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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지예, 히잡을 벗은 사임당의 이야기 『사임당의 붉은 비단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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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지예 작가의 소설 『붉은 비단보』가 『사임당의 붉은 비단보』로 이름을 바꾸어 재출간됐다. 주인공인 항아(恒我), 늘 자기 자신이고자 했던 여인이 본래의 이름을 되찾기까지 8년이란 시간이 걸린 셈이다. 『붉은 비단보』는 처음부터 사임당을 주인공으로 쓰여진 소설이었으나, 그대로 출간하기에는 시기상조라는 주변의 우려 탓에 수정을 거칠 수밖에 없었다. ‘우상이 아닌 한 인간을 호명하고 싶었다’는 작가의 바람은 더없이 소박했지만, 사임당을 옭아맨 틀은 예상보다 더 단단했다. 그녀는 위대한 어머니라는 이름을 얻는 대신 여성으로서, 예술가로서, 살아온 삶을 외면당했다. 권지예 작가는 역사가 기록하지 않은 그녀의 시간에 주목했고 『사임당의 붉은 비단보』에는 그 순간들이 고스란히 담겼다. 최초 출간 당시 덜어내고 잘라내야 했던 부분들까지 살려낸 것이다. 여성으로서 꽃피우지 못했던 사랑, 예술가로서 펼쳐 보이지 못했던 재능, 진짜 사임당의 뜨거운 열정이 꿈틀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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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임당의 붉은 비단보』, 히잡을 벗은 사임당의 이야기


2012년 출간하신 『유혹』이후로 작품 활동이 뜸하셨는데요. 많은 독자 분들이 작가님 소식을 궁금해 하셨을 것 같아요.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안 그래도 ‘이러다가 독자들이 나를 완전히 잊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 저도 신작을 발표하지 못하고 있으니까 계속 의기소침해 있는 상태였던 것 같아요. 그동안 건강이 별로 좋지 않았어요. 큰 병은 아니지만, 옛날하고 달리 조금만 피곤하거나 면역력이 떨어지면 감기가 걸리고 한 번 아프면 계속 아프더라고요. 제 스타일이 뭔가 하나에 꽂히면 안 먹고 안 자면서 끝을 보듯이 해서 마침표를 찍어야 되는데, 이제는 체력이 뒷받침 되지 않더라고요. 체력이 안 되니까 집중이 잘 안 되기도 하고요. 이제는 옛날만큼 빨리빨리 쓰지는 못하는 것 같아요.

 

쉼 없이 달려오셔서 그럴까요? 공백기 없이 꾸준히 작품을 발표해 오셨잖아요.

 
제가 활동한 기간이 그렇게 길지는 않아요. 늦게 등단한데다가 5년 정도 무명 생활을 거치고 나서 ‘이상문학상’을 받았는데, 그때부터 청탁도 밀려오고 소설을 계속 내게 됐죠. 나름대로는 10년 정도 굉장히 애를 쓰면서 했던 것 같아요. 2012년에 『유혹』완결판을 내고 나서 ‘너무 힘들다, 조금 쉬자’ 생각했던 게 한 번 손을 놓으니까 옛날 속도를 회복하는 게 쉽지가 않더라고요. 건강에 대한 자신감도 조금 덜하다 보니까 너무 몰아치면 아플 것 같고, 조금만 하면 힘이 드니까요. 이제는 작업 패턴을 조금 바꿔서 규칙적으로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운동도 하고 건강관리도 하면서 해야 되는구나, 싶고요.

 

새로운 작품을 준비 중이신가요? 


한 3~4년쯤 쉬다시피 했으니까 ‘이제는 조금 써야겠다, 너무 많이 쉬었잖아’ 이런 생각이 들어요. 10월 중순 쯤에 쿠바로 떠날 계획인데, 다녀오면 새로운 전기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올해부터는 써야지’라는 생각으로 준비 단계에 들어갔고요. 그동안에는 여성들의 사랑, 욕망을 주제로 많이 썼었는데, 이제는 제2의 작업을 하는 시기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늘 하고 있어요. 그런데 지금까지는 확 다가오는 정체성의 문제가 별로 없었거든요. 게다가 요즘 한국 문학이 죽었다는 이야기들도 많고, 출판 시장도 상황이 너무 안 좋다 보니까, 여러 가지로 의욕이 줄기도 했어요. 그런데 모색을 좀 해봐야 될 것 같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문학 생태계가 많이 달라졌으니까요. 저도 지금까지와는 조금 다른 이야기를 해보고 싶고요.

 

8년 만에 주인공에게 본래의 이름을 찾아주셨는데,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개정판은 8년 만에 나오게 됐지만, 처음 이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한 건 거의 10년 전이에요. 초고는 『사임당의 붉은 비단보』와 거의 같은데, 당시에는 출판하기에 시기상조인 것 같았어요. 그때 마침 5만 원 권에 신사임당의 초상을 넣느냐 마느냐 하는 이야기도 있었고요. 여러 분야에서 모니터링을 조금 해봤는데 우려하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노이즈 마케팅으로 비춰져서 작가가 도마에 올라서 논란이 되는 것 자체가 너무 싫기도 했고요. 그래서 고민하다가 출간을 안 하려고 했었어요. 제 나름대로는 당시 고증을 위해서 자료, 역사책, 신사임당 평전 등 관련된 책도 많이 읽고 공부도 많이 하면서 쓴 작품인데, 그런 난관에 봉착하니까 속상하더라고요. 잘못하면 버려질 수 있는 소설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동안 애써서 쓴 게 너무 아깝고요. 쓰는 동안 신사임당한테 빙의돼 있었으니까 애틋한 마음도 컸거든요.

 

그렇다면 『붉은 비단보』는 어떻게 세상에 나오게 됐나요? 


처음에는 소설로 안 내고 그냥 묵혀두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갈수록 마음이 안 좋더라고요. 애써서 썼는데 언제 꺼내야 될지도 모르고 그냥 땅에 묻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신사임당이 아니더라도, 일반 조선의 여성 예술가들도 이렇게 힘들지 않았을까 생각하고 다시 고쳤어요. 주제의식 면에서는 그런 예술가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니까요. 너무 강렬하게 스며있는 신사임당의 이야기들은 조금 빼고, 그래도 마음이 안 좋아서 ‘신사임당을 모티브로 차용해서 썼다’고 밝혔죠. 그때는 너무 섭섭한 마음에 작가의 말에 이런저런 이야기를 쓰기도 했고요.

 

개정판 『사임당의 붉은 비단보』의 출간을 결심하신 계기가 있었나요?


그리고 8년 반 정도 세월이 지나서 『사임당의 붉은 비단보』로 다시 나왔는데요. 『붉은 비단보』가 거의 다 소진된 상태여서 더 찍어낼까 하던 차였는데, 사임당을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가 방영된다는 이야기가 있었어요. 드라마 내용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불멸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고 홍보하는 것 같더라고요. 『사임당의 붉은 비단보』도 신사임당의 마음속 불멸의 사랑이 예술혼으로 승화된 이야기인데, 이런 분위기라면 이름을 찾아줘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출판사에서도 그렇게 생각했고요. 그래서 초고를 다시 꺼내 보면서 완성시켜서 개정판을 내게 된 거예요.

 

어쩔 수 없이 외피를 둘렀다가 이제야 본 모습을 드러내게 됐네요.


아랍권 여성들이 어쩔 수 없이 히잡을 둘러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였죠(웃음). 황진이나 허난설헌 같은 경우에는 소설이 나왔는데 신사임당에 대한 소설은 별로 없어요. 제가 이 작품을 쓸 때도 거의 없었어요. 물론 평전은 많이 있겠지만, 저는 소설가니까 예술가의 내면을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역사와 반드시 맞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훌륭한 예술가라는 측면에서 핍진하게 인간의 내면을 소설적으로 형상화해 보면 어떨까 싶었던 거죠. 결국 사임당은 모든 고난이라든가 인생의 희로애락을 겪고 난 이후에 성숙한 예술가가 되었다는 걸 말하고 싶어서 여러 이야기를 집어넣은 거고요. 주변에서는 그런 시도조차 불편해 하시는 분들도 있을 수 있다고 이야기하니까 걱정이 좀 됐어요. 그래서 히잡을 두르는 것 같은 방법을 택했던 거죠. 그런데 사임당이 이런 삶을 살았다는 이야기도 아니고, 소설이라면 주제의식을 조금 더 재밌게 접근해야 되잖아요. 그러니까 소설을 읽으시고 나서 ‘그럴 수밖에 없었겠구나, 그러니까 오히려 더 훌륭한 여성이다’ 이렇게 생각하실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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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에 붙은 ‘19금’ 철퇴를 맞은 것 같았어요


사임당의 시 ‘낙구’의 구절을 읽으시다가 사임당의 사랑을 상상하기 시작하셨다고요.


조금 발칙한 상상을 한 거죠.

 

말씀하신 것처럼 그런 작업을 ‘발칙한 상상’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있을 거예요. 우리 사회에서는 그런 시선이 이상하지도 않고요. 소설 속에서 사임당은 많은 것에 옭아매어진 인물인데, 아직도 그녀는 자유롭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황진이는 기생이니까 젊은 시절의 사랑을 어떤 식으로 각색하든 역사에 알려지지 않은 어떤 이야기를 쓰든 괜찮을 텐데, 사임당이라는 여성에 대해서는 우리가 훼손시킬 수 없는 어떤 것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만인의 어머니이기 때문에 이 어머니가 여성이 되는 걸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 정서가 있는 거예요, 대한민국에는. 그게 500년 동안이나 공고하게 있었고요. 그런데 사실 별로 나쁜 것도 아니에요. 작품에 나와 있듯이 사임당이 그 남성이랑 불륜을 저지른 것도 아니고, 충분히 처녀 총각들이 연모하는 정을 나눌 수 있단 말이에요. 그건 당연한 본능인데 여기에서는 사임당이기 때문에 쉽게 넘길 수 없는 부분이 되는 거죠.

 

흔히 하는 말로 누구나 오욕칠정을 가진 존재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사임당처럼 위인이라고 일컬어지는 사람들은 어떤 이미지에 박제되어 있는 것 같아요. 『사임당의 붉은 비단보』를 읽어 보니, 그런 이들에 대한 연민이 생기더라고요. 


우상의 눈물이죠. 본인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상의 반열에 오른 사람들은 좀 힘들죠. 그런데 사임당은, 후세에 와서 그렇게 되었지만, 살았던 당시에는 자연스럽게 살았을 것 같기도 하거든요. 나름대로, 본성대로, 그렇지만 조금 더 지혜롭고 재능이 많은 여성이었을 것 같아요. 사임당의 어린 시절이라든가 기록되지 않은 시간들은 우리가 알 수 없는 건데, 그렇게 역사가 말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작가들이 얼마든지 상상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게 좀 인간적인 것 같아요. 현재의 예술가보다 그 당시의 예술가들은, 특히나 여자 예술가는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자아가 강하니까 표현하고 싶었을 텐데 그게 어려운 사회였잖아요. 그런 점에서 작가로서 예술가로서 동병상련이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한 번쯤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었어요.

 

사임당이 살던 시대와 현재 사이에는 많은 간극이 있지만, 같은 예술가로서 동질감을 느끼시는 지점들이 있을 것 같아요. 여전히 여성 예술가가 짊어져야 할 것들이 남아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제가 <문학사상> 8월호에 ‘작가의 일상’이라는 꼭지를 쓰게 돼서 ‘쏘냐의 이중생활’이라는 제목의 글을 썼는데요. 이중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분열될 수밖에 없는 거예요. 멀쩡하게 주부로 살아야 하고 아이를 키워야 하는데, 작가로서는 현실과 괴리된 상황에서 집중해서 어느 세계에 빠져서 글을 써야 되는 거죠. 그 양극에서 왔다 갔다 하는 분열감이라고 할까요, 그게 너무 힘들더라고요. 지금은 아이들이 다 독립을 해서 정말 힘든 시절을 지나서 조금 나아진 것 같은데, 여자 작가나 예술가는 그런 식의 갈등 같은 게 있어요. 내 작품 세계를 지켜내야 되고 한편으로는 자연인, 일반인으로서 똑같은 의무를 다 이행해야 되죠. 옛날에는 더했으니까 사임당도 힘들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항상 제 머릿속에 살림에 대한 생각과 작품에 대한 생각은 5:5 거든요. 그런데 사임당 같은 경우에는 7:3 정도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런 식으로 이해가 되는 부분이 있었어요.

 

사임당이 예술혼의 표현 자체를 억압당했다면, 지금의 여성 예술가들은 특정 부분에 있어서 표현에 제약을 받는 것 같아요. 성적 묘사 같은 부분도 그 중 하나인데요. 『유혹』을 발표하셨을 때, 이와 관련해서 우려하신 부분이 있으셨을 것 같아요.


조금 있었죠. 그때의 저는 ‘여성작가라서 못 쓰는 부분은 없다, 쓸 수 있는 데까지 써보자’ 생각하고 썼는데 여성작가로서는 수위가 꽤 높았어요. 그런데 남성 작가들은 그보다 더 수위 높게 연재할 때도 많이 있었거든요. 어쨌든 제가 느끼기에는, 우리나라에서는 아직까지 여성이 그렇게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것에 대해서 불편해하는 시각이 있어요. 『유혹』을 5권으로 냈는데, 그 중에 두 권인가 세 권이 ‘19금’이 찍혀버렸어요. 그것보다 더 야한 소설들도 얼마든지 있을 수도 있는데 19금이 찍혀버리니까 출판사에서 판매하기가 너무 힘들어진 거예요. 19금이면 비닐 포장이 돼서 진열되잖아요. 그것도 너무 가슴이 아픈 거예요. 뭐라고 할까, 약간 철퇴를 맞은 느낌 같았어요. 청소년에게 유해한 부분 때문에 19금을 붙이는 건데, 인터넷을 켜면 광고라고 해서 이상한 영상들이 나오고, 소설 내용보다 더한 동영상도 얼마든지 돌아다니잖아요. 그렇다고 제가 완전히 포르노를 쓴 것도 아니고, 나름대로 주제의식을 갖고 쓴 건데... 주변에서도 정말 시대착오적이라고 말씀해 주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소설에는 사임당이 현실과 예술혼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이 나오는데요. 작가님께서는 둘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고 계세요?


조금 외줄타기 하는 것 같죠. 글을 열심히 쓸 때는 굉장히 긴장감이 있었던 것 같아요. 아이들도 키워야 하고 혼자 사는 게 아니니까, 내 스케줄에 모든 게 맞춰지는 게 아니잖아요. 몸은 힘들게 생활에 맞춰야 되고 정신은 유리시켜서 소설 세계를 꿈꿔야 되니까요. 그 균형이 잘 맞도록 해야 하니까, 계속 머릿속에 서랍이 많다고 생각하고 살았어요. 외줄타기 하는 곡예사처럼 머릿속에는 항상 내가 할애해야 될 부분을 자리 잡아 놓고 글 쓰는 것하고 타협하죠, 제가 ‘이상문학상’을 받았을 때도 그런 상황이었어요. 지방 대학에 전임교수가 됐는데, 아이는 초등학교를 들어가야 됐고, 그런데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돼서 아이가 적응을 잘 못하고 있었거든요. 처음에는 그 모든 역할들을 다 해보자고 욕심을 냈어요. 그런데 너무 힘든 거예요. 몸이 너무 안 좋아지더라고요.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순위를 정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렇다고 이혼을 하고 아이를 포기하는 건 아니잖아요. 그렇다고 소설을 포기할 수도 없고요. 그래서 교수가 무슨 의미가 있나, 하고 포기하고 열심히 전업 작가로 살기로 한 거죠. 그런데 남은 두 가지만으로도 너무 힘들었죠. 그런 세월이 있어서 일하는 여성, 워킹맘에 대해서 아직까지 짠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진정성이 있는 남자는 좋아할 수밖에 없잖아요?


사임당과 준서의 사랑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겠죠. 개인적으로 준서가 보여준 순정이 너무 가슴 아프면서도 멋있었어요(웃음).


준서가 그렇게 멋있었어요(웃음)? 요즘 이런 남자들 별로 안 좋아하지 않나요(웃음).

 

이 소설을 읽고 나니까, 이제 나쁜 남자의 시대가 가고 순정남의 시대가 다시 올 것 같던데요(웃음).

 
사임당의 마음을 훔칠 만한 남자라면 멋있는 남자여야 하는데, 어떤 남자여야 할까 생각했었어요. 사임당의 사랑을 그리면서 몇 가지 조건이 있었는데요. 결혼 이후에 만난 남자면 안 될 것 같았고,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어야 했죠. 정말 마음을 훔칠 만큼 멋있어야 하고요. 그런 조건들을 생각하면서 준서라는 인물을 만들어 냈는데, 의외로 준서를 좋아하는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사실 진정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진정성 있는 남자를 좋아할 수밖에 없잖아요. 나쁜 남자한테 끌리는 건, 처음에는 어쩔 수 없이 끌리는 매력을 느낄 수는 있지만, 죽을 만큼 사랑하는 진정성을 가지고 있다면 마음이 안 움직일 수가 없을 것 같아요. 저는 나쁜 남자도 가끔 그리지만, 아직까지도 운명적인 사랑을 좋아하나 봐요. 그래서 『4월의 물고기』같은 작품에서도 목숨까지 거는, 그런 사랑을 많이 그린 것 같아요.

 

신사임당의 삶을 모티프로 하고 있고 배경이 조선시대이다 보니, 사랑에 관한 부분은 살짝만 건드리시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런데 역시 작가님의 소설이라 그런지 격정적이더라고요(웃음).


관통을 했죠(웃음). 아마 사임당의 사랑 이야기는 다루기가 어려워서 쉽게 쓸 수가 없었을 거예요. 그리고 이 소설에서는 사임당이 적극적인 면도 있는데, 그렇게 쓰고자 마음먹은 사람은 없었던 것 같아요. 소설로 쓸 법도 한데 없더라고요, 저도 작품을 쓰기 전에 찾아봤는데 소설로 쓴 사람이 없더라고요. 그런데 아마 이렇게 하고 나면 조금 다른 각도로 쓰는 작가들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이번에 사임당에 대한 드라마가 방영되고 나면 또 많은 책들이 나올 것 같은데, 조금 색다르게 표현하는 작품들이 나올 수도 있겠죠. 자유롭게 놔두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크게 훼손하지 않으면.

 

‘이렇게 써도 되나?’ 싶은 생각도 드셨어요?


그런 생각 했어요. 조심조심 하면서 썼는데 어느 순간 넘어가 버리더라고요. 그런데 그걸 멈출 수가 없었어요(웃음). 나중에 가서 사임당이 ‘그림은 그리움이다’라는 이야기를 하는데, 저는 이 사랑이 사임당의 예술혼을 돌리는 동력이라고 생각했어요. 사랑이 너무 시시하면 사임당에게는 별로 의미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사랑이 하나의 불쏘시개가 될 거라고 생각했죠. 소설에서 사임당은 그 마음 자체를 가지고서 계속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아쉬움을 가지고 있었잖아요. 그리움이 있는 시도 쓰고, 자기 나름대로 어떤 동력이 됐던 거죠. 그래서 사랑이 대충 대충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렇다고 막 사랑을 쓰기에는 너무 우아한 여인이고 옛날이야기이니까, 균형을 잡는 게 힘들었어요. 그래서 준서를 사화로 화를 입는 가문의 서자로 설정했고, 나름대로 유기적으로 엮느라 조사를 많이 했어요. 일반화된 여성 예술가들의 이야기도 하려다 보니까 황진이라든가 허난설헌의 어릴 때 이야기를 조금 입히기도 했고요. 사임당뿐만 아니라 당시 여성 예술가들의 삶이, 운명이, 순탄치 않았잖아요. 그런 걸 염두 해 두고 썼죠.

 

사임당에게는 상처와 그리움이 예술 활동의 밑거름이 되었는데요. 작가님께서도 비슷한 말씀을 하신 적이 있더라고요. “상처는 나의 힘. 나는 고통을 잉크 삼아 글을 쓴다”고요. 어떤 상처가 힘이 되어준 것 같으세요?


제 여동생이 스무 살 때 암으로 3년 동안 투병하다가 죽었어요. 저는 암인지 몰랐어요. 엄마가 말씀해주지 않으셨거든요. 그 여동생이 문재가 있었어요. 그림도 잘 그렸고요. 그래서 살아있었다면 지금쯤 그 아이도 작가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어쨌든 재주가 있는 아이였고, 저도 작가가 되고 싶어 하던 차에 동생이 그렇게 돼서, 동생이 갑자기 죽은 걸 받아들이는 데 굉장히 오래 걸렸어요. 그렇게 재능 있는 사람이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에 대해서 너무 가슴 아파해서, 어떻게 보면 약간 부채감에서 시작한 작가 의식을 갖게 된 거죠. 그렇게 간 게 너무 허무해서 그 허무함, 실존주의 쪽으로 많이 갔죠. 사는 게 무엇인지, 대학 때부터 생각을 많이 했는데 ‘결국 사람이 죽으면 아무것도 아닌데, 남는 건 예술 밖에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시는 데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군요.


‘영원한 거에 대한 건 예술 밖에 없고, 내 동생이 이렇게 허무하게 갔다는 걸 모두가 잊을 수밖에 없는데, 그걸 내가 글로 써보면 어떨까’라는 생각으로 작가가 되고 싶었던 거예요, 처음에는. 제가 작가가 되고자 했던 건, 물론 다른 것도 작품으로 쓰고자 했지만, 나한테 약속을 하기로는 ‘처음 소설은 동생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생각에서 출발했어요. 그래서 파리에 가서도 틈틈이 노트에 썼는데, 그게『아름다운 지옥』이에요. 첫 장편이요. 어쨌든 데뷔는 단편으로 하고 상도 단편으로 탔지만, 제 마음 속에는 항상 동생에 대한 오마주 같은 거죠. 동생에 대한 헌정 소설을 쓰고 그 다음부터 작가의 길을 가겠다는 마음이 있었거든요. 그 고통, 수십 년 간 간직한 동생에 대한 아쉬움, 부채감, 그런 것들이 작가가 꼭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했었어요. 『아름다운 지옥』을 첫 소설로 내고 싶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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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라면 누구나 ‘붉은 비단보’를 가지고 있죠


‘상처는 나의 힘’이라고 말씀하신 걸 보고, 작가에게는 ‘질투는 나의 힘’이기도 하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작품 속에서 사임당은 가연이 가진 예술적 재능에 질투심을 느끼기도 하는데요. 예술가라면 서로 그런 감정을 느끼지 않을까요? 작가님은 어떠세요?


그럴 때도 있죠. 어떤 작가들이 내가 쓰지 못하는 작품을 쓸 경우에는 질투와 동경이 섞인 묘한 감정을 느낄 때가 있어요. 완전히 100% 질투라고 하기는 뭐하고요. 그런데 젊을 때는 ‘열심히 써야 되겠다, 저렇게 잘 쓰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렇게 생각되는데, 나이를 먹으니까 ‘이제 나는 틀렸나 보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웃음). 어느 정도 시점이 되니까. 가능하면 동경과 질투가 5:5면 참 좋은데, 질투가 너무 많으면 괴롭기만 하고 글이 안 써지고요. 동경이 너무 많으면 ‘저 작가는 정말 대단해, 나보다 훨씬 나은 작가야’ 하고 쉽게 그 작가를 인정해 주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요새는 인정을 해주는 게 마음이 편하더라고(웃음). 나이가 들수록 ‘받아들일 건 빨리 받아들이고 비울 건 비우자’ 싶기도 하고 이게 편하게 사는 방법은 맞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젊었을 때는 ‘나는 저걸 넘어서는 작품을 쓰고 싶어’라고 생각했다면 이제는 ‘저 작가 참 잘 쓰는구나, 부럽다’ 이렇게 돼요. 그런데 또 상처와 고통이 예술혼의 밑거름이 된다고 생각을 하다 보니까, 어떤 위대한 작품을 쓴 사람을 보면 ‘저 분은 정말 고통도 많고 상처도 많았을 거야, 이렇게 멋있게 표현했을 때는 얼마나 갈고 닦으며 힘든 세월을 보냈을까, 작가로서의 삶도 작품도 존경한다’ 이렇게 생각하게 돼요. 그렇게 마음을 먹으면 조금 더 편해지기도 하고요.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가 10월에 방영될 예정입니다. 『사임당의 붉은 비단보』와 드라마의 연관성을 궁금해 하시는 분들도 계실 텐데요. 드라마 제작사로부터 연락을 받기도 하셨나요?


전혀 없었어요. 그래서 저는 사실 드라마가 방영된다는 것도 잘 모르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출판사에서 이야기하기도 하고, 인터넷에도 찾아보니까 많이 나오더라고요. 이영애 씨가 오랜만에 복귀한다고 해서 화제가 된 것 같더라고요. 내용에 대해서 밝혀진 바는 많이 없는 것 같고요. 저는 드라마 작가도 모르고, 내용도 많이 나오지 않아서 자세히 몰라요. 다만 타임슬립으로 과거와 현재를 오간다고만 알고 있는데요. 예상 밖으로 사임당의 이야기를 굉장히 현대 트렌드에 맞는 형식으로 풀어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직 드라마를 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옛날 사임당의 모습은 굉장히 현모양처로 그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옛날과 현대 사이에 선을 그어 놓은 것일 수도 있잖아요. 어떻게 보면 드라마가 선을 그어놓고 사랑 이야기로 완전히 밀어붙이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기는 해요. 제 개인적인 판단이에요.

 

『사임당의 붉은 비단보』는 푸른 비단보와 붉은 비단보에 대해 의문을 던지면서 시작하잖아요. 붉은 비단보에는 진짜 사임당의 모습이 감춰져 있다고 볼 수도 있는데요. 작가님도 붉은 비단보에 담아두고 싶은 것, 혹은 담아둔 것이 있으세요?


그런 게 있다고 볼 수 있죠.

 

밝히실 수는 없는 건가요(웃음)?


그러면 붉은 비단보가 아니죠(웃음). 작가들은 누구나 있을 거예요. 저는 있다고 보는데요. 작가도 결국에는 자기가 기록하고 출판하는 작품에 한해서 알려진 사람이에요. 작품을 아기라고 한다면, 출산해서 온전하게 낳은 아이도 있지만 무수히 많이 유산된 아이도 많단 말이에요. 여기저기 쓰다 만 것들도 많고, 내밀한 기록들도 있을 수 있죠. 그런데 만약에 제가 갑자기 죽었을 때, 그게 다 공개되기를 원하느냐고 하면, 별로 원하지 않거든요. 제가 고등학교 1학년 때인가, 작가가 되겠다고 생각해서 겨울방학 내내 썼던 작품이 하나 있더라고요. 나름대로 장편이라고 해서 대학노트에 써놓은 게 있는데, 옛날 순정 만화 같기도 하고 당시 유행했던 로맨스 소설 같기도 한 소설이에요. 예전에 그 소설을 강연회에서 보여준 적이 있는데 사진은 찍지 마시라고 했어요(웃음). 너무 창피한 거예요. 귀엽기도 한데 정말 못 썼더라고요. 그런 글들이 다 드러난다고 하면 싫을 것 같은 거예요. 그런 식으로 나름대로 붉은 비단보가 있어요. 작가들이 삶에서 얻는 영감, 상처, 잊지 못할 한 장면, 이런 것들이 어느 순간에 소설이 돼서 나올지는 본인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을 독자들한테 날 것 그대로 보여주기를 원하지 않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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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임당의 붉은 비단보권지예 저 | 자음과모음
『붉은 비단보』에는 사임당의 이름이 명시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나 개정판을 내면서 그녀의 이름을 되 찾아주게 되었다.‘사임당.’ 어긋난 사랑의 상처를 예술로 승화시키며 훌륭한 어머니, 아내, 딸로서의 삶을 온전히 지켜온 사임당을 오늘의 시간으로 다시 불러낸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탐험가 남영호 “사막은 나에게 성지 같은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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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을 자세히 보면 황홀감이 들 정도로 다양한 색을 가지고 있다. 사막을 이루는 모래알 성분에 따라 때로는 흰색, 회색, 노란색, 붉은색, 푸른색을 띠기도 하고 해가 지고 뜨는 동안 햇빛의 온도와 양과 방향에 따라 더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그뿐 아니라 사막은 세상에서 가장 깨끗한 곳이기도 하다. 모든 것을 스스로 완벽에 가깝게 정화시킨다.(202쪽)

 

유라시아 대륙 18,000km 횡단(2006), 타클라마칸 사막 450km 종단(2009), 갠지스 강 2,510km 완주(2010), 고비 사막 1,100km 횡단(2011), 그레이트빅토리아 사막 1,400km 횡단(2012), 아라비아 엠프티쿼터 사막 1,000km 횡단(2013), 깁슨 사막과 그레이트샌디 사막 1,670km 횡단(2014), 알타이 산맥과 고비 사막 2,400km 횡단(2014), 치와와 사막 1,200km 종단(2015).  사막 탐험가 남영호 대장의 기록이다. 모두 30,430km, 지구의 둘레가 약 40,000km라고 하니 그 엄청난 거리가 압도적으로 다가온다. 아니다. 도무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게다가 그가 걸은 곳은 전부 험지가 아닌가. 한낮의 강렬한 햇빛과 한밤의 차가움이 공존하는 곳, 시작과 끝조차 불분명한 곳, 시시각각 모습을 바꾸는 세상의 끝. 그런데 남영호 대장은 그곳을 다녀와도 또 그리운 곳이라고 말했다. 사막이 자신의 성지라고 말했다. 인간 대표로서 지구 한 곳의 특별한 대표가 한 자리에서 기를 나누는 느낌이라고, 그는 말했다. 


인터넷으로 온 세상을 관찰할 수 있고, 실시간으로 세계와 접속할 수 있는 세상. 21세기에 탐험이란 어떤 의미인지 그에게 물었다. “저 같은 애가 하나 있는 것도 재미있잖아요.” ‘21세기 탐험가’가 웃으며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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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나밖에 없다


사막을 ‘피하려 해도 들어갈 수밖에 없는 존재’라 했는데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아요. 결국 피할 수 없는 존재란, 왜일까요?


프롤로그에 왜 탐험을 하고, 왜 집밖으로 뛰어 나가야 했는지 구체적이진 않지만 약간 이야기를 한 것 같은데요. 물론 탐험가가 꿈이기도 했지만요. 여러 이유가 있었지만 사실 사람과의 관계를 피하고 싶은 마음이 굉장히 많았어요. 사막이 갖고 있는 기본적인 이미지가 텅 빈 곳, 막막한 곳인데요. 정말 그 끝을 한 번 보고 싶었던 거예요. 내가 겪고 있는 게 별 것 아니라는, 진짜 막막함이 무엇인가라고 하는 걸 경험해보고 싶었어요. 처음엔 그런 오기가 있었죠. 그렇게 갔지만 사막을 걸으면서 전혀 몰랐던 사막을 봤어요. 사실 자연현상이 주는 감동은 생각보다 그렇게 크지 않은 것 같아요. 물론 대자연의 감동이 있죠. 그렇지만 너무 텅 비어있기 때문에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오히려 결국 기대할 수 있는 건 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죠. 내가 놓고 온 인연들에 대한 생각을 한 것이 의미가 있더라고요. 강도를 만나고, 온갖 일을 겪으면서 정말 미워했던 가족들이 그리워졌어요. 과연 내가 이곳에 있었다면 그런 경험을 할 수 있었을까? 그래서 사막을 다녀오면 항상 그곳이 또 그리워요.

 

사막이라는 공간에서 오롯이 혼자가 되는 경험을 하는 거군요.


사막이 가진 가장 큰 힘은 아마 씻어낼 수 있다는 것일 거예요. 너무 완벽하게 비어있는 곳이라 아주 근본적인 생각들을 좀 더 깊이 있게 하도록 해주는 것 같거든요. 또 사막 자체가 자정능력이 굉장히 뛰어난 곳이에요. 아시죠? 정말 깨끗한 곳이잖아요. 밥을 먹고 나면 바람이 그릇에 남은 모든 것을 다 말려주고, 모래가 나머지를 다 씻어줘요. 그런 모습처럼 그곳을 걷는 저조차도 모래알로 씻는 듯한 느낌을 받죠. 처음엔 몰랐어요. 막막하고, 고립된 느낌도 들었고요. 두 번, 세 번, 걷는 시간이 점점 쌓일수록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가기 전엔 정말 오기였는데 말이죠.

 

처음 한 번은 오기, 도전으로 갈 수 있죠. 그러나 이곳을 계속해서 갔단 말이에요. 마치 ‘돌아가는’ 것처럼요.


모르겠어요, 예민한 사람들은 한 번을 만나도 많은 것을 느끼고 감동 받겠지만요. 저는 좀 무뎠어요. 계속 사막을 간 이유는 모르니까 궁금했던 거죠. 산은 그렇죠. 베이스캠프를 가고, 1캠프, 2캠프, 3캠프를 올라서, 루트를 따라가면 정상이 나오고, 올라갔던 길로 하산하는 건데요. 사막은 뭐랄까, 처음부터 끝까지 알 수 없었어요. 하루 중에도 클라이맥스가 있을 수 있고요.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거죠. 그거였어요.

 

처음 만났던 사막은 어떤 모습이었어요?


제일 막막했던 게 처음이었어요. 2009년 타클라마칸 사막 갔을 때인데요. 일생 첫 사막이었고, 사막에 대한 동경, 호기심, 오기, 남들은 안 한 걸 해보겠다는 조금은 쓸데없는 자신감 같은 것들이 있었죠. 갔는데 공안의 조사를 받았어요. 감금 상태로요. GPS를 잃어버렸죠. 그 안에 내 사막을 건널 수 있는 모든 게 들어있었거든요. 그걸 잃고 나니 가야하나 싶더라고요. 그런데 내가 선택한 거잖아요. 어렵게 왔고요. 이렇게 끝나는 건 너무 아쉬운 거죠. 무슨 생각이었는지 모르겠는데 그냥 사막에 갔어요. 무작정. 나침반이 있긴 하지만 심리적 위안 이상도 이하도 아닌 상태였고요. 사막은 길이라는 것 자체가 없잖아요. 그런데 아무런 길이 없는, 모래만 쫙 깔린 곳이 나타나니까 이상하게 자신감이 생겼어요. 이제는 그냥 길을 만들면 되니까요. 가겠다는 방향만 있으니까 이제부터는 자유롭게 가면 되더라고요.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진짜 사막을 만나고 나서는 그렇게 자유로울 수가 없었어요. 사막은 그런 면에서 되게 단순해 보이지만 아주 창의적인 곳이기도 하죠. 아무것도 없는 것 같지만 너무 많은 것이 있고요.

 

흥미로운 일화가 있어요. 처음 탐험을 시작하려고 했을 때 한 선배에게서 “너무 늦었다, 다른 일 알아봐라”라는 말을 들었다고요.


그분은 산악인이나 저 같은 일을 하는 동료들에게 아주 대단해 보였던 분이에요. 제가 이걸 직업으로 택하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는 저도 잘되고 싶은 욕심을 갖게 되잖아요. 그래서 제일 잘된 분에게 용기 얻을 수 있는 한 마디를 듣고 싶었어요. 그랬는데 그런 말을 들었죠. 제게는 오히려 그게 전화위복이 됐고요. 만약 “그래, 잘할 거야”라는 말을 듣고 시작했다면 처음부터 좌절을 계속 맛봤을 것 같아요. 제가 남홍길(웃음)이 되지 못한 것에 대한 비애를 진하게 느꼈을 것 같고요. 오히려 하지 말라는 말이 다른 면에서 자극이 됐죠. 그런 의미에서는 그분이 정말 고마워요.

 

사막에서의 경험이라고 하는 것이 대개는 고통스러운 것들이잖아요. 강도를 당하기도 하고, 죽음의 고통을 느끼기도 하고요.


정말 고통스러웠죠. 주변에서 볼 때는 말도 안 되는 일을 하겠다는 거였고요. 사막을 간지 이제 십 년이 됐는데요. 여전히 저한테 물어봐요. 결혼은 했냐고요. 탐험가로 산다는 게 어떤 건지 도무지 일반적인 상식으로 가늠이 안 되는 거겠죠. 그렇지만 전 행복해요.

 

저자에게 감정이입하면 그 마음이 충분히 공감되면서도 주변인이라고 생각하면 느낌이 확 달라지거든요. 사랑하는 사람의 안위를 걱정하는 마음은 누구나 마찬가지겠죠. 그런 부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정말 그 사람을 생각하고 사랑한다면 그 사람을 살려야 하잖아요. 자연사를 제외하고 저 같은 경우 죽는 방법은 두 가지일 텐데요. 강도를 만나거나 험한 일을 당해서 죽을 수도 있지만 더 힘든 건 서서히 죽는 거거든요. 평생 하고 싶었던 이 일을 하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다른 길을 선택했을 때, 삶에 대한 만족 등 여러 면에서 실패한 자의 느낌을 떨칠 수 없을 것 같아요. 물론 다른 생활에서 다른 보람을 찾을 수는 있겠죠. 반드시 이게 아니면 아니라는 건 아니지만요. 제 경우 일반적이지 않은 꿈을 꾸는 것, 그것을 실천하는 것 자체가 이미 놓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죠. 아내 입장에서는 위험이 많다는 것을 알지만 불상사가 없기를 바랄 뿐 하고 싶어 하는 일을 하도록 지켜봐주는 것 같아요.


좀 다른 것 같아요. 젊은 친구들이 ‘무작정’이라는 말을 많이 쓰더라고요. 저는 아주 조심해야 할 표현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무작정 사표를 내고 무작정 이 길에 뛰어들진 않았어요. 이 일을 하고 싶어서 지난 시간을 건너온 거거든요. 적어도 내 인생에 책임감을 갖고 사랑하는 분이라면 절대로 무작정은 있을 수가 없죠. 삶에 대한 진지한 생각을 가지고 선택을 하고 나면 위험 부담이라는 건 어느 분야에든 다 있는 거예요.

 

사막과 일상 사이의 균형을 잘 유지하는 것도 무척 중요한 일일 것 같아요.


이곳에 있는 동안에도 모든 일이 사막과 관련되어 있을 수밖에 없죠. 몸은 사막을 떠났지만 한국에 있는 6~7개월 동안 어딘가에 가서 사막 이야기를 하고 있고, 사막을 파악하고 있죠. 모두 그 연장선상에 있는데요. 사막에 있는 동안은 제가 가족을 잘 챙길 수 없잖아요. 기껏해야 전화를 하거나 이런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전혀 없어요. 그래서 이곳에 있는 동안은 최대한 아이, 아내와 시간을 많이 가지려고 해요. 저는 출근을 안 하니까 밖에 생산적인 일이 있지 않은 이상 집에서 최대한 못했던 이야기를 나누고요.

 
사실 분리라는 게, 다른 직장인 아빠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저는 좀 오랫동안 회사에 갔다가 와서 또 오랫동안 있는 거니까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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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는 결코 사막을 질주하지 않는다


생각의 변화도 중요한 부분일 것 같은데요. 어느 순간 ‘내 앞의 사막을 좀 더 행복하게 만끽하고 싶다’고 했거든요. 완주 자체가 아니라 과정의 중요함을 이야기했어요.


처음에는 말씀드린 대로 오기와 투지밖에 없었어요. 그러니까 몸이 무겁더라고요. 사고도, 몸도 경직됐어요. 어깨가 정말 찢어지는 줄 알았어요. 배낭을 내려놓을 때마다 근육이 파열되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거의 눈물이 날 정도였으니까요. 오기로만 다니니까 재미가 없는 거예요. 막막하기만 해요. 그래서 걷는 재미를 발견하고 싶다는 생각을 몇 번 가고부터 하게 된 거죠. 처음에는 무조건 완주해야 하고, 빨리 도착해야 하고, 횡단 소식을 알리고 싶은 바보 같은 마음이었어요. 남한테 보여주는 것에 집착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 허무하더라고요. 분명히 사막을 많이 걷긴 했는데 사막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요. 왜 걷는지 자괴감마저 드는 시점이 왔었어요. 좀 더 재미있게 걸어보자, 애정을 갖고 걸어보자, 이왕 걸어야 할 나의 사막이라면 좋아하면서 가야하는 것 아닌가, 생각했죠. 그래서 요즘에는 가기 전에 나름대로 공부를 해요. 칼라하리 사막 같은 경우는 다이아몬드 산업에 대한 공부를 조금 했고요. 그곳에 살고 있는 ‘부시맨’, 그들의 역사, 문화에 관한 책도 읽어보고요. 그러고 나니까 훨씬 재미있더라고요. 하나하나가 허투루 보이지 않는 거예요. 모르면 스쳐지나갔을 법한 것들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고요. 사막을 좀 더 알게 됐어요. 아주 기분 좋을 때는 하루나 이틀 텐트를 치고 그 자리에 머물기도 해요.

 

지난 시간에 대한 아쉬움에서 비롯된 생각이었네요.

 

전에도 아쉬움은 있었어요. 그때의 아쉬움은 ‘여기 언제 다시 올까’하는 아쉬움이었고요. 지금은 ‘너무 빨리 스쳐지나가는 것 같다’ 하는 아쉬움이에요. 더 보고, 시간을 보내고 싶은데 말이에요. 그건 애정도가 좀 달라졌다는 말이겠죠.

 

책에서 한 문장을 꼽는다면 ‘낙타는 결코 사막을 질주하지 않는다’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정말 중요한 삶의 태도라는 생각도 들고, 독자가 이 말은 꼭 가져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 말은 책의 많은 부분에 해당될 것 같아요. 사막에서 도망칠 수밖에 없던 라이언도 그렇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두려울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러니 조급해지고, 결국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가 없게 돼요. 라이언도 그러다보니 사막을 질주하게 된 거였어요. 어떻게 보면 책을 쓰면서 저도 다시 배운 것 같아요. 제목을 사막은 인생의 지도라고 썼지만, 앞서 나의 사막이라고 말씀 드렸던 것도 사실은 제 삶 자체를 그렇고 보고 있는 거거든요. 사막보다 더 척박한 삶이었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 사막에 애정을 느끼고 있죠. 그러면, 살아가려면 이왕이면 행복하게 살아야 하잖아요. 그 전까지는 남들이 뭐하면 그게 하고 싶었던 거고, 남들이 뭘 가지면 그게 갖고 싶었던 거였는데 어느 날부터 내 인생을 남의 인생처럼 사는 게 지겨워진 거고, 스스로 부끄러워진 거예요. 내 인생을 내 색깔로 재미있게 살아보고 싶다, 그런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강의도 많이 하시잖아요.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뭐예요?


몇 가지가 있어요. 먼저 왜 하필 사막이에요, 하는 건데요. 저는 그 질문 너무 싫어요. 좋은 질문이긴 하지만요. 또는 경제적인 건 어떻게 해결하느냐고 묻고요. 사막에서는 뭘 먹는지, 짐은 어떻게 가지고 가는지, 그런 것들을 많이 질문해요. 사람들이 사막이라고 하면 떠올리는 이미지가 너무 로맨틱해요. 그게 문제라고 생각해요. 석양이 모래 언덕 너머로 쫙 펼쳐져 있고, 거기에 하얀 캔버스 텐트가 있고, 양탄자가 깔려 있고, 와인잔에 화이트 와인이 기포를 올리고 있는 상상들 있잖아요.(웃음) 오아시스의 환상적인 면이요. 사실은 그렇지 않아요. 사막의 아름다움은 그렇게 만들어놓은 곳이 아니라 진짜 별 것 아닌 데서 느끼거든요. 강연의 청중들이 사막에 대해 잘 모르니까 단순한 호기심으로 질문하시는 것들이죠. 제가 사진을 보여드려요. 탐험가의 식사 장면이요. 정말 남루하거든요. 그렇지만 표정들은 다 행복하죠. 진지하고요. 엄숙하기까지 하죠. 그런 생생한 모습을 보여드리면 좀 실감하시는 것 같아요.

 

사막에서의 생활은 최대한 문명에서 멀어진 상태잖아요. 그것을 경험한 삶과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삶은 완전히 다를 거예요.


차이가 분명 있겠죠. 제 경우 아주 일상적이지 않은 환경에 떨어져 있을 때 쾌감을 느껴요. 어떤 거냐면 ‘내가 여기 있는 거 아무도 모르겠지’예요. 그리고, ‘여기 와본 사람이 전 세계에 몇 명이나 될까’죠. 지금 이 순간 모두가 다 스마트폰을 보고 있을 때, 나는 그걸 떨치고 이곳에 와 있는 거잖아요. 특별한 존재라는 쾌감이 굉장히 컸었어요. 인간의 발걸음이 닿지 않은, 망가지지 않은 원래의 모습이 주는 매력은 정말 단순히 매력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힘이 있어요. 지구가 탄생한 뒤 인간에 의해 결코 모습이 변하지 않은 사막이라는 곳에는 대단한 에너지가 있거든요. 정말 대단해요.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요. 이런 것 같아요. 인간 대표와 지구의 어떤 특별한 곳의 대표가 한 자리에 있는 듯한, 그래서 서로의 기를 나누는, 그런 느낌을 받아요. 진짜 그 느낌은 어떤 대단한 소설가도 글로 표현하지 못할 거예요.

 

그 공간에서 어떤 해방감을 느끼나요?


뭐랄까, 자유롭게 떠나왔고, 자유롭게 걸어가면 되는 거죠. 그런데 그 자유는 그냥 막 걷는다고 자유는 아닌 것 같아요. 오히려 스스로에 대한 책임감이라든지 보이지 않는 규율이 분명히 있죠. 자유롭지만 그 자유를 갖기까지 무던히 많은 노력과 좌절을 느꼈거든요. 그러면서 서서히 제 안에서 나도 모르게 내가 지키는 규율이 생겨난 것이죠. 그런데 그게 전혀 불편하지 않아요. 아주 즐겁게 지킬 수 있어요. 그런 규율이 없이는 자유가 자유로 과연 느껴질까요?

 

서서히 형성된 나만의 규칙이라는 건,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인가요?


글쎄요, 작은 제목들에 들어간 말들이 그것일 텐데요. 사막에 함께 갔다가 중간에 대원을 보낼 수밖에 없던 경우가 몇 번 있었어요. 원정은 서로 100%, 가깝게가 아니라 완전히, 신뢰해야 가능해요. 힘든 곳이잖아요. 다양한 불확실성이 있고요. 때문에 원정대라는 특수성이 있죠. 그러려면 스스로가 준비되어야 해요. 이곳에 왜 왔는지 분명한 이유가 있어야 하고요. 스스로 목표나 동기가 단단하지 않은 상태라면 원정이 힘든 순간 지속하기가 어려워지죠. 몇 번 아픔을 겪고 나니 동료에 대한 생각도 달라지더라고요. 같이 간다는 게 뭘까, 생각을 많이 했어요. 내가 손을 잡고 출발했으면 손을 잡았을 때의 마음을 절대로 잊지 말자 생각했고요. 혼자 갈 수 있는 길이면 왜 손을 잡았겠어요. 끝까지 놓지 않고 가자, 서두르지 않고 행복하게 길을 만끽하며 걷자, 생각해요.

 

혼자 걷는 길이 아니라 더 중요한 규칙들이네요.


걷는 건 혼자라 하더라도 현장에서, 한국에서 저를 지원하는 분들이 계시고요. 경우에 따라 스태프들도 있고요. 어쨌든 우리는 같은 목표로 같은 곳에서 같은 일을 하는 거죠. 혼자서 되는 건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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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 아주 성스러운 곳


이런 세상, 모든 정보가 공개되고 실시간으로 연결되는 지금 탐험을 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어떤 철학을 갖고 계시는지 궁금해요.


저도 그런 생각을 했어요. 21세기 탐험가, 과연 존재 가능한 것이냐. 저는 존재 가능 여부를 떠나 이것이 굉장히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는 모든 것을 실시간으로 다 보고 있고 그래서 다 안다고 생각해요. 때문에 결과적으로 우리는 눈 먼 사람들이에요. 남이 찍은 사진을 SNS에서 보고, 구글맵을 보고, 못 볼 데가 없죠. 다 안다고 생각하고요. 그러니 거기에 멈춰버려요. 그 사진과 화면을 본들 그곳의 바람과 촉감, 냄새와 빗방울을 알진 못하거든요. 결코 알 수 없죠. 단지 그런 느낌을 떠나서라도, 아직 발견할 곳들이 정말 많아요. 탐험의 본질적인, 순수한 의미에서 본다 하더라도 탐험은 지속되어야 하는 것이죠. 누가 보면 무모한 도전이죠. 그런데 우리 시대에는 영웅이 필요해요. 저 같은 애가(웃음) 하나 있는 것도 재미있잖아요.


사막에서는 진짜 소통, 진짜 고백을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사막은 저한테는 성지 같은 곳이에요. 아주 성스러운 곳이에요.

 

다음 탐험 일정은 언제예요?


10월 말에 출발해요. 파타고니아라는 곳에 가요.

 

기간이 얼마나 되는데요?


그건 몰라요.(웃음) 대략 석 달이 넘진 않을 거예요. 뒤를 모른다고 하면 못 돌아오게 될까봐(웃음) 무서워서 그렇게 얘기할게요. 60일에서 70일 정도 되지 않을까 싶어요. 굉장히 재미있는 모험이에요.

 

사진을 직접 찍으시는데, 걷는 중에 사진 찍기가 어려울 것 같거든요. 탐험가의 하루를 묘사해주신다면 어떨까요?


어쨌든 사진 전공이라 찍고 싶은 순간이 분명히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못 찍어요. 솔직히 얘기하면 고돼서요. 카메라 꺼내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어요. 모험과 사진 작업을 병행하기는 참 어려워요. 요즘은 사진을 찍기 위해 시간을 좀 더 할애하기도 하고요. 하루나 이틀 더 머물기도 해요. 처음에는 여유가 없었어요. 백 컷도 안 찍고 온 적도 있어요. 좀 더 머물고 싶어진 순간부터는 바라보게 되고, 더 많이 찍게 됐어요.


일과는, 일단 아침에 일어나서 성스럽게 식사를 하고요.(웃음) 짐을 꾸려서 떠나요. 시계와 GPS를 보면서 어디까지 갈까 구상하죠. 탐험 여정이 천 킬로미터가 돼도 거의 한 번 왔던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자료를 많이 들여다보거든요. 이쯤 무슨 협곡이 나오겠다, 이 너머에 무슨 산이 있겠다, 아는 거죠. 그러니까 오래된 친구 만나는 것 같은 느낌으로 가요. 한낮은 피해야 하니까 점심이 되면 약도 좀 먹고, 식사하고, 몸 상태를 확인해요. 저녁이 되면 일찍 텐트를 치고 일기도 쓰고, 걸어온 거리 확인하고, 가족에게 전화 한 통 하고요. 참 단순해요. 아주 단순한 일상이에요. 묵언수행하는 스님 같은 느낌일까요.

 

탐험가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질문을 한 번 던지고 싶어요. 왜 탐험가가 되고 싶은가 하고요. 모든 답은 스스로 발견하는 거니까요. 제가 아무리 좋은 얘기를 해줘도 그것에 감동 받을 수는 있지만 과연 무슨 도움이 될까요. 책도 그냥 저의 이야기를 적은 것뿐이에요. 선배 탐험가 남영호가 전하는 메시지, 이런 건 아닌 것 같고요. 왜 하고 싶니, 에 대한 대답을 스스로가 해본다면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해요. 그 과정은 돌이킬 수 없잖아요. 굉장히 중요한 것이고요. 평생의 근간이 될 텐데요.

 

반드시 이루고 싶은 궁극의 목표가 있으세요?


탐험을 하면서 다짐한 게 하나 있어요. 탐험하며 갖게 되는 콘텐츠들을 아이들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인데요. 구체적으로는 아이들을 흙에, 숲에 떨어뜨려 놓고 정말 재미있게 놀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아이들이 노는 법을 몰라요. 인간이 자연에서 누릴 수 있는 기쁨을 모르잖아요. 그걸 일깨우고 싶어요. 부모가 없거나 부모의 역할을 하지 못하는 가정에 있는 아이들을 초대해서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고도 싶고요. 소외 받는다는 느낌 없이 사랑 받고 있다는 느낌, 내 편이 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도록 하고 싶은 소망이죠.

 

이런 꿈을 갖게 된 이유도 있을 것 같아요.


고향이 강원도 영월인데요. 탄광이 많았던 곳이죠. 지금은 탄광이 없어져서 힘들게 사는 분들이 많아요. 지역 장학회에 꾸준히 후원을 하고 있었는데 좀 아쉬웠어요. 적극적인 뭔가를 하고 싶었어요. 강원도가 오죽 춥습니까. 추천을 부탁해서 십여 명 학생들에게 덕 다운 재킷을 보냈죠. 어느 날 전화가 왔어요. 부모 없이 둘뿐인 남매였는데요. 누나는 타지에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 가끔 동생을 보러 집에 오는 거죠. 오랜만에 왔는데 동생이 비싼 파카를 입고 있더래요. 나쁜 짓을 한 줄 알고 다그친 거예요. 그런데 제가 보낸 옷이었던 거죠. 동생한테 너무 미안해서 누나가 수소문 끝에 제게 전화를 했더라고요. 울면서 고맙다고 해요. 제게는 그 일이 굉장히 충격이었어요. 물론 적은 돈은 아니었지만 저한테는 그렇게 큰 용기가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한 가정에 그런 영향을 끼친 거잖아요. 정말 보통일이 아니구나, 잘해야겠구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게 계기가 됐던 것 같아요. 돈이 많아서 쾌척하는 것도 좋겠지만 정말 좋은 방법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그런 친구들과 함께 하는 캠프를 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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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사막은 인생의 지도이다남영호 저 | 세종서적
이 책에서 우리는 탐험의 기록을 통해 쉽게 꿈꾸기 어려운 도전을 실행하는 사람의 원동력을 발견할 수 있다. 그의 끝없는 호기심과 열정은 잊어버린 꿈을 다시 떠올리게 한다.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저자가 우리에게 인생이라는 사막을 무사히 건널 수 있는 지혜를 들려준다는 것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민정 “나는 내가 만든 게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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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설하고,』. 김민정 시인이 2013년에 출간한 산문집 제목이다. 시인과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스물 넷에 시인이 됐고 지금은 출판사 ‘난다’의 대표이자 ‘문학동네시인선’ 편집자로 일하는 김민정. 그는 누군가 “저는 시를 도통 모르겠어요”라고 말한다면, 가장 귀를 쫑긋 세울 시인이다. 시를 쓰는 사람 이전에 책을 만드는 사람 ‘김민정’은 다른 작가의 성공에 배 아프다고 데굴데굴 구르는 경우가 없다. “남이 상 타면 난 왜 이렇게 좋나”고 읊조리는 그는 실로 뻔하지 않은 사람이다.

