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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시’ 김민섭 “한발 물러서야 질문을 던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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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9동 1201호. 김민섭 저자가 살던 공간의 이름이자,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라는 글을 인터넷에 올리며 사용한 필명이기도 하다. 지방 대학에서 대학원을 나오고 연구실에서 현대소설을 연구하며 글쓰기 과목을 강의했던 저자는 일주일에 이틀은 강사로, 사흘은 맥도날드 알바생으로 살았다. 대학은 시간강사에게 보험 혜택을 제공해주지 않았고, 재직증명서 발급도 되지 않았다. 대학에서 지식노동자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글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는 인터넷에서 급속도로 퍼지며 누적 조회 수는 200만에 이르렀고, 2015년에는 같은 이름의 책으로 나오기도 했다.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의 끝에서 그는 ‘계속 연구하고, 강의하며, 아카데미의 삶을 살아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2015년 12월에 대학에서 나왔지만 그 다짐은 여전히 유효했다. 생계를 위해 대리운전을 시작하면서 대학이라는 한정된 공간을 나와 거리에서 세상을 응시하고자 했다. ‘이 사회는 거대한 타인의 운전석’이라는 깨달음도, 거리에서 만난 인문학적 성찰이었다. “내가/우리가 이 사회에서 주체성을 가진 온전한 나로서 존재하고 있음을 증명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 ‘309동 1201호’가 아닌 ‘김민섭’으로 쓴 『대리사회』가 세상에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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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그 자체로 거대한 연구실


‘지방시’(‘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이후로 사회에 알려지셨어요. 처음에 ‘지방시’를 썼을 때는 계속 대학에 남아있겠다는 마음이었던 것 같은데, 대학을 나오게 된 계기가 있나요?

 

대학에서 8년 넘게 인문학을 공부했어요. 거리에서 배운 인문학이 그동안 대학에서 배운 인문학보다 결코 못 하지 않더라고요. 저는 강의실과 연구실이 대학에만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대학 바깥에 크게 펼쳐져 있다는 걸 알았거든요. 세상은 그 자체로 거대한 연구실이고 강의실이었어요. 그래서 밖으로 나왔고, 그걸 확인하는 계기가 『대리사회』였어요. 반쯤 믿고 나왔는데, 나오길 잘한 것 같아요.


대학을 그만둘 때 아내한테 허락을 받은 게 아니었다고 나와요.


대학을 그만두려 한다고 형식적으로는 허락을 받았죠. 아내는 흔쾌히 그렇게 하라고 말했고요. 대학원에서의 시간은 저만 버틴 게 아니라 아내도 버티던 시간이었고, 아내도 힘들었을 테죠.


부모님이나 주변 반응은 어땠나요?


부모님한테는 처음에 티를 안 냈어요. 책이 나오고 나서야 알게 되셨는데, 아버지한테 너의 결정을 응원하고 지지한다고, 이제부터 아버지가 응원한다고 문자가 왔어요. 그걸 보고 눈물이 나더라고요. 아이한테는 『대리사회』말고도 제가 쓴 책들을 많이 물려주고 싶어요.


맥도날드 일이나 대리기사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보다 가족이 아니었을까요?


가족이 거의 90%의 이유였죠. 맥도날드에 갔던 건 아내의 남편이 되어야 했고 아이의 아버지가 되어야 했기 때문이었거든요. 가족에게 사회적 안전망이 필요했고, 아이의 분유와 기저귀를 살 만큼의 조금 더 많은 생활비가 필요했어요. 가족 때문에 밀려난 덕분에 뼈아프게 배웠죠.


 ‘지방시’ 이후로 일간지에서 많이 인터뷰가 나갔어요.


인터뷰는 ‘지방시’ 때나 지금 『대리사회』내고 나서나 비슷하게 하고 있어요. ‘지방시’ 때는 맥도날드에서 일했다는 게 자극적으로 소비되면서 맥도날드보다 못한 대학교라는 식으로 기사가 많이 나왔어요.


그런 기사 때문에 대학 동료들이 더 세게 반응한 게 아니었을까요?


제가 겪은 일들을 어떤 특정 공간의 일로 썼다기보다는 대한민국 대학의 모든 문제를 다루면서 썼거든요. 제가 있었던 대학이 맥도날드보다 못하다는 게 아니라, 대한민국 대학 시스템 자체가 문제라는 공적 비판이었어요. 그걸 사적인 모욕으로 받아들였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죠.


‘썩어버린 먹물들’이라는 표현도 있었어요. 대학을 나와서 대학을 비판할 수 있다는 게 아이러니하기도 하고요.


대학 안에 있어도 비판은 할 수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대학의 좁은 연구실과 강의실보다 세상에 있는 더 넓은 강의실과 연구실로 나오고 싶었어요. 그 이유가 더 큽니다.


대학을 나와 배운 건 뭔가요?


대리기사를 하면서 타인의 운전석이 그 어떤 연구실보다 훨씬 많은 걸 배울 수 있게 해줬어요. 거기에서만 느끼는 감각도 있고, 손님들에게 배우는 것도 있고요. 하지만 무엇보다 그동안 제가 글로만 배웠던 공간에서의 환대라든지, 노동, 사람을 상대하는 관계를 몸의 언어로 바꾸는 과정을 자연스럽게 할 수 있게 됐어요.

 

 

처음 시작한 대리운전


대리기사 일을 시작하고 사고가 나는 악몽을 자주 꾸셨다고요. 대학에 있을 때도 비슷한 악몽이 있었나요?


대학 있을 때 악몽은 자주 안 꿨는데, 가위에 엄청 눌렸어요. 논문 쓰는 꿈은 꾼 적 있어요. 계속 논문을 쓰다가 논문 심사장에 들어가는 꿈이요. 지금은 차 사고가 제일 엄청난 악몽이죠.


대리운전 시작하면서 처음 ‘아저씨’라는 호칭을 들었을 때 기분은 어떠셨어요?


대학교에서 나온 지 반년쯤 되었을 때인데, 제 신체가 아직 대학에 젖은 채로 한 발은 대학에 걸쳐져 있었어요. ‘아저씨’라는 호칭이 저를 잡고 패대기를 치는 기분이었죠.


승차감이 좋았던 차를 나중에 검색해 보니 마세라티였던 에피소드가 나와요. 차에 따라 차 주인의 느낌이 달라지기도 하나요?


어떤 차를 몰고 있느냐에 따라서 자신이 어떻게 불리기를 바라는지는 조금씩 다른 것 같아요. 자신이 탄 차는 자신의 신체가 어떻게 보이고 싶다는 욕망을 담고 있어요. 차의 가격으로 사람을 평가하지는 않지만, 차종에 따라서 느껴지는 것들이 다르죠.

 

고객들한테는 ‘사장님’이란 호칭을 쓰시나요?


주로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게 편해서 그렇게 불러요. ‘사장님’이라는 호칭이 필요할 것 같은 손님들이 있어요. 그럼 섞어서 사장님이라고 할 때도 있고요. 그런 사람들은 사장님이 탈 것 같은 차를 타고, 사장님 같은 표정을 짓죠. (웃음)


재밌었던 부분 중 하나가 대리기사를 찾는 사람들 앞에서 ‘저도 대리기사입니다.’ 라고 말한 부분이었어요. ‘대리 찾으시나요?’ 등 여러 가지로 발화될 수 있었을 텐데요.


‘대리 찾으시나요?’ 하면 뭔가 간절하지 않잖아요. 의도한 건 아닌데 간절한 마음이 튀어나온 것 같아요. 그 사람들이 대리를 부르려고 했기 때문에, 당신이 찾으려는 사람뿐 아니라 나도 대리기사라는 다급한 마음이 튀어나온 거죠.


조수석에 있는 사람이 창문을 열었을 때 손님이 화를 내자 ‘저는 여기에서 아무것도 건드리지 않습니다.’ 라는 말도 인상 깊었어요.


제가 창문을 연 게 아니라 같이 탄 동료가 조수석에서 창문을 열었어요. 저한테 왜 창문을 열었나 화를 낼 때 말했던 거였어요. 그것도 어떤 간절함이 들어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사실이니까 그렇게 말하게 되더라고요. 수백 번 운전을 하면서 그런 경험이 늘 있던 건 아니었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저항이 딱 그정도였던 것 같아요.


어느 날 콜이 많이 들어와서 보니 김영란법 시행 하루 전날이었다고요.

 

안 나가야겠다고 생각한 날에 이상하게 콜이 많이 들어왔어요. 왜 많은가 싶다가 대리기사 카페 들어가니까 김영란법 시행 하루 전이라 술을 많이 마시는 것 같다고 누가 적어놨더라고요. 그다음 날에는 진짜 부르는 사람이 없었어요. 지금까지 제일 콜 많이 받았던 날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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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서 몸의 언어를 기록하다


‘대학도 누군가를 대리하고 있는 공간’이라는 성찰은 대학의 기업화를 말씀하신 건가요?


대학이 진리의 상아탑, 지식의 전당 이런 수식어가 붙지만 학문의 주체로 선 게 아니잖아요. 책에서 말했지만 대학에서 벌어지는 여러 가지 사업들 역시 얼마나 대학이 자본이라는 욕망을 대리하고 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학에 몸담고 있을 때도 민영화 사업 등을 실제로 겪었나요?


마지막으로 본 건 학과 인원을 스스로 몇 퍼센트 감축하면 지원금을 주겠다는 사업이었어요. 그것 때문에 나온 건 아니었지만, 학교를 나올 때쯤 한창 그런 사업이 많았어요.


근대문학을 전공하셨지만 문학보다는 문화기술지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어요. 글의 형식을 의도하고 쓰신 건가요?


의도한 건 아니었어요. 어느 날 대학에서 제가 노동자로 살아가고 있나, 이 사회 안에서 사회인으로 살아가고 있나 의문이 들어, 저를 규정해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글을 썼어요. 대학에서의 시간은 제 평생을 바친 공간이지만 저 자신을 노동자로 규정할 수 없었어요. 건강보험이 보장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회적 안전망이 없었고, 결혼하면서 대출받으려면 서류가 필요하다고 했는데 정규직 교수가 아니면 재직 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없다고 해서 강의 경력증명서를 떼야 했고요. 은행 직원이 서류를 보더니 이런 건 처음 본다면서 웃더라고요. 그 순간 저는 대학의 유령이 되었고, 8년 동안 대학원에서 있었던 시간을 유령의 시간으로 규정하게 됐어요.

 

문학 전공 이력이 글쓰기에 도움이 되었을 것 같아요.


글쓰기 교양 수업 선생님이었기도 하고, 조세희 씨 소설을 좋아해요. 문장을 짧게 쓰는 법을 조세희 씨 소설에서 배웠고, 박민규 씨 소설에서는 문장을 길게 쓰는 법을 배웠어요. 유시민 씨에게는 길고 짧은 문장을 정갈하게 쓰는 방법을 배웠죠. 현대든 고전 문학이든 연구하면서 좋은 글을 많이 읽었고, 글 쓰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대리운전을 다녀와서 계속 메모하고 적었다고 하셨어요.


운전을 하고 내릴 때마다 메모했어요. 집에 오면 피곤해도 오늘 겪은 일을 기록해 두고요. 운전할 때마다 경험했던 감정을 잃고 싶지 않았어요. 어느 날은 당장에라도 글을 쓰고 싶어서 일을 접고 집에 온 날도 있었어요.


 ‘지식과 노동을 양손에 들’고 있다는 표현이 있는데, 요새 그 둘 사이의 균형은 어떤가요?


제가 생각해도 독특한 이력인데요. 대학에서 한 인문학 연구는 지식이 될 테고, 거리로 나와서 기록하는 건 몸의 언어가 될 거예요. 그것들의 균형을 잘 맞추고 싶어요. 계속 균형을 맞춰나가는 상태입니다.

 

문학이라기보다 이제는 인문학 전반에 걸친 연구가 되겠네요.

 

이제 문학 연구는 좋은 글 찾아보는 정도로만 할 것 같고요. (웃음) 책에 경계인이라는 표현을 썼는데요, 경계인으로서의 어떤 거리를 유지하면서 계속해서 거리에서 몸의 언어를 기록하고 싶어요. 경계에 서면 사회의 균열을 바라볼 수 있거든요. ‘지방시’에서 대학의 균열을 이야기했다면, 『대리사회』에서는 사회의 큰 균열을 이야기하고 싶었고, 다음 책에서는 한 발 더 들어가 대리사회의 괴물이 어떤 것을 무기 삼아서 개인을 통제하고 억압하는지 다룰 생각이에요.

 

 

주체라는 환상


첫 운행 에피소드에서 몸과 호칭이 모두 내 것이 아닌 상태가 나와요. 상실의 경험이 오히려 자연스럽게 있었던 것들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됐나요?


예전에는 자연스럽게 나의 것이라고 믿었는데, 나의 호칭, 신체, 언어, 사유가 타인에게 귀속되는 것을 경험하니까 상실할 수도 있는 거였구나 느끼는 거죠. 타인의 운전석뿐 아니라 대학에서든, 사회의 어느 공간에서든 주체로서 호칭, 신체, 언어, 사유의 주인이었나 생각해보면 주체라는 환상에 빠져있었던 것 같아요.


그 네 가지를 가진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한발 물러서 재정비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쓰셨어요. 재정비할 시간은 어떻게 구해야 하는 걸까요?


강연에 가면 다들 노력해서 한발 나아가라고 이야기하잖아요. 저는 오히려 한발 물러서야 한다고 이야기해요. 경쟁하면서 밀려나기는 쉬워요. 물러서는 게 오히려 몹시 어렵고 주체로서 할 수 있는 용기 있는 행위라고 생각해요. 한발 물러선 사람은 자기에게 질문할 수 있거든요. ‘나는 이 공간에서 무엇으로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이요. 저는 그런 질문을 대학에서 한 번도 해보지 못하다가 맥도날드라는 생계의 공간으로 저를 내몰고 나서야 그 질문을 던질 수 있었거든요. 그걸 되게 어렵게 배웠어요. 밀려나기 전에 물러서서 사유하는 주체로서 나아가길 제안한 문장이에요.


대개 물러날 곳이 없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잖아요. 다들 아등바등 버티는 것 같기도 하고요.


어떤 공간에 속하면 사람들은 자신을 중심부에 있다고 믿기도 하는데, 우리는 다들 경계에 서 있어요. 누구나 한발 물러섰을 때 그 조직이 가진 균열이 눈에 들어와요. 균열을 잘 살펴보면 그 안에서 자신의 욕망을 우리에게 대리시키는 괴물이 나타나거든요. 그것과 마주할 필요가 있어요.


갑과 을의 관계에서 갑은 자기를 갑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경우도 있어요. 을은 을이라서 갑에게 덤벼들 수 없고요.


주변에서 만나는 평범한 우리는 갑의 자리에 섰을 때 자신이 갑질을 하고 있다는 걸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갑질이 일어나는 것 같아요. 운전하면서 타인을 주체로 일으키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걸 알았어요. 내가 갑의 자리에 있을 때 그걸 인식하지 못하고 을의 자리에 있는 사람을 하대하면 자신도 을의 자리로 내려가는 거예요. 하지만 을의 자리에 있는 사람을 주체로 끌어올리면 모두 갑의 자리로 올라간다고 생각해요.


요새 청문회를 보면서 느끼는 거지만, 자꾸 갑의 위치에 선 사람이 자신도 이 사회 안에서 피해자라고 여기는 것 같아서요.


우리는 누군가에게 갑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을이 되잖아요. 그걸 인식하는 게 먼저 필요할 것 같아요. 내가 갑일 때는 기침 한 번만 해도 을의 자리에 선 사람은 왜 기침을 할까, 왜 찡그릴까 많은 의미를 부여하게 돼요. 그래서 오히려 평범한 우리가 어디에서 갑의 자리에 서는가를 응시하는 게 필요합니다.


그럼 을이 할 수 있는 일은 뭐가 있을까요?


글쎄요. 을은 어딘가에서는 갑이 되니까, 그때는 타인을 주체로서 일으켜야 할 테고요. 완벽한 을의 자리에 있을 때 갑들이 하는 걸 보면서 기억하는 사람은 구조나 시스템을 바꿔 갈 수 있어요. 하지만 기억하는 게 아니라 추억하는 사람들, 내가 갑의 자리에 서면 정의롭지 않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올라간 사람들은 오히려 시스템을 악용하고, 지금 우리가 보는 대리인간이 되는 것이죠.

 

 

가족은 서로를 대리하는 존재


유흥을 즐기면서도 대리기사 비를 깎으려 드는 진상 남성 손님 이야기가 나와요. 여성 대리운전기사가 없다는 내용도 나오고요. 대리기사 일을 페미니즘의 시각으로 사유해 보신 적이 있나요?


남자 손님들은 말을 가끔 나누다 보면 대리기사 일을 자기도 해보고 싶다고 면접 방법을 물어보는데, 여자 손님들은 자기도 해봐야겠다는 말을 아무도 안 하세요. 을의 자리에 여성이라는 젠더까지 끼어들면, 저는 솔직히 상상이 잘 안 가요.


아내를 ‘아내’라고 불렀더니 손님이 놀랐다는 에피소드도 있어요.


아내가 자신의 언어, 자기 자신을 규정할 수 있는 언어가 별로 없더라고요. 아내를 뜻하는 단어가 집에 있는 사람으로 속하는 용어로 집사람이라고 부른다든지요. 손님이 와이프를 아내로 칭하는 사람은 처음 본다고 말하더라고요.


가족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돼요. 대학에 있는 동안 아내에게 끊임없이 저의 대리인간이 되기를 강요했어요. 일 년만 참으면 논문이 나온다거나, 집에 오늘 못 들어가니까 아이를 봐달라고 하거나요. 부부나 가족이 뭘까 생각해 봤는데 어느 한쪽이 한쪽을 대리하는 게 아니라 서로를 대리하는 게 가족인 것 같아요. 많은 남성이 여성에게 희생을 강요하거나 자신의 욕망만을 대리시키려고 하는 일이 많아요.


‘파주 손님’과 ‘부천 손님’이라고 칭한 사람들의 에피소드가 나와요. 도시별로 사람의 특성이 다르기도 한가요?


그렇진 않습니다. 어느 도시에 가든 많은 종류의 사람이 있어요. 다만 그 도시의 품격을 결정하는 건 지하철이나 버스 노선, 높이 솟은 빌딩이 아니라 거기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인 것 같아요. 사람들을 주체로 일으키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그런 사람들이 도시의 품격을 결정한다는 의미죠. 물론 어느 쪽으로 가면 팁이 잘 나온다, 그런 직업적 특성은 있어요(웃음).


대리가 되니까 동료의식을 느낀다고 하셨는데, 지금 작가님의 동료 집단은 누구인가요?


대리기사들이 처음에는 무서웠어요. 어깨도 넓고 말 걸면 혼날 것 같고, 다들 아저씨고요. 그런데 용기 내서 한 걸음 다가가면 민망할 만큼 두 걸음 다가와서 잘해주시더라고요. 정말 시골로 들어가면 아무도 없을 것 같은데, 사거리로 나가면 몇 명의 대리기사가 있어요.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동료가 돼요. 오래된 친구처럼 같이 가자고 하면서 강남까지 택시 셔틀을 타고 가고, 목적지에 도착하면 많이 법시다, 열심히 합시다, 덕담을 하면서 헤어지고요. 점점이 떨어진 사람들이지만 그때마다 하나의 커뮤니티를 조직해서 동료가 될 수 있는 이들 같아요. 이제 두렵진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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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 대통령


우연인지 필연인지, 비선실세를 대리로 내세운 대통령 때문에 말이 많았잖아요. 지금 사태에 대해 말을 보태주신다면요.


대통령도 자기 신체와 언어의, 그리고 무엇보다 사유의 주체가 아닌 것 같아요. 사실 누구나 이 사회의 거대한 욕망을 대리하면서 살아갑니다. 기자님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요. 주체의 욕망이라고 믿지만 그것은 사회의 욕망을 일정 정도 반영할 수밖에 없는 거잖아요. 광장에 100만 명이 모였어요. 그건 나는 천박한 욕망을 대리하지 않겠다는 하나의 선언이거든요. 지금 광장에 있는 이들은 대리 된 욕망을 거부하겠다는 사유하는 주체들이고, 그 주체들이 이 사회의 가장 대리인간인 대리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죠.


앞으로도 꾸준히 대리기사 일을 하실 생각이신가요?

 

대리운전은 지금 잠시 쉬고 있는데 다시 시작할 거고요. 반드시 대리운전이 아니더라도 거리에서 몸의 언어를 기록하고 싶어요. 


 ‘우리 안에 있는 괴물’을 이야기할 생각이라고 하셨어요.


괴물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무기는 언어라고 생각하거든요. 개인을 통제하는 언어, 즉 훈(訓)이에요. 집에서는 가훈, 교실에서는 급훈, 회사에서는 사훈, 나라는 국훈이 있잖아요. 그런 언어들이 개인을 통제하는 괴물들의 가장 큰 무기에요. 대리운전을 하다가 어떤 회사 화장실에 들어갔는데 커다랗게 ‘우리는 남들보다 두 배 더 열심히 일한다’는 등의 사훈이 건물에 붙어 있더라고요. 그걸 한참 멍하니 보고 있었어요. 내년에는 우리를 둘러 싼 ‘훈의 언어’들을 기록해 볼 생각이에요.


 

 

대리사회김민섭 저 | 와이즈베리
『대리사회』는 그러한 공간에서 저자가 익숙하게 체험한 3가지 통제(행위, 말, 생각)를 바탕으로 괴물이 되어버린 대한민국 노동 현장의 단면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책이다. 대리사회에서 한 인간은 더 이상 신체와 언어의 주인이 아니었고, 사유까지도 타인의 욕망을 대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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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근 “책 읽는 인류, 희귀종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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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작가’ 알랭 드 보통,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심리학자’ 스티븐 핑커, ‘독보적 경영저술가’ 말콤 글래드웰, ‘세계적 과학 저널리스트’ 매트 리들리. 이 시대 최고의 지성 4인이 한 자리에 모였다. 때는 2015년 11월, 장소는 캐나다 토론토. 토론회 ‘멍크 디베이트’에 참가한 네 사람은 ‘인류의 앞날에 더 나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가’라는 주제로 팽팽한 설전을 벌였다. 전병근 번역가는 그 날의 흥미진진한 기록을『사피엔스의 미래』안에 담아냈다.

 

멍크 디베이트(Munk Debates)는 매년 두 차례, 봄과 가을에 토론토에서 열리는 토론회다. 각 분야의 최고 권위자나 전문가를 초대해 국제적인 이슈에 대해 찬반 토론을 진행한다. 2인 1조로 이루어지는 토론이 끝나고 나면 유료 청중들을 대상으로 투표를 실시해 승리 팀을 결정짓는다. 2015년 가을에는 인류의 미래를 주제로 행사가 개최되었고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작가와 저널리스트, 과학자 네 명이 참여했다. 인류의 앞날을 긍정적으로 전망한 ‘찬성 팀’에는 심리학자이자 인지과학자인 스티븐 핑커와 과학저널리스트 매트 리들리가, ‘반대 팀’에는 우리에게도 친숙한 작가인 알랭 드 보통과 독보적인 경영저술가 말콤 글래드웰이 자리했다.

 

『사피엔스의 미래』를 통해 이들의 대화를 생생하게 되살려 낸 번역가 전병근은 모바일 기반 지식문화 채널 ‘북클럽 오리진’의 지식 큐레이터다. ‘보다 나은 삶을 살고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노력의 중심에 책이 있다’고 믿기에 “좋은 글을 읽고 나누는 지식문화 커뮤니티”를 지향하며 ‘북클럽 오리진’의 운영을 시작했다. <조선일보>의 사회부, 국제부, 문화부에서 일했으며 <조선비즈>의 지식문화부장을 지냈다. 앞서 인터뷰집 『궁극의 인문학』을 통해 토마 피케티, 유발 하라리, 김대식, 김정운 등 아홉 사상가들의 통찰을 들려줬던 그는 지식과 문화를 결합시키려는 노력을 여전히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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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미래는 더 나아질 것인가


『사피엔스의 미래』는 2015년 멍크 디베이트의 내용을 엮은 책입니다. ‘인류의 앞날에 더 나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가’라는 토론 주제가 굉장히 흥미로워요. 번역을 하시면서도 뒷이야기가 궁금하셨을 것 같습니다. 어떠셨나요?

 

멍크 디베이트는 수년 전부터 지켜봐 오던 행사인데 이번 토론이 특히 눈길을 끌었습니다. 인류의 앞날을 묻는 이른바 빅 퀘스천이었어요. 관심을 갖고 있던 문제였고 네 명의 토론자도 다 대단한 사람들이었어요. 출판사 대표와 이야기하던 중에 번역해보라는 권유를 받고 나서게 됐습니다. 국내에서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크게든 작게든 논의가 생겨났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였어요.

 

토론을 지켜본 청중들은 찬성 팀의 손을 들어줬는데요. 이 결과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제 짐작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아요. 우선 캐나다가 선진국이니까 아무래도 세상에 대한 평가가 좀 낙관적이지 않을까 싶고요. 더구나 그때 캐나다가 총선을 치른 직후였는데 진보적인 자유당이 승리하면서 40대의 젊은 총리가 집권하게 됐단 말이죠. 전반적으로 기대에 차 있었다고 볼 수 있죠. 그리고 멍크 디베이트가 유료 행사인데, 돈을 주고 지적 토론을 즐길 청중이라면 경제적으로도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죠. 이런 점이 다 비관적이기보다는 긍정적인 분위기에 영향을 주지 않았나 싶어요.

 

“번역을 시작할 당시에는 진보에 찬성하는 쪽에 기울어 있었다. 하지만 번역을 끝낸 지금은 거의 중간 지점에 와 있다. 오히려 조만간 반대편으로 기울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고 하셨어요.


거시적으로, 그리고 수치화할 수 있는 지표들로 보면 (인류의 삶은) 부인할 수 없이 나아졌다고 생각해요. 저의 어린 시절과 비교해 봐도 그렇고, 사회적으로 보더라도 우리가 산업화나 민주화의 단계를 이른바 '모범적'으로 거쳐 왔잖아요. 밖에서는 '기적'이라고도 하고. 하지만 최근에 와서 다시 그 외의 것들, 계량적으로는 쉽게 포착이 되지 않고 실증적이지는 않지만 뭔가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걱정하게 하는 요인들이 부각되기 시작했죠. 그리고 지금 성취한 것들이 과연 진정한 행복의 기반이 될 수 있는 것인지, 지금의 방향대로 노력만 더 하면 우리가 기대했던 곳에 도달할 수 있을지에 대한 물음표가 생기기 시작한 거죠.

 

‘인류의 앞날에 더 나은 미래가 기다리고 있는가’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면, 먼저 질문해야 할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희망적인 것인지, 어떤 상태가 나아진 삶인지’를 생각해 봐야겠죠.


진보는 좋고 나쁘다는 가치 판단을 전제로 하는 거지요. 흔히 미래학자들은 미래가 어떻게 바뀔 것인가를 두고 논하지만 이번 토론의 주제는 미래가 더 좋아질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제기했습니다. 여기에는 인류가 근대사회로 오면서 상정했던 여러 기준들, 즉 경제적으로 먹고사는 문제라든가 민주주의, 자유, 평등 같은 기준으로 지금까지 내달려오다가, 최근에 와서는 이게 제대로 가고 있는 건지, 이 길이 맞는 건지에 대한 의구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이면에 깔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말씀하신 바로 그 지점에서 양측이 시각 차이가 뚜렷하게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찬성론자들은 수치화할 수 있고 실증적으로 포착할 수 있는 것들을 봤을 때 인류가 충분히 진보해 왔고, 앞으로도 낙관할 수 있다는 입장이고요. 반대 편의 생각은 그게 다가 아니라는 거예요. 찬성론자들이 이야기하는 부분의 수치 개선을 부인하는 게 아니라, 그것보다 더 중요하고 심각한 게 있다는 거죠. 알랭 드 보통이 스위스 이야기를 자꾸 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스위스는 모든 나라가 도달하려고 하는 목표라고 할 수 있는데, 정작 그 나라의 국민조차 남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행복하지는 않다는 거예요. 인간에게 있어서 정말 좋다거나 행복하다는 건 뭔가 다른 데에서 기인하는 것 아니냐고 반문합니다.

 

찬성 팀의 매트 리들리는 영국 역사학자 매콜리 경의 말을 인용했어요. “무슨 원리에서 우리 뒤에는 늘 좋아지는 것만 있었고, 우리 앞에는 나빠질 것밖에 기대할 게 없다는 말인가?”라고요.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말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지나간 시간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죠.


인지과학자들은 인간의 치명적인 인지적 오류의 경향성을 이야기합니다. 대니얼 카너먼이 쓴 『생각에 관한 생각』에 그런 이야기들이 잘 나옵니다. 우리는 현상적인 것을 곧바로 포착하고 그것에 근거해서 곧바로 반응하는 단기적 사고의 경향이 아주 강해요. 생존을 위해서는 그렇게 진화하도록 돼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부정적인 것, 성가시거나 불편하거나 불안한 요소들을 먼저 감지하고 반응하게 돼 있어요. 그런 점에서는 인류는 본성적으로 투덜이입니다. 임박한 위험이 사라지고 나면 사고에 여유가 생깁니다. 거리를 확보하고 나면 그렇게 부정적으로 보이지는 않죠. 흔히 눈앞의 현실은 고달프고 과거의 추억이나 향수는 아름답게 떠오르는 것도 그런 인지 성향과 관련이 있습니다.

 

『사피엔스의 미래』에 담긴 질문, 즉 ‘인류의 미래는 더 나아질 것인가?’라는 질문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당면한 문제들이 인류 차원에서 진단하고 해법을 찾고 대응해야 하는 것들이기 때문이에요. 가령 자동화의 물결이 그렇습니다. 직접적으로 인간의 일자리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아직 걱정할 단계가 아니라거나 인간-기계의 공존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으니까 하는 이야기입니다. 취약한 계층부터 피해가 커질 겁니다. 직장에서 일어나는 상당 부분의 인간적 갈등도 사실은 그런 심층 불안의 반영 같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생산적인 일이 아니라 사람 스트레스로 힘들어 하고 있지요. 나아가서, 자동화는 인간성과 인간의 존재 방식마저 재규정하려 들고 있습니다. 그러니 ‘도대체 인간에게 남은 게 뭘까? 앞으로 기대할 수 있는 게 뭘까? 무엇이 인간적인 것이고 인간적으로 좋은 것인가?’라는 질문을 할 수밖에 없는 시점에 와 있는 거죠. 그걸 고민하지 않으면 실리콘밸리가 주도하는 대로 살 수밖에 없습니다. 사상가나 미래학자만 고민해야 하는 문제가 아니에요. 인류 전체의 삶을 보다 나은 방향으로 이끌기 위한 남은 보루가 이른바 성찰적 민주주의라고 한다면, 각각의 시민 개개인들이 제대로 알고 학습하고 생각하고 논의가 이뤄져야 해요. 그게 모여서 필요하면 함께 힘을 모아 방향을 바꾸고 대안을 모색해 볼 수도 있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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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 지식문화의 단계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오랜 기자 생활을 마감하시고 북클럽 ‘오리진’의 운영을 시작하셨는데요. 계기가 있으셨나요?


지식문화에 대한 관심은 일찍부터 있었어요. 유학을 생각하다가 언론사에 들어간 것도 제가 세상을 배우고 의미 있게 기여할 수 있는 매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어요. 그게 신문에서 온라인 미디어로, 다시 모바일 플랫폼으로 자연스럽게 매체 환경에 맞춰 옮겨간 것뿐이죠. <조선일보>에서 15년 동안 일을 하다가 <조선비즈>로 가서 지식문화부장을 맡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온라인 공간에서의 지식문화 콘텐츠를 다양하게 실험해봤어요. 당시로서는 이례적으로 긴 저자 인터뷰도 하고 책 큐레이션과 관련한 대형 기획도 해보면서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어요. 그러다가 카카오에서 콘텐츠 제휴 제의가 들어왔고, 그 무렵에 모바일이 중요한 툴로 떠오르던 차여서, 저로서는 이곳에서 지식문화 콘텐츠 큐레이팅 일을 좀 더 헌신적으로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매일 수많은 책이 출간되는데요. 그 가운데에서 어떤 책과 저자를 만날 때 흥미를 느끼세요?


가능하면 선입견 없이 보려고 하는 편입니다만, 의식하든 못하든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겠지요. 의식하는 것으로는 우선, 책의 완성도입니다. 우리에게 새로운 가치나 의미 있는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 그것을 잘 전달하는 책에 끌립니다. 어떤 경우에는 상황이 변수가 되기도 합니다. 저술이나 출간의 취지 못지않게 독자와 독서의 맥락도 중요하니까요. 책은 대단히 좋은데 세상에 나올 때의 분위기나 맥락이 어긋나면 제 가치를 못 알아보거나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요. 그래서 요즘 국내 상황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외면 받는 좋은 책들이 많아서입니다. 그렇더라도 모든 악조건을 견뎌내고 심지어 압도하는 책도 있습니다. 이른바 고전에 해당하는 것들, 고전이 될 가능성이 있는 신간들이 그렇죠. 책에 담긴 콘텐츠 자체가 보편적인 생명력을 가진 의미나 가치가 있을 때는 외면하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세상 모든 일이 그렇듯이 책도 운이 따라야 합니다.

 

많은 분들이 ‘오리진’을 찾으시는 이유가 뭘까요? 지식문화를 ‘큐레이션’ 해주기 때문일까요?


‘오리진’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제가 생각하는 지식문화는 대학이나 학자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생각하는 종인 사피엔스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지식문화의 단계로 갈 수밖에 없어요. 여기에 예술을 더할 수 있겠지요. 개인이든 집단 차원에서든 인간이 의미를 찾게 되면 결국은 지식을 추구하게 됩니다. 모든 문화라는 것이 지식의 형태로 싹이 트거나 결실을 맺고, 그게 다시 성장해서 책이라는 형태로 누적이 되잖아요. 지식문화는 성숙한 개인이나 사회가 어느 단계에 이르게 되면 거의 필연적으로 원하게 되고 누리게 되고 가담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지금 우리 사회는 어느 정도 수준에 와 있을까요?


우리가 OECD 회원국이라고 하는데 그에 상응한 지식문화는 갖추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여기에는 물론 역사적 사정이 있었습니다. 그걸 다 이야기할 수는 없고, 내력이야 어찌됐건 눈앞에 닥친 현실로 보면 우리 사회의 성장 단계에서 크게 미진한 것이 지식문화입니다. 독서 문화도 그 중 하나입니다. 우리 사회는 말로는 어떨지 몰라도 현실에 있어서는 책 읽기에 결코 우호적이지 않아요. 그게 너무 안타깝습니다. 먹방을 당연시하는 만큼, 아니 절반만큼이라도 독서를 중시하는 문화가 자리 잡을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시간이 걸리겠지요. 독서가 그렇듯이 인내가 필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리진’에는 굉장히 많은 코너들이 있는데요. ‘요즘 무슨 책 읽으세요’라는 코너에서는 다양한 사람들의 독서 근황을 엿볼 수 있더라고요. 저자님은 요즘 어떤 책을 읽고 계세요?


하는 일이 그렇다 보니 집중하는 몇 권 말고, 수시로 동시다발로 읽는 편인데요. 최근에는 『도킨스 자서전 1, 2』를 읽고 있는 중이고 신간 추천사를 쓰기 위해 『메시 MESSY』를 재밌게 읽었습니다. <파이낸셜 타임스>의 칼럼니스트 팀 하포드가 쓴 책인데, 우리는 흔히 질서정연한 것을 선호하고 추구하지만, 사실은 굉장히 혼돈스럽고 무질서한 상황에서 인간의 장점이 발휘되고 새로운 창의적인 것들이 나올 수 있다는 역설적인 메시지를 담은 책입니다.

 

동시에 여러 책을 읽으실 것 같은데요. 다른 책들은 어땠나요?


얼마 전까지 ‘오리진’이 고전강독을 하면서 이태수 교수 지도로 『오디세이아』를 완독했는데, 그것과 관련해서 읽은 『지금, 호메로스를 읽어야 하는 이유』라는 책도 참 좋았어요. 글과 책 읽기에 관한 에세이인 조르조 아감벤의 『불과 글』, 테리 이글턴의 『삶의 의미』, 로제 그르니에의 『책의 맛』도 아주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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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미래, 문학은 소멸할까?


‘오리진’은 모바일이라는 새로운 플랫폼을 활용해서 독서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데요. 미래에 우리가 책을 향유하는 방식은 어떻게 변할 거라고 보세요?


콘텐츠의 소비도 커뮤니케이션 툴의 변화를 따라가겠죠. 무언가 단일한 것에 의해 지배가 되거나 대체되기보다는 점점 다원화하고 서로 연결성이 강화되는 쪽으로 갈 거예요. 그렇더라도 거기에 큰 줄기(메인)가 있고 곁가지가 있을 텐데, 메인은 디지털일 겁니다. 이미 우리 일상을 보면 그런 방향을 예고합니다. 콘텐츠 자체도 디지털, 온라인의 형태로 조금 더 효율적으로 쉽고 간편하게 유통이 되겠죠. 책(이라는 용기에 담겼던 콘텐츠)도 그 흐름 속에 당연히 포함이 될 거고요. 그런 매개물이나 매개 방식의 변화가 콘텐츠에도 영향을 줄 겁니다. 바라기로는 그 과정에서 이전까지 좋게 여겨온 책의 콘텐츠적 특성이 소실되지 않고 좀 더 나아지는 방향으로 가면 좋을 텐데, 그렇게 될지는 확신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전망하시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지금 우리 일상의 대부분이 디지털, 온라인으로 넘어갔잖아요. 그 과정에서 읽는 양은 더 늘었다고들 하거든요. 통계적으로도 그렇고. 아무튼 지하철 사람들만 봐도 고개를 숙이고 뭔가를 들여다보고 있잖아요. 문제는 그 텍스트가 책은 아니라는 거죠. 디지털이나 온라인으로 환경이 바뀌었다고 해도 우리가 책이라고 부를 때는 어떤 고유한 특징이 있다고 봐요. 단순화의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지금 맥락에서 말을 하자면, 일정 정도의 길이에 하나의 완결된 이야기를 담고 있는 텍스트라고 할 수 있겠지요. 반면에 우리가 요즘 소셜미디어를 통해 주로 접하는 텍스트들은 파편적인 단문들입니다. 예전에 읽던 책과는 다르다는 거죠. 읽을거리라는 측면에서는 같지만 반대 방향을 향합니다. 쪼개고 분산하고 스쳐 지나가게 하지요. 이런 읽기로 본다면 요즘 우리가 더 효과적이고, 훨씬 빠르게, 양적으로 더 많이 읽는다고 할 수 있어요. 하지만 그건 전통적인 책 읽기와는 딴판이에요. 그 차이가 무엇이냐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고, 경계해야 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해요.

 

바뀐 환경 속에서 책이 살아남기란 쉽지 않을까요?


디지털 환경에 대한 전통적인 책의 1차적 대응이 전자책인데, 전통적인 책 읽기의 장점이 디지털로 구현되거나 더 좋아져서 많이 읽히면 좋겠지요. 지금 상황을 보면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기존 킨들을 넘어서는 전자책의 획기적인 혁신이 없는 한 25%(국내는 이보다 더 낮다) 점유를 넘지 못할 것 같아요. 물론 디지털 환경에서도 더 효과적으로 효율적으로 독서를 해나가는 사람도 있어요. 저도 스마트폰으로 긴 글이나 책을 많이 읽거든요. 언제 어디서나 불러내서 읽는 편리함은 종이책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해외 고급 저널이나 매체의 글들도 지금은 오픈 소스로 돼 있어서 접근성이 굉장히 좋아졌어요. 하지만 문제는 양질의 콘텐츠 소비층이 그만큼 늘어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에요. 큐레이션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새로운 형식의 콘텐츠가 등장해서 그런 걸까요?


책보다 더 눈길을 끄는 게 많아져서 그래요. 책의 미래와 관련해서 이야기를 더 진전시키면, 제가 얼마 전에 인상 깊게 읽은 글이 있어요. 영국의 작가가 쓴 글인데요. 따지고 보면 문장이나 텍스트도 새로운 정보를 얻고 저장하고 전파하는 과정에서 생겼다는 거예요. 그 뒤로 미학적인 완성도가 높아지면서 문학도 출현했고요. 하지만 오늘날의 문명은 서사 형태의 매개 없이도 소통할 수 있는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거죠.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 세대가 이모티콘이나 단문에 익숙한 걸 보면 알 수 있잖아요. 더구나 상시 연결사회가 되면서 점점 긴 서사가 불필요해지는 거예요. 앞으로는 연결된 뇌파로 교신이 될 거라고 할 판이잖아요. 소통 수단이라는 본래 목적이 사라지고 나면 서사에 기대할 것은 오락적 미학적 만족감인데, 그게 익숙한 세대는 계속 이어갈 거예요. 문제는 그 다음 세대도 그럴 거냐는 거죠. 기존의 문학이라는 것도 특정 세대에 한시적인 형식의 예술이나 오락거리가 아닐까, 묻는 거죠.

 

문학이 소외 당하고 소멸한다면 어떤 문제가 나타날까요?


문학과 같은 서사 형태의 산문의 쓰기와 읽기와 멀어지면 인간이 갖고 있는 독자성이나 중요한 능력들도 같이 잃어버리거나 약해질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우려하면서 관련 논의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우리 환경이나 기반이 디지털로 바뀌면서 인간의 자율성이 위협을 받을 수도 있고, 물론 그 반대로 더 증강되는 쪽으로 갈 수도 있겠죠. 후자 쪽이라면 굳이 버틸 필요가 없죠. 더 진일보하기 위한 한시적인 불편함이나 거쳐야 할 난관에 불과하다며 견디면 되겠죠. 하지만 그게 아니라면 더 필사적으로 문제점을 부각시켜야겠죠. 왜냐하면 이걸 잃을 경우에는 우리가 그나마 오랜 시간을 거쳐, 이것도 우주력에 비하면 극히 짧은 종의 역사에 불과하겠지만, 이뤄온 나름의 깨달음의 성과가 사장되거나 위협받는 결과가 될 테니까요. 우리 당대에 그런 방향으로 현저하게 기울게 된다면 그거야 말로 중요한 상실이고 소실이죠. 그런 문제에 대한 탐색의 노력 자체가 문학(글쓰기)이기도 합니다.

 

글을 읽고 쓰는 행위가 인간의 독자성과도 직결되는군요.


그렇기 때문에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옛날에 학적부에 기록하듯이 단순한 취미 생활의 차원이 아니라는 거지요. 다른 것으로도 얼마든지 대체할 수 있는 차원의 항목이 아니에요. 인간성의 운명과 방향과도 관계가 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미 다수는 점점 책을 멀리하는 쪽으로 가고 있으니까 사실은 형세로 보면 굉장히 불리한 형국이죠. 본래 독서가는 어느 사회에서나 소수임을 감안하더라도, 앞으로 더더욱 인류 중에서 책을 읽는 사람은 희한한 소수이거나 희귀한 종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이것이 사회 전반의 양극화와도 같이 간다고 생각합니다. 부의 양극화뿐만 아니라 지력의 양극화도 중요하게 봐야 할 추세입니다. 둘 다 사회 전체로 볼 때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최근에 독자들은 어떤 책을 찾고, 어떤 책을 찾지 않는 것 같으세요?


불안 요인들이 많아서인지 자기 방어적인 게 많아 보여요. 『아프니까 청춘이다』 이후로 그런 경향의 책들이 흐름을 이루는 것 같은데요.『미움받을 용기』도 그렇고요.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정서를 알 수 있어요. 적어도 베스트셀러에 관한 한, 지식 차원의 독서보다는 정서적인 위무나 보상을 책에서 구하는 것 같아요. 상처를 많이 입었고, 그 상처를 다른 데에서 치유할 수 없어서 힘들어 하는 걸 알 수 있어요. 책이 도피처 비슷하게 된 거죠. 책의 제목이나 책 속의 한 문장, 저자가 건네는 말 한마디에 간신히 마음을 추스르고 살아가는 건데, 그런 점에서 굉장히 안타까워요.

 

책에서 위로를 찾는 것이 잘못됐다고 할 수는 없을 거예요. 그렇지만 책을 위로의 도구로만 여기는 데에는 문제가 있겠죠.


위로도 책의 엄연한 역할이기는 하지만, 지식문화 차원에서 책의 본령은 그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굉장히 단단한 여러 가지 것들을 갖고 있어요. 무엇보다 몰랐던 사실과 이야기, 통찰, 감동이 있고 논쟁거리도 있고, 독자에게 도전적인 생각거리도 있고, 정신과 문화를 주도하는 힘이 있어요. 그런데 지금 우리에게 독서라는 건, 독자들에게는 불쾌감을 무릅쓰고라도 좀 극단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일회용 밴드 같은 걸로 자리 잡은 것 아닌가 싶은 거예요.  일회용 밴드라는 건 병의 뿌리나 근원적인 부위에 닿고 치료하는 게 아니라 그냥 겉의 상처를 더 안 쓸리고 덧나지 않게 임시방편으로 막아주는 거잖아요. 그리고 ‘일회용’이니까 오래 가지 않죠. 그래서 수시로 바꿔 붙이는 거죠.

 

최근 들어 독자들은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선호하는 것 같아요.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일회용 밴드는 굉장히 효율적이고 편리해요. 나름의 엄청난 장점이 있지요. 요즘 우리 사회에서 '가성비'라는 말이 유행하는데, 책에서도 가성비를 찾습니다. 뭔가 심란하거나 불안하거나 허전한데, 책을 오래 붙들고 읽을 시간이나 참을성은 할애할 생각은 없고, 그러니까 ‘지금 당장 이런 나의 심사를 조금이나마 달래주기면 하면 되는’ 손쉬운 책을 찾는 거죠. 깊이 들어가려면 그만큼 노력을 해야 하거든요. 독서가 사실 그리 호락호락한 게 아니에요. 시간을 투자해야 하고 누적이 돼야 해요. 불편한 자세며 고독부터 감수해야 돼요. 그 문턱을 넘어서면 굉장히 매혹적인 세계가 기다리고 있지만, 궤도에 들어서기 전까지는 무척 힘든 게 사실이에요. 투자가 필요해요. 시간과 돈, 에너지, 노력을 투자해야 하는 고급한 활동이라는 점을 알았으면 합니다. 하지만 누릴 수 있는 반대 급부는 책값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막대합니다. 뛰어난 사람들이 책을 찾아 읽는 이유입니다.

 


 

 

사피엔스의 미래알랭 드 보통 등저/전병근 역 | 모던아카이브
사피엔스가 신의 자리를 넘보는 지금, 우리 시대 최고의 지성 4인에게 물었다! “다가오는 미래, 인간은 전례 없는 번영을 누릴 것인가?” 알랭 드 보통과 말콤 글래드웰은 반대 팀에, 스티븐 핑커와 매트 리들리는 찬성 팀에 섰다. 『사피엔스의 미래』는 재치와 날 선 공방으로 가득한 세기의 토론 현장으로 독자들을 초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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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라 “오르는 부동산은 언제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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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것, 입는 것 아껴 악착 같이 돈을 모아 내 집을 한 채 마련하는 꿈, 어째서 이 꿈은 어떤 사람들에게만 해당될까. 『나는 마트 대신 부동산에 간다』의 저자 김유라는 그 자신이 세 아이의 엄마이자 가정주부로 8년 전세 생활 동안 쓴맛도 많이 보았었다. 아끼고 아껴 펀드에 투자한 돈 절반을 날리기도 하고 1년 만에 전세가가 8,000만 원이나 올라 쫓기듯 이사를 하기도 했다. 속이 쓰렸던 그는 공부를 시작했다. 온 가족의 도서관 카드를 이용해 한 번에 열 권 씩 책을 빌려다 봤다. 아이를 재우고 밤새 책을 읽었다. 갓난아이를 안고 아파트를 찾아 다녔다. 대전, 아산, 경북, 포항, 세종 등 지역도 가리지 않았다. 그 결과 저자는 종자돈 3천만 원으로 6년 만에 아파트 열 다섯 채를 보유하게 됐다. 그는 “부동산 투자는 최고의 부업”이라고 확신한다. 

 

『나는 마트 대신 부동산에 간다』에서 저자는 부자 노트 쓰는 법과 일과 관리하는 방법부터 공인중개사에게 핵심 정보를 얻어내는 대화법과 모의투자 연습하는 법까지 자신의 노하우를 세세하게 적고 있다. “집은 여자의 영역”이며 그러므로 아파트 투자야말로 “주부에게 가장 적합한 투자처”이라는 저자의 말은 발로 뛰며, 공부하며 얻어 낸 저자의 결론이다. 심리학 책, 육아서, 어느 하나 아파트 투자에 도움되지 않은 것이 없었기에 더 많은 사람들이 공부해서 집 때문에 눈물 짓는 일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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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이 좋아하는 집

 

아파트 투자는 여자가 더 잘 할 수 있다고 하셨어요. 어떤 면이 그런가요?

 

예를 들어 신혼집을 구한다고 생각해볼게요. 여자가 원하지 않는데 남편이 원하는 집을 사지는 않아요. 결정권이 사실은 여자에게 있죠. 이후 아이들 학군이나 유치원 때문에 이사를 갈 때도 그 권유는 거의 여자가 해요. 아파트는 여자들이 주로 모여서 이야기를 많이 하고요. 남자들이 볼 수 없는 것을 여자가 많이 보더라고요.

 

좀 더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주세요.


아주 세심한 부분이죠. 학군이 어떤지, 영어 유치원이나 브랜드 학원, 유기농 매장이 어디에 있는지 등은 남자들은 관심 없잖아요. 여자들은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니까 알아요. 어느 곳의 분위기가 좋다는 것까지 말이에요. 남자들은 집에 와서 잠만 자잖아요. 동네가 어떤지 모르죠. 새 아파트의 경우는 단지 내 커뮤니티 시설도 좋거든요. 그런 것도 여자들을 공략한 것들이죠. 디귿자 주방, 화장실, 이런 것도 여자들은 엄청 예민하거든요. 결국 여자들이 좋아하는 집을 사야 집이 잘 팔리는 거예요. 

 

가정의 주 관리자, 그러니까 선택권이 있는 쪽에 시선을 맞춘다는 말씀인데요. 저자 역시 가사를 주로 돌보는 사람이기 때문에 저자가 마음에 드는 아파트에 투자한다고 하셨죠.


1인, 2인 가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추세예요. 그러나 이들은 집을 사지 않아요. 월세나 전세 등을 선호하지 굳이 집을 살 필요가 없거든요. 계속 이동하니까요. 실제 집을 사는 주체는 학부모예요. 아이가 있는 엄마들이 내 집 마련의 욕구가 커요. 제가 봤을 때는 30대 중후반에서 40대 정도가 집에 대한 구매욕이 굉장히 높아지는 시기예요. 그분들을 대상으로 투자하는 거죠. 저도 똑같으니까 제 마음에 드는 아파트에 투자하는 거고요.

 

재미있는 팁이에요. 아파트 구매 대상의 생애 주기를 염두에 두는 것 말이에요.


부동산 투자 관련해서 부정적인 이야기가 많아요. 그렇다면 부정적인 상황이 되었을 때에도 내 집이 잘 팔리려면 어디에 집을 사야하는 지 생각을 해야죠. 그랬을 때는 바로 실구매자가 사야한다는 거예요. 초등학교가 있는 아파트 같은 곳은 한정적이기 때문에 그런 곳을 중점적으로 봐요. 학교가 있는 지역은 선호층이 탄탄한 것 같아요.

 

공부라는 것이 재미를 느껴야 계속 할 수 있는데 저자는 아파트 투자에 굉장한 재미를 느끼신 것 같더라고요. 투자자로 성장하는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어요.

 

부동산 책을 읽기 전에는 육아서 등을 읽는 것도 좋아했어요. 어떤 책이든 깊이 읽으면 재미있거든요. 한두 번 읽으면 책 내용에 믿음이 안 가죠. 그렇지만 그런 류의 책 백 권을 읽으면 달라요. 백 권의 책에서 공통점을 찾아내는 거거든요. 그런 공통점을 찾아내기 시작하면 공부가 재미있어지죠. 자신감도 생기고요. 경제나 부동산 책도 마찬가지예요. 한두 권 읽었을 때는 이렇게 하면 집을 살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드는데 이런 종류의 책을 여러 권 읽으면 다른 거죠. 제 책 말고도 이 분야 책이 많잖아요. 십 년 전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계속 나올 텐데요. 이런 책을 다 읽다보면 퍼즐이 완성되는 느낌 같은 게 생기면서 재미가 생길 거예요. 그렇게 스스로가 찾아내는 거죠. 

 

투자 자체에 대해서도 흥미를 느껴야 할 텐데요. 아파트 투자에 필요한 자질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꾸준히 끈기 있게 하는 것이죠. 막 시작했는데 잘하는 사람은 없어요. 모든 일이 마찬가지잖아요. 처음에는 서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능숙하고 잘하게 되는 건데요. 독서도 그래요. 처음에 경제서나 부동산 책 읽으면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잖아요. 단어 자체를 모르기 때문에 재미가 없어요. 의심도 들고요. 하지만 그것을 참아야 해요. 버티면서 계속 공부를 하면 어느 순간에는 핵심이 눈에 들어와요. 그 핵심을 나한테 적용시키면 되는 거죠. 저는 수많은 저자들의 장점과 책의 핵심을 제 삶에 적용시키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대단히 특별한 능력이나 자질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거죠.


그런 건 없는 것 같아요. 꾸준히 조금씩 하다보면 돼요. 백 권의 책을 읽으면 백 명의 저자와 내가 마인드가 같아지는 거예요. 어마어마하죠. 외국 저자들까지도 그래요. 로버트 기요사키라든가 그런 해외 투자 전문가들을 통해서도 똑같이 투자의 핵심을 발견할 수 있어요. 중국이든 일본이든 마찬가지죠. 그러니 아무리 부정적인 뉴스가 있더라도 찾아낼 수 있는 거예요.

 

투자 심리라는 게 뉴스에 영향 받지 않을 수가 없잖아요.


