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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아 “모칠라는 와유족의 열정이 만들어낸 예술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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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색채와 이색적인 패턴으로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는 가방, ‘모칠라’. 콜롬비아 원주민 ‘와유족’의 손끝에서 탄생한 이 가방은 2~3년 전부터 할리우드를 강타했다. 시에나 밀러, 패리스 힐튼, 케이티 페리, 바네사 허친스 등 수많은 셀러브리티들이 ‘모칠라 러버’를 자청했으며 한국 얼리어답터들의 관심도 뜨거웠다. 이에 편집숍 ‘스페이스 눌’의 대표이자 MD로 활동하고 있는 김정아 저자는 모칠라를 찾아 직접 콜롬비아로 향했다. 그녀와 함께 한국 땅을 밟은 모칠라는 지난 해 롯데백화점 에비뉴엘과 현대백화점 본점 등에서 소개되며 일 평균 600만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올해 4월에는 신세계 강남점에서도 모칠라 모노 팝업이 잡혀있을 정도로 업계의 관심도 뜨겁다고 한다.

 

자타공인 ‘도스토예프스키 전문가’이자 러시아 문학을 전공한 문학박사인 김정아 저자는 모칠라를 찾아 나선 여정 역시 “인문학적 호기심”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그녀는 과히라 사막에서 살아가고 있는 와유족과 만나 그들의 문화, 삶의 방식, 열정을 발견했다. 그것이 모칠라 안에 담기는 과정도 목격했다. 저자에게 있어서 모칠라는 단순한 가방이 아니다. “디오니소스적인 삶의 폭발적인 힘”을 간직하고 있으면서 “밝고 아름다운 생명력으로 충만한 색채의 향연이 넘치는” 예술작품이다.

 

와유족이 보여준 자연에 순응하는 삶, 거칠지만 단순하고 아름다운 삶에 감명 받은 저자는 그들이 문화와 전통을 지킬 수 있도록 작은 힘이라도 보태기 위해 『모칠라 스토리』를 출간했다. 패션 MD로서 제품을 판매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안에 담긴 가치와 의미를 알리기 위해 나선 것이다. 콜롬비아 정부는 와유족에 대한 사랑과, 이로 인한 한국과 콜롬비아 양국관계 증진에 기여한 저자의 공로에 감사하며 오는 3월 7일 콜롬비아에서 상공부 장관이 직접 방문하여 감사패와 공로상을 수여할 예정이라고 한다.

 

김정아 저자는 (주)샘플링의 대표이사로 편집숍 ‘스페이스 눌’과 모노 브랜드 스토어 ‘메릴링’의 대표 겸 MD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패션 MD :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편집숍 바잉의 비밀』이 있고 『죄와 벌 천줄읽기』,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천줄읽기』, 『악령』등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들 14권을 번역한 전문 번역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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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칠라는 와유족의 열정이 만들어낸 작품


직접 콜롬비아에 가셔서 모칠라를 보셨을 때, 느낌이 어떠셨나요?

 

만드는 과정이 정말 쉽지 않더군요. 하루 종일 집안일을 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모든 여자와 소녀들이 뜨개질을 하는 겁니다. 그들이 어떤 환경에 사는지, 어떻게 모칠라를 만드는지 보고 나니까 이전과는 완전히 다르게 보이더라고요. 굉장히 소중해 지는 거지요. 정말 힘들게 한 땀 한 땀 만들어진다는 걸 보고 나니까 그냥 판매만 할 것이 아니라 내가 보고 느끼고 감동한 것들을 그대로 전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모칠라 스토리』를 쓰게 된 계기이기도 합니다.

 

모노톤의 사막 한 가운데에 화려한 색과 무늬를 가진 모칠라가 놓여있는 풍경은 어떨지 상상하게 돼요. 굉장히 이질적이면서도 환상적인 느낌일 것 같아요.


와유족은 과히라 사막에서 2~3 가구가 커뮤니티를 이루고 삽니다. 문명의 이기와 담을 쌓고 살던 사람들이라 집 안에 유리창도 하나 없는데,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가면 해먹과 모든 것들이 너무너무 화려한 색깔로 가득 차 있어요. 아이들을 봐도 정말 해맑은 눈빛과 넘치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데, 그 모든 것들이 핏속에 흐르는 것 같습니다. 모노톤의 사막에서 단순한 삶을 살다 보니, 그걸 보상하기 위해서, 또 원래 그들의 핏속에 흐르고 있는 열정을 토해내기 위해 훨씬 더 화려한 제품들을 만들게 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그들의 삶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느끼기도 하신 것 같아요. 단순히 모칠라라는 제품을 판매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와유족에게 도움이 되는 방법을 고민하신 것 같더라고요.


그들이 만들어내는 제품들을 많이 사서 팔아주는 것도 직접적인 도움이 되기는 하지요. 그런데 기본적으로 패션 시장에서 영원히 핫한 아이템은 없습니다. 그만큼 변화가 많고 빨리 바뀌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모칠라는 와유족의 주 수입원이기 때문에 인기가 지속되어야 그들에게 지속적인 도움이 되는 겁니다. 그런 점에서 제가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다가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리게 된 거예요. 뭐든 이야기를 알면 더 재밌고 소중해지는 것이니까요. 올해 안에 『모칠라 스토리』가 영어로 번역되어 해외에도 소개될 것 같은데 더 많은 사람들이 모칠라에 관심을 갖게 될 것 같아서 기대하고 있습니다.

 

『모칠라 스토리』의 수익금의 50%가 와유족 아이들의 교육 지원을 위해 쓰인다고 들었어요.


와유족은 외부 세계와 차단된 채 살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교육을 시키지 않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서구화된 교육이 없는 거지요. 제 생각에는 전통과 문화를 이어가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지만, 교육을 받고 나서 자신들의 문화와 전통의 의미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그 소중함을 깨닫고 이어가는 게 더 의미 있는 일인 것 같거든요. 사실 교육이 없다는 건 미래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이 예쁘고 건강한 아이들에게 미래가 있는 삶을 주고 싶은 차원에서 교육 지원을 하고자 수익금의 절반을 기부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요즘 출판시장이 별로 좋지 않아 실제로는 얼마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 걱정입니다. 책 좀 많이 사 주세요(웃음). 나머지 수익금은 원래 후원해 오던 한국의 복지시설 ‘은혜의 집’과 대안 학교에 전달할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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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도 모칠라를 애용하신다고요. 지난 번 ‘파리 패션 위크’에도 가지고 가셨었죠?


네, 오렌지색 모칠라를 메고 갔었어요. 모칠라가 겉보기에는 굉장히 작아 보이는데 엄청 많은 것들이 들어갑니다. 가방 윗부분이 스트링으로 되어있어서 펼치면 더 커지고, 물건을 넣는 대로 가방 전체가 살짝 늘어나기도 해요. 정말 많은 것들을 넣고 다닐 수 있고, 또 엄청 가벼워요. 그리고, 때가 묻으면 물빨래를 해도 그대로고요. 자랑을 하자면 끝이 없습니다(웃음).

 

유럽에는 아직 모칠라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셨는데, 최근의 반응은 어떤 것 같으세요?


하나 둘씩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제가 ‘파리 패션 위크’에서 만난 바이어 중에도 ‘이 가방을 어디에서 살 수 있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거든요. 그래서 제가 관련 정보를 알려주기도 했는데, 이제 그 바이어들이 모칠라를 많이 사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아직 모칠라를 모르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작년에는 갤러리아, 현대백화점 본점, 현대백화점 코엑스점을 중심으로 많이 판매됐는데, 올해는 서울 강북지역으로도 퍼져나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내년 정도 되면 부산이나 대구 등 다른 패션 도시에서도 사랑을 받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모칠라는 색과 무늬가 굉장히 화려해서 ‘내가 소화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실 것 같아요.


그렇죠. 패션계에 있는 저도 그랬으니까요. 그런데 화려한 색깔의 모칠라는 그냥 하얀 티셔츠에 청바지만 입고 들어도 너무 예쁩니다. 포인트가 되는 거지요. 모칠라가 원래는 크로스백이어서 크로스로 메도 너무 예쁘고, 끈을 묶어 보통의 숄더 백으로 들어도 좋습니다. 보수적인 고객들은 단색이나 톤 다운된 컬러의 모칠라를 좋아하시는데, 외국에서도 톤 다운된 컬러들이 많이 판매됩니다. 남자 분들도 메고 다니고요. 커플로도 많이 들지요. 똑같은 디자인에 크기만 다르게 해서 엄마와 아이가 같이 메기도 하는데 정말 귀엽습니다. 저희 매장에서도 아이들 모칠라가 가장 먼저 다 팔렸을 정도입니다. 패셔너블한 엄마나 할머니들이 딸, 아들, 손자, 손녀를 위해 사시는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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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모칠라를 고르는 방법


모칠라는 ‘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의 아이템’이기 때문에 더 매력적인 것 같아요. 샘플을 보여주고 주문을 해도 똑같은 제품이 제작되지는 않는다면서요?


저희가 제품을 수입할 때 검품 과정을 거치는데, 조금이라도 주문한 부분과 다르면 난리가 나고 불량으로 처리되지요. 저도 콜롬비아에서 직접 골라온 모칠라가 다 소진되고, 콜롬비아의 파트너를 통해 모칠라를 주문하고 제품을 받았을 때, 다 다른 모습이라서 깜짝 놀랐습니다. 오더 시트에 ‘똑같은 아이템이 배송된다는 보장을 할 수 없다’고 써있기는 했지만 달라도 너무 다른 거예요(웃음). 어떤 때에는 현지에서 제품을 보내주시는 분한테 사진이 옵니다. 샘플은 핑크색 제품이었는데 파란색으로 만들어졌다고요(웃음).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다시 제작을 요청해야 하냐고 물어보는데 그냥 저는 다 받겠다고 합니다. 그래도 판매할 자신이 있으니까요. 신세계나 SK플래닛처럼 저희가 납품하는 곳에는 다 검품을 하고 가능한 실제 오더에 가깝게 보내줍니다. 약속이니까요. 하지만 ‘스페이스 눌’이 판매하는 것은 다 그대로 받습니다. 다 예쁘니까요.

 

와유족 입장에서도 샘플과 똑같이 반복적으로 만드는 게 더 쉬울 텐데요. 타고난 창의력을 참을 수가 없는 걸까요(웃음)?


의도적으로 ‘저기에 꼭 맞춰서 만들어야지’라고 생각하지를 않는 거예요. 마음에 그런 틀-문명사회가 만들어 놓는 틀 자체가 없는 거지요. ‘이걸 꼭 따라서 해야 되겠다’는 개념 자체가 없는 겁니다. 샘플을 봤으면 색깔과 패턴 같은 주요 요소만 파악하고 그 다음에는 자기 식대로 뜨는 거예요.  지금의 저한테는 그런 생각의 자유로움이 너무 사랑스럽습니다.

 

샘플을 만드셨을 때는 해당 컬러와 패턴의 조합이 최상이라고 생각하셨을 텐데요. 예상하신 모습과 다른 제품을 받고 실망하신 적은 없으세요?


처음에는 정말 놀랐습니다. ‘핑크색으로 주문했는데 왜 보라색이 왔지?’ 싶었지요. 이유를 물어보니, 집에 갔는데 그 색깔의 실이 없었답니다(웃음). 그래서 그냥 받았습니다. 제 눈에는 다 똑같이 사랑스럽고 다 똑같이 의미가 있는 제품이니까요. 저희 매장에서는 다 판매가 잘 되니 상관이 없기도 하고요. 제가 만약에 그 제품을 받기를 거절하면 그 사람은 처음부터 다시 뜨개질을 해야 하잖아요. 물론 나중에 누군가한테 팔리겠지만, 어쨌든 그 사람이 기대하던 돈은 그만큼 빨리 안 들어오는 거지요. 제가 지불하는 물건 값이 그들에게는 즉각적인 일용할 양식이 된다는 사실을 직접 보고, 알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못하는 것이고, 안 하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중국산 ‘가짜 모칠라’도 많다고 들었습니다.


많습니다. 모칠라 뿐만 아니라 콜롬비아에서 수작업으로 만들어진 모자도 있는데, 실제로는 굉장히 비싸거든요. 그런데 가짜 제품이 싸게 팔리고 있습니다. 게다가 동대문 같은 곳에서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훨씬 더 두꺼운 실로 뜬 모칠라가 굉장히 싼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어요. 비교를 하지 않는 이상 잘 모를 정도입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 콜롬비아 대사님도 걱정을 많이 하고 계시더라고요. 그래서 저희 회사를 통해서 모칠라를 판매하는 업체들은 ‘공식 인증처’라는 편지를 직접 써주셨습니다. 물론 콜롬비아에서 직접 모칠라를 사오는 다른 업체들도 있긴 하겠지만, 인터넷에서 너무 싼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면, 가짜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나를 뜨는데 적어도 3주라는 한 여인의 삶이 들어가는데, 너무 싸면 이상한 거지요. 

 

책에서 “좋은 모칠라를 고를 때 눈여겨봐야 할 요소들”을 설명해주기도 하셨어요.


제가 강조하는 것 중에 하나가 태슬(tassels)이 풍성해야 한다는 거예요. 저희가 주문한 제품들은 다 풍성한 태슬을 가지고 있어요. 대부분 태슬이 빈약한데, 그러면 전체적으로 가방이 예뻐 보이지 않아서 제가 주문할 때마다 강조하는 부분입니다. 그 다음으로 중요하게 봐야 할 건, 스트랩과 바디의 연결 부분입니다. 이 부분의 마무리가 잘 되어있는지 보셔야 하고요. 모칠라는 수작업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실이 끝나는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어요. 모칠라를 아주 잘 만드는 사람들은 스트랩이 있는 부분에서 끝을 맺는데요. 그렇게 하면 실의 끝부분이 보이지 않아 깔끔하지요. 간혹 스트링이 나오는 구멍이 한 개인 경우가 있는데, 저희가 불량이라고 이야기하는 제품입니다. 원래는 두 개의 구멍이 있어야 하거든요. 그 외의 부분에서는 조금씩 차이가 있을 수 있어요. 패턴의 한 부분이 빠져있을 수도 있고요. 그런데 저는 그것도 그냥 귀여운 것 같아요. 수작업 제품의 매력이라고 할까요.

 

지금까지 많은 제품들을 발굴하고 유통해 오셨는데요. 모칠라에 갖고 계신 애정은 남다른 것 같습니다. 제품을 만드는 사람들과 직접 만나 호흡하셨기 때문일까요?


사실 저한테는 브랜드 하나하나가 다 소중합니다. 대부분 제가 디자이너와 직접 일하고 있는 브랜드들이거든요. 중간에 홀 세일러들을 통해서 사오는 브랜드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하나가 다 소중하지요. 그런데 모칠라처럼 만드는 사람들의 일용할 양식과 직접 연결된 브랜드들은 많지 안습니다. 모칠라가 세상에 나오게 된 과정만 봐도 그렇습니다. 부족의 존폐가 달려있지 않았다면, 아마 와유족은 끝까지 외부 문명을 차단하고 살았을 거예요. 대단한 고집이고 대단한 자부심이지요. 에스파냐어를 사용하는 땅에서 몇 백 년을 살았으면서도 아직까지도 자신들의 언어 와유니키를 쓰고 콜롬비아 법대신 자신들의 법을 따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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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전문가 김정아를 움직이게 하는 힘 ‘인문학’


모칠라가 세상으로 나오게 된 과정에 대해 더 듣고 싶어요.


3년 전 과히라 사막에 심각한 가뭄이 들어서 물 자체가 없어진 시기가 있었습니다. 짐승도 다 죽고 정말 심각한 상황이었지요. 정부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정도도 지났고, 부족에게는 생사가 달린 문제였어요. 그렇다 보니까 자신들의 토산품인 모칠라를 팔아 달라고 NGO 같은 곳에 요청을 한 겁니다. 그 기관에서는 패션계와 연결을 시켜줬고, 할리우드 스타들이 모칠라를 들기 시작한 거지요. <보그>를 비롯한 각종 럭셔리 패션지가 모칠라를 실으며 세계적인 화제가 되었습니다. 때맞추어 분 에스닉 붐도 한 몫 했구요. 

