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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석 “‘덕분에’라는 말을 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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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에 Myste. lee라는 필명으로 위로의 글을 전했던 이인석의 첫 에세이 『너만 그런 거 아니야』는 아주 다정하다. 따뜻한 느낌이 맞았다고 느낀 건 저자가 인터뷰에서 한 말, “누군가에게 ‘덕분에’라는 말을 좀 많이 하고 싶어요. 결론적으로는 제 성공이거든요.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좋은 관계가 나에게 있다는 의미니까요.” 때문이었다. 덕분에. 참 아름다운 말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이인석은 책 곳곳에 ‘덕분에’ 감성을 담고 있다. 그것은 감사와 위로, 당신과 나의 안녕을 확인하는 멋진 장치가 된다. 그 덕분에, 독자는 고개를 끄덕이고 옆 사람의 어깨를 토닥거릴 수 있게 된다.

 

“괜찮아, 내가 너라도 그랬을 것 같아.”
상대방이 내 마음을 이해하기는 힘들다. 절대로 상대방은 내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중략)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우리의 삶을 누군가와 공유하는 것은 ‘나만 그런 거 아니지? 너라도 그랬겠지?’라는 딱 하나의 동의를 구하고 싶어서다. 누군가 진짜 힘든 사람이 당신 곁에 있다면 그 사람을 이해하지 않아도 괜찮다. 다만 ‘너 같은 사람은 세상에 없다, 너만 그런 거다’라는 외로움만 주지 않았으면 좋겠다.(71쪽)

 

교육 컨설팅 강의를 하면서 그는 아프고 외로운 사람을 많이 만났다. 그들이 자기 자신과 좋은 관계를 맺기를, 마음 가는 대로 하기를, 곁에 있는 사람에게 ‘너만 그런 거 아니’라고 말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 그런데 놀랍게도, 누구보다 큰 위로를 받은 것은 그 자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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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기분 좋은 책


일러스트를 친동생 분이 그렸어요. 가족과의 작업, 처음이었을 텐데 어땠나요?


정확하게는 상의라기보다 명령하는 구조였고요.(웃음) 그 친구는 영화를 하는 친구라서 항목에 관련된 느낌보다 본인이 원래 하던 느낌이 강해서 의논을 많이 했죠. 제가 감정이 드러나는 캐릭터였으면 좋겠다, 이런 의견을 얘기하면 동생이 그려서 보내주고, 다시 그리고, 이렇게 했어요. 공짜로 시키면서 어마어마하게 부려먹었어요.

 

공짜로요?


네, 밥 한 번 사야죠.(웃음) 책에 이름 넣어준다고 생색냈어요.

 

주로 요구했던 ‘명령’은 뭐였어요?


캐릭터 느낌이, 몸은 어른인데 마음은 아이였으면 좋겠다는 것이 제 의견이었어요. 어른이 되어가는 느낌은 드는데 힘든 건 늘 힘들고, 아픈 건 늘 아프고, 괴로운 건 늘 괴롭잖아요. 왜 마음은 자라지 않는지에 대한 느낌이 오는 캐릭터였으면 좋겠다, 그랬더니 후드를 씌우더라고요. 왜 후드를 씌웠느냐고 했더니 감추고 싶은 게 많아서, 라고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게 참 공감됐고, 그렇게 캐릭터가 나오게 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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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쪽 구석에 화분이 자라고 있어요. 이것도 참 아름답더라고요. 이 아이디어는 누구 거예요?


동생은 일러스트가 아니라 애니메이션 전공이고요. 지금 마지막으로 예술 감독을 끝마친 프로그램이 <파워퍼프걸>이라는 작품이에요. 애니메이션이 들어갔으면 좋겠더라고요. 책에 어떻게 애니메이션을 넣을까 고민하다가 어렸을 때가 떠오른 거죠. 교과서에 만화 그려 넣듯 말이에요. 동생은 되게 싫어했어요. 180장을 그려야 하잖아요.(웃음) 그런데 본인도 그리고 난 다음엔 만족스러워 하더라고요.

 

작업을 온라인으로 했다고요?


네, 순수하게 온라인으로요. 전화 통화 하고, 페이스타임하고 그랬어요. 동생은 어릴 때 해외로 갔어요. 어릴 때 저를 무서워했고요. 동생과의 작업이라고 해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생길 수 없는 분위기였어요. 그 친구는 좀 힘들었겠죠. 제 생각과 그 친구 생각이 다르니까 그걸 맞추는 과정이 힘들었을 거예요. 저도 좀 지나니까 미안해지더라고요. 흔쾌히 해줘서 고마웠죠.


동생이 마지막에 표지 일러스트를 그렸는데요. 원래 출판사 쪽에서 멋진 디자인을 해주셨어요. 동생에게 표지를 보여줬더니 초심을 잃지 말라며 관계에 관한 그림을 다시 그려준 거예요. 다행히 출판사 측도 이해를 해주셔서 지금의 표지가 됐죠. 너무나 기분 좋은 책이 나왔어요.

 

‘브런치’에 연재했던 글이에요. 책도 그렇지만 애초에 글 쓰는 데 용기가 필요했을 것 같은데, 어땠어요? 개인적인 이야기기도 한데 부담은 없었나요?  


다행히 덜 부담스러웠어요. 책에 실린 내용은 전부 제가 누군가 앞에서 한 번 씩은 했던 내용이거든요. 강의를 하거나 미팅을 할 때 공감을 이끌어 내는 것은 남의 이야기로는 안 되더라고요. 내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요. 글과 강의가 다르긴 하죠. 강의는 사라져버리니까요. 유일한 부담이라면 기록으로 남아있다는 것이에요. 아버지한테 벌써 한 소리 들었어요. 이런 얘기까지 다 썼느냐, 하고요.(웃음)

 

아버지께서 지적한 이야기는 뭔데요?


제가 아버지에 대해 느꼈던 것과 아버지가 저한테 보여주고 싶었던 건 달랐던 거죠. 그래서 아버지 입장에선 불만이 있지만 제 입장에서는 그렇게 느꼈는데 어떻게 할 거냐, 했더니 아버지도 수긍하셨어요. 자신의 부족함도 있었다고 얘기해주셨어요. 그렇게 돼 또 기분 좋았죠. 아버지와 다른 대화를 또 할 수 있게 됐으니까요.

 

아버지 외에 글을 통해 주변 사람들과 관계가 좀 변한 경우, 또 있었나요?


깊어졌다는 말이 맞을 것 같아요. 어떤 분은 지어낸 이야기 아니냐고 하시기도 했어요. 사실 여기 지어낸 건 아무것도 없거든요. 등장인물도 실존인물이고, 그 친구들이 책을 다 읽었기 때문에 거짓말을 할 수도 없어요. 다 실명이고요. 쓰기 전에 실명 쓴다고 다 얘기 했어요. 쓸 수 없는 경우에는 ‘그 사람’, ‘그 친구’로 표현을 했고요. 그때 그렇게 느꼈다는 걸, 그렇게 힘들었다는 걸 상대가 알게 되니까 조금 더 깊어진 것 같아요.

 

해당 인물 이야기가 나오는 글은 다 그 사람에게 미리 보여줬다는 거죠?


글을 제일 먼저 읽는 건 아내고요. 두 번째 읽는 사람들이 등장인물들이에요. 그 친구들에게 글을 보여준 다음에 올렸어요. 나는 이 사건을 이렇게 느껴서 글을 썼는데 네가 불편하다면 못 올린다, 내 이야기기도 하지만 네 이야기기도 하니까, 하면서 다 허락을 구했어요.

 

못 올린 이야기도 있었겠네요?


두세 개 정도요. 제 입장에서 실수한 거죠. 그 친구가 너무 다친 건데, 이제 아이도 있고, 배우자도 있으니까 그런 건 안 나갔으면 좋겠다고 해서 안 올린 이야기도 있어요. 언젠가 시간이 지나서 그 친구가 이제 괜찮다고 하면 그때 올려도 되는 거니까요. 그렇게 묻어뒀죠.

 

글을 쓸 때 저자만의 원칙이 있었던 것 같아요. 지어낸 글은 안 쓴다, 등장인물에게 허락을 구한다, 같은 것 말이에요.


욕심은 지어낸 글도 쓰고 싶어요. 그런데 지어낸 글의 구성을 맞출 만큼 실력이 아직은 안 된다고 생각하고요. 언젠가 쓰고 싶은 생각은 있어요. 강의를 하다보면 이야기를 지어서 할 때가 있거든요. 그럴 때는 강의 후에 찝찝하더라고요. 내 얘기가 아직 안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요. 원칙은 없고요. 그냥 글 가는대로, 손 가는대로 글을 쓰는 게 좋아요. 많은 사람들한테 읽히는 책을 쓰고 싶어요.

 

잘 안 써진 글도 있었겠죠?

 

많아요. 엄청 많아요. ‘리액션이 사람을 살린다’ 같은 경우는 제가 강의에서 진짜 많이 말하는 내용인데요. 글로 쓰려니까 안 풀리더라고요. 강의로 들으면 훨씬 더 좋은 내용인데 글로는 안 되더라고요. 몇 번을 썼다 지웠다 반복하다가 마음에 안 드는데 더 이상은 안 되겠다 해서 올린 글이에요. 그 글은 출판사 쪽에서도 안 좋은 얘기를 들은 글이에요.(웃음) 제 입장에서도 좀 아닌데 싶은데도 더 이상 개발을 못 시키겠더라고요. 그런 게 몇 개 있어요. 정말 뚝딱 쓴 글도 있고요.

 

예를 들면요?


어머니 이야기요. 그건 제가 너무 생각을 많이 했던 거라서요. 꽤 긴 분량이었는데 30분 만에 끝났어요. 혼자 쓰다가 울다가 또 쓰다가 했지만 가장 빨리 쓴 글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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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꿀 수 있는 게 오늘뿐이라면


제일 기억에 남는 글은 ‘잊지 마세요, 당신이 누군지’인데요. 스스로와 관계 맺는 것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모르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생각하는 건 굉장히 중요하잖아요. 언제부터 이런 생각을 했나요?


제가 하는 일이 교육 컨설팅인데요. 교육을 통해 사람을 바꿔놓는 일이죠. 앞에 앉은 사람을 객관적으로도, 주관적으로도 봐야 하고, 그 사람의 역량이 얼마큼인지도 봐야 해요. 어떨 때는 북돋아야 하고, 어떨 때는 소리쳐야 하죠. 그런 일을 하다보니까 성과를 못 낸다거나 성공을 못 한다거나 하는 것 때문에 어려워하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의 특징이 보였어요. 바로 자기 자신을 못 믿는다는 건데요. 힘든 사람 백 명을 만나면 아흔아홉 명이 그런 생각을 하고 계셨어요. 이야기를 자주 나누며 생각하게 됐죠. 사람이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어떤 걸 궁금해 하고 어떤 걸 행복해 하는지 제대로 판단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월급이 많이 들어와도 같이 밥 먹을 사람 없으면 혹은 뭘 먹어야 맛있는지 모르면 그 돈이 다 소용없는 거라는 걸 나중에 알았어요. 가장 큰 계기는 아무래도 장모님 돌아가시고 나서였고요.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게 진짜 오늘뿐이라면 오늘 내가 뭐하고 싶은지 아는 게 제일 중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떨 때 행복하세요?


좀 사적인 얘긴데요. 제일 행복한 건 하루 다 살아내고 잠자기 직전에 아내가 “잘까?”라고 하면 “어, 자자.”하고 들어가서 불을 끄고 딱 누웠을 때 같고요. 그 외에는 작은 것이든 큰 것이든 아내와 함께 할 때죠. 돈을 벌면 아내는 돈을 아끼라고 해요. 저는 쓰자는 주의거든요. 커피 한 잔이든 케이크 한 조각이든 여행이든 그건 중요한 게 아닌 것 같아요. 함께 하는 게 너무 좋아요. 이 책 쓰고 가장 행복할 때는 글을 다 쓰고 아내에게 “자기야, 읽어줘!”해서 아내가 읽고 있을 때, 그때가 제일 떨리고 제일 행복해요.

 

방금 “하루를 살아내고”라는 표현을 했거든요. 그건 어떤 의미예요?


남들이 보기에 미쳤다고 할 정도의 스케줄을 살아요. 보통 다섯 시 반쯤에 일어나고요. 여섯 시까지 운동하러 가서 여덟 시까지 운동 두 시간 해요. 아홉 시에 출근하면 일곱 시나 여덟 시에 끝나거든요. 끝나면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와서 대학원을 가요. 열한 시에 다시 내려가서 열두 시에 집에 도착하면 씻고 바로 글을 쓰기 시작하죠. 새벽 두 시나 세 시쯤 잠들어요. 책도 읽어야 하니까 그 와중에 책도 읽고요. 작년에는 많이 아팠었어요. 몸을 막 굴리다보니까요. 저한테는 하나하나 만들어져가는 게 즐거웠거든요.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제가 되게 애를 쓰고 있더라고요. 우리는 눈을 떠서 저녁까지 아무 일 없는 것 같지만 최소한 백 가지의 고민은 할 거예요. 밥도 챙겨 먹어야 하고, 누구를 만나 감정 소모도 해야 하고요. 생각해보니 일을 빡빡하게 하든 느슨하게 하든 그건 다르지 않더라고요. 그러면서 다들 힘들게 하루를 살아내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주관적인 기준에 의해서요. 그런 생각을 많이 한 것 같아요.

 

무척 다정한 시선의 글이거든요. 그토록 바쁘게 생활하던 중에 쓴 글이라고 하기엔 느낌이 참 달라요.


저는 그런 부분에 대해서 저를 잘 모르는데요. 아내는 제가 되게 여유롭다고 해요. 급한 게 별로 없어 보이고요. 앞 차가 천천히 가도 가겠지, 하는 거예요. 물론 어떤 부분에서는 성급하지만 책을 쓸 때는 급한 마음이 하나도 없었던 것 같아요. 쓸 때만 해도 출판된다는 생각 아예 안 하고 썼고요. 말 그대로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보자 했던 건데요. 삶은 조급했는데 글을 쓰는 것에는 조급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물론 답답한 적은 많죠. 다 써놓고 보니까 산으로 간 거예요.(웃음) 그런 적은 있지만 조급하진 않았어요. 글을 쓰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해볼 수 있었고요. 글을 쓸 때는 이인석이 아니고 Myste. lee였던 거죠.

 

그러니까 이 글은 Myste. lee가 바쁜 생활을 하는 이인석에게 건네는 말이기도 했겠네요.


네, 맞아요. 사실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책을 쓴 게 아니고요. 저한테 위로가 되는 책을 썼다고 생각해요. 그게 가장 진심에 가까운 것 같아요. 잘 써진 날은 제 글 보고 제가 감탄하고(웃음) 그랬으니까요. 내 자신이 스스로를 인정하는 일이라서 굉장히 기분 좋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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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너만 그런 거 아니야


‘항상 솔직할 수 없어 매력적이다’라는 글도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요. 솔직한 것과 독설을 하는 것은 좀 다른데 요즘은 독설을 쿨하고 솔직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반면 이 글은 솔직하지 않은 것을 긍정하는 글이죠.


사람들이 솔직함에 매력을 느끼는 부분은 항상 그 대상이 내가 아닐 때인 것 같아요. 나한테 솔직한 건 다 싫어해요. 그 솔직함이 또 내가 듣기 좋은 건 괜찮은데 듣기 싫은 얘기를 솔직하게 하면 싫어하죠. 예를 들어 안 그래도 살이 쪄서 짜증이 나는데 살쪘다는 얘기를 아무 생각 없이 내뱉는 사람들을 보면 저 사람은 자기가 무슨 말을 내뱉는지 알고 저렇게 얘기하나 싶어져요. 좀 조심하면 안 되나,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거든요. 그게 진짜 솔직한 건가 싶을 때도 많고요. 솔직한 게 되게 미화되어 있고 멋져 보이는 걸로 치장되어 있는 세상이 좀 싫었다고 해야 할까요? 실상 진짜 중요한 사람 앞에서는 자기 마음 다 못 말하거든요. 그게 정말 솔직한 건가부터 시작해서 그 솔직함이 진짜 사람에게 따뜻한 온기가 되어주는지 생각해보면 저는 아니라고 봐요. 왜 솔직함이 매력과 연결되는지도 저는 잘 모르겠어요. 모든 사람들이 나에게 솔직하다면 당신은 살아낼 힘이 있느냐고 물었을 때 그렇다 할 사람은 별로 없을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너무 솔직하지 못했나, 하고 죄책감을 가질 필요도 없는 것 같아서 글을 썼어요. 정말 솔직해야 할 일에는 용기 내 한 번 솔직하면 될 일이라고 말하고 싶었어요. 역시 제 스스로에게 하고 싶은 말이기도 했고요.

 

전체적인 느낌이기도 한데요. 인간은 다들 의외로 연약하다, 주변의 영향을 생각보다 많이 받는다, 이런 얘기를 많이 해요. 제목도 그렇고요.


어릴 때 많이 힘들었어요. 집안 사람들 때문에요. 아버지가 칠남매신데 다 잘나갔어요. 남들은 아무도 비교를 안 하는데 저 혼자 비교하는 거예요. 피해의식이 심했죠. 그런데 사촌들이 다 그랬더라고요. 잘난 사람은 잘난 대로 다 피해의식이 있더라고요. 나중에 깨달았어요.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하고요. 뻔한 깨달음인데 갖고 있으면 이해의 폭이 넓어지지 않나, 생각해요. 원래 제목은 ‘괜찮아 너만 그런 거 아니야’였는데요. 한 삼십만 개쯤 돌고(웃음) 결국 이 제목이 됐어요.

 

좋은 삶의 태도고 그것을 지향하긴 하겠지만 매순간 그렇게 되지는 않아요. 안 될 때는 어떻게 해요?


안 되는 대로 있어요. 글로 욕해요. 혼자만의 되새김질을 하죠. 진짜 재미있는 건요. 그렇게 욕을 막 하다보면 순간 그 글이 나한테 욕을 한다는 느낌이 들어요. 화가 나서 누구를 욕하는 글을 쓰고 다시 읽어보면 ‘아이고, 못났다’ 이런 생각이 드는 거죠. 제 밑바닥을 보게 되니까 빨리 반성하게 돼요. 그렇다고 해서 상대가 완전히 이해되는 건 아닌데요. 그건 그것대로 자연스러운 것 같아요. 너만 그런 거 아니라고 인정하지 못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거죠. 어쨌거나 인간은 자기중심적이니까요.

 

내가 언제 행복한지 생각하는 것만큼이나 내가 행복하지 않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하는 것도 자신과 제대로 관계 맺는 방법일 거예요.


그렇죠. 물론 아직도 제가 제대로 사는 건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냥 주어진 것들에 대해서는 후회만 하지 말자, 이런 마음이 제일 강한 것 같아요. 이게 바른 건지 그른 건지 잘 모르겠어요. 책을 낸 게 실수인지 인생의 한 큐였는지 모르겠어요.(웃음) 어쨌든 그걸 생각한다고 바뀌는 건 없으니까요. 잘 포장해주셔서 나와 제대로 관계 맺는다고 하셨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거든요. 싫다고 막 글을 쓰는 못난 모습이기 때문에요. 그냥 제 삶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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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 냄새


자신에게 100% 만족할 수 없는 법이잖아요. 나에게 바라는 것 한 가지가 있다면 뭘까요?


어려운 질문인데요. 바라는 것 진짜 많은데, 이런 책을 썼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상처 덜 주는 사람이고 싶어요. 혼자의 힘으로 살아가는 사람 말고, 다른 사람의 힘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가진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덕분에’라는 말을 참 좋아하는데요. 누군가에게 ‘덕분에’라는 말을 좀 많이 하고 싶어요. 결론적으로는 제 성공이거든요.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좋은 관계가 나에게 있다는 의미니까요. 그런 얘기를 많이 할 수 있는 사람으로 계속 살았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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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을 독자나 다른 사람에게도 그대로 전하고 싶은 건가요? 주변 사람에게 바라는 점도 같은 건지 궁금하네요.


진짜 어려운 질문인데요.(웃음) 문득 떠오른 생각인데 주변에서 고민을 얘기해오면 항상 ‘마음 끌리는 대로’ 하라고 말해요. 마음 끌리는 대로 안 하려고 들면 힘들다고요. 핵심은 딱 한 가지거든요. 다 그런 마음 가지고 살고 있다는 거요. 사람은 자기 이마에 피가 튀어야 정신을 차린다고 얘기해주죠.(웃음) 그래도 네 인생 안 망한다고 얘기해줘요. 그 얘기를 해주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저자가 책으로, 글로 꼭 전하고 싶었던 말도 같은 건가요?


네, 그런데 거기까지 가지는 못했어요. 거기까지 가면 너무 강해지더라고요. 그렇지만 제 글을 계속 읽으면 네가 그런 건 당연한 거니까 그 마음에 의심 품지 말고 네 마음대로 가라, 라는 메시지가 전반에 깔려있죠. 사람과 사람 사이에 드는 모든 감정이 너무 당연한 거니까 느끼는 대로 가도 괜찮다고 얘기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거꾸로 얘기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거겠죠. 주변에서 많이 보잖아요?


너무 많이 봐요. 너무 많아서 가끔 힘들 때가 있어요. 그 사람을 보고 있으면 저 때 어떤 감정이었는지 확 와요. 한 번 씩 아내에게 계절냄새를 맡는다고 하는데요. 어떤 상황이 되면 그 상황이 떠오르는 냄새가 확 들어와요. 어떻게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인데요. 그걸 사람들 보면서 느끼는 거죠. 치유에 관한 책이 그렇게 많이 나오는 이유도 거기 있는 것 같아요.

 

강의할 때 제일 많이 하는 말은 뭔가요?


(웃음) 애매하다는 말인데요. 사실 강의를 할 때는 확신을 가지고 얘기해야 하거든요. 하지만 그렇게 말하기엔 위험한 말들이 너무 많아요. 그걸 뭉뚱그려 얘기하지만 좋지 않다, 옳지 않다, 는 뜻으로 제가 쓰는 말이에요. 너무 좋은 말이에요. 예를 들어 ‘너 밥 안 먹고 그러는 거 진짜 나빠’하는 것보다 ‘밥 안 먹으면 애매진다, 애매하게 이러지 말자’ 이렇게 얘기하면 다 알아들어요. 그런데 기분 나쁘지 않은 거죠. 너무 표현이 좋아서 자주 써요.

 

책을 낸 이후 쓰는 글이 이전과 달라질까요?


앞으로의 일이라 확실하게는 잘 모르겠어요. 당장 다음에 쓸 글은 비슷할 것 같아요. 그런데 제 이야기만 다루진 않을 거고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담고 싶어요. 『너만 그런 거 아니야』가 제 이야기였잖아요. 진짜 쓰고 싶은 책은 ‘너만 그런 거 아니야’라고 말할 수 있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예요. 보기에 대단하다고 느낄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진짜 너만 그런 거 아니고 우리 다 그러지 않았냐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욕심이 좀 들더라고요. 고민을 많이 하고 있는 중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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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만 그런 거 아니야이인석 저/이어송 그림 | 도서출판쉼
작가는 스스로 입히는 상처, 사람 간 관계에서의 상처를 아무렇지 않은 듯 이겨내라고, 별거 아니라며 넘기라고 하지 않는다. 누구나 열등감이 있고, 잘난 사람을 시기 질투하고, 부당한 상처에 좌절하지만, 혼자만 그런 게 아니라 우리 모두는 그렇게 살아가고 있음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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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선 “일상은 작은 우연에 의해 망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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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선 작가가 미스터리 소설로 돌아왔다. 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 <그녀를 믿지 마세요>, <백야행>, 드라마 <연애시대>, <얼렁뚱땅 흥신소>, <화이트 크리스마스>, <난폭한 로맨스>, <청춘시대> 등을 통해 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안겨줬던 그녀의 이야기는 책 속에서도 여전히 빛을 발한다. 개성 있는 인물들, 탄탄한 구성, 통통 튀는 입담, 가볍지 않은 메시지, 길게 남는 여운까지 빠짐없이 채워 넣었다.

 

『여름, 어디선가 시체가』는 반백수 삼수생 강무순과 그녀의 할머니 홍간난 여사, 그리고 꽃 같은 외모에 시크함까지 갖춘 ‘꽃돌이’ 유창희가 함께 진실을 쫓는 이야기다. 남편을 여의고 홀로 남은 할머니를 위해 ‘전적으로 타의에 의해’ 두왕리 산골마을에 남겨진 무순은 우연한 기회에 보물상자를 발견하게 된다. 어렸을 적 자신이 묻은 것으로 추정되는 상자 속에는 기억나지 않는 물건들이 담겨있다. 누구의 것인지, 어떤 연유로 같이 넣어놓은 것인지 알 수 없다. 물건의 주인을 찾으려던 그녀는 15년 전 마을에서 발생한 ‘네 소녀 실종 사건’에 대해 알게 되고, 잠들어 있던 진실에 다가선다.

 

‘한국형 코지 미스터리’를 선보이는 소설 『여름, 어디선가 시체가』는 그 중심에 실종 사건이 자리하고 있지만 음산한 분위기를 풍기지 않는다. 오히려 깨알같이 박힌 생활밀착형 개그가 킥킥킥 웃음을 유발한다. 그러는 사이 독자들은 알게 모르게 사건 깊숙이 빨려 들어간다. 구름 한 점 없던 하늘에 일순간 먹구름이 몰려오듯, 이야기는 돌연 빛깔을 바꾸어 축축한 진실을 드러낸다. 빠르게 독자를 매혹시키는 강렬한 힘을 가진 소설임은 분명하다. “이 빌어먹을 소설이 밥 먹을 시간은 물론, 화장실 갈 시간조차 주지 않고 새벽까지 나를 무섭게 몰아붙였다”는 이경희 작가(드라마 <함부로 애틋하게>)의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끝을 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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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은 작은 우연에 의해 망가진다


이번 소설에 대한 독자들의 반응을 보셨나요? 

 

제 동생이 이제까지 제 드라마를 보고 한 번도 재밌다는 말을 안 했거든요. 지적하는 말만 무지하게 하고... 한 번은 싸운 적도 있어요(웃음). ‘시청률이 왜 그 모양이냐’ 그래서 ‘네가 드라마에 대해서 알아?’ 하고 화낸 적도 있었는데(웃음)... 이번 책을 읽고는 ‘재밌더라’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동생 반응을 보고 재밌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제가 요즘 겪은 유일한 독자의 반응이에요. 친구들이 재밌다고 하는 말은 의례적인 것 같고, 믿을 만한 독자의 평은 동생의 ‘재밌더라’라는 한 마디였어요.

 

이미 영화와 드라마에서 탄탄한 입지를 다져 놓으신 상태에서 소설을 쓰시는 게 모험일 수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입지가) 탄탄한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책이 안 팔리면 창피할 거라는 생각은 안 들었어요. 옛날부터 작가가 되고 싶다고 했던 게, 드라마 작가나 영화 작가가 아니라 그냥 출판물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고요. 책을 갖는 게 저의 아주 오래된 로망 같은 거였거든요. 제가 쓴 책을 한 권 갖고 있는 것 자체가 큰 목적이었기 때문에, 책이 잘 팔리고 안 팔리는 것에 대한 큰 부담은 없었고요. 저한테는 이런 형태의 책을 갖는 게 목적이었어요.

 

드라마 시청자나 영화 관객들의 평가를 들으실 때와 다른 점도 있나요?


드라마나 영화는 워낙 큰 규모의 투자금이 들어가니까 (흥행이) 안 됐을 경우에 대한 부담감이 굉장히 커요. 시청률이 안 나오면 굉장히 부담스럽거든요. 드라마 작가들이 시청률이 안 나오는 것에 대해서 조금 심각하게 충격을 받기도 해요. 그에 비하면 책은 잘 안 된다고 해도 출판사에 입히는 손해가 영상 쪽보다는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니까(웃음), 그렇게 부담이 가지는 않아요. 더 많은 돈을 받고 더 많은 주목을 받을수록 작품이 잘 안 됐을 경우에 대한 부담감이 커지는 것 같아요. 제가 책을 우습게 봐서 하는 이야기가 전혀 아니고요. 드라마는 시청률이 안 나오면 300~500명 정도의 사람들이 괴로워하니까 이 괴로움의 가장 큰 책임을 져야 될 것 같다는 부담감이 어마어마한 거예요. 영화도 비슷하죠. 엄청난 시간과 돈이 투자되고 많은 사람들이 같이 하고, 그러니까 그에 대한 책임이 무척 커요. 그런데 소설은 잘 안 돼도 내가 책임지면 될 것 같은 거예요. 출판사 분들이랑 같이 욕을 먹는다고 해도 서너 명에서 끝날 수 있으니까(웃음), 비교적 부담이 적은 것 같아요.

 

말씀하신 것처럼 영화나 드라마는 공동 작업이지만 소설은 온전히 작가님만의 능력으로 만들어지잖아요. 그런 면에서는 소설이 더 힘든 부분도 있을 것 같아요.


저는 그게 더 좋은 것 같아요. 이건 말하기에 따라서 무척 애매할 수도 있는 문제인데, 시나리오나 대본을 쓸 때 저는 장면을 상상하면서 쓰잖아요. 상상 속에서는 완벽한 그림을 그리지만, 당연히 그대로 나오지는 않죠. 그건 제 머릿속에 있는 장면이니까요. 그런데 책은 제가 쓴 대로 나와요. 제 의도대로 되기 때문에, 작가로서 그게 가장 큰 보람이에요. 영화는 대본에 굉장히 많이 손을 대요. 감독이나 투자자, 심지어는 배우가 고칠 때도 있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시나리오 그대로 영상이 나오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드라마는 대본 그대로는 나와요. 그런데 조금씩 제가 의도했던 것에서 어긋나는 부분들이 있어요. 현실적으로 영상화하기 어려운 부분도 많을 거고요. 그런 것에 대한 아쉬움 같은 게 늘 있었거든요. 그런데 책은 전혀 그런 게 없죠.

 

“스토커 같은 편집자에게 잘못 걸려” 소설가의 삶을 살게 됐다고 하셨는데요. 스토커 같은 편집자는 어떻게 만나게 되신 거예요?(웃음)


<화이트 크리스마스>가 끝나고 나서 몇몇 출판사에서 의뢰가 왔었어요.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책으로 내자고요. 『여름, 어디선가 시체가』의 편집자 분이 그 중 한 분이셨어요. 그런데 저는 <화이트 크리스마스>에서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 했다고 생각했거든요. 책으로 낼 이야기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그건 하고 싶지 않고 다른 책이라면 쓰고 싶다고 말했는데 제 뜻을 받아들여주셨어요. 다른 분들은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더 이상 쓸 이야기가 없어요’라고 하면 그걸로 끝이었는데, 이분은 ‘그럼 다른 작품을 달라’고 하시더라고요(웃음).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방송 여건 상 많은 분량이 줄어들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책으로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지는 않으셨어요?


<화이트 크리스마스>의 DVD가 나왔는데, 거기에 16부 대본집이 같이 수록됐어요. 그걸 다시 소설로 내는 건, 너무 한 아이템을 주구장창 우려먹는 것 같은 생각도 들었고(웃음), 하고 싶은 이야기는 다 했다는 말이 딱 맞더라고요. 같은 이야기를 또 소설로 만들면 제가 지칠 것 같아서 별로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화이트 크리스마스>와 관련해서 “정말로 묻고 싶었던 건, 괴물은 태어나는 걸까 만들어지는 것일까 였다”고 밝히신 적이 있는데요. 이번 소설을 시작하실 때도 품고 있으셨던 질문이 있었나요?


이야기를 만들 때 어떤 주제를 갖고 만들기도 하고, 한 장면을 가지고 만들기도 하고, 여러 가지로 시작이 되는데요. 『여름, 어디선가 시체가』는 타임캡슐을 가지고 이야기를 시작한 것 같아요. ‘나는 단순하게 추억 여행하려고 타임캡슐을 열었는데, 당시에는 내가 어려서 깨닫지 못했던 어떤 사건의 단서가 들어있으면 어떨까’라는 생각을 모티프로 삼았거든요. 처음에는 동창회 이야기로 가려고 했어요. 초등학교 졸업식 때 동창생 몇 명이 타임캡슐을 묻었고, 20년쯤 후에 동창회 겸 다시 찾아와서 열었더니 ‘그 사건의 범인은 우리 중에 있어’ 이런 식의 편지가 있는 걸 발견하게 된 거예요. 그래서 ‘이 편지를 누가 썼지?’ 하면서 시작하는 이야기를 만들려고 했어요. 그 이야기가 발전하면서 지금의 모습이 된 거고요. 이 소설을 통해서 하고 싶었던 말은 ‘우리 일상은 아주 작은 우연에 의해 망가진다’라는 거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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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진실이 선한 건 아니겠죠


첫 소설의 장르로 코지 미스터리를 선택하신 이유가 있나요? 장르의 특성상 잔혹하거나 공포스러운 장면이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는데요. 저는 후반부에 드러나는 진실만으로도 무섭더라고요.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두려움을 느끼는가’라는 의문도 갖게 되고요.


제가 굳이 미스터리 장르를 좋아하는 건 아니에요. 저는 모든 장르물을 좋아해요. 장르물이라고 하면 우리나라에서는 조금 좁은 의미로 공포, 미스터리, 추리,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는데... 제가 순수문학 쪽을 안 좋아한다고 해야 되나요. 섬세하다 못해 신경질적인 듯한, 그런 심리묘사로 시작되는 소설을 안 좋아하는 편이에요. 그래서 코믹, 미스터리, 공포, 이런 모든 장르적 요소가 들어간 걸 좋아하는데요. 『여름, 어디선가 시체가』는 그냥 이 장르에 맞을 이야기 같았어요. 코지 미스터리는 제가 좋아하는 장르 중에 하나고, 굳이 코지 미스터리를 지향한 건 아니에요. 기회가 되면 공포물도 써보고 싶고 진짜 무서운 <링> 같은 작품도 써보고 싶어요.

 

슬래셔 무비 같은 작품은 어떠세요(웃음)?


굳이 피하지는 않지만... 글쎄요. 피를 두려워하지는 않아요. 피가 튀고 (신체가) 잘려나가고 이런 것들도 좋아는 해요. 써보고 싶은 장르이기는 한데, 그게 전부인 이야기는 쓰고 싶지 않아요. 이제까지 제가 쓴 이야기를 한 번 돌아봤더니, 기저에 흐르는 게 슬픔 같은 거라고 느껴지더라고요. 『여름, 어디선가 시체가』에서 공포를 느꼈다는 반응도 조금 의외예요(웃음). 저는 이 책을 쓰면서 조금 슬펐거든요.

 

어떤 부분에서 슬픔을 느끼셨어요?


내가 어찌할 수 없이 외부에서 일어나는 상황이 나한테 어마어마하게 큰 영향을 주는 것, 나는 모르는 어떤 것들에 대한 이야기잖아요. 소설에서도 강무순이 풀을 뽑았는데 그 밑에 있던 개미집이 망가져버리는 장면이 나와요. 그 장면은 시골에서 자라면서 직접 느꼈던 장면이거든요. 개미들은 내가 자기들의 세계를 무너뜨렸다는 걸 모르겠지, 하고 생각한 적이 있었어요. 만약 진짜 신이 있다면 아홉모랑이 마을 사람들을 보면서 그냥 슬쩍 건드린 건데 그들의 삶은 훅 망가져버렸을 수도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예요. 그게 두렵기도 하지만, 저는 굉장히 슬프기도 한 것 같아요. 이렇게 약한 존재일 뿐인 거잖아요. 나한테는 내 인생이 무지하게 소중한데, 이렇게 하찮은 이유로 망가질 수도 있겠다는 느낌이 드는 거죠.

 

작품 속에서 끔찍한 사건들도 벌어지는데요. 그 부분을 적나라하게 묘사하지 않으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묘사하거나 안 하거나 똑같이 느낄 것 같은 걸 보여주기는 싫어요. 뻔한 감정을 뻔하게 보이는 건 약간 포르노 같다고 생각하거든요. 아마 신파의 느낌도 같은 것이 아닐까 싶어요. 이 사람이 슬픈 감정을 느끼는 게 당연한데 펑펑 우는 모습을 클로즈업하잖아요. 저는 그게 신파이고 포르노 같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감정을 적나라하게, 너무 뻔하고 익숙한 감정을 그대로 전하고 싶지는 않아요. 만약에 그 사람이 당연히 슬퍼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안 슬퍼한다면 그걸 묘사할 가치는 충분히 있겠죠.

 

『여름, 어디선가 시체가』를 읽으면서 ‘비밀을 품고 살아간다는 것, 그로 인해 일상이 무너져 내리는 일’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작가님은 그냥 묻어두는 게 나은 비밀도 있다고 생각하세요?


네. 저는 모든 비밀이나 진실이 다 밝혀져야 된다고 생각하는 쪽은 아니에요. 그럴 수도 없고, 그게 반드시 옳다고도 생각하지 않아요. 모든 진실이 다 선한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소설 속 인물들 중에는 비밀을 간직하고 사느라 삶이 더 고통스러운 이들도 있잖아요.


그것이 나은 선택이라고 생각하니까 그에 대한 고통을 감수하고 살아가는 거겠죠. 또 다른 인물들은 그것 말고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비밀을 유지했던 거죠. <화이트 크리스마스>에서도 ‘비밀을 갖고 있다는 건 생각보다 엄청나게 힘든 일이어서 금방 지치게 만든다’라는 대사를 썼는데, 그런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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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미움 받는 인물에게 마음이 가요


그동안 보여주신 작품과 마찬가지로 『여름, 어디선가 시체가』에서도 뚜렷한 개성과 존재감을 가진 인물들이 등장하는데요. 특히 ‘강무순’과 ‘홍간난 여사’의 케미가 안겨주는 재미가 상당합니다. 혹시 작가님과 할머님이 실존 모델인가요?


저는 완전히 할머니의 아이였어요. 저희 엄마가 몸이 약한데다가 오빠가 넷에 저하고 여동생까지 있어서 할머니가 키워주신 거나 마찬가지였거든요. 저한테는 할머니가 가장 중요한 인물이었어요. 그런데 우리 할머니는 홍간난 여사처럼 욕을 하거나 목소리가 크거나 그러신 분이 전혀 아니에요(웃음). 욕이나 폭력 같은 것만 빼고 홍간난 여사가 하는 행동은 다 우리 할머니가 하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어요.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밭 한 고랑 메고 아침 먹고, 누우면 틀니가 빠질 것 같고, 그랬어요. 대사 중에서도 할머니의 말을 따온 게 굉장히 많아요. 지금쯤 구더기가 파먹고 있겠지, 같은 말들이요. 무순이가 할머니 보면서 느끼는 감정이나 노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제가 할머니를 보면서 느낀 것들이에요. 저 늙은 할머니한테도 첫사랑이라는 게 있었을까, 이런 것들이 있잖아요. 옛날에 저는 할머니가 날 때부터 할머니였을 거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건 말도 안 되는 거잖아요. 우리 할머니한테도 아기였을 적이 있었을 거고, 열일곱 살 열여덟 살 즈음에는 첫사랑이라는 걸 했을 텐데, 그런 걸 새롭게 보는 감정들이 있었어요.

 

아무래도 홍간난이라는 인물에게 가장 많은 애정을 갖고 계시겠어요.


뻔한 대답이기는 하지만 모든 인물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죠. 그렇기는 한데, 저는 늘 미움 받는 캐릭터한테 마음이 가더라고요. 이번 소설에서는 황부영 캐릭터가 늘 마음에 걸렸어요.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너무 자주 놓인 아이이지 않을까 싶었고, 이 아이가 유선희를 바라보던 심정이 있잖아요. 그 아이의 존재 자체가 나를 초라하고 슬프게 만드는 상황에 처했던 여자 아이인 거죠. 그런 점에서 공감, 슬픔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화이트 크리스마스>에서는 조영재 캐릭터에 가장 마음이 갔고, 지금 <청춘시대>에서는 모두에게 욕을 먹는 정예은 캐릭터가 저는 좋아요. 나한테 분명히 그런 면이 있는 것 같고요. 제가 네티즌 댓글을 읽어보니까 다들 나머지 네 명한테는 공감한다고 하고, 정예은에 대해서는 내 주변에 꼭 있는 캐릭터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누구도 정예은이 자신과 같다고 하지는 않아요(웃음). 다들 자기 주변에 정예은 같은 사람이 있다고 할 정도로 흔한 인물인데 자기는 아니라는 거죠. 그러니까 미움 받는 캐릭터에 정이 가는 것 같아요. 『여름, 어디선가 시체가』에서도 당연히 홍간난 할머니랑 무순이한테 최고로 애정이 가기는 하는데, 그들은 그만큼 주목 받고 사랑 받는다는 생각을 해요. 덜 주목 받는 캐릭터에 대해서 애정이 있죠.

 

이전의 드라마에서도 비중이 적은 인물들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계셨던 것 같아요.


저는 시청자들이 왜 그렇게 주인공한테 자기를 감정이입 하는지 모르겠어요. 주인공한테 조금이라도 못되게 구는 사람을 같이 욕하는데, 그런 나는 주변사람이지 않나 싶은 거예요. 저는 누구 한 사람이 주인공이라서 주목 받는 드라마도 싫고 그런 현실도 싫어요.

 

지난달부터 드라마 <청춘시대>가 방영 중입니다.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해요.


이런 얘기하면 웃길 것 같기도 한데, 되게 재밌었어요(웃음). 솔직히 1~2회는 긴장을 많이 해요. 작가도 긴장을 하고 만든 사람들 모두 긴장을 하죠. 1회를 보고 나서는 머리가 너무 아파서 산책을 했어요. 긴장을 했던 것 때문에 머리가 터질 것 같은 거예요. 드라마를 즐기지 못한 거죠. 그런데 3회부터는 그냥 즐기게 되더라고요. 재밌었어요. 그리고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재밌다고 하는데 시청률은 왜 그 모양인 거지?(웃음) 내 시청자들은 숨어서 몰래 보나?(웃음)’ 그 생각도 했었어요.

 

마니아를 몰고 다니는 작가라고 불리시잖아요. 작품의 완성도도 높고 폐인을 양성할 정도로 재밌는 드라마인데 시청률이 저조해서 안타깝다는 이야기들도 있고요. 나쁘지만은 않은 평가일 것 같은데, 어떠세요?


드라마가 아니라 책이라면 기분이 좋을 것 같아요. 저 혼자 책임지면 되는 부분이니까요. 그런데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드라마 같은 경우는 너무 많은 돈이 들어가고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몇 개월 동안 고생을 하기 때문에, 작가만 살아남는다는 생각이 들어서 되게 괴로워요. 드라마 자체가 이야기가 되고 완성도가 높다는 말을 들으려면 어쨌든 기본적으로 시청률이 나와야 돼요. 작가와 주인공 정도는 ‘괜찮아, 우리는 좋은 드라마 했으니까’라고 생각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어쨌든 시청률이 나와 줘야 경제적 이득도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PPL 같은 경우도 힘들어지고 광고가 붙고 안 붙고가 달라지기도 하잖아요. 그러니까 마니아 층이 있는 작가라는 게 전혀 좋은 평가는 아니에요. 그건 ‘소수만 만족시키는 블록버스터를 만들었다’는 느낌인 거예요. 드라마는 많은 자본이 투입됐고 많은 사람들이 고생했으니까 상업적인 미덕을 갖추어야 되는 게 분명한 것 같아요.

 

한편에서는 ‘대진운이 좋지 않아서’ 시청률이 낮은 거라고 말하는데요.


저는 그 말이 제일 싫어요(웃음). 제일 창피하고요. 한 번 그랬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겠지만, 매번 대진운이 안 좋다는 건 내가 상대방의 대진운을 좋게 해준다는 얘기거든요. 시청률이 15% 정도 나올 드라마인데 내 드라마가 시청률이 안 나오니까 20~30% 나왔다는 말하고 똑같은 것 같아요. 대진운이 안 좋다는 말이 저한테는 전혀 위로도 되지 못하고, 그냥 예의 바른 모욕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청춘시대>, 아줌마 이야기로 바꿔도 다르지 않을 거예요


작가님도 시청률을 많이 신경 쓰는 편이세요?


사람들은 제가 시청률에 신경 안 쓰는 걸로 생각하는데, 저는 진짜 엄청 신경 쓰거든요(웃음). 제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라서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 걸 ‘대범하게 시청률 따위는 무시한다’고 생각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요.

 

드라마가 방영되는 동안 인터넷으로 시청자 반응을 확인하기도 하세요?


안 하려고 노력해요. 왜냐하면 무지하게 상처 받아요. 칭찬이 열 개 있어도 욕이 하나 나오면 그것만 기억하게 돼요. 그래서 안 보려고 노력하는데, 잠깐 그 다짐이 풀리는 순간 후루룩 보는 거죠(웃음).

 

그럴 때 디시인사이드도 가보시는 건가요(웃음)?


요즘은 디시는 안 가고 실시간 톡을 주로 보죠. 이제는 그것도 안 보려고요(웃음).

 

대중매체를 통해서 소비되는 콘텐츠는 사람들이 너무 쉽게 평가하는 것 같아요.


저는 대중문화는 평가 받을 수 있고, 평가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해요. 한 가지 슬픈 건, 칭찬을 하든 욕을 하든 그 자체만으로 해줬으면 좋겠는데 꼭 비교를 하더라고요. ~보다 재밌네, ~는 그만 보고 이 드라마로 갈아타야지, 이런 식의 비교를 해서 줄을 세우는 거예요. 그런 칭찬은 받아도 그렇게 즐겁고 기쁘지는 않아요. 그러면 상대방을 적으로 간주하게 되거든요. 각자 자기 드라마를 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구경하는 사람들이 계속해서 비교를 하면 어쩔 수 없이 저 사람을 이겨야만 내가 승자가 되는 듯한 느낌을 갖게 돼요. 그런 건 좀 안 하면 좋지 않을까 싶어요. 우리 드라마 대사를 인용한다면 ‘자기는 비교 받는 거 그렇게 싫어하면서 왜 이렇게 남은 비교하고 줄 세우려고 하는지’라는 생각을 해요. 그냥 그 자체만으로 칭찬하고 욕했으면 좋겠어요.

 

『여름, 어디선가 시체가』가 영화 또는 드라마로 만들어진다면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 본 적 있으세요?


다들 그런 질문을 하는데, 저는 생각 안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예전에 광고를 배웠었거든요. 작품을 쓰면서 스스로 광고 문구를 생각해낼 때가 있어요(웃음). 그런데 이번 소설을 쓰면서 ‘미야자키 하야오 풍의 게으른 전원 추리극’ 이런 말을 생각했었어요. 그렇게 쓰면 재밌겠다 싶더라고요. 추리극 하면 달리고, 급박하고, 두뇌를 회전하고, 그래야 되는데 이 작품은 그렇지 않잖아요. 쓰레빠 찍찍 끌고 다니면서 그냥 하드 빨고, 그늘에 앉아 있다가 슬슬 가서 ‘다 알아냈는데?’라고 할 것 같은 느낌이 있잖아요.

 

『여름, 어디선가 시체가』는 굉장히 젊은 소설이에요. 20~30대 작가가 쓴 작품 같아요.


<청춘시대>도 젊은 작가가 쓴 것 같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이쯤 되면 이런 식상한 질문이 나오잖아요. 젊은 감각을 유지하시는 비결은 뭔가요(웃음)?


뭘까요(웃음)... 그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젊은이든 어린애든 나이든 사람이든 느끼는 감정은 똑같다고 생각해요. 저는 옛날에 할머니는 힘든 것도 모르고 슬픈 것도 모를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말이 안 되는 것 같아요. 애들도 화나고 부끄럽고 슬프고... 감정은 똑같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걸 표현하는 방식만 자료 조사를 할 뿐이지, 젊은이의 얘기를 한다고 해서 그들의 감정도 다를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만약 <청춘시대>를 아줌마들 이야기로 그린다고 해도, 그 사람들의 말투나 행태만 다를 뿐이지, 감정은 똑같을 거라고 생각해요. (드라마처럼) 사과쨈 먹었다고 화내지는 않겠지만 내가 만든 겉절이 먹었다고 싸울 수 있겠죠. 그런 부분에서 달라질 수는 있어도 사소한 일에 상처받고 그런 건 똑같다고 봐요. 남자와 여자도 똑같은 것 같고요. 젊고 어리니까 다르게 느낄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고, 아마 그게 젊은 감각이라면 감각이겠죠. 그런 점에서 만약 노인의 얘기를 쓴다고 해도 노인네 같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아요. 말투만 달라지는 거지 감정은 노인들도 똑같이 느낄 거라고 생각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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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기본 덕목은 ‘직관’인 것 같아요


많은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숱한 명대사를 남기셨잖아요. 『여름, 어디선가 시체가』에서는 어떤 문장이 명대사로 회자될까요?


지금 생각난 건데요. 지렁이가 비 오는 줄 착각하고 나왔다가 개미들에게 살육 당하는 장면이 있잖아요. 실제로 그런 경우가 정말 많아요. 조금 습한 날에 지렁이들이 비 오는 줄 알고 나왔다가 죽는 거예요. 아주 찰나의 실수인데 치명적인 실수인 거죠. 관련해서 한 가지 더 말씀 드리면, 이 소설의 원래 제목이 ‘여름, 어디선가 시체가 썩어간다’였어요. ‘올 여름 어디에선가 어느 골짜기에선가는 시체가 썩어갈 것이다, 그것이 나인 날이 올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을 살아야겠다' 이것이 제목의 의도였어요.

 

작품 중간 중간 경계가 모호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등장해요. 일례로, 계절이 바뀌고 낮과 밤이 바뀌는 순간들이 그렇죠. 반복적으로 언급하신 이유가 있겠죠?


선과 악도 뚜렷하지 않잖아요. 이 소설에서도 인물들을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으로 구분하기는 되게 어려운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무섭고 슬프기도 하죠. 차라리 ‘저 사람이 나쁜 사람이야’라고 규정짓고 미워할 수 있으면 마음이 편할 텐데 그게 되지 않는 거잖아요. 그리고 ‘우리 일상의 모든 것들이 그렇지 않나?’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임권택 감독님께서 ‘이 세상은 생각보다 그렇게 명료하지 않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그런 것 같아요. 명료하게 딱 부러지지 않기 때문에 애매하고, 힘들고, 뭐라고 말할 수 없고, 그런 거죠

 

한 인터뷰에서 말씀하시길, 위화 작가의 『세상사는 연기와 같다』를 읽고 “작가의 덕목은 상상력과 직감이다”라는 말을 화두로 붙들고 있다고 하셨어요. 지금은 어떠신가요? 작가의 덕목은 무엇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제가 지금 콘텐츠 진흥원에서 작가 지망생들에게 조언을 해주고 있는데요. 작가 지망생들이 사건 같은 건 잘 만들어내요. 그런데 그걸 하나로 꿰는 걸 못해요. 사건이 낱낱이 흩어져 있으면 그건 그냥 에피소드지 이야기가 되지 않아요. 그러니까 그걸 하나로 꿰는 직관이 있어야 되죠. 아마 그게 주제, 작가의 철학, 이런 것과 맥락이 닿아 있는 것 같아요. 작가가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덕목인 것 같고요. 그게 없으면 작가가 되지 못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작가의 일에 대해서 많은 작가 지망생들이 갖고 있는 편견이나 오해도 있을까요?


요즘은 인터넷이 발전해서 뭔가 착각하고 있다거나 실제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없는데요. 제가 그 분들한테 말하고 싶은 게 있다면, 이것도 어디에선가 읽은 건데요, 로또에 당첨돼도 계속 하고 싶은 일 혹은 계속 할 것 같은 일이었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그 친구들한테도 그렇게 이야기했어요. ‘네가 로또에 당첨돼도 이 일을 계속 하고 싶니? 만약 하고 싶다면 너는 이걸 해도 좋아’라고요. 왜냐하면 이 일에서 거두는 성공이라는 게, 일이 재미가 없는데도 할 만큼 그렇게 대단한 게 아니거든요. 성공할 확률이 있는 것도 아니고요. 너무 뻔한 이야기이긴 한데, 저는 모든 직업이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단순한 돈벌이가 아니라 내가 로또에 당첨돼도 하고 싶은 일, 그렇게 행복한 직업을 갖는 것이 첫 번째가 아닐까 싶어요.

