메시지도 오나요?


개인적으로 보고 싶다, 어떤 사람이냐는 식으로 메시지가 오기도 하는데 대부분 정중히 거절하죠. 저를 드러내고 싶지는 않아요.


<책 읽어주는 남자> 인기 비결은 뭘까요?


첫 번째로는 꾸준함, 그리고 변질되지 않는 콘텐츠의 내용인 것 같아요. 독자들이 여기는 이제 상업적으로 돈 벌려고 바뀐다 싶으면 무너진다고 생각했거든요. <책 읽어주는 남자>는 계속해서 좋은 글귀를 나누고 공유하는 곳이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계속 사랑받은 게 아니었을까 싶어요.

 

SNS 계정에 올릴 때는 이미지도 중요합니다.


그렇죠, 사진 찾는 일도 오래 걸려요. 많이 걸리면 글 하나당 한 시간씩 글에 맞는 이미지를 찾기도 하고요. 이미지도 글과 마찬가지로 제 감성 코드에 맞게 그때마다 찾아요.


‘책 읽어주는 남자’ 채널을 운영하면서 목표가 있었나요?


없었어요. 그냥 좋은 글을 나누고픈 마음이 제일 컸었고, 지금도 연이 닿아서 좋은 출판사 만나 책을 냈지만 목적이라고 할 만한 건 없었어요. 제가 좋아하는 출판사를 만나기도 했고,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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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건네는 위로와 감사


책을 관통하는 단어가 ‘괜찮다’일 것 같아요. 작가님 자신에게도 했던 말인가요?


계정을 운영하면서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 그리고 가장 공감이 가는 말을 찾아보면 ‘괜찮다’라는 단어가 제일 많이 나왔어요. 그 글귀 하나의 힘이 강력하다는 걸 느꼈고, 그게 책의 콘셉트가 되었어요.


작가님도 힘든 경험이 있으셨을 것 같아요.


빨리 잊는 성격이라서 나쁜 기억을 찾으라면 없고요. 굳이 무엇이 힘드냐고 한다면 그냥 사는 것 자체가 다 힘든 게 아닐까요(웃음) 그 와중에 기쁨과 행복을 찾는 거겠죠?


작가님에게 책은 어떤 의미였나요?


한 마디로 하면 마음처방전이었어요. 책으로 사람들과 공감하면서 함께 마음을 치유하는 것이요. 5년 정도 SNS로 글을 나누다 보니 유독 인기가 좋거나 공감이 많이 가는 글귀가 있었어요. 그러면서 사람들이 이런 글을 좋아하고, 글로 인해 행복해 한다는 걸 많이 느꼈어요. 작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 많잖아요. 저도 제 이야기를 많이 쓰고 싶었지만 첫 번째 책은 제 이야기 보다 독자들이 정말 원하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작가님만의 좋아하는 작가와 책이 있나요?


꼭 한 권, 한 명을 꼽아야 하나요? 한국 작가로는 최갑수 작가님을 좋아해요. 『잘 지내나요 내 인생』은 정말 좋은 책이기도 하고, 저도 여행 에세이를 쓰고 싶은 작은 소망이 있기 때문에 책 말미에 수록한 ‘책읽남 BOOK MAP : 책 세계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100권 안에도 작가님의 책을 넣었어요.


 

여행 에세이도 책에 실려있습니다. 여행이 작가님에게 주는 영감이 있나요?


여행을 많이 다녔지만 어렸을 때는 훑어본다는 느낌이었죠. 내 발이 닿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여행이 주는 의미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온전히 여행지에서 같이 생활하는 느낌을 바라거든요. 여행은 다른 곳에 있는 사람들의 감성을 알고 나누는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여행을 하면서 책에 대한 영감도 많이 받을 수 있고요. 제 여행의 목적은 새로운 걸 보는 게 목적이 아니라 거기에서 온전히 사는 사람과 분위기를 함께 한다는 게 가장 큰 의미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작가님이 여행 에세이를 쓴다면 어떤 내용이 될까요?


여행지에 있는 사람들의 생각과 감성을 붙잡아서 쓰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제 감성을 녹인다기보다는 그 사람들의 감성을 녹이고 싶은 거죠. 작가가 이렇게 느꼈구나, 하고 독자들이 받아들이기보다 거기에 사는 사람들은 이렇게 느끼고 생활하는구나,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구나, 라는 걸 써보고 싶어요.

 
글도 그렇고 ‘책 읽어주는 남자’도 그렇고, 작가님보다는 독자를 먼저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물론 제 글이 전혀 없는 건 아니지만 독자들이 원하는 글을 먼저 쓰고 싶어요. 어쩌면 쓰고 싶어하는 글과 독자들이 원하는 글이 맞아떨어진 운 좋은 경우라고도 볼 수 있죠.

 

책과는 다른 일을 생업으로 하신다고 들었어요. 채널운영과 생업을 동시에 하기 어렵지는 않나요?


책 소개는 개인적으로 취미생활이었고 저에게 행복을 주는 일이에요. 힘들다기보다 오히려 좋은 글을 사람들과 나누는 게 좋고, 그 좋은 감정을 가지고 다시 일하러 가게 되죠. 회사 생활을 하는 동안에는 거기에 속해 있기 때문에 책은 거의 생각을 못하죠. 일하면서 지쳤던 마음을 책을 읽으면서 치유받는 느낌이에요.


 전레오라는 필명으로 활동하셨어요.


레오는 제 세례명이었어요. 처음에는 저를 어떻게든 드러내고 싶지 않아서 그 이름을 썼어요. 앞으로는 전승환이라는 이름으로 독자분들을 만나게 되겠죠?


토닥토닥 프로젝트를 진행하시기도 했습니다. 무슨 내용이었나요?


책이 나오게 된 계기이기도 한 프로젝트예요. SNS에서는 긴 글보다 굉장히 짧은 글이어도 힐링하고 마음의 위안을 받는 글이 많잖아요. 독자들에게 직접 자기에게 해주고 싶은 짧은 말을 받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글을 모아 게재했는데 한 편씩 올릴 때마다 기존에 책에서 발췌한 글보다 두 배나 세 배 정도 가까운 피드백을 받았어요. 정말 힐링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구나, 나 자신을 토닥여주고 싶은 사람이 많구나 하고 느꼈죠. 그 뒤로도 반응이 좋아서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글을 받아서 게재했어요.


두꺼비 책방이라는 프로젝트도 진행 예정이라고 들었습니다.


중고서적을 받아서 작은 도서관에 기증하는 프로젝트였는데 저번에 진행했을 때는 3, 400권 정도의 책이 모였어요. 일 년에 한 번 정도 진행하겠다는 마음으로 이번 해에도 할 수 있겠다 싶어요.


앞으로의 <책 읽어주는 남자>와 작가 전승환의 계획을 듣고 싶습니다.


<책 읽어주는 남자>는 계속 진행할 거고요, 글로써 사람을 치유하는 느낌을 꾸준히 가져가고 싶어요. 사람들이 SNS로 자신이 감동받은 글귀를 공유하는 것처럼 마음을 나누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책 읽어주는 남자>도 중간에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가교 역할을 하는 따뜻한 채널로 남게끔 운영할 거고요, 작가 전승환도 계속 마음을 나누는 글을 쓰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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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고맙다전승환 저 | 허밍버드
5년 동안 한결같이 좋은 글귀로 위안을 주던 ‘책 읽어주는 남자’가 이번에는 책이 아닌 당신의 마음을 사려 깊게 읽고 다독인다. 「책 읽어주는 남자」의 토닥토닥 에세이 《나에게 고맙다》는 어쩌면 세상 가장 흔한 말이지만, 정작 내게는 한 번도 건네지 못했던 말들이 담겨 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직업으로서의 번역가 ②] 박현주 “창조적이면서 반복적인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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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가 매달 한 명의 번역가를 만나, 이 시대에 번역가로 산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두 번째 주인공은 박현주 번역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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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민가의 계관시인’으로 불리는 독일계 미국인 작가, 찰스 부코스키의 테마 에세이 3부작(『고양이에 대하여』, 『글쓰기에 대하여』, 『사랑에 대하여』)이 출간됐다. 부코스키의 장편 세 권을 이미 번역한 바 있는 박현주가 이번 에세이도 번역했다. 많은 독자는 그에게 묻는다. “찰스 부코스키를 엄청 좋아하시나 봐요?” 박현주에게 찰스 부코스키는 “번역 작업을 하면서 더욱 깊이 생각하게 된 작가”다. 독자로서 바라보는 부코스키의 매력은 아무 것도 꾸미지 않는다는 점이다. “삶이 아름답다거나 반드시 올바른 궤도를 따라 흘러가야 한다는 생각”이 없기 때문에 부코스키의 작품은 여전히 매혹적이다. 

번역가 박현주는 고려대학교 영어영문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일리노이 주립대학교에서 언어학을 공부했다. 현재 전문 번역가 및 칼럼니스트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찰스 부코스키의 『우체국』, 『여자들』『호밀빵 햄 샌드위치』, 제드 러벤펠드의 『살인의 해석』, 『죽음본능』, 페터 회의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경계에 선 아이들』, 트루먼 커포티 선집(전 5권)과 레이먼드 챈들러 선집(전 6권) 등이 있으며, 지은 책으로는 에세이집 『로맨스 약국』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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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에는 쉽고 쓰기에는 어렵다

찰스 부코스키의 장편 3권과 이번에 출간된 ‘찰스 부코스키 테마 에세이 3부작’까지, 부코스키의 작품을 여러 권 번역하셨습니다. 이쯤 되면 부코스키를 좋아하신다고 봐도 되겠지요? 

번역하는 많은 분이 아시듯이, 번역가가 자신이 원하는 작품을 스스로 고를 수 있는 행운은 많지 않습니다. 좋아하는 작가와 작품을 일로 삼을 땐 강력한 선호와 의지가 있고 그렇게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좋아하는 작가지만 연이 닿지 않을 때도 있고, 예전에는 잘 몰랐지만 어떤 계기로 줄곧 작업을 하게 되는 경우도 있지요. 즉, 작업한 작품의 양이 반드시 선호도나 애정에 비례하는 건 아니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부코스키는 ‘이쯤 되면’이 아니라, 그 전에도 좋아하던 작가였고, 작업을 하면서도 더욱 깊이 생각하게 되는 작가였습니다. 

부코스키의 어떤 점이 가장 마음에 드시나요? 

아무것도 꾸미지 않는다는 점이 마음에 듭니다. 혹은 그가 그리는 삶과 인물에 좋아할 수 없는 점이 있다는 것이 마음에 듭니다. 그를 수식하는 대표적인 표현으로 “미국 하층 계급의 삶을 노래하는 계관시인”이라고 하는데요, 그의 작품에는 낮은 곳의 저열함이 어떤 과장과 허세 없이 나타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특별히 운이 좋지 않은 한 보통 사람들이 겪는 인생의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삶이 아름답다거나 반드시 올바른 궤도를 따라 흘러가야 한다는 생각이 부코스키의 책에는 없습니다. 그의 책에는 특정한 형식에 대한 집착이 없고, 그러기에 가장 자신다운 스타일을 만들어냈다는 점도 좋아합니다. 

처음 독자로 부코스키를 만났다가 나중에 번역자로 다시 만나게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독자로 부코스키를 볼 때와 번역자로서 부코스키를 볼 때는 느낌이나 태도가 달라질 것 같은데, 어떠셨나요? 

부코스키의 문체는 읽기에는 쉽고 쓰기에는 어렵습니다. 독자일 때는 일상어로 쓰인 그의 작품들을 쉽게 읽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글을 쓰는 입장에서는 막상 현실을 재현하는 문체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냥 있었던 일을 쓰면 되잖아,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막상 우리의 일기조차도 그렇게 현실감 있게 재생할 수가 없으니까요. 번역은 이 읽기와 쓰기의 중간 사이에 있는 작업인데, 아무렇지도 않은 태연한 문체를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는 아이러니가 필연적으로 존재합니다. 그걸 풀기 위해서는 편집자들과 함께 많이 생각하고 논의하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글쓰기에 대하여』에는 시를 써서 투고하고 계속 거절당하는 청년 부코스키의 모습부터 대작가가 된 노년의 모습까지 ‘작가 부코스키’의 일생이 담겨 있습니다. 작품 형태가 아닌 편지글 속 작가의 육성을 들으면서 부코스키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점이 있으신가요? 

부코스키가 자서전적인 작품을 쓰기 때문에 작품을 비교적 수월히 썼으리라고 추정하는 독자들이 있고, 저도 그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글쓰기에 대하여』를 읽으면 그는 끊임없이 거절당하고도 계속 작품을 쓰고 보냈던 작가라는 걸 알 수가 있습니다. 즉, 살다가 우연히 문학적 재능을 발견하고 작가가 된 사람이 아니라 작가가 되기 위해 꾸준히 노력했던 청년이었고 잠시 공백기가 있었지만 이런 열정은 그가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도 계속 유지되었던 것이지요. 자신의 작품을 이해 받지 못하는 좌절, 그를 극복하려는 의지, 그러나 인정받았을 때의 기쁨은 글을 쓰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지만 늦은 나이에 인정받고 끝없이 작품을 써온 작가의 편지 속에서 발견했을 때는 감동적입니다. 특히 마지막 편지에서 느껴지는 자부심은 뭉클하기까지 합니다. 

부코스키는 타자기를 팔아 술을 샀을 정도로 술을 좋아했다고 들었습니다. 이번 책에도 술과 떨어진 날이 없을 정도로 술 이야기가 자주 나오는데, 관련 에피소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있으시다면 들려주세요. 

에피소드 자체가 기억에 남는 건 없습니다. 매일 술을 마셨고, 그 때문에 죽을 뻔한 적도 있지만 그러고도 병원에서 나와 다시 술을 마셨으니까요. 가진 건 모두 다 팔아서 마셨고, 빚을 지면서까지도 마셨습니다. 그리고 『글쓰기에 대하여』에 실린 편지들 중 적잖은 수가 이미 술에 취한 상태에서 쓰였습니다. 심지어 편지를 쓰는 도중에도 계속 취해갔지요. 작업을 하는 입장에서는 이 부분이 도전이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했습니다. 시작 부분보다 끝 부분에서는 더 취해 있어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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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솔직함

부코스키는 소설가로도 잘 알려졌지만 시인으로 더 유명합니다. 『사랑에 대하여』는 사랑에 관한 부코스키의 시들을 엮은 시선집인데, 아무래도 번역 작업은 소설보다 쉽지 않으셨을 것 같습니다. 어떠셨나요? 

그렇기도 하고 아니기도 합니다. 부코스키의 시는 형식에 딱 맞춘 운문이라기보다는 작은 단편 같기도 합니다. 역으로 그의 소설 자체가 반복적인 단어, 교묘한 리듬을 구현하는 긴 시 같은 느낌이 들 때도 있지요. 물론 그의 초기 시는 후기 시와는 분위기가 약간 다르고 난해한 부분이 적잖이 있습니다만, 후반부로 갈수록 그의 시와 소설이 맞닿아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고양이를 좋아하는 작가들이 많지만 부코스키가 버려진 고양이 아홉 마리와 함께 살았다는 것은 의외였습니다. 동물을 돌보고 키울 것 같은 이미지는 아니어서요. 『고양이에 대하여』를 보면 길들여지지 않는 고양이에 대한 애정이 상당하던데요. 

부코스키는 고양이뿐 아니라, 개도 좋아한 것으로 아는데요. 가령, “개와 천사는 그다지 멀지 않다”라는 말도 한 적 있지요. 이는 그가 가진 작고 연약한 모든 동물에 대한 애정에서 기인한 게 아닐까 합니다. 그의 시와 소설을 보아도 부족하고 약한 생명체에 대한 동정이 있습니다. 그도 그들과 같았으니까요. 멸시당하고 짓밟힐 수 있는 존재들에게 그는 말하지 않는 애정을 품었던 것 같습니다. 실은 우리도 그렇습니다. 약해서 짓밟히지만, 또한 다른 약한 존재를 짓밟을 수도 있는 게 인간입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동시에 그런 존재들을 소중하게 품기도 하는 것이 인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고양이는 좀 다르기도 하죠. 그들은 언제나 도도하고 자신들이 절대로 무시당하지 않는 동물이라는 것을 명확히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런 이중성은 누구에게나 매력적일 것 같습니다. 

올 상반기에만 부코스키의 소설 한 권과 시집 한 권이 출간되었습니다. 거기에 이번 부코스키 시리즈 세 권까지 더하면, 올해에만 부코스키 작품 다섯 권이 출간된 것인데, 최근 들어 부코스키 작품이 연달아 주목을 받는 이유가 있을까요? 

그 이유를 저도 알고 싶습니다. 그의 작품이 연달아 나온다고 해도 이상할 건 전혀 없습니다. 그는 언제 읽어도 좋은 작가이니까요. 하지만 왜 지금이냐고 묻는다면…. 그럴듯한 배경 설명 등은 생각할 수 있겠지요. 피로 사회에서 번아웃 신드롬을 겪는 사람들에게 반노동주의적인 부코스키의 태도와 유머, 그리고 삶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솔직함이 매력적일 수 있다고요. 하지만 우리의 삶은 피로하지 않은 적이 없었고, 노동은 하기 좋았던 적이 없었습니다. 언제 나와도 좋았을 책이 지금 나온 것뿐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코스키뿐만 아니라 레이먼드 챈들러 선집(전 6권), 트루먼 커포티 선집(전5권) 등 한 작가의 선집을 많이 번역하셨어요. 아무래도 한 작가의 작품을 여러 권 번역하다 보면 장단점이 있을 것 같습니다. 선집을 번역할 때의 즐거움이나 혹은 괴로웠던 순간이 있으신가요? 

한 작가를 여러 권 작업하는 건 대체로 즐겁고 별로 괴롭지 않습니다. 그리고 저는 저렇게 알려진 작가 이외에도 여러 작가를 꾸준히 연속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가령, 아직도 진행 중인 프로젝트로 도로시 L. 세이어즈도 있고, 아직 다 출간되지는 않았지만 마거릿 밀러도 있습니다. 작가들과 제가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는 아니지만, 알아가는 즐거움이 더해갈 뿐이고 작업은 더 수월해집니다. 그의 성격과 글 쓰는 습관에 익숙해지고 애착도 생깁니다. 하지만 이 애착이 가끔은 독이 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은 합니다. 제가 독점할 수 없는 작가에게 욕심을 내서도 안 되고, 매너리즘적으로 작업해서도 안 되는 것이니까요. 

혹, 이 작가의 번역 작품이 안 나와서 아쉬운 책이 있나요? 꼭 한번 작업해보고 싶은 작가라든가. 

이블린 워의 작품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있습니다. 쉽지 않겠지만 P. G. 우드하우스도요. 여성소설의 범주로 묶을 수 있는 동시대 소설에도 관심이 있습니다. 저는 농담 삼아 스스로를 “변사(變死) 전문 번역가”라고 하는데, 시작을 추리소설로 했기 때문에 한동안 격렬한 죽음과 폭력이 있는 소설들에 대한 의뢰가 많이 있었습니다. 물론 모든 이야기에 어떤 형태든 격렬함은 존재하지만, 반드시 그런 장르만 고집하는 것은 아닙니다. 소설을 주로 했지만 소설만 고집하는 것도 아닙니다. 

여러 장르의 작품을 번역하셨는데, 선호하는 장르가 따로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독자로서는 어떤 책들을 즐겨 읽으시는지도 궁금하고요. 최근 읽은 책 중에서 좋았던 작품 2권 정도만 추천해주신다면. 

선호하는 장르는 없이 모든 소설을 다 읽는 편입니다. 소설 안에서는요. 소설 밖에서도 대체로 흥미로워 보이는 모든 책을 읽습니다. 지금은 한야 야나기하라의 『리틀 라이프』를 읽는데, 호흡이 길고 분량이 있는 책이지만 인간형의 묘사가 흥미로워 계속 읽게 되는 장점이 있습니다. 또, 윌리엄 트레버의 『비 온 뒤』도 읽고 있습니다. 단편집이라 생각날 때 한 편씩 있는 방식인데, 강렬한 반전은 없지만 잔잔한 여운이 있는 작품입니다. 그다음에는 엘레나 페란테의 『나의 눈부신 친구』를 읽을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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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을 좋아한다는 것은 이 일에서는 기본값

원래 꿈이 번역가셨나요? 

최근에 아사이 료의 『스페이드 3』을 읽었는데, 거기에 자기에겐 근사한 스토리가 없어서 고민하는 배우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럭저럭 괜찮은 배우지만 동료였던 다른 인기 배우에 비하면 배우가 되었어야 할 적절한 에피소드, 계기 같은 게 없다는 게 괴로웠던 거죠. “이 사람은 이런 일을 하고 있으니 이런 스토리를 짊어지고 있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많이들 합니다. 하지만 대체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서 딱히 스토리가 없고, 그 스토리는 후에 건설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원래 꿈이 번역가였느냐고 묻느냐면 스토리적으로는 그렇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분명 어렸을 때 한 번은 번역을 해보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고, 하고 싶었던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외에도 꿈이라고 할 만한 백일몽은 많이 있었습니다. 중학생 때는 선생님이 되고 싶기도 했고, 고등학교 1학년 때는 광고 기획자가 (뭔지도 모르면서) 되고 싶다고 진로희망서에 적어냈습니다. 대학 때는 번역을 하고 싶어서 학원 같은 데를 찾아간 적도 있기도 했습니다만, 통신사에 면접을 본 적도 있습니다. 방송작가가 될 뻔한 적도 있습니다. 실지로 교사를 한 적도 있죠. 꿈이라는 건 여러 개 꿀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습니다. 물론 그중 하나가 가는 길을 밝혀주기도 하죠. 어떤 지점에 다다랐을 때 돌아보면, 그 꿈은 내가 선택할 수 있었던 많은 길 중의 하나인 것뿐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선택에 이유가 없었던 건 아니고, 우연만으로 이루어진 것도 아닙니다. 

번역가를 꿈꾸는 사람들이 많지만, 처음에 어떻게 시작을 해야 할지 막막해하는 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처음 번역을 시작하게 된 계기를 들려주신다면?
 
이런 질문을 가끔 받습니다만, 모든 이의 경험이 다르기 때문에 어떤 방법이 좋다고 말할 순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직업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저도 취미로 번역을 하거나 해서 인터넷 게시판에 올렸고, 잡지 번역 같은 짧은 글로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아는 분의 소개로 추리소설을 번역하면서 이 길에 들어섰습니다. 하지만 일단 번역을 시작하려면 책을 많이 읽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단순히 기다리는 게 아니라 스스로 기획을 할 수 있는 시각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직업으로서의 번역가’, 권할 만한 직업인가요? 번역가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선배로서 한 말씀 해주세요. 

누군가에게 조언을 할 입장이 되지 못하지만요. 어떤 일을 선택하는 사람은 두 종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좋아하는 마음을 동력 삼아 힘든 부분도 다 참을 수 있는 사람과, 좋아하는 마음도 있지만 싫은 부분을 그렇게 싫다고 여기지 않는 사람. 두 사람은 같은 사람인 것 같으면서도 미묘하게 다른데, 저는 후자에 가깝다고 스스로 여깁니다. 번역도 모든 일과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좋아하는 마음이 있는 것은 당연하고, 힘든 부분을 그렇게 싫다고 여기지 않을 수 있어야 할 수 있는 직업 같습니다. 

가끔 취미로 한번 해보고 싶으니 일을 소개해달라는 청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아뇨, 한두 장을 하는 경우를 제외한다면 번역은 그렇게 좋은 취미가 아닙니다. 일단 취미로 하기에는 물리적 시간과 노동력이 너무나 많이 들고 창조적인 듯하면서도 동시에 무척 반복적입니다. 납기일을 맞추기 위해서는 노동과 그 외 생활을 하는 시간을 구분할 수가 없습니다. 머리를 써야 하는 번역 과정 자체를 제외하고라도, 책 몇 권에 해당하는 분량을 계속 자판으로 쳐야 하는 작업이 반드시 있고 대부분의 번역가들이 테니스 엘보와 건초염, 허리와 목디스크에 시달리지만, 산재보상은 받을 수 없습니다. 전체적으로 노동력에 비해 보상이 적죠. 

무엇보다 한 책에는 좋아하는 부분도 있지만, 덜 좋아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그래도 작품은 끝내야 합니다. 작가와 교감이 잘 될 때도 있지만, 잘 되지 않을 때도 많고, 안다고 믿는 것도 계속 확인해야만 합니다. 번역을 좋아한다는 것은 이 일에서는 기본값입니다. 하지만 직업이 되면 위에 말한 힘든 부분을 싫어하지 않는 사람에게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네, 모든 일에 적용되는 흔한 얘기입니다. 그렇지만 노동이라는 면에서 직업의 효용이나 적성은 이 흔한 일반성에서부터 시작해서 판단할 수 있어야 하는 것 같습니다. 특수성은 그 위의 문제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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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부코스키 테마 에세이 삼부작찰스 부코스키 저/박현주 역 | 시공사
미국 문단의 가장 거칠고 이색적인 작가이자 전 세계 열혈 독자층을 만들어내며 전설이 된 찰스 부코스키의 모든 것을 만날 수 있는 에세이 시리즈다. 부코스키의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세 가지 ‘고양이’ ‘글쓰기’ ‘사랑’에 대한 글들을 엮은 가장 최근의 작품집으로, 작가 부코스키의 인생과 인간 부코스키의 속내가 유쾌하면서도 뭉클하게 다가온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유리 “화가들의 마지막을 온전히 체험하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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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장의 그림은 때로 어떤 긴 이야기보다 더 길다. 그 한 장을 완성하기 위해 살아온 고통의 삶과 그럼에도 삶을 희망하는 애처로움, 표출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던 예술가의 영혼이 보이는 듯하다. 그림은 시간을 뛰어넘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그 목소리를 외면하지 못하고 예술가가 죽기 직전 남긴 작품들을 찾아보았다. 공부를 하면서도, 기자 생활을 하면서도 그림이 건네는 말에 귀 기울이기 좋아했던 작가 이유리는 이 마지막 그림을 일컬어 “백조들이 토해낸 마지막 울음 같은 작품들”이라고 적었다. 


그도 그럴 것이 어째서 하나같이 이토록 고통스러운지, 예술가들의 삶은 그야말로 굴곡진 삶이었다. 병으로 죽은 모딜리아니를 따라 6층 건물에서 뛰어내려 자살한 잔 에뷔테른, 아무도 모르게 길 위에 쓰러져 죽음을 맞은 나혜석, 자살이냐 타살이냐 아직까지도 의견이 분분한 반 고흐와 평생을 숨 막히는 고통 속에서 살다 간 프리타 칼로까지 이들의 고통은 감히 헤아리기조차 힘이 든다. “마지막 순간을 계속 탐구하면서 쓴다는 것 자체가 그의 마지막을 온전히 체험하는 느낌”이라 책을 쓰면서 많이 울었다는 이유리 작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왜 아니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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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힘을 이겨 나가는 것


흥미롭게 읽었어요. 특히나 예술가의 삶을 읽어 내려가는 재미가 있는 책이었어요.  


