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성 베네딕도 수녀원에서 만난 이해인 수녀는 막 심부름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수녀님이 심부름하세요?” 놀라 물어보니, 손님 맞이, 편지 쓰기, 외출하기 등 모두가 심부름이라고 했다. 하기야 수녀는 「심부름」이란 시에서 “누군가를 위해 선물을 준비하는 심부름은 제일 기쁘다”고 썼다. 인터뷰를 하러 이해인 수녀가 집필하는 공간 ‘해인글방’에 들어섰다. 책상에는 이미 수녀가 준비해놓은 선물 보따리가 있었다. 찬찬히 수녀의 안색을 살폈다. 2008년 대장암 판정을 받은 뒤, 오랫동안 투병 생활을 한 그였다. 긴 시간 대화해도 괜찮을지 안부를 물으려다 이내 입을 닫았다. 위독설이 무색할 만큼 수녀는 활기찼다. 올해로 72세가 됐지만, ‘명랑구름수녀’라는 별명이 여전히 어울렸다.
2016년은 수녀의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출간 40주년을 기념하는 해였다. 출판사는 특별판을 만들며 그에게 시 탁상달력을 묶어보자고 제안했다. ‘이해인 수녀가 매일 보내는 작은 위로의 시’ 365개는 『모든 순간이 다 꽃으로 필 거예요』로 다시 빛을 보게 됐다.
이해인 수녀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1월 24일 달력에 적힌 시구가 눈에 들어왔다. “그들이 못다 한 웃음까지 다 웃고 가려면 한순간도 우울할 틈이 없습니다. 눈만 뜨면 발견하는 조그만 기쁨들을 더 많이 만들어야 합니다.”(「어떤 결심 하나」) 수녀는 마치 자신이 쓴 시를 증명하기라도 한 듯했다. 소박한 기쁨을 한 사람에게라도 더 전하고자 하는 마음이 눈빛에서도 손짓에서도 쉴 새 없이 쏟아졌다.
인생을 긍정하게 하는 시
그간 어떻게 지내셨나요? 수녀님의 건강을 걱정하는 분들이 많으세요.
그러니까요. 저를 잊을 때가 됐는데 아직 관심을 가져주는 걸 보면 신기해요. 제가 이제 70세가 넘었으니 나름 원로잖아요. 사랑받는 데에 대한 책임을 느껴요. 지난해 마더 테레사 수녀님이 성인품에 올랐을 때, 23년 전 수녀님을 뵀을 때가 생각났어요. 수녀님과 함께 찍었던 사진을 엽서로 만들어서 선물하기도 했어요.
동료 수녀분들로부터 “시는 예민하게 잘 쓰는데, 고통에 대한 감각은 둔하다”는 이야기를 들으신다고요. 투병 후 ‘여장부’로 불리시고요.
제가 강원도 양구에서 태어났잖아요. 제 안에 뭔가 강한 힘이 잠재해 있었나 싶어요. 8년 동안 투병하면서 내 아픔과 슬픔 때문에 울지 않았어요. 아픔을 즐겼다고 할까요. 노을이 지거나 아름다운 음악을 듣거나, 까치집을 볼 때는 감동이 막 전해오면서 눈물이 나는데, 방사선 치료를 받고 약을 먹을 때는 운적이 없어요. 저도 놀랐다니까요. 언제는 한 시인이 제게 정식으로 편지를 썼어요. 또렷이 기억나진 않지만 이렇게 썼던 것 같아요. “수녀님, 당신이 체면 때문에 울지 못한다면, 아무도 없을 때는 혼자 우셔라. 그래야 독소가 빠진다.” 제가 이 편지를 읽고 문장이 참 아름답고 고마워서 그렇게 해보리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아무도 없는 시간에 성당에 가서 성모상 앞에 앉았어요. 나도 실컷 울어보자 하고요. 그런데 눈물이 좀처럼 나지 않더라고요. 노력을 했는데도요. 체면 때문에 그동안 못 운 게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또 감사했어요. 수도 생활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구나 싶었어요.
심부름을 많이 하신다고요. 요즘 가장 즐겁게 하는 심부름은 무엇인가요?