 

요즘은 어떤 화두를 붙들고 계세요?


신 자유주가 범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많이 생각해요. 요즘 범죄율이 높아지고, 특히 묻지마 범죄가 많이 일어나잖아요. 이게 왜 이럴까라는 생각을 해요. 어려서부터 경쟁을 통해, 이기는 것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획득해버린 습관 때문은 아닐까. 이걸 어떻게 이야기로 만들지는 모르지만 그런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여름, 어디선가 시체가』를 통해서 가장 듣고 싶은 독자들의 반응은 무엇인가요?


드라마 작가가 쓴 소설 같지 않다고 해줬으면 좋겠어요. 진짜 소설가가 쓴 소설 같다고 느끼셨으면 좋겠고, 미숙한 느낌이 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에요. 소설가는 어쨌든 문장력이 있어야 되잖아요. 드라마 작가가 문장력이 없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문장력이 부족해도 영상화하는 데는 별 문제가 없잖아요. 예를 들면, 대사가 좋으면 지문은 안 좋아도 영상화되는 데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 거죠. 이 소설은 읽으시는 분들이 지문, 문장력이 제대로 됐다는 느낌을 받으셨으면 좋겠어요. 소설가가 쓴 소설 같다는 게 문장력이 있다는 말하고도 같은 것 같아요.

 

현재 구상 중이신 작품도 있으시겠죠?


얼마 전까지 아동 학대에 관한 얘기가 많이 있었잖아요. 아동학대에 대한 공포물을 만들어 볼까, 하고 구상 중이에요. 책으로 낼지 영화로 할지도 조금 더 생각해 보고 싶고요. 요새 하고 있는 건 하루 2~3편씩 공포영화 몰아보는 거예요. 아주 최근에 본 건 <REC>라고 2007년에 만들어진 스페인 영화인데 재밌더라고요. 존 카펜터의 <괴물>도 재밌게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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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어디선가 시체가박연선 저 | 놀
『여름, 어디선가 시체가』에서는 두왕리에서 네명의 소녀들이 실종되는 사건을 필두로 유쾌하고 발랄한 이야기를 그러내며 독자들의 시선을 잡아낸다. '탐정 트리오'들과 함께 정신없이 펼쳐지는 사건과 이야기를 쫒아가다보면 어느새 사건보다 섬뜩한 현실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혁진 “월급이란 젊음을 팔아 얻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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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누웠다. 중국 내 한국 조선소에서 건조한 운반선이다. 진수식까지 마치고 의장부두에 멀쩡하게 서 있던 배가 왜 쓰러진 것일까. 이야기는 시간을 되돌리는 대신 거침없이 앞으로 밀고 나간다. 사건을 수습하기 위한 움직임이 이어지는 가운데, 서서히 드러나는 것은 ‘배가 쓰러질 수밖에 없었던’ 근본적인 원인들이다. 원칙은 지켜지지 않았고, 절차는 무시되었으며, 문제는 감춰졌다. 뉴스에서나 볼 법한 대형 사고의 내막처럼 들리는가? 천만에. 당신이 몸담고 있는 조직에 대한 이야기다.

 

『누운 배』의 주인공은 회사 경영기획팀에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기사로, 팀장을 도와 쓰러진 배의 보험 업무를 처리하며 회사의 생리에 눈뜬다. 이쯤 되면 『미생』의 장그래가 떠오를 법도 하지만, 그가 던져진 현실은 훨씬 더 냉혹하다. 회사를 위해서라면 가짜 진실도 만들어내고, 높은 자리에 오르려면 일을 잘하기보단 줄을 잘 서야 된다. 문제가 생겼을 때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원인을 찾는 게 아니다. 책임질 사람을 찾는다. 윗선에 업무를 요청해봤자 실무를 떠안는 건 말단 직원들이다. 『누운 배』를 읽으며 강한 기시감에 사로잡히지 않을 직장인이 있기나 할까.

 

이혁진 작가는 실제로 조선소에서 근무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누운 배』를 집필했다. 덕분에 외부인의 시선으로는 결코 포착하지 못했을 세밀한 순간들과 생생한 감정들을 담아낼 수 있었다. ‘제21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된 『누운 배』는 장강명 작가가 “『누운 배』보다 강렬한 소설은 없었다”는 심사평을 남길 정도로 두각을 나타냈던 작품이다. 특히 황현산 문학평론가는 “붕괴된 사회구조를 말한다는 점에서 온갖 재난사고의 형이상학이며, 그 인간관계의 세부를 말한다는 점에서는 그 무의식이다”라고 말했다.

 

『누운 배』는 회사 안의 이야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익숙한 인물들과 사건들은 어느 한 회사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 어느 조직에나 그들이 기생한다. 파벌을 만들고, 힘겨루기를 하고, 공은 가로채고 과는 떠넘기는 일들은 뉴스에만 등장하는 게 아니다. 대기업 사주가 검사에게 로비를 하는 것과 누군가의 직장 동료가 거래처에서 접대를 받는 것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는가. 붉은 띠를 머리에 매고 투쟁을 외치는 이들이나 매년 ‘협상 없는 연봉협상’을 받아들여야 하는 이들이나, 모두가 노동자의 권리를 침해 받은 사람들이다. 소설 『누운 배』는 작은 회사 안의 이야기를 들려줄 뿐이지만, 독자들은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모순과 부조리의 단면을 보게 된다. 이곳에서는 어느 조직에나 ‘누운 배’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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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안에서 나의 기준이 짓눌린 것 같았어요


처음 당선 소식을 들으셨을 때, 그 순간이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세요?

 

잘 안 나요(웃음). 그냥 화장실에서 청소 같은 걸 하고 있다가 나와서 연락을 받았던 기억만 나고요. 책 후기에도 썼지만, 사실 그렇게 기쁘다는 느낌이 안 들었어요. 먼저 초고를 읽었던 친구들이 정말 잘 썼다고 했을 때, 소설 같다고 했을 때 훨씬 기뻤죠. 당선 소식을 들었을 때는 되게 안도했어요. 그 친구들이 틀리지 않았고 내가 틀리지 않았구나, 라는 생각에 안도했고. 기쁘긴 기뻤는데...(웃음)

 

실감이 안 나셨나요? 


실감도 잘 안 나고요. 사실 지금도 실감이 잘 안 나요. 그리고 그 상태를 적당히 즐기려고 하고 있어요. 당선이 돼서 되게 좋은 점은 제가 다음 작품을 쓰면 책으로 나올 수 있다는 거고, 독자가 있으니 똑바로 잘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는 거예요. ‘쓰면 되겠다’ 싶기도 하고요. 왜냐하면 저는 3년 동안 이 글이 책으로 나올 수 있을지, 신문 같은 데라도 한 번 실릴지, 전혀 모르는 상태로 계속 쓰는 상황이었거든요. 그래서 당선됐다는 게 정말 기분 좋은 일인데, 작가로서 활동을 하느라 글 쓸 시간이 줄어드는 건 아쉽죠. 그런데 당선 이후에 생활이 별로 바뀌지는 않은 것 같아요(웃음). 그렇게 많이 변하지 않은 게 맞다고 생각하고요.

 

조선소를 그만두시면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드셨다고요. 이유가 있을까요?


뭔가 어그러져 있다고 느꼈고 그게 훨씬 심하다고 느꼈기 때문일 거예요. 어떤 가치 판단이나 제가 생각하는 기준이라는 게 회사를 다니면서 엉켜있고 짓눌렸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글을 쓰면 그게 조금 더 선명해지지 않을까 생각했고요. 많은 작가 분들이 말씀하시듯이, 저 역시 글을 쓰면서 조금 더 이해를 분명히 하고 싶었어요. 이전에도 제가 독서를 하는 방식은 항상 그거였어요. 책에 있는 이야기가 좋다기보다는 어떤 구절들이나 거기에 있는 통찰, 지혜라고 할 만한 것들이 무척 마음에 들었고 좋았어요. 그리고 저한테 가르쳐주는 게 있었어요. 그 시점에서 ‘내가 이런 걸 분명히 해둬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했고요. 그러면 거기에 비춰서 경험한 일들을 생각하게 되잖아요. 그런 과정이 항상 있었던 것 같아요. 저는 그런 식으로 책을 읽었기 때문에 책을 쓸 때에도 그런 것들이 훨씬 더 강력해지는 것 같기도 해요.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그런 바람이 있기도 하고요.

 

책의 제목을 보고 세월호 이야기가 아닐까 짐작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아요.


크게 그쪽으로 영향은 안 받는 것 같아요. 그와 관련해서는 황현산 선생님이 잘 짚어주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말도 안 되는 사고가 일어나고 있고 비슷한 사고가 반복되고 있잖아요. 소설에 나와 있는 것처럼 어느 순간 힘이 다 쏠리게 되고 그 힘으로만 조직이 작동하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고쳐나가고 개선해 나가야 할 것들이 안 되다 보니까 그런 것 같아요.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문제를 없애는 데 치중하는 식의 사고방식이 있고, 책임을 다 같이 나누어지니까 내 책임이 아닌 게 되고, 어떤 잘못도 내가 책임을 지지 않으니 해결할 필요가 없어지는 거죠. 이런 과정이 깔려 있기 때문에 발생할 수밖에 없는 문제들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것들을 명백히 보여주고 싶었어요.

 

『누운 배』는 세월호 참사와 분명 다른 이야기이지만, 배가 넘어가는 사고로 인해서 그 안에 곪아있던 문제들이 분출한다는 점에서는 닮은 부분이 있어 보입니다.


그렇죠. 얼마 전에 세월호에 400톤의 철근이 과적재되었었다는 사실도 밝혀졌고, 저는 그걸 전혀 모르고 썼지만, 소설 속에서 진수를 서두르느라 공사를 건너뛰는 장면들하고 닮아있다고 생각했어요.

 

작품 구상 단계에서 세월호 참사 소식을 접하셨나요?


그렇죠. 제가 한국에 들어온 뒤에 소설을 쓰겠다고 생각하고 나서 세월호 사건이 발생했죠.

 

소설과 현실의 이야기가 너무 흡사해서 놀라셨을 것 같아요. 『누운 배』에서도 사건이 발생하자 외부로의 발설을 금지시키죠. “퍼트린 사람은 발본색원해 엄중히 책임을 묻겠다”고 경고하고요.


‘왜 그런 일이 비슷하게 일어나는 걸까’라고 생각을 조금 더 해봤어요. 그게 소설 전체의 주제가 되는 내용이기도 한 것 같고요. 너무 분노가 일어나기도 했죠. 제가 있었던 곳은 중국에 있는 한국 조선소이고, 근처에 한국 조선소들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설비가 없었으니까, 배가 넘어졌나 보다 라고 생각할 수 있었지만 여기는 대한민국의 영해잖아요. 게다가 배에 있었던 건 고등학생들이고요. 너무 말이 안 되는 일인데다가 심지어 오보까지 나고, 이후에도 정리가 되는 걸 보면서 되게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이걸 빗대어서 뭔가 이야기하고 싶다는 생각은 안 들었어요. 이 소설을 읽고 독자들이 그렇게 적용을 해서 보실 수는 있겠지만, 세월호 사건은 더 정확하게 정면으로 다루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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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왜 ‘회사 사람’이 되었을까


작품 속에서 힘에 대한 이야기가 종종 등장합니다. “참이나 거짓이라는 것은 힘으로 쥐고 흔들 수 있었다”라는 부분에서 진실을 은폐하거나 왜곡시키는 힘의 존재를 깨닫게 되죠. “그것을 경멸했지만 두려워했고 혐오했지만 동경했다”는 주인공의 고백에 공감하게 되고요.


회사라는 것에 대해서 아예 꿈이 없는 사람이라면 모르겠지만, 회사에서 유능해지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자신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면 분명히 그런 게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힘이 없으면 회사 안에서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고 인정받을 방법이 없으니까 힘을 찾을 수밖에 없게 되는 거고요. 나중에는 그 힘을 동경한 건지 아니면 힘을 이용해서 나를 인정받고 싶어 하는 건지 엇갈리는 지점에 서게 되죠.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주기적으로 찾아온다고 말하는 고비도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주인공의 팀장은 일을 통해서 자신의 가치를 확인 받으려는 인물처럼 보여요. 회사를 위해서 가짜 진실을 만들어내느라 고군분투하죠. 자기 회사도 아닌데 말이에요.


힘에 경도 당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그게 자신 자체라고 생각하고, 거기에서 내려오는 과즙을 적당히 마시면서 도취할 때, 그냥 회사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런 고민을 하지 않게 되고요. 먹고 사는 일만이 가장 중요할 수밖에 없었던 이전 세대와 같아지는 지점이 되는 거죠. 그런 분기점에서 주인공은 넘어설까 말까를 굉장히 고민하고, 넘어섰지만 다시 되돌아 나오는 사람이 돼요. 회사 사람이 되는 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거고 복잡한 개인사가 있을 거예요. 소득을 얻을 수 있는 일이 전혀 없고 부양가족이 있다면 일을 하면서 그런 의식을 점점 무디게 하겠죠. 진실을 가지고 있을 때 마음이 서걱거리고 부대끼는 불편함을 어느 누가 관대하게 받아들일 수 있겠어요. 점점 더 불편해지고 적응하려고 애쓰다 보니까 자신을 포기하게 되고, 그 지점에서 일을 통해서 자신을 확인하지 못하게 되는 순간이 생기는 거죠. 그렇게 될 때 사람은 ‘바람 풍을 바담 풍이라고 이야기해야 된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거고요.

 

지금의 현실에 비춰서 공감하게 되는 부분이 많아요. “사람들은 원인에 관해 말했지만 사실 책임에 관해 말했다”라는 부분도 그 중 하나이고요. 우리 사회에서는 문제가 생기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책임질 사람을 찾는 거잖아요.


그것 역시 어떤 영향이라고 생각을 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힘을 쥐고 있는 사람이 위에 있고 결국 이 모든 사람이 떨거지가 되는 거잖아요. 만약 우리가 공동체 안에서 주체적인 일원들이라면 거기에 대해서 잘못됐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이걸 공동책임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조건이 되어 있다면 그렇게 하지 않을 거거든요. 그게 되어 있지 않으니까 결국은 누구 하나 모가지가 날라 가거나 이렇게 마무리가 될 수밖에 없다는 거죠.

 

공동체 정신을 강요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됩니다. 일례로, 소설 속 인물들이 ‘회사가 어려우니 당연히 짐을 나눠서 져야 하지 않느냐’고 말해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애사심 없는 놈, 의리 없는 놈으로 취급하고요.


문제는 그런 식으로 돌아가지 않는데 그런 식으로 돌아간다고 이야기한다는 거예요. 그건 기망이죠. 학대 부모가 자식을 때리면서 사랑해서 때리는 거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심지어 자신들이 지금 이야기하고 있는 게 무엇인지조차 모르면서 그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요. 공동체 의식은 기본적으로 개인들의 힘이 충분할 때 비로소 생기는 거잖아요.

 

공동체에 속해있다는 사실이 우리 눈을 가려버릴 때가 있는 것 같아요. 회사에서 문제가 생겨도 나 혼자 책임을 지는 게 아니니까 죄책감을 덜 느끼고요. 고질적인 문제로 누군가 퇴사해도 떠나는 사람은 소수의 개인이고 우리는 단체로 남아있으니까 저들이 잘못된 거라고 정신 승리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해요.


그렇죠. 어떤 의미에서는 스스로 가리는 것이기도 하죠. ‘몇몇의 사람들이 떠나가는 건데, 회사에 남은 이 많은 사람들이 다 바보겠냐’라고 생각할 수 있는 거죠. 제가 좋아하는 『배가본드』라는 만화에도 나오죠(웃음). 여러 사람이 있으면 공포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어느 사람이 다치기 시작했을 때 누가 선뜻 나오지도 않는다고 말하는 부분이 있어요. 그런 게 저는 본성의 일부라고 생각하지만 그 본성이 경멸할 만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럴 만한 상황에 닥쳤을 때 그게 좋은 힘이 됐을 거고, 좋은 판단을 해줄 수 있는 기제가 될 수도 있다고 봐요. 다만 지금처럼 너무 일그러지고 흐릿한 상황이 되다 보니 사람들이 그냥 ‘우리는 여러 명이고 어쨌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월급을 받고 있을 만큼 회사가 계속 굴러가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무언가를 먼저 알았다고 해서 저렇게 나가는 사람이 더 이상한 것 아닐까’라고 쉽게 생각해 버린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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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을 부끄러워하지 마세요


“월급이란 젊음을 동대문 시장의 포목처럼 끊어다 팔아 얻는 것이다. 월급을 받을수록 나는 젊음을 잃는다. 늙어간다. 가능성과 원기를 잃는 것이다. 존재가 가난해진다”라고 쓰셨습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공감하고, 한숨을 내쉴 직장인 분들이 많을 것 같아요.


그걸 쓸 때는 제가 절실히 느낀 부분이기도 했고, 실제로 그런 것 같아요. 50~60대 분들이 왜 어디 놀러 가실 때마다 등산복만 입으실까요. 돈을 버느라 취향이라는 게 제대로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나이를 먹으면서 가능성을 잃어 간다는 걸 자신한테 계속 이야기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새로운 걸 접할 기회도 없죠. 옛날 음악만 계속 듣게 되거나 거의 안 듣게 되고, 최신곡 순위에 있는 음악들을 듣게 되잖아요. 옛날에는 안 그랬잖아요. ‘이런 걸 들어야 돼’ 하고 열심히 찾아가면서 들었을 텐데, 그런 과정이 없다면 애착이라는 것도 없는 것 같아요. 그런 과정을 통해서만 진짜 자기가 좋아하는 게 뭔지를 찾아나갈 수 있죠. 그런 과정이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있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죠. 그렇다 보니 결국 가난해지는 거고, 훨씬 더 빨리 가난해질 수밖에 없고요. 그렇다 하더라도 모든 사람이 그렇게 산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일도 잘하면서 사람들한테 너그럽고, 똑똑하고 창의적이지만 그것들을 적당히 조절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이 다양하게 많이 있다는 것 자체가 희망인 것 같아요. 제 생각에는 자신이 젊다는 자의식을 분명히 가지고 있고 그것을 지켜나가고 관리해나가려고 애쓰는 게 진짜 젊음인 것 같아요.

 

소설 속 인물들은 ‘다 이렇게 사는 거야, 남들도 그렇게 살잖아, 회사 생활이 원래 이런 거야’라는 말을 자주 해요. 그에 대해서 주인공은 의문을 갖게 되고 ‘그러면 다 그렇게 죽냐?’라고 물어보죠.


그 질문을 할 때 훨씬 더 명확해진다고 생각해요. 다 그렇게 산다고 할 때는 뭔가 자포자기가 되잖아요. 그냥 밀쳐두는 거고요. 그건 사실 위에 있는 사람들이 문제를 덮어버리는 방식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결국 ‘내가 어떤 선택을 해야 될까’의 문제가 되는데, 다 그렇게 산다고 하면 내 문제를 덮어두는 거잖아요. ‘다 그렇게 죽냐?’라는 말이 그 사실을 분명히 일깨워주는 게 있다고 생각해요. 다 그렇게 산다는 말은 자포자기와 다르지 않다고요. ‘다 그렇게 죽냐?’는 물음에 대한 저의 대답이라고 한다면, 기본적으로 저는 자기 자신의 주체성과 젊음을 인지하고 어그러져 있는 공동체의식에서 자신을 분리해서 똑바로 볼 수 있는 의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소설을 계속 쓰려는 이유로 “나와 독자, 또 독자와 독자 사이에 나지막한 울타리 같은 책 한 권을 놓는 것”이라고 밝히셨어요. 앞으로 어떤 소설을 보여줘야 하는가, 라는 고민 끝에 나온 이야기일 것 같은데요. 어떠세요?


저는 ‘이거다’라고 내놓고 싶은 게 없고, 사실은 그런 게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제가 작가로서 어떤 권위가 있어서 ‘이렇다’라고 했을 때, 그게 설사 올바른 거라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거기에 대해서 생각을 안 하고 믿어버리게 되잖아요. 얼마 전에 JTBC <뉴스룸>에서 ‘루쉰이 그렇게 말했어’라는 구절(『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에 대해서 이야기한 것처럼, 그런 권위는 자기반성에 대해서 필요할 뿐이라고 생각해요. 어쨌든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기만큼 내놓고 그것에 대해서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우리가 대등하게 얘기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항상 있어요. 책을 읽고 나서 친구랑 서로 어떻게 읽었는지 이야기하는 게 재밌는 거잖아요. 저는 책 자체가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책이 인생을 바꾼다는 것도 믿지 않는 편이에요. 그런 게 있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하고요.

 

『누운 배』를 읽은 독자들이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면 좋을 것 같으세요?


이미 그 답을 하나 받았는데요. 이 책을 읽고 나서 조금 더 현명하게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한 친구가 있었어요. 그 말을 들었을 때 정말 더할 나위가 없었어요. 그 친구가 굉장히 인상 깊었다고 하는 구절이 있었는데 ‘나는 비로소 내가 될 테지만 그 나는 얼마나 보잘 것 없을까’라는 문장이 마음을 쳤다고 하더라고요. 그걸 의도하고 쓰지는 않았지만, 저도 회사를 그만둔다고 했을 때 제일 마음에 닿은 문구였어요. 모든 사람이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여전히 방점을 두고 싶고요. 이런 저런 일들로 의지가 꺾일 때도 있지만 어쨌든 자기 자신으로서 진실한 일을 하고 싶다면 그건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게 그 사람을 입체적이고 진짜 살아있는 사람처럼 보이게 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현명하게 산다는 건 어떤 걸까요?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분하고, 좋은 것에 자신을 맞춰서 살아가려고 하는 거겠죠. 그렇게 따라가지 못하는 걸 반성하고, 부끄럽고 창피하게 여기기도 하고요. 저는 부끄러움과 창피함이 매우 인간적인 특성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없기 때문에 ‘저런 이야기를 들어야 되나’ 싶은 이야기들을 지금 뉴스에서 보고 있는 거잖아요. 그리고 어느 지점 위에 올라간 사람들은 정말 부끄러움과 창피함이 없어지거든요. 잘해나가려고 애쓰고, 그러지 못했을 때 수치스럽게 느끼고, 그런 것들이 다 사람다운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게 아닐까 싶어요. 현명한 사람이라는 건 사람다운 사람이라는 이야기이기도 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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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운 배이혁진 저 | 한겨레출판
《누운 배》의 세상이 그려내는 풍경은 진실을 코앞으로 들이밀어 그 진실에서 풍겨 나오는 지독한 냄새를 맡게 한다. 이야기가 진행되고 진실이 축적되며 이윽고 누운 배가 일으켜 세워지는 장면에 도달했을 때, 소설은 최근의 한국 소설에서 보기 힘든 어떤 거대한 광경을 만들어낸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경훈 “일본에도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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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에서 역사 과목을 가르치고 있는 이경훈 저자가 한일 근현대사의 쟁점에 관심 갖게 된 것은 역사교과서 문제 때문이었다. 2001년, 일본 후쇼사 역사교과서 문제가 대두되었을 때, 일본 내부에서도 비판 의견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일본 역사 교사들과 교류를 시작했다. 바로 ‘한일역사교사모임’이다. 이 모임을 통해 저자는 공동 작업으로 『마주 보는 한일사』를 펴내기도 했다. 흥미로운 것은 이런 작업을 거치면서 역사 교사인 저자도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많았다는 점이다. 저자는 말한다. “국가 대 국가”가 아니라 민간 차원의 교류가 보다 더 많아지면 해결될 문제들이 있다고. 역사의 단죄가 필요하지만 동시에 해결과 화해가 필요하다고. ‘위안부’ 피해 생존자, 사할린 한인 생존자, B, C급 전범 등 이제 시간이 많지 않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사안을 제대로, 정확히 공부하는 것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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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알자


일본군 ‘위안부’나 독도, 야스쿠니 신사처럼 자주 거론되는 쟁점부터 B, C급 전범이라든지 사할린 한인 등 다양한 쟁점 아홉 가지를 다뤘어요. 모두 해결되지 않은 현재진행형의 이야기들이죠.


책에 쓴 쟁점들이 현대사잖아요. 학생들과 수업을 하면요, 현대사 부분은 거의 하질 않아요. 아주 간단하게만 짚고 넘어가거나 하죠. ‘위안부’나 야스쿠니 신사, 들어보긴 하지만 무슨 내용인지 거의 모르고 지나가요. 독도 같은 문제들은 워낙 일본과 첨예하게 대립하니까 특별수업도 하고 그렇거든요. 수업을 해보면 학생들은 대부분 감정적으로 나와요. 일본에 반감을 갖고요. 사실 이런 문제가 불거진 것은 정부나 정치의 문제인데 학생들은 일본 전체를 나쁜 사람이라고 인식해요.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는 일본 사람들도 있거든요. 이런 것은 자세히 알아야만 해결할 수 있잖아요. 제대로 알자는 뜻으로 책을 쓰려고 한 거고요.


또 한 가지는요, 제가 ‘한일역사교사모임’이라는 교사 모임을 해요. 일본 선생님들과 수업 교류를 많이 했거든요. 그러면서 보니까 제가 몰랐던 게 많이 있었고요. 그러다가 『마주 보는 한일사』라는 책을 쓰게 됐어요. 저도 공부하면서 그 내용으로 학생들과 수업도 하고, 그러면서 책을 쓰게 됐습니다.

 

일본 선생님들과의 교류 과정에서 모르고 있었던 새로운 내용이 있었다고요?


전근대사 경우에도 ‘왜구’를 우리는 일본 해적 정도로 생각하잖아요. 일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더라고요. 왜구를 전, 후기로 나누기도 하고요. 왜구는 일본인만 있는 게 아니라 중국 상인이 왜구로 가장한 경우도 있었다는 거예요. 또 ‘서원’ 있잖아요. 도산서원 같은 서원이요. 『마주 보는 한일사』에서 유교 관련 내용을 쓰면서 서원 이야기를 했더니 그분들도 ‘서원, 우리도 있다’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일본은 집의 형태를 서원이라고 하더라고요. 그런 것들이죠. 독도 같은 경우는 쓰는 데 엄청 오래 걸렸거든요. 독도를 우리는 역사적 문제로 생각하는데 일본 선생님 경우는 그래도 한국을 많이 아는 분임에도 불구하고 영토 문제로 보시더라고요. 일본은 러시아와 북방 영토, 중국과 센카쿠 열도 등 영토 문제가 많잖아요. 그렇게 보시는 거죠. 정말 서로 모르는 것도 많고 시각이 다른 것도 많다는 걸 알았어요.

 

실제 학교에서 만나는 학생들의 역사 인식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 궁금하네요.

 
‘위안부’는요, ‘부’가 들어가니까 독립운동기구라고 아는 경우가 있어요. ‘조선총독‘부(府)’’처럼요.(웃음) 정말 그래요. 요즘에는 워낙 이 문제가 많이 나와서 그 정도는 아닌데요. 몇 년 전만 해도 수업할 때 ‘위안부’라고 하면 그렇게 아는 학생들이 있었죠. 야스쿠니 신사는 TV에도 나왔는데 진짜 ‘젠틀맨’으로 아는 친구들도 있어요.

 

모두 중요한 쟁점들이지만 가장 시급하게 해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쟁점을 꼽는다면 어떤 걸까요?


다 그렇지만 강제동원이라든가 사할린 한인 같은 문제는 꼭 해결되었으면 해요.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가장 심각하긴 해요. 생존해 계신 분이 많지 않잖아요. 다만 이 문제는 상대적으로 많이 부각되어 있는데요. B, C급 전범이나 강제 동원, 사할린 한인 같은 문제는 인도적인 문제라고 보거든요. 식민지라는 시대적 문제 때문이기도 하지만요. 사할린 한인은 일본이 패망한 이후 그냥 방치한 거거든요. 버린 거죠, 완전히. 게다가 우리나라도 사할린이 소련 땅이다보니 적국이라 무관심했고요. 사할린 한인은 90년대가 넘어가서야 조금씩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거든요. B, C급 전범 같은 경우도 그래요. 강제징용은 아니지만 포로 감시원으로 가지 않았다면 강제 징용으로 끌려갔을 사람들이거든요. 포로감시원이면 죽지는 않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간 거죠. 그런 사람들이 전쟁 범죄자가 돼 처벌을 받았잖아요. 그 중에는 석방돼서 국내로 왔더니 친일파라고 매도된 경우도 있어요. 정말 황당한 일이잖아요. 이런 문제도 사람들이 많이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생존해 계신 분도 거의 없고 이러니까요.

 

맞아요, 사할린 한인이나 B, C급 전범 같은 이슈가 다른 이슈처럼 좀 더 알려지기만 해도 변화가 있을 거예요. 안타까운 일이에요.


사할린 한인은 그나마 90년대 이후 영주 귀국을 추진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거기에도 문제가 있었어요. 끌려간 1세대 분들을 귀국 시킨 거죠. 그곳에서 결혼한 분도 있었을 거고, 자녀도 있었을 텐데 그 사람들만 귀국을 시켜요. 이산가족이 된 거죠. 이 1세대 분들이 40년대에 징용 갈 때 사할린이 워낙 오지고 환경이 열악하니까 일본이 가족을 데려가게 했는데요. 사할린 탄광을 포기하면서 이중징용(전환배치)을 하는 바람에 가족과 생이별을 했었어요. 그러니까 40년대에 이산가족이 되고, 90년대에 또 이산가족이 된 거예요. 국가가 이런 여러 제반 사항을 고려해야 하는데 잘 되지 않은 부분도 있었죠.

 

이렇게 극적인 이야기들은 영화나 소설 같은 다른 장르로라도 더 많이 다뤄졌으면 해요. 관심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잖아요.


사할린 한인은 <명자, 아끼꼬, 쏘냐>라는 영화가 있었고요. <암살>, <귀향>같은 영화도 나왔잖아요. 『군함도』도 영화로 만들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더 많이 다뤘으면 좋겠어요. 심한 왜곡이나 이런 게 아니라면 알리는측면에서는 굉장히 필요하죠.

 

영화나 드라마로 제작되었을 때, 학생들의 관심도 많이 달라지나요?


많이 달라요. 가령 <정도전>이나 이런 게 하면 학생들이 와서 물어봐요. 수업도 하지만 TV나 영화로 이야기하는 게 훨씬 더 재밌잖아요. 대신 아무래도 픽션이다보니까 과장된 부분도 많아요. 그런 것들은 얘기를 해줄 필요는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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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교류 활성화


제일 먼저 ‘위안부’ 문제를 다뤘는데요. 이유가 있었을 것 같아요.


요즘 가장 많이 이슈가 되는 문제기도 하고요. 그렇다고 처음 다룬 것부터 마지막에 다룬 역사교과서까지를 경중에 따라 나눈 건 아니에요.

 

‘위안부’ 문제는 매일 뜨거운 이슈죠. 한편 박유하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를 둘러싼 논쟁도 있잖아요. 이런 부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도 그 책을 읽어봤는데요. 정영환 교수의 『누구를 위한 ‘화해’인가』에서 반론도 있었죠. 모든 젊은 여자들을 강제로 끌고 갔겠느냐, 저도 그러진 않았을 거라고 봐요. 실제로 당시 일본인 ‘위안부’도 있었거든요. 동남아 지역 사람들도 있고요. 부모가 업자한테 자식을 판 경우도 있어요. 일부 있었겠죠. 그런데 그런 내용을 너무 부각시킨 것 같다는 생각이에요. 물론 여태까지 우리나라에서 ‘위안부’ 문제를 강제성이나 일본이 인정하지 않는다는 문제에 크게 두긴 했지만요, 박유하 교수가 쓴 것처럼 조선인 업자라든가 그런 부분이 너무 부각되는 것도 사실은 그리 옳은 것 같지 않아요. ‘위안부’ 문제가 무엇인지 따지는 것이 더 중요하죠. 그 중 일부 그런 예가 있었다고 한다면 공감할 수 있을 텐데요. 일부를 너무 강조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역사 문제의 쟁점이라는 게 참 어렵잖아요. 객관적 사실을 제대로 들여다보는 노력도 필요하고요.


모든 문제를 ‘우리가 식민 지배를 당했으니까’, ‘이건 일본 잘못이다’, 이렇게 얘기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1965년에 한일협정을 이상하게 맺는 바람에 그로 인해 문제가 꼬인 경우도 굉장히 많잖아요. 책에 있는 대부분의 문제들이 사실 그 때문에 꼬인 게 많거든요. 그것도 지적을 안 할 수는 없는 거예요. 그때 ‘위안부’ 문제는 한일협정 당시에는 아예 거론조차 안 됐어요. 사할린 한인, B, C급 전범도 그랬죠. 그걸 일본은 그야말로 ‘포괄적으로 다 해결되었다’라고 했고요. 그런 부분도 있기 때문에 무조건 ‘일본이 나쁘다’라고 하기보다 과거에 잘못 매듭지은 것들도 지적해야 할 점이 있는 것 같아요. 우리는 이런 것을 잘못했고, 너희는 이런 것을 잘못했다, 그러니까 잘못한 부분은 인정하고 해결해보자, 이렇게 하는 게 낫지 않나 생각해요.

 

그런 논의가 체계적으로 진척 되려면 기본적인 수준의 지식은 있어야 하잖아요. 교과서 문제를 떠올리게 되는데요. 한국, 일본 모두 역사교과서 문제가 심각하거든요. 양국이 아주 다른 내용을 배우게 되는 거예요. 


‘동아시아사’라는 과목이 있어요. 2012년에 생겼어요. 노무현 정부 말에 한중, 한일, 동북공정, 독도, 이런 문제들이 많이 불거졌어요. 갈등이 심화되었죠. 그것이 계기가 돼 과목을 만든 건데요. ‘동아시아사’는 주제사예요. 시대별 역사적 사실을 나열하는 게 아니라 한국, 중국, 일본이 중심이 된 동아시아 지역의 이슈를 역사적으로 다뤄보는 거죠. 그래서 지금 이런 갈등이 생겼고, 이것을 해결해보자, 이런 거거든요. 우스갯소리긴 한데요. 화해를 배우려고 하면 기말고사가 끝나요.(웃음) 학생들은 갈등까지밖에 안 배워요. 그것도 책 쓴 계기기도 했어요. 예전 교학사 교과서나 지금 국정교과서까지 한일 갈등의 중심에 이런 교과서 문제들이 있잖아요. 그런 부분의 사실들을 좀 들여다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교육 과정에 말씀하신 문제들이 있는 거라면 성인이 되어서도 제대로 공부하려는 노력을 좀 더 해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뉴스로, 하나의 이슈로 파편적으로 보게 되기 마련이니까요.


인문학 강좌도 요즘 많이 있잖아요. 그렇게 공부하면 좋죠. 학생들에게도 특별수업으로 ‘위안부’나 독도, 야스쿠니 등을 한두 시간 씩 하거든요. 그러면 학생들 귀가 쫑긋해져요. 학교에서도 역사를 공부한다 하지만 잘 모르거든요. 고등학교 한국사나 중학교 역사 책 보면 ‘위안부’는 그나마 칼럼 식으로 한 페이지까지 다루는 경우가 있는데요. 독도는 소제목으로 다루고요. 그런데 나머지는 다루는 경우가 없어요. 사할린 한인? 단어도 안 나와요. 정말 몰라요.

 

역사 재교육을 위해 역사 교사로서 하고 싶은 일이 있으실 것 같아요.


‘한일역사교사모임’을 하면서 공동 역사 교재 만드는 작업을 계속 했어요. 『미래를 여는 역사』도 펴냈고요. 국가 간의 갈등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국가가 나서서 하면 아무래도 국가의 입김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제 생각에는 민간 교류가 활성화되어야 하지 않나 싶어요. ‘동아시아 청소년 역사체험캠프’라고 해서 한중일 학생들이 일 년에 한 번 일주일 정도 모여 캠프를 하거든요. 그런 캠프를 하면 학생들이 서로 직접 보잖아요. 이번에는 타이완 학생들도 왔고, 재일한국인도 왔어요. 이야기를 해보면 정말 다르죠. 재작년 주제가 ‘청일전쟁’이었는데요. 이건 일본과 중국이 전쟁을 하는데 전쟁터가 한반도였잖아요. 각 나라 교과서에 청일전쟁 이야기가 다 나와요. 그런데 내용이 다 달라요. 학생들이 그걸 보고 공동 교과서를 직접 써본 거죠. 저희들끼리 싸우기도 하면서 어설프긴 하지만 의견을 모으는 거예요. 저는 그런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이 자꾸 많아지면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거예요. 국가 대 국가가 아니라요.

 

국가가 나서서 해결하는 것 외에 민간 차원의 노력이 분명히 병행되어야 해요. 그런 경험이 쌓이면 각 개인이 할 수 있는 일도 많아질 거고요.

 

‘위안부’ 같은 경우도 굉장히 안타깝고, 해결했으면 좋겠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안타까운 생각만 하잖아요. 수요시위에 참여해 본다거나 ‘나눔의 집’이나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응원의 글을 한 번 쓴다거나 하는 여러 방법이 있어요. 참여를 하는 거죠. 그러다보면 당장은 아니더라도 진전이 돼서 해결로 다가가지 않을까 생각해요.

 

문화재 환수 부분을 보면 명확해지죠. 정부의 대응 못지않게 혹은 더 많이 민간의 노력이 중요하다는 사실 말이에요. 지금, 우리는 이런 쟁점들 앞에서 무엇을 해야 할까요?


관심을 가져야죠. 그 부분에서 사실 정말 중요한 건 언론이거든요. 예를 들어 야스쿠니 신사에 아베 총리가 참배했을 때 엄청나게 난리가 났잖아요.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내용을 일본 역사교과서에 수록됐다고 해서 난리가 났고요. 그런데 그러고 딱 끝이잖아요. 삼일절이나 광복절 쯤 되면 다큐멘터리가 나와요. 이럴 때 실질적으로 그 쟁점이 어떻게 해결되어야 하겠다, 일본에서 이걸 해결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것들을 얘기해주면 좋겠어요. 어떻게 하면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는가 하는 것들을 강조했으면 좋겠어요. 무턱대고 아니다, 이게 아니고 상대방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하는 것도 알았으면 좋겠어요. 물론 개인이 관심 갖는 게 중요하기도 하지만 언론에서도 그런 부분을 잘 다뤄야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

 

문제를 ‘문제다’라고 하긴 쉽죠. 어떤 다른 목소리가 있는지,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겠네요.


저도 책을 통해 쟁점, 문제가 뭐다, 이걸 얘기하려던 게 아니고요. 그래서 이런 것을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하는 것을 꼭 썼거든요. 그런 걸 사람들이 많이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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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한일 양국 문제가 아니다


샌프란시스코 조약(1951년)과 한일협정(1965년)을 잘못 끼운 단추, 어설픈 매듭으로 표현했어요. 결국 이 쟁점들의 해결을 방해하는 것이 이런 미봉책들 탓이었죠.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는 건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란 생각을 했어요.


조심스럽긴 한데요. 일본이 패망하자 미국이 일본을 민주주의 국가로 만들기 위해 재벌을 해체하고, 전범 재판을 해서 전범들을 투옥시키고, 천황 인간 선언을 하고, 평화헌법을 만드는 등 그런 것들을 쭉 이어나갔어요. 중국은 국공내전(1927년 이후 중국 국민당과 중국 공산당 사이에 일어난 두 차례의 내전)을 통해 공산주의 국가가 됐고, 한국에서는 6.25 전쟁이 벌어졌거든요. 이런 일들이 벌어지면서 미국은 일본을 반공국가의 교두보로 만들려고 한 거죠. ‘역코스(Reverse Course)’라고 해서 전범들을 석방하고 그들은 다시 정권을 잡게 돼요.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1896~1987), 아베의 외할아버지 같은 경우는 A급 전범이었는데 총리가 되고 이러잖아요. 그러니까 단순히 한국과 일본, 둘 사이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사 안에서 문제들이 벌어진 거예요. 단순히 한일 양국 문제로 봐서는 해결될 게 아니죠.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긴 하지만 일 대 일의 문제는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 같아요. 당장 해답을 찾을 수는 없겠지만 깨어있는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만든다고 하는 것처럼 알아두어야 할 것은 확실히 있어요.

 

샌프란시스코 조약으로 일본이 일종의 면죄부를 얻은 것과 동시에 해방공간에서 한국 역시 친일파 청산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 측면이 있죠. 


1965년 한일협정을 맺은 후 박정희 정부가 피해자들에게 개별보상을 한다고 했어요. 실제로 했고요. 그런데 굉장히 적은 액수였죠. 홍보도 제대로 되지 않았고, 신청 기간도 짧았어요. 개인들의 피해였는데 보상금으로 포항제철을 만든다거나 이런 일을 했고요. 그런 문제가 많았기 때문에 노무현 정부에서 2004년 ‘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를 만들었어요. 2011년에는 ‘위안부’ 문제를 국가가 해결하지 않은 것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 판결도 있었어요. 헌법소원을 낸 건 2006년이었거든요. 강제동원 역시 전범기업들이 피해자들에게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2012년에 났었죠. 그것도 노무현 정부에서 소송이 시작됐고요. 보면 굉장히 시간이 오래 걸렸죠.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긴 했지만 하나씩 해결이 되어 가는 거잖아요. 그것이 방향성이라고 봐요. 잘못을 어느 날 갑자기 풀 수는 없죠. 하나씩 풀어야 하는데요. 물론 일관성이 있으면 좋겠죠. 작년 12월 말, ‘위안부’ 협상처럼 확 어그러진다거나 이런 문제가 있다보니 사람들은 ‘이게 뭐야’라고 생각할 수는 있어요. 하지만 어쨌든 정부가 결정을 내린 문제잖아요. 한일협정도 국가가 한 일이기 때문에 그것을 전부 부정하기는 굉장히 어려워요. 이런 잘못을 회복하는 데는 훨씬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해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것 같아 보이지만 하나씩 해결되고 있는 거네요.


2012년 전범기업들에 피해자 배상을 하라는 대법원 판결이 있었잖아요. 1965년 청구권 문제가 해결됐는데 배상 판결이 나왔다면 과거를 부정하는 거 아닌가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게 아니에요. 불법적, 비인도적 행위는 청구권 문제로 해결이 안 됐던 거예요. 그 잘못에 대해 배상하라는 것이지 과거 맺은 협정을 부정한 건 아니에요. 그러니까 하나씩 해결되고 있는 것이죠. 또한 중국인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 미쓰비시(三菱, MITSUBISHI, 1870년 창립) 기업의 배상을 받았거든요. 그건 법적 판결이 아니라 일종의 화해거든요. 기업체가 자신의 잘못에 대해 보상을 하면서 문제를 해결하자고 한 거예요. 그런 식으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거죠. 어쨌든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으니까요. 꼭 네가 잘못했으니까 너는 벌을 받아야 해, 감옥에 가야해, 이게 아니라 잘못을 뉘우치고 사과를 하고 그에 따르는 배상을 한다든가 행동을 보였다면 용서할 수도 있는 거고요. 그런 해결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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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시각도 있다


쓰면서 이 책을 꼭 읽었으면 했던 사람이 있었나요?


어설프게 아는 사람들이랄까요?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도 보면 좋겠지만 역사에 관심이 조금 있는 사람들이 많이 봤으면 좋겠어요. 이런 시각도 있다고 하는 것을 전하고 싶거든요. 학교에 보면 ‘역덕(역사 덕후)’이 있어요. 굉장히 많이 알아요. 그런데 한쪽으로만 아는 학생들이죠. 많이 아는 것 같지만 위험해요.

 

역덕이요?


역사를 좋아하는 학생들이 있어요. 많은 숫자는 아니지만요. 관심은 있는데 그 학생들이 주로 관심 갖는 것들이 이런 쟁점들이거든요. 특히 한일관계에 관심이 엄청 많아요. 전쟁, 이런 것들이요. 그런데 그것만 아는 거예요. 그렇게 공부를 계속 하다보면 ‘일본은 진짜 나쁜 놈’이 되는 거죠. 그런 학생들과 얘기해보면 아주 틀린 말을 하진 않아요. 하지만 한쪽만 보니까 잘 모르는 거죠. 얼마 전 일본 야스쿠니 신사 화장실에 불을 낸 방화범이 일본에서 징역 받은 일이 있었잖아요. 그렇게 될까봐 걱정이 되죠. 감정이 고조되면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거든요.

 

책 뒤편에 참고문헌을 꼼꼼히 넣어두셨는데요. 이런 쟁점이나 역사 문제를 더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나요?

 

한일 또는 한중일이 공동 작업한 책들이 있어요. 그건 좀 봤으면 좋겠어요. 어느 한쪽의 시각으로만 보는 것보다 공동 작업한 책들이 좋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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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점 한일사이경훈 저 | 북멘토
한일 간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는 9가지 쟁점에 대해 원인과 배경, 해방 이후 처리 과정과 문제점, 해결 방향을 읽기 쉽게 서술하였다. 일본의 망언과 역사왜곡, 우리 정부의 빗나간 대응에 분노하면서도 잘 몰랐던 9가지 쟁점에 관해 사실을 알고, 문제를 제대로 바라보자는 제안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세카이 노 오와리, 동화 같은 콘셉트로 지산을 사로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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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곡만으로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의 무대를 준비했다는 사실이 조금 걱정스럽긴 했지만, 다행히도 공연이 시작되고 얼마 안 가 그것이 기우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국을 다시 찾기까지 걸린 4년이라는 시간동안 일본을 대표하는 크리에이티브 집단으로 거듭난 그들. 작년 서면 인터뷰에 이어 다시금 IZM과 재회한 밴드는, 최근 이어졌던 여러 나라에서의 공연을 통해 자신들의 음악을 세계 각국으로 전파하기 위한 준비운동을 끝낸 것처럼 보였다. 왜 영어 곡만으로 이번 내한을 준비했는지 이 인터뷰를 보면 어느 정도 납득이 갈 것이라 생각한다. 한 곳에 국한되지 않은 음악 세계를 어느 때보다도 자유롭게 풀어놓고 있는 세카이 노 오와리의 '지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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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한국 방문입니다. 인사 및 소감 한마디씩 먼저 부탁드릴게요.


Nakajin : 한국에서 여러가지 스케줄을 하고 있습니다. TV 방송에 출연하기도 하고, 인터뷰도 많이 했고요.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 출연도 예정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지산은 4년 전에도 갔었지만, 올해는 그린 스테이지의 마지막 무대를 장식하게 되어 굉장히 영광이라 생각합니다.

 

내일 <지산 밸리 록 페스티벌>에 출연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4년 만에 같은 무대에 서는 셈인데요. 이번 무대를 앞둔 기분은 어떠신지요? 더불어 이번 무대를 준비하며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으신지요?


Nakajin : 지난번에는 영어로 만든 곡이 별로 없었는데요. 해외 무대에 설 기회가 늘어나면서 영어로 의사소통할 일이 많아져 영어 곡을 계속해서 만들어오고 있었습니다. 그런 연유에서 이번에는 영어 곡으로만 세트리스트를 만들어 왔고요.

 

앞서 21일에 <엠카운트다운>과 <테이의 꿈꾸라>에도 출연하셨는데, 방송을 통해 한국 음악 팬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것, 전달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셨는지요? 더불어 한국에서의 인기를 조금 체감하셨는지 궁금합니다.


Nakajin : <엠카운트다운> 때는 스테이지를 너무나 멋있게 만들어주셔서, 「ANTI-HERO」라는 노래를 잘 이해해주고 계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녁에는 관객 분들이 보이는 스튜디오에서 방송을 했는데, 이렇게 많은 분들이 오시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200명 정도 오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정말로 기뻤습니다.

 

지난 6월에 종료된 전국투어 <The Dinner>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처음 <The Dinner> 라는 제목을 듣고, 전과 달리 일상적인 단어라 의외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디서 아이디어를 얻으셨는지요?


Fukase : 그건 저의 아이디어인데요. 언뜻 그렇게 보이실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전혀 일상적인 단어는 아니고요. 카니발리즘(Canivalism), 식인을 테마로 하고 있어 제목을 <The Dinner>로 짓게 되었습니다.

 

드럼과 베이스, 현악 등 리얼 세션을 대폭 도입했다고 들었습니다. 세션을 대동하게 된 이유가 있으시다면요.


Saori : 그 동안은 좀처럼 타이밍이 맞지 않았을 뿐, 전부터 계속 해오고 싶던 것 중에 하나였어요. 드디어 하게 된 거죠. (만족하냐고 묻자 네 멤버 모두 이구동성으로) 네!(웃음)


Nakajin : 활동하면서 몇 번 시도했었는데, 소리가 딱 들어맞지 않을 때가 많았습니다. 이번에 함께해 주신 분들은 실력도 실력이었지만 음악적으로도 굉장히 유연하신 분들이었어요. 저희들의 터무니없을 수도 있는 요구들을 이해해주시고 실현해주셔서 굉장히 좋은 멤버와 투어를 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직 투어 영상이 정식적으로 공개되지 않은 상태인데요. 한국 팬들에게 살짝 콘셉트에 대해, 그리고 투어 중 공개된 신곡 「Monsoon night」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설명 부탁드립니다.


Nakajin : 처음에 차로 등장합니다. 일을 마치고 모두가 같이 사는 집으로 돌아와서, 저녁을 먹기 위해 관객들을 붙잡아 먹는다!라는 콘셉트예요.


Fukase : 「Monsoon night」는 영어가사를 붙인 곡인데요. 이번 지산에서도 보여드릴 예정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번에 미발표곡 몇 곡이나 하더라?


Nakajin : 꽤 많다고 생각해요. 발표하지 않은 쪽이 더 많을지도....


Fukase : 「Monsoon night」, 「Dragon night」 새로운 버전이랑 「Roller skate」도 있고, 아직 들려드리지 않은 신곡이 많네요.

 

지난 6월에는 clubEarth 10주년 공연도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시작된 곳인 만큼 감회가 색달랐을 것 같습니다. 그날의 기분이 어떠셨는지 한 분씩 물어보고 싶네요.


Nakajin : 저희들과 친한 뮤지션 그리고 저희들이 보고 싶었던 뮤지션을 모아서 했기 때문에 공연을 하는 입장에서도 즐거웠지만, 다른 출연자들의 라이브를 보는 것도 굉장히 즐거웠어요. 모두들 “관객들 다 죽여놓자!!”라며 제 일처럼 도와줬는데, 그 모습에 감동했습니다.


Saori : 저도 같은 마음이었어요. 아침부터 리허설을 보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끝나고 나서는 모두들 술 한 잔씩 걸치고.(웃음) 마치 홈 파티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Fukase : 출연했던 거의 모든 아티스트들을 제가 선택했었는데요. 제가 좋아하는 분들 뿐이라 그런지, 굉장히 좋은 라인업의 공연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굉장히 사치스럽지 않았나 하는 느낌이에요.(웃음)


DJ LOVE : 끝났을 때에 '아 내년이 기대된다!'라는 느낌의 라이브였습니다.

 

내년 초에는 스타디움 투어가 계획되어 있습니다. 올해 열린 투어의 연장선상인지, 아니면 전혀 새로운 컨셉의 투어인지 궁금합니다.


Saori : 완전히 새로운 공연이 될 예정입니다.

 

무대연출에 상당히 공을 들이는 만큼 야외, 실내, 돔, 스타디움 등 각각의 환경이 다른 탓에 고민들이 생길 것 같은데요. 퍼포머의 입장에서 어떤 공연장이 가장 만족스러운지 궁금합니다.