돈을 벌지 못한 사람의 얘기는 들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 기자가 집값이 하락한다고 얘기를 해요. 저는 그 기자가 과연 집값이 상승했을 때 돈을 얼마나 벌었는지 묻고 싶어요. 금리가 올라서 부동산 가격이 떨어진다면 금리가 떨어졌을 때는 돈을 벌었어야 맞는 거잖아요. 그때도 아무것도 안 하고 지금도 아무것도 안 하면서 말만 하는 사람들의 얘기는 사실 믿을 게 못 돼요. 특히 옆집 사람, 부모님(웃음)이 그렇죠. 돈 못 벌었잖아요. 저는 돈 번 사람 얘기를 듣고 싶고요.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는 옆집에도 없고 뉴스에도 안 나오죠. 이런 책에만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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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률적으로 보면 안 돼


일종의 투자 비법인데 구체적인 이야기를 책으로 써서 알린 이유가 뭘까요?


전세를 8년을 살았어요. 이 책을 읽었다면 제가 전세를 8년 살지는 않았을 거예요. 이 책을 읽은 분은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겠죠. 그런데 이런 책을 모르고 평생을 살면 잘못된 선택을 하게 돼요. 집을 사지 말아야 할 때 사거나 팔지 말아야 할 때 파는 거죠. 그것 때문에 책을 냈어요. 누군가는 이 책을 볼 테니까요.

 

그리고 책을 보는 분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역시?


시스템이 사실은 너무 간단하다는 거예요. 지금도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 되었죠. 우리나라는 시국이 어수선하고요. 금리는 오른다고 하고, 수도권에 2017-2018년 사이에 입주 물량 폭탄이 떨어진다고 해요. 이런 상황에서 내 집 마련에 용기 있게 도전하기 쉽지 않죠. 특히 신혼부부나 이제 용기 있게 집을 사려는 사람들한테는 이 순간이 엄청 두려울 거예요. 지금 집을 사면 폭락할 것 같으니까요. 그렇지만 모든 부동산을 일률적으로 보면 안 돼요. 어떤 건 오를 수 있고 어떤 건 떨어질 수 있고 어떤 건 보합일 수 있어요. 그걸 판단하는 눈을 키워야지 뉴스 말만 듣고 팔아버리고 오른다고 해서 사버리고 그러면 안 되죠.

 

알아야 흔들리거나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씀이군요.

 
불과 올해 초만 해도 뉴스에서 내년에 부동산이 오른다고 했었거든요. 기사 찾아보면 나와요. 그래서 어떤 사람은 몇 달 전에 비싸게 샀어요. 그런데 지금 또 위기라고 해요. 왜 이렇게 전망이 달라질까요? 이게 말이 안 된다고 보는 거예요. 결국 수요와 공급 문제거든요. 아파트는 금방 공급이 안 돼요. 오늘 짓겠다고 하면 2년 6개월이 걸려요. 수요와 공급이 정해져있는데 이걸 다 무시하고 금리, 정책, 이런 이슈로 상승이니 하락이니 말하죠. 투자를 해보지 않은 사람이 떠들어 대고 그걸 일반 사람들은 그대로 믿는 거예요. 저는 그래서 뉴스를 안 봐요. 신빙성이 없으니까요.

 

그렇다면 저자는 투자 정보를 어디서 얻으세요?


사실만 봐요. 현재 기준금리가 얼마인지만 보죠.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올렸는지 낮췄는지 어떻게 할 예정인지 보는 거예요. 미국 금리가 어떤지 보고요. 사실 예정은 중요하지 않고 정확한 시점과 날짜가 중요해요. 저는 그 사실만 보고 누가 해석한 건 믿지 않아요. 제가 해석한 것만 믿어요.


뉴스의 안 좋은 점은 전체를 말하면 안 되는데 전체를 이야기하는 거예요. 이런 거죠. 뉴스에서 평균 급여가 몇% 올랐다고 하는데 실제 내 주변에는 급여가 오른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 경기가 어렵다고 하지만 이 순간에도 좋은 사람은 분명히 있죠. 경기가 너무 좋아도 주변에 먹고 살기 힘든 사람은 너무 많고요. 그러니까 이런 종합적인 얘기에 너무 귀 기울일 필요는 없다는 거예요.

 

부동산을 일률적으로 보면 안 된다는 말이 핵심이겠네요.


물론 부동산은 오른다고 할 때는 다 올라요. 안 좋은 것도 오르죠. 그렇지만 안 오른다고 할 때는 좋은 것만 올라요. 그것만 보시면 돼요. 오르는 건 늘 존재해요. 강남은 떨어지지 않잖아요. 누구든지 가고 싶어 하는 지역은 안 떨어진다는 간단한 이야기예요.

 

기준금리 외에 저자가 지켜보는 요소들이라면 또 뭐가 있나요?


대출규제도 봐요. 이것이 어디에 영향을 미칠지는 내가 판단해야 해요. 그런데 이것도 입장을 바꿔서 생각하면 돼요. 정부에서 대출 금리를 1% 올린다고 했을 때 이집에 살지 않고 다른 동네로 갈 것인가,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거죠. 3억 짜리 집을 2억 대출 받아 살 예정인데 3%인 대출 금리가 4%가 오른다, 그러면 나는 다른 집을 택할 것인가 질문해보세요. 어떨 것 같으세요? 1% 오른다고 안 갈 것 같죠? 이게 답이에요. 내가 좋은 지역에 살고 있으면 1-2% 올랐다고 움직이지 않아요. 아이들 학교 잘 다니고 있는데 집 팔고 어디로 가는 일은 없어요. 그런 거예요.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위기론이 워낙 많잖아요. 저자는 여기에 어떤 대책을 갖고 있는지 궁금했어요.

 
그런 건 있어요. 투기 수요가 억제되죠. 대출을 잔뜩 받아서 뭔가 하려는 사람에게는 두려운 상황이죠. 그런데요, 기준금리가 오르면 사실 기업이 제일 위험해요. 금리 1%-2%면 우리는 한 달 이자 몇 십만 원 왔다 갔다 하는 거지만 기업은 몇 백 억에서 몇 천 억이 왔다 갔다 하죠. 금리가 오르면 기업이 훨씬 어렵기 때문에 금리 올리기 쉽지가 않아요.


물론 심리적으로 주춤하는 부분은 있겠죠. 하지만 정부가 내버려두지 않을 거예요. 일단 기업이 어려울 거고, 가계도 부동산이 하락하면 소비가 위축돼요. 그럼 경기가 마비되는 거예요. 소비자는 지출을 줄이고, 회사는 상품을 팔지 못하고, 투자도 못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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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의투자를 많이 하라


2010년부터 꾸준히 투자를 하고 있는데 매일 실천하는 규칙이 있나요?


자기 전에 다음날 일정을 확정해요. 몇 시에 일어나 몇 시까지 화장을 하고 몇 시 차를 타고 어디를 간다, 이런 식으로 아주 구체적으로 짜죠. 자기 전에 매일 해요. 이동하는 시간까지 다 계산하는 건데요. 이러면 하루에 많은 일을 할 수 있어요. 집에 있는 날도 마찬가지예요. 저는 밥하고 설거지 하는 시간도 쓰여 있어요. 그렇게 하면 계획한 일을 다 할 수 있거든요. 2013년부터는 매일 그렇게 하고 있어요.

 

사실 투자처 관리에 일정이 있는 게 아니라 수시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관리를 확실히 안 하면 어렵겠네요.


계약서를 쓰는 날도 있고, 집을 파는 날도 있고, 소개하는 날도 있고 하니까요. 강의도 해야 하고, 집안일도 많거든요. 쪼개서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지 않으면 일이 쌓여요.

 

부자 노트를 써왔다고 했는데 그것이 흥미롭더라고요.


지금 이야기 한 것들이 다 부자 노트에 썼던 것들이에요. 공부를 하면서 뉴스를 볼 때 노트에 사실만 적었어요. 예를 들어 ‘가계부채 사상최대, 몇 조’ 이게 끝이에요. 거기에 대한 기자의 말은 빼고 나의 생각을 적는 거죠. 외환보유고가 IMF 때는 얼마였고, 지금은 얼마인지 수치를 봤죠. 그런 다음 정부의 부채는 몇 배가 늘어났는지 비교하는 거예요. 기업부채도 비교해요. 종합적으로 비교해서 과연 가계부채가 과다한 것인가를 내가 판단하는 거죠. 이런 것들을 부자 노트에 다 적는 거예요. 지금도 적고 있어요.

 

그것 자체가 누적되면 큰 나만의 자산이 되겠네요.


그렇죠. 어느 때에 집을 사면 안 된다고 하잖아요. 그걸 적어두었다가 시간이 지났을 때 다시 꺼내 보는 거예요. 어떤 일이 있어도 아무 상관없이 이 아파트는 올랐구나, 하는 경우가 보일 거라는 거죠. 우리나라가 위기가 아닌 적도, 경기가 좋았던 적도 없어요.(웃음) IMF 이후로 경기가 좋다는 걸 느껴본 적이 없잖아요. 월급이 언제 많아서 집을 빨리 살 수 있었나요. 부모님한테 물어도 똑같아요.

 

처음 아파트 투자를 시작했을 때와 지금 시장 상황은 어떻게 다른가요?


지금은 부동산 책도 내고 강의를 하시는 분이 많이 늘었어요. 수도권의 상승기가 왔기 때문이고, 부산과 대구 등 지방의 가격 상승이 있었기 때문인데요. 2010년은 부동산 침체가 너무 심했거든요. 그때는 집을 사야겠다는 생각 자체가 없던 시절이에요. 그때는 『선대인, 미친 부동산을 말하다』같은 책이 유행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시장이 이미 꽤 상승한 상황이라 투자하기에 좋은 타이밍이라고 말하긴 어렵네요.

 

이제 막 아파트 투자에 관심을 가진 분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으세요?


모의투자를 많이 하라고 권유하고 싶어요. 투자는 경험이 많아야 잘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돈이 없잖아요. 대개는 투자 경험을 절대 많이 할 수 없어요. 그러니까 가짜로 투자하는 거예요. 강남 재건축 아파트를 몇 월 며칠에 얼마에 샀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적어두는 거예요. 그리고 입주할 때의 매매가나 전세가를 적어요. 노트에 적어둔 것을 1-2년 후에 다시 보는 거죠. 어떤 건 오르고, 어떤 건 안 올랐겠죠. 오른 건 오른 이유가, 생각보다 더 오른 건 더 오른 이유가 있어요. 그걸 자신이 찾아내는 거죠. 이것이 다음 나의 투자에 어마어마한 도움이 되는 거예요. 제게는 모의투자가 도움이 많이 됐어요. 중요한 것은 처음 시세를 잘 적어놓아야 한다는 거예요. 그래야 분석하기 편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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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권 정도는 읽고 투자하


물건마다 목표 매도 시기와 기대 수익을 투자하기 전에 정해놓고 꼭 지킨다고 했거든요. 이유가 뭔가요?


얼마가 되면, 언제가 되면 꼭 팔아야겠다는 걸 정해놓고 반드시 지키는데요. 입주 물량 때문에 그래요. 주변에 신규로 아파트가 공급이 되면 오래된 아파트는 당연히 가격 상승이 멈추죠. 신규 아파트로 이사를 가니까요. 그렇다면 내가 팔 때 살 사람보다 팔 사람이 많은 시점이 되어버려요. 그 시점이 되기 전에 팔아야죠. 예상보다 많이 오르지 않았더라도 어쩔 수 없어요.

 

그 시점은 어떻게 확인해요?


예측이 돼요. ‘부동산 114’ 같은 곳을 보면 전국의 입주하는 아파트가 다 확인 되거든요. 공공 분양, 국민 임대 등 다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그걸 먼저 보는 거죠.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부동산에 갔을 때 해야 할 말, 하지 않아야 할 말까지 아주 세세하게 적어놓았다는 점이에요. 의외로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의외로 초보자 분들이 그걸 못해요. 그냥 생활에 대한 이야기 나누면 되거든요. 강남 가는 M버스는 어디에 있는지, 유치원은 어디가 좋은지, 그런 걸 물어보면 되잖아요. 또 너무 자신의 조건을 다 알려주는데 그러면 돈을 못 벌어요. 예를 들어 저는 아들 셋이에요, 하고 1층을 보러 가잖아요? 그러면 1층 주인이 집을 싸게 주지 않겠죠. 1층은 매물이 귀하거든요. 아들이 셋이라는 사실을 말하는 순간 집값은 못 깎는다고 보면 돼요. 그렇게 패를 다 보여주면 협상이 안 되는 거죠. 저도 초보 때 집을 보러가서는 너무 좋아서 박수를 쳤어요. 리모델링 잘된 집 보면 기분 좋잖아요. 화장실도 깨끗하고, 싱크대도 브랜드고요. 그러나 박수를 치는 순간 못 깎아요. 심지어 집주인이 금액을 올려버리기도 하죠.

 

선한 부자라는 이름의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데 이건 어떤 의미예요? 한국 사회에서 부자는 긍정적 이미지가 아닌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부에 대한 인식을 긍정적으로 바꿔야 돈이 들어온다고 생각해요. 돈에는 선과 악이 없거든요. 돈을 악하다고 생각하면 평생 가난하게 살아요. 악하다고 생각해서 추구하지 않기 때문이죠. 그러나 가난하게 사는 게 착한 것도, 부자로 사는 게 악한 것도 아니에요. 아쉽죠. 저는 우리나라 모든 국민들이 부자가 선하다고 생각하는 순간 국가적, 세계적으로 부강해진다고 생각해요. 부에 대한 인식이 좋아지길 바라는 마음이 있어요.


살면서 느낀 건데 어렸을 때 읽었던 동화책 이야기가 다 맞더라고요. 『흥부와 놀부』에서도 결국 흥부는 복을 받잖아요. 인생도 그렇게 돌아가는 것 같아요. 나쁜 짓을 하면 언젠가는 밝혀져요. 결말이 좋을 수가 없어요. 아이들에게도 저는 철저하게 교육시켜요. 개미 밟아죽이지 말라고요. 개미를 죽이지 못하는 아이는 사람을 해치지 못할 테니까요. 기본이에요.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으세요?


이 책 한 권을 읽고 부동산 투자를 잘하겠다고 생각하고 투자하면 안 돼요. 그건 욕심이 과한 거예요. 적어도 백 권 정도는 읽고 투자해야 해요. 내 인생을 위해 그 정도의 노력은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만 책을 볼 때는 한 분야의 책을 집중해서 봐야 해요. 그것만 보세요. 그 분야의 책을 많이 보면 나중에 다 이해가 되거든요. 그 정도 수준까지 공부를 하시고 재테크를 하시면 좋겠어요.


 

 

나는 마트 대신 부동산에 간다김유라 저 | 한국경제신문사(한경비피)
서른넷의 전업주부, 드라마에 빠져 지내며 경제에는 담 쌓고 살았던 과거? 그랬던 그녀가 어떻게 종잣돈 3천만 원으로 아파트 15채를 보유하며 성공적인 투자자로 변신할 수 있었을까? 이 책에는 평범한 주부가 돈의 본질을 공부하고 실천하며 점차 부자가 되어가는 과정이 한 편의 성장 드라마처럼 펼쳐진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정재엽 “회사가 부도난 후, 나는 벌레가 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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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산한 마당에 문학이 다 뭐냐”고 사람들은 그를 힐난했다. 책으로 향하던 시선을 거둬 현실을 바라보면 수많은 문제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가족들과 함께 일구어 온 회사는 부도를 맞았고, 집은 경매로 넘어갔다. 매일 같이 채권자들이 찾아와 분노를 쏟아냈다. 밀린 월급과 함께 일터를 잃게 된 직원들은 하나 둘 곁을 떠나갔다. 오랫동안 마음을 나눈 친구조차 멀어져 갔다. 급기야 경영 책임자인 아버지가 구속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어쩌다 이런 지경에 이르렀을까, 공허한 질문을 품게 됐다. 어떻게 하면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막연한 두려움도 덮쳐왔다. 그럴수록 그는 책을 파고들었다.

 

한 때 그는 스스로가 상위 1퍼센트에 속한다고 생각했다. 중소 제약회사를 운영하는 아버지는 강남에 100억 원 상당의 사옥을 소유한 건물주였다. 소위 말하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그는 강남 8학군에서 초중고를 다녔고, 국내 명문 사립대를 졸업한 후 뉴욕대학교에서 의료경영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러나 “망한 집안의 자손”으로 전락하는 것은 한 순간이었다. 회사는 약속어음 수억 원을 결제하지 못해 부도를 맞았고, 그는 아버지 대신 회생 관리인이 되었다.

 

법원으로 출근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관련 법 조항과 판례만 살펴보기에도 모자란 시간에, 그는 늘 품속에서 책을 꺼내 들었다. 프란츠 카프카의 『변신』,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이혜인의 『희망은 깨어있네』, 위다의 『플랜더스의 개』, 루이자 메이 올콧의 『작은 아씨들』... 열아홉 권의 책들이 그의 곁을 지켰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일”에 시간을 낭비한다고, 현실로부터 도피하는 거라고, 누군가는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책에 기댄 덕분에 자신을 지켜낼 수 있었다고 말한다. 책을 읽는 동안에는 잠시 숨통이 트였다. 그 속에는 절망의 순간을 버티는 수많은 인물들이 있었고, 그들과 만나고 나면 ‘이런 일쯤은 견딜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책을 읽으며 위안과 위로를 얻었고, ‘네가 받은 것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주어야 한다’는 속삭임을 들었다.

 

결국 회사는 성공적으로 회생 절차를 마무리 지었다. 아버지는 올 여름 광복절 특사로 석방되었고, 그와 함께 의약품과 의료기기를 수입하는 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돌아보면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 절망적인 순간이었다. 하지만 희망이 잠들어 있던 시간이기도 했다. 이 녹록지 않은 ‘수업’을 들으며 값진 졸업장을 거머쥔 주인공 정재엽 씨는 최근 『파산수업』이라는 이름의 책을 출간했다. 그의 진솔한 경험을 녹여낸 이야기에는 ‘무너진 우리를 다시 세우는 문학의 힘’이라는 부제가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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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가 부도난 후, 나는 벌레가 되고 싶었다


집필을 결심하신 순간은 언제였나요? 회사가 법정 관리에 들어갈 때였나요?

 

아뇨, 그때는 책을 쓸 생각을 안 했어요. 법정 관리에 들어가면 정말 정신이 없거든요. 회사가 M&A가 되고 법정 관리가 종결됐을 때 판사님과 차를 마실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판사님께서 ‘나중에 책 한 권 쓰셔야겠어요, 너무 드라마틱한 이야기잖아요’ 하시더라고요. 저희가 처음 기업회생을 신청했을 때 기각결정이 났고, 이후에 회생 절차를 밟아서 과정을 끝마친 거거든요. 그 전에는 아버지가 구속되셨고, 누님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셔서 암 판정을 받으셨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까 그런 어려움들을 잊고 있더라고요. 정확히 말씀드리면 잊고 싶었던 거예요. 너무 괴로운 기억이니까요. 어느 순간 그러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어요. 그래서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파산수업』에 담긴 건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다른 분들에게도 의미가 있는 이야기인 것 같아요.


저의 개인적인 기록이지만, 이 이야기가 사회적인 틀 안에서 도움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첫 번째로는,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르는 분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저도 처음에 문제가 닥쳤을 때 너무 당혹스러웠거든요. 가장 두려운 건 미래가 안 보이는 거예요. 대책이 안 보이는 데에서 공포감을 느끼는 거죠. 그 공포 때문에 현실을 잊고 싶은 거고요. 그래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시는데, 저 또한 그랬어요. 그리고 갑자기 문제들이 생기니까 가족 간의 분열이 일어나더라고요. 그런 상황을 겪고 계신 분들에게 도움을 드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파산에 직면하신 분들에게도 도움이 되겠죠?


저희 같은 중소기업 중에는 법정 관리에 들어가는 경우가 적지 않아요. 그런데 끝까지 과정을 마쳐서 종결을 받는 경우는 별로 없거든요. 그래서 저희의 경험을 경제학적인 혹은 사회 현상 안에서의 예시로 제시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어요.

 

언급하셨던 것처럼, 파산 상황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떠올리시는 분들도 계신데요. 저자님께서는 책을 찾으셨어요. 이유가 있었나요?


정말 죽고 싶다는 생각도 했었죠. 저도 마포대교에 갔었어요. 그런데 그런 선택을 하지 않은 데에는 학습의 영향도 있었던 것 같아요. 종교가 있으니까 이러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생명은 소중하다는 게 도덕책에 나오는 이야기 같지만, 저를 막아주는 방어 기제가 됐던 것도 사실이에요. 그리고 당장 해결해야 될 일들이 많았어요. 저는 33건의 민ㆍ형사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매일 법원에 출두해야 했어요. 해결해야 되는 일들은 많은데 숨을 못 쉬겠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저만의 시간도 필요했던 거죠. 그러지 않으면 정신을 차리고 있기가 힘드니까요.

 

책을 읽고 나면 숨 고르기가 되시던가요?


잠깐씩 시간이 날 때마다 책을 읽었는데요. 책에 빠져 있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오면 머리가 개운해지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렇다 보니까 어려운 상황에서도 바로 집중할 수 있는 패턴을 찾게 됐어요. 처음에는 비참한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서 책을 찾았다고 볼 수도 있어요. 일탈로 생각했던 부분도 있었죠. 그런데 그때 저한테는 그런 일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현실 감각이 떨어지는 걸 수도 있어요. 그런데 현실에서 약간 떨어져 있는 그 행위 자체가 현실을 견딜 수 있는 방어막이 된 것 같아요. 너무 현실에 빠져 들면 비참하고 괴로운 마음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될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한 발짝 떨어져 있어 보니까 진전이 없더라도 하루하루를 견딜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회사가 부도났을 때 카프카의 『변신』을 읽으셨다고요.


소설을 보면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가 벌레로 변해버리잖아요. 저는 부도가 난 다음날 정말 벌레가 되고 싶었어요. ‘벌레가 돼서 죽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할 만큼 하늘이 무너지는 상황이었죠. 그런데 벌레가 될 수는 없으니까, 거기에서 깊은 절망감을 느꼈어요. 그러다 보니까 지금 현실에서 느끼는 절망감은 약간 괜찮다고 느껴지는 거예요. 처음에는 주인공에게 동질감을 느꼈지만 그게 위안이 된 거죠.

 

더 절망적인 상황에 놓인 인물을 만났을 때에도 위안을 얻으셨을 것 같아요. 어떠셨어요?


소설의 주인공들 중에는 저보다 더 견딜 수 없는 일을 겪는 사람들도 있었죠. 예를 들면 에밀 아자르의 『자기 앞의 생』에서 모모라는 아이는 로자 아주머니가 죽었을 때 지하 벙커로 숨기잖아요.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화장을 해주고 향수를 뿌려주죠. 결국에는 시체가 썩는 냄새 때문에 경찰이 들이닥쳐서 알게 되고요. 그 작품을 읽으면서 ‘그래도 나는 모모보다는 낫다’는 생각도 들었어요(웃음). 그걸 좋게 말하면 위안인데, 어떻게 보면 위안이라기보다는 일차원적인 우월의식이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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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시」가 알려준 ‘부끄럽지 않은 일’


『소망 없는 불행』은 가슴을 졸이면서 읽으셨을 것 같아요. 페터 한트케가 자신의 어머니가 자살한 이후에 쓴 산문이잖아요.


저는 그 소설을 읽으면서 어머니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실까 봐 공포감을 느꼈어요. 저희 집이 경매에 넘어갔기 때문에 어머니가 너무 절망하실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다행히도 그런 일은 없었지만, 『소망 없는 불행』을 읽으면서 어머니가 자살하셨을 때 아들이 느끼는 뼈 깊은 절망감을 대리적으로 느끼게 됐죠. 그러고 나서 현실로 다시 돌아왔을 때는 감사한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래도 우리 엄마는 씩씩하게 계시잖아’라는 생각이 드는 거죠. 이후에 저희 아버지가 갑자기 구속이 되셨을 때 어머니가 또 한 번 절망을 하셨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으셨으니까 너무 감사했어요. 그때 느꼈던 감정을 안도감이라고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한 권의 책도 여러 번 반복해서 읽으시는 것 같더라고요. 당시 읽으셨던 책들은 이전과는 분명히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을 것 같아요.


너무 다르죠.

 

그 중에서도 특히 인상적이었던 작품이 있었나요?


『데미안』이요. 책에서는 모테의 「루앙 대성당」과 ‘푸가’라는 음악의 형식에 빗대서 썼어요. 「루앙 대성당」은 같은 성당을 두고 각기 다른 순간에 본 모습을 담은 작품이잖아요. 푸가는 화성의 반복과 변화를 통해서 점점 발전해 가는 거고요. 저에게는 『데미안』이 그런 것 같아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여러 번 읽었는데, 읽을 때마다 다르게 느껴졌거든요. 사춘기 때는 데미안과 싱클레어의 우정에 조금 더 집중했다면, 대학생 때는 에바 부인을 통해서 자아실현의 의미를 생각하면서 읽은 것 같아요. 그리고 이번에 회생 절차를 밟으면서 읽었을 때는 또 달랐어요. 매번 알을 깨고 나가는 다음 관문으로써의 완결성을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이유가 있었을까요?


저는 이 회생 절차를 마쳐야만 하잖아요. 극복해야만 하잖아요. 그런데 데미안도 성인으로 나아갔을 때 자신이 가지고 있었던 어려움이나 외로움이 어느 정도 채워져야 되거든요. 그래야 다음으로 잘 넘어갈 수 있죠. 그것들이 채워지지 않은 상태에서 넘어가게 되면 그 공간은 그대로 남아있는 거예요. 그만큼 완전한 인간상이 되는 건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회생의 기간 동안, 굉장히 어렵지만, 일단은 저한테 주어진 완전한 부분은 다 채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윤동주의 시를 떠올리신 순간도 있었잖아요. 그 계기가 된 사건을 보면서 참 마음이 아팠어요.


채권자 중 한 사람이 있었는데, 회사가 부도나기 전에는 저희 거래처였어요. 저랑 나이가 거의 비슷했는데, 제가 처벌불원서에 서명을 받기 위해서 찾아갔었죠. 아버지가 구속되지 않게 하려면 당연히 해야 되는 일이었거든요. 그런데 그 친구가 ‘이렇게 처벌불원서 받으러 다니는 거 부끄럽지 않니?’라고 하는 거예요. 그 순간 저는 ‘이게 부끄러운 건가? 이게 부끄러운 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그 날 「서시」를 생각하셨죠.


우연히 생각이 나더라고요.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 나는 괴로워했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마지막에는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 걸어가야겠다”고 이야기하거든요. 그 날 저녁에 소주를 한 잔 마시고 나서 상상이 되더라고요. 그때 윤동주가 부끄러워했던 건 일본에서 한국어를 쓰기 때문이었거든요. 그건 본인의 선택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자신은 한국어로 시를 쓰기 때문에 하늘을 우러러 부끄럼이 없다고 한 거예요. 그때의 저도, 다른 사람은 부끄러운 짓을 한다고 봤지만, 저 자신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는 말이 너무 감동적이었어요.

 

예전과는 다른 의미로 기억됐겠네요.


평소에 읽었던 시가 정말 다른 의미로 다가온 거죠. 부끄러워졌던 마음이 조금 누그러지면서 ‘나는 부끄러운 일 하는 거 아니야, 윤동주처럼 나한테 주어진 길을 가자’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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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힘들었던 건 ‘배신감’


자금 부족과 빚 때문에 많이 힘드셨겠지만, 가장 견디기 힘든 건 사람에게 받는 상처였을 것 같아요.


그게 제일 힘들었죠. 그래서 책을 봤던 것 같기도 해요. 책 읽기는 일방적인 커뮤니케이션이니까, 저를 100% 믿어주고 제가 해석하는 대로 따라오잖아요. 그래서 책이라는 사람들과 소통하게 되면 적어도 배신은 안 당한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사람에게 느꼈던 배신감이 제일 힘들었던 것 같거든요. 이성적으로는 빚을 갚는 상황을 감당하기 힘들었고, 그래도 방법이 있을 거라는 믿음이 약간 있었어요. 그런데 감정적으로는 사람에게서 오는 배신감이 제일 컸던 것 같아요.

 

이제는 상처가 다 아물었을까요?


나중에 시간이 조금 지난 다음에는 ‘그들이 그럴 수밖에 없었구나’라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그래도 조금의 서운함은 있죠. 그런데 서운한 걸 생각할수록 저만 괴롭더라고요. 약간 흙을 덮고 가는 것도 지혜로운 방식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처음에는 그런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일탈을 위해서 책을 본 측면도 있었던 것 같고요.

 

그런 순간에 책은 어떤 말을 들려주던가요? ‘그래도 사람이 희망’이라고 말하던가요? 아니면 ‘본래 삶이란 홀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알려주던가요?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사람이 희망이라는 말은 안 했던 것 같아요(웃음). 그때 저는 너무 무서울 정도로 배신감 아닌 배신감을 느끼는 상황이었거든요. 사실은 ‘이 상황들의 모든 원인은 너인데, 네가 위안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오히려 그들에게 위안을 줘야 하지 않느냐’ 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어차피 저는 책에서 위안을 받으니까, 채권자들한테 진심으로 사과하고 위로해줘야 한다고 생각한 거예요. 겉으로 보이는 행동은 그들이 가해자인 것 같지만, 사실은 저희로 인해서 피해를 입은 거거든요. 그런데 저는 피상적으로만 판단했던 거고, 이면을 보면 정말 위로 받아야 될 사람은 그들이잖아요. 그렇게 생각하니까 정말 솔직한 태도를 취할 수 있었어요. 그게 저한테도 굉장히 많은 도움이 됐고요.

 

기업회생 절차를 끝마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아마도 그러한 ‘진심’ 때문에 상황을 극적으로 반전시킨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것도 도움은 됐겠죠. 왜냐하면 정말 속이려고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말씀드렸으니까, 그런 행위들이 신뢰감을 줬을 거예요. ‘돈은 없지만 열심히 하려고 하는구나’라는 느낌을 준 거죠. 그래서 나중에는 채권자들의 동의를 얻어서 회생 절차를 마무리 지을 수 있었어요. 그리고 저희는 상장회사에 M&A가 된 경우였는데, 그 과정에서도 회사의 가치를 산정하는 방식을 두고 컨설턴트나 회계사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거든요. (회사를) 비싸게 팔기 위해서 가치를 부풀리는 경우들도 많아요. 그런데 저희는 기업회생 과정에 있었고, 다른 옵션들이 없었기 때문에 가치 산정에 있어서 정말 솔직하게 이야기했어요. 그 점이 인수자 측에 굉장한 신뢰감을 줬다고 하더라고요.

 

현재는 의약품 수입업체를 운영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M&A 이후의 상황은 어떻게 진행됐나요?


지금은 3명의 직원들과 함께 의약품 수출입 회사를 운영하고 있고요. 아버지께서 작년에 구속이 되셨다가 올해 광복절 특사로 나오셨어요. 사실은 그 일 때문에 굉장히 바빴어요. 어떻게 보면 후속 조치죠. 기업회생은 끝났지만 일신상의 변화들을 수습해야 했기 때문에 바쁘게 지냈어요. 동시에 책 출간 준비도 하면서 회사도 이끌어 나가야 하는 상황이었고요. 지금은, 회사 운영도 중요하지만, 저희들의 경험을 가지고 파산에 직면한 회사나 회생 신청을 앞두고 고민하는 회사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요. 그래서 한국경영총연합회에서 파산관리인 수업을 이수하기도 했고요. 의약품 수출입도 좋지만, 제가 실질적으로 경험한 것들로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괴로움과 같이 걷는 법을 배웠어요


위기와 절망의 순간을 버텨내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유치하고 진부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자신에 대한 믿음과 희망이 중요한 것 같아요. 결과는 잘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고,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지만, 이 순간을 지나는 자세와 태도만큼은 최선을 다할 수 있잖아요. 그렇게 주어진 숙제에 따른 걸 충실히 해 내면 결국에는 선한 방향으로 갈 거라고 생각해요. 그 생각이 곧 자신에 대한 믿음이었던 것 같아요. 그게 정말 중요해요. 왜냐하면 갑자기 위기의 순간에 놓이면 자존감이 떨어지거든요. 내가 왜 이런 대우를 받아야 되지, 하는 생각이 들면서 자존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어떻게 보면 정신적인 파산이죠. 외부에서 오는 정신적인 파산이거든요.

 

주변에서 나를 믿고 지지해 주는 사람을 찾기가 힘들겠군요.


내가 나 자신을 믿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해주지 않아요. 아무도 ‘넌 해낼 수 있어’라고 이야기하지 않거든요. ‘그 사람들 끝났어,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 돈을 받아내야 돼’라는 식이죠. 그러면 나는 누가 지키나요? 내가 지켜야죠. 그래서 자기 자신에 대한 보호막이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제 경우에는 그 보호막이 책이었던 것 같고요. 자기 자신을 믿고 ‘단기적으로 결과가 안 나와도 좋으니까 해 봐, 결국 너는 잘 될 거야’라고 생각해야 돼요.

 

삶에서 어려운 순간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잖아요. 힘들 때마다 떠올리는 책이 있으세요?


어떤 순간이냐에 따라 조금씩 다른 것 같기는 한데요. 예를 들면, 아버지가 구속되시고 나서 첫 번째 편지를 보내주셨을 때 떠올렸던 책은 『작은 아씨들』이었어요. 작품 속에서 첫 번째 크리스마스 때 남북전쟁에 참여한 자매들의 아버지가 편지를 보내거든요. 그 장면이 떠오르더라고요. 그 이후에도 계속 아버지의 절절한 편지를 받으면서 정약용의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를 떠올리기도 했어요. 법이 가지는 치명적인 약점에 대해 생각할 때는 찰스 디킨스의 『황폐한 집』을, 그리고 누님이 항암 치료를 받으실 때는 이혜인 수녀님의 『희망은 깨어있네』『필 때도 질 때도 동백꽃처럼』을 생각했어요.

 

책의 제목이 『파산수업』입니다. 파산이라는 ‘수업’이 남겨준 것은 무엇일까요?


‘괴로움을 맞이하는 법’ 같아요. 괴로움을 극복하는 법은 아니고요. 괴로움을 맞이해서 같이 가는 법을 알려준 것 같아요. 괴로움이 왔을 때 피하지 않고 같이 가는 맷집이라고 할까요. ‘(괴로움은) 피할 대상은 아니고 같이 갈 정도는 되겠다’고 생각하는 정도예요. 그게 수업이 준 가장 큰 교훈이겠죠. 그런데 괴로움을 그냥 맞이하는 게 아니라, 저는 책을 가지고 있으면 괴로움을 걸어둔 것 같아요.

 

독자들 중에는 예전의 저자님처럼 힘든 시기를 버티고 계신 분들도 있을 거예요. 그 분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한 마디가 있으세요?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반드시 책이 아니어도 좋다는 거예요.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기 위해서라면 무얼 해도 된다는 거죠. 제 경우에는 그게 책이었지만, 굳이 책일 필요는 없어요. 춤도 괜찮고, 음악도 괜찮고, 수다도 괜찮고, 뭐든 괜찮아요. 그것이 무엇이든, 선한 도구이기만 하다면, 자신의 방식대로 방어막으로 삼을 수 있는 것이 꼭 있어야 될 거 같아요. 그렇지 않으면 방황을 하게 되고 앞이 보이지 않거든요. 어두운 밤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면 보통 주저앉아요. 그러면 안 돼요. 오히려 더 어둠 속으로 들어가야 돼요. 그러다 보면, 헤르만 헤세의 시에도 있지만, 해와 달과 별과 바람이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제시해 줘요. 그들이 지팡이와 신발, 나침반이 되어준다는 거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신만의 ‘무엇’을 통해서 소통을 놓지 않아야 돼요.


 

 

파산수업정재엽 저 | 비아북
괴로운 현실과 포기하고 싶은 자신을 위로하기 위해 저자가 매달린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쓸모없다고’ 느꼈던 취미 활동인 독서, 그중에서도 문학 읽기였다. 천일에 걸친 ‘회생’ 수업을 마친 저자는 이 책이 희망의 증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2017년 기대작가 ①] 정세랑 “선한 사람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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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랑 작가는 1984년생 젊은 작가로, 2010년 장르소설 월간지 <판타스틱>에 「드림, 드림, 드림」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장르소설로 시작했지만 장르소설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문예지에 글을 기고하며 문단에서 유명한 출판사에서 책을 내도 '순문학'의 줄거리를 따라가지 않는다. 편집자였던 이력이 묻어나오는 단단하고 정갈한 문장으로 줄거리를 뒷받침한다. 2017년이 기대될 만하다.

 

『피프티 피플』은 어느 도시의 대학병원이 무대인 소설이다. 의사와 간호사, 보안요원, 홍보부 직원과 그들의 지인, 동생, 부모의 이야기가 거미줄처럼 펼쳐지고 이어진다. 개별적인 50개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내용은 서로가 얽히면서 거대한 그림을 만든다. 각 장에서 조연에 그쳤던 사람들은 어느 순간 주인공으로 나타나 각자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정세랑 작가는 “어느 커뮤니티를 축소해서 50명으로 압축한” 듯한 소설을 만들고 싶었다고 밝혔다. 한국 사회를 50명으로 압축해 놓는다면, 거기에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의 유가족(한규익)도 있을 것이고, 층간소음에 시달리는 주민(김시철), 게이와 레즈비언(김성진, 지연지), 씽크홀에 빠지는 사람(배윤나)도 있을 것이다. 미색으로 보이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이 정세랑 소설가를 만나자 얼굴이 보일 것처럼 구체적으로 나타났다. 평범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지만, 자세히 보면 모두가 다 다른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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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읽는 책


제목은 ‘피프티 피플’이지만 각 장 제목에 나온 인물을 세어보면 오십일 명으로 나와요.

 

하다 보니까 오십 명으로 맞출 수가 없더라고요. 다 읽으신 분이 한 명 더 있다고, 귀신이냐고 물어보신 적도 있어요. (웃음)


제목은 작가님이 붙이셨어요?


다른 제목을 붙이려고 했는데 잘 안 붙더라고요. ‘오십 명’, 이렇게 쓰면 너무 근엄해지고요. 영어 제목은 별로였지만 ‘ㅍ’이 연속으로 들어가는 게 어감이 재밌었어요.


앞에서 누군가의 가족이나 친구로 나왔던 사람이 나중에 주인공으로 나오기도 합니다.


일부러 희미하게 남겨 둔 부분이 있어요. 모든 이름을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기도 하고요. 서로 만난 계절도 바뀌지 않게 봄에서 시작해서 다시 봄으로 끝나게 하려고 신경 썼어요.


수도권 도시가 배경이에요. 실제로 염두에 두었던 도시가 있나요?


부천과 인천, 김포 사이 어딘가로 생각했어요. 일산에서 오래 살아서 신도시에 관심이 있기도 하고, 우리나라의 새롭게 지어진 도시는 어디나 비슷하게 생겼어요. 그래서 어느 누가 읽더라도 자기 동네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어요. 제가 제일 잘 아는 지역이 수도권이기도 하고요.


배명훈 소설가가 트위터에 『피프티 피플』에 관한 평을 올린 적이 있어요. “수도권 어느 병원을 둘러싼, 작은 삼국지처럼 꽉 찬 소설”이라고요.


늘 정확하게 읽어주시는 분이라 감사해요. 제가 몰랐던 점도 잘 잡아주세요. 사실 작가들은 자기가 쓰면서 자기가 뭘 썼는지 모르거든요. 물론 계획하시는 분도 있지만 전 충동적으로 쓰고 삼 분의 일쯤 와야 뭘 쓰고 있다고 알아차리는 타입이에요.


“재료가 엄청 많이 들어가 있다. 인물도, 소재도, 구조도, 결정적인 표현도, 다른 소설의 몇 배나 집어넣”었다는 말씀도 하셨어요.


특히 관심을 두는 부분이 직업이라 그런 것 같아요. 사람들이 어떻게 그 직업을 선택했는지 관심이 많아요. 실제 그 직업에 종사하시는 분들이 읽어도 어색하지 않게 느끼려면 조사를 많이 해야 해요. 특이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면 얼마나 오래 일하는지, 어디서 일하는지, 무엇이 좋고 나쁜지 자세히 물어보는 편이에요. 특정 소설을 위해 쓰는 게 아니라, 아직 뭐가 될지 모르면서 자료 수집부터 해 놔요. 사실 지난 몇 년간 모아놓은 직업에 관련한 자료가 다 들어간 책이거든요. 그런 면에서는 재료가 많이 들어가는 건 맞아요.


독자 입장에서는 퍼주다시피 이야기를 받으니 즐거웠어요(웃음).

 

밀도가 있는 책이어서 한 번 읽는 책이 아니라 두 번 읽는 책이 되었으면 했어요. 이런 형식의 책은 다 읽고 나서도 아무 데나 펼치면 그 부분만 다시 읽어도 되잖아요. 아무 때나 두 번 이상 펼치는 책이 되었으면 해서 일부러 재료를 많이 넣었어요.


주변에 독특한 직업을 가진 사람이 있으면 직업 때문이라도 관심이 생기시겠어요.


작가나 문학에 관해서만 쓰면 재미가 없더라고요. 자기 안으로 침잠하는 이야기보다 바깥으로 가는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그러려면 저랑 더 멀고 먼 직업을 일부러 찾아내야 할 필요가 있어요.


병원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이야기다 보니 죽음에 대해서도 그려져요.


삶과 죽음이 갈리는 지점에 대해 작가들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한 사람의 죽음이 남긴 흔적이 있잖아요. 지금 이 사회에서는 죽지 않아도 될 사람이 너무 많이 죽고 있어서 환기를 시키고 싶었어요. 주인공을 죽인 건 조금 미안하지만…. 저도 쓰면서 울기도 해요.


병원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영화관에서 끝납니다. 영화관을 마지막 장소로 잡은 이유가 있나요?


너무 가까운 사이 말고 스쳐 지나가는 사이가 중요하고, 그게 우리 이웃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같은 영화를 예매할 정도의 느슨한 인연은 아무 사이도 아니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특별하잖아요. 같은 날, 같은 시에 사람들이 같은 영화를 선택한다는 인연이요.

 

세대도 다양하게 나와요. 이호와 소씨 아저씨는 현실에서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멋진 어른이었는데요.


평소에 좋아하는 어른의 모습을 두세 명 섞어서 만들었어요. 존경할 수 있는 어른, 윗세대에서 믿고 따라가는 어른이 필요해요. 그래서 너무 이상적일 정도의 캐릭터를 만들어 보고 싶었어요.


게이와 레즈비언, 노인, 아동, 외국인 등 다양한 사람들을 그리려고 노력하신 것 같아요.


남녀 비율도 비슷하게 맞추려고 했어요. 세대 분배도 다양하게 하고 싶었고요. 실재하는 어느 병원 근처의 커뮤니티를 50명으로 축소했을 때 그 커뮤니티를 그대로 재현하는 게 목표였어요. 저도 성소수자 친구가 있어서 친구들이 겪는 불편을 들어요. 정말 보통 사람들인데 특이하게 그려지기도 하고요. 사실 보통의 직업을 가진 보통 사람들이잖아요. 성 정체성도 중요하지만 아무렇지 않은 이웃 친구들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미색의 인간을 그리고 싶다고 하셨지만, 평범한 사람들이라고 해서 묘사하는데 품이 덜 들어가지 않았어요.


처음에는 이 사람들의 얼굴을 잘 모르고 시작했어요. 그런데 쓰고 연재하는 과정에서 소설에 등장한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르더라고요. 이 사람은 어떻게 생겼을 것 같고, 어떤 옷을 입고 걸음걸이는 어떻고, 평소에 뭘 좋아할지 자연스럽게 알게 됐어요. 미색에서 미색이 아닌 색으로 오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이름에 의미도 있나요?

 

동창회 명부에서 성 따로 이름 따로 떼어서 조합한 이름이 많아요. 좋아하는 친구의 이름도 몇 명 들어가 있어요. 가끔 중복해서 쓰긴 하는데 이름도 되도록 중복해서 나오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선한 사람들의 이름을 불러 주고 싶었다


화물 연대의 시위 장면, 예대 통폐합, 부실 공사, 아르바이트생의 복장 규정 문제까지, 실재 사회의 사건/사고가 다양하게 나와요.


주변에 피해자들이 너무 가까이에 있어요. 지인의 지인이 이별 살인을 당하고, 삼촌의 친구분 중에 가습기 살균제로 돌아가신 분도 있고요. 사회적인 폭력이 너무 가까이에서 계속 일어나요. 한국은 여섯 다리까지 갈 것 없이 두 다리만 가도 다 피해자와 닿아 있어요. 지금 단단하다고 믿고 있었던 발밑이 무너지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사회 시스템이 기능하고 있지 않다는 게 밝혀졌잖아요. 그게 제 예민함이 아니라 정말 지금 재편하지 않으면 길게 가지 못할 거라는 걸 모두 동의하는 상황이 됐어요.

 

올해에 이 소설이 나와서 다행이라는 이야기도 하셨어요.


원래 사회적인 소설을 쓰는 편이 아닌데, 올해는 그러고 싶었어요. 시국 때문에 많이 팔릴지는 모르겠지만 올해 필요했던 이야기라는 건 맞는 것 같아요. 지금 쓰기 잘했다는 생각이에요.


인물 중 이설아의 대사가 작가님의 마음을 대변한 것 같아요.


가장 경멸하는 것도 사람, 가장 사랑하는 것도 사람. 그 괴리 안에서 평생 살아갈 것이다.
- 266쪽, 「이설아」 중


아동 학대 사건 같은 너무 끔찍한 사건을 보면 내가 저 가해자가 같은 사람이라니,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잖아요. 선로에 사람을 밀어버리는 사람도 사람인데, 그 선로에 떨어진 사람을 구하는 것도 사람인 거예요. 우리가 같은 종인데 이렇게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문학이 존재하는 것 같아요.

 

작가님이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요?


자세히 보지 않으면 모르지만, 자세히 보면 친절하고 주변에 이로운 사람이요. 대단한 영웅이 아니더라도 자기 자신 말고 옆을 돌아보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 사람들의 특별하지 않은 특별함을 포착하고 싶었어요. 정말 있을 법한 사람들의 친절함이요. 사실 친절한 사람이 없거든요. 열 명 중 한 명이에요.


그래서 그런지 50명의 사람 중에 악을 행하는 사람은 있지만, 그렇게까지 악인은 없다는 느낌이었어요. 정말 악인으로 등장하는 사람들은 이름이 나오지 않고요.


그보다 친절한 사람들에 조금 더 초점을 맞췄어요. 선한 사람들의 이름을 더 불러주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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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마다 베이는 기분


60매쯤 쓰고 포기하려고 했는데 편집자의 설득으로 완성하게 되셨다고요.


처음에 너무 쓰기 어려운 이야기라 제 기량으로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없었어요. 몇 년 지나고 제가 기량이 쌓이면 그때 쓰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할 수 있다고 격려해주셨죠. 책이 여러 사람의 공동작업이라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된 책이에요.

 

작가님도 편집자로 일하신 적이 있어요. 편집자로 일하다가 작가가 되어서 편집자랑 같이 일하는 기분은 어때요?


그래서 편집자들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가 더 눈에 들어와요. 고맙고 특별하죠. 자기 책을 자기가 편집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다른 사람이 꼭 필요해요. 그런 의미에서 출판계가 계속 좋아져야 편집자분들이 더 많이 활동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계속 문화계도 생산자가 직접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형식으로 바뀌고 있는데, 새롭긴 하지만 편집자와 작가가 같이 일하는 지금의 시스템도 풍부하게 살아남아 줬으면 좋겠어요.


작가님 자신을 ‘순문학하고 장르 사이에 박쥐 같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장르 문학과 순문학을 구분하는 건 어떻게 생각하세요?


더 허물어지고 더 친해지면 좋겠어요. 서로의 멋진 부분이 달라요. 호흡도 다르고 특징도 다른데 서로 더 만나고 교류하면 좋을 것 같아요. 이 책도 단서들을 꿰맞추는 부분에서는 스릴러 장르에서 갖고 온 부분이 있거든요. 이 인물이 여기서도 조금 나오고 저기서도 나오는 건 추리소설적 기법이고요. 문단 문학에 가까운 소설이지만 그런 기법을 빌려올 때가 있고, 문단 지면에 발표하고 문단 출판사에서 냈지만 굉장히 장르적인 작품을 쓰기도 하고요. 항상 경계를 흐리는 작업을 목표로 삼고 있어요. 사실 별 차이 없어요. 그냥 어느 지면으로 데뷔했느냐 차이인데, 그런 걸로 작가를 구획 짓기에는 너무 아까운 재능이 많아요.


판타지가 현실을 쓰는 건 동일하지만, 다른 문학 장르보다 조금 더 넓게 보는 경향이 있다고도 말씀하셨어요.


판타지는 세계의 조건을 하나 바꾸는 거잖아요. 해리포터는 기존의 세계에서 마법 학교가 있다는 조건이었고, 전작 『보건교사 안은영』은 양호 선생님에게 특이한 능력이 있다는 식으로 조금씩 바꾸는 거죠. 사실 그게 지금 세계에 관해 이야기하려고 하는 거거든요. 그런 작업이 중요하고 이미 오래된 작업인데 가치를 인정받아야 되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계속 폭력에 대해 쓴다고 말씀하셨었는데, 스스로 생각하기에 폭력에 민감한 편인가요?


저보다 더 민감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 시기가 온 것 같아요.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폭력이 너무 말도 안 될 정도로 많아서 공기 중에 폭력이 떠다니는 사회 같아요. 너무 많아서 아무도 서로에게 친절해질 수 없는 사회요. 그래서 더 이야기하게 되는 것 같고요.


소설로 사회에 어느 정도 기여할 수 있다고 보시나요?

소설은 그냥 두세 시간 즐겁게 보낼 수 있게 해주는, 유행이 지난 매체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좋아하면서도 이게 효용이 있나 싶었는데 얼마 전에 강연회에서 어떤 분이 너무 힘든 와중에 제 책을 읽고 큰 힘을 얻으셨다는 거예요. 그래서 잘못 생각했을 수도 있겠다고 더 겸허하게 받아들이게 됐어요. 소설은 사람의 인생에 아주 작은, 희미한 지문 정도의 흔적을 남기겠지만, 다른 사람의 생에 그 정도라도 남긴다는 게 의미가 있어요. 쓸 때는 잘 모르겠는데, 읽히면서 소설에 힘이 부여되는 것 같아요.


아무도 해치지 않는 글을 써야 한다고도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모두가 그래야 한다는 건 아니고, 제 목표는 그래요.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없는 작가들이 쓴 책을 보면 저 스스로가 페이지마다 베이는 기분이거든요. 여성 캐릭터를 끝없이 비하하거나, 외국인 비하 발언이 끊임없이 나오는 책은 끝까지 읽기가 힘들더라고요. 아무리 이야기가 매력적이어도 애정을 가지기가 힘들어요. 독자로서 제 경험이 그러니까 제가 쓸 때는 그런 부분은 걱정 안 하고 읽을 수 있게 하고 싶어요. 물론 그래도 실수를 하겠죠. 노력은 하고 있어요.


이제는 복수하는 소설 말고 연대하는 소설을 쓰고 싶으시다고요.


20대 여성으로, 편집자로 겪었던 일들 때문에 글을 잘 써서 복수해야겠다는 마음은 있었어요. 그걸 내려놓고 조금 더 넓은 마음으로 소설을 쓰고 싶다는 욕구가 있어요. 예전에는 저한테 나쁘게 굴었던 사람을 소설 속에 등장시켜서 죽이기도 하고 그랬거든요. 워낙 이상한 사람들이 많으니까요. 이제는 충분히 죽인 것 같아요. (웃음)


특히 연대하고 싶은 분야가 있나요?


제 세대의 목소리를 일단 대변하고 싶어요. 너무 나눠 받은 건 없으면서 착취만 당하는 세대인 것 같아요. 제 세대와, 저보다 또 뒤에 오는 세대에 대한 게 일단 최우선이에요. 우리는 그래도 멋진 세대고, 다른 걸 해낼 수 있으니까요.

 

 

사그라지지 않게 하는 것


배윤나가 한규익에게 “너는 달라. 너는 필요해.” 라고 말하는 장면도 좋았어요.


젊은 예술가들, 꼭 글 쓰는 사람이 아니라 젊은 예술가 전반에 해주고 싶은 말이었어요. 사회가 예술가를 대우하지 않고, 보호하지 않고, 육성하지 않아요. 점점 정책이 그렇게 만들어지고 지난 10년간 모든 게 축소되었는데, 그런 상황에서 스스로 확신을 가졌으면 했어요. 그래도 예술가는 필요하고, 바깥에서 아무리 가치가 없다고 해도 자신의 가치를 더 믿어줬으면 좋겠다는 이야기요. 더 넓게 해석한다면 다른 길을 가고자 하는 모든 사람에게 할 수 있는 말이기도 하겠죠.


작가님 스스로 생각하기에는 자리를 잡은 편이라고 느끼시나요?


15년 하면 어느 분야든 자리를 잡을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이제 7년 했으니까, 8년 후에 말씀드릴게요. (웃음)


SNS를 통해서 ‘문단 내 성폭력’ 이슈 관련해서도 발언을 꾸준히 내고 계세요. 그나마 문학계의 ‘인사이더’로 도움을 줄 수 있겠다는 판단이었나요?


그런 면에서 한 건데, 변호사님에게 상담했더니 SNS에 올리는 것보다 되도록 공식 지면으로 쓰라고 하시더라고요.


<채널예스>에도 특별기고를 해주셨어요.


문학동네 좌담에도 참여했고, 앞으로도 관련 이슈가 나오면 무언가 쓸 거예요. 이 문제가 사그라지지 않게 하는 것에 관심이 있어요. 이것도 지금 바꾸지 않으면 문학계에 미래가 없어요. 이 엉망인 상황에 누가 어떻게 믿고 문학을 하겠어요. 다음 세대의 문학을 위해서라도 꼭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제가 전문가는 아니잖아요. 전문가들의 도움도 받아야 하고, 과정이 막 빠르게 전개되지는 않을 거예요. 지켜보시는 분들 눈에는 너무 느릴지 모르지만 섬세하게 더 다치는 일 없이 천천히 해나가려고 해요.