모든 일이 의미가 있지만 정신과 환우들과 함께했던 자리가 기억이 나요. 서울시 은평병원에서 주최한 행사인데, 제 시 일곱 편을 택해서 각 정신병동에서 노래로 만들었어요. ‘송 라이팅’(song writing)이라고 음악치료의 한 방법이라고 해요. 종종 문화에 관심이 많은 부산, 울산 등 경남의 청소년들을 그룹으로 만나요. 시 낭송도 같이하고 성당에 가서 수녀들이 기도하는 모습도 보는데, 어떤 아이들은 이 경험을 통해서 문제행동이 많이 줄었다고 해요. 이웃과의 만남 안에서 작지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일이 제겐 참 고마운 일이죠.
수녀님의 시 365개를 묶은 달력이 나왔어요. 『모든 순간이 다 꽃으로 필 거예요』는 수녀님의 시 「물망초」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출판사에서 팀을 나눠 제 시를 묶었어요. 아마 저에게 뽑으라고 했으면 애를 먹었을 거예요. 출판사 분들이 절기에 맞게 참 잘 뽑았어요. 시간이 많이 지나서 그런지, 어떤 시는 내가 이런 문장을 썼나 싶을 만큼 새롭더라고요. 처음에 5,000부 정도를 찍었는데, 독자 분들이 선물로 많이 샀나 봐요. 반응이 좋다고 하니 반갑고 고마워요. 초판본 사은품으로 컵받침을 만들었는데 인기가 좋아서 저도 겨우 다섯 개밖에 못 얻었어요.(웃음)
매일 하루를 여는 마음으로 읽으면 좋을 시예요. 시를 사진으로 찍어서 주위 사람들에게 보내도 좋을 것 같아요.
생활 속에 시가 밀착되면 참 좋죠. 사람들이 많이 모여 말을 하게 되면, 뒷담화를 많이 하게 되잖아요. 뒷담화를 많이 하면 그때만 잠깐 기분이 풀릴 뿐이지 마음이 찜찜해요. 그럴 때 ‘말을 위한 기도’ 같은 시가 적힌 엽서를 나눠주면 좋은 뒤끝을 맺을 수 있어요. 종종 해인글방을 찾아온 방문객들에게 시를 읽혀요. 문장들이 책에서 튀어나와서 내 것이 되면 눈물을 글썽이게 돼요. 눈으로 읽는 것도 좋지만 목소리로 읽으면 시는 다르게 다가오는 법이에요. 또 치매 예방에도 좋고 모국어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도 있으니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시낭송을 하다가 시의 매력에 빠져서 시를 쓰는 사람들도 많이 봤어요.
지금도 시를 쓰시나요?
청탁이 오면 쓰지만, 스스로 창작을 많이 해야겠다는 생각에서는 좀 벗어났어요. 제 문학은 위로의 편지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요. 필요하신 분들이 있다면 물론 쓰고 싶고요. 말하자면 맞춤형이라고 할까요. 어느 날, 약을 먹는데 제 앞에 앉은 팔순 수녀님이 수십 알의 약을 드시는 모습을 봤어요. 저는 기껏해야 아침에 7알, 저녁에 3알 정도거든요. 내가 그동안 너무 습관적으로 약을 먹은 게 아닐까, 감사하는 마음으로 약을 먹지 못했다는 기분이 들어 ‘약을 먹을 때 드리는 기도’를 썼어요. 후에 양로원에 가서 이 기도를 읽어주니까, 너도나도 기도문을 달라고 하시는 거예요. 이건 일종의 맞춤형 기도인데, 내가 글을 쓸 몫은 여기에 있지 않나 싶었어요. 앞으로 그런 시를 써야겠다 생각했죠.
수녀님께 좋은 시란 어떤 시인가요?
읽고 나면 진실하게 살고 싶은 마음이 드는 시라고 할까요. 인생을 긍정하게 되고 삶에 감사하게 되고, 좀 더 선한 사람으로 살기를 갈망하게 만드는 시라면 좋은 시가 아닐까 싶어요.
먼저 대접해야 행복이 밀려옵니다
해인글방 안쪽 방을 보니, 40여 년간 독자와 주고받은 편지 꾸러미가 한가득 쌓였어요. 지금도 편지를 받으시죠?