 

그때 모칠라를 보시면서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귀엽다고 생각은 했어요. 그런데 저희 숍 분위기 자체가 시크해서 조금 거리가 있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잡지나 인터넷의 모칠라는 전부 블링블링한 색깔밖에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저희 매장에서 판매하면서 보니까 회색의 모칠라 같은 제품들도 정말 많이 찾으시더라고요. 그러니까 충분히 시크하게 들 수 있는 제품인 거지요. 그동안 화려한 색깔의 모칠라가 많이 알려져서 그렇지, 기본적으로 많이 판매되는 제품들은 보헤미안 스타일의 톤 다운된 컬러예요. 모칠라가 여름 아이템으로 알려져 있는데 사실은 그렇지도 않습니다. 사계절 아이템으로 충분히 쓸 수 있어요. 저도 잘 메고 다니거든요. 주로 핫 컬러들은 여름에 많이 판매되고요. 겨울에는 주로 톤 다운된 컬러들을 찾으시지요. 그런데 시에나 밀러가 들어서 유명해진 모칠라는 계절과 상관없이 꾸준히 판매됩니다. ‘시에나 밀러 모칠라’는 연령에 관계없이 다들 좋아하십니다.

 

시에나 밀러가 들었던 ‘핑크 팜팜이 달린 모칠라’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어요.


시에나 밀러가 들어서 예쁜 건지, 아니면 그 모칠라가 예뻐서 시에나 밀러가 든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웃음). 저희 매장에서도 가장 많이 판매되고 있는 모칠라입니다. 여자친구에게 깜짝 선물하기에 최고의 아이템이지요. 

 

모칠라의 패턴들은 각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하셨는데요. ‘시에나 밀러 모칠라’를 구입하신 분들은 많지만 그 패턴의 의미를 아시는 분은 많지 않을 것 같아요.


거의 없을 겁니다. 콜롬비아 사람들도 잘 모르는데요. 저는 모칠라를 보면서 ‘여기에는 틀림없이 상징적인 의미가 있을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똑같은 무늬들이 다양하게 응용이 돼서 만들어지는데, 아무 의미도 없는 걸 수백 년 동안 뜨개질하며 후대에 전할 것 같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물론 새로운 것들이 추가되기는 하겠지만요. 그래서 이건 틀림없이 어떤 의미가 있는 거라고 생각을 하고 조사를 했습니다. 인문학자의 호기심에 궁금한 것은 못 참는 개인적인 성격 탓에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구할 수 있는 모든 자료를 다 읽었습니다. 미국에서 공부하는 딸의 아이디로 인터넷 도서관에 들어가 영어로 된 모든 자료를 구해서 읽고, 스페인어로 된 건 대사관에 번역을 요청했습니다. 또 와유와 관련 된 책들도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다 공부했습니다.

 

‘시에나 밀러 모칠라’의 패턴은 흰 개미를 형상화한 거라고요.


룰루무야(Rulumuya) 패턴은 흰 개미라는 뜻입니다. 하얀 색이 나타내는 순수함과 함께 자신이 속한 그룹에 대한 충성을 나타내지요. 와유족에 전해지는 전설을 보면 흰개미가 신화적인 존재이고, 다 만들어 놓은 모칠라를 갉아먹어요. 그런데 와유족의 해석이 재미나고 감동적입니다. 흰 개미는 모칠라가 망가졌을 때 다시 고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 존재라고 해석하는 겁니다. 굉장히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거지요. 그리고 자연에 대한 완벽한 순종입니다. 그들이 사는 집도 마찬가지예요. 저는 그들이 사는 집이 그들의 사고관을 그대로 반영해 준다고 봅니다. 집을 짓기 위해서 나무를 베는 게 아니라 떨어진 나뭇가지를 주워서 만들어요. 말라 죽은 선인장의 속을 사용하기도 하고요. 그들의 세계관과 사고관은 자연에의 완벽한 순응입니다. 그들에게는 자연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완벽한 순응의 대상인 거예요.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문학자에서 패션전문가로 변모하신 지 10년이 지났습니다. 전혀 다른 분야에서 큰 성공을 이루셨는데, 그 비결이 궁금합니다.


저를 10년 동안 움직이게 한 것은 재능 있는 사람을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입니다. 저는 좋은 옷을 볼 줄 알고, 어디를 어떻게 변경하면 더 잘 팔리겠다는 건 잘 알지만,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무언가를 만들어 낼 능력은 없습니다. 한 마디로, 응용력은 있으나, 창의력은 없는 거지요(웃음). 그런데 세상에는 창의력도 있고, 세계관도 분명하고 옷도 사랑하고 잘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어떻게 어디에 팔아야 할 줄 모르는 거지요. 그리고 어떤 아이템을 고객이 좋아하는지 잘 모르는 거지요. 그런데 저는 그들이 잘 모르는 그 부분들을 잘 알고 있는 것이고, 그런 것들이 저를 움직이게 하는 겁니다. 결국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이고, 또 다시 인문학인 셈입니다. 제가 봤을 때는 그래요.

 

『모칠라 스토리』역시 “인문학적 호기심”에서 만들어진 거라고 할 수 있겠죠.


처음에 과히라 사막에 가게 된 것 자체만 봐도 그렇죠. 인문학적 호기심이 없었다면 그냥 리오아차(과히라 사막과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작은 시골 마을)에 가서 모칠라를 사왔겠지요. 아니, 리오아차까지 가지도 않았을 거예요. 다른 사람들처럼 한국에서 홀 세일러를 찾아서 주문했을 겁니다. 그렇게 하지 않은 건 궁금했기 때문이고, 과히라 사막에 가서 어떤 사람들이 어떤 여건에서 어떤 방식으로 모칠라를 만드는지 직접 보고 온 겁니다. 그러고 나니까 더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인문학자인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더 없을까’를 생각하다가 모칠라에 대해서 조금 더 알리기로 한 겁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모칠라에 더 관심을 갖고, 더 좋아할 수 있잖아요. 저는 그걸로 만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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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칠라는 ‘착한 소비’의 실천


패션계는 다른 어떤 분야보다 유행에 민감하고 변화 속도가 빠르잖아요. 사람들이 열광할 만한 아이템을 미리 알아보는 감각도 있어야 하고요. 그를 위해서 노력하시는 부분이 있나요?


감이라는 건 어느 정도 노력해도 되기는 합니다. 하지만 더 큰 건 사실은 그릇의 차이인 것 같습니다. 제가 바이어들을 많이 만나잖아요. 다들 물건을 잘 골라서 삽니다. 그런데 물건을 잘 고르는 사람은 좋은 바이어이긴 하지만, 브랜딩을 할 수 있는 브랜드 매니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그건 인성이요, 사람의 크기입니다. 몇 년 만 가르치면 대부분의 경우 바잉에 대한 감은 가르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브랜드를 어떻게 전개할 것인지, 이걸 과연 한국 시장으로 가져와야 할 것이지, 한국 시장에서 어떤 포지셔닝으로 가져 갈 것인지, 또 이 브랜드를 어느 누구 보다 사랑할 수 있는 지 등 브랜딩에 대한 것은 바잉보다 훨씬 더 큰 책임이 따르는 것이기도 하고, 기본적으로 그릇의 크기가 돼야 가능한 거라고 봅니다. 그건 가르치기가 힘든 부분입니다. 브랜드가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지, 앞으로 얼마나 성장할 것인지, 그런 것들을 알아보는 데에는 인문학적인 힘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브랜드 비하인드를 보고 디자이너의 근성과 세계관을 보는 힘이 필요해요. 그래서 패션에 대한 아무런 전문지식도 없는 인문학자인 제가 좋은 브랜드들을 독점으로 가져올 수 있었고, 그래서 지금껏 잘 버틴 것 같습니다.

 

인문학적인 토양이 패션 MD로 일하시는 데에 도움이 된 거네요.


지금까지 1세대, 2세대 멀티숍이 다 실패했습니다. 개인 멀티숍도 그렇고, 심지어 대기업이 운영한 멀티숍들도 문을 닫았습니다. 벌써 3세대 멀티숍이 등장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대기업이 운영하는 회사가 아닌데도 살아남은 곳은 저희가 유일할 겁니다. 저희가 다른 곳보다 돈이 많아서가 아닙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인문학적인 소양이 알게 모르게 도움이 많이 된 것 같습니다. 제가 책을 엄청 많이 읽거든요. 그게 당장은 필요가 없는 것 같은데 저로 하여금 스트레스를 이기는 힘이 되어주기도 하고, 또 생각하는 힘,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걸 보게 하는 힘을 주기도 한 것 같습니다.

 

낮에는 패션전문가, 새벽에는 인문학자로 살고 계신데요. 두 개의 시간이 서로 보완해 주는 측면도 있겠어요.


제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건 공부입니다. 요리나 운전을 포함해 다른 건 다 못합니다(웃음). 사실 패션계는 전쟁터입니다. 그 안에서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에 정말 처절하고 힘들어요. 저희는 회사가 크지 않기 때문에 제가 영업도 맡아서 하고 있습니다. 혼자서 책 읽고 공부하는 것 좋아하는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같은 제겐 그 스트레스가 더 크지요. 물론 패션계에 있는 좋은 분들과 만나 얘기 할 때는 2-3시간도 금방 가고, 그 때는 내가 언제 히키코모리였나 싶지요.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 중 하나는 운동이고, 운동 후에도 안 될 때는 공부를 합니다. 스트레스 받을 때는 공부가 엄청 잘 돼요(웃음). 공부를 열심히 하거나 글을 쓰거나 번역을 하는 데 빠져 있다 보면 카타르시스의 순간이 찾아 옵니다.  만약에 제가 인문학자가 아니었으면 패션계에서 10년이 아니라 3년도 못 버텼을 거예요. 오히려 저한테는 공부를 하는 게 굉장히 감성적인 부분입니다. 저의 지적 욕구를 채워 주고, 낮 동안의 어지러웠던 일상사로부터 마음을 정화시켜주거든요. 저한테는 없어서는 안 되는 부분입니다. 

 

자신의 취향과 잘 맞는 편집숍을 찾으면, 한 곳에서 여러 브랜드 제품을 구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그만큼 편집숍에는 바이어의 취향이 큰 영향을 미치는데요. ‘스페이스 눌’이 지향하는 스타일은 어떤 건가요?


‘스페이스 눌’은 ‘일부러 멋 부린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 편안하고 쉬크한’ 컨셉이라고 할 수 있어요. 굉장히 고급스럽고요. 일단 소재는 우리나라 최고입니다. 제 피부가 굉장히 예민해서 제가 다 입어봅니다. 그리고 제가 브랜드를 보는 눈이 있는 건지, 처음 바잉을 해서 1~2년 정도 판매하다 보면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다 관심을 가집니다. 해외에서의 반응도 덩달아 뜨거워 지고요. 아마 너무 많이 사서 그럴 거예요(웃음). 제가 대학생 때부터 샀던 게 딱 두 가지입니다.  책과 옷! 그게 알게 모르게 도움이 된 거지요. 저희는 약간 어른스럽고, 몸매를 드러내지 않고, 편안하게 떨어지는 실루엣이면서, 쉬크한 옷들을 판매합니다. 너무 과하지 않으면서도 일반적인 옷처럼 보이지는 않는 거지요. 그 미묘한 차이가 굉장히 중요해요. 그게 어려운 거예요.

 

『패션 MD』의 두 번째 책을 준비하고 계신다고요.


총 4권의 시리즈로 나올 것 같습니다. 첫 책이 ‘바잉 편’이었는데 지금 쓰고 있는 두 번째 책이 ‘브랜드 편’이에요. 수많은 브랜드의 홍수 속에서 옥석을 가려내는 것과 또 브랜딩의 노하우를 알려드리려 합니다. 세 번째 책에서는 전 세계의 핫한 쇼룸들에 대해서 쓸 예정이에요. 프로페셔널 바이어들이 밥줄 떨어진다며, 쓰지 말라고 협박(!)하는 책입니다. 마지막 이야기는 『패션 MD』에서도 짧게 말씀드렸던 ‘민족성에 따른 국가별 협상법’이 될 거고요. 그 부분이야말로 인문학자가 아니면 도저히 써낼 수 없는 거지요. 인문학이라는 게 실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거든요. 어찌됐든 패션도 ‘브랜드와 브랜드의 관계’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요. 제가 독점적으로 쇼룸을 전개하고 있는 브랜드들과 계속 관계를 이어올 수 있는 것도 ‘이 사람이라면 내가 믿을 수 있다’는 신뢰를 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대기업들이 수십 배의 미니멈을 오퍼하며, 계약을 하자고 해도 저하고 계속 거래를 하는 거예요. 물론 사람됨도 이유이겠지만, 저의 사람됨의 굉장히 많은 부분이 인문학적 배경에서 비롯된 것 아닐까 싶습니다.

 

번역 중이신 책도 곧 출간되나요?


제가 도스토예프스키 전집을 계약했기 때문에 번역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대작들은 거의 다 나왔고, 도스토예프스키 단편과 소련의 작가 불가코프의 작품을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 작업이 끝나면 제가 편역을 해놨던 도스토예프스키 장편을 완역본으로 출간하려고 합니다. 그게 가장 큰 작업으로 남아있습니다. 세계적으로 도스토예프스키 장편전집은 많지만, 그 전집을 한 사람이 다 번역한 경우가 없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모든 작품을 굉장히 잘 알아야 가능한 일이고, 또 시간과 노력이 아주 많이 걸리는 작업입니다. 그래서 전집이 나와도 각각의 작품을 다 다른 사람이 번역해서, 개개 작품의 톤이 다 다릅니다. 저는 편역 작업을 통해,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을 수 차례씩 읽었고, 두꺼운 해설을 쓰며, 작품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기 때문에 문제는 없을 거라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으세요?


『모칠라 스토리』와 모칠라에 대한 많은 관심과 사랑을 부탁드립니다. 현명한 소비, 착한 소비의 실천이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모칠라 스토리김정아 저 | 알에이치코리아(RHK)
2016년 여름, 국내 패션업계를 달궜던 아주 독특한 패턴의 가방이 있다. 강렬한 실의 색감과 어우러진 패턴은 단숨에 핫한 아이템을 찾아다니는 패션 피플들의 잇(it)아이템이 되었다. ‘모칠라’라는 패턴만큼이나 새로운 어감을 지닌 이 가방은 전통부족 와유족의 손끝에서 만들어지고 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거미 “작사에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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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최고 시청률을 올린 드라마 <태양의 후예>와 하반기의 화제작 <구르미 그린 달빛>의 OST를 동시 소화한 거미는 「You’re my everything」과 「구르미 그린 달빛」으로 원투 스트레이트 히트를 기록했다. “애절한 혹은 낭만적 러브 신을 타고 흐르기에 더할 나위가 없는 노래”라는 찬사를 받을 만큼 그의 발라드 가창은 농익을 만큼 농익었다. 중견에 들어선 근래 “전보다 노래가 더 편해졌다”는 호평과 함께 존재감도 급등했다. 이 노래들로 거미는 <서울드라마 어워즈>, <아시아 아티스트 어워즈>, <골든디스크 어워즈>, <서울가요대상>의 OST 부문상을 휩쓸었다.

 

‘OST 여왕’이란 타이틀을 얻었지만 거미는 나아가 ‘콘서트 퀸’의 등극을 요구한다. 공연에서도 강한 위상을 자랑, 얼마 전 끝난 단독 전국투어도 전회 매진의 대성황을 이뤘다. 그는 그러나 드라마와 영화의 사운드트랙이 아닌, 전처럼 음원(혹은 음반) 단독으로 가수의 입지를 상승시키기가 어렵게 된 현실을 안타까워했다. 소속사를 바꾸고 2014년 낸 곡 「사랑했으니..됐어」는 4년 만의 미니앨범이었고 그 이후로는 미니든 풀이든 아예 앨범을 내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거미는 대뜸 “곡이 아까워서”라는 이유를 댔다.

 

휘청거린 음악계 현실에 의해 미니앨범을 낼 무렵 노래에 대한 깊은 회의에 시달렸다고 고백한 그는 반갑게도 상반기에 9년 만이 될, 정규 5집을 공개하리라는 청사진도 밝혔다. 소속사 사무실에서 가진, 역시 9년 만의 이즘 인터뷰에서 거미의 목소리는 선하고 부드러웠지만 송곳 같은 날카로움과 묵직함도 잃지 않았다. “제가 살아온 인생사가 그리 길진 않지만 노래를 하지 않으면 안 되게 살아온 것 같아요. 그러니까 계속 노래 불러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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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래 활발한 콘서트는 중심이 공연으로 이동한 것을 말해주는 것인가.


