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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은 왜 마인드풀니스 프로그램을 시행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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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번의 호흡이라도 좋다”
(중략)단 한 순간만이라도 호흡을 의식하는 것이 마인드풀니스를 계속하게 하는 동기부여가 된다. 의식을 극한까지 집중하여 단 한 번의 호흡을 최선을 다해 음미하는 데 몰두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140쪽)

 

마인드풀니스(Mindfulness)란 흔히 마음챙김명상으로도 말하는 것으로 지금 이 순간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온전히 알아차리는 상태를 의미한다. 무수히 스치는 순간들을 잠깐 멈추는 일, 그것은 “단 한 번의 호흡”으로도 가능하다. 잠시 몸을 편안하게 두고 들이마시고 내뱉는 호흡에 집중한다. 오감에 집중하고 지금 일어나는 모든 것을 관찰한다. 아주 짧은 시간으로도 실천할 수 있는 이 잠깐의 활동으로 마음에 쌓인 먼지가 흩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구글에서 2007년 시작된 마인드풀니스 프로그램 ‘SIY(Search Inside Yourself, 내면검색)’의 인정 강사로 활동하는 『세계 최고 인재들의 집중력 훈련법』의 저자 보쿠라 샤페 기미코. 그는 마인드풀니스 명상을 하는 것이 “야구 선수가 체육관에서 훈련하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지금의 업무, 당장의 현실이 야구 게임이라면 게임을 더 잘해내기 위해 야구장 밖에서 훈련하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와 같이 우리의 생활에 명상이 꼭 필요하다는 말이었다.


SIY는 구글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연수 프로그램이다. 이같은 마인드풀니스 프로그램은 이제 인텔, 페이스북, P&G, 골드만삭스 등 세계 최고의 기업뿐 아니라 하버드, UC버클리 등 유수의 경영대학원에서도 운영하는 프로그램이 되었다. 가장 치열한 곳에서 가장 내밀한 활동에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인드풀니스는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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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now), 주의 기울이기(focus), 이완(relaxation)


다소 생소한 단어라서요. 마인드풀니스가 무엇인지 먼저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마인드풀니스의 가장 쉬운 정의는 마음을 이완시켜 편안해진 상태에서 바로 지금, 그리고 여기에 조금 더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핵심 단어는 지금(now), 주의 기울이기(focus), 이완(relaxation)입니다.

 

명상과 마인드풀니스는 어떤 관계인가요?


마인드풀니스는 명상의 한 방법입니다. 마인드풀니스는 사실 우리 인생 모든 것에 적용될 수 있습니다. 인생을 야구에 비유해 설명해볼까요. 야구 선수가 게임을 하는 것, 그것은 우리의 인생입니다. 명상은 선수가 야구 게임이 끝나고 체육관에서 근육 훈련을 하는 것이죠. 명상은 현재 상황에서 벗어나 마음을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저자는 어떻게 이것에 관심을 갖게 되었나요?


20년 전에 요가의 한 부분으로 명상을 했었지만 그 이후에는 명상을 그만두었어요. 명상의 중요성을 잘 몰랐던 거죠. 저는 과거 의사와 간호사를 위한 트레이닝 회사를 운영하고 있었는데요. 사업은 잘 됐어요. 하지만 너무 바빴습니다. 압박이 심했죠. 저는 항상 다음 계획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오늘은 이것을 해야 하고, 이것을 해야 해, 이건 아직 안 했네, 이런 생각만 했어요. 그러다보니 몸에 무리가 왔습니다. 통증이 찾아온 겁니다. 병원에 갔고, 지팡이를 짚고 다녀야 할 정도로 건강이 악화되었습니다. 그때 친구가 마인드풀니스 9주 코스를 소개해주었어요.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너무 바빴고, 제게는 일이 아주 중요했기 때문에 일을 중단하고 그 코스를 들을 수 없다고 얘기했었죠. 그러다가 결국 9주 코스를 듣게 되었어요. 8년 전입니다. 처음에 저는 멈추기에는 너무 바쁘다고, 시간을 들여 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기에는 너무 바쁘다고 생각했는데요. 9주 동안 멈추는 방법을 배웠어요. 멈추는 것이 왜 저에게 좋은지를 배웠습니다. 그렇게 공부를 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멈추는 것이 오히려 일을 더 빨리, 잘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삶의 여유를 찾을 수 있었어요.

 

‘주의력 빈곤’이라는 단어가 오래 남더라고요. 정보는 넘치고, 바쁜 현대인들에게 이 문제는 더 간절하게 느껴질 겁니다. 마인드풀니스가 특히 현대인에게 필요한 것이라 강조한 이유기도 할 거예요.


우리는 너무 바쁘게 생활하면서도 충분히 집중하고 있고, 충분히 몰두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집중이 아닙니다. 그것은 단지 일에 압도되고 있는 것뿐입니다. 우리는 일을 열심히 한다는 것에 대해 잘못된 관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이 바쁘면 더 열심히 해서 어떻게든 쫓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죠. 바로 그런 압력 때문에 우리의 주의력이 한 군데에 오랫동안 충분히 머물지 못합니다. 한 연구에서는 우리가 이곳에서 다른 곳으로 주의를 옮겼을 때 다시 원래의 것으로 주의를 옮기는 데 20분이 걸린다고 해요. 우리는 매일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한다고 하는데요. 그러다보면 결국 온종일 어떤 일에도 집중하지 못한다는 것이 연구의 결과입니다. 바쁘다고 느낄 뿐 집중력을 회복하지 못하는 거예요. 우리 인식은 여기저기 흩어져 있게 됩니다. 그 결과 생산성도 떨어지고, 일에 대한 만족도 또한 떨어지게 되죠. 우리가 어떤 것에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못하는 것, 주의력 빈곤은 사실 우리의 생산성뿐만 아니라 우리의 행복감에도 영향을 끼치는 것입니다.

 

책은 이것을 ‘리더십’과 연결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실제 업무 현장에서 마인드풀니스가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나요? 


리더십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그것이 직급에 관한 내용은 아닙니다.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이끌어 나갈 것인가, 우리가 내린 각각의 결정에 어떻게 책임지는가에 대한 것이니까요. 직무와 연관이 있지는 않습니다. 불행하게도 일본에는 ‘과로사(かろうし, 過勞死)’라는 단어가 있는데요. 일에 대해 과도하게 의무감을 갖기 때문에 스스로에 대한 리더십을 잃어버리고 힘들어하는 거예요. 얼마 전에 일본 유명 게임회사 직원이 자살하는 사건도 있었죠. 제게 ‘마인드풀니스 리더십’이라는 말은 아주 중요한데요. 그것은 첫째, 항상 내면에 집중하는 삶을 사는 것이고요. 둘째, 나 자신의 삶에 대한 리더십을 유지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만 개인이 충분히 성취를 얻는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그것이 조직의 성공으로 이어질 수도 있겠지요.

 

일본과 한국의 조직 문화에 유사점이 많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방금 말씀하신 문제의식과 마인드풀니스의 중요함은 함께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런 질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저는 사실 미국 실리콘밸리 기업들과 일본의 기업을 비교하기 좋은 환경에 있습니다. 일 년의 절반은 미국에, 나머지 절반은 일본에서 지내거든요. 제가 본 실리콘밸리의 재미있는 점은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 역시 매우 스트레스가 높은 환경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구글이 직원들을 대상으로 마인드풀니스 프로그램을 시행하는 이유는 반드시 구글이라는 회사가 사람들에게 좋기만 한 곳이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 많은 업무와 경쟁적인 분위기, 성과 중심의 문화이기 때문에 조직원의 소진 문제가 발생해요. 그렇기 때문에 마인드풀니스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겁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실리콘밸리의 기업들과 일본 기업, 한국 기업이 각각 달라 보이겠지만 사실 안을 들여다보면 비슷할 겁니다. 마인드풀니스는 근본적인 변화입니다. 기술이나 역량을 주입시키는 것이 아니에요. 바로 이것이 어려운 점입니다. 이런 점 때문에 한국이나 일본의 회사들을 설득하기는 어려울 거예요. 그렇지만 이것은 아주 기본적인 것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사내 교육을 한다고 했을 때 이미 사람들의 머릿속에 너무나 많은 것이 차 있어서 거기에 뭔가를 더 집어넣을 여유가 없잖아요. 그러나 그런 점 때문에 마인드풀니스 같은 기본적인, 본질적인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명상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편견이 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마인드풀니스의 효과를 과학적으로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명상이라고 하면 이완이나 치유를 이야기하는데요. 우리가 보통 이완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뇌의 기본 환경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넋 놓고 있는 상태라고 이해할 수 있는데요. 사실 이때는 뇌 속에 생각이 굉장히 많은 상태입니다. 뇌의 여러 부위가 작용하고, 뇌 곳곳이 활동하기 때문에 그때는 우리가 생각을 하는 것조차 모르고 있을 뿐이에요. 마인드풀니스 명상을 할 때 호흡이나 몸에서 일어나는 감각에 집중하라고 했잖아요. 이때 활동하는 뇌의 부위는 전전두엽과 뇌섬엽이라고 하는 곳입니다. 그 외에 뇌의 나머지 부분은 휴식하는 상태가 되고요. 마인드풀니스 명상은 이렇게 집중하고 휴식하기를 계속해서 반복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적이고 종교적인 것이 아닙니다.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것이죠. 우리의 의식을 훈련시키는 것입니다. 한편 저에게는 이것이 그저 나를 챙기는 활동일 뿐입니다.


우리는 항상 과학적인 연구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들입니다. 앞서 마인드풀니스 명상을 야구 선수들이 게임에서 돌아와 훈련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물론 이것 없이 게임만 할 수도 있겠죠. 그러나 부상을 당하거나 기록이 잘 안 나올 때 연습을 하면 훨씬 도움이 돼요. 마인드풀니스 명상이란 그런 것과 같습니다. 명상을 하지 않더라도 내면에 집중하는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겠죠. 그러나 마인드풀니스 명상에 대한 과학적인 자료와 연구가 많이 있기 때문에 권유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여러 대학에서 진행된 연구 결과를 통해 명상으로 뇌 기능이 향상될 뿐 아니라 뇌의 구조 자체에 변화가 나타남을 알 수 있었다. 즉 피질이라 불리는 표면 부분의 두께가 늘어난 것이다. 1만 시간이 넘는 명상 경험자의 뇌 피질에서 특히 두께가 늘어난 것으로 측정되는 부위는 관자놀이 안쪽 깊숙이 있는 뇌섬엽과 이마의 가장 튀어나온 부분인 전전두엽, 그리고 그 위쪽이다.(1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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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을 알지 않아도 괜찮다


‘모순이나 대립을 그대로 두는 힘’이 중요하게 들렸어요. 사람들은 정답, 확실한 선택을 원하잖아요. 그게 되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고요. 마인드풀니스로 이러한 스트레스를 극복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였는데요.


일을 하다보면 늘 그렇다, 아니다, 답을 빨리 내려야 할 것 같죠. 좋은지 나쁜지 판단해야 할 것 같아요. 우리는 항상 즉각적으로 대응하려고 합니다. 그렇지만 마인드풀니스에서 말하는 것은 ‘답을 알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잠시 자신이 처한 상황 전체를 지켜보는 여유를 갖는 것이죠. 어떤 일이 생겼을 때 이것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그 즉시, 습관화된 패턴에 의해 결정하는 게 아닙니다. 잠시 지켜보다 보면 새로운 정보가 나타나거나 내 마음에 새로운 것이 떠오를 수 있잖아요. 그것은 그 즉시 결정하려고 할 때 발생하는 습관적이고 반복적인 선택이 아닙니다. 사실 우리는 대부분 답을 모릅니다. 답을 모를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질 수 있죠. 창의성에 관련된 많은 정의가 있는데요. 그런 모순된 정보들을 종합하는 것만으로도 창의성의 자질이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책에서 당장 마인드풀니스를 실천해야 하는 이유가 나오는데요. 인간관계 개선이라든가 행복감 증진 같은 항목들은 이해가 되거든요. 그런데 ‘건강 촉진’이라는 항목이 있었어요. 이것은 어떻게 가능한가요?


연구 결과도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만 제 경험으로 말씀드리면요. 제가 과거 지팡이를 짚고 다녀야 할 정도였다고 했잖아요. 지금은 전혀 필요가 없습니다. 지팡이를 짚고 다닌 것은 염증 때문이었는데요. 염증은 스트레스가 원인인 경우가 많죠. 지금 저는 스트레스 수준이 훨씬 낮아졌고, 스스로 스트레스를 관리할 수 있기 때문에 문제가 없습니다. 과거에는 체력의 편차도 컸습니다. 활기를 느낄 때도 있지만 저조할 때도 있었고요. 그러나 지금은 고른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전보다 훨씬 더 유연해졌어요. 또한 마인드풀니스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지난 6년 동안 감기에 걸려본 적도 없습니다.(웃음)

 

대단하네요.


마인드풀니스 명상을 하면 건강해진다는 것의 의미가 여기에 굉장히 마법 같은 힘이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사실은 이 과정을 통해 계속해서 자신의 몸과 몸의 상태를 바라보게 되잖아요. 몸에서 느껴지는 감각에 민감해지게 되죠. 그러다보니 너무 피곤하거나 힘들고, 몸에 어떤 일이 일어나려고 하면 그때는 멈춰서 쉬는 거예요. 지금은 과로해서 몸이 힘들어하니까 쉬어야겠다, 이렇게 되는 거거든요. 사람들은 몸을 이겨가며 일을 하잖아요. 그런 상황이 오지 않는 겁니다. 마인드풀니스 명상을 한다는 것은 그런 상황을 만들지 않는다는 겁니다.


마인드풀니스는 만병통치약이 아닙니다. 다만 일상생활에 더해지는 아주 작지만 좋은 습관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을 함으로써 자신의 몸과 상태에 조금 더 민감해지는 겁니다. 또한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조금 더 주의를 기울이게 되는 거고요. 그러다보면 주변에 나의 도움이 필요한 곳을 발견하게 돼요. 예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게 되고 말이죠. 그러면 곁에 있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필요한지를 먼저 물어볼 수도 있을 거예요. 아주 작은 것들이 쌓여서 큰 것을 만들 수 있는 겁니다.

 

앞서 말씀하신 “멈추는 것이 오히려 일을 더 빨리, 잘할 수 있게 한다는 것”과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겠네요.


존 카밧진 박사의 연구를 보면 실제 8주 동안 마인드풀니스 명상 코스를 이수한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 비해 독감 예방 주사를 맞고 난 이후의 항체 수치가 높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면역력이 더 높은 거예요. 또한 알츠하이머 관련 노인을 대상으로 연구했을 때도 유효한 결과가 나옵니다. 우리의 뇌는 매일 뉴런을 잃고 있는데요. 사용하지 않으면 뇌가 퇴화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명상을 하면 퇴화하는 속도가 훨씬 느려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습관이라는 말이 아주 중요하게 들립니다. 이것이 기술이나 노하우라기보다 태도에 더 가까운 것 같거든요.


고맙습니다. 매우 훌륭한 해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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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분이면 충분하다


개인에서 조직으로 규모를 확장해서 볼 때 마인드풀니스가 주는 역량 중 가장 먼저 꼽은 것이 커뮤니케이션 능력이었습니다. 특히 듣기를 꼽고 있다는 점은 의미가 큰 것 같습니다.


리더가 듣기 기술을 더 많이 활용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들은 대개 잘 안 들으려 해요.(웃음) 다른 사람들이 하려는 말을 자신이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결과 많은 새로운 사업의 기회를 잃어버리거나 조직을 더 낫게 만들 기회를 잃어버리죠. 또한 듣기 기술은 조직이나 다른 외부가 아니라 바로 우리 내면을 향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결국 듣기 기술이란 조용히 자신의 내면에서 내는 소리를 듣는다는 의미인 동시에 주변의 소리를 듣는다는 의미이기도 하고, 조직원의 말에 귀 기울인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마인드풀니스를 처음 알게 된 초심자의 경우에 가장 흔하게 먼저 부딪치는 어려움은 무엇인가요?


많이들 이것을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어떻게 매일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지, 명상을 하다가 잠이 들기도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웃음) 묻습니다. 명상을 하기엔 시간이 부족하다고 많이들 말하죠.

 

그럴 때 그런 분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세요?


시간이 없다는 분들을 위해 저는 매일 출퇴근길에서라도 실천해보라고 말합니다. 지하철에 서서도 할 수 있거든요. 특히 이제 막 시작하는 분들에게는 너무 열심히 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합니다. 5분이면 충분해요. 해야 할 많은 일 중 하나로 생각하지 않고 이것을 일상의 좋은 습관으로 유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앉아서 명상을 하다가 졸음이 온다는 분에게는 서서 명상을 하라고 말하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졸음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분들에게는 그냥 침대로 가라고 말합니다.(웃음)

 

마인드풀니스 명상을 실천하는 저자의 하루를 묘사해주세요. 많은 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침에 일어나 식사를 하고요. 주방을 정리한 다음에 30분 정도 앉아서 명상을 합니다. 저는 집에서 일을 하거든요. 명상을 한 후 그렇게 하루를 시작해요. 다만 저는 일본과 미국을 오가기 때문에 일반적인 경우와는 다를 겁니다. 미국에 있을 때는 점심 식사 이후에 본격적으로 일이 시작되고요. 늦을 때는 저녁 식사 이후에 일이 시작되기도 해서요. 저는 오전 시간을 명상과 휴식하는 시간으로 삼습니다. 개인적인 일을 하거나 산책을 하거나 해변을 걷는 일은 오전에 벌어지죠. 이것은 일반적인 일정은 아니지만 그래도 일상 속에서 늘 명상을 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어떤 분들이 읽었으면 하나요?


일하는 대부분의 직장인들, 사업하시는 분들이 이 책을 읽으실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자신의 가능성이나 역량을 좀 더 넓히고 싶은데 방법을 알지 못해 고민하는 분들에게 적합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과를 더 내고 업무를 잘 해내는 동시에 마음의 평화를 가지는 방법이 필요한 분들은 이 책을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세계 최고 인재들의 집중력 훈련법 오기노 준야,보쿠라 샤페 기미코,요시다 덴세 공저/장은주 역 | 가나출판사
복잡한 환경에서도 계속해서 성과를 내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의 차이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지금 여기서 일어나고 있는 것’에 주의를 집중하여 최선의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영석 “문 닫는 가게의 세 가지 공통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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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산물 대표 브랜드 ‘총각네 야채가게’의 이영석 대표가 새로운 책을 통해 성공 노하우를 공개했다. 『총각네 이영석의 장사 수업』은 가상의 인물 홍상인을 내세워, 평범한 회사원이 진정한 장사꾼으로 거듭나는 과정을 실감나게 보여준다. 권리금의 개념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던 홍상인은 장사 멘토 ‘대빵’을 만나 장사라는 새로운 세계, 그 전쟁터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알아간다. ‘대빵’의 실존 모델인 이영석 대표는 홍상인과 독자들을 위해 ‘장사 필살기’를 아낌없이 공개한다. 업종을 선택하는 방법, 창업하기 전 반드시 명심해야 할 3가지, 입지 선정 기준, 절세 방법, 직원 관리 노하우 등 ‘장사의 A to Z’를 들려준다.

 

‘맨주먹 성공신화의 주인공’, ‘장사의 신’으로 불리는 이영석 대표는 오징어 트럭 행상을 따라다니며 장사를 배우기 시작했다. 이후에도 트럭 행상을 하며 자본금을 모은 그는 18평의 작은 야채가게를 개업했고, 25년간 쉼 없이 달려온 끝에 500억 원 매출의 프랜차이즈 CEO가 됐다. 끊임없이 발로 뛰고 연구하면서 차근차근 성공을 쌓아온 그의 이야기는 드라마와 뮤지컬로 제작된 바 있으며, 만화가 허영만은 그를 모델로 『식객』의 주인공 ‘성찬’을 탄생시켰다.

 

『총각네 이영석의 장사 수업』에는 이영석 대표가 직접 몸으로 부딪히며 터득한 장사의 원리와 성공 공식이 담겨있다. 흥미로운 스토리와 만나 읽는 즐거움을 더했을 뿐만 아니라, 이영석 대표의 1대 1 장사 수업을 듣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책 속의 홍상인이 그러하듯 이제 막 자신의 가게를 열었다면, 한 명의 믿을만한 멘토를 만나고 싶다면, 이 책을 펼쳐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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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에는 ‘내가 만든 룰’이 있어요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자영업에 뛰어드는 분들도 많아지는 것 같아요. 그 중에는 ‘회사 그만두면 장사나 하지 뭐’ 하고 쉽게 생각하는 분들도 계신데요. 섣불리 결정할 문제는 아니겠죠.


도전은 누구나 할 수 있죠. 중요한 건 뭐냐 하면, 내가 장사에 적합한 사람으로 변화할 수 있는지 생각해 봐야 된다는 거예요.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도 어떤 대가가 필요하잖아요. 예를 들어서 암에 걸렸으면 특정한 음식도 끊고 병을 이겨낼 만큼의 마음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잖아요. 장사도 마찬가지예요.

 

장사에 적합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요? 저자님께서도 회사 생활을 해보셨잖아요. 회사 생활에 더 적합한 사람과 장사에 더 적합한 사람, 둘 사이에 차이가 있을까요?


회사 생활은 내가 맡은 업무만 잘하면 되는데 장사는 그렇지 않아요. 만약 내가 디자이너라면 디자인만 잘하면 되지, 재무나 인사관리는 할 필요가 없잖아요. 그런데 장사를 하려면 고객 관리도 잘해야 하고, 음식도 남들보다 맛있게 만들어야 되고, 매장과 직원 관리도 해야 돼요. 직장생활이 A만 필요하다면 자영업자는 A부터 Z까지 다 필요한 것 같아요.

 

멀티 플레이어가 되어야 하는 건데요. 어떻게 보면 회사 생활보다 더 힘든 것 같아요.


그럼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 생활보다 좋은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내 마음대로 뭔가를 해볼 수 있다는 거죠. 회사 생활은 그렇지 않잖아요. 조직이 원하는 룰을 따라야 되죠. 그런데 장사에는 내가 만든 룰이 있어요.

 

『총각네 이영석의 장사 수업』에서 홍상인은 점점 장사의 즐거움을 알아가잖아요. 책을 읽으시면서 처음 장사를 시작하던 때가 떠오르기도 하셨어요?


공부 잘하는 사람들을 보면 배울수록 끝이 없고, 신기하고, 재밌다고 하잖아요. 장사도 그런 것 같아요. 지금도 저는 매일 장사를 공부하고 배우거든요. 어떤 분야의 프로가 되면 그런 것 같아요. 아마 이승엽 선수한테 타석에 서는 일이 쉽지 않냐고 물으면 더 어렵다고 말할 거예요. 장사도 그렇죠. 

 

요즘에도 매장에서 직접 손님들과 만나세요?


룰을 정하죠. 월수금 아니면 화목, 이렇게 시간을 정해놔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시간에 지배당하는데 내가 시간을 지배해야 되거든요. 저는 항상 사람들에게 이야기해요. 항상 바쁘고, 그래서 이런 저런 일들을 못한다고 하는 건 시간이 당신을 지배하기 때문이라고요. 저는 일 년에 네 번은 무조건 가족 여행을 가고,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은 무조건 아이랑 놀아줘요. 매주 목요일은 집에 꽃을 사가는 날이고, 머리를 자르는 날은 매월 15일과 30일이에요. 정확하게 룰이 있어요. 이렇게 정해 놓으면 삶이 굉장히 편해요.

 

책에서도 “원칙과 기준이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라”라고 조언하셨어요. ‘총각네 야채가게’의 경우에는 어떤가요?


많은 룰들이 있죠. 예를 들면, 지각하면 벌금이 10만 원이에요. 1초만 지각해도요.

 

잘 지켜지나요?


처음 6개월 동안은 반발이 심했죠. 그런데 지금은 지각자가 한 명도 없어요. 담배 피는 사람도 없고요. 직원들이 금연할 때까지 돈을 지원해주거든요. 그러다가 다시 담배를 피우면 (지원금을) 10배로 물어내야 돼요. 그러니까 아무도 안 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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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닫는 가게의 세 가지 공통점


책에서 말씀하시길, 업종이 달라도 통하는 ‘장사 성공의 원칙’이 있다고 하셨어요.


그럼요. 수학 공식 같은 거예요. 이 책에 있는 내용은 자영업자나 장사하는 사람한테만 국한되는 게 아니에요. 회사 생활을 하는 데에도 도움이 돼요. 인사가 중요하고 청결이 중요하다는 내용만 봐도 그렇죠. 이런 원칙을 지키면서 회사 생활을 한다면 잘 할 수 있어요.

 

『총각네 이영석의 장사 수업』에서 성공하는 가게의 비법을 알려주셨는데요. 거꾸로 이렇게 여쭤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손님이 없는 가게, 문 닫는 가게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나요?


사장님의 표정이 좋지 않아요.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으니까 손님들이 그 가게에 가고 싶지 않죠. 그리고 두 번째는 지저분해요. 세 번째는, 대부분 그런 가게에는 사장님이 인심이 없어요. 요즘 커피숍에도 ‘외부 음식 반입 금지’라고 써 놓은 데가 있잖아요. 사실 요즘에는 외부 음식을 가져와서 먹으라고 해도 사람들이 잘 안 먹어요. 설사 가져와서 먹더라도 ‘맛있게 드세요, 혹시 필요한 게 있으시면 말씀하세요, 제가 갖다 드리겠습니다’라고 하면 손님은 그 말 한 마디에 다시 가고 싶은 생각이 드는 거거든요. 세상에서 가장 서비스 잘하는 백화점이 된 ‘노드스트롬’을 보세요. 자신들이 팔지 않은 타이어를 교환해 주잖아요. 사실 우리가 머리로는 다 알거든요. 그걸 가슴과 행동으로 표현해야 되는데 그렇지가 않아요.

 

처음 장사를 시작하셨을 때, 어떤 점이 가장 힘드셨어요?


자신과 타협하지 않는 것, 그게 제일 힘든 것 같아요. 새벽에 일어나야 되는데 더 자고 싶고, 청소해야 하는데 내일 하고 싶고, 추운데 나가기 싫고, 그런 거죠. 그런데 모든 원인은 나한테 있다고 하잖아요. 맞는 것 같아요. 나와 타협하지 않는 게 가장 힘들죠. ‘항상 웃을 거야’라고 생각해도 어떤 감정이 생길 때는 손님한테 웃지 않잖아요. 그것도 나와 타협한 거죠. 웃을 거라고 자신한테 약속해 놓고 지키지 못한 거니까요.

 

‘총각네 야채가게’는 에너지 넘치는 분위기로 유명하잖아요. 어떻게 항상 그런 상태를 유지하세요?


‘출근할 때는 너를 놓고 나와라’라고 해요. ‘너는 광대여야만 한다’고 하죠. 결혼 생활도 마찬가지잖아요. 퇴근해서 집에 오면, 기분 나쁜 일이 있었어도, 반갑게 맞아주는 연기를 해야죠. 그런 연기를 잘 안 하니까 싸우기도 하고요. 저는 회사 생활도 그렇고, 자영업자 분들도 마찬가지고, 연기가 조금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총각네 야채가게’도 편한 직장은 아닐 것 같아요(웃음). 그런데도 근속 기간이 평균 10년이 넘는다고요.


본사 식구들이 그렇고요. 매장의 점장님들은 다 10년 이상 되신 분들이에요. 비교하자면 그런 것 같아요. 삼성이 계속 대기업일 수 있는 이유는 좋은 인재들이 많이 오고, 그 중에 더 좋은 인재를 뽑기 때문이잖아요. ‘총각네 야채가게’는 열정 있는 사람들이 찾아오지만, 처음에 일을 시켜보면 일주일 만에 90%가 도태돼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뭔가를 배울 때는 A부터 Z까지 한꺼번에 제일 힘들게 배울 수 있는 곳에서 살아남으면 뭘 해도 될 것 같아요.

 

직원 관리의 노하우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노하우는 따로 없고요. 끝없이 교육을 시키는 것 같아요. 그들이 다른 생각을 갖지 못하게끔. 저는 조직은 교육이 제일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저희는 화요일, 토요일은 일 끝나고 밤 10시 반에 모여서 새벽 2시까지 교육을 받아요.

 

주로 어떤 교육이 이루어지나요?


테마를 정해서 진행하는데요. 요즘 같은 때에는 내년이 얼마 안 남았으니까, 2017년의 목표를 설정하는 것과 관련해서 교육을 받아요. 목표 설정이 되면 어떻게 이룰 것인지, 그 과정에서 어떤 요소들을 정리해야 되는지, 교육을 하기도 하고요.

 


자본금을 전부 투자하지 마세요


책에서 “진짜 이익과 가짜 이익을 구분할 줄 알아야”한다고 하셨어요. 진짜 이익과 가짜 이익은 어떤 개념인가요?


예를 들어서, 우리가 천만 원을 벌었어요. 그런데 인건비를 주고 나서 500만원이 남았단 말이에요. 이때 500만원은 진짜 남은 돈이 아니에요. 앞으로 들어갈 수 있는 비용을 일부분 떼어서 항상 적립해 놔야 되거든요. 감가상각이나 다른 요소들이 생기니까요. 그런데 우리는 이 500만원은 순수하게 번 돈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것들을 잘 정리해 놓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야 갑자기 목돈이 나가는 일이 없죠.

 

순이익에서 자신의 월급도 빼야 하는데, 미처 거기까지는 생각 못 하시는 분들도 계실 것 같아요.

 
보통 자영업자 분들이 500만원을 벌었다고 하면, 자기 월급을 포함해서 500만원인 경우가 많거든요. 자신의 월급도 책정을 해야 되는데, 그렇게 하는 분이 없어요. 만약 부부가 같이 가게에서 일한다면 각자 월급 300만 원씩, 600만 원을 고정비에 넣어야 돼요. 그런데 고정비에 포함을 시키지 않죠.

 

가게를 운영하다 보면 일정한 월급을 가져가기가 어렵잖아요.


그렇죠. 그 리스크를 줄이는 방법 중의 하나가 저축을 하는 거예요. 어떻게 하느냐 하면, 내 급여를 빼고 남은 금액이 300만 원이라면 그 중의 250만 원을 저축을 넣는 거예요. 그러면 사람이 어떻게 해서든 그 돈을 메꾸려고 하거든요. 그러니까 저축이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자본금을 전부 투자하지 마라”는 조언도 새겨들어야 할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수익이 나지 않는 기간 동안’ 버틸 수 있는 금액도 마련해 둬야겠죠.


6개월을 버틸 돈이 있어야 돼요. 임대료, 인건비 같이 한 달에 들어가는 고정비를 산정하고요. 매장의 고정비가 500만원이라면 6개월 동안 지출될 3천만 원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거죠. 그 기간 동안에 최저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돈도 있어야 되고요.

 

자영업자들에게 꼭 필요한 또 다른 요소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자영업자들이 아쉬운 게 스승이 없다는 거예요. 언제든지 물을 수 있는 그 분야의 스승이 있어야 돼요.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라는 말이 있잖아요. 장사가 안 되면 그 분야에서 제일 잘 되는 사람한테 물어야 하고, 자신의 가게에 와서 좀 봐 달라고 부탁해야 돼요. 그 사람과 친분이 없다면 대가를 지불해야겠죠. 그렇게 하더라도 불러와야죠.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고 스스로 이겨내려고 해요. 컨설턴트를 만나는 것도 좋아요. 그 분들도 훌륭하시죠. 그런데 제일 좋은 건, 진짜로 운용하는 사람한테 물어보는 거예요.

 

책에서 말씀하신 ‘3의 법칙’이 생각나네요. 장사를 하고 싶다면 그 분야의 고수 3명을 스승으로 삼으라고 하셨죠. 저자님의 경우는 어떠세요?


저는 26명의 스승이 있어요. 일적인 것, 종교적인 것, 영성적인 것, 옷 입는 것, 마인드 컨트롤 하는 것... 각 분야의 스승들이 계세요.

 

인맥 관리는 어떻게 하세요?


이동하는 동안에도 그 분이 생각나면 연락을 드리고, 그렇게 하는 것 같아요. 인맥 관리의 중요한 포인트는 상대방이 먼저 날 찾지 않는다는 거예요. 내가 먼저 계속 연락해야 되는 거죠. 저는 특히 후배들한테 전화를 많이 하거든요. 전화를 끊을 때는 항상 ‘형이 도와줄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전화 해’라고 말해요. 그 말 한 마디가 굉장히 고맙잖아요. 그런데 사람들이 그렇게 잘 안 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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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는 누가 하느냐가 중요해요


‘장사에는 목이 중요하다’는 사실은 다들 알고 계실 텐데요.


아뇨, 그렇지는 않아요. 목이 중요하기보다 누가 하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어떤 가게들은 뒷골목의 말도 안 되는 위치에 있는데 장사 잘 되잖아요. 그런 곳은 목이 좋지는 않거든요.

 

그렇다면 사업 아이템이 중요한 걸까요?


그건 장사를 안 해 본 사람이 하는 이야기예요. 누가 하느냐가 중요해요. 에너지를 끌어당기는 사람이 있어요.

 

입지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해볼게요. 목이 좋은 곳은 값이 비싸잖아요. 그래서 차선책으로 택하는 게, 유동 인구가 많은 지역 가운데 조금 후미진 곳이거든요. 그런데 『총각네 이영석의 장사 수업』에서는 ‘그러면 돈을 날릴 위험이 크다’고 해요.


유동 인구가 적어도 입지가 좋은 곳이 있어요. 그건 업종마다 달라요. 예를 들면, 야채 과일은 유동 인구가 많은 곳에서는 안 사요. 집에 가면서 사죠. 유동 인구가 많은 데에서 살 일은 없잖아요. 책 가게는 어떨까요? 유동 인구가 많은 곳에 가면 더 잘 될 거예요. 반대로 단팥죽 집은 유동 인구가 많은 곳보다는 그렇지 않은 곳에서 더 잘 될 수 있어요. 칼국수 집도 마찬가지고요. 업종마다 룰이 있는 거예요. 충동 구매를 해야 될 매장도 있고, 목적 구매를 해야 될 매장도 있는 거죠.

 

‘손님에게는 절대로 ‘NO’라고 말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거예요. 펩시 콜라를 파는 식당이 있잖아요. 손님이 ‘코카 콜라 없어요?’ 하고 물었을 때 ‘예, 저희는 펩시 콜라만 있습니다’ 이러면 망하는 가게예요. 그렇게 하지 않고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하고 편의점에 가서 사다 드리면서 ‘저희 매장에 없는 물건은 무료로 드리겠습니다’라고 하면 손님이 어떻겠어요? 감동 받잖아요.

 

요즘에는 종업원을 상대로 한 손님들의 ‘갑질’이 사회적 문제가 될 만큼, 무리한 요구를 하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총각네 야채가게’에서 그렇게 무례한 손님을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으세요?


무례한 손님이 있으면 ‘죄송하지만 저희 매장 물건과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고객님으로 인해서 같이 일하는 저희 팀원들이 힘들어하는 것 같은데, 다른 매장을 이용해주시면 좋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려요. 왕이 왕 답지 않으면 왕으로써 빨리 정리를 해야죠. 고객은 다 왕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그 사람으로 인해서 다른 사람들이 다 힘들어하거든요.

 

직원들에게 주인 의식을 강요하지 말라고 하신 건 어떤 의미인가요?


강요해도 주인이 안 돼요(웃음). 주인 의식 가지고 회사 다니세요? 안 그렇잖아요. 다 그래요. 쓸 데 없이 주인의식 강요할 필요 없어요. 회사가 정한 원칙만 지키라고 말하면 되는 거죠.

 

『총각네 이영석의 장사 수업』에서 홍상인은 장사를 하면서 ‘아드레날린이 분출되는 것 같은’ 짜릿함을 느낀다고 말해요. 저자님께서는 어떨 때 그런 느낌을 받으세요?


저는 새벽에 출근할 때요. 새벽 공기를 마시면 기분이 너무 좋아요. 다른 사람들이 술 마시고 집에 들어갈 때 나는 출근한다는 게, 기분이 굉장히 짜릿하잖아요.

 

책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 홍상인은 자신의 이름을 딴 ‘상인 거리’를 만들어요. 상인들과 문화인들이 모인 공간인데요. 저자님도 그런 곳을 만들고 싶으세요?


제 꿈은 아니고요. 그런 공간은 필요하다고 봐요. 홍대나 가로수길 같은 곳도 마찬가지인데, 누구나 알고 있는 브랜드보다는 개인 브랜드들이 모여서 문화의 거리를 많이 만들어야 할 것 같아요. 그래야 외국인들도 더 많이 올 거고요. 요즘에는 가로수길에 가 봐도 다 백화점에 있는 브랜드들이잖아요. 그러면 가로수길의 의미가 없는 거 아닌가 싶어요. 그래서 앞으로는 개인 브랜드들이 모여서 거리를 이루는, 그런 문화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총각네 이영석의 장사 수업이영석 저 | 다산라이프
장사 왕초보에서 500억 원 매출의 프랜차이즈 CEO가 된 이영석. 장사의 최전선에 서 있는 그는 ‘살아 있는 맨주먹 신화’라 불리는 대한민국 최고의 장사꾼이다. 그의 성공 이야기는 드라마와 뮤지컬로도 만들어지며 널리 알려졌지만, 디테일한 장사 성공 비결이 이처럼 흥미진진한 스토리로 공개된 건 『장사 수업』이 처음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목경, 록이든 메탈이든 블루스가 기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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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꼭 블루스만을 한 것은 아니다. 앨범을 들으면 컨트리도 산재해 있고 히트작 '부르지마'처럼 완연한 팝도 있지만 그럼에도 그가 블루스에 절개를 바쳤음은 분명하다. '블루스에의 헌신'이란 표현은 국내에서 '블루스 기타리스트' 김목경, 그에게만 주어지는 특전이다. 음반과 달리 공연에서는 그 타이틀에 매우 충실하다. “록이든 메탈을 하든 블루스가 바탕에 있어야 한다. 그 위에 자기가 하고 싶은 음악을 입히면 된다!”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그는 포크송이라 할 김광석의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의 원작자로 유명하다. 김광석도 김목경 노래를 듣고 훗날 리메이크를 기약했다. 인터뷰에서 그는 “사실 한 시간도 안 걸려 이 곡을 썼으며 김광석은 슬퍼서 술을 먹고 녹음했다”는 뒷얘기를 전했다.

 

돈 안 되는 블루스지만 그래도 거기서 그는 적잖은 영예를 얻었다. “내가 만일 블루스 말고 다른 걸 했으면 그렇게 오래 못 갔을 것”이라며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2003년 미국 멤피스의 '빌 스트리트 블루스 페스티벌'에 초청받아 공연했을 때를 꼽았다. 여기선 찬밥인데 거기서는 인정해준다는 이유였다. '노벨상 받은 책 하나도 안 읽었고 누가 뭘 썼는지도 모르는데, 그는 내게 직접적 영향을 줬으니까.'라며 밥 딜런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듣고 행복했다는 그는 인터뷰 내내 슬픈 블루스를 '즐겁게' 얘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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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공연은 어떤 무대에서 주로 하나요.


클럽이든 어디든 다 한다. 어제, 그제는 춘천에 'CC Blues' 페스티벌에 다녀왔다. 춘천 상상마당에서 주최하고 일 년에 한 번씩 하는 공연인데, 올해가 4회째다. 무대든 객석이든 전부 블루스 애호가들이다. 그제는 세 팀이나 출연했다.

 

혹시 국내 지역으로 볼 때 여기는 블루스 인프라가 있구나 하는 곳이 있나요.


없다. 지금 춘천 CC 블루스를 매년 하고 있고, 경북 영주에서는 블루스 페스티벌을 올해 2회째 했다. 내가 음악감독이다. 되게 재밌는 건, 그런 일들이 서울 같은 대도시에선 전혀 안 일어나고 지방에서 일어난다. 그 사람들이 특별히 블루스를 좋아해서 하는 건 아닐꺼다. 더구나 영주는 유교적인 관념이 강한 덴데. 근데 영주 시장님이 적극적으로 후원한다. (웃음)

 

블루스는 토속적인 측면도 있지만 통상적으로 도시에서 소화해주지 않나요. 블루스 팬들이 서울에 많을 텐데 영주에서 하는 게 아이러니라는 얘기인가요?


그렇다. 이렇게 지방에서 한다는 게 물론 좋은 일이긴 하지만 뭔가 잘못 되어서 좋게 된 것이다.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서울에서는 그게 왜 안 되는지... 솔직히 우리에겐 블루스 감성이 있다고 본다. 아리랑과 블루스가 뭐 다른가. 블루스가 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한국 사람들이 좋아할 장르다. 근데 미디어가 너무 역할을 못한다고 본다. 이미 늦었다. 1960-1970년대에 그 기본이 갖춰졌어야 한다.

 

아이돌, 힙합, EDM 아닌 블루스를 하면 팬들은 덜 모이는 게 당연하지요. 진골 팬밖에 모이지 않아요.


그거보다 더 중요한 게, 우리는 한국 전쟁 끝나고 음악을 잘못 받아들인 거다. 그때는 대중음악이란 게 없었으니까 어쩔 수 없이 미국 음악 얘기를 할 수밖에 없는데, 반면 일본은 제대로 들어왔다. 그래서 일본도 마찬가지로 젊은 층에서는 댄스도 좋아하고 힙합도 좋아하고 하지만 한국엔 없는 인프라가 있다. 일본은 어디가나 블루스 팬이 꼭 존재한다.

 

지금도 블루스 기타리스트들이 공연하면 일본을 꼭 거치지요. 본국에서 소화 못하는 걸 일본이 소화해준다고 할까요.


맞다. 저도 1년에 한 번씩 가서 한다. (주로 어디냐고 묻자) 도쿄다. '지로키치'라는 블루스 클럽에서 주로 한다. 1976년에 오픈한 블루스 전문 클럽인데 굉장히 오래되고 유명한 곳이다. 요즘은 그렇지 않겠지만 예전엔 일본에서 공연하는 해외 블루스 아티스트들이 무조건 이 클럽을 거쳐 갔다. 상당히 유명하다.

 

데뷔 이래 공식적으로 음악 한 것만 30년이 넘었습니다. 물론 꼭 블루스만 했던 건 아니지만, 블루스를 30년간 해왔는데 감회가 어떤가요.


럭키 맨? (웃음) (운이 좋았다는 거냐고 묻자) 맞다. 내가 만일 블루스 말고 다른 걸 했으면 그렇게 오래 못 갔을 것이다. 돈도 못 벌고 인구도 많지 않은 나라에서 왜 블루스를 하느냐. 일단 내가 좋다. 이걸 하면 굉장히 재밌다. 그건 어떻게 보면 늙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영예의 순간으로 가봐야겠습니다. 기타 제작사 펜더(Fender)가 커스텀 모델을 헌정한 것이 언제였나요.


2013년 11월이다. 신대철('시나위' 기타리스트)하고 김도균('백두산' 기타리스트)하고 같이 받았다. 그 전에 펜더가 트리뷰트 해준 국내 뮤지션 1호는 신중현 선생이다. 내가 계속 펜더만 쳤으니까 그런데다가 음악이 일단 록의 기원인 블루스니까 헌정해준 것으로 안다. 그 사람들도 다 체크를 했을 것이다. 요새는 유튜브도 있으니까. 그 이유일 것이다.

 

그곳에서 라이브도 했죠


원래는 연주를 하는 걸로 알았는데 어떤 이유였는지 결국 못했다. 대신 LA에 있는 커스텀 샵(Custom shop) 공장에 가면 연주를 할 수 있는 홀이 있다. 거기서 했다.

 

당연 블루스를 했겠죠?


물론. 셋(김목경, 김도균, 신대철)이 같이 할 수 있는 걸로. 그 커스텀 샵 안에 7명의 마스터 빌더가 있다. 기타를 만드는 사람들. 그 사람들은 대량생산은 안하고 주문 생산만 한다. 에릭 클랩튼 기타 만드는 사람, 뭐 이런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 만나서 방을 각각 다 돌아다니면서 인터뷰도 하고 평소에 궁금했던 것도 물어봤다. “한국 사람들은 납땜까지 신경 쓰더라. 납의 질 같은.” 그런 걸 물어보니까 웃기는 소리 하지 말라더라. (웃음) 깜짝 놀랐다. 별로 상관이 없다기에! 그럼 뭐가 중요하냐고 하니까 답하는 게 다 다르긴 한데, 에릭 클랩튼 기타 만드는 사람은 '줄의 두께'가 중요하다고 하더라. 결국 그게 울림을 만드니까.

 

깁슨과 펜더를 취향 수준에서 비교한다면요?


내가 펜더를 선택한 이유는 나는 (무대에서) 노래를 해야 한다. 노래하는 순간에는 기타의 볼륨을 줄여야 한다. 근데 또 리듬도 쳐야하고, 또 솔로가 오면 다시 볼륨을 올려야하고. 펜더를 오래 치다보니까 이게 손에 익숙해졌다. 깁슨은 조절 레버가 밑으로 내려가 있다. 그게 어렵다. 깁슨은 불편하다. 물론 성격 탓도 있겠지만..

 

2003년에 블루스의 고장 멤피스의 <빌 스트리트 페스티벌(Beale Street Music Festival)>에 초청 받기도 했습니다. 어떤 페스티벌인지 소개해주세요.


'멤피스 인 메이(Memphis in May)'라는 5월 축제가 있다. 그 조직위 안에 빌 스트리트 뮤직 페스티벌이 있다. 3일간 하는데 약 13만 이상이 오는 매머드 급 축제다. 톰 리 파크(Tom Lee Park)라는 미시시피 강 옆에 굉장히 큰 공원이 있다. 거기서 하고 스테이지는 3개로 이루어져있는데 각각 블루스, 록, 가스펠 전문이다. 당시 난 3일 공연에 모두 올랐는데, 백업하는 미국인들과 맞춰봐야 하니 1주일 전에 갔었다. 블라인드 미시시피 모리스(Blind Mississippi Morris)라는 밴드가 있다. 무지하게 유명한 애들이다. 블라인드 미시시피 모리스는 사람 이름이고 하모니카를 부는 장님인데, 블루스 하모니카로는 미국 3대에 들어간다. 정말 잘한다. 걔들이 백킹 해주니까 리허설 한 두 번했나. 두 번 하고 무대에 올랐다. 쇼는 한 시간 정도. 한 시간짜리를 3일 동안 3번 하는 거다.

 

최소한 12, 13곡은 했겠네요. 놀라지 않던가요. 동양인이 블루스를 하니까요.


그런 건 있더라. 공연 리뷰도 좋게 나왔다. 첫 날 딱 했는데 사람들이 좋아하더라. (웃음) 미국 애들이 못하면 바로 야유하지 않나. 잘하면 또 반응이 바로 오고.

 

음반 가져가면 미국 관객들이 많이 샀을 텐데요.


그러게. 음반을 안 가져갔다. (웃음) 거기 있는 동안 텔레비전 인터뷰를 2번, 라디오 인터뷰를 한번인가 했다. 중요한건 내가 거기 가기 전에 현지 라디오에서 '한국에서 목경 킴이 오는데' 하면서 내 음악을 계속 틀어줬다는 것이다. 뭘 틀어줬냐면 1집에 있는 'Mr. Clapton'. 거기 가니까 이미 사람들이 날 알더라. 멤피

스가 그리 큰 동네는 아니다. 그래서 길거리 다니면 사람들이 알아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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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Mr. Clapton'을 창작한 의도가 궁금합니다. 어릴 적부터 우상이기 때문이었나요.


아니다. 노래는 1980년대 중반에 만들었다. 오래 전에 만들어둔 곡이고 녹음은 1988년도인가에 했다. 그 당시만 해도 에릭 클랩튼은 사실 예전의 전성기 같지 않았다. 히트작도 없었고 내리막길이었다. 가사 내용도 그렇다. '사람들이 이제 너 갔다고 하는데, 이제 내가 할게.' 뭐 이런 내용이다. 사실은 반대다. (웃음) 물론 에릭 클랩튼이 어렸을 때부터 영향은 많이 줬다. 그건 부인 할 수 없다.

 

노래 초반에 아주 명징한 기타 사운드를 잡아 놓고 들어가는데 그거 깁슨인가요?


아니다 펜더다. 그 앨범은 전부 펜더로 녹음했다.

 

펜더에서 그렇게 예쁜 소리가 나오나요?


그건 아무 이펙터 없이 그대로 앰프에서 나오는 소리다.

 

처음 그 소리를 듣고는 참 예쁘다, 어떻게 뽑았나 했습니다.


내가 이런 얘기할 자격 있나 싶지만, 내가 요즘 젊은 애들, 기타 치는 애들한테 사람들 많은 공연무대에서 '이펙터를 쓰지 않고 한번 쳐보라'고 한다. 그럼 얘들이 무지하게 당황하는데, 내 경험상 그 순간에 또 하나를 알아차린다. '소리가 이렇게 좋네.' 이런 거. 단지 자기 플레이에 익숙하지 않을 뿐이다. 연습 할 때도 가능하면 클린 톤으로. 대신 소리가 밖으로 나가야 하니 볼륨을 좀 키워야 할 것이다. 그러면 분명히 (그 소리를) 발견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김목경 기타의 핵심은 무엇이라고 생각 하시나요. '내 기타 사운드는 이거다.'

 

'심플'이다. 난 지금도 이펙터를 하나밖에 안 쓴다. 작은 것 하나. 밟으면 켜지고 끄면 꺼지는 것. 그거 두 소리면 충분하다. 솔로 할 때는 밟고. 아니면 기타 볼륨으로 조절한다. 기타 볼륨을 줄이면 밟았을지라도 생소리가 난다. 거기서 볼륨만 올리면 약간 찌그러진 소리가 나고. 가장 아름다운 소리는 앰프에서 직접 나오는 그 소리다. 기타 대 앰프가 1대 1로 붙었을 때가 제일 좋다. 거기 뭐가 끼기 시작하면 복잡해진다. 점점 깎인다.

 

그런 면에서 어렸을 때 특별히 좋았던 기타 연주가 있다면. 참고로 저는 어려서는 리치 블랙모어, 커서는 '다이어 스트레이츠'의 마크 노플러(Mark Knopfler) 였습니다.


마크 노플러 좋다. 그 사람도 그 '과'다. 그런 소리를 좋아하는 사람. 그 매력을 알고 있는 거다. 앰프에서 직접 나오는 소리가 얼마나 아름다운 소린지. 생각해보니 나도 마크 노플러 같은데. (웃음)

 

김목경 선생과 마크 노플러 소리가 같은 계통이었나요. 물론 그가 블루스에 헌신한 기타리스트는 아니지만. 공통점이 뭔가 했더니 이펙터에 있었군요.


홍대에 있는 젊은 친구들이 해보긴 해 봤을 텐데, 안 끌리고 자신이 없어서 그럴 것이다. 쳐본 사람은 안다. 왜냐면 이펙터를 쓰면 음의 길이가 길어지지 않나. 그 찌그러진 소리가. 그럼 서스테인이 오래 가니 심리적으로 안정이 되는 거다. 근데 그건 한 순간에 바뀐다. 아름다운 소리를 한번 경험하고 나서는 이게 고운 소리구나 하는 거를 알게 된다.

 

기타를 잡게 된 계기는요.


기타는 중학교 때부터 쳤다. 블루스는 고등학교 때부터다. '빽판' 막 사갖고 “너 이거 있어? 나는 없어.” 이거 할 때. 그 때 청계천에서 뭔지도 모르고 그림이 너무 멋있어서 2장짜리 컴필레이션 앨범을 하나 샀다. 기타 치는 사람들이 있고 그랬는데 그게 <블루스 컴필레이션>이었다. 애들이 없는 거 샀다고 좋아서 집에 와서 그걸 듣는데, 전에 내가 그렇게 어렵게 따려고 했던 레드 제플린이나 롤링 스톤스 이런 비밀이 여기 다 있더라. 쭉 들어보니 다 비슷한 음악인데 기타의 비밀이 여기 있었다. 한마디로 '스케일(scale)'을 발견한 거다. 펜타토닉 스케일. '백인 애들이 이거 다 갖고서 쓴 거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블루스 앨범들 다 사고 에릭 클랩튼도 사고 그랬다. '에릭 클랩튼 이 사람은 프레디 킹(Freddie King) 그대로 베꼈구나.' 이런 걸 그때 알았다.