Fukase : 개인적으로는 야외가 역시 기분이 좋아요. <炎と森のカ?ニバル>(2014) 같은 숲에서의 라이브가 즐거웠었죠.


Nakajin : 근데 야외 라이브는 아무래도 날씨가 신경이 쓰여서요.


Saori : <Tokyo Fantasy>(2014) 공연 당시 태풍의 중심에 있었는데(주 : 삼일 중 마지막날 공연이 태풍으로 인해 취소된 바 있음), 작년 <Twilight City>(2015) 때도 1주일 전에 태풍 3개가 온다고 해서 굉장히 걱정을 했었어요. 야외에서 하고 싶지만, 좀 무섭긴 해요.


Nakajin : <Twilight City> 때는 결국 준비했던 기차가 이틀째 밖에 날지 못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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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신곡들이 다양한 방향성을 보여주고 있는데요. 「ANTI-HERO」는 힙합, 「SOS」는 발라드, 「Mr. Heartache」는 EDM이었죠. <Tree>(2015)를 끝으로 커리어의 1장이 막을 내리고 2장이 시작한 듯한 느낌입니다. <Tree>이전과 이후의 음악을 대하는 태도, 혹은 음악적 방향성에 있어 달라진 점이 있다면 어떤 점일까요.


Nakajin : <Tree>이전과 이후의 타이밍도 그렇지만, 보통은 곡을 낼 때마다 달라지는 것 같아요. <Tree>이후에 변화가 있기도 했지만, <Entertainment>(2012) 후 발표했던 'RPG' 역시 <Entertainment>와는 다른 분위기의 곡이었죠. 항상 새로운 것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계기로 작품을 만들고 있기 때문에, 곡마다 그 지향점이 변하는 것 같아요. 그것이 '무언가를 탐색해서 찾아낸다'라는 느낌보다는, 저희가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것들 중에서 이제껏 보여주었던 것과는 또 다른 새로운 모습을 선택해 보여준다는 개념인거죠. 따지고 보면 「ANTI-HERO」도 꽤나 옛날부터 가지고 있었던 아이디어가 모티브가 되었으니까요.

 

최근 음악들을 들어보면 EDM이 최근 세카이 노 오와리의 음악에 영향을 가장 많이 주는 장르처럼 느껴지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Nakajin : 최근 곡 제작과정을 보면 역시 컴퓨터 프로그래밍이 빠질 수 없는 요소가 되었고, 거기에 발맞춰 소프트웨어나 어플리케이션도 굉장히 많아졌죠. 필연적으로 그런 것들을 많이 사용하다 보니 그런 느낌이 드는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지산에서도 전부 영어 곡을 들려주실 거라고 조금 전 말씀하셨는데요. 다음 앨범은 영어 중심의 작품이 될 예정인지 궁금합니다. 차기작에 대한 힌트를 조금만 주신다면요.


Saori : 다음 앨범은요. 지금 만들고 있는 곡들을 수록해 가는 형태가 될 예정인데요. 지금 일본에서 만들고 있는 곡들은 일본어지만, 그것을 한국 분들이 좋다고 말씀해주신다면 넣을지도 모르겠지요. 하지만 역시 영어가 좋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면 영어만으로 할 수도 있고요. 한국 팬 분들의 모습을 보면서 생각해보고 싶습니다.(웃음) (아무래도 일본어 곡을 더 좋아할거에요라고 이야기하자) 에 정말요? 이번에 전혀 안 할건데 괜찮을까요?(걱정 섞인 웃음)


Nakajin : 다음 단독공연의 기회가 있다면 반드시 하도록 하겠습니다.(웃음)

 

서로 조화를 이루어 하나의 덩어리를 만들었던 이전의 악곡들과 달리, 「ANTI-HERO」의 경우 피아노의 저음부와 고음부, 기타의 솔로잉, 브라스 등이 바통을 주고받으며 곡을 만들어나간다거나, 「SOS」의 경우 1절에는 피아노, 2절에는 기타의 사운드가 대비되며 긴장감을 만들어나가는 등, 최근의 신곡엔 각 악기의 개성을 살리는 편곡이 중점이 되어 있습니다. 듣는 입장에서는 이전과 다른 어프로치가 담겨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 두 곡의 모티브 및 제작 과정이 궁금합니다.


Saori : 말씀하신 대로에요.(웃음)


Nakajin : 연주자의 모습이 떠오르는 사운드를 만들고자 했어요. 그래서 믹스 작업시 음량을 올린다던가, 편곡에 신경을 써 악기의 소리가 강조되도록 작업했습니다.

 

에픽하이와 저녁식사를 하고 올린 사진이 팬들 사이에 화제가 되었는데요. 어떻게 성사된 저녁식사였는지요. 그전부터 에픽하이를 알고 계셨나요?


Fukase : 저희가 「マ-メイドラプソディ(Mermaid rhapsody)」로 TV에 출연했을 때, 수족관 청소원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어요. 그때 사진을 매니저한테 보냈더니, 너네랑 비슷한 콘셉트를 한 팀이 있다면서 뮤직비디오를 보여줬죠. 그 영상을 통해서 처음 알게 됐어요. 안 그래도 랩뮤직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마침 일본에서 에픽하이가 단독콘서트를 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때 매니저를 통해 식사 자리가 마련되었고요. 내일 모레 있을 에픽하이 콘서트도 보러 갈 예정입니다. 오늘 타블로가 생일인데요. 트위터로 'Happy Birthday'라고 보냈더니 'Thank you Fukase. See you soon'이라고 답장이 왔더라고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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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부터는 팬들의 질문입니다. 일본에서도 이미 음악방송 및 라디오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계신데요. 한국에서 경험해 본 무대와 라디오와의 차이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느티)

Fukase : 크게 다른 건 없는 것 같아요. 다만 저희가 있었던 스튜디오는 굉장히 멋있고 화려했어요. 드럼이 세워져 있기도 했고... 사실 일본의 스튜디오는 이렇게까지 크지 않거든요. 오늘 봤던 한국의 스튜디오처럼 항상 스탠바이 되어 있는 건 아니라서요.

 

후카세씨와 사오리씨가 종종 한국어로 트윗해주시거나 인스타그램을 올려주시는데 그 한국어가 굉장히 자연스럽습니다. 스스로 번역기를 이용해서 하시는 건가요. 아니면 한국어가 능숙한 주변분이 도와주시는 건가요?


Fukase : 한국어를 하시는 분이 있어서 그분께 물어보곤 해요. 번역을 도와주시죠.

 

각자에게 음악적 영감을 가장 많이 준 인물은 누구인지요?


Nakajin : 어렸을 땐 비디오 게임 속에 흐르는 음악을 감상하는 걸 좋아했어요. 특별히 좋아했던 건 역시 <파이널 판타지>의 음악을 담당했던 우에마츠 노부오씨입니다. 어른이 되어서 보니 내가 영향을 많이 받았었구나라는 느낌이랄까요. 게임뮤직이 가진 독특한 표현방법을 지금 저의 악곡제작에 활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Saori : 저는 쇼팽이에요. 5살 때 옆집 할아버지가 치시던 쇼팽을 듣고 저도 연주하고 싶다고 생각해 피아노를 시작했거든요.


Fukase : 저는 인디즈 시절 소속사의 사장이셨던 무라타씨(Lastrum의 村田積治를 지칭)입니다. 당시 갑자기 큰 규모로 데뷔를 하게 되면서 왠지 겁쟁이가 되어버릴 것만 같았어요. “이렇게 하면 이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해버리지 않을까요?”라고 사장님에게 이야기하면 “원래 그런 암울한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는 법이야”라던가 “죽는 거에 비하면 별거 아니잖아”라고 말씀해주셨어요. 그 말들의 영향이 컸지요. 후에 불꽃 소리를 드럼으로 쓰려고 했을때도, 만약 그렇게 싱글을 내서 팔리지 않으면 어떡하지라고 생각하긴 했지만, 뭐 그렇다고 죽는 것도 아니고.(웃음) 여러 가지 도전이 가능했던 것은 다 그 사장님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DJ LOVE : 아마도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Rage Against the Machine)일까요. 왠지 그런 날카로운 부분, 그들의 음악을 들은 영향으로 계속 날카로운 음악을 상당히 좋아했던 것 같아요. 곡이 날카롭지 않더라도 사람 됨됨이가 날카로운 부분이 있는 사람이 꽤 좋고 그래서 그 점이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합니다.
 
세카오와의 노래를 좋아하는 이유라면 역시 의미가 있는 가사들 덕분인데요. 최근 작사, 작곡하면서 노래에 담고 싶은 주제나 소재가 있으시다면요.


Fukase : 일본인만 아는 노래가 아닌, 전세계 사람들이 이해 할 수 있는 노래를 만들어가려 합니다. 여러나라 사람들과 이야기하다보면 분명 화가 나는 포인트, 기뻐하는 포인트, 웃는 포인트가 모두 다르다는 것을 느끼는데, 반면에 같은 인간으로서 공통적인 부분도 분명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 공통점의 테두리 안에서 무엇을 부를 수 있을까, 무엇을 전달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하는 중입니다!

 

진행 : 조아름, 황선업
정리 : 황선업
사진 : 변영옥
협조 : SONY MUSIC ENTERTAIN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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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세 “산티아고 순례길, 사기 당한 기분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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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아웃 증후군(Burnout syndrome). 일에 열정을 쏟아 붓던 사람이 극도의 피로감과 무기력감을 겪게 되는 현상이다. 『길은 모두에게 다른 말을 건다』의 저자인 김진세 정신과 전문의도 2년 전, 번아웃 증후군을 겪었다. ‘글쓰는 정신과의사’로 유명한 그에게 상담실과 서재가 답답하게 느껴지기 시작했고, 급기야 환자에게 짜증을 내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을 찾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버킷리스트에 적어두었던 오랜 꿈을 발견한 저자는 망설임 없이 떠남을 계획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찾아.

 

30일 동안 800여 킬로미터를 걷는 고난에 가까운 여정이었다. ‘위태로운 정신과의사의 행복한 산티아고 피신기’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처음에는 “떠나서 일단 피하고 보자”는 생각으로 나선 길이었다. 그러나 그 길 위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삶에 대한 질문이 되었다. 서로 다른 나라에서, 서로 다른 이유로 떠나온 이들이었지만 그들의 고민은 다르지 않았다. 그 안에서 저자는 우리를 괴롭게 하는 문제들과 우리가 바라는 삶의 모습을 발견했다.

 

현재 고려제일정신건강의학과의원에서 환자들을 만나고 있는 김진세 저자는 『심리학 초콜릿』, 『행복을 인터뷰하다』, 『태도의 힘』등의 저서로도 친숙한 인물이다. 〈레이디경향〉, 〈빅이슈〉, <포커스> 등 다수의 매거진에 칼럼을 연재하며 심리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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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사기 당한 기분이 들었어요


번아웃 증후군을 앓고 있다는 걸 알게 되셨을 때, 기분이 어떠셨나요?


정말 암담했죠. 믿었던 사람한테 배신당한 느낌이라고 할까요. ‘세상에, 그럴 수가 있어?’라는 느낌이 들게 되죠. 물론 정신과 의사도 사람이니까 당연히 번아웃이 될 수 있고, 그런 상황에서는 환자에게 짜증도 낼 수 있다고 생각은 해요. 그렇지만 스스로에 대한 기대 같은 게 있잖아요. 직업적인 윤리라든지 의사로서 지켜야 될 부분에서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드니까 굉장히 힘들더라고요.

 

정신과 의사만큼 감정 소모가 심한 직업도 없을 것 같아요.


그렇죠. 감정 노동의 최고봉이죠. 환자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감정이 전염되잖아요. 점점 힘들다가 끝날 때쯤 되면 녹초가 돼요. 상담을 여러 건 하고 다음 날 아침이 되면 1~2kg 정도 빠지기도 하고요. 환자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수백만 가지 상황을 설정하고, 그 가운데에서 좋은 걸 골라내야 하니까 힘들죠. 그리고 잘 아시다시피 의사는 친절해야 되잖아요. 사회적인 책임을 강요 받는 직업이죠.

 

직업적 특성상 누군가에게 상담을 받기도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외과 의사라면 정신과 의사를 찾아오겠지만요(웃음).


맞아요, 의사 선생님들도 와서 진료를 받으세요. 저희 같은 경우는 계속 그런 분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까 스스로 정신 건강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에요. 저도 될 수 있으면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이틀이나 삼일에 한 번 정도는 꼭 운동을 해요. 주말이면 산과 들로 돌아다니고, 좋은 친구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많이 하려고 하죠. 책을 보고 음악을 듣기도 하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워낙 감정 노동이 심하니까, 스트레스를 받지 않기는 어렵죠.

 

버킷리스트에서 ‘산티아고 길 순례’를 발견하셨을 때, 제일 먼저 든 생각은 ‘일단 여기로 피하고 보자’는 거였나요?


그렇죠. 사실은 4주 이상 병원을 비운다는 게 쉽지 않아요. 첫 번째로 환자들한테 미안한 일이고, 그 다음에 경제적으로도 문제가 생기고, 여러 가지 걸리는 것들이 많거든요. 기존의 스케줄도 다 미뤄야 하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살고 봐야 하니까, 말 그대로 피신하기 위해서 움직인 거죠. 그런데 정말 재밌는 건 ‘가야지’ 하고 결심하는 순간 마음이 훨씬 가벼워졌다는 거예요. 가려고 마음먹는 순간 그 기운과 여유가 함께 밀려오니까 기분이 되게 좋아지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지금도 휴가에서 돌아오는 날부터 다음 휴가를 계획해요. 늘 머릿속에 ‘놀러 가야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2년 동안 준비하신 끝에 떠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생각하자마자 떠날 수 있으면 멋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그런데 저는 충동적이지 못하니까 그럴 수는 없고, 그래서 차분히 계획을 세운 거죠. 제일 중요한 건 체력이거든요. 일주일에 한 번씩 걷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어요. 매일 걷는 게 문제예요. 저도 다른 사람들처럼 블로그, 카페를 찾아 다니면서 정보를 모아보니까 여러 번 걸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해서 체력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했고, 두 번째는 현지 날씨 정보 같은 다양한 정보를 찾아야 했고요, 세 번째는 비용이었어요. 저는 10만 원씩 2년 동안 적금을 들었는데, 그 정도 금액이면 충분히 갔다 올 수 있어요. 적금을 들면 더 행복하게 여비를 마련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꿈에 한 발 한 발 다가가는 모습을 보면서 굉장히 기쁘거든요.

 

많은 분들이 산티아고 순례길에 환상을 가지고 계실 것 같아요. 작가님께서 “걷다 보면 나 스스로에게 집중할 시간이 많을 것이라는 기대”를 하셨던 것처럼요. 그런데 책을 읽어 보니, 현실은 조금 달랐던 것 같아요(웃음).


처음에는 사기 당한 기분이 들면서 ‘누군가에게는 멋있고 철학적인 길이지만 나에게는 고난의 길이구나’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다 걷고 나서 마지막 순간에도 무지 힘들었던 일들이 기억 속에 다 남아있거든요. 아마 제가 마음에 대한 전문가이기 때문에 생각이 났을 거예요. 다른 사람들은 잊어버리죠. 마지막에 오는 감정이 되게 중요해요. 그 감정 때문에 힘들었던 감정을 잊어버리거든요. 산티아고에 다녀온 사람들도 다 고생을 했지만 마지막 순간의 감격스러운 기분 때문에 다 잊어버린 거죠. 제가 직접 걸어보니까, 실은 만만치 않은 일이고요. 두 벌의 옷을 가지고 한 달을 버틴다는 게 그렇게 멋진 일이 아니에요, 절대로. 먹는 것도 그렇죠. 블로그 같은 데 올라온 사진을 보면 너무 맛있는 음식처럼 보이잖아요. 그 사진만 봤을 때는 산티아고에 가면 정말 산해진미를 먹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대개는 바게트 빵에 치즈를 넣는 날과 하몽을 넣는 날이 있고 기분 좋은 날은 치즈와 하몽을 같이 넣어 먹죠(웃음). 그런 날이 대부분이에요.

 

책에서 “감정적인 기억의 왜곡”에 대해 말씀하신 부분이 기억나네요. “진짜 세상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추억은 선택적 기억 상실의 또 다른 이름일 뿐이니까”라고 하셨는데, 위안이 되는 이야기였어요.


사실은 지금 우리가 되게 힘들잖아요. 그런데 행복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무덤에 들어갈 수 있다면, 이 삶이 행복하게 느껴질 수 있는 거거든요. 물론 현실주의자들은 ‘그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 하루하루가 행복해야지’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어차피 죽을 거라면 ‘그래도 행복했네’ 하고 죽는 것과 ‘거지 같이 살다가 죽네’ 하고 생각하는 것은 다를 거라는 거예요. 죽는 그 순간만이라도 행복을 느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좋은 감정을 가지고 생을 마감할 수 있으면 인생은 그리 실패한 것이 아니죠. 그런데 마지막 순간에 우리가 정말로 고민하는 것은 돈이나 성취 때문이 아니거든요. 가능하면 행복한 삶을 지향하는 것이, 살면서 어려움을 겪었다고 해도, 결국엔 ‘아, 잘 왔네’ 하는 느낌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인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속으면 안 되기는 하죠.

 

현실이 생각했던 모습과 달랐지만 스트레스를 받지는 않으셨던 것 같아요. 오히려 “선택이 아닌 흐름에 맡겨보자”, “이 길에서만은 억지로 살지 말자”고 생각을 바꾸셨잖아요. 그것만으로도 길에서 얻으실 것은 다 얻으신 게 아닌가 싶어요.


길뿐만 아니라 걸을 때도 마찬가지거든요. 물집이 잡혀 본 적이 없는 발에 물집이 잡혔으니 걷는 게 더 불편해질 거고, 걷는 게 불편하면 절뚝거리면서 걷는 게 당연한 거죠. 우리가 살면서 가장 많이 경험하는 잘못 중에 하나가 생기지도 않은 일에 대해서 걱정하는 거예요. 그 걱정 때문에 항상 불안하고 현재를 즐기지 못하는 거거든요. 두 번째는 생기면 어쩔 수 없는 일에 대한 걱정이에요. 걱정해 봤자 아무 소용없는 일들이 있잖아요. 인생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는 현실적인 바탕 위에서 미리 걱정하지 말고, 어쩔 수 없는 일에 대해서도 걱정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길도 마찬가지예요. 멈출 수 없는 건 내가 애를 쓴다고 해도 안 되거든요. 그러려면 충분한 여유가 있어야 돼요. 여유가 없으면 그렇게 마음을 돌려먹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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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려도 내 페이스 대로 걷는 게 현명한 거예요


길 위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도 담겨있습니다. 각자 다른 이유로 찾아온 사람들이지만 그들 사이에도 공통점이 있을까요?


산티아고에 가서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해 보고 제가 내린 결론은, 그들의 고민과 우리들의 고민이 별다른 게 없다는 거예요. 다 공통 관심사더라고요. 성취, 성공, 실패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 연애, 이별, 죽음에 관한 이야기도 있었어요. ‘내일 아침에 뭘 먹을까’에 관한 이야기도 있고요(웃음). 똑같은 주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공통점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또 한 가지는 산티아고라는 공통의 목표가 있다는 거죠. 모두가 고민을 가지고 있고 진지하게 길을 걷고 있기 때문에 조금 더 마음을 쉽게 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 공통점으로 인해서 응집력 같은 게 생기기도 하고요. 그리고 같은 목표가 있으니까 공감이 쉽게 되잖아요. 필요한 게 있으면 잘 빌려주기도 하고, 같이 아파해주고, 심지어 돌봐주기도 해요. 늘 도움이 충분한 그런 느낌이 좋았어요. 아마도 외로운 분들은 산티아고에 가시면 직접적인 위로와 위안을 받으실 수 있을 거예요. 그래서 그곳을 못 떠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을 것 같고, 늘 그 꿈에 사는 사람도 있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정신과 의사이시니까, 그 분들의 고민을 허투루 들으실 수 없었던 것 같아요.


저는 기본적으로 사람에 대한 관심이 되게 많아요. 그래서 정신과 의사가 되려고 했던 거고요. 제가 직업을 감추려고 해도, 아마 그런 부분이 드러났던 것 같아요. 정신과 치료라는 게 약물 치료도 있고 상담 치료도 있지만 어쨌든 만남으로부터 시작이 되는 거거든요. 그런 면에서는 그 분들이 조금 편안하게 느끼셨던 것 같기도 하고요. 저는 그 분들의 이야기를 조금 더 깊게 듣다가 궁금한 게 있으면 물어보기도 했는데, 저도 모르게 몸에 밴 직업적인 특성 때문에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결국 우리가 고민하는 건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나’, ‘어떻게 하면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나’가 아닐까 싶더라고요. 작가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건 삶의 다양성인 것 같아요. 그 다양함 속에서 자기가 정말 좋아하는 걸 하는 게 가장 행복한 거겠죠. 우리가 흔히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하잖아요.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과 잘하는 일을 하는 것 중에 어떤 게 중요하냐고요. 그런데 그것만 있는 게 아니거든요. 해야 되는 것도 있고 하지 말아야 되는 것도 있잖아요. 예를 들어서,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필요에 의해 해야 되는 일도 있고, 하고 싶은 일이 있지만 다른 일을 더 잘하기 때문에 성취를 위해서 그 일을 선택할 수도 있죠.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삶을 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그 다양한 삶에 내가 얼마나 만족하느냐가 굉장히 중요할 것 같은데, 다들 그런 고민들을 하고 살더라고요. 특히 젊은 친구들의 경우에는 타인과 자기 삶을 비교하고, 그것 때문에 실의에 빠지기도 하고, 하지만 결국에는 내 삶이 더 옳다고 판단해서 스스로 더 만족을 얻고, 이런 모습들을 봤어요.

 

길 위에서 만난 이들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이 있다면 누구인가요?


마이클이라는 호주 할아버지예요. 어느덧 제가 노년의 삶에 대해 생각할 나이가 됐더라고요. 왠지 모르게 노년이라고 하면 노년의 삶은 병원과 보험이 떠오르는데, 마이클 할아버지는 도전과 용기가 떠오르게 해주셨어요. 그래서 너무 감사하고요. 떠오르는 사람들은 정말 많죠. 질리언이라는 친구는 우리 삶이라는 게 자기가 가지고 있는 확신이 없으면 아무리 잘 살아도 마음이 허전하겠다는 생각을 하게 해줬어요. 세르게이나 파블로도 기억이 나는데요. 어쨌든 모든 사람들이 절망, 후회, 고통 같은 부정적인 질문을 가지고 있었는데 길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답을 바꿔주는 것 같더라고요.

 

걸음이 느린 소녀 ‘루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많이 놀랐어요. “느린 만큼 더 오래 걸어요!”라는 말이 울림을 주더라고요. “조금 앞서거나 조금 뒤처질 수 있지만, 자신의 페이스만 유지하면 결코 실패할 인생은 없다”는 작가님의 말씀도 뭉클하고요.


잘못 이해하면 ‘성공하려면 능력이 부족해도 잠 줄여가면서 매일 일해야 된다’고 받아들일 수도 있는데, 그런 뜻이 아니에요. 내가 실패한 인생이라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거죠. 걷다 보면 앞에 가는 사람을 앞질러 가고 싶을 때가 있잖아요. 그런데 그 사람을 앞질러서 한 시간 이상 걷다가 쉬면, 내가 앞질렀던 사람이 10분 내에 도착해요. 인간이 걸을 수 있는 속도가 있잖아요. 보통 1시간에 4km 정도를 걷는데 빨리 걸으면 6km 정도거든요. 15분 정도면 따라잡는 거예요. 그러면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정말 잠 안 자고 애써서 가는 사람들이 실은 조금 더 앞서갈 뿐이에요. 그래서 길게 놓고 보자면 그냥 내 페이스 대로 가는 게 나은 거죠. 어떤 사람들은 열심히 살다가 번아웃에 빠져서 나가떨어지기도 할 거고, 스트레스가 많아서 우울증이나 암에 걸릴 수도 있겠죠. 내 페이스를 지킬 수 있으면 그게 인생을 사는 데 더 현명한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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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이 남긴 건 ‘여유’


책을 읽으면서 완주에 대한 생각을 계속 하게 되더라고요. ‘완주를 해야만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했어요. 작가님께서는 “우리는 완주를 택하지만 다음 세대들은 즐거움을 선택하기 바란다”고 말씀하셨는데, 어떤 의미인가요?


저희 세대에게는 불안이 있어요. 성공에 대한 집착도 많고 자존심도 강해요. 아버지 세대로부터 물려받는 거예요. 약간 유교적인 측면도 있고, 드러나는 겉모습에 대한 집착도 있죠. 만약 제가 여유가 있었으면, 20대 초반이나 30대였다면 피레네를 넘었을 거예요. 실패하면 다시 오면 된다고 생각했을 테니까요. 그랬다면 아마 중간에 무릎이 아팠을 때, 어쩌면 물집이 잡혔을 때부터 ‘에이, 놀다가자’ 하고 돌아갔을 수도 있었을 거예요. 제 아들은 그랬으면 좋겠어요. 조금 더 여유 있게 ‘다음에 또 오면 되지’라는 생각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이 이야기를 사회로 확대시켜 보면, 저는 이 사회에 태어난 사람들은 이 사회가 먹여 살릴 의무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의무가 모든 사람들한테 받아들여져야 출산율이 늘겠죠. 그런데 그 의무를 안 지려고 하거든요. 다 개개인의 문제로 돌려버리잖아요. 그러지 말자는 거죠. 제 다음 세대에서는 완주가 개인의 목표가 아닌 사회 전체의 목표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이 길을 걷는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자유로움’이다”라고 하셨어요. 그 길 위에서 작가님은 얼마나 자유로웠던 것 같으세요?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건, 일단 싱글이었죠(웃음). 게다가 입는 옷 두 벌, 가방 하나 밖에 없으니까 물질적으로도 완전히 자유로워졌죠. 거기에서는 모두가 그렇기 때문에 그게 가난한 게 아니에요. 만약 제가 서울에서 옷 두 벌이랑 배낭 하나랑 등산화 하나만 가졌다면 엄청 가난한 거잖아요. 하지만 그 안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고 너무 자유스럽죠. 욕심으로부터도 자유로운 거예요. 우울증이나 불안증 같은 증상들은 자유를 억압하는 것들이에요. 그러니까 자유롭게 되기 위해서는 그런 것들이 없어져야 되고, 거꾸로 자유로워지면 그런 게 당연히 없어질 거예요. 제가 옷을 두 벌만 가지고 있다고 해서 옷 한 벌 밖에 없는 사람을 욕하지도 않고 세 벌 가지고 있는 사람을 부러워하지도 않을 수 있는 건, 제가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죠.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잘 파악하고 받아들이는 게 가장 중요해요. 그런 면에서는 길에서처럼 자유로울 때는 없었죠.

 

산티아고 순례길로 떠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으세요?


살면서 한 번쯤은 당당하게, 자유로운 마음으로, 우리 자신을 봐야 돼요. 그러려면 자유롭게 자신을 볼 수 있는 어떤 상황을 만들어가야 되는데, 그 상황이라는 게 사람마다 달라요. 동굴에 들어가서 바위를 보면서 얻는 분도 계시고, 현미경 속에서 발견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죠. 그런데 대부분은 저처럼 길에서 발견할 것 같아요. 그러려면 충분한 시간과 여유가 필요하지만 그게 꼭 산티아고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어디든 좋으니까 자신을 바라보는 작업을 게을리 하지 않으면 되는 거죠. 그래도 꼭 가야겠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신다면, 충분한 계획이 필요할 것 같아요. 정밀한 계획은 아니고요. 자기에 대해서 잘 파악을 하고 나면 조금 더 자세하게 계획을 세울 수 있을 거예요. 와인, 스페인의 역사, 건물처럼 관심사에 따라 목적의식을 가지고 떠나도 재밌을 것 같고요. ‘나는 매번 계획을 세워왔기 때문에 이번에는 무계획으로 갈 거야’라고 생각해도 괜찮아요. 각자에게 맞는 즐거운 길을 선택하면 되는 거니까요.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온 후에 작가님께 생긴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인가요?


제일 큰 건 여유죠. 제가 처음 칼럼을 쓰기 시작한 이유는 정신과 환자들에 대한 차별, 편견 때문이었어요. 그걸 없애려면 많이 알려드려야 하잖아요. 그래서 쓰기 시작했고, 강연 요청이 들어와도 다른 일정을 다 정리하고 가야 했어요. 다녀오면 굉장히 뿌듯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선약이 있으면 못 간다고 말씀 드려요. 이제는 생각이 달라진 게 ‘내가 아니어도 정신과 의사들이 많고 나보다 훨씬 더 설명 잘하는 선생님들도 계신데 괜히 나를 괴롭히지 말자’고 생각해요. 그리고 환자들을 만나면서 책을 쓰려면 주말을 이용할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그동안 주말이라는 게 거의 없었어요. 그런데 요즘은 매주 산에 가서 걸어요. 그런 변화가 생겼어요. 여유가 생긴 거죠.

 

번아웃 증후군으로 힘들어 하는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도 있으시겠죠?


번아웃 증후군이라는 것은 병명은 없어요. 사회심리적인 현상인 거죠. 대개 세 가지 증상이 있는데, 하나는 정신적인 고통이 따르는 거예요. 우울하거나 짜증이 많이 나는 문제가 생기죠. 그 다음에 행동에도 변화가 생기는데요. 지각을 한다든지 술을 많이 마신다든지 이런 문제가 생겨요. 그리고 생각에도 문제가 생겨서 스스로를 비하하기도 하죠. 모든 병은 예방이 제일 중요해요. 번아웃 증후군을 예방하려면 일단은 자기 자신을 놓치면 안 돼요. 항상 내가 중심이 돼야 하고, 시간에 쫓기는 게 아니라 시간을 지배해야 돼요. 만약 자신의 능력으로 100개를 할 수 있다면, 100개가 아닌 90개만 해야 돼요. 그러면 번아웃이 되지 않아요. 그런데 번아웃 증후군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늘 120개를 하려고 해요. 이렇게 말하면 ‘일이 너무 많은데 어쩔 수 없지 않냐’고 말씀하실 수 있는데, 그렇게 생각하고 계시면 이미 번아웃 상황인 거예요. 자신이 모를 뿐이죠.

 

이미 번아웃 증후군을 앓고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인정을 해야 돼요. 내가 나를 조절할 수 없을 정도로 일에 쫓기고 있다면 그건 번아웃된 거예요. 그런 분들은 아침에 잠에서 깨면 벌떡 일어나서 돌아다니지 마시고, 5~10분 정도 스트레칭을 하세요. 명상을 하셔도 좋아요. 이완으로 시작하는 거예요. 그 다음에 주변 사람들한테 자꾸 이야기해야 돼요. 힘들다고요. 그걸 창피해할 필요 없어요. 세 번째는 필요하다면 도움을 받아야 돼요. 약을 먹는 방법도 있겠죠. 번아웃의 근원은 스트레스거든요.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는 약을 복용할 수도 있고요. 그리고 저처럼 여행 계획을 세우는 것만으로도 그 순간에 번아웃이 많이 줄어들어요.

 

책을 읽고 작가님을 부러워하실 분들이 많을 것 같아요. 한 달 동안 여행을 떠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요.


4주를 쉰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죠. 그런데 제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나서 든 생각은, 꼭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다는 거예요. 주어진 휴가 동안만이라도 한 가지에 집중할 수 있으면 인생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말씀 드렸다시피 평생에 한 번 정도는 나를 마주해야 되는데, 그러려면 시간이 필요해요. 변칙적으로 생각한다면 그런 시간을 일상에서 가지면서 자기를 마주할 준비를 하면 좋을 것 같은데요. 시간이 짧으면 정말 안 되더라고요. 처음에 산티아고에 가서 ‘나는 뭐지?’ 하고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안 떠오르더라고요.

 

중요한 건 ‘나를 마주보는 시간’을 갖는 거군요.


자신을 마주보는 일을 두려워하지 말고 게을리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앓고 있는 정신적 질환들 대부분이 내 삶의 중심이 바깥에 있기 때문에 생기는 거예요. ‘남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지?’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으면 나는 없어지는 거거든요. 조금 괴팍하고 주류에 어울리지 않는 것으로 비춰지더라도 그냥 그걸 유지했으면 좋겠어요. 그게 자기 삶이니까요. 남의 눈에 맞춰서 표준화하기 시작하면 내 삶은 없어지는 거거든요. 남의 삶을 사느니 해괴망측하더라도 내 삶을 사는 게 훨씬 낫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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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모두에게 다른 말을 건다김진세 저 | 이봄
이 책은 위태로운 일상에서 벗어나고자 떠난 한 정신과의사의 산티아고 피신기이자, 그 길 위에서 얻은 귀중한 깨달음의 기록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심영순 “한식, 정말 우아하고 품위 있고 감미로운 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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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대첩>, <옥수동 수제자> 등 활발하게 방송을 이어가고 있는 심영순 선생이 처음 요리를 가르치게 된 건 순전히 우연이었다. 자녀들에게 매일 싸준 도시락이 학교에 소문이 난 것. 그렇게 몇몇 학부모들에게 요리를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일이 점점 커졌다. 명망가에서도 선생을 찾았다. 옥수동에 요리 연구원을 차린 이후로는 대기자가 없던 적이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선생에게 요리를 배우고자 했다. ‘고귀한’ 요리의 힘이다.


심영순 선생의 한식 철학은 대단하다. 평생을 요리에 매진한 선생의 ‘단단한’ 마음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정성껏 요리하는 ‘고귀한’ 마음, 원칙을 지켜내고 요행을 바라지 않는 ‘냉철한’ 마음 등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가르침이 된다. 선생은 말한다. 한식이야말로 시대에 걸맞은 건강 음식이며 그 자체로 완벽히 조화로운 음식이라고. 보약을 짓듯 정성을 다해 음식을 만들어 사랑하는 사람을 먹이는 일이 가장 큰 행복이라고. 서로 끝까지 사랑하고 믿음을 잃지 말라고. 무거운 시간을 의연하게 지나온 어른의 묵직한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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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담은 요리’


그간 한식의 대중화를 위해 여러 요리책을 쓰셨지만 에세이로 선생님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것은 처음입니다. 이 이야기를 전하기로 결심한 이유가 있을까요? 


처음엔 쓸 생각 없었어요. 도리어 무엇 하러 쓰느냐고 했어요. 나보다 고생 더 한 분들이 많다고요. 나는 그런 시간 있으면 요리 백과사전 같은 걸 하나 더 썼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그랬는데 딸들이 너무 설득을 하는 거예요. 종종 해주던 이야기를 그냥 묻어두긴 아까운 것 같다고요. 그런데 에세이라는 건 잘못하면 자기 자랑이 되고, 재미있게 꾸미다가 과장된 말도 하게 되고 그렇기 때문에 참 조심스러웠어요. 원고를 정리하면서도 삼분의 일은 전부 잘랐어요. 진실 외에는 넣을 필요가 없으니까요. 또 읽을 필요가 있어야지 자기 이야기를 쭉 하는 걸 누가 보겠어요? 이왕이면 의미를 느낄 수 있는 그런 책을 쓰고 싶었어요. 그러다보니 정작 멋지고, 재미있는 에피소드들이 빠지기도 했어요.(웃음) 그건 좀 아쉽고요.

 

저는 어른들의 이야기를 항상 좋아해요. 그 안에 역사가 있는 거잖아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대 같은 젊은이만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웃음)

 

무엇보다 선생님의 단단한 마음이 많은 깨달음을 줍니다. 많은 부분 어머니께서 물려주신 유산이에요.


어렸을 때 어머니께서 다듬이질 하셔서 반짝반짝하게 꿰맨 요를 깔고 잠자리에 누우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어요. 잠자기 전에 옛날 얘기를 해달라고 하면 『장화홍련전』부터 해서 엄청나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그러면서도 전쟁이 얼마나 무서운지, 우리 고유의 전통이 어떤 것인지, 옷은 어떻게 입어야 하는지, 식사 예절은 어떤 건지, 이런 얘기들을 늘 해주셨어요. 또 음식은 어떻게 하는 게 맛있는지도 모두 어머니께 배웠고요. 그런 이야기를 삼십 분 정도 해주면 내가 그러다가 잠이 들고 그랬죠. 그것을 우리 아이들에게도 똑같이 했어요. 아이들 어렸을 때 매일 오후 마당에 다과상을 차려놓고 아이들에게 오늘 어떻게 보냈는지 물어봐요. 십 분 씩 시간을 주는 거예요. 다 듣고 내 얘기를 해주었죠. 그때 인사하는 것부터 아이들을 가르쳤어요. 남을 대접하는 법을 가르치고요. 그래서 그런지 다들 잘 컸어요.

 

거듭 ‘마음을 담은 요리’라는 말이 나옵니다. 과연 ‘마음을 담은 요리’란 무엇일까요?


예를 들면 이런 거예요. 두부를 넣고 된장찌개를 해야 되겠다 싶을 때 그냥 두부를 넣으면 안 돼요. 두부가 무염인데다 간수까지 있어서 된장 맛을 없애버린다고요. 그러니까 두부를 따로 간을 한 물에 살짝 데쳐서 된장에 넣어요. 그렇게 되면 두부에 간이 들어가서 아주 감미로운 맛이 나요. 같은 된장인데도 오늘 우리 식구들이 된장찌개를 어떻게 먹을 것인가에 따라 달라져요. 이렇게 정성이 들어간 것을 ‘마음을 담은 요리’라고 부른 거예요. 아무거나 퍽퍽 집어넣어서 찌개를 하는 건 좋은 음식이 아니에요. 오장육부를 생각하고 여러 영양소를 생각해서 만들어야 하는 거죠. 보혈음식, 보음음식, 보양음식이 따로 있거든요? 음식 하나하나가 다 약재가 되기 때문에 보약을 짓듯 해야 해요. 배만 불리는 간단한 음식이 아니라 오장육부를 튼튼히 하는 음식이어야 해요. 그냥 음식이 되는 건 하나도 없어요.

 

간단히 끼니 때우고, 다시 영양제 먹는 젊은 세대를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많이 드시겠어요.


잡풀이라 할지라도 약재가 되는 거거든요. 엉겅퀴라는 게 있어요. 가시가 나고 잎사귀가 거칠거칠한, 사람들이 싫어하는 풀이 엉겅퀴예요. 하지만 그것도 최고의 약재로 쓰여요. 하늘이 주신 어떤 것도 버릴 게 없다는 거죠. 그걸 소홀하게 여기거나 다 만들어진 요리를 갖다가 끓이기만 해서 먹거나 그마저도 귀찮아서 외식을 하고, 그것마저 귀찮아서 만들어진 것을 입에 물고 다니고, 그러면 안 되죠. 건강하게 살 수가 없어요. 살면서 계속 자기 몸을 지켜야 하고 가족의 건강도 지켜야죠. 음식이 없는 행복은 있을 수가 없어요. 그것이 수반되어야만 행복이란 게 있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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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 것을 중심에

‘요리를 모르면 삶이 엉망이 된다’고도 하셨잖아요.


건강과 행복을 좌우한다는 점에서, 음식과 요리라는 노동 없이 삶을 이야기할 수가 없어요. 누구나 먹을 것을 중심에 놓고 살아야죠. 그러니 사랑하는 사람들과 항상 나눠 먹을 수 있는 음식을 미리 준비해야 하고요, 과일도 안 떨어지게 해두는 게 좋겠죠. 그러기 위해 일을 하는 거예요. 그만큼 음식이라는 게 인생에서 중요한 거예요. 그거 버리면 안 돼요.

 

세상이 변해도 지켜야 할 가치는 있다는 말씀을 계속 해주시는 것 같아요. 음식을 중심에 놓고 살아온 삶, 행복한 추억도 많으시겠죠?


큰딸이 학교에서 배워온 율동을 동생 셋한테 가르치는 거예요. 그러면 큰언니 따라 아이들이 율동을 막 해요. 나는 안에서 저녁을 준비하는 거죠. 아이들이 좋아하는 걸 이것저것 해서 상을 차리고 ‘밥 먹어라!’ 그러면 ‘와아, 밥이다!’ 그러면서 막 뛰어와요. 화장실에서 씻고 쫙 앉아서 맛있다고 먹고 그러는 거죠. 방학에는 음식을 가득 싸서 동해안을 돌아요. 이삿짐처럼 싣고 다니는 거죠. 그러다가 약수터가 있으면 거기가 우리 식당인 거예요. 대부분 음식을 안 사먹고 그렇게 해먹었어요. 저 멀리는 바다가 보이고 한상 차려서 먹는데 아이들이 잊을 수가 없는 거예요. 덕분에 아이들에게 추억이 많은 것 같아요.

 

영화 같은 장면이네요.


동해안 해변에서 수영을 하면요. 내가 모래를 넓게 높여요. 삽으로 파서요. 거기에 텐트를 쳐요. 그 앞에 모래를 또 올려요. 텐트는 방이고 여기는 부엌이에요. 부엌을 꼭 만든다고요.(웃음) 거기서 한쪽에 밥도 차리고, 찌개도 하고, 해물 데쳐서 초고추장에 찍어 먹을 것도 준비하고요. 그렇게 한 상을 차리는 거죠. 그러다 보면 근처에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 사람들을 두고 우리만 어떻게 먹어요? 그러니까 그들까지 다 오라고 해서 같이 먹는 거예요. 그 사람들이 우리 아이들보다 더 행복해해요. 그런데 그 사람들 먹일 때가 제일 행복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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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 최고의 음식


요즘은 워낙 요리에 관심이 많잖아요. 반가운 마음을 표현하신 한편으로 비판점도 생각하신 것 같더라고요. 어떠세요?


아침에도 남편과 이야기를 했어요. 우리가 자급자족할 정도로 농지를 더 개발해야 한다고요. 씨앗 종자도 잘 보관하고 겨울에도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기술을 정부 차원에서 보급해야 하고요. 나중에 곡물전쟁이 나거나 자원 때문에 문제가 생길 것 같다고 했는데요. 요리도 마찬가지로 우리 음식은 우리가 계속 개발을 해야 해요. 어느 병에 걸리면 한식 어떤 음식을 먹어야 한다, 간이 안 좋으면 한식점에 가서 간에 좋은 음식을 먹는다, 이렇게 되어야 하죠. 그러면 전 세계에 나가서 음식점을 해도 가능성이 있을 거예요. 그런데 나는 지금 나이를 너무 먹어서(웃음) 이런 걸 해볼 수가 없어요.


요즘 젊은이들은 전부 외국 음식을 연구해요. 나도 예전에는 양식, 중식, 일식을 다 가르쳤거든요. 그런데 그때는 한식을 제대로 하는 집이 한 집도 없었어요. 일식집이나 중식집도 다 잘 됐는데 한식은 제대로 된 식당 하나가 없었어요. 내가 다 내려놓고 한식만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이유가 내가 얼굴도 한국이고, 몸도 한국 사람이고, 머리도 한국인데 다른 나라 요리를 하면 안 되겠다 싶었던 거예요. 그렇게 내가 한식만 하니까 인기가 오히려 더 높아졌어요. 한식을 제대로 하면 아주 담백하고 건강한 최고의 음식이 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졌어요. 그런데 지금도 한식이 잘 안 팔린대요. 집에서 먹던 거니까 외식할 때는 다른 음식을 먹으려고 하는 거죠. 또 한식만 해서는 취직을 못해요. 외국에서 양식을 공부해서 와야 호텔에 취직도 할 수 있고요. 그런데 그건 잘못된 것 같아요. 한식을 제대로 하게 되면 전 세계에서도 돈을 많이 주고 데려갈 것이고, 조만간 그런 시대가 올 거라고 생각해요.

 

젊은 세대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씀이겠네요.

 
시대가 변했죠. 우리 젊은 세대들이 열두 가지씩 다들 한식을 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에요. 딱 김치찌개 하나만 맛있게 해도 그것이 하나의 자산이에요. 그것 하나로도 가족에게 사랑을 표현할 수 있고, 아이들이 추억을 만들 수 있고, 외국인에게 자랑스럽게 소개할 수도 있어요. 음식으로 두터워지는 관계가 얼마나 멋져요. 자기 나라 음식을 잘하면 그게 자산이죠. 딱 밑반찬 몇 가지만 할 줄 알아도 충분히 한식을 이어나갈 수 있어요.

 

‘요리를 직접 해야 한다’고 강조하신 이유군요. 그렇게 한식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면 한식이 세계의 음식으로 발돋움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거죠?


김영모 제과 명장과 참 친해요. 그이가 프랑스에 잘 가요. 교육도 하고요. 한 번은 프랑스에 다녀온 이야기를 하는데 프랑스에서 우리나라 음식을 전시를 했다는 거예요. 거기서 비빔밥을 했대요. 그게 돼지죽이지 비빔밥이 아니었대요. 원래 밥을 미리 비벼 놓으면 삭아서 맛이 없잖아요. 그걸 엄청난 그릇에 사람만 한 주걱으로 비벼서 지나가는 사람한테 한 그릇씩 줬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진짜 외국 나가서 그런 것 안 했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럴 바에 예쁘게 차려놓고 전시회처럼 하면 되잖아요. 한국 음식이 비빔밥만 있어요?(웃음) 불고기만 있느냐고요. 꼭 음식을 현지인들에게 먹이고 싶으면 떡이니 구절판 같은 걸 싸서 하나 씩 먹도록 할 수 있잖아요. 나는 그런 얘기를 들으면 너무 안타까워요. 한식이 얼마나 우아하고 품위 있고 입에 들어가면 감미로운 맛이 나는 음식인데요. 그러니까 이제 젊은 사람들이 그런 일들을 하면 되는 거예요.

 

한편 한정식집의 20첩 반상을 비판하기도 하셨잖아요. 일종의 허세라고요.


책에도 썼지만, 그렇게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리는 방식은 왕실에서도 잔치 때나 볼 수 있었을 거예요. 가짓수만 늘려 차려놓으면 먹는 사람도 음식에 집중을 못해요. 한식은 하나하나가 완결적이고 아름다워요. 그런 면은 코스 중심의 외국음식이 따라갈 수가 없어요. 기본적으로 젓갈, 장, 이런 조상들이 주신 유산을 가지고 그걸 토대로 음식을 하기 때문에요. 넘치지 않게, 정갈하게 꼭 필요한 요리만 올려서 맛의 어우러짐을 느끼게 하는 집이 좋은 한정식집이라고 생각해요. 얼마 전에 제자가 가게를 시작했다고 하더라고요. 한식 뷔페를 한대요. 맛있게 하면서도 가짓수를 많이 안 한다는 거예요. 맛있는 거 몇 가지만 하는 거죠. 장사가 너무 잘 된대요. 한식에도 방법은 많아요.

 

한 나라의 요리는 언어나 관습과 마찬가지로 그 나라 사람들의 정체성이라 말할 수 있지요. 요리 문화를 잃어버린다는 것은 정체성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고작 먹는 것 가지고 뭘 그렇게까지 생각하냐고 할 수도 있지만, 한국 사람들이 나물을 즐겨 먹고 국물을 좋아하고 김치 없이 밥을 못 먹고 된장, 간장, 젓갈 등의 발효 양념을 먹는 것은 우리의 역사와 기질, DNA와 다 연결됩니다.(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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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적으로 다 알아야


<옥수동 수제자>, <한식대첩> 등 활발한 방송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방송을 통해 보여주고 싶은 것, 전하고 싶은 것이 있으셨나요?


<한식대첩>에 대해서 다른 인터뷰에서 이런 얘기를 했는데요. 박사 학위를 따도 열 가지를 잘하는 박사가 하나도 없어요. 개미만 쳐다봐도 박사가 돼요. 음식도 마찬가지예요. 한식 전체를 해서 박사가 되는 경우가 없어요. 딱 조기 한 마리만 맛있게 하면 명인이 되는 거예요. 진짜 박사가 별로 없어요. 그런데 한식 명인이라 하면 적어도 식품에 관한 웬만한 것은 다 알아야 해요. 재료를 딱 잡았을 때 이 식품은 데쳐야 하는지, 생으로 무쳐야 하는지, 겉절이를 해야 하는지, 전을 부쳐야 하는지, 뭘 해야 제일 맛있는지를 아는 게 음식을 연구하는 사람이에요. 종합적으로 다 알아야 해요. 생선을 하나 잡았으면 그 생선을 어떻게 해놔야 생선의 최고의 맛을 느끼면서 먹을 수 있는지 알아야죠. 그러니까 음식을 한 가지만 한다고 해서 명인이라고 하기 어려운 거예요. 생선 명인, 회 명인이 우리나라에 다 있어요. 그런데 그가 <한식대첩> 세 번 만에 떨어지는 거예요. 회 치는 건 너무 잘하는데 다른 메뉴로 넘어가면 전혀 못하니까요. 다 알아야죠. 그래서 안타까운 경우도 많았어요. 그렇지만 한식이 그토록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음식이고, 그래서 끝없이 연구해야한다는 점을 느끼게 하고 싶어요. 일흔일곱이 된 저도 매일 같이 고민하고 연구하고 그래요. 후배 세대에도 그런 이들이 조금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많이 해요.
 
이 책을 통해 꼭 전하고 싶었던 말씀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마음을 다해서 끝까지 사랑을 해야 된다는 거예요. 음식은 사랑을 하지 않으면 안 돼요. 사랑은 사람을 춤추게 만들어요. 사랑을 하려면 자기희생이 필요하죠. 자기가 힘들고 고달파도 배우자를 사랑하니까 음식을 하겠다고 몸을 움직이게 돼요. 아이들을 너무 사랑하니까 이렇게 저렇게 맛있는 음식을 준비하게 되고요. 인류가 서로를 원망하다가 망하잖아요. 그러니까 사랑을 해야죠. 사랑하는 사람을 건강하게 살려놓아야죠. 서로 간에 믿음이 제일 중요하다는 말을 독자들에게 꼭 하고 싶어요. 그리고 그걸 보여주는 데 음식만한 것이 없고요.

 

올해로 내 나이 일흔일곱입니다. 길고 복잡해 보이지만 내가 살아온 인생은 몇 마디로 정리됩니다. 나는 늘 누군가를 위해 마음을 담아 요리를 하였고, 열심히 먹었고, 그리고 사랑했습니다. 남들은 요리 선생이다, 한식의 대가다, 거창하게 불러주지만 나에게 나라는 존재는 그냥 누군가를 위해 밥하는 사람, 요리를 통해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 대상이 가족에서 이웃으로, 친구에서 제자들로, 그리고 얼굴도 모르는 더 많은 사람들로, 점점 넓어진 것은 덤으로 얻은 축복입니다.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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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순, 고귀한 인생 한 그릇심영순 저 | 인플루엔셜
심영순의 《심영순, 고귀한 인생 한 그릇》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한식의 대가로, 명망가의 ‘요리 독선생’으로, 네 딸의 엄마로 살아온 심영순 원장의 77년 인생 내공을 담은 에세이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안병진 교수 “트럼프는 미국 공화당의 민낯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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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현장에 살고 있다는 감각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많은 영감을 준다. 뉴스는 역사적 사건이 되고 현상은 미래 전망이 된다. 연일 쏟아지는 미국 대선 후보들의 뉴스 안에서 시대정신을 읽는 것은 그러니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른다. 미국학을 전공한 경희사이버대 부총장 안병진 교수는 보다 생생한 시대정신을 읽기 위해, 이미 우리에게 닥친 ‘문명적 차원의 변화’를 직접 느끼기 위해 미국으로 갔다. 버니 샌더스와 도널드 트럼프의 유세 현장을 다녀왔고 “수십 년 간 알고 있던 교과서는 다시 쓰여져야 할 정도로 많이 변화되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학자의 시선에 포착된 이 변화의 정체는 무엇인가. 『미국의 주인이 바뀐다』는 단지 다음 미국 대통령이 누가 될 것인가에 대한 대답만은 아니다. 힐러리의 역사, 트럼프의 정체, 오바마의 희귀함 등을 통해 시대의 요구를 따졌다. 미래국가인 미국을 통해 인류가 어떠한 변화를 이루게 될지 여러 방향에서 짚어보았다. 안병진 교수는 “어떤 새로운 문명의 꿈을 이루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할 수 있는 누군가 또는 어떤 것이 주인이 될 것이라 예측한다. 이른바 ‘킨포크 세대’, ‘새천년 세대’의 새로운 문법에 집중하고 젊은 싱글 여성의 힘을 확인한다. 화석 경제 기반의 성장주의에 종언을 고하고 생태 시대의 도래를 이야기한다. 우리 앞에 놓인 선택의 갈림길에서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겠느냐고 묻는다. 지금 여기에 아주 중요한 질문이, 놓여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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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적 차원의 변화다


올해 초, 미국 대선 취재차 미국을 다녀오셨다고 들었습니다. 미국학자로서 직접 본 현장 풍경은 어땠나요?