이 책은 입문자용 책이에요. 미술이라고 하면 어려워하시는 분들도 많고, 막연하게 현학적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은데요. 그런 분들이 쉽게 읽으시고 미술에 대한 관심을 여는 첫 번째 문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저 역시 전공자가 아니기 때문에 그 마음을 잘 알고 있어요. 저도 정말 학문의 도움 없이 몸으로 뚫고 나간 경우라서요.(웃음) 옛날 생각하면서 어떻게 미술을 알아갔는지, 어떻게 미술에 가까이 갔는지 기억을 떠올리며 썼으니까요. 쉽게 읽으실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전공이 아니라면 어떤 면 때문에 미술 작품에 빠지게 됐는지, 어떻게 이런 책을 쓰게 됐는지 궁금한데요. 


어렸을 때 엄마가 클래식 컴필레이션 음반을 사서 들으셨어요. 참 재미있는 게 음반에 명화가 짝꿍처럼 붙어있더라고요. 쭉 관심은 있었어요. 미술 교과서나 잡지에 그림이 있으면 잘라서 스크랩을 많이 했었어요. 기억하실지 모르겠는데요, 교과서에 보면 ‘소실점’ 이해하는 작품으로 ‘미델하르니스의 가로수길’이라는 그림이 나와요. 제목도, 화가도 안 나오고 소실점 이해하는 그림으로만 나와 있었죠. 깨끗하고 아련한 느낌이 참 좋은데 작가나 제목은 없고 단지 소실점을 이해시키기 위한 것으로만 있는 게 좀 안타까웠어요. 다른 것도 알고 싶다는 호기심이 생겼어요. 그렇게 관심의 끈을 계속 놓지 않고 살았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익숙한 작가의 익숙하지 않은 이야기를 조명하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된 거죠. 


결정적으로는 런던으로 어학연수를 가게 됐는데, 영어 공부는 안 하고 미술관만 다녔어요. 유명한 명작들이 많이 있는데 게다가 공짜인 거예요. 너무 신나서(웃음) 시간만 되면 미술관을 다닌 거죠. 그때 체계적으로 공부가 됐던 것 같아요. 비전공자라서 전공자가 보지 못한 것들을 볼 수 있는 면도 있었을 거예요. 그래서 조금 독특한 책을 낼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저자가 어린 시절 명화에 관심 갖는 장면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는데요. 미술 작품이 수단이나 배경이 되긴 했지만 그 자체로 의미가 되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이 책은 우리네 삶 안으로 미술 작품이 들어왔을 때 어떤 가치를 갖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할 수 있는 책이기도 했어요. 


고맙습니다. 미술 작품을 어려워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미술을 완벽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에 어렵다, 미술관 가는 것에 위화감이 든다, 고 하는 것 같은데요. 모든 것을 완벽하게 안 뒤 가려고 한다면 영원히 못 가요. 어떻게 가겠어요? 저는 그냥 일단 가서 부딪쳐보라고 얘기를 하고 싶어요. 미술뿐이 아니고 사람과 사람이 만날 때도 마찬가지잖아요.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데 그를 완벽히 알기 때문에 다가가나요? 아니잖아요. 몸으로 뚫고 나가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시간의 힘을 이겨 나가는 거죠. 계속 보다보면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까지 볼 수 있는 자신만의 혜안 같은 것이 생길 수도 있고요. 그러다보면 저처럼 책도 낼 수 있겠죠.(웃음) 


예술가의 마지막 그림은 거의 그의 인생을 통틀어 보여주는 듯해요. 저자가 마지막 그림을 살펴보고, 매료된 이유도 같겠지요?


마지막이 되면 돈, 명예가 중요할까요? 저는 죽음 앞에 선 벌거벗은 한 인간은 굉장히 절박하고 간절할 거라고 봤어요. 그래서 마지막 작품을 알고 싶었어요. 기존에는 대표작이나 전성기의 작품을 조명하는 경우가 많아서 개인적으로 궁금하기도 했고요. 사람은 계속 진보하고, 진화한다고 믿거든요. 최전성기 작품도 가치 있겠지만 죽기 직전의 작품은 또 판이하게 다를 수도 있잖아요. 왜 전성기만 조명할까 궁금했죠. 많은 대가들이 활자 속에서 박제된 채 존재하고 있잖아요. 이들이 우리와 같은 뜨거운 체온을 가진 인간이라는 생각으로 꺼내서 보고 싶은 욕구가 있었어요. 한 시대를 뜨겁게 살아간 한 인간이었다는 것을 조명하고 싶었던 거예요. 


인간으로서의 예술가가 궁금해지는 마지막 그림들이 있죠. 폴 고갱 같은 경우가 그랬어요. 살면서 그린 그림과는 결이 다른 마지막 그림을 남기고 떠났잖아요. 


그러니까 제일 솔직한 게 마지막 같아요. 사실 고갱도 얼마나 찾기가 힘들었는지 몰라요. ‘눈 덮인 브르타뉴 마을’도 정말 안 되는 영어로(웃음) 헤매고, 찾은 거예요. 한국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거죠. 너무 힘들어서 기억에 남는 부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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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밖에 오래 기억에 남았던 화가는 누구였어요? 


반 고흐요. 고흐의 마지막 작품은 당연히 ‘까마귀가 있는 밀밭’이라고 생각했어요. 국내 출간된 책들도 그랬고요. 그런데 전문서나 학술서를 찾아보니까 이미 그 작품은 마지막 작품이 아니라는 결론이 나 있더라고요. 도대체 마지막 작품이 뭘까 했는데 의견이 너무 분분한 거예요. ‘도비니의 정원’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지금도 논란이 있는데요. 고민하고 있을 때 트위터의 반 고흐 뮤지엄 계정에서 마지막이 유력한 작품이 발견되었다고 한 거죠. 그것이 책에 소개한 ‘모래 바닥 위의 나무뿌리들’이었어요. 워낙 소개가 안 된 내용이라 진짜 전공자처럼 여기저기 찾으면서 봤던 기억이 나요. 거기 맞물려서 반 고흐의 자살설, 타살설이 나왔죠. 얼마 전 국내에도 출간된 책이 있어요. 『화가 반 고흐 이전의 판 호흐』라고요. 저는 그 책이 나오기 전에 썼거든요.(웃음) 정말 힘들기도 했고, 재미있었어요. 반 고흐의 숨겨진 사망 원인을 보면서 많이 울기도 했고요. 반 고흐뿐 아니라 모든 화가들의 마지막 순간을 계속 탐구하면서 쓴다는 것 자체가 그의 마지막을 온전히 체험하는 느낌이었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많이 착잡했던 기억이 나는데 반 고흐는 더욱 그랬죠. 마지막까지 편하지 않았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서 많이 울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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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연구 중인 사실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최근 반 고흐의 귀에 대한 이야기도 많았잖아요. 


제가 처음 반 고흐를 만났을 때는 귀 전체를 완전히 자른 걸로 알고 있었는데 좀 지나니까 귓불을 조금만 잘라서 준 거라고 정리가 됐었어요. 그런데 다시 귀를 완전히 잘랐다는 것이 새로 밝혀졌다고 하는 거예요. 이런 것으로 논쟁사를 한 번 써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반 고흐는 지금도 논란이 되는 것들이 많잖아요. 그가 지금까지도 ‘핫한’ 작가라서 더 그런 것 같아요. 사람들이 많은 관심을 가지니까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관련 문헌도 많아지고요. 


소개한 예술가 중 제일 좋아하는 예술가는 누구예요? 


한국인들이 제일 좋아하는 작가 중 하나라면 프리다 칼로가 있겠죠. 저도 참 좋아해요. 프리다 칼로야말로 『화가의 마지막 그림』의 주제에 가장 잘 맞는 화가라는 생각이 들어요. 사람은 살면서도 죽어가는 거잖아요. 하지만, 죽는다는 건 다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나요? 그러면서 더 뜨겁게 사는 거죠. 끝을 알기에 이 삶이 더 소중한 것처럼요. 프리다 칼로가 그런 것 같아요. 그토록 고통스러웠지만 그것을 승화시켜서 작품으로 남겼고 죽기 전에도 ‘삶이여 만세(VIVA LA VIDA)’라고 남겼잖아요. 그래서 더 뜨겁고 가슴에 남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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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역사도 함께 볼 수 있는 것


읽으면서 생각했어요. 어쩌면 이렇게 모두들 고통스러운 삶이었을까요? 


참 얄궂죠. 공지영 작가가 목구멍까지 차올라서 토해내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때서야 글이 나왔다는 말을 한 걸 봤어요. 글이든 예술작품이든 다 자신의 언어를 뱉으려고 하는 거잖아요. 그 욕구는 자신이 정말 고통스러웠을 때 더 강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라는 책도 있잖아요. 행복한 사람은 일기를 안 쓴대요. 고통스러워야 표현 욕구가 더 강렬해지고 목구멍까지 차올라서 나오는 것 같아요. 또 고통의 과정에서 응축된 작품들이 얄궂게도 사람들의 마음을 건드리는 것 같고요. 


활이 휘어지면 휘어질수록 화살이 멀리 날아가잖아요. 휘어짐은 고통이고요. 이게 정말 얄궂은 것 같아요. 고통이 강할수록 더 멀리 날아가는, 더 강렬하고 인상적인 작품이 나올 수 있다는 건데, 그게 맞는 것 같아요. 굉장한 아이러니죠. 


지금까지 생명력을 갖고 존재하는 작품은 특히 더 그런 것 같아요. 프리다 칼로 같은 예술가들의 삶은 특히 압도적이에요. 


고통으로 그냥 사라지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고통을 작품으로 승화시키는 경우도 있잖아요. 잘 승화시켜야 우리에게 남는 건데요. 사실 고통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다만 위대한 예술가들이 비범한 것은 그 고통을 자신의 정제된 언어로 잘 승화시켰다는 데 있는 것 같아요. 


그렇게 탄생한 작품들을 보고 있으면 정말 생각할 것들이 많아지더라고요. 


작품을 배태시키는 영감이라는 것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게 아니잖아요. 사회 안에서 삶이 해결되었고, 그 안에서 작가가 가졌던 사회나 역사를 바라보는 눈이 작품으로 만들어지는 거니까요. 저는 미술을 볼 때 작품만 보는 게 아니고 역사도 함께 볼 수 있는 거라 생각하거든요. 독자 분들도 미술을 통해 역사를 바라보는 하나의 재미있는 창을 또 하나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관심 가는 작품을 보면서 궁금한 점이 생기면 그 사람이 살았던 시대를 함께 연구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아요. 


콘텍스트를 읽는 것이 미술 작품을 재미있게 보는 하나의 좋은 방법이겠네요. 


미술 작품이 소통의 재미있는 창구가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미술가들이 자기가 사는 시대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느냐 어떻게 살아냈느냐를 미술가와 우리가 작품을 통해 소통할 수 있는 거잖아요. 한편 저는 ‘시대 상황과 상관없이 순수한 예술의 세계에만 침잠하련다’고 하는 태도가 어두운 시대 현실에 마음 놓고 등 돌릴 수 있는 떳떳한 변명거리가 되지 않나 하는 생각을 개인적으로 하거든요. 그래서 사회적인 문제의식과 부조리에 대한 시선을 뜨겁게 끌어올릴 수 있는 작품들이 더 가슴에 남는 것 같아요. 지금도 신문만 펼쳐도 나쁜 소식이 너무 많잖아요. 이렇게 시대가 어두울 때 밝고, 깨끗하고, 무결한 작품만 나온다면 어쩌면 예술가들이 한쪽 눈을 감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을 했거든요. 좀 불편하고 어두운 예술이라도 시대의식을 잘 담은 작품이 제게 진정성 있게 다가와요. 그런 작품이 지금 당장은 불편해도 훗날까지 사람들의 마음을 잡을 수 있는 작품이 아닐까 생각이 들고요.  


특히나 역사의 상흔을 고스란히 입은 예술가들의 삶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나혜석을 보면 시대와의 불화가 너무나 안타깝게 느껴지잖아요. 


미술이 사람들의 미의식을 부양시키는 역할도 하지만요. ‘에케 호모(Ecce Homo)’라고 하죠. 예수님을 보고 ‘이 사람을 보라’고 한 것처럼, 그런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그 사람을 보는 거죠. 예술가는 어떻게 보면 증언자로서의 모습이 있는 거예요. 우리 시대가 얼마나 잔인하고 힘들었는지 증언하는 면도 있는 것 같아요. 나혜석이나 펠릭스 누스바움도 그런 미술을 한 것 같고요. 그래서 시대의식을 잘 담은 미술 작품이 훨씬 더 많은 것을 이야기해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책에서 다루는 예술가들을 선정할 때도 그런 부분을 고려한 건가요? 


그런 제 생각을 훨씬 더 노골적으로 쓴 게 『세상을 바꾼 예술작품들』이거든요. 수많은 미술작품이 있지만 그것을 고르는 것은 제가 어떤 예술가에게 끌리느냐에 달린 것이잖아요. 밝고 아름다운 미술도 정말 의미 있다고 생각하지만 치열하고 뜨겁게 시대를 온몸으로 마주하고 간 삶이 많이 다가왔어요. 당장 보기에는 아름답지 않더라도 진실한 모습을 담는, 인간의 모습을 한 사람들을 더 글로 표현해내고 싶었어요. 


미술이 그래서 재미있는 것 같아요. 역사를 글로만 읽으면 얼마나 힘들겠어요.(웃음) 작품 하나로 그 많은 이야기들을 한꺼번에 얘기할 수 있잖아요. 그게 미술의 힘인 것 같아요. 바로 그 때문에 수많은 권력자들이 미술을 자신의 도구 삼았던 것이기도 하고요. 이데올로기에 종속된 미술 작품을 보면 그렇죠. 이처럼 미술 작품은 이야기가 어마어마하고 힘이 무궁무진한데 어렵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진입이 가로막혀 있어요. 그게 너무 안타깝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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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과된 사람들을 조명하고 싶다


책 출간 후 릴레이 강의를 하셨더라고요. 최근에 페미니즘 시각으로 살피는 강의가 있던데 여러 방향에서 접근할 수 있는 게 또 미술 작품인 것 같아요. 


페미니즘에 정말 관심 많아요. ‘페미니즘으로 본 예술’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했는데요. 그 주제에 너무 욕심이 많아서 책도 쓰고 싶은데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어요. 


이 대목에서 한 예술가가 떠오르죠. 에드워드 호퍼요.


그렇게 얘기하실 줄 알았어요.(웃음) 앞서 어쩌면 다들 그렇게 고통스러운 삶이었냐고 하셨는데 호퍼는 왜 그렇게 행복했던 거냐고요. 그게 다 누군가의 희생과 헌신을 땔감 삼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죠. 고통이 응축돼 위대한 작품 하나가 완성됐다면 에드워드 호퍼는 자신의 분신과 다름없었던 조 호퍼의 고통을 연료 삼아서 작품을 완성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화가의 아내』라는 책이 있는데요. 화가들의 삶과 작품은 다 개성 있고 너무 달라요. 재미있는 게, 화가들의 아내들은요, 삶이 다 똑같아요. 나중에는 읽다가 이 화가의 아내 이야기였던가, 저 화가의 아내 이야기였던가 헷갈릴 정도였어요. 제게는 익숙한 화가의 익숙하지 않은 이야기를 조명하고 싶은 욕구도 있지만 서양 미술사에서 간과되고 조명을 받지 못했던 사람들을 조명하고 싶은 욕구도 있거든요. 장기적으로는 그런 것도 풀어내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더 이야기해야 할 이야기들이 너무 많아요. 


이제 미술 독자들도 좋은 책들이 많이 나와서 어느 정도의 소양은 다 갖고 계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안 알려진 이야기들을 많이 세상에 내는 것이 미술작가로서의 제 소명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조금 힘들더라도 더 많이 연구를 해서 호기심을 채우는 작업을 하고 싶어요. 강의 주제 중에 ‘을의 편에 선 예술가들’이라는 것도 있거든요. 제가 관심사가 꾸준한 것 같아요.(웃음) 그런 식으로 계속 강의하고, 책 쓰는 것이 계획이고 소망입니다. 


책을 볼 때도 바로 책 속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책 주변을 오래 살피는 사람이 있는데요. 저자의 경우 작품을 감상할 때 어떻게 시작하나요? 


처음 작품을 보면 익숙하지가 않잖아요. 익숙하지 않아서 많이들 중도포기 하는 것 같은데요. 제가 요즘 수영을 하고 있거든요. 운동을 하다보면 온몸이 다 아프죠. 미술도 마찬가지 같아요. 처음에 낯선 건 안 쓰던 근육을 쓰기 때문인데요. 그걸 이겨내는 건 시간을 들여 꾸준히 보고 계속 하는 것일 것 같아요. 저도 낯설지만 무조건 보거든요. 그냥 봐요. 물에 그냥 들어가듯 들어가는 거예요. 그러다보면 말을 걸어오는 것 같은 작품을 만나고, 그러면 작품을 소개하는 책을 찾아보고, 그런 과정을 거치는 거죠. 초심자라도 이 방법을 따르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아까 말했듯이 모든 걸 완벽하게 알고 보려고 하면 볼 수 없으니까요. 그냥 꾸준하게 계속 보시면 좋겠어요. 그게 정공법인 것 같아요. 


또 쓰고 싶은 책이 있다면요?


독자들과 미술 작품 사이에 있는 창이 아직은 너무 흐릿한 창인 것 같아요. 그래서 선뜻 다가가지 못하고 그 너머를 보려고 하지도 않는 것 같은데요. 저는 그 창문을 입김으로 호호 불어가면서 닦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당장 계획하고 있는 것도 있어요. 화가의 마지막 그림도 있지만 출세작도 있잖아요. 보통은 이게 대표작이구나, 하고 넘어가는데요. 왜 그 시대 상황에서 그 작품이 사람들의 마음을 얻고, 왜 이 작품이 떠오를 수밖에 없었는지 또는 화가가 죽고 작품이 잊혀졌다가 갑자기 떠오른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살펴보고 싶어요. 작품은 변한 게 아니잖아요. 작품은 그대로인데 시대 상황에 따라서 다시 호출될 수 있잖아요. 작품과 시대를 함께 조명하는 책을 또 쓸 예정이에요.  


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말씀드렸듯이 저는 외부자잖아요. 그래서 쓸 수 있는 얘기들이 또 있었다고 생각해요. 더 쉽게, 눈높이에 맞춰 쓰려고 노력도 많이 했어요. 이 책은 미술이 알고 싶은데 너무 어렵게 느끼는 분들에게 ‘일단 이야기 한 번 읽어볼래?’ 하는 식으로 던지고 싶은 책이에요. 저는 항상 이야기에 많이 끌렸거든요. 전공이 사학인데요. 그것 역시 이야기잖아요. 기자 생활을 했는데 그것 역시 사람들의 이야기고요. 미술도 마찬가지예요.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고 역사 속에 살다가 작가 자신의 관점을 담아 탄생시킨 것이 예술 작품이니까요. 그런 재미있는 이야기를 담으려고 노력했으니까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이야기를 읽어보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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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의 마지막 그림 삼부작이유리 저 | 서해문집
생의 끝, 가장 아름답고 치열한 시간에 화가의 손끝에서 피어난 그림 한 점엔 쉬이 껴안지 못할 삶의 진실이 녹아 있으리란 생각에서다. 실제로 화가의 마지막 그림 안에는 죽음이 임박한 순간, 그들이 무얼 예감했고 무얼 목격했으며 무슨 메시지를 최후로 남기고 싶었는지가 생생하게 담겨 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남인 “왜 당신만 회사에서 답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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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아무리 잘난 사람이라도 ‘사회적 존재’임을 잊는 순간 여지없이 퇴장 당하는 곳.’ 『회사의 언어』의 저자 김남인이 정의한 ‘회사’다. 똑똑한 사람이라면 ‘회사의 언어’를 잘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다. 여기서 ‘회사의 언어’란 업무와 사람을 대하는 자질과 태도를 뜻한다. 상사가 자꾸 내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면, 팀원들이 나와 일하는 것을 어려워한다면, 당신은 ‘회사의 언어’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


김남인 저자는 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전공, <조선일보>에서 기자로 일하다 2013년부터 기업에서 일하고 있다. HR Communication 담당을 거쳐, 현재 SK주식회사에서 브랜드 홍보를 맡고 있다. 『회사의 언어』는 그간 경제경영 분야 기자로 취재했던 10년 경험에 전문 저널, 관련 서적을 빠짐없이 탐독한 결실이다. 김남인 저자는 책을 쓰면서, 그간 직장생활을 하며 겪은 모든 순간을 재생해내려 애썼다. ‘현실 속 에이스’들의 공통점을 찾아 ‘회사의 언어’로 정리했다. 곰 같은 여우가 되어 조직을 춤추게 하고 싶다면, 센스 있게 듣고 제대로 표현하고 싶다면, 『회사의 언어』를 들여다보자. 당신이 직장생활을 하며 답답할 수밖에 없었던 근원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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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말하고 잘 듣는 ‘직장언어 탐구생활’


두 번째 책이다. 2013년에 출간된 『태도의 차이』와 이어지는 부분이 있다. 


기업에서 내가 전직 기자였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커뮤니케이션 컨설팅 문의가 종종 들어왔다. 회사에서의 소통, 최소한의 이메일 쓰기도 힘들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더라. 처음에는 '직장에서의 말하기' 콘셉트로 글을 정리했다가 '듣기'와 관련된 내용을 추가했다가, 결국 '직장언어 탐구 활동'이 됐다. 사실 커뮤니케이션을 잘하는 사람은 많은데, 실제 직장에서 어떻게 일하는지를 현실감 있게 보여준 책은 없었던 것 같다. 


책을 읽다가 밑줄 친 내용이 상당하다. 굉장히 현실적이고 구체적으로 서술해, 직장생활에서 바로 적용이 가능한 부분이 많았다. 


평소 자기계발서를 많이 보는데, 괜찮은 케이스를 보면 다 외국의 경우다. 예화를 들어도 메리, 팀과 같은 이름이 나오면 공감이 확 떨어지지 않나? 그렇다고 전문 스피치 강사가 쓴 글을 보면 현실감각이 부족하다. 경험을 안 하고 상황을 설정하면 겉핥기가 될 수 있다. 보다 현실감각이 많이 녹아 든 책을 쓰고 싶었다. 

 

가제도 '회사의 언어'였나?


처음에는 '원 페이지 리포트'였다. 두 번째는 '일 잘하는 사람은 듣기도 잘한다'였다. 2년 전부터 책 준비에 들어갔는데, 처음에는 아이디어가 좀 설익었다. '원 페이지 리포트'는 우리 기업들이 파워포인트 낭비가 너무 심하다는 이야기를 강조하고 싶어서 나온 제목이다. 보통 파워포인트 자료를 보면 기본이 30장이다. 하지만 상사는 30장을 다 읽지 않는다. 읽을 시간도 없고, 대부분의 자료가 쓰레기통으로 가기 때문에 한 장으로 요약할 수 있어야 한다. 상사가 그 한 페이지만 봐도 충분히 파악할 수 있도록 써야 한다. 이런 문제의식을 꽤 오래 전부터 갖고 있었다. 또 '듣기'를 중점에 뒀던 건, 대부분 사람들이 '말하기'에만 초점을 두지 듣기의 중요성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3쇄를 찍었다. 인상 깊게 본 리뷰가 있나? 


책을 쓸 때, 사회초년생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다. 단순히 스킬을 알려주는 책이 아니라, 회사생활의 전반을 세팅해주는 책을 쓰고 싶었다. 우리가 직장생활을 할 때, 어떠한 각오가 필요하지 않나.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사람뿐 아니라 임원들도 소통의 문제는 굉장히 어려워한다. 가깝게 들은 리뷰로는 지금 내 직장의 타 부서 부장님이 "읽으면서 많이 배웠다"고 메일을 보내주셨다. '왜 부하직원이 내 앞에서 저렇게 반응할까' 이런 것들을 재밌게 읽었다고 했다. 


프롤로그가 인상적이었다. 독자들이 궁금해 할 만한 내용(이직한 계기)부터 짚고 들어가는 걸 보고, '저자의 언어도 잘 사용한다'고 느꼈다. 


(웃음) 담당 편집자 덕분에 최종적으로 다섯 번을 고친 원고다. 이제 더 이상 못 고치겠다고 할 무렵에 "이제 됐다"고 하더라.


기자에서 기업인으로 전업했다. 이직을 결정할 때, 고민이 많았을 것 같은데.


아이가 둘이다 보니, 일간지의 업무 강도를 이겨내기가 어려웠다. 야근도 너무 많았고. 가정 문제뿐 아니라 내 개인 생활을 누리고 싶었고 뭔가를 이뤄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언론사에서는 이런 주제의 책을 쓰고 싶어도 쉽게 여유가 생기지 않는다. 기자 생활을 할 때, 마지막으로 있었던 부서가 산업부다. 기자들이 산업부에 있을 때, 재미가 없어서 많이 힘들어 한다. 대개 기업들이 모든 정보를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수치 위주의 기사를 쓸 수밖에 없어 아쉬운 부분이 컸다. 나는 사람을 관찰하고 인사이트를 얻는 걸 좋아하는데, 그럴 기회가 부족해 답답한 마음이 좀 컸다. 


10년차 정도 되면, ‘회사의 언어’를 다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책을 보고 많이 반성했다. 특히 이메일 쓰기에 관한 부분에서 '내 답장이 공해가 될 것 같아 안 쓴 부분이 컸는데, 짧은 회신이라도 꼭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글을 쓰는 사람이다 보니, 상대의 이메일만 봐도 그가 어떤 스타일이고 어떤 성품인지가 한눈에 파악된다. 이메일로 가졌던 인상을 갖고 직접 대면했을 때, 너무 딱 떨어져서 인상깊은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메일은 정말 중요하다. 책에 ‘상사에게 최고의 이메일을 쓰는 7가지 방법’을 썼는데, 꽉 찬 메일함에서 당신의 이메일을 돋보이게 할 장치를 마련하는 것도 필수다. 응답하기 쉽게, 적절한 포장은 기본, 메시지를 수신인에 특화 하는 지혜도 필요하다. 또 상사가 언제 어디서 이메일을 읽을지도 고려해야 한다. 아무리 정당한 요청을 한다 할지라도 시간과 장소가 따라주지 않는다면 잠시 기다렸다 최상의 타이밍을 노르는 것이 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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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칠해도 직언을 잘하는 사람


요즘은 회의보다 이메일로 소통하는 회사가 많다. 메일을 주고 받을 때, 가장 답답한 경우는 어떤 상황인가?


두 가지다. 하나는 사적인 이메일과 공적인 이메일을 혼합해서 쓰는 경우다. 도대체 뭘 원하는지를 파악하기 어렵다. 나는 이런 메일을 '끈적끈적하다'고 표현한다. 업무 내용이라면 다소 딱딱하더라도 뭘 했으면 좋겠다는 분명히 밝히는 게 좋다. 두 번째는 성의 없는 메일이다. 상대가 어떤 행동을 하도록 빨리 이끌어줘야 하는데, 제목부터 중언부언인 메일이 있다. 메일을 전달할 때도 마찬가지다. 대개 제목을 바꾸지 않고 여러 사람에게 전달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실력이 있는 사람은 제목에서부터 수신인에게 메시지를 준다. 또 첨부파일을 상사에게 전달할 때도 다르지 않다. 어떤 사람은 그냥 전달하지만, 정말 일을 잘하는 사람은 상대가 알아야 할 것을 몇 줄이라도 요약해서 보낸다. 그런 사람들하고는 누구나 일하고 싶지 않을까?


메일을 쓸 때, 어떤 부분에 가장 많이 신경을 쓰나?