 

펜타토닉 스케일 그 맛은 어디서 나오는 건가요. 역시 손맛인가요.


손맛과 그 사람의 정신상태, 사상. 왜냐면 그걸 이용해서 나만의 그림을 그려야 하니까. 그림도 스케치하고 데생하고 채색하듯이 이거도 기승전결이 있어야 한다. 기승전결이 있는 기타리스트가 흔히 '참 맛있게 잘 친다.' 하는 기타리스트다.

 

런던 유학이 큰 도움이 됐을 것 같습니다.


런던은 1984년에 가서 1989년까지 있다가 1990년에 들어왔다. 내게는 절대적으로 중요한 시기였다. 난 거기서 진짜 블루스를 알게 되었다. 100%다. 보고 듣는 게 '다 배우는' 거였다. 게네들하고 음악을 하면서. 건반 치는 애가 리더였는데 걔가 나한테 이렇게 한번 쳐보라고 스케일을 쳐준다. 그럼 내가 그걸 따라하고 그랬다. 걔들이 그렇게 유명하지 않았는데도 블루스를 속속 다 알고 있더라. 한마디로 도사였다. 그러니 배울게 얼마나 많았겠나. 이거 들어봐라 저거 들어봐라. “이거 어떻게 친 거야?” 하면 자기가 쳐준다. 그걸 그대로 다 따라하고 배우면서 흥분된 시절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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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리는 1집에서 'Mr. Clapton'보다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에 끌렸습니다. 당시 라디오 PD들이 그걸 일제히 다 틀었으니까요. 그 노래도 런던에서 썼나요?


그때가 런던에서 한 5년차 됐을 때다. 그동안 한국에 한 번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쯤 되니 친구도 보고 싶고 집에도 오고 싶더라. 약간 향수병에 걸려있을 때였다. 당시 내가 살던 방이 2층에 있었는데, 방에서 건너편 집 뜰이 보였다. 그 집에 70대쯤 된 영국인 부부가 살고 있었다. 그 집 아들이 한 달에 한 번씩 손자를 데리고 밥을 먹으러 왔었다. 그러다가 밤 10시 정도 되면 집으로 돌아가는데, 그때 노부부가 뜰에서 손을 잡고 안녕 해주고 돌아가는 뒷모습을 몇 번 봤다. 사실 그 전까지는 한국 사람과 서양 사람의 문화적 공통점이 전혀 없다고, 100% 다르다고 생각했다. 근데 그때 그걸 딱 보는 순간, 그래도 몇 개는 공통점이 있구나 싶어서 '일단 이 사람들이 없는 것부터 써보자.' 하고 썼다. 거기 막내아들 대학 시험 이런 건 전혀 없다. 부모가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이런 거. (웃음)

 

가사에서 아내가 먼저 죽잖아요. 비극적으로(?) 끝맺음을 한 이유가 있나요.


예를 하나씩 들어가며 쓰다가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썼는데, 엔딩을 어떻게 할까 고민이 되더라. 그러다 '한 명이 죽어야 한다.' 하고 그렇게 만들었다.

 

그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마지막에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하는데 왜 이렇게 눈물이 나던지. 그 문장은 정말 명문인 것 같습니다. 김광석이 잘 부르기도 했지만요.


광석이가 잘 불렀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게 말해주는 것 아닌가. 근데 그거 사실 술 먹고 부른 거다. 지금의 가로수길 쯤 인데, 압구정동에 있는 지하 녹음실에서 했다. “형 나 오늘 녹음인데 오세요.” 해서 갔더니 벌써 들어가기 전에 족발에다가 소주 한잔 하고 있었다. 나중에 왜 술 먹고 했냐고 했더니 “이 노래는 술 먹고 해야 한다”고 하더라. “너무 슬프니까, 이 노래를 이어 나가기 힘들 것 같다”고 그러면서. 광석이 버전도 베스트지만 그 노래 부른 사람 중에는 유석이 형(서유석) 버전이 제일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사실 그 노래는 거짓말 안하고 한 시간도 안 되어서 쓴 거다. (명곡은 의외로 산고를 거친 게 별로 없다고 했더니) 더 웃긴 건 내가 녹음 할 때 영국 애들이랑 하지 않았나. 다른 곡 7곡은 영어 가사도 있고 컨트리도 있으니 다 이해를 하더라. 근데 이거만 이해를 못하고 밍숭맹숭했다. (웃음)

 

느낌이 없으니까요. 그건 한국 사람만 알지 않을까요.


그래서 일부러 앨범 맨 아래 8번에 깔았다.

 

김광석은 그때 당시에 왜 이걸 부르려고 했던 건가요. 1995년 <다시 부르기>앨범에 수록했는데, 그때 들으면서도 '이거 노래 잘 골랐다!' 했습니다.


광석이가 그 노래를 부르기 전에도 내 오리지널 버전이 라디오에 많이 나왔다. 광석이도 라디오에서 듣고 좋아해서, 특히 당시 자기가 진행하던 불교 방송의 라디오 프로그램(‘밤의 창가에서’)에서 많이 틀었던 것 같다. 어느 날 부르겠다고 하길래 “그래 불러라.” 했다.

 

사실 그 노래는 스토리 송으로 코드는 지극히 단순합니다. 메시지를 위해 음악적 부담은 줄인 것 아닌가요.


그런 점도 있다. 그리고 어렸을 때 윤형주, 김세환, 김민기 이런 포크 송 했던 사람들 음악을 오랫동안 들어왔기 때문에 그런 감이 몸에 배어있다. 그 감각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조금 다른 얘기지만 이번 밥 딜런의 노벨 문학상 수상은 어땠나요.


좋다. 행복했다. 내가 노벨상 받은 책 하나도 안 읽었고 누가 뭘 썼는지도 모르는데, 밥 딜런은 내게 직접적 영향을 줬으니까.

 

앨범 얘기 돌아가서, 지금까지 총 6집을 냈습니다. 과작(寡作)입니다.


라이브 음반 2장까지 하면 총 8장이다.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만들 때 고통이 있었던 앨범은 하나도 없다는 얘길 하고 싶다. 해피했다. 뮤지션들은 그거 할 때가 제일 재밌다. 그 다음에 닥쳐 올 고통을 생각하면서도 일단 내가 즐겨야 하니까. 그게 우선이다. 내가 창작을 하는데 있어서 재밌게 만들어야지. 나중에는 이런 사실을 발견했다. '뒤에 따르는 고통'. 으으….

 

그때부터는 산업의 영역이니까요.


그렇다. 그때 어떤 생각이 드냐면 '내가 이렇게 열심히 준비하고 만드는데 방송에 안 나오면 어떡하지', '말짱 황 아니야.'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 지금은 그러든 말든 상관없다. 아무튼 당시에는 그런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서 4집부터 '부르지마' 같은 지극히 대중적인 곡이 나오기 시작했다.

 

지치지 않던가요.


지쳐도 뭔가 만들려는 노력 속에 시간을 보내니까. 녹음 할 때는 내 방식이 있다. 우선 멤버들 다 데리고 가서 내가 할 곡의 뼈대를 다 만든다. 그 다음에 나의 문제다. 노래와 기타를 입혀야 하니까. 그런 식으로 하다 보니까 돈 들고 이런 거는 나한테 다 달려있다. 내가 제작을 하기 때문에. (그는 데뷔 때부터 매니지먼트 없이 혼자 했다고 덧붙였다)

 

대단합니다.


난 그걸 '너무너무' 후회한다. (웃음) 그래서 지금 젊은 친구, 신인이 그렇게 한다고 하면 절대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한다. “네가 1-2년 손해를 보더라도 기획사를 들어가서 해라. 그래야 나처럼 고생 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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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의 앨범 중에서 대중들은 1집을 가장 많이 아는 것 같고 4집의 '부르지마'는 전형적인 팝 스타일인데, 가장 자랑스러운 앨범은 어떤 건가요.


나는 다 좋지만 굳이 얘기하자면 내가 제일 감성이나 머리가 반짝반짝 할 때 만들었던 1집이다. 그땐 딱 자려고 누우면 멜로디가 떠올라서 쓰고 그랬다. 요즘은 그런 게 없다. (웃음)

 

4집의 '부르지마'는 어떤 곡인가요.


그거도 무지 빨리 만든 곡이다. 사실 의도는 컨트리였다. 근데 곡이 마이너다 보니 바이올린 입히고 해도 컨트리 맛이 안 살지 않는 거다. 의도한대로 그 맛이 잘 나오진 않았다. 결과는 뽕 비슷하게 가요 풍으로 나왔다. 그걸 사람들이 좋아하더라.

 

5집에서는 '거봐 기타 치지 말랬잖아'의 의도가 궁금합니다. 고달픔인지요.


전혀 아니다. 오히려 코미디처럼 희화화 한거다. 혹자는 “돈도 못 벌고...”하는데 절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웃기게 만들려고 한 거다. 엄마가 어려서 기타치는 거 보고 맨날 하던 소리가 기타치지 말라는 거였다. 너 뭐가 되려고 기타 치냐고. 그게 나이가 드니까 자꾸 그 말이 생각이 나더라. 엄마는 이제 돌아가셨는데. 그래서 그렇게 썼다. 물론 염려는 했다. 사람들이 이 가사를 보면 분명히 얼마나 고달프면 그럴까 생각할 텐데, 싶은 거다. 사실 난 웃기려고 쓴 건데. (웃음)

 

3집의 '여의도 우먼'을 쓸 때의 배경은요.


3집은 전체적인 콘셉트가 있었다. '앨범 자체를 블루지(bluesy)하게 가볼까' 하고 만든 거다. 앨범 전체를 다. 그때 '외로운 방랑자'도 있었고.

 

'외로운 방랑자'? 혹시 그때 실연을 경험하신 건가요.


(웃음) 외로운 방랑자는 연주곡인데 그 노래가 어떻게 나왔냐면, 한국에 와서 앨범을 3장 째 만들었는데 내가 정말 '외로운 방랑자'인거다. 돈도 안 되지, 어떻게 해야 하나, 다시 돌아가야 하나, 영국에 가서 맨날 블루스만 해야 하나. 그런 마음가짐이었다. 그래서 제목을 외로운 방랑자라고. 내 얘기다. 우울하지 않나. 가장 김목경적인 앨범이다. 누가 물어보면 그렇게 답할 것이다.

 

이건 사람들이 잘 모르는데 걸작이다 싶은 곡이 있다면요?


5집의 '멕시코로 가는 길'. 내가 좋아하기도 하고 한국 사람들도 좋아할 것 같아서.

 

5집이 2002년에 나오고 6집이 2008년에 나왔으니 오래 쉬고 있는 편입니다. 물론 중간에 라이브가 있긴 했지만. 앞으로 나올 새 앨범의 콘셉트는 잡았는지요.


현재 뼈대는 다 만들어 놨다. 처음으로 리메이크 곡을 수록할 예정이다. 무당의 '멈추지 말아요', 대수 형(한대수)의 '하룻밤', 이장희 '당신을 처음 본 순간' 3곡을 리메이크 한다. 평소에 좋아하는 곡들이니까. 별 의미는 없다. (웃음)

 

앨범의 성격은 정통 블루스인가요.


3곡의 커버를 포함해서 기존 해오던 방식으로 8곡을 수록했다. 창작곡은 5곡이고 7집으로 명명될 것이다. 또 하나를 준비하고 있는데 그건 완전 블루스 커버 음반이다. 블루스 명곡들로만. 10여 년 전인가, 일본에서 “라이브는 블루스인데 음반은 왜 블루스를 안 냈냐.”는 얘기를 들었다. 설명을 해줘야 하는데 창피했다. 벌거벗는 것 아닌가. '한국은 블루스 하면 돈 안 돼! 그냥 망해!!' 이렇게 얘기를 할 수는 없는 거다. 잘 설명을 해주긴 해줬지만. 근데 이제는 상관없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 블루스 앨범 그걸 꼭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었다.

 

어떤 곡들이 들어가나요.


지금 뼈대는 다 만들어 놨다. 머디 워터스의 'Rollin' and tumblin'', 알버트 콜린스(Albert Collins)의 'Honey hush', 알버트 킹(Albert King)의 'The sky is crying', 로버트 존슨(Robert Johnson)의 'Dust my broom' 비롯해서 한 8곡정도. 그건 빨리 된다. 왜냐면 무대에서 항상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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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김목경 선생을 잡은 블루스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혼(魂)인가요.


뭐랄까... 무형의 소리를 말로 하기가 참 그렇다. (웃음) 블루스라는 게 기타가 반을 얘기 하지 않나. 노래가 있으면 가사가 반이고 나머진 기타. 가사가 못 채운 부분을 기타가 말하는데, 그게 재밌는 거다. 기타로 사람들을 설득 시켜야 하고 사람들을 설득하기 전에 그 소리에 내 자신이 설득 당해야 한다. 그럼 그거 성공한 거다. 무대 밑에서 보는 사람들도 그걸 느낀다.

 

그럼 솔로에서 가장 맛을 잘 내는 사람은 누구라고 보세요.


비비킹(B. B. King)이다. 처음에 들으면 굉장히 단조롭다. '원 노트 맨(One-note man)' 이라고 하지 않나. 별로 벤딩도 없다. 근데 거기 한 음 '띵'에는 그 사람의 모든 열정이 들어있다. 물론 다른 사람도 '띵'은 된다. 이게 무슨 이야기냐면, 피카소 찍은 점 하나를 천억이라고 한들, 초등학생이 점 하나 찍고 피카소라고 하면 천억을 주겠나. 비슷한 얘기다. 비비킹 얘기가 나와서 말이지만, 사실 블루스의 매력은 이거다. 한 기자가 어느 날 비비킹에게 “아니 당신은 한 음으로 평생을 사나. 재미없지 않나.” 라고 하니 비비킹이 “상대방하고 대화할 때 처음부터 막 감정이 고조 되어서 얘기하면 그 사람 절대 설득 못 시킨다. 그러나 네가 하고 싶은 말 하나에 중점을 둬서 딱 얘기했을 때, 한마디를 하더라도 그때 그 사람을 설득 시킬 수 있다.” 고 했다고 한다. 그 말이 맞다. 그게 블루스다.

 

근데 그거 아무나 못하는 거잖아요. 한 번에 나올 수가 없죠. (웃음)


당연히 그건 맞는데. (웃음) 근데 사실 '원 노트 맨'이라고 해서 딱 한 음만 계속 치는 건 아니다. 몇 음을 치는데 사람 혼을 울리는 톤을 딱 내는 거다. 그 말에 현혹 되어서 기타리스트가 음을 조금만 치는 건 좋은 게 아니다. 그런 사실을 인지를 하고 자기 색깔을 입혀 나가야 하는 거지. 블루스가 재밌는 건 그런 것 같다. 내 그림을 그리는 것. 내 스토리를 얘기해주는 건데 메탈 하는 사람들처럼 과격하게 하는 사람도 있고 블루스같이 몇 음 많이 안 하면서 감정을 실어서 하는 사람도 있고. 블루스 뮤지션이 인상 안 쓰고 기타 치면 그거 블루스 아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는요.


2003년이다. 멤피스에서 초청했을 때. (그렇게 좋았나요 하니까) 여기선 '개털'인데 거기서 인정해주니까. 퍼포먼스 비용도 줬다. 비행기, 호텔, 음식 다 대줬다. 자비 하나도 들지 않았다.

 

후배 블루스 밴드들과 교류는 하는지요.


영주 페스티벌 섭외를 내가 한다. 그래서 나도 찾아봤는데 그때 발견한 팀들이 몇 있다. '부기 몬스터'도 있고, '소울 트레인'이라고 있다. 브라스까지 있는데, 그 친구들 음악 좋다. 평소 홍대에서 못 듣던 스타일이다. 병주(윤병주)네 '로다운30'도 괜찮고. (대선배로서 한마디 부탁했더니) 내 밥도 못 찾아 먹는데.. (웃음) 기타는 일단 블루스다. 블루스가 바탕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위에 자기가 하고 싶은 음악을 입히면 된다. 록이든 메탈을 하든. 그러나 블루스가 베이스로 되어 있는 뮤지션이 되어야지 외국에서 인정을 받는다.

 

지금까지 내 인생을 결정한 음반이 있다면요.


아까 말한 청계천에서 산 빽판 2장짜리. 타이틀이 <블루스 기타리스트 컴필레이션(Blues Guitarists Compilation)>인가 그럴 거다. 거기 비 비 킹, 알버트 킹 다 있다. 그거다. 그거 때문에 블루스를 하게 되었으니까.

 

사진 : 이기찬
인터뷰 : 임진모, 정민재
정리 : 임진모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신장섭 “경제민주화는 잘못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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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중과의 대화』를 통해 “대우그룹의 해체 과정은 너무 일방적인 시각이 우리 사회를 지배해왔던 것 같다”며 문제를 제기했던 신장섭 교수가 새로운 책을 출간했다. 『경제민주화…일그러진 시대의 화두』다. 저자는 경제민주화가 “한국 경제와 사회를 위해 건설적으로 내놓는 대안도 없이 사회를 분열시키고만 있을 뿐”이라며 “‘경제양극화’를 오히려 악화시킬 가능성도 높다”고 진단한다. 이에 많은 지면을 할애해 미국의 경제민주화 실패 사례를 소개하는 한편, 투자ㆍ고용ㆍ분배의 패러다임을 바꿀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매일경제신문> 논설위원을 역임한 바 있는 신장섭 교수는 1999년 외환위기 이후 IMF 처방 및 구조조정에 대해 비판적인 글을 쓰며 대안을 모색해 왔다. 1999년부터 싱가폴국립대학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지은 책으로 『삼성반도체 세계 일등 비결의 해부』, 『한국경제 패러다임을 바꿔라』, 『금융전쟁 : 한국경제의 기화와 위험』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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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민주화는 잘못됐다


지금 한국 경제가 안고 있는 굵직한 문제들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제일 큰 건 성장 활력 둔화죠. 성장이 둔화되면 아귀다툼이 벌어지거든요. 파이가 커져야 나눠먹을 게 생기는데, 있는 데에서 서로 나눠 먹으려면 갈등이 더 심해집니다. 그 다음이 분배의 문제예요. 똑같이 나누는 것이 아니라 정당한 분배죠. 그런데 지금 (한국의 경제 문제가) 많이 과장되어 있는데, 그렇다 하더라도 과거보다는 안 좋아졌다고 생각합니다. 성장 활력 둔화와 분배의 문제가 겹치니까 사람들의 상대적 박탈감이 심해지는 거죠. 사실 이 책도 ‘경제 활력 회복과 분배 문제를 개선을 할 수 있는 대안’을 찾는 과정에서 나온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의 근본 원인이 IMF 당시 시행됐던 경제민주화 정책에 있다고 보세요?


그것도 하나이고요. IMF 체제 이전의 한국 시스템이 장단점이 같이 있거든요. 더 나은 미래를 위한다면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줄이는 쪽으로 해야 하는데, 단점을 없앤 게 아니라 장점을 많이 없앴어요. 그러다 보니까 경제 활력이 떨어졌고, 그 이후에 분배도 더 나빠졌습니다. 경제민주화라고 하는 것이 특히 재벌 개혁으로 갔다고 보는데, 저는 이것이 개혁의 목표도 달성 못했고 개혁의 방향 자체도 잘못됐다고 보는 거죠. IMF 이야기를 하기 전에 저는 경제민주화가 크게 세 가지-개념 설정, 원인 분석, 대안 제시에서 다 잘못됐다고 생각해요.

 

개념 설정이 잘못됐다고 판단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경제민주화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려면 지금이 경제 독재여야 하잖아요. 그런데 경제민주화를 이야기하는 사람들한테 ‘지금이 정말 경제 독재냐’고 물었을 때 그렇다고 딱 부러지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요. 처음 경제민주화가 나왔을 때는 일종의 자유화 개념이었거든요. 그런데 그건 1990년대 내내 진행됐고 IMF를 지나면서 거의 미국 수준으로까지 가버렸어요. 그러니까 정부의 독재를 이야기할 만한 상황은 아니죠. 유일하게 남아있는 게 재벌의 독재라고 이야기되는 것들인데, 독재라는 이야기를 하려면 재벌이 사회 전체를 쥐고 흔들어야 되거든요. 그런데 지금 실상을 보면 그렇지 않잖아요.

 

교수님께서 보시기에 ‘실상’은 어떤가요?


케이스포츠 재단, 미르 재단을 설립하면서 (재벌들이) 돈을 많이 뜯겼고, 창조경제센터 하면서 몇 천 억씩 들어갔는데, 쥐고 흔든다기보다는 오히려 열심히 벌어놓은 돈을 뜯기는 경제 주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죠. 그게 국내에서만 뜯기는 게 아니라 외국의 해지펀드들까지 뜯어가려고 해요. 얼마 전에 삼성전자 같은 경우는 엘리엇이 지주회사로 전환을 하면서 30조 원 특별 배당을 하라고, 거의 협박에 가까운 요구를 했잖아요. 그리고 지금 ‘갤노트7’ 사태를 보더라도, 정말 독재를 한다면 무시하고 지나가죠. 그런데 완전히 소비자는 왕이라고 하고 수습을 하잖아요. 이런 재벌들을 보고 어떻게 독재의 주체라고 이야기를 하느냐는 거죠. 그래서 저는 개념이 잘못됐다고 봅니다.

 

경제민주화 정책이 문제의 원인도 잘못 분석했다고 하셨어요.


재벌 체제가 분배 문제를 나쁘게 한다고 말할 수 없거든요. 재벌 체제라는 건 1970년대 이후로 지금까지 계속 진행되고 있는데, 재벌 체제가 이루어지는 기간에 경제발전에 성공을 했지만 분배도 꽤 괜찮은 편이었어요. 1990년대에 들어서 재벌 체제가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을 정도로 성공했을 때, 오히려 분배가 더 좋아졌어요. 왜냐하면 이익보다 더 많이, 돈까지 빌려서 또 투자를 했거든요. 그러니까 고용이 늘어나고 임금이 올라가고 분배가 더 좋아졌단 말이에요. 분배가 나빠지기 시작한 건 1997년 외환위기 이후에 구조조정을 하면서예요. 그렇다면 그동안 쭉 있었던 재벌 체제에서 원인을 찾지 말고, 1997년 이후에 어떤 변화가 있었기에 분배가 나빠졌는지를 봐야죠. 그런데 원인을 무조건 재벌 체제에서 찾았으니까 원인이 잘못된 거죠.

 

제대로 된 대안도 내놓지 못했다고 하셨는데, 그 결과는 어땠나요?


지금 대안이라고 내놓은 것이 ‘재벌 주주들의 권한을 축소시키는 것이 경제민주화의 수단’이라는 거거든요. 그런데 정치판도 그렇지만 기업도 마찬가지로 권력 공백을 만들면 누군가 그 공백을 메웁니다. 공백을 메운 주체는 기관투자자예요. 그런데 기관투자자들은 생산의 주체가 아니에요. 가능한 많이 빼가려고 하는 사람들이거든요. 이 사람들이 전체를 좌지우지하게 된 게 미국이에요. 미국이 그렇게 된 다음에 어떤 일이 벌어졌느냐 하면, 어떻게 보면 주주들 간의 민주주의가 제일 발달됐다고 할 수 있는데, 실질적으로는 주주 독재가 됐어요. 그리고 주주들 중에서도 극히 일부만 큰 돈을 벌어서 ‘1% 대 99%’의 구도가 생겼죠.

 

미국의 사례를 눈여겨봐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지금 한국의 기관투자자들 중에서 제일 큰 세력이 외국인 기관투자자인데 전체 주식의 35% 넘게 갖고 있거든요. 이 사람들이 미국에서 ‘1% 대 99%’의 구도를 만든 주체예요. 그러면 이 사람들이 한국에서는 그런 구도를 만들지 않을 거라고 자신할 근거가 있나요? 기관투자자들의 힘이 강해질수록 분배는 오히려 더 악화됩니다. 경제민주화는 ‘재벌 주주들의 힘을 약화시키면 당연히 분배도 좋아지고 기업도 좋아진다’고 이상향적인 착각을 하고 있는데, 현실적으로 그럴 근거도 없고 미국의 경우를 봤을 때는 오히려 더 악화됐어요.

 

 

 

재벌 경영은 보편적인 형태


책에서 말씀하시길, 재벌 경영이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형태이고 그에 따라 보편적인 문제도 안고 있다고 하셨어요. 다른 나라들은 이 보편적인 문제를 어떻게 보완하고 있나요?


보편적 문제라는 게, 하나는 기업 집단이라는 부분과 관련되어 있고요. 또 하나는 가족 경영이라는 부분이 있습니다. 기업집단에 있는 회사들과 다른 중소기업들 간의 불공정 경쟁 이야기는 나올 수밖에 없죠. 그리고 주식을 보유한 기업집단 소속의 사람들(인사이더)과 외부인들(아웃사이더) 사이에 갈등의 여지가 있습니다. 인사이더들은 기업 집단을 중심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룹의 성장과 그룹 전체의 이익을 목표함수로 가집니다. 아웃사이더들은 개별 회사의 이익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목표 함수가 다르니까 갈등의 여지가 있는 거죠. 가족 경영은 (경영권이) 승계되니까 금수저 흙수저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것이고요.

 

‘대기업-중소기업의 불공정 경쟁’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고 있나요?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경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보완도 한단 말이에요. 대부분의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분쟁을 그렇게 크게 문제 삼지 않습니다. 어떻게 보면 이것이 꼭 불공정하다고 볼 수 없는 거예요. 대기업은 작은 기업에서 성장한 것이고 중소기업은 이제 시작을 하는 거니까, 둘을 똑같이 취급할 수 없거든요. 그러니까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경쟁은 원래부터 불공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중소기업들이 그것을 극복해야 됩니다. 더 나아가서 중소기업들이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시스템, 벤처 캐피탈이라든지 다른 금융 시스템이 있죠.

 

우리나라와 비교해 보면 어떤가요?


현재 우리나라처럼 대기업이 들어가서는 안 되는 중소기업의 영역을 지정한 나라는, 제가 보기에는 한국 이외에는 별로 없어요. 대부분은 중소기업들을 육성하는 정책만 있을 뿐이죠. ‘대기업은 이것을 하지 마라’ 하는 것은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재벌에게 재단을 통한 승계가 가능하도록” 허용하자고 제안하셨는데요.


상속 부분에 대해서는 세계적으로 보면 크게 세 가지 부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상속세가 아예 없거나 아주 낮은 나라들이에요. 상속받는 돈은 이미 소득세 같은 세금을 낸 거니까 이중 과세할 필요가 없다고 보는 거죠. 그리고 상속세를 높이 책정하는 대신 기업들이 재단을 통해서 경영권을 승계하는 걸 인정해주는 나라들이 있습니다. 처음 출발할 때부터 너무 불균형하니까 세금을 많이 받는 건데요. 어차피 재단은 개인 돈이 아니거든요. 공공 용도에 쓰면서 기업이 통제할 수 있는 시스템이에요.

 

우리나라는 두 가지 경우에 해당되지 않죠?


재단을 통해서 상속도 안 되고 상속세율도 무지 높은 나라는 한국밖에 없어요. 전 세계에서 유일해요.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지금의 방식으로 하면 한국에서 가족경영은 씨가 마르는 거거든요. 65% 상속세를 내면 2대도 제대로 못 넘어갑니다. 그런데 한국의 가족 경영을 없앤다고 해서 한국 경제가 좋아진다는 보장이 없어요. 그렇다면 유일하게 남아있는 대안은 재단을 통한 승계를 허용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세 가지 중에서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거죠.

 

대안의 하나로 ‘1-2부 리그 시스템’을 제시하기도 하셨어요. 어떤 내용인가요?


재단에는 사회공익사업에 써야 할 돈이 있지 않습니까? 그 돈하고 재단에 있는 자산을 기반으로 해서 2부 리그 기업군을 만들자는 거예요. 그리고 2부 리그 기업군은 기업 활동의 목표함수를 다르게 하는 거죠. 1부 리그 기업들의 목표가 이익 극대화라면 2부 리그 기업은 적당한 이익을 추구하되 고용 확대와 분배 개선을 목표로 하는 겁니다. 의외로 이런 기업이 꽤 있습니다. 책에서 예로 든 코스트코가 대표적이죠. 제가 이런 방식이 좋다고 보는 이유는, 고용만큼 좋은 복지가 없기 때문이에요. 65%의 상속세를 부과해서 그냥 복지에 나눠주는 것보다 훨씬 더 질이 좋은 복지가 된다는 거죠. 양적으로도 (상속세) 65%는 한 번 나눠주면 끝인데, 이건 회사가 계속 굴러가거든요. 그러다 보면 65%보다 훨씬 더 큰 복지가 된다는 거죠.

 

‘경영권을 승계 받는 사람이 꼭 가족이어야 할까’ 싶기도 한데요. 가족 경영만의 장점이 있다고요.


가족경영의 가장 큰 장점은 20~30년을 바라보면서 투자를 생각할 수 있다는 거예요. 승계까지 생각한다면 50~60년 바라보고 투자할 수 있겠죠. 3대까지 바라본다면 100년을 보고 투자를 할 수 있는 거예요. 2~3년 바라보고 투자를 하려는 사람하고 100년을 바라보고 투자하는 사람은 투자 건수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어요. 100년을 바라보면 투자를 훨씬 더 많이 하는 거죠. 그런 회사들이 많아질수록 나라 경제의 활력은 더 커지는 거고요. 미래를 보고 투자를 많이 하는 기업을 만들어 내는 것이 중요한데, 그런 면에서 가족경영이 장점이 있어요.

 

가족 경영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들도 있는데요.


제가 볼 때 가장 큰 이유는 불공평하게 비교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잘못된 가족 경영과 잘 된 전문 경영과 비교를 하는 거죠. 한진과 애플을 비교하는 것처럼요. 그런데 미국에서도 전문 경영을 해서 잘못된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미국 내에서 비교해 봐도 평균적으로는 가족 경영이 전문 경영보다 더 잘한 걸로 나와요. 매출 증대뿐만 아니라 이익에서도 더 좋은 걸로 나오거든요.

 

IMF 금융위기 이후에 우리나라의 경제 상황이 안 좋아진 데에는 ‘IMF 프로그램’의 영향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죠. IMF 프로그램은 크게 두 가지가 축이거든요. 하나는 긴축 정책이에요. 고금리를 하고 재정도 줄이는 거죠. 또 하나는 구조 조정, 구조 개혁이에요. IMF는 제일 처음에 중남미에서 시작이 됐는데, 중남미는 하이퍼 인플레이션이 되면서 금융위기가 왔거든요. 그러니까 물가가 올라가는 걸 막기 위해서 고금리를 한 거예요. 구조 개혁은 그간의 심각한 문제를 고쳐야 한다는 거였고요. 그런데 한국의 경우에는 긴축 처방이 맞지 않는 거였어요. 한국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국가들은 인플레가 없었거든요.

 

구조조정의 경우는 어땠나요?


그때 한국의 구조적인 문제라고 제일 크게 이야기했던 것이 ‘지나치게 차입 위주의 경영이라서 과잉 투자를 했다’, ‘그래서 금융 시스템이 위험해지고 위기가 왔다’는 거였거든요. 그런데 지나고 나서 보면 제 생각에는 한국은 과잉투자가 아니었거든요. 신흥시장이 21세기에 클 것을 바라보고 한 투자였어요. 한보철강도 중국 시장에 수출하려고 공장을 세웠던 건데, 실제로 2000년대에 중국이 전 세계 철강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돼버렸잖아요. 그러면 과잉투자가 아니라는 이야기죠. 선투자를 한 것이었는데 그때 유동성의 문제가 생겼을 뿐이죠. 그러니까 구조조정을 할 필요가 별로 없었던 거예요. 유동성 문제만 해결해 주면 되는 거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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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시장 유연화, 재벌이 한 거 아니거든요


의아한 것은, 2008년 세계금융위기 당시 미국은 IMF 프로그램을 적용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2008년에 선진국에서 비슷한 금융위기를 겪었는데, 이 프로그램이랑 완전히 반대로 갔거든요. 금리를 0%까지 낮추고, 양적 완화해서 돈 풀고, 구조조정은 하나도 안 했어요. 미국에서 GM이 문제가 됐었는데 정부가 국유화시켜서 살리고, 기업들한테 제발 근로자들을 자르지 말라고 했어요. 한국에서는 노동시장 유연화를 해서 직원들을 자르게 만들었는데, 그때 우리나라 비정규직이 시작됐잖아요. 그런데 (미국은) 정부에서 돈을 지원해주면서 제발 자르지 말라고 했죠.

 

왜 그랬을까요?


제가 보기에는 일반 경제논리가 아니라 정치경제 논리로밖에는 설명이 안 되는 거예요. ‘내 이익’이라는 단일 잣대가 적용됐다는 이야기죠. 그 당시 스티글리츠 교수는 선진국들이 이중 잣대를 적용한다고 비판했어요. 그것도 맞는 이야기이지만 저는 오히려 ‘내 이익’이라는 관점에서는 단일 잣대라고 봐요. 문제는 서방 선진국의 정책 담당자들은 최소한 자기네 국익에는 충실했는데, 한국의 정책 담당자들은 그게 국익을 위한 것이라고 큰소리를 친다는 거예요. 그렇게 해서 우리가 성공했다고 이야기하고 지금도 그걸 더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재평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


그때 잘못됐다는 걸 인정을 하고 전반적인 프로그램, 시스템을 다시 생각해 봐야 된다는 거죠. 그 맥락에서 한국현대경제사도 다시 써야 되고요. 그런 점에서는 제가 『금융전쟁 : 한국경제의 기화와 위험』, 『김우중과의 대화』를 쓴 것도 같은 연장선에 있다고 할 수 있어요.

 

책에서 ‘정서법’에 대해 이야기하셨는데요. 대기업에 우호적이지 않은 정서는 왜 생겨났다고 보세요?


거기에는 기본적으로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배고픈 것은 참아도 배 아픈 것은 못 참는다’는 심리가 있는 것 같은데, 그건 어느 나라건 다 있는 겁니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라는 건 그 격차가 벌어질 수밖에 없어요. 상대적인 박탈감은 항상 있을 수밖에 없죠. 그런데 ‘사람들이 그것을 어느 정도까지 용인하고 받아들이느냐’, ‘정치인들이 그것을 어느 정도까지 받아들이자고 할 것이냐, 아니면 그건 정말 잘못된 거니까 바꿔보자고 하면서 갈등을 부추길 것이냐’ 하는 건 나라마다 다른데요. 제가 볼 때는 한국에서는 이 부분이 정치적으로 굉장히 많이 이용된 것 같아요. 원인 분석을 제대로 해보면 재벌한테 (원인을) 돌리기 어려운 부분이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분배 정의가 실현되지 않는 것은 원인은 재벌 독재가 아니라는 말씀이군요.


IMF 체제 이후에 분배 문제가 나빠졌는데 사람들은 정서적으로는 (원인이) 재벌이라고 하고 많은 정치인이나 이런 사람들이 (그렇게) 이야기했지만, 실제로 보면 그때 제일 나쁘게 된 건 비정규직을 도입한 거거든요. 그런데 그거 재벌이 한 거 아니거든요. 노동시장 유연화는 IMF 프로그램의 일환이었고 한국 정부가 적극적으로 앞장서서 한 겁니다. 임금 격차도 그때 더 벌어진 거죠. 그 전에는 전반적인 임금 구조가 하후상박(下厚上薄)이었어요. 미국 기업이나 글로벌 스탠다드라고 하는 데는 거꾸로인데, 그런 것이 글로벌 스탠다드니까 우리는 받아들여야 된다고 생각한 거예요. 그리고 외국 기업들이 많이 진출하다 보니까 대기업이나 금융기관들 임원들의 연봉이 왕창 올라가버렸어요. 그러다 보니까 임금격차가 높아질 수밖에 없는 거죠.

 

또 다른 원인도 있었나요?


그리고 벤처 기업들을 육성한다고 했는데, 벤처 기업을 육성해서 좋은 점도 있지만, 벤처라고 하는 건 기본적으로 성공한 곳은 완전 대박이지만 나머지는 쫄딱 망하는 겁니다. 네이버라든지 카카오 같은 좋은 기업이 나올 수 있는 토양은 됐지만 분배에서는 마이너스인 거예요. 실리콘밸리 모델이야 말로 승자독식 체제인데, 그것을 글로벌 스탠다드라고 하고 그렇게 해야만 한국 경제의 활력이 회복된다고 했으니까, 여기에서 사실 얼마나 많은 실패자들이 나왔습니까? 이 실패자들은 벤처를 육성할 때 어쩔 수 없는 건데 이상하게 국내 정치인들은 그게 재벌들이 힘이 세서 성장하지 못했다는 식으로 이야기하거든요. 그게 아니라 실패자를 많이 양산하는 시스템을 만들었어요.

 

당시 한국의 대기업이 처한 상황은 어땠나요?


1997년 이전에는 번 것보다 더 많이 투자했고 고용을 늘렸어요. 그런데 이후에는 그만큼 투자를 안 했고, 투자를 하더라도 국내 투자보다 해외 투자가 더 많았죠. 제가 보기에는 그것도 IMF 프로그램하고 관련이 있어요. 그때 재벌들의 상호출자, 순환출자가 문제라고 하다 보니까 대기업 주주들이 지분을 늘릴 수가 없었거든요. 오히려 팔게 됐죠. 그리고 불과 2년 만에 한국 주요 대기업의 최대 주주 그룹은 외국인 기관투자자들이 됐어요. 게다가 공정거래법이 굉장히 강화됐죠. 대주주들이 외국인 투자자인데 어떤 비판이 나올지 모르니까 옛날만큼 투자를 못하고 공정거래법에 의해서 개별 기업 내에서만 투자를 해야 했죠.

 

중소, 중견 기업에 미친 영향도 있었겠죠?


투자할 곳이 훨씬 적어지니까 중소기업이 먹고 살 곳도 옛날보다 적어진 거죠. 기업들의 운영 방식도 투자라든지 성장 위주가 아니라 이익 위주가 되니까 고용창출력도 약해졌고요. 해외 투자가 늘어나니까 국내에서 중소기업들이 할 수 있는 일이 더 줄어들었어요. 대기업-중소기업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대기업들이 중소기업들을 착취한 부분들이 물론 있죠. 그런데 그건 어디든지 다 조금씩은 있는 거거든요. 제가 보기에는 그 부분보다도 중소기업들이 제대로 못 큰 제일 큰 원인은 대기업들이 국내에 옛날만큼 투자를 안 했기 때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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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 협력이 잘 돼야 경제가 잘 됩니다


한국에서 대기업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중소, 중견 기업과 불평등한 관계를 맺었고 그로 인해 피해를 떠넘기는 경우가 있었다고 생각하세요?


어디든 있습니다. 경쟁을 하다 보면 어떤 경우에는 아웃소싱 할 때도 있지만 어떤 때는 내가 만들어야 되는 경우도 생긴단 말입니다. 중소기업한테 다 줄 수가 없어요. 그러면 중소기업은 망하니까, 그쪽 입장에서는 굉장히 불공정하죠. 그런데 힘이 없으니까 어떻게 합니까. 그것이 자본주의 시장에서의 경쟁이니까, 저는 그런 부분에서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 꽤 많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착취라는 이야기를 할 때 ‘중소기업한테 단가 인하 압력을 넣었다, 기술을 빼갔다’고 하는데 개별적인 차원에서는 그런 일이 있겠죠. 그런데 단가 인하 부분은 대기업들도 (그들의) 고객이 힘이 세서 하라고 하면 하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자기들 밑에서 들어오는 사람들 보고 인하할 부분은 인하하라고 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그 부분이 얼마나 합리적으로 되어 있느냐, 완전히 상대를 망하게 할 정도로 쥐어짜는 거냐, 하는 건 케이스 바이 케이스로 봐야죠.

 

앞서 케이스포츠 재단, 미르 재단에 대해서 언급하셨는데요. 일부에서는 ‘기업들이 이권을 보장 받고 기금을 건넨 것 아니겠냐’고 추론하기도 합니다.


그건 정말 잘못된 추론이라고 봐요. 한국이 지금 정부가 기업을 잘 되게 할 수 있는 데에는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기업을 못 되거나 망하게 하는 것은 되게 쉬워요. 세금 조사 들어간다든지 작은 것 가지고 검찰이 다 뒤진다든지, 여러 가지 부정적으로 하려면 할 수 있는 힘은 굉장히 강하거든요. (기업들은) 그런 것들을 두려워하는 것이 기본이죠. 그걸 해서 특별하게 얻어낼 것이 뭐가 있겠어요. 일반적으로는 정부에서 강하게 요구하면 기업들은 가능한 들어주는 척 해야죠.

 

그것 역시 보편적인 현상일까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다른 데에도 비슷합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이것 좀 합시다’ 하면 기업들이 가능하면 들어주려고 하죠. 왜냐하면 기업도 나중에 가서 정부에 부탁할 일이 있을 텐데, 뭐든지 다 기브 앤 테이크 아닙니까. 제가 보기에는 각 기업들이 돈을 낼 때 그만큼 개별적인 사안이 있었겠지만, 그런 게 아니라 만약 지금 거절을 했다가 나중에 (돌아올) 후환이 두려운 거죠.

 

정부 차원에서 기업을 육성할 수 있는 방안도 있지 않을까요? 세제 혜택을 줄 수도 있고, 국가 발전 계획을 대기업 위주로 세울 수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어쩌면 반 대기업 정서는 정경유착 때문에 생긴 것 아닐까요?


저는 아주 다른 생각을 갖고 있어요. 어느 나라건 정경유착이 아니라 정경협력이 잘 돼야 경제가 잘 됩니다. 정부가 사사건건 틀어버리기 시작하면 될 것도 안 되어 버려요. 그러면 정경협력이라는 것이 대기업만 정권에 협력해서 중소기업을 무시하는 시스템이냐, 저는 지금 한국의 시스템이 그렇지 않다고 봐요. 대기업들이 미르스포츠에 몇 십억 원 정도 내서 중소기업청 없애달라거나 하도급제를 개혁해달라는 부탁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할 수 없이 따라가는 걸로 봐야지, 적극적으로 대기업 위주의 시스템으로 바꾸기 위해서 했다고 보는 건 지금 시점에는 아니에요.

 

최근에는 ‘낙수효과는 없다’는 이야기들도 있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제가 보기에는 낙수효과가 없다고 하는 분들도 대안이 없어요. 대안을 가지고 이야기하려면 단순히 낙수효과가 없다고 하지 말고 ‘낙수효과가 없으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까지 이야기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낙수효과 없다고 하는 분들은 대부분 ‘저성장은 받아들여야 되고, 낙수효과 없는 거 받아들이고, 그러니까 대기업은 더 두들겨 패야 된다’라는 쪽으로 가거든요. 대기업이 낙수효과 없는 쪽으로만 자꾸 투자를 한다는 식이에요. 일단 낙수효과가 있으면, 낙수효과가 가능하면 많이 있도록 하는 건 정부의 책임입니다. 가능한 낙수효과를 올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되고요. 또 자동화가 진전되면 낙수효과가 쉽게 떨어질 수 있거든요.

 

다시 낙수효과를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똑같은 성장을 달성하기 위해서 옛날보다 투자를 더 많이 해야 됩니다. 그러면 투자를 더 많이 하는 방법을 또 찾아야 될 거 아닙니까? 그것이 대안을 찾는 방법이죠. 투자할 방법도 안 찾고 낙수효과를 높일 방법도 안 찾으면서 재벌만 두드려 패면 대안이 되는 게 아니죠. 낙수효과가 실제로 어느 부분에서 떨어졌고 어느 부분을 올릴 여지가 있는지, 올릴 방법이 무엇인지를 찾아야죠. 학자라면 그걸 찾으려고 하고, 정책 담당자도 그 일을 해야 되고, 정치인들도 그렇게 해야 돼요. 정서법은 ‘이 놈 때문에 다 나빠졌다’고 해서 되죠. 그런데 건설적 대안이라는 것은 그 이상을 훨씬 더 많이 해야 돼요. 그런데 정서법 말하는 사람은 그것까지 생각하기 싫은 거예요.

 

경제 정책과 관련해서 우리나라가 싱가포르로부터 배워야 할 부분이 있을까요?


첫 번째 배워야 될 건 제조업 육성입니다. 싱가포르가 지금 1인당 국민소득 5만 불이 넘는 나라거든요. 그런데 전체 GDP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22~23%입니다. 싱가포르 정부가 제조업을 육성하는 이유는 제조업 자체가 중요한 산업이기 때문이에요. 싱가포르가 도시국가라서 서비스업을 많이 하지만 그 중에서 제조업과 연관된 서비스가 굉장히 많거든요. 서비스업이 발전하려고 해도 제조업 기반이 어느 정도 있어야만 되는 거예요. 그리고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 같은 주변국과 관계가 썩 좋지 않아요. 그러니까 독자적으로 제조업을 상당 부분 유지해야겠다고 판단한 거죠.

 

한국도 제조업을 육성해야 할까요?


그 필요가 훨씬 더 커요. 한국에서 지금 서비스만 가지고 어떻게 좋은 일자리를 유지하겠습니까? 서비스에서 좋은 일자리라고는 극히 일부분이에요. 그러니까 제조업이 상당 부분 있고, 그리고 제조업이 아직까지도 기술 발전의 핵심이거든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특히 IMF 구조조정하면서 자꾸 서비스 산업을 육성하고 제조업은 끝났다고 하는데, 제조업으로 한국이 먹고 살 수 있는 방법이 많아요. 미래를 봤을 때 중국, 인도, 아프리카의 성장은 계속 지속될 거예요. 그쪽에서 경제 성장을 위해서 필요한 것들을 한국이 공급해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요. 그게 우리가 그동안 쌓은 중화학 산업이나 소재 산업에서의 경쟁력인데, 그걸 계속 끌고 가야 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서비스만 가지고 국가 안보를 유지하겠어요? 말이 안 되죠.


 

 

경제민주화…일그러진 시대의 화두신장섭 저 | 나남
경제민주화는 일그러진 시대의 화두이다. 한국사회를 위해 건설적으로 내놓는 대안도 없이 사회를 분열시키고만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해결목표라고 내세우는 ‘경제양극화’를 오히려 악화시킬 가능성도 높다. 경제민주화라는 단어는 정치와 정책의 담론에서 추방되어야 한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태훈 “빵집 성심당은 나눔을 통해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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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김소보로’, ‘전국 3대 빵집’, ‘대전의 자랑’으로 설명되는 곳, 성심당의 이야기가 책으로 나왔다. 『우리가 사랑한 빵집 성심당』은 성심당의 출발과 성장, 위기와 변화를 기록한다. 60년 전 밀가루 두 포대로 시작한 노점 찐빵집은 직원 400여 명이 함께 일하는 지역 명소로 거듭났다. 성심당이 뚝심 있게 걸어온 그 길 위에는 흔한 경영 ‘기술’이 아닌 남다른 경영 ‘철학’이 남아있다. 맛있는 빵을 만드는 것만큼이나 그를 매개로 맺어지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생각했으며, 그들과 같이 성장할 수 있다는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성심당 덕분에 대전 시내에 굶는 사람이 없다’는 말을 만들어냈던 이들의 실천은 자본주의 경제의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 받고 있다.

 

6년 전부터 성심당과 인연을 맺어 온 김태훈 저자는 1년여의 심층취재를 통해 『우리가 사랑한 빵집 성심당』을 완성했다. <경남도민일보> 문화부 기자를 거쳐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에서 근무했던 그는 문화산업 전반에 걸쳐 다양한 일들을 해왔고, 지역 스토리텔링 연구소장으로서 각종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에게 성심당은 ‘지역 문화와 함께 성장하는 로컬 기업’으로써 관심과 애정, 연구의 대상이었다. 대를 이어 성심당을 운영하고 있는 임영진 대표와 부인 김미진 이사를 만나 그들이 지켜온 역사와 가치에 대해 들었고, 스토리텔링을 통해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탄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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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행을 하기 위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


성심당과 인연을 맺게 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2010년에 블로그 모임에서 홍미애 선생님을 처음 뵀는데요. 제가 지역 스토리텔링에 관심이 많고 그쪽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말씀드렸더니, 대번에 성심당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너무 행복해 하시는 거예요. 성심당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분도 아닌데 그곳의 이야기를 하면서 너무 자랑스러워하고 행복해 하시는 거죠. 저에게는 성심당에 대한 객관적인 정보보다 ‘성심당의 무엇이 이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걸까’하는 인간적인 호기심이 생겼어요.

 

성심당을 처음 찾아가셨을 때, 어떤 인상을 받으셨어요?


그 날이 2011년 7월 18일이었어요. 가기 전에 제가 너무 큰 기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실망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도 했었는데요. 기대했던 것보다 더 좋았죠. 일단 분위기가 너무 따뜻한 거예요. 손님들도 많고 직원들도 굉장히 활기차게 움직이고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참 좋다는 생각을 했죠. 일반 빵집들이 활기차고 따뜻한 느낌을 주기가 쉽지 않거든요. 그런데 성심당은 그렇지 않아서 ‘분명히 실체가 있는 거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죠.

 

『우리가 사랑한 빵집 성심당』을 읽어 보면, 성심당 사람들은 자신들의 본질을 지키는 것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이 책의 출간도 그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진 것 같고요.


처음 출판사에서 (집필) 제안을 받은 건 3년 전이었어요. 그런데 그때는 성심당 측에서 책을 쓸 계획이 없다고 하셨어요. 그러다가 올해 60주년이 됐고 임영진 대표께서도 환갑이 지나셨거든요. 머지않아서 3대 경영으로 넘어가야 되는 시기이기도 하고요. 제가 보기에 (출간의) 첫 번째 목적은 ‘성심당의 본질적인 스토리와 지향점을 활자로 정리를 해야겠다’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또 다른 목적도 있을까요?


성심당이 2대 경영으로 넘어오면서 비전을 다시 수립하잖아요. ‘모든 이가 다 좋게 여기는 일을 하도록 하십시오’라는 비전을 가지게 된 건데, 어떻게 보면 업그레이드 시킨 거거든요. 실제로 경제학자인 루이지노 브루니 교수는 ‘모두를 위한 경제’라는 개념으로 자본주의의 대안 경제를 정비하고 있거든요. 성심당은 그걸 현실 공간에서 모범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기업으로써 모델이 되는 거고요. 단순히 성심당이 잘 되는 게 목적이 아니라, 성심당 같은 기업이 많이 생기는 게 중요한 거죠. 다양한 지역과 분야에서 성심당과 같은 개념의 회사들이 많이 생기면 우리 사회가 바뀌지 않겠어요? 그런 점에서 성심당이 가지고 있는 두 번째 목적은 ‘우리가 쌓은 노하우를 사람들에게 알려서, 같은 뜻을 가진 기업인들이 용기를 갖게 하자’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책은 임길순 창업주에 대한 이야기에서 시작됩니다.


그게 성심당을 있게 한 빅 스토리라고 볼 수 있죠. 성심당의 정체성에서 제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죠.

 

임길순 창업주는 한국전쟁 당시에 함경도에서 온 피난민이에요. 이 분이 성심당을 세우신 과정을 보면, 아직까지 성심당이 나눔을 실천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성심당 분들한테는 굉장히 중요한 스토리이기도 하고요. 임길순 창업주가 어떤 상황을 거쳐왔는지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우리는 1.4 후퇴를 굉장히 평면적으로 보잖아요. 그런데 실제로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 입장에서는 모든 걸 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거든요. 피난길은 다 막혀서 기약도 없고, 기온은 영하 30도씩 내려가 있는데, 그런 걸 견뎌내는 순간들이었으니까요. 그런 상황에서 임길순 창업주는 ‘평생 어려운 이웃을 돕고 살겠다’는 맹세를 한 거예요.

 

여전히 성심당에는 그때의 다짐과 실천이 살아있는 것 같아요. 