1년간 드라마 OST로 대중의 사랑을 많이 받았어요. 1년간 왕성하게 활동을 했는데 아무래도 중심이 OST가 되다 보니 음악적으로는 아쉬움이 있었지요. 공연은 적잖이 그런 아쉬움을 해소하는 장이 됐어요.

 

연속 두 차례의 전국 투어였다. 기분이 좋아 보인다.


너무 좋았습니다. 제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진짜 신기하게 전부 매진되었죠. 그것도 2번에 걸친 전국 투어 전회 매진이라서 깜짝 놀랐어요. (소속사 관계자는 옆에서 유효표율 100%인 곳도 많았다고 전한다) 더 기쁜 것은 연령대도 다양해졌다는 거예요. 10대부터 50-60대까지 거의 전(全) 세대였어요. 물론 제가 이제 나이가 든 이유도 있었겠지만.... (웃음) 그렇다고 공연에 포커스를 두는 것은 아닙니다. 전 소속사 YG 때는 활동이 좀 뜸했잖아요. 앨범도 몇 년 만에 한번 나오고 이랬고, 공연이든 뭐든 활동을 좀 자제시키는 편이었죠. 양현석 사장님은 가수들이 반복 노출에 의해 소모되는 것을 싫어했어요.

 

라이브에 쏟아보니 가수로서 뭐가 남든가.


공연을 하면서 계속 배워요. 공연이 공부가 가장 많이 됩니다. 다행히 노하우가 많이 생겨서 예전에는 이렇게 연속으로 공연하면 목이 상했을 텐데 지금은 가면 갈수록 목이 좀 더 건강해지는 방법도 찾았고요. 공연이 신나요.

 

목이 나아진 결정적 계기가 있었나.


2003년 데뷔하자마자 성대 결절이 걸려 위기를 맞았죠. 성대 결절이란 게 가수한테는 치명타죠. 그때 극복을 위한 발성을 많이 연구하고 공부했어요. 2집 「기억상실」 내기 전이었죠. 그 이후에도 계속 연구를 했죠.

 

성대 결절은 거미의 노래 탓인가.


노래의 피치 탓도 있고, 무리한 다이어트의 영향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연습할 때는 전혀 영향이 없었는데 방송하고 이러다 보니 몸에 힘이 아예 안 들어가는 거예요. 그런 적이 없었는데 몸은 힘이 하나도 없고 노래는 높다 보니 목청을 무리하게 많이 쓰게 됐어요. 활동을 하게 되면 리허설을 아침에 해야 하니 잘 시간도 많이 없었고. 제가 잘 몰랐던 거죠.

 

미니앨범과 디지털 싱글만이 있지, 풀 앨범이라고 할 작업은 「미안해요」의 2008년 이후 9년간 깜깜이다.  5집 앨범이 나오지 않고 있는 이유가 뭔가.


제일 큰 이유는 ‘곡이 아까워서’입니다. 정규 앨범을 만들 때 사실 타이틀곡 말고도 딴 수록 곡에도 무진 신경을 기울이는데 그래도 예전 앨범이 팔리던 시기에는 고루 사랑을 받았잖아요. 지금은 미는 곡 외에는 관심이 없죠. 정말 스튜디오에서 막대한 산고(産苦)를 겪으며 열서너 곡을 만드는데 한두 곡 빼고는 묻혀버리죠. 이 이유가 커요. 한동안 정신적으로 힘든 시기를 겪었어요. 이 회사 들어오고 첫 번째 미니 앨범 내기 전인가 후쯤에, 그런 심적 고통은 가수가 되고 처음이었죠. 성대 결절로 목이 아프고 할 때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은 없는데 “노래를 계속해야 하나” 하는 회의가 들었어요.

 

그래도 앨범이 갖는 가치가 있지 않나.


제 욕심으로는 지금쯤은 5집 정규 앨범을 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주변에선 말리는 거예요. 다들 같은 생각인 거죠.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곡이 아깝지 않냐”, “차라리 미니 앨범이든 싱글이든 나눠서 지속적으로 하는 게 어떤가” 하는 조언을 하지만 그래도 해야죠. 지금 준비 중이에요.

 

앨범 활동 안 하다가 ‘OST 가수’ 소리 듣는 것 아닌가.


실제로 요즘은 그런 얘기를 듣기도 하죠. (웃음)

 

OST에 참여하는 것과 정규든 미니든 자기 음원을 만드는 것에 사고의 차이가 있을 것 같다.


당연히 있죠. 말씀하신 대로 ‘참여’와 ‘주도’의 차이랄까요. 책임감이 다르지요. 앨범이나 싱글을 제 이름으로 할 때는 책임감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드라마 OST는 스토리가 딱 있으니 거기에 맞게 감정을 실어주고 도움을 주면 되는 거지, 제가 이끌어가는 건 아니죠. 확실히 책임감이나 부담감이 덜합니다. 반면 앨범은 이야기를 제가 만들어야 하고 거미라는 가수의 타이틀에 누가 되면 안 되는 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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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상으로 볼 때 거미라는 가수에 대한 대중의 고정관념은 소울 풍이건 알앤비 풍이건 그 풍에 기초한 전형적인 발라드에 있다. 물론 다양한 스타일에 걸쳐있지만 타이틀곡이 되고 히트를 기록한 곡은 대부분 발라드들이다. 근데 「미안해요」부터 EDM스러운 것도 등장하고, 2010년, 2013년 앨범을 들었을 때 느낌은 스타일의 다양화 실험 속에서도 여전히 선율의 흐름은 이전과 다르지 않다. 「Because of you」가 대표적이지 않나. 리듬에 변화를 주되 발라드 패턴을 유지하는 접근이랄까. 중견이 되어가는 상태에서 장르적 고민이 없는지.


장르를 가리는 편은 결코 아닙니다. 히트가 되고 활동했던 곡들은 발라드에 기초를 뒀지만 저와 비슷한 장르의 음악을 하는 가수들과 비교를 보면 제가 제일 다양한 장르에 걸쳐있다고 봅니다. 「미안해요」도 그렇고 「남자라서」도 그렇고. 사실 「기억상실」, 「어른아이」도 그때 당시에는 없는 스타일이지 않았나요. 「사랑은 없다」도 그랬고. 모든 장르에 가능성을 열어두고는 있는데 저에게 어울리지 않는 장르는 시도하지 않으려는 생각은 있습니다. 갑자기 록을 한다든가 댄스 음악을 한다든가 그런 거만 아니라면.

 

그래도 「미안해요」에는 춤추지 않았나.


춤을 추긴 했는데 음악 자체는 요즘 어린 친구들의 댄스랑은 다르죠. 그런 건 그 친구들이 잘하지, 제가 해봤자 곡의 맛이 살지도 않고. 그렇게 약간 춤을 춰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느낄 수밖에 없는 건 저 한 사람이 계속 부르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봐요.

 

잠은 잘 자는 편인가.


지금은 많이 좋아졌어요. 예전에 <나는 가수다> 나갈 때는 부담이 되고, 그러면 잠을 못 자고 그랬어요.

 

2003년 데뷔 앨범의 수록곡 「친구라도 될 걸 그랬어」가 대중과 접점을 마련하는 결정적 계기가 된 것 같다. 다수의 사람들이 거미 하면 가장 먼저 그 곡을 떠올린다.


그래요. 제 주변에서도 그렇게 얘기합니다. 사실 데뷔 앨범에서는 「그대 돌아오면」으로 활동을 했거든요. 「친구라도 될 걸 그랬어」는 아까 말씀드린 대로 목 때문에 활동을 못했는데도 오히려 그렇게 됐어요. 제 노래의 대중적 정체성이랄까요, 그게 구현이 된 노래라서 그런 것 같습니다.

 

당시와 지금이 뭐가 달라졌기에 OST 대박 넘버 「구르미 그린 달빛」과 「You are my everything」이 예전 거미보다 노래를 더 잘한다는 생각이 드는 걸까. 성숙해진 것인지, 노래를 더 맛있게 처리하는 면에서의 성장이 이루어진 것인지.


두 가지 다인 것 같아요. 저의 예전 노래들을 들으면서 발성을 연구해보니 아쉬운 부분들이 발견되더라구요. 물론 슬픈 노래고 이별 노래니까 절규하고 처절한 감정을 표현해야지요. 전에는 막 울고, 눈물만 나고, 붙잡고 싶고 미련이 들고 그런 감정들이었죠. 어릴 때 제 감정이 그랬던 것 같아요. 지금은 사랑, 이별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좀 달라진 것 같습니다. 다스린다고 해야 하나요. 그리고 그걸 표현하는 소리를 연구하게 된 것도 있구요.

 

전환의 계기가 있다면.


제가 싫었어요. 들으면서 힘들더라고요. 들으면서 해소가 되고 카타르시스가 느껴져야 하는데, 그게 아닌 거예요. 물론 고음에서 절규하는 건 좋고 그렇게 느끼실 수 있겠지만, 저는 뭔가 시원한 느낌은 아닌 겁니다. 계속 소리가 걸리는 거예요.

 

9년 전인 2008년 이즘 인터뷰에서 거미 노래는 테크닉 위주라는 인상을 준다는 질문에 “나는 그냥 부르는데 듣는 사람에게는 테크닉으로 들린다”며 그게 고민이라는 얘기를 한 바 있다. 기억나는지. 이제 팬들이 테크닉 아닌 자연스러움을 포착한 걸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애드리브가 많은 노래를 했었고 지금은 멜로디가 중심이 되는 노래가 많아 더 편안하게 들으시는 것 같네요. 톤이나 표현 감성의 변화겠지요. 부르는 제 입장에서 좀 더 편안해진 것은 사실입니다. 있든 없든 테크닉 부분은 아닌 것 같습니다.

 

「구르미 그린 달빛」을 부를 때 하고 「어른아이」 부를 때 하고 차이는 없다?


그렇죠. 전혀 없어요. 단지 톤의 차이죠. 「구르미 그린 달빛」도 「어른아이」만큼 탑 노트가 높은데, 「구르미 그린 달빛」은 오히려 계속 위에서 노는 노래입니다. 근데 「구르미 그린 달빛」이 더 편하게 들리는 건 발성이나 톤의 차이지요.

 

백지영도 그랬고 태연도 그렇고 드라마 OST를 통해 커리어점프를 획득하는 경우가 많다. OST의 강세에 대한 생각은.


저는 긍정적으로 보는 편이에요. 이렇게라도 음악을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늘어나면.... 요즘 우리 음악이 다양해지긴 했어요. 어떤 가수라서 잘 되고 이런 것도 없어진 것 같고. 그래도 좋은 음악이 오래 사랑받았으면 하는 마음이지만 그건 아직 아닌 것 같아요. 너무 빨리 지나가버려요. 근데 드라마랑 영상이 동반되면 사람들이 조금 더 오래 기억을 하는 것 같습니다. 원래 음악의 힘이 그런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음악을 즐겨 듣던 때의 날씨, 같이 있었던 사람.. 이런 것들을 동시에 기억하게 해주는 게 음악인데, 요즘은 그런 기억을 같이 갖고 있는 음악이 없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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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에 데뷔해서 14년 동안 활동하면서 음악적으로 가장 뿌듯한 점이 있다면 뭔지. 세 가지만 꼽아 달라.


그걸 최근 들어 느껴요. 먼저 가수로서 지금도 뛰고 있다는 점. 아직 방송에서 노래하고, 공연하는 현재진행형 가수라는 것이 가장 감사한 일이죠. 다음으로는 좀 전에 얘기했지만 전국투어를 해서 많은 관객들이 찾아주셨다는 것, 대단한 기쁨이었어요.

 

두 번째 전국투어는 입소문이 작동하면서 더 성과를 거두었다는 말을 들었다. 공연은 어떤 메뉴로 구성하는지.


저는 이것저것 다 해요. (웃음) 공연은 무조건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아무리 가수가 노래를 잘해도 관객들이 알지 못하는 노래만 연속으로 하거나 느린 노래만 쭉 하거나 하면 진짜 재미가 없지 않나요. 그래서 재미와 흥을 부여하는 구성에 최선을 다해요. 코너도 만들고 널리 알려진 곡을 커버하기도 하고. 제가 음악 예능 프로를 많이 했잖아요. 그래서 커버 곡도 많아요. 대신 히트곡은 편곡을 하지 않고 오리지널 그대로 하려고 합니다.

 

공연의 오프닝과 마지막 곡은 주로 어떤 곡을 하는지 궁금하다.


매번 달라요. 제게 의미가 있거나 팬들에게 의미가 있는 그런 노래를 할 때도 있고, 공연이 끝나고 관객들의 마음에 뭐가 하나 남아서 돌아가셨으면 하는데 제 노래는 그러기엔 이별 노래가 너무 많아서.... (웃음) 앞으로는 다른 인생 얘기를 담은 노래를 만들 예정인데, 그래서 엔딩 곡은 제 노래가 아니더라도 같이 공감할 수 있는 노래를 하려고 합니다. 어떨 때는 감동을 드리고 싶기도 하고. 이번 같은 경우는 전인권 선배님의 「걱정 말아요, 그대」를 했죠. 하지만 신나게 끝날 때도 있습니다.

 

조금 전에 인생 노래를 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 거미도 노래의 메시지가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사랑과 이별에서 벗어나, 예를 들어 아바(ABBA)의 「Thank you for the music」 처럼 음악에 바치는 헌사 같은 노래들이 좋지 않을까. 그렇기 위해서는 가사를 직접 써야 하지 않나.


지금까지 가사를 계속 써 왔죠. 앨범에 많이 담기도 했어요. 무슨 말씀하시는지 알아요, 사실 거기에 대한 고민은 지속적으로 해왔어요. 하지만 저는 기본적으로 “만드는 것보단 (만들어진 것을) 표현하는 것” 쪽인 것 같아요. 거기에 더 탤런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어차피 작사가와 교감을 나누지 않나.


그렇긴 하죠. 교감을 통해서 가능한 한 제 얘기를 담죠. 자기 얘기를 하는 것은 중요해요. 안 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만 욕심을 부리려고 하지 않는다는 거죠.

 

뿌듯한 것 세 번째를 아직 얘기하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저를 다시 찾아주셨잖아요. 영광이지요. 9년 전, 그때도 영광으로 여겼어요. 그래도 신인이라고 생각했던 때니까요. 이번에도 연락을 주셨다는 말에 감사했어요.

 

이즘이 감사드리는 게 맞다. 반대로 고통스러웠던 순간도 꼽아 달라.


미리 얘기했지만 성대 결절 때가 가장 큰 시련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가장 고마운 시기였기도 합니다. 당시는 진짜 너무 힘들었어요. 저랑 같이 데뷔했던 팀들이 다 잘 되기도 했고요. 저는 반응이 없지 않았지만 제대로 활동을 해보지도 못했으니까요. 일단 소리가 안 나오니까 공포 그 자체였죠. 어떻게 살아야 하나 싶었어요. 그다음은 무대에 많이 서지 못했을 때. YG 때, 컨디션도 좋고 한참 활동을 하고 싶은데 못할 때가 있었죠. 가수로서 할 일을 못하고 있는 기분이 들기도 했어요.


처음엔 제 몸의 문제로, 그다음으로는 상황에 의해 힘들었다면 최근에는 음악시장의 흐름 때문에 슬럼프를 겪었죠. 왜냐면 이건 생계와도 관련된 문제니까요. 지속적 외면에다 유통기한이 너무 짧아지는 현실을 어떻게 넘어서야 하나 하면서 차라리 다른 수입원을 만들고 음악을 부가적으로 해야 하지 않나 하는 고민도 심각하게 했죠.

 

트레이닝 센터나 혹은 학원 같은 미래 계획은 없나. 노래는 하늘이 주는 거니까 보컬 훈련 같은 것 말고 지망생들에게 인생 이야기를 들려주는 공간 같은 게 좋을 듯한데..


