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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재 “메시지에 합당한 사진을 찍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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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잘 부탁 드려요.”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언젠가부터 글보다는 사진을 더 깊이 보는 독자들이 많아졌다. 보다 멋지게 아름답게 찍히고자 하는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다. 하지만 수식어가 긴 주어가 답답한 것처럼 실물과 판이하게 다른 사진을 보면, 이야기의 진실성에 의문을 던지게 된다.

 

권혁재 <중앙일보> 사진전문기자는 포토샵을 부탁하는 인터뷰이에게 “당신이 한 이야기가 있는데, 그저 멋있게 나오면 좋은가요?”라고 반문한다. 그 사람의 메시지에 합당한 사진을 찍는 일을 사진기자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출간된 『권혁재의 비하인드』는 23년간 사진기자로 일하며 만났던 인터뷰이의 이야기와 사진을 담은 책이다. 배우 김혜자, 소설가 김훈, 고 신영복 선생 같은 명사들의 사진도 있지만 조금은 덜 알려진 다큐사진가 권철, 컬처디자이너 강주혜, 양떼목장 전영대 대표의 이야기도 실었다.

 

그는 <중앙일보>에 ‘권혁재 사진전문기자의 '뒷담화'’, ‘권혁재 사진전문기자의 Behind & Beyond’를 연재하면서 후배들로부터 “선배, 반칙이에요”라는 말을 들었다. 인터뷰 기사보다 사진이 더 화제가 되면서 그는 질투의 대상이 됐다. 흥미로운 건, 인터뷰를 함께 진행하고 싶은 사진기자도 그라는 사실이다. 권혁재 기자는 책을 낸 일도, 인터뷰를 하는 일도 마냥 어색한 모양이었다. 투박하면서 섬세한 사진은 과연 어떻게 탄생했을까. 답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그는 눈과 귀가 무척 밝은 기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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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에 합당한 사진을 찍는 일


책을 낼 생각이 없었다고 들었습니다.


사진집을 내려면 사진이 찍힌 사람들에게 일일이 다 허락을 구해야 하잖아요. 그럴 자신이 없었어요. 신문을 위해서 인터뷰를 해주고 사진을 찍어준 사람들인데, 책은 제 개인 목적에 의한 거니까요. 허락을 받을 자신이 없어서 책을 못 쓴다고 했는데 출판사 대표님이 “당신은 작가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어라. 사인은 우리가 받아주겠다”고 하셨어요. 그래서 승낙했는데 막상 책을 내려고 보니까 예의가 아니더라고요. 제가가 뭐라고 출판사를 시켜서 사인을 받나 싶어 일일이 제가 다 연락을 드렸죠.

 

실물 책을 처음 봤을 때, 느낌이 어땠나요?


한 번 훑어보고 제대로 읽진 못했어요. 부담스러워서 못 읽겠더라고요. 오보가 하나 있어요. 사진기자 생활을 한지 올해로 23년차인데, 보도자료에는 24년차로 나왔어요. 미리 챙겼어야 했는데 꼼꼼히 살피질 못했어요.

 

이렇게 글이 많은 사진집은 처음 보는 것 같아요.


확실히 모르겠지만 주변 분들 말로는 처음이라고 해요.

 

대한민국의 웬만한 명사들은 다 찍으셨는데 유명인만 싣진 않았어요. 책에 담을 인물은 어떤 기준으로 선정했나요?


메시지가 뚜렷한 사람을 골랐어요. 대부분 편집자 분이 제안해 주셨는데, 장사익 선생은 꼭 넣고 싶어서 제가 추천했어요. 워낙 그분 삶을 존경하기도 하고요. 하여간 기가 막힌 사람이에요. 반면 젊은 연예인은 가능한 뺐습니다. 흥미로운 인물도 많았지만 메시지를 담기엔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었어요. 자신이 없었어요.

 

최재천 국립생태원장 사진이 가장 처음에 소개됐어요.


편집자에게 정말 놀랐어요. 가장 처음에 넣은 사진이 제가 찍은 사진이 아니라, 올해 6월 ‘우리 들꽃 포토 에세이 공모전’ 시상식에서 최재천 원장이 무릎을 꿇고 초등학생 수상자에게 시상하는 사진이었어요. 편집자가 제 마음을 이해한 거죠.

 

많이 화제가 됐던 사진이었죠?


눈길을 사로잡았죠. 사연이 궁금해서 최재천 원장을 만나기도 했고요. 이 사진은 생물학적인 어른이 아닌 진짜 어른의 의미가 담겨 있었어요. 80회 이상의 사진 뒷이야기 연재 중 가장 많은 메일을 받은 칼럼이기도 했어요. 그냥 눈물이 났다는 독자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아요. 아마도 최 원장의 메시지가 그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겠죠. 기자로 사는 행복을 느끼게 해준 메일의 주인공에게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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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_ 국립생태원 제공

 

‘권혁재 사진전문기자의 뒷담화’는 신문사 후배의 제안 덕분에 시작한 칼럼이에요.


2년 전이에요. <중앙일보> 온라인 문화면을 만들 계획이라며 사진에 얽힌 뒷이야기를 글로 써달라고 했어요. 너무 기특하잖아요.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고 자발적으로 하는 모습이 좋아 돕고 싶었어요. 처음에는 한 열 번 정도는 쓸 수 있을 것 같아 시작했는데, 두 번째까지는 정말 잘 써지더니 세 번째부터 너무 힘들더라고요. 나중에는 공포였어요. 꾸역꾸역 하다 보니 지금까지 이르렀는데, 다행히 이유를 알고 찍은 사진이라 할 이야기가 있었던 것 같아요. 후배들이 많이 도와줬어요. 말하기는 애매하지만 나중에는 미안한 마음도 들었어요. 인터뷰 기사보다 뒷담화가 더 반응이 있을 때가 있었으니까요. 언젠가 제게 노골적으로 “이건 반칙”이라고 하더라고요. (웃음)

 

대개 사진기자들은 인물을 멋있게 찍는데 초점을 둡니다. 그런데 권 기자님 같은 경우는 인터뷰를 끝까지 듣고 난 후 사진을 찍으신다고요.


사실 취재기자들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어요. 인터뷰를 할 때 사진기자가 옆에서 계속 듣고 있으면요. 그래도 이야기를 사진에 담으려면 뭔 대화가 있었는지 알아야 하잖아요. 인터뷰 시간이 1시간이면, 50분은 인터뷰를 듣는데 사용하고 10분 동안 사진을 찍어요. 예전에 철없을 때는 30분씩 나눠서 하기도 했어요. 사진기자도 취재기자와 동등해야 한다고, 그게 자존심인줄 알았죠. (웃음) 다행히 철들고 정신을 차린 다음에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내가 해야 할 일은 인터뷰에 가장 적합한 사진을 찍는 일이니까요. 슬픈 이야기를 했는데 웃고 있는 사진이 나가면 안 되잖아요. 메시지에 합당한 사진을 찍는 게 제 몫이죠. 

 

부담스러울 수 있다는 말에 동감합니다. 하지만 좋은 사진이 나오면, 고마운 부담감이 될 것 같아요.


처음에는 왜 이런 사진을 찍었는지 모르겠다는 후배들이 있었어요. 하지만 기사에 얹히고 나면 완성도가 높아지니까요. 결국 같이 만드는 거죠. 책을 내면서 후배들이 격려를 참 많이 해줬어요. 응원도 해줬고. 참 고맙죠.

 

그런데 특별히 고마운 사람들 이름을 책에 적지 않으셨어요.


이름 많이 들어가는 걸 싫어합니다. 시상식에서도 말을 많이 하는 게 싫어요.

 

책 나오기 전에도 종종 ‘뒷담화’ 칼럼을 읽었습니다. 독자들이 왜 이렇게 사진과 글을 좋아하는지 곰곰이 따져보았는데, 투박한 멋이 있지 않나 싶어요. 글에 꾸밈이 없으니 소화가 잘되는 글이라고 할까요? 조미료를 안 쓴 집 밥을 먹는 기분이었어요.


고백 하나 할까요? 저는 난독증이 있어요. 남의 책을 잘 못 읽어요. 그런데 일이니까 읽어야 하잖아요. 소설가를 만나야 하니 소설을 읽어야 하고, 시인을 촬영하는 날에는 시를 이해해야 하니까 때마다 너무 고통스러웠어요. 한 장 읽고 다시 맨 처음으로 돌아가 읽은 책이 수두룩해요. 그런데 점점 읽다 보니까 제 수준에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더라고요. 그래서 알았죠. 내가 이해하면 그 사람이 이해할 수 있을 거다, 더 이상 모양을 내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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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 서랍 안에 있으면 죽은 사진


때론 인터뷰이에게 짓궂은 포즈를 요청해야 하잖아요. ‘내가 사진전문기자인데, 나에게 좀 맡기고 자유롭게 촬영에 임해주면 안되나?’ 하는 생각은 안 하시나요?


그게 잘 살펴보면 각자 사연이 있어요. 남에게 보여주기 싫은 모습, 치부, 속 깊은 이야기도 있고요. 기자는 세상에 던질 메시지가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을 인터뷰하는 건데, 사람들은 다들 예쁜 척, 멋진 척을 하잖아요. 어떤 누구도 인터뷰를 하면서 “난 멋있는 사람이다. 예쁜 사람이다”라고 말한 적이 없어요. 그런데 사진을 그렇게 찍으면 안 되죠. 이야기의 앞뒤가 안 맞으니까요.

 

예쁜 척을 하면, 그러지 말라고 요구하시나요?


당신이 한 이야기가 이건데, 멋있는 척을 하면 안 된다고 하죠. (웃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토샵을 해달라는 분들도 있어요. 포토샵을 많이 하면 조작된 사진이 나올 뿐인데, 나중에 보면 본인도 부끄러울 텐데 당장은 멋있게 보이고 싶은 거죠.

 

어떤 인물을 만날 때 감동하나요? 사진기자로서 이렇게 촬영에 임해줬으면 좋겠다 싶은 태도가 있나요?


배우 김혜자 선생님 인터뷰를 하러 나왔는데, 그 때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꼭 1주일 만이었어요. 연극을 홍보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사회 분위기도 고려해야 했지요. 우리만 웃고 있을 수 없으니 상황이 염려돼서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는데, 선생님도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어요. 사진을 찍기 어려운 심정이라고 하셔서 극 중 눈물을 흘리는 장면을 떠올려달라고 부탁했어요. 선생님은 항상 울컥해지는 대사가 있다며, 현장에서 바로 감정을 잡고 차분하게 대사를 읊조리기 시작하셨어요. 결국 눈물이 맺히셨는데 사진을 찍는 저까지 먹먹해졌죠.

 

반대로 인터뷰나 촬영을 대하는 태도 때문에 사진을 찍기 싫은 대상도 있지 않나요?

 

물론 있어요. 하지만 독자들에게 전해줘야 할 메시지가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을 만났잖아요. 내 감정이 별로라고 사진을 안 찍거나 열심히 찍지 않으면, 그건 제 본분을 못한 거니까요. 어떻게든 설득하고 해내야 해요.

 

무산 조오현 스님 인터뷰가 기억납니다. 명성에 비해 사진이 거의 없는 분이셨는데, 실제 인터뷰에서도 사진을 찍지 않으려고 하셔서 겨우 기념사진을 찍으셨다고요.


(웃음) 스님이 하셨던 말이 생생합니다. “종이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나와서 지 잘났다고 하는 꼴 보기도 싫다. 그런 꼴 보기도 싫다 캐 놓고 내가 신문에 나가면 우찌되겠노. 인터뷰는 절대 안 된다.” 사실 인터뷰도 차나 한잔하자며 만든 자리였고요. 카메라는 꺼내 보지도 못하고 인터뷰가 끝나려던 찰나, 홍사성 주간님이 기념사진 한 장 찍자고 권해주셔서 다행히 한 장을 건졌죠.

 

인터뷰를 하기 싫어하는 분들을 만나면 오히려 더 좋을 때가 많은데, 사진도 그렇지 않나요?


그렇죠. 안 한다고 하면 더 하고 싶고, 더 찍고 싫고 그래요.

 

누가 부탁해서 해야 하는 상황은 좀 싫고요.


기분 나쁘죠.

 

다큐사진가 권철 인터뷰는 기자님의 사심이 느껴졌어요.


기자라면 가치 있는 일과 사람을 세상에 알리는 일을 해야 해요. 하지만 노골적인 홍보를 삼가야죠. 객관적으로 보고 알려서 보는 이들이 선입견 없이 판단할 수 있게 해야 하는데, 기자의 직분을 망각하고서라도 권철의 사진은 세상에 알리고 싶었어요. 그만큼 그가 세상에 덜 알려진 게 안타까웠기 때문이에요. 권철 작가는 『우토로-강제철거에 맞선 조선인 마을』, 『가부키초』, 『텟짱! 한센병에 감사한 시인』으로 유명하지만 대중이 많이 알진 못하죠. 그는 18년간 부와 빈이 교차하는 아시아 최고의 환락가인 가부키초를 사진으로 담았어요. 인간의 밑바닥이 드러나는 환락가를 찍는 일은 사실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위험한 일인데도 말이에요. 그는 조직과 배경보다는 ‘도코다이’로 세상과 마주해야 한다는 사진철학이 있는 사람입니다. 한 마리 고독한 늑대로 살고 싶다고 했죠. 인터뷰 촬영을 하면서 그 늑대의 표정을 보여달라고 했더니 으르렁거리는 듯했어요. 늑대 그 자체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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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진을 찍을 때 가장 행복하나요?


독자가 좋아하는 사진을 찍을 때 좋죠. 내가 생각한 메시지를 읽어줄 때 가장 좋아요.

 

찍을 때는 독자들의 반응을 모르잖아요.


찍는 순간 느낌이 와요. 김혜자 선생님 같은 경우도 제가 사진을 찍으면서 울었으니까요. 눈물이 나서 못 찍을 정도였으니까요. 신파 같아서 칼럼에는 쓰지 않았지만, 저도 먹먹해지는 상황이었으니까요.

 

일반인이 인물 사진을 잘 찍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글쎄요. 정말 어려워요. 용도가 다 다르니까요. 정답은 없는 것 같아요. 상황도 다르고 사람들도 천차만별이니까요. 유난히 땅바닥만 보고 있는 사람은 사진을 찍기 어려운 대상인데, 그럴 땐 주변에 있는 사물이나 분위기를 이용하면 좋겠죠. 눈이 오면 눈이 오는 대로, 비가 오면 비가 오는 대로 메시지에 맞는 상황을 잘 살릴 필요가 있어요. 인물 사진을 찍을 때 대개 얼굴 표정에만 초점을 맞추는데, 손짓, 눈빛에서도 메시지가 있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 것들을 잘 포착하면 좋은 사진이 나올 수 있죠.

 

정말 찍기 힘든 인물도 있어요. 표정이 너무 없는 사람도 있고요. 언젠가 한 사진작가로부터 이런 말을 들었는데요. “내가 좋아하는 내 사진을 좋아하지 말고, 남이 보기에 좋은 사진을 인정해야 한다.”


(웃음) 일리가 있는 말이에요. 어차피 자신들도 ‘나는 멋진 사람이야’라는 메시지를 주려고 인터뷰를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잖아요. 사람은 죽을 때까지 자기 얼굴을 한 번도 못 보고 죽어요. 거울 반대편 얼굴만 보고 살죠. 어떻게 보면 남이 봐주는 게 내 모습이에요. 예전에 <중앙SUNDAY>에 ‘권혁재의 불완벽 초상화’를 연재했어요. 원래는 ‘불완전 초상화’가 맞는데. 아무튼 그때 놀란 게, 기사가 실린 날은 연락이 없다가 그 다음날 연락이 와요. 자기가 보기 싫어하는 우스꽝스러운 사진이 나와 언짢았는데 주변 사람들로부터 감동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으니까, 그때서야 전화를 해요. 그제야 자신들의 모습을 인식하기 시작하는 거죠.

 

때때로 사진을 먼저 보여달라거나 내려달라는 요청을 받진 않으시나요?


한 번도 없어요.

 

감히 그렇게 못하는 건가요?


그건 아니고요. 제가 빼도 박도 못하는 이야기를 듣고 찍은 사진이니까요. 자기가 했던 이야기가 있으니까 그런 말을 못하죠. “당신의 핵심 키워드는 이것”이라고 말하고 찍은 사진인데, 나중에 바꿔달라고 할 수 없는 거예요. 언젠가 후배 사진기자가 고민을 하더라고요. 인터뷰를 한 사람이 포토샵을 해달라고 하는데 선배 같으면 어떻게 하냐고요. 저라면 설득했을 거예요. 세상에 해야 할 이야기가 그게 아닌데, 인터뷰 내내 말한 것과 행동이 다르면 안되잖아요.

 

간혹 출처를 밝히지 않고 사진이 사용되는 경우도 많은데요. 기자님은 사진을 요청하면 스스럼없이 주신다고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돈 받고 사진을 준 적이 없어요. 어차피 내 책상 서랍 안에 있으면 죽은 사진이잖아요. 필요한 사람에게는 주는 게 좋죠. 저 대신 메시지를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할 수 있잖아요. 대개 사진을 돈의 가치로만 생각하는데, 그 너머에 있는 가치까지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것 때문에 욕도 많이 먹었지만, 합당한 이유가 있으면 주려고 해요. 물론 상업적으로 이용하지 않는 선에서요. 제가 상업사진가가 되면 돈을 받겠지만, 지금은 기자잖아요. 이야기를 세상에 전달하는 게 제 본분이에요. 저는 이렇게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요즘은 SNS로 인해 모든 사람이 사진작가인 세상이잖아요. 지나친 공해라는 생각은 없으신지요?


글쎄요. 자기 일기를 지나치게 공개하는 면이 있지만, 보는 사람이 감안하면 되지 않나 싶어요. 나한테 필요한 것을 챙기면 되니까요. 공해라고 해도 큰 피해를 주는 건 아니니까요. 사진기자로서는 오히려 좋은 점도 많아요. 우리가 너무 틀에 갇혀서 벗어나지 못했던 부분을 발견하게 하니까요. 아마추어들의 색다른 시선, 메시지를 보다 보면 놀랄 때가 많아요. 자극도 받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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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찍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


<경향신문> 출판사진부에서 처음 사진기자 생활을 시작하셨어요. 당시 섹션지 ‘매거진X’는 대단한 인기였습니다.


만 7년 정도 ‘매거진X’를 만들었는데 당시 반응이 엄청났어요. 지금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신문이 힘이 있었던 때였죠. 기사가 한 번 나가면 광화문 사서함이 수시로 다운될 정도였어요. 독자들에게 인기도 많았고 사진집 출간 제안도 많이 받았는데, 그 때 사진이 제일 부끄러워요. 남의 것을 너무 모방했으니까요.

 

올해로 사진기자 23년차이신데요. 언제쯤 사진을 좀 알겠다 싶으셨나요?


좀 됐죠. 초년병 시절에는 사진이 찍히는 사람 입장에서 생각을 너무 많이 했어요. 저도 사람이니까 자꾸 마음이 가죠. 상대가 내 사진으로 기분이 나쁘면 안 되니까요. 하지만 신문은 독자를 위해 존재하는 거잖아요. 나는 기자니까 독자를 위한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당사자를 위한 사진을 찍으면 안 되고요. 초년병 때부터 이 고민을 많이 했어요. 언젠가부터 이런 사진들에 대한 반성이 한꺼번에 밀려왔죠. 그러면서 ‘불완전 초상화’를 연재하게 됐고요.

 

후배 사진기자들에게 강조하는 이야기가 있다면요?


인물 사진을 찍을 때 중요한 건, 이유가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책을 만들 때도 비슷한 생각을 했어요. 내가 왜 이 인물을 찍고 있냐,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은가. 이걸 놓치면 좋은 사진이 나올 수 없어요. 테크닉을 잘하는 친구들은 많아요. 중요한 건 메시지를 파악하는 눈이죠.

 

취재기자들한테 바라는 점은 없나요?


인터뷰를 길게 해주면 고맙죠. 어차피 다들 베테랑이니까요. 저한테 1시간을 주나 10분을 주나 마찬가지더라고요. 메시지를 알면 사진은 금방 찍어요. 반면 사진을 먼저 찍어야 하는 상황이면, 좀 상세한 정보를 주면 좋죠. 인터뷰이에 관해 제가 조사를 해간다고 해도 핵심적인 이야기가 잘 판단이 안 될 때가 있으니까요.

 

사진 강의 요청도 많이 받으실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건방지게 강의를 간혹 했는데요. 지금은 안 해요. 강의를 하면 내 사진 이야기가 아니고 남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아서요. 이건 아니구나, 싶어요. 본분에만 충실하려고요.

 

존경하는 사진가는 누구인가요?


김녕만 선생님을 좋아해요. 저는 지금 카메라 없이 다니지만, 이 분 곁에는 늘 카메라가 있어요. 칼럼에 쓴 적도 있는데요. 사진기자로 막 자리잡을 무렵, 선배의 책상에 올려져 있던 책을 무심코 들춰보다 김녕만 선생의 사진을 보았어요. 슬픈 듯하면서 웃음이 나는 절묘한 사진인데, 보자마자 그 사진이 제 가슴에 박혀버렸어요. 이 사진 한 장이 제게 준 힘이 컸죠. 선생의 사진에 대한 열정은 따라갈 수가 없어요. 저를 채찍질하게 만드는 분이에요.

 

사진집이라서 책 가격이 꽤 비싸요. 하지만 오래 두고 볼 책이라고 생각해요. 인터뷰를 하시면서 계속 쑥스러워하셨지만, 저자로서 이 책을 누군가에게 추천한다면요?


(웃음) 내 아들 같은 사람들이 보면 좋겠어요. 젊은 청년들이 이런 메시지를 읽으면 좋을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내 아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해요. 요즘 젊은 사람들과 대화하기 어렵다는 말을 많이 하잖아요. 그들도 갈팡질팡 길을 못 찾아서 힘들어하는데, 최재천 국립생태원장이나 권철 사진가, 박운서 전 통상산업부 차관 같은 분들의 인생 이야기를 알면 분명 도움이 될 거예요. 아들이 사춘기를 심하게 겪었을 때 읽어보라고 하고 싶었어요. 말하진 못했지만요.

 

기자가 아닌 사진작가로서의 미래도 생각하고 계신지요?


나중에는 제 이야기를 전달해야겠지만 지금이 너무 좋습니다. 주문자 생산인 셈이지만 사람들을 통해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으니까요. 훗날 사진가로서 내 사진으로 해야 할 이야기가 있을 거라 생각해요. ‘흑 and 백’을 주제로 계속 사진을 찍고 있어요. 우리는 너무 흑과 백만 보잖아요. 그 속에 ‘and’를 못 보고요. 십 수년째 갖고 있는 주제예요.


 

 

권혁재의 비하인드권혁재 저 | 동아시아
어떻게 보면 이 책은 그의 사진에 대한 고백이자 그와 사진을 통해 대화를 나눈 사람들의 고백이다. 저자는 인물의 이야기를 잘 담을 수 있는 한 장의 사진을 찍었고 그 사진에 담긴 인물들은 카메라 렌즈 앞에서 자신을 되돌아보기도 하고 때로는 눈물짓기도 하면서 그렇게 인생을, 살아냄을, 행복을 고백한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최광희 “흥행하는 영화는 관객의 결핍을 읽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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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침없음. 영화평론가 최광희를 만난 느낌이다. 특정 영화나 감독을 콕 집어 비판하는 거침없음, 영화 산업의 기형적 구조와 이해관계자의 소극적인 태도를 말하는 거침없음을 보며 이래도 괜찮을까, 싶었다. 조심스레 물었다. 이 거침없음이 영화평론가로서 갖는 어떤 역할의식에서 비롯했는지. 답은 당연히 예스.


“평론가가 여러 명 있잖아요. 서로 목소리가 달라야 한다고 생각해요. 관객들이 다른 목소리를 들으며 참고할 수도 있고요. 제가 생각하는 한국 평론 지형의 문제점이 주례사 평론이 많다는 것, 평론가 자신과 창작가 간의 친밀도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거예요. 평론가 중에 영화감독과 친한 사람이 너무 많아요. (중략)차라리 누구와도 친해지지 않고 당당하게 그 영화가 나쁘면 나쁘다고 얘기를 해야죠.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방송기자, 영화주간지 취재팀장을 거쳐 영화평론가로 사회생활을 한지 20년. 그 자신이 오랜 직장 생활의 경험을 가진 사람답게 최광희는 영화 산업과 제작 구조를 들여다보면 모든 직장인들이 가져갈 공통의 시사점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천만 관객의 비밀』을 만들었고, 흥행하는 영화의 공통된 키워드 세 가지를 얻어냈다. ‘열정, 협업, 공감’은 흔한 단어처럼 보이지만 그것이 어떤 열정이냐, 어떤 협업이냐, 어떤 공감이냐를 조금만 더 깊이 얘기해보면 이것이 말하기 얼마나 어려운 단어인지 금방 알게 된다. 이준익, 윤제균, 최동훈, 진모영 등 이제는 브랜드가 된 감독들이 말하는 이러한 공통된 단어에는 분명 어떤 비밀이 있을 터. 최광희는 바로 이것이 천만 영화를 만든, 모든 영역에 적용할 수 있는 성과창출의 비밀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에 더불어 내로라 하는 영화 감독들의 영화 제작 뒷이야기도 엿볼 수 있으니, 여러모로 흥미로운 책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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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통해 보는 성과 창출의 비밀


영화 평론가가 말하는 ‘흥행의 법칙’이야기, 눈길을 끄는 부분이 있어요. 기획이 재미있기도 하고요.


원래 이러닝(e-Learning) 회사에서 제안을 받은 거예요. 직장인에게 통찰을 줄 수 있는 영화감독들의 재미난 이야기를 강의해달라고요. 흥행 얘기하는 평론가가 별로 없잖아요. 보통 영화평론가들은 개별 영화 평론을 주로 하지 어떻게 흥행했는지, 그 흥행의 의미가 뭔지, 이런 것은 잘 얘기를 안 하거든요. 그게 계기가 됐죠. 처음에는 키워드를 ‘천만’이 아니라 ‘흥행’으로 잡았는데요. 천만 관객을 넘긴 영화라 할지라도 사람들의 뇌리에서 금방 잊혀지는 영화도 있고, 제가 보기에는 평론가로서 동의할 수 없는 영화도 있기 때문이었어요. 수준 이하의 영화인데 천만을 넘은 영화도 있거든요. 그래서 ‘천만’에 구속받지 말자고 생각했어요. 가령 이병헌 감독의 <스물>도 참신한 시도로 300만 이상의 관객을 모았고요. 진모영 감독의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도 있죠. 의미 있는 흥행이니까 함께 포함시켜서 가자고 했었고요. 포장을 천만이라는 키워드로 맞춘 거죠.

 

직장인과 영화의 흥행, 선뜻 연결이 안 되는데요.


처음에는 이것으로 직장인에게 통찰을 줄 수 있다고는 생각 안 했어요. 그런데 제안을 받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직장인들에게는 영화라고 하는 매체가 친숙하니까 흥미롭기도 하고요. 매해 한두 편 이상은 천만 영화가 나오니까 이야기를 풀면 직장 생활에서도 얻을 수 있는 교훈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여러 감독 분들을 인터뷰 한 결과, 부드러운 접근이 성과에는 효율적이다, 라는 결론이 난 거고요.

 

그것이 바로 ‘열정, 협업, 공감’이군요.


너무 당연한 이야기긴 한데요. 어떤 열정이나 협업이냐, 어떤 공감이냐를 영화라는 콘텐츠를 빌어 푼 거예요. 기획할 때 브레인스토밍을 했어요. 성과창출이라고 하는 상위 범주 내에 해당하는 하위 카테고리가 뭐가 있을까 상의해서 열정, 협업, 공감이라는 세 키워드가 나온 거죠. 인터뷰를 할 때 이 포인트를 갖고 했고요. 실제로 범주화를 한 후 진행한 인터뷰가 효과적이었어요. 감독 분들도 여기에 많이 동의를 했고요.

 

확실히 여러 감독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있잖아요.


이미 모범답안을 뽑아 와서 인터뷰를 하는 것과 다름없었죠. 다만 저는 그분들에게 사례를 많이 듣고 싶었어요. 감독으로서, 창작자로서 자신의 열정을 어떻게 가다듬어 왔는가, 현장의 통솔자로서, 리더로서 어떻게 협업을 이끌어 왔는가, 더 많은 관객들에게 공감을 얻어내기 위해 어떤 스토리텔링 전략을 구사해왔는가, 이런 것들 말이에요. 그런데 영화 매체의 특성상 감독이 영화를 아무리 잘 만들어도 타이밍이 잘 안 맞는다든가 포장이 잘 안 되면 폭넓은 공감을 얻는 데 실패하는 사례들이 적지 않거든요. 결국 감독만 인터뷰 하면 안 되겠다 해서 제작자나 마케터 같은 분들도 인터뷰를 한 거죠. 영화는 협업의 예술이니까요. 영화는 기획자가 있고, 마케터와 배급사가 있죠. 이런 다양한 직군의 전문가가 모여 하나의 영화를 시장에 내놓는 거거든요. 쉽게 생각하면 일반적인 직장에서 하는 일들이 대부분 그런 거죠. 기획, 생산, 유통 각 단계 어느 부분에는 모두 소속되어 있잖아요. 또 최근 HR, 인적자원의 문제가 크게 대두되고 있어요. 그러다보니 영화 이야기가 그렇게 다방면에 적용될 수 있으리라고 봤어요.

 

그렇다면 이 책은 경제경영서 혹은 자기계발서로 봐도 좋겠네요.


저도 처음부터 이 책을 통해 영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게 아니에요. 흥행이라는 현상을 통해 직장인들이 흥미롭게 챙겨볼 수 있는 이야기를 던져주자는 차원에서 접근했던 거예요. 전에 『무비스토커』라는 영화 에세이를 한 번 냈었는데요. 영화책을 내고 느낀 게 있었어요. 영화는 보는 거지 읽는 게 아니잖아요. 물론 영화를 본 후 리뷰를 읽고 생각하고자 하는 독자들도 있고, 그들을 존중하지만요. 이 책은 그냥 실용서로 보시면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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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리스마를 버리는 게 진짜 리더십


YTN에서 방송 기자 생활을 오래 하셨고, <FILM2.0>에도 취재팀장으로 근무한 경험이 있으시죠. 이런 직장 생활 경험과 영화가 절묘하게 맞았던 거군요.


제 사회생활 중 절반 넘는 시간을 직장에서 생활했으니까요. 이 책을 쓰면서 저도 느낀 점이 많았어요.(웃음) 나도 이렇게 했으면 후배들의 신망을 얻으며 원활하게 조직 운영을 했을 텐데 지나치게 딱딱하게 굴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반성한 부분이 많이 있었죠. 특히 리더십 부분에서 ‘카리스마를 버리는 게 진짜 리더십’이라고 했는데요. 권위적인 리더십이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킨다는 사실은 제가 바로 산증인이에요. 제가 그랬거든요. 그런데 특히 이준익 감독의 경우는 그 반대예요. 이분은 현장에서 절대 부정적인 용어를 쓰지 않아요. 안 된다, 왜 안 되느냐, 왜 그것밖에 못하느냐, 이런 말을 안 하고 화도 안 내요. 영화 현장은 돌발변수가 많은 곳이니까 그럴 법도 한데요. 그런 상황이 발생하면 ‘이걸 어떻게 할까?’, ‘좋은 방법이 없을까’라는 식으로 접근하니까 일단 동료의식, 연대의식이 생기는 거죠. 저 사람은 우리를 통솔하고 부리는 사람이 아니라 같이 일을 하는 사람이구나, 하는 느낌을 저절로 받게 되고 자발적인 협조를 하게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팀워크가 만들어지고요. 그걸 통해 좋은 성과가 나오는 거죠.

 

이런 내용, 궁금했거든요. 책을 쓰면서 저자가 새롭게 깨달은 게 있지 않을까 하고요. 인터뷰 과정에서 들은 말 중에 오래도록 남는 인상적인 말이 있었다면 더 들려주세요.


윤제균 감독과 인터뷰할 때였는데요. ‘감독은 도움을 받아야 하는 입장’이라는 말을 했어요. 이병헌 감독도 마찬가지였고요. 감독은 자기의 톤을 유지해나가는 조율자 역할을 함과 동시에 스태프와 배우로부터 도움을 얻어야 하는 입장이라는 걸 인지해야 한다는 거였어요. 부리는 입장이 아니라는 거죠. 이병헌 감독은 현장에서 수평적인 연대의식을 갖게 했다고 해요. 어린 스태프들이 까불면 까부는 대로 뒀다고 하잖아요. 윤제균 감독은 막내 스태프의 이름까지 다 외워서 실명을 불렀고요. “막내야!”라고 부르는 것보다 이름을 불러주면 감독이 나를 존중해준다는 의식을 갖게 되죠. 그런 것들이 참 좋더라고요. 최동훈 감독은 감독 자리에서 마이크로 지시를 해도 되지만 마이크를 내려놓고 배우가 있는 곳까지 뛰어가서 배우와 직접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오기를 계속 했어요. 본인이 실수를 했으면 바로 인정을 하고요.

 

실수를 곧장 인정하는 것, 많이 못하는 것이기도 하면서 아주 중요한 포인트기도 해요.


조직 내에서 하급자만 실수하는 건 아니잖아요. 상급자도 실수한단 말이에요. 괜히 창피하니까 인정하지 않고, 대충 덮으려고 하고, 누가 지적하면 면피하려고만 하는데요. 내가 잘못한 것 같다, 인정하고 고칠 수 있는 시간을 달라고 얘기하면 좀 다르겠죠. 최동훈 감독은 그런 얘기를 해요. 어떤 직군의, 그가 촬영감독이든 조명감독이든 어떤 전문가든 그 사람들이 갖는 전문성을 뽑아내기 전에 일단 인간 대 인간으로 친해지는 게 중요하다고요. 혹시 그 사람이 가지는 장단점에 대해 미진하게 알고 있는 부분이 있다면 솔직하게 확인을 한다고 해요. <암살> 촬영 때 김우형 촬영감독과의 첫 작업이었는데요. 최동훈 감독이 김우형 감독에게 촬영이 좀 늦는 편이라고 하는데 맞느냐고 직접 물어봤다고 하잖아요. 실제로 빨라서 놀랐다고도 하고요. 최동훈 감독의 소통은 솔직함의 소통이고요. 윤제균 감독은 역지사지의 소통이에요. 이준익 감독은 만사가 인사라는 거고요. 스태프고 배우고 캐스팅하는 순간 디렉션은 끝났다는 거죠. 그들이 감독보다 훨씬 많은 준비를 해오기 때문에 믿고 맡겨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감독은 지휘자처럼 조율하는 역할만 해야지 다 하려고 하면 안 된다는 거거든요.

 

아무래도 감독들의 리더십이라는 측면에서 관리자나 결정권자에 훨씬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은 내용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앞부분에 다룬 ‘열정’이라는 부분은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한 분들에게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열정이 모든 것의 열쇠라고 많이들 얘기를 하지만요. 그렇다면 도대체 그 열정이라는 게 뭔가 생각하게 되잖아요. 세상에 열정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러니까 앞에 다룬 열정 파트는 그런 분들이 보면 좋은 내용이에요. 내가 열정이 없는 건가, 싶지만 그게 아니라는 거죠. 자기가 정말 즐겁게 잘할 수 있는 분야가 아닐 뿐이에요. 그렇다면 과감하게 그만두어야 한다고 보고요. 저도 그랬거든요. ‘하기 싫은 걸 피하고 나에게 주어진 것은 최선을 다한다’ 이것이 제게는 열정이에요. 그래서 자기가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것을 찾으란 말을 넣은 건데요. 사회 초년생은 자기가 아무리 좋아하고 잘한들 기회가 잘 안 오죠. 그러니까 기다리는 시간도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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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행하는 영화들의 비밀


앞서 흥행 얘기를 하는 영화평론가가 별로 없다고 하셨잖아요. 영화 산업 전반에 관심을 갖고 글을 쓴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YTN 기자 시절, 시간이 지날수록 신나지가 않았어요. 불행하더라고요. 그러던 때 <FILM2.0>이 창간되면서 옮기게 됐어요. 전문성에 대한 갈증도 있었고요. 그렇다고 해서 제가 영화 평론을 대단히 유려한 어휘를 동원해 잘 쓰는 스타일은 아니었죠. 방송 기자 하다가 갑자가 영화 평론을 어떻게 하겠어요. 차원이 다른 부분이거든요. 그래서 영화 산업, 흥행, 박스오피스 쪽에 관심을 갖고 기사를 쓰기 시작했죠. 아무리 그래도 영화 주간지에 있으니까 영화 리뷰를 안 쓸 수는 없어서 리뷰는 리뷰대로 쓰고요. 특집 기사는 주로 산업 기사를 많이 썼어요. 그게 다른 평론가에 비해 산업 흐름이라든가 흥행이라는 현상에 대해 조금 더 천착해서 바라볼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고 봐야겠죠.

 

영화 시장, 관객 역시 시대에 따라 변하고 요구도 달라지잖아요. 그 요구에 대응하지 못해 실패하는 영화도 종종 보게 되는데요. 최근에 보고 있는 흥미로운 변화나 눈에 띄는 트렌드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최근의 변화는 아닌데요. 사극이 굉장히 많아졌어요. 2003년 즈음 이준익 감독이 <황산벌><왕의 남자>를 히트시킨 이후의 일이거든요. 그 후<광해, 왕이 된 남자>가 천만을 넘기면서 불을 지폈죠. 그전에는 사극이 거의 없었어요. 80년대에는 거의 에로 사극이었고요. 90년대, 한국 영화가 어느 정도 산업화되면서는 로맨틱코미디라든가 액션물 같은 현대물 쪽으로 많이 왔죠. 사극은 망하는 길로 생각했어요. 그러다 몇 편의 흥행작이 나오니까 시대극이 붐을 탄 거죠. 요즘 영화를 보면 40% 정도가 시대극이잖아요.


또 한 가지는 사회고발 드라마가 예전보다 많아졌다는 점인데요. <내부자들>, 최근에 <아수라>도 있고요. 예전에는 선과 악의 대립구도에서 악이 주로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였고 거기에 맞서는 주인공의 싸움을 보여줬죠. 반면 최근에는 악당이 상류층으로 올라갔어요. <내부자들>은 아예 정, 재계, 언론계의 결탁을 보여주고 있고요. <아수라>는 경찰과 시장, 검사가 모두 거기서 거기잖아요. 누가 더 착하고 악한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벌이는 지옥도 같은 모습들을 한국 영화가 많이 보여주고 있어요. 이것은 최근 감독들이 느끼는 대한민국 사회의 공기기도 할 거예요.

 

사회의 공기요?


류승완 감독의 <베테랑>이라는 영화를 제외하면 일반적인 범죄 액션 영화에서 형사가 정의로운 캐릭터로 등장하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 경찰도 비리에 연루되어 있고요. 이 사회를 지배하는 시스템 자체가 썩었다, 부조리하다고 느끼는 거죠. 그러니까 그런 작품들이 계속 나오게 되는 거고요. 또 관객들도 그런 작품들도 호응을 해줌으로써 어느 정도 접점이 만들어진 거죠. 관객이 공감하지 않으면 흥행하지도 못하잖아요.


또 한 가지는 일제강점기 배경의 영화가 많이 나온다는 점인데요. 이것도 그전에는 터부시 되었던 거예요. 잊고 싶은 기억, 상처, 역사의 트라우마기 때문에 그것을 들춰내는 것을 관객들이 좋아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들을 많이 했었어요. 아예 기획도 하지 않았고, 만들어도 흥행이 잘 안 됐죠. <모던보이>라든가 <경성학교 : 사라진 소녀들>처럼요. 그 시대를 어두운 그대로 보여줬기 때문인데요. 발상의 전환을 한 사람이 최동훈 감독이죠. <암살>, 통쾌하잖아요. 하나의 통쾌한 복수극으로 끝내주니까 일제 강점기를 산 사람들의 부채의식, 트라우마가 극복이 된 거예요. 그러다보니 후에 나온 <귀향>, <동주>, <덕혜옹주>같은 영화들이 다 잘 됐고요. 누군가 한 명의 선지자가 있어서 그렇게 된 거예요. 이준익 감독이 시대극은 안 된다는 통념을 깬 쇄빙선이었다면 최동훈 감독은 일제강점기는 안 된다는 통념을 깬 쇄빙선인 거죠.

 

국내 인구를 생각하면 천만이란 숫자가 정말 엄청나기도 하고요. 워낙 트렌드에 민감하니까 흥행을 예측하거나 흐름을 읽어내는 것이 큰 숙제기도 할 것 같아요.


제가 보기에 흥행이 잘 되는 영화들은 관객들에게 무엇이 결핍되어 있는가를 잘 읽어내는 것 같아요. 결핍이란 보고 싶어 한다는 의미죠. 열망이라는 말과 이음동의어로 볼 수 있어요. 그건 시대에 대한 관심 없이는 읽어낼 수 없어요. 촉수를 항상 시대, 사회 현실에 대고 있어야 해요. 그런 영화가 흥행이 잘 되는 것 같아요.


가령 강우석 감독의 <고산자, 대동여지도>를 보면요. 민족주의적 접근을 하고 있는데요. 그렇게 접근하되 유치하지 않아야 하거든요. 이 영화는 유치하게 하고 있죠. 배타적 민족주의 같은 건데요. 타자를 설정해두고, 우리 민족은 억울했다는 식의, 영화 속에서 대리만족을 느끼려고 하는 그런 민족주의였거든요. 이것을 저는 ‘초딩적 민족주의’라고 해요. 민족주의라고 왜 안 되겠어요? 사람들 독도 문제 같은 데 관심 많잖아요. 그런데 이 영화는 그런 걸 억지로 갖다 붙인다는 거예요. 영화를 보면 고산자가 독도를 그리기 위해 독도를 찾아가는 장면이 나와요. 의도는 너무 뻔하죠. 설득력이 없는 거예요. 관객들을 계몽하려는 영화는 안 되는데요. 계몽하려는 감독 자체가 계몽이 안 됐기 때문이에요. 계몽된 감독이라면 그런 식으로 계몽하려고 하지 않죠. 당대 관객과의 공감 능력을 상실했다는 이야기예요. 낡아버린 거죠.

 

다시 책의 콘셉트로 이야기해본다면 리더도 꾸준히 시장을 읽고 공부하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이야기겠네요.


최동훈 감독의 경우 대중교통을 이용해요.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체감하지 않으면 공감능력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에요.

 

그렇지 못해 낡아버린 감독이나 영화도 많이 보셨죠?


<귀신이 산다>의 김상진 감독도 후속작이 없죠. <가비>장윤현 감독도 그렇고요. 장윤현 감독은 <접속>으로 한 때 굉장히 트렌디한 영화를 만들었었는데 말이에요. 감독들은 늘 촉수를 사회 현실과 사람들의 빛과 열망이 무엇인지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토론해야 해요. 한 번 흥행 감독이 됐다고 어깨에 힘주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반드시 망하게 되어 있어요. 관객 좀 들었다고 달라지는 감독들도 있어요. 이 책의 인터뷰 섭외하면서 거절당한 사례도 있어요. 한편 제 인터뷰에 응해주신 분들은 기본적으로 겸손한 분들이에요. 겸손한 성품을 가진 사람들이 성공할 확률이 더 높은 것 같아요. 자신감과는 다른 차원이죠. 겸손을 토대로 한 자신감이 성공 확률이 더 높아요. 자만을 토대로 한 자신감은 유효 기간이 짧습니다.

 

‘흥행은 신도 모른다’고 했는데 의외의 결과를 낸 영화를 몇 편 꼽아주실 수 있을까요?


의외로 흥행한 작품들 많아요. 독립영화나 저예산영화를 제외하고 국내 연간 개봉작이 100여 편 되거든요. 한 주에 두 편 씩 나오는 거예요. 그런데 흥행하는 영화는 열 편 안팎이거든요. 타율이 10%예요. 나머지 90%는 다 망하는 거예요. 손해를 덜 봤느냐, 더 봤느냐의 차이일 뿐이죠. 그래서 영화를 고위험, 고수익 사업이라고 하거든요. 위험도가 높다는 건 실패확률도 높다는 얘기죠. 그런 상황에서 흥행 여부를 어떻게 짐작하겠어요? 대충 짐작은 하죠. 이를테면 <내부자들>을 보고 나서는 되겠다, 강력한 흡인력이 있다, 그런 생각이 들었죠. 이 영화는 되겠다고 했는데 안 된 영화는 거의 없고요. 반대로 안 될 거라고 했는데 된 영화는 많아요. 그것은 제가 트렌드를 못 읽는 것일 수도 있고요. 예를 들어 <7번방의 선물>처럼 말이에요.(웃음)

 

콕 집어 <7번방의 선물>을 언급하셨는데, 그 작품에서 저자가 놓친 트렌드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7번방의 선물>이 왜 그렇게 흥행했을까요. 눈물을 서비스했기 때문이죠. 2012년 말에는 울고 싶은 사람이 많았던 거예요. 대선이 있었잖아요. 1280만 명은 울고 싶었겠죠.(웃음) 결과론적이지만 저는 그렇게 보고요. 반대로 <광해, 왕이 된 남자>는 대선 직전에 개봉했기 때문에 흥행에 성공한 거예요. 서민적 리더십에 대한 강렬한 열망이 반영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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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산업에서 논의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또한 ‘독과점’ 문제인데요. 이 문제에 대해 발언도 많이 해왔잖아요.


스크린 독과점은 거의 십 년 동안 말해왔는데요. 국회의원들이 움직이지 않으니까요. 문화 시장이다보니 규제라는 것에 알레르기 반응이 있기도 하고요. 여러 이유로 규제를 하지 않아서 문제가 큰데요. 사실은 천만 영화 중 스크린 독과점을 통해 천만 영화가 된 것도 없잖아 있어요. 이 책에서는 그 변수를 의도적으로 뺐지만요. 저는 계속 소 귀에 경 읽기를 하고 있는 느낌이 들어요. 영화 하시는 분들 사이에도 각자 얽혀 있는 이해관계가 또 있거든요. ‘CJ’에 관계된 감독들은 언젠가 자기 영화도 천만 넘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스크린 독과점에 반대하면 안 되죠. 저예산, 독립 영화 만드는 사람들은 스크린 독과점 때문에 못 살겠다고 하고요. 영화인들끼리도 첨예한 거죠. 그러니까 한 목소리를 못 내는 거예요. 이해당사자인 영화인들이 한 목소리를 못 내니까 국회에서도 미진한 반응인 거고요.

 

관객 입장에서도 이 문제는 큰 손해를 불러온다는 생각이에요. 선택권의 문제기도 하고요. 


그래서 제가 다른 쪽으로 접근한 게 이것은 영화인의 문제가 아니라 관객의 문화 향유권 문제다, 라는 거거든요. 관객들의 관람 선택권의 문제예요. 이건 소비자의 권한을 박탈하는 거라고요. 그런 방식으로 논리를 폈죠. 다행히 참여연대와 민변에서 입법청원을 했어요. 이번 국회에 이것이 어떻게 해결될지 두고 봐야할 거예요. 그런데 지금 ‘워너브라더스’가 한국 영화 배급하고 있고, ‘폭스’도 들어왔잖아요. 만약 여기서 스크린 독과점 견제한다고 하면 그것 가지고 할리우드에서 딴지를 걸 수도 있어요. 더 늦게 전에 견제장치를 만들어야죠. 배급사 ‘NEW’가 이번에 <부산행>으로 천만 넘기긴 했지만 다른 배급사들 다 고전하고 있거든요. 결국은 부메랑으로 돌아온 거예요. 독과점 시장을 만든 바람에 ‘텐트폴 시즌’이라고 하는 여름과 겨울 시즌으로 양극화되었고, 그 외의 시즌에는 관객이 기대를 안 해버리거든요. 볼 영화가 없다고 생각해요. 스크린 독과점 시장이 관객들을 훈련시킨 거죠. 그러니까 다른 기대작들을 비시즌에 내놓으면 흥행이 안 돼요. <아수라>도 ‘CJ’영화인데요. 그간 ‘CJ’영화 중 제가 보기에는 제일 괜찮았거든요. 그랬는데 안 되더라고요. 결국 자기 발목을 자기가 잡은 셈이 된 거죠. 자본은 스스로 규제 못 해요. 때문에 정부가 나서서 자본의 전횡이나 독과점을 견제해서 시장을 맑게 해줘야 하잖아요. 지금은 완전히 영화시장이 혼탁한 상황이죠.

 

문화적인 후퇴로 볼 수도 있죠.


당연하죠. 좀 더 질 좋은 영화를 볼 수 있는 가능성이 준 거예요. 거기서 거기, 뻔한 영화들만 나오고요. 천만 영화 보니까 이런 요소가 있더라, 그것 넣어봐라, 해서 답습하는 영화만 쏟아지고요. 그러다가 어떤 영화가 조금 잘 된다고 하면 관객은 몰려가는 거죠. 솔직히 <부산행>이 천만 넘을 만한 영화는 아니잖아요. 그렇죠? 그 영화에 뭐가 있습니까. 드라마가 있습니까, 메시지가 있습니까. 오히려 <서울역>이라는 작품이 훨씬 더 주제 의식이 뚜렷하거든요. 그런데 30만도 안 들었을 거예요.

 

영화 평론가로서 이런 혹평을 가감 없이 하는 데에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평론가가 저 혼자뿐이라면 다르겠죠. 그렇지만 평론가가 여러 명 있잖아요. 서로 목소리가 달라야 한다고 생각해요. 관객들이 다른 목소리를 들으며 참고할 수도 있고요. 제가 생각하는 한국 평론 지형의 문제점이 주례사 평론이 많다는 것, 평론가 자신과 창작가 간의 친밀도에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거예요. 평론가 중에 영화감독과 친한 사람이 너무 많아요. 저는 술 한 잔 같이 마시는 영화감독이 없어요. 워낙 시작이 방송국 기자였기 때문에 저는 ‘불가근불가원(不可近不可遠)’이라는 원칙이 있어요. 너무 가까워도 안 되고 너무 멀어서도 안 된다는 거예요. 감독들과 인간적으로 친해지려고 노력하지 않아요. 그렇게 친해졌는데 그 감독의 다음 영화가 나쁘면 뭐라고 하겠어요? 그럴 때 친한 평론가들은 말을 안 해요. 좋을 땐 막 칭찬하고요. 너무 비겁하잖아요. 차라리 누구와도 친해지지 않고 당당하게 그 영화가 나쁘면 나쁘다고 얘기를 해야죠.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천만 관객의 비밀’을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비밀도 아닌 비밀인데요. 열정, 협업, 공감이 변증법적 시너지를 만들어내는 경우라고 할 수 있겠죠. ‘잘 다듬어진 창의적 열정이 원활하고 유기적인 협업의 과정을 거쳐 소비자의 열정과 결핍을 읽어낸 공감을 확보해낸 것’ 이렇게 얘기할 수가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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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 관객의 비밀최광희 저 | 책비
저자는 ‘왜 어떤 영화는 성공하고 어떤 영화는 실패하는지’, ‘흥행 영화를 만들어낸 감독들에게서 발견되는 공통분모는 무엇인지’, 이에 대한 답을 찾아가며 우리가 속한 다양한 분야에 적용할 만한 교훈점을 찾아 이 책 『천만 관객의 비밀』에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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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은희 “진짜 문제는 남편이나 아이가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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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아이를 아프게 한다』의 문은희 저자가 ‘마음이 건강한 엄마, 행복한 가족’을 위한 이야기로 돌아왔다. 『문은희 박사의 여자 마음 상담소』(이하 『여자 마음 상담소』)는 많은 여성들이 호소하는 마음의 문제에 귀를 기울인다. 가족과의 갈등과 그로 인한 상처, 뿌리 깊게 자리 잡은 분노와 자격지심, 떨칠 수 없는 책임감과 자책감 등 낯설지 않은 이야기들이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한국 알트루사 여성상담소’ 소장으로 일하면서 17년 동안 무료 상담을 해오고 있는 문은희 저자는 누구보다 가까운 곳에서 여성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어루만져왔다. ‘마음이 건강한 여성들이 만드는 착한 사회’를 꿈꾸며 상담소의 모람(회원)들과 쌓아간 이야기들은 계간지 <니>에 실려 퍼져 나갔고, 그 가운데 저자가 쓴 40여 편의 글이 『여자 마음 상담소』의 바탕이 되었다.

 

문은희 저자는 민족 지도자로 평생을 사셨던 문재린 목사와 김신묵 여사의 막내 딸이며, 통일운동과 민주화운동을 펼쳤던 문익환, 문동환 목사의 여동생이다. 그녀 역시 한국 사회의 격변기를 관통해왔고, 그 과정에서 우리의 의식과 삶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지켜봐 왔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 생존의 문제와 직결된 것, 물질적인 것만이 최대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마음과 정신의 문제는 부차적인 것으로 밀려났다. 그 결과 우리는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여유를 잃어 버렸고, 스스로도 자신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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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문제는 남편이나 아이에게 있지 않아요


『여자 마음 상담소』는 계간지 <니>에 실렸던 글들을 엮은 책입니다. 잡지의 이름이 독특한데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나요?


어머니, 할머니, 언니, 아주머니, 비구니... 모두 ‘-니’로 끝나잖아요. 그래서 여성을 지칭하는 말로 ‘니’를 쓴 거예요. 그녀라는 말도 쓰지만 그건 한자잖아요. 우리는 한글로만 쓰려고 하죠.

 

<니>의 편집인이자 고정 필자이기도 하세요. 어떤 계기로 창간하게 되셨나요?

 

처음에는 한 달에 한 번씩 소식지를 만들어서 보냈던 거예요. 그런데 우리 회원들이 손으로 쓴 그 글들을 공유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상담에 관한 다른 잡지들도 있지만, 대부분 전문가 중심이잖아요. 상담한 사람이 내담자에 대해서 쓰는 거죠. 그런데 내담자가 어떤 사정인지 상담자가 모를 수 있거든요. 진짜 아픈 사람은 의사가 아니잖아요. 환자가 더 아프잖아요. 그러니까 환자의 이야기를 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우리 모람들이 자기 이야기를 쓴 글을 싣게 된 거죠.

 

계간지 <니>가 지향하는 바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창간호에 우리의 표방하는 바를 썼었어요. ‘<니>는 유명한 사람의 글을 싣는 데가 아닙니다, 우리는 권위자에게 힘을 실어줄 생각이 없습니다, 외국에서 들어온 이론을 소개할 생각도 없습니다, 우리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라고 썼죠. 여성이면 누구나 독자가 되는, 여성을 위한 여성에 의한 여성의 잡지라는 거예요. 어떻게 하다 보니까 아브라함 링컨의 이야기를 한 것 같은데요(웃음). 마찬가지죠. 민주스러운 잡지를 만들려고 한 거예요. 우리는 원고료도 없는데 하나도 지치는 사람이 없이 모든 회원들이 참여하고 있어요. 그만큼 다 봉사하는 거죠.

 

이번 책에도 모람 분들의 글이 실려 있어요. 읽다 보니 ‘속마음을 털어놓는 것이 곧 치유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물론이죠. 그리고 우리 회원들은 가명을 쓰지도 않고 본명을 그대로 쓰거든요. 그만큼 자신이 있는 거죠. 자기 문제가 부끄럽지 않은 거예요. 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걸 왜 부끄러워해야 해요? 문제가 있는 건 당연한 건데요. 그리고 그걸 극복해 나가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거예요.

 

오랫동안 ‘한국 알트루사 여성상담소’에서 상담을 하셨잖아요. 여성들이 갖고 있는 마음의 문제가 남성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하세요?


특별히 남성과 여성이 다르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요. 그런데 심리학에서는 그런 차이를 연구한 사람들이 꽤 있죠. 대부분 서양 사람들인데, 남자들은 독자적인데 여자들은 관계 중심이라는 이야기를 해요. 그런데 한국에는 그것과는 또 다른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책에서도 ‘포함’의 단위에 대해 이야기했는데요. 많은 한국 여성들이 독자적으로 혼자 존재한다는 생각을 잘 안 하죠. 그것보다는 자기한테 중요한 사람들을 다 포함하고 살아가요. 물론 남자들도 포함하고 살아가죠. 그런데 남자들이 포함하는 건 자기가 어디에서 군복무를 했는지, 어떤 학교를 다녔는지, 어느 지역에서 태어났는지, 그런 차이에 대한 거예요. 여자들은 많은 경우에 가족 단위로 포함하는 좁은 경향이 있기 때문에, 자기의 삶과 가족의 삶을 구분하지 못하고 살아가죠.

 

“우리네 여성들이 비슷한 문제들을 겪고 있다”고 하셨어요. 여성들이 안고 있는 문제들을 몇 가지 유형으로 나눠볼 수도 있을까요?

글쎄요. 나는 이 세상 모든 사람은 다 다르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제가 상담을 하면서 느끼는 것 중에 하나는, 우리나라 여성들이 공통적으로 의식주에 관련된 것이나 눈에 보이는 것 중심의 문제에만 집착을 한다는 거예요. 정작 중요한 건 자기 마음의 문제라는 걸 모르는 거죠. 그러니까 내담자가 가지고 오는 문제와 제가 진단 내리는 문제가 달라요. 대부분 아이나 남편의 문제를 가지고 저를 찾아오는데, 그게 문제가 아니라는 거죠. 자기 내면의 문제가 더 문제라는 거예요.

 

어렸을 적 부모님와의 관계에서 받은 상처가 원인인 경우도 많은 것 같아요.


하나의 보기로 말씀을 드리자면, 어떤 분은 부모님이 어렸을 때부터 말대답하지 말라고 하셨대요. 그런 분위기에서 자라면 어떻게 되겠어요? 자기 생각은 자꾸 꼭꼭 눌러 넣게 되죠. 그렇다 보니까 이 분은 결혼을 한 후에 시어머니한테도 말을 못했대요. 하도 말을 안 하고 있으니까 아이가 엄마 흉내를 낼 때 말을 안 하더래요. 말을 안 하는 게 엄마인 줄 안다는 거죠. 그런데 이런 어머니들이 자신의 아이의 이야기는 듣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아요. ‘너는 말대꾸 하지 마’라고 말하게 되죠. 그러면 어떤 문제가 생기느냐 하면, 화가 자꾸 나요. 너무 참았으니까요. 자기가 할 수 있는 말을 못했고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으니까요.

 

이런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우리에게 마음이 있다는 것을 알고, 서로 마음을 알아주고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는 문화라면, 이런 문제를 처음부터 해결하려고 하겠죠. 그런데 우리는 의식주가 제일 중요해요. 의식주를 다 해결해줬으면 ‘내가 너한테 안 해준 게 뭐냐?’라고 말하는 엄마가 되는 거거든요. 그렇게 되면 자기 마음을 자기도 모르고 다른 사람 마음도 알 생각이 없어요. 그러면 소통을 못 하죠. 그렇게 해서 형성된 성격적인 결함이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를 만든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마음이 건강한 여성들이 만드는 착한 사회’를 만들고 싶은 거예요. 마음이 건강해지면 서로 알아봐 주고 무리하지 않게 하는 착한 사회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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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면 행복의 문이 열리나요? 현실을 모르는 거죠


저자님도 ‘부모님과 자신이 맺었던 관계의 양상, 부모님이 자신에게 미친 영향’에 대해 객관적으로 바라본 적이 있으세요?