그런 자기 본질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자녀분의 입장에서는 엄청 고생했다고 하는데요(웃음). 중요한 학습 기간이었던 것 같아요. ‘돈을 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돈을 벌기 위해서 선행을 하는 게 아니라 선행을 하기 위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라는 선후관계를 아주 명확하게 정립해 주신 거죠. 그런 삶을 통해서 임길순 창업주는 가족들과 직원들에게 ‘뭣이 중헌지’ 메시지를 준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당시에 임길순 창업주는 하루에 찐빵 300개를 만들면 100개 정도는 이웃과 나눴다고 하셨어요. 지금도 성심당은 월 4,000만원 상당의 빵을 어려운 이웃들과 나누고 있죠?


월 3,000~4,000만 원 정도 됩니다. 아침이 되면 복지시설에서 각 지점별로 빵을 가지러 와요. 요일마다 오는 팀이 다 다른데, 그 비용을 다 합하면 한 달에 3,000~4,000만 원 사이에요.

 

 

성심당은 나눔을 통해 성장했다


임영진 대표의 말을 빌리면, 임길순 창업주의 나눔은 ‘무조건적인 믿음’에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임영진 대표와 김미진 이사가 실천하는 나눔은 이론적 토대 위에 있는 것 같아요. ‘포콜라레 운동’, ‘모두를 위한 경제(EoC, economy of communion)’라고 불리는 것이죠?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경제 시스템은 아담 스미스 이후의 경제인데, 그 안에서 인간은 합리성밖에 없는 모습이에요. ‘경제적인 이해관계 속에서 어떻게 하면 가장 많은 이익을 취하는 방식으로 결정을 할 것인가’ 하는 부분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고, 그렇게 시장이 돌아가게 된다는 거잖아요. 개별 사람들의 인간성이라기보다는 하나의 개념적인 인간이 있는 것이고, 그 인간이 합리성을 쫓아서 행동한다는 전제를 가지고 경제를 바라본 거죠. 그런데 그 이전의 경제는 그렇지 않았다는 게 EoC 이론가들의 주장이에요.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이 사람을 가장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것은 관계라는 거죠.

 

아담 스미스의 이론에 대해 말씀하셨는데요. EoC 이론과 비교해 보면 어떤 차이점이 있나요?


아담 스미스 이후의 지금의 경제 시스템에서는 내가 남보다 더 많이 가져야 행복한 거잖아요. 그 구조 속에서는 결국 누군가는 다른 누군가를 착취할 수밖에 없고, 거기에서 오는 행복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것을 지속적으로 가져야 되는 거죠. EoC에서 이야기하는 건 사람은 그렇게 한다고 해서 행복해지지 않는다는 거예요. 우리나라도 그렇잖아요. 경제적인 규모로 보면 세계에서 탑 클래스이지만 행복도는 중하위권으로 내려가죠. 그게 지금 경제의 모순이라는 거죠. ‘모두를 위한 경제’라는 건 관계를 회복시키는 경제예요. 사람이 관계 속에 있을 때 제일 행복하잖아요. 외로울 때 불행하고요. 그런 경제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거죠.

 

‘모든 이가 다 좋게 여기는 일을 하도록 하십시오’라는 성심당의 사훈과도 맞닿아 있네요.


그 개념인 거죠. 직원도 행복해야 되고 손님과 거래처도 만족해야 되는 시스템을 만들고, 그런 관계를 지속적으로 축적해 나가는 거예요. 그 관계가 깊어질수록 사람이 행복해지는 거죠. 그런 경제활동을 할 수 있다는 개념이 ‘모두를 위한 경제’예요.

 

다른 기업들이 성심당으로부터 배울 점이 많이 있다고 생각되는데요. 그 중에 하나가 ‘분배 없이 성장도 없다’라는 교훈이 아닐까 싶어요.


루이지노 교수가 한국에 오면 하는 이야기가 있어요. 여러분의 나라에서 여러분의 조상들도 그렇게 살았다는 거예요. 두레와 계, 그것이 본래 인류가 경제 활동을 했던 기본적인 컨셉이라는 거죠. 서로가 관계 속에서 같이 생산을 하고 재화를 만들어갔던 거예요. 어떻게 보면 ‘모두를 위한 경제’는 우리가 본래 알고 있었던, 본래 조상들이 갖고 있던 공통의 경제 시스템을 현대 사회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거죠.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개인이든 기업이든, 세금을 적게 낼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도 그대로 다 내면 바보 취급을 받잖아요. 그런데 임영진 대표는 “세금이야말로 사업자가 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이고 공적인 나눔”이라고 말해요.


사실 원칙적으로 그게 맞잖아요. 세금을 가지고 복지를 하고 공공 인프라를 만드는 거죠. 그런데 그걸 맞다고 믿고 따르는 게 쉽지 않은 거죠. 그런 부분이 임영진 대표님이 가지는 굉장한 강점 같아요. 한 번 맞다고 생각되면 좌고우면하지 않고 그냥 밀고 나가세요. 흔들리지 않아요. 그게 사실 지도자로서 굉장히 중요한 덕목이거든요. 왜냐하면 직원들이 예측을 할 수 있어요. 우리 사장님은 어떤 스타일이다, 어떤 걸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런 걸 예측할 수 있기 때문에 줄을 설 필요도 없는 거고 계산할 필요도 없는 거예요. 책사 같은 사람이 필요 없는 거죠. 그게 굉장히 큰 강점 같아요.

 

“수익을 많이 남겨 후원을 많이 하는 것보다 사업 과정에서 사랑과 나눔의 정신을 실천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기도 하시는데요. 어떤 사람들은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을 거예요. ‘그렇게 하다가 언제 성장하느냐, 그러다가 다 같이 힘들어지면 누가 도와줄 거냐’라고요.


성심당이 하는 말은 ‘우리는 그렇게 해서 성장했다’는 거죠. 저한테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대목이 있는데요. 성심당에서 IMF가 끝나고 컨설팅을 받았는데, 직원들을 줄이고 제품의 가짓수도 줄이라고 했대요. 그때는 성심당이 어려웠을 때니까 그렇게 할 수도 있었을 것 같잖아요. 그런데 그러지 않고 ‘사람들을 자르느니 매출을 늘리자’라고 생각한 거죠.

 

말씀하신 것처럼 성심당에도 위기가 찾아왔었죠. IMF도 있었고, 성심당이 자리한 대전의 원도심이 쇠락하기도 했어요. 빵의 트렌드도 바뀌었고, 프랜차이즈 빵집들이 많이 생겨났죠. 이런 어려운 시기를 이겨낼 수 있었던 저력은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임영진 대표님과 김미진 이사님이 말씀하시기로는 ‘우리까지 떠나면 어떻게 되나’라는 생각을 하셨다고 해요. 그때는 대전 사람들이 다 신도시로 빠져나갔다고 하는데, 이사님도 ‘신도시에 가서 빵집을 하면 정말 열심히 재밌게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셨대요. 그런데 꿈쩍도 안 하신 거죠. 원도심이 성심당을 시작한 곳이고, 그때는 프랜차이즈를 반대하셨었기 때문에 신도시로 가려면 원도심을 완전히 떠나야 했는데, 그럴 만큼은 아니라고 생각하신 거죠. 어쨌든 원도심이 역사가 있는 곳이니까 ‘다 떠나갈 때 우리까지 떠나면 어떻게 될까’ 하는 책임감도 있으셨던 것 같아요. 

 

결정타가 된 사건은 2005년에 있었던 큰 화재였어요. 당시 직원들이 힘을 모아서 6일 만에 다시 빵을 굽게 됐다고 하는데, 성심당이 힘든 시기를 이겨낸 데에는 직원들의 역할도 컸던 것 같습니다.


그때 이야기를 하면 지금도 눈물을 글썽거리세요. 임영진 대표님과 김미진 이사님이 EoC 개념을 받아들인 게 1999년, 2000년 즈음인데요. 그때 김미진 이사님이 모야모야 병 때문에 수술을 하셔서 어쩔 수 없이 쉬게 되셨어요. 그러면서 ‘내가 왜 빵집을 해야 하는지’ 고민을 많이 하셨죠. 그러다가 EoC 개념을 본격적으로 받아들이시면서 100만원, 즉 한 사람의 인건비를 따로 떼어내서 기금으로 내놓는 걸 실천하기 시작하셨어요. 그때 성심당은 은행 빚이 50억 정도 됐었고 이자만 연 3억 정도를 내야 될 때였거든요. 그런데 두 분은 그런 실천을 시작하셨던 거예요.

 

화재가 발생하기 5~6년 전이었네요.


제가 해석하기로는, 불이 났을 때 직원들이 보여줬던 반응은, 그 5년 동안의 열매라고 봅니다. 그 시간 동안 대표님과 이사님이 회사를 운영해온 모습들을 봐왔기 때문에 ‘이 회사가 무너지면 안 된다, 여기는 우리 회사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지 않았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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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가 직원을 믿어주니 직원도 회사를 믿더라


대전의 많은 청년들이 성심당을 ‘일하고 싶은 직장’으로 손꼽는다고 들었어요. 책을 읽어 봐도 성심당 곳곳에는 직원들에 대한 배려가 스며있는 것 같아요.


저도 회사가 직원을 굉장히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느낌을 받아요. ‘한가족 캠프’라고 성심당이 딱 하루 문을 닫는 날이 있는데, 직원들과 가족들을 위한 날이거든요. 제가 올해 ‘한가족 캠프’에 같이 가게 돼서 보니까, 사장님이 직원들과 그 가족들을 위해서 불꽃놀이를 준비하셨더라고요. 웬만한 지자체에서 하는 규모로요. 진짜 직원들을 위한 축제라는 느낌을 주더라고요. 그리고 대전역 지점에는 근무하는 직원이 100명인데, 역 안에 입점해 있다 보니까 직원들을 위한 공간이 따로 없어요. 그래서 직원들을 위해서 가건물을 지어가지고 식당과 편의시설을 마련해줬죠. 그리고 아임베이커(I’m baker), 아임셰프(I’m chef)라는 행사가 있잖아요.

 

매년 주최하는 사내 대회죠?


그렇죠. 셰프들의 꿈은 자기 가게를 여는 거거든요. 그래서 성심당은 직원이 회사를 떠나더라도 잘 배워서 나간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은 거예요. 우리나라 회사에는 직원들이 크는 것을 경계하는 모습이 조금 있는데, 성심당은 그렇지 않은 거죠. 그래서 경진대회도 해주고, 전문가를 초대해서 워크샵도 열고, 해외 연수도 보내주고, 그런 프로그램을 굉장히 많이 진행해요. 성심당을 나가더라도 최고가 돼서 나가라는 거죠.

 

SNS를 통해서 올해 성심당의 시무식 소식을 알려주셨잖아요. 굉장히 큰 화제가 됐었어요. 그 가운데 직원들의 선서 내용이 있는데, ‘우리는 가치 있는 기업이 된다’라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참 인상적이었어요. 먹고 살기 위해서 일을 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가치 있는 일이고, 또 나와 같은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과 일을 한다면 너무 기쁠 것 같아요.


사람에게는 성스러운 마음과 속스러운 마음이 있다고 이야기하잖아요. 한 비교종교학자의 말을 인용하면, 속되다는 게 일상이에요. 먹고 사는 거예요. 직업이라는 게 속된 거잖아요. 일상이고 매일 반복해야 되죠. 성스러운 건 속되지 않은 건데,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이런 거예요. ‘내가 굶으면 굶었지 그 짓은 못해, 내가 쫓겨나는 한이 있어도 그렇게 비겁하게는 안 살 거야’, 이런 마음이 성스러운 마음이에요. 내가 일하는 곳에서 그런 부분을 채울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조합은 없겠죠.

 

많은 기업들이 성심당의 사례를 보면서 배우고 변화했으면 좋겠어요. 저자님이 보시기에는 어떤 변화가 필요한 것 같으세요?


일단 경영자가 직원들을 좀 믿었으면 좋겠어요. 우리나라에서는 적대적인 분위기가 너무 상식처럼 받아들여지는 것 같아요. ‘너무 풀어주면 기어오르겠지, 이렇게 해주면 이용해 먹으려고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기도 하고, 그래서 통제를 하기도 하잖아요. 그러면 당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저 사람이 나를 안 믿는구나, 그러면 나도 내 몫을 챙겨야지’ 이렇게 되는 거거든요. 그런 것들이 쌓이고 쌓이면서 거기에서 에너지 소모가 굉장히 많이 일어나고, 생산력도 떨어지게 되고, 인간성도 피폐해져 가는 것 같아요. 물론 서로가 같이 믿어야 되겠지만 힘없는 사람이 믿어서 무슨 의미가 있어요. 힘이 있는 사람이 먼저 믿어야죠. 그런 점에서 성심당이 중요한 메시지를 보여준다고 봐요. ‘회사가 직원을 믿어줬더니 직원도 회사를 믿잖아’라고 말하는 거죠. 임영진 대표님은 모든 정보를 직원들과 공유하시잖아요.

 

경영 상태도 전부 공개하시더라고요.


수익이 얼마 났는지도 직원들이 다 알아요. 내가 이번에 성과급으로 얼마를 받는지도 다 알고요. 그렇게 투명하게 해도 괜찮다는 거예요. 이 정보를 이용해 먹어야지, 하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렇게 투명하게 공유하니까 회사에 불이 났을 때도 ‘우리 회사’라고 해서 같이 힘을 합치잖아요. 그런 것들이 우리 사회 전반적으로 확대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학교는 학생을 믿어주고, 어른은 아이를 믿어주고, 기업은 노동자들을 믿어주고요. 그렇지 않아서 우리가 아파하는 부분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성심당은 ‘한가족’을 강조하는데,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노동자들이 ‘소모품’처럼 쓰인다는 이야기를 해요. 기업 간에 직원에 대한 기본 인식 자체가 다르다고 할 수 있죠. 신뢰도의 차이도 거기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싶어요.


성심당에서 이야기하는 ‘한가족’은 폐쇄적인 울타리가 아니거든요. 저는 그 점을 참 높게 평가해요. 손님이 중요하기 때문에 직원을 무시하는 기업들도 있잖아요. 성심당은 그러지 않고 ‘모든 이’에 집중했어요. 그렇게 ‘모든 이’를 발견한 것이 굉장히 중요했다고 봐요. ‘한가족’이라는 울타리가 폐쇄적인 것이 아닌, 굉장히 개방적이면서 포용적인 울타리가 됐거든요.

 

기업이 이롭게 해야 할 ‘모든 이’라면 ‘모든 손님’을 떠올리는 게 일반적일 수 있는데요. 성심당은 ‘나와 같이 일하고 나와 같은 지역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으로 정의한 것 같습니다.


그 부분이 EoC의 핵심입니다. 경제적인 이해로 얽혀있는 관계들을 두텁게 만들고 신뢰를 만듦으로써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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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심당다움’은 자부심이다


성심당과 대전은 따로 떼어놓고 이야기할 수 없죠. 대전 사람들은 성심당이 대전의 자랑, 대전의 영혼이라고 말해요. 성심당 역시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기를 거부하고 대전을 지켜왔고요. 저자님께서는 지금까지 지역 스토리텔링에 관심을 가져오셨는데, 이런 현상에는 어떤 의미가 있다고 보세요?


한 지역에 오래 있어야 관계가 형성되는 거죠. 그 관계가 튼튼해졌을 때 화폐로 전환할 수 없는 당양한 가치들을 만들어 내는 거고요. 그래서 성심당이 로컬에서 역할을 하는 사람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지 않나 싶습니다. 그런 것들이 많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제가 고향이 창원인데, 창원 옆의 마산에 100년 넘은 기업이 있어요. 몽고간장이라고, 갑질의 화신이었잖아요. 자신들이 100년 넘도록 장수하는 기업이 될 수 있도록 만들어준 사람들에 대한 도리가 아닌 거죠. 그런 기업이 있다는 게 창피하잖아요.

 

현재 ‘또다른세상협동조합’을 설립해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계신데요. 역시 지역 사회 활동과 관련이 있는 건가요?


조금 더 글로벌한 활동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말하자면 여행인문학을 하는 거예요. 여행이라는 게 나를 잘 알기 위해서 떠나는 거잖아요. 체 게바라가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를 한 것처럼요. 여행은 다른 지역 다른 나라를 보면서 우리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할 수 있는 중요한 소재라고 생각해요. 저는 흔히 아는 관광이 아니라 무언가 주제를 가지고 들여다보는 여행을 만들려고 해요. 가장 최근에는 스포츠 평론하시는 한신대의 정윤수 교수님과 같이 영국에 가서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 경기를 보고 왔어요. 단순히 축구를 보는 게 아니라, 축구라는 키워드로 영국이라는 사회를 이해하려고 갔던 거죠. 영국이라는 사회를 입체적으로 볼 수 있는 주제를 잡았던 거예요.

 

『우리가 사랑한 빵집 성심당』에 ‘성심당다움에 대하여’라는 꼭지의 글이 실려 있습니다. 저자님께서 생각하실 때 ‘성심당다움’은 어떤 건가요?


간단하게 이야기하기는 어려운데요. 나눔이라고 하기에도 너무 좁고요. 저는 자부심을 참 많이 느꼈어요. 성심당다움이라는 건 자부심이다, 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직원들도 대전 시민들도 성심당에 대한 자부심이 있어요. 경영주 분들도 많은 역경을 거치고 이 정도까지 왔다는 데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있고요. 온전히 자신만의 것인, 누구도 흔들 수 없는 자부심이 있잖아요. 그런 게 있는 것 같아요.

 

엉뚱한 질문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성심당에서 제일 맛있게 드신 빵은 뭔가요(웃음)?


저는 토요빵을 좋아해요. 선물용으로는 판타롱부추빵하고 튀김소보로가 유명하고요. 더 안쪽으로 들어가시면 큼직큼직한 빵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무거나 집어서 드셔도 정말 맛있어요. 그리고 오징어 먹물로 만든 빵이 있는데 그것도 참 맛있고요. (성심당) 위층에 바로 키친테라스가 있어요. 돈까스를 파는 곳인데, 빵을 잔뜩 사서 2층 올라가서 먹으면 됩니다. 키친테라스에서 제가 추천하는 메뉴는 열두겹 돈까스예요. 아주 맛있습니다.

 

독자들이 『우리가 사랑한 빵집 성심당』을 즐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요?


저는 이 책이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라고 생각해요. 진짜배기는 현장에 가서 느끼는 것이 아닐까 하고요. 『우리가 사랑한 빵집 성심당』이 성심당을 활자로 보고 머리로 이해하는 거라면, 현장에 가면 성심당을 총체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 같아요. 저에게는 가장 중요한 게 냄새인데요. 그 공간과 빵이 주는 향기가 있어요. 현장에서 직원들과 손님들이 만들어내는 소리도 있죠. 그리고 (매장) 인테리어가 다 마루로 되어 있는데, 그런 인테리어가 주는 느낌도 있죠. 그런 걸 같이 느껴보시면 책을 읽고 이해하신 보람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사랑한 빵집 성심당김태훈 저 | 남해의봄날
전국 3대 빵집, 빵 성지순례의 넘버원 코스 성심당은 단순히 유명 빵집이 아니다. 대전의 최부자집으로 불리며 성심당 덕분에 대전 시내에 굶는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가 전해질 만큼 오랜 시간 어려운 이웃을 위해 빵을 나누어 왔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윤정희 “아이들이 많을수록 선생님이 많은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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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하고 냉정한 것을 똑똑함이라고 오해하는 세상에 이 선한 가족의 이야기는 도무지 섞여 들지가 않는다. “입양이라는 말이 없어질 때까지” 입양을 하자고 제안한 둘째 하선이나 나란히 신장을 기증한 부부나 주말마다 독거 어르신을 방문해 도시락을 전달하는 가족들이나 이질감이 들기는 마찬가지다. 이들은 뜻밖의 수입이 생기면 무조건 기부를 한다. 기부를 하려고 돈을 모으기도 하고, 소득 안에서 최대한 나누는 데 돈을 쓰기도 함은 물론이다. <KBS> ‘1회 감동대상’에서 ‘가족상’을 받고 탄 상금 천만 원은 ‘아름다운 가게’로 갔다. 아이들의 천만 원이 넘는 적금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로 갔다. “가족 이야기를 통해 생긴 수익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세상의 아이들과 나누겠다”는 가족의 약속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그러니까 이 이질적인 가족은 이런 방식으로 세상과 함께 살고자 하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삶이 가능할까. 이런 삶을 선택한 사람에게 어떤 신념이 있는 것일까. 입양한 열 명 아이의 엄마이자 적극적인 실천가이기도 한 윤정희 씨는 “저는 그런 일들이 정말 재미있어요”라고 말한다. 그저 행복하다고, 감사하다고 몇 번이나 말한다. 자신을 진짜 엄마로 만들어준 존재들, 수많은 깨우침을 준 존재들, 가슴으로 낳은 아이들에게 고마운 마음뿐이라고 말한다.


아픈 아이들을 입양했고, 그 아이들의 투병에 너무나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그에 보답이라도 하듯 아이들은 건강을 되찾아 세상으로 나설 준비를 하고 있다. 지금, 윤정희 씨의 꿈은 오직 “이 땅의 소외된 모든 아이들의 엄마가 되는 것”이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매일을 산다고 말했다. 그 말을 하는 윤정희 씨의 눈가가 이내 촉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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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첫째 하은이부터 열째 행복이까지 정말 소중한 이야기예요. 이렇게 한 권의 책으로 나왔는데 기분이 어떠세요?

 

진짜 고맙죠. 이 책이 절판되었을 때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첫 번째 책이었는데요. 아무래도 애정이 가장 많았어요. 이후에 쓴 책이 많이 읽혀도 저는 이 책이 정이 많이 갔거든요. 이 제목도 그래요. 작년 <JTBC 뉴스룸>에 출연했을 때 제가 읽었던 글을 제가 썼거든요. 거기서도 ‘사랑은 여전히 사랑이어서 우리 가족은 변함없이 행복합니다’라는 말을 마지막에 넣었어요. 그랬을 정도로 저는 이 책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어요. 정말 감사해요.

 

하루가 너무 바쁘실 텐데 책 작업이 힘들진 않았나요?


이 이야기가 허구였다면 고민을 많이 했을 텐데 실화잖아요. 한 달 걸렸어요. 예전 원고에서 부족한 이야기는 더 넣고요. 사실 이걸 쓸 때는 좀 바빴어요. 지난 여름이었는데요. 강원도에 쇼트트랙 대표선수 세 명이 있는데 그 세 명이 모두 저희 집 아이들이에요. 그 아이들을 데리고 대전에 전지훈련을 두 달 내려가는 상황이었어요. 대전에 가서는 글을 못 쓸 것 같아서 그 전에 부랴부랴 썼죠. 그랬는데 책을 보니 세상에서 가장 멋진 내 아이들이라 그런지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어찌 보면 우리 아이들 하나하나가 멋진 작품이 되는 거잖아요. 참 감사하죠.

 

재미있는 점은 이야기의 첫 장면이 일곱째 다니엘이 여덟째 한결이를 때리는 장면이라는 거였어요. 다른 이야기도 많았을 텐데 왜 하필 그 이야기를 썼을까, 이유가 있었겠다, 생각했어요.

 
저는 있는 그대로 우리 가족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예쁜 모습만으로 포장하기 싫거든요. 그냥 그대로의 모습을 보면서 저 집이나 우리 집이나 똑같다, 결코 다르지 않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저를 보고 국민천사 엄마다, 이런 표현을 하는 분들도 계신데요. 그냥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점을 알리고 싶었어요. 때문에 어느 집에나 있는 이야기를 쓴 거죠. 형제가 다투고, 또 다른 형제와 함께 풀어가는 이야기를 말이에요. 이런 이야기는 공감할 수 있는, 우리 집의 이야기잖아요.

 

사람들은 바라보는 특별한 모습이 아니라 지극히 일상적인 모습을 전하고 싶었군요.


그럼요, 들어와 보면 똑같아요. 저도 아이들한테 소리 지르고 그래요.(웃음) 아들이 일곱 명이에요. 전사가 되죠.

 

‘다사다난’ 같은 말로는 다 표현이 안 되겠네요.


더군다나 아이들이 다들 몸이 아팠잖아요. 아이들과 살아온 20년의 시간을 보니까요. 10년 동안은 아픈 아이들 뒤치다꺼리 하느라 죽음보다 더한 고통의 터널을 지나온 것 같아요. 힘든 시간이었어요. 다만 포기할 수 없었으니 걸어온 거예요. 엄마니까요. 그러다 다시 아이들이 건강해진 이후 10년의 시간을 돌아보니 모든 것이 의미가 있더라고요. 죽어가는 아이를 보면서 넌 나중에 간호사가 되어라, 이런 말 못하잖아요. 살아만 달라는 마음뿐이었잖아요. 이후 10년은 너희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아라, 하는 마음이었어요. 그렇게 지나서 보니까 아이들이 이렇게 멋진 모습으로 성장했어요. 20년의 지난 세월이 결코 없는 세월이 아니었고, 오늘이 존재하기 위해 지난 20년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이제는 단호하게 얘기해요. 사랑은 여전히 사랑이라고요. 우리 가족은 행복했고, 행복하고, 행복할 거다, 이웃들에게 더 많은 것을 나눌 거다, 이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우리 아이들 열 명은 엄마를 길들이는 선생님’이라고 한 구절이 있었어요. 정작 나를 부모로 만들어준 것이 아이들이었던 거예요.


제가 알지 못했던 것을 아이들은 알고 있더라고요. 첫 장면도 그래요. 다니엘이 한결이를 때렸다고 누나 하선이가 다니엘을 따로 데리고 갔을 때 솔직히 말하면 하선이가 다니엘을 흠씬 팰 줄 알았거든요.(웃음) 진짜 어디 하나 멍들어서 올 줄 알았어요. 그랬는데 하선이가 다니엘도 상처 받은 아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들어올 줄은 정말 몰랐어요. 그걸 보면서 하선이에게 굉장히 많이 배웠어요. 참 고마웠어요. 아이가 엄마를 더 성숙하게 만들어주는구나 생각하게 됐어요.

 

기다려주는 것도 쉽지 않잖아요. 동생을 혼낸답시고 때리고 들어올 것 같았다면 부모로서 저지할 수도 있을 텐데 그냥 지켜봤어요. 개입하지 않았죠. 

 
남편 덕분이에요. 저희 부모님 세대는 전쟁을 겪고, 보릿고개를 겪으면서 힘들게 사셨던 분들이에요. 자식을 사랑하는 방법을 잘 모르셨죠. 그런 가정에서 살았던 저는 내면의 아픔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결혼을 해서는 착한 남편에게 그걸 퍼부었죠. 바깥에서는 선한 사람처럼 보였겠지만 집에서는 별로 좋은 아내가 아니었어요. 그런가 하면 남편은 미안하다, 고맙다, 사랑한다, 는 말을 가장 좋아했어요. 저는 남편 덕분에 변했어요. 남편의 변함없는 모습으로 인해 어린 시절의 아픔을 치유하고 아이들의 엄마로 이 땅에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제가 늘 얘기해요. 우주 최고의 멋진 남편이라고요.(웃음)

 

큰 울타리 같네요.


넷째 요한이는 퇴행성 발달장애를 앓고 있었고, 한 번 입양이 되었다 파양된 상태에서 저희 집으로 왔어요. 다섯 살에 저희 집에 왔는데요. 일곱 살 때 유치원 재롱잔치에서 모든 사람들 앞에서 “나는 엄마 없어요, 엄마 안 사랑해요”라고 한 적이 있어요. 전부 다 아는 사람들이거든요. 동네 사람들이요. 다른 아이들 모두 “엄마 아빠 사랑해요”라고 하는데 요한이만 안 그런 거죠. 순간 그곳에 정적이 흘렀어요. 집에 와서는 제가 바닥에 주저앉아 땅을 치면서 울었어요. 억울해서요. 그때 남편이 다가왔어요. 마흔이 넘은 어른이 이렇게 속이 상해서 울 정도면 일곱 살 먹은 요한이 심정은 어떻겠느냐고 하더라고요. 당신은 내가 있잖아요, 라면서 남편도 울고요. 그 순간 제 자신이 참 부끄럽더라고요. 아이한테 해준 것만 생각하는 엄마라는 생각 때문에요. 어째서 사랑을 주면 받는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그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걸 알기 시작한 거죠. 그때부터 저도 많이 변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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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가 많을수록 교사가 많은 것


아이들의 성장기이기도 하지만 엄마의 성장기라는 말이 더 맞을 것 같아요.


많이 겸손해지고, 아이들을 더 많이 바라보게 됐어요. 아이들이 제 선생이죠. 아이를 두 명 키울 때보다 세 명, 네 명 키울 때 그리고 지금 막내 행복이까지 만나면서 더 성장했어요. 저희 이야기가 영화로 나올 예정인데요. 그 안에 짧게 저희가 다큐 형식으로 등장할 거예요. 얼마 전에 그것 때문에 PD와 통화를 하는데요. 행복이가 제 옆에 와서 앉는 거예요. 등을 토닥이면서요. “엄마 무서우니까 내가 앉아 있어줄게” 그러는 거예요. 다섯 살 먹은 아이가 말이에요. 나중에 남편한테 들으니까 행복이가 방에 있다가 엄마 무서울 것 같다며 나갔다는 거죠. 이렇게 아름다운 아이들의 엄마라는 생각에 참 행복해요.

 

아이들이 늘어날 때마다 느끼는 것도 많아졌다는 거죠?


아이들 스스로 서로를 보듬고, 상처나 아픔을 나눠요. 우리 아이들은 먹을 것을 나누고, 옷을 나누고, 엄마를 나눠요.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누면서 아이들이 자신의 정서를 아름답게 만들어가고 있음을 알게 돼요. 그러니까 한 명 있을 때에 비해 열 명을 키울 때 엄마가 달라지는 거예요. 아이들이 많을수록 선생님이 많은 거예요. 많은 선생님 덕분에 제가 성숙해지고 있다는 생각을 해요. 

 

그런가 하면 잘 모르는 사람들이 나쁜 이야기를 한 적도 있잖아요. 세상의 오해에 마주했을 때는 얼마나 힘이 들었을까요. 


우리 가족을 색안경 끼고 안 좋게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었죠. 정부 지원금 많이 받으려고 이렇게 사는지 얘기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왜 장애아로 등록해서 수당을 받지 않는지 말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별 사람들이 다 있잖아요. 어떤 사람은 대기업에서 몇 백 씩 받는다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오죽하면 <KBS 인간극장>을 찍고 있는데 출연료를 천만 원 준다더라, 그거 받으면 뭐 할 거냐, 이러는 사람들도 있었어요. 한 번은 어떤 공무원이 아동을 입양하면 지원금이 엄청 많은 줄 알고 몰래 뒤를 파헤쳤다가 사과한 적도 있었죠. 왜 이런 오해를 받아야 하는지, 왜 이런 핍박을 받아야 하는지 생각하기도 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아이들 덕분에 이겨낼 수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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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의 규칙이 있을까요? 절대 어기지 않는 단 한 가지 규칙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형제 간 우애를 가장 중요하게 여겨요. 동갑내기가 세 명 있거든요. 생일에 따라 형, 동생이 됐어요. 어쩔 수 없어요.(웃음) 그런데 형제간의 우애가 깨지지 않으면 세상을 바른 눈으로 바라볼 수 있어요. 우애가 깨지면 다 원수죠. 다 적이고요. 공동체가 깨지는 거죠. 그게 가장 중요해요.

 

워낙 인원이 많으니까 때때로 고민되는 순간도 많을 것 같아요. 그 외에 집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어떻게 하세요?


그때그때 아이들과 회의해요. 저희는 가족회의를 많이 해요. 예전에는 거의 제 뜻대로 됐는데(웃음) 요즘은 둘째 하선이가 절대 권력 1위예요. 그 아이가 참 지혜로워요. 여러 가지가 하선이를 통해 많이 이루어지고 있어요. 애초에도 하선이 때문에 우리 가족이 바뀐 거예요. 어렸을 때 병원에서 살 가망이 없다고 했었거든요. 죽어가는 하선이를 보면서 남편이 목회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 거예요. 제가 신장을 기증한 것도 그 일 때문이고요. 아이들을 계속 입양하길 원한 것도 하선이고요. 저희는 별로 기준이 없어요. 다만 올바름이 어떠한 것인지 아이들 스스로가 아는 것 같아요. 아이들에게 말을 하기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려고 많이 했고요. 주말마다 독거 어르신들을 찾아가 도시락 배달도 하고 그래요.

 

저자가 평생 실천한 나누는 삶을 보고 배운 거겠죠.


<KBS> ‘1회 감동대상’에서 저희가 ‘가족상’을 받았어요. 상금 천만 원을 전액 기부하겠다고 방송에서 말했어요. 그렇게 했고요. 하은, 하선, 하민이의 이름으로 적금을 넣던 게 있었는데요. 하은이가 미국에 전액 장학금을 받고 공부하러 가게 되니까 자기 적금을 기부하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이런 것들을 아이들과 함께 상의하면서 실천하는 거예요. 행동으로 함께 이루어가는 거죠. 뭐가 옳다, 뭐가 옳지 않다, 하는 것을 말로 가르치는 게 아니라 사랑을 세상에 나누는 거예요. 이웃사랑이죠. 우리는 이렇게 행복하게 살고 있으니까요. 저는 그런 일들이 정말 재미있어요.

 

자발적 가난을 선택함으로써 더 큰 행복을 얻었다는 말씀이신가요?


책에는 담지 않았는데요. 땅 팔고, 집 팔면서 어떤 정부 지원금도 없이 공부방을 운영하다가 우리 아이들 병원비가 없어서 제가 건물 청소를 한 적이 있어요. 직장 생활은 시간이 매여서 할 수 없었거든요. 그때 아는 분이 왜 이런 일을 하시느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윤리적이고 도덕적으로, 합법적으로 부끄럽지 않은 일이라면 나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고 했어요. 도둑질은 할 수 없잖아요. 당당하게, 어떤 도움도 받지 않고 아이들을 잘 키워냈다는 것, 아이들이 그 사실을 알고 그것을 본받아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면 더 바랄 게 없는 거죠.

 

물질적으로는 가난하지만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배우 유해진 씨와의 일화에서도 엿볼 수 있는 일이었죠. 유해진 씨가 건넨 돈을 끝내 다시 나누셨잖아요?


해진이는 제 동생이에요.(웃음) 바닷가 앞에서 얼마나 창피했는지 몰라요. 생각해 보세요. 트레이닝복 차림의 해진이와 머리도 부스스한 아줌마 둘이서 봉투 하나를 가지고 십 분을 실랑이를 했어요. 지나가는 사람들은 해진이를 알아보고 사진 좀 찍어달라고 하고 있었고요. 그런데요. 해진이가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져서는 여기까지 왜 왔겠느냐고, 나를 부끄럽게 하지 말아달라고 하더라고요. 그 눈에 진심이 담겨 있었어요. 그렇게 돈을 받아 와서 다시 <MBC 휴먼다큐 사랑> PD에게 유해진 이름으로 써달라고 한 거죠. 이 내용이 아름답다고 PD가 방송으로 내보내준 거예요. 그 돈을 그냥 받아서 썼다면 이런 아름다운 사연이 나오지 않았겠죠. 해진이의 멋진 모습이 안 나왔을 거고요. 저는 그냥 전달자였어요. 유해진은 정말 멋진 사람이에요. 그걸 통해 우리 가족과 유해진이 좋은 관계가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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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


가족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진다고요?


저희가 살아온 이야기를 영화화 하자고 영화사에서 연락이 왔어요. 3년 전부터 작업하고 있었어요. 얼마 전에 대본이 거의 끝났고요. 1시간 50분은 극영화로, 10분은 저희 가족을 담은 다큐멘터리로 구성될 거예요. 출연할 배우가 12월 초까지 결정이 날 것 같아요. 그때가 되면 자세한 내용이 공개될 텐데요. 아직은 결정이 안 되었어요. ‘엄마’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영화 제목도 준비를 하고 있고요. 내년에 강릉에서 촬영할 예정이라고 해요. 우리 가족을 통해서 ‘저렇게 사는 게 맞아’라고, 영화를 보면서 ‘내가 왜 이렇게 살았지’라고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입양을 하지는 못해도 누군가를 돕는 사람이 되어야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게 하는 영화 말이에요.

 

책으로도 그리고 영화로도 가족의 내밀한 모습을 보여주는 이유가 있을까요? 역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거겠죠?


열심히 살고 싶었어요. 아이들 잘 키워서 세상에 내보내자는 사명을 갖고 살고요. 제가 살고 있는 이 자리에서 열심히 사는 것,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에게 부모가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싶은 거죠. 내일 잘못될지라도 오늘을 열심히 살아가는 것, 내게 맡겨진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러다보니 저희 아이들이 사회에 필요한 아이들로 성장하고 있는 것 같아요. 첫째 하은이가 “엄마는 대한민국 소외된 아이들의 엄마가 되어줘, 나는 전 세계 소외된 아이들의 엄마가 될게.”라고 해요. 하은이는 대학교를 휴학하고 내년에 탄자니아로 떠나요. 졸업하면 아예 아프리카로 가겠다고 하고요. 책임감 있는 부모의 모습을 먼저 보여주면 아이들도 믿고 따라오는 것 같아요. 하나하나가 다 고마워요. 

 

저자가 생각하는 ‘잘 산다’의 의미는 뭔가요?


10억을 갖고 있는 사람이 1억을 잃어서 너무 속상해하며 울고 있을 때 가진 것 하나 없는 사람이 상대가 아파하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는 게 안타까워서 자신이 가진 전부를 나누어 줘요. 저는 그 나누는 사람이 잘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진짜 부자라고 생각해요. 1억을 잃은 사람은 여전히 9억이나 남아 있지만 잃어버린 1억만 생각하지 갖고 있는 9억을 돈으로 보지 못해요. 나누는 사람은 위로를 하고 싶으니까 그 사람이 좋아하는 돈으로 위로를 하는 거죠. 이번 달 생활비가 30만 원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말이에요. 그게 정말 잘 사는 게 아닌가 생각해요. 제가 누군가를 도울 때 주변 사람들은 네가 더 어려워, 그래요. 저는 제가 더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잘 사는 거라고 생각하니까요. 저는 이미 부자예요. 아이들이 열 명이나 있잖아요.(웃음)

 

혹시 이 책의 수익금도 어떤 사용처를 생각해 두셨어요?


『하나님 땡큐』의 인세는 가난한 목회자 가정의 아이에게 장학금으로 지원이 됐고요. 『하나님 알러뷰』의 인세는 정혜영 씨와 션 씨가 하는 장애인 병원 기금 모금으로 전달했어요. 이 책은 입양되지 못한 아이들에게 지원이 될 예정이에요. 저는 책이 제가 이 땅을 조금 더 행복하게 사는 하나의 돌파구라고 생각해요. 가족의 삶을 통해 돈벌이 할 생각은 없어요. 영화도 저희 지분 전액을 재단을 만들어서 청소년, 탈북 아이들, 다문화 가정의 청소년들에게 꿈을 찾아주는 일을 하려고 해요. 가족 이야기를 통해 생긴 수익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세상의 아이들과 나누겠다고 우리 아이들과 약속했거든요. 열심히 살아야죠. 더 열심히요.

 

세상 사람들이 이 책을 어떻게 받아들였으면 하세요?


이제는 다문화가정, 탈북가정, 입양가정 등이 모두 원가정 안에 들어가야 해요. 입양에 대한 바른 이해를 위해 이 이야기가 더 많이 읽혔으면 좋겠어요. 입양이 특별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만 하는 게 아니라 아이들이 행복한 가정에서 자라길 원하는 사람이라면 내 집을 내어준다는 마음으로 하는 거라고 말하고 싶어요. 그러다보면 우리 사회가 얼마나 행복한 사회가 될까요. 둘째 하선이가 이 땅에 입양이라는 말이 없어질 때까지 동생들을 계속 데리고 왔으면 좋겠다고 한 적이 있거든요. 그렇지만 우리 한 가정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요.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보면서 다른 누군가도 입양을 생각하게 된다면 참 좋을 거예요. 아이들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니까요.

 

이런 말씀하실 때면 눈물이 나시나봐요. 지금도 눈시울이 붉어지셨는데요.


정말 고마워서요. 저도 부족하고 허영이 가득했던 사람이었거든요. 이런 사람을 많이 소유하지 않아도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준 우리 아이들에게 정말 고마워서요. 아이들 덕분에 행복해진 거잖아요. 그래서 아이들 이야기만 하면 고마워서, 가슴이 벅차서, 그렇죠.


 

 

사랑은 여전히 사랑이어서윤정희 저 | 두란노
가족해체와 아동학대 이야기가 매스컴에 끊이지 않는 요즘, 무려 열 명의 아이를 입양하여 사는 가족이 있다. 양육비도 만만찮을 것 같고, 진심으로 사랑하기도 어려울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 가족 구성원 모두 이구동성으로 우주에서 가장 행복한 가정이라 말한다. 무엇이 이런 고백을 하게 했을까?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박현숙 “가르치려고 하는 동화는 실패한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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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아파트』, 『수상한 우리 반』, 『수상한 학원』의 뒤를 잇는 ‘수상한 시리즈’의 네 번째 이야기가 찾아왔다. 아이들에게 가장 익숙한 공간-학교와 학원, 아파트를 배경으로 소통이 단절된 현실을 그려냈던 박현숙 작가. 그녀가 새롭게 주목한 곳은 ‘친구의 집’이다. 평범한 장소와 수상한 사건, 그 안에 감춰진 ‘이상한 일상’은 『수상한 친구 집』에서 다시 되살아난다. 이야기는 한층 묵직해진 소재를 다룬다. 가정 폭력과 아동 학대, 그 속에 숨죽이고 있는 아이와 그 곁의 친구들을 열세 살의 맑고 건강한 시선으로 담았다.

 

여진이네 반으로 전학 온 ‘오하나’는 온 몸으로 차가운 기운을 내뿜는 아이다. 짝꿍 두식이가 베푸는 무조건적인 친절에도 고마워하는 기색이 없다. 작은 일에도 불같이 화를 내면서 싸우려 드니, 아이들은 점점 오하나와 거리를 두기 시작한다. 우연히 오하나의 뒤를 따라 걷게 된 여진은 아이가 살고 있는 집이 ‘귀신이 산다고 소문 난’ 파란대문집이라는 걸 알게 된다. 담 너머 을씨년스러운 공간 안에서 오하나는 어떤 시간을 살고 있을까.

 

『국경을 넘는 아이들』, 『형, 나를 지켜줘!』, 『도와 달라고 소리쳐!』, 『Mr. 박을 찾아주세요』등 100여 편의 작품을 발표해 온 박현숙 작가는 왕성한 활동만큼이나 다양한 주제들을 다뤄왔다. 앞서 언급된 작품들만 보더라도 탈북자와 학교 폭력,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과 코피노가 겪는 문제들을 소재로 하고 있다. ‘수상한 시리즈’에서는 이웃 간의 무관심, 경쟁이 일상화 된 교실, 과도한 사교육의 실태를 그렸다.

 

자칫 무겁게 느껴질 수 있는 소재들이지만 박현숙 작가 특유의 경쾌한 필치, 생생한 묘사, 개성 있는 인물들은 텁텁한 공기를 산뜻한 기운으로 몰아낸다. 『수상한 친구 집』역시 예외가 아니다. 아이들의 꽉 막힌 속을 뚫어주고 어른들의 모순을 가볍게 비트는, 개운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이 안겨주는 코 끝 찡한 감동은 긴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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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다 알고 있어요


『수상한 친구 집』을 보면서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다른 분들은 어떻게 읽으셨을지 궁금해지더라고요.


저도 궁금해요. 이 작품은 아동 학대, 가정 폭력에 대한 이야기거든요. 과하게 비춰지지 않으려고 애썼어요. 책에 그려진 것보다 현실은 훨씬 더 심각한데, 그걸 어린이 책에 담을 수는 없잖아요. 어린이 책에서 넘어서는 안 될 선을 지켜서 쓰려고 노력했어요. 과연 독자 분들은 어떻게 읽으셨을지, 굉장히 궁금해요.

 

예상되는 반응이 있다면 어떤 건가요?


 『수상한 학원』, 『수상한 우리 반』은 아이들하고 가장 밀접한 이야기였잖아요. 이번 작품에서 다룬 가정 폭력은 그렇지 않은 거라서, 독자인 아이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상당히 조심스러워요. ‘수상한 시리즈’ 가운데에서 제일 반응이 궁금한 책이에요.

 

독자 중에는 ‘오하나’와 같은 상황에 있는 아이들도 있을 텐데요. 그 아이들은 이번 책을 읽으면서 위안을 얻지 않을까 싶어요.

 
그렇죠. ‘수상한 시리즈’의 작품들은 제목 앞에 ‘수상한’이라는 말이 붙는데, 들어가서 보면 우리의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일들이거든요. 우리가 일상 속에서 평범하게 받아들이는 이런 일들이 수시로 여기저기에서 일어날 수 있다는 거예요. 정말 수상한 게 아니라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일인 거죠. 전부 다 우리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일들이에요. 어딘가 ‘오하나’와 같은 아이가 있겠죠.  『수상한 학원』에 나오는 ‘승자’나 ‘승리’처럼 평범한 아이들도 있고요. 그런데 그 아이들이 결코 평범하지 않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평범함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거예요.

 

‘수상한 시리즈’를 이어가시는 이유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예를 들면, 『수상한 아파트』는 독거노인들의 고독사가 이슈가 됐을 때 쓴 작품인데요. 우리는 그런 이야기를 볼 때 그냥 무심히 넘겨요. 일상이 되어버린 거죠. 그런데 여기에 ‘수상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서 바라보면 ‘이러면 안 되겠다’라는 답이 나오는 거잖아요. 『수상한 우리 반』같은 경우에도 그냥 평범한 교실이지만 그 안에서 일어나는 아이들의 문제를 보면 ‘이런 일을 해서는 안 돼’라는 생각이 들죠. 학부모들이 아이들을 너무나 다그치잖아요. 그것도 일상이 되어버린 거예요. 당연시 생각하고 있죠. 그런데 역시 ‘수상한’을 넣어 보면 ‘이건 아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죠.

 

최근 아동 학대에 대한 뉴스가 많았어요. 『수상한 친구 집』의 모티프도 거기에서 얻지 않으셨을까, 하고 짐작했었는데요. 비슷한 경험이 있으셨더라고요.


동화를 쓰다 보면 예전에 보고 겪었던 일들이 생각나는데요. 최근의 그런 사건들을 볼 때도 마찬가지예요. 그렇다 보니까 글을 쓰는 데 지난 경험이 많이 반영되는 것 같아요. 『수상한 아파트』의 경우도 그래요. 작가의 말에도 썼지만, 어릴 때 저희 마을에 빈집이 하나 있었어요. 그 집에 어디에서 살았었는지 모르는 아줌마가 이사를 왔는데, 겨울이 되니까 일도 없고 추워서 사람들이 나오지도 않았었어요. 그런데 다음 봄에 가서 보니까 죽어있더라고요. 어린 저에게 그 일은 엄청난 충격이었어요. 고독사 문제를 접할 때면 그때 생각이 났죠. ‘이건 평범한 일상처럼 넘겨서는 안 되겠다’, ‘어른들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자라는 아이들에게는 이건 아니라는 걸 이야기해줘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서 쓰게 됐어요.

 

지금의 현실에서 아이들이 희망이 될 수도 있겠어요.


성선설을 믿거나 전적으로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사람은 ‘세상을 살아가야 되는 정도(正道)’를 갖고 태어나는 것 같아요.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는 게 옳은 것인지를 알고 태어난다는 거죠. 우리는 그것이 교육으로 인해서 만들어진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반대로 생각해요. 잘못된 교육으로 인해서 그것이 망쳐진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우리 아이들의 마음 깊은 곳에는 아직 그것이 살아있다고 생각하고요. 그래서 아이들이 이런 책을 읽게 되면 더 바르게 살 수 있는 길을 찾아가지 않을까 생각해요.

 

아이들은 이미 정답을 알고 있을지도 모르죠.


아이들하고 이야기해보면 그런 걸 많이 느끼거든요. 아이들은 다 알고 있어요. 그런데 너무나 잘못된 교육으로 인해서 아이들을 더 망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예요. 동화 작가가 할 일은, 굳이 뭘 가르치려고 하지 않고, 우리 일상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는 걸 알려주기만 하면 되는 것 같아요. 그럼 아이들이 그걸 읽고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방법을 생각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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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치려고 하면 그 동화는 실패한 거예요


『수상한 친구 집』을 읽고 ‘오하나는 자라면서 어떤 시간을 살게 될까’ 궁금해졌어요. ‘과연 이 아이가 제대로 자랄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하고요.


작가의 말에 쓴 것처럼 저도 ‘오하나’와 같은 아이를 만난 적이 있어요. 지금 그 아이가 어떤 어른으로 자랐을까 굉장히 궁금해요. 그래도 ‘오하나’에게는 희망이 있잖아요. 자신의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가 생겼고, 그러면 앞으로의 삶은 이전과는 달라지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갖게 돼요. 저는 이 책을 읽는 아이들이, 만약 ‘오하나’와 같은 아이가 곁에 있다면, 손을 붙잡아줄 수 있는 아이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작품을 쓰면서 ‘오하나’ 같은 아이가 이 책을 읽는다면 스스로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동화를 쓰시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아이들한테 가르치려고 하면 그건 실패한 동화라는 생각을 해요. 저는 작품을 쓰면서 소통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누군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줘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작품을 쓰지 않아요. 이 작품을 읽으면서 ‘오하나’ 같은 아이가 스스로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용기를 얻었으면 좋겠고요. 다른 아이들이 읽었을 때도 ‘이런 일이 있을 수도 있어, 이럴 때는 이렇게 해야 되겠구나’ 하고 스스로 깨달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수상한 시리즈’에는 아이들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 어른들이 등장합니다. 아이들의 의견 같은 건 아무렇지 않게 뭉개기도 하죠. 그런데 『수상한 친구 집』의 할머니는 그렇지 않아요. 이들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는 걸까요?


작가를 예로 들어 이야기하자면 이런 거예요. 어떤 작가는 ‘나도 어린 시절이 있었고 지금도 동심이 있어, 그러니까 주인공 아이도 나처럼 생각할 거야’라고 생각하고 글을 써요. 그렇게 쓴 글이 재미있을 수가 없죠. 소통을 하는 작가는 그렇지 않아요. 내가 어렸을 때와 지금의 아이들은 너무나 달라요. 세월이 많이 흘렀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주인공 아이가 보이는 반응은 옛날의 나와는 완전히 다를 수 있어요. 그러니까 지금의 아이들을 이해해야 되는 거죠. 그렇게 쓴 작품은 독자들의 공감을 얻어요. 다 내 이야기 같고, 내 친구 이야기 같고, 어제 우리 학교와 마을에서 일어난 이야기 같고, 그러니까 재미있어서 끝까지 읽겠죠.

 

자신의 관점으로 아이를 바라보면 안 되는 거군요.


어른들이 충분히 아이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면, 대화에 성공하고 소통이 이뤄질 수 있겠죠. 소통하지 않고 자신이 하는 게 옳다고 생각하는 어른이라면 절대 그렇게 될 수가 없는 거고요.

 

아이들은 ‘수상한 시리즈’를 읽으면서 많이 통쾌해할 것 같아요. 아이들 눈에 비친 어른들의 모습, 그 안의 모순, 아이들이 털어놓을 법한 불평들까지 생생하게 담겨 있잖아요. 아이들 마음을 어떻게 이렇게 잘 알고 계세요?


저는 글을 쓸 때 어려운 단어는 쓰지 않아요. 굳이 어려운 말을 쓰지 않아도 충분히 다 이해시킬 수 있는 글을 쓰면 되는 거니까요. 아이들의 심리를 잘 묘사하는 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어요. 제가 23년 동안 학원을 운영했어요. 그래서 저는 사실 어른들의 언어를 몰라요. 어른들의 언어를 몰랐다는 건 어른들의 세상을 잘 몰랐다는 거예요. 저는 아이들의 언어만 알고 있었고, 아이들의 세상만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작품 안에서 어떤 해결책을 내려도 어른의 눈이 아니라 아이의 눈으로 내리는 거죠. 그렇게 하려고 노력한 게 아니라 너무 오랫동안 아이들과 생활했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수상한 아파트』부터 『수상한 친구 집』까지, 추리의 형식을 빌려서 이야기를 전개하고 계신데요. 이유가 있나요?