올해가 안식년인데요. 마침 미국 대선이 있으니 현장을 목격하는 것이 의미 있겠다 싶어 갔어요. 제 전공이 미국정치거든요. 이번 현장을 보면서 미국이 굉장히 달라지고 있음을 생생히 느낄 수 있었던 거죠. 특히 아이오와(Iowa, 미국 중서부 위치)주에서 있던 버니 샌더스(Bernie Sanders)의 유세라든지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의 유세를 보면서 지금까지 수십 년 간 알고 있던 교과서는 다시 쓰여져야 할 정도로 많이 변화되었다는 느낌을 가졌어요. 

 

책에서 무엇보다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고 있거든요. 이에 더해 ‘제대로 된 질문이 필요’하다고도 적었고요. 엄청난 변화 앞에 선 지금, 반드시 해야 할 질문은 무엇인가요?


트럼프나 샌더스, 도저히 보통의 설명의 틀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이 현상이 도대체 어떤 지층 밑에서 무엇이 변하기에 이렇게 어마어마하게 벌어지고 있는가, 이런 질문이죠. 또 하나는 이렇게 극단적이 현상이 벌어지는 동시에 중도적인 사람에 불과한 오바마는 어떻게 레임덕도 없이 인기를 끌고 있는가, 하는 것이고요. 한 시대에 전혀 함께 조화될 수 없는 현상들이 이루어지는 이유가 도대체 뭘까, 이런 질문들을 던져야 하지 않을까 했어요. 그냥 이번 미국 대선에서 누가 이길까, 미국이 경제적으로 힘들어지니까 그런가, 이런 정도를 넘어선 질문이어야 한다는 거예요. 제대로 질문을 던지는 속에서 제대로 된 해답이 나올 수 있을 테니까요.

 

지금을 ‘세계사적 전환기’라고도 하셨잖아요. 그런 차원에서 본다면 말씀처럼 단순히 다음 미국 대통령이 누구냐, 하는 질문을 뛰어넘는 질문이 필요할 거예요.


흔히 대선 시즌에 민주당은 좀 더 정부 개입이 많아야 한다, 공화당은 시장에 맡겨야 한다, 이런 것을 가지고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요. 지금은 그것을 넘어서야 해요. 건국 초기부터 우리가 알았던 미국이라는 나라의 틀 즉, 경제, 정치, 문화 등 많은 부분에서 일어나는 급격한 변화와 징후들 속에서 대선을 바라봐야 한다는 거죠. 그 점에서 이제 ‘문명적 차원의 변화다’라고 얘기를 한 거예요. 이것은 우리나라 시민들한테도 납득될 수 있는 부분이죠. 옛날 같았으면 속된 말로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냐’고 했겠지만 알파고 사태가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우리나라 시민들에게도 뭔가 느낌이 있는 거죠. 그런 거대한 변화의 한복판에 지금 미국이 있다, 라는 게 제 책의 핵심이자 문제제기입니다.

 

대전환이라는 것이 하루아침에 일어나는 것은 아닌데요. 이와 같은 문명사적 전환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궁금하거든요.


1970년대 말에 더 이상 기존의 화석 경제에 기반한 성장주의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해졌었거든요. 우리가 흔히 아는 GDP라는 지수가 아니라 다른 형태로 한 사회의 발전을 측정하는 대안적 지표들이 그 당시 개발되기 시작했어요. 1978년만 하더라도 미국은 더 이상 기존 방식의 성장을 하지 않게 된 거죠. 당시 많은 환경 운동가들이나 로마 클럽(Club of Rome, 1968년 결성한 서유럽의 과학자, 경제학자, 교육자, 경영자 등으로 구성된 민간단체) 같은 세계적인 지성들은 성장의 한계를 인지했거든요. 그 경고에 대해 풀뿌리 차원에서는 여러 대안들이 있었어요. 2008년 이후 비로소 기존 미국식 모델이 망가졌다는 것이 극명해지니까 그때부터는 본격적인 이야기가 된 거예요. 1978년부터 씨앗이 싹텄다고 보면 되겠죠.

 

그런 담론이 정치에 스며들어 정치 구호가 되기까지는 시간이 참 오래 걸리네요.


힐러리 클린턴(Hillary Clinton)의 에피소드가 그것인데요. 1995년경 힐러리는 그런 ‘의미의 정치’와 같은 문제의식에 집중해보려고 했어요. 그러나 시대정신이 뒷받침을 못해준 거죠. 당시는 신자유주의, 시장의 자유, 정부의 축소, 이런 시대였으니까요. 생태니 환경이니 하는 것은 완전히 뜬구름 잡는 이야기처럼 들렸죠. 오바마가 운이 좋았던 건 그 점이에요. 이제는 기존의 모델로는 가능하지 않다는 반성이 일어나기 시작했던 것이거든요. 오바마 시기에는 각 도시에서 굉장히 새로운 실험들이 부흥을 했어요.

 

그만큼 정치가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 중 하나가 상상력이고요.


그럼요, 정치가의 핵심 덕목은 시대정신이거든요. 지금 시민들은 어떤 꿈을 가지고 있는가, 시민에게 어떤 새로운 문명의 꿈을 이루게 할 것인가, 이런 것인데요. 그 점에서 오바마는 그런 상상력, 시대정신에 대한 이해를 정확하게 가지고 있는 사람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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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와 감성 정치의 시대


오늘도 힐러리의 부자증세 공약 뉴스가 있었어요. 힐러리의 대선 승리를 아주 조심스럽게 점치기도 하셨죠. 한편 책에서는 힐러리를 조금 다른 관점에서 평가하고 있거든요. 불운하다고도 했는데, 어떤 의미인가요? 

 
미국이나 한국의 시민들은 아무래도 언론을 통해 정치가를 평가하게 되잖아요? 그러다보니 언론에서 본 힐러리의 모습, 차갑고 냉혹한 권력주의적인 모습으로 그를 인식하는 거죠. 하지만 그것은 수십 년 간 이어져온 미국 극우세력의 클린턴 가문에 대한 집중적 공격 영향이 커요. 그런 점에서 불행한 후보라고 한 거예요. 한편 힐러리는 현실 정치가이고 권력을 잡아야 꿈을 실현할 수 있기 때문에 현실 정치에 적응할 수밖에 없었죠. 국가 안보의 보수화, 금융 중심의 시장력 증가 등 당시의 시대정신에 적응해야 했어요. 1992년 남편 빌 클린턴(Bill Clinton)이 대통령에 당선된 후 임기 동안에도 어느 정도 성공적인 국정 운영을 했거든요. 원래 힐러리가 갖고 있던 원대한 꿈, 미래에 대한 비전은 현실 제도권에서 살아남는다는 목표에 좀 더 집중하다보니 보여줄 기회가 없었고요. 지금에 와서 힐러리는 양극화에 대한 책임론을 피할 수 없게 됐죠. 또한 오바마와 같은 영감을 잘 못 던지고 있고요. 그래서 사람들에게는 조금 지루해 보이고, 이런 이미지가 될 수밖에 없는데요. 그것을 극복하면, 다시 미국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원대한 꿈이나 가슴 설레게 할 것들을 회복한다면 힐러리는 대선에서 굉장히 쉽게 이길 수 있을 거예요.


시민들은 정치가를 평가하는 데 인색해요. 정치가가 놓인 어려운 조건을 균형 있게 봐야 하거든요. 그 점에서 힐러리는 우리가 고정 관념으로 갖고 있던 모습에서 벗어나 다시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힐러리 이야기가 나왔으니 트럼프 이야기도 바로 해야 할 것 같아요. 트럼프를 이질적인 존재가 아니라 공화당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는 후보라고 평가하셨잖아요.


그것이 한국에서 주목하지 못한 측면일 거예요. 굉장히 중요한 질문인데요. 한국에서는 트럼프는 갑자기 돌출적으로 나온 어떤 이단적인 사람이라고만 보는 것 같아요. 물론 그런 측면도 있지만 제가 책에서도 지적한 핵심은 이거예요. 트럼프는 공화당이 1995년 이후 본격적으로 보여준 극단적인 우경화의 발현이라는 거죠. 공화당은 이민 이슈나 동성애를 비롯한 사회적 이슈에 있어 극단적으로 말해왔거든요. 여성에 대해서 심지어는 강간이나 다른 불행한 사건으로 인한 낙태에 있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취한다거나 하는 식이었어요. 과거 온건했던 합리성의 공화당이 아니라 극단성의 흐름이 95년 이후 공화당을 지배하게 되는데요. 그 추세가 계속 진화되다보니 이제는 더 막말을 하고 더 극단화하는 후보를 수용할 수 있는 조건까지 가버린 거죠. 그 점에서 트럼프는 예외가 아니라 공화당이 95년 이후 추구해온 노선의 완성판이다, 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양극화가 심해지고 삶이 어려워지면서 훨씬 더 공격적인 언사가 수용되는 거잖아요. 차마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트럼프는 할 수 있게 된 거죠. 이런 변화가 시사하는 점이 굉장히 많아요.


공화당이 강경보수로 진화해나간 정점에 바로 트럼프가 있는 건데요. 그간 보수든 진보든 기존 제도권 정치는 소위 말하는 ‘아웃사이더’들을 외면하는 모습이었어요. 바로 이 ‘아웃사이더’들이 샌더스를 통하든 트럼프를 통하든 분노라는 것을 여과 없이 표출할 수 있었죠. 이들은 그런 감정적인 정치가에게 아무래도 쏠려갈 수밖에 없었어요. 한국에서 성남의 이재명 시장이 그렇게 인기를 끄는 것도 비슷한 원리인 거죠. 지금 시대는 전 세계적으로 합리주의, 지성주의, 타협이라는 것의 미덕을 믿는 정치의 시대가 아니에요. 그야말로 극단주의, 분노와 감성의 정치, 타협보다는 전투성을 믿는 시대로 전 세계가 진입한 거죠.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기존 어느 엘리트도 풀지 못한 문제에 대한 반응인 거예요. 결국 ‘아메리칸 드림’은 무너졌으니까요. 한국의 ‘코리아 드림’이 무너진 것처럼요.

 

세계적인 현상이라면 더욱 무게감이 큰데요. 분노와 감성의 정치라는 게 밝은 면보다 어두운 면이 더 많잖아요. 사회가 후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길게 보면 역사라는 건 더 좋은 문명으로 나아간다고 보고요. 세계화의 과정에서 지나치게 엘리트주의로 가다보니까 그에 대한 반작용이 일어나는 건데요. 그러나 이 반작용을 거치면서 기존 엘리트들은 반성하게 되고, 조금 더 변화된 모습을 보이게 될 거예요. 다만 힐러리 시대의 변화된 모습이라는 건 그렇게까지 약한 자들에게 인간적인 사회이진 않을 것 같아요. 좀 더 세련된 기업의 지배라고 할까요? 그런 방향으로 갈 것 같은데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 조건보다는 조금씩 역사가 진화해 나가겠죠.


예를 들어 지금 미국에서 기본 소득이라는 것이 화두가 되고, 최저임금 15달러를 힐러리 진영이 받아들였다는 것, 이것은 엄청난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거예요. 기존 힐러리 진영 같은 중도적인 사람들은 한 시간에 15달러라는 그런 엄청난 임금 상승은 거의 상상할 수도 없었어요. 그런 점에서는 진화죠. 다른 한편으로 보면 그렇다고 해서 다수 약자들의 삶의 질이 월등하게 나아질 수 있을까요? 어쩌면 기업들이 베푸는 혜택, 보다 많은 드라마를 보고, 보다 많은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하고, 이런 것 속에서 어쩌면 더 많은 인간 소외가 벌어질 수도 있을 거예요. 어쨌든 이 과정도 길게 보면 다시 극복할 계기가 발견되지 않을까 해요. 저는 길게 보면 낙관적, 짧게 보면 굉장히 비관적이에요. 짧게 2050년에서 2070년 정도까지는 비관적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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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천년 세대의 엄청난 가능성


잡지 <킨포크>나 싱글여성들이 미국 진보주의의 약진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진단도 했어요.


한국 사회도 몇 년 전부터 쿨한 카페 같은 곳에 가면 당연히 <킨포크> 같은 게 꽂혀 있죠. 우리 젊은이들한테도 그것이 크게 어필해요. 요즘에는 여행을 위해 애써 돈을 모으고 하는 어려운 조건인데도 돈의 70%를 포틀랜드 에이스 호텔 같은 데서 쓰는 젊은이들이 있어요. 저희 세대, 소위 486세대와는 문화적 감수성이 완전히 다른 겁니다. <킨포크>라는 잡지가 상징하는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 우정이나 돈, 요리에 대한 태도처럼 모든 삶의 태도에 있어서 이전 세대와는 다른 라이프 스타일이에요. 정치라는 건 삶의 태도, 스타일의 문제거든요. 이런 점에서 이것은 정치의 문법을 완전히 바꾸는 거죠. 오늘날 캘리포니아 등에 있는 리버럴 정치인들은 탄소세나 GMO문제, 이런 것을 의제로 삼거든요. 지금 젊은 세대들, 특히 그 중심에서 여성들의 힘은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거예요. 미국도, 한국도 이 세대들에게 어필할 수 있는 정치가가 나타난다면 이 정치가는 굉장한 힘을 얻을 겁니다.

 

전혀 다른 시대정신을 가진 정치가가 필요하다는 거군요.


지난 번 ‘안철수 현상’때 안철수가 그런 것을 약간 보여줬어요. 그러나 이 사람은 킨포크적 정치관과는 다르죠. 어떤 의미에서는 20세기적 정치인이에요. 어쨌든 그런 점에서 한국도 가능성이 있고요. 일단은 미국이 먼저 이런 굉장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겁니다. 미국은 언제나 미래국가라서 항상 먼저 보여주는 경향이 있거든요. 그것을 우리가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으니까요.

 

미국을 중심으로 다뤘지만 뒤에 수록한 보론에서는 한국 상황도 같은 맥락에서 진단을 했거든요. 지난 4월의 총선 결과나 필리버스터 정국 등을 언급하면서 ‘새천년 세대’의 가능성을 이야기했죠.


미국의 킨포크 세대, 한국의 새천년 세대들은 ‘꼰대스러움’을 굉장히 못 참아요. 일단 아무리 내용이 좋아도 매력적이어야 하고요. 문화적 문법이 완전히 달라요. 이 세대들은 현 정부의 정치나 꼰대스러움을 싫어하죠. 현 정부뿐 아니라 우리 세대처럼 민주화 운동을 했던 세대들도 썩 달가워하지 않거든요. 민주화 세대도 가르치려고 하면서 정작 자기들의 이익이 걸린 것은 유지하려고 하니까요. 새천년 세대와 연대하려는 척 하다가 진짜 중요한 회의에 자기들만 들어가고(웃음) 이런 거죠. 상대적이지만 그것도 기득권인 거예요. 그런데 이번 총선에서 보여줬듯이 새천년 세대가 더 이상 잠자는 거인으로만 있는 것이 아니거든요. 이제 이들은 자기 목소리를 내려고 해요. 필리버스터를 해보면서 일부지만 우리가 정치에 목소리를 낼 수가 있구나, 하는 경험을 한 거죠. 사람은 이런 정치적 경험을 통해 성장합니다. 이런 경험이 앞으로 굉장히 긍정적으로 작용할 거라고 생각해요. 차기 대선 혹은 그 대선 이후에 굉장히 좋은 한국 사회의 변화 동력이 될 거예요. 단, 중요한 건 미국과 달리 안타깝게도 저희 세대의 연합군이 너무 적어요.

 

힘을 실어줄 지원군이 필요한데 말이죠.


오바마가 나왔을 때 케네디 가문이나 기존의 엘리트 중에서 조금 더 좋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그를 밀어주고, 연합하고 그랬어요. 그런데 한국은, 글쎄요. 잘 없죠. 왜냐하면 저희 세대 같은 경우도 이미 세상의 변화에 적응해버렸거든요. 끊임없이 자기를 변화시키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노력이 필요해요. 살아있기 때문에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40대에 이미 꼰대가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니까 이들 세대가 젊은 세대에 잘 연합해주지는 못하는 거죠. 젊은 세대는 인구학적으로도 불리하거든요. 자본도 불리하죠. 한국에 실리콘밸리 같은 게 있다면 ‘486 세대 필요 없어’ 하겠죠. 물적 토대가 있으니까요. 그런데 그게 아니잖아요. 한 번 실패하면 그대로 끝이고요. 여러 가지가 불리하죠. 다만 한국은 미국이 따라올 수 없는 무서운 역동성이 있으니까요. 희망이 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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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존망이 걸린 문제


이 책은 미국이라는 시험지를 통해 점쳐본 인류의 ‘빅퓨쳐’로 읽혔어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야심차게는 감히 이 책은 서론 정도이고, 이후에 문명에 대해서 한 번 다뤄보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어요. 제 수준에서 이해할 수 없는, 문명에 대한 굉장한 석학들의 관점을 나름대로 한 번 이해하려고 했던 거예요.(웃음) 말씀하신 것처럼 이 책은 단지 미국이 백인 보수주의 중심에서 히스패닉 중심으로 바뀐다는 정도의 이야기가 아니고요. 제가 감당할 수 없는 이야기까지 포함된 거죠. 2070~2080년 이후, 문명 자체가 완전히 생태적인 문명으로 가느냐, 아니면 여전히 기업에 지배되는 <블레이드 러너>나 <매트릭스>의 세상이 되느냐 하는, 그야말로 인류의 존망이 걸린 문제가 이미 우리에게 닥쳐있다고 하는 엄청난 얘기예요. 세계적인 대가들이 그런 이야기를 지금 심각하게 하고 있거든요. 스티븐 호킹, 재러드 다이아몬드 같은 사람들이 그렇게 말하고 있어요. 인류가 천 년 이내에 지구를 떠나야 한다는 스티븐 호킹의 말을 들은 재러드 다이아몬드가 인류에게는 단지 50년 남았을 뿐이라고 말했잖아요. 그런 굉장한 상황이죠. 저는 거창하게는 생태라고 하는 어마어마한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그 속에서 새로운 주체가 생겨야 한다, 새로운 주인, 완전히 다른 사유 구조와 다른 철학, 다른 정치관, 다른 삶의 태도를 가지는 새로운 주인들이 형성되어야 한다는 이야기죠. 지금은 그런 고민이 본격화되어야 하는 상황이에요. 

 

생태 문명 그리고 우주와의 공존의 미래냐, 아니면 또 다른 우주 제국주의의 미래냐 하는 갈림길에서 우리가 선택해야 한다”는 말이 핵심이겠죠. 인류가 전자를 선택해야 하는 것은 자명할 텐데요. 지금 이런 선택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것은 무엇이라고 보고 계세요?

 

새로운 세계관, 새로운 사유에 대한 상상력과 감수성이 결여된 것이 가장 큰 걸림돌이겠죠. 결국은 내부의 의식에 혁명이 일어나야 그 속에서 변화를 상상할 텐데요. 지금 정치나 시민사회가 내면세계부터 처절하게 지금껏 살아온 방식을 반성하고 새로운 삶의 태도를 견지하고자 해야 해요. 이런 용기 있는 태도가 사실은 부족하죠. 모든 건 결국 철학에서부터 시작하잖아요. 흔히 정치가 왜 무너졌는가에 대해 개헌이 필요하다, 이런 이야기들을 하는데요. 근원적으로 가면 문제는 세계관과 철학이에요. 사고의 문법 자체가 어떻게 새로운 문명적 사고가 내면화되는가, 이것이 중요하죠. 그런데 지금 한국의 교육, 정치가들의 수사학의 수준이 그런 게 아니죠. 아주 심각한 문제예요.

 

칼럼 등 다양한 방법으로 그런 문제제기를 해오셨잖아요. 그런데도 변화는 더디기만 해요. 이런 현실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세요?


좌절감이 크죠. 우리 세대에도 새로운 사고를 꿈꾸는 사람들이 너무 적어요.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너무 적죠. 압축 성장 과정에서 민주화 운동을 했던 우리들도 단지 군사 독재에 반대했던 것이지 로마 클럽처럼 성장의 한계를 고민하고 이런 사람들은 극소수였던 것이죠. 어떻게 보면 우리도 기존 근대 문명 틀 속에서 사고를 했던 거고요. 지금은 그것을 반성하고, 새롭게 나아가야 해요. 그런데 워낙 끊임없이 변화해 나가는 능력이 부족하다보니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어느 순간 꼰대가 된 거죠. 새로운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워낙 적으니까 정치가들도 계속 퇴행적인 모습만 보이는 거고요. 그런 면에서는 비관적이죠. 다음 대선에서 누가 됐든 크게 바뀔 것 같진 않아요. 최소한의 시민교육도 하지 않는 사회에서 대안적인 고민이 나온다? 저는 의문이에요. 한국은 혁명적 수준의 변화가 있어야 해요. 특히 교육은 그렇죠.

 

대학이라는 공간의 기업화와 그것을 내면화한 학생들의 풍경도 종종 이야기되곤 해요. 새천년 세대에 기대를 말씀하기도 하셨지만 이런 장면을 보면 한편으로는 불안감이 드는 거예요.


새천년 세대는 태어나면서부터 스마트폰을 클릭하고 세계와 연결된다는 점에서 굉장히 가능성이 있는데요. 그러나 지적하신 것처럼 시민이 무엇인가 라는 것에 대한 교육을 한 번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없는 상황이죠. 게다가 생존의 조건은 더 어렵게 몰린 상황이고요. 기본소득은 앞으로 한국 사회에서도 큰 화두가 될 텐데요. 기본소득을 내걸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말라’라는 구호를 떠올릴지 모르죠. 그것은 시민으로서 응당 우리가 누려야 할 권리인데 그렇게 생각을 확장하지 못한 거죠. 그런 부분이 아직 한국 사회에는 조금 일천한 거죠. 그건 사실이에요. 대북 문제도 그런데요. 젊은 청년들이 이 문제에 점점 보수화된다고 하더라고요. 그것 역시 시민교육과 연관된 이슈기도 해요. 남과 북의 관계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질문을 던져보거나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없으니까요. 이것은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와 같은 문제에도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 같아요. 결국은 모든 게 다 시민으로서의 비판적 질문을 던져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거예요. 그렇게 되면 저의 이야기에 대해서도 ‘그것은 그렇지 않다’고 비판할 수 있겠죠.

 

본소득이 한국 사회에도 더 큰 화두가 될까요?


지난 경제민주화 이슈 이후에도 한국 사회는 ‘헬조선’이
라는 말처럼 더욱 디스토피아에 가깝게 가고 있죠. 한국 보수들은 시대정신에 대한 포착력이 뛰어나요. 훨씬 더 많은 자본으로 조사하고 하니까요. 내년 대선에서 한국의 보수들이 이기기 쉽지 않은 조건이거든요. 지난 총선 결과도 있고, 젊은이들도 많이 깨어났잖아요. 그리고 현 정부가 여러 문제를 많이 일으켰고요. 이런 상황에서 지난번에 경제민주화로 판을 뒤집었듯이 이번에는 두 가지로 판을 뒤집을 수가 있겠죠. 하나가 사드, 또 하나가 기존 경제민주화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수준의 의제, 기본소득 같은 거예요. 제가 만약 여당의 유력 후보라면 이 문제를 나의 핵심 의제로 삼을 거예요. 지난 대선 때 당시 박근혜 후보가 기초노령연금으로 이슈 선점을 한 것처럼요. 이미 시대가 그렇게 가고 있어요. 미국의 유명한 IT업계의 CEO가 진보적이라서 이런 이야기를 하겠어요? 아니거든요. 시대의 핵심 정신인 거죠. 기본소득은 내년 대선의 굉장한 의제가 되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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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주인이 바뀐다안병진 저 | 메디치미디어
2016년 대선을 앞두고 미국 정치는 주목을 받고 있다. 변화를 요구하는 샌더스 열풍이 아래로부터 불었고, 트럼프가 공화당의 대선 후보가 되었다. 대선에서 드러나는 정치 지형의 변동, 주도 세력의 변화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미국의 주인이 바뀐다』는 큰 흐름을 읽는 법을 제시해 미국 정치와 대선의 관전 포인트가 될 정치 해설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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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으로서의 번역가 ③] 권일영 “번역을 하면서 계속 뭔가를 적어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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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가 매달 한 명의 번역가를 만나, 이 시대에 번역가로 산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세번째 주인공은 권일영 번역가입니다.

 

일본 미스터리를 접할 때 반드시 듣게 되는 이름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일본 추리소설의 아버지’, 혹은 ‘대란포(大亂步)’라고 불리는 에도가와 란포다. ‘에드거 앨런 포’의 이름에서 착안한 필명 ‘에도가와 란포’로 평생을 추리문학에 헌신했던 그는 실로 다양한 작품을 대거 발표, 일본 문학계는 물론 사회적으로도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 명실공히 국민 작가가 되었다.

 

검은숲에서 출간되는 ‘에도가와 란포 결정판 시리즈’는 고분샤판 『에도가와 란포 전집』을 정식 계약하여, 란포 문학의 정수라고 할 수 있는 핵심작품을 중심으로 재기획한 것이다. 완성도가 높으면서도 문학사적으로도 가치 있는 작품들 중 그동안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던 장편소설과, 작가 및 평론가, 한일 독자들이 손꼽는 최고의 단편소설을 포함한 총 4편을 엄선했다. 일본 추리소설 권위자이자 전문번역가 권일영의 충실한 번역과 풍부한 주석으로 내실에 힘을 쏟았으며, 초판 한정으로 누드제본과 단권용 케이스를 제작, 외향적으로는 현대적인 고전미를 살렸다.

 

번역가 권일영은 동국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여성중앙〉, <소년중앙> 등에서 기자로 일하다 전업 번역자로 일하고 있다. 1987년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무라타 기요코의 『남비속』을 우리말로 옮기며 번역을 시작, 일본어와 영어로 된 소설을 번역했다. 옮긴 책으로는 모리미 도미히코의 『유정천 가족』, 마키메 마나부의 『사슴남자』, 아야츠지 유키토의 『미로관의 살인』과 『암흑관의 살인』, 가이도 다케루의 『바티스타 수술 팀의 영광』을 비롯한 다구치-시라토리 시리즈, 아비코 다케마루의 『살육에 이르는 병』『탐정영화』, 기리노 나쓰오의 『다크』『IN』 등이 있다. 또 미야베 미유키, 오리하라 이치의 작품과 에이드리언 코난 도일과존 딕슨 카가 함께 지은 『셜록 홈즈 미공개 사건집』을 우리말로 옮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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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리지 말아야 한다’고 중얼거린다

 

출판사에서 의뢰 받은 작품 외에도 스스로 기획, 출판사에 출간 제안한 작품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기준으로 작품을 선정하시고, 또 출판사를 설득하시는지요?

 

다른 분들은 어떻게 작업하는지 몰라 제가 기획이나 제안이 많은 편인지 모릅니다. 편집자와 대화할 때 그간 읽은, 혹은 읽는 중인 책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하는 편이기는 합니다. 제 경우 기준의 세부 항목은 복잡하지만 간단하게 ‘이 정도 작품이면 출판사가 손해를 볼 일은 없겠다’는 판단이 서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주 멋진 판매 결과를 보여줄 작품을 골라낼 재주는 없어도 ‘이건 아니다’라는 정도는 알아볼 수 있다고 믿습니다.

 

출판사를 직접 설득하는 일은 드뭅니다. 대부분 편집자가 설득하죠. 저는 편집자가 회사를 설득하도록 자료와 논리를 제공합니다. 제가 편집자를 설득하는 과정이 편집자가 회사를 설득하는 과정의 시뮬레이션이라고 여깁니다. 그리고 최대한 자세하게 스토리를 알려드립니다. 기획회의에서 상사나 관련 부서를 설득하려면 무엇보다 줄거리를 제대로 파악해야 한다고 생각하죠. 물론 이렇게 제안해 출간된 소설 가운데는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 작품도 있지만 편집자와 출판사에 미안할 만큼 초라한 결과를 얻은 경우도 있습니다. 그 이유야 어떻든.

 

『에도가와 란포 결정판』역시 번역뿐만 아니라 기획에도 적극 참여하셨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미 모든 단편이 국내 출간된 란포를 다시 소개하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사연이 좀 깁니다. 제가 에도가와 란포의 작품을 처음 접한 때는 1980년대 중반입니다. 1985년이나 1986년으로 기억하는 춥지도 덥지도 않던 어느 날 동아일보사, 한국일보사 등에서 기자 생활을 하던 선배 오현리(현 한국추리작가협회 회원) 작가와 명동 프린스호텔 앞 어느 중국집에서 식사를 하다가 ‘에도가와 란포의 단편소설을 읽어보라’는 권유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당시 명동의 중국대사관(지금의 대만대사관) 앞에 있는 일본서적 전문서점에서 단편집을 구해 읽었던 게 란포 읽기의 시작입니다. 그리고 여러 해 흘러 일본 고분샤 문고판 전집이 나오기 시작했고 배본될 때마다 광화문 교보문고에 들어왔는데, 그걸 구입해 작품 목록을 정리하면서 읽었습니다.

 

맨 처음 출판사 편집자에게 이 시리즈 형태의 기획을 넌지시 제안한 때는 10년쯤 전입니다. 그분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주셨기 때문에 기획에 필요한 자료 수집에 들어갔고, 전집 가운데 읽지 못했던 작품을 더 부지런히 읽고 어떤 소설은 번역하면서 읽었습니다. 그렇게 준비하던 중에 그분의 소속사가 바뀌었고, 마침 다른 환경도 여의치 않아 읽기와 번역을 제외한 준비는 중단 상태였죠. 그러다가 전부터 알고 지내던 지금 이 시리즈의 담당 편집자가 2009년에 시공사로 오면서 탐색하기 시작했고 조금씩 논의했습니다. 그리고 2013년 12월에 제가 기획용 문서를 처음 보내면서 편집자와 번역자의 공동 기획 작업이 시작되었죠.

 

이 시리즈의 초기 기획 단계에는 독자들이 구입할 수 있는 란포의 소설이 동서문화사가 발행한 작품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두드림에서 2008년~2009년 사이에 전단편집 3권이 나왔죠. 두드림 대표님을 이때 처음 만나 뵈었습니다. 시공사와 진행한 기획 초기에는 전단편집이 시중에 판매되는 상황을 전제로 했기 때문에 제 머릿속 구상은 지금의 『에도가와 란포 결정판』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그런 준비를 진행하던 어느 날 두드림 대표님께서 전화를 주셨습니다. 일본 측에서 판권을 회수해갔으니 전단편집은 절판될 텐데 당신이 알아보고 란포의 작품들을 새로 출간해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기획을 다시 조정해 2013년 말에 일본 측과 접촉을 시작했고, 2014년 1월에 지금과 같은 상태의 기본 틀이 만들어졌습니다.

 

600쪽이 훌쩍 넘는 『에도가와 란포 결정판』1, 2권을 연이어 번역하셨습니다. 역주 내 화보와 상세한 설명이 눈에 띄던데요. 이 작품을 번역하시면서 특히 신경 쓰신 점은 무엇인지요.


오래된 소설이라 역주가 없으면 대충 얼버무리고 넘어가거나 문장을 빼먹지 않고서는 번역으로 해결할 수 없는 부분들이 자주 나옵니다. 그래서 필요하다고 느끼는 부분마다 역주를 답니다. 채택은 담당 편집자의 권한이고요. 때론 편집부에서 역주를 추가해달라는 요청이 오기도 합니다.


다른 작품을 번역할 때도 마찬가지인데, 작업할 때 가장 두려운 점은 오역이죠. 많이 틀릴까봐 두렵습니다. 항상 ‘틀리지 말아야 한다’고 중얼거리는 편입니다. 모르면 틀린 줄도 모르니 평소 공부를 하지 않으면 큰일이죠.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다시 확인하고, 도움을 주시는 분에게, 또는 저 스스로에게 다시 묻습니다. 그래도 늘 불안하고 그런 불안감은 항상 결과로 증명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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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 미야베 미유키, 기리노 나쓰오, 가이도 다케루, 하라 료, 그리고 최근의 에도가와 란포까지. 한 작가의 작품을 꾸준히 번역하고 계신데요, 번역하기에 어떤 작가의 작품이 가장 까다롭고, 반대로 가장 수월하셨나요.


까다로운 면도 있고 수월한 부분도 있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들은 번역하기 쉬운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술술 읽히는 작품들이라 그런 속도와 리듬감을 죽이지 않기 위한 우리말 어휘 선택을 고민하게 됩니다. 미야베 미유키의 도도한 수다는 듣기 즐겁지만 호흡을 놓치지 않고 따라가기 간단치 않았습니다. 가이도 다케루는 수많은 언어유희와 농담, 야유, 속담, 비유가 난무합니다. 그래서 뉘앙스 전달에 늘 애를 먹었습니다. 게다가 다작이고 다른 시리즈끼리도 연결되는 작품이 많아 번역하는 소설 이외의 작품을 참고로 읽지 않고는 작업하기 어려운 때가 종종 있습니다. 전체 과정은 즐겁지만 번역 작업으로만 따지면 무척 까다로운 작가인 셈입니다. 하라 료는 사실 힘든 부분마저 즐겁게 작업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스스로 지나치게 등장인물들에 몰입되는 게 아닌지 늘 경계합니다. 기회가 주어지면 하라 료의 작품들은 전체적으로 번역 개정판을 만들고 싶습니다. 아비코 다케루의 『살육에 이르는 병』번역 개정판이 나왔듯. 담당 편집자에게 그런 뜻을 이미 전했는데 제 바람이 이루어지면 좋겠군요.

 

번역가의 입장에서 가장 좋아하는 작가, 혹은 작품을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좋아하는 작품은 아주 많죠. 거의 대부분이라면 말이 안 되겠지만 ‘가장’ 좋아하는 작가와 작품을 꼽기는 어렵네요. 굳이 표현하자면 항상 지금 읽고 있는 작가와 작품을 가장 좋아합니다. 그 다음으로 지금 번역하고 있는 작가와 작품을 좋아하고요. 작가 성향으로 따지면 풍부한 상상력을 보여주는 작품들을 좋아합니다. 예를 들면 저는 미나가와 히로코의 작품에서 다른 독자들보다 더 재미를 느끼는 모양입니다. 아직 읽지 못한 작품이 여러 편이라 다행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또 작품 스타일과 특성상 우리나라 독자들이 수월하게 읽기 힘들겠지만 사토 아키의 모든 작품들에서 매력을 느낍니다. 판매에 자신 있는 출판사가 검토해보시기 바랍니다. 문학이 뭔지도 모르는 주제에 이 두 분의 작품을 읽고 나면 ‘모름지기 소설이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역사소설도 즐겨 읽습니다. 앞으로 재미있는 역사소설도 소개하고 싶은 욕심이 있습니다.

 

번역되었는데 큰 관심을 받지 못한 아까운 작품 좀 들이밀겠습니다. 미사키 아키의 『사라진 도시』와 심포 유이치의 『아직 필름이 남아 있을 때』 (『스트로보』를 개제). 사라지기 전에 도서관에서 빌려서라도 읽어주십시오. 미사키 아키는 꾸준히 지켜보며 더 작업해보고 싶은 작가입니다. 그 밖에도 좋은 작가와 작품은 동서양 가리지 않고 너무 많아 이 질문에는 답변하지 않았어야 옳다는 생각이 드네요. 아, 물론 답변을 하지 않았더라도 다카무라 가오루, 기리노 나쓰오 같은 작가의 이름은 반드시 꼽아두었을 겁니다.

 

소위 하드보일드한 작품을 많이 번역하셨습니다. 여성 작가인 기리노 나쓰오의 문체도 건조한 편이고요. 이런 작품들을 주로 번역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평소 장르를 거의 인식하지 못합니다. 구분에 관심도 없죠. 그래도 쓰이는 명칭에 따라 이야기하자면 본격 추리도 좋아하고 사회파 미스터리도 좋아합니다. 하세 세이슈나 혼다 데쓰야 같은 느와르도 즐겨 읽습니다. 번역되기 어렵겠지만 『짐승의 성』 같은 끔찍한 작품도 재미있게 읽죠. 하지만 가만히 생각하면 그 가운데 하드보일드를 더 좋아하는 모양입니다. 제 품성이 건조해서 현련하게 나불대는 말과 글은 본능적으로 혐오합니다.

김봉석 평론가가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에서 이야기한 ‘하드보일드는 일종의 스타일이며 애티튜드’라는 표현에 공감합니다. 그런 의미에서-젊은 분들은 좀 고루하다고 느낄지 모를-하라 료의 사와자키 탐정이 보여주는 ‘스타일과 애티튜드’에 경의를 표합니다. 내 현실은 비록 이리 구차해도 마음은 사와자키처럼 살고 싶습니다. 일본 작가만 따지면 기리노 나쓰오의 작품도 더 읽고 작업하고 싶고, 하라 료의 작품이 일본에서 여러 권 더 나오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리고 아직 소개되지 않은 몇몇 일본 하드보일드 작가들도 선보일 수 있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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뉘앙스를 감지한 독자를 만날 때

 

주로 장르문학을 번역하셨는데요. 독자로서는 어떤 작가나 작풍을 즐겨 읽으시는지요. 최근 재밌게 읽으셨던 작품이 있다면 추천 부탁 드립니다.

 

저는 장르 구분에 관심이 없습니다. 결과적으로 보아 장르라고 불리는 쪽을 다른 분들보다 더 읽을 뿐이겠죠. 공책이나 메모에는 ‘논픽션과 픽션’으로만 나눕니다. 요즘 독자로서 읽는 책은 논픽션이 50~60%입니다. 픽션 부분만 장르를 구분하면 60~70%쯤이 미스터리와 과학소설, 환상소설일 겁니다. 물론 이 안에서도 미스터리 비중이 절대적이고요. 나머지는 이른바 순문학과 고전문학입니다. 고전문학 독서가 부족하다는 생각에 꾸준히 읽고 싶었지만 회사에 다닐 때는 뜻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번역을 업으로 하면서 고전을 읽지 않고는 도저히 버틸 수 없어 가까이 두고 더 자주 들추려고 애쓰는 편입니다. 이쪽 독서를 통해서 뭔가 결과물을 만들고 싶어 궁리 중입니다. 최근 읽은 더 재밌는 작품도 많지만 뻔뻔해도 제가 작업한 소설을 꼽겠습니다. 하마나카 아키의 『로스트 케어』, 데뷔작으로는 꽤 성공적인 소설입니다. 이 작가의 두 번째 작품인 『침묵의 절규』도 함께 읽으면 더 재미있을 겁니다.

 

국내에 꼭 소개되었으면 하는 작가나 작품이 있을까요?


출판사 사장님이 던지는 질문 같습니다. 그렇게 여기고 답변하겠습니다. 많습니다. 아주 많죠. 일본뿐 아니라 여러 나라 작품들이. ‘낼 책이 없다’는 말씀은 그냥 투정 아닐까요? 좋은 책, 재미있는 책은 많습니다. 그게 보이지 않거나, 또는 ‘팔 자신이 없다’는 이야기로 들립니다. 어떤 작품이 낼 만한 소설인지는 함께 일하는 직원에게 물어보는 것이 가장 좋겠죠. 그분은 급여를 받으니 답변할 의무가 있고 자기 회사이니 저보다 좋은 답변을 하실 겁니다. ‘꼭 소개되었으면’ 하는 제 목록은 비록 내용이 초라하더라도 비용이 지불될 때 공개하고 싶군요.
 
기자 생활을 그만두고 번역가가 된 이유와 계기가 궁금합니다.


기사를 쓰는 일은 거슬러 올라가면 고등학교 때 학교 신문, 대학 때 학보사 시절부터 했던 일입니다. 뭐랄까, 경제학과를 나왔지만 동북아 경제사라는 생계에 도움이 되지 않을 분야에 관심이 있었고, 다른 재주도 없으니 해본 짓 쪽으로 풀린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때 같은 반 친구 가운데 기자가 된 이들이 몇 있습니다. 그들과 무척 친했죠. 그리고 대학 학보사 시절에도 주로 만난 이들이 이 분야 사람들이었습니다. 학보사 선배, 동기들도 대개 언론사에 취업했고요. 학보사에 같은 해에 취재기자로 들어간 동기 남학생은 세 명인데 사회에 나와 모두 이쪽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직장 선택은 오솔길을 따라 걷다 보니 그 세상으로 들어선 느낌입니다. 선택 가능한 다른 직업이 있었다고 해도 아마 그 길을 갔을 테지만요.

 

오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이유는 다른 직종 종사자들과 다를 바 없습니다. 회사라는 큰 배를 타고 마냥 실려 가다가는 내가 원하지 않는 세상으로 갈 것 같아 내렸습니다. 배의 방향을 바꿀 능력이 제겐 없었죠. 지금 돌이켜봐도 그때 잘 내렸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다니던 회사에 쏟아지는 비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지만, 제게는 고마운 회사였고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난 곳이라 사람들에 대한 애틋한 마음은 그대로입니다.

 

번역을 하게 된 계기도 크게 다르지 않네요. 뚜렷한 전기가 없습니다. 처음 금전적인 대가를 받고 ‘야매’로 번역을 시작한 때는 대학시절이라고 해야 할 1980년대 초반입니다. 그리고 제 이름이 처음 번역자로 찍혀 나온 소설은 1987년 아쿠타가와 상 수상작입니다. 지금은 사라진 <소설문학>이라는 월간지에 2회에 걸쳐 실렸죠. 원래 소설가 이호철 선생님이 늘 하시던 번역인데 그때 갑자기 잡혀가시는 바람에 일이 제게 넘어왔던 걸로 기억합니다. 첫 소설 번역은 죽을 맛이었습니다. 그 뒤로도 필요할 때마다 사전을 뒤져 이 나라 저 나라 문장을 읽어야 하는 직업이다 보니 늘 번역은 조금씩 하며 지낸 셈입니다. 여러 나라 기사를 자주 참고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직장 생활이 번역 작업에 끼친 긍정적인 영향과 부정적인 영향이 있을까요.


기자라는 직업을 통해 경험한 것들은 번역 일에 큰 도움이 됩니다. 매일 무엇인가를 써야 한다는 일, 여러 분야의 사람과 현장을 만나고 조사하는 일, 만난 지 얼마 되지 않는 낯선 이들로부터 속에 있는 이야기를 들어내야 하는 일 등은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없죠. 부정적인 영향은 느껴본 적 없군요. 아니, 어쩌면 제가 어려서부터 기자의 일과 번역자의 일이 뒤섞인 상태로 지내왔기 때문에 아직도 ‘전업 번역자’라는 인식이 부족한지 모르겠습니다. 다른 분들과 달리 번역자로서의 프로 의식이 결여된 게 아닌지 걱정되기도 합니다. 그냥 예전부터 하던 일을 계속하는 느낌입니다. 번역 작업을 하면서 계속 뭔가를 적어 남기고, 뭔가 적어 남기면서도 계속 번역하는 상태입니다.

 

장르문학 전문카페로는 최대 규모인 ‘일본 미스터리 즐기기’를 운영하고 계십니다. 운영하시는 데 어떤 방침이 있으신지요?


초기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이제 막 미스터리를 즐기기 시작한 분들도 편하게 들어와 구경하며 어울릴 수 있는 곳’이 되기를 바랍니다. 몇 해 전부터 최소한의 관리만 합니다. 초기와 달리 제가 미스터리 관련 정보나 의견을 올리지 않습니다. 이제 제가 그런 정보와 의견을 늘어놓을 시대나 공간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카페는 회원이 꽤 많아져 어느 방향으로건 저절로 움직이는 상태라 주변 정리만 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인터넷 커뮤니티로는 무척 차분한 분위기이고요. 혹시 카페에 다른 무엇인가가 필요하다면 다른 커뮤니티를 만들면 되겠죠. 여러 해 전부터 인터넷 카페라는 커뮤니티 도구가 좀 낡았다는 느낌이 들기도 해서요.

 

번역가로서 짜릿할 때는 언제인가요?


가장 짜릿한 순간은 많은 분들이 제가 작업한 책을 찾을 때죠. 그리고 그런 분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눌 때입니다. 특히 미스터리 독자 가운데 책 안에서 제가 의도했던 뉘앙스를 감지한 분을 만날 때가 가끔 있죠. 내가 만진 나뭇결을 그분도 똑같이 만진 듯한 느낌이 들어 고맙고 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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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출판계의 미래를 어떻게 보시나요?


바둑 17급에게 프로 기사의 대국을 해설하라는 듯해 입이 떨어지지 않네요. 모르면서도 이런 생각은 듭니다. 한국 출판계의 미래는 암담하고, 밝은 미래를 위해 출판계가 고민해야 할 점은 시작도 끝도 ‘경영 주체들의 자기 혁신’이라고. 이쯤에서 입을 다물어야 그나마 17급 행세라도 할 수 있을 겁니다. 안타까워 덧붙이자면 제 눈에 한국 출판계는 고급 인력을 데려다가 저렴한 업무에 함부로 소비하는 이상한 곳으로 비칩니다. 그래도 아직 떠나지 않고 자리를 지키는 귀한 인력이 더는 돌아서지 않도록 소중하게 쓰이기를 바랍니다.

 

전업 번역가로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둘 다 쉽지 않은 일인데, 우선 ‘작업 물량’을 균형 있게 유지하는 일. 많지도 않게, 적지도 않게. 그리고 ‘마감’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 자신이 제대로 유지하고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중요하게 여깁니다.

 

전업 번역가를 준비하는 이들에게 한 말씀 부탁 드립니다. 


‘전업’ 번역가가 되려는 분들에게 제가 해드릴 수 있는 좋은 말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꼭 원하신다면 부디 그것을 이루시기 바란다는 말 밖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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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가와 란포 결정판에도가와 란포 저/권일영 역 | 검은숲
일본 미스터리를 접할 때 반드시 듣게 되는 이름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일본 추리소설의 아버지’, 혹은 ‘대란포(大亂步)’라고 불리는 에도가와 란포다. 필명 ‘에도가와 란포’로 평생을 추리문학에 헌신했던 그는 실로 다양한 작품을 대거 발표, 일본 문학계는 물론 사회적으로도 큰 반향을 일으키면서 명실공히 국민 작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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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완 “일상의 포말을 뛰어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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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이야기를 하려고 만난 자리. 웬걸, 일상의 사사로움만 논하고 왔다. 문득, 김창완의 책 『안녕, 나의 모든 하루』에 달린 타이틀이 눈에 보였다. ‘작고 사소한 것들에 대한 안부’. 그렇다. 어쩌면 더 중요한 이야기를 했는지도 모른다. 『안녕, 나의 모든 하루』는 김창완이 16년간 SBS 라디오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를 진행하면서 직접 쓴 오프닝 멘트를 묶은 책이다. ‘나는 잘 살고 있을까?’, ‘괜찮은 걸까?’ 싶을 때, 펴본다면 아득한 마음이 잠시라도 환해질지 모른다. 자극적인 것들로 가득한 세상에서 김창완은 ‘일상의 포말’을 의식하며 산다. 순간을 인지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는 알고 있다.

 

“내가 한 선택이 잘못이었다고 스스로 상처를 주는 일은 하지 마세요. 대부분의 선택은 아무리 작고 쉽게 잊히는 것들이라도 그 순간만큼 정말 고민하고 최선을 다했잖아요. 그 나머지는 그냥 불가피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매일이 꽉 차 있지 않나요.”(65쪽)

 

“일이 좀 꼬이면 그냥 오늘은 그런 날인가 보다 하는 것도 지혜입니다. 자전거 타기 같은 거죠. 자전거는 쓰러지는 방향으로 가줘야지 복원력이 생기거든요. 오늘은 인생이 나를 이쪽으로 가라고 하나 보다 하고 힘을 빼고 가다 보면, 또 금세 오뚝이처럼 똑바로 서게 됩니다.” (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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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렇게 멋있어 지고 싶은지 알 수 없어요


거의 10년 만인가요? 오랜만에 책을 낸 소감이 어떠신가요?

 

나비가 날다가 포집망에 걸리면 기분이 되게 이상할 것 같아요. 자기 날갯짓과 전혀 상관 없는 일이 펼쳐진 거잖아요? 글들도 느낌을 갖는다면 비슷할 것 같아요. 내가 오랫동안 라디오 방송을 했지만, 그때 쓴 글은 이미 흩어져버린 말이라고 생각했어요. 글들도 깜짝 놀랐을 거예요. 갑자기 붙들렸으니까요.

 

출퇴근 시간에 책을 읽었어요. 출근할 때와 퇴근할 때 읽는 느낌이 사뭇 다르더라고요.


아, 그 생각을 못했어요. 그럴 수 있겠네요. 내가 한 번 퇴근한다고 생각하고 책을 읽어 볼게요. (2분간 책을 읽은 후) 어, 정말이네요. 완전히 다를 것 같아요. 출근 시간에 읽으면 누군가를 만나러 가는 느낌이 드는데, 퇴근 길에 읽으면 애인과 헤어지고 난 후 쓴 글이라는 느낌으로 다가올 수 있겠어요. 아침이랑 저녁이랑 이렇게 다른 거예요.

 

라디오도 그렇잖아요. 아침 방송과 저녁 방송의 분위기가 많이 다르죠. 책은 대개 언제 보세요?


일을 마친 다음에 보죠. 보통 밤에 많이 보는데, 중요한 건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거예요. 저는 책을 읽을 때, 아무 소리도 안 나야 해요. 글 쓰는 것만큼이나 예열 시간이 필요해요. 책을 펴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게 아니라서 예열을 꼭 거쳐야 하죠. 카페 같이 시끄러운 곳에서는 책을 못 봐요. 책에 대한 예의를 갖추고 보는 게 좋아요. 예전에는 누워서 많이 책을 읽었어요. 누워서 볼 수 있는 장비를 가구점에서 제가 직접 만들기도 했어요. (웃음)

 

이번에 나온 책은 어떻게 보셨나요?


안 봤어요.

 

직접 쓰신 글인데 안 보셨다고요?


그간의 오프닝 글을 모아 놓은 거잖아요. 저는 그 글이 남아 있는 줄도 몰랐어요. 책으로 묶는다고 하길래, 가능한가 싶었어요. 책은 편집자 분께 다 맡겼어요. 글에 대한 각 제목도 편집자가 정했어요. 얼마가 고마운지 몰라요. 부족한 글에 빛을 불어 넣어줬죠.

 

제목이 ‘마음 가는 대로’였나요? “힘 빼고 가다 보면 금세 오뚝이처럼 똑바로 선다”는 글이 인상에 깊게 남았어요.


대부분 운동을 할 때 힘을 빼라고 하잖아요. 처음에 골프를 배울 때, 코치가 하도 힘을 빼라고 해서 하루는 제가 대들었어요. 도대체 퍼터에 힘을 얼마나 줘야 하는 거냐? 얼만큼 힘을 빼야 하냐? 물었더니, 퍼터를 쥐고 있는 형태만 만들고 힘을 주지 말라는 거예요. 정말 어렵더라고요. 또 사진을 찍을 때도 그래요. 지금 저는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어요. 찍다 보면 다 보이잖아요. 표정도 그렇고요. 표정 이야기는 정말 창피해서 못 하겠어요. 힘을 주는 표정이 찍힐지 모르니까. 정적인 사진은 특히 더 어려워요. 왜 이렇게 멋있어 지고 싶은지 알 수 없어요.