상대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중점을 둔다. 의사결정을 내려달라는 건지, 이 내용을 참고로 언제까지 회신을 달라는 등 원하는 것을 명확하게 밝히려고 한다. 이를 테면, "언제까지 해주세요"가 아니라 "30일 오전까지 주시면 제가 피드백을 넣어서 다시 검토하겠다"고 쓴다. 상사에게 이메일을 보낼 때도 다르지 않다. 일의 다음 스텝이 어디인지, 상사에게 시물레이션한다. 상사가 어떤 부분에서 치고 들어가야 하는지를 파악할 수 있도록 쓰는 게 좋다. 

 

‘잘된 비판’이란, “상대도 나처럼 선의를 갖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믿음이 전제된 비판”이라고 지적했다. 어려운 문제다.


함께 배우고 돕기 위한 비판임을 상대에게 이해시키는 게 중요하다. 무엇보다 자기가 던지는 말이 상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고 비판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한다. 대개 신입사원들이 회사에 들어오면 가장 먼저 하는 게, 징징대는 일이다. 상사들은 그 신입들이 징징대는 걸 이해하지 못하고, 신입들은 '열심히 했는데 왜 자꾸 나를 깨지?'라고 의문을 갖는다. 문제는 상사의 입장에서 나 자신을 바라보지 않기 때문이다. 상사를 탐구하려는 자세도 필요하다. 평소에도 상사의 이야기를 많이 들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신뢰’라는 거미줄이 생기면, 쓴소리가 약으로 들린다. 반면 부하가 대들어도, ‘얘가 이유가 있겠거니’ 생각할 수 있다. 


“온화한 상사보다 까칠한 상사와 어울려라”라고 말했는데,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는 당연히 원만한 성격의 상사 앞에서 느긋한 마음으로 아이디어를 어필하고 싶다. 하지만 애덤 그랜트 교수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한다. 아주 원만한 성품의 사람보다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내본 적이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제안을 펼치는 것이 훨씬 낫다는 거다. 원만한 사람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끄덕이고 미소를 짓지만, 갈등은 피하고자 하기에 상대의 의견에 대한 비판을 꺼린다. 당신에게 꼭 필요한 피드백을 주지 않을뿐더러, 아이디어가 새롭고 도전적일수록 몸을 사린다. 반면 까칠한 상사는 자신 역시 도전장을 내밀어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새로운 아이디어에 열려 있다. 크고 작은 갈등이 예정되어 있어도 부하의 아이디어가 조직의 임무 달성에 득이 된다고 생각하면 기꺼이 부하를 돕는다.


저자가 경험한 상사들 중에 베스트로 꼽는 유형이 궁금하다.


일단 자기 업무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상사다. 가장 피곤한 게 자기앞가림을 못하는 경우다. 능력 있는 상사라면 판단을 빠르게 하고 의사결정을 적시에 해줘야 한다. 두 번째는 쓴소리다. 직장 관계에 있어서 ‘좋은 게 좋다’는 생각을 하면, 쓴소리를 할 수 없다. 늘 좋다가 한 번 쓴소리를 하면, 관계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나는 좀 까칠해도 직언을 잘하는 사람과 일하는 게 훨씬 편하다. 마지막은 ‘내가 팀장인데, 내가 상무인데’하는 마인드가 없는 상사다. 이런 마인드가 있는 상사에게는 누구도 쉽게 다가가지 못한다. 부하들이 중간 보고를 빨리빨리 할 수 있도록 피드백이 빠른 상사가 좋다.


함께 일하고 싶은 부하, 후배들은 어떤 유형인가?


내가 말을 안 해도 나의 다음 스텝을 꿰뚫어 보는 부하가 좋다. 일을 잘하는 부하는 납기일 전까지 상사의 피드백을 받고, 완벽하게 마감을 지킨다. 또 여기서 끝내지 않고, 상사의 상사가 어떤 결과물을 원하는 지까지 동선을 짜놓으면 금상천화다. 이런 사람은 누구라도 같이 일하고 싶지 않을까. 


가끔 모든 부하에게 존칭을 쓰는 상사를 본다. 회사 문화의 영향도 있겠지만 결국 본인의 선택이다. 상대가 나를 존중을 해준다는 느낌이 들면, 저절로 잘하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전 직장에서 커뮤니케이션 팀장으로 일했는데 모든 부하에게 존칭을 썼다. 직장이란, 일하러 모인 곳 아닌가? 우리는 계약 관계일 뿐이다. 개인의 선택이겠지만 존칭을 쓰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한다.


적절한 거리 유지도 중요하다. 


물론이다. 거리감, 분명 중요하다. 직장 내 관계를 잘 유지하려면, 각자 자기 몫을 잘하는 방법밖에 없다. 서로의 사적 공간을 지나치게 침해하지 않는 지혜도 필요한 것 같다. 쉽지 않지만, 적절한 거리감이 있어야 불필요한 오해나 상처를 받지 않을 수 있다. 업무를 할 때는 업무 모드로 하는 게 좋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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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특장을 강화하고 싶다면


아무래도 직장생활을 처음 경험하는 사람, 사회생활이 어려운 사람이 이 책을 읽을 텐데, 저자로서 『회사의 언어』가 어떻게 읽히길 바라나.


일단 재밌게 읽었으면 좋겠다. 내가 독자로 책을 볼 때, 저자가 너무 가르치는 듯한 어조로 말하면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책을 읽다가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게 가장 좋은 것 같다. 그렇기 위해서는 일단 재미가 있어야 하니까, 재밌게 받아들여졌으면 한다. 또 하나는 공감이다. 나 역시, 초년생 시절에 ‘지진아’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다. (웃음) 나도 많이 겪어본 일이기 때문에 공감대가 잘 형성되면 좋을 것 같다. 


현재 워킹맘이다. 저자의 페이스북을 보니, “워킹맘으로 두 아들 키우며 이런 책까지 펴낼 수 있는 기술이 궁금하다’는 이야기가 있더라. 


(웃음) 나는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으로 글을 쓸 때가 너무 행복하다. 회사 일만 계속하다 보면, 육아만 계속하다 보면 그 안에서 박탈감이 생길 때가 있는데, 이런 스트레스를 글로 푼다. 거창하게 말하면 영혼을 정화시킨다고 할까? 글로 내 생각을 배설하니까 회사에서도 가정에서도 스트레스를 덜 받는 것 같다. 후배들에게도 자주 말한다. “회사의 밭만 갈지 말고, 자신의 밭을 갈라”고.


특히 이 책을 추천하고 싶은 대상이 있을까?


입사를 앞둔 사람들이 보면 좋겠다. 신입사원들이 회사에 들어오면 한 달씩 집합교육을 받는데, 대개 주입하는 메시지가 “우리는 하나”다. 그런데 막상 일을 시작하면, 현실은 너무 다르다. 상사마다, 직급마다, 부서마다 너무 다르니까 이 간극을 이해하지 못하면 직장생활을 견디기 어렵다. 우리는 원래 힘들고, 원래 다르다. 요즘 20,30대는 문자로 소통하는 세대 아닌가. 대면하는 걸 힘들어 하는 세대이기 때문에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꼬이면, 쉽게 지치고 포기한다. 책을 읽었다고 완전히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현실을 알면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다. 자기 특장을 강화하고 싶은 사람들이 읽으면 좋겠다. 


준비하고 있는 후속작이 있을 것 같다.


아직 구체화된 건 아니지만, 좋은 남성의 표본이 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써보면 어떨까 싶다. 지금 내가 하는 일이 PI(President Identity)이기 때문에 어떤 이미지, 어떤 모델을 찾아야 하는데 아무리 봐도 롤모델이 없다. 이미지 메이킹에서 끝나버리는 경우가 많다. 지금 한국사회에서는 꼰대, 마초 등 남성들의 부정적인 면이 부각되는데 찾아보면 진흙 속의 진주 같은 사람이 분명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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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지키는 당신만 손해 보는 이메일 TIP


1 응답하라, 내 메일에


직장 내의 수신인은 두 종류로 나뉜다. 응답하는 사람과 응답하지 않는 사람. 물론 ‘회신을 꼭 달라’라든지 ‘긴급히 의사결정을 요청드립니다’ 같은 이메일에 반응하지 않기란 힘들다. 문제는 업무에 도움이 되는 자료를 건네주거나 팀의 일정을 공유하는 경우다. 회신을 해주면 좋지만 긴급하지 않은 이메일이다. 이때 당신은 회신하는 쪽인가 아닌가? “잘 받았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한마디 회신민으로도 상대에게 당신의 호감도는 즉각 솟아오른다.


2 상대를 안심시키는 이메일


잦은 이메일로 상사를 번거롭게 하고 싶지 않아, 회신을 안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주로 신입사원들이 저지르는 실수다. 하지만 상사의 이메일에는 모두 응답하는 게 정석이다. “네, 알겠습니다”로 마무리되는 초간단 회신보다는 “네, 현재 자료 취합 중입니다.”, “자료가 오지 않을 경우 (언제까지) 따로 보고 드리겠습니다.” 등의 회신이 더 좋다.


3 플래그


플래그는 수십, 수백 통의 이메일 가운데 당신이 꼭 기억해야 하고 회신해야 할 이메일을 표시해주는 중요한 도구다. 아웃룩 이메일을 사용한다면 플래그를 활용하자. 


4 보관의 습관


부하 직원이 했던 말, 자신이 했던 말을 모두 깜빡깜빡 하는 게 특기인 상사들과 함께 일할 때는 기록의 습관이 필수다. ‘보관의 습관’은 방어용으로만 필요한 게 아니다. 업무에 중요한 문서나 참고해야 할 파일의 경우에도 따로 폴더를 만들어 놓으면, 다른 사람에게 “그때 그 문서 좀 전달해줄래요?”라고 번거로운 부탁을 할 필요가 없다.


5 칭찬을 수집하라


당신의 상사가 평소에는 업무 능력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다가 고과 시즌만 되면 갑자기 인색해지는 유형이라면? 선공에 나서자. 무기는 이메일이다. 상사가 입으로 하는 칭찬은 녹취가 안 되지만 이메일에 남겨 놓은 당신에 대한 인정은 기록으로 남는다. 


6 감사 혹은 사과? 과하면 질린다


감사든 미안함이든 진심을 담아 한 번만 표현하면 된다. 감사 인사의 경우 세 가지가 들어 있어야 한다. 감사한 이유(나를 기쁘게 한 상대의 행동), 상대의 행동으로 채워진 나의 욕구, 욕구가 충족됐기에 피어나는 즐거운 느낌이다. 죄송하다는 표현도 과하면 필요 이상으로 당신이 잘못한 것처럼 비춰진다. 내 의도가 정확히 전달되면서도 깔끔한 이메일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하자. 중요한 이메일일수록 ‘보내기’를 누르기 전에 수차례 다시 읽고 고쳐 써봐야 한다.


(『회사의 언어』, 59~6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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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의 언어김남인 저 | 어크로스
핵심을 짚어내고 박수 받고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직원의 언어 습관은 무엇일까? 여유 있게 상사를 리드하는 신입 사원의 질문, 표현이 서툰 동기의 존재감을 발휘하는 이메일 쓰기, 듣기 고수 부장님의 노트 필기법까지. 센스 있게 듣고 제대로 표현해 나와 조직의 목표를 성취해내는 ‘회사의 언어’가 펼쳐진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마타요시 나오키 “문학의 뿌리는 어쩌면 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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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제정된 아쿠타가와 상은 신인이나 무명작가에게 수여하는 일본의 문학상이다. 그동안 엔도 슈사쿠, 마쓰모토 세이쵸, 오에 겐자부로처럼 지금은 대작가의 반열에 오른 사람들이 이 상으로 이름을 알렸다. 신인으로서는 꿈의 무대에 가까운 셈이다.


지난 2015년, 일본 출판계가 술렁였다. 만담 개그로 이름을 알린 코미디언 마타요시 나오키가 소설 『불꽃 HIBANA』로 153회 아쿠타가와 상을 수상했기 때문이다. 순문학의 최고봉으로 알려진 상을 개그맨이 받았다는 뉴스 자체로 『불꽃 HIBANA』는 주목을 받았다. 이후 내용 면에서도 개그맨이 쓴 첫 소설이자 개그계를 무대로 한 소설이라는 이슈로 주목을 받았고, 개그맨들의 가슴 찡한 인생사가 열렬한 호응과 공감을 이끌어내며 2016년 6월까지 일본에서만 260만 부가 팔려나갔다. 80년 동안 아쿠타가와 상을 받은 작품 중 단행본으로는 가장 많이 팔린 책이다.


『불꽃 HIBANA』의 주인공들은 마타요시가 한때 그랬듯 무명 개그맨이다. 인기 없는 젊은 개그맨들이 성공하고자 애쓰는 짠한 이야기로 여겨질 수도 있으나, 주인공 도쿠나가와 가미야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가혹한 경쟁 사회에서 고군분투하는 청춘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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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업계의 희망’이었던 수상 소식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다는 뉴스를 처음 들었을 때, 어떤 기분이셨나요?


후보에 올라갔을 때 가장 놀랐습니다. 개그맨이 쓴 책이라는 건, 거의 탤런트 책(연예인이 집필해서 낸 책)으로 다뤄져왔기 때문에, 제대로 된 문학으로써 읽어주셨다는 놀라움이 있었습니다. 수상했을 때는 순수하게 기뻤지만 한편으로는, 어릴 적부터 작품을 읽어왔던 심사위원 분들께서 어떤 식으로 제 소설을 읽어주셨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책이 불티나게 팔리면서 <제팬 타임스> 등에서는 ‘출판 업계의 희망’이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수상 이후 사람들의 반응이나 작가 선생님의 감상도 궁금한데요.


문학 작품이라고 하면 고상해서 접하기 어려운 이미지가 있는 가운데, “텔레비전에서 우리들과 같은 말로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이 쓴 책이라면,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많은 사람들이 읽어줬다고 생각합니다. 분명 소설 자체의 힘만이 아닐 겁니다. 그런 의미로는, 많은 사람들과 그 안에 책에 대한 잠재적인 관심이 있었다는 걸 알게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소설에서 주인공 도쿠나가가 인터넷 기사의 댓글을 보고 ‘구원받는’ 장면이 있습니다. 작가님은 기사의 댓글을 자주 보시나요?


『불꽃 HIBANA』을 쓰기 전까지는 읽지 않았습니다. 인터넷이 보급되기 시작하던 즈음, 제 이름으로 검색했더니 “장난 아니게 어두운 놈이 있어” 같은 게 쓰여있었기 때문에 더는 보지 말아야겠다 생각했어요. 『불꽃 HIBANA』 이후에는 읽습니다. 이론적으로는 그런 건 읽지 않고 신경 안 쓰는 게 능률이 올라갈 거라는 건 알지만, 역시 감정적으로는 궁금하기도 해서 읽고 마네요.

 

넷플릭스의 웹드라마로도 제작됐습니다. 작가님의 이야기를 드라마로 보는 기분은 어땠나요?


무척 신중하게 만들어주셔서 정말 즐겁게 봤습니다. 드라마에 캐스팅된 분이나 스태프 분들이 각각 걸어온 인생을 겹치고 포개서 만들었다는 말씀도 들어서 기뻤습니다.

 

작가로 유명해지면서 스케줄이 많아졌을거라 생각합니다. 만담 팀 ‘피스’ 일과 작가로서의 일을 둘 다 하면서 개그 파트너인 아야베 유지와 트러블이 생기지는 않았나요? 


아야베에게는 아야베 나름대로, 할리우드에서 영화 데뷔한다는 장대한 꿈이 있기 때문에 (웃음), 딱히 트러블이 있지는 않아요.


작가님에게도 영향을 준 선배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다자이 오사무,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후루이 요시키치, 마치다 코우, 나카무라 후미노리, 니시 카나코, 히라노 케이치로 같은 분들입니다.


요즘 개그맨 후배들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사람은 점점 늘어나는 가운데 다른 사람이 한 적 없는 개그를 모색하고, 각자가 지금 시대에 맞는 웃음을 만들어 내려고 하고 있습니다. 재능이 풍부한 후배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만담(만자이漫才)는 한국에서 그다지 친숙하지 않은 개그 분야입니다. 만담만의 묘미를 알려주세요.


이야기만으로, 마이크만 있다면, 장소에 따라서는 마이크가 없어도 보케와 츳코미만 있다면 성립되는 점일까요. 어디에서도 할 수 있는 점. 그런 부분에 재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만자이漫才 : 일본 개그맨들에게 흔히 볼 수 있는 콤비 개그. 주로 이야기를 진행하는 역할인 츳코미와 진행을 방해하거나 엉뚱한 말을 하는 역인 보케 사이 대화로 웃음을 이끌어낸다.  

 

특별히 소설을 쓴 계기가 있었나요?


원래부터 제작하는 것 자체를 좋아했지만, 소설이라는 세계에는 대단한 작가 분들이 많이 계시기 때문에 제가 쓰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니시 카나코씨의 『사라바!』를 읽고 용기를 얻어서, 스스로가 하고 싶은 일을 무엇이든 해도 된다는 마음이 든 게 큰 계기였습니다.

 

책 제목인 ‘불꽃’은 주인공이 속한 개그 팀 이름 ‘스파크스’를 뜻한 건가요?


그런 것도 있고, 주인공과 카미야 선배 두 사람의 관계성이기도 합니다.

 

카미야 선배는 개그에 대한 지론이 있는 듯 합니다. 개그에 대한 올곧은 자세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거나, 오히려 재미없어서 슬픈 상황을 만들기도 하는데요. 카미야의 입을 빌려 작가님의 개그론을 펼친 거였나요?


 “일단 코미디언인 이상, 재미있는 개그가 절대적인 사명이라는 건 당연한 얘기고, 일상의 다양한 행동까지 모조리 개그를 위해 존재하는 거야. (중략) 개그는 재미있는 것을 상상해내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거짓 없이 순정한 인간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지.” 

『불꽃 HIBANA』, 27쪽


카미야와 저와는 겹쳐지는 부분도 있지만, 전혀 다른 부분도 있습니다. 쓰고 있는 중간에 그때까지는 제 머릿속에 없던 생각들인데, 자연스럽게 (카미야의 대사로써) 쓰게 되어서, 아, 그렇구나, 그런 생각들도 있구나, 하고 (이야기 속의 카미야에게) 깨닫는 순간도 있었습니다.



 

크기변환_불꽃_마타요시 나오키 (1).jpeg


개그와 문학의 연결고리


개그와 문학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말씀해 주신다면?


개그와 문학은 무척이나 닮아있습니다. 원래 일본에서 소설은 문어체로 쓰여져 있어서 전혀 읽히지않았습니다. 그랬던 게 라쿠고(落語)의 속기본(速記本)에서, 라쿠고가가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써보았더니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것에서, 언문일체라는 현재의 일본 문학이 시작된 것입니다. 문학의 뿌리는 개그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사람을 웃게 하기 위한 것이지만, 문학이라는 것은 웃기는 일뿐 아니라 사회적인 것을 쓰는 것도 금지되어있지 않고, 연애라든지 다양한 것에 관해서 쓸 수 있다는 의미에서 지금은 문학 쪽이 자유도가 높을지도 모르겠네요.

  

“문학 냄새가 짙어지는 것을 잘 억눌렀다” 는 서평도 있었습니다. 문학은 재미없고 어려운 것이라는 시선도 있는데요. 작가님이 생각하는 문학이란 무엇인가요? 


어려운 것, 복잡한 것을 간단하게 만들면 된다는 생각은 꽤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거면, 흰색과 검정색 말고는 없는 건가, 싶은 생각도 들고요. 가운데 그라데이션이 무시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세상 모든 사건들이 좋은가 나쁜가로만 나눠지기 마련입니다. 그렇지만 상황에 따라서 회색이거나 그라데이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것들에 대해 문학은 무척이나 성실하게 다가갈 수 있는 장르라고 생각합니다.


롤모델로 삼는 작가나 개그맨이 있나요?


작가로 말하자면, 아까 말씀 드렸던 다자이 오사무,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후루이 요시키치, 마치다 코우, 나카무라 후미노리, 니시 카나코, 히라노 케이치로 같은 분들입니다. 개그맨 중에는, 지금까지 순 문학 같은 장르를 쓴 사람이 없기 때문에, 롤모델이라고 할 만한 분이 없을지도 모르겠네요.

 

“어릴 때부터 텔레비전에서 익히 봐왔던 코미디 계의 대부가 타계했다는 소식이 보도되었다(80쪽)” 는 문장이 나옵니다. 실제로 존재했던 개그맨을 향한 오마주인가요?


유메지 이토시, 키미 코이시라는 대선배 만담 콤비입니다.

 

독자들이 무엇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읽기를 바라시나요?


일본에서는 돈도 학력도 없는 사람이 무언가 새로운 것을 시작하고 싶다, 찬스를 잡고 싶다고 생각하면 누구나가 뛰어드는 것이 개그의 세계입니다. 반대로 집이 부유하고 엄청난 학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참전할 수 있는 평등하고 자유롭고 즐거운 장소입니다.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읽어주셨으면 합니다.

 

앞으로 쓰고 싶은 소설이 있나요?


여러 가지 상황에 놓인 인간에 대해서, 아주 끝까지 깊이 파고들어가는 글을 써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역시 저는 개그맨이기 때문에, 사람들을 웃게 하는 문장을 언젠가 써보고 싶습니다.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이나 연예인이 되고 싶은 분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여러 가지 일에 흥미를 가졌으면 합니다. 하나의 장르에만 구애되지 말고, 여러 가지 것들을 접하는 것. 하나의 장르에만 구애받으면 그 장르의 말밖에 사용 못 하니까, 전부 비슷하게 되어 버립니다. 여러 장르를 넘어서 다양한 것들을 보는 자세가 필요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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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 HIBANA마타요시 나오키 저/양윤옥 역 | 소미미디어
《불꽃_HIBANA》은 개그맨이 쓴 첫 소설이자 개그계를 무대로 한 소설, 이라는 이슈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이후 사람들을 웃겨서 먹고사는 개그맨들의 가슴 찡한 인생사가 일본 출판계, 평론가, 독자들의 열렬한 호응과 공감을 이끌어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윤석철, 재즈부터 힙합, 레게까지 넘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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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철 트리오, 안녕의 온도, 방백, 자이언티 앨범에는 공통된 이름이 있다. 아니 어쩌면 이 그룹들 외에 더 많은 가수들 앨범에서 그의 이름을 발견할지도 모르겠다. 재즈부터 힙합, 레게까지 장르의 제한도 거의 없다. 이런 과감한 활동들은 윤석철 트리오의 최근작 <자유리듬>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제목부터 자유로운 EP는 다양한 요소들이 감각적으로 융합되어 있다.

 

평소에는 거의 반달눈으로 웃고 있는 그이지만 음악에 대해 이야기할 때 눈빛은 완전히 달랐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자신의 생각을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표현해나갔다. 외유내강형 '여대 앞에 사는 남자(EP 수록곡)'를 실제 그가 사는 여대 앞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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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가장 바쁜 아티스트가 아닐까 싶습니다. 최근에는 어떤 작업을 하고 있는지요?


서울재즈페스티벌 공연 이후로 좀 덜 바쁜 편입니다. (웃음) 윤석철 트리오 공연, 그리고 자이언티 공연을 준비하고 있고요. 최근에 알리X호란의 '품'을 편곡했습니다.

 

본인 작품이 아닌 다른 가수들과의 작업은 임하는 방식이나 느낌도 많이 다를 것 같은데요?


윤석철 트리오를 통해서는 제가 하고 싶은 재즈를 하고요. 장혜진, 자이언티, 이번 알리같이 다른 가수와 협업은 잘 꾸며주는 것이 제 역할인 것 같아요. 기본적으로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이 뭔지부터 잘 들으려고 해요. 그래야 서로 편해질 수 있어요. 함께 하는 사람의 마음이 편할 때 나도 편하고 음악도 편해지는 것 같아요. (웃음) 물론 뮤지션 스타일에 따라 작업 방식은 많이 달라져요. 샘 김 같은 경우에는 작업 시간, 방식이 어느 정도 짜여진 궤도나 루틴에서 움직였고요. 반대로 방백 앨범은 즉흥성이 중요했습니다. 합주도 작업도 거의 '너 알아서 하면 돼'의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정말 맘대로 했죠. (웃음)

 

방백은 재즈는 아니지만 재즈 스타일의 작업방식이었네요.


그렇죠. 굳이 장르를 나누자면 방백 앨범은 재즈가 아니라 성인 가요에 가깝죠! 어느 날 거의 밤이 다 되어가는 시간에 베이시스트 서영도 형이 당장 악기 가지고 오라고 전화가 왔어요. 그래서 달려갔더니 방백의 첫 합주였습니다. 처음에는 합주인데 악보가 없어서 어리둥절하기만 했어요. 그런데 작업이 진행될수록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재미가 찾아왔습니다. 같이 하는 분들이 워낙 모두 좋은 사람들이잖아요. 방백 외에도 여러 아티스트와의 작업과 경험들이 나의 음악 일부로 계속 작용하는 것 같아요.

 

과장이 아니라 정말로 윤석철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본인이 느끼기에 그 시점은 언제로 보나요?


하나는 <Love Is A Song>앨범 직후 스케치북에 출연하고 나서였어요. 아무래도 인기 프로그램이다 보니까 저까지 덩달아 잘된거죠. 그리고 작곡에 참여한 자이언티의 '그냥'이 나왔을 때도 사람들이 많이 알아봐줬어요. (작업은 어떻게 같이 하게 된건가요?) 자이언티가 제 작업실에 자주 놀러왔어요. 어느 날 갑자기 떠오른 8마디 곡을 들려주었거든요. 그러니까 자이언티가 나머지곡도 작업을 하겠다고 해서 '그래 그럼 '그냥' 해' 하고 했어요. (웃음) <즐겁게 음악>발매 직후에도 많이 찾아주셨어요. 대중들에게 재즈치곤 굉장히 '대중적으로' 다가온 모양이에요. 사실 이때 눈치 보면서 작업하지 않겠다란 생각으로 만들었거든요. 내 마음대로 하니까 오히려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져서 '상황이 역설적이다'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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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장르의 아티스트들과 작업을 하면서 느낀 점도 많을 것 같아요?


지금 나의 음악세계는 온전히 나만의 것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많은 뮤지션과 교류하고 작업한 경험들이 영감을 주고 있거든요. 특히 힙합을 하는 아티스트들과 친분이 생기면서 그들의 관점에 대해 배울 것이 많다고 느꼈어요. 일상적인 얘기를 하면서 보편적인 개념을 끌어오는 방식, 작은 소재나 아이디어를 통해 말하고 싶은 감정을 담는 방법을 보게 된거죠. 그래서인지 최근에는 앨범 제목을 가장 늦게 정해요. 작업 과정에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었는지 도리어 마지막에 정리하고 파악하기 위해서요.

 

그래서인지 이번 <자유리듬>에서 여러 음악적 시도가 엿보이는데요?


시간이 지나면서 제 음악의 지평도 좀 확장되고 있지 않을까요? 윤석철 트리오의 자양분은 보수성과 진보성의 공존이라고 생각해요. 이번 앨범, 특히 12분짜리 곡 '자유 리듬'에서는 일렉트로닉이 많이 묻어나 있습니다. 민준(DJ 소울스케이프)형이나 피제이형, 무드슐라와 교류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 같아요. 이 노래는 새로운 음악적 시도를 넘어서 지금껏 없던 음악을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작업 중에 인스타그램에 트랙을 올려보기도 하고 팬들에게 피드백을 받기도 했습니다.

 

확실히 최근에 전자음악에 푹 빠진 느낌이 들어요?