일단은 재미를 위해서 그랬죠. ‘수상한 시리즈’가 동화로써는 많은 분량이거든요. 재미없는 이야기가 되면 아이들이 읽어내기가 힘들어요. 그래서 일단은 재미있게 쓰자고 생각했죠. 뒤에 이어질 내용이 궁금하면 계속 보게 되잖아요. 제가 ‘수상한 시리즈’ 말고도 추리 기법을 활용했던 작품들이 제법 되는 것 같은데, 특별히 그러고 싶었던 게 아니라 일단은 재미가 있으니까 그런 방식을 택했던 거예요.

 

청소년 소설 중에 그런 작품들이 많이 있지 않았나요? 주인공이 탐정 역할을 하기도 하고요.


국내에서는 잘 모르겠어요. 추리소설 하면 아무래도 정통의 외서를 많이 가져 오니까요. 한국사회에서는 아동 동화에서 정통 추리로 가면 성공하기 어렵거든요. 그래서 한국의 아동 문학과 정통 추리 문학, 추리를 문학이라고 하지 않고 장르라고 하죠, 그 중간에 어떤 지점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요. 정통 추리는 조금 괴기스러운 면이 있잖아요. 그런데 한국사회에서 아동 책은 부모나 교사의 일차적인 검증을 뚫고 나가서 아이들에게 읽혀지는 게 대부분이이에요. 그래서 동화와 추리 장르가 만나서 한국 아동 문학만의 ‘추리 동화’가 태어나야 된다고 생각하는데요. 아직은 미개척 부분인 것 같아요. ‘수상한 시리즈’는 추리 기법만 가지고 온 것이지, 정통 추리하고는 조금 거리가 멀잖아요.

 


캐릭터를 살리는 말의 힘


‘수상한 시리즈’가 많은 사랑을 받은 건 추리의 형식 때문만은 아니겠죠. 또 다른 이유도 있을 것 같아요.


저는 그게 캐릭터라고 생각해요. 재미라는 게 캐릭터가 살아있느냐 죽었느냐에 따라 달라지거든요. 캐릭터가 정말 살아서 움직여야 돼요. 캐릭터가 죽어 있어서, 인물들이 이름만 다를 뿐 똑같이 그려진다면, 정말 재미없거든요. 착한 아이라 하더라도 전반적으로 착한 아이가 나오는 게 아니라, 이 아이가 어느 부분에서 엄청나게 착한 아이라고 캐릭터를 확 구축시켜야 되는 거죠. 어른들이 볼 때 진짜 나쁜 아이라면 왜 그런 아이로 비춰지는지, 그 부분이 확실하게 살아있어야 되고요. ‘수상한 시리즈’는 캐릭터가 잘 살아있기 때문에 재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하면 캐릭터를 살려낼 수 있을까요?


저는 대화글로 살리거든요. 말하는 걸로써 그 사람의 캐릭터를 살려요. ‘수상한 시리즈’에서 엄마는 조금 얄밉기도 해요. 그게 대화글에서 표현이 되죠. 그렇게 대화글에서 캐릭터를 확실하게 살려서 작품을 끌고 나가니까 캐릭터가 살아있고, 그래서 조금 더 재미있지 않나 생각해요.

 

‘수상한 시리즈’에서 가장 애정이 가는 인물이 있다면 누구인가요?


제가 가장 사랑하는 캐릭터가 할머니예요. 작품 속에서 할머니는 가장 솔직하고, 할머니의 입을 통해서 문제점이 다 나와요. 다른 캐릭터가 그런 말을 하면 ‘가르치려고 하는 거야?’라는 생각이 들지만 할머니의 입을 통하면 전혀 그렇지가 않은 거죠. 그래서 할머니는 ‘수상한 시리즈’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에요. 엄마에게 바른 말을 할 때도 보면, 할머니의 입을 통해서 세상을 비판하는 이야기가 나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재미있죠.

 

할머니의 말씀을 들으면서 속 시원해질 때가 많았어요.


이야기를 듣다 보면 ‘맞아, 할머니들이 저런 이야기를 해’, ‘세상을 모르니까 저렇게 이야기할 수 있어’ 그런 생각이 드는 거예요. ‘요새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잘 모르니까 아무 생각 없이 저렇게 말할 수 있는 거야’라고 말하면서 영악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이 가는 길은 바르지 못할 수 있어요. 반면에 요즘이 어떤 세상인지 모르는 할머니가 하는 말이 바른 말일 수가 있거든요. 아무 생각 없이 하는 할머니의 말에서 정말 세상을 비판하는 말이 나오는 거죠. 

 

『수상한 친구 집』에서 할머니가 보여주신 사랑을 보면 ‘참어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다고 해서 무게 있는 사람은 아니니까 더 재미있는 거죠. 무게 있는 사람이 그렇게 했다면 재미가 없죠. 어떻게 보면 위선적으로 보일 수도 있고요. 점잖게 생긴 사람이 착한 일을 하면 ‘저 사람은 생긴 대로 착한 척 하는 거야?’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이 할머니는 그렇지 않은 사람인 것 같은데 그런 행동을 하기 때문에 더 진심이 느껴지는 거예요. 그래서 캐릭터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지금까지 100여 편의 작품을 발표하셨습니다. 이렇게 많은 이야기의 소재를 어떻게 다 발견해 내시는지 궁금해요.


말씀드렸던 것처럼 제가 23년 동안 학원을 운영했어요. 20대부터 40대까지 아이들하고만 살았어요. 제 머릿속에 있는 건 아이들과의 생활밖에 없어요. 동화를 쓰다 보면 자연스럽게 예전에 만났던 아이들이 생각나고 그 아이들이 다 책 속에 등장해요. 그 때 있었던 일이 소재가 되고요. 그리고 저는 도서관을 자주 가서 아이들이 어떤 책을 읽는지 눈 여겨 봐요. 저희 집이 초등학교와 가까운데, 아이들이 끝날 때쯤 되면 문방구에 자주 가기도 해요. 가서 아이들이 하는 이야기를 가감 없이 듣죠. 주말에는 거의 하루 종일 서점에 있는데요. 엄마들이 어떤 책을 선호하는지, 아이들은 어떤 책을 읽고 재미있어 하는지,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를 주로 봐요. 그런 게 많이 도움이 되겠죠. 아이들 옆으로 가려고 많이 노력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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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의 길’을 걷는 게 모범답안은 아니에요


탈북자, 한국전쟁 등 다양한 주제를 다뤄오셨는데요. 최근에 깊이 생각하고 계신 주제는 무엇인가요?


정말 다양한 주제를 이야기했죠. 『국경을 넘는 아이들』에서는 탈북자에 대해 썼고, 『아미동 아이들』에서는 한국과 일본 모두에게 아픈 역사를 간직한 마을 ‘아미동’의 이야기를 썼어요. 요즘에 생각하고 있는 건 동물보호에 대한 거예요.

 

최근에 쓰신 칼럼 ‘책 읽어주는 동화작가’를 읽었어요. 『어떤 개를 찾으세요?』와 관련해서 유기동물 이야기를 들려주셨더라고요.


작년에 독일에 가서 보호소를 보고 왔는데, 정말 우리나라와는 많은 게 달랐어요. 독일의 보호소는 완전 동물원이에요. 자원봉사자들이 하루에 두 번씩 와서 산책을 시켜주고요. 사람들이 버려서 오는 동물들은 없고, 키우다가 형편이 안 돼서 보호소로 온 아이들이에요. 주인은 보호소에 와서 각서를 쓰고 벌금을 내요. 그러면 그 아이가 입양될 때까지, 입양이 안 되면 죽을 때까지, 보호소에서 돌봐줘요. 가장 크게 느꼈던 건, 독일의 개들은 사람과 더불어 살기 위한 교육을 받더라고요. 애완견이 아닌 반려견으로서 사람과 동물이 공생하는 걸 보고 올 수 있었죠.

 

다음 작품에서는 동물과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겠네요.


이 세상이 사람만 사는 곳이 아니고 동물과 사람과 더불어 사는 곳이잖아요. 조금 더 평화롭게 살아야 될 필요성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제 힘으로 다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글을 써서 책으로 나올 수 있으니까요. 누군가는 그 책을 읽게 될 거고, 제 책을 읽은 아이가 성장을 해서 동물 보호에 있어서 바른 생각을 하는 아이로 자랄 수도 있잖아요. 거기에 조금이라도 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 이야기를 담아서 재미있는 책을 써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죠.

 

첫 그림책 『뒤로 가는 기차』도 출간하셨어요. 이전에 발표하신 작품에 비하면 글밥이 많이 적은데요. 동화와 또 다른 부분도 많이 있었을 것 같아요.


사실은 글밥이 없이 그림책을 만드는 게 힘들었어요. 할 말이 너무 많은데 줄이고 줄여야 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림책에서는 그림이 하고자 하는 말이 또 따로 있어서 그걸 침범하면 안 되거든요. 그런 부분에 있어서 그림책을 만드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너무 다 이야기해도 안 되고, 그림과 글이 각자의 몫이 있어서 서로 어우러져야 해요. 그렇게 힘들게 나왔지만 저는 『뒤로 가는 기차』를 정말 좋아해요. 따뜻해요.

 

『뒤로 가는 기차』는 시간 여행을 소재로 한 작품이죠?


과거로 가는 이야기인데요. 주인공 아이는 시골에서 올라오신 할머니를 보고 창피해해요. 예쁘지도 않고 너무 시골스러운 거죠. 그리고 할머니는 원래부터 저랬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러다가 할머니의 어린 시절로 가서 그때 그 모습을 보게 되는 내용이에요.

 

마침 오늘이 수능이에요. ‘수상한 시리즈’를 읽어서 그런지 몰라도, 시험을 치른 아이들이 절망하고 스스로를 비하할 걸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수상한 시리즈’의 아이들도 압박감과 절망감 속에서 지내잖아요. 그런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 없으세요?


있죠(웃음). 저는 어렸을 때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지금은 그 꿈을 이뤘어요. 그런데 사실은 그 꿈을 오래 접어뒀었거든요. 마흔이 넘어서 등단을 했으니까요. 생각해 보면 저는 부모님이 원하는 만큼 공부를 잘하지도 못했었어요. 어른들이 원하는 평탄한 길을 걷는 아이는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당당하게 살고 있거든요. 그건 저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똑같을 것 같아요. 수능이라는 규정도 어른들이 만들어낸 거잖아요.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길을 그대로 잘 걸어가는 게 모범 답안은 아니거든요. 그걸 알았으면 좋겠어요.

 

우리 아이들이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장 큰 건 마음속에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 자신이 갖고 있는 꿈을 간직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게 확연하게 담겨 있지 않아도 ‘무언가 내가 할 일이 있을 거야’라는 마음만 가지고 있다면, 지금 내가 조금 더 뒤처지는 것 같아도 낙담할 필요는 없다고 봐요. 하고 싶은 일을 하되 정말 열정을 가지고 최선을 다할 줄 알면 행복하고 만족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수상한 친구 집박현숙 글/장서영 그림 | 북멘토
‘수상한 시리즈’의 네 번째 이야기 수상한 친구 집은 집이라는 사적인 공간에서 지속적이고 은밀하게 행해지는 ‘가정 폭력’과 ‘아동 학대’를 열세 살 아이들의 시선으로 포착하여 상처받고 피폐해진 피해 아동의 모습을 그려낸 작품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운진 “시와 그림은 슬픔을 퍼내는 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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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 그림을 읽어주는 책은 많다. 시와 그림은 어렵고 누군가 대신 읽어주면 쉬워 보이기 때문이다. 시와 그림을 ‘읽는다’는 건 무엇일까. 그 속에 담긴 역사적 배경과 지식과 작가가 숨겨놓은 뜻을 밝히는 작업일까? 보고 느낀 첫인상을 유려하게 긴 글로 풀어내는 일일까? 평론가처럼 선대 철학자들의 이론을 빌려 작품을 설명하는 일일까?


시와 그림이 만났다. 카미유 피사로의 <빨래 너는 여인>과 강은교의 「빨래 너는 여자」가, 윤두서의 <자화상>과 서정주의 「자화상」이 서로 이야기한다. 이야기 속에서 솔직하게 ‘나’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말하듯이, 편지를 쓰듯이 조곤조곤 들려주는 책이다. 시보다는, 그림보다는 마음을 더 잘 읽고 싶다면, 『고흐 씨, 시 읽어 줄까요』는 썩 괜찮은 입문서가 될 수 있다.


책을 쓴 이운진 시인은 경남 거창에서 태어나 1995년 월간 『시문학』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등단 이후 집안 사정으로 조용히 문단에서는 묻혔지만, “눈물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슬픔이 쌓이면서 시를 쓰는” 일을 멈추지 못했다. 책에 담긴 그림과 시는 이운진 시인을 조금 더 성숙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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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그림이랑 비슷하다는 생각

 

제목에 ‘고흐’와 ‘시’가 들어갑니다. 그림과 시를 같은 주제로 엮어야겠다는 계기가 있었나요?

예술 중에 시, 그림, 음악이 있다면 음악은 제가 익숙하지 않았어요. 어릴 때부터 시골에서 자랐는데, 부모, 고모, 삼촌 다 계시는 대가족 속에서 살다 보니 음악을 들을 만한 기계도 없었고, 그 흔한 카세트테이프 하나 있는 게 없었어요. 책은 조금 더 구하기 쉬웠어요. 책 속에는 그림도 있었고요. 어릴 때 읽었던 세계명작 안에는 삽화랑 명화가 많이 들어가 있었죠. 그때 그게 참 예뻤어요. 솔직히 어렸을 때는 글은 어려웠지만 그림이 좋더라고요. 특별한 계기라기보다, 많이 보고 읽다 보니 시가 어떤 그림이랑 비슷하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여러 번 생겼어요. 그래서 하나씩 좋은 그림과 시를 공책에 적으면서 짝짓기 시작했죠.


가수 요조와 정여울 작가의 추천사가 들어갔습니다.


책이랑 가장 어울릴 만한 분에게 추천사를 받았어요. 책이 나오고 정여울 선생님하고는 이메일로 인사를 드렸어요. 정여울 선생님 책을 제가 세 권이나 읽었거든요. 독자로서 작가를 만나서 특별히 감사한 일이었죠.


사계절 출판사 공모전에 당선되어서 나온 책이에요.


이전부터 쓴 글은 있었는데, 공모전을 늦게서야 봤어요. 이미 80% 이상 써 놓은 글을 마무리해서 투고했죠.


처음에는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신 것 같더라고요.


청소년을 염두에 두고 쓴 책은 아니에요. 오히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워질 너에게』라는 이전 책을 쓸 당시 둘째 아이가 아파서 돌보느라 큰 아이에게 소홀하게 됐어요. 그것도 공모전에 냈던 글이었는데, 원래는 ‘딸에게 읽어주는 시 편지’라는 제목으로 지었어요. 실은 딸에게 주는 제 편지였던 거죠. 그 무렵 딸이 청소년 대상에 딱 맞는 나이이기도 했고, 못 돌봐준 것에 대한 미안함을 다정하게 말해줄 수 있는 엄마가 아니라서 이렇게라도 남겨놓으면 나중에 아이가 엄마 마음을 알 수 있지 않을까 했어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워질 너에게』를 쓰고 나서 이후에 쓴 책이라 연결되는 측면은 있지 않을까 해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워질 너에게』는 딸이 봤나요?


네. 딸도 저랑 닮아서 조용히 읽고 별말은 없었어요. (웃음)


책을 관통하는 어투가 다정해요. 누군가에게 조곤조곤 말하는 구어체의 느낌이에요. 이것도 딸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이 반영된 건가요?


꼭 딸이라기보다는 저보다 나이 어린 동생이나 친구를 생각했어요. 저보다 나이 많은 사람이 읽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2, 30대가 읽어주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저로서는 그 나이대가 동생 같잖아요. 그래서 ‘내가 이런 그림이랑 시를 봤는데 좋아. 너도 볼래?’ 이런 느낌으로 전하고 싶었어요. 제가 전문가가 아니니까, 전문적인 지식이나 해설을 쓴 글이 아니잖아요. 그래서 구어체가 편해서 선택한 것 같아요.


시를 쓰실때도 주로 구어체를 쓰시나요?


시는 다양하게 써요. ‘다’로 끝나는 어투, 구어체, 그때그때 분위기에 따라 달라져요. 이 책은 일반적으로 쓰는 ‘~했다.’ 식의 문장으로 바꿔보기도 했어요. 하지만 그러면 느낌이 너무 달라지더라고요. 결국에는 다시 독자들에게 편지를 쓰면서 읽어보라고 권유하는 느낌이 됐으면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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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고요하게 깔려 있다


고흐의 <슬픔>을 처음 봤을 때 에피소드가 나와요.


고향이 거창이잖아요. 지금 빨리 달려도 네 시간이 걸리는 덕유산 밑 아주 산골이에요. 고등학교 때까지 거기서 보내고 대학을 서울로 왔거든요. 지금 생각하면 천만다행으로 국문과에 들어갔는데, 당시에는 원하던 대학이나 전공은 아니었어요. 원하지 않았던 상황과 생소한 환경 속에 던져진 건데, 학교를 일찍 들어가서 당시 제 나이가 열아홉이었어요. 열아홉 살에게 서울이 얼마나 크고 힘들고 화려했겠어요. 반대급부로 저는 초라하고 작고 주눅이 든 거죠. 그래서 우울하고 슬픈 날이 많았어요. 어느 날 일기장에 ‘서울은 공중변소 같다’는 문장을 써 놨더라고요. 제 느낌에 서울이 그렇게 다가왔나 봐요.


그러던 어느 날 집에서 책을 읽는데 고흐의 <슬픔>을 보게 됐어요. 엎드려 읽다가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나서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울기 시작했어요. 지금도 눈물이 나려고 하는데, 한참을 울고 나니까 내가 이렇게 깊이 슬펐구나, 속으로 여러 번 나에게 말하게 되더라고요. 그 이후로 고흐부터 시작해 화집을 찾아보면서 그림이 점점 저에게 가까이 다가왔어요. 시보다 그림이 더 먼저 온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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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 <슬픔>. 1882년, 석판화, 38.9x29㎝, 반 고흐 미술관, 암스테르담


고흐의 <슬픔>만이 아니고 책 전반을 관통하는 감정이 슬픔인 것 같아요.


아픈 아이 때문에 오랫동안 겪어야 하는 슬픔도 있었고, 가족들로부터 슬픔이 많이 왔어요. 가족은 제가 껴안아야 하고 도망갈 수 없잖아요. 첫 시집이 나오고 그다음 시집이 나오기까지 9년이 걸렸는데, 그 사이에 슬픔이 소나기처럼 지나갔어요. 슬픔이 너무 많이 저장되어 있어서 이런 식으로 퍼낼 수밖에 없었어요.


‘성숙해졌다면 그건 시와 그림과 나눈 마음 때문일 것’이라고 적기도 하셨는데요.


이 글은 저에게 말을 거는 시도였어요. ‘잘 지나왔어’ 라든지, ‘이만하면 됐어’ 같은 말을 스스로 계속하면서 내가 지나온 감정에게 의미를 주는 거예요. 의미를 주고 해석하면 슬픔이 쌓이지 않고 물처럼 흘러갈 것 같았어요. 그래서 아마 저랑 비슷한 감정을 가졌던 사람이 읽으면 자기 이야기가 겹쳐지면서 위로받았다는 느낌일 수도 있어요. 가족의 일이니까 남에게 말할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혼자 삭여야 되는데 나를 들여다보는 매개가 시와 그림이 된 거죠. 성숙해졌다는 표현은 그 감정을 바탕으로 나온 것 같아요.


사람들을 위로하는 책이라는 게, 요새 많이 나오고 있거든요. 이 시대가 위로가 필요한 시대라 그런걸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칼 융의 자서전에 ‘내 마음의 치유자는 나 자신일 수밖에 없다’는 말이 나와요. 결국에는 내 마음을 내가 치유하는 거구나, 싶었어요. 그러면서 내가 슬프기만 한 건 아니었다는 깨달음도 있었고요. 따뜻한 눈빛도 있었고, 방황했지만 고요했던 시기가 있었고, 아프지만 행복했던 순간도 있었어요. 그걸 글을 쓰면서 발견해 내더라고요. 그러면서 기저에는 슬픔이 고요하게 깔린 것 같아요. 하지만 슬픔을 슬픔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이제는 그 위에 따뜻한 색을 입힐 수 있어요. 도망가지 않고, 받아들여서 이것이 나를 키우는 데 거름이 됐다고 이해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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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과 시를 읽는 방법


그림도 직접 그리시나요?


제 소원이에요(웃음). 스케치는 가끔 해요. 이렇게 책이 나오면 책 표지를 그린다거나, 누군가 꽃다발을 주면 사진도 찍어놓지만 한 장씩 드로잉으로 그려 놔요. 그림은 글쓰기보다 훨씬 어려워요.


그림을 읽는 방법과 시를 읽는 방법이 다를 것 같아요. 작가님은 그 둘을 어떻게 읽나요?


영화를 보면 어떤 장면의 느낌만 가득하지, 줄거리를 전달하지 못해요. 소설을 읽을 때도 너무나 빠져서 읽은 소설도 처음부터 끝까지 무슨 내용인지 말할 수 없어요. 느낌을 가져오는 거지 그 이야기의 서사를 가져오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그림도 그래요. 그림 앞에 섰을 때 받는 느낌이 항상 중요하고 좋아요. 그래서 그 느낌이 어떤 것이든지 간에, 나에게 느낌을 주는 그림이 저에게는 좋은 그림이에요.


책을 내면서 빠진 원고도 있나요?


보테로가 그린 <모나리자, 열두 살>이 있었어요. ‘뚱뚱하면 어때’ 이런 제목으로 썼는데 비슷한 주제로 묶으면서 안타깝게 빠졌어요.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순간도 있었을 테지만, 주제 안에서 서로 맞는 시와 그림을 찾아내야 하는 글도 있었을 것 같아요.


사실 그림과 시가 딱 맞아 떨어지는 걸 찾기가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아요. 그래서 대체로 메모해놨던 아이디어 중에서 제 이야기와 겹치는 걸 글로 썼어요. 너무 소개하고 싶은데 알맞은 시를 못 찾아서 못 쓴 것도 많아요. 윈슬러 호머의 <여름밤>이라는 작품이 있어요. 달빛이 비치는 바다 앞에서 두 여인이 춤을 추는 그림인데, 보면 가슴이 막 두근두근하거든요. 달빛이 비치는 바다의 색이나 배경도 너무 좋아서 꼭 넣고 싶었어요. 제목도 ‘쉘 위 댄스’로 정해놓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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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슬러 호머, <여름밤>. 캔버스에 유채, 76.7cmx107cm, 오르세 미술관


지금 생각해 봐도 비슷한 시가 떠오르지 않네요.


집에 시집이 천 권쯤 있는데, 정말 다 뒤지고 인터넷을 오랫동안 찾아도 마음에 드는 걸 못 찾았어요. 심지어 제가 써볼까? 하는 생각도 했어요. 그림 망칠까 봐 못 썼죠. 물론 다른 사람이 찾으면 맞는 걸 찾았을 텐데, 한국어 시로 한정하다 보니 어려웠어요.

 

 

엄마가 딸에게


아까 고향 이야기가 나왔는데, 시골에서 살다 올라와 시인이자 두 아이 엄마로 사는 경험이 시나 글을 쓰는데 영향을 많이 주나요?


네, 그런 것 같아요. 왜냐하면 어릴 때는 시골이 너무 좁아서 참 싫었어요. 빨리 도망가고 싶었어요. 그래서 굳이 서울에 오려고 열심히 발버둥을 쳤는데, 아이를 낳고 이제 조금 뒤돌아볼 나이가 되고 나니까 고향이 새롭게 다가오더라고요. 그때 제가 빌딩 숲에서 자라지 않고 둥근 산, 작은 개울이 키운 게 정말 다행이구나, 그래서 아마 이만큼이라도 글에 물기가 있나 보다고 생각하고 나니까 그때야 고향이 좋아졌어요.


엄마로 사는 건, 저한테 선생님 같은 일이에요. 엄마가 아니었으면 경험하지 못했을 것들이 너무 많아요. 앞의 책도 사실 딸에게 주는 책이었기 때문에 엄마가 되지 않았다면 쓰지 못했을 거고요.


아이들한테도 시나 책을 보여주는 편이신가요?


어릴 때는 목록을 뽑아놓고 그중에서 동그라미를 치게 했어요. 그럼 재밌는 책도 고르고 재미없는 책도 고르고 하잖아요. 책도 선택하고 고르는 과정을 배워야 하는 것 같아요. 어렸을 때는 엄마가 두 권 고르고 아이가 세 권 골랐다면, 조금 커서는 다섯 권 고르게 하는 식으로요. 시험 끝난 날은 꼭 서점에 가서 책 사는 날로 정했어요.


친구나 동생, 아는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은 책이라고 하셨는데, 딸이 컸으니 지금은 친구 같겠어요.


네, 친구 같아서 좋아요. 열아홉 살 때 서울로 와버리고 엄마랑 그런 걸 못 해봤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가 외로웠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딸하고는 둘이 여행도 다니고 싶은데 둘 다 다정한 스타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우리 엄마와 제 관계같이 하지 않고 조금은 마음을 읽어줘야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옛날의 나를 보면서 지금의 내가 해야 할 엄마 역할을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고흐 씨, 시 읽어 줄까요』도 따님에게 보여 주셨어요?


싸인해서 네다섯 권 친구들에게 갖다 주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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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다 보면 기회는 온다


같이 시를 쓰는 ‘시 친구들’이 있나요?


동료 문인들은 있어요. 스물다섯 살에 등단했어요. 일찍 한 거죠. 그러고 나서 십 년 동안 시를 쓰지도 않고 발표하지도 않고 지내서 문단에서 사라진 존재였어요. 결혼하고 애도 낳고 남편 뒷바라지하고 그렇게 십 년이 금방 가버리더라고요. 그래도 틈틈이 쓰면서 첫 시집이 나오고 다시 시작해봐야겠다고 했는데, 원래도 없었지만 학연이나 인맥, 배경 없는 철저한 아웃사이더였어요. 심지어 등단시켜 준, 저를 추천해 준 선생님도 가물가물한 상태였어요. 그러다가 공모전을 생각한 거죠. 저같이 아무것도 없고 소외된 사람에게는 방법이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요새 문인들에게는 항상 ‘문단 내 성폭력’을 물어보게 되는데요. 문인이 모인 자리에서 불평등한 경험을 한 적이 있나요?


문단 행사에 나간 경우가 거의 없었어요. 지금도 그렇고요. 제가 직접 겪은 일은 없지만 저같이 집에만 있는 사람들한테도 소문이 들리잖아요. 그 소문이 진짜로 밝혀졌다는 걸 기사로 보니까 부끄럽죠. 같은 시인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같은 문단에 있다는 게 부끄러워요. 하지만 용기 있게 말해서 이만큼이라도 밝혀졌으니 변화가 시작되지 않을까 기대하게 돼요. 이번 기회를 통해 꼭 자정이 됐으면 해요.


문인을 꿈꾸는 젊은 사람들, 막 시작하려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계속 인내를 가지고 쓰다 보니까 이렇게 인터뷰도 하게 되잖아요? 올해 공모전 당선됐다고 연락 오고, 이렇게 인터뷰도 잡히는 걸 보면서 그래도 조금은 공정함이 남아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매우 기뻤어요. 누군가에게 부탁하지 않아도 되고, 비굴하게 굴지 않아도 되는 게 공모전이라 계속 그쪽으로 도전했던 것 같아요. 의지를 가지고 한다면 아주 조금씩이라도 나아가더라고요. 누군가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 믿고 썼으면 좋겠어요.


이 책이 어떤 의미로 독자들에게 다가갔으면 하나요?


뼈가 부러지거나 상처가 나면 약 바르잖아요. 마음은 다쳤는데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그럴 때 글 한 줄이라도, 그 마음에 닿는 연고가 되면 제일 좋고 가장 큰 욕심이에요. 여러 가지 다투고 화해하고 싸우고 사랑하는 일들이 누구에게나 다 있잖아요. 그 일들이 삶이고, 살아있다는 느낌이고, 온기라고 생각하고 나니까 저는 제가 참 좋아졌거든요. 제가 슬픔을 봤던 20대, 30대가 넘고 나니까 저는 저를 조금 다독일 수 있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이제는 괜찮다고 글을 쓰고 믿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그런 생각을 못 했어요. 저도 그런 나이대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용기가 된다면, 이 책이 값진 의미가 될 거로 생각해요.


 

 

고흐 씨, 시 읽어 줄까요이운진 저 | 사계절
『고흐 씨, 시 읽어 줄까요』는 ‘어느 날 문득 어른’이 되어 버린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책은 나이가 들면서 사라지고 잊히는 것들, 그리고 그것을 다시 발견한 순간에 출현하는 기쁨과 슬픔, 애도와 성숙의 문장들로 가득 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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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경수 “계속 그림 그리길 잘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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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가 80개 들어왔다. 현재까지 진행한 광고는 7개. 양경수의 그림으로 패키지를 만든 빵도 출시됐다. 사람들이 그에게 자꾸 묻는다. “돈 많이 벌었겠네요.”, “그림은 언제 그려요?” 양경수는 어떤 질문이든 반갑게 받는다. 직장 생활을 하진 않았지만 사회생활 경력으로는 10년이 훌쩍 넘은 “심심한 인생에 약 좀 치자”고 말하는 ‘그림왕 양치기’ 아닌가! 올해 5월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의 표지와 삽화를 그린 후, 소위 뜬 그가 첫 책 『실어증입니다, 일하기싫어증』을 펴냈다. 출근부터 퇴근까지 직장인의 24시간을 솔직하게 그린 책. 제목만 읽고도 공감이 된다는 독자들이 많다. 책은 5일 만에 3쇄를 찍었다.

 

양경수의 정체성은 일러스트레이터도 웹툰 작가도 아닌 ‘현대미술작가’다. 대학에서 서양학을 전공하면서 갖은 아르바이트를 섭렵했고, 불교미술을 재해석한 작품으로 ‘2015 불교박람회 ‘우수콘텐츠상’을 수상했다. 현재 네덜란드 국립세계문화박물관 ‘더 붓다’전에 초청돼 작품이 전시 중이다. 양경수 작가는 주류와 비주류를 넘나들며 ‘B급계의 A’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양경수의 필명 양치기(梁治己)는 ‘자신을 다스린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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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싫어증을 앓고 있니?


무척 바빠 보인다. 요즘 스케줄은 어떻게 되나?


책이 나오니 확실히 인터뷰와 강연이 많아졌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그림을 그리는 생활을 한 지가 거의 10년이 된 것 같다. 하루에 3시간 정도 자고 있는데, 잠을 많이 안 자는 건 익숙하다. 늘 피곤하다. 눈에 다크서클이 떠나질 않는다. (웃음)

 

저자로 쓴 책은 『실어증입니다, 일하기싫어증』이 처음이다. 책을 처음 받아 들었을 때 기분이 어땠나?

 

너무 좋았다. 어릴 때부터 만화책을 워낙 즐겨 읽었다. 내 이름으로 책이 나오면 어떨까? 늘 그런 생각을 했는데, 꿈이 실현됐다. 요즘 광고 일이 많이 들어와서 바쁘지만, 책에 관한 일정은 대부분 소화하려고 한다. 편집자분이 나와 동갑인데, 놀라시더라. 다른 일정이 많으면 책에는 대개 신경을 쓰지 않는데, 책에 애정이 많아서 놀랐다고. 사실 나는 책이 나왔다는 것에 혈안이 돼 있다. (웃음)

 

올해 5월에 출간된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에 그림으로 참여했는데, 책이 화제가 되면서 크게 주목받았다. 이번 책은 언제부터 준비했나?


『아, 보람 따위 됐으니 야근수당이나 주세요』가 나오기 전부터 준비했다. 편집자분이 내 그림을 보고 연락을 했다. 그림을 SNS에 계속 올리고 있었는데 70번째 그림부터인가, 화제가 됐다. 이미 원고가 많이 있었기 때문에 책 작업은 빨리 진행됐다.

 

『실어증입니다, 일하기싫어증』이 5일 만에 3쇄를 찍었다. 제목은 누가 정했나?


편집자분과 같이 정했다. 다른 후보도 많았는데 이 그림이 가장 알려졌으니 제격이라고 생각했다. 은유 없이 대놓고 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다들 일하기 싫지 않나?

 

(웃음) “직장 상사에게 이 책을 선물하고 싶다”는 리뷰가 많더라.


어필이 되는 건 좋지만 이 책 때문에 불이익을 당하는 독자가 없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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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20대라고 생각하는 독자가 많은 것 같다. 스무 살 때 2만 원 들고 집을 나와서 갖은 아르바이트를 다 했다고 들었다.


야반도주는 아니었고 낮에 나왔다. 홍대 근처에서 일하면서 친해진 친구들이랑 같이 살았다. 군대를 다녀와서는 장사도 하고 클럽에서도 일했다. 24살 때부터는 인테리어 일을 했다. 벽화를 그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일이 들어오더라. 동대문에 있는 가게 인테리어를 주로 했는데 순간순간 들어오는 일들을 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여러 직업군을 옮겨 다녔다.

 

직장 생활을 하진 않았지만 보통 직장인보다 다양한 사회생활을 했다. 그래서 많은 독자들이 양경수의 그림에 공감하는 것 같다.


군대나 직장 할 것 없이 말도 안 되는 상명하복이 정말 많다. 나는 회사에 다니지 않아서 더 심했던 것 같다. 인테리어를 하면서 특히 많이 느꼈다. 동대문 도매 시장도 요즘은 백화점처럼 인테리어를 한다. 그들은 장사 끝판왕인데 나보다 젊은 사람도 많았다. 어쨌든 그들이 나에게 일을 주고 돈을 주는 사람 아닌가? 신뢰감을 줘야 하니까 알 없는 안경도 쓰고, 슈트도 입고 다녔다.

 

고생을 많이 했나?


직장은 그래도 월급이 나오지 않나? 나는 돈을 떼인 적도 많다. 시공업자가 돈을 들고 튀었는데 날짜도 정확하게 기억한다. 2008년 여름이었는데 2천만 원을 안 주더라. 민사소송까지 준비했는데 소송비가 더 든다고 해서 결국 포기했지만 어려운 일이 많았다. 당시에 내가 어린 나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25살 때 일이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어릴 때였구나 싶다.

 

 

자기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려달라는 독자들도 많을 것 같다.


엄청 많다. 쪽지도 자주 오는데, 정중한 사람도 있지만 진짜 무례한 사람도 있다. 이런 그림 그려주면 자기 프로필로 쓰겠다는 사람도 있고, 원본을 보내달라는 사람도 있다. 카피만 싹 지워서 상업적 광고로 쓰는 사람들도 많아서 현재 소송 중이다. 합의금을 받으면 좋은 일로 쓸 계획이다. 이런 게 좀 이슈화가 됐으면 좋겠다. 내 그림을 퍼가고 즐기는 건 좋지만, 저작권을 함부로 사용하면 안 되지 않나?

 

점심시간만을 오매불망 기다리는 직장인의 모습을 많이 그렸다. 밥심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요즘 하는 강연 주제도 ‘그림으로 밥 먹고 살기’다. 힘들게 성공한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저렇게 살았으니까 성공했지’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죽지 않는 이상 해야 하는 일도 있지 않나? 먹고 사는 것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

 

책에 실린 그림 중에 가장 좋아하는 그림이 있다면?


34쪽 그림이다. “남들과 다른 삶을 살기 위해 오늘도 나 남들과 같은 삶을 사네.” 표지로 하고 싶었던 그림인데, 이 한 문장이 모든 걸 담고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남들과 다르게, 특별하게 살고 싶어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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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어증입니다, 일하기싫어증』 34쪽

 

기대하는 의외의 독자는 없나?


글쎄, 이 책이 사람들에게 큰 도움이 되는 책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아마 상사들이 읽는다고 하더라도 ‘아, 너희가 이랬구나. 내가 좀 신경 쓸게’라고 생각할 일은 전혀 없을 거다. 다만 비슷한 상황에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서로 보면서, 속으로 ‘너도 싫어증 있겠구나’ 생각하는 거다. 우리가 한마음일 때 평화롭지 않나? 지하철에서 누군가와 부딪히면 화가 나는데, 그럴 때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예명이 ‘그림왕 양치기’다. 특별한 뜻이 있나?


만화 『원피스』를 무척 좋아한다. 해적왕 이야기가 나오는데 여기서 왕은 절대권력자라는 의미가 아니다. 동료들한테 권위도 없다. 그런데 다 책임을 진다. 이런 선장이 진짜 왕이라고 생각한다. 그림을 그리면서 꿈꾸는 일도 다르지 않다. 실력은 있는데 아직 빛을 못 본 후배들이 너무 많다. 내가 선배라서가 아니라 동료의식으로 그들과 함께 일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왜 자기 내면의 아픔을 못 봐주냐고?

 

네이버 웹툰에서 <잡다한 컷>을 연재 중이다. ‘잡(JOB)다(多)하지 않은 우리들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책이랑 비슷한 콘셉트로 그릴 계획이었는데, 여자친구 이야기를 듣고 생각을 바꿨다. 여자친구가 어느 날 은행에 갔는데, 그때가 영업 종료 시각 20분 전이었다. 번호표를 들고 자기 순서를 기다리는데 직원이 엄청 짜증을 냈다더라. 화가 여기까지 올라오는 걸 참고 있는데, 알고 보니 그 직원은 임신 중이었다. 여자친구가 내 그림이 떠오르면서 ‘아, 저 사람 얼마나 일하기 싫을까’ 생각이 들어 참았다고 했다. 그때 생각했다. ‘직장인뿐 아니라 모든 직업군의 애환을 그리면, 조금이라도 서로를 배려하고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요즘은 내가 역으로 인터뷰를 하러 다닌다. 그나마 조금 유명해져서 쉬워졌지만 아직 어렵다. 12월에는 ‘매일 오는 산타’라는 콘셉트로 택배 기사들의 애환을 노래로 만들 예정이다. JTBC에서 새로 시작하는 프로그램에서 공개한다.

 

‘프로스펙러’ 편을 봤는데 찡하더라. 스펙을 ‘쓰펙’이라고 표현했다.


다음 편은 “밥 먹기 위해서 일하는데 밥을 못 먹네”다. 네이버 웹툰 작가 모임에 나가봤는데 정말 다양한 주제로 웹툰을 연재 중이다. 소위 병맛이 있어야 독자분들이 관심을 갖는다고 하는데, 여러 색깔이 공존하는 게 좋은 것 같다. 사소한 이야기도 자주 다뤄보고 싶다. 예를 들어, 신문사 기자들은 지진이 나면 다른 사람들과 반대쪽으로 뛰어야 한다더라. 은행 직원은 고객들이 종이표를 뽑고 째려보고 있으니 화장실도 못 간다고 하고. 조금 재미없는 에피소드일지 몰라도 그 직업군은 이 웹툰을 보지 않겠나? 서로 다른 직업군의 이야기를 읽으면, ‘아 그랬구나’ 하고 접점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본업은 현대미술작가다. 불교미술을 현대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현재 네덜란드 국립세계문화박물관 ‘더 붓다’(THE BUDDHA)전에 초청돼 작품이 전시 중이다.


불교미술은 내가 평생 해야 할 작업이다. 나는 웹툰이나 다른 작업도 이름만 다를 뿐이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내가 그리는 그림을 보면 불교적인 내용도 많다. 불교의 핵심이 뭔가? ‘부처님을 믿어라’가 아니라, ‘내가 소중하면 상대도 소중하다’는 말이다. 내가 부처면 상대도 부처라는 것이 핵심이다.

 

한 지인이 페이스북 포스팅에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라고 댓글을 달았더라. 맞는 말이지만 초심을 잃을까 봐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을 것 같은데.


많이 들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독 남이 잘되면 배 아파하는데, 내가 고생을 많이 했기 때문에 응원해주는 친구들이 많지만 시샘하는 친구도 분명 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내가 덜 열심히 살 수는 없으니까. 요즘 술을 안 마시려고 한다. 바쁘다고 돈이 좀 벌린다고 흥청망청 놀면 안 되지 않나? 자기관리를 열심히 하려고 노력 중이다. 다행스러운 건 20대 초반에 잘 풀린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현대미술을 하면서도 돈을 벌기 위한 작업을 꾸준히 했다. 벌이가 많지 않아도 직장인 평균 수준 정도는 벌었기 때문에 체계적으로 돈을 쓰는 습관은 길렀다. 얼마 전에 사업자도 냈는데, 평소 눈여겨봤던 오타쿠 후배들과 함께 작업하려고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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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이 원하는 일과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다를 때, 어떻게 할 생각인가?


미술하는 후배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다. “사실 작가가 자기 이야기를 그리는 건 가장 쉬운 일”이라는 말이다. 왜냐면 바로 그리면 되기 때문이다. 작가들은 자신이 고민을 많이 하고 사니까 이게 엄청난 주제라고 생각하는데, 물론 대단한 주제지만 대중을 설득하는 일은 10배, 1,000배 더 힘들다. 예술가는 사람들이 자신을 못 알아봐 준다고, 왜 자기 내면의 아픔을 못 봐주냐고 하는데. 이건 틀린 말이다. 못할 것 같아서 안 했을 뿐이다. 사람들이 나를 두고, ‘불교미술을 한다면서 왜 웹툰을 그리고 일러스트를 하냐’고 말하기도 하는데, 나는 양으로 더 승부하고 싶다. 더 쉬지 않고 작업할 생각이다. 대중에게 인정받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기 때문이다.

 

 

<스포츠경향>에서는 꾸준히 ‘양치기의 세상 약치기’라는 제목으로 그림을 연재 중이다. 지금 우리나라가 약 때문에 난리가 나지 않았나? 좋은 약은 뭘까?


(웃음) 정확한 진단과 정확한 처방으로 받는 약이 아닐까? 웃음에 관련된 것은 많이 섭취해도 좋으니까 내 책은 좀 많이 드셔도 될 것 같다.

 

아무래도 세상의 ‘을’들이 이 책에 특히 공감할 것 같다. ‘갑’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없는지.


오히려 반대로 지금의 을에게 말하고 싶다. 언젠가 이들도 갑이 되지 않겠나? 지금의 갑들은 어차피 안 바뀐다. 바뀌는 척은 할지 몰라도 안 바뀐다. 그렇다면 우리가 바뀌는 게 더 현실적이다. 우리가 마음을 달리 먹고 행동을 달리하는 일이 더 빠르다. 광화문 촛불시위를 보면서 문화예술의 힘을 깨닫는다. 우리가 결국 하나가 될 때는 이승환, 전인권의 노래를 들을 때 아닌가. 진짜 오그라들지만 문화예술의 힘이 가장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독자들에게 자유롭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퇴사를 조장하는 책이라는 이야기를 심심찮게 들었는데, 그렇지 않다. 0.5초 만에 픽 웃을 수 있는 그림이길 바라며 쓴 책이다. 읽는 데 30분도 안 걸린다. 아무 페이지나 열어도 웃을 수 있는, 늘 들고 다니는 책이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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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경수의 '녹원전법상'


 

 

실어증입니다, 일하기싫어증양경수 저 | 오우아
양경수 작가가 그동안 그려온 ‘약치기 그림’에 미공개컷들을 더해 첫번째 책을 출간한다. 각각의 장면을 따로 떼어놓고 보면 위트 있는 한 컷 그림이지만, 출근부터 퇴근까지 직장인의 24시간을 완벽하게 재구성한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매일 반복되는 직장인의 고투를 담은 장편 그림책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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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민석 “제 책이 올해의 책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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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는 2003년부터 지금까지 ‘네티즌 선정, 올해의 책’을 선정하고 있다. 2003년 출간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나무』를 시작으로 독자들이 직접 선정한 책은 모두 13권. 2015년에는 『미움받을 용기』, 2014년은 『강신주의 감정수업』, 2013년은 조정래의 『정글만리』였다. 1위로 선정된 ‘올해의 책’ 13권을 꼼꼼히 살펴봐도 ‘역사’ 책은 한 권도 없다. 소설, 인문, 자기관리 분야에서 숱하게 1위가 탄생할 동안 ‘역사’ 분야는 24위권 안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올해 7월 출간된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은 ‘네티즌 선정, 올해의 책 2016’ 투표(11월 14일~12월 15일)에서 20% 넘는 득표율로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역사책 최초의 1위가 탄생할지 흥미진진하다.

 

올해만 20만 독자를 만난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은 한국사 강사 설민석이 오랫동안 준비한 책이다. 「조선왕조실록』은 보통 사람이 하루에 100쪽씩 읽어도 무려 4년 3개월이 걸리는 방대한 분량. 설민석은 27명의 조선 왕들을 한 권으로 불러모아 쉽게 읽을 수 있는 대중 인문교양서를 탄생시켰다. 전작 『설민석의 무도 한국사 특강』『역적의 아들, 정조』『전쟁의 신, 이순신』으로 꾸준히 독자를 만나왔지만, ‘저자’로 이름이 오르내린 건 올해가 가장 눈에 띈다.

 

수험생에게는 일찌감치 스타강사, MBC <무한도전>, O tvN <어쩌다 어른>을 통해 대중에게 알려진 설민석은 한국사 강의를 한 지 올해로 21년이다. 누군가는 반짝 뜬 스타 아니냐며 눈을 흘기지만, 대학생 때부터 보습학원에서 사회를 가르쳤고 한국사 강사로 활동하며 2011년에는 한국사 교육 사이트 태건에듀를 설립했다. 설민석은 “강연은 가슴에 덕을 담아주는 일이고, 강의는 학생들에게 지식을 담아주는 일”이라고 말했다. 타고난 끼와 말재주를 가진 그는 “신동엽으로 태어나 손석희를 지향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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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지덕체를 갖고 싶죠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이 ‘예스24 네티즌 선정, 올해의 책’ 투표에서 현재 1위입니다. ‘올해의 책’ 1위로 선정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책인데요. 기대하고 계시는지요?

 

솔직한 심정으로 지금까지 겪은 일 중에 가장 놀라워요. 정말 뛰어난 작가분들, 좋은 책들이 많은데 이렇게 사랑을 많이 받아 감사하면서도 송구스럽기도 해요. 집필할 당시에는 이렇게 큰 반응이 있을 거라 전혀 상상하지 못했어요. 제가 연구해왔던 걸 정리하는 의미가 컸고, 그 과정에서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최대한 쉽고 편하게 풀어쓰고자 노력했어요. 책이 나오자마자 큰 사랑을 받으면서, 생각보다 많은 분이 우리 역사에 관심이 있고 알고자 하는 열망이 컸구나, 새삼 느꼈어요. 만약 ‘올해의 책’으로 선정된다면 이 모든 영광을 조선의 스물일곱 왕들께 돌리고 싶어요.

 

역사 책임에도 불구하고 “쉽다, 재밌다”는 평이 가장 많았습니다. 독자 리뷰를 읽어보셨나요?

 

블로그, 인터넷서점 한줄평 등 빠짐없이 다 읽고 있어요. 수강생들이 써주는 후기랑은 조금 달라요. 학생들은 무조건적인 사랑, 애정을 표현해주신다면, 독자분들은 응원, 격려와 함께 날카로운 지적도 해주세요. 학생들이 가슴으로 다가온다면, 독자들은 머리와 가슴으로 다가온다고 할까요?

 

기억에 남는 리뷰가 있었나요?


“조선 역사를 오늘날에 빗대어 조금 가볍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는데, 읽다 보면 여지없이 원문이 등장해 무게중심을 잡아준다”는 글이 기억에 남아요. 책 마지막 부분에 ‘한눈으로 보는 인포그래픽’이 실렸잖아요. 27명 조선 왕들을 호랑이로 표현한 부분이 재밌다는 글도 많이 봤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을 다룬 책은 무척 많습니다. 예스24에서 ‘조선왕조실록’을 검색해보니 433건이 뜹니다.

 

많죠. 하지만 대중들이 쉽게 끝까지 읽을 수 있는 책이었냐는 점에는 의문이 들었어요. 「조선왕조실록」을 내용으로 종종 대중 강연을 하곤 하는데, 굳이 대상에 따라 표현이나 설명을 달리하지 않아도 어르신부터 아이들까지 모두 재미있게 강의를 들으시더라고요. 그래서 생각했죠. 최대한 강의체를 살려서 이야기하듯이 써보면 어떨까. 우리가 조선왕조실록이 뭔지는 알지만 그걸 다 찾아서 원본을 일일이 읽어볼 수는 없잖아요. 제가 대신해서 쉽게 정리해드리면 도움이 되겠다 싶었어요. ‘역사 읽어주는 남자, 설민석’이라는 타이틀을 종종 쓰곤 하는데, 스스로 공부하기 어려운 역사가 있다면 저를 한 번 거쳐서 좀 더 쉽게 읽고, 배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 제 마음입니다.

 

제1대왕 ‘태조’부터 왕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태조는 ‘이빨 빠진 호랑이’, 세종은 ‘위대한 호랑이’, 숙종은 ‘금수저 호랑이’, 고종은 ‘비운의 호랑이’로 비유하셨습니다.

 

「태종실록」 36권에 보면 “18년 동안 호랑이를 탔으니 또한 이미 족하다”고 나와 있어요. 이 이야기에 착안해 각 왕의 특징을 호랑이로 표현해봤어요. 태종은 양손에 피를 묻혀가며 왕의 자리에 올랐지만, 조선왕조 27명 임금 중 자발적으로 양위한 유일한 왕이었기 때문에 ‘진짜 호랑이’라고 표현했죠. 오늘날 조선 최고의 성인인 세종을 탄생시킨 일등공신이기도 하고요.

 

존경하는 역사 인물로 ‘세종, 정조, 이순신’을 꼽으셨어요. 조선 왕들의 장점을 뽑아 가질 수 있다면, 어떤 왕의 재능을 갖고 싶으세요?

 

우선 세종대왕의 지와 덕을 갖고 싶어요. 사람이 책을 보고 공부하는 일이 어떤 목표에 의한 과정일 때가 많잖아요. 그런데 세종은 타고난 활자 중독이었어요. 손에는 늘 책이 있었으니까요. 동시에 백성을 무척 사랑한 왕이었죠. 사람이 몸이 아프면 만사가 짜증나는데, 세종은 안질을 겪으면서도 말년에 훈민정음을 만들었으니까요. 반면 체력적인 면에서는 정조를 따라갈 왕이 없어요. 책에는 ‘완벽한 호랑이’라고 표현했는데, 무예가 뛰어나 활쏘기를 할 때면 백발백중의 실력이었어요. 동시에 글쓰기도 매우 좋아해 조선시대 왕 중에 글을 가장 많이 쓴 사람이죠. 지덕체를 모두 갖춘 왕이기 때문에 안 꼽을 수가 없네요.

 

학창시절부터 역사에 관심을 가졌던 건 아니셨다고요.

 

시험을 보기 위해 공부했을 뿐,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역사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죠. 그러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고민이 되던 시점에, 역사책을 읽게 됐어요. 선조들의 삶을 살펴보게 된 거죠. 저 역시 바쁘게하루하루 사는 평범한 사람 중의 한 명이에요. 변화하는 시대에 맞추어 살다 보면 어느지점에 와 있는지도 모르고 그냥 냅다 달리는 경우가 많죠. 하지만 역사를 공부하면서부터는 “나은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현재의 위치와, 과거의 발자취를 돌아보는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무적핑크의 『조선왕조실톡』등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혹시 읽어보셨나요?