여전히 많이 와요. 한 초등학생이 받는 사람 주소를 ‘부산시 민들레의 영토 수녀원’이라고 적었는데도 편지가 도착해 무척 기뻤던 적이 있어요. 책에 추천사를 쓰거나 신문이나 잡지에 글이 나오면, 편지를 많이 보내줘요. 이제는 정리하기도 벅찬데 항상 고맙죠.
그래도 꽤 정리하신 것 같아요.
본격적으로 모은 건 1986년부터예요.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들, 문인, 수녀나 신부님, 장애인, 미지의 독자 등으로 구분해서 모았는데, 언제 제가 답장했는지도 일일이 다 메모했어요. 지금은 세상을 떠난 분들도 많아요. 더 정리하고 싶었는데, 소임을 하다 보니 쉬운 일이 아니에요. 아마 지금도 있지 않을까 싶은데, 우정사업본부에서 편지쓰기 주간이라는 행사가 매년 열어요. 유명인사들의 편지가 필요하다고 연락이 오면, 고 박완서 작가나 최인호 작가, 법정 스님과 주고받은 편지를 빌려줘서 전시를 여러 번 했어요. 편지를 주고받으면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마음을 전할 수 있는데, 요즘은 편지를 주고받는 일이 드물어져서 안타까워요.
최근에 받은 편지 중에 인상 깊었던 편지가 있나요?
얼마 전 김제동 씨가 책을 내서 추천사를 써줬어요. 90세 노인이 그 글을 읽고는 김제동 씨 연락처를 모르니까 저한테 편지를 쓴 것 같아요. 자기 남편은 95세라면서 안부를 전하시는데, 그 할머니께는 답장을 하려고요. 너무 감동적이잖아요. 또 지난번 생일날, 중학생 때부터 제 독자이신 분이 그동안 모으신 제 자료를 스크랩북으로 보내줬어요. 이제는 아들 둘을 키운 엄마가 되셨는데, 아들이 제대하는 날 저한테 인사를 오기도 했죠. 저도 가끔 답장을 보냈는데 제 편지 봉투도 안 버렸더라고요. 우표가 110원짜리니 정말 오래됐죠. 원년 독자들이 보내주시는 편지를 읽으면 저도 모르는 제 자료가 많아요. 이런 독자들의 기도와 사랑 덕분에 지금까지 버틸 수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언젠가 ‘이해인 수녀의 편지문학’을 정리하셔야겠어요.
생각을 아주 안 한 건 아니에요. 그런데 도저히 정리할 틈이 없더라고요. 너무 많이 받아서 보내주신 분께 돌려준 것도 있어요. 왜냐면 그분들에게 더 귀할지 모르잖아요. 자기의 인생을 돌아볼 수도 있고요. 요즘은 다들 손편지를 안 하고 이메일만 쓰는데, 편지는 영혼의 메아리 같아요. 요즘 편지 꾸러미를 보면서 ‘언젠가 나도 죽어야 할 텐데, 이것들이 부담되어서 어떻게 하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책상 위에 스티커, 색연필이 잔뜩 있어요.
독자분들이 보내준 거예요. 제가 책에 사인할 때, 색연필로 꽃도 그리고 스티커도 붙여요. 그걸 아는 분께서 보내주셨어요. 이번에 나온 달력에는 각자 특별한 날짜 옆에 사인을 해주려고 해요. 아무 데나 사인받는 것보다 더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삶과 시」에서 “시를 쓸 때는 아까운 말들도 곧잘 버리면서, 삶에선 작은 것도 버리지 못하는 나의 욕심이 부끄럽다”고 하셨어요.
부끄럽죠. 몇 주 전 <이중섭, 백년의 신화전>을 보러 부산시립미술관에 다녀왔어요. 이중섭 선생이 무척 가난하게 살았잖아요. 생계가 어려워 게를 잡아먹어야 할 정도였는데, 게에게 미안한 마음에 게를 그림으로 그렸어요. 시대적인 상황이지만 마음이 너무 아픈 거예요. 현대사회는 참 풍요롭게 사는데도 끊임없이 욕심을 부려요. 또 관계들이 너무 깊지 못하니 화를 내고 미움이 생기는 것 같아요. ‘내가 자기한테 어떻게 했는데’ 하면서 서로에게 너무 큰 기대를 해요. 기대를 조금만 낮추고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면 좋겠어요. 내가 대접받고 싶은 걸 상대에게 해주면, 행복이 밀려오지 않을까요?