그렇습니다. 혼자 공연하는 세트 리스트에는 비트 가득한 드럼머신, 샘플러 같은 DJ 세트를 짤 때도 있어요. 나름 '힙'함을 표출하려는 노력으로 봐주셨으면 좋겠네요.

 

'렛슨 중', '렛슨 중2'는 중간에 어떤 상황이 펼쳐집니다. 이는 앨범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 건가요?


제 곡들은 대부분 연주곡들이라 의미 파악이 매우 힘들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서 어느 정도의 방향성은 알려주면 좋겠다 싶어서 '렛슨 중'을 삽입했어요. 녹음 과정이 재밌기도 하고요. 예를 들어 '렛슨 중' 같은 경우는 결석하고 숙제를 안해 온 학생에게 열심히 연습 안한다고 혼을 냅니다. 그러다가 결국은 함께 연주를 하면서 끝이 나는데요. 그저 즐거운 마음으로 음악을 하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 곡을 만들었어요. 바로 이어지는 곡 제목이 그래서 '즐겁게 음악'이고요. 이번 '렛슨 중2'도 비슷한 역할이에요. 똑같이 노크소리로 시작하고 학생과 선생님의 설정도 그대로죠. 다만 학생이 뮤지션 김간지로 바뀌었습니다. 또 숙제 검사를 하는데... 숙제가 재즈의 고전 'Giant steps'를 연습해오는 거죠. 자기 스타일대로 연주하려는 김간지때문에 제가 당황하는 상황이 나오는데요. 제가 간지에게 기본 코드부터 제대로 치라고 막 설교를 하죠. 그러다가 바로 다음에 이어지는 곡이 전위적으로 해체해버린 'Giant steps'입니다. 둘 다 역설적인 거죠.

 

직접 쓴 앨범 소개 글에서 '춘곤'을 설명하는 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제목을 많이 고민했던 곡입니다. 원래 만들어질 때부터 '춘곤'이라는 이름이었지만 어쩐지 음악에 슬픈 정서가 묻어 있어서 맞지 않겠다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한번 태어난 이름은 바꿀 수가 없었어요. 언젠가부터 봄은 조금 슬픈 계절이 되었습니다. 마냥 나른해질 수만은 없게 되었습니다. - 윤석철의 '춘곤' 소개글

사실 4월은 제게 기쁨으로 가득 찬 달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생일이 있거든요. 하지만 다들 아시다시피 4월은 어느 순간부터 슬픈 의미로 다가와요. 하지만 가만히 있는 것보다는 어느 정도 움직이는 게 슬픔을 이겨내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이 곡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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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 '르누아르'를 곡명으로 하는 것 보면 미술이나 시각적인 이미지에도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


미술에 대해 지식은 별로 없지만 좋아하는 편이에요. 그림들을 보고 곡에 영감을 받기도 하고, 반대로 제 곡을 영상이나 이미지로 발현시키고 싶은 욕구도 큽니다. 예전부터 비디오 아티스트와 협업을 하는 것이 꿈이었는데 이번에 처음으로 '자유리듬' 영상을 제작해보고 있어요.

 

그런 측면에서 앨범 커버도 참 독특한 것 같아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나요?


'삼청로 146'에서 방민혁이라는 분이 그림 전시를 한 적이 있어요. 그 때 같이 작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제가 앨범 이미지를 부탁드렸어요. 음악이 주는 이미지가 악기들을 추상화하고 그 악기들이 또한 다양한 모형으로 발현된 느낌이 들어요.

 

정말 많은 활동을 하고 있고 앞으로도 일정이 참 많으시죠? 앞으로의 계획 보다는 나아갈 방향이 더 궁금해집니다.


제가 허비 행콕(Herbie Hancock)을 정말 좋아해요. 내한 공연은 다 찾아가볼 정도로요. 그는 비밥, 하드밥을 뿌리에 두고 퓨전, 퓨처 재즈를 만들고 있죠. 좋아하는 사람이다 보니까 그와 제가 추구하는 갈래가 맞닿아있는 것 같기도 해요. 저의 방향도 퓨전이지만요. 이도 저도 아니게 되는 것은 가장 경계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즘 공식 질문입니다. 인생곡 3개를 뽑자면?


정말 어렵네요. 먼저 어릴 때부터 좋아하던 곡이자 <자유리듬>에 모티프인 미국 재즈피아니스트 썬 라(Sun Ra)의 'Disco 3000'을 뽑겠습니다. 동명의 앨범에 수록되어있는 곡인데 26분 동안 즉흥 음악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DJ소울스케이프가 추천해준 곡이자 브라질 대표가수 이반 린스(Ivan Lins)가 부른 'Setembro'도 좋아요. 멜로디의 아름다움이 경탄을 유발하죠. 퀸시 존스가 리메이크한 버전도 꼭 들어보시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자메이카의 키보드 제왕 재키 미투(Jackie Mittoo)가 발표한 1981년 앨범 < Showcase >입니다. 곡으로는 'Jumping Jack'을 뽑을게요. 소울, 레게, 덥 같은 다양한 장르가 조화롭게 혼재되어 있습니다.


인터뷰, 정리 : 김반야, 이기찬
사진 : 김정변지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굴기 “나무는 비탈에 서 있는 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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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꼭 맞는 꽃』에는 “자연의 빈자리를 채우는 84가지 꽃 이야기”가 담겨있다. 복수초부터 난티나무까지, 우리 산하를 물들이는 꽃과 나무들을 계절별로 소개해 놓았다. ‘굴기’라는 필명처럼 저자는 기꺼이 몸을 구부려 작은 생명들과 눈을 맞췄다. 하나의 여린 잎에서 시작된 단상은 유년 시절의 기억을 끄집어내기도 하고, 현실의 삶을 비춰 보여주기도 했다. 그 속에 자연과 삶의 이치가 숨어있다.

 

이굴기 저자는 궁리출판사를 이끄는 대표이자 <세계의 문학>에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한 문인이다. ‘제15회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하기도 한 그의 감성은 조금도 녹슬지 않은 모습으로 책장 사이사이에서 말간 얼굴을 드러낸다. 서울대학교 식물학과를 졸업했으나 민음사, 사이언스북스에 둥지를 틀고 책 만드는 일에 몰두했던 저자는 5년 전까지만 해도 식물에 대해 별로 아는 것이 없었다고 말한다. 꽃동무들을 따라 산행을 다니며 식물들의 세계로 들어서게 된 과정이 『내게 꼭 맞는 꽃』안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 이야기를 듣기 위해 지난 18일, 파주출판단지에 위치한 궁리출판사를 찾았다. 사옥 1층에 자리 잡은 ‘플라워 스튜디오 메이릴리(MAY LILY)’에서 이루어진 인터뷰는 꽃과 나무를 통해 저자의 이야기를 들여다보고, 그 위에 우리 삶을 덧대어보는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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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이름을 외면 생각이 푸른 빛으로 변해요


대학에서 식물학을 전공하셨고, 지금도 꽃과 나무를 찾아서 산에 오르시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오랫동안 출판계와 인연을 이어오셨는지 궁금해요.

 

식물학과를 나왔는데 과가 마음에 안 들어서 엉뚱한 곳에서 헤매다가, 나이 오십이 다 되어서 꽃을 발견하게 된 거죠. 식물학과를 나왔다는 이력이 주는 중압감이 있었죠. 사소한 압력인데, 예를 들면, 등산을 가면 친구들이 다 저한테 꽃 이름을 물어보는 거예요.(웃음) 거짓말을 할 수는 없으니까 모른다고 했는데, 그러다가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기도 했고요. 이 세상이 식물들의 세계라는 걸 희미하게나마 알게 됐어요. 이 세상은 동물들의 세계가 아니고 식물들의 세계입니다. 생태계의 1차 생산자가 식물들 아닙니까. 식물이 없으면 동물들은 살 수가 없죠. 그리고 식물은 독립적인 생활을 하잖아요. 광합성을 하니까 햇빛하고 물만 있으면 살 수 있어요. 동물들은 광합성을 못하잖아요. 외부에서 먹이를 구하지 않으면 굶어 죽어요. 그러니까 식물은 독립적인 생활을 하는 것이고, 동물은 일종의 기생을 하는 거죠. 식물들이 펼쳐 놓은 바탕에 잠시 사는 거예요. 그게 세상의 진실을 올바르게 파악하는 것일 수 있죠.

 

많은 사람들이 자연 속에서 깨달음을 얻잖아요. 『내게 꼭 맞는 꽃』에도 철학적인 이야기가 많이 있는데, 같은 맥락이 아닐까 싶습니다.


철학까지는 아니고... 꽃 너머의 꽃, 식물 너머의 식물, 나무 너머의 나무를 한 번씩 생각해 보죠. 한 곳을 여러 번 보면서 그 너머의 의미를 캐내려고 하는 건, 사람이 가진 일종의 본능 같은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다 보니까 글도 쓰게 되고 기록도 하게 되는 거죠.

 

“꽃이 꽃으로 머문다면 그건 꽃이 아닐 것이다. 어렵게 이룩한 보름달도 하루 지나 쳐다보면 한 귀퉁이가 허물어지듯 절정은 잠깐이다”라는 말씀이 특히 기억에 남아요.


처음에는 저도 절정의 꽃, 잘생긴 꽃을 찾으려고 했죠. 벌레 먹지도 않고 완벽한 꽃이요. 그런데 완벽이라는 것을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 그건 내 눈의 조건을 말하는 것이지, 꽃은 그냥 있다가 지는 거예요. 그리고 바람과 벌이 꽃을 가만 놔두지 않아요. 조화라면 가장 예쁘고 티끌 하나 묻지 않은 모습으로 계속 있겠지만, 자연 속에 있는 꽃은 티 묻고 벌레 먹은 모습이 더 자연스러운 거예요. 사람들은 크고 화사한 꽃을 생각하는데 그런 건 순간에 불과하거든요. 그런 걸 찾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야겠구나’라는 생각을 했고요. 자연이라고 하는 곳은 벌레와 바람과 햇빛과 그런 모든 것들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싸우는 곳으로 파악할 수도 있는데, 그런 곳에서 꽃이라는 것은 흔들리고 훼손되고 조금 부족한 것일 수밖에 없는 거죠. 그런 걸 볼 줄 알아야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무덤가에서 살아가는 꽃들의 이야기도 자주 등장합니다. 우리가 순환의 질서 속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주는 것 같았어요.


저도 한때 시인을 생각했었고, 그래서 무덤과 죽음은 늘 관념 속에 자리 잡고 있죠. 그리고 생각하기 나름인데, 무덤이라는 곳이 굉장히 평온하고 안온한 곳이에요. 세상에서 가장 양명한 곳, 경치가 좋은 곳에 있기 십상이에요. 그러니까 무덤은 망자들한테도 좋은 곳이지만 꽃들한테도 굉장히 좋은 곳이에요. 후손들이 와서 햇빛이 잘 들게 해주고 물이 잘 빠지게 해주는 곳이니까요. 무덤가의 생태계를 보면 의외로 좋은 꽃들이 잘 자랍니다. 저도 산에 가면 항상 무덤 주변을 주의해서 보는데요. 꽃들의 잔치판이라고 할까요, 그런 생각이 드는 거죠.

 

꽃과 나무를 찾아 다니면서 체감하신 변화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예전에는 내가 세상하고 분리되어 있고 나는 자연계에서 떨어져 있다고 생각했어요. 먼지라도 하나 묻을까 싶어서 털어내고 유난을 떨기도 했죠. 그런데 미당 서정주의 시처럼, 꽃 한 송이가 피기 위해서는 천둥이 울고 먹구름이 치듯이, 다 연결돼 있다는 거잖아요. (꽃 한송이가) 거대한 우주의 질서를 보여주는 것처럼요. 산을 찾아가면서 ‘내가 자연과 분리되어 있지 않구나, 탯줄처럼 연결되어 있구나’ 하는 느낌을 많이 받죠.

 

책에서 소개해 주신 우리말 꽃 이름을 보면 참 다정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소박하지만 관심을 갖고 보지 않았다면 지어줄 수 없는 이름들이죠.


우리가 계속 삭막한 도시 생활을 하다 보니까 사람들이 자연에 가까이 가고 싶어 하잖아요. 물론 자연이라고 하는 것이 노자가 말한 것처럼 인자하지는 않아요. 관대하지는 않아요. 곤충도 있고, 더럽고 지저분하기도 하죠. 그런데 그 한 순간을 지나고 나면 자연을 있는 그대로 좋아하게 되잖아요. 우리가 생활하는 공간에도 나무 하나 꽃 한 송이가 없으면 얼마나 삭막합니까. 그런 것처럼 내가 하는 말 중에 꽃 이름을 하나 넣는다든지, 내가 쓰는 글에 나무 이름을 하나 넣으면 생태적으로 분위기가 살아나요. 마찬가지로 늘 꽃 이름 하나를 중얼거리면 내 생각이 푸른빛으로 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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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비탈에 서 있는 게 아닙니다


책에서 들려주신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시인 게리 스나이더가 주장하길 “아이들한테 동식물 이름 100개를 외우게 하면 심성 공부에 아주 좋다”고 했다죠.


그럼요. 저는 문학 평론하시는 김우창 선생님께 들은 이야기인데, 그 말이 맞다고 생각했어요.

 

그때부터 산을 찾아가기 시작하셨나요?


그게 계기가 됐죠. 미당이 말년에 정신력을 잃지 않기 위해서 세상의 높은 봉우리 이름을 다 외웠다고 하잖아요. 저는 우리나라의 꽃 이름만 다 외워도 정신력을 잃지 않을 것 같아요(웃음). 저는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지리산에 피어있는 꽃, 백두산에 피어있는 꽃, 천마산의 돌 귀퉁이에 피어 있는 꽃의 이름을 한 번씩 불러주면 그야말로 우리나라 전 국토의 면적들과 속속들이 대면해 보는 거 아닌가 싶어요. 저는 노후에 미당을 흉내 내서 꽃 이름을 줄줄 외우면서 정신력을 놓지 않으려고 노력할 거예요(웃음).

 

“마음에 두고 있는 꽃이 무어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그럴 때를 대비하여 한편에 은근히 꼬불쳐두고 싶은 꽃”으로 개별꽃을 꼽으셨어요. 이유가 궁금합니다.


개별꽃은 정말 흔하고 아무렇지 않아서 좋아요. 제가 꽃을 잘 모르고 어리둥절할 때 만난 꽃이기도 한데, 너무 흔하고 가장 낮은 곳에 있는 꽃 중에 하나예요. 물론 개별꽃의 종류도 많기는 한데, 정말 그 꽃을 보면 내 눈알이 간지러워집니다. 만져보면 손 안에 간지러워지고, 내 운명이 걸려 있다고 하는 손금도 간지러워져요. (개별꽃이) 이 땅의 지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그래서 개별꽃은 특별하게 애정도 많이 가죠. 꽃 자체로 보면 그렇게 화려하지는 않은데, 있는 듯 없는 듯 있으면서 많은 걸 설명해주고 보여준다는 느낌이 많이 듭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진리에 가깝잖아요. 5년 동안 꽃과 나무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되셨으니까, 같은 꽃이라도 예전과는 다르게 보이실 것 같아요. 어떠세요?


다르죠. 예전에는 발 없는 식물이 답답하겠다는 생각도 해봤는데, 갈수록 발 있는 우리가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요(웃음). 사실은 ‘나무들 비탈에 서다’라는 말도 맞는 말이 아니에요. 비탈은 나무한테 없어요. 우리한테나 있죠. 나무는 비탈에 서 있는 게 아닙니다. 아무리 급한 경사도 간단히 뛰어넘어 지구의 근원에 뿌리를 내리고 있죠.

 

『내게 꼭 맞는 꽃』에서 계절별, 월별로 꽃과 나무를 소개해 주셨는데요. 작가님은 어떤 꽃과 나무를 보시면서 계절이 변했음을 느끼세요?


요새는 욕심이 조금 사납게 발동을 해서 좋은 꽃 귀한 꽃을 찾아 다니려고 노력하는데요.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나무가 900종 정도 되고, 야생화가 3300종 정도 된다고 해요. 그 4200종을 일일이 다 보고 싶은 게 제 꿈이에요. 보통 일이 아니죠. 4200종을 다 보고 하나하나 글로 써야 되니까요. 때로는 꽃을 찾아 다닐 때도 있어요. 그렇게 꽃을 따라다니다 보면 계절의 변화를 알게 되죠.

 

요즘은 어떤 꽃들을 찾아 떠나시나요?


지금은 꽃이 별로 없는 계절이에요. 그런데 귀한 꽃들이 피죠. 어제는 강원도에 갔었는데 솔나리를 보고 왔어요. 그리고 돌 틈이나 바위 근처에서 병아리난초, 구름병아리난초 같은 꽃도 보고요. 요즘처럼 땡볕이 내리쬘 때는 열매가 자라고요. 조금 있으면 가을 꽃이 나타날 거예요. 조금 과도기이긴 한데, 그래도 산에 가면 귀한 꽃들이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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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태어나는 것


가장 많이 찾아가시는 산은 어디인가요?


지리산에 많이 가고요. 그리고 설악산에도 많이 가요. 책에 서문에서 저는 꽃에 대해서 초보자에 불과하다고 썼는데, 그게 겸손의 말이 아니고 실제로 그렇습니다. 저는 아직까지 꽃을 잘 몰라요. 그저 꽃 이름 몇 개 아는 정도에 불과하고요. 그래서 아직까지는 꽃동무 분들 뒤를 졸졸 따라다니죠. 그 분들은 꽃을 많이 아셔서 지금 이 시기에 어디를 가면 어느 꽃이 있다는 걸 아시거든요. 그 분들과 동행을 하죠. 그러다 보니까 봄에는 천마산, 여름에는 지리산, 가을에는 설악산, 이런 식으로 그때그때 맞춰서 다닙니다.

 

인왕산이나 수락산처럼 수도권에서 가까운 곳들도 찾아가시던데요. 그 중에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숨겨진 보물 같은 곳도 있을까요?


그런 건 없습니다(웃음). 사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곳에는 꽃은 별로 없고요. 인왕산은 제가 잊을 수 없는 곳이에요. 제 인생의 산이 됐죠. 저희 궁리 출판사 사무실이 인왕산 자락으로 이사를 갔었거든요. 40~50분 정도면 산에 올라갈 수 있었어요. 서울 한복판에 그런 산이 있다는 게 정말 신선하고 좋더라고요. 몇 발짝만 가면 인적 드문 곳이 나타나니까요. 그렇게 인왕산에 드나들면서 ‘산에 있는 나무와 꽃 중에 아는 게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면서 꽃에 빠지게 됐어요. 관심을 가지고 산에 다니니까 또 다르더라고요. 예를 들면, 지난번에 지리산에 가서 봤던 꽃이 인왕산에 있는 거예요. 그러면 느낌이 남다르죠. (책에서) 그런 경험과 감정을 글로 표현한 거예요.

 

이곳 궁리 출판사를 찾아오면서 기대가 컸습니다. 작가님께서 어떤 꽃과 나무를 심어놓으셨을까, 하고요. 책에서 보니 사옥을 증축할 때부터 공을 많이 들이셨더라고요.


그랬죠. 건물이 들어서기 전부터 벽돌 하나부터 시작해서 다 카메라로 찍어놨어요. 그 과정도 책으로 쓸 겁니다. 건축가가 아닌 건축주의 입장에서요. 나사 하나에 세상이 있듯이, 계단 하나에 세상이 있고, 꽃 하나에 세상이 있잖아요. 그런 점에 주목해서 책을 써보려고 생각 중이에요. 예전에 건축 일지를 썼었고, 한 지점을 정해서 매일 사진을 찍었어요. 누에가 고치를 만들 듯이 건물이 착착 올라가는 과정이 다 기록되어 있습니다.

 

근무하시는 공간에도 꽃과 나무를 두고 보시죠?


그럼요, 있죠. 선물 받은 꽃도 있고요. 제가 꽃에 빠져들게 된 계기가 있는데, 사무실을 옮기면 때 축하 화분이 들어오잖아요. 옛날에는 거들떠도 안 봤어요. 말라 죽이기 바빴죠. 그런데 어느 날 말라비틀어진 나무를 하나 보는데 안됐더라고요. 가련한 느낌이 들고... 동병상련이라고 할까요, 그런 걸 느꼈어요. 그래서 물을 한 번 주니까 잘 크는 거예요. 그때 교감 같은 걸 나눈 뒤에 꽃에 대해서 일체감이 생기고 연결이 됐어요. 줄이 연결이 된 거예요.

 

시로 등단하셨고 ‘오늘의 작가상’을 수상하기도 하셨어요. 시인의 길을 계속 가시지 않은 이유가 궁금합니다.


내 실력이, 밑천이 들통 났기 때문에 그렇죠. 예전에는 뭣도 모르고 시를 썼는데, 알고 나니까 내 깜냥을 알게 된 거죠. 좋게 말하면 내가 내 분수를 알게 된 거예요. 분수를 돌이켜 보니까 이거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말이 정말 건방진 말일 수 있는데, 제가 좋아하는 말이 고인(故人)입니다. 시인보다 고인이라는 말이 퍽 좋습니다. 고인이라는 타이틀은 모두가 가지겠지만 아무때고 함부로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잖습니까. 한 몸이 한 일생을 통과해 내었을 때, 그거 시 아닌가요?

 

작가로서 책을 쓰실 때와 출판사 대표로서 책을 만드실 때,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사실 시라는 건 생활 속에서 태어나는 것이죠.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태어나는 것이 시고, 그런 시가 밀도가 높고 좋아요. 제 생각에는 문학이나 좋은 글도 깨끗한 곳에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고 시궁창, 더러운 곳, 뒤안길, 골목길, 인간의 땀 냄새가 배어나는 곳에서 태어나는 거란 말이죠. 그런 것처럼 책을 만드는 것이 제가 글을 쓰는 데에는 오히려 방해가 되겠죠. 자기 검열도 이루어지고 비교도 되니까요. 글이라는 것은 오로지 자기만의 세계에서 자기 생각과 자기 의기로 엮어내야 하는 것인데, 이런 곳에서 하기는 별로 좋지 않죠. 그래서 저는 어느 정도 분리합니다. (책을) 만드는 것은 만드는 것이고, (글을) 쓰는 것은 쓰는 것이죠. 『내게 꼭 맞는 꽃』은 제가 직접 가서 손으로 만져 보고, 눈으로 핥아 보고, 혀로 입에 넣어 보고, 코로 냄새 맡아 본 식물들에 대한 기록이에요. 제가 체험하지 않은 것은 문장화할 수 없으니까요. 그렇다 보니까 조금 생생한 느낌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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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기(屈己)하는 순간이 가장 황홀합니다


출판사 이름이 독특해서 한 번 들으면 잊지 않을 것 같아요. “배우고 익히는 데 궁리보다 앞서는 것이 없고, 궁리의 요체는 모름지기 독서에 있다”는 주자의 말에서 따오신 거죠?


그렇죠. 옛날의 궁리학이 요새로 치면 과학인 거예요. 과학이라는 게 사물을 자세히 보고 쪼개고 분석한다는 뜻이거든요. 궁리가 그겁니다. 그리고 생각을 하고 또 하는 것이 궁리니까, 생각의 고급 표현으로 보이기도 하고요. 처음에 출판사 이름으로 정할 때는 많이 망설였어요. ‘궁(窮)’의 의미가 상당히 다양하기도 하고, 어떤 분은 ‘출판사 이름에 무슨 궁자를 쓰느냐’는 이야기도 하셨거든요. 그런데 짓고 나서 보니까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이름이든지 그걸 사용하는 사람이 어떻게 가꾸어나가고 의미부여를 해 나가느냐에 따라 달라지거든요. 저희들은 궁리라는 말이 좋고, 이 이름을 귀엽게 봐주시는 분들도 있는 것 같아요. 인상적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독특한 이름을 이야기하면서 작가님의 필명 ‘굴기’를 빼놓을 수 없겠죠. 어떤 의미를 담아 지으셨나요?


이름이라고 하는 것이 나와는 전혀 상관없이, 내가 정신 차리지도 못할 때 붙여진 것 아닙니까. 누구나 다 마찬가지죠. 그리고 본인 것이지만 본인이 가장 잘 쓰지 않고, 그러면서도 안 쓸 수는 없는 것이에요. 그런데 사람이 살아가면서 자기를 바꾸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예전의 나와 다른 모습이 되고 싶다고 생각할 수 있는 거예요. 그럴 때 자신의 일부가 아닌 전부를 바꾸는 방법이 이름을 바꾸는 거예요. 저도 나이 오십이 되니까 뭔가 다른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전면적으로, 확실하게,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고 싶더라고요. 그때쯤 친구들과 모여서 이야기하면서 호를 지었어요. 당시에 제가 운동 겸 매일 108배를 했는데 ‘일일굴신 평생지업(一日屈身 平生之業) 평생지업 일일굴신(平生之業 一日屈身)’이라고 적어놨었어요. 내 평생의 과업은 매일 절을 하는 것이라고요. 그런데 ‘굴신’이라고 하면 뭔가 조금 별로였는데, 어느 날 ‘몸 신(身)’ 대신 ‘몸 기(己)’로 바꾸니까 느낌이 다른 거예요. 그때 ‘굴기’를 호로 삼았죠. 그러다가 꽃에 빠지게 됐는데, 꽃 사진을 찍으려면 몸을 구부려야 하잖아요. 저는 그저 ‘세상에 대해서 한 번 나를 낮춰서 보겠다’는 의미로 ‘굴기’라는 호를 지었는데, 마침 꽃 사진을 찍을 때의 동작도 아우르는 말이더라고요. 그래서 필명으로 쓰게 된 거예요.

 

낮은 곳의 꽃과 눈높이를 맞춰주시는 순간을 상상해 보면, 정말 다정한 풍경인 것 같습니다.


그렇죠. 누구나 가장 행복한 순간이 있는데, 저는 산에 드나들면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 몇 개 생겼어요. 그 중 하나가 아무도 없는 산 속에 가서 피어있는 꽃을 볼 때예요. 그런 곳을 보면 낙엽이 많이 깔려있거든요. 세상의 적막을 흡수하고 있는, 침묵하고 있는 낙엽들이에요. 그 낙엽들 위로 내가 엎어지면, 낙엽들한테는 대단히 미안한 이야기인데, 꼬부라지면서 바스락 소리가 나요. 내 콧김 소리도 나고요. 그 소리를 내 귀로 들으면서 굴기할 때, 그때가 정말 행복합니다. 황홀합니다.

 

‘작가로서 쓰고 싶은 책’과 ‘출판사 대표로서 만들고 싶은 책’이 크게 다를 것 같지 않은데요. 어떠세요?

 

사실 제가 쓸 수 있는 책이라는 건 제한되어 있죠. 제가 경험한 것, 제가 아는 것을 써야 되니까요. 그런데 만들고 싶은 책은 제가 쓰는 글이 아니잖아요. 세상에 흩어져 있는 원고를 기획해서, 또는 운 좋게 만나서, 그 분들과 의기투합해서 만드는 거니까요. 선택의 폭이 넓고 기회도 많겠죠. 그래서 제가 쓰고 싶은 책에 대해서는 할 이야기가 별로 없고요. 만들고 싶은 책에 대한 욕심은 몇 가지 있습니다. 첫 번째로 사전류를 많이 만들고 싶어요. 궁리(출판사)에서『세계만물 그림사전』을 만들기도 했는데, 그런 책을 내면서 늘 드는 생각은, 제가 볼 때 사전은 세상의 전부를 부분적으로나마 건드리는 책인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사전류를 만들고 싶어요.