 

두 분의 팬입니다. 너무 재밌게 잘 읽었어요. 『조선왕조실톡』에 나오는 장면도 기억나요. 세종대왕이 일을 너무 많이 시켜서 황희 정승이 ‘과로로로…’했다는 장면인데요.(웃음) 독자 입장에서 참 재밌더라고요. 「조선왕조실록」에 관해서는 원문, 야사뿐만 아니라 모든 걸 읽으려고 해요. 독자분들이 좋아하는 흐름을 읽어야 하니까요.

 

평소 즐겨 읽는 책도 역사책이신가요?

 

업이 업인지라 역사 관련 책들을 주로 많이 보죠. 역사를 다룬 화제작들은 시간을 내서 챙겨보려고 하는 편인데, 사실 이건 직업적인 이유나 연구를 위한 목적도 있는 거고, 실제로 좋아하는 독서는 좋아하는 고전을 반복해서 보는 거예요. 『논어』는 옆에 두고 계속해서 보면서 매번 새로운 의미를 되새기고, 문학 중에서는 『그리스인 조르바』를 좋아해서 쉴 여유가 생기면 항상 챙겨서 가져가곤 하죠. 어릴 때는 만화나 무협지 같은 것도 참 좋아했어요. 지금도 강의 콘텐츠를 만들 때상상력이 풍부하다는 말을 자주 듣곤 하는데, 아마 제 상상력의 원천이 그런 독서 경험에서 나온 게 아닐까 싶어요.

 

‘좋은’ 책을 정의해본다면요?


현대사회는 워낙 빠르게 변하고, 다들 바쁘기 때문에 대부분 시간을 쪼개서 책을 읽게 되잖아요. 그렇다 보니 많은 사람이 책에서 특정 해답을 구하고자 하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단번에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책은 존재하지 않아요. 좋은 책은 읽고 난 후에 명쾌한 결론과 해답을 내려주는 책이 아니라, 읽고 난 후에 도리어 우리에게 숙제를 주는 책이라고 생각해요. 책장을 덮고 나면 생각과 질문이 몰려오는 그런 책이 사유를 깊어지게 하는 것 아닐까요? 끝난 순간부터 다시 시작되는 그런 책이 좋은 책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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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보다 더 중요한 덕목이 있을까요?

 

역사를 가르칠 때, 항상 ‘실사구시(實事求是)’를 강조하시는 거로 유명하세요.

 

흔히 역사에 무관심하거나 역사 공부를 지겨워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흘러간 그 오래된 이야기를 왜 지금 굳이 알아야 하느냐고 말하곤 해요. 그런데 말이죠. 그 흘러간 이야기, 지나간 조상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는 현재를 살아가는 지혜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 현실에서 찾기 힘들었던 꿈과 용기와 멘토를 지나간 역사 속에서 발견하고 깨달을 수 있어요. 역사 공부를 해보면 가장 신기하고 재밌는 것이 ‘와, 이때도 이랬네?’, ‘와, 사람 사는 건 다 똑같구나’ 하고 느낄 때예요. 역사 속에서 현재와 비슷한 패턴을 발견하고 그땐 어떻게 헤쳐 나갔었는지, 어떤 판단과 행동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를 살펴보면 현재를 살아가는 통찰, 미래를 대비하는 지혜를 배울 수가 있죠.

 

강의뿐 아니라 강연도 종종 하시는데요.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무엇인가요?

 

어떤 왕을 좋아하시느냐? 이런 질문이 가장 많고요. 시국이 어려운데, 조선의 왕들에게서 어떤 부분을 배울 수 있겠냐는 질문도 많이 하세요. 요즘은 특히 시국에 관련된 질문을 많이 받아요.

 

같은 문맥으로 ‘차기 대통령이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을 읽는다면, 어떤 역사에 주목해서 이 책을 읽으라’고 말씀하고 싶으세요?

 

위기에서 지혜를 구할 수 있겠죠. 조선에 닥쳤던 가장 큰 위기이자 시련은 임진왜란이었고요. 아시겠지만 임진왜란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비극이 아니었어요. 이미 그 징후가 너무나 명확했고, 당시 조선의 임금과 조정, 지배층은 모두 일본이 곧 처들어올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대체 왜 조선은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못한 채 무방비하게 당할 수밖에 없었을까요? 국가와 민족이 위험에 처하는 것보다 사회의 변화와 개혁을 더 두려워했던 기득권과, 무능하고 부도덕한 정권이 알면서도 불행을 자초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역사 속 놀라운 진실들은 언제나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주죠.

 

지금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책의 한 쪽을 서면으로 보낼 수 있다면요?

 

생각이 많아지는데요. 정조대왕 이야기를 읽으면 좋지 않을까 싶어요. 정조의 애민과 소통의 정신이 컸던 왕이에요. 정조는 백성들이 나에게 오는 걸 막지 말라고 했어요. 지금으로 따지면 초등학생 나이의 소년이 왕이 탄 가마 앞을 막아서면서 억울함을 토로했는데, 즉각 소년의 민원을 처리해줬어요. 저게 군주가 아닌가 싶어요. 또 정약용이 쓴 글 중에 「원목(原牧)」이란 글이 있는데, 서문을 보면 “목민관이 백성을 위해서 있는 것인가, 백성이 목민관을 위해서 생긴 것인가?”라고 해요. 백성이 고혈을 짜서 통치자를 위해 세금을 내니, 백성이 통치자를 위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통치자가 백성을 위해 존재한다, 결국 왕은 백성에서 나온 것이다, 왕이 왕답지 못하면 왕을 바꾸는 것이 맞다며 ‘천자교체설’을 이야기합니다. 이야기를 해석해 보면 이건 역적의 발언일 수 있는데, 정조는 이를 인정했어요. 정조가 국민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는 증거죠. 상상을 글로 적을 수 있는 시대가 정조 시대였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큽니다. 국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통치자의 모습이 간절한 시기가 아닌가 싶어요.

 

지도자가 갖고 있어야 할 가장 큰 덕목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카리스마 있는 리더십도 중요하고, 해박한 지식, 유창한 언변도 모두 다 중요하지만, 그 모든 능력에 앞서 선행되어야 하는 덕목은 바로 ‘소통’하려는 태도라고 생각해요. 지도자가 무엇입니까? 절대 혼자서는 될 수 없는 존재예요. 타인의 말을 귀담아듣고, 열린 마음으로 대화하고, 진심으로서 소통하는 자세가 그 어떤 것보다 필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합니다.

 

학교 역사 수업이 재미없어서 학원, 인터넷 강의를 듣는다는 사람들도 많은데요. 학교 수업에 관해 바라는 점은 없으신가요?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그것을 학교 선생님들의 역량 부족이나 학교 수업 방식의 문제로 돌리고 싶지는 않다는 거예요. 저는 교원분들의 직무 연수를 위한 강의도 하고 있는데요. 정말 뛰어나시고 훌륭하시고 학생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가득한 분들이에요. 좋은 수업에 대한 고민도 정말 많으세요. 문제는 이분들이 수업의 질을 올릴 만한 시간이나 여유가 현장에서 확보가 되지 않고 있다는 거죠. 쉬는 시간에 짬을 내서, 잠자는 시간 줄여서 연수도 들으시더라고요. 사실 수업 준비보다 더 많은 행정 업무에 시달리고 계시거든요. 아마 제가 학교 현장에 있었어도 지금처럼 강의하기는 어려웠을 거예요. 그런 환경이 조금 개선된다면 공교육의 질이 좋아지지 않을까 감히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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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먼저 흥미를 가져야

 

대중 강연을 비롯해 TV에도 종종 얼굴을 비치고 계십니다. 스케줄 관리는 어떻게 하고 계시는지요?

 

아무래도 학생을 가르치는 일이 본업이다 보니, 수업을 최우선으로 두고 다른 일정들을 조정하고 있습니다. 수업에 방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다른 활동도 해야 하기 때문에 어떤 날은 아침부터 꼭두새벽까지 날을 새기도 하죠. 여기저기 찾아주시고, 불러주시는 곳도 많은데 사실 요즘은 다 소화하기가 벅차서 번번이 거절해야 돼요. 그게 또 참 힘든 일이더라고요.

 

철저한 자기 관리로도 유명하세요.

 

건강 관리를 열심히 하는 편이에요. 강의를 21년 동안 해왔는데, 가장 중요한 게 체력이더라고요. 술, 담배처럼 몸에 해로운 건 일절 안 하고, 탄산음료도 가급적 마시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대신 목 관리를 위해 몸에 좋은 차를 자주 마시는 편이지요. 운동도 특별한 일이 없으면 이른 아침에 한두 시간씩은 매일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역사 강의를 위한 연구도 계속하실 텐데요.

 

연구실에 스케줄 표가 있는데 특별한 일정이 없어도 ‘연구 회의’라는 이름으로 하루 두 시간 정도는 꼭 별도로 시간을 잡아놔요. 특별히 무언가를 준비하지 않아도 전문 연구원들하고 모여서 이런저런 주제로 브레인스토밍을 하고, 생각을 나누죠. 사실 제가 많이 배워요. 자만이나 권위를 버리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려는 자세가 배움에서는 가장 중요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21년간 역사 강의를 해오셨지만, 대중은 방송 때문에 갑자기 뜬 스타강사라고 생각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대중이 갖고 있는 편견이나 오해는 없다고 생각하는지요?

 

강의를 오래 해왔지만 이렇게 다양한 대중분들에게 폭넓게 알려진 건 방송 출연을 하게 되면서부터이니 당연히 그런 오해를 하실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서운하거나 아쉬운 마음은 없습니다. 수험생이 아니었던 분들은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죠. 다만, 역사를 대하는 제 마음가짐이나 진심에 대해서만큼은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하죠.

 

한국사 강사로 성공할 수 있었던 계기나 요인이 있을까요?

 

대중이 역사를 어렵고 지루하게 느끼는 건 역사에 대한 막연한 편견 같은 것이 작용한 면이 있다고 봐요. 저도 학창시절엔 역사 공부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어요. 지루하고 졸린 과목이라는 인식이 한 번 자리 잡기 시작하면 그 편견을 깨주는 강렬한 경험이 생기기 전까지는 다시 다가서기가 어려워져요. 저는 사람들 머릿속에 자리 잡은 편견을 깨고 싶었고, 그래서 다양한 시도를 하게 되었어요. 영화에 역사를 접목한다든지, 역사 강의에 CG나 자막을 도입한다든지 그런 일들이죠. ‘좋은 거니 배워! 알아야 하니 배워’라는 당위는 학습에 대한 거부감만 부추길 뿐이에요. 먼저 스스로 흥미를 갖게 하는 게 중요하죠.

 

현장에서 수험생들을 많이 만나실 텐데요. 시험에 합격해도 취업이 어려운 세상입니다. 학원강사를 처음부터 원해서 한 일은 아니었고 생계를 위해 시작했다고 하셨는데요. 청춘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설민석 하면 성공한 스타강사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으신데요. 저 역시 젊은 사람들이 공감할 시절이 있었어요. 온갖 아르바이트도 했고요. 누구든 안 될 때는 뭘 해도 안 된다고 하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움직이는 것만큼 중요한 게 없다고 생각해요. 역사적으로 봐도 위인들은 고비를 기회로 삼았어요. 정도전도 관직 생활을 하다 좌천돼서 7년을 보냈는데, 그 시기에 조선의 청사진을 보고 이성계라는 벗도 만났어요. ‘정조의 남자’ 정약용도 죄인으로 귀양갔을 때, 그동안 집필하지 못한 책들을 써서 역사에 이름을 기록했고, 이순신 장군도 젊었을 때는 정말 우울한 인생을 살았어요. 스무 살까지 문과를 준비했는데 계속 떨어져 결국 무과로 틀어서 서른 살 때 합격했으니까요. 추정컨대 20년 가까이 공시를 준비한 거예요. 20년 동안 20수를 했으니, 주변 사람들은 그에게 뭐라고 했을까요? 분명 재능도 없고 체력도 없다고 했겠죠. 젊은 분들께 조언을 드리는 게 참 어려운 일인데요. 하지만 반드시 봄은 온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이건 자연의 섭리예요. 제 모든 걸 걸 수 있어요. 지금 힘들다고 자학하거나 마치 모든 걸 포기한 사람처럼 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분명히 찾아올 봄, 빛을 대비하는 마음으로 자신을 갈고닦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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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의 꿈이 궁금합니다.

 

소명으로 삼고 있는 건 ‘한국사의 대중화’입니다. 대중이 역사를 좀 더 친숙하게, 쉽게, 재미있게 느꼈으면 좋겠다 하는 바람을 항상 가지고 있고, 그 소망을 실천하기 앞으로도 계속해서 꾸준히 노력할 생각이에요. 우리 역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신 분들을 후원하는 일도 꾸준히 할 생각이고 내년부터는 수험생들을 위한 수능 역사 강의도 무료로 진행할 예정입니다. 12월에는 만화가 나옵니다. 언어, 인종을 뛰어넘어 소통할 수 있는 매체가 뭐가 있을까, 오랫동안 고민했는데도 만화만큼 좋은 게 없더라고요. 제 반려견 로빈도 출연하고 저도 나옵니다. 타임슬립을 해서 세종대왕도 만나고 정조도 만나요. 역사를 문화 콘텐츠로 만드는 일이 제 꿈입니다.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을 꼭 추천하고 싶은 대상이 있다면요?

 

나랏일 하는 분들이 보셨으면 좋겠어요. 부모들이 아이와 같이 읽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가장 뿌듯한데요. 그분들이 킹메이커니까요. 그런데 요즘 시국을 보면 아이들이 왕이 될 때까지 기다리기 어려워요. 나랏일 하시느라 무척 바쁘시겠지만, 순항하다가도 폭풍우를 만나면 좌초될 수 있어요. 어려운 상황에서는 빨리 노를 젓게 되지만, 그럴 때일수록 스스로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불도 피우고 SOS도 청해야겠지만, 역사책을 통해서 지금을 돌아봤으면 좋겠어요.『군주론』을 쓴 마키아벨리는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면 매일같이 목욕재계를 하고 관복을 입고 서재에 들어가 책을 읽었다고 해요. 아마도 역사책이 아닐까 싶은데요. 선현들의 지혜를 만나는 것만큼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일은 없지 않을까요?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설민석 저 | 세계사
『설민석의 조선왕조실록』은 27명의 조선의 왕들을 한 권으로 불러 모아 핵심적인 주요 사건들을 풀어쓴 책이다. 설민석 특유의 흡입력 있는 간결함과 재치 있는 말투를 구어체 그대로 책에다 담았다. 중간에 갑자기 등장하는 질의응답 구성은 마치 바로 앞에서 강연을 듣고 있다는 느낌을 들게 한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허지웅 “친애하는 적처럼, 거리를 두고 바라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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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친애하는 적』이 나왔다. 허지웅이 사랑한 다큐멘터리의 제목이자, 사람을 너무 쉽게 믿고 모든 걸 주려고 했던 자신을 돌아보면서 관계를 맺을 때는 ‘적장’처럼 예의를 갖추겠다는 의미의 제목이다. 어머니, 아버지와의 기억, 선인장의 미감, 영화, 신해철과의 우정 등 허지웅의 소소하면서도 내밀한 면이 다양하게 담겼다.


본인은 항상 글 쓰는 사람이라고 주장해 왔지만, 얼굴을 비치는 TV 프로그램이 많아질수록 사람들은 허지웅을 방송인이나 연예인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살기 팍팍한 세상에 남의 직종을 나누는 게 그리 큰 의미는 없다. 그의 말마따나 ‘평가는 남의 몫’이다. 그러나 자신이 쓰던 샤워기 헤드가 불티나게 팔릴 정도의 유명인이면서도 겉껍데기만 대중에게 전달되는 ‘방송 건달’이 되지 않으려고 애쓰는 사람이라는 점은,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에 적어놓아야 한다.

 

 

여전히 글쓰는 사람


책이 2년 만에 나왔습니다. 소감이 있다면.

 

지난 책 나왔을 때 독자들에게 매년 한 번씩 내겠다고 약속했었는데, 그걸 지키지 못해서 새 책을 내면서도 게을렀다는 생각을 하네요. 가뿐한 마음이 안 들어요.


일주일에 마감이 서너 번씩 있으셨다고 들었는데, 그 정도면 최선을 다한 게 아닐까요?


편집자님이 2년 동안 계속 쪼았거든요. 매주 촬영하고 다른 스케줄 하면서도 마감을 세 번씩 했는데 자꾸 저한테 게으르다는 거예요. 이상하다 싶었는데 이번에 글을 모아보니까 거의 백과사전 수준이 됐어요. 다음에는 앞뒤가 맞는 사람이랑 작업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웃음)


백과사전만큼 쓰셨는데 이 정도 두께면 많이 추리신 거네요. 편집부랑 이견은 없으셨나요?


별로 없었어요. 제가 조금 틱틱거리는 건 있는데 마음속으로는 애정을 품고 있고, 책은 어쨌든 제 이름으로 나오잖아요. 제일 중요한 게 글쓰기이기도 하고요.


허지웅이라는 사람이 많이 녹아있는 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생활이나 개인적인 소감이 책으로 활자화돼서 나오는 게 부담스럽진 않으셨어요?


글로 쓸 때는 아닌데,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부담스럽긴 하죠. 흑역사라면서 밝혀지는 거 보면 다 예전에 인터뷰하거나 썼던 내용이더라고요. 쓸 때는 자기 상황이 반영될 수밖에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 같기도 하고요. 하지만 남들보다는 비교적 제 일을 남 일처럼 바라보는 경향은 있어요.


 ‘글쓰기가 아니라면 건달밖에 될 수 없다’, ‘나는 글과 떼어놓을 수 없다’ 이런 이야기를 자주 하셨어요.


원래 직업이 기자였어요. 그만두고 나서 전업 작가를 했는데, 원래 직업이 있다가 방송에 출연하면서 자기 일을 안 하는 사람을 많이 봤거든요. 그 사람들 보면 다 방송 건달들이더라고요. 나는 그렇게 되지 않겠다는 다짐을 선언같이 하기도 했죠.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어렸을 때 처음 쓴 소설 이야기가 나와요.


아버지가 교수였는데, 학교에서 4절지 갱지를 늘 집에 가져왔어요. 집에 가지고 놀 게 갱지밖에 없었어요. 그걸로 어렸을 때는 그림도 그리고, 나중에 쓰고 싶은 이야기를 썼어요. 어렸을 때는 매일 괴물이나 프랑켄슈타인 이런 것만 보고 읽어서 늘 괴물 이야기였어요.


어느 장르 글을 쓸 때가 제일 편하거나, 즐거우세요?


제가 좋아하는 무언가를 남들도 보게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쓸 때도 즐겁고, 아니면 재미있었던 경험을 쓰는 것도 즐거워요. 남들이 했다고 하면 되게 깔깔거리고 비웃을 것 같은 일을 제가 했을 때 그걸 글로 쓰면 제일 재밌어요. 제가 바보짓 한 내용을 쓰는 걸 좋아해요. 남이 한 바보짓을 쓰면 비판이 되지만, 제가 한 걸 쓰면 개그가 되거든요.


책에 일부 사회비평도 들어가 있어요.


<한겨레> 칼럼이 책에 많이 실렸는데, 아무거나 써도 된다고 해서 정치 사회 관련 이야기도 많이 썼어요. 예전 <시사인> 칼럼처럼 작정하고 비평을 쓴 건 아니고, 지금 현안을 이야기하면서 제 이야기를 섞어 쓰는 연성화된 글이죠.


방송 출연으로 유명해지고 셀럽이 된 일이 글쓰기에 영향을 주나요?


영향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조심해야 하다고 생각하다가도 막상 쓸 때는 조심하지 않게 돼요. 벌어져서는 안 되는 일들인데 벌어졌다거나, 제가 한 이야기 때문에 손해를 당했는데 그게 부조리하다거나 하는 순간들이 있잖아요. 사실 그건 이야기하면 안 되거든요. 소위 스타나 연예인 친구들이 자기 의견 없어서 이야기 안 하는 게 아니잖아요. 여러 사람 밥벌이를 책임지고 있기 때문에 이야기를 안 하는 거예요. 그렇게 안 하는 걸 보면, 저는 아직 어른이 아닌 것 같아요.

 

책임 말씀하시니 생각나는데, 이전에 아이를 키우고 싶다고 한 적도 있으셨어요.


물론 최선을 다해 살겠지만, 지금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판을 갈아야 하는데, 개인 차원에서 할 수 있는 판 갈이가 다음 세대를 잘 기르는 일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아이를 낳아서 에반게리온에 태우려고요. ‘아들아, 에바에 타라’ 하면서.


음, 굉장히 나쁜 아빠네요(웃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다


‘여러분이 나의 친애하는 적’이라고 쓰셨어요.


사람뿐 아니라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이에요. 누구를 덜컥 믿어버리는 걸 너무 잘하더라고요. 믿으면 편하고, 마음이 따뜻해지기도 하고요. 하지만 너무 뒤통수 맞는 경험이 많아서, 어느 순간부터 안 그래야겠다는 생각을 오랫동안 했어요. 그런 의미의 표현이죠.


적장처럼 대한다는 말에는 존경의 의미가 있잖아요.


전부는 아니고, 어떤 측면을 존경하는 거죠. 내가 그 사람을 존경해서라기보다, 심리적으로 거리감을 설정해 놓는 일 같아요. 완전히 까 보이지 않고 긴장하게 하는 거리감이요. 감정적인 기분의 영역인데, 그걸 문자로 표현해 놔야지 제가 가이드라인을 지키겠다 싶었어요. 하루에 20만 원 받고 시위에 나오는 사람이 아닌 이상은 대부분 ‘친애하는 적’으로 여기고 싶어요.


청소를 열심히 하는 게 공간을 이해하는 방법이라고 하셨어요. 최근 청소하는 모습이 방송에 나오면서 결벽증 아니냐는 반응이 있었죠. 공간을 이해한다는 건 무슨 뜻인가요?


사소하게는 어디에 무엇을 두면 어울린다, 이 집은 어떻게 하면 결로가 생긴다, 막으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는 집의 체계나 원리를 알 수 있게 된다는 맥락이에요. 늘 남한테만 맡기는 사람은 알 리 없는 체계요. 남한테도 중요할 필요는 없겠지만 공간은 저에게 중요한데, 왜 함부로 하는지 모르겠어요. 한국에서 집 때문에 인생에서 오랫동안 많고 큰 비용을 내는데 왜 이해를 안 하려고 할까. 제가 사는 공간 제가 깨끗하게 관리하는 걸 뭐라고 하는 건 이상한 것 같아요. 


‘얼굴을 손으로 가리고 우는 자들’이 더 슬프다는 표현이 인상 깊었습니다.


정말 슬픈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우는 모습을 보여버리면 패배자로 찍히니까, 못 울더라고요. 울더라도 숨어서 울고요. 이를 테면, ‘88만 원 세대’를 조명해요. 하지만 이 세대가 불쌍하니까 바꿔야 한다는 게 아니라 원래 불쌍한 애들로만 포장하고 끝이에요. 한 번 루저로 찍히면 영원히 못 벗어나니까 사람들이 패배자라는 말에 공포를 느끼는 것 같아요. 예전에 누가 좋다고 올린 그림을 봤는데, 못된 부모는 청소하는 아저씨를 보면서 ‘공부 안 하면 저런 사람 된다’고 하고, 좋은 부모는 ‘공부 열심히 해서 나중에 저런 분들 도와야지’ 한다는 거예요. 너무 빤하게 둘 다 문제 있잖아요. 아이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청소부는 이미 사람이 아닌 거예요. 그런데 사람들이 감동을 하더라고요. 삐딱한 건지 모르겠지만, 그런 한국이 정말 무서워요.


‘살다 보면 별일이 다 있다’,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 있을 수 있다’ 등의 문구가 자주 나와요.


어렸을 때부터 이반(성 소수자를 통칭하는 단어) 친구들도 많았고, 가족부터가 보통 한국사회의 가족주의 테두리 안에서 이해될 수 없는 일을 많이 보고 살았어요. 그러다 보니까 시니컬해졌는데, 오히려 냉소적으로 보니까 이해할 수 없는 일이 거의 없더라고요. 엄마도 그래요. 엄마한테 ‘나 게이면 어떡할 거야?” 물어보면 ‘어쩔 수 없지 뭐.’ 하세요.


다른 표현도 눈에 들어왔어요. ‘내려놓기 위해 필요한 건 이해하는 태도다.’ 그래도 세상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신 것 같거든요.


노력하려는 것도 있고, 당연하게 다가오는 일도 있고요. 흔하게 하는 얘기지만 우리가 이성애자라는 걸 이야기하려고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건 아니잖아요. 이반들한테만 이해를 요구하는 건 합리적이지 않다는 차원에서 다른 문제도 많이 생각한다는 거죠. 그래서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를 만나면 더 반응하게 되는 것 같아요. 웬만하면 별일이 다 있다고 넘어가는데 이건 아니지 않나, 생각하면 남들보다 더 센 반응을 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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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이기는 경험이 필요하다


최근 최순실 사태와 관련해 광화문 시위에 참여한 내용이 있어요. 시위가 계속되고 있는데, 변화의 가능성이 있다고 보시는 편인가요?


이런 종류의 광장 시위를 효순이, 미선이 사건부터 나갔어요. 그때부터 매번 회의적이었는데, 이번에는 진영 다툼으로 가고 있지 않은 것 같아요. 피아 구별 없이 다들 잘못에 대해 발언하고 있잖아요. 한국은 이미 망했어도 여러 번 망했을 나라인데, 이번에 잘하면 어렴풋한 호감, 혹은 데이터 없는 믿음 때문에 어느 한쪽에 표를 줬던 사람들이 변하는 계기가 될 수 있겠다는 희망을 품게 돼요. 지금 상황으로는 오십 대 오십 같아요. 하지만 이 정도까지 가능성이 올라왔던 적이 한 번도 없기 때문에 고무적이죠.


집회 사회를 보시기도 했어요.


10 대 90이었어도 사회는 봤을 거예요. 지금까지 4차 시위 모두 나갔어요. 시위를 나가는 사람들과 비슷한 문제의식을 느끼고 있고, 전에 나갔던 집회랑은 분위기가 다르니까 신기해서 나가는 이유도 있어요. 지금 시위가 무조건 긍정적으로 보이지는 않아요. 예전에는 시위 나가면 막 맞다가 새벽에 택시 타고 집에 들어오는 길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안한 게 서운했거든요? 지금은 그렇지 않잖아요. 그게 좋으면서도 백만 명이 한 곳에 모였는데 십오 분 만에 일사불란하게 사라지고 광장이 깨끗해지잖아요. 가끔은 너무 로봇 같다는 삐딱한 생각도 들어요. 그리고 저는 무엇보다 어린 친구들에게 부채감이 들어서 나가는 것 같아요.


다음 세대에게 부채 의식이 있다는 말씀이군요.


<학교 다녀오겠습니다>라는 TV 프로그램에 출연한 적이 있는데, 그때 아이들이 세월호 참사를 겪은 나이 바로 한 학년 아래였거든요. 그때도 너무 힘들었어요. 이 아이들이 와서 저를 칼로 찔러도 아무 할 말 없겠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젊은 세대한테 너무 큰 죄를 지었는데, 새로 시작하는 아이들한테 도움을 줄 마음이 있는 사람들은 드물어요. 시작할 때만 도움이 필요하고 나머지는 자기 능력으로 하는 게 맞아요. 하지만 우리도 그랬으니까 너희도 공정하게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하라는 이상한 해병대 마인드만 있어요.


사고 맞죠. 어느 순간, 어느 시점까지는 교통사고로 볼 수 있죠. 진짜 중요한 건 그 이후였잖아요. 아무것도 작동하지 않아서 구조하지 못했잖아요. 그럼 책임을 져야 하는데 책임지는 사람도, 변한 것도 없어요. 부채 의식을 가져야 하는 게 맞고 이 이야기를 애써 안 들으려는 사람들도 부채 의식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이 세대에게 ‘이기는 경험’이 필요하다고 쓰셨는데, 세월호는 어찌 보면 가장 크게 진 경험이잖아요. 이런 상황에서 이기는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도 힘들지 않을까 싶어요.

 

젊으면 젊을수록 이길 기회가 없어요. 큰 대회에서 1등 하는 경험이 아니라 작은 승리의 경험조차 없어요. 자기가 지지하는 시 의원이 당선된다거나, 좋은 일에 어느 정도 기여해서 자기가 원하는 꼴로 변하는 경험이요. 저도 그랬고 요즘은 더욱 심화됐을 거예요. 그런 경험이 쌓여야만 진짜 이겨야 할 때 이길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왜냐하면 그런 경험이 없으면 이길 기회가 왔을 때도 그걸 승리로 못 가져가요. 예전 타성대로 음모론, 가십거리, 우리 편 아니면 무조건 악마인 이분법으로 생각하는 극단이 어떻게 보면 작은 승리의 경험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하거든요. 그래서 젊을수록 이기는 기회를 더 많이 만들어줘야 해요.

 

 

남과는 다른 영화


사람을 만날 때 남들과 다른 면이 있는 사람에게 매력을 느낀다고 하셨는데, 영화는 어떠세요?


영화도 다른 느낌을 주는 영화가 좋죠. 처음에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영화들은 다 그 당시에 너무나도 다른 영화들이었어요. 주로 선댄스 영화라고 불리는 영화들이었는데, 사람을 근본부터 잡고 흔드는 영화를 대학생 때 보고 나니까 영화가 대단한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마블 시리즈 영화나 <스타워즈>에 관한 애정도 나오는데요. 선댄스 영화 계열은 아니지 않나요?


그렇죠, 그건 덕질의 영역으로 좋아하는 영화고요. <벨벳 골드마인>이나 <록키호러 픽쳐쇼>같이 너무 놀랍다고 여기는 영화는 거의 6, 70년대 할리우드 영화였어요. 그때 영화들이 영화로 만들 수 있는 제일 멋있는 걸 다 만든 것 같아요.


돌아가신 남자 배우에 대한 글이 몇 편 실렸어요.


크리스토퍼 리 같은 배우는 한 시대 전인 50년대부터 활동했던 분이죠. 제가 너무 좋아한 6, 70년대 배우들은 지금 다 명배우라고 불리는 분들이거든요. 이분들이 돌아갈 때가 되면 진짜 하늘이 무너질 정도로 아쉬울 것 같아요. 그 시기를 좋아하는 이유가, 한국에서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시기였거든요. 그 전 시대 헐리우드는 꼰대 장사판, TV까지 나온 망해가는 사양 산업이었는데 갑자기 듣도 보도 못한 연줄 없는 젊은 미친 친구들이 나타나서 헐리우드 영화 산업을 완전히 살려놨어요. 그 분위기를 책에서 글로만 읽었는데, 나이 많은 간부들이 신입사원이 젊다는 이유만으로 굽실거리면서 각본을 보여주고 재밌는지 읽어봐 달라고 부탁하는 시대였다는 거예요. 경험해보지 못한 시대에 대한 동경이죠.


다른 장르의 글 중에 욕심나는 게 있나요? 영화 시나리오라든지요.


갱지 소설을 쓰던 어릴 때도 꼭 마지막에 제 이름 석 자를 썼어요. 제 글에 대한 권한 의식이 강해요. 그래서 수십 명이 달려들어서 제 작업을 뜯어고치는 공동작업은 못 하겠더라고요. 시나리오는 정말 남아나지가 않아서, 쓰고 싶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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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아야 해서 막막하기 짝이 없는 친구들


말이 와전돼서 데인 경험이 글을 쓰거나 말을 할 때 자기검열을 일으키기도 하나요? 정치적인 검열 말고요.


어느 정도 있어요. <국제시장>사건 이후로 크게 데여서 파장도 컸고, 이후로는 말조심한다기보다 빌미를 제공할 만한 건 조심해야겠다는 과제만 세워놨어요. 실천은 못 하고 있죠.


SNS에 글을 올리면 그대로 캡쳐해서 기사로 내기도 하잖아요. 이 문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어쩔 수 없는 시대의 조류라고 생각해요. 트럼프도 국정 방향을 트위터로 제시하더라고요. 그래서 사람들이 페이스북으로 많이 옮겨가는 것 같아요. 트위터는 너무 문맥이 잘려서 왜곡되기 쉬워요. 참 신기한 세상이에요. 제가 기자할 때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매체 환경이니까요.


SNS로 계속 글을 쓰실 텐데, 인터넷에 올리는 글도 자기검열이 있나요?


당연히 있죠. 그런 생각을 안 하다가 어느 순간 실감한 건데, 박근혜 대통령 재임 동안 내가 이런 이야기를 쓰면 뭔가 일어나겠다는 생각을 너무 자주 했어요. 저뿐만 아니라 다 그랬더라고요. 그게 진짜 무서웠어요.


실제로 방송 출연 요청이 안 들어오기도 하셨죠.


매체 블랙리스트에 올랐죠. 민주사회에서 내가 무슨 말을 하면 어떻게 되겠다는 공포는 있어서는 안 돼요. 제가 말로 성희롱 해요, 그럼 당연히 어떻게 되겠죠. 그런 거 말고, 공적으로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말했는데 그것 때문에 손해를 당할 거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들어오는 게 자연스럽게 된 상황이라 다시 되돌려놓는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아요. 정신교육이라고 군대 가면 많이 읽히는 교육 책자가 있거든요. 읽으면 진짜 한심한 내용인데, 2년 동안 그걸 읽고 있다 보면 별생각 없이 읽게 돼요. 군대처럼 정신 교육을 너무 심하게 당한 것 같아요. 이걸 되돌리려면 단순히 정권 교체만으로는 안 되고 많은 시간과 노력을 수반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인터뷰는 해명이다’는 말을 하신 적이 있어요. 작가 허지웅이 해명할 게 있나요?


제 문제일 때랑 남의 문제일 때 접근하는 생각의 차이가 커요. 저에 대한 평가는 제가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바꾸려고 해 봤자 아무 소용 없더라고요. 신경 안 쓰고 살아야 그 시간에 다른 이야기를 한 줄이라도 쓸 수 있죠. ‘인터뷰는 해명이다’는 말은 제가 인터뷰할 때 인터뷰이들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인데, 늘 할 말이 있더라고요. 그럼 저는 이 사람의 해명을 들어주자는 생각으로 인터뷰했던 것 같아요.


인터뷰어에서 인터뷰이가 되는 기분은 어때요?


양가적이에요. 하나는 진짜 하기 싫을 텐데 불쌍하다는 생각. 제가 한 인터뷰 중에 반의반도 제가 하고 싶은 사람이 아니었어요. 아무 관심 없는 회사의 부사장을 인터뷰하려니까 죽고 싶더라고요. 그런데 다른 한 편으로 기자는 궁금한 게 없는 사람을 만나는 게 밥벌이고 곤욕인 직업이잖아요. 기계적으로 인터뷰하러 오는 게 티가 많이 나는 사람이 있어요. 아마 그 부사장도 나를 보면서 그렇게 느꼈을 거예요. 그러면 또 직업윤리로 저건 아니라는 생각을 하죠.


‘스타는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말을 하신 적도 있습니다. 지금 허지웅이라는 사람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은 누군가요?


이상한 사람을 보여주겠다는 거 아닐까요. 그래서 토크쇼 진행이 차라리 마음이 편해요. 제가 피사체로 나오는 방송은 프릭쇼 같아요. 길을 다니면 할머니가 “얘, 너지, 이상한 애(웃음)”, 하고 불러세워요. 이상한 사람을 사람들은 늘 궁금해 하니까요. 하지만 말씀드렸다시피, 평가는 제 몫이 아니니까 어쩔 수 없죠.

 

요새 읽고 있는 책이 있나요?


돈 오버도퍼와 로버트 칼린의 『두 개의 한국』읽고 있어요. 진짜, 너무너무 재밌어요.


다음 책 계획은요?


무조건 소설을 쓰려고 해요. 이번에 소설을 내려고 했는데, 1, 2년 전쯤에 약간 우울증세가 있어서 자기 관리를 못 했어요. 에세이는 계속 쓸 것 같고, 이야기를 쓰고 싶은 욕망이 커요.


‘읽히지 않는 글은 가치가 없다’는 말이 있었는데, 작가님 책은 얼마나 팔릴 것 같나요?


읽히지 않는 책은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팔리지 않는 책은 가치가 없다는 뜻이 아니에요. 끝까지 읽지 못하게 하는 글을 이야기한 거였어요. 그래서 글을 쓸 때 첫 문장을 읽고 나서 마지막 문장을 읽을 때까지 못 도망가게 하는 걸 제일 중요하게 생각해요. 가독성을 이야기한 거죠. 읽고 싶게 만드는 가독성이요. 판매야 많이 팔리면 좋겠지만, 그것도 바란다고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이 책을 누가 읽으면 좋겠나요?

 

결국에는 지금 혼자라고 느껴지고 아무 도움 없이 혼자 벌거숭이처럼 살아남아야 해서 막막하기 짝이 없는 친구들에게 말하고 싶은 거죠. 그들이 커서 된 게 저인데, 저는 다른 사람처럼 성공의 기술이나 행복해지는 방법 같은 건 알지도 못하고 말해줄 수 없어요. 툭 치면 그냥 흘러나올 거 같은 무책임한 위로나 힐링 같은 것도 절대 하고 싶지 않고요. 하지만 적어도 내가 잘하는 걸 하면서 누가 뭐라 해도 온전히 내 힘으로 버티겠다고, 그러니까 그걸 지켜봐 달라고 말하는 거죠.

 


 

 

나의 친애하는 적허지웅 저 | 문학동네
세상은 다양한 잣대로 허지웅이라는 사람을 기억한다. 그러나 그는 계속 살아가고 있으며, 자신이 사랑하고 미워하고 경외하는 모든 것들을, 거리를 두고 바라보고 탐구하며 스스로를 완성해가고 있다. 허지웅이 매일 쓰고 때로 신문과 잡지에 연재해온 글에 새 글들을 더하여 이 책을 엮는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일본 밴드 원 오크 록, 아시아 땅에 깃발을 꽂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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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내수 중심으로 돌아가는 일본 대중음악 신에서 새로운 인터내셔널 스타 탄생의 기운이 감지되고 있다. 그 태풍의 중심은 바로 원 오크 록. 펑크와 얼터너티브, 이모코어에 영향을 받아 정립해 낸 영미 스타일의 록 사운드로 자국을 넘어 세계를 사로잡고 있는 바로 그들이다. 이미 빅네임으로 군림하고 있는 열도를 떠나, 미국에서 현지 프로듀서와 손을 맞잡은 <35xxxv>(2015)가 발매된 지도 1년하고도 10개월. 북미와 유럽 땅에서 인정이라는 승기를 거머쥔 그들이, 아시아 땅에 그 깃발을 꽂기 위해 일본을 거쳐 한국을 방문했다. 트웬티 원 파일럿츠(Twenty One Pilots), 패닉 앳 더 디스코(Panic! at the Disco), 어게인스트 더 커런트(Against the Current) 등이 소속되어 있는 핫한 레이블인 <Fueled By Ramen>과 계약한지도 벌써 두 달, 세계라는 '위대한 항로'에 돛을 올린 그들을 만나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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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번째 한국 방문입니다.  1년 4개월 만에 다시 돌아온 소감을 부탁드립니다.


Taka : 간만의 한국이네요. 작년엔 페스티벌 무대에 섰기 때문에 저희를 모르는 분들도 많았습니다만. 오늘은 원 오크 록만을 보러온 팬들 뿐이잖아요. 더욱 기대가 됩니다.

Tomoya : 많은 분들이 오셨다고 들었어요. 처음 저희를 보러 오신 분들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Toru : 지난번 단독 라이브에 비해 공연장도 커졌고요. 귀중한 시간이 될 것 같습니다.

Ryota : 전력을 다해서 공연하려 합니다!

 

한국을 찾기 전 마지막 라이브가 지난 9월에 있었던 나기사엔 2DAYS 라이브였습니다. 1년 만에 일본에서 공연을 한 것으로 아는데, 장소가 굉장히 의외라고 생각했습니다. 보통 접근성 문제로 수도권에 있는 아레나나 스타디움을 선택하고는 하는데, 그 공연장을 섭외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Taka : 간만의 일본공연이라 큰 장소를 섭외하려고 했는데요. 역시 저희들은 의자보다는 스탠딩을 선호해요. 관객 모두 서 있는 상태로 페스티벌 분위기에서 라이브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여러 곳을 찾아봤는데요. 시기와 위치 등을 고려해 어디서 하는 게 제일 좋을까 생각하던 중에 이곳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여태까지 서본 적 없고, 솔직히 섭외 과정에서 처음 알게 된 장소였어요.

1년 만에 다시 찾은 일본에서의 라이브는 어떤 느낌이었는지 궁금합니다.

Taka : 인파를 보고 진짜 놀랐어요. '이렇게나 사람이 많은 거였어?' 싶더라고요. 거리도 그렇고 전차를 타고 여기까지 직접 와주셨다고 생각하니 우리들이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새삼스레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공연하길 잘 했다라고 생각했어요.

장장 5개월에 걸친 북미, 유럽, 아시아 투어에서의 경험도 이번 라이브에 녹아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성장했다고 느껴진 부분이 있는지요.

Taka : 그때 라이브가 엄청 빡빡했어요. 매일 라이브하는 것에 익숙해져서 지금은 하루나 이틀정도 공연이 없으면 “응? 뭐지?” 하는 느낌이 되어버렸죠. 컨디션 조절 측면에서 배운게 있었죠. (어떻게 컨디션을 조절했냐고 묻자) 쉴 땐 무조건 잤어요. 수면이 정말 중요하구나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감기 걸리지 않도록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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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집 <35xxxv>의 모든 제작이 해외에서 이루어졌죠. 익숙한 환경을 버리고 새로운 것들에 적응해 나간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굳이 해외에서 작업을 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Taka : 역시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게 있죠. 저희는 미국에서 원 오크 록의 노래가 아닌, 원 오크 록 팀 자체를 알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일본에서 만든) 이 곡이 미국인들에게 잘 전달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 들었고, 내 자신이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미국인들에게 전달이 용이한 결과물을) 추구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미국으로 건너가 그 곳의 공기를 마시고, 현지 프로듀서와 우리들만으로 음악을 만드는 작업을 시작했죠. 결과적으로, 해봐야 아는 것들이 굉장히 많았어요. 저희는 아무래도 하나하나 지켜감으로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닌, 하나하나 깨부숨으로서 새로운 것을 손에 넣는 스타일의 밴드기 때문에, 이런 시도에 굉장히 만족하고 있습니다.

 

 

새 앨범 <Ambitions>릴리즈가 결정되었는데요. 그 손에 넣은 것들이 여기에 들어있는지 궁금합니다. 작품에 대한 소개를 하자면요.


Taka : 우선 모두와 함께 노래 부르는 것을 모토로 잡았고요. 그 밖에 희망, 야망과 같은 테마를 가지고 있어요. 원 오크 록이라는 팀은, 어떤 이유로 계속해서 성공해 나가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해 한걸음한걸음 증명해 나가는 팀이라고 생각해요. 저희라는 생명체가 차근차근 꿈을 이뤄가는, 목표를 달성해가는 광경을 보여줌으로서 여러분들도 할 수 있다라는 것을 재차 인식시켜주고 싶다고 말하는 밴드죠 저희들은. 이에 대한 메시지, 패션 같은 것이 꽉꽉 들어있는 작품입니다

 

<Fueled by Ramen> 레이블 합류 후 본격적인 세계 진출이 시작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레이블로부터 곡 선정이나 스타일 정립에 있어 조언을 받은 게 있는지 궁금한데요.


Taka : 꽤 있었어요. 역시 그 낯선 곳과 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시장에서 줄곧 싸워왔던 사람들도 저희를 보러옵니다. 한참 선배들이 말이죠. 그래서 단순히 싸우는 것에서 벗어나, 추구하는 것을 만들어 간다는, 그러한 역발상도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때문에, 저희 목표는 미국에서 인지도를 높이는 것이지만, 저희들이 영어로 소통하기 위해 미국에 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런 의미에서, (단순히 영어를 관철시키려는 것이 아니라는) 그런 것에 대한 대답을 역으로 저희가 만들어서 '어떤가요?'라며 보여주는 스탠스를 취했죠.

 

원 오크 록은 연주가 뛰어난 밴드로도 정평이 나 있습니다. 세 명이라고 느껴지지 않는 꽉 찬 사운드와 강약을 통한 그루브, 곡 안에서의 완급 조절이 굉장히 뛰어나다고 생각되는데요. 연주자로서, 서로 어떻게 의견 교환을 하고 합을 맞춰 나가시는지요.


Toru : 뭔가 말할 것이 있으면 이야기를 하죠. 예전부터 쭉 사용해오던 스튜디오에서 소리를 맞추고 리허설 하는 와중에 서로의 그루브라든가 이런 것들을 재확인합니다. 라이브가 끝난 뒤에도 이건 좋았어, 이건 별로였는데 라며 의견을 교환하기도 하고요. (연주 측면에 있어서 다른 팀과 비교 했을 때 이것이 단연 뛰어나다고 할 만한 것이 있느냐고 묻자) 다른 밴드에서 해본 적이 없어서, 이 멤버와 줄곧 연주해왔기 때문에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라이브 도중에 눈을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전달되는 게 있죠. 오랜 시간 함께 해오면서 저희들만이 할 수 있는 것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 다른 팀들도 그렇겠지만, 저희들로서도 장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Tomoya : 특히 투어 중에 악기만 연주하는 곡들을 꽤 만들곤 하는데요. 그걸 연주하면서 해가 갈수록 호흡이 더더욱 맞아가는구나 라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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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1월에는 북미, 2월부터 다시 3개월 동안 일본에서 아레나 투어가 다시 예정되어 있습니다. 지금은 그저 통과점에 지나지 않는다는 느낌이 있네요. 혹시 앞으로의 목표가 있다면요.


Taka : 확실히 통과점이죠 아직은. 자국에서의 아레나 투어는 이번이 처음이라 컨디션 측면에서 불안한 부분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걸 넘어서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에, 이번 투어를 통해 저희들이 열심히 만든 앨범이 모두에게 잘 전달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한 시간 있으면 한국에서의 라이브가 시작됩니다. 오늘의 각오를 마지막으로 들려 주신다면요.

Taka : 간만의 원맨 라이브입니다. 모두가 확실히 달아오를 수 있도록 하고 싶습니다.

Toru : 많은 사람이 와주셨기 때문에 가진 것의 120%를 발휘하려 합니다. 끝나고 난 뒤에는 모두가 웃음을 지으며 돌아갈 수 있도록 만들려고요.

Tomoya :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마음껏 즐길 테니, 관객 여러분들도 마음껏 즐겨주세요.

Ryota : 지금 낼 수 있는 힘을 전부 다 짜내도록 하겠습니다!

 

 

진행 및 정리 : 황선업

사진 : 변영옥
협조 : 워너뮤직코리아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꼬닐리오 “토끼와 소녀, 나의 분신 같은 존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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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글동글, 아기자기한 토끼와 소녀. 둘은 가장 친한 친구다. 장난감을 한바탕 늘어놓은 채 소꿉놀이를 하고, 커다란 아빠 신발을 신어 뒤뚱거리고, 입가는 아이스크림 범벅을 해 지붕 위에 올라 앉아 어딘가를 바라본다. 하늘을 나는 자전거, 칵테일 수영장, 비밀의 숲도 등장한다. 이곳에서도 둘은 언제나 함께다. 그러고 보니 이 토끼는 어딘가 소녀를 이상한 나라로 데려가는 동화 속 주인공을 닮았다. 토끼라는 의미의 이탈리아어를 이름 삼은 작가 역시 동화 속 주인공처럼 우리를 낯설고 다정한 곳으로 초대한다.

 
꼬닐리오의 한없이 편안하고 한없이 순수한 그림들은 후후 불어 한 입 머금은 따뜻한 차의 향기가 난다. 복잡한 생각들이 사실은 흩날려버려도 좋을 별 것 아닌 사소함이라고 위로를 건네는 듯하다. 그 그림이 좋아 ‘데려갈게요’라고 말했던 사람들 앞에 책을 내놓고 ‘데려가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를 전하는 작가의 마음이 그림처럼 따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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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이 통통하고 속눈썹이 긴 소녀


작업을 주로 밤에 하신다고요.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세요?

 

지금은 학업과 병행하고 있어서요. 오전에 학교 갔다가 오후에 와서 좀 쉬고요. 아무래도 밤에 작업이 더 잘 돼서 저녁에 작업을 해요. 처음 데뷔 했을 때는 학업을 시작하기 전이고 그림만 그렸을 때라 시간이 많았는데요. 이번 가을부터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요즘에 조금 바빠지기 시작했어요.

 

데뷔를 했을 당시는 그렇다면 어떤 생활을 하며 지냈나요? 이탈리아에 계셨을 때죠?


네이버 그라폴리오가 시작했을 때, 공식 연재가 없을 때부터 그림을 그려서 포트폴리오 형식으로 올렸어요. 저는 그때는 일을 하고 있었거든요. 이탈리아에서요. 시간이 날 때 그림을 그려 올렸는데요. 꾸준히 올리다보니 제가 그림을 올릴 때마다 봐주시는 분들도 있고 해서 재미있더라고요. 그러다가 연재 제안을 받고 작가라는 이름으로 데뷔를 하게 됐죠. 2015년이었던 것 같아요.

 

그곳에서 태어난 소녀와 토끼, 이들이 등장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요? ‘꼬닐리오’는 토끼라는 뜻의 이탈리아어기도 하죠.


토끼는 제일 좋아하는 동물이고요. 소녀는, 처음에는 얼굴을 보여주는 그림을 그렸었거든요. 공식 연재 전에는 얼굴이 있는 그림도 있었어요. 나중에 빼게 되었는데요. 머리카락을 그리고 싶었어요. 땋은 머리요. 그런데 보니까 그게 더 귀엽고 재미있더라고요. 그래서 뒷모습을 계속 그리게 되었어요. 나중에는 사람들이 궁금해 하도록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관찰자의 시점으로 볼 수 있잖아요.

 

상상하게 되는 요소인 건 틀림없어요.


고개 안 돌리냐, 언제 돌리냐, 그런 질문 진짜 많이 받았어요.

 

앞으로도 안 돌리나요?(웃음)


안 돌릴 것 같아요.(웃음) 사실 그 때문에 각도에 제한을 받기도 해요. 제 그림이 각도가 정확하게 맞는 그림은 아니고, 서툰 편이긴 해요. 그렇다 보니 더 동화적으로 그리게 되는 것 같고요. 그리고 싶은 장면이 많긴 한데요. 아이디어도 생각했는데 막상 얼굴 때문에 포기하게 될 때도 있어요. 예를 들어 쪼그려 앉아 있는 귀여운 소녀를 그리고 싶은데 그게 안 될 때는 옆모습으로 바꿔야 하니까요.

 

토끼는 한두 장면, 얼굴이 나오거든요. 소녀는 끝내 안 나와요. 작가가 생각하는 소녀의 얼굴은 어떨까, 궁금하더라고요. 어떤 모습인가요? 궁금해 하는 분들을 위해 살짝만 귀띔을 해주신다면 어떨까요?


볼이 통통하고, 속눈썹이 길 거예요. 가끔 많이 닮은 것 같다는 얘기도 들었는데요. 실은 그리면서 저의 어렸을 적 모습을 많이 보기도 하는 것 같아요. 어릴 때 사진을 참고해서 그리기도 했고요. 그래서 아마 제 어렸을 때 모습을 많이 닮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 있죠. 저를 보시면 ‘닮았다!’ 하시는데 그게 칭찬인지는 모르겠지만(웃음), 그래요.

 

소녀가 두 명 나오는데요.


네, 사실 제가 쌍둥이에요. 쌍둥이 동생과 함께 있던 추억이나 어렸을 때의 모습을 많이 그리게 돼요. 그래서 두 명을 그릴 때는 저와 동생에게 있던 어렸을 때 이야기라든지 그런 느낌을 생각하면서 그리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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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그림에 가장 많이 공감하는 존재겠네요. 가장 엄격한 독자이기도 할 테고요.


동생도 그림을 전공했어요. 비슷한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요. 그래서인지 더 공감해주고, 어떨 때는 지적도(웃음) 많이 해주죠. 오늘 그림은 좀 별로다, 이렇게요.