지금도 (트레이닝) 제안이 많이 들어오는데 안 하고 있는 이유가 요즘은 다들 가수를 하려고 하는데 아시겠지만 진짜 가수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제한된 것 아닌가요. 그게 눈에 보이는데 헛된 희망을 주는 것 같아서 그게 힘들어서 못하겠어요. 그렇지만 언젠가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You are my everything」, 「구르미 그린 달빛」등 최근 들어 OST로 거미를 많이 만나고 있는데 앞으로도 이 접근법으로 가는 건가


아닙니다. 일단 올해 상반기 안에 앨범을 내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현재 작업 중이에요. 새로운 발라드 스타일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정규로 치면 이번이 5집이 되겠죠. 아무튼 앨범 나오기 전에는 싱글이나 OST를 좀 자제하려고 합니다. 그렇더라도 또 좋은 드라마 음악 제의나 프로그램 섭외가 들어오면 할 수도 있죠. 다른 건 하지 않겠다고 분명히 선을 긋는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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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미가 다녔던 동덕여대의 스승 이정선 선생은 거미를 이렇게 기억한다. “아주 성실했지. 활동 스케줄과 겹치지 않도록 수업시간을 짰고 가능한 한 수업에 빠지지 않았어.” 원래 노래도 잘했지만 거기에 성실이 더해지면서 급속도로 실력을 늘려갔다는 설명이었다. “성실은 재능을 불리지! 그것을 이길 사람은 없어.” 거미의 카드는 그리 예가 많지 않은 ‘재능’과 ‘성실’의 놀라운 앙상블이다. 그것으로 그는 성대 결절도, 가수 생활에 대한 회의도 극복하고 이전과 차별화한 스타일로 뻗어가는 단계를 마련했을 것이다. 인터뷰 중에 그가 가장 입에 자주 올린 표현이 ‘공부가 된다’, ‘연구가 부족했다’와 같은 말이었다.

 

노래를 본인이 잘한다는 느낌이 스스로 처음 들었던 것이 언제인가.


아기 때였던 것 같아요. 기억이 안 지만 유아 때 엄마 말씀에 따르면 말을 잘 못할 때부터 노래를 했다고 해요. 엄마 쪽을 많이 물려받은 것 같습니다. (어머니가 연예 쪽과 관계가 있었냐고 묻자) 전혀 아니에요. 외할아버지가 교장 선생님이셔서 엄하셨대요. 악기를 들고 들어오면 부수기도 하셨다고 들었어요. (웃음)

 

초등학교 때도 특별히 노래 활동을 한 것이 있나.


초등학교 때는 피아노를 쳤어요. 6살부터 쳤는데 학원에서 연주회 같은 걸 하면 선생님이 항상 마지막에 특별 무대로 노래를 시키셨죠. 그때는 가수가 될 생각은 하지 못했어요. 어렸을 때는 피아니스트가 되려는 꿈을 가졌죠. 피아노를 고등학교 때까지 쳤어요. 그때 미국으로 유학을 가려고 준비를 했죠. 그때도 집안 사정이 좋아서 피아노를 배웠던 것은 아니고 봐주던 선생님이 좋게 봐주셔서 공짜로 배우다시피 했는데, 그 선생님도 당시에 대학생이어서 같이 유학을 가려다가 둘 다 사정이 너무 어려워져서. (웃음) 이후 어떻게 해야 하나 방황하다가 노래를 하게 된 거예요. 고등학교 때 축제에서 노래하는 걸 보시고 오디션 볼 생각이 있냐는 제의를 받았죠. 지금 그분이 B1A4 사장님이세요. (웃음) 제가 노래하는 걸 보시고 제 친구에게 연결해달라고 하셨죠. 당시엔 사장님은 아니고 캐스팅 매니저셨는데, 아직도 연락은 합니다.

 

노래가 되는 이유 중 하나가 거미가 선하고 착한 성격의 소유자라서가 아닐까.


그건 아닙니다. (웃음) 착한 사람이고 싶기는 하지만요.

 

2008년 인터뷰에서 「기억상실」이 자신을 대표하는 노래라고 했다. 그 뒤로도 변함이 없는지.


여전히 그 곡이에요. 그 이후에도 「기억상실」 같은 소울을 제대로 표현한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 노래가 가장 제 스타일이라고 여깁니다. 김도훈 작곡가의 곡인데 그 뒤로도 그분의 곡을 자주 불렀죠. 「사랑했으니.. 됐어」도 그렇고요.

 

부르기 어려운 노래가 있다면.


「그대 돌아오면」. 지금은 하나도 안 힘든데 (웃음) 당시 녹음할 때부터 걸리는 부분들이 있었고, 그걸 완벽하게 마스터했어야 하는데 그렇지를 못했죠. 그러다 보니 이후 라이브 하면서도 트라우마처럼 자꾸 떠올랐죠. 연구가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코러스의 피치가 기본적으로 다 높다 보니 사람들이 그런 전개를 많이 기대한다. 높이에 부담이 적으면서 스타일을 살릴 수 있는 ‘포크 발라드’를 시도해보는 게 어떨까.


고려 중이에요.

 

데뷔 당시에는 거미가 독보적이었지만, 지금은 후배 알앤비와 소울 보컬리스트들이 즐비하다. 혹시 눈여겨보고 있는 후배 가수가 있나.


이하이가 잘하는 것 같아요, 에일리도 잘하고. 갖고 있는 게 많아서 계속 발전할 친구들이에요. 자이언티와 크러쉬도 인상적이고.

 

자신의 앨범 중 어떤 게 맘에 드나.


다 좋지만 1집 <Like Them>과 2집 <It’s Different>에 좋은 노래들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알려진 곡도 많고.

 

1, 2집이 좋은 앨범이긴 한데 희생이 만만치 않았다. 「미안해요」의 경우 리듬과 보컬이 제대로 착 붙은 노래는 아니라는 느낌은 들지만 그래도 「미안해요」, 「남자라서」처럼 EDM 리듬과 힙합과 잘 결합한 스타일을 바라는 팬들도 있지 않을까.


그래요. 지금 이번 앨범을 그렇게 만들고 있습니다. (웃음)

 

팝이든 가요든 영향을 줬던 음반 3장 정도를 꼽는다면.


어릴 때 가장 좋아했던 가수는 김건모. 진짜 좋아했어요. 음반으로 치면 김건모 3집이죠. 서태지와 아이들도 당연 많이 들었죠. 서태지와 아이들은 1, 2집. 외국 음악을 커서 들었어요. 예민한 학창시절에 우리 음악을 더 많이 들었죠. 다 엄마의 영향이지만 임희숙, 「진정 난 몰랐네」와 「내 하나의 사랑은 가고」의 임희숙 선생님 그리고 패티김 선생님의 노래를 많이 들었어요. 왜 이런 게 좋은 지도 모르고 들었던 같습니다. 분명 트로트도 듣고 댄스도 들었을 텐데 그런 쪽의 음악들이 기억에 남아요. 한국의 소울이었던 것 같습니다.

 

최근에 즐겨 듣는 음악이 있다면.


어쩔 수 없이 흐름을 읽어야 하니까 최신 팝을 자주 듣게 됩니다. 사실 공부하듯 듣는데, 그 이후에는 다시 옛날 노래로 돌아가게 돼요. 팝을 들어도 그래요. 로린 힐(Lauryn Hill)을 너무 좋아하는데 앨범이 너무 안 나오잖아요. 팬들이 제가 앨범을 안내면 이런 마음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요. 요즘 것을 챙겨야 하는 걸 알지만 솔직히 재미는 없어요.

 

지난해 <슈퍼스타K> 심사위원으로도 활약했다. 가수 활동과는 여러 면에서 달랐을 것 같은데 어땠나.


섭외 왔을 때 영광이란 생각을 먼저 했죠. 프로그램의 인기가 예전보단 식었어도 그래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오디션 프로그램에 심사위원 자격으로 나간다는 게 내가 열심히 잘해오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한편으로는 이것도 느꼈죠. 이렇게 노래를 하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많은데 이 사람들이 다 가수 활동을 할 수 없다는 것을요. 안타깝죠. 진짜 잘 하는 친구들에게는 좀 더 잘 할 수 있는 길을 알려주고 싶고 어떻게든 빨리 같이 해보고 싶고 한데, 누가 봐도 노래한다고 되는 게 아닌 친구들이 계속 이 꿈만 가지고 있으면 어떡하나, 꼭 노래 말고도 음악을 할 수 있는 길은 많지 않나, 그런 걸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했죠.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기쁜 순간도, 속상한 순간도 있었어요.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또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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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가 거미에게는 어떤 의미인가.


운명 같은 것. 제가 어떻게 할 수가 없는 운명이요. 지금도 마찬가지인데, 노래하려고 태어난 것 같은. 제가 살아온 인생사가 그리 길진 않지만 노래를 하지 않으면 안 되게 살아온 것 같아요. 그러니까 계속 노래 불러야죠.

 

사진 제공: CJeS 엔터테인먼트
인터뷰: 임진모, 정민재, 현민형
정리: 임진모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강병융 “읽어보면 화는 좀 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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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강병융에게는 두 가지 맛이 있다. ‘병융맛’과 ‘태희아빠맛’. 전작 에세이 『사랑해도 너무 사랑해』, 『아내를 닮은 도시』를 ‘태희아빠맛’으로 썼다면, 신작 소설집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는 완벽히 ‘병융맛’으로 쓴 작품이다. 만약 이 소설이 ‘문화계 블랙리스트’ 명단이 만들어지기 전에 발표됐다면, 필히 작가의 이름은 볼드체로 기록됐을지 모른다.

 

장편소설 『알루미늄 오이』이후 꼬박 4년 만에 펴낸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는 MB 정권 시절에 벌어진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토대로 쓴 9편의 단편을 묶은 소설집이다. 소재만큼은 우리에게 익숙할지 몰라도 형식으로는 꽤나 실험적인 작품이다. 두 번째로 실린 「우라까이」는 작가가 새롭게 쓴 문장이 단 한 개도 없다. 작가는 소설에 인용할 수 있는 기사를 수만 번 검색을 통해 찾았다. ‘Ctrl C’, ‘Ctrl V’만을 이용해서 만든 병융맛 ‘복붙소설’은 이렇게 탄생했다. 엉뚱하기로는 따라올 자가 없는 소설가 강병융은 현재 슬로베니아 류블랴나대학교 아시아학과 교수로 있다. 교수 평가 점수가 상당히 높은 강 작가는 이렇게 위험한 소설을 내고도 무사할 수 있을까? 잠깐 한국을 찾은 강병융 소설가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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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없었던 형식의 소설


오랜만에 귀국으로 들었습니다.

 

3년 반만이에요. 작년에 5일 정도 잠깐 들어온 적은 있어요. 세미나 때문에 왔는데 학기 중이라 개인 일정은 거의 없었죠. 온전히 저를 위해서 온 건 이번이에요. 작년에는 광화문에 갔었고 이번에는 팽목항에 다녀왔어요. 펑펑 울었어요.

 

대전에서 독자와의 만남도 하셨다고요.


『아내를 닮은 도시』의 독자들을 만났어요. 대전에 ‘도시 여행자’라는 카페 겸 서점이 있는데요. 여행책만 파는 곳이에요. 아마 서점 대표님이 저보다 훨씬 젊으실 텐데요. 여행을 주제로 한 독자와의 만남을 열고 있어요. 대전은 제가 좋아하는 도시 중 하나예요. 한국에 오기 전부터 약속을 했던 행사였는데요. 책을 함께 만든 김민정 시인, 대학에서 가르쳤던 제자들도 와줬어요. 고마운 분들이 참 많아요. 

 

두 해 연달아 에세이를 펴내셨는데요. 소설은 무척 오랜만이죠?


아마 제가 소설가라는 걸 모르는 분들이 많을 거예요. 바로 전 소설이 2013년 작품이니까요. 오랜만에 소설을 펴내서, 기분이 너무 좋아요. 본연의 저로 돌아와 소설을 썼거든요. 걱정도 되지만 기쁜 게 먼저예요.

 

에세이로만 작가님을 접했던 독자들은 좀 충격을 받을지도 몰라요. 소설이 좀 셉니다.


제가 좋아하는 성우 선생님이 계시는데요. 제가 독자와의 만남을 한다고 하니, 책을 읽어주고 싶다고 하셨어요. 너무 감사해서 메일을 보냈죠. 그런데, 내용이 너무 세니까 힘들 것 같다고 하셨어요. 당연히 이해했어요. 해주신다고 말씀해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고요. 제가 읽어볼까 생각도 했는데, 모르겠어요. (웃음)

 

소설집 제목(『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이 참 익숙한 문장입니다.


원래 제목은 「우라까이」로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사람들이 이 단어를 잘 모르더라고요. 그래서 바꿨죠.

 

「우라까이」는 유튜브에서 ‘우라까이 강병융’을 검색하면 들을 수 있는 소설이에요. 음성이 참 좋으신데 내용은 강렬하죠. 24쪽을 보면 “단, 목소리(혹은 내용)의 거북함으로 인해 구토 및 문학 기피 현상이 일어날 수 있으며, 운전이나 작업 중에 들으시면 사고 발생률이 높아질 수 있습니다”라고 써 있어요. 좀 위험하긴 해요.


(웃음) 원래 이런 걸 좀 좋아해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제가 그냥 하는 거예요. 어쩌면 지금은 텍스트 만으로는 창작할 수 없는 시대가 아닌가, 싶어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어록이 참 많은데요.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말이 하나 있습니다. 시장 상인들에게 한 말이죠? “지금은 그래도 뭐 얘기할 데라도 있으니 좋지 않냐. 좋아졌잖아. 세상이.”


이 말도 제목 후보 중 하나였어요. 정말 찾아보니 기기묘묘한 이야기를 정말 많이 하셨더라고요. 지금 너무 잘 먹고 잘 사는 모습을 보니 참, 웃긴 것 같기도 하고 그럽니다.

 

‘복붙소설’이란 제목은 직접 지으신 거죠?


없던 말이었으니까요. 요즘은 텍스트를 복사해서 붙여 넣는 경우가 워낙 많잖아요. 비슷한 형식의 소설을 2012년에 썼는데, 60여 개 기사를 가공해서 만든 소설이에요. 참고로 한 신문기사 제목을 참고문헌처럼 달았죠. 『Y씨의 거세에 관한 잡스러운 기록지』라는 소설인데요. 삽화도 만평 스타일로 넣었어요. 다음에는 장편 복붙소설을 써볼까, 하는 원대한 꿈을 갖고 있어요.

 

소설을 쓰면서 제일 많이 검색한 단어는 무엇인가요?


아마 ‘쥐’가 아닐까요? 쥐의 습성을 설명해야 하는 부분이 많았는데, 그건 제가 만들어낼 수가 없잖아요. 또 의외로 ‘한식’이라는 단어도 많이 찾았어요. 부인도 그렇게 좋은 사람이 아니더라고요. 찾으면서 힘들었던 단어는 용산, 광우병 등이 있죠.

 

기사를 찾아 보면서 기분이 썩 좋지만은 않았을 거예요. 충격을 받았던 팩트가 있었다면요?


용산 참사를 검색하는데, 마음이 너무 안 좋더라고요. 웬만한 모든 기사를 다 읽었는데 보는 게 참 힘들었어요. <악스트>에 「우라까이」를 발표할 때, 다음은 ‘닭’에 관한 책을 쓰겠다고 했거든요? 그런데 막상 쓰려고 생각하니 끔찍해요. 힘든 기사를 많이 읽어야 할 테니까요. 기사를 보면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 끊임없이 터지고 있는데, 우리는 너무 행복하게 사는 건 아닐까. 그런 생각도 했어요.

 

「우라까이」를 읽으면서 참고한 실제 기사를 찾아봤어요. 제목으로 검색했는데 기사가 안 뜨더라고요.


안 나오는 것도 있어요. 그래서 편집자와 많이 이야기했어요. 소설을 조금 수정해야 하나 고민도 했는데, 원래 있었던 기사니까요. 그냥 가자고 결정했어요. 검색어로는 기사가 안 보여도, 사람들이 블로그 등에 퍼간 건 그대로 남아 있어요. 어떤 연유인지는 확실히 모르겠지만 누군가의 요청에 의해 지워진 게 아닐까요? 떠도는 이야기인 줄만 알았는데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라는 걸 체감했죠.

 

쓰면서 쾌감을 느꼈던 순간이 있었나요?


뭐 개인적으로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의 이야기를 썼으니까요. 약간의 보복 심리 같은 게 있을 수도 있으니, 하나도 즐겁지 않았다는 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제게 더 의미 있는 건, 지금까지 없었던 형식의 소설을 썼다는 거예요. 조원규 작가님과의 대담에서 “스크라이크가 되길 바라고 던진 공이 아니”라고 했듯이, “제가 새로운 변화구를 개발했으니 이런 구질도 한 번 맛보세요”하는 마음이 커요. 변화구가 잘 들어가면 좋겠지만 결과는 저도 모르죠. 독자를 생각하고 쓴 건 아니니까요.