 

‘작가로서 쓰고 싶은 책’ 가운데에는 『내게 꼭 맞는 꽃』의 뒤를 잇는 책도 포함되어 있겠죠?


그 책도 있고요. 말씀 드렸던 것처럼 궁리 사옥을 짓기까지의 과정도 책으로 엮을 생각이에요. 유리창, 계단, 흙, 돌멩이, 모래, 자갈, 물, 지나가는 바람... 이런 게 다 건축의 요소잖아요. 그런 것들에 대해서 저의 단편적인 생각을 집어넣어서 의미를 새롭게 환기시키고 싶어요. 어떻게 그런 것들이 유기적으로 연결이 돼서 사람이 사는 집이 되는지 이야기해보고 싶고요.  그리고 꽃이나 일상을 한시로 풀어서 써보고 싶은 생각도 하고 있어요.

 

『꽃산행 꽃詩』에서도 꽃과 시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었죠. 


그렇죠. 이번에는 꽃과 한시에 대한 책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런 내용을 ‘궁리닷컴(www.kungree.com)에 일부 연재를 시작한 셈이에요. 일주일에 2-3편의 글을 올립니다. 일상에서 건져 올린 단상을 책, 영화, 한시와 엮어서 쓰는 글도 있고요. 꽃산행에서 주어온 궁리를 표현한 짧은 글도 있습니다. 아마 100개의 꽃 이름을 중얼거리는데 많은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내게 꼭 맞는 꽃』은 어떤 독자들에게 꼭 맞는 책이 될 것 같으세요?


두루두루 꽃이나 자연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계시고 그와 관련해서 뭔가를 해보고 싶은 분이라면 이런 책이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은 듭니다. 뭔가를 안다는 것은 그것을 직접적으로 때리고 부수고 무너뜨리고 만져서 아는 게 아니잖아요. 그것의 분위기와 배경과 의미를 안다는 거죠. 그런 것처럼 꽃에 대해서, 식물에 대해서, 자연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으신 분들은 제 책을 읽으시면서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하고 느끼시는 부분이 있을 것 같아요. 꽃과 나무도 나름대로 처한 조건과 환경이 있거든요. 자연의 다른 부분들과 맺고 있는 관계도 있고요. 그런 걸 종합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실마리를 주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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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꼭 맞는 꽃이굴기 저 | 궁리출판
이 책은 우리가 평소 무심코 지나치는 산과 들에서 어엿하게 살아가는 꽃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는 꽃의 세계에 뒤늦게 입장한 초심자의 마음으로, 직접 걸음을 걸어 꽃 앞에 가서 육안으로 확인하고 코끝으로 냄새 맡은 바를 글로 담아내었다. 산과 들에 가서 꽃과 나무를 만나기까지의 과정과 꽃을 매개로 확장된 생각의 단면이 자유롭게 펼쳐진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박웅현 “사랑에 빠지거나 읽지 않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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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기대하게 하는 책.” 박웅현은 밀란 쿤데라의 『커튼』을 두고 이 같은 말을 했지만, 많은 독자는 그의 신작 『다시, 책은 도끼다』두고 이렇게 말할 것 같다. “풍요로운 삶을 위해 천천히 책을 읽자”는 박웅현의 조언은 5년 동안 변하지 않았다. 전작 『책은 도끼다』를 통해 인문적인 삶을 말했던 그는 다시 한
번 “책은 도끼”라고 강조한다. 단지 나만의 독법을 나누지만, 저마다의 방식으로 텍스트를 소화하길 바라며 18권의 책을 꼽았다. 프란츠 카프카의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려버리는 도끼가 아니면 안 되는 거야”라는 말은 여전히 유효하다. 쇼펜하우어는 “다독은 인간의 정신에서 탄력을 빼앗는 일종의 자해다. 압력이 너무 높아도 용수철은 탄력을 잃는다”고 했다. 박웅현은 이를 “바깥의 권위에 짓눌러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버리지 말라”고 해석한다.

 

『다시, 책은 도끼다』는 주체적인 사색이 필요한 책이다. 한 번에 후루룩 읽기보다 한 장씩 곱씹길 권한다. 곳곳에 써먹을 수 있는 카피도 무궁무진하다. 천천히 봐야 보인다. “생각이 에너지다” “사람을 향합니다” “진심이 짓는다” “혁신을 혁신하다” 등의 명카피를 만든 TBWA코리아 크리에이티브 대표 박웅현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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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워하면 궁금할 수가 없어요


『책은 도끼다』이후 5년 만입니다. ‘책에 대한 책’은 지금도 쏟아지고 있지 않나 싶어요.


많죠. 책을 소재로 한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어요. 실제 제가 도움을 받았던 책들도 있고요. 장정일의 『공부』, 유시민의 『청춘의 독서』, 정혜윤 PD의 『침대와 책』등이 독자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잖아요. 저자로서 바라는 것은 제 책이 다른 책으로 가는 다리가 됐으면 하는 거예요. 전작『책은 도끼다』가 얼마나 성공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목표는 다리였어요.

 

『다시, 책은 도끼다』는 지난해 초겨울부터 올 봄까지 여덟 차례 이뤄진 인문학 강연을 묶은 책입니다. “독서는 나만의 해석이다’부터 새 강독회가 시작됐어요. 쇼펜하우어의 『문장론』이 가장 먼저 등장하는데, 이 책을 다시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가장 바라는 건, 이 책이 다른 책으로 가는 통로가 되는 일이에요. 책에 소개된 책들의 판매 추이가 올라가면, 제가 책을 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독자들이 책을 천천히 읽길바랍니다. 물리적인 시간을 말하는 게 아니에요. 감정을 갖고 책을 읽으라는 뜻이에요. 나만의 느낌과 해석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책은 나이에 따라 다르게 읽히기도 하잖아요.

 

재밌는 게 40대 때 읽은 느낌과 50대 때 느낌이 또 달라요. 크게 보면 변곡점이 있어요. 하지만 5년 후에 읽으면 또 다른 재미, 의미가보여요. 재독, 삼독의 재미가 있는 거죠. 또 느끼는 건 ‘공감’이라는 부분이에요. 나라는 유기체가 어떤 상태에 있는지에 따라 객관적인 텍스트가 달리 해석되니까요. 나와의 교감 포인트가 다른 거죠. 책은 나랑 섞일 때, 비로소 의미가 있어요. 어떻게 보면 객관적인 책이라는 건 없죠. 그렇다면 나에게 들어온 게 아무것도 없다는 뜻일 테니까요.

 

사전이수과목으로 지정한 책도 꽤 많습니다.

 

옛날부터 많이 느낀 문제예요. 사람들에게 책을 추천할 때 자주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상대가 어느 정도의 독해 능력이 있는지 파악한 다음에 책을 추천해야지, 무조건 카뮈의 『페스트』를 읽으라고 하면 안 돼요. 문학적 훈련이 안 된 사람에게 책을 읽지 않는 완벽한 명분을 주는 거죠. 몇 쪽 읽다가 재미없을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사전이수과목을 듣는 게 좋아요. 저라면 카뮈로 들어가기 전에 번역가 김화영 선생의 책을 추천할 거예요. 하지만 『행복의 충격』부터 시작하는 건 또 아니에요. 이 책은 밀도가 가장 높은 책이에요. 이전에 『바람을 담는 집』『시간의 파도로 지은 성』『여름의 묘약』과 같은 에세이를
읽으면서 카뮈를 접한 후, 『행복의 충격』으로 넘어가는 게 좋아요. 이런 게 사전이수과목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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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을 책이 없을 때는 고전을 보면 실패하지 않는다고 하셨어요.


그렇게 읽은 책이 『파우스트』예요. 『콜레라시대의 사랑』은 누가 추천해줘서 읽었고요. 그냥 고전이니까 한 번 읽어보자 싶었죠. 지금은 『햄릿』을 읽고 있어요. 딱히 읽을 책이 없던 찰나에 눈에 띄었어요. 생각해보니 『햄릿』을 여태 제대로 안 읽었더라고요. 재밌게 읽고 있어요.

 

『파우스트』를 두고 “이 좋은 책을 책의 권위에 눌려서 팽개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씀하셨는데요.


고전을 무서워하지는 말되 궁금증은 버리지 말자는 뜻이에요. 사람들은 고전을 무서워해요. 세 줄 읽다가 이해가 잘 안 되면 던져버려요. 우리는 독문학자가 아니잖아요. 책을 갖고 논문을 쓸 것도 아니에요. 내가 좋으면 되는 거니까 무서워하지 말고 접근했으면 좋겠어요. 무서워하면 궁금할 수가 없어요. ‘『파우스트』가 유명한가 보지, 『보바리 부인』? 그런 거 몰라’ 하면서, 궁금해하지 않는데, 그러긴 너무 아쉽죠.

 

살만 루시디의 『한밤의 아이들』을 무척 재밌게 읽었는데, 책에도 등장해 반가웠어요. ‘읽지 않거나 사랑에 빠지거나 둘 중 하나’인 책이라고 소개하셔서 퍽 인상 깊었습니다.

 

미친 책이에요.(웃음) 읽자마자 이 문장이 떠올랐어요. 어떻게 이 책을 사람들이 안 좋아할 수 있을까 싶었어요. 이 말은 후배들과 이야기하다 나눈 말이에요. “『한밤의 아이들』,어때요?”라고 묻길래, 제가 이랬어요. “둘 중하나같아. 사랑에 빠지거나 읽지 않았거나.” 사실 『한밤의 아이들』은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어요. 이 책으로 들어가기 위한 사전이수과목으로 마르케스의 『콜레라 시대의 사랑』을 꼽은 건데, 『콜레라 시대의 사랑』은 너무 오래전에 읽은 책이라 감이10 안 잡혀 다시읽었더니, 또 빠져들더라고요. 빠져든 상태에서 강독회를 했더니『콜레라 시대의 사랑』야기가 너무 강렬해서 『한밤의 아이들』을 제 못 다룬 것 같아요. 그래서 뺄까도 고민했는데, 100명의 독자 중에서 10명 혹은 5명이라도 이 책을 읽는다면 의미가 있을 것 같아서 넣었어요.

 

사실 가장 속도감 있게 읽은 부분이 『콜레라시대의 사랑』입니다.

 

생각보다 잘 풀린 책이에요. 강독회를 했을 때 제 느낌이 그랬으니까요. 사실 『다시, 책은 도끼다』가 얼마나 반응이 있는지, 저 혼자 잣대로 삼은 책이 두 개 있는데 『커튼』『콜레라 시대의 사랑』이에요. 이 두 책은 꽤 쉽지 않아요. 다른 책들에 비해 구조가 넓기 때문에 잘 따라가야 소화할 수 있어요. 독자들이 두 책을 잘 따라온다면 성공이라고 생각해요.

 

『다시, 책은 도끼다』에서 한 권의 책을 꼽는다면, 저는 밀란 쿤데라의 『커튼』이었어요. “이 책 덕분에 은퇴를 기다릴 수 있게 됐다”는 말 때문예요.

 

저에겐 이 책이 『책은 도끼다』같은 책이에요.『커튼속에 나오는 책들을 모두 읽어보고 싶은 욕망이 있으니까요. 어떤 책들보다 책을 읽으면서 떠오르는 생각들이 많아서 밑줄 친 문장이 너무 많았던 책이기도 하고요. 『커튼』을 읽으면서 소설을 쓰는 일은 단순히 이야기를 잘 풀어간다고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소설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 소설을 읽으려는 사람들도 꼭 한번 읽어보면 좋겠어요. 소설 수업의 교재로 채택돼도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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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만 느낄 수 있게 했으면


책을 언제, 어디서 읽느냐에 따라 몰입도도 달라지지 않나요?


맞아요. 그런데 여기서 어느 때란, 물리적 시간적인 의미가 아니라 심리적 어느 때인 것 같아요. 오늘 인터뷰를 하기 전 짬이 나서 책을 보고 있었어요. 아주 복잡한 프로젝트 회의까지 2시간이 비었더라면 아마 책이 눈에 안 들어왔을 거예요. 머릿속에서 계속 프로젝트 고민만 했겠죠. 내가 어떤 마음 상태에 있는 지에 따라, 책에 관한 교감도 달라져요. 학창시절에도 책을 많이 읽으셨나요? 많이 읽었지만 읽었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프린트된 글자를 훑었다고 볼 수 있죠. 약간의 겉멋도 있었고 선생님의 시선도 동기가 됐던 것 같아요. ‘너 잘한다’고 하면 잘하고 싶으니까요. 『호밀밭의 파수꾼』『죄와 벌』『보바리 부인』『서부 전선 이상 없다』도 그때 읽었어요. 삼중당 문고판, 200원짜리 책이었는데, 『다시, 책은 도끼다』처럼은 못 읽었죠. 그래도 책에 대한 공포를 없앤 계기가 됐어요.

 

청소년들의 독서량이 매년 줄어든다고들 하는데요.


학교에서 너무 많은 걸 집어넣느라 아무것도 못하게 된 것 같아요. 반면 문학을 전공하는 대학생들은 불가능한 독서량을 기준으로 삼고 있어요. 경쟁적으로 읽는 거죠. 밤을 꼬박 새우면서 토하면서 읽어요. 이건 단지 프린트된 많은 글자를 훑는 거죠. 우리나라 교육이 오도하는 게, 학생들을 컴퓨터 용량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독서 교육에 관해 조언하신다면요.


어려운 얘기예요. 저도 고민을 많이 해봐야 답이 나올 거예요. 선생님들보다 좋은 답은 없을 것 같아요. 어려운 상황인 건 다들 알잖아요. 다만 목표 지점을 많이 읽게 하는 것에 놓는 게 아니라, 한 번만 울게, 한 번만 느낄 수 있게 했으면 좋겠어요. 많이 읽지 않아도 돼요. 한 권이라도 읽고, ‘아 정말 좋네’, ‘이 책 정말 대단하네’라고 느끼면 돼요. 문제는 더 많이 집어넣으라고 닦달하는 학부모와 교육 시스템이에요. 학생들은 유기체인데, 기계로 보고 있어요. 어떤 컴퓨터 용량이 더 크냐고, 자꾸 따지고 있어요. 정말 힘든 일인 걸 알지만, 그래도 한 번만 느끼게 해줬으면 좋겠어요.

 

워낙 책을 정밀하게 보기로 유명하신데요.강독회 준비는 따로 하셨나요?


그럼요. 사람은 준비한 만큼 말할 수 있어요. 제가 아무리 필기를 많이 한다고 해도, 30분 준비했으면 30분 어치 말을 할 수 있고, 4시간 준비하면 4시간 어치 말을 할 수 있어요.

 

마지막 장에서는 ‘오독’에 관해 이야기하셨어요. “나는 책을 오독하는 버릇이 있다. 그러나 내가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은 평소에 책을 오독한 덕분이다”라고요. 『다시, 책은 도끼다』 또한 각자의 오독이 필요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긍정적인 오독을 하길 바라요. 제가 말한 오독은, 맘대로 해석하라는 방종이 아니에요. 책의 권위에 눌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죠. 책을 오해해서 나쁜 행동을 하는 부정적인 오독은 경계해야겠죠. 나의 오독, 남의 오독을 비교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어떤 부분에 대해 나만 다르게 해석했다면, 이건 생각해 볼 만한 문제라고 생각해요. 제가 간혹 부모님들을 만난 자리에서 “아이를 덜 사랑하자”는 말을 해요. 이건 사랑하지 말라는 게 아니라, 사랑에 집착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카피적으로 풀어낸 거예요.

 

『책은 도끼다』를 통해 만난 인연들이 꽤 많다고 들었습니다.


이철수 선생님과 인연을 맺었어요. 선생님의 판화집이 절판됐는데, 재판을 찍게 됐어요. 왜 재판을 찍게 됐는지 추적하다가 선생님이 제 책을 발견하고는 연락을 주셨어요. 김훈 선생님의 『자전거 여행』도 다시 책을 내면서 제 글을 추천사로 쓰셨고, 고은 선생님의 『순간의 꽃』은 띠지 문구로 활용됐어요. 좀 아쉬운 건 이오덕 선생님의 책 『나도 쓸모 있을걸』이에요. 정말 좋은 책인데 여전히 안 나온 것 같아요. 이 책이 꼭 다시 나왔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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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하면 행복이 찾아온다

 

이제는 ‘광고인’이라는 타이틀 넘어 ‘저자’로서 존재감이 뚜렷해지셨습니다. 강독회나 강연회를 통해 많은 독자와 소통하면서, 특히 젊은 독자들로부터 멘토 요청을 받고 계신데요. 어떤 이야기를 자주 해주시는지 궁금합니다.


아마 제가 해주는 답은 허무할 거예요. 구체적이고 손에 잡히는 답을 주고 싶지만, 그렇다면 현실에 적용하기 어려워요. 현실은 모호하고 안개에 싸여 있으니까요. 우리의 모든 삶은 상황의 특수성 앞에서 무력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므로에 허무할 수밖에 없고요. 다만, 지금 내 안에 얼마나 쌓여 있는지, 그걸 고민하면 좋겠어요. 얼마큼 미래가 잘 보이냐, 그건 나중 문제예요. 내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나, 내 안에 콘텐츠가 쌓여가고 있냐, 내가 회사에서 긍정적인 기여를 하고 있냐가 중요해요. 스펙 관리가 답이 아니에요. 흔들리지 말고, 더 많이 듣고 좋은 사람 만나고 하루하루 충실히 사는 것밖에 답이 없어요. 딸이 제게 묻는다면, 이렇게 답할거예요. 솔직히 이 대답밖에 없어요.

 

전작『여덟 단어』에서는 ‘인생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를 이야기하셨어요. 삶을 위한 여덟 가지 키워드를 제시하셨는데요. 만약 한 단어를 추가한다면 ‘욕망’을 말하고 싶으시다고요.

 

이후에는 ‘행복’이란 키워드를 말했고, ‘사유’라는 단어도 이야기했어요. 그런데 세 단어 모두 같아요. 욕망을 잘 들여다보면 허망한 건설자재를 쓰고 있어요. 욕망은 허망한 것들이 대부분이에요. ‘내가 10억 원이 있었으면, 내가 스무 살이었으면, 내가 조인성이었으면’하는 욕망을 조금만 들여다보면 신경 쓸 문제가 아니에요. 하루를 잘 살아야 하는 건데, 이생각을 하려면 사유를 해야 하고, 사유하고 나면 행복이 찾아와요. 같은 이야기예요.

 

사유할 틈이 없다는 이야기도 많이 들려옵니다.

 

무력감에 빠지기 쉬운 구조예요. ‘내가 쓰레기를 안 버린다고 바뀔 게 뭐가 있어?’라고 하는데, 그 작은 변화가 없으면 아무것도 일어날 수 없어요. 우리가 의지할 수 있는 건 작은 노력이에요. 루쉰이 “희망은 길이다”라고 했잖아요. 한 사람이 가면 흔적이 안 남고 몇 사람이 가도 안 남지만, 백 사람이 열흘 동안 가면 조그만 길이 생기고 흔적이 생겨요. 너무 군자 같은 이야기일지 몰라도 진짜 이것밖에 없어요. 모두가 생업을 때려치우고 사회를 바꿀 순 없어요. 중요한 건 각자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거죠.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과 식사할 때가 있어요. 회장이 됐든 교수가 됐든, “내 이야기에 동의하냐?” 그러면 당신 회사 가서, 학교 가서 좀 해보자고 말해요. 소심하지만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간혹 뉴스를 보면서 ‘도대체 이 사회가 어떻게 굴러가지?’ 싶을 때가 있는데, 강연을 다니다 보면 ‘이런 분들 때문에 돌아가는구나’ 싶어요. 이 힘든 와중에 하나라도 배우겠다고 직장 끝나고 오시는 분들, 누구한테 인정받는 일도 아닌데 아이들에게 뭐 하나라도 더 주겠다고 강연을 요청하는 장문의 메일을 보내시는 분들을 보면요. 작은 부분에서 힘이 생기는 것 같아요.

 

개인의 삶에서 장기적인 계획이 있으시나요?

 

글쎄요. 하루를 얼마큼 보람 있게 지냈는지가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잘 자고 다시 다음 날 잘 살면, 어떤 그림이 그려져 있겠죠. 물론 조금 먼 미래를 두고, 어떤 점을 찍어놓는 것 도 괜찮아요. 중요한 건, 그렇게 하기 위해서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내느냐죠. 5년 후, 저는 우리 회사의 형태가 많이 바뀌면 좋겠어요. 그렇게 되려면 저도 회사도 성장해야겠죠. 우선 제가 더 쌓여야겠고요.

 

현재 후속작을 집필 중이신지요.

 

지금 저는 현업이 팽팽 돌아가고 있어요. 전업작가가 아니니까 꾸준히 책을 쓰긴 어려워요. 아마 에세이를 쓴다면 제가 생각하는 바일 텐데요. 『인문학으로광고하다』를 통해 창의력을, 『책은 도끼다』를 통해 인문이라는 단어를, 『여덟 단어』를 통해서 인생을 이야기했어요. 제가 생각하는 핵심은 다 이야기한 것 같아요. 만약 다른 책을 쓴다면 변주가 되겠죠. 현재로써는 더 새로운 생각이 나올 것 같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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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책은 도끼다박웅현 저 | 북하우스
『책은 도끼다』에서는 책을 읽으며 저자가 느낀 삶에 대한 태도, 인문적인 삶, 창의력 등 책을 통해 책 바깥의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면, 『다시, 책은 도끼다』에서는 박웅현 특유의 ‘들여다보기’ 독법을 강화하여 텍스트 자체를 더욱 밀도 있고 세밀하게 파고들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나나 “천연 성분 세제, 실제로는 천연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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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성세제의 기본 원료는 석유를 정제하고 남은 찌꺼기”, “대부분의 천연 제품은 실제로는 ‘천연’이 아니다”, “유아용 세제는 사실상 주방세제와 주요 성분은 거의 똑같다고 보면 된다” 『내 아이를 해치는 위험한 세제』가 알려주는 놀라운 사실들이다. 이 이야기는 우리로 하여금 집안 곳곳을 살펴보게 만든다. 욕실, 주방, 베란다… 어느 곳이든 세정제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도대체 우리는 얼마나 많은 화학 물질에 둘러싸여 있는 것일까. 조금 더 깨끗하고 건강하게 살고자 구입한 제품들이 오히려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깨끗하게 키우려다 병 얻는다’는 책의 부제에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이유다.

 

저자인 김나나 씨는 심각한 아토피 피부염을 앓았던 둘째 아이를 돌보면서 생활 속 화학물질의 위험성을 알게 되었다. 아토피의 원인을 찾던 중 합성세제에 주목하게 됐고, 자연에서 나온 물질들로 직접 세제를 만들어 사용하면서 아이의 증상이 나아지는 것을 목격했다. 이를 계기로 평범한 화학연구원에서 친환경 전문가로 거듭난 그녀는 2008년 『내 아이를 해치는 위험한 세제』를 처음 출간했다.

 

그러나 지난 8년 동안 지켜본 변화는 더디기만 했다. 가습기 살균제로 목숨을 잃은 이들의 이야기가 수면 위로 떠올랐고, 매일 사용하는 치약 속에 암을 유발할 수 있는 성분(파라벤, 트리클로산)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 알려져 큰 충격을 주기도 했다. 저자는 다시 한 번 합성세제의 위험성을 경고하기 위해 『내 아이를 해치는 위험한 세제』의 개정판을 출간했다.

 

현재 김나나 저자는 ‘사단법인 에코살림’의 대표로서 친환경 육아법과 살림 비법을 알리는 데 매진하고 있다. 『내 아이를 해치는 위험한 세제』에는 합성세제를 대체할 수 있는 건강한 세제의 레시피가 가득하다. 식초, 밀가루, 소금, 귤껍질 등을 바로 이용하거나 다른 재료들과 혼합해 세정제를 만드는 방법을 공개한다. 치약과 비누, 주방세제와 세탁세제는 물론 손소독제, 탈취제, 모기기피스프레이까지 직접 만들어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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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내에 쌓인 합성세제, 배출량은 10% 정도에 불과해


아토피 아이를 키우시면서 합성세제의 위험성에 대해 알게 되셨다고요.


둘째 아이가 생후 3~4주 때부터 아토피 증상을 보였는데, 처음에는 병원에서 태열이라고 했어요. 조금 지나면 낫는다고 하면서 스테로이드 연고를 처방해주더라고요. 연고를 바르면 일시적으로 괜찮아지다가 끊으면 더 심해졌어요. 그게 반복되는 걸 보면서 원인이 뭔지 찾기 시작했는데, 그때 제가 굉장히 세탁세제를 많이 썼었거든요. 아이 옷에 밴 진물하고 핏물을 없애려고요. 그런데 세탁한 옷을 입혀놓으면 유독 긁기도 하고, 진물도 심해지고, 얼굴을 비비기도 하더라고요. 그래서 봤더니 옷에서 세제 가루가 떨어지는 거예요. 세탁세제가 원인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죠.

 

작가님에게도 반응이 있었나요?


아이가 아프면서 저도 같이 아팠어요. 아이가 잠든 틈에 빨리 집안일을 하다 보니까 고무장갑을 낄 시간도 없이 맨손으로 했는데, 그러다가 주부습진이 생겼죠. 의사 선생님이 화학세제 때문이라고, 세제가 피부에 닿지 않게 하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그게 쉽지 않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손이 퉁퉁 부어서 아프고, 나을 때쯤 되면 고름이 흐르고 손톱이 빠졌었어요. 아이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이렇게 아프다면 세제를 바꿔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 즈음 의사 선생님도 말씀하시길, 아이가 아토피성 피부염을 앓고 있으니까 자기한테 맞는 세정제나 보습제만 찾아도 반은 성공한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때부터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세제에 들어있는 성분이 뭔지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어요. 세제부터 시작해서 점점 생황용품 전반에 관심을 갖게 됐고요.

 

『내 아이를 해치는 위험한 세제』에서도 당시 이야기를 들려주셨는데요. 아토피 치료를 위해서 안 해 본 일이 없으신 것 같아요.


네, 좋다는 건 진짜 다 해봤어요. 한약도 꾸준히 먹여봤고, 쑥이 좋다고 해서 직접 캐다가 끓여서 써보기도 했어요. 자연요법이 좋다고 해서 풍욕도 시켜봤고요. 그런데 풍욕은 갓난아이한테는 맞지 않더라고요. 아이가 너무 힘들어하기도 했고요. 모유 수유할 때 육류를 다 끊고 생채식을 하면 좋다고 해서 그렇게도 해봤어요. 그런데 젖을 먹이고 나면 머리가 핑핑 돌더라고요. 결국 쓰러져서 병원에 실려 갔어요. 빈혈이 너무 심하다고, 이대로 가다가는 큰일 난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생채식도 아닌가 보다 싶었죠. 정말 좋다는 건 다 해봤어요. 심지어 머리카락을 태워서 참기름에 섞어서 발라준 적도 있어요. 그렇게 하면 아이한테 좋다고 해서요. 그런데 2차 감염이 일어나서 병원에 입원하게 됐죠.

 

아토피 아이를 돌보는 엄마들에게 조언해 주고 싶으신 부분이 있다면 어떤 건가요? 