말씀하신 대로 굉장히 오래 걸리고 여러모로 접근해야 하는 문제잖아요. 권력을 허물어야 한다는 사람도 있고, 먼저 권력을 잡자는 의견도 있을 거고요.


저는 천천히 체질 개선을 해야 된다고 생각하지만 모두의 의견이 그럴 필요는 없고, 즉각적인 처분을 원하는 사람도 있죠. 의견이 다양한 것 자체가 좋다고 생각해요. 잡지 만드는 사람, 학생, 여성단체 사람들 등 이렇게 많은 사람이 동시에 고민하면 뭔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문학상의 심사위원들을 더 공정하게 선택한다든지 벌써 변하는 부분이 있거든요. 물론 중간에 이상한 사건들이 있겠죠. 도리어 반격당하고, 가해자가 피해자를 공격할 수도 있겠지만 멀리 봐서는 좋아질 거라 생각해요.


지현이 오빠들에게 일갈하는 장면이 회자가 되더라고요. 속시원하다고요.


“이야, 나이 드니까 뷔페 뜨러 가기도 귀찮다, 그치?”
“응, 누가 가져다주는 밥이나 먹고 싶지.”
“그래서, 지금 나보고 떠오라고?”
현이 일갈하자 오빠들이 한꺼번에 벌떡 일어났다.
- 230쪽, 「지현」 중


제가 실제로 겪었던 일이에요. 오빠들이 앉아서 뷔페 떠오기 귀찮다고 하길래 지금 나보고 떠오라는 거냐고 그랬더니 바로 일어나더라고요. (웃음) 재밌어서 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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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작가로 살고 싶어요


엔딩을 두고 착잡하다는 반응이 있어요. 저는 아무도 안 죽어서 해피엔딩이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둘 다인 것 같아요. 아무도 안 죽은 건 분명 해피엔딩이지만, 이 일이 반복될 게 뻔한 상황에서 비슷한 일이 다른 곳에서 또 일어나면 과연 괜찮겠냐는 물음에는, 이 소설에서 그려지는 세계도 그렇고 현실도 그렇고 확신하기 어려운 거죠.


제일 안타까웠던 캐릭터가 있나요?


오정빈과 정다운에게 너무 미안했어요. 존재하지 않는 아이들이지만 유년기에 그런 일을 겪게 해서 미안해요. 학교에 나오지 않는 아이들 뉴스를 계속 접했는데, 아이들에게 끔찍한 일이 일어나는 걸 막아주지 못하는 사회를 이야기하고 싶기도 했어요. 나중에 그 이름으로 좋은 거 시켜주려고요.


앞으로도 사회적인 내용이 계속 작가님 소설에 나올까요?


전에는 사랑스러운 연애 소설 쓰면서 평생 살다가 죽을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인생이 그렇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어디로 갈지 모르겠어요. 한동안은 인권과 폭력에 관해서 쓸 것 같고, 또 다른 주제가 찾아올 수도 있고요. 오랫동안 작가로 살고 싶어요.


『피프티 피플』로 모아놓은 자료는 거의 다 쓰셨어요. 이제 다시 자료를 쌓아야겠네요.


내년은 조금 쉬면서 천천히 장기적으로 긴 소설을 쓰고 싶어요. 그동안 뭘 먹고 사느냐가 문제죠. (웃음)


 

 

피프티 피플정세랑 저 | 창비
2016년 1월~5월 창비 블로그 연재 당시 50명의 주인공으로 화제를 모았던 정세랑 장편소설 『피프티 피플』이 단행본으로 묶였다. 수도권의 한 대학병원을 중심으로 느슨하게, 또는 단단하게 연결된 병원 안팎 사람들의 이야기가 흥미진진하면서도 감동적으로 펼쳐진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2017년 기대 작가 ②] 최정화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방식으로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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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최정화는 2012년 창비신인소설상에 단편소설 「팜비치」가 당선되어 등단, 올해 2월 『지극히 내성적인』을 펴냈다. 이후 단편 「인터뷰」로 ‘2016 제7회 젊은작가상’을 수상하며 주목 받았고, 격월간 문학잡지 <Axt>에 1년간 연재한 장편 『없는 사람』을 지난 11월에 출간했다.

 

작가는 고등학생 때부터 소설을 썼다. “눈 앞에 백지가 놓여 있는’ 것이 좋아 멈추지 않고 썼다. 등단하기까지 쓴 작품은 50여 개. 들리는 사람이 많지 않아도 개인 홈페이지에 차곡차곡 작품을 올렸다. 때때로 무명 작가에게 편지를 써주는 독자도 있었다. 읽는 사람이 많든 적든, 작가는 쓰고 또 썼다. 첫 소설집 『지극히 내성적인』을 펴내고, 작가는 “예민한 것을 듣고 느끼는 재주를 타고 났다”는 평을 들었다. 실제로 작가는 일상 생활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집중한다. 어떤 영감을 받기 위해 노력하기보다는 생활 감각으로 글을 쓴다.

 

『없는 사람』은 쌍용자동차 정리 해고 사태에서 영감을 받은 소설이다. 주인공 ‘무오’는 노조를 와해시키고자 투입된 밀고자이자 첩자다. 세상에서 단 한 번도 존재감이 없었던 ‘무오’는 “노조가 싸움을 포기하게 만들라”는 ‘이부’의 지시를 받고, 노조 지도부 ‘도트’를 감시한다. 무오는 떳떳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도, 이부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한다. 처음에는 돈 때문이었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일을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또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기도 했다. 이부는 무오에게 말한다. “의심받으러 들어가는 건데 의심받아야지 뭐.” 무오는 정체를 의심 받다, 결국 자신을 가장 의심하게 된다. 무오는 혼자 중얼거린다. “이러다 내가 누군지도 모르게 되고 말 것이다. 몸뚱이만 살아 있으면 뭘 하나.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게 되어버린다면 그건 사람도 아니다.” 무오는 결국 ‘없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벗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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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오, 자기가 없는 사람


『지극히 내성적인』이 출간된 후, 9개월 만에 첫 장편소설 『없는 사람』이 나왔습니다. 2016년에 두 권의 책을 낸 소감이 어떠신가요?

 

등단하기 전부터 장편에 관심이 많았어요. 제 단편집 내용이 심리와 관련된 이야기들이어서 제가 잘 쓸 수 있는 이야기는 심리스릴러나 범죄물이라고 생각했는데요. 망설이던 와중에 『이창근의 해고일기』를 본 후 마음에 움직임이 많았어요. 처음 생각처럼 쌍용자동차 사건을 비중 있게 다루진 못했지만, 세상 사람들이 이 사건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정도가 들어간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어요.

 

<Axt>에서 연재해 나온 첫 단행본입니다. 연재 당시, 독자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직접적으로 독자들의 이야기를 듣는 경로는 없었던 것 같아요. 작가들은 독자 반응을 궁금해 하기 마련인데요. 책이 출간된 후에는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지만, 연재하는 동안은 다소 어려워요. 주변 친구들로부터는 재미있게 잘하고 있다, 등의 격려를 받았어요.

 

연재를 제안 받았을 때, 흔쾌히 수락하셨나요?


노트 한 권을 사서 소설을 막 채우고 있던 때였어요. 『없는 사람』의 앞 부분 정도는 이미 그림을 그려놓았던 상황이라서 제안이 반가웠어요. 

 

마감에 대한 부담은 없었나요?


마감은 작가에게 좋은 탄력을 주는 것 같아요. <Axt>는 격월간지라서 원고를 100매 정도에서 끊어줘야 하는데, 소설의 리듬이랑 잘 맞게 끊겼어요. 장편은 체력이 중요하잖아요. 연재를 하지 않고 혼자 썼더라면 자신이 없어서, 소설을 뒤집었거나 좀 더 오래 걸렸을 것 같아요.

 

『없는 사람』은 현실적인 이야기를 다룬 소설인데, 등장 인물들의 이름은 비현실적입니다. 무오, 이부, 도트 같은 이름은 어떻게 탄생했는지 궁금했어요.


‘무오’라는 이름을 지을 때 생각했던 건, ‘자기(自起)가 없는 사람’이었어요. ‘이부’ 같은 경우는 연재 당시에는 ‘김’이라는 이름으로 썼는데, 소설을 다 쓰고 난 후 ‘이부’라는 이름이 캐릭터랑 더 맞는다고 생각했어요. ‘이부’는 다른 아버지, 두 번째 아버지라는 뜻이에요. 무오와 이부의 관계를 빗댄 말이에요. ‘도트’는 글을 쓰면서 자연스럽게 떠오른 이름이에요. 안타까운 결말을 가진 인물이지만 예쁜 이름으로 써주고 싶었어요.

 

연재 당시에는 소설 제목이 「도트」였어요. ‘작가의 말’에서 “처음에는 도트에 관해 쓰려고 했다”고 밝히셨고요. 하지만 소설을 읽다 보면, ‘무오’에 가장 감정이입이 됩니다. 비중이 큰 인물인데, 현실에서 ‘무오’와 같은 인물은 좀처럼 주목 받지 못해요. 소외된 인물이죠.


저 역시 감정이입을 가장 크게 한 인물이 ‘무오’였어요. 인간이라면 누구나 다양한 면이 있잖아요. 무오는 다른 사람을 만나거나 일할 때 적극적인 성격이 전혀 아니에요. 무오의 행동을 서술할 때는 아마 독자 분들이 거리감을 느낄 수 있을 텐데, 대신에 무오가 심리적 갈등을 겪을 때는 인물에 좀 더 깊숙이 들어갔어요. 연재할 때는 오히려 ‘이부’ 캐릭터가 가장 재밌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제가 별로 좋아하지 않은 인물이라 신경을 쓰지 않아서 오히려 자유롭게 표현됐나, 싶더라고요. 도트 같은 경우는 혹시라도 이 소설이 누가 될까 봐, 조심스러웠어요.

 

소설을 읽는 내내 생각했어요. ‘무오가 과거에 어떤 삶을 살았더라면, 이부의 제안을 거절할 수 있을까?’ 꼭 경제적인 상황 때문에 이부의 제안을 받아들인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물론 무오는 이부가 돈을 더 주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에 노조를 감시하는 일을 시작했어요. 사람이 살다 보면 돈 때문에 어떤 일을 하게 되곤 하지만, 꼭 그 이유만 있지는 않아요. 무오는 이부라는 인물을 어느 정도 따르고, 좋아해요. 이부가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것에 대해 ‘이런 관계는 처음’이라고 느끼고요. 무오는 학교에서도 없는 아이와 같은 느낌으로 살았어요. 그래서 ‘반점’에게도 우정을 느끼죠. 해하려고 하지만 친해지고 싶은 마음도 있는 거예요. ‘도트’에 대해서는 멋있다고 느끼기도 하고요. 무오가 제안을 수락한 데 있어서는 여러 상황이 겹쳤다고 생각해요.

 

집필을 위해 노동자나 노동운동을 하는 활동가들을 취재했을 거라 생각했어요.


쌍용자동차 사건을 다루겠다는 생각보다는 한국 사회문제가 소설의 배경으로 자연스럽게 들어가길 바랐어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배경이 되고,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만약 제가 소설 속 등장인물과 비슷한 사람을 현실에서 만났다면, 어떤 부분은 리얼리티가 살았겠지만 이미 『의자놀이』『이창근의 해고일기』, 『그의 슬픔과 기쁨』등과 같은 작품들이 있잖아요. 저는 다른 방식으로 이런 모습을 표현해보고 싶었어요. 평소 작업하는 방식이 자료조사를 많이 하는 스타일도 아니고요. 소설을 쓸 때, 어떤 사람을 만나서 이해할 수 있는 방법도 있지만,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방식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제목 『없는 사람』은 직접 지으셨나요?


‘무오, 없는 사람’이라고 하고 싶었는데요. 출판사에서 ‘여기, 없는 사람’을 제안했어요. ‘여기’를 빼는 게 더 좋을 것 같아 마지막에 선택한 제목이에요.

 

장편을 써서 좋았던 점이 있나요?


단편은 아무래도 분량의 한계가 있어서, 인물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나 시간의 폭이 좁아요. 주제 자체도 달라지고요. 이를 테면 단편은 작은 캔버스 위에 꽃, 고양이와 같은 사물을 그릴 수 있다면, 장편은 거대한 화폭 안에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어요.

 

어떤 문장을 쓰고 싶다, 는 생각이 있나요?


단편에서는 문체가 소설의 분위기를 잡아주기 때문에 하는 역할이 크다고 생각하는데요. 이번 소설을 쓰면서는 최대한 심플하게 가독성이 좋은 문장 쓰려고 했어요. 최대한 쉽게, 빨리 읽을 수 있도록 하는데 신경을 좀 더 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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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자동차 사건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길


등단을 한 후, 소설을 쓸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 단기직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다고 들었습니다. 지금도 다른 일을 병행하고 있나요?


연재를 시작하면서 일을 그만 뒀어요.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비용은 들어오니까 다른 일은 안 했는데, 글만 쓰니까 되게 좋았어요. 지금은 문학잡지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어서요. 내년에 창간되는 잡지인데요. 이 일이 기본적인 생활을 책임져 주기 때문에 당분간은 안 할 것 같아요. 분명히 어떤 일을 하면, 그 만큼의 에너지가 들어가요. 생활의 규모를 줄이더라도 글만 쓰는 게 좋지 않나, 생각해요.

 

소설을 쓰다가 막히면, 책상에서 일어나나요? 아니면 끝까지 앉아있나요?


쓰다가 막힐 수 없다고 생각해요. 왜냐면 막히는 이유는 자기가 원하는 글이 안 나오기 때문에 안 쓰는 거예요. 저는 말이 안 되는 내용이더라도 일단 쓰긴 써요. 제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을 쓰고, 고치더라도 분량을 채워요. 못 써도 채우는 거예요. 어떻게든 쓰긴 써요.

 

그러면 수정을 많이 하게 될 텐데요.


글쎄요. 수정을 하는 건, 내 생각에서 못 썼다는 느낌이 들어서겠지만. 실제로 내용이 별로가 아니라 어떤 압박감 때문일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내용 자체가 바뀔 때만 대폭 수정을 하는데, 오히려 재밌는 작업으로 느껴져요.

 

어떤 독자가 특히 『없는 사람』을 읽으면 좋을까요?


쌍용자동차 사건에 관심을 갖지 않았던 사람들이 읽으면 좋겠어요. 오히려 이 사건에 대해 잘 알고 계신 분들은 “이렇지 않아”라고 말할 수 있고, 관심이 없거나 반대 입장에 계신 분은 “시위 현장이 짜증나고 싫다”고 말하기도 할 텐데요. 언젠가 이런 이야기를 들었어요. “저 사람이 저렇게 오랫동안 같은 의견을 내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닐까?” 『없는 사람』을 보면서, 쌍용자동차 사건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면 좋겠어요.

 

2016년 문단 내 성폭력 사건이 논란이 됐습니다. 이 일이 수면으로 드러났을 때, 가장 분노한 작가들을 보면 아무래도 여성이 많았어요. 젊은 작가로서 어떻게 보셨는지요?


개인적으로 충격을 많이 받았어요. 모르고 있던 사실인데, 모르고 있다고 말하는 것도 무책임한 게 아닐까 싶어, 어떤 말씀을 드리기가 어려운 데요. 다행스러운 건, 그래도 이렇게 터져 나왔다는 사실이에요. 물론 문단도 상당히 심각한 상태이지만, 다른 업계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하면 바로 그 판을 떠나야 하잖아요. 제가 이 사건을 보면서 느낀 점은 그동안 많은 사람이 고통을 받고 있었는데, 자기가 피해를 입었다는 걸 인지하지 못했다는 거예요. 나만 예민해서 상처를 받는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모두가 힘들었던 거죠. 저도 이 문제에 있어서는 이제 막 깨어난 단계인 것 같아요.

 

언젠가 열 권짜리 책을 쓰고 싶다고 말하셨어요.


저는 소설을 쓰면서 긍정적인 사람이 된 것 같아요. 예전에는 친구들이 다 걱정해주는 스타일이었어요. 장편을 쓰면서 충동적인 면이 없어졌고 성실함을 갖추게 됐어요. 하나의 작품을 쓰면서, ‘다음 장면이 기다리고 있어. 다음 순간이 있어’ 하고 생각하는데요. 장편을 쓰는 과정이 저에게는 참 좋았어요. 730매를 썼는데 내가 달라졌다면, 좀 더 큰 이야기를 썼을 때 내가 본 세상을 어떨까? 나는 어떻게 달라질까? 궁금해져요. 그래서 다음에는 두 권짜리 작품도 쓰고 싶고, 언젠가는 열 권짜리도 써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소설의 쓸모를 물어봐도 될까요? 소설가도 독자로서의 시간을 더 많이 보낼 텐데요.


책을 많이 읽는 편이 아니에요. 영화도 잘 못 보고, 대신 음악을 듣고 그림을 보는 걸 좋아해요. 다른 작가에 비해서 책을 많이 좋아하진 않아요. 고등학생 때도 이과생이었고요 독후감도 책을 안 읽고 쓸 정도로 싫어했어요. 하지만 힘들었을 때 읽은 한 소설이 제게 큰 힘이 됐고, 책을 좋아하게 됐어요. 저처럼 다른 사람과 소통하기 어렵고 고민이 해결되지 않을 때, 한 권의 책이 인생의 전환을 만들어주지 않을까, 생각해요.

 

힘이 된 책은 무엇이었나요?


좋아하는 작가를 말해도 될까요? 영국 작가 ‘사라 워터스’를 좋아하는데, 그가 쓴 『끌림』을 추천하고 싶어요. 두 여성 화자의 이야기도 구성됐는데, 인물의 심리를 깊숙하게 다루고 있어요. 재밌는 반전까지 있어서 읽는 내내 푹 빠져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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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문제를 다루면서 이야기적인 요소를 갖춘 작품


등단하기 전까지 작품을 50편 이상 쓰셨어요. 문학상에 도전하는 분들이 여전히 많은데요. 등단 후, 무엇이 달라졌나요?


아무래도 가장 좋은 건, 독자가 생기는 일이에요. 독자들이 작품을 읽고 이야기해주는 것이 큰 힘이 돼요. 저는 서른 넷에 데뷔했기 때문에 오랜 시간 혼자 소설을 썼어요. 홈페이지에 소설을 계속 올렸는데, 그 소설을 읽고 편지를 보내주신 분이 있어요. 엄청난 응원이 됐죠. 지금 생각해보면 외로운 시절인데요. 어떻게 보면 이런 응원 덕분에 재밌게 버틴 것 같아요. 소설 쓰는 친구들과 합평을 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됐어요.

 

전작 『지극히 내성적인』의 리뷰 중에 기억에 남는 글이 있나요?


「대머리」라는 소설을 썼는데, 주인공이 저와 가장 멀었던 화자예요. 노인이고 남자였고, 제가 경험하지 못한 세계의 주인공이었는데요. 어떤 독자 분이 “작가가 아저씨인 줄 알았다”고 하셨어요. 쾌감을 느꼈어요.

 

쾌감이라고요?


저와 전혀 반대되는 이야기를 들을 때, 내가 잘하고 있다고 느껴요. “이 작가는 분명히 결혼을 했을 거다, 굉장히 부유층일 거”라고 할 때, 그래요. (웃음) 통틀어서 ‘아저씨’라고 했을 때, 가장 기뻤어요.

 

작가님이 ‘여자’라는 미리 알지 못했다면, 저도 ‘남자’ 작가를 상상했을 거예요.


그런가요? (웃음)

 

많은 아르바이트를 하셨잖아요.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소설을 쓴다면 어떤 직종을 선택하시겠어요?


사실 경험을 바탕으로 작품을 쓰는 걸 좋아하지 않아요. 상상해서 쓰는 걸 좋아해요. 그래도 꼽아본다면 백화점 판매원이 나을 것 같아요. 오래 일했고 힘들었거든요. 울면서 백화점을 나왔어요. 만약 쓴다면 리얼하게 그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올해는 특히 책을 읽기 힘들었어요. 정신 없이 터지는 정치 이슈를 따라가다 보니, 현실이 더 소설 같았어요.


저 역시 그랬어요. 현실에서 너무 어이 없는 일이 터지니까, 오히려 소설을 쓰는 시간이 휴식처럼 느껴질 정도였어요. 모니터를 덮으면, 이야기가 끊임 없이 쏟아져 나오니까 너무 힘들었어요. 제가 쓰는 소설이 편안한 소설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내가 쓰는 세계가 너무 안전하고 편안한 게 아닌가? 이 세계를 제대로 반영한 것인가? 생각하게 됐어요. 여러 가지 마음이 복잡했던 것 같아요.

 

소설이 더 파격적이어야 하나? 세야 하나? 생각해보신 적은 없나요?


우리가 사는 세상이 자극적이라서, 소설이 더 자극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이야기의 역할은 다양하기 때문에 어떤 작품은 휴식이 될 수도, 문제 제기를 하는 작품이 될 수도 있어요. 잠깐 쉬어가는 작품도 분명 필요하고요. 여러 가지 방식으로 이야기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다음 작품을 준비 중인가요?


욕심이 많은 편이라서요. 다음 작품을 쓰고 있어요. 한국 사회 문제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인데요. 사회문제를 다루면서 이야기적인 요소를 갖춘 작품을 쓰고 싶어요. 100매 정도 썼는데요. 출간 계획 같은 건 아직 없어요. 그냥 혼자 쓰고 있어요. 사실 단편도 쓰고 있고 그림책도 준비하고 있어요. 그림은 공부하는 수준이지만 이런 저런 기획을 하고 있어요.

 

물구나무서기를 한 사진을 프로필로 쓰셨어요. 독자들이 궁금할 것 같아요. 왜 이 사진을 선택하셨나요?


올해 찍은 사진 중에 저를 가장 잘 드러내는 사진이라고 생각했어요. 소설이 즐겁고 명랑한 이야기는 아니잖아요. 작가 사진을 봤을 때 만큼이라도 잠깐이라도 즐거우시라, 생각했어요.

 

저자로서 자유롭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소설의 결말을 옥상에 버려 놓았는데요. 무오라는 인물에 대한 신뢰가 있었던 것 같아요. 감시자 역할을 한 무오가 이 일을 통해서 어떤 인생을 살아갈지,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할지 저도 궁금해요. 무오에게 그 일들을 잘 해결하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또 아무래도 쌍용자동차 사건이 모티프가 됐기 때문에, 자신의 일터에서 세상과 싸우고 있는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응원이 됐으면 좋겠어요.


 

 

없는 사람최정화 저 | 은행나무
이 소설은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사태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으로 조직을 와해시키려는 임무를 받고 투입된 밀정 ‘무오’, 그의 뒤에서 정신과 세계를 조종하는 ‘이부’를 중심에 놓고 세상의 힘의 균형이 어떻게 무너져 내리는지 또 믿음의 불확정성 속에서 진실은 어떻게 우리와 대면하는지에 대한 소설적 물음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여행가 김남희 “제 결핍을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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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도 정착하지 않은, 정거장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서로 닮은 모습으로 길 위에서 만난다. 잠시 스치기도, 깊이 인연을 맺기도 하는 나와 닮은 사람들이 그곳에 있다. 이들은 여행에서 길을 찾고, 여행에서 답을 구하고, 여행으로 삶을 꾸린다. 여행가 김남희도 그 중 한 사람. 오래 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방을 뺀 돈으로 여행을 떠나 길 위에서 보낸 시간이 어느덧 십 년이 넘었다. 고단했지만, 가장 잘한 선택이었다. 아직 가야 할 곳이 많이 남았다.

 
『외로움이 외로움에게』, 『삶의 속도, 행복의 방향』(공저), 『라틴아메리카 춤추듯 걷다』, 『따뜻한 남쪽 나라에서 살아보기』등으로 다른 세계와 다른 삶을 이야기해 온 김남희는 새로 나온 책 『길 위에서 읽는 시』에서 혼자가 되는 삶을 말한다. 여행 가방을 꾸릴 때 그는 언제나 시집을 챙긴다. 혼자 떠나므로, 함께 있어도 늘 혼자인 존재이므로 시와 함께 했다. 오롯이 혼자가 되는 특별한 시간에 시를 꺼내 읽었다. 어떤 곳은 시를 불러왔고, 시가 그를 어떤 곳으로 이끌기도 했다. 그러므로 『길 위에서 읽는 시』는 시가 만들어낸 여행 혹은 여행이 만들어낸 시 그 자체였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성 시인의 시에서 위안을 많이 얻었”다는 작가의 말처럼 그가 읽은 허수경 시인의 「청년과 함께 이 저녁」이나 김선우 시인의 「이런 이유」, 김소연 시인의 「눈물이라는 뼈」 등은 특히 다른 울림을 준다. 가수 이소라의 노래 <바람이 분다>와 비올레타 파라의 노래 <삶에 감사합니다(Gracias A la Vida)>를 읽어낸 부분도 소중하다. 시와 노래에 위로 받은 작가는 이제 독자를 위로하고 싶다. “길고 긴, 춥고 쓸쓸한 겨울밤에 이 책을 머리맡에 놓아두고 한 편 씩” 읽어주기를, 김남희 작가의 전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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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안에 여백이 생길 때


이별, 죽음, 외로움 등 무척이나 솔직하고 고백적인 글이에요. 내밀한 글을 쓰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어렵게 쓴 글도, 편안하게 쓴 글도 있는 것 같아요. 제가 워낙 제 이야기 밖에 할 줄 모르기 때문에요.(웃음) 계속 제 이야기를 해온 사람이고요. 저로서는 특별한 건 아닌 것 같은데요. 읽으시는 분들이 조금 어둡게 느끼실 수도 있을까요? 어떠셨어요?

 

여러 장면에 삶의 서글픔이 생생하게 담긴 글이라서요.


전반적으로 쓸쓸한 정서가 많죠. 발랄하게 썼어야 했는데 말이에요.(웃음)

 

쓰던 시절에 갖고 있던 감각이 많이 반영이 되었을까요?


상황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아요. 이 글을 쓰던 시절은 많이 외롭고 힘들던 시기이기도 했고요. 그걸 숨기지 못하고 겉으로 드러난 것 같아요. 잡지에 삼 년 정도 연재했던 글인데요. 거의 새로 쓴 글도 많아요. 집중적으로 쓴 건 올 초에서 여름까지였어요. 마침 연애에 실패를 한 시기라서 아무래도 그 무렵의 정서가 많이 들어가 있지 않나 싶어요.

 

굉장히 솔직한 이야기예요.


하지 말 걸 그랬나요?(웃음)

 

독자는 책을 통해 작가와 함께 시를 읽는 셈이에요. 시의 어떤 면이 여행과 작가 자신을 만나 이렇게 글이 되어 나오는 걸까요?


여행을 다닐 때마다 늘 책을 가지고 다니고 그 안에 항상 한두 권의 시집이 포함되죠. 소설이나 산문집보다는 시가 호흡이 짧아서 여행 안에 여백이 생길 때 꺼내어 읽기 굉장히 편해요. 주로 혼자 머무르는 여행을 하다 보니 여행지에서 혼자 있는 시간에 읽기 편했던 것 같아요. 여행지에서 읽어서 더 와 닿는 시들이 많았어요. 낯선 나라에, 낯선 언어를 쓰는 환경에 혼자 있는 상황이 주는 정서라는 게 있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꺼내어 읽는 시는 일상에서 읽는 시보다 오히려 더 예민하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마치 찾아간 것처럼 시와 여행의 한 장면이 딱 맞아 떨어질 때가 있어요. 그럴 때면 시가 주는 느낌이 더욱 증폭되는 것 같았어요.

 

시를 죽이지 않았다면 그것만으로 정말 다행이에요. 사실 부담스러웠거든요. 다른 책들은 온전히 제 이야기만 하면 됐는데 이 책은 시에 관한 이야기이고, 현재 생존해 있는 시인의 시도 많아서요. 감히 시를 가져와 글을 쓴다는 게 그 시인들에게 누가 되는 일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는데요. 책이란 한 번 만들어지고 나면 그 다음은 온전히 독자의 몫으로 남는 것 같아요. 제가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시라 할지라도 독자 분이 제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걸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석해낼 거라고 믿어요. 때문에 부족한 점은 뛰어난 독자 분들이 알아서 채워주시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 있었고요. 어떤 상황에는 정말 마침 그 지역에 그 시가 있었을 때도 있었지만 어떤 상황에 가져오지 않은 어떤 시가 떠오르는 순간도 많았죠.

 

기억 속에 있던 시가 여행지에서 찾아오는 경험이 자주 있었던가요?  


시집을 늘 갖고 다니기는 하지만 특히 소설 때문에 여행을 가게 된 곳들이 많았거든요. 시가 특별히 떠오르는 나라도 물론 있죠. 칠레는 파블로 네루다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고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유명한 카페에 가면 그곳의 대표적인 시인 두상이 있다든가 하는 식으로 시인과 소설가들의 흔적으로 가득한 공간들이 많잖아요. 그런 장소에 있으면 예전에 읽었던 시와 소설이 떠올랐어요. 안도현의 「바닷가 우체국」은 원래 유명한 시이지만 갈라파고스의 무인 우체국을 봤을 때, 쿠바의 우체국 건너편 방을 얻고 머물렀을 때는 떠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 주어진 거죠.

 

흔한 경우는 아니고, 오히려 좀 특별한 순간들이네요.


네, 특별하게 찾아와요. 늘 찾아오는 경험은 아닌 것 같아요. 그렇지만 어떤 장소가 어떤 특정한 시를 불러일으키는 경험은 분명 찾아오고 그것은 아주 감사하고 멋진 경험이죠.

 

 

뒤에 다른 세계가 있을 수 있다


한 대목에서 자신을 지칭해 ‘늘 의심하고 회의하는 쪽’이라고 했어요. 그런 틈에서 시와 여행을 답처럼 찾은 건가요? 시와 여행이 회의하는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어떤 확신을 가지고 하나의 세계에 확 뛰어들지 못했어요. 늘 그랬어요. 한창 뜨거운 20대, 모두가 앞을 보고 달려가던 시절에도 저는 갑자기 뒤를 돌아보고요. 같이 있었다가 어느 날 사라진 친구를 생각하고, 이렇게 달려 나간 후에는 뭐가 남는 걸까 생각하고, 지금 우리 모습이 올바른 걸까 의심하고, 그랬죠. 항상 회의주의자의 면모가 있었어요. 이 길이 나에게 맞지 않는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용기 있게 박차고 나오지는 못하면서 20대를 보냈는데요. 그렇지만 그 과정은 끊임없이 저에게 맞는 삶을 찾아가는 과정이었죠. 그게 여행과 이어진 거예요. 이곳에서 행복하지 않았기 때문에 바깥으로 나가보고 싶었고, 나가 있을 때 행복했고, 틀린 삶이 아닌 다른 삶을 보고 싶었고요. 그런 의심하고 회의하는 마음 때문에 여행으로 이어진 것 같아요.

 

여행 역시 끊임없이 회의하는 과정이겠죠.


좋은 여행가란 어떤 것을 판단하고, 단정 짓고, 규정하기보다 의심하고, 질문하는 시선을 가진 쪽이지 않을까 생각하거든요. 쉽게 단정 짓지 않으려고 했던 것, 쉽게 답을 찾지 않으려던 특성들이 제 여행에 도움이 되지 못할 때도 있었겠지만 그보다 훨씬 도움이 된 면이 많지 않았나 싶어요.

 

답은 없을 수도, 아주 많을 수도 있어요. 어떤 답만이 답이라고 어떻게 확실할 수가 있을까 싶을 때가 많아요.


우리가 객관적 진실이라고 말을 하지만 사실 객관적 진실이라는 말 자체가 모순일 수 있어요. 어떤 것이든 바라보는 사람의 주관적인 시선이 개입할 수밖에 없는 거죠. 하나의 사건, 하나의 세계가 수만 가지의 해석을 낳는 거잖아요. 이왕이면 하나의 답만 찾는 사람이기보다 모두가 답이라고 믿는 것 뒤에 다른 세계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찾는 사람이고 싶었어요. 아마 마지막 순간까지 그렇게 살다 가지 않을까 싶어요. 생각해보면 그래서 삶에서 갖지 못한 것들이 많은 것 같기도 해요. 대신 제 나름의 삶의 방식을 찾아왔죠. 끊임없이 그런 과정이었어요.

 

모든 삶이 결핍을 내포한 삶일 수밖에 없잖아요.


그 결핍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 우리의 삶을 앞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것이 내 삶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지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결핍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태도의 문제 같아요. 아무리 세속적으로 성공하고, 부를 가진 사람일지라도 결핍이 없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해요. 인간인 이상 정말 그래요. 결국 그 결핍을 에너지 삼아 다른 삶을 일구는 사람들이 있는 거죠. 저 또한 결핍이 있었기 때문에 여행을 하고, 글을 쓰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저는 제 결핍을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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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감사합니다(Gracias A la Vida)


특별한 장면이 하나 있어요. 어머니의 시를 실은 부분인데요. 무심코 읽다가 깜짝 놀랐어요. 어머니께서 좋아하셨을 것 같아요.


싫어하시던데요.(웃음) 왜 부끄러운 얘기를 하느냐고 하시더라고요. 엄마의 삶은 전혀 부끄러운 삶이 아니고 오히려 자랑스러운 삶이라고 말씀을 드렸는데요. 시 자체도 당신 입장에서는 마음에 안 드는 시라고 하셨어요. 다른 더 좋은 시가 있는데 왜 이 시를 넣었느냐고 하셨죠. 시집을 세 권이나 내신 무명시인이시거든요.

 

그런가 하면 노래도 두 곡 수록이 되었거든요. 이질적이지만 생각해보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기도 해요.


노래를 꼭 넣어야겠다는 생각은 아니었는데요. 어떤 시기에 제 여행에서 굉장한 의미를 가진 노래들이 있었어요.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도 두 달 정도를 그 노래만 들었던 때가 있었죠. 비올레타 파라의 <삶에 감사합니다(Gracias A la Vida)>도 지치고 무릎이 꺾일 때마다 생각나는 노래예요. 저는 메르세데스 소사의 목소리로 이 노래를 듣는 걸 더 좋아하는데요. 그 목소리로 그 노래를 듣고만 있어도 위안이 되는 면이 있거든요. 두 노래 모두 가사를 찬찬히 읽어보면 알겠지만 그냥 시가 되는 노래예요. 때문에 함께 싣게 됐어요.

 

노래가 곧 시죠.


<삶에 감사합니다(Gracias A la Vida)>는 남미 여행에서도 정말 많이 들었는데요. 지난가을 산티아고 북쪽 길을 다시 걸으러 갔을 때 이 노래에 관한 추억이 또 생겼어요. 한 숙소에 갔는데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숙소였어요. 수녀님들이 매일 저녁 순례자들과 모여 노래를 부르는 시간이 있는 거예요. 노래집도 나눠주고요. 거기에 그 노래가 있었어요. 그런데 그날 그 노래를 안 부르더라고요. 제가 신청을 했죠. 그래서 수녀님들이 기타를 치며 그 노래를 불러주셨어요. 그 순간의 감동, 잊을 수 없어요.

 

여행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특별한 순간이네요.


이번 산티아고 여행에서 그런 기적 같은 순간이 또 있었어요. 어떤 순례자 숙소에서 독일인 친구를 만났어요. 그 숙소에는 순례자들이 두고 간 책들이 있었거든요. 하이네의 시집도 있었죠. 책을 뒤적이다 그 친구와 책과 좋아하는 작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어요. 마침 그때 곁에서 스페인 사람들이 스페인어로 떠들더라고요. 제가 “저런 낯선 나라의 언어를 듣는 것만으로 좋아”라고 했더니 그 친구가 “그럼 독일어로 시를 읽어줄게”라고 하는 거죠. 하이네의 시 몇 편을 독일어로 읽어주었어요. 정말 아름다웠어요. 잊을 수 없는 밤이었다, 정말 고맙다는 얘기를 하고 헤어졌죠. 산티아고를 걷고 나서 런던에 있을 때였는데 메일이 왔어요. 그 친구가 좋아하는 시를 녹음해서 음성 파일을 보내온 거예요. 제목을 독일어로 써서 보냈기에 괴테의 시라는 것만 알고 파일을 듣는데요. 들으면서 ‘이건 「마왕」이야’ 생각했어요. 다 듣고 찾아보니 역시 「마왕」이더라고요. 그 친구가 두 번이나 제게 준 기적 같은 아름다운 선물이었죠.

 

여행지에서 특별함을 찾아내는 건 역시 여행자의 몫이 클 거예요. 조장(鳥葬, 죽은 사람을 새가 파먹게 하는 장례 문화) 장면은 특히 오래 남았어요.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도 그 장면을 인상적으로 읽으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흔히 풍장(風葬), 조장(鳥葬) 이야기를 들었을 때 야만적인 풍습이라 생각하기 쉽잖아요. 그런데 여행이 아름다운 건 우리가 몰랐던 세계의 다른 얼굴, 다른 진실을 드러내주는 거죠. 알고 있던 좁은 세계에서 통용되던 상식과 믿음, 진리라는 건 좁은 세계를 벗어나는 순간 아무 의미 없는 것이 될 수가 있어요. 다른 세계에는 다른 상식과 규범이 통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여행이 알려주는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저는 여행과 책이 닮아 있다고 생각하는 거고요. 미처 몰랐던, 그러나 역시 똑같이 피와 살을 가진 사람들이 살아가는 다른 세계를 만나기 위해 여행을 하고 책을 읽는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의 상식을 흔들고, 믿음을 깨어놓고, 규범을 의심하게 만드는 것들. 그래서 저는 질문이 많은 여행일수록 좋은 여행이라고 생각하죠. 

 

성질 급한 몇 놈이 날개를 퍼덕거리며 다가앉기도 했지만 함부로 시신으로 달려들지는 않았다. 망자에게 예를 갖추듯 차분하고 의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부서진 뼈들을 모아놓고 돔덴이 독수리들을 불렀다. 모여든 독수리들이 살을 파먹고 나면 다시 그 뼈를 거두어 공이에 넣고 잘게 부순 후 보릿가루 참파를 섞었다. 한 구의 육신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데 두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렇게 뼛가루조차 남기지 않고 한 몸이 자연으로 돌아갔다. 그곳에도 울음이나 곡소리는 없었다. 가족들은 평온한 표정으로 앉아서 그 모든 과정을 지켜봤다. 아이들조차도.(72-73쪽)

 

그렇다면 글을 쓰는 행위는 작가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일차적으로는 자기 위안이에요. 저를 위로하는 거죠. 쓴다는 건 굉장히 중요한 행위인 동시에 객관적일 수 있잖아요. 내게 일어난 일을 그 시점으로부터 떨어져서 다시 들여다보는 시간을 갖게 되는 거고요. 그때의 아픔과 상처, 기쁨과 눈물, 웃음 등을 다시 돌아보게 되는 시간이죠. 때문에 당연히 치유가 될 수밖에 없어요. 명상의 시간이 될 수밖에 없죠. 특히 저 같은 사람은 제 경험만 쓸 수 있기 때문에 저를 위한 위안이 가장 큰 것 같아요. 한 가지를 더 꼽는다면 이렇게 아름다운 혹은 아픈 순간을 다른 사람에게도 이야기해주고 싶다는 마음일 거예요. 내 상처를 드러냄으로써 전혀 모르는 사람과 소통할 수 있다면 그것이 주는 두 번째 치유의 힘이 있는 것 같아요.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었다는, 누구에게도 가닿을 수 있는 보편 정서를 가진 이야기였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의 기쁨도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자기 삶을 사랑하는 사람은 타인의 삶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는 한 교수님의 말씀이 생각나요. 자신을 깊이 탐구하는 일은 타인을 이해하는 일과 맞닿아 있어요. 


우리 사회가 불행한 이유 중 하나는 남에 대해 끊임없이 말하는 사회라는 거예요. 남의 삶을 이야기한다는 건 그만큼 자기 삶을 성찰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런 면에서 우리는 아주 불행한 사람들이죠. 안타까워요. 정말 자기에게 집중하고, 자신에 대해 만족하고, 자신과의 관계를 잘 풀어나가는 사람들은 타인과의 관계도 잘 풀 수밖에 없잖아요. 함부로 타인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아요. 그런 면에서 미성숙한 사회란 생각도 많이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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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삶을 생각할 수 없어


여행한 지 십 년이 넘었는데요. 길 위에서의 삶, 돌아보니 어떤가요?


고단해라.(웃음) 모든 삶에는 양면이 있는 거잖아요. 아까 얘기한 것처럼 결핍이 있을 수밖에 없는데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일방적으로 환상을 갖고 보시는 것 같아요. 이번에 산티아고를 걸으면서도 제일 싫었던 게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느냐’고 물어볼 때였어요. 제가 무슨 일을 한다고 하면 모두가 꿈의 직업이라느니 부럽다느니 하는 말을 하거든요. 이 삶의 안 좋은 점도 다른 삶의 부러운 점도 얼마든지 이야기가 가능해요. 그런데 환상을 갖고 많이 보시는 것 같아요. 일부러 고단하고 힘들고 외롭다는 이야기를 하는 건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제가 태어나서 내린 결정 중 가장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죠. 다리에 힘이 남아 있는 한, 돈이 있는 한 마지막 순간까지 계속 여행을 하고 싶고, 여행자로 살다 세상을 떠나고 싶은 바람이 있고요. 지금으로서는 다른 삶을 생각할 수가 없어요.

 

책에도 어느 지역의 소녀는 작가를, 작가는 그 소녀들을 서로 부러워하는 장면이 나오죠.


인간은 모든 걸 다 가질 수 없는 존재예요. 중요한 건 지금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하고, 가지고 있는 것을 충만하게 쓰는 거라고 생각해요. 여행으로 계속 배워온 것도 제가 가지지 못한 것을 욕망하는 것보다 이미 충분히 가지고 있는 것들에 더 만족하며 살아가는 법이고요.

 

낯선 이들과의 모임을 가끔 한다고 하셨어요. 어쩌면 또 하나의 삶의 방식의 실마리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여행을 하면서 특히 가난하다고 생각하는 나라일수록 이방인인 저를 겁 없이 집 안으로 끌어들여 밥을 나눠주고, 가진 것을 선물로 내어놓는 식의 환대를 보여주는 사람을 많이 만났어요. 『외로움이 외로움에게』라는 책에서 쓴 이야기인데요. 파리에서 여행 전문 서점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친구를 만난 적이 있어요. 처음 만난 자리에서 집에 초대를 하더라고요. 가겠다고는 했는데 약간 불안한 마음은 있었죠. 갔더니 저뿐 아니라 그 친구가 일하면서 알게 된 여행자들을 초대한 거예요. 북유럽에서 온 친구, 세계 일주를 곧 떠날 커플, 저, 이렇게 다양하게 모여서 여행 이야기를 나누고, 일본 음식을 먹고, 한국 음악을 듣고, 했죠. 그 순간이 잊히지 않는 아름다운 순간으로 남았어요. 어디에도 정착하지 않은, 정거장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죠. 그러다보니 여행지에서 일어나는 이런 마법 같은 순간들을 일상의 공간에서는 누릴 수 없을까 생각하게 됐어요. 그 방법의 하나로 모르는 사람들이 만나서 밥을 먹을 수도 있고, 책을 읽을 수도, 좋아하는 시를 읊을 수도 있는 거죠. 그러다가 ‘책 읽는 밤’, ‘밥 먹는 밤’, ‘시와 산책이 있는 오후’ 이런 것들을 꾸렸던 것 같아요. 자주 하지는 못하지만 내킬 때 어쩌다 한 번 씩 하고 있어요.

 

외롭고 고독한 시간을 지나는 중인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시가 있을까요?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성 시인의 시에서 위안을 많이 얻었어요. 책에 소개한 김선우 시인, 김소연 시인, 허수경 시인의 시를 통해 굉장히 위안을 얻고요. 지금도 여행을 떠날 때 이분들의 시집 한 권은 꼭 넣어가고 있는데요. 그 세 분의 시집을 추천하고 싶어요.

 

그런 조건을 스스로 생각해서 찾아보는 것도 방법이겠네요. 가령 동시대의 동년배 시인의 시를 읽는다든가 하는 식으로 말이에요.


네, 남자분이라면 동시대를 살아가는 남자 시인은 어떻게 세상을 보는가 그런 걸 볼 수 있겠죠.

 

다음 여행 계획은 어떤 건가요?


내년 봄에 그리스의 섬에서 두 달을 보낼 거예요. 이후 산티아고를 다시 가서 걷지 못한 구간을 마저 걷고 알베르게(Albergue, 순례자 전용숙소)에서 자원 봉사도 좀 하고 싶고요.

 

이 책을 읽으려는 독자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세요?


길고 긴, 춥고 쓸쓸한 겨울밤에 이 책을 머리맡에 놓아두고 한 편 씩 읽으셔도 좋을 것 같아요. 짧은 몇 십 편의 글로 이루어져 있으니까 한 편의 글을 잠들기 전 잠시 읽어주신다면 좋겠네요. 스물여덟 편이니까 약 한 달 동안 이 책을 천천히 읽어보시면 어떨까요. 한 자리에서 다 읽어주시는 분도 물론 감사하고요.(웃음) 동시대를 살아가는 한 여자 사람의 기쁨과 외로움을 같이 공유하는 시간을 가져주신다면 더 좋을 수 없을 거예요.


 

 

길 위에서 읽는 시김남희 저 | 문학동네
세계 구석구석을 걸으며 길 위에서 만난 풍경과 사람에 대해 전했던 여행가 김남희가 이번에는 길 위에서 읽은, 자신의 마음을 뒤흔든 스물여덟 편의 시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손광수, 밥 딜런의 사랑과 저항의 노래를 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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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딜런이 노벨문학상 수상을 하면서 언론에서는 앞을 다퉈 밥 딜런에 대한 이야기를 쏟아냈다. 그의 노래를 과연 문학으로 볼 것인가에 대한 논란은 계속되었지만, 그의 노래가 어떤 면에서 문학적인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되지 않았다.


“밥 딜런의 노래 한 두곡으로는 그의 음악 세계를 알 수도 없고, 평가할 수 없다.”


사실 영어권이 아닌 우리나라에서 밥 딜런의 노래를 이해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그런 와중에 국내에서 유일하게 밥 딜런에 대한 논문과 책 『음유시인 밥 딜런』을 쓴 손광수 작가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오랜 시간을 연구를 거듭한 학자로서 밥 딜런의 의미와 노래에 대해 보다 깊이 있는 해석을 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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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딜런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박사 학위 논문을 밥 딜런의 가사 연구로 받았고요. 안양대학교에서 영문학 세미나 강의를 맡게되었어요. 그 때 제 논문을 기초로 학생들에게 밥 딜런을 가르쳤습니다.

 

밥 딜런에 대한 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반응은 어땠는가.


반응이 갈렸습니다. 처음엔 대중음악 가수를 한다고 해서 기대를 했는데 막상 듣고 보니 복잡하다고 생각을 하더라고요. 시대상황도 알아야 하고, 가사도 만만치 않고. 음악도 젊은 취향에 어필하지 않으니까요. 거기에 거부감을 느끼는 학생들이 상당수 있었고 일부는 색다르다고 이야기하는 학생들도 있었어요. 그래도 공통된 의견은 평소에 듣던 대중음악과는 완전히 다르다는 거였죠.

 

밥 딜런에 대해서 반응이 엇갈리는 것은 대중들의 반응이기도 하다.


그렇죠. 당시 학생들 자체가 한국 대중음악의 소비자들이고 향유하는 방식이 비슷할 테니까요. 유명한 음악 평론가인 사이먼 프리스(Simon Frith)는 대중음악은 포크적인 담론, 대중적인 담론, 예술적인 담론이 있다고 설명한 게 있습니다. 여기서 포크적인 담론은 포크 음악이라기 보다는 뿌리를 말합니다. 민중들로부터 제도권으로 들어가는 과정이고, 예술적인 담론이라는 것은 작가주의, 대중적인 담론은 대중, 상업적인 것을 이야기하는데요. 예술적인 담론과 대중적인 담론이 공존해야 한다고 이야기 하고 있죠.

 

박사 학위를 취득한 게 2010년인데, 그 때면 밥 딜런이 이미 노벨문학상 후보로 올랐을 때였다.


네, 밥 딜런이 1997년에 처음으로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랐어요. 비트 시인 앨런 긴즈버그 (Allen Ginsberg)가 미국의 영문과 교수 고든 볼에게 제안을 했고, 그 문학 교수가 제안서를 작성 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2016년에 노벨 문학상에 선정이 됐다. 어떤 느낌이 들었나.


굉장히 충격적이었어요. 책 판매를 위해 노벨상 후보라는 것을 어필하긴 했는데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봤거든요. 재밌는 건 제 박사 학위 논문을 심사를 할 때 심사위원 중 한 분이 요즘 같은 포스트모던 시대에 누가 밥 딜런은 시가 아니고 대중음악이 시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나, 시라는 게 따로 존재하는 거라고 누가 이야기를 하겠냐고 말씀하셨거든요. 그런데 이번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고 문학이냐 아니냐 논란이 불자 그게 또 다른 충격으로 다가왔어요.

 

동감한다. 어떻게 레코딩 아티스트가 인쇄 문화의 영역을 넘볼 수 있냐 하는 아주 고전적인 충돌이었다. 그것이 답답한 것 보다는 아직도 이런 논란이 있구나 싶어 충격을 받았다.


불만이 있을 수는 있지만 밥 딜런을 잘 모르면서 이야기하는 것은 매우 안타까웠습니다. 1960년대 저항의 상징이라는 것과 노래 몇 곡만 가지고 칼럼이 나오기도 했고요. 잘 모르는 것은 판단을 유보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건 한국 사회에 대한 비판일 수도 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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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딜런이 노벨문학상을 받은 것의 의미는 무엇이라고 보나.


밥 딜런의 수상은 장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장점은 제도권 밖의 시가 시로서 인정을 받았다는 거죠. 스웨덴 한림원의 관계자가 “문학의 역사를 보면 항상 문학이라는 개념이 확장된 역사였다. 사실 처음에는 라틴어로 쓰인 시만 시였고 시장에서 부르는 노래는 시가 아니었는데 이것도 점차 범위가 확대되었고. 소설도 문학이 아니고 편지나 일화였는데 점점 문학으로 포섭되었다. 그런 맥락에서 밥 딜런의 노래도 시가 된 것이고 이런 수상 결과는 전혀 센세이션한 것이 아니다”라고 얘기를 했는데 거기에 상당히 공감을 했습니다.


하지만 밥 딜런 수상의 부정적인 측면도 얘기하고 싶어요. 딜런은 이미 제도화가 상당히 되었다고 생각하거든요. 연구의 대상이 됐고 논문과 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고요. 그래서 노벨문학상 수상은 딜런이 완전히 제도화 됐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의 시는 제도권 밖에 있어서 의미가 있는 시였는데 말이죠.


하지만 고급 예술과 대중문화의 영역에서 다 같이 성찰 할 수 있는 기회를 줬다고도 생각합니다. 고급 예술이라고 하면 그들의 리그가 있잖아요. 그 사람들에겐 폐쇄성과 엘리트주의에 대해 고민할 계기를 마련하고요. 대중문화에서는 문화가 자본에 종속된, 그래서 작가주의가 실종된 작금의 상황에 경종을 울리는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노래가 문학으로서는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나.


밥 딜런의 노래가 시적인 이유는 해석이 고정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해석에 머무르지 않는 거죠. 그의 노래는 사실 시 더하기 노래가 아닙니다. 언어 표현이 따로 있고 거기에 음악이 더해진 게 아니라 노래가 시처럼 작용하게 만들려고 상당히 고민을 많이 했어요. 「Like a rollin' stone」의 경우 지면으로 볼 때는 잔인하고 한 여성에 대한 조롱, 경멸이라고 해석이 되지만요. 딜런의 지르고 외치는 창법과 사운드는 경쾌합니다. 언어가 갖고 있는 부정적이고 공격적인 것들이 음악이 갖고 있는 밝은 기운과 만나서 화학작용을 이루게 되면서 다양한 해석이 나오게 되죠. 그리고 이 노래가 또 재밌는 것이 이중적 해석이 가능합니다. 1960년대 당시 반문화 정신, 기성 가치 질서에 대항하는 자유에 대한 찬가로 들릴 수도 있고요. 가출해서 마약하고 샌프란시스코를 돌아다니는 히피들을 조롱하는 것처럼도 들립니다.

 

예술이라는 게 갖는, 특히 언어로 표현되는 예술이 갖는 모호함이 있다. 어쩌면 그것이 예술의 본질일 수도 있지 않을까. 딜런이 가장 대표적 사례다. 모호함의 극치 같다.


사회 운동이나 정치를 이야기 할 때 선과 악, 혹은 이분법으로 나누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 내면의 리얼리즘을 극단으로 나눌 수는 없습니다. 예술가는 바깥 현실만 보는 게 아니라 내면의 혼란스러움도 직시하게 되죠. 이건 옮음과 정직함의 갈등이란 생각도 듭니다. 옮음이 정치적인 당위, 정치적인 선이라면, 정직함은 추악할 수도 있는 내면의 욕망이죠. 최근 한국사회의 의사소통이나 담론들 분위기가 조금 더 명료한 방식으로, 투명함을 지향하는데요. 이는 언어를 민주화시킨다는 시적 언어를 질식시키는 부작용도 있어요. 저는 밥 딜런이 20대 초반에 이런 생각을 했다는 것이 놀라웠고 그의 책을 쓰면서 제일 고민했던 지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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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유일하게 밥 딜런으로 박사를 취득했다. 외국에서는 많은데 국내에서는 앞으로도 어렵지 않을까 싶다. 과연 밥 딜런의 어떤 부분이 손광수라는 사람에게 논문을 쓰고 싶을 정도로 자극을 한 걸까.


밥 딜런 노래를 처음부터 좋아한 건 아니었습니다. 팝 음악을 취미 수준으로 중고등학교 때부터 듣긴 했지만 밥 딜런은 꽤 늦게 만났습니다. 그 전에는 다양한 가수들을 좋아해서 비틀스도 좋아하고 하드록도 좋아했어요. 밥 딜런은 대학교 그것도 고학년때 만났는데 음악을 처음 듣자마자 충격이었어요. 2집 <The Freewheelin' Bob Dylan>을 들었을 때 모든 장식을 제거한 사운드, 노인이 부르는 듯한 창법이 신선했어요. 이제까지 들어보지 못했던 사운드였습니다.