 

작업하면 제일 먼저 동생 분에게 보여주세요?


네, 색감 같은 게 헷갈릴 때 많이 물어보기도 하고 그래요. 그림에 대한 아이디어도 많이 주는 편이에요. 같이 공유한 추억이 많으니까요. 그런 점이 좋긴 하죠. 부모님도 많이 좋아하시고요. 어릴 때 저희 모습을 다시 보는 것 같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실제로 머리를 항상 그렇게 땋고 다녔거든요. 그런 걸 보면 옛 생각이 많이 나시는지, 많이 좋아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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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 번 쯤 겪어봤을 이야기


표지 그림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제목이 ‘우울한 날’이거든요. 이 그림을 선택한 이유가 있었나요?


이 그림이 결정적으로 제가 작가 데뷔를 하게 된 그림인 것 같기도 해요. 초기에 그렸던 그림인데요. 인기가 제일 많았던 그림이기도 하거든요. 실제로 제가 우울한 기분일 때 그린 그림이기도 하고요. 제 마음을 잘 표현해준 그림 같아서 표지에 들어갈 그림을 고를 때 꼭 이 그림을 넣고 싶었어요.

 

어릴 적 추억, 그 작지만 반짝이던 순간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적기도 했는데요. 특별히 어떤 순간들이 남아 있는 걸까요?


시골에 살았기 때문에 학원을 다니거나 하는 일 없이 정말 옛날 시골 아이들처럼 자랐어요. 특별하거나 거창하지는 않아도 소박한, 흙 파고 논다든지 바닥에서 동생과 그림 그리면서 논다든지, 이런 작은 추억들이 지금까지 기억에 많이 남거든요. 그런 기억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려서 더 솔직하게 그려낼 수 있는 것 같아요. 뿐만 아니라 그때를 생각하는 지금의 저는 어떤 마음인지 그림으로 표현할 때가 있거든요. 제가 그리는 게 엄청 특별한 것은 아니잖아요. 누구나 한 번 쯤 겪어봤을 이야기들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제 그림을 봐주시는 분들도 공감할 수 있는 것 같고요.

 

작가의 마음을 느낄 수 있던 게, 어떤 장면은 그리움 같은 게 묻어나기도 해요. 평범한 장면이지만 지나온 입장에서 느끼는 그리움 말이죠. 이런 작업을 하면서 작가 자신도 위로를 받을 것 같아요.


그림을 시작한 계기 자체가 제가 위로 받고 싶어서였어요. 다만 달라진 게 있다면 지금은 봐주시는 분들이 더 많아진 거죠. 이제는 저만 만족하기 위해 그리기보다는 같이 공유하고, 같이 공감하고 싶은 그림을 더 많이 그리게 되는 것 같아요.

 

보는 사람들을 의식하게 되면서 그림이 많이 변했나요?


아무래도 그래요. 예전에는 생각 없이 그림을 그리는 순간이 많았는데요. 지금은 그리기 전에 주제라든지 이야기를 많이 생각하게 돼요. 원래 스케치를 많이 해놓고 그 안에서 추리는 편이긴 한데요. 전에는 좀 더 자유롭게 제가 하고 싶은 것을 선택했다면 지금은 이 그림을 그리면 어떤 공감을 일으킬 수 있겠다, 그런 쪽으로 생각이 바뀌었죠.

 

온라인에서 직접 반응을 확인하게 되잖아요. 제일 좋았던 반응은 뭐였어요?


내 모습 같다, 나의 어렸을 때 모습 같다 아니면 내 딸 같다, 우리 아이 같다, 이런 말들인데요. 그런 말은 다 공감한다는 의미잖아요. 그런 게 정말 좋았어요. 또 그라폴리오는 스마트폰 바탕화면 같은 것도 자유롭게 저장해서 사용할 수 있거든요. 그런 것 때문에 오시는 분들도 많고요. 그림을 가져갈 때 ‘퍼가요’라는 말을 많이 하잖아요. 그런데 꼭 ‘데려갈게요’라고 말씀해주시는 분들이 있었어요. 저는 그게 정말 좋았어요. 살아있는 두 친구들을 데려가서 예뻐하겠다는 마음 같아서요. 여러 반응 중에 그 ‘데려갈게요’가 제일 기억나요. 진짜 살아있는, 제 분신 같은 존재들이니까요. 이 친구들을 데려가서 아껴주겠다, 이런 마음 같아서 정말 좋았어요. 뿌듯하고 감사하죠.

 

작가로서 정말 행복할 것 같아요.


솔직히 특별할 것 없는 그림이긴 한데요. 잘 그린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워낙 잘 그리시는 분들도 많고요. 대신 소박한데도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그게 정말 감사해요.

 

저는 제일 좋았던 그림이 이를 뽑는 장면이었거든요. 작가의 경험은 그림에 어느 정도나 반영이 되나요?


90% 이상인 것 같아요. 어릴 적 이야기는 당연히 제가 겪었거나 동생과 있었던 일들을 그리는 거고요. 꼭 이를 뽑는 그림처럼 기억을 바탕으로 그린 그림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렇거든요. 나에게만 비가 오는 그림 같은 것은 그때 어떤 사건이 일어난 건 아니지만 내 기분을 나타내주는 상태를 그린 것이고, 그것 역시 제 일부를 그린 거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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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등장인물을 비롯해서 아빠나 엄마 정도까지는 등장했는데요. 친구라든가 다른 존재들은 등장시킬 계획이 없으신가요?


고양이 정도는 그린 적이 있는데요. 아직까지는 생각만 하고 있지 구체적으로 그리진 않았어요. 그렇지만 당장 그릴 수도 있을 거예요.(웃음)

 

연필로 주로 작업하시잖아요. 연필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으세요?


사실 컴퓨터 툴을 잘 못 다루기도 하고요.(웃음) 제일 중요한 이유 같은데요. 제가 디지털 툴에 약하기 때문에 연필로 그리면 더 수월하게 작업이 잘 되는 것 같아요. 연필이 주는 따뜻한 느낌이 있는데 그것도 좋아하고요. 컴퓨터는 어렵기도 하고 그래서 연필을 제일 좋아해요. 색감 입히거나 보정하는 작업만 컴퓨터로 하는데요. 그때만 조그만 태블릿을 쓰죠.

 

속칭 ‘장비빨’이라고 하잖아요. 그런 기기들이 작업에 환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분명히 할 텐데요. 작가의 경우는 그런 게 별로 없겠어요. 기기로 주로 작업하시는 분들에 비해서는 말이에요.

 

저도 작업하면서 컴퓨터를 한 번 바꾼 적이 있는데요. 색감이 달라져서 작업이 수월하다든지 그런 적은 있어요. 하지만 아직 디지털 툴로만 작업하는 건 제가 많이 서툴러서요. 

 

아날로그형이네요.


아날로그적이라고 하시는 분들이 많은데요.(웃음) 오히려 그래서 더 좋아해주시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공감, 늘 고민하고 있는 것


우연하게 시작되었지만 많은 사랑을 받게 된 이 소녀와 토끼의 이야기, 꼬닐리오의 작품은 앞으로 어떤 모습으로 변화하게 될까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달라지겠다, 이런 건 없어요. 특별히 스토리를 정해서 전개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요. 대신 고민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어떠한 내용의 그림을 그려야 더 많은 분들이 공감할 수 있는가 하는 부분이에요. 그걸 항상 염두에 둬야 할 것 같아요. 마냥 자유롭지는 않으니까요. 장점이자 단점이 될 수도 있는 건데 늘 고민하고 있어요.

 

쉽지 않은 문제잖아요. 그 장점과 단점 사이에서 균형을 갖추는 게. 


은근히 어렵죠. 했던 그림 다시 또 그릴 수는 없고, 새로운 공감거리를 찾는 게 쉽지만은 않은 것 같아요.

 

게다가 이야기를 내 안에서 찾는 것도 한계가 있고요.


맞아요. 주변에 묻거나 동생에게 의견을 묻거나 그러는 경우도 계속 생기는 것 같아요. 가끔은 꼭 제 얘기가 아니더라도 동화를 약간 달리해서 그린다거나 계절이 바뀌면서 계절에 관한 그림을 그리기도 해요. 특히 계절이 바뀔 때마다 계절에 관련한 그림은 꼭 그리게 되는 것 같아요.

 

가령, 이제 겨울이잖아요. 겨울에는 어떤 것이 주로 떠오르나요?


먹을 것을 많이 생각하는 편이에요.(웃음) 먹는 거 좋아하나보다, 하시는 분도 있었어요. 먹는 걸 많이 그린다면서 말이에요. 겨울 관련해서는 붕어빵 먹는 그림, 포장마차나 따뜻한 음식 그림을 그렸는데요. 겨울이라고 꼭 눈이나 차가운 것만 그리기보다 겨울을 따뜻하게 해주는 주제의 그림을 많이 그리게 됐던 것 같아요.

 

이탈리아의 겨울 풍경은 어떤가요?


아무래도 크리스마스가 있는 계절이니까요. 일 년 중 가장 큰 명절이거든요. 가톨릭 국가이고 하다보니까요. 그래서 오히려 일 년 중 제일 화려하고 많이 시끄러운 계절인 것 같아요.

 

이탈리아 생활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신 거예요?


햇수로 사 년 차인데요. 처음에는 운 좋게 일을 할 기회가 있어서 갔어요. 일이 좀 힘들어서 고민하던 사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요. 정식 연재 요청이 들어온 후에는 일을 그만두고 그림을 그리면서 이탈리아에 체류했어요. 그러다가 공부를 다시 하고 싶은 생각에 준비해서 이번에 학교를 다니게 된 거고요. 이탈리아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곳이었어요. 여행도 몇 차례 갔었는데요. 기회를 찾다보니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아요.

 

어떤 점이 좋으세요?


한국도 좋은 점이 있는데요. 이탈리아는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살 수 있다는 점이 다른 것 같아요. 다름을 수용해주는 폭이 더 넓다고 느꼈어요. 혼자 생활하니까 가끔 외로울 때도 있어요. 어쩔 수 없더라고요. 집이 그립거나 아프거나 할 때는 한국 생각이 많이 나요. 그렇지만 제가 원해서 공부도 새로 시작했으니까 마음을 다잡을 때가 많죠.

 

공부를 시작한 것은 어느 분야인가요?


국립미술원이라고 미술에 관련된 학교예요. 시각 디자인 공부를 다시 해보려고 해요.

 

그간 작업한 그림이 한 데 묶여 책으로 나왔어요. 특별한 의미가 있을 텐데요.


책을 내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니까 벅차기도 하고, 감사하고 그래요. 이 책은 연재 초기부터 그린 그림을 묶은 건데요. 자세히 보시면 최근에 그리는 그림과 살짝 달라요. 토끼나 소녀의 얼굴이 조금 다르거든요. 예전에 그린 그림을 보고 못 그렸다는 생각이 들어서 살짝 민망하더라고요. 계속 같은 걸 그리다보니까 제가 보기에도 그림이 진화했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얼굴 모양이 살짝 다른데 그런 걸 보면서 새삼스럽기도 하고 그랬어요.

 

어떤 그림인지 보여주실 수 있어요?


제가 개인적으로 못생겼다고 생각하는 그림이 있는데요.(웃음) 이 그림이에요. 보시면 다른 그림과 얼굴이 다른 걸 느끼실 거예요. 볼살이 이 그림 때보다 더 짱구처럼 됐다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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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특별히 좋아하는 그림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표지 그림 외에 어떤 느낌의 그림을 좋아하시는지 궁금해요.


잠자는 모습을 그린 그림인데요. 제가 실제로 베개를 얼굴에 덮고 잘 때가 많거든요. 저는 그림에 번호를 써놓지 않았는데 보시는 분들이 댓글에 다들 ‘저는 1번이요’, ‘저는 2번이요’ 하면서 남기셨더라고요.(웃음) 그런 공감을 많이 끌어낸 것 같아서 좋아해요. 그리면서도 재미있게 작업했던 기억이 나고요. 저는 디테일하게 그리는 걸 좋아하거든요. 이불 모양 같은 것도 그렇고요. 이 그림은 그릴 때 재미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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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꼭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그림을 소장하고 싶다고, 책 언제 내냐고 묻는 분들이 많았어요. 항상 제가 댓글 남겼던 것처럼 ‘데려가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씀 드리고 싶어요. 아껴주시는 마음에 보답할 수 있도록 항상 초심을 잃지 않고 제 얘기를 솔직하게 공감할 수 있는 그림을 꾸준히 그려 나가고 싶어요.

 


 

 

그래도 너를 사랑한단다꼬닐리오 저 | 예담
섬세하고 소박한 연필 그림과 추억 돋는 글로 네이버 조회수 700만을 넘어서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꼬닐리오 작가의 작품이,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더한 종이책 『꼬닐리오의 그래도 너를 사랑한단다』로 재탄생되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종선 “나를 아프게 했던 그를 잊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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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카리스마』,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 『성공이 행복인 줄 알았다』의 이종선 저자가 새로운 에세이 『넘어진 자리마다 꽃이 피더라』를 발표했다. 그녀가 일상에서 길어 올린 이야기 안에는 사람이 있다. 매 순간, 가깝거나 혹은 먼 거리에서, 우리와 관계 맺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서로의 마음을 주고받고, 때로는 그 마음을 외면당하고, 웅크린 채 아픈 시간을 견디기도 한다. 그러나 또 다른 누군가가 다가와 손을 내밀고, 상처 받기 전에는 알지 못했던 귀한 깨달음을 안겨준다. 그렇기에 저자는 “넘어진 자리마다 꽃은 피더라”고 말한다.

 

지난 25년간 전직 대통령을 포함해 500여명의 유명인사와 CEO의 개인 이미지 관리(PI, Personal Identity)를 담당해 온 저자는 누구보다 예민한 감각으로 사람들을 관찰해왔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 사람을 변화시키는 리더십에 대해 이야기해 왔으며 현재 (주)이미지디자인컨설팅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오랜 소통의 경험은 그녀로 하여금 “사람들에게는 늘 다 그들만의 이유가 있다는 걸” 알게 했다. 누구나 서로 다른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으며, 어떤 이들은 상처 안에서 꽃을 피우기도 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 진솔한 고백들을 담은 『넘어진 자리마다 꽃이 피더라』 안에서 우리는 낯설지 않은 감정을 마주한다. 사람으로 인해 넘어지고 사람으로 인해 다시 일어섰던, 그때의 감각들을 떠올린다. 뒤이어 찾아오는 것은 가슴을 울리는 깨달음이다. “내가 작정한다고 내게 오는 것도 아니고, 포기하려 하면 아직도 한 줄기 빛 같은 희망을 주는 것”, 그게 세상임을 알게 된다. 상처 없는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 ‘무심’할 필요가 있다는 말도 가슴에 새겨 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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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가 꽃이 되는 거예요


이번 책에는 사람들과의 인연, 그로 인해 얻은 깨달음이 담겨있는데요. 이 이야기들을 책으로 엮게 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요즘 신문이나 뉴스를 보면 너무나 기가 막힌 사건들이 많아지고 있잖아요. 다들 화가 머리에 차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그건 마음이 아프다는 건데, 그런 아픔을 위로해야 하지 않나 싶었어요. 먼저 토닥토닥 다독여서 아픔이 되지 않으면 더 좋을 것 같았고요. 그래서 넘어진 사례들, 넘어졌다가 나은 사례들을 이야기하면 조금 약이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죠.

 

‘내 안에 화가 많구나, 화를 다스려야겠구나’라고 생각하신 적도 있었나요?


그럼요, 많죠. 일을 많이 하고 바쁘게 지낼 때는 주변 사람들이 다 합심을 해서 나를 못 살게 구는 것처럼 생각되기도 하잖아요. 자기가 여유가 없어서 그런 거거든요. 그럴 때는 그냥 식당에 갔을 때도, 조금만 불친절해도 예민하게 반응하게 되죠. 회의를 하다가 누군가 조금만 세게 이야기하면 나를 무시하는 것처럼 생각되고요. 일 하느라 바빠서 자기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없을 때는 그렇게 되죠. 화를 많이 갖게 되죠.

 

그럴 때는 어떻게 하셨어요?


저는 제 직업을 참 좋아하는데요. 직업 때문에 똑같은 상황이나 상대에 대해서 스캔이 잘 되거든요. 가끔 그런 생각을 했어요. 이 좋은 직업 때문에 나한테 부작용이나 후유증이 있다는 건 너무 손해라고요. 이 책의 주제가 그러하듯이, 사람들이 다 서로 다르잖아요. 그런 걸 이해하려는 노력을 자꾸 하는 거죠. ‘이유가 있겠지’ 하고 생각하는 거예요. 오늘 CBS FM을 듣는데, 강석우 씨가 진행하시는 클래식 프로그램에서 제 책의 일부가 소개됐더라고요.

 

어느 부분이었나요?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사람마다 각자의 이유가 있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이유가 있다’라는 제목의 글을 읽어주셨어요. 거기에서 제가 이야기한 것처럼, 거북이 주차를 하느라 저를 힘들게 하는 사람도 “차 안에서 두 아이가 빽빽거려 혼미한 내 올케 같은 상황일지도” 모르는 거거든요. “팔순을 바라보시는 내 어머니”일 수도 있고요. 그렇게 생각해 보면 다른 사람에 대한 이해가 제일 관건인 것 같아요.

 

『넘어진 자리마다 꽃이 피더라』를 읽다 보면 ‘상처도 사람에게서 받지만 치유도 사람에게서 받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떠올리게 돼요.


맞아요. 사람에게 받은 상처에는 누구든 사람이 나타나 치유해 주죠. 방법과 형태만 낯설 뿐.

 

그런데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원망하지 않기가 쉽지 않거든요. 저자님은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세요?


어떻게 안 미워해요, 미워죽겠죠(웃음). 그런데 제가 볼 때는 '미워하지 말아야 된다'라고 마음먹는 것보다, 오히려 지독하게 밉고 아파하고 난 후에 얻게 되는 게 있는 것 같아요. 그만큼 진하게 빠져 있다가 나올 때, 그런 경험을 통해서 얻게 되는 것들이 더 진한 진액이 되지 않나 생각해요.

 

자연스럽게 책 제목이 연상되네요. 넘어졌기 때문에 그 자리에 꽃도 피어나는 거겠죠. 그런데 넘어져서 생긴 상처가 흉터로 남지 않고 꽃피는 자리가 되려면 노력이 필요할 것 같아요.


똑같은 불행이 찾아와도 상처만 남기는 분이 계시고 꽃을 피우는 분이 계시죠. 요리할 때와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똑같은 재료를 줘도 만든 음식은 다르잖아요. 그야말로 한 번뿐인 내 인생에서 상처가 남지 않도록 하려면 노력이 필요하죠. 그러려면 그 이전에 책을 많이 읽거나 생각을 많이 해야 하는 것 같아요. 그러면 같은 상황을 겪어도 답이 더 잘 나오게 되는 것 같아요. 평소에 해 놓은 것들이 어느 날 꽃을 피우게 되는 거거든요. 사실은 상처가 꽃이 되는 거죠.

 


나를 아프게 했던 그를 잊자


“길게 보면 세상에 억울할 것은 하나도 없다”는 말씀이 인상적이었어요. “내가 준 것은 무엇으로든, 누구로부터든 내게 다시 돌아온다”고 하셨죠. 이 진실을 우리는 잊고 지낼 때가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감사가 중요하다고 하는 것 아닐까요. 저도 그런 생각이 들었던 적이 있어요. 감사드릴 분들이 제 주변에 참 많으시더라고요. 한 번은 제가 감사 인사를 드렸는데, 그 분께서 그러시는 거예요. 제가 전생에 그 분께 잘해서 이번 생에서는 본인이 하는 몫이 있을 거라고요. 우리가 살다 보면 누구에게는 열을 주고도 둘 밖에 못 받을 때가 있죠. 반대로 둘 밖에 안 줬는데도 열을 받을 때도 있어요. 그 분의 해석처럼 이 생을 더 넓혀서 생각해 봐도 여전히 통하는 부분이 있겠죠. 종교적 다름은 있겠지만요.

 

대부분은 더 적게 받은 경우만 생각하고 상처받는 것 같아요. 분명 더 많이 받은 적도 있었는데 말이죠.


심리학에서도 부정성 효과라는 이야기를 하잖아요. 부정적인 정보는 아주 강력하게 인지되고 오래 기억되고 구전력도 강하다는 거예요. 우리는 속상한 일이 있으면 주변 사람들한테 많이 이야기하는데, 누가 도와준 건 많이 이야기 안 하죠. 한편으로는 자연스러운 거예요. 인간이 가진 생존본능 때문에 항상 경계하고 불안해하면서 부정적인 정보들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거니까요. 그런데 감사하는 마음이나 긍정적인 마음은 저절로 생기지 않아요. 의도적인 노력이 필요하죠.

 

말씀하신 것처럼 부정적인 기억은 더 오래 지속되죠. 누군가에게 칭찬 받은 일은 금방 잊어도 비난 받은 일은 잊기 힘들거든요. 저자님께서는 “나를 아프게 했던 그를 잊자. 참 많이 억울했던 그날도 잊자”고 하셨는데, 어떻게 하면 그럴 수 있는지 궁금해요.


‘생각하지 말아야지, 잊어버리자’라고 생각하면 더 생각나잖아요. 그냥 자연스럽게 놔두는 게 가장 좋은 것 같아요. ‘아, 생각이 나는구나. 그런 일이 있었지’ 하는 거예요. 다만 생각이 날 수 있는 기회를 최대한 없애는 거죠. 무언가를 배우거나 여행을 가는 거예요. 그렇게 해도 자꾸 떠오르기는 하지만(웃음), 하지 않는 것보다는 덜 해요. 그리고 생각을 바꿔보는 것도 한 방법일 것 같아요. ‘여행을 가게 되려고, 무언가를 배우게 되려고, 그런 일이 생긴 거다’라고 생각하는 거죠. 잊는 건 개인의 성격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어차피 시간이 필요해요. 좋은 쌀과 성능 좋은 압력솥이 있어도 꼭 필요한 건 시간이듯이요. 그래서 그 시간에 책을 읽거나 무언가를 배우면서 ‘이러라고 생긴 일이다’라고 생각하는 게 차라리 나은 거죠.

 

지금까지 사람으로 인해 상처 받는 이야기들을 나누었는데요. 사실 이번 책에는 살아갈 만한 힘을 주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도 많아요. 어떤 사람들이 작가님으로 하여금 ‘살아갈 만하다’고 느끼게 하나요?


따뜻한 사람들이 있잖아요. 며칠 전에는 제가 우체국을 갔는데 여직원이 너무 친절한 거예요. 그래서 제가 고맙다고 이야기했더니 쑥스럽게 웃더라고요. 그때 차에 책이 있는 것 같아서 사인을 해서 전해줬어요. 지금 이 모습 그대로이면 좋을 것 같다고 적어서요. 그리고 어제는 부산에 갔다가 택시를 탔는데, 제가 시간에 쫒겼어요. 기사 아저씨한테 ‘늦지 않게 갈 수 있을까요? 차가 안 막힐까요?’ 여쭤봤더니, 도로공사 지역 사무소에 전화를 하셔서 빠르게 가는 길을 알아봐 주시더라고요. 그와 비슷한 경우, 제가 많이 듣는 이야기는 ‘이 시간에는 다 막혀요, 가봐야 알죠’라는 말이거든요. 그런데 그 분은 그러지 않으셨어요. 제가 너무 감사하다고 했더니 ‘비싼 돈 내고 택시 탔는데 이 정도는 해드려야 되는 거 아닙니까’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런 순간에는 정말 감사한 마음이 들죠.


우리가 흔히 하는 이야기로 세상에는 좋은 사람이 더 많다고 하는데, 그런 분들을 한 번씩 만날 때마다 정말 피부로 느끼게 돼요. 그럴 때 살 만하다는 생각이 들죠. 마음이 열리기도 하고요.

 

말씀하신 분들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아요.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반응해준 거죠.


그렇죠, 그게 답이에요. 때때로 그런 마음을 받을 때 상처 받은 마음에 꽃이 피죠. 너무 감사하고 기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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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한 기대가 마음을 아프게 할 때가 많죠

 

『넘어진 자리마다 꽃이 피더라』를 읽으면서 ‘관계’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됐어요. 특히 “바라는 것 없이 그냥 무심하게, 그렇게 한결같이 그저 떨어질 뿐”인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다는 말씀이 마음에 오래 남더라고요.


괜한 기대가 마음을 아프게 할 때가 많죠.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 특유의 조급함 때문에 ‘내가 몇 번이나 물방울을 떨어뜨렸는데, 왜 아직도 구멍이 나지 않는 거야?’ 하고 생각하기도 하는 것 같아요. 관계에서도 그런 부분들이 많이 있죠. 사랑을 할 때도 그렇고 조급해 하지 말아야 하는 것 같아요. 누구를 조금 좋아해주고서 ‘왜 나를 안 좋아하는 거야?’ 하고 생각하면 안 되는 거죠. 그냥 ‘있을 사람은 가라고 해도 있을 거고, 갈 사람은 붙잡아도 갈 거다’라고 생각하고 조급해 하지 말고, 괜한 기대를 하지도 않고 내가 노력하는 게 조금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우리가 가진 과시욕이나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심리에는 여러 배경들이 있죠. 땅이 좁고 서로 관찰이 용이해서 그렇다는 이야기도 있고요. 아무튼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많이 의식하게 되고, 그래서 늘 자꾸 조급해지는 것 같기도 해요.

 

사랑에 대해 언급하셨는데요. 책 속에서 다양한 사랑의 단상들도 보게 돼요. 가장 안타깝게 느껴지시는 사랑의 방식이 있다면 어떤 건가요?


‘대충 봐서 그래’라는 제목의 글이 있는데, 거기 그런 구절이 있어요. “오늘도 대충 본 거다. 그래서 그가 그렇게도 좋은 거다. 그래서 그가 그렇게도 미운 거다.” 다들 사랑에 목말라 있어서 그런지, 사랑을 시작할 때는 오히려 눈을 반만 뜨는 것 같아요. 장점만 보는 거죠. 그리고 나중에 가서는 눈을 다 뜨고 단점을 봐요. 제일 안 좋은 건 미리 많이 주는 사랑인 것 같아요. 그건 부모가 자식한테 주는 사랑이지, 남녀 간에는 그런 사랑이 건강하지 못한 것 같아요.

 

받을 것을 기대하고 주는 사랑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 아닐까요? 기대하지 않고 주기만 하면 어떨까요?


부모 자식 사이가 아니면 그렇게 안 돼요. 자신이 평균적으로 조금 많이 주는 스타일이면 덜 주려고 노력하는 게 필요해요. 그렇게 천천히 주었으면 좋겠어요. 주변을 봐도 그렇게 했을 때가 한참 동안 안정된 사랑을 하는 것 같아요.

 

생각해 보면 급할 것도 없는데, 왜 천천히 주지 못하는 걸까요?


놓칠까 봐 그런 것 아닐까요(웃음). 이번에 놓치는 게 어쩌면 나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죠.

 

책에서 '자기표현력'에 대해 말씀하셨어요. “반복적으로 스트레스 받게 되는 누군가의 언행이나 처세가 여러 번 지속되면, 정중하고 공손하게 내게 그러지 말아 달라고 말해야 한다”고요. 그런 이야기를 ‘분명하게, 하지만 날카롭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단 자기를 잘 알아야 되죠. 만약 자신이 다혈질이라면 더구나 감정적으로 반응하게 될 때까지 참지 말고 빨리 말해야 돼요. 그리고 상대에게 태도나 언행을 바꿔달라고 이야기하려면 아주 공손하게 부탁해야 돼요. ‘나는’으로 시작하는 ‘I message’를 사용하면 좋아요. 상황, 영향, 감정, 세 가지를 말하는 거죠. 예를 들어서, 자꾸 지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이 계속 늦어서’라는 상황을 말하고 ‘회의를 제 시간에 시작하지 못하기 때문에’라는 영향을 말한 뒤에 ‘내 마음이 안 좋다’라고 감정을 이야기하는 거예요. 반대로 ‘You message’는 ‘너 지각하지 마’라고 말하는 식이죠. 이 방법은 상대의 감정을 부정적으로 자극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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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떤 모습으로 보여지고 싶나요?

 

지금까지 전직 대통령을 포함해 수많은 유명 인사들의 개인 이미지 관리를 해주셨는데요. 저자님께서 보시기에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힘’을 가진 이들에게는 어떤 공통점이 있나요? ‘따뜻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는 걸까요(웃음)?


『따뜻한 카리스마』에는 10가지로 따뜻한 카리스마의 구성 요소를 이야기했는데요. 그 중에는 업무적인 부분에서 좋은 요소들도 있지만, 일하며 만난 그런 분들의 경우를 보면 자기 자신을 굉장히 많이 들여다보는 것 같아요. 일단 자기 자신한테 관심이 많아요. 자기가 리더로서 어떤 부분이 어떻게 부족한지, 계속 생각하고 일관성 있게 개선해나가는 거죠. 그러려면 당연히 책도 많이 볼 테고 사람들 의견도 많이 들을 거예요. 모델링에 대한 관찰도 많이 하고요. 그리고 두 번째는, 사람에 대한 관심이나 애정이 많은 것 같아요. 각기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늘 살피죠. 어쨌든 따뜻한 카리스마는 상대가 느끼는 거잖아요. 자기가 아무리 노력해도 상대가 차갑고 권위적이라고 느끼면 소용없는 거죠.

 

‘이미지 관리’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편견이라고 할까요. 있는 것을 감추고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게 ‘관리’라고 생각하는 거죠.


정말 그렇지 않은 사람이 꾸며내는 건 머지않아 사람들이 다 알아보지요. 왠지 아닌 것 같은 느낌으로 시작해서 결국은 확연한 물증이 나오게 되는 경험을 많이 했어요. 이미지 관리는 건강 관리와 같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고 안 좋은 일들은 안 하려고 조심하는 것처럼, 인간관계나 사회생활을 건강하게 하기 위해서 생각을 바꾸거나 표현 방법을 고치려고 노력하는 거잖아요. 그걸 가증스럽게 볼 일은 아닌 거죠.

 

쉽게 시도할 수 있지만 큰 효과를 볼 수 있는 이미지 관리 방법이 있을까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는데요. 지금의 자기 상태를 정확히 아는 게 제일 필요해요. 현재 나의 이미지에 대한 객관적인 의견들을 듣는 거죠. 다른 사람들이 보는 나의 이미지와 본인이 생각하는 이미지, 그리고 전문가가 생각하는 이미지를 모아서 현재 이미지를 파악하는 거예요. 그 다음에는 목표 이미지를 정하고요. 그 다음에는 현재 이미지와 목표 이미지 사이의 간극을 좁힐 만한 일들을 해요. 한 단계만 더 말씀드리자면, 장점을 특화 시키기 이전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먼저 개선하는 게 우선이죠. 앞서 말씀드렸듯이 부정성 효과라는 게 있거든요. 부정적인 부분이 훨씬 강하게 전달되니까요. 그래서 부정적인 이미지 요소를 평균으로 끌어올리는 걸 먼저 하는 게 효과적일 것 같아요.

 

『넘어진 자리마다 꽃이 피더라』의 독자들로부터 가장 듣고 싶으신 이야기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한 여성 CEO께서 이 책을 주변에 선물하고 싶다고 하시면서 책을 많이 사셨어요. 제가 감사하다고 했더니 ‘나누면 좋을 것 같은 좋은 책 써줘서 너무 고마워요’라고 하시더라고요. 정말 감동했어요. 주변 분들의 반응을 보면 연령대에 따라 조금 다른 것 같은데요. 50대 분들은 거의 ‘그래,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이 바로 이거야’ 하시면서 조금 속 시원해 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어제 만났던 분은 30대 교육 담당자였는데요. 갑자기 예정됐던 어떤 교육이 취소됐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속상해서 어떻게 하냐고 했더니 선생님 책 읽고서 사는데 사소한 그런 거 크게 마음에 두지 않기로 했다고 하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자진해서 덜 넘어지는 분들의 고백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럴 때 너무 감사하죠. 


 

 

넘어진 자리마다 꽃이 피더라이종선 저/김수강 사진 | 쌤앤파커스
100만 베스트셀러 《따뜻한 카리스마》 이종선 저자의 5년 만의 신작. 살면서 억울하고 상처받고 쓰러질 때, 우리는 무엇을 얻고 어떤 모습으로 제자리에 돌아올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넘어진 마음을 일으켜 세울 수 있을까?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공신’ 강성태 공부법의 끝, “66일이면 진짜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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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수능 전국 상위 0.01%로 서울대 기계항공공학부에 입학한 ‘공부의 신’ 강성태. 『미쳐야 공부다』, 『공부의 신 천개의 시크릿』등의 책을 쓰고 드라마 <공부의 신> 공부법 자문을 하기도 한 그는 최근 다양한 예능에도 출연하며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 “영상을 찍을 때도 동작 하나, 목소리, 표정, 옷차림 모든 걸 생각해요. 모든 게 다 멘토링이라고 생각해요. 방송뿐 아니라 이런 인터뷰도 그렇고, 모든 게 다 그런 거예요.”라고 하는 강성태는 말 그대로 많은 학생들의 ‘멘토’가 되고자 한다.


그가 여러 가능성 중에서도 학생들의 멘토가 되는 길을 선택한 이유는 자신의 경험 때문이다. 그 자신이 혼자 공부하며 늘 멘토를 간절히 바랐기 때문이다. 교육봉사를 하고, 효과적인 공부법을 연구하고, 동기부여와 습관이 중요하다는 결론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은 자신의 일에 대한 애정이자, 고군분투하는 학생들에 대한 애정 때문이었다.


『강성태 66일 공부법』역시 그렇게 탄생했다. 동기부여가 많은 학생들에게 공부에 동력을 제공했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는 의지조차 필요가 없어지는 습관이라는 행동패턴을 만들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습관을 누구나 만들 수 있다고 말하는 『강성태 66일 공부법』, 이 법칙은 무엇보다 간단하다. 약 두 달에 불과한 시간, 강성태의 습관 만들기 법칙을 따라가면 “총점 50점이 오른 아이들”처럼 우리 삶도 변화가 가능해질지 모른다.

 

66일, 습관을 만드는 5가지 법칙
1. 반복되는 일상에 붙여라
2. 습관은 작게 시작해 크게 만드는 것이다
3. 중요한 일은 아침에 하라
4. 이상적인 하루를 상상하라
5. 66일을 지속하라. 습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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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은 습관뿐이다


‘66일 공부법’을 명쾌하게 만드는 몇 가지 단어를 꼽아볼게요. 습관, 우선순위, 복습이 아닐까 싶은데요. 그 중에서도 특히 습관을 강조하고 있어요.

 

1부는 습관을 만드는 다섯 가지 원칙을 이야기하고 있고요. 2부는 어떤 공부법을 습관으로 만들어야 하는지를 담아 바로 써먹을 수 있도록 하고 있죠. 2부에서 말한 공부법은 장황하지 않아요. 최대한 바로 효과를 볼 수 있도록 하는 건데요. 책을 보시면 시키는 게 꽤 많아요.(웃음) 일일 습관 계획표도 짜라고 하고, 66일 동안 실천하게 되어 있고요. 그러니까 책만 읽고 끝나는 게 아니에요. 당장에라도 뭘 하도록 하는 거죠. 학생들에게는 당장 읽고, 뭐 하나라도 하고, 펜을 잡고 끼적이게 하는 게 진짜 중요해요.

 

스스로 공부를 하도록 만드는 일, 이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언제 하게 된 거예요?


대학생 때 교육봉사를 하다가 일을 시작하게 됐어요. 2002년에 시작했어요. 군대에 다녀와 ‘공신’이란 동아리를 만들었고요. 교육봉사 하던 것이 커져서 아예 진로를 이쪽으로 잡았고, 벌써 십 년이 넘었는데요. 처음에는 과외를 했죠. 문제 풀어주고, 시험 범위 가르치고요. 그런데 그게 절대 답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물고기를 하나하나 떠먹여주는 걸로는 이 학생들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없는 거예요. 일일이 가르치는 게 아니다, 방법을 알려주자, 생각해서 공부법을 엄청나게 고민했어요. 지금까지 나온 공부법 책은 거의 다 읽어본 것 같아요. 그러면서 효과적인 공부법을 가르친 거죠. 문제는 학생들이 안 한다는 거예요.(웃음) 그래서 동기부여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어요. 일침도 놓고, 위로도 하고요. 그것으로 많이 알려지기도 했죠.

 

그 과정에서 습관이라는 문제에 도달하게 된 거군요.


동기부여가 돼서 쭉 가는 학생도 있는데 그때뿐인 학생들도 있는 거죠. 공부를 처음하거나 의지가 부족하거나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어떻게 공부를 이어가도록 하느냐고 했을 때 답은 습관 밖에 없었어요. 습관의 핵심은 해야겠다는 생각 전에 이미 하고 있는 거거든요. 누구나 습관을 만들 수가 있어요. 여러 방법 중 많이 알려져 있고 실제로 저희도 효과를 많이 보았던 것이 66일 동안 반복하는 거예요. 66일이면 의지가 거의 필요 없어지는 거죠. 공부가 그렇잖아요. 해야겠다고 엄청난 다짐을 하고, 선과 악이 싸운 후에 책상에 앉죠. 책상에 앉았는데 책상이 더러워요. 정리도 해야죠.(웃음) 그런 게 아니라 그냥 바로 하게 되는 거예요.

 

습관이 잘 자리 잡은 경우 다른 곳에 에너지를 소모할 필요가 없어지기 때문에 훨씬 효율적이죠.


수험생의 삶은 진짜 단순해요. 잘하는 친구들은 그야말로 하루가 통째로 습관이에요. 고시에 합격하는 사람들 보면 예외 없어요. 하루하루가 똑같아요. 지루하다고 볼 수도 있죠. 주말에 한 나절 정도 자유 시간 갖고 <무한도전> 한 편을 본다거나 하는 건데요. 모든 게 이렇게 정해져 돌아가야 효율이라는 게 생기거든요.

 

이것을 공부법의 정답이라고 봐도 될까요?


앞서 『공부의 신 천개의 시크릿』이라는 책도 썼었는데요. 천 명의 공신을 분석해봤어요. 놀란 게 이들은 왜 공부를 했느냐고 물으면 ‘그냥 했다’고 말을 해요. 나중에 알게 됐어요. 이들은 진짜 그냥 한 거예요. 습관이니까요. 그것이 66일이죠.

 

실제 해보니 효과가 확실히 있었다고요.


학생들에게 66일이면 진짜 된다는 확신을 준 후 하잖아요? 진짜 바뀌어요. 안 바뀔 거라는 생각을 하면 실제로 안 바뀌는데요. 실제 멘토링을 했을 때 이렇게 하면서 변화되는 것을 많이 본 거죠. 그래서 66일 동안 어떻게 습관을 만드는지를 1부에서 다섯 가지로 설명한 거예요.


‘공신닷컴’ 사이트를 만든 게 2006년이니까 사이트만 딱 십 년 됐어요. 그동안 안 변한 제 꿈은 ‘빈부 격차에 상관없이 대한민국 모든 학생들에게 멘토를 만들어준다’ 이거예요. 저는 이 한 문장만 생각해요. 하루도 이걸 생각 안 해본 적이 없어요. 이 모든 게 그 과정이에요. 처음에는 교육봉사를 했고, 공부법을 가르쳐야겠다 생각했고, 천 명의 사례를 모아보고, 습관에 대한 고민을 하다가 이 책까지 나오게 된 거죠.

 

다양한 연구 사례나 학문 이론을 들어 설명하는데요. 그 중에 저자가 실제로 해왔다는 ‘명상’이 색다르게 느껴졌어요.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항상 명상을 했다고요?


명상은 저의 진짜 습관이었어요. 제가 습관을 만들 때 기존에 반복하던 행위에 붙이라는 이야기를 하는데요. 저는 공부 시작하는 행위에 명상이 완전히 붙어 있었어요. 누가 시키지 않아도 공부 시작하기 전에는 한 번도 안 빼놓고 명상을 했죠. 특히 시험에 임박했을 때는 항상 마음을 차분하게 만든 후에 공부를 시작했어요. 이게 집중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실수도 많이 줄이고요, 스트레스도 덜 받고, 더 오래 공부할 수 있어요. 좋은 습관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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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처럼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대학생 때 하던 교육봉사가 이곳까지 저자를 끌고 왔다고 했는데요. 어떤 강력한 동기가 있었던 건가요?

 
교육봉사라고 하니까 저를 착하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시는데요. 별 생각 없었어요.(웃음) 다만 제가 공부를 쉽게 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공부하면서 많이 막막했거든요. 공부는 하는데 성적은 안 나오고요. 그런 걸 말할 데가 없더라고요. 제가 공부할 때는 공부법 장르 자체가 없었으니까요. 수기 정도만 있었죠. 성적이 안 나오면 머리가 나쁜가, 과외를 받아야 하나, 이런 생각도 많이 했어요. 그래서 대학생이 되면 저처럼 공부 때문에 힘든 친구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은 있었죠. 그런 생각은 수험생 때부터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대학교 2학년 때 시작을 하게 됐어요.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도 많을 것 같아요.


시설에 가서 학생들을 가르치게 됐는데요. 가보니 진짜 엉망이에요. 제가 간절했었기 때문에 가면 학생들이 집중할 줄 알았어요. 아니더라고요. 일단 책상도 없고요. 다섯 명을 맡았는데 중학생, 초등학생이 섞여 있어요. 나중엔 가르치는 게 의미가 없단 생각에 같이 놀았어요. 그러면서 친해지게 됐고, 오히려 놀면서 학생들이 바뀌는 경험을 했죠. 그게 필요했던 거예요. 그러다 언젠가 “형처럼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라는 질문을 받고 깜짝 놀란 적이 있어요. 그 말이 되게 지금도 많이 기억에 남는데요. 대학생이 되려면 공부해야 한다고 얘기해주면서 공부도 시작하게 됐어요. 핵심은 이거예요. 한 명이라도 할 수 있다고 말해주고, 응원해주고, 소중하다고 말하고, 공부 방법을 알려주면 절대로 나쁘게 안 돼요. 최소한 범죄자는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요. 그것을 멘토라고 표현하는 거죠. 멘토를 대한민국 모든 학생들에게 만들어주면 어떨까, 이런 생각을 하는 거예요.

 

단순히 공부 잘하는 법을 알려준다, 에 그치지 않는 거죠. 철학이 느껴지네요.


진심으로 해왔던 것 같아요. 단순히 정보 전달한다는 생각은 잘 안 해요. 제가 찍는 영상을 보셔도 처음에는 과하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요. 저는 솔직하게 말한다고 생각해요. 어떨 때는 기도하면서 해요. 영상을 보는 단 한 명이라도 방법을 깨닫거나 삶의 방향을 찾는다면 좋겠어요. 지금 하는 활동들은 모두 이 비전과 맞닿아 있어요. 책도 마찬가지고요.

 

최근 <마리텔>, <비정상회담>, <한밤> 등에 출연하면서 방송 활동도 많이 하고 계신데요. 그런 것들도 모두 ‘모든 학생에게 멘토를 만들어준다’는 비전의 일환인가요?


예능이라고 해도 공부 이야기 하는 것뿐인데요. 방송을 보고 한 명이라도 학생을 응원하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구나 생각하게 된다면 힘이 될 것 같아서요. 매년 수능 보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고요. 저는 선생님이라는 표현을 아예 안 써요. 선생님 자격도 안 되는 것 같고요. 무수히 많은, 특히 공부에 문제가 많은 학생들을 많이 만나왔는데요. 무언가 마음에 전달되는 것이 없으면, 마음을 건드리는 것이 없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더구나 꿈도 없고 소외 받은 학생들에게는 안 통하거든요. 때문에 영상을 찍을 때도 동작 하나, 목소리, 표정, 옷차림 모든 걸 생각해요. 모든 게 다 멘토링이라고 생각해요. 방송뿐 아니라 이런 인터뷰도 그렇고, 모든 게 다 그런 거예요.

 

학생들에게는 저자가, 저자에게는 학생이 일종의 지침이 되는 거네요.


맞아요. 학생들에게 하라고 하는 만큼만 제가 하면 될 거예요. 물론 저도 지키는 게 쉽지 않아요. 이렇게 하면 공부를 잘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저도 잘 못 지킬 때도 있어요. 그럴 때면 ‘이러면 안 되는데’, ‘책을 썼잖아’(웃음) 이런 생각이 드니까요. 어떻게 보면 제게 학생들이 스승이죠. 엄청나게 자극도 많이 받아요. 생각지도 못한 환경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의 고민을 들을 때면 정말 제가 자극을 받아요.

 

생각지도 못한 환경이라면 어떤 건가요?


얼마 전 공신 멘토로 선발된 친구가 있어요. 몇 개월을 두유로 버텼대요. 편의점 알바 하면서요. 문제집이 없어서 기출문제 제본을 떠서 공부를 했는데 답지가 없는 거예요. 답지가 없으니 교과서에서 어떻게든 답을 찾아내야 하는 거죠. 교과서가 답안지예요. 그렇게 공부해서 멘토로 온 거예요. 그 친구는 이제 곧 강의도 찍는데요. 공신의 도움을 받아 이렇게 된 친구를 보면 뿌듯하면서도 고맙고 제 자신이 엄청 자극을 받아요. 꿈을 위해 이렇게 노력하는 친구들이 있구나, 하면서요. 

 

최근 촛불 집회 참여를 독려하는 영상이 화제가 됐어요. 두 가지, ‘이 또한 공부다’와 ‘미안하다’가 인상적이었어요. 이런 발언을 한 이유가 있나요?


일단 꼭 말씀드리고 싶은 게 학생들 시위 나가라, 이런 얘기를 전달하려던 건 아니었어요. 가장 기본적인 것을 말한 거예요.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이거든요. 4.19 혁명, 아시아 최초의 민주주의 시민 혁명이라고 배우고, 그 시작이 고등학생이었던 김주열 열사로부터 시작되었다고 배우죠. 3.1 운동에 유관순 열사가 학생 때부터 참여했다는 걸 초등학생도 배워요. 그런 일이 한두 개가 아니거든요. 그걸 배운 학생들인데 이런 상황에서 가만히 있을 거면 왜 가르친 거예요? 어른들이 그걸 가르쳤잖아요. 헌법도 그렇죠. 반드시 외워야 하는 거거든요. 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2항, 대한민국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21조 1항,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최소한 학생으로서 발언하는 것을 어른들이 막을 수는 없는 것 같아요.

 

당연한 이야기가 이슈가 돼요.


학생이 뭘 안다고 촛불을 드느냐는 이야기가 많았거든요. 배운 대로 하는 거고, 어떻게 보면 상을 줘야 할 일이에요. 또 이건 진짜 명백한 사실인데요. 어른들이 잘했으면 학생들이 촛불 들 일도 없어요. 지금 학생들이 잘못한 게 뭐 있어요. 이번 일에서 입시 부정 같은 것은 특히 학생들이 피부로 겪는 거예요. 또 이 학생들은 세월호 사고를 똑똑히 본 친구들이잖아요. 그렇게 생각하면 진짜 모순이에요. 세월호에서 가만히 있으라고 했는데 어떻게 됐나요. 나라가 위기에 빠졌을 때 학생들이 불의에 항거한다, 시험 문제에 나오면 이것이 정답이거든요. 이렇게 가르쳐놓고 뭘 아느냐고 해요. 학생들보다 모르는 어른들 많거든요. 그러니 미안한 감정이 들 수밖에 없어요. 매일 같이 학생들을 만나 공부하라고 말하는데 공부 잘하는 사람들을 보세요. 양심 팔고, 권력의 개가 되고, 나라를 말아 먹잖아요. 공부하라는 말을 한 사람 중 하나로 부끄럽고 미안해요. 참담하죠. 미안하다는 말이 저절로 나와요.

 

저자의 멘토링이란 무엇인가요?


학생을 이해하려고 해요. 그게 핵심이거든요. 정보만 알려주는 거면 그럴 필요가 없는데요. 멘토링은 다르다고 생각해요. 학생들의 마음, 심리 상태도 살피는 거죠. 그때그때 다르거든요. 어떤 사건이 터지면 분노해요. 어떨 때는 위로가 필요할 때도 있고요. 어떨 땐 따끔하게 말해야 할 때도 있어요. 그것들을 제가 이해하고 말을 해야 받아들여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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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이 되도록


한국 교육은 많은 부분이 사적 영역에서 이루어지고 있잖아요. 그 틈에서 견제나 유혹도 많았을 것 같은데요.


예전에 전화를 받은 적이 있어요. 사교육 업체였는데요. 저희가 혼자 공부하는 방법을 알려주니까요. 어떤 면에서는 굉장히 민감한 문제잖아요. 그렇지만 유혹은, 잘 모르겠어요.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했던 것뿐이고요. 저희 사이트를 사겠다고 큰돈을 제안 받기도 했고, 강사 제안을 받기도 했지만요. 현실성 없는 이야기 같겠지만 최소한 20대에는 진짜 하고 싶은 것만 하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남들이 다 고시 공부한다고 저도 하거나 이런 거 말고 진짜 하고 싶은 거요. 정말 해볼 만한 가치가 있고 잘할 수 있는 것, 그에 대한 답이 이거였어요. 또 생각을 많이 하긴 했지만 크게 유혹이라고까지는 생각 안 해요. 나쁜 거라고도 생각 안 하고요. 프레임도 문제라고 생각해요. 어떤 교육은 선하고 어떤 교육은 극악무도한 것은 아니잖아요. 이분법적으로 생각하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결국 그 또한 길 중의 하나고, 제가 택한 건 이 길이라는 거예요.

 

20대 때의 생각이 30대가 된 지금도 바뀌지 않았나요?


그냥 계속 가고 있는 것 같아요. 그 전에 근본적으로 제게 영향을 준 건 군대예요. 해병대를 다녀왔는데요. 너무 버거웠어요. 다치기도 하고요. 그곳에서 엄청나게 소중한 것을 깨달았는데요. 감사함이에요. 그 지경까지 겪어봤는데 밖에서 못하겠는가 하는 자신감도 있고요. 밖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감사하다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어요. 대단하지 않아도 음식을 씹고 먹는 것 자체가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항상 생각하거든요. 군대에서 겪은 그 힘들었던 경험을 잊지 말자고 진짜 되뇌었어요. 이런 것들 때문에 스스로도 독려하고 제 삶을 사는 것 같아요. 사람이 이런 식으로 정신을 차리고 있지 않으면 휩쓸리기 너무 쉽거든요. 드라마가 뜨면 관련 학과가 엄청 떠요. 드라마는 현실이 아닌데 그걸 보고 진로를 정하는 거예요. 저는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았고 지금도 발버둥치고 있어요. 나중에 후회할지도 모르죠.(웃음)

 

흔히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모습이 있잖아요. 좋은 대학 나와서 안정된 직장을 잡는. 사실 그것만이 정답은 아니죠.


인생에 정답은 없다고 생각해요. 아이러니죠. 정답을 찾아주는 사람인데 제 인생은 ‘노답’이거든요. 친구들과는 완전 정반대로 갔죠. 잘 알려지지도 않은 사회적 기업을 한다고 하고요. 자신이 정한 다음 그걸 정답으로 만드는 수밖에 없을 거예요. 사람마다 다르죠. 돈 많이 안 벌어도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요. 저는 이것이 정답이 되도록 지금도 발버둥치고 있는 거예요.


많은 학생들이 저한테 물어봐요. 공부법뿐 아니라 고등학교를 어디로 가야 하나, 문제집을 뭘 봐야 하나, 공대를 가나 의대를 가나, 이런 것을 다 물어봐요.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어떻게 정답이 있겠어요. 서울대 의대를 가서 자퇴하는 학생도 있잖아요. 제 결론은 이거예요. 답을 정하고 그것이 정답이 되도록 만드는 거죠.

 

입시 전형이 다양해졌잖아요. 사실 수능이라는 제도는 진보적인 것이었죠. 계층 차이 없이 동일한 시험으로 대학에 갈 수 있으니까요. 지금은 그렇지 않게 됐는데요. 이런 상황, 또 앞으로를 쉽게 점칠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떤 대응 방법을 고민하고 있으세요?