 

소문난 주당이시잖아요. 술을 좋아하시는 건, 힘을 빼기 위해서인가요?


술을 마시면 용기가 생기는 것 같아요. (웃음) 평소에는 부끄러움이 많으니까요.

 

기억에 남는 문장이 또 있어요. “삶이 통역된 문장이 아닐까.” 만약 선생님의 인생을 한 문장이나 단어로 통역해 본다면요?


칸토어의 ‘무한’ 같은 문장이면 좋겠어요. 인생 자체가 어떤 뚜렷한 명제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가 세상에 어떻게 탄생했을까요? 기승전결이라는 말을 많이 하지만, 시작과 끝이 분명하다면 세상이 이렇게 존재할 수 없어요. 우리도 마찬가지죠. 내 인생이 문장이라면, 하늘로 올라가는 종이였으면 해요. 인생을 함축할 수 있으면 좋겠죠. 하지만 아이러니한 문장일 거예요. 옛날에 소피스트가 찾았던 어떤 문장이겠죠. 사람을 괴롭히는 문장. (웃음)

 

1978년부터 지금까지, 한 해도 쉬지 않고 라디오 DJ를 하셨어요. 40여 년 동안 라디오를 진행한다는 일이 상상이 안 되는데요. 세월이 흐르면서 청취자들의 사연도 달라졌을 것 같아요.


환경으로부터 자유로울 순 없으니까요. 쿠데타도 있었고 말도 안 되는 광주 사태도 있었고, 가장들이 다 실업자가 된 IMF도 터졌고. 얼마 전에도 엄청난 사건들이 있었잖아요. 사회를 뒤흔드는 거대한 사건이 끊임없이 일어나지만, 일상의 포말을 뛰어넘긴 어려워요. 사람이 겪는 충격, 아픔이 당시에는 너무 크지만 몇 년이 지나면 모래 한 알처럼, 바닷가에 오는 파도처럼 다 스러져요. 제게 막내 동생의 죽음은 다른 어떤 것보다 엄청난 충격이었어요. 하지만 이 큰 사건도 결국 일상에 묻히고 그 일상을 받아들이게 돼요. 중요한 건, 내 일상이 더 황폐해진 게 아니라 이런 고통이 지나면서 오히려 내 삶이 윤택해지고 감사로 넘친다는 사실이에요.

 

“아무리 나쁜 일이라도, 좋은 점이 한 개도 없을 수는 없다”는 말이 있어요.


어떤 고통이 있을 때, 그 고통이 우리를 무조건 갉아먹는 건 아니에요. 당장은 쓸지 몰라도 언젠가 자기 성찰의 기회가 될 수 있고 타인과의 관계를 극복하는 힘이 되기도 하죠. 모든 악을 악으로써 사고한다면, 우리 사회는 더 경직되겠죠.

 

일상이 더 중요하잖아요.


탈무드에 흔히 나오는 이야기인데, 옛날에는 너무 흔했지만 요즘은 또 안 나오는 말이에요. “가장 소중한 사람이 바로 앞에 있는 사람”이라는 이 중요한 말을 우리는 잊고 살잖아요.

 

사람들과 대화할 때, 어떤 주제가 가장 흥미롭나요?


아무래도 사랑스러운 이야기를 할 때가 좋죠. 또 음악을 하는 친구들을 만날 때가 좋고 무대에 올라갈 때가 가장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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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향을 끼치길 원치 않아요


나이가 들면 자신에 더 집중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공동체에 헌신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어요.사회적 감수성이 더 발현되는 경우죠. 그런데 자세히 보면, 삶의 태도는 젊을 때와 많이 달라지진 않아요.


나이가 들어도 젊었을 때 못한 일은 계속 못해요. 물론 예외인 경우도 있지만요. 대개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가게 돼요. 성공한 사람들이 간혹 훌쩍 그 자리에서 떠날 때가 있잖아요. 우리는 그 사람에게 “왜 저럴까?” 물을 수 없어요. 너무 개인적인 거예요. 다른 사람이 말하긴 어려워요. 나는 내 책이 다른 사람에게 요만큼의 영향도 끼치길 원치 않아요. 영향을 끼치길 원하는 마음은 내 욕심일 수 있어요.

 

어떻게 아무런 영향이 없길 바라시나요? 독자들은 돈을 주고 책을 살 텐데요.


그러니까 돈을 아껴야죠. (웃음) 나는 십 수년 전에 내가 쓴 글이 책으로 만들어진다는 걸, 상상하지 못했어요. 16년 동안의 오프닝을 꼬박꼬박 모아 놓았다고 하길래, 소름이 끼쳤어요. 모골이 송연해요. 영향을 끼치면 안 돼요.

 

(웃음) 어떤 의미인지 알겠어요.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 청취자들의 어떤 사연이 가장 반갑나요?


며칠 전에 동네 카페에서 빙수를 먹고 나가는데, 초등학교 2,3학년쯤 돼 보이는 꼬마가 저에게 꾸벅, 인사를 하는 거예요. 90도로 인사하길래, 우리 이웃집 아이인가 했어요. 그런데 “아저씨, 아침창(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 잘 듣고 있습니다”라고 인사하는 거예요. 저, 감동 먹었잖아요. (웃음) 간혹 “나는 모르지만 우리 엄마가 좋아하는 노래를 신청한다”는 사연이 올 때가 있어요. 저는 알겠지 싶은 노래를 신청해줄 때, 무지 반갑죠. 책도 마찬가지에요. 얼마 전에 책방에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우리 아빠가 물려준 책”이라면서 책을 추천해주더라고요. 이런 이야기 들으면 뭉클해요. 그런 거죠. 

 

책에 아버지 이야기가 꽤 나와요. “깔끔하고 단정한 아버지 모습이 답답했는데, 이제 단정하게 산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겠다”고 하셨어요.


우리 아버지는 흑석2동 국립묘지 바로 아랫동네에 살았어요. 김포까지 출퇴근을 했는데, 국립묘지 꼭대기부터 매일 노량진 언덕을 너머서 수산시장까지 걸어서 버스를 타야 했어요. 그렇게 해서 우리 식구들을 먹여 살렸어요. 아버지의 성실함을 생각하면 지금은 참 편한 세상이죠. 물론 지금도 워낙 힘들게 생활하는 사람이 많지만요. 아버지가 1998년에 돌아가셨는데 이제야 조금씩 아버지를 알아가는 것 같아요. 매해 더 친해지고 있어요. 아주 친해졌어요.

 

요즘 부모 세대를 보면 어떤 생각을 하세요? 아이들에게 자유를 안 주잖아요.


어리석죠. 어리석어요. 자기 인생에 대한 성찰을 안 하고 자식에게만 목을 매잖아요. 본인은 마치 다 이루고 다 견뎠던 것처럼요. 아이들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어른의 시각으로 보고 있어요. 언어도단(言語道斷)이에요. 아, 갑자기 화가 나려고 그러네요.

 

가수로 연기자로 라디오DJ로, 많은 배역을 소화하고 있어요. 어떤 옷이 가장 김창완답나요?


아무 것도 없는 나로 돌아갔을 때죠. 그 옷을 다 벗었을 때 비로소 가장 편안해요. 어떻게 보면 두렵고 무료할 수 있어요. 요즘은 일 중독자들이 많지만, 허탈함 속의 나를 발견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괜한 불안을 느끼는 일도 일상의 아름다움, 아니에요? 뭔가를 꼭 하고 있어야 주인공이 되는 건 아니죠.

 

김창완의 필모그래피를 쭉 보고 왔어요. 1995년부터 한 해도 빠짐없이 드라마에 출연하셨더라고요. “어떻게 작품 선정을 하냐?”는 질문에 “스케줄이 된다면, 나랑 하고 싶어하는 게 고마워서 대부분 한다”고 답하신 적이 있으신데, 지금도 마찬가지신가요?


똑같아요. 예전에 한 작품에 출연하고 후회한 적이 있어요. 감독이랑 제작자를 미워했죠. 이상한 매체에 자꾸 저를 출연시키니까 한 마디로 삐쳤죠. 본인들도 알고 있어요. 내가 이야기를 하고 다녔으니까요. 그런데요. 몇 년이 지나니까 모든 게 일상의 포말처럼 느껴져요. “이 놈 나쁜 놈” 하고 다녔는데, 그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제는 그 사람들이 다 보고 싶어요. 만나면 술이나 한 잔 사줘야죠.

 

KBS <TV 책>을 진행하고 있어요. 재밌게 보고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제작진이 준비를 참 완벽하게 해요. 자유로운 진행이 가능할 수 있도록 해주니까 고맙고요. 어려운 건, 책에 갖고 있는 향기를 어떻게 전하느냐예요. 현장의 누추함조차 아름다운 향기로 만들려고 하다 보니 쉽지가 않아요. 억지스러우면 안 되니까요.

 

책은 주로 어떤 분야를 읽으시나요?


보는 책만 봐요. 대부분 고전을 읽는데, 읽고 나서 고전이 되는 책도 있죠.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오리진』같은 책이 그래요. 소설은 많이 안 읽어요. 대신 몇 권의 책을 여러 번 읽죠. 『무한의 신비』도 좋아하는 책인데, 한 번 읽고 소화할 수 있는 책이 아니에요. 바로 이해하면 천재 아닐까요? 『털 없는 원숭이』는 20여 년 전에 처음 읽은 책인데, 최근에도 다시 읽었어요. 반복해서 봐도 손해보지 않는 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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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먼저 봐야 할 것 같아요


개인의 삶에 있어서, 바라는 것이 있나요?


글쎄요.

 

건강했으면 좋겠다, 남에게 폐를 안 끼치면 좋겠다, 같은 소망도 있을 수 있고요.


아, 그런 건 아니에요. 음, 제가 간혹 책을 읽다 보면 몇 페이지를 안 읽었는데 뇌가 포화될 때가 있어요. 이 포화 상태가 너무 금방 오니까 아무 생각을 못해요. 이럴 때 좀 안타까운데, 뭐 어떡해요? 한계가 그런 걸요. (웃음)

 

요즘도 곡은 쓰시죠?


그렇죠.

 

어떤 이야기인가요? 주로 이어지는 생각들이 궁금해요.


가장 중요한 질문인데, 유치하고 싶어요. 그런데 정말 쉽지 않아요. 제가 크레파스로 그림 그리는 걸 무척 좋아하는데, 몇 십 년을 그려도 나아지는 맛이 없어요. 멋있게 하고 싶은데 절대 나아지지 않아요. 오히려 반대로 발가벗고 유치한 그림을 그려봐? 싶기도 하고요. 이런 느낌을 음악을 통해 전하고 싶어, 「개구쟁이」 같은 노래를 만들어볼까 생각도 해요. ‘이 할아버지가 예순이 넘어 놓고 망령이 났나?’ 소리를 들을까 겁나기도 하지만, 정말 유치하고 싶어요.

 

‘한국 록의 전설’로 불리는 것, 싫다고 하셨는데요. 그냥 ‘가수 김창완’으로 기억되길 바라시나요? 아니, 그런 생각을 안 하고 사시죠?


그럼요. 안 해요.

 

그렇다면 다른 사람, 혹은 사회에게 바라는 건 없나요?


혹시라도 그런 게 생기더라도 나를 먼저 봐야 할 것 같아요. 제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아버지와 점점 친해진다고 했잖아요. 정말 꼭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드는데, 이건 부모로부터 어떤 은혜를 입어서가 아니에요. 부모가 나에게 안 해준 것조차도 은혜예요. 사회가 어떻게 변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을 수 있지만, 모든 것이 내 삶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나쁜 환경도 환경이에요. 지구상에 엄청난 전쟁이 많았잖아요. 현재가 있는 건, 이런 고난을 다 극복했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어떤 극한 상태에 놓이면 누가 학살자가 될지 알 수가 없어요. 결국 다 소구하고, 자기 인생의 질료로 쓰여요.

 

내 인생을 반추해볼 때, 잘살았다는 생각은 하시나요?


에이 그런 이야기 하지 말아요. 잘 살았다 하더라도 할 이야기가 아니고, 아니라고 해도 개선될 일이 없어요.

 

마지막 질문을 드릴게요. 선생님이 지금 시장에 왔는데, 『안녕, 나의 모든 하루』가 딱 한 권이 있어요. 누군가에게 선물한다면요?


(웃음) 딱 한 권 있어요? 한 권 밖에 없어요? 그러면 매니저한테 전화할 것 같은데요. “여기 책 한 권밖에 없는데 좀 더 가져와”라고. 이걸 누구 코에 부쳐요? 정말이에요. 요즘 고마운 사람을 만날 때마다 책을 주고 싶은데, 책이 너무 못 됐어요. 너무 무거워서. 맨날 들고 다닐 수도 없으니까요. 아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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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나의 모든 하루김창완 저 | 박하
어른이라는 이름으로 값싼 위로나 멘토링 같은 잔소리를 함부로 늘어놓지 않는 김창완. 겸손한 삶의 태도와 분명한 의미가 담긴 말 한마디로 우리의 고개를 끄덕이게 하고 세상과 세월을 곱씹게 만든다. 바로 이런 그의 선한 통찰이 《안녕, 나의 모든 하루》로 새롭게 완성되어 감명을 주는 책으로 우리에게 찾아왔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장희 “한동안 잊은 노래,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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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한국 포크의 천재적 인물'이자 '싱어 송 라이터의 선구자'로 통하는 전설 이장희를 미국에서 7월 30일에 만났다. 전혀 사전에 약속 없이 우연한 기회에 로스앤젤레스의 쉐라톤호텔 인근 업소에서 이야기를 나누게 된 그는 “좋은 (대화) 자리가 될 것 같아서 나왔다”고 했다. “1년에 반은 울릉도, 반은 LA에 있는 셈입니다. 건강은 괜찮습니다!” 1947년생이니 그는 올해로 우리 나이 70세다.

 

이장희는 64세인 2010년 12월 TV 프로그램 <황금어장- 무릎팍도사>에 출연해 화제를 모으면서 새로운 세대에게도 인지도를 높였다. 그 뒤 '쎄시봉' 열풍의 한 축이 되어 단독 무대를 비롯한 여러 공연으로 돌아왔다. “오늘 나눈 얘기를 인터뷰로 엮어도 될까요?”하는 질문에 “알아서 하시라”며 껄껄 웃었다. 예나 지금이나 그의 웃음은 호쾌했다. 자리에는 전성기 시절 이장희가 발탁한 가수이자 호원대 교수인 정원영씨도 함께 했다

 

오랫동안 가수로서 사실상 은퇴상태였다가 2010년 12월 <황금어장> 출연을 계기로 무대 활동을 재개하고 계십니다. 기분이 어떠신가요.


사실 <황금어장>은 할 수 없이 나갔어요. 그런데 생각한 이상으로 관심을 끌게 되면서 <쎄시봉>도 나가게 되고 순회공연도 하게 되고…. 한동안 멀어져 있었는데 노래하는 기분이 좋아요. 노래를 잊었다가 다시 찾았다고 할까요. 행복합니다.

 

가장 가까운 시기의 공연은 언제로 잡혀 있나요.


오는 9월18일 세종문화회관에서 하는 <쎄시봉> 공연입니다. (조)영남이 형 자리를 제가 맡는다고 할까요. 윤형주, 김세환과 함께 합니다.

 

울릉도든 로스앤젤레스든 여건이 수월하지는 않겠지만 TV에 좀 더 나와 주었으면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 마음이 같지는 않겠지만 매스컴에 자주 나오면 그다지 호의의 시선은 아니지 않나요? 저 같이 안 나왔던 사람이 얼굴을 비추면 싫어하는 것 같기도 하고, 지금 정도가 좋지요.

 

리즈 시절로 돌아가서요, 그때 어른들이 어쩌면 '반항과 불량'으로 인식했을 '가죽 재킷' '오토바이', '담배' 그리고 결정적으로 '콧수염' 등 삐딱한 이미지가 이장희 트레이드마크였습니다. 그래서 젊음은 더 끌렸다고 봅니다. 20대 중후반 한창 젊었던 나이였는데 그런 도발적 상징들을 낳은 당시의 선생님의 의향 혹은 태도가 궁금합니다.


콧수염 같은 경우는 상처도 있어서 가리려는 의도도 있었고...너무 알아보니까 나중에는 밀어버렸죠. 글쎄요, 그때 왜 그랬는지 나도 모르겠어요. (혼잣말로 크게 웃으며) 그때 나이에는 그게 좋아 보였나.

 

이미지만 그런 게 아니라 노래도 당시 기준으로서는 도발적 충격적이었다. 문어체와 운율이 노래 가사의 일반 프레임이었던 시절, 이장희의 빅 히트송인 「그건 너」, 「한 잔의 추억」,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자정이 훨씬 넘었네」, 「한 소녀가 울고 있네」 등은 마치 친구들끼리의 자유로운 발설이라 할, 그래서 가깝고 또 경이롭기까지 한 구어체 언어의 랜덤 전개였다. 그리고 그 모든 곡은 이장희 스스로가 일궈낸 것들이었다. 외국 곡 번안이 일색이던 시절이었기에 그런 자작(自作)의 독립 스탠스는 더욱 놀라움을 안겨주었다. 아마 대중적 차원의 국내 최초의 싱어 송 라이터는 그였을 것이다. 천재적 상상이나 진한 경험의 산물이 아니면 불가능했을 이 언어들이 풀어져 나온 배경이 궁금했다.

 

「그 애와 나랑은」이 공식 데뷔곡인 것은 맞나요. '그 애가 웃으면 덩달아 웃었네/ 그 애가 슬프면 둘이서 울었네/ 그 애와 나랑은 사랑을 했다네/ 하지만 그 애는 지금은 없다네/ 그 애의 이름은 말할 수 없다네' 가사가 그렇지요. 이 노래만이 아니라 상당수 이장희의 노래는 꾸며낸 게 아니라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했다는 느낌이 듭니다.


1972년 <영 페스티벌>이란 타이틀의 첫 앨범에 실려 있고 이 곡이 라디오 전파를 많이 탔으니까 데뷔곡이라고 할 수 있지요. 더러 사람들이 제 곡들에 대해 궁금해 해요. '어떻게 그런 가사를 썼나?' (제 노래 가사들이) 다 겪은 얘기는 아니죠. 경험하고 체험한 일로만 노래를 만들 수 없는 일이고. 겪은 것도 있지만 당시 저는 '환상을 그린다!'는 의도는 분명 있었어요. 해보지는 않았지만 하고 싶은 것들.
 

돌이켜 보면 이장희의 노랫말은 격식과 틀에 대한 통렬한 비웃음, 청춘의 스트레이트한 자세와 순수 그리고 사랑과 일상의 가치를 일러주는 대단한 언어였어요.


'내가 어떻게 그런 가사를 썼지?' 제 음악을 사랑해준 사람들이 그랬던 것처럼 가끔 들으면 저도 놀랍니다. ('가사가 마구 쏟아지듯 나왔나 보네요' 하니까) 그래요, 그런가 봐요. 지금은 도저히 못 쓸 것 같아요.

 

막 활동 시작할 무렵이 국내에 자작곡 흐름이 막 개화한 시기이기도 했는데요. 이른바 싱어 송 라이터 문화의 선두셨지요. 작곡 교육을 받지 않으셨는데 어떻게 곡을 쓰게 된 건가요?


주변의 음악가가 다들 외국 노래 번안 곡에 집착하고 있을 때였지요. 외국음악을 동경하던 시기였으니까요. 특히 나나 무스쿠리의 곡(「Me t'aspro mou mantili」)을 번안한 트윈폴리오의 「하얀 손수건」이 공전의 히트를 치고 송창식 윤형주(47년 생으로 이장희 동갑이다)이 스타덤에 오르면서 번안 풍토가 확고해졌지요. 그들과 같이 다니며 어울리다가 '우리말로 만든 곡이 더 낫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었죠.


삼촌 친구인 (조)영남이 형의 권유로 음악계에 발을 디디면서 해보니까 음악은 전주가 있고 반주가 따르고 근음(根音)이 있고 화성이 있다는 것을 그때 알았어요. ‘아하! 음악이 이렇게 가는구나’ 그런 감성이 제게 있었던 것 같아요. 왜 혼자 작곡을 할 수 있었나, 돌아보면 그랬던 것 같습니다. 윤형주에게 「비의 나그네」, 송창식에게 「애인」을 주면서 어떤 면에서 먼저 작곡가로 음악활동을 시작했다고 할 수 있지요.

 

「그건 너」도 그렇지만 전성기 시절 이장희 음악에서 기타리스트 강근식의 지분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밥 딜런의 「Like a rolling stone」이 그랬듯 국내에서도 포크 아닌 '포크 록'이 부상하고 있음을 알리는 순간으로 평가되는데요. 강근식과의 콜라보는 서구의 포크록 트렌드를 의식한 건가요.


강근식은 최고의 재즈 음악가인 고(故) 정성조를 누르고 재즈 기타 경연대회에서 우승한 실력파였어요. 방송진행자로 일세를 풍미한 당시 쎄시봉 사회자 이상벽의 친구이기도 했고 그의 주선으로 알게 됐습니다. 음악적으로 동행하고 싶었지요. 포크록 트렌드에 대한 의식보다는 '내가 하고자 하는 음악'을 그와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때는 록 시대였고 당연히 밴드에 대한 욕구가 있기도 했죠.


당시 저랑 음악을 같이 한 밴드 멤버가 기타 강근식 하고 건반 이호준, 베이스 조원익, 드럼 배수연으로 나중 세션과 연주의 레전드가 된 인물들입니다. 하지만 이들과 어떤 '짜인' 틀로 짜인 음악을 만들어내는, 미리 구상하는 이른바 편곡 개념으로 접근한 것은 아니에요. 그저 내가 노래 부르면 조금 있다 강근식이 나타나 기타를 연주하고 그러다가 베이스 조원익이 가세하고 건반이 보태지고 하면서 자연스럽게 하나의 곡이 탄생한 거죠. 편곡이 아닌 잼(Jam)하는 형식으로 음악을 완성해갔다고 할까요.

 

당대의 아이콘인 소설가 최인호 원작에 이장호 감독 그리고 이장희 음악. 실로 1974년 <별들의 고향>은 센세이션이었죠. 당시 음악을 만들 때 영향을 주었던 음악은 무엇이었나요. 그리고 최인호 선생은 어떤 이유로 이장희에게 음악을 맡겼을까요.


(최)인호 형은 서울고 연세대 선배로 워낙 친분이 있던 관계였구요. 자연스레 음악을 맡았지요. 원래 저의 음악적 취향은 컨트리 앤 웨스턴(Country & Western)이었는데 그 무렵에는 로큰롤에 빠졌지요. 킹 크림슨과 핑크 플로이드 등 당대에 쇼킹한 사운드를 들려줬던 밴드음악에 취해 있었습니다. 그게 <별들의 고향> 음악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미친 거지요. 본격 OST를 만들려는 구상도 그랬고 「한 소녀가 울고 있네」나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같은 곡은 스타일이 기존 가요와는 달랐지요.

 

음악이 달랐던 것은 실험의 소산이군요.


그래요. 옛날에 없던 것을 하려고 했습니다. 음악적 시도에 충실하고자 했죠. 그래서 당시 서구의 록을 한국화(化)하고자 했던 실험가 신중현 선생을 존경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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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희의 실험적 지향은 자신의 음악으로 그치지 않는다. 1978년 '한동안 뜸했었지'로 한국 펑크(Funk)의 길을 개척한 기념비적 록 밴드 '사랑과 평화'가 널리 알려진 것도 이장희의 음악적 역량과 대중적 안목이 광채를 발한 케이스다. 마치 외국 노래를 듣는 것 같은 '수준상승'을 꾀해준 그들의 「한동안 뜸했었지」, 「장미」, 「어머님의 자장가」, 「얘기할 수 없어요」 등이 모두 이장희가 써준 곡들이다. 그의 곡 감각은 물론이요, '밴드 감수성'은 지금 기준으로도 각별하다. 사랑과 평화가 알려지기 훨씬 전인 1976년 「어머님의 자장가」 녹음 중에 대마초 사건으로 인해 주류음악 활동은 급정지되었지만 그렇다고 그의 음악적 영향력은 1980년대 후반까지도 사그라지지 않았다. 


한국에서의 활동이 어려웠을 텐데 1988년 「나는 누구인가」, 「솜사탕」, 「안녕이란 말은 너무 짧죠」가 수록된 독집은 어떻게 나오게 됐나요?


1982년 「캘리포니아의 밤」이 수록된 앨범을 낸 바 있어요. 거기에 「내 나이 육십하고 하나일 때」가 마지막 곡으로 실려 있죠. 그리고 미국 LA에서 <로즈가든>이란 클럽을 운영하고 있을 때였던 1987년에 KBS의 연예국장이 찾아와 88올림픽을 맞아 토크쇼 프로그램을 같이 하자는 제의가 있었죠. 이를 위해 한국에 들어왔지만 성사되지 못하면서 공중에 붕 뜬 상태가 됐고 그때 댄스가수 김완선의 앨범을 프로듀스하게 된 거죠. (여기서 김완선의 대표 히트넘버 중의 하나인 「나 혼자 춤을 추긴 너무 어려워」가 나왔다). 말씀한 1988년 제 앨범도 그런 연유에서 그 무렵에 만들게 되었지요.

 

따지고 보면 전성기 시절 매우 짧은 활동기간이었는데 엄청난 임팩트였습니다.

 

하긴 딱 네 장의 독집이었으니까 짧았죠. 72, 73, 74, 75년이었죠. 
 

요즘 글로벌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K팝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너무 잘하지요. 곡의 진행도 변화무쌍하고 매력적이고… (웃으며) 솔직히 우리 때 음악은 동요 수준이지요.

 

이장희가 꼽는 최고작은 뭔가요.


굳이 꼽자면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공연에서는 「내 나이 육십하고 하나일 때」와 「나는 누구인가」 2곡을 주로 부르지요.

 

젊었을 때 심취했던 아티스트들은 누군가요?


아까 컨트리 앤 웨스턴을 로큰롤과 포크 이전에 좋아했다고 했는데 행크 윌리암스(Hank Williams)를 빼놓을 수 없죠. 남들도 다 좋아한 엘비스 프레슬리, 비틀스에 열광했고 아까 얘기한 핑크 플로이드에 대한 애정은 오래갔어요. 국내에선 다시 말하지만 신중현 선생이고.


인터뷰 및 정리: 임진모
임진모(jjinmoo@izm.co.kr)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윤승철 “무한히 생각이 넓어지는 무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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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도는 물과 불, 전기가 없는 곳이다. 숨어있는 냇물과 떨어지는 빗물을 오랫동안 모아야 하루 먹을 식수가 나오고, 불씨를 끈덕지게 피워 불을 만들어야 한다. 그야말로 냉혹한 ‘생존’의 장소다. 또한 무인도는 지독하게 혼자 되는 곳이기도 하다. 아무도 없기에 지나가는 벌레도 오랫동안 보게 되고, 해변에 아무렇게나 버려진 신발 한 짝도 이야깃거리가 된다.


『무인도에 갈 때 당신이 가져가야 할 것』 저자 윤승철은 대학교에 다닐 당시 스스로 후원금을 모아 사막 마라톤에 나갔다. 어렸을때 크게 다친 경험과 선천적 평발인 신체적 악조건 속에서도 세계 최연소 사막 마라톤 그랜드슬램 달성, 실크로드 3대 간선을 횡단, 히말라야 등반 등 여행으로만 따지면 화려한 ‘스펙’이었다.


그러나 이번에 그가 여행한 곳은 정복하고 자랑할 만한 지역이 아닌, 이름도 생소한 외지고 초라한 무인도였다. ‘무인도에 가져갈 세 가지’라는 질문이 그 사람이 중요하게 여기는 걸 보여주듯이, 윤승철이 들려주는 무인도에서의 생활은 우리가 누구고 인생에서 정말 필요한 게 무엇일지 다시 생각하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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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여행 끝에 휴식, 무인도


무인도에 가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항상 여행을 다녀도 장소만 바뀔 뿐이지 생기는 일은 똑같더라고요. 해외로 나가도 연락은 계속 오고, 어느 나라를 가든 사람과 엮이게 되고요. 결정적이었던 건 친구 동생과 부루마블 게임을 하다가 무인도를 보게 됐어요. 게임 안에서 무인도에 들어갔던 기분으로 혼자 떨어져 있을 수 없을까 고민하다가 실제로 무인도를 찾아가게 됐어요.


여행을 많이 하셨잖아요. 부루마블로 치자면 말판의 여러 바퀴를 돈 셈이겠네요.


말이 같은 판 안에서 계속 돌잖아요. 쳇바퀴처럼 도는 삶을 사는 것 같기도 했고, 게임 안에서 건물이랑 빌딩을 열심히 올리다보면 어느순간 무인도에 들어가고 싶어지죠. 저도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온전한 리셋 같은 걸 찾았던 것 같아요.


생각했던 만큼 완전한 고립이었나요?


처음 생각했던 무인도는 야자수에 해변도 있고, 물 맑고, 코코넛이 주렁주렁 열리고 고기도 잡을 수 있는 곳이었는데 사실 크게 실망했어요. 우리나라 무인도는 뻘물에, 해변은 자갈이고 쓰레기는 떠다니고, 지형도 평탄하지 않고 울퉁불퉁한 산이거든요. 게다가 너무 춥고 밤이 되어서 불을 피우려고 나무를 꺾었는데 해경에게 붙잡혔어요.


해경이요?


쪼그려 앉아서 불을 피우는데 해경 배가 깜박깜박하고 오더니 마치 연극 주인공처럼 라이트를 비추는 거예요. 나무를 꺾으면 산림법 위반이래요. 섬에 들어가는 것도 주인이 있는 섬이거나 해양공원에 묶여있다거나 해서 무단 침입이 되는 경우도 있고요. 그래서 해경 배를 타고 나왔어요. 제가 생각하는 무인도는 정말 없을까 해서 외국 섬도 검색하기 시작했죠.


해외 섬은 상상했던 대로였나요?


아무리 찾아도 모든 게 갖춰진 무인도는 없더라고요. 어떤 섬에 민물이 나온다면, 다른 섬에는 물은 없지만 바나나 나무가 있는 식으로요. 현지 사람들에게도 물어봤는데, “모든 게 다 갖춰지면 왜 무인도냐.” 하시더라고요. 무인도라는 게 사람이 안 사는 곳인데, 모든 조건이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에 안 산다기보다 못 사는 거라는 걸 알게 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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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죽음 사이


여행할 섬은 어떻게 찾으신 건지 궁금해요.


필리핀 해적 섬은 현지에 연락을 하다 한인회 한국분에게 연락이 닿았고, 미크로네시아의 온낭 섬은 이병률 작가님이 전에 미크로네시아에 가 본 적이 있어서 거기 있는 해양 연구원과 연결해 같이 갔어요. 뉴칼레도니아 무인도는 섬 투어를 전문으로 하는 회사에 무인도를 가고 싶은데 소개를 해줄 수 있냐고 메일을 스무 번 정도 주고받았어요.


여러 가지 걸림돌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무인도로 가는 정기 배편이 없으니까 현지 마을에서 선장과 만나서 언제 데리러 와달라 약속을 했어요. 실제로 뉴칼레도니아 섬에서 약속한 날짜에 날씨가 너무 안 좋아서 걱정이 많았어요. 연락이 된다면 날씨가 좋아지고 오라고 하면 될 텐데, 연락을 못 하니까. 그분도 약속한 날에 안 가면 저희가 더 혼란스럽고 무서울 거라고 생각해서 애써 제시간에 와 주셨어요.


사냥 이야기도 나오는데, 도시에 살면 그런 감각은 잘 못 느끼잖아요.


이제까지 닭 내장을 갈라본 적도 없었는데, 새를 잡았을 때 본능적으로 하긴 했어요. 오늘 먹을 걸 내가 잡았고 하루를 버틸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너무 기뻤고, 생명에 대한 미안함과 감사함, 고마움이 들었어요. 그런데 나중에는 무감각해지더라고요. 새를 잡아서 목을 치고, 깃털을 다 뽑고 아무 생각 없이 바닷가에 그걸 다 버렸는데, 아침이 되니까 사체가 아직 바닷가를 둥둥 떠다니는 거예요. 내가 왜 여기까지 와서,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인도에 혼자 있으면 생과 죽음을 많이 보시게 될 것 같아요.


한번은 거북이가 알을 낳으러 온 걸 봤어요. 어떻게 알고 찾는지 산에서 도마뱀들이 내려와서 해변의 땅을 파서 알을 깨 먹고 있더라고요. 고민하다가 반쯤 먹었을 때 개입해서 도마뱀을 쫓아냈어요. 나중에 거북이들이 태어나서 바닷물로 헤엄쳐 간 것까지 봤는데, 그다음 날 알을 낳았던 큰 거북이가 떠내려와 죽은 거예요. 제가 한 행동이 자연의 섭리에 맞는 거였나, 그냥 두고만 봐야 했었나 싶었어요. 그러면서도 여기서 무수히 많은 생명을 잡아먹고 있는 거죠.

 

‘바닷물의 짠맛은 포식자들에게 먹히지 않으려는 생명체들의 몸부림 속에서 나왔을 것’(54쪽)이라는 표현이 인상 깊었습니다.


한 번은 바다에 새들이 엄청 몰려있어서 가 봤더니 생선들이 죽어서 출렁이더라고요. 한쪽 면만 뒤집혀서 새들한테 먹히고 있었는데, 배가 가까이 가니까 새들은 도망가고 생선만 남은 적이 있어요. 나만의 목적과 내가 좋은 것을 위해 그 무수한 생명체의 삶에 관여해야 할까, 생각이 깊어지는 계기였습니다.


환경 오염에 대해서도 생각하셨을 것 같은데요.


실제로 가면 모르는 언어가 쓰인 쓰레기도 있고, 말도 안 되게 오래된 비닐, 어떻게 이게 떠내려왔나 싶은 자전거 휠, 통에 담긴 채로 떠다니는 화학약품들, 심지어 냉장고도 떠내려온 걸 봤어요. 마음속에 그리던 섬은 깨끗하고 쓰레기 하나 없는 섬이었지만, 현실은 그게 우리나라 섬인 거잖아요. 그런 쓰레기를 조금이라도 줄이고 싶어서 ‘섬청년 탐사대’를 통해 쓰레기를 줍고 있어요.


거둬들인 쓰레기로 사진을 찍기도 하셨어요.


왜 이 섬에 있는 것인지 생각해보는 기회가 오히려 쓰레기 때문에 들었던 것 같아요. 특히 신발이 참 많아요. 꼭 한짝씩 떠내려와요. 우리나라 섬은 낚시를 하는 것도 한계가 있고, 나무를 베거나 불을 피우거나 하는 행동에 제약이 있으니까 해외 섬에서처럼 생존을 위해서 바쁘게 움직일 일이 없거든요. 심심하고 재미없을 때 쓰레기를 보고 있었던 것 같아요.

 

 

생존과 여행 사이


서바이벌을 주제로 하는 TV프로그램도 많고, 직접 체험하고 싶어서 오지에 가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무인도에서 여행을 하겠다는 마음과, 생존을 위해 아무것도 없이 맨몸으로 부딪쳐보겠다는 두 가지 길이 있을 텐데요.


처음에는 저도 서바이벌을 한 번 해보고 싶었어요. 칼 한 자루, 냄비 하나 가져가서 불도 직접 피우고 먹을 것도 직접 잡으면서요. 그렇게 3주를 살아보니까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이게 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두 번째 갈 때는 먹고 싶은 거, 있으면 편한 걸 가지고 들어갔어요. 생존은 이미 TV에서 봤던 것과 비슷하고, 더 이상 생존에 무게를 두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하자 내가 진짜 좋아하는 음악, 못 읽었던 책, 먹고 싶은 음식과 함께 나 혼자만의 세계를 만들어보자 하고 그 이후에는 다른 식으로 여행했어요. 처음에는 생존으로 생각하고 시작했다가, 나중에는 여행으로 바뀐 느낌이었어요.


무인도에서 산다는 것은 무언가를 계속해야 하는 일이라고 쓰셨습니다.


무인도 가서 생존하려면 너무 바빠요. 아침에 눈을 뜨면 뭘 잡으러 가야 돼요. 쉽게 잡히는 게 아니라 한참을 헤매다 잡으면 불도 피워야 하죠. 지금은 대나무로 30,40분이면 피우는데 처음에는 일곱 시간 걸렸어요(웃음). 불 피우고 잡아온 걸 구워 먹으면 또 점심시간이에요. 그럼 또 사냥을 가고 장작을 모으고 집을 지으면 금방 해가 져요. 어느 순간부터는 날씨가 안 좋아서 파도가 치면 고기를 못 잡으니까 그런 날에 대비하기 위해 미리 생선을 잡아서 말려 놓는다거나 하는 일을 하는거죠.


국내 섬에서는 무슨 생각이 드셨어요?


처음에는 불안해요. 이 섬에서 잘 살아남을 수 있을까, 배는 잘 올까, 나를 찾는 사람은 없을까, 그러다가 어느 순간이 지나면 이렇게도 살수 있구나 싶어요. 평소에 너무 많은 생각을 했던 걸 다 접고 오로지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는 곳이구나 느꼈어요. 무인도 갔다 와서 카톡을 지웠어요. 그래도 살게 되더라고요. 걱정을 하다보면 끝이 없지만 무인도에 오는 순간 다 적응해요. 내 능력으로 생존하는 게 아니라 적응하는 거구나, 마치 이사하는 것처럼 새로운 환경일 뿐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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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걸 하려면


사막 마라톤을 하려고 스스로 후원 페이지를 열고 여행 경비를 모으시기도 했어요.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있었나요?


군대를 갓 전역한 때여서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웃음). 전역하면 수업 맨 앞에 앉아서 A 받을 수 있을 것 같은, 복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이상한 자신감이 있어요. 신문에 보면 회사에서 원하는 인재상이 나오잖아요. 도전, 열정, 패기, 청춘 같은 것들. 그래서 인재상에 맞게 열정적으로 후원 요청을 서른 군데 넘게 써서 보냈더니 답변 못 받고, 거절당하고 그랬어요. 강남역에서 지나가는 사람 붙잡고 마라톤 완주의 꿈이 있는데 제 꿈의 가격을 정해달라는 퍼포먼스를 하기도 하고요. 지금 하라고 하면 못 하겠어요. 어떻게 그랬나 싶어요.


여러 행사에서 멘토로 불리는 경우도 많아요. 강의 자리에서 주로 하는 말이 있다면요.


자기도 모르지만 생각 이상으로 많은 걸 할수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이런 게 가능해?’라고 스스로 물어보면서도, 어찌어찌 되는 경우가 있어요. 저도 현실에 부합하면서, 타협하면서 살지만 정말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걸 마주치면 시작은 한 번 해보라고 말해요.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요.


시작마저 막는 게 여전히 불안함 같아요.


불안함은 누구나 있는 것 같아요. 여행하면서 한의원을 하시는 분을 만난 적이 있어요. 다시 가면 그대로 한의원 열고 지내면 되니까 좋겠다고 얘기했는데 아니래요, 한 번 문을 닫으면 단골들이 다 발을 끊고, 여행을 다녀 오면 한달에 오십 만원도 채 못 벌었대요. 그분도 손해보다는 여행이 주는 의미와 가치가 더 컸다고 얘기하시더라고요.


또래 분들은 한창 구직하거나 취직해서 자리를 잡을 텐데, 다른 길을 걷는다는 불안함은 없었나요?


처지는 비슷해요. 사람들은 제가 하고 싶은걸 하고 있어서 좋겠다고 하지만, 저도 제가 제일 불안해요. 다음달에 영어학원에 등록할 거예요. 공부를 더 하고 싶은데 대학원에 가려면 영어 성적이 있어야 된대요. 운이 좋게도 하고 싶은 것, 좋아하는 것들을 찾았지만 그게 정말 평생 지속될 정도의 안정감과 열정을 줄지는 저도 잘 몰라요. 그렇기 때문에 또 다른 것들을 시도해 보는 거죠. 누구나 그런 순간은 많은 것 같아요.


대학원은 어느 쪽으로 생각하고 계세요?


지금은 고고학을 하고 싶은데요,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아요. 섬에서 생각한 건데, 제가 계속 하고 싶은 걸 하려면 전문성이 있어야 하고, 그 전문성이 내가 하고 싶은 걸 계속 하는 지속성을 주는 거라고 느꼈어요. 그래서 나름 준비하려고 다음달에 영어학원도 끊고요.(웃음) 제 강연을 들었던 친구가 영어 학원에서 저를 만나면 웃기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이상하거나 웃기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하고 싶은 게 있는데 필요한 게 영어면 학원에 갈 수도 있죠.


주변에서 말린다는 얘기를 들었는데요.


네, 이병률 작가님이 ‘너는 그런 사람이 아닌데 스스로 얽어매려고 하냐’며 적극 말리셨어요. 고고학은 한 곳에서 오랫동안 연구하고 집중해야 하는데 저랑은 안 맞을 것 같다고요. 그것 때문은 아니지만 여전히 고민중이에요. 바뀔수도 있는 거겠죠.

 

 

마음과 생각을 버리는 시간


사막을 횡단할 때, 버리는 삶을 말하신 적이 있어요.


실제로 물리적인 무거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했어요. 처음에는 일주일 동안 먹을 음식, 책, 엠피쓰리, 카메라 다 들고 가는데 하루도 안 지나서 너무 무거운 거예요. 첫 번째 체크 포인트에서 음식과 물건을 다 버렸죠. 정신적으로는 사막에서 내가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완벽히 결론을 내리고 싶었어요. 그런데 갔더니 진짜 아무 생각도 안들고, 아무 생각 안하고 있다는 생각 자체가 없었어요. 비유하자면 뇌가 정지 상태였다가 골인 지점부터 심폐소생술로 새로 태어난 느낌이 좋았어요. 그것 때문에 무인도도 갔던 것 같아요.


엄홍길 대장과 히말라야 등반도 하셨죠. 엄홍길 대장님은 어떠셨나요?


생각했던 이미지 그대로였어요. 정말 대장이라는 호칭답게 카리스마와 리더십이 있었고요.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게 이야기도 많이 해주셔서 처음 산을 갔지만 같이 잘 다녀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병률 작가님과 손미나 작가님이 책의 추천사를 써주셨어요.


이병률 작가님은 시베리아 횡단열차에서 처음 만났어요. 한달 반 가까이를 같은 기차, 같은 칸, 같은 방에서 생활하면서 여러 이야기를 많이 나눴었죠. 손미나 작가님은 친해져서 지금은 누나라고 하는데, 고등학교 때 골든벨에 나가서 처음 뵈었어요. 그 이후에도 인연이 이어져서 사막마라톤 펀딩할 때도 선뜻 도와주고 싶다고 추천의 말도 써 주시고, 손미나앤컴퍼니라는 회사를 만들 때 같이 했으면 좋겠다 해서 같은 회사에서 일년정도 일을 했어요.


이병률 작가님하고 같이 간 무인도 이야기도 나옵니다.


같이 무인도에 들어가면서 걱정이 많았어요. 어쨌든 생존을 하려면 일을 해야 하는데, 제가 다 해야 할줄 알았어요. 예상 밖으로 글하고는 안 어울리게 터프한 모습을 많이 봤어요. 새가 가까이 오면 잡아서 칼질하고 내장 빼내고, 숯검댕을 온 얼굴에 묻히면서 먹고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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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도에 가고 싶어하는 이유


탐험문학이라는 분야를 만들고 싶다고요.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면 책을 구분하는 카테고리가 있잖아요. 이탈리아를 가고 싶으면 가이드북은 여행 카테고리에, 문학에는 에세이가, 지도는 지도 코너에 나뉘어 있는데, 어딘가 가고 싶을 때 볼 수 있는 분야를 총망라한 코너나 테마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지금은 여행의 기록을 일기처럼도 적어보고, 가이드북처럼 정보도 정리해 보면서 그걸 위해 연습하는 단계인 것 같아요.


창업이나 공연 기획 등 다른 분야도 관심이 많다고 하셨어요. 지금도 하고 싶은 분야가 있나요?


좋아하는 것들, 하고싶은 것들이 너무 많아요. 작년에는 친구랑 셰어 하우스를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어요. 신문사를 들어가 볼까, 싶었지만 글을 쓰는 걸 좋아해도 이런 종류의 글은 아니라고 생각했고, 창업을 해도 생각만큼 쉽지 않다고 느꼈고요. 글은 계속 좋아하는 걸로 남겨두고 현실적으로 먹고 살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는 단계예요.


 ‘이카루스 무인도 탐험대’와 ‘섬청년탐사대’에서도 활동하고 계세요.


섬을 다녀 보니 섬마다 특별해서 관광자원화 할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섬을 다니면서 일종의 가이드북이나 정보지 식으로 기록을 남기고, 간 김에 쓰레기를 같이 주으면서 섬에 사는 분들에게 필요한 봉사를 하면 재밌지 않을까 싶어서 한달에 한번, 같이 무인도를 가는 프로그램을 만든 게 ‘섬청년탐사대’예요. 재능기부를 하고 쓰레기를 줍는 일에 자기 돈 내고 하는 건데 신기하게도 많이 찾아오세요.


사람들이 무인도에 가고 싶어하는 이유는 뭘까요?


자꾸 비교해서 그런 것 같아요. 섬에 있으면 누구에게도 잘 보일 필요 없이 최소한의 충족할 정도만 있으면 되는데 도시는 너무 화려하잖아요. 멋있는 사람들도 많고, 나도 멋있어지고 싶다고 은연중에 비교를 계속 하는 사회인 것 같아요. 끝이 없고, 지칠 수밖에 없죠.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묻고 답변을 생각할 여유가 없고요. 그래서 그 답을 무인도에서 내려보고 싶은 게 아닐까요?


뻔한 질문이지만 책 제목도 그렇고 물어봐야 할 것 같네요. 무인도에 가져갈 세 가지를 꼽아주시겠어요?


세 가지까지도 필요 없을 것 같아요. 굳이 꼽자면 책과 종이. 왜냐하면 불은 하다보면 피울수 있으니 성냥이나 라이터는 필요 없고, 칼이 있으면 좋지만 돌을 깎아서 뾰족한 부분으로도 충분히 칼로 쓸 수 있고요. 책도 읽다 보면 지겹고. 오히려 무인도에서는 생각이 무한히 넓어져서 그걸 표현할 수 있는 종이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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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도에 갈 때 당신이 가져가야 할 것윤승철 저 | 달
사람이란 본디 육지에서도 홀로 존재하지만, 무인도에 입성하는 순간 더욱 지독하게 혼자가 된다. 그것이 무인도를 찾는 이유가 되기도 하고, 다시 돌아오고자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저자가 무인도에 갈 때 당신에게 가지고 가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 책을 통해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장강명 “나는 월급사실주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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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출신 전업 작가, 1일 8시간 글쓰기, 4개 문학상 석권. 지난해 소설가 장강명이 소비한 수식어는 독보적이었다. 2015년에 출간된 단행본만 3권, 올해도 같은 숫자를 기록할 전망이다. 『5년 만의 신혼여행』은 장강명이 처음으로 쓴 에세이다. ‘신혼여행’을 소재로 한 책을 쓸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그는 작가의 말에 “이 책에 다른 분들께 전하는 교훈이 있다면, ‘여행지에서는 음식을 너무 많이 사 오지 말자’는 것입니다. 그 외에 다른 주장은 없습니다”라고 썼다. 이 생뚱한 한마디는 과연 장강명답다.

 

읽을수록 궁금한 작가, 장강명의 첫 에세이는 정체성이 모호하다. 주장도 교훈도 충고도 없는데, ‘아차’ 싶은 공감의 대목이 곳곳에 등장한다. 작가는 평소 ‘가격 대비 성능비’를 따지는 사람이다. 자신이 읽은 책을 ‘일독 권유 지수’로 별점을 매긴다. 독자들도 한번 매겨보자. 누구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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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재즈를 연주한 느낌

 

첫 에세이인데요. 신혼여행을 소재로 쓰실 줄은 몰랐어요.

 

(웃음) 원고는 꽤 일찍 썼는데, 책이 될 만한 이야기인지 확신이 없었어요. 소설을 쓰다 지칠 때는 에세이를 썼어요. 제가 원래 글 쓰는 걸 좋아하고 일기도 1년에 책 1권 분량씩 쓰거든요. 소설을 쓰다 보면 피곤한 게 있는데 작년에 『댓글부대』를 쓸 때, 정말 힘들더라고요. 책 내용 때문인지 마음이 좀 어두워지고, 제가 그렇게까지 꼬인 사람은 아닌데 정신건강이 막 안 좋아지고요. 그래서 스스로 힐링하려고 쓴 책이에요. 아내한테 신혼여행을 소재로 에세이를 써볼까 한다고 했더니, “그걸 어떻게 쓰겠다는 거야?”라고 묻더라고요. 저도 의문이었어요. 3박5일 신혼여행 이야기가 책이 될지. 하지만 큰 생각을 하지 않고 욕심 없이 썼어요. 소설 쓰다 짜증 날 때 에세이 20매 정도 쓰고 다시 소설 쓰고, 그랬어요.

 

편한 마음으로 쓰신 것 같지만, 제목처럼 말랑말랑한 에세이는 아니에요.


당시 두 가지 이야기를 염두에 두었어요. 하나는 신문사를 그만두고 1년간 아무도 안 만나고 유배된 것 같은 생활을 했을 때의 이야기고요. 다른 하나는 신혼여행이었어요. 결혼식을 올리지 않고, 신혼여행도 5년 만에 갔으니까요. 저희 부부에게는 의미 있었죠.

 

신혼여행을 떠나신 게 2년 전, 가을이에요. 여행하면서도 “언젠가 이 이야기를 책으로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셨나요?


하긴 했지만 심각하게는 아니었어요. 늘 그런생각은 해요. ‘이거 언제 써먹을 수 있겠는데’라고. 그런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책을 보는데, 이렇게 솔직해도 되나? 걱정이 될 정도였어요.

 

책이 나오기 사흘 전인가, 밤에 잠이 안 오더라고요. 지금 취소해달라고 할까? 책을 불살라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사람이 생각이 좀 없는 거죠.(웃음) 저지른 다음에 생각해버리고. 앞으로 이 책에 관한 서평은 겁이 나서 못 볼 것 같아요. 네이버에서 사전 연재를 했는데, 댓글을 안 읽었어요. 이 책은 ‘어떤 결과물을 내야지’ 하는 생각보다는 ‘어어’ 하다가 내게 된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제 인생도 그런 것 같고요.

 

결혼, 신혼여행을 소재로 했지만, 곳곳에 생각해볼 만한 이야기가 많아 좋았습니다.


저도 이 책이 마음에 들긴 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용도가 아니라, 제가 완결 지은 글로서요. 왜냐하면 솔직했고 저의 여러 생각을 넣었지만 크게 주장하는 바가 없으니까요. 뭔가 통일된 느낌은 없지만, ‘그냥 이 정도가 좋다’는 느낌이에요.

 

음악으로 비유하자면, 형식이 정해진 교향곡이 아니라 자유로운 재즈 연주 같은 걸 한 느낌이에요. 하지만 작가님의 부모님이 좀 걱정됩니다. 아내와 부모를 두고 이렇게 적나라하게 표현한 책은 지금까지 본 적이 없어요.