 

밥 딜런의 음악은 보통 가사에 이끌리게 되는데, 사운드와 창법이란 게 놀랍다.


처음에는 국내에서 소개된 <The Freewheelin' Bob Dylan><Blonde On Blonde>, <Blood On The Tracks>을 즐겨 들었어요. 가사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도 가장 듣는 쾌감을 줬던 앨범입니다. 그러다가 밥 딜런에게 저항가수라는 타이틀이 있잖아요. 그 것 때문에 신비롭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가사를 해석해볼까 생각도 들고요. 제가 문학 전공이다 보니 박사 학위 논문 주제를 정할 때 가사가 시적이라고 하는데 한 번 해볼까, 아무도 안 했으니까 호기심에 시작하게 된 거에요.

 

가사를 해석하기가 힘들지 않았나.


사실 밥 딜런 가사 자체가 그렇게 어렵지는 않아요. 그런데 이건 설명하기가 어려운 부분인데 처음에는 실망도 많이 했어요. 좋은 시의 기준 같은 게 있잖아요. 거기에 비춰보면 밥 딜런의 노래는 좋은 시 같지 않고 마구 나열한 것 같고. 역시 밥 딜런 노래는 시가 될 수 없다, 시인은 아니구나 이런 생각을 하기도 했어요. 그러다가 비평이나 해석들을 보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우리가 좋은 시라고 생각하는 그런 구조적으로 완벽한 시를 그가 쓰지 못해서 안 쓴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어요. 밥 딜런이 가수로서 지향이 있어서 그의 시는 지면의 시가 아니었던 거죠.


이제는 그의 음악과 목소리가 만나 시가 된다고 생각해요. 나열식이고 병렬식인 구조죠. 이것은 인쇄매체에서 보는 완벽한 구조의 시와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밥 딜런은 포크 구술 전통을 하나의 시적인 전통으로 보고 있고요. 구전 과정을 보면 입에서 입으로, 무명 가수에서 무명, 유랑에서 유랑으로 전달됩니다. 그 과정에서 많은 얘기들이 탈락됩니다. 그러다 보니 나중에는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고 초현실적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두 번째는 큐비즘적인 영향을 많이 받았습니다. 자신의 가사를 파편의 연결로 구성을 하는 거죠.

 

밥 딜런의 노래는 인쇄 언어에 그친 게 아니라 사운드를 들어야 한다. 그리고 시대성과도 분리 할 수 없다. 공부의 폭이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이를 어떻게 극복했나.


음악적 부분, 특히 감상적인 느낌은 언어가 아니죠. 여기에는 언어적 논리를 부여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려움을 많이 느꼈습니다. 특히 저는 음악을 해 본적도 없고 전문적으로 들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게 내 약점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문학전공자니까 이때는 여러 서적을 참고하는 수밖에 없었어요. 하지만 1960년대는 제가 좋아하는 시대라 힘든 점은 크게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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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딜런의 업적은 무엇이라고 요약하나.


밥 딜런은 독특한 예술가의 위치가 있습니다. 대부분 밥 딜런을 시인, 시로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요. 그는 사실 훌륭한 송라이터입니다. 레코딩에서 그만의 언어를 표현해냈기 때문에 레코딩과 글자의 가장 완벽한 결합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그의 시는 거리의 시, 삶에 가까운 시라고 생각합니다. 경계인과도 유사하죠. 밥 딜런이라는 아티스트 자체가 제도권에서 보기에는 경계고, 시가 아니겠습니까. 고급 예술은 폐쇄성이 존재하는데, 여기에서 보면 저항하는 시인이고, 대중음악 입장에서는 대중음악이 상품성에 매몰되는 작가주의를 지향하는 사람인 거죠. 딜런은 대중적 가치를 완전히 무시하진 않으면서도 포크적 가치와 예술적 가치를 가져오려고 했습니다. 반면 상품성과 상업성에 저항하지만 음악으로 성공한 가수죠. 밥 딜런의 가치는 고급 예술과 대중문화 양쪽의 경계에서 생각할 거리를 주는 데에 있습니다.

 

그는 정체성을 다양하게 바꾸기도 했다.


밥 딜런은 자기 정체성을 계속 바꿨고 그 과정에서 사운드와 목소리도 바꿨습니다. 듣다 보면 한 사람의 음악을 듣는 게 아니라 한 사람 안의 군중이 들리기도 하죠. 밥 딜런에 입문하다 보면 온갖 장르의 음악, 온갖 사람의 음악을 듣는 착각을 줍니다. 한 사람을 통해 다양한 장르와 목소리를 듣는 것은 신비한 체험입니다.

 

내한 공연에 갔었나? 밥 딜런은 공연도 창의적이었다. 원곡의 느낌을 전혀 표현하지 않더라고 느꼈다. 어떻게 생각하는지.


내한에 갔었어요. 다른 가수들과 공연하는 방식이 많이 다르죠. 보통 앨범에 가깝게 표현하려고 하는데, 밥 딜런은 앨범 버전을 해체해버립니다. 노래를 재구성하고 원래 음악을 파괴해 버립니다. 아까 말씀하신 대로 실험의 결과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과정 속에서 순간순간 새로운 결과를 향해 나아가는 독특한 공연 미학이 있는 것 같습니다. 최근에 인터뷰를 봤는데 자기 앨범을 만들어놓고 듣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앨범을 녹음할 때도 공연과 비슷해요. 일단 세션이 어떤 곡을 하는지도 모르고 와서, 오면 즉석에서 노래를 가르쳐줍니다. 그리고 이렇게 해봤다 저렇게 해봤다 하면서 수많은 다른 버전을 만들어내죠. 그 중에서 가장 좋은 결과를 선택한다고 해요.

 

밥 딜런 외에 좋아하는 가수는 누가 있는지.


레너드 코헨도 좋아하고, 벨벳 언더그라운드도 좋아합니다. 라디오 헤드도 좋아하고요.

 

레너드 코헨의 경우도 가사 측면이 작용한 건가.

레너드 코헨은 가사를 해석하고 있습니다. 제가 히어링이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노래들은 가사를 알고 듣지는 않아요. 밥 딜런이 상을 받아서 행복했는데, 레너드 코헨이 이를 두고 극찬을 했었습니다. 레너드 코헨 입장에선 밥 딜런 그늘에 가려진 영원한 2인자였어요. 그래서 복잡한 감정이 있을 거라고 생각이 들었는데 그럼에도 칭찬을 아끼지 않았죠. 그런데 그러고 나서 바로 돌아가셔서 상당 기간 우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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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런의 주요 노래를 추천한다면 어떤 곡을 꼽겠나.


한국에서 밥 딜런을 이야기 할 때는 한 두곡으로만 얘기합니다. 하지만 밥 딜런의 명곡은 너무 많습니다. 「Ballad of a thin man」, 「Girl from the north country(2집 버전)」, 「It's all over now」, 「baby blue」, 「It's alright, ma (I'm only bleeding)」, 「Like a rolling stone」, 「Idiot wind」, 「I shall be released」, 「Mississippi」, 「Absolutely sweet marie」, 「Pay in blood」를 뽑고 싶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사랑 받는 「Knockin' on heaven's door」는 어떤가.


이 노래의 경우는 상당히 잘못 알려진 부분이 있습니다. 사실 보안관이나 이런 단어가 등장하는 것을 보면 서부 영화에 맞는 노래인데요. 많은 사람들이 베트남 전쟁과 연결하고 있죠.


밥 딜런은 정규 앨범에서 꼭 명곡을 제외시켜요. 「Blind willie McTell」, 「Abandoned love」도 제외 되었고... 사실 이런 곡들이 한 두곡이 아닙니다. 「You belong to me」는 밥 딜런의 오리지널은 아니지만 아무튼 앨범에 없어요. 발표가 되지 않은 부틀렉(Bootleg) 시리즈가 상당히 많습니다. 1960년대 밥 딜런에 관심이 있으면 이 부틀렉 시리즈 앨범을 반드시 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부틀렉 시리즈를 들으면 대중의 관심이 더 사라지지 않겠나.


(웃음) 그렇겠죠. 하지만 밥 딜런의 세계를 한 두곡으로만 판단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사진 : 김정변지
인터뷰 : 임진모, 김반야, 정민재
정리 : 김반야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신동욱 “사람들이 희망을 품었으면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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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욱은 2003년 KBS 공채 탤런트로 데뷔했다. <슬픔이여 안녕>, <소울메이트>, <별을 따다줘> 등의 드라마에 출연하며 얼굴을 알렸으나 군 복무 중 ‘복합부위통증증후군(CRPS)’이라는 희소병 판정을 받는다. 주로 팔과 다리에 발생하며, 해당 부위에 극심한 통증이 일어나는 난치병이다. 어떤 경위로 증후군이 발생하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투병 생활을 하며 쓴 소설이 『씁니다, 우주일지』이다. 우주를 사랑하는 괴팍한 천재이자 사업가인 맥 매커천과 이론물리학자 김안나가 우주 엘리베이터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소행성을 포획하러 우주로 떠나다 사고를 당한 맥 매커천은 아프고 외롭고 힘든 와중에도 아내에게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여기까지 보면 심각할 것 같지만, 주인공은 소설에서 시종일관 농담을 입에 달고 산다.

 
‘우주의 긍정왕’ 주인공의 입을 통해 신동욱 작가는 자신의 심정을 담아냈다. ‘위로는 한번 빠져들면 헤어나올 수 없는 블랙홀’이었기에, 위로보다는 다시 돌아오겠다는 팬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소설 쓰기를 택했다. 과학 소설 외에도 다른 이야기를 계속 쓸 생각이라고 하니 앞으로는 ‘신동욱 배우’와 ‘신동욱 작가’, 둘 다 만날 수 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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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사람들을 피했어요

 

소설을 내고 인터뷰가 많이 잡혔나요?


그렇게 많이 하진 않았어요. 인터뷰하려고 밖에 나오면 약 용량을 조금 늘려야 해서 잘 안 해요. <채널예스>는 특별하니까요. (웃음)


최근 <말하는대로>에 출연하시기도 했어요. 오랜만에 방송한 기분은 어떠세요?


카메라 앞에 선 게 거의 5년 만이었어요. 글 쓰느라 1년 동안 사람들을 안 만나기도 했고요. 아픈 기억을 괜찮다고 다독이며 살았는데 한꺼번에 끄집어 내려고 하다 보니까 조금 버겁더라고요. 처음에는 힘들었는데 다행히 사람들이 앞에서 응원해주고 그래서 잘 끝냈어요. 솔직히 말하면 아직 사진기 앞에 서는 것도, 인터뷰도 어색해요.

 

복귀하면서 사실 병에 관한 내용이 주로 부각되잖아요. 위로를 받는 게 부담스럽진 않았나요?


사람이 진짜 힘들면 위로받고 싶어지는데, 진짜 힘들면 위로 받았을 때 내가 얼마나 잘못된 상황에 빠졌는지 더 알게 되잖아요. 진짜 잘못되면, 옆에서 괜찮다고 위로하는 게 기억하기 싫은 상황을 한 번 더 되뇌이는 격이 돼요. 그래서 사람들을 피했어요. 제 자신이 못 버틸 것 같아서요. 전화도 안 받고요. 그러다 글을 썼어요.


뭔가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 순간이 언제였나요?


2013년 즈음이요. 팬들이 저를 강제로 소환해서 응원한 적이 있어요. 그때 팬들에게 뻔뻔하게 건강을 추르시고 다시 돌아오겠다고 약속했어요. 생각해 보니까 컨디션이 안 되는 거예요. 몸이야 좋아지고는 있지만 잘 된다는 보장도 없고요. 그래서 뭘 할 수 있을까 하다가 과학 소설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과학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로맨스 부분은 세계 1위가 있잖아요.


1위면…. 누구죠?


김은숙 작가님이요. 로맨스 코미디 분야에서 1위는 김은숙 작가님이라고 생각해요. 그 자리에 아무리 끼고 들어가봐야 그분처럼 쓸 자신도 없고 그 분야에 도전하는 사람도 많아요. 생각해보니 제가 과학을 좋아하기도 하고 재밌게 잘 쓸 수 있을 것 같기도 한데, 쓰는 사람이 별로 없더라고요.


자료 조사도 많이 하셨을 것 같아요.


글을 쓰기로 마음먹고 과학 책을 읽었어요. 막연하게 읽다가 2015년까지는 자료를 정리하기 시작했어요. 1년 읽고 1년 정리하고, 그러고 나니까 눈에 상황이 보이더라고요. 글을 쓰기 시작한 건 2015년 6월 정도부터였어요.


처음 쓰는 글을 장편 소설 분량으로 1년 만에 썼다니, 대단한데요.

 

목표가 원래 600페이지였거든요. 외국 소설 책 보면 두툼하잖아요. 긴 이야기가 좋아서 나도 많이 써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처음 쓰니까 자신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더 많이 써 놓고 필요한 부분만 살리자 마음먹고 잔뜩 썼어요. 4,400매 정도 쓰고 책으로 살아남은 게 1,700매 정도 될 거예요. 제가 써 놓고도 못 알아듣는 과학 지식, 최신 전문 지식도 일단 썼어요. 다 빼버리고 재밌는 부분만 남겼죠.


출판사와 어떻게 연락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처음 초안을 장르 소설 전문 출판사에 보냈어요. 한 달 동안 연락이 없었어요. 전화해서 ‘죄송하지만 제가 처음이라, 어디가 잘못됐는지 평가를 좀 내려주시겠어요’ 부탁을 하니 두 시간 후에 이메일로 거의 작가 하지 말라는 식의 악평을 보내주시더라고요. 이게 현실인가 싶어서 좌절도 하고, 편집자 님을 욕하기도 하다가 제가 쓴 걸 읽어보니 정말 재미없더라고요. 어쨌든 쓰기로 마음먹은 거고, 팬들이랑 약속했으니까, 하면서 다시 썼죠.


지금 출판사와는 어떻게 만나게 되셨나요?


‘세계 1등 콘텐츠 기업을 만들고 싶다’는 대표님 인터뷰를 보고 또 연락을 했죠. 저도 시작 하면 1등을 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제대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기왕 쓰는 거 제대로 쓰고 싶었거든요. 당장은 아니더라도 네뷸러 상이나 휴고 상도 목표로 하고, 외국에서도 영화화 될 수 있는 작품을 쓰고 싶었어요. 연락을 하고 나니 인터뷰 내용하고 또 다를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파주까지 택시를 타고 직접 찾아갔어요. 대표님과 담당자 분들을 만나서 제 꿈이 무엇이고, 이 책은 어떤 내용인지, 몇 부나 팔릴지 직접 써서 보여드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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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에 사랑을 품었으면

 

책을 쓰기 위해 과학 소설을 150권 넘게 읽으셨다고요.


생리학이나 우주 역학 책도 있었고요. 실제 과학적인 상황이 눈에 보일 때까지 자료를 모으고 싶었어요. 책에서 태양풍 때문에 주인공이 우주선의 전원을 끄는 장면도 실제 태양풍 주기와 맞아요. 2013년에 거대 태양풍이 발생했으니, 10년에서 12년 주기로 생각하면 맥 매커천이 태양풍을 만나는 때가 딱 그 시점이죠. 


소설을 써야겠다는 결심 전에도 글을 쓰겠다는 생각이 있었나요?


책을 워낙 좋아해서요. 책을 읽다 보면 그런 욕구가 생기잖아요. 이 정도라면 나도 쓸 수 있겠다는 막연한 생각이라든지요. 실제로 쓸 자신은 없었죠. 『스티븐 킹의 유혹하는 글쓰기』에서 지금 당장 겁먹지 말고 써 보라는 조언을 보고 실제로 쓰기 시작했어요. 팬카페에 글을 정말 많이 쓰는 편인데, 그게 습작의 일종이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은 들더라고요.


팬카페에 쓴 글을 봤는데 주인공 말투와 비슷하더라고요.


그 글은 맥커천 말투 맞아요. 화자를 주인공으로 설정해서 쓴 거예요.


평소 팬카페에 쓸 때는 말투가 어떤가요?


다양해요. 존댓말로 쓰기도 하고, 까칠한 날은 반말로 늘어놓기도 하고요. 남자친구처럼 쓸 때도 있고 공지처럼 딱딱하게 쓰기도 해요.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써요.


다른 장르도 있을 텐데, 왜 소설이었나요? 에세이도 있을 테고요.


정확히 에세이란 장르가 뭘 써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글도 알아야 맛깔나게 쓸 텐데, 에세이나 자기계발 책은 잘 안보거든요.


이야기 장르를 좋아하는 편이었나요?


<삼국지>는 거의 오십 번 넘게 봤고요. 어렸을 때부터 TV보다 책을 좋아했어요. 무협지도 많이 보고요. 아마 제가 무협지를 쓰면 장풍도 과학으로 쏘지 않을까요? 주인공한테 기구 같은 걸 달게 만들지도 몰라요.

 

아이언맨인데요? (웃음)


그 생각도 해봤어요. 우리나라에 히어로물이 잘 없더라고요. 그러려면 그림도 같이 그려줘야 하는데, 안 되겠더라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안 팔릴 것 같아요. (웃음) 판매 부수도 물론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청소년들이 많이 보고 과학에 사랑을 품었으면 좋겠어요. 우리나라가 미국이나 일본, 중국에 비해서 과학이 뒤쳐져 있어요. 제가 과학자는 아니지만 글을 쓸 수는 있으니, 최대한 정밀하게 써서 어린 친구들이 소설을 읽고 과학계에 꿈을 품는 씨앗을 전하는 게 과학 소설을 쓰겠다고 결심한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에요. 
 

등장 인물 이름은 어떻게 지으셨어요?


번역서를 보면 가장 헷갈리는 게 이름이에요. 읽다 보면 누가 누군지 모르는 경우가 많잖아요. 외국에서 번역이 된다면, 쉬운 이름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안나라는 이름을 썼어요. 빌리는 <러브 액츄얼리>에 나오는 가수 이름에서 따왔어요. 맥커천도 단편 영화 캐릭터에서 빌려오고, 신민준은 멋있어 보이는 이름이라 그냥 썼어요. 아이유 다쿠미는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남자 주인공 이름이었어요. 
 

 

표절, 아닙니다


<마션> 때문에 고친 부분도 있다고 하셨어요.


우주를 좋아하는 비과학자가 구할 수 있는 과학 지식이 한계가 있어요. 거의 유럽 아니면 미국의 우주 다큐멘터리나 책인데, 보다 보면 겹치는 게 많아요. <마션>이 나왔다길래 봤어요. 처음에는 재밌다고 좋아하면서 보다가 점점 얼굴이 굳어졌죠. 너무 뽑아놨던 자료랑 이야기가 비슷한 거예요. 이렇게 쓰면 <마션>을 따라했다는 말이 나올 거 아니에요. 그래서 처음에는 김안나의 분량이 훨씬 많았는데 줄어들고 맥 매커천이 위로 올라왔어요. 한국인으로 설정한 등장인물의 분량이 많이 줄었죠.

 

소설에는 2020년 경이 배경이지만, 처음 쓰신 배경보다 5년에서 10년 정도 앞당기셨다고 했어요. 그 정도 시기면 소설에 나오는 내용이 현실로 이루어질 거라고 생각하신 건가요?


주인공의 캐릭터를 잡은 게 일론 머스크였어요. 그 사람이 잡은 우주 여행 시점도, 나사에서 잡은 계획도 늦어도 2030년이에요. 소행성 포획까지는 아니어도 화성 이주까지는 되지 않을까 싶었죠. 탄소 나노슈브 빼고는 아마 다 가능할 거예요.

 

연기도 그렇지만, 다 끝나고 나서도 캐릭터가 생생하게 남아있잖아요. 퇴고 이후에도 캐릭터에 대한 잔상이 남아 있었나요?


주인공과 같이 표류하다 보니 마지막에는 그 사람이 느낀 감정을 다 느꼈어요. 주인공이 나중에 외로워서 인형을 만들잖아요. 나중에 사람들이 <캐스트 어웨이>에 나오는 배구공 윌슨이랑 닮았다고 그러더라고요. 저는 그 영화를 안 봤는데, 집에 강아지가 있어요. 제가 글을 하루종일 쓰고 안 놀아주니까 저를 하루종일 째려보는 거예요. 혼자 있으니까 강아지한테 혼잣말을 하기 시작한 거죠. ‘어떻게 생각해, 어떻게 하라고? 너 천잰데?’ 그러다 보니까 이걸 써야겠다 싶었어요. <캐스트 어웨이> 표절, 아닙니다. (웃음)

 

안나가 맥커천이 죽었다고 생각한 와중에 직원을 해고하지 말라는 이야기도 인상 깊었어요.


4차 산업혁명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처음 쓴 원고에서 중요한 테마 중 하나가 4차 산업혁명 이후 로보틱스 디바이드 현상 때문에 인간의 일자리가 없어지니까 해결 방안을 찾자는 주제였는데, 너무 산만해져서 다 빼고 그 부분만 남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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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소설이라기보다 힐링 소설

 

'우울해질 때면 스티븐 킹, 아이작 아시모프, 칼 세이건 글을 보고 위로를 받았다'는 문장이 있어요.

 

이 장면이, 캐릭터가, 그냥 그 연기 자체가 너무 즐거워서 할 때가 있어요. 그렇듯이 글도 읽다보면 이 사람이 정말 좋아서 썼다는 게 느껴져요. 칼 세이건이 과학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면 정말 좋은 에너지가 나와요. 스티븐 킹, 말할 필요 없잖아요. 그 분들의 글을 읽다 보면 자기 일을 사랑하는 기운이 느껴져요. 읽는 순간 햇빛 아래서 따뜻하게 글을 읽고 있다는 느낌이에요. 너무 외롭다고 느낄 때, 너무 버겁다고 생각할 때마다 그분들의 책을 보면서 용기를 얻었죠.

 

스승님이셨네요.

 

그렇죠. 제가 쓰는 글을 사랑하게끔, 제가 쓴 글을 사랑하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알게 해주셨어요.

 

작가님이 작품 속에서 하고자 했던 말이 있나요?

 

사실, 장르가 과학 소설이라기보다 힐링 소설로 썼어요.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가장 비범한 상황이잖아요. 적막한 우주에, 식량도 없고 사람도 없이 혼자, 모든 것을 가진 남자가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되는 상황이에요. 그런 사람이 하나씩 딛고 일어서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사람들이 희망을 얻고, 시련에 닥치더라도 할 수 있다는 용기를 불어 넣어주고 싶었어요.

 

첫 문장이 '엄청나게 아프다.' 로 시작하죠.

 

저처럼 아픈 사람들의 심리를 대변해 준 거였거든요. ‘아무래도 지구인 중에서는 내가 최초인 것 같다’는 문장도 연예인 중에서는 제가 최초인 것 같다는 말이었고요. 똥 이야기가 많잖아요. 사람들이 살면서 시련을 겪으면 똥 밟았네, 이러는 것처럼 마지막에 똥을 식품으로 바꾸면서 해소가 돼요. 그런 과정에 상징성을 넣은 장면이 꽤 있어요.

 

 팬들 반응은 어땠어요?


싸인회 할 때 팬카페에 쓰지 말고 포털이나 다른 곳에 리뷰를 써 달라고 부탁했어요. 팬 분들은 제 편이니까, 아무래도 칭찬과 좋은 글만 쓰게 되잖아요. 냉정하게 다른 곳에 써 놓으시면 다음 작품 쓸 때 반영을 하겠다고 했죠.

 

 

오로지 작가, 오로지 배우

 

계속 작가님으로 부르긴 했지만, 지금 '신동욱'의 자리는 작가와 배우 사이 어디쯤인 것 같으세요?


지금은 오로지 작가죠. 배우를 할 때면 오로지 배우고요. 만일 제가 배우라고 생각했으면 투고도 소속사를 통해 했겠죠. 회사는 8월까지 제가 책 낸다는 말을 못 들었어요. 기습적으로 다 결정되고 나서야 책 낸다고 이야기했어요.
 

남들은 신동욱을 어떻게 봐주었으면 하나요?


편하신 대로요. 작가로 생각하시면 작가, 배우라고 생각하시면 배우. 이도 저도 아니면 야, 신동욱. 뭐라도 좋아요.

 

요새 건강은 괜찮으세요?


겨울이라 추운 데는 솔직히 힘들고요. 실내에 있으면 그나마 괜찮아요. 예전에 비하면 많이 좋아지고 있어요. 

 

계속 아픈 사람이라는 이미지가 씌워지면, 사실 아픈 것도 아픈 거지만 이미지 때문에 불편하시기도 하잖아요.

 

그렇게 신경 쓰지 않아요. 남들이 보는 게 중요한가요? 아프면 아픈 거고, 참을 만하면 참는 거고요. 병 때문에 내가 뭘 못한다는 건 불행해지는 거잖아요. 제가 사람들에게 용기를 내라고 책에도 써 놓고 버스킹도 했는데, 이미지가 무서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거짓말을 하게 된 거잖아요. 그건 대안이 아닌 것 같아요.

 

앞으로도 소설 쓰실 거죠?

 

생각한 소재는 정말 많은데 하나씩 해결해 나가야죠. 일단 지금 책을 잘 안착시키고 싶어요. 우주판 『반지의 제왕』도 써보고 싶고, 기욤 뮈소의 판타지 로맨스 같은 책도 쓰고 싶고요. 

 

배우 신동욱을 기다리는 팬한테도 답해주실 수 있나요?

 

조금 더 몸이 좋아지고 기회가 오면 반드시 연기할 거고요. 조금 더 좋아지면 가능하지 않을까. 물론 조심스러운 대답입니다. 확답을 내리면 약속을 지켜야 하니까 그렇게 말씀은 못 드리겠고요. ‘건강해지면 연기할 수 있지 않을까.’ 이거 중요합니다. (웃음)

 

 

 

 


 

 

씁니다 우주일지신동욱 저 | 다산책방
이 소설은 우주를 사랑하는 괴팍한 천재 사업가 맥 매커천과 이론물리학자 김안나 박사가 만나 우주 엘리베이터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하면서 시작한다. 맥 매커천은 우주 엘리베이터 건설에 필요한 소행성을 포획하러 우주로 떠나지만, 조난을 당해 막막한 우주를 표류하게 된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해인 수녀 “먼저 대접해야 행복이 밀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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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성 베네딕도 수녀원에서 만난 이해인 수녀는 막 심부름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수녀님이 심부름하세요?” 놀라 물어보니, 손님 맞이, 편지 쓰기, 외출하기 등 모두가 심부름이라고 했다. 하기야 수녀는 「심부름」이란 시에서 “누군가를 위해 선물을 준비하는 심부름은 제일 기쁘다”고 썼다. 인터뷰를 하러 이해인 수녀가 집필하는 공간 ‘해인글방’에 들어섰다. 책상에는 이미 수녀가 준비해놓은 선물 보따리가 있었다. 찬찬히 수녀의 안색을 살폈다. 2008년 대장암 판정을 받은 뒤, 오랫동안 투병 생활을 한 그였다. 긴 시간 대화해도 괜찮을지 안부를 물으려다 이내 입을 닫았다. 위독설이 무색할 만큼 수녀는 활기찼다. 올해로 72세가 됐지만, ‘명랑구름수녀’라는 별명이 여전히 어울렸다.

 

2016년은 수녀의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출간 40주년을 기념하는 해였다. 출판사는 특별판을 만들며 그에게 시 탁상달력을 묶어보자고 제안했다. ‘이해인 수녀가 매일 보내는 작은 위로의 시’ 365개는 『모든 순간이 다 꽃으로 필 거예요』로 다시 빛을 보게 됐다.

 

이해인 수녀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1월 24일 달력에 적힌 시구가 눈에 들어왔다. “그들이 못다 한 웃음까지 다 웃고 가려면 한순간도 우울할 틈이 없습니다. 눈만 뜨면 발견하는 조그만 기쁨들을 더 많이 만들어야 합니다.”(「어떤 결심 하나」) 수녀는 마치 자신이 쓴 시를 증명하기라도 한 듯했다. 소박한 기쁨을 한 사람에게라도 더 전하고자 하는 마음이 눈빛에서도 손짓에서도 쉴 새 없이 쏟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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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긍정하게 하는 시

 

그간 어떻게 지내셨나요? 수녀님의 건강을 걱정하는 분들이 많으세요.

 

그러니까요. 저를 잊을 때가 됐는데 아직 관심을 가져주는 걸 보면 신기해요. 제가 이제 70세가 넘었으니 나름 원로잖아요. 사랑받는 데에 대한 책임을 느껴요. 지난해 마더 테레사 수녀님이 성인품에 올랐을 때, 23년 전 수녀님을 뵀을 때가 생각났어요. 수녀님과 함께 찍었던 사진을 엽서로 만들어서 선물하기도 했어요.

 

동료 수녀분들로부터 “시는 예민하게 잘 쓰는데, 고통에 대한 감각은 둔하다”는 이야기를 들으신다고요. 투병 후 ‘여장부’로 불리시고요.

 

제가 강원도 양구에서 태어났잖아요. 제 안에 뭔가 강한 힘이 잠재해 있었나 싶어요. 8년 동안 투병하면서 내 아픔과 슬픔 때문에 울지 않았어요. 아픔을 즐겼다고 할까요. 노을이 지거나 아름다운 음악을 듣거나, 까치집을 볼 때는 감동이 막 전해오면서 눈물이 나는데, 방사선 치료를 받고 약을 먹을 때는 운적이 없어요. 저도 놀랐다니까요. 언제는 한 시인이 제게 정식으로 편지를 썼어요. 또렷이 기억나진 않지만 이렇게 썼던 것 같아요. “수녀님, 당신이 체면 때문에 울지 못한다면, 아무도 없을 때는 혼자 우셔라. 그래야 독소가 빠진다.” 제가 이 편지를 읽고 문장이 참 아름답고 고마워서 그렇게 해보리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아무도 없는 시간에 성당에 가서 성모상 앞에 앉았어요. 나도 실컷 울어보자 하고요. 그런데 눈물이 좀처럼 나지 않더라고요. 노력을 했는데도요. 체면 때문에 그동안 못 운 게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또 감사했어요. 수도 생활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구나 싶었어요.

 

심부름을 많이 하신다고요. 요즘 가장 즐겁게 하는 심부름은 무엇인가요?

 

모든 일이 의미가 있지만 정신과 환우들과 함께했던 자리가 기억이 나요. 서울시 은평병원에서 주최한 행사인데, 제 시 일곱 편을 택해서 각 정신병동에서 노래로 만들었어요. ‘송 라이팅’(song writing)이라고 음악치료의 한 방법이라고 해요. 종종 문화에 관심이 많은 부산, 울산 등 경남의 청소년들을 그룹으로 만나요. 시 낭송도 같이하고 성당에 가서 수녀들이 기도하는 모습도 보는데, 어떤 아이들은 이 경험을 통해서 문제행동이 많이 줄었다고 해요. 이웃과의 만남 안에서 작지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일이 제겐 참 고마운 일이죠.

 

수녀님의 시 365개를 묶은 달력이 나왔어요. 『모든 순간이 다 꽃으로 필 거예요』는 수녀님의 시 「물망초」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출판사에서 팀을 나눠 제 시를 묶었어요. 아마 저에게 뽑으라고 했으면 애를 먹었을 거예요. 출판사 분들이 절기에 맞게 참 잘 뽑았어요. 시간이 많이 지나서 그런지, 어떤 시는 내가 이런 문장을 썼나 싶을 만큼 새롭더라고요. 처음에 5,000부 정도를 찍었는데, 독자 분들이 선물로 많이 샀나 봐요. 반응이 좋다고 하니 반갑고 고마워요. 초판본 사은품으로 컵받침을 만들었는데 인기가 좋아서 저도 겨우 다섯 개밖에 못 얻었어요.(웃음)

 

매일 하루를 여는 마음으로 읽으면 좋을 시예요. 시를 사진으로 찍어서 주위 사람들에게 보내도 좋을 것 같아요.

 

생활 속에 시가 밀착되면 참 좋죠. 사람들이 많이 모여 말을 하게 되면, 뒷담화를 많이 하게 되잖아요. 뒷담화를 많이 하면 그때만 잠깐 기분이 풀릴 뿐이지 마음이 찜찜해요. 그럴 때 ‘말을 위한 기도’ 같은 시가 적힌 엽서를 나눠주면 좋은 뒤끝을 맺을 수 있어요. 종종 해인글방을 찾아온 방문객들에게 시를 읽혀요. 문장들이 책에서 튀어나와서 내 것이 되면 눈물을 글썽이게 돼요. 눈으로 읽는 것도 좋지만 목소리로 읽으면 시는 다르게 다가오는 법이에요. 또 치매 예방에도 좋고 모국어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도 있으니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시낭송을 하다가 시의 매력에 빠져서 시를 쓰는 사람들도 많이 봤어요.


지금도 시를 쓰시나요?

 

청탁이 오면 쓰지만, 스스로 창작을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에서는 좀 벗어났어요. 제 문학은 위로의 편지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요. 필요하신 분들이 있다면 물론 쓰고 싶고요. 말하자면 맞춤형이라고 할까요. 어느 날, 약을 먹는데 제 앞에 앉은 팔순 수녀님이 수십 알의 약을 드시는 모습을 봤어요. 저는 기껏해야 아침에 7알, 저녁에 3알 정도거든요. 내가 그동안 너무 습관적으로 약을 먹은 게 아닐까, 감사하는 마음으로 약을 먹지 못했다는 기분이 들어 ‘약을 먹을 때 드리는 기도’를 썼어요. 후에 양로원에 가서 이 기도를 읽어주니까, 너도나도 기도문을 달라고 하시는 거예요. 이건 일종의 맞춤형 기도인데, 내가 글을 쓸 몫은 여기에 있지 않나 싶었어요. 앞으로 그런 시를 써야겠다 생각했죠.

 

수녀님께 좋은 시란 어떤 시인가요?

 

읽고 나면 진실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 드는 시라고 할까요. 인생을 긍정하게 되고 삶에 감사하게 되고, 좀 더 선한 사람으로 살기를 갈망하게 만드는 시라면 좋은 시가 아닐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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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대접해야 행복이 밀려옵니다

 

해인글방 안쪽 방을 보니, 40여 년간 독자와 주고받은 편지 꾸러미가 한가득 쌓였어요. 지금도 편지를 받으시죠?

 

여전히 많이 와요. 한 초등학생이 받는 사람 주소를 ‘부산시 민들레의 영토 수녀원’이라고 적었는데도 편지가 도착해 무척 기뻤던 적이 있어요. 책에 추천사를 쓰거나 신문이나 잡지에 글이 나오면, 편지를 많이 보내줘요. 이제는 정리하기도 벅찬데 항상 고맙죠.

 

그래도 꽤 정리하신 것 같아요.

 

본격적으로 모은 건 1986년부터예요.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들, 문인, 수녀나 신부님, 장애인, 미지의 독자 등으로 구분해서 모았는데, 언제 제가 답장했는지도 일일이 다 메모했어요. 지금은 세상을 떠난 분들도 많아요. 더 정리하고 싶었는데, 소임을 하다 보니 쉬운 일이 아니에요. 아마 지금도 있지 않을까 싶은데, 우정사업본부에서 편지쓰기 주간이라는 행사가 매년 열어요. 유명인사들의 편지가 필요하다고 연락이 오면, 고 박완서 작가나 최인호 작가, 법정 스님과 주고받은 편지를 빌려줘서 전시를 여러 번 했어요. 편지를 주고받으면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마음을 전할 수 있는데, 요즘은 편지를 주고받는 일이 드물어져서 안타까워요.

 

최근에 받은 편지 중에 인상 깊었던 편지가 있나요?

 

얼마 전 김제동 씨가 책을 내서 추천사를 써줬어요. 90세 노인이 그 글을 읽고는 김제동 씨 연락처를 모르니까 저한테 편지를 쓴 것 같아요. 자기 남편은 95세라면서 안부를 전하시는데, 그 할머니께는 답장을 하려고요. 너무 감동적이잖아요. 또 지난번 생일날, 중학생 때부터 제 독자이신 분이 그동안 모으신 제 자료를 스크랩북으로 보내줬어요. 이제는 아들 둘을 키운 엄마가 되셨는데, 아들이 제대하는 날 저한테 인사를 오기도 했죠. 저도 가끔 답장을 보냈는데 제 편지 봉투도 안 버렸더라고요. 우표가 110원짜리니 정말 오래됐죠. 원년 독자들이 보내주시는 편지를 읽으면 저도 모르는 제 자료가 많아요. 이런 독자들의 기도와 사랑 덕분에 지금까지 버틸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언젠가 ‘이해인 수녀의 편지문학’을 정리하셔야겠어요.

 

생각을 아주 안 한 건 아니에요. 그런데 도저히 정리할 틈이 없더라고요. 너무 많이 받아서 보내주신 분께 돌려준 것도 있어요. 왜냐면 그분들에게 더 귀할지 모르잖아요. 자기의 인생을 돌아볼 수도 있고요. 요즘은 다들 손편지를 안 하고 이메일만 쓰는데, 편지는 영혼의 메아리 같아요. 요즘 편지 꾸러미를 보면서 ‘언젠가 나도 죽어야 할 텐데, 이것들이 부담되어서 어떻게 하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책상 위에 스티커, 색연필이 잔뜩 있어요.

 

독자분들이 보내준 거예요. 제가 책에 사인할 때, 색연필로 꽃도 그리고 스티커도 붙여요. 그걸 아는 분께서 보내주셨어요. 이번에 나온 달력에는 각자 특별한 날짜 옆에 사인을 해주려고 해요. 아무 데나 사인받는 것보다 더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삶과 시」에서 “시를 쓸 때는 아까운 말들도 곧잘 버리면서, 삶에선 작은 것도 버리지 못하는 나의 욕심이 부끄럽다”고 하셨어요.

 

부끄럽죠. 몇 주 전 <이중섭, 백년의 신화전>을 보러 부산시립미술관에 다녀왔어요. 이중섭 선생이 무척 가난하게 살았잖아요. 생계가 어려워 게를 잡아먹어야 할 정도였는데, 게에게 미안한 마음에 게를 그림으로 그렸어요. 시대적인 상황이지만 마음이 너무 아픈 거예요. 현대사회는 참 풍요롭게 사는데도 끊임없이 욕심을 부려요. 또 관계들이 너무 깊지 못하니 화를 내고 미움이 생기는 것 같아요. ‘내가 자기한테 어떻게 했는데’ 하면서 서로에게 너무 큰 기대를 해요. 기대를 조금만 낮추고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면 좋겠어요. 내가 대접받고 싶은 걸 상대에게 해주면, 행복이 밀려오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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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 걱정만 돼서 오히려 기뻤어요

 

투병하실 때 힘들지 않으셨나요?

 

손발을 움직이기 어려울 때가 있었으니, 지금 이렇게 잘 걷고 말할 수 있는 게 황홀해요. 일상의 황홀함인 거예요. 뭐든지 마음껏 살아가야지, 배려해야지 싶어요. 쫓기듯이 사는 건 의미가 없어요. 요즘 약물에 중독된 사람들이 많아졌잖아요. 너무 아프지만, 나만 아픈 게 아닌 것을 깨닫고 내 아픔을 좀 쿨하게 거리를 두고 느껴야 할 것 같아요. 아픔과 시련은 울고 짠다고 달라지지 않아요. 시간을 낭비하기보다는 축복의 기회로 삼는 게 나아요. 사람들이 “수녀님은 어떻게 그렇게 투병을 하면서도 명랑한가요?” 물으시는데, 큰 게 없어요. 사소하고 작은 마음가짐이죠.

 

아픈 분들로부터 편지도 많이 올 것 같아요.

 

이 편지 한 번 읽어줄까요? 12월 7일에 온 편지인데 읽고 너무 감동했어요. 한 번 들어보세요.

 

“수녀님, 안녕하세요. 밥 한 끼 마음 편히 못 먹고 잠 한 번 제대로 푹 못 자면서 이것은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야. 천사 같은 마음이 있어야지. 가정에 도움도 되잖아, 나를 위로하며 간병인 일을 쭉 5년을 넘게 해온 저에게, 주님께서 소풍을 보내주셨습니다. 급성간염, 그동안 수고했다 이 작은 침대에서 편히 좀 쉬려무나. 비몽사몽 어제와 다른 오늘이 반깁니다. (중략)”

 

저는 이 편지가 곧 문학이라 생각해요. 2016년이 『민들레의 영토』출간 40주년이었어요. 얼마 전에 성당을 방문한 한 여중생이 그동안 낸 책 중에 어떤 표지가 가장 마음에 들었냐고 물어서, 『민들레의 영토』라고 답했죠. 40주년이어서 그랬는지 그때 편지를 참 많이 받았어요. 한 장 한 장 읽으면서 분발하게 되고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다짐했어요. 몇 년 전, 좋은 시 읽기 모임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기회를 놓쳐 정기적으로 하기는 어렵지만, 사람들이 모이면 꼭 시를 함께 읽으려고 해요. 시를 읽으면 그 글이 내 몸으로 들어와요. 육화가 돼요. 글방에 작은 주사위가 있어요. 한 번씩 돌아가면서 굴리면, 마음에 담아둘 좋을 글귀가 나와요.

 

수녀가 되지 않았더라도 시는 쓰셨을까요?

 

썼을 것 같아요. 수녀가 되지 않았더라도 글을 쓰는 일을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국어 선생이나 방송작가, 연극을 했거나 성우가 됐을지도 모를 일이죠. 저는 입회 후 52년간 지역 성당에 따로 파견돼서 선교한 일은 없지만, 시가 저 대신 나비처럼 국내외로 날아다니며 사랑의 문서 선교 역할을 한 것 같아요.

 

종교를 갖는 사람이 줄고 있어요. 수녀님께 종교의 쓸모에 대해 여쭙고 싶어요.

 

아무래도 종교가 있으면 해당하는 믿음 체계 안에서 자신을 절제할 수 있어요. 반대로 교리에만 너무 집중하다 보면 왜곡해서 해석하게 되고, 제대로 된 종교심을 가질 수 없어요. 타 종교에 대해 열린 마음도 필요해요. 스님들을 만날 때, “점심 드시고 가실래요?”라고 말하는 대신 “공양하고 가실래요?”라고 청하면, 그렇게 기뻐하세요. 개신교 신자분을 만날 때도 “심방 가실까요?”라고 인사하면 자연스레 우정이 싹터요. 저는 모태신앙이었기 때문에 타 종교에 대해 배타적이었는데, 비교 종교학을 공부하면서 스스로 열려 있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언젠가 친구들이 말하더라고요. “종파를 초월해서 네 건강을 위해 기도를 해주니, 건강해질 수밖에 없다”고요.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싶다는 소망이 있나요?

 

세상에서 사라졌을 때 수도자로서 시인으로서, 소박하고 아름다운 시를 써서 삶의 작은 위로를 줬고, 시를 통한 위로 천사로 기억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으면서, 이제는 종이가 아닌 일상의 삶 속에 시를 써야겠다고 다짐한 적이 있어요. 아까운 말도 용기 있게 버려서 더욱 빛나는, 한 편의 시로 익어가는 수녀 시인이 되고 싶어요.

 

“내 삶을 시로 정리하고 싶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한 번 할까 하다가, 수도자인 사람이 무엇을 남기는 일이 옳은 걸까 싶어 마음을 접었어요. 법정스님이 자주 하신 말씀 중에 “사람이 죽으면 물건에도 혼이 빠져나간다”는 말이 있어요. 누구를 주려면 살아 있을 때 주라고요. 얼마 전 부산에 지진이 났잖아요. 글방에 있는 책이 우수수 떨어지는데, 우리 성당 리모델링을 17개월에 걸쳐서 했는데, 그게 무너질까 봐 너무 걱정되는 거예요. 내 한 몸 걱정은 안 하고 공동체적 걱정만 하는 걸 보고서, 오히려 좀 기뻤어요.

 

선뜻 책 추천사를 먼저 써주시기도 하시고 여전히 책장에 책이 빼곡합니다.

 

언젠가 서재에 대한 질문을 받고는 ‘마법의 성’ 같은 곳이라고 답한 적이 있어요. 글을 쓰는 작업실이기도 하고 좋은 책을 읽는 독서실, 취미생활도 하는 놀이터 같은 공간이기 때문이에요. 계속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좋은 책들은 쉬이 버리기 어려운 것 같아요. 흔한 말이지만,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책을 손에서 놓지 않고 친하게 지내다 보면, 인격적으로 성숙하고 행복에 이를 수 있어요.

 

최근 인상 깊게 읽으신 책이 있었나요?

 

요즘은 쓱 보는 책이 많아요. 그래도 『감옥으로부터 사색』이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같은 책은 계속해서 읽는 책 중 하나예요. 얼마 전 『파산 수업』이라는 책을 인상적으로 보았는데, 힘든 시절에 인간이 줄 수 없는 위로를 주는 건 책밖에 없어요. 책에서 만난 한 구절이 경우에 따라서는 구원의 역사가 되기도 하니까요. 예전에는 책에 나오는 글귀를 참많이 외우고 필사도 했는데요. 외우는 일까지는 못해도 가까이 여겼으면 해요.

 

‘2017년은 이런 마음으로 살았으면 좋겠다’고 할 때, 소개하시고 싶은 시가 있다면요.

 

1월 6일 자 달력에 실렸는데요. 「새해 덕담」이라는 시예요. ‘복덕방’이 복 복(福), 큰 덕(德)을 써요. 서로에게 복을 짓고 복을 나눠서 선을 쌓고, 서로를 축복해줬으면 해요. 전문을 한 번 읽어줄게요.

 

좋은 생각만 하고
좋은 이야기만 하고
좋은 일만 가득하라고
우리 서로
새해의 덕담을 주고받지만
삶의 길에는
어둡고 아프고
나쁜 일도 너무 많아서
조금은 불안하고 두렵지요.
그럴수록
우리는 덕담을 주고받으며
서로서로
복을 짓고
복을 받아
복을 나누는 가운데
선업을 쌓고 덕을 닦는
아름다운
‘복덕방’이 되어야지요.


 

 

모든 순간이 다 꽃으로 필 거예요이해인 저 | 톨
이해인 수녀님의 시 중에서도 가장 힘이 되는 시를 모아 엮은 365일 시 달력이다.거실이나 책상, 사무실 책상 위에 올려 두고 매일 보면서 잠시 동안 마음에 휴식을 주줄 수 있다. 특히 바쁘고 힘든 날에 보면, 내일을 살아갈 기운과 희망을 선물 받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박보경 “미각 교육은 아이들에게 꼭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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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의 요리학원인 수도요리학원을 설립한 할머니 하숙정 선생, 2000년 김대중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만찬장에서 한국음식 소개한 대표 요리 연구가 어머니 이종임, 그리고 할머니와 어머니의 대를 이어 요리 연구와 교육에 매진하고 있는 박보경. 할머니 하숙정 선생의 언니가 요리 연구가 故 하선정 선생임을 짚어본다면 과연 ‘요리 명가’라는 수식이 어색하지 않다.


이화여대 겸임교수이자 대한식문화연구원 책임연구원인 박보경은 『50년 요리 명가의 아이 반찬&간식』를 통해 “간단하지만 흔하지 않은 메뉴”를 선보인다. 치아씨드컵요구르트, 귀리유부초밥 등 새로운 식재료를 사용한 재미있는 간식을 소개한다. 만능 양념 레시피와 푸드브릿지 등 아이의 건강한 식습관을 위한 비법을 아낌없이 공개한다. 이로써 아이의 건강과 흥미,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것이다.


무엇보다 저자는 “식재료 본연의 맛”을 재차 강조한다. 결국 정답은 기본이다. 가장 기본적인 것이 가장 뛰어나다는 사실, 요리 명가의 비법 아닌 비법이었다.

 

“역시 식재료 본연의 맛을 잘 살려야 하고요. 제철 음식이 가장 많은 영양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제철 재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좋겠죠. 재료가 신선하고 영양적으로 충분히 보충이 되어야지 양념 같은 부분은 부수적인 거예요. 또 어디서 그 재료가 왔는지도 중요해요. ‘푸드마일리지(food mileage, 식품의 생산에서 소비자의 섭취에 이르기까지 소요된 거리)’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요. 가까운 곳에서 온 재료가 신선할 테니까 그 점도 중요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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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하지만 흔하지 않은 메뉴


전체적인 메뉴 느낌이 새로워요. 트렌드에 신경 썼다고도 하셨죠. 방울 양배추나 치아씨드처럼 새로운 식재료를 이용한 메뉴가 확실히 재미를 주는데요. 책을 만들기 전에 어떤 모습을 구상했었나요?


제가 속한 대한식문화연구원이라는 사단법인에서 하는 사업 중 하나가 생애 주기별 식생활 교육이에요. 2007년 이대 목동병원에서 아이들 대상으로 웰빙 먹거리 상차림을 준비했었는데요.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아이들 먹거리에 관심을 갖게 됐죠. 이후로 초등학생 대상으로 식생활 교육 연구를 계속 해왔고요. 책을 준비하면서 기존에 나와 있는 책도 많이 참고하고 연구를 했는데요. 쉽고 간편하게 할 수 있는 아이 반찬이나 간식책을 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아이 반찬은 더 어렵고 신경 쓸 게 많다는 느낌이 들어요.


주변에 있는 아이를 둔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항상 고민하는 게 아이들 반찬 메뉴였어요. 어른 반찬에서 조금만 응용하면 아이들이 좋아하는 반찬을 만들 수 있거든요. 그런데 굉장히 고민하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하더라고요. 아이들 눈높이에 맞는 음식이어야 하고 너무 성인 반찬으로 가면 안 되니까요. 저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식재료를 활용하되 기존의 것과 차별화한 요소를 가미하려고 노력했어요. 새로운 식재료나 익숙한 재료의 신선한 조합 등을 많이 고민했죠. 간단하지만 흔하지 않은 메뉴를 소개하려고 노력했어요. 

 

삼겹살구이양배추샐러드, 미역새우전 같은 메뉴는 정말 새롭게 느껴졌어요.


식재료도 그렇지만 특히 아이들이 좋아하는 맛을 구현하는 데 굉장히 어려움을 겪고 있거든요. 그러면서도 집에서 만들어야 하니까 손쉽게 만들 수 있어야 하잖아요. 때문에 만능 양념 만드는 법을 함께 넣었어요. 양념을 미리 만들어두어 바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한 거죠.

 

마요네즈 대신 두부 페이스트, 설탕 대신 매실청 같은 아주 간단하면서도 건강한 방법을 제시하셨죠.


두부 페이스트도 정말 구하기 쉬운, 집에 항상 있는 재료로 만들 수 있거든요. 두부는 사실 아이들이 그리 선호하는 식재료는 아닐 수 있는데 거기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맛을 더한 거죠. 견과류를 갈아서 고소하면서도 담백하고 건강에 좋은 소스로 활용하시면 좋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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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런 방법은 아이들뿐 아니라 성인에게도 충분히 좋을 것 같아요.


작년에 슬로우푸드 국제대회 때 아이들 대상으로 샌드위치 메뉴를 만들었었어요. 그때 두부 페이스트로 샌드위치를 만들었는데 아이들과 함께 온 부모님들도 맛을 보시고 굉장히 좋아하시더라고요. 마요네즈를 대체할 수 있는 건강 식재료를 활용할 수 있다는 것에 굉장히 좋은 반응을 주셨어요.

 

또 하나 ‘푸드브릿지’ 내용이 무척 흥미로웠어요. 음식 거부하는 아이들 때문에 고민하는 분들이 워낙 많잖아요.


저희 연구원에서 하는 사업 중 또 하나가 소외계층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사업이 있어요. 이 아이들은 아무래도 식습관 역시 좋지 않은 경우가 많거든요. 아이들에게 음식을 통해 즐거움을 주고, 먹는 행위를 통해 삶이 풍요로워지도록 목표를 삼고 교육 사업을 했는데요. 하다보니까 단순히 재료를 조합하고, 조리하는 과정을 교육하는 것보다 식재료 본연의 맛을 정확하게 인지하게 하는 교육이 우선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소아비만 등 식습관 문제를 가진 아이들이 있었는데 기본적인 음식의 맛을 정확하게 감지하지 못하더라고요.

 

예를 들면요?


단맛보다 짠맛을 더 강하게 느낀다거나 하는 거죠. 때문에 식재료 본연의 맛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고, 관련해서 자료도 많이 보고 연구를 많이 했어요. 그때 프랑스의 미각 교육을 알게 된 거죠. 어렸을 때부터 아이들에게 올바른 식습관을 형성하도록 하는 교육 프로그램이었는데요. 그 교육 방식에 많이 관심을 갖고 이것을 한국 초등학생에게 어떻게 적용할지 연구를 했어요. 박사 학위 논문(「초등학생 미각교육 프로그램 개발과 적용 및 치료 효과」, 2013)도 그쪽으로 썼고요. 메뉴 구상에 있어서도 그런 부분에 좀 더 중점을 두었죠.

 

편식 개선 프로젝트: 푸드브릿지(Food Bridge)
1단계: 친해지기 - 시각적 경험과 노출을 통하여 경계심을 완화시킵니다.
2단계: 간접적으로 노출하기 - 아이들이 싫어하는 식재료를 곱게 갈거나 잘게 다져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도록 합니다.
3단계: 소극적으로 노출하기 - 아이들이 싫어하는 다양한 채소를 잘게 썰고 섞어서 아이들이 선호하는 조리법(튀김, 볶음류 등)의 속 재료로 사용합니다.
4단계: 적극적으로 노출하기 - 앞의 3단계 과정을 거쳐 아이들은 다양한 경험과 노출을 통해 식재료에 대한 친숙도가 증가하였으므로, 음식 자체가 가지고 있는 본연의 맛과 식감, 향 등을 느끼게 합니다.
(14-15쪽)

 

특히 아이들이 먹는 음식의 핵심이라고 한다면 말씀하신 그런 부분이 될 수 있겠네요.