 

책 뒤쪽에 실린 주원규 작가와의 대담에서 주 작가님이 “병맛의 끝판왕”이라고 책을 평가했어요. 동의하세요?


‘병맛’이라는 말, 좋아해요. ‘끝판왕’은 더 좋고요. (웃음) 소설은 독자들을 벼랑 끝까지 몰고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벼랑 끝에서 떨어지면 안 되고요. 벼랑 끝에 서 있을 수 있다면 가장 좋죠. 그게 제대로 된 실험을 했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어요. “병맛의 끝판왕”이 궁극적으로 좋은 의미는 아니지만 맥락상으로는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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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전 대통령이 소설을 읽었으면


요즘 독자들이 우스갯소리로 “현실이 더 소설 같아서 소설을 안 읽게 된다”고들 말씀하세요. 짧은 귀국이지만 한국에 오기 싫은 마음은 없으셨나요?


(웃음) 제가 유학 기간을 다 포함해도 외국 생활을 한 지 9년이 좀 안 됐어요. 30대 이후에는 외국에 더 많이 있었는데, 한국 소식을 들으면 사람들이 너무 힘들고 피곤해 하는 거예요. 한국 사람들은 정말 소비로 스트레스를 풀 수밖에 없구나, 이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왜 그럴까 곰곰이 따져보니, 우리에겐 저녁이 없어요. 그러다 보니 인터넷 쇼핑, 모바일 쇼핑, 홈쇼핑만 하고 있는 거예요. 물론 슬로베니아도 어렵고 힘든 사람이 많아요. 하지만 그들은 취미로 스트레스를 해결해요. 달리기도 하고 토론도 하면서요. 제가 귀국해서 2주간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서 종이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을 세어봤어요. 아주 꼼꼼히 보진 못했지만 어제까지만 해도 3명, 오늘까지 총 4명이었어요. 사람들이 여유가 없다는 게 느껴져요. 공항에서도 도착해서 가장 먼저 뛰어가는 사람을 보면, 한국 사람이에요. 헬조선까진 아니지만, 너무 각박하구나, 힘들구나 생각해요.

 

백가흠 소설가의 귀뚜라미 온다』를 패러디한 소설 「귀뚜라미 보일러가 온다」에서 “결국, 세상의 모든 소설이 패러디 아닐까요?”라고 쓰셨어요.


존재하는 모든 것이 다 존재했던 거잖아요. 포스트모던까지 안 가더라도 말이에요. 저는 소설을 쓸 때, 내용보다 다른 형식을 먼저 생각해요. 문학이 대부분 진지했기 때문에 덜 진지하고 싶고요. 궁극적으로 예술이란 새로운 것을 찾는다고 생각해요. 예전부터 패러디 소설집을 내보고 싶은 꿈이 있었어요. 이를 테면 『무진기행』을 ‘유진기행’, 『눈 먼 자들의 도시』를 ‘코 막힌 자들의 도시’로 패러디하는 거죠. 실제 「코 막힌 자들의 도시」는 제 중편소설에도 나와요. 나중에 실제로 쓰기 위해 일부러 심어 놓은 거예요. 만약 백 명이라도 제가 쓴 작품을 다 읽는다면, ‘아 이게, 그 작품이었구나’ 생각할 수 있겠죠.

 

소설을 쓸 때, 형식과 내용 중에 ‘형식’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신다는 뜻이죠?


형식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한국 대학에서 문예창작을 가르칠 때도 학생들에게 그렇게 말했어요. 외부적으로 형식과 내용이 같다고 말해야겠지만, 형식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야 새로운 소설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해요.

 

소설가가 좋아하는 소설가는 누구일지, 궁금합니다.


백민석 작가를 좋아해요. 다시 돌아와서 너무 반갑고요. 김영하 선배 소설도 좋아합니다. 어렸을 때, ‘아 이런 재밌는 소설이 한국에 있구나’ 생각했어요. 또 편혜영 선배 작품도 좋아해요. 제가 소설가가 되기 전,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소설가는 이제하 선생님이에요. 다른 나라에서 태어나셨으면 더 좋지 않으셨을까, 싶어요.

 

궁극적으로 어떤 독자가 이 책을 읽으면 좋겠어요?


이명박 전 대통령이 봤으면 좋겠어요. 박근혜 대통령은 읽지도 못할 것 같고요. 설마 이명박이 자신을 우상화했다고 착각하진 않겠죠? 암튼 읽었으면 좋겠어요.

 

볼 확률이 있을까요?


주소를 아니까 보낼까도 생각했어요. 뭐 읽을지 안 읽을지는 모르겠지만, 읽어보면 화는 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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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를 좀 안 했으면 좋겠어요


‘태희아빠맛’을 좀 물어볼게요. 전작 에세이를 보면, 참 좋은 아빠일 것 같아요. 태희아빠맛으로 쓰고 싶은 작품은 무엇인가요?


아내나 딸이 읽어도 충분히 좋아할 만한 작품이죠. 제 딸이 다른 사람에게 권할 수 있는, 제 친구가 다른 사람에게 권할 수 있는 작품이요. 그런 작품을 쓰려면 제가 좋은 아빠, 더 좋은 남편이 돼야 할 텐데 그게 또 쉽지는 않아요. (웃음)

 

‘병융맛’에 조금 더 추가하고 싶은 양념이 있다면요?


더 용감하게 쓰고 싶어요. 그런데 자기검열을 하게 돼요. 아마 가장 큰 이유는 제가 교수이기 때문일 거예요. 한국에서 비용을 받고 운영하는 부분도 있고요. 소설을 쓰면서 부모님을 생각하게 될 때가 있어요. 보수적인 분이시거든요. 노란 리본을 달고 있으면, 달지 말라고는 안 하시지만 “꼭 그걸 달아야겠냐?”고는 물으시죠.

 

「우라까이」에서 궁지에 몰린 쥐는 “사려깊지 못한 말”로 비판을 받아요. 어쩌면 쥐가 가장 못한 일이 사려깊은 행동, 말이지 않았을까 싶기도 한데요. 한국 독자들이 이런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다, 하는 이야기가 있으신가요?


두 가지가 있는데요. 기대를 좀 안 했으면 좋겠어요. 기대를 안 하면 뭐든 게 다 좋아져요. 자꾸 기대하니까 실망이 큰 것 같아요. 냉정하게 말해서 저는 딸에게도 기대하지 않아요. 내일 집에 나간다고 해도 어쩔 수 없어요. 그렇게 생각하면 오늘 이 순간이 너무 고마운 거예요. 두 번째는 고맙다는 마음을 많이 표현했으면 좋겠어요. 이번에 소설을 내면서 김준섭 편집자께 고맙다는 이야기를 정말 많이 했어요. 진짜 너무 잘 배려해주고 신경을 써주셨거든요. 또 다른 고마운 분들도 많아 인사했는데, 제 느낌에는 제 인사를 익숙하지 않은 느낌으로 받으시더라고요. 외국에 있으니까 페이스북을 통해서 한국 독자 분들을 만나는데요. 정말 고마운 분들이 많아요. 댓글도 정말 애정이 있어야 다는 거잖아요. ‘좋아요’조차도 그렇고요. 고맙다는 말을 많이 했으면 좋겠어요.

 

슬로베니아 류블랴나대학교 아시아학과 교수로 계세요. 가르치는 일은 적성에 맞으시나요?


좋아하는 것 같아요. 가만히 책 읽고 글 쓰는 일이 더 좋긴 하지만, 막상 수업에 들어가면 에너지를 받아요. 학생들도 다 착하고요. 학교에 있으니까 그래도 좀 천천히 늙는 것 같아요.

 

슬로베니아에서 한국 문학을 배운다는 게 생소해요. 한국 작품들을 많이 읽나요?


최근에 시 축제를 열었는데, 시인 고은 선생님이 가장 중요한 게스트로 초청되어 오셨어요. 언론에서도 많이 다뤄졌고 행사도 참 좋았어요. 슬로베니아는 인구수에 비해 시를 좋아해요. 소설은 신경숙 선생님의 책이 두 편 번역됐어요. 큰 대형서점에 가면 눈에 띄는 곳에서 책을 찾아볼 수 있어요.

 

교수가 되신 계기도 궁금합니다.


명지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논문을 안 쓰고 모스크바에 갔어요. 원래 영국, 러시아 중에서 고민했는데요. 제가 러시아문학을 좋아해서 원어로 러시아문학을 읽고 싶었어요. 영국의 SF소설을 가르쳐주는 대학원과 고민을 하다가, 모스크바 국립대학교에 문의 메일을 보냈어요. 석사가 가능하냐고 물었더니, 박사로 들어오라는 거예요. 그렇게 러시아 유학이 시작되었어요. '견'고생 끝에 박사 학위를 받고 한국에 돌아와서 보따리 장사를 하다가 우연히 류블라냐대학교에서 한국 문학을 영어로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을 찾는다는 공고를 봤어요. 아시아학과 안에 한국학, 일본학, 중국학이 있거든요. 우리가 영어영문학을 배우듯이 그곳에서도 한국문학을 가르치는 거예요.

 

다음 작품은 쓰고 계신가요?


당연히 쓰고 있어요. 후배가 편집하는 남성들을 위한 인문학 잡지 <일요일>에 연재 중인 소설인데요. 더 탄탄하게 경장편으로 만들 생각을 하고 있어요. 손가락 끝에 눈이 생긴 야구 선수 이야기예요. 또 에세이도 써야 해요. ‘슬로베니아에 사는 아저씨’의 시점으로 소소한 이야기를 쓰고 있는데, 서둘러 써야 해요.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강병융 저 | 한겨레출판
난다의 걷기 시리즈 4권 『아내를 닮은 도시』(난다. 2015)에서 열심히 류블랴나를 걸었던 작가 강병융이 신작 소설집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를 들고 돌아왔다. 이 소설집은 허구도, 거짓말도 아니다. 누구보다 진짜고, 진실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홍의숙 “코칭은 대화를 통해 자기 안의 방법을 발견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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윗사람과 말이 안 통합니다 VS. 부하 직원의 불만이 너무 많습니다, 시키는 대로 해야만 살아남는 군대 같은 조직문화가 너무 싫습니다, 따라주지 않는 직원들 때문에 화를 참기가 너무 힘듭니다, 제대로 배울 수 없는 환경 때문에 의욕이 사라집니다, 이기주의인지 개인주의인지 모르겠습니다……. 『내 편으로 만들어라』에 나오는 사례는 다양하지만, 주로 실무직과 관리직 사이의 갈등을 코칭하고 해결방법을 찾은 사례를 다룬다. 키워드는 ‘소통’과 ‘경청’이다.

 
코칭(Coaching)은 인재 개발 기법의 하나로서, 코치와 상담하며 스스로 목표를 설정하고 성장하게 지원하는 데 초점을 둔다. 국내 최초 코칭 리더십 교육 프로그램을 수출하는 ㈜인코칭의 코치들이 다양한 업종에서 코칭 내담자들을 만나 맞닥뜨린 코칭 사례와 노하우를 『내 편으로 만들어라』에 담았다.

 
공저자인 홍의숙 ㈜인코칭 대표이사는 기존에 통용되던 리더십 프로그램에서 벗어나 코칭을 통해 리더를 길러내고자 했다. 국무총리실 등의 국가 기관과 공기업, 대기업과 손꼽히는 글로벌 기업 등 다양한 조직에서 리더십과 조직성장을 위한 코칭을 제공하면서 리더의 자질을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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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칭은 지렛대 역할

 
책의 부제가 ‘일 잘하는 팀장의 50가지 코칭 노하우’입니다. 주로 팀장급이 어떻게 일하면 좋을지 설명해주신 것 같아요.

 

 팀장들의 역할은 조직 속에서 허리예요. 인체에서 가장 중요한 허리가 망가지면 몸이 다 망가지는 거예요. 조직도 마찬가지예요. 허리가 든든히 받쳐주면 나중에 위로도 갈 수 있고 밑을 키워줄 수 있어요. 여러 명의 공저자가 참여해서 100% 실사례만을 모았어요. 가공한 게 아니기 때문에 오히려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죠.

 
제조업과 생산직종 사례가 많이 나옵니다.

 
그동안 CEO와 임원에게 도움이 되는 책을 써 왔는데, 조직에 진정한 도움이 되려면 생산 현장을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리더십이라고 하면 관리직 사람들만 필요한 것처럼 느끼지만, 생산 현장에 있는 사람들도 단순히 생산하는 기계로 대우받는 게 아니라 생산 라인을 담당하는 리더로 대우받아야 기업이 살아남아요. 이쪽 라인은 사람이 모자란다고 아우성을 치는데 저쪽 라인에서는 놀면서도 안 도와줘요. 그러다가 반장 그룹에게 리더십 교육을 시켜서 코칭하고 나니까 시키지 않아도 반장끼리 회의를 해서 상황에 따라 인력을 운용하는 거예요. 그러면 사장님은 사람을 뽑아줄 필요가 없으니까 좋고, 인건비가 덜 드니 회사에서 지원금을 주고 근처 농산물을 공동구매로 직원에게 나눠줘요. 지역도 좋고, 직원도 좋고, 서로가 웃는 거예요. 서로 인사도 안 하고 쌩하니 돌아서던 직원들도 이제 인사하면서 따뜻한 문화가 형성되고요. 이런 것들이 성공했던 사례라고 말해요.

 
생산 라인과 사무직 간에 코칭 방법이 달라지기도 하나요?

 
다 똑같지는 않아요. 기업마다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인터뷰와 설문지 등을 통해 그 기업에 맞는 방법을 찾아 나가죠. 큰 틀에서는 같지만 섬세하게 들어가면 다를 수밖에 없어요.

 
코칭과 컨설팅이 다른 개념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코칭이란 무엇인가요? 컨설팅과는 무엇이 다른지도 궁금합니다.

 
사람들이 코칭과 컨설팅, 멘토링, 카운셀링 이 네 가지 영역을 주로 혼란스러워해요. 쉽게 설명하자면 컨설팅과 멘토링, 카운셀링은 수직적인 개념으로 보면 돼요. 예를 들어 조직의 문제가 심각한데 지금 그 문제를 파악할 수 없다면 전문가를 불러서 문제와 해결 방법을 제시하는 컨설팅을 받죠. 컨설팅이 조직의 문제를 다룬다면 카운셀링은 주로 개인의 문제를 다룹니다. 멘토링도 먼저 많이 알고 있는 멘토가 멘티에게 모르는 것을 가르쳐주죠. 모두 지금보다 더 나아지고 변화하는 게 목표지만, 방법론에서 상담자보다 더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이끌어야 하죠.

 
그럼 코칭은 수평적인 개념인가요?

 
운동선수에게 코치가 붙으면, 그 코치가 항상 운동선수보다 더 실력이 좋을 필요는 없어요. 운동 실력보다는 수평적인 선상에서 동반자로 상황을 보고 상대가 문제를 인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예요. 사람들이 코칭을 받는다고 이야기하면서 자존심이 상하지 않는 이유도, 가르침을 받는다기보다 약간의 지렛대 역할을 해주는 거니까 편하게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관점이 있어요.

 
회사 입장에서는 코칭보다는 즉각적인 해결책을 원하기도 할 것 같아요.

 
고객이 요구하면 코칭 중에서 가르쳐주기도 하고 카운슬링이 들어가기도 하죠. 예를 들어 정부 기관에서 리더를 코칭하다가 민간 기업에서는 어떻게 하는지 물어보시면 당연히 가르쳐 드려요. 그럼 그다음부터 사례를 가지고 어떻게 하면 될지 본인이 고민하는 거죠.

 
결국 본인이 문제의 해결책을 찾는다는 말씀이군요.

 
한 그룹의 회장을 코칭한다고 하면, 그 기업에 대해서는 회장님이 제일 잘 알아요. 하지만 누구도 한 분야에 대해서는 알 수 있겠지만 모든 것을 잘 알 순 없어요. 자존심 상하는 건 누구나 안 하고 싶죠. 하지만 먼저 피코칭자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본인이 발견하지 못하는 걸 코치가 발견할 때가 있어요. 예를 들어 한 회사의 회장님이 대기업에서 일하던 CEO를 영입해 왔는데 생각보다 역량발휘를 못 해서 답답하다고 쳐요. 그러면 그 사람에게 어떻게 기대사항을 표현했는지,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떻게 풀어나갔는지 등을 쭉 듣는 거죠. 듣다 보면 회장님은 계속 회장님의 방법을 주입한 거예요. 그러면 그 CEO를 영입했을 때는 새로운 관점에서 기업을 보길 원한 게 아니었는지 여쭤보는 거죠. 기분 나쁘게 문제를 지적하고 해결책을 찾는 게 아니라 대화를 통해서 자기 안의 방법을 발견할 수 있도록요. 전혀 생각지 못한 방법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고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을 다시 깨닫는 과정이 되는 거죠.