물론이죠. 저도 사춘기 때는 우리 아버지한테 불만이 많고 그랬었죠(웃음). 그런데 상담을 하면서 매번 생각해요. 내가 참 좋은 부모 밑에서 자랐다고요. 우리 아버지 어머니는 말대꾸하지 말라는 말을 해보신 적이 없으시거든요. 제 의견을 이야기하게 하시고 들어주시는 분이셨어요. 그러니까 언제나 고맙게 생각하고, 이 고마움을 다른 사람을 위해서 일하면서 갚아야겠다고 생각해요. 그런 부모를 만나지 못해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어떤 분들은 ‘선생님은 부모님한테 맞아본 적도 없는데 맞은 사람의 마음을 아세요?’라고 말해요. ‘한 번도 부모님한테 욕을 들어본 적이 없으신데 욕 듣는 기분을 아세요?’ 하고 항의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럴 땐 어떤 생각이 드세요?


저는 맞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더 알 것 같아요. 맞아본 사람은 그걸 당연하게 느낄 수도 있을 텐데 저한테는 전혀 당연한 일이 아니니까요. 얼마나 아플까, 얼마나 자존심 상하고 모멸감을 느낄까, 얼마나 도망가고 싶을까, 도망가서 갈 데가 있는 것도 아닌데, 집이 감옥이나 다름없겠구나... 그런 절실한 느낌을 더 잘 안다고 생각해요.

 

어떤 분들은 저자님이 자신의 상처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하실 것 같아요. 


‘선생님 댁은 특별해요’라고 이야기하시는 분들도 계세요. 그런데 저는 모든 가정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서로 알아주고 존중해주고 사랑해줄 수 있잖아요. 우리 가족도 어려운 일이 없었던 게 아니거든요. 우리 아버지는 감옥살이를 세 번이나 하셨어요. 어머니가 그 뒤치다꺼리 하느라 애쓰시니까 언니가 살림을 했어요. 저보다 열세 살 위의 언니가 살림을 했는데, 간도가 얼마나 추워요. 거기에서 살림하느라 손발이 얼어서 나이가 들어서까지 고생을 했어요. 우리도 다 고생했죠. 먹을 게 없어서 굶게 될 때도 있었고요. 한 번은 저희 어머니가 ‘은희야, 안 먹어도 죽는 거 아니다’ 하고 알려주신 적도 있어요(웃음).

 

역시 어머니께서 굉장히 온화한 분이셨네요.


모든 어머니들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요새 어머니들은 엄마 노릇 하는 걸 너무 힘들다고만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연애할 때를 생각해 보면 힘들던가요? 사랑의 기쁨을 느끼고 살면 좋은 거잖아요. 아이를 사랑하면 되는 거예요. 그리고 아이도 엄마를 사랑하잖아요. 사랑만 하고 살면 힘들 거 하나도 없죠. 물론 어느 정도 아플 때도 있고 힘들 때도 있지만, 그건 밤과 낮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죠. 우리가 살고 있는 곳에는 항상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있잖아요. 그걸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힘만 있으면 되는 것 같아요.

 

엄마들이 육아를 마음껏 즐기지 못하는 이유 중에 하나는 책임감 때문인 것 같아요. 아이가 잘못되면 다 자신의 탓이라고 생각하고, 육아를 ‘잘 해내야 하는 일’로 생각하는 거죠.

 
네, 그게 바로 제가 ‘포함’의 단위에 대해 이야기할 때 한 말인데요. 덧붙여서 하고 싶은 말은 이런 거예요. 흔히 사람들이 결혼식을 할 때 행복의 문이 열린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사실은 행복이 이념 같아요. ‘건강하게, 행복하게, 좋은 일만 있어라’라고 이야기하는데, 어떻게 좋은 일만 있을 수 있어요? 현실을 제대로 모르는 거죠. ‘어려운 일이 있어도 그걸 극복하는 것이 건강한 것이고, 행복하지 않아도 그 이유를 찾아서 해결하면서 사는 것이다’라는 현실감 있는 생각을 해야죠. 행복하기만 해야 된다고 생각하니까 ‘난 왜 행복하지 않을까’ 하고 원망하게 되는 거거든요. 행복해야만 된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 행복할 수 없으니까 무기력해지는 거고요. 그러니까 우울해지는 거죠. 우리는 다 슬플 때도 있잖아요. 슬플 때는 슬퍼하는 게 당연하죠.

 

상담소에 찾아오시는 분들은 모두 변화를 원하실 텐데요. 스스로를 바꾸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도 ‘생각처럼 잘 안 된다’고 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죠?


문제를 극복해낸 경험이 있으면 자신이 겪어낼 수 있다는 희망을 금방 갖겠죠. 그런데 그걸 안 하려고 하는 데 문제가 있는 거예요. 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만큼 노력을 안 하려고 하는 거예요. ‘어떻게 편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하고 생각하는 건데, 저는 그게 이데올로기 중에 하나라고 생각해요. 노력하지 않고 무언가를 해내려고 하는 거죠. 아이들이 시험 기간에 하는 행동만 봐도, 열심히 공부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좋은 결과를 얻는 걸 자랑하잖아요. 우리는 노력해서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생각을 잘 안 하는 거죠.

 

상담소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보셨나요?


저희가 연구소도 함께 운영을 하는데 가장 첫 프로젝트가 ‘친정어머니 연구’예요. 자기 어머니를 연구하는 건데요. 거의 예외 없이 발견하게 되는 모습이 있어요. 어머니가 경험한 한 가지에 자기의 모든 철학을 붓는 거예요. 가난한 집에 태어났다면 다른 모든 걸 무시하고 돈만을 강조하는 거죠. 부모를 잃었다면 부모의 건강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고요. 여러 요인이 있다는 것에 귀를 기울일 생각이 없어요. 저를 믿고 찾아온 분들이니까 제 말을 들으려고 하시지만 그래도 ‘저게 될까?’ 하고 못 믿는 게 있는 거예요. 그러면 노력을 안 하게 되지 않겠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담소에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분들이 계시잖아요.


우리 상담소의 좋은 점은 저하고만 상담을 하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여기에 모여서 같이 많은 활동들을 하거든요. 그러면서 각각 다른 이야기들을 나누죠. 문제를 가졌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만 문제가 있는 게 아니구나, 저 사람도 저런 일을 겪어냈구나’ 하고 느끼면서 서로 격려하는 거예요. 그러면서 마음을 바꿀 수 있게 되는 거죠. 상담의 목적은 마음을 바꾸는 거잖아요. 혼자 생각했을 때 풀리지 않던 문제를 다른 사람하고 의논하면서 해결해가는 경험을 갖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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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됐을까?


상담을 하시면서 가장 안타까움을 느끼시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바뀌지 않고 있으면 제일 안타깝죠. 그런데 그건 누가 대신해줄 수 없어요. 아무도 대신해줄 수 없어요. 고집부리고 있으면 안 돼요. 어떤 때에는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기도 해요. 우리 모임 중에 한 분이 전혀 다른 성격을 가진 어머니 아버지 밑에서 자랐어요. 그리고 할머니가 막강했어요. 세 사람의 권위자 밑에서 조그만 아이가 살았던 거죠. 그러면 누구의 말을 들어야 될까요? 그래서 헷갈리는 거예요. 지금은 할머니, 어머니, 아버지가 다 떠나셨지만 아직도 이 이야기를 들으면 이 이야기가 맞는 것 같고, 저 이야기를 들으면 저 이야기가 맞는 것 같은 거죠. 그렇게 아주 안타까운 일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언젠가 해결할 거라고 생각하고 기다려요. 자꾸 자극을 주고 격려하면서 같이 변하려고 노력하죠.

 

『여자 마음 상담소』에서도 말씀하셨듯이, 우리의 초점이 너무 물질적인 것에만 맞춰져 있는 것 같아요. 마음과 정신으로 시선을 되돌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물질적인 것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만족을 느끼지 못한다는 건 사람들이 알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알트루사에 와서 마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세계가 있다는 걸 터득하고 나면, 그 다음에는 되돌아갈 수 없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맛을 봐야 돼요(웃음).

 

엄마와의 관계에서 문제를 겪는 여성들도 많잖아요. 상담소를 찾아오신 분들은 이런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시나요?


우선 자기 느낌을 알고 자기 마음을 알면, 그 다음에는 다른 사람이 궁금해지지 않을까요? 엄마도 나의 엄마가 아닌 한 여성으로 보기 시작하는 거죠. 우리가 어머니를 연구하면서 느끼는 게 그런 거예요. ‘엄마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됐을까, 어떻게 그런 태도를 갖게 되었을까’에 대해서 궁금해 하고 문을 두드리면 어머니들이 너무 호응을 잘 하세요. 딸이 그렇게 궁금해 한다는 것 자체가 반가우신 거예요. 그러니까 관계 회복이 되죠. 처음으로 엄마를 만난 것 같은 거죠. 엄마를 모르면서 안다고 하고 살았으니까요. 그 다음에는 엄마와 딸이 서로 알아가면서 서로를 살려주는 거죠.

 

많은 사람이 문제의 원인을 타인에게서 찾죠. ‘그 사람 때문에 내가 힘들다’라고요. 그러니까 ‘나 혼자 상담 받는다고 문제가 해결되겠어?’라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거예요. 저자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는 남성 상담까지 할 여력은 없어요. 남성 상담할 자격도 없을 것 같고요. 그런데 여성들을 상담하다 보면 ‘우리 남편 상담해주세요’라는 말을 들을 때도 있어요. 그런데 저는 하지 않겠다고 해요. 당신이 바뀌어서 남편을 바꾸라고 하죠. 그런데 여자가 바뀌어서 집에 돌아가면 다 알아봐요. 아이들이 벌써 엄마가 바뀐 걸 알아요. 엄마가 알트루사에 가더니 바뀌었다고 해요. 엄마가 한동안 알트루사에 안 가면 왜 안 가냐고, 엄마 알트루사에 가라고 조르는 경우도 있어요. 남편도 알아보죠. 행동이 달라지고 말하는 게 달라지고 표정이 달라지고 마음 쓰는 게 달라지잖아요. 서로 마음을 소통을 하면 알죠, 왜 모르겠어요.

 

『여자 마음 상담소』는 어떤 분들에게 추천해 주고 싶으세요?


잡지 <니>를 만드는 목적과 마찬가지예요. 다 자기 문제를 파악하고 자기 문제를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거든요. 자기 문제를 알아야 해결하니까요. 그런 사람들은 누구든지 봐주면 좋겠어요. 꼭 여자만은 아닐 것 같아요. 남자 분들도 왜 화가 나는지 알아야 좋잖아요.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자기 마음을 알고 마음의 문제를 해결해 가는 건 누구한테나 필요한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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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은희 박사의 여자 마음 상담소 문은희 저 | 정한책방
문은희 박사는 한국알트루사 여성상담소를 통해 17년 간 무료 상담을 해오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여성의 정신건강은 한 개인의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가정과 사회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다면서 그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 책은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여성들의 교육서이자 심리서라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잔나비, 재기 발랄한 92년생들의 ‘힙’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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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이 1992년생 원숭이띠 동갑내기들이라서 팀명을 '잔나비'로 지었다는 사실부터 밴드는 왠지 재미있고 간편해 보인다. 버스킹 공연, 드라마 주제가 작업 등 나름 분주한 이력을 거쳐 얼마 전 폭염 한복판에 발표한, 데뷔 2년 만의 정규 1집 <MONKEY HOTEL>의 첫인상도 그랬다. 선명한 멜로디, 중독성 강한 후렴구, 그러나 결코 어렵지 않은 구성. 잘 들리는 '팝 록'을 지향하는 음반은 모처럼의 듣는 즐거움을 선사했다. '힙'하게 보이려 하지 않아서 오히려 '힙'했다.

 

다섯 잔나비들은 시종일관 재기 발랄했다. 동경하는 거장들의 이름을 거침없이 열거하며 음악적 욕심을 드러낼 때는 두 눈이 번뜩였다. 언뜻 쉽게 들리지만 옹골찬 음악처럼, 평범한 청년들 같다가도 음악적 소신에 관해서는 다부진 면모를 드러냈다. “우리는 멋져 보이는 음악이 아니라 '어려서부터 좋아해온 음악'을 하고자 한다!” “군더더기 있는 것을 싫어한다!” 등등 그들은 '눈치 보지 않고' 입장을 개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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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윤결(드럼), 장경준(베이스), 최정훈(보컬), 김도형(기타), 유영현(키보드)

 

밴드라 하면 싱글 접근보단 첫 앨범을 내려는 욕심이 더 강한 게 정규 코스인데 활동이력을 따져보면 첫 앨범이 늦었다. 그 사이에 뭐 했나.


최정훈 : 그 사이에 사실 저희 딴에는 앨범이라고 생각을 해서 미니 앨범을 2014년에 냈었다. 근데 지금 정규를 준비하며 돌이켜봤을 때는 턱없이 부족했다. 심지어 이름을 바꾸고 싶을 정도로. 왜 냈을까, 미니 앨범이긴 했지만 왜 섣부르게 했을까 하는 후회가 있었다. 그러다 보니까 진짜 정규작을 더 벼르게 됐고, 그래서 뒤로 미뤄지게 됐다.

 

약간의 두려움도 작용한 듯하다.


최정훈 : 낼 거라면 완벽하게 우리의 의도가 정확하게 전달되게끔 내자는 생각이 있었다. 그러기 위해선 일단 가장 중요한 건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또 운 좋게 드라마 OST 요청도 많이 들어와서 작년 한 해 동안은 거기에 전념을 했다. 그러고 나서 노하우가 쌓이고 이제 낼 때가 됐다는 생각이 되어서. 그 사이가 훈련기였다고 할까.

 

미니 앨범 내고 많이 부족했다고 했는데 어떤 것이 부족했나.


김도형 : 시간도 부족했고, 우리의 색깔을 만드는 것도 그랬지만 '대중적이면서도 예술적인' 음악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 어린 나이에 좀 그런 게 있었다.

 

최정훈 : 곡을 쓸 때 자세가 많이 달랐던 것 같다. 그때는 히트를 쳐보지도 않은 애들이 히트 곡을 써야한다, 히트 곡의 멜로디는 따로 있다 이런 생각을 했는데 점점 바뀌었다. 히트곡이랑 명곡은 다르지 않나. 걸작을 만들자는 생각!


앨범을 마치고 난 소감은.

 

장경준 : 일단 우린 곡을 쓰는 친구들이 따로 있다. 곡 참여를 하고 싶었지만 아직 실력이 안 된다고 생각을 해서 제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걸 하자, 그래서 악기적인 측면에서 공부를 많이 했다. 그래도 딱 만들어놓고 마스터 시디를 들으니까 노력한 흔적이 보여서 기쁘다. 지금까지 악기를 잡은 게 10년이 넘었지만 제대로 탐구할 수 있었던 열정을 가졌던 시간이었다고 본다. 성장이 눈에 보였다.

 

앨범 두 번째 수록 곡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을 타이틀로 한 이유는. 타이틀 고르는 게 힘들었을 것 같은데.


김도형 : 전곡을 타이틀로 생각하고 썼다. 한곡도 심혈을 기울이지 않은 곡은 없다고 말씀 드릴 수 있다. 그러면서도 뭔가 새로운 걸 계속 하고 싶었다. 예전 같았으면 절대 타이틀로 하지 않았을 곡이다. 아마 '꿈나라 별나라' 이런 곡을 타이틀로 했을 텐데... (하지만 '꿈나라 별나라'가 지금까지의 정체성 아니냐고 하자) 맞다. 근데 저희가 생각했던 건 올드 팝인데, 현대식으로 풀고 싶어 했던 이번 앨범의 포커스가 두 번째 발라드 곡에서 잘 나타났다. 우리들에게는 큰 시도라는 점도 작용했고..

 

앨범의 콘셉트는.


최정훈 : 고민을 많이 했다. 다른 아티스트의 앨범을 들었을 때 어떤 앨범은 이 곡이 이 곡 같고 저 곡이 저 곡 같은데 그래도 하나의 색깔 질감인 앨범이 있고, 어떤 앨범은 굉장히 다채로운데 그게 또 매력인 앨범이 있다. 우리는 후자를 더 생각했다. 다채롭게 그런 앨범을 만들자. 근데 첫 번째 정규고 그에 따른 의미 부여를 하고 싶었다. 해보고 싶었던 걸 많이 구현하고 싶었다. 그래서 예전부터 좋아했던 비틀스 스타일로 가자는 판단을 했다. 비틀스의<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로!

 

베이스 라인은 잘 잡았다고 보는지. 그 측면에서 어떤 곡이 마음에 드나.


장경준 : 베이스만으로 봤을 때 타이틀 곡. 솔직히 신경을 가장 많이 썼다. 라인은 잘 잡았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그래도 노래 안에서의 흘러가는 것으로 잘 묻지 않았나. 리듬으로만 본 게 아니고 보컬을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멜로디와 잘 섞여서 가는 그런 라인으로..

 

드럼은 어떤가.


윤결 : 쳐놓고 보니까 'Jungle'.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다른 노래는 사실 좀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더 잘 칠 수 있었는데.

 

이번 앨범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면.


유영현 : 1960년대를 살았던 건 아니지만 그 때의 향수를 느낄 수 있다. 그 향수를 재현해내려고 노력한 앨범, 그리고 내 생각으로 잘 표현이 된 앨범이다.

 


그럼 이 앨범은 빈티지 팝이라는 건데 먼저 '이지 리스닝' 팝 록 앨범으로 규정하고자 한다. 잔나비 최고 강점은 잘 들린다고 약점은 너무 잘 들린다는 것 아닌가. (일동 웃음)

 
최정훈 : 쉽게 들리고 그리고 대중적인 것을 원했다. 하지만 약간 물꼬를 트고 싶었다. 멜로디 면에선 정체성을 갖되 사운드 측면에서는 상대적으로 진전하자는 것. 다음 앨범부터는 어려운 멜로디나 가사를 써도 사람들이 얘 네가 왜 이러지 하는 생각이 들지 않게끔 그런 물꼬를 틀어주는 앨범을 만들고 싶었다. 그 속의 선율을 대중적이어야 한다는 점은 변함이 없고..

 

그렇게 팝적인 음악을 지향하는 것은 본인들의 생리적인 지향인가 아님 생존 전략인가.


최정훈 : 후자다. 그런 걸로 보면 후자인데 사실 오히려 그 반대의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우리가 더 어려운 걸 쓰고 성숙한 멜로디를 써서 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이 들었을 때 이런 거 쓰기가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을 들게끔 하는 곡을 만드는 게 우리가 음악적으로 오래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 앨범을 만들 즈음에. 그래서 곡을 만들어놓고 사람들 들려주면 이 노랜 못 듣겠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 어려운 노래도 써봤는데 하다보니까 솔직히 재미가 없더라. 코드를 꼬고 멜로디를 꼬고 빤하지 않게 하려다보니 재미가 없는 거다. 애초에 우리는 마룬 파이브, 비틀스, 콜드플레이를 좋아한다. 딥(deep)하다기보다 스트레이트한 스타일, 직설적으로 다가오는 음악을 하는 밴드들.

 

근래 인디는 안티 멜로디적. 안티 팝적인 흐름이 있다. 포스트 록이나 노이지 록, 일렉트로닉 록 등등. 그걸 관계자들도 높이 평가하고. 잔나비도 그런 음악을 해서 평단이나 마니아들에게 평가받고 싶지는 않았나.


최정훈 : 그런 점에서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없지 않았다. 약간의 상처도 있었고. 무엇보다 어릴 적에 꿈꾸던 것들을 여건상 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힘들었다. 하지만 반대로 그런 자신감은 있었다. '정말 맘 놓고 쓰고 아무것도 눈치 안보고 쓰면 저런 거보다 잘할 수 있을 텐데, 우리가 코드를 모르고 기타 프레이즈를 하나 덜 알아서 이렇게 하는 건 아닌데.' 결국에는 자신감이 생기더라. 기존에 하고 있던 음악, 쉽고 간결한 멜로디에 대한 자신감!


아까 사운드는 물꼬를 틀겠다고 했는데.


김도형 : 좀 한다는 밴드들을 보면 연주 타임이 2분이 넘어가는 것도 있다. 그런 게 어렵고 좀 있어 보일 수 있는데 난 다르게 생각한다. 신보 수록 곡 'Surprise'를 들어보면 클라이맥스 부분에 보컬 멜로디와 스트링, 건반, 기타가 쌓아진다. 이 클라이맥스 15초를 만드는 게 더 어렵고 깊다고 생각한다. 자신한다.

 

러닝타임이 30분이 채 안 된다. 이것부터 팝 밴드라는 걸 말해주는 증거라고 보는데.


최정훈 : 군더더기 있는 걸 싫어한다. 연주시간이 길어진다거나. 연주시간이 길어지는 게 나쁜 게 아니라 우리 자체가 대중적인 귀를 가진 편이라서 쓸데없는 연주라고 생각한다. 연주적인 부분에서 뭔가를 보여주려고 아티스트들이 그렇게 길게 하곤 하지 않나. 근데 그게 엄청난 아티스트들이 하면 와 닿는데 그게 아닌 경우가 훨씬 많다. 그래서 항상 군더더기 없이 하다 보니까 짧아졌다. '뭐 어때' 하고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예쁜 팝 록 앨범이다. 멜로디 파트나 리듬의 합(合)으로 볼 때 어떤 게 가장 마음에 드는지.


유영현 : 'Wish'란 노래가 좋다. 편곡 작업을 할 때 큰 그림을 본 다음에 시작하는 편이다. 어떤 기준을 잡고 이런 느낌으로 하자. 'Wish' 같은 경우는 그렇지 않고 이 앨범을 작업하는 동안에 든 생각으로 그림 그리듯이 (최정훈은 옆에서 '의식의 흐름대로'라고 덧붙였다) 편곡을 진행했다. 악기도 각자 멜로디가 있는데 그거 자체가 하나로 뭉쳐진 곡이 됐다. 가장 멜로디컬하고.

 

다들 인정하나.


최정훈 : 이번 앨범 작업하면서 특히 옛날 노래를 많이 들었다. 그러다보니 기술적인 부분 외에도 예를 들어 가사를 어떻게 발음하는가에 따라 다가오는 게 다르더라. 가사를 써놓고 이렇게도 얘기해보고 저렇게도 얘기해보고, 어떤 게 더 잘 어울리는지. 항상 녹음할 때 중요했던 건 바이브레이션이나 피치가 아니라 뉘앙스였다. 늘 '뉘앙스가 어때?'하고 멤버들에게 물었다. 뉘앙스를 조절하다 보니 나쁜 버릇이 생겼는데, 밑에까지 호흡이 내려가지 못하고 너무 입안에서만 불렀다. 그래서 앨범 녹음을 다 끝내고 공연을 할 때 질러야 하는데 소리가 목에서 잡혀서 안 나오더라. 그렇게 많이 내려놨던 것 같다.

 

'꿈나라 별나라'는 재밌고 귀여운 '잔나비 스타일'인데 상당히 자연스럽다. 늘 귀엽게 보이려는 게 있지 않았나.


최정훈 : 그건 여성 팬들이 많으니까. 관객들을 위해서. (옆에서 김도형, '필요한 부분이다!'라고 해서 일동 웃음)


윤결씨의 앨범 자평을 듣고 싶다.


윤결 : 애들한테 좀 놀랐다. 멤버들을 먼저 칭찬하고 싶다. 김도형이가 말했듯이 어렵게 듣는 사람들은 그런 게 있다. 기술적인 거. 사실 난 그런 걸 매우 중요시 한다. 테크닉적인 부분이라든지, 어렵게 치고, 그런 거. 올해 초 이 앨범 들어가기 전까진 연주력을 중시했다. 그런데 'Surprise' 마지막 부분을 들어보니까 애들이 그렇게까지 생각하고 있구나, 새삼스러웠다. 나는 앨범 작업할 때 견해차이로 따로 고향에 내려가 있기도 했다. 거기서 내 식으로 연습하고 있었다.

 

충돌이 있었다는 얘기?


최정훈 : 많았다. 드럼은 아무도 못하는 그런 걸 하고 싶어 했다. 우린 그냥 둥둥둥 하면 되는데. 그래서 내려놓기로 따지자면 결이가 가장 많이 내려놓은 것 같다. 그게 가장 어려웠던 것 같다.

 

사운드를 위해 1960-70년대 악기를 썼다고 들었다.


김도형 : 그때 당시의 악기를 갖고 싶었다. 그걸 지금은 다 바꿨는데 악기 나이가 45살 이렇게 된다. 정말 그 악기 구하는데도 두세 달 걸렸다.


최정훈 : 빈티지 악기라고 해서 많이들 쓰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우리나란 악기가 별로 없기 때문에 제대로 된 옛날 악기는 100개 중에 하나 정도, 그걸 구하려고 매일 나가서...


김도형 : 안에 배선 하나만 새 것으로 바꿔도 가치가 훅 떨어진다. 그래서 사면 친한 리페어(Repair)하는 지인이 가져가서 다 뜯어서 오리지널 맞나 확인하고 아니면 다시 물리고, 또 사고하는 걸 여러 번 했다. 어떤 리뷰를 봤는데 우리 곡 'The secret of hard rock'에 대해서 지미 페이지 기타 듣는 것 같다고, 그 당시의 사운드를 듣는 것 같다고 했을 때 기분이 좋았다.

 

이 팀에게 올드팝의 의미는 뭔가.


최정훈 : 음악적 질감으로 봤을 때 올드한 걸 해 보고 싶었다. 어려서부터 그랬다. 그래서 '김도형아 넌 일렉트릭 라이트 오케스트라(Electric Light Orchestra, ELO)를 들었으면 좋겠어!' '영현아 넌 엘튼 존 피아노에 주의를 기울였으면 좋겠어!' 그렇게 따로따로. 사실 전 2016년에 사는 사람이 아닐 정도로 영화든 노래든 음악이든 오래된 영화보고 오래된 음악 듣고 계속 그렇게만 살았던 것 같다. 레트로 마니아다.

 

압축해서 음악적으로 가장 닮고 싶었던 한 팀만 지목한다면.


최정훈 : 좀 전에 얘기한 ELO. 오마주도 많이 있다. 왜냐면 너무 많이 듣다 보니까. 차에 타기만 하면 계속 듣는다. 근데 옛날 노래가 신기한건 들어도, 들어도 질리지가 않는다. 물론 요즘 씬을 보면 복고적이고 울드한 분위기의 밴드는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그들이 추구하는 올드와는 다른 올드를 하고 싶었다. ELO는 그런 지향의 단초를 제공했다. 1980년대 뉴웨이브적이 아니라 1970년대 올드록적인...


앨범에서 건반의 역할은.


영현 : 멜로디 악기가 여러 가지 있지 않나. 그래서 피아노도 신경을 썼지만 스트링과 브라스 편곡에 신경을 많이 썼다. 최정훈이 아까 말한 것처럼 ELO, 클래시컬 기반의 밴드들, 그리고 'Alone again(Naturally)'의 길버트 오설리번(Gilbert O'Sullivan) 등을 들어보면서 멜로디를 빼온다는 생각은 없었고 그 안에 있는 냄새나 향수에 대한 연구를 했던 것 같다.

 

공연 관련해서 이런 얘기를 들었다. '음악을 들을 준비가 안 되어 있는 사람들 앞에서 공연하는 게 더 재밌다!'고.


최정훈 : 재미있다고 하기보단 공연을 게임 레벨이라고 한다면 클럽 공연은 최하다. 최하라는 게 제일 쉽고 저희도 가서 놀면 된다는 의미에서. 그렇지 않은, 지역축제 같은 난이도(?) 높은 공연들이 즐비하다. 그 점에서 쉽게 감동이 일지 않는 그런 공연에서 성과를 거두면서 비로소 자신감을 가졌던 것 같다. 음악을 들을 준비가 안 되어 있는 분들 앞에서 공연하는 건 밴드라면 꼭 해봐야 한다고 본다. 오래된 밴드는 아니지만 주류가 되진 못했어도 몇 년간 인디 씬에서 좀 구르지 않았나. 그런 경험이 쌓이면 무대 올라갔을 때 공연의 시야가 달라진다.

 

멤버들이 군 입대를 앞두고 있다.


모두 : 일제히 가려고 한다.

 

그럼 최정훈씨만 남는다. 어쩔 수 없이 솔로 어쿠스틱 앨범을?


최정훈 : 아니다. 친구들이 군대 가있는 동안 저도 그에 상응하는 뭔가를. 솔로 앨범은 안내고.


(김도형이 “고릴라즈 같은 거?” 하자 최정훈은 “아니다”라며 웃었다)

 

곡 제목으로 문장 식을 다른 팀보다 즐기는 것 같다.


최정훈 : 전에 우리 곡 중에 '사랑하긴 했었나요 스쳐가는 인연이었나요 짧지 않은 우리 함께했던 시간들이 자꾸 내 마음을 가둬두네'가 있다. 관심 받고 싶어서 길게 한 것 같다. 마땅히 할 제목도 없고 '사랑하긴 했었나요'라고 하면 너무 흔하고 해서 그냥 길게 했다. 이번 앨범 타이틀 같은 경우는 산울림 식으로 하면 '창문 넘어 어렴풋이 옛 생각이 나겠지요'다. 그 노래는 그 제목이 아니라면 대체할게 없지 않나.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도 그렇게 대체할 수 없는 제목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질감은 다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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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앨범, 결정적인 아티스트는.


최정훈 : 곡으로 하면 엘튼 존 'Goodbye yellow brick road'. 초등학교 때 들은 노래인데 그냥 그 곡은 들을 때마다 새롭다. 1주일에 한 번은 듣는다. '이 정도 곡을 만들 때까지 음악을 해야겠다'는 소신이 있는데 '이 정도'가 바로 이 노래다.


김도형 : 곡도 있고 인물도 있다. 비틀스 명반의 동명 곡이자 첫 번째 곡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이런 표현은 좀 그렇지만 정말 '졸라' 멋있다고 생각한다. 저에게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인물은 브릿팝 밴드 블러(Blur)의 기타리스트 그레이엄 콕슨이다.


유영현 : 저는 카펜터스. 그들에 대해 정확히 아는 건 많지 않지만 곡으로만 본다면 너무 완벽하다. 사실 너무 완벽하면 매력이 없지 않나. 근데 완벽하면서 매력이 있다. 이번 앨범을 준비하면서 그 영향을 많이 받았던 것 같다.


장경준 : 이번 앨범에 있어서 내게 물꼬를 틀어준 노래는 1978년 곡 플레이어(Player)의 'Baby come back'. 따로 고민할 수 있는 열정을 만들어준 노래. 그거부터 시작해서 ELO의 'Telephone line'으로 이어지고, 비틀스로 가고..


윤결 : 윤도현밴드 '흰 수염 고래'. 제가 재수할 때 힘들 때 많이 들었다. 하루 종일 듣고 그랬다. 대학 떨어지면 넌 음악도 끝이라고 집에서 그랬으니까. 그래서 지금도 힘이 되는 곡이다.

 

SNS로 들어온 질문이다. “관객에게 감동을 주는 입장이지만 관객에게 감동을 받기도 하지 않나. 감동을 받은 순간이 있다면.”


윤결 : 항상 감동을 주셔서.


최정훈 : 준비가 안 된 행사장이나 공연장 같은 경우에 관객 분들이 많이 메워주신다. 예전 같으면 주눅 들어서 못할 공연도 팬 분들로부터 힘을 받아서 공연을 역대 급으로 하고 그런다. 그럴 때 든든하고 좋다.

 

SNS 하나 더, “잔나비의 음악을 듣고 사람들로부터 어떤 말을 듣고 싶은지.”


김도형 : 살짝 과감하게 우리는 국내에서도 없고 외국에서도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장르가. 비슷한 음악도 없고.


최정훈 : 같은 맥락인데 요즘 음악이 SNS도 발달하면서 '액세서리 화'된 것 같다. 마음으로 느끼는 게 아니라 '나 이런 음악도 듣는다!' 하는 액세서리. 그런 게 아니고 '내가 임창정 노래를 들었을 때' 같은 그런 감정들을 받았으면 좋겠다. 그냥 음악 그대로 이 가사, 이 멜로디 이런 거. 나 이런 음악 듣는 거 SNS에 자랑해야지 이게 아니라 마음속에서 곱씹고, 내년에도 또 듣고, 후년에도 또 들어야지 이런 거.

 

잔나비를 훈남 밴드라고 수식하지 않나. 솔직히 부담이 되는지. 떼어 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지 아님 거기에 묻어가야겠다고 생각하는지.


장경준 : 그것도 경쟁력이긴 하다.


최정훈 : 누군가 뭐가 되고 싶은가하고 물으면 뮤지션이 되고 싶다고 하지만 어떻게 보면 그게 스타가 되고 싶다는 말과도 같은 말인 것 같다. 외모적인 것에서 왔던 피드백을 전부라고 생각하고 나태해질 때도 없지 않다. 그런 부분들을 항상 경계한다. 묻어가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다. 사실 뗄 수 있다면 떼고 싶지, 그걸 이용하고 싶지는 않다.

 

 

사진 : 이한수
인터뷰 : 김반야, 정민재
정리 : 정민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공광규 “시인은 발견자일지도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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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덕국’은 내 고향인 충청도 청양 지역에서 흔히 쓰는 말이다. 건더기가 없는 멀건 국을 말한다. 가난한 집에서 어떻게 건더기를 많이 넣고 국을 끓일 수 있었겠는가.(중략) 건더기를 찾아 숟가락을 부지런히 휘젓다보면 숟가락과 그릇이 부딪치면서 맑은 소리를 낸다. 건더기가 적을수록 더 맑게 들리는 그런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어머니는 고깃덩이를 찾느라 자식 놈이 휘젓는 국그릇에서 맑은 소리가 날수록 더 슬펐을 것이다. 어머니의 눈에서 쏟아지는 눈물은 마침 별빛을 반사하여 또 얼마나 맑은 슬픔을 주었겠는가.(23~24쪽)

 

1986년 월간 『동서문학』으로 등단하고 올해로 등단 30년이 되었다. 30년, 무거운 시간이다. 공광규 시인은 이 30년을 기념하고자 했다. 그는 자신의 첫 산문집 『맑은 슬픔』을 아껴둔 산문집이었다고 말했다. 그 귀한 첫 산문집의 제목은 또 어떠한가. “어머니의 눈에서 쏟아지는 눈물”이 준 ‘맑은 슬픔’이라는 문장을 읽는 순간, 이름이 없어 불리지 못했던 어떤 감정들이 비로소 제 옷을 입는 느낌이 들었다.


『맑은 슬픔』은 시인이 말하는 삶의 고백이자, 시와 사회를 바라보는 시인의 솔직한 목소리다. 고향과 불심(佛心)과 부모님과 시심(詩心)이 가득 담겨있다. 『맑은 슬픔』은 공광규 시인의 시를 좋아했던 사람이라면 시인의 생각과 관찰이 어떻게 시가 되는가를 엿볼 좋은 기회일 테고, 공광규 시인을 몰랐던 사람이라면 시인의 삶이 어떻게 우리의 그것과 닿아있는지 알 수 있는 기회가 될 책이다.


이제 시인은 새로운 도전을 하려고 한다. “거의가 눈치 보는 삶이었”음을 고백하더니 “그런 문학 말고 마음대로 해보는 문학을 한 번 해보고 싶다”는 게 아닌가. 등단 30년을 맞은 시인의 이 도전을 얼마나 많은 사람이 반가워하게 될지 자못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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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가 눈치 보는 삶이었다


등단 30년, 첫 산문집. 여러 면에서 특별한 책이 나왔습니다. 시인에게도 의미가 남다를 것 같아요.

 

아낀 거죠, 사실은. 그동안 여러 번 낼 기회가 있었는데요. 아낀 거예요. 이왕이면 30주년을 기념해 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었어요. 산문집을 내고 문학의 방향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겠다 싶었습니다. 제 자신에게 의미가 있는 책이에요.

 

문학의 방향을 점검하셨다고요. 


커다랗고, 솔직하고, 좀 더 마음대로 써보는 그런 시를 한 번 생각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동안에는 사실은 남의 눈치도 많이 봤고요. 거의가 눈치 보는 삶이었죠. 우리 삶이 그렇잖아요. 이제는 그런 문학 말고 마음대로 해보는 문학을 한 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부모님, 절, 고향 같은 이런 정서가 담뿍 담긴 글들은 시인의 표현대로 ‘글맛도 잘 변하지 않는다’는 말을 떠올리게 하는 것들이었어요.


그건 원체험인데요. 원체험은 잘 사라지지 않는 것 같아요. 어렸을 때 형성된 정서라 그런지 잘 사라지지 않아요. 다르게 써보려고 해도 다시 거기로 돌아오고요. 또 써보려고 하면 다시 거기로 돌아오게 돼요. 그래서 고민이 많은 거죠. 그 원체험을 희석시킬 만한 다른 체험들, 큰 변화가 있어야 하는데요. 그런 것을 찾아내기가 힘들다는 생각이 들어요.

 

시인의 시와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시인의 그 원체험에 매료된 부분이 많을 텐데요. 한편 시인은 변화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대단히 갈등적인 상황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인 자신도 지겹지만(웃음) 독자들, 많지 않은 독자들이라도 마찬가지일 수 있어요. 만날 똑같은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있죠. 그래서 한번 변화를 가져보려고 하는데 결과는 알 수가 없는 거죠.

 

등단 30년인데 여전히 고민을 하시는군요.


30년 지났으면 이제 얼마 안 남았잖아요. 고민을 계속 해야 하는 거죠. 새로워지고 잘하고 싶다는 욕망은 끊임이 없어요.

 

시인의 시가 일상의 공감을 일으켜서 좋아하는 분들이 많은데요. 평범한 순간이 시가 되는 장면을 들려주세요. 어떤 순간을 포착해내는 건가요?


제재를 일상에서 찾는 거죠. 일상, 현재 시점에서 찾아요. 일상이나 현재라는 것이 평범한 것이잖아요. 작가는 이야기를 팔기도 하지만 자기 경험을 파는 거거든요. 경험을 팔아먹고 사는 문제라고 해도 좋겠죠. 그러니까 자기 경험을 먼저 이야기하는 것이 좋아요. 포착할 수 있는 능력이 바로 시적 재능이랄까, 문학적 재능 이런 것 같은데요. 똑같은 경험을 다 해요. 누구나 똑같이 살지만 어떤 사람은 그걸 쓰고 어떤 사람은 안 써요. 표현 능력이 좀 부족하면 못 쓰는 거고요.

 

아버지는 미루나무처럼 성정이 물러터진 나를 항상 걱정하셨다. 커서 제 밥벌이나 할까 싶어서였을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미루나무가 그림붓이 거꾸로 서 있는 모습으로 보였다. 계절에 따라 들판 풍경이 색깔을 바꾸니, 모두 미루나무가 색칠을 하는 것이었다. 바람이 부는 날은 사생대회에 나온 학생들이 마감을 앞두고 더 열심히 붓질을 하는 모습이었다.(중략)

 

미루나무도 집으로 돌아가는 저녁이 되면
붓을 빨러 냇물로 내려가다 뒹구는지
노란 물감을 하늘에 뿌리거나
언덕에 물감을 흘려놓기도 합니다.
-「미루나무 붓글씨」일부

(31~32쪽)

 

가령 시 「미루나무 붓글씨」에서는 미루나무를 붓으로 상상해 시골풍경을 그려낸다는 표현을 했잖아요.


그것도 제 어렸을 때의 경험, 이런 거예요. 시골 논밭을 가로지르는 냇가에 서 있던 미루나무. 그 이야기거든요. 그 미루나무를 제가 아주 오랫동안, 한참 보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발견을 한 거죠. 그러니까 시인은 발견자일지도 몰라요. 발견을 하려면 대상을 오랫동안 관찰하고 생각해야 해요. 그래야 발견 대상에서 물질이 툭 튀어나와요.

 

관찰한 장면에 시적 이름을 붙이는 것이 시인의 작업이겠죠.


그렇죠, 이름을 붙였을 때와 안 붙였을 때, 의미가 굉장히 다르거든요. 일반 대중들도 ‘누구 씨’라고 불렀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와는 차이가 엄청나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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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반찬이 되어주자


어떤 면에서 이번 산문집은 시인의 시론집처럼 읽히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문제로부터 시가 시작되어야’ 한다고 여러 번 이야기하고 있어요.


제게 글을 어떻게 쓰느냐고 물으면 저는 무조건 자신의 경험부터 백지에 옮겨라, 이런 말을 해요. 경험을 옮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 이야기를 하죠.

 

경험에서 시작했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 명백한 차이가 있겠죠?


자기 글이 안 되는 거죠. 글에 자기 경험이 없으면 자기 글이 안 되고요. 그러면 쓰나마나한 거예요. 그렇잖아요. 남의 이야기, 내 것이 아닌 이야기를 쓴다는 것이 굉장히 헛된 일이잖아요.  

 

페이스북도 하시잖아요. 요즘 작가가 SNS로 독자와 직접 소통하는 경우가 많죠. 또한 그 토양에서 시가 다시 소환되기도 했어요. 오랜 시 생활에서 이런 새로운 면면들을 어떻게 보고 계시는지 궁금해요.


페이스북도 일종의 글쓰기거든요. 자기표현 욕구가 있기 때문에 쓰는 거죠. 때문에 페이스북 글쓰기와 시나 소설의 글쓰기는 전혀 다른 것이 아니다, 같다, 라고 봐도 좋을 거예요.

 

혹시 역기능에 대해서도 고민을 하시나요?


글쎄요. 역기능을 생각해보진 않았어요. 굳이 꼽는다면 자기 관리겠지만요. 자신이 SNS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여하느냐, 그것 때문에 잃어버리는 시간이 얼마나 되느냐, 이런 정도이겠고요. 소통의 장으로써 SNS가 오히려 굉장히 시를 현실감 있게 해준다고 생각해요. 보편적 정서가 쓰는 데 도움이 되는, 아주 유용한 도구라고 생각을 해요. 시간은 자기가 관리하면 되는 거고요. 개인정보도 마찬가지겠죠. 어디까지 말할 것인가 고민해야 하겠지만요. 오히려 대중과 사이버상에서 호흡하고 정서의 흐름이랄까, 시대의 흐름이랄까, 이런 것을 읽어내기에는 무척 중요한 도구인 것 같아요.

 

보편적인 정서, 시대의 흐름을 말씀하셨는데 지금 시인에게 가깝게 다가오는 이슈가 있나요?


일단 사회 전반의 문제에 대해서는 모두 관심이 있죠. 이미 시간이 지난 세월호라든가, 이런 데에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없어요. 청년 실업 문제, 40~50대 중년 독신 가구 증가라든가 이런 사회적 이슈에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그 안에 내가 존재하고, 그 안에서 밥 먹고 살고 있기 때문이에요.

 

“얼굴이 반찬이여!”라는 직장 동료의 말에서 나온 「얼굴반찬」이라는 시가 인상적이에요. 혼밥, 혼술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서로 얼굴반찬이 되어주자는 말이 새롭게 들리기도 하거든요.


혼자 사는 가구가 많이 늘어나고 있어요. 거기에 사회과학적으로 쓰는 용어, 행정 용어 쓰지 말고 ‘얼굴반찬’이라는 말을 써도 좋겠어요. ‘소셜다이닝’이라고 하잖아요. 혼자 사는 사람들끼리 만나서 밥 먹는 건데요. 이것을 다른 방식으로, ‘얼굴반찬이 되자’고 한 거예요. 왕따를 당한다든가, 이혼을 했다든가, 사별을 했다든가, 실직을 했다든가 하는 여러 이유로 혼자인 친구를 찾아가서 얼굴반찬을 해주는 것, 그것이 굉장히 좋은 방식의 사회운동이기도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어요. 혼자 밥 먹고, 일하고 그러잖아요. 보면 ‘이게 뭐지?’ 이런 생각이 들어요.


『논어』에 나온 이야기인데요. ‘흥관군원(興觀群怨)’이 있어요. ‘군(群)’이 무리 ‘군’이거든요. 시는, 문학은 사람을 모으는 역할을 해요. 우리 사회를 분열시키고, 찢는 게 아니라 통합시키고, 정돈시키고, 좀 더 좋은 사회, 행복한 사회로 갈 수 있도록 하는 게 문학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아주 간단한 것부터 시작할 수 있다는 거예요.

 

세상의 변화는 거창한 것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해서 오히려 냉소하기도 하잖아요. 그게 아니라는 거죠.


그런 건 오히려 관념이거든요. 관념은 사실 실생활에 필요가 없어요. 저는 관념이 위험하다고 봐요. 이념에 의한 맹신 때문에 사람을 죽이기도 하잖아요. 종교 전쟁을 일으키기도 하고요. 살육을 하기도 하죠. 우리도 과거에 그런 경험이 있었죠. 이념, 관념 때문에 서로를 죽인.

 

신기하게 이야기가 다시 만나요. 문학도 자신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삶도 가까운 곳에서부터 변화해야 한다는 말씀이거든요.


그렇죠. 악수하고, 얼굴보고, 밥 먹고, 이런 것부터 시작해야죠. 의견이 안 맞는다고 만나지 않는 것, 여기서부터가 깨지는 거예요. 지금 우리 사회의 균열은 아마 그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요. 만나지 않기 때문에요. 특히 돈 중심의 사회, 굉장히 나쁜 사회거든요. 이런 사회가 낳은 게 여러 갈등들이죠. 가족해체, 빈부격차, 경쟁, 모두 그래요. 남북문제도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해요. 

 

 

시인이 더 많아야 한다


산문집이 네 개의 장으로 나뉘어 있는데 4부에 가면 특히 시와 시인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말씀을 많이 하고 계시거든요. 시대의 변화, 지금의 실용주의 사회의 한복판에서 시가 어떻게 유리되지 않고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하시는지 묻고 싶어요.


틀림없이 역할을 할 수 있어요. ‘시의 직장’ 선언 같은 경우도 그렇고요. 오늘도 지하철을 타고 왔는데요. 을지로입구역에서 내려 시청 쪽으로 걸어가면 ‘시 항아리’가 있어요. 박원순 서울시장의 아이디어예요. 큰 건물 로비라든가 공공기관 로비 같은 곳에 그 항아리 하나만 놓으면 되거든요. 거기에 담긴 시를 선택하면 되는 거고요.


우리가 시가 삶의 사유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교육을 계속 받아왔어요. 그러나 분명히 시는 직접적으로 필요한 물건일 수도 있어요. 도구일 수 있죠.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하나의 물질이죠. 그동안 배워오고, 교육해오고, 읽어온 시들이 현실과 무관하다고 여긴 것은 시인의 표현 미숙으로 시를 잘 못 썼기 때문이에요. 그런 시들을 독자가 읽고 시를 쳐다보지 않고 시를 버리게 됐던 거죠.

 

‘요즘 시들이 기백이 없고 횡설수설에다 난잡, 난해, 불통인 것은 시가 현실과 접촉하지 않기 때문이다’라고 적기도 했어요.


그런 시는 과거에도 있었어요. 다만 현실과 접촉하지 못한 시들은 지금까지 살아남지 못한 거죠. 지금 시인들이 많다고 하는데요. 저는 절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시인이 더 많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더 많은 사람이 시를 써야 해요. 더 많은 책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시도 더 많이 떠돌아다니고 말이죠. 이를 테면 옛날에도 공부를 하고, 문자를 아는 사람은 다 시를 썼거든요. 그런데 그 시들이 살아남지 못했을 뿐이에요. 왜냐하면 어렵기 때문인데요. 뭘 썼는지 시인 자신조차도 잘 모르고 읽는 사람도 이해를 할 수 없고, 이런 시들을 썼을 때 그렇죠.

 

시가 생활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는 말씀이시네요.


이미 생활 안으로 들어온 시가 있고, 안 들어온 시가 있고 그런 거예요. 안 들어온 시는 이미 시간이 지나면 잊혀지는 거고요. 시를 잘 못 써도, 안 읽히게 써도 그게 유명해질 수는 있어요. 당분간. 매체의 힘, 출판 자본의 힘, 이런 것 때문에 그럴 수는 있죠. 그러나 금방 잊어버리죠.

 

오래 살아남는 시는 어떤 시인가요?


공감을 할 수 있는 시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보편적인 감정이랄까 정서, 이런 것이 굉장히 중요하고요. 그것을 읽어내려면 시가 잘 읽혀야 하는 거거든요. 그런 조건들이죠.

 

시에 대한 오해도 있었던 것 같아요. 시란 어려운 것이고, 의미를 함축하고 있어야 하고, 이런 식으로요. 때문에 독자가 떠난 면도 있었을 테고요.


어려운 시도 다 시예요. 잘 못 쓴 시도 시고요. 잘 쓴 시도 시죠. 시라고 쓰면 다 시거든요. 그런데 어떤 시를 쓸 것인가는 시인의 선택인 거예요.

 

이 책이 ‘가끔 꺼내볼 수 있는 오래된 서랍이면 만족하겠다’, ‘몇 사람의 독자가 있어서 내 시를 이해하거나 시를 쓰려는 사람들에게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한다’고 했는데 산문집이지만 결국 시예요. 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시 이야기가 된 거죠?


쓰다 보니 그렇게 된 거죠. 시에 대한 이야기를 또 해야 하니까요. 옛 사람이 이미 한 말이긴 하지만 ‘시를 쓰려면 시보다 시 쓴 사람의 정신을 배워야 한다’는 거거든요. 그런 거겠죠. 그러니까 이 선배는 시를 어떻게 썼는가를 알아보려면 이 책을 읽으면 되겠죠. 시만 봐서는 그걸 잘 모르니까요. 그래서 앞부분은 대개 그런 식으로 시, 그리고 시와 관련된 이야기를 적었고요. 뒤로 갈수록 조금 다른 이야기를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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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천만 분의 일의 인간


독자는 이 책을 어떻게 읽었으면 하세요?


글쎄요. 아무렇게나 읽으면 돼요.(웃음) 아무렇게나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렇게나 펴서 읽어도 되죠. 읽으면서, 시를 통해서 시인을 이해하는, 하나의 인간을 이해하는, 이런 책이었으면 좋겠어요. 오천만 분의 일의 인간이거든요, 제가. 오천만 분의 일의 인간은 삶이 어땠는가, 그 삶을 어떻게 표현해왔는가, 시라는 도구를 가지고 어떤 표현을 했는가, 그런 것을 봤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동시도 쓰시고, 다양한 글쓰기를 하고 계신데 산문집으로 또 만날 기회가 있을까요?


당장 계획은 없는데요. 앞으로 또 기회가 있으면 내겠지만요. 시집을 끊임없이 내야 할 거고요. 다른 장르도 해야겠죠. 할 수밖에 없어요.

 

구체적인 계획이 잡힌 건 없나요?


내년쯤에 시집이 나와야 할 것 같고요. 시그림책이 하나 나와야 해요. 그동안에 인터뷰를 한 게 있어요. 인터뷰집도 하나 내야 하고요. 윤동주에 대한 대화식 평전이랄까 이것도 하나 있는데 그것도 내야 해요.

 

지역 초청 행사도 자주 가시는데 무척 바쁘실 것 같아요.


오히려 그런 행사가 많아야 해요. 그래야 글을 잘 쓸 수가 있어요. 그런 곳에 가서 대중을 만나고 오니까요. 자극을 받는 거죠. 그러니까 바쁠수록 더 많은 책을 읽고 더 많은 글을 쓸 수 있는 것 같아요. 더 많은 사람을 만나야 더 많은 글을 쓸 수 있습니다. 골방에 앉아서는, 혼자 고립되어서는 말이죠. 저는 그런 게 문학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만나서 보고, 어떤 아픔이 있는지 듣고, 그런 이야기를 받아서 써야 하는 거죠.

 

최근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많이 시끄러웠어요. 블랙리스트 인사로 포함되어 있었는데, 어떠셨어요?


그것은 뭐,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어차피 한 사회를 구성하면 대립과 갈등이 있을 수밖에 없어요. 그런 나쁜 사회에 대해서 문인이 이야기를 하고, 글을 쓰고, 저항할 수 있는 거죠. 또 해야 하는 거죠. 그래서 이 사회를 좋은 쪽으로 수정해나가는, 문인으로서의 역할을 해야 하는 것 같아요.

 

과거 대학시절에 낸 시집 내용이 사회비판적이라는 이유로 해직을 당한 적도 있으시잖아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많은 시간이 흘렀는데 제 자리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렇죠, 제 자리죠. 그런데요, 사실은 전체 국민의 책임이죠. 국민의 일부인 문인의 책임도 있고요. 이 사회의 권력 문제를 제대로 만들지 못한 책임이 다 있는 거죠.

 

시인으로서, 작가로서 사회 문제에 발언하려고 하는 것은 그 책임감의 일환이기도 한 거군요.

 

네.

 

인터뷰 처음에 좀 더 큰, 다른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고 하셨는데요. 아마 그런 이야기가 될 까요?

 

아마 그런 쪽의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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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슬픔공광규 저 | 교유서가
이 책은 사회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하고 소외된 이웃과 더불어 고향과 가족에 대한 서정적 시편들로 사랑받아온 공광규 시인의 등단 30년을 정리하는 첫 산문집이다. 고향에서 가족과 함께 보낸 유년 시절의 추억과 도회지에서의 삶을 자신의 대표적인 시와 함께 마흔한 편의 산문으로 담백하고 잔잔하게 그려내고 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천주희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 고리를 끊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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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과 동시에 수천만 원 빚이 남는다. 이제는 당연해 보이기도 한 이 문장 속을 들여다보면 의문이 생긴다. 대출받아서 대학가는 건 당연한가? 공부해서 좋은 직장에 들어가 좋은 삶을 누려보겠다고 하는데, 왜 빚을 지고 시작해야 하지? 예전에도 등록금은 있었을 텐데, 요새 학생들은 나약해서 징징대는걸까? 아니 무엇보다, ‘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지?


천주희 저자는 1986년 태어나 남들 가는 대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들어갔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 저자의 손에는 아버지가 준 천만 원짜리 적금 통장이 전부였다. 대학 입학금 100만 원에 등록금 300여만 원, 교재비와 밥값, 교통비를 간신히 내며 2학기를 마치자 전 재산이 100만 원도 남지 않았다. 생활비와 등록금을 벌려면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고, 아르바이트를 하려면 휴학해야 했다. 어찌어찌 대학교를 졸업했지만, 더 공부하고 싶어 찾아간 대학원에서도 상황은 나빠질 뿐 더 좋아지지 않았다.


‘대학생’은 당연하지만 ‘채무자’는 어색해 보이기만 하다. 천주희 저자가 학자금 대출을 주제로 논문을 쓰기 위해 만난 인터뷰 대상자들 중에서도 대출을 받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았다. 석사 논문으로부터 시작한 이 간격은 『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가』로 나와 대출을 받아 대학 가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에 문제를 제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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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이었던 부채가 연구대상이 되다


성공회대학교를 나오셨어요. 학풍이나 대학에서 겪은 공동체 경험이 연구를 시작하는 데 계기가 되었나요?

 

대학 때는 사실 대출금 갚기에 급급했어요. 논문 쓸 때 만났던 연구 참여자처럼, 대학교 때는 대출 받으면 휴학 안하고 학교 다닐 수 있으니까 좋았고 그냥 열심히 일해서 갚으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불합리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구체적인 차원에서 문제를 제기하진 않았어요.


대학원에서 논문 주제를 세 번 바꾸셨다고요.


석사 4학기 들어서야 학자금 대출을 주제로 결정하면서 연구 기간이 길어졌어요. 논문 쓰는 데 거의 이 년 정도 걸렸던 것 같아요. 공식 학기가 끝나면 조교 활동도 할 수 없어서 선생님들이 외부에서 강의하고 받은 강의비를 연구하라고 주시기도 하고, 많이 도와주셨어요.


대학 전공과 다른 전공으로 대학원에 들어가셨어요.


대학 때 평소에 사회적인 문제를 인식하고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사회학을 복수전공 했었어요. 사회학으로 대학원을 가려고 했는데, 어딘가 규범적이고 안 맞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마지막 학기에 대중문화 연구 수업을 들으면서 문화연구도 학계에서 할 수 있겠다 싶어 문화학 협동과정으로 들어갔어요.


논문 주제를 학자금 대출과 부채로 결정한 계기가 있었나요?


논문을 쓰기 전에 지도 교수님과 논문 주제를 가지고 면담하는 시간이 있었어요. 기존에 준비했던 것 외에도 생각하고 있던 주제가 학자금 대출이었는데, 말을 하면 할수록 제가 이 주제에 관해 할 말이 정말 많다는 걸 말하면서 느꼈어요. 논문을 써서 뭘 해야겠다는 기대는 없었어요. 한국에서 석사 과정인 친구들이 논문을 써서 책을 내는 건 정말 드물잖아요. 논문이라도 나오면 좋은 거고, 그나마 사람들이 읽지도 않고요. 그저 지도 교수와 저 말고 다른 사람이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있었죠.


논문을 그대로 책으로 낸 건 아니고, 많이 고치셨다면서요.


용어를 많이 바꿨어요. 논문도 비교적 다양한 형식이 허락되는 학과였기 때문에 그렇게 어렵게 쓴 편은 아니었어요. 하지만 부채 용어 자체가 어렵다 보니 기본적인 단어만 나열해도 대중적으로는 가독성이 떨어진다는 의견이 있어서 많이 고쳤어요. 내용도 하고 싶은 말을 넣기보다는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뭘까 고민을 했어요.


조한혜정, 최재천, 김현미, 노명우의 추천사가 들어갔습니다.


황송할 따름이죠. 정말 유명하신 선생님들이잖아요. 김현미 선생님은 지도 교수님이기도 했지만, 이렇게 써주실 줄은 몰랐어요. 굉장히 냉철하신 분이거든요. 아시는 분은 놀랄 정도로 잘 써주셔서 앞으로 연구자로서 더 열심히 하라는 응원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생활을 뒷받침하는 조건, 부채


대학원을 졸업하기까지 학비만 5천만 원이 들어갔다고 하셨어요. 돈을 벌기까지 파란만장했을 것 같습니다.


정기적으로 수입원이 없으면 쉬고 싶을 때 못 쉬잖아요. 여기에 학자금 대출까지 있으면 빚 이자까지 계속 쌓이죠. 가장 쉽게 줄일 수 있는 게 식비다 보니까 밥도 잘 못 먹고 건강이 안 좋아지고 심리 상태도 불안해져요. 2009년 한 해에 수해가 두 번 났어요. 추석 때 집에 내려갔다 오니까 입고 있는 옷 말고는 살림이 다 물에 잠겼어요. 복구작업하고 주민센터 가서 피해 신고하는 와중에 한국장학재단에서 대출금 내라고 연락이 온 거죠.


수해는 특수한 상황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일반화시키면 내가 정기적으로 아르바이트나 소득 활동을 할 수 없을 때, 힘들어서 잠깐 쉬고 싶을 때 삶의 공백기가 허락되지 않아요. 그때 부채에 대한 상환 요구나 추심이 있을 때는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죠. 옆에서 누가 끄집어내 주지 않으면 힘든 상태가 와요.