 

『아름답고 쓸모없기를』. 7년 만에 펴낸 김민정의 세 번째 시집은 유독 리뷰가 많다. 제목이, 표지가, 시인의 말이 다양하게 소비되고 있다. “시도 없이 시집 탐이 너무 났다”는 시인은 평소 시집은커녕 시를 읽을 여유가 없다는 독자들을 불러 세웠다. 전작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 『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로 시인을 만나왔다면 이번 시집은 낯설다. 현실의 언어로 묘사한 풍경은 시적이지 않다. 다만 범상하지 않은 시인의 눈썰미가 마음의 근육을 움직인다. 어릴 적 멀리뛰기 선수였던 김민정은 이성보다 감각이 발달한 사람이다. 코 푸는 소리를 시 쓰는 소리로 변주하는 직감주의자다.

 

인터뷰를 시작하려는 찰나, 김민정 시인의 전화벨이 울렸다. 그가 자주 듣는 소리는 세 마디. “바쁘지?”, “통화할 수 있어?”, “아파?”다. 시인은 이런 안부를 듣는 상황이 창피하다고 했다. 그래도 “책 만드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 “넌 그렇게 생각해. 나는 내가 만든 게 좋아”라고 외치는 시인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좋아 비실비실 웃음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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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만하다면 그건 기쁜 선물

 

하루에 전화는 보통 몇 통씩 하세요?


많을 때는 70, 80통 정도요? 회사 전화는 잘 안 받고 개인 전화를 많이 써요. 출판사로 전화를 하는 분들이 꽤 많기도 하고, 또 제가 전화를 할 때 ‘031’로 시작하는 낯선 번호라서 안 받는 분들도 있고 해서요.

 

가끔 전화기를 꺼놓고 싶겠어요.


에이, 그럴 순 없어요. 혼자 살다보니 내가 전화를 안 받으면 부모님이 큰일이 난 줄 알아요. 얘가 좀 바쁘겠지, 생각하는 게 아니라, 약간 제 시처럼 얘한테 큰일이 났네, 났어, 라고 생각하시더라고요. 우리 집이 딸밖에 없어서 유독 더 그런 것 같기도 해요. 그래서 전화기를 못 꺼요. 가족들이 좀 다혈질인데다 감정적인 기질이 있어요. 거꾸로 저 역시도 부모님과 통화가 안 되면 일 났네 일 났어 이러고 난리를 쳐요. 가족력인 것 같아요. 제 오지랖에 호들갑이.

 

요즘 어떻게 지내셨어요? 세 번째 시집 『아름답고 쓸모없기를』이 나온 지 3달이 좀 안 됐어요.


제 시집 때문에 바쁜 일은 거의 없었어요. 시집이야 뭐 냅니다, 냈어요, 냈었네요, 하고 지나가지요. 난다에서 김이듬, 김행숙, 신용목 시인의 산문집이 연달아 나와 좀 바빴고요, 하반기에 출간될 문학동네시인선과 새롭게 시작될 문학동네 구간 시집 시리즈 때문에 좀 정신이 없을 뿐이에요. 그러고 보면 밀린 책 때문에 바쁜 일상이긴 하네요.

 

인터뷰도 거의 마지막이죠?


아마 그럴 거예요.

 

이번 책을 처음 봤을 때 좀 놀랐어요. 김민정의 시집이 핑크색이라서요.


(웃음) 문학동네시인선의 디자인을 해주시는 수류산방 박상일 방장님이 처음엔 에메랄드 색으로 포장된 디자인을 주셨어요. 세련된 시안이 좋긴 했는데 컬러로는 제가 부여하고 싶은 상징성이 덜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꽃’을 모티브로 고민을 더 해주십사 부탁을 드려봤지요. ‘아름답고 쓸모없는’ 것을 한 단어로 정의하면 뭘까? 근데 꽃 같더라고요. 피었다 지는 일이 아름다운데 참 쓸모없음이니까, 그건 인생사나 시나 뭐든 다 대입이 가능한 얘기니까. 그리고 며칠 안 되어 딸기우유 같은 핑크가 막 도착했는데 좀 부끄럽기는 했지만 아 이거가 이거겠다 확신이 들더라고요.
 
평소 원색을 좋아하시잖아요.


자칭 원색중독자죠. 그런데 시집 내고 나니까 절대로 원색을 쓸 수 없는 제목이었음을 알겠더라고요. 제목의 발음이나 글자의 조형이나 그에 맞춰 컬러 배색에도 율동감이 생긴다는 걸 여전히 배우고 있어요. 또 여전히 새롭고요. 

 

시 「수단과 방법으로 배워갑니다」에도 등장해요. 시집을 빨리 묶자는 편집자와 대화하는 도중, “나 진짜 녹색 안 어울려. 고집스러운 색이 녹색이야”라고 말했어요.


녹색을 참 좋아해요. 선명한 녹색이 포인트로 들어간 핸드백 같은 거 보면 그렇게 오묘할 수가 없어요. 단정하면서도 단호한데 도통 속을 잘 모르겠다 싶은 비밀 같은 것도 느껴지거든요. 그런데 녹색이 다른 컬러들을 또 잘 받쳐주기도 하잖아요. 꽃 받쳐주는 것도 녹색 줄기에 녹색 이파리라고 보면 음…… ‘배려 있는 고집’이란 걸 과연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제겐 그 정의가 녹색이다 싶어요.

 

그런데 오늘 녹색 점퍼를 입고 오셨어요.


아 이 점퍼요? 실은 어제 오은 시인을 만났어요. “은아”하고 반갑게 만났는데 애는 안 보이고 이 옷만 보이더라고요. 보자마자 “나 줘” 했네요. (웃음) 걔한테는 좀 작다 싶은 것이 딱 내 옷 같더라고요. 그런데 헤어질 때 보니 내가 너무했나 싶은 거예요. 미안해져서 너 도로 가져가라 그랬더니 됐대요. 나중에 옷 한 벌 사줄게 했죠, 뭐. 나이가 든다는 건 이렇게 빚으로 뚱뚱해져가는 일 같아요. 

 

표지를 열면 ‘시인의 말’이 가장 먼저 보여요. “시는 내가 못 쓸 때 시 같았다. 시는 내가 안 쓸 때 비로소 시 같았다. 그랬다. 그랬는데, 시도 없이 시집 탐이 너무 났다”며, “세 번째이고 서른 세 편의 시, 삼은 삼삼하니까”라고 썼어요. “삼삼하다”는 표현을 계속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심한 허기에 찼을 때 모락모락 흰밥에 생선을 얹어서 한입 먹었을 때 그 첫 맛을 표현하라고 하면 전 꼭 삼삼하다 그랬어요. 간이 셀 때는 삼삼하다고 안 하고 보통 간간하다고 하잖아요. 앞서 냈던 두 권의 시집이 아주 간간했다면 비교적 이번 시집은 삼삼한 편이었어요. 물론 작정한 바도 있었지요. 시에서 자꾸만 소금 더 치려는 손을 억지로 잡아채는 마음의 순간순간들을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하거든요. 시에 있어 어떤 ‘간’에 대해 의식이란 걸 처음으로 해본 게 이번 시집임은 분명해요.

 

출근길 버스에서 시를 읽었어요. 멀미가 나는데도 읽게 되더라고요. 시를 쓰고 싶다는 느낌이 들진 않았지만, ‘뭔가 표현하고 싶다. 털어내고 싶다. 이 표현 욕구를 참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휴대폰을 꺼내 몇 자를 끄적였고요.


우와. 그 과정이 눈에 선하네요. 그런데 참 설명할 길이 없는 일이기도 하지요. 이를테면 직선에서 곡선을 발견하는 일 같은 거잖아요. 얼마나 건강한 일이에요. 그건 타고난 체력이 좋다는 증거기도 하거든요. 더불어 얘도 쓰는데 나도 되지 않을까 하는 가능성을 부여하는 건 저자로서 무척 기쁜 일 같아요. 저는 제 시가 앞으로 더 읽는 이들에게 만만해졌으면 좋겠어요. 만만하게 이쯤이야 하고 덤볐는데 쓰려니까 어럽쇼, 이쯤이 안 되네, 하게 만드는 시로 얄미웠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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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관적으로 마주한 첫 시집

 

시집을 펴내고 독자들을 만나셨죠?


위트앤시니컬에서 행사 딱 한 번 했어요. 40명 모인 자리였는데 몇 분 빼고 다 여성들이더라고요.

 

7년 만에 시집을 펴내고 독자와 마주한 거잖아요. 첫 질문은 무엇이었나요?


(웃음) 바르고 있는 립스틱 컬러가 뭐냐고 묻던걸요. 그래서 제가 컬러 이름을 묻는 거냐, 상표 이름을 묻는 거냐, 되물었고 둘 다 말끔하게 답을 해드렸죠. 파우치에서 실물 이렇게 꺼내 보이면서. 저한테는 문학적인 질문거리가 별로 안 생기나봐요. 사실 그게 편하기도 하고요. 문학적으로 어려운 질문은 또 너무 어려우니까요.

 

리뷰도 찾아보시나요?


이번 시집 내고는 좀 찾아봤어요. 변화를 좀 가져봤다 싶은 시집이니까 어떻게들 읽으셨나 궁금하더라고요. 동료들끼리는 시집이 나와도 어떻다고들 잘 얘기 안 하거든요. 그저 사인해서 주고받을 뿐. 이번 시집 리뷰 중에서 가장 깔깔대며 웃고 본 것은 이 문장이었어요. 표지는 아름다운데 내용은 쓸모없구나. 재밌잖아요. (웃음) 안 재밌어요? 난 재밌었는데.

 

저자의 의도와 너무 다르게 해석하는 경우도 있지 않나요?


제 의도대로 해석해주는 이는 그리 많지 않죠. 그런데 저 같은 경우는 시를 급조해서 벼락치기로 써대는 경우가 허다하다 보니 제 시임에도 불구하고 제 시의 의중을 뒤늦게 발견할 때가 많아요. 내가 이렇게 썼었나, 이런 대목을 이래서 썼구나, 뒷북처럼 나중에 내가 나를 때린다고나 할까. 해석은 늘 때릴 때마다 다른 소리를 내는 종 같은 거니까요, 다른 이들의 해석에 별 신경을 쓰지는 않는 듯해요.

 

여러 시어가 기억에 남지만, 마음에 유독 와 닿았던 표현이 있었어요. 「봄나물 다량 입하라기에」에서 등장하는 “저기 저참으로 간 아저씨의 손으로 코 푸는 소리 들린다”. ‘코 푸는 소리’가 참 좋더라고요.


실제 있던 일을 그대로 옮겨놔서 생생하게 전달된 게 아닐까요. 정직만한 무기가 없잖아요 원래 감동에는. (웃음) 파주 동네에 24시간 슈퍼가 있어요. 워낙에 조용한 동네고 밤에 사람도 없고 그래서 가끔 잠이 안 오거나 하면 새벽 2시나 3시쯤 장을 보러 가고는 해요. 그러고는 연근도 사고 달래도 사고 호박도 사고 알로에도 사는데 꼭 그 시간에, 사람이 별로 없을 때 혼자 장을 보면 아주 섬세해진단 말이죠. 관찰도 밀착력이 세지고. 잠옷차림에 그렇게 돌아다니니까 저 여자 또 왔네 하고 직원들이 알은척을 하느라고 대화도 오가고 시 쓸 거리도 생기고 뭐 그랬던 것 같기도 해요.

 

생활에서 건졌기 때문일까요? 몸의 이야기도 많아요.


최근에 제가 이사를 했는데요, 공사를 하면서 도배를 새로 하게 되었는데 평균 연령 75세이신 어르신 네 분이 오셨더라고요. 가만히 서서 그분들이 붓질하는 걸 한참 쳐다만 보기도 했는데요, 가장 웅크린 자세에서 가장 안 보이는 곳을 섬세하게 칠해나가시는데 뭔가 기적 같은 거예요. 몇 년 하셨냐고 했더니 다들 40년 이상 되신 베테랑이셨는데 아직도 아니고 ‘아즉’ 멀었다고 입버릇처럼 그러시는데 순간 슬픔 같은 게 오더라고요. 나중에 엄마한테 말했더니 “야, 먼데서 찾지 말고 네 엄마 불쌍한 거나 챙겨” 그러는 거 있죠? 한마디로 그냥 딱 깨는 거죠. 가족은 여러모로 좀 깨요. 그쵸?

 

어떤 인상 깊은 상황을 목격했을 때, '이게 시가 되겠구나'하는 생각을 하나요?


모기 잡으려고 잠시 숨 멈추고 집중하게 되는 내 몸뚱이를 발견했을 때요. 달아날까 두려워서 초조함을 느낄 때요. 요거 잘하면 되겠구나, 그런 분주함으로 마음이 허둥거릴 때요. 물론 대부분은 버려지지만요.

 

시의 순서는 어떻게 정했나요?


처음에는 좋아하는 시를 앞에 놓는 위주로 짰다가요, 편집을 담당한 문학동네 황예인 팀장의 말을 무조건 들었어요. 황 팀장이 절기 위주로 배치를 했으면 좋겠다고 조심스럽게 말을 했는데 아주 그냥 무릎을 딱 쳤죠. 너는 천재다, 얘 하면서 와락 껴안아줬죠. 탈수를 마치고 배배 꼬인 빨래들처럼 엉켜 있던 시들을 하나하나 털어 말릴 수 있었어요. 내게는 최선의 방안 같았어요.

 

편집자로 시집을 만들 때도 같은 요구를 하시나요?


시집 한 권을 읽어나가는 호흡에 있어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시의 배치니까요, 아주 여러 번 읽고 내 호흡을 계산한 뒤에 꽤 깊은 개입을 하는 것 같아요. 일단 불편하면 말을 해요. 보다 덜 불편해질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같이 모색을 해보자고 하는 편이에요.

 

시집 편집자들이 특히 신경 써야 할 부분이 있을까요?


저라고 정답을 알겠어요. 저보다 훨씬 오랜 경력으로 현역에 계신 분들도 많은걸요. 다만 이런 바람은 있어요. 시집 편집자가 좀더 당당하게 시인의 시에 대한 의견을 제시해줬으면 좋겠다 하는 거요. 좋고 싫음의 문제를 떠나 시를 읽다 보면 이 시집에 어울리는 시와 안 어울리는 시가 분명 구별이 되거든요. 시인만큼 깊이 여러 번 읽는 이가 편집자일 테니 그 부분에 있어서는 망설이지 않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해주었으면 하지요. 시인들은 버리는 걸 잘 못하거든요.

 

시집을 만들면서 가장 뿌듯한 순간은 언제인가요?


모두가 이 제목은 안 읽힐 거야, 했는데 모두가 이 제목으로 시집을 기억해줄 때요. 저는 시집 제목 짓기에 좀 미쳐 있는 편이에요. 사실 그 재미에 시집 만들기도 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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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그렇게 생각해. 나는 내가 만든 게 좋아

 

SNS를 꽤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편이에요. 글을 보면 지인, 동료, 사람에 대한 애정이 각별해요. 표현을 많이 하는 만큼 오해도 많이 받지 않나, 싶어요.


아무래도 책을 소개할 수 있는 유력한 공간이니까요, 웬만하면 적극적으로 활용하려는 편이에요. 누가 시켜서 하는 거면 안 하는 게 SNS잖아요. 해야지 해서가 아니라 뭐하고 있나 보면 하고 있는 게 또 SNS잖아요. 어떤 강박 같은 게 있어서, 묘한 재미 들림 같은 게 있어서 트위터의 경우 딱 140자 맞춰서 글 올리곤 해요. 책을 준비할 때 교정지에 내가 좋아하는 부분들은 포스트잇으로 덕지덕지 붙여가며 편집을 해요. 교정 교열을 볼 땐 형광펜으로 밑줄 기본으로 삼는데요, 그 대표적인 부분들이 SNS에 올라가는 것 같아요. 나중에 보도자료 쓸 때 도움이 되기도 하고, 또 리트윗이나 좋아요, 반응을 보면서 대중들의 심리도 살피게 되지요. 가끔 그만 좀 해라, 잠이나 자라, 책은 그렇게 광고해서 파는 게 아니다, 점잖게 말씀하시는 어르신들도 만나게 되는데요, 어느 순간부터 신경 안 쓰게 됐어요. 실은 책 만들 땐 내 저자밖에 뵈는 사람이 없기도 해서요.

 

현실에서 책 이야기만 할 수는 없어요. 그러면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으니까요.


맞아요. 그래서 제 소소한 일상 얘기들을 털어놓기 시작했는데 올리면서도 실은 눈치를 보지요. 이런 거 올리면 사람들이 날 어떻게 볼까, 내가 지금 분위기 파악 못하고 헛소리를 지껄이거나 잘난 척하고 있는 건 아닌가. 비교적 균형을 갖고 날 지켜봐 주시는 선생님한테 그랬어요. “혹시 제가 재수 없다 싶으시면 언제든 말씀해주세요”하고. 아직까지는 빨간불 켜주신 적 없는데요. 요즘 스스로 좀 지쳐 있는 건 사실이에요. 그래도 조절이 힘들지만 저는 눈치 보는 것보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더 좋아요. 제가 좋은데 어떡할 거예요? 반발이 있어도 '넌 그렇게 생각해. 나는 내가 만든 게 좋아'예요.

 

그래도 출판사 대표인데요. 권위적인 느낌이 조금도 없어요.


권위요? 에이 제가 어울리면 벌써 떨어댔죠. (웃음) 권위도 아무나 부리는 건 아닌 듯해요. 저는 타고난 게 깨소금 같은 사람이라서 잘고 잘 섞이는 양념으로는 제법 쓸모가 있다고 생각을 하는데요, 그러다 보니 폐해도 커요. 사람이 행정적이지 못하고 계산기를 못 다루니 결국 함께 일하는 직원들에게 불편함을 초례하기도 하거든요. 요즘은 그 고민이 많아요. 진짜 어른이 되어야 한다, 그거요. 큰 그림을 그려서 도모를 잘해야 한다, 는 그거요. 출판사 대표로 가장 큰 바람은 직원들 중 그 누구도 안 아팠으면 하는 거예요. 아픈 직원이 회사 나오는 게 가장 싫거든요. 아프면 집에 가, 당장 가, 그게 제 입버릇인데 또 행정적으로 보자면 매번 그럴 수는 또 없는 거니까 아 그런 문제가 정말 어려워요. 그럼에도 이 정도가 이상이다 싶은 출판사의 밑그림은 있어요. 어디 있냐면 여기 내 마음에요. 그 꿈으로 버텨요.

 

어떤 사람을 좋아하나요? 어떤 사람을 싫어해요?


인색하지 않은 사람을 좋아해요. 그리고 인색한 사람을 싫어해요. 비단 금전적인 문제를 떠나서요, 인간사의 도리가 필요한 순간에 그 타이밍에 상대가 어떻게 구는가를 봐요. 그리고 내 사람이다, 내 사람 아니다 빠른 판단을 하는 것 같아요.

 

난다가 지난 9월 1일, 주식회사가 됐어요.  2014년 6월부터 선보인 '걸어본다' 시리즈가 '난다'의 브랜드를 잘 설명하는 기획이 아닐까 싶은데요. 최근 김이듬 시인의 『모든 국적의 친구』까지, 8권이 나왔는데 계속 이어지나요?

 

네. 10월 초에 문학평론가 김형중 교수가 광주를 걸어본 이야기 『평론가 K는 광주에서만 살았다』가 나올 예정이고요, 소설가 김유진이 아이오와를 걷다 온 이야기 『받아쓰기』도 한창 마무리하고 있어요. 그리고 차후 나올 책들이 꽤 되는 듯하네요. 황현산 선생님은 목포를, 김연수 작가는 중국을, 백가흠 작가는 그리스를 다녀와 쓰고 있고요, 정영효 시인은 3개월간 이란에 가 있게 되면서 한창 테헤란을 걷고 있는 것으로 알아요. 그들 외에도 강경석 평론가와 김금희 소설가는 부부가 같이 인천을 쓰기로 했고요, 음, 또 누가 있더라, 왕십리 걷는다는 김엄지 작가도 있고…… 아무튼 국내 지역도 꽤 많이들 점을 찍어줘서요, 제가 부지런만 떨면 시리즈는 풍성해질 것 같아요.

 

인터뷰집도 곧 나온다고 들었어요.


준비한 건 꽤 오래되었는데 막상 출간하려고 하니 서둘러지지 않네요. 1998년에 잡지사 기자로 일하기 시작해서 사람들 만나 인터뷰하는 일이 꽤 되었는데 좀 추려보니 버리기는 아깝고 해서 남자들 만난 이야기만 남겨보자 하였는데 시간이 갈수록 부끄러움만 커지고 그러네요. 그래도 조판은 해놨으니 출간, 해야죠. 저 말고도 인터뷰 원고 출간할 문인들이 꽤 되어서요, 아마 그들 포함해서 시리즈를 하나 시작하게 될 것 같아요.

 

‘난다’ 시리즈로 나오나요?


네. 이름은 미리 지어놨어요. ‘만난다’요. 말장난 같아도 요런 게 난 참 재미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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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에 오지랖을 떠는 사람

 

이번 시집에 '어른이 되면 헌책방을 해야지'라는 시구가 있어요. 거리를 걷다가 이런 간판을 보면, 안 들어가고는 못 배기겠다 싶어요. 언제쯤 현실로 이뤄질까요?


야금야금 준비하고 있기는 해요. 이번에 이사하면서 책 정리는 얼추 좀 해둔 것 같아요. 공부 욕심은 전혀 없이 살았는데 책 욕심은 어마어마했던 것이요, 이삿짐센터에서 특별히 몽골 남자분만 다섯 분을 보내셨더라고요. 몽골 남자들이 힘이 좋대요. 진짜 무거운 책 박스를 번쩍번쩍 들더라고요. 왜 플라스틱 박스 있잖아요. 그걸 사이즈별로 컬러별로 사서 분류 작업을 하는데 참 별별 책이 다 있더라고요. 이걸 다 어쩌겠나, 죽을 때 이고 가겠나, 일찌감치 내놔야지, 하는 결심은 더욱 절실하게 한 듯해요. 호시탐탐 기회를 보고 있어요.

 

유희경 시인이 시 전문서점 '위트 앤 시니컬'을 열었을 때, 반가웠겠어요.


걱정도 되었지만 신이 나는 일 같아서 좋다, 도울 수 있는 일이면 함께할게 그랬어요. 시집 전문 서점을 시인이 운영하는 것만큼 이상적인 그림은 없잖아요. 어떤 시를 읽으면 좋을까요, 물어볼 때 이런 시를 읽으세요, 척척 알려줄 수 있는 타이트함 같은 게 현장에서 바로 조여진다면 그만큼 탄력적인 주고받음도 없지 않겠어요. 저는 이렇게 세분화되고 전문화되는 작은 서점들의 출현을 더욱 기다리게 되었어요.

 

평소에 시는 굉장히 개인적이라고 생각했어요. 타인보다는 나 자신에 집중한다고 여겼는데, 어쩌면 가장 사회적일 수 있겠다 싶어요.


세상만사를 두고 온갖 오지랖을 떠는 사람이 시인이어서 그러지 않을까요? 어른인데 어린이처럼 우주를 손에 쥐고 주물럭대는 상상력으로 귀여운 오지랖을 떠는 이들이 시인이다 싶어요.

 

언젠가 한 시인으로부터 "시인을 돌보아 줘서 고맙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요. 출판계에서 시인들이 소외됐다고 생각하나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일단 돈으로부터 참 자유롭잖아요. 돈 벌 궁리 속에 시로 덤비는 시인은 아마 세상에 없을 거라고 봐요. 그러다보니 시인이 눈치를 볼 이유도 없어지고, 그러다보니 억압도 사라지고, 그래서 다채롭고 풍요로운 시집들이 계속 출간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요. 쓰고 싶은 시를 쓴다, 이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산다는 말과 동일하잖아요. 세상에 하고 싶을 일을 하고 사는 이는 많지 않으니까 이쯤 되면 복이지요, 복복.

 

이번 시집을 펴내고 “어르신들 전화를 많이 받았다"고 들었어요. 기분이 어떠셨나요?


“알아먹을 수 있더라, 안 길어서 내가 다 읽었다” 그런 말씀 하시는데, 좋더라고요. 이렇게 쓰지 마, 이런 거 시 아냐, 이런 전화 받았을 때는 우울하게 전화 끊었었는데 저도 참 간사한 거 있죠? (웃음)

 

시인님의 산문집 『각설하고,』가 생각나요. 김민정 시인의 캐릭터가 잘 어울리는 표현인 것 같아요. 각설하고 지금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며칠 동안 아모스 오즈의『사랑과 어둠의 이야기』를 읽었어요. 책을 보면 “나는 한 권의 책이 되길 바랐다”는 이야기가 계속 나와요. 저는 우리 모두가 한 권의 책 같아요.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잖아요. 그 사실을 서로 존중하고 살았으면 좋겠어요. 이는 자기 자신이 자기 자신을 존중하게 된다는 얘기도 된다 싶거든요. 요즘 저는 삶의 매 순간이 아름답구나 불쑥불쑥 느껴요. 어쩌면 제 안의 이야기를 발견하기 시작한 것도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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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답고 쓸모없기를김민정 저 | 문학동네
이번 시집에는 “거침없는 시어와 톡톡 튀는 상상력으로 자기만의 시세계를 펼쳐오며, 많은 후배 시인들에게 강한 영감과, 영향력을 주고 있다”는 평을 받으며 2016년 현대시 작품상을 수상한 「입추에 여지없다 할 세네갈산(産)」 외 8편의 시가 실려 있어 7년 만에 출간되는 시집에 대한 기대감을 더욱 높인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 “이 책은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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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필사’ 윤태영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세 번째 숙제가 끝났다.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 대변인을 두 차례나 지냈던 윤태영. 그는 오랜 세월을 노무현과 함께 하며 ‘노무현의 말’과 살았다. 말과 글이 세상을 바꾼다고 믿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신의 말을 기록하는 일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했는데, 대변인 직을 내놓고 먼저 청와대를 떠나는 윤태영에게 그 말들을 정리해 책으로 내는 일을 함께 하자고 말했을 정도다. 이제 그 숙제는 홀로 해야 하는 일이 되었지만 그는 이 숙제를 끝까지 해내려고 한다. 윤태영은 이를 “운명”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노무현의 리더십과 인간 면모를 담은 『기록』(2014), 국민통합의 꿈을 담은 『바보, 산을 옮기다』(2015)에 이어 말하기 원칙과 노하우를 담은 『대통령의 말하기』를 최근 출간한 것은 모두 그런 까닭이었다.

 

“책을 낼 때마다 내가 대통령의 철학을 제대로 전달하고 있는 걸까, 부족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항상 해요. 어떨 때는 너무 대중적인 부분만 몰두하고 있는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 때도 있고요. 정말 당신이 이런 책을 통해 넣고 싶어 하셨을 것들을 내가 빼먹은 건 아닐까, 이런 노심초사가 있긴 있어요. 항상 부족하다고 느끼죠.”

 

그는 이 책을 가리켜 노무현 전 대통령과 함께 쓴 ‘공저’라고 말했다. 그만큼 ‘살아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말들을 많이 담았다. 그 속에서 말하기의 시대적 의미와 진짜 말하기의 정체를 찾을 수 있는 것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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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압과 힘이 아니라 결국 ‘말’


한 눈에 봐도 방대한 양의 기록들입니다. 한글 파일만 1,400개라고요. 책을 쓰면서 가장 고민했던 부분이 무엇이었나요?


서문에도 썼지만 양극단의 평이 있는 분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라, 이것이 오해 없이 잘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쓰려고 노력했어요. 어쨌든 ‘말하기’라는 자기계발 형식을 갖고 있지만, 대통령님의 말하는 방식과 내용을 이 안에 잘 담아내는 것이 저의 책무이기도 해서요. 그 점을 많이 신경 썼습니다.

 

‘대통령’에 방점을 찍을 수도, ‘말하기’에 방점을 찍을 수도 있는 책인데요. 쓰는 입장에서는 어디에 더 무게 뒀을지 궁금합니다.

 

『윤태영의 글쓰기 노트』를 썼을 때도 그랬는데요. 제가 글쓰기 전문가는 아니지만 책을 쓰고 다른 글쓰기 책들을 보니까 대부분 노하우는 비슷하더라고요. 말하기라는 것도 대체로 사람들이 추구하는 바는 일치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거기에 정말로 맞는 사례, 정확한 사례를 뽑아내는 작업을 하면서 가급적이면 대통령님의 말씀 중에서도 당신이 가졌던 철학이나 생각이 골고루 표현될 수 있도록 상당히 안배를 한 편이에요. 어린 시절 얘기도 들어가 있고요, 퇴임 후 이야기도 들어가 있고, 현 상황을 규정한 얘기들도 있어요. 외교에서의 한미 관계, 이런 얘기도 있죠. 이런 것들이 다 포괄적으로 배합돼서 들어갈 수 있도록 했어요.

 

“사상이 빈곤하면 말도 빈곤하다”는 말이 굉장히 상징적이에요. 책에서 참여정부를 ‘말의 전성기’라고 표현하기도 했는데, 그런 점에서 본다면 요즘은 말이 참 빈곤한 시절이라는 생각도 하게 되고요.


민주주의 시대의 지도자가 통치 행위를 할 때,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말’이라고 생각해요. 독재 시대에는 힘으로 하거나 눈빛으로도 할 수 있었겠죠.(웃음) 아랫사람들이 알아서 상관의 분위기를 바라보고 했을 수 있는데요. 민주주의 시대의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공약하고 내세웠던 정책을 실현, 이행하려면 주변의 사람들을 다 설득해야 해요. 야당은 물론 장관, 비서실 직원들한테까지도 ‘나는 이러한 이유로 이런 정책을 지향하고, 이런 이유로 이 공약을 이행하려고 한다’고 설득해야 해요. 결국 말이거든요. 때로 반대에 부딪칠 때도 그것을 돌파해 나가는 수단 역시 외압이나 힘이 아니라 결국 말이에요. 유일한 권한이라면 인사권 같은 걸 텐데 이것도 한계가 있고요. 참여정부 시절 노 대통령 같은 경우는 생방송으로 하는 토론 프로그램도 주저 없이 나가셨어요. 설득하고, 생각을 이야기하는 노력이 가장 치열했던 시절인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말의 전성기’라는 표현을 쓴 거죠.

 

때문에 ‘말’의 시대적인 의미를 생각하게 되는데요. 말하기를 적극적으로 하지 않는 시대라면 이는 그전보다 후퇴한 측면이 있는 거예요.


그렇죠, 어쨌든 지도자라면 소통을 하려는 노력이 있어야죠. 사람들과 같이 움직이고 같이 가기 위해서는 결국 말을 해야 하는 거거든요. 말이라는 것도 ‘말재주’ 이런 것이 아니고 자신의 생각을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설득하는 것을 의미하는 거고요.

 

그런 이유로 미국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이나 글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잖아요.


얼마 전 신문에 오바마 대통령이 참모들과 자연스럽게 찍은 사진이 실렸어요. 책상에 걸터앉아 얘기하고 있는 사진이었는데요. 어느 신문에선가 ‘우리는 왜 이런 대통령이 안 나오느냐’고 하는데 댓글에 ‘우리도 그런 대통령이 있었어’라고 쓰여 있더라고요. 노무현 대통령도 그런 사진이 많이 남아있는 편이거든요. 그건 노 대통령의 지향이기도 했는데요. 자연스럽게 참모들과 걸터앉아 회의도 하고 그랬어요. 그런 분위기가 돼야 스스럼없는 소통도 가능하거든요. 그런데 이상하게 미국 대통령의 그런 모습은 굉장히 좋아하면서 한국 대통령으로 오면 다른 잣대를 대는 경우가 많아요. 한국의 대통령은 침묵으로 말한다거나 권위를 지켜야 한다거나, 그런 불균형이 좀 있죠. 오바마 대통령이라고 하면 어쨌든 말 잘하고 서민적인, 스스럼없는 모습으로 좋은 평을 받잖아요. 이상하죠.
 
책 뒷부분에도 그런 아쉬움이 읽혀요. 노무현 대통령의 스스럼없는 모습이 세상에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시기상조였을지 모른다고 하는 생각 말이에요.


임기 초반에는 일부러라도 서민적인 용어를 많이 쓰시려고 한 부분이 있어요. 대통령의 언어라는 게 따로 있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전 그렇게 생각하는데요. 일부러 서민적 용어를 써서 소위 사람들이 생각하는 금기를 깨고자 했던 것 같아요. 노무현 대통령은 일생을 금기에 도전한 분이셨거든요. 삼당합당 때도 그랬고, 부산이란 동네에서 계속 호남당으로 출마한 것도 그랬죠. 그것처럼 대통령이라면 이러해야 한다, 는 것을 넘어서기 위해 초반에는 서민적 용어를 많이 쓰셨어요. 정치인 시절, 재야 시절 썼던 용어도 일부러 쓰고요. 그런데 그게 보수 언론 등에서 지적을 많이 받았죠. 지지율도 많이 떨어졌어요. 어쨌든 언론의 비판을 받으면 지지율이 많이 떨어져요. 지지율이 떨어지면 국정운영에도 상당히 장애요소가 돼요. 지지율이 낮은 상태에서는 말씀이 잘 안 먹혀들어가는 게 느껴져요. 사람이 싫어지면 그 사람 말도 싫어지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걸 감수하면서도 해오셨는데 임기 말에 가서는 그걸 후회하는 듯한 말씀도 사실은 하셨죠. 말로 인한 시비 때문에 다들 상처 받았기 때문에요. 실제로 후회를 하셨는지 그건 잘 모르겠지만요. 아쉬움을 많이 남기셨던 것 같아요.

 

지지율이 떨어지는 것 같을 때 안 하면 될 텐데 말이죠.


안 나타나면 됩니다.(웃음) 말 안 하면 돼요. 가만히 있으면 소위 말해 중간은 가는데요. 대통령이 토론 현장에 뛰어들면, 일단 얼마 정도의 사람은 대통령이 토론의 당사자 되는 것 자체를 싫어하고요. 또 대통령의 말, 논리를 찾아서 공격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대통령이 논쟁의 한 편에 서서 얘기하기 시작하면 지지율이 떨어지는 게 보통인 것 같아요. 그걸 피하는 방법은 이미지 정치예요. 민생 현장에서 사진 찍고, 태풍 피해 입은 곳에서 작업하는 모습 찍고 하면 지지율은 올라갈 수 있어요. 대표적인 게 자이툰 부대 방문했을 때인데 당시 지지율이 확 올라갔거든요. 그러면 국정 운영도 훨씬 수월하죠. 대통령님도 나중에는 동의하셨어요. 민생현장에 가면 그 이슈가 사회적인 관심을 받잖아요. 그런데 노 대통령은 가서 한 장의 사진을 찍는 것보다 밀도 있게 토론해서 그들과 정책을 한 가지 더 만들어내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셨던 거예요. 그래서 그런 그림들이 나중에는 많이 나오긴 했지만 상대적으로 좀 적은 편이죠. 

 

보좌하는 분들 꽤 힘드셨겠네요.


의전비서관은 굉장히 힘들었어요. 항상 그런 일정, 민생 현장 방문이나 외부 요청 일정이 생길 때마다 대통령님을 설득해야 하는 부담들이 있었죠. 그렇지만 말씀드린 대로 대통령이 감으로써 그곳의 주제가 사회적인 의제가 되는 효과가 있으니까 나중에는 참모들의 설득을 많이 받아들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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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쓴 책


대변인에 대한 생각도 적으셨거든요. ‘이래저래 쉽지 않은 자리’라고요. 대변인 생활 중 가장 어려웠던 건 무엇이었어요?


초기에 연설 비서관이었다가 글을 쓰는 사람이 됐는데요. 일종의 고스트 라이터(ghostwriter, 대필작가)죠. 청와대 대변인도 한편으로는 고스트 라이터 같은 거라고 생각을 했어요. 한 번은 제가 설명을 위해 비유를 한 번 써봤는데요. 아니다 싶더라고요. 내 언어로 얘기할 자리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통령의 말씀을 액면 그대로 전달하는 게 중요하지 내 얘기나 내 논리로 설명하지 말자고요. 그때는 심지어 언론환경이 그렇게 우호적이지 않은 때라 설명도 제대로 못하면서 제가 오해를 증폭시킬 필요 없다고 생각했어요. 여하튼 말씀이 최대한 정확히 전달되도록 하는 데 최선을 다하자, 그게 최고의 목표였던 것 같아요. 그래도 잘 안 되고 왜곡된 적이 꽤 있었죠.

 

그렇다면 대변인에게 가장 중요한 자세란 뭐라고 생각하세요?


다른 데는 모르겠어요. 정당 대변인은 좀 다를 거예요. 정당 대변인은 그 사람 자체가 한 명의 정치인이니까요. 자기 정치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게 옳은 생각인지 모르겠지만요. 반면 청와대 대변인은 다르겠죠. 청와대는 대통령 한 사람을 위한 조직이고, 그걸 보좌하는 기구니까요. 대변인도 자기 목소리를 내기보다 대통령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데 100% 투신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해요. 거기에 초점을 맞추면 의외로 또 큰 어려움이 아닐 수도 있겠다 싶고요. 사람마다 다를 수 있을 거예요. 촌철살인이 있는 사람이면 그걸 활용할 수도 있죠. 제 경우 그런 능력은 없었어요. 어쨌든 청와대 대변인에게 제일 중요한 건 대통령의 철학과 배경을 온전하게 외부로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닐까 싶어요. 모시는 분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겠죠. 깊은 이해가 있을 때 거꾸로 제일 편해지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의 경험으로는 청와대 대변인 자리가 국회로 가는 디딤돌처럼 기능한 경우가 많았잖아요. 그 자체의 덕목이랄까, 그것을 이야기할 기회가 별로 없었던 것 같아서 생각을 듣고 싶었어요.


언론 노출이 굉장히 많은 자리라 장차 정치를 할 사람이라면 굉장히 좋은 디딤돌이 되는 것만은 확실해요. 노무현 정부 때는 특히 대변인의 언론 노출이 많았어요. 첫 해에 대변인 하던 시절에는 거의 매일, 저녁 뉴스에 나왔으니까요. 매일 뉴스에 나왔다는 건 진짜 정치를 한다면 굉장히 큰 자산이거든요. 인지도가 높아지니까요. 그런데 저 같은 경우는, 2007년에 먼저 나왔는데, 그때 대통령께서 자네는 정치하지 말고 퇴임한 당신의 얘기를 정리해서 책으로 내는 일을 같이 하자고 얘기하셨어요. 제 캐릭터를 아시고(웃음) 제가 정치에 안 맞는다는 생각도 있으셨겠죠. 그 말씀에 저는 동의했어요. 내 정치보다 대통령님의 얘기를 전달하는 걸 운명으로 생각하고 그 일을 하자고 생각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내 목소리를 죽이자고 한 거고요. 처음 글 쓰는 비서로 들어갔을 때도 그랬던 것처럼 대통령의 생각과 말을 전달하는 데 집중하고 이것에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이 책을 노무현 대통령이 봤다면 뭐라고 하셨을 것 같으세요?


이 책이 나왔을 때 한 후배 언론인이 대통령께서 참 좋아하셨을 것 같다는 말을 했어요.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약간 울컥하더라고요. 무의식에 그런 소리를 듣고 싶은 욕심이 있었던 것 같아요.


대통령님은 글과 말에 대해 굉장히 까다로우셨거든요. 당신의 생각에 완전히 동의하지 않으면 승낙을 안 하시는 분이에요. 아무리 마감이 닥쳐도 말이죠. 공항까지 쫓아와서 결재를 올리는데 비행기를 타시면서도 결재를 안 하셨어요. 그런 분이기 때문에 이 책 작업을 같이 했다면 굉장히 힘들고(웃음) 어려운 작업이었을 것 같아요. 다만 제가 청와대에 있을 때도 대통령의 동정을 전하는 글에 대해서는 일체 관여를 안 하셨거든요. 이 책은 묘하게 둘이 섞여 있는, 사실은 공저인데요. 당신 말씀이 인용된 부분에 대해 굉장히 많은 의견을 냈을 것 같고, 제가 쓴 부분에 대해서는 오히려 관여를 안 하셨을 것 같아요.


책을 낼 때마다 내가 대통령의 철학을 제대로 전달하고 있는 걸까, 부족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항상 해요. 어떨 때는 너무 대중적인 부분만 몰두하고 있는 게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 때도 있고요. 정말 당신이 이런 책을 통해 넣고 싶어 하셨을 것들을 내가 빼먹은 건 아닐까, 이런 노심초사가 있긴 있어요. 항상 부족하다고 느끼죠. 그래서 나중에는 원문 그대로를 옮겨내는 책도 하고 싶어요. 그게 연구하는 분들에게 더 좋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할 때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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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과 글이 세상을 바꾼다


노무현 대통령 관련 책이 『기록』(2014), 『바보, 산을 옮기다』(2015)에 이어 세 번째예요. 한 인터뷰에서는 ‘숙제’로 표현하셨던데 아직 남은 숙제가 있나요?


아직 못 다한 이야기들이 있어요. 오해들, 대통령과 참여정부에 대한 오해를 풀어야 하는 부분도 있고요. 외국에서는 퇴임하면 바로 쓰는 문화가 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회고록 문화가 아직 익숙하지 않은 편이죠. 아직 쓰지 못한 얘기들을 어떤 식으로 정리할지 숙제가 남아 있고요. 방금 말씀드린 대로 날것 그대로의 자료들을 엮어서 참여정부를 연구하는 분들에게 자료로 쓰일 수 있도록 하는 작업도 연구 중이에요. 어쨌든 그런 형식의 하나로 평전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평전은 꼭 한 번 쓰긴 써야 할 것 같아요. 지금까지 쓴 다른 책들은 전달자 역할을 했던 거거든요. 저를 죽이고 대통령님의 생각이나 말씀을 옮기는 데 주력을 했어요. 반면 평전은 쓰는 사람의 평이나 생각, 가치가 들어가기 때문에 제가 쓰는 게 맞나, 이런 생각이 들긴 하지만요. 그래도 다하지 못한 얘기들과 오해를 겪은 부분들을 최대한 사실 제시 차원에서 쓴다면 평전 형태가 제일 낫지 않을까 싶어서요. 그것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작업을 해볼 생각입니다. 

 

다른 전직 대통령에 비해 노무현 대통령은 2차 자료, 그에 대한 기록이나 증언 등이 다양한 형태로 많이 나왔어요. 반드시 돌아가셨기 때문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 같기도 하고요. 그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제가 대변인을 두 차례 했는데요. 처음 대변인 때는 근접한 대변인은 아니었어요. 열 개 알고 두 개 대답한 게 아니고 정말로 두 개만 알고 두 개 대답한 거죠. 그러니까 힘들었죠. 대변인은 공적인 자리만 배석하고 사적인 자리는 거의 배석을 못하니까 모를 수밖에 없어요. 한계가 있는데요. 나중에 부속실장으로 올라가면서부터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하게 됐어요. 그 전에 행정관이 한 분 계셔서 후보시절부터 기록이 있었고요. 노무현 대통령은 후보시절부터 자신을 기록하는 일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했던 분이에요. 누군가가 옆에서 기록한다는 건 당신한테도 도움이 되죠. 독대의 폐해도 어느 정도 줄일 수 있어요. 일대일로만 만나면 그 사람이 갖고 온 왜곡된 정보로 잘못된 결정을 내리게 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악의가 있어 그런 게 아니라 사람은 다 자기를 중심으로 회의나 세상을 기억하기 때문에 그래요. 기록자가 있으면 오류를 줄일 수 있어요. 객관적인 기록이 남을 수 있죠. 기록은 여러 가지 면에서 유용해요. 무엇보다 기록은 역사잖아요. 역사를 승리의 기록이라고 하면 기록을 남기는 쪽이 궁극적으로 승리할 수도 있겠죠. 또한 누군가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한다는 건 솔직함이거든요. 저는 거꾸로 누가 제 일거수일투족을 기록한다면 상당히 부담스러울 것 같아요.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지만 그렇게 상세하게 기록하게 하는 대통령이 과연 얼마나 될까, 생각할 때가 많아요.

 

그것은 자신감이기도 할 거예요.


그렇죠, 거꾸로 그 틀에서 자신을 계속 긴장시키는 장치도 됐을 거라 생각해요.

 

굉장히 오랫동안 곁에서 봐오셨는데 사람 노무현의 추억도 남다르실 것 같아요.


감동을 주신 적이 참 많은데요. 크고 거창한 게 아니고요. 대통령님과 인연은 오래돼서 정치인 시절 자서전을 쓸 때 집중적으로 가까워졌고, 그분의 솔직함에 반했죠. 나중에 대선 때 캠프에 들어갈 때, 저는 대통령이 되실 거라고 생각 안 했어요. 저도 대세론에 지배됐던 사람이죠.(웃음) 다만 정치판에서 봐온 사람 중에 제일 존경하고,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그런 분을 위해 대선을 뛰어보기로 해서 들어갔던 건데요. 하루는 술을 많이 드셔서 모셔다 드리는데 술김에 “태영 씨, 잘 들어왔어, 나랑 청와대 가서 한 번 바꿔보는 거야” 이런 얘기를 어깨 두드리면서 하셨어요. 그런 게 감동이에요. 부속실장이 부러운 자리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굉장히 힘든 자리기도 한데요. 그런 힘든 일을 하게 하는 동력을 주셨어요. 총리, 당의장, 대통령, 이렇게 세 사람이 밥 먹는 자리에 제가 옆에 앉아 기록할 수 있게 하는 건 인간에 대한 배려거든요. 제가 밥 나중에 먹겠다고, 뒤에 앉아서 기록하는 게 훨씬 편하다고 해도 그러지 말고 옆에 앉으라고 하시는 거죠. 참 존경하고 좋아할 만한 그런 분이에요.

 

이 기록이 세상에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노 대통령님이 이런 저런 평이 있지만 말을 잘하시는 분인 건 확실해요. 제가 마지막엔 연설기획비서관을 했는데 대통령께서 이름 붙이고자 했던 게 ‘말과글비서관’이었거든요. 그땐 이상하다고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 이름으로 했어도 좋았을 것 같아요. 대통령님은 말과 글이 세상을 바꾼다고 생각을 하신 거예요. 그래서 때로는 말은 ‘김대중파’, 글은 ‘리영희파’, 이렇게 표현하셔서 이 두 분 중 누가 더 세상을 바꾸는 영향력이 더 클까, 이런 고민도 하시고 했고요. 말하기 책을 쓴 건 대통령의 말하는 능력을 책을 통해 사람들이 배우면 유용한 도구가 되겠다는 생각이었어요. 생각과 철학을 남한테 전하는 수단은 결국 말과 글이니까요. 말 잘하는 사람이 늘어나는 건 좋은 일이다, 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의미를 갖는다고 생각해요.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앞부분에 강조한 내용, 편법은 없다, 최고의 전략은 정면돌파다, 핵심은 소신이다, 하는 것들이겠죠. 


부록으로 2005년 신임 사무관 특강 녹취 자료를 넣었는데요. 크게 안 고쳤어요. 날 것 그대로의 워딩이 많은데요. 세상에는 하는 말을 적으면 그대로 문장이 되는 분들도 있어요. 하지만 노 대통령은 안 그래요. 그러니까 이건 말재주라는 측면을 보여주려 한 게 아니에요. 말을 하시면서도 끊임없이 자기 정리를 하시고 새로운 말을 생각하거든요. 이렇게도 얘기해보고, 저렇게도 얘기해보면서요. 매끄럽고, 단아하고, 정제된 문장이 말 잘하는 것의 잣대는 아니다, 라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안에 담긴 내용, 말 하는 사람의 자세가 중요한 거죠. 토론을 하려면 말재주로 상대를 제압하는 게 아니라 살아온 이력으로 제압하는 거라는 말씀을 하셨던 것 같은데요. 진정한 말하기는 생각과 철학, 살아온 내력에서 나온다는 거예요. 나머지 미사여구나 매끄러운 말은 일시적으로 좋아 보일 수는 있지만 진짜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라는 의미에서 앞부분에 그 내용을 넣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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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꼭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공저라는 생각이 굉장히 강해요. 살아계셨다면 감히 공저인 책을 내볼 수도 있었겠다, 생각하죠. 대통령님이 계셨으면 지금쯤 많은 책들이 나왔을 것 같아요. 그러나 지금은 하나하나 여쭤보고 책을 내지는 못하는 거죠. 제가 임기 말에 한 번 여쭤봤었는데요. 이 많은 자료를 어떻게 내야 되느냐고 하니까 뭘 고민하느냐, 네가 들은 대로 써라, 억지로 꾸미려고 하지 마라, 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씀이 있어서 자신감을 갖고 내긴 내고 있어요. 부담은 늘 있죠. 잘하고 있는 것인가, 하고요. 부족함이 있긴 하지만 그 가운데 대통령님의 생각을 최대한 전달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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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말하기윤태영 저 | 위즈덤하우스
총과 칼이 아닌 ‘말’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노무현 대통령의 말하기 노하우를 23가지 원칙으로 정리한 저자는, 대화의 목적ㆍ대상ㆍ장소ㆍ상황에 맞는 대화법뿐만 아니라 말재주 없어도 편안하게 대화를 이어나갈 수 있는 소통하는 말하기의 진수를 제대로 배울 수 있게 도와준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현철, 웃기는 지휘자지만 우스울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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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오랜만에 본 건 TV 프로그램 <무한도전>이었다. 보타이에 연미복을 갖춰 입고 나타난 개그맨 김현철은 ‘저는 이제 더 이상 웃기는 사람이 아닙니다’라며, 최근 지휘자로 활동하는 근황을 공개했다. 잠깐 얼굴을 비친 게스트 출연이었지만 여전한 입담으로 분위기를 살렸다. 박명수의 ‘쪼쪼댄스’와 ‘오호츠크 랩’의 원조는 자신이라며 몸개그와 라임이 맞지 않는 랩으로 화면을 장악하는 모습에서 근엄하고 진지한 지휘자의 모습을 찾아내기는 쉽지 않았다.

 

김현철은 현재 김현철의 유쾌한 오케스트라 지휘자, 샤롯아마추어오케스트라 단장, 은평 국제 청소년 오케스트라와 홀트 학교 오케스트라 명예 지휘자를 맡고 있다. 서울예술대학교 연극과 출신으로 희극에 정통했던 김현철은 여러 번 클래식 음악을 활용한 개그와 콩트를 선보이곤 했다. 100세 시대, 누구나 여러 개의 직업을 가지는 게 당연한 이때, 여전히 사람들은 ‘개그맨’과 ‘지휘자’는 양립하기 어렵다고 느낀다. 그러나 직업에 귀천이 없다면 개그맨이라고 해서 연주자가 되지 말란 법은 없지 않나. 개그맨은 웃기는 사람이지 우스운 사람은 아니라는 걸, 김현철은 최근 활동을 통해 증명하는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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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을 좋아하는 개그맨


개그계에서는 나름 선 굵은 중견 개그맨이신데요. 음악에도 재능이 있으셨나요?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대학교 들어가기 전까지 오락반장을 놓쳐 본 적이 없어요. 대학교를 재수했는데 심지어 재수학원에서도 오락 반장을 했어요. ‘우스운 두각’을 나타냈던 셈이에요. 오락 반장의 역할은 지금으로 치자면 반에서 MC 역할을 하는 거잖아요? 선생님 없을 때마다 장기자랑을 시켜야 하는데, 또래 친구들은 모두 「J에게」 같은 가요만 불렀어요. 그때도 「오 솔레미오」 같은 가곡을 불렀어요. 아이들도 가요를 부르는 것보다 가곡을 부르는 걸 더 재밌어하더라고요. 야, 이걸 하니까 아이들이 재밌어하는구나, 어떻게 하면 더 웃겨줄까, 이런 궁리를 많이 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클래식을 들으면서 레퍼토리를 점점 늘려나갔죠.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셨나요?


어렸을 때부터 클래식 음악을 좋아했죠. 중학교 1, 2학년 때쯤 친형이 <아마데우스>에 나오는 음악 LP판을 사서 집에 왔어요. 지금으로 치면 영화 OST죠. 처음에 나오는 곡이 모차르트의 <교향곡 25번>인데, 음악을 듣고 충격을 받았어요. 세상에 이런 음악이 있다니! 하면서.


최근 클래식하는 개그맨으로 주목받았지만, 사실 한지는 오래되셨다면서요.