 
회사에서 코칭을 시키면 대상자는 자기가 뭘 잘못했나 싶어서 마음이 안 좋기도 합니다. 그래서 대상자에게 신뢰를 심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말씀해 주셨는데요.

 
기업 문화에 따라서 다를 수 있어요. 문제가 있는 사람에게 교육을 제안하면 사람들은 조직에서 뭔가 제공할 때 자기가 문제가 있어서 그러는 게 아닌지 불안해할 수 있어요. 그래서 어떤 회사에서는 잘한 사람에게 코칭을 제공하기도 해요. 문제가 되는 부분을 코칭받으라는 게 아니라 당신은 최고니까 실적에 대한 보상으로 더 잘할 수 있도록 교육을 제공한다는 식이죠. 실제로 작년에 외국계 기업 한국 지사장 코칭 의뢰가 들어왔는데, 정작 지사장은 성과를 잘 내고 있는데 왜 코칭을 받아야 하느냐며 거부했대요. 하지만 회사 입장에서는 이 사람의 성과는 좋지만 밑에 있는 사람들을 키우지 않아서 문제였던 거예요. 그래서 차근차근 회사 차원에서는 당신을 더 키워주고 싶어서 코칭을 받으라고 한 거다, 라고 하면 당사자도 회사가 나를 이만큼 생각해주는구나 싶어서 마음을 바꾸게 되죠.

 
신뢰라는 게 결국 서로 어떤 행동을 보여줬느냐에 따라 다른 것 같아요. 신뢰는 엄청난 보상과 실적을 내면 쌓이는 게 아니라 작은 약속을 하나하나 지켜줬을 때 쌓이는 거거든요. 우리 회사는 작은 거라도 약속했으면 해주는 곳이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거죠.

 
회사와 피코칭자 사이 신뢰도 있겠지만, 코칭자와 피코칭자 사이의 신뢰도 있을 것 같아요. 코치를 믿지 않으면 성과가 나지 않잖아요.

 
예전에 서울대 나오고 하버드에서 박사 받으신 분을 코칭했는데, 처음부터 ‘네가 뭔데?’, ‘나를 코칭한다고? 한 번 해봐.’ 이런 태도로 나오셔서 깜짝 놀란 적이 있어요. 하지만 코칭 분야에서 전문가라는 인식을 받고 인정을 하면 그다음부터는 서로 편해져요. 아는 것과 실제 행동 간에는 차이가 나기 때문에 코치가 객관적으로 그 차이를 살피는 부분을 함께 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거죠.

 
코칭이 단기적으로 문제의 해결을 찾아 나갈 순 없을 것 같거든요. 의뢰자가 즉각적인 반응을 원할 때는 어떻게 하나요?

 
즉각적으로 바뀔 수 있는 부분이 있고, 시간이 걸리는 때가 있어요. 그 부분에서는 서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해요. 어떤 때는 사장님들이 ‘내가 돈 써서 이놈들 코칭시켜 놨는데 안 바뀐다’고 불만을 터뜨리면 저는 웃으면서 한 번에 바뀔 거였으면 이 세상에 안 될 일이 어디 있겠냐고 말씀드려요. 평생 배운 습관이 있는데 그걸 한 번에 고칠 수 있다면 오히려 그게 더 비정상적인 일이죠. 관점을 바꿔서 사장님도 코칭을 받고 실제로 적용하기까지 시간이 걸리는데, 밑의 팀장이라고 쉽게 바뀔 수 있을까요? 임원도 소화할 시간이 필요한 거라고 인지하면 그럴 수 있겠다고 받아들이게 돼요. 재밌는 건 정말 똑똑한 분들이 계세요. 열 번 해야 할 걸 다섯 번 했는데 이미 안정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분들이 있어요. 그러면 대단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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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다

 
책의 사례가 결국에는 사람 사이 소통과 인간관계로 귀결되는 것 같아요. 직장에서 사람 관계가 우선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국내외 할 것 없이 회사에서 일 자체가 힘들다고 하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다 인간관계죠. (웃음)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을 조직이 하면 낭비에요. 조직은 사람과 사람의 조합이에요. 그 가운데서 갈등 요소를 빨리 해결시켜 주는 것이 기업의 성과를 내는 가장 지름길이에요. 어제도 어떤 분이 보고서를 쓰라든가 성과를 내라는 건 하면 되는데, 한 사람 한 사람을 헤아려서 왜 이렇게 되는지 찾아가고 사람들을 관리하려니 그게 제일 힘들다고 하더라고요.

 
요즘 강의할 때 4차 산업 혁명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 해요. 사회 속에서 앞으로 제일 인정받고 주목 받을 인재는 공감력이 뛰어난 사람이 될 거예요. 능력은 다 비슷하고, 지식은 이제 무료로 풀렸어요. 과거에는 학교에 가야 배웠지만 지금은 인터넷 매체를 통해서 얼마든지 배울 수 있죠. 그래서 앞으로는 사람과 사람 간의 감성을 읽고 교류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해요.

 
특히 그중에서도 ‘경청’을 키워드로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첫 번째 요소는 경청이에요.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는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거든요. 내로라하는 사람들을 만나서 코칭하면 남들은 그런 사람들은 이미 인정받을 대로 인정받은 거 아니냐고 얘기를 해요. 하지만 높은 자리에 있더라도 항상 본인이 잘하고 있는지 불안해 해요. 중요한 일을 결정하는 사람일수록 파장이 크기 때문에 자기 결정에 확신을 얻고 싶어 하죠. 그때 이야기를 들어주는 게 가장 첫 번째로 인정하는 태도예요. 그렇기 때문에 제대로 된 경청이 모든 관계를 풀어나가는 데 열쇠가 되죠. 

 
경영자 입장에서는 계속 노동자에게 성과를 이야기하게 되는데, 직원들 입장에서는 비전을 제시해야 변화의 필요성을 공감합니다. 그렇기에 비전을 제시하는 게 필요하다고 하셨는데, 실제 사례가 있나요?

 
어느 회사에 갔더니 중소기업인데도 유능한 인재가 모여있더라고요. 그 이유를 살펴보니 사장이 비전 제시를 명확히 했기에 그 목표를 보고 같이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요즘 벤처기업도 마찬가지예요. 이제 막 시작하는 벤처에 수많은 인재가 지원해요. 회사가 가지고 있는 비전을 보고 찾아드는 거죠. 방향성을 제시해야 힘을 모아 움직일 수 있어요. 문제없는 사람 없고, 문제없는 집단도 없어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향성만 잘 서 있다면 문제는 쉽게 해결됩니다. CEO가 제시하는 비전을 합리적으로 설득하기 위해서는 많이 논의해야 해요. 그래서 직원 입장에서도 그 비전을 자연스럽게 따라가는 문화를 만들어야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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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리더십

 
여성 리더십을 ‘유연하고 권위적이지 않다’고 표현해주셨어요. 한편으로는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강하다고도 표현하셨고요.

 
남성들은 자기보다 직급이 하나라도 높다 그러면 벌써 앉는 스타일부터 바뀌어요. 하지만 여성들은 군대와 같은 위계 문화를 덜 경험하다 보니 남성보다는 계급에 덜 민감하죠. 또 대부분 남성이 주도권을 잡고 가서 어느 기업이든 여성 임원이 많은 데가 별로 없잖아요. 그러다 보니 여성들이 볼 만한 롤모델이 없어요. 지금 자신이 하는 일이 정말 잘 하는 건지 아닌지 남성들에 비해 벤치마킹할 대상이 없다 보니까 한 일에 대해서 빨리 확인을 받고 싶어 해요. 그래서 잘한다는 말을 더 듣고 싶어 하는 거죠.

 
‘유리천장’이라는 말이 있다지만, 한국은 유리천장보다 더 공고한 ‘시멘트’ 천장이 있는 것 같아요. 여성이 팀장급 이상의 관리자로 가려면 더 힘들 것 같은데요.

 
여성들이 그런 걸 의식하지 말고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있어서는 소신껏 실행하는 게 맞다고 봐요. 한국에서 맞벌이가 당연하다고 여기는 관점이 시작된 게 15년이 채 안 됐어요. 15년 정도면 중간관리자에 여성이 올라올 만한 시기가 됐어요. 이 중간관리자들이 잘 버텨줘야 임원이 나오는 거고, 시간이 필요해요. 기업에서도 여성 임원을 시도해 봤지만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남성들의 협조도 미비하고 성공 케이스도 없이 시작해서 잘 안 됐어요. 그래서 실패한 건데 이제 실패 사례를 딛고 가는 여성들이 많아진 상황에서 앞으로 5년, 10년 정도만 지나면 달라질 거라고 봐요.

 
코칭업계에서는 여성분들이 상대적으로 많습니다.

 
코칭을 처음 시작할 때는 미국에서 시작된 거라고 해서 한국에서 개발한 프로그램은 돈도 별로 안 쳐주고 안 쓰겠다고 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하지만 부존자원 없이 인적자원만 있는 우리나라에서 이런 지식사업을 가지고 수출하지 않으면 후손에게 남길 게 없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어요. 누군가는 해야 하는데 여성인 제가, 먼저 생각한 저부터 하자는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그때는 뭘 몰랐기 때문에 할 수 있었죠. 진짜 몰랐어요(웃음).

 
실제로 사업을 시작하면서 힘드셨겠어요.

 
정말 힘들었죠. 하지만 계속 갈 수 있는 건 비전이 명확하기 때문이에요. 우리나라에 최고급 학력을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많아요. 이런 자원을 가지고 할 수 있는 게 지식사업이잖아요. 특히 개발도상국에서는 한국의 성장 노하우가 교육적으로 들어와 주길 원해요. 여성이라도 어떤 분야든 자기가 확신을 하고 가면 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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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가 건강했으면

 
대표님도 회사에서는 리더의 자리에 있잖아요. 실제로 본인의 리더십을 평가하면 어떤 것 같으세요?

 
전에 어떤 직원이 ‘대표님은 정말 훌륭한 코치다. 하지만 경영자로서는 약하다’는 평가를 한 적이 있어요. (웃음) 주변에서도 방향을 설정하는 건 잘하는데 비즈니스적인 개념으로 이익을 남기는 건 미흡하다는 평가를 하는 거죠. 사실 그런 마음이 아니었으면 제가 여기까지 못 왔어요. 이걸 가지고 돈을 벌겠다고 달려들었으면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없었겠죠. 큰 비전이 있었고, 당연히 그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생각해서 미련하다고 할 정도로 우직스럽게 한 길을 파고 온 거거든요.

 
생산직 관련 리더십 프로그램도 비슷한 생각의 일환인가요?

 
세계를 봐도 생산직 위주의 코칭이 만들어져서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없어요. 생산직 관리자들을 코칭하면 회사가 정말 우리를 인정해 주는구나 싶어서 감동을 많이 받아요. 프로그램 만족도를 매기면 만점이 나오기도 하고요. 우리는 이제까지 문제는 알아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몰랐던 거죠. 생산직 직원들은 매일 기계 앞에서 일만 하다 보니까 가정에 가서도 할 이야기가 없어요. 회사에서도, 집에서도 대우를 못 받으니까 직원도 답답하죠. 그런데 교육을 받고 듣고 말하는 법을 배우면 회사에서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적용해 볼 수 있어요. 직원 입장에서는 회사에서도, 가정에서도 환영을 받는 존재가 되니까 기뻐요. 사람이 달라지는 거예요.

 
대표님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요? 생산직 코칭인가요?

 
생산 라인 코칭은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임원이나 CEO 코칭과 같이 가야 한다는 거죠. 화이트칼라가 교육을 받았으면 생산 라인에서 훨씬 다수를 이끄는 현장직 리더들에게도 리더십 교육이 제대로 되어야지만 조직이 하나로 뭉쳐져요. 가장 큰 목표는 우리 사회가 건강하면 좋겠어요. 건강한 사회를 만들려면 개개인이 건강해져야 하는 거잖아요. 누구나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받아야 하기에 다양한 코칭을 접목하는 거죠.

 
책을 누가 읽었으면 했나요?

 
리더들은 다 읽었으면 싶었어요. 생산 현장 사례를 모아놓은 책이 없었으니 생산 라인 리더들이 보면 당연히 좋고요. 관리자들도 생산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을 이해하기에 도움이 될 거예요. 화이트칼라든 블루칼라든 상관없이 본인이 리더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봤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내 편으로 만들어라홍의숙 등저 | 매일경제신문사
『내 편으로 만들어라』에서는 회사 내에서 일어나는 사례를 질문사항으로 정리했고, 상담 후에는 해결책까지 제시한다. 자신에게 맞는 사례를 골라 읽고 이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팁이 제시되어 있어, 이를 순서대로 따라가다 보면 해결 방법이 보일 것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우재 “차가운 물은 다이어트와 상극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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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이우재가 ‘한방다이어트에세이’를 출간했다. 『내 몸을 비워야 내가 산다』는 우리 몸에 독소로 쌓이는 무분별한 ‘더하기’가 아닌 현명하고 건강한 ‘빼기’를 제안한다. 잘못된 방법과 과도한 용량으로 섭취한 음식물과 공해는 체내에 정체되면서 독(毒)이 되고, 각종 질병과 비만을 야기하는 까닭이다. 저자는 “‘비움’이 우리 몸과 마음에 얼마나 중요한지” 가르쳐주는 동시에 “모두가 공감하고 실천할 수 있는” 방법들을 소개한다. 

 

SNS를 통한 한방상담으로도 유명한 한의사 이우재는 6만 명 이상의 팔로워들과 나눈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내 몸을 비워야 내가 산다』를 집필했다. 진료실 안팎에서 환자들의 고민을 해결한 사례, 다양한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 몸을 살리는 쉽고 효과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몸 비우기’, ‘피부 비우기’, ‘습관 비우기’, ‘마음 비우기’의 네 장으로 구성된 책은 물을 마시는 제대로 된 방법부터 다이어트 필살기까지 아낌없이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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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물은 다이어트와 상극


“가장 중요한 것은 물”이라고 하셨어요. 대부분 ‘물은 많이 마시는 게 좋다’고 생각하는데요. 우리가 필요 이상으로 마시고 있는 걸까요?

 

냉장고가 보급되기 이전과 달리, 요즘에는 어디에서나 쉽게 물을 마실 수 있죠. 한의학에서는 양기가 올라오는 순간 갈증이 조금 느껴진다고 하는데요. 양기가 올라오면 해독도 되고 여러 가지 도움이 되는 부분들이 있거든요. 그런데 그걸 참지 못하게 되는 거죠. 열과 따뜻한 기운이 올라오는데 자꾸만 식히니까 배가 차가워지는 거예요.

 

그렇다면 적절한 음수량은 어느 정도인가요?


운동 여부와 체중, 체질에 따라 조금씩 달라요. 운동을 하면 땀을 흘리고 순환이 되니까 2리터를 마셔도 괜찮아요. 그런데 운동도 하지 않으면서, 특히 소화가 잘 안 되는 분들의 경우에는, 수분을 많이 섭취하게 되면 그게 다 저장이 돼서 살이 됩니다. 음식을 통해서 충분히 수분을 흡수하기 때문에 (하루에) 2리터를 넘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하루 5~6잔이면 충분합니다. 한의원을 찾아오시는 50~60대 이상 환자 분들 중에 무릎이 붓는다거나 혈액 순환이 안 된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계신데, 조사해 보면 수독증(水毒症)이 상당히 많아요.

 

물을 필요 이상으로 많이 마시는 것과 비만은 어떤 관계가 있나요?


예를 들면, 미국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더 뚱뚱하잖아요. 그들은 햄버거 하나를 먹을 때도 점보 사이즈의 음료수 두 잔을 마셔요. 그렇게 되면 햄버거는 위장에서 소화되지 않고 바로 소장으로 가겠죠. 위장이 필요 없는 장기가 되어버리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사용하는 에너지의 대부분은 위장에서 나오거든요. 그래서 많은 양의 물을 한꺼번에 마시는 걸 가장 경계하는 거고요. 물배를 채우는 방식으로 다이어트를 하는 분들도 계신데, 제가 메일로 상담을 하면서 하루에 5~6리터까지 마시는 분도 본 적이 있어요. 그렇게 하면 위장이 붓고 완전히 늘어져 버리거든요. 칼로리가 줄어서 일시적으로 살은 빠지겠지만, 나중에 보면 늘어져서 쓸모 없는 위장이 되어버리는 거죠. 그래서 위하수(胃下垂)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요. 제가 강조하는 건 시기 적절하게, 천천히, 따뜻한 물을 마시는 거예요.