 

지금은 약간 후회합니다. 사전 연재를 할 때는 몰랐는데 막상 책으로 나온다고 생각하니까, 여러 생각이 들더라고요. 하지만 결혼을 하고 신혼여행을 하기까지 부모님과도 상관이 있으니까요. 물론 제가 결혼식을 안 하고 명절 때 잘 찾아뵙지 않는 게 잘하는 행동은 아닙니다. 하지만 나쁜 일을 한 건 아니죠.
잘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크게 부끄럽지는않습니다. 예전에 가수 신해철 씨가 살아계실때, 그분의 말에 동조한 적은 많지 않지만, 용감하게 자기 이야기를 하는 건 좋아했어요. 사회에는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있어야 해요. 사실 제가 결혼식을 안 한 게, 한국 사회에서는 튀어 보이지만 외국에서는 또 그렇지
도 않죠.

 

결혼제도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제가 여러 가지로 보수적인 사람인데요. 결혼제도, 일부일처제를 강하게 옹호합니다. 결혼제도의 숭고한 그 어떤 정신을 옹호하죠. 동성결혼이 결혼 정신에 어긋나는 것 같지는 않아요. 사랑하는 두 사람이 서약을 맺고 서약 지키는 일은 훌륭합니다. 다만 싫어하는 건 결혼식인데, 결혼제도를 너무 옹호해서 싫어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결혼이라는 정신을 갉아먹는 게 결혼식이니까요. 제가 생각하는 결혼식은 신랑, 신부가 주인공이고 신성한 서약인데, 지금 우리 결혼식은 세일즈잖아요. 주인공이 누군지 모르는 결혼식에 대한거부감이 있어요. 본질에서 벗어난 아무 짝에 쓸모없는 것들이 사람을 짓누르고 있는 게아닐까 싶어요. 또 자기가 당한 만큼의 본전을 뽑으려고 내리 물림을 하고 있고요.

 

아내 분이 초고를 보고, “너무 돈 얘기가 많아”라고 하셨다고요. “좀 줄일까?” 하는 의견에는 “아니, 우리가 실제로 그러고 사는 걸 뭐, 괜찮아”라고 답하셨고요. “소설가의 아내는 아무나 할 수 없다”는 말이 생각나더라고요.

 

(웃음) 평소에 워낙 배포가 커서요. 바다와 같은 마음이라서 갖다 쓰라고 하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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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꼭 청탁을 받아야 하나요


책을 자주 낸다는 평가가 많은데요.


거의 다 제가 보낸 거예요. 『5년 만의 신혼여행』도 제가 출판사에 보낸 거예요. 한겨레 출판에서 2012년에 나온 연작소설집 『뤼미에르 피플』에서 맨 마지막 단편을 좋아했는데, 이 작품에서도 어떤 책 이야기가 계속 나와요. 그 책과 쌍을 이루는 책을 써보면 좋겠다 싶었어요. 소설 기획안을 드리면서 이 에세이도 함께 드렸죠.

 

문학상을 많이 받으셔서 일까요? 책도 여러 출판사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게 흔치 않은 행보인가요? 저는 공모전에 작품을 많이 내기도 했지만, 투고도 많이 했어요. 그런데 투고를 하다 보면, 대부분 형식적인 답들이 와요. 반은 답이 없고, 어쩌다 돌아오는 회신은 “검토해보고 연락드리겠다”죠. 이런 상황에서 투고를 하는 게 맞는 것인지 생각하게 돼요. 출판사의 잘못이라고 하기도 그래요. 너무 떨어지는 원고가 투고로 오기도 하고, 검토할 시간 자체가 없는 상황도 있으니까요. 공모전이 마치 블랙홀처럼 돼버렸는데요, 한쪽에서는 지면이 없다고 아우성이고 다른 쪽에서는 작가가 없다고 말해요. 등단만 간신히 한 등단 미아도 많고요.

 

민음사에서 지난달 창간한 격월 문학잡지 <릿터>에 ‘문학공모전’을 소재로 한 논픽션을 연재 중이시죠?

 

이것도 제가 기획서를 민음사에 보냈어요. 민음사가 공모제를 폐지하고 출간 단행본 중에서 ‘오늘의 작가상’을 뽑고 있잖아요. 제가 생각한 것과 취지가 맞지 않을까, 관심이 있지 않을까 싶어서 기획안을 보냈어요. 작가가 기획안을 보내는 경우가 흔치 않다고 하더라고요. 2015년에 나온 김보영 작가의 『이웃집슈퍼 히어로』를 재밌게 읽었는데, 이 책도 황금가지에 기획안을 보내서 나오게 된 책이라고 하더라고요. 작가가 직접 기획안을 보내오면, 출판사들이 좀 놀라는 것 같아요. 저는 꼭 문예지에 작품을 발표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마션』도 앤디 위어가 본인 블로그에 연재를 시작해서 나온 작품이잖아요. 출판계가 어렵다는 이 상황을 정당화하는 게 아니라 힘들어도 꿈틀대보기는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은행나무 출판사와의 첫 인연도 투고였어요. 『호모도미난스』 원고에 제일 먼저 반응을 보여준 곳이었죠.

 

이제는 원고 청탁이 더 많이 올 것 같은데요.

 

『한국이 싫어서』는 청탁을 받은 작품이에요. 그 후에 제가 논픽션을 제안드렸고요. 10월 쯤에 위즈덤하우스에서 새 장편이 나오는데, 위즈덤하우스에서 편집자로 일하셨던 유희경 시인과의 인연으로 시작됐어요. 저는 이게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는데, 뒤늦게 알았죠. 작가들이 출판사에서 만나자고 하면 무조건 반기진 않는다는 걸요. 출판사 몇 곳만 바라보는 작가들이 있다고 하는데, 전 별로라고 생각해요.

 

먼저 청탁받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거죠.


언젠가 이런 말을 들었어요. “장 작가님은 출판사에 원고를 막 보낸다면서요?”(웃음) 그 때는 ‘무슨 말을 하는 거지?’라고 생각했는데, 흔한 사례가 아니라는 걸 뒤늦게 알았죠. 그 결과 여러 출판사와 일을 하게 됐는데 결과만 놓고 보면 장단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이번에 『5년 만의 신혼여행』의 담당 편집자와도 호흡이 잘 맞았는데, 책마다 다를 수도 있겠죠. 제가 딱 한 색깔의 책을 쓰지 않으니까요. 원고에 맞는 마케팅이 필요하듯이 출판사도 그럴 수 있죠. 아마 전 한 명의 에디터와 죽마고우처럼 수십 년을 같이할 순 없을 텐데, 지금으로써는 별로 불만이 없어요.

 

직장생활을 꽤 오래 하셨잖아요. 신문사 기자를 10년간 하셨고요. 이런 이력이 작가 생활에도 영향이 있을 것 같습니다.

 

요즘 이런 생각을 합니다. 정세랑, 정아은, 임성순, 심재천, 이혁진 작가와 한 묶음으로 불려도 좋겠다고요. 이 작가분들은 2010년 이후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고, 비교적 장편을 크게 어려워하지 않는 30, 40대 작가군이에요. 쓰는 글도 현실적이고 에티튜드도 현실적이지 않나 싶어요. 이름을 붙인다면 ‘월급사실주의’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모두 직장생활을 하신 작가들이시죠?


다 월급을 받아 생활했던 작가들이고, 꼭 ‘문학 덕후’를 지향하진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요. 일부러 이런 작가들을 뽑아놓은 게 아니라 어떤 흐름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이미지보다는 서사를 중시하고 장르소설적인 기법을 아무 거부감 없이 쓰는 작가들이 많이 등장하고 있지 않나 싶어요. ‘후장사실주의자’라는 표현을 듣고 참 재밌다고 생각했어요. ‘월급사실주의자’도 그렇게 묶여서 불리면 재밌지 않을까요?

 

작년부터신가요?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일독 권유 지수’ 책 리뷰를 주기적으로 올리고 계세요. 5줄 정도 매우 간명한 리뷰인데요. 독자분들의 호응이 좋습니다.


처음에는 제 작품을 홍보하는 채널이 될 수 있을까 하는 기대로 SNS 활동을 시작했어요. 그런데 워낙 심심하게 사는 사람이고, 딱히 올릴 내용도 없어서 읽은 책에 대해 한두 줄씩 올리기 시작했어요. 하다 보니 이 일도 의의가 있는 것 같았어요. 거창하진 않지만 사람들한테 ‘이런 책이 있구나’ 하고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정도의 글이라고 할까요? SNS에서 책 리뷰를 볼 때, 책이 아니라 ‘책을 읽은 나 자신’에 대해 말하는 글들이 있는데, 그것도 좋지만 저는 책 자체에 관해 이야기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번 에세이에서 “HJ나 나나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실용주의자”라고 하셨어요. 언제나 가격 대비 가성비를 따지신다고요.

 

따지죠. 하지만 동시에 맹렬하게 가치를 찾는 사람이에요. 경제적 효용성을 추구하지만, 목적이 돈이 아닐 때도 있죠. 가치를 찾지못하면 공허합니다. 가격 대비 성능비의 ‘성능’은 수치로 환산되는 경제적 효용을 포함한, 어떤 가치를 가리키는 말이에요.

 

실용주의자가 보기에 가장 한심스러운 유형의 사람은 어떤 경우인가요?

 

실용주의자가 되려면 자기가 원하는 걸 알아야 하잖아요. 그걸 알려면 성숙해야 하고요. 저도 좋아하는 것이 뭔지를 아는 영역이 있고 그렇지 않은 영역이 있어요. 하지만 자기가 원하는 것을 너무 심하게 모르면, 문제가 생기죠. 남들이 원하는 걸 원하게 될 때가 있는데, 이게 기괴한 형태로 나타날 때도 있어요. 남들이 때릴 때 같이 가서 때리는 조리돌림 같은 게, 지금 사회에서는 넘쳐나잖아요. 냉정히 말해서, 왜 때리는가? 그 사람을 때려서 손톱만큼의 카타르시스는 있을 수 있지만, 그래서 얻는 쾌감이 별건가요? 그럴 시간에 운동을 하거나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죠. 어떤 선의의 탈을 쓰고 하는 행동들을 볼 때, 특히 싫어요. 사실, 당신들이 사회를 바꾸고 싶은 게 아니지? 그렇게 묻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친절한 사람을 우습게 여기고 허세만 잔뜩 부렸다”는 문장이 기억에 남아요. 기자로 살았을 때의 이야기인가요?

 

기자 초년생 때도 포함되지만, 대학생, 고등학생 때도 착한 아이들을 되게 우습게 봤던 것 같아요. 착하면 만만해 보였는데 그게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알아요. 저는 소설가로서 운이 좋았다는 생각을 해요. 내가 전생에 뭘 잘했나 싶은 생각도 하고요. 흐름을 잘 탔다는생각을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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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이’ 소리 좀 들으면 어떤가요


현재 카카오에서 ‘하트 펀딩’에 참여하고 계신데요. 소설 쓰기에 관한 궁금증을 해결하는 프로젝트입니다. 독자들이 무엇을 가장 궁금해하나요?


결국 ‘전업 소설가로 산다는 것은 어떤가요?’로 묶이는 것 같아요. 이런저런 질문들이 있지만, 가장 궁금해하는 것은 돈을 얼마나 버느냐가 아닐까 싶어요. 하트 펀딩이 여러 질문 중 투표를 해서 가장 많이 하트를 획득한 질문에 답을 하는 형식인데요. 얼마나 버는 지를 궁금해한다면, 어느 정도 밝힐 생각입니다. 창피할 것도 없는 일이고요. 정말 전업작가를 하고 싶은데 정보가 필요한 사람도 있을 테니까요.

 

통장에 매달 인세가 찍힐 텐데요. 인세가 좀 더 찍혔으면 싶은, 책이 있으신가요? 예상으로『호모도미난스』 가 아닐까 싶은데요.


네, 좀 더 찍히면 좋을 것 같아요. 작년에 제 소설 『한국이 싫어서』가 꽤 화제가 됐잖아요. 그런데 작년에 팔린 부수는 3만 부가 안 됩니다. 이 소설이 이 정도면, 다른 작품은 어떨까 싶어요. 저는 책을 좀 빨리 쓰는 편이에요. 보통 작가들이 1년에 1편 정도를 쓴다고 할 때, 그 책이 초판 1쇄가 안 팔린다면 이 시장이 정말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요즘 ‘출판은 강연을 거들 뿐’이라는 말까지 하던데,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

 

팔리는 책만 팔리고 안 팔리는 책은 정말 안 팔리죠.


1만 부와 10만 부 사이의 작품이 없어요. 중간 역할을 하는 작품들도 있어야 하지 않나 싶어요. 분명 과대 평가되고 있는 책도 있다고 생각해요. 서평 문화가 좀 더 활발해졌으면 좋겠어요. 평론가들은 책을 통해 자신의 텍스트를 만드는 거잖아요. 신문은 어쩔 수 없이 신간을 위주로 다룰 수밖에 없지만,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서평을 많은 지면에서 만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월간 채널예스>,  <월간 책> 같은 잡지의 등장이 반가운 이유입니다. 묻히기엔 아까운 책들이 많은데, 꼭 신간이 아니라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인생의 목표 중에 첫 번째가 ‘행복한 결혼생활’, 두 번째가 ‘소설가로서의 성공’이라고 하셨는데요. 세 번째가 있다면요?


글쎄요. 제가 정말 이기적인 사람이고, 행동의 많은 부분에서 세속적 성공을 생각하는데요. 그럼에도 의미 있게 살고 가치 있게 살려면, 자기가 사는 공동체에 어느 정도는 헌신하고 공헌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 봤자, 제가 저 자신을 알기 때문에 많이 열심히 할 것 같진 않지만요. 그래도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고 항상 관심을 놓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해요. 어릴 때는 몰랐거든요. 이런 이야기를 하면 위선자 같아서 더 위악적으로 ‘이 사회가 나랑 무슨 상관이야?’라고 했는데, 이제는 그런 위악을 좀 떨쳐버릴 수 있을 것 같아요. 대단하게 뭔가를 하겠다는 게 아니고요. 나에게도 어떤 작은 선량함이 있다는 걸 인정하고, 착하게 사는 일이 내 인생에 도움이 되고, 그런 기회가 있을 때 굳이 위악을 부리지 말아야겠다, 그런 생각이에요.

 

“소설가로 성공할 수 있을까?”는 더 이상 고민하지 않나요?


신혼여행 갔을 때에 비하면 훨씬 안 하죠. 성공까진 아니지만, 계속 소설가로 살 수 있겠다, 이 정도의 생각을 합니다. 수림문학상을 받기 전, 그러니까 신혼여행 석 달 전이겠죠?그때는 밤에 잠을 자다가도 불쑥 많이 깼어요. 내가 인생에 헛발질한 게 아닐까 싶었죠. 상을 탄 후로도 불안감이 크게 가시진 않았어요. 다만 ‘올해는 넘기겠네,  내년까진 글을 써도 되겠네’ 정도였죠. 변한 게 있다면, ‘소설가로 살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잠 못 이루진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5년 만의 신혼여행』. 저자로서 기대하는 의외의 독자가 있을까요?


돌아이 소리를 듣는 게 마음속에서 늘 겁이 나는 분들이 보면 좋겠어요. 남들이 나를 보고 이상하다고 할까 봐, 머뭇거려지는 분들에게 “이 정도까지는 이상하다는 소리 안 들어요”라고 말하고 싶어요. 이 책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어떤 한 사람이 좌충우돌한 이야기”입니다. 딱히 교훈 같은 건 없고요. 설렁설렁 읽으면 재밌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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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만에 신혼여행장강명 저 | 한겨레출판
《5년 만에 신혼여행》은 작가 장강명의 첫 에세이다. 결혼 후 아내 HJ와 뒤늦게 보라카이로 신혼여행을 가는 작가의 이야기로, 3박 5일간의 여행을 담았다. 그런데 소설가 장강명은 왜 5년 만에야 신혼여행을 떠나야 했을까?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서은진 “해외 취업하고 싶다면 인턴십, 인맥을 활용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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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그녀는 취업 문턱에 가로막힌 청춘이었다. 수백 통의 입사 원서를 쓰고도 한 번의 면접 기회조차 갖기 어려웠다. 그러나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비즈니스 우먼’이 되고 싶다는 꿈을 버리지 않았고, 결국 홍콩 금융계에 입성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제는 홍콩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또 다른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스스로 삶을 반전시킨 그녀가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걱정 마, 시작이 작아도 괜찮아』라는 응원과 격려다.

 

저자 서은진은 세계적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에 입사하며 사회에 첫 발을 내디뎠다. 그러나 ‘6개월 파견 계약직 비서’로서 그녀에게 주어진 일은 팀원들을 위해 식사를 주문하고 리포트를 준비하는 등의 보조 업무가 전부였다. ‘비전이 없다’며 낙담할 법도 하지만, 그녀는 주어진 환경에서 최선의 결과를 얻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1년 반 후, 정식 트레이더로 승진했다. 골드만삭스에서도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변화는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세계 금융 위기가 닥치자 하루아침에 해고 통보를 받게 됐다. 이후 KB 투자증권으로 자리를 옮겨 안정적인 일상을 되찾았지만 그녀는 또 다른 도전을 택했다. 오랫동안 꿈꿨던 글로벌한 삶을 찾아 홍콩으로 떠난 것이다. ‘무턱대고 사표를 내고 떠났다가 홍콩에서 취업이 안 되면 어떻게 할 거냐고’ 모두가 만류했다. 그러나 그녀는 다시 한 번 자신의 가능성을 입증해 보였다. 글로벌 금융 통신 회사인 블룸버그로부터 입사 합격 통지서를 받은 것이다. 홍콩으로 떠난 지 3개월 만이었다.

 

해외 취업에 성공한 그녀의 이야기는 블로그 ‘슈퍼울트라파워 특별한 그녀의 스펙타클 홍콩스토리’를 통해 많은 이들에게 알려졌다. 강연과 인터뷰 요청이 뒤따랐고, JTBC의 다큐멘터리 <지금, 여자입니다>에서도 그녀의 일상이 공개됐다. 『걱정 마, 시작이 작아도 괜찮아』에는 그 모든 순간들이 담겨있다. 작은 시작으로 큰 변화를 이뤄냄으로써 다른 이들에게 희망이 되어준 이야기다. “작은 일부터 시작을 해도, 시간이 걸리더라도, 당신이 원하던 삶이 나타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해주고 싶었다”는 서은진 저자는 ‘자신의 길을 걸어가면 된다’는 작은 울림을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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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 일찍 잘린 건 축복일지도 몰라요


외국계 기업에 근무하길 희망하는 분들이 많으실 텐데요. 작가님께서는 “국내 대기업이나 중견 기업은 서류 전형부터 경쟁력이 없었”기 때문에 외국계 기업에 지원하게 되셨다고요.


면접 제의가 너무 안 오더라고요. 지원을 했었는데 서류에서 다 떨어졌었어요. 현실적으로 취업이 너무 안 되다 보니까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려보자, 내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분야가 어디일까’ 생각하게 됐던 거예요. 그런데 업종을 전혀 모르니까 제가 좋아하는 영어를 쓸 수 있는 곳을 찾다가 자연스럽게 외국계 기업에 지원하게 됐던 것 같아요.

 

대학 졸업 후 처음 취업하신 곳이 세계적인 투자 은행인 골드만삭스였어요. 그렇지만 6개월 계약직 비서였고, 주어진 일은 잔심부름 같은 것들이었는데요. 회의감을 느끼셨을 법도 한데,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실패나 좌절을 대할 때 저는 그보다는 조금 더 희망찬 미래에 시선을 두는 것 같아요. 허드렛일을 하는 내 자신이 실망스럽고 ‘내가 이런 일까지 해야 되나’ 싶은 순간에도 더 밝은 미래를 보는 거죠. 그리고 제가 골드만삭스에서 배우고 싶었던 건 일만은 아니었어요. 어떤 사람이 일을 하는지가 궁금했어요. ‘이렇게 대단한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그런 사람들은 어떻게 일을 할까’ 그런 걸 알고 싶었어요. 그래서 허드렛일을 한다고 해서 그렇게 실망감이 크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런 순간에도 ‘언젠가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려면 어떤 걸 준비해야 되지’ 생각하면서 그들과 비슷한 전문직이 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던 것 같아요. 그런 사고를 가지고 일을 하면 지금 일도 잠시 지나가는 거니까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같은 상황에서 ‘이곳에는 비전이 없다’고 생각하고 그만두는 사람도 있을 것 같은데요. 작가님께서는 긍정적으로 사고하는 분인 것 같아요. 그게 지금의 작가님을 있게 한 요소 중 하나일까요?


그런 것 같아요. 이 책에 담긴 일들 중 대부분이 긍정적인 태도 덕분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왜냐하면 시작이 작았는데 끝도 작은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런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 많은 차이점이 있겠지만, 긍정적인 것도 한 부분일 수 있을 것 같아요.

 

결국 골드만삭스의 정규직 트레이더로 발탁되셨는데, 3년 만에 해고 통보를 받으셨어요. 그때 ‘회사가 곧 내가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셨는데,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어떻게 보면, 그때는 제 자신이 너무 불쌍했던 시간이었어요. 왜냐하면 제 모든 게 회사로 귀결됐었거든요. 제 자체가 그냥 회사와 동일시되었기 때문에 ‘이 회사가 없으면 나는 누구지?’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래서 제 삶에 있어서는 회사를 일찍 나오게 된 게 축복이 아니었나 싶어요. 그런 상황이 오래 지속이 됐다면 저 자신을 찾는 여정이나 시간이 훨씬 더 늦어졌을 테니까요. 그리고 나이가 많이 들수록 그런 일을 감당하기가 더 힘드니까, 차라리 젊었을 때 겪는 게 낫지 않았을까 싶어요.

 

골드만삭스에서 근무하실 때 ‘스펙 불감증’을 가지고 있었다고 고백하셨어요. ‘스펙 불감증’은 어떤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건가요? 


보통 대학생들이 취업을 위해서 스펙을 쌓아 올리잖아요. 그런데 그게 자기 삶에 체득이 돼서 회사에 들어가서도 끊임없이 스펙을 만드는 거죠. 회사 안에서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일이라든지, 자기 가치를 더 둘 수 있는 일을 찾기보다는 겉으로 보여지는 이력에 집중하는 거예요. 그런 사람이 정말 많아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해외에도 많더라고요. 그런데 회사의 리더 자리에 오르는 사람들을 보면, 이력서에서 보이지 않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라든지 리더십을 갖춘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런 모습을 보고 ‘스펙이 다가 아니구나, 조직에서 성공하기 위해서 필요한 게 이력서에서 보이는 것들만은 아니구나’라는 걸 느꼈어요.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열심히 일을 하는 걸까’라는 질문을 해보지 않은 직장인은 없을 것 같아요. 작가님께서도 골드만삭스에서 일하실 때, 비슷한 질문을 하신 적이 있으시죠?


그렇죠. 정말 일이 너무 많았어요. 보통 7시 30분에 출근을 하는데 저는 항상 15~30분 정도 일찍 출근했거든요. 그리고 저녁 7, 8시에 퇴근했으니까 거의 12시간 일을 했어요. 주말에도 일을 하고요. 업무량이 너무 많다 보니까 제가 가진 역량이나 스킬보다 더 많은 것이 주어질 때가 많았죠.

 

그때는 무엇을 위해 일하셨던 것 같으세요?


일을 할수록 조금씩 나 자신이 커가는 게 보이는 거예요. 사실 처음부터 갖춰놓은 게 너무 없기는 했죠. 경영도 몰랐고 경제도 몰랐어요. 그런데 회사에 들어가서 좋아하는 분야를 찾고 조금씩 공부하다 보니까 제가 커가는 게 보이는 거예요. 그러면서 제가 점점 더 괜찮은 사람, 사회에 어떤 가치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는 뿌듯함을 느꼈어요. 그래서 힘들었던 일들도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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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취업 ‘왜’ 하려고 하세요?


이후에 KB 투자증권에서 근무하시다가 홍콩으로 떠나셨어요. 안정적인 직장을 뒤로 하고 떠나신 이유가 궁금한데요. 무언가에 대한 갈증이 있으셨던 걸까요?


셀프브랜딩랩(SBL, selfbrandinglab.com)의 자료에 따르면 자신이 원하고 자신에게 맞는 '토양'이 어디인지 알아야 행복할 수 있다고 해요. 토양이 맞아야 내가 가지고 있는 씨앗이 제대로 싹 틔울 수 있다는 거죠. 제가 가진 스킬이나 역량이 씨앗이라면, 그 씨앗이 어떤 토양에 뿌려지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질 수 있는 것 같아요. 씨앗이 잘 자랄 수도 있고, 아니면 토양에 묻혀서 죽을 수도 있는 거죠. 국내 증권사라는 토양 자체는 너무 좋았어요. 그런데 제가 가진 씨앗이 싹틀 수 없는 토양이었던 거죠. 일하기 편한 곳이지만 일이 즐겁지는 않았어요. 제가 궁극적으로 원했던 건 조금 더 세상 밖으로 나가는 거였거든요. 그런 면을 채워주지 못하니까 갈증이 계속 남아있었던 거예요. 회사에 계속 남는다면 그 갈증을 회사 이외의 다른 활동으로 승화시켜야 될 것 같았는데, 그게 궁극적으로 제가 원하는 바는 아닌 것 같았어요. 그래서 도전을 하게 됐죠. 도전을 한다는 게 제 삶에 큰 획을 긋는 사건이기도 했지만,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다는 절박한 심정이었던 것 같아요. 모든지 절박함이 없으면 시작이 어렵잖아요. 작게 시작하는 게 맞을 때도 있지만 어떤 때에는 인생의 큰 결정을 내려야 할 때도 있는 것 같아요. 

 

커리어를 쌓는 데 있어서 이직도 굉장히 중요한 요소잖아요. 이직과 관련해서 조언을 해주신다면,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으세요?


저는 회사를 떠난 상황에서 이직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는 했는데요(웃음). 제가 경험해 보니까, 회사에서 나의 미래가 잘 그려지지 않을 때가 있는 것 같아요.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더 많은데 한계가 보인다고 할까요. 그런 상황에서 비전을 제시해줄 수 있는 회사가 얼마든지 많이 있어요. 이직을 통해서 연봉이나 직책이 높아지지 않는다고 해도, 일 자체가 내가 가진 역량을 더 발휘할 수 있는 곳이라면 이직을 고려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있는 그대로 내 모습을 받아들여주고 거기에 대해서 감사할 수 있는 회사여도 좋을 거고요. 조금 더 나에게 맞는 방향으로 이직을 한다면 그게 점프 업이 아닐까 생각이 들어요. 연봉이나 직책을 높이는 것보다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게 더 중요한 거죠.

 

홍콩으로 떠나실 때 스물일곱이잖아요. 새로운 도전을 하기에 적은 나이는 아닌데요. 나이를 이유로 도전을 망설이는 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도 있으실 것 같아요.


제가 아는 후배도 나이가 조금 있을 때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어서 회사를 그만두고 워킹홀리데이를 떠났어요. 그런데 언어의 문제도 있고 해서 원하는 업계에 취업을 하지 못했죠. 그러자 자기가 일했던 분야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인맥을 쌓게 됐고, 그 인맥을 통해서 자신이 일자리를 찾고 있다고 알렸어요. 자리가 나면 알려달라고 말하면서 이력서를 전달하고요. 결국은 취업이 돼서 해외에서 일을 하고 있어요. 시작을 두려워하고 계신다면, 너무 크게 환경을 바꾸기보다는 작은 것부터 무리 없이 시작을 해보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자원봉사를 할 수도 있을 거고, 재능기부를 할 수도 있겠죠. 작게 시작했던 일들이 모여서 인생의 큰 사건이 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지금 할 수 있는 작은 일부터 시작해 보라는 말씀이시군요.

 

너무 망설이다가 못하는 일이 대부분이잖아요. 망설일 시간에 작게라도 뛰어들어서 하면 좋지 않을까 싶어요. 사실은 저도 두려워요. 새로운 업계에 뛰어들어서 새로운 일을 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모든 사람들이 그런 두려움과 고민을 안고 살아가는데, 거기에 포커스를 두는 것보다 ‘이 도전을 통해서 어떤 신나는 일이 생길까’를 생각하고 긍정적인 부분에 포커스를 맞춘다면 재밌는 삶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처음 홍콩에 가셨을 때 ‘플랜 B’를 갖고 계셨어요? 현지에서 취업이 안됐을 때를 대비해서 마련해 놓은 방안이 있으셨나요?


없었어요. 그랬기 때문에 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후의 계획을 다 세워놓고 갔으면 한 달 도전해 보고 안 됐을 때 다시 돌아왔을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퇴로를 열어놓지 않으신 건데, 그래서 더 절박한 마음으로 노력할 수 있으셨을 것 같아요.


맞아요. 그런데 막상 현지에 와서 직접 부딪혀보면 그렇게 힘들지는 않아요. 다 사람 사는 곳이잖아요. 그리고 수많은 기업과 일자리 중에 내 자리 하나 없을까 생각했는데 정말 있더라고요. 그렇다고 해서 아무런 준비 없이 떠난 건 아니었어요. 제 경우에는 영어를 할 수 있었고, 금융계에서 일한 경력도 있었죠. 그리고 한국에 있을 때부터 입사 지원을 계속 했었어요. 헤드헌터와 연락하기도 하면서 면접 기회를 찾고 있었죠. 그러다가 헤드헌터로부터 가능성이 있을 것 같다는 답변을 들었고요. 그런 일련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정말 아무런 준비 없이 그냥 가서 부딪히다가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도 많이 보거든요. 언어도 통하지 않고 외로움도 느끼고요. 저는 예전에 일하던 직장에서 만난 친구들이 홍콩에 있기도 했고, 그래서 적응이 조금 쉬웠던 것 같아요.

 

해외 취업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가장 준비해야 할 것, 그리고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해외 취업을 왜 하려고 하는지 스스로에게 먼저 질문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왜 가려고 하는지, 어떤 직장과 일을 찾고 있는지, 명확한 비전과 뚜렷한 목표가 있다면 적응하기가 훨씬 쉬울 거예요. 그리고 현지에 대한 정보 없이 가면 부딪히는 어려움이 너무 많더라고요. 특히 외로움을 견디기가 쉽지 않아요. 실제로 제 친구도 어렵게 취업했는데 너무 외로워서 1년 만에 다시 돌아간 적이 있어요. 그래서 해외 취업을 하기 전에 그 나라에 몇 번 방문을 해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렇게 현지 분위기도 익혀보고 친구도 미리 사귀어 놓으면 도움이 많이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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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십과 인맥을 활용하세요


블로그는 언제 운영하게 되셨나요? 홍콩에 가셨을 때인가요?


그 전부터 블로그를 하고 있었지만 본격적으로는 홍콩에 가서 시작했죠. 한국에서 일할 때에는 일상적인 이야기들을 했었는데, 홍콩에 간 뒤에 본격적으로 해외 취업 정보들을 올렸어요. 그리고 이제는 육아 블로그로 변하고 있죠(웃음).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영향을 받으신 부분이 있다면 어떤 건가요?


삶에 용기를 얻게 된 것 같아요. 가장 큰 건 남편을 만나게 된 거고요(웃음). 남편뿐만 아니라 좋은 분들을 너무 많이 만났어요. 이 책의 편집자님도 블로그를 통해 만났고요. 블로그라는 매개체를 통해서 사람들을 만나고 그 관계가 오프라인으로 확장될 수 있었던 게 가장 큰 부분인 것 같아요. 두 번째는, 제 생각을 기록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나 울림을 줄 수 있게 됐다는 거죠. 작은 정보 하나가 다른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는 포스팅도 있고, 그래서 요즘에는 글을 쓰는 게 조심스러워지기도 해요.

 

책에도 블로그 이웃 분들의 글이 실려 있어요. 작가님의 글을 통해서 용기를 얻게 됐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은데요. 그런 피드백을 받았을 때 힘을 얻으실 것 같아요.


그럼요. 열심히 살았구나 싶은 생각도 들죠. 그런데 아쉬운 부분도 있어요. 저는 블로그 통해서 제 이야기를 하지만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는 없잖아요. 한 번 피드백을 주고받는 걸로 끝나고 계속 쌍방향의 소통이 이어지지는 않으니까요. 오프라인이라면 계속 토론할 수 있고 그 사람들이 변하는 것도 지켜볼 수 있는데 블로그는 그렇지 않으니까 아쉬움이 조금 있죠. 그래서 제가 강연을 정말 좋아해요. 온라인에서 느끼지 못한 사람들의 따뜻함, 관심을 느낄 수 있거든요. 눈을 빛내면서 이야기를 들으시는 분들을 보면서 오히려 제가 힘을 얻죠.

 

지금까지 국내외 기업들을 거치시면서 다양한 업무를 경험하셨는데요. 국내 기업과 외국 기업 사이에 두드러지는 차이점이 있었나요?


우선 우리나라 기업은 팀워크, 정이 굉장히 강하고요. 개인적으로 뒤처지더라도 항상 북돋워주는 문화가 있어요. 사내 동아리 같은 것도 많아서 같이 여행을 가기도 하고요. 우리나라 기업이 다 그렇지 않겠지만, 제가 다닌 회사는 그렇게 가족 같은 분위기가 있었어요. 그리고 금융 위기가 온다고 해도 잘릴 걱정은 안 했죠. 그런데 외국계 기업은 세계 경제 위기가 온다고 하면 누가 해고됐더라 하는 뉴스가 들려오거든요. 그리고 철저한 개인주의인 것 같아요. 옆에 있는 직원이 경쟁자가 될 수도 있는 거고, 팀을 꾸려서 사람을 키운다기보다는 일단 던져놓고 살아남으라고 하는 것 같아요. 살아남으면 계속 회사에 남는 거고 아니면 떨어지는, 그런 분위기죠.

 

같은 금융계인데도 국내 기업과 외국계 기업의 분위기가 많이 다르네요.


예전에 제가 근무할 때는 그랬어요. 그런데 우리나라 금융계도 조금씩 바뀌는 것 같아요. 감원도 조금 더 심해지고요. 이제는 우리나라 기업도 생존하기 힘든 상황이잖아요. 먹고 먹히고, M&A가 이루어지는 상황이니까요.

 

책에서 해외 취업의 다양한 방법을 알려주셨어요. 그 중에서 가장 추천하고 싶은 경로는 무엇인가요?


경력이 있다면 인맥 네트워크랑 사내 루트를 활용하면 좋을 것 같아요. 왜냐하면 자신이 일하고 있는 환경과 회사가 한 번에 바뀌면 적응할 게 너무 많아서 힘들거든요. 둘 중에 하나라도 익숙한 게 있으면 좋겠죠. 한국에서 일했던 회사의 해외 지사에서 일하면 문화라든지 사람이 거의 비슷하잖아요. 그러면 환경만 먼저 적응하면 되는 거예요. 그곳에 조금 더 있다가 다른 회사에 가도 되는 거고, 아니면 한국에 돌아가도 되죠.

 

사내에서 만들어 놓은 인맥을 활용해서 해외 진출의 발판을 마련하는 건가요? 


그런 방법도 있고 해외 고객들을 통해 기회를 가질 수도 있겠죠. 헤드헌터라든지 업계의 유명한 마당발들과의 인맥도 도움이 될 거고요.

 

신입의 경우는 어떤가요?


신입은 인턴십이 좋은 경로인 것 같아요. 학생 같은 경우에는 인맥 네트워크가 많지는 않으니까, 정부나 기업에서 후원하는 인턴십을 통해서 경험을 쌓을 수 있는데요. 그럴 경우에 회사가 지원을 해주기 때문에, 회사에서 책임을 지고 가르쳐주는 과정이 잘 되어있어요. 사회 경험도 미리 해볼 수 있고요.

 

책에서 “3개의 눈”에 대해 이야기하셨습니다. 전체를 보는 눈, 강점을 파악하는 눈, 기회를 보는 눈이 필요하다고요.


대부분 회사에서 한 분야의 업무만 하게 되는데, 그러다 보면 해당 분야의 전문가는 되겠지만 회사의 전체적인 걸 보는 안목은 갖기 힘든 것 같아요. 그런데 회사 비즈니스의 큰 그림을 가지게 되면 업계가 보이거든요. 그렇게 ‘전체를 보는 눈’은 업계에 5년 이상 있어야 가질 수 있는 것 같아요. 저는 무엇보다 ‘강점을 파악하는 눈’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하나의 업무를 하더라도 그 안에 정말 다양한 게 들어있거든요. 저의 경우에는 세일즈, 고객 관리를 했지만 채용을 한다는 측면에서 인사 업무도 경험했고, 세미나를 준비하면서 마케팅도 하게 됐거든요. 그렇게 하나의 업무를 하면서도 조금씩 다른 일을 할 수 있잖아요. 그러면서 ‘이 일은 정말 재밌었구나’ 하면서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렇게 조금씩 자기가 잘하고 좋아하는 분야를 키워가면서 그 방향으로 경력을 옮기면 좋지 않을까 싶어요.

 

‘기회를 보는 눈’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일을 내가 할 수 있을까’ 생각했을 때 기회가 오는 것 같아요. 어떤 일이 주어지거나 기회가 왔을 때 ‘나는 못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그게 기회일 수도 있다는 거예요. 아직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모르는 건데, 그 두려움 때문에 하지 않는다면 그건 기회가 아니라 그냥 지나가는 사건 하나일 뿐이죠. 그걸 잡아서 살려내면 나중에 결과가 돌아왔을 때 ‘이게 내 기회였구나, 신의 한 수였구나’ 하고 생각하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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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맘의 직업은 엄마, 일은 취미일 뿐


홍콩대학교에서 MBA 공부를 마치기도 하셨잖아요. 가족들, 특히 남편 분의 응원과 지원이 없었다면 힘들지 않았을까 싶어요.


맞아요, 남편이 굉장히 도움이 많이 됐죠. MBA를 시작할 때도 ‘너 아니면 붙을 사람 없다’고 말해줘서 용기를 냈어요. 저희가 같은 업계에서 일을 하다 보니까 그런 걸 잘 이해해 주는 것 같아요. 궁극적으로 서로 하고 싶은 일이 있다고 하면 막기보다는 응원해주는 사이 같아요.

 

책 속에서 워킹맘으로 일하면서 고민했던 부분들도 들려주셨어요. 일과 육아를 병행하면서 가장 위기의 순간이 있었다면 언제였나요?


저희 첫째가 심장 수술을 받았었거든요. 큰 수술이어서 업무 중간에 병원도 다녀와야 했고, 수술 후에도 한 달 가량 입원을 했었어요. 그런데 남편도 일이 바빠서 시간을 낼 수 없었거든요. 결국 친정 부모님께서 홍콩까지 오셔서 아이를 봐주셨는데, 그때 ‘이렇게 중요한 순간까지 업무에 치여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리고 저희 시부모님께서도 심장이 안 좋으셔서 합병증 때문에 일주일 정도 혼수상태에 있으셨던 적이 있어요. 그때 제가 싱가포르로 출장을 가 있어서 찾아 뵙지도 못하고 전화로만 소식을 들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생각도 들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을 포기하지 않으신 이유는 뭘까요?


저 혼자였다면 포기했을 것 같고요. 그런 순간마다 가족들이 도와줘서 버텨낼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혼자라면 절대 못했죠.

 

비슷한 상황에서 ‘네가 일을 그만둬야지’라는 말을 듣는 여성들도 많잖아요.


맞아요, 저는 그래서 굉장히 감사해요. 저희 가족 중 누구도 네가 일을 그만두고 아이를 보라는 이야기를 안 하세요. 처음부터 저는 일을 해야 되는 사람이라고 말씀을 드리기도 했고, 워낙 도와주는 분들이 많으세요. 책에도 썼지만 집에 상주하시면서 도와주시는 분이 계셔서 너무 많은 도움을 받고 있죠. 혼자서는 못했죠. ‘한국에 살았다면 과연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 생각이 들기도 해요. 저는 한국에 있는 워킹맘들을 정말 존경합니다(웃음).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승진 기회를 포기한 적이 있다고 하셨어요. ‘주양육자로서의 역할을 엄마가 아닌 아빠가 맡아도 되지 않을까’ 생각하신 적은 없었나요?


그런 생각도 해봤어요. 아이를 키우다 보니까 어느 순간에는 엄마, 아빠 둘 중 한 명은 포기해야 할 때가 오더라고요. 두 사람 모두 커리어에 너무 포커스를 맞추면 아이가 부모를 볼 시간이 없어요. 그런데 제가 객관적으로 봤을 때 저희 남편은 커리어를 포기할 사람이 아니거든요(웃음). 그렇다면 제가 조금 양보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그 포기라는 게 결국 또 다른 기회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요. 지금의 자리가 회사에서 항상 좋은 위치라는 보장도 없고, 그 안에서 또 다른 기회가 있을 수도 있잖아요. 승진을 포기한 대신에 저의 개인적인 삶이 더 풍요로워졌기 때문에 잃은 것보다는 얻은 게 더 많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내 원래 직업은 ‘엄마’이고, 일은 ‘취미’일 뿐이라고” 생각하기로 하셨다고요. 발상의 전환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렇게 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가벼워지시던가요?


훨씬 가벼워졌어요. 그 아이디어를 주신 분이 골드만삭스에서 만났던 상무님인데요. 그 분은 지금도 골드만삭스에서 근무하세요. 10년 넘게 일하고 계신 건데, 그 분을 보면서 ‘저게 진정한 회사 생활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취미 생활을 하듯이 즐기면서 일을 하시거든요. 회사 안에서도 끊임없이 재밌는 이야기를 찾아 다니시고 그걸 동료들과 공유하세요. 그러니까 내부에 적도 없고요. 일에서 스트레스를 받지도 않으시고, 야근을 자주 하지도 않으세요. 자기 전문 분야에서 열심히 일하시면서 가정생활도 잘 하시거든요. 저는 그 분을 보면서 ‘일을 저렇게 해야 되는구나, 그래야 오래 가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목숨 걸고 일하는 것도 중요하고 그래야 할 시기도 있지만, 나이가 들고 경력이 쌓이면서 ‘여유롭게 즐기면서 스스로 숨통을 트여주면서 일을 하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게 끝까지 일을 할 수 있는 비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취미 생활을 하듯 일을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고객을 고객으로 만나지 않고 친구로 만나는 순간 일이 재밌어지더라고요. 일을 통해서 만났지만 나중에는 친구처럼 만날 수 있는 사이가 되는 거죠. 그럴 때 일을 취미처럼 즐길 수 있는 것 같아요.

 

책 중간 중간 멘토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멘토의 조언을 들었던 경험도 들려주셨고요. 작가님께서는 어떤 멘토가 되어주고 싶으세요?


말보다는 제 삶으로써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주는 멘토가 되고 싶어요. 말을 장황하게 할 수도 있지만 그걸 경험해 보지도 않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보면 저는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걸어왔기 때문에, 그런 면에서 조금 다른 시각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나도 할 수 있겠구나’ 라고 생각할 수 있도록 작은 영감을 주는 멘토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블룸버그를 떠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어떤 일을 준비하고 계세요?


새로운 도전을 하려고 계획 중이고요. 아마 새로운 직장에 들어가게 될 것 같아요. 홍콩대학교 경영대학원의 경력개발센터에서 일을 하게 됐습니다. 어떻게 보면 HR이나 헤드헌터와 비슷한 역할인데, 제가 해보지 않은 일이지만 홍콩대 총장님께서 그동안의 활동을 잘 봐주신 것 같아요. 제가 블로그를 통해서 해왔던 활동이라든지 멘토링을 통해서 젊은이들의 삶에 꿈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해 주는 게 보기 좋으셨나 봐요. 제가 블로그에서 했던 활동들과 새로운 일 사이에 교집합이 있을 것 같기도 하고요. 그래서 새로운 기대를 안고 시작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결코 남과 나를 비교하지 않고 묵묵히 나의 자리를 지키며 나만의 길을 가고 있는 수많은 청년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고 쓰셨습니다. 나만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주변의 목소리에 흔들리는 청년들이 있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으세요?


조금 뻔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 나이 때이고 그 시간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30대가 되고 40대가 되면 더 두렵거든요. 남들의 시선도 그렇고, 내가 포기해야 될 것도 너무 많아져요. 그때는 부양해야 할 가족도 있고 연봉도 어느 정도 높아져 있을 테니까요. 그것들을 포기하려면 너무 많은 용기가 필요하죠. 그런데 청년들은 잃을 게 없어요. 설사 안됐다고 해도 또 다시 시작하면 되잖아요. 얼마나 좋은 시간인지 몰라요. 지금 안 됐다고 해서 인생을 망친 것도 아니고, 안 되면 다시 다른 걸 하면 되거든요. 그러니까 용기를 가지고 소신 있게 하면 좋을 것 같아요. 지금 아니면 못 한다는 심정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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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 마, 시작이 작아도 괜찮아 서은진 저 | 위즈덤하우스
이 책은 스물넷 파견 계약직 비서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긍정 마인드와 노력으로 홍콩 금융계에 입성한 저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20대라면 누구나 책장을 넘기며 ‘이건 내 얘기잖아!’ 하며 고개를 끄덕일 만한 공감 에세이로, 취업 준비와 경쟁에 지친 몸과 마음에 따뜻한 용기를 불어넣어줄 것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희주 “아이돌 향한 사랑, 왜 그건 사랑이 아니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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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서로 놀랐다. 이를테면 ‘덕통사고’ 같은 대목. ‘덕통사고’란 아이돌이나 캐릭터를 알게 된 순간 사랑에 빠지는 것을 교통사고에 비유한 단어다. 이희주 작가는 이 말을 사람들이 흔히 안다고 생각하고 말했다. 그리고 그게 무슨 뜻이냐는 질문을 받아야 했다. 질문을 해야 했던 사람도, 질문 받은 사람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같은 시간을 살면서 전혀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을 확인하는 일, 이것은 정말이지 놀랍고, 흥미로운 일이다.


제5회 문학동네 대학소설상을 수상한 『환상통』은 아이돌을 사랑하는 팬의 이야기다. 아니, 이 설명은 너무나 부족하다. 이 소설은 아주 뜨거운 사랑, “병 같은 사랑, 사랑 같은 병”에 관한 이야기다. 사생팬을 척결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그렇게 알게 된 정보에 집착하고, 자동인형처럼 ‘씨발, 죽어도 좋다’라는 말을 내뱉으며, 때로는 사랑의 대상이 죽었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하는. 그러나 세상은 너무도 쉽게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고 말한다. 하지만 세상은 이들의 사랑을 들어본 적도, 제대로 바라본 적도 없다. 어째서 이것은 사랑이 아닌가. 작가는 소설을 통해 끊임없이 질문한다.


이희주 작가는 그 자신을 ‘현역’으로 지칭한다. 여전히 ‘오빠’를 사랑하는 팬으로서 이 마음에 관한 이야기를 기록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오히려 이런 이야기가 없었던 것이 의아했고, 이 이야기를 새로워하는 것에 놀랐다. 잘 들리지 않는 목소리, 목소리가 되지 못하는 목소리에 늘 끌린다는 그에게서 흘러나온 이 이야기는 그러니까, 낯선 익숙함 혹은 익숙한 새로움 그 언저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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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당연한 이야기


제5회 문학동네 대학소설상 수상작품이죠. 먼저 수상 축하드려요. 수상 소식 들었을 때 기분이 어떠셨어요?

감사합니다.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는 정말 놀랐어요. 생각을 별로 안 하고 있었기 때문에요. 될 줄 몰랐어요. 어느 정도 해야 되는지 몰랐으니까요. 수준이 가늠되면 내가 잘했으니 될 것 같다, 이런 기대라도 했을 텐데 전혀 그렇지 않았거든요. 원래는 시를 썼었고, 소설은 처음 써서 낸 거라 감이 안 왔어요.

 

굉장히 독특하고 강렬한 느낌의 소설이었어요. 읽으면서 ‘참 진하다’는 생각을 계속 했어요.


그런 내용이죠.(웃음) 자기가 통제할 수 없는 마음에 대한 이야기니까요. 어떻게 해야 이걸 말로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많이 했죠. 하지만 그건 모든 작가가 그렇지 않을까요? 다른 작품 쓰는 분들 모두 똑같이 하는 고민일 거예요. 모두 어떻게 언어화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하죠.

 

지루한 질문이긴 하지만요. 아이돌 팬덤을 소설의 소재로 쓰겠다고 생각한 시작점이 궁금했어요.


특이한 소재를 찾아 써야지, 이런 생각으로 쓴 게 아니거든요. 제 자신이 팬이어서 제게는 이게 당연한 이야기였어요. 그렇게 어렵거나 한 일이 아니었는데요. 책이 나오고 보니까 어떤 분들은 많이 공감해주시고, 어떤 분들은 전혀 모르던 얘기라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그냥 자연스럽게 썼던 것 같아요.

 

익숙한 일이라고는 해도 그것이 소설이라는 형태로, 이야기로 만들어지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일이잖아요.


그런 시도들이 조금 있었어요. 제가 관련 연구 같은 것을 읽는 것도 좋아하는데요. 서브컬처, 특히 여성들이 즐기는 서브컬처에 대해서는 기록이 많이 사라진 부분들이 있어요. 제가 개인적으로 흥미를 가지고 있는 게 있는데요. 한국의 후죠시(腐女子, 여자 오타쿠) 연구를 하시는 김효진 선생님이라고 계세요. 트위터를 보면 그 분이 항상 사라진 시기의 자료들을 찾으려 애쓰시거든요. 80년대, 90년대 한국 동인지가 있으면 연락 달라는 글도 남기시고요. 사실 대중문화에서 이런 ‘빠순이’ 문화 같은 것을 불러온 경우가 몇몇 있긴 하지만 거의 이미지만 가져온 경우가 많았잖아요. 그런 건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고 생각을 해요. 기록을 하고 싶었어요. 내가 즐겨온 서브컬처에 대해 기록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그게 소설 형식이 된 것 같아요.

 

이 소재를 다뤄보겠다는 마음이 있었던 거군요.


막연하게 그런 생각은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굳이 소설 형식이 아니더라도 언젠가 이걸 기록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죠. 그래서 쓰게 됐는데 제가 소설을 쓰고 있더라고요. 거짓말을 하고 있더라고요.(웃음)

 

응, 그것도 굳이 말하자면 사랑이겠지. 병 같은 사랑. 사랑 같은 병. 야, 넌 뭐 사랑이 고귀한 건 줄 아니. 그런 개 같은 것도 다 사랑이지. 아니, 상식적으로 생각해봐. 그렇게 가수들이 대놓고 싫다고 하는데도 그러는 건 진짜 병이지, 병. 내가 아무리 오빠를 잘 아는 것 같고, 오빠가 내 것 같아도 오빠도 인간이라는 걸 알아야지. 그런데 그걸 모르고, 알면서도 계속 모르는 척하니까 사달이 나는 거지, 뭐. 마음은 이해 가. 원래 사랑할 땐 사람이 미치잖아. (162~163쪽)

 

책 뒷부분에 인터뷰가 실려 있는데요. 2008년에 대해 다른 기억을 갖고 있다고 한 부분이 흥미로웠어요.


공적 역사의 기억이라는 게 있죠. 그 해에 있던 사회적 이슈라든지, 그런 것도 당연히 기억나고요. 사적 영역에서 있었던 저의 개인사도 기억나고 그렇지만요. 동시에 같은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세대들이 많이 있는 기억이라 제 개인사라고 표현하기에는 조금 큰 기억도 가지고 있어요. 그 인터뷰에서도 말했지만 그때 동방신기가 컴백했어요. 당시에 동방신기를 좋아했었거든요. 그 기억이 나죠. 2008년이라고 하면 그 기억이 함께 떠올라요. 고등학교 1학년 때였는데요. 사적 기억, 사회적인 일들도 생각나는 동시에 이런 집단 기억에 대한 생각도 나고 그렇죠.

 

‘집단 기억’이라는 말이 의미심장하네요. 세대의 이야기로 읽어낼 수 있는 부분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들고요.


네, 그럴 수 있겠죠.