서울예전(현 서울예술대학교)에서 각 배우 개인기를 보여주는 신(scene)이 있는 연극을 한 적이 있어요. 내가 특별히 잘하는 게 뭘까 하다가 극장 상황을 고려하다 보니까 음악만 틀어주면 지휘할 수 있고, 핀 조명만 있으면 썩 분위기가 나겠더라고요. 지휘 연기를 하다 보니 ‘저 친구는 클래식을 지휘하는 놈’으로 소문이 났어요. 군대에서도 문선대로 들어가서 환경이 열악하니까 음악만 틀면 할 수 있는 지휘 개그를 또 짜고, 제대 후에 서울방송 들어가서도 클래식이 빠지지 않았어요. 콩트에서 길을 가는데 돈을 주웠어, 그럼 ‘야! 신난다!’ 하면서 <카르멘 서곡>을 틀어서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식으로 잘할 수 있는 요소를 곳곳에 활용한 거죠.


1996년에 MBC 공채로 가서도 클래식을 활용한 콩트를 한 적이 있어요. 발에다 큰 스프링을 연결한 스키 부츠를 신고 무대에서 지휘 연기를 하는 내용이었어요. 그런 아이디어를 냈을 때 PD도 좋다고 해서 나 때문에 세트를 만들었는데 3주인가 4주 하고 그만뒀어요. 사람들 반응이 별로 없었어요. 기존에도 <세바퀴>에서 지휘하는 연기를 했는데 과하게 하다 보니까 목디스크가 왔어요. 병원에 갔더니 목을 떨면 큰 수술을 해야 할 수도 있대요. 그래서 더 하고 싶었는데 코너를 그만둔 적도 있어요.


개그 프로그램이나 방송에서 클래식 음악을 사용한 것과는 별개로, 실제 오케스트라 지휘를 한 계기가 있었나요?


처음에는 공연에서 해설만 하다가, 관객 팬서비스처럼 한두 곡을 지휘하는 퍼포먼스를 했어요. 중학교 때부터 들어온 곡이고 여러 번 희극에 사용하던 소재니 보기에는 합이 잘 맞았겠지요. 그러다 보니까 ‘김현철이 지휘한다’라고 언론에 소개된 거예요. 해설이 있는 음악회를 했더니 청소년이 방학 숙제로 많이 와서 보기도 하고요. 처음부터 오케스트라를 모아서 사람들을 가르치고 공연의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진 건 아니었어요.

 

 

나는 ‘지휘 퍼포머’


연습부터 오케스트라 단원과 함께 합을 맞추는 건가요?


아마추어 오케스트라가 아닌 프로들은 한 번이나 두 번 맞추면 어느 정도의 퀄리티는 나올 수 있어요. 서울시향이나 KBS 교향악단처럼 월급제로 있는 곳은 정기적으로 모여서 연습하겠지만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처럼 매번 모여서 ‘똥 덩어리!’ 이러면서 단원들을 가르치지는 않아요. 물론 같이 연습하는 시간은 있죠.


지휘자라면 단원을 이끄는 역할도 있을 것 같은데요.


그래서 지휘자라기보다는 지휘 퍼포먼스를 하는 사람으로 지금의 저를 정의하고 있어요. 개그맨으로는 20년 넘게 해온 일이니까 자신 있어요. 하지만 클래식 음악에서 내가 지휘자 자리에 선 시간은 정말 짧단 말이에요. 방송에서 변호사, 의사, 셰프, 이런 분들이 나와서 재밌는 이야기 많이 하시지만, 자신을 개그맨이라고 소개하진 않잖아요. 클래식을 정말 좋아하고 이 일이 재미있지만, 이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하고 전문성을 인정받은 사람들이 있으니까 저도 처음 시작하는 마음으로 예의를 갖춰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지휘자 비슷한 말로 ‘지휘 퍼포머’라고 붙인 거죠.


오케스트라 단원들도 깍듯하게 대해주신다고 들었어요.


눈썰미 있는 사람이 왜 연주 끝나고 오케스트라한테 인사를 하냐고 묻더라고요. 보통 지휘자는 마지막 곡이 끝나면 오케스트라 일으켜 세우고 관객에게 인사하고 그대로 나가잖아요. 저는 연주가 다 끝나면 가장 먼저 오케스트라 단원들한테 인사해요. 나와줘서 고맙다는 의미에요. 연주자들이 저보다 어리지만 직종 선배로서 예의를 갖춰서 꼬박꼬박 선생님이라고 하죠.


클래식 연주자들이 좋은 대학 나오고 유학까지 다녀오고 악기도 비싼데 설 무대가 사실 별로 없어요. 무대가 없어서 전공과 상관없는 일을 하기도 해요. 저만 해도 학교 연극과 같이 졸업해도 모두 연기자가 되진 않잖아요. 그런 사람들이 어렵게 자리를 잡아서 연주하는데 나랑 같이 서면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으니까요.


청소년 오케스트라와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와도 같이 하고 계세요.


2014년부터 지금까지 홀트 학교 오케스트라에서 명예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어요. 어느 날 공연 끝나고 나오는데 장애인 어머니가 나와서 제 앞에서 우리 아이랑 이런 걸 해줘서 너무 고맙다고 우시는 거예요. 제가 클래식 음악 하더니 갑자기 착해진 것도 아니고 남을 생각해서 그런 것도 아니고, 그냥 재밌어서 하는 거였는데 누군가에게는 그게 감동할 만한 일이라는 게,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서 돈 주고도 와서 할 법한 일을 누군가 좋아하는 게 감동이었죠.


재능기부 외에 다른 행사도 많이 늘어나셨죠?


내가 즐거워서 몇 년 일을 하다 보니까 클래식 관련해서 나름 같이 일하는 회사도 생기고, 조금씩 일이 들어오고 있어요. 주로 클래식 공연에서 해설하는 일이지만, 기업체에서 예전에는 행사 MC를 맡아달라고 했다면 요새는 클래식 특강을 해달라고 해요. 중국에서도 공연해달라고 연락이 왔어요. 점점 일이 커지고 있어요. 영화처럼 고급스러운 표현을 빌리자면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클래식을 좋아했고,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한곡씩 혼자 듣고 외웠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시기가 맞지 않았고 좌절하다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이런 식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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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과 지휘자 사이


요새는 클래식 일과 방송 활동 비중이 어느 정도 되나요?


요즘에는 클래식이 70이고 방송이 30이에요. 지자체에서 세금을 가지고 지원해주는 공연에 선정되기도 하는데, 이쪽 분야에서는 많이 성공했어요.


처음에 지휘하실 때 사람들이 많이 웃었다고 그랬잖아요. 여전히 개그맨으로 보는 인식 때문에 방송에 덜 비춰야겠다는 생각도 있나요?


그런 생각도 하죠. 처음에 청소년 오케스트라에서 명예 지휘자를 맡아달라고 했을 때 가장 먼저 학부모들이 걱정됐어요. 없는 돈에 허리띠 졸라매 가면서 음악을 가르치겠다고 하는 건데, 정규음악교육을 거치지 않은 개그맨이 와서 명예직이지만 지휘자 이름을 받는다고 하면 안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죠. 안 그런 사람도 있지만 개그맨을 보면 앞뒤 안 가리고 웃음부터 터지는 사람이 있잖아요. 방청객이 그렇게 웃어주면 좋지만 진지한 자리에서 제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웃으면 안 되잖아요. 개그맨들끼리 흔히 웃기는 사람은 되어도 우스운 사람은 되지 말자고 하거든요. 그렇다고 공연에서 웃지 말라고 강요할 수도 없고요.


<무한도전>에서 한 ‘나는 이제 웃기지 않은 사람입니다’는 말이랑 겹치네요.


방송에서는 이렇게 구구절절 이야기할 수 없었죠. 예전처럼 외모만 보고 웃지 말라고 부탁하는 걸 한마디로 하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하지만 오히려 웃기지 않는 사람이라고 하니까 더 웃기다고 하대요. 옛날에 그렇게 웃기는 사람으로 있을 때는 안 웃어주다가 웃기지 않는 사람이라고 하면 웃어주니까, 모든 게 다 욕심이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성인들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욕심 없이 가야죠.


음악 하는 분들 말고, 방송이나 개그계에서는 어떤 반응이었나요?


‘외인구단’이라고 제가 만든 개그맨 야구단이 있어요. 거기서는 무슨 지휘를 하느냐고 그래요. 개그맨들하고는 클래식 이야기할 일이 별로 없고, 그냥 클래식을 좋아하는 사람 정도로 알지 제가 실제로 얼마나 많이 곡을 외우고 공부하는지는 몰라요. 클래식하시는 분들도 물론 마음에 안 드실 수 있어요. 뭐라고 할 수도 있죠. 하지만 이렇게 좋은 음악을 많은 사람한테 소개해서 관객을 늘려 가면 나중에 그분들이 좋은 연주자들, 훌륭한 지휘자들한테도 가서 듣지 않겠어요? 고상한 사람들, 유학 가고 훌륭하게 꾸준히 클래식 음악을 만드는 사람도 필요하지만 저 같은 사람도 있어야 한다는 거죠.


클래식 전도사가 되고 싶은 거군요?


클래식 좋아하세요? 왜 좋아하세요? 들으면 좋죠. 그거예요. 고전 클래식, 이미 들은 적은 많지만 어렵고 재미없다는 클래식은 왜 그럴까요. 그 곡을 모르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가요나 팝송은 가사가 있잖아요. ‘나 오늘 완전히 털렸어’ 하면 사람들이 털린 기억이 있으니까 감정 이입을 하거든요. 하지만 클래식은 모르는 언어거나 아예 노래 가사가 없잖아요. 그걸 아는 노래로 만들어 주는 거죠. 그래서 클래식 길라잡이라는 말을 좋아해요. 개그할 때보다야 돈도 덜 벌고 힘들지만 그런 게 재미있어요.

 

 

나름 실력 있어요


악보를 못 보신다고요.


저랑 같이 공연을 했던 사람도 정말 악보를 못 보느냐고 물어보더라고요. 아까 악보 없는 거 보셨잖아요, 하면 그래도 못 믿어요. 언론 홍보를 위해서 일부러 못 보는 척하는 거 아니냐는 거죠. 또 어떤 사람은 악보를 보지 못하는데 클래식 음악을 한다는 건 한글도 모르는 사람이 책 소개하는 꼴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어느 정도는 그런 측면도 있을 거예요. 제가 또 잘 외우잖아요. 예전 국사 연도나 그런 거 잘 외워요. 그런 재능이 영향이 있는 건지 아니면 어렸을 때부터 너무 많이 들어서 외우게 된 건지 몰라도 어쨌든 다 외운 곡으로 공연해요. 지금은 서른 곡 정도 외우고 있어요.


하지만 여러 공연을 소화하고 계세요.


사람들은 내가 개그맨이니까 대충 지휘자 흉내만 내고 코미디 요소가 많이 들어간, 어떻게 보면 클래식을 가지고 웃기는 그런 공연만 생각하는데 저는 진지해요. 지휘가 그렇게 재밌어 보이지는 않잖아요. 웃긴 요소가 별로 없어요. 동작을 조금 크게 한다 뿐이에요. 같이 공연하자고 제안하는 사람들도 제가 이 정도까지 클래식에 대한 깊이가 있을 줄은 잘 몰라요. 악보를 못 보는데 어떻게 서른 곡을 연주하냐. 이제까지 무수하게 훌륭한 연주를 닳도록 들어서 어디가 틀리고 어디를 맞춰야 하는지 듣고 아는 거예요. 음악 맞춰서 하다가 이쪽이 커지면 이쪽을 맞추고, 저쪽이 나오지 않으면 나오게 하고, 이러는 거죠.


외운 곡으로 공연하시는 건가요?


제가 외우지 못한 곡은 공연 못 하죠. 음악을 쭉 듣고 지휘를 하더라도 틀린 부분을 이야기해줘야 하는데, 어디 몇 쪽 몇 마디인지 모르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처음에는 틀린 부분이 어디라는 걸 설명할 수 없어서 지적하지 못했죠. 하나 틀렸다고 처음부터 끝까지 입으로 흥얼거리다가 고칠 수는 없잖아요. 요새는 팀하고 많이 친해져서 악장에게 부탁해서 틀린 부분이 있을 때마다 악보에 체크만 대신 해달라고 해요.


그럼 틀린 부분이 나오면 어떻게 하세요?


예를 들어 음이 정확히 한 악기처럼 나와야 하는데 흘러가듯이 연주할 때가 있어요. 그럼 저만의 표현을 쓰죠. ‘귀가 안 들리는 사람도 들리게끔 딴, 딴, 딴! 연주해주세요.’ 전공자라면 그냥 스타카토라고 말해도 될 거예요. 음악 용어가 다 있겠죠. 하지만 다들 아는데 거기서 잘난 척 하면서 제가 용어 써가며 바로잡고 싶지는 않아요. ‘물이 워낙 수압이 세서 수챗구멍에 막 들어가려다가 우웩, 하고 빠지는 기분으로 연주해주세요!’ 이런 식으로 의사전달을 해요.


다른 인터뷰에서 전문적으로 음악 공부를 해야 하나 고민 중이라고 하신 적이 있으세요.


딜레마예요. 기자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글쎄요, 공부해서 나쁠 건 없지 않을까요?


공부하기 싫어서 그러는 건 아니고, 공부하는 걸 오히려 좋아하는 편이에요. 지금도 차 안에 늘 책이 있어요. 하지만 어떤 분들은 제가 학위를 따고 이제부터 악보를 보는 공부를 하는 것보다 지금처럼 악보를 몰라도 진짜 좋아해서 노력하는 게 오히려 인간미 있고 좋다고 해요. 지금은 사실 절름발이죠. 외우지 못한 곡은 못 하니까.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다른 역할도 그렇지만, ‘김현철의 유쾌한 오케스트라’는 직접 창단해서 지휘자로 있습니다. 이름이 들어간 오케스트라를 운영하는 게 부담스럽진 않으세요?


사실 부담스럽죠. 어느 장사를 해도, ‘김현철의 쌈밥집’ 같은 간판을 달면 위생부터 끝까지 신경 써야 해요. 하자 잡히기도 쉽잖아요. 또 연주하는 분들이 김현철 이름 넣은 오케스트라에서 연주하기 싫어할 수도 있고요. 얼마나 책임감을 느꼈는지 항상 손목에 물이 차서 주기적으로 빼 줘야 해요. 정석으로 지휘법을 배웠으면 그렇게까지 안 했을 수도 있는데, 더 오버해서 하다보니까 손목에 물이 차요. 연주를 앞두고는 더 심하죠. 하다못해 감기에 걸리더라도 나 때문에 엉망이 되면 안 되니까 링겔 맞고 오기도 하고요. 그래서인지 사람들이 좋은 이야기를 해 줘요. 혹시 제가 들어왔을 때 얼굴 빛나고 그러지 않았어요?


음, 아뇨(웃음). 주변 분들이 요새 얼굴이 빛난대요?


그렇대요(웃음). 개그맨으로만 있으면 사실 그럴 필요 없잖아요. 하지만 지휘 퍼포먼스는 그렇게 하는 게 스스로 즐거워요. <김현철의 유쾌한 클래식>이라고 팟캐스트도 운영해요. 앞으로도 더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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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는 이런 곡


공연에서 연주하는 곡은 뭐가 있나요?


클래식을 아무리 싫어하는 사람도 작곡가가 누군지, 곡명이 뭔지 모를 뿐이지 누구나 들어봤음직 한 곡들이 있어요. 저도 최근에서야 제목을 안 곡도 있어요. 라디오에서 처음에 말하는 제목을 놓치면 곡을 듣고 있어도 무슨 노래인지 모르잖아요. 어디 가서 허밍으로 불러주면서 이 곡 제목이 뭐냐고 물어보면 미친 사람 취급받겠죠. 주로 오페라 서곡이 그런 경우가 많아요. <윌리엄 텔의 서곡>이나 <카르멘 서곡>, 다들 잘 아는 <하바네라>나 <캉캉> 같은 거죠. 개인적으로는 <루슬란과 류드밀라 서곡>을 좋아해요. 예전 KBS 뉴스나 <유모어 일번지> 같은 프로 자막을 올릴 때 배경 음악이었어요. 몇 년 전에야 글란카라는 작곡가의 곡이었다는 걸 알았어요.


앞으로 하고 싶은 곡은요?


스케일 큰 곡 해보고 싶어요. 차이코프스키의 <1812년 서곡>. 그걸 하려면 사람이 많아야 하는데 그 한 곡 때문에 사람을 많이 쓸 수가 없어서 못 하고 있어요. 현대 음악가는 하챠투리안의 <칼의 춤>이라는 곡이 있어요. 그 곡도 마림바나 실로폰 같은 타악기가 많이 나와야 하는데 다 섭외해서 할 수 없어요. 어쩔수 없이 지금 오케스트라 수에 최적화된 곡을 하고 있어요. 지금도 4관 편성은 무리고 1관 편성으로만 오케스트라를 꾸렸어요. 예산이 없으니 거기 맞춰야죠.


<채널예스>에서 책을 내지 않은 사람을 인터뷰하는 일이 드문데요, 책을 내실 생각도 있나요?


안 그래도 책 내자는 사람이 많았어요. 작가랑 같이 초안 쓴 적도 있어요. 하지만 예전에 랩으로 유명해져서 음반도 내보자는 제안을 거절했어요. 제가 음치인데 누가 제 노래를 돈 주고 듣겠냐는 거죠. 지금도 마찬가지로 제가 쓴 책을 누군가 돈 주고 사서 읽을 정도가 되어야 내는 것이 맞지 않겠냐는 생각이에요. 제가 쓴 클래식 책을 읽을 독자가 있다고 한다면 내야죠.


클래식을 활용한 개그가 궁극적인 목표라고 하셨어요. 나중에는 개그로 회귀하시는 건가요?


클래식하면서 방송 활동 다 접은 거 아니에요. 기본 본분은 언제까지나 개그맨이고 희극 배우예요. 지금은 클래식을 가지고 희극 연기를 하지 않으려고 해요. 클래식 깎아내린다고 할까 봐요. 박명수 씨 예를 들어보자면, 지금은 박명수 씨가 길거리에서 ‘확 씨!’ 해도 사람들이 아니까 웃죠. 하지만 제가 길거리에서 아무나 붙잡고 ‘확 씨’ 하면 당장 싸움 날 거예요. 그래도 조금 알아야 사람들이 그 사람의 진정성을 이해할 텐데, 아직은 사람들이 제가 음악 활동하고 지휘한다는 걸 모르잖아요. 지금 제가 클래식 음악으로 희극 연기를 하면 클래식 음악 가지고 장난친다고 할 거예요. 지금은 더 활동해야 될 때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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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호진 “공무원 시험, 중년이 더 유리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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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합격 자신만만 공부법』의 권호진 저자는 57세의 나이에 공무원 시험에 도전했다. 2013년과 2014년 두 차례의 응시만으로 경기도 지방직과 서울시 행정직에 합격했고, 현재는 서초구청 일자리경제과에서 9급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청년들도 통과하기 쉽지 않은 관문을 “한창 공부하는 젊은이들에 비하면 체력, 기억력, 공부 환경 등 어느 하나 유리한 조건이 없었”던 50대 후반의 저자가 통과한 것이다.

 

비결은 『공무원 합격 자신만만 공부법』안에 담겼다. ‘이십대 못지않게 체력과 건강 관리하기’, ‘암기력을 높이는 모든 방법들’, ‘공부량을 줄여주는 주요 과목 공부법’ 등 합격에 이르는 효율적인 방법을 귀띔해준다. 필기시험은 물론이고 면접, 인적성검사의 준비법까지 담겨있어 공무원 시험의 큰 흐름을 짚어볼 수 있다. 특히 ‘3ㆍ2ㆍ1ㆍ0.5법’, ‘피라미드 회독법’으로 불리는 공부법은 저자가 직접 개발해 활용한 것으로 “나이 때문에 올 수 있는 기억력의 한계를 극복하는 가장 능률적인 방법”이다.

 

권호진 저자는 외국계 보험회사인 ‘에이스화재보험’에서 25년간 재직했으며, 한국지사 CEO를 역임한 바 있다. 퇴직 후 영어학원을 운영하는 등 새로운 일을 시도하다가 공무원 시험의 연령 제한이 폐지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2012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험을 준비했다. 2013년 한 차례 고배를 마신 후 이듬해에 최고령 응시자이자 최고령 합격자로 주목 받으며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은퇴 이후 새로운 일자리를 찾는 중년 세대가 많아지면서 ‘노령 신입 공무원’의 비율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나이에 구애 받지 않고 응시 기회를 가질 수 있는 데다, 합격하면 정년과 급여가 보장되는 안정적인 환경에서 일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쉽사리 뛰어들 수만은 없는 ‘도전’이다. 60세 정년까지 남은 시간이 길지 않은 만큼 근무 기간이 짧고, 청년들과의 경쟁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한편에서는 ‘젊은이들의 기회를 빼앗는 것 아니냐’며 따가운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새로운 조직 생활에 적응해야 하는 문제도 있다. 자신보다 어린 상사, 동료들과 일한다는 것이 쉽지만은 않을 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전할 만큼 ‘공무원으로 시작하는 제2의 삶’은 매력적인 것일까. 권호진 저자를 만나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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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자신감을 가져야 돼요


25년 동안 근무하셨던 외국계 보험회사에서는 정년퇴직 하신 건가요?


정년퇴직은 아니고요. 사장으로 근무하던 중간에 지역 사무소가 도쿄에서 싱가포르로 바뀌면서 연임할 수 있는 상황이 안 됐어요. 그래서 회사와 협의해서 조기퇴직을 했죠. 사장은 정년이 보장되지 않으니까요.

 

퇴직 이후에 영어 학원을 운영하기도 하셨다고요. 오랫동안 회사 생활을 하시다가 자영업을 시작하신 건데, 예상하지 못했던 어려움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많죠. 가장 힘들어했던 건 아이들의 안전 문제를 늘 신경 써야 하는 거였어요. 차량을 운행하는 것도 그렇고요. 언뜻 생각하기에는 학원을 운영하는 게 흑자가 나는 것 같아도 실제로 해보면 흑자가 나지 않아요. 적자를 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돈을 버는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정리했죠.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게 된 계기가 있으셨나요?


2012년쯤에 우연히 기사를 봤어요. 공무원 시험의 연령 제한이 없어졌다고요. 그 전에는 공무원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을 할 수가 없었죠. 공무원이 되겠다는 신념을 가진 적도 없었고, 당시에 9급ㆍ7급 공무원은 연령 제한이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공무원 연령 제한이 없어졌다고 하니까 ‘그러면 시험을 한 번 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러다가 아들의 대입 준비를 같이 하면서 ‘공무원 시험에 연령 제한이 없어졌다는데 아빠도 한 번 도전해볼까?’하고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요즘 공무원 시험은 아빠가 공부할 때의 공무원 시험이 아니라고, 이제는 보통 공부해서는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아빠 나이에 공무원 시험에 합격할 정도면 나는 서울대학교가 아니라 하버드대학교도 가겠다’고 하고요. 그 말을 듣고 보니 오기 같은 것도 생기고 ‘아무리 나이가 많지만 공부를 하면 되지 않겠나’ 싶더라고요. 그래서 시작하게 됐어요.

 

‘정말 할 수 있을까?’ 하고 걱정을 하지는 않으셨어요?


걱정은 전혀 안 했어요. 되면 되는 거고 안 되면 안 되는 거고, 그렇게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편안한 마음으로 공부했어요. 옛날 공무원 시험을 생각하고 ‘웬만큼 공부하면 되겠지’라고 생각하기도 했고요. 최근의 시험은 어떤지 몰랐지만, 예전의 공무원 시험이 어떤지는 알고 있었기 때문에 ‘조금만 공부하면 되겠지, 몇 번만 훑어보고 시험 보면 되겠지’ 그렇게 생각했죠.

 

중년의 나이에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고는 싶지만 주저하는 분들도 계실 텐데요. ‘과연 젊은이들과 경쟁이 될까? 괜히 시간만 버리는 거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실 것 같아요.


경쟁이 되죠. 왜냐하면 젊은이들이라고 해서 다 열심히 공부하는 건 아니고, 다 자신감을 가지고 공부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일단 자신감을 가져야 돼요. 무슨 일을 하든 마찬가지죠. 자신감은 부단히 노력하고 연습하는 가운데 생기는 거잖아요. 제가 생각하기에 열심히 노력하고, 연습하고, 자신을 믿으면, 나이가 어떻든 누구나 합격할 수 있어요. 제가 본보기 아닌가요? 저 같이 나이가 든 사람도 합격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데 지금 도전하는 분들은 4,50대잖아요. 충분히 할 수 있죠. 그리고 뇌 과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치열하게 머리를 쓰면 가장 최상의 상태일 때의 능력을 90% 이상 회복할 수 있다고 해요. 제가 경험해본 바로도 그래요. 나이가 들면 과거에는 기억했던 게 잘 떠오르지 않고, 며칠 전에 들었던 것도 잘 기억이 안 나는 경우는 있죠. 하지만 공부는 계속해서 보고 또 보면 돼요. 그게 제가 이야기하는 회독법이고 암기법이에요.

 

책에서 소개해 주신 ‘피라미드 암기법’이란 무엇인가요?


어제 1페이지를 봤다면 오늘 2페이지를 볼 때 1페이지를 또 보는 거예요. 앞의 내용을 다 외우지 않고 책장만 넘기면 생각이 안 나겠죠. 그건 누구나가 마찬가지예요. 젊은 사람이나 나이든 사람이나 똑같죠. 그런데 나이든 사람은 ‘내가 기억력이 굉장히 나빠졌구나’ 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우리가 학교 다닐 때를 떠올려 봐도, 시험 성적 잘 받는 친구들을 보면 정말 열심히 공부하는 데도 100점 맞기 힘들잖아요. 똑같은 거죠. 그런데 우리 나이든 사람들이 한 번 보고서 기억을 하면 천재죠. 그러니까 치열하게 공부하고 앞의 내용을 보고 또 보면 돼요. 그러면 나중에는 그것들이 피라미드처럼 쌓여서 앞의 내용을 보면 자연적으로 머리에 들어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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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시험은 이해보다 암기가 중요해요


공무원 시험 준비에 적합한 공부법이 따로 있을까요?


시험이라는 게 학문을 하려고 하면 절대 합격할 수 없어요. 시험을 위한 공부를 해야 돼요. 그래야 합격할 수 있어요. 영어를 봐도 그렇죠. 저는 외국계 회사를 다녔으니까 영어로 의사소통 하는 데 무리가 없었어요. 그런데 영어시험을 보면 성적이 안 나왔어요. 무슨 이야기냐 하면, 출발선은 거의 비슷하다는 거예요. 영어시험을 위한 공부를 해야 하고, 국어시험을 위한 공부를 해야죠. 학문을 공부하는 게 아니거든요. 그 두꺼운 책 가운데 어디에서 문제가 나올지 몰라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것은 나오지만 구석에 작게 쓰여있는 내용이 출제되면 못 맞추죠. 그렇기 때문에 시험을 위한 공부를 꼭 해야 돼요. 다른 시험이 아니고 공무원 시험을 위한 공부를 해야 돼요.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실력이 있다고 해도 합격하기 힘들죠. 그래서 집중적, 집약적으로 공부해야 되고 시험에 나오지 않는 건 공부하면 안 돼요.

 

중년의 경우, 시험에 합격한다고 해도 근무 기간이 길지 않잖아요. 그런데도 1~2년씩 공부하면서 시험을 준비해야 할까요? 


몇 년이 아니죠. 예를 들어서 55세라고 하면 5년 동안 일할 수 있잖아요. 그리고 지금 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나이가 65세인데, 60세에서 퇴직해서 65세까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기다릴 수는 없잖아요. 5년 동안 연금도 없이 어떻게 살아요. 그래서 무엇인가 해야 돼요.

 

공무원의 퇴직 연령을 더 연장해야 된다는 말씀이세요?


네, 65세로 늦춘다고 하면 지금 55세인 사람도 10년 동안 일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리고 지금 상황에서 55세부터 60세까지 5년만 일한다고 하더라도 얻는 게 굉장히 많죠. 도전을 해서 성취를 함으로써 굉장히 자신감이 생기죠.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되고요. 제가 생각할 때 일하는 기간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고요. 저 역시 2년밖에 근무를 못하는 상황이었는데, 비록 2년이지만 남들 20년 하는 것만큼 하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지고 시작했어요. 그리고 공직이라는 것이 굉장히 명예스러운 직업이잖아요. 그러니까 공부를 할 때는 가치관을 달리 해야죠. 그리고 1~2년 공부해서 5년밖에 일을 못한다고 해도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죠. 제가 2년 동안 공부해서 2년 동안 근무하는 것만 해도 수지가 맞죠. 이렇게 책도 내고 인터뷰도 하게 됐잖아요(웃음). 마음먹기에 따라 다른 거죠.

 

올해 12월에 퇴직하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지난 2년이 너무 빨리 지나가버린 것처럼 느껴지실 것 같아요.


후딱 지나갔죠. 그런데 저는 후회가 없어요. 올해 연말에 퇴직하더라도 기간을 더 연장해서 일하고 싶은 마음이 없어요. 또 다른 못 다한 도전이 있다면 하고 싶고, 저는 2년이면 충분합니다. 근속 연수가 중요한 건 아닌 것 같아요. 얼마만큼 더 일하느냐는 중요하지 않아요. 퇴직 연령이 60세라면 그때까지 일하면 되죠.

 

첫 번째 공무원 시험에서 낙방하셨을 때 가장 먼저 하신 일이 ‘실패의 요인을 파악하는 것’이었다고요.

 

실패가 있으면 분명히 그 원인이 있죠. 제가 생각할 때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을 어떤 의지, 붙어야겠다는 신념이 결여되어 있는 거예요. 두 번째는 절대적인 공부량이 부족한 거고요. 그리고 공무원 시험은 암기가 거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이해를 해서 푸는 문제는 없거든요. 예를 들어서 영어 과목은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다른 과목에서 시간을 절약해야 돼요. 국어도 지문이 굉장히 길기 때문에 다 이해하려고 해서는 안 되고요. 소위 말해서 ‘인간병기’처럼 되어서 문제를 보자마자 답을 고를 수 있어야 돼요. 긴가민가하면서 시간을 허비하면 시험에 떨어져요. 그래서 절대적인 시간의 양이 필요하고, 그 시간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쓰느냐가 중요해요. 사람이 매일 12시간씩 공부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공무원 합격 자신만만 공부법』에서도 휴식이 필요하다고 썼는데,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쉬는 시간도 필요하고요. 평소에도 휴식을 취하는 방법들을 찾아서 자기 나름대로 공부법을 찾아내야 돼요. 그렇게 자기만의 방식을 만들어가다 보면 그것이 몸에 배고 습관이 되는 때가 있죠. 책에도 밝혔듯이 약 3달, 100일 정도만 지나면 익숙해지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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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생각하면 일을 할 수 없어요


작가님만의 암기 비법이 궁금합니다.


그대로 외우려고 하면 절대로 외워지지 않아요. 외워지는 것 같아도 금방 잊어버리죠. 무엇이든 연상을 해야 빨리 외워지고 기억이 오래 가요. 이번 서울시 공무원 시험에도 ‘the number of’와 ‘a number of’에 대한 문제가 출제됐던데, 둘을 헷갈리기가 굉장히 쉬워요. ‘a number of’는 복수이고 ‘the number of’는 단수거든요. 저는 ‘a number of = 복수 = 어복’이라고 외웠어요. 이렇게 한두 번만 말해보면 나중에 잊어버렸다 하더라도 시험 볼 때 자동으로 떠올라요. ‘the number of = 단수 = 더단’ 이라고 외울 수도 있죠. 그리고 책에 적어 놔요. ‘a number of’가 나오면 옆에 한글로 ‘어복’이라고 적어 놓고 ‘the number of’ 옆에는 ‘더단’이라고 적어 놓는 거예요. 책은 한 번 보고 끝나는 게 아니라 매일 보잖아요. 그러면 입에서 맴돌게 되고, 시험 볼 때 바로 바로 떠오르는 거죠.

 

키워드 위주로 필기하고 암기하는 방법도 활용하셨더라고요. 그러려면 중요 포인트를 알아볼 수 있어야 할 텐데, 그런 감각은 어떻게 기를 수 있나요?


무엇이 중요하다는 것은 자기가 느끼면서 알아내야 되는데요. 기출문제를 반복해서 보다 보면 ‘이게 중요한 거겠구나’라는 연상이 일어나요. 저는 가장 처음에 기본서를 봤어요. 외우지는 않았고 통독하면서 이해했어요. 그 다음에는 기출문제를 보는 거죠. 일반적으로 학원 강사 분들은 최근 3년까지의 기출문제가 중요하다고 하시거든요. 그런데 저는 5년 동안의 기출문제를 봤어요. 그러면 경향을 알 수가 있더라고요. 그리고 저는 답을 미리 적어놨어요. 문제를 풀지는 않고요. 한 번 시험에 나온 문제가 또 시험에 나올 일은 없으니까요. 답을 적어 놓고 기본서 보듯이 읽는 거예요. 그것도 회독하다 보면 문제의 트렌드가 보여요. 무엇을 공부해야 할지 자연적으로 알게 돼요. 그걸 바탕으로 기본서를 읽을 때 ‘이게 키워드구나’하고 찾아내서 적어 놓고 공부하는 거죠.

 

회독을 할 때는 ‘3ㆍ2ㆍ1ㆍ0.5법’을 활용하셨나요?


처음에는 3개월에 한 번 읽겠다고 계획을 세워요. 다음 달에 회독할 때는 2달, 또 그 다음에는 한 달 만에 끝내고요. 이후에는 10~15일 만에 회독하고, 계속 15일마다 훑어보는 거죠. 그때 정도 되면 훑어보는 거예요. 그러면서 아직까지 이해가 안 된 부분이나 미심쩍은 부분, 포인트가 있으면 표시하고요. 그러다 보면 자동적으로 외워지는데요. 꼭 외워야 하는데 아무리 해도 안 외워지는 것들이 있어요. 그러면 발췌를 해서 자기만의 방법으로 암기하는 거죠.

 

시험을 준비하시면서 총 지출하신 비용은 얼마나 되나요?


가장 처음에 인터넷강의로 패키지 상품으로 들었고, 3개월 동안 학원 문제풀이 반에서 공부한 게 전부예요. 금액은 잘 생각나지 않지만, 2년 동안 약 800만 원 정도 든 것 같아요. 처음에는 인터넷 강의나 직강을 한 번 듣고, 독학을 시작하고서 시험 3개월 전에 학원이나 인터넷강의로 문제풀이를 한 게 비용의 내역 전부고요. 독학을 할 때는 시립도서관에서 공부했기 때문에 공부하는 공간에 대한 비용이 들지 않았죠. 단지 점심과 저녁 식사비가 들었어요.

 

나이 어린 동료, 상사들과 같이 근무하시는데, 힘든 점은 없으세요?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저도 메일을 받은 적이 있는데요. 본인은 공무원 시험에 합격할 자신이 충분히 있는데, 자신보다 어린 선배들과 관계를 유지하기가 힘들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망설여진다고요. 그럴 때 저는 ‘나이를 생각하면 일을 할 수 없다’고 말씀드려요. 공무원뿐만 아니라 어떤 회사든 입사했을 때는 나이를 잊어야 돼요. 그렇지 않으면 자기 자신이 불편해요. 저는 지금 60세이고 내일 모레면 퇴직인데, 구청에 들어가면 나이를 생각 안 해요. 9급 공무원 말단, 막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선배가 시키면 고분고분하게 해요. 속으로는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그런 표정을 짓지는 않아요. 그런 부분은 공무원뿐만이 아니죠. 다른 일반 직장은 더하죠. 그런 걸 염려하면 직장 생활 못하죠. 개인 사업 하셔야죠. 그나마 나은 게 공무원이에요. 그리고 지금 세상이 그렇게 되어 있어요. 40대에도 대통령 후보로 출마할 수가 있는데, 그렇다고 그 사람 말은 못 듣겠다고 할 거 아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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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시험, 중년이 더 유리할 수 있어요


회사 CEO로 일하실 때는 억대 연봉을 받으셨잖아요. 지금 받으시는 급여는 당시의 10분의 1수준이라고 들었는데요. 이런 현실에 대한 불만은 없으세요?


경제적인 대가는 불만족스럽지 않아요. 제가 돈을 안 벌 때도 있었는데요, 뭐(웃음). 그렇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불만 없어요. 그런데 공무원 월급이 그렇게 박하지는 않아요(웃음).

 

현재 시간선택제로 근무 중이신데요. 자원하신 건가요? 면접 당시에 시간제 근무도 가능하냐는 질문을 받지는 않으셨어요?


지금은 너무 바빠서 시간선택제를 하고 있지 않은데요. 오는 10월부터는 오후 3시까지 근무하는 시간선택제를 활용해서 은퇴 후를 설계할 시간으로 가질 예정이에요. 시간선택제는 공무원이면 누구나 신청하면 되는 것이기 때문인지 면접 때는 이런 질문을 받지 않았어요.

 

동료 중에 19살 직원도 있더라고요.


저하고 같이 입사를 했어요. 요즘 고등학교 특별 전형으로 공무원이 되는 학생들도 많을 거예요. 1년에 40~50명 정도 되는 걸로 알고 있어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청년들이 갈수록 늘고 있잖아요. 작가님께서는 이런 현상을 직접 피부로 느끼셨을 것 같아요.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공무원이 된 동료도 있고, 노량진에서 청년들과 같이 공부하기도 하셨으니까요.


제 아들들이 지금 취직을 준비하는 나이이기 때문에 청년들의 문제는 잘 알고 있죠. 가장 큰 문제는 취업인데, 취업이 안 되다 보니까 공무원을 선호하는 거죠. 굉장히 안타깝죠. 그런데 제가 생각하기에는, 공무원이 되면, 이만큼 좋은 직장은 없죠. 일단 직업의 안정성이 확보되는 거니까요. 지금 굉장히 불안한 사회이기 때문에 안정을 취하고 싶어 하잖아요. 기성세대들은 ‘우리 때는 도전적이었는데 왜 너희는 안정적인 것만 바라냐, 공무원 시험에만 몰리냐’라고 이야기하는데, 세상이 그런 걸 어떻게 하겠어요. ‘왜 중소기업 안 가냐’고도 하잖아요. 그런데 좋은 중소기업도 많지만, 그런 회사는 들어가기 힘들어요. 일반 중소기업들은 월급이 박해서 너무 차이가 나죠. 그래서 젊은 사람들을 욕할 수가 없어요. 제가 보기에는 우리 같은 기성세대가 무엇인가 해줘야 돼요. 저는 공무원 채용도 늘려야 된다고 생각해요.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에 출산율이 최하위잖아요. 젊은 사람들이 취업이 안 돼서 돈을 벌지 못하는데 어떻게 출산을 하겠어요. 결혼할 생각을 못해요. 결혼을 해야 출산을 하든지 할 거 아니에요. 이런 사회에서 젊은이들을 욕할 수가 없죠. 이런 상황에서 젊은이들에게 공무원 시험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스펙도 필요 없고, 열심히 공부하면 다 합격하는 시험이잖아요.

 

“젊은 사람들은 나를 보며 자신들의 일자리를 빼앗았다는 눈빛을 보냈다”고 쓰셨는데요. 그럴 때는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제가 2년밖에 근무하지 않기 때문에 젊은 사람들의 일자리를 뺏는다는 생각은 없어요. 오히려 젊은 사람들에게 꿈과 자신감을 주고 싶어요. 나이든 사람도 이렇게 도전하는데 젊은 사람들이 도전하면 못 이룰게 무엇이 있겠어요?

 

공무원 시험을 치르는 데 있어서, 중년 세대가 청년들보다 유리한 부분도 있을까요?


유리하죠. 예를 들어서 행정학 같은 경우에는 젊은 세대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어요. 사회 경험이 더 풍부하니까요. 그리고 공부의 양만 확보가 되면 젊은 사람이나 나이든 사람이나 별 차이가 없어요. 저를 보세요. 젊은이가 두뇌 회전이 빠르다고 하지만, 몇몇 사람이나 그렇죠, 대부분의 사람은 비슷비슷하죠. 공부량과 투자하는 시간이 필요한 거죠.

 

직장인이라면 어떻게 준비를 하는 게 좋을까요?


저는 이렇게 권하고 싶어요. 지금 직장을 다니고 있다면 직장 생활에 필요한 시간을 뺀 나머지 부분을 투자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젊은 사람은 온 시간을 공부하는 데 쓸 수 있거든요. 그러면 젊은 사람이 1년 단위로 계획을 세운다면, 직장인들은 2년 동안 준비하겠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현재 직장이 있으니까 합격 못해도 큰 타격을 입는 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공부하는 데 필요한 워밍업을 먼저 하고, 그렇게 조금씩 공부해놨다가 시험 보기 6~8개월 전에 집중적으로 공부하면 될 것 같아요. 그런 다음 한 번 시험을 봐두면 이후에는 조금씩 집중적으로 공부할 수 있어요. 1년에 세 번의 기회가 있잖아요. 국가직, 경기도 지방직, 서울시, 세 번 응시를 할 수 있으니까 몇 년이고 준비해서 합격하면 되잖아요. 그렇게 전략을 세워서 편안한 마음으로 공부하면 좋을 것 같아요.

 

지금 작가님에게 도전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도전을 함으로써 인생의 터닝 포인트를 만들 수가 있어요. 공무원 시험에 도전한다고 할 때에도 공부만 하는 게 아니에요. 거기에는 인내가 필요한 거고 절제가 필요한 거거든요. 하고 싶지 않은 걸 해야 되는 거고요. 자기 나름대로의 계기를 만들어야 돼요. 그냥 무작정 공부하는 게 아니고 하나의 계기로 삼는 게 매우 중요해요. 무작정 직장이 없으니까 공부하는 것보다 의미를 부여하면서 공부를 하면 공부가 재밌죠. 모든 사람들이 공부를 지겨워하고 저 역시 지겹지만, 재밌게 만들어야죠. 그래야 능률도 오르죠. 재밌게 만들려면 자기 나름대로 계획과 목표를 세워야 돼요. ‘내가 공무원이 되면 어떻게 하겠다’ 같은 목표를 세워서 자신을 발전시켜야죠. 그건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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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합격 자신만만 공부법권호진 저 | 길위의책
저자는 자신이 발견한 공부비법을 ‘공무원 합격’이라는 목표를 향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을 공무원 수험생들과 공유함으로써 그들이 공무원 합격이라는 목표에 빨리 도달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자 이 책을 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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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상지, 반도네온만 유명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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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정보가 매체에 나가서 매번 해명하는데, 국내 유일도 최초도 아니다.”

 

최근 대중음악씬에서 '반도네온' 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이름이 있다. 고상지. 그는 자신의 음악처럼 거침없고 시원시원하게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반도네온 연주자로 이름을 알렸지만 작곡가, 프로듀서로서도 영역을 넓히고 있는 전방위 뮤지션이기도 하다.

 

2014년에 오리지널 창작곡으로만 이루어진 정규 앨범 < Maycgre 1.0 >을 발표한 후, 오래지 않은 시간을 보낸 후 탱고 명작 커버 앨범으로 돌아왔다. 트랙 리스트에는 주로 피아졸라의 곡이 올라가 있다. 앨범으로만 보면, 교향악단이 베토벤에 도전하는 것과 같다. 작곡가에서 연주자로 스탠스를 바꾼 고상지와 그의 동반자인 두 연주자 바이올리니스트 윤종수, 피아니스트 최문석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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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고상지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두 장의 앨범에 윤종수와 최문석이 모두 참여했다.


-고상지: 내 포지션은 연주자보다는 작곡가, 프로듀서 비중이 큰 것 같다. 내 음악에는 피아노가 필수고, 제일 먼저 작업을 하는 것도 피아노이기 때문에 처음에 문석과 함께 그 바탕을 의논한다. 그런 다음에 그 위에 연주를 쌓는 것이다. 2집은 특히 커버 앨범이니까 더욱 이 두 사람이 진가가 발휘되었다. 사실 고상지라고 앨범을 내긴 했는데 좀 미안했다. 두 사람한테는 “이거 너희 앨범이라고 말하고 다녀”라고 얘기하기도 했다. 듣는 사람도 마찬가지인지 한 블로거는 “이건 윤종수 앨범이다.” 이렇게 말하기도 하더라.

 

윤종수와 최문석의 역할이 고상지만큼 크다는 얘기인가. 어떤 부분에서 도움을 받았는지 구체적으로 듣고 싶다.


-고상지: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내가 평소에 스트링을 좋아한다. 연주자에게 어떻게 해달라고 요구하고 조율하는 게 힘든 일이다. 스트링 파트에 주문하는 걸 종수가 맡아서 한다.


-윤종수: 한 마디로 리더다.(웃음)


-고상지: 문석은 피아노뿐만 아니라 미디도 잘해서 일렉트로닉 쪽으로도 도움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앞으로 밴드 형식으로 진행이 되는 건가.


-고상지: 사실 밴드로 활동하기에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공연때 대타를 쓸 수가 없어서 밴드를 안 만들어 왔다. 현재는 스케줄이 맞지 않으면 대타를 쓰기도 한다. 그리고 각자 자유롭게 활동하고 있다. 문석은 싱어송라이터로 자기 음악을 하고 있고, 종수도 여러 팀에서 연주를 한다.

 

이 구성의 멤버들과 함께하면서 연주뿐만 아니라 작곡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 같다.


-고상지: 나는 주로 애니메이션 음악을 듣고 꿈을 키웠다. 그걸 바탕으로 작곡을 하고 어설프게 데모를 만들어서 그걸 문석에게 주면 자기 스타일로 바꿔준다. 그 과정을 오래 하다보니까 접점이 생기지 않았나 싶다. 이제는 처음부터 최문석에게 적합한 곡을 주로 쓰게 되기도 한다.


-최문석: 다른 스타일이 모여서 시너지를 냈다고 생각한다. 고상지의 음악을 하는 프로듀서로서 이 사람들을 어떻게 쓰면 효과가 날까 생각해서 곡 작업을 진행한다.

 

1집과 달리 창작곡이 아니다. 커버 앨범을 만들게 된 계기가 있는지.


-고상지: 이번 음반에 수록된 곡들은 콘서트 때 자주 연주하던 레퍼토리다. 그런데 공연 와주신 분들 중에 CD로 듣고 싶다는 반응이 많았다.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한번 해볼까“ 한 거다. 그런데 막상 스튜디오 작업에 들어가니까 시작에 비해서 스케일이 커졌다. 이 정도의 시간과 열정을 쏟았는데 이걸 2집이라고 하지 않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결론적으로 1집보다 몇 배는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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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상지


여러 탱고 음악가 중에서 아스토르 피아졸라(Astor Piazzolla)의 곡을 연주한 이유는 무엇인가.


-고상지: 라이브 콘서트를 하다보면 확실히 피아졸라의 곡을 연주했을 때 관객들이 좋아하는 게 많이 느껴진다. 그래서 그걸 녹음한 것뿐이지, 피아졸라가 뮤지션들 중에 특히 더 좋아서 한 건 아니었다. 이번 앨범의 전체적인 선곡을 직접 했는데, 다 콘서트 때 했던 곡들이다.

 

'Bordel 1900'의 작업 과정이 궁금하다. 악기 컨트롤이 까다로웠을 것 같은데.


-고상지: 다른 곡은 철저히 편곡을 한 반면, 이 곡은 즉흥적이었다. 기타랑 피아노랑 같이 셋이서 멜로디랑 코드만 써주고, 녹음 버튼을 누르고, 한 번 연주를 하고, “수고했어, 안녕” 하고 헤어졌는데, 집에 들어가서 들어보니 괜찮더라. 그걸 정돈해서 스튜디오 녹음에 들어갔다. 순수하게, 고민 없이 작업했다.

 

서로의 연주에 대해 할 얘기가 더 있을 것 같다. 문석의 피아노에 대해 인상적인 부분은?


-고상지: 'Adios Nonino'라는 트랙이 있다. 그때 컨디션이 좀 우울했다. 그게 긍정적으로 작용한 거 같다. 터치나 흐름에 있어 만족스럽다. 사실 피아졸라의 유명한 피아노 솔로가 있지만, 또 다른 피아니스트들은 자기만의 스타일로 바꿔서 연주한다. 문석이 그 도입을 잘해줬다. 'Chin Chin'이라는 곡에서도 즉흥 연주로 재지하게 한 부분이 있는데 문석이 멋있게 역할을 다해줫다.

 

그렇다면 종수의 연주는 어땠는가.


-고상지: 두루두루 멋있다.(웃음) 정말 간단한 멜로디도 선율적으로 표현을 한다. 내가 마음에 드는 부분이 그 단선율을 소화하는 느낌이다. 리듬감도 좋고. 이번 앨범에서는 바이올린을 퍼커션 기능으로 쓴 구간이 기억난다.


-최문석: 탱고 바이올린만의 특징이 있는데, 그걸 잘 살린다.

 

레코딩때 사운드를 만들기 위해 고심을 많이 했다고 들었다.


-고상지: 정말 고생한 분들이 계신다. 신대섭 엔지니어는 레코딩을 받아준 사람이고, 믹스를 해준 사람은 지승남 씨다. 소리를 빵빵하게 만들어준 사람은 지승남 씨, 그리고 지승남 씨에게 도달하기 위해서 그 이전 작업을 받아준 사람이 신대섭 씨다. 이 악기, 이 장르의 믹싱을 한국에서는 많이 안 한다. 한국에서는 흔한 조합이 아니기 때문에 난해하고, 레퍼런스도 다 옛날 거다. 녹음을 하면서 정신병에 걸릴지도 모를 정도로 시행착오를 거쳤다. 1년 내내 엔지니어님을 괴롭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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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수


앨범을 만들면서 힘든 점이 또 있었다면.


-고상지: 어쨌든 남의 곡을 연주하니까 자신만의 프레이즈와 다이나믹을 만드는 것에 고민이 많았다. 거장들을 따라하지 않고 우리만의 차별화가 필요했다.


-윤종수: 한 곡을 녹음하려고 하면 유튜브에 있는 그 곡에 관련된 모든 바이올린 영상을 다 찾아보고 연구를 많이 했다. 어떻게든 더 좋은 나만의 뭔가를 하려고 노력한 거다. 부담이 많이 됐다. 너무 유명해서.

 

본인이 만든 차별점은 어떤 건가.


-윤종수: 일단 탱고라는 음악 자체가 클래식하긴 한데, 그러면서도 라인에 연주자의 개성이 묻어나는 게 있다. 완전한 클래식도 아니고, 완전한 재즈도 아닌 거다. 대가의 발끝에도 못 미치긴 하지만, 그래도 '윤종수가 연주한 리베르탱고'라고 말할 수 있게끔 발버둥을 쳤다.


-최문석: 나는 전공이 피아노가 아니고 작곡이어서 좀 더 큰 그림을 그리려고 했던 거 같다. 다이나믹이나 템포 같은 것도. 앨범에 들어간 곡들은 정말 많이 들었다. 이걸 틀어놓고 연주하면 똑같이 할 수 있을 정도까지 간 상태에서 진지하게 고민을 많이 했다. 내 터치가 특이한 부분이 있는데, 그걸 고려해서 작업했다.


-고상지: 피아졸라가 재즈 피아니스트들을 많이 좋아해서 즉흥적인 부분이 많다. 그래서 이미 재즈적인 요소나 펑키함이 남아있는데, 문석이는 리듬에 있어서 그게 더 많았다.

 

윤종수는 클래식 연주자로서 탱고를 접하면서 힘들진 않았는지.


-윤종수: 탱고를 아예 몰랐다. 설명이 추상적이기도 하고. 우리나라에서 접하기 힘든 음악, 흔히 제3세계 음악을 하는 사람들은 직접 가서 유학을 하지 않는 이상 어쩔 수 없이 유튜브로 공부를 한다. '바호폰도 탱고 클럽'이 내한했을 때는 대기실 가서 어떻게 하는 거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너무 궁금하니까.

 

1집에 'Ataque'(아타케)란 곡이 있는데, 이번 앨범 제목은 아예 <Ataque Del Tango>다. 표면적인 뜻은 '공격'인데, 이 말이 탱고 음악에서 쓰이는 용어라는 글을 봤다. 그런데 검색을 해도 관련 정보를 찾을 수가 없더라.


-고상지: 아르헨티나에서의 탱고 음악 교육은 한국처럼 교과서가 있는 게 아니다. 구전이고, 들려주고 따라하는 거다. 이론서가 없으니까 검색해봤자 안 나올 거다. 아타케는 '공격'보다는 '어택'이라고 이해하면 쉽다. 잽 같은 느낌. 연주할 때 쓰이는 건데, 힘이 아니라 '압력'을 가하는 부분이 있다. 행주 짜듯이.

 

다음 앨범에는 반도네온이 없는 곡도 있을 듯하다고 들었다.


-고상지: 애초에 반도네온을 접하게 된 것도 어머니가 여행을 다녀오시면서 우연히 선물로 받게 된 거였다. 오히려 피아노로 곡 쓰는 걸 너무 좋아해서 대학교 때 취미로 계속 했을 만큼 반도네온보다는 피아노랑 오랫동안 친했다. 물론 반도네온을 미워한다는 건 아니지만, 내 스스로 연주자로서 솔직히 “반도네온이 나의 영혼이다.” 이렇게까지 말할 수는 없다. 단지 다룰 줄 아는 악기고, 내가 실컷 부려먹을 수 있는 악기일 뿐이다.


-윤종수: 상지의 이야기는 프로듀서의 입장으로서 가능성을 열어놓는 말이다. 필요에 따라 반도네온을 안 넣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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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문석


보컬 있는 곡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없는가.