특히 대학에 다니기 위해 다른 지방에서 살다 도시로 오는 사람들이 더 문제를 겪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요, 서울 중심으로 대학이 들어와 있는 것도 문제의 일부가 아닐까요?


지역에서 온 친구들이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면 훨씬 더 초기비용이 많이 드는 건 맞아요. 하지만 부모가 서울에 살아도 경제적 수준이 낮고 열악한 조건에서 사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지방 문제보다는 도시의 빈곤생활자 문제로 접근하는 게 더 맞을 것 같아요. 언제까지 가족, 혹은 가족이 있는 지역으로 책임을 환원하거나 차별해서 구분 짓기보다 지금 현재 여기서 살고 공부하는 사람들의 교육을 위해 어떤 환경을 마련해줄 수 있는지 같이 고민해봤으면 좋겠어요.


주거권이나 청년 실업 문제보다 부채 문제는 상대적으로 조명받지 않습니다.


청년 부채 문제가 이슈화된 건 최근 1, 2년 전이었던 것 같아요. 주거나 노동은 개인이 생활하는 데 필수적이라면, 부채는 그 필수적인 걸 뒷받침하고 재생산하기 위한 조건이에요. 주거나 노동이 부채 문제와 떨어질 수 없다고 생각해요. 결국 노동시장에서 높은 몸값을 받기 위해, 혹은 안정적인 직장을 얻기 위해 대학을 가고 대학을 가기 위해 돈을 빌리잖아요. 이 고리를 총체적인 차원에서 봐야 하는데 그동안 많이 분절되어 있었던 것 같아요. 국내에도 부채와 학자금 대출 연구자는 많지만 아쉬운 건 제도에만 국한되어 있기 때문에 일상하고 연결이 잘 안 되더라고요.


예전 90년대 학번 선배와 대화했을 때 그 당시 과외비가 30만 원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어요. 과외비는 달라진 게 없는데 등록금은 무시무시하게 뛰었죠.


연구 참여자들의 수익원을 보면 부모님이 지원해주거나, 독립했다면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사람들이 많이 아는 대학에 다니는 친구들은 과외를 하죠. 전반적으로 과외 비용이 오르지 않았고 졸업하고 아예 과외 시장에 뛰어드는 사람들도 많아졌어요. 아르바이트는 최저시급 언저리다 보니 생활비와 등록금을 벌어서 낼 수 없게 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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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근한 이미지보다 실질적 도움을


한국장학재단이 책에 많이 나와요. 대출이 금융 상품으로 계속 판매된다고도 하셨고요.


저도 대출을 받았고 아직 상환하고 있기 때문에(웃음) 한국장학재단 자체를 비판하는 건 아니고요. 학자금 대출은 1960년대부터 있었어요. 이전에는 정부에서 보증을 해주면 학생이 은행에 가서 대출을 받는 형식이었죠. 정부가 대학생의 신용 보증을 대신 해 주고 돈을 빌려줬던 거죠. 2005년 즈음에 학자금 대출 방식이 한 번 바뀌어요. 은행에서 학자금 대출을 증권화해서 투자자들이 학생들의 학자금 대출 상품에 투자할 수 있게 됐어요.


학자금 대출은 금융 상품이 맞아요. 하지만 학자금 대출을 시행하는 채권자도 금융 상품이 아니라 복지인 것처럼 말하고 채무자도 복지처럼 느끼죠. 한국장학재단이 만들어진 건 정말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개인이 은행에서 받는다면 거쳐 가는 채권에 따라서 수수료를 더 내야 하는데 이걸 국가에서 한꺼번에 채권 시장에 넣어서 더 싼 이자로 대출해줄 수 있거든요. 예전에 비하면 잘된 거지만 정말 이게 복지라면, 여기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최근 성남시나 일부 지자체에서는 이자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합니다.


학생들이 상환을 못 하니까 대출금을 지자체에서 감당하는 구조로 되고 있어요. 차라리 지자체에서 낼 돈과 한국장학재단에서 학생들을 관리하는 비용이면 무이자로 대출이 가능할 것 같거든요. 한국장학재단이 대학생의 개인 정보를 너무 많이 보유한 것도 문제예요. 대출을 받으려면 단순히 어느 학교 몇 학기에 다닌다는 정보가 아니라 부모는 한 부모 가정인지 다문화 가정인지, 내 부모의 소득은 몇 분위인지까지 등 은행보다 더 과도한 개인정보를 요구해요. 학생들에게 친근한 이미지, 다정한 이미지를 고민할 때가 아니고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방법을 고민했으면 하죠.


대학도 재학생의 등록금으로 이윤을 만드는 구조입니다. 최근 이화여대 미래라이프대학 사태도 결국 수익을 만들어내기 위한 고육지책이라고 봤는데요.


그 사건 보면서 생각났던 게, 요새는 미용사가 되려 해도 전문대 미용학과를 나와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미용학과를 나온 사람과 학원에 다닌 사람 모두 자격증 시험은 똑같이 봐야 하지만, 그런데도 대학에 가는 거죠. 직업 훈련 센터나 다른 곳에서 가르칠 수 있는 커리큘럼을 대학 안으로 가지고 들어와 그 비용을 사람들에게 부담시키고 있어요. 대학을 다니든 안 다니든 살면서 기술을 습득해 먹고 살아야 하는데, 계속 새로운 기술을 습득해야 하고 학생이 되어야 한다면 전문가는 언제 되며, 배우는 동안 돈은 어디서 마련하겠어요. 또 대출을 받는 거죠.

 

 

점점 선택의 폭이 좁아진다


청년 세대도 이제는 대학 학위를 가지고도, 빚을 지고도 취직을 할 수 없다는 걸 안 상태인 것 같아요.


대학은 이미 사회에서 규정한 보편적 선이에요. 거기 가지 못하면 내가 탈락한 존재인 것 같고 평범한 삶을 살지 않는 것 같고, 일자리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인정을 못 받을 것 같아요. 그래서 대학에 가라고 하니까 갔는데 이게 웬걸, 생각했던 대학이 아니잖아요. 선배들을 보면 4학년이 되어도 취직이 될 것 같지 않고요. 대학이 자기 삶에서 쓸모없어지는 지점들, 앞으로 남은 기간 나와 내 가족이 얼마나 비용을 내야 하고 그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얼마나 고생하게 될지 계산하는 것만 봐도 당연할 수밖에 없어요.


그렇다고 대안이나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거든요.


주변에 자퇴한 친구들도 있고 대학을 다니고 나서 다른 대안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도 있어요. 대학을 다닐 때 한쪽은 대안, 생태, 협동조합에 관심 있는 친구들이 있었고 또 한 쪽은 정치적인 운동을 통해 목소리를 내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있었어요. 저한테는 그 두 개가 혼합된 것 같아요. 어차피 저는 자본주의 질서 안으로 별로 들어가고 싶지도 않고, 들어가서도 그렇게 행복한 삶을 살 것 같지 않거든요. 그럴 바에는 거기서 잘난 사람으로 살기보다 자본주의 안에서 균열을 내면서 나 자신에게 솔직한 삶을 사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그 첫번째 목소리가 이 책일 것 같아요.


많이 바뀌고 있지만, 청년 세대에서 윗세대에게 요구하기보다 나만 잘해서 비정규직이 아닌 정규직이 되면 해결된다는 인식이 있어요.

 
정규직이 될 수 있지만 비정규직을 선택하는 것과 계속 떠돌이로밖에 살 수 없는데 정규직이 되고 싶다고 하는 건 조금 달라요. 여기서 정규직은 한 직장에 오래 다니면서 안정적인 임금을 받는 생활이라기보다, 최소한의 노동권이 보장된 환경을 말하거든요. 모든 사람의 노동이 선택이 되어야 하고 노동을 하지 않을 때도 불안하지 않으려면 사회 전체에 안정적인 환경이 있어야겠죠, 지금은 그게 정규직이라는 이름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지만, 이제 프레카리아트처럼 기존의 틀로 설명할 수 없는 노동이나 삶의 유형이 계속 나올 거예요.


20대가 정규직 혹은 어느 정도 규모의 기업에 들어가지 않으면 이후 30대, 40대 때는 더욱 받아주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든 들어가야 한다는 압박도 있습니다.


그래서 신조어 중에 ‘31절(31살이 넘어가면 취직이 안 된다)’도 있더라고요. 저도 이 책을 쓸 때 그 고비였는데, 아르바이트를 찾아보는데 스물아홉 살 이상은 안 받는 거예요. 나이가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노동시장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폭이 줄어들겠구나, 예감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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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밍아웃’을 넘어 요구하기


채무자에게 대출을 부끄러워하지 말자고 제안하셨어요. 학교에 계실 때는 ‘빚밍아웃’도 하셨다고요.


빚과 커밍아웃의 합성어였어요. 졸업을 그냥 하면 아쉬울 것 같고, 관련된 논문도 썼으니까 문화활동처럼 캠페인을 해보자 해서 그때 졸업하는 친구를 꼬셔서 같이 하자고 했죠. 하지만 친구가 상을 받는 바람에(웃음) 저만 했어요. 제 이야기와 부채 금액 등을 종이에 써서 사진을 찍고 나열하는 프로젝트였어요. 사람들이 빚, 하면 너무 무겁게 생각하고 빚을 져도 자신을 채무자라고 생각하지 않을 때가 많더라고요. 하지만 사람들한테 ‘너 빚 있다고 왜 말 안 해?’ 하고 질문하는 건 매우 폭력적이라고도 생각해요. 왜 말해야 하는지 반문하면 할 말이 없는 거죠. 하지만 자신의 빚에 대해 말할 준비가 되었을 때, 같이 말할 사람과 누구를 향해 말할지 도움이 됐으면 해요.


채무자가 모여서 고민하고 토론하는 게 결국에는 연대의 한 방법이지 않을까요?


아무래도 90년대에 사회운동하시는 분들이 생각하는 연대랑 오늘날 청년의 연대는 조금 다를 것 같은데요, 저는 느슨한 차원에서의 느슨한 연대를 생각하고 있어요. 사안이 심각하면 조직해서 토론회도 하고, 포럼도 열고 해야지, 요즘 애들은 시간을 내는 걸 왜 이렇게 아까워하냐는 이야기를 하시는 선생님들이 가끔 계세요. 시간을 어떻게 내요, 먹고 살려면 일해야죠. 그래서 빚에 대해서 무겁게만 생각하지 말고 즐기면서, 좀 쉬기도 하면서 문화활동처럼 빚을 말하는 자리를 마련하려고 해요. 안 그래도 10월 29일에 대방동 무중력 지대에서 ‘개미와 빚쟁이’ 축제를 열어요.


개미와 ‘빚쟁이’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이상한 나라의 개미굴’이 콘셉트인데요. 행사장에 입장할 때 빚이 얼마냐고 물어보고 빚에 따라서 엽전을 줘요. 거기 들어가서 엽전으로 음식도 먹고 상담도 받을 수 있게요. 부채 클럽도 만들었어요, 빚이 있으면 클럽에 잘 못 가니까(웃음) 디제이도 섭외해서 잘 놀 수 있도록요. 삼각김밥만 먹지 말고 건강한 음식도 먹고요. 그런데 빚이 없는 사람도 있을 수 있잖아요. 그 사람들은 들어갈 순 있지만, 베짱이 발전소에서 퀴즈를 풀어야 해요. 적어도 그 이상한 나라의 개미굴에서는 빚과 상관없이 즐길 수 있는 걸 만들 예정이에요.


이런 일들이 수익으로 연결되진 않잖아요. 생활비는 계속 벌어야 하는데, 힘들진 않으세요?


지난달 월급이 123만 원 찍혔더라고요. 그게 참 그래요. 생계유지 시간을 제외하고 대안을 찾아야 하는데 계속해서 더 나빠지지 좋아지진 않거든요. 지금 직장을 다니기 전에는 프리랜서라서 소득이 굉장히 불규칙했어요. 그러다 보니 연체도 많이 됐었고요. 지금은 적은 돈이지만 안정적으로 돈이 들어오면서 연체도 상환할 수 있었는데, 저는 글을 쓰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문화 활동을 하면서 즐거움을 많이 느끼는 사람인데 일을 하다 보면 점점 삶에서 즐거움이 축소되니까 슬퍼요. 언젠가는 또 다른 형태의 삶을 결단해야겠죠.


대학 바깥에서도 청년이 머무를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셨어요.


프리랜서도 마찬가지고 소소하게 자기 일을 하는 친구들이 많아요. 경제적인 수입으로 환원되지 않더라도 자기가 활동에 재미를 느끼는 일을 하거든요. 그런데 그 친구들이 머무를 곳이 없어요. 오전 10시에 카페에 가면 다 문제집을 풀거나 노트북을 보고 있어요. 개인들이 공간을 가지려면 돈을 내야 하는 거죠. 대학에 속해 있지 않거나 도서관에 있기 어려운 친구들을 위해서 지자체에서 공유 공간을 만들어 줄 수 있다고 봐요. 노인정은 동네마다 있잖아요. 그럼 탁아소도, 청년들이 놀 공간도 동네마다 있어야 해요. 마을회관처럼 전 세대가 어우르는 공간도 있으면 좋겠고 떠돌아다니며 일하는 사람들이 작업할 공간도 있으면 좋겠어요. 거기서 사람들을 만나면서 또 교류할 수 있어야 하고요.


기본소득이 요새 이슈입니다. 책에서도 기본소득 이야기가 나오고요. 정책적으로, 실제로 실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단 저는 정책연구자가 아니기 때문에 정책 차원으로 이야기하려면 더 공부해야 할 것 같아요. 흐름으로만 보면 사회가 더는 성장할 수 없고, 비용은 국가가 부담해야 해요. 국가가 저성장시대의 사람들과 같이 살아가는 방법의 하나가 기본소득인 거고요. 사람들이 소득이 끊어진 상황에 부닥치면서 소모되는 감정이나, 다시 사회에 돌아오기 위해 투여되는 사회적 비용들이 있잖아요. 어떻게 보면 기본소득으로 그런 비용이 불필요해질 수 있다는 거죠. 사후적으로 정책을 마련할 게 아니라 사전에 조금 더 인간다운 삶을 살게 해주는 사회적 안전망을 만들자는 의미로 접근할 수 있을 거예요.


대학교 무상교육도 이야기하셨어요.


이미 많은 분이 주장한 내용이에요. 그럼 그 돈 어디서 마련할 거냐는 반박이 제일 쉽게 떠오를 텐데, 어떻게 보면 사교육비가 17조에 학자금 대출 누적액이 23조가 넘어가는 상황에서 10년 내 그 돈만 모아도 무상교육은 충분히 가능해요. 국민연금 들면서 따로 사보험 드는 것처럼 대학교육도 안 가자니 불안하니까 추가로 하는 거잖아요. 그 불안 심리 때문에 수천만 원 빚을 지고 다니도록 강요하는 건 정말 못 됐죠.


도망가면 안 되니까 붙들어 놓는 족쇄처럼요.


여담이지만 책 표지 만들 때 절대 족쇄는 넣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어요(웃음) 부채 관련된 책에는 다 하나씩 달려 있더라고요.


아무래도 빚을 생각하면 자유를 빼앗긴 느낌이 들어서 그런 게 아닐까요?


책 제목을 보고 접하고 싶지 않은 불편한 내용이라고 느끼실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읽어보시면 그렇게 우울한 책은 아니에요. 빚이 금기시될 필요는 없거든요. 빚은 엄마도 지고 아빠도 지고, 옆집 아저씨도 지고 S그룹 사장님도 지는 건데, 학자금 대출뿐만 아니라 집, 결혼, 육아 등 삶의 고비마다 대출을 받을 수 있을 텐데, 그때마다 내가 이런 세상에 살고 있어서 대출을 받고 있구나, 그럼 빚진 사람끼리 모여서 우리가 왜 빚을 지는지 이야기를 해 보자는 거죠.


표지 이야기가 나왔으니, 작가님의 지금 상태는 표지 그래프에서 어디쯤인 것 같으세요?


정서적으로는 제일 위인데, 경제적으로는 이제 겨우 연체금 정리했으니까 마이너스이지 않을까 싶은데요. 아마 돈을 벌어서 오로지 부채만 상환해야 하는 삶을 살았다면 정서적으로 이렇게 높은 상태는 아닐 거예요. 하지만 졸업하고 나서 혼자 있을 때 불가능했던 일을 친구들에게 조금씩 이야기하니까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거든요. 그러면서 시장에서 구매하고 소비해야 하는 부분이 훨씬 많이 줄었어요. 연대랑은 다른 방식으로, 그런 만남과 자리가 더 많이 만들어졌으면 좋겠어요.


프로필에 청춘희년네트워크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계시다고 쓰여 있어요. 청년 부채 경감 및 교육상담, 문화활동 등을 하신다고요.


지금은 청년부채 이슈에 관심 있는 단체들의 연대체 형식으로 운영하고 있고요. <쿼바디스> 영화 수익금으로 시작해서 서울에서 활동하다 올해 다른 지역에서도 모델을 만들고 싶다고 하셔서 확산하고 있어요. 부채 상담만으로도 빚을 줄일 수 있는 게 많아요. 이용할 수 있는 제도를 소개해 주거나 대부업을 끊을 수 있는 과정을 소개해주기도 하고요. 혼자 있을 때는 두렵고 어려워도 주변에 비슷한 사람이 모이면 거대한 힘은 아니어도 온기 정도는 느낄 수 있잖아요. 프로그램 참여했던 친구들이 소모임을 만들어서 운영하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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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할 필요 없다


학자금 대출을 받으려면 부모의 서약이 있어야 한다면서요.


가족이 폭력을 행사했을 수도 있고 만나지 못하는 상황이 있을 수도 있는데 자꾸 가족 안에 묶어서 보고 있어요. 계속 엮으려고 하는 거죠. 대학원생은 삼십 대 후반, 많으면 마흔 살까지도 결혼을 안 하면 부모님의 소득을 증명해야 돼요. 말도 안 되잖아요, 마흔 살이 넘었는데 대출을 받으려면 부모님 소득을 증빙하라는 게. 국가에서 복지 시스템을 짤 때 항상 가족 단위로만 봐서 학자금 대출도 가족 단위로 연결해서 보는데……. 대학생들은 그 부모가 정말 잘사는 사람이든 못사는 사람이든 공부하는 이 시기 자체는 안정적으로 공부할 수 있도록 해줘야죠.

 

‘부모는 자식에게 대학 등록금을 내주지 못하는 것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갖지 말고, 자식도 장학금을 타지 못한 것에 대해 부모에게 죄송스러운 마음을 갖지 말자. (중략) 우리는 세금으로 충분히 교육비를 지불하고 있으며, 국가는 대학에 각종 지원금을 지불하기 때문에 대학 등록금 인하를, 더 나아가 대학 무상 교육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65쪽)

 

빚을 져서 부모님에게 죄송스럽다는 대학생들이 많습니다.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빌린 곳은 한국장학재단인데 한국재단을 채권자로 생각하지 않고 부모를 채권자라고 생각해요. 원래는 협상하려면 채권자와 채무자가 해야 되는데, 부모자식 간 협상을 하면 둘 다 어려운데 협상이 안 되잖아요. 내가 빚을 진다는 건 반대로 누군가는 돈을 빌려주기 때문에 빚을 지는 거예요. 이제까지 보이지 않았던 누군가가 있고, 우리는 궁극적으로 그 누군가에게 빚지지 않을 권리를 주장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 친구들이 결혼해서 애를 낳고 빠른 친구는 학부모가 되는데, 그 아이가 대학에 다닐 때는 정말 이런 세상이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정말 그랬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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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가천주희 저 | 사이행성
『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가』는 청년 빈곤과 채무에 관한 보고서이자, 오늘도 추심과 불안에 시달리는 ‘채무자가 된 청춘들’의 심리를 탁월하게 포착한 문화기술지이며, 나아가 청춘의 ‘빚 지지 않을 권리’, 공부할수록 가난해지지 않는 사회를 위한 그 첫발걸음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노홍철 “철들지 않은 사람들이 오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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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구 용산동2가 1-92. 노홍철이 직접 운영하는 ‘철든책방’ 주소다. 철들어서가 아니라 노홍철이 들어 있어서 ‘철든’ 책방. 노홍철은 해방촌이라는 작은 동네를 알게 된 후, 이곳 문화에 푹 빠졌다. 서울 중심가에 있지만 시골 읍내 같은 분위기, 개성 강한 아티스트들의 작업을 접하면서 아지트 같은 문화공간을 상상했다. 책방으로 공간을 구성한 건, 독립출판물의 색다른 매력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철든책방』은 ‘제일 시끄러운 애가 하는 제일 조용한, 만만한 책방’이 만들어진 과정을 기록한 책이다. 이 책의 인세는 전액 탄자니아 남쪽 음트와라 지역 학교를 돕는 데 쓰인다.

주문, 영업, 청소 모두 노홍철 혼자 하는 ‘철든책방’을 두고 사행시를 지어달라는 유치한 질문을 했다. 운을 띄우자마자 노홍철은 1초도 주저 없이 입을 뗐다. “‘철’들고 싶은 사람도 오고 철없는 사람도 많이 오는, ‘든’ 사람만 오는 게 아니고 안 든 사람이 더 많이 오는, ‘책’을 싫어하는 사람이나 어려워하는 분들이 만만하게 오는 공간, ‘방’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공간, 노홍철의 방이 아니라 내 방이라고 생각하고 편하게 놀러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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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입고 주문, 행복하더라고요

8월 말에 책방을 열었으니 두 달이 좀 지났어요. 거의 주말에만 열었는데요. 다녀간 사람들의 숫자가 대략 어느 정도 될까요?

그게 셀 수가 없어요. 직업 특성상 오후 2, 3시쯤 열어 8시에 마감을 하는 게 목표였는데, 손님들이 다 빠지고 정리까지 하면 보통 11시예요. 사실 책방을 비밀스럽게 하고 싶었는데 오픈 시간만 되면 맛집처럼 줄이 길게 늘어서요. 믿기지 않는 상황이에요. 굉장히 많이 오시더라고요. 정말 찾기 어려운 곳이에요. 주차는 커녕 입구도 굉장히 좁고요. 책에도 썼지만 저는 좋으면 미치거든요. 작년에 해방촌이라는 공간을 알게 됐고 동네 서점, 독립출판물을 좋아하게 됐어요. 스토리지북앤필름부터 시작해서 별책부록, 고요서사를 운영하는 친구들과 친해졌고, 제 지인들과도 이런 좋은 문화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제가 해방촌에 공간을 만들면, 이쪽 문화에 실례가 되지 않을까, 내 의도와 달리 피해가 생길 수 있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너무 환영해주는 거예요. 정말 조용히 이름도 없이 하려고 했는데, 무조건 이름은 있어야 하고 SNS, 홈페이지도 꼭 필요하다고 조언해주더라고요. 그게 오는 사람들에 대한 예의라고요. 책방 이름은 끝까지 안 지으려고 했어요. 우연히 발견하면 오는 곳으로 만들고 싶었는데, 친구들이 꼭 있어야 한다며 같이 지어준 거예요.

‘철든책방’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 절묘한 네이밍이라고 생각했어요.

책방 ‘별책부록’을 운영하는 승현이가 지어준 이름이에요. 제가 지금까지 사업을 할 때 홍철투어, 홍철동산, 노홍철닷컴 등 제 이름을 넣었잖아요. 책방 이름을 짓는다면 ‘홍철’이 들어가야겠다 생각했는데, 승현이가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제가 형을 몰랐으니까 그런지도 모르겠는데 TV로 보는 이미지보다는 철이 든 것 같다”고. 그러더니 ‘철든책방’이라는 이름을 던져줬어요. 듣자마자 이게 딱이다 싶었어요. 책방을 열면 모든 걸 제가 다할 생각이었어요. 자질구레한 청소부터 책 주문, 이벤트 등 모든 걸요. 철든 건 여전히 없지만, 노홍철이 들어 있는 공간이니까 ‘철든’, 좋더라고요

 

실제로 “노홍철이 철들었냐?”는 이야기도 많이 듣는다고요.

아직 멀었죠. 앞으로도 멀 것 같은데요. 많은 분이 ‘철든’을 마음의 성장으로 생각하시더라고요. (웃음)

책은 많이 팔리나요?

매출이 놀라워요. 제가 본업이 따로 있기 때문에 손님들한테 굳이 책을 사라고 하지 않아요. “안 사도 돼요”, “포장돼 있는 책 다 뜯어서 봐도 돼요”라고 말씀드리는데, 워낙 찾기 어려운 곳에 오셔서 그런지 뭐라도 하나 사는 분들이 많아요. 책에도 썼지만 처음에는 소소하게 찾아주실 줄 알고 책 수량을 되게 적게 잡았어요. 그런데 첫 주 만에 책방이 텅텅 빈 거예요. 서둘러 재입고를 하고 독립 출판 제작자들에게는 일일이 연락을 돌렸어요. 그런데 한 제작자가 ‘다시 인쇄하기로 했다’는 거예요. 한동안 책이 안 나가서 제작을 안 하고 있었는데 제가 재입고 주문을 하면서 새로 책을 찍게 됐다고요. 아, 얼마나 행복하던지요. (웃음)

기획전도 열었어요.

김제동 형님이 추천하는 책을 한 코너에 소개했는데 반응이 대단했어요. 불티나게 팔렸어요. 그 옆에는 오상진 아나운서가 추천하는 책들이 있는데, 상진이가 평소에도 책을 엄청 많이 읽어요. 제가 없을 때 책방에 와서 책을 이만큼 주고 갔어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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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책을 써보자는 제안을 많이 받지 않았나요? 10년 전쯤 서울 여행서를 펴내기도 했고요.

종종 받았어요. 하지만 앞으로 내가 책을 또 쓸 건가? 생각해보면 아닐 것 같아요. 뭐랄까, 동료들이랑 이야기를 해보면 다들 속이 깊은데 저는 그렇지 않아요. 내가 이런 이야기를 했나 싶을 때가 많을 정도로 생각이 바뀔 때도 많고요. 기록을 한다는 게 되게 중요하지만 또 어렵잖아요. 평소 인터뷰를 거절하는 것도 너무 부족해서예요. 『철든책방』은 제가 공간이라는 걸 너무 좋아하니까 그걸 한 번 담아보자는 생각으로 쓴 책이에요. 판매에 부담을 갖기보다 책을 만드는 과정이 재밌었으면 했어요. 편집자가 고맙게도 제 생각을 잘 받아줬고요. 처음에는 책방 사진이 많이 들어 있는 책정도라고 생각했는데, 제 이야기를 넣어보자고 해서 수다를 좀 떨었어요. 막상 책이 나오니 신기하긴 해요. 재입고 주문, 행복하더라고요

 

아쉬운 부분은 없나요?

책방을 만든 과정처럼 천천히 만든 책이라서요. 마감을 타이트하게 잡지 않았는데, 막상 만들다 보니 교정할 부분이 많더라고요. 책방을 연 뒤로 재미있는 일이 많이 생겼잖아요. 그 내용이 들어가지 못한 게 좀 아쉽고, 제 말투를 많이 안 살린 게 잘한 건지 모르겠어요. 맞춤법이 틀리더라도 제 말투를 살리고 싶었거든요.

독립출판물 제작 워크숍도 들었다고요.

사진집 정도는 만들 수 있어요. 앞으로 시간이 나면 프로그램을 제대로 배워서 부담 없이 책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전문적인 출판사와 하는 것도 좋지만, 제가 깊이가 없는 것같아서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어요.

‘조심스럽다’는 인상이 책에서도 무척 많이 비쳤는데, 지금도 그렇게 느껴집니다. 책방이 있는 곳이 주거공간이라서 더 조심하는 부분이 있을 것 같아요.

모든 걸 떠나서 가장 어려웠던 부분이에요. 철든책방이 집을 개조한 공간이라서 주거공간 한복판에 있잖아요. 처음에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와주실 줄도 몰랐고요. 책방을 연 이유 중에는 어떤 이벤트를 열 때 상대적으로 덜 피해를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어요. 주민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았으면 했고, 만약 피해가 생긴다면 그 이상의 이익이 있었으면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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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지 않은 거 잘 알지만, 하고 싶은 거 하세요.

팬들부터 시작해서 의외로 나이가 많은 분들도 오신다고요.

특히 기억에 남는 분이 있어요. 아들이랑 같이 오신 분인데, 주인공이 아들이 아니라 아들의 여자친구였어요. 서로가 처음 만나는 날에 어떻게 아셨는지 책방에 오신 거예요. 여자친구 입장에서도 얼마나 어려워요. 여긴 별의별 책이 다 있잖아요. 세계 명시도 있지만 오해할 소지가 있는 뜨악 하는 제목의 독립출판물도 있으니까요. 그런데 이분들을 자세히 보니까 대화를 굉장히 많이 하시더라고요. “처음 인사를 왔으니까 계산은 내가 한다”면서 지갑을 선뜻 여시는데 정말 보기 좋더라고요. 제가 기분이 너무 좋아서 마감을 끝내고 혼자 먹으려던 포도를 드렸더니, 흔쾌히 받아주셔서 또 고맙더라고요. (웃음) 저한테 옷을 벗어주시는 분도 있고 책 선물을 해주는 분, 떡을 주는 분도 있고, 정말 그냥 가시는 법이 없어요. 동네 어르신들은 해방촌의 의미를 설명해주시기도 하고, 아, 너무 좋아요. 아직까지는 큰 피해가 없는 것 같아 다행이에요.

 

이렇게 특별한 공간인데 더 많은 사람이 오려면, 아무래도 직원을 한 명쯤 두는 게 낫지 않나요?

 

‘철든책방’이라는 이름을 지어놓고 제가 책방에 없으면 말이 안 되잖아요. 처음부터 아예 생각을 안 했어요. 그런데 막상 영업을 해보니까 시간이 너무 부족한 거예요. 입장에서 계산까지 세 시간이 걸릴 때가 있어요. 신기한 건,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짜증이 날법도 한데 다 이해해주시고 표정도 밝아요. 연세가 좀 있으신 부모님들은 좀 이해가 안 가실 거예요. “다른 서점에도 대부분 있는 책인데, 사인을 받지 않을 손님은 따로 계산할 수 있게 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도 하시는데, 이 말이 맞아요. 피해를 주는 거니까요. 고민되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저는 그래도 정말 신나요. 책방을 열고 일초도 쉰 적이 없어요. 화장실도 못 가고 전화도 못 받지만, 저와 마주하고 해주시는 말들이 너무 신나고 감사해요.

 

방명록처럼 꾸며진 벽도 있더라고요.

 

세계 문학 전집에 나오는 좋은 글귀를 모아놓은 책이 있더라고요. 너무 좋은 글이 많아서 비치하고 싶었는데, 좀 특별하면 좋을 것 같아서요. 뒷면에 책방에 바라는 점이나 저한테 하고 싶은 말을 적어달라고 했어요. 책방영업을 마치고 메모를 쭉 보는데, 믿기지 않을뿐더러 정말 고마워요. 지방에서 오시는 분, 외국에서 오시는 분들도 있고, 그냥 너무 감동스러워요.

 

특히 기억에 남는 말이 있나요?

 

“찾아오는 게 너무 힘들어서 진짜 짜증이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줄까지 길어서 인내심에 한계가 왔다. 그런데 계산할 때 홍철 씨와 이야기를 하고 나니까 순식간에 짜증이 해결됐다.”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너무 기분 좋더라고요. 책방이지만 좀 특별한 공간이 많잖아요. 워크숍을 진행하는 공간도 있고 게스트하우스처럼 운영도 하고요.

 

인테리어에 관한 이야기는 책에도 자세히 나와 있지만, 정말 마음에 쏙 드는 공간을 하나만 선택한다면요?

 

이런 말씀드리기 무척 조심스럽지만 ‘홍철전’이라고, 제 신전을 만들었어요. 작년에 유럽여행을 갔다가 한 교회에서 소원을 빌었어요. 그동안 저는 유명한 성당이나 교회에 가서도 소원 같을 걸 빌어본 적이 없었는데 당시 함께 있었던 형이 자꾸 권해서 빌었어요. 나중에 숙소에 들어와서 소원을 비는 제 사진을 봤는데, 깜짝 놀랐어요. 너무 간절하게 소원을 빌고 있더라고요. 딱히 종교는 없지만 마음을 다잡고 스스로 용기를 줄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도움이 될 것 같았어요.

 

 

책을 출간하고 첫 인터뷰라고 들었어요. 매니저 없이 혼자 오셨는데, 방송 스케줄이 아니면 혼자 많이 다니나요?

 

그렇죠. 원래 제가 장사를 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방송을 시작했잖아요. 햇수가 길어지면서 방송은 느는데, 장사를 했던 기술은 점점 사라지는 것 같더라고요. 예전에는 정말 밤에 침대에 누우면 아이디어가 훅훅 터져서나는 천재인가 싶었는데, 언젠가부터 이게 안되더라고요. 뭐라도 사소한 것들을 직접 해야겠구나 싶었어요. 하면 할수록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좀 예민한 것 같아요.

 

“하고 싶은 거 하세요”라고 적힌 에코백이 눈에 띄어요. 인기가 많은 아이템이라고 들었는데요. 사인할 때도 꼭 적어주는 글귀 아닌가요?

 

정말 오래전부터 쓴 말인데요. 제 사인이 엄청 길잖아요. 요청하는 사람이 부담스러울 정도로요. ‘잘된 누구’, ‘더 행복할 누구’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그건 저한테 하는 다짐이기도 해요. 제가 정말 아무것도 없고 사람들에게 한심하게 보일 때 “나는 하고 싶은 걸 할 거야”라고 말하면 “어휴, 그러니까 이 모양이지”라고 했어요. (웃음) 지금은 또래보다 좀 여유있게 생활하고 있으니까 “배부른 소리를 한다”고도 하는데요. 이게 어떤 의미인지 저도 잘 알거든요. 그래서 되게 조심스러운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이야기하는 건, 어렵겠지만 지치지 말자는 주문이기도 해요. 물론 너무 어려운 거 아는데 저도 엄청 노력하거든요. 나름대로는 굉장히 오래 생각하고요. 그런데 막상 실행에 옮기면 너무 짜릿해서 어려움을 못 느껴요. 그래서 저 같은 사람도 경험했으니까, 한 분이라도 이런 걸 더 느꼈으면 하는 바람에서 사인이 좀 길어요. (웃음)

예기치 못한 자숙 기간을 가졌잖아요. 자발적인 휴식이 아니었기 때문에 힘든 시간이었겠지만, 어떻게 보면 방송인으로서 소중한 시간이기도 했겠다 싶어요.

너무 조심스러운데요. 이 시간이 좋았다고 해도, 제가 너무 큰 잘못을 해서 이런 시간을 가진 거니까요. 좋았다, 힘들었다는 말조차 조심스러워요. 제가 책방에 신전도 만들었지만, 그 옆에 거울로 둘러싸인 방도 만들었어요. 그 시간을 절대 잊고 싶지 않거든요. 나쁜 기억이든 좋은 기억이든 시간이 지나면 망각하게 되잖아요. 그러기 싫어서, 그러면 안 될 것 같아서 만든 방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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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어려워했던 사람들, 오세요

책방 주인이니까 안 물어볼 수가 없네요. 요즘 읽는 책은 무엇인가요?

그동안 세계 문학 전집 중에 읽은 책이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달랑 한 권이었어요.그래서 세계 문학을 좀 보려고도 하고 독립출판물도 많이 봐요. 이게 묘하더라고요. 제가 그동안은 책을 정말 안 읽고 싫어하는 사람이었는데, 보다 보니까 계속 보고 싶더라고요.

 

인터뷰할 때마다 종종 묻는 질문인데요. 노홍철 씨에게 ‘지금까지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은 무엇인지 궁금해요.

 

이게 그렇더라고요. 아직 제가 서른여덟 살밖에 안 됐지만, 예전에는 정말 잘한 선택, 정말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했던 것들이 나중에는 달라질 때가 많아요. 그 선택 때문에 생각지 못한 즐거움이 생길 때가 많았거든요. 좋고 나쁜 기준으로만 선택했다면, 맛볼 수 없는 경험이 많았을 것 같아요. 이제는 최악수도 정말 묘수였던 게 있어요.

예상치 못하게 돈을 좀 많이 벌게 된다면, 하고 싶은 일이 있나요?

제가 예전부터 돌아이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잖아요. 사람들은 미쳤다고 하는데 그 말이 싫지가 않았어요. 만약 돈이 많이 생긴다면요. 오래된 병원을 구해서 환자들만 올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요즘 환자들이 많잖아요. 환자처럼 보이지 않는 환자도 많고, 환자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환자인 경우도 많고요. 설명하긴 좀 어렵지만 그런 사람들이 부담 없이 즐기는 유용한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아니면 오래된 여인숙을 철든책방처럼 조금 손봐서 많은 사람이 편하게 쉬거나 즐기고 저와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도 좋을 것 같아요. 만들까도 생각 중이고요.

 

아침 라디오도 진행하고 있고 주말에는 책방도 열고, 쉬는 시간이 없어 보여요. 너무 열심히 달리면 그만큼 힘들어지는 부분이 있을텐데요. 휴식 시간도 어느 정도 확보해놓아야 하지 않나요?

 

능력이 좋은 분들은 방송을 여러 개 해도 잘하시거든요. 그런데 저는 하나를 하면 온전히 거기에 집중해야 하는 스타일이에요. 그래서 라디오를 하고 있을 때는 웬만하면 고정 출연은 하나 정도만 하려고 해요. 특집물이나 짧은 파일럿은 할 수 있겠지만요.

‘철든책방’이 처음 의도와는 달리 북적북적한 서점이 됐잖아요. 책방 주인으로서, 정말 오셨으면 하는 대상이 있나요?

지금은 책을 좋아해서 오는 것보다는 공간에 대한 호기심, 저에 관한 호기심으로 오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어쨌든 제가 책방을 연 게, 책을 급하게 좋아하게 돼서 만들었던 것이고, 사람들이 책을 사가니까 기분은 좋은데, 이게 맞나 싶기도 하고요. 하지만 제가 책만 파는 게 아니라 책을 볼 수 있는 공간도 만들었으니까요. 서점을 운영하는 친구들에게 “지금 이 상황이 맞는 거냐?” 묻기도 했는데, 이렇게 조언해주더라고요. “형이 이야기한 것처럼 책방의 재밌는 타이틀이나 분위기를 보고 왔어도 책을 좋아하게 되면 좋은 거 아니냐”고요. 맞더라고요. 그래서 책을 어려워하거나 싫어했던 분들이 많이 오면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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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든 책방노홍철 저 | 벤치워머스
이 책의 가장 기본이 되는 뼈대는 철든책방이라는 ‘공간’이 어떻게 바뀌어서 탄생했는지를 다룬 인테리어 ‘비포&애프터’다. 낡은 구옥이 새 생명을 얻기까지의 시간을 355장의 사진으로 기록했다. 인테리어 관련 실용적인 정보와 함께 노홍철이 지향하는 라이프스타일을 만나는 재미도 쏠쏠하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창옥 “제 밑바닥은 대부분 슬픔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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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이 그의 팬임을 자처한다. 그의 강연이 너무나 재밌다고, 그래서 시간가는 줄 모르고 듣게 된다고, 울고 웃으며 이야기를 듣고 나니 진한 위로가 남았다고, 고백한다. ‘스타 강사’, ‘소통의 달인’, ‘강사들의 롤모델’, ‘힐링 퍼포먼스의 일인자’ 등 수많은 수식어로 설명되는 한 남자, 김창옥에 대한 이야기다. 

 

제주도에서 태어나 공업고등학교를 거쳐 성악을 전공한 김창옥은 ‘대한민국 1호 보이스 컨설턴트’로 활동하다 전문 강사의 길로 접어들었다. 다수의 기업과 정부기관, 학교, 단체 등 2천여 곳에서 강의했으며 서울여대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CBS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의 대표강사로 활동하며 KBS의 <아침마당>, <여유만만>, EBS의 <60분 부모> 등에 출연했다. 최근에는 tvN의 <어쩌다 어른>에서 소통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대중의 관심과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당신은 아무 일 없던 사람보다 강합니다』에는 김창옥의 강연 서른다섯 편이 실려 있다. 실제 강연의 내용을 옮긴 만큼,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을 때처럼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그러나 결코 쉬이 흘려 보낼 수 없는 아릿한 상처와 포근한 희망이 담겨있다. 그것은 김창옥 자신의 것이면서 동시에 모든 이의 것이다. 청각장애를 가진 아버지와 글을 읽지 못하는 어머니,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서 자란 기억은 저자만의 것이지만, 그 과정에서 경험한 좌절과 열등감 같은 감정들은 결코 낯설지 않다.

 

상처를 꺼내 보이는 그의 몸짓에는 주저함이 없다. 심지어 저글링 하듯 자유롭게 상처를 주무르며 웃음의 소재로 삼기도 한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얻은 것들이 너무나 많다고 이야기한다. 그가 일상에서 발견한 깨달음은 우리에게 희망의 증거가 된다. 삶을 반전시킬 수 있다는 힘과 용기를 가지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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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맛집 설명서 같은 거예요


지금까지 5천여 번의 강의를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이번 책에는 그 중 35편이 실려 있는데요. 내용을 추리는 것도 쉽지 않으셨을 것 같아요.

 

특강은 5천 번 정도 했는데요. 책에 실린 내용은 그것과는 다른 내용으로 3백회 정도 강연했던 거예요. 5년 동안 해왔던 강연이고, 지금도 하고 있는데요. 그 내용을 바탕으로 썼어요.

 

강연 전에 원고를 쓰고 암기하시나요?


그렇지 않고요. 중요 주제나 에피소드만 기억한 채로 강연을 시작해요. 그리고 현장에 맞게끔 이야기하죠. 원고 없이요. 그렇다 보니까 이번 책도, 오히려 거꾸로, 강연한 내용을 정리했어요.

 

책을 엮으시면서 예전에 강의하신 내용 다시 보게 되셨는데요. 어떤 느낌이 드셨나요?


책을 쓰면서 제 생각을 한 번 더 정리할 수 있으니까, 필터링 되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이건 사족이다, 욕심이다’ 싶은 부분들을 거르게 되는 거죠. 그렇다 보니까 쓸데없는 말이 훨씬 더 빠져있고요(웃음). 책은 조금 부끄러운 게 있어요. 말은 하고 나면 사라지는, 책은 완성된 하나의 작품으로 남는 거니까요. 그런 점에서 조금 부끄러움이 있죠.

 

강연을 준비하실 때 매번 다른 주제를 찾으려고 하신다고요.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 같아요.


뻔하다고 생각하는 일상에서 새로운 걸 발견하려고도 하고, 일상의 바퀴에서 벗어나서 다른 걸 경험하려고도 하죠. 솔직히 스트레스예요. 평범한 일상에서도 특별한 걸 발견해내려고 해야 하고, 일상을 벗어나서 특별한 걸 경험해야 되거든요. 그래서 주변 분들은 저한테 자꾸 자기계발을 해야 한다고, 강연을 줄이고 경험을 하라고 말씀하세요. ‘오로라를 보러 가자, 우주여행을 가자’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들도 많아요(웃음). 그런 게 사실 스트레스이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 보면 저를 훈련시키는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자기 안의 이야기라는 건 한정되어 있기 마련이잖아요. 강사로서 많은 이야기들을 들려주시다 보면, 소진된다는 불안감도 느끼실 것 같은데요. 그럴 때는 어떻게 하세요?


예전에는 저도 모르게 타임 테이블을 강연료로 환산하던 때가 있었어요. 그러니까 어느 날부터는 영화 한 편 보기가 엄청 어려워지더라고요. 친구들과 만나서 이야기 나누는 것도 어려워지고요. 모든 사람들에게 타임 테이블이 곧 돈이지만, 그 액수가 조금씩 올라가다 보면 스스로 내려놓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그러다가 마음의 문제가 생긴 거죠.

 

슬럼프를 겪으셨던 건가요?


3년 전 쯤에도 한 번 그랬던 것 같아요. 조금 미련한 거죠. 제가 이런 책을 쓰는 것도 굉장히 지혜로워서가 아니에요. ‘저는 이렇게 하니까 힘들더라고요’, ‘저는 이렇게 하니까 부끄럽더라고요’ 그런 이야기들을 하는 거죠. 책에도 그런 이야기가 있거든요. 호텔에서 강의를 하면서 숙박을 제공 받은 적이 있는데, 에비앙 같은 비싼 생수나 샴푸, 샤워젤 같은 샘플들을 챙겨 나왔었어요. 그러다가 어느 날은 ‘내가 이걸 왜 챙길까’ 싶어서 가지고 나오지 않고요. 에비앙을 먹어보고 슈퍼에서 다시 사다 놓기도 하고, 그러면서 ‘나는 왜 이럴까’ 싶기도 했어요(웃음). 그런 거죠. 자기 돌아봄의 부끄러운 고백이라고 할까요. 제가 부끄럽게 경험한 길을 들려드리는 거예요. 맛집 설명서 같은 거죠.

 

맛집 설명서요?


네, 그런 것 같아요. ‘맛집이라고 하는데 실제 가보니 별로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별로 맛이 없었어요, 그런데 다른 집은 맛이 있더라고요’ 하는 식으로, 제가 살아오면서 경험한 소소한 일들을 말씀드리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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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을 말하는 이유? 불통을 잘 아니까!


슬럼프는 어떻게 극복하셨어요?


3년 전쯤부터 영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영화배우 일을 하면서 많이 좋아졌고요. 이건 굉장히 부끄러운 이야기인데, 처음 강연을 할 때부터 한 10년까지는 ‘나는 집에 돈을 찍어내는 기계가 있어도 강연을 할 거야’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요즘은 그런 기계가 있으면 강의를 조금 줄이고 싶어요(웃음). 조금 곤란하거나 힘든 강연은 줄이고 싶죠. 그런데 영화를 하려면 시간이 할애되고, 저는 신인이니까 상업성이 별로 없잖아요. 돈은 계속 들어가는데 아직 이 일로 돈을 벌지는 못하는 거죠. 그러니까 거꾸로 강연이 너무 고마워지는 거예요.

 

하고 싶은 또 다른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거네요.


네, 재정적 지원을 해주는 거예요. 그러니까 저도 직장생활 하시는 분들을 더 이해하게 돼요. 모든 직장인들이 출근할 때, 업무를 시작할 때, 신이 나는 건 아니잖아요. ‘나는 로또에 당첨 안 되나?’ 생각하면서 회사를 다니기도 할 거고요. 정말 회사를 좋아하면 원 없이 좋죠. 그런데 그렇지 않을 수도 있고, 처음엔 그랬다가 안 그럴 수도 있잖아요. 그러니까 저도 다른 분들에게 추천을 하는 거예요. 정말 집중이 되고, 몰입이 되고, 돈과 시간을 들일만한, 자신이 반응하는 무언가를 하면 좋겠다고요. 직장이 그런 대상이 된다면 최고의 이상일 거고 천직이겠죠. 그런데 그건 0.3% 정도에만 해당되는 이야기잖아요.

 

그렇다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아주 작게라도 퇴근한 후에 자신이 집중할 만한 무언가를 발견하면 좋겠어요. 그 일을 하려면 돈이 필요한데, 직장이 부분적으로 지원을 해주잖아요. 그러니까 굉장히 고마워지는 거죠. 저도 그런 거예요. 고마워지니까 슬럼프에서 조금 벗어나게 되는 거고요. 이건 나중에 안 사실인데요. 사람이 명상이나 기도를 해도 호르몬과 뇌파가 안정되지만, 감사하다고 느낄 때 그보다 더 강력한 안정을 얻는대요. 그러니까 이런 경험을 통해서 또 강인함이 생기는 거예요. 제가 보기에는 감사하다고 느낄 때 인간의 몸이 굉장히 단단해지고 면역력이 높아져서 슬럼프에서 나오게 되는 것 같아요.

 

현재 촬영 중이신 작품이 있나요?


네, 어제는 고사를 지내느라 새벽 3시에 끝났어요. 고사 지내고 나서 배우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에 같이 있었어요. 저는 신인배우니까 딱히 할 말은 없지만, 같이 있으면서 그 기운을 먹는 것 같아요. 책에서도 ‘그가 없는 곳에서도 그를 생각하나요?’라고 물었는데, 영화배우들은 정말 그런 것 같아요. 촬영 현장이 아닌 곳에서도 계속 영화 이야기만 해요. 그건 사랑이잖아요. 그렇게 살아야 된다는 게 아니라, 그건 직업이 아니라 사랑인 거죠.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의 기운을 계속 보고 싶은 거예요. 그 기운을 먹고요. 영화대사처럼 ‘살아있네, 이 사람들 정말 살아있네’라는 생각이 들죠.

 

강사로서 저자님은 너무나 유명한 분이시고, 많은 곳에서 서로 모셔가려고 하잖아요. 그런데 영화 촬영장에서는 그냥 신인 배우예요. 굉장히 느낌이 묘하실 것 같아요. 어떠세요?


저한테는 이게 완전한 우주여행인 것 같아요. 강사로서 저는 저만의 우주에서, 저의 구역에서 어떤 역할을 하던 존재였잖아요. 강연장에 가면 사인을 해달라고 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회사의 높은 분들이 오셔서 맞아주기도 하세요. 그런데 촬영장에 가면 신인이거든요. 강사로서 제가 어떤 위치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는 아무 의미가 없죠. 그런데 그때 저는 ‘강이 바다를 만날 때 같은’ 느낌을 받는 것 같아요. 첫 느낌은 내가 사라지는 것 같죠. ‘나는 뭐지? 지금까지 내가 했던 건 뭐지?’ 싶고, 내 존재가 사라지는 불안한 느낌이 조금 있어요. 그게 두렵고 낯설죠. 그런데 ‘계속 흐르면 나도 바다가 될 지도 몰라’라는 믿음을 갖는 것 같아요.

 

소통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오셨어요. 최근에는 tvN의 <어쩌다 어른>에서 소통을 주제로 강연을 하셨고요.


제가 오랫동안 불통의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소통을 갈급해 했던 것 같아요. 저희 아버지가 청각장애가 있으시기도 하고, 제가 보기에는 아버지로서의 정서적 역할을 거의 못하세요. 아버지는 어렸을 적에 엄마(할머니)가 돌아가셨고 장애를 갖게 되셨는데, 그래서 세상으로부터 무언가 유입이 되지 못했잖아요. 아버지는 굉장히 성실하고 훤칠한 외모를 가지셨는데도, 그게 별 의미가 없어진다는 걸 어린 나이에 계속 보게 됐던 것 같아요. 사람은 외모도 중요하지만 외모보다 그 안에 무엇이 담기느냐에 따라서 최종적인 무언가가 결정된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고요.

 

힘든 청소년기를 보내셨을 것 같아요.


부모님도 사이가 좋지 않으셨어요. 엄마는 계속 ‘딴 놈하고 일 년만 살다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하시고, 누나들한테 ‘네 애비 같은 남자 만나지 말라’고 이야기하셨어요(웃음). 부모님이 같이 살면서 계속 비난하는 거예요. 원망하고, 욕하고, 싸우고, 아버지는 이해 안 되는 행동을 반복해서 하시고... 그러니까 제가 정신이 안 나간 게 다행인지도 몰라요. 그런 집에서 자랐고 돈도 없었고, 그러다 보니 ‘불통으로 인한 소통에 대한 목마름’이 엄청 생겼겠죠. 그런 거에 대한 목마름이 엄청 생겼겠죠. 열등감도 생겼을 테고, 자존심도 상했을 거고요. ‘나는 왜 항상 마이너일까, 왜 또래 아이들이 하는 걸 아무것도 못 할까’ 싶고요. 그 온갖 것들에 대한 목마름인 거죠. 그러니까 ‘소통을 해야지’라고 생각해서 소통에 대해 말한 게 아니고요. 목이 말라서 물을 찾은, 너무나 생물학적 이유였던 것 같아요.

 

 

삶을 반전시켜야 할 때, 유머가 필요해요


강연을 하실 때 청중들의 마음을 굉장히 잘 여시는 것 같아요. 이렇게 상처를 솔직히 내보이셔서 그런 것 아닐까요?


상처를 재밌게 열어서 그런 것 같아요. 상처 있는 사람 엄청 많잖아요. 저보다 상처가 많은 분들도 엄청 많으시고요. 물론 모두가 자기의 상처가 가장 크지만, 세상 사람 중에 상처 없는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그걸 드러내기는 쉽지 않죠.


그렇죠. 저는 상처를 조심히 꺼내는 게 아니라 그 상처를 가지고 저글링하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마음을 열고 받아들여주시는 것 같아요. ‘나는 항상 상처를 감춰왔는데, 상처를 저렇게 해도 되는 거야?’ 싶으시겠죠. 모든 사람 마음에 그런 게 있잖아요. 말하면 죽을 것 같아서 감추는 무언가가 있죠. 그런데 저는 그걸 아무렇지 않게, 조금 유쾌하게 말하는 거예요. 상처에서 나와서요. 상처에 들어가서 말하는 건 신파인 것 같아요. (울상을 지으며) ‘저희 아버지가 장애 3급입니다, 엄마가 저보고 머리에 똥 들었다고 했어요’ 이렇게 말하면 (듣는 사람도) 조금 불편하잖아요. 그렇게 말하지 않을 수 있는 건, 제가 자유로워져서 그런 것 같아요. 사실 제가 사람들한테 소개하고 싶은 건 자유 같은 거예요.

 

과거의 상처로부터 자유로워지셨다는 건가요?


그렇죠. 나의 열등감, 상처, 트라우마, 커리어... 나를 얽매는 것들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어떤 스님에게 왜 출가하셨냐고 물었더니 ‘자유로워지고 싶어서’라고 답하시더라고요. 저는 그 마음이 이해가 돼요.

 

‘나는 이런 상처를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괜찮아’라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말하자면 이런 거죠. 제가 오른팔에 화상 자국이 있거든요. 어렸을 적에 멸치젓국을 끓이는데 제 손이 솥 안으로 들어갔어요. 그런데 어머니가, 병원에 데리고 가셨어야 했는데, 열을 뺀다고 된장을 바르셨어요(웃음). 그렇게 하니까 (팔이) 깡마르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중학생 때 반팔을 안 입고 다녔어요. (팔에) 살도 안 찌는데, 사춘기 때다 보니까 여자 아이들이 나만 보는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버스를 타도 위에 달린 손잡이를 한 번도 잡은 적이 없고요. 의자에 달린 손잡이를 잡거나 그냥 서 있거나 했어요. 오늘은 제가 소매를 걷고 왔잖아요. 청소년 시기에는 이렇게 하지 않았어요. 긴팔을 입고 절대 소매를 걷지 않았죠.

 

흉터는 여전히 남아있지만, 흉터를 받아들이는 저자님의 태도는 달라진 거군요.


제가 자유로워졌다고 해서 이 흉터가 없어진 건 아니거든요. 그런데 그냥 있다고 말하는 거죠. ‘저는 여기 흉터가 있습니다’ 하고요. 저는 이게 자유인 것 같아요. 물론 흉터가 없어지는 것도 자유겠지만 제가 보기에 대부분의 흉터는 잘 안 없어지는 것 같거든요. 그러니까 나는 자유로워졌지만 흉은 남을 수 있는 거예요. 그런데 그냥 흉터가 있다고 말하고, 옷을 걷고 다니고, 누군가 저를 보고 ‘너 팔이 왜 그래?’ 하면 ‘아, 어렸을 때 젓국에 데었어. 그런데 엄마가 된장을 발랐더라고’ 이렇게 말을 하는 거죠. 이런 게 더 자유에 가까운 것 같아요.

 

저자님의 강연을 좋아하시는 많은 분들이 ‘너무 재밌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듣는다’고 이야기하세요. 유머 감각은 타고나신 건가요?


엄마가 조금 그런 게 있어요. 제가 ‘엄마, 아버지 아파?’ 그러면 ‘항상 아프다, 느그 애비는 항상 아파, 개미가 지나가도 아픈 사람이다’ 하세요. 보통 사람은 말을 일차원으로 하잖아요. 그런데 엄마는 입체적으로 하시는 거죠. ‘엄마, 나 홍삼 보냈어’ 하면 서울 엄마들은 ‘그래, 잘 먹을게’ 아니면 ‘뭐하러 보내니’ 하시잖아요. 그런데 저희 엄마는 ‘창옥아, 보내지 마. 느그 애비 저런 거 많이 묵으믄 죽을 때 언능 안 뒤져브러’ 하세요.

 

어머니께서 전라도 분이세요?


해남 분이세요.

 

역시 전라도 분들은 입담이 정말 뛰어나신 것 같아요(웃음).


제가 ‘엄마, 계좌이체했어’하면 ‘뭣한디 보내, 엄마 3년 살면 뒤진다’ 그러세요. 그런데 3년 지났는데도 정정하시죠(웃음). 최근에는 ‘엄마 백 살까지 살까?’ 그러세요. 저번에는 ‘3년 살면 뒤진다’고 하시고서(웃음). 그런 엄마 모습을 오래 보면서 저도 전염이 된 것 같아요. 저는 일상에서는 그렇게 잘 안 하거든요. 그런데 엄마는 일상에서 그렇게 하세요. 그건 경지의 끝인 것 같아요.

 

힘든 상황에서 웃음이 발휘하는 힘이라는 건 정말 큰 것 같아요.


유머(Humor)라는 말이 휴먼(Human)에서 왔다고 해요. 그리고 흐르다, 반전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대요. 그러니까 힘들 때 필요한 게 유머인 거죠. 웃길 때 필요한 게 유머가 아니고요. 정말 힘들고 ‘이게 끝이다’ 싶을 때 삶을 반전할 필요가 있잖아요. 그때 유머가 필요하거든요. 저는 엄마의 삶을 너무 처절하게 봤어요. 아버지는 바뀌지 않으시고, 아이는 여섯이나 낳았고... 사이가 안 좋은데 어떻게 여섯이나 낳으셨는지 모르겠어요. 각방을 그렇게 많이 쓰셨는데(웃음). 아무튼, 남편을 버리고 도망을 가기도 힘든 거예요. 남편이 장애가 있는데 어떻게 아이 여섯을 버리고 가겠어요. 그러니까 갇혀있는 것 같은 삶을 항상 해학해 내려고 하셨던 것 같아요. 그걸 제가 조금 보고 배운 게 있을 거예요. 어떻게 보면 그것도 부모로부터, 사회로부터, 내 선배 세대로부터 받은 혜택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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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읽고 나서 잊어버리세요


책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어머니께서 글을 읽지 못하시잖아요. 출간하실 때마다 가슴이 아프시기도 할 것 같아요.


저한테는 그런 슬픔이 있죠. 글을 써도 엄마가 무슨 말인지 모르니까. 그래서 제가 사진을 많이 넣어달라고 했었어요. 예전에는 인터뷰 요청을 받으면 제일 먼저 사진 넣어주냐고 물어봤었어요. 사진 안 넣어주면 인터뷰를 안 했었어요. 그때는 기사가 나오면 그걸 코팅해서 시골로 보내드렸거든요. 그런데 엄마는 제 이름 ‘김창옥’을 읽으실 수가 없으니까 이게 아들이 썼다는 책의 내용인지, 무슨 내용인지, 모르시잖아요. 그래서 사진을 넣어달라고 말씀드렸던 거였어요. 그리고 저는 성악을 전공했는데 아버지는 귀가 안 들리니까 제 노래를 들으신 적이 없죠. 제 목소리도 느끼실 수가 없고. 요즘은 제가 TV에 나오니까, 시골에 계신 부모님들이 으레 그러시듯, 제가 뭐가 됐다고 생각하세요(웃음). 엄마가 TV 보시고 나서 ‘창옥아, 우리 막둥이는 느그 애비를 닮아가꼬 말을 잘해잉’ 그러시는데, 제가 ‘엄마, 내가 무슨 아빠를 닮았어. 엄마를 닮아서 말을 하는 거지’ 그러면 (슬쩍 웃으며)‘그라까?’ 하세요(웃음).