 

“차가운 물은 다이어트와 상극”이라고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현대인의 비만의 원인 중에 가장 큰 게 냉적(冷積)이라는 게 있어요. 한의학에서는 차가운 물질들이 모여서 쌓이는 걸 의미하는데요. 냉적이 생기는 게 대표적인 원인이 차가운 물, 차가운 음료수예요. 따뜻한 물을 마시면 배가 따뜻해지잖아요. 그러면 혈액 순환도 되고 위장이 잘 움직여요. 차가운 물을 마시게 되면 아랫배가 차갑게 되면서 소화기 순환이 안 되죠. 우리가 한 여름보다 한 겨울에 몸을 웅크리게 되듯이, 오장육부가 웅크리게 되는 거예요. 우리 체온보다 차가운 물은 생명의 에너지를 죽이는 역할을 합니다. 아주 주의를 해야 돼요. 그래서 차가운 물을 드시지 말라고 말씀드리는 거죠.

 

실온 상태에 있는 물보다는 따뜻한 물이 더 좋을까요?


훨씬 더 좋죠. 따뜻한 물을 드시면 어느 순간 가면 변비가 없어져요. 변비 때문에 화장실을 못 갈 때, 우리는 흔히 아침에 시원한 물을 마시면 된다고 하잖아요. 그게 바로 쇼크예요.

 

장을 자극하는 건가요?


네. 쇼크를 주는 게 일시적으로 한두 번은 통할 수가 있어요. 그런데 결국은 장이 활발하게 잘 움직여야 하는 건데, 그러려면 따뜻하게 하는 게 좋겠죠. 간단한 이론입니다. 그러니까 체온보다 따뜻한 물을 마셨을 때 배가 따뜻하고 장이 잘 움직이면 숙변이 빠질 확률이 훨씬 높은 거예요.

 

물을 많이 마시면 변이 부드러워져서 배출이 쉬워질 것 같은데요.


그건 씻겨 내려가는 걸 생각하는 거예요. 우리 장은 꼬불꼬불하게 이어져있고 소장 안에는 융모 같은 것들도 무수히 많이 있는데, 그걸 물로 씻겨 내려 보낼 생각을 하면 안 돼요. 몸 자체의 소화액 같은 걸 이용해서 주물러서 뺄 생각을 해야죠. 그게 장의 연동운동인데, 한의학에서는 힘 있게 연동운동을 잘 하는 장을 양기가 있다고 해요. 소화기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젖어있는 겁니다. ‘소화기의 기운이 충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젖어있으면 안 된다’ 이게 한의학의 기본입니다. 그러니까 수분을 많이 섭취하는 건 좋지 않아요.

 

물과 관련해서 가장 강조하시는 것이 ‘밥 따로, 물 따로’인 것 같아요. 식사 중에는 물을 섭취하지 말라는 말씀인데요. 위액이 희석되기 때문인가요?


희석되기도 하고요. 위장에서 에너지를 만들기 때문에 (음식물이) 위장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길어야 유리해요. 음식물이 소화액만으로 뭉쳐져 있으면 위장에 오래 머물고, (위장) 운동을 통해서 완전히 분해가 되고 에너지가 되죠. 그러고 나서 남은 부분이 소장에 가서 저장되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살이 안 찌는 거죠. 그런데 식사 중에 물을 마시고 밥 먹고 나서 바로 물을 마시면 (음식물이) 바로 소장으로 가기 시작해서 저장이 되고요. 소화가 덜 된 상태이기 때문에 췌장액이 뿌려져야 돼요. 췌장이 피곤해지는 거죠. 현대인에게 췌장 관련 질환이 많은 이유입니다. 췌장을 도와주려면 ‘밥 따로, 물 따로’ 해야 돼요. 그렇게 하면 위장을 탄력 있고 좋은 상태로 만들 수도 있고요. 그게 장수의 핵심, 면역의 핵심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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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 전후 한 시간, 수분 섭취 금지!


식사 전후 몇 시간 동안 물을 섭취하지 않는 게 좋을까요?


일단 시작은 30분부터 하는 게 좋아요. 식전 30분, 식후 30분 동안 물을 마시지 않는 거죠. 그러다가 한 시간으로 간격을 늘리시면 되고요. 한 시간 이상 물을 드시지 않는 게 좋아요. 저는 (식사 전후) 두 시간 정도 물을 마시지 않아요.

 

물 없이 식사하는 게 힘든 사람들도 있는데요. 갈증을 달래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시중에 판매되는 발효식초를 티스푼으로 한 스푼 정도를 드세요. 그러면 입 안이 촉촉해져요. 우리가 착각하는 게, 입 안만 건조해도 혹은 얼굴만 따뜻해도 덥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물 없이 밥을 못 먹는다는 건 입 안이 건조해져 있다는 거거든요. 침이 분비가 안 되는 거죠. 이런 분들이 자꾸 물을 마시면 침샘 발달이 안 돼요. 막힌 침샘을 뚫어줄 때는 식초가 참 좋아요. 오전 내내 물을 어떻게 안 마실 수 있냐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신데, 특히 상담하는 일을 하시는 분들은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하시는데요, 익숙해지면 나중에는 아무렇지도 않아요. 저도 하루 종일 상담을 하지만 괜찮거든요.

 

식초를 섭취하는 양에는 제한이 없을까요?


사람마다 다르기는 하죠. 커피도 마찬가지잖아요. 열 잔을 마시고도 아무렇지 않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한 잔만 마시고도 잠을 못 자는 사람도 있죠. 발효 식초의 경우에는, 성인 숟가락으로 두 숟가락 정도는 괜찮아요. 아무런 문제없죠.

 

몸 안의 불필요한 물을 배출하는 일 역시 중요할 것 같은데요. ‘복령차’가 “모든 오장육부 속 불필요한 수분을 빼내는 역할”을 한다고요.


‘복령’은 사군자탕의 재료 중 하나예요. 사군자탕은 기운을 보강하는 약인데, 그 성분의 25%가 인삼 대추 복령 감초거든요. ‘수분을 적당히 빼줘야 기운이 샘솟는다’는 것을 한의학 고서에서 명확하게 가르쳐 주고 있는 거죠. 한의학에서 사군자탕은 ABCD와 똑같은 거예요. 그만큼 기본이 되는 것인데, 그런 점에서 복령은 한의학 교과서 밑에 숨어있었던 약재라고 할 수 있죠. 그런 것들을 일반 사람들한테 쉽게 전달하고 싶었어요. 한의학이 현학적 허세가 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덧셈 뺄셈처럼 쉽지만 정말 기둥이 될 수 있는, 그런 한의학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죠.

 

복령은 소나무 뿌리에 자리를 잡은 버섯으로 뿌리에 머금은 수분을 빨아들여 그걸 바탕으로 자랍니다. 그 원리로 우리 몸 속 깊은 곳에 박혀 정체된 수독을 기가 막히게 뽑아내지요. 위장뿐만 아니라 심장을 포함해서 모든 오장육부 속 불필요한 수분을 빼내는 역할을 합니다. 『내 몸을 비워야 내가 산다』 85쪽)

 

<복령차 끓이는 법>
복령 20그램에 계피 혹은 생강 10그램을 넣고, 물 1리터를 넣은 후 한 시간 정도 끓인다.
복령차를 마실 때는 꿀이나 마스코바도를 넣어 마셔도 좋다.

 

제목에서 엿볼 수 있듯이 ‘비움’의 메시지가 책의 내용을 관통하고 있습니다. ‘비움’을 강조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메일 상담을 하다 보면 가장 많은 질문이 ‘무엇을 먹어야 할까요?’라는 거예요.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덜어내는 게 더 빠르다는 겁니다. 좋은 것을 더하는 것보다 안 좋은 습관 한 가지를 비워내는 것, 평소 먹던 안 좋은 음식을 비워내는 것, 매일 습관처럼 많이 마시던 물을 조금 덜어내는 것이 몸을 더 건강하게 만들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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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 한방 소화제를 마셔라


한때 ‘1일 1식’이 유행처럼 번지며 각광 받던 때가 있었죠. 『내 몸을 비워야 내가 산다』에도 ‘1일 1식’, ‘1일 2식’에 대해서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주기적으로 반복하는 게 좋은 건가요?


저는 ‘1일 2식’을 하는데요. 책에서 말씀드린 ‘1일 1식’, ‘1일 2식’은 식사량을 줄이는 데 목적이 있는 게 아니에요. ‘1일 1식 필살기’, ‘1일 2식 필살기’에서도 말씀드렸다시피, 물을 안 마시는 시간을 길게 갖자는 거죠. 그렇게 해서 위장을 작고 단단하게 달라붙게 만드는 거예요. ‘1일 2식 필살기’를 예로 들어서 말씀드리면, 저녁을 먹고 물을 마신 다음에 다음날 점심 식사를 하기 전까지 수분을 섭취하지 않아요. 그러면 12~15시간 정도 몸에 수분이 안 들어오는 상태가 돼요. 위장은 위액만 있는 상태가 되겠죠. 수분이 안 들어오니까 (늘어났던 위가) 달라붙게 되고 위벽은 튼튼해져요. 그러면 음식이 들어왔을 때 소화가 잘 되는 거고요. 그러지 않고 오전 동안 물을 네다섯 잔 마시면 위장이 물 1kg을 흡수해서 늘어져있어요. 음식이 들어왔을 때 운동이 잘 될 수가 없죠. 그래서 위장이 지치는 거예요.

 

“주 1회 혹은 한 달에 2~3번이라도 주기적으로 하루 단식을 해보십시오”라고 권하기도 하셨는데요. 주기적으로 단식을 하세요?


저는 주기적으로 하지는 않고, 몸의 컨디션이 안 좋을 때 3일 정도 단식을 해요. 크게 아팠거나, 치과 치료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항생제를 상당 기간 복용했다거나, 그런 다음에는 단식을 생활화해요. 2~3일 정도는 쉽게 하고요. 진료를 하면서도 할 수 있어요.

 

단식을 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몸 안의 독성을 배출하기 위함인가요?


네, 완전히 비우는 거죠. 장을 예로 들어 볼게요. 장에는 90%의 좋은 균과 10%의 안 좋은 균이 공존하게 되어 있어요. 10%의 안 좋은 균 때문에 90%의 좋은 균이 발전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10%의 안 좋은 균마저도 소중한 거죠. 몸이 안 좋다는 건 10%의 안 좋은 균이 너무 많아진 건데, 단식을 하면 좋은 균도 죽고 안 좋은 균도 죽잖아요. 거기에서부터 다시 시작하자는 거죠. 이미 줄다리기 싸움에서 좋은 균이 이겼으니 몸도 좋은 쪽으로 변화될 수 있는 거죠.

 

단식 중에 소화제를 복용하라고 처방하신 부분이 눈에 띄는데요. 이유가 있나요?


처음에는 이런 분들에게 권해드린 방법이었어요. 살이 찌는 분들 중에 속이 더부룩하거나, 면역력이 떨어지거나, 피곤하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요. 하루 단식을 하면서 소화액이 나오는 관들을 청소해주면 좋잖아요. 소화제 중에서도 제가 꼭 강조하는 게 한방 소화제예요. 천연 성분이니까요. 특히 늘 소화가 안 되는 분들이나 그 상태가 심각해서 머리나 어깨가 아픈 분들은 식적 증상을 빠르게 없애줘야 되거든요. 하루 단식을 하면서 한두 번, 심하면 세 번 정도 소화제를 먹으면 한약을 먹지 않고도 빠르게 좋아져요. 식적 증상이 없는 분이라면 3~6개월에 한 번 정도 하루 단식을 하면서 소화제를 한 번만 드셔도 되고요. 사실 현대인의 몸에는 음식 찌꺼기들이 많이 남아있어요. 단식으로 그 찌꺼기들을 한 번씩 빼주는 게 도움이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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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다이어트, 갈증은 식초로 달래세요


뱃살의 특징에 따라서 다이어트 방법도 달라진다고요.


한의사 분들에게는 상식 같이 여겨지는 부분 중 하나인데요. 얼굴도 배도 하얗고 물살인 분들이 오시면 기를 조금 더 보충해줘야겠다고 생각해요. 반대로 까무잡잡하고 살이 단단하신 분들은 기를 발산시켜드리려고 하고요. 이 분들이 다이어트를 시작하면, 똑같이 운동을 해도 어떤 사람은 초반에 빨리 살이 빠지고, 어떤 사람은 살이 너무 안 빠져요. 그런데 전자의 경우는 2주 정도 지나면 지쳐서 병이 나고, 후자는 2~3달이 지나도 운동을 계속 하죠. 피부 색깔에 따라서 이런 차이점이 있어요.

 

뱃살이 하얀 사람들이 기가 약하다고 하셨으니까 먼저 지치겠네요.


그렇죠. 살이 물렁하다면 세포도 그렇겠죠. 물렁한 세포는 단단한 세포보다 잘 분리돼서 나갈 거고요. 그러니까 초반에 빨리 살이 빠져요. 그런데 세포만 빠져나가는 게 아니라 기도 빠져나가거든요. 반대로 뱃살이 단단한 사람은 세포도 단단하죠. 이 분들은 처음에 살이 잘 안 빠지기 때문에 땀을 많이 내야 돼요. 초반에 반드시 반신욕이나 사우나를 많이 해줘야 되죠. 모공을 열어주지 않으면 살이 잘 안 빠져요.

 

<살이 단단하고 근육질인 경우의 다이어트 법>
근육을 부드럽게 해주는 칡차를 마시면서 땀을 많이 낸 후, 바디롤러를 활용하면 좋다. 칡은 근육을 부드럽게 해주는 좋은 작용을 한다. 특히 허벅지가 두꺼운데 근육질인 경우 어지간해선 살이 잘 빠지지 않는데 이럴 때 따뜻한 칡차를 마시면서 다이어트를 하면 좋다.

 

<살이 물렁하고 흰 살인 경우의 다이어트 법>
복령차를 마시는 것이 좋다. 복령차는 몸의 허약 정도를 가리지 않고 마실 수 있다. 물살은 몸이 아주 허약하면서 비만인 분들에게서 종종 볼 수 있는데 그런 경우에도 복령은 좋은 약재다. 복령을 다려서 따뜻하게 마시면 좋다.

 

책에서 소개해주신 ‘사우나 다이어트’는 체질과 상관없이 효과를 볼 수 있는 방법인 것 같아요.


현대인이 수분을 과도하게 섭취하고 있기도 하고요. 다이어트가 필요한 상태라면 습(수분)이 쌓여있는 상태니까 빼줘야 하죠. 특히 소화기 주변에 습이 쌓여있으면 경락을 막아버리기 때문에 다이어트 효과가 빨리 나타나지 않아요. ‘사우나 다이어트’에는 원칙이 있는데요. 수건 두 장으로 얼굴을 가리고, 따뜻한 열기가 나오는 곳을 향해서 배를 가까이하는 거예요. 그러면 집중적으로 소화기의 불필요한 수분이 다 빠지고 달라붙을 수 있어요. 빠르게 효과를 볼 수 있죠. 물론 처음에는 수분이 빠지는데, 소화기의 물이 빠지는 거니까 에너지 대사량이 높아지고 살이 빨리 빠져요.

 

계절에 따라 다이어트 방법도 달라져야 한다고 하셨는데요. 다가오는 봄에 맞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봄은 한의학에서는 목(木)의 계절이에요. 목의 기운이 생겨요. 그걸 잘 받아들여야 돼요. 목의 기운은 반드시 따뜻함을 함께 가지고 있기 마련이에요. 봄이 되고 어느 정도 양기가 올라오고 목의 기운이 들어오면, 우리 몸은 갈증도 나고 옷도 조금 가벼워져요. 그래서 열이 조금 있는 분은 봄부터 갈증을 호소하죠. 그리고는 다이어트를 하면서 갈증이 느껴지니까, 또 살을 빼는 데 물이 좋다고 하니까 냉수를 과도하게 마셔요. 그렇게 되면 다이어트를 망치는 첫 걸음을 한 거예요. 제가 봄 다이어트에서 강조한 건 식초인데요. 식초가 간의 경락을 뚫어주기 때문에 목의 기운을 잘 받아들일 수 있어요. 봄에 느끼는 갈증은 살이 빠지는 신호이고 양기가 올라오는 신호이기 때문에, 가벼운 식초물로 해결을 하셔야 돼요. 절대 물을 많이 마시지 말고 따뜻하게 올라오는 열기를 즐기세요. 이게 봄 다이어트의 핵심이에요. 그리고 봄의 태양을 몸으로 다 받을 수 있다면 다이어트와 건강의 첫발을 성공적으로 들인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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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 미인은 위장이 건강하다


2030 세대를 위한 피부 관리법도 있을까요?