-고상지: 그런 생각을 하고는 있는데, 쉽지 않다. 아는 만큼 나오는 거 같다. 예를 들어, 피아노는 내가 해봤기 때문에 뭐가 가능한지 불가능한지를 알고 요구할 수 있는데, 드럼 같은 건 혼자 할 수 없다. 보컬은 내가 가진 레인지가 좁아서 힘들다. 그래도 꾸역꾸역 하고 있기는 하다.

 

3집에서 기대해볼 수 있는지?


-고상지: 안 된다.(웃음) 안 그래도 지금 보컬을 편집하다 와서 굉장히 힘들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다.


-고상지: 써놓은 곡은 많은데, 3집 녹음을 어떻게 해야 하나 막막하다. 장르에 대한 것보다는, 당장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될는지 하는 생각. 어쨌든 내년에는 무조건 나온다. 목표는 올해 겨울. 구성은 이미 다 나왔다. 전사가 모험을 떠나는 콘셉트다. 눈밭을 걸어가는 풍경을 상상하고 있다. 또, 영화음악이나 드라마 음악을 해보고 싶기도 한데, 연주곡이랑 OST는 조금 다른 길인 거 같다. 여러 고민이 있다.

 

윤종수와 최문석의 솔로 활동 계획에 대해서도 궁금하다.


-윤종수: 일단 나는 사랑 노래를 써야 한다고 생각은 하는데, 잘 모르겠다. 세상에 넘치지 않나. 내가 아니더라도 많은 분들이 쓰시고 있으니까. 나는 항상 남들이랑 뭔가 다르게 하고 싶다.


-최문석: 싱어송라이터로, 발라드 위주의 음악을 하고 있다. 90년대 감성이 가미되어 있는 그런 음악. 가장 최근에 낸 곡이 '말해줘'다. 임헌일 씨가 편곡을 해주셔서 메이트(Mate) 같은 느낌도 약간 있는 듯하다. 사실 나는 음악에 꼭 사랑이 들어가야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사랑 노래로 계속 활동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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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 '인생곡'이 있다면?


-윤종수: 최근에 잘 듣고 있는 음반은 바이올리니스트 마크 오코너(Mark O'Connor)를 필두로 Chris Thiles, Frank Vignola, Bryan Sutton, Jon Burr, Byron House가 함께한 <Jam Session>이다. 많은 장르를 연주하다보니까 그 장르별로 노력을 해야 되고, 특정 장르에 굉장히 집중하는 시기가 있는데, 요새는 재즈에 몰입하고 있다. 여러 연주자들의 플레이를 듣지만, 결국에는 처음에 아주 잘한다고 생각했던 마크 오코너로 돌아온다. 다시 들어도 역시 최고인 거 같다.


-고상지: '사기스 시로'가 작곡한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이하:나디아) 음악은 평생을 함께 해온 음악이다. 그중 싸울 때 나오는 음악이 있는데, 그 노래가 < 에반게리온 Q >에도 쓰였더라. 순간적으로 “뭐야!” 이랬는데, 편곡적으로 업그레이드 돼서 나왔다. <나디아>에 대한 오마주라고 해야 하나. 제목은 「Gods message」, 신의 말씀이다. 또, <헌터X헌터> 리메이크 애니메이션에 나온 「포식자의 킹덤」이라는 곡도 좋아한다. 들었을 때 영혼이 없어지는 줄 알았다. 개미왕이 나올 때 들리는 음악인데, 개미왕뿐만이 아니라 그 시즌 전반에 걸쳐 등장한다.

 

-최문석: 김동률 씨의 「Replay」. 감정이 너무 좋다. 가사도 그렇고, 표현 방식이 나의 워너비다.


진행 : 김반야, 홍은솔
정리 : 홍은솔
사진 : 이한수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금난새 “나는 클래식을 영업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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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이 있는 클래식을 앞장서서 만든 지휘자, 실력을 떠나 아는 지휘자를 손꼽으면 세 손가락 안에 들 ‘대중적’이고 친숙한 지휘자, 서울부터 제주도까지, 대학교 교수직과 산간 지방 청소년 오케스트라 상임 지휘를 동시에 맡는 지휘자 금난새가 이번에는 『금난새의 클래식 여행』, 『금난새의 교향곡 여행』등을 잇는 『금난새의 오페라 여행』을 출간했다.


인터뷰 하는 날 사무실에서는 유라시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연주가 한창이었다. 연습은 시간을 꽉 채워 끝났고, 인터뷰 도중에도 금난새 지휘자를 찾는 사람들이 불쑥 나타나 당장 처리해야 할 일이 많았다. 그는 현재 유라시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농어촌희망청소년 오케스트라 예술감독, 서울예술고등학교 교장 등 이력으로 치면 누구보다 긴 명함을 가지고 있다. 건강을 걱정할 나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모든 업무가 버겁지는 않을까.


그는 사진 기자가 배경 때문에 어려움을 겪을까 벽에 있는 소품을 직접 바꾸고 인터뷰에 임했다. “내가 이렇게 노련합니다.” 하고 밝게 웃는 모습에서 연륜과 동시에 순수한 열정이 느껴졌다. 하긴 열정 없이 일로만 생각한다면 그 많은 일을 해낼 리가 없다. 정말 좋아서 하는 영업이 제일 잘 통한다고 했던가, 인터뷰가 끝나고 금난새 지휘자가 추천한 음악을 바로 찾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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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접근이 필요하다


오랜만에 저서가 나왔습니다.

 

어떤 분야가 발전하려면 다양한 접근이 필요해요. 우리나라 음악, 예술 분야가 다양성에서는 조금 약해요. 교육도 있어야 하지만, 음악을 다루는 책도 있어야 해요. 물론 작가가 아니라 연주가지만 그걸로 끝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청중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했을 때, 오페라를 소개하는 책도 많고 원서는 더더욱 많지만, 금난새라는 이름으로 오페라 이야기를 쓰면서 나의 향기도 조금 넣어서 가면 좋지 않을까 했어요.


『금난새의 클래식 여행』에서도 새로운 시도를 했었죠.


작곡가에 관한 내용을 넣으려는데, 그런 건 역사고 이미 있는 사실이잖아요. 그대로 적어서 내기보다 작곡가마다 라이벌처럼 구별해서 편집을 새로 해 보자는 아이디어를 낸 거죠. 그 당시 청소년을 위한 해설음악회 하면서 시기가 맞아떨어지다 보니 책이 상대적으로 잘 알려진 것 같아요. 그 이후에 교향곡도 책을 내보면 어떻겠냐는 제안도 들어오고, 이번에는 오페라로 제안이 들어와서 진행한 거예요.


오페라만의 매력을 꼽자면요?


매력이라기보다, 오페라라는 장르 자체가 산업으로 비유하자면 자동차를 만들고 비행기를 만드는 종합적인 기술이잖아요. 그만큼 사람들에게는 다른 장르에서 받지 못하는 느낌을 줄 수 있죠. 같은 오페라라도 연출가가 다르거나 의상, 장소 배우에 따라 느낌이 매우 달라요. 유럽 같은 서양에서도 처음에는 극장에서 했지만 지금은 아레나라든지 큰 운동장 같은 데서도 하고, 어떤 때는 호숫가에서 하면서 많이 발전했어요


누구나 만들고 싶다고 만들 수 있는 분야가 아니고, 종합예술로서의 가능성과 동시에 그만큼 돈이 들어요.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배는 만들어도 아직 항공모함은 못 만드는 거죠. 오페라 팬도 생기고 청중도 많아져야 오페라가 적자 없이 다른 시도를 많이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에요.


오페라 진입 장벽 중에는 언어도 있습니다. 모르는 언어로 노래하는 게 생소할텐데, 오페라 곡은 번안곡이 잘 나오지 않는 것 같아요.


번역하면 의미로는 전달이 되는 데는 효과가 있겠지만 음악의 아름다운 향기는 조금 달라질 수 있겠죠. 외국에서도 이탈리아 오페라를 독일어로 하거나 할 때가 있지만, 유명한 오페라는 대개 스토리를 알아서 원어로 해도 별 무리가 없어요. 그리고 오페라장에 가면 포켓북 책이 있어요. 자그마한 크기로 가사와 내용만 쓰여 있어요. 요새는 산만할지 모르지만 자막도 나오니까 같이 보면 도움이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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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이 있는 클래


클래식 시장을 넓히는 방법의 하나로 해설이 있는 연주회를 도입하셨어요.


청소년 대상으로 하는 해설이 있는 음악회로 시작했지만 이제 청소년만이 아니라 가족이나 어른이 함께 올 수 있는 공연도 하고 있어요. 최근 몇 년 동안 사관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클래식을 가르쳤어요. 육해공군 장교라면 적어도 음악을 좋아하지 않더라도 음악에 입문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리더라면 음악이 어떻게 생긴 건지는 알아야 하잖아요.


다른 음악 장르에서는 굳이 해설이 붙는 경우는 잘 없잖아요. 클래식은 해설이 필요한 이유가 있나요?


감정을 표현하는 말이나 글자가 커뮤니케이션이라면, 음악은 또 다른 커뮤니케이션 언어잖아요. 그 언어를 모르면, 무슨 말인지 모르면 재미가 없어요. 클래식 음악이 우리가 만든 음악도 아니고 갑자기 듣고 이해하기는 힘드니까 방법을 가르쳐 줘야 한다는 생각이에요. 우리가 유럽 사람이라면 가르쳐 줄 필요가 없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모르는 음악을 설명 없이 위대하다고 들이미는 건 마치 이솝 우화에서 주둥이 긴 사람을 초대해 접시에 먹을 걸 주고 먹으라고 하는 느낌이죠. 우리가 아무리 대단한 음식을 만들 줄 알아도 실제로 먹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에요. 눈높이에 맞게 작은 사람은 접시에 주고 긴 사람은 호리병에 주듯이 내가 아는 클래식을 다르게 설명해야 한다 이거죠.


레너드 번스타인을 롤모델로 꼽으신 적이 있습니다. 해설이 있는 음악회도 레너드 번스타인의 영향을 받으셨을 것 같아요.


그 사람 때문에 지휘자 하겠다고 결심했었죠. 1960년대 미국도 클래식 청중들이 많지 않았어요. 유럽에서 온 외국 지휘자들이 주요 오케스트라의 지휘를 맡았죠. 레너드 번스타인은 미국 출신의 지휘자면서 재능이 많은 사람이었어요. 고리타분한 권위 위주의 대단한 지휘자들 위주의 판에서 이 사람은 언변이 좋으니까 친절한 안내자라는 식의 마케팅을 한 거죠. 하지만 그 사람 덕분에 음악가를 좋아하게 되고 청중이 생기고 그런 거거든요. 그런 면에서는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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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시장을 넓히자


우리나라에도 전문 인력, 훌륭한 연주자들이 많이 나오잖아요. 우수한 인력이 국내에서 계속 활동하는 게 과제라고 하셨는데요.


얼마 전에 조성진이 쇼팽 콩쿠르에서 1위를 하면서 유명해졌는데, 좋은 청중이 있으면 이미 알려졌을 연주자들이 콩쿠르에 우승해야지만 잘한다고 인정을 받잖아요. 옛날부터 그런 방식을 지양하는데, 저변이 확대되어야 합니다.


30년 전부터 청중이 중요하다 말하고, 청중을 갖추려고 노력했어요. 그런 의미에서 연주자로서, 지휘만 해서도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죠. 저는 이미 나이가 들었으니(웃음)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된다고 생각해요. 대부분 우리나라 음악계는 교육으로 살아가죠. 훌륭한 콩쿠르에 합격하는 사람을 기르는 데 주력해요. 그것도 음악의 발전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시장의 발전과는 또 다른 문제잖아요. 많은 음악가는 사람들이 듣든 말든 자신의 연구를 발표해요. 그런 상황에서 시장을 생각하는 저 같은 사람이 더 나와야지 각 분야에 도움이 되고 연주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활동하는 장이 생긴다고 생각해요.


뮤지컬은 오페라보다 후대에 만들어진 장르지만 지금은 오페라보다 더 많은 층에서 인기를 누리고 있는데요. 오페라의 경쟁 상대로 뮤지컬을 보고 계신가요?


그렇게 봐야죠. 지금 서울예고 교장을 맡고 있어요.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재능있고 훌륭한데 이들의 라이벌은 다른 클래식 음악가가 아니라 소녀시대라고 생각해야 한다 이거죠. 생각의 변화가 필요해요. 오페라는 자기네들끼리 잘 한다 못 한다 할 게 아니라 뮤지컬이 25년 사이에 청중과 시장이 엄청 커질 동안 발전할 생각을 해야죠.


학생들의 연기력 이야기도 하셨어요.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연기도 잘 해야 한다고요.


당연해요. 아이들이 오페라를 하려면 말하는 방식과 태도가 다 연극이 되어야 하는데 노래만 할 줄 아는 거예요. 뮤지컬단 들어가면 웃어야 하고 춤춰야 하고 모든 걸 다 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경쟁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지금 인터뷰하는 충무아트홀에서는 일 년 내내 뮤지컬 공연이 열려요. 좌석의 80%는 항상 표가 팔려요. 하지만 오페라는 한 달 이상 하는 작품이 없어요. 지금도 연구발표에 머무르고 있어요. 클래식하는 사람들이 어렵지만 생각의 변화가 정말 필요해요. 저는 평론가가 아니니 실제로 뛰면서 내 의견을 주장하는 거죠.


요새 젊은 친구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배우나 음악 등이 있으면 그걸 좋다고 이야기하면서 남들에게 권하는 걸 ‘영업한다’고 말하더라고요. 선생님도 클래식이 좋아서 ‘영업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잘하고 있다는 뜻이죠?

 

네, 잘하고 계세요(웃음)


그거면 됐죠(웃음). 아까와 같이 음악가들이 시장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개념이 없어요.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독립,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중요했어요. 물론 사람이니까 도움을 받기도 하죠. 선생님이 가르치는 것도 도움이라면 도움이지만 내가 노력을 해야 해요. 그래서 어떻게 하면 자신의 힘으로 상황을 개척할 수 있는지 등에 관심이 있어요. 내가 개척정신이 있기 때문에 이미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백번 더 알고 고마워 하는 거죠. 누가 길을 놨어요, 내가 놔야 하는데 누가 먼저 놔줬으니 얼마나 고마워요. 하지만 나는 또 새로운 길을 찾는다 이거예요.


책을 내는 것도 비슷한 시도인 거죠?


책을 내는 데 더 창의적인 연구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있어요. 같은 글자지만 읽었을 때 더 재밌는 책이 있잖아요? 단원들한테는 오케스트라에서 일어나는 일을 모아서 책으로 만들어 보라고 이야기하기도 해요. 나는 음악가니까 음악만 한다기보다 현장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에피소드도 보여주는 거죠. 카메라에 관심이 있으면 틈틈이 사진을 찍는다든지요. 여러 각도로 변화가 와야 하는 시기가 왔고, 여기서 더 나아가려면 어떤 융합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거죠. 여러 가지가 모여 있는 게 마치 우리 삶이 오페라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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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음악


공교육에서는 오케스트라를 하거나 체육 활동을 하는 등의 교과 외 활동이 적습니다. 클래식도 지식 위주로 받아들이는 인식이 더 많은 것 같아요. 교육이 전반적으로 바뀌어야겠다는 생각은 없으신가요?


계속 청중 이야기를 했는데, 이제까지 음악은 음악하는 소수의 엘리트만 있으면 된다는 생각이었어요. 마치 올림픽 메달 따는 것처럼요. 하지만 소수만 열심히 달리는 것에서 나아가 체육 활동을 통해 다른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졌을 때도 승복하는 스포츠맨쉽을 배우는 단계까지 나아갔잖아요. 음악계도 콩쿨 입상하는 걸로 우리가 대단한 나라라고 할 게 아니라는 거죠.


대학생 연합 오케스트라와 농어촌 희망청소년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계십니다.


대학생 연합 오케스트라는 한지 한 5년 됐어요. 인구가 이만, 삼만인 군 단위의 도시에서 삼십 명 되는 오케스트라를 만들어서 하자고 할 때 시간을 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 바쁘다 하고 안 해도 되는데 왜 했겠어요. 음악 전공자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음악을 실제로 연주해 본 사람,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도 필요하다는 거예요. 한국식으로 말하면 우리는 대학교수만 중요해요. 초등학교 선생님이 중요하지 않다기보다 급수가 다르다고 생각하죠. 대학교수의 역할이 따로 있고, 초중학교 선생님의 역할이 따로 있어서 다 연계가 되어야 한다고 봐요. 어디를 맡아달라고 제안이 왔을 때 대학이니까 가고, 아니면 안 가는 식은 아니에요.


하지만 예술계에서는 엘리트학교인 예고 교장을 맡게 됐잖아요? 그래서 아까처럼 소녀시대를 언급하는 거죠. 좋은 연주자가 되려면 사회를 볼 수 있는, 남을 뒤돌아보는 연주자가 되어야 하니까. 잘 가르치는 선생으로 내 제자가 콩쿠르 되면 훌륭하다고 여기는 건 아니라는 거죠.


돈키호테 같은 성격이라고 다른 방송에서 나온 적이 있어요.


대부분이 이 방향으로 가는데 나는 다른 방향으로 가니까요. 지금 하는 일을 그만뒀을 때 줄리아드에서 교장으로 와 달라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만, 시골에 가서 아주 외딴 폐교에 좋은 음악학교를 만들 수도 있어요. 우리는 보통 더 좋은 곳에 가는 것만 생각하잖아요. 내 능력은 다른 곳에서 스카우트될 수 있게 해야 하지만 원하는 건 저 시골에 가서도 해야 해요.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와 전문 연주자를 동시에 이끌고 계시잖아요. 둘의 차이가 있나요?


모든 프로페셔널은 기술적으로는 전문가지만 내면은 아마추어여야 해요. 본인이 하는 일을 사랑해야 하죠. 내가 잘한다고 자랑하는 게 아니죠. 음악이 너무 좋아서 음악으로 메시지를 주는 게 아마추어 정신이에요. 물론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많이 벌고 좋은 음악 하면 좋겠죠. 하지만 독일에서 살면서 내가 돈 한 푼 없는 학생이어도 훌륭한 음악을 들을 수 있고, 도서관에 가면 책이 있고, 내가 하고 싶은 연구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기쁨이 있다는 걸 그 사회가 가르쳐 줬어요. 우리가 남들보다 돈과 명예가 적다 해서 불행하고 남보다 많아서 행복한 바보 어른이 되면 안 된다는 걸 독일에서 배우고 느꼈어요. 그래서 우리 사회가 변해야 하고 그런 기회를 줘야 해요.


<언제나 칸타레> 등 방송에서 음악 예능 프로그램도 나오셨어요.


얼마 전에 대전시향 지휘하려 내려갔는데 <언제나 칸타레>에서 트롬본 불었던 관할 경찰서 형사가 왔더라고요. 얼마나 재밌던지(웃음) 음악이 생활 속에 들어가는 건데 거절할 이유가 없죠. 그리고 방송을 통해서 우리 식으로 클래식을 어떻게 상품화할 수 있을까, 어떻게 융합할 수 있을까가 숙제니까 또 연습한 거예요. 재밌잖아요.


젊은 지휘자, 새로운 지휘자도 꾸준히 나오고 있습니다. 포디엄에 서려는 사람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나요?


이제까지 한 이야기가 전부 포함되겠죠? 성남시향 할 때도 젊은 지휘자를 세우려고 했어요. 아까 말한 대로 독립심이 중요해요. 우리 음악계는 다 자기 선생이 있어야 연주를 해요. 지휘자는 개척 정신이 필요해요. 교회에서 지휘하는 것도 지휘고 아마추어 합창단 지휘도 지휘예요. 지휘자는 끈기가 있어야 해요.

다른 음악 장르도 들으시나요?


에릭 가드너라는 재즈 피아니스트가 있어요. 그 사람이 1960년대 낸 음반을 지금 50년 가까이 들어요. 다른 재즈 연주자도 워낙 많지만 어릴 때부터 들어서 좋아해요. 「Misty」라는 곡 알아요? 한 번 들어보세요.


소녀시대 음악도 들으시나요?


미안하지만, 아니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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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난새의 오페라 여행금난새 저 | 아트북스
그동안 클래식을 대중에게 친숙한 장르로 만드는 데 앞장서온 지휘자 금난새가 이번에는 오페라 여행을 이끄는 가이드로 나섰다. 저자는 고전음악사에 큰 획을 그은 오페라 작곡가들의 이야기를 쉽고 다정하게 들려줄 뿐 아니라, 엄선한 작품들을 한 편 한 편 자세하게 풀어 해설해준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안미선 “백화점이라는 공간 속, 사람들은 보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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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으로 좀 봐주면 좋겠어요. 고객만 사람이 아니라, 거기서 일을 하는 직원들도 사람이라고. 내가 뭔가 좀 즐거워야 하고, 내가 피곤한 게 풀어져야 고객한테 응대를 할 때에도 좋게 응대를 하는데, 항상 찌들어 있으면 웃음이 나올 수가 없거든요. 백화점이 뭔가 노동자에게 요구를 하려면 그만큼 합당하게 해주고 난 다음에 요구를 해야, 노동자도 해야 되는 몫이 있는 거죠.(205쪽)

 

2013년, 백화점 노동자의 자살 소식이 두 번이나 전해졌다. 고객 ‘갑질’로 온갖 수모를 당하는 백화점 노동자들의 이야기도 왕왕 있었다. 폭언과 폭행에 무차별로 노출된 백화점 노동자들의 이야기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한국여성민우회는 2013년 사건을 계기로 백화점 노동자들의 노동 현실을 모니터링하는 시민 모니터링(일명 ‘우다다액션단’)을 시작했다. 열네 명의 백화점 노동자들과 인터뷰를 진행했고, 그들의 이야기가 백화점 노동의 실태를 보여주는 한 권의 책 『백화점에는 사람이 있다』이 되었다.


『백화점에는 사람이 있다』를 공동 작업 한 안미선 작가는 이 이야기가 백화점이라는 공간에 국한된 ‘다른’ 이야기가 아니라고 말한다. 고용 불안정, 매출 압박,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적 문제 등은 “대부분의 저임금 노동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라는 것. 때문에 이 책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겪은 일터에서의 경험을 나누고 변화의 계기를 만들길 바랐다. “상황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가변되는 것이죠. 변화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모든 것의 첫걸음이에요.”라는 작가의 말에 밑줄을 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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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분들이 유언을 남긴다면


백화점 노동자의 자살이 여러 번 뉴스가 되기도 했죠. 그렇지만 백화점의 노동환경을 막연하게만 알았던 거예요. 책은 읽으면 읽을수록 놀라운 내용들뿐이었거든요. 쓰면서 어떤 생각을 가장 많이 하셨어요?

 

자살에 대한 것이 사회적으로 공론화되면서 한국여성민우회에서도 캠페인을 계속 했었는데요. 백화점이라는 공간은 소비의 공간이고, 굉장히 고급스러운 공간이죠. 한편 사람들은 백화점이라는 공간은 보지만 그 속에 있는 사람들은 보지 않아요. 그것은 어떻게 보면 사회 전체가 물건과 이윤을 중심으로 보고 있는 거라 할 수 있겠죠. 이것이 백화점 노동자가 죽은 것과 같은 원인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백화점 노동자 인터뷰를 봤을 때 많이 놀랐어요. 이 사실은 사람들도 잘 모를 거라고 생각했죠. 노동자 한 분, 한 분의 목소리가 무척 호소력 있었기 때문에 그 목소리의 결을 살리면서 이분들이 증언한 백화점 노동의 현실을 다시 사회에 공유할 필요가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매출 부분을 쓸 때 가슴이 아팠는데요. 제가 글을 써놓고도 울컥하는 느낌이 있었거든요. 왜냐하면 살아남아서 증언할 수 있는 노동자들 뒤에 실제로 그 노동을 견디지 못하고 돌아가시거나 병든 분들이 있는 거잖아요. 이런 분들은 침묵 상태고요. 그래서 저는 이분들이 말하지 못한 이야기가 뭘까 많이 생각했어요. 또 이런 표현은 좀 그렇지만 이분들이 유언을 남긴다면 세상에 어떤 증언을 하고 싶을까 생각하면서 작업을 했던 것 같아요.

 

매출 압박 때문에 끝내는 빚에 몰리고, 우울증을 겪거나 자살을 생각하는 이야기가 나와요.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큰 문제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그러나 백화점은 이를 한 명의 사람이 아니라 비용으로 보잖아요.


게다가 여성의 노동이 거의 서비스 판매직에 몰리고 있는 상황이죠. 이러한 여성의 저임금 문제는 사회적인 문제예요. 여성 열 명 중 네 명이 저임금 상태로 일하고 있거든요. 또한 백화점이라는 독과점화한 유통기업이 이윤은 독차지하면서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직접 고용하지 않고, 소모되는 도구처럼 생각하는데 정작 노동자들은 끝없이 매출을 올려야 하는, 이런 현실은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 대부분의 저임금 노동자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어요. 백화점은 상징적인 공간이고, 이런 현실은 누구나 다 공감할 수 있는 현실인 거죠. 이를 토대로 자기 일터의 경험을 이야기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요.


이 책은 정책적인 제언이나 법적 개선을 알리는 면도 있지만 일반 사람들의 공감을 확산시키는 면도 있어요. 왜 이 사람들이 남이 아닌가, 어떻게 이 사람이 나와 연결되어 있는가, 라는 것을 이야기할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시민운동 차원에서 기획된 거예요. 이 책을 읽은 누군가가 공감을 했으면 좋겠어요. 거기에 있는 사람들의 관점을 말이에요. 사람들이 물건을 보던 시선을 돌려서 사람을 볼 수 있다면 그것으로 이 책이 목적을 달성한 것 아닌가 생각하죠. 결국 세상은 사람들의 힘으로 바뀌는 거니까요. 내가 어떻게 해도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많은 무력감들이 있는데요. 내가 공감한 이것이 결국 세상을 바꾸는 단초가 될 것이라고 하는 희망, 용기를 함께 나누고 싶어요.

 

문제의 핵심은 백화점의 엄청나게 복잡한 고용구조일 텐데요. 여러 목소리가 ‘IMF’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끌어요.


1998년 ‘근로자파견법’이 통과되고요. 2005년에는 ‘기간제법’ 같은 문제가 확산되었죠. 그러면서 간접 고용이 굳어지게 된 건데요. 대부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그 시점부터 많은 변화들을 겪었기 때문에 그렇죠. 백화점 노동자들이 ‘갑질’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IMF 이전이 오히려 고객들이 착했던 것 같다고 하고 있거든요. 지금은 어떤 면에서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고 있는 거잖아요. 이건 사람들이 갑자기 사악해졌기 때문이 아니에요. ‘근로자파견법’이나 IMF 이후에 기본적으로 상황이 삭막해지고 피폐해졌기 때문에 그렇죠. 모든 사람들의 관계가 악화된 거예요. 소비자나 생산자, 서비스직 노동자 모두의 관계가 적대적이고, 서로에 대해 지배적인 관계가 되었는데요. 바로 그 토대가 된 것이 고용 불안정의 문제였어요. 백화점이라는 공간에서 사람들이 소비자와 노동자로 만나는데요. 사람들은 이것이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하잖아요. 돈이 있으니까 상품을 살 수 있고, 그들은 내가 내는 돈으로 임금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런 분리가 조장된 것도 다 고용 불안정이 본격화된 시점과 맞물린 것 같아요.

 

그 결과, 백화점의 노동환경이 얼마나 나빠졌고, 백화점이 노동자에게 얼마나 치졸해졌는가를 봐야겠죠. 백화점의 꽃이라고 하는, 화장품 매장이 모여 있는 1층에는 안경 낀 노동자가 없다는 사실, 엄청난 CCTV의 수, 열악한 휴게 공간은 물론 물도 마음대로 마실 수 없다는 사실 등 실로 엄청나요. 아주 기본적인 인권이 지켜지지 않는 곳이 백화점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국여성민우회가 진행한 캠페인 중 백화점에 요구안을 낸 것이 있어요. 시민들이 백화점에 요구하는 노동자의 권리 선언 같은 건데요. 노동자에게 물을 마시게 해달라, 노동자가 엘리베이터를 사용 하도록 해달라는 등의 내용이 들어있어요. 노동자로서의 대접을 해달라는 내용이죠. 이것이 백화점에 전달이 되었고요. 이런 상황들이 분명히 있었는데도 이전까지는 보이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 우리 사회가 무관심 했다는 거거든요. 물건을 파는 서비스 노동자들에 대한 하대가 있었기 때문인데요. 그런 것에 대해 노동자들의 죽음이든, 어떤 자기표현이 있었고요. 그것에 시민들이 눈길을 돌리고, 캠페인에 동참을 하고, 요구안들을 백화점에 전달하게 된 거죠. 이런 내용이 또 이런 책으로 만들어져서 사람들이 읽을 수 있게 됐고요. 또한 감정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입법들이 준비되고 있는데요. 이런 것을 기반으로 제도적인 확충이 될 수 있다면 변화가 불가능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상황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가변되는 것이죠. 변화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모든 것의 첫걸음이에요. 변화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것에서부터 많은 것이 시작되지 않는 것 같아요.

 

프랑스, 이탈리아 등에서는 노동법을 만들어 영업시간과 공휴일 영업시간을 제한하고 있죠.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말씀에 공감해요. 결국 사회적 합의의 문제인데요. 다만 그런 면에서 한국 사회는 아직도 후진적인 요소가 너무 많은 게 아닌가 싶어요. 그것이 사람들을 무력감에 빠뜨리는 것 같고요.


사람들이 많이 무력하기도 하지만 협력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공감대가 많이 확산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눈에 띄지는 않지만 말이죠. 많은 사람들 삶이 열악해졌죠. 저임금 문제가 더 이상 한두 사람의 문제가 아니잖아요. 가계 부채 문제, 지속 가능한 삶의 문제는 이제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문제가 됐어요. 자신의 일터에서 만나는 동료와 다른 일터에 있는 노동자들이 나와 같이 임금을 받아야 생존할 수 있는 사람들이고, 우리가 이 구조 안에 같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 공감대가 많이 확산됐다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협력과 소통으로 사람이 살아남는 것이지 기존 체제가 요구하는 대로 경쟁하면서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는 공감대가 보이지 않게 확산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요. 그러한 것에 대해 사람들이 행동하고, 표현하고, 요구한다면 그런 법들이 우리나라에도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특히 백화점 같은 경우 고객과 노동자, 기업이라는 세 가지 축 중에서 고객, 시민들의 태도 변화가 많은 변화의 한 축을 담당하는 지점이거든요. 같은 노동자로서 백화점 노동자를 바라보는 태도 변화와 행동이 말이에요. 백화점 노동자가 서비스 노동자기 때문에 그래요. 고객들, 시민들이 다른 이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바꿀 수 있는 주체적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런 메시지에 귀를 열고, 다르게 세상을 보고, 동참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봤으면 좋겠어요.

 

많은 사람들이 고용 불안정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으니까요. 비정규직 노동자도 많고요. 결코 남의 일이 아니죠.


지금 같은 경우는 압축 성장의 부작용으로 차별이나 계층 간의 갈등, 소수자에 대한 배제 같은 것들이 많이 드러나고 있는 상황이에요. 여기에서 사람들이 자신들의 분노와 체제에 대한 분노를 다른 이에게 전가하고, 차별하는 것으로 격화되고 있는 시점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것이 가시화되었는데요. 그 원인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연결점을 찾느냐에 따라서 우리가 협력할 수 있느냐, 끝없이 경쟁하고 누군가를 배제하면서 ‘그래도 나는 괜찮아’라는 자기 위안에 갇힐 것이냐 하는 선택의 기로에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힘들수록 위축되지만 좀 더 주변 사람들의 삶이나 다른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겠죠. 그런 면에서 책이나 여러 매체들, 사람들 개개인의 의견들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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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와 연대


복잡한 고용구조는 노조 결성을 어렵게 하는 요소기도 합니다. 노조가 있는 노동자들의 근무 환경은 상대적으로 낫잖아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무엇부터 해결되어야 할까요?


사실 노동조합 문제는, 안정적으로 보장되고 있는 것이 아니고 열심히 싸워서 얻어내는 과정이거든요. 그 안에서도 노동조합을 유지하기 위해서, 또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서 무척 분투하는 과정들이 있어요. 때문에 노동조합이 있다고 해서 안정적은 상황은 아니죠. 게다가 백화점 노동자 같은 경우는 노동조합 가입률이 많이 낮은 상태고요. 서로 다른 고용 구조 때문에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부분이라서 간단하지가 않아요.


노동조합을 만들고, 그것을 굳건히 해야 한다는 것이 하나의 과제고요. 시민들이 노동조합을 지지하고 노동자의 권리를 지지하면서 연대해 가는 것도 한 축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백화점 노동자들이 스스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권리 확충을 하는 행위자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은 계속해서 그 권리가 존중되고 확대되어야 해요. 민주노총이나 여러 영역에서 그런 노력을 많이 하고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 지켜지지 못하는 권리와 역할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의 관심이 반드시 필요해요. 지지하고, 적어도 비난은 하지 않는 그런 역할을 하는 사회 풍토가 형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그런 분위기를 어떻게 만들어갈 수 있을까, 이런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거든요.

 

적어도 비난하지 않는 분위기가 필요하다는 말은 너무 가슴이 아프네요.


사람들은 일상적인 영역과 노동의 영역이 분리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자신의 일상적인 삶을 귀찮게 하는 존재로써 다른 사람의 권리 운동을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요. 백화점이라는 공간은 내가 돈을 쓰는 소비의 공간이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일터기 때문에 그들의 얼굴이나 그들의 삶의 조건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는 거죠. 우리는 사실 그런 교육이나 훈련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진 인식의 한계가 있어요. 그렇지만 그것은 고정된 게 아니에요. 자신의 삶과 맞닥뜨리면서 바뀌어 가는 과정에 있는 거죠.

 

반복해서 개인들의 인식 변화, 참여와 연대 같은 말씀을 하시는데요.


네, 노동의 문제는 전체적인 문제기 때문에 딱 한 사람의 힘만으로 바꿀 수가 없어요. 이 책 작업을 하면서 책의 방향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고민을 했었는데요. 열두 명의 백화점 노동자들이 굉장히 큰 용기를 내서 이야기를 했고, 그 목소리 하나하나가 특색이 있거든요. 이 책에서는 구술이 자료 인용에 그치지 않아요. 각자의 음색, 그들의 삶의 태도를 살리려고 애를 많이 썼는데요. 책을 읽는 사람들 자신의 개인적인 삶과 그분들의 목소리가 만나서 일으키는 공명의 자장을 기대했었어요. 책이라는 매체는 한 사람의 독자를 만나는 것이고, 한 사람의 독자는 그 책의 의미를 완성해가는 것이니까요. 독자가 적극적으로 텍스트를 만드는 주체자로 참여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다못해 자기가 백화점에 갔던 경험, 주변에서 했던 서비스 노동의 경험 이 모든 것들이 독자 안에서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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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위의 직종, 여성직


앞서 언급했듯 ‘특히나’ 이것은 여성 노동의 문제잖아요. 다층의 문제를 내포하고 있는 것인데요.


여성 취업 인구 중 80%가 넘는 인구가 3차 서비스 부문에 집중되었다는 것은 성별 분리가 되었다는 의미예요. 여성들은 이 사회에서 대부분 서비스 일을 하게 되는 존재로 이미 구조화된 것인데요. 반면 기술직, 관리직이나 사회에서 일을 만들고 판단하는 직종은 남성이 대부분이죠. 백화점에서도 관리자는 대부분 남성이거든요. 노동법의 보장을 받지 못하는 하위의 직종이 ‘여성직’인 것이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현상이에요. 여성 노동자가 우리 사회에서 차지하고 있는 일의 위치와 그런 사회적 장벽들을 책을 통해 함께 논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백화점 노동은 어떻게 보면 눈길을 끌지만 여성 노동의 맥락으로 봤을 때는 굉장히 일반적인 이야기고, 한 사례인 거니까요.  

 

최근 여러 분야에서 여성적 시각으로 다시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그간 여성과 노동 이야기를 계속 해온 입장에서 이런 페미니즘 이슈를 보며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도 궁금하더라고요.


저는 여성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오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에요. 큰 상처를 받았으므로 거기에 대해 자기를 표현하는 것이 사람의 권리고요. 여성 혐오나 여성의 문제는 굉장히 오랫동안 우리 사회에 지속되어온 문제예요. 그것이 명명되고 그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뚜렷한 목소리들이 젊은 여성들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을 건강한 목소리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이것을 차별이나 배제라는 좁은 프레임에 가두면 안 돼요. 사람들이 사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의식주라고 저는 여전히 생각을 하는데요. 자신이 사회의 구성원으로 사는 데 필요한 정당한 권리를 받지 못하는 것은 구조적인 문제거든요. 그것을 소수자 때문에, 여성 때문에, 이주자 때문에, 이런 식으로 대하는 것은 자신이 받은 차별을 그들에게 투영하는 것이고, 그건 전혀 해결책이 되지 못하죠. 특히 그러한 불평등 구조에서 받은 분노를 자신보다 약한 혹은 자신보다 약해야 하는데 약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여성이나 소수자들에게 전가하는 방식은 굉장히 우려스러워요. 이런 것들이 방향을 틀지 않으면 우리 사회에 큰 위기가 될 거라 생각해요. 적어도 그러한 것이 사실이 아니라고 지적하는 목소리는 옳다고 생각하죠.

 

확실히 지금은 뜨거운 상태 같아요. 워낙 결이 다른 많은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고요.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하기도 한데요.


거기에 대해서 제가 깊이 말할 것은 아니지만요. 저는 그것이 결국 불평등의 문제이지 않나 생각하는 거죠. 우리의 삶을 이루는 기반이 붕괴되고 있는데요. 사람의 욕망은 무한하지만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은 유한해요. 그런데 왜 서로를 동료로 보지 못하는 것일까, 왜 저 사람은 나와 다르고 짓밟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런 생각을 많이 하거든요. 이 차이를 없애는 문화적인 작업들이 많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 경우 저서 작업일 수 있겠지만 다른 분야에 계신 많은 분들, 시민운동을 하시거나 책과 책을 만나게 해주시거나 하는 많은 분들의 활동이 가지는 역할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죠.


모두의 문제예요. 이 사람과 저 사람이 싸우니까 그들의 문제인 게 아니라 모두의 문제인데요. 그 문제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더 넓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워낙 구조적으로 하위직을 여성이 많이 담당해왔기 때문에 불평등의 문제와 젠더 문제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많은 것들을 바로 볼 수 있는 사람은 사실 차별 받는 사람의 시선일 때가 많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럴 때 이것은 옳으니까 네가 바뀌어, 이렇게 하기는 쉽지가 않죠. 많은 것을 요구하고, 억압 받은 목소리들이 유통이 되고, 그런 힘들이 결집돼야 변화의 계기들이 생기는 거죠. 기득권을 가진 사람은 그것을 내려놓기가 참 어려운 것 같아요. 또한 저는 이제 여성들의 이야기는 결국 남성의 문제고 사회를 더 평등하고 안정되게 만드는 문제기 때문에 조금 더 넓은 시야를 가지는 것이 결국 그들을 위해서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선생님께서 하고자 하는 글쓰기가 궁금합니다.


그보다 먼저 『백화점에는 사람이 있다』는 여러 사람이 협력해서 만든 책이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어요. 백화점 노동을 가명으로 용기 내 증언해주신 분들이 있었고요. 그런 것을 활동으로 이어간 한국여성민우회가 있고요. 김종진 선생님의 연구나 기타 백화점 서비스 노동자들에 대한 연구가 많이 선행이 되어 있었어요. 또 법제화를 위한 노력들도 있었고요. 그렇게 협력해서 만든 책이라는 점을 꼭 밝히고 싶어요. 저는 여성들이 협력해서 이 사회에 필요한 지식을 생산해내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 책도 사실 굉장히 많은 백화점을 지역에 계신 분들이나 많은 이름 없는 시민들이 함께 해서 지식화한 거거든요. 그런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는 여성의 목소리에 관심이 있어요. 여성의 목소리라는 것은 결국 그 사회에서 젠더를 보는 관점, 그 시대에서 자원이 분배되는 방식, 그 사회의 모습을 모두 드러내는 것이거든요. 여성들이 그것을 어떻게 겪었고, 어떻게 기억하는가, 개인의 목소리로써 그것이 어떻게 표현되는가, 이런 것에 관심을 갖고 작업을 해왔는데요. 앞으로도 그런 작업을 할 것 같아요. 한 여성이 자신의 얘기를 했을 때 그것이 지극히 사적인 얘기라 하더라도 사회의 모순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지극히 사적인 목소리 속에 진실이 있는 것이다, 라고 생각을 하고요. 활동이나 연구의 영역이라기보다 표현이나 문학의 영역에 이것이 더 가까울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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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 노동 문제에 관심 있는 독자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 알려주세요.


한국여성민우회에서는 이 책 외에도 출판 사업을 꾸준히 해왔어요. 『뚱뚱해서 죄송합니까?』, 『있잖아...나, 낙태했어』, 『내가 살 집은 어디에 있을까?』이런 책들이 있는데요. 여성이 노동을 할 때 사적 영역이라고 하는 섹슈얼리티나 가족 등의 다양한 영역들이 어떻게 교차되어 있는지를 말하고 있어요. 제가 쓴『여성, 목소리들』도 있고요. 『기록되지 않은 노동』은 <일다>에 연재되었던 것인데요. 많은 여성의 노동들이 10년이나 20년 안에 새로 만들어진 직종들이거든요. 그것이 똑같은 방식으로 저임금으로 가는 모습, 그것을 일하는 사람들이 전 세대가 되어가는 상황들을 기록한 책이에요. 여성 노동에 대해 조금 더 깊은 얘기를 들으려면『여자, 노동을 말하다』라는 책을 읽으면 좋을 것 같아요. 노동자들이 노동현장에서 겪게 되는 건강 문제를 얘기한 『노동자, 쓰러지다』도 있고요. 현장을 르포 형식으로 같이 보여주는 그런 책들은 많은 독자 분들의 시야를 넓혀줄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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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점에는 사람이 있다안미선,한국여성민우회 등저 | 그린비
『백화점에는 사람이 있다』는 휘황찬란한 백화점 공간 이면에서 고강도의 노동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물건에 대한 이야기는 넘쳐나지만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귀한 시대”에, 이 책은 우리에게 친절하게 물건을 건네주는 사람, 바로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혜진 “소설은 정체불명의 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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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비』의 인물들은 모두 ‘무언가’를 하고 있다. 치킨 배달을 하고, 좌판에서 물건을 팔고, 1인 시위를 하고, 줄넘기를 하고, 비눗방울을 분다. 생계를 해결하기 위해 노동을 하는 이도 있고, 순수하게 행위 자체에 몰입하는 이도 있다. 모두가 ‘일’을 한다. 그러나 그들은 늘 질문 받는다. ‘무슨 일을 하느냐’고. 주변 사람들이 묻고, 스스로가 묻고, 그도 아니면 독자들이 묻는다. 그들은 무엇을 위해, 무엇을 하는 사람들일까.

 

대답은 다양하다. “이런 일은 돈이 없어서 하는 거고. 어디까지나 잠시만 하는 거고. 이런 건 내가 진짜 하려는 일이 아니”라고 말하는 누군가는 “어쨌든 더 나은 일”, “좀 제대로 된 취업”을 해야겠다고 말한다. 사람을 ‘처리’해야 하는 누군가는 “일에 이유가 어디 있어. 돈 벌려고 하는 거지 뭐”라고 말한다. 때때로 그들은 “난 아무것도 안 해요” 혹은 “이것도 진짜 일인데요”라고 답하지만, 그 결과 신분을 의심 받거나 ‘이런 건 진짜 일이 아니라고’ 비난 받는다.

 

그들에게 쏟아졌던 질문들은 고스란히 독자의 것이 된다. 아홉 명의 주인공이 들려준 대답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에게 일이란 어떤 의미이고, 지금 우리는 무슨 일을 하고 있나. 정말 원하는 일은 무엇이고, 언제쯤 그 일을 하게 될까. 아직 풀지 못한 문제들은 안은 채 김혜진 작가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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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일’을 시작하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예요


『어비』를 읽으면서 ‘어쩌면 이건 ‘일’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어요. 

 

이렇게 써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는데요. 쓰고 나서 보니 도시에 살고 있는 아직은 젊은 사람들, 그리고 진짜 일을 하기 전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인 것 같아요. 「와와의 문」 같은 경우에는 ‘글을 쓴다는 것은?’이라는 주제로 청탁을 받고 쓴 소설이기 때문에 조금 성격이 다른 데요. 그 작품을 제외하고는 비슷한 것 같아요.

 

4년 동안 발표하신 단편 중에서 아홉 편을 골라 엮으셨는데요. 수록작 사이에 이런 공통점이 있다는 걸 아셨어요?


데뷔를 하고 나서 1년, 2년 정도 지나니까 ‘내가 이런 데 관심이 있었구나’라는 생각도 들고요. 모아놓고 보니 ‘그동안 이런 걸로 고민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

 

「와와의 문」의 ‘나’는 글을 쓰는 사람이잖아요. 혹시 작가님과 닮은 모습도 있지 않을까, 궁금하더라고요.


(소설 속의 ‘나’와 마찬가지로) 제가 그때 영어 학원을 다니고 있었는데, 거기 늙고 키가 작은 여자분이 계셨어요. 말레이시아인가, 어디에서 오신 분이었는지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는데, 친하게 지냈었어요. 서로 말을 잘 못하니까 마음은 있어도 많이 대화를 할 수는 없었고요. 그런 부분에서는 제 모습이 일부 반영이 된 거겠죠. 소설집 뒤에 실린 해설을 보면, 노태훈 평론가님께서 「와와의 문」의 마지막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셨어요. “소수자를 소설의 인물로 그려 내는 것은 혹시 소설가의 자기 위안은 아닐까, 그들을 너무 손쉽게 소수자라고 명명하는 것은 아닐까, 어떤 시선으로 그들을 들여다봐야 할까” 그런 고민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요. 이 소설은 ‘글을 쓴다는 것은?’이라는 주제로 쓰게 된 거라서 ‘글을 쓰면서 어떤 사람을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에 대해서 쓰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와와의 문」을 보면서 조금 잔인하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런데 인터뷰어인 저도 다르지 않은 것 같더라고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캐낸다는 게, 가끔은 잔인한 일처럼 느껴질 때가 있거든요.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으세요?


있죠. 소설이 어떤 개인의 이야기이고 나의 이야기만으로는 안 되는 거잖아요. 그래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보려고 하고, 그걸 소모적으로 쓰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는 하죠. 그런데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는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신형철 문학평론가는 “이 작가가 언제나 ‘바깥’이 아니라 ‘안’에서 쓴다”고 하셨어요.

 

저도 신형철 선생님께서 쓰신 글을 봤는데요. 그 말씀이 무슨 의미일까 생각을 해봤는데, 잘 모르겠어요. 그게 무슨 의미일까요...(웃음).

 

『어비』를 보면 인물의 감정이나 상황에 대한 서술이 무척 세밀하고 사실적이에요. 직접 경험한 사람의 이야기 같고, 그래서 타인의 시선처럼 느껴지지만은 않거든요. ‘작가님이라면 자주, 그리고 긴 시간 동안 사람과 사건을 관망해 오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원래 그런 사람이기도 하고요. 관찰을 많이 하죠. 그걸 되게 편안해 하고, 그게 습관이기도 해요. 잘 모르겠지만, 경계에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주 밖도 아니고 아주 안도 아닌. 『중앙역』같은 경우는 취재가 바탕이 된 글이기 때문에 조금 더 그런 느낌을 받으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노태훈 문학평론가로부터 ‘정직한 작가’라는 평가를 받기도 하셨는데요.


방금 전에 말한 것과 맞닿아 있는 이야기인 것 같기도 한데요. 뒤집어서 생각해 보면 소설이 밋밋하거나 담백하거나 너무 앙상하다는 의미이기도 하겠죠. 많은 꾸밈이 있지 않다는 뜻이니까요. 그것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지점들이 있는 것 같아요. 제 소설이 화려하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하잖아요.

 

작가님께서 생각하시기에 어떤 작가가 정직한 작가인 것 같으세요?


굉장히 원론적인 이야기이지만, 읽으면 ‘이건 진짜다’라고 생각되는 소설이 있잖아요.

 

단순히 리얼하다는 의미만은 아니겠죠?


네, 리얼한 것과는 조금 다른데요.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그건 ‘소설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라는 질문과도 연관이 되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요즘에는 소설이 조금 더 나와 가까워야 한다는 생각을 해요. 예전에는 소설에 내가 드러나지 않기를 바랐다면, 점점 쓰다 보니 그렇게 해서는 오래 쓸 수 없을 것 같기도 하고, (현재는) 소설이 지금의 사회 안에 있으면 좋겠거든요. 그리고 나와 가까운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안에서 쓴다거나 혹은 정직하다고 말씀해 주신 것 아닌가 싶기도 해요.

 

 


앙상해지고 훼손된 ‘일’에 대하여


‘소설에 내가 드러나지 않기를’ 바라셨다고 하셨는데요. 그렇게 생각하신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소설이 할 수 있는 역할이 별로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저는 대학을 졸업하고 소설 공부를 하려고 예대에 갔는데, 그때만 해도 소설은 그냥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소설과 이야기는 다르다’라고 할 때의 그 이야기가 아니고요. 소설이 할 수 있는 역할은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거나 공감을 주는 정도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제는 ‘소설이 할 수 있는 역할이 더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요즘에는 ‘소설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많은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돼요. 사회에 질문을 던진다거나 뭔가를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싶은 거죠. 그렇다고 제가 무슨 혁명을 일으키는 소설을 쓴다는 뜻이 아니고요. 그렇게 생각했을 때 나오는 소설은 조금 다를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이번 소설집 읽으면서 공감하는 부분이 굉장히 많았어요. 등장인물들만 보더라도 인터넷 BJ, 일용직 근로자, 편의점 알바생, 치킨 배달원처럼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들이 처해 있는 상황도 낯설지 않고요. 작가님의 눈에 비친 우리의 현실과 이웃들은 어떤 모습인지 궁금해요. 


일이라는 것이 예전에 비해서 굉장히 앙상해졌다고 할까요. 많이 훼손됐다는 느낌을 받아요. 이런 사람들한테 특별히 관심을 갖는 게 아니라, 제 주변에 이런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특수한 사람들이 아니고 굉장히 흔한 사람들이잖아요. 요즘에는 소위 말하는 번듯한 직장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기가 더 어려운 일이잖아요. 저도 데뷔를 하기 전에는 그런 알바들을 많이 했었고, 그런 인물들이 주변에 있다 보니까, 거기에 대해서 ‘왜 그럴까’라는 생각도 하게 됐고 취재도 하게 됐어요. 예전에는 누군가에 대해서 알려면 성별, 나이, 직업을 물어보면 됐는데 요즘은 일이 어떤 자격이 되지 않는 것 같아요.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서 하는 것이거나, 끊임없이 제대로 된 일을 할 거라고 기다리지만 그냥 그 일을 계속 하잖아요. 그런 모습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돼요.

 

「줄넘기」, 「쿵후하는 자세」에서의 ‘일’은 생계를 위한 수단이 아니잖아요. ‘몰입하고 있는 어떤 행위나 동작’을 의미하는 것 같아요.


「쿵후하는 자세」, 「줄넘기」는 무의미한 일을 하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쿵후하는 자세」 같은 경우에는 주인공이 뭘 해야겠다는 생각을 계속 해요. 작품에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요.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닐 때도 아무 생각이 없는 게 아니거든요. 그런데 외부에서 보기에는 그렇게 보이는 거죠. 그리고 하는 일이 없으니까 자기가 누구인지 설명할 수도 없어요. 「줄넘기」의 인물도 마찬가지죠.

 

말씀하신 것처럼 「쿵후하는 자세」의 주인공은 뚜렷하게 하는 일이 없어요. 단지 그 이유만으로 정체가 의심스러운 사람으로 취급 받고요.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지 않고 생산적인 일을 하고 있지 않으면 존재가 불분명한 사람으로 인식된다는 건데, 섬뜩한 것 같아요.


그렇죠. 그런데 점점 더 그렇게 되는 것 같기도 해요. 저도 어디에 가면 소설가라고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이게 굉장히 정체 불분명한 일이잖아요. 소설을 쓰는 건 혼자 하는 일인데 아무도 내가 일하는 걸 보지 못해요. 그리고 한 시간 일을 한다고 해서 그만큼의 결과가 나오는 것도 아니죠. 그래서 정체불명의 노동이라는 생각을 늘 하거든요. 모든 예술이 다 그렇겠지만요. 저도 그렇지만 제 주변의 친구들도 그렇고, 저희 윗세대도 예전에는 안 그랬지만 점점 그렇게 되어가고 있으니까, 그런 생각을 많이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생산성으로 인간의 가치를 측정하는 사고가 너무 팽배해져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굉장히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점점 더 사람이 도구화되고 소모되고 버려지는 것 같죠. (일을) 그만두겠다고 하면 ‘왜 그만두는지’,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게 뭔지’ 묻는 게 아니라 ‘그래, 대체할 사람은 많으니까’라는 식으로 되잖아요. 그 일을 하면서 마땅히 해야 되는 것에 대해서도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는 것 같고, 고용하는 사람들도 사람을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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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더 나은 일’이란 게 있을까요?


「어비」의 주인공은 “어쨌든 더 나은 일”, “일 다운 일”에 대해 반복적으로 이야기하는데요. 작가님도 이런 고민에 공감하세요?