 

웃을 수만은 없는 이야기인데, 저자님이 너무 재밌게 말씀하시니까 자꾸 웃게 되네요(웃음). 말씀 들으면서 마음이 아프면서도 따뜻해지기도 해요.


슬픈 게 많죠. 제 밑바닥은 대부분 슬픔이에요. 슬픔과 결핍. 제 강연을 들으시는 분들이 동의하실 수 있는 이유도 그런 것 같아요. 제가 엄청난 일을 해낸 사람도 아니고, 대단한 이론을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냥 숨기고 싶은 제 이야기를 들려드리는 거죠.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들이요.

 

「열등감의 가죽을 벗겨내기 위해」라는 제목의 글에서 열등감을 뱀의 껍질에 빗대어서 말씀하셨어요. 저자님도 열등감을 경험하고 이겨내신 경험이 있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그렇죠. 일단 다름에서 시작한 것 같아요. 초등학교 다닐 때는 친구들과 제가 똑같았어요. 그런데 어느 날 안 거예요. 친구를 집에 데려왔는데, 저희 아버지가 청각장애가 있으셔서 일반인보다 목소리를 크게 내서 말씀하시거든요, 그러니까 친구가 너희 아빠는 왜 말을 저런 식으로 하냐고 이야기하더라고요. 그때 ‘우리 아빠는 장애가 있구나’라는 걸 처음 알았어요. 그러면서 행동의 변화가 생기더라고요. 친구들을 집에 안 데리고 오는 거예요. 그리고 아빠가 오실 때쯤이면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친구들을 다 돌려보내요. 그러니까 내 마음의 코드가 내 행동하는 방식도 표정도 바꿔버리더라고요.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서 공고에 진학하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로 인한 열등감도 갖게 되셨나요?


가난한 형편 때문에 공고를 간 건 아니에요. 그냥 공부를 못해서 공고를 간 거죠. 그것도 저한테 (열등감의) 가죽 같은 거였어요. 공업고등학교를 가고 싶어서 간 게 아니었거든요. 공업고등학교에 진학했다는 게 문제가 아니라, 제가 가고 싶어서 간 곳이 아니었다는 게 문제였던 거죠. 그러니까 인문계 고등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을 보면 또 열등감이 밀려오는 거예요. 나도 저 아이들이 입은 교복을 입고 싶은데 항상 실습복을 입고 있고, 몸에서는 납 냄새가 나고, 가방에서는 드라이버가 나오고. 그게 창피한 일이 아닌데 ‘이건 창피한 일이 아니야’라고 누군가가 말해주지 않았어요. 그래서 몰랐던 거죠.

 

열등감에서 벗어난 계기가 있으셨어요?


어느 날 굉장히 작은 책자를 읽었는데, 그 책이 저한테 그렇게 말하는 거예요. 그 열등감에서 해방되라고요. ‘너의 출신 학교나, 너의 외모나, 너의 부모님의 사회적인 위치가 너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지? 그렇지 않아’라고요. 그게 마음에 들어온 거죠.

 

책에서 “예전처럼 상처받는 것이 두렵지는 않습니다”라고 적으셨는데, 읽으면서 ‘이렇게 말할 수 있다는 게 참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쓴 책이, 아니면 출연한 방송이, 잘 안 될 수도 있잖아요. 그런 거에 대해서는 별로 두렵지 않은 것 같아요. 예전에 쓴 책들은 ‘내 책에 대한 자부심’이 조금 덜했어요. 그런데 이번 책은 제가 썼지만 내 책이라고 보지 않거든요. 이 글을 쓴 사람이 나라고 생각하지 않게 되더라고요. 어떤 거울 같은 것이기도 한 것 같아요. 저는 좋은 책은 거울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거울이 말을 하면 안 되잖아요. 감히 어떤 저자가 독자에게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말할 수 있겠어요. 그건 오만방자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거울이 되어서 독자가 읽고 자신을 보게 하면 되는 거죠.

 

책을 쓰시는 동안 스스로를 비춰보기도 하셨나요?


저자가 어떻게 살았는지, 어떤 우여곡절을 겪었는지, 그걸 쓰는 이유도 자기 삶을 보기 위해서예요. 저자를 보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저자가) 자기를 보게 하기 위해서 그런 에피소드를 사용할 뿐인 거죠. 그러려면 내 자아가 빠져야 하는 것 같고, 내 자아가 빠지기 위해서는 건강해야 되는 것 같아요. 상대방에 대한 사랑도 있어야 할 것 같고요. 그러면 내 이야기이지만 내가 빠져 있죠. 우리가 아름다움을 보기 위해서 별을 바라보기도 하지만, 항해할 때도 별을 보잖아요. 내 위치가 어디인지 알려고,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알려고, 내가 어디로 가야 할지를 알려고, 보는 거죠. 우리는 모두 다 누군가의 별이라고 생각해요.

 

“아무리 좋은 강의를 많이 듣고 좋은 책을 많이 읽어도 삶에서 실험을 해보지 않으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습니다”라고 하셨어요. 『당신은 아무 일 없던 사람보다 강합니다』를 통해서 독이 아닌 득을 남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은 공부하려고 읽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쭉 보고 잊어버리셨으면 좋겠어요. 책을 기억하려고 하시지 말고요. 제가 보기에는 기억하려고 하는 건 사랑이 아닌 것 같거든요. 그리고 자기의 때가 아니면 기억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러니 책을 그냥 보시고 잊어버리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렇게 하셨을 때 기억되는 것이 있을지도 몰라요. 그게 한 단어이든 한 문구이든, 그것만 건지셔도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한 번 해보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죠. 이 책은 지식 서적이 아니라 가이드북 같은 거거든요. ‘이렇게 가보세요, 이런 걸 해보세요’라고 말씀드리는 건데, 그대로 해보시는 거죠. 그러면 또 다른 무언가가 그 분한테 말을 걸 거라고 생각해요. 책이라는 생명과 그 분이 융합해서 새로운 자기 삶을 만들어낼 거예요


 

 

당신은 아무 일 없던 사람보다 강합니다김창옥 저 | 수오서재
자신의 어둡고 초라한 모습마저 감추지 않고 기꺼이 드러내는 김창옥의 진정성 있는 메시지는 공감의 힘이 있다. 삶이 권태로울 때, 뭘 해도 행복하지 않을 때, 이제 그만두고 싶을 때, 하지만 진심은 진짜 제대로 한번 살아보고 싶을 때 이 책이 위로와 응원, 힘 있는 자극이 될 것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배종옥 “배우라고 배우, 그러니까 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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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말. 배우의 삶을 이야기할 때도 어김없이 등장한다. “이제야 책을 썼어요?”라고 물을 만큼, 배종옥은 책과 친한 배우다. 오래전부터 책을 쓰자는 제안을 받았지만 그는 귓등으로 흘렸다. 잘못하면 자랑과 변명이 될까 봐, 책 무더기 속 먼지가 될까봐 머뭇거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권을 보탠 건, 고민에서 배움으로 이어진 삶을 기록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누군가 내 일기를 엿보기로 예정됐다면 솔직함이 덜할 수 있다. 붙이고 싶은 수식어가 많아지고 덜어내고 싶은 실수가 생각난다. 그럴 때마다 배종옥은 ‘진짜 쿨한 것’을 생각했다. 결론은 “나 자신을 제대로 알자, 표현하자”였다.

 

배종옥은 이상주의자도 현실주의자도 아닌 듯했다.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표현을 자주 썼다. 어쩌면 지혜로운 협상가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에서 복잡한 일을 만들고 싶지 않고, 주어진 시간을 알뜰하게 잘 쓰고 싶다”고 말하는 배종옥. 『배우는 삶 배우의 삶』은 그에게 꼭 어울리는 첫 책이다. 고민해서, 공부해서, 행복하다는 그와 무척 사사로운 이야기를 나눴다. 자연스럽고 자유로운 말속에 작은 밑줄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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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여줘야 알아요

 

제목을 보고 딱 어울린다 생각했어요.

 

후배들과 밥 먹는 자리에서 책 이야기가 나왔는데, 연극계에서 자주 하는 말이라고 하더라고요. “배우가 배우라고 배우야.”(웃음). 책에도 계속 배운다는 내용이 이어지니까요. 잘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배우가 자신의 삶을 직접 쓴 에세이는 흔치 않아요. 더욱이 근래에는 거의 없었고요.

 

수필은 많이 못 본 것 같아요. 리빙과 관련된 책은 많이 쓰는 것 같은데 배우 이야기는 잘 못 봤어요.

 

집필하느라 무척 고생하셨다고요.

 

책이 못 나오는 줄 알았어요. 제가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잖아요. 하고 싶은 말은 많았지만 내 생각을 글로 표현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요. 봄부터 시작했는데 굉장히 힘들었어요. 사실 글쓰기도 배우는 거잖아요. 너무 버거웠지만 그래도 써놓았던 원고가 좀 있었어요. 인터뷰를 구술식으로 좀 풀고 그간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덧붙이면서 단락을 만들어갔어요. 마지막 교정을 볼 때는 정말 멀미가 나더라고요. 영화제 때문에 지방에 가 있는데 최종본을 넘겨야 한다고 해서, 휴대폰으로 교정을 봤어요. 작은 화면으로 글자를 보려니 머리에 쥐가 나더라고요. 편집자가 많이 고생했어요.

 

책에 대한 첫인상이 참 단정하고 소박하다는 느낌이었어요. 배우 배종옥 하면 과감하고 솔직한 느낌이 드는데 말이에요.

 

사실 전 내성적이에요. 어릴 때는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이었어요. 그렇게 조용한 성격인데 배우를 했으니 얼마나 많이 부딪혔겠어요. 배우라는 세계가 너무 어색했죠. 지금도 완벽히 자유롭진 못해요. 시상식 같은 행사에 가면 피하고 싶은 순간도 많고요. 즐기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저 같은 배우도 많아요. 작품을 통해 대중에게 어필한 면과 실제 성격이 다른 거죠. 물론 작품을 통해 전하는 이미지도 제 한 부분일 테고요.

 

사진이 생각보다 많지 않아요. 대부분 글로 채우셨어요.

 

사진은 보려고만 하면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잖아요. 그것보다 제가 살아온 길을 담담하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그런데 대장간에 칼이 없다고, 배우인데 갖고 있는 사진이 별로 없어요. 이것도 찾느라 정말 고생했어요. 이제 곧 겨울인데 그래도 책 덕분에 계절을 잘 보냈다 싶어요. 결과물을 보니까 그런 느낌이 들어요. 제가 얼마 전에 <복면가왕>에 출연했잖아요. 긴장돼서 밤에 잠도 못 자고 정말 고통스러웠는데 그 단계를 넘으니 좋더라고요. 도전할 때는 정말 피하고 싶고, 이 어려운 삶을 왜 선택해야 할까 끊임없이 반문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전하는 삶은 멋있는 것 같아요. 그래야 변화도 있는 거니까요. 노력하지 않으면 맨날 그 삶이 그 삶이니까요.

 

<복면가왕> 출연은 정말 의외였어요.

 

출연을 생각한 건 배우로서 제 이미지를 좀 바꾸고 싶었어요. 드라마나 영화에서 너무 강렬하고 진지한 역할만 하다 보니까 밝고 경쾌한 캐릭터는 제안이 안 오는 거예요. 인터뷰할 때마다 이런 이야기를 했지만, 다들 몰라요. 보여줘야 하는구나, 말로 해서는 안 된다는 걸 깨달았죠.

 

프롤로그가 인상적이었어요. ‘쿨하다’는 말을 정의하셨는데 흥미롭더라고요. 평소 ‘쿨하다’는 말을 자주 들으시죠?

 

종종 들어요. 스태프들한테 많이 듣는데 좀 궁금해요. 저에겐 당연한 행동인데 사람들이 쿨하다고 하니까요. 그럴 때마다 “그럼 너희는 이 상황을 어떻게 해?”라고 물어요. 예를 들어 사람에겐 누구나 한계가 있잖아요. “왜 너는 내 기대치 만큼 못해?”라고 말할 수 없어요. 스스로 어떤 선을 정해서 상대에게 굳이 요구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발전하기를 원할 때는 조언을 해줄 수 있어요. 하지만 마음이 없는 사람에게는 그냥 그대로 존중해야 해요.

 

뒤끝이 없는 편인가요?


어떤 부분에서는 있을 거예요. 다만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에서는 말해요. 말하면 뒤끝이 좀 없어지니까요.(웃음) 사람이 어떻게 뒤끝이 없을 수 있겠어요. <굿바이 솔로> ‘영숙’의 말도 있잖아요. “진짜 쿨할 수 없다는 걸 아는 게 진짜 쿨한 거야”라고요.

 

말해놓고 후회하는 경우도 많지 않으세요?

 

물론이에요. 하지만 금세 잊는 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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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는 일상이지 특이한 삶이 아니에요.

 

1985년에 방송 활동을 시작하셨으니 벌써 30여 년이 지났어요. 작품을 선택할 때는 ‘작품 속 질문’이 분명한지를 살피신다고요. 이렇게 말하는 배우가 흔치 않아요.

 

생각이 달라서 그런 건 아닌 것 같아요. 느낀다 한들 말해본 적이 없어서가 아닐까요. 어떻게 표현할지는 모르는 거죠. 배우들끼리 있을 때 작품 이야기를 참 많이 해요. 좀 변했으면 좋겠다, 좀 다른 시나리오가 왔으면 좋겠다고 다들 말하죠. 그런데 배우는 짜인 각본대로 말하는 사람이잖아요. 제작발표회나 대중과 대면할 때, 해야 할 말은 있어도 표현하는 걸 어려워해요. 어떤 식이라도 생각을 말로 정확히 표현하는 방법을 좀 배워야 하지 않나, 생각해요. 인간에 대한, 사랑에 대한, 가족에 대한 치열한 질문과 대답 같은 것? 저는 처절하게 부딪치면서 아프면서 찾게 되는 것들을 표현하고 싶어요.

 

오랫동안 대학에서 연기를 가르치셨잖아요. 제자들에게도 많이 이야기하셨겠어요.

 

휴식기에 작품을 공부하라는 이야기를 많이 해요. 배우는 공백기를 갖는 일을 너무 힘들어해요. 자신이 잊힐 거라는 불안감이 너무 큰 거에요. 쉬는 시간을 잘 활용하는 일이 배우로 잘 성장하는 길인 걸 잘 몰라요. 진짜 배우를 꿈꾼다면 배우에게 필요한 공부를 하라고 말해요.

 

잠깐 공부하는 사람은 많아요. 공부의 의미는 다양할 수 있고요. 중요한 건 꾸준하냐인데, 책을 보니 하루도 공부를 안 하는 날이 없으신 것 같아요.

 

사람들이 간혹 물어요. 당신은 타고난 배우가 아니냐. 전혀요. 그렇지 않아요. 심지어 매니저까지도 “선배, 왜 힘들어해? 그냥 하면 되지” 하고 말하는데, 그렇게 쉽지 않아요. 저도 항상 준비하고 고민해서 하는 연기예요. 공부를 하지 않았더라면 지금 제가 배우를 하고 있을까요? 쉽게 장담할 수 없어요. 종종 본성으로 연기를 훌륭하게 하는 친구들을 봐요. 연습할 때는 작품을 영 이해하지 못한 것 같은데 카메라에 불이 들어오면 너무 잘해요. 그럴 때마다 묻죠. “너 정말 이해했어?” 대답은 그냥 하는 거래요.(웃음) 배우마다 이렇게 달라요. 본성이 발달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끊임없이 노력해야 이뤄내는 사람이 있잖아요.

 

성향의 문제도 있지 않을까요? 내 것으로 완전히 소화해야 행동이 가능한 사람도 있잖아요.

 

맞아요. 저는 이해하지 못하면 몸이 잘 움직이지 않아요. 성격적인 것도 있을 거예요. 자꾸 제가 공부하는 이유죠. 배종옥이 연기하는 방식이기도 하고요. 저에게 공부는 일상이지 특이한 삶이 아니에요.

 

한 작가가 이런 말을 했어요. “내 안의 성장을 느끼면 나이 드는 일이 두렵지 않다.”

 

맞아요. 그래요. 정체된다면 불안할 것 같아요.

 

배우라면 인정욕구가 강할 수밖에 없어요. 늘 평가받아야 하는 입장이잖아요. 그것도 너무 많은 사람에게요. 배우 생활 30년 정도가 되면 어느 정도 초월하게 되는지 궁금해요.

 

초월은 불가능하지만, 어느 정도 수용하고 거절하고 선택하게 되는 것 같아요. 스스로 계속 물어봐요. 너 이 길 갈 거냐고요. 현실적인 태도도 분명 필요하지만 너무 타협하는 건 싫어요. 그렇다고 무조건 타협하지 않겠다는 입장도 좋지 않아요. 적당한 타협이 필요한데, 그것도 고민하면서 답을 찾을 수밖에 없어요.

 

지나치게 타협하는 동료나 후배를 볼 땐 어떠신가요?

 

그것도 그 배우의 색깔이니까, 제가 함부로 말할 순 없어요.

 

발문을 노희경 작가가 썼어요. “우리는 멋지고 통쾌한 관계다.” 책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절친이자 동료시잖아요. 단정한 배우의 글을읽다가 후루룩 단숨에 쓴 듯한 작가의 글을 읽으니, 느낌이 달라 재밌더라고요.

 

고맙더라고요. 참 바쁜 친구인데 저를 위해 글을 써주니 고마웠어요. 노희경 씨는 제 연기 인생을 거의 같이 한 느낌이에요. 운명이지 않을까 싶어요. 마음공부도 봉사도 같이 했으니까요. 작품을 넘어 친구로서 많은 시간을 함께했어요.

 

드라마 <거짓말>, <바보 같은 사랑>에서 함께 작업하신 후, ‘노희경의 페르소나’라는 이름을 갖게 되셨어요.


날 믿어주는 작가가 있다는 건 큰 힘이 되니까 고마운 일이에요. 하지만 때론 부담이 되기도 해요. 사람들은 노희경 작가가 새 작품에 들어가면 “이번에도 같이 하냐?”고 물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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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하는 만큼 ‘난 멋진 사람이 아니야’


책이 네 개 장으로 구성됐는데, 3장에서는 ‘배우의 배우 이야기’를 다뤘어요. 좋아하는 배우 메릴 스트립, 제프리 러시부터 연기 선배 이순재, 나문희, 윤여정까지. 흥미롭게 읽었어요.

 

제가 아이디어를 냈어요. 연기 이야기를 해야겠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풀까, 고민하다가 내가 좋아하는 배우 이야기를 하면 좋을 것 같았어요. 그 속에서 내가 생각하는 연기, 지향점이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싶었죠. 책으로 엮이고 보니 잘한 것 같아요.

 

선배 배우를 딱 세 명만 꼽으셨어요. 고민은 없으셨나요?

 

없었어요. 이순재 선생님은 독보적이고 나문희 선생님과는 작품을 정말 많이 했어요. 윤여정 선생님과는 작품을 많이 하진 않았지만, 제게 노희경 작가를 소개해줬어요. 선생님께 연기 교육도 많이 받았고요. 쓰면서 정말 좋았어요. 내게 이런 기억이 있었구나 싶은, 새삼스러운 이야기도 생각났고요. 나문희 선생님은 그렇게 연기를 잘하시는데, <내가 사는 이유>에서 바보 역할을 맡았을 때 연기가 잘 안 된다고 울먹이시며 연습실을 뛰쳐나가기도 했어요. 평소엔 말씀이 없는 편이지만 작품 얘기를 할 때면 이것저것 속을 풀어내세요. 일상과 일을 나누지 않는 분이시죠. 평상시에 하는 행동이며 생각이 그대로 연기에 나온다고 말씀하세요. 윤여정 선생님은 좋고 싫은 게 분명하시고 “혼으로 하는 연기가 싫다”고 하시죠. 흐트러지지 않는 분이에요.

 

나문희, 윤여정 선생님은 얼마 전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 <디어 마이 프렌즈>에 함께 출연하셨어요. 노년을 그렸다는 것만으로도 특별하게 다가온 작품이었는데요.

 

드라마가 방송하는 날이면 그 시간만을 기다릴 정도였어요.(웃음) 내 미래의 삶도 생각했고요. 최근에 윤여정 선생님이 출연한 영화 <죽여주는 여자>도 봤는데 노년이 참 슬프더라고요. 이제는 나도 노년을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후회하지 않고 외롭지 않게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잘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구체적인 계획도 필요할 것 같고요.

 

노년엔 “귀여운 할머니가 되고 싶다”고 많이들 말씀하시더라고요.

 

전 책 읽어주는 할머니가 되고 싶었어요. 장자끄 상뻬의 작품이었나요? 잼 만들어주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는 이야기를 읽은 기억이 나요. 나는 배우였으니까, 동화책을 읽어주는 할머니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얼마 전 뉴스를 보니 이미 직업이 되었더라고요. 약간의 교육을 받으면 유아원에서 책을 읽어줄 수 있다고요. 어머, 내가 나중에 하고 싶은일이었는데 벌써 생겼구나 했어요. 요즘 할머니들은 정말 짱짱하시잖아요. 나이가 들면 아이들을 더 예뻐하고요. 70세쯤 지날 때, 책 읽어주는 할머니가 되면 어떨까 싶어요.

 

오랫동안 마음 수행의 일환으로 108배를 하셨잖아요. 지금도 매일 108배를 하고 계시나요?

 

매일 해요. 안 하면 불안해요. 아침에 그거라도 해야지 워낙 정신없는 세상이잖아요. 내 마음을 추스르지 않으면 작은 일에도 마음이 흔들리니까요. 법륜 스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매일 세수하는 것처럼, 마음도 닦아야 한다, 기도의 목적은 복을 받으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그 상황을받아들일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라고요. 마음 닦기, 기도하기는 내 일상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이에요.

 

마음공부를 하신 지도 벌써 10년이나 되셨어요.

 

그렇게 됐네요. 방송 계통에서 일하는 사람 여섯 명이 모여 ‘길벗’이라는 모임을 만들었는데, 100일 만 하자고 시작한 게 지금까지 왔어요. 마음공부를 하면서 많이 울었어요. “내가 옳다는 착각을 내려놓겠습니다”를 되뇌면서 매일 절하는 시간이 고통스러웠죠. 너무 여려서 닿기만 해도 벗겨질 것 같던 속살이 마음공부를 하면서 단단해졌어요. 내가 생각하는 만큼 ‘난 멋진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된 후, 오히려 편해졌어요. 누구나 자신과 화해해야 해요. 그래야 평화가 찾아와요.

 

교수 생활은 왜 접으셨어요?

 

더 늦기 전에 작품을 더 해야겠다고 생각해서요. 덜 쭈글쭈글한 얼굴로 연기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요.

 

제자들에게는 무척 엄격한 교수였다고 들었습니다.

 

‘1분이라도 늦으면 지각, 결석 불가, 과제는 필수’가 제 원칙이었어요. 엄격함을 가르치고 싶었어요. 배우가 자유로운 사고를 가져야 하는 건 분명하지만, 자유로움만 갖고 있으면 배우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학교에선 학교에서만이 할 수 있는 작업이 있어요. 기성 배우들이 하지 못하는 부분이죠. 학생들이 그때를 온전히 즐겼으면 좋겠어요.

 

작업 현장을 좋아하게 되면 제대로 된 배우라고 하셨어요. 지금 현장에는 많은 후배들이 있잖아요. 배로서 어떠세요?

 

40대 때까진 좀 힘들었어요. 왜 이렇게 자기 뜻대로 하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후배들이 있었죠. 그런데 나이가 드니까 그로부터 자유로워졌어요. 후배들이 먼저 묻지 않으면 말하지 않아요. 종종 이낙훈 선생님이 생각나는데요. 대본 연습을 할 때 배우들이 연출, 작가 선생님한테 막 혼나잖아요. “너 그게 아니야”라는 말도 자주 오가는데 이낙훈 선생님은 항상 다 끝나고 난 뒤, 아무도 듣지 않게 “종옥아, 이 대목에선 이렇게 하는 게 좋지”라고 살짝 말씀해주고 가셨어요. 너무 감사했죠. 저도 후배들한테 이야기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대놓고 하지 않아요. 둘이 있을 때, 걔가 들을 마음이 있을 때, 배우고 싶다고 물어올 때만 말해요.

 

딸에게 자주 하시는 말씀이 있으세요?

 

네가 하고 싶은 거 해, 선택해도 후회하지 않는 일을 하라고 해요.

 

자율성을 주는 것도 좋지만 어느 정도 인생 선배로서, 부모로서 제안도 해야 할 텐데요.

 

하죠, 물론. 누구보다 그 아이를 오래 지켜본 사람이 저잖아요. “내가 볼 때, 네 성향은 이런데 네가 만족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라”고 하면, 알아서 잘 결정하더라고요.

 

20대 친구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은 없으세요?

 

저도 부족했고 참 어려운 일인데요. 책 읽는 습관을 길렀으면 좋겠어요. 사실 저도 어릴 때, 책 읽으라는 말을 무척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또 행동으로 옮겨지냐, 그렇지 않더라고요. 자기가 좋아서 읽는 수밖에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는 건 도움이 많이 돼요. 어떤 직업을 갖더라도요. 하지만 지적인 잘난 척을 하기 위해 책을 읽는 건, 소용이 없어요. 저는 책을 꺼내면 금세 푹 빠져 읽어요. 하지만 덮으면 잊어요. 눈에 바로 드러나지 않더라도 이 과정에서 분명 책을 통해 느끼는 바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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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지어 다음에 태어나도 배우를 하고 싶어요

 

나를 바꾼 책이 있나요?

 

30대 중반이었을 거예요. 인생의 경계에 서있는 때 랄프 왈도 에머슨의 『자연』을 읽었어요. 그때 제게 참 위안이 됐던 글귀가 있어요. 우리가 어떤 진리를 추구할 때, 계속 책을 읽거나 사색을 하다 보면 심오한 아름다움을 보게 된다는 것, 그 심오한 아름다움은 내가 만든 게 아니라 이미 거기에 있었다는 것, 하지만 우리는 거기 원래 있었던 걸 모르고 찾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글이었어요. 배우로서의 내 위치를 고민하던 때였는데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뭔지가 어렴풋하게 보였어요. 제게는 고민에 대한 연대기 같은 작품이에요.

 

 

요즘 읽고 계시는 책도 궁금해요.

 

얼마 전 『먼 나라 이웃나라』프랑스 편을 봤는데 재밌었어요. 이어서 중국 편을 읽을까 생각해요. 얼마 전까지 중국어를 공부했거든요. 중국어를 공부하니 중국이라는 나라가 또 궁금해져요. 60세까지 영어와 중국어를 떼는 게 목표예요. 나이가 드니까 뭔가 외워야 하더라고요. 외우는 공부에는 외국어가 최고잖아요. 함께 중국어를 공부하던 친구들이 좀 아파서 잠시 멈췄는데 다시 해야죠.

 

근래 보신 영화 중에 배우로서 욕심 나는 작품이 있었나요?

 

책을 쓰면서 나는 일반적이지 않다는 걸 더 느꼈어요. 배우로서 빠져드는 작품을 보면 크게 대중성이 있지 않아요. 이번에 우연히 소개받아서 본 영화가 있어요. <버드맨>인데 우리나라에선 아마 작년에 개봉했던 것 같아요. 톱스타였다가 잊힌 배우가 주인공인데, 우리 배우의 삶이 느껴지더라고요. 비평가에게 술 먹고 대드는 모습부터, 참 치열하게 본 작품이에요. 전 이런 작품에 심취하는 편이에요.

 

“끝까지 배우이고 싶다”고 말씀하셨어요. 만약 모든 직업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요. 그래도 배우를 선택하실까요?

 

네, 배우를 하고 싶어요. 심지어 다음에 태어나도 배우를 하고 싶어요. 다만 지금 알고 있는 걸 다 안 상태로 배우 생활을 시작하고 싶어요.(웃음)

 

타고나지 않아서, 그래서 더 노력해서 얻는 것들이 있어 행복하신가요?

 

행복해요. 예전에는 타고난 배우들이 그렇게 부러웠지만 지금은 나일 수밖에 없는 나 자신이 좋아요. 저는 스스로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을 개척했으니까요. 하나님이 사람에게 모든 걸 주지 않는다고 하잖아요. 예전의 저는 작품 섭외가 오면 몰입해야 한다는 생각이 무척 강했어요. 작품을 하고 있으면 지인들도 안 만날 정도였으니까요. 지금은 그때처럼 저를 몰아붙이진 않지만, 작품에 집중하는 시간 만큼은 확보하려고 해요. 올해로 제 연기 생활이 32년이래요. 그런데 불과 1, 2년 전에 ‘이제야 연기를 좀 알겠다’ 싶었어요. 이제 좀 자유로워진 것 같아요.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 있으시다면요?

 

엄마가 된 일이요. 딸이 친구 같아요. 딸이 제 옆에 있다는 게 너무 소중하고 감사해요. 만약 딸이 없었다면 내 삶이 얼마나 외로웠을까 싶어요. 잘 자라줘서 고맙고요. 젊은 부모들이 자식을 친구처럼 키웠으면 좋겠어요. 딸이 어릴 때부터 제 일에 관해 이야기를 많이 해줬어요. 내 감정이나 하는 작품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 지금도 말이 잘 통해요.

 

아마도 배우의 삶이 궁금한 독자들이 이 책을 보겠죠? 어떤 생각을 하면서 읽으면 좋을까요?

 

글쎄요. 책을 쓰면서 내가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닐까, 고민되더라고요. 아무리 해도 안 되는 상황도 있고 또 현실도 있으니까요. 그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줄 수 있을까 걱정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100년전 니체의 말이 생각나요. “누가 나한테 해주길 바라지 말아라. 네 삶은 네 삶이고 네가 개척하는 일이다.”


 

 

배우는 삶 배우의 삶배종옥 저 | 마음산책
『배우는 삶 배우의 삶』은 배종옥의 인생 분투기이자 배우 고민기라고 할 수 있다. 신인 시절 연기를 못해 항의 편지를 받고, 연기를 그만두고 무엇을 할까 궁리하던 그녀가 자신만의 길을 찾고 주변에 휘둘리지 않으며 하나의 세계를 갖게 되기까지의 여정이자, 끝까지 ‘배우는 배우이기를’ 원하는 한 배우의 진솔한 고백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주진우, 함세웅 “우리는 아직도 박정희 시대를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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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 기자’ 주진우와 ‘정의 사제’ 함세웅이 동행했다. 서울을 시작으로 부산, 대구, 대전을 거쳐 광주에 이르는 긴 여정을 함께하기 위함이었다. 두 사람은 역사, 정치, 민주, 통일, 신념 등 다섯 개 주제로 한국 현대사의 실체를 낱낱이 파헤쳤다. 이름하여 ‘함세웅 신부와 주진우 기자의 현대사 콘서트’다. 주진우 기자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를 화두로 제시했고, 함세웅 신부는 자신의 경험에 기대어 촌철살인을 들려줬다. 그들의 이야기는 절망과 희망을 넘나들었고, 청중들은 비통함과 통쾌함을 동시에 맛봤다. 우리의 지난 역사를 똑 닮은 이들 현장의 목소리를 『악마 기자 정의 사제』가 기록한다.

 

주진우와 함세웅, 두 사람의 공통점은 불의에 맞서 투신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는 것이다. 주진우 기자는 삼성, 이명박 전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 등 권력의 정점에 선 이들의 ‘구린 구석’을 들춰내느라 ‘소송 전문 기자’가 되었다. 함세웅 신부는 독재 권력에 저항하며 민주화 운동에 뛰어들었고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탄생을 이끌었다.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탄압에 무릎 꿇지 않으며 희망의 불씨로 존재해 온 그의 뒤를, 이제 주진우 기자가 따라 걷는다.

 

두 사람을 만나기 위해 충정로의 벙커1으로 향하던 지난 24일, 발걸음은 더없이 무거웠다. 백남기 농민의 부검 영장 유효 기간이 하루 남은 시점이었고, 함세웅 신부는 기자 회견을 통해 ‘강제 집행을 막기 위한 집중 행동’에 돌입한다고 선포했다. 일주일 사이 상황은 급변했다. 경찰은 영장 재청구를 포기했고, 백남기 농민은 숨진 지 37일 만에 장례를 치르게 됐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역사의 갈림길 앞에 서 있다. ‘대한민국 권력서열 1위’라는 최순실 씨가 검찰 조사를 받고 있고, 행동하는 양심들이 광장으로 나왔다. 지금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한국의 현대사에 2016년은 어떻게 기록될까. 주진우 기자와 함세웅 신부를 향해 던졌던 질문들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 화두가 백남기 농민 사망 사건에서 박근혜 게이트로 옮겨갔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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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우리는 박정희 시대를 살고 있다


백남기 농민이 시위 중 경찰이 쏜 물대포에 맞아 사망했습니다. 현재는 부검 영장까지 발부되어 시민들이 시신 탈취를 막고 있는 상황인데요. 과거에는 이런 일이 있을 때 전국적으로 대규모 시위가 일어나지 않았나요? 왜 근래에는 그러한 움직임이 없을까요?


함세웅 : 저도 그게 참 안타까워요. 유럽 같았으면 박근혜가 탄핵을 받아도 열 번 이상 받을 사안이거든요.


주진우 : 노무현 대통령하고 비교하면 천 번 이상 (탄핵) 당했겠죠.


함세웅 : 어느 여류 작가가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국민들도 때가 있는데 아직 그 때를 포착하지 못한 이유는 야당이 그걸 감당할 수 있는 힘이 없어서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더 썩고 무르익을 때까지 기다리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또 한편으로는 우리 대중들도 조금 무뎌지고 마비가 된 상태이기 때문에 아직은 감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성서의 말씀을 빌리자면 ‘아직 그 때가 이루지 않은’ 거죠. 그래서 우리 시대의 모두가 공통으로 책임져야 할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저의 개인적인 해석이에요.


주진우 : 저는 언론과 권력기관의 문제, 권력기관 중에서는 검찰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싶은데요. 수많은 이슈들이 나왔을 때 다른 이슈를 만들어서 효과적으로 덮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기사를 쏟아내서 사건의 본질을 흐립니다. 이럴수록 언론의 역할이 중요한데, 90%의 오염된 언론사와 언론인들이 정권의 앞잡이 역할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권력에 도움이 되느냐 안 되느냐에 따라서 검찰이 충실하게 움직이고 있어서 이 의혹과 비리들 수많은 냄새들을 덮고 덮고 넘어가는 것 같습니다.

 

‘함세웅 신부와 주진우 기자의 현대사 콘서트’를 처음 제안하신 건 주진우 기자님이신 걸로 알고 있어요. 당시 신부님께서도 강연을 이어가고 계셨죠?


함세웅 : 3년 전에 이석기 국회의원이 제명되고 구속됐어요. 조금 어처구니가 없더라고요. 그런데 또 통합진보당이 해산됐어요. ‘민주국가에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하고 아파했는데, 많은 동지들께서 걱정하시면서 ‘이럴 때 침묵할 수 있느냐’ 해서 저희들이 나서게 됐어요. 언론보도를 통해서 그 분의 언행이라든지 통합진보당의 이야기를 들을 때 다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억울하게 당한 분들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져야 할 것 같더라고요. 이석기 의원이 가톨릭 신자인데, 처음 그 가족들이 와서 저에게 호소할 때는 조금 망설였어요. 주춤했어요.

 

그런데 어떻게 이석기 의원 구명운동에 나서게 되셨어요?

 
함세웅 : 그 날이 문익환 목사님 추도식이었거든요. 제가 문익환 목사님과 기도하면서 주고받은 암시는 ‘나서야지, 40년 전에 인혁당 관계자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모르느냐, 그 분들이 다소 미흡하다 하더라도 나서야 된다’는 거였어요. 그래서 그 분의 구명운동에 나서면서 전국50여 곳을 다니면서 강의를 했어요.

 

주진우 기자님의 제안을 받아들이신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함세웅 : 제 강연에 오신 분들은 주로 진보적인 사고를 가지신 분들, 또 나이가 많으신 분들이었어요. 그렇다 보니까 주진우 기자와 같이 일하시는 분들이 조금 아쉬워하셨던 것 같아요. 전국을 다니면서 강연을 하는 열성은 장하지만 효과가 크게 못 나오니까요. 젊은이들을 움직여야 된다고 제안을 하셨죠. 저도 주진우 기자를 (곁에서) 보니까 젊은이들이 너무 좋아하는 거예요. ‘그러면 주진우 기자를 통해서 젊은이들과의 만남을 가져야겠다’ 해서 서울 부산 대구 대전 광주 같은 상징적인 도시를 다니면서 강연을 하게 됐어요.

 

『악마 기자 정의 사제』에서 보니 두 분의 호흡이 너무 좋더라고요.


함세웅 : 때로 세상 이야기를 하다 보면, 제가 볼 때는 주 기자님이 거친 표현을 쓰기도 하시는데, 그 용어가 세상의 언어잖아요. 그러니까 제가 그 언어를 포착해서 다시 성서적으로 신학적으로 재해석해서 전달해 주니까 조화가 되더라고요. 저도 재미가 있고 청년들한테서 힘도 많이 힘도 얻게 됐어요. 또 주진우 기자의 힘을 확인했어요. 주진우 기자를 따라다니시는 분들이 종교적인 광신도 비슷한 게 있더라고요(웃음). 그래서 그 광적인 힘을 민주주의와 통일로 이끌어야겠다, 독재 타도로 이끌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어요.


주진우 : 신부님이 강연하실 때마다 수녀님들이 많이 오시거든요. 수녀님들한테 폭발적인 지지를 얻으시는 걸로 보여서 강연도 하고 책을 냈는데, 수녀님들이 공동체 생활을 하시니까 책을 한 권 사셔서 돌려보시더라고요. 제가 거기까지 모르고 같이 책을 낸 거에 대해서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웃음).

 

함세웅 신부님과 함께하는 강연을 준비하신 이유가 있나요?


주진우 : 신부님이 걸어오신 길에 대해서 들었었어요. 박정희 정권 타도, 민주주의 회복, 이런 이야기를 하셨어요. 그런데 그게 30~40년 전의 이야기인데 지금 그대로 되풀이됩니다. 잘못된 역사, 부끄러운 역사가 되풀이되고 있는 거죠. 그래서 ‘아직도 우리는 박정희 시대를 사는구나’ 싶었고, 그래서 특별히 젊은 친구들한테 신부님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어요. 젊은 사람들이 깨어 있어서 한국 현대사를 보고 ‘한국 정치가 무엇이 잘못되어가고 있는지’, ‘우리가 어디로 가야 되는지’ 알아야 하는데, 그 방향을 신부님이 잡아주시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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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에 대한 가감 없는 비판을 담았다


이런 강연이 필요하다는 건, 현대사에 대한 해석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반증일 텐데요. 해석을 가로막는 작용들이 있는 건 아닐까요?


주진우 : 많죠. 저희가 강연을 가려고 하는데, 신부님하고 저하고 간다고 하니까 강연장소를 대관을 안 해주는 거예요. 대구에서는 어떤 경우가 있었느냐 하면, 대구의 한 큰 대학교인데...


함세웅 : 경북대학교(웃음).


주진우 : 강연에서 함세웅이라는 이름을 빼 달래요. 주진우도 빼 달래요. 그러면 ‘무명 씨 강연회’ 이렇게 해야 된다는 거예요? 부산에서도 그렇고 어디에서도 강연을 못 열 정도로 장소를 구하기 어려웠어요. 그런데 저희 같은 사람들이 외치고 이야기하는 건 주류 언론에는 절대 안 나오지 않습니까? 포털사이트에서도 거의 제어되고 있고요. 그래서 진실을 알리는데 어려웠는데, 그래서 우리가 이 방법을 취한 것이기도 하죠.

 

『악마 기자 정의 사제』가 출간된 뒤의 반응은 어떤가요? 관련 보도나 인터뷰 요청이 많았나요?


주진우 : 제가 신부님과 같이 인터뷰하는 게 두 번째예요. 그런데 언론사에서는 인터뷰 요청이 한 번도 안 왔고요. 짧게 신간을 소개하는 기사가 한두 개 있었던 것 같은데, 그것도 기억에 없을 정도입니다. 기자들한테 전화가 한 번도 오지 않았습니다.


함세웅 : 저는 개인적으로 1970년대 인권 운동, 민주화 증언을 할 때를 생각해 보면 처음에는 기사가 하나도 안 났어요. 그래도 상관하지 않고 끈질기게 하니까 기자들이 움직이더라고요. 그래서 동아일보 기자들이 우리의 활동에 자극을 받아서 1974년 10월 24일에 자유언론실천선언을 했잖아요. 그런 측면에서 조금 신앙적으로 해석을 할 수 있다면 ‘옳은 일을 꾸준히 하다 보면 언제나 큰 결실이 나오게 돼있다’ 이런 마음으로 합니다. 원래가 언론의 속성이 권력의 시녀이고 아부하는 거니까 저는 그렇게 크게 신경 안 써요.


주진우 : 첫 책(『주기자 : 주진우의 정통시사활극』)은 인기가 있어서 나오자마자 1위를 했었어요. 그 때도 언론사에서 인터뷰 요청이 없었어요. 두 번째 책(『주기자의 사법활극』)은 2위까지 올라갔는데요. 그때 제가 무죄를 받았었고, 이명박 대통령이 책을 냈었는데 제가 이명박 대통령을 따돌렸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도 (인터뷰 요청이) 없었어요. 이번에도 마찬가지인데, 그래서 제 친구들이, 이승환 김제동 <나꼼수>가 북 콘서트를 열어줍니다. 그래서 조금 해볼까 하는데요. 사실은 함세웅 신부님을 추종하는 다른 신부님들과 수녀님들의 분발이 조금 필요해요. 신부님의 인기를 얻고 같이 하려고 했는데 잘 안 되고 있습니다(웃음).

 

만약 언론 보도를 막는 세력이 있는 거라면, 그들이 두려워하는 무언가가 책에 담겨 있는 거겠죠?


주진우 : 그렇죠. 진실을 두려워하고요. 특별히 신부님과 저희들의 말을 두려워하죠. 저희들은 에둘러가지 않고 직진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정권에 대한 가장 가감 없는 비판이 책에 담겨있다고 자신하고 있거든요. 실제 강연은 훨씬 더 세서 약간 순화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부에 대한 가장 정확한 해석과 직접적인 비판이 담겨있어서, 언론에 나오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함세웅 : 무슨 비판을 했어요? 비판을 하지는 않았죠.


주진우 : 비판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 말씀하셨죠.


함세웅 : 기도했죠, 기도. 회개하라고.

 

주진우 : 그 여인 나쁜 사람이야, 이렇게 신부님이 말씀하셨잖아요. 저는 끝까지 대통령이라고 존칭을 붙이는데도 신부님은 안 하셨잖아요.

 

이렇게 혼자 빠져나가시는 거예요? 책에서도 그런 모습이 많이 보이시던데요(웃음).

 

함세웅 : 그래요(웃음)? 그래도 검찰이 잡아가면 저를 잡아가지 않고 주 기자만 잡아갈 거예요.


주진우 : 저는 신부님의 사주로 했어요. 사주로 했다고 기사에 꼭 적어주십시오(웃음).

 

두 분이 13년 동안 인연을 이어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주진우 기자님을 ‘악마 기자’라고 하지만, 신부님께서 보시기엔 그렇지 않으시겠죠?


함세웅 : 악마에 두 가지 의미가 있어요. 선에 반대되는 의미도 있지만, 우리 가톨릭에서 성인으로 추대할 때 조사하는 분을 악마라고 해요. 나쁘게 이야기를 해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확인될 때 훌륭한 분이 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악마 기자라는 건 시대를 검증하는 기자로서 악마 역할을 한다는, 그런 긍정적인 의미도 있겠죠.


주진우 : 신부님 너무 많이 아세요(웃음).


함세웅 : 이 분 천사잖아요(웃음).

 

한국의 현대사가 우리에게 남긴 과제가 여럿 있지만, 그 중 세 가지를 꼽자면 ‘과거사 청산, 용서, 화해’가 아닐까 합니다. 신부님께서는 독재 정권 하에서 직접 고초를 겪으셨잖아요. 그런데도 용서가 되세요?


함세웅 : 용서는 참 어려운 주제예요. 하느님한테 용서받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용서해 주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서에 따르면 잘못한 사람이 먼저 용서를 청할 수 있어야 돼요. 구체적인 예로 전두환 같은 경우에 5.16 학살의 주범이잖아요. 그런데 전두환을 제가 용서해 주고 싶어도 용서할 수 없는 거예요. 용서를 청하지 않는데 어떻게 용서를 해줄 수 있습니까? 잘못한 사람이 먼저 용서를 청할 때 나도 용서의 범주에 함께할 수 있고 하느님께서도 용서해주실 수 있는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용서가 화해의 전 단계죠.


주진우 : 전두환 때 정의사회 구현을 모토로 삼았잖아요. 비슷한 것 같아요. 지금 최순실 게이트로 굉장히 시끄럽잖아요. 그런데 1970년대 후반에도 이상한 종교나 선교단체, 선교재단을 만들고 거기에 재벌들한테 돈을 내게 하고 이상한 행사를 한 다음에 재산을 빼돌리는 일이 있었어요. 최태민 씨 집안의 재산들은 다 그렇게 갔죠. 그런데 제대로 된 회개와 용서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40년이 지나서 거의 비슷한 일이 똑같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게 재벌이나 전경련이나 몇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잘못된 역사가 되풀이되고 있는 거거든요. 친일파 청산을 하지 못하고 군부 독재에 빌붙어 먹던 사람들이 그대로 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돈만 벌면 돼’, ‘비굴하게라도 출세만 하면 돼’라는 식으로 돈에 모든 가치나 신념이 매몰되어 버리는 비정상적인 사회가 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이야기를 책에서 조금 더 하고 싶었던 거죠.


함세웅 : 김재규 부장이 유신 핵 박정희를 제거시켰어요. 정말 친했던 친구이자 상사였는데도 ‘박정희는 안 되겠다, 내가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핵을 제거한다’ 하고 자기 목숨을 걸고 박정희를 제거한 거예요. 그러고 나서 전두환 때 군사법정에 섰을 때 ‘내가 살아야 된다, 내가 모든 정보를 다 안다, 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재벌 체제를 해체하고 정리해야 된다, 부정부패를 뿌리 뽑아야 한다, 나만이 그걸 할 수 있다, 끝나고 나면 스스로 자결하겠다’ 이렇게 이야기했어요. 그리고 당시에 ‘영애(박근혜)가 큰 문제가 있다, 감시하지 않으면 큰 변을 당할 거다’라고 했어요. 그때 박근혜가 새마음(봉사단) 총재였거든요. 그러면서 권력을 남용하고 있을 때 최태민이라는 거짓 목사의 꾀임에 빠져들어 갈 때예요. 그때 김재규 부장이 예견했던 그대로, 40년이 지난 지금 이뤄지고 있는 거예요.


주진우 : 신부님 우리 인터뷰 하다가 잡혀가요, 이러다가.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에 대해서는 재평가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들이 있어왔죠.


함세웅 : 모든 언론이 핵심을 이야기해야 돼요. 최순실 게이트가 아니고 박근혜 게이트예요. 그리고 박정희 때부터 이미 40년 전에 김재규 부장이 군사 법정에서 이야기한 거예요. 내일 모레가 바로 김재규 부장이 박정희를 제거했던 날이잖아요. 안중근 이사가 이등박문을 제거한 바로 그 날 김재규 부장이 유신의 핵을 제거했어요. 이런 식의 청산의 의미를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데 언론이 이 핵심을 이야기하지 않고 있어요. 수술을 하려면 환부의 뿌리를 찾아가야 되는데, 지금 그런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래서 김재규가 재평가되는 그 날, 민주주의가 이루어지는 거예요. 그런데 아직 그게 금기시되어 있잖아요.

 

 


박근혜 바이러스를 잡으려면…


언론의 제 역할을 하지 않는 기자들이 많잖아요. 그 분들도 불의에 한 발 걸치고 계신 것 아니겠어요?


주진우 : 한 90%는 그렇죠.

 

그 분들 가운데 어떤 분들은 회개를 할지언정 변명을 하실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나도 생존하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고요. 그런 기자들 보면 어떤 생각이 드세요?


주진우 : 돈 벌려고, 아니면 명예 때문에 기자 생활을 시작한 건 아닐 거예요. 사회가 조금 더 나아지는 데 보탬이 되겠다는 생각 때문에 했을 거고, 사실을 전달하고 국민과 국가를 옳은 방향으로 이끄는 데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해서 처음 기자 생활을 시작했을 거예요. 그런데 점점 현실과 타협하고 ‘사는 게 그런 거지’ 하다 보니까 사주나 사장, 팀장한테 잘 보이고 기사를 조금 더 많이 쓰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다른 건 몰라도 언론인이면 조금 더 신념, 이 땅의 민주주의와 자유가 발전하는 부분에 삶의 가중치를 더 줘야 된다고 생각해요.

 

언론인으로서 짊어져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주진우 : 누구나 다 뛰어들어서 데모하거나 사회를 나아지게 하려고 부딪힐 수는 없어요. 보통 사람들은 자기 자리를 지켜야 되잖아요. 그런데 기자는 진실을 지키고 사실을 지키고 신념을 지키는 파수꾼이 돼야죠. 다른 사람보다는 조금은 더 그런 데 가치를 둬야 하고요. 그런데 사실 언론인들이 권력에 민감해서 권력을 잘 알아요. 누가 힘이 있고 누가 돈이 있고 누가 나한테 도움이 되는지 알고 있어요. 그래서 나한테 도움이 되는 걸 먼저 생각합니다. 세월호 사건도 그렇고 최순실 사건도 마찬가지인데, 진실이 중요하기보다는 ‘이 사안이 나한테 유리한가, 이 사안이 박근혜 정권에 유리한가’ 이걸 먼저 따져요. 그래서 욕을 먹는 거죠.

 

신부님, 성경에서는 네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지금까지 신부님이 겪어 오신 일을 보면 마음속에 미움과 원망이 싹트고도 남으셨을 것 같아요.


주진우 : 신부님이 박정희하고 박근혜한테는 욕 많이 하셨어요.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사랑해야 하는데 왜 그러셨어요?

 

사제이기 때문에 괴로우셨을 것 같기도 하거든요. ‘저 이웃까지 내가 사랑할 수 있을까?’ 하고요. 어떠셨어요?


함세웅 : (웃으며) 왜 괴로워요? 그게 사랑이에요. 잘못된 사람의 잘못을 지적하는 거, 그게 사랑이에요. 무관심하고 다른 거죠. 사랑은 잘못된 사람과 불의를 보고 꾸짖고 지적하는 거거든요. 사랑이라는 것은 기자님이 말씀하신 대로 보편적인 거예요. 모든 사람을 다 사랑해야 돼요. 원수까지도 사랑해야 돼요. 그런데 원수까지도 사랑하려 하는데, 그 사랑을 방해하는 사람들이 있는 거예요. 그러면 보편적 사랑 실천을 위해서 그 걸림돌을 제거해야 돼요. 그건 보편적 사랑의 실현을 위한 하나의 작은 행위예요. 그러니까 제가 잘못된 사람, 불의한 정치인들을 지적하는 건 보편적 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지 미움이나 증오가 아니라는 거죠. 그렇게 해서 그 분이 잘못을 청산하고 아름다운 인간이 될 수 있도록, 공동체의 구성원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게 우리들의 사회적 비판과 지적이 아닐까 생각해요.

 

현 정부에 이르러 많은 사람들이 ‘시간이 거꾸로 흐르고 있다’고 이야기하잖아요. 그 시간을 직접 살아오신 신부님께서 보시기에는 어떠세요?


함세웅 : 변질됐어요. 예를 들어서 말씀드리면, 우리가 병에 걸리면 병원에 가지 않습니까. 박테리아는 항생제로 잡을 수가 있어요. 그래도 그 박테리아가 자꾸만 변형이 된다고 하는데, 바이러스는 항생제로 안 되는 거예요. 내가 면역력이 있어야 되는 거예요. 바이러스를 잡기 위해서 약을 투여하면 그 바이러스가 잡히는 순간 변형이 된다는 거예요. 박정희 바이러스를 잡다 보니까 전두환 바이러스로 변형이 됐어요. 전두환 바이러스가 이명박 바이러스로 변형됐어요. 이명박을 잡다 보니까 박근혜 바이러스로 변형이 됐어요. 이 변형된 바이러스를 잡기 위해서는 우리가 더 건강해야 돼요. 각 시민과 사회 공동체가 건강해야 돼요.

 

지금 우리 사회는 그만큼 건강하지 못한 거군요.


함세웅 : 너무 이기적이고 공동심이 결여돼 있으니까 변형된 독재자들이 벌금을 통해서 많은 사람을 지배하고 있잖아요. 이럴 때일수록 우리가 의식과 힘을 모아서, 변형된 바이러스를 아주 건강한 면역력으로 없애버릴 수 있도록, 사회를 건강하게 키우는 작업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지금은 그 때가 된 것 같아요. 박근혜 바이러스의 정체가 밝혀졌기 때문에 이제 끝판에 와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잡혔어요. 이걸 꽉 눌러서 우리가 건강한 사회 공동체를 만들면 될 것 같습니다.


주진우 : 저희가 그 바이러스 잡으러 진짜 많이 갔어요. 독일도 여러 번 갔어요, 저희는. 그런데 이거는 공권력이 나서야 되는 문제인데. 검찰이나 국세청, 특별히 정부가 나서야 될 문제인데 정부가 안 나서니까 저희들이 다니고 있는데요. 쉽지 않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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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꼼수>는 돌아올까?


기자님, 강연을 하시다가 회의감이 들 때는 없으세요? 어차피 이야기를 들으러 오시는 분들은 기자님과 같은 편에 서 계신 분들이고, 설득시켜야 할 반대편의 사람들은 오지 않잖아요.


주진우 : 그런 건 아니고요. 우리 국민들이 너무 똑똑하고 성실한데, 지도자들이 방향을 잘못 잡아서 국민 세금을 펑펑 쓰고 있으니까 그런 걸 보고 분노하죠. 이걸 바꿔야 되는데, 친일파들이 다시 정권을 잡고 좌지우지하는 걸 보고 분노하고 바꿔야 하잖아요. 그런데 분노하지 못하게 만드는 시스템이 있지 않습니까. 이런 거에 대해서 항상 분노하죠. 그리고 중간에 있는 사람들한테까지 이 사실이 전해지지 않는 건 저 같은 언론인들의 큰 책임인데, 그 사람들이 역할을 제대로 못해서 이 사회를 사람들이 분노하고 뒤엎지 못하고 있잖아요. 그래서 끓는점까지 가지 못하고 따뜻한 물로 남아버리는 이런 사회 현상에 대해서 굉장히 안타깝게 생각하죠.

 

이런 상황에서 기자님이 하실 수 있는 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주진우 : 좌절보다는 ‘그래도 내가 몇 발짝 떼서 이것도 저것도 해야지’ 생각해요. 그래서 제가 기사를 쓰고 제가 가진 영향력과 능력 지식을 가지고 뭐라도 하겠다고 강연하고 책 쓰는 거죠. 그래서 다양한 채널에 내보내려고 합니다. 그런데 어려워요. 사실 대형 서점에서 저의 책이나 신부님 책을 좋은 자리에 갖다 두지 못해요. (그건) 출판사의 영업 문제이기도 하지만, 제가 『주기자』로 베스트셀러 1위를 했을 때도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사인회를 못 열었어요. 안 열어줬어요. 그리고 영풍문고에서도 중요한 매대에 올려놓지도 않았어요. 그런데 전파가 되지 않더라도, 그래도 해야죠.

 

『악마 기자 정의 사제』로 군자금을 모으겠다고 말씀하셨어요. 내년을 대비하시는 건가요?


주진우 : 내년이 ‘한국의 현대사가 앞으로 가느냐 뒤로 가느냐’의 가장 중요한 한 해가 될 것 같아요. 그래서 내년까지는 진짜 열심히 뛰어보려고 합니다. 이 책은 거의 내년을 위한 군자금으로 다 쓰려고 합니다. 그래서 모아놓은 돈 다 모아서 정말 전력질주해서 내년까지는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

 

‘함세웅 신부와 주진우 기자의 현대사 콘서트’를 처음 시작하실 때, 총선을 앞둔 시점이었어요. 다행히 선거 결과가 좋았죠. 그 기운 그대로 내년에도 큰 일을 해주셨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요.


주진우 : 신부님이 큰 일을 하시고요. 저는 따라다니는 거죠.

 

끝까지 선을 그으시는군요(웃음). 신부님은 어떠세요? 내년에도 기자님과 함께하는 활동을 계획하고 계세요?


함세웅 : ‘쪽말교’(쪽팔리게 살지 말자, 주진우 기자 팬클럽)가 살아있는 한 교를 번성시켜야겠죠(웃음).


주진우 : 아직 큰 계획은 없는데요. 일단 책을 잘 팔아보고, 내년에 그리고 중요한 고비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역할은 다 할 생각이에요. 신부님이 나서시면 저는 무조건 따라가기 때문에, 분명히 어떤 큰 계획들이 진행되겠죠.

 

<나꼼수>가 돌아온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던데요?


주진우 : 아뇨, 이 책을 위해서 한 번 오는 거예요. 제가 방송을 하거나 다른 건 안 하고요. 다른 사람들은 다 방송을 해서 살림살이가 괜찮습니다. 그런데 저는 아무것도 안 하고 취재비로 돈을 다 쓰기 때문에 항상 월급이 부족해요. 그래서 저의 경제 상황을 감안해서 <나꼼수> 사람들이 한 번 모여서 북 콘서트를 열어주는 겁니다.

 

내년을 위해서 <나꼼수>가 무언가를 해주길, 기대하시는 분들이 많지 않나요?


주진우 : 아직은 (계획이) 없어요. 『악마 기자 정의 사제』를 위해서 한 번 모이는 건데, 그 다음 계획은 없어요.

 

‘과연 세상이 예전보다 나아지기는 한 걸까’, ‘지금 우리 상황이 나아지고는 있는 건가’ 하는 생각에 좌절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 같아요. 지금 저희는 어디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함세웅 : 역사에서도 찾아야겠지만 자기 안에서도 찾아야 될 것 같아요. 어느 시대나 기본적인 인간의 조건은 똑같거든요. 신학적으로 접근해 보면 인간은 다 개인주의, 탐욕, 이기심이 있습니다. 그걸 어떻게 타인과의 관계, 공동체의 관계 속에서 승화시키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우리가 제 자리에서 아름답게 최선을 다하면서 정직하게 이웃을 배려하면서 살아가야 하고, 잘못된 사회와 역사를 바로 잡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 돼요. 타자를 생각하지 않고 이기심에 매몰될 때 그 사회는 후퇴할 수 있겠죠. 우리 각자가 희망이거든요. 성서적으로 말씀드리면 우리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模相)이에요. 하느님의 닮은꼴이에요. 내 안에 신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그것을 깨닫고 발견하는 작업이 가장 중요해요.