 

음식 본연의 맛이 있거든요. 그런데 거기에 너무 많은 양념을 가미하면 본연의 맛을 알 수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본연의 맛은 잘 살리되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를 조금씩 가미해서 아이들이 좋아할 음식으로 만들고자 했어요.

 

조금 범위를 넓힌다면 어떨까요? 반드시 아이들을 위한 요리가 아니더라도 말이죠. 요리에 왕도는 없겠지만 반드시 지켜야 할 요리의 원칙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역시 식재료 본연의 맛을 잘 살려야 하고요. 제철 음식이 가장 많은 영양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제철 재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좋겠죠. 재료가 신선하고 영양적으로 충분히 보충이 되어야지 양념 같은 부분은 부수적인 거예요. 또 어디서 그 재료가 왔는지도 중요해요. ‘푸드마일리지(food mileage, 식품의 생산에서 소비자의 섭취에 이르기까지 소요된 거리)’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요. 가까운 곳에서 온 재료가 신선할 테니까 그 점도 중요할 거예요.

 

겨울인데요. 저자가 겨울에 꼭 챙겨 먹는 제철 식재료는 뭐가 있나요?


뿌리채소 많이 활용하고요. 김장을 담그니까 김치 메뉴도 많이 활용을 해요. 또 유자 같은 게 나오니까 유자가 나올 때는 꼭 유기농 유자를 구입해서 유자청을 담가요. 유자청은 물론 겨울철에 감기 예방에 있어 굉장히 좋죠. 비타민이 많이 함유되어 있으니까요. 그뿐 아니라 유자청을 양념으로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 드레싱으로 활용해요. 매실청은 여름철에 담가 두면 내내 잘 사용할 수 있죠. 육류의 누린내 제거에 굉장히 효과적이거든요. 제철에 나오는 재료들로 그렇게 만들어두면 아주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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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길


‘요리 명가’라는 제목으로도 엿볼 수 있는 내용이지만 할머니(하숙정)와 어머니(이종임)와 더불어 3대가 요리에 몸을 던지셨어요. 집안 어른들이 하는 일에 반드시 흥미를 느끼는 건 아닐 텐데 저자가 이 분야에 특별히 운명을 느낀 순간이 있었나요?


어렸을 때 어머니가 굉장히 바쁘셨어요. 제가 태어나던 해에 TV 출연을 하셨거든요. 어렸을 때는 어머니가 바쁜 게 너무 싫었어요. 나는 절대 요리는 안 하겠다고 생각했죠. 아버지가 병원에서 흰 가운 입고 있는 모습도 멋있어 보이고(웃음) 화학에도 흥미가 있어서 그쪽으로 공부를 쭉 했어요. 영국에서 화학과로 진학을 했는데요. 막상 가니 이런저런 고민이 들더라고요. 그때 주변에서 요리를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권유를 해주셨어요. 요리 자격증을 운 좋게 한 번에 취득했고, 어머니를 보고 자란 게 있어선지 재미도 있었어요. 그렇게 미국 요리학교도 다녀오고 자연스럽게 제가 어머니의 길을 걷게 된 것 같아요.

 

특별한 계기라기보다 그 자체로 자연스러운 궤적이네요.


특별한 계기도 있었어요. 김대중 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 기념 만찬회에 어머니가 노르웨이로부터 초청을 받으신 적이 있어요. 한국 음식을 선보이는 행사를 가게 되셨는데요. 제가 통역 차원에서 동행하게 되었어요. 그때 저는 요리를 잘 모를 때였는데요. 그곳에서 노르웨이 셰프들과 어머니가 한국 음식을 함께 준비하는 과정을 곁에서 보고 도왔어요. 그때 굉장히 요리에 관심을 갖게 됐죠. 여러 사람들에게 존경 받는 어머니 모습을 보면서 생각이 달라지기도 했고요. 음식이란 매일 먹는 것이고 실생활과도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잖아요. 때문에 아주 자연스럽게 관심을 갖게 된 것 같아요.

 

그렇지만 요리라는 게 분명히 재능도 필요한 부분이잖아요.


저는 사실 요리를 매개로 가르치는 쪽으로 많은 관심이 있어요. 아이들 대상으로 식생활 교육도 계속 해왔고요. 대학에서도 음식과 문화를 다루는 강의를 하고 있는데요. 물론 집에서 맛있는 음식을 하고 아이에게 필요한 요리를 만드는 것도 정말 재미있지만 음식으로 교육적 효과를 볼 수 있는 부분에 더 집중하고 있어요. 게다가 할머니 때부터 요리 학원을 설립해 교육을 해오셨잖아요. 그런 분위기에서 성장한 덕분인지 그런 부분에 관심이 많아요.

 

언젠가 꼭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할머니께서 1세대로 한국 전통 음식을 연구하셨고, 2세대인 어머니는 대표적인 한식 연구가로 알려져 있는데요. 저는 전통을 고스란히 유지하되 새로운 부분을 가미한 쪽에 관심이 많고요. 특히 제 전공을 잘 살려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미각 교육, 식생활 교육, 바른 먹거리 교육을 해보고 싶어요. 이런 식생활 교육이 정부 지원을 받아 하는 곳은 있는데요. 좀 더 활성화 될 수 있도록 노력을 하려고 해요.

 

할머니, 어머니께서 하셨던 그리고 저자가 하려고 하는 것들이 딱 그 시대에 맞는, 사회적 요구를 담은 내용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네, 할머니 세대나 어머니 세대에서 아직 개척하지 않았던 부분을 제가 다루고 싶은 거니까요. 워낙 먹거리에 관심이 많고 아이들을 좋아해요. 그래서 정말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건강한 음식을 먹고 자라는 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는 일을 하면 좋겠죠. 미각 교육은 단순히 건강 면에서만 아니라 인성이나 사회성 발달에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앞으로도 꾸준히 연구하고 싶은 분야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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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는 배움의 연속


저자도 요리가 어려운가요?


요즘 한식에 푹 빠져있어요. 저는 한식 조리사 기능 자격증을 취득하고 바로 미국으로 가서 서양 요리부터 배웠는데요. 한국 음식이 가장 어려운 것 같아요. 정성과 손맛이 굉장히 중요하고요. 음식이라는 게 기본적인 조리법은 동일하지만 새로운 재료도 나오고 계속 트렌드가 바뀌니까 꾸준히 연구해야 할 필요가 있죠. 그래서 저도 아직까지 배우고 있는 중이에요. 같은 요리도 선생님마다 만드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배움의 연속인 것 같아요.

 

정성이나 손맛은 정말 어렵네요.(웃음) 요리법은 같은데 그에 따라 맛에 차이가 있다는 게 참 어려운 점인 것 같아요.


비교할 수 있는 게 패스트푸드와 가정식이에요. 물론 패스트푸드에 입맛이 길들여진 아이들은 그게 더 맛있다고 생각하겠지만요. 집에서 만들면 양념부터 다 만들어서 정성과 손길이 담기는 거잖아요. 건강한 재료만 쓰고요. 때문에 정성을 들인 음식은 단순히 입에서 느끼는 ‘맛있다’는 느낌이 아니라 더 풍성한 느낌이 있는 것 같아요. 제 경우 서양에서 오래 유학했어도 패스트푸드 같은 걸 먹으면 소화가 안 되고 그렇더라고요. 꼭 집에서 만들어 먹고 신선한 재료 사용하려고 하죠. 어려운 게 없거든요. 집에 만들어놓은 기본양념만 있으면 얼마든지 맛있게 만들어 먹을 수 있어요. 

 

즉각적으로 맛있다고 느끼는 것들은 간이 셀 수밖에 없잖아요. 확실히 담백함이나 식재료 본연의 맛을 고민할 틈이 없어요. 미각 교육에 대한 저자의 말씀이 재차 중요하게 들리네요.

 
그래서 아이들에게 미각 교육을 할 때는 기본 4원미를 느낄 수 있는 재료를 먼저 맛보게 하는 거예요. 단맛도 아이들마다 단맛을 감지하는 정도가 다르거든요. 또 자신이 어떤 맛을 가장 선호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있고요. 아이들 스스로가 자기 식습관에 대해 모르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미각 교육 과정을 통해서 자기에게 부족한 부분을 깨닫고 보완할 수 있는 것이죠. 기본적인 네 가지 맛을 먼저 인식시킨 후에 그때부터 여러 식재료로 음식을 완성해보는 거예요. 그 과정을 통해 거부하던 식재료를 먹기도 하거든요. 이건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교육이에요.

 

좀 더 구체적으로 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듣고 싶어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할 때는 이렇게 해요. 짠맛 내는 재료 소금, 단맛 내는 재료 설탕 등 이런 재료를 주고 맛을 보게 해요. 이미 만들어진 양념으로도 하고요. 짠맛이라면 간장, 단맛이면 매실청 같은 것을 맛보게 하는 거죠. 또 단순히 미각만 활용하는 게 아니라 오감을 활용하도록 해요. 재료를 맛보기 전에 재료의 색과 모양새를 보고, 만지고 하는 과정을 통해 편식이 굉장히 많이 개선이 돼요. 오감을 활용한 기본적인 교육부터 하면 돼요.

 

가정에서 간단하게 미각 교육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제안해주실 수 있을까요?


기본 네 가지 맛을 느낄 수 있는 재료를 준비하세요. 그것을 무엇이라고 알려주지 않고 아이들에게 하나씩 맛을 보게 하세요. 그것이 네 가지 맛 중 무엇인지 맞춰보게 하는 거죠. 만일 짠맛이라면 종이에 1점부터 5점까지 적어두고 짠맛이 몇 점 정도에 해당하는지도 기록하게 하고요. 사탕 모양 스티커를 붙이도록 해도 좋고요. 미각뿐 아니에요. 가령 아이들이 좋아하지 않는 파프리카 같은 것은 속이 보이지 않는 박스 같은 곳에 넣어서 아이들에게 손만 넣어서 만져보게 하는 거예요. 느낌이 미끈미끈한지 단단한지 말해보도록 하고요. 이런 놀이 활동으로 아이들이 싫어하는 재료와 친숙해질 수 있도록 할 수 있어요. 후각이 예민하지 않은 아이들의 경우는 향이 풍부한 제철재료를 한지 같은 것으로 싸서 보지는 않고 냄새만 맡아보게 해도 좋아요. 딸기와 딸기시럽을 함께 놓고 비교하도록 할 수도 있고요.
 
요리에 자신이 없는 사람들에게 전해줄 수 있는 좋은 팁이 있을까요?


식재료의 맛, 식감에 먼저 익숙해져야 해요. 책을 준비하면서는 아이들이 보기에도 먹고 싶도록 해야 하는 부분이 있어서 색감에도 굉장히 신경을 많이 썼거든요. 단순히 색감만 맞춰 사용한 게 아니라 먹었을 때 재료가 어울리는지도 봐야 하잖아요. 그런 부분에 대해 이해가 있어야 한 단계 더 나아가서 레시피를 응용할 수도 있을 거예요.

 

어제 해준 아이 간식은 뭔가요?


아직 이유식 초기 단계라서 많이 못해줘요. 제가 너무 욕심을 부려서요. 아이에게 다양한 음식을 맛보게 하고 싶은 욕심 때문에 아이가 좀 힘들어하는 것 같아요.(웃음) 잘 먹어서 다행이지만요. 어제 막 닭고기 이유식을 시작했고요. 저는 재료는 꼭 유기농 매장에서 건강한 식재료를 사용하려고 해요.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있는 안전한 재료를 많이 쓰고 있어요. 

 

그렇다면 저자의 이유식도 책으로 만날 기회가 있을까요?


생각 중이에요.(웃음) 앞으로 책도 계속 쓰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아이 반찬이나 간식 때문에 고민하는 분들에게 간단한 조언 부탁드립니다.

 
집에 항상 있는 재료들이 있잖아요. 그것도 그 식재료 본연의 맛을 알아야만 재료를 조합해서 활용할 수 있는 거니까요. 그런 부분이 중요하고요. 책에 소개한, 언제든 활용할 수 있는 기본양념이 있으니까요. 그것을 준비해두면 정말 쉽고 간편하게 만들 수 있으실 거예요. 소개한 만능간장도 조청이라든가 간장, 깊은 맛을 내는 육수 베이스가 다 들어가 있어서 그것 하나만 만들면 조림 같은 건 다 해결되거든요. 정말 간단해요. 불고기 양념 만들려면 이것저것 굉장히 많이 들어가는데 만능간장 하나면 되니까요. 그런 소스들을 미리 준비해두시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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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요리 명가의 아이 반찬&간식박보경 저 | 다봄
한국 식문화의 큰 줄기인 수도요리학원 하숙정 설립자와 이종임 교수의 뒤를 이어 가업을 잇고 있는 요리 연구가 박보경이 쓴 책, 『50년 요리 명가의 아이 반찬&간식』에는 어떤 손맛의 비밀이 숨어 있을까? 50년 요리 명가에서는 아이들에게 어떤 반찬을 해줄까?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양창순 “50점짜리 당신, 괜찮은 사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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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에서 나만 손해 본다는 느낌, 나만 참는다는 느낌을 갖고 살아간다는 사람들이 참 많다”는 저자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는 선언에 응답한 이들이 30만 명을 넘어섰고, 많은 사람들은 책 제목만 보고도 카타르시스를 느낀다고 고백했다. 우리는 왜 이토록 까칠한 삶을 동경하는 걸까. 그 바람이 실현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사랑과 인정에의 욕구, 그 뿌리에 자리하고 있는 나르시시즘에서 해답을 끌어올린다. 그리고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면서도 타인과의 관계를 해치지 않는 방법, 이른바 “상처받지 않고 사람을 움직이는 관계의 심리학”을 들려준다.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 『나는 외롭다고 아무나 만나지 않는다』, 『내가 누구인지 말하는 것이 왜 두려운가』, 『엄마에게』등 다수의 저서를 집필한 양창순 저자는 정신건강의학과ㆍ신경과 전문의로서 인간관계와 삶의 문제를 상담해왔다. SBS <양창순의 라디오 카페>, CBS <양창순의 아름다운 당신에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했으며, 삼성경제연구소 SRICEO에서 100회 이상의 강연을 이어가며 오피니언 리더들의 열렬한 호응을 받았다. 현재는 ‘(주)마인드앤컴퍼니’, ‘양창순정신건강의학과’를 운영하면서 건강한 인간관계를 맺기 원하는 사람들의 곁을 지키고 있다.

 

첫 출간 이후 5년여 만에 개정증보판으로 다시 찾아온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는 독자들에게 안부를 묻는 듯하다. ‘그동안 ‘까칠하게’ 잘 지내셨나요?’ 인사를 건넨다. 선뜻 대답하기 어렵다면 또 한 번 책을 펼쳐도 좋다. 새롭게 수록된 내용들-‘건강한 까칠함을 갖기 위한 구체적인 5단계 솔루션’, ‘인간관계를 이루는 기본적인 심리 유형 8가지’에서 구체적인 실천방법을 찾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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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지독하게 나르시시즘적인 존재다


지금까지 30만 명의 독자들이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를 선택했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까칠한 삶’에 목말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신은 까칠하게 살지 못한다고 생각하니까 그렇죠. 상담을 해보면 많은 분들이 거절하는 게 어렵다고 말씀하세요. ‘나는 다른 사람들이 힘들다고 하면 이야기를 다 들어주는데, 왜 내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지 않느냐’고 말하기도 하시고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인간관계에서 자기만 상처받았다는 느낌을 받아요.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면서 상대와의 관계도 잘 유지되는 방법’을 찾고 싶어 하시죠.

 

독자들로부터 “이 책 제목에 카타르시스를 느낀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으셨다고요. 책을 다 읽으신 분이라면 ‘까칠함’에 대한 생각도 달라지셨을 것 같아요.


책이 나온 뒤에 그런 말도 많이 들었어요. ‘(제목에서) ‘까칠하게 살자’고 했는데, 막상 읽어보니까 ‘착하게 살자’는 이야기더라’라고요. 그동안 우리가 까칠한 사람들을 부러워하면서도, 자신이 까칠하게 하면 못돼 보이지 않을까 걱정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 책에서는 까칠하다는 것이 무례하거나 못된 것이 아니라고 강조하니까, 거기에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는 분들도 계시고요. 저도 책 제목에서 도움을 받은 부분이 있어요. 거절해야 할 경우가 있을 때 ‘제 책 제목 아시죠?’라고 말씀드리면 재밌게 생각하시거나 ‘나도 그렇게 해봐야겠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으시더라고요.

 

‘거절에 대한 공포’가 까칠하게 사는 걸 방해하는 가장 큰 요소일까요? 


그렇죠. 본질적으로 다른 사람들한테 사랑 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거거든요. 인간관계를 잘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내가 상대한테 상처를 주지는 않을까, 상대가 나를 싫어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어요. 거부 불안이 많은 거죠. 제가 책에서 이야기하는 인간의 핵심심리가 나르시시즘인데요. 흔히 이야기하는 공주병, 왕자병과는 다른 거예요. 그건 나르시시즘이 병든 상태이지 나르시시즘 자체가 아니죠. 가장 중요한 건 ‘소중한 존재로서 인정받고 싶어 하는 심리’예요. 나의 자존감, 자긍심을 갖자는 거죠.

 

거부 불안을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요?


그게 결국은 자존감하고 연관이 되는 거잖아요. 마음속에 ‘나는 사람들이 사랑해줄 존재가 아니야, 사람들이 나를 싫어할지도 몰라’ 이런 불안감이 있으면 항상 인간관계에서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죠. 그럴 때는 꼭 필요한 순간에도 거절을 못하는 거고요. 그러니까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는 건 건강한 자긍심을 갖는 거예요. 상처가 빨리 아무는 데에는 회복 탄력성이 중요한 것처럼 마음의 탄력성을 갖자는 이야기이기도 하고요. 자존감이 낮으면 탄력성을 갖기가 쉽지 않잖아요.

 

‘인간관계에서 나만 상처를 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의 밑바닥에는 일차적으로 나르시시즘적인 심리가 깔려 있다’고 하셨어요. 자격지심이나 피해의식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는 거죠.


우리가 성장과정에서 분리 불안을 경험하잖아요. 그게 거부 불안의 가장 시초라고 할 수 있는데, 결국은 ‘나를 사랑해주고 보호해줘야 하는 사람이 나를 버리지는 않을까’라는 두려움 때문에 분리 불안을 겪는 거거든요. 성장하면서 그 대상이 부모에서 친구, 애인, 선배, 상사 같은 사람들로 바뀔 뿐이죠.

 

“인간은 누구나 지독하게 나르시시즘적인 존재”라고도 말씀하셨죠.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을 상담해 오셨는데, 인간은 어떤 존재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제가 많이 받은 질문이 ‘성선설이 맞느냐, 성악설이 맞느냐’는 거예요(웃음). 그렇게 이분법적으로 생각할 수는 없는 것 같고요. 사실은 인간이 나르시스틱한 존재라는 게 나쁜 건 아니에요. 우리도 생명체잖아요. 생명체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나를 보호하고 존재의 영속성을 통해서 이어지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당연히 나를 소중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거죠. 사람들이 자신을 숨기고 싶어 하는 이유가 ‘내가 이렇게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야?’라는 생각에 ‘남들이 알면 나를 나쁘게 생각할 지도 몰라’ 하고 걱정하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그게 본성인 거거든요.

 

역으로 생각해 보면, 상대가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것도 당연한 일인 거네요.


내가 인정받고 싶어 하는 것처럼 상대도 그렇고, 내가 자기중심적인 것처럼 상대도 그렇다고 생각하면 덜 상처받는 거죠. 그게 본성이고 당연한 거라고 생각하면 상처가 반으로 줄어드는 거예요. (원래) 인간이 그렇다는 걸 알면 덜 기대하잖아요. 인간관계에서 기대치가 크면 클수록 실망도 크니까요. 그런데 자존감이 허약한 사람들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언제 어디서든지 내가 원하는 만큼의 반응을 보여준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부모자식 관계에서도 쉽지 않은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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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점짜리 당신, 괜찮은 사람이에요


이번에 출간된 개정증보판에는 새롭게 수록된 부분들이 있죠. 그 중 하나가 ‘인간관계를 이루는 기본적인 심리 유형 8가지’예요. 무척 흥미롭게 읽었는데요. 스스로가 어떤 유형인지 아는 게 쉽지는 않았어요. 8가지 모두 해당사항이 있었거든요(웃음).


인간이 굉장히 오묘하잖아요. 요지경과 같죠. 그래서 저는 어느 한 가지 유형으로 사람을 구분하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책에 실린 8가지 유형은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도 있는데요. 친밀형, 지배형, 회피형이에요. 친밀형은 인간관계에서 사랑 받고 싶어 하기 때문에 자신의 욕구보다는 다른 사람의 욕구에 더 맞춰주는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자기 주장을 잘 못하고, 가장 상처를 많이 받죠. 친밀형의 사람에게는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인간관계, 사랑 받고 인정받는 거예요. 그런데 지배형은 권력, 성공이 가장 중요하거든요. 그러니까 항상 자신이 우위에 있어야 되고, 조금이라도 누가 자기 위에 있으면 못 견뎌요. 통제하고 명령하는 사람들인 거죠.

 

회피형의 경우는 어떤가요?


사실 지배형이든 친밀형이든 회피형이든, 심리는 다 똑같거든요. 소중한 존재로서 인정받고 싶은 거예요. 그런데 회피형은 거부 불안이 너무 크다 보니까 이솝우화의 신포도 이야기처럼 ‘나는 인간관계 필요 없어, 만나봤자 피곤하거든’ 하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기질적으로 혼자 있는 걸 편안하게 느끼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것도 나쁜 건 아니에요.

 

‘8가지 심리 유형’을 알면 자신뿐만 아니라 타인을 이해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겠어요. 상대가 어떤 유형인지, 그 유형의 특징은 무엇인지 알고 있으면 관계 맺는 방법을 찾을 수 있잖아요.


그렇죠. 예를 들면, 친밀형 사람들은 만나면 반갑게 인사를 건네겠지만 회피형인 사람들은 별다른 반응이 없거나 피해서 갈 수도 있거든요. 그럴 때 상처 받지 않고 ‘그냥 저 사람은 그런 유형이구나’ 생각하면 되는 거죠. 그리고 조금 전에 질문하실 때 말씀하셨던 것처럼, 사실은 우리 안에 각 유형들의 특징이 다 있어요. 정신과적으로 건강하다는 건 시의적절하게 행동하는 거거든요. 우리가 때와 장소에 맞춰서 옷을 갈아입는 것과 똑같아요. 조금 더 적극적으로 리드해야 할 때는 리드하고, 맞춰줘야 할 때는 맞춰주고, 어울리고 싶을 때는 어울리고, 혼자 있고 싶으면 혼자 있는 거예요.

 

‘까칠하게’ 맺는 관계란 어떤 건가요?


조금 더 자연스럽고 자유스럽게 하자는 거죠. 어차피 사람들은 다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에 아무리 내가 천사처럼 해도 나를 욕하는 사람은 있어요. 책에서 ‘인간관계는 50점이 만점’이라고 주장한 게 그런 의미죠. 그런데 우리는 150점을 받으려고 하기 때문에 힘든 거거든요.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50%만 나를 괜찮다고 해도 나는 괜찮은 사람인 거예요. 스스로 생각하기에 내가 50점이라면 나는 괜찮은 사람인 거고요. 우리가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마음에 안 들어 하는 이유도 100%짜리를 찾기 때문이거든요. 제가 항상 하는 이야기가 있어요. ‘순금도 99%인데 어떻게 생명체가 100%가 될 수 있냐’는 거예요. 어른들이 항상 말씀하시잖아요. 한 눈 감고 만나라고요. 그게 정말 중요한 거예요.

 

‘건강한 까칠함의 5단계’에서는 거절하는 방법을 조언해주셨어요.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그리고 간결하고 명료하게” 해야 한다고요.


어려운 이야기일수록 ‘간결, 명료, 부드럽고, 단호하게’ 하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빙빙 돌려가면서 중언부언하잖아요. 거절할 수밖에 없는 사정을 다 이야기하고요. 그러면 상대는 메시지를 간파하기가 힘들어요. 그래서 대개 거절할 때 보면, 자기는 거절했다고 생각하는데 상대는 승낙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거든요. 빙빙 돌려서 이야기하니까 그런 거예요. 그러니까 ‘간결, 명료, 부드럽고, 단호하게’ 하세요. 내가 그렇게 하면 상대도 그렇게 받아들여요. 만약에 그걸 가지고 앙심을 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내가 계속 부탁을 들어줘도 나에게 고마워할 줄 모르는 거예요.

 

“인간관계에도 가지치기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신 게 기억나네요.


나무도 가지가 너무 많으면 잘 자랄 수가 없잖아요.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예요. 불필요한 가지를 쳐내지 못하면 결국은 줄기와 뿌리가 썩는 것처럼, 모든 사람들한테 다 잘하려고 하다 보면 가장 중요한 주위 사람들한테 못하게 되죠. 그러니까 관계를 조금 정리할 필요가 있어요. 많은 남성들이 은퇴한 후에 관계가 다 끊어지면 굉장히 힘들어하는데요. 관계의 깊이와 넓이를 잘 보셔야 돼요. 무엇이든 깊고 넓게 할 수는 없어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거죠. 그런데 다른 면에서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걸 아는데 인간관계에서는 선택과 집중을 조금 두려워하시는 것 같아요.

 

외롭다고 아무나 만나면 안 되겠네요(웃음).


이번에 『나는 외롭다고 아무나 만나지 않는다』의 개정판도 출간이 됐잖아요. 주위 분들에게 책을 선물하다 보니까, 남자 분들은 화를 내시더라고요. 외롭다고 아무나 만나지 않으면 어떻게 하냐고, 누구라도 만나야 된다고 하시는 거죠(웃음). 혼자 남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건데, 대인관계도 가지치기가 필요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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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필요한 죄책감을 버리자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를 읽으면서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런데 문제가 생기면 감정을 드러내기보다는 동굴로 숨어드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그것도 자기 삶의 스타일인 거죠.

 

그러다 보면 말을 함으로써 감정을 정리할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되는데, 문제는 없는 걸까요?

 
우리 뇌는 대단히 뛰어난 기관이에요. 자기가 해결해야 되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해서든지 해결을 하려고 해요. 그런데 내가 어떤 감정을 그냥 가지고 있으면 해결이 안 되고 남아 있는 거잖아요. 그럴 때 뇌는, 내가 의식을 하든 의식을 하지 않든,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전전긍긍한다는 거죠. 그러니까 내가 감정을 숨기고 동굴 속에 있어도 불쑥 불쑥 나타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문제가 있을 때는 그걸 털어내 놓고 해결 방법을 찾는 게 우리 뇌를 도와주는 일이에요.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남아있으면 집중이 안 되고, 결국에는 만사가 다 귀찮아지잖아요. 이유가 있어요. 뇌가 계속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지금 너한테 더 중요한 문제는 그게 아닌데, 왜 진짜 중요한 문제를 해결 안 하고 다른 데 신경을 쓰고 있어,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라고요.

 

말씀하신 것처럼 뇌를 도와줘야 하는 순간인데요. 감정을 말하는 게 어려운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가 그냥 생각을 하는 것하고, 그걸 말하거나 글로 쓸 때는 참 다르잖아요. 고인 물이 썩듯이 감정도 고여 있으면 문제가 되는 거거든요. 만약에 내 감정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면 나한테 말을 하는 거예요. 나한테 글을 써보고요. 뇌 과학적으로 이야기하면, 우리 언어 중추가 좌뇌에 있는데 우리가 불안하고 우울할 때 제일 먼저 좌뇌의 기능이 떨어져요. 그런데 말을 하거나 글을 쓰면 좌뇌가 자극을 받아서 더 빨리 현실로 들어올 수 있거든요. 동굴로 들어가 있는 시간을 조금 단축할 수가 있는 거죠.

 

까칠하게 살기로 결심하고 나서도 쓸데없는 죄책감이 발목을 잡을 때가 있어요. ‘실수할 수도 있지 괜찮아, 상대만 배려할 수는 없잖아, 내 입장에서도 생각해야지’ 싶다가도 ‘내가 너무 뻔뻔한가?’ 하는 생각이 드는 거죠.


제가 이 책에서 말씀드리는 건 불필요한 죄책감은 버리자는 거예요. 나도 좋고 상대도 좋도록 감정을 표현하려면, 항상 중요한 게 ‘매너’거든요. 책에서도 머리 나쁜 사람이 매너도 나쁘다고 썼지만(웃음), 정말 그렇잖아요. 주위에 보면 정말 매너 나쁜 사람들이 있죠. 그 사람들을 보면 결국은 실패해요. 영국에서는 군대에서 장교가 되면 두 가지를 먼저 훈련시킨다고 해요. 언어하고 매너예요.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되 매너 있게 하면 되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어려운 이야기일수록 매너를 못 지키잖아요. 꼭 해야 하는 이야기는 한 번 여과해서 전달하는 게 필요해요. (특히) 분노와 관련된 표현은 하루 정도 생각하면서 한 번 걸러내고 나서 표현해야죠.

 

‘올해에는 부디 인간관계에서 상처 받는 일 없기를’ 소망하시는 분들도 많을 텐데요. 저자님께서는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으니 상처 받기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하실 것 같아요(웃음).


맞아요, 어떻게 제 대답을 예상하셨어요(웃음)? 삶에서 상처는 없어질 수 없어요. 우리가 상처를 줄 때 항상 ‘내가 저 사람한테 상처를 줘야지’하고 의도하는 건 아니잖아요. 나는 그냥 한 말인데 상대의 기분에 따라서 상처가 될 수도 있죠. 그러니까 상처에 대해서 그렇게 두려워할 필요도 없는 거예요. 내가 정말 상처를 준 것 같으면 사과하는 거고, 그 사람의 기분에 따라서 그런 거라면 크게 개의치 않아도 되는 거죠. 그럴 때 중언부언하면서 ‘나는 그런 뜻은 아니고...’라고 이야기하면 문제가 더 커지잖아요. 일이 더 커질 것 같으면 오히려 그것을 멈추는 것도 방법이에요.

 

인간관계에서 상처 받은 기억은 떨쳐내기가 어렵잖아요. 또 다른 관계에도 영향을 미치고요.


요즘 사람들이 맛집 순례를 하잖아요. 음식 하나도 내 입맛에 맞는 곳을 찾으려면 순례하고 경험하는 것이 당연한 거죠. 그런데 왜 인간관계에 있어서는 한 번 상처 받고 실패하면 그걸로 ‘나는 이런 사람이야, 나는 인간관계를 못해’ 하고 생각하느냐는 거죠. 그건 단지 ‘그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 ‘그 때’ 일어난 일이거든요. 평소에 내가 좋아하고 잘해주는 사람이라고 해도 본인이 심각하고 힘든 일이 있으면 나한테 잘 못해줘요. 우리는 항상 ‘저 사람은 힘든 일이 있어도 나한테 잘해줘야 돼’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가족 간에도 그러지 못할 때가 있잖아요. 상대에게 서운함을 느꼈다면 그렇게 행동한 이유에 대해서 물어보면 돼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서 속앓이만 하고 있다면, 스스로 상처를 키우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도 있어요.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양창순 저 | 다산북스
자신의 자존감을 지키면서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심리적인 방법을 다양한 임상 사례와 심리학 이론을 통해 통찰력 있게 풀어낸 이 책을 통해 모두가 인간관계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주는 힘을 ‘건강한 까칠함’에서 찾아보자. 나를 위해서나 상대를 위해서나 우리는 언제나 스스로를 당당하게 표현하는 데에서 힘을 얻을 수 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범죄심리학자 이수정 “오늘날의 범죄는 사회를 향한 보복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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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심리학자 이수정 교수는 십 년 넘도록 범죄자들을 직접 만나왔다. ‘살인범’이라는 단어가 풍기는 느낌 그대로의 범죄자도, 피해자 같은 느낌의 범죄자도 있었다. “사람은 모두 다르다. 범죄자도 마찬가지다.”라는 그의 말은 심리학자로서 그가 범죄자를 한 명 한 명 만나고 각자의 문제를 분석한 이유이자 동력이었다.


그 중에서도 “특수성이 있는 개인”인 사이코패스의 존재는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야만 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선량한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는 테두리” 바깥에 있는, “남들을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이용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사이코패스의 파괴적 성향, 성범죄자의 왜곡된 성관념, 정신질환자에 대한 오해, ‘한국형 범죄’라 할 수 있는 가정폭력과 주취폭력까지 『사이코패스는 일상의 그늘에 숨어 지낸다』에서 다룬 사람들은 저마다의 특성과 개인사로 범죄를 저지르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런 문제는 분명히 사회가 입체적인 방식으로 접근했다면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때문에 이수정 교수는 보다 치밀하고 근본적인 사회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거듭 말한다.


범죄는 결코 우연히 일어나지 않는다. 범죄를 막을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이수정 교수는 『사이코패스는 일상의 그늘에 숨어 지낸다』를 읽은 독자가 가까이 있을지 모르는 범죄자의 존재를 인지하고 범죄를 줄이는 사회적 노력에 기꺼이 동참해주기를 바란다.

 

혹자는 범죄자들을 위한 예산 집행이 쓸데없는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대목에서 정말 고민해야 할 것은, 그들이 언젠가는 반드시 우리 사회로 돌아올 것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그들이 갱생되지 않으면 우리가, 우리 가족이 안전하고 편안하게 살 수 없다.(2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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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만 발생하는 범죄


대중서인데 무척 센 이야기예요. 연쇄살인, 방화광, 가정폭력 등 목록만 봐도 알 수 있죠. 쓰시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개인정보고, 전부 면담 때에 나온 정보니까요. 법률적 문제가 있을까봐 여러 번 자문을 받았어요. 변호사 자문도 받고 그랬죠.

 

예전 사건부터 비교적 최근 사례까지 다양한 사례들을 다루고 있어요.


사실 사례들을 축적한 지 십 년이 넘었어요. 계속 해온 일들이고요. 지금도 계속 진행하고 있죠. 앞으로도 계속 만날 생각이고요. 이 사람들을 만나 얘기를 하다보면 뭔가 사회적으로 같이 고민해야 할 대목이 틀림없이 있어요. 물론 개인의 문제죠. 가해자도 개인이고 피해자도 개인인데요. 하지만 범죄를 개인의 불운으로 보기엔 적당하지 않은 부분도 틀림없이 있거든요. 그것이 사회적 공감대를 만들고 경우에 따라 정책에 반영이 되도록 하려면 여론이 필요하고 그러려면 알려야 하니까요. 그래서 대중서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거예요.

 

 

대중서의 필요성을 느꼈다, 사회적으로 같이 고민해야 할 대목이 있었다, 고 생각한 건 구체적으로 어떤 이유에서였을까요?

‘한국형 범죄’라고 한 이야기 안에 그 이유가 많이 묻어 있을 거예요. 술에 관대한 사회도 그 중 하나죠. 술에 관대하다보니 사람의 목숨을 빼앗은 사람도 술타령을 하면 관대한 거예요. ‘음주감경’인데요. 예컨대 형사 책임을 조각(阻却)해주는 걸 외국은 굉장히 엄격하게 적용해요. 그런데 우리는 아동 성폭행범도 감경해줬으니까요. 이건 사회문화적 공감대가 있어야겠단 생각을 하는 거죠. 외국은 특히 음주 과실 전과가 있는 사람이 술을 먹고 범죄를 저지르면 감경을 전혀 안 해줘요. 자신이 술을 먹고 어떻게 변하는지 알면서 술을 먹지 않았느냐 하는 거죠. 음주로 인한 위험을 본인이 체감한 경험이 있다면 감경해주면 안 되는 거잖아요. ‘임의명정’이라고 하는, 스스로 알면서 술이든 약물이든 그런 것에 취해서 범죄를 저지른 건 절대 감경해주지 않아요. 이런 논의로까지 끌고 나가려면 이것이 대한민국에서만 발생하는 범죄다, 고민을 해야 한다, 이런 종류의 얘기부터 해야 했던 거죠.

 

6부 ‘한국형 범죄’에서 주요하게 다룬 내용이 또한 가정폭력이었어요.


가정폭력은 여성 인명 피해의 원인이 돼요. 가해자가 가정폭력 끝에 여성이나 아이를 죽이든지 폭력 행위자를 피해 여성이 죽이든지 하는 이런 사건들이 여전히 오늘날에도 계속 일어나고 있거든요. 가정폭력을 방치하는 사회적 문제는 특히 대한민국에 고유하다고 볼 수 있어요.

 

확실히 6부는 책에서 제일 눈에 띄는 부분이에요. 그중 ‘묻지마 범죄’에 대해 듣고 싶은데요. 그 말 자체가 가진 오해 요소가 또 있습니다. 책에 인용한 연구자의 말에 따르면 이런 수식을 붙여 “모든 설명을 다한 듯 여기는 풍토는 지적 태만”이라고까지 했는데요. 


죄명 선택을 잘해야 하는데 언론에서는 그것까지 고민하진 않죠. ‘묻지마’라고 했을 때 본질을 흐리는 경우도 많고요. ‘발바리’라는 명명하는 경우도 있었잖아요. 그것 역시 적절하지 않은 언어라고 생각해요. 피해자 입장에서 보면 그렇게 경미한 피해가 아니잖아요. 그런 언어는 적절하지 않죠.

 

역시 언론 문제를 말하지 않을 수 없겠네요. 


가령 ‘여성혐오범죄’라고 했을 때 그 명칭 자체가 여성은 혐오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의미가 되어버리잖아요. 그런 함의가 있는 어휘는 주의해서 사용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저는 그 용어가 위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입장이에요. 물론 여성혐오가 심각하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그렇다고 특정한 범죄를 여성혐오범죄로 부르기 시작하면 유사한 일들이 벌어질 잠재성을 키우는 거죠. 여성주의적 시각을 가진 분야에서는 경각심을 갖게 하기 위해 그런 명칭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요. 문제는 경각심이 없는 사람이 훨씬 많다는 거예요. 그런 사람들은 영문도 모르고 여성혐오범죄라는 말을 듣고 여성은 혐오의 대상이 되는 범죄를 당하는구나, 라고 생각할 수 있는 거예요. 일종의 ‘비제지(disinhibition)효과’ 같은 게 생길 수 있는 거죠. 어휘를 통해 의식하게 되는 것 자체가 어쩌면 제지(inhibition)가 안 되는 경로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요. 용어 선택에는 아주 신중해야 해요.

 

 

특수 제지가 더 많이 발달해야 한다


제목에서부터 ‘사이코패스’를 가리키고 있거든요.


사이코패스라는 용어를 제가 학계에 거의 처음 보고했기 때문에 출판사에서 그렇게 제안을 주셨고요. 이 말이 너무 강해서 안 썼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긴 했는데요. 이들이 일상의 그늘에 숨어서 사는 건 맞죠. 또한 범죄를 저지르지만 발각되지 않는 화이트칼라 사이코패스도 많기 때문에 숨어 지낸다는 건 맞는 이야기긴 해요. 화이트칼라 사이코패스는 그렇게 쉽게 검거할 수 있는 숫자가 아닐 수 있어요.

 

주변에 사이코패스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게 어떤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결국 이들은 인간 사회 생태계의 맨 꼭대기에 있는 거죠. 남들을 자신의 목적을 위해 이용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요. 이들은 선량한 사람들이 상상할 수 있는 테두리 내에 있는 사람들은 아니죠. 그러니까 그런 존재가 있다는 것, 그런 종류의 위험도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특히 법이 미치지 않는 자들이 있어요. 극단적인 사례가 정치인일 수 있는데요. 그런 식으로 비호 받는 사람들 중에 누군가가 어떤 의지를 가진다면 사실은 나머지 선량한 사람들은 자신이 이용당하는 것도 모르고 얼마든지 이용당할 수 있죠. 아마 처벌 받지 않을 가능성이 굉장히 높고요. 그런 화이트칼라 범죄는 책에 쓰지 않았지만 그렇게 적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왜 제목에 사이코패스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으려고 하셨어요?


사이코패스라는 말을 사용하는 순간 사람들은 대안이 없다고 생각해요. 그 용어를 쓰면 쓸수록 무기력해진다는 우려도 있고요. 정책이나 법으로도 안 된다고 느끼게 된다는 게 지적 사항인데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진 않아요. 범죄를 억제하는 데에 일반 제지 정책이 있죠. 대표적으로 사형제 같은 건데요. 그런 원칙은 누구에게나 적용되죠. 지위나 학력이 높아도 타인을 고의적으로 사망에 이르게 하면 사형까지 선고될 수 있다는 거예요. 그럼에도 살인하는 사람은 여전히 있죠. 그런 특수성이 있는 개인의 범죄 억제를 하는 게 특수 제지라는 거예요. 그리고 특수 제지의 대상이 사이코패스가 될 가능성이 높죠. 저는 특수 제지가 더 많이 발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입장이에요.

 

인권 문제가 있잖아요.


인권론자들은 특수 제지에 대한 반감이 굉장히 심하죠. 전자 발찌 도입을 놓고도 삼 년이나 인권 침해, 이중처벌 등으로 싸웠던 기억이 나는데요. 전자 발찌를 도입하는 순간 감시 국가가 된다는 등의 이야기를 했지만 사실 우리가 평생 살아도 전자 발찌 찰 일 없어요. 대다수의 사람은 차지 않아요. 실제 범죄 발생률을 보면, 특히 강력범죄는 상습이 많아서 5%만 관리하면 50%를 줄일 수 있다는 이야기도 있거든요. 누범자가 워낙 많아요. 영미국가에서는 그런 사람들에게 특수 제지를 많이 하는 편이고요. 저는 그게 우리나라에도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거죠. 뻔히 알면서 여성을 성폭행하는 이런 사람들에게 우리가 왜 자유권을 똑같이 돌려주어야 하느냐, 저는 이견이 있어요. 이런 면은 결국 제가 심리학자로서 개인차를 연구하게 된 이유기도 해요. 실제로 범죄자들을 만나니까 더욱 그렇죠.

 

일반 제지와 특수 제지가 균형 있게 적용되어야 하겠군요.


특수 제지를 하려면 사실 굉장한 세부 사항이 필요해요. 선별도 해야 하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방법도 필요하고요. 사람들이 가지는 범죄에 대한 공포를 줄이는 사업은 또 다른 정책이라고 생각을 해요. CCTV를 달고, 가로등의 조도를 높이는 등의 일반적 범죄 예방 정책도 펴야죠.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비싼 CCTV를 설치하는 것보다 보호관찰관 두세 명을 고용하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해요. 어차피 사회로 방면된 누범자들이 범죄를 또 저지르기 때문이에 그들을 쫓아다니는 인력이 사실은 더 필요해요. CCTV 열 개의 효력을 보호관찰관 한 명이 발휘할 수 있어요. 한 사람의 보호관찰관이 담당하는 전자 발찌 대상자가 몇 십 명이라면 이들을 잘 관리해서 재범을 안 하게 하는 게 CCTV 몇 백 개의 효력을 발휘할 수도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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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안에서 일어나는 범죄도 범죄


사회 여러 장면에서 느끼지만 정책이 지엽적인 수준의 접근으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잖아요. 근본 원인을 찾아내고 장기적으로 계획을 세우는 경우가 별로 없어요. 문제를 차근차근 풀어나가야 할 텐데요. 현재 가장 시급하게 개선되어야 할 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범죄가 우연히 일어나는 것 같지만 안 그래요. 아는 사람들끼리 죽고 죽이는 경우가 제일 많고요. 집 안에서 일어나는 경우도 많죠. 집 안에서 일어나는 범죄를 범죄로 인식하는 게 굉장히 시급하다고 생각해요. 가정폭력 기소율이 8% 밖에 안 돼요. 100%의 인간이 살려달라고 전화를 거는데 기소되는 게 8%뿐이라면 법은 왜 있어요. 92%는 알아서 해결한다는 거잖아요. 그래서는 안 돼요. 성범죄도 과거에는 그랬어요. 길에서 성범죄가 일어나도 목격자는 신고할 필요가 없었어요. 피해자가 직접 가서 신고해야만 하는 이상한 범죄였죠. 가정폭력도 마찬가지예요. 길거리에서 치고 박고 싸우는데 남편이라고 하면 그럴 수 있겠거니 하고 그냥 가요. 여전히 ‘반의사불벌죄(反意思不罰罪, 피해자가 가해자의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하면 처벌할 수 없는 범죄)’가 적용되고요. 때문에 그런 것들은 일단 고쳐야죠. 

 

가정폭력의 심각성을 이 사회가 좀 더 예민하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어요. 그것은 ‘집안 문제’가 아니라 ‘폭력’인 거잖아요.


집 안의 폭력을 관리하지 못하면 사회적 폭력도 관리할 수 없어요. 가정 내에서 일차적으로 사회화가 되어 사회로 나오는 거니까요. 어린 시절 폭력을 보며 자란 사람들이 어떻게 평화주의자가 될 수 있겠어요. 그러니까 일단 그것부터 끝내야죠. 여기에 더해 ‘스토킹방지법’은 꼭 통과되어야 해요. 그건 구애가 아니에요. 스토킹을 범죄로 안 보고 구애 행위로 보니까 처벌을 안 하다가 결국 인명 피해로 가거든요. 사실은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있는 거예요.

 

그 외에 관심 두는 문제가 또 있나요?


가정폭력은 그렇지 않지만 소년 범죄부터는 국가 예산이 들어가요. 이들을 잘 재활시켜야 하는데 사회적 노력이 굉장히 부족하죠. 아동, 청소년이 저지르는 범죄 가해나 피해는 꼭 회복을 시켜서 어른을 만들어야 해요. 경우에 따라서는 대안학교 같은 것도 많이 있어야 하거든요. 공교육이 워낙 배타적이기 때문에 교육 현장에서 떨어져 나갈 수밖에 없잖아요. 그들이 몇 년 후에는 성인 범죄자가 되어 돌아와요. IMF 이후에 청소년 상습범이 증가하는데 그들이 이후 흉악 범죄자들이 된 거예요. 예고가 되었던 상황이죠.


또한 가장 중요한 것은 온라인이에요. 온라인은 아무도 감시를 안 해요. 성병대(16년 11월 사제총기로 경찰 살해)라는 사람이 SNS에 살인예고를 해도 아무도 몰라요. 표현의 자유에 얽매여서 사이버공간이 방임 상태로 놓여있거든요.

 

온라인 공간이 사실상 범죄의 온상이 되는 경우도 너무 많이 목격했습니다.


최소한 아동 성폭력이라도 막아야죠. 경찰이 사이버공간에서 하는 함정수사는 허용해줘야 해요. ‘12살 가출 청소년입니다’라고 경찰이 올릴 수 있게 해줘야죠. 그리고는 그 밑에 댓글 다는 아저씨들을 전부 범죄자로 처벌 받을 수 있게 만들어야 해요. ‘아동유인방지법’이라는 게 있거든요. 왜 남의 집 아이와 부모에게 허락도 안 받고 채팅을 합니까. 전부 범죄예요. 이런 것을 방임해놓고 교통법규만 잘 지키면 법치주의가 되나요? 아니에요. CCTV가 중요한지 경찰 인력이 함정수사 하는 인건비가 더 필요한지 고민해봐야 하는 거죠. 곰곰이 생각해보면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가 보여요.

 

청소년 범죄 부분은 정말 생각할 부분이 많은 것 같아요. 재사회화가 너무나 부족하고요. 책에서 다룬 많은 범죄자 대부분이 모성 결핍 문제를 갖고 있었다는 점을 상기하면 그 중요성에 비해 대책이 너무 미비해요. 대물림 문제도 있을 텐데 말이에요.


학업 중단자가 늘어나서 전수 조사를 하다 발견된 게 아동학대치사사건이잖아요. 그런데 전수 조사를 하면 뭐합니까. 대안학교도 안 지으면서 말이에요. 학교 상황에 맞지 않는 아이들이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해요. 인간이 다 다른데 왜 교육만 획일주의로 가요? 야간에 공부할 수도 있는 것 아니에요? 꼭 국어, 영어, 수학 아니고 직업 훈련 시키면 되잖아요. 그러면서 아이들이 어른이 될 때까지 머무를 수 있는, 사회화 시킬 기관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형량 문제도 많이 비판하는 부분인데요. 아동 성폭행범 조두순이 2020년 출소를 앞두고 있습니다.


조두순 사건 이후에 형량이 많이 바뀌어서 이제는 무기징역까지 나와요. 지금 그런 사건이 나오면 무기징역이죠. 이때도 항소심에서 음주감경을 한 경우인데요. 아동성범죄는 음주감경을 배제하도록 법률을 개정했어요. 그러나 그 외에는 음주감경이 돼요. 그게 말이 안 돼요. 형법 10조 1항(심신장애로 인하여 사물을 변별할 능력이 없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없는 자의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가중을 안 시키는 게 문제예요. 연쇄범죄의 경우 5년짜리인데 피해자가 다섯 명이라면 25년이 나와야 하잖아요. 그게 아니고 5년에 2.5년을 더해 7년 반 밖에 안 나와요. 가중 비중이 영미법보다 너무 관대해요. 그리고 누범 가중을 안 하죠. 알면서도 한 경우에는 형량을 확 늘려야 해요. 상습이 너무 많아요.

 

 

만연한 혐오주의


범죄의 시대적 특성도 있을까요? 어떻게 보세요?


있는 것 같아요. IMF 이후에 급속히 모든 조건이 나빠졌어요. 점점 더 나빠지고 있고요. IMF 시절에 미성년자였던 사람들이 전혀 보호 받지 못한 채 성인이 된 경우 그렇지 않은 사람과 굉장히 다르게 생각하는 거예요. 전혀 사회화되어 있지 않아요. 그런 사람 중 일부가 ‘강남역 살인사건’의 주인공처럼 되는 거죠. 학교도 안 다니고, 집안 형편은 너무 열악해서 부모가 자녀를 보호할 수 없고, 약간의 정신 장애도 시작 되고요. 오늘날의 범죄는 사회를 향한 보복극이에요. ‘나는 이 꼴인데 너네는 왜 잘 사느냐’ 이거예요. 이런 범죄는 점점 늘어날 것 같아요.

 

원망이나 분노 같은 감정이 만연해 있죠.


인터넷 댓글을 보면 그런 모습이 굉장히 일반화되어 있어요. 경각심 없는 정치인들이 그런 데다 불을 지르고 휘발유를 붓고 그런 거죠. 이런 전망을 저만 하는 게 아닐 거예요. 많은 사람이 그렇게 전망하니까 결혼도 안 하고 아이도 안 낳는 거죠.

 

앞서 여성혐오범죄 이야기를 잠깐 했는데요. 이런 양상도 최근의 것으로 보시나요?


이전부터 온라인에서 혐오 발언은 많이 있었죠. 분노 이야기를 했는데요. 분노는 욕구가 해결이 안 되면 생겨요. 장애물이 많아지면 생기죠. 그런데 나만 그런 것 같은 거예요.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미워할 대상을 찾게 돼요. 그 가운데 남성, 여성이라는, 흑백논리에 빠지기 쉽게 만드는 사회 정서적 분위기가 있던 거고요. 누군가를 미워하는 데 시간을 보내면 거기에 일종의 정체성 같은 게 생기죠. 그런 대결 구도가 있었는데 강남역 사건이 터진 거예요. 그 가해자는 여성혐오주의자로 보긴 어려워요. 본인도 그렇게 얘기를 했고요. 그런데 수면 아래에 있던 혐오가 한 곳에 쏟아져 나온 것이죠.

 

혐오라는 문제 앞에서 우리 사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저 같은 사람은 그걸 그냥 범죄로 보면 돼요. 누가 이런 만연한 혐오주의를 생각해야 하느냐 하면 정책하는 사람들이에요. 정치인들이죠. 이들이 이것을 심도 있게 고민해야죠. 왜 젊은이들, 온라인에서 집중적으로 활동하는 이들이 혐오주의에 매달려 있느냐 고민해야 해요. 이들이 에너지를 분출할 수 있는 다른 정책을 내놓아야죠. 그렇게 보지 못하는 것, 그런 노력을 못하는 것은 문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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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계속 떠들어야 하죠


예능 등 방송활동도 많이 하고 계신데요.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사람들에게 알려야죠. 그런 차원에서 보면 언론은 굉장히 좋은 도구예요. 방송에 나가서 이야기를 해서 정부기관에서 듣고 반응하고, 정책이 생기고, 국회의원들도 움직이고, 그런 것들이 필요해요. 그러나 아까 이야기 나눈 것처럼 너무 즉흥적이죠. 장기간 고민해서 법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냥 법을 후다닥 만드니까요. ‘거세약물법’이 그 중 하나예요. 화학적 거세라고 하는데 그게 치료가 되냐고요. 그걸 하루 만에 합의해서 법을 통과시켰어요. 말이 안 되는 법이거든요.

 

역시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아니었던 거죠.


그 약을 장기복용 했을 때 간, 신장이 얼마나 망가지는지 모른단 말이에요. 그런데 주사는 계속 맞아야 발기가 안 돼요. 성범죄자 중에 발기부전인 사람 정말 많거든요. 정상적인 관계가 안 되니까 성폭행을 하는 거예요. 훨씬 자극적인 상황이 되어야 발기가 되니까요. 성폭력은 발기의 문제가 아니에요. 그런 현실은 외면한 채 쉽게 생각하고 법을 만드는 일들이 벌어지는 거죠. 그래서 세금이 새고요. 그런 게 안 되도록 하려면 국민들이 관심이 있어야 해요. 또 누군가는 계속 떠들어야 하죠.

 

그렇다면 꾸준히 발언을 해오시면서 목격한 긍정적 변화도 있었을까요?


저도 기대를 그렇게는 안 했는데 전자 발찌의 효력은 좋은 것 같아요. 전자 발찌를 찬 성범죄자들의 동종 재범률이 0.4%예요. 발찌를 안 채웠으면 동종 재범률이 15%가 될 사람들이거든요. 엄청난 효과죠. 수고하시는 분들이 있죠. 보호관찰관들이 목욕탕도 같이 가거든요. 그들이 베이비시터처럼 이들을 달래서 0.4%를 만들어낸 거예요. 그러니까 그런 사람들을 더 뽑아야죠. CCTV 그만 달고요. 그건 이미 너무 많이 붙였어요. 이제는 보이지 않는 노력에 예산이 더 배정될 수 있게 해야죠.