 

1부의 화자가 아이돌을 향한 자기 감정의 정체를 찾으려 연애소설을 탐독하죠. 그 장면에서 화자는 외로움을 느끼거든요. 그걸 보면서 아이돌에 대한 사랑을 ‘새로운 형태의 사랑’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분명 외로운 일일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저는 쓰면서 물론 소재가 중요하긴 하지만 이것이 대단히 특별하다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어떻게 보면 보편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다른 분들은 아닌가요?(웃음) 그렇지 않을까요. 사랑을 하면 어떤 종류의 사랑이든 그런 마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딱히 이 이야기가 대단히 특별하다든지 인물들이 흔하지 않은 사람들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렇긴 하지만 소재에 압도되는 부분이 분명 있었어요. 이 소설을 ‘다르다’고 생각한 것도 그 지점이고요.


저는 읽는 분들이 어떻게 읽으실지 몰랐으니까요. 그냥 그런 생각은 했어요. 이해를 못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다고요. 그런데 의외로 보편적으로 받아들이는 분들도 계시더라고요. 다행이구나(웃음)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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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일원이라는 느낌


기록하려다보니 소설 형태가 되었다고 하셨는데요. 이 이야기는 사실에 어느 정도 닿아 있는 걸까요? 작가의 경험은 어느 정도나 담겨 있나요?


그걸 말하면 재미없잖아요.(웃음) 공개방송 가서 기다리는 장면 같은 건 제가 많이 기다려봐서 자세한 상황을 아는 거고요. 인물은 잘 모르겠어요. 굳이 얘기하자면 그냥 친구 같은 느낌이죠.

 

소설은 내내 어째서 이게 사랑이 아니라고 할 수 있냐고 묻는 느낌이었거든요. 그런데 막상 제목은 『환상통』이에요. 이건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사실은 ‘환지통’이라는 표현이 정확한데요. 그건 남들이 보면 없는 것이지만 진짜인 것 같은 통증이잖아요. 하지만 가짜 고통이 아니에요. 진짜 아픈 거잖아요. 잘린 팔이나 환부가 아프다고 느끼는 그 이미지가 이것과 많이 닮아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 책에 나오는 사람도 남들이 봤을 때는 실체가 없는, 모호한 사랑을 하고 있죠. 사랑이라고 했을 때 떠올리는 방향성 등 여러 이미지가 있는데 그 이미지와 다르다고 해서 왜 그건 사랑이 아닐까 싶었어요. 그렇다고 그 마음이 가짜는 아니잖아요. 그래서 나온 제목이에요.

 

사랑을 둘러싼 이미지가 워낙 확고하죠. 그래서 사람들은 ‘빠순이’를 향해 ‘그거 사랑 아니다’라고 쉽게 얘기해요. 소설은 거기에 균열을 내고 있어요.


그렇지만 거기에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옹호하지는 않는다는 마음으로 그냥 정직하게 쓰려고 노력했어요. 얘기를 하면, 그 얘기를 들어보면 다 이해를 할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얘기를 안 들으려고 하니까 이해를 못하는 것 같기도 해요. 딱히 제가 대변자가 된다든지 이것에 대해 강하게 옹호하려고 했다든지 그런 건 아니고요. 그냥 그 세계의 일원으로서 정직하게 썼다고 생각해요. 세계의 일원이라는 느낌이 저한테는 강해요. 총대를 메고 있거나 대표자로 선 것도 아니고요. 이건 어떻게 보면 제가 판단하는 방식인 거고 다르게 볼 때는 다르게 판단할 수 있는 부분이니까요.

 

그 세계의 다른 일원들에게는 무척 반가운 이야기였을 거예요. 들리지 않았던 목소리니까요.


사실은 그것도 의아했어요. 이 이야기를 왜 아무도 안 했지? 하는 느낌이었어요. 오히려 좀 늦었다, 그런 느낌이 들었던 것 같아요. 새로워하시는 것도 깜짝 놀랐고요.(웃음) 많이 이야기가 안 됐으니까 그렇게 생각하시는구나, 싶었죠.

 

핵심이라고 생각한 키워드 두 개가 있어요. 폭력성과 자본주의인데요. 먼저 폭력성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아주 간절히 그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장면도 있는데, 이것은 정말 ‘세계의 일원’이 아니면 이렇게 깊이 사유하지 못했을 부분이라고 생각했어요.


네, 그 두 가지가 정말 힘든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폭력성이 중요한 지점이라고 생각하는데요. 폭력성은 저도 부딪치는 부분이거든요. 소설을 떠나서 제 개인적으로도 항상 충돌하는 부분인 것 같아요. 저는 항상 현역으로, 어떤 ‘오빠’를 좋아하고 있기 때문에요. 거리감이라든지 이런 부분을 조심하는 편이죠. 사랑이 항상 아름다운 건 아니잖아요. 그게 폭력적인 형태로 나올 수도 있고요. 소설에서는 약하게 썼다고 생각하는데요. 실제로는 선을 넘고 피해를 입히기도 해요. 그렇게 안 되려고 저도 항상 조심을 하죠. 특히 이런 사랑은 더 그런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집단이 있으니까 광기에 빠지기도 쉽다고 생각하고요.

 

가령 어떤 일들이 그래요?


문제가 복잡하긴 하지만요. 공항에서 사진을 찍으려면 공항 출입국을 언제 하는지 알아야 하죠. 그걸 알아내서 누군가 찍은 사진을 집에서 소비하는 내가 있고요. 그럴 때 자신에게 회의가 드는 거죠. 보고 싶어서 사진을 보고 있긴 한데 이게 잘못되었다는 건 알고, 그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는 것 같아요.

 

좋아하는 ‘오빠’가 누군지 정말 궁금하네요.(웃음)


그건 정말 아무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아 되게 조심하고 있어요.(웃음) 왜냐하면 그러면 확 좁아지잖아요. 저는 더 많은 분들이 읽어주셨으면 좋겠거든요. 어떻게 보면 보편성을 획득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하는데 누구 팬이라고 말해버리면 너무 좁아져요. 그래서 소설을 쓸 때도 절대 누구도 추측할 수 없도록 조심했던 것 같아요. 그것도 웃기지 않아요? 제가 이런 책을 썼다고 해서 누구를 좋아한다는 게 가십으로 팔린다면, 그건 좀 웃기다고 생각해요.

 

그걸 팬심과 비교하면 어떨까요? 좋아하는 아이돌의 사소한 하나까지 다 알고 싶은 것처럼 작가에 대해서, 소설에 대해서 상세히 알고 싶은 마음을 이해할 수 있지 않나요? 그렇다면 그건 그렇게 이상한 일은 아닐 거예요.


이상한 일은 아니죠. 하지만 저는 거리감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떤 관계든지 살짝 거리감이 있어야 애틋하고 좋더라고요.(웃음)

 

자본주의에 대해서도 이야기 해볼까요? 사인회에 당첨되기 위해 CD를 수 십 장 사야하는 상황 같은 것, 생각할 부분이 참 많았어요.


자기 목을 조이는 거죠. 거기에 돈을 쏟아 부으면서요. 사실 그런 산업 구조를 긍정하는 편도 아니고 나쁘다고 생각하는데요. 저도 거기에 깊이 안 빠지려고 항상 주의를 하거든요. 극단적인 경우 정말 경제적으로 힘들어지는 경우를 종종 봤어요. 작게 보면 다 코 묻은 돈 빼앗아서 하는 사업이고, 같은 생산물을 몇 개 씩 산다는 것도 웃긴 거잖아요. 문제가 쉽지 않은데요. 그게 안 좋게 빠지면 ‘내가 돈을 썼으니까 너네도 나한테 잘해라’ 하는 식으로도 갈 수도 있거든요. 어쨌든 지금은 저는 개인적으로 그렇다는 걸 인지하는 단계부터 시작하는 것 같아요. 항상 마음이 들끓잖아요. 자기 자신을 제대로 못 보기도 하고요. 머리로는 알면서도 마음이 안 되는 건데요. 일단은 그런 현상 자체를 있는 그대로 봐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거기서 움직임이 시작되는 거겠죠. 이런 문제가 있다, 그러면 어떻게 나아질 수 있지, 가 될 거예요. 좀 늦었죠.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분들도 계시고요. 

 

정말 어려운 일이네요.


폭력성과 자본주의 사이에 낀 나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게 정말 어려운 부분이에요. 그것이 내가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추구하는 가치관과 반대될 때가 있기 때문에요. 그 간극에서 항상 괴로워하죠. 볼 때는 행복하지만 절대 그렇지만 않단 말이에요. 구조 내에서 팬들뿐 아니라 오빠들도 착취당하는 부분이 있거든요. 어떻게 해야 이것에 눌리지 않고 지속할 수 있을까 항상 고민하고 있어요. 책까지 냈으니 더 고민이 되는 거죠.

 

좋아하는 아이돌을 신에 비유하기도 해요. 그 부분을 읽으면 그게 어떤 마음인지 조금은 이해되기도 하고요.


작년에 도서관에서 장 뤽 낭시의 『나를 만지지 마라』를 읽다가 ‘이거 완전 빠순이 얘긴데?’(웃음) 한 적이 있어요. 제가 가슴 절절하게 무릎을 탁 치면서 그런 생각을 했었거든요. 팬들은 시간이 많아요. 저도 항상 대기를 타면서 ‘이게 뭘까’ 생각을 많이 했거든요. 그렇지만 그것 역시 비유일 뿐이에요. 이 소설을 다 쓰고 나서도 느낀 게, 자꾸 항상 미끄러진다는 생각을 하게 되거든요. 쓰시는 분들이 많이들 그러실 테지만 저도 최대한 쓰고자 하는 것에 붙어 있으려고 노력을 하는 편이죠. 쓰려는 것을 어떻게 잘 남길 수 있을까 항상 생각해요. 그렇지만 절대 완벽한 일대일 비유라는 건 만들어질 수가 없는 거니까요. 최대한 정확하게 쓰려고 노력하지만 그럼에도 부족한 부분은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소설 속 인물이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이 정도로 강한 사랑의 감정, 경험하지 않으면 모를 일이라서 어떤 면에서는 부럽기도 해요.


전 너무 소중한 감정이라고 생각해요. 정말로요. 어쨌든 여러 문제를 발견하게 되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처음 사랑하게 될 때의 감정은 정말 순수한 감정이거든요. 그걸 느낄 수 있는 게 많지가 않잖아요. 사람이 살다보면 역치가 점점 높아져서 둔감해지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항상 그런 열정적인 감정에 부딪치게 되니까요. 안 좋으면서도 좋아요.(웃음)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어요. 그 중 3부의 화자는 좀 다른 존재죠. 소설 안에서 본다면 이질적인 시선인데요. 그 시선으로 이야기를 해야 했던 이유가 있었나요?


그냥 이 목소리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필요해서 썼다고 밖엔 말씀드릴 수 없을 것 같은데요. 그 부분을 좋아하시는 분들도 계시더라고요. 그리고 그 목소리가 나머지 목소리와 연결되는 부분이 있을 거란 생각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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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이 나오는 이야기


어떤 이야기에 끌리세요? 어떤 이야기가 이야기가 되나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잘 들리지 않는 목소리에 끌리죠. 목소리가 되지 못하는 목소리들에 끌리죠. 소외당한 사람들. 제가 최근에 너무 멋있고 훌륭하다고 생각한 말이 있었는데요. 최은영 작가님이 존재 자체가 멸시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에게 귀 기울이고 싶다는 말을 하셨어요. 정확한 말은 기억이 안 나는데요. 그 말에 정말 무릎을 탁 쳤던 것 같아요. 아, 그런 것에 끌렸구나 하고요. 그런 걸 좋아해요. 모르는 걸 발견하는 재미 같은 게 있기도 하고요. 최근에 본 것이 국가기록원 사진 중 하나인데요. 처음 수영장이 생겼는데 들어갈 수 없어서 동네 소년들이 철조망에 매달려 보고 있는 사진이었어요. 그런 식으로,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수영장 안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그런 것들이 궁금한 것 같아요. 그것은 어찌 보면 제 이야기를 하는 것일 수도 있고요. 

 

지금 마음에 담기고 있는 이야기도 궁금합니다.


그건 지금 쓰고 있어서 말하고 싶지 않아요. 말하면 안 될 것 같아요.(웃음) 전 여자들이 나오는 이야기가 좋더라고요. 여성의 이야기가 아직도 덜 되었다고 생각을 하고요. 여성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습니다. 그것도 앞서 말씀드린 것과 같은 맥락일 거예요.

 

‘여성에 대한 이야기’라는 말, 참 반갑네요.


다만 겁이 나는 부분이 있죠. 어쨌든 이것도 이야기가 안 됐던 거니까 제가 본의 아니게 대표성을 갖게 된 것 같은데요. 그걸 감당할 수 있는 그릇인가, 생각했을 때 의구심이 들어서 말하면서도 겁이 많이 나요. 모르겠어요. 그건 개인으로서도 항상 관심이 가는 문제라서요. 제 얘기일 수도 있고요. 제가 가진 많은 요소들이 그런 걸 궁금해 하게 하고, 유대감을 느끼게 만들고 그런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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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통이희주 저 | 문학동네
제5회 문학동네 대학소설상 수상작 이희주의 장편소설 『환상통』이 출간되었다. 수상 소식이 발표된 순간부터 아이돌 팬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아온 이 작품은, 아이돌 그룹의 한 멤버를 사랑하는 이십대 여성 m과 만옥, 그리고 그들을 바라보는 한 남자의 목소리로 이루어져 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박웅 “내가 수능 포기하고 세계일주를 떠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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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대신 세계일주』는 더없이 정직한 책이다. 우선, 제목 그대로 수능 대신 세계일주를 선택한 청년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저자 박웅은 열아홉 살의 나이에 스스로 학교 밖으로 나섰다. 그의 목표는 수능이 아니라 세계일주였다.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최저임금이 높은 나라 호주로 떠날 계획을 세우고, 일식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모았다. 호주에서는 9개월 동안 청소 아르바이트를 하며 1900만 원을 벌었다. 이후 702일 동안 6대주 24개국을 여행했다. 두 발로 세상과 만나고 가슴으로 관찰하면서 소년은 청년이 되었다. 『수능대신 세계일주』는 그 시간에 대한 기록이다.

 

이 책이 ‘정직하다’고 이야기하는 또 다른 이유는 저자의 솔직함 때문이다. 그는 자신 앞에 솔직했다. ‘모두가 가야 한다고 말하는 길,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 묻는 내면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았다. ‘남들처럼 대학에 가야 하는 이유’, 반대로 ‘꼭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에 대해 자문했다. 그 결과 내린 결론은 수능 대신 세계 일주를 선택하는 것이었고, 주저 없이 실행에 옮겼다. 독자들 앞에서도 그는 여전히 솔직하다. 환상적인 순간들이 이어졌다거나 극적인 변화를 경험했다는 거짓말 따위는 하지 않는다. 여행은 물론이고 남다른 삶에 대해서도 ‘당신도 나처럼 해보라고’ 부채질하지 않는다. 자신이 체득한 그대로를 덤덤하게 들려줄 뿐이다.

 

그 모습 그대로 박웅은 인터뷰에 응했다.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데 조금의 주저함도 없었다. 거침없이 이야기를 이어가는 그의 모습에서 흔들리지 않는 자기 확신, 자신감이 느껴졌다. “제 책이 정답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제 인생도 정답이 아니죠. 그렇기 때문에 저처럼 살라는 말은 조금도 하고 싶지 않아요”라는 그의 말은 흔한 겸손과는 달랐다. 그리고 다음의 말을 덧붙였다. “이 책을 읽고 ‘이렇게 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하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요. 그 생각일지라도 뭔가를 얻어 간다면 저로서는 더할 나위 없죠” 그의 말에서는 다양한 삶의 방식에 대한 존중과 인정이 묻어났다. 그의 삶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도 그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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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수저’ 아니냐고요? 저라도 그렇게 생각했을 거예요


여행을 떠나기 전에 기대했던 변화가 있었을까요? 다녀오면 뭔가 달라져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으셨어요?


막연하게 ‘조금 더 큰 사람이 되어 있겠지’라는 확신 정도는 있었던 것 같아요.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었던 건 없었지만요. 저는 경험주의자예요. ‘인생에서 파도를 만났을 때 나라는 배가 좌초되느냐 아니면 그 파도를 잘 타고 넘느냐’를 생각해 봤을 때 가장 중요한 건 경험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혼자 세계일주를 하고 오면, 그만큼 경험이 쌓여 있을 테니까, 조금 더 인생에 있어서 능숙해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는 있었죠.

 

『수능대신 세계일주』는 여행에 대한 환상을 부추기지 않아요. 여행을 다녀왔다고 해서 드라마틱한 변화가 생기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시죠?


그렇죠. 예전에 인터뷰에서 ‘세계일주를 다녀와서 가장 바뀐 점’에 대해 질문을 받은 적이 있어요. 그때 ‘결론부터 말하자면 크게 바뀐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든요’라고 답했었는데요.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제가 기본적으로 낭만이라는 단어에 약간 거부감이 있기는 해요. 그 단어가 가진 좋은 함의도 있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 꿈, 희망, 낭만 같은 게 상업적인 가치로 변질됐다는 생각도 들거든요. 그래서 저는 여행에 대한 좋은 점 나쁜 점을 골고루 쓰려고 많이 노력했죠.

 

“나는 세계일주로 과연 무엇을 얻었는가. 곰곰이 생각한 끝에 얻어진 내 결론은 ‘기억’이다”라고 쓰셨습니다. 그 기억이 작가에게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요?


‘기억이 실질적으로 영향을 주느냐’는 질문에는 답이 없겠죠. 기억만으로 돈이나 어떤 자리가 생기는 건 아니니까요. 다만 저는 기억이 제 손아귀에 제대로 남아있는 게 좋았어요. 살면서 그런 것들은 별로 없다고 생각해요. 지금 제가 책도 내고 강연도 하면서 지내지만, 이건 몇 년 지나면 사라져 버릴 신기루 같은 것일 수도 있잖아요. 돈도 언제든 잃을 수도 있고 생길 수도 있는 거고요. 결국 인생을 돌이켜 봤을 때 남는 하나는 기억인 것 같아요. 그래서 일상 속에서도 뭉클한 순간이 많아요. 예를 들면 카페에서 ‘브라질산 원두’라는 말을 봤을 때, 다른 사람들은 그냥 보고 지나칠 수 있는 거지만, 저는 브라질에서 있었던 기억을 떠올리게 돼요. 그때의 공기, 냄새, 촉감 같은 것들이 뭉클하게 떠오르는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되게 부자라고 생각해요, 기억 부자.

 

책에서 수능 대신 세계여행을 택한 많은 이유들을 들려주셨는데요. 한 마디로 정리해서 이야기한다면, 무엇 때문일까요?


그 질문은 지난 2년 동안 너무 많이 받아서 표준화된 대답이 있는데요. 가장 큰 이유는 저의 향후 10년, 11년이 뻔히 보이는 느낌이 무섭고 싫었어요. 열심히 노력해서 4년제 대학을 가고, 취업을 하고, 학자금 대출금을 갚고... 저의 가장 빛나는 시기의 청사진이 대략적으로 짜여진 느낌이 너무 싫었어요. 그리고 요즘 세상에 그런 단계들이 유연하게 연결되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런 불안도 심했어요. ‘어떻게 하면 내 인생의 주도권을 미리 잡고 갈 수 있을까’ 고민한 끝에 세계일주를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3 5월 때부터 그런 생각이 들어서 수능 보기 직전에 실행에 옮기게 됐죠.

 

‘금수저라서 세계여행을 갈 수 있었던 것 아니냐’는 오해도 받으신다고 들었어요. 그럴 때마다 억울한 마음이 드신다고요.


현실에서 그런 반응을 접한 적은 거의 없는데요. 온라인에 제 이야기가 오르면 댓글에 그런 반응이 많죠. 그런데 저는 그 반응이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생각하기에 절대 비합리적인 반응이 아니거든요. 저라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억울한 부분은 있지만 크게 억울하지도 않아요. 다만 한 가지 이야기를 하자면, 저는 약간 밥벌이에 대한 불안감이 있어요. 저를 움직이는 가장 큰 동력이 그 불안감이라고 할 수 있는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호주에서의 경험이 크게 작용한 것 같아요. 그때 사람이 돈이 없으면 어떻게 되는지 너무 절실히 체감했거든요. 저는 돈이 인생에서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한 번도 돈이 없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일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남들이 저를 금수저라고 보든 아니든 실제로는 금수저가 아니고, 오히려 뒤집어 말하면 (밥벌이에 대한) 조급함 같은 게 남들보다 조금 더 있는 타입이죠.

 

호주에 갈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아르바이트를 하셨었죠?


그렇죠. 일식집에서 접시를 닦아서 마련했고, 그렇게 간 돈으로 호주에서 청소 일을 시작하면서 돈을 벌었죠.

 

호주로 갔던 이유는 ‘최저임금이 높아서’였나요?


아마 호주 워킹을 가는 많은 사람들이 그 이유일 거예요. 한국에서는 스무 살의 고졸 학생이 9개월 동안 2만 불을 모은다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잖아요. 호주로 간 이유는 딱 하나였어요. 돈 하나 보고 간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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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간 세계 일주, 절대 계획대로 안 돼요


여행 이야기를 듣고 친구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던가요?


일단은 제가 한국 떠날 때 떠벌리고 다니지 않았어요. 제가 믿는 말 중에 하나가 ‘설필패’라고 설레발은 필패라는 거거든요. 그리고 기본적으로 공부하고 있는 친구들한테 여행 간다고 알린다는 게 예의가 아니기도 했고요. 그래서 한국 떠나고 10개월 후에 알리기 시작했는데요. 처음에는 ‘얘는 뭐하는 애인가’ 하는 반응도 있었지만 한국에 돌아올 때쯤에는 ‘대단하다, 멋있다’는 말을 해줬어요. 그런데 저한테 그 이야기는 공허하게 들리는 면도 있죠. 왜냐하면 힘든 일도 많았고 외로운 순간도 많았거든요. 페이스북에서도 멋있다는 이야기를 듣곤 했는데, 그러면서 타인의 평가와 한 사람의 인생의 본질은 무관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24개국을 돌아보셨는데요. 여행지는 어떤 기준으로 선택하셨어요?


저는 철저히 계획을 짜서 여행을 다니는 타입이 아니었어요. 그리고 장기간 세계일주라면 절대 계획대로 안 돼요. 계획대로 될 수가 없어요. 변수가 너무 많거든요. 그래서 기준은 없었습니다. 그때그때 가고 싶은 곳, 충동적으로 끌리는 곳을 많이 여행했고요. 중남미 같은 경우가 저한테 가장 매력 있었기 때문에 오래 머물렀던 나라죠.

 

가장 좋았던 나라는 쿠바라고 하셨어요.


항상 쿠바라고 이야기하죠.

 

어떤 점이 그렇게 좋으셨던 건가요? 


사랑에 조건이 있으면 사랑이 아니잖아요. ‘쿠바가 왜 좋으셨어요?’ 라고 질문을 받으면 솔직히 할 말 없어요. 그냥 쿠바니까 좋아요. 약간 조건 없는 사랑 같은 거라고 할까요. 쿠바가 좋은 이유를 명시적으로 말하기 보다는 ‘너무 좋으니까 한 번 가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멕시코는 어떠셨어요? 책에서 “나는 아직도 멕시코의 많은 것이 그립다”고 하셨는데요.


멕시코는 되게 충동적으로 간 곳이에요. 갈 계획이 전혀 없었는데 쿠바에서 친하게 지냈던 형 누나들이 ‘멕시코에 갈 건데 같이 가자’고 해서 가게 됐어요. 그런데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가니까, 그게 더 매력이 있더라고요. 일단 문화적인 토양이 생각보다 굉장히 깊었어요. 멕시코는 아즈텍 문명이 있었던 곳이고 스페인 사람들이 중남미 지역의 식민지로 삼기 시작했던 곳이기도 하거든요. 두 이질적인 문화가 합쳐지면서 나오는, 설명하기 묘한 매력이 있어요. 예를 들면 수도인 멕시코시티에 가면 대성당이 있어요. 스페인 사람들이 지은 유럽풍의 아주 큰 성당인데요. 거기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아즈텍인들이 사람의 목숨을 제물로 바치던 사원이 있어요. 걸어서 10분 거리에 서로 다른 문명이 공존하고 있는 거예요. 그런 곳이 멕시코이고, 그리고 음식이 정말 맛있습니다. 멕시코는 한 번 더 가보고 싶어요.

 

여행을 끝내고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후유증은 없었나요?


후유증이라고 표현하기는 그렇고요. 제가 702일 동안 여행을 하다가 원래 계획보다 한 달 앞당겨서 돌아왔거든요. 돈도 없었지만 당시에 많이 지쳐있어서 그랬어요. 오래 여행을 하다 보니까 굉장히 공허해지더라고요. 짧은 시간 동안 만나고 헤어지는 대인관계가 2년 가까이 지속되면, 한편으로는 충만해지지만 한편으로는 피폐해지는 면도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친구들이나 가족처럼, 내가 아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은 욕구가 되게 컸어요. 그리고 제 경우에는 여행을 충분히 했다고 판단해서 돌아온 거기 때문에 후유증은 없었어요. 그런데 한국에 돌아와서 지내면서 가치관도 많이 변화한 부분이 있고요. 쉽게 말해서 새로운 한 시기가 열렸죠. 702일 동안의 한 시기가 접히고, 이후에 한 시기가 열렸고, 지금 그 시기를 살아가고 있는 중인 것 같아요. 이 시기도 언젠가 끝나겠죠. 어떤 계기로 자연스럽게 끝날 거라고 생각해요.

 

보통의 여행 책들과 달리 여정을 따라가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형식적인 틀에서 벗어나고 싶으셨나요?


책 내용을 100% 여행기로 채우자는 생각보다는 ‘여행기도 어느 정도 쓰고 내가 그렇게 느꼈던 이유나 계기, 단상들에 대해서 말하는 공간도 있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두 파트로 나누어서 구성하자는 생각은 했었고요. 강연을 해도 여행 자체보다는 ‘한국에서 다른 길을 가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요청 받을 때가 많거든요. 학벌사회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가치를 내려놓고 떠나기까지 제가 했던 많은 생각과 결심, 그렇게 살면서 받는 시선, 그 시선을 받으면서 드는 단상들에 대해 듣고 싶으신 거죠. 페이스북에서 저를 좋아해주시는 분들 중에도 그런 부분에 관심을 가지는 분들이 계세요. 물론 여행기를 좋아해주시는 분들도 있지만요. 그래서 책에도 그런 내용을 담고 싶었고요. 여행기 같은 경우에는 지역 별로 나누어서 글 자체가 스스로 완결성을 갖게끔 쓰는 게 편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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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벌주의는 제도가 아니라 인식의 문제예요


“나는 내가 될 놈이라는 맹신이 있었다”고 하셨어요. 덕분에 대학을 가지 않을 결심을 하게 될 수 있었다고요. 그 자신감이 참 부럽더라고요.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을 믿는다는 게 누구에게나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타인의 시선은 신경을 안 쓰는 게 맞는 것 같아요. 타인의 시선은 어떤 경우에든 무책임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심지어 부모님이 해주시는 말씀이라도, 나보다 나 자신을 더 생각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거든요. 그 사람의 성향이 어떻든 자기를 제일 먼저 생각하고 자기를 제일 아끼기는 건 자기 자신이란 말이에요. 다른 사람의 조언대로 어떤 선택을 내렸을 때,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누가 같이 져주는 건 아니거든요. 그건 100% 나의 몫이란 말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일수록 남의 말을 안 들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인생의 행로를 바꿀 만한 규모의 결정일수록 타인의 말을 듣지 않고 내 말만을 따라야 나중에 후회가 없다고 생각해요. 자신감에 대해서 이야기하면, 저는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자기 확신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꿈을 이루기까지 주변에서 칭찬만 해주지는 않을 거잖아요. 그럴 때 가장 중요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옹골차게 밀고 나갈 수 있는 자기 확신’인 것 같아요. 어떤 결과를 내려면 꾸준히 이어나가야 되고, 그러려면 내가 가는 길이 옳다고 생각하는 고집 같은 게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꿈을 이루는 데 있어서 자기 확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작가님께서도 인터넷에서 댓글들을 보셨을 텐데요. ‘대학에 가지 않은 데 대한 한계를 체감하게 될 거다’라는 식의 이야기들이 있잖아요. 그런 반응들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드셨어요?


제가 댓글에 조금 무심한 스타일이에요. 내 인생하고 하등 상관없는 사람들인데 그 말로 상처 받을 이유가 조금도 없고, 제가 그 비난을 듣고 삶의 방향을 바꿀 것도 아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별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상처를 안 받는 편이고, 지난 2년 동안 그런 반응을 하도 접해 와서 그런지 조금 무심한 편이에요. 크게 신경은 쓰지 않아요. 가장 중요한 건 ‘앞으로 나의 할 일을 어떻게 똑바로 잘 해 나가느냐’ 하는 거죠. 그리고 타인의 평가라는 건 되게 간사해요. 제가 처음으로 대학을 안 가고 세계일주를 떠난다고 했을 때, 사람들이 다 안 좋은 이야기를 했어요. 그런데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 페이스북에 이름이 뜨고, 신문사들과 인터뷰를 하고, 책을 내고 강연을 하니까 어느 순간 그런 말들이 쏙 들어가고 ‘멋있다, 대단하다’는 반응이 나오는 거예요. ‘나라는 사람은 변한 게 없는데, 왜 똑같은 나를 두고 사람들의 평가는 상반되나’ 그런 생각이 들었죠. 결과 하나에 180도 바뀔 수 있는 게 세상의 평가라는 것도 많이 느꼈고요.

 

그때의 경험으로 인해 느낀 바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만약 제가 탄탄하게 제 갈 길을 잘 가면 ‘역시 (남들과) 다른 길을 가도 좋다, 학벌은 중요하지 않다, 한 청년이 과감하게 결정을 내려서 본보기가 됐다’는 이야기들이 나올 거예요. 그러지 않고 삐끗한다면 언제든지 돌아설 수 있는 반응들도 많겠죠. 그렇게 생각하니까 약간 초연해진 게 있는 것 같아요. 지난 3년 간 저를 두고 평가하는 반응들이 극과 극으로 한 번씩 엇갈린 경험을 하고 나니까, 다른 사람들의 말을 신경 쓰기보다는 ‘어떻게 내 할 일을 조금 더 잘 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게 더 효율적이라는 판단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 부분에서 책임감을 느끼시는 것 같기도 해요. “내가 현실에서 내디딜 땅을 얻지 못하고 쓰러진다면 그건 나로 대변되는 어떤 가치가 실패했음을 의미하니 그러지 말아야겠구나”하는 생각이 든다고 쓰셨잖아요.


제가 대학을 안 가고 (남들과) 다른 길을 가기로 결정한 데에는 류승완 감독이 있었어요. 제가 고등학교 시절에 영화 평론가가 꿈이어서 영화에 되게 관심이 많았는데, 류승완 감독이 고졸이에요. 스물여덟 살까지 공사 현장에서 12시간씩 일하고, 시나리오를 쓰고, 그렇게 영화라는 꿈을 붙잡고 있다가 결국 데뷔했거든요. 저는 류승완 감독의 일화를 보고서 ‘본인이 강렬한 욕망이 있고 그 욕망을 지속시킬 수 있는 의지와 노력이 있다면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게 수능 대신 세계여행을 선택하는 데 어느 정도 영향을 끼쳤고요. 제가 다른 학생들에게 류승완이 되고 싶어요. 우리나라가 아직까지 학벌사회인데, 제 생각에 학벌주의는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인식의 문제예요. 학벌주의를 없애려면, 정부에서 어떤 교육 정책을 내놔도 소용이 없고, 저나 류승완 같은 사람들이 계속 나와 줘야 된다고 생각해요. 학벌에 편입되지 않고 스스로 진로와 비전과 의지를 가지고 계속 밀고 나가는 사람들이 성공 사례를 계속 만들어줘야 돼요. 그게 차츰 축적되어 가야 학벌주의가 결국 깨질 거라고 믿거든요. 저도 또 한 명의 류승완이 돼서 그런 도움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욕심은 항상 있어요.

 

그런 변화를 개인의 노력에만 맡겨두는 건 가혹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사회가 뒷받침해주는 부분도 있어야 할 것 같은데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예전의 저는 소위 말하는 ‘노력충’이었어요. 마음속에는 그런 생각이 있었어요. ‘나는 고졸이지만 내 힘으로 이렇게까지 왔다, 사회 탓 나라 탓 할 바에 노력을 해라’ 그때는 노력하면 된다는 주의였어요. 사회나 나라에 자기 인생의 책임을 묻는 걸 엄청 꼴 보기 싫어했어요. 그런데 한국에 돌아와서 그 가치관이 되게 많이 바뀌었어요. 인생에서 운과 우연이 되게 중요하다는 사실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더 많이 받아들였어요. 그리고 한 사람의 노력이 반드시 (결과로) 직결되는 게 아니라는 것도 알았어요. 사회의 구조가 한 사람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사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고요. 사회에서 뒷받침 해줬으면 하는 부분이 뭐냐고 물으셨는데, 요즘 제가 많이 생각하고 있는 부분이에요. 결국 개인은 사회 안에서 사는 건데, 뛰어난 몇 명의 개인이 노력한다고 해도 사회의 시스템이 제대로 받쳐주지 않으면 어쩔 없는 노릇이잖아요. 사회에 바라는 부분을 굳이 꼽자면, 조금 더 관용적으로 바뀌면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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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만큼 ‘하기 싫은 일을 안 하는 것’도 중요해요


영화평론가를 꿈꿨었다고 하셨잖아요. 책에서 보니까, 그 전에는 소설가를 꿈꾸셨더라고요. 그 꿈들을 이루기 위해서 대학에 진학하실 생각은 없으세요?


아직까지 없습니다. ‘아직까지는’ 전혀 없어요. 그런데 대학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영화 쪽에는 항상 관심이 있어요. 사람 일은 모르는 거니까 대학에 갈 수도 있고 안 갈 수도 있겠죠. 아직까지 확실해 보이는 건 뭘 하든 영화 쪽으로 해보고 싶어요. 만약에 대학에 간다면 그 꿈에 조금 더 다가가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써 택하겠죠. 제가 별 건 아니지만 제가 걸어가고 있는 길이 하나의 사례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굉장히 필요한 경우이거나 직접적으로 가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아직까지 제 인생에서 대학은 고려 대상이 아닌 것 같아요.

 

다음 여행도 계획하고 계신가요?


책 인세를 받으면 인도를 갈까 생각 중인데요... 인도나 네팔을 갈까 생각 중이에요.

 

그때는 무엇을 위해 떠나게 될까요?


제 생각에는 십중팔구 인도나 네팔을 갈 것 같아서, 여행을 간다는 느낌보다 인도와 네팔을 간다는 느낌이 강할 텐데요. 작년 11월에 이집트에 있으면서 태국을 갈까 인도를 갈까 고민을 많이 했었어요. 그런데 결국 태국을 갔거든요. 인도에 대한 아쉬움, 미련이 많이 있었죠. 그래서 이번에 한 번 가볼까 생각하는 중이에요.

 

‘가보지 않은 곳이라서’ 인도에 가고 싶으신 건가요?


그런 것도 있고요. 인도라는 이름 자체가 주는, 류시화 시인으로부터 기인한 환상 같은 게 있잖아요. 인도 하면 떠오르는 일련의 이미지들이요. 그리고 길 위에서 인도에 대한 이야기를 되게 많이 들었어요. 그런 것들을 제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고 싶은 욕망이 있어요. 확실한 건, 인도가 톡톡 튀는 나라인 것 맞는 것 같아요. 그래서 직접 한 번 경험해 보고 싶은 욕망이 크죠.

 

아마도 많은 분들이 작가님께 ‘그래서 앞으로 무엇을 할 거냐고’ 물어볼 것 같습니다. 책에서도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이 이루어져야 한숨 돌릴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셨는데요. 어떻게 답변하고 싶으세요?


고백하자면, 저한테는 이런 시기가 되게 오랜만이에요. 저는 중학교 3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 초까지 영화평론가라는 꿈이 정말 컸어요. 영화평론을 너무 하고 싶어서 꿈에 매진해 왔죠. 고3이 끝날 때부터 호주에 갈 때까지는 돈이라는 목표 하나만 보고 살았어요. 여행을 시작하고 나서는 여행을 하느라 바빴고요. 한국에 돌아오고 나서는 책을 쓰느라 바빴는데요. 제 인생에서 가시적이고 명백한 목표가 없는 시기가 굉장히 오랜만이에요. 그래서 저한테는 지금이 진지하게 생각을 많이 하는 시기에요. 그리고 제가 『수능대신 세계일주』를 버려야 앞으로 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 『수능대신 세계일주』이야기만 할 게 아니고, 남들이 지겨워지기 전에 제가 먼저 지겨워지는 시점이 있을 거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수능대신 세계일주』라는 이름으로 많은 관심을 얻었지만, 이걸 반드시 정리를 해야 되는 시기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해야 또 다른 단계로 도약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지금은 이 다음의 것이 무엇이 돼야 할까, 계속 생각하고 있는 시기죠.

 

작가님께서 생각하시는 ‘성공적인 삶’이란 어떤 모습인가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정답을 내리기가 애매하고 정답을 내려서도 안 되는 질문일 것 같기는 한데요. 각자의 성공의 기준에 맞는 삶이 성공한 삶 아닐까요. 굉장히 정치적인 답변을 하게 되네요. 저는 제가 하고 싶은 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면 좋습니다. 글을 좋아하면 글 쓰는 걸로 생계를 유지하고, 영화가 좋다면 영화로 생계를 유지하고, 이 정도만 되면 바랄 게 없는 것 같아요. 더 나아가서, 저에게는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하기 싫은 일을 안 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해요. 그 조건까지 충족이 된다면 되게 만족스러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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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대신 세계일주박웅 저 | 상상출판
『수능대신 세계일주』는 지금도 공부와 입시에 시달리고 있을 중?고등학생들에게 가슴 뛰는 꿈을, 하루하루 반복되는 일상에 치여 꿈도 사랑도 잊고 사는 청춘들에게는 ‘조금 다른 삶’에 대한 용기를 주는 책이 될 것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진향 “서른에 죽는다 생각하고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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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어 먹고 살기 힘든 세상이다. 벌어 먹고 살기를 두 글자로 하면 ‘직업’이 되겠다. 딱 한 가지 직업이라도 있으면 덜 불행한 고실업 저성장 시대, 여러 가지 직업을 즐기며 사는 사람도 있다. 김진향도 그 중 한 명이다. 김진향은 작가, 가수, 모델, 구두 디자이너, 캐리커처 작가, 강연가, 카페 창업 등 다양한 직업에 도전해왔다. 동시에 블로그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도 활발하게 운영 중이다. 구독자 수를 다 합치면 5만 명 이상.

 

빠듯한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김진향 저자는 두 번째 책 『내 안의 거인』을 썼다. 첫 번째 책인 『스물여덟 구두를 고쳐 신을 시간』이후로 3년만이다. 그 사이 그녀의 직업은 3가지가 더 추가되었다. 더 많이 경험하고 공부하고 생각했다. 책에는 그녀가 얻은 통찰, 경험 등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지금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어떻게 도전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책을 펼쳐봐도 좋겠다. 『내 안의 거인』은 사진과 그림이 어우러져 부담 없이 읽기에 좋은 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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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성장하는 과정 담아

 

『스물여덟 구두를 고쳐 신을 시간』 이후 3년만에 『내 안의 거인』을 냈어요. 그 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첫 책 나오고 강연 다니면서 1년이 흘렀어요. 강연 콘텐츠는 1년마다 바뀌어야 하니, 그 뒤 1년은 강연보다는 블로그 활동을 많이 했고요. 국내 스타연예인이 운영하는 블로그 1위를 하면서 블로그나 SNS 강의를 주로 다녔습니다. 외국으로 여행도 떠났죠. 최근에는 싱가포르와 중국에서 가수, 모델로 활동했어요. 3년이 지나고 두 번째 책을 냈어요. 마음 같아서는 1년마다 책을 한 권씩 내고 싶었죠. 그런데 새로운 책을 쓰려면 그만큼 공부를 해야 하더라고요. 똑같은 책을 계속 낼 순 없잖아요. 공부하고 적립하고, 정리하기까지가 3년 정도 걸렸어요. 원고가 1년만에 나오긴 했지만, 가다듬는 데 시간이 걸렸죠. 초고 그대로 1년만에 책을 냈다면 부끄러웠을 거 같아요. 적당한 시기에 책이 잘 나왔어요.

 

두 번째 책 쓸 때 염두에 둔 점이 있다면.

 

첫 책은 ‘김진향이라는 사람이 있다, 이렇게 사는 삶도 행복하다’를 알리고 싶었어요. 제 삶에 관한 전반적인 소개였죠. 첫 번째 책은 일기장 느낌도 들어요. 이번 책에서는 직업 하나 하나에 포인트를 뒀어요. 직업을 선택했을 때 장단점, 주의해야 할 점 등 정보를 많이 넣었고요. 책이 세상에 나왔을 때 읽는 사람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면 좋겠다 생각하면서 집필했습니다.

 

슈즈디자이너, 가수, 모델, 강사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직업에 비해 책이 금전적으로는 노력 대비 효과가 크다고 할 수 없는데요. 그럼에도 계속 책을 내고 싶어하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작가님에게 책이란 어떤 의미일까요.

 

책이 정말 대박 나지 않는 이상은 인세만으로는 수입이 많지 않아요. 저 말고도 다른 작가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책을 쓰고 강연하면서 부가적인 수익이 생기긴 해도요. 대신 책에는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제가 성장하는 과정이 담겨 있거든요. 배우고 경험한 것을 독자와 나눌 수 있죠. 예전에 읽은 책 중에 와 닿은 구절이 ‘후세에 전해줄 수 있는 건 문화밖에 없다’는 문장이었어요.  제가 가수로서 앨범을 내고, 작가로서 책을 내는 이유이죠.

 

사진이 많이 들어간 책이에요. 사진 관련해서도 에피소드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표지는 출판사에서 정해준 사진으로 썼고요. 내용과 잘 어울리는 사진을 넣으려고 했는데, 막상 실으려니까 마땅히 넣을 사진이 많지는 않았어요. 사진보다는 그림의 사이즈가 작게 들어간 점이 조금 아쉬워요. 원본은 사실 책에 실린 것보다 큰데, 책에 넣으려다 보니 어쩔 수 없었죠. 다음 낼 책에는 한 페이지 자체가 그림인 형식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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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향 

 

경험의 다양화에서 가치의 다양성으로

 

『스물여덟 구두를 고쳐 신을 시간』을 냈을 때는 20대였고, 『내 안의 거인』은 30대에 나왔습니다. 20대와 30대, 무엇이 바뀌었을까요.

 

20대 김진향은 하고 싶은 게 많았어요. 서른에 죽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았어요. 오롯이 저를 위해서 하고 싶은 것은 다 했어요. 무조건 도전하고, 내일 죽더라도 후회하지 않아야지, 하다 보니까 책을 내며 작가가 됐고 무대에 서는 강연가, 가수로 활동까지 했어요. 어느덧 서른이 되었죠. 최근에 싱가포르 다녀온 뒤로 걸을 힘도 없을 정도로 많이 아팠어요. 그때가 제게는 성장을 위한 성장통의 시절이었지 않았나 싶더라고요. 하고 싶은걸 다 해서인지 약간의 허망함도 들었고요. 얼마 전 강연을 가서 이런 이야기를 나눴는데 한 어머님께서 말씀하셨어요.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서 그 이후엔 무엇을 하면 좋을지에 대한 부분을 학생들에게 이야기 해주면 좋겠다고. 아프면서 스스로 공부도 하고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한 채 오롯이 저를 위한 시간을 보냈어요. 한달 넘게. 그리고 꼴통쇼에 출연하기 바로 전 날. 앞으로의 삶에 대해 답을 찾았습니다.

 

앞으로의 김진향은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며 20대에 경험하고 배운 걸 나눌 거예요. 20대, 그때는 무조건 해야 하는 욕심이 많았는데, 이제는 욕심 내지 않고 주어진 일에 감사하며 사회를 위해 제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며,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면 하는 상황이에요. 지금 하는 인터뷰나 강연도 그래요. 사회와 나라에 발전이 될 수 있는 질량 있는 말이 나와야 하잖아요. 그것을 위해 공부도 하고 조금 더 성숙해져야겠죠.
 
책에서는 ‘경험의 다양성에서 가치의 다양성(75쪽)’으로 옮겨 갔다고 표현했어요.

 

요즘 화두는 ‘이웃을 위해, 사회를 위해, 인류를 위해, 세상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입니다. 매일 매일 일기를 쓰면서 질문을 스스로 하고 있어요. 네 글자로 하면 홍익인간이죠. 여전히 롤 모델은 오드리 햅번이에요. 마침 이번에 2016 구세군 홍보대사로 임명되었고요. 나누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이번 책에 삶에서 부딪친 고비를 많이 털어놓으셨는데요.

 

죽음을 앞에 둔 시기도 있었죠. 태풍 때문에 집에 있던 모든 가구, 집기가 망가졌을 때도 있었고요. 모든 걸 잃었을 때 무서웠어요. 이런 고통스러운 순간이 많았지만 얻은 것도 많았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집에서 잠은 어떻게 잤나 싶어요. 그때는 무던했던 듯해요. 회사 다닐 때 열심히 카드로 샀던 가구들을 버리며 ‘세상을 떠날 때 다 필요 없는 것들인데 왜 나는 이런 부질없는 것들에게 집착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아마도 가난했던 시절, 갖지 못했던 물건들에 집착한 듯해요. 그런 저 자신을 발견하면서 “앞으로는 물질이나 물건에 집착하지 말고 오롯이 나 자신을 위해, 경험을 위해 투자하자!”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항상 고난과 고통을 통해 깨달음을 주시는 것 같아요. 그런 고통이 축복이라고 생각하고요. ‘하느님께서 그만큼 나를 더 아끼시는구나.’ 라는 생각도 들고요. 모든 고통에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니 선물이더라고요. 뭐든 생각하기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아요.

 

책에서는 직업 관련하여 7대 3의 비율을 이야기했어요.
 
모든 대자연의 법칙은 7대3으로 이루어져 있어요. 직업도 마찬가지에요. 돈으로 환산되는 것이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현재 내가 하는 일을 7, 하고 싶은 일을 3으로 두고 매일 매일 바르고 충실하게 보낸다면 그 비율이 6대 4로 바뀔 때가 오겠죠. 하고 싶은 일의 비율이 늘어나다 보면 어느 순간 그게 직업이 됩니다. 모험을 계속 시도해야겠죠. 처음부터 돈을 바라고 하면 안 됩니다. 제가 캐리커처 할 때의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SNS 통해 제 그림을 알리고, 얼굴 그려주는 이벤트도 열었어요. 이런 게 알려지면서 실제로 의뢰하는 사람이 생겼습니다. 시간만 바르게 사용하면 돼요. 어느 순간 좋아해서 하는 일이 직업으로 될 수 있어요.

 

그렇게 해서 지금은 31가지 직업을 겸하고 있잖아요. 실제로 31가지 직업 모두에 충실할 수는 없잖아요. 완벽주의자 기질이 있다면, 시간 관리에 스트레스를 받을 법도 합니다.

 

모든 일을 한번에 다 잡으려 하는 게 아니라, 일마다 시즌이 있어요. 때에 맞게 특정 직업이 조금 더 앞으로 나올 때가 있습니다. 책이 나올 때는 작가로서, 강연가로서 활동에 중점을 두겠죠. 가수로서 앨범이 나오면 그 앨범 활동에 몰입하고요. 매 순간에 충실하고 몰입하다 보면, 자유자재로 관리가 됩니다. 인터뷰, 강연이 있는 중에도 슈즈 디자이너로서 메신저로 상품 상담을 할 수 있고요. 이 모든 게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가려면 하루 계획을 미리미리 짜놓아야겠죠. 최근에 들은 감명 깊은 말 중 하나가 ‘오늘 하루를 잘 사용하려면 그날 아침을 잘 보내야 하고, 아침을 잘 보내려면 전날 저녁을 잘 보내야 한다’입니다. 저는 일기를 쓰면서 하루를 점검하고 다음 날 준비까지 미리 머릿속에 다 그려놔요. 이렇게 시뮬레이션 하고 나면 다음 날 일정에도 문제가 없어요. 매일 충실하면 직업 관리는 어렵지 않은 거 같아요.

 

가장 애착 있는 직업은?

 

하나만 꼽으라면 어려운데, 글을 잘 쓰는 건 아니지만 좋아해요. 작가로서 삶이 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하고요. 글 쓰면서 기록하고 몰입하는 순간이 좋아요. 작가라는 직업이 저를 발전시켜주는 일입니다. 그래서 앞으로도 책을 계속 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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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도 진정성, 끝도 진정성

 

블로그 활동도 많이 하잖아요. 온라인 마케팅 관련하여 강의도 많이 했고요. 온라인 마케팅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는 무엇인가요.

 

진정성입니다. 사회에서 역할을 바로 할 수 있는 제품이라면 굳이 광고, 마케팅 세게 안 해도 날개 돋친 듯 팔리거든요. 당연한 말이겠지만, 직접 사용한 사람이 스스로 진정성을 갖고 홍보하는 마케터가 됐을 때 그 마케팅이 가장 성공하겠죠.

 

그럼에도 블로그나 페이스북을 보면 어떤 게 광고이고 어떤 게 실제 후기인지 혼란스러운 현실인데요. 블로그, 페이스북 운영하면서도 스스로 고민할 것 같습니다.

 

역시 중요한 건 진정성이라고 생각해요. 블로그는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게끔 제 일상을 솔직하게 기록하고 공부하는 저장 장치입니다. 페이스북보다 더 많은 기록을 남길 수 있죠. 페이스북은 소통하는 매개체이고요. 마케팅의 본질은 본인의 일상을 자연스럽게, 진정성 있게 올리는 거예요. 친근하고, 진심이 느껴지면 사람들이 그 가게를 찾아가요. 본인이 블로그나 페이스북으로 마케팅을 해 보고 싶다고 한다면, 일상을 편하게 올렸으면 좋겠어요. 그날 매장에 있었던 이야기, 매장 청소할 때 어떤 마음으로 하는지와 같은 소소한 소재에 본인의 철학을 담아 쓰면, 굳이 노력 안 해도 글 보는 사람이 가게에 호기심을 갖고 방문할 거예요. 제가 직접 경험했기 때문에 자신 있게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온라인 공간에서 모르는 사람과 소통하다 보면 불쾌한 일도 생길 수 있잖아요. 지켜야 할 최소한의 에티켓에 관해 말씀해주세요.

 

아직 제가 상대방에게 신뢰가 있지 않는데도 ‘해달라’고 부탁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뭔가를 제안할 때는 간단히 이야기를 주신 뒤, 관련 사항들에 대해 제가 알 수 있도록 자료를 먼저 보내는 게 원칙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대부분 이메일 주소를 알려드리는 편인데요. 제 시간이 소중하듯, 상대방 시간도 소중하거든요. 서로의 시간을 존중하며 이런 업무를 함께 하고 싶고, 서로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려주시면 좋겠어요. 서로 존중해가며 대화하도록 해요. (웃음)

 

여성 상대로, 청소년 상대로 강연 많이 다니잖아요. 질의응답 시간이 있을 텐데, 최근에 기억 나는 질문이 있다면.

 

광주에서 받은 질문이었어요. 가장 앞 좌석에서 머리를 맞대고 너무나 열심히 필기를 하는 연인이었죠. 남자 분이 질문하더라고요. 장애를 극복하는 방법에 관해서요. 들어 보니 여성 쪽이 장애가 있었어요. 왜 본인이 안 하느냐고 물었더니, 귀가 안 들리고 말을 못해서 남자친구가 대신 한 거였어요.