 

신념을 가진 적은 수의 사람들만으로 변화가 생길까요?


함세웅 : 1945년 해방이 되었을 때 일제와 맞서 싸워서 독립운동을 펼쳤던 독립군들은 5천명 정도였대요. 물론 그 전에 순국선열들이 많이 계셨지만 당시에 2천만 명 중에서 5천 명 또는 만 명만이 목숨 걸고 싸웠어요. 그 분들이 우리 민족의 얼입니다. 지금 우리 5천만 겨레가 모두 다 앞장서서 싸울 수 없겠죠. 거기에서 살아있는 만 명, 2만 명이 계신다면 아름다워질 수가 있을 거예요. 선현들의 가르침과 같이, 물이 아무리 흐려졌어도 깨끗한 물 한 방울이 떨어지면 그 한 방울만큼 깨끗해지는 겁니다. 한 방울, 두 방울, 세 방울, 깨끗한 물이 떨어져서 혼탁한 우리 사회를 맑게 바꿔줬으면 좋겠어요.

 

기자님,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 없으세요?


주진우 : 저는 한국 현대사에 대해서 굉장히 회의적인 시각이었어요. 친일파들이 아직 권력을 잡고 있고, 독재자의 딸이 아직도 정권을 잡고 있고, 그 사람들한테 아부하는 사람들이 잘 먹고 잘 살고 있잖아요. 그런데 우리 함세웅 신부님 같은 분들, 고문과 징역에도 전혀 굴하지 않고 활동했던 분들이 계셔서 한국 현대사가 이렇게 옳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우리 현대사를 잘 보면 희망을 갖고 긍지를 가질 수 있다는 이야기를 꼭 해주고 싶어요. 패배의 역사가 아니라 희망의 역사가 분명히 보이고 우리 역사는 도도히 흘러간다고요. 독재가 군부가 아무리 누르더라도 한국은 앞으로 나아간다, 그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요.


 

 

악마 기자 정의 사제함세웅,주진우 공저 | 시사IN북(시사인북)
함세웅 신부와 주진우 기자 두 사람이 서울, 부산, 대구, 대전, 광주를 숨 가쁘게 돌며 현대사 얘기를 나누었던 ‘속 시원한 현대사 콘서트’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함세웅 신부의 풍부한 식견과 정의감이 주진우 기자의 재기발랄한 현장 취재 경험과 버무려진 재기발랄한 통찰이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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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병모 “인간은 끊임없이 오해하고 왜곡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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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병모 작가가 신작 장편소설 『한 스푼의 시간』을 발표했다. 작품 속에는 세탁소에서 일하는 인공지능 로봇이 등장한다. 아내와 사별하고 외아들마저 사고로 잃은 채 홀로 세탁소를 꾸려가고 있는 명정에게 어느 날 하나의 소포가 배달된다. 상자에 담긴 것은 17세 정도로 보이는 앳된 소년의 모습을 한 로봇. 명정은 그에게 ‘은결’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피부를 맞대고 밥상을 마주하며 가족처럼 살아간다. 은결은 명정을 비롯한 주변 인물들-시호, 준교, 세주를 만나며 인간과 삶을 배워나간다. 로봇의 시선으로 전개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로봇이 아닌 우리 인간에 대한 질문을 품게 된다. 인간과 로봇의 차이에 대해, 그것이 만들어 낸 희미한 경계에 대해 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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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끊임없이 오해하고 왜곡하는 것 같아요

 

작가의 말에서, 조엘 가로의 『급진적 진화』의 한 대목이 소설의 발화점이었다고 밝히셨는데요. 조엘 가로는 “과연 로봇이 당신이 맡긴 셔츠를 돌려주면서 태국산 가지와 멜론의 씨앗을 끼워 넣어줄 만큼 당신에 대해 잘 알 수 있을까?”라고 적었어요. 그의 생각에 동의하시면서 집필을 시작하셨나요?


조엘 가로의 그 말은 ‘인간이 하듯이 고객 별로 취향에 맞춰줄 수 있을 만큼 인공지능이 당신을 깊이 파악할 수 있겠느냐’는 건데요, 그 내용에 동의 여부는 미처 생각하지 않았고, ‘이런 경우를 상정해 볼 수도 있겠구나’라는 느낌으로 먼저 다가왔던 것 같아요. 그전에 상상해본 적 없는 사건의 가능성에 대한, 인식의 전환에서 시작된 거죠.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인공지능도 그런 일을 할 수 있을까요?


네,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확실치는 않지만 지금 어디에선가 이미 그런 로봇이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어요. 다만 사회 경제 문화적 요건이 충족되지 않아서 우리한테 아직 드러나지 않았을 뿐, 언제든지 우리 눈앞에 나올 준비가 갖춰졌을지도 몰라요.

 

소설을 읽으면서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 묻게 됐어요. 작가님도 소설을 쓰시면서 ‘어떤 것이 사람다운 것인지’ 생각하게 되셨나요?


사실 소설을 쓰면서는 ‘인간 뭐 별 거 없어’라고 생각한 것 같은데요(웃음). 평소에도 인간이 동물이나 사물보다 얼마나 나은 존재일까,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있어요. 소설 속 주인공은 명백히 사물에 해당하는데 독자는 결국 그 사물에게서 인간성의 일부를 엿보게 되지요.

 

그렇다면 ‘인간다움’이란 어떤 것일까요?


결국 인간다움이라는 건 두 명 이상의 인간이 서로를 어떻게 바라보느냐 하는 시선에 달려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리고 ‘본다’는 행위 자체가 왜곡을 전제로 한다고 생각해 보면, 인간은 계속 끊임없이 상대방 또는 제3의 사람을 오해하고 왜곡하는 것 같아요. 이해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오해를 하는 것 같은데요. 그러면서 계속 자신의 생각이나 타인과 투쟁을 해 나간다고 해야 할까요. 그 무한한 투쟁 과정이 결국은 인간다움의 증거가 아닌가 싶어요.

 

지난 9월에 『한 스푼의 시간』북 콘서트에서 하신 말씀이 기억나네요. “인간의 감정을 철저하게 오해하는 것이 어쩌면 인간을 이해하는 방법의 하나가 될 수 있지 않을까”라고 하셨죠.


그런 맥락이 되겠네요. 보태자면 그 말뜻은 결국 인간은 언제까지나 서로를 이해할 수 없을 거라는, 이해의 불가능성이야말로 인간의 조건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타인이 보내는 메시지를 파악하지 못하는 건 인간이나 로봇이나 마찬가지일지도 모르겠어요.


우리는 가장 친한 친구가 보내는 메시지도 100% 다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간혹 자신의 상황이나 이해관계에 맞게 조정하고 판단하고 버리고 싶은 부분을 버리곤 하지요.

 

결국 은결이도 인간을 완전히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지 않을까요?

 

바로 그 점이 인간다운 요소라고 봅니다.

 

우리는 로봇을 보면서 ‘로봇이 저런 일도 할 수 있어?’ 하고 놀라잖아요. 그런데 이 소설에서 은결이의 시각으로 인간을 바라보면 ‘인간은 어떻게 저런 일까지 해내지?’라는 생각도 들어요. 로봇이 끝내 대체할 수 없는 영역도 있을 것 같고요.


어떤 직업들은 향후 수십 년 내에 인공지능으로 대체된다는 기사들이 여러 번 나왔잖아요. 그 중에서 ‘아마 제일 마지막에 없어지는 것이 작가를 비롯한 창작 계통’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어요. 물론 지금도 (인공지능이) 소설을 쓰기는 하지만요. 그런데 가장 마지막에 없어지면 뭐하겠어요. 그 때쯤 되면 이미 우리는 존재하지 않을 거예요. 제가 평소 생각이 비약이 심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인간이라는 종이 그때까지 남아있을지는 생각을 해봐야 될 것 같아요.

 

작가님은 비관론자이세요?(웃음)


낙관론자는 확실히 아닌 것 같고요. ‘이게 잘못될 경우에는 어떻게 하지?’라는 대안을 먼저 생각해 놔야 그 일을 할 수 있는 성격이에요. 항상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고요. 굳이 말하면 비관론자 쪽에 가깝기는 한데, 소설 속에서 드러나는 세계관은 그렇게 비관적이지만은 않죠. 많은 분들이 이번 소설은 지금까지 제가 쓴 소설 중에 가장 따뜻한 것 같다고 하시더라고요.

 

저 역시 비관론자에 가까운데요(웃음). 때로는 ‘세상에 불만이 많은 사람’으로 비춰질까 봐 두렵기도 해요.


장래에 글을 쓰겠다는 친구들이 저한테 많이 물어봐요. 소설가가 되기 위한 조건이 뭐냐고. 제 첫 번째 대답은 ‘일단 불만을 가져라’는 거예요. 세상에 불만이 없는 사람이 소설을 쓰기는 어렵지 않을까 생각하거든요. 자기를 둘러싼 세계에 대해서 불만을 갖고 있다는 건 인간이라면 누구나 당연한 거고, 오히려 저는 그렇지 않은 게 신기한 상태라고 생각해요. 소설뿐만 아니라 인류 역사는 현 상태에 불만이 있는, 불안을 느끼는 이들이 만들어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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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결이는 공기 같은 존재죠


앞서 ‘로봇이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영역’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는데요. 소설에서 은결이는 ‘어떤 인간도 해내지 못했던 일’을 해내기도 해요. 명정이나 시호에게 위로를 건네는 일이 그 중 하나죠.


지금 개발되어 있는 로봇들도 위로 자체는 할 수 있는 걸로 알고 있어요. 좋은 말을 들려주고 인사를 나눠주는 거죠. 유튜브 광고에서 봤는데, 주인이 우는 걸 로봇이 곁에 가서 다독여주고 안아주더라고요. 이 소설에서는 처음 은결이가 기능적이고 학습적인 위로를 했을지 모르지만, 사람들 각자가 갖고 있는 심리 상태나 상황으로 인해서 위로가 단순 자극-반응 이상의 역할을 했어요. 사람들이 저마다 바라는 위로의 방식이 다른데 천편일률적으로 안아준다고 해서 도움되는 게 아니죠.

 

시호의 경우만 보더라도, 자기 안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꺼내고 위로가 필요하다는 신호를 보낸 것 같아요. 은결이는 그 신호에 답하고요.


맞아요, 그 신호에 어떻게 답하느냐가 기존의 로봇과 차별화되는 지점이에요. 시호는 은결이가 로봇다운 판에 박힌 위로를 해줄 거라고 생각했지만, 자기 예상과 다른 반응이 나왔을 때 오히려 위로를 받았거든요.

 

가족의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었어요. 작가님께서는 가족이라는 관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2009년에 데뷔했을 때 들은 질문이기도 한데요. 그때 저의 언어로는 표현할 말이 생각 안 나서 다른 사람 말을 빌렸었어요. 기타노 다케시의 너무나 유명한 말이 있잖아요. ‘누가 보지 않는다면 갖다 버리고 싶은 게 가족’이라고요(웃음). 그 말에 대체로 동의한다고 했어요.

 

우스갯소리입니다만, 나중에 아드님이 이 인터뷰를 읽게 되면 어떡하죠?(웃음)


버린다는 건 문자 그대로의 버림이기도 하겠지만 대개는 이별, 떠남이지요. 사람은 태어난 순간부터 어떻게 하면 서로 잘 이별해서 살아갈 수 있는지, 어떻게 독립된 개체로 살아갈 수 있는지 배워나가는 것 같아요. 서로의 가치관은 살아오는 내내 계속 충돌하고 이별하는 과정에 놓이고요. 그래서 특별히 잘못된 표현은 아닌 것 같아요. 어린아이 같은 경우는 성장하기까지 부모의 경제적 도움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같이 붙어있을 수밖에 없는 거고요. 그 다음에는 독립을 잘 해야 하는데 지금 사회 현실은 결혼한 다음에도 부모한테서 독립이 불가능한 상황들을 만들어내고 있죠.

 

“가족이란 결국 무거운 부담과 막대한 담보 및 거미줄 같은 채무로 연결된, 서로가 서로에 대한 인질인가”라고 쓰신 문장이 생각나요. 어쩌면 제대로 독립되지 않아서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서로 옭아매는 관계가 됐는지도 모르겠어요.


기존에는 전통적인 유교 가치나 윤리관 때문에 그런 관계가 됐다면, 지금은 윤리관은 이미 해체됐는데 사회 경제 제도와 각종 비리가 청년들 독립을 막고 있는 상태죠. 그렇게 달라진 세상에서의 가족관계는 또 달리 생각해 볼 지점이 있는 것 같아요.

 

명정과 시호에게 은결은 어떤 존재였을까요?


책 속에서 묘사된 바에 따르면 공기 같은 존재잖아요. 곁에 있기는 있는데 있는지 없는지 신경은 잘 안 쓰이고, 그런데 있으니까 좋고, 없으면 큰일 나는 존재가 점차 되어가죠.

 

은결에게 있어 명정, 시호, 준교, 세주는 인간과 삶을 학습하는 교재라고 볼 수도 있어요. 그런데 이들의 삶이 녹록지 않거든요. 낡고 가진 것이 많지 않은 동네에 사는 인물들이라서 그런 건 아니겠죠?


소설의 첫 부분에 배경이 잠깐 나오는데, 어떤 분들은 여기가 무척 가난한 동네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저는 나름대로 보편적이고 평범한 서울의 한 동네 골목을 설정하고 썼거든요. 아파트 단지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적인 골목길입니다. 저도 이런 곳에서 살았고요. 그 속에서 사람들은 어떻게든 삶을 영위하고 있고, 그 중에 돈 없어서 힘들다는 소리 한 번 안 하는 사람도 없죠. 양극화가 고착되고 중산층이 이미 붕괴된 상태에서 지금 이들의 모습이 특별히 낡고 가난한가, 묻는다면 저는 이것이 지금의 보편이라고 봅니다.

 

소설 속 인물들처럼 병원비를 걱정해야 하고, 등록금이 없어서 학교를 휴학해야 하는 게 일부 사람들만의 이야기는 아니죠.


옛날에도 등록금 때문에 집안 형제들이 돌아가면서 한 학기씩 휴학하는 얘기는 종종 있었습니다.  지금은 등록금 천만 원 시대니까 더하죠. 휴학과 알바와 취업 실패와 삼각김밥의 수레바퀴, 현재 청년들의 삶은 그런 고단함이 강제적인 디폴트값으로 맞춰져 있다는 점이 큰 문제입니다. 


철저히 무너져 본 적, 있으세요?


보편적인 삶이란 “데어버리도록 뜨겁고 질척거리며 비릿한 데다, 별다른 힘을 가하지 않고도 어느 결에 손쉽게 부셔져버리는 그 무엇”이라고 적으셨어요. 이 문장 앞에서 책장을 넘기는 손길이 멈추더라고요. 작가님이 평소에 갖고 계신 생각을 엿본 것 같기도 했고요.


그 문장은 ‘삶은 달걀’에서 나온 거고요(웃음). 평소 삶에 대한 주관은 그냥 태어났으니까 사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 이상으로 더 큰 의미를 삶에 부여하면, 나중에 그 삶이 자기가 뜻하는 대로 되지 않았을 때, 더 큰 절망에 빠지게 될 수도 있어서요.

 

왠지 작가님이라면 그렇게 말씀하실 것 같았어요(웃음). 소설 속에 “사람의 인생은 고작 푸른 세제 한 스푼이 물에 녹는 시간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도 나오는데요. ‘짧은 삶에서 어떤 의미를 남길 것인가’ 하는 생각 같은 것도 안 하실 것 같아요(웃음).


그래서 소설 속에도 나오잖아요. 의미를 남기거나 의미를 부여하기 전에 이미 녹아서 없어질 거라고요.

작품에서 은결이 반복적으로 묻는 것들이 있어요. 그 중 하나가 ‘하다, 하지 않다, 하고 싶다, 하고 싶지만 하지 않는다’ 사이의 미묘한 차이에 대한 거거든요. 이유가 뭘까요?


살아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별하는 가장 큰 요소가 행동이잖아요. 그런데 ‘하다’라는 건 모든 동사를 다 포함할 수 있는 말이에요. 아마 그래서 그 단어를 골랐던 것 같고요. 어쨌든 인간이 살아있다는 건 결국은 뭔가를 계속 하고 움직인다는 거잖아요. 생각도 ‘하는’ 거고요. 그렇기 때문에 ‘어쩌면 ‘하다’라는 말에 인간의 존재 양상이 거의 다 달려있지 않나’라는 생각을 해요.

 

은결이가 또 하나 궁금해 하는 게 있어요. ‘무너진다는 건 어떤 걸까’ 하는 거예요. 제가 은결이처럼 작가님에게 여쭤본다면, ‘무너진다’는 건 어떤 건가요?


과연 제 인생에 있어서 철저히 무너져 본 적이 있을까 싶어요. 예를 하나만 들자면 저는 등단하기 전에 실패만 15년 정도 했고, 남들에게는 사소한 어려움이 그때의 저한테는 굉장히 큰 어려움이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진정한 의미에서 제가 존재 자체를 다 방기할 정도로 무너져본 적이 있었는지 생각해 보면, 그렇게 말하긴 어렵고 지금까지 굉장히 운 좋게 살아온 것에 가깝습니다. 그 점은 작가로서 결격사유라고 생각도 해요. 그런데 베트 미들러의 「더 로즈」라는 노래에 이런 가사가 있어요. 넘어질 것을 두려워하면 춤을 배울 수 없다고요.

 

넘어지는 것이 곧 무너지는 것일까요?


인생의 길을 걷다가 걸려 넘어지는 순간들이 있는데, 남들이 보기에는 그냥 툭툭 무릎 털고 일어나면 되는 정도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넘어져 본 사람 입장에서는 그 모든 순간을 다 ‘무너짐’이라는 말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무너질 때 인간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무엇을 할까요?


음... 케바케?(웃음)

 

우문현답입니다(웃음)


그대로 뒹굴거나, 아니면 다시 일어나거나, 조금 시간을 갖거나... 여러 가지를 취향 따라 선택하겠죠? 취향과 자신의 지금 현재 상태에 따라서. 그런데 중요한 건, 무너진 걸 다시 세울 때 주위에서 누가 편이 되고 도와주면 그건 좋은 일이지만 결국 본질적인 일으킴은 혼자서 할 수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글쓰기의 가장 매력은 불확실성과 불안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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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위저드 베이커리』가 연극으로 상연이 되었잖아요. 이번 소설도 영화나 연극으로 제작될 수 있겠다는 생각, 해보셨어요?


생각은 안 해봤지만, 제안이 들어온다면 거절은 안 해요(웃음).

 

만약 영화나 드라마, 연극으로 만들어진다면 어떤 장면이 하이라이트가 될까요? 은결이 거울을 보는 장면일까요?


인공 지능 로봇이 출시되기 전에 거울 실험을 거친대요. 거울을 보고 그게 자기 모습인지 인식하는가 확인해 보는 거죠. 은결이 거울을 바라보는 장면은 그 점에 착안해서 쓴 거예요. 제가 보기에는 이번 소설에서 가장 영화적인 부분은, 아마도 에필로그 부분일 것 같아요.

 

이 이야기를 어떻게 끝낼지, 결말에 대한 고민도 많이 하셨을 것 같아요.


결말은 처음부터 정해놓고 썼어요. 모든 소설을 쓸 때 처음하고 끝을 생각해놓고 써요.

 

인물들이 작가님의 지시를 잘 따라가나요? 통제에서 벗어날 때는 어떻게 하세요?


사실은 통제에서 벗어날 때가 더 많아요. 그런데 작가가 흘러가는 상황을 장악하기 어렵고 자꾸만 인물들은 다른 데로 튀려고 하는, 그런 불확실성과 불안정성이 글쓰기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생각해요. 소설의 결말이 반드시 처음에 생각했던 그대로의 결말은 아닌 경우도 있죠.

 

이번 작품의 경우는 어땠나요?


한 80% 정도는 그대로 간 것 같아요. 그런데 결말의 모습이 처음의 생각과 80% 같다고 해서 생각했던 길 그대로 따라갔던 건 아니고요. 비록 다 온전한 형태로 거두어지지 않더라도 흩어진 줄기를 수습하는 과정은 반드시 필요하지요.

 

만약 작가님에게 은결 같은 로봇이 찾아온다면, 사람과 삶에 대해 무엇을 가르쳐주실 것 같으세요?


사실 지금은 제 아이를 어떻게 가르쳐야 될지, 그것부터 너무 막막해서 로봇을 고려할 틈이(웃음).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을, 또는 존재를 가르친다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싶기도 해요. 인간이 오랜 세월 시행착오를 하면서 그 불가능한 일을 꾸준히 도전해오기 때문에, 그나마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겨우 유지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말씀을 듣고 보니, 다른 존재에게 생각을 넣어준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인 것 같기도 해요.


만약 그런 로봇이 곁에 있으면 뭔가를 가르쳐주거나 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인공 지능이니까 기본 데이터베이스는 입력되었으니, 나머지는 자기가 보고 알아가겠죠. 은결이만 해도 자기가 TV를 보고 스스로 생각해 낸 행동들이 있잖아요. 그런 일련의 과정과 판단과 시행착오를 통해 올바른 결과값을 내는 것이 로봇의 최종 목표이지만, 그 수식과 계산에서 벗어날 때가 더 바람직하기도 하니까 주입식 교육은 배제하는 걸로(웃음).


 

 

급진적 진화화조엘 가로 저/임지원 역 | 지식의숲
과학 기술의 발전이 인간이라는 종(種) 자체를 어떻게 변화시킬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 책. 《워싱턴포스트》의 기자인 저자가 첨단 테크놀로지를 선도하는 각 분야의 저명한 과학자 및 전문가들을 취재하여, 생명공학, 로봇공학, 정보기술, 나노기술이 인간에게 적용될 때 찾아올 미래를 흥미진진하게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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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정아, 경계를 허무는 뮤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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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정아의 음악은 묘하다. 앨범 단위에서뿐 아니라 곡 단위에서도 결코 하나의 장르와 정서와 느낌에 포박되지 않는다. 드넓은 음악적 스펙트럼 속에서 자유분방하게 자기만의 ‘이색’을 만들어 낸다. 국내에서의 그의 음악적 입지도 그렇다. YG와 작업을 하고 아이돌 가수의 곡을 쓰지만 그렇다고 메이저 가수로 칭하기엔 그의 일부만을 포착한 느낌이다. 인디 뮤지션이라고 말하기도 그 폭넓은 활동 범주를 생각하면 어딘가 모자란 정의 같다. 그래서 결국은, ‘경계를 허문다’는 수식을 붙일 수밖에 없게 된다.

 

경계가 지워지는 자리에서 구분되었던 양쪽은 하나로 결합한다. 경계를 흩트리는 선우정아에게서 대중성과 예술성의 빛나는 조우를 기대하게 되는 건 그래서다. 최근 <4x4>라는 미니앨범으로 매주 음원 공개를 하는 선우정아를 만나 기대에 대한 그의 생각을 물었다. 지루했던 더위가 한풀 꺾인 여름의 끝자락, 어느 날이었다. 선우정아는 자신의 음악적 고민과 갈망들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으며 물음에 답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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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어떻게 지내나? 특별히 빠져 있는 일이 있다면?


건강을 좀 챙기고 있어요. 20대 후반에 불현듯 든 생각이, 저는 평생 창작활동을 하는 게 꿈인데 이렇게 살다가는 창작이고 뭐고 죽겠구나 싶은 거예요. 그래서 담배도 끊고 몸을 좀 만드는 중이에요. 원래 체력이 그렇게 좋진 않아요. 자주 피곤해해요. 그럴 때마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짜증을 내게 되고요. 뇌에 너무 여유가 부족하다는 느낌이에요.

 

스트레스를 좀 받는 편인가? 음악으로든 일로든.


스트레스 엄청 받아요. 그게, 자기 욕심인 거 같아요. 그래도 많이 놓고 있어요. 이게 내 욕심이란 것을 인지하고, 또 내가 부리는 이 욕심은 내가 가진 것보다 항상 위에 있으니까 내려놓는 게 맞다는 걸 알고서요. 그게 포기가 아니라 현실에 순응하는 거란 걸 깨닫고 나서는 스트레스가 좀 줄기는 했어요. 그래도 아직까지는......,

 

선우정아의 음악은 자기 색깔이 강하고 매우 독특하다. 그런데도 노래를 듣다 보면 이 사람이 타협점을 찾기 위해 엄청 발버둥을 치고 있다는 걸 느낀다. 그런 면에서 선우정아가 무조건 ‘마이웨이’만을 좇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결국 앞서 말한 자기 욕심이란 건, 더 많은 대중이 내 음악에 반응했으면 좋겠다, 그러면서도 절대 내 음악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두 가지 생각 때문이 아닐까?


정확하십니다. 깜짝 놀랐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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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발매된 2집 <It「s Okay, Dear>이 당시 평단으로부터 호평을 받았다. 이즘에서도 그해 올해의 음반으로 선정했었다. 2집을 들으면서 궁금해진 게, 음악적으로 지금의 선우정아를 만든 음악은 무엇이었을까 하는 점이었다. 최초의 음악적 충격은 무엇이었나?


영화 <사운드오브뮤직>에 나오는 음악들이었어요. 7살 때 그 영화를 보고는 「My favorite thing」에 충격을 받았어요. ‘아! 이 멜로디 뭐지?’ 즉석에서 노래 부르면서 삶을 만드는 것도 충격이었고요. 당시에 노래 제목도 모른 채 그 뮤지컬과 음악에 빠졌었어요. 그러다가 나중에 대학교 들어와서 재즈 연주자들이 보는 악보 모음집을 보며 피아노를 치고 있는데, 딱 치는 순간 갑자기 소름이 돋았어요. 어렸을 때 충격을 줬던 그 노래가 바로 「My favorite thing」인 거예요. 그걸 뒤늦게 알았어요. 그때 또 한 번 충격을 받아 제 스타일대로 리메이크가 바로 나왔고, 그걸 1집 앨범에 넣게 됐죠.

 

그 영향이 2집에 들어 있는, 뮤지컬적 요소가 다분한 수록곡 「Worker holic」에 묻어난 것 같다. 그 뒤의 충격은? 다분히 록적인 느낌도 있는데.


서태지인 것 같아요. 어렸을 땐 서태지를 잘 몰랐었어요. 고등학교 2학년 때인가 서태지 씨가 「울트라맨이야」로 컴백을 했었는데, 그때 그 굵직한 일렉기타 사운드에 깜짝 놀랐어요. 당시 서태지 앨범 들으면서 ‘콘’이랑 ‘림프비즈킷’을 알게 되고, 림프비즈킷 3집을 들었는데 「Rollin」이란 곡도 완전 충격인 거예요. 그러면서 하드코어한 쪽으로 계속 또 듣게 됐죠. 마릴린 맨슨도 듣고.

 

해비한 록 음악에 영향을 받았는데, 지금은 감성적인 면에서 조금은 기이한 음악을 한다. 그렇게 만든 건 무엇이었나?


그건 대학교 가서 재즈를 만난 것! 말로 교수님을 만난 영향인 것 같아요. 당시에 저는 HOT 빠순이(!)에서 벗어난 지 얼마 안 됐고, 그 직후에는 록에 빠졌고, 그래서 피어싱 잔뜩인 상태로 학교를 갔어요. 재즈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단지 재즈 보컬이란 게 멋있어 보여서 재즈 보컬 교수님을 선택한 거였죠. 그때 교수님이 「Stairway to the stars」를 재즈싱잉으로 불러주시는데 거기에 세상이 뒤집혔어요.

 

당시에 학교에서 음악을 배워야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되었나?


저 약간 모범생이었어요. 믿으실진 모르겠지만. (웃음) 점수쟁이였어요. 저 때는 실용음악이란 말이 낯설 때라 고3이 돼서야 처음 ‘실용음악’이란 단어를 알았는데, 그때 바로 생각했죠, 그럼 나는 성적에 힘을 쏟을 게 아니라 실기를 준비해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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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정아 음악은 개성적이나 어딘가 모르게 배운 느낌이 있다. 예를 들면 코드워크라든가 변조라든가, 선우정아 음악에서 많이 쓰는 수법들이 자연스러운 발로가 아니라 지적인 상태에서 나온다는 생각이 든다. 그게 좀 내려간다면 더 많은 대중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어떤가?


그죠, 그래서 지금 좀 내려오고 있는 거 같아요. 예전에는 머리가 너무 무거웠고 또 컸어요. 지금은 그런 것들을 좀 풀어 버리려고 해요. 그런데 그것도 공부를 빡세게(!) 해놓고 나니까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해요.

 

그에 비해 보컬은 자연스럽고 날 것의 느낌이 있다.


날 것이죠. (웃음) 스캣 할 때는 근본 없다고 욕먹을 때도 있어요. 고급스러운 느낌이 아니고 길바닥에서 노래 부르다 온 느낌이 나니까요. 왜 씬에서 “실용음악 하는 냄새나” 그러잖아요. 그 말 듣기가 싫어서 되게 발버둥 쳤던 것도 있어요. 사실 배운 사람처럼 노래했던 기간이 길었어요. 어렸을 때 목소리를 들어보면 더 맑고, 발성을 옳게 하려고 애쓰는 게 느껴져요. 물론 목을 상하게 하는 보컬이었기 때문에 옳은 발성을 익혀야 하는 것도 필요했어요. 지금 들어보면 그때 목소리가 되게 고와요. 그래서 힘이 없어요. 꽂히는 느낌도 없고요. 어찌 됐든 그런 과정을 거쳐 오니 자기 색깔을 찾아가면서도 목이 덜 상하게 됐어요. 물론 엄청 오랜 시간이 걸렸죠. 음, 요즘 우려되는 건, 팝을 하다 보니 정해진 프레이즈를 잘 만들어야 하는 디렉팅 능력은 키워졌고 거기에 몸도 적응했지만, 여기에 너무 꽂히면 지나친 뽕필이 나기 쉽거든요. 순간적인 감정을 호소하는 억지스러운 슬픈 영화 같은 호소력이 나올 수도 있어요. 지금은 그걸 조심해야 하는 단계인 것 같아요.

 

자기에 대한 분석도 철저하고 정확한 것 같다.


네, 진짜 이런 것에 대해 공부를 안 하면 아무리 멋있었던 사람들도 바보 되는 건 순식간인 것 같아요. 그런데 이 직업은 계속 공부해야 돼요. 저뿐만 아니라 평생 음악을 하는 사람들, 스팅이나 뷰욕, 스티비 원더 등등 다들 방식은 조금씩 다르겠지만 평생 자기만의 방법으로 훈련하는 거잖아요. ‘예술이 노는 게 아니구나’라는 걸 깨닫게 되면서 오히려 그런 부분들이 편해졌어요.

 

「워커홀릭」 가사 중에 ‘난 더 원해 / 아직 배고파 / more work / more money’라는 부분이 나온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필요 없다고 말하는 사람은 분명 거짓말쟁이일 거다. 현재 내 음악으로 돈을 벌 수 있겠다는 생각은 하는가?


당연히 하죠. 그래서 다른 가수들에게 곡 의뢰 들어오면 ‘아이구’ 하면서 열심히 하는 거죠. 그게 제가 제 음악을 좀 제 음악대로 자유롭게 할 수 있는 데 영향을 끼친 것도 같아요. 딴 데서 돈이 들어오니까 제 거 할 때는 돈 걱정 좀 덜 하고서 할 수 있었던 거죠. 그런데 요즘에는 거기에 언제까지나 매달릴 수 없다는 생각을 해요. 제가 타이틀성 곡을 줄 만한 레벨도 아니고 또 거기에 기대고 싶지도 않고요. 예전에는 외부 음악으로 돈을 이만큼 벌고 내 음악으로는 돈을 못 벌었다면, 이제는 균형을 맞춰야겠다 싶어요. '

 

「알 수 없는 작곡가」를 들으면서 선우정아가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갈등과 고뇌가 심하다고 느꼈다. 선우정아의 음악에는 불안과 긴박의 정서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과연 이게 정서적 차원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포용할 수 있을까? 이러한 음악 스타일 자체가 더 많은 대중을 원하는 선우정아에게 하나의 갈등 요소가 되는 건 아닐까?


제가 그리 못된 사람은 아닌데, 제 음악은 항상 날이 서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비슷한 생각을 저도 했어요. 저는 분명 더 많은 사람에게 내 노래가 들려지길 바라는 사람이고, 돈에 대한 욕심이 없는 사람도 아니거든요. 근데 너무나 ‘나’스러운, 그러니까 삶에서 그냥 훅 나오는 호흡 같은 곡들을 듣고서 누가 위안이 될까.... 가뜩이나 요즘 세상도 힘든데. 그래서 좀 편안하고 쉴 수 있는 음악을 만들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우정아는 자기 음악이 대중에게 툭 다가갔을 때의 원초적인 느낌이 너무 나이브하거나 상업적이면, 아무리 대중에 대한 욕심이 있어도 실망스러워할 사람이다. 자기 세계가 있는 거다.


네. 그래서 처음에는 체념을 했어요. 나는 어쩔 수 없다고. 그런데 한 앨범에서도 음악 말고도 여러 가지 분야가 있잖아요. 정용화 씨와 콜라보레이션 했던 「불꽃놀이」도 기획력이었고, 「봄처녀」도 스타일링이 많이 들어간 거고요. 제 음악 그대로인데도, 음악에다가 그 외적인 것에 더 신경을 쓰는 만큼 반응이 오더라고요. 그러면서 좀 자신감을 찾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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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봄에 발표된 「봄처녀」는 좀 의외였다. 그 노래 들으면서 앞으로 선우정아 음악의 결도 약간의 변화가 있겠구나 생각했다. 무엇보다 분위기가 훨씬 대중화되고 타이밍을 맞출 줄 아는 여유도 생긴 것 같았다. 당시 봄 노래가 폭발적으로 나오던 시기적 영향을 받은 건 아닌가? 그저 내 음악을 한 거였나?


「봄처녀」는 워낙 놀면서 나온 프레이즈였어요. 진짜 오래전에 써 놨던 곡이고요. 신나는 음악도 좋아하고 춤도 좋아하는데, 제가 쓰는 음악은 전부 템포가 처져요. 그래서 신나는 음악 좀 썼으면 좋겠다 싶었어요. 별 생각 없이 약간 툭툭 뱉고, 근데 그게 별 의미가 없는 말들 있잖아요. 그런 가사를 쓰고 싶다는 로망이 있었어요. 일렉기타로 「비온다」의 연주 부분을 치고 나서는, 뭔가를 더 해볼까 하다가 봄처녀의 그 주요 리듬 라인이 나왔는데, 괜찮아서 녹음을 해놨어요. 그러고선 잊고 살다가 문득 생각나면 멜로디에 그 리듬을 얹고, 그렇게 쌓아 간 거죠. 되게 자연스럽게.

 

정용화와 콜라보레이션한 「불꽃놀이」도 잘 만들었다. 은근히 자기 정체성을 유지하면서 대중적인 접근을 했다.


그런데 참 신기했던 게, 사람들이 제가 「입김」을 쓴 줄 알고, 정용화 씨가 「불꽃놀이」를 쓴 줄 알아요. 사람들 생각이 참 단순한 게, 발라드니까 왠지 음악 하는 애가 썼을 거야, 신나는 곡이니까 아이돌 음악 하는 애가 썼을 거야 하더라고요. 그걸 새롭게 알았어요.

 

「그러려니」를 만들 때는 어떤 상황이었나?


가사 그대로의 상황이었습니다. 서른 살이 되던 때 만들었어요. 결혼까지 하고 나서 20대와는 환경이 많이 달라지면서 인연들도 끊기게 되고, 그런데 이건 누가 잘못했는지 따질 수도 없고, 어릴 때와 다르게 그걸 따지지도 않게 되더라고요. 각자가 후회한다고 해도 쉽게 되돌릴 수 없는 거예요. 뭔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어른의 세계가 시작된 느낌이었어요.

 

한마디로 선우정아판 「서른즈음에」다. 결혼 전과 결혼 후의 변화도 영향이 있었던 건가?


그죠. 서른이 되면서 이전과 다른 감정에서 나온 것 같아요. 결혼 후 감정적으로 달라지는 건 많았는데 음악에까지 영향을 확 끼쳤는지는 모르겠어요. 단지 제가 나이가 들고 지쳐서 느린 음악이 계속 나오더라고요. 심하게 느린 음악. 그리고 가사도 포크에 어울릴 만한 가사라든지. 한마디로 루즈한 음악이 많이 나왔어요. 저는 위로가 되는데, 내고 싶지는 않은 그런 음악들.

 

선우정아가 쓰는 가사 자체가 지극히 포크적이다.


2집의 경우도 전부 다 제 이야기인데, 삶에서 생각나는 것 같아요. 글은 진짜 갑자기 떠올라요. 그냥 제 안에서 꺼내는 느낌이랄까. 뭔가가 영감을 줬더라도 한참 속에서 숙성이 되다가 어느 순간 확 오는 것 같아요. 편곡 같은 건 바로 즉각적인 영향을 받는 것 같고요. 좋은 음반을 듣거나 좋은 영화를 보면, 그 영상미가 편곡에 도움을 주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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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집과 이후 싱글 중에 앞으로 음악하는 데 시작점이 되겠구나 싶은 곡이 있다면 무엇일까?


「봄처녀」인 것 같아요. 제 이름이 음악 씬에 퍼지는 데 기반을 마련해 준 곡. 또 그 전까지는 가내수공업이 많았어요. 그런데 「봄처녀」는 돈 들이고 투자도 받으면서 스타일링을 한 거였고, 저는 그런 모습을 좀 원했었어요. 너무 홈레코딩이나 혼자 다 해결하는 것보단 다 같이 하는 게 좋거든요.

 

「삐뚤어졌어」라는 곡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많더라. 그 곡은 어떻게 알려지게 됐나?

 

쓴 지는 오래됐어요. 2006,7년 즈음 만들기 시작해서 2011년에 물리적으로 완성됐던 노래니까요. 2집에 수록은 안 됐고, 2013년에 민트 브라이트 컴필 앨범에 실리면서 알려진 건데, 이상하리만치 사랑을 많이 받는 노래예요. 이번에 나올 미니앨범에 담으려고요! 제 이름으로 공식적으로 발매되는 건 처음이라 괜히 ‘드디어’라는 단어를 자꾸 생각하게 돼요. 원치 않았는데 나 모르게 자꾸 미뤄지게 됐던 일을 시원하게 마무리한 기분이랄까요.

 

미니앨범에 대해 말해 달라. 당분간은 미니앨범으로 활동을 계속하는 건가?


색깔이 모두 다른 4개의 곡을, 4개의 쇼케이스를 통해 1주일마다 한 곡씩 선공개할 생각이에요. 그래서 미니앨범에 <4x4>라는 이름을 붙였어요. 「삐뚤어졌어」는 그중의 한 곡이 될 거고요. 쇼케이스를 마무리하면, 종종 작은 공연이 있을 거고, 11월에는 단독 공연이 있어요. 그 공연이 끝나면 정규 3집을 만들려 해요.

 

2집이 너무 극찬을 받아서 3집을 만드는 데 약간 부담이 되겠다.


약간이 아니에요! 상까지 받았잖아요.(웃음) 사람들이 상 받고 나면 부담된다고 하는 게 완전 남의 이야기였는데 지금은 완전 실감하고, 또 조급해요. 근데 어찌 됐건 ‘보여줘야지!’ 하는 생각은 버렸어요. 하나 다행인 게, 보통 대중적인 것으로 상 받고 칭찬받은 사람들이 그다음 앨범을 낼 때 욕심을 부리게 될 수 있잖아요. 내가 해 보고 싶었던 거 해 봐야지 하면서요. 그런데 저는 2집 때 해 보고 싶었던 걸 많이 해 봤거든요. 그러니까 3집은 좀 더 편하게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음악을 들어주는 대중에 대해 많이 고민을 했을 것 같다. 대중이란 뭘까?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섭섭함을 느낄 때도 있고, 열 받은 적도 있었고, 다 바보들이야 싶을 때도 있었어요. 「알 수 없는 작곡가」란 곡에도 그게 좀 녹아 있죠. 그런데 저도 또 다른 분야의 대중으로서 그게 요즘엔 좀 풀린 것 같아요. 뭐 어쩔 수 없구나. 사람은 이미 다 서로 다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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닮고 싶은 뮤지션이 있나?


네. 뷰욕. 그의 특이한 모습을 닮고 싶다기보다는 뷰욕의 행보가 멋있는 것 같아요. 가장 큰 이상이 뷰욕이라면, 현실적인 노선의 이상은 노라 존스인 거 같아요. 이 둘을 진짜 좋아해요.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장르가 있다면?


긴장감이 있는 섹시한 음악, 진짜 세련된 음악을 해 보고 싶어요. 한편으로는 정말 풀어져서 나락으로 떨어지는 음악도요. 사실 그런 곡은 지금도 많이 나오고 있어요. 그런데 낼 수가 없어요. 내기가 좀 그래요. 하지만 그런 음악을 내도 괜찮은 상황이 되면, 사람들이 좀 좋아해 주고 저도 그런 걸 좀 편하게 낼 수 있는 때가 어쩌면 올 거잖아요. 그런 때가 오기를.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때 그런 음악을 내고 싶어요.


인터뷰 : 김반야 윤은지 임진모
사진 : 정민재
정리 : 윤은지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조승연 “영어에 무작정 달려드는 건 이제 그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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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살 때 미국 유학을 떠났다. 20대 초반에 펴낸 『공부기술』은 50만 부가 팔려나갔다. 미국 뉴욕 대학교 경영학과와 프랑스 미술사 학교 에꼴 드 루브르에서 수학하고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등을 습득했다. 철학, 미술, 음악 등 인문학으로 ‘썰’을 풀려면 한참을 풀고 또 풀어도 모자라게 박학다식함을 자랑한다. 『그물망 공부법』, 『비즈니스의 탄생』, 『르네상스 미술 이야기』등 펴낸 책의 제목만 봐도 알 수 있다. 조승연 이야기다. 집필한 책 목록만큼이나 출연한 방송 프로그램 목록도 늘어만 간다. <세계테마기행>, <비정상회담>, <라디오스타>, <말하는대로>, <비밀독서단>까지. 무엇이 그렇게 할 말이 많은 걸까.


이번에 펴낸 『플루언트』는 또 조금 다르다. 책을 펴고 보니 영어뿐 아니라 전반적인 언어와 문화를 아우른다. 어떻게 하면 더 고급스럽게, 원어민처럼 언어를 다룰 수 있나 가르쳐주는 책인가 했더니 그것도 아니다. 오히려 21세기 ‘영어 문명기’를 살면서 조금씩 변하는 영어, 98분마다 새로운 단어가 생겨나는 방대한 영어 자체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 제안하는 언어학 책에 가깝다. 자기 자랑 같지만 계속 배우다 보니 계속 할 말이 생긴다. 공부하다 보니 계속 알리고 싶다. 이것 역시 조승연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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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한 자질은 유창성


조승연, 하면 영어와 공부가 먼저 떠오릅니다.

 

『공부기술』을 썼을 때와 지금은 상황이 매우 달라요. 예전에는 학습 계획 같은 개념이 없었던 시대예요. 공부는 무식하게 밀어붙여야 한다는 사고방식으로 공부하던 시대에 우리 두뇌가 어떤 건지 고민하고 똑똑하게 공부하자는 의미로 썼던 책인데요. 지금 영어 공부는 오히려 반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너무 기술이 많아요. 단어 외우는 방법, 드라마로 공부하는 법 등 너무 여러 가지가 있는데 문제는 자기 주도적으로 영어 공부를 하면서 그 기술을 적절히 이용하는 게 아니라 그 기술이 내 영어를 해결해 줄 거라고 믿는 게 문제거든요.


머리말에 영어 기술을 쓰려는 생각은 없었다고 쓰셨어요. 보통 독자들이라면 영어를 잘하는 방법이나 기술을 얻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텐데요.


우리 모두 알고 있듯, 가장 중요한 건 중도인데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치우치거든요. 작가로서 항상 어느 쪽으로 치우쳤을 때 반대 의견을 얘기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만약 문학가들이 영문학 위주로 영어를 공부하는 시대였다면 이 책을 안 썼겠죠. 지금은 오히려 영어를 둘러싸고 너무 많은 기술이 나와서 전체적으로 영어라는 언어에 대한 그림이라든지 어학적인 이해가 점점 잊히고 기술에 따라 왔다 갔다 하는 게 오히려 문제이기 때문에 책의 논조를 언어와 인문학 쪽으로 잡았어요.


『공부기술』, 『그물망 공부법』, 『이야기 인문학』외에도 책을 많이 내셨어요. 할 말이 많으신 것 같아요.


계속 배워가기 때문에 그런 것도 있어요. 『공부기술』은 미국에 있을 때 쓴, 모든 걸 효율과 허례허식 없애는 데 초점을 맞춘 책이에요. 하지만 『그물망 공부법』은 프랑스에 갔을 때 지은 프랑스적인 책이에요. 미국에서는 모든 게 효율이었는데, 프랑스에 갔더니 다르게 공부하는 거예요. 공부는 즐기면서 해야 하고, 도서관에서 공부하더라도 아름다운 조명, 아름다운 냄새가 나는 곳에서 공부해야지 똑같이 앉아서 라면 냄새 맡으면서 공부하면 안 된다는 책이었죠. 프랑스적이잖아요.


이번에 쓴 『플루언트』는, 중국어를 배우지 않았다면 쓰지 않았을 거예요. 영어로 유명해졌지만 오래전에 배웠기 때문에 어떻게 배웠는지 잘 기억이 안 나요. 하지만 한문을 배우면서 다시 언어를 어떻게 배웠는지 기억이 난 거죠. 아마 10년 후에 또 다른 책을 쓰게 된다면, 훨씬 다르지 않을까 싶어요. 계속 할말이 생기는 이유는 저한텐 좋은 거죠. 아직도 책을 쓰고 싶다는 건 새로운 걸 배우고 있다는 뜻이거든요.


구글 번역기 등 번역 기계와 프로그램이 발달할수록 오히려 언어로 감정 소통이 가능한 사람들이 주목받을 거라고 하셨어요.


예전에 모든 가죽제품을 손으로 만들어야 했을 때는 동네마다 가죽수공업자가 있었어요. 그런데 이제 기계로 만들 수 있게 되니 명품 만드는 사람 외에는 직업이 없어져 버렸거든요. 영어뿐만 아니라 어느 분야든지 기계와 기술이 발전하면 그 기술을 통해서 경쟁력을 쌓으려고 했던 사람들이 떨어지고 최고만 남죠. 옛날에 영어 자체로도 소통이 힘들었던 세대에는 구글 번역기 정도로만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도 각광을 받았겠지만 그걸 기계가 다 해낼 수 있다면 국제적으로 분쟁을 조절할 수 있다든지, 사람 사이에서 중재 역할을 언어로 풀어낼 수 있는 사람만 글로벌한 직업 문이 열릴 거예요.


모든 사람이 그 정도 수준까지는 사실상 어렵지 않을까요?

 

어려운 게 아니에요. 어떤 언어를 하든지 그 언어로 감정소통을 하기 위해서 필요한 자질이 플루언트, 즉 유창성이에요. 유창성은 완벽하다는 게 아닙니다. 잘 흘러나온다는 이야기예요. 콩글리시도 잘 흘러나오는 사람이 있고요, 완벽한 영어 문장을 지어내는 사람이더라도 느릿느릿하고 감정 느낌 없이 말하는 사람이 있어요. 전혀 다른 문제예요. 유창하다는 건 고급스러운 문법과 어휘를 가지고 있다는 게 아니라 내가 진실하게 이야기했을 때 상대편이 진심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영어를 한다는 것이거든요. 

 

 

언어를 막는 걸림돌


한국인과 미국인은 생각이 반대이기 때문에 말을 할 때도 단어가 나오는 순서가 반대라고요.


우리가 잘 아는 루스 베네딕트 교수라든지, 이미 수많은 비교 언어학자가 한 말이에요. 동양인은 포괄적으로 보고 서양인은 미세하게 본다. 우리 다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이게 영어 공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는 좀 다른 문제인 것 같아요. 실제로 서양인은 미세하게 보기 때문에 문장도 작은 것부터 시작해서 큰 걸 만들어요. 우리는 포괄적으로 보기 때문에 문장도 큰 것부터 시작하죠.


영어는 굴절어고 한국어는 교착어기 때문에 생기는 차이도 설명해 주셨습니다.


제가 휴머러스하기 때문에 ‘개-‘라는 형태소를 좋아하는데, 예전에는 ‘개’라는 형태소가 나쁜 의미였습니다. 강아지는 귀엽지만 개와 새끼를 붙이면 그게 욕이 되어버리거든요. 하지만 젊은 세대로 가면 ‘개’가 멋지다는 의미로 쓰이죠. 개쩐다, 개멋지다 등. 이런 특유의 의미가 있는 형태소를 반죽해서 단어를 만들어 내는데, 그 과정이 익숙하면 어휘를 많이 암기하지 않아도 돼요. 어렸을 때부터 어떤 식으로 형태소를 반죽해서 단어를 조합하는지 은연중에 깊은 머릿속으로는 알고 있어요. 그래서 코미디언이 신조어를 만들면 사전으로 달려가는 게 아니라 웃어버리고요.


한국어는 형태소를 붙이지만 영어는 형태소를 조금씩 휘어서 단어를 만들죠.


한국어도 사실 두 개의 형태를 가지고 있어요. 한자어는 중국 방식으로 만들고 순우리말은 교착으로 만들죠. ‘이 기간부터 이 기간 사이에는’을 다 말하려니 답답해서 다 붙여 ‘요새’라고 말한다면, 중국어는 고립적 형태를 가지고 있어서 블록쌓기처럼 단어를 붙여요. 중국이라는 대륙의 거대함을 생각하면 왜 이런 식으로 단어를 만드는지 대강 이해가 되잖아요. 우리나라는 ‘빨리빨리’니까 답답해서 다 붙여버리는 거고요. 반면 영어는 우리가 익숙하지 않은 굴곡이라는 방법이 있어서 이해가 힘들어요. 소리를 구부린다는 말이거든요. Sing을 이리저리 휘어서 sing, sang, song 등으로 바꾸는 거죠. 이 느낌을 모르니까 모든 변한 단어 리스트를 만들어서 외우는 거예요. 이 사람들은 우리가 파랗다, 푸르다 하는 것처럼 같은 단어를 살짝살짝 구부릴 뿐인데 말이죠. 그런 관점에서 형태소를 아는 게 중요합니다.


예전에 중학교 다닐 때 평서문을 의문문으로 만들라는 시험이 있었어요. 문장 맨 끝에 물음표만 붙여서 냈더니 다 틀렸다고 했었죠.


그게 두 번째로 한국인들이 겪는 문제인데, 우리는 언어학자들이 국지어라고 부르는 언어를 씁니다. 국지어는 한 나라에서 쓰니까 법으로 그 언어를 표준어로 제정해서 쓸 수 있어요. 이게 우리한테는 너무 당연한 개념이지만 사실 당연한 게 아니거든요. 한 국가 안에서 수많은 언어를 쓰는 인도나 중국도 있고, 영어나 프랑스어처럼 수많은 나라 사람이 공통으로 쓰는 언어도 있어요.


흔히 학교에서 have와 과거분사를 합치면 완료형이 된다고 배웠잖아요. 하지만 미국 애팔래치아 산맥에서는 done이라는 단어를 대신 사용해 ‘나는 이미 갔어’라는 표현을 ‘I done gone.’ 이렇게 이야기해요. 그럼 그 사람은 영어를 두 살 때부터 했는데 그걸 틀렸다고 할 거냐는 거죠. 이제까지 우리나라 교육에서는 그걸 틀렸다고 한 거예요. 말하는 감정에 빠져들기보다 문법 요소를 따지고 드니까 사람 사이가 막히죠. 감정이 물처럼 흘러야 플루언트해지고 유창해지는 건데 자꾸 문법이 머릿속의 댐처럼 흐름을 막는 작용을 지적하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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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보다 가슴으로


기술에 관해서 쓰지 않겠다고 하셨지만, 영어를 배우는 팁이 붙어있긴 해요. 간단한 문장 구조를 가지고 단어를 바꿔가면서 많이 써보라든지요. 실제로 영어를 배우면서 하셨던 방법인 거죠?


네, 그리고 항상 기술적인 면은 걸러서 들을 필요가 있어요. 조승연이라는 사람이 영어의 굴절감을 익히기 위해서는 그게 맞는 방법이었어요. 주어와 동사를 계속 연습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방법보다 단어가 휜다는 게 느껴질 때까지 뭔가 해야 한다는 게 중요해요. 그 감을 익히는 게 저한테는 그런 방법이었던 거죠. 가장 완벽한 언어학습자는 자기가 스스로 자기만의 연습 방법을 만들어 내야 해요. 다만 방법을 만들어 본 경험이 대부분 없기 때문에 그냥 참고하시라는 거예요. 펜 잡고 자리에 오래 못 앉아있는다, 그럼 제 방법으로 하시면 안 되죠. 읽어야 잘 배우는 사람, 귀로 더 잘 배우는 사람이 있는데 저는 읽기가 더 좋았던 거고, 모든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배울 필요는 없어요.


단어 계열을 파고 들어가 공부하는 방법도 소개했어요.


맞아요. 우리는 한자를 몰라도 한자어는 알아들어요. ‘효자’의 글자와 ‘효심’에 들어있는 글자가 같다는 걸 알아요. 하지만 영어는 발음기호를 쓰다 보니까 형태소가 묻히기 때문에 한자어를 모르면 한국어를 배우기 매우 힘들죠. 그리고 유럽어는 공통 구조에서 나왔지만 고대 그리스어 계열, 독일 계열 등으로 갈라졌다가 다시 합쳐지면서 같은 형태소가 발음이 다른 경우가 많아요. 그런 걸 볼 줄 아는 능력이 생겨야 우리가 영어 단어를 가지고 놀 수 있다는 거죠.


동양인이 영어를 잘하려면 문화를 현지인보다 훨씬 더 깊이 알아야 한다는 이야기가 인상 깊었습니다.


너무 뻔한 이야기죠. 멀리 갈 것 없이, 중년 부장님이 신입사원과 밥을 먹으러 나가면 대화가 안 통합니다. 신입사원이 최신 유행하는 드라마와 연예인 이야기를 하면 부장님은 소외감을 느껴요. 어떤 할아버지가 무덤 앞에서 펑펑 울면서 불효자를 용서하라고 하면 우리는 무슨 소린지 알아요. 하지만 외국인이 그 장면을 봤다면 가슴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머리로 이해해야 합니다. 효는 태어날 때부터 부모에게 갚을 수 없는 빚을 졌다는 개념으로, 한없는 빚이기 때문에 그런 절규로 효를 표현하고 있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면 무슨 말인지 모릅니다. 이렇게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하면 우리가 왜 문화를 공부해야 하는지 이해가 빨리 되거든요.


재밌는 게, 사람이라는 존재는 기계와 달라서 너무나도 애매모호하고 불확실한 존재예요. 언어에는 모호함이 많아요. 운전하면서 불이 켜지면 달리잖아요. 그게 무슨 불이죠?


파란불이죠.


파란불이죠. 근데 그 불 색은 무슨 색이죠?


초록색이죠(웃음).


만약 미국 사람이 사전에서 배운 방식으로 한국어를 하면 아마 초록 불이나 초록 등이라고 부르겠죠. 영어로는 그린 라이트니까. 지금 우리가 배우는 영어는 기계언어처럼 배우잖아요. 트랜지스터라디오 만드는 것처럼 여기에 주어 끼우고 저기에 목적어 끼우면 영어가 되는 것처럼요. 그런 언어를 배우고 싶다면 저는 C언어를 권하고 싶어요. 컴퓨터랑 얘기한다면 그렇게 하면 되는데 인간은 그런 존재가 아니라는 거예요. 우리가 영어를 너무 과목으로만, 공부로만 접근하다 보니까 영어가 어떤 사람에게 나 너 좋아해, 싫어해 하고 말할 때 쓰는 거라는 걸 잊어버리는 거죠.


언어를 쓰는 상대방의 사고방식을 이해해야 한다는 말씀이시군요.


우리가 영어를 쓸 때 반대쪽에 있는 ‘물체’가, 우리가 원어민이라고 부르는 희한한 물체가 우리와 똑같이 희로애락을 느끼고 숨도 쉬는 인간이라는 걸 잊어버리고 공부해요. 그 인간이 왜 생소하게 느껴지냐, 사고방식이 우리랑 다르단 말이에요. 문화적 배경도 다르고 가족을 분류하는 방법도 다르고요, 다 달라요. 그 사람들이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이해를 못 하면, 세상을 어떻게 보고 옳고 그른 건 뭐라고 생각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에서는 힘들어요. 사람이기 때문에 불완전한 존재고, 우리와 다르기 때문에 맞고 틀리다고 말할 수 없어요.

 


바이링규얼은 두 개의 영혼


몇 개 국어 하냐는 질문 많이 받으셨을 테니, 다르게 질문드려 볼게요. ‘두 언어를 안다는 것은 두 개의 영혼을 가지는 것’이라는 문장이 나왔는데, 저자님 생각하실 때 지금 영혼이 몇 개인가요?


그 질문보다 이제까지 살아온 나라 중 어느 나라가 제일 좋냐는 질문이 더 어려운 것 같아요. 다른 데서도 많이 써먹은 멘트기는 한데, 제가 생각해도 멋있는 말이라 한 번 더 써먹을게요. 한국은 내 어머니고, 미국은 내 선생님이고, 프랑스는 내 애인이었고 이태리는 내 아내였다. 하지만 지금 부인 말고 전부인(웃음).


네 나라 다 사랑하는데 느낌이 달라요. 한국은 말 그대로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땅, 조국이죠. 떼려야 뗄 수 없고 여기 와 있으면 괜히 편해요. 별로 좋아하지 않던 길거리 음식도 괜히 한국을 벗어나면 먹고 싶고요. 미국은 제게 수많은 걸 가르쳐 준 나라예요. 세상을 이렇게 넓게 볼 수 있다는 걸 깨닫게 해 준 나라죠. 프랑스는 젊었을 때 사귀었던 무지하게 예쁜 사람 같아요. 정말 화려하고, 낭만적이고, 비실용적이고, 어디 가서 앉아 있어도 항상 데이트하는 기분이지만 돈이 많이 들고 불편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갈 때마다 첫사랑을 떠올리는 것처럼 아련해지죠.


중국어도 요새 조금씩 하신다고요.


여러 개 언어를 하다 보니까 항상 자부심이 있었어요. 영어랑 프랑스어를 하면 어디 가서도 관광객처럼 깃발 따라다니지 않아도 되고 어느 나라에서든 현지인들이 다니는 곳에 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걸 믿고 있었는데 2014년에 상해를 갔어요. 사람들이 정말 영어를 하나도 못 하더라고요. 부모님은 한자를 하실 줄 아니까 제가 지하철 찾느라 구글맵 보고 있는 동안 부모님은 승강장을 읽고 쑥 들어가시는 거죠. 그때 독이 올랐어요. 우리나라 바로 옆에 13억 엄청난 인구가 쓰는 언어가 있는데 이걸 모르면 창피한 거구나, 도올 선생님 강의 볼 때도 동양 철학자들 이야기 들으면서 나름 제가 인문학 책 쓴다는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모를 수 있나 부끄러움을 느꼈죠.