지금은 그런 생각 안 하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어쨌든 더 나은 일’이라거나 ‘일 다운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해도 그건 내 몫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있거든요. 그런데 예전에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데뷔하기 전에 이런 저런 일들을 계속 할 때는, 그때는 20대 후반이었으니까, 친구들을 봐도 진짜 준비하는 일은 다 따로 있는 거예요. 밤에 일하고 낮에 학원을 간다든가, 주말에 다른 곳을 찾아가기도 하고요. 지금은 제가 30대가 됐고, 저나 친구들이 어느 정도 안정이 됐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안 하는 것 같은데요. 20대 후반에는 굉장히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요즘의 20대는 더 많이 하겠죠.

 

앞서 언급하셨듯이, 소설이라는 게 투자한 시간에 비례해서 결과를 얻을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요. 그 과정을 반복하시다 보면 지치실 것 같기도 한데요. 어떻게 견디시나요?


하루 종일 소설을 쓰는 건 아니고요. 친구들을 만나기도 하고 그렇죠. 그런데 소설은 나 혼자 쓰는 거잖아요. 사실 혼자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일을 선택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해본 적도 있어요. 혼자 있는 게 좋으니까요. 지금은 조금 아닌 것 같기는 한데요(웃음). 소설을 쓰는 게 지칠 때는 다른 일들도 해보려고 해요. 그래도 한동안 안 쓰면 쓰고 싶기도 하고, 매일 매일 하려고 노력하죠. ‘이게 나한테는 일이니까, 조금이라도 써야지’ 이런 생각을 하는데요. 글 쓰시는 분들은 다들 그렇게 하실 거예요. 그런데 많은 쓰면 또 많이 지워야 돼요(웃음). 그래서 20년, 30년씩 소설을 계속 쓰시는 선생님들 뵈면 정말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쨌건 이것도 일이니까 성실해야지”라는 「아웃포커스」의 한 마디가 생각나네요. 개인적으로 「아웃포커스」를 읽으면서 많이 힘들었어요. 부당 해고를 당한 뒤 1인 시위를 하는 어머니의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만약 내 어머니라면’ 하고 생각하니까 읽으면서 울컥울컥 하더라고요.


제가 KT의 해고 노동자에 대해서도 취재를 한 적이 있었는데, 실제로 이런 사람들이 있어요. 굉장히 오랫동안 일했는데 현장직으로 발령을 내고, 사옥 뒤에 전봇대를 심어 놓고 올라가 보라고 하고, 그 분이 회사를 나가지 않으니까 울릉도로 발령을 내더라고요. 그런 이야기를 보고 이 소설을 쓰려던 건 아니었어요. 자신이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두고 모두가 ‘왜 하지?’라고 생각하지만, 그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도 쓰고 싶었던 것 같아요. 1인 시위를 하거나 모여서 기자회견 같은 걸 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외부에서는 너무 안 됐다는 생각을 하잖아요. 그런데 그런 시선만 있는 것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부분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싶었어요.

 

「아웃포커스」의 어머니도 늘 모멸감만 느끼는 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드네요.


소설 속의 인물들이 모멸감을 느끼거나 자신의 정체성을 다 설명하지 못하는 일들을 하기도 하죠. 그렇지만 그것과는 다른 지점이 있을 수 있잖아요. 말씀드린 것처럼, 제가 오늘날 모든 일이 훼손됐다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일을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건 아니에요. 그 일을 하는 사람들만이 아는 노하우라든지, 그런 자잘한 것들도 있거든요. 「아웃포커스」의 엄마도 매일 똑같이 모멸감을 느끼면 그 일을 못하겠죠. 그런데 어느 순간에는 아무 생각 안 할 때도 있을 거고, 매일매일 하다 보면 조금 더 괜찮은 생각이 생기기도 할 것 같아요. 전체적으로 보면 모멸감이기는 하겠지만, 매 순간 그렇게 느끼면 할 수 없는 일인 것 같아요. 「한밤의 산행」에서 인물들이 하는 일도 마찬가지고요.

 

「쿵후하는 자세」에서 자전거를 타는 일 같은 경우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소설에서 친구가 ‘나’에게 계속 일을 해야 된다고 하잖아요. 왜 일을 안 하냐고, 일을 하라고 말하는데, 글쎄요, 자전거를 타면서 생각하겠죠. 마지막 부분에 보면 그 날 밤의 일을 겪고 나서 조금 달라지잖아요. ‘이렇게 계속 자전거를 타도 될까’ 하고 질문하거든요. 자전거를 타면서 일을 찾는 것 같다고 할까요. 일을 해야 된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출발은 질문을 던지는 것부터


이번 소설집에 실린 단편들 중에서, 쓰시는 동안 가장 감정 소모가 컸던 작품은 무엇이었나요?


감정 소모는 잘 모르겠고요. 「어비」를 쓸 때 너무 소설이 안 써졌어요. 그래서 편집부에서 한 번 (마감 날짜를) 미뤄주셨는데, 일주일이 지났는데 또 못 쓰겠는 거예요. 그런데 펑크를 내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냥 낸 소설이었거든요. 약간은 ‘이제 더 이상은 못하겠다’는 마음으로 냈어요. 그때는 이 소설이 표제작이 될 지도 몰랐죠. 그런데 『2016년 올해의 문제소설』에 실렸다고 해서 사실은 깜짝 놀랐어요. ‘왜?’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것 같아요(웃음). 그리고 ‘사람 마음처럼 다 안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마음에 들어서 발표한 소설은 독자들이 별로 안 좋아할 수도 있고, 절반 정도는 포기한 상태로 낸 소설인데 좋아하시는 부분도 있으니까요. ‘소설은 내가 쓰지만 어쨌든 발표가 됐을 때는 내 생각과는 다른 반응들이 나올 수 있구나’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노태훈 문학평론가는 “김혜진의 소설은 결코 ‘연대’로 나아가지 않는다. 오히려 연대의 가능성을 끊임없이 회의하는 쪽에 더 가까운데”라고 하셨는데요. 실제로 『어비』의 인물들은 거의 홀로 현실의 무게를 감당해내는 모습을 보여줘요. 왜 그럴까요?

 
연대는 제가 항상 고민하는 부분이기는 해요. ‘연대를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늘 하고 있거든요. 제가 연대를 만든다는 게 아니고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소규모 공동체를 만드는 것뿐이라는 이야기가 있잖아요. 그래서 자본주의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연대가 제시되고 있는데, 사실은 연대를 믿지는 않아요. 믿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제가 공동체에 많이 들어가 보지는 않았지만, 들어가서 너무나 실망을 많이 했었거든요. 그리고 하나의 목표를 향해 나가더라도 결국엔 쪼개지거나, 그 안에서 희생되는 사람이 반드시 나와요. 그래서 연대를 신뢰하지 못했고, 소설을 쓰면서 ‘오히려 혼자 있는 게 낫지 않나’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이제는 생각이 달라지셨나요?


지금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소설을 쓰면서 연대를 보고 있었던 건 맞아요. ‘어떤 연대가 있어야 되지?’라는 생각을 하기는 했는데 ‘이제는 연대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봐야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지금 제가 경계에 서있다면 이제는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요.

 

「광장 근처」는 교황이 방한한 날 ‘나’에게 벌어지는 일을 그리고 있는데요. 이 작품은 어떻게 쓰게 되셨어요?


제가 그 근처에 살고 있는데, 방한 전날에 나와 보니까 이미 다 바리게이트가 쳐져 있고 밤부터 요란하더라고요. 교황이 왔다고 하는 날에는 제가 손을 크게 베어서 병원에 가고 있었는데, 길에서 엄청 많은 사람들을 만났어요. 그런데 사람들 표정이 다 얼이 빠져 있는 것 같고 굉장히 연극적인 거예요. 그런 해프닝이 있었어요.

 

「광장 근처」를 읽다 보면 회의감이 들기도 해요. 교황이 이야기했을 법한 거대담론, 즉 희망이나 평화, 사랑, 연대 같은 것들이 실질적으로 우리 일상을 바꿔놓기는 할까라는 의문이 드는 거죠. 작가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바꿔놓을 수 없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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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보고 현실이 바뀔 거라고 기대할 수 있을까요?

 

소설을 쓰는 일을 생각해 보면, 제 소설이 모든 사람들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어떤 특정한 혹은 구체적인 소규모의 독자들에게는 좋은 소설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말하자면 조금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예전에 소설이 이야기라고 생각했을 때는 그게 나한테 일차적으로 의미가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건 아닌 것 같아요. 그래서 요즘에는 ‘그러면 나는 어떤 사람들과 읽기를 바라면서 소설을 쓰지?’ 하는 생각들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해보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 독자를 구체적으로 떠올려 보기 시작하는 것 같고요. 작지만 내가 원하는 독자들 혹은 내가 생각하는 독자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고 어떤 질문을 던지면 거기에서부터 뭔가 출발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담론과 연대가 무의미하다는 게 아니라 그걸 조금 더 구체화되기를 원하는 것 같아요.

 

지금은 어떤 작품을 집필 중이세요?


장편을 쓰고 있어요. 내년쯤에 나올 것 같은데요. 할머니와 딸에 대한 이야기예요. 아직 나오지 않은 소설에 대해 이야기하려니까 어떻게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는데요. 이 작품을 쓸 때는 여성에 대한 걸 생각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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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비김혜진 저 | 민음사
작가가 4년 동안 발표한 단편소설 9편으로 구성된 소설집 『어비』는 20~30대 청춘들의 불안정하고 임시적인 삶의 절망적 현실을 직선적 문장으로 표현한 독특한 매력을 선보인다. 표제작 「어비」는 『2016년 올해의 문제소설』에 실려 청춘의 새로운 모습을 포착한 문학성을 인정받았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제동, 마이크를 관객석으로 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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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4 용지로 인쇄된 원고를 받았다. 제본도 되지 않아 불편하게 읽을 수밖에 없었다. 제목도 아직 가제인 『그럴 때 있으시죠?』다. 방송인 김제동은 언제부턴가 화자보다 청자 역할을 많이 하는데, 책도 다르지 않았다. “그럴때 있으시죠?”라고 툭툭 어깨를 치면서 말을 건넸다. 당신 이야기 좀 해보라고, 들어줄 준비가 돼 있다고, 나는 그동안 무대 위에서 마이크를 많이 들었으니, 당신에게 마이크를 주겠다고 말하는 듯했다.

 

김제동은 스튜디오에서 촬영을 시작하기 전, 막내 코디에게 안부를 물었다. 그러곤 처음 보는 사진작가 조수에게 말을 건넸다. 두 사람은 현장에서 아무 말 없이 일만 하는 막내였다. 김제동이 말을 걸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두 사람에게 집중했다. 말과 행동이 다르지 않구나, 갑자기 그에게 하고 싶은 질문이 많아졌다.

 

책을 읽고 나서 김제동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었다. “당신, 참 행복한 사람이네요. 세상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를 잘 알고 있네요.” 첫인사로 이 말을 전하자 김제동은 순간 아이처럼 웃었다. 그는 할 말이 무척 많아 보였다. 자기 이야기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 그러니까 ‘갑’보다는 ‘을’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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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받지 못하는 울음


“요즘 토크 콘서트라는 말을 참 많이 사용하잖아요. 8년 전 제가 시작했을 때만 해도 생소했는데요. 많아져서 좋아요. 그런데 그 단어에 맞는 형식을 갖췄으면 해요. 토크는 대화예요.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말하는 게 아니라,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거예요. 사람이 대화할 때 꼭 말로만 하지 않아요. 표정 짓는 것, 우는 것,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쉬고 찡그리는 것도 대화예요. 그걸 드러내 주는 게 토크를 하는 사람의 몫이고요. 김제동의 첫 에세이라고 타이틀을 걸었지만, 3인칭 당신들의 이야기예요.”

 

책을 쓰기로 하고 처음 떠오른 제목은 ‘내 울음소리가 누군가에게 들릴 수 있다면’이다. 제목이 너무 길어 출판사에서 반대했다. 그래도 김제동은 꽤 아쉬운 모양이었다. 그는 말을 보탰다. “주목받지 못하는 모습이나 주목받지 못하는 울음 때문에 사람들이 다 혼자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순간 마음이 픽 무너졌다. 항상 해왔던 생각을 누군가 문장으로 선명하게 정리해주니, 잃어버린 퍼즐 한 조각을 찾은 기분이었다.

 

“무슨 일이냐? 왜 우냐? 물었으면 좋겠어요. 공감이라는 게, 다른 사람 마음속에 일어나는 일을 상상하는 능력이잖아요. 옆에 같이 웃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웃을 맛이 나는 게 아니겠어요? 그게 사람을 화성에 안 떨어뜨려 놓는 방법이잖아요. 내 울음소리가 누군가에게 전달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게 고립이고요. 지금 세상은 1%에게만 마이크를 주고 1% 웃음, 1% 울음에만 주목하고 있어요. 주인공이 뒤바뀐 거죠. 엄청 열 받는 일이에요. 요즘 이순신 장군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물론 그는 영웅이지만 함께 노를 젓던 사람이 없었더라면 가능했을까요? 배는 혼자 만들었나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주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김제동은 문득 매미 이야기를 꺼냈다. 7년 이상을 땅속에서 애벌레 상태로 살다가 성충으로 나와 사는 기간은 고작 일주일. 그는 책을 쓰면서 종종 매미 울음소리를 들었다. 매미야말로 울 자격이 있지 않나 생각했다. 누구에게나 울 자격이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었다.

 

“자격 있어요. 자격 있죠. 누구에게 해결해달라는 게 아니에요. 내 마음이 이렇다고 표현하는 거예요. 사람들은 SNS에 어디 놀러 간 사진을 많이 올리잖아요? 좋은 일이에요. 하지만 그런 사진을 보고 위로를 얻긴 힘들어요. 꼭 위로를 얻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내 약점을 용기 있게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힘이 된다고 생각해요. 멋지고 반듯한 멘토에게 위로받는 시대는 지났어요. 내 부족함을 드러내게 만드는 사람보다는 ‘당신 괜찮아’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필요해요.”

 

3년간 심리상담을 받은 경험은 김제동 스스로 대견하게 여기는 일이다. 정신과 의사들이 받는 심리분석에 따르는 상담을 받고, 인생의 큰 전환점을 만났다. 자신을 깊게 아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깨달았다. 토크 콘서트, JTBC <김제동의 톡투유>를 진행할 때도, 거리에서 사람들과 대화할 때도 귀한 비료가 됐다. 김제동은 올해 토크 콘서트를 무료로 진행하고 있다.

 

“편의점에 갔는데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이 그러더라고요. ‘아르바이트 시급 모아서 엄마랑 제 토크 콘서트를 갔다 왔다’고. 언젠가 한 번은 무료로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 말을 듣고 결심했어요. 토크 콘서트를 진행할 때, 되도록 청중에게 많이 물어요. ‘혹시 당신도 이런 경험이 있냐?’ 나만 느끼는 감정이 아닌 걸 알 때, 느껴지는 힘이 있기 때문이에요. 감정에 주목해주는 게 중요해요.”

 

“그럴 때 있으시죠?” 김제동이 자주 하는 말이다. 다른 사람의 감정을 수면 위로 끌어내주는 일, 그는 참 좋아한다. 어떤 감정도 나쁘지 않고 모든 감정에는 이유가 있다. 감정에 잘 주목해주면 울던 아이도 순간 방긋 웃는다. 김제동은 “이 감정이 언제 끝날지 모르기 때문에 힘든 거다. 끝나는 걸 알면 덜 힘들다. 그리고 고난은 벼락처럼 끝난다”고 했다.

 

“학교 다닐 때 견딜 수 있는 건 6교시가 있기 때문이에요. 언제 끝나는지 알면 견딜 힘이 생겨요. 저는 약한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객관적으로 다른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이에요. 누군가를 도울 기회를 얻을 수 있잖아요. 나보다 못난 사람, 힘든 사람에게 위로를 받자는 게 아니에요. 너도 그렇구나, 나만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만 알아도 사는 게 좀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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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생각하든 그 사람의 자유

 

1994년 문선대 사회자로 데뷔, 방송활동도 20여 년이 되어간다. 말 잘하고 재치 있는 방송인에서 어느덧 진중한 면모가 더 많이 비친다. 그의 행보가 ‘재미’보다 ‘의미’를 따라가는 것은 아닌지, 대중의 시선을 어떻게 의식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이제는 초월했을까?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은 없어요. 하지만 상담을 받은 이후 많이 자유로워졌어요. 조심스럽긴 하지만 과거에 비하면 엄청 차이가 있어요. 다른 사람들의 자유를 인정해야 한다는 걸 알았으니까요. 사람들이 나를 두고 간섭하고 침해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경계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지만, 타인이 어떤 생각을 하든 그건 그들의 자유잖아요. 모든 사람이 저를 좋아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고 바라서도 안 돼요. 그들의자유니까요. 다만, 누군가에게 ‘당신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 간섭하면 안 되죠. 각자의 인생에서 느끼는 가치관이 다르니까요.”

 

김제동은 “세상의 모든 싸움은 옳고 그름의 싸움이 아니”라고 했다. 결국 각자의 기준에서는 모두 옳기 때문이다. 타인의 의견을 존중해야 하지만 내가 타인의 견해대로 살 수는 없다. 그럴 수 있구나 하고 내 길을 가야 한다. 그는 책에서 율리아나 수녀의 말을 인용했다. “약하면 약할수록 많은 사람들에게 더 큰 힘이 된다.” 그리고 이렇게 썼다. “누구에게나 사정이 있지만 그래도 좀 더 가진 사람이 조금만 더 배려해주면 좋겠다.”

 

“강요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조금 더 편하게 사는 사람에게 너희들 좀 내놔야 하지않겠니? 말할 수 없어요. 우리는 자본주의 시대에 살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대한민국 제헌 헌법 84조에 보면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 있는 국민 경제의 발전을 기함을 기본으로 삼는다’고 쓰여 있어요. 이게 우리 사회경제의 정의예요. 경제 민주화 조항으로 불리는 헌법 제119조 2항에도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 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라고 쓰여 있고요. 이건 남보다 조금 더 잘사는 건 인정해줄 수 있다. 노력해서 잘사는 것 좋다. 하지만 기본적 생활수요를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면 사회정의에 어긋나는 거죠. 개선해야 하는 거죠. 이미 밥을 네 끼 먹는데, 한 끼 먹는 사람의 것을 빼앗아 먹겠다고 하면 적극적으로 규제해야죠.”

 

사람들은 그에게 ‘왜 자꾸 방송인이 사회문제에 대해 발언하냐’, 성화한다. 김제동은 되물었다. “어느 날 갑자기 직장을 그만두고 굴뚝에 올라가 있는 친구가 있는데, 어떻게 나 혼자 행복할 수 있나요?” “구조적 개선이 이뤄지지 않는 상태에서 개인에게 자기계발만을 강요한다면, 누가 살아남을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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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매 순간이 절정

 

최근 김제동은 SBS <미운 우리 새끼>에 출연한 일로 곤욕을 치렀다. 소개팅하는 와중 상대방 여성에게 집중하지 않고 딴청을 피운 일로 시청자들로부터 원성을 샀다. 후에 뒷이야기가 일부 공개되긴 했지만, 대부분의 시청자는 논란의 장면만 기억한다. 전후 사정이 궁금해 물었다.

 

“상대가 일반인이잖아요. 안 그래도 어색한 상황인데 카메라 여섯 대가 저희를 찍으니 얼마나 불편해요. 또 동네에서 문을 활짝 열고 촬영을 하는데, 누가 안 쳐다보겠어요? 어색할까 봐 자연스럽게 하려고 한 건데.(웃음) 나중에 저한테 그랬어요. ‘오빠, <톡투유> 찍는 것 같았다’고. 그간 유라 씨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많이 들었거든요.”

 

영상을 편집한 제작진에게 서운한 마음은 없었냐 물으니, “그러면 어머니가 욕할 거리가 없지 않나? 또 이게 방송의 재미”라고 말했다. 김제동은 자신이 출연한 방송을 대개 보지 않는다. 아니, 민망해 못 본다. 방송에 출연한 어머니의 모습도 물론 보지 않았다. 다만 예상은 할 수 있다. 이번 책에도 어머니, 다섯 명의 누나, 어린 시절의 이야기가 꽤 많이 등장한다. 지금도 변함없이 이야기 소재를 제공해주는 가족들의 입담에 감사하고, 때론 잔소리에 지치기도 한다.

 

“어머니가 제 인생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고 말할 수 있어요. 제 어머니이시니까요. 어머니 입장에서 이야기할 수 있어요. 제가 들어야 하고요. 하지만 마흔이 넘은 제가 어머니 말씀대로 살 수는 없어요. 내 인생에 간섭하지 말라가 아니라, 저는 성인이니까 제 인생을 살아야죠. 가족은 특수한 관계잖아요. 하지만 전 독립체고요. 전 그렇게 생각해요.”

 

김제동이 느끼는 자신의 현재는 어떨까. 그래프로 그려본다면 상승곡선인지 물었다. 그는 “지금이 절정”이라고 말했다. 마냥 좋다는 게 아니라 풍요로워진 느낌이 든다고. 술을 끊은 지도 4년. 가끔 맥주 한두 잔은 마시지만, 그보다 동네 단골집에서 사람들을 만나 사사로운 이야기를 할 때가 좋다. 그는 “심리적으로 굉장히 풍요로워진 시기”라고 했다.

 

“돌이켜보면 매 순간 절정인 것 같아요. 되게 좋아요. 내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국진이 형, 재석이 형, 홍철이 같은 동생도 있고요. 더 바라는 건, 많은 사람이 웃을 수 있는 여건이 되는 거죠. 백성들이 다 죽고 왕이 되면 무슨 소용이 있어요? 사람들이 돈이 하나도 없는데, 자기만 있으면 뭐해요? 나 혼자 계속 웃는 건 한계가 있어요.”

 

 

때론 눈물도 말입니다

 

김제동의 이상형은 ‘나무’ 같은 사람이다. 큰 그늘을 만들어주면서도 튼튼한 의자를 만들어주면서도, ‘너, 왜 나한테 고마워하지 않아?’라고 묻지 않는 나무. 더불어 숲이 되기도 하는 나무 같은 사람은 언제나 반갑다. 사람들은 그에게 묻는다. “때때로 연애 특강을 하면서 연애는 왜 못 해? 왜 안 해?”

 

“(웃음) 제가 연애에 관해 말한다는 것 자체가 좀 우습죠? 연애 강연이라고 말을 붙이긴 했지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가르치는 내용이 아니에요. 가르칠 자격도 없고요. 서로 물어보는 거죠. 당신은 어떻게 하고 있어요? 연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묻고 듣다 보면 그래도 알게 되는 게 있어요. 물론 개별적으로 들어가면 싹 다 필요 없어지지만요. 제 이상형이요? 그냥 봤을 때 좋아지는 사람 있잖아요. 환하게 웃는 사람이 좋은데 또 서로 좋아야 연애도 하고 그러는 거니까요.”

 

토크 콘서트를 진행할 때, 김제동은 사람들의 눈빛을 살핀다. 말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만 듣지 않고 주변 사람들의 눈빛까지 읽는다. 때론 눈빛도, 때론 침묵도 말이기 때문이다. 그는 “사람과 사람이 대화할 때, 비언어적 요소로 파악하는 게 대부분이다. 진짜 사랑하는 연인들은 크게 말하지 않는다”고 했다.

 

“책 제목 후보가 또 있었어요. ‘때론 눈물도 말입니다.’ 제가 슬픈 감정을 되게 좋아하거든요. 꼭 우리가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것들이 있잖아요. 그게 참 좋아요. 가끔 말발이 없다고 고민하는 사람들을 만나요. 말 잘 못하겠다고 고민하시는데, 반대로 생각해보면 듣는 능력을 갖추기 위한 최적의 요소거든요. 듣는 것까지 능력인가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겠지만, 또 ‘이야기를 안 듣겠다’고 생각하는 것도 능력이에요. 저 이야기는내가 듣지 않겠다, 이 이야기는 내가 하지 않겠다고 결정하는 것도 중요하니까요. 말하고 싶지 않을 때는 그냥 편안하게 자신을 놔두면 된다고 생각해요.”

 

김제동의 책을 읽으며 떠오른 단어가 하나 있었다. ‘존중’. 그가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문제는 존중이야”라고 속삭이는 듯했다.

 

“대한민국 역사가 자랑스러운 건, 더러운 사람이 권력을 잡으려고 할 때마다 시민들이 그걸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사회는 개인 각자의 개별성에 주목할 수 있어야 해요. 한 사람, 한 사람이 존중받을 때, 인간으로서의 가치와 존엄을 확인할 때, 우리는 행복할 수 있으니까요. 또 중요한 건 먼저 자신을 존중해야 한다는 점이에요. 이건 저에게 하는 소리이기도 하고요.”

 

그는 맹자의 말을 꺼냈다. “무릇 사람은 반드시 스스로 업신여긴 후에 남이 업신여긴다.” 세상에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온 나에 대한 존중이 있어야 스스로에 대한 멱살잡이를 멈출 수 있지 않냐고 말했다. 가끔 자신에게 눈을 흘기고 삐칠 수는 있어도, 자기 머리채를 잡고 흔드는 일을 하지 말자고 강조했다.

 

“인간적 존엄을 훼손하려는 것들에 대해 함께 싸우는 일이 진짜 존엄이라고 생각해요. 기껏해야 한 줌도 되지 않는 지위, 돈 따위를 갖고 세상을 휘어잡으려고 할 때 우리는 분노할 수 밖에 없어요. 요즘 웃을 일이 없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아요. 이때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한 것’이라는 말을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해요. 웃어서 행복한 건 개인의 추구와 지향이지만, 행복해서 웃는 건 사회구조적 변형을 통해 가져올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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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늘 옳다

 

대중들의 호불호가 유독 강한 방송인 ‘김제동’. 그는 이번 책을 무척 꼼꼼히 썼다. 솔직한 발언을 서슴지 않았지만, 오해를 불러올 만한 소재에 관해서는 신중했다. 때론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누군가의 표적이 된다. 몸 좀 사리라는 말도 듣지만, 그가 가진 영향력은 작지 않다. 묻고 싶었다. “당신의 영향력을 어떻게 사용하고 싶냐”고.

 

“영향력이요? 제게 그런 게 있나요? 있다고 하더라고 그건 제 영역이 아니잖아요. 영향력은 쓰겠다고 하는 순간, 아주 건방진 독재의 발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나무가 있으면 그늘에 앉아 쉬겠다는 마음이 들지만, 가지를 꺾어 목이나 다리에 거는 순간 식인풀이 되잖아요. 예를 들어, ‘어떤 사람들을 선동한다’는 말은 진짜 그 사람들을 무시하는 이야기예요. 인간을 누군가에게 선동당하는 존재로밖에 안 보는 거잖아요.”

 

그는 영향력의 문제는 판단하거나 이야기할 수 있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고 했다. 다만 “조금이나마 사람들이 함께 행복해지는 데 한 개인으로서 역할을 다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며 크게 애쓰지 않는다고 했다.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딱 하나, “당신은 늘 옳다.”

 

“진짜 내가 옳아? 그런 마음이 들 수 있어요. 무조건 옳다고 하면, 내가 너무 이기적인 사람이 되거나 너무 천방지축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 것 자체가 옳다는 걸 증명해요. 저는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도 이 이야기를 자주 해요. 당신의 모든 마음, 모든 감정이 옳다고요. 이문재 시인의 시집 『지금 여기가 맨 앞』에 「문자메시지」라는 시가 있어요. 짧은 시인데 읽어 드릴게요. ‘형, 백만 원 부쳤어. 내가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이야. 나쁜 데 써도 돼. 형은 우리나라 최고의 시인이잖아.’”

 

읽은 시였다. 인상적이어서 필사까지 했던 시, 그 시를 김제동이 떡 하니 읽어주니 반가웠다. 김제동은 말했다. “그렇게 믿어줘야 해요. 몇몇 사이코패스를 제외하고는 믿어줘도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사람이 살아요.” 2시간 남짓 김제동은 지극히 보편적인 이야기를 했다. 하나 왜 낯설었을까. 아마 그동안 1%의 이야기만 들어왔기 때문이 아닐까. 순간 목이 따끔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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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때 있으시죠?김제동 저 | 나무의마음
『그럴 때 있으시죠?』는 김제동과 나, 우리들의 이야기다. 누구에게나 가슴 속에 못다 한 이야기, 하나쯤 있다! 뭐가 불안한지는 모르겠는데 불안하고, 피곤해 죽을 만큼 일하는데 잘 살고 있는지 모르겠고, 하루도 쉬운 날이 없지, 사는 게 참 별일이다 싶은 그런 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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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친절한 혜강씨 “유튜브로 돈 버는 법, 어렵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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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로 돈 벌기』, 제목부터 솔깃한 이 책은 ‘당신이 유튜브 크리에이터에게 묻고 싶은 거의 모든 질문들’에 답한다. 유튜브를 통해 제공되는 영상들은 어떻게 제작되는지, 크리에이터에게 이 일은 단순한 취미인지, 수익을 얻는다면 어떤 경로로 얼마만큼 버는지... 유튜브 이용자라면 누구나 궁금해 할 내용들을 솔직하게 공개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유튜브를 이용해 동영상을 올리는 것만으로도 수익을 창출할 수 있고 그 과정 또한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4천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는 유튜브 채널의 운영자가 들려주는 ‘진짜 경험담’이다.

 

저자는 네이버 블로그 ‘친절한 혜강씨’의 운영자로 유명한 이혜강 씨와 그녀의 남편 국동원 씨다. 두 사람은 유튜브 채널 ‘친절한 혜강씨’를 통해 파워포인트와 IT 관련 강의를 제공하는 한편, 영유아와 초등학생을 주 시청자로 하는 채널 ‘말이야와 아이들’, ‘말이야와 친구들’을 운영하고 있다.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로 수익을 내는 것”을 목표로 시작한 일이었고, 현재는 회사에서 받던 월급보다 5~10배 이상의 수익을 얻고 있다. 그들은 어떻게 ‘유튜브 스타’가 될 수 있었을까. 비법은 『유튜브로 돈 벌기』안에 숨어있다. 콘텐츠 기획부터 영상 제작, 홍보 방법까지 ‘검증된 노하우’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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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2개월 후, 월급만큼 벌었어요


두 분이 함께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계신데요.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이혜강 : 유튜브 시장을 통해서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런데 제가 강의 일정이 있다 보니까 너무 바쁜 거예요. 그래서 남편한테 같이 해보자고 제안해서 시작하게 됐어요.

 

‘유튜브를 이용해서 돈을 버는 게 가능할까?’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을 텐데요. ‘가능하다’고 판단하신 근거는 무엇이었나요?


이혜강 : 유튜브를 통해서 돈을 벌 수 있다는 건 인터뷰를 보고 알게 됐어요. 영상 앞에 붙는 광고를 통해서 수익을 얻는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해외 사례를 봐도 그렇게 수익을 많이 창출하시는 분들이 많고 국내에도 상당수가 있어서 한 번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영상을 올리니까, 금액이 적기는 해도 수익이 나오기는 하더라고요. 그래서 본격적으로 조회수가 많이 나오는 주제에 맞춰서 콘텐츠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고, 남편과 같이 시작하게 됐어요. ‘친절한 혜강씨’ 채널로 테스트를 해봤는데, 아무래도 강의는 폭발적인 조회수가 나오지는 않더라고요.

 

이혜강 저자님은 대기업에 근무하시다가 그만두시고 블로그를 시작하셨잖아요. 남편 분 입장에서는 우려하신 부분들이 있으셨을 것 같아요.


국동원 : 많이 했죠. 왜냐하면 초반에는 수익이 크지 않았거든요. 저도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기까지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런데 평생 회사를 다닐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고민 끝에 결정을 하게 됐죠. 무엇보다 두 가지 일을 병행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선택에 후회는 없으실 것 같아요(웃음). 회사에서 받으시던 월급보다 5~10배 이상 수익을 얻고 계시니까요.


국동원 : 지금은 후회가 없죠(웃음). 그런데 가장 좋은 건 내가 원하는 일을 하면서 수익까지 창출할 수 있다는 점인 것 같아요.

 

회사를 그만두고 유튜브 크리에이터로 산다면, 이전의 월급만큼 수익을 올리는 데에는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요?


이혜강 : 저 같은 경우는 먼저 블로그로 전업하고 유튜브를 시작했잖아요. 사실 초반에는 수익을 내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회사 일과 병행하면서 수익이 100만원 됐을 때 회사를 그만뒀어요. 이 일에만 집중하면 더 벌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1~2개월 만에 회사 월급만큼 벌었던 것 같아요. 남편도 마찬가지였어요. 제가 유튜브를 운영하면서 수익이 100만원이 됐을 때 전업을 해보자고 해서 회사를 그만뒀는데, 1~2개월 만에 회사 월급 정도의 수익이 나왔거든요. 시간이 가면서 더 많이 벌게 됐고요. 좋아하는 일만 하니까 효과가 더 좋게 나온 것 같아요.

 

유튜브 운영과 회사 일을 병행하셨던 이유가 있었나요?


이혜강 : 당장 회사를 그만두고 유튜브만 하는 건 위험하기는 해요. 자신이 잘 하는 걸 찾지도 못한 상태에서 시작하는 거니까요. 제가 생각할 때는, 회사를 다니면서도 그 정도의 수익을 낼 수 있다면 전업을 하더라도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아요.


국동원 : 시점이 중요한 것 같아요. 바로 유튜브에 올인하는 것보다는 어느 정도 해보고 웬만큼 수익이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전업을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유튜브를 통해서 수익을 얻는 과정이 궁금해요. 영상 앞에 광고가 붙어야 수익을 얻는 건데, 그렇다면 광고주로부터 제안을 받아야 하는 건가요?


이혜강 : 유튜브가 광고를 모집하는데요. 광고주들이 특별히 광고를 게재하고 싶은 콘텐츠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도 있어요. 그 타깃 층이 저희 영상을 많이 본다면 광고가 저절로 붙는 거고요. 저희 채널을 지정해서 광고를 게재해 달라고 하는 건 아니고, 유튜브가 모집한 광고를 채널에 분배하는 거예요.


국동원 : 구글에서 애드워즈라는 시스템을 이용해서 다양한 광고주들에게 광고를 받아요. 그리고 각 연령대의 시청자 분포도에 맞춰서 광고를 붙이는 거죠.

 

광고 효과가 클 것 같은 콘텐츠를 찾아서 붙이는 거군요.


국동원 : 그런 영상에 광고가 더 잘 붙기도 하고요. 광고 친화적인 영상에도 광고가 잘 붙어요. 유튜브에서 영상을 보고 판단을 하는 형태예요. 유튜브가 좋은 점이, 크리에이터에게 수익을 배분하는 비율이 커요. 55%를 크리에이터한테 주고 45%를 유튜브가 가져가는 형태로 되어 있거든요. 다른 플랫폼보다는 수익이 훨씬 크죠.

이혜강 :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비율은 (타 플랫폼보다) 유튜브가 낮아요. 그런데 조회수 자체가 폭발적이라서 수익이 많이 나오는 거죠. 비율은 더 높아도 조회수가 적은 플랫폼은 수익이 적게 나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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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에 필요한 건 ‘즐길 수 있는 콘텐츠’


조회수가 적은 영상에도 광고가 붙나요?


이혜강 : 크리에이터가 광고를 게재하겠다고 체크만 해두면 붙게 돼요. 조회수가 낮으면 광고 수익이 낮은 거지, 광고가 붙지 않아서 수익이 낮은 건 아니에요. 저희는 조회수가 10만, 20만, 많이 나올 때는 100만까지도 나오기 때문에 거기에서 수익을 얻는 거고요.

 

책에서 말씀하시길, 광고 수익은 ‘1 뷰에 0.5~1원 정도’라고 하셨어요. ‘그렇게 해서 언제 월급만큼 벌지?’라는 생각이 들 법도 해요.

 

이혜강 : 맞아요. 저도 파워포인트 강의를 올렸을 때 조회수가 많을 때가 2만 뷰 정도였어요. 사실 2만 명이 봤다면 많이 본 건데, 2만원을 번다고 생각하면 기운이 빠지죠. 그런데 키즈 분야는 워낙 시장이 커요. 지금 저희 채널은 많을 때는 9백만, 10만 뷰씩 나오거든요. 그런 영상들이 누적되면, 한 영상이 인기 있으면 다른 영상들도 추천이 되기 때문에, 기하급수적인 조회수가 나와요. 저희가 운영하고 있는 전체 채널의 조회수가 월 4천만 뷰 정도 되는데, 평균적으로 광고 수익을 0.5~1원 정도 나와요. 저희는 광고 단가를 높이려고 여러 가지 작업들을 해놔서 조금 더 높은 편이고요.

 

광고 단가가 콘텐츠마다 다른가요?


국동원 : 나라마다 단가가 달라요. 해외 쪽은 훨씬 더 단가가 높아요. 광고주들이 더 치열하게 경쟁해서 광고를 넣으려고 하거든요. 그래서 광고 단가가 해외에서 많이 시청하면 광고 단가도 올라가죠.


이혜강 : 해외의 경우에는 광고 단가가 2.5원 정도도 나오거든요. 저희 채널 중에 하나는 해외 시청 비율이 거의 50% 이상이에요. 그래서 다른 데보다 단가가 훨씬 더 높아요. 그리고 영상이 10분 이상이면 중간 광고를 넣을 수가 있는데, 저희는 웬만하면 그 시간에 맞춰서 영상을 제작하고 중간 광고를 넣기 때문에, 아무래도 다른 데보다 단가가 더 높죠. 광고 단가 자체가 높다기보다 조회수 대비 단가가 높은 거예요.

 

‘친절한 혜강씨’ 채널은 블로그의 내용을 영상으로 제공하시는 거라고 볼 수 있어요. 그런데 ‘말이야와 친구들’, ‘말이야와 아이들’은 완전히 새로운 콘텐츠를 만드신 거거든요. 아이들을 타깃으로 한 채널을 만드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혜강 : 유튜브는 즐기려고 보잖아요. 그러니까 강의 콘텐츠는 많이 안 보는 것 같아요. 블로그는 내가 필요한 걸 검색하는 거니까 조회수가 잘 나오는데, 유튜브는 즐길 만한 콘텐츠가 필요한 거거든요. 그리고 유튜브를 보는 시청자 층이 영유아, 초등학생이 대부분이에요. 그래서 어린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콘텐츠가 조회수가 잘 나올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아이들이 ‘말이야와 친구들’, ‘말이야와 아이들’을 찾아보는 이유는 뭘까요?


이혜강 : 영상을 보면서 같이 노는 느낌이 드나 봐요. 요즘에는 가족이 많지 않잖아요. 영상에 등장하는 나이들은 저희 조카들인데, 가족들이 즐겁게 노는 모습이 행복해 보여서 보신다고 하더라고요. 어른들은 아이들이 귀여워서 본다고 하고요.

 

주 시청자가 영유아와 초등학생이다 보니, 아이들의 시각에서 콘텐츠를 찾으셔야 하는데요.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으세요?

 

이혜강 : 초반에는 어린 아이들 마음을 잘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영상을 찍고 나서 아이들한테 보여주고 ‘이걸 왜 봐?’라고 물어봤었어요. 정말 이해가 안 돼서요. 물어보면서 ‘아이들이 이런 포인트를 좋아하는구나’ 알게 되더라고요. 인기가 많은 영상들을 분석하면서도 감을 잡았어요. 그리고 영상을 많이 올리다 보면 많이 시청하는 포인트, 그렇지 않은 포인트를 분석할 수 있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점점 아이들이 뭘 좋아하는지 알게 된 것 같아요.


국동원 : 최대한 같이 놀 수 있는 부분들을 많이 찾으려고 해요. 그리고 부모님들이 봤을 때 유해하지 않은 형태로 만들려고 하고요. 다양한 소품을 이용하면서 그 안에서 재미를 찾게 만드는 편이에요.

 

책에서 “유튜브를 운영할 때 궁금한 101가지”를 정리해주기도 하셨는데요. 유튜브를 시작하시려는 분들에게 질문을 받은 적도 있으세요?


이혜강 : 시작하려고 하면 정말 궁금한 게 너무 많거든요. 저도 그랬어요. 궁금한 건 너무 많은데 답이 없는 거예요. 인터넷을 찾아봐도 없고, 그래서 많이 답답했던 것 같아요. 한 번 책으로 써서 정리하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어요. 제 주변에도 유튜브를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묻는 분들이 계신데, 일단 장비에 대한 질문이 많고요. 어떻게 편집해야 되는지, 영상을 올렸는데 왜 조회수가 적은지, 정말 다양한 질문들을 하세요. 『유튜브로 돈 벌기』에 그런 질문들이 담겨있고, 제가 궁금해 했던 질문들이 담겨있기도 해요.

 

저자님의 경우에는 유튜브를 시작하실 때 어떤 부분이 가장 어렵게 느껴지셨어요?


이혜강 : 사실 다 힘들었어요(웃음). 정보가 너무 없었거든요. 애드센스 계정은 어떻게 만드는지, 돈은 언제 받는지, 장비는 어떤 걸 준비해야 하는지... 다 궁금한데 어디에도 답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정말 발품을 많이 팔았던 것 같아요. 『유튜브로 돈 벌기』는 ‘이 책을 보면 무조건 돈을 번다’는 이야기를 하는 책은 아니고요. 유튜브를 통해서 콘텐츠로 돈을 벌고 싶은데 궁금한 것들이 있잖아요. 그런 부분과 관련해서 도움을 주는 책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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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이 유동적이지만 불안하지 않아요


유튜브를 시작하시는 분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이혜강 : 일단 찍고 올려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국동원 : 먼저 시도를 해보는 게 나을 것 같아요. 하나씩 영상을 올리다 보면 시청자의 반응이 느껴지고, 어디에서 개선을 해야 하는지 느낄 수 있거든요. 채널을 만들어 보고, 기본적인 내용들은 책에 다 들어있으니까, 보면서 바로 시작해 보시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이혜강 : 장비를 사려면 돈이 들잖아요. 그런데 휴대폰으로 먼저 찍어도 되고, 편집하기 너무 어려우면 어플로 편집해서 올리시면 돼요. 그러면 스스로도 아쉬운 부분이 느껴지고 뭐가 필요한지 알게 될 거예요. 그때부터 조금씩 개선하면 되니까, 처음부터 너무 완벽하게 준비하려고 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아요. 그리고 어느 채널이나 마찬가지인 게, 초반에는 정말 조회수가 안 나오거든요. 처음부터 완벽하게 준비하면 좌절하고 실망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일단 영상을 올려보면서 조금씩 감을 익힌다는 생각으로 가볍게 시작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요즘에는 어떤 콘텐츠가 핫한 것 같으세요?


이혜강 : 핫하다기보다, 여전히 많이 보는 콘텐츠는 키즈와 게임이고요. 20대가 많이 보는 건 뷰티, 패션이에요. 즐길 거리가 필요한데 그 부분에도 부합하고, 영상으로 만들었을 때도 괜찮은 콘텐츠거든요. 그런데 제가 생각하기에는, 큰 수익을 원하는 게 아니라면 브랜딩 차원에서의 유튜브를 활용하는 것도 괜찮은 것 같아요. 제가 파워포인트 강의를 올렸을 때 2만 뷰 정도가 나왔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사실은 정말 많은 사람들이 본 거거든요. 블로그에서 그 정도 조회수가 나오기 쉽지 않아요. 수익이 아닌 시청자 숫자를 생각하면 정말 대단한 거니까,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쌓는다는 개념으로 접근해도 좋을 것 같아요. 유튜브를 통해서 유명해지면 다른 일을 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브랜딩 차원에서 활용하신다면 어떤 주제든 크게 상관없을 것 같아요. 아무도 시작을 안 했으니까요.

 

블로그와 비교했을 때 확실히 파급력은 유튜브가 더 강력하군요.


이혜강 : 네이버의 경우는 검색 기반이잖아요. 검색은 최신성을 가장 우선시하다 보니까 제가 파워블로거라고 해도 1, 2년 지나면 제 글이 뒤로 밀릴 수밖에 없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조회수가 폭발적으로 나오는 경우가 그렇게 많지는 않았어요. 방문자 수가 많을 때는 하루에 1만 명 정도 찾아오는데, 영상은 하루에 150만 명씩 보거든요. 차원이 다른 것 같아요. 그리고 블로그는 목소리도 안 나오고 나와 봤자 사진 정도인데, 유튜브는 영상이 나오고 목소리가 나오니까, 팬의 충성도가 다른 것 같아요. 크리에이터에 대해서 더 관심을 가져요. 물론 블로그도 장점이 있기는 하지만 파급력 면에서는 유튜브가 훨씬 강한 것 같아요.

 

수익 면에서도 차이가 클 것 같아요. 블로그의 경우, PPL이 아니고서는, 직접적으로 창출되는 수익은 미미한 수준이지 않나요?


이혜강 : 맞아요. 만약 광고주들한테 돈을 받아서 글을 쓴다고 하면 사람들이 굉장히 싫어해요. 제가 만든 콘텐츠 자체로 수익이 발생한 건, 한 달에 2만 원 정도였어요. 조회수가 많이 나옴에도 불구하고요. 블로그에 광고가 붙기는 하는데 그 수익이 너무 미미한 거예요. 그런데 유튜브는 좋아하는 콘텐츠만 만들어도 거기에 붙은 광고를 통해서 수익이 나오니까, 그래서 좋은 것 같아요. 내가 좋아하는 콘텐츠만 만들어도 수익이 보장되는 거죠.

 

유튜브를 통해서 수익이 발생한다고는 하지만, 고정적인 건 아니잖아요. 그 부분 때문에 불편하지는 않으세요?


이혜강 : 고정적이지 않은 게 맞는데요. 월급 내에서 고정적이지 않으면 생활이 어느 정도 어려워지겠지만, 수익 자체가 그보다 크니까요. 생활에 지장을 주거나 걱정이 될 정도는 아닌 것 같아요.


국동원 : 가장 중요한 건 브랜딩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지금은 유튜브라는 플랫폼 안에서만 수익이 발생하지만 그 브랜드를 가지고 다른 분야에서도 활용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른 쪽에 가서도 유튜브 안에서의 팬들을 다시 흡수시킬 수 있는 힘이 있는 거잖아요. 브랜드만 잘 키워 놓으면 그런 부분들도 해결이 될 것 같아요.


이혜강 : 제가 블로그 ‘친절한 혜강씨’를 운영하다 보니까 감사하게도 저를 파워포인트 강의에 많이 불러주세요. 파워포인트를 잘해서 부르시는 게 아니라 저를 알아서 부르시는 것 같더라고요. 강의에 오시는 분들도 저를 아시니까 강의를 들으러 오시고요. 제가 볼 때는 ‘말이야와 친구들’, ‘말이야와 아이들’을 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크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크게 불안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 항상 좋은 콘텐츠를 만드는 데에만 신경을 쓰면 언젠가는 다방면에서 활용할 수 있다고생각해요.

노력한 만큼 수익도 커지니까 좋아요


책을 보니까, 유튜브를 운영하는 데 있어서 신경 써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닌 것 같더라고요. 채널 관리에 투자하시는 시간은 하루에 몇 시간이나 되나요?


이혜강 : 깨어있는 모든 시간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죠.


국동원 : 채널을 계속 키우고 성장시키려고 하기 때문에 열정적으로 하고 있죠.


이혜강 : 강의 끝나고 나면 남편이랑 영상 편집도 각자 하고요. 댓글들도 봐야 하고, 영상을 올릴 때도 조회수를 올려야 하니까 메타데이터도 신경 써야 하고, 섬네일도 예뻐야 많이 시청하시니까 섬네일도 고쳐야 돼요. 최근에는 새로운 채널도 2개 시작해서 더 바빠졌죠.

 

새로 시작하신 채널은 어떤 콘텐츠를 다루나요?


이혜강 : 저희가 가지고 있는 콘텐츠 중에서 외국에서 잘 통했던 콘텐츠들의 메타데이터를 전부 다 영어로 바꾼 채널이 하나 있어요. 한국말이 크게 중요하지 않은 콘텐츠만 올리고 있는데, 시작한 지 3주 정도 됐고요. ‘말이야와 게임들’이라는 채널도 있는데, 국내를 타깃으로 해서 저희 남편과 조카들이 모바일게임 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거예요. 확실히 기존 채널이 있어서 성장 속도가 빠른 것 같아요.

 

『유튜브로 돈 벌기』는 설명이 굉장히 꼼꼼해요. 책을 펼쳐놓고 따라서 클릭만 하면 될 정도로요. 

 
국동원 : 책을 만들면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이었어요.


이혜강 : 다른 기본서들이 많이 있지만, 내용은 너무 좋은데 무엇부터 시작해야 될지 잘 모르겠는 책들도 있더라고요. 저는 유튜브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너무 유용했는데요. 처음 유튜브를 하시는 분들은 보고 바로 따라 할 수 있는 책이 필요하실 것 같았어요. 『유튜브로 돈 벌기』가 그런 책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국동원 : 아시겠지만 1인 미디어 형태로 영상을 찍고 올리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 많거든요. 그래서 더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형태의 책을 만들고 싶었어요.

 

기존에도 유튜브 동영상 제작법, 유튜브로 수익을 얻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들이 있었는데요. 『유튜브로 돈 벌기』가 다른 책들과 차별화되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이혜강 : 실제로 유튜브를 운영하고 있는 사람이 만들었기 때문에 실제로 필요한 부분들이 담겨 있다고 할 수 있어요. 저는 다른 책은 보지 않았는데, 진짜 크리에이터가 쓴 책은 없는 걸로 알고 있거든요. 그래서 크리에이터가 되고 싶은 사람들에게 조금 더 적합할 것 같고요. 제가 매뉴얼 위주의 책들을 3권 정도 냈었기 때문에, 다른 책에 비해서 매뉴얼이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웃음).

 

두 분이 함께 유튜브를 운영하시면서 달라진 점이 있다면 어떤 건가요?


이혜강 : 남편이 회사를 그만뒀다는 게 달라진 점이고요.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게 됐죠. 그리고 뭔가 같은 일을 한다는 게 재밌더라고요. 공통사도 많고요. 무엇보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수익을 낼 수 있고, 어떤 일을 함께하든 콘텐츠가 될 수 있으니까, 그런 부분도 재밌는 것 같아요.

 

국동원 :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제가 키울 수 있는 부분들이 있으니까, 하나의 사업처럼 되어있는 게 가장 다른 점인 것 같아요. 회사에서 일을 하면 고정적으로 수익이 발생하는 부분들이 있는데, 이 일은 제가 하는 만큼 수익이 돌아오잖아요. 그런 점에서 약간 더 즐거운 부분들이 있는 것 같아요. 다양한 경험들도 하고 있는 것 같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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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Tube 유튜브로 돈 벌기국동원,이혜강 공저 | 길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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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미래학자 최윤식 “2018년에서 2019년 사이, 금융 위기 쓰나미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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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라는 것은 그냥 생기지도, 갑자기 오지도 않아요. 미래는 과거와 현재를 기반으로 생기는 거예요. 과거와 현재가 지속된다든지 방향적 변화가 일어난다든지 혹은 단절된다든지 해서 미래가 되죠. 이것이 중요해요. 우리는 무서우면 공포 때문에 행위를 못해요. 사실 리스크는 무서움에서 오는 게 아니라 그 상황에 어떤 행동을 하지 못하는 것에서 발생해요. 때문에 미래에 대한 합리적인 정보를 생산하고, 사람들의 생각을 넓혀주고 두려움을 줄여줌으로써 좀 더 나은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거죠.”

 

알면, 위기는 기회가 된다, 고 최윤식은 말한다. 『2030 부의 미래지도』, 『2030 대담한 도전』등을 펴낸 한국뉴욕주립대학교 미래연구원 최윤식 원장은 미래를 얼마든지 예측 가능한, 현재에 대한 이해를 기반으로 한 ‘변형된 현재’라고 말하고 있다. 알지 못해서, 막연한 두려움으로 미래를 미지의 영역으로 남겨둔다면 그것이 곧바로 위기가 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러므로 그의 시각에서 본 미래는 곧 기회다. 다가올 미래는 예측 가능하며, 우리는 얼마든지 그에 대비할 수 있다. 미래 산업에 투신하는 것도, 기존 산업에서 미래를 도모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변화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우선 인지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것은 개인이나 기업, 사회 모두에게 유효한 지적이다. 지금 시기야말로 ‘인식 대전환(paradigm shift)’이 일어나는 역사적인 시기인 만큼 전에 없는 변화에 대응하지 않는다면 아마도 당신은 살아남기 힘들 것이다. 곧 다가올 금리 인상과 금융 위기 쓰나미, 미래 대절벽을 극복하기 위한 중요한 정보를 정확히 읽는 것 그리고 선택하는 것은 이제 모두의 필수과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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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기회다


『2030 미래의 대이동』, 책의 영문 제목은 ‘EXODUS of OPPORTUNITY’예요. 미래와 기회를 같은 것으로 보고 있는데요. 

 

미래는 기회의 요소가 있죠. 물론 기회를 만들 때 기회의 국면을 현실화하면서 미래를 만들 것이냐, 하는 방식이 하나 있고요. 다른 하나는 위기의 국면이 있어요. 특히 큰 변화의 시기에 그래요. 익숙하지 않은 것들, 기존의 것과 다른 것, 창조적 파괴가 나오는 때가 그렇죠. 그런 것들은 우리에게 위기의 모습을 하고 오는데요. 그것 역시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결국 기회로 만들어낼 수가 있어요. 그런 면에서 우리에게 미래는 모두 기회의 요소다, 그렇게 봐야할 거예요.

 

‘두려움의 80~90%는 무지에서 생기는 것’이라고 했는데,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꼭 알아야 할 것들은 뭐가 있을까요?