공동체 걱정만 돼서 오히려 기뻤어요
투병하실 때 힘들지 않으셨나요?
손발을 움직이기 어려울 때가 있었으니, 지금 이렇게 잘 걷고 말할 수 있는 게 황홀해요. 일상의 황홀함인 거예요. 뭐든지 마음껏 살아가야지, 배려해야지 싶어요. 쫓기듯이 사는 건 의미가 없어요. 요즘 약물에 중독된 사람들이 많아졌잖아요. 너무 아프지만, 나만 아픈 게 아닌 것을 깨닫고 내 아픔을 좀 쿨하게 거리를 두고 느껴야 할 것 같아요. 아픔과 시련은 울고 짠다고 달라지지 않아요. 시간을 낭비하기보다는 축복의 기회로 삼는 게 나아요. 사람들이 “수녀님은 어떻게 그렇게 투병을 하면서도 명랑한가요?” 물으시는데, 큰 게 없어요. 사소하고 작은 마음가짐이죠.
아픈 분들로부터 편지도 많이 올 것 같아요.
이 편지 한 번 읽어줄까요? 12월 7일에 온 편지인데 읽고 너무 감동했어요. 한 번 들어보세요.
“수녀님, 안녕하세요. 밥 한 끼 마음 편히 못 먹고 잠 한 번 제대로 푹 못 자면서 이것은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야. 천사 같은 마음이 있어야지. 가정에 도움도 되잖아, 나를 위로하며 간병인 일을 쭉 5년을 넘게 해온 저에게, 주님께서 소풍을 보내주셨습니다. 급성간염, 그동안 수고했다 이 작은 침대에서 편히 좀 쉬려무나. 비몽사몽 어제와 다른 오늘이 반깁니다. (중략)”
저는 이 편지가 곧 문학이라 생각해요. 2016년이 『민들레의 영토』출간 40주년이었어요. 얼마 전에 성당을 방문한 한 여중생이 그동안 낸 책 중에 어떤 표지가 가장 마음에 들었냐고 물어서, 『민들레의 영토』라고 답했죠. 40주년이어서 그랬는지 그때 편지를 참 많이 받았어요. 한 장 한 장 읽으면서 분발하게 되고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다짐했어요. 몇 년 전, 좋은 시 읽기 모임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기회를 놓쳐 정기적으로 하기는 어렵지만, 사람들이 모이면 꼭 시를 함께 읽으려고 해요. 시를 읽으면 그 글이 내 몸으로 들어와요. 육화가 돼요. 글방에 작은 주사위가 있어요. 한 번씩 돌아가면서 굴리면, 마음에 담아둘 좋을 글귀가 나와요.
수녀가 되지 않았더라도 시는 쓰셨을까요?
썼을 것 같아요. 수녀가 되지 않았더라도 글을 쓰는 일을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국어 선생이나 방송작가, 연극을 했거나 성우가 됐을지도 모를 일이죠. 저는 입회 후 52년간 지역 성당에 따로 파견돼서 선교한 일은 없지만, 시가 저 대신 나비처럼 국내외로 날아다니며 사랑의 문서 선교 역할을 한 것 같아요.
종교를 갖는 사람이 줄고 있어요. 수녀님께 종교의 쓸모에 대해 여쭙고 싶어요.
아무래도 종교가 있으면 해당하는 믿음 체계 안에서 자신을 절제할 수 있어요. 반대로 교리에만 너무 집중하다 보면 왜곡해서 해석하게 되고, 제대로 된 종교심을 가질 수 없어요. 타 종교에 대해 열린 마음도 필요해요. 스님들을 만날 때, “점심 드시고 가실래요?”라고 말하는 대신 “공양하고 가실래요?”라고 청하면, 그렇게 기뻐하세요. 개신교 신자분을 만날 때도 “심방 가실까요?”라고 인사하면 자연스레 우정이 싹터요. 저는 모태신앙이었기 때문에 타 종교에 대해 배타적이었는데, 비교 종교학을 공부하면서 스스로 열려 있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언젠가 친구들이 말하더라고요. “종파를 초월해서 네 건강을 위해 기도를 해주니, 건강해질 수밖에 없다”고요.