기존에 유럽어 쪽으로 주로 하셨는데, 중국어는 다른 계열의 언어입니다. 힘들진 않으세요?


제 성질이기도 하지만, 안 통해서 손짓 발짓해봐야 언어를 하는 것 같아요. 어르신들도 해외여행 다니면서 물건도 혼자 못 사고 그럴 때 내가 영어 좀 해둘걸, 하고 후회하시잖아요. 제가 중국 가서 심하게 얻어맞은 거죠.


중국에는 어느 정도나 갔다오셨던 거예요?


3일이요(웃음). 하지만 제가 가지고 있던 ‘언어부심’, 어디 가서도 유창하게 현지인처럼 이야기할 수 있다는 언어부심이 추락해서 말도 못했어요. 일본 갔을 때도 중국보다 더 심했고요. 이제 한문 좀 하고 다시 일본에 가보니까 이제서야 무슨 뜻인지 조금씩 보이더라고요.


열다섯 살 이후로는 쭉 서양에 계셨었잖아요. 동양, 서양 인식 차이가 있을텐데, 저자님은 어느 쪽 세계관으로 세상을 보시는지 궁금해요.


이게 되게 재밌는데요, 홍콩 학생들은 영어를 쓰다가 인식 차이를 조사하면 개별적으로 보는 서양 세계관으로 대답하고, 중국어를 하다 테스트하면 전체적으로 보는 동양적 사상으로 응답해요. 제 친구들이 한국에서 방송 나온 걸 보면 킥킥대고 다른 사람 같다고 많이 이야기해요. 표정이라든지 말투, 제스처가 자기가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닌 것 같다고 말하더라고요. 제가 한국에 있고 한국어를 쓸 때는 한국인처럼 사고하고 행동하게 되거든요. 언어를 잘한다는 건 깊숙이 또 하나의 자신을 만드는 과정인 것 같아요.

 

롤모델은 제임스 본드


홍정욱 씨 책(『7막 7장』)이 저희 때 굉장한 붐이었잖아요. 시기는 좀 다르지만, 작가님도 온 학교에 동양인이 한두 명밖에 없던 유학 세대에 해당할 것 같습니다. 그때와 지금의 유학세대는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우리 때 장점은 다른 한국 사람이 없었다는 거였죠. 미국 문화를 배우려고 하지 않아도 한국 사람이 없으니 할 수밖에 없다는 환경이 장점이었어요. 단점도 있어요. 물론 5,60년대 갔다온 분들보다는 덜했겠지만 인종차별이 현재보다 훨씬 심했습니다. 그래서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 자체가 콤플렉스였던 시기였어요. 유학을 가면 일부러 한국말 안 써야 하고, 일부러 한국 친구들과 상종하지 않아야 소위 말하는 미국의 주류 사회에 낄 수 있다는 인식이 있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주류 사회라는 게 도대체 뭔지도 모르는 거지만요. 지금은 유학생 숫자가 많다 보니 한국인들끼리 커뮤니티가 굳건히 생기죠. 또 옛날처럼 미국이 무조건 좋은 상황은 아니기 때문에 기왕이면 부모와 친구가 있는 한국으로 돌아오는 걸 최종 목표로 삼고 유학을 나가기도 하죠.


토털 인텔리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말씀하신 적 있습니다. 지금도 현재진행형인가요?


토털 인텔리를 동양식으로 말하면 ‘선비의 도’ 같은 거여서, 아마 평생 하게 될 것 같아요. 토털 인텔리는 어찌 보면 야욕이죠. 이루지 못하더라도 스스로 되고 싶은 이상형을 가지고 있는 건 중요한 것 같아요. 끊임없이 머릿속에 이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걸 그려 놓고 그쪽으로 움직이다가, 죽는 거죠 뭐. 그 목표가 손에 잡힌다면 그게 더 불행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토털 인텔리 하면 대표적으로 움베르토 에코가 떠오릅니다. 롤모델에 가까우셨을 것 같아요.


굉장히 존경하는 분이었어요. 제가 언어를 가지게 된 주요 계기 중 하나가, 어머니가 움베르토 에코의 『푸코의 추』를 사다 놓고 제가 읽으려니까 너무 어렵다고 읽지 말라는 거예요. 저 사람 너무 해박해서 라틴어랑 그리스어 써서 안 될 거라고요. 그래서 제가 약간 독이 올랐어요. 누가 어떤 게 어렵다고 하면 저는 얼마나 어려운가 해봐야 돼요. 그게 저를 이제까지 끌고 온 원동력인 것 같아요. 다른 사람처럼 사회를 위해 뭘 해야겠다 하는 멋있고 큰 이유가 아니라, 저는 더 작은 사람이었던 거죠. 지금도 누군가 너 이건 안될걸, 하면 ‘그 말 후회하게 만들어주겠어’ 하고 덤벼드는 경향이 있어요.


어머니도 많이 언급하셨어요. EBS 다큐멘터리 <어머니 전>에 같이 출연하시기도 했고요. 어머니도 롤모델이었나요?


어머니랑은 친하죠. 오픈 마인드시다 보니 부딪칠 일도 없고, 취향도 비슷해서 어디 밥 먹으러 나가면 다른 아들들은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곳 찾아다닐 텐데 전 제가 좋아하는 곳 가면 그게 어머니가 좋아하는 곳이에요. 편하죠. 부모님은 롤모델이라기보다 오히려 다르고 싶었던 것 같아요. 제 롤모델은 대부분 매스 미디어에서 찾아서 많이 유치한 면이 있죠.


제임스 본드가 롤모델이라고 하신 적이 있어요.


제임스 본드도 있고, <탑건>의 톰 크루즈 보고 조종사 되겠다고 한 적도 있어요. 사실 언어학에 관심을 가진 계기도 제임스 본드와 깊은 관계가 있어요. 제임스 본드가 영화에 언어학과 출신으로 나오거든요. 어느 나라 여성이든 바에 들어오면 그 나라 말로 인사를 하는 거예요. 러시아 여성이 들어오면 멋있게 ‘즈드라스부이쪠’ 하고. 지금 다시 보니까 인사말밖에 안 하더라고요? 인사만 그 나라 말로 하고 그 이후에는 계속 영어로 대화해요(웃음). 어렸을 때는 그게 너무 멋있는 거예요. 제 롤모델은 좀 낮은 곳에 있습니다(웃음).


연애가 언어를 배우는 데는 가장 빠른 방법이라는 말도 있어요. 동의하세요?


아, 백 퍼센트요. 왜냐하면요, 연애는 유창성이 없다면 언어로 하기 가장 어려운 두 가지를 해야 돼요. 첫 번째로 자기 감정을 표현하는 것. 내가 저 사람을 좋아하는 감정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 머리 싸매고 고민하다 보면 언어가 늘어요. 그리고 누군가가 마음에 들어 고백해야겠다, 그러면 문화마다 고백하는 방식, 순서, 장소가 다 달라요. 또 그 나라의 미적 기준도 이해해야 해요. 옷을 어떻게 입어야 그 나라에서는 멋있는지, 웨이터에게 어떻게 대해야 이 나라에서는 있어 보이는 사람인지 등 여러 문화적 포인트를 이해 못 하면 매력이라는 오묘한 성질을 찾아내기 어렵거든요. 그리고 연애를 시작하면 무엇보다 싸워야 하는데, 싸움을 하면 언어가 늘게 되죠. 감정적인 언어 사용을 강제로 해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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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은 롤러코스터, 곧 내려올 때가 온다


작년부터 예능 프로그램에 좀 나오셨잖아요. 지금은 tvN <비밀독서단>에도 출연하시고요.


글쓰는 사람에게 방송 일은 사실 좀 어려워요. 글을 내 마음에 들 때까지 고칠 수 있지만 방송은 한 번 뱉고 나면 PD님 마음이에요. 처음에는 녹화 끝나고 집에 가서 이렇게 하지 말걸 하고 후회도 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어차피 사람들이 정보를 접하는 방식이 다양해졌잖아요? 인터넷으로, 책으로, TV로 정보를 접하는데 채널을 가리는 것 자체가 우습게 느껴지더라고요. 제가 우리나라 영어 공부 방식이 진짜 바뀌도록 영향을 미치려면, 한국인이 영어를 이렇게 힘들어하고 고통받는 걸 해결해 주는 게 제 목적이라면, 좋은 방법이 있다면 어디 가서든 이야기를 해야죠.


방송과 책은 아무래도 다르죠.


지금은 제가 적응하면 된다는 쪽으로 가고 있어요. 만일 제가 강연을 가고 TV에서 이야기하는데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 못 했다, 채널이 돌아갔다, 그럼 어렸을 때는 사람들이 자세히 안 읽어서 그렇다고 답답했을 거예요. 지금은 제가 어떤 개념을 설명했는데 못 알아들었다, 그러면 그게 제 직무유기더라고요. 저는 연구자가 아니라 커뮤니케이터잖아요. 그래서 지금은 방송이냐, 책이냐 가리기보다 예능적으로 웃기면서도 제가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법을 배우자고 생각해요. 열심히 선배님들 보고 배우면서 인턴생활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방송 출연으로 인해서 어울리는 사람도 바뀌었나요?


좋은 친구들을 많이 만나긴 했어요. 예전 책에 추천사를 써 준 <비정상회담>의 타일러 씨는 저랑 굉장히 잘 맞아요. 오후에 예쁜 카페에서 만나 홍차를 마시면서 수다를 떠는 거 좋아하고요. <비정상회담>의 인도 대표 럭키 씨도 방송에서 만나서 친해졌죠. 하지만 아직은 약간 연예인 체험하는 느낌이에요. 제가 방송인이라고는 절대 생각 안 해요.


왜요?


공부하는 사람은 원래 혼자 있는 게 정석이에요. 그래도 스포트라이트 받는 사람들을 가까이에서 보고, 그 사람들의 삶을 체험할 어마어마한 기회가 주어졌다고 생각하면 해야죠. 방송, 연예 커리어라는 건 롤러코스터 같은 건데, 올라가면 내려가거든요. 그냥 ‘언젠가 한 바퀴 돌면 원래 삶으로 돌아가겠지’ 이런 생각으로 원래 생활 패턴을 바꾸거나 하진 않아요. 이 롤러코스터를 타는 도중에 내가 뭐라도 된 줄 알고 내 인생을 바꿔버리면 끝나고 종착지가 되게 낯설게 느껴질 거란 말이에요. 제가 원래 개그맨이나 아이돌, 가수 출신도 아니고, 그렇다고 예능을 무지하게 잘해서 빵빵 터뜨리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저 지금 한국에서 좀 흥미로운, 젊고 가벼운 콘텐츠를 갖고 있는 사람을 목말라하던 차에 운이 좋아서 사람들이 절 많이 쳐다봐 주시는구나, 감사하다, 한 1,2 년 즐기자는 마음이에요.

 

 

힘 빼고 물 흐르듯이


예전 인터뷰에서 ‘책을 보고 항목 하나하나에 매달리지 말고 철학을 봐줬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책을 내시면서 관통하는 철학이 뭔가요?


우리나라는 힘들게 하는 게 잘하는 거라고 가르쳐요. 피눈물 쏟으면서 열심히 해서 분명 되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대부분 힘든 건 뭘 잘못하고 있기 때문에 힘든 거예요. 우리나라 많은 사람이 일도 공부도, 생활 자체를 너무 열심히, 힘들게 하고 있어요. 하지만 어느 분야나 잘하는 사람들은 쉽게 하거든요. 물론 그 쉬운 길을 찾는 과정에서 최선을 다하는 건 좋아요. 하지만 길이 여기 있는데 길이 없는 곳을 계속 파는 건 그만할 때가 되지 않나 싶은 거죠.


기존 세대는 길이 없으니 개척자 정신으로 뚫는 게 의미가 있었죠.


어디에도 길이 없던 세대는 그냥 정면돌파였어요. 경부고속도로 막 뚫고요. 잘하셨어요. 그분들 덕분에 우리가 이만큼 살게 됐는데,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라는 거죠. 지금은 시간 여유가 있잖아요. 좋은 길을 찾을 때까지 시간을 투자하면 훨씬 빨리 갈 수 있는데 무작정 달려드는 건 이제 그만하자는 거죠. 꼭 공부 이야기를 하는 건 아니에요. 삶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에서 힘 빼고, 숨 좀 쉬고, 상대방 얼굴도 쳐다보면서 저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느껴보라는 거죠. 알아듣는 것만 들으면서, 못 알아들으면 못 알아듣는 대로 통하고요.

 

다른 인터뷰에서는 우리나라 문화를 번역해서 다른 나라에 알리고 싶다고도 하셨어요.

지금도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 문학과 문화에 대해서 이해가 깊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막연히 내가 한국 사람이고, 영어와 프랑스어에 어느 정도 견해가 있으니 할 수 있겠다고 여기고 한 말이었는데, 이후에 한국 고전을 파기 시작하니까 제가 아는 게 없더라고요. (웃음) 한국에서 나고 자랐다고 해서 한국의 정신세계를 설명할 만큼 잘 아는 게 아니더란 거죠. 다시 처음부터 하고 있어요, 하늘천 따지부터.


 

 

플루언트조승연 저 | 와이즈베리
글로벌 시대인 지금, 영어는 내가 세계 속의 수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게 해주는 필수 도구이다. 『플루언트, Fluent: 영어 유창성의 비밀』은 우리에게 영어가 왜 절실히 필요하며 어떻게 해야 영어 고민에서 해방될 수 있는지 친절하게 안내해줄 것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히데코 “특별하지 않아 특별한 요리 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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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힐링, 내 인생의 행운, 마음의 치유, 끊이지 않는 웃음 소리.” 연희동 요리 교실 ‘구르메 레브쿠헨’을 6개월부터 10여 년간 다닌 수강생의 후기에서 나오는 단어들이다. “요리가 늘었어요, 좋은 레시피가 많아요”라는 평범한 후기는 찾기 어렵다. SNS에서는 잘 검색되지 않는, 입소문으로 찾아가야 하는 이 요리교실의 수강생이 되려면 1년을 기다려야 한다. 어떤 매력이 있길래 대기자가 이렇게 많을까. 최근 『히데코의 연희동 요리 교실』을 펴낸 나카가와 히데코 선생을 그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툭 가벼운 인사를 건네는 데도 건강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자연스러움보다 더 아름다운 분위기가 있을까? 이 요리교실에 따라붙는 극찬의 이유를 순간적으로 파악했다.

 

나카가와 히데코는 프랑스 요리 셰프인 아버지와 플로리스트인 어머니 곁에서 자연스럽게 요리, 꽃꽂이, 테이블 세팅을 배웠다. 아버지가 서독의 일본 대사관 전속 요리장으로 파견되면서 6살 때, 서독으로 이주했다. 부모님은 그에게 요리의 길을 권했지만 대학에서 언어학, 국제관계론을 공부했고 독일, 스페인, 한국에서 기자와 번역가로 활동했다. 이후 한국인 남편과 결혼한 후 결국 요리의 세계로 돌아왔다. 궁중음식연구원에서 3년간 한국 요리를 배웠고 1994년부터 한국에서 가족들과 살고 있다.

 

‘레브쿠헨’은 독일에서 크리스마스 때 장식으로 쓰는 진저브레드다. 진저브레드는 히데코에게 처음으로 ‘세상에 다양한 맛과 향이 존재한다는’는 것을 알려준 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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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코, 입이 행복한 요리교실


다섯 번째 책입니다. 기다린 독자들이 많더라고요.

 

기획부터 시작하면 4년 정도 걸렸어요. 중간에 테마를 여러 번 바꿨죠. 출판사와 계약했을 때는 가제가 ‘부엌의 기본, 살림의 기본’이었어요. 제 이야기를 좀 풀고 후속으로는 부엌이든 살림이든 조금 세세하게 써볼 생각이었는데요. 대표님이 “요리 교실을 한 번 제대로 이야기해보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책 카피가 “지중해, 일본, 한국 요리가 한 식탁에서 어우러지는 레시피와 이야기”입니다. 에세이 같기도 하고, 요리책 같기도 한 독특한 책이에요.


책을 내면서 출판사와도 어떤 분야로 들어가야 하는지 고민을 좀 했어요. 이번 책이 저는 너무 만족스러웠는데요. 우선 지금까지 낸 책과 달리 양장본이라서 좋았고, 주위 요리 선생님들께 책을 선물했더니 재료나 식기 등에 관한 구체적인 설명이 있어서 도움이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원래 자기 책이 가장 좋은 법이잖아요.

 

프롤로그부터 편집이 유달라요. 읽는 재미가 있어요. 사진도 좋고요.


실은 작년에 찍은 사진이에요. 시간이 좀 지난 사진이니까 어떻게 보일까 걱정했는데, 괜찮더라고요. 오래 걸린 만큼 잘 나온 것 같아요.

 

책을 읽다 보면, ‘구르메 레브쿠헨’이 도대체 어떤 공간인가 몹시 궁금해집니다. 매달 수강생이 150여 명인데 대기자도 딱 그만큼 이라고요.


지금은 대기자가 100명 정도 있는 것 같아요. 대기자 명단을 정리할 때마다 너무 죄송스러워요. 수강생 인원이 비면, 대기자 명단에 있는 분께 선착순으로 연락을 드리는데 시간이 좀 걸리니까 중간에 사정이 생기신 분도 있고 그래요. 꼭 듣고 싶다고 따로 메일을 보내시거나 사연이 있으신 분들 같은 경우에는 이름을 기억해놓고 있어요. 멤버를 구성하기까지 시간이 꽤 걸리죠.

 

5개월 과정인가요?


네, 기본적으로 한 달에 1회로 진행하는데요. 수업을 두 개 들으시는 분들도 있어요. 기본반, 심화반으로 나누지 않고, 계절 따라 식재료 따라 운영하고 있어요. 가을, 겨울에는 콩 요리도 많이 하고, 스페인 요리 같은 경우는 하다 보면 1년 과정이 되기도 해요. 한 번 수업할 때 9명 정도 수강생이 참석해요. 지금 수업반이 스무 개 정도인데요. 늘리면 제가 너무 힘들어서 조절하려고 해요. 하루에 한 번 하는 날이 있고, 오전반과 저녁반이 있는 날이 있어요. 오전반 경우에는 10시 반 정도에 수업을 시작해서 음식을 만들고, 같이 식사하고 나면 1시 반쯤 돼요. 영화 레시피 수업이 있는 날이면, 사전에 영화를 각자 보고 온 다음에 요리를 해요.

 

작은 요리교실이 많이 생겼지만, 아직 TV 드라마에 나오는 요리교실을 상상하게 돼요. 보통 어떤 분들이 수강하시나요?


10대부터 70대까지 연령 구분이 따로 없어요. 오전반은 거의 주부나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분들이 많이 오세요. 나이가 많이 드신 분은 “옛날에 했던 음식들 다 까먹어서, 할아버지랑 단둘이 사는데 재미없으니까 온다”는 이야기도 하세요. 저녁반은 직장인, 주부, 남자들도 오세요.

 

‘구르메 레브쿠헨’은 요리를 배운다는 개념보다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는다”에 방점이 찍혀 있는 것 같아요.


그럴지도 몰라요. 예전보다 수강생이 늘었다고 하지만 그래도 10명을 넘진 않거든요. 하루에 3,4시간 함께하는데 요리 이야기만 할 수 없어요. 개인적인 이야기도 많이 나누게 돼요. 요리를 마친 후에는 설거지도 같이 해요. 설거지를 하기 싫어하거나 번거로워 하는 분이 간혹 계시는데, 그런 경우는 오랫동안 다니시진 않더라고요.

 

요리교실이 생긴지 올해로 8년이 됐어요. 열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하자”라고 결심하고 시작한 건 아니에요. 한국에서 일본어 강사를 하고 번역을 하면서 베트남 사람이 운영하는 이태원의 요리 교실에 다녔어요. 한 달에 한 번 그 분의 집에서 배웠는데요. 지금 ‘구르메 레브쿠헨’ 시스템을 그 곳에서 배웠어요. 음식을 같이 만들고 예쁘게 세팅해서 남산에 가서 먹었거든요. 그 때만해도 재밌고 좋다는 생각만 했지, 요리교실을 열 생각은 없었어요. 그러다 아파트에서 주택으로 이사를 왔고 지인들을 초대해 음식을 대접하다가, 케이터링을 부탁 받았어요. 요리를 가르쳐달라는 분들이 있어 일본 분을 대상으로 시작했고요. 그렇게 한 두 명씩 입소문이 나서 지금까지 왔어요.

 

딱히 요리교실를 홍보하는 활동을 하지 않아요. 수강생이었던 한 블로거의 글을 보니, 많이 알려지길 싫어하신다고요.


대기자 분들이 많으니까요. 미안해서 명단을 보기도 싫은 걸요. 사실 지난주 수요일에 수업이 없어서, 홍대에 한 공간을 빌렸어요. 메뉴 개발을 해준 회사와 함께 가격을 좀 낮추고 여러 사람이 올 수 있도록 클래스를 열었는데 신청자 수가 4명밖에 없더라고요. 아, 이렇게 해서는 안 되는구나 싶었어요. ‘구르메 레브쿠헨’에서 소규모로 함께 즐기고 싶은 거지, 단순히 요리를 배우고 싶으신 건 아니라는 걸 절감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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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마음 편한 사람들과 스키야키 파티를 즐긴다

 

치우는 것까지의 과정이 음식에 대한 예의


2011년에 『셰프의 딸』이라는 책도 내셨어요. 아버지께서 프랑스 요리 셰프셨고, 딸이 요리의 길을 가길 바라셨다고요. 하지만 대학에서 언어학, 국제관계론을 공부한 후, 기자와 번역가로 활동하셨어요. 요리를 공부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아버지가 했기 때문에 오히려 싫었던 것 같아요. 제가 사춘기를 좀 길게 겪었어요. 대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진로에 대해 고민했는데, 플로리스트였던 어머니도 제가 일본여자영양대학에 들어가길 바라셨지만 저는 너무 싫었어요. 재미를 전혀 못 느꼈으니까요. 또 음식업을 하다 보면 주말에도 일해야 하잖아요. 주말에 놀지 못하는 게 싫었죠. 먹을 걸 좋아했고 일찍 유학을 했기 때문에 외국을 다니면서 레시피를 모으긴 했지만, 요리를 하고 싶진 않았어요. 한국인 남편과 결혼하면서 한국 생활을 한 지 20년인데요. 10년 정도 일어 강사를 하면서 번역 일을 했어요. 번역을 했던 게 책을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됐어요. 번역을 안 했더라면 문장을 쓰는 게 어려웠을 것 같아요.

 

궁중음식연구원에서 3년간 공부한 최초의 일본인 수강생이셨는데요. 좀 더 일찍 요리를 전문적으로 공부했으면 좋았을 거라는 후회는 없나요?


일본에서 계속 살았다면 그럴 지도 몰라요. 뭔가 기술을 더 배웠겠죠. 그런데 주방은 춥잖아요. 아무리 열로 요리를 해도 바닥은 차가워요. 저는 차가운 게 싫더라고요. 일본에 있었더라면 요리를 했을지 모르지만, 언제까지 했을지는 모르겠어요. 몸이 못 따라가면 못하는 거니까요.

 

요리 교실에서 수업을 들을 때, 레시피를 인쇄해서 주신다고 들었어요. 혹여 이 메뉴를 갖고 식당을 여는 수강생은 없었나요?


알기로는 없어요. 하지만 레시피를 인쇄했으면 어느 정도 포기해야 해요. 요리교실에서 사진을 바로 찍지 말라고 말씀 드리는 건, 수강료를 내고 오는 다른 수강생들에 대한 배려예요. 블로그에서 다 볼 수 있다면, 직접 수강료를 지불하고 들으시는 분들에게 실례니까요.

 

연령대가 다양하니 그룹마다 색깔이 있을 것 같아요. 단순히 요리만 배우는 수업이 아니니까 서로 마음을 열지 않으면 딱딱한 분위기가 될 수도 있고요.


결국 관계인 것 같아요. 요리를 못 가르친다, 레시피가 맛이 없다 그런 것보다 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가 크죠. 저는 직설적인 편이라 조금 생각한 후에 말씀 드려요. 그런데 요즘은 수강생 분들이 제가 말하기 전에 먼저 말씀해주세요. 우리가 설거지를 하는 게 규칙으로 정해져 있진 않아요. 하지만 요리를 하고 치우는 것까지의 과정이 음식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해요. 식기세척기를 쓰고 직원을 한 명 둘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죠. 시간이 좀 여유로운 분들한테는 수업 시작 전에 와서 재료 손질을 같이 하자고 해요. 우엉, 연근, 마 이런 건 젊은 세대들이 잘 몰라요. 같이 손질하면서 재료의 특성도 알려주면 도움이 되죠.

 

어떤 수강생들이 오면 좋나요?


그런 건 없어요. “음식을 배우러 왜 여기까지 오시냐?”고 물으면, 그 분이 어떻게 생활할 지가 보여요. 평소에 식재료나 음식에 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가 중요해요.

 

식당을 열자는 제안도 많이 받았을 것 같은데요.


받았죠. 그런데 식당을 하면 주말에도 일해야 하잖아요. (웃음) 한국은 음식점을 여는 시간이 너무 길어서 셰프들이 일하기가 너무 힘들어요. 레스토랑 컨설팅은 딱 한 번 했어요.

 

프롤로그 글이 기억에 남아요. 한 지인으로부터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집으로 불러 접대하는 것도 재능이야.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거든.” 정말 그래요. 쉬운 일 아니에요. 평일 내내 요리교실을 열고 많은 사람을 만나다 보면, 주말에는 요리를 하기 싫을 것 같은데요.


싫을 때가 있죠. 그래도 아직 전 사람을 초대하는 일이 좋아요. (웃음) 봄부터 가을까지는 바비큐 파티를 겨울에는 전골 파티를 자주 열어요. 남편의 업무에 관계된 사람들도 초대하고 때로는 친구 한 명, 부부 동반으로 모일 때도 있죠. 적은 인원이 모일 때는 고급 재료를 쓰되 손쉬운 요리로 메뉴를 구성하는 게 제 원칙이에요. 진심을 담았다면 좋은 소고기로 끓인 소고기국도 좋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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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맘대로 만들어 먹는 즉석 초밥 '데마키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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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데코 레시피로 만든 차슈와 겉절이식 샐러드

 

가족 모임에서 주로 하는 메뉴는 무엇인가요?


가족들이 모일 때는 어디까지나 부담이 없는 메뉴가 좋아요. 저마다 자신 있는 요리를 가져오는 것도 좋지만, 중요한 건 어른들의 취향을 배려하면서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메뉴를 정해야 하는 점이죠. 너무 아이들 위주로만 생각하면 어른들이 먹을 게 없어요. 책에 소개한 메뉴는 아이들을 위한 라자냐, 소금에 절인 연어알과 생선회를 듬뿍 올린 지라시즈시, 차슈, 일본식 달걀찜과 스페인풍 오징어 샐러드 등이에요. 저는 꼭 집에서 요리를 다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샐러드나 한 두 가지 요리만 직접 하고, 동네에 맛있는 중국요리점이 있다면 오향장육을 포장해 와서 예쁜 그릇에 담으면, 좋은 메뉴 구성을 할 수 있어요.

 

책에서 ‘즉석 초밥’ 레시피를 보았는데, 간단하면서 맛있어 보였어요.


많은 분이 좋아하는 메뉴예요. 노량진 수산시장에 단골 생선가게가 있거든요. 전화해서 도미, 광어 등을 자르지 말고 토막으로 손질해달라고 하면 돼요. 두툼하게 썰어서 아보카도 크림 소스, 오이, 깻잎, 생각, 무순, 스시메시와 와사비 등을 각자 취향에 따라 골라 네모난 김 위에 올려 먹는데, 일본어로는 ‘데마키즈시’라고 해요.

 

포트럭 파티((pot-luck party: 각자 요리 한두 가지를 가져와 함께 즐기는 파티)를 할 때, 알아두면 좋을 팁도 유용했습니다.


포트럭 파티는 친구들끼리 하는 파티에 가장 적합하고 손쉬운 방식이라고 생각해요. 장소를 제공하는 주인이 모든 음식을 준비해야 하는 부담이 없으니까요. 파티 음식이라고 해서 반드시 어려운 요리, 비싼 재료를 사용한 요리여야 한다는 선입관은 버리면 좋겠어요. 가져갈 음식에 몇 가지 조건을 정한다면, 미리 손질할 수 있고 시간이 지나도 맛있는 것, 국물이 생기지 않는 것, 옮기기 편한 것이 좋아요. 새로 문을 연 제과점의 빵 등 화제의 맛집 음식이나 누구나 좋아하는 메뉴도 좋고요. 중요한 건, 친구들 또는 허물없는 사이끼리만 해야 한다는 점이에요. 친밀하지 않은 사람들과 포트럭 파티를 하면, 음식에 대한 부담감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수강생들한테 특히 인기가 좋은 레시피는 무엇인가요?


차슈도 좋아하시고 샐러드를 많이 하시더라고요. 책에도 몇 가지 소개했는데요. 집에서 간단히 해먹을 수 있으니까 좋아하세요. 쑥갓 대파 샐러드나 스페인풍 오징어 샐러드 같은 경우는 재료도 정말 간단해요. 쑥갓 대파 샐러드는 쑥갓이랑 대파를 잘 손질해서 간장, 식초, 참기름만 넣어 드레싱을 만들고 참깨만 뿌려주면 끝이에요.

 

책 마지막 쪽에 수강생들의 축하 한 마디가 실렸어요. 한 수강생은 “히데코의 요리 교실은 연희동의 킨포크”라고 쓰셨더라고요.


(웃음) 지금은 킨포크라는 옛날 말이 된 것 같은데요. 그냥 예전부터 제 스타일이 그랬던 거니까요.

 

두 아들은 엄마의 음식을 좋아하나요?


빠에야는 지겹다고 하고요. 새로운 메뉴를 해주면 좋아해요. 요리교실을 하고 있을 때 아이들이 집에 오면, 먹어 보라고 하거든요. 그런데 안 먹어요. 그동안 많이 먹어서 질렸나 봐요. 이제는 제 요리를 비평하는 수준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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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는 소중함


요즘은 혼밥 시대잖아요. 가족들이 밥을 함께 먹는 일도 드물고 요리를 한다는 것 자체가 부담이 될 때가 있어요.


평일에 힘들게 일하니 주말에는 그냥 쉬고 싶죠. 그 마음 뭔지 알아요. 저는 마트에 갈 때마다 사람들의 바구니를 봐요. 냉동식품, 가공식품을 한 가득 담은 바구니를 보면, 좀 안타깝긴 해요. 우선 건강이 안 좋아지고, 아이들의 경우 미각도 발달하기 힘들어요. 한식은 양념이 많이 들어가서 번거롭다고 하지만, 간단하게 할 수 있는 음식도 많아요. 우리 요리교실에서 수강생들이 좋아하는 메뉴 중 하나인 ‘차슈’는 정말 간단해요. 라멘 가게에서는 대부분 차슈를 라멘 위에 올리는데요. 차슈와 새싹 채소로 만든 겉절이식 샐러드를 함께 먹으면 간단하면서 맛있어요.

 

한풀 꺾었지만 요리 프로그램이 인기가 많습니다. 종종 보시나요?


찾아서는 안 보지만 가끔 보긴 해요. 여러 의견이 많은 걸로 아는데요. 그래도 집에서 요리를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점에서는 좋은 영향인 것 같아요. 부정적으로 생각하진 않아요. 문제는 앞으로 나아갈 방향인 거죠. 재미도 중요하지만 식재료 문제도 잘 다뤄졌으면 좋겠어요.

 

TV 출연 요청도 꽤 받지 않았나요?


몇 개 있었어요. 작가 분이 사전 미팅을 하러 오시는데, 제가 방송 취지와 다른 의견을 이야기하면 그 이후에는 연락이 없죠. 방송은 뚜렷한 목적이나 말하고자 하는 입장이 있잖아요. 예전에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는 출연한 적 있어요. 제 첫 번째 책을 보고 작가 분이 찾아 오셨는데요. 슬로우 프드에 관한 테마였는데 제가 강조하는 부분과 뜻이 잘 맞았죠.

 

“다양한 가족이 모여 밥을 먹는 것이 어린아이들에게 얼마나 소중한 추억인지를 새삼 깨달았다”는 이야기도 공감이 됐어요. 뭘 먹더라도 어울려서 먹으면 맛있듯이, 아이들이라면 더할 나위 없고요.


굉장히 즐겁죠. 5년 전까지는 어린이 요리교실도 했어요. 초등학생 상대로 방학 때 진행했는데 엄마들이 되게 좋아하시더라고요. 대개 엄마들도 함께 참여하는 수업이 많은데, 저는 엄마들은 다 가시라고 했어요. 엄마가 있으면 엄마가 다하거든요. 아이들이 직접 칼질도 가위질도 해봐야 요리를 재밌어 해요. 언젠가는 성인 요리교실에 대학생 딸과 온 엄마가 있었어요. 조금이라도 위험하거나 어려운 과정이 있으면 하지 못하게 하더라고요. 아, 엄마랑 오면 안 되는 구나를 알았죠. (웃음)

 

아무래도 먹거리, 요리, 라이프스타일에 관심이 많은 독자가 이 책을 볼 텐데요. 저자로서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상 차리기를 너무 어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어떤 테마가 있으면, 잘 맞는 요리 한 두 개만 하고 고기를 구워 먹어도 되거든요. 절대 한꺼번에 요리를 여러 가지 할 생각을 안 했으면 해요. 제가 10년 동안 요리교실을 하는 게, 함께 음식을 만들어 먹는 소중함을 알기 때문이에요. 살아가는데 필요한 요리, 누군가에게 요리를 해주고 싶은 마음, 요리 자체에 대한 도전과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는 바람에서 요리교실을 하고 있어요.


 

 

히데코의 연희동 요리 교실나카가와 히데코 저 | 이봄
연희동, 그곳에는 은근하게 뜨거운 요리 교실이 있다. 23년째 한국에 살고 있는 일본 태생의 귀화 한국인, 나카가와 히데코의 ‘구르메 레브쿠헨’이다. 매달 찾아오는 수강생만 150명, 일명 ‘히데코의 연희동 요리 교실’이라 불리는 이곳에 사람들이 이토록 열렬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승효상 “모든 것을 건축가가 결정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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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공간이 다목적이든 단일목적이든 그러한 목적을 가진 공간은 그것이 주어진 시간 내에 성취되는 것이라면, 그 시간이 지난 후 그 공간은 블랙박스에 갇혀 있게 되며, 갇혀 있는 동안 우리의 삶과는 전혀 관계하지 않을 수 있다. 반면, 딱히 쓸모없어 이름짓기조차 어려운 그런 공간은 건축의 생명력을 길게 하며, 정해진 규율로 제시할 수 없는 우리의 삶의 모습을 다양하게 만든다.(『빈자의 미학』, 83쪽)

 

일찍이 『빈자의 미학』을 ‘선언’한 건축가 승효상의 시대 정신은 20년이라는 시간의 무게를 이긴 듯하다. “빈자의 미학. 여기에선 가짐보다 쓰임이 더 중요하고, 더함보다는 나눔이 더 중요하며, 채움보다는 비움이 더욱 중요하다.”고 한 무거운 말을 읽노라면 건축이라는 것이, 도시라는 것이 그동안 이 사회에 어떤 의미였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건축이란 무엇인가. 승효상은 토지의 장소성을 회복하는 것이야말로 “건축가로서 지켜야 할 토지에 대한 신성한 의무”라고 말한다. 바로 공공성이다. 건축은 결코 한 개인에게 소유권이 있지 않다. 토지 또한 마찬가지다. 소유권은 인류에게 있으며 당대의 개인은 잠시 사용권을 확보했을 따름이다. 그렇다면 건축이 무엇인지 명확해진다. 그 건축 안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생활, 그 자체가 건축이다. 쓰임과 나눔, 비움이 중요한 삶, 그 자체다. 승효상의 ‘빈자의 미학’은 여전히 호명되어야 할 시대의 가치가 아닐까.


무엇보다 도시의 어지럽고 파편화 된, 불통의 풍경이 사회의 경박과 몰염치를 가져온 큰 요인이라고 하는 승효상의 진단은 아주 특별하다. 서울시 초대 총괄건축가를 역임한 그가 끊임없이 연결과 보행을 강조한 이유는 건축이 잃어버린 가치의 회복을 가능하게 하리라는 굳은 믿음 때문이었다. 이를 통해 모든 사람이 잃어버린 자기 내면의 고유한 존엄성을 지키게 되기를, 그는 희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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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권은 우리 모두의 것


여러 권의 책을 출간하셨어요. 글쓰기도 꾸준히 하고 계시고요. 건축과 언어, 선생님께 어떤 상호작용을 일으키는 요소들 같습니다.

 

건축 하는 것이나 글 쓰는 것이나 거의 똑같다고 보고 있어요. 집‘짓기’고, 글‘짓기’니까요. 저는 설계를 할 때 그 설계에 대한 글부터 지어요. 개념어가 확실해야 설계를 할 수가 있어요. 그 개념어를 찾기 위해 아주 많은 자료를 뒤져요. 역사도 찾고, 땅에 관련된 문서나 소설 등을 다 뒤져서 저의 개념을 찾아내는 작업을 하죠. 개념을 찾아내면 그 다음부터는 딱 풀려요. 언어를 먼저 발견하는 게 중요하죠. 언어란 집단 지성의 산물이니까요. 진리거든요. 제 건축을 결정하고, 속박하고, 한정짓는 굉장히 중요한 수단이 제게 언어입니다. 그렇게 하고 나면 자연스럽게 집의 이름이 생각이 나요. 거의 매번 그랬습니다.  

 

‘모든 땅은 고유하다’, 때문에 땅이 하는 이야기를 듣는 건축이어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바로 건축의 공공성인데요. 역사성에 관한 이야기와 함께 이를 여러 번 강조하셨습니다.


땅이라고 하는 게 개인의 소유가 될 성질이 결단코 못 되죠. 땅은 개인이 만든 것도 아니고요. 사람이 돈을 주고 거래를 한 것인데요. 개인은 사용권만 있는 것이지 소유권은 없어요. 소유권은 우리 인류에게 있는 것이에요. 좀 더 명확히 이야기하면 우리 후손에게 소유권이 있는 것이지 당대의 개인에게는 소유권이 있을 수가 없는 것이거든요. 건축도 마찬가지예요. 건축이라고 하는 것은 별일 없으면 사람의 일생보다 더 오래 지속되는 것이고요. 그 건축이 어떤 밀실에 지어지는 것이 아니라 공공의 땅 위에 지어지니까 옆집 사람도 그 건축에 영향 받지 않을 수 없는 것이죠. 때문에 건축 또한 소유권은 개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시민과 사회에 있는 게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건축이나 토지를 부동산 가치로만 생각해서 소유권이 개인(본인)에게 있다고 주장하고 과도하게 행사를 해요. 그것 때문에 공동체가 붕괴되어왔죠. 사용권은 인정해주지만 소유권은 우리 모두의 것으로 하자고 하는 게 공공성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 공동체가 붕괴되지 않는다고 하는 걸 확신하고 이런 이야기를 드린 거죠.

 

어떤 사회에서는 그 이야기가 널리 받아들여지지만 어떤 사회에서는 이해가 안 되는 이야기기도 하잖아요.


소유를 해봐야 몇 년을 할 수 있겠습니까. 죽으면 결국 소유 못 합니다. 건축은 그보다 훨씬 더 오래 가요. 폭격으로 무너지거나 경제적 이유로 빨리 사라지지 않는 한 그렇죠. 본인이 죽었는데 어떻게 소유를 합니까. 명확한 일이거든요. 잘 사용하면 되는 것이죠. 소유권은 절대 개인한테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옆집 사람이 그 집 때문에 영향을 받아요. 그 영향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집니까. 본인이 지어야죠. 그러니까 본인이 짓는 건축에 대해서 공공적 가치를 인식해야 하는 겁니다. 옆집이 모두 2층, 3층으로 되어 있는데 혼자 10층으로 올리면 그 풍경이 파괴된 책임은 본인한테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알아야죠.

 

‘건축에 시간의 때가 묻어 윤기가 날 때 가장 아름답다’고, 건축의 역사성에 대해서도 말씀을 하셨거든요.


건축은 사실 건축가가 완성하는 게 아니라 거주자가 완성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거주자가 살면서 완성되어 나가는 것이라고 이야기를 했어요. 시간이 지난 건축은 원본과 굉장히 다릅니다. 살면서 고치지 않을 수가 없거든요. 그런데 그것이 굉장히 아름다운 거죠. 인간의 의지가 묻어나는 것이고, 삶의 형태가 건축화 되어 나타난 거니까 그 자체가 무척 귀하죠. 인간의 생명이 귀하다고 생각한다면 그 흔적도 귀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건축에 훨씬 더 이야기도 많고요. 그것이 모여서 역사가 되는 거예요. 그 자체도 보존을 해야 해요. 결국 건축은 붕괴되기 마련인데 붕괴되기 직전의 모습은 굉장히 찬란하죠. 장대한 다큐멘터리 같은 느낌을 가지지 않을 수 없어요.


건축을 인위적으로 멸실 시킨다는 건 아주 조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저한테 건축 설계를 부탁하려고 온 사람의 땅에 혹시 건축이 있는 경우에는 제가 무척 조심하지 않을 수 없어요. 되도록 고쳐서 사용하라고 권유를 하니까 황당해하는 사람도 있죠.

 

의뢰를 했는데 건축가가 그렇게 이야기하면 당연히 당황할 거예요.


지금도 비슷한 일이 있는데요. 대학로의 한 필지에 굉장히 오래된 주택이 하나 있었어요. 보니까 일제시대 때 지은 거예요. 그곳에 6층 건물을 짓겠다고 하는데 짓지 말라고 할 수는 없었어요. 그 집 하나만 1층 건물이고 모두 고층 건물이었거든요. 고민하다가 그 건물을 그대로 두고 그 위에 짓기로 했어요. 물론 지하층도 파야 해서 허물 수밖에 없어요. 허물지만 지금 상태를 옮겨 두었다가 다시 가져올 거예요. 그 위에 집을 짓는 거죠. 공간을 그대로 보존하는 방법을 택한 건데요. 건축주는 잘 모르죠.(웃음) 대충만 이야기를 했어요. 그렇게 되면 지나가는 사람들도 보고 특이하니까 이게 뭔지 물어보게 되고, 이런 집이 있었다고 이야기하게 되고, 그 역사가 다 남게 되는 거죠. 결국은 새로 지은 그 건축 자체가 아주 풍부해지는 거죠.

 

그런 모습을 오래된 골목, 구시가지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말이에요. 골목에 대한 아름다움과 잃어버리는 것에 대한 아쉬움도 많이 말씀하셨잖아요.


특히 골목은 그래요. 골목이라는 게 다니는 통로의 구실만 하는 게 아니에요. 골목길이 있는 데는 대부분 작은 단위의 주택들이 있는 곳이죠. 그곳에 사는 사람들, 많이 가지지 못한 사람들의 길이 다 골목길인데요. 골목은 그들의 공공영역이거든요. 그 동네의 공동체적 생활이 묻어나는 영역이기 때문에 우리가 어떻게 모여 살아왔는가를 다 훑을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에요. 그런 것들을 멸실하는 것은 정말 우둔한 짓일 수밖에 없죠. 골목이야말로 가장 유효한 관광자원이기도 하고, 도시 정체성을 확실히 하는 수단인데 그동안 우리가 너무 많은 골목을 없앴어요. 지금도 없애려고 하고요. 그래서 없애지 말자고 계속해서 강조하며 쓴 글들이에요.

 

오래된 골목에 실제 거주하는 사람들이 불편함이나 노후함을 들어 재개발 이야기를 하기도 해요. 당사자들의 이런 이해관계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주로 그렇게 재건축 하자고 하는 사람들은 보니까 외부에서 온 사람들이더라고요. 와서 시세 차익이나 부동산 이익을 노리고 온 사람들이 많고요. 워낙 그곳에 오래 살았던 사람들은 거의 재건축이나 골목길 없애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들이에요. 터줏대감들은 반대를 하죠.

 
유네스코 같은 세계의 유수한 역사 문화 보존을 권고하는 단체에서 가장 핵심적으로 하는 말이 길을 없애지 말라는 겁니다. 길이라고 하는 것은 공동체의 가장 핵심적인 공공영역인데 그걸 없애는 순간 공동체가 와해된다고 하는 거죠. 아무리 가파르고, 좁고, 거칠더라도 길은 없애지 말라는 게 아주 중요한 권고 사항이에요. 그런데 지난 시대에 너무 많이 없앴죠.

 

또한 가로막혀버렸어요. 아파트 단지라는 섬에 의해서 말이에요.


우리나라의 길은 서양 길과 달라요. 서양은 도시가 평지에 만들어지기 때문에 길부터 만들죠. 길을 만든다는 건 직선으로 만든다는 거거든요. 모이기 위해서 광장을 만들고, 이런 거죠. 그러니까 집은 길가에 나란히 지어요. 반면 우리는 주로 집을 짓는 곳이 산비탈이잖아요. 길을 만들기가 어려워요. 영역부터 생기고, 집과 집 사이에 남은 부분이 길이 되는 거죠. 직선이 거의 없어요. 산비탈에 직선을 만들 수도 없죠. 구불구불하고 휘어져 돌아오고 넓어졌다 좁아졌다 하니까 이 안에 광장이라는 개념도 없었어요. 길이 광장이 되고, 마당이 되고, 통로가 되고 하는 부분이었죠. 놀이 또한 길놀이 문화가 있지 광장 문화가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길이라고 하는 것은 옛날부터 내려오는 우리나라의 동네 정체성을 가장 확실히 나타내는 공간이에요. 그것을 아파트 같은 것이 들어와 전부 깔아뭉개고, 서양처럼 평지로 만드느라 축대를 쌓고 올리는 게 지난 시대의 방법이었죠. 지금은 서울에서는 그런 짓을 못하게 되었어요.

 

서울시 총괄건축가 역임하던 때의 이야기죠?


제가 그 일을 몇 년 하는 바람에 그것에 대해 공무원들에게 수없이 교육을 했고 왜 안 맞는지에 대해 강의도 엄청나게 많이 했어요. 이제 저와 같이 일한 공무원들은 골목 없애는 것이 나쁘다는 걸 다 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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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이 아니라 윤리가 중요


건축을 거대하고 웅장한, 새로운 어떤 것으로 여기는 오해들이 있었어요.


그게 전 시대의 개념인데요. 세우는 자의 영광을 기리기 위해 혹은 치적을 만들기 위해 랜드마크 같은 건물을 만들거나 그랬어요. 건축을 오브제처럼 보는 거죠. 숭배 대상이나 과시 대상으로 봤어요. 건축의 본질은 그런 드러난 모양이 아니에요. 그 속에서 사는 사람들을 위한 공간이 건축의 본질이고요. 그러니까 전 시대의 그런 개념은 건축의 본질과 거리가 먼 거죠. 그런 건축은 파편화될 수밖에 없거든요. 혼자만 잘나서 서게 되니까요. 그런 것들이 많은 도시일수록 파편적 도시고요. 연결이 안 되니까 시민의 공존, 이런 것과는 거리가 멀 수밖에 없죠. 우리가 그간 몇 십 년 동안 서울을 그렇게 만들어왔어요.


서양에서도 이미 미학이 아니라 윤리가 중요하다고 선언을 해버린 상황이에요. 우리 역시 도시에 대한 관념을 바꿔야 되는 때라고 주장을 계속 하는 것이죠. 20년 전부터 계속 목청 높여 해왔는데요. 제가 목청 높인 결과는 아니겠지만 요즘은 바뀌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도시도 개발이 아니라 재생 하자고 하거나 마스터플랜을 쓰지 말고 침을 놓듯 작은 부분만 고쳐 나가게 하자, 이런 종류의 방법을 인정하기 시작했어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간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만들어온 이 도시의 어지러운 풍경을 사회의 경박, 몰염치, 예의 없음의 한 원인으로 꼽으셨는데요. 이 부분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상황은 예전보다 더 악화되었다고 보고 있어요. 하루에 마흔 명이 자살하는 나라고요. 돈 있는 사람의 무례함이 극에 달한 판이니까요. ‘빈자의 미학’이라든가 이런 류의 가치가 더 필요한 때라고 보고 있는데요. 그동안 도시의 개발 양상을 너무 어지럽게 전개해 왔어요. 그 피해를 이제 사람들도 많이 알죠. 재개발을 다 하기로 했다가 지금 시장(市長)에 와서는 다 해지했고요. 주민들 또한 재개발이 나쁘다고 하는 걸 인지하게 되는 의식의 전환이 많이 된 상태예요. 지금이라도 도시 정책을 바로잡으면 얼마든지 사회의식 개선의 가능성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건축은 우리를 바꾼다, 건축으로 인간 조작도 가능할 것이다, 라고 한 대목이 있었어요. 그렇다면 사회의 변화를 위해 건축이나 건축가가 하는 것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그런데 히틀러 같은 사람이 건축을 통해 민심을 조작하고 자신을 신격화시키는 일을 굉장히 즐겨 했죠. 과거 전제 군주도 다 그랬고요. 건축을 도구 삼아 인간을 바꾸고자 한다면 확실히 가능해요. 죄 지은 사람을 교도소 독방에 가두는 이유도 그런 것 아니겠어요. 공간이 사람을 바꾼다는 걸 믿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건데요. 사실 그렇게 해석하면 건축은 굉장히 위험합니다. 우리 인간의 존엄성을 인정 안 하는 거거든요. 건축은 그렇게 도구로만 사용하면 안 돼요. 인간 스스로가 건축을 자기를 진전시킬 수 있는 기반으로 삼아야 합니다. 건축에서 모든 걸 결정해놓으면 안 되고요. 인프라만, 기본적인 조건만 갖추고 살면서 바꿔 나가는 거죠. 그것이 ‘비움’이라고 하는 겁니다. 건축가가 모든 것을 결정해놓지 말고 비워서 거주하는 사람의 의지에 맡기자고 하는 게 제가 주장하는 건축입니다.


미니멀리스트는 아닙니다. 미니멀리즘은 바꾸면 안 되는 거잖아요. 제가 비우고 단순하게 만드는 까닭은 사람이 살면서 스스로 바꾸라는 이야기예요. 이것이 제가 말하는 ‘건축이 우리를 바꾼다’고 하는 이유고요. 모든 것을 건축가가 결정하지 말라고 하는 겁니다.

 

『빈자의 미학』에서도 ‘무용의 공간’을 말씀하셨죠.


그렇죠. 스마트폰 같은 거예요. 보면 아무것도 없잖아요. 그렇지만 누르면 나타나기 시작해요. 사용자가 바꿔서 쓰고요. 보통 때는 비어있고요. 그러나 이 안에는 우리가 바꿔 쓸 수 있도록 아주 정교하게 기능이 깔려 있어요. 이렇게 만들자고 하는 겁니다. 건축도 그 안에는 우리가 필요할 때 꺼내 쓸 수 있도록 여러 장치를 설정해두지만 겉으로는 비워두자고요. 우리의 전통적인 마당 같은 것이죠. 우리 마당은 항상 비워져 있지만 아이들이 놀 수도 있고, 잔치도 하고, 축제도 벌이고, 제사도 지냅니다. 그 일이 다 끝나면 다시 비워져 있죠. 그런 공간은 세상에 우리 마당밖에 없거든요. 지금이라고 해서 그것을 못 만들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요. 건축을 그렇게 비워놓자고, 그것이 ‘무용의 공간’이라고 한 겁니다. 끊임없이 자기 성찰을 통해 변화시키니까 그곳은 개인의 의지에 다 맡기는 거예요. 그래야 해요. 건축이 정한대로 따라서 살면 인간이 도구화되는 겁니다. 건축을 도구로 삼아야지 인간이 도구가 되면 안 되는 거죠.

 

서울시 총괄건축가 임기 중, 서울역 고가공원화나 사대문안 지하 공간 연결 작업처럼 보행도시로의 전환을 도모하셨어요. 보행이라는 것은 도시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나요?


모리기념재단(Mori Memorial Foundation)이 작년에 조사한 세계 도시 국제경쟁력지수(Global Power City Index, GPCI)가 있어요. 서울은 6위에 랭크되었는데요. 동시에 머서(MERCER)리포트에서 삶의 질을 따지는 조사로 서울을 평가한 결과는 115위였어요. 이 불균형이 어디서 오는 걸까요. 잘못된 도시 정책에서 나온다고밖에 볼 수 없어요. 삶의 질을 따지는 리포트에서 지난 십 년 동안 끊임없이 1위에 선정된 도시가 비엔나입니다. 보면 비엔나는 철저히 보행도시입니다. 지난봄에 가보니 아주 중요한 간선 도로가 있었는데 그것마저 보행화를 시켜버렸더라고요. 깜짝 놀랐어요. 그 도로는 도무지 도시의 구조상 바꿀 수 없는 도로인데도 바꿨더라고요. 그만큼 보행화하는 데 아주 관심이 많은 도시가 비엔나입니다.


‘보(步)’자 자체가 한자로 ‘머물 지(止)’자 두 개를 합친 거예요. 걸어 다니는 게 목적이 아니고 머무는 게 목적이니까 그것은 공동체를 활성화시키는 유일한 방법이죠. 서울은 도시 안에 산이 있는 구조예요. 보행 조건이 다른 도시와 다르죠. 뉴욕이나 런던은 평지에서만 걸어요. 동경은 지표면과 지하가 많이 개발이 되어 있고요. 홍콩은 지표면과 빌딩과 빌딩 사이의 가교로 걸어요. 대부분의 도시들이 하나에서 두 개의 면만 사용하는데 서울은 네 개의 면을 사용할 수 있거든요. 첫째, 지표면이 있고요. 둘째, 서울역 고가나 세운상가처럼 빌딩 사이를 갈 수 있고요. 셋째, 지하공간이 굉장히 큽니다. 넷째, 산길이 있어요. 이 네 개의 레이어가 어떨 때는 만나기도 하고요. 이것만 잘 살리면 이처럼 역동적인 보행로를 갖는 도시는 서울뿐일 거예요. 유래 없는 도시거든요.

 

구체적인 사례를 좀 더 설명해주세요.


이를 현실화시키는 첫 번째 방법으로 서울 성곽길을 활성화시키고, 끊어져 있는 지하 보행로를 다 연결시키는 일을 했어요. 심지어는 청계천도 그렇죠. 어쨌든 청계천을 복원했는데 양쪽 길을 차로로 사용하고 있잖아요. 이것은 말이 안 되는 거예요. 전부 보행로로 청계천을 만들면 수변의 풍경이 얼마나 달라지겠어요. 그런 것도 주장했고요. 물론 아침에는 배송, 유통 차량이 통행해도 되겠죠. 오후에 다 막으면 되는 거거든요. 이런 엄청난 보행의 매트릭스가 생기면 실질적인 삶의 질도 질적 전환을 가져온다고 저는 믿고 있고, 그러한 제안을 많이 했었습니다. 실행이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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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면에 존재하는 존엄성


삶도, 건축도, 가치를 품어야 한다고 많이 말씀하셨어요. 선생님께서 품은 가치는 무엇인지 듣고 싶습니다.


UN 인권선언문 서문에 보면 인권선언문을 작성하는 중요한 목적을 가리키는 단어가 하나 나와요. 영어로는 ‘inherent dignity’, 그러니까 ‘우리 내면에 존재하는 존엄성’이죠.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인데요. 이 말이 굉장히 근사한 말이에요. 모든 사람은 존엄한 가치를 가지고 있죠. 지난 시대에 물신에 완전히 빼앗겨 존엄적 가치를 많이 훼손시켰어요. 그 형태가 도시나 건축으로 많이 나타나 있어요. 건축이 우리 삶과 같은 말이라고 이야기하는데요. 도시를 그냥 기계적인 방법으로 분화하고, 계급적으로 가르고 했던 것이 지난 시대의 도시 정책이었거든요. 이런 것들은 전부 우리의 존엄성을 해치는 일이었어요. 그런 것에서 벗어나자고 주장을 아니 할 수가 없는 거예요. 원래 우리의 내면에 존재하고 있는 존엄성을 되찾자, 이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역시, 가장 결핍된 가치라고도 볼 수 있을 테고요.


물론이죠. 예컨대 얼마 전 우리를 굉장히 슬프게 했던 ‘송파 세 모녀 사건’이 있었어요. 그 어머니가 두 딸과 죽기 직전에 한 달 치 월세를 놓고 죽었더라고요. 정말 감동 받았어요. 그러니까 사회가 쫓아서 자살을 하지만 자기 속에 있는 존엄성을 지킨다는 의지의 발로로 이렇게 한 거거든요. 모든 인간에게 다 그것이 있다고 하는 겁니다. 그것을 발휘할 기회를 주지 못하거나 그것을 무참히 짓밟거나 무시하거나 했던 것이 지난 시대가 저질러 놓은 양태였죠. 저는 이것을 건축을 통해서 되찾을 수 있다고 믿고 있거든요. 더구나 지금처럼 인터넷, 가상현실이 발달돼 우리 모두가 밀실에서만 자기의 세계를 구축하는 시대에는 더욱 그렇죠. 건축은 이것을 회복시킬 수 있거든요. 서로 만나게 할 수 있어요. 사람들이 동네라는 공동의 공간을 지나가게 만들고, 모이게 만들고요. 사람들이 그런 게 필요 없다고 할 때 건축가는 ‘아니다, 해야 한다’고 말을 해야 합니다. 그런 말을 하고, 실현할 수 있는 사람이 건축가입니다. 그런 공공성을 절대적으로 믿는 사람이 좋은 건축가가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일찍이 ‘빈자의 미학’을 말씀하셨는데요. 최근 20주년 기념판이 새로 나왔어요. 어느덧 20년이 흘렀는데요. 여기서 하시고 있는 말씀은 지금도 부족함 없이 유효한 것들입니다. 어떤 면에서는 새롭게 들리기까지 했어요.


『빈자의 미학』은 20년 전에 너무 거칠게 쓴 글이라서 개정판을 언젠가 쓰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제가 언젠가 마지막으로 쓰는 책이 『빈자의 미학』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요. 20년 전에 쓴 이 책이 절판이 되었다고 해서 복간하자고 하는 얘기에는 안 하는 게 좋다고 했었어요. 여러 이유로 할 수 없이 내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이 시대가 아직도 이것이 유효한 시대라는 사실이 서글프기도 해요. 그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어요. 때문에 복간에 동의를 한 거죠. 더 필요하면 더 필요했지 전혀 덜 필요해지지 않은 것이 우리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도시, 더 나아가 이 사회를 사는 사람들 안에 상처가 너무 많은 것 같아요.