 

 


 

 

사이코패스는 일상의 그늘에 숨어 지낸다이수정,김경옥 공저 | 중앙m&b
사회가 복잡해지고 전통적인 인간관계가 해체되면서 인간의 심리 또한 종잡을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언론보도를 통해 접하는 범죄자들도 마찬가지이다. 형사들조차 고개를 흔들 수 밖에 없는 강력 범죄를 뉴스를 통해 접할 때마다, ‘도대체 왜?’라는 의문을 던질 수 밖에 없다. 이 책은 그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준희 “자식은 부모의 머리보다 태도를 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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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한 일간지에 가족 인터뷰가 실려 화제를 모았다. 김포 시골로 내려와 아이 넷을 사교육에 의존하지 않고 키운 부모의 이야기였다. 주인공은 바로 김준희 ‘바른 경영 아카데미’ 대표. 웅진씽크빅과 능률교육 대표이사를 지낸 그는 ‘책 읽기’로 아이들의 공부 근육을 만들었다. 남들이 강남으로 이사를 갈 때,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 놀 수 있는 김포 농가주택으로 이사간 여섯 가족. 덕분에 네 아이는 자연과 가까이 지내며 눈에 띄게 성정이 부드러워졌고, 빡빡한 학원 스케줄 대신 아빠가 만든 책을 읽었다.

 

그의 첫째 딸은 이화여대 과학교육과를 졸업하고 모교인 고등학교에서 과학 교사를 하고, 둘째 딸은 서울대 소비자아동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템플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셋째 딸은 고려대학교에서 임상병리학을 공부하고 현재 경희대 의학전문대학원에서 의사가 될 공부를 하는 중이고, 막내 아들은 서강대 생명과학과를 다니다 제대 후 치과의사로 진로를 정해 경희대 치의학전문대학원에 다니고 있다. 사람들은 김준희 대표를 때때로 시샘한다. “어떻게 아이들이 그렇게 다 좋은 대학을 갔나요? 초등학생 때보다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면서 공부를 더 잘했다지요? 그게 가능한가요?”라고 묻는다.

 

김준희 대표가 아이를 키우면서 유념했던 것은 딱 세 가지. 첫째, 아이의 의견을 존중하되 한 말에 대해서는 스스로 책임지게 할 것. 둘째, 책을 많이 읽히기. 셋째,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것을 가르치기였다. 대학은 인생의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일 뿐이다. 공부는 마라톤 같은 것. “책 읽기만큼 개념을 파악하는 데 도움은 없다”고 말하는 김준희 대표에게 ‘아이 잘 키우는 법’에 관해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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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칠게 세상의 지식을 습득하는 법


그동안 자녀교육서를 써보자는 제안을 많이 받으셨다고 들었습니다. 망설였던 이유가 있었나요?

 

자랑하면 탈이 난다고 하잖아요. 학원이나 과외를 시키지 않아서 조금 특이하게 키웠다고 할 수 있지만, 자식 이야기를 쓰는 게 망설여졌어요. 사교육을 받지 않고 아이들이 대학에 잘 들어간 건 맞지만, 좀 이름난 대학에 들어가면 성공한 것인가? 괜한 자녀교육책을 냈다가 아이들에게 부담을 주게 되면 어쩌나 하는 염려도 있었어요.

 

본격적으로 책을 쓰기 시작한 건 언제인가요?


작년 봄쯤이에요. 일간지에서 인터뷰를 했는데, 그 기사가 조금 화제가 됐어요. 사교육걱정없는세상에서 강연 요청이 왔고 교육청, 대학에서도 강연을 했어요. 그동안 짬짬이 정리했던 글이 있어서 책은 수월하게 썼습니다.

 

책을 두른 띠지 문구가 인상 깊더라고요. “자식은 부모의 머리보다 태도를 닮는다.”


종종 주변 사람들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어요. “아버지가 공부를 잘해서 애도 잘하는 게 아니냐?” 100% 부정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해요. 부모가 공부를 잘한 부분이 아이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어요. 하지만 명문대를 나온 부모의 자식들이 100% 다 공부를 잘하진 않아요. 자녀는 부모의 뜻대로 되지 않아요. 머리를 닮을 수는 있지만 전적인 건 아니죠. 중요한 건, 공부하는 걸 겁내지 않는 태도예요. 공부가 어떤 것인지 감을 잡으면, 맹목적으로 두려워하는 마음이 사라집니다. 그러면 흥미를 가질 수 있어요.

 

책을 읽어보니, 핵심은 존중과 책임이더라고요. 아이에게 자율권을 주되 책임도 주셨어요.


맞아요. 부모들은 아이가 밥을 안 먹으면 숟가락 들고 쫓아다니잖아요? 답답한 마음은 이해하지만, 아이에게는 결코 좋지 않아요. 아이들도 밥 먹기 싫을 때가 있을 거예요. 먹기 싫다고 하면 억지로 먹이지 않았어요. 대신 복수도 하지 않았죠. 아이가 밥을 다시 먹겠다고 할 때, “안 먹는다고 할 때는 언제고, 이제는 먹니?”라고 말하지 않았어요. 그냥 당시에 먹기 싫다는 걸로 이해해야지, 아이의 투쟁이나 반항으로 받아들이면 안 돼요. 아이가 배고파서 나중에 밥을 찾아 먹었더라도, ‘밥이 줄었네?’라고 말할 필요가 없어요.

 

사교육, 선행학습이 무조건 나쁜 건 아니라고 지적하셨는데요.


적당하게 하는 건 괜찮다고 생각해요. 무조건 사교육은 안 된다는 순혈주의에 찬성하지 않아요. 조금 선행을 시켜도 아이는 망가지지 않아요. 조금이라도 계획에서 어긋났을 때, 아이에게 큰일이 났다고 생각하는 조바심이 문제예요. 이런 생각이 아이를 망쳐요. 사교육의 문제는 자녀교육을 전적으로 학원, 과외에만 의존하는 데서 생겨요. 지식 소화 능력이 중요한데, 시험만 잘 보는 아이로 키워지는 거죠. 선행학습은 어떤 것을 배울지 미리 조감도를 보는 수준에 그쳐야 해요. 부모가 시험 점수에 목을 매면 본말이 뒤바뀝니다. 정작 길러야 할 지식 소화 능력은 없어지고, 아이들은 써먹을 데도 별로 없는 지식을 외우는 일에만 올인해요. 부모가 쉬운 일은 아니지만 ‘지금 못하더라도 앞으로 더 잘하면 되지’하는 태도를 취하면 아이들도 조급해하지 않고 건성으로 아는 체 하지 않아요. 그래야 소화 능력이 생겨요.

 

지나치게 선행을 시키면 아이가 공부에 흥미를 잃고, 너무 느긋해도 아이가 공부에 흥미를 갖지 않아요. 간혹 한글을 깨치지 않은 상태로 초등학교에 입학한 아이를 보면, 학교수업을 따라가기 어렵다고 합니다.


네 아이를 키우면서 한글을 체계적으로 가르친 적은 없어요. 큰 아이가 한글을 깨치니까 둘째, 셋째는 자연스럽게 따라왔어요. 언니가 선생 놀이를 하면서 도와주니까, 저절로 깨치더라고요.

 

다만 책 읽기는 강조하셨어요.


독서는 거칠게 널려 있는 세상의 지식을 습득하는 행위에요. 당장에는 직접적인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지만 나중에 교과공부를 할 때 유용하게 쓰여요. 책을 읽어 지식을 삼킨 아이는 왕성한 소화력을 가져요. 거친 풀, 날것으로 된 곡식을 먹어봤으니, 어지간한 것쯤은 씹어 삼킬 수 있는 거죠. 반면 참고서와 문제집의 지식은 정제된 음식이에요. 잘 갈아진 밀가루와 설탕으로 만든 음식은 부드럽지만 소화기관은 그에 맞춰 약해져요. 대입 준비는 단기간 승부가 아니잖아요. 초,중,고 합쳐서 12년을 달려야 해요. 거친 음식을 먹어 본 아이는 소화기관이 발달해 어떤 상황이 와도 이겨낼 수 있어요. 책으로 얻은 지식은 기억이 잘 나요.

 

아이들에게 독서 습관을 갖게 하기 위해, 용돈을 주기도 하셨어요.


요즘 애들은 놀 거리가 워낙 많아요. 그렇다면 그냥 놔둬야 하나? 아니 방법을 찾아야 해요. 사실 시작은 성경 읽기였어요. 한 챕터를 읽을 때마다 백 원을 줬어요. 셋째 아이는 초등학교 때 성경을 두 번이나 읽었다. 다른 돈은 박하게 주되, 책 용돈은 후했어요. 성경은 어른들이 읽기도 어려운 문장이 많아요. 낯선 지명, 문어체를 어릴 때부터 접하다 보니, 나중에는 소화하지 못하는 책이 없었어요. 책에 흥미를 갖기 시작하니 용돈을 줄 필요가 없었어요. 부모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 모두 “얼마나 줘야 하나? 이럴 땐 어떻게 줘야 하나?” 등 방법론적인 질문을 하는데요. 가장 중요한 건 책, 텍스트에 관심을 갖게 하는 일이에요. 방법적인 건 자기 형편에 맞게 하되 동기 부여는 부모가 해줘야 합니다.

 

출판사에서 직장 생활을 시작했고, 교육기업 CEO까지 지내셨어요. 아무래도 책 선택에 있어서는 전문가세요. 책을 보니, 아이들에게 전집을 많이 읽히셨더라고요.


전집을 읽는 건 뼈대를 세우는 것과 비슷합니다. 단행본은 뼈대에 붙는 근육이고요. 전집을 출간할 때는 기본적인 편집 의도가 있습니다. 에디터들이 뼈대를 갖고 구성해요 낱권으로 책을 읽는 것도 좋지만, 전체적인 균형을 맞추려면 전집을 읽는 게 좋아요. 아이의 선호에 따른 책을 사줘도 좋지만, 확신이 없을 때는 전집을 선택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전집에 의존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자녀 분들은 어떤 책을 즐겨 읽었나요?


제가 출판사에 다녔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집에 책이 많았어요. 집에 있는 책들을 자연스럽게 읽었고, 필요한 책은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 보기도 했어요. 만화나 로맨스 같은 책은 자기들이 용돈으로 직접 사기도 했고요. 제가 얼마나 읽었는지, 감상문을 썼는지는 일일이 체크하지 않았어요. 소화하는 능력은 스스로 키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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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에 있어 스스로 책임지는 게 중요


책을 보면, 아이들이 사달라는 것을 후하게 사주신 편은 아니신 것 같아요.


다 사주면 밑도 끝도 없어요. 너무 쉽게 얻는 것도 좋은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꼭 필요한 것은 물론 해주지만, 경계선을 왔다 갔다 하는 것은 협상했어요. 옛날 일기를 보니까, 집에서 컴퓨터를 살 때 아이들이 1%씩 보탰어요. 얘네도 이유가 있는 거예요. 자기네도 쓸 데가 있을 것 같았던 거죠. 너무 당연하게 쉽게 얻는 부분은 절제할 필요가 있어요. 싫다고 안 사주면, 아이들은 결국 다른 방법으로 사요. 오히려 공개적으로 협상해서 사게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어요.

 

자녀 분들 이야기가 많이 담긴 책인데요. 책이 나오기 전에 자녀들에게 원고를 보여주셨나요?


일일이 다 확인을 받았죠. 제 기억과 다른 사실이 있을 수 있으니까요. 민감한 부분은 뺐으면 한다고 해서 수정한 부분도 있습니다. 둘째 아이는 일기 쓰기 숙제는 다 했다면서 정정을 요구해서 그렇게 했죠. (웃음) 잘못 해석하면 약간 잘난 체 하는 느낌을 주는 내용도 있다고 해서, 톤을 좀 다운 시키고 그랬어요.

 

자율적으로 아이들을 키우셨는데, 이것만은 그래도 잔소리를 한 부분이 있나요?


공부에 관해서는 없었고요. 거짓말 하는 부분에서는 엄했던 것 같아요. 큰 아이한테 누가 아버지가 어땠냐고 물어보면, 무서웠다고 그래요. 거짓말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엄하게 했어요. 또 하나, ‘자기 좋다고 남 괴롭히는 일은 절대 안 된다’고 했어요. 예를 들어 재밌다고 고양이 꼬리를 꺾는 것은 약한 상대에게 피해를 주는 거니 단호하게 못 하게 해도 돼요. 그런 것 말고 아이들의 선택에서 인생을 좌우할 만한 큰일은 없어요. 잘못된 선택을 하더라도 다시 시작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아이가 한 선택에 있어 스스로 책임질 의사만 있으면 돼요. 때때로 잘못된 선택으로 곤란을 겪어 보는 것도 훌륭한 학습이에요.

 

최악의 부모를 “스칸디맘과 타이거맘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경우”라고 하셨습니다.


스타일보다 중요한 건 일관성입니다. 스칸디맘이라고 해서 어릴 때부터 모든 걸 용인하는 게 아니에요. 타이거맘도 마찬가지예요. 100% 부모에게 의존하면 이 아이는 평생 어른이 될 수 없죠. 부모가 유순하고 아이가 자유분방하면 스칸디맘 쪽이 어울리고, 부모가 적극적이고 아이가 순응적이면 타이거맘 스타일이 잘 맞을 수 있어요. 하지만 부모가 타이거맘 스타일이라고 해도, 대학생 때까지 일관성 있게 하는 건 미친 엄마예요. 아이가 어렸을 때는 부모에 대한 저항력이 없어서 잘 따라요. 하지만 아이라고 부모가 시키는 대로 하는 걸 좋아하는 건 아니에요. 부모가 “내 아이는 어렸을 때 말을 잘 들었다”고 그대로 믿고 있는 건 무책임해요. 아이가 커갈 때마다 자율성을 조금씩 더 주고, 부모의 개입을 줄어가는 원칙은 지켜야 해요.

 

대표님께서는 어렸을 때 어떤 학생이셨나요?


모범생이었죠. 공부를 잘하니까 사람들이 좀 주목을 해주더라고요. 그래서 공부를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부모님은 시골에서 태어나 무학이셨어요. 친척 중에 검사를 했던 분이 계셨는데, 성공의 모델이었죠. 제가 어릴 적에는 공부를 잘하면 당연히 법대를 가는 시절이었어요. 다른 부분에 특별한 소질이 없었기 때문에 법대에 진학했어요.

 

부모님께서 공부하라는 잔소리는 안 했나요?


하면 내가 하는 거지, 잔소리를 듣는 걸 싫어했어요. 남의 소리를 들으면서 하고 싶지 않았어요. 아이들에게 요구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었어요. ‘어차피 해야 할 거면 네가 알아서 하고, 나는 억지로 하기 싫다는 걸 싸워가면서 시킬 마음은 없다.’ 아이들도 이게 빈말이 아니라는 걸 알았던 것 같아요.

 

첫째 따님은 초등학생 아이를 키운다고요. 아빠에게 양육 고민을 털어놓기도 하나요?


안 물어요. 자기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이 있어요. 사람들이 가끔 제게 “손녀는 어떻게 키우냐?”고 묻는데, 손녀를 왜 제가 키워요? 손녀의 교육은 딸과 사위의 몫이죠. 전적으로 부모가 알아서 키우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아빠로서, 지금 생각해보니 그래도 좀 아쉬운 부분이 있을 것 같아요.


제가 많이 엄한 편이었어요. 공부에 대한 다그침은 없었지만, 모든 걸 마음대로 하는 방임은 아니었어요. 에필로그에 쓰기도 했는데요. 막내가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병원에 갔더니 저를 보더니 막 울어요. 놀라서 그러는 줄 알고 달래주려고 했더니, “한 눈 팔아서 아빠한테 혼날까 봐 걱정 됐다”는 거예요. 그 때, 좀 멍했죠. 애 키우는 게 이렇게 엄격하게 했나, 반성했어요. 책을 보시면, 제가 너그럽고 자상한 아버지처럼 묘사됐을지 모르겠는데요. 저도 여러 시행착오를 겪었어요. 키우다 보니, 결국 공부 잘하는 것보다 건강하게 잘 자라서 사회에 기여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엄마, 아빠 역할은 어떻게 나누셨나요?


절대적인 기준은 없었어요. 빈자리를 알아서 메꾸는 게 중요하죠. 아이들 엄마가 공격수로 나가면 저는 수비수가 돼주고, 거꾸로일 때도 있고요. 아내는 전업주부였기 때문에 하루 종일 아이들을 봤어요. 어쩔 수 없이 이래저래 잔소리를 할 수밖에 없죠. 저는 퇴근 후에나 아이들을 만나니, 아내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었죠. 아이들이 엄마를 고생시키면 “왜 너네들 아빠 마누라 고생시키냐? 너희 엄마 이전에 내 마누라다” 말해주니, 아이들이 엄마를 함부로 못했어요.

 

아내 분은 네 아이를 키우면서 김포에서 농사도 지으셨다고요.


아내 의견에 따라 김포로 이사를 왔던 거였어요. 아내는 한 번 정한 일을 추진하는 데는 거침이 없어요. 김포 생활이 익숙해질 때쯤 아내가 어느 날, 농사를 짓겠다고 했어요. 농사일을 전혀 안 해본 사람이었는데, 금세 농부의 신체리듬으로 바뀌더라고요. 보통 수험생을 둔 엄마는 아이가 돌아올 때까지 잠을 안 잔다고 하잖아요. 우리 아내는 저녁 8시만 되면 곤히 잠들어버렸어요. 농사 짓느라 녹초가 됐으니까요. 아내는 아이들에게 공부해라, 책 읽어라 잔소리한 적이 없어요. 성적 가지고도 마찬가지에요. 아이들 공부에 관심을 갖고 있지만 적당히 무심하게 행동한 게 오히려 아이들에게 도움이 됐어요. 자기들을 믿고 기다리는 것을 아이들이 슬슬 알아갔던 거예요.

 

사실 잔소리를 안 하고 참는 게, 더 힘든 일이에요.


아내가 친구들한테 이런 말을 들었나 봐요. “넌 엄마로서 한 일도 없이 애들이 명문대에 척척 붙어서 좋겠다”고. 아내가 제게 말하더라고요. “왜 내가 한 일이 없어요? 아이들에게 참견하고 싶은 것 참느라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고. 정말 힘든 일을 해낸 거예요. 적당한 무관심으로 인해 아이들의 공부에 대한 자율성이 훨씬 커졌으니까요.

 

아이들에게 참 고맙다고 느꼈을 때는 언제였나요?


아이 넷 모두 고등학생 때, 대입 과정에서 저희들이 신경을 거의 안 썼어요. 어느 학교를 들여다봐야 하나, 추천해줘야 하나 고민하지 않았어요. 모두가 알아서 자기 성적이랑 적성이랑 맞는 학교를 결정했어요. 자기들이 결정해야 하는 몫이라는 걸 아는 건, 이미 성숙했다는 거잖아요. 둘째 아이는 회사를 다니다 미국 유학을 갔는데, 이것도 자기가 직장 생활을 하다 보니 공부가 더 체질에 맞는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에요. 고등학교 이후의 진로들에 대해 모두 부모를 의지하지 않았어요. 자녀가 부모 품을 벗어나서도 잘 살 수 있다는 것, 되게 감사한 일이거든요. 부모를 의지하지 않아서 서운할 수 있겠지만 이게 아이들을 키우는 보람 아닐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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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들에게도 좀 물어보자


아마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자녀를 둔 부모들이 이 책을 가장 많이 읽을 텐데요. 어떤 시각으로 보면 더 좋을까요?


방법론적인 것을 기대하실 수 있지만, 더 중요한 건 방향성이에요. 사람마다 환경이 다 다르잖아요. 내 아이에게 통용됐다고 모두에게 통용될 리는 없어요. 사람들이 교육에 대해 이야기할 때, 물고기를 주지 말고 잡는 방법을 알려주라고 하는데, 아이들 교육도 마찬가지예요. 아이를 잘 키우기 위해 희생해야 한다는 건, 넌센스예요. 자녀 공부 때문에 부모가 불행해지지 않아야 해요. 공부를 싫어하는 과정도 있어야 해요. 부모는 참아줘야 해요. 아이가 힘들어 하면 격려해주면 돼요. 방향성을 생각하지 않으면 흔들릴 수밖에 없어요. 부모들이 불안하니까 자꾸 정보만 찾는 거예요. 불안의 근거는 내 아이를 못 믿는다는 거잖아요. 내 아이를 믿는다면, 너무 불안해하지 마세요. 믿었더니 뒤통수 맞았다고 말하지 마시고, ‘믿는 게 원래 뒤통수 맞는 일’이라고 생각해야 해요. 때때로 내 기대에 어긋나는 걸 용인하고, 한 번 어긋나도 계속 어긋나진 않을 거라고 생각해주는 게 부모의 역할입니다.

 

한국사회는 여전히 엄마들이 더 자녀교육에 관심이 많습니다. 아빠들에게 하고 싶은 조언은 없으신가요?


거꾸로 엄마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어요. 가끔 아빠들한테도 “아이를 어떻게 키우고 싶냐?”고 물어봤으면 좋겠어요. 대다수 엄마들이 자기 욕심에 의한 계획을 세워놓고, 남편에게 동의만 구해요. 남편들은 싸우기 싫으니까 포기하고 동의하죠. 그런데 또 이러면, “당신은 아빠면서 왜 관심이 이렇게 없냐?”고 화를 내요. 아빠들이 무관심한 게 아니라, 엄마들이 욕심이 많은 것일 수도 있어요. 엄마들이 너무 혼자 하려고 하지 마시고, 아빠들에게도 의견을 물어볼 필요가 있어요. 강의를 다니면서 이야기를 들어 보면, 아빠들이 조금 더 본질적이고 너그럽다는 생각도 들어요.

 

‘바른경영 아카데미’를 설립해 대표코치로 활동하고 계세요. ‘인생학교 서울’에서는 리더십과 죽음에 관한 강의를 하신다고요.


인생학교는 지식을 알려주는 학교는 아니에요. 참여한 분들이 다양한 의견을 내고 상호작용하는 가운데 배우는 게 많아요. 죽음에 관해서 제가 다 아는 것은 아니지만, 인생 후반전을 보내면서 생각하는 것들을 나누고 있어요. 바른경영 아카데미를 만든 건, 독립된 사업체를 운영하거나 회사의 본부장급 되는 분들의 고민을 들어주다가 시작됐어요. 벌써 6년째 접어들었는데요. 경영학에 대해서 가르치는 게 아니라, 경영을 대하는 마음가짐, 시각을 알려주고 있어요.

 

상사와 부하 간, 관계적인 일 때문에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특히 윗사람과의 관계가 어렵죠. 어찌 보면 윗사람은 환경과 비슷해요. 북극은 춥고, 열대지방은 덥잖아요. 바꾸려고 해도 안 바뀌고, 바꿀 힘도 없는 게 현실이에요. 그럴 때 취할 수 있는 방법은 추우면 두꺼운 옷을 입고, 도저히 못 참겠으면 장소를 옮기는 거예요. 또 사람들은 춥다, 춥다 말하는데, 이것도 상대적인 거예요. 나만 추운 거 아니거든요. 나만 유난스럽게 춥다고 말하는 건 아닌지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요.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 잘못된 것인가, 그런 부분을 점검할 필요가 있어요.

 

구조적인 문제는 혼자 힘으로 바꿀 수 없을 텐데요. 어떻게 직장생활을 견뎌야 할까요?


한 기업에서 설문조사를 했어요. ‘내가 다른 팀의 요청을 얼마나 수행하고 있나?’를 물었더니, 평균이 80점이 나왔어요. 그런데 ‘다른 팀은 내 요청을 얼마나 수행하고 있나?’는 문항에서는 평균 50점이 나왔어요. 실제로 주는 사람들은 80을 줬다고 생각하는데, 받은 사람은 50으로 체감하고 있다는 거예요. 이게 세상의 이치예요. 억울하다고 하지만 30만큼의 갭은 있을 수밖에 없어요. 구조적인 개선도 필요하지만, 개인의 문제로 돌아봐야 해요. 구조적인 문제만 이야기하면서 자기 것을 놓치는 건, 현명하지 않아요. 

 

2017년도 특별한 계획이 있나요? 2015년 출간한 『그림 수업, 인생 수업』도 반응이 좋았는데요. 후속작을 쓰고 계신지요?


우선 그림 그리는 일을 더 즐겁게 하고 싶어요. 지금 하는 일이 글 쓰는 일과 강연하는 것, 찾아오는 사람들을 상담하는 일이에요. 더 잘하고 싶어요. 다음 책은 ‘바른경영 아카데미’에서 강연한 내용을 에세이로 풀어볼까 해요. 찬스가 생기면 유학 같은 것도 가보고 싶어요. 일본 같은 나라에서 컨설팅 내지 상담, 코칭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으로 회사에 들어가봐도 좋을 것 같아요. 월급은 받지 않아도 되니까 인턴도 좋고요. 곁눈질로 좀 더 가까이에서 보면, 답답해서 저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더 잘해줄 수 있을 것 같아요.

 


 

 

CEO 아빠의 부모수업김준희 저 | 나무를심는사람들
『CEO 아빠의 부모수업』은 저자 김준희가 김포 농가주택에서 네 아이를 사교육 없이 수재로 키운 교육 비결을 담은 책이다. 그는 ‘책 많이 읽으면 좋은 대학 갈 수 있다’는 소신을 아이들 교육에 적용했고, 독서로 ‘지식 소화 능력’을 기른 네 아이는 사교육의 도움 없이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게 되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박준영 변호사 “측은지심이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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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포털사이트 다음의 ‘스토리펀딩’을 통해 파산 위기에 놓인 한 변호사의 사연이 공개됐다. 기사의 제목은 “하나도 거룩하지 않은 파산 변호사”, 주인공은 ‘재심 전문 변호사’ 박준영이었다. 익산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 삼례 나라슈퍼 3인조 강도치사사건, 무기수 김신혜의 재심을 이끌어낸 그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기사가 공개된 지 사흘 만에 1억 원 이상의 후원금이 모였고 최종 모금액은 목표의 5배를 넘어섰다.

 

그 날의 일을 떠올리며 박준영 변호사는 ‘측은지심’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단언컨대, 이 경이로운 기록에 담긴 것은 애처로운 마음만은 아니었다. 잘못된 일을 바로잡는 일-누군가는 해야 할 그 일을 짊어져 준 데에 대한 고마움이었고, 그만큼 무거운 부채감의 표현이었다. 동시에 그것은 질문이기도 했다. 변호사 박준영이 걸어온 길을 되짚어 볼 때, 우리는 그에게 묻고 싶다. 신념대로 산다는 것, 그 어려운 일을 어떻게 해낼 수 있는가. 『우리들의 변호사』는 그에 대한 응답이라 할 만하다.

 

작은 섬마을에서 태어나 장례식에 쓰이는 종이꽃을 접으면서 자라난 그가, 문제적 청소년기를 보내고 ‘내세울 만한 학벌도 배경도 없는 변호사’가 된 그가, 어떻게 우리 사회의 희망의 증거가 되었는지 솔직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억울한 이들을 찾아가 먼저 손을 내밀고 그들의 빼앗긴 권리를 되찾아주는 일, 그 고단한 길을 묵묵히 걸어갈 수 있도록 자신을 지탱해 주는 것들에 대해 덤덤하고도 뜨겁게 고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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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있고 빽 있는 사람들에게 굳이 제가 필요한가요?


『우리들의 변호사』라는 제목이 뭉클합니다. 책에 담긴 모습은 우리 모두가 바라는 변호사의 그것인데, 현실에서는 만나기가 쉽지 않잖아요.

 

제목은 출판사 측에서 지어주셨는데, 솔직히 저에게는 조금 부담이 가는 제목이기는 했어요. 지금까지 10년 이상 변호사로 살았는데, 정의만 생각하고 살았겠습니까. 분쟁 속으로 들어가서 한쪽을 대변하다 보면 못된 짓도 했죠. 문제가 있어 보여도 애써 외면했던 경우도 있고, 형사 사건 변론하면서 문제가 있음에도 드러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부분도 있죠. 그런 과거에 대한 언급도 하지 않으면서 뭔가 정의의 상인 것처럼 나온다는 건 부담스럽기는 해요. 하지만 냉정하게 제 상황을 고백할 때는 고백하면서도, 우리 사회의 변호사가 나아갈 발전적인 방향을 이야기하고 제가 어떻게 살 것인지 다짐을 담는 제목이라면 상관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변호사라는 직업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들도 있잖아요. 수임료만 받으면, 의뢰인이 정의로운 사람이건 그렇지 않건, 변호해 주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변호사의 윤리라는 것도 있거든요. 우리가 이 윤리를 재해석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한 때는 의뢰인의 관점에서 의뢰인의 주장을 대변하는 걸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했었어요. 때로는 양심에 걸리는 행동이나 문제 있는 행동을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변호사는 어쩔 수 없어, 그럴 수밖에 없는 직업 아니야?’라고 생각했거든요. 물론 변호인은 의뢰인의 이익을 대변해야 되고 나의 주관이나 선입견, 편견을 가지고 의뢰인의 주장을 배척하면서 깎아 내리는 시도를 하면 안 되죠. 그렇지만 적어도 진지한 고민 하에 얻어지는 진실이 있다면, 일단 진실의 바탕 하에 의뢰인의 이익을 대변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변호사의 윤리’가 잘 지켜지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그렇게까지 고민한 단계가 아닌 것 같아요. 그런데 언제까지 우리가 이런 식으로 해야 되느냐는 거죠. 일례로, 누가 봐도 대통령의 탄핵 심판 답변서는 말도 안 되는 답변서예요. 그런데 그런 말도 안 되는 답변서를 변호사가 자기 이름으로 쓰고 기자 회견장에 나와서 얼굴을 비춘다는 자체가 아주 이상한 사회거든요. 변호사라는 사람들은 진실을 철저하게 고민하고, 그 중요한 가치 하에 의뢰인의 이익을 대변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게 가장 중요하다고 보고요.

 

오원춘의 국선 변호를 맡으신 적도 있으시더라고요. 그런 순간에는 변호사라는 직업에 대해서 딜레마를 느끼실 것도 같아요. 어떠셨어요?


흉악범이나 반사회적인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한 변호가 왜 필요한가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대부분 추상적인 논리를 이야기하잖아요. 헌법에 모두가 재판 받을 권리가 있다고 되어 있고, 그 모두에는 흉악범이든 선한 사람이든 다 포함된다는 건데요. 그 추상적인 논리로는 대중들을 설득할 수 없어요. 조금 더 현실적인 논리가 필요하거든요. 제가 경험한 현실적인 논리는 뭐냐 하면, 일단 재판 제도가 가지고 있는 본질에 접근을 해야 된다는 거예요. 우리가 절차를 거쳐서 실체를 확정하는 것은 오판을 방지하기 위한 거거든요. 그런데 어느 하나를 예외를 두기 시작하면 조금씩 잠식이 돼서, 정말 절차를 거쳐야 되는 사건들이 악의적인 목적이나 의도 하에서 배제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단 말이에요. 그래서 절차가 중요한 거거든요. 절차에 대한 예외는 아주 신중해야 된다는 겁니다.

 

그들에게 변론의 기회를 주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지 않고 벌을 받았을 때 당사자는 절대 그 형벌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정말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질렀다 하더라도요. 그러면 한 사람의 불행으로 끝나는 게 아니에요. 당사자의 불만이 사회적으로, 우리가 중시하지 못했던 다른 부분에서 나타납니다. 교도관들이나 국가기관의 민원실에서 근무하시는 분들, 이런 분들에게 영향이 미쳐요. 저는 한 사형수한테 재심을 청구해 달라는 편지를 계속 받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까 그 사람이 저한테만 편지를 보는 게 아니더라고요. 기자 분들, 국가인권위원회, 권익위원회, 신문고.. 이런 데에 다 편지를 보내요. 이것도 사회적 피해 아니냐는 거예요. 재판을 받을 때 그 사람의 말을 다 듣고 그에 대한 판단을 해주면 그런 불만을 갖는 데 한계가 있죠.

 

지금까지 변호해 주셨던 사법 피해자들을 보면 사회적 약자라는 공통점이 있어요. 그래서 더 재심을 받게 해주시려고 노력하시지 않았나 싶습니다. 힘 있는 자들이었다면 다르지 않았을까요?


피해를 당하기도 어려웠겠죠. 물론 우리나라 사법 피해가 항상 약자들한테 발생한 건 아니었습니다. 약자들이 절차적인 권리를 보장 받지 못해서, 반 인권적인 수사나 재판을 통해서 피해를 입은 경우도 있었지만, 이욕적인 관점에서 서로 싸우다가 더 강한 사람한테 피해를 당한 경우도 있어요. 최근에는 사회적으로 유명했던 사람들한테 연락이 오기도 해요. 더 강한 사람과 맞붙어서 진 경우죠. 그런데 그런 사건의 경우는 결국 맡지 않았습니다.

 

현실적으로, 경제적인 부분을 생각한다면, 거절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물론 돈 욕심이 있었죠. 경제적으로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 되다 보니까 그 분의 기록을 금고에 계속 넣어놨었어요. ‘정말 어려울 때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해서 금고에 한참 넣어놓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돌려줬죠. 돈을 받아버리면 그때부터 사건의 순서가 달라지거든요. 돈 받은 사건 먼저 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면 돈 없는 사람들 사건, 억울한 사람들 사건을 빨리 해줘야 되는데 뒤처지게 되잖아요. 그러니까 돈을 받고 변론하는 일은 안 했어요.

 

측은지심이 덜 발동된 걸까요(웃음).


맞는 것 같아요. 돈 있고 빽 있는 사람들은 굳이 제가 필요합니까? 다른 사람들한테 맡기면 되는 거잖아요. 솔직히 그런 사람들한테는 측은지심이 조금 덜해요. 돈 이야기하면서 선임하겠다는 분들이 억울하다고 말하는 것에 공감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그 분들은 다른 사람한테 맡길 수 있다는 거죠. 그러면 제가 굳이 그 사건을 맡아야 될 필요성은 없거든요. 아무래도 마음이 안 가긴 해요. 대체재를 찾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대체재를 찾으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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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은지심이 세상을 움직인다고 생각해요


수임료를 받는 사건은 맡지 않으세요?


지금은 안 하고 있습니다.

 

변호사님을 응원하시는 분들은 걱정하실 것 같아요. 펀딩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잖아요.


저도 고민을 하게 되더라고요. 물론 큰 금액을 펀딩하기는 했지만 함께한 분들께 드려야 하는 돈도 있었고, 세금으로도 적지 않게 나갔고, 기존에 워낙 열악한 상태였기 때문에 빚을 갚기도 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솔직히 여윳돈도 계산해 보게 되더라고요. ‘이 돈으로 아무것도 안 하면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거든요. 그러다 보면 약간 답답하기는 해요.

 

그런데도 무료 변론을 고집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일반 영리 활동을 한다는 게 자칫 잘못하면 큰 무리수를 둘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건이라는 것이 수임 단계에서부터 좋은 사건인지 나쁜 사건인지 알 수가 없거든요. 그러니까 사건을 못 맡는 거예요. 앞으로의 공익적 활동을 위해서 필요해서 영리 활동을 한다고 해도, 사건 하나 잘못 맡으면 다른 공익 활동까지도 다 문제 되는 상황이 되어버립니다. 제가 삼례 사건의 진범에게 접근했을 때, 그 분이 저에 대해서 부담을 갖지 않고 사실을 다 이야기한 이유는 저의 공익적 활동 때문이에요. 저를 믿은 거예요. 이게 얼마나 의미가 큰지 몰라요. 그런 이미지를 제 스스로 갉아먹을 수는 없는 거거든요. 저를 스스로 잘 지켜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그래야 저도 사건을 맡아서 일하면서 힘을 얻게 되고요. 어찌됐든 누군가가 앞으로 이 일을 계속 이어나가야 할 텐데, 좋은 선례로 남아주는 게 맞잖아요.

 

변호사님을 찾아와서 억울함을 호소하시는 분들도 많잖아요. 모든 사건을 맡을 수 없는 게 현실인데, 때로는 원망의 말을 듣기도 하신다고요. “요새 방송 인터뷰나 토론회 같은 데 자주 나오시던데, 그러실 시간에 제 사건 못 봐 줍니까?”라고요.


그게 정말 힘들어요.

 

그런 오해 때문에 상처를 받기도 하실 것 같거든요. 어떠세요?


상처까지는 아니에요. 때로는 아주 감정적인 언사를 통해서 저의 마음을 자극해버리면 그때는 힘들어요. 그렇지 않고 정말 절절한 고통을 이야기할 때는 저도 미안하죠. 다른 건 몰라도 형사 사법 피해에 있어서 억울하다는 주장은 사실상 사법 시스템이나 국가 기관의 시스템으로 인한 피해거든요. 그 분들은 사회적 불이익을 받고 있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저는 어찌 보면 사회적 혜택을 받은 사람이잖아요. 그러니까 그 분들 입장에서는 ‘나는 사회적으로 불이익을 받은 사람인데 당신은 사회적으로 혜택을 받은 사람이니까 나를 도와주는 것은 당연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좋은 일을 했다는 이미지로 여러 형태로 이익을 받고 있다면, 그 이미지와 배치되는 행동을 하는 것도 모순이고 위선이다’라고 지적을 하는 거죠. 그 논리를 제가 마음대로 너무 지나친 피해의식이라고 이야기할 수가 없어요. 어찌됐든 사회적 불이익을 입은 사람들이니까요.

 

인터뷰나 방송에 출연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어떻게 설명하세요?


어찌됐든 이런 일은 연속성으로 이어가야 하는데, 개인으로는 한계가 있는 거거든요. 또 다른 누군가가 나타나야 돼요. 저를 보고 누군가가 용기를 내주면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저의 선례를 보고 ‘저렇게 살 수도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게끔 해주는 게 맞거든요. 그러면 제가 갖고 있는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이 오히려 필요한 일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이게 제 합리화일 수도 있어요. 그래서 그 분들의 논리를 피해의식이라고 치부하고 싶지는 않아요. 사법 제도로 인한 피해를 입은 분들이니까 우리 사회에서 도와줘야 되는 게 맞는데 그게 안 되다 보니까 저를 찾아오시는 거잖아요.

 

그 분들을 원망하지 않으시는 것도 측은지심 때문일까요?


내 마음이 편하니까 그런 거죠. 남을 미워하고 남의 감정을 그 사람 탓으로만 몰고 가면 제가 불편해서 힘들어요. 제가 이해를 해버리는 게 편하거든요. 저 사람에게 문제 있다고 해버리면, 그 분들을 만날 때마다 미워해야 되는데, 솔직히 저도 불편해요. 그래서 이해를 해보려고 하는 거죠. 때로는 이런 분들도 있어요. ‘변호사님은 큰 사건 하시는데, 저 같은 작은 사건을 도와주기는 힘드시겠지만, 관심을 가져 주세요’라고 해요. 도와달라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사건의 크고 작은 개념을 규정짓고 오시는 거죠. 사회적 관심이 이슈나 가치 위주로 모아지는 경향이 있거든요. 정작 피해를 입은 사람들 입장에서는 자신이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것을 이해하려다 보니까 이건 작은 사건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책에서 말씀하시길, 측은지심이 세상을 구할 거라는 믿음을 갖고 계신다고 하셨어요.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으세요?


절실하게 상대방에게 공감을 해야 선의가 나오거든요. 공익으로는 한계가 있어요. 불쌍해야 다가서는 거거든요. 그래서 저는 측은지심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봐요. 삼례 사건도 진범의 측은지심 때문에 여기까지 온 거예요. 삼례 친구들을 보고 진범이 너무 불쌍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나선 거예요. 그게 측은지심 아닙니까? 저는 측은지심이 세상을 움직인다고 봐요. 제 이야기가 스토리펀딩에 소개됐을 때도 수많은 분들이 후원금과 함께 응원과 격려를 보내주셨는데, 그것도 본질적으로 따지면 측은지심이 상당히 많이 있겠죠. 그게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라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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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이 기록보다 강렬할 때가 있어요


재심 사건을 변론하시다 보면 어려운 일들이 많이 있으시죠? 사법부는 자신들의 판결을 번복하지 않으려고 하고, 증거와 기록은 잘 보존되어 있지 않고, 그러면 재심 신청 자체가 어려워지잖아요. 그 중에서도 가장 힘든 일은 무엇인가요?


증거 수집이나 밤샘 작업을 할 때의 어려움은 지나가고 나면 힘들었다는 생각이 덜 나요. 당연히 각오해야 될 일이기도 하고요. 가장 힘든 건 시간이 오래 걸리면 당사자의 고통의 시간도 길어진다는 거예요. 제가 그 부분까지 감싸고 갈 수 있는 사람은 안 돼서 힘들죠. 저는 법을 공부한 법률 전문가는 될 수 있을지언정, 사람의 마음을 달래가면서 할 수 있는 심리전문가는 아니거든요. 그 점에서 한계가 있어요. 재심에 수년씩 걸리는 경우가 많은데, 그 동안에 당사자들이 너무 힘들어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있어요. 복역 중인 무기수의 경우에는 재심 신청은 받아들여졌는데 형집행정지가 안 된 상황에서 절망하기도 하죠. 그래서 사회적 시스템이 함께 작동해줘야 돼요. 마음을 다독여줘야 되고, 경제적으로 너무 궁핍한 사람이 있으면 복지 시스템도 같이 작동돼야 하죠.

 

재심 사건의 변론을 결심할 때 “느낌을 가장 먼저, 그 다음에 기록”을 본다고 하셨는데요. 한편으로는 ‘느낌이라는 것이 그렇게 신뢰할 만한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일단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과 다른 걸 이야기하는 게 사람인 건 맞아요. 내면과 외면이 다른 경우가 충분히 있어요. 그런데 그게 길게 가는 경우는 드물 수 있거든요. 억울하지도 않으면서 자기 시간과 돈을 들여서 억울하다는 주장을 계속 한다는 것도 쉽지 않아요. 그래서 저는 어느 정도 이 사람이 고통을 호소했는지 시간을 봅니다.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했는지도 중요해요. 그런 전제가 깔려 있고요. 절절함이라는 것은 글이나 말, 또는 표정에서도 묻어나올 때가 있어요. 꼭 기록을 보지 않아도 ‘정말 억울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상대가 진실을 이야기하는지 거짓을 이야기하는지, 어느 정도 ‘감’이 오는 걸까요?


스스로 절절함을 연기했다 하더라도, 사람을 몇 번 만나서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 눈을 마주보면서 이야기할 때는, 위선적인 사람은 잠깐이라도 시선이 돌아갈 때가 있어요. 이 사람은 뭔가 감추고 있구나, 라는 게 느껴지는 타이밍이 있어요. 그 직감을 너무 우선시하면 안 되지만 그 사람의 억울함을 호소한 시간과 수단, 그 사람을 만났을 때의 느낌들, 그런 ‘감’이 때로는 기록보다 더 강렬할 때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제가 맡았던 사건들은 수사 기록이 조작된 경우가 많거든요. (심지어) 삼례 익산 사건은 진범이 따로 있는 사건이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서를 보면 범인만이 할 수 있는 진술들이 들어가 있어요. 조작되어 있으니까요. 그 기록은 사실이 아니잖아요. 기록의 이면을 보려면 사람을 봐야 되거든요. 그걸 보는 게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거예요.

 

삼례 사건과 관계된 분들이 보여주신 행동은 쉽게 믿을 수가 없을 정도예요. 진범도 용기를 내서 나타나 줬고, 피해자 분들은 그 분을 만나서 사과를 받아줬잖아요. 모두가 진실을 위해서 어려운 결정을 내려줬어요.


진실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피해자) 최성자 선생님은 이렇게 자신의 마음이 편안해질지 몰랐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분이 사건으로 얻으신 트라우마가 얼마나 크겠어요. 하지만 그 사람(진범)을 만나서 용서하고 손을 잡아줄 때, 물론 진실도 좋지만, 마음이 편안하다는 거죠. 저희가 다 같이 만났을 때 최 선생님이 먼저 현장을 떠나셔야 했는데, 그러고 나서 저한테 문자 메시지를 보내셨어요. 그냥 (진범의) 옆에 가서 이제 마음 놓고 살라는 이야기를 못해주고 와서 마음에 걸린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한테 문자메시지를 보내주시라고, 그대로 전해드리겠다고 말씀드렸어요.

 

삼례 사건의 진범에게도 변화가 있었나요?


진범도 마찬가지예요. 진실도 중요하지만, 예전에는 악몽도 꾸고 고통 속에 살았는데 지금은 악몽을 꾸지 않는데요. 내 마음의 평안이 그렇게 와요. 남한테 사과를 하고 남을 용서해주면서요. 연대라는 게 왜 중요한지 아세요? 제가 여러 사건을 맡아서 변호하다가 보니까, 누군가 한 사람이 먼저 용기를 내주면 그 다음 단계로 계속 발전해요. 정말 설득이 어려운 사람도 ‘다른 사람들이 다 이렇게 진실을 이야기합니다’라고 말해서 설득했다니까요. 그러니까 단계를 밟아가는 거죠. 용기라는 게 그렇게 나요.

 

『우리들의 변호사』에서 재판 과정에서 목격하신 부조리, 절차상의 한계를 이야기하기도 하셨어요. 어떤 변화가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보세요?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제대로 된 민주적인 사법 절차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 그렇게 길지 않아요. 수백 년의 사법 제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곳에서도 오판은 계속 발생하고 있는데, 민주적 사법 제도가 작동한 게 불과 얼마 되지도 않은 나라에서 완결성을 이야기할 수는 없어요, 절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씩 바꿔보려고 외국에서 많은 제도들을 보고 가지고 오는데, 그게 우리나라 실상에 맞지 않는 경우도 너무나 많아요. 현실에 맞지 않는 제도들이죠. 운영 과정에서 당초 제도의 취지와 반대로 운영되는 경우도 상당히 많이 봤고요. 그래서 저는 여기에서 무엇을 고쳐야 하는지를 먼저 봤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무조건 보고 들여올 게 아니라 우리 현실에 맞는 것인지, 현실에 맞게 운영되고 있는지를 계속 체크해 나가는 게 필요해요.

 

시민들의 인식도 달라져야 할 부분이 있겠죠?


진범이 따로 있는 사건이 17년 만에 해결됐어요. 황당하고 말이 안 되는 사건이고, 어떻게 이런 사건이 아직까지 해결이 안 될 수가 있냐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으시죠. 그런데 실제로 해결이 안 돼요. 대법원에서도 재심을 기각해 버린 사건이에요. 그런데 왜 이렇게 오랫동안 해결이 안 됐는지 생각해 보면, 한편으로는 시민들의 공감과 연대가 작동을 하다가도 끊기는 시기가 굉장히 많았어요. 관심의 지속이라는 게 중요하거든요. 관심만 계속 갖고 있다면 그 관심에 부담을 느끼는 사람들은 바로잡아요. 우리가 세상을 바꾸는 데 있어서 각각의 영역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게 필요하죠.

 

그런 의미에서 서로 다른 영역 사이의 연대도 필요하겠네요.

 

상대방의 영역에 대해서 내가 모른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보다는, 적어도 불합리하고 문제되는 것에 대해서 같이 관심을 가져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거든요. 그게 연대의 힘이고, 그게 중요하다고 봐요. 작은 힘이 모여서 세상을 바꿉니다. 이번에 탄핵 절차까지 가게 된 과정을 봐도, 결국은 시민들의 연대의 힘이 이뤄낸 거잖아요. 잘난 사람들의 호령은 아니었거든요.


 

 

우리들의 변호사박준영 저 | 이후
시국 사건도 아니고, 일반 형사 사건의 재심은 아예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던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뒤엎고 박준영 변호사는 재심 청구를 성공시켰다. 그것도 몇 건이나. 박준영이 걸어가는 한 걸음 한 걸음이 우리나라 사법 역사의 새로운 길이 되고 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본 “우리 그렇게 흐르는 물처럼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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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티 프로그램에 섭외할 사람을 찾고 있던 곽민지 작가는 ‘몸매 관리 잘하면서 자기 노하우 있는 멋있는 언니’ 같은 이본을 만났다. 운동은 어떻게 하세요? 밥은 뭐 먹어요? 질문이 늘어났지만 특이하거나 비법이랄 게 나오지 않았다. ‘운동? 그냥 하면 돼.’ ‘과자도 먹고 빵도 먹어.’ 이래서는 재밌는 게 나오지 않겠다 싶어 실망했지만, 하나둘 그의 말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몸무게는 13kg이 빠지고 인생 최저 몸무게를 찍었다. 무엇보다 삶이 조금 더 가벼워지고 즐거워졌다.


『이본. 그 여자의 뷰티』는 자신을 가꾸는 이본만의 철학이 담겼다. 식단이나 ‘부위별’ 운동 방법 같은 건 없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것들, 그러나 안 하는 것들, 누구보다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담았다. 이년 반 동안 공동저자인 곽민지 작가가 이본의 가까이에서 먹는 것, 운동, 여행을 같이하며 담은 이본의 삶도 있다. 몸매, 동안 비법, 화장술, 다이어트 방법이라기보다 뷰티(beauty) 자체, 즉 인생의 아름다움을 말하고자 했다.


1993년 데뷔 이후 광고 모델과 공채 연기자, 트렌드세터와 패셔니스타로 대중 앞에 섰지만, 어머니의 병환을 간호했던 7년은 길었다. 그러나 늘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며 절망스러운 일을 꿋꿋하게 이겨 낸 이본은 7년 전 모습 그대로 사람들 앞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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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만든 책


원래는 에세이를 쓰고 싶으셨다고 들었어요.

 

에세이 책을 내려고 준비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곽 작가가 찾아와서 ‘내 몸 사용설명서’ 같은 책을 만들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어요. 몸매 관리는 어떻게 하고 운동은 뭘 하고 피부관리는 어떻게 하는지 알려주는 책이요. 하지만 제가 전문적인 바디 트레이너도 아니고, 딱히 특별한 방법도 없고, 또 이미 뷰티에 관련된 책이 너무 많이 나왔는데 굳이 책을 낼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를 했죠. 그러면 쓰던 글이 있으니 책을 낼 거면 그 이야기랑 같이했으면 좋겠다고 했어요.


써 놓은 내용은 뭔가요?


먹는 것, 여행 다니는 것, 내가 보고 느끼는 게 너무 행복하다는 생각을 늘 하면서 살았어요. 내가 왜 이런 음식을 먹는지, 내가 여행하는 이유는 뭔지, 내가 왜 이렇게 살아왔는지 에세이로 풀고 싶었거든요.


에세이라고 하기에는 몸 관리 방법이 담겨 있고, 그렇다고 뷰티 팁을 담은 실용서라고 보기에도 모호해요. 독특한 형식의 책이에요.


애매하죠. ‘내 몸 사용 설명서’라고 하기에는 딱히 몸을 사용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적어놓지도 않았고요.


곽민지 작가와 처음 만난 게 언제인가요?


작가들이랑 친할 기회가 많지 않아요. 그리고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제가 쓰는 화법에 오해를 많이 해요. ‘뭐 드실래요?’ 물어보면 보통 ‘괜찮아요.’ 할 텐데 저는 ‘아니요, 싫어요.’ 라고 대답하거든요. 의사를 명확하게 밝혀주고 싶은 마음이 제일 큰 건데 무섭다는 사람도 많아요. 작가들이 다가서기가 꺼려진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다 보니까 저도 다가서기 어렵더라고요. 몇 년 전부터 알고 지냈던 작가가 저를 뷰티 프로그램에 섭외했는데, 그 프로그램의 작가 중 하나가 곽 작가였어요. 여느 흘러가는 작가 중 한 명이려니 생각하고 인터뷰를 했는데 나중에 연락이 왔어요.


뭐라고 하던가요?


어떻게든 프로그램을 살려 보려고 이것저것 질문을 많이 했는데 제가 한 대답이 재미도 없고, 특별한 방법도 없고 남들 다하는 기본적인 이야기만 하니까 ‘이 언니 뭐야’라는 생각을 했다고 해요. 그런데 나중에 집에 와서 인터뷰가 생각을 한번 더 하게 했다는 거예요. 또 한 번 만나서 뭔가 물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하더라고요.


곽민지 작가님이 스스로 들은 바를 실천하기도 했잖아요. 변화한 모습도 보셨고요.


그 친구가 키가 커요. 훤칠하다는 게 남자들한테 쓰는 표현인데, 처음 봤을 때 든든하고 훤칠하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저한테 이야기를 듣고 몇 달 후에 살을 빼고 나타났더라고요. ‘어? 예쁘다.’ 이런 생각을 했어요.

 

 

몸을 사랑하는 방식


책에서도 처음부터 끝까지 강조하지만 비결이 없잖아요. 생각하시기에 몸 관리의 정도(正道)는 뭔가요?


사실 제일 다루고 싶었던 이야기는 ‘부모님이 물려 준 그대로 자기 몸을 건드리지 말자’는 게 기본이에요. 그대로인 상태에서 매력 포인트는 뭐고, 마음에 안 드는 건 뭔지 본인이 생각해서 매력을 강화하고 별로인 점을 채우자는 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였어요.


획일화된 미를 안 좋아하시나 봐요.


요즘 안타까워하는 부분 중 하나예요. 사람마다 다 매력이 있다는 거죠. 그 매력을 빨리 알아채서 보강하면 마음에 안 드는 부분도 커버가 가능할 텐데, 마음에 안 드는 몸만 보고 자꾸 마음에 안 들어서 주눅 드는 게 안타까워요. 과도하게 의학에 의존하는 게 사실 제일 안타까운데, 건드리기 어려운 부분이에요. 지금은 여자들에게 상처를 주는 식으로 말하고 싶지 않아요.


이본의 사는 방식, 몸을 사랑하는 방식이 나와 있지만 책을 읽는 사람들이 모두 이본의 방식을 따라 할 순 없을 것 같아요. 밖에서 밥을 먹을 때 두루 먹기 위해 한두 명이라도 여러 메뉴 시켜놓고 조금씩 먹는다던가요.