미래는 정보가 없다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 큰 불안감을 갖게 해요. 특히 기존의 질서를 유지했던 그룹, 기득권층에서는 그게 더 심하죠. 그러나 인간의 논리적, 확률적인 사고의 기술을 가지고 미래에 대한 정보를 만들어낼 수 있거든요. 그것이 미래 예측의 영역이라고 보시면 돼요. 미래라는 것은 그냥 생기지도, 갑자기 오지도 않아요. 미래는 과거와 현재를 기반으로 생기는 거예요. 과거와 현재가 지속된다든지 방향적 변화가 일어난다든지 혹은 단절된다든지 해서 미래가 되죠. 이것이 중요해요. 우리는 무서우면 공포 때문에 행위를 못해요. 사실 리스크는 무서움에서 오는 게 아니라 그 상황에 어떤 행동을 하지 못하는 것에서 발생해요. 때문에 미래에 대한 합리적인 정보를 생산하고, 사람들의 생각을 넓혀주고 두려움을 줄여줌으로써 좀 더 나은 의사결정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거죠.

 

현재와 과거를 알면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줄일 수 있다는 말씀이시네요.


그렇죠. 미래 예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 세계의 모형을 잘 만드는 데 있다고 늘 얘기하는데요. 70~80%가 거기에 달려있어요. 그걸 가지고 변형을 하는 거거든요. 현재에 대한 이해가 아주 중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가까운 미래에 대한 예측이 좀 더 정확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정확하다는 말은 저희가 잘 쓰지 않는 단어고요. 사람들은 가까운 미래에 관심이 더 많죠. 어떤 면에서는 가까운 미래를 예측하기가 더 쉬울 수도 있고요. 하지만 가까움이 어느 정도냐에 따라 달라요. 기존의 것들을 연속적으로 이어가는 구간에서는 예측이 좀 쉽죠. 어제와 오늘이 비슷한 것처럼 오늘과 내일이 비슷할 테니까요. 그러나 변화가 크고 복잡도가 큰 시기에는 그 구간이 굉장히 짧아져요. 그러다보니 내일은 오늘과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는데 한 달 뒤는 오늘과 비슷하다고 할 수 없는 거죠. 그렇게 되면 그것은 단기적 영역임에도 불구하고 예측이 어렵죠. 그런 면에서는 단기적 미래가 예측이 수월하기도 하지만 어렵기도 하다, 이렇게 얘기할 수가 있어요.

 

먼 미래의 경우는 어떤가요?


당연히 먼 미래는 상식적으로 어렵겠죠. 그러나 단기적 미래를 예측할 때는 고려해야 할 변수가 굉장히 많거든요. 메가 트렌드, 트렌드, 마이크로 트렌드, 이런 것들을 다 종합해봐야 해요. 반면 먼 미래의 경우는 마이크로 트렌드 같은 것은 별로 고려해야 할 변수가 아니죠. 변수를 탈락시킨다는 측면에서는 먼 미래가 조금 더 예측하기 수월하다고 할 수 있어요.

 

책에서 20세기와 21세기의 충돌이라는 표현 아래 산업, 제조업부터 노동과 삶까지 완전히 변화할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거든요. 그렇다면 지금은 복잡도가 큰, 과도기적 상황이라고 볼 수 있을 텐데요.


먼저 20세기와 21세기에 무슨 차이가 있는지를 이해해야 해요. 역사적으로도 인식 대전환(paradigm shift)이라고 하는 큰 변화가 일어나는 구간이 있는데요. 20세기에서 21세기로 넘어가는 이 시점도 그 구간이라고 보시면 돼요. 큰 변화라고 하려면 조건이 필요해요. 대표적으로 관계성이 얼마나 복잡해지느냐 하는 거예요. 국가 간, 사회 간, 개인 간 관계성의 변화들이죠. 특히 국가 간의 관계성은 중요해요. 지금 영토의 개념은 별로 의미가 없잖아요. 또 하나는 경제적인 인식 전환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파악하는 중요한 신호가 기존 패러다임에 대한 큰 반성이 이루어진다는 건데요. 2008년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 이후 기존 신자유주의적 경제 패러다임에 대한 큰 반성이 이루어지고 있죠. 기술적 도약도 굉장히 중요해요. 21세기는 지능, 자율, 영생 부분에 대한 기술적 가능성을 만들어내고 있죠. 이렇듯 패러다임의 전환이란 결론적으로 우리 삶이 달라지는 거예요. 21세기의 삶은 20세기 삶의 연장이 아니라 전혀 생각지 못했던,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스타일로 간다는 거죠. 주거 환경부터 시작해 정신세계, 국가관 또는 내가 누구인가 하는 것들까지 새롭게 규정해야 해요.

 

쓰나미, 미래절벽처럼 무척 강력한 표현을 쓰고 있거든요. 그만큼 대전환임을 강조하는 것 같은데요. 그렇다면 이 시점에 개인이 절대 놓쳐서는 안 되는 중요한 내용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쓰나미 같은 강한 표현을 쓴 것은 실제 그렇기 때문이에요. 이럴 때 개인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지각판의 변화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우선 인지해야 한다는 거예요. 인지해야 판단할 수 있어요. 계속 이 지각판에 머무를 것인지 새 지각판에 옮겨갈 것인지, 판단하는 게 중요합니다. 가장 위험한 것은 판단하지 않는 거예요. 곧 금리 인상이라는 화두가 다가오고 있는데요. 여기서 진짜 리스크는 의사 결정을 못하는 거죠. 그것이 실제 위기를 만드는 거예요.

 

의사 결정을 정확히 하려면요?


주변을 돌아봐야죠. 인류 역사에 위기가 없었던 적은 없죠. 그래서 위기를 얘기하면 그건 늘 있었던 것이라고 말을 해요. 물론 틀린 말은 아니지만 중요한 건 그 위기가 어떤 위기인지 인지해야 한다는 거예요. 시간이 지나면 원 상태로 돌아갈 위기냐, 완전히 다른 세상을 만들 위기냐, 봐야죠. 이 두 가지는 섞여 와요. 90%는 원 상태로 돌아가는 위기예요. 그러나 아주 소수의 위기는 완전히 뭔가를 바꿔버려요. 지금의 위기는 후자라는 거죠. 개인이 그것을 들여다볼 역량이나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전문가들이 설명한 변화를 꼼꼼하게 보고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거예요.

 
그런 다음 판단을 해야죠. 산업으로 얘기해볼까요. 기존 한국의 5대, 10대 산업들이 위기에 직면하니까 많은 사람들이 미래 산업으로 가야 한다고 하는데요. 이건 또 다른 잘못이에요. 기존 산업을 해도 돼요. 미래 산업으로 간다고 성공하는 것도 아니고 기존 산업에 남아 있다고 실패하는 것도 아니에요. 차이는 있죠. 미래 산업은 점점 부가 가치가 커지고 기회가 많아질 테니까요. 개인도 여기서 판단을 해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면 가능하죠. 부와 기회를 늘리겠다는 목적이 있는 사람들은 미래 산업을 선택하는 게 유리하겠죠. 학습에 대한 열정과 역량, 시간적 상황이 있는 사람들은 그쪽으로 가는 게 좋아요. 그런데 나의 목적이 기존의 것들을 관리해서 만족을 얻었으면 좋겠다는 데에 있다면 기존 산업 안에서 전략을 구사하면 돼요. 나의 역량을 들여다보는 게 가장 중요해요. 그 선택을 하고 나면 좀 더 구체적인 다음 단계를 생각할 수 있는 거죠.

 

나의 선호와 역량을 파악하면 집중해야 하는 변화나 위기의 모습도 달라질 수 있겠군요.


미래 산업에 도전하겠다는 사람은 새로운 변화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지면 되는 거고요. 기존 산업에 머물러 다른 목적을 갖겠다는 사람은 기존의 것들이 미래의 변화에 따라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하는 부분에 관심 가지면 되는 거죠. 예를 들어 21세기 산업에 관심을 가졌다면 바이오테크놀로지 산업이라든지 나노테크놀로지, 인공지능, 자율주행 자동차 등에 관심을 가져야겠죠. 그러나 미래에도 조선 산업이 없어지진 않을 거거든요. 자율주행 자동차가 나와도 엔진 자동차 수요는 있을 거고요. 인구가 아무리 감소돼도 주택 산업은 유지될 거예요. 기존 판에 머물겠다면 그것에 대해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를 연구하는 게 필요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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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위기 쓰나미가 온다


2016년 이후 5년에서 10년 이내에 아시아발 금융 위기가 올 것이라고 예측했어요.


현재 경제 시스템과 글로벌 위기의 패턴을 보면 그것은 예정된 겁니다. 불확실성은 시기와 범위 정도고요. 간단해요. 둘 중 하나예요. 빚을 냈으면 갚아야죠. 갚으려면 소비를 줄여야 하고, 그럼 저성장이죠. 아니면 파산을 하는 거고요. 2008년부터 시작된 미국의 위기, 유럽의 위기 그리고 신흥국과 아시아의 위기는 전부 그 안에 있는 거예요. 이건 상식적인 것이죠. 쉽게 얘기하면 ‘빚의 재조정(de-leverage)’인데요. 재조정하지 않으면 안 될 수준까지 빌려 썼기 때문에 빚을 재조정해야 하는 거예요. 중국은 상업 영역이 그렇고, 한국은 가계 영역이 그렇죠. 한국에서도 일부 좀비 기업이라든지 성장의 한계에 다다른 기업들이 당연히 그렇게 된다고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시기와 범위의 불확실성이라면 무엇 때문인가요?


미국의 금리인상이나 유럽 상황, 한국의 정책적 영향 등 여러 가지를 보기 때문에 시기가 언제일지는 변동성이 커요. 또한 규모에 따라서도 그래요. 부채를 줄이면 충격이 오죠. 얼마나 잘 대비하느냐에 따라 빨리 회복할 수 있느냐 아니냐의 차이가 있어요. 그것만이 불확실성이지 금융 위기는 온다고 봐야 하는 거고요. 오히려 미국이 기준 금리 인상을 아주 신중하게 하는 것, ‘브렉시트’라는 와일드카드가 터진 것 등으로 조금 늦춰졌을 뿐이에요. 한 번 지나가야죠. 이건 피할 수 없는 거예요.

 

좀 더 구체적으로, 한국의 경우는 어떻게 보고 있나요? 2018년에서 2019년 사이 금융 위기 쓰나미가 올 거라고 했거든요.


대비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죠. 오히려 파도를 더 크게 만들고 있어요. 가계부채를 줄이고 있지 않잖아요. 오히려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데요. 늘어난 만큼 파도가 커지는 거예요. 쓰나미의 위력이 세지는 거죠.

가계 부채의 질도 나쁘다고 하잖아요. 저소득층과 자영업자 중심이고요.


정부나 관계자들은 미국과 같은 ‘서브 프라임(subprime, 프라임(prime) 아래에 있는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은 아니라고 해요. 왜냐하면 한국은 서브 프라임에는 집을 사게 해주지 않으니까요. 가계 부채의 총량은 크지만 ‘프라임 모기지’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해요. 문제는 이거예요. 그건 지금이라는 거죠. 우리나라에 프라임 모기지론을 받은 사람, 안정적인 기업에 다니고 그것으로 평가를 받아 집을 산 사람들이 서브 프라임이 되는 건 간단하거든요. 그 직장에서 어떤 문제가 생기면 곧바로 서브 프라임이 되죠. 그럴 가능성이 있고요. 그들이 은퇴를 하거나, 그들의 회사가 어려워지거나 하면 그렇잖아요. 저성장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기 때문에 국내 기업들이 어려워질 가능성도 높거든요. 위기가 양쪽에서 오는 거죠. 저는 현재는 위기가 아니라고 말하는 거예요. 그러나 곧, 몇 년 후에는 위기가 될 것이라고요. 지금 프라임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몇 년 후에 일어날 일도 생각해야 하는 거거든요. 때문에 안전하다고 말하는 것은 굉장히 무책임하다고 생각해요. 가계 부채의 위기가 2018년과 2019년 사이에 나타날 거라고 보고 있어요.

 

기준 금리 인상을 주요 원인으로 두셨죠.


미국이 올해 말 금리 인상을 하면 우리나라도 2017년 말이나 2018년 초에는 금리 인상을 시작할 텐데요. 인상 시작 후 6개월이면 아주 취약한 사람들은 바로 영향을 받을 거고요. 본격적인 위기는 1년 후부터 올 거예요. 그때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죠. 여기에 3~4년 지나면 생산 가능 영역이 더 줄어들고, 그 사이에 은퇴자들도 많아집니다. 청년 실업률은 더 나아질 가능성도 없죠. 이런 것들이 맞물리면 ‘1+1=2’가 되는 게 아니고요. ‘1+1=3 또는 4’가 된다고요. 그 충격을 한국 사회가 감당할 수 있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1997년 외환위기의 경우, 외상은 컸어요. 그러나 내상은 그렇게 깊거나 길게 가지 않았어요. 당시 한국 경제는 상승국면이었거든요. 생산 가능 영역도 늘고 있었고요. 기업에도 위기가 왔지만 계속해서 시장을 넓혀가는 시기였죠. 중국이라는 적수도 없었어요. 오히려 일본 시장을 빼앗아 오는 시기였죠. 부동산도 그렇고요. 그런데 지금은 완전히 달라요. 외상은 적을 거예요. 상당수의 기업들이 금융 위기 문제를 대비해 자기자본율을 높였죠. 전체적으로 기업이 파산하거나 충격을 받는 건 97년보다는 적을 것이지만, 내상이 클 거예요. 지금은 가계 영역이거든요. 기업은 아시아 대위기가 끝나도 계속해서 시장 싸움을 해야 하고, 은퇴자는 계속 나올 거고, 부동산 시장은 일본 시장을 계속해서 닮아갈 거고, 은퇴 이후의 복지비용이 계속 늘어날 거고, 생산 가능 영역은 계속 줄 거고요. 이대로 가면 한국은 ‘잃어버린 20년’ 간다고 보시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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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사야 하나?


부동산 문제 해결이 핵심일 텐데요. 개인 영역에서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고 정책이 중요할 것 같은데 현 정부의 정책들을 보면 해결이 요원해 보이는 것이 현실이에요.


정책적인 부분도 중요하지만요, 개인이 더 현명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어요. 큰 틀에서는 정책이 해야죠. 그것은 분명히 지난 정권이나 이번 정권이 잘못한 거고요. 하지만 한국 GDP의 20%가 건설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거든요. 물론 2~3년 동안의 GDP 1%를 올리기 위해 미래 GDP 성장률을 끌고 오는 거니까 길게 봐서 좋은 정책은 아니죠. 제도의 문제가 있었어요. 하지만요, 개인들도 조금 더 냉정한 판단을 했었어야 해요. 가계 부채를 늘릴 것이냐 말 것이냐, 결국 본인이 판단하는 거잖아요. 정부는 부채를 늘리도록 다양한 우대를 해준 거고요. 그것을 보고 내가 갚을 수 있느냐, 앞으로 일어날 경제적 상황이나 흐름을 보고 지금 사는 게 도움이 될 거냐를 개인이 판단했어야 해요. 집을 사지 말라는 얘기가 아니에요. 집은 필요하죠. 당장 전세비가 오르고, 이사를 많이 가야하고, 불편하기 때문에 집을 산다는 건 이해가 되는 선택이에요. 그러면 그 집을 끌어안고 있음으로 인해 발생하는 부채의 압박을 본인이 감당할 수 있는지 생각을 했어야 하거든요. 대안을 갖고 있었어야 해요. 개인이 그 정도의 판단은 하셔야 해요.

 

그렇다면 지금 시점에서 개인들에게 조언을 해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돈 많은 사람들 말고, 보통 중산층으로 봤을 때 제가 권하는 것은요. 조금 불편하시더라도 어차피 지나가는 건 지나가니까요. 한두 번 정도는 전세나 월세를 더 사시다가 이게 지나가고 나서 더 좋은 조건이 나오니까 그때 집을 사는 것이 여러 가지로 유리할 거라는 거예요. 많은 분들이 착각해요. 이번에 집 안 사면 못 사는 줄 알고요. 안 그래요. 그냥 한두 번 정도만 더 가시면 되는 거거든요. 그러면 불편하긴 하지만 경제적으로 심각한 위기가 오는 것을 방어할 수 있죠. 은퇴 시기가 빨라지고 있고, 부양을 점점 못 받을 것이기 때문에 은퇴 전에 얼마나 비축을 하느냐가 이후 50년에 아주 중요해지거든요. 이게 처음에 얘기했던 판의 변화예요. 예전과 다른 거죠. 때문에 이때는 한 번 더 신중하게 개인들도 선택을 하셨어야 해요. 지금이라도 합리적인 선택을 해야 합니다.

 

부채를 안고 집을 산 사람들은요?


위기는 예고된 거잖아요. 그러면 차분히 앉아서 계산을 하셔야 해요. 핵심은 금리가 인상 되었을 때 이자를 낼 수 있느냐거든요. 못 내면 집을 잃어요. 때문에 이자 낼 준비를 해야죠. 최소한 지금 내는 금융비용의 두 배 내지 세 배를 삼 년 정도 버티면서 낼 수 있는 여력을 마련하셔야 해요. 아직은 금리 인상이 본격적으로 되지 않았고, 빨라야 내년 말이나 내후년 초쯤 인상할 거란 말이죠. 어쩔 수 없어요. 그 일 년에서 일 년 반 동안 옷 한 벌 덜 사고, 외식도 줄이고, 여행비나 정 안 되면 학원비라도 줄여서 비축을 해둬야 해요. 그 지혜는 아직도 발휘할 수 있는 시간이 있어요. 최선의 전략은 못 쓰지만 최악은 피해갈 수 있어요. 훗날을 도모해야죠. 쉽게 말해서 여러분이 앞으로 50년, 60년 살 동안 집 살 기회는 계속 나와요.(웃음) 걱정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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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드는 것

 

이미 한국 사회는 7가구 중에 가구가 다문화가구다. 30~40년만 지나면 외국인의 숫자는 지금의 7~8배가 넘을 것이다. 안정 세대와 불안정 세대의 충돌을 해결할 묘수를 찾지 못하면 시간이 지날수록 ‘다문화’는 성장의 동력보다는 쇠퇴를 촉진하는 리스크가 될 것이다.(중략) 10년 후면, 다문화가정의 자녀 1세대들이 부모의 품을 떠나 사회로 나오게 된다. 지금과는 여러 면에서 차이가 있을 것이다. 과연 한국 사회는 그런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까?(113~114쪽)

 

안정 세대와 불안정 세대의 충돌을 다룬 부분에서 자살이나 무기력 같은 단어가 눈에 띄었어요. 한국 사회에 대해서는 똘레랑스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했는데요.


이미 안정 세대와 불안정 세대의 충돌은 시작됐어요. 전 세계 모든 나라에서 일어나고 있어요. 한국도 예외가 아니죠. 그런데 충돌의 결과는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나라마다 다를 수 있어요. 문화에 따라 가중치가 달라질 수는 있는데요. 특별히 우리나라는 관용이 굉장히 필요해질 거예요. 왜냐하면 한국은 뿌리 깊이 단일민족이라는 사실에 대한 인식이 무척 강하거든요. 인종차별이 심한 나라 중 하나죠. 그 사실을 인지하고 제도와 교육으로 바꾸는 실제적인 행위를 해야 해요. 가장 중요한 것은 교육의 변화예요. 생각의 문제기 때문이에요. 그런 것들을 잘 준비하면 위기가 와도 재기의 발판을 마련할 거예요. 그렇지 않다면 일본의 사례보다 더 심각한 문제들이 더 일어날 수 있는 거죠.

 

미국이 곧 대선을 치를 거고요. 한국도 멀지 않은 이야기예요. 여러 모로 전환기인 것은 확실한데요. 요즘 집중하고 있는 이슈는 뭔가요?


정치에도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어요. 기존 정치인에 대한 혐오가 극에 달했죠. 그래서 트럼프의 발언, 행동에서 카타르시스를 얻는 거예요. 트럼프의 말대로 실제로 하면 미국은 망해요. 미국은 관용으로 일어선 나라기 때문에 트럼프의 이민 정책을 쓰면 미국은 혁신이 끝납니다. 그 모든 것이 정치에 대한 불신이고, 그런 차원에서 미국도 정치적인 전환기라고 봐야 해요. 단순히 트럼프와 힐러리의 대결이 아니고요. 우리나라도 그렇죠. 한국에서 가장 대표적인 정치가 ‘보스 정치’인데요. 보스는 잘하든 못하든 무조건 한 번은 대통령 시켜줘야 하는 거거든요. 배신하면 안 되는 거고요. 이념은 중요치 않죠. ‘보은 정치’거든요. 저는 박근혜 대통령이 보스 정치의 마지막 인물이라고 봐요. 이게 굉장히 중요한 한국 정치사의 변화가 될 거예요. 이제는 지역주의를 깰 수도 있겠죠. 좀 더 합리적인 투표로 갈 수 있을 거고요. 그러면 정치가 한 단계 발전할 겁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면, 포퓰리즘이 난무하고 보스 정치보다 후퇴할 수도 있어요. 지금은 그런 분기점에 있다고 봐야 해요. 첫 번째 시작이 2017년 대선이 될 거예요. 때문에 미래를 연구하는 입장에 국가와 관련해서는 정치적인 이슈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다루고 있는 내용도 무척 광범위하고, 새로운 가치를 찾는다는 점에서 미래학은 굉장히 철학적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기존 학문과 미래학이 가장 근접한 것이라고 하면 저는 철학을 꼽아요. 미래학은 나타나지 않은 것에 대한 연구잖아요. 실증적 데이터가 없어요. 그래서 이 연구는 순수하게 생각의 영역이에요. 철학과 유사하죠. 연구 패턴이 철학적이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새로운 비즈니스를 만들 때도 그것은 그냥 나오는 게 아니죠. 생각이나 이상을 현실화 시키는 거거든요. 이 생각은 모든 사람이 할 수 있는데요. 그것을 ‘미래상’이라고 하고요. 개인들이 갖는 미래 이미지인데요. 그 중에서 누구의 생각이 대중적 지지를 많이 받을 수 있는가가 아주 중요해져요. 현재와 미래 이미지를 비교했을 때 사람들이 미래가 더 낫다고 생각해야 하고, 충분히 도전해볼 만하다고 생각해야 하고요. 그것이 대중의 지지를 얻어요. 그러면 방향성이 설정되고, 거기에 맞춰 물건이 나오는 거예요. 이런 측면을 보면 미래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드는 거라고 볼 수 있죠.

 

이 책을 특히 어떤 독자들이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세요?


제가 ‘2030 시리즈’를 많이 냈는데요. 분량이 방대해요. 그래서 조금 젊은층이라든지 미래의 변화에 처음 입문하는 분들이 보다 쉽게 읽으실 수 있도록 썼어요. 세대로 타깃을 둔다면 20대와 30대입니다. 젊은 분들이 많이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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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미래의 대이동최윤식,최현식 공저 | 김영사
정부기관과 핵심기업들의 전략멘토, 미래 전략 경영의 대가 최윤식이 10만 독자들의 요구에 응답해 단 한 권으로 정리한 미래통찰과 전략의 핵심. 미래의 주인이 되려는 이들, 위기를 기회로 바꾸려는 이들을 위한 미래전략 입문서.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남강한, 록밴드 뮤지션에서 그림책 작가가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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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는 매일 매일이 모험이요 도전이다. 처음 만나는 사건들과 감정들로 하루가 채워진다. 설렘만큼 두려움도 클 터다. 도서출판 북극곰이 새롭게 선보이는 ‘북극곰 처음이야 시리즈’는 이렇듯 평범하면서도 낯선 우리 아이들의 일상을 담았다. 시리즈의 출발을 알리는 작품 『나 홀로 버스』는 주인공 아기 돼지가 ‘처음으로 혼자서 버스를 타는 날’의 이야기를 전한다.

엄마의 배웅을 받으며 홀로 버스에 오른 아기 돼지는 의자 위에 가방과 초콜릿을 올려두고 버스 요금을 내기 위해 자리를 비운다. 그런데 돌아와 보니 가방만이 덩그러니 남겨져 있다. 아기 돼지의 초콜릿은 무섭게 생긴 늑대 아저씨의 손에 들려있다. 아기 돼지는 초콜릿을 되찾을 수 있을까? 이야기는 호기심을 자극하며 흥미진진하게 이어지고, 시시각각 변하는 아이들의 감정을 예리하게 포착해낸다.

그림책 『우리 아빠는 알 로봇』, 『우리 아빠는 외계인』을 통해 독자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던 작가 남강한. “어른과 아이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려는 그의 노력은 『나 홀로 버스』에서도 여전히 이어졌다. 아기 돼지를 보며 공감하는 이들은 어린이 독자들만이 아니다. 다 큰 어른들도 저마다의 처음을 떠올린다. 낯선 상황을 경험하고, 당혹감과 두려움을 느끼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건 어른들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나 어른들에게나 『나 홀로 버스』는 과거의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현재의 이야기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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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재밌게 살려면 용기가 필요하잖아요

『나 홀로 버스』의 이야기는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처음부터 어떤 의미를 생각해서 만든 게 아니고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청취자 사연을 읽어주는 걸 들었는데, 책에 실린 에피소드와 비슷한 이야기였어요. 어떤 고등학생이 하굣길에 자기가 좋아하는 과자와 가방을 들고 버스를 탔는데, 잠시 의자 위에 올려놓고 버스비를 내고 돌아왔더니 소위 일진이라는 아이들이 그 과자를 먹고 있었다는 거예요. 이후의 이야기는 스포일러가 되니까 다 말씀드릴 수는 없는데(웃음), 그 사연을 듣고 ‘여기에 어떤 의미를 담아서 이야기를 만들어 볼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처음 버스를 타는 어린아이가 두려운 마음에 공포스러울 수 있는 사건을 경험하게 되는, 그런 에피소드를 만들면 재밌는 이야기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책을 읽고 생각해보니, 아이들에게는 매일 매일이 낯선 상황의 연속일 것 같더라고요. 그 과정에서 두려움을 느끼기도 할 거고요.

처음 당황스러운 상황을 경험하는 게 아이들에게는 고난이잖아요. 안 해본 일을 하는 거다 보니까 두려움도 생기고요. 어떻게든 그 고난을 극복하는 순간은 올 거예요.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면요. 그런 생각을 하다가 만들게 된 이야기인데요. 에피소드만 담는 게 그림책은 아니잖아요. 거기에 녹아들어가는 의미 있는 부분이 있어야죠. 그게 교훈은 아니고, 이야기하려는 ‘무엇’은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아이들이 책 속에서 교훈을 찾기를 바라는 부모님들이 많으실 텐데요. 작가님께서는 그림책이 꼭 교훈만 전해줘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세요?

제 작품을 보셔서 아시겠지만, 아마 교훈은 없을 거예요. 앞으로도 제가 그림책을 만들면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무조건 재미가 있어야 된다는 사실인 것 같아요. 재미있는데 교훈까지 있다면 좋겠죠. 그런데 재미가 2순위가 되어버리고 교훈을 중심으로 가는 건 제가 하지 못할 일인 것 같아요.

“어른과 아이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려고” 한다고 말씀해 오셨는데요. 아이와 함께 『나 홀로 버스』를 읽는 성인 독자들도 공감하는 지점이 있을까요?

『우리 아빠는 외계인』과 이번 작품은 톤이 조금 다를 거예요. 『우리 아빠는 외계인』의 경우는 아이가 느끼는 재미 코드와 어른이 느끼는 재미가 평행선으로 가는 느낌인데, 『나 홀로 버스』는 아이가 재미를 느끼는 부분에서 어른들도 똑같은 느낌을 받고 같이 웃어줄 수 있게 될 거예요. 어른들도 자신들이 처음으로 어떤 것을 경험했을 때, 당시의 두려웠던 감정을 떠올릴 수 있겠죠.

작품 속의 아기 돼지처럼 처음 세상으로 나가는 아이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메시지가 있으셨어요?

뭔가 있어 보이고 싶어서 ‘나는 아이들에게 이런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 이야기를 썼다’는 거짓말은 안 할게요. 이 이야기는 라디오에서 들은 에피소드를 듣고 나서 나중에 메시지를 생각한 거예요. 메시지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자면, ‘세상을 재밌게 살기 위해서라도 처음을 극복하는 데 용기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스키를 타거나 수영을 하는 것처럼 재밌는 놀이라고 해도 안 해 본 일을 하는 건 두렵잖아요. 그럴 때 가장 필요한 건 용기란 말이죠. 그런 의미에서 인생을 재밌게 살려면 용기를 가져야 한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었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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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된 후에도 처음 경험하는 일들은 계속 생기죠. 작가님의 경우에도 록밴드 뮤지션에서 일러스트레이터, 그림책 작가로 새로운 일에 도전해 오셨는데요. 두려움도 느끼셨겠죠?

다른 장르의 일을 하는 거니까, 분명히 두려움은 있었어요. 저는 원래 꿈이 록밴드 뮤지션이었고 직접 해보고 싶었어요. 그런데 현실적으로, 그리고 여러 가지 이유로 그만두게 됐죠. 그 시점에서는 그림책 작가도 아니었으니까, 그냥 아무것도 아닌 거더라고요. 이전까지는 뭔가를 만들어서 세상에 발표하는 인생을 살았는데, 이제는 뭘 해야 할까 고민도 많이 했어요. 그러다가 제가 미술을 전공했으니까 일러스트레이터로서 활동을 시작하게 됐죠. 그런데 동기부여가 돼서 ‘내가 무언가를 만들어서 세상에 발표할 수 있는 또 다른 일을 한다면 그게 그림책 작가일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거예요.

메시지를 전달하시는 방식이 음악에서 그림으로 변화한 건데요. 둘 사이에 비슷한 점도 있나요?

일정 부분 만나는 지점도 있는 것 같아요. 음악을 만드는 과정과 하나의 이야기를 만드는 과정이 비슷하거든요. 그림을 통해서 전달하는 메시지가 노래의 가사가 될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리고 보통 곡의 구조를 보면 도입부에 잔잔한 부분이 있으면 하이라이트 부분에서 터져버리는 부분이 있고, 그 사이에 중간 다리 부분이 있어요. 그게 그림책의 구조와 똑같다고 볼 수는 없지만, 그런 느낌의 구조가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그러고 나서 그림책 작법을 공부하려고 하니까 음악을 할 때의 경험들이 도움 되는 지점들이 분명히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차이점이 있다면 어떤 건가요?

음악은 절치부심 뭔가를 만들고 나서 대중한테 보여지는 순간이 있어요. 무대에서 관객을 바라보는 순간부터 몸으로 느껴지는 피드백이 오죠. 그런데 그림책은 달라요. 누군가가 쓴 서평을 통해서 반응을 보게 되고 ‘내 작품을 어떻게 읽었을까, 재밌게 읽었으면 좋겠다’ 하고 기대하게 되죠. 그런 부분에서는 차이점이 느껴지는데,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에요. 매체에 따라 다른 점이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독자평을 보니, 한 분께서 작가님에 대해 이렇게 추측하셨더라고요. ‘386세대 혹은 X세대일 것이고, 괴짜라는 별명을 자주 얻는 독특한 캐릭터일 것이고, 권위주의에 반항하는 반골성향을 지닌 탈 중심주의의 자유인일 것’이라고요. 어떻게 생각하세요(웃음)?

저도 그 분의 글을 봤어요. 저를 만나보고 싶다고 하셨는데 저도 그 분을 만나보고 싶어요. 너무 잘 맞추신 것 같거든요.

반골성향을 가진 탈 중심주의의 자유인이시군요(웃음).

그런 성향이 있는데, 그림책 작가를 하면서 생긴 건 아니에요. 록 뮤지션들이 반골 성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볼 수도 있죠. 록 음악이 저항과 반항의 상징이 된 과정을 보면 알 수 있어요. 처음에 록 음악은 춤을 추기 위한 곡이었어요. 그런 젊은 세대를 보면서 기성 세대가 비난을 했고, 그런 비아냥을 들으면서 울분을 느낀 젊은 세대가 점점 더 그쪽으로 가다 보니까 저항과 반항의 상징이 된 거죠. 원래 자기 안에는 울분이 없었더라도 그 음악을 듣고 체득하다 보면 다들 그렇게 돼요. 그런 감정들이 투영된 콘텐츠들이니까요.

그런 성향이 그림책에도 영향을 미쳤을까요?

그림책 작가가 되었을 때 ‘그런 분위기와 느낌의 이야기를 그림책에도 충분히 담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었어요. 그게 『우리 아빠는 알 로봇』, 『우리 아빠는 외계인』으로 이어진 거죠. 분명 이 작품들에는 제가 어린 시절에 느꼈던 울분과 원망 같은 것들이 담겨있어요. 제 실제 경험과 가까운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아이를 낳는 부분만 빼고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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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책 읽기, 그냥 지켜봐 주세요

『우리 아빠는 알 로봇』에는 친구들에게 근사한 장난감을 보여주면서 ‘우리 아빠 멋지지?’라고 자랑하는 아이들이 등장하는데요. 이 이야기에는 어떤 울분이 녹아있나요?

제가 느끼기에는 지금의 세태가 물질적인 걸 중시하는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고 단정 지어서 이야기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아요. 제가 아빠가 아니다 보니까 아이를 키우는 주변 사람들은 네가 아직 아빠가 아니라서 모르는 거라고 하는데요. 설령 제가 아빠가 되더라도 그런 현상에 대한 고민과 고충은 분명히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정말 소중한 게 무엇인지 알 것 같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그런 소중함 자체도 없고, 다른 사람들이 그러니까 너도나도 쫓아가는 것 같아서 너무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그런 의미를 담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주인공 아이에게는 값비싼 장난감이 없어요. 아이의 아빠는 그럴 여력도 없는 것 같고요. 그렇지만 아이는 친구들을 부러워하지도, 주눅이 들지도 않죠.

작품을 쓰면서 이런 생각도 들었어요. 가지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 힘들게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렇다고 그들이 가진 자들에 대한 동경으로만 치닫는다면, 그건 정말 지옥이 아닐까 싶더라고요.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 아이는 ‘너희들은 그런 걸 가지고 자랑하고 좋아하지? 우리는 가진 게 많이 없지만 이렇게 충분히 행복해! 너희들이 이 행복감을 알아?’라고 말하는 것 같잖아요. 어쩌면 제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이상을 끄집어낸 걸지도 모르겠어요. 다르게 해석하면 그런 입장에 처해 있는 아이나 어른들을 뒤에서 응원해 주고 싶은 마음일지도 모르고요.

『나 홀로 버스』에서는 주인공인 아기 돼지가 느끼는 감정에 따라 날씨도 변하고 그림체도 달라지는데요. ‘아이들이 숨겨진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까?’ 싶기도 했어요. 그런데 예상보다 더 잘 찾아내고 느끼는 것 같더라고요.

저도 그런 이야기를 들었어요. 제가 아동학을 공부했던 사람도 아니고, 아이의 정서를 자세하게 연구했던 사람도 아니잖아요. 그래도 ‘이러지 않을까?’ 생각하고 창작을 하게 되고, 제가 아이가 되어야 된다는 생각으로 그 시절을 떠올리려고 해요. 그렇게 만들었을 때 ‘분명히 아이들이 이렇게 이해할 것이다’라고 확신은 못해요. 그때의 저를 떠올렸을 때 비슷하게 느꼈던 지점이 있는 것 같으면 그걸 표현할 뿐이죠.

그렇다면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줄 때, 감춰진 의미를 하나하나 짚어주는 게 좋을까요? 아니면 한 발작 물러서서 자유롭게 읽도록 놔두는 게 좋을까요?

후자가 맞는 것 같아요. 작가가 이야기하려는 방향대로 진행되지 않고 다르게 받아들인다고 하더라도, 그에 맞게 지켜봐 주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래도 뭔가 알려주고 싶다면 ‘이건 이런 내용이야’라고 말할 게 아니라 ‘나도 그 이야기 재밌게 봤어, 나는 이런 느낌을 받았던 것 같아’라고 말해주면 좋겠죠. 그러면 아이가 보면서 알아서 중화시키고,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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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이야기를 만드는 작가’로 기억되고 싶어요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색감이 참 따뜻하고 고운 작품입니다. 그림을 그리실 때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부분이 있다면 어떤 건가요?

그림책에도 여러 가지 느낌이 있잖아요. 회화적인 가치가 뛰어난 것도 있고, 철학적인 느낌이 있는 것도 있고요. 그림은 그냥 평범하거나 아주 단순한데 전체적인 서사, 아이디어가 재미난 그림책도 있거든요. 제가 어느 쪽에 포함되는지 생각해 보니까 후자인 것 같아요. 그러면 그림에서 예술적인 가치를 표현하기 위해서 너무 힘을 주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요.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에 철저히 그림이 맞춰지는 방향으로 중심을 잡아야 될 것 같아요. 저는 한 권의 그림책이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에 그림을 비롯한 모든 것들이 맞춰져야 된다는 생각이에요.

어린이 독자들에게 작가님의 작품이 어떤 이야기로 기억되길 바라세요?

기본적으로 너무 진지하거나, 무게 있거나, 거룩하거나, 그런 걸 별로 안 좋아해요. 만약 재밌다는 평가를 못 받는다면 안타까울 것 같아요. 재미가 있는데 무게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면 정말 최고겠죠. 단순하게 이야기하면 ‘재밌는 이야기를 만드는 작가였구나’라고 기억되면 참 좋겠어요.

어떤 그림책을 좋아하세요?

작가로서 보자면, 제가 처음으로 그림책에서 감동이 느껴진다는 생각을 했던 건 존 버닝햄의 『우리 할아버지』였어요. 손녀와 깊은 유대를 맺고 있던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는 부분을 담담하게 표현했는데요. 웃음 코드가 있거나 그런 건 아닌데 ‘이런 게 그림책이 사람한테 감동을 주는 지점이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 이후로 많은 작품들을 찾아 봤지만 가장 감동을 느꼈던 첫 작품은 『우리 할아버지』였던 것 같아요.

최근에 인상 깊게 읽으신 그림책이 있으세요?

안녕달 작가님의 작품 중에 『수박 수영장』이 있어요. 이런 상상을 해서 이야기를 만들었다는 자체에 감동을 받았어요. 잘려진 수박 두 덩이를 수영장이라고 생각해서 현실과 가상의 세계를 오가는 내용인데요. 그 판타지가 자연스러워요. 그리고 수박을 생각할 때 떠오르는 사각사각하는 느낌이 있잖아요. 그런 느낌이 보이더라고요. 수박 한 덩이에 사람들이 들어가서 수영을 하고 피서를 즐기는데, 과장된 상황이고 말도 안 되는 상황이지만, 그게 그냥 받아들여지는 거예요. 그래서 이 분의 상상력은 엄청나구나 라는 느낌이 들었던 작품이었어요.

『나 홀로 버스』는 ‘북극곰 처음이야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인데요. 시리즈의 다음 작품에서도 아기 돼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나요?

어떻게 할지 계속 고민을 했었는데, 그렇게 하기로 정했어요. 상황은 다르니까 이번 작품에서 주연으로 나왔던 늑대 아저씨는 조연이 되겠죠. 어쨌든 주인공은 아기 돼지가 될 거고요. 처음 경험하는 일에서 느끼는 두려움을 이겨내는 이야기를 그려볼 생각이에요.

어떤 분들은 아이한테 밝고 희망찬 이야기만 들려주고 싶어 하실 것 같아요. ‘그림책에서 힘은 현실에 부딪히는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지는 않다’고 말씀하실 수도 있을 텐데요. 그런 이야기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세요?

『우리 아빠는 알 로봇』을 읽혀드리고 싶어요. 그런 바람에는 아이가 좋은 것만 바라보는 슈퍼맨이 되어서 이 사회에서 핵심 인물로 자랄 거라는 기대가 섞여 있는 것 같거든요. 제가 그 지점에 관해서 느낌이 드는 건 있는데, 말로 설명할 수는 없으니까, ‘『우리 아빠는 알 로봇』을 한 번 봐 주세요’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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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버스남강한 글그림 | 북극곰
오늘은 아기 돼지가 처음으로 혼자서 버스를 타는 날입니다. 엄마의 마중을 받으며 버스에 오릅니다. 가방을 의자에 올려놓고, 버스비를 내고 자리로 돌아오는데... 앗! 무서운 늑대 아저씨가 아기 돼지의 초콜릿을 먹고 있습니다! 이제 아기 돼지는 어떻게 될까요?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퓨어킴 “한걸음씩 정성을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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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응>(2012)과 <purifier>(2014), 그리고 신보 <gem>(2016)까지. 이 뮤지션을 규정짓는 단어는 역시 자유분방함이다. 데뷔 당시 파격적인 가사와 실험적인 음악을 통해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게 만들었던 그녀는, 자신의 위치도 사람들의 보는 시선도 달라진 지금에 와서도 여전히 무엇을 할지 궁금하게 하는 미지의 인물로서 자신의 영역을 조금씩 구축해가고 있다. 어느 순간 작품보다는 음악 외적인 것들로 인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대중들에게 사냥을 당하는 마녀가 되어버린 한 싱어송라이터와의 만남. 외부 시선을 배제한 채 '지속 가능한 음악인생'이라는 일관된 꿈을 설파하는 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엔, 스스로 탄생시킨 보석만큼이나 영롱한 빛깔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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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rifier> 이후 거의 2년 만의 작품이 나왔다. 이에 대한 소감을 듣고 싶다.

사실 녹음은 올해 초에 끝났다. 기다리는 시간이 있어서 잠깐 잊고 지냈었는데... 일단은 감사한 마음이 정말 많이 들었다. 프로듀서를 맡아주신 포스티노를 비롯한 스태프뿐만 아니라, 가족이나 친구처럼 정신적으로 도움이 많이 되었던 분들에게도 고마움을 느꼈다. 그래서 전날 엄청 뭉클하고 해서 고맙다는 문자도 막 보내고.

작품 간의 텀이 길어지는 것에 대한 조바심도 났을 것 같은데.

2년이 그렇게 긴 시간이 아닌데, 이게 다 종신 오빠가 한 달에 한번 내서 그래(웃음). 평상시에 뭔가 많이 안하는 집순이 스타일이고, 혼자 생각하다가 충분히 쌓여서 넘치려할 때 풀기 때문에 2년이란 시간이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조바심도 나지 않았던 것이, 어쨌든 나는 어떻게든 이 일을 계속 할 것이라는 이상한 자신감이 있어서(웃음).

작품의 키워드가 보석이다. 어디서 영감을 받았는지.

『프레드릭』이라는 동화책이 있다. 흔히 말하는 개미와 베짱이류의 스토리인데. 남들 일할 때 공상이나 하면서 다른 쥐들의 걱정과 얄미움을 사는 프레드릭이라는 예술가 쥐가 주인공이다. 그 쥐가 일을 할 수 없는 추운 겨울, 뭔가 아름다운 것이 필요할 때 자신이 생각하고 간직해왔던 아름다운 빛을 풀어준다. 그것을 보석으로 투영해야겠다는 생각이 출발점이었다. 음악은 물론 홀로 만들고 즐길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타인과의 나눔을 통해 좀 더 가치 있는 일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보석이라는 키워드를 정하게 되었다.

전부 영어 가사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어떤 의도에서였는지.

영어로 가사를 쓰면 자유로워진다. 한글로 쓰면 가장 자연스럽고.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영어 가사를 쓰면 시적 허용과 같은 표현의 범위가 좀 더 넓어져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말할 수 있다. 다만 듣는 사람에게 제대로 전달이 안 될 경우가 있겠지. 한글을 쓸 때는 전달에 있어 용이하지만 그만큼 표현하는데 있어 자유로움이 줄어든다. 이것이 내가 생각하는 자유로움과 자연스러움의 차이이다. 그런 측면에서 오랜만에 언어를 자유롭게 풀어내는 작업을 했던 것 같다.

접근성이 떨어질 것에 대한 우려는 하지 않았나?

그런 생각은 크게 하지 않았다. 외국 노래를 들을 때 처음부터 가사를 찾아보기보다는, 중간 중간 들리는 단어나 뉘앙스를 듣다 관심이 생기면 가사를 찾아보고 그러지 않나. 내 노래도 마찬가지다. 언어나 사운드의 느낌만으로 들어주실 수도 있는 거고, 관심 생기면 가사를 찾아보실 수도 있고. 내가 생각하는 것들을 음악으로 표현하고, 인터뷰를 통해 적당히 설명하는 것 까지가 내 역할이다. 그 후에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것은 온전히 듣는 사람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앨범의 가사는 어떤 방식으로 써 내려갔는지 궁금하다. (@no.doubt)

부분적인 것들은 항상 적어놓는다. 그런 것들이 어느 정도 쌓였다 싶으면 주제를 정한다. 사실 지금까지 음악을 하면서 주제를 정하는데 어려움을 겪어본 적은 없는 것 같다. 프레드릭, 보석. 그래 이걸로 하자 이렇게 생각을 하고. 프로듀서와 이런 느낌으로 하고 싶다고 상의를 한 다음 예전의 쌓아둔 것과 콘셉트를 정한 후의 느낌을 합해서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다. 사실 메모해 놓고 쓰는 건 1/10도 안되긴 하는데, 써놓은 단어들에 꽂혀서 발전되는 경우가 있다. 'Pearls'도 'Epiphany(계시)'라는 단어가 시작이었다.

스토리성을 중시했는데, 그렇다면 작업 시 완성된 가사를 기초로 사운드를 구축한 것인지.

콘셉트를 기초로 이야기를 하면서 진행을 했다. 가사는 쓰기 시작하면 빨리 쓰기 때문에, 콘셉트를 먼저 정한 다음 조율하고. 가사의 의미를 설명한 다음 이런 식으로 해 달라, 그럼 이건 어떠냐 식으로 주고받았다.

윤종신과의 협업이 가요에 가까운 결과물이었다면, 이번 포스티노와의 작업은 장르특화적이고 미스틱과 계약하기 전의 느낌이 나는 것 같다. 파트너로 포스티노를 선택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지.

먼저 언급하고 싶은 것은, <purifier>의 수록곡들 역시 내가 해보고 싶었던 음악들이었다는 사실이다. 하고 싶은 것을 했고 노래 자체도 잘 나와서 개인적으로는 만족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안 맞는 옷이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그렇게 활동이 끝나고 옛날 노래를 들어보다가 예전에 작업했던 'The detail'을 듣게 되었다. 작업 당시에도 그랬지만, 그때도 포스티노의 성향이 나와 어울리겠다고 느꼈다. (어떤 면에서 어울리겠다고 생각했었는지 묻자) 설명하기 어려운 게, 그냥 직관적으로 같이 하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말씀을 드렸고, 종신 오빠가 안 건드릴 테니 둘이 하고 싶은 대로 한번 해보라고 해서(웃음) 작업이 성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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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arl'을 듣고 느껴지는 것은, 사운드의 결과 음색의 매력이 잘 부합한다는 것이었다. <purifier>에선 반주에 맞춰서 우겨 넣듯 부른다는 느낌이 있었지만, 이번엔 확실히 자연스럽게 와 닿는다. 본인 목소리에 어울리는 사운드를 본인이 잘 알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데.

이번에는 남들이 생각할 때 적합하다고 느껴질 만한 것을 하고 싶었다. 사실 <purifier>에 대한 평가가 상반되었던 것이 있었다. 대중들은 그 작품이 어렵다고 여겨지는 반면, 저의 예전 노래를 접하고 계셨던 분들은 들려주기에 좋은 웰메이드 작품이지만 너에게 최적화된 느낌은 아니라고 이야기하신다. 그래서 이번엔 연구를 많이 했다. 포스티노 프로듀서도 저에게 많이 맞춰주려고 노력하셨고. 정말 훌륭한 프로듀서라고 생각했다. 성격이나 성향도 잘 맞아 커뮤니케이션도 잘 되었던 것 같고.

확실히 <gem>의 음악들은 <purifier>보다 어렵다. 소속사에서는 이런 비대중적 성향에 대해 걱정을 하지는 않았는지.

회사가 우리 몰래 걱정을 했는지 어쩐지는 모르겠지만(웃음). 어쨌든 하고 싶은 것은 하게끔 해주는 곳이다. 사실 소속사에 대한 오해가 좀 있는데, 아티스트들의 의견을 굉장히 많이 반영해준다. 겉으로 보면 한명이 진두지휘해 흔들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실수가 있다면 솔직히 아티스트의 실수가 반일 확률이 높다. 사람들 입장에서 윤종신을 욕하긴 쉽겠지. 하지만 그분은 자신을 많이 좋아하는 사람이라 남에게 억지로 무언가를 주입하지 않는다. 이 얘긴 좀 꼭 내보내달라(웃음).

'Pearls'를 타이틀로 정한 이유가 있을까.

큰 이유는 없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이라. 포스티노 오빠도 이게 가장 너다운 곡이다라고 말씀해주셨고. 'Diamonds'가 타이틀로 거론되기도 했었는데 결국 'Pearls'로 낙점 되었다. 봐봐요, 제가 원하는 대로 된다니까요(웃음).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부조리함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합리적으로 봤을 때 말이 안 되는 일들이 굉장히 많을 수 있다. 나 같은 경우엔 어떤 개인이 하고 있는 행동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을 때, 그것은 개인의 잘못이 아니라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가 크다고 생각하는 거지. 조개껍질이 작은 게 그 안에 있는 진주가 잘못해서 그런 건 아니지 않은가. 우리는 살면서 많은 불합리한 일들을 만나지만, 다들 그런다는 생각으로 묵인하고 작은 조개껍질 안에 머물게 된다. 그러다 그 당연함을 벗어나게 되는 계기가 바로 갑작스런 계시(Epiphany)로 인한 것이라 생각했다. 내 자신도 어떤 꿈을 꾸고 나서 음악을 시작했듯이, 삶의 전환점 중에선 갑자기 깨달아지는 것이 꽤나 많으니까.

'Pearls'에서 이야기한 부조리함은 'Diamonds'의 규칙과 체계와 연결되는 개념이기도 한 것 같다.

기본적으로는 그렇다. 다만 진주일때는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조개껍질에서 뛰쳐나와 다이아몬드가 된 이후로는 확실히 이 규칙과 체계에 잘못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지. 화자를 상징하는 보석을 진주에서 다이아몬드로 변경한 것은, 체계를 뛰쳐나올 수 있는 강인함을 가진 물질이 바로 다이아몬드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Emeralds'까지 이야기하자면, 타인의 마음에 에메랄드를 심어주는 순간이 찾아오게 된다. 어쨌든 관계나 체계에 대한 거부감과 타인과의 관계는 별개의 것이니까, 그런데 자꾸 둘 간의 관계에 있어 나쁜 꿈을 꾸게 된다. 그 와중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을까하고 고민하던 중, 첫 번째로 내가 정말 좋은 일이라고 해도 다른 사람에겐 치명적이게 싫은 일일 수 있으니 그건 하지 말자는 생각, 두 번째로 자신에게 쉽게 믿을 수 있는 일이 남에겐 어려운 일일 수 있으니, 쉽게 공유하고 나누어 구속하려 하지 말자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렇게 세 곡이 연결되어 있는 구조이다.

곡마다 보컬 운용방법이 많이 다르다. 'Pearls'에서는 힘을 빼되 끈기 있게, 'Diamonds'는 웅변하듯, 'Emeralds'는 속삭이듯 부른다. 이번 작업 중 보컬에 있어 특히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

이 세 곡에 대한 화자가 확실하다. 그 느낌이 확연히 다르기 때문에 거기에 맞춰서 노래를 했다. 제가 창조한 캐릭터에 맞춰서 연기를 했다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다.

평소에 퓨어킴의 목소리 톤이 개성 있다는 얘기를 많이 듣지 않나. 자신이 의도하는 스토리텔링을 풀어나가는 데 있어 스스로 만족할 만한 보컬인지 궁금하다.

나는 나를 좋아한다. 내가 어떻게 생겨도 어떤 목소리여도 좋아했을 거다(웃음).

작곡가의 스탠스에서 객원 보컬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안 해봤는가.

개인적으로 싱어송라이터 스탠스에 있기 때문에 객원보컬을 써야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그보다는 아이돌 가사를 써 보고 싶다, 진심으로. 사실 유명한 분들로부터 가사 제의가 오긴 하는데, 만날 까인다(웃음). 말이 안 되게끔 가사를 쓰는 개인적인 작법이 잘 안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그런 측면에서 에프엑스나 레드벨벳 같은 SM 아이돌과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 반드시 작업을 해보고 싶다. 진짜 탐난다.

가사 이야기를 하니까 생각나는 게 개인적으로 '은행'의 가사가 인상 깊었다. '매일같이 하루씩 내 정성을 맡기면 어디선가 얌전하게 이자가 많이많이많이' 라는 가사가 있는데, 요즘 세상이 가사와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는 것 같다.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이 가사를 썼다고 들었는데, 본인의 가치관은 이 가사와 어느 정도 일치하는지 궁금하다.

사는 건 기본적으로 고통이라고 생각한다. 내 삶에 대해 불만은 없지만, 늘 마음이 즐겁고 행복한 사람은 아니다. 그것과 연관 짓자면 결국 일상이 중요한 법이다. 매일 조금씩이라도 아름다운 일을 마음이 내키든 안내키든 꾸준히 해나가는 것, 그 이상인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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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gem>의 연속선상에 있는 곡들이 연달아 발표될 것이라고 들었다. 포스티노가 마스터링된 6곡을 받았다는 것을 보았는데. 이와 비슷한 방향성을 가진 노래라고 봐도 무방할까. (@no.doubt)

한글 가사인데다 장르도 분위기도 다 다르다. 재즈스러운 곡도 있고 월드뮤직스러운 곡도 있고, 언제 선보일지는 확실치 않지만 후에 <gem>과 맞춰가는 재미도 있을 것이다.