저희의 핵심은 공부법이에요. 공부법은 바뀌지 않죠. 입시는 바뀌어도 말이죠. 입시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긴 하는데요. 아시겠지만 한국의 학생들은 실험용 쥐예요. 입시 제도가 너무 빨리 바뀌고요. 한국은 교육이 아니라 정치예요. 정권이 바뀌면 다 바뀌어요. 가령 노무현 정부 때는 논술이 엄청 떴었거든요. 지금 논술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죠. 영미권은 입학사정관 도입에 백 년이 걸렸다는데 한국은 불과 몇 년 만에 하니까 준비하는 사람도 경험이 없고, 제대로 하지 못해요. 심지어 정유라 사건 때문에 신뢰도도 많이 떨어졌고요. 어떤 게임도 룰을 이렇게 막 바꾸면 안 돼요. 어떻게 선수들이 게임을 제대로 할 수 있겠어요. 사교육 나쁘다고 말할 문제가 아니에요. 그렇게 우왕좌왕 할 때마다 사교육이 엄청 확장되거든요. 그런 아쉬움은 좀 있어요.

 

게임의 룰이라는 게, 명확하지도 않잖아요. 정성 평가 같은 경우 불공정의 여지도 많고요.


진로, 동아리, 봉사 등등 신경 써야 할 것도 많으면서 막연한 것이 많아요. 또 시험을 치는 건 어쨌든 본인이 와서 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봉사나 진로활동 같은 것들은 부모님이 여유가 되거나 경험이 있거나 이런 것에 따라 좌우되는 부분이 분명 있거든요. 가령 소논문 쓰기가 있대요. 일반 고등학생이 어떻게 논문을 쓰겠어요. 부모님이 교수님이면 할 수 있겠죠. 물론 공부를 하는 모든 배경까지 다 보겠다, 이렇게 정성 평가를 하겠다고는 했는데요. 제 생각에는 아직까지는 부족한 점이 많은 것 같아요. 입학사정관들을 만나보더라도 그렇고요. 수시도 급격하게 늘었는데 그것에 대한 보완, 지원이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수시도 좋죠. 안 그러면 하루 만에 인생이 결정되잖아요. 한 문제 틀리거나 1점 차이로 갈리고요. 그렇지만 훨씬 많은 준비와 안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이런 상황에서 저자가 꿈꾸는 빈부 격차에 무관한 교육 혁신, 어떻게 실현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다행인 점은 다들 스마트폰 가지고 있고, 유튜브 기본적으로 볼 수 있잖아요. 페이스북도 많이 하고요. 직접 만나 멘토가 되어주진 못하지만 콘텐츠 만들어서 기본적으로 온라인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다 할 거예요. 때문에 돈도 많이 벌어야 해요.(웃음) 그래야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지니까요.

 

이 책을 통해 꼭 하고 싶은 말 한 마디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아직 늦지 않았어요.(웃음) 66일, 진짜 딱 두 달만 도전해봤으면 좋겠어요. 절대 힘들게 해야 하는 내용은 없거든요. 처음부터 너무 큰 목표를 잡으니까 지치는 거라서요. 충분히 가능한 내용을 담았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어요. 66일 동안 습관을 만들어낸 경험이 있다면 다른 것도 다 할 수 있어요. 공부뿐 아니라 운동이나 삶의 영역에도 다 적용시킬 수 있으니까요. 

 

좋은 습관을 만드는 건 반드시 수험생에게만 해당하는 건 아니잖아요. 저자가 만들고 싶은 습관은 뭐가 있나요?


책에 턱걸이 이야기를 했는데요. 집에 들어가기 전에 놀이터에서 턱걸이를 하는 습관을 만들었거든요. 그런데 겨울에는 못해요.(웃음) 너무 손이 시려워서요. 운동하는 습관을 만들려고 해요. 고민하고 있어요. 그나저나 아이 때문에요. 다섯 살, 두 살 아이가 있는데 두 살 아이를 제가 데리고 자요. 그리고 아내는 아침 일찍 출근을 해야 해서 아침에도 제가 아이를 보거든요. 아침 시간이 중요하다고 했는데 막상 저는 아침 시간에 뭘 할 수가 없어요. 유치원 보내고 하느라 정신이 없어요. 

 


 

 

강성태 66일 공부법강성태 저 | 다산4.0
공신들을 인터뷰하며 공부 동기가 있어도, 공부법을 알아도 정작 공부 습관이 형성되지 않으면 공부를 지속하기가 힘들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에 그는『강성태 66일 공부법』을 통해 공부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강력한 공부 습관의 힘을 제안하고자 한다.


신선미 “『한밤중 개미요정』은 나의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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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운 한복과 섬세한 색감, 그 안에 녹아 있는 현대적 요소들. 화가 신선미의 작품은 단번에 시선을 끄는 매력이 있다. 옛 그림처럼 차분하면서도 아이의 병간호 중인 엄마 곁에 놓인 체온계, 아이가 베고 누운 메모리폼 베개가 재미있다. 부드러운 분위기는 옛 정취를 떠오르게 하면서도 매우 신선한 감각을 담고 있는 듯하고 들여다볼수록 작가의 완고한 고집이 느껴진다. ‘외유내강’이라는 말이 자꾸 떠오른다.

 

한복의 다양한 모습을 꾸준히 작품으로 그려온 동양화가 신선미에게 개미요정은 여러모로 중요한 장치다. 세상에 닳아 피로한 어른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순수한 어린 아이나 사람보다 뛰어난 육감을 가진 동물들 눈에만 보이”는 존재, 말하자면 어른이 잃어버린 존재가 바로 개미요정이다. 실제로 작가 자신이 어렸을 때 어렴풋이 보았다고 믿는 존재기도 한 개미요정은 신선미의 작품에 다양한 상상력을 불어넣는다. 뿐만 아니라 개미요정은 작가가 엄마로서, 엉뚱한 아이의 행동을 이해하게 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의 첫 창작 그림책 『한밤중 개미요정』은 그러므로 작가의 “육아일기”이기도 한 것이다. 

 

작가의 여러 작품에도 등장했던 개미요정을 아름답고 환상적인 하나의 이야기로 보여주는 이 동화는 출판사로부터 제안을 받아 시작했다. 그러나 작가는 굳이 작품 크기의 원화로 작업하기를 고집했다. 무려 2년이 걸렸다. “책을 작품의 연장으로 생각한” 작가의 신념 덕분에 독자는 책은 물론 어린이의 몸만큼 커다란 원화를 동시에 감상할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서울 용산구 한남동 블루스퀘어 아트파크 갤러리에서 12월 18일까지 전시회가 열리고, 이후에는 창비 카페에서 전시가 계속 된다고 하니 책으로 다 느끼지 못한 화가 신선미의 작품을 더 많은 사람들이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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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몸보다 큰 그림


출판사 제안을 받고 한 작업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큰 크기의 원화로 작업을 하셨더라고요. 고된 작업이었을 텐데 원화를 고집하신 이유가 있었나요?

 

갤러리 측에서는 안 좋아하셨죠.(웃음) 이 작업을 빨리 마무리 하고 다른 작업을 하자고 했는데요. 저는 같이 가고 싶었어요. 책을 작품의 연장으로 생각한 건데요. 보통 전시를 하면 도록이 나오잖아요. 도록 대신 책이 나온 거죠. 아이들에게도 책에 있는 원화를 크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작업하면서 한 생각은 아이들이 자기 몸보다 큰 원화 앞에서 상상력을 펼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거였어요. 그런 욕심으로 했는데 반응은 어떨지 모르겠어요. 고집을 피우긴 했는데 좋게 봐주시면 감사할 것 같아요.

 

동화책 독자와 미술 작품의 관람객이 겹치지 않는 경우도 많잖아요. 외연을 확장한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어요.


미술 작가 분들이 책도 많이 하시잖아요. 그런데 작품과 책 작업을 따로 하시거든요. 저는 아이들에게도 작품을 감상할 권리를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원화라고 하면 거의 작은 크기거든요. 그것 또한 훌륭한 작품이죠. 다만 굉장히 큰 그림을 보면 받아들이는 게 좀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제 그림이 아이들한테는 찾아보는 재미, 어른들한테는 아련한 추억, 이런 것을 가져다주었으면 해서 고집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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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이 오래 걸렸을 것 같은데요.


시간이 많이 걸렸죠. 거의 2년 걸렸어요. 스케치 1년, 채색 1년 걸렸어요. 스케치가 따로 들어가거든요. 스케치가 되면 아교 작업을 하고요. 아교는 종이에 있는 구멍을 막아주는 역할을 해요. 구멍 때문에 물감을 떨어뜨리면 번지거든요. 가루 물감이다보니 아교가 밑으로 빠지는 걸 막기도 하고 밀착시키기도 해요. 그 처리를 하고 나서 위에 스케치를 올리고 펜으로 다 눌러서 따는 거죠. 그 자국에 먹선을 그어서 채색이 들어가고요. 노동이에요.(웃음) 주변에서는 책에 너무 소모하는 것 아니냐고도 하셨는데요. 저는 그렇게 생각 안 했어요.

 

채색 방식 자체도 오래 걸리는 작업이잖아요.


완전히 전통 채색 방식이에요. 제가 전공한 방식 그대로 했어요. 이 방식은 염색하듯 하는 거예요. 얇게 여러 번 채색을 해요. 얇게 발라 말리고 색 올리고, 말리고, 올리고 하는 건데요. 예전에는 빨간색 치마 같은 게 많았었는데 그 정도 진하게 들어가려면 색이 몇 십 번 올라가야 해요. 색도 섞어서 만드는 게 아니라 그 색을 만들기 위해서 처음에는 노란색을 올리고, 그 다음에 양홍색을 올리고, 그런 식으로 나눠서 그 빨간색이 만들어질 때까지 쌓는 거예요.


작가 분들 중에는 한 번에 두껍게 올리시는 분들도 있거든요. 그것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고요. 제가 원하는 방식은 종이의 질감을 그대로 살리면서 염색되듯 밀착되는 느낌을 주고 싶었던 거예요. 그런 것을 좋아해서요.

 

그런 질감은 확실히 책으로 보는 것보다 직접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훨씬 좋겠네요.


네, 책에는 그게 다 안 나오긴 하더라고요. 실제로 와서 봐주시면 또 좋겠죠.

 

한순간 책으로 보거나 전시를 보는 것이지만 이런 고된 작업을 이해하니 느낌이 완전히 다르네요.


전통 채색 방식이 그런 부분이 좀 많아요. 그림에 바로 들어갈 수 있는 게 아니라 밑작업이 많아서요. 성격 급하신 분들은 하다가 다른 쪽으로 전향하시기도 하죠.

 

동양화를 전공하셨는데 동양화의 어떤 점에 매료된 건가요?


예고 때부터 그림을 그렸는데요. 원래는 서양화로 시작을 했어요. 동양화는 예고 2학년 때부터 했고요. 동양화 선생님의 꾐에(웃음) 넘어갔는데요. 꼬신다고 넘어간 건 아니죠. 배워보니 제가 재미있더라고요. 처음엔 먹을 다루는 것에 매력을 느꼈고요. 나중에 대학 가서는 일본 유학을 다녀온 교수님이 계셨는데 그 분의 채색에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대학원을 들어가서 본격적으로 한 거죠.


사실 학부 때는 추상화를 많이 하는 분위기였는데 저는 추상이 맞지 않았어요. 그래서 휴학을 하고 서울에 아는 선생님 화실에 따로 들어가서 2년 간 배웠어요. 열심히 했죠. 그때 배운 게 거의 다예요. 굉장히 열심히 했었거든요. 아교 다루는 것, 먹선 그리는 것, 다 처음부터 배웠죠.


주인공을 실제 작가님의 자녀분으로도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이 책 작업은 또한 나의 아이에게 주는 선물 같은 느낌이에요.


지금보다 조금 더 어릴 때는 이야기도 많이 해줬었어요. 엄마가 어릴 때 개미요정을 본 적이 있다(웃음) 이러면서 얘기를 했는데요. 한두 해 전만 해도 ‘진짜?’ 이런 반응이었는데 요즘에는 그냥 게임하느라 신경 안 써요. 아예 흘려듣는 것 같아요. 아이도 나이가 들면서 점점 그런 게 잊힐 것 같아요.

 

개미요정은 자기들을 잊는 친구를 아쉬워하기도 했죠.


공부 때문일 수도 있고요. 바쁜 사회생활에 치이다보면 주변의 것을 놓치고 살잖아요. 개미요정들도 친구였는데 어른이 되어버린 엄마한테 외면을 당하고 점점 멀어져요. 곁에는 있었는데 잊히면서 개미요정은 울어버리기도 하고요. 그러니까 어른들의 무관심이 상처가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저는 어릴 때 몸이 많이 허약했거든요. 독한 약을 먹고 계속 누워 있고 그러니까 계속 몽롱하잖아요. 자다 일어나면 밤이고, 자다 일어나면 낮이고, 이럴 때가 많았어요. 그런 몽롱한 상황 속에서 뭔가 본 것 같은데 그걸 부모님에게 얘기하면 ‘꿈 꾼 거야’라면서 철저하게 무시당하는 거죠. 지금은 웃으며 얘기하지만 그때는 너무 억울했던 것 같아요. 믿어주지 않는 어른들이 미웠고요. 그런데 제가 아이를 키우면서도 그랬던 것 같아요. 솔직히 이해 안 되는 행동을 할 때가 있거든요. 그러면 얘가 나처럼 그런 게 있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생각으로 아이를 보면서 이야기를 풀어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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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요정은 작가님의 이전 작품에도 꾸준히 등장했잖아요. 작품뿐 아니라 자녀를 이해하는 데에도, 다양하게 작용하고 있네요. 재미있는 존재 같아요.


구석구석 숨어 있는 개미들의 삶을 의인화 한 거예요. 순수한 어린 아이나 사람보다 뛰어난 육감을 가진 동물들 눈에만 보이고요. 어른들은 아예 관심조차 두지 않는 거죠. 그래서 어른들에게는 안 보이는 거예요.

 

아, 그래서 고양이에게는 보이는 거군요?


네, <톰과 제리>처럼 쫓고 쫓기는 관계 같은 설정으로 많이 그렸었어요. 그 전에도 잠자는 시리즈가 많았는데요. 어른들이 진실에 눈을 감아버리는 그런 모습들을 잠자는 모습으로 묘사한 거예요. 그런 메시지를 던지는 그림을 많이 그렸었죠. 그 옆에 있는 고양이는 개미요정을 보고, 주인은 잠이 들어 있고, 아기는 요정을 보고, 또 엄마는 잠들어 있고요.

 

책 마지막에 어린 아이였던 엄마와 아들이 똑같이 어린이의 모습으로 마주하잖아요. 그 장면이 무척 환상적이에요. 정말 아름다운 장면이었어요.


아련한 느낌으로 봐주길 원했어요. 엄마가 반지를 보면서 서서히 깨면서 그때의 공간으로 싹 바뀌는 거죠. 뒤에 개미요정이 지나가고 고양이가 잡으러 가고요. 그렇게 공간이 바뀌고 그때의 순간이 떠오르면서 어린 시절로 돌아갔는데 마침 아이도 개미요정과 함께 기다렸다는 듯 엄마를 맞이하는 거죠. 엄마와 소풍을 하는 그런 장면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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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런 부분, 어른이 되어 잃어버리는 감성이나 감각에 관심을 두고 계신 건가요?


예전에는 그냥 한복 시리즈였어요. 그림 속 그림 식으로 한복 시리즈를 그리다가 개미요정을 넣기 시작한 건 중간에 휴학을 하고 그림 배우던 시절부터였는데요. 언젠가 그곳에서 화집을 봤어요. 중국 화집이었는데요. ‘장과견명황도’라는 그림인데 아주 오래된 갈색 배경에 ‘장과로’라는 사람이 왕 앞에서 도술 부리는 장면이었어요. 작은 모자 안에서 노새가 뛰쳐나오는 거였는데요. 그 시대에도 이런 판타지가 있다는 것을 보고 내가 이런 걸 그리고 싶었구나, 어릴 때 생각했던 걸 이렇게 표현하면 되겠구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때는 기초를 배우는 상황인데 빨리 배워서 이렇게 그려야지, 하는 생각이었던 거예요. 열심히 배웠어요. 대학원에서 본격적으로 그런 그림을 그렸죠.

 

전통적인 분위기 안에 새로운 요소들이 재미를 줘요. 체온계 같은 것 말이에요.


어쨌든 현재를 살아가는 거니까 현대의 사물이 들어가는 거죠. 다 지금 사용하는 것들이에요. 주인공이 베는 베개도 저희 아이가 쓰는 것이거든요. 저거 없으면 잠을 못 자요.(웃음) 아주 아끼는 메모리폼 베개예요. 저는 어렵게 풀지 않아요. 주변에 있는 것으로 재미있게 일상을 잘 녹여내면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남들은 어렵게 해석한다고 하는데 제 그림은 그런 그림은 아니에요. 이 그림을 한 지 십 년 정도 된 것 같은데요. 시작할 때 한복 그리면 다들 촌스럽다고 했었거든요. 그렇지만 한국 사람이 한국 그림을 촌스럽다고 비주류로 몰고 가는 게 조금 안타깝잖아요. 오히려 더 고집을 부렸죠. 그때는 학생이었고 아무것도 아닌데 나중에 한복 그림을 보여주면 세계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거죠. 한복을 고집했었어요.

 

흥미롭네요. 요즘은 한복이 더 적극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잖아요. 인사동 가보면 한복 입은 분들 꽤 많아요.


맞아요, 요즘은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 전에는 동양적 소재 자체도 그리는 걸 기피했었어요. 워낙 인기가 없었으니까요. 굳이 왜 그런 고리타분한 걸 그리느냐는 얘기도 많이 들었고요. 저는 그런 게 아쉬웠던 것 같아요. 일본이나 중국은 자기 나라의 문화를 잘 고급화 시키고 하더라고요. 우리는 유독 우리나라 것을 소홀하게 대하는 것 같아요. 서양 사람들은 동양 복식을 다 치파오나 기모노만 떠올리지 한복을 떠올리진 않더라고요. 그래서 학생인데도 더 보여줘야 한다, 이런 생각으로 고집을 피웠었어요. 학점은 안 좋았어요.(웃음) 요즘은 많이들 한복을 선호하시고, 그림도 많이 보시죠. 좋은 현상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계속 한복을 그리실 계획인가요?


아직 명확한 계획이 있는 건 아니지만 당분간은 계속 한복 그림을 그릴 것 같아요. 이런 이야기도 계속 해왔고요. 여기서 더 어떻게 발전시킬지는 해봐야 할 것 같아요.

 

한복이 다양한 변주가 가능한 소재라고 생각했던 것이, 최근 진행된 ‘畵畵 미인도취’ 전시에 참여한 작가의 그림을 보면서였거든요. <Secret 2>은 또 다른 느낌이에요. 


그건 예전에 전시했던, 판매된 그림을 사간 분께 부탁해서 빌려 걸었던 그림이에요. 보시기에는 야하게 보실 수 있는데요.(웃음) 그런 내용이 아니고요. 제가 처녀 시절에 입었던 옷을 집에서 입어봤어요. 안 맞으니까 밖에 나가서 입을 순 없어서요. 거울 앞에서 입어보고 그랬는데 속옷에 낀 거예요. 그걸 아이가 보고 ‘엄마 끼었어’ 한 거예요. 그런 모습이 재미있어서 그린 거죠. 정면에서 봤을 때는 멋 부리고 고상한 느낌인데 뒷모습에는 반전이 있는 거예요. 보시는 분들은 어린 애 앞에서 야하게 그렸다고 하는데 그런 내용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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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 작업 해보고 싶어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이 바로 작업에 영향을 주는 건가요?


『한밤중 개미요정』은 거의 육아일기라고 보시면 돼요. 그림 그리는 사람으로서 아이에게 남겨줄 것은 이것밖에 없다고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림책 제안이 왔을 때 이것이 아이와 좋은 추억거리가 될 것 같기도 했고요. 지금은 아이가 엄마 그림에 관심이 없어요. 장난감에만 관심이 있죠. 남자 아이라서요. 그런데 나중에 커서 이 책을 보고 엄마가 자기를 많이 아끼고 사랑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누구나 그런 것 같은데 자신과 가까이에 있는 것은 그게 얼마나 소중한지 잘 모르는 것 같아요.


늘 엄마가 그림을 그리잖아요. 무덤덤해진 거죠. 그런데 가끔씩 집에 아이 친구들이 놀러 와요. 집에는 제 그림이 출력되어 걸려 있고 그렇거든요. 남자 친구들은 들어오자마자 막 장난감으로 달려가는데요. 여자 친구들은 그림에 붙어 있더라고요. 그런데요, 저희 아이는 그림에 재능이 없더라고요.(웃음) 태교를 그림으로 했는데 아이가 전혀 안 가져갔더라고요.

 

재미있네요. 아쉽기도 하시겠어요.(웃음)


예전에 국악 포스터 작업을 한 게 하나 있어요. 모빌이 달려 있고 아이에게 딸랑이 흔들어주는 그림이 있는데요. 그 그림을 그릴 때 제가 만삭이었거든요. 원래 아기가 없는데 제가 그린 거예요. 그리고는 아이가 태어났는데 그 그림 속 아기와 닮았더라고요.(웃음) 신기했어요. 그건 영향이 간 것 같아요. 외모에만 영향이 가고 그림 소질은 전혀 없어요.
 
황석영 소설 『바리데기』표지 작업을 하기도 했는데요. 국악 포스터 작업도 하셨다고 하고, 굉장히 다양한 작업을 하셨어요.


화장품 회사와 협업하기도 했었고요. 여러 작업을 했죠. 화장품 회사와는 중국에 진출하는 상품을 했었어요. 재미있더라고요. 한복 그림을 하니까 요즘에는 특히 여러 제안이 많이 와요. 기업에서도 많이 오고요.

 

새롭게 해보고 싶은 작업도 있나요?


일단 한복에서 시작을 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작업을 해보고 싶은데요. 정해진 건 없고 현재 논의 중이라 확실하게 말씀 드리긴 어려운데요. 실제 한복과 협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책으로도 많이 넓혀가고 싶고요. 동화 작업이든 다른 분야의 책에 삽화를 그리든 넓혀갔으면 좋겠어요. 저는 그동안 대중에게는 잘 알려져 있진 않았어요. 책 작업하면서 많이 알려지게 된 것 같거든요. 좋은 것 같아요. 전통 채색화를 아직 많이 모르시더라고요. 동양화라고 하면 다들 산수화, 수묵화, 사군자, 이런 것들만 아시고 채색화는 많이 낯설어 하셔서요. 제 그림을 보고 처음에는 서양화 아니면 그냥 일러스트로 아시는 분들도 많았거든요. 전통 그림에 많이 무관심한 거죠. 그래서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어요. 전통 그림이 깊이감이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싶어요. 너무 비주류로 묻히는 게 아쉬워요.

 

교육도 부족하고요.


교과서에 전통 그림의 비중을 늘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다들 서양화로 미술을 배우잖아요. 기초를 누가 먼저 가르치느냐에 따라 배경지식이 완전히 달라지는 거거든요. 제가 어릴 때만 해도 동양화는 그냥 먹으로만 그린다는 것 외에는 아예 모르고 있었어요. 예고를 들어가면서 알았으니까요. 전공하는 사람 아니면 모르는 거죠. 그러니까 당연히 비주류 취급을 받고요. 저는 아주 어릴 때부터 익숙하게 해주는 게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어린이 책을 해서 아주 어릴 때부터 스며들게 해주고 싶은 생각도 있었고요. 그런 의미에서 다른 분야 작업도 하는 거고요. 더 익숙하게, 생활 상품으로도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말이죠. 그림을 일단은 봐야 아는 거니까요. 봐주는 사람들이 있으리라는 생각으로 꾸준히 해봐야죠.

 

구체적으로 계획하고 있는 다음 작업은 어떤 게 있나요?


‘한중일 시리즈’를 많이들 선호하시더라고요. 한국, 중국, 일본의 복식을 그린 작품인데요. 많이 선호하셔서 생각하고 있고요. 그 외에 저는 생활 속 한복 그림만 그렸는데요. 한복을 차근차근 연구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한복 디자이너 분과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고요. 문양에도 관심이 많거든요. 그쪽으로 더 공부를 해보지 않을까 싶은데 전시 계획을 잡으면 그 공부가 미뤄지기도 하고, 그런 것 같아요.


 

 

한밤중 개미 요정신선미 글 | 창비
『한밤중 개미 요정』은 어린이 독자에게는 친구 같은 요정을 만나는 기쁨을 선물하고, 어른 독자에게는 순수한 어린 시절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상상 친구를 떠올려 볼 기회를 마련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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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광훈 교수“옳은 것만 이야기하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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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빚은 도자 그릇에 쌀 몇 톨이 외로이 흩어져 있다. 희미하게 그림자가 드리운 듯도 하고, 곁에서 내쉬는 누군가의 한숨이 느껴지는 듯도 하다. 담담하고, 서글프고, 단정한 장면이다. 사진가 조성연의 사진 한 장이 『가장의 근심』이라는 책 제목과 만나니 이렇게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한참이나 표지를 가만히 보았다.

 

그리고 글로 들어간다. 사진을 꼭 닮은, 서글프고 단정한 글이 가득하다. 꽤나 두툼한 책인데 밀도가 상당하다. 『심미주의 선언』으로 문학과 철학, 미학을 탐색하며 삶의 심미성을 성찰했던 충북대 독문과 문광훈 교수는 이번 책에서도 음악과 책, 회화, 여행에서 찾은 앎의 기쁨을 꼼꼼하게 기록한다. 모든 장면에서 어리석음을 경계하고, 아름다움을 탐구하고, 인간다운 삶을 깊이 고민한다. 제인 오스틴, 바흐, 윤동주 등 여러 삶과 작품을 만나고 그와 “영혼의 친밀성”을 느끼는 저자의 사유가 놀랍다. 결국 가장의 근심이란 밥벌이에 대한 근심에만 그치지 않는, 삶 자체에 대한 근심과 관심을 모두 포함하는 것일 터다. 

 

“삶이 훨씬 중요해요. 진선미의 추구도 삶에 복무해야 해요. 삶만큼 중요한 게 어디 있습니까. 그것을 제대로 한다면 평화도 나오죠.”


오래 이야기를 나누고 난 뒤 문광훈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삶의 고양을 평생에 걸쳐 성찰해온 사람의 진심이 담긴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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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관심 너머까지 생각할 수 있는 여유


표지 사진을 봅니다. 몇 톨의 쌀이 담긴 그릇이에요. 이를 테면 ‘가장의 근심’이란 밥과 무관하지 않다는 의미겠지요?

 

‘가장’이라고 하면 우선 한국 사회에서는 밥벌이를 해야 하죠. 생계에 책임을 져야 하고, 아이를 키워야 하고, 사회생활을 하며 사람들과 만나야 해요. 사회적인 여러 요구에 부응하는 일인데요. 사실은 가장의 근심이 그것만 있는 것은 아니죠. 이 모든 활동에 보람이 있어야 할 것 아니에요. 의미도 있어야 할 것이고요. 말하자면 삶의 질적 고양에 대한 관심이에요. 때문에 가장의 근심에는 사회적 관심에 더해 초월적 관심, 형이상학적 관심이 다 들어가 있어요. 학자이기 때문이 아니에요. 그것은 모든 사람이 삶을 살면서 가져야 하는 너무나도 자명한 요구 아니겠습니까. 가장의 근심을 사회적 관심 너머까지 생각할 수 있는 여유, 이런 게 필요할 것 같아요. 그게 중요해요.

 

‘가장의 근심’이라는 말에 덧씌워진 이미지가 분명 있잖아요. 밥벌이, 가족 부양 등이 그것인데 그뿐 만은 아니다, 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으셨던 거군요.


보람이나 의미를 추구한다 해도 그 바탕은 생계예요. 그러니까 생업의 근본성, 바탕에 대해 다시 한 번 확인하는 게 필요합니다. 그런데요, 다시 한 번 더 말씀드릴게요. 그러나 생업을 넘어서는 차원을 동시에 생각하는 문화도 중요해요. 지금 한국 사회는 물질적, 경제적 수준에 비해 삶의 질적 성격이 너무나 낙후되어 있어요. 이런 사회는 없을 거예요. 성실하게 사는 건 중요해요. 그걸 질타해서도 안 됩니다. 그런데 성실성이나 근면성은 산업사회의 덕목이죠. 우리는 그 이상의 덕목이 필요한 사회 발전 단계에 들어섰어요. 그런데 덕성의 질, 성격을 고려하는 면은 여전히 낙후되어 있죠. 말하자면 정직성, 양심, 삶의 보편적 가치 말이에요. 평등, 자유, 관대함, 이런 것도 동시에 생각하고 소화할 수 있어야 해요. 그것이야말로 선진사회잖아요.

 

한국은 경제 수준이 무색할 만큼 많은 사람들이 곤궁한 삶을 살고 있어요.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그렇습니다.


거기에도 여러 이유가 있죠. 그런데 그렇다고 성실성, 근면성만 이야기하면 안 돼요. 여러 차원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한국 사회는 여러 정치, 경제적 요인이나 역사적 요인 등의 면에서 어려운 점을 많이 겪었죠. 지리적 요인도 그렇고요. 너무 좁은 사회에 많은 사람들이 살잖아요. 거칠 수밖에 없어요. 여러 복합적 요인이 있기 때문에 하나로 단정하기는 어렵지만요. 분명한 것은 삶의 보람이나 의미의 추구, 사람 간의 관대와 신뢰에 대한 고려가 필요한 시점에 와 있다는 겁니다. 그런 점에서 가장의 근심이라 했을 때 이 근심을 여러 차원에서 고려하는 게 좋고요. 다시 돌아와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바탕은 생계라는 것, 이 사실은 정말 중요한 것입니다.

 

생계와 삶의 의미 추구 중 어느 한쪽이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없다, 라고 거듭 말씀하시는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플라톤이 ‘먹고 마시고 배설하는 한 우리는 동물을 벗어나기 어렵다’라고 했잖아요. 플라톤이 아니더라도 지금 여기를 넘어서는 차원에 대한 관심, 이데아에 대한 관심이 있어야 한 번뿐인 삶이 조금은 ‘할 만한 삶이었군’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이번 산문집을 선생님의 음악론, 인생론, 독서론 혹은 여행기 등으로 읽을 수 있는 이유도 같을 거예요.

 

그렇죠, 그리고 그것은 결국 한 가지죠. 삶으로 수렴되어야 해요.

 

말씀을 듣고 생각해보면 이와 관련한 사회 담론의 수준은 너무 앙상하지 않은가, 싶어져요.


잘 지적하셨습니다. 한국에서 사회성에 대한 담론은요, 피상적이고 일차원적입니다. 사회적인 것의 자원이 한국 사회만큼 얄팍하고, 피상적이고, 거친 데가 없어요. 어떤 것과 관련된 이외의 사람들을 전부 강요하고, 속박해서 한쪽으로 몰아가려 하죠. 사회적이라는 것은 비사회적인 측면까지 포함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음악이나 독서, 인생에 대한 이야기도 삶의 일부로써 자연스럽게 녹아 있어야 오래 가는 것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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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모두가 절대적으로 혼자다


책에도 학생들에게 ‘네 삶을 살아라’라고 말씀하신다는 대목이 나와요. 자기 삶을 진지하게 성찰한 사람만이 진정한 자기만의 삶을 사는 것일 테죠.


오늘날 대부분의 삶은 모방된 삶 아니겠습니까. 이미 세상으로부터 주어진, 외적으로 강제된 또는 선전된 삶을 우리가 반복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유행을 하고, 호소력이 있으니까 또 대중의 요구가 있으니까 그렇게 사는데요. 그러나 그것은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한 것이 아니에요. 때문에 깊게 고민하지 않은 삶이죠. 되돌아 본, 곱씹어 본 삶은 아닌 겁니다. 비(非)반성적 삶인 거죠. 우리는 스스로 외롭게 결정한 것만을 책임지거든요. 외롭게 결정하지 않은 삶을 어떻게 최선을 다해 살겠습니까. 제 생각에 그것은 한 번뿐인 삶에 대한 너무나 큰 불충실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은 다시 반복될 수 없는 유일무이함 때문에라도 각자가 아주 외롭게 고민 속에서 밤잠을 설치면서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삶을 살기 위해 외롭게 결정해야 한다는 말씀이 크게 닿습니다.


어제까지는 아니었는데 오늘 아침부터 갑자기 자기 삶을 산다, 이건 불가능하겠죠. 자기 삶을 살기 위해서도 엄청난 고민과 자기 단련, 외로움이 필요합니다. 그저 주어지지 않아요. 릴케는 ‘모든 진실하고 중요한 일에 있어서 인간은 이름 없는 혼자다’라는 말을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했습니다. 사랑도 그렇고, 병상에 누워 있을 때도 인간은 혼자죠. 사랑 때문에 밤 새워서 고민할 때 혼자서 앓죠. 물론 친구와 이야기는 해요. 조언을 듣지만 결정은 혼자 하는 것이죠. 친구와 늦도록 이야기하고 혼자 들어올 때, 얼마나 공허합니까. 할 이야기를 다 못했기 때문이거든요. 가장 진실하고 중요한 일에 있어서 인간은요, 모두가 절대적으로 혼자라는 겁니다. 홀로 감당해야 해요. 더구나 가장 중요한 일은 홀로 감당해야 하는 것이죠. 아주 외롭고 쓸쓸하게, 두려움 속에서 말이에요.

 

너무 무겁고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회피하고 싶어져요.


자기 직시는 용기가 필요해요. 신이 아닌 한 인간은 허술하고요. 어리석고, 욕심이 많죠. 욕심을 다 없애라는 말이 아니에요. 욕심을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문제예요. 모든 걸 가질 수 없다는 건 너무나 자명해요. 그렇다면 포기할 것도 선택해야 하잖아요. 포기하는 건 아쉬운 거죠. 그러나 아쉬움에 대한 훈련도 해야죠. 각자에게는 각자의 길이 있다고 한다면 각자의 적정선도 있을 거거든요. 그것을 알려면 자기를 알아야 하죠.


회화에서 자신을 정면으로 직시한 자화상을 그린 게 독일 화가 뒤러가 처음이거든요. 1,500년, 정확히 나옵니다. 근대의 탄생과 관련이 있죠. 이전에 그런 그림이 없는 이유는 왜일까요. 왕, 성직자, 예수, 이 정도가 등장하는데요. 그만큼 보통 사람이 자기 자신을 직시하기는 굉장히 어려운 거예요. 자기 직시의 삶을 못해서 되풀이의 삶, 껍데기로서의 삶을 살죠. 유령이죠. 가면으로서의 삶이에요. 너무나 뼈아프죠.

 

‘중고품으로서의 삶’을 말씀하기도 하셨죠. 이것을 항상 경계하고 자각해야 할 거예요. 사실 많은 사람들이 소비자로서의 정체성만을 갖고 살아간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거든요.


대부분의 삶이 껍데기의 삶이라고 한다면 그만한 불성실이 없다고 말씀드렸는데요. 한편 생각해보면 오늘날은 사실 근본적으로 상품 사회 아니겠습니까. 인간은 소비자로서의 가장 깊은 정체성을 느끼게 되죠. 그런데 소비하는 인간만이 인간의 유형은 아니지요. 생각하고, 느끼고, 교제하는 감정의 인간이기도 하죠. 인간 자체가 스펙트럼으로 있어요. 우리의 생활이 소비에 있다고 해서 인간 삶의 가능성을 그렇게만 제한한다면 그것 역시 인간에 대한 몰지각이라 할까요. 하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중고품이 아닌 삶을 산다는 것도 갈수록 어려울 것 같아요. 이런 경쟁 사회에서 자기를 잃지 않는 것, 자기 가치와 기준을 지키고 자존심을 잃지 않고 산다는 것은 사실 손해 보는 삶이거든요. 그렇지만 제가 보기에는 손해 볼 용의가 조금은 있어야 할 것 같은데요.

 

손해 볼 용의요.


이익을 포기할 수는 없죠. 그러나 인간의 모든 관계가 이해와 수익의 관계만은 아니죠. 그것은 인간 가능성에 대한 너무나도 얄팍한 접근 아니겠습니까. 저로서는 자기를 잃지 않는 것, 자기 정체성을 가지는 것, 이것이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생각하는 게 필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한두 번의 수업이나 교양강좌를 듣고 혹은 책을 읽고 얻어지는 게 아니에요. 평생을 거쳐 만들어가야 하는 과정이죠. 만드는 과정을 독일어로 ‘bildungsprozess’라고 합니다. ‘bildung’은 ‘교양’이라는 뜻이에요. 말하자면 ‘Life as building process’죠. 평생 노력해야 하는 거예요. 퇴계 이황 선생도 말씀하셨어요. ‘잠구묵완(潛求默玩)’이 ‘종신사업(終身事業)’이라고요. 깊게 물속에 들어가 구하면서 조용하게 실행하는 것을 몸이 다하도록 행하는 일이라는 거예요. 정말 맞는 이야기죠. 

 

교육의 문제를 생각하게 되는데요. 최소한 삶을 대할 때 이와 같은 태도가 필요하다는 사실 정도는 더 일찍 교육해야 했던 게 아닌가 싶어요. 시민교육, 교양교육 말이에요. 저만 해도 이런 내용에 대한 교육적 감화를 받은 기억이 별로 없어요.

 
없습니다, 저도 없고요. 우리 교육 시스템의 부재라고 할 수 있죠. 당연히 모든 문제, 교양뿐 아니라 문화, 사회, 개인성 문제 등이 전부 다 일종의 그물망 속에 있어요. 구조적 요인이라는 말이에요. 어릴 때부터 아이들에게 여러 조언을 줄 수 있겠죠. 이것이 가능하고, 이것은 좋은 점이 이것이고, 안 좋은 점이 이것이다, 라고요. 그러나 선택은 네가 해라, 라고 하는 바로 이 과정이 있어야 하는 것이죠. 결정을 부모가 해서 주면요, 그때부터 망가집니다. 책임을 안지거든요. 내가 결정을 안 하는데요.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은데요. 결정의 외로움과 책임의 의무, 이 두 가지가 반드시 들어와야 건전한 자아가 만들어집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이제는 여러분들이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라고요. 어떤 일이든 두세 번 고민하라고요. 이건 정말 중요해요. 말하자면 실존적 결단을 해야 하는 겁니다.

 

‘문화’에 대해 쓰신 글의 부제가 ‘마음의 밭갈이’죠.


한국은 지적, 문화적, 정신적 전통이 약하기 때문에 세련된 이론이 있으면 한꺼번에 몰려와서 우리를 다 집어 삼켜버려요. 문화론도 그래요. 문화라는 것이 삶의 전체를 포괄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가진 분이 참 없더라고요. 인간의 활동 가운데 의미 있는 활동을 문화라고 하죠. 결국 각 삶을 질적으로 고양시키는 데 기여해야 해요. 문화론은 문화 이론의 탐구나 추구가 아니에요. 문화와 관련된 활동을 하는 지금 나의 삶의 고양에 기여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공허한 것이죠. 결국에는 자기 삶을 경작하는 일이어야 해요. 그런데 너무 무책임하고 공허한 문화론이 많아요.

 

 

염정자수(恬靜自守)


책에서 언급한 여러 인물들의 공통된 특징이 읽힙니다. 조용함, 성찰하는 자세, 헤아림, 신중하고도 밝은 마음, 고요한 쾌활성 등이 그것인데요. 그렇다면 이것들은 선생님의 자기 탐구 결과라고 볼 수 있을까요?


하나의 모델이 될 만하지 않나 싶어요. 소포클레스를 읽었을 때 그것이 확연히 드러나요. 소포클레스를 읽으며 헤겔이 『미학』에서 고요의 쾌활성(die Heiterkeit der Ruhe)을 짚어냈어요. 어수선할 때는 어떤 것에도 성실하기 어렵죠. 우선은 차분해져야 해요. 그러나 차분만 있으면 재미가 없죠. 삶의 생기를 잃을 가능성이 있어요. 한편 쾌활함만 있으면 깊이를 획득하기 어려워요. 두 개가 같이 있어야 하는 것이죠. 공재(恭齋) 윤두서 선생의 글에 ‘염정자수(恬靜自守, 평온하고 고요한 가운데 자신을 지킨다)’라고 했거든요. 윤두서 선생이 돌아가셨을 때 아들이 행장(行狀, 죽은 사람이 평생 살아온 일을 적은 글)에 그렇게 적었습니다. 아버지가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다는 자기를 지키면서 사셨다고요. 그 구절이 정말 인상적이었어요. 그런데 이것은 퇴계 이황 선생도 그랬다고 해요. 논어에도 그런 글이 나오고요.

 

여러 해 쓰신 글들인데 틈틈이 한국 사회의 여러 장면을 다루고 괴로움을 말씀하셨어요. ‘규범의 전적 망실 상태’라고도 하셨는데요. 특히 요즘, 많은 사람들이 모욕감을 느끼는 것 같거든요. 선생님께서는 어떤 생각을 하며 지내시나요?


해방 이후 한국 사회의 경제발전을 ‘압축 성장’이라 한다면, 오늘날의 갈등도 ‘압축적’이라 해야 할 겁니다. 어떤 사건이든, 한두 가지 요인이 아니라 시스템 전체의 오랜 병리적 결과일 거예요. 확실한 것은 지금의 정치사회적 불안이나 파행이 어떠하건, 우리 사회가 앞으로 오랫동안 불공평과 특권을 줄여가면서 더 투명하고 너그러운 공동체 구조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이에요. 무고한 사람들이 부당하게 대우 받거나 어처구니없는 죽음을 당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해요. 여기에서 핵심적 가치는 ‘주권재민’이나 법의 지배, 공직자의 윤리, 그리고 노동의 가치에 대한 존중 등이 되겠지요. 그러나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인간 삶에 정치적 차원을 넘어가는 더 넓고 더 높은 세계가 있다는 것을 잊지 않는 일입니다. 예술이나 문화의 작업은 바로 이 미지의 차원에 관계하지요. 매일 매일의 인간 삶은 몇 가지 개념이나 술어로 고갈될 수 없는, 어떤 고결함과 신비 그리고 존엄성의 영역입니다.

불안감도 여러 번 말씀하셨어요.


한국 사회의 합리성 수준이 높다고 얘기할 수는 없지만 이전보다 제도가 많이 구비되어 있잖아요. 제도를 기능하게 하는 것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일 겁니다. 그렇다면 가장 작게 이야기해서 스스로가 정직한 말과 생각을 나눌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죠. 거짓말을 두려워하고, 양심에 따라 행동하려 하고, 어떤 점에서는 손해를 보더라도 양심상 하지 않겠다는 사람의 수가 늘어나야 해요. 그런 사람 자체가 이미 시민 아니겠어요. 가장 소극적 의미에서 시민이라는 것은 자기의 일을 남이 보건 보지 않건 거짓 없이 행하는 사람일 겁니다. 다시 한 번 물어봅시다. 남이 보든 안 보든 삼가는 것, 신중하게 생각하는 것, 그것이 쉽나요? 어렵습니다. 사회의 대다수가 그렇게 하도록 만드는 것 역시 쉽지 않을 겁니다. 우리 사회에 더 필요한 것은 이것 같아요. 제자리에서의 직업적 성실성, 정직성이 윤리의 출발이라는 거죠.

 

시민이 되는 것,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시민이란 반성적 자의식이 있는 사람이거든요. 그 훈련을 하는 게 교양훈련이고요. 문화나 인문학의 방향도 결국 그쪽으로 가야하지 않나 싶어요. 자기 자신으로부터, 지금 여기로부터, 자기 기쁨으로부터 시작하는 게 중요하고요. 이기적이거나 자폐적이 되라는 게 아닙니다. 자기 기쁨을 이야기하면서 다른 사람의 기쁨을 늘 주의하고 돌아본다는 점에서 이기적인 삶은 아닐 겁니다. 바른 의미에서의 개인성의 역사가 있어야 하지 않나 생각해요. 서구 근대 사회를 추동시킨 것은 각성한 자유 개인의 역사거든요. 그게 시민이고요. 우리 사회는 그 개인을 너무 간단하게 보고 있고, 개인성의 역사에 대한 심각한 고민이 부족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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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를 울리는 삶


제인 오스틴에게서 세 가지 측면, 따뜻한/명료한/손상되지 않은, 을 읽으셨습니다. 선생님의 세 가지 측면을 꼽는다면 어떤 면모일까요?


저는 물론 따뜻하지 않고요.(웃음) 언어의 명료성은 추구하죠. 상투적이라면 중단한다는 원칙은 있는데요. 삶의 손상은 불가피합니다. 감각이나 사고나 사람에 대한 관계에 갈등은 불가피한 것 같아요. 받아들여야죠. 삶은 시간이 갈수록 닳죠. 뼈아프죠. 그러나 상처 속에서도 삶에 대한 느낌을 아이 때처럼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권장할 만하지 않는가 싶습니다. 손상은 불가피하지만 자신을 여린 형태로 유지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한 것 같습니다. 우리를 넘어서는 점에 대해서는 체념하고 담담하게 받아들이면서 나 자신은 진선미를 향해, 조금 더 진실하고, 조금 더 선하고, 조금 더 아름다운 것을 향해 나아가는 것, 쉽지는 않지만 놓치지 않으려는 고민하는 삶, 이것이야말로 삶의 모델이 될 만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 삶이야말로 우리에게 메아리를 울리는 것 같아요.

 

글을 쓰는 일은 선생님께 어떤 의미인가요?


문학을 해서 그런지, 비관적이어서 그런지, 삶은 기본적으로 헛되고, 헛되고, 헛되다고 생각해요. 글을 쓰는 이유는 정직하게 말하면 부질없음과 헛됨, 허황됨을 이겨내는 방식이죠. 시간 속에서 모든 것은 풍화되잖아요. 거창하게 말하면 시간의 풍화를 견디는 방식이에요. 우리가 도달하지 못하는 것을 꿈꾸고 그리워하잖아요. 시간 속에서 시간 밖을 꿈꾸고 상상하고 그리워하는 행위가 글 쓰는 일이죠. 그래서 이 삶을 견디죠. 그렇지 않으면 사실은 심각하게 말하면 저는 별로 살 이유가 없다, 이렇게 생각하는 쪽이에요. 그런 점에서 근본주의자죠. 인간 삶의 근본적인 소멸성에 대한 의식, 그것을 넘어서는 가능성과 선하고 아름답고 진실한 지평에 대한 꿈꾸기, 그런 것이에요.

 

독자가 이 책에서 단 한 가지, 이것만큼은 꼭 가져갔으면 하는 내용이 있을까요?


진선미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를 깊게 생각하고 다르게 생각하는 데 있다는 말인데요. 이 책 어느 쪽을 펼쳐도 제 고민이 녹아있기 때문에 그런 속에서 삶이란 이런 거구나, 나날의 일상 혹은 풍경이 이런 거구나, 제인 오스틴이나 바흐는 이런 거구나, 하는 것을 발견하면 좋겠죠. 어제까지와는 다르게 오늘 새롭게 감각의 신선함을 잠시 경험했다면 저로서는 기쁠 거예요. 삶의 생기를 느끼는 데 기여하고 싶은 거죠. 우리 삶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복합적이고, 풍요로워요. 한국의 전체적 구조가 이렇게 낙후되고 사람을 실망시키고 화나게 하잖아요. 그건 정말 많은 사람들이 분노할 만해요. 그런데 그 이전에 우리 삶 하나만 봐도 삶은 경이로운 겁니다. 우리가 살아서 얘기하고, 숨을 내쉬고 있다는 것도 놀라운 일 아니겠습니까. 한국의 담론은 너무나 거창하고, 너무 사회적이고, 너무 강제된 형식이 많아요. 저는 불편해요. 그건 얕은 사회죠. 옳은 것만 이야기하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옳음을 이야기하기 전에 곁에서 고개를 끄덕일 수 있어야 합니다. 훨씬 더 깊은 설득력이죠.


 

 

가장의 근심문광훈 저 | 에피파니
이 책을 읽다 보면 우선 방대한 인문학적?예술적 지식들을 간접 체험하는 기분이 든다. 그런데 어렵지 않고 전혀 지루하지 않다. 아니, 오히려 상쾌하고 재미있다. 무엇보다 『가장의 근심』의 저자는 지식을 뽐내지 않는다. 설교하지 않고, 가르치지 않는다. 정갈한 문장으로, 다만 나지막하게 속삭일 뿐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안희정 “촛불광장은 위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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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노무현 대통령 후보 캠프 정무팀장, 2010년 충남도지사 당선, 2014년 충남도지사 재선, 전국 시도지사 평가 1위. ‘개념 정치인’ 안희정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연일 뉴스에 오르고, 야권 대선 주자들 사이에서 존재감을 발휘한다. 혼란스러운 정국에서도 뚜렷하게 목소리를 내고 차별적인 정치를 이야기하는 중이다. 그는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는 데 망설임이 없는 듯하다. SNS, 책도 모두 그의 소통 도구다.

 

『안희정의 함께, 혁명』은 정치인 안희정의 정치 비전을 선언하는 책이자 자연인 안희정 자신이 걸어온 삶과 세상에 대한 고민을 담은 ‘중간 점검서’다. 혁명을 꿈꾸던 어린 시절부터 정치에 투신해 겪은 풍랑까지, 그 수많은 장면에서 안희정은 변함없이 더 나은 세상을 이야기한다. 안희정에게 정치란 무엇일까.

 

“한 마디로 말씀드려야 할까요? 가난, 억울함, 불안감으로부터 우리 모두를 구하는 일이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간단한 답은 당연하게 들리지만 그만큼 무게감이 있다. 정치인 안희정은 이 꿈같은 말을 정치라고 판단하고 있었다. 정치와 가난, 억울함, 불안감을 함께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조금은 믿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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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변화할 때


제목에 어떤 함의가 있을까요? ‘함께, 혁명’이라는 단어가 제안처럼 들리기도, 다짐처럼 들리기도, 또는 선언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혁명’이라는 단어가 조금 과격하게 들리진 않으셨나요? 어릴 적 혁명을 꿈꿨던 때가 있지만, 그때 꿈꾸던 것을 지금 실현시키자는 의미는 아닙니다. 저도 제목에 이 단어를 넣는 것을 주저하기도 했는데요. 전환기적 시대를 지나며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이 과정을 21세기적 혁명이라 말해도 틀리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그것을 굳이 혁명이라고 부르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가 세워야 할 정의도, 극복하고 없애야 할 악도 모두 우리 안에 있다는 점에서 우리 모두가 함께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도 강조하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함께 변화할 때라야만 새로운 미래 혁명은 일어날 수 있고 완성될 수 있으니까요.

 

가장 먼저 겸손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정치인 안희정에게 가장 큰 화두가 겸손이라고 봐도 좋을까요?


겸손이라는 단어는 평생을 살며 참 많이 들어온 단어입니다. 그 겸손이라는 단어를 제가 어떻게 사용 했던가 기억을 해봅니다. 우선은 저를 낮추고 상대를 올릴 때 자주 썼습니다.  그런데 토머스 머튼 신부의 책 『토머스 머튼이 길어낸 사막의 지혜』에서 소개된 4세기 은수사들의 잠언집은 겸손에 대한 저의 생각을 크게 바꾸어주었습니다. 은수사들의 잠언집은 온통 분노를 이기기 위한 격언으로 가득 찼는데요. 그들은 분노를 이기기 위해 “겸손은 모욕을 용서하는 것”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이것은 저에게 커다란 가르침이었습니다.

 

특히 어떤 면이 그랬을까요?