그렇게 하기에는 일단 비용이 많이 들어요. 두 사람이 밖에서 밥을 먹는데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하기 위해서 4, 5인분을 시킨다? 쉬운 일은 분명 아니에요. 그런데 따라 하라는 이야기도 아니에요. 그 방식을 권하려고 책에 적은 게 아니라, 주어진 식단에서 조금은 다른 색을 찾아 먹어 보라는 제안이었어요. 음식이 나왔을 때 행복감을 느끼는 게 음식을 먹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펼쳐 놓고 먹는 거고, 여건이 안 된다면 저도 물론 하나만 시켜서 먹어요. 하지만 어떤 경우라도 최대한 골고루 손을 대보자는 거죠.

먹는 즐거움과 예쁜 음식을 보는 즐거움에 관해서도 말씀해주셨어요.


먹는 즐거움이 인생에서 큰 부분을 차지해요. 어떤 분이 맛있는 음식을 드시면서 저한테 ‘본이야, 너도 많이 먹어라. 살아있을 때 이렇게 맛있는 걸 먹어봐야 몇 번을 먹을 수 있겠니.’ 하시는데, 정말 그 말이 맞더라고요. 이제 음식을 보면 다른 마음가짐으로 접하게 돼요. 사람들을 만나서 맛있는 걸 먹고, 예쁜 걸 보면서 기분이 좋아지는 게 정말 별거 아닌데 저한테는 일과 중에 중요한 부분이에요.


되도록 여섯 시 전에 저녁을 드신다고 했는데, 오늘은 조금 서두르셔야겠어요.


저녁 약속이 시간이 잘 맞아서 다섯 시에만 가능해도 그때가 가장 행복하죠. 다섯 시에 먹고 싶은 거 쫙 깔아놓고 먹을 때, 그리고 다 먹고 나니 5시 59분일 때, 정말 행복해요. (웃음)


여섯 시 전에 저녁을 먹으라는 기준도 독자들에게 100% 따라 하라는 건 아닌 거죠?


권하고 싶진 않아요. 어려우니까요. 여섯 시 전에 저녁을 해치우자는 소리가 얼마나 어려워요. 다 원래대로 하시되, 다이어트를 하고 싶으면 그 시간에 소식하시고, 운동하고 싶으면 생활하는 데서 찾으라는 메시지죠.


운동하기 싫을 때는 어떻게 하세요?


하기 싫을 때는 하지 말아야 돼요. (웃음) 스트레스 받으면서 무엇 때문에 해요. 즐거운 걸 하셔야죠. 나는 운동을 안 해도 걷기는 할 수 있어, 그럼 걷는 동안 느긋한 걸음 대신 조금 힘들다고 느낄 정도로 빠른 걸음으로 걷자, 차로 갈 수 있는 거리는 걸어 보자. 이렇게 얘기해주는 편이에요.


그래서 운동 방법의 하나가 아파트 계단을 오르는 거였죠.


대부분 아파트 살잖아요. 엄마가 아프고 학교 다니는 동안에는 시간이 너무 빡빡해서 운동복을 챙기고 할 겨를이 없었어요. 그런 준비 과정 없이 운동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하다가 계단 오르기를 선택한 거거든요. 핑곗거리가 나오려야 나올 수 없어요. 집 앞에 현관문 열고 내려가서 올라오기만 하면 되는데 그게 하기 싫다고 하면 게으른 거죠.


곽 작가 말고도 이런 조언을 따른 사람이 있나요?


책에도 적었다시피 오래 못 가요. 그리고 10년 후에도 무슨 운동 하냐고 똑같은 질문을 하죠. 그럼 10년 전 가르쳐줬던 운동을 또 말해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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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인연도 챙기기 힘들잖아요


습관처럼 당연하게 운동을 하고 다이어트를 하는데, 주변에서는 피곤하다고 한다면서요.


책을 쓰는 내내 내용이 너무 평범해서 이걸 적어도 되나, 이런 고민을 되려 했는데 읽으신 분들은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냐고, 가능하지 않다는 분이 있었어요. 요즘 이렇게 살면 엄청 피곤하겠다는 말을 많이 들어요. 그런데 정작 저는 피곤하다고 생각을 못했다는 거죠. 그래서 제가 세운 규칙을 일부러 안 지키려고도 했어요. 그렇게 피곤해 보인다고 하니, 조금은 제 자신에게 후할 필요도 있겠구나, 너무 타이트하게 살아서 지금 빡빡한지 모르고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는 거죠.


‘몸에 안 좋은 거 안 먹어가며 오래 살고 싶고 싶다는 게 난 아니라고. 어두침침한, 질이 떨어지는 삶이 싫을 뿐’(57쪽)이라고 쓰셨어요. 질이 떨어지는 삶이란 어떤 건가요?


저희 엄마도 그렇고 아빠도 그렇고 가족력으로 암이 전혀 없어요. 엄마가 유방암이 걸린 게 처음이에요. 우리 엄마는 정말 현모양처에, 바깥에서 음식 사 먹지 않고 늘 손수 식단 차리고 집에 계셨던 분이거든요. 암에 걸리고 난 전후로 엄마의 삶의 질이 굉장히 달라지는 걸 느꼈어요. 먹고 싶은 거 못 먹고, 의욕도 없고, 항상 우울하고 약에 의존해야 하고요. 저는 영양소 챙겨 먹고 몸짱으로 오래 살고 싶다는 게 아니에요. 아프지 말자, 아파서 골골대는 삶 말고 관리해서 삶의 질을 높이자는 거죠. 그래서 시간이 지나서 부패했을 것 같은 음식, 모양이 안 예쁜 음식은 안 먹어요. 행복하지 않으니까요.


미모에 관한 문제라기보다 건강 쪽에 비중을 둔 거네요.


건강에 관한 문제가 어쩔 수 없이 저한테도 생겨버린 거죠. 닮아야 할 것, 닮지 말아야 할 것을 엄마를 보고 판단하는 편이에요. 우리 엄마지만 예민하고 까칠한 성격이에요. 항상 깔끔하게 치워야 하고 사람들 신경 쓰고 일어나지 않을 일 끄집어내서 걱정하는 게 싫거든요. 당장 고민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면 버리는 연습을 정말 많이 했어요. 주위를 좋게좋게 해서 다 끌고 가자는 게 제 성격이었는데, 지금은 많이 바뀌었어요.


책에서 이본이라는 사람은 관계에서도 ‘자르는 스킬’이 있다는 말을 해요.


그게 그 말이에요. 중요한지, 내 인생에 필요한지 생각하고 필요하지 않다면 그 인연을 이어가고 싶지 않아요. 건강한 인연도 챙기기 힘들잖아요. 그래서 과감하게 잘라요.


예전 인터뷰에서 결혼하게 된다면 남편한테는 요리 안 시킨다는 말을 하신 적 있어요. 이런 부분은 어머니를 닮으신 것 같아요.


지금도 그래요. 그래서 결혼하는 게 더 겁이 나나 봐요. 엄마처럼 될까 봐서요. 촌스럽지만 아직 제 성향이 남자가 할 일, 여자가 할 일이 정해져 있다는 게 너무 분명하게 나뉘어 있더라고요. 그리고 결혼이라는 게 누군가의 인생이 개입되는 거잖아요. 지금 부모님 돌보고 내 일하고, 내 가족들 지켜보는 것만으로 행복하기도 하지만 버겁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더는 진행을 못 하는 것도 있어요.


부모님은 건강하신가요?


엄마는 올해 6월이면 곧 완치 판정이 나온다고 해요. 7년 동안 싸우셨는데 이제 그만하셔야죠. 건강했으면 좋겠어요.


요새도 어머니랑 친하게 지내시죠?


그럼요. 지금은 저랑 같이 계단도 걸어 올라가세요. 제가 가르쳐 준 스트레칭을 제일 잘 실천하는 게 우리 엄마예요. 얼마나 기특한지 몰라요. (웃음)

 

 

연기자 이본


 ‘여배우는 이래야 한다’는 꼬리표가 항상 따라다니잖아요. 피곤하진 않으세요?


‘이본이라는 배우는 이러이러하다.’ 그걸 떨쳐버린 지는 진짜 오래됐어요. 지금도 인터뷰를 하면 대수롭지 않은 유머가 확대되고, 정말 진심은 사라지고 하다 보니까 솔직히 아직도 기자들을 만나는 게 제일 힘들어요. 그리고 이본은 세다, 강하다, 예의 없다, 이런 말을 어렸을 때부터 너무 많이 들어와서 큰 의미로 와 닿지는 않아요.


연기를 계속 하고 싶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는데, 하고 싶은 연기가 있나요?


사람들 앞에서 연기하는 일이 너무 좋아요. 디제이도 있고 MC도 있고 여러 가지 분야가 다 매력이 있지만 연기는 매번 이본으로 비치지 않잖아요. 그런 마력 때문에 앞으로도 연기 쪽으로 집중하고 싶어요. 딱히 해보고 싶은 역할은 없어요. 어떤 역할이 되었든 이본이라는 연기자가 하면 코믹을 하더라도 신선하고 조금 다른 느낌이 들게 하고 싶어요.


병간호 때문에 오래 쉬신 후에 몇 번 복귀 시도를 하시기도 했습니다.


시트콤도 했었고, 몇 번 방송에 나왔어요. 그런데 마음처럼 되지 않고 욕심처럼 되지 않는 게 세상인 것 같아요.


<무한도전> ‘토토가’ 때는 복귀의 의도는 아니셨을 텐데, 뜻밖에 정말 잘 됐어요.


다른 가수들은 ‘토토가’ 하기 전에 미리 노출됐었어요. 사전에 인터뷰하고 사전 촬영도 다 하고요. 저한테도 전화가 몇 번 왔는데 그럴 때마다 해외에 있거나 사정이 생겨서 못 갔어요. 그래서 제작진에서 이본 씨는 촬영이 안 되니 노출하지 말고 당일 무대에 세우자고 결론을 내렸어요. 예전의 그 가수들을 소개하는 자리라면 얼마든지 할 자신이 있다고 편안한 마음으로 갔는데, 너무 눈물이 나올 것 같은 거예요. 대기실 밖으로 안 나오려다가 리허설 무대에 올라갔는데 눈물이 터졌어요. 이전 방송은 온전히 내 것이 되지 않으려니까 안 됐던 거고, ‘토토가’는 정말 기대치 않고 갔다가 뜻밖에 사랑을 받았으니, 지금도 인생을 공부하는 중이에요.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무언가를 한다는 게 좋다’(248쪽)고도 하셨어요. 선천적으로 연예인의 자질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자질이 있다기보다는, 사람들 앞에서 하는 일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는 것 같아요. 끼나 자질을 타고났다는 차원을 벗어나서 이 일을 할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하고 감사해요. 사람들 앞에서 뭔가를 하는 직업이 참 희열을 느끼게 해주는 직업이라, 안하고는 못 살 것 같다는 생각이에요. 글 쓰는 것도 차라리 시나리오를 써서 이걸 토대로 연기해 보고 싶은 거지 책을 썼다고 작가가 되고 싶다는 차원이 아니에요. 패션이나 화장품, 뷰티 사업 제안같이 다른 건 끌리지 않아요.


쇼핑몰 하신 적은 한 번 있다고 들었어요.


그것도 누구 손에 맡기지 않고 제가 직접 관여하는 조건이 우선이었는데, 의견 조율이 안 돼서 금방 접었어요. 그냥 옷을 입고 사진만 찍어 주는 게 제가 원하는 길은 아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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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사랑하는 삶


쉬는 동안 대학원을 수료하셨다고요. 대학 생활은 어떠셨어요? 힘들지 않으셨어요?


죽기보다 힘들었어요. (웃음) 모르는 사람들과 생활하는 게 너무 익숙지 않았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빙산의 일각을 가지고 너무 크게 부풀려서 혼자 스트레스를 받았던 것 같아요. 해보지 않았던 거였으니까요. 경험을 못 해봤으니 겁을 먹고 사람들이 다가오는 게 싫었어요. 하지만 한 번 장애물을 건너고 나니까 너무 쉬운 거예요. 학교 가는 길이 행복하고 대학원 동기들과 카톡을 나누는 게 즐거웠고요. 뛰어넘고 보니 다른 생활이 생기더라고요.


책이 나오고 자신을 알리는 기분은 어떠세요?


사실 책을 만들면서 몇 부가 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안 했어요. 출판사 식구들은 분명 저와 다르겠지만, 이년 반 동안 공들여 만들어서 손에 쥔 것만으로도 뿌듯해요. 좋은 일이 생기면 좋겠지만 하늘에 맡기고 싶어요.


‘사랑할 수 있을 때 맘껏 사랑하며 아끼며, 우리 그렇게 흐르는 물처럼 살아요. 그게 제일 아름다운 인생’(293쪽)이라고 쓰셨는데, 요즘 생활은 아름다운 인생에 포함되나요?


자고 일어나서 자기 직전까지 사람들을 만나고 무사히 일을 마치고 사건사고가 없으면 그 하루가 굉장히 좋은 하루예요. 나이가 한 살 두 살 먹어 간다는 건 떠나 보낼 사람들도 하나둘씩 생긴다는 거잖아요. 앞으로 지금보다 더한 고통을 겪게 될 텐데, 그런 고통을 잘 이겨낼 수 있는 연습도 하고 있고요. 지금까지 하루하루가 조용한 것에 너무 감사해요. 그러면 흐르는 물처럼 사는 거고, 나는 행복했고, 후회 없고, 지금으로도 너무 충분해요.


제목이 ‘그 여자의 뷰티’ 인데 계속 들어보니 뷰티라기 보다는 인생에 가깝네요.


가장 관여를 안 했던 부분이 제목이에요. 사실 밀었던 제목은 ‘잎사귀가 질 즈음엔 너무 늦잖아요.’ 였는데, 전문가들의 의견을 따르고 싶었기도 했고, 보면 볼수록 심플하면서도 좋아요. 여기서 ‘뷰티’는 ‘아름다울 미’ 자를 생각한 거였거든요. 인생의 아름다움. 이 책을 접하시지 못했던 분은 몸하고 얼굴이 나오니까 자신을 꾸미는 뷰티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사람들이 자기 자신의 아름다움을 찾을 수 있는 한 번의 기회, 한 번 더 나를 돌아보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이 책은 어떤 독자가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나요?


20대부터 40대 여성을 겨냥했어요. 왜냐하면 20대 때 하지 않으면 30대 때 할 수 없고요. 30대에 하지 않으면 40대를 이렇게 맞이하기 쉽지 않아요.


이후에도 책을 쓰실 생각이라고 했는데, 앞으로 나올 책은 어떤 내용이 될까요?


그때는 운동, 동안, 이런 깜찍하고 아기자기한 이야기는 아닐 거예요. 연예계 활동을 하면서 이면에 있었던 속 깊은 이야기가 많이 실릴 것 같아요.

 


 

 

이본 그 여자의 뷰티이본,곽민지 공저 | 브레인스토어(BRAINstore)
『이본. 그 여자의 뷰티』는 자신을 가꾸는 것에 대한 이본만의 철학을 시원한 말투로 담고 있다.보통의 여자들이 오랫동안, 예쁘게, 즐겁게 자신을 사랑하며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 그녀의 말은 독자에게 진심으로 다가갈 것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서동일 “하루 8시간, 하고 싶은 일을 해야 내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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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페이스북이 가상현실(Virtual Reality) 기기 제조업체 오큘러스를 20억 달러(한화 2조 3천억 원)에 인수했다. 오큘러스의 공동창업자였던 서동일은 연봉 1억 8천만 원을 받는 페이스북 자회사 한국지사장이 되었다. 지분으로 80억 원을 즉시 받고 5년 동안 일하면 70억 원을 받는다는 조건이었다. ‘조’와 ‘억’이 나오는 이 문장에서 사람들은 모두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70억 원을 받기도 전 서동일은 다시 페이스북을 나왔다.


사람들은 잘못된 길이라고 말했지만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손꼽히는 캐나다 주립대학을 졸업했지만 연봉 2,000만 원을 받는 게임회사에 들어갔고, 정부 산하기관에서 안정적으로 일하다가 4대 보험도 없는 회사에 들어갔다. 합병으로 글로벌 기업 최연소 부장이 되었지만 다시 그 자리를 걷어찼다. 지금은 계속 적자상태인 ‘볼레 크리에이티브’를 운영한다. 이유는, ‘그건 내 인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은 돈이었지만 『그건 내 인생이 아니다』서동일 저자의 선택 기준은 꿈이었다. 부모 세대의 20세기 지도에서는 노력을 통해 ‘바늘구멍 같은 톨게이트’를 지나갈 것을 주문했지만, 인공지능이 급속도로 발전하는 21세기에서는 같은 지도가 통하지 않는다.


“기성세대가 말하는 ‘정답’은 정답이 아니라는 말을 하기 위해서, 21세기형 내비게이션을 보여주기 위해서, 낡은 가치의 협박과 압박에서 절망하지 말고 새로운 가치로 이동하라고 말하기 위해서, 다시 꿈을 실천함으로써 존재하라고 말하기 위해서 이 책을 쓰고 있다. 내가 어떤 선택을 해왔는지, 왜 환영받지 못한 선택을 했는지 보여주는 것이 내 제안의 시작이다.”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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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다는 표현을 많이 들었어요


제목이 ‘그건 내 인생이 아니다’ 예요. 저자님이 생각하신 제목인가요?


후보 중 하나는 ‘그렇게 살아 그게 네 인생이라면’이었어요. 많은 자기 계발 서적이 훈수를 두잖아요. ‘나는 이렇게 살았고 이렇게 사니까 잘 되더라.’, ‘이렇게 하면 성공한다.’ 그건 그 사람의 성공 방식이지 독자의 성공 방식은 아닌 경우가 많더라고요. 자기 인생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다른 것에 도전하는 게 맞는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저는 하나의 예인 거죠. 에필로그에 써 놓은 ‘텐 코어’ 프로그램도 단순히 잘났으니까 본받으라는 말이 아니고, 꿈을 꾸고 있다면, 지금이라도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새로운 삶을 모색해 보라는 의미로 쓴 이야기입니다.


스스로 운이 좋은 편이었다고 쓰셨는데, 아무래도 가장 큰 운 중 하나는 오큘러스의 페이스북 인수였을 것 같아요. 그때 기분은 어떠셨어요?


실은 묘했죠. 아주 좋았다기보다 지금 파는 시점이 맞을지 고민했어요. 회사의 값어치가 더 클 수 있었을지 모르니까요. 좋은 예로 페이스북도 예전에 야후에게 1조 원 정도의 금액으로 매각을 제안 받았어요. 주커버그는 회사를 더 키울 수 있을 것이라며 매각을 과감히 포기했는데, 지금 페이스북은 이미 220조 넘는 가치를 지닌 회사가 되었고, 주커버그는 개인 재산만 30조가 넘는 사람이 되었죠.


주변에서는 많이 부럽다고 하셨었죠?


처음에 오큘러스에서 일할 때는 미쳤다는 표현을 많이 들었어요. 사람들은 누군가 어떤 길을 가려고 할 때 좋지 않은 길이라고 판단하면 보통 걱정을 해요. 되든 안 되든 훈수를 두고 싶어 하죠. 안 되면 ‘거봐, 내가 안 된다 그랬잖아’라고 반응하지만, 되면 ‘내가 너 될 줄 알았어’가 되거든요. 하지만 미래는 불투명해요. 누구도 정확하게 답을 줄 수 있는 수학 문제가 아니니까 답이 없는 걸 시도해 보는 거죠.


주변 반응에는 이제 초연해지실 것 같아요.


그렇죠. 살면서 주변 반응에 민감하게 반응한 적은 거의 없는 것 같아요. 물론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기도 해요. 특히 오큘러스 창업하기 전에 다녔던 오토데스크에서는 계속 있을 경우 여러 가지 좋은 조건도 제시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게 내 인생이 아니라고 생각이 들면, 포기를 결정했어요.


제목으로 돌아와서, ‘내 인생이 아니다’에서 대표님이 생각하는 ‘내 인생’은 뭔가요?


어떤 것을 내 것이라고 정의 내리려면 내가 주체가 되어야 하고 결정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대부분 우리 인생에서 하루 여덟 시간을 직업으로 가지고 있잖아요. 그 직업이 내가 하고자 하는 일과 매치가 된다면 그건 내 인생인 것 같아요.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인데 해야 하고, 그 일 자체가 꿈에 가고자 하기 위해서 반드시 거쳐야 하는 싫은 일이 아니라 그냥 하기 싫은 일일 때, 왜 해야 하는지 모르겠고 어떤 가치가 있는지도 모르는 때가 있잖아요. 내가 아침에 일어나서 하루 여덟 시간의 소중한 낮 시간을 써야 하는데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과 틀린 방향으로 일하고 있다면, 그건 내 인생에 주체가 된 게 아니에요. 그때는 내 인생이 아닌 거예요. 직업을 포기하란 말이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직업이 사업이 됐든 어떤 회사에 종속이 됐든 하고자 하는 일과 연결해서 하라는 거죠.

 

 

가상현실이라는 그림


종종 사람들은 ‘그래서 어떻게 가상현실을 만들 거냐’고 실현 방법을 질문합니다.


방법을 안다면 과연 그게 블루오션일까요? 그리고 방법을 안다고 해서 그게 항상 그 사람에게 기회가 될까요? 학교에서 강의하다 보면 앞으로 가상현실 시장에서 성공하려면 뭘 공부해야 할지 물어봐요. 방법은 다양해요. 왜냐하면 가상현실은 융복합 산업이기 때문에 다양한 분야의 산업이 조화를 이루어야 하거든요. 그런 질문보다는 가상현실이라는 큰 그림을 보고 나서 이것이 잘 되려면 내가 지금 무엇을 할까를 고민하는 게 더 낫죠. 제가 슈퍼스타가 되고 싶다고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상황에 따라 다르겠죠?


그렇죠. 나는 노래를 잘하는데 연기하라고 그러면 힘들잖아요. 자기에게 맞는 역할을 가지고 어떻게 할 수 있을까가 고민이 되어야지 누군가가 답을 정해주고 이 일을 하라고 하는 건 답이 아닐 수 있잖아요. 자기의 특기는 자기가 제일 잘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질문을 던지기보다 하겠다고 마음먹은 일을 하기 위해 현재 이뤄지는 일을 분석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고민해 봐야 해요.


가상현실의 기술 자체보다 콘텐츠가 더 관건이라고 하셨어요.


국내에서 스마트폰이 등장하고 대중화된 이유는 모두의 스마트폰이 다 달랐기 때문이에요. 기기는 같았지만 앱스토어와 구글플레이가 제공하는 콘텐츠는 개인의 취향과 요구에 의해 자기가 맞춰나가는 거잖아요. 모든 스마트폰 중에 똑같은 스마트폰은 없어요. 그게 콘텐츠예요. 가상현실을 구현하는 기본적인 기술, 최소한 특정 장소에 있다는 느낌을 주는 기기로서는 이미 어느 정도 개발이 되어 있어요. 그러면 기술을 부흥시키는 방법은 사람의 요구를 충족하는 콘텐츠가 나와줘야 해요. 사람들이 가상현실 시장에 관해 이해하고 어떤 혜택이 있는지 알려고 하면 실제로 해봐야 하는데, 어떤 콘텐츠를 소비하는 행위로 실제 경험할 수 있는 거죠.


가상현실 시장으로 인해서 다른 컴퓨터 기술에도 영향이 클 거라고도 하셨는데요.


수확체감이라는 용어가 있어요. 열심히 R&D에 투자해서 결과물을 좋게 만들었는데, 그 결과가 소비자에게 아무런 가치가 없을 때를 말합니다. 그런 사업의 대표적인 예가 스마트폰 화면에 들어가는 액정 화면이에요. 애플은 레티나 디스플레이를, 삼성은 갤럭시 S5부터 풀HD 패널을 도입하면서 그 뒤로 스마트폰 디스플레이로 크게 선전하지 않아요. 소비자와 완성 업체가 굳이 지금보다 더 좋은 디스플레이를 쓴다고 해서 고객의 눈에 더 선명함이 느껴지지 않거든요. 가상현실 기기를 체험해보시면 아직 해상도가 많이 부족해요. 부족한 해상도를 더 높이기 위해서는 물리적인 기술 수준이 더 높아져야 하고, 새로운 기술의 먹거리 중 하나가 가상현실 시장이 될 수 있어요. 마이크로칩 생산 회사 차원에서도 가상현실이 필요로 하는 많은 연산능력을 뒷받침하는 새로운 칩을 개발하는 계기가 되겠죠.

 

생산자 입장에서는 매력적인데, 아직 소비자 입장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시장이에요.


IT는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면 결국 남는 기술이라고 생각해요. 일을 더 빠르게 할 수 있는 생산성, 그리고 이 기술을 가지고 현재 하는 일을 더 싸게 할 수 있는 비용 절감성이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어쩔 수 없어요. 그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다면 하드웨어는 바뀔 수 있어요. 지금 가상현실 기기의 한계를 볼 게 아니라 시장 자체가 가져오는 변화를 볼 수 있다면, 생산성과 비용절감을 잡기 위해서 그게 5년이든 10년이든 이 분야의 연구와 요구는 계속 증가할 거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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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와 21세기의 내비게이션은 다르다


IT업계는 다른 직종에 비해서 속도가 굉장히 빠르잖아요. 불안하지 않으세요?

 

불안하죠. 몇 달 전 이야기한 일이 거짓말이나 잘못된 예측이 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제가 정체해 있다고 해서 세상이 안 변하는 건 아니거든요.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전지대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인공지능 변호사가 일을 보고 인공지능 의사가 환자를 진단하는 시대예요. 50대라면 의사와 변호사라는 직업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20대의 지금에서는 그 방법이 맞을까, 그런 고민을 해볼 수 있겠죠.


‘4차 산업혁명을 꿈꾸는 몽상가 서동일’이라고 표지에 쓰여 있지만 책이 4차 산업혁명만을 다루고 있진 않더라고요. 젊은 세대에게 해주고 싶은 말,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견해가 반반인 것 같아요.


인공지능, 3D프린터, 가상현실 등의 첨단 IT 산업이 일반 산업과 연결되면서 만들어진 게 4차 산업혁명이에요. 결국 이런 기기가 스마트화되고 인간의 지능을 대체한다면 젊은이로서, 20대로서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자기 미래를 꿈꿔야 한다고 생각해요. 50대라면 변화가 완전히 오기 전에 지금 직장을 다닐 것이고, 40대는 정년 즈음에 영향이 있을 거예요. 30대는 한창 커리어를 만들어 나갈 때 4차 혁명을 맞이하고, 20대는 아예 지금부터 다른 내비게이션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방향을 바꿔야 한다면 제가 가진 지식을 나눠주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했어요.


젊은 친구들과 같이 일하시는 편인가요?


게임업계 쪽 일을 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다들 젊어요. 특히 큰 계기가 된 게 나이 차가 많이 나는 처제인데요. 소위 말하는 명문대 경영학과에 다니지만 젊은 세대만의 어려움이 있더라고요. 좋은 대학 나와서 좋은 직장에 가야 한다는 이정표를 부모에게 받았는데, 미래가 불투명하고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게 저희 처제만의 문제는 아닐 거예요.


4차 산업혁명을 눈앞에 둔 지금을 ‘불타는 유조선’으로 비유하셨습니다. 살기 위해서는 바다에 뛰어들어야 한다고요.


아디다스 같은 회사는 3차 산업 때 공장을 해외로 옮겼어요. 단가를 낮추려면 싼 노동력이 있는 곳에서 대량 생산을 해야 하는데, 그러다 보니까 물류비용이 증가하는 거죠. 노동력이 비싸지자 아디다스는 3D 프린팅 기술로 600명이 했던 작업을 50명이 하게 만들고 해외에 있던 공장을 다시 독일로 가져옵니다. 예전에는 평준화된 신발을 만들었다면, 지금은 개인화된 신발을 만들죠. 이렇게 산업계가 변한다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젊은 사람들의 직장은 없어질 수밖에 없어요. 불타는 배라는 표현은 결국 내가 빨리 이동해야 한다는 걸 말씀드리는 거예요. 배 위에 내가 설 자리가 없다면 오히려 망망대해로 뛰어드는 게 오히려 살 기회가 높아진다는 거죠.


좌절이나 불안을 넘어 꿈이 이루어진다고 쓰셨는데, 저자님도 좌절을 느낄 때가 있었을 것 같아요.


어릴 때 유학을 가면서 언어가 통하지 않아 좌절할 때도 있었고, 원하던 대학에 떨어지면서 좌절도 맛봤죠. 지금도 사업하면서 좌절감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지금도 1년 3개월째 열심히 돈을 쓰고 있어요. 자본을 태우고 있죠. (웃음)


지금은 가상현실 기기 업체 ‘볼레 크리에이티브’의 대표 자리에 계시잖아요. ‘볼레 크리에이티브’는 몇 년 내에 자리를 잡게 될까요?


해볼 때까지 해보는 거고요. 안 되면 빠르게 접고 새로운 방법을 찾아볼 수도 있겠죠.


사업에는 특히 위험이 따르죠.


애플이 아이폰7을 만들면서 에어팟 구매 의사를 물었더니 10% 정도만 산다고 응답했대요. 애플이라는 날고 기는 기업도 어떤 제품을 기획했을 때 소비자에게 외면당할 수도 있는 거죠.


가상현실 말고 궁극적인 목표는 무엇인가요?


가상현실과 인공지능은 도구예요. 제가 하고 싶은 건 세상의 외로움을 조금 줄여보고 싶다는 것이거든요. 세상의 외로움을 줄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죠. 꿈은 구체적으로 뭐가 되고 싶다는 게 아니라 무엇을 이뤄내고 싶다는 소망이라고 봐요. 인공지능을 개발하려다 실패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궁극적으로 사람의 외로움을 줄이려면 새로운 사업 아이템 투자뿐만 아니라 NGO에 가입해서 봉사활동을 하는 걸로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제 꿈이 축구로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는 거라면, 축구 선수가 될 수도 있고 축구 코치가 될 수도 있죠. 가상현실은 방법의 하나일 뿐이에요.


하다 보면 이게 꿈이었구나, 하고 깨닫는 게 아닐까 싶어요. 맨 처음 목표가 외로움을 줄이고 싶다는 건 아니었을 것 같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자기 꿈에 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시간을 보내지 않으면 꿈을 꿀 수 없다고도 생각해요.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기 바쁘고, 책상에 앉아 시키는 일을 하고, 야근하고, 집에 돌아와 자고, 주말에는 뻗어서 일어나지도 못하는 쳇바퀴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언제 앞으로 어떻게 내 인생을 만들어 나가고 싶다는 꿈을 꿀 수 있죠? 저는 꿈이 자연스럽게 나온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많은 사람이 그래서 꿈을 못 꾸고 인생이 힘들다고만 생각하는 것 같아요.


꿈을 꾸게 된 시기가 있나요?


2006년에 한국에 들어오면서 아까 말했던 쳇바퀴 생활을 했었어요. 이게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라서 하는 건가, 정말 이렇게 인생을 사는 것이 맞나 끊임없이 고민했어요.


대표의 위치에서 책임감이 더 커졌을 것 같아요. 직원 관리를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도 있으신가요?


제 스타일이기도 하지만, 관리를 믿지 않는 편이에요. 어떤 큰 꿈을 같이 공유하면 그 꿈을 따라 움직이는 조직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지, 몇 시에 출근해서 몇 시에 퇴근했는지, 오늘 일은 얼마나 했는지 관리하는 건 무의미하지 않을까요? 저도 회사 다닐 때 일하기 싫으면 인터넷 서핑하고 커피 마시러 나가고 그랬거든요. 하루 여덟 시간 내내 앉아서 일할 순 없어요. 사람은 정말 즐거운 일을 할 때 제일 잘하는 게 맞아요. 그럼 관리하기보다 같이 꿈을 꿀 수 있게 하고 그걸 언제까지만 만들어낼 수 있도록 하는 게 가장 좋다는 생각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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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세대가 용기를 가지는 꿈


자녀분 나이가 어떻게 되나요?


곧 셋째가 나와요. 세 살 터울씩 일곱 살, 네 살, 한 살입니다.


자녀에게 모바일 기기를 사용하게 하는 편이신가요?


네, 자유롭게 쓰게 하고 있어요. 어머니 세대에서는 할아버지가 영화관을 조숙한 숙녀가 갈 곳이 아니라고 가르쳐주셨어요. 하지만 제가 자랄 때 영화는 당연히 소비할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가 되었어요. 지금은 스마트폰이나 PC게임을 부모들이 이해하지 못해요. 자신들이 자랐을 때 겪었던 놀이 문화가 아니거든요. 사람들은 겪어본 적 없는 문화에 대해서는 배타적이에요. 저는 제 아이들이 기기를 사용하면서 새로운 부가가치를 느끼게 교육하는 게 낫지, 그걸 사용한다고 더 바보가 되거나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그 세상을 통해 저희가 보지 못했던 아이디어와 저희가 느끼지 못했던 생각을 할 수 있어요.


아이들을 어떤 식으로 교육하고 싶나요?


일단 제가 아는 세상을 알려주고 싶진 않아요. 스마트폰이 저희 인생을 바꾸기 시작한 건 불과 5, 6년 밖에 되지 않아요. 앱 생태계가 활발해지고 인간과 인간을 잇는 연결 채널이 굉장히 다양해지면서 생활방식이 바뀌었잖아요. 그러면 앞으로 다가올 기술에 의해서 또 생활스타일이 바뀔 거예요. 제가 아는 지식, 지금 잘 나가는 것들을 아이들에게 알려 줘도 그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는 나이가 되었을 때는 다른 세상이 되어 있을 거예요. 지금은 사교육을 더 시키고 학교에서 좋은 성적을 받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건 아니라고 봐요. 변화를 포용하는, 변화에 맞게 적응하는 힘을 길러 주는 게 오히려 더 중요해요. 전문지식보다는 앞으로 여러 가지 지식을 모아 선을 만들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해질 거예요.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아버지가 저에게 엄청나게 두꺼운 동아대백과사전을 주셨어요. 지금은 구글이면 끝나요. 그럼 전문지식을 달달 외우기보다 그런 지식을 활용해 부가가치를 만드는 일을 하는 게 좋다고 보거든요. 앞으로는 전문지식을 가진 스페셜리스트보다 사회적, 정치적, 인문학적 관점을 다 이해하는 제너럴리스트가 필요할 겁니다.


기성세대로서 젊은 세대에게 마지막으로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월급과 내 인생을 바꾸는 건 아니라고 썼는데, 직장을 가지면 안 된다는 뜻이 아니에요. 다시 한번 강조하면 인생의 주체가 나여야 한다는 것이고, 앞으로 가야 할 길이 직장을 잡는 일이든 창업을 하는 일이든 사회적 변화에 항상 촉각을 세우고 자신이 가져야 할 내비게이션이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젊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헬조선이라고 포기하기보다 그 속에서 그래도 뭔가를 찾아낼 수 있는 걸 계속 찾아봐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저도 기성세대로서 그런 꿈을 지지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또 하나의 꿈입니다. 저 같은 사람을 모아서 젊은 사람들의 꿈을 지지해주고 젊은 분들도 용기를 가지는 게 제 소원이에요.

 

나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않더라도 성공할 수 있다는 사례가 되고 싶다. 남들과 다른 길을 가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내가 기성세대가 보기에 황당한 선택을 했듯이, 청춘들의 황당한 꿈을 구체화시키는 작업을 함께하면서 그들을 돕고 싶다. 이것이 내가 성공을 하려는 이유 중 하나다. - 56쪽


 

 

그건 내 인생이 아니다서동일 저 | 프레너미
이 책은 2014년 페이스북에 의해 20억달러에 인수된 VR 회사 ‘오큘러스’의 공동창업자 중 한 명인 볼레 크리에이티브 서동일대표의 인생의 가치와 꿈에 관한 이야기이다.왜 꿈을 꾸고 그 꿈을 선택해야 하는지, 가상현실, 증강현실이라는 새로운 세계의 전개양상을 통해 실제적으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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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기대 작가 ③] 도선우 “소설가 되니 절벽에 선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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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스파링』으로 ‘제22회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한 작가 도선우는 ‘재야의 숨은 고수’로 인정받으며 성공적으로 문단에 안착했다. 8년 동안 매년 한 편씩 장편을 써서 공모전에 응모했지만 소설계에서 그의 이름은 여전히 낯설었다. 소설 작법을 배워본 적도 없고, 한 명의 문인 친구도 없었으며, 습작을 평가 받아 본 경험도 전무했으니 무리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단작 『스파링』은 “견고한 문장력과 안정된 호흡을 바탕으로 시종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이끌고 나가는” 작품이라는 비평을 이끌어냈고, 만만치 않은 내공을 갖춘 신예의 등장을 예고했다.

 

“나는 돈이 되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는 사람이었다”는 작가의 고백 속에는 사업가로서 경쟁과 성공을 지향했던 과거의 그가 있다. 서른일곱이 될 때까지 글을 쓴다는 건 생각해본 적도 없었고, 소설을 읽을 시간이 있으면 시사주간지를 읽어야 한다고 여겼다. 그러다 우연히 『호밀밭의 파수꾼』과 만나 “세계가 뒤집어지는 경험”을 하면서 일 년 동안 200권의 소설을 읽었다. 읽기의 희열은 쓰기의 열망으로 이어졌다. 오로지 문학작품 안에서 길을 찾으며 묵묵히 써내려 갔다.

 

『스파링』의 주인공 장태주는 공중화장실의 차가운 타일 위에서 세상과 처음 만났다. 엄마는 열일곱의 미혼모였고 아이는 영문도 모른 채 보육원에 맡겨졌다. 이곳은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계이고 자신은 무력한 존재일 뿐이라는 걸, 굳이 배우지 않아도 알게 되는 시간들이 이어졌다. 폭력으로써 기존 질서에 편입했던 장태주는 더 큰 힘에 압도당하며 소년원에 수감되지만, 그곳에서 자신을 믿어주는 담임을 만나 권투선수의 꿈을 키운다. 그러나 그에게 가해지는 폭력은 더욱 더 교묘하게 수면 아래로 숨어들어 그를 가격한다. 이제, 비열한 세상을 향해 카운터펀치를 날릴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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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가 되고 나니 절벽에 선 느낌이에요


등단 이후에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어떠셨나요?

 

외부적인 변화는 없고, 심정적인 변화는 있었죠. 절벽에 선 느낌이라고 할까요. 독자들에게 선택을 받지 못하면 다시 돌아갈 수 없으니까, 걱정이 돼요. 시간이 지나서 독자들의 반응을 보기 전까지는 비슷한 마음일 것 같아요. 계속 읽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책을 낼 수 있는 거니까요. 책을 내고 나면 다음 작품에 몰두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잘 안 돼요. 독자들의 반응이 궁금하니까 자꾸 찾아보게 되더라고요.

 

사업도 병행하고 계시죠?


하고 있는데요. 작년부터는 근무 시간을 줄였어요. 처음에는 회사에 비밀로 했거든요. 그런데 저는 소설 쓸 때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리더라고요. 이대로 하다가는 두 가지 일을 다 제대로 할 수가 없고, 할 거면 제대로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회사에 이야기했어요. 일하는 시간을 줄이고 나머지 시간에는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요.

 

전업 작가로 활동하실 계획도 있으세요?


그걸 꿈꾸고 있죠, 일단은. 작가는 누구라도 그러지 않을까요? 제가 결혼을 했다면 이런 생각을 못했을 지도 모르겠어요. 아내도 있고 아이들도 있으면 불안감이 조금 있을 수 있겠죠. 그런데 일단 혼자니까,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거나 판매량이 많지 않아도 생활하는 데 큰 문제가 없는 상황이라면 전업 작가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일 하면서 소설을 쓰는 게 쉬운 일이 아닐 것 같아요.


어차피 저는 멀티가 안 되는 사람이기도 하고요. 회사 일을 하면서도 소설을 쓸 수는 있겠지만,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작품의 질도 바라는 만큼 안 나올 거라고 생각하는 거죠. 글 쓰시는 분들이 다 그러실 테지만, 한 시간 집중해서 쓴다고 해서 써지는 게 아니잖아요. 네 시간을 앉아있으면 두 시간은 집중하느라 그냥 보내는 경우도 있어요. 나머지 두 시간 동안 쓰는 건데, 그렇게 서너 시간을 온전하게 앉아있기가 쉽지 않아요. 그걸 매일 시도해야 하는 건데, 일하면서 하기는 정말 어렵죠. 소설의 질도 생각해야 하는 부분이고요.

 

8년 정도 습작 기간을 가지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매년 한 편씩 장편을 쓰셨다고요.


처음 1~2년은 감을 잡기 위해서 필요한 시간이었고, 이후부터는 매년 썼어요. (한 해에) 대여섯 번의 심사가 있는데, 거기에서 다 떨어지면 고쳐도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이지, 장점이나 단점을 논할 가치가 없다고 스스로 판단한 거죠. 게다가 본선에 한 번도 못 올라갔어요.

 

처음 쓰신 단편만 본선에 올랐던 건가요?


맞아요. 2008년 6월에 ‘문학동네신인상’에 응모를 했는데 그 작품이 본선에 올라갔어요. 그때는 ‘내가 재능이 있나?’ 싶어서 한 번 해봐야겠다고 생각했죠. 이후에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단편에는 담기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서 장편을 써야겠다고 생각했고요. 첫 단편이 본선에 올랐을 때 예심 심사위원이 신형철 평론가님이셨어요.

 

『스파링』의 심사위원 중에도 신형철 평론가님이 계셨잖아요.


시상식에서 신형철 평론가님께 말씀드렸었어요. 제가 이 세계에 들어오기 결정한 게 평론가님 때문이라고요. 그런데 6~7년 동안 (공모전에서) 떨어지니까 한 번 찾아가서 때리고 싶었다고도 했죠(웃음). 제 작품을 본선에 안 올려주셨으면 아예 꿈을 꾸지도 않았을 테니까요.

 

신형철 평론가님의 반응은 어땠나요(웃음)?


제가 이유 작가님과의 인터뷰에서 그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평론가님께서 기사를 읽으셨는지 ‘때리고 싶었다는 사람이 누구예요?’ 하고 물어보시더라고요. 그래서 평론가님이라고 말씀드렸죠(웃음). 그랬더니 ‘저요?’ 하고 물으시면서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시더라고요. 설명을 드렸더니 그제야 아시고서 웃으시더라고요. 신형철 평론가님과는 희한한 인연이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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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에서 떨어졌을 때, 자괴감은 말로 못해요


‘문학동네소설상’ 이전에는 『스파링』을 응모하신 적이 없었나요?


네, ‘문학동네소설상’이 처음이었어요. 8월 말에 마감이었는데 8월 초까지 매수를 채우지 못해서, 한 달 동안 하루에 1~2시간 밖에 못 잤어요.

 

밤을 새워 가면서 쓰시는 만큼 진도가 나가던가요?


머리가 맑아야 쓸 것 같잖아요. 그런데 사람이 발등에 불이 떨어지니까 몽롱한 상태에서도 써나가더라고요. 쓰고 보고 쓰고 보고를 반복하는데, 8월 중순이 넘어가면서부터는 원고지를 보니까 토할 것 같은 거예요. 그런데 다음 공모전이 12월에 있어서, 이번에 내지 못하면 또 한 해가 지나가 버리는 거니까, 너무 초조했어요. 어떻게든 ‘문학동네소설상’에 내야 될 것 같았죠. 그래서 막판에는 거의 1~2시간 밖에 못 잤어요. 이야기를 어떻게 이어가야 할지 고민하면서 회사에서도 계속 쓰고, 잘 때도 생각하고, 꿈도 꿨던 것 같아요.

 

오랫동안 소설가를 꿈꾸셨던 게 아니잖아요. 그런 점에서 독특한 이력을 가지셨다고 볼 수 있는데요. 책에 실린 작가 소개에서도 관련 내용을 찾아볼 수 없어요. 수상 소감으로 대신하셨죠.


개인 성향인 것 같아요. 작가에 대한 긴 설명 없이 그냥 소설가라고 적힌 책들이 있잖아요.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스타일이에요. 이건 신인 작가로서 건방진 이야기일 수 있지만, 앞으로 관록이 생겨도 마찬가지일 것 같은데요, 제 개인의 이야기보다는 소설로 이야기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제가 마루야마 겐지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그 분은 팬이 사인을 받으려고 집까지 찾아오면 ‘팬이면 내 소설이나 읽을 것이지 왜 시간 낭비하면서 찾아와서 나를 귀찮게 하느냐, 돌아가라’라고 말하는 스타일이에요. 저야 그렇게 하지는 않겠지만, 기본적인 생각은 작가로서의 활동만 보여주고 좋은 작품을 쓰는 데 전념하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작품 외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공개하고 싶지 않으세요?


그건 아니고요. 가장 우선적인 목표는 재밌는 소설을 쓰는 거지만, 올바른 지식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좋은 생각이나 신념 같은 것들을 공유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 싶은 거죠. 그리고 제가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를 할 생각도 있어요. 이를테면, 많은 분들이 제가 사업을 하다가 왜 갑자기 소설을 쓰게 됐는지 궁금해 하시잖아요. 그 이유 중에는 대다수 분들이 고민하시는 부분들이 있을 거예요. 기득권자들과 일을 해나가면서도 ‘이게 뭐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이 반복적으로 들고, ‘이렇게 돈을 벌어서 뭐하지?’ 싶기도 하고요. 그런 과정들이 있었죠. 그리고 제가 힘들었을 때 극복했던 내용들도 나누고 싶어요.

 

문학상을 통해 등단하시는 분들을 보면, 문창과 출신으로 문청 시절을 거쳐서 소설가 지망생으로 살아오신 분들이 많잖아요. 그 분들과 실력을 겨루는 데 있어서 불리한 위치에 있다는 생각은 안 하셨나요?


처음에는 공정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문창과나 국문과 출신도 아니고, (문단에 계신) 선생님께 배운 것도 아니고, 수상 소감 같은 걸 봐도 그쪽 계통의 출신이 많잖아요. ‘나도 찾아가서 수업이라도 들어야 하나’라는 생각도 들었던 적이 있어요. 어떤 분은 저한테 지금이라도 문창과로 다시 입학하라고 조언해 주시더라고요. 그런데 회사에서 일하면서 학교를 다닐 시간이 없잖아요. 그때 솔직히 무슨 생각을 했느냐 하면 ‘심사위원의 제자와 내 작품이 같이 본선에 올랐을 때, 심사위원이 미안해서라도 내 작품을 떨어뜨리지 못하게끔 작품의 질을 높이는 수밖에 없겠다’라고 생각했어요. 말도 안 되는 발칙한 생각을 한 거죠.

 

공모전에서 계속 떨어지셨을 때, 어떤 기분이셨어요?


떨어졌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느껴지는 자괴감이 이루 말할 수 없어요. 뭔가 배척당한 느낌이라고 할까요. 제 이마를 손가락으로 탁 짚으면서 ‘넌 안 돼’라고 말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이쪽 출신이 얼마나 많은데, 너는 배운 것도 없으면서 이 사이에 껴서 뭐하겠다는 거야’라고 하는 것 같은 느낌이죠.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혼자서 ‘이걸 계속 해야 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고요. 제일 답답한 건 내가 뭘 잘못했는지도 모른다는 거였어요. 선생님이 계시거나 문청들의 모임 같은 게 있으면 내 작품을 보여주고 ‘무엇 때문에 떨어진 것 같은지’ 물어볼 텐데, 물어볼 사람이 없으니까 혼자 고민하는 거죠. 혼자 쓰고 고치면서 참고했던 건 책밖에 없어요. 책을 정말 많이 읽었죠.

 

일 년 동안 이백오십 권 정도를 읽으셨다고요.


정말 공부라고 생각하고 읽었어요.

 

원고를 쓰고 퇴고하시는 과정에서 참고하신 작품도 있었나요?


그건 아니었고요. 이건 제 철학이기도 한데, 뭔가를 배운다는 게 꼭 가르침을 들어서만 알게 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방법을 알게 되면 그 다음부터는 미친 듯이 반복을 하는 거죠. 체득될 때까지요. 글을 잘 쓰고 싶어서 미친 듯이 읽고 썼는데, 책을 읽고 나면 리뷰를 남겼어요. 그렇게 쓴 글이 2천 개 정도 돼요.

 

 

타이슨은 왜 귀를 물어뜯었을까?


신형철 평론가님 이야기를 다시 해야 할 것 같아요. 『스파링』의 심사평에서 “이 낡고 닳은 소재를 2016년에 읽게 되다니”, “그런데 이런 이야기가 이렇게 재미있다니”라고 말씀하셨어요. 다른 심사위원 분들도 작품의 소재나 서사 자체는 진부하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하셨는데요. 예상하셨던 내용인가요?


예상은 못했는데요. 좋은 의견이라고 생각했어요. 심사위원 분들은 전문가이신데, 그런 분들의 평가를 받는 것 자체가 저한테는 의미 있고 고마운 일이었거든요. 글로만 뵙던 분들이 제 소설을 읽고 평가해 주신 거잖아요. 만약 그 분들이 ‘네 작품은 쓰레기야’라고 말씀하셨다 하더라도 저는 ‘아, 쓰레기구나’ 하고 생각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왜 쓰레기라고 하는 걸까?’ 생각하겠죠. 물론 그런 이야기를 들었다면 마음은 상하겠지만, 저한테 악의가 있는 분들도 아니고, 누군가에게는 그렇게 보인다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왜 그렇게 보일까’를 고민했겠죠. 누군가 제 습작을 보고 뭐가 문제인지 말해줬으면 좋겠다고 간절하게 바란 순간도 있었어요. 그래서 모든 분들의 평가가 저는 너무 감사했죠.

 

동시에 심사위원 분들이 공통적인 말씀하신 것이 ‘문장이 흡입력 있고, 화자가 매력적이고, 우리 시대의 문제들을 반추하게 만든다’는 거예요. 이 이야기를 들으셨을 때는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저는 비난이든 칭찬이든 거기에 크게 휘둘리지 않는 편인데요. 칭찬은 더 잘 믿기지 않는 것 같아요. 『스파링』에서의 장태주처럼 저도 칭찬을 받는 데 익숙하지 않거든요. 누가 갑자기 칭찬하면 어색한 거예요. 기분이 나쁠 이유는 전혀 없지만, 기본적으로 가슴에 담아두지 않아요. ‘나를 좋게 봐주셔서 감사하지만 그게 내 모습은 아니다, 내가 그런 사람이라고 착각할 필요는 없다’라고 생각하는 편인 거죠. 흡입력이 있다고 말씀해 주셔도, 솔직히 저는 제 소설이 어떤 부분에서 흡입력이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도대체 왜, 타이슨은 홀리필드의 귀를 물어뜯은 건가”라는 의문에서 『스파링』이 시작됐다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갑자기 그런 질문이 떠올랐던 이유는 뭘까요?


모르겠어요. 그냥 아침에 눈을 떴는데, 꿈을 꾼 것도 아닌데, ‘타이슨은 잘 싸우다가 왜 느닷없이 귀를 물어뜯었지?’라는 생각이 든 거예요. 그래서 인터넷 검색을 해 본 거죠. 보니까 타이슨의 (선수 생활) 후반부가 폭력 사건이나 난동으로 끝을 맺었더라고요. 그런 일을 하는데 이유가 없을 리가 없잖아요. 너무 궁금해서 이 친구의 인생을 더 알아보니까 중간에 그럴 만한 일들이 있었더라고요.

 

타이슨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사회 부조리에 대한 것으로 이어진 건데요. 그 이유가 궁금해요.


사실은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먼저 있었어요. 그래서 소설을 쓰게 된 거고, 그렇다 보니 사회 이야기가 많이 들어간 거예요. 이 사회에 대해서 느낀 부분을 말하고 싶었거든요. 저는 지금의 현실에 대해서 위기감을 가지고 있어요. 이 위기감을 소설을 통해서 사람들과 공유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려면 지금 이 사회가 무엇이 문제인지 정확하게 이야기해야 되잖아요. 개인의 불행에 대한 이야기는 더 능력 있는 소설가 분들이 많이 쓰고 계시니까, 저는 사회 전체의 구조적인 틀을 바꾸어야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개인 개인의 불행을 보살피면서도 시스템 자체를 바꾸려는 노력을 해야 하잖아요. 그러지 않으면 개인의 불행은 계속 나오게 되니까요.

 

타이슨의 삶에서도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발견하셨나요?


그런 이야기들을 담으려고 하다 보니까, 타이슨의 인생과 겹치더라고요. 타이슨이 그런 사람 중에 하나예요. 만약 사랑을 많이 받고 사회에서 이해 받았다면 그렇게 살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따뜻한 손길이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된 거죠. 타이슨이 인터뷰한 걸 하나 봤는데요. ‘한 때는 불멸의 복서로 전 세계적인 영웅이었는데 왜 사람들을 때리고 다니느냐’고 물었더니 실실 웃으면서 이렇게 말해요. ‘당신들은 맞아야 된다, 내가 아침에 눈을 뜨면 얼마나 괴로운지 당신들도 당해봐야 된다’고요. 저는 거기에서 고통 같은 걸 봤어요. 타이슨이 망가지기 시작한 건 돈 많은 프로모터를 만나면서부터인데, 사람들은 자신을 상품으로만 보니까 존재 자체를 잃어버린 거예요.

 

그 모습이 장태주라는 인물 안에도 녹아있겠네요.


장태주가 마지막에 겪는 감정이 거기에서 차용된 부분인데, 똑같은 심정인 거예요. 제가 이 소설에서 제일 하고 싶었던 이야기 중에 하나는 이런 거예요. 누군가 잘못을 했을 때, 만약 그 사람이 아니라 누구라도 같은 상황에서 그렇게 행동할 수 있는 거라면, 그건 사회의 문제라는 거예요. 그 사람 잘못이 아니라는 거죠. 그럴 때 가장 힘이 되는 게 이해해주는 사람의 관심이거든요. ‘네 잘못이 아니다, 너는 지금 네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라는 위로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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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링』, 지금 내가 쓸 수 있는 최상의 소설


작품 안에서 다양한 사회적 문제들이 드러나는 만큼, 장태주는 그 가운데로 계속 빨려 들어가요. 그 모습을 보면 ‘왜 세상은 이 아이에게 이렇게 불친절한 걸까’ 하고 안타까운 마음도 들거든요. 작가님은 어떠셨어요?