 
절대 하지 말아야 하는 게 있어요. 너무 맹목적이면 안 돼요. 저는 약간 경주마 같았어요. 옆에서 ‘그러면 안 된다, 아이의 성장도 중요하다’라고 말해줘도 ‘그게 뭐가 중요해, 아토피가 나아야지’ 하는 생각만 했어요. 물론 아토피도 고쳐야 하지만 아이들은 성장을 해야 되거든요. 잘 먹고 잘 자고 키도 커야 하는데 저는 그런 걸 너무 간과했어요. 너무 아토피에만 꽂혀 있었던 거죠. 그래서 어머님들께 이 이야기는 꼭 해드리고 싶어요. 아토피도 중요하지만 아이의 성장을 같이 고려하시라고요.

 

화학제품도 멀리해야겠죠?


되도록 멀리하시는 게 좋겠죠. 갑자기 줄이기는 힘드실 테지만 종류를 줄여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사실 우리는 지금 너무 많은 종류를 쓰고 있거든요. 치약으로 이를 닦는 것부터 해서 폼클렌징으로 얼굴 닦고, 바디클렌저는 또 따로 쓰고, 헤어에 쓰는 제품도 굉장히 많잖아요. 샴푸, 린스, 트리트먼트, 에센스... 서너 가지가 되는데 그런 것만이라도 조금씩 줄여보면 좋겠어요. 그리고 제품군을 살펴보면 재료들이 다 비슷하거든요. 포장만 달리 했을 뿐이죠. 거기에 현혹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분들은 ‘세제가 먹는 음식도 아닌데, 직접 만들어서 쓸 필요까지 있느냐, 너무 유난스러운 것 아니냐’고 생각하실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런 분들에게 어떻게 합성세제의 위험성을 알려드릴 수 있을까요?


강연을 하면서 가끔 그런 이야기를 들어요. 왜 자꾸 공포심을 조장하냐고요. 그럴 때 저는, 정말 죄송하지만, 저희 아버님 이야기를 인용합니다(웃음). 아버님께서 스무 살 때부터 60년 동안 담배를 피셨어요. 그런데 괜찮으세요. 폐도 건강하시고요. 그렇지만 담배가 좋다는 이야기는 아무도 못하잖아요? 그것과 동일한 거죠. 유전자를 조작한 식품인 GMO에 대해서도 하나씩 밝혀지고 있잖아요. 예전에는 잘 몰랐지만 이제는 우리 몸을 상하게 한다는 걸 알고 있죠. 가습기 살균제를 처음 쓸 때도 다 괜찮다고 했잖아요. 인체에 안전하다는 이야기까지 했었고 선전도 했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로 인해 사망한 사람들이 부지기수로 많아졌잖아요. 그렇다면 과연 안전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걸까요. 그리고 입으로 들어가는 것만 고민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호흡기와 피부로 들어가는 것은 너무 간과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은 거죠.

 

대부분의 합성세제 성분들이 체내에 쌓인 후 배출되지 않는 건가요?


먹었을 때는 80~90%가 몸 밖으로 나가요. 우리 몸의 장기들이 분해 능력을 갖고 있거든요. 그런데 피부에 흡수되는 것들은 실제로 배출되는 게 10% 밖에 안 돼요. 많이 나가봤자 그 정도예요. 왜냐하면 배출될 공간들이 잘 없어요. 거기에 더해서, 이제는 그것들이 호흡기로 들어왔을 때의 문제가 굉장히 심각하게 대두된 거죠. 왜 우리 몸이 합성 성분을 분해하지 못하는지, 저도 생각을 해봤는데요. 이 성분들이 만들어진 지 오래되지 않았어요. 고작 60년 역사 밖에 안 돼요. 인류 역사 이래로 이렇게 짧은 시간에 폭발적으로 인기를 얻고 모든 사람이 쓴 제품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렇다 보니 우리 몸에는 그에 대한 데이터가 없는 것 같아요. 미지의 물질인 거잖아요. 그렇다 보니 어떻게 해독해야 될지 아직 모르는 것 같아요. 그러면 몸에 쌓일 수밖에 없는 거죠. 배출 자체를 못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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락스, 절대 안전하지 않습니다


책에서 말씀하시길 “합성세제의 기본 원료는 석유를 정제하고 남은 찌꺼기”라고 하셨어요.


처음에 개발된 과정 자체가 그래요. 예전에는 우리가 먹는 기름으로 만들었다면, 두 번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유지 공급이 제대로 안 됐거든요. 그러면서 대체할 수 있는 물질을 찾다 보니 ‘휘발유도 기름일 텐데 저걸 가지고 만들어낼 수는 없을까’ 해서 만든 거죠. 그런데 휘발유 자체를 쓸 수는 없으니까 휘발유나 경유를 다 빼고 난 나머지, 아스팔트를 만드는 찌꺼기를 가지고 만들 수밖에 없는 거죠.

 

합성세제에서 빠지지 않는 재료 중 하나가 계면활성제인데요. 이 물질은 “동물실험에서 특정 부위에 인위적으로 암을 만들 때” 사용한다고요.


그럴 때도 있는데, 계면활성제 자체가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계면활성제를 너무 오인하기도 하시는데요. 계면이라는 건 경계면을 이야기해요. 액체, 고체, 기체처럼 서로 상이 다른 것들 사이의 경계면이요. 그걸 없애는 걸 계면활성제라고 하고요. 우리가 먹는 계란 노른자가 대표적인 계면활성제예요. 그래서 우리가 기름하고 식초를 섞어서 마요네즈를 만들 수 있는 거거든요. 그런 천연적인 계면활성제도 있는 거고요. 사람이 인위적으로 만든 계면활성제가 몸에 안 좋다는 거죠.

 

시중에 판매되는 제품들 대부분은 인위적인 계면활성제를 쓰나요?


맞아요. 저희가 물고기 실험을 하기도 하는데요. 천연 계면활성제를 풀어 놓은 물과 세정제에 사용되는 대표적인 계면활성제를 풀어 놓은 물에 금붕어를 넣어 놓는 거예요. 후자의 경우에는 100% 금붕어들이 죽어요. 그런데 천연 계면활성제를 푼 물에서는 오히려 금붕어들이 그걸 먹고 활발하게 움직여요. 확연하게 차이가 나는 걸 알 수 있죠.

 

락스는 사용하면서도 미심쩍기는 해요. 분명 독한 것 같기는 한데, 소금에서 추출한 원료로 만들었다고 하니까 안심해도 될 것 같기도 하거든요. 작가님께서 보시기에 락스는 안전하지 않은 세제인가요?


네, 100% 안전하지 않죠. 소금물에서 얻어지기는 하는데요. 소금이 NaCl로 되어 있잖아요. 그 중에서 끄집어낸 Cl이 들어있기 때문에 소금에서 추출했다고 이야기하는 거거든요. 그런데 락스를 사용하다 보면 염소가스가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위험한 거예요. (락스의 주요 성분인 치아염소산은 산성성분과 반응해 염소가스를 발생시킨다 ― 편집자 주) 아우슈비츠에서 유대인들을 죽일 때 가장 많이 썼던 가스가 염소가스예요. 염소가스를 먹으면 100% 질식하고 대부분 죽거든요. 그런데 그게 나오는 거죠. 락스가 곰팡이균에 상당히 잘 듣기는 하지만, 청소하시는 분들 말씀을 들어보면 락스로 닦아놔도 또 곰팡이가 올라온다고 하시거든요. 그렇다면 굳이 락스를 쓸 이유가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항균핸드워시 하나쯤은 있을 것 같은데요. 여기에 포함된 성분도(항균제의 일종인 트리클로산) 강이나 바다로 흘러갔을 때 발암물질로 변할 수 있는 물질이라고 하셨어요. 그 정도로 위험한 건가요?


원래는 에탄올만 들어가도 항균이 돼요. 그런데 요즘에는 항균이라는 이름에 맞게 모든 균을 죽이려다 보니까, 상주균들까지 죽일 수 있는 물질들을 다 넣는 거죠. 그런 것들은 우리 몸에도 안 좋지만 강이나 하천 오염의 주원인이 돼요. 분해 자체가 안 되니까요. 저희가 올 초에 MBC와 같이 진행한 실험 결과를 보면, 일반비누와 천연비누, 항균핸드워시 제품들 사이에 항균 차이는 거의 없었어요. 어떤 제품 같은 경우에는 일반비누나 천연비누보다 항균력이 훨씬 떨어졌고요.

 

합성세제의 위험성을 알고 있는 분들은 천연 성분이 함유된 제품을 고르실 텐데요. “대부분의 천연 제품은 실제로는 ‘천연’이 아니”라고요.


그런 세제들이 다른 합성세제하고 별 다를 게 없어요. 무슨 추출물이 들어갔다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성 계면활성제를 사용하고 있거든요. 어떻게 보면 마케팅이죠. 천연 성분이 함유되었다는 걸 더 두드러져 보이게 하고, 그런 거에 소비자들은 혹하게 되지만, 사실은 같은 계면활성제들을 사용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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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물질, 소량이니까 해롭지 않다고요?


책에서 다른 나라의 사례들을 소개하고, 우리나라와 비교해 주셨는데요. 읽으면서 우리나라의 유해물질 규정 기준이 너무 낮다는 생각이 들어 답답했습니다.


사실 그런 나라들보다 우리나라의 경제성장 자체가 조금 늦었잖아요. 저는 사람들이 먹고 살만 해야 주변 것들에 대한 관심이 늘어난다고 생각해요. 이제는 우리의 소득 수준이나 생활 수준이 그 정도가 된 것 같고요. 그래서 지금 발맞춰 가려고 노력하고 있는 거죠. 올해는 환경부에서 ‘누리집’이라는 홈페이지를 만들어서 유해 물질과 관련된 사례들도 정리해서 올리고 있어요. 점점 나아지겠죠.

 

처음 『내 아이를 해치는 위험한 세제』를 출간하시고 8년이 흘렀습니다. 당시에도 이런 위험성에 대해서 이야기하셨는데, 여전히 많은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잖아요. 변화 속도가 참 더디게 느껴지실 것 같아요.


맞아요. 답답한 마음이 들기도 하죠. 재작년에도 국정감사에서 치약 사건이 터졌거든요. 그때 인터넷상에서 굉장히 뜨거운 반응이 있었어요. 이걸 써야 되냐 말아야 되냐, 발암물질이 들었다 안 들었다, 얼마나 헹궈야 되냐... 다 우왕좌왕하는 거죠. 뉴스에서도 처음에는 7~8번 헹궈야 된다고 했다가 그렇게 헹구면 불소성분이 사라져서 치아가 망가진다고 말하기도 했거든요. 어떻게 써야 할지도 잘 모르는데 식약처에서는 괜찮다고 안전하다고 이야기했어요. 그런 것들 보면서 ‘이전부터 치약에 문제가 있다고 그렇게 이야기했는데, 이제야 이 이야기가 나오는구나’ 싶었죠.

 

그런 사건이 있을 때마다 식약처나 제조회사에서는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소량이라 해롭지 않다고요. 그런 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세요?


레이첼 카슨이 쓴 『침묵의 봄』에 DDT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요. DDT가 처음 나왔을 때도 소량이라 괜찮다, 그저 이를 죽일 뿐이다, 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그것 때문에 암으로 다 죽었어요. 레이첼 카슨조차 조사하다가 암에 걸려서 죽었고요. 그런 걸 보면 ‘이렇게 다 증명되어 있는데, 정말 그들의 말이 맞는가’ 싶죠. 그리고 미국에서 사람들의 혈액을 뽑아서 검사를 했는데 연령대별로 검출되는 화학물질이 달랐어요. 1960년대 이전의 사람들에게서 아직까지도 DDT가 검출됐거든요. 몸에 돌고 있다는 거죠. 그런 걸 보면 ‘소량이라 하더라도 내 몸에서 나가지 않는다면 과연 안전할까’ 생각이 들어요.

 

지금쯤 집집마다 ‘모기향을 피워도 될지’ 고민하고 계실 것 같아요. 살충제의 원료로 쓰이는 성분(클로로피리포스)이 아이들의 지능을 저하시키는 사례들이 발견된 바 있다고 하셨는데, 고민은 더 깊어질 것 같습니다.


지능 저하가 문제가 아니라, 호흡 곤란을 일으키니까요. 이제는 질병관리본부에서조차 살충제를 뿌린 상태에서는 들어가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있잖아요. 사람이 있는 공간에서는 절대 뿌리면 안 되고, 살충제를 뿌린 다음에 30분~1시간 정도 환기를 꼭 시키고 나서 들어가라고요.

 

클로로피리포스라는 물질은 다른 나라에서는 사용이 금지되어 있나요?


네, 유럽은 절대 사용할 수 없어요.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사용하되 환기를 시키라’고 말하는 거군요.


꼭 닦으라는 이야기까지 해요. 살충제가 묻어있는 상태에서는 들어갈 수 없다고요. 그리고 절대 밀폐된 공간에서는 모기향을 피우면 안 된다고도 말하죠. 요즘에는 환기시키기 전에 먼저 피워 놓으라고 해요. 피워놓고 다 환기시킨 다음에 들어가라고요. 그러니까 사람들은 환기시킬 때 모기가 들어온다고 하는데, 질병관리본부에서는 모기장을 쓰라는 이야기까지 나오는 거예요. 화학 물질에 계속 노출됐을 때의 문제점을 알고 있는 거죠.

 

책에서 천연 살충제를 만드는 방법도 알려주셨어요. 계피를 이용하는 거죠?


계피는 알코올에 우려낼 수도 있고 물에 우려낼 수도 있어요. 물에 우려내는 방법은 탕처럼 끓이는 건데요, 오래 보관을 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알코올에 우려내는 방법을 알려드리는 건데요. 계피를 알코올에 일주일 정도 담가두시면 돼요. 그런데 이것만 쓰기에는 발향이 너무 빠르거든요. 그래서 책에 나온 레시피 대로 반반 섞는 거죠. 그렇게 했더니 냄새도 좋고, 향도 오래 가고, 주변에 뿌려놓고 자면 모리가 잘 달려들지 않고, 딱 좋더라고요.

 

계피는 집먼지진드기를 없애는 데에도 효과적이더라고요.


굉장히 효과적이에요. 방금 설명 드렸던 살충제와 똑같은 용액을 뿌리시면 돼요. 뿌리신 후에는 꼭 털어야 하고요.

 

햇볕에 말린 뒤에 털면 되나요?


햇볕에 말리는 게 제일 좋고요. 매트리스 같은 경우는 말릴 수 없잖아요. 그럴 때는 30분 정도 놔둬서 완전히 마른 다음에 털어주시는 게 좋아요. 진드기는 피부로 숨을 쉬기 때문에 계피가 굳이 닿지 않더라도 그 향이 퍼지면 죽거든요. 그런데 집먼지진드기는 그 사체도 알러지를 일으켜요. 그래서 죽은 다음에는 반드시 털어주시는 게 좋아요.

 

얼마나 자주 집먼지진드기를 없애세요?


아이가 아토피가 정말 심할 때는 일주일에 한 번씩 용액을 뿌렸는데요. 지금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하고 있어요. 일주일에 한 번 정도만 해주셔도 충분히 좋아지죠.

 

천연세제에는 방부제가 첨가되지 않잖아요. 잘못 보관할 경우 부패해서,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고체로 만든 것들은 굉장히 안전해요. 균이 살거나 곰팡이가 생기기 쉽지 않거든요. 그래서 고체로 만든 것들은 조금 오래 사용하셔도 되고요. 액상일 때는 3개월에서 6개월 정도까지는 괜찮아요. 천연 계면활성제가 들어있기 때문인데요. 원래 계면활성제 자체가 균이 살기가 조금 힘들어요. 균을 잘 떨어지게 하는 거거든요. 그 상태가 방부 효과가 있다고 보시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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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밥 주방세제, 베이킹소다 치약 ‘강추’


베이킹소다와 구연산, 과탄산소다/과탄산나트륨은 ‘천연세제 3총사’라 불릴 정도로 보편화됐는데요. 어떤 제품을 구입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천연 성분으로 이루어진 제품이 따로 있나요?


탄산수소나트륨은 천연은 아니에요. (인위적으로) 만들어내기는 했으나 독성이 거의 없다고 보는 거죠. 환경오염도 일으키지 않고요. 구연산도 마찬가지예요. 구연산은 레몬처럼 신 맛 나는 것에서 나오는 거거든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먹을 수 있는 제품, 식품용으로 사용 가능하도록 나온 것들은 안전하고요. 청소용으로 나온 제품들은 바닥 청소 할 때나 이용해야 되는 거죠. 치약을 만들 때는 절대 바닥 청소용을 쓸 수 없으니까요. 그렇게 판단하시면 돼요.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으로요.

 

과탄산소다, 과탄산나트륨도 마찬가지인가요?


과탄산소다 자체는 먹을 수는 없어요. 과탄산소다는 세탁을 위해서 나오는 거니까 한 종류라고 보시면 돼요. 과탄산소다와 과탄산나트륨은 똑같은 거고요. 원래는 과탄산나트륨이 이름인데, 일본식 표기로 나트륨을 소다라고 하는 거예요.

 

과탄산소다를 사용할 때 주의해야 할 점이 있을까요?


과탄산소다는 물을 만났을 때 산소를 내뿜기 때문에 밀폐된 통 안에 넣어 놓으면 부풀다가 터질 수 있어요. 그러니까 미리 녹여놓지 마시고 사용하기 전에 녹여서 사용하면 돼요. 면이나 마 같은 천연 소재들을 세탁하실 때 가장 좋고, 울에는 사용하실 수 없어요. 합성 소재에는 과탄산소다가 잘 맞지 않죠. 농도를 너무 진하게 하시면 옷이 탈색될 수 있고요. 그렇더라도 피부에는 상관이 없어요. 산소방울을 내보내서 더러운 부분에만 작용하고 물에 씻겨 나가기 때문에 옷감에 남아있거나 하지는 않아요.

 

“내 손으로 만드는 건강세제” 레시피를 다수 알려주셨는데요. 간단하게 만들 수 있는 주방세제도 있나요?


제일 좋은 건 찬밥 세제일 것 같아요. 집에서 쓰고 있는 식용유와 찬밥, 그리고 유화수만 있으면 되는데요. 요즘에는 유화수를 판매하는 곳도 많으니까 어렵지 않게 구하실 수 있을 거예요. 먼저 유화수와 식용유를 핸드블랜더로 갈아주시고, 걸쭉해지면 찬밥을 넣고 으깨세요. 그리고 밀폐용기에 담아 2주 정도 놔뒀다가 사용하시면 되는데요. 유화수는 식용유의 40% 정도, 찬밥은 식용유의 1/10만 있으면 만드실 수 있어요. 재료는 간단하지만 거품도 잘 나고 기름기도 정말 잘 닦여요.

 

치약을 만드는 방법도 쉽고 간편하더라고요.


책에서 소개해 드린 가루치약은 한 번 써보시면 완전 반하실 거예요. 베이킹소다, 죽염, 자일리톨, 전분 네 가지만 있으면 만들 수 있어요. 베이킹소다 4, 전분과 나머지는 1의 비율로 섞어서 사용하시면 돼요.

 

세탁 세제의 경우는 어떤가요?


집에서 아주 쉽게 만드시는 방법은, 마트에서 판매하는 베이킹소다, 과탄산, 구연산을 사셔서 4:1:0.5 정도로 섞기만 하시면 돼요. 그렇게 가루로 만들어 놨다가 세탁세제로 사용하시면 되죠.

 

천연 방향제를 쉽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가 알코올이에요. 알코올을 절반 정도 넣어주시고 자신이 좋아하시는 아로마오일을 떨어뜨려 주시는 거죠. 그러고 나서 알코올의 양만큼 물을 넣어주시는 거예요. 그리고 긴 막대를 꽂아놓으시면 훌륭한 아로마디퓨저가 되죠.

 

알코올과 알로에로 만드는 손소독제 레시피도 알려주셨어요. 알코올은 피부가 건조해질 것을 걱정해서 피하는 분들도 계시는데요. ‘알로에 손 소독제’는 괜찮은가요?


네, 써보면 굉장히 촉촉하고 진정효과도 뛰어나요. 알로에 자체가 그렇잖아요. 그리고 알코올 프리 제품이라면 정말 향균제만 넣은 건데, 그건 사실은 가장 안 좋거든요. 식약처에서도 알코올이 60% 정도는 들어가야 항균 효과가 있다고 보고 있어요.

 

책의 부제가 ‘깨끗하게 키우려다 병 얻는다’입니다. 합성세제를 많이 쓰시는 분들이 가장 먼저 생각하셔야 할 부분이 아닐까 싶어요.


예전에 저희 아이가 왜 아토피에 걸렸을까 고민하고 있을 때, 뉴스에서 본 내용이 있어요. 이른바 위생설인데, 우리가 너무 깨끗하게 살면서부터 알러지 질환이 늘었다는 거죠. 예전에는 상대적으로 더러운 환경에서 살다 보니 우리 몸의 면역체계가 더러운 균과 싸우면서 할 일이 있었는데, 이제는 몸에서 할 일이 없어져서 엄한 데 반응을 한다는 거예요. 계란이 들어오거나 꽃가루가 날릴 때 나쁜 성분인 줄 알고 반응하는 게 알러지 질환이라는 거죠. 내 몸의 면역 체계가 무너진 거예요. 그게 우리가 너무 깨끗하게 살면서부터 일어난 일이라는 건데, 그때부터 우리가 쓰기 시작했던 것들이 합성세제들이거든요. 그러니까 사실은 우리가 오히려 병을 키운 건 아닌가, 하고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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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를 해치는 위험한 세제김나나 저 | 인사이트윙스
이 책에서 저자는 각종 화학물질로 이루어진 제품들의 구성 성분과 유해성을 자신의 경험을 비롯해 다양한 국내외 연구 결과와 실제 사례를 들어 알기 쉽게 설명한다. 넘쳐나는 화학물질 전성시대, 내 아이와 가족을 지키고 싶은 엄마라면 절대 놓쳐서는 안 될 책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건축가 서현 “건축은 사회를 담는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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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는 도면 점검을, 아니 악보 검토를 마쳤다. 남은 것은 악보에 근거한 연주다. 이때 등장하는 것이 시공사다. 우리의 연주자다. 연주회장에서는 오보에 주자가 낭랑하게 A음을 먼저 내면서 전체 소리를 조율한다. 콘서트는 그렇게 시작한다. 우리의 공사는 요란한 굉음으로 시작했다.(179쪽)

 

『건축을 묻다』, 『빨간 도시』등 건축가의 시선을 다양한 글로 적어온 건축가 서현. 그는 글 쓰는 건축가이자 집 짓는 건축가이기도 하다. ‘아름다운 제주 건축 7선’에 선정되기도 한 주택 ‘해심헌’을 눈여겨본 건축주가 선물 같은 집을 지어달라고 청해온 것도 그런 연유였다. 제주에 자리잡은 세모난 집 ‘시선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서현은 이번 책 『건축가 서현의 세모난 집 짓기』를 통해 “리허설 과정을 보여주겠다는 생각”이었다. 모름지기 콘서트는 무대 뒤 수많은 연습과 시행착오에서 시작되는 것이며 “지휘자가 손가락 흔든다고 지휘가 되는 게 아니고 그 전에 수많은 사람들을 조율하는 과정이 다 필요하다는 것을 알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시선재’가 지어지는 아주 세세한 순간순간을 지켜보는 일은 얼마나 새로운지. 이 아름다운 건축물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고민과 타협, 선택의 순간이 있었는지 지켜보는 일은 독자로서도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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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채

 

 

사람의 인생에 개입하는 일


제주에 주택 ‘시선재’가 세워지는 과정을 담은 책인데요. 원래 책 출간 계획은 없으셨던 거죠?


없었어요. 워낙 짓는 과정이 머리에 들어있으니 책 쓰는 건 별 고민 없이 간단하게 진행했고요. 이게 일곱 번째 책인데요, 그 전에 쓴 책들은 조바심도 나고 했는데 이 책은 그런 것 없이 덜컥 나왔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쭉 가는데 일주일 만에 끝났어요. 나머지 시간은 정리하는 정도였고요. 몸체가 금방 만들어졌기 때문에 제 입장에서는 제일 쉽게 쓴 책 중 하나예요.

 

‘몸체’ 말씀하셨는데, 글을 쓰는 것과 건축에 공통점이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구조체를 만든다는 점에서는 비슷한 게 있어요. 그런데 글 쓰는 것보다 건물 만드는 게 훨씬 힘들죠. 건물 만드는 건 여러 사람들의 관심이 개입되기 때문에요. 항상 타협해야 하는데 그 타협이 대개는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그런 차이점은 있어요.

 

책 말미에 ‘어딘가 한 줌의 가치라도 있다면’ 독자가 취했으면 한다고 적으셨어요. 글을 쓴 입장에서 꼽는 가치도 분명히 있을 텐데요.


대개 사람들이 건물 설계한다고 하면 딱 나오는 얘기가 이거예요. ‘쓱쓱 그리면 되는 것 아니냐.’그 사람들은 외관, 투시도를 그리면 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하는 건데요. 실제로 건물 만드는 과정은 온갖 잡다한 것들을 다 구성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지죠. 도면을 보면 다들 깜짝 놀라요. 철근 가닥부터 해서 타일 나누는 것들, 심지어 창틀까지 다 정리해서 가야 하거든요. 또 그 다음 나오는 얘기가 ‘설계비는 왜 이렇게 비싼데?’,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데? 니까 결국 무지한 자들이 무지한 방식으로 평가를 하게 되는 거죠.


이 책을 쓴 건 오케스트라로 치면 리허설 과정을 보여주겠다는 생각에서예요. 지휘자가 손가락 흔든다고 지휘가 되는 게 아니고 그 전에 수많은 사람들을 조율하는 과정이 다 필요하다는 것을 알도록 하기 위함이죠. 배경에 깔린 인간의 지적인 작업을 다 무시하고 그런 소리 좀 하지 말라, 하는 이야기예요. 책도 그냥 쓰면 되는 거 아니냐, 뭐 상 받았다고 떠들어, 이런 것과 똑같이 무식한 얘기죠. 눈에 보이는 것만 중요하게 생각하지 말고 거기까지 가는 과정이 얼마나 복잡하고 지난한지를 이해해주세요, 하는 얘기예요.

 

바로 그 지난한 과정을 대중들에게 전하는 것, 기록하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거의 처음이라고 하더라고요. 신기해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다행입니다, 그렇게 보셨다니.(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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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짓는 일을 두고 ‘살 사람의 인생에 개입하는 일’이라는 생각을 앞부분에 적으셨어요. ‘시선재’ 외에 여러 주택을 건축하셨는데 이에 대한 남다른 마음이 있을까요?


호기심. 이 사람들은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을까, 이런 호기심이 있어요. ‘시선재’ 다음 지은 집은 파주에 있는 아들 둘을 둔 부부였어요. 이 집은 꿈이 동네 사람들 다 불러 모아서 영화 보며 맥주 마시는 거예요. 아파트에 사니까 그게 안 돼서 집을 지은 건데요. 이렇게 되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문턱 없이 이 집을 드나들 수 있느냐가 제일 중요하거든요. 결국 이들이 살고 싶어 하는 인생의 모습이 공간을 통해 번역이 되어야 해요. 번역을 하려면 그들이 원하는 인생의 모습이 공간에 보여야 하잖아요. 그 과정은 굉장히 흥미롭고 유쾌한 과정이에요. 물리적으로 짓는 과정은 문제가 많지만 처음에 도면 그릴 때까지는 굉장히 유쾌해요. 또 짓고 난 다음에는 대개 가치가 있고 보람도 있어요. 파주의 그 집은 네모난 집인데요. 건축주가 인생이 조금 바뀐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실제로 바뀐 것이 보이기도 하고요. 그런 것은 건축가로서의 중요한 성취감, 가치라고 생각을 해요.