 

저는 이렇게 대답했어요. 사람마다 하늘에서 주어지는 게 있는데, 의미가 있다고요. 장애, 핸디캡을 이겨냈을 때는 삶이 더 빛날 거예요. 귀가 안 들린다면, 다른 감각이 조금 더 열려 있을 거잖아요. 그 감각을 활용하고, 공부하고 바르게 살기 위해 노력한다면 그 삶이 같은 아픔을 지닌 사람과 그런 아픔을 갖지 않는 사람 모두에게 더 큰 영향을 줄 거예요. 저도 많은 핸디캡이 있어요. 이유가 있더라고요.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장점으로 개발한다면 누구나 충분히 아름답게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할 수 있다, 는 메시지인데요. 요즘은 해도 안 된다거나 할 수 없다는 이야기가 많잖아요. 이른바 헬조선, 흙수저 담론이요.
 
흜수저의 대표는 저이고요. (웃음) 누구나 환경을 바꿀 수 있어요. 제가 스무살 때 서울 와서 들은 인상적인 이야기가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는데 주어진 환경을 바꾸는 사람이 있고, 환경에 맞춰 사는 사람이 있다’였어요. 그 중에서 저는 후자를 선택했죠. 당연히 노력이 필요해요. 못하는 것보다는 잘하는 것을 개발하는 게 시간상 효율이 더 좋고요. 누구나 타고난 재능이 있어요. 이걸 살짝만 개발해도 빛이 나거든요. 여기서도 7대 3의 법칙이 적용되는데, 사람이 잘하는 것만 하고 살 수는 없어요. 잘하는 것을 7 못하고 잘 모르지만 관심 있는 것에 3을 놓으면서 발전해 나가면 좋겠어요. 못하지만 관심을 두면, 그 분야에서 잘하는 사람을 만나서 상생할 수 있고요.

 

첫 번째 인터뷰 때 소원이 어머니 집을 사 드리는 거라고 답변했어요. 울산에서 어머니 가게를 열었잖아요.

 

제가 직접 차려드린 건 아니에요. 어머니의 꿈을 이뤄드리고 싶은 마음은 늘 있었어요. 어머니가 제게 연락하셔서 도와달라고 하시더라고요. 딸에게 하는 처음 부탁이었죠. 가게가 잘 되게 하는 데 제 역할을 했어요. 서울 생활을 모두 접고 울산으로 가서 오픈할 때부터 도와드렸고 블로그, 페이스북 등으로 소식을 알렸습니다. 어려운 점은 없었어요. 손발이 잘 맞았거든요. 두 달만에 가게가 자리를 잡고 그 이후에 서울로 다시 올라왔어요. 생각보다 더 빠르게 가게가 자리를 잡아서 감사하죠.

 

어머니와는 서로 10년만 더 고생하자고 약속했어요. 제가 빨리 자리를 잡아서 어머니가 편하게 노후생활 보낼 수 있게끔 기반을 마련하는 게 지금 목표죠. 은퇴하고 나면 뭐가 제일 하고 싶은지 여쭸더니, 매일 목욕탕 가서 찬물에서 수영하고 싶으시대요. 소박한 삶이잖아요. 마음 편하게, 지내실 수 있도록 제가 도움 드리고 싶습니다.

 

책을 계속 쓰고 싶다고 했잖아요. 세 번째 책은 어떤 내용일까요?

 

일본에 친한 친구가 있어요. 그 친구가 카페를 운영한 적도 있고, 일본 현지인만 아는 숨은 디저트 카페를 잘 알거든요. 그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그 책을 잘 내줄 수 있는 출판사를 찾고 있고요. 퍼엉 작가의 책처럼 따뜻한 에세이를 쓰고 싶기도 해요. 여행 에세이도 내고 싶고요. 조금 더 전문적인 분야인, 휴먼 브랜드나 마케팅 관련한 책도 생각은 하고 있어요. 내고 싶은 책은 참 많습니다. (웃음)

 

끝으로 독자에게 한 마디 부탁드릴게요.

 

앞으로 욕심을 내려놓고, 물 흐르듯 살려고 합니다.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저를 지켜봐 주시고요. 서로 서로 공부가 될 수 있고 상생할 수 있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어요. 채널예스 보시는 독자가 많을 텐데, 그 중에서도 고민하시는 분 많을 거예요. 나는 왜 살고 있을까, 싫어하는 직장에서 왜 이렇게 일하고 있을까…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건 없겠지만 이런 말을 해드리고 싶네요. 마음에서 내키지 않는다면 다시 한 번 점검해 보는 시간이 필요할 거 같아요. 주도적으로 살았으면 좋겠어요. 누군가가 원해서가 아니라 본인이 원하는 게 뭔지, 두려워하기보다는 도전해서 경험하고 그 경험이 나와 맞는지 안 맞는지, 맞지 않다면 과감히 버려야겠죠. 그렇다고 경험이 사라지는 건 아닐 거예요. 인생을 즐겁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제 목표는 즐겁게 놀다 간다, 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살면 지구가 빛나고 활력이 넘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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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안의 거인김진향 저 | 세상모든책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이 경험한 다양한 일과 직업의 세계로 생생히 안내할 뿐만 아니라, 잠재력ㆍ자신을 이기는 방법ㆍ건전한 습관ㆍ효율적인 공간ㆍ자기를 사랑하기ㆍ마케팅의 본질ㆍ휴먼 브랜드ㆍ경청ㆍ공감ㆍ인간관계 등 인생 선배로서 청춘들에게 도움이 될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루이스 다트넬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세계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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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세계는 끝났다.”


책의 첫 문장이다. 『지식』의 저자 루이스 다트넬은 강력한 전염병, 생물테러, 핵전쟁 또는 소행성의 지구 충돌 등으로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었던 세상이 끝나는 상황을 가정한다. 세상이 끝나면, 무엇이 남을 것인가. 세상이 끝난 뒤에도 살아남은 인류의 생존자들은, 무엇에서 시작해야 할 것인가. 한 권의 책을 전할 수 있다면 그 책에는 무엇이 담겨야 할 것인가. 『지식』은 그 질문으로부터 쓰인 생존자들을 위한 ‘생존 안내서’다.

 

예컨대 우리는 의식주와 의약품 등 생명을 유지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물질이 어떻게 생산되는지 기본조차 모른다. 따라서 현대문명의 생명유지 시스템이 붕괴되면, 구체적으로 말해서 더 이상 식료품점의 선반에 식량이 공급되지 않거나 옷걸이에 의복이 걸리지 않으면 대다수가 생존하지 못할 정도로, 인류의 생존기술은 위축되었다.(11쪽)

 

루이스 다트넬은 우주생물학을 전공하고 영국 우주국 연구원으로 지구 밖에 존재할지 모르는 생명체를 연구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는 지구 밖을 연구하며 지구와 지구 안의 문명을 따져보고 싶었다. 문명이, 사회와 과학이 어떻게 발현되었는지, 지금 우리는 어떤 ‘지식’을 놓치고 지내는지 처음부터 다시 접근하고자 했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고 있는 이 모든 것, 자동차와 백화점, 약국 그리고 인터넷 같은 것이 없는 세상을 상상하고 ‘그래서 그 모든 것이 파괴되면, 당신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기로 했다. 그렇게 탄생한 『지식』을 그는 ‘지식의 나무’라고 말한다.


목록은 끝도 없이 이어진다. 농업, 식량, 비누, 유리, 의약품부터 문자, 통신, 폭발물, 시간과 달력까지. 이 목록을 읽노라면 인류가 일군 엄청난 지식에 감탄하는 동시에 인류가 잊어가는 수많은 지식을 어떻게든 잡아둬야 한다는 불안감에 휩싸인다. 미래에 대한 이야기이자 과거에 대한 이야기가 바로 『지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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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을 읽고 싶었다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세계는 끝났다’는 단호한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다소 충격적이기도 한데요. 저자의 이 문제의식은 어디에서 온 건가요?


모든 책이 첫 문장을 극적이고 강력하게 시작하려는 경향이 있죠.(웃음)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이 강력한 문장을 통해 책 안으로 빨려 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 하고 호기심을 갖길 바랐어요. 그런 궁금증 때문에 더 보기도 하니까요. 사실 제가 이 책을 통해 탐색하고 싶었던 것은 세계라는 것이 어떻게 작동하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면에는 무엇이 있는가, 하는 것을 보고 싶었습니다. 그것을 보려다보니 문명이 사라진 세상이라면 어떨까, 모든 것이 폐허가 된 상태가 되면 어떨까 하는 가정을 상정하게 된 겁니다. 정확히 말하면 이 책은 세상의 종말에 대한 이야기라기보다 과학이란 무엇인가, 사회와 역사란 무엇인가, 테크놀로지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한 책입니다.


종말에 대한 것이 대중문화에서 인기가 많잖아요. <나는 전설이다>, <더 로드> 같은 영화도 있고요. ‘더 라스트 오브 어스’ 같은 컴퓨터 게임도 있습니다. 이런 설정, 세상이 끝나고 다시 세상을 재건한다는 이야기가 인기가 많았기 때문에 그것과 접목해서 이용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서문이나 맺음말에서 현대 문명이 끝났을 때를 많이 언급하고 있어요. 지구 환경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있고요. 설정이라고 했지만 실제로 그런 미래가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측면도 있는 것 같은데요.


서문과 맺음말이 하나의 원을 그리고 있죠. 인류의 끝, 문명의 끝을 이야기하는 것으로요. 물론 문명의 종말을 가정하고 있지만 세계가 곧 끝날 거라는 생각은 안 합니다. 저는 상당히 낙관적인 편입니다. 인간의 창의성이나 노력을 믿습니다. 문제를 해결하고, 어려움을 돌파해 나가고, 삶을 재건할 수 있다고 믿어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가 결코 거만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문명이 붕괴됐고, 지도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니까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니, 오히려 고대 그리스나 고대 로마, 고대 마야 문명보다 더 취약할 수 있어요. 과거 각 문명이 독립적으로 존속되었던 것에 비하면 지금의 세계는 훨씬 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당장 잠을 못 잘 정도로 종말을 확신하는 건 아니지만 그런 점은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식』은 무척 큰 이야기예요. 문명 자체에 대한 이야기기도 하고요. 이를 테면 ‘빅히스토리’인데요. 첫 구상에서 집필을 완료하기까지 시간이 꽤 오래 걸렸을 것 같습니다.

 

이 책에 관한 첫 아이디어는 몇 년 됐어요. 실은 제 출판 에이전트가 여러 번 이야기를 했어요. 책을 쓰라고요.(웃음) 제가 이 책의 아이디어를 얘기했더니 멋진 아이디어라고, 집필을 시작하라고 계속 부추겼어요. 당시 제가 너무 바빴거든요. 조사하고 쓸 시간이 없었어요. 그렇지만 이 아이디어 자체는 굉장히 오랫동안 머릿속에 있었죠. 이런 이야기를 다룬 책을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그런데 이런 책이 없었어요. 그러면 내가 쓸 수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생각한 것은 오래 되었지만 실제로 앉아서 조사를 하고 쓰기까지는 2년 반 정도 걸렸고요. 그 후 책을 출간하기까지 굉장히 여러 번 수정하고, 편집하는 과정을 꽤 오래 거쳤습니다.

 

자료 조사를 하면서 새롭게 알게 된 것도 많겠죠?


하나만 얘기해야 하나요?(웃음) 이 책은 굉장히 큰 주제를 다루고 있어요. 거의 모든 것에 대한 지식이죠. 현대사회가 존재하기 위해 필요한 과학 기술이 무엇인지 그 정체를 탐구한 것이죠. 지금의 과학 기술뿐 아니라 그 기술이 어떤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를 모두 탐색하고 있습니다. 워낙 넓은 영역을 다뤄야 했기 때문에 많은 분들에게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쩌면 어느 누구도 이 모든 것을 다 알고 있지는 않다는 것, 그것이 이 책의 굉장히 중요한 주장 중 하나일 겁니다. 그러니 더 많은 사람들이 계속해서 그들의 경험과 지식을 이야기해야 해요. 제게는 이런 것을 알아가는 과정이 무척 흥미로웠어요. 사람들과의 협업을 통해 이 프로젝트를 완성해가는 것이 정말이지 즐거웠습니다. 그래서 뒷부분에 그렇게 많은 분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해야 했고요. 아마 이런 큰 프로젝트는 누구도 혼자 할 수 없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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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어죽으면 다 소용이 없다

 

목록 선정에도 고민이 많았을 것 같거든요. 농업, 식량부터 시작해 시간과 공간까지 다루고 있습니다. 이 목록을 정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굉장히 철학적인 일이 아니었을까 해요.


저도 이 책의 구성을 어떻게 할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챕터 1에서 챕터 10까지를 첫 날, 첫 달, 첫 해처럼 시간별로 할 것인가, 농업, 화학, 교통 등 분야별로 할 것인가 많이 고민했죠. 그러다 결국 분야별로 하기로 결정했는데요. 반복을 피하기 위한 이유도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그것을 즉, 농업을 강조하기 위한 이유도 있었습니다. 굶어죽으면 다 소용이 없죠. 차도, 화학도, 먹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언제나 농업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는 역사가 주는 교훈도 있지요. 도시와 제국, 문명이 어떻게 생기는가에 대한 중요한 교훈이 바로 농업에 있습니다. 도시가 형성될 수 있었던 것은 인간이 먹고 남는 음식, 잉여 음식이 발생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거든요. 농업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지면서 농업인구 한 명이 다섯 명, 열 명, 열다섯 명을 먹여 살릴 수 있게 되죠. 나머지 사람들은 덕분에 과학자나 간호사, 대장장이 같은 전문가가 되어 다른 일을 할 수 있게 된 겁니다. 어쩌면 문명의 중심, 뿌리에는 농업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가장 먼저 농업을 다뤘어요.


농업이 가장 즉각적이고 문명의 토대가 되는 항목이긴 하지만 사회가 점점 성장하고 복잡해지고 진보하면 필요한 지식들이 여럿 존재해요. 그것이 무엇인가를 뒤에 나열한 것인데요. 시간 측정하는 법, 항해하는 법, 별을 보고 위치를 확인하는 것 등은 무역을 하는 데 있어 중요한 부분일 겁니다. 우리가 필요한 물질을 자연에서 얻는 것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인공적으로 합성하는 방법을 알기 위해 화학도 나오게 됐고요. 사실 책에는 넣지 않았지만 여러 분야들 사이의 연관성을 볼 수 있도록 분야 간 맵핑을 고민했었어요. 너무 기술적이라 책에 포함하진 않았지만요. 제가 이 책을 쓰면서 늘 머릿속에 갖고 있던 것은 분야 간 연결, 맵핑이었어요.

 

분야 간 연관성이요?


‘마인크래프트’라는 아주 유명한 게임이 있어요. 이 게임과 비슷해요.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문명을 만들려면 각 항목을 어떻게 네트워킹, 연결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그것을 하나씩 완성하는 과정이거든요. 이 책도 마찬가지예요. 세계를 재건하기 위해서 필요한 모든 지식을 연결한 ‘지식의 나무’라고도 할 수 있을 거예요. 

 

농업, 식량에 대한 부분은 예측할 수 있죠. 당연히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모두가 공감할 거고요. 한편 폭발물이나 커뮤니케이션을 다룬 챕터도 있는데, 이건 그다지 예측하지 못한 흥미로운 부분이었어요.


커뮤니케이션이 흥미로웠던 건 기자라는 직업의 특성 때문이겠죠?(웃음) 하신 말씀이 맞습니다. 책의 전제가 ‘문명이 붕괴한다면’이기 때문에 그 설정을 만족시켜야 하는 상황이었는데요. 그렇지만 역시 저도 뒤로 갈수록 쓰면서 재미가 있었습니다. 책을 쓰는 게 정말 어렵고, 큰 도전이었는데요. 책의 내용 자체가 문명의 종말 이후 세계를 재건하는 방법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해야 하는 거잖아요. 제가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모든 분야의 연결이라고 말씀드렸는데요. 그러므로 모든 항목이 한 가지도 동떨어지는 것이 없어야 했거든요. 문제는 문명이 붕괴된 상황을 가정했기 때문에 바깥과의 네트워크 없이 그 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는 거였죠. 그것이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였습니다. 다른 과학책들은 이 열 가지 항목이 중요하다, 정도로 하면 됐을 텐데 말이죠.(웃음) 저는 이것들이 다 어떻게 연결되는지 설명해야 하니까, 이것이 스스로에게 큰 도전이었습니다.  

 

폭약이 전쟁광의 수단으로 돌변할 가능성이 있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중략) 그러나 재건을 시도하는 문명에서는 평화롭게 폭발물을 사용하는 게 무척 중요하다. 사냥용 엽총을 위한 탄약을 제조하고, 채석과 채굴을 위해 바위를 깨뜨려야 할 때, 또 굴이나 운하를 팔 때도 폭발물은 엄청난 도움을 줄 수 있다.(305~306쪽)

 

책에 담지 못한, 더 추가해야 할 핵심 기술 목록이 있다면요?


한 가지 아셔야 할 것이 모든 인류의 지식을 완벽하게 다 알기란 불가능하다는 사실이에요. 책에서 완전히 제외한 것이 하나 있는데요. 그것은 고대 이집트 때부터 사용된 문명에 아주 핵심적이고 필수적인 항목인데 뺄 수밖에 없었죠. 바로 수학입니다. 기하학이나 여러 형태, 패턴의 관계를 설명하는 수학이 없이는 사실 다리도 건설할 수 없고, 문명에 필요한 기본적인 조건을 줄 수가 없는데요. 이집트만 해도 밭을 계량하는 등의 일에 필수적인 것이 수학이었다고 하거든요. 그런데 이것을 주석 하나 달고 말 수밖에 없었던 게 너무 지루하기 때문이었어요. 이 책은 대중서인데 쓰다보니 가독성이 떨어졌어요. 화학이나 사진, 엔진 같은 것은 직접 해볼 수도 있고 실질적인 결과물이 있으니까 재미있게 쓸 수가 있었는데요. 수학은 도저히 그런 식으로 쓸 방법이 없었습니다. 공식이나 이론에 대해서도 쓰기가 어렵고요. 결국 수학 항목은 전체를 들어낼 수밖에 없었어요. 그 외에는 언급이라도 하지 않은 분야는 없지 않았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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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만 꼽으라면, 세균에 대한 지식


전공 분야인 우주 생물학과 『지식』에서 다룬 내용 사이에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묻고 싶어요. 저자의 관심사가 엿보이기도 하거든요.

 
우주 생물학은 다른 행성의 생명체를 연구하는 일입니다. 저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했고요. 런던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따고 레스터 대학교에서 연구하고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는데요. 분야 자체가 워낙 여러 과학 분야를 다 다뤄야 하는 분야입니다. 생물학, 물리학, 지질학, 컴퓨터 프로그래밍, 화학 등을 다 공부해야 하기 때문에요. 그 모든 과정을 거치면서 전공인 생물학에 편향될 필요 없이 여러 과학 분야를 다 해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과학 여러 분야를 공부하고 관심사를 넓혀온 것 같습니다.

 

몇 년 전, 우주에 슈퍼 미생물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는 나사의 발표도 있었는데요. 그 분야에서 새로 발견된 뉴스는 또 없나요? 최근에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이슈는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이 분야에는 항상 흥미로운 일이 일어납니다.(웃음) 어쩌면 분야 자체가 태생적으로 흥미를 유발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런 인터뷰를 하거나 학교에서 강의를 하거나 공식적인 행사에 초청을 받아 강연을 할 기회가 있을 때면 사람들이 엄청난 관심을 가집니다. 아마도 지구 밖에 생명체가 있느냐 하는 문제는 그럴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바로 지난주에 발표가 있었던 뉴스인데요. 이것은 정말 큰 발견입니다. 태양계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지구와 아주 비슷한 행성이 있다는 발견을 했다고 해요. 이것은 저희 분야에서는 정말이지 엄청난 뉴스입니다. 또 화성을 도는 탐사선이 화성 대기 중에 메탄가스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는데요. 그것의 의미는 화성에 생명체가 있을 수 있다는 강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거든요. 이렇듯 이 분야가 워낙 넓은 영역을 다루고 있어 각 영역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뉴스들, 새로운 발견들이 일어납니다. 이슈가 빠르게 이동하는 경향이 있죠.

 

이번 한국 방문 중에 강연도 하신다고 들었어요. 어떤 내용으로 사람들을 흥미롭게 할 계획이신가요?


‘직지 페스티벌’에 초청을 받아 강연을 하게 되었습니다. 직지 페스티벌은 한국의 금속활자에 대한 부분을 다루는 동시에 더 크게는 사회, 문화와 과학 기술 전반에 대한 부분을 다루고 있습니다. 저는 이런 것들의 이면에 있는 근본적인 것, 과학이 무엇인가, 그것이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대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할 계획입니다. 강연만 하는 건 아니고요. 실제로 시연도 하고, 재미있는 실험도 해볼 예정이에요. 제가 『지식』에서 언급한 몇 가지 물건들을 가지고 있는데요. 강연이 끝난 후에는 이런 것들을 참석자들이 직접 만져보고 체험해볼 수 있도록 할 계획이 있습니다.

 

대중을 대상으로 한 흥미로운 과학서를 꾸준히 쓰고 있는데요. 워낙 큰 이야기고, 저자에게도 이 책이 큰 도전이었다는 말을 들으니 이런 형태의 책을 또 쓸 계획이 있는지 궁금해졌어요.


『지식』은 저의 세 번째 책입니다. 네 번째 책에 대해서는 이미 논의를 하고 자료 조사나 집필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제 편집자가 말하기를, 이렇게 큰 주제에 관해서는 이제 썼다, 더 큰 것이 나오기는 힘들 것이다, 라고 하더라고요.(웃음) 이 책을 쓰기가 어렵기도 했지만 쓰는 과정은 매 순간 무척 즐거웠습니다. 쓰면서 정말 재미있었거든요. 『지식』이 큰 책인 것은 사실이죠. 과학뿐 아니라 모든 분야가 사회와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 문화와 어떻게 연결되는가, 이런 것을 다 담았으니까요.   

 

문명 파괴 이후 생존자들에게 한 마디를 남긴다면 무슨 말을 하고 싶으세요?


이 책을 챙겨라.(웃음) 이 책에는 살아남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문명을 재건하는 데 있어 필요한 지식이 모두 담겨 있으니까요. 그러나 만약 모두가 이 책을 가지고 있을 수 없다, 한 문장만을 줄 수 있다고 한다면 인류의 건강에 대한 내용을 전할 겁니다. 건강을 회복할 수 있도록 하는 지식을 전하고 싶어요. 세균에 대한 지식을 전달할 것 같은데요. 왜 아픈지, 병이 왜 다른 사람에게 옮는지, 이런 것들에 대한 지식을 말이죠. 왜냐하면 이것은 신의 영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현미경만 있어도 볼 수 있는 작은 생명체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죠. 이런 내용을 전달해야할 겁니다. 그래야 아프지 않을 수 있고, 병을 예방할 수 있을 테니까요. 예를 들어 물을 어떻게 정수해서 마셔야 하는지, 하수 처리를 어떻게 하는지, 이런 것들도 다 그것에 포함되는 내용이고요. 약도 그렇게 개발할 수 있을 거예요.


모든 분야의 출발이 바로 이 시점인 것 같은데요. 역사에서 보면요. 1815년의 런던은 세계에서 가장 큰, 대영제국의 심장이자 최대의 도시였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50년밖에 안 된 시기임에도 그 시기의 사람들 역시 템즈강에 오수를 흘려보내고 그 물을 다시 마시곤 했어요. 그 때문에 장티푸스 같은 큰 유행병이 번지기도 했지요. 저라면 바로 이 지식을 생존자들에게 강조해 전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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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식루이스 다트넬 저/강주헌 역 | 김영사
이 책에서는 사라진 문명이 남긴 쓰레기더미에서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것들을 찾아내 재사용할 수 있는 최적의 방법에 대해 알아보고, 의식주에서부터 의학, 의약품, 전력, 운송, 커뮤니케이션 등 생존과 문명 재건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핵심 지식과 과학 기술을 압축적이고 실용적으로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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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세 디자이너 “디지털화 시대, 기회를 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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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라고 해서 디자인 이야기를 하게 될 줄 알았다. 그러나 김영세 디자이너는 자신이 디자인한 제품보다는 디지털과 모바일, 하나로 연결되는 디지털화 세상을 이야기했다. 지금까지 디자인이 ‘제품을 예쁘게 만드는’ 정도의 개념이었다면 이제는 사업의 성패를 좌우하는 비즈니스 모델이 되고 있다.


김영세 디자이너는 한국 산업디자인에 한 획을 긋고 ‘디자인 구루’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삼성 애니콜의 ‘가로본능’ 핸드폰, 프리즘 형태의 아이리버 MP3, 동양매직의 ‘It’s magic’ 가전기기 시리즈가 모두 그의 손을 거쳤다. 혁신을 모티브로 한 ‘이노디자인’을 실리콘밸리에 설립하고 국제적인 성공을 거둔 이후에도 한국 산업 분야에서 등한시되는 디자인을 안타깝게 여겨 한국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퍼플피플2.0』에서는 실리콘 밸리에서 직접 회사를 운영한 김영세 디자이너가 본 혁신적 기업의 가능성과 앞으로의 시대 전망에 대해 밝힌다. 디자인과 기업가 정신이 만나는 지점은 무엇인지 김영세 디자이너를 만나 물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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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폰족(族)의 시대


책을 훑어보면 제품 사진이 많이 나와서 디자인 이야기일 줄 알았는데, 오히려 미래를 예측하는 사업 보고서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2012년 동일한 제목으로 낸 적도 있는데요. ‘퍼플피플 2.0’ 의 시대에서는 뭐가 달라졌는지 듣고 싶습니다.

 

실리콘 밸리에서 겪었던 경험을 책에 더 많이 넣었어요. 제일 중요시했던 부분은 실리콘밸리에는 잡스 키즈가 있다는 거죠. 스티브 잡스의 뒤를 잇는 잡스 키즈가 실리콘밸리 생태계를 만들어나가고 있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가 애플, 에어비앤비, 우버,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이해하려면 실리콘밸리의 파괴력을 제일 먼저 봐야 해요.


스티브 잡스 하면 ‘애플’을 가장 먼저 떠올릴 텐데요.


원시 시대부터 죽 따라오면 지금은 ‘폰족(族)’의 시대라고 생각해요. 폰족이 없으면 에어비앤비도 없고 우버도 없어요. 스마트폰이 손에 들려 있기 때문에 숙소를 쉽게 찾아서 공유하자는 콘셉트와 빈 차를 얻어 타고 서로 이용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거든요. 이 폰족의 원조는 잡스 같아요. 아이폰을 만들었다는 건 스마트폰을 통해서 모든 사람을 엮었다는 얘기거든요. 애플이라는 거대한 회사를 만들어서 대단한 게 아니라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았던 폰족의 원조이자 추장이 되어서 스마트폰으로 인간의 생활을 다 바꿔놨어요.


잡스 이후 세대가 ‘잡스 키즈’라는 말씀이시죠.


스티브 잡스가 유명해지기 시작했을 즈음 10대였던 친구들이 현재 실리콘 밸리를 점령하고 있어요. 동부에 있든, 서부에 있든 호기심으로 꽉 찬, 모범생이 되기보다 ‘모험생’이 되기를 택한 아이들이 대학 진학은 뒷전이고 잡스처럼 되겠다며 모여들어서 실리콘밸리 생태계가 만들어졌어요.


실리콘밸리가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는 표현은 즉 그 안에서 새로운 세대가 나타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부러웠던 것 중 하나는 실리콘밸리에서 성공한 CEO들이 투자자로 변신하는 거예요. 자기들이 직접 M&A를 하거나 기업 안에 창업과 기술 교육을 제공하는 액셀러레이터를 만들어서 엄청난 투자를 한 거죠. 수십 년 동안 어마어마하게 벌어들인 돈과 자신의 경험을 그대로 후배 기업인들을 키우는 데 전격적으로 쓰고 있어요. 인재들이 몰릴 수밖에 없어요. 거기 가면 투자자가 있고 좋은 선배들이 있고 합종연횡할 수 있는 막강한 기업들이 있어요. 아이디어를 가지고 도전하는 사람들에게는 천국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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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인재가 수백만 명을 거느린다


특히 인재를 기르는 방법으로 ‘인디비주얼리티(개인역량주의)’를 강조하셨어요.


개인역량이라는 관념이 우리나라에 퍼지면 좋겠어요. 디자인하면서 늘 중요하게 여기는 개념이지만, 결국 산업시대가 되고 기업 경쟁이 치열해지더라도 누군가 한 사람이 움직이게 될 거라는 이야기예요. 지금도 이 단어를 우리나라에서는 환영하지 않아요. 누구 한 사람이 대단하다고 하면 모든 나머지 사람들이 별로 안 좋아해요. 오히려 제멋대로고 이기적이라고 생각하죠. 전통적인 사상으로는 한 사람이 너무 나대면 혼나잖아요. 실리콘밸리의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애런 머스크, 래리 페이지 모두 한 명의 창업자가 대대로 이어갈 만한 기반을 만들어가고 있어요.


한국에서 개인의 역량을 펴기에는 답답하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회는 의지가 있고 꿈이 있는 개인에게 기댈 수 있어요. 밀레니엄 세대, 속칭 Y세대들은 커다란 일을 하고자 하는 의욕보다는 당장 행복함을 좇는 경우가 많다고 해요. 하지만 안정된 직장을 선호해도 그 직장이 3년 후, 5년 후면 안정적이지 않거든요. 100개의 직장이 몇 년 후면 50개가 되어버려요. 그렇다면 안정적이라고 생각하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 중 절반은 다르게 가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갈 준비가 되어 있느냐 이거죠.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이야기가 그야말로 개나 소나 하는 이야기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해야만 살아남아요. 안정된 일이라는 개념 자체가 완전히 바뀌고 있으니까.


아무리 기회가 있다고 해도 앞이 안 보이는 미래로 나아가라면 불안할 것 같은데요.


당장 안정적이지 않은 미래가 오고 있다는 건 반대로 보면 엄청난 기회가 오고 있다는 거예요. 이전 세대에서는 아무리 아이디어가 있고 마음을 먹어도 실행을 못 했죠. 이제는 시스템이 만들어지면서 하나의 아이디어가 있으면 아주 짧은 시간 내에 퍼져요. 왜냐하면, 생산자들이 소비자와 거의 동일할 정도로 가까워졌거든요. 그리고 실제로 그 길로 가는 사람들을 호명하고 불러주는 게 ‘퍼플 피플’이라는 거죠.


경제학 이론 중 ‘퍼플 카우'가 생각나기도 하고요. 퍼플피플은 어떤 사람들인가요?


이제까지 물건을 생산하는 직종을 블루칼라, 사무실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을 화이트칼라라고 했잖아요. 하지만 이제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를 넘어서서 아주 특별한 누군가에게만 성공이 몰아서 가요. 그 특별한 사람은 화이트칼라도, 블루칼라도 아닌 거죠. 그래서 부득이하게 ‘퍼플 피플’이라는 이름을 지어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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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기회가 몰려오는 세대


강연 등을 통해 한국의 청소년들을 만나시게 되잖아요. 이 세대가 변화한다고 직접 느끼는 게 있나요?

 

지난주 토요일에 V4Y(Voices for young)이라는 CEO 모임이 있었어요. 학생들 위주로 신청을 받아서 CEO들이 재능기부처럼 자기 분야에 관해 설명하는 자리인데, 강연의 소재들이 어렵거나 생소한 경우도 있어요. 창업에 대한 이야기도 있고요. 와서 듣는 친구들은 지방에서 기차 타고 오고 줄 서서 난리가 났어요. 그런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스스로 나서서 하기보다 주어진 거 하는 게 더 낫다는 사람도 있어요. 기자님도 그렇게 생각하나요?


같은 사람들도 다 동일한 건 아니니까요.


80년생들이 흙수저와 헬조선을 말하는 게 안타까워요. 우리 세대는 이미 나이가 들어서 덜하지만, 미래가 존재하는 어린 사람들에게 가이드를 주거나 도움을 주는 게 우리 세대의 일이에요. 아까 말했듯이 엄청나게 새로운 기회가 몰려오고 있는데 조금 더 욕심을 못 내서 아쉬워요. 책을 낸 것도 퍼플피플이 하나의 키포인트가 되었으면 하는 희망으로 썼어요.


젊은 세대 이야기를 좀 더 해볼게요. 부모님들이 주로 Y세대에게 ‘잘 먹고 잘 사는’ 직업을 가지라고 요구하기도 하잖아요. 기죽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좋은 질문인데, 부모 세대는 기존에 있는 경쟁 질서에서 살던 사람들이라 비교 우위적으로 치열한 경쟁을 통해서 뺏어 오듯이 자기의 경제를 만들고 돈을 만드는 시대였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있는 것을 뺏어 오는 게 아니라 없었던 걸 만들어야 하는 시대라고 생각해요.


국내 기업 중에는 개인 역량을 살려줄 회사가 잘 안 보입니다.

 

기업도 바뀌어야죠. 너무 당연한 이야기예요. 놀라운 건 미국은 바뀌고 있어요. 100대 기업 중에 몇십 개가 새로운 기업으로 채워지면서 새로운 경제 경쟁력이 생기고 있어요.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은 것이 아쉽죠. 리더 그룹인 윗세대와 신세대의 생각 차이가 상당히 큰 것 같아요. 지금 윗세대들은 디지털화가 덜 됐어요. 80년대 이후 세대는 디지털 원주민(digital natives)이라고 하고 80년대 이전 세대는 디지털 이민자(digital immigrants)라고 해요. 디지털을 언어로 보면 한쪽은 모국어고 한쪽은 아무리 해도 잘 모르는 거예요. 또 하나로는 장유유서, 상하관계 간의 엄격한 계급 차이를 두기 때문에 정서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대화가 안 돼요.


대기업은 특히 위계 관계가 문제인데요.


지금까지 큰 기업의 리더들이 만든 성과는 산업 시대에 통하던 성공 모델인데, 이제 세상은 디지털 시대의 솔루션을 필요로 해요. 하지만 그 기회를 잘 안 주는 거죠. 그 기회를 보고 투자를 하거나 채용하지 않는 거예요. 팽팽한 딜레마인데, 제가 보기에는 시간 문제예요. 어디가 터지든지 회사가 바뀌거나, 젊은 사람들이 회사 리더를 설득하거나, 혹은 자연스럽게 회사 리더들이 경쟁력에 문제가 있다는 걸 깨달아서 스스로 내려가는 과정이 필요해요.

 

 

화두는 디지털


SNS에 ‘디지털트랜스포메이션’ 태그를 많이 썼더라고요.


맞아요, 깜짝 놀란 게 한글로 ‘디지털트랜스포메이션’을 검색하면 한국에서는 제가 쓴 글만 나와요. 하지만 곧 그 태그 라인으로 타임라인이 꽉 찰 거예요. 디지털로 모든 게 다 바뀐다는 말인데, 기업과 경제는 사람들이 디지털화되는 데 도움이 되는 일을 하면 곧 수익이 나고, 그걸 못 하면 다른 회사에게 자리를 넘겨줘야 할 거예요. 지금 아무리 막강한 기업이라고 해도 사용자들이 모두 폰족이어서 생활 방식이 스마트폰을 기준으로 돌아간다는 걸 인정해야 해요. 회사가 제공하는 서비스와 생산하는 결과물은 모두 달라진 디지털 생태계에 맞춰야 하는 거죠. IOT(Internet of things)도 최근 말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사물인터넷이라는 말은 곧 모든 것이 인터넷(Internet of everything)이라는 거예요. 인테리어, 자동차, 서비스 방식, 여행하는 방법, 모든 게 다 바뀌어요. 세상에 할 일이 없어서 돈 벌 일이 없다는 건 말이 안 돼요. 현재 아날로그적인 상황을 디지털로 변환할 방법만 있다면 그건 전부 다 돈이에요.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관계를 자본으로 만드는 업종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는데요, 디지털화가 관계 자본과 어떻게 관계를 맺게 되나요?


페이스북 기업 가치가 100억 달러를 넘어갔어요. 그 값어치가 예전 같으면 생산력과 기술력, 부동산과 공장을 가진 기업이 가져갔을 텐데, 지금 페이스북은 공장도 없고 사람도 없어요. 그 회사의 가치를 만들어 주는 건 그들이 가지고 있는 관계 자본 때문이에요. 서비스를 사용하는 17억의 사용자들이 주커버그의 재산이죠. 그 값어치는 점점 더 귀중해지고, 디지털이 속도를 더 빠르게 만들 거예요.


관계 자본이 대기업이 독주하는 힘을 막게 된다고도 하셨어요.


사람들이 연결되어 있는 한 페이스북은 얼마든지 제3자가 지불하는 돈을 벌어요. 이제 우리 회사에 공장이 있고 건물이 몇 층이고 직원이 몇 명인지는 중요하지 않게 돼요. 인스타그램이 직원 10명짜리 기업일 때 페이스북이 10억 달러를 주고 사갔어요. 인스타그램에서 만드는 건 아무것도 없잖아요. 물건을 만들어서 파는 게 아니라 네트워크를 만들면, 그림을 그려놓으면 그걸 이용하는 소비자가 서비스를 만드는 거죠. 동산과 부동산의 가치는 점점 빠지고 화폐로 치면 달러보다 훨씬 비싼 돈이 관계 자본이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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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플피플, 디자인을 생각하다

 

불편함을 발견하기 위해 관찰하는 것’부터 디자인이 시작된다고 하셨는데, 일상에서 관찰하는 방법을 말씀해 주신다면요?


한 마디로 하면 사람에 대한 관심과 배려 같아요. 디자인할 아이템을 사용하는 사용자 입장이 되는 것부터 시작하는 거예요. 그 사용자를 진심으로 배려하고 사랑하는 것에서 시작해 도움이 될  방법을 생각하는 게 디자인의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생각합니다.


‘디자인 우선주의’를 제창하기도 하셨어요.


예전에는 생산자가 제품을 만들고 나중에 디자인을 의뢰해서 만들었어요. 저는 아예 디자이너가 먼저 생산자에게 디자인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판을 바꿔봤죠. 상품과 서비스를 기획하는 단계에서부터 디자인을 먼저 하고 생산자에게 제안하면 디자인에 맞춰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방식으로 원칙이 서게 됩니다.


디자인이 ‘합리성을 넘어서 의미를 팔아야 한다’고도 하셨는데요. 디자인이 어떻게 의미를 가지는지 조금 더 설명해 주셨으면 합니다.


‘A는 B보다 예뻐’도 좋지만, 그것보다 디자인을 통해 사람의 생활이 바뀌고 새로운 기능을 습득하게 할 수 있어요. 디자인으로 인해 새로운 생산 회사가 생기고, 숨어있는 기술을 찾아내서 사람들에게 직접 사용하는 기회를 만들어 줄 수 있어요. 이미 있는 것을 모양을 바꾸는 것에서 머물지 말고 없는 것에서 새로운 걸 만드는 게 의미 있는 일입니다. 훌륭한 디자인은 기업도 만들고 취업도 만들고 경제적으로 엔진을 만들어 돌아가게 할 수 있어요.


소비자 입장에서는 패러다임 쉬프트가 더 빨라지고 더 따라잡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이 변화하는 세상을 따라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용자 입장에서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구분하는 건 텍스트와 이미지죠. 유튜브도 그렇고 앞으로 미래에는 점점 더 이미지 쪽으로 소통할 것 같아요. 사실보다는 상상의 세상, 지성보다 감성의 시대가 올 거예요. 산업시대의 경쟁력은 분석력에서 왔어요. 이성적인 결정으로 상대방보다 영리하게, 더 싸게, 더 효율적으로 만드는 게 경쟁력이었는데, 이제는 숫자로 매겨지지 않는 디자인으로 승부를 봐요. 디자인은 안 보이는 걸 보도록 설계하는 거예요. 지금까지의 경쟁력과는 다른 스펙, 다른 기술과 능력이 있는 인재들이 새로운 시장을 가져갈 때예요. 옛날 식의 유능한 아이들과 지금 뛰어날 아이들이 달라요.


교육도 중요하겠네요.


모범생은 호기심을 쫓아갈 수 없고 이상한 일을 할 수 없어요. 번듯하게 공부 열심히 해야 하니까요. 계산 잘하고 사회를 잘 따라가서 수천 명씩 대기업에서 뽑았는데 이제 그 아이들을 데리고 골치를 싸맬 거예요. 큰 회사일수록 그 사람들이 해결책이 아니었다는 걸 안 뒤로 머리가 아플 거예요. 지금 실리콘밸리가 뜨는 이유는 백지부터 시작하기 때문이에요. 직원이 25만 명인 대기업이 25만 명을 재교육 한다? 불가능해요. 대기업은 내가 못 바꿔요. 사장단 강연도 많이 하지만 안 바뀌어요. 학위를 받고 고시에 합격하고, 그런 건 아무 관련이 없어졌어요. 다 쏟아봤자 얼마 안 남아요. 목표 자체를 새로 새워야 합니다.


지금 진행하는 DHL랩이 새로운 인재를 키우는 하나의 방법으로 생각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후배들에게 제가 알고 있는 디자인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주고 싶어요. 기술과 아이디어는 있지만 디자인이 부족한 작은 기업에 디자인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좋은 기업을 발굴하면 우리가 투자해서 기업의 엑셀러레이터를 밟아주는 거죠. 디자인에 대한 체험을 나누는 기회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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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플피플 2.0김영세 저 | 스타리치북스
실리콘밸리가 인재들을 특별 대우하는 것이 바로 기업문화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역량을 소중히 생각하고 대우한 결과 기업들은 직원들의 ‘열정’을 이끌어낸다. 김영세 회장은 이러한 기업문화를 체험하면서 출간한 책이 바로《퍼플피플 2.0》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피터 스완슨 “감정을 기억해두면 글 쓸 때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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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가장 까다로운 서평그룹 ‘굿리즈’에서 평점 4.01을 기록하며 화제를 모은 소설 『죽여 마땅한 사람들』에 대한 국내 독자들의 반응이 뜨겁다. 지난 7월 18일, 출간된 한국판은 “흡인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야 할 소설”, “읽는 순간 빠져드는 작품” 등 이례적인 찬사를 받고 있다. 이 소설은 낯선 공간에서 우연히 만난 두 남녀가 서로 내밀한 사생활을 털어놓으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우연히 아내가 바람을 피우는 현장을 목격했다며 아내를 죽이고 싶다고 고백하는 남자와 그의 살인 욕구가 타당하다고 반응하는 여자. 과연 그들은 아내를 죽였을까? 읽는 내내 긴장감을 놓칠 수 없는 『죽여 마땅한 사람들』은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중국 등 세계 18개국에 번역, 출간됐고 아그네츠가 홀란드 감독이 영화화할 예정이다.

 

저자 피터 스완슨은 『THE GIRL WITH A CLOCK FOR A HEART』로 떠오른 신예 작가로, 두 번째 장편소설 『죽여 마땅한 사람들(THE KIND WORTH KILLING)』을 통해 많은 독자와 언론으로부터 극찬을 받았다. 피터 스완슨은 미국 문예지 <더 아틀란틱>, <아시모프 사이언스 픽션>, <에포크>, <메저>, <노트르담 리뷰> 등에 시, 단편소설 및 평론을 발표해왔다. <더 리릭 앤 양키 매거진>에서 시 부문으로 수상한 적이 있으며, 현재 알프레드 히치콕 영화 53개 전편을 다룬 소네트를 쓰고 있다.

 

 

감정을 기억해두면 글을 쓸 때 도움이 돼요


『죽여 마땅한 사람들』에서 릴리는 상당히 매력적인 인물로 그려집니다. 그녀의 캐릭터를 만드는 데 참고한 실존 인물이 있나요? 없다면 그런 캐릭터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었나요?


아직 릴리 같은 사람을 만나본 적은 없어요. 어쩌면 그게 더 다행일지도 모르겠네요. 이 캐릭터를 만드는 작업은 우선 그녀의 어린 시절을 상상하는 데서 시작했습니다. 자신들의 삶에만 몰두해서 딸에게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 부모와 사는 여자아이를 떠올리면서요. 그런 환경에서 자란 탓에 그녀는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하게 됩니다. 그렇게 독자적인 세계를 만들어내면서 릴리는 거기에 걸맞은 자신만의 도덕관을 형성하게 되고요.

 

 

몽크스 하우스 수영장 묘사가 기묘하면서도 무척 인상적입니다. 그 수영장의 모델이 된 실제 장소가 있나요? 마더 대학 같은 소설 속 배경들은 어떻게 설정하셨나요?


대학교 여름 방학 때 수영장 관리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꼬박꼬박 관리해주지 않으면 금방 연못처럼 변해버리는 그런 곳이었죠. 몽크스 하우스 수영장은 그곳을 모델로 삼았습니다. 마더 대학은 코네티컷 주 하트퍼드에 소재한 제 모교 트리니티 대학에서 영감을 얻었고요.

 

어떤 한국 독자는 “테드가 희생자라기보다 단지 미란다에 대한 미움과 증오에 빠져든 사랑의 패배자”이며 “만약 그가 그 자신, 그리고 아내에 대한 사랑을 좀 더 소중히 여겼다면 극단적인 복수에 빠져들지 않았을 것 같다”고 서평을 남겼습니다. 작가님은 테드와 그의 선택을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테드의 선택은 거의 최악에 가깝죠. 저도 복수를 택하는 이야기를 썼지만, 사랑하는 사람이 바람을 피웠을 땐 아무리 살인 충동이 일더라도 무시해버리는 게 상책이에요.


『죽여 마땅한 사람들』에서 등장인물들은 서로 속고 속입니다. 작가님이 직접 겪어본 사건도 있나요? 혹은 이 책을 완성하는 데 도움이 된 경험 같은 게 있나요?


그리 대수로운 문제는 아니었지만 친구들이나 애인에게서 배신감을 느낀 적은 있습니다. 누구나 그런 경험이 있기 마련이잖아요. 그런 감정을 기억해두면 글을 쓸 때 도움이 돼요. 자기 자신과 전혀 닮지 않은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를 쓸 때라도 말이죠.

 

책의 결말 부분에서는 ‘릴리의 엄마는 다른 사람들한테 완전 무관심하다가 왜 갑자기 환경운동가가 된 거지? 뭔가를 알아채고 공사를 반대하게 된 건가? 아니면 그때까지 딸을 돌보지 않은 걸 속죄하려는 걸까?’ 같은 생각이 떠오릅니다. 결말에서 독자들에게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건가요?


제가 썼던 글 그대로 독자 여러분께 말하고 싶었어요. 초원을 뒤엎는 건 릴리에게 ‘아마도’ 몹시 나쁜 소식일 겁니다. 본인 생각에 시체를 완벽히 묻었다 싶어도 실제로는 그 깊이가 그다지 깊지 않을 수도 있겠죠.


『죽여 마땅한 사람들』에서 가장 좋아하는 인물은 누군가요?


릴리가 제일 마음에 들어요. 처음에는 릴리를 조연급으로 쓰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글을 쓰려고 보니 이 캐릭터가 너무너무 마음에 드는 거예요. 그래서 주인공으로 정해버렸죠. 릴리가 좋은 이유 중 하나는 비록 살인자이긴 하지만 무척 실리적인 사람이라는 거예요. 그녀에게 살인은 그다지 대수롭지 않은 일이기에 바로 실행에 옮기죠. 크게 봐서는 누구 하나 죽여도 세상에 별 차이는 없다고 생각하고요.

 

이야기가 결말로 다가갈수록 릴리를 점점 응원하게 되는 독자가 많습니다. 왜 그런 감정이 드는 걸까요?


맞아요, 전 세계의 독자 여러분이 그렇게 말씀하시더군요. 이건 방금 말씀 드린 내용과 일맥상통하는 것 같아요. 릴리는 실리적이지만 결코 악하진 않은 사람이에요. 게다가 그녀가 죽인 사람들도 성인군자 같은 부류는 절대 아니죠.

 

독자 반응이 어떠리라 예상하셨습니까? 출간 후에 가장 인상적인 평가는 무엇인가요?


원래 글을 쓸 때는 독자들을 많이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요. 하지만 그간 쏟아진 긍정적인 반응들 때문에 한껏 놀라긴 했습니다. 수많은 독자가 릴리를 진심으로 응원했다는 사실 역시 놀라웠고요. 가장 인상적인 평은 책을 펼친 자리에서 다 읽었다는 말이었어요. 경악과 전율을 동시에 느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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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 번쯤은 복수를 생각해보기 마련


헌정문으로 “어머니, 엘리자베스 엘리스 스완슨에게 바친다”라고 쓰셨지요. 작가님의 인생에서 어머니는 어떤 존재인가요?


어머니는 제게 반석과도 같은 존재예요. 지금도 가까운 곳에 사신다는 게 저한테는 참 다행이죠. 어머니가 이 책을 마음에 들어 하셔서 마냥 기쁩니다.

 

상당히 이분법적인 사고이긴 합니다만, 보통 우리는 인간의 본성이 근본적으로 선하다거나 악하다고 생각하곤 합니다. 어느 쪽을 신뢰하시나요?


사람들 대다수가 근본적으로 착하다고 믿어요. 궁지에 몰리거나 스트레스가 극심한 상황에 놓이지 않는 한은요. 물론 그럴 때는 선하다는 가정이 무색해지긴 하지만요.

 

한국 사람들에게는 복수를 죄악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관용을 미덕으로 여기지요. 복수를 소재로 삼은 작가로서 이러한 분위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미국에서도 복수를 죄악시하는 건 마찬가지예요. 어쨌거나 가장 좋은 건 용서죠. 그런데 사람이면 누구나 한 번쯤은 복수를 생각해보기 마련이고 실제로 크고 작은 복수를 당할 수도 있잖아요. 아마 이런 이유 때문에 많은 미국 사람들 역시 복수를 주제로 한 이야기에 빠져드는 게 아닌가 싶고요. 어른이 되어서 복수를 꿈꾸진 않더라도 어릴 때는 분명히 다들 그랬던 적이 있을 겁니다.

 

요즘 어떤 책을 읽고 계신가요? 그 책이 왜 인상적인가요?


로런 뷰커스(Lauren Beukes)가 쓴 『샤이닝 걸스』라는 멋진 소설을 읽고 있습니다. 시간 여행이 가능한 연쇄 살인마 이야기인데, 이 남자가 죽인 사람들과 관련된 이야기가 가장 흥미롭습니다.

 

당신에게 있어 글을 쓰는 데 가장 관심 가는 주제와 소재는 무엇인가요? 단편이나 에세이를 쓸 계획은 없는지요?


미스터리와 범죄 이야기가 저는 가장 관심 있습니다. 단편 소설은 이따금 쓰는데 에세이는 별로 없어요. 잘 써지지가 않네요.

 

작가님의 처녀작인 『시계 심장을 가진 소녀』가 내년에 한국에서 출간될 예정입니다. 이 책을 한국 독자들에게 살짝 소개해주십시오.


이 이야기는 두 가지 다른 시간대를 배경으로 진행됩니다만, 조지와 리아나라는 등장인물은 두 시간대에 똑같이 등장합니다. 두 사람은 대학교에서 처음 만나고 20년 뒤에 다시 만나게 되는데, 만남의 순간마다 끔찍한 일이 벌어지죠. 뒷이야기는 책을 통해 확인해주시길 바랍니다.

 

끝으로 인터뷰를 읽는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죽여 마땅한 사람들』의 한국어판 표지 디자인이 정말 마음에 들어요. 여러분도 그러셨으면 합니다. 제 소설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머지않은 시기에 한국을 꼭 방문했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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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여 마땅한 사람들피터 스완슨 저/노진선 역 | 푸른숲
《죽여 마땅한 사람들》은 낯선 공간에서 우연히 만난 두 남녀가 서로 사생활을 털어놓으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열차 안의 낯선 자들》와 도입부 설정이 흡사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모티브만 비슷할 뿐 더욱 팽팽한 성적 긴장감과 설득력 있는 줄거리가 차원이 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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