그런 생각은 안 했어요. 제 성향 때문인지는 모르겠는데, 버텨야 된다고 생각했어요. 버티지 못하고 지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으니까요. 개인이 혼자 무너지는 걸 위로만 하고 있으면 아무것도 달라지는 게 없잖아요. 세상이 바뀌어야 된다고 생각하는 개인들이 점으로만 존재하는데 그들 사이에 선을 이어야 돼요. 장태주와 같은 아이들이 다른 사람과 만나서 연결되고, 힘을 합치고, 그렇게 확산이 되면 아주 미미하게나마 대항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보자면 장태주는 참 잘 버티고 있는 것 같아요. 냉혹한 세상에 던져진 인물인데도 불구하고 기존 질서에 쉽게 휩쓸리지 않아요. 곧고 단단한 성정을 가졌다고 할까요.


어떤 사람들은 정의는 시대마다 다르고 상대적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사람은 배우지 않아도 옳고 그름을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굳이 학문적으로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이건 잘못된 일 같아, 이건 조금 아닌 것 같아’라고 판단되는 게 정의라고 생각해요.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는 거죠. ‘저 사람을 도와주고 싶다’고 생각하면 그게 옳은 거고요. 그 사람을 외면하고 돌아서면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 잘못된 일을 한 거예요.

 

『스파링』에는 약자를 혐오하는 인물들도 등장해요. 그들에게 멸시 받은 인물들은 힘을 동경하게 되고, 강해진 그들에게 핍박 받는 또 다른 약자가 생기죠. 폭력의 악순환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지켜보게 됩니다.


그게 핵심적인 이야기이기도 해요. 오재호나 재훈 같은 인물들이 약자를 혐오한다고 말하는데, 그게 그들의 룰이죠. 그렇게 성장을 중요시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는 대화가 성립이 안 돼요. 그런데 지금 사회의 기득권자는 오재호나 재훈 같은 사람들이고, 다들 따라가고 있잖아요. 저는 그들의 룰을 깨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들은 그런 세계에 살게 두고 우리 세계를 만들어야죠. 사람은 그 세계에 편입돼서 힘을 가지면 무조건 변하게 되어있어요. 그러니까 바로잡고 싶으면 그 세계에 들어가면 안 되고, 따로 우리의 세계를 만들어야 돼요. 그 세계가 ‘수평의 세계’예요. 말하자면 제가 생각하는 폭력을 피하는 방법은, 때리면 피하는 게 아니라, 그냥 다른 곳으로 가버리는 거예요.

 

장태주가 소년원에서 만난 담임은 ‘그들의 질서를 따르지 말고 너의 질서를 만들어라’라고 말하죠. 같은 맥락이 아닐까 생각되는데요. 동시에 이런 말도 하거든요. 사람들이 연대라는 한다는 게 쉽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고요.


제도의 규제를 만들어야 돼요. 사람은 그 자체가 선하지만 그 안에 악도 있고 선도 있잖아요. 악의 무리에 들어가면 악이 발현이 되고 선의 무리에 가면 선이 발현돼요. 규제와 제도는 사람을 선한 쪽으로 기울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절대 악이나 절대 선을 가진 사람들은 극소수이고 대중은 그 사이에 있는 사람들이에요. 이들을 움직이는 건 양심이 아니고, 제도를 만들어야 돼요. 연대를 하자고 외치기만 해서는 안 되고 연대를 할 수밖에 없도록 제도를 만들어야 된다는 거죠. 법적으로 규제해서 연대를 안 하면 처벌을 하는 게 아니고요. 연대를 하는 이들에게 혜택이든 칭찬이든 명예든 주는 거예요. 연대에서 벗어나면 부끄럽게 느끼도록 틀을 만드는 거죠.

 

“소설이란 게 어쩌면 이상한 것들을 들여다보는 일일 수도” 있다고 적으셨습니다. 다음 작품에서는 어떤 ‘이상한 것들’을 이야기해주실 건가요(웃음)?


어떤 작품이 먼저 나올지는 모르겠는데요. 초창기에 썼던 소설 하나를 심폐소생 해 볼 생각을 하고 있어요. 개인적으로 풍경 묘사가 많은 소설을 좋아하는데, 그 작품이 풍경 묘사가 마음에 드는 부분이 많거든요. 그래서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생각하고 있고요. 얻지 못한 사랑에 관한 이야기예요. 그리고 지금 쓰고 있는 건 『스파링』의 두 번째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데, 100년 후에 벌어진 사건을 다루려고 해요. 앞에서 ‘수평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했는데, 그것이 지금과 같은 ‘수직의 세계’와 부딪혔을 때 어떻게 싸워나가는지 보여주고 싶어요.

 

“훗날 과거를 회상하며 현재의 나를 확인해보고 싶을 때, 아무래도 자꾸 더 되새기게 되는 건 많이 이긴 전적보다 진짜 제대로 붙어봤던 단 한 번의 기억이거든”이라는 담임의 말이 인상 깊었어요. 작가님께서는 『스파링』을 통해 등단의 꿈을 이루셨는데, 제대로 붙어봤다는 생각이 드실 것 같아요.


네, 이번 소설은 그렇습니다. 지금의 제 수준에서는 더 이상 좋은 소설을 쓰기가 힘들었을 것 같아요. 더 갈고 닦고 실력을 키우면 더 좋은 소설이 나오겠지만, 지금 수준에서는 다시 돌아가도 이 이상 쓰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물론 아쉬움이 남지만 지금 상태에서는 최상이에요.

 

그만큼 다음 작품에 대한 부담감도 크실 것 같은데요. 어떠세요?


독자들이 저를 외면할지 좋아할지는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잖아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거죠. 정말 진부한 말이지만 제가 쓸 수 있는 소설을 쓰는 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거죠. 어떻게 될지는 운에 맡긴다고 할까요.


 

 

스파링도선우 저 | 문학동네
『스파링』은 공중화장실에서 태어난 소년 ‘장태주’가 권투 선수로 성장해가는 과정 속에서 부딪치는 사회의 구조적 폭력에 맨몸으로 맞서는 이야기이다. 그는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지키기 위한 싸움의 기술을 단련해가며 성공을 얻어내지만, 그 또한 “이 세계가 돌아가는 원리”에 의해 자꾸만 무너져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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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도리’ 박순찬 “이 만화, 박근혜 대통령에게 주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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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경향신문>에 연재를 시작한 박순찬 화백의 ‘장도리’는 매일의 역사를 네 컷 안에 응축한다. 그의 촌철살인은 시간의 무게에 닳기는커녕 오히려 더 날카롭게 벼려진 듯하다. 그것은 이 사회가 뜨겁고 치열할수록 점점 더해지는 것으로 작금의 사건들을 다룬 화백의 만화는 연일 ‘갓도리’로 불리며 인터넷을 달군다.


화백은 2009년부터 신문에 연재한 만화들을 책으로 묶어왔다. 『삽질공화국에 장도리를 날려라』, 『나는 99%다』, 『516 공화국』, 『세월의 기억』, 『헬조선에 장도리를 던져라』를 거쳐 새 책 『굿바이 사이비 전성시대』를 출간한 박순찬 화백은 “알고 보면 사이비였던 것들이 너무 많”았다며 이번 책 제목을 가리켜 모든 사이비들에게 작별을 고하는 “바람”을 담았다고 말했다. 짓밟히는 민주주의, 경제성장과 종북이라는 거짓된 딱지, 변함없이 열악한 환경을 사는 노동자들을 예민하게 그려낸 네 컷 만화에는 짧지만 많은 이야기가 들어있다.  


청와대를 깔고 앉아 돈과 주사를 쥐고 있는 최순실과 뭔가에 홀린 듯 초점 없는 눈빛으로 조종당하는 박근혜 대통령, 각종 과일을 위에 퍼나르는 개와 돼지들까지, 이번 책의 표지를 장식한 박순찬 화백의 작품 「사이비 전성시대」는 그 자체로 하나의 이야기다. 굿바이. 다가온 새해에 우리는 이 모든 것들과 작별을 고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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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한 빠르게 촉각을 세우는 것


‘장도리’ 연재가 20년이 넘었어요. 정확히는 22년째를 맞고 있는데요. 그 시간동안 매일 같이 하는 작업이 결코 쉽지만 않았을 것 같아요. 소재 고민도 많을 것 같고요.

 

제 만화가 주로 뉴스를 소재로 다루어 신문에 연재하는 것이잖아요. 판타지, SF 만화가 아니어서요. 어떻게 보면 소재를 제가 정한다기보다 신문이 정하는 측면이 있어요. 신문에 연재하는 만화가들은 그런 흐름에 따라 중요한 게 무언지를 찾아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죠.

 

결국 결정은 만화가의 손에 달렸을 텐데 주제를 잡기까지 어떤 것들을 챙겨보세요?


예전에는 주로 신문 위주였는데요. 요즘은 인터넷을 많이 봐요. 인터넷으로 신문도 보고요. 매체나 커뮤니티도 워낙 많잖아요. 예전보다 좋아진 점은 다양한 면면을 볼 수 있다는 점이에요. 각계각층의 의견들을 볼 수 있죠. 게다가 댓글이 있잖아요. 예전처럼 일방적인 보도가 아니죠. 쌍방향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런 것들이 도움이 돼요. 과거에는 기자만 의견을 가지고 소비 되었다고 한다면 요즘은 댓글이나 커뮤니티 등을 통해 쌍방향으로 의견이 교환되죠. 다양한 의견들을 볼 수 있으니 만화에 담을 수 있는 것도 많아진 거죠.

 

말씀하신 다양성이라는 면이 중요할 것 같아요. 과거에 작업한 만화에 비해 지금 작업한 만화가 더 다양한 의견을 담고 있다는 점 말이에요.


그것은 제 만화뿐 아니라 신문 기사에도 많이 반영되는 것 같은데요. 최근에 여성 관련 문제가 많이 나오지 않습니까. 과거 같았으면 기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남성, 그들이 접할 수 있는 사람들로 한정된 영역 안에서 나온 의견이 훨씬 많았을 거예요. 반면 요즘은 그런 장벽이 없어지다보니 여러 의견을 접할 수 있는 거죠. 남성도 그간 몰랐던 여성의 생각들, 아무리 여성과 대화를 하더라도 제한될 수밖에 없는 생각들을 직접 만나지 않고도 인터넷을 통해 알 수 있어요. 저 역시 취재가 어려운, 질문 던지기도 어려운 것들을 인터넷이라는 공간을 통해 쉽게 접할 수 있게 되었고요. 그게 만화에 반영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기성 문화 안에 남성의 목소리가 좀 더 많았다고 한다면 아직까지도 변화나 수용이 늦는 영역들이 많이 있는데요. 그런 점을 생각하면 ‘장도리’는 달라요. 빠르고 폭넓게 수용한다는 면에서 차별적이죠.


그것은 소위 창작활동이라고 하는 분야들, 음악이나 미술 등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가능한 빠르게 촉각을 세우는 것이 당연한 일이죠. 안 그러면 생명력이 없는 거죠.

 

자신의 만화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무엇인가요?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대다수의 목소리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가령 노동자라고 하면 지금은 의미가 확대되었지만 저는 생산에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을 의미한다고 생각하는데요. 농민 역시 그런 분들이죠. 이런 분들은 몸을 써서 대가를 받는데 응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고 있어요. 구조적으로 그렇게 되어 있죠. 착취의 개념일 수도 있지만, 구조적으로 다른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것이기도 해요. 저도 그 중 한 사람이고요. 노동자의 노력 덕택에 몸을 써 일하지 않고도 굶지 않고 있는 거예요. 때문에 당연히 저 같은 사람들은 다시 노동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만화를 그리니까 그 다수 노동자와 농민들의 편에서 만화를 그리는 것이 당연한 거고요. 그것에 중요성을 많이 두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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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감정


현재에 관한 질문인데요. 요즘 많은 대목에서 ‘변화’를 이야기하고 있잖아요. 시사만화를 그리는 입장에서도 이러한 변화를 체감하시나요?


변화는 끊임없이 있다고 보는데요. 눈에 보이는 변화와 보이지 않는 변화가 있는 것 같아요. 지금 현재에 겪고 있는 모습들은 눈에 보이는 변화가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들을 하고 있는 거고요. 눈에 보이는 변화가 있어야 그 다음에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도 따라올 수 있죠. 지금은 확실히 굉장히 중요한, 변화가 필요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시점이라고 생각해요. 어떻게 변화하게 될지에 대해서는, 그것은 사회를 구성하는 시민들의 역할이고요. 시민들의 의지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제가 예측할 만한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항상 있었던 변화들 가운데 지금 눈에 띄게 보인 변화란 구체적으로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사람들의 희노애락이라는 감정 중에서도 분노의 감정인데요. 광화문에 수백만이 몰리는 방식으로 벌어지지 않았습니까. 실제로 사람들이 행동으로 옮겨서 거리에 모이고 촛불을 들었죠. 그런 식으로 분노의 감정을 보여줬고요. 우리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는 뜻을 행동으로 보여줬잖아요. 그런 것들을 일단 시각적으로 우리가 목격하고 있죠. 굉장히 큰 변화라고 생각해요.

 

경제성장, 반공을 ‘사이비종교’라고 칭하셨어요. 제목에서도 이 ‘사이비’를 말하고 있고요. 그러니까 만화가가 말하는 사이비란 정확히 말하자면 어떤 것인가요?


목사가 아닌 사람을 목사라고 부를 때 앞에 사이비를 붙이죠. 언론이나 기자도 그렇고요. 그런 것들이 너무 많아요. 경제성장이라고 할 때 내세우는 게 ‘경제성장하면 여러분도 잘살 수 있다’예요. 하지만 실제 잘살게 되느냐 하는 부분에서 의문을 갖게 되죠. 잘산다는 건 행복해지기 위한 것인데 과연 행복해지고 있는 것인가 질문을 던질 수 있잖아요. 그렇지 않은 부분이 많다면 경제성장을 앞세우는 이유가 과연 다수의 노동자, 농민이나 다수의 시민들이 행복해지는 것이 실제 목표인가, 의문이에요. 이때의 경제성장은 소수의 이익만을 위해 가짜 구호를 내세운 사이비 경제성장이라는 느낌이 짙죠. 그런 의미에서 한 말이에요.

 

2009년부터 연재된 만화를 책으로 묶어왔어요. 순서대로 『삽질공화국에 장도리를 날려라』, 『나는 99%다』, 『516 공화국』, 『세월의 기억』, 『헬조선에 장도리를 던져라』에서 이번 책 『굿바이 사이비 전성시대』까지 제목만 봐도 시대의 흐름이 읽히거든요. 그렇다면 지금은 사이비에게 작별을 고하는 때라고 정리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런 일종의 바람도 있죠. 우리가 이번에 놀란 것이 민주주의의 원칙에 따라 직접 선출한 대통령의 배후에 전혀 모르는 사람이 있었던 거잖아요. 대통령이 알고 보니 가짜다, 이런 충격이 엄청났죠. 그런데 알고 보면 사실 그런 게 한두 가지가 아니라는 거예요. 그런 가짜, 사이비가 너무 많잖아요. 진짜라고 믿고 있었는데 알고 보면 사이비였던 것들이 너무 많아요. 진짜 성직자라고 생각한 사람이 알고 보니 장사꾼이었던 경우도 많고요. 언론은 사실을 보도한다고 생각하지만 알고 보니 아니고요. 아까 말한 경제성장도 그렇죠. 비단 대통령뿐 아니라 이런 것이 너무 많은데 그런 것들이 정말 상식대로 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이렇게 담은 거예요.

 

무엇보다 만화를 관통하는 메시지라면 민주주의의 위기일 거예요.


일단 이 만화를 보시고 뭔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다면 저로서는 굉장히 고마운 일이죠. 보통 의견을 보거나 소통을 할 때 주로 사용하는 방식이 텍스트잖아요. 그런데 텍스트라는 것도 간접적인 경험일 테고 거기엔 분명히 한계가 있죠. 텍스트로 표현되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할 때 거기서 오류가 많이 생기는 것 같아요. 텍스트도 결국 인간이 만든 것이고, 실제 존재하는 것을 인간이 암호로 바꾸어서 표현한 거잖아요. 인간이 만든 상징을 실제 존재한다고 믿으면서 오류가 생기는 건데요. 때문에 그림이나 음악 등 여러 장르를 통해 세상을 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특히 우리나라는 그런 면에서 많은 게 부족해요. 너무 텍스트 위주라 소통이 원활하지 못한 측면이 많아요. 결핍된 부분을 보완해야 할 필요가 있죠. 그림이나 여러 다른 수단이 동원된 표현에서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많을 거라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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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만화가로서의 역할의식이기도 하겠네요.


그렇죠, 사실 상식적인 이야기인데 만화를 통해서 보니 텍스트하고 다른, 느끼지 못했던 것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경우가 있죠. 그런 역할이 만화가로서의 역할이고요.

 

 

전체 사회의 모습을 볼 기회가 점점 없어진다

 

이번 책에 묶은 작품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이 있다면요?


글쎄요. 일 년 동안 작업을 하다보면 오늘 한 게 괜찮다, 내 마음에 든다고 생각을 해도 시간이 흐르고, 새로운 사건이 터지고, 그것에 대해 만화로 다루면 또 생각이 달라지거든요. 알고 보니 그때 했던 만화는 지금 생각해보니 아니다(웃음) 하는 경우가 많이 있어서요.

 

그렇겠네요. 아직 최순실이라는 존재가 밝혀지기 전 시점의 만화를 지금 와서 지켜보는 느낌이 또 달랐거든요. 만화가 입장에서는 더욱 그렇겠군요.


많이 달라요. 이게 스토리 극화 만화라면 또 다르겠죠. 극화라면 앞부분에서 이야기를 전개할 때 작가가 결말을 예상하고 이야기를 푸는 거잖아요. 그래서 복선도 두고, 여러 궁금증도 일으키면서 진행을 시키는 건데요. 이건 그게 아니니까요. 제가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니잖아요. 저는 따라갈 뿐이에요. 따라가면서 기록하고, 풍자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작가의 의도가 많이 들어간 만화는 아니죠.

 

스토리 극화에 대한 계획은 없으신가요?


그런 욕심은 있죠. 만화가 입장에서 어떤 식으로든 여러 작업에 대한 욕심은 당연히 갖고 있는데요. 그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는 제 노력이 필요한 거죠.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데 못하고 있다는 것은 노력이 부족하다는 거겠죠. 하고는 싶은데 아직까지는 못하고 있어요.

 

표지에 수록된 그림은 ‘뻔한 그림’이라는 작업 중 하나잖아요. 전시도 하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이 책 뒷부분에 ‘뻔한 그림’ 전시 작품을 함께 수록했어요. 2016년에 전시회를 했는데요. 작품이 많지 않아서 열 개 정도를 조그맣게 전시 했는데요. 그 중 몇 개는 그동안 책 표지로 썼던 겁니다. 이번 책 표지도 비슷한 방식으로 그렸고요.


이 작업은 전통 회화 방식과는 다르죠. 현대 미술이라는 건 작가의 생각을 그림에 담는 건데요. 이것은 고대 벽화 방식을 차용했어요. 우리가 생각하는 현대 회화와는 그림의 목적이 다른 거죠. 기호, 문자로서 그림을 그린 거예요. 이 작업 방식 자체를 책 표지 작업을 통해 발견하게 된 건데요. 고대 벽화의 방식을 가져와서 지금 사회 모습을 담는 게 굉장히 적절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풍자의 의미도 있고요.

 

이 작업은 계속 하실 계획인가요?


이런 작업은 무척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특히 이 사회가 갈수록 분화되고, 전문화되다보니 내가 하는 일 외에는 신경 쓰기가 힘들죠. 커피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로스팅하는 사람이 따로 있고, 커피 내리는 사람이 따로 있어요. 그 사람은 그것밖에 모르죠. 자동차 바퀴를 만드는 사람은 바퀴밖에 몰라요. 자동차 전체를 알 수가 없죠. 우리 사회도 그래요. 자신이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부분만 봐도 인생이 짧은 시기가 되었기 때문에 전체 사회의 모습을 볼 기회가 점점 없어져요. 저는 고대 벽화 방식을 빌려와서 전체 사회의 모습을 한 번에, 한 장면으로 보여주는 일이 정말 필요하지 않은가 생각하는 거죠. 그래서 이런 작업을 하는 거고요. 물론 전체 모습을 다 담을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어떤 정치적 문제나 사회적인 문제는 직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싶어요.

 

실제로 표지만 해도 하염없이 바라보게 돼요. 다양한 방식으로 읽어낼 수 있고요. 워낙 재료가 많이 들어간 그림이죠.


그렇게 재료를 가득 채우면서도 이것이 어떤 방식으로 구성되고 있느냐, 어떤 식으로 조직화되고 있느냐, 어떤 게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담아보려고 하거든요. 그렇게 해서 사람들이 직관적으로 한 눈에 구성되는 방식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거예요. 무엇이 어떤 식으로 우리에게 해를 끼치거나 혹은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지 직관적으로 판단하도록 하는 그림을 그려보고 싶은 거예요. 과거에는 쉬웠겠지만 지금은 갈수록 어려워지거든요. 워낙 층위가 다양해지고 분화되고 있고 파편화되고 있기 때문에요. 그러면서 인간은 더 소외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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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을 통해 얻어내야


작업이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지는지 궁금해요. 정확히 만화를 그리고 있지 않을 때에도 만화 생각을 하시겠죠? 휴식과 일의 경계를 두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지금은 그나마 주 5일을 하고 있는데요. 주 7일을 한 적도 있어요. 초창기 때는 신문끼리 경쟁이 붙어서 몇 달을 그렇게 한 적이 있거든요. <한국일보>가 한 달에 두 번 쉬고 신문을 계속 낸 적이 있어요. 거기서 그렇게 시작한 걸 다른 신문들이 다 따라하는 바람에 한 달에 두 번 쉬고 계속 만화를 그린 적이 있어요. 그 후에도 계속 주 6일을 했었죠. 주 5일 시작한 게 얼마 안 돼요.

 

휴가도 많이 못 갔다고 들었어요.


예전에는 휴가도 거의 못 갔어요. 가더라도 미리 그려놓고 가고요. 그만큼 만화가의 노동환경이 많이 열악했어요. 그런 역사가 길어요. 그나마 휴가를 가게 된 게 <한겨레>에서 활동하셨던 박재동 화백 덕분이에요. 만화가도 사람인데, 인권이 있는데, 기자들은 휴가 갈 때 기사 안 쓰는데 왜 만화가는 휴가를 가도 만화를 그려놓고 가야 하느냐 한 거죠. 휴가 갈 때 만화 안 그리겠다, 그걸 최초로 선언하셔서 그때부터 일주일 휴가를 가면 ‘쉽니다’로 나오게 된 거예요. 박재동 화백이 시작하신 거예요. 뭐든지 다 그렇게 투쟁을 통해 얻어내야 했어요. 

 

당연한 건데 투쟁을 해야 하는군요.


신문에 만화 그리는 사람을 ‘화백’이라 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예요. 예전에는 만화라고 하면 아주 불온하고 저속한 오락거리로 여겼거든요. 그런 건데 신문에 만화가 들어갔단 말이에요. 그러다보니 신문에 들어가는 만화는 다른 만화와 다르다고 이야기를 한 거예요. 만화가 아니라 만평이고, 일부러 ‘시사’ 자도 붙여서 차별화 하고요. 또 여기에 만화를 그리는 사람들은 만화가가 아니라 화백이라고 말을 붙인 거예요. 어떻게 보면 그런 것도 다 사이비적이죠. 하지만 만화는 다 똑같은 만화고, 만화가는 다 만화가예요. 제가 신문에 만화를 그리자마자 화백이라고 하더라고요. 말이 안 되는 거죠. 보통 화백이라고 하면 몇 십 년 그린 분들을 붙이는 칭호잖아요. 참 슬픈 일이죠. 인정받지 못한 역사가 길어요.

 

지금은 인식의 변화가 많이 생긴 것 같아요.


사실 지금도 큰 변화는 없다고 보는데요. 만화라는 장르를 통해 표현하는 것에 대한 인식이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돈 위주로 생각한다거나 그런 인식이 아직도 많죠. 인식이 높아졌지만 그것은 산업적인 측면에서 그런 것이지 다른 차원에서 보면 아직도 조금 미진하다고 생각해요.

 

여전히 남아 있는 한계에 대해 선배로서 많이 생각하고 계시죠?


그런 의무감이 있죠. 그래야 후배들의 환경이 달라질 테고요. 저는 다른 것을 다 떠나서 만화가라고 스스로 생각해요. 우리나라에서 제 다음으로 만화를 그리는 후배들도 많고, 미래에도 만화 그리는 후배들이 많을 텐데요. 그들을 위해서라도 제가 할 역할이 있다고 생각해요. 박재동 화백이 휴가를 위해 싸우신 것처럼 저도 좀 더 나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할 부분이 많이 있다고 생각해요. 만화에 대한 인식을 높이기 위해 할 일이 많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 점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이 책을 어떤 사람들이 꼭 읽어주었으면 하세요?


그래도 저는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거든요. 만화 싫어하는 사람에게 보여 봐야 받아들이지 않잖아요.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 보여줘야 그것도 보람이 있고 의미가 있는 거겠죠. 여기 제일 많이 등장한 사람 중 하나가 박근혜 대통령이잖아요. 그렇다고 제가 이 책을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여주면 과연 볼지 의문이죠. 본다고 받아들일지도 의문이고요. 책도 100% 다 읽는다고 해서 수용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하니까요. 많은 사람이 보면 좋겠죠. 그렇지만 그게 억지로 되는 건 아니잖아요. 만화를 좋아하는 사람 중에도 책이 나온 걸 모르는 분들이 많을 텐데 그분들이 봤으면 좋겠어요.

 

앞서 제목으로 시대를 읽어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나눴잖아요. 혹시 새해에 작업할 만화를 관통할 제목을 예측해볼 수 있을까요? 너무 어렵나요.(웃음)


알 수가 없죠. 내년에 책이 나올 수 있을지도 알 수가 없는데요.(웃음) 워낙 상황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잖아요. 특히 우리나라는 알 수가 없죠. 최순실 사건이 한참 터졌을 때는 하루 사이에도 어마어마한 일들이 막 터지고 급변하는 상황이 벌어졌거든요. 그럴 때는 어떤 구체적인 사안을 소재로 삼는다기보다 전체적인 맥락을 만화로 그리게 됐어요. 그래야 나중에 그 만화를 다시 봤을 때 오류를 줄일 수 있으니까요.

 

그래도 새해니까, 희망하는 점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일단 희망적인 미래를 생각할 수 있는 모습을 많이 겪고 있다고 생각해요. 특히 많은 시민들이 주도적으로 모이고 바꾸기 위한 노력을 보여줬죠. 그런 점에서 희망적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분명히 우리 사회가 소수의 주도가 아니라 다수 시민들의 행동이 뒷받침되어 같이 만들어 나가는 그런 사회가 될 수 있지 않겠느냐, 생각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고, 하는 것은 그 다음 문제고요. 어떤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더라도 다수의 시민들이 계속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되는 것이 제일 중요하겠죠.


시민의 의무를 생각하면서 사는 게 중요해요. 잊을 때도 있지만 계속해서 잊지 않고 의무를 생각하려고 노력하며 사는 게 중요할 겁니다.


 

 

굿바이 사이비 전성시대박순찬 저 | 비아북
장도리의 대한국민 現在史 시리즈는 풍자와 재치가 담긴 촌철살인 표지로 출간 즉시 화제를 일으켜왔다.장도리 시리즈의 다섯 번째 책인 『굿바이 사이비 전성시대』 역시 특유의 신랄한 풍자와 재치를 담아내면서 놀라움을 선사한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루마, 나의 음악은 ‘세미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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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루마는 「River flows in you」, 「Kiss the rain」, 「When love falls」 등 우리 귀에 익숙한 피아노 연주곡들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많은 곡이 영화, 드라마, CF 등에 삽입되었고, 그의 음악으로 피아노의 매력에 눈을 뜨고 입문한 사례도 많다. 1990년대까지 서구와 일본 아티스트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뉴에이지 장르를 넘어서 빠르게 세력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는다. 서울 홍대 부근 빅퍼즐 사무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이루마는 자신의 음악을 '세미클래식'으로 규정해주는 게 맞을 것 같다고 말했다.

 

공연의 집객 파워도 상당해 뉴욕 카네기홀, 시드니 오페라하우스 등 세계 유수의 공연장에서 성황리의 무대를 갖기도 했다. 그는 흔히 피아니스트로 기억되지만 스스로는 '작곡가'로도 불리기 원한다. 그의 페이스북과 포털 사이트 인물 정보 등 설명 공간에는 '작곡가'와 '피아니스트'가 병기되어 있다. 작곡가 이루마로, 작곡 팀 마인드 테일러(Mind Tailor)로 샤이니, 에일리 등 대중가수에게 준 곡도 여럿 존재한다. 데뷔 16년 차의 적잖은 경력에도 그는 “지금까지 해온 것보다 앞으로 하고 싶은 것이 더 많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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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반갑다.


그 전에도 김광민 씨나 노영심 씨도 피아노 앨범을 내셨고, 한충완 선생님도 계셨죠. 조지 윈스턴부터 유키 구라모토, 이사오 사사키, 스티브 바라캇처럼 해외에도 피아노를 치면서 작곡하는 분들도 많았고요. 운도 따라줬어요. 특히 이름 덕을 크게 봤죠. 당시 워낙 일본 아티스트들이 많이 활동하고 있었고, 광고에도 그런 음악들이 나오던 때라. 제가 처음 제작자를 찾아갔을 때 그분이 이사오 사사키의 「Sky Walker」를 틀어주면서 이런 음악 쓸 수 있냐고 묻는 거예요. 그래서 몇 십 개씩 쓸 수 있다고 말해버렸죠. (웃음) 그때 한창 의욕이 넘쳤거든요.

 

유키 구라모토 음악이 2000년도에 한창 유행했을 때 한국 사람들이 왜 좋아했을까 생각해 보면 다른 음악들과 구분되는 매력이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맞아요. 멜로디가 굉장히 신파적이면서 동시에 클래식 적이죠. 드라마나 영화의 슬픈 장면에 쓰이기 딱 좋은 스타일이에요. 마침 미니홈피도 한창 유행하고 있어서 다들 배경음악으로도 해놓으시더라고요. 그래서 유키 구라모토 선생님께 너무 감사해요. 제가 오기가 생기게 만들었던 분이시거든요. 앨범 준비를 하던 때 레코드 샵에 간 적이 있었어요. 와, 정말 스티브 바라캇이랑 유키 구라모토 음반이 뉴에이지 섹션을 다 채우고 있었어요. 엄청나게 인기 있었다는 거죠.

 

리차드 클레이더만, 프랭크 밀즈도 그렇지만 피아노 연주 음악이 오랫동안 환영받았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열기가 식었고 그러다가 유키 구라모토와 이사오 사사키 떠오르면서 재(再)점화됐던 것으로 본다. 그 끝물이 이루마 아닌가. 너무 대중의 입맛에 맞춰가는 것에 대한 아티스트로서의 회의가 들지는 않는지.


회의가 안 든다면 거짓말이죠. 대중성을 생각한 편안한 음악을 만들다 보니까 클래식 진영에서 저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어요. 그나마 제가 클래식 작곡을 전공했으니 이 정도지. 요즘엔 저도 똑같이 무시해요. 이런 곡 써서 성공할 수 있으면 한번 해 보시지, 이런 마음이죠. (웃음)

 

「When the love falls」 같은 음악을 들었을 때, 전통적인 음악을 하는 사람들한테는 이루마가 쉽게 간다고 느껴질 수 있다. 실험적인 음악과 듣기 좋은 음악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지 않나.


그런 소리 진짜 많이 들었어요. 제 음악이 수면제래요. 오늘도 라디오 진행하는데 시청자 게시판에 누가 어린이집에서 애들 재울 때 제 노래를 튼다는 사연을 올렸어요. 실제로 제 공연장에서 애들이 잠잘 준비를 한대요. (웃음) 물론 그것도 좋은 음악이긴 하지만, 사람들이 푹 빠질 수 있는 음악도 작업해야겠구나 싶었어요. 저랑 작업하는 프로듀서 동생이 항상 'WOW'를 해야 한다고 해요. 게임 '와우'가 아니라, 사람들이 'WOW!' 할 수 있는 음악을 써야 한다고.

 

미니멀리즘은 지금도 이루마 음악의 중심이 되고 있는데, 어떤 매력에 빠졌는지.


트렌드를 따라가지 않아요. 그림으로 비유하자면 인상파. 질리지 않고 그때그때 느낌이 다르다는 점이 참 매력적인 것 같아요.

 

대중적인 곡으로 사랑받고 있지만, 결국엔 류이치 사카모토처럼 조금은 실험적이고 난해한 음악으로 가고 싶다는 것인지.


네. 겨울연가 붐이 일어나고 일본에서 한창 활동했었을 때, 거기 프로모터가 류이치 사카모토의 매니저를 하셨던 분이셨어요. 제가 팬이라니까 앨범을 엄청나게 주셨죠. '널 보니까 (류이치 사카모토의) 어릴 적 모습을 보는 것 같다'는 말을 해주셨어요. 빨리 머리가 하얘져야겠다고 마음먹었죠. (웃음) 물론 류이치 사카모토 스타일의 음악을 한다는 건 아니지만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하면서 예술적인 음악을 하는 그런 모습을 닮고 싶어요.

 

랑랑 역시 중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로 부상하고 있는데, 랑랑을 어떻게 보나.


랑랑은 저와 비교할 대상이 아니죠. 그분은 클래식 연주자로서 피아노 클래식을 대중화시킨 가장 큰 인물이기도 하고, 해외에서도 워낙 유명해요. 잠깐 같은 레이블에 있었는데, 그때 비교를 많이 당하긴 했었어요. 저는 작곡가이자 연주자고 음악적 성향이 아주 다른데…. 그분은 게임에 자기가 연주한 음악을 넣기도 하거든요. 그래서 전 항상 작곡가라고 말해요.

 

대중음악 시장에서 피아노 연주만으로 고객과 소통한다는 것은 조금 부족하지 않나 싶다. 요즘의 아티스트와 콜라보레이션이나 커버가 필요하지 않나. 키네틱 플로우 「몽환의 숲」처럼. 이번 MAMA 무대도 그렇고 대중화 작업과 관련된 진행 상황은 어떤가.


2년 전부터 가요 작곡을 다시 시작했어요. 백지영 씨도 그렇고, 샤이니, 헨리, 엠블랙 지오 씨와도 작업 했었고요. 특히 에일리 씨와 했던 곡(「Higher」)이 반응이 좋았어요. 마인드 테일러(Mind Tailor)라는 이름으로 팀을 꾸려서 곡을 썼어요. 최근에는 규현 씨 지난 앨범에 작곡가로서 참여하기도 했고. 많은 사람이 저를 피아노 연주자로 알고 있지만, 제 전공을 살려서 대중음악과의 시너지 효과를 내보고 싶었어요.

 

이번 MAMA 측이 왜 이루마를 비와이와 붙일 생각을 했을까.


글쎄요. 원래 「Day day」에는 브리지에 건반이 살짝 들어가는 정도 외엔 피아노가 딱히 없거든요. 그래서 그걸 인트로로 아예 길게 넣고 또 중간에 반복했어요. 아마 그래미에서 랑랑이 했던 것처럼 클래식 연주자가 아닌 대중적인 사람을 찾다 보니까 저에게 연락하신 것 같아요. 제가 홍콩 쪽에서 공연하기도 했으니까요. 상해 같은 경우는 지하철 문 열리고 닫힐 때 「River flows in you」가 나와요.

 

비와이와의 무대를 보니 노래를 엉성하게 부르지만 않는다면 노래를 해도 되지 않나 싶었는데. 가수 욕망은 없는지.


(크게 웃으며) 많아요. 심지어 어떤 가수가 피처링을 해달라고 해서 피아노인 줄 알았는데 노래였어요. '더 필름' 황경석 씨라고, 제 친구예요. 그분이 토이 스타일의 음악을 많이 써요. 「일산 호수공원」이라는 노래가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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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M은 취향에 맞는지. 요즘 힙합과 EDM이 대중음악의 양 축이라고 할 수 있는데. 특히 EDM은 피아노와 결합할 가능성이 엄청난 장르 아닌가.


맞아요. 그래서 따로 디제잉 하는 프로듀서랑 같이 뭔가 해보려고 하고 있긴 해요. 제가 디제잉도 관심이 있거든요. 영국에 잠깐 놀러 갔을 때 악기점을 지나가다가 거기에 믹싱 기계가 있길래 한 번 해봤어요. 차마 그걸 사지는 못하고 아는 동생 집에 가서 베이스도 깔아보고 이것저것 만지는 데 정말 재밌더라고요. 그래서 직접 연주를 하면서 디제잉을 하면 어떨까 싶었죠. 둘 다를 하는 디제이가 많진 않거든요.

 

힙합은 귀에 잘 들어오나.


솔직히 말하면 잘 안 들려요. 정말 집중해서 들으면 가사들이 들어오긴 하는데. 반주, 멜로디가 확실히 좋다거나 래퍼 목소리가 독특하면 듣긴 하지만, 아직도 뭐가 뭔지는 잘 모르겠어요.

 

 

사실 피아노란 악기는 대체로 재래식 작곡법에 어울린다. 아이돌 음악이나 힙합과 어울리면서 어느 정도는 작곡 패턴의 변화가 있을 것 같다.


코드 진행이라든가 멜로디는 옛 연주 음악을 인용하는 경우가 많아요. 오히려 그게 가요와 만났을 때 신선하더라고요. 힙합 같은 경우엔 제 음악이 워낙 미니멀리스틱하게 반복적인 패턴이 많다 보니 의외로 잘 어울렸어요. MC 스나이퍼 씨의 「할 수 있어」라는 곡도 그렇고. 이 분이 아이디어를 많이 주셨어요. '너 같은 피아니스트가 힙합과 같이 어울리는 게 정말 좋다.'고 말해주시기도 했어요.

 

결국 단순한 연주자보다 송 라이터로 자신을 포지셔닝 하는 것인가.


그렇죠. 일단 피아노 연주 쪽으로는 이루마라는 이름이 알려져 있으니까 이용할 수도 있고. 피아니스트가 작곡을 한다고 하니 특이했나 봐요. 제작자분들도 곡 의뢰를 해주시더라고요. 그렇다고 또 너무 많이 노출되면 희소가치가 떨어지니까 적당한 선에서 가요 작업을 마무리하곤 했어요. 요즘엔 힙합 하는 친구들도 만나고 있어요. <쇼미더머니>에 나왔던 이규환이란 친구와 작업 중이고 아마 1월쯤에 나올 예정이에요.

 

딴 가수에게 준 곡 가운데 가장 반응이 좋았던 음악은?


당연히 연주곡이 압도적이지만, 써준 노래 중에서는 에일리 씨의 「Higher」가 제일 인기 있었죠.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부르시는 분들도 있고. 백지영 씨 노래 중에 '싫다'라는 곡도 제가 썼어요. 처음으로 제가 음악 프로그램에 같이 나와서 활동했었죠. 이게 인기가 꽤 좋았는데 그때 소녀시대와 활동이 겹쳐서 2위로 밀려났어요. (웃음) 그게 벌써 3년 정도 됐을 거예요. 새로운 시도를 계속하려고 합니다.

 

작곡을 처음 시작할 때 봤던 교본이 있다면.


멘델스존의 「무언가(Songs without words)」는 지금도 제게 도움을 많이 주고, 즐겨 치는 곡이에요. 집에 가면 아직도 피아노 앞에 그 악보가 놓여 있죠. 가끔 아이디어가 안 떠오를 때는 클래식도 연주해요. 잘은 못 치지만. 손도 많이 굳었고 클래식적인 테크닉이 많이 죽었거든요. 그렇지만 역시 클래식은 클래식이에요. 그게 확실히 밑거름이 되었던 것 같아요. 구체적으로 분석하면서 치진 않았어도 자연스럽게 제 성향으로 자리 잡은 거죠. 현대음악을 공부하면서 필립 글래스(Phillip Glass) 같은 작곡가들을 지향하게 됐고. 대중적이면서도 실험성 짙은 음악을 하는 그런 분들이요. 그래서 저도 분명히 누군가 하지 않은 음악이 있겠지, 이런 믿음을 갖고 곡 작업을 해요.

 

곡을 만들 때 즉흥적으로 코드를 만드는지. 아니면 계산해서 하는 건가.


둘 다예요. 생각해둔 코드가 있으면 그대로 쓰기도 하고. 왜냐하면 노래를 쓸 때와 연주 음악을 쓸 때는 굉장히 다르거든요. 노래를 쓸 때는 아무래도 계산해야 하는 부분이 많죠. 듣는 귀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버스(verse)는 16마디, 코러스(chorus)는 무슨 무슨 코드워크 이런 식으로. 근데 이렇게 작업하기가 싫더라고요. 요즘엔 그냥 레코딩 버튼 누르고 한 번에 쭉 가는 방식으로 할 때가 많아요. 자연스럽게. 구성을 다 짠 상태로 녹음하면 제가 거기에 끌려가요. 메트로놈 소리도 신경 쓰이고, 연주도 매끄럽지가 않거든요.

 

그래도 아직 대중에게 이루마는 대중음악 작곡가보단 피아니스트에 좀 더 가까운데, 완성도가 높다고 느끼는 노래는?


「River flows in you」 노래 버전이 있는데 그걸 가수 팀(Tim)이 부른 적이 있어요. 우리나라에서 활동했던 곡도 아니었고 가수 팀이 부르고 싶어 해서 편곡해줬거든요. 근데 그게 해외에서 굉장히 반응이 좋았어요. 중국 가수가 중국어로 번안해서 부르기도 했고, 독일에선 하우스 버전으로 노래가 나온 적도 있을 정도였거든요. 신기하게 해외에선 다들 이 곡을 알고 계시더라고요.

 

이루마하면 「River flows in you」인데 만들게 된 계기는.


2집에 수록된 곡인데요, 사실 아무 생각 없이 썼어요. 제가 그냥 텔레비전을 켜놓고 피아노 앞에 앉아 있다가 나온 곡이거든요. '리버 댄스(River dance)'라는 아이리시(Irish) 춤이 있는데 영국에서 이 춤과 관련된 쇼를 해요. 탭 댄스같이 다리만 움직이고 팔은 뒤로하고 막 떼로 나와서 추는 뭐 그런 건데. 화면에 그 쇼 광고가 나오는 거예요. 심심해서 아무거나 치고 있는데 문득 제 손가락이 그 리버 댄스를 추는 것처럼 보이길래 트릴을 넣어보기도 하면서 조금씩 곡을 만들어갔어요. 그래서 제목에 'River'라는 단어를 넣었고 흐르는 느낌도 나서 'Flow'를 붙였죠.

 

해외 반응도 있고 곡도 좋은 덕분에 악보가 잘 팔렸다고 들었다.


그렇기보단 피아노를 어린 시절에 조금이라도 접해본 분들은 악보가 어렵지도 않고 반복도 많아서 연주하기 쉬웠을 거예요. 몇 마디만 연주할 수 있으면 그냥 칠 수 있는 곡들이 많으니까. 끝까지 연주했을 때 만족감도 높고 일단 듣기에도 심플하니까 많이들 제 악보를 찾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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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 앨범 10장은 확실한 구매층이 있다는 방증이다. 가장 아끼는 곡은.


5집에 있는 「His monologue」를 제일 좋아해요. 사람들은 잘 모를 거예요. 입대하기 전에 앨범을 만들어 놓고 군대에 있을 때 앨범이 나왔거든요. 2006년 11월쯤. 사실 'H.I.S'가 제 아내의 이니셜이기도 해요. 근데 러브송은 전혀 아니죠. 앨범 자체가 실험성이 짙기도 하고. 존 케이지의 프리페어드 피아노(prepared piano)를 사용했어요. '푸딩'의 김정범 씨가 한 번에 멜로디를 연주해주시고 전 밑에서 프리페어드 피아노를 연주하고 그랬죠. 그 피아노는 학부 시절 진짜 저한테 충격적이었어요. 처음 접한 건 고등학생 때였는데, 선생님께서 어떤 음악을 들려주시더니 악기를 맞춰보라는 거예요. 다들 퍼커션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피아노였죠.

 

그 노래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다면.


그때 제가 입대 전이었고, 늦은 나이에 군악대로 들어가게 되면서 심리적으로도 굉장히 매너리즘에 빠져 있었어요. 더는 피아노 음악을 못 쓰겠다 싶었던 때에 앨범을 만들게 된 거죠. 새로운 소리를 찾다 보니 존 케이지처럼 해볼까 해서 프리페어드 피아노에 직접 제가 나사도 넣고 만들면서 준비했죠. 군대라는 게 오히려 제가 하고 싶었던 음악을 하게 된 계기로 작용했어요.

 

이루마하면 또 「Maybe」, 「Kiss the rain」, 「When the love falls」 아닌가. 특히 <겨울연가>에 삽입되기도 했던 「When the love falls」는 지금도 인기가 있다.


<겨울연가>덕분에 일본에서 했던 공연이 전부 매진되기도 했어요. 윤석호 피디님이 1집부터 제 음악을 알고 계셨대요. 유키 구라모토를 좋아하셨는데 저도 일본 뮤지션인줄 알고 음반을 갖고 계셨다는 거예요. 언젠가 드라마에 써야겠다고 생각하시다가 2집 앨범을 듣고는 이거다, 싶으셨나 봐요. 근데 이게 사실 제 곡이라고 할 순 없어요. 저희 누나가 결혼하면서 LP판을 잔뜩 두고 가셨는데 제가 거기서 미셸 폴나레프(Michel Polnareff) 베스트 앨범을 발견했죠. 아마 A 사이드 첫 곡이 「Qui A Tue Grand Maman」이었을 거예요. 제목을 찾아서 번역했는데 너무 웃긴 거예요. '누가 할머니를 죽였나'라니. 피아노로 치면 좋겠다 싶어서 쳐봤어요. (<겨울연가>에 갑자기 항쟁가가 나와 화들짝 놀랐다는 말에 “근데 당시엔 전혀 몰랐다. 붉은 피로~ 딴 딴 딴!”하며 웃었다)

 

아무 생각 없이 만든 곡인데 호응을 얻은 곡은.


그게 「Kiss the rain」이에요. 「Wait there」도 마찬가지지만, 이건 녹음 다 해놓고 시간이 남아서 만들었어요. 영국 메트로폴리스 스튜디오에서 레코딩을 했는데, 엘튼 존도 여기서 녹음할 만큼 비싸거든요. 근데 1시간이나 남는 바람에 제작자가 더 녹음할 거 없냐, 해서 없다, 없어요, 몇 번 실랑이한 끝에 하나가 있긴 한데, 하고 쳤어요. 멜로디가 예쁘기도 하고 너무 대중적이기도 해서 고민을 많이 했는데, 결국 녹음하게 됐죠. 제 곡에 「회상(Reminiscent)」이란 곡도 시간이 남아서 만든 곡이에요. 원래는 'reminiscence'가 맞죠. 근데 같은 제목의 노래들이 너무 많길래 제 곡만 검색 창에 나오게 하려고 'reminiscent'로 바꿨어요. 형용사로. (웃음) 시트콤 <김치치즈 스마일>에도 삽입됐었고, 인기가 많았죠. 10주년 베스트 앨범 녹음 마치고 커피 한잔 마시면서 쉬고 있었는데 소니 측에서 신곡이 하나 정도 들어가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이것도 몇 번 거절하다가 그냥 하나 만들어본 곡인데 반응이 좋았어요.

 

사람들이 이루마의 연주를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음악적으로 접근한다면 보이싱(voicing)일 수도 있어요. 작곡하시는 다른 분들과는 다른데, 예를 들어 왼손에 아르페지오만 있고 오른손에 멜로디가 있는 전형적인 형태가 아니라, 제 음악은 점프가 많아요. 그래서 엄지손가락이 제일 바빠요. 화음을 무조건 채워주거든요. 어렵지 않게. 제 곡엔 엇박자도 많죠. 유키 구라모토 선생님 같은 경우는 정박의 아르페지오가 많아요. 근데 저는 아니에요. 그러다 보니까 음이 겹치거나 변화가 많죠.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비롯해서 유수의 공연장에서 공연한 바 있다.


이번에는 카네기홀 대극장에서 했어요. 거기 홀이 두 개가 있는데 작은 홀과 다르게 큰 홀은 대관 심사를 해요. 예술가로서 인지도나 음악성 그런 것들을 보는 거죠. 논문처럼 12페이지 분량으로 내 곡에 대한 해설과 음악에 대한 글을 작성해서 제출하면 몇 개월 동안 이제 따져보는 거예요. 원래 카네기 쪽에서 먼저 연락이 왔었는데, 당시에 제 쪽에서 약간 문제가 있었어요. 쭉 미루다가 작년 4월에 하게 되었죠. 해외 인지도는 인터넷 덕분이죠. 영상의 힘이 컸어요. 특히 「River flows in you」는 영화 <트와일라잇>때문에 더 알려졌어요. <트와일라잇>의 팬이 책에서 발췌한 글을 제 음악과 함께 동영상으로 만들어서 유튜브에 올렸어요. 그 글에 '벨라의 자장가'라는 대목이 있는데 이게 그 음악이라는 식으로 퍼졌고 영상이 엄청나게 인기를 얻었죠. (국내 공연 관객은 어떠냐는 질문에 “그래도 그나마 낫다. 10위권 안에는 드는 것 같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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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리밍 시대에 단순히 피아노만 연주하는 사람은 좀 살아남기 힘들 것 같다. 그게 작곡으로 가려는 것과 연관이 있나.


불리하죠. 가끔은 피아노 음악을 그만하고 싶기도 해요. 사실 이제는 음악을 듣기 위한 자세가 사라진 것 같아요. 듣고 싶으면 언제든 들을 수 있으니까 음악의 가치가 너무 떨어진 듯하고. 그래서 전 스트리밍을 좋아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시대는 따라가야 하니까. 나중에는 제 홈페이지에서만 듣게 할까 싶기도 해요.

한국은 '연주음악' 시장이 작다.


우리나라에서는 가수가 최고예요. 행사를 가도, 어디를 가도 가수와 연주자의 대우가 달라요. 저는 그나마 낫지만, 무대 뒤에서 연주하는 세션 분들을 너무 홀대해요. 세션이란 말 자체가 어감이 좀 그렇기도 하고. 그게 굉장히 아쉬워요. 이런 문화를 제가 바꿔놔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연주자가 얼마나 위대한지를 알려주고 싶어요.

 

관례적인 질문이긴 하지만 이루마를 '뉴에이지' 장르로 묶는 게 불편하진 않은지.


불편하죠. 지금은 그러려니 하는데. 너무 광범위한, 뭐랄까. 장르 같지 않은 장르 이름이잖아요. 거기엔 노래도 있을 수 있고 재즈가 섞인 퓨전 음악이 될 수도 있거든요. 한때는 전 클래식도, 재즈도 아닌 '세미클래식'이라고 얘기한 적도 있었어요. 어느 날 우연히 검색하다가 누가 제 음악을 분석해서 논문을 낸 걸 봤어요. 그걸 보면서 느꼈어요. '내 음악으로 공부하는 사람이 있구나.', '현재의 음악이 나중에 가서 진짜 클래식이 될 수도 있겠구나' 싶었죠. 그런 면에서 제 음악이 세미클래식이 맞는 것 같기도 해요. 사실 하고 싶은 음악은 너무 많지만요.

 

클래식 말고도 대중음악 작곡가 중에서 코드 진행, 선율감, 코러스 창의성 등등 따졌을 때 이 사람은 대단하다 하는 작곡가가 있다면.


당연히 데이비드 포스터죠. 그 사람은 전조를 그렇게 많이 하는데도 자연스럽게 다 넘어가요. 물 흐르듯이. 근데 또 전혀 어렵지가 않아요. 우리나라에서 뽑는다면 토이 유희열 씨. 영국에 있을 때 친구가 토이 음반을 보내줬어요. 들으면서 아, 역시 공부를 하신 분이 맞구나 싶었죠. 「여전히 아름다운지」라는 노래를 그냥 발라드겠거니 하고 들었는데, 제일 뒤에 전조를 하는 것 같지만 안 해요. 브리지에서 키를 내렸다가 전조하는 것처럼 키를 다시 원상복귀 시키는 거죠. 와 이게 되는구나, 감탄했어요.

 

집에 있을 때 혹은 흐트러졌을 때 개인적으로 즐겨 듣는 음악은.


제가 기타를 잡았다면 록을 했을 거예요. 록 제네레이션이죠. 영국에서 공부했기 때문에 영국의 록을 접하고 살았거든요. 제가 좋아했었던 트래비스, 펄프, 블러 같은 브릿팝부터 미국 너바나(Nirvana)까지. 엔야(Enya) 같이 흘러간 음악도 좋아했고요. 누나들이 들었던 팝송들을 제가 자연스럽게 접했기 때문에 다양한 음악을 들으면서 자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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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순간부터 이루마 음악은 피아노 입문자들의 교본이 됐다.


정말 감사한 부분이죠. 예전에는 조지 윈스턴, 리차드 클레이더만 같은 피아니스트들 악보를 치곤했는데. 요즘 제 악보를 구해서 연습하시는 분들도 있으니까요. 그런 분들 덕분에 여전히 제가 이렇게 활동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소문을 타고 퍼지면서 홍보가 되기도 했고요. 제 음악이 쓰이고 있다는 것이 더 좋은 음악을 만들 수 있는 바탕이기도 하죠. 또 피아니스트 김정원 씨가 제 음악이 클래식의 다리가 되어줬다는 얘기를 해주셨어요. 전 클래식 음악을 하진 않지만, 클래식을 전혀 모르시는 분들이 클래식을 접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줬다는 거죠. 실제로 그렇게 듣는 분들도 계시고요. 그런 부분도 감사해요.

 

하고 싶은 음악을 하면서 가요작곡가로도 활동하는 것이 힘들지는 않은지.


요즘엔 연말 공연도 있다 보니까 정말 쉬는 시간이 없긴 하죠. 이렇게 바쁘게 살아가야죠. 지금보다 앞으로 더 할 일이 많으니까 이 정도는.... (웃음)

 

 

사진 제공 : 마인드 테일러 뮤직
인터뷰 : 임진모, 정연경, 현민형, 홍은솔
정리 : 정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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