 

실제로 건축주가 원하는 것보다 건축가가 더 많은 것을 보여줄 수 있잖아요. 건축주가 원하는 것은 막연하기도 할 것이고요.


그렇죠, 자기가 필요로 하는 것을 말로 번역해내는 데 대개는 어려움이 있어요. 저는 말을 그대로 들으면 안 돼요. A라고 얘기하지만 정확히 머릿속에 들어있는 그림이 뭔지를 끌어내야 하는데 이건 꽤 중요한 일이에요. 그건 노력과 관심, 경험이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시선재’가 결국 세모난 집이 되는 결정이 순간도 감동적이었어요. 그것이 방금 말씀하신 내용에 닿는 부분일 것 같아요.


그 건축주도 대단히 독특한 사람이에요.(웃음) 외벽을 모두 유리로 하려던 첫 안을 딱 보더니 첫눈에 ‘아! 이거네요’했으니까요. 보통 한국 사람들은 무척 보수적이에요. 남들 안 하는 것 되게 하기 싫어하는데 이 건축주는 삼각형이라고 하니까 ‘야, 신기한데요, 좋아요, 기대는 하고 있었는데 진짜 좋네요’ 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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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현

 

 

건축은 사회를 담는 그릇

 

보수적인 환경이지만 새로운 시도를 하려고 하는 편이시죠?


저는 안 한 거 하고 싶어요. 말하자면 반복하는 인생 아니고 싶은 거죠. 지금은 주택만 이야기를 했는데요. 얼마 전에 주민센터 인테리어를 하나 했어요. 흔히 주민센터를 가보면 영역이 나뉘어 있어요. 한쪽에 공무원들이 있고 민원인들이 그들을 찾아가는 형태죠. 이상하더라고요. 민원대가 군데군데 놓여있고 그곳에 공무원이 앉아서 민원인을 맞는다면 갑과 을 관계, 적대적 관계, 대립구도가 아니고 말 그대로 서비스일 것 같았어요. 절충해서 완성을 했는데요. 준공한 다음 가서 들으니까 민원인들이 주인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의도를 사전에 얘기한 것도 아닌데 의도가 다 읽히는 것 같다고 얘기를 하고요. 만세!(웃음)


제가 평소 주장하는 게 건축의 가치는 사회 모순에 대한 공간적 대안 제시라는 건데요. 주거 공간은 사실 모순이 적은 공간이긴 하고요. 밖으로 나가 기관이라는 곳은 그런 부분이 커요. 그런 공간을 바꿔서 ‘이런 게 옳다’고 보여주고 싶어요.

 

건축은 사회를 담는 그릇이라고도 하셨죠.


사회가 조직되어 있으면 어떤 그릇에 담겨야 하는데요. 그 사회는 유연하게 변하지요. 반면 건물은 고정된 구조체라 잘 안 변해요. 사회가 변하는 걸 건축이 항상 담을 수가 없어요. 결국 사회와 건축은 늘 모순 관계, 갈등 관계일 수밖에 없는데요. 문제는 건물이 안 변하다보니 사회의 변화를 건축이 잡아요. 건축이 결국 보수반동이죠. 사회 갈등을 만들어내는 거예요. 건축가는 그런 전 시대의 모습을 뒤집고 새로운 사회는 이런 공간에 담겨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주체예요. 그것이 건축이 사회를 담는 조직체, 그릇이라는 얘기고요.

 

그렇다면 건축가는 사회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계속 보고 있어야 하겠네요. 건축이 어떻게 변화하는 사회를 담을 수 있을지 앞으로를 고민해야 하니까요.


오늘만 제대로 봐도 돼요. 모든 사회가 조직되어 있는 그 모습의 현재를 바라보는 것은 굉장히 어려워요. 미래까지는 잘 모르겠고요, 오늘만이라도 잘 보면 되는데요. 제일 좋은 사례가 학교일 것 같아요. 한국에서 제일 지체현상을 빚고 있는 공간이죠. 이전 시대의 학교는 훈육, 암기, 체벌, 반복에 의해 움직였어요. 공간도 그걸 요구해왔고요. 교실은 사각형 공간 한쪽이 창문, 반대쪽이 복도, 앞쪽에 칠판, 뒤쪽에 학급 게시판이 있죠. 학생들은 다 칠판을 바라보고 있고요. 이것은 뭐냐면 선생님 얘기를 무조건 따르라, 너희들끼리 얘기하지 마라, 이거예요. 21세기는 이런 교육이 유지되지 않아요. 아이들이 선생님보다 훨씬 똑똑하니까요. 특히 영어에서 그렇죠. 이건 일제시대의 흔적이거든요. 아이들을 빨리 천황폐하의 뜻에 따라 키워 전장에 내보내는 병영이 될 수밖에 없었어요. 문과, 이과를 나눈 것도 마찬가지고요. 학교 공간이 바뀌어야 하는데 결국은 학교가 바뀌어야 해요.

 

한국 사회의 오늘을 어떻게 보고 계세요?


지금 한국을 움직이고 있는 단 하나의 에너지는 ‘경쟁’이에요.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계속 얘기하는 건 ‘협력’이죠. 우리는 제일 좋은 사회를 만들었다, 서로 인정해서 다 같이, 검든 희든 히스패닉이든 뭐든 함께 살자, 하는 건데요. 한국 사회는 그렇지 않죠. 내가 너보다 더 많이 벌어야 하고, 더 지위 높아야 하고, 더 덩치 커야 하고, 더 큰 집에서 살아야 해요. 기관들도 그런 가치관에 의해 조직이 되어 있어요. 이게 옳지 않다고 얘기를 해야 하는데요. 어떻게 해야 하죠?(웃음) 이런 문제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갖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요. 더 좋은 사회가 담기기 위한 공간 조직이 무엇이냐, 이런 것에 대한 가치는 갖고 있어요.

 

서울이라는 도시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신 글을 봤어요. 경쟁, 각자도생의 현현이라고 진단하셨죠.


대표적인 게 재개발이에요. 가진 자들을 위한 리그죠. 겉에 걸린 것은 경제적이고 능률적이며 우아한 도시의 형성이지만 기득권을 쥐고 있는 사람이 더 많은 기득권을 쥐게 해주는 도구가 재개발이거든요. 제일 어렵게 살아야 하는 사람들은 세입자들이죠. 요즘이야 대단위 재개발을 하면 세입자들에게도 임대권을 주는데 그것 역시 일정한 돈을 내야 해요. 못 내는 사람들은 갈 데가 없어요. 그런 모습이 2010년 정도까지 서울을 만들어왔고요. 그 과정에서 은행이 제일 돈을 많이 벌었죠. 대형 건설사도 그렇고요. 2010년까지 한국 사회를 이끌던 오피니언 리더들이 다 거기 앞장섰어요. 사단장 같은 사회지도자들이죠. 안에 담긴 인생을 보는 게 아니고 껍질만 보는 사람들이요. 그런 사회가 빨리 지나가야죠.

 

지나가고 있다고 보세요?


지나가고 있는 것 같아요. 문제는 그 사람들이 다 사라지지 않았죠. 여기저기 잠복해 있어요. 신문 보다보면 그런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보여요. 불안해요.(웃음) 사회 변화가 한 번에 끝나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런 세대가 지나가야 하는데 아직은 안 지나가 있고, 여전히 그들이 주목받고 있어요. 위험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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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협이 없으면 큰 것을 잃기 쉽다

 

‘시선재’가 완성되는 과정에서도 여러 순간들이 있어요. 그 중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어요?


모서리 창이 벌어진 순간이죠. 이 집은 시작부터 끝까지가 저 모서리 창이었는데 갔더니 이만큼 벌어져있더라고요. 좌절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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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현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라 계획을 수정해야 하는 순간이 굉장히 많더라고요. 선택의 순간, 결정을 내리는 선생님만의 기준이 있다면요?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놓치지 않는다, 덜 중요한 것들은 타협할 수 있다, 예요. 작은 것들에 대한 타협이 없으면 큰 것을 잃기가 굉장히 쉬워요. 많은 사람들이 개입하기 때문이죠. 사람들이 자존심을 걸고 일을 하는데 쓸데없는 것에 분쟁을 만들어 그들의 자존심을 긁으면 나중에 타협하기가 굉장히 어려워지더라고요. 필요 없진 않지만 중요도가 낮은 것들은 타협하고요. 적어도 흔들리지 않는 중요한 것 하나는 잡아둔다, 하는 거죠. 그러기 위해서 경험은 필요한 것 같아요. 어떤 게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은지 판단하려면 말이죠. 사안의 경중, 사태의 진행방향을 판단하는 것은 건축가에게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이 사업에서는 제일 중요한 게 모서리가 붙느냐 하는 것이었는데 그게 안 됐죠.(웃음)

 

예산 문제가 계속 나와요. 중요한 문제기도 하죠. 만약 예산 한계가 없다면 어떤 모습이 될까, 궁금하기도 했어요. 예산 문제가 없다면 다른 모습이었을까요?


아니요, 결국은 삼각형이었을 거예요. 그것에는 변함이 없고 대신 사용하는 재료들이 훨씬 더 비싸고 우아한 재료들이었을 텐데요. 실제로 그런 일은 없어요. 절대로 돈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상황은 없어요. 0%에 수렴하므로 그것은 상정도 안 해요. 어제도 작은 도서관 견적을 받았는데 딱 두 배가 들어왔어요. 이제부터 계속 잘라야죠. 건축은 항상 그래요. 예산에 들어온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백화점에서 물건 사는 것과 비슷해요. 마음에 드는 건 비싸잖아요. 그 다음부터는 타협해야죠. 좋은데 값도 싸네, 그런 것 보셨어요? 그런 건 없어요.(웃음)

 

건축이 공공재로서의 속성을 갖긴 하지만 예술적인 가치도 있잖아요. 이 둘의 균형을 많이 생각하실 것 같거든요.


예술적이라는 것은 아마 완성도 높은 건물을 이야기할 것 같아요. 좋은 건물. 또한 공공성이란 자기가 만들지 않은 것에 대한 배타적인 소유를 부인하는 것이겠죠. 토지는 소유자를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은 불법점거가 등장해요. 땅은 누가 만든 것도 아니죠. 그냥 점거했을 따름인데 자신의 소유라고 하는 것은 불법점거의 소지가 충분히 있어요. 도시의 경관, 도시의 역사, 이것 역시 내가 마음대로 처분하기는 어렵죠. 어떤 땅 위에 건물을 얹어서 나 혼자만 쓰겠다, 하면 공공성이 대단히 적은 것이에요. 주변 건물이 전부 네모난데 나 혼자만 동그랗게 해볼게, 이것도 공공성이 적죠. 여기서 건물의 완성도가 높은가 낮은가 하는 것은 조금 다르기도 하고요. 공공성이 없는 건축이 건축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보기도 어려워요. 예술성이란 단어가 적당한지는 모르겠으나 건축의 공공성과 예술성이 서로 배치되는 얘기는 아니에요.

 

서울의 수많은 건물들이 그런 공공성을 가지고 있는지, 의문인데요.


2010년 이전에 만든 건물들이 대개 공공적이지 않았어요. 종로를 보면요, 이중 제일 공공적인 건물 사례는 교보빌딩이에요. 다른 건물들은 건물 앞에 차를 세워요. 세종문화회관, 정부청사도 앞에 차를 세우거든요. 교보빌딩은 뒤로 가서 차를 세우도록 했어요. 앞에는 공원처럼 만들어놓고 보도블록부터 1층까지 단이 한 개도 없죠. 다른 건물은 전부 단이 있어서 휠체어 못 들어가거든요. 그리고 교보빌딩은 지하에 누구나 들어갈 수 있는 상업시설, 책방을 넣어놨어요. 굉장히 공공적이죠.


종로의 건물들을 보면 앞에 나무도 멋있게 심고, 조각도 하고, 심지어 분수도 있는데요. 문제는 이 건물들 1층에 사람들이 들어갈 일이 없었다는 거예요. 은행 영업장, 증권사 대리점, 이러니까 철문을 다 내리면 똑같다고요. 사람들이 재개발 전에는 길가에서 꽃도 사고, 국밥 먹고, 반지도 사고 할 수 있었거든요. 지금은 이곳이 카페로 바뀌고 있죠. 이것은 시민들의 생활패턴이 사적 공간을 공공화 시키고 있다는 중요한 변수들이에요. 카페는 공공 공간이면서 사적 공간인 대단히 독특한 영업장이에요. 프랑스 혁명을 만든 게 신문과 카페죠. 그렇게 열린 공간이 도시에 많은 것은 대단히 건강한 모습이에요. 1층 은행 영업장들이 카페로 바뀌고 있다는 건 한국 사회가 개방적인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중요한 시험지라고 봐요. 이런 변화는 훌륭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회의실도 1층으로 나오고, 공부방도 1층으로 나온 셈이네요.

 
그렇죠, 개별 공간이 공공 영역으로 나오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숨기질 않는다는 거예요. 숨길 필요도 없죠. 개방적인 사회가 되는 건데요. 결국은 세대가 바뀌는 일인 것 같아요.


하나 더 이야기하면 이화여대 ECC예요. 그곳이 원래 운동장이었어요. 건축가가 제안한 것은 운동장 땅의 한 뼘도 잃지 않겠다는 거였어요. 그러면서 엄청난 공간을 그 안에 집어넣었죠. 층간구획도 별로 없어요. 끝내주는 제안이잖아요. 이런 게 건축의 공공성이라고 생각해요. 만약 어떤 인간이(웃음) 와서 그 자리에 커다란 건물을 세웠다면? 사람들 다 돌아서 지나가야 했겠죠. 바로 이런 게 건축의 가치일 거라고 생각해요.

 

다음 세대에 대한 기대가 있으신 것 같아요.


있죠. 한국 사회의 가능성은 경쟁력을 갖춘 세대의 등장인데요. 문제는 이전 세대가 파놓은 계층화의 고리를 뛰어넘기 어렵게 사회가 고착화되고 있다는 점이에요. 386세대가 가진 한계는 국제 경쟁력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죠. 영어도 못하고 알고 보니 수학도 못해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제목은 들어봤어, 이런 수준이에요. 다음 세대는 일단 영어는 훨씬 잘하고요. 도시 안에서 태어났으므로 농촌 경제에 근거한 도시 생활 즉, 무조건 자기 것이라고 점유하는 것 없고, 개방적이죠. 이야기를 나눠보면 확실히 달라요. 훨씬 낫죠. 문제는 사회가 이분화 되면서 저소득층이 사회의 상류층으로 이동하기가 대단히 어려운 구도가 되어 있다는 건데요. 진짜 큰 문제는 그 계층 분화의 가장 큰 분기점에 아파트가 들어와 있다는 거예요. 아파트가 건축 형식이기 때문에 좀 곤란한데(웃음) 아파트의 유무에 따라 사회가 양분되기 시작했으니까요. 이건 걱정거리지만 당분간, 제가 죽을 때까지 한국 사회의 미래는 큰 문제는 없을 것이란 낙관적 사고를 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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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 있는 아파트

 

전에 비해 많은 사람들이 주거에 대한 고민을 하는 것 같아요. 아파트의 대안도 얘기하고요. 선생님께서 제시하고자 하는 대안도 있을까요?


2008년 이후 아파트가 유일한 대안이었다는 신화가 깨지고 있어요. 그 전까지는 아파트를 사면 값이 오른다, 지금 사지 않으면 도태된다고 생각했죠. 값이 오르지 않는 순간 아파트가 대안이 아님을 깨닫기 시작했고, 그래서 사람들이 마당 있는 데서 살고 싶다면서 판교, 동백, 파주, 이런 곳에 가기 시작했죠. 문제는 그들이 마당이 있는 아파트를 만들어놓고 산다는 거예요. 배타적인 공간이에요. 입구도 꽉 막혀 있고, 사람 사는 건 안 보이죠. 여기에 택지 개발을 하면서 담장을 만들지 말라는 조건을 내고, 담장이 투시형이다보니 건물이 바뀌었죠. 몸통이 담장이 되기 시작하고 중정을 만든 거예요. 이건 우리 식구들만 보이는 마당이죠. 지금 판교 가면 다 그래요. 게다가 이들이 출퇴근은 해야 하잖아요. 두 시간 동안 차 안에 있어요. 건강하지 않죠. 대안은 실제 마당이 있는 아파트가 아니겠느냐, 생각해요.


저는 스폰지처럼 구멍이 뚫려 있는 마당 있는 아파트가 대안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데 주거 시장은 진화가 느린 시장이라 아직은 대안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어요. 마당이 있으면 생활의 질이 확실히 달라지거든요. 지금은 밀봉되어 발코니까지 확장해서 안에서 지내면서 답답하다고, 마당이 있으면 좋겠다고 하잖아요. 아파트의 장점도 있기 때문에 그 안에 마당을 넣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도시 안에 있는 구멍 뚫린 아파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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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건축과의 비교를 통해 한국 건축 현실에 대한 답답함을 토로하기도 하셨거든요. 반드시 고쳐졌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면 어떤 걸까요?


두 종류예요. 하나는 싸게 짓는다, 다른 하나는 대강 짓는다. 대강 짓는다는 건 능력이 없어서 대강 짓는 것을 말하는데요. 일본은 가보면 달라요. 일본은 이미 2차 대전 때 항공모함도 만들고, 1960년대에 시속 300km 짜리 총알열차를 만든 사회예요. 장인들이 있죠. 일본의 중요한 자산 중 하나가 건축적 전통이거든요. 그래서 이들은 건물 만드는 데 우리보다 훨씬 돈을 많이 써요. 한국은 돈을 적게 들이고 건물을 짓는 사회적 분위기, 통념이 형성되어 있잖아요. 그리고 장인이 없죠. 일본 목수 수준은 거의 묘기 수준이에요. 한국과는 상대가 안 돼요. 현장에 가면 항상 미치죠.(웃음)

 

악순환인 것 같아요. 돈을 많이 들이지 않으니까 싼 인력을 써야 하고, 그 인력은 돈이 안 되니까 장인정신을 갖기 힘들고요.


그래서 바꾸는 게 오래 걸리죠. 제자가 바뀌는 데 얼마나 걸릴 것 같은지 물은 적 있는데요. 300년 걸릴 것 같다고 했어요. 그것도 잘 될 때고요. 안 그러면 더 걸릴 수도 있을 거예요.

 

건축가로서 가지고 있는 궁극의 목표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두 종류의 작업을 하는데요. 하나는 책을 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건물을 짓는 것이에요.  둘 다 후배들로부터 가치를 인정받는 작업을 하고 싶다는 것이었어요. 책은 한 것 같아요. 당분간은 이 정도 책을 쓰는 선수가 후배들 중에도 없을 것이다, 하는 건방진(웃음) 확신이 있어요. 건물은 그게 아니에요. 죽기 전에 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요. 건물을 통해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시공하는 분들도 도와줘야 하고, 건축주도 도와줘야 하는데, 아직은 그렇게 가치를 인정받는 건물을 만들지는 못했어요. 가치를 인정받는 건물을 만드는 것이 제 인생의 건축적 목표죠.

 

글은 그렇다면 앞으로 계획이 없으신가요?

 
지금까지 쓴 책 중 제가 적극적으로 쓴 것은 네 권인데요. 분야를 따지면 쓸 것은 다 썼어요. 건축 입문자를 위한 책, 전통 건축, 건축 전문가를 위한 책, 그리고 이 책이 대중을 위한 책이고요. 뭐, 인생은 알 수 없죠.(웃음) 하지만 지금은 제가 건축계에서 책을 통해 할 일은 다 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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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서현의 세모난 집 짓기 서현 저 | 효형출판
인문적 건축, 도시 이야기를 꾸준히 쓰며 건축과 대중 사이의 담을 부지런히 허물어온 서현 교수의 첫 번째 집 짓기 책이다.도면과 스케치부터 건물 완공 후 사진까지 시각 자료를 다채롭고 디테일하게 수록한 것은 물론이고 끝없는 고민, 어이없는 실수, 겨우 해결했다 싶으면 또 등장하는 현실적 난관 등 대충 넘어갈 법한 이야기까지 덮어두거나 포장하지 않고 솔직하게 써내려갔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사진가 정택용 “여기, 사람이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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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박’이라는 두 글자만 마주하면, 시집의 제목 같다. 뒤로 이어지는 두 단어, ‘고공농성과 한뎃잠’을 읽으면 마음이 무거워진다. 편한 마음으로 볼 수 있는 사진집은 분명 아니다. 효용적 가치를 먼저 논하기도 어렵다. ‘사진작가 정택용은 어떤 마음으로 노동운동의 현장을 찍었을까?’를 따져보는 것도 우스운 감상일지 모른다. 작가는 다만 말하고 싶었다. “여기, 사람이 있다”고.

 

정택용 작가는 2005년 서울 금천구 기륭전자에서 처음 현장 노동자들을 찍은 후, 비정규직과 정리해고, 국가폭력이 끊임없이 뒤섞이는 현장을 꾸준히 사진으로 담고 있다. 대추리, 제주 강정, 밀양, 용산에서부터 여의도, 서초, 광화문에 이르기까지 누군가 고공농성을 하기 위해 어딘가 올라가면, 카메라를 들었다. 정택용 작가에 의하면, 최근 몇 년 동안 전국에 고공농성장이 한 군데도 없는 ‘평화로운 공백기’는 2013년 8월, 학습지 노동자들이 성당 종탑에서 내려오고 같은 해 10월, 한 버스 노동자가 춘천시외버스터미널 조명탑에 오르기 전까지 한 달이 조금 넘는 기간뿐이다. “한 곳에서 내려오면 다른 곳에서 올라갔기 때문”에 정택용 작가는 쉬지 않았다. 고공농성장에 어김없이 펼쳐지는 한뎃잠의 풍경을 찍으며, 그는 평등한 잠을 꿈꿨다.

 

『외박』의 초판 부수는 1,000부다. 사진집의 독자층은 넓지 않기에 그저 적다고 보기엔 어렵다. 하지만, 5천 만의 대한민국 국민 숫자를 따져볼 때는 다소 아쉽다. 정택용 작가는 “사실, 욕심을 부린 숫자”라고 했다. 사진가는 그저 사진으로 말한다는 이치 때문일까, 좀처럼 드러나는 일을 주저하는 정택용 작가는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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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드러내는 일 정도만


3년 전부터 구상했던 책이라고 들었습니다.


개인 사진집으로는 두 번째 책이에요. 사실 첫 책은 완전히 제 의지로만 낸 책이 아니라, 많이 서툰 부분이 있었어요. 기륭전자 비정규직 투쟁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순진한 생각만 있었으니까요. 반면 『외박』은 10년간 찍었던 사진을 주섬주섬 모아서 낸 책이라, 고민을 많이 했어요. 구상은 일찌감치 했지만, 책 작업만 할 수는 없으니까요. 정신 없이 현장에서 사진을 찍다 보니, 끝을 맺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외박’은 어떻게 나온 제목인가요?


고공농성과 한뎃잠을 아우르는 제목을 생각해봤어요. 처음 생각한 건 ‘잠의 송’이었어요. 루쉰의 풍자문 ‘밤의 송(頌)’에 나오는 ‘밤’을 ‘잠’으로 바꾸니, ‘잠의 송(頌)이 따로 없더라고요. 하지만 책 제목으로 쓰기는 발음도 어렵고 무슨 뜻인지 쉽게 파악이 안 돼서, 순우리말 사전을 쭉 뒤져봤어요. 그러다 불현듯 떠오른 제목이 ‘외박’이었어요. 잠을 표현한 단어를 찾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잠의 송’을 제목으로 사진전도 여셨는데요.


류가헌에서 전시회를 열었어요. 갤러리에서는 ‘잠의 송’을 더 좋아하시더라고요. 잘 나눠 가진 것 같아요.

 

저자 소개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대학에서 언어학을 배운 뒤 불성실한 직장인으로 살다가 관뒀다’라고 쓰셨는데요. 왜 불성실한 직장인이셨나요?


문과대학을 나왔는데, 제 전공으로 갈 수 있는 분야는 뻔했어요. 생계 수단으로 회사에 취직해야 할 것 같아서 들어갔는데, 1년 반 정도밖에 못 다녔어요. 직원 교육 프로그램을 만드는 업무를 했는데, 들어갈 때부터 오래는 못 다니겠다 싶었어요. 뭐랄까, 보람을 크게 느끼기 어려운 일이었고 3년 후의 내 모습을 상상해보니 똑같이 살고 있을 것 같았어요. 한 번뿐인 인생을 그렇게 살고 싶진 않았어요. 그래서 회사에서 나와 다시 대학에 들어가 사진을 공부했어요.

 

추천사를 소설가 조세희 선생님이 써주셨어요. 특별히 선생님께 요청하신 이유가 있었을 것 같은 같은.


첫 사진집 『너희는 고립되었다』를 낼 때, 조세희 선생님과 문정현 신부님이 추천사를 써주셨어요. 조세희 선생님은 지금 몸이 좋지 않으셔서 나오기 힘드시지만, 오랫동안 카메라를 들고 현장에 나오시곤 하셨어요. 길 위에서 종종 만나 안부를 여쭤볼 정도는 됐고 글을 쓰시는 분인데 사진도 잘 아시는 분이어서 부탁 드렸어요. 처음에는 고사를 하셨어요. 몸이 안 좋아서 글 쓸 여유가 없으니, 나중에 기회가 되면 써주겠다고 하셨는데, 한 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전화가 왔어요. 써주시겠다고요. 제가 책을 내서가 아니라, 사진으로 찍힌 분들에게 힘이 돼주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조세희 선생님이 작가님을 두고 “드물게 말이 없고 수줍게 웃기만 하던 청년이었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조금 걱정했어요. 인터뷰에서 말이 너무 없으실까 봐요.


(웃음) 말이 없어요. 되게 없어요. 친한 사람들끼리 있을 때야 조금 말을 하는데, 지금도 물어보시니까 말을 많이 하는 거고요. 해야 할 말을 안 하는 건 아닌데, 사람들이 항상 저를 보고 말이 없다고 해요. 기륭전자 비정규직 투쟁을 2005년부터 찍었는데, 기륭 분들도 처음엔 저를 잘 모르셨어요. 6개월쯤 지나서야, 제가 사진을 찍었다는 걸 아셨으니까요.

 

사진을 찍는 일은 드러나는 일인데요. 어떻게 남모르게 작업을 하셨나요?


그 때만해도 필름으로 사진을 찍었어요. 집에서 현상해서 인터넷 카페에 사진을 올렸는데, 굳이 저를 설명할 이유도 없었죠. 제 사진으로 웹자보를 만드시고 피켓을 만들고 하셨는데, 몇 개월이 지나서 한 조합원이 “그런데, 누구세요?”라고 묻더라고요. (웃음)

 

인터뷰도 부담이 되시겠어요.


부담이죠. 사실. 제 얼굴이 나가는 것도 그렇고, 글 쓰는 것도 좀 그래요.

 

글은 왜요? 저는 『외박』에 실린 서문 글이 참 좋아서 밑줄을 여러 번 그었는데요.