정치의 잘못이 굉장히 커요. 정치하는 사람들은 제도를 만드는 사람들인데 아직도 부족한 제도가 너무 많은 거예요. 약자, 가지지 못한 자들을 더 약자가 되게 하고, 더 가지지 못하게 만들어 놓았죠. 기회를 안 주죠. 청년들, 엄청나게 힘들잖아요. 지금은 불황의 시대가 아니거든요. 불황이란 호황을 전제로 하는 것인데 앞으로는 호황이 안 옵니다. 지금은 저성장의 시대인데 이것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했어요. 그렇다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시스템을 바꿔야 해요. 가치를 바꿔야 하고요. 그 생각은 않고 정부에서는 계속 부동산으로 경기 진작시킨다고 하는, 이런 후진적 정책을 펼쳐요. 이런 것은 있을 수 없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대결, 갈등, 대립, 분열이 더 심해지지 결단코 치유가 안 되는 것이죠.


사실은 건축과 도시에 대해서 이렇게 주장만 해서는 한계가 있어요. 그것은 틀림없어요. 큰 것이 바뀌어야죠. 그렇다 하더라도 저 같은 사람이 하는 노력이 전혀 무의미하다고 볼 수가 없어서 건축을 통해서 혹은 이런 글을 통해서라도 소리 지를 수밖에 없는 거죠.

 

지금 일어나서는 안 될 일들이 일어났고, 일어나고 있잖아요.


사회는 진보만 하지 않아요. 건축도 마찬가지죠. 항상 진보하지는 않아요. 도시도 마찬가지고요. 퇴행의 역사를 거듭한 때도 있어요. 지금은 한창 퇴행의 역사를 거듭하고 있는 때라고 보면 틀림없겠죠. 그러니까 끊임없이 이 상황을 타계할 방법을 모색해야 해요. 중요한 것은 타계를 모색하는 사람들이 힘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그래서 연대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앞날은 선해질 것이라는 믿음도 포기해서는 안 되고요. 항상 희망이 있어야 하는 거잖아요. 희망이란, 이룰 수 있는 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니라고 했어요. 마종기 시인의 시집 제목 『보이는 것을 바라는 것은 희망이 아니므로』라는 제목처럼 말이에요. 성경 구절에서 나온 말인데요. 아주 절망의 순간에서도 희망을 찾아야지요. 퇴행한다 하더라도 희망의 끈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이게 바로 우리 내면에 흐르는 존엄성이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저는 이야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보이지 않는 건축 움직이는 도시승효상 저 | 돌베개
이 책은 승효상의 도시건축론을 담고 있다. 그는 우리 도시가 권력과 자본을 위한 기념비적 건축과 천편일률의 마스터플랜에 오랫동안 집착해왔다고 말한다. 그러나 스펙터클의 건축은 우리에게 허망함만을 안겨주기에, 이제는 다원적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공공영역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빈자의 미학 승효상 저 | 느린걸음
멈출 줄 모르던 성장의 질주는 길을 잃고, 발 딛고 선 토대마저 흔들리는 시대에 우리는 서 있다. ‘가진 것이 충분하지 않아도 좋은 삶을 살 수 있을까?’ ‘적은 소유로 기품 있게 살아갈 수 있을까?’ 고민해본 사람이라면 다시, 『빈자의 미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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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언수 “나쁘고 싶어서 나쁜 놈은 세상에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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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진주신문 가을문예공모. 2003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2006년 제12회 문학동네소설상 부문 심사 위원 7명 만장 일치로 수상작이 된 『캐비닛』. 한 평론가는 “『캐비닛』과 더불어 한국문학은 이제 또 한 명의 괴물 같은 작가를 갖게 되었다.”라고 평하기도 했다. 소설가 김언수는 그렇게 화려하게 등장했다.

 

이후 조직적으로 벌어지는 암살을 다룬 『설계자들』과 다양한 인간상을 재치 있게 그린 소설집 『잽』을 펴낸다. 『캐비닛』으로부터 치면 10년 동안 낸 책이 3권. 3은 작가의 팬이라면 다소 아쉬울 만한 숫자다. 그래서 2016년 늦은 여름 혹은 이른 가을에 발표된 『뜨거운 피』는 반갑다. 장편소설로는 『설계자들』이후 무려 6년 만에 나온 신작이니까.

 

『뜨거운 피』는 뒷골목 인생들이 부산 바다를 배경으로 만들어가는 이야기다. 등장인물의 대부분은 건달이고 조연으로 사채업자, 윤락여성, 영세 자영업자가 나온다. 주인공 희수는 구암 바다의 실질적인 리더이나, 조직 내 보스인 손영감은 구암 바다를 혈육인 도다리에게 넘기려고 구상 중이다. 구암 바다를 떠나 홀로서기를 고민하는 희수. 서슬 푸른 사시미가 명분과 실리 사이에서 오가는 주인공을 끊임없이 위협한다.

 

『뜨거운 피』는 거의 600쪽에 달할 만큼 장대한 이야기다. 묘사보다는 서사 위주의 작품이기에 페이지는 경쾌하게 넘어간다. 책이 독자에게 던지는 물음은 가볍지 않다. 아름답지 않은 세상을 어떻게 하면 덜 추하게 살아갈 수 있을지, 등장인물은 저마다 고군분투한다. 특히나 여느 정치인 못지 않게 화려한 언변을 구사하는 건달들은 적재적소에서 ‘세계의 명언’ 어디에 있어도 어색하지 않을 인생 철학을 털어 놓는데, 그들의 대화를 읽어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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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적인 작품이나 취재 없이 쓴 소설

 

기존에 낸 장편도 짧은 편은 아니었는데, 이번 작품은 더 길었습니다. 쓰시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지금까지 저는 제 삶의 직접적인 경험을 녹여 소설로 쓴 적이 없었어요. 『캐비닛』은 환상 문학에 가깝고 『설계자들』은 암살자를 다룬 상상물이죠. 물론 그 소설에도 제 기억과 경험이 밑바닥에 깔려 있겠지만 날것의 질료 자체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소설은 제가 어릴 때 살던 그 바다가 소설의 공간이다 보니 할 수 없이 그 기억과 살아야 했어요. 게다가 소설은 무려 3천 매나 된답니다. 쓰는 동안 내내 제가 어릴 때 살던 그 바다와 시간을 돌아보는데, 막상 내가 그토록 멀리 떠나려 했던 이 지긋지긋한 동네가 별로 나쁘지 않은 거예요. 조금 슬프기도 하고, 애틋하기도 하고, 사랑스럽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하고. 내가 나이를 먹어서 그런 건가? (웃음) 한 문장 한 문장 쓸 때마다 어릴 적 살던 그 후미진 골목들의 온도와 습기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는데요. 뭐랄까, 지나간 시간과 굉장한 화해를 하는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이 소설은 쓰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어쩌면 영원히 쓸 수도 있겠다는 기분이 내내 들었어요.

 

조승식 검사 등 실제 인물도 등장하고 영도, 초장동, 아미동 같은 사실적인 공간도 많이 등장합니다. 취재의 결과물인지? 

 

이번 소설을 내고 취재를 어떻게 했냐는 질문을 자주 받았는데, 사실 취재는 안 했어요. 그냥 그렇게 생겨먹은 동네에 우연히 제가 살았던 거죠. 실제로 저는 소설을 쓰기 위해 취재 다니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취재해서 얻은 정보가 소설적으로 크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다음에 쓸 소설의 무대가 필리핀이어서 이번 겨울은 필리핀에서 보내려고 하는데 그것 역시 정보를 얻으려고 가는 것은 아니에요. 그저 제가 쓸 소설적 공간의 공기 냄새를 맡으러 가는 거죠.
 
건달들 이름이 굉장히 현실적입니다.

 

등장인물 이름에 굉장히 예민한 편이에요. 영화나 연극처럼 배우라는 강렬한 실체가 있는 장르들과 달리 소설이 주인공에게 주는 거라고는 달랑 이름 하나랑 묘사 몇 줄 밖에 없으니까요. 그래서 이름에서 뭔가 풍겨 나오는 힘이 없으면 안 써요. 이름을 짓고 불러봐요. 희수, 양동, 남가주. 불러서 괜찮다 싶으면 써요. 그런 면에서 한국식 이름은 상당히 불편하죠. 구조가 일률적이잖아요. 작가 이름만 봐도 그래요. 보르헤스, 마르케스, 카프카, 바슐라르. 얼마나 근사해요. 이름만으로도 문학적 아우라가 마구 쏟아지잖아요. 그런데 김언수? 에이, 이런 이름으로 뭐가 되겠어요. (웃음)

 

배경이 부산인데, 작품 속 대화에서는 부산 사투리가 그리 심하진 않습니다.
 
저는 부산 토박이에요.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도 부산에 살았죠. 그런데 사투리를 문장으로 쓰면 읽는 저도 무슨 말인지 잘 몰라요. 부산 사투리라는 것은 성조에 영향을 많이 받는 말이어서 문장만으로는 뜻도 안 통하고 맛도 안 나는 거지요. 마치 “가가 가가?”처럼요.(그 아이가 전에 말한 그 아이냐, 혹은 그 아이가 가씨 집안 사람이더냐?) 그래서 소설에선 읽기용으로 조금 순화시켰어요. 사실 부산 사투리가 생각보다 따라 하기가 어려워요. 한국영화에 나오는 부산 사투리는 부산 사람들이 듣기엔 어딘가 조금 어색하죠. 개인적으론 <범죄와의 전쟁>에 나오는 조진웅이 가장 정확한 부산 사투리를 구사하는 것 같아요.

 

 

굳이 분류하자면 홀딩, 하지만 완전한 화해란 존재하지 않아

 

작품 끝에 철진이 "세상에 좋은 아버지는 없다. 아버지는 힘이 없는데 애기들은 계속 앵앵거리거든. 아버지는 좆도 힘이 하나도 없는데.(576쪽)"라고 한 말이나, 희수와 손영감, 손영감과 도다리 관계로 보아 이 소설을 '아버지'라는 단어로 읽을 수도 있을 듯합니다. 작가님은 소설집 『잽』작가의 말에서도 아버지에 관해 쓰셨고요.

 

사실 아버지 상징(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은 문학에서 가장 오래되고 많이 쓰인 주제죠. 그리고 인간의 삶이라는 것은 이 상징적 굴레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고요. 아버지의 세계에 들어가기 전에는 세상에 선/악, 진실/거짓, 아름다움/더러움 같은 이분법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싸워야 할 대상도 분명하고 분노해야 할 것도 분명하죠. 하지만 막상 아버지의 세계에 들어가면 이 세상의 난삽함과 더러움이 얼마나 복잡하고 슬프게 얽혀 있는지를 깨닫고 당황하게 되죠.『뜨거운 피』의 손영감이 “나쁘고 싶어서 나쁜 놈은 세상에 하나도 없다.”라고 하는 말이 그런 뜻이겠죠. 미움도, 배신도, 분노도, 복수도 저마다 모두 슬프고 나름의 사연이 있어서 쉽게 단죄할 수 없다는 뜻이에요. 그런 맥락에서라면 이 소설은 아버지의 세계로 진입하는 하나의 성장 소설로 볼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게 제 소설의 주제는 아닐 거예요. 저는 웬만하면 소설에 주제나 교훈 같은 것을 넣으려고 하지 않거든요.

 

등장 인물은 건달인데, 오가는 대화 질은 높습니다. 이렇게 건달들이 언변이 화려한가, 라고 느낄 정도로요.
 
그런가요? 제 주위에 건달들은 다 저렇게 말을 잘하던데요? 오히려 말만 너무 얄밉게 잘 해서 귀싸대기라도 한 대 때려주고 싶을 때가 많아요. (웃음) 그런데 어딜 가나 웃기고 맛깔스럽게 말 잘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런 건 학력, 교육, 독서 뭐 이런 거와는 전혀 상관없이 그냥 타고 나는 것 같아요.

 

독자 중에서 '시발 정신(305쪽)'을 인상적인 구절로 꼽는 사람이 많은데요. 혹시 이건 누가 한 말인지 밝혀주실 수 있나요?

 

천명관 형이 한 말이에요. 언젠가 명관이 형이 무언가에 화가 나서 “그 새낀 시발 정신이 없어! 이 거친 세상을 이겨내려면 상대방한테 배 까고 매달리고 똥꼬 핥아주는 시발 정신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게 없는 거야.” 하면서 저에게 퍼붓고 있었는데 그때 번득 하고 뭔가가 떠올랐죠. 그래서 제가 명관 형의 말을 끊고 “형 그거 내 소설에 써도 돼?” 하고 물어요. 명관 형이 어이없어 하면서 “너는 형이 인생에 대한 진지한 분노를 토로하고 있구만 뚱딴지같이 소설 이야기냐. 뭐 쓰든가 말든가.” 뭐 그렇게 나온 구절이랍니다. 

 

링이건 세상이건 안전한 공간은 단 한 군데도 없지. 그래서 잽이 중요한 거야. 툭툭, 잽을 날려 네가 밀어낸 공간만큼만 안전해지는 거지. 거기가 싸움의 시작이야. (중략) “홀딩이라는 좋은 기술도 있지. 좋든 싫든 무작정 상대를 끌어안는 거야. 끌어안으면 아무리 미워도 못 때리니까. 너도 못 때리고 그놈도 못 때리고 아무도 못 때리지.” (25~26쪽, 소설집 『잽』)

 

주제 의식을 안 넣는다곤 하셨지만, 소설집 『잽』이랑 연관 지어 질문드리겠습니다. 이 작품은 잽을 날리는 작품인가요, 홀딩하는 작품인가요.
 
굳이 나눠야 한다면 홀딩에 가깝지 않을까요. 그런데 그런 종류의 완전한 화해라는 것은 우리 삶에 존재하지 않는 거죠. 인간은 또 금세 불만이 생기고 삐뚤어지고 그래서 다시 잽을 날리고, 내가 날리니까 상대방도 날리고 이리저리 얻어터지다 아프니까 할 수 없이 또 홀딩하고 뭐 그런 바보 같은 짓거리를 계속 하다가 늙어가는 거죠. 그리고 그런 바보 같은 삶이 소설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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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외로운 존재, 규정하면 새로운 면 볼 수 없어

 

두꺼운 분량에 걸맞게 다양한 인물이 나옵니다. 특히 애착 가는 인물이 있다면.

 

저는 제 소설의 모든 인물들에게 저마다 독특한 애정이 있어요. 소설 속에 나오는 모든 인물들은 미우나 고우나 모두 작가의 분신들이죠. 예를 들어 우리가 누군가를 이유 없이 미워하고 있다면 그것은 자신과 몹시 닮아서입니다. 반대로 우리가 누군가를 이유 없이 좋아하고 있다면 그것도 자신과 닮아서죠. 자기가 사랑하는 자아, 미워하는 자아, 부끄러워하는 자아, 경멸하는 자아, 오만한 자아, 염치없는 자아 등등의 자아가 서로 뒤엉켜서 소설 속의 수많은 인물들이 나오는 거지요. 그러니까 작가와 닮지 않은 캐릭터는 소설 속에 없는 셈이죠. 『카발라』라는 책에는 이런 말이 있어요. ‘세상에 완전한 선인이 있다면 그는 타인으로부터 어떠한 악도 찾아낼 수 없을 것이다.’

 

내 눈에 보인 타인의 결점은 사실상 나의 결점이에요. 다른 사람의 욕망이 불편하고 짜증이 나는 건 내 안 어딘가에 동일한 욕망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죠. 그러니 제가 소설 속 인물에서 발견한 모든 결점과 악은 사실상 저의 내면에 있는 결점과 악인 셈이에요. 그럼에도, 이 질문의 취지에 걸맞게 특히 애착이 가는 인물을 하나만 꼽으라면 만리장 호텔의 웨이터 ‘하나마나’ 같아요. 뭐랄까. 저랑 쏙 닮은 캐릭터거든요. “제발 그놈에 하나마나한 소리 좀 하지 마요.” 제가 아내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이에요. (웃음)

 

희수는 멋진 인물입니다. 침착하면서 다른 사람을 챙기고, 업무적으로도 유능하고요.

 

저랑 전혀 안 닮았어요. (웃음) 희수는 아마 제가 되고 싶은 사람이겠죠. 저희 어머니는 차분한 사람을 좋아했어요. 아들이 진중하고 과묵한 사람이 되길 바랐어요. 하지만 저는 성격이 원체 나대고 촐랑거려서 그런 묵직한 인물과는 애당초 거리가 멀었죠. 그런데 소설을 쓰다 보면 나한테는 전혀 없었다고 생각했던 희수 같은 자아를 만나기도 해요. 소설은 골방에 들어가서 혼자 쓰는 작업이고 장편은 몇 년씩 시간이 걸리기도 하니까요. 만날 사람이 없어서 할 수 없이 과묵하고 진중한 시절을 보내기도 하는 거죠. 그래서 소설을 쓴다는 것은 그 속에서 뜻밖에 자아를 만나고, 놀라고 당황하고 악수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사실 자기도 몰랐던 새로운 자아를 발견하는 것은 모든 예술의 공통적인 특징이죠. 독서라는 행위도 마찬가지고요.

 

『캐비닛』은 다양한 인간을 묘사하면서 인간에 관해 질문을 던진 작품이었고, 소설집 『잽』에도 개성 있는 인물이 많이 나옵니다. 작가님 주변에 특별한 사람이 많은 편인가요.

 

전혀요. 다들 평범하고 착한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저는 그 평범한 사람들을 보면서 캐릭터를 만들어요. 동네 슈퍼 아저씨를 보면서 새끼손가락에 은행나무가 자라는 문방구 사내를 만들고, 또 제 아내는 잠이 엄청 많은데 잠든 아내를 보며 ‘대체 인간이 어떻게 열 시간씩 잠을 잘까?“ 의아해 하다가 6개월씩 동면에 빠지는 토포러를 만드는 뭐 그런 식이죠. 그런데 곰곰이 살펴보면 세상에 평범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어요. 자세히 살펴보면 사람들은 저마다 모두 신비로울 정도로 다양하고 특별해요. 대부분 자세히 안 보죠. 우리는 너무나 쉽게 사람들을 범주화해서 어떤 틀 속에 집어넣어버려요.  “응 걔? 강남에 살고, 아버지는 회계사야, 얼마 전까진 BMW 탔는데 요즘은 아우디 타고 다닌다나 봐.” 뭐 이런 식이죠.

 

우리가 그 사람을 간단하게 규정해버리면 그때부터 그 사람으로부터 어떤 새로움도 찾아낼 수 없어요. 끝없는 오해와 편견뿐이죠. 저희 집에 11살 된 늙은 고양이가 있어요. 11년이나 똑같은 짓을 하고 있는데도 보고 있는 나는 늘 그 고양이가 새롭고 신비로워요. 매일 이 늙은 고양이로부터 엄청난 발견을 하는 느낌이이에요. 사람도 그렇죠. 우리가 오만, 편견, 기대 같은 것을 접고 멍 때리듯 사람을 바라보면 30년 된 친구와 만날 똑같은 술집에 앉아서 술을 마셔도 우리 집 고양이처럼 늘 새롭고 신비로운 거죠.


외로움이라는 단어는 김언수 문학에서 핵심어 같습니다.『뜨거운 피』의 주인공 희수나 『설계자들』의 주인공 래생도 고독한 존재잖아요.

 

제 소설 속의 주인공만 외로운 게 아니고, 제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이 처절하게 외로워요. 나이가 들수록 더 외로워지고, 더더욱 외로워지죠. 저는 외로움이야말로 인간의 본질이라고 생각해요. 외로움은 이 우주에 나 혼자 떨어져 있고 나 혼자 상처받고 있다는 오해, 아무도 자기를 이해할 수 없다는 고립감과 절망감에서 시작되죠. 그래서 예술은 소통하고 악수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내가 혼자 있는 게 아니라는 믿음. 당신과 나는 이 우주의 모든 존재와 마찬가지로 동일한 별의 성분으로 만들어져 있고, 서로 엉켜서 같이 살고 있다는 생각의 공유죠. 그러 맥락에서 저는 트위터나, 페이스북이 가짜 소통이라고 생각해요. 마음의 문은 꽉 닫아둔 채 표피만 떠들어대는 가짜 소통이죠. 어느 조사를 보니까 SNS에 집착할수록 더 외로움을 느낀다고 나와 있더라고요.

 

『뜨거운 피』의 배경인 영도는 실재합니다. 구암은 가상의 공간이고요. 영도는 작가님께서 어린 시절을 보내신 곳이기도 한데요.

 

네, 영도에서도 살았고 그 건너편 송도, 감천, 남부민, 아미동 이런 곳에서도 살았죠. 초등학교부터 중고등학교까지 다 거기서 다녔고. 지금처럼 아이들이 학원을 다니던 때가 아니어서 친구들이랑 하루 종일 그 많은 골목들을 정신 없이 돌아다니며 놀았어요. 열입곱 살 때 첫사랑을 만났는데 그때 돈도 없고 마땅히 갈 곳이 없어서 계속 그 거리를 돌아다녔고, 고등학교 졸업하고 전문대도 못 들어가서 빈둥거릴 때, 하도 할 일이 없어서 또 그 한심한 거리를 돌아다녔죠. 생각해보니 아주 지긋지긋한 곳이군요. (웃음)

 

고등학교 때는 시를 쓰려고 하다가 포기하고 소설을 쓰셨다는데, 아직 시를 향한 동경이 남아 있나요?

 

네, 남아 있죠. 열읿곱 살부터 스물입곱 살까지 시를 썼어요. 그 시절처럼 뭘 열심히 해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이런 젠장, 저는 시에 재능이 없는 거예요. 죽었다 깨어나도 소월, 서정주, 이성복 같은 시인이 될 수 없는 거죠. 스물일곱 살 때 5월인가?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있다가 문득 그 사실을 명징하게 알게 됐어요. 나는 시의 정점에 다다를 수 없는 인간이라는 걸. 그런데 그 사실이 생각보다 슬프진 않았어요. 멍하니 있다가 책을 내려놓고 도서관에서 나왔어요. 그 후론 시를 쓰지 않았어요.  

 

소설은 어땠나요?

 

소설은 장난처럼 시작했어요. 그런데 그 장난질이 무척 재미 있었어요. 뭔가 저한테 잘 맞는 옷을 뒤늦게 찾아 입은 느낌이랄까. 시는 고작 낱말 몇 개 혹은 문장 몇 줄을 놓고 몇 달이나 끙끙대는데 소설은 하룻밤에 원고지 수십 장씩 글을 쓸 수 있다는 게 무척 신나고 즐거웠어요. 그래서 그 시절의 글쓰기는 소설을 쓴다기보다 뭔가 미친 듯이 키보드를 두드리기 위한 작업 같았어요. 시야 뭘 미친 듯이 두드리고 싶어도 글자가 몇 자 없다 보니.(웃음)

 

『뜨거운 피』에서 마지막에 수록된 작가의 글이 인상적이었다는 평이 많습니다. 이 작품 외에도 김언수 작품에서는 '작가의 말'에 독자를 울릴 뭔가가 항상 있었습니다. '작가의 말'을 쓸 때 염두에 두는 원칙, 요령이 있다면.

 

이번 책부터는 작가의 말을 안 쓰려고 했어요. 작가의 말이란 게 별로 필요 없는 군더더기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편집장이 “뭔 소리에요, 김언수는 소설보다 작가의 말이 낫다는 독자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하더라고요. 소설보다 작가의 말이 낫다는 게, 이게 칭찬인지 욕인지. (웃음) 어쨌든 작가의 말을 쓸 때 요령이나 원칙 같은 것은 없어요. 그런데 작가의 말을 쓸 때는 이상하게 시 쓰던 시절로 돌아간 느낌을 받긴 해요. 시인이 못 되고 소설가가 된 시인 지망생의 슬픈 발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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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언수에게 소설가란, 그리고 문학이란

 

『캐비닛』작가의 말에서 “소설가란 농부, 어부, 막노동꾼처럼 자신의 가족을 위해 신성한 밥벌이를 하는 성실한 사람들에 비해 세 수 아래”라고 이야기하셨는데요.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생각해보면 작가라는 건 아주 웃긴 직업이에요. 짬뽕을 못 만들면서 짬뽕에 관한 글을 쓰고, 못 하나 제대로 못 박으면서 목수의 삶에 대해 떠들어대야 하는 직업이죠. 냉정하게 말해 작가는 그저 구경꾼에 불과합니다. 르클레지오도 노벨상 수상소감문에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즉 작가는 오로지 배고픈 자들을 위해 글을 쓰고자 하는데, 정작 먹을 것이 충분한 자들만 그 책을 읽고 자신의 존재의 이유를 깨달을 여유가 있다는 패러독스, 그리고 문학이란 지배계급의 사치이며, 문학이 대다수 사람과는 무관한 사고와 이미지로 살찌고 있다는 것, 그것이 작가가 겪는 불편함의 기원이라고 말했지요. 르클레지오는 작가가 이 불편한 진실로부터 결코 도망가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거기가 바로 글쓰기의 시작이라고.

 

그러니까 작가가 농부, 어부, 막노동꾼들보다 세 수쯤 아래에 있다는 건 작가라는 직업이 가져야 할 도덕성과 포지션에 대한 이야기에요. 작가는 글쓰기의 본질이 부끄러움이고 또한 사치라는 걸 인정해야 합니다. 동시에 자신의 글쓰기를 진실로 욕망해야 하고, 그 욕망 속에서 어떤 가치를 창조할 수 있다는 터무니없는 믿음을 혼자서 지켜내야 하죠. 그러니 작가는 이 둘 사이에서 위태롭게 갈등하는 존재입니다. 바로 이 지점을 무시하고 작가가 오만과 건방을 떨어대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글쓰기라는 것은 정말이지 무가치의 나락으로 하염없이 추락하는 거죠.

 

독자와 만나는 자리라든가 산문을 쓰는 활동은 거의 안 하고 소설 집필에만 전념하십니다.

 

집필활동에만 전념이라고 하시니까, 갑자기 제가 엄청 치열하게 살고 있는 착각이 드는데요? (웃음) 서른여섯 살부터 전업 작가 길을 걷기 시작했어요. 그 전에는 이것저것 잡일을 했고요. 그때는 직장에서 휴가를 받으면 신나서 집으로 뛰어갔어요. 사람들은 어디 좋은 데 놀러 가는 줄 알았겠지만 사실 골방에 처박혀 소설을 썼어요. 휴가 때 제일 설레는 일이 아무에게도 간섭 받지 않고 소설을 쓰는 일이었던 거죠. 막상 전업 작가가 되니까 웃기게도 소설이 재미가 없는 거예요. 한 4~5년 정도는 재미없는 정도가 아니라 굉장히 고통스러웠어요. 마감이 밀려오는데 미친 듯이 컴퓨터 카드게임이나 밤새도록 하고, 글 좀 쓰다가 소주 마시고. 자신을 격렬히 미워하면서, 내가 왜 그토록 즐거워했던 소설 쓰기를 이런 지옥으로 만들었을까? 갸우뚱거리면서 또 술 마시고. 대체로 오전 10시쯤에 부스스한 머리로 동네 슈퍼에 소주를 사러 갔는데 슈퍼 아줌마가 제 모습이 어찌나 한심하고 답답했는지 저한테 화를 막 내더라고요. “당신 대체 뭐 하는 사람이에요? 직장도 안 나가고 만날 술이나 퍼 마시고. 다들 열심히 사는데 남자가 왜 그래요?” 제가 사는 동네에는 조선소 단지여서 대낮에 저처럼 빈둥거리거나 술 처마시는 남자가 거의 없거든요.

 

그래서 그 슈퍼 아줌마에게 뭐라고 하셨나요?

 

죄송합니다. 뭐 그랬죠. (웃음) 그때쯤에 왜 나의 소설 쓰기가 왜 지옥으로 변했는지 알게 됐어요. 어릴 때는 소설에 바라는 것 없이 그냥 썼는데 전업 작가가 되고 나니까 소설을 써서 생활비도 벌어야 하고, 책도 많이 팔아서 빚도 갚아야 하고, 기왕이면 이름도 날리면 좋고 뭐 기타 등등 바라는 게 많아진 거죠. 뭐랄까 곁가지들에 홀려서 중심을 놓쳤다고나 할까. 퇴계 이황 선생이 경(敬)에 설명하면서 이런 말을 했어요. ‘밥을 먹을 땐 밥만 먹어라. 그리고 옷을 입을 땐 옷만 입어라.’ 그 일을 가장 즐겁게 최선을 다해 잘 하기 위해서는 오로지 그 자체에 공경을 다해야 해요. 거기에 다른 목적이나 대가를 끼워 넣으면 갑자기 모든 것이 하찮아지고 지겨워지고 노동이 되고 결국 지옥이 되는 거죠. 그게 사실 도가에서 말하는 무위(無爲)의 개념이죠. 사람들은 무위가 무슨 정신적이고 신선적인 개념이라고 생각하는데 제가 생각하기에 무위는 매우 생산적이고 실용적인 개념 같아요. 그래서 저는 삶을 좀 단순하게 만들려고 노력 중이에요. 밥 먹을 때 밥에 집중하고 소설 쓸 때는 소설에 집중할 수 있도록요.
 
『설계자들』이 프랑스추리문학대상 후보에 올랐잖아요.

 

네, 후보에는 올랐는데 떨어졌죠. (웃음) 아직 제 소설 공부는 세계적인 작가들과 어깨를 겨룰 만한 수준이 아니에요. 올해에는 칠레 작가가 받았는데 다들 자기 나라에서는 엄청 유명한 작가들이에요. 저야 뭐 우리나라에서도 별로 안 유명하잖아요. 안 될 거라 생각하고 있었는데, 괜히 출판사에서 광고지에 문구를 넣어서, 잠시 기대했네요. 저랑 친한 형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어요. “그럴 리가 없잖아.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것을.” (웃음)

 

안 유명하다고 하셨지만, 독자 후기를 보면 김언수 작가의 작품을 읽은 독자는 다른 작품을 계속 찾게 하는 매력이 있는 듯합니다. 김언수의 작품을 하나도 읽지 않은 독자는 있지만, 김언수의 작품을 단 하나만 읽은 독자는 없잖아요.
 
제가 그렇게 인기 있는 작가면 저 남해바다 시골에서 그것도 임대 아파트에 살고 있겠어요? 그럴 리가 없잖아요,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것을. ‘그럴 리가 없잖아.’ 이거 은근히 입에 착착 붙는데요. 이걸로 단편 소설을 하나 써야겠어요. (웃음) 하지만 제 소설의 독자들이 오래도록 단골로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은 있어요. 그러려면 저에게 굉장한 항심이 있어야 되겠죠. 50년 된 떡볶이집도 고추장 바꾸면 금세 단골 떨어져나가니까요. 

 

『설계자들』과 『뜨거운 피』까지 하드보일드한 작품을 발표하셨습니다. 다음 작품도 하드보일드한 작품일까요.

 

다음 소설은 『프라이데이와 결별하다』라는 소설이에요. 『설계자들』이나 『뜨거운 피』같은 하드보일드 계열은 아니구요 굳이 분류하자면 로맨틱 코메디? (웃음) 『프라이데이와 결별하다』는 지금까지 세 번이나 썼는데 다 실패했어요. 보통 장편을 쓰고 실패하면 혼자 침통해하다가 결국 쓰레기통에 버리고 다른 걸 쓰는데 이상하게 『프라이데이와 결별하다』는 꼭 끝장을 보고 싶다는 오기를 불러일으키네요. 그리고 다음 소설은 필리핀과 한국의 납치회사를 다룬 『바디BODY』라는 소설이고 그 다음 소설은 헤밍웨이와 한국전쟁을 다룬 소설이에요. 지금까지는 소설을 띄엄띄엄 냈는데 앞으로는 1년에 한 권 정도로 좀 촘촘하게 낼 수 있지 않을까, 일단 결심은 하고 있습니다.

 

연극, 영화, 드라마 등등 이야기에는 여러 형식이 있는데 그 중에서 소설이 가장 좋습니까?

 

네, 소설이 가장 좋아요. 소설은 영화처럼 엄청난 자본과 인력과 장비를 필요로 하지 않아요. 수없이 많은 이해관계들 때문에 간섭 받지도 제약 받지도 않죠. 소설은 최소한의 노동력(작가)으로 무한하고도 값싼 언어라는 질료를 사용하여 이야기의 완전체에 도달할 수 있는 완벽한 장르죠. 그리고 그 완전체는 독자가 독서라는 고통스럽고 숭고한 행위를 해줄 때에만 가능합니다. 소설의 언어는 영화처럼 편안하게 이미지와 사운드를 주지 않습니다. 독서는 독자가 한 문장 한 문장 읽어가며 스스로 이미지를 창조하고 언어에 영혼을 불러 넣어야 즐길 수 있는 고통스러운 행위죠. 그래서 작가, 언어, 독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 긴밀한 소통과 이야기 메커니즘은 굉장히 아름답습니다. 자유롭고 무한하고 싸고 심지어 시공간을 초월하기도 하죠. 


그리고 독자는 작가의 언어를 읽고 상상하다가 다시 작가가 됩니다. 독서가 상상력의 근육을 키워낸다는 것! 이것이 소설의 소비자는 소설의 생산자로 선순환 되는데 영화의 소비자가 영화의 생산자가 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영화는 상상할 필요도 없이 이미지가 너무 편안하게 흡수되기 때문이죠. 그래서 저는 소설을 이야기의 코어 장르라고 생각합니다. 인류의 문화가 만들어낸 이야기 체계의 결정체죠. 단지 우리 문단이 혹은 우리 문화가 주류니 비주류니 순수니 장르니 정통이니 이단이니 이런 소모적이고 쓸데없는 힘싸움이나 하면서 이토록 우아하고 자유롭고 풍성한 소설이라는 장르를 위축시키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뜨거운 피김언수 저 | 문학동네
마흔 살 건달의 짠내 나는 인생 이야기. 인생에도 사계가 있다면 마흔 살은 여름에 해당될 터, 그 뜨겁고 강렬한 날들의 기록이 부산 앞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한국형 누아르의 쌉싸름하면서도 찐득한 맛이 살아 있으며, 두려울 것 없던 건달이 겪게 되는 정서적 절망감이 사실적이면서도 흡인력 있게 담긴 작품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천명관 “순문학이든 장르문학이든 잘 쓰는 게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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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 건달이 등장하고, 삼류 포르노 감독이 등장한다. 도박판을 전전하는 하루살이 인생들과 지방을 장악해 작은 왕국을 사는 유지가 등장하니 사기꾼의 등장은 차라리 자연스럽다. 우리의 ‘형님’은 생매장을 당했다가 사흘 만에 탈출해 관계된 모든 놈들을 죽이고 지역을 평정했다는 전설이 있다.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라는데, 남자들의 세상이 뭐 다를까. 오히려 작가는 이 하류인생들, 허세 가득하고 보잘것없어 그저 모여서 거짓말만 늘어놓는 모습을 남자의 세상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크게 한탕 하고 인생 대반전을 꿈꾸는 밑바닥 삶 말이다. 이들이 발 붙인 현실은 아주 얇고 허약한 유리바닥 같다.


이야기는 여기저기 구르고 굴러 끝에 거대한 난장판을 이룬다. 4년 만에 장편으로 돌아온 천명관이 그린 이 한바탕 촌극은 다름아닌 “90년대 조폭코미디의 유산”이다. 코믹하고 가볍다. 천명관 작가는 이 소설로 다른 곳에 있는 독자를 만나고 싶었다고 했다. “좀 더 가벼운 소설을 읽는 독자들을 만나고 싶었”으므로 “팬이었던 분들은 배신감을 느낄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과연 독자들은 어떤 느낌을 받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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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나를 흥분시키는 이야기들


『나의 삼촌 브루스 리』이후 4년, 오랜만에 나온 장편이에요. 뒷골목 건달들의 고군분투를 다룬 이야기인데요. 무엇보다, 왜 이 소재였을까요?


뒷골목 건달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남자들에게는 흥미로운 소재죠. 특히 90년대, 제가 영화하던 시절은 조폭코미디 붐이었어요. <두사부일체>, <가문의 영광>같은.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는 그 시대 조폭코미디의 유산이라고 할까요. 당시의 그런 코믹한 정서가 재미있었거든요. 그것을 제 스타일로 써본 거죠. 문학 작품이라고 하면 고상하고, 우아하고, 귀족적인데 조폭코미디는 어떻게 보면 정반대예요. 저급하다고 생각하죠. 그런데 제가 그런 걸 좋아해요.(웃음)

 

제목 역시 노골적이죠.


제임스 브라운의 노래 「It’s man’s world」에서 따왔어요.

 

90년대 조폭 영화의 유산을 문학 작품으로 풀어낸 것, 어찌 보면 경계에 있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실은 범죄소설의 영향도 있어요. 엘모어 레너드(Elmore Leonard)를 좋아하는데요. 영화화가 많이 됐잖아요. <겟 쇼티(Get Shorty)>라든가, <표적(Out Of Sight)>, 『럼 펀치』를 영화화 한 <재키 브라운(Jackie Brown)>같은 작품이요. 캐릭터와 대사가 살아 있고요. 더 거슬러 올라가면 마틴 스콜세지(Martin Scorsese)의 <좋은 친구들(Good fellas)>이나 <카지노(Casino)>같은 작품들, 그런 건 언제나 저를 흥분시키는 이야기들이죠. 그런데 그것을 진지하지 않고 아주 가볍게 다뤘어요. 어처구니없고 유머러스하게요.

 

심각한 장면에도 코믹한 시선이 있잖아요.


제 기질이 장난질을 치고 싶어 해요. 이야기를 잘 써나가다가 갑자기 ‘말과 사랑에 빠지면 어떨까?’ 이런 엉뚱한 상상력이 발동을 하죠. 그래서 이런 스타일의 이야기가 된 것 같은데 모르겠어요, 이걸 어떤 스타일이라고 말하기는 그래요. 장르라고 하기에는 어떤 장르에 딱 들어맞지도 않고요. 순수 본격 문학, 그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죠. 저도 뭐라고 이름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어요.(웃음) 사실 문학 독자는 안 볼 거라고 생각했고요. 이 안에 문학적인 요소가 거의 없잖아요. 드라마 대본 같은 대사에,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문학 독자 가운데 제 팬이었던 분들은 배신감을 느낄 거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문학 독자 말고 웹소설 같은 좀 더 가벼운 소설을 읽는 독자들을 만나고 싶었어요. 이렇게 쓰면 어떤 반응일까, 궁금하기도 했고요.

 

이건 가치판단을 배제한 감상인데요. 참 한국적이에요. 당연히 지명이나 등장인물도 가깝게 느껴지지만 삶의 방식이라고 할까요. 각자도생 하는 인물들 모습은 과연 지금 사회를 엿보게 하는 것이었어요.


글쎄요, 그런 걸 의식한 건 아닌데요. 그런 모습이 담겨 있다면 아마 제가 바라보는 시각이 그런 거겠죠. 어쨌거나 작가는 쓰다보면 결국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세계관이나 자기 정서가 드러나게 돼 있죠. 맞아요. 이건 한국적인 이야기죠. 인물들마다 그런 게 있어요. ‘울트라’는 소위 청년 실업 시대의 20대고요. ‘양 사장’은 늙어가는 386세대 같죠. 일선에서 물러나 노화와 싸우면서 점점 외로워지는. ‘삼 대리’들은 미래도 없고 도박이나 하면서 갑갑하게 살아가는 중년의 남자들이에요. 또 ‘남 사장’은 지방의 유지 같은 느낌이고요. ‘박 감독’도 그렇고요.

 

과거 <채널예스> 인터뷰에서 ‘상상의 출발은 언제나 영화였다’고 했었어요. 이번에도 그 말이 유효했나요? 


이 얘기도 출발은 영화였어요. 영화 하던 시절에 만들어둔 이야기도 있고요. 새로 만든 이야기도 있고 그래요. 아무래도 영화와 관련이 없다고 할 수는 없어요. 앞서 말했듯이 90년대 조폭코미디의 유산이니까요. 거기에 대한 나의 애정 같은 게 있죠. 당시 그걸 저급한 영화라고 했지만 다들 즐겁게 봤잖아요. 그것이 한국의 남성 서사에 교두보 같은 역할을 했다고 생각해요. 그 이후에 좀 더 진지한, <신세계>라든가 <범죄와의 전쟁>같은 본격적인 남성 서사들이 나왔는데요. 90년대 조폭코미디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거예요. 이 소설에는 그 시절에 대한 애정과 회고가 있어요.

 

영화화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을 거예요.


소설로 읽는 것보다도 배우들이 직접 연기를 하면 재미있겠다 싶은 장면들이 많이 있어요. 그래서 기회가 되면 만들고 싶죠.

 

 

언제나 실패하는 이야기


작품을 쓰면서도 무척 재미있었을 것 같아요. 어떤 장면을 가장 재미있게 써내려가셨어요?


말장난도 많고, 스토리 갖고 장난도 치고 그랬는데 즐거운 놀이 같은 느낌이었어요.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들면 재미있겠다고 했는데 그 재미가 어떤 것이냐 하면 다들 앉아서 말만 하는 영화라는 거예요. 주로 말하는 장면이 많잖아요. 처음엔 종식이 부하들 앞에서 이빨을 까죠. 양 사장에 대한 구라, 그리고 ‘민 박사’가 또 ‘맨홀의 법칙’이 어쩌고 하면서 이빨을 까요. 나중에 ‘박 감독’도 그렇고요. 저는 이게 남자의 세상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이 장면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을 해요. 앉아서 구라를 푸는 것 말이에요. 수다를 여자들의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남자도 마찬가지거든요. 남자들은 언제나 술자리에서 말을 해요. 허세도 부리고요. 이 작품에도 그런 장면이 많아요. 그게 남자의 세상이죠.

 

인물이 여럿 등장하고 등장인물의 비중도 크게 한쪽으로 치우쳐있지 않아요. 그 중 굳이 주인공을 꼽는다면 누구라고 생각하세요? 저는 당연히 ‘울트라’예요.(웃음)


‘울트라’와 ‘형근’, ‘양 사장’ 정도가 될 텐데요. 이 세 명의 시선으로 진행이 되죠. ‘박 감독’도 많이 등장하는데 그는 약간 안타고니스트(antagonist, 반동 인물)같은 거고요. 어쨌든 따로 주인공이 없어요. 그래서 영화로 만드는 데 문제가 있어요. 모든 배우들은 다들 주인공을 싶어 하는데 주인공이 따로 없으니까요.(웃음)


『나의 삼촌 브루스 리』작가의 말에서 ‘어쩌면 모든 소설은 결국 실패담’이라고 했었는데요. 실패라는 것이 작가에게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궁금해요.


대중은 성공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잖아요. 영화를 보면 언제나 성공해요. 악당을 물리치고 여자를 구해내는 성공 스토리잖아요. 그런 게 흥행도 잘 되고요. 소설은 대부분 그렇지 않아요. 성공담을 소설로 쓴다는 건 이상한 일이죠. 언제나 실패하는 이야기예요. 뭔가 애를 쓰지만 잘 안 되죠. 그 안에서, 실패 속에서 세상을 들여다보는 것이고요. 제 이야기는 다 실패담이에요. 끝내 뭐가 되고 싶어 하지만 못 되거나 장애를 만나거나, 계속 그래요. 실연과 고난의 연속이죠. 그런데 저는 그게 삶의 조건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실제 자기의 꿈을 이루고, 뜻한 바대로 성공을 하고, 이런 사람들이 얼마나 있겠어요? 성공을 해도 그렇죠. 겉으로 보면 성공한 것 같지만 사실은 또 실패한 거죠. 그런 것에 눈이 가는 거예요, 저는. 저뿐 아니라 작가라면 다 그런 눈을 가졌다고 생각하죠.

 

실패하는 이야기에 시선을 보내는 게 소설을 쓰는 작업이고, 영화를 하는 작업이 비교적 성공하는 이야기를 바라보는 거라면, 그렇다면 뭔가 설명이 되는 것 같은데요.


그래서 제가 영화를 하는 데 실패했나 봐요.(웃음) 맞아요, 매우 예리한 통찰인 것 같네요. 내가 왜 이렇게 실패할 수밖에 없었나 생각했는데 내 시선이 그렇게 가 있다 보니 영화와는 안 맞았던 게 아닌가, 지금 그런 깨달음을 얻었어요. 그러니 앞으로 성공하는 이야기를 쓰면 영화를 할 수 있겠네요.(웃음)

 

최근 영화계에 남성 중심의 이야기, 이른바 ‘알탕 영화(남성 등장인물이 많이 등장한 영화를 비하하는 인터넷 신조어)’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많잖아요. 같은 맥락으로 이번 작품을 읽을 수도 있을 것 같고요. 이런 비판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이세요?


‘알탕 영화’는 이유가 있어요. 시스템 문제인데요. 원래는 피라미드나 항아리형 구조죠. 블록버스터 100억짜리 영화가 몇 편 있으면 가장 밑에 저예산 독립 영화가 있고, 중간에 30~40억 예산의 ‘허리’에 해당하는 영화들이 탄탄하게 받치고 있어야 해요. 지금은 충무로 구조를 보면 허리가 하나도 없어요. 그래서 ‘알탕 영화’밖에 없는 거예요. 90년대만 해도 허리를 떠받치고 있는 게 로맨틱코미디 혹은 조폭코미디였어요. 예산은 많이 안 들면서도 아이디어가 다양한 영화들이요. 이게 다 없어진 거예요. 그런데 블록버스터는 반드시 장르영화여야 하거든요. 재난이거나 시대극, 액션이거나 이런 것 말이에요. 여자가 아무래도 불리하죠. 중요한 건 그 모든 게 다 관객의 선택 때문이라는 거예요. 100억이 넘는 블록버스터만 보니까요.


제 작품은 거칠어요. 언어도 거칠고 상스러운 말도 많고, 성에 대한 저급한 표현도 많아요. 이 작품에도 여자가 등장하는데 술집 여자죠. 이 정도면 무조건 ‘여혐’예요.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라는 제목만 보고 욕하는 사람도 있어요. 읽지도 않고요.


원론적으로 말하자면 이건 다 남자가 세상의 재화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예요. 여성이 국회의 절반을 차지하고, 관료 절반, 기업과 경제인 절반에 자리하게 되면 훨씬 나아질 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안 그래요. 다들 살기 빡빡하죠. 연애도 쉽지 않고, 결혼시장도 치열해지고요. 거기서 소외된 사람들이 여혐, 남혐으로 분노를 표출하는 것 같아요. 따지고 보면 이런 시스템은 여자뿐만 아니라 남자에게도 모두 불행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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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이 종교가 됐다


그간 발표한 여러 작품들 중에서 가장 ‘천명관 스타일’에 가까운 작품을 꼽는다면 어떤 것일까요? 제각각의 느낌이나 성격들이 달리 있거든요.


다 제 스타일이겠죠. 『고래』도 그렇고, 『나의 삼촌 브루스 리』도 약간 뒷골목 이야기 같은 건데요. 『고령화 가족』의 그 지질한 이야기도(웃음) 제 식의 유머였던 것 같아요. 이번 작품은 이것대로 그런 것 같고요. 스펙트럼이 좀 넓은 편이죠. 사람이 진지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아요.(웃음) 한 가지만 파야 하는데 그런 스타일이 아니고, 그냥 재미있는 것을 하고 그것을 자꾸 비틀고 싶어 하고 그런 것 같아요. 그 또한 제 스타일이 아닌가 생각해요. 내가 아니면 누가 이런 걸 쓰겠어, 그런 기분이 들죠. 그렇지 않나요?

 

‘카카오페이지’에 연재했던 작품이잖아요. 문학의 외연을 확장하는 새로운 플랫폼이 여럿 등장하고 있는데 이런 것들 어떻게 바라보고 계세요?


당연히, 이미 오래 전에 그렇게 됐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문단은 너무 많은 권위가 있어요. 거의 종교적 믿음 같은 거죠. 그래서 문학이 종교가 됐어요. 그동안 문단은 대중에게 그걸 팔아먹은 거죠. 종교처럼 숭고한 문학. 그래서 문학이 점점 고립되고 있잖아요. 추문만 만들어내는 동네가 되어버렸어요. 빨리 세상 밖으로 나와서 소통하고 건강하게 작동해야 해요.

 

앞서 영화계의 구조를 말씀하셨는데 문학 역시 같은 지적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몇몇 힘 있는 작가 외에 읽히는 작가가 별로 없죠. 웹소설 규모를 보면 독자의 욕구가 굉장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거든요. 이 틈을 잇는 노력을 할 필요가 있어요.


프랑스에서도 3만 부 정도 팔면 베스트셀러라고 해요. 그런데 그런 3만 부 작품이 많은 거죠. 그런데 우리는 100만 부가 하나 있고, 나머지는 3,000부, 그런 쏠림현상이 심해요. 물론 그것도 대중의 선택이죠. 출판사, 언론도 바로 그런 지점만 노려요. 그래서 스타를 만들고 그 스타 작가 몇 명으로 유지해왔잖아요. 그런데 그 스타 작가한테 문제가 생기면 답이 없어요. 지금이 바로 그런 국면이에요.

 

작가 역시 계속 소설을 쓰고 있고, 그 소설을 찾아 읽는 열성 독자도 있잖아요. 굳이 이름 붙이자면 스타 작가라고 할 수도 있는데요. 문단에 대한 이런 시선을 갖고 있는 입장에서 작가로서의 고민이나 전망도 궁금해요.


전 스타 작가는 절대 아니고요. 하여간 문단은 고립된 채로 계속 갈 거예요. 왜냐하면 이걸 바꿀 수 있는 주체들이 뭔가 바뀌길 원하지 않아요. 지금이 좋은 거죠. 고립될수록 더 좋아요. 더 권위가 생기죠. 국가 예산은 계속 집행이 되고, 그들은 거기서 계속 한 자리를 차지하고요. 밑의 애들은 계속 그 앞에 줄을 설 테죠. 그분들이 좋은데 왜 바꾸겠어요? 애들 야단치고, 줄 세우고, 손목 만지고, 이러면서 계속 가겠죠. 안 변할 거예요. 그러다 언젠가 다 사라질 날이 오겠죠.(웃음)

 

세대교체가 자연스럽게 될 거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아니요, 그 아래 세대도 똑같이 따라할 거예요. 선생님들을 보고 자랐기 때문이죠. 다들 준비되어 있어요. 선생님들에게 착실히 줄 서 있고, 그대로 할 거예요. 계속 반복될 테고요. 그렇게 세상으로부터 점점 고립되는 거죠.


예전에 어느 지면에 정유정 작가의『7년의 밤』에 대해 추천사를 쓴 적이 있어요. ‘예언을 하겠다, 앞으로 몇 년 내에 서점가는 이런 책으로 뒤덮일 것이다, 첫 출발은 정유정이다’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바로 그렇게 안 되더라고요.(웃음) 예언이 틀렸어요. 저는 당시에 우리도 드디어 범죄 스릴러의 시대가 도래 했구나, 앞으로 장르 작가들이 등장할 거다, 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아직은 아닌가 봐요.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독자는 준비가 되어 있는데 작가들이 준비가 안 된 것 같아요. 하지만 다시 예언을 하자면 분명 머지않은 장래에 새로운 장르작가들이 대거 등장해서 서점가를 점령할 거예요.

 

비관적인 한국 문학 상황에서 한 줄기 희망하는 것이 장르군요.


네, 장르는 어떻게든 나올 텐데요. 지금도 사실 범죄 스릴러나 SF나 판타지, 이런 게 없어서 그렇지 『구르미 그린 달빛』 같은 작품 보면 대박이잖아요. 이게 장르죠. 한국적 장르죠. 『덕혜옹주』같은 거요. 한국에선 역사 소설이 강세예요. 김진명 작가, 김탁환 작가 같은 분들이 있고요. 사람들은 장르라고 하면 문학이 아닌 것처럼 인식하는데 순문학이든 장르문학이든 잘 쓰는 게 중요한 거죠. 그런 분위기부터 바꿔야하는데요. 시간이 필요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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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이 존재한다는 증거


많이들 천명관 작가의 이야기를 꼽아요. 정유정 작가는 워낙 이야기를 하기도 했고요. 분야를 막론하고 천명관의 이야기를 좋아하는 분들이 많은데요. 그 이유는 아까 말씀하신 서사의 다양성이나 이야기를 끌어가는 힘 때문일 거예요.


제 소설 좋아해주는 후배작가들이 있다는 건 고마운 일이죠. 그 이유는 아마 다른 작가들과 작풍이 달라서 그런 게 아닌가 싶어요. 혼자 제멋대로 쓰다보니까 그게 부럽기도 하고 그런가 봐요.(웃음) 저렇게 막 써도 되나, 하는 그런 부러움 있잖아요. 문학이라고 하면 진지하고 피를 말리고 고독하고 외로운 작업이라고 하는데 내 걸 보면 장난치듯 막 쓰는 것 같으니까. 그런데 그렇게 쓰는 게 그냥 막 쓰기만 한다고 되는 건 아니에요. 사람들이 그걸 알아야 하는데.(웃음)

 

왜 그렇게 쓰지 않을까요?


선생님들 때문이죠. 선생님들이 지켜보시거든요. 글을 쓸 때도 잠을 잘 때도 언제나 어디서나 선생님이 등 뒤에서 지켜보는 느낌으로 평생을 사는 거거든요. 그래서 함부로 쓸 수 없는 거예요. 그런데 전 그런 분이 없어요. 실은 좋은 스승이 있는 건 멋진 거죠. 언제나 나를 누군가 따뜻한 시선으로 시켜보고 있다는 그런 기분으로 살 수 있다면 말이에요. 때론 부러워요, 누군가 살아가는 과정에서 지도편달을 해주었으면 인생이 좀 달라졌을 텐데 하는 기분이 들 때가 있어요. 진심이에요.

 

잡지<악스트(Axt)> 와의 인터뷰도 문단 권력 비판으로 화제가 됐었죠. 자연스럽게 질문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상처 입은 짐승은 물어뜯지 않습니다.(웃음) 지금은 다른 힘센 것을 무너뜨려야죠.

 

인터뷰 당시에는 힘이 있었다고 판단한 거죠?


그렇죠, 아무 변화도 없었고, 그래도 계속 흘러 왔고요. 그 이후 일 년이 넘었나요? 일 년 만에 지금 문단을 다시 생각해보세요. 정말 처참하잖아요. 이것이 긍정적으로 작용을 하면 좋겠는데요. 가능할지는 의문이 들어요. 표절문제부터 시작해 권력 문제, 지금의 성추행 문제, 이런 것들. 점점 추문으로 얼룩지고 있는데요. 그렇다면 과연 기존의 병폐를 잘 해결하고 긍정적으로 나아갈 수 있느냐 한다면 잘 모르겠어요.<악스트(Axt)> 인터뷰에서도 그런 얘기를 했었거든요, 내가 이런 얘기를 한다고 해도 절대 변하지 않는다고요. 나만 적이 늘어날 뿐이라고요. 실제로 그래요.

 

문단 성폭력 문제는 어떻게 바라보고 계세요?


복잡하고 긴 얘기가 필요한 사안일 터인데 사실 저도 대부분 처음 듣는 얘기들이었어요. 놀랍기도 하고 ‘아, 정말 그 지경까지 갔구나’ 싶은 비참한 기분도 들었고요. 성추행, 성희롱은 권력의 문제거든요. 그것이 바로 권력이 존재한다는 증거예요. 사실 이건 모두가 부끄러운 짓이죠. 직접 당사자든 옆에서 지켜본 사람이든 멀리서 이렇게 한 다리 건너 얘기를 듣는 사람이든 그래요. 모두를 비참하게 만드는 짓이에요. 그런데 그게 어디 문단에만 국한된 문제겠어요? 문단이 이 지경이면 다른 덴 어떨까, 싶기도 하고요. 하여간 이런 걸 보면 정말 이 사회는 변태사회예요. 성추행은 가장 변태적이고 악랄한 권력이 인간의 가장 내밀하고 소중한 곳까지 침범한 사건이고요.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천명관 저 | 예담
천명관이 신작 장편소설 이것이 남자의 세상이다를 예담에서 출간했다. 나의 삼촌 브루스 리 이후 4년 만이다. 격동의 한국 사회를 배경으로 한 남자의 기구한 인생 유전을 통해 굵직한 서사의 힘을 보여줬던 그가 이번에는 뒷골목 건달들의 한바탕 소동을 다룬 블랙코미디를 선보인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성석제 “소설가는 사냥꾼, 끊임없이 새로운 걸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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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 소설가가 첫 소설집을 낸 건 1996년이다. 꼭 20년이 지나고 새 소설 『믜리도 괴리도 업시』가 나왔다. 금발의 동성애인과 함께 돌아온 예전 친구를 만난 중년 남성, 소설을 한 줄도 못 쓰다가 천재적으로 이야기를 쓰는 동명이인을 만나 위험한 거래를 하는 소설가, 자연 속의 삶을 주장하지만 너무나 세속적인 산속 노인, 간첩으로 몰려 모든 관계가 박살 나고 자기 자신을 나무에 매다는 사람까지, 마냥 ‘웃을 수도 없고 울 수도 없는’ 인물들이 가득하다. 더불어 초기작을 엄선해 다시 엮은 『첫사랑』도 개정판으로 나왔다. 소설 속 인물들의 고통은 안타깝지만, 성석제의 소설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는 반가워할 일이다.


『믜리도 괴리도 업시』에 실린 노태훈 문학평론가의 말에 따르면 성석제는 “의심할 여지 없는 프로 소설가이고 이야기해 한해서는 맹수에 가까”운 소설가다. 그러나 실제로 소설을 만들어 내는 걸 보면 맹수라기보다 맹수 같은 이야기를 사냥하는 사냥꾼에 가깝다. 날래고 눈치 빠른 초식동물 같은 사소한 이야기도 성석제를 만나면 꼼짝없이 붙들린다. 마냥 웃거나 마냥 슬퍼할 수 없는 일상에 어울리는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입담은 여전하다. 아무래도, 이 소설가는 독자마저 사냥하는 데 성공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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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믜리도 괴리도 업시』, 판단은 독자의 몫


『믜리도 괴리도 업시』에 실린 「블랙박스」는 특이하게 글쓰기를 소재로 하셨어요. 선생님 이야기가 들어간 것도 같고요.


작가가 주인공이니까요. 저는 그 직업에 속해 있는 거고요. 소재가 고갈된 상태에 빠져 있다고 생각하는 작가가 소재가 된 거죠.


「여행자의 지도」는 프랑스 지방을 자전거로 다니는 내용입니다. 자전거를 탄 주인공의 1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는 모습이 작가님이 직접 경험한 내용 같았는데요.


책 속에서는 샤토뇌프뒤파프에서 자전거를 타는 내용이 나와요. 제 경험으로는 루앙스 강 인근에서 자전거를 빌려 탄 적이 있었고요. 빌려주기만 한다면 해외에서도 탈 용의는 있습니다. 안 빌려준다면 못 타겠죠.


차도 운전하시나요? 「블랙박스」도 혹시 블랙박스를 구입한 경험에서 나온 건가 해서요.


운전하지만 제 차에 블랙박스는 없어요. 달아야지 생각만 하고 있어요. 블랙박스 가격은 소설 쓰면서 검색해 봤죠. 생각보다는 싸던데요.


「매달리다」에는 간첩으로 몰린 사람들 이야기가 나와요. 이야기에 역사성이나 시대 상황을 담아내야겠다는 의도가 있으셨나요?