몇시간 후에 라이브 클럽 데이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신곡에 대한 직접적인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첫 기회인데, 어떤 느낌인지.

 

긴장도 되긴 하는데, 기본적으로는 굉장히 감사하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주위 사람들에 대한 애착이 많다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하자) 우리 엄마 말로는 빨간 리본을 맨 하얀 고양이 같다고 한다. 내 성격이 고양이과인데, 확실한 건 내 사람을 사랑하고 내 사람이 아니면 관심이 안 가는 편이라는 거다.

미스틱 오픈런 무대에는 참가한 적이 많으나 단독공연은 꽤 오랫동안 없었던 것 같다. 단독공연에 대한 아이디어나 콘셉트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은 있는지.

솔직히 공연하는 것을 별로 안 좋아한다. 앨범이나 뮤직비디오 만드는 것까지는 좋은데... 물론 내가 노래하는 모습을 직접 보고 싶은 분들이 있으면 음악인으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다. 물론 노래하는 건 좋은데, 공연 자체에는 욕심이 없고 조금은 불편하기도 하다. 그것을 위해 풀착장을 해야 한다는 것이(웃음). 난 기본적으로 집순이니까.

소속사에 들어온 후 계속해서 협업을 해왔다. 슬슬 본인 작곡 작품을 발표하고 싶지 않나.

이미 계획이 한 30년 치가 있다. 당연히 그 안에는 내가 작곡한 작품을 발표하려는 계획도 있고. 지금 비음악인 대상으로 음악을 가르치는 8주짜리 커리큘럼에 참여하고 있는데, 그게 끝나면 내가 작사 작곡한 두 곡짜리 싱글도 내려고 한다. 나는 5년차까지의 계획은 굉장히 구체적인 사람이다. 대중들이 너무 급한 감이 있다. 내가 아웃사이더니까 볼 수 있는 것이긴 하지만, 정말 하나만 보고 그게 전체인 마냥 쉽게 평가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나도 그 신의 중심에 있으면 볼 수가 없겠지만. 물론 이해한다. 남 평가란 게 쉬운 일 아닌가.

그렇지. 순간의 인상이 그 사람의 전체적인 평가나 평판으로 굳어지는 경우도 많으니까.

맞다. 기본적으로 나는 대중들에게 있어 그냥 섹시하고 어려운 노래하는 사람이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뭔가 매직스러운 걸 할 줄 알았는데 갑자기 변해버리네, 그게 끝이고. 아휴, 사실 평소에 혼자서 생각을 많이 한다. 그 와중에 중요한 건 내가 음악적으로 자신감이 없다고 한다면 더 이상 음악 활동을 못할 것이란 사실이다. 물론 나도 오해를 받거나 나쁜 말을 보면 기분이 나쁘다. 대신 자존감이 높아서 친구한테 누가 이런다더라 나빴지하고 이야기하고 상대가 공감해주면 그걸로 끝나는 거지.

장기적인, 지속 가능한 음악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몇몇 매체에서 보았다. 소속사에 들어가 협업을 하는 것도 그런 측면에서 도움이 될 것 같아 선택한 부분도 있다고 했었고. 그런 면에서 소속사를 두고 함께 하는 작업을 통해 얻은 가장 커다란 수확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는지.

좀 편하게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내가 혼자 할 때보다 좀 더 대중적인 접근이 가능하다는 점이 아닐까. 기본적으로 음악에 대한 방향성은 변함이 없을 테지만, 그 테두리 안에서 내 이름을 알리는 것도 분명 중요하다고 생각하니까.

그러면 미스틱 소속 중에서 협업해보고 싶은 아티스트가 있는지. (@madhatter_yungho)

가인이다. 한국 여자 아티스트 중에 가인이 독보적이라고 생각한다.

더불어 각종 인터뷰, 화보 촬영과 인터넷 방송 및 예능 고정까지. 2년 사이에 많은 분야에서 활동했다. 음악만이 아닌 음악 비즈니스의 세계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셈인데, 그동안 가지고 있던 음악인으로서의 삶에 대한 생각에 변화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없다. 똑같다. 그런 활동들이 재미도 있긴 한데 완전 맞는 옷은 아니더라. 내 성격을 말한다면, 되게 심각하면서 되게 웃기다. 그리고 그 기저에는 내향적인 성향이 깔려있다. 오픈되는 것을 힘들어 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런 일을 하게 되면 굉장히 많이 드러내야 하니까, 그런 점들이 어려운 것 같다. 정신적으로 스트레스가 많았다.

앞으로 어떤 커리어를 걷는 가수가 되고 싶은지.

 

무엇보다 음악을 계속해서 하고 싶다. 그것을 위해선 단기적으로 잡혀있는 것들에 대해 충실하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한다, 한걸음 한걸음, 조금씩 정성을 맡기는 거지(웃음).

마지막으로 이즘의 공식 질문이다. 영감을 받은 음악이나 뮤지션이 있다면.

 

안 그래도 인스타그램에서 보고 리스트를 적어왔다(일동 웃음). (그리고 나서 바로 보내준 리스트는 아래와 같다)

Nao - Feels like
No Doubt - Too late
Corinne Bailey Rae- High
Girls Aloud - Can't speak French
Julie London - So in love
Kirinji - Aliens
Sweet - Love is like oxygen
The Coral - More than a lover
Brown Stone - If you love me
The Mutual Understanding - Everybody loves my baby


진행 : 황선업, 정민재, 홍은솔

사진 : 홍은솔

정리 : 황선업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홍승기 “인간은 선한 존재, 사회는 진보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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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철학자의 결론은 행복으로 연결될 겁니다.”


『한국 철학 콘서트』, 『고전의 시작』(전 4권, 공저) 등의 책을 써 고전과 철학에서 시대정신을 읽어온 『철학자의 조언』의 저자 홍승기는 다름 아닌 ‘행복’을 철학의 키워드로 삼았다. 철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묻자 그는 스피노자의 ‘행복을 찾기 위해 철학하라’는 말을 인용했다. 철학과 행복. 이 대목에서 철학이 옷을 벗는다. 인간 존재나 정의, 국가론과 통치자의 덕목이라는 허울 좋은 옷을 벗고 진짜 모습을 드러낸다. 무엇이 행복이냐, 어떻게 선(善)에 이를 수 있느냐, 이 질문에서 철학은 시작한다.


『철학자의 조언』에는 동서양과 시대를 뛰어넘는 ‘인류의 자산’이 응축되어 있다. 실존, 수신, 행복, 정의, 시민, 통치, 아웃사이더와 철학과 과학, 종교 철학이라는 아홉 개의 주제 안에서 철학자들의 가르침을 담았다. “쓰는 과정이 공부하는 과정”이었다는 저자답게 아홉 개의 주제 역시 공부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철학자들의 공통된 언어였다. 저자를 따라가 보면 어렵게 느껴지던 철학자가 친절한 미소를 품고 손 내미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 안에서 세상 속 나의 위치를 발견할 수 있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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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찾기 위해 철학하라


700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책입니다. 니체, 에리히 프롬, 공자, 원효 등 동서양의 철학자들을 두루 다루었고요. 책을 쓰면서 가장 고민한 것이 있다면 무엇이었나요?


철학자들의 주장을 얼마나 쉽게 전달할 수 있을까, 이게 가장 큰 고민이었어요. 플라톤의 『국가』는 이 책보다 더 두껍습니다.(웃음) 여기서 저는 플라톤의 고민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본 것이죠. 역사적 접근을 한 건데요. 보통 철학자를 볼 때 그가 산 시대는 안 보는 경향이 있거든요. 저는 그 시대에도 고민이 있었고 플라톤은 그것을 해결하고자 책을 쓴 것이 아닌가 생각했어요. 거기서부터 플라톤의 사상이나 주장을 보기 시작한 거죠. 고대 아테나라는 곳은 인구 10만 밖에 안 되는 작은 도시였습니다. 그 중 정치에 참여하는 자유민은 15,000명 정도 되는 아주 작은 도시국가였죠. 이곳을 이상적인 국가로 만들려던 게 플라톤의 고민이었던 거예요. 또 플라톤이 죽고 9년 후에 아테네가 망하거든요. 당시 아테네는 쇄락해가고 있었죠. 이곳을 다시 부흥시킬 방법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 당연히 플라톤의 고민이었을 거고, 그래서 플라톤은 통치자의 문제를 두고 고민합니다. 통치자의 역할이 절대적인 시대였으니까요. 결론적으로 플라톤을 다룬 부분은 국가 통치자에 초점을 맞춰 통치자가 무엇을 하게 하려고 했는가를 본 거예요. 그렇게 ‘정의’라는 주제가 나왔고요. 이런 식으로 시대 상황을 통해 철학자의 사상을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려고 노력 했어요. 


실존, 행복, 정의, 통치, 심지어는 종교나 과학까지 다양한 주제 안에서 철학자를 다뤘거든요. 그렇다면 이러한 주제들은 자연스럽게 분류가 되었던 건가요?


그렇죠, 처음부터 주제를 구분한 건 아니었어요. 제게 쓰는 과정이 공부하는 과정이었거든요. 때문에 써가다 보니까 어떤 공통점들이 보였던 거예요. 진행하면서 분류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모두 9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중 특별히 가장 관심 갖고 계신 주제가 있나요?


행복입니다. 저는 수많은 철학자나 사상가들이 결국 말하고자 하는 것이 행복이 아니었을까 생각해요. 행복을 하나의 소주제로 두었지만 책에 다룬 모든 철학자의 결론은 행복으로 연결될 겁니다. 특히 행복을 많이 생각한 이유가 있는데요. 오늘날 누구나 행복을 꿈꾸지만 과연 무엇이 행복인가를 따진다면 의견이 많이 갈리는 것 같아요. 많은 경우에 물질적인 풍요로움을 행복이라 생각하고요. 돈을 많이 벌기 위해, 명예를 얻기 위해 많이 노력하는데요. 스피노자가 이런 말을 합니다. 그것도 중요하지만 하다가 안 되면 어떻게 되느냐, 더 불행해진다는 거예요. 스피노자는 행복을 찾기 위해 철학하라고 말해요. 그런 점에서 보면 오늘날에도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할 기회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을 하고요. 때문에 행복을 가장 중요한 주제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몇몇 철학자가 떠오르기도 하네요.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겠느냐고 할 때 에피쿠로스 같은 사람은 인간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의 정체를 알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 말했거든요. 고대 아테네 사람인 에피쿠로스는 인간을 가장 불행하게 하는 것이 신과 죽음이라고 생각했어요. 신과 죽음의 실체를 밝혀낼 수만 있다면 인간은 행복해질 수 있다고 했죠. 신과 죽음이 살아있는 인간과는 무관하다는 것을 가르침으로써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교육한 사람입니다. 이 가르침은 지금도 유효해요. 특히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는 행복이 단지 어떤 정신적인 부분에 그치지 않아요. 주변을 둘러싼 세상과 자기를 불안케 하는 것의 실체를 정확히 아는 것으로부터 행복이 가능하다는 가르침은 굉장히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르트르가 절망이라는 개념을 통해 강조하는 바는 할 수 있는 것을 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무언가를 꼭 희망해야 무슨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경구를 상기시킨다.(중략) 1등을 할 수 있다는 희망 때문에 달리는 것이 아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그것이 인간이다. 사르트르는 “인간이란 자신의 행위 전체, 그리고 자신의 삶과 다른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좋은 일이 있든 나쁜 일을 겪든 삶 자체를 누리는 것이 인간이다. 따라서 자신의 삶을 누리는 것이 선(善)이다.(61쪽)

 

인간 소외와 자본주의의 부작용이 모습을 드러내는 지금 같은 때에는 책에서 다룬 철학자들의 가르침이 유효한 부분이 많더라고요. 특히 사르트르의 철학은 그대로 현대인에게 전해도 좋을 내용들이었거든요.

 
인간 소외라는 말을 흔히 하는데요. 인간 소외란 거창하게 자본주의까지 나가지 않더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에요. 학생들의 경우 취업 준비, 스펙 경쟁이라는 문제가 있고요. 직장인들의 경우 승진, 자기계발 같은 문제가 있죠. 그런데 스펙 경쟁과 자기계발이 자기를 위한 것 같지만 실제로는 사회 혹은 집단이 요구하는 것을 따라가는 거거든요. 내가 원하고 좋아서라기보다 집단이나 사회적 욕구를 따라가는 것, 그게 인간 소외고 비주체적인 삶이죠. 그런 측면에서 사르트르는 실존주의자답게 자기를 중시하고 있어요. 인간은 유일하게 자기 선택을 할 수 있는 존재라고 말하는데요. 자기 선택을 통해 다양한 문제들을 스스로 극복해나갈 수 있다는 확신에 찬 목소리를 들려주거든요. 때문에 사르트르는 이 시대까지 대단히 훌륭한 가르침을 주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 외에도 에리히 프롬은 우리가 사는 삶의 모습을 참 정확히 그려내고 있어요. 프롬은 우리가 소유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 말해요. 공부할 때, 연애할 때까지도 소유적인 거죠. 소유를 기반으로 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삶의 모습인데요. 그걸 넘어서는 존재적인 삶을 살라는 가르침을 주는 게 에리히 프롬이에요. 주변과의 관계, 연대와 협력의 필요성을 이야기하고요. 그런 점에서 에리히 프롬도 굉장히 중요한 조언을 주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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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다운 일을 하는 시대


시대적 맥락에서 철학자의 사상을 이해했다고 하셨는데요. 그렇다면 지금 우리도 시대적인 면을 파악하고 책으로 들어갔을 때 훨씬 깊이 들어갈 수 있을 거예요. 1장 ‘왜 인간인가’를 열면서는 ‘기본소득’을 이야기하셨는데요. 이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미래에 대한 여러 전망이 있는데요. 부정적이냐 낙관적이나에 관계없이 미래를 그려볼 수 있는 것이 인공지능의 발달이라는 부분이거든요. 불가피한 현상일 텐데요. 인공지능 시대의 도래라는 것은 많은 학자들이 이야기하지만 인간의 일자리를 인공지능이 대체하게 되는 것을 의미하죠. 이런 현상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결국에는 인간이 먹고 살기 위한 노동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닐까요. 이때 기본적인 생활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이것은 인간에게 불행이 되겠죠. 인공지능 발달로 인간이 먹고 사는 노동에서 벗어날수록 기본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이 필요해지는 거죠. 그것이 기본소득이라는 것으로 나타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얼마 전에 스위스에서 기본소득 투표가 부결돼 화제가 됐는데요. 그건 일시적인 현상이지 몇 년 내에는 현실화될 것으로 봅니다. 이런 시도는 전 세계적으로 확산될 것이고요.


이런 측면에 주목하는 것은 그렇다면 그 속에서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이에요. 이제 놀고먹게 됐으니 그냥 놀다 갈 것인지, 아니면 무엇을 할 것인지 하는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시대가 왔어요. 인간은 인간다운 일들을 해야 하는 그런 시대로 가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기본소득을 이야기한 것은, 그러한 때를 맞이하면서 오히려 인간이 무엇을 해야 할 것이냐에 대한 생각을 시작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언급한 겁니다.

 

‘인간다운 일들을 해야 하는 시대’라는 방금 말씀은 미래를 낙관하고 있다는 의미일까요? 철학에서 인간 본성에 대한 인식이 많은 부분 방향을 달리하게 되잖아요. 여러 대목에서 선생님은 인간이 선하다는 생각에 동의하시는 것 같기도 한데요. 

 
기본적으로 성선(性善)이라고 생각합니다. 성선에 반대되는 성악(性惡)이란 인간을 이기적 존재로 보는 거거든요. 유럽에서도 인간을 이기적 존재로 본 건 근대 사회 이후예요. 현재의 자본주의 시스템이 인간이 이기적이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것이잖습니까. 사실 근대 사회가 나타난 건 얼마 안 됐죠. 긴 역사에서 볼 때 인간은 선한 존재라고 생각하고요. 인간은 선하기 때문에 사회가 진보해 나간다고 생각해요. 누구나 바람직한 삶을 살고 싶어 하고, 바람직한 사회를 원하거든요. 계속해서 보다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것, 이것을 사회 진보라고 한다면 인간의 본성이 선하기 때문에 앞으로도 그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봐요. 그런 맥락에서 인공지능의 발달 또한 사회의 진보 속에 위치해 있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최소한 그런 정도의 인간의 양식과 양심을 믿는 거죠. 그런 점에서 저는 인공지능의 출현을 비관적으로 전망하고 있지는 않아요. 

 

비관적인 세계관이 워낙 만연한 때라 새롭게 들리기도 해요.


비관론을 가지고는 앞으로 나아가질 못해요. 주변의 작은 것 하나도 놓치지 않고 비판적으로 보는 건 옳다고 보지만 비관적으로 보는 것에 대해서는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미래에 대한 지나친 낙관도 안 되겠죠. 그러나 미래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에 대한 믿음은 버리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역사만 봐도 그래요. 1900년대만 해도 갑자기 식민지가 됐다가 해방이 되고 장기집권과 쿠데타, 그리고 민주화의 과정을 겪었잖아요. 그러다 지금까지 온 거고요. 이렇듯 사회는 계속 변화하는 거죠. 짧게 보면 사회가 진보하고 있나, 하고 생각할 수 있어요. 그러나 한 세대 정도의 시선으로만 사회를 봐도 세상은 바뀌고 있음을 알게 돼요. 지금까지는 발전적인 방향으로 바뀌어 왔다고 생각하고요. 때문에 단기적인 시각을 가지고 비관적인 전망을 할 필요는 없죠. 우리가 철학을 공부하고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들을 필요가 있는 이유가 바로 그런 부분들이에요. 지금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에 대해 치열하게 생각해봐야 하고, 그러다보면 새로운 면모를 발견할 수도 있을 거예요. 철학자라는 사람들은 그 일을 해온 거거든요. 자기가 당면했던 문제에 대해 정말 치열하게 고민하면서 나름대로의 해결책을 내려고 노력을 해온 거예요. 그런 것들을 보면서 우리 시대를 어떻게 살아나가야 할 것인가를 배울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철학을 공부하는 가장 큰 의의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렇다면, 지금 인간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어떤 답을 제시하고자 하세요?


가장 중요한 건 누구나가 삶을 누리는 존재라는, 아주 쉬우면서도 가장 근본적인 생각이 아닌가 싶어요. 그러니까 억압이 있어서는 안 돼요. 차별이 있어서도 안 됩니다. 평등적 세계관으로 세상을 봐야죠. 이런 부분이 너무 쉽게 간과되고 있거든요. 가령 주차 요원의 삶 역시 그가 누려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어떻게 ‘갑질’을 하겠어요. 범죄도 그렇고요. 서로의 삶을 동등하게 인정하지 않는 태도, 이런 시각에 의해 오늘날 많은 문제가 발생하는 거예요. 내가 삶을 누리고 행복해지고 싶다면 마찬가지로 상대방도, 그 누구도 자기 삶을 행복하게 살 권리가 있다는 생각을 해야죠. 또한 이것은 인간 사회에 한한 것이 아니에요. 자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죠. 동식물까지 삶을 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인간이 지금처럼 횡포를 부리지 않을 거예요.


이러한 개념은 유럽으로 치면 계몽주의 시대의 볼테르, 디드로, 우리나라로 치면 조선 후기의 홍대용이나 박지원 같은 분들에 의해 시작된 거거든요. 차등적인 세계관에서 평등적 세계관으로 넘어가는 거죠. 근대 이념에서 가장 중요한 게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것이잖아요.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 지금 새삼 강조되어야 하는 것이 됐어요. 최근 이야기되는 여성 이슈도 그런 것이거든요. 서로 동등한 존재로 대하고 이해하지 않는 것에서 발생하는 문제예요. 분명 법적으로, 제도적으로는 평등을 추구하는 시대가 왔는데도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아직 인식, 사유가 자리를 잡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평등적 세계관이 정착되어 나가면서 사회는 한 발 더 진보해 나가리라고 봅니다.

 

제도 정착과 사유 정착 사이의 불일치가 만든 문제란 말씀이네요.


사회과학적으로 보면 지배적 집단에 의한 기득권 유지, 이런 것과 연관이 있겠죠. 사회적으로는 평등해졌지만 다른 한편으로, 경제나 정치적 상황으로 인해 권력 관계가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요. 이런 부분이 여전히 평등적 사회를 가로 막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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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


사유와 실천, 그러니까 지행합일이 얼마나 어려운지도 생각하게 됩니다. 가령 하이데거 같은 경우가 그렇잖아요.


제일 어려운 문제죠.(웃음) 아는 만큼 실천할 수 있다면 정말 좋은 사회가 될 겁니다. 지행합일은 그 옛날 소크라테스, 공자도 말씀하셨거든요. 아는 걸 실천하라고 많은 철학자가 얘기했는데요. 기본적인 삶의 도리가 무엇인지 우리는 너무 잘 알잖아요. 아는데, 그걸 실천하는 건 만만한 일이 아니에요. 다만 이런 생각을 합니다. 한 사회에서 지도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의 지행합일이 얼마나 중요한가 하고요. 하이데거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었죠. 유럽에서 가장 주목 받는 철학자였고, 당시 그의 제자들이 이후 철학계를 주도했으니까요. 어떻게 보면 나치 정권이 주목할 만했던 거죠. 그에 대해서는 전해지는 이야기가 없어서 알 수 없지만요. 어쨌든 그의 판단이 일신의 문제 쪽으로 갔다는 사실이 아쉬움을 많이 남겨요. 영향력이 있는 사람일수록, 지도층일수록 지와 행을 합치시키는 노력이 특히 필요한 거죠. 그것을 우리의 시선으로 본다면 지행합일을 위해 노력해온 사람을 지도자로 만들면서 사회의 분위기를 형성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고요.

 

갑자기 청문회 생각이 나네요.(웃음)


그 위치에 갈 줄 몰라서 그런 고려 없는 삶을 살아온 게 아닌가 생각해요.(웃음) 그렇다면 포기해야죠. 자기 욕심이거든요. 그 욕심을 못 버려서 역사에 기록되는 망신을 당하는 거죠. 플라톤이 통치자의 정의, 올바름이 중요하다고 했잖아요. 그런 면에 부끄러움이 많다면 스스로 하지 않는 자세가 있어야죠. 에리히 프롬 식으로 얘기하면 참, 지나치게 소유적인 사람들인 거예요. 안타까운 일이에요.

 

모두 현재적 의미가 있는, 생명력을 가진 철학자들인데요. 이들 중 가장 매료된 철학자를 꼽는다면 누구인가요?


스피노자인데요. 삶이 참 어려웠던 사람이에요. 교회에서 파문을 당하고, 고립되어 살죠. 다락방에서 평생을 생활하는 어려움 속에서도 그 불행을 행복으로 바꾼 사람이 스피노자예요. 철학 자체도 대단한 사람이지만 불행을 행복으로 바꾼 그의 삶 자체에도 본받을 점이 있을 거라 생각해요. 삶을 비관적으로 보지 않고 자신이 처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서도 그 속에서 행복을 찾아나갔다는 것이 의미 있죠. 한 인간으로서의 삶에 위대함이 보인다는 차원에서 스피노자를 꼽을 수 있어요.

 

철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했는데, 역시 행복이네요. 


네, 행복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해요. 돌아보면 단 며칠만이라도 행복했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돼요. 매년 3월 22일이 UN이 정한 ‘세계 행복의 날’입니다. 이날이 되면 각 국가의 행복지수를 발표하는데요. 결과는 안 봐도.(웃음) 우리는 130여 개국 중 하위권에 해당되죠. 행복감을 못 느낀다는 거예요. 그런데 보면 참 열심히들 살거든요. 불행하고, 비관적이라고 느끼는 이유는 위로 받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이것이 사람들의 불행감을 더 크게 하고 있지 않은가 생각하고요. 개인 차원에서는 이런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위로 받을 수 있는 부분이 있는 거예요. 그것이 철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일 거예요.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어떤 질문을 하고, 어떤 답을 찾길 바라시나요?


다른 철학서를 읽을 때도 마찬가지인데요. 가장 중요한 것은 주체적인 삶입니다.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어야 결국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어요. 이 책을 읽고 주체적인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 나가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가질 수만 있다면 저로서는 대만족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책을 쓴 이유도 그것이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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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도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계속 전할 예정인가요?


제가 전문적인 철학자는 아니니까요. 철학자의 말을 전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옛날로 치면 마당쇠 역할을 한 겁니다.(웃음) 이 책으로 손님을 모셨으니까 이 문을 열고 들어오신 분들은 이제 주인을 직접 만나시면 됩니다. 플라톤을 직접 만나고, 공자를 직접 만나면 되겠죠. 저는 또 다른 분들의 말을 전하려고 해요. 다음에는 역사철학서를 집필하려고 구상하고 있어요. 역사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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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의 조언홍승기 저 | 생각정원
이 책은 현대인들이 삶에서 부딪힐 수 있는 질문들에 대한 철학자들의 생각을 전해준다. 그리고 철학자들이 어떠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철학을 했으며 그들의 철학이 우리가 품은 삶의 질문에 어떤 답을 주는지 보여주기 위해 철학 탄생의 맥락을 자세히 소개한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소설가 방현희 “불운과 행운에 무뎌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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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주인공 ‘형진’의 어머니가 돌아가신다. 서른두 살이 될 때까지 변변한 직장 한 번 나간 적 없이 어머니 병수발만 하던 형진은 생계를 유지하려는 방편으로 유일하게 남은 주택과 요리실력을 활용해 셰어하우스를 연다. 정규직 계약을 꿈꾸는 민규, 잘나가는 마케팅 회사 팀장인 수진과 경비행기 조종사가 꿈인 혜진 자매, 어딘가 어둡고 상처가 있어 보이는 밴드 기타리스트 정우, 고양이와 아이를 책임져야 할 수의사 호준 등 조금씩 불운하다고 느끼는 젊은이들이 한 지붕 아래 모인다.


같이 사는 사람들끼리 분쟁이 없을 리 없다. 형진은 처음 하는 집주인 노릇에 속을 여러 번 삭힌다. 세입자들도 마찬가지로 사랑의 작대기가 몇 번 좌절되고 부모와 반목하는 등 인생을 헤쳐나가는 과정에서 ‘불운과 친해지는 법’을 배워나간다.


소설가 방현희는 2001년 <동서문학>으로 등단, 『달항아리 속 금동물고기』, 『바빌론 특급 우편』, 『달을 쫓는 스파이』,『네 가지 비밀과 한 가지 거짓말』, 『너와 나의 삼선슬리퍼』등 다양한 주제로 꾸준히 소설을 썼다. 이번 소설 『불운과 친해지는 법』은 2016년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필름마켓 ‘북투필름(Book to film)’ 초청작이다. 주인공들을 스크린에서도 만나볼 수 있을지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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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가 나오는 소설


‘다음 7인의 작가전’으로 먼저 독자들과 만난 책입니다.

 

1차부터 6차까지 계속 진행했고, 제가 4차에 들어왔어요. 책 줄거리의 반절 정도만 먼저 웹에 노출하고 독자들에게 다가가는 방법을 취했죠. 작가마다 색깔이 다 달랐어요. 어떤 사람은 미스터리, 어떤 사람은 시를 쓰고, 그림과 에세이를 같이 한 분도 있고요. 장르가 다양했어요.


4월에 책이 나온다고 했었는데, 좀 늦어졌네요.


원래는 3월 말까지 완성하려는데 다른 분들과 보조를 맞춰서 한꺼번에 이벤트를 하면서 책을 내려고 하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표지도 몇 번 바꾸고요.


형진이라는 캐릭터가 요리를 잘하는 남자로 나와요. 롤모델이 있었나요?


롤 모델은 저였죠. 요리하고 사람 불러서 먹이는 걸 좋아하고, 집에서 하는 파티 좋아해요. 소설에 나오는 거의 모든 요리는 다 제가 하는 요리예요.


따로 레시피를 참조한 게 아니고요?


주부 경력이 한 30년 돼요. 누군가 이미 정해서 내놓는 요리 방법은 저한테 맞지 않기도 하고 우리 또래나 가까운 사람들 입맛에 맞지 않는 경우도 많아요. 기존에 있는 레시피라도 어느 정도는 나름대로 변형해서 만들 수 있어요. 적당히 가감하고 오랜 세월 익혀온 비법을 추가해서 책에 실었어요.

 

특이한 요리법이 많이 보이더라고요. 밥에 강황을 넣는다든지, 프랑스 끼쉬를 한국식으로 만든다든지요.


조금씩 기존 레시피에서 변형해서 써요. 영양가와 향미가 풍부한 음식을 좋아해요, 그렇게 요리하려고 하고요. 생강 향이나 정향, 샤프란 넣는 것도 좋아해요.


요리는 감각적인 행위잖아요. 결과물이 나오니까 뿌듯한 마음도 있고, 먹는 사람이 즐거워하기도 하고요.


음식이 나왔을 때 사람들이 환호해주는 것 때문에 요리를 즐겨요. 소설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내 작업물을 좋아해서 나오는 환호. 쓸 때 자체의 쾌감은 말할 것도 없고요. 소설은 일차적으로 나 자신을 위한 거니까요. 그다음으로 소설이 남에게 가서 도움이 된다면 정말 보람있는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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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자가 되기 쉬운 세대


제목이 ‘불운과 친해지는 법’입니다. 보통 제목 짓기가 가장 어렵다고 하던데요.


저는 제목이 나와야 소설 방향이 잡혀서 제목부터 주로 짓는 편이에요. 처음에는 ‘불행한 사람과 이웃이 되는 법’ 정도로 생각했는데 다시 바로 바꿨죠.


셰어 하우스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얻으셨나요?


셰어 하우스는 제 꿈이죠.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혼자 있는 시간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또 사람을 좋아하기도 해요. 혼자 있는 시간이 방해되지 않는 정도라면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도 좋다고 생각해요.


소설 속 셰어하우스 입주자 중에 나이 많은 사람이 없어요.


소설 쓰는 사람들은 시대 상황에서 멀리 있는 사람들이 아니에요. 시대의 가장 화급한 문제를 포착하고 그것을 나만의 시각을 통해서 보여주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아들이 20대예요. 그러다 보니 이 또래들의 삶에 대해 한동안 관심을 기울이게 됐어요. 요새 워낙 젊은이들의 문제가 크기 때문에 재작년에도 『세상에서 가장 사소한 복수』라는 이야기를 썼는데, 3포 세대의 젊은이들, 사랑과 일과 가족 모든 부분에서 붕괴를 경험하는 인간이 나와요. 이전에는 주로 개인적인 심리나 내면을 써 왔는데, 그 소설 이후 특히 한국의 젊은이들에 대해서 집중하게 됐어요.


가정이나 회사, 사회에서 약자가 되기 쉬운 세대죠.


가족 안에서도 소외당한 사람들에게 애정이 많이 가요. 사회, 직장에서도 약자가 되고 그러다 보면 연애 관계에서도 약자가 되는 거예요. 한참 찌질한 젊은이라는 콘셉트로 소설을 써 왔는데, 이 책에서는 조금 더 한국의 평범한 젊은이들 모습을 그리고 싶었어요. 어떻게 보면 우리 세대는 이미 많은 사람이 다뤘고 많은 사람이 다룰 거예요. 그래도 조금 더 살아본 사람으로 젊은이들 앞에 놓인 장애를 이야기하는 게 좋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었어요.


약자는 결국 연대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해요. 기성 세대나 권력층에게 우리가 이런 상황에 놓여 있다고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려면 연대밖에 없어요. 아직 젊은이들이 자신을 대변하지 못한다면 나라도 대변해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썼어요. 저도 모르게 대안을 모색하게 돼요. 이 사람들을 과연 어떻게 하면 다 막힌 질곡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을까, 하고.


소설에 나온 캐릭터들이 부모랑 불화하잖아요.


모든 젊은이는 원래 부모랑 불화해야 돼요. 부모로부터 떠나야 하고 부모를 배반해야 해요. 그게 제 지론이에요. 학생들에게 항상 부모는 여러분의 세대를 절대 알지 못한다고 이야기해요. 부모는 20년, 30년 전 이미 지나간 사람들이고 이 시간에서는 40대의 삶을 살고 있지 절대 10대와 20대의 삶을 살지 않아요. 자기 삶은 자기만 아는 거지 부모 말을 들을 필요 전혀 없어요. 부모가 오히려 그들의 말에 귀 기울여야 해요, 부모는 겪어보지 않은 삶이니까. 자식을, 젊은 세대를 이해하고자 한다면 그들이 귀를 기울여야죠.


젊은 세대가 경제적 이유로 독립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은데요. 형진도 결국 자신이 결정한 게 아니라 부모의 죽음으로 인해 강제로 독립의 길로 들어섰어요.


이 남자는 영웅이 아니에요. 소설에 흔히 히어로를 내세우라고 하는데 저는 내세울 수 없었어요. 분명 독립 잘 하고 잘나고, 스스로 외국도 나가서 씩씩하게 돈 벌고, 그런 사람들이 있겠죠. 그 사람들은 어디다 내어 놔도 잘 할거고 누구도 신경쓰지 않아도 돼요. 하지만 대부분의 평범한 사람은 나라라든가 공동체가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시스템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봐요. 주인공인 형진이도 어리바리해서 느닷없이 혼자 남았을 때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전혀 모르는 사람이잖아요. 평범한 사람이 그나마 하나 가진 장점으로 방법을 모색해나가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성공적인지도 모르고,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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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들의 좌충우돌 같이 살기


 ‘인생의 파란만장함이란 실로 예비된 것과 예비되지 못한 것 사이의 진자운동에서 벌어지는 일’(23쪽)이라는 표현을 쓰셨어요.


맞아요. 흔히 자기가 원치 않는 일인데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나면 그걸 불운이라고 표현하잖아요. 하지만 인생은 예상하지 못한 걸 맞닥뜨리면서 재미있는 거고 그래야만 변화를 찾게 되죠. 예상하지 못하는 건 행운이기도 하고 불운이기도 한데, 사람들은 대체로 낯선 상황을 만나면 다 불운이라고 하는 것 같아요.


형진은 어머니의 죽음과 강제 독립이라는 불운을 맞닥뜨렸는데, 알고 보니 그게 행운이었다는 느낌이에요.


흔히 재수 없다, 운이 없다는 말을 사소한 일에 쓰더라고요. 많은 사람이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것이 올 때 대개 행운일 거라고 기대하는구나, 그 기대가 어긋났을 때 불운이라고 하는구나, 하고 느꼈어요. 행운과 불운이 그렇게 분명하게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행운과 불운이 다가올 때 ‘나 행운이야’ 하면서 인사하고 오는 경우가 어디 있어요. 젊은이들이 너무 불안하기 때문에 변화에 민감하고 이것에 나에게 행운인지, 불운인지 나에게 해가 될 것인지 너무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불운에 좀 무뎌지자, 재수 없음과 운 없음에 무뎌지면, 흘러가다 보면 그게 좋은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제가 젊은 세대 당사자라 그렇긴 한데, 운이 없다고 느끼기보다 체념한 상태인 것 같아요. 행운인지 불운인지 따지는 게 아니라 그냥 무감각한 상태인 거죠.


무기력해지고 체념하는 건 사실 자기에게 기대할 것도 없다, 나는 불운한 상태에 놓여있다고 인정한 상태인 거죠. 그래서 환기하는 의미에서 불운이라는 제목을 사람들 앞에서 흔들어 보고 싶었어요. 플래카드 같이 ‘당신은 불운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당신에게 행운은 몇 번이나 찾아왔다고 생각하십니까?’, 이런 식으로 무감각해진 사람들의 감각을 깨워주는 의미로 제목에 불행이라는 단어를 썼어요.


주인공들이 ‘불운과 친해지는’ 과정에서 같이 사는 행위가 결정적으로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소설을 쓰려고 기사나 취재 자료를 많이 봐요. 프랑스에서는 지방 젊은이가 대학 때문에 파리에 올라오면 거기 사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연을 맺어서 그 집에 들어가요. 그게 일종의 셰어 하우스거든요. 저녁 때 와서 할머니, 할아버지와 대화하는 조건으로 방을 얻고,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방을 제공한 대가로 이야기 상대를 얻고 서로의 상태를 지속해서 돌보게 돼요. 서울에서도 빈 집을 리모델링해서 젊은 예술가들에게 셰어하우스로 내놓고 있어요.


작가님이 만들고 싶은 공동체는 어떤 모습인가요?


친구들끼리 나이가 들면 나중에 지방 내려가서 같이 살자는 이야기 많이 하잖아요. 가깝게 살아서 서로 같이 놀고, 마음이 맞는 느슨한 형태의 공동체를 만드는 데 관심이 있어요. 하지만 셰어하우스에서 가장 바라는 건 독립된 생활이에요. 누구나 다 같이 텃밭을 가꿔야 하고 문화행사 같이해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내가 나가고 싶지 않을 때 나가지 않고, 각자 할 수 있는 일이 다 달라서 누군가 밥을 지으면 누구는 집을 고치고 서로 다른 능력을 합쳤을 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이 소설에서도 남자지만 자기가 요리를 잘하면 음식을 해서 다른 사람을 먹이는 식으로요.

 

 

 

가부장제는 끝났다


소설에서 남자랑 여자랑 다르게 그려진 것 같아요. 혜진은 잘나가는 회사 팀장에 수진은 경비행기 조종사 지망생, 지우는 여성이 하기 힘든 인테리어와 집안 공사를 하는데 민규와 정우는 상대적으로 비정규직에, 뮤지션 등 남자들이 여자들보다 조금……. 딸리는 느낌이에요.


맞아요, 어느 정도는 현실을 반영한 거예요. 일상적으로 다 서로 독립된 존재라고 볼 때, 자기 관리는 남자나 여자나 모든 사람이 각자 해야 하는데 기본적으로 여자는 자기 관리가 돼요. 남자는 그게 안 되는 경우가 많아요. 내가 너무했나? 잘난 남자도 넣을 걸 그랬나요(웃음)


역할의 변이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이제 역할 변화는 불가역적이고 돌이킬 수 없어요. 앞으로 남녀가 역할이 뒤바뀌기도 하고, 서로 달라진 역할을 받아들여야 하는 시대 상황이라고 봐요.


주인공 형진이 가정 문제의 원인으로 가부장제를 지적하기도 해요.


가부장제가 남자들을 바보로 만드는 원인이라고 생각해요. 가부장제 안에서 원래 여자는 증여하는 대상이고 가부장 남성이 모든 책임을 혼자서 져야 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비슷한 위치의 여성을 만나서 누군가 일을 그만두더라도 서로 역할을 나누자는 계약을 하잖아요? 그런데도 남자들은 직장을 잃거나 주도권을 잃으면 자괴감에 빠진대요. 가부장적인 의식은 내가 모든 걸 가져야 하고 강한 남자가 되어야 한다는 압박이 있어요. 여자들은 새로운 문화권에 들어가면 잽싸게 수용하고 바뀌지만 대부분 남자는 정체성을 쉽게 못 바꿔요. 어떻게 보면 남자들이 취약한 부분이에요. 그래서 사실 애틋함은 오히려 모자란 남자들에게 있었어요. 예를 들면 정우도 되지도 않는 애가 수진을 돌봐주겠다고 나서고, 민규도 고양이 하나 찾으러 가면서도 사소한 것에서 자기가 여자보다 우수하다는 걸 입증하려고 해요. 그런 불쌍하고 무너져가는 남성에 관한 애도의 노래랄까요. 시대가 바뀌었다는 걸 얼른 받아들이라는 거죠.


육아 문제도 쉽지 않다고 생각해요. 셰어 하우스에 의도치 않게 아이가 들어오면서 누가 아이를 돌보느냐를 놓고 실랑이가 벌어지죠.


예전부터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한 집단이 필요하다고 했어요. 지금은 아무 경험도 없는 어린 엄마와 아이가 둘이서 난리가 나요. 애도 병들고 엄마도 병들어요. 그래서 공동체적인 의식을 회복하는 게 중요하고, 아이를 키우는 일은 나라가 시스템을 확실히 갖춰서 보장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유치원도 많이 짓고, 선생님 교육하고, 월급도 충분히 주고요.


소설 속에서 『팔 일째 매미』가 자주 언급되더라고요. 작가님 소설과 어느 정도 공통점이 있어요.


부부 사이에서 낳은 아이를 불륜녀가 훔쳐서 도망가는 줄거리의 일본 소설이에요. 그 영화와 소설에서도 보면 납치당한 아이도 친모하고 관계가 없고, 오히려 자기를 납치해서 어렸을 때부터 사랑을 받은 그 범죄자를 더 애틋하게 여겨요. 자기에게 불행을 준 존재이지만 그가 줬던 사랑은 친모가 준 사랑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요. 소설에서도 형진이 친모에게 애정을 못 느끼잖아요. 여자의 감정이나 여자의 애정, 여자가 자식들과 맺고 있는 그 모든 감정이 아무 의미 없다고 생각하는 게 가부장제거든요. 핏줄만을 중시하는 것보다는 자기가 키워온 것에 대한 애착 관계가 우리에게 대안이 되어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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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를 위한 소설


‘인간은 윤리 속에서 살아야 하지만 소설을 통해 윤리라는 좁은 범주를 벗어날 수 있다’고 쓰신 글을 봤어요.


항상 소설이 아닌 산문을 쓰면 부딪쳤던 문제가, 산문은 나라는 개인이 전면에 등장해요. 모든 산문은 그 사람의 얼굴을 걸고 써야 하잖아요. 하지만 소설은 오히려 가감 없이 자신을 드러내서 쓸 수 있어요. 인간에 대해서 소설만큼 가장 숭고하게, 비참하게, 잔혹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장르는 없어요. 모든 문자로 된 예술 중에서 소설이 가장 최고의 장르라고 생각해요.


소설 창작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시기도 합니다. 소설가를 꿈꾸는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은?


열심히 읽고 쓰라는 수밖에는 없어요. 순문학 작가가 된다는 건 지금 현실에서는 정말 힘겨운 길로 들어서겠다는 결심이에요. 하지만 패러다임이 바뀌는 때니까, 웹이라는 또 다른 장이 마련됐다고 생각하고 이쪽으로 달려든다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요. 패러다임이 바뀌는 때지 소설이 죽는 때는 아니에요. 소설은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생겨난 장르고 인간이 없어질 때까지 죽지 않아요. 다만 외피는 달라질 거예요. 웹이라는 공간으로 바뀌면서 거기에 알맞은 소설이 또 탄생하고 그게 주류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그러나 여전히 종이책이 완전히 없어지기보다 종이책만이 담지하는 형식은 여전히 유효하겠죠.


사실 소설은 읽는 사람보다 어떻게 보면 쓰는 사람의 몫이에요. 읽는 사람이 정말 중요해서 독자에 의해서만 소설이 생겨났다면 지금까지 소설이 이렇게 유지되어 오지 않았을 거예요. 소설가가 자기를 위해서 쓰지 않은 소설이 남을 얼마나 즐겁게 해줄 수 있을까 싶어요.


작가님은 소설 쓰기를 즐기시는 것 같아요. 이제까지 글을 보면 다양한 사람들이 나오더라고요.


그렇죠, 청소년 소설에, 춤추는 사람들 이야기도 있고, 평범한 남자들의 이야기, 화계사에서 벌어지는 암투도 있고요.


이야기를 쓰면서 바로 다른 이야기를 생각해 내는 편이신가요? 아니면 한 소설이 다 끝나야 다른 소설을 구상하는 편이신지?


소설이 끝나갈 때 거의 다른 소설을 생각해요. 지금도 생각하는 이야기가 있는데, 들려줄까요? 사랑도 실패하고 여러 방면에서 실패한 여자 주인공이 다 쓰러져가는 지방의 호텔에 사장으로 들어가요. 원래 자기 시스템을 고수하려는 지배인들, 장기 투숙객 등과 문제가 생기겠죠? 호텔에 불륜 커플이 들어오기도 하고, 어떤 여자가 남편한테 맞고 숨겨달라고 들어오기도 하고요. 그러면서 이 마을 안에서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을 생각하고 있어요.

 

 

소설이 영화가 된다면


2016 부산국제영화제 북투필름(Book to Film) 초청작입니다. 기존에도 영화나 드라마화 제안을 받은 적이 있나요?


없어요. 『세상에서 가장 사소한 복수』가 재작년에 최종까지 갔다가 떨어졌어요. 그 소설은 거의 두 사람이 주축이고 마지막이 상당히 우울하게 끝나서 영화로 만들기 힘들지 않았을까 해요. 드라마 쪽도 연락하고 있는데 콘셉트가 좋다고 적극적으로 고려하자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작가님이 쓴 이야기가 영화나 영상, 연극으로 나오면 어떨 것 같으세요?


사실 소설을 쓸 때 영화를 많이 생각해요. 언제부터인가 읽는 사람도 인상적으로 받아들이게 하려고 장면 위주로 쓰거든요. 각 에피소드도 시각적으로 장면이 분명하게. 거의 모든 작가가 영화화되는 상상은 할 거예요. 만약에 정말 된다, 그러면 정말 기분 좋겠죠.


어떤 배우가 배역을 맡았으면 하나요? 상상은 마음대로 해도 좋으니까요.


형진은 덩치 크고 우락부락한데 귀엽게 생긴 사람이 맡았으면 좋겠어요. 배우 마동석은 최근 유명하지만 나이가 좀 많아서… 30대 초반 중에 했으면 좋겠는데 그런 체형이면서 유명한 분이 없네요. 정우는 배우 박보검 상상했었어요. 살짝 우수에 젖은 데가 있어요. 감정이 촉촉한 사람이면 좋겠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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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운과 친해지는 법방현희 저 | 답
2016년 정릉, 엄마의 병구완 때문에 직장도 잡지 않고, 5년 동안 온갖 요리를 만들어야 했던 형진은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자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방편으로 [집밥 먹는 셰어 하우스]를 연다. 평범한 젊은이들의 대표 격인 사람들이 형진의 셰어하우스 입주 공고를 통해 정릉의 사과나무집에 모이게 된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타블로 “이렇게 예쁠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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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까지 밤샘 작업을 했지만 무척 상기된 표정이었다. 두 번째 책 『블로노트』를 펴내고 마주한 자리. 눈동자는 피로함을 증명했지만 달뜬 목소리는 상대를 기분 좋게 만들었다. ‘블로노트’는 타블로가 FM4U <타블로와 꿈꾸는 라디오>를 진행했을 때, 매일 짧은 글귀를 소개한 코너 제목이다. 타블로가 직접 쓰고 읽어 청취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타블로가 라디오 부스를 떠난 지는 1년이 돼가지만 여전히 그의 팬들은 ‘블로노트’를 기억한다. 『블로노트』가 책으로 만들어진 이유이기도 하다.

 

몇주 전, 타블로는 서점에 다녀왔다가 살짝 놀랐다. 짧은 글귀를 담은 책을 꽤 많은 책장에서 발견했기 때문. 누군가 “유행에 따라 책을 낸 게 아니냐?” 물으면 타블로는 할 말이 있다. “8년 전부터 쓴 거라서요.(웃음)” 타블로는 『블로노트』를 두고 “심야 라디오를 진행할 당시 끝인사를 대신했던 한 뼘짜리 조각들이다. 어떤 생각의 시작이 되고 어떤 고민의 끝이 되는 문장이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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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물 책을 받아보고는 깜짝 놀랐어요


요즘 살인적인 스케줄이라고 들었어요.


젝스키스 프로듀서로 참여하고 있고, 에픽하이의 다음 앨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오늘도 새벽 5시까지 곡 작업을 하다 왔어요. 즐겁게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블로노트』가 출간 전부터 화제를 모았는데, 예약 판매를 시작하자마자 1위에 올랐어요. 지금도 반응이 좋고요.

 

정말 감사한데, 사실 책이 이렇게 예쁠 줄 몰랐어요. 책이 나오기 전에 걱정이었던 게, 표지 이미지를 SNS에 올렸을 때 지나치게 반응이 좋았거든요. 화보 속 모습만 보고 실제 저를 만나면 실망하는 것마냥 독자들도 그럴 까봐요. 며칠간 걱정이 됐는데 실물 책을 받아보고는 깜짝 놀랐어요. 오히려 더 예뻐서요.

 

‘달’ 출판사 책이 표지가 예쁘기로도 유명하잖아요.


그런가요? 제가 양장본을 정말 안 좋아해요. 페이퍼북으로 만들길 원했는데, 출판사에서 초판만 양장본으로 가자고 하셔서 설득 당했거든요. 그런데 받아보니 너무 예뻐서요. 그냥 다 양장본으로 할 걸 그랬나 후회하고 있어요.

 

표지 글씨를 딸 하루 양이 썼다고 들었어요. 마치 서체처럼 예뻐요.


여러 개를 썼거든요. 출판사에 보내 드렸더니 가장 어울리는 글씨를 뽑아주셨어요.

 

하루 양의 글씨는 아빠의 아이디어였나요?


출판사에서 제안을 해주셨는데 처음엔 좀 싫었어요. 굳이 하루를 동참시키고 싶지 않았거든요. 이제 하루도 7살이라서 자기 생활이 꽤 많아요. 바쁘고요. 뭔가를 시키고 싶진 않았는데 처음 출판사로부터 받은 서체가 좀 덜 예뻤어요. 디자인은 너무 예쁜데 서체가 아쉬워서 고민을 하던 중에 하루가 글씨를 써봐도 좋겠다는 의견이 나왔어요. 10년 후쯤에는 하루가 재밌는 추억으로 여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하루에게 부탁했어요.

 

하루가 아빠의 제안을 반가워하던가요?


(웃음) 하루는 그런 성격이 아니라서요. 반응이라고 할만한 것도 없었어요. “아빠가 책 낼 건데 하루가 좀 써줄래?”, “응, 이 정도면 됐어?” 이게 다예요(웃음).

 

책을 내야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셨나요?


팬 분들과 청취자 분들, 예전 제 소설을 좋아했던 독자들의 요청이 꽤 있었어요. <타블로와 꿈꾸는 라디오>를 진행했던 2008년부터 책을 내달라는 이야기가 많아 “진짜 할까요?” 싶었죠. 어쨌든 제가 고마워하는 사람들이 원하는 일이니까요.

 

타블로의 음악을 좋아하는 팬들도 많지만, 소설 『당신의 조각들』을 좋아하는 독자도 꽤 많았어요. 타블로가 쓰는 글에 대한 기대치가 있기 때문에 ‘블로노트’의 뜻을 모르는 독자라면, 책을 읽고 약간 실망할지도 몰라요. 글이 많이 없으니까요.


사실 그런 걸 크게 신경 쓰지 않아요. 누구나 다양하게 생각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느껴지면 그렇게 느끼는 거고요. ‘블로노트’를 아시는 분들께만 의미가 있어도 괜찮은 거고요. 저는 ‘책에는 글씨가 많아야 한다, 노래는 목소리 부분이 더 많아야 한다, 영화에는 대사가 많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10여 년 전만해도 트위터나 페이스북이 지금처럼 인기가 많진 않았잖아요. 저는 꽤 오래 전부터 짧은 글을 많이 써왔는데, 최근에 서점에 가서 깜짝 놀랐어요. 짧은 문장이 담긴 책들이 너무 많아서요. 반갑기도 했고요. ‘블로노트’를 모르는 분들이 “타블로, 요즘 유행하는 것 따라 했네?”라고 말하실지도 모르겠지만 전 옛날부터 했던 거니까요. 크게 신경 쓰지 않아요.

 

아무래도 ‘블로노트’의 의미를 알고 책을 보는 게 중요하겠어요.


꼭 그렇지도 않아요. 짤막짤막한 문장을 읽고 여백의 의미를 느껴도 좋아요. 딱히 이 책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지 않아요. 친구 둘이 만났을 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지만 얘기를 꺼내기 어려운 순간이 있잖아요. 그 때 제가 운을 띄어줘서 친구의 감정이 훅 쏟아지는 순간이 있는데, 이 책이 그런 역할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책을 준비하면서 특별히 마음에 와 닿은 문장이 있었나요?


몇 개를 고르긴 어려울 것 같은데, 때때마다 그 때의 저를 담고 있다는 점이 새롭게 다가왔어요. 처음 라디오를 시작했을 때는 결혼하기 전이었잖아요. 혜정이를 만나기 전이고요. 혼자였을 때의 글과 결혼 후, 아빠가 된 후 쓴 글들을 다시 꺼내 보니까 몇 년을 다시 사는 기분이 들었어요. 또 책을 낸다고 하니까 많은 팬 분, 라디오 청취자들이 그 때의 ‘블로노트’를 생생하게 복원해주시더라고요. 인터넷에 손글씨를 올려주셨던 청취자들도 생각나고 그래서, 더 설레고 더 떨렸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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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마운 것들


공효진, 박찬욱, 장범준, 권지용 등 스타들의 손글씨도 실렸어요.


<타블로와 꿈꾸는 라디오>를 진행했을 때, ‘블로노트’가 소개되면 많은 분이 손글씨로 글을 적어 인터넷게시판에 올려주셨어요. 훌륭한 글씨가 정말 많았는데 일일이 다 찾기가 어렵더라고요. 책으로 다시 소개해도 좋겠지만, 그 때만의 감성, 추억, 공간이 존재하는 거니까요. 책으로 소개할 때는 좀 다른 느낌이어도 좋을 것 같아서 각각의 글과 잘 어울릴 것 같은 분들에게 부탁을 드렸어요.

 

모두 흔쾌히 써주셨나요?


예, 거절을 안 하셨으니까요. (웃음)

 

특히 기억에 남는 손글씨가 있었나요? 문장과 정말 딱 맞아떨어졌거나 의외의 글씨체를 가져서 놀랐거나.