솔직히 정치는 정의의 이름으로 분노를 조직하곤 합니다. 분노할 만한 현실 앞에 그것을 정의라고 내세워 힘을 얻어내는 것이지요. 공정하지 못하고 정의롭지 못한 현실에 분노를 느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고 옳은 일입니다. 하지만 거기에 머물러서는 더 좋은 나라를 만들 수 없습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문제, 기업의 새로운 미래와 노동시장 유연성의 문제 등 우리가 마주한 현실의 문제들이 동전의 양면처럼 하나의 몸에 붙어 있습니다. 이것들을 정의와 불의라는 이름으로 양분시켜서는 문제를 풀어낼 수가 없습니다. 정치인의 입장에서 이 문제들을 마주할 때 여전히 분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노를 뛰어넘어야 좋은 정치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겸손은 좋은 정치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분노, 모욕에서 겸손을 읽어내는 일, 어쩌면 여기부터가 시작인지도 모르겠네요.


한 가지 더 겸손에 대한 깨달음을 얘기한다면, 그것은 우리 모두가 완전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너도, 나도, 그 누구도 완벽한 존재일 수 없다는 인간 존재의 한계에 대한 승복과 승인이 바로 겸손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서로 따뜻하게 감싸주고 위로하고 격려하며 지혜를 모아야 합니다. 

 

인물에 기대고, 문제를 반복하는 정치는 많은 사람들에게 정치 혐오를 불러일으킵니다. 한국 정치의 시급한 숙제이기도 할 텐데요. 문제 해결을 위한 첫 걸음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세워놓은 약속, 즉 법과 제도를 각각의 유불리에 따라 변경하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고 봅니다. 비대한 검찰권력, 재벌의 불공정거래, 부자들의 상속세제 문제 등 각각의 영역에서 우리는 정의라는 가치에 기대 약속을 했지만 막상 시행할 때는 자기에게 편하고 유리한 쪽으로 법과 제도를 왜곡시켜 버렸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수저론’에 공감하며 좌절하는 젊은이들과 함께 아파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법과 제도의 정의를 확보하고 우리가 약속한 그 규칙의 공정한 적용을 지켜내는 일, 이것은 한 개인의 카리스마나 리더십에만 의존해 이뤄질 수는 없습니다. 민주주의의 틀 내에서 합의된 정의의 수준을 끌어올리고, 이것을 존중하는 관행과 시민적 상식 위에서 법과 제도를 공정하게 운영하도록 해야 합니다. 신뢰를 바탕으로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이 바로 지도자의 역할입니다.

 

 

어린 아이들도 다 압니다

 

메르스 사태 등의 장면에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역할 구분, 그에 따른 책임의 필요성을 이야기했습니다. 지방자치 20여 년이 지났지만 아직 한계가 많아 보입니다. 지방정부 수장으로서의 가졌던 고민과 제안을 들려주세요.


세월호 사건이나 메르스 사태 때 모두 우리는 윗선에 보고해서 지침을 받는 구조에 있었습니다. 이러한 구조는 기업 조직에서도, 우리 인생에서도 마찬가지로 작용합니다. ‘어린 게 뭘 알아’라는 말을 많이 듣고 자라지 않았나요? 하지만 어린 아이들도 다 압니다. 우리 한국 사회가 크게 변화하고자 한다면 ‘토 달지 말고 시키는 대로만 해’라는 문화와 역사를 먼저 극복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지방정부의 책임자로서 메르스 현장 주무관들의 결정력을 높이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답은 늘 현장에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세월호 사건 때 현장 책임자들이 자신들의 판단에 따라 구조 인원을 증원할 수 있었더라면 좀 더 신속한 대응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많이 생각합니다. 급박한 상황에 청와대 등 윗선에 보고하느라 시간을 허투루 쓰진 않았을 것입니다. 지방자치로 간다는 것은 현장의 지도력을 높이는 일이고, 그 현장에 있는 사람이 책임과 권리와 의무를 다하는 시스템으로 가는 것입니다.  

 

인공지능과 노동, 복지 등 여러 고민을 다루고 있습니다. 정치인으로서 가지고 있는 시대정신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어떻게 하면 경제성장률을 공약으로 내걸지 않을까 고민한다고도 하셨는데요.


경제적 성장과 번영, 삶의 질과 행복의 증대, 이것은 수레바퀴의 양 축입니다. 일자리 창출의 키를 쥐고 있는 경제적 성장과 번영의 문제를 푸는 것과 함께 삶의 질을 높이는 문제 모두 중요합니다. 그런데 이 문제들의 중심에 ‘사람’이 있습니다. 사람들의 도전과 창의의 정신이 넘쳐야 기업도, 산업도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도전과 창의 정신은 암기식 교육에서 탈피한 창의적 교육, 실력으로 승부를 낼 수 있는 공정한 게임의 규칙이 있어야 살아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환경이 조성되어야 새로운 미래 번영의 길이 열릴 수 있습니다. 불공정한 기업 생태계, 출발선부터 갈리는 경쟁 구조가 지속되는 한 공정한 기회는 여전히 봉쇄될 것이고, 우리의 미래 또한 열리지 않는다고 봅니다. 따라서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가장 큰 가치는 ‘공정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권을 사회의 과제로 삼는 국가 이야기에 공감했습니다. 이 사회의 고민은 너무나 저차원적 수준에 머물러있어요. 인권을 우선 과제로 삼는다는 사회적 합의를 위해서 개인은, 또한 사회는 어떠한 노력을 해나가야 할까요?


우선 ‘돈, 돈, 돈’ 하는 것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돈과 출세를 지상 목표로 하는 사회에서 인권은 쉽게 잊힙니다. 생산성, 효율성, 경쟁력이라는 단어에 묻힙니다. 출세, 발전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 철학이 바뀌어야 인권에 가치를 두는 사회가 만들어질 것입니다. ‘나는 아름다운 내 인생을 살 자신이 있다’고, ‘내 인생은 그 누구와 비교해서 열등감을 느낄 필요조차도 없다’고 하는 자부심을 갖는 시민이 되는 것이 우리가 그러한 미래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대화를 잘 나누는 사람, 대화로 합의를 이끌어내는 사람이 좋은 정치인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소통이 단절된 정치의 결과가 어떻게까지 나쁠 수 있는지 목도하는 중입니다. 최근 한국 사회를 보며 어떤 생각을 하시나요?


무엇보다 정치인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대화는 서로 다른 견해를 확인하는 절차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무엇에 대해 타협할지를 고민하게 되고, 또한 자신의 요구와 생각을 좀 더 분명히 정리하는 기회로 삼을 수도 있습니다. 때문에 대화는 공존의 지혜를 찾고 다양한 가치를 재발견하는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이끄는 일이 좋은 정치의 핵심이고요. 그런데 우리는 종종 대화를 진실 찾기 게임이라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면 서로를 돌아올 수 없는 다리 끝으로 밀어버리기도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참 나쁜 사람’이라는 말을 했었지요. 대통령의 이러한 진리관은 모든 대화를 단절시켜버렸습니다. 나쁜 사람들, 믿을 수 없는 사람들, 배신의 정치. 이러한 단어들은 대부분 대화를 안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너무 안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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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중요한 기준, 우리 모두의 이익


여러 언론에서 조기 대선이 가능해질 경우 대권에 도전할 것이라는 예측을 한 바 있습니다. 혼란스러운 시기입니다. 정치인 안희정의 비전을 듣고 싶습니다.


저는 이미 대선에 나가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이어 법치(法治), 인치(人治), 협치(協治), 자치(自治)라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와 철학을 갖고 우리 사회에 정의와 공정함, 평화가 뿌리내리도록 해 번영의 미래를 만드는 것, 그것이 민주주의자이자 직업정치인 안희정의 비전입니다. 

 

자연인과 현실 정치인 사이에서 갈등하는 상황도 종종 있을 텐데요. 결정을 내리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무엇인가요?


우리 모두의 이익이 가장 중요한 기준입니다. 여기서 이익은 물질적 이익뿐만 아니라 올바름과 정의에 대한 이익도 아우릅니다. 사람들 사이에서 정의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저는 정의는 강자를 바르게 만들고 약자에게 기회를 주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저는 갈등 상황에 직면하면 이런 정의의 목표와 가치를 갖고 풀어내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살다 보면 어느 것이 나한테 이익일까 하는 질문을 던지기도 하고, 어느 것이 옳은가 하는 질문을 하기도 한다. 나는 대체로 무엇이 옳은지를 물어서 내 길을 선택해온 것 같다.(중략) 국가정책을 세울 때도 핵심 고려 사항은 ‘정의’다. 올바른 것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 올바른 가치가 가져오는 이익을 누릴 때 우리는 자식 세대 앞에 당당할 수 있고, 내가 살고 있는 국가를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다. ‘가치가 이익’이라던 노무현 대통령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158-159쪽)

 

분노를 큰 스승이라고 한 부분은 여러 면에서 좋은 힌트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분노를 일으키는 장면을 반면교사로 삼는 일, 사회 진보를 위한 모두의 수행 과제가 아닐까 합니다.


진보는 정의롭지 못한 현실에 대한 분노로부터 출발합니다. 분노는 분노로서 마무리되지 않습니다. 분노의 에너지가 희망과 사랑으로 바뀔 때라야 분노는 마무리된다고 생각합니다.

 

안희정에게 정치란 무엇인가요?


한 마디로 말씀드려야 할까요? 가난, 억울함, 불안감으로부터 우리 모두를 구하는 일이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책에서 많은 부분 답을 구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요즘 읽고 있는 책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때가 때인지라 독서를 많이 못하고 있습니다. 박경리 선생의 『토지』를 아직 붙들고 있고, 도올 선생의 『시진핑을 말한다』도 읽고 있습니다. 강원택 교수의 『어떻게 바꿀 것인가』도 읽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지쳐있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촛불광장의 시민들은 국가의 주인이 국민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선포했습니다. 광장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힘과 위로를 주고 있는 것을 봤습니다. 또한 우리가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도 느꼈습니다. 이러한 민심이야말로 우리 모두에게 새로운 대한민국에 대한 희망을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촛불광장은 위대했습니다. 위대한 국민의 역사를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이 인터뷰는 서면으로 진행했습니다.


 

 

안희정의 함께, 혁명안희정 저 | 웅진지식하우스
《안희정의 함께, 혁명》은 ‘인간 안희정’을 다룬 자전 에세이로 지금의 인정받는 리더가 되기까지 어떻게 살아왔으며,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동시에 그가 주목받는 차세대 리더로서 어떤 비전을 가지고 있는지도 설명해준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은덕, 백종민 “정말 가난하다는 것이 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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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어도 괜찮아”라는 주어가 빈 문장을 듣고 사람들은 냉큼 ‘돈’을 떠올린다. 없어도 괜찮은 게, 오직 돈만은 아닐 텐데 ‘돈’ 말고 선뜻 떠오르는 게 없다고 한다. 『한 달에 한 도시』시리즈를 펴내며 여행작가가 된 김은덕, 백종민 부부는 서울에서 소비하지 않고도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실험하고 있다. 『없어도 괜찮아』는 “적게 소비하고 필요한 만큼만 갖고 살기”로 결심한 5년차 부부의 생활 보고서다. 소비만능주의 시대를 역행하는 이들 부부를 보고, 사람들은 “불편하지 않냐?”고 채근한다. 100만 원도 채 되지 않는 생활비로 서울에서 두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냐고 의문을 던진다.

 

이들 부부는 이렇게 솔직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적나라한 생활을 글로 공개했다. ‘도시근로자 가구당 월평균 소득의 50% 이하’에 속해 가난을 인증 받고도 표정이 밝다. 이유는 자발적인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가난에 대해, 현실에 대해 묻고자 김은덕, 백종민 부부를 만났다. 두 사람은 시종일관 입가에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자유로운 사람에게만 나오는 낯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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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로는 『없어도 괜찮아』가 첫 번째 책입니다. 쓰면서 어떠셨나요?

 

김은덕:올해 3월부터 본격적으로 원고를 쓴 것 같은데요. 교정지가 나왔을 때 느낌이 너무 강렬했어요. 우리 일상을 너무 까발린 게 아닐까, 이게 책으로 나와도 될까, 독자들이 어떻게 반응할까. 궁금했어요. 이렇게까지 우리 삶을 구체적으로 밝힌 건 처음이라서요. 부모님이 보시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도 들면서 좀 혼돈스러웠어요. 책이 나오면 빼도 박도 못하잖아요. 생각을 주워담을 수 없는데, 그래도 되도록 자기검열을 안 하려고 했어요.

 

백종민:여행서가 아닌 책은 처음이라는 데 의미가 커요. 여행작가라고 국한되는 게 왠지 모르게 싫었어요. 다양한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기 때문에 『없어도 괜찮아』가 또 다른 첫 책이라는 느낌이 강해요.

 

독자들의 리뷰를 좀 읽으셨나요?

 

백종민: 후기들이 강렬해요. 예전 여행책은 반응이 좀 우호적이었다고 할까요? 이번엔 다르더라고요. “그래도 나는 어려워. 이렇게 살기는 힘들 것 같다”는 말을 많이 들었고요. “동조할 수 없다”는 분들도 있었어요. 

 

김은덕:올라오는 리뷰를 챙겨 보고 있는데 반응이 극과 극이에요. “이렇게 가난하게 사는 게 강박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읽었고, “아이가 없으니까 생각이 어린 것 같다. 아직 세상 경험이 적은 사람들”이라는 평가도 있었어요.

 

‘욕심 없는 부부의 개념 있는 심플 라이프’라는 표제가 눈에 띄었어요. 욕심이 없어지니 개념이 생기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김은덕: 저희 생활비가 무척 적잖아요. 마트에 가서도 쉽게 물건을 사지 못해요. 간혹 서글픈 감정에 빠지기도 하고 월급이 없는 신세를 한탄하기도 해요. ‘시간을 빼앗기고 먹고 싶을 것을 사먹을 것인가, 시간을 온전히 내 것으로 사는 대신 가난하게 살 것인가’를 두고, 종종 고민에 빠지죠. 주변에서 왜 이리 궁상스럽게 사느냐고 차라리 돈을 벌라고 하시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희에게 선택의 기회가 다시 주어진다면, 적게 소비하고 하고 싶은 걸 하며 사는 방식을 선택할 거예요.

 

3,300원 짜리 스마트폰 요금제를 사용하신다고요. 이게 가능한가요?

 

백종민: 데이터 30MB 포함에 문자 30건, 통화 30분을 사용할 수 있는데, 이 요금제 자체를 모르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저희는 이 데이터도 남아요. 데이터 사용을 초과해 요금 폭탄이 나올 까봐 아예 사용하지 않으니까요. 외출할 때 공용 와이파이를 찾곤 하지만, 천천히 확인해도 크게 문제가 없는 삶이죠. SNS를 들여다보면서 시간을 죽이는 것보다 책을 읽는 편이 좋아요. 덕분에 시간 부자가 됐죠. 저희는 동네 구립도서관을 자주 가요. 시간이 날 때마다 좋은 책을 읽으려고 해요.

 

두 사람의 수입은 원고료와 인세가 전부인가요?

 

김은덕: 현재는 그렇죠. 예전 책이 나왔을 때는 강연을 종종 했지만 요즘은 없어요. 불안전한 금전 상황이지만 적게 쓰면서도 만족스럽게 사는 방법을 체득하고 있어요. 저희 노후 준비의 핵심은 하고 싶은 것들을 지속가능하도록 만드는 것이에요. 글 쓰는 일은 노후를 위한 꽤 괜찮은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인간관계에 관한 글도 인상 깊었습니다. 관계들이 많이 정리되셨다고요.

 

김은덕: 저희가 결혼 후 세계 여행을 하면서 한국에 없었잖아요. 자연스럽게 관계가 정리됐어요. 간혹 우리의 가난을 불편해 하는 분들이 있어요. 반면 ‘그렇구나’라고 별반 다르지 않게 여기는 분들이 있고요. 아무래도 후자인 경우가 더 관계를 맺기 편하죠.

 

백종민: 기본적으로 삶의 결이 비슷한 사람과는 계속 연을 잇게 돼요. 가난하지 않든 가난하든, 그건 관계가 없어요.

 

최근 이사하신 걸로 알아요. 그럼 외국인 민박은 현재 안 하고 있나요?

 

김은: 원고를 넘기고 난 후, 은평구로 이사를 갔어요. 상황이 많이 바뀌었죠. 어쩔 수 없이 대출을 받아 전세로 갔는데, 보조금은 깎이고 보험료를 올랐어요. 월세를 살다가 전세로 가면, 대출을 얼마를 받았든 재산이 많아진 걸로 국가는 판단하더라고요. 대출 없이 살아야 하는 게 맞는데, 여행을 다니다 보니 월세가 이중으로 빠져서, 어쩔 수가 없더라고요.

 

에세이 제목이 『없어도 괜찮아』인데요. 독자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돈’이라고요.

 

백종민: 모든 가치의 기준이 돈이 돼버린 것 같아요. 돈이 없으면 안 돼! 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인 거죠.

 

자발적인 가난을 선택했지만, 평범하게 살았던 지난 날들이 그립지는 않나요?

 

김은덕: 가끔 그리워요. 돈을 써서 타인에게 기쁨을 줄 때가 있잖아요.

 

백종민: 농담처럼 이런 말을 해요. 왜 하필 우리는 부가 아닌 가난을 택했을까. 부를 선택할 수도 있었을 텐데, 하고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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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부자는 시간 부자

 

두 분의 믿는 구석은 뭔가요?

 

백종민: 좀 오글거리실 수도 있는데요. 은덕 씨가 제 믿는 구석이에요. 다른 사람이랑 결혼했더라면 시도를 못했을 거예요. 이 친구니까 이렇게 살 수 있는 거예요. 언젠가 힘들어질지라도 헤쳐나갈 거라는 믿음이 있으니까요. 저는 사이가 안 좋은 부부를 보면 슬퍼요. 정말 가장 친한 사이일 수 있는 관계가 부부인데, 끝까지 가기로 마음먹고 결혼해놓고 멀어진 부부들을 보면 안타까워요.

 

직장 동료로 처음 알게 되셨다고요. 연애를 시작할 때, 이 사람이다 싶었나요?

 

백종민: 아마 사귀기로 결심한 게 전화 통화했을 때예요. 영화사를 다닐 때, 상의할 게 있어서 전화를 했는데요. 통화를 하면서, 이 친구랑 결혼하겠다 싶더라고요. (웃음) 뭔가 퍼즐을 맞췄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각자 인생을 두고 생각했던 그림이 맞았던 것 같아요.

 

은덕 씨도 같았나요?

 

김은덕: (웃음) 함께 일할 때는 일을 참 못한다고 생각했어요. 우리는 정말 드문 케이스인데요. 생각하는 바를 계속 실천에 옮기면서 사는데, 지금 생각해봐도 굉장한 우연, 굉장히 행운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어요.

 

만약 책이 놀랍게 성공해서 부자가 된다면요. 삶이 달라질까요?

 

백종민: 사실 며칠 전에 좋은 꿈을 꿔서 로또를 샀어요.

 

자발적 가난을 선택해놓고, 로또를 사면 안 되지 않나요?

 

백종민: 돈이 있으면 우리가 만들고 싶은 방향으로 더 빨리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사실 우리는 매주 책이 정말 많이 팔리는 상상을 해요. (웃음) 하지만 우리 삶의 균형이 무너지진 않을 거예요.

 

만들고 싶은 방향이 무엇인가요?

 

김은덕: 공동체를 생각하고 있어요.

 

백종민: 결혼선언문에도 썼는데요. 결혼을 안 하고 평생 늙어갈 친구들하고 공동체를 만들고 싶어요. 지금 세상은 다름을 틀림으로 생각하잖아요. 각자 다른 사람들이 마음을 다치지 않는 공동체를 만들고 싶어요. 어느 나라라고 크게 의미 두지 않고요. 여러 곳을 계속 돌아다니면서 사는 방식이에요. 아, 상상만 해도 즐겁네요.

 

부부가 세계 여행을 오랫동안 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노하우가 있을까요?

 

김은덕: 저희는 정말 많이 싸웠어요. 에어비엔비를 했기 때문에 남의 집 물건이라서 못 던졌을 뿐이지, 소장하고 있었던 물품들은 거의 한 번씩 다 던져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중요한 건, 싸우는 횟수가 점점 줄었다는 거예요. 한 달에 두 번 싸우다가 그 다음 달은 한 번, 그 다음에는 두 달에 한 번 싸우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겨우겨우 여행을 마치고 돌아올 수 있었는데요. 지금 생각해보면 충분히 헤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 많았어요. 아마 우리가 사전에 계약된 책 세 권이 없었더라면, 더 많이 싸웠을지도 모르겠어요.

 

백종민:부부가 싸우는 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격렬해질 수 있는 건 좋아요. 중요한 문제는 상대에게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해결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세계여행을 하면서 가장 놀라웠던 장면으로 ‘의자에 앉아서 계산하는 마트의 점원’을 꼽으셨어요. 정말 다양한 경험을 했을 텐데, 마트 이야기를 소개해서 좀 놀랐어요.

 

백종민: 극동 아시아를 제외한 전 세계의 점원들이 의자에 앉아서 계산을 하더라고요. 작은 짐이라도 기계를 이용해 움직였고요. 고객 문의에 대해 필요 이상의 친절이나 미안함을 보이지 않았어요. 한국 마트처럼 서비스 종사자에게 극진한 대접을 받는 곳은 없더라고요.

 

김은덕: 저희가 가난을 선택하고 이런 책을 낸 데는 세계 여행을 하면서 얻은 경험이 바탕이 됐어요. 사람들이 성숙해가는 과정을 눈으로 보면서, 우리의 미래를 그려봤어요. 굳이 이 이야기를 쓴 이유도 있어요.
 
백종민: 며칠 전, 집에 쌀 배달이 왔어요. 정부미라고 들어보셨나요? 가난한 가정에게 쌀을 50% 할인된 가격으로 살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인데요. 쌀을 배달하러 오신 분이 저희 집 문을 심하게 두드리시더라고요. 제가 문을 열었더니, 막 화를 내시면서 “왜 전화를 안 받냐”는 거예요. 한창 통화 중이어서 연결이 안 된 걸, “전화를 가지고 있으면서 왜 받지 않았냐”고 성을 내시더라고요.

 

김은덕: 종민 씨랑 평소에도 시민의식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해요. 세계 여행을 하면서 저희는 조금씩 시민 의식이 성장했다고 생각하는데요. 우리나라는 시민 교육이라는 것 자체가 전무하잖아요. 프랑스에서는 시민교육을 교과서로 채택했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디서 배워야 하지? 그런 생각이 들어요.

 

진짜 부자란 어떤 사람일까요?

 

김은덕: 자기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사람이 부자 아닐까요? 아무리 돈이 많아도 시간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잖아요. 현대 사회에서 가장 비싼 가치는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시간이야 말로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주어지는 유일한 가치잖아요. 그래서 부자들이 노동자들의 시간을 뺏으려는 게 아닐까요? 사고하지 말라고요.

 

백종민: 요즘 간편 결제가 유행이잖아요. 사람들이 사고나 사유를 못하게 하는 방식이죠. 그러려고 하진 않았지만, 우리가 지금 자본주의에 반하는 행동을 적극적으로 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돈이든 인기든, 알고 보면 허상인 것을 너무 많이 소유한 사람을 볼 때, 어떤 생각이 드나요?
 
백종민: 물건이 많은 사람들을 볼 때는 ‘저거 다 쓰나?’, 지나치게 인간관계가 많은 사람을 볼 때면, “다 연락하고 사나?” 싶어요. 모두 자기 것이라고 생각하는지도 궁금하고요.

 

김은덕: 아마 그 사람들은 모를 거예요. 없이 사는 게 얼마나 홀가분한지요. 하지만 그들은 자신이 많이 가졌다는 인식을 못할 테니까, 우리가 굳이 그것을 말할 필요가 있을까. 그런 생각도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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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존하지 않아야 관계가 깊어진다


청첩장을 만들면서 ‘결혼 선언문’을 작성하셨잖아요. 집안에 선언문을 붙여 놓았나요?

 

백종민: 침실에 있어요. 어렵지만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김은덕: 결혼식에 왔던 분들이 가끔 물어봐요. 지금도 이 선언문대로 살고 있냐고. 가장 중요한 건, 우리가 독립된 개체로 평등한 관계로 살아가느냐였어요. 성공보다는 개인의 행복에 가치를 두는 것은 물론이고요. 가장 어려운 건, 아홉 번째 항목 상대를 향한 비난과 힐난을 경계하는 일이에요.

 

아이를 갖지 않겠다고 약속하고 결혼하는 커플들이 많아지고 있어요. “왜 아이를 갖지 않냐?”는 물음은 폭력이 될 수 있어요. ‘아이를 선택하지 않을 자유’에 관한 글도 기억에 남아요.

 

백종민: 우리는 선택을 한 거예요. 하지만 선택을 못하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에 누군가에게는 저희의 대답이 폭력일 수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말하는 건, 다양성이라는 문제를 강조하고 싶어서예요. 우리가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생각한 가장 큰 이유는 좋은 부모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 판단을 내리지 못했기 때문이에요. 아주 잘 안다고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아이를 키우기 너무 어려워요. 조금이라도 부모로서의 자격이 부족하다면 아이 낳기를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남들 모두가 낳는다고 해서 자신도 그래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김은덕: 솔직히 말해 살면서 제 안에 모성애가 발현된 적이 없어요. 제 자신을 너무 잘 알 것 같아서, 나을 자신이 없어요. 일말의 모성애도 없는 사람인데, 아이를 낳아도 될까, 아이를 낳을 필요가 있을까. 생각하게 돼요.

 

두 분을 보니, 끊임없이 서로를 보고 웃고 있어요. 비혼주의자였던 두 사람이 벌써 5년차 부부가 됐는데, 배우자를 선택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뭐라고 생각하나요?

 

김은덕: 나를 주방으로부터 해방시켜주는 사람인지, 또 하나는 나를 자신의 부모와 별개로 구별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아요. 상대에게 ‘우리 집의 딸로, 아들로 같이 가자’며, 착한 역할을 기대하면 서로가 힘들어질 수 있어요.

 

백종민: 의존적인 존재보다는 끊임 없이 뭔가를 해볼 수 있는 사람인가가 중요해요. 상대에게 의지하지 않아야 관계가 오래 지속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무래도 심플 라이프에 관심이 많은 독자들이 책을 읽을 텐데요. 저자로서 어떤 특정 인물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면요?

 

김은덕: 직장을 오래 못 다니는 분이 읽으면 좋겠어요. 제가 그랬거든요. 왜 나는 오랫동안 직장을 다니지 못할까 고민했는데, 다른 사람을 탓할 필요가 없더라고요. 내가 한 곳에 오래 머무르지 못하는 사람일 뿐인데, 이게 굳이 나쁜 것도 아닌데 자꾸 문제라고 여겼던 것 같아요. 내 삶을 바꿔보고 싶거나, ‘왜 이렇게 내가 힘들까’ 생각하는 분들이 보면 좋을 것 같아요.

 

백종민: 읽어준다는 가정 하에서 생각한다면, 누가 봐도 부족함 없이 보이는 사람이 읽으면, 어떤 생각을 할지 궁금해요. 어떤 독자 분이시건 책을 읽고 느낀 점을 말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잘 포장된 미니멀 라이프로 보일지도, 어느 부분의 정신 승리로 보일지도 모르겠는데요. 어떻게 읽으셨는지가 저희는 너무 궁금해요.

 

김은덕: 『한 달에 한 도시』는 여행책이었지만, 『없어도 괜찮아』는 글 자체인 것 같아요. 저도 사실 종민 씨처럼 독자들의 반응이 무척 궁금해요. 글 자체에 대한 이야기도 듣고 싶고요.

 

후속작도 궁금합니다.

 

김은덕: 내년 출간을 목표로 글을 쓰고 있어요. 한 출판사에서 『월든』을 저희에게 쥐어주면서, 이런 책을 한 번 써보자고 그러셨는데요. 나중에는 사과하셨어요. (웃음) 겨울까지 원고를 다 쓰는 게 목표예요. 서울에 사는 젊은 부부가 삶을 바라보는 관점에 관한 이야기를 담을 계획이에요. 『없어도 괜찮아』보다는 좀 더 사회적인 글이 될 것 같아요.

 

부부가 따로 책을 써볼 생각은 없나요?

 

김은덕:종민 씨가 출판사에 제안했는데 거절 당했어요. (웃음)

 

백종민: 저희가 글빚이 하나 있거든요. 은덕 씨가 책을 쓰는 걸 힘들어 해서, 저 혼자 해볼까 하고 제안했는데 출판사 담당자 님께서 “우선 다음 책에 그렇게 해보시고요”라고 하셨어요. (웃음) 다음도 어렵지 않을까 싶어요.

 

김은덕: 저는 욕심이 없어요. 뭐랄까, 글에 자신이 없어요. 타고난 재능으로 글을 쓰는 분들도, 갈고 닦아서 수련을 통해 쓰는 분도 있으신데요. 전 둘 다 아닌 것 같아요. 그래서 일인분 역할이나 잘하자 주의예요.

 

올해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2016년에 읽은 책 중에 가장 인상 깊은 책을 꼽는다면요?

 

김은덕: 며칠 전에 재레드 다이어아드의『총,균,쇠』를 읽었어요. 끝까지 읽으면서 ‘왜 이렇게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있나’ 싶었어요. 유시민 작가가 <채널예스> 인터뷰에서 『사피엔스』를 소개하면서 “읽은 사람이 자꾸 권해주는 책이다. 이런 책을 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축복인지 모른다”고 말하셨잖아요. 저는 『총,균,쇠』를 읽으면서 이 생각을 했어요. 일주일 정도 읽었는데 650쪽을 읽는 내내 행복했어요.

 

백종민: 최근작인데 『출퇴근의 역사』를 인상 깊게 읽었어요. 처음에는 철도에 관한 이야기인줄 알았는데 사회 문화를 다룬 흥미로운 책이더라고요. 현대인은 왜 집에서와 직장에서의 모습이 다를까, 현대 사회의 도로 시스템이나 왜 우리는 큰 차를 타고 있는지 등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든 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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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에 여행 칼럼 ‘남녀, 여행 사정’을 연재 중이에요. 자유 주제로 칼럼을 쓴다면,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나요?

 

백종민: 없이 사는 이야기를 확장해봐도 좋을 것 같아요.

 

김은덕: 조금 더 사회적인 메시지를 쓰고 싶어요. 내년 4월부터 집 바꿔 살기 프로젝트를 시작할 예정인데요. 그 이야기를 써도 좋겠어요. 4월부터 8월까지 아르헨티나와 캐나다에서 각각 두 달씩 살아볼 예정이거든요.

 

사람의 생각은 언제 바뀔지 모르는데요. 두 사람이 선택한 자발적 가난이 언제까지 유효할까요?

 

백종민: 사실 저희도 무서워요. 눈을 감는 순간까지 지금 방식으로 살고 싶지만, 어떻게 될지 모르죠. 저도 모르게 타보고 싶은 차를 볼 때도 있으니까요.

 

김은덕: 책에 “눈을 감는 순간까지 지금 삶의 방식을 유지할 생각”이라고 썼어요. (웃음) 저 역시 무서운데요. 나이가 들수록 다양한 경험이 늘어날 테니, 기획력만 유지한다면 생산해낼 수 있는 콘텐츠는 많을 거라 생각해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내일이 없는 것처럼 오늘을 즐기면서 사는 삶이니까요.

 

 


 

 

없어도 괜찮아김은덕,백종민 공저 | 박하
여기 사지 않는 대신, 살 수 없는 ‘삶의 균형’을 얻기 위해 과감한 선택을 한 부부가 있다. 김은덕, 백종민 이 두 사람만의 미니멀 라이프를 생생하게 담은 『없어도 괜찮아』는 물질적인 것에만 치우치지 않고, 간소한 삶을 선택하고 유지하며 사는 마음가짐과 사고방식부터 이야기한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근철 “새해 계획에 영어 공부 넣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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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만 독자의 사랑을 받아온 ‘Try again! 영어회화 시리즈’가 새로워진 모습으로 찾아왔다. 『Try again! 중학교 영어로 다시 시작하는 영어회화』(총 2권)는 2004년 출간된 후 12년 연속 베스트셀러를 기록한 두 권의 책-『Try again! 중학교 교과서로 다시 시작하는 영어회화』, 『Try again! 중학교 교과서로 다시 시작하는 영어 프리토킹』의 개정판이다. 중학교 영어의 친숙하고 기본적인 표현들을 수록해 영어 회화의 문턱을 낮춘 ‘강점’은 이번 책에서도 여전히 이어진다. 영어의 기초가 부족하거나, 오랫동안 영어 공부를 손에서 놓았던 독자들도 부담 없이 시작할 수 있다.

 

그러나 『Try again! 중학교 영어로 다시 시작하는 영어회화』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회화 교재로 거듭났다. 독자들이 특정 상황을 연상하고, 그 안의 자신을 상상함으로써 문장을 더 오래 기억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네이티브들이 대화할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패턴 50가지’로 구성된 1권을 활용하면 영어 회화 필수 1000문장을 무리 없이 익힐 수 있고, ‘영어로 대화할 때 꼭 등장하는 50가지 대표 토픽’으로 구성된 2권을 통해 어떤 주제든 자신의 의견을 3문장으로 조리 있게 말할 수 있다.

 

이근철 영어교육 전문가의 명쾌한 해설 역시 빼놓을 수 없다. 25년 이상 현장 강의와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쉽고 재밌게’ 영어를 가르쳐 온 그는 ‘국내 영어 회화 강사 선호도 1위’, ‘Yes24 선정 영어 저자 인기투표 1위’에 빛나는 자타공인 스타 영어 강사다. 개그맨 김영철, 정형돈, 가수 아이유 등 수많은 유명인들의 영어 선생님이며, 10년 가까이 KBS 라디오 프로그램 <이근철의 굿모닝팝스>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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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필요 없으면 공부하지 마세요

 

지금쯤 영어 공부를 계획하고 계신 분들이 많을 것 같아요. ‘새해에는 영어 공부 좀 해야지’ 하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그 다짐이 오래 가지는 못해요.


내년이면 제가 영어를 가르친 지 26년이 되는데요. 공통점이 하나 있어요. 이게 얼핏 보면 의지박약처럼 보일 수 있잖아요. 그런데 의지박약이라기보다는 한국의 문화와 관련이 있는 것 같아요. 한국이 정답 문화의 국가예요. 그렇다 보니까 정해진 표현을 똑같이 외워야만 영어를 할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거든요. 정답에 대한 강박관념을 항상 가지고 있어서 영어 공부를 하다가 조금 지나면 ‘다시 시작해야 되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것 같아요.

 

책에서 실수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 것도 같은 맥락인 것 같습니다.


같은 맥락이에요.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남에게 보이기 위한 영어가 아닌, 내 마음이 뿌듯해지고 자신감이 차오르는 영어 공부를 시작하시라는 거예요. 영어 공부가 아니라 영어 즐기기를 시작하시라는 거죠. 그러면 한 단어를 써도 즐겁거든요. 많은 분들이 ‘이 상황에서는 이런 문장을 말하면 다른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하겠지’라고 생각하시는데, 일단 그 생각을 버리셔야 돼요. 내가 좋아하면 그런 반응은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거예요.

 

우리 사회에 정답 문화가 있다는 말씀은 맞는 것 같아요. 같은 한국인 앞에서도 영어를 잘 못하면 부끄러워하잖아요.


재밌는 현상이 있는데요. 우리말로 동사를 붙여보면 수업은 ‘듣다’, 시험은 ‘보다’라고 하잖아요. 한국 사람들이 갖고 있는 정답 문화가 언어에도 그대로 반영되는 거예요. 학교 선생님이 정답을 가지고 있고 학생들은 질문이나 다른 의견 제시 없이 그 정답을 똑같이 빨리 외우면 돼요. 그러니까 수업은 듣기만 하면 되는 거고, 시험은 선생님이 말한 내용이 얼마나 나왔는지 확인만 하면 되니까 본다고 하는 거죠. 영어에서는 둘 다 ‘take’를 쓰거든요. 주도적으로 무언가를 한다는 의미에서 무슨 영어를 어떤 방식으로 하건 외국 사람은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아요. 예외도 있겠지만, 열 명 중에 아홉 명은 신경 쓰지 않아요. 우리는 열 명 중 아홉 명이 신경 쓰는 거죠.

 

지속적으로 영어 공부를 해온 사람이 아니라면, 교재를 고르는 것부터 난관에 부딪혀요. 어떤 책부터 봐야 하는지, 내 수준은 어느 정도 되는지 가늠하기가 힘들거든요. 교재 고르는 팁을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그 전에 먼저 던져야 될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영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데 무조건 영어 공부를 해야 된다는 생각만 있다면 ‘과연 내 인생에서 영어가 필요한가’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만약 내 삶을 풍요롭고 즐겁게 만드는 것들이 1000가지가 있다면 그 중에 하나가 영어일 뿐이에요. 그러니까 나머지 999가지를 열심히 행복하게 잘 하고 있다거나, 혹은 1000가지 중에 10가지로 이미 내 인생이 행복하다면 사실 영어 공부 안 해도 돼요. 그러니까 ‘영어 공부를 할 필요가 없으면 하지 마세요’라는 말을 먼저 드리고 싶어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답변이네요(웃음).


그런데 재밌는 건요. 그렇게 마음먹고 다른 것들을 즐기다 보면, 분명히 어느 한 순간 이런 생각이 들어요. ‘세상에서 내가 즐길 수 있는 많은 것들의 표시, 콘텐츠의 뜻을 이해하려면 분명히 언어가 필요하구나’라는 생각이요. 여행을 가도 그렇고, 음악을 들을 때도 그렇고, 세계 모든 문화가 다 영어로 표출되잖아요. 그래서 인생을 더 즐기다 보면 어느 순간 ‘영어가 정말 나한테 필요하구나, 문화를 더 즐기고 싶어서 영어를 해야 되겠다’ 싶은 순간이 와요. 그때 영어 공부를 시작하셔도 돼요. 영어 공부가 정말로 하기 싫으시면, 1년이든 2년이든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고 영어 공부에서 손을 놓으셨다가 돌아오세요. 저는 그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말씀하신 것처럼 다시 영어 공부로 돌아오신 분들이라면, 그 중에서도 『Try again! 중학교 영어로 다시 시작하는 영어회화』를 선택하신 분들이라면, 어떤 분들일까요?


제가 이 책을 출간하기는 했지만, 자신에게 편안한 교재를 이미 가지고 계신다면 그 책을 먼저 보세요. 그나마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게 있다면, 제가 26년 동안 강의를 해오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봐왔잖아요. 그러면서 얻은 데이터가 있거든요. 실제로 방송하시는 분들 중에서 기본적인 패턴 5~10개를 가지고 쓰시는 분들이 계세요. 참고로 무척 잘 쓰세요. 그런데 실제로 정말 필요한 패턴 10개면 다 응용이 가능하거든요. 그걸 보고 제가 느꼈던 건 뭐냐 하면, 책의 문제도 있지만 더 중요한 건 본인의 의지라는 거예요. 본인의 의지를 계속해서 가지고 가려면 가장 처음에 선생님을 선택하는 것도 중요하겠구나, 라는 생각도 했어요. 꼭 제가 아니더라도 즐겁게 핵심 부분만 잘 얘기해 줄 수 있는 분이 있다면 그 분과 함께 공부하셔도 돼요. 물론 저로서는 저랑 같이 하시면 더 좋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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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법 공부 따로 안 해도 영어 말하기 문제 없다


이번 책은 12년 만에 출간된 개정판인데요. 이전의 책과는 어떤 부분들이 다른가요?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바꿔드렸어요. 책의 구성을 보시면 가장 먼저 세 가지 질문을 드립니다. “이 말, 영어로 할 수 있나요?”라고 쓰여있잖아요. 이걸 보신 후에 바로 영어를 보시면 안 돼요. 그러면 교과서 방식으로 다시 돌아가요. 자꾸만 외우려고 한단 말이에요. 앞부분을 이렇게 정해놓은 이유는 궁금증을 가지게 하는 거예요. 독자들을 실제 상황에 집어넣는 거죠. 이전에는 이런 방식이 아니고 미리 설명을 다 해줬었죠. 지금은 처음부터 해보시라고 말씀을 드리는 거예요. 그리고 이 세 개의 문장을 패턴으로 활용하게 하는 거죠. 그러면 하나의 상황이 해결되잖아요.

 

그래서 뒷장부터 비슷한 예문들이 이어지는 거군요.


비슷한 예문들을 쉬운 걸로 준비했어요. 앞의 문장과 똑같은 형태를 가지고 응용할 수 있도록 확장을 해주는 거죠. 제일 중요한 첫 번째는 장면 연상이에요. 그러면 나중에 실제로 그 상황에 놓여도 책 속의 장면에서 받았던 느낌을 그대로 쓸 수 있거든요. 글자를 외우면 채 하루가 가기 힘들어요. 그런데 우리가 원래 말하는 방식인 장면 속에 스스로를 집어넣고, 그 안에서 느끼면 실제 체험한 것 같은 효과가 나죠. 이게 바로 개정판의 포인트예요.

 

공부를 하는 데 있어서 ‘동기’만큼 큰 힘을 발휘하는 것도 없을 거예요. 저자님께서는 많은 유명인들의 개인 교습도 해오셨는데요. 그 분들 모두 영어를 공부하는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계셨나요?

아니에요. 예를 들면 아이유 씨나 정형돈 씨, 소녀시대 써니 씨가 다 제 제자들인데요. 외국 진출을 위해서 영어를 공부한 사람도 있지만, 아닌 경우도 있어요. 아이유 같은 경우에는 영어를 너무 좋아하고, 원래 잘 했었어요. 제 생각에는 아이유 씨 같은 경우에는 목적이 오로지 즐거움이에요. 본인이 재밌는 거예요. 그렇다 보니까, 지금 같이 공부한 지 1년 정도 됐는데, 작년에는 일주일에 세 번씩 만난 적도 있어요. 본인이 그만큼 열정이 있다는 거죠. 재미를 느끼는 지점을 스스로 만들어 내기 힘들면 도움을 받으면 돼요. 그래서 ‘이것 하나만으로도 재밌구나’라는 걸 알게 되면 자신이 확 바뀌어요.

 

영어 회화를 공부하다가 실력이 늘지 않으면 ‘문법이 약해서 그런가? 문법 공부부터 시작해야 되나?’ 싶기도 해요. 회화와 문법은 반드시 병행해야 하는 걸까요?


문법과 회화는 나누어져 있지 않아요. 한국 사람들이 다 문법에 맞춰서 말을 하는 게 아니듯이 똑같은 거예요. 문법이라고 하는 것이 먼저 존재하고 언어가 생긴 게 아니고, 말을 하다 보니까 거기에 규칙이 있어서 그것들을 모아 놓은 게 문법인 거잖아요. 문법은 나를 괴롭히는 대상이 아니고 내가 말을 더 빨리 할 수 있도록 규칙을 알려주는 거예요. 그러니까 문법 용어만 외우지 않으면 돼요. 동명사, 부정사, 주어, 동사... 이런 말만 외우지 말고 예문을 만들어서 그냥 문법을 간단하게 적용시키면 돼요. 이 책에 실린 문장들도 사실은 다 문법이에요. 한 문장만 가지고도 부정사, 의문문, 원형 처리, 조동사, 다 말씀드릴 수 있어요. 그런데 그게 의미가 없다는 거죠.

 

따로 문법을 공부하지 않아도 예문을 통해서 습득하게 되는 거네요.


예문 하나 속에 이미 수많은 문법이 있잖아요. 그러니까 ‘문법 때문에’라면서 이유를 다른 데에서 찾으려고 하지 마시고 ‘내가 재미를 못 느끼고 있구나’ 하고 생각하시면 돼요. 더 중요한 건, 실수를 부끄러워하실 필요가 없어요. 자전거를 탈 때 넘어지는 걸 부끄러워하는 사람은 없어요. 자전거를 배우는 동안 넘어지는 건 당연하죠. 아이가 걸음마를 할 때도 마찬가지고요. 실수를 할 때 부끄러워하거나 창피하게 여기거나, 거기에 대해서 죄책감을 느끼는 것은 마치 아이가 걸음마를 배우면서 넘어졌을 때 죄책감을 느끼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실수하는 걸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생각하고, 나를 다독여주고 나한테 힘을 줘야 돼요. 이렇게 생각을 바꾸기만 해도 세상이 너무 편해 보여요.

 

그래도 영어를 잘하는 사람 앞에 서면 실수할까 봐 겁이 나죠. 그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웃음).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이 나보다 영어 잘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앞에서는 영어를 안 해요. 저 사람과 나의 능력 비교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능력 비교가 아니에요. 영어를 잘 하는 사람 중에 그걸 능력 비교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언어와 인간성을 혼동하고 있는 거예요. 언어라고 하는 것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인간성을 먼저 고쳐야 되는 거예요. 

 

영어에 대한 부담감을 떨치는 것부터 시작해야겠네요.


언어는 심리라고 생각해요. 내 마음이 편해야 말도 편하게 나오죠. 그러니까 내가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지점을 통해서 하나하나 따라오시면 돼요. 마음을 편하게 하시려면 가장 첫 번째로 욕심을 비우셔야 돼요. ‘하루에 10문장씩 외울 거야’라고 마음먹지 마시라고요. 10개를 어떻게 외워요. 하루에 한 문 장만 하겠다고 생각하세요. 그게 안 되면 이틀에 한 문장, 그것도 안 되면 ‘일주일에 한 패턴씩, 백 문장을 만들어서 써보겠다’라고 생각하세요. 그렇게 하면 정말 간단하면서도 오래 기억할 수 있어요. 어렵게 목표를 정해놓고 하니까 어려운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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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계획에 영어 공부 포함시키지 마세요

 

영어 회화가 어려운 이유 중에 하나는 이런 게 아닐까 싶습니다. 먼저 머릿속에 한국어 문장을 떠올리고, 그걸 영어 문장으로 만들려고 하니 비문이 되는 거죠. 이런 문제도 고칠 수 있을까요?


100% 고칠 수 있는데요. 그걸 바꾸려면 상황 설정을 하세요. 진짜 일어나서 앞에 거울을 보고, 또는 파트너가 있으면 서로 역할을 맡아서 대화를 하는 거예요. 그렇게 머릿속에 실제 상황을 상상해 보세요. 머릿속에 자꾸만 글자가 떠오르는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전체를 한 문장으로 만들려고 하기 때문이거든요. 그러니까 책에 나와 있는 것처럼 패턴만 기억하시고 그 안에 들어가는 단어만 바꿔서 사용하세요. 그리고 동작을 같이 하세요. 그러지 않으면 기억에 남지 않아요. 자꾸만 글자가 떠올라요. 거울을 보고 동작을 같이 하면서 연습하면 실력이 진짜 많이 늘어요.

 

문장을 말할 때 과장된 동작을 곁들이라고 말씀하시는 이유는 뭔가요?


한국 사회는 튀지 않는 문화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에 익숙해져 있어서 자꾸만 뭔가를 안 하려고 해요. 그런 점에서 동작을 더 파워풀하게 하면 나를 바꿀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돼요. 더 중요한 건, 동작을 하면 머릿속에 장면이 떠오른다는 거예요. 글자를 보고 공부하면 항상 겁이 나거나 주눅만 들게 되어 있어요. 동작을 하면 실제 나의 상상력이 바뀌어요. 그래서 직접 해보는 게 제일 중요하다는 거예요.

 

『Try again! 중학교 영어로 다시 시작하는 영어회화』의 1권을 완벽히 마스터한 뒤에 2권을 펼쳐야 할까요?


1권과 2권은 역할이 달라요. 어떤 책을 공부하시든 중요한 건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공부하면 영어 실력이 좋아질 거야’라는 생각을 버리시는 거예요. ‘첫 번째 패턴 하나만 공부했는데도 너무 행복하다, 이것 하나만 공부해도 지나가는 외국인에게 말을 걸고 싶다’라고 생각하세요. 남들과 달라야 내가 달라져요. 그리고 책을 보시다가 힘든 챕터를 만나시면 건너뛰세요. 기억에 남는 챕터만 공부하세요. 절반 이상 진도가 못 나갈 것 같으면 1, 3, 5, 7, 9 챕터만 공부하셔도 돼요. 전혀 문제없어요. 그것도 싫으시면 1, 5, 10, 15, 20 챕터만 공부하시고요. 그러면 일주일에도 이 책 한 권을 보실 수 있어요. 방법은 많아요. 그러니까 전혀 신경 쓰지 마시고, 내가 필요한 게 뭔가를 생각하시면서 먼저 우리말로 ‘try’ 해보세요. 그리고 또 다시 시도해 보시고요. 그래서 책 제목이 『Try again! 』이에요.

 

새해를 맞아 영어 공부를 시작하려는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세요?


일단 새해 결심으로 영어 공부를 집어넣지 마세요. 왜냐하면 ‘새해에는 이걸 해야겠다’라고 하는 건 못할 가능성이 높아요. 마음속에 하고 싶은 다른 일이 있으시면 계획에 포함시키시고,  그 다음에 ‘그냥 영어와 친해져 보겠다’고 생각하세요. 하루에 딱 한 문장씩만, 그것도 안 되면 이틀에 한 문장씩만 하겠다고 생각하시고요. 실천 방법도 하나만 적어 놓는 게 중요해요. 포스트잇에 써서 붙여서 놓거나, 손바닥에 쓰거나, 스마트폰으로 녹음하거나, 많은 방법 중에 하나만 해보세요. 그리고 한두 시간 이상 공부하지 마세요. 차라리 15분이나 30분 단위로 끊어서 하세요. 욕심 부리지 마시고요. 그러면 1개월 후에는 영어로 간단한 주문이나 쇼핑을 하실 수 있을 거예요.

 

아이들 영어 교육으로 고민하는 부모님들께는 어떤 말씀을 드리고 싶으세요?


영어 공부를 하는 것도 중요하고, 단어를 많이 외우는 것도 중요하죠. 그런데 제가 볼 때 더 중요한 건 아이가 다양한 콘텐츠에 노출될 수 있도록 경험을 하게 해주는 일인 것 같아요. 예를 들면 가족 여행을 가는데 아이가 자기가 계획을 짜도록 하고, 가족들은 거기에 반응을 해주는 거죠. 그것 하나만으로도 아이는 영어를 잘할 경쟁력이 생겨요. 경쟁력 차원에서 봐야지, 지식 차원에서 보면 안 되는 거죠. 레벨이 다른 거예요. 아이가 스스로 즐겁게 하도록 만들려면, 그 밑바닥에는 재밌고 뿌듯한 경험이 있어야 되는 거거든요. 아이가 스스로 클 수 있게끔 하려면 아이한테 책임감을 심어줘야 해요. 기회를 줘야 된다고요. 그런데 부모님이 다 정해주면 책임감이나 자존감이 생길 수 있는 기회를 부모가 없애버리는 거예요. 그게 굉장히 중요한 겁니다.

 

강연을 통해서 늘 강조하시는 게 행복, 즐거움, 깨달음 같은 것들이에요. 영어가 저자님을 행복하게 만드나요?


영어는 모든 것에 대한 매체잖아요. 저는 시작을 영어 공부로 했던 게 아니고, 영화와 음악을 정말 좋아했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저 사람이 무슨 느낌으로 저 노래를 부르는 건지, 궁금하더라고요. 그래서 귀 기울이다 보니까 찾게 됐고, 그러다 보니까 알게 된 거예요. 당연히 한 번도 학원을 다녀본 적이 없는 거죠. 저한테는 그게 오히려 도움이 된 거예요. 왜냐하면 학원을 가면 ‘너 영어 이만큼 밖에 못 하잖아’를 학습 받잖아요. 물론 제가 어렸을 때는 학원조차도 없었지만요. 영어는 저한테 세상에 가득한 다른 사람의 생각, 다양한 문화를 열어주는 마법의 도구인 거죠.


 

 

Try again! 중학교 영어로 다시 시작하는 영어회화 1이근철 저 | 길벗이지톡
중학교 영어로 누구나 부담 없이 시작할 수 있는 영어회화 입문서로, 여기에 등장하는 표현들은 모두 우리가 중학교 때 한번은 배웠던 친숙하고 기본적인 표현들이다.『Try again! 영어회화 1 - 패턴 50』은 네이티브들이 영어로 묻고 답할 때 가장 자주 사용하는 50패턴을 다루고 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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