누가 썼다, 라고 들어가는 게 좀 그래요. 사진으로 드러내는 일 정도만 하고 싶은데, 그게 마음대로는 안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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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농성에서 빠질 수 없는 한뎃잠


고공농성과 한뎃잠, 두 주제로 사진집을 구성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3년 전쯤인가, 이런저런 사진들이 쌓이다 보니 무게가 느껴지더라고요. 정리를 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해야 할까, 생각했는데요. 2011년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지역본부 지도위원이 부산 영도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 위에서 300일이 넘는 고공농성을 하고 내려왔을 때, 이 일이 제게는 굉장히 큰 일로 다가왔어요. 이후 사람들이 계속해서 올라가는 걸 보면서, 고공농성 사진이 계속 찍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몇 년간 찍은 고공농성 사진을 모아보자 싶었고, 한뎃잠은 그 사진들 속에 자연스럽게 있을 수밖에 없는 장면이었어요.

 

표지 사진은 2015년 1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펼쳐진 ‘쌍용차 해고자 전원본직 정리해고 철폐를 위한 오체투지 행진’ 사진입니다. 사진집에서는 ‘한뎃잠’ 부분으로 실렸는데요.


기륭전자 비정규직 투쟁 때, 저도 하루 동안 오체투지 행진을 했어요. 이것도 한뎃잠이구나, 싶었죠. 잠이라는 게 진짜 자는 것만이 아니라 이런 모습들도 한뎃잠일 수 있겠구나, 생각했어요. 그래서 오체투지나 삼보일배, 방진복 퍼포먼스 등의 형상도 ‘한뎃잠’으로 포함시켰어요.

 

현장 사진을 오래 찍다 보면, 누군가의 요청에 의해 현장에 가는 경우도 많으실 텐데요. 하지만 항상 갈 수만은 없는 상황일 것 같아요.


처음에는 현장에 나 말고 사진 찍을 사람이 없으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있었어요. 하지만 요즘은 ‘나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있어요. 제가 아니더라도 도움을 줄만한 다른 분들이 있다는 걸 알아요. 예전처럼 ‘꼭 내가 가서 찍어야 해’ 그런 조바심은 없어진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나면서부터는 지나친 욕심은 버렸어요. 사진은 글과 그림과는 달리 현장에 없으면 아예 불가능한 매체잖아요. 못 찍어서 받는 스트레스가 컸는데, 지금은 좀 달라졌어요.

 

노동운동 현장을 찍는 일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신경을 쓰는 부분이 있나요?


저는 드러내지 않고 찍는 편이지만,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갖고 있더라도 운동을 하시는 분들의 얼굴이 찍혀야 하니까요. 찍히는 사람이 기분이 상하면 찍어서는 안 되는 거겠죠. 대추리, 강정마을, 용산 같은 곳에서의 경험을 보면, 처음 보는 사람이 다짜고짜 사진을 찍고 있으면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물론 어딘가에 사진이 필요한 상황이 있겠지만, 의도를 다 알 수는 없을 테니까요. 세월호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학생들의 빈방을 찍는 프로젝트를 했는데요. 첫 날 아이들의 방을 찾아갔을 때, 그 무거움이 엄청나서 ‘제가 이 사진을 찍어도 되는지?’를 물어보고 싶었어요. 함께 간 친구들이 혹여 아이 부모님에게 상처가 될만한 사소한 행동이라도 하면 어떡하나, 그런 고민이 많았어요. 노동현장도 마찬가지예요. 저라도 제가 자고 있는데, 사진을 찍으면 안 좋을 것 같아요. 그래서 관계가 중요해요. 관계가 형성되지 않았을 상황에서 사진을 찍어야 하는 경우에는 찍히는 사람들에게 폐가 안 될까, 그런 고민을 많이 해요.

 

『외박』에 얼굴이 실린 분들께는 모두 허락을 받으셨나요?


그 분들과는 신뢰 관계가 있어요. 하지만 고민이 됐던 사진이 하나 있어요. 작년에 강정 생명평화 대행진에서 찍은 사진인데, 누군지 모르는 분들이 많이 나왔어요. 주위 친구들한테 “이거 괜찮을까?” 물어봤는데, 괜찮을 테니 그냥 진행하라는 충고를 들어서 실었어요. 그런데 다행히 얼굴을 알아보지는 못할 정도로 알맞게 인쇄가 됐어요.

 

프레스증을 차지 않았을 때, 간혹 ‘이렇게 심각한 상황에 사진만 찍고 있냐?’는 거리의 시선을 느끼진 않나요?


그런 시선은 신경 쓰지 않아요. ‘심각한 상황에 개입하는 것보다는 사진을 찍는 일이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니까요. 당사자들에 대한 생각만 해요.

 

시위현장 속 현수막도 많이 찍혔어요. 눈에 익는 문구도 있지만 처음 보는 문구가 많았어요.


거리에서 피켓을 들고 있는 사람들이 많지만, 눈길을 주는 사람은 거의 없잖아요. 구구절절, 내 이야기 좀 봐달라는 몸부림인데 아무런 관심을 못 받는 걸 보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닌 일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보도사진을 볼 때, 아쉬운 부분은 없나요?


보도사진은 보도사진만의 역할이나 표현방식이 있으니까요. 왜 이렇게는 안 찍지? 그런 생각을 하진 않아요. 꼭 찍어야 하는 보도사진이 있는 거고요. 저 같은 사람은 자유로운 편이니까 그들이 찍지 않는 빈틈을 찍을 수 있는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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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이 불편해서 찍는다


나는 왜 현장사진가가 됐을까? 하는 생각을 간혹 하시나요?


비슷한 질문을 많이 받는데요. 회사를 그만 두고, 다시 학교에 들어가 사진을 공부하면서 ‘나는 무엇을 찍고 싶은 걸까’를 찾는 기간이 오래 있었어요. 그런데 찾기도 전에 기륭전자 비정규직 투쟁을 찍게 됐어요. 6년을 찍고 타결이 되면서, 다른 걸 찍을 수 있을까? 했는데 비슷한 일이 연이어 터졌어요. 쌍용차, 희망버스, 유성기업. 현대자동차, 밀양, 세월호가 겹치거나 뒤이어 계속 있었어요. 대부분 기륭 파업 사진을 찍는 과정에서 지금 연대하는 사람들을 만났는데, 자연스럽게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지금에 이른 것 같아요.

 

서문에 권정생 선생님의 이야기를 쓰셨어요. 선생님께서는 “자기 같은 사람 찍지 말고 더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을 찍으라”고 하셨다고요. 이 이야기를 쓴 까닭은 평소 많이 생각하는 문제이기 때문일 텐데요.


어쭙잖은, 주제넘은 생각이지만, 내 사진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기륭전자 사건 때, 제가 찍은 사진이 여러 용도로 활용되는 걸 보고, 뭐라도 도움이 되는구나 싶었어요. 제가 정말 선하고 착하고 이런 사람이 아니라, 답변을 하기 어려울 때가 있는데요. 이렇게 대답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불편해서 “내가 마음이 불편해서 찍는다”고 말하곤 해요. 누군가 “네가 뭔데?”라고 말하면 할 말이 없지만요.

 

사진가로서 현재 갖고 있는 관심사가 있나요?


오래 전부터 생태나 환경 문제를 사진으로 다뤄보고 싶었어요. 4대강사업이 시작된 2008년쯤부터 이 작업을 꾸준히 하고 싶었는데, 현장을 계속 가다 보니 밀도 있게 하기가 어렵더라고요. 틈틈이 하고 있긴 한데, 언젠가는 집중하고 싶어요.

 

『외박』을 다 보고 나서, ‘한뎃잠’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됐어요. 잠이라는 게 정말 중요한 문제잖아요. 어떻게 보면 먹는 문제보다 더 중할 수 있고요. 작가님이 꿈꾸는 ‘우리의 잠’의 모습이 있을까요?


될 성 싶은 이야기는 아니지만요. 잠에서만큼은 평등한 사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말씀하셨다시피 잠의 질이 안 좋은 분이 정말 많아요. 수면시간 문제도 중요하고요. 이윤엽 판화가의 「노동자는 올빼미가 아니다」라는 작품이 있어요. 2011년, 밤새 일하는 주,야 맞교대를 낮에 일하는 주간연속 2교대제로 바꾸자는 노사합의를 사측이 지키지 않아 벌어진 유성기업 노사분규를 상징하는 작품인데요. ‘밤에는 잠 좀 자자’라는 의미를 담고 있죠. 결국에 인생은 잘 먹고 잘 자는 문제일 수 있는데, 모두가 잘 먹고 좋은 집에 살 수는 없지만, 잠만큼은 평등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만약 『외박』에 실린 사진 가운데 1장을 일간지 1면에 실을 수 있다면, 어떤 사진을 싣고 싶나요?


몇 개가 있을 수 있는데요. 이 책의 주제가 노동자이니까요. 지금 떠오르는 사진은 맨 마지막에 실린 ‘삼성 직업병 문제 해결을 위한 방진복 퍼포먼스’네요. 삼성은 엄청난 대기업이잖아요. 하지만 중소기업이든 더 작은 기업이든 똑같은 일이 옆에서 일어난다고 생각해요. 재작년에 협상을 한다고 했지만, 해결되지 않고 있잖아요. 자본만을 위해 굴러가는 첨단을 보여주는 게 삼성이라고 생각해요. 사람들은 반도체산업이라는 게, 정말 방진복을 입고 먼지 하나 없는 곳에서 일어나는 깨끗한 산업이라고 생각하지만, 유독물질을 다룬 사람이 얼마나 많이 죽어갔나요? 작년까지 제보된 삼성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가 221명이에요. 이 일이 오랫동안 안 알려졌다는 게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일이에요. 비단 삼성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현대중공업만 해도 올해 추락하거나 돌아가신 근로자 분이 얼마나 많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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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삼성 직업병 문제 해결을 위한 방진복 퍼포먼스. ⓒ정택용

 

이 시대, 갑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제게 너무 크게 다가오는 질문인데요. 용산에서 외쳤던 이야기가 절절한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거기서 외쳤던 이야기가 “여기 사람이 있다”였거든요. 어떻게 사람이 사람에게 이럴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을 해요. 사진집을 낸 것도요. 같은 의미예요. “여기 사람이 있다”, “여기 몸부림 치는 사람이 있다”. 그런 마음을 담아서 낸 책이에요. 제가 알고 있는 한, 세계적으로 고공농성을 이렇게 많이 하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어요. 사람을 하늘로 올려 보내는 사회가 됐는데도 자기 일이 아니니까 괜찮다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한국 사회에 많은 것 같아요.

 

“언젠가는 풍경 사진만 찍으며 먹고 살 수 있는 날들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하셨는데요. 다음 사진집을 낸다면요. 어떤 주제로 사진을 찍고 싶나요? 비현실적이라 해도요. 노동운동 현장을 찍을 필요가 없는 세상이 돼서, 꽃 사진만 찍어도 좋겠고요.

 

지금 질문하고 답도 하셨는데요. 정말 비현실적이어도 된다면요. 식물로 지금 우리 사회의 문제 있는 곳들에 대한 이야기를 은유적으로 풀어보고 싶어요. 저를 아는 사람이 이 이야기를 들으면, “뭔 헛소리냐?”할 것 같긴 하지만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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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박정택용 저 | 오월의봄
정택용의 사진집 《외박》은 이른바 ‘고공농성과 한뎃잠’을 기록하고 있다. 어디든 올라야만 했던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의 기록이다. 집에서 잠을 자지 못하는 사람들의 기록이며, 살기 위해 하늘로 올라간 사람들, 올라간 사람들을 땅에서 지켜주는 사람들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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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윤필 "좋아하는 사람에게 소개하고 싶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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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한 사람들을 이야기했고, 저자는 가만히 있고 싶었다. 인터뷰 자리에 나오긴 했지만 여간 편치 않은 모습이었다. "나는 근사해 보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달한 택배기사"라고 스스로를 지칭하는 저자에게 자꾸 의미를 묻고 있으려니, 서로가 불편한 자리였다. 다행스러운 건, 불편함 속에 곱씹고 싶은 이야기들이 툭, 떨어졌다는 사실이다.

 

최윤필 기자가 쓴 『가만한 당신』은 2014년부터 지금까지 <한국일보>에 연재되고 있는 동명의 부고 기사 기획물이다. 성과 인종, 직종을 떠나 자유와 평등의 신념을 놓지 않은, 그러나 우리는 몰랐던 35명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최윤필은 “국내에 알려진 이들은 어떻게든 기억되리라 여겨 외면했고, 떠난 자리에 잔물결도 일지 않을 것 같은 이들을 편파적으로 주목했다”고 말한다. 그를 통해 발견된 작은 거인들은 관습에 맞서 몸을 움직인 사람들이다. 공통점이 있다면, 희귀 유전병을 갖고 태어난 호주의 코미디언 겸 방송인 ‘스텔라 영’의 말을 인용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이 세상에 잘 살려고 왔지, 오래 살려고 온 게 아니야.”

 

『가만한 당신』의 저자 인세는 전액 해방촌 길고양이 기금으로 쓰인다. 아마 최윤필 기자는 책이 많이 팔리기보다, 인터뷰가 많이 읽히기보다, 집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길고양이에게 눈길 한 번 더 주기를 독자에게 바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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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가 바라는 게 무엇인지를 잘 아는 사람


출간을 무척 반대했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반응이 굉장히 좋은데요. 책이 나왔을 때, 어떤 느낌이셨나요?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할까요. 그러니까 신문은 하루가 지나면 잘 안 읽는 글이잖아요. 반면 책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묶이고 나면 오래 가죠. 그래서 책임감이 생기고요. 평소 책임감을 느끼는 걸 안 좋아하지만요. 좋은 점이라면, 신문에서 다룬 인물에게 대접을 좀 더 해줬다고 할까요? 그런 고마움은 있는 것 같아요.
 
책 속 인물들의 공통점을 찾는다면, 자주적인 인물입니다. 그래서 '가만한 당신'이 된 것 같기도,  '가만하지 않은 사람'인 것 같기도 합니다. 또한 생각이 아닌 몸으로 인생을 살아낸, 매우 역동적인 인물이에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어요. 각자 맞닥뜨린 삶의 문제들을 회피하거나 타협하려 하지 않았다는 점이 그렇죠. 그렇긴 하지만 제 욕심은 그들이 어떤 공통점으로 묶이거나 몇 가지 유형으로 전형화, 정형화되지 않았으면 하는 겁니다. 저마다 성격도 다르고, 환경과 상황도 다르고, 대응하는 방식도 다르지 않나요. 또 같은 문제라고 해도 접근한 경로와 해법이 달랐고, 그렇게 다른 게 전 좋습니다. 그래서 개별적이고 특수한 것들을 보여지는 대로 보고 각각의 구체적인 맥락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아무리 좋은 끈을 묶더라도 묶어버리면 밋밋해지기 쉽죠. 그런 의미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가만하면서 가만하지 않은 사람들로 읽혔으면 좋겠습니다.

 

인물을 선택할 때, 기준이 있었나요?


쉽게 말해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이었어요. 덧붙인다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소개해주고 싶은 사람이겠네요. 세상에 이런 사람이 있었다고 이야기하면서 서로 즐거워할 수 있는 사람, 기분이 좋아질 수 있는 사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결핍되어 있는 가치를 말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나한테 부족한 부분이 있는 사람에게 끌렸다고도 하셨는데요.


맞아요. 하지만 모든 인물이 일관적으로 하나의 가치에 매진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그 분들도 어렸을 때는 많이 방황했을 거예요. 항상 구체적인 삶의 계획을 가지고 흔들림 없이 가진 않았을 것 같아요. 그런 분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상상이 안 돼요. 다만 생각하기로는 자신이 바라는 게 무엇인지를 잘 아는 사람이었을 것 같아요. 가끔씩 유혹이 있을지라도 자기의 길을 크게 벗어나지 않은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분명한 길을 정해놓고 가진 않았겠지만, 삶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해본 사람, 그러기 위해 노력한 사람이 아닌가 싶어요. 제가 그 점이 부족해요. 부족하니까 끌린 거죠.

 

자연스레 죽음에 대한 생각도 많이 하셨을 것 같습니다.


글쎄요. 저에겐 부고를 쓰는 게 일이니까요. 아마 기사를 읽은 독자 분들은 죽음에 대해 생각하셨을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저는 지옥에 갈 겁니다. 제가 마음에 드는 사람이 죽으면 부고를 쓸 수 있어서 반가웠으니까요. 저는 더 못돼졌을지도 몰라요.

 

연재를 하기 전부터 부고를 읽는 일을 좋아하셨다고요. 왜 부고를 읽는 일이 좋으셨나요?


죽음에 대한 긍정이, 잘 사는 문제와 따로 놓일 수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가만한 당신』에 나오는 인물처럼, 근사해지고 싶다는 생각이 전혀 없어요. 기사를 썼다고 책을 냈다고, 어떤 교훈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진 않아요.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내 인생을 비춰보게 됐을 것 같은데요.


더 나은 삶을 살아야겠다, 이런 생각은 하게 됐어요. 부고를 쓰면서 기사에는 전혀 언급되지 않은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같이 따라 읽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보이지 않는 지점들 속에서 혼자만의 느낌으로 접촉하고 만난 것 같아요. 관념적인 이야기일 수 있는데, 좀 잘 살아졌으면 좋겠고 잘 살게 됐으면 좋겠고, 기사를 읽는 분들도 그랬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은 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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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고는 끊임없이 새로 쓰여야 한다


책에는 35명의 부고가 실렸어요. 만약 그들이 살아있다면 친구로 삼고 싶은 인물이 있나요?


한두 사람을 꼽긴 힘들 것 같아요. 가까이에 있으면서 가장 야단맞을 것 같은 사람, 구박을 받으면서도 쫄래쫄래 따라다닐 것 같은 사람은 ‘스텔라 영’인 것 같아요.

 

이유는요?


경험의 독재라고 하나요? ‘내가 겪어(해)봐서 아는데~’로 시작하는 편협된 경험주의적 논리는 경계해야겠지만, 경험의 가치는 충분히 존중해야 할 테죠. 특히 인권이나 차별의 감수성은 경험에서 얻어지는 바가 크죠. 그래서 책이나 이야기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부족한 경험을 보완하고 공감의 범위와 깊이를 확장하려고 하는 걸 테고요. 전 스텔라 영의 이야기를 찾아 읽으면서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상대적으로 많이 배웠습니다. 그건 달리 말하면 제가 장애의 문제에 무심했다는 것, 내가 사는 이 도시와 사회가 그들을 외면하거나 배제해왔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살아생전이라면, 인터뷰를 해보고 싶은 대상은요?


부고로 만난 모든 분과 일주일씩 같이 살아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죠. 기사를 쓰면서 그런 상상은 늘 했던 것 같아요.

 

‘부고’라서일까요? 자살을 연구했던 심리학자 ‘노먼 파버로’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는데요. 노먼 파버로의 부고를 쓸 때, 가장 많이 생각한 것들은 무엇이었나요?


죽음의 형식과 의미는, 우리에겐 아직 먼 얘기일 테지만, 저로선 꽤나 관심 갖고 고민해온 문제입니다. 종교와 관습, 법 등 모든 면에서 죽음은, 삶을 위한 순교가 아닌 한 절대적 타자죠. 인간은 내부자를 맹목적으로 사랑하는 만큼 타자를 아주 쉽게 증오하죠. 파버로는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옹호해온 이들과 다른 편에 서서 자발적 죽음의 문제를 들여다봤지만 죽음을 타자화하는 지배적 이데올로기에 대해서는 누구 못지않게 반발했던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들의 이야기가 우리 사회에서 많이 읽히고, 논의되고, 공론화됐으면 좋겠다는 특별한 바람이 있었습니다. 
 
“부고는 끊임없이 새로 쓰여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기자님의 부고를 통해 소개된 인물이 재조명된 경우가 있었나요?


부고가 한 사람의 생애를 최종적으로 정리하는 형식일 수 없다는 의미로 그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중요한 사람의 이야기는 어떤 계기를 통해 다시 다른 각도에서 조명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미처 알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이 드러날 수 있으니까요. 제가 아는 한, 제 기사나 책으로 무슨 변화가 있었을 리 없습니다. 만일 그런 일이 있다면 무척 기쁠 테고, 좀 으스댈 수도 있을 텐데 말이죠. 다만 소수의 독자에게나마 듣도 보도 못했을 누군가의 멋진 삶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당연히 이런저런 이유로 아깝게 흘려 보낸 이들의 사연도 적지 않습니다. 

 

만약 일간지 1면에 누군가의 부고를 실을 기회가 생긴다면, 지금껏 소개한 인물 중 누구의 이야기를 담고 싶나요?


그건 어느 날짜의 1면이냐에 따라 다를 수 있을 텐데요. 가령 오늘(8월 7일)처럼 ‘사드(THAAD)’ 보도가 뜨겁게 소비되는 날이라면, 세계의 군비 경쟁을 폭로했던 루스 레거 시버드의 이야기를 통해 사드의 도입 타당성과 별개로 군축과 평화의 이야기를 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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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에 합당한, 미안하지 않은 정도의 목소리


최근 인상 깊게 읽은 책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일 때문에 읽는 걸 빼면, 제가 읽는 책의 90%는 범죄스릴러소설인데요. 스티븐킹의 최근작과 오사 라르손이라는 스웨덴 작가의 『블랙 오로라』를 입맛 다시며 읽었습니다. 흐라발의 너무 시끄러운 고독』도 좋았고, 붉은가슴도요라는 철새들의 멸종을 막기 위한 과학자들의 활동과 B-95라는 특별한 한 마리의 사연을 소개한 필립 후즈의 논픽션 『문버드』도 더운 줄 모르고 읽었어요.

 

한 인물의 평전을 쓰고 싶은 생각은 혹시 없나요?


그건 전문작가의 몫인 것 같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을 맡아 해내는 것도 값진 재능이지만, 잘 못하는 일을 요령껏 잘 피하는 것도 요긴한 능력이죠. 제가 전자는 부족하지만 후자는 웬만큼 갖춰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지냅니다.

 

저자로 주목을 받는 일도 원하지 않는 느낌이 들어요. 인터뷰도 그렇고요. (웃음)


정말 제가 한 일은 근사해 보이는 사람들을 찾아서, '이런 사람들 있어요'라고 전달한 일이거든요. 비유를 하자면, 소비자들이 좋아할 만한 물건을 골라서 돈을 낸 사람들에게 택배를 보낸 거죠. 우리는 택배 받는 일을 무척 좋아하잖아요. 가끔 상자가 조금 찌그러져 오는 일도 있듯이, 제가 쓴 기사도 다르지 않죠. 근사한 이야기를 전달한다고 그 사람이 근사한 건 아니잖아요. 저는 그저 직업인으로 봉급을 받고 좋아하는 일을 했을 뿐이에요. 내가 배달하는 물건이 근사해서 내가 조금이라도 돋보이는 일이 조금 불편한 거예요. 머릿속에는 근사한 답변이 있을 수 있지만, 조심스러워요.

 

만약 후배가 이 코너를 물려받는다면요. 어떤 조언을 할 수 있을까요?


이 코너를 시작할 때, 누가 어떻게 써달라고 이야기한 게 전혀 없었어요. 저 역시, 정말 아무 말 안 하고 줄 것 같아요. 제가 하고싶어서 했듯이 너도 하고 싶은대로 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국내 부고를 다루고 싶은 생각은 없으신가요?


한국인의 부고를 쓰지 못하는 건, 제 능력과 시간이 부족한 탓입니다. 덜 유명한 분들의 경우엔 검증된 자료가 부족하고, 유명한 분들의 경우엔 훨씬 돋보이는 지면의 주요뉴스로 소개되기 때문에 제가 다루기 애매한 면이 있습니다. 글도 마찬가지지만 친지나 이해 관계자를 대상으로 말로 하는 취재는, 특히 지척에 고인이 누워 있고 유족이 지켜보고 있을 땐, 인터뷰이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 적기 힘든 면이 있습니다. 신문 연재를 시작하고 초기엔 한국인 부고도 쓰곤 했습니다만. 만일 신문에 매주 한 면씩 무조건 쓰는 게 아니라 제가 원하는 만큼 취재하고 부정기적으로 기사를 써도 된다면, 부족하지만 어찌어찌 해볼 수도 있을 텐데요.

 

저자 소개에서 인상적인 문장이 있었습니다. "누릴 것 다 누리고 이렇다 하게 한 일도 없다는 자각에 머뭇거려질 때가 많지만, 그건 시민으로서나 기자로서 치명적인 문제지만, 나는 노력 중이다." 어떤 노력인지, 궁금한데요. 


하루키와 일본의 심리학자 가와이 하야오가 대담한 『하루키, 가와이 하야오를 만나러 가다』라는 책이 있어요. 아마 이 책이 『1Q84』전후에 나왔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세상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있던 하루키가 세상에 다가서는 이야기로 저는 읽혔어요. 개인의 삶에 충실하고 싶지만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살 수 없잖아요. 기자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마이크를 들고 있는 사람이니까, 사회에 대해 말해야 하죠. 계속 혼자 자기 말만 하고 있으면 안 되는 거죠. 비극은 자기에 걸맞은 데시벨이 아닌 마이크를 들고 있을 때 찾아오는 거고요. 제가 말한 노력은, 내가 들고 있는 마이크에 합당한, 미안하지 않은 정도의 목소리를 내야겠다 하는 생각이에요.

 

개인으로서 내 삶에 있어서 바라는 것들이 있다면요?


저는 에너지가 많지 않고, 능력도 뻔하죠. 스스로를 과대평가하거나 어떤 열정에 휘둘려 자신과 주변을 민망하고 불행하게 만드는 예가 더러 있지 않나요? 저는, 누구나 그럴 것 같은데, 제가 할 수 있는 한 의미 있는 일을 하면서 사는 데까지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삶이 지금보단 조금 더 편하고 즐겁기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맛있는 걸 더 자주 먹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책을 읽으며 내 부고를 상상해봤는데요. 너무 텅 빈 원고가 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어떠한 삶이라도 가치가 없다고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선택되지 못한, 너무 가만해서, '가만한 당신'도 되지 못한 인물들에게 『가만한 당신』의 저자로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없으신지요?


저의 ‘선택’이 그 분들에게 고마움과 서운함을 가르는 기준이 될지 잘 모르겠습니다. 만일 그렇다면, 서운해하는 분들에게 죄송하다고 말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제 눈이 밝지 못해 알아보지 못한 분들이 틀림없이 많을 테니까요. 『가만한 당신』의 주인공들도 아마도 저와 비슷하게 생각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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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쓸모에 대해 말한다면요?


누구든 제게, 제 책의 쓸모를 납득시켜 주신다면 맛있는 팥빙수를 사드리겠습니다. (웃음)

 

난감한 질문일 수도 있는데요. 독자들이 어떤 마음으로 『가만한 당신』을 만나면, 좋을까요?


읽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인데 ‘어떻게’라고 토를 다는 건 무례하고 염치 없는 짓이 될 텐데요. 다만 책의 주인공들이 우리에게 낯선 것처럼, 제가 몰라서 못 썼거나 지면 사정 때문에 언급하지 못했던, 역시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이들이 그들 주변에, 책 너머에 있으리란 걸 염두에 둬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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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한 당신 최윤필 저 | 마음산책
2014년부터 한국일보에 연재되고 있는 동명의 기획물 중 서른다섯 편을 선별, 개작하여 묶은 책이다. 저자는 중요한 가치로 논의되고 있는 사안들, 인권과 자유, 차별 철폐와 페미니즘, 조력 자살과 동성혼 법제화 등을 위해 우리보다 앞서 헌신했던 이들을 환기하고자 국내 최초로 부고 기사 연재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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