간첩 사건은 70년대나 80년대에 워낙 많았고, 개인적으로는 예전 중앙정보부가 있던 지역을 여행한 적이 있어요. 대단히 음습하고 어두운 전설 같은 게 깃든 분위기가 나더라고요. 심지어 귀신 같은 현상이 나타난다는 이야기도 들었어요. 그런 일들이 근래 일부 조명이 되어서 다큐멘터리로 다뤄진다든지 하는 식으로 많이 알려졌죠. 어떻게 하다 제 눈에 띈 사연이 있어, 지나간 일이지만 충분히 오늘날 다시 되새겨볼 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으로 소설을 써 봤습니다.


현재 시대 상황도 소설의 소재로 쓰시나요?


공동 창작 같은 특별한 방법이 아니라면,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현재의 일에 대해서 소설로 쓰긴 어려워요. 시는 가능하죠. 시는 과거에 프로파간다로 쓰인 적도 있으니까요. 시 자체가 역사의 변곡점이 된 적도 있고요. 하지만 소설은 막상 현재에 응전해서 소설을 써내기는 쉽지 않아요. 과거를 통해서 현재를 말하는 게 문학이 오랫동안 취해 온 방식이기에 과거의 일을 통해서도 현재를 말할 수 있고요. 간첩이라는 게 고리타분한 이야기 같지만 고문과 조작, 왜곡, 편견은 계속 작용하고 있잖아요. 아주 뜨거운 현재성을 다시 끌고 와서 지금 이 자리의 우리를 보는 거죠.


「나는 너다」에서 계속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현대인을 쓰신 것도 지금의 상황을 그리신 게 아닐까 했거든요. N이라는 인물이 나오는데, N분의 1의 N을 염두에 두고 쓰신 건가요?


모르겠어요.


저는 휴먼(Human)의 맨 끝 N이였나 싶기도 했고요.


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군요. (웃음) 저는 이미 썼으니까, 판단은 독자의 몫입니다.

 

 

 

희극과 비극 사이


성석제 소설은 대개 희극이다, 혹은 성석제는 웃음이 많고 천재적으로 재밌는 이야기꾼이라는 말을 많이 해요. 하지만 이번 단편 「매달리다」도 그렇고 건조하게 쓰신 소설도 많잖아요. 재밌는 이야기를 많이 쓰고 싶은 순간과, 이번에는 조금 더 심각한 이야기를 해야겠다는 주기가 있나요?


의식적으로 이번에는 이런 스타일로, 그다음에는 저런 스타일로 쓰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본능대로 하는 게 맞아요. 의식적으로 스타일을 만들어서 쓰려고 하면 잘 안 써져요. 제가 원하는 대로의 자연스러운 글쓰기가 되지 않고 이리 비틀, 저리 비틀하면서 내 것도 아니고 누구의 것인지도 모를 걸 흉내 낸다고 느끼죠.


하지만 소설은 어느 정도 노력을 들여 어디로 가야 할지 생각해서 써야 하는 장르기도 합니다.


시에 비해서는 공작적이죠. 의식적이어야 하고 노동에 가까워요. 조작을 해야 하죠. 하지만 저는 방법론으로 따지면 시처럼 에너지가 쌓이고 난 다음에 풍만해져서 자연스럽게 용출하는 스타일이에요. 다행히 소설이 갖고 있는 무한대의 관용성, 어떤 걸 써도 소설이 된다는 그 관용성이 나를 받아들여 준 게 아닐까 싶어요. 거기에는 물론 제가 쓴 소설을 받아주는 독자의 관용성도 있죠.


작가님의 마감도 궁금합니다. 「블랙박스」 속 소설가처럼 마감에 쫓기다 쓰는 스타일인가요?


마감은 별로 신경을 써 본 적이 없어요. 일부러 마감을 안 지켜보려고 한 적은 있어요. 마감 전에 원고를 다 하고 나서 보내면 받았다 아니다 아무 대답이 없어요. 약속을 지켜서 제때 보냈는데 왜 답이 없을까, 하고 참다가 나중에 물어보면 아무도 안 내서 안 보고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편집부 직원들도 몰아서 일하는 게 경제적이죠. 그래서 일찍 보내봤자 소용이 없어요. 일찍이라고 하면 마감에 맞춘 건데요. 이후로 마감을 어기려고 한 적이 있어요.


마감이 힘들다는 작가는 있었지만, 일부러 마감을 넘기려는 작가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네요.


몸부림을 치면서 마감을 사흘 넘겨봤는데, 아무 연락이 없었어요(웃음). 결국은 궁금해서 못 참고 원고 얼마나 들어왔냐고 물어보고는 보내버렸죠. 작가 중에는 마감이 넘기 전에는 쓸 마음이 안 생긴다는 사람도 있다고 해요. 마감이 넘는 순간에서야 한 번 써볼까, 하는 생각을 한다는군요. 좋은 소설가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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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 소설은 다시 뒤돌아보지 않는다


『첫사랑』개정판도 나왔습니다. 기존에 냈던 소설이 다시 나오면 기분이 어떠세요?


『첫사랑』에 실린 중단편인 「새가 되었네」를 처음 책으로 낼 때, 교통사고가 나서 다리가 부러진 채로 병원에 누워있었어요. 편집부에서 원고를 들고 와서 교정해달라고 하길래 판목을 부러진 다리 위에 얹어놓고 교정을 했죠. 다리가 피가 쏠리면 아프니까 오랫동안 못 보고, 조금 보다가 편집자분한테 넘겨버렸어요. 세월이 흐르고 다시 개정판을 낼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는 다시 들여다보고 싶지 않았어요. 그때 쓴 건 그때 쓴 거니까, 지금 손대는 건 마땅치 않다고 생각해서 개정판 작가의 말만 쓰고 바꾸지 않았죠. 이번에 내는 게 세 번째 개정이에요. 원고를 보니까 그때 다리 부러지기 전 정황 같은 게 떠올라서 아련하고 애틋한 마음이 드네요. 이렇게 개정판이 나올 때까지 떼돈을 벌지 못했다는 회한도요.


개정판도 나왔으니 조금씩 버실 거예요. (웃음)


네, 그리고 더는 고치지 않을 거예요.


예전에 쓰신 소설을 다시 보시기도 하시나요?


개정판 낼 때 말고는 거의 안 보죠. 책으로 만들어져서 한 번 떠나가고 나면 그때까지 고치는 과정이 힘들어서 만정이 뚝 떨어져요. 그래서 마치 하지 말았어야 할 욕까지 다 하고 서로 헤어진 연인처럼 이별을 한 상황에서 또다시 굳이 들춰봐야 한다면, 스스로 설득해야죠. 이것은 내 밥줄이다, 하면서.


「첫사랑」 에필로그도 새로 쓰셨잖아요. ‘이 세계 속에서 나는 더 이상 변하지 않을 것이다.’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이미 쓴 표현을 어떤 의미로 썼다고 말하는 건 작가로서는 독재에 가까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쓴 걸 본 사람이 생각하는 자유가 있어야죠. 작가라고 해서 그 의미에 간섭할 권리는 없어요.


「믜리도 괴리도 업시」 에필로그에서도 ‘인간은 사랑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사랑의 산물이다.’는 말이 나옵니다. 조금 질문을 바꿔서, 이 생각을 하신 건 언제였나요?


기억은 남아있지 않지만, 태어났을 때 아니었을까요? 나는 누군가의 사랑의 산물이라는 개념. 모두에게 너무나 자명한 진실이니까요.


소설가 중에서는 밖으로 나와 자기 소설에 관해 이야기하는 걸 싫어하시는 분도 계세요.


소설에 대해 이야기해 달라고 하면 할 말이 없죠. 그리고 얘기한대로 만정이 다 떨어져 있는데 계속 얘기해달라고 하면, 안 좋다고 이야기할 순 없죠. 그렇다고 좋다고 이야기하기에는 민망하고요.


하지만 ‘독자와의 만남’ 같은 행사를 하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이야기해야 하잖아요.


그럼 다시 속으로 다짐하는 거죠. 아, 이것은 밥줄이다. (웃음)


영국, 독일 등에 작가님 작품이 번역되기도 했습니다. 번역본을 보셨을 때 기분이 어떠셨어요?


번역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어릴 때 보던 책의 태반이 다 외국에서 쓰이고 우리나라에 번역된 책이에요. 워낙 무협지에 빠져있어서 그랬겠지만, 그걸 읽으면서 외국의 모르는 시대, 모르는 지역에서 일어난 일이라 잘 모르겠다는 느낌은 없었어요. 읽으면서 왜 악어 고기를 먹을 거냐고 물어볼까, 악어는 먹는 걸까, 이런 생각은 했지만요. 그때 번역자들이 제 수준에 맞게 잘 번역을 했던 것 같아요. 문학 작품은 언어가 다르기 때문에 다른 예술 장르보다도 가장 늦게 한 문화에서 다른 문화로 옮아가는 예술이에요. 하지만 잘 번역되기만 하면 영향력은 일찍 넘어간 다른 예술에 비해 훨씬 커지고 오래 가요. 잘 번역되기를, 어딘가 있을지 모르는 외국의 어린 독자가 어릴 때 나와 같길 바라죠.

 

 

사내들의 이야기


소설에서 사내들이 자주 나와요. 상대적으로 여성은 비중이 적어 보이거든요. 남성들의 이야기로 성석제 소설을 규정할 수 있는 걸까요?


그러게요, 다시 생각해보니 여성이 주인공인 소설이 몇 안 되겠네요. 그렇게 볼 수 있겠죠.


「골짜기의 백합」도 여성이 주인공이지만, 여성이 구술하면 남성이 받아적는 식으로 결국 화자는 남성이 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여성들이 가지고 있는 세밀하고 섬세하고 깊고 부드러운 세계를 잘 그려낼 자신이 없어요. 만약 가령 조선 시대의 신사임당에 관심이 생겨서 그 사람의 삶에 대해 신사임당을 주인공으로 소설을 쓴다, 그럼 저에게는 굉장히 억지스러운 일이 되겠죠. 특별한 경우를 제하고는 억지스러운 상황을 피해왔기 때문에 아마 여성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지 않는 것 같아요. 『첫사랑』에 실린 ‘유랑’이라는 소설에서도 일본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국에서의 삶과 사랑, 비탄, 회한을 다룬 적은 있지만 일상생활에서 목격하는 여성의 세밀한 삶이나 생각, 이런 것들은 잘 모르겠어요.


최근 문단 내 성폭력 이슈도 있었잖아요.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시대의 현상이나 사건 사고에 대해서 한마디 하는 게 저한테는 자연스럽지 않아요. 물론 개인적인 판단이나 생각은 있고 그것이 잘못됐다거나 잘됐다는 생각은 있지만, 뭉뚱그려서 남성이든 여성이든 하나의 집단을 폄훼하는 건 잘 안되더라고요.


한 가지 우려스러운 것은 이런 일이 왜 일어나는지에 대한 성찰 없이 뉴스나 가십으로 소비하고 소진하고, 시체를 떨어뜨리고 어디론가 다른 이슈를 찾아서 가버리는 게 가장 우려스러워요. 나쁜 사건이면 다시 되풀이되겠죠. 성찰이나 기록, 뚜렷한 합의 없이 그냥 넘어온 게 현재 우리인지 모르겠어요.


「믜리도 괴리도 업시」는 동성애에 관한 이야기라기보다 소수자의 이야기라고 하신 적이 있어요.


제목 그대로 풀면 어떤 사람이 길을 가고 있는데, 그 사람은 누구 편도 들지 않는, 미워하지도 않고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이에요. 예전에는 그런 사람들을 회색인이라고 했죠. 그 사람이 가는데 양쪽에서 돌을 던져요. 그런 사람들이 약자예요. 그 사람에게 남쪽이든 북쪽이든 어느 쪽을 택하라고 하는 사람들이 옳은가. 예전 70년대 방식으로 이야기한다면 지금 세상은 참 많이 좋아졌죠(웃음). 소수자나 약자에게 무분별한 공격은 하지 않아요. 하지만 훨씬 더 교묘해지고, 악랄하고, 철두철미하게 모욕적인 방식으로 약자들을 괴롭히죠. 영원히 약자는 게토를 벗어나지 못하게 만들어 놔요. 피부색, 성적 취향, 빈곤, 장애 등을 못 벗어나요. 더 정교하게 그물을 짜 놓죠. 수십 년을 그냥 취향대로 살아온 사람에게 동성애자나 유대인, 금발이니 흑발이니 하고 말을 갖다 붙여서 이방인화 하는 게 폭력이죠.


난민에도 관심을 가진다고 하셨어요.


우리가 어릴 때는 농촌 인구가 전 인구의 70% 이상이었어요. 정주문화가 우세했고, 사람들이 다들 뿌리가 있다고 이야기했죠. 지금은 아마 90%가 도시에 살고 있을 겁니다. 그러면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은 유목적인가, 그것도 아니에요. 지금의 도시 문명은 이제까지 인류가 갖지 못했던 문명인데, 아직 그걸 뭐라고 이름 붙였는지 모르겠어요. 자신이 누군지 잘 모르는 상황에서 계속 새로 생성되는 관계와 가치에 적응을 해나가는 거죠. 사람들이 이렇게 살아온 적이 없으니까 어딜 가도 굉장히 바빠요. 알 수 없는 적의와 사고에 항상 부딪히죠. 어딘가를 잠시 점유한 도시인은 밖으로 굴러온 돌이 자기 자리를 뺏을지도 몰라 불안하고요. 이 자리가 영속하진 않지만 어쨌든 자기가 차지하고 있는 동안만큼은 뺏기지 않으려고 버티고 싸우고 배척하는 게 우리 삶이죠. 그러고 보니까 참 쓸 건 많네요.


어떤 소설을 쓰고 싶으세요?


공자나 부처, 플라톤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좋은 말씀이기는 한데 나 자신에게 큰 보탬이 될 것 같진 않아요. 삶을 사는 데 하나의 지침이 될 수는 있겠죠. 그럼 무엇을 근거로 해서, ‘근거’라는 단어도 정주적 문화에서 나온 말이지만, 지금 뿌리 없이 떠돌고 적의에 찬 사람들의 세계를 묘사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있어요. 나름 근거를 가지고 있는 단어로 이 세계를 묘사한다는 게 근본적으로 모순이죠. ‘근본’도 뿌리 근 자가 들어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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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는 사냥꾼이다


‘이야기에 한해서는 맹수에 가깝다’는 평이 실려 있습니다. 동의하시나요?


네, 싫다고 한들 바꿀 것 같진 않네요.


작가는 화전민이나 유목민에 가까워서 옮겨 다니면서 써야 한다는 말씀도 하셨어요.


소설을 만들어 내는 데는 자원이 필요합니다. 깔고 앉은 자리가 원래 금광이었으면 계속 캐내 먹으면 되지만, 소설가는 금은방 주인이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전에 없던 무엇을 계속 캐내서 보여줘야죠. 기존에 없던 걸 보여주지 않으면 주문이 점점 줄어들겠죠. 새로운 자원을 얻으려면 계속 움직여야 하고 바꿔야 하는데, 주로 장소를 많이 바꿔요. 집에서는 전혀 일할 수 없어요. 사냥에 비유한다면 사냥을 집에서 하는 사람은 없죠. 소설가는 가축을 기르는 농부가 아니고요. 물론 가축을 기르는 게 더 경제적일 겁니다. 많은 사람을 부양할 수 있겠죠. 소설가는 사는 게 고단해 비쩍 마른 야생의 짐승을 쫓아가서 나도 힘드니까 같이 먹고 살자고 사냥하는 존재 같아요.


본인을 농부 같은 체질이라고도 하셨는데, 사냥을 열심히 해 오면 나중에 같은 자리에서 열심히 쓰는 시간도 필요하시잖아요.


전향한 농부 출신 사냥꾼이랄까요? (웃음) 전향했다기보다는, 농부였는데 농사지을 논밭이 없어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사냥을 나가는 상황이에요. 전직이라고 표현해야겠네요. 소설 사냥꾼은 다른 사냥꾼하고는 다르게, 매일 농부처럼 잡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도 활을 메고 밖으로 나가는 특징이 있죠. 대개는 안 잡히지만요. 안 잡혀도 그만이고요.


성석제의 소설은 ‘듣는 소설’에 가깝다는 평론이 있었습니다. 작가님도 듣는 행위를 많이 하실 것 같아요. 주변에 말을 잘하는 분이 있나요?


네, 많아요.


속칭 ‘입을 터는’ 사람들이 옆에 있으면 금광 같은 느낌일 것 같아요. (웃음)


(웃음) 요즘에는 뜸한데, 예전에는 그런 분들을 참 자주 만났죠.


술 자주 드시나요? 술자리에서는 누구와 어울리시나요?


자주 어울리는 사람과 자주 어울리죠. 몇십 년 된, 아주 오래된 사람들이 있고요. 비교적 최근에 만난 사람들도 다 같이 만나요. 또래도 비슷비슷해서 최근에 만난 사람들과 오래 만난 사람이 서로 친구도 되고 서로 할 말이 많은 거죠. 여럿이 같이 모여 떠들썩한 만남이 좋아요.


자전거도 요새 타세요?


어제랑 그제도 탔어요. 요즘 새로 생긴 자전거 길이 많아서 그걸 찾는 재미도 있습니다. 제가 사는 동네가 군포라는 곳인데, 공원이 생겼어요. 인공 폭포지만 폭포도 생기고 참 근사해요. 수리산 자락을 따라서 원래부터 돌던 길에 공원이 더해진 거죠. 또 뭐가 더해질지 모르겠어요.


 

 

믜리도 괴리도 업시성석제 저 | 문학동네
2013년부터 2016년까지 집필한 여덟 편의 단편소설을 묶은 책이자, 작가가 1996년 첫 소설집을 출간한 이후 꼭 20년이 되는 해에 펴내는 새로운 소설집이다. 새 소설의 제목 『믜리도 괴리도 업시』는 고려가요 「청산별곡」의 한 구절에서 인용한 것으로, ‘미워할 이도 사랑할 이도 없이’라는 뜻이다.


 

 

첫사랑성석제 저 | 문학동네
『첫사랑』은 ‘성석제 소설’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자 왜 성석제가 2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천부적인 이야기꾼’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작가로 꼽히는지 입증하는 책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가근 “구글, ‘빅브라더’ 넘어 ‘비기스트브라더’가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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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 드론, 가상현실(VR), 자율주행 자동차.


증권가 IT 전문 애널리스트로 활동하며 IT 산업의 미래전망을 제시해온 이가근은 자신의 첫 저서 『다가올 미래, IT 빅 픽처』에서 향후 5년 내에 IT 혁명이 실현될 것이라고 말한다. 키워드는 위의 네 가지, 인공지능과 드론, 가상현실, 자율주행 자동차다. 그의 예측은 지금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기업의 인수합병을 분석한 결과다. “특히 2014년 이후 진행되고 있는 M&A의 경우 매우 구체적이고 직접적으로 신기술을 향하고 있”다는 사실에 집중했다. 구글과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 같은 글로벌 기업은 지금도 과감하게 M&A를 진행하며 다가올 IT 혁명 시대를 준비하고 있다.


모두가 기억하는 알파고 대국과 전 세계적인 포켓몬고 열풍 등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인공지능은 이미 서서히 우리의 생활로 들어오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스스로 운전하는 자율주행 자동차를 타고 출퇴근을 하며 인공지능 비서에게 일정 관리를 받고 주문한 물건을 30분 만에 드론으로 배송 받는 세상이 오는 상상은 결코 터무니없지 않다. 과연, 머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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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의 흐름으로 파악한 IT 빅 픽처


향후 4년에서 5년에 해당하는 아주 가까운 미래를 예측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큰 변화가 올 것이라고 했어요. 빠른 변화가 IT의 특징이기도 할 텐데 이러한 예측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먼저 묻고 싶습니다.

 

가까운 시일, 1~3년을 예측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죠. 바로 검증이 되고요. 가는 길에 예측했던 것들이 변수들을 만나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어요. 그러나 이런 예측은 그냥 하는 것은 아니에요. 책의 요지는 이겁니다. 자본의 흐름을 보고 어떻게 산업이 확장되는지 판단하는 것이죠. 지금까지도 그렇게 왔거든요. 물론 실패한 경우도 꽤 되지만 돈이 들어간 곳에는 어쨌거나 기술들이 발전하게 되어 있어요. 그쪽으로 양질의 인력이나 기술이 집약되어 새로운 산업을 만들려고 노력하니까 그만큼 발전한다는 거예요. 이 발전 속도는 과거의 발전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진행되고 있죠. 이러한 점들을 기반으로 단기 예측을 해봤습니다.

 

자본의 흐름을 짚어보는 것이 핵심이었군요.


네. 현재 4차 산업 혁명 관련 책들이 굉장히 많죠. 조금만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도 앞으로 드론, 자율주행자동차 등이 나온다고 예측은 할 수 있어요. 그렇긴 한데 어떤 식으로, 얼마큼 진행되고 있는지, 어떤 업체들이 향후 부각되고 그 업체들이 가진 기술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서는 막연해요. 이 책에서는 기업의 M&A, 자본의 흐름을 추적했고요. 그것을 통해 구체적인 전망을 했어요. 이 점이 기존에 나온 4차 산업 혁명 책들과 다른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굉장히 구체적인 자료들을 담았어요. 각 기업의 M&A 현황을 표로 보여주고 있기도 하고요. 이런 내용들이 어떤 분들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


증권사 애널리스트로 활동할 때부터 이런 보고서를 많이 써왔어요. 첫 번째는 현업에 관계된 분들, IT 산업에 직접 몸담고 계시는 당사자 분들에게 도움이 될 거예요. 두 번째는 IT 산업의 방향성을 알고 펀딩이나 투자를 해야 하는 분들이 이 책의 수요자가 될 테고요. 세 번째는 학생이라든가 향후 이 산업에 진출하려는 분들에게 배경 지식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시의성이 굉장히 큰 책이잖아요. 뉴스도 시시때때로 바뀔 텐데 그런 점들 때문에 책 작업이 꽤 어려웠을 것 같거든요.


많이 힘들었어요. 출판사에 원고를 보내고 나서도 몇 번 수정해야 했어요. 자료 조사를 처음 시작한 것이 올해 2월부터였는데요. 그 뒤로도 M&A 관련 뉴스가 많이 나왔고요. 책 탈고를 들어간 이후의 일인데요. ‘타이탄 프로젝트’라고 하는 ‘애플카’ 프로젝트를 하면서 애플이 직접 자동차를 만들 것이다, 라는 내용까지 원래 책에 들어갔었거든요. 그런데 탈고 이후에 애플이 ‘타이탄 프로젝트’ 관련 인원을 다 해고하고, 프로젝트가 취소되었다, 이런 얘기들까지 나왔어요. 그래서 그 부분을 자세히 싣지 못했어요. 어려워요. 그러니까 이 책을 일 년 뒤에 누군가가 본다고 하면 굉장히 많은 내용이 바뀌어 있을 거예요.

 

그만큼 IT 업계의 흐름이나 트렌드가 워낙 빠르게 변화하잖아요. 그 흐름을 읽어내는 게 항상 가장 큰 숙제겠어요.


증권사 애널리스트도 산업별로 달라요. 철강, 화학, 자동차 분야 애널리스트들은 상대적으로 한가해요.(웃음) 바뀌는 게 많이 없어요. 자료 업데이트도 자주 할 필요가 없죠. 지금은 2017년 전망들이 많이 나오는 시기인데요. 그런 분야들은 이 전망에서 크게 바뀌지 않아요. 그런데 IT는 너무 빨리 바뀌어요. 지금 OLED가 각광을 받고 있는데요. 1~2년 전까지만 해도 애플에서는 절대 OLED를 쓸 리 없다는 게 기술 예측이었거든요. 레티나 디스플레이(Retina Display, 2010년 출시된 ‘아이폰4’에 탑재된 디스플레이)가 있으니까 그럴 이유가 없었어요. 이 책의 근간이 되었던 리포트가 있었는데요. 거기에서 처음에 썼던 것이 애플이 OLED로 갈 가능성이 굉장히 크다, 이유는 VR(Virtual Reality, 가상현실)을 지원하기 위해서다, 라고 했었거든요. 올해 초에 그 리포트로 증권사 펀드 매니저들에게 얘기를 할 때는 반신반의 했었는데요. 지금은 그것 외에는 대안이 없어, 까지 확실해진 거죠.

 

출간 이후에 책 내용과 달라진 뉴스가 또 있나요?


테슬라가 오토파일럿(Autopilot, 테슬라의 자동 주행 제어 시스템) 버전을 새롭게 내놨고요. 애플은 ‘타이탄 프로젝트’ 취소 이후 소프트웨어 쪽에만 집중하겠다는 뉴스가 있었죠. 드론 중에서도 유인드론, 사람이 타는 드론 소식도 있었습니다. 책에는 국내 인공지능, 로봇 산업이 굉장히 약하다, 고 했었는데요. 네이버가 그 사이에 발표를 했죠. 이 분야 개발에 들어가겠다고요. 실제로 보스턴 다이내믹스(Boston Dynamics, 미국 로봇 전문 회사)의 핵심 인력들이 네이버로 많이 왔어요. 하드웨어 로봇까지 만들겠다고 발표를 한 거죠. 구체적인 것들은 너무 빨리 바뀌고 있어요. 그렇지만 인공지능, 드론, 자율주행 자동차, VR이라는 큰 그림이 향후 3~4년 안에 실현될 거라는 전망은 유효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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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현실화 될 자율주행 자동차


인공지능, 드론, VR, 자율주행 자동차 가운데 저자가 가장 주목하고 있는 분야는 뭔가요?


산업 측면에서 가장 큰 것은 자율주행 자동차 같아요. 일단 전 세계적으로 자동차 산업 자체가 엄청 크고요. 워낙 패권싸움도 치열하죠. 드론의 경우 IT 업체와 유통 업체, 이 둘이 싸우는 거거든요. 그 싸움도 아주 치열하진 않아요. VR도 기존 업체가 조금 있고 새롭게 발전하는 것이라 이것 때문에 어떤 산업이 죽거나 하진 않잖아요. 그런데 자율주행 자동차는 진짜 어려울 수 있죠. 심지어 세계적으로 제일 큰 IT 업체들이 가담하고 있고요. 자동차 업체들도 워낙 규모가 크잖아요. 실제 작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벤츠 CEO가 나와서 이런 얘기를 한 적이 있어요. “우리가 IT 업체들의 ODM(Original Development Manufacturing, 제조업자 개발생산)이 되지 않기 위해서 자율주행 자동차를 개발하겠다.”라고요. 어느 쪽이 먼저 패권을 잡으면 나머지 하나는 힘들 수 있어요. 지금 PC는 대부분 인텔이라고 생각하지만 당시 많은 플랫폼이 있었고, 운영체제도 여러 가지가 있었거든요. 자율주행 자동차 플랫폼도 완벽한 하나의 업체가 등장하는 순간 나머지는 쓸모가 없어져요. 그 때문에 경쟁도 치열하게 더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 것 같아요.

 

확실히 기존 자동차 업계는 경쟁자가 바깥에 있었다는 사실에 크게 충격 받은 모습이에요.


자율주행 자동차는 우선 자동차 산업을 다 죽일 수도 있어요. 지금은 한 집에 자동차가 여러 대인 집도 있잖아요. 만약 자율주행 자동차가 완벽하게 이루어진다면 다를 거예요. 차 한 대로 생활이 가능하죠. 출근을 했다가 자동차는 집으로 돌아와서 학교에 가고, 이런 식일 테니까요. 계속 이야기되고 있는 카쉐어링 부분에서도 폭발적인 수요가 나올 거고요. 이런 전망이 자동차 업계에는 죽을 맛이거든요. 이것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현될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러나 머지않은 미래고요. 업체들이 패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많이 노력할 것 같아요.

 

현재는 안전성 이슈가 많이 있잖아요? 테슬라 자율주행 자동차 사망 사고도 있었고요.


특히 자동차는 사람의 목숨과 직결되는 산업이죠. 그렇기 때문에 그쪽에 돈도 더 많이 들어갈 거고요. 산업도 더 커지지 않을까 해요.

 

이 질문을 하고 싶었는데요. 책에는 윤리적 문제를 아주 짧게 언급하는 정도로만 다뤘거든요. 물론 이 책에서 굳이 이런 문제를 깊이 다룰 것은 아니었지만요. 이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궁금해요.


이 책을 보는 사람들 중에는 이미 윤리적 이슈를 걱정하는 분들은 없지 않을까 싶을 정도인데요.(웃음) <터미네이터> 같은 영화에서 보여주는, 로봇이 인간에게 반항하는 그런 시대가 진짜 올지 안 올지는 잘 모르겠어요.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가 되라


책은 가장 먼저 구글을 다루었어요. 비중도 큰데요. 소개하는 글에서는 ‘지구 정복’이라는 표현까지 썼거든요.


구글맵 써보셨어요? 너무 좋잖아요. 구글은 자율주행 자동차 하드웨어만 없어요. 자율주행 자동차는 하드웨어가 중요한 건 아니거든요. 하드웨어로는 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아요. 실제로 작년에 영동대로에서 국내차들의 자율주행 자동차 시연회가 있었는데요. 봉은사 넘어가는 언덕 부분에서 길을 잃었어요. 센서로만 봤을 때 길이 끝나는 데니까요. 차선을 잃어버린 거예요. 하드웨어만 가지고 갔을 때는 그런 류의 오류가 충분히 발생할 수 있어요. 그런데 구글이 전 세계 지도를 다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다르죠. 넘어가는 길에 전혀 문제없는 직진 길이 있다는 걸 자동차가 알게 되는 거예요. 구글은 거의 ‘빅브라더(big brother)’를 뛰어넘는 ‘비기스트브라더(biggest brother)’ 정도가 된 거죠. 따라올 곳이 없어요. 안 가지고 있는 게 없고요. 앞으로 어떤 산업이 IT로 넘어가더라도 구글의 힘이 없이는 어렵지 않을까 싶어요.

 

이런 IT의 흐름 속에서 국내 기업에게는 패스트 팔로워 전략을 제시했잖아요.


언론 등에서 우리는 왜 창조적으로 선도하지 못하느냐 하는데요. 그건 사실 어렵죠. 전 세계 500대 기업 중 절반이 일본 기업으로 가득 차 있을 때도 일본이 플랫폼을 만든 건 거의 없어요. 일단 미국 업체들이 강세일 수밖에 없죠. 내수 시장이 충분히 크고요. 전 세계가 거기에 집중하고 있어요. 솔직히 싸이월드도 너무 좋았잖아요. 태생적으로 안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건데요. 그렇다면 미국 업체들이 하는 것에 빨리 따라 붙어서 지금까지 해왔던 패스트 팔로워 전략을 취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뭔가를 새롭게 한다고 해도 그것이 스탠다드가 되지 않아요. 절대로요.

 

그렇다면 구글 같은 기업을 지켜보고 그것에 빠르게 대응하는 것이 힌트가 될 수 있겠네요.


그래서 지금 삼성이 VR 하고, 현대차도 자율주행 자동차 하고, 그러는 거고요. 네이버는 인공지능 하는 거고요. 애플 ‘시리(Siri, 애플 음성 인식 기능)’를 처음 본 게 2012년인데요. 지금은 그때보다 엄청 똑똑해졌어요. 2012년에 1정도의 데이터베이스가 현재는 32정도라고 생각한다면 말이죠. 지금 네이버가 시작한다고 생각했을 때 먼저 간 것들을 따라잡는 건 쉽지 않아요. 다만 시장이 달라서 네이버의 강점은 있겠죠. 국내 시장은 국내 시장 나름대로의 기회가 있을 거예요. 자동차는 어렵겠고요.(웃음)

 

핵심은 콘텐츠라는 것이 또한 중요한 요소일 거예요. 가령 지지부진했던 AR이 ‘포켓몬고’로 크게 주목 받은 것처럼 말이죠.


삼성전자라면 그런 기회가 충분히 있을 것 같은데요. 아직은 안 하는 것 같아요. 삼성전자가 안드로이드 점유율이 꽤 되잖아요. 그 안에서 삼성폰을 쓸 때만 가지는 장점들을 좀 더 강화하면 될 것 같거든요. 하드웨어를 잘 만들었다, 가 아니라 말이에요. 사실 애플 쓰던 사람이 옮겨가기 쉽지 않잖아요. 애플의 플랫폼과 콘텐츠가 마음에 드는 거죠. 여기서만 할 수 있으니까요.

 

‘알파고’ 이후에 최소한 국내에서는 인공지능의 힘을 엄청나게 실감했어요. 저자는 인공지능을 얼마나 가까운 미래로 보고 계세요?


1, 2년 안에 될 것 같아요. 인공지능을 너무 거하게 생각해서 인공지능이라 하면 걸어 다니는 휴머노이드 로봇 정도를 생각하시는데요. 그건 아직은 먼 얘기 같긴 하고요. 최소한 스마트홈 기준으로는 인공지능이 많이 확산될 거예요.

 

스마트홈이라면 IoT 기반을 말씀하시는 거죠?


네, IoT가 새로운 용어이긴 한데요. 사실 십 년 전에 ‘유비쿼터스(Ubiquitous)’라는 단어 엄청 들었잖아요. 같은 거예요. 그것이 조금 더 구체화 되고, 인터넷 기반으로 한다는 거죠. 예를 들어 집에 아기가 있다고 한다면 습도 조절 해주고 하는 것들이에요. 지금 다 나오고 있잖아요. 좀 더 구체화되면 말로 하는 컴퓨터 같은 형태가 가능할 것 같고요. 요즘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많이 나오는 것처럼 말이에요. 또한 인공지능은 자체적인 쓰임새보다는 드론이나 자율주행 자동차를 만나서 더 시장을 키울 거예요. 이것이 구글 인공지능 플랫폼이냐 아마존이냐 애플이냐, 이런 차이들은 있을 거고요. 무엇이 주도권을 잡을지는 아직 알 수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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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바라보는 눈


드론이나 자율주행 자동차 등이 본격적으로 상용화 되면 이것이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하게 될 텐데요. 이 변화를 개인 차원에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소비자 차원에서는 정말 좋은 세상이 되는 거죠. 물건을 주문하면 바로 받아볼 수 있고요. 공급자 입장에서는 비용 절감 차원에서도 이점이 있죠. 쿠팡이 9,900원 무료배송 정책을 시행하다가 19,800원으로 올렸잖아요. 물류비용이 크거든요. 한편 배송을 담당하는 기사 분들은 힘들어질 수 있어요. 구체적으로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요. 다만 드론 배송이 초반에는 공짜로 될 것 같진 않아요. 아직까지 넘어야 할 산도 많은데요. 기후의 영향을 크게 받거든요. 바람이 세게 불면 없어져버려요.(웃음) 그런 부분들은 아직 개선해야 할 점들이 많이 남았죠.

 

쏟아지는 정보 사이에서 어떤 키워드로 뉴스를 지켜보면 좋을까요? 저자는 정보 업데이트를 어떤 방식으로 하세요?


최근에도 퀄컴(Qualcomm, 미국 모바일 통신 반도체 회사)이 NXP(네덜란드 차량용 반도체 회사)를 인수합병 했죠. 퀄컴은 흔히 아는 것처럼 CDMA(Code Division Multiple Access, 코드분할다중접속)칩 같은 것을 만드는데요. 굳이 자동차 쪽을 인수합병 한 것은 뭔가 자율주행 자동차 시장을 노리고 있다고 볼 수 있죠. 이런 식으로 M&A 관련 뉴스를 관심 있게 보시면 될 것 같고요. 특히 구글이나 애플의 개발자 회의는 보시면 좋아요. 향후 나오게 될 신기술에 대해 이정표를 제시하는 거니까요.

 

IT를 둘러싸고는 무엇보다 정보 접근성이 중요할 텐데 세대 격차가 있잖아요. 워낙 빨리 새로운 게 많이 나오니까요. 이것은 어떻게 극복될까요?


지금 마흔 정도 되는 사람을 기준으로 했을 때의 부모 세대와 그 부모 세대의 부모 세대와는 많이 달라요. 2010년 전후로 스마트폰이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했을 때 스마트폰의 침투율은 75%~80%를 최대치로 봤어요. 60세~75세 사용자와 초등학생 사용자를 제외한 거죠. 그렇지만 지금은 네 살 아이도 스마트폰 너무 잘 사용하잖아요. 어르신들도 카톡 다 하시고요. 기술을 받아들이는 속도는 과거에 비해 완전히 달라졌어요. 써보고 편한 걸 알게 되니까요. 가령 자율주행 자동차 경우, 이것이 기술적으로 완벽해지면 나이 드신 분들에게 더 편한 게 돼요. 기술 받아들이는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질 거예요. 격차도 많이 줄어들 겁니다.

아이폰이 선물해준 페이스타임(face time)이 나오기 전까지 주위에서는 화상 이동전화를 쓰는 사람이 극히 드물었다. (중략)


이제 사람들은 드론ㆍVRㆍ자율주행차ㆍAI에 대해 갈망하고 받아들일 준비가 서서히 되고 있으며, 이를 눈치챈 각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시장을 공략해나가고 있다. 수요와 공급이 모두 새로운 산업을 가리키는 이 시점에서 2020년 우리의 생활은 지금과 상당히 많이 다른 모습일 것이다.(221~222쪽)


 

 

다가올 미래, IT 빅픽처이가근 저 | 원앤원북스
글로벌 IT 기업들이 진행하고 있는 M&A(인수합병)를 살펴보며, 미래의 IT 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하는 경제전망서다. 각종 신문사에서 주관하는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분야의 베스트 애널리스트로 선정된 저자는 이 책에서 2020년 이후의 제4차 산업혁명이 IT 산업에서는 어떤 식으로 진행될지 구체적인 근거를 들어 전망한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조남주 “김지영 씨에게 발언권을 줬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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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평범한 인물의 현실적인 이야기. 어쩌면 소설의 소재로는 썩 매력적이지 않을 수 있다. 조남주 작가의 세 번째 소설 『82년생 김지영』은 픽션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사실적이다. 내가 겪지 않았더라도 필히 목격했을 에피소드가 잇따라 등장한다. 소설의 주인공은 세 살 많은 남편과 딸아이와 함께 서울 변두리의 한 대단지 아파트 24평형 전세로 거주 중인 34세 주부 김지영 씨. 꽤 무난하게 살아온 그녀가 갑자기 이상 증세를 보이면서 소설은 시작된다. 김지영 씨는 갑자기 시댁 식구들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친정 엄마로 빙의해 “아이고 사부인, 사실 우리 지영이 명절마다 몸살이에요”라고 말하고, 남편의 전 애인으로 빙의해 “그래, 너 좋은 남편인 거 다 아니까 지영이 이름 좀 그만 불러라”라고 보챈다.

 

짧은 경장편 소설. 극단적이지 않은데 통쾌한 문장들이 튀어나오니 독자는 김지영의 삶에 풍덩 빠져든다. 괜한 말싸움을 하기 싫어 눈을 감아버렸던 여자, 엄마, 아내, 딸, 여성 직장인 김지영의 과거가 별안간 익숙하게 다가온다. 작가는 소설을 쓰는 동안 참 즐거웠다고 말했다. 아직도 눈물이 나는 장면이 있지만 스스로 위로 받은 작품이었다고 한다. “자꾸만 김지영 씨가 어딘가 살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는 작가의 말을 읽지 않아도, 독자는 안다. 대한민국에 김지영 씨가 얼마나 많은지, 말하는 존재로 살지 못하는 여성이 얼마나 많은지. 실제 ‘지영’은 1982년에 태어난 여아 중 가장 많이 등록된 이름이다.

 

조남주 작가는 현재 여중생들이 고등학교 입시를 준비하는 이야기를 소설로 쓰고 있다. 평일에는 초등학생 딸아이와 함께 집을 나선다. 딸이 수업을 듣는 시간에 엄마는 소설이 될 재료를 찾고 글을 쓴다. ‘맘충’이라는 용어가 사라지길 바라며, 엄마가 아닌 이름으로도 일상을 살아갈 수 있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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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마음 한 구석에 쌓여왔던 것

 

이 소설의 출발이 궁금합니다. 어떻게 쓰게 된 작품인가요?

 

재작년부터 여성혐오에 관한 콘텐츠가 눈에 많이 보였어요. 젊은 여성들이 정말 혐오를 당할 만한 사람인가? 그런 삶을 살았고 살아왔나? 의문이 들었고 아니라는 확신이 있어서 그들의 삶을 정리하고 싶었어요. 소설을 쓰기 시작한 건 작년 9월부터였고요.

 

「여자라고 전교 회장 못 하나요」 등의 신문 기사를 비롯해 「인구 동태 건수 및 동태율」 「출산 순위별 출생 성비」 같은 통계청 자료가 소설에 등장합니다. 무척 현실적인 이야기를 다뤘기 때문에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느낌도 들었어요. 집필을 위해 취재도 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소설을 써야겠다는 마음으로 취재를 하진 않았어요. 작년에 여혐이나 페미니즘 사건이 터졌을 때, 제 생각을 정리하고 싶어서 데이터를 모아놓긴 했고요. 소설에 등장하는 에피소드는 제가 실제로 겪은 것들도 있어서 취재가 굳이 필요하진 않았어요. 한국 여자라면 누구나 경험하거나 간접적으로나마 봤을 이야기니까요.

 

주인공 ‘김지영’이 놓인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해본다면 불행하다고만 볼 수 없어요. 꽤 괜찮은 남편과 결혼했고 경제적으로 어렵지도 않아요. 사람들은 김지영에게 ‘그 정도면 살만한 팔자’라고 말할지도 몰라요.


맞아요. 굉장히 극적인 사건을 겪은 것도 아니고 시댁이나 남편도 괜찮은 편이에요. 일부러 김지영 캐릭터를 이렇게 만들었는데, 사람들이 맘충이나 여성혐오에 관해 이야기할 때 “극단적인 사례”라고 치부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에요. 일부가 아닌 사례를 다루려다 보니, 평범보다는 조금 괜찮은 상황의 인물을 만들었어요. 많은 사람이 여성이 불합리한 일을 겪을 때, “그건 지역 차이야, 학벌 때문이야, 경제력 때문이야”라고 말하잖아요. 이런 이야기가 나오지 않았으면 했어요.

 

소설을 읽다 보면 나의 상황, 또 주변인의 상황과 김지영의 처지를 비추어보게 됩니다. 작가의 말에 “김지영이 답답하고 안쓰럽다”고 쓰셨는데요.


김지영 씨가 겉으로 자기를 막 표현하고 말하는 인물이 아니잖아요. 사실 저도 그랬던 것 같아요. 성격적인 부분도 있었겠지만 내가 겪은 일이 차별인가? 불평등인가? 자각하지 못한 부분도 있고요. 여성 스스로도 자각하기 전에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지내는 동안 뭐가 답답한지도 모르는데, 어느 순간 눈이 딱 떠지고 나면 억울하고 답답하죠. 

 

특히 울컥했거나 감정이입이 많이 된 장면이 있었나요?


김지영 씨가 공원에서 ‘맘충’이라는 말을 듣고 남편에게 말하는 부분이 그랬어요. 쓰면서도 울었어요. 제가 써놓고 제가 이러는 게 좀 웃기지만, 지금도 그 부분을 읽으면 눈물이 나요. ‘맘충’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은 없지만, “남편 돈 쓰고 다닌다, 집에서 놀면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낸다”는 소리를 종종 들었어요. 그럴 때면 김지영 씨와 똑같은 생각을 했지만 말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어요. 말을 건넬 틈이 없을 때도 있었고, 모임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아서 그냥 넘기기도 했고요. 그게 계속 마음 한 구석에 쌓여왔던 것 같아요.

 

엄마를 뜻하는 ‘맘(Mom)’과 벌레를 뜻하는 ‘충(蟲)’의 합성어인 ‘맘충’은 제 아이만 싸고도는 일부 몰상식한 엄마를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뚜렷한 어원을 찾기 어려운 말인데요. 막무가내로 이 용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많아진다고 느껴집니다.


민폐를 끼치는 엄마들에게 하는 말이라며, 그렇지 않은 엄마를 두고는 ‘맘충’이라고 말하지 않는다고 하는데요. 이런 용어가 있음으로 인해서 누군가는 행동에 제약을 받아요. 아이 목소리의 데시벨이 몇까지 올라가면 맘충이라는 기준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어떤 사람은 아이가 조금만 시끄러워도 싫고, 또 누군가는 이해할 수도 있는 문제니까요.

 

‘1982년생 김지영’ 씨에 대한 보고서 형식으로 구성하셨어요. 김지영 씨를 상담해온 정신과의사의 이야기로 소설이 끝을 맺습니다. 처음부터 생각했던 결말이었는지 궁금해요.


보고서 형식으로 써야겠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있었어요. 정신과의사의 이야기로 마무리를 지은 건, 글을 고치면서 추가한 부분이고요. 결국 정신과의사도 사례자 가족으로서는 김지영 씨를 이해하지만, 육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여직원은 직장동료로 원치 않는다고 말하잖아요. 현실을 말해주고 싶었어요.

 

여성학자 김고연주 선생님의 작품 해설이 실렸습니다. 대개 소설은 문학평론가가 해설을 쓰는 경우가 많은데요.


편집자님이 이 소설은 해설을 넣었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가 해설이 다 있진 않은데, 이 소설이 담고 있는 이슈를 정리할 수 있는 분의 글을 받겠다고 하셨어요. 해설을 먼저 읽어 봤는데 너무 좋았어요. 김고연주 선생님이 “이런 세상에서 김지영의 회복을 바라야 할까?”라고 쓰셨잖아요. 저도 그 대답을 갖고 있지 않았는데요. 결국 김지영 씨가 치료될 문제가 아니구나, 김지영 혼자서 해결책을 찾을 수 없겠구나, 생각했죠.

 

작가의 말에 “늘 신중하고 정직하게 선택하고, 그 선택에 최선을 다하는 김지영 씨에게 정당한 보상과 응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더 다양한 기회와 선택지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쓰셨어요. 이 특별하지 않은 이야기가 현실에서 불가능하니 이 문장 또한 낯설다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이건 비단 여성 문제만은 아닐 거예요. 정말 신중하게 정직하게 선택해도 결과가 잘 나오지 않는 세상이잖아요. 이 소설을 쓰면서 자존감이 높아진 부분이 있어요. 제가 일을 그만두고 집에 있는 걸, 내 능력과 열정이 부족해서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소설을 쓰면서, ‘나 항상 열심히 살았는데 나에게 선택지가 너무 적은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결혼을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개인의 선택이지만 사회 문제이기도 한데요. 여자들이 결혼하기 싫어하는 가장 결정적 이유는 무엇으로 보시는지요?


맞벌이 가정의 하루 평균 가사노동 시간을 보면 남성이 40분, 여성이 3시간 14분으로(통계청, 2015 일,가정양립지표) 여성이 남성의 다섯 배입니다. 이 수치가 모든 것을 설명해준다고 생각해요. 직장생활과 가사(육아)를 병행할 수 없는 구조에서 가사 노동이 여전히 여성의 책임으로 여겨진다면 여성들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겠지요.

 

며칠 전 이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살림이 정말 싫다. 왜냐, 월급이 없으니까.” 할 말이 없더라고요.


수입이 많건 적건 있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소설을 쓰면서 들었던 생각 중에 하나인데요. 예전에는 내가 남편의 경제력에 기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고 남편이 나의 가사노동에 기대고 있다는 거예요. 제가 가사 일을 안 하면 남편이 입고 나갈 옷이 있나요? 없잖아요. (웃음)

 

김지영 씨는 오랫동안 참는 존재였어요. 오히려 그녀의 어머니는 자신의 희생에 대해서 ‘말하는 존재’였고요. 소설을 읽으면서 왜 오히려 세대가 역주행 할까, 싶었는데요. 여성 독자라면 필시 자신의 엄마를 떠올릴 것 같아요.


소설을 쓰면서 엄마 생각을 안 할 수 없었어요. 저희 어머니는 소설 속 엄마처럼 자기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아니었어요. 남자 형제에 비해 교육 혜택을 덜 받았지만 본인이 더 쟁취해야 한다고 생각하시진 못했어요. 예전에 저는 엄마를 보면서 왜 이렇게 쉽게 현실에 주저앉았을까 싶었어요. 그런데 소설을 쓰면서,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겠구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대로 사회생활을 안 해본 사람이 시골에서 농사만 짓다가 갑자기 서울에 와서 한 발을 내딛기가 얼마나 무서웠을까, 싶어요. 어쩌면 주어진 환경이 비슷했을지라도 할 말을 다 할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도 있어서 이런 엄마 캐릭터가 나온 것 같아요.

 

작가님은 실제 생활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많이 털어내는 편인가요?


늦더라도 돌려서라도 말하려고 해요. 마음에 다 담고 참진 않고요. 다 기억하고 있다가 어떻게라도 말하려고 하는 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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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문장으로 쓸 수 있는 이야기


서번트증후군에 걸린 소년의 이야기를 다룬 『귀를 기울이면』, 올해 6월 출간된 제2회 황산벌청년문학상 수상작 『고마네치를 위하여』도 현실과 밀접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요. 소설가로서 현실적인 문제를 다루겠다는 의지가 있으신가요?


지금까지 출간을 약속하고 쓰거나 청탁을 받아 쓴 적이 없어요. 습작으로 갖고 있는 소설도 다 제가 쓰고 싶어서 쓴 소설이었고요. 예전에 책을 내고서 인터뷰를 했을 때, “그때 그때 생긴 질문들에 대해 소설을 쓰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제가 이 현실에 발을 딛고 사는 이상, 질문이 현실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세 권의 책이 나오면서 제가 느낀 건, 현실을 기반한 내용으로 소설을 쓸 때 제가 좋고, 출간으로도 이어진다는 사실이에요.

 

『82년생 김지영』도 투고한 작품인가요?


민음사에서 경장편 소설을 꾸준히 내고 있으니까요. 한 번 검토해봐 주시지 않을까 했어요.

 

문장에 대한 이야기도 여쭙고 싶습니다. 미사어구가 없고 굉장히 간결한 문장을 쓰시는데요.


첫 책을 내고 공백 기간 동안에도 계속 글을 썼어요. 투고도 하고 거절도 당했는데요. 그럴 때마다 내 문장이 문학적인 문장이 아니라서 그런가, 생각했어요. 그래서 아름다운 문장을 쓰는 작가들의 책도 많이 읽고 쓰는 연습도 했는데요. 잘 안 되더라고요. 제가 내린 결론은 이거예요. 아름답고 문학적인 문장으로 쓰는 이야기가 있을 거고, 나는 내 문장으로 쓸 수 있는 이야기를 찾아서 내 이야기를 써야겠다.

 

좋아하는 작가가 있나요?


늘 대답을 잘 못하는 질문인 것 같아요. 평소에 문학보다는 인문, 사회 서적을 많이 읽는 편이에요.

 

소설 창작을 따로 배우진 않으셨나요?


없어요. 대학원이나 창작 교실을 다녀볼 마음이 있었는데, 아이를 키우다 보니 갈 시간이 없더라고요. 그냥 혼자 썼어요. 소설을 써보고 싶긴 했지만 막연했죠. 꼭 소설은 아니더라도 픽션인 내 작품을 쓰고 싶다는 예전부터 있었어요. 아마 방송작가를 계속했더라면 하고 있는 일이 너무 바빴을 테니, 소설을 쓰긴 어려웠을 것 같아요.

 

10년간 방송작가 일을 하셨어요. MBC <PD수첩>, <불만제로> 등을 만드시다 출산하면서 일을 그만두셨는데요. 아쉬움은 없었는지 궁금해요.


아이가 좀 크면 다시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계속 유예를 했던 것 같아요. 경력 단절이 길어지면서 못 돌아가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출산 후에 간간히 아르바이트를 하긴 했지만, 방송작가는 방송국 직원이 아니니까요. 사실 첫 책을 냈을 때는 약력에 방송작가를 쓰지 않았어요. 그 때는 소설을 쓰는 일과 크게 관계가 없는 이력이라고 생각해서 안 썼는데, 두 번째 책에는 썼어요. 제가 가장 열심히 일했던 시기에 한 일이고, 저에게 중요한 가치관을 만들어줬고, 결국 이 시간을 거름 삼아 소설을 쓸 수 있었으니까요.

 

요즘 언론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방송작가 일을 했던 시기와 비교해본다면, 그 때는 원하는 정보를 공중파, 영향력 있는 언론에서 읽었다면, 지금은 그 언론에서 원하는 정보를 찾지 못하게 됐어요. 분명히 그 조직 안에서도 젊고 패기 넘치는 조직원들이 있을 텐데, 왜 이렇게 됐을까를 생각해보면, 개인 차원을 너머 한 조직의 정의감, 도덕성이 너무나 중요하다는 사실이에요. 아무리 개인이 노력해도 되지 않는 시스템이 존재하니까요. 작게 생각하면 한 언론, 한 회사지만 크게 생각하면 우리 전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전체 시스템이 올바른 방향으로 가야 그 안의 세부 구성원들이 자기 목소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평소에 자료를 많이 찾아 놓는다고 하셨는데요. 최근에는 어떤 사건을 눈여겨보셨나요?


가장 최근에 정리한 자료는 이화여대 시위 관련 자료예요. 학내 투쟁의 새로운 방식을 제안했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물론 이 방식이 완벽한 대안도 아니고 모든 투쟁 현장에 적용될 수도 없겠지만, 참고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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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하고 기분 좋게 볼 TV프로그램이 없어요


초등학교 1학년생 엄마로 사는 요즘은 어떤가요?


학부모가 된다는 사실이 겁났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몰랐던 아이의 모습을 알게 된 기간이 된 것 같아요. 욕심에서도 좀 벗어나 오히려 편안해진 것 같아요.

 

글 쓰는 시간을 정해 놓았나요?


약속이 없을 때는 딸아이 학교를 데려다 주면서 저도 나가요. 집에 있으면 청소라도 하게 되고 빨래라도 하게 돼서요. 최대한 밖에 나가려고 해요. 딸아이 학교 마치는 시간에 집에 들어 오고요. 저는 제가 소설가라는 생각이 안 들어요. 책이 나왔기 때문에 책에 관해 이야기할 기회가 있지만, 제가 보내는 대부분의 시간은 딸과 딸 친구 엄마들과 함께하니까요. 누군가 제게 “무슨 일 하세요?”라고 물으면 “전업주부”라고 말해요.

 

문단 활동은 거의 안 하시는 것 같아요. 최근 문단 내 성폭력 논란이 독자들에게 큰 실망감을 줬는데요.


출판계에 아는 사람이라곤 제 책을 내주신 편집자 분들 뿐이에요. 아는 작가도 없고 모임을 가본 적도 없고요. 책을 막 냈을 때 터진 사건이라 더 관심을 갖고 볼 수밖에 없었는데요. 나 역시 과거에 성폭력을 목격했음에도 간과했거나, 2차 가해를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또 이런 사건이 터졌을 때, 왜 수치심과 반성마저도 여성의 몫인가, 화가 났고요. 하지만 예전에는 말조차 꺼내지 못했던 문제가 공론화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억울해 하는 남성도 많아요. 주위를 둘러보면 실제 상식적인 남자들도 적잖이 있고요. 저는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여자들이 읽어도 좋겠지만 남자들이 읽으면 더 좋겠다 싶었어요.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굉장히 편협하고 가부장적인 남자들도 많이 보지만, 적어도 내 가정 안에서는 합리적으로 판단하려고 노력하는 젊은 아빠들도 많아요. 저는 이왕이면 나아갈 방향에 대해 많이 언급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요즘은 여성들이 목소리를 많이 내고 있으니, 역차별이라는 이야기도 많이 하는데요.  현실을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요. 자신의 입장, 생각을 발언하는 여성들이 ‘역차별’이라고 대꾸하는 현실에 대한 인식을 계속했으면 좋겠어요. ‘이 정도면 나아졌지, 예전보다는 낫지’라고 생각하면 자꾸 주저앉게 돼요. 아직 다 오지 않았다고 생각했으면 하고 저도 그러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소설의 효용을 무엇이라 생각하시는지요?


삶을 확장하는 것? 물리적으로, 시간적으로, 심리적으로 내가 닿지 못하는 곳까지 경험의 영역을 넓힐 수 있는 기회인 것 같아요. 소설을 통해서 나 자신을 더 깊게 들여다볼 수도 있고, 타인을 이해할 수도 있고요. 저는 이런 이유에서 소설을 읽어요.

 

만약 지금 방송작가 시절로 돌아가. 어떤 아이템도 취재해서 방송할 수 있다면, 어떤 주제를 다루고 싶나요?


여자들끼리 잘 먹고 잘 사는 얘기요. 여자들만으로 이루어진 회사, 학교, 취미모임, 사회단체 등이 어떻게 운영되고, 의사결정을 하고, 신뢰를 쌓아가고, 사회와 소통하면서 세상을 건강하게 변화시키는지 방송을 통해 전달하고 싶어요. 남자 멤버들끼리 모험을 즐기고, 요리하고, 토론하고, 두뇌싸움 하고, 어쩌다 나오는 여자 게스트들은 그들의 파트너로만 소비되며 얼굴 품평, 몸매 품평 당하고 애교 강요당하는 방송들이 이제 지겹습니다. 딸하고 기분 좋게 볼 TV프로그램이 없어요.

 

작가님이 꿈꾸는 세상, 세계는 어떤 사회인가요?


누구에게나 주거, 교육, 의료가 보장되는 사회를 기대해요. 사실 너무 기본적인 조건이지만. 요즘 우리나라도 그렇고, 미국 대선 결과도 너무 절망스러운 부분이 많은데요. 그래도 전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를 믿는 사람이라서요. 자꾸 한숨이 나오지만 결국 가야 할 방향으로 갈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절로 되는 건 아니고 그 방향으로 이끄는 힘을 키워야겠죠.

 

앞으로 꿈이 있으신가요?


아직 마흔도 안 됐는데, 사는 게 계획대로 되지 않더라고요. 전업주부가 될 줄도 몰랐고, 소설을 쓰게 될 줄도 몰랐고, 이렇게 인터뷰라는 걸 하게 될 줄도 몰랐는데 그렇게 됐어요. 그 중에는 싫지만 해야 하는 일도 있었고, 정말 하고 싶은 일도 있었는데, 어쨌든 제 최선을 다했어요. 제가 지금 작은 성과라도 이룬 게 있다면 그 결과라고 생각해요. 구체적인 꿈을 향해 노력하는 방식보다 주어진 대로 열심히 하는 방식으로 살았고, 당분간은 그래야 할 것 같아요. 크던 작던, 나와 맞던 안 맞던, 기회가 주어진다면 아이를 키우는 일과 병행할 수 있는 한, 뭐든 해보려고 해요. 하다 보면 뭐라도 되겠죠?

 

‘82년생 김지영’을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어떤 사람일까요?


오늘을 살고 있는 평범한 대한민국 여성, 더 많은 보상과 기회와 발언권이 주어져야 마땅한 사람이요.


 

 

82년생 김지영조남주 저 | 민음사
서민들의 일상 속 비극을 사실적이면서 공감대 높은 스토리로 표현하는 데 재능을 보이는 작가 조남주는 이번 작품에서 1982년생 '김지영 씨'의 기억을 바탕으로 한 고백을 한 축으로, 고백을 뒷받침하는 각종 통계자료와 기사들을 또 다른 축으로 삼아 30대를 살고 있는 한국 여성들의 보편적인 일상을 완벽하게 재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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