사람들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싶다는 소망이 있나요?
세상에서 사라졌을 때 수도자로서 시인으로서, 소박하고 아름다운 시를 써서 삶의 작은 위로를 줬고, 시를 통한 위로 천사로 기억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으면서, 이제는 종이가 아닌 일상의 삶 속에 시를 써야겠다고 다짐한 적이 있어요. 아까운 말도 용기 있게 버려서 더욱 빛나는, 한 편의 시로 익어가는 수녀 시인이 되고 싶어요.
“내 삶을 시로 정리하고 싶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어요.
한 번 할까 하다가, 수도자인 사람이 무엇을 남기는 일이 옳은 걸까 싶어 마음을 접었어요. 법정스님이 자주 하신 말씀 중에 “사람이 죽으면 물건에도 혼이 빠져나간다”는 말이 있어요. 누구를 주려면 살아 있을 때 주라고요. 얼마 전 부산에 지진이 났잖아요. 글방에 있는 책이 우수수 떨어지는데, 우리 성당 리모델링을 17개월에 걸쳐서 했는데, 그게 무너질까 봐 너무 걱정되는 거예요. 내 한 몸 걱정은 안 하고 공동체적 걱정만 하는 걸 보고서, 오히려 좀 기뻤어요.
선뜻 책 추천사를 먼저 써주시기도 하시고 여전히 책장에 책이 빼곡합니다.
언젠가 서재에 대한 질문을 받고는 ‘마법의 성’ 같은 곳이라고 답한 적이 있어요. 글을 쓰는 작업실이기도 하고 좋은 책을 읽는 독서실, 취미생활도 하는 놀이터 같은 공간이기 때문이에요. 계속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좋은 책들은 쉬이 버리기 어려운 것 같아요. 흔한 말이지만,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책을 손에서 놓지 않고 친하게 지내다 보면, 인격적으로 성숙하고 행복에 이를 수 있어요.
최근 인상 깊게 읽으신 책이 있었나요?
요즘은 쓱 보는 책이 많아요. 그래도 『감옥으로부터 사색』이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같은 책은 계속해서 읽는 책 중 하나예요. 얼마 전 『파산 수업』이라는 책을 인상적으로 보았는데, 힘든 시절에 인간이 줄 수 없는 위로를 주는 건 책밖에 없어요. 책에서 만난 한 구절이 경우에 따라서는 구원의 역사가 되기도 하니까요. 예전에는 책에 나오는 글귀를 참많이 외우고 필사도 했는데요. 외우는 일까지는 못해도 가까이 여겼으면 해요.
‘2017년은 이런 마음으로 살았으면 좋겠다’고 할 때, 소개하시고 싶은 시가 있다면요.
1월 6일 자 달력에 실렸는데요. 「새해 덕담」이라는 시예요. ‘복덕방’이 복 복(福), 큰 덕(德)을 써요. 서로에게 복을 짓고 복을 나눠서 선을 쌓고, 서로를 축복해줬으면 해요. 전문을 한 번 읽어줄게요.
좋은 생각만 하고
좋은 이야기만 하고
좋은 일만 가득하라고
우리 서로
새해의 덕담을 주고받지만
삶의 길에는
어둡고 아프고
나쁜 일도 너무 많아서
조금은 불안하고 두렵지요.
그럴수록
우리는 덕담을 주고받으며
서로서로
복을 짓고
복을 받아
복을 나누는 가운데
선업을 쌓고 덕을 닦는
아름다운
‘복덕방’이 되어야지요.
모든 순간이 다 꽃으로 필 거예요이해인 저 | 톨
이해인 수녀님의 시 중에서도 가장 힘이 되는 시를 모아 엮은 365일 시 달력이다.거실이나 책상, 사무실 책상 위에 올려 두고 매일 보면서 잠시 동안 마음에 휴식을 주줄 수 있다. 특히 바쁘고 힘든 날에 보면, 내일을 살아갈 기운과 희망을 선물 받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