박찬욱 영화감독님은 글씨가 화려한 느낌일 줄 알았는데 의외로 굉장히 평범해서 더 정감 있고 좋았어요. GD 권지용 씨는 낙서처럼 썼을 거라 예상했는데 예쁘더라고요. 만화가 이말년 작가님 같은 경우는 그림까지 함께 보내주셔서 하나의 작품 같았고요. 뭔가 다양한 일을 하는 사람들의 글씨가 글과 딱 맞아떨어졌을 때의 희열 같은 게 있었던 것 같아요.

 

에픽하이 멤버들의 손글씨는 없던데요. 미쓰라, 투컷은 ‘꿈꾸라’의 가장 오랜 게스트이지 않았나요?


(웃음) 그들은 본인이 라디오에 출연했을 때 말고는 제 라디오를 들어본 적이 없어요. 다른 코너가 어떤 게 있는지도 모르더라고요. 그뿐이 아니에요. 8년 전, 제가 소설을 출간했을 때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저를 놀려요. “타블로는 작가지~”, “작가하고 있네”라면서요. 그들은 제가 책을 읽고 있어도 놀려요. 다른 사람이 쓴 글을 읽는 것뿐인데, 마치 제가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는 것처럼 놀려요. 그래서 그들은 이 책과는 안 어울려요.

 

(웃음) 두 번째 책이 나왔으니 이제 더 놀리겠어요.


책을 준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부터 4개월째 놀리는 중이에요.

 

어쩌면 이 인터뷰를 읽을지도 모르잖아요. 멤버들에게 하실 말씀은 없나요?


볼 리가 없어요. 그 친구들은 책과 관련된 것은 아예 보지 않는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블로노트』를 읽을 때, 함께 들으면 좋을 노래로 「고마운 숨」을 꼽아주셨어요.


2011년에 <열꽃>이라는 앨범을 냈는데, 저는 그렇게 느끼지 않았지만 많은 분이 매우 우울한 앨범이라고 하셨어요. 그런데 거기서 딱 유일하게 밝은 노래가 「고마운 숨」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마운 것들. 감사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노래라서 책과도 이어진다고 생각했어요.『블로노트』도 비슷해요. 대책 없이 긍정적인 글도 한없이 우울한 글도 있고, 극과 극을 왔다 갔다 해요.

 

저자 소개가 매우 짧아요. “타블로는 노래를 쓰고 부릅니다”. 그리고 그간 작업한 앨범과 책 제목을 썼어요.


작가 소개 그런 걸 너무 싫어해요. 어디에서 태어났고 경력 같은 걸 길게 쓰는 게 너무 싫어요. 그래서 출판사 담당자 분께 그런 거 다 빼고, 내가 작업한 앨범 제목만 넣으면 안 되냐고 물었더니 괜찮다고 하셨어요. 책을 읽다가 ‘얘 괜찮네’ 싶으면, 제가 만든 앨범을 찾아 들어봐 주시면 좋을 것 같았어요. 뭐 안 그러셔도 괜찮지만요.

 

지금 굉장히 피곤한 상황이신데도 행복해 보여요. 억지로 꾸며서 예의를 차린 게 아니라 진심으로 기분이 좋아 보여요.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 느낀 인상이 그대로 이어져요.


행복하기보다 고마워 하는 모습이 행복으로 느껴지는 걸 거예요. 뭐랄까, 예전에 비하면 고마운 순간들이 몇 만 배로 늘어났어요. 예전에는 고마움을 지금만큼 느끼지 못했던 걸 수도 있어요. 이런 인터뷰를 하는 것도 너무 즐겁고요. 지금 출판사 분들도 많이 놀라고 계세요. 8년 전에도 같은 출판사에서 책을 냈는데, 그 땐 뭔가 하자고 하면 거의 싫다고 했거든요. 지금은 다 ‘오케이’라고 하니까, 의아해 하세요.

 

이유가 있다면요?


언제까지 이런 일들이 허락될 지 모르니까요. 마음으로도 몸으로도 이런 일을 계속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으니까, 고맙고 즐거운 것 같아요.

 

21쪽에 “행복. 행하면 복이 옴”이라고 쓰셨어요.


옛날의 타블로를 생각하면 가능하지 않은 글이에요. (웃음) 얼마나 제가 달라졌냐면, 예전에 라디오에서 이런 말도 했어요. “행복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즐거움만 존재한다. 행복이라는 단어로 이야기를 하는 게 오히려 이상하다”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즐거움이나 행복이나 크게 다른 말이 아닌데, 왜 그렇게 말했는지 모르겠어요.

 

『블로노트』를 본 아내 강혜정 씨의 반응은 어땠나요? 사전에 의견을 묻기도 하셨나요?


아직 못 봤어요. 저희는 일할 때 서로의 의견을 물어보지 않는 한, 그냥 알아서 하는 편이에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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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만한 취미 생활이 별로 없어요

 

올해 여름에 찍었던가요? 에픽하이 콘서트 ‘현재상영중’ 영상을 봤는데 굉장히 들떠 있어 보였어요.

저는 그 일이 세상에서 제일 재밌어요. 공연 포스터를 기획하는 순간부터 정말 너무 좋아요. 이번에 공연이 8회였는데, 12회로 할 걸 후회했어요. 예전에는 음반 작업해야 한다며 공연이나 행사를 하기 싫어해서 멤버들을 힘들게 했는데, 이제는 너무 좋아요. 즐길 줄을 알게 됐어요. 에픽하이 무대를 보면 우리 셋이 너무 행복해 하는 게 눈에 보여서 그냥 너무 즐거워요.


스케줄이 워낙 바쁘니 책을 읽을 시간은 없죠?


시간에 관계 없이 다시 책에 꽂혔어요. 어렸을 때는 책을 굉장히 좋아했고 가수가 된 후로도 열심히 봤지만, 소설을 내고 나서 멤버들이 하도 놀려서 안 읽었거든요. 이유가 좀 웃기긴 하지만. 그런데 작년부터 다시 좋아지다가 지금은 책만한 취미 생활이 별로 없다는 결론이에요. 고요해서 좋아요.

 

최근에 재밌게 읽은 책이 있다면요?


『발칙한 현대미술사』를 재밌게 읽었고, 이석원 씨의 『언제 들어도 좋을 말』도 좋았어요. 평소 좋아하는 작가인 이병률 시인의 대화집 『안으로 멀리 뛰기』도 재밌었는데, 제 이야기가 나와서 깜짝 놀랐어요. 시인님과는 인연이 꽤 오래 됐는데 8년 동안 저한테 한 번도 하지 않은 이야기를 하셨더라고요. 어떤 작가가 저를 두고 안 좋게 이야기했는데 거기에 항변을 해주셨더라고요. 너무 궁금해서 어떤 작가냐고 물었더니, 말을 안 해주시더라고요. 역시 시인이에요.

 

아무래도 두 번째 책이다 보니, 첫 책 『당신의 조각들』생각이 많이 났을 것 같아요. 좀 비교가 되던가요?


『당신의 조각들』이 원래 영어로 쓴 소설이었잖아요. 전문번역가가 번역을 했어야 했는데, 제가 괜한 똥고집을 부려서 직접 번역한 게 실수였던 것 같아요. 영어 버전이 월등하게 좋은데, 제가 욕심을 부렸죠. 이번 책은 그런 문제가 없었으니까요. 편하고 즐겁게 작업했어요.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을 하다가 그 생각을 그만뒀다”는 문장이 기억에 남아요. 혹시 지금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한 것들이 있나요? 생각이든 일이든 버릇이든.


글쎄요. 한 두 개가 아닌 것 같은데요. 쓸데없이 제가 좀 바쁘지 않나 싶어요. 내가 사랑하고 좋아하고 행복해 하는 일이면, 누가 시간낭비라고 해도 전혀 그렇게 느끼지 않거든요. 하지만 정말 온 마음을 다해서 할 수 없는 일도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와중에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는 건 엄청난 축복이니까요. 다른 일을 놓치고 있다는 아쉬움보다는 지금 하는 일을 감사히 열심히 하면 되지 않나 싶어요.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을 할 시간에 고맙다는 생각을 해요. 고마워 할 일에 그 시간을 쓰면 되니까요.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통해 많은 사랑을 받았어요. 2014년 12월에 마지막 방송을 했으니 벌써 2년이 지났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어떤가요? 출연하기를 잘했다고 생각하나요?


저는 뭘 해도 잘했다, 못했다, 그런 걸 생각하지 않아요. 일단 좋은 기회가 있었고 덕분에 감사한 추억이 많아졌어요. 물론 저와 혜정이, 하루의 아름다운 추억도 있지만,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우리 셋만의 추억이 아니잖아요. 굉장히 많은 분이 도와주셔서 특별한 추억을 갖게 된 거니까 매우 감사한 일이에요. 아마 나이가 많이 들었을 때, 영상을 본다면 되게 고맙고 울컥할 것 같아요. 실제 지금도 종종 보는데요. 누가 제 딸의 모습을 이렇게 애정 깊게 담아주겠어요. 또 사랑도 받고 박수도 받았으니 정말 감사하죠. 전적으로 저희에게 추억을 만들어주셨는데 상까지 주셔서 신기하고 또 감사했어요.

 

딸 하루가 벌써 7살이 됐잖아요. 언젠가 사춘기를 겪을 때, “나 왜 이렇게 유명한 아이로 만들어놓았냐”고 화를 낼 일은 없을까요?


2년 전 <슈퍼맨이 돌아왔다>를 찍던 중에 하루가 “아빠, 이제 그만하자”고 했어요. 사실 제가 평상시에도 하루와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서 카메라가 있든 없든, 하루와 놀아주는 게 차이가 없었어요. 워낙 리얼하게 찍었으니까요. 다만 하루가 불편해 했던 게, 마이크를 교체하는 일이었어요. 아이들은 한 번 꽂혀서 놀기 시작하면 아무 것도 안 보이잖아요. 그런데 배터리 때문에 마이크를 교체해야 하니까 그걸 불편해했어요. 어느 날 “아빠, 카메라 없이 놀아도 돼?”냐고 물어서 그 날로 이제 그만 찍어야겠구나, 결심했어요. 지금은 제가 TV에 나오는 일이 거의 없잖아요. 하지만 하루가 친하게 지내고 좋아하는 공효진 이모, 태양 삼촌이 다 TV에 나오니까요. TV를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또 요즘은 유튜브 시대잖아요. 누구나 개인 채널을 갖고 있고 누구나 영상을 만드는 시대라서요. 자기만 TV에 나왔다는 개념 자체가 없어요. 우리 세대와는 다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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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나를 톡 건드려줬으면 싶을 때


지금 타블로 씨가 큰 시장에 갔는데 『블로노트』가 딱 1권 있어요. 누구한테 선물하고 싶나요?


가장 가까이에 서 있는 사람에게 드리지 않을까요? 실제로 그러고 있고요. 며칠 전에는 작업실 근처 미용실에 『블로노트』를 갖다 드렸어요. 미용실에 두고 여러 분들이 보면 좋겠다 싶었는데, 직원 한 분이 가져가셨다고 하더라고요. (웃음) 저를 좋아해주나 싶어 감사했어요. 실은 지금도 차에 잔뜩 책을 싣고 다녀요. 우연히 만나는 사람들, 연락 오는 친구들에게도 선물하고 싶어서요. 그런 식으로 나눠주려고 목표를 잡았어요.

 

멤버 미쓰라, 투컷 씨에게도 책을 보여줬나요?

 

이미 샀대요. 책 쓴다고 할 때는 그렇게 놀리더니 얘네들이 ‘츤데레(‘겉으로는 퉁명스러워 보이지만 속은 따뜻하다’는 뜻의 신조어)”예요. 뭐 조만간 라면받침으로 쓰고 있는 사진을 올릴 것 같지만요. 제가 백 퍼센트 보장해요. 며칠 전에도 사무실에서 투컷이 제 책을 들더니 가장 오그라드는 글을 제 눈앞에서 읽는 거예요. 저랑 단둘이 있는 데도요. 누구한테 웃기려고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저를 괴롭히는 거죠. (웃음)

 

책에 대한 반응이 두려운 상대는 있나요?


어떤 사람이 안 읽었으면 좋겠다 싶은 분이 딱 1명 있어요. 양현석 YG엔터테인먼트 사장님이요. 제가 같이 일하는 사무실 식구에게는 웬만큼 책을 다 드렸는데 사장님께는 안 드렸어요. 왠지 욕할 거 같아요. (웃음) 사실 무서워서 못 드리겠어요. 사장님이 분명히 제가 책을 내는 걸 알고 있거든요. 제가 SNS에 책 사진을 엄청 올렸으니까요. 그런데 궁금해 하질 않으세요. 원래 정말 사소한 사진을 올려도 이야기를 하시는데, 책에 관해서는 한 마디도 안 하세요.

 

왜 그럴까요?


딱 두 가지예요. 책을 안 좋아하거나, 저를 싫어하거나. 사실 사장님도 얼마 전에 책을 내셨단 말이에요? 그런데 그 책도 저한테 안 주셨어요.

 

(웃음) 『블로노트』는 어떻게 읽으면 좋을까요?


진심으로, 마음대로 읽었으면 좋겠어요. 저는 좋아하는 책 몇 권을 화장실에 두고 읽어요. 언젠가 한 작가 분께 “당신의 책을 너무 좋아해서 화장실에 두고 본다”고 말했더니 좀 당황하시더라고요. 하지만 이건 굉장히 큰 찬사예요. 그만큼 이 책을 자주 찾아 읽는다는 뜻이니까요. 만약 어떤 분이 제 책을 화장실에 놓고 본다면 정말 기쁠 것 같아요. 꼭 화장실이 아니더라도 필요할 때 손이 닿는 곳에 두면 좋을 것 같아요. 이 책은 소설도 아니고 시집도 아니기 때문에 꼭 처음부터 읽을 필요가 없어요. 어떤 일, 어떤 감정에 대해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까?,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누군가 나를 톡 건드려줬으면 싶을 때, 읽으면 좋을 것 같아요. 

 

세 번째 책이 나온다면, 『블로노트』두 번째 이야기일까요?


사실 써놓은 글은 더 많아요. 라디오 진행을 하지 않는 지금도 꾸준히 글을 쓰고 있고요. 하루에하나씩 짧은 글이라도 꼭 쓰는데, 제게는 운동 대신이에요. 회사에 헬스장도 있지만 솔직히 둘 다 할 시간은 없어요. 만약 『블로노트』가 많은 사랑을 받는다면 후속편을 내고 싶은 마음도 있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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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노트타블로 저 | 달
‘블로노트’는 타블로가 세상에 던지는 짧지만 강렬한 메시지다. 때로는 주변의 인간관계, 가족, 친구에 관한 냉철한 시각에서부터 나아가 다양하고 복잡해진 사회에 시원하게 내지르는, 타블로의 일관된 가치관이 고스란히 들어 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수의사 최종욱 “동물을 대하는 태도가 인격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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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에서 기린을 만난다면?』에는 수의사 최종욱의 시간과 시각이 담겨있다. ‘야생 동물 수의사’, ‘코끼리 주치의’로 유명한 저자는 대관령 목장, 보건환경연구원, 동물원, 부검실, 도축장 등에서 근무하며 동물들과 교감해왔다. 책 속에는 그가 관찰해 온 동물들의 삶이 잔잔한 풍경처럼 펼쳐져 있다. 그리고 쉽사리 대답할 수 없는, 그러나 반드시 답해야 하는 질문들이 감춰져 있다. 인간에게 반려동물이란 어떤 존재인가, 동물들에게 도시란 어떤 공간인가, 평화로운 공존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수의사로서 최종욱 저자가 품었던 질문들이 독자들의 것이 되어 되돌아온다.

 


수의사는 다중인격이 되어야 하는 것 같아요


책에서 “동물원 수의사의 사계절”에 대해 들려주기도 하셨는데요. 요즘에는 어떤 시간을 보내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요즘은 환절기라 그런지 혹독한 올 여름을 잘 보낸 동물들도 갑자기 아픈 경우가 생겨서 여기저기 다니느라 바빠요. 사슴이나 양 수컷들은 암컷들을 차지하려고 엄청난 투쟁에 들어가는 시기라서 긴장하고 지켜보고 있죠. 이럴 때 사슴이나 양은 목소리와 성격까지 변해서 주의해야 하고요. 작은 변화도 자세히 살피고 잘 컨트롤해 주어야 모두가 이 계절을 편안히 넘길 수 있죠. 

 

“동물들을 치료하다 보면 입에 미소가 머금어지고, 어깨가 으쓱해지는 순간이 많다. 바로 그 맛에 수의사라는 직업을 좋아한다”고 하셨어요. 최근에도 그런 순간이 있었나요?


동물원에 ‘우리’라는 이름의 코끼리가 있는데요, 이 녀석이 나뭇잎을 따 먹으려다가 그만 모트(함정)에 빠진 거예요. 코를 길게 뻗었다가 안 닿으니까 아예 울타리에 발을 걸치고 올라섰다가 그만 미끄러진 거죠. 이런 일은 정말 드문데, 코끼리가 너무 호기심이 왕성해서 일어난 일이에요. 다행히 모트가 얕아서인지 떨어진 뒤에도 어디 다친 데 없이 말짱하더라고요. 문제는 얘를 어떻게 다시 끌어 올리느냐는 거예요. 전에 호랑이가 한 번 모트에 빠진 적이 있는데 그때는 마취약을 쏜 뒤 힘으로 끌어올렸어요. 하지만 코끼리를 마취할 수 있는 마취약은 없어요. 다행히 모트 한쪽에 경사로가 있으니 그쪽으로 유인해 보자 했는데 아무리 해도 몰아지지가 않는 거예요. 엄마 코끼리는 위에서 우왕좌왕할 뿐이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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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애가 타셨겠어요. 결과는 어땠나요?


“누가 코끼리를 영리하다 했던가!” 하는 원망까지 생기더라고요. 삼사 일 동안 고공 크레인도 동원하고, 60도였던 경사로를 30도로 만드는 공사도 하는 등등 갖은 수를 냈어요. 사이사이 코끼리가 목마를까 봐 수도 호스를 연결해 물도 뿌려 주고요. 그런데 호스를 중간에 녀석이 끊어 놓아서 그걸 다시 잇고 있는데, 그 사이 녀석이 그냥 경사로를 걸어서 슥 올라와 버린 거 있죠. 전 일하느라 못 봤는데 호스를 잇고 나서 돌아서니 코끼리가 제 눈앞에 딱 서 있는 거예요.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코끼리 이병 구하기’ 소동은 그렇게 싱겁게 끝이 났죠.

 

수의사로 일하시면서 힘들 때, 다시 떠올리면서 힘을 내시는 기억도 있으실 것 같은데요. 어떠세요?


아시아코끼리 두 마리가 동물원에서 국내 최초로 성공적으로 태어난 일을 늘 자부심으로 삼고 있어요. 어미에게서 버려진 아기 사자 세 마리를 거두어 첫 포유에 성공해서 잘 키웠을 때도 정말 뿌듯했고요. 언제나 첫 성공이 무엇보다 중요하죠. 그런 순간들이 많아야 해요.

 

이 책의 독자들 중에는 수의사를 꿈꾸는 아이들도 많을 것 같은데요. 수의사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무엇보다 동물을 보면 마냥 행복한 사람이 수의사의 자질이 있는 사람이죠. 수의사, 사육사는 꿈을 좇아가는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욕심은 적게, 열정을 많이 가지라’는 말을 해 주고 싶어요. 국제적으로 나갈 준비도 늘 하셔야 하고요.

 

수의사가 감내해야 할 부분들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수의사로 일하시면서 가장 힘드실 때는 언제인가요?


수의사는 의사나 변호사처럼 부와 명예가 어느 정도 따르는 직업은 아니에요. 때론 근무 환경이나 보수가 아주 열악하고 박할 때도 있죠. 막연하게 ‘전문직이니까 좋겠지’ 기대하고 수의대를 간다면 실망할 수 있어요. 또 수의사는 동물을 살릴 때도 많지만 많은 죽음을 눈앞에서 봐야 해요. 때론 안락사도 시켜야 하고요. 애써 치료하던 동물이 죽으면 한동안 감당하기가 힘들어요.

 

“동물 치료의 핵심은 측은지심이라고 생각한다”고 하셨어요. 책을 읽어보니, 수의사에게는 측은지심만큼이나 냉철한 판단력이 중요한 것 같았습니다.


살아 있을 때는 최대한 측은지심으로, 아플 때는 냉철한 이성으로 동물을 대하는 사람이 바로 수의사예요. 동물이 죽었을 때는 남은 동물들을 위해서 냉정한 마음으로 부검을 해야 하고요. 또 가축이나 반려 동물을 대할 때는 동물의 소유주인 인간까지 고려해야 해요. 카멜레온처럼 다중인격이 되어야 하는 직업이 수의사가 아닐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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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을 대하는 태도가 그 사람의 인격을 말해줘요


도축장에서의 도축 검사관으로 일했던 경험도 들려주셨는데요. 수의사로 일하시면서 가장 힘드셨던 시기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어떠셨어요?


사실 처음 도축장으로 발령이 났을 때는 일을 그만두고 싶다는 마음도 들었어요. 그런데 그곳에도 제가 돌봐야 할, 죽음을 목전에 둔 소 돼지들이 있고 또 그들을 존중하는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비록 어쩔 수 없이 죽이기는 하지만 도축장 사람들은 누구보다도 그들을 아꼈어요. 그분들에게 의지해 하루하루를 버텼어요.

 

도축장에서 일하시면서 많은 것들을 알게 되셨다고요.


버텨 봐야겠다고 결심하자 다른 세계가 보이더라고요. 가축들의 죽음을 헛되지 않게 하자는 생각에 가축의 복지를 고민하고, 잊고 있던 해부학 공부도 열심히 했습니다. 소의 태아가 어떻게 배 안에서 성장하는지 쭉 들여다보며 기록하기도 했어요. ‘도축장 블루스’라는 제목을 지어 놓고 도축장 이야기를 글로 쓰기도 했는데요. 그 기록의 일부가 『아파트에서 기린을 만난다면?』에 실려 있어요.

 

“인간이 육식을 하는 한 동물들의 희생은 불가피하다”고 말씀하신 데 공감합니다. 가축들이 살아있는 동안만이라도 최대한 자유롭게 편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해야 할 텐데요. 대관령 목장과 도축장에서 일하시면서 이에 대한 고민을 하셨을 것 같아요.


대관령 목장은 가축들에게 이상적인 공간이에요. 하지만 다른 곳의 가축 중에는 ‘가축 공장’이라는 표현처럼 처지가 매우 열악한 곳에 사는 동물들도 있어요. 인간을 위해 목숨을 희생하는 그들을 존중하고, 고마워하고, 편안하게 생을 마감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 넓은 곳에 방목시키고 무분별한 육류 소비도 줄여야 해요. 개인적으로는 도축장에 동물의 명복을 비는 사당 같은 것을 만들면 어떨까 생각해 봤어요. 저도 때때로 죽어간 축생들을 위해 기도하고 싶을 때가 많아요. 

 

부검실에서 경험하신 이야기도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죽음의 원인을 추적하는 과정이 생생하게 담겨있더라고요. 동물들을 진찰하신 후에 개인적인 기록을 남겨두시나요?


대관령 목장에선 수첩에 기록하는 정도였는데, 동물원에 와서부터 무엇이든 길게 기록하는 버릇이 생겼어요. 제가 모르는 게 너무 많다는 것을 깨달은 뒤부터였죠. 부검실은 수의사의 업무상 무조건 기록을 남겨야 하는 곳이고요. 동물 마취나 진료 기록은 꼭 간략하게 잘 정리해서 남겨 두어야 해요.

 

도시에서 동물들과 공존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소외 계층에게 유기 동물을 무료로 분양해주는 사업도 제안ㆍ진행하신 바 있는데요. 실현되길 바라시는 또 다른 정책이나 사업도 있나요?


유기동물 보호소는 당연히 필요하지만, 저는 보호소 안에서도 유기동물 요양소나 입양소 같은 좀 더 세분화된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어요. 아픈 동물들과 건강한 동물들을 가능한 분리해 주는 게 좋고, 또 분양을 갈 녀석들은 건강이나 외모 관리도 따로 시켜야 하니까요. 깔끔하게 분양 준비를 마쳐 두면 사람들도 동물을 사는 대신 이런 곳에 와서 기꺼이 분양을 받을 거예요.  

 

최근 도시에서는 길고양이를 두고 뜨거운 논쟁이 펼쳐지고 있잖아요. 길고양이 급식소 운영이나, TNR 사업 등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는 길고양이들이 도시 생태계의 핵심이라고 봅니다. 길고양이는 제 나름대로 도시 생활에 잘 적응했어요. 텃세도 강하고 영역 내 마리 수 조절도 자연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현재의 무분별한 TNR(포획해서고, 중성화시켜서, 내보내는)이 마리 수 조절에 정말 큰 도움이 되는지 되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관리가 보장되는 최소한의 급식소는 인간과 길고양이가 도시에서 공생하는 데에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유기 동물들이 처한 현실 역시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인데요. 이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시나요?

 

반려동물을 일종의 유행이나 장식품으로 보는 풍조가 문제예요. 가족으로서 끝까지 책임진다는 공감대가 있어야 해요. 일생 반려동물로 살아온 동물이 갑자기 인간의 도움 없이 홀로 살아가기는 힘들거든요. ‘버리면 누가 알아서 키우겠지’ 하면서 자기 위안을 삼는 사람들은 지극히 위험해요. 저는 동물을 대하는 태도가 곧 그 사람의 인격을 말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반려동물을 입양하려는 사람, 혹은 반려동물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세요?


반려동물들은 사람보다 오래 살지 못해요. 사람보다 병도 많아요. 혼자 독립하기도 힘들어요. 이런 점들을 잘 알고 시작하셔야 해요. 부지런해져야 하고 공부도 많이 하셔야 해요. 이른 죽음에 대처하는 방법도 배우셔야 하고요.

 


동물원을 없애야 한다고요?


오랜 시간 동물과 함께 생활해 오셨잖아요. 인간과 달리 동물들만이 가르쳐주는 감정이나 세상의 이치 같은 것들이 있을 것 같아요.


동물 곁에 있으면 정말 편안해져요. 인간을 대할 때보다 훨씬 감정이 단순해서 좋아요. 동물들은 순수하고, 편견이 없고, 내가 돌봐 주는 만큼 나를 알아봐 주어서일 거예요. 어제 비록 못 해 주었더라도 오늘 잘해 주면 다시 친해질 수 있어요. 그들은 멀리 봐요. 모성애나 관용 같은 건 사람보다 훨씬 앞서는 것 같아요.  

 

책에서 ‘동물들에 대한 편견’에 대해서도 바로잡아 주셨는데요. 그 중 하나가 자연 상태에서 약육강식의 법칙이 언제나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거예요.


유튜브 같은 데서 새끼 양을 돌보는 사자, 고양이 새끼를 키우는 원숭이 같은 영상들을 흔히 보실 거예요. 동물들은 이렇게 훨씬 선한 쪽으로 움직이는 경우가 많아요. 특히 새끼들은 종을 불문하고 모든 동물들이 서로 보살펴 주려고 하지요

 

호랑이들의 안락사에 대한 이야기는 정말 놀라웠어요. 어떤 상황이었나요?


폐렴에 걸려 고통 받는 약한 호랑이 동생의 투정을 오랫동안 형들이 받아줬었어요. 그러다 동생이 움직이지도 못할 정도가 되자 한 번에 목을 물어 죽였고요. 제가 보기엔 일종의 안락사로 보였어요. 동생의 고통을 보다 못해서 그렇게 했다고 짐작이 돼요. 물론 호랑이의 마음을 누구도 정확히 알 수는 없겠죠. 저는 그저 오랫동안 관찰하면서 그렇게 느낄 뿐이고요. 
 
“인간의 기준으로 동물들의 삶을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얻은 적이 있다고 하셨어요.


우리는 날개가 있지만 날지 못하는 타조를 보면서, 무심코 ‘타조는 날고 싶겠다’는 생각을 하곤 하잖아요. 난다는 것이 인간에겐 자유의 상징이기도 하니까요. 그래서 제가 『아파트에서 기린을 만난다면?』에서 타조가 날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상상해 보기도 했죠. 그런 상상을 계속 펼치다 보면, 문득 ‘타조는 그냥 생긴 대로 살려고 하는데 우리 인간들만 안타깝다며 감정 이입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저도 늘 동물의 시각에서 동물을 보려고 노력하죠.

 

또 어떨 때 그런 생각이 드세요?


동물에게는 ‘동물적인 욕구’만 있을 거라고 착각하는 것 역시 인간 중심적인 생각이 아닐까 해요. 동물들은 우리 생각처럼 단순하지 않아요. 동물원에 새끼를 잃은 다람쥐원숭이가 있었어요. 상심이 어찌나 컸던지 곡기를 끓고 그대로 죽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면서 동물에게도 밥보다 소중한 것들이 많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동물들도 생각을 하고, 느끼고, 아파해요.

 

비인도적이라는 이유로 동물원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책에서도 이에 대해 다루셨는데, 이러한 주장에 선뜻 동의할 수 없다고 하셨어요.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자연에서 더 이상 인간에 의한 서식지 파괴나 멸종이 없어진다면 차츰 단계적으로 동물원이 없어져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야생의 마지막 보루로써 동물원들이 남아 있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가능한 엄격한 심사를 거쳐 환경이 좋은 동물원, 수족관만 남길 바랍니다. 지금도 무분별하게 생겨나고 있는데 그런 동물원, 수족관 드라이브를 멈추었으면 좋겠어요. 숨 고르기가 필요해요.

 

한 일간지에 ‘유럽 동물원 탐방기’를 연재하기도 하셨는데요. 유럽의 사례에 비춰보면 국내 동물원은 어떤 상황인가요?


유럽이나 가까운 동남아의 동물원만 가도, 우리처럼 동물들이 좁은 유리나 철창 속에 갇혀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 꾸며 놓았어요. 물이 경계를 가르고 주변은 온통 숲 속 같죠. 최소한 그렇게 꾸며 주는 것이 희생당하는 동물들을 대하는 예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향해야 할 모델을 발견하기도 하셨나요?


꼭 한두 가지 모델을 꼽기보다 동물원이 제2의 자연(second nature)라는 기본 개념이 있는 동물원이라면 모두 우리가 참고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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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과 인간의 공존, 지혜가 필요해요


강연, 방송 출연, 칼럼 기고, 책 집필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오고 계십니다. 수의사로서의 본업과 병행하기가 쉽지 않으실 텐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활동들을 지속하시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할 수 있을 때 해 보자’라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 하고 있어요. 평범한 저에게 동물들이 이름을 알릴 기회를 주었으니, 잠시 동안이나마 동물들의 대변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짧은 인생 동안 가능한 많은 것을 해 봐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책은 창비청소년문고로 출간이 됐고, 이전에도 다수의 어린이책을 집필하신 바 있습니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책들을 집필하시는 이유가 있을까요?


아이들은 편견 없이 그냥 동물들을 좋아합니다. 저도 동물원에서는 아이의 마음으로 살고 있어요. 어른의 세계가 저에겐 왠지 낯선 세계이기도 하고요. 그래서인지 일부러 그렇게 의도하고 쓰는 것도 아닌데 쓰다 보면 아이들 눈높이에서 써질 때가 많아요. 그리고 알고 보면 어른 중에도 아이들 못지않게 순수하신 분들이 많거든요. 그런 어른들이 제 책을 함께 읽어 주시더라고요. 

 

특정 동물에 대한 호불호나 동물에 대한 기본적인 인식은 성장 과정에서 부모의 반응을 보고 학습하는 경우 많은 것 같아요. 동물들과 처음 만나는 아이를 위해 부모가 해야 할 역할이나 바람직한 태도가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아이에게 신기한 구경이나 체험을 시켜 주고 싶다고 해서 동물을 때리거나, 동물이 먹지 못할 것을 던지거나, 억지로 만지려고 하지 마세요. 약한 동물들 앞에서 자기 힘을 과시하는 태도는 결코 아이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으니까요. 동물을 존중하는 부모가 되세요.

 

책을 읽어 보니, 동물원의 동물들이 관람객으로 인해 고통 받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은 것 같더라고요. 관람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초식 동물들에게 비닐이나 장갑 같은 걸 주지 마세요. 비닐은 그들의 소화기를 막아 버려요. 타조는 뭐든 일단 삼키고 보니 더욱 위험하고요. 원숭이에게 과자를 주지 마세요. 과자는 비만과 충치를 유발합니다. 그리고 파충류들의 유리창을 두드리지 마세요. 가만히 있는 것 같지만 파충류들은 누구보다 스트레스에 예민하거든요.

 

작가님을 소개할 때 “국내에 드문 야생 동물 수의사”라는 수식어가 빠지지 않습니다. 책에서도 야생동물을 전문적으로 보살필 수 있는 인력이 부족한 현실을 안타까워하셨는데요. 이런 문제의 원인과 해결방법은 무엇일까요?


사실 국내에서 야생 동물 수의사로서 성장할 기회가 많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일이 워낙 험해서 지원자가 적기도 하고요. 하지만 의지만 있다면 국제기구나 해외에서 자원 봉사할 기회는 많아요. 그런 활동을 통해 실력을 쌓는다면 우리나라 야생 동물 분야를 더욱 발전시킬 수 있을 겁니다. 제인 구달이나 다이앤 포시 같은 분들이 그랬듯 꿈을 가진 청소년들, 미래의 수의사들이 많이 도전했으면 합니다.

 

가축 전염병 발생 시 이루어지는 살처분 조치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내셨는데요. 이 과정에 참여했던 수의사들이 후유증을 겪는 일도 많다고요.


네, 수의직 공무원 중에 공직을 그만두는 분들이 많이 생겼었죠. 가축 전염병이 발생하면 인간의 편의만 생각해서 살처분 조치를 취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면서 생매장 논란 등 여러 논란이 빚어졌고요. 그런 일을 앞장서서 해야 하는 수의사들은 심적 고통이 정말 큽니다. 가축들은 물건이 아니에요. 인간처럼 팔딱팔딱 뛰는 심장을 가진 귀중한 생명이에요. 위기의 순간에도 그 사실을 잊으면 안 됩니다. 

 

가축 전염병에 대처하는 우리의 방식은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요?


무엇보다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이 필요하죠. 그리고 차분히 대처해야 해요. 그러려면 과학적인 태도를 가지고 전문가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두려움이 앞선다고 해서 서두르거나 혹은 동물들의 목숨을 가벼이 여긴다면 더 큰 문제가 벌어질 수 있으니까요. 

 

동물과 인간이 어우러져 사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어떤 형태가 가장 이상적일까요?


인간이 지금처럼 파괴적으로 사는 대신 아프리카에서처럼 동물이 사는 영역과 사람이 사는 영역을 그저 구분해서 지내면 어떨까 생각하곤 합니다. 그리고 동물들을 굳이 컨트롤하려 하지 말고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 최선이에요. 자연은 인간이 억지로 개입하지 않을 때 가장 이상적인 형태를 만들어 냅니다. 그것을 아는 것이 진정한 호모사피엔스(지혜로운 인간)의 지혜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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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에서 기린을 만난다면?최종욱 저 | 창비
『아파트에서 기린을 만난다면?』에서 저자는 현재 일하고 있는 우치 동물원을 비롯해 유기 동물 보호소, 동물 부검실 등을 종횡무진 누비며 만난 동물들 이야기를 들려준다. 수의사만 알 수 있는, 비밀스럽고도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펼쳐지며 동물에 대한 호기심을 채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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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현 “여행이 끝난 뒤에도 불안은 남아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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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스페인의 바르셀로나까지, 177일 동안 이어진 여행이었다. 유일한 동반자인 모터사이클과 함께 낯선 공기를 몸으로 느끼며 약 26,000km를 이동했다. 길 위에 머물렀던 6개월 동안 수많은 사람들과 사건들을 지나왔다. 그 기억들이 모여 『모터사이클로 유라시아』위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불안하기 때문에 나는 기록한다. 이 글은 <모터사이클>보다는 <불안>에 관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체력과 운이 되는 한 반짝하고 찬란하게 빛날 이 모터사이클 여행을 기록함으로써 불안을 받아들이려 한다. 물론 이것이 내 욕심이고, 그 욕심조차 언젠가 사라질 것을 알고 있지만. (『모터사이클로 유라시아』프롤로그 중)

 

여행은 2015년 6월, 동해항에서 시작됐다. 목적지는 노르웨이의 국립 관광도로. 3년 전 건축 전시에서 봤던 그곳의 풍경을 잊을 수 없어서 떠남을 결심했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선택한 모험이었고, 여행이 끝난 후에 무엇을 해야 할지 정해진 바도 없었다. ‘불확실성이 안겨주는 불안’ 속에서 첫 걸음을 뗀 것과 다름없었다. 그러나 홀로 남겨진 시간과 생경한 경험 속에서 많은 것들이 명료해졌다. 오랜 시간 붙들고 있었던 화두들-일과 한계, 이동과 독립, 시민, 글쓰기에 대한 생각들이 차츰 제 자리를 찾아갔다.

 

『모터사이클로 유라시아』라는 이름의 묵직한 기록을 남긴 주인공 손현은 대학에서 건축학을 공부했다. 졸업 후 플랜트 엔지니어로 회사 생활을 했고, 매거진 <B>의 객원 에디터로 참여하기도 했다. 현재는 미디어 콘텐츠 스타트업 ‘퍼블리(PUBLY)’에서 에디터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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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터사이클 여행의 맛, 활자로 표현하기는 어려워요


회사를 그만두고 여행을 떠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책을 읽어 보면, 특별히 회사 생활을 힘들어 하지는 않으셨던 것 같아요.

 

사실 회사는 그럭저럭 다닐 만 했어요. 제때 월급도 나오고 업무 강도도 세지 않고요. 그런데 1년 정도 회사 생활을 하다 보니까 저한테 맞지 않는 직업이라는 게 느껴졌어요. 그때부터 이직 준비를 했었고요. 그러다가 개인적인 포트폴리오를 ‘소년의 시간은 똑바로 간다’라는 잡지로 만들어서 매거진 <B> 측에 보냈는데, 운 좋게 인터뷰 기회를 얻고 객원 에디터로 합류하게 됐어요. 이직을 준비하던 중에 본의 아니게 겸업을 한 셈이 됐죠. 그렇게 일을 하다 보니까 두 가지 일을 병행하는 게 상당히 어렵더라고요.

 

여행의 직접적인 계기가 된 건 ‘노르웨이 국립 관광도로’에 관한 전시였다고요.


2012년에 보게 된 전시였는데, 제가 생각하던 전환점을 구체적으로 구현하는 방식에 대해서 영감을 줬어요. 그때 광활한 노르웨이 대자연에서 어떤 바이커가 도로를 지나가는 영상을 얼핏 본 것 같은데요. ‘저 사람은 진짜 좋겠다‘, ‘나도 바이크 면허를 따서 노르웨이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 즈음에 ‘싱글일 때 마지막으로 누릴 수 있는 취미로 모터사이클을 타자’는 생각도 들었고요.

 

이전에는 모터사이클을 타본 적이 없으셨어요?


네, 생각해본 적도 별로 없었어요. 그래서 2013년에 면허를 따고 1년 동안 국내에서 연습을 한 후에 2016년 5월에 출발했죠. 노르웨이 국립 관광 도로가 2016년 5월에 완공된다고 해서 그때쯤 출발하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책에서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가치에 대한 탐구』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하셨는데, 그 책을 보시고 영감을 얻으신 줄 알았어요.


책을 읽은 건 전시를 본 이후였어요. 제가 모터사이클을 전혀 모르던 사람이다 보니까 배워야 될 게 정말 많았거든요. 그래서 국내에 출간된 서적을 찾아봤는데 『선과 모터사이클 관리술-가치에 대한 탐구』에 대한 평이 굉장히 좋았어요. 단순히 모터사이클의 기계적인 성능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그걸 통해서 철학적인 의문을 제시하고 명상을 하는 것에 대한 내용들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굉장히 좋았어요.

 

직접 인용하신 부분만 보고도 ‘모터사이클 여행만의 맛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맞아요. 그런데 그걸 활자로 표현하기는 조금 더 어려워요. 바람을 맞고 그런 느낌을 구체적으로 쓰면 글이 너무 감성적이 되기도 하고요. 실제로 느끼는 기분은 글로 표현한 것보다 훨씬 좋거든요.

 

“나는 감상적인 글쓰기를 지양하는 편”이라고 적기도 하셨어요. 이유가 있나요?


그냥 저의 글 쓰는 방식인데요. 사실 저도 감성적인 글을 쓰는 걸 좋아하고, 20대 때는 소위 말하는 감성 에세이 류를 많이 읽었어요. 그런데 (감성적으로 쓴 글이) 당시에는 좋은데 시간이 지나면 부끄러운 글이 된다는 생각을 했어요. 나이가 들수록 남의 눈치를 보게 되는 건지, 아니면 자기 검열을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가급적 팩트 위주로 담되 제 감정을 담아야 될 때는 담는 식으로 쓰게 됐죠. 나중에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손주한테 제 이야기를 들려줄 때 부끄럽지 않은, 그런 글로 남기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요. 어떻게 보면 제 욕심이죠.

 

두 명의 헤드헌터에게 여행 계획을 들려주셨었고, 전혀 다른 반응을 보셨다고요.


여행을 떠나기 1년 전이었어요. 그때는 제가 여행을 갈지 안 갈지 확실하지도 않았고, 구체적으로 이직 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었어요. 원래는 회사를 옮기는 과정에서 공백기가 있으면 그때 여행을 가려고 했었거든요. 그러던 중에 헤드헌터와 접촉했고 제 계획에 대해서 이야기했어요. 한 분은 남성 컨설턴트였고 다른 한 분은 여성 컨설턴트였는데, 남자 분은 알고 보니 제 고등학교 선배더라고요. 그 분은 훨씬 직설적으로 말씀해주셨어요. ‘그런 여행은 대학생 때 다 누렸어야지 지금 와서 하기에는 너무 늦다, 차라리 회사를 그만두고 지금부터 MBA를 준비해야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다른 한 분은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시던가요?


제가 지금까지 해왔던 활동들에 대해서 충분히 들으시고 나서 ‘손현 씨는 본인의 브랜드가 있는 것 같으니까 지금 여행을 바로 가도 될 것 같다, 오히려 여행을 다녀온 후에 자신의 뭔가를 만드는 게 나을 수 있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너무 입장이 상반돼서 좀 혼란스러운 것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한 명이라도 저를 지지해 주는 분이 있는 거니까 잊지 않고 기록해 뒀었어요. 나중에 여행하다가 그 생각이 났을 때는 ‘내가 이 여행을 진짜 떠나고 있네’ 싶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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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은 결코 사라질 수 없다


여정을 정리해 주실 수 있을까요?


서울에서 동해항으로 가서 블라보스토크로 가는 배를 탔어요. 바이칼 호수까지 육로를 통해서 이동했고요. 동쪽에서 서쪽 방향으로 이동해서 모스크바에 도착했어요. 일단 주요 목적지는 노르웨이였기 때문에, 우선은 노르웨이까지 가겠다는 생각만 있었어요. 그 이후의 구체적인 노선은 생각할 여유가 없었죠. 사실 거기까지 갈지도 불투명했거든요. 세계지도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노르웨이까지 갈 수 있는 제일 심플한 방법이 러시아를 횡단하는 거였어요. 중국을 거쳐 가는 방법도 있지만 중국은 국제 운전면허가 통용이 안 되거든요. 그래서 많은 여행자들이 러시아를 횡단해서 가죠.

 

노르웨이에 도착하신 후에도 여행을 계속 하셨죠?


네, 노르웨이까지 간 다음에는 2~3주 간격으로 그 다음 일정을 잡았어요.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미리 메일을 보내서 약속을 정하고요. 그래서 유럽에서는 왔다 갔다 하면서 친구들 만나고, 그 일정에 맞춰서 이동하는 식으로 노선을 짰어요.

 

3년 전부터 꿈꿨던 ‘노르웨이 국립 관광 도로’를 직접 달리게 되셨을 때, 느낌이 어떠셨어요? 굉장히 벅찬 감정이 들면서도 동시에 뭔가가 식는 듯한 느낌도 들었을 것 같아요.


네, 그런 것도 있었어요. 러시아를 지나는 데 한 달 반 정도 걸렸고 그 다음에 바로 북유럽을 통과했으니까, 두 달 반 정도 지났을 때 이미 여행의 클라이막스를 한 번 맛 본 셈이었죠. 제가 생각했던 건 일단 노르웨이까지 가는 거였으니까요. 그때까지는 굉장히 좋았어요. 마침 친한 친구도 함께 있었고 경치도 좋았어요. 그런데 노르웨이 여정까지 마치고 나서 친구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갔거든요. 그러면서 다시 혼자 남겨지고 날도 추워지니까, 스웨덴 예테보리에서 심한 슬럼프가 왔었어요. 더 이상 어디를 가야 할지, 뭘 봐야 할지, 별로 생각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하루 정도 쉬면서 서서히 마음을 다잡았죠.

 

노르웨이를 기점으로 여행의 색깔이 조금 바뀌었겠네요.


그 이후의 범위는 제가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거였거든요. 그래서 ‘여기에서는 운에 한 번 맡겨보자’라는 생각도 있었고요. 그냥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듯이 가기로 했어요.

 

책의 시작부터 불안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요. 여행을 하는 중간에도 불안을 느낀 순간들이 있으셨나요?


중간 중간 불안한 게 없어지지 않더라고요. 좋았던 순간도 있었고 다시 마음이 불안할 때도 있었어요. 초반에는 앞날이 불투명한 것에 대한 불안이었고요. 그 다음에는 ‘내가 이 여행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게 맞는 것인가’라는 스스로에 대한 의구심도 들었어요. 뭔가 답을 찾으러 떠난 여행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내심 실마리를 찾지 않을까 생각했거든요. 조금 평온해진다든지, 퇴사 이후의 커리어를 어떻게 하면 좋을지 생각이 정리된다든지, 그런 기대가 있었죠. 그런데 여행 중에 벌어지는 일들이 많다 보니까 거기에 대해서 깊이 고민할 겨를은 없더라고요.

 

여행이 끝날 즈음에는 ‘이제 돌아가면 또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셨을 것 같아요.


다시 현실로 돌아오게 됐을 때는 ‘어떻게 하지?’라는 불안이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었죠. 그런데 굉장히 심각한 건 아니었어요. 그때의 불안은 제가 인지를 하고 있는 거였거든요. ‘이건 불안한 게 당연해, 그럴 수밖에 없어’라고 생각했고, 불안은 어떤 상태일 뿐이니까 너무 초조해하거나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무언가 깨달은 것이 있다면 불안은 결코 사라질 수 없다는 점이다”라고 말씀하신 게 생각나네요. 여행에서 돌아오신 후에도 불안한 요소들은 계속 남아있죠?


네, 불안한 요소들은 늘 있죠.

 

지금은 어떠세요?


그래도 요즘은 딱히 없고요. 업에 대한 고민은 늘 있을 수밖에 없죠. 책에서 제가 제시한 몇 가지 화두들이 있잖아요. 진짜 성숙된 시민으로서 잘 살 수 있을지, 함께 살 수 있는 사람을 잘 찾을 수 있을지, 그런 것들에 대한 궁금증은 있죠. 그렇지만 불안의 형태는 아니에요. 그럼에도 불안은 늘 있지만 무덤덤해지려고 노력해요.

 

여행이 남긴 또 다른 수확으로 ‘한계를 알게 된 것, 그러면서 겸손해진 것’이라고 하셨어요. 그 대목에서 이본 쉬나드의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를 인용하셨고요. 이본 쉬나드는 “절대로 자신의 한계를 넘지 말라”고 이야기했는데, 동의하시나요(웃음)?


네, 전 동의합니다(웃음). 역설적으로, 이본 쉬나드는 누구 못지않게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는 기업인이자 등산가잖아요. 저는 한계는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한계점은 유동적인 거죠. 한계를 안다는 건 본인이 그 극한까지 노력해봤다는 걸 입증하는 거거든요. 노력도 안 해본 사람은 자신의 한계가 어디인지 모르니까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사람은 굉장히 연약하기 때문에 모든 걸 잘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신체적인 한계도 있고 직업에 대한 한계도 있죠. 다만 그거에 대해서 인정을 하고 자신의 분수를 받아들이는 거죠. 그 단계까지 가려면 어쨌든 부단히 노력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한계를 넘지 말라는 게 현상을 유지하라는 의미가 아닌 것 같아요. 본인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알기 위해서는 어쨌든 노력을 해야 된다는 거죠.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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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 남긴 것은 ‘모르겠다’라는 네 글자


고독에 대한 이야기들도 눈에 띕니다. 서울에서, 시베리아에서, 유럽에서, 장소를 달리하면서 서로 다른 고독을 경험하신 것 같아요.


사실 서울에서는 고독을 느낄 새 없이 개인 약속이 많았던 것 같아요. 예전에 스케줄러를 본 적이 있는데, 한 해에 400~500번 정도 약속을 잡기도 했더라고요. 그렇게 혼자 있는 시간이 없으니까 조금 피로해진 부분도 있었어요. 시베리아를 지날 때는 말 그대로 고독할 수밖에 없었죠. 주변에 아무것도 없을 때가 많았거든요. 여행 초반에는 동행들이 있었지만 나중에는 혼자 다녔는데, 그럴 때 그런 종류의 고독을 느꼈어요. 반대로 유럽은 어딜 가나 사람이 많잖아요. 일주일 정도 헬싱키에 머물게 됐었는데, 그때 공항에서 비행기 기다리면서 고독하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주변에는 다 가족이나 연인, 친구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니까 ‘여기에서 아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모두가 이 여행을 멋지다고, 응원한다고 하니 한편으로는 괴롭고 힘든 순간을 아무에게도 내보이지 못했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굉장히 솔직한 고백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속된 말로 표현하면 찌질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제일 저 다운 순간이 아니었나 싶어요. 제가 여행을 하면서 SNS나 블로그에 사진과 글을 올리면 사람들이 좋아요를 누르거나 응원한다는 말을 남겨줬거든요. 물론 고마운 반응이지만, 초반에는 ‘응원해서 어떻게 할 건데?’라는 꼬인 심정도 있었어요. 왜냐하면 저도 힘든 순간이 있었는데 그걸 누구한테 표현해야 할지 몰랐거든요. 가족한테 이야기하면 걱정하실 것 같고, 친구들은 ‘마음 편히 퇴사하고 하고 싶은 일 하면서 뭐가 힘들어?’라는 식으로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았어요. 어떻게 보면 제 덫에 제가 빠져있었던 걸 수도 있죠.

 

체력적으로만 힘드셨던 건 아닐 것 같아요.

 

체력적으로는 크게 힘들지 않았어요. 심리적으로 힘든 부분이 있었고, (나의) 나약함에 대해서 인정을 하면 되는데 억지로 센 척 강한 척을 했던 거죠. 제가 스스로를 놓아주지 못했던 것 같아요.

 

여행은 우리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죠. 이유가 뭘까요?


김연수 소설가가 이런 말을 했던 것 같은데요. 여행지에서는 자신의 사회적인 배경이라든지 지위, 신분을 다 떼고서 지내게 되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에 대해서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거죠. 오로지 스스로의 내면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고요. 그리고 전혀 다른 새로운 것들과 충돌하면서 그런 자극에 대해서 조금 더 촉수가 민감해지지 않을까요? 저도 여행을 하면서, 서울에 있을 때와는 달리, 마음이 엄청 널뛰고 희로애락의 곡선을 선명해지는 걸 느꼈어요. 그래서 ‘이걸 잘 담아둬야겠다’는 생각을 했었고요.

 

여행의 마지막 순간에는 “결국 ‘모르겠다’란 네 글자만 남았다”고 적으셨는데요. ‘무엇을 위해 떠났던 거지?’라는 생각은 들지 않으셨어요?


그 상태를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는 생각이 더 컸어요. 그리고 저는 스스로 일을 벌이는 경향도 있기 때문에, 당장 돌아가서 할 일들은 많다고 생각했죠. 처음에는 이 이야기를 독립 출판 형식으로 낼 생각이었기 때문에, 책으로 엮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것만 하기에도 빠듯할 것 같았고요. 여전히 미래는 알 수 없는 거니까 ‘일단 이걸 하고 나면 그 다음에는 또 어떻게 되겠지’라는 생각만 가지고 있었죠. 여행을 떠날 때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했어요.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반 년 사이에 꽤 많은 일들이 벌어졌고 그게 저한테 좋은 영향을 주었듯이, 이후에 벌어지는 일들도 뭔가 즐겁고 신나는 것들이 아닐까 라는 기대감을 가질 수 있었어요. 지난 6개월의 경험으로 인한 확신이었죠.

 

이 여행이 어떤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하세요?


여행에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는 건 아니고요. 저는 원래 글을 쓰는 걸 좋아했던 사람이고, 여행하는 동안 덕분에 많은 글을 쓸 수 있었어요. 그 전에 일을 할 때나 객원 에디터로 참여하는 동안에는 제 글을 쓰지는 않았거든요. 늘 누군가를 위한 글을 써주고 의뢰 받은 글을 썼죠. 가끔은 ‘내가 글을 쓰기 위해서 이 여행을 떠났던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 정도로 글을 쓰는 시간이 굉장히 즐거웠고요. 그걸 완결된 형태로 남길 수 있어서 기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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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터사이클로 유라시아손현 저 | 미메시스
30세를 갓 넘긴 한 청년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6개월 간 모터사이클 여행을 시작한다. 이 책은 여정 중에 기록한 길고 짧은 글들과 사진을 담은 여행기이다. 동해에서 출발해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러시아 대륙의 끝없는 지평선과 길 위의 사람들을 만나고, 유럽 곳곳의 나라로 유랑하던 날들의 기록이 꾸밈없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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