우리의 수족과 얼굴은 위장하고 연결이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위장을 좋게 하는 게 최선의 방법이에요. 그런데 현대의 2030 여성들은 어떤가요. 한여름에는 팥빙수, 아이스커피, 얼음물 마시고 짧은 옷을 입죠. 밖에 나갔다 오면 더위를 참지 못하고 에어컨 앞에 서있어요. 위장이 차가울 대로 차가워지는 거예요. 위장에 문제가 생긴 분들한테 바로 말씀드리고 싶어요. ‘밥 따로, 물 따로’ 하셔야 되고, 냉수 금지하셔야 되고, ‘1일 2식 필살기’를 해주세요. 그러면 빠르게 좋아져요. ‘하루 단식 필살기’도 2주에 한 번씩 해주세요. 피부에 트러블이 생기는 문제도 빠르게 해결돼요.

 

피부 재생과 위장 건강과도 관련이 있나요?


똑같이 여드름을 짜도 누구는 흉터가 생기고 누구는 안 생기잖아요. 피부 재생력의 차이죠. 재생은 음식을 소화하는 위장에서 결정하는 거예요. 살이 패였으면 새살이 올라와야 하는데, 위장에서 음식을 소화해서 살로 만들어야 되거든요. 위장에서 잘 소화해서 분별청탁을 해야 된다는 것, 곧 ‘청한 것과 탁한 것을 구분해서 맑고 깨끗한 건 위로 보내고 더럽고 탁한 것은 대소변으로 빼낸다’는 게 한의학 교과서의 첫 마디예요. 그러니까 위장을 좋게 해야 된다는 게 2030 세대에게 드리고 싶은 말이에요. 특히 냉수를 마시지 말고 온수를 마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구기자’는 갱년기 여성에게도 좋고, 눈과 관련해서도 효능이 있다고 하셨어요. 눈 건강을 지킬 수 있는 또 다른 방법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모든 치료에는 외치와 내치, 두 가지가 있어요. 내치는 구기자차, 결명자차, 다 좋습니다. 꾸준히 드세요. 그리고 외치가 상당히 중요한데요. 눈 주위는 다 경락이에요. 가볍게는 눈 돌리기, 마사지, 눈 오래 치켜 뜨기 같은 운동을 하실 수 있고요. 저는 눈동자 움직이기를 좋아해서 아침마다 하고 있어요. 그리고 ‘페이스 롤러’를 가지고 측두근을 마사지 해주면 정말 좋아요. 탈모 치료의 핵심도 측두근에 녹는 실을 자입하는 건데, 그게 바로 경락 소통을 해주는 거거든요. 페이스 롤러로 측두근을 밀어주면서 경락을 마사지해주는 게 정말 좋아요.

 

어린 아이의 감기를 예방할 수 있는 방법도 있을까요?


아이들이 제일 감기 잘 걸릴 때가 어린이집에 들어간 순간이에요. 어린이집에서 만나는 아이들이 서로 다른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잖아요. 그 바이러스들을 이겨낼 면역이 있으면 괜찮지만, 면역이 없으면 무조건 감기를 앓아야 돼요. 앓고 나면 면역 물질과 건강을 줘요. 앓기 싫다고 감기약을 먹으면 그 아이는 다음에 또 감기에 걸려야 돼요. 면역은 떨어지는 거고요. 예방접종의 원리도 그렇잖아요. 병에 걸리지 않을 정도로 소량의 백신을 넣어서 면역을 주는 거잖아요.

 

자녀분들의 경우는 어떤가요? 감기약을 복용하지 않나요?


우리 아이들은 독감 백신을 맞아본 적이 없어요. 그래도 감기 한 번 안 걸려요. 그 전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느냐 하면, 처음에 감기하고 친해지지 않아요. 감기약을 안 먹어요. 감기약에는 항생제가 들어가잖아요. 그런데 (항생제는) 모두 다 살균, 살충이거든요. 그래서 감기에 걸렸을 때 아이들에게 제가 먹인 건 오로지 ‘소청룡탕’이에요. 한의학에서 처방하는 감기약인데 그 기본이 보약 성분이거든요. 그래서 아무리 많이 먹어도 괜찮아요. 그래서 소청룡탕을 기본으로 하고 감기에 걸리면 앓게 했어요. 염증이 조금 심하면 ‘형개연교탕’을 추가했고요. 다 의료보험 적용되는 약들이에요.

 

말씀하신 것처럼, 백신의 원리와 같다고 볼 수 있겠네요.


담금질하는 방법인 거예요. 우리 몸을 자꾸 담금질한 거예요. 감기를 앓는 거나, 단식을 하는 거나, 사실 이치는 똑같아요. 다 담금질이에요. 제가 책에도 썼듯이 솔개는 40세가 넘어가면 부리를 스스로 깨고 발톱과 깃털도 쪼아서 없애요. 그것도 담금질이에요. 스스로를 담금질해서 작은 고통을 자꾸자꾸 이겨내는 거죠. 그게 우리가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는 비결이에요.

 

한방은 병의 근본적인 원인을 치료한다는 점에서 신뢰가 가지만, 양방에 비해서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단점이 있어요. 『내 몸을 비워야 내가 산다』에서 알려주신 방법들도 그 효과를 보려면 긴 시간이 필요할까요? 


저도 그런 부분을 충분히 감안했기 때문에 이 책을 쓸 때 빠르게 효과가 입증된 것들을 모았어요. 『내 몸을 비워야 내가 산다』에서 알려드린 방법들을 실천해 보시면 1~2주 안에 스스로 효과가 느껴져요. ‘밥 따로, 물 따로’를 2주 해보시면 그냥 느껴지실 거예요. 빠른 분들은 3~4일만 하셔도 느껴지고요. 그렇게 빠르게 효과를 보실 수 있기 때문에 따라오시기도 편해요. 제가 SNS에서 상담을 하면서 팔로워가 빨리 늘어난 것도 그런 이유예요. 처음에는 다들 물음표를 가지고 보세요. 그런데 시작해 보니까 정말 효과가 나타났다고 말씀하세요. 이 책만 가지고도 충분히 하실 수 있어요.


 

 

내 몸을 비워야 내가 산다이우재 저 | 알투스
이 책은 건강과 다이어트에 관한 SNS 한방상담으로도 유명한 저자가 6만 명이 넘는 팔로워들과 나눈 수만 개의 질문과 상담을 바탕으로 쓴것이다. 그래서 환자들의 다양한 고민을 해결한 사례를 바탕으로 ‘몸 비우기’ ‘피부 비우기’ ‘습관 비우기’ ‘마음 비우기’에 관해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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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혜영 “내가 계속해서 쓸 수 있는 소설은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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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폴란드의 대표적 문학 온라인 커뮤니티 ‘그라니차(Granice.pl)’가 주관하는 ‘올해의 책’으로 편혜영의 『재와 빨강』이 선정된 것. 프랑스, 베트남, 폴란드에 이어 곧 영미판이 출간되는 『재와 빨강』은 아내를 죽였다는 혐의를 받고 쫓기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그린다. 소설은 필시 낯선 상황으로 전개된다. 전염병이 창궐하고 쥐가 끓는 곳에서 철저하게 고립된 주인공. 그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동시에 일상으로의 복귀를 간절히 꿈꾼다. 가상의 공간으로 초대된 독자는 주인공의 선택이 아이러니하다. 가깝고 또 멀어지는 거리감을 흠씬 경험하다 쓰고 매운 공기를 마신다.

 

작가는 소설의 문장을 여러 번 고쳐 쓰는 편이다. 끊임없이 문장을 소리 내어 읽어보는 버릇 때문이다. 편혜영 소설의 호흡이 가쁘지 않은 이유다. 그의 소설을 맛본 독자라면 한 편으로 만족하기 어렵다. 후속작을 기다리거나 전작을 찾아볼 수밖에 없다. 책을 쓰는 존재이기 전에, 읽는 존재이기도 한 편혜영의 이야기로 들어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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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서는 작가에게 기념품 같은 존재


『재와 빨강』은 2010년 작품이에요. 발표한 지 7년이 지난 소설이 먼 나라, 폴란드에서 사랑받은 소감이 궁금해요.

 

제 책이긴 하지만, 제가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어서 낯설고 실감이 나지 않아요. 독자들의 피드백이 전혀 없는 상황이어서 궁금할 따름이죠. ‘올해의 책’으로 선정됐다는 뉴스를 듣고, ‘어디에나 독자는 있구나’하고 고맙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어요. 폴란드는 아직 가보지 못한 나라예요. 그런 곳에서 내 이야기가 희미하게 떠돈다고 생각하니 더 재밌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번역 도서는 작가에게만 기념품 같은 존재일지도 몰라요. 기분 좋은 선물이죠.

 

많은 작품 중 왜 하필 『재와 빨강』이었을까, 생각은 안 하셨는지요?


독자들마다 선호하는 책이 다르겠지만, 『재와 빨강』은 작품의 호오를 떠나 작가인 저에게는 인상적인 작품이에요. 처음으로 쓴 장편이었으니까요. 이전에 쓴 단편들의 세계를 정리하는 기분도 들었고, 그 모든 걸 아우르고 있다는 느낌도 들어서 반응에 상관없이 의미가 있는 작품이었어요. 시기적으로도 다음에 쓸 작품과 달라지는 계기를 만들어주기도 했고요. 역병이라는 소재를 다루고 있어서 다른 언어로 번역할 때, 시차나 지역적인 차이 등에 크게 구속받지 않았을 것 같아요. 『재와 빨강』이 프랑스에서 출간됐을 때, ‘여기는 이미 카뮈의 『페스트』가 있는 작품인데『재와 빨강』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생각했어요. 하지만 보편적인 소재는 시차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생각도 들었죠.


초고를 쓸 때, 가제가 ‘생쥐처럼 아름다워지고 싶어’였다고요.


일본 가수의 노래 가사에서 인용한 제목이었어요. 『재와 빨강』은 편집부에서 추천해준 제목인데, 듣자마자 좋았어요. 모호하고 이미지가 압도적인 제목이어서 좋다고 생각했죠.

 

에세이집 『소설의 첫 문장』을 보면서 편혜영 작가님의 작품이 한 편 들어가 있겠다 싶었어요. 역시나 『재와 빨강』에 나온 첫 문장이 실렸더라고요. “위험에 대한 경고는 언제나 실제로 닥쳐오는 위험보다 많지만 막상 위험이 닥칠 때는 어떤 경고도 없는 법이었다.”


저도 그 책 봤어요. 첫 문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라 재밌게 읽었어요. 『재와 빨강』의 첫 문장은 되게 많이 고친 문장이에요. 전체를 아우르는 문장으로 쓰고 싶어서, 이러저러한 시행착오를 많이 거쳐 만들어진 문장이에요. 교정을 보면서까지 여러 번 고쳐서 편집부 분들을 많이 괴롭혔죠. (웃음)

 

첫 장편이기 때문에 더 신경을 쓰셨나요?


첫 시도였으니까 가능하면 최선의 것을 선택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저는 단편을 쓸 때, 첫 문장이 그냥 흘러가지 않도록 끝까지 고치는 편이거든요. 연속선상에서 장편의 첫 문장도 계속 들여다봤는데, 지금은 오히려 장편의 경우에는 첫 문장에 너무 많은 걸 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요. 첫 문장이 지나치게 흘러가는 문장이면 안 되겠지만, 지금은 이야기 분량이 기니까 그렇게 연연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요.

 

여러 번 고친 만큼, 마음에 드는 문장인가요?


딱히 그렇진 않아요. 문장을 쓸 때 소리 내어 읽어보면서 고치는 편인데요. 이 문장은 좀 길어요. 읽는 호흡이 좋지 않고 지나치게 경구 같은 느낌도 있어요.

 

오래전 인터뷰에서 “문장에 관한 생각은 항상 바뀐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작정하고 이렇게 써야지, 하는 건 없어요. 작품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하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확실히 이미지나 모호한 분위기를 형성하는 문장을 많이 썼어요. 지금은 사건을 진행시키는 문장이나 인과를 설명하는 문장에 집중하는 것 같아요. 내가 쓰는 이야기가 달려졌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바뀐 게 아닐까 생각해요. 기본적으로 어떤 상황이나 인물 자체에 거리를 두고 쓰는 태도 자체는 변하지 않았어요.

 

『재와 빨강』은 결국 ‘위험에 대한 경고 때문에 위험에 빠져드는 사람의 이야기’예요. 소설을 읽는 독자는 필연적으로 ‘나라면 그 위험에 어떻게 대처할까?’ 질문을 던지게 되는데요. 작가님은 위험을 민감하게 예측하는 편인가요? 아니면 좀 무감각하신 편인가요?


전염병이 돈다는 뉴스가 나오면, 재빠르게 반응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도시를 떠나거나 먹을거리를 많이 사놓는다거나. 저는 오히려 크나큰 불행에 대해서는 무던한 편이에요. 크게 실감하지 못해요. 오히려 사사로운 일들에 더 민감해요. 큰 일에는 오히려 태평해지는 구석이 있어요.

 

제약회사에서 약품개발원으로 근무하는 소설의 주인공은 전처의 유력한 살해용의자로 지목되고, 위기를 맞을까 봐 위기에 뛰어들죠. 굉장히 큰 사건에 휘말리지만 사실 주인공은 꽤 평이한 인물이기도 해요.


소심하고 평범한 인물이죠. 소설을 쓸 때도 뚜렷하게 몽타주도 기억 안 나는 이미지를 갖고 썼어요. 아마 우리 주위를 봐도 비슷한 인물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저 역시 주인공과 비슷한 부분이 있어요. 소극적이고, 감탄사나 비명을 크게 자주 지르는 편이 아니죠. 주인공은 어떤 위기 앞에서, 이를테면 누군가 칼을 들이댔을 때도 비명을 숨기는 사람이에요. 겁에 질려서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는 인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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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 이야기를 만드는 큰 추동력


최근작은 『홀The Hole』이에요. 출간된 지 1년이 채 안 됐는데 리뷰가 상당히 많더라고요.

 

저는 독자 리뷰를 찾아 읽어요. 독자들이 의아해하는 지점이 무엇인지 궁금해요. 작품을 쓰다 보면 표면화되지 않은 인물들이 있어요. 『홀』에서는 주인공 ‘오기’의 아내가 그런 경우였는데, 아내라는 인물을 궁금해하는 리뷰들이 있었어요.

 

저자로서 반가웠겠어요.


감사했죠. 『홀』은 ‘오기’라는 인물에 의해 통제된 소설이에요. 때문에 아내에 관한 서사는 후면으로 감출 수밖에 없었죠. 완전히 말하지 않았지만, 더 말할 게 있는 것처럼, 감춰진 이야기를 궁금해하는 지점이 있는 것 같아 반가웠어요.

 

『홀』은 2014년에 발표한 단편 「식물 애호」에서 시작된 작품이에요. 갑작스러운 교통사고와 아내의 죽음으로 일상이 완전히 달라진 40대 대학교수 ‘오기’의 삶을 이야기합니다.


‘오기’는 어떻게 인생은 한순간에 달라질까, 하는 질문을 하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실제로 한순간에 달라지는 건 아니죠. 오랫동안 삶에서 희미하게 번져가던 균열을 미처 못 봐온 거죠. 봤다고 하더라도 그걸 쉽게 무시해 왔거나. 그런 사람은 인생이 자신에게 느닷없이 인색해졌다고 생각하겠죠. 그런 인물 이야기를 써보고 싶었어요.

 

모든 소설의 시작은 어쩌면 ‘아이러니’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요.


제 소설의 이야기는 아이러니에 많이 의지해요. 『재와 빨강』도 잘해보려고 애쓰는데 실패하는 이야기, 그래서 더 좌절감이 큰 이야기예요. 노력을 했는데 그 대가가 제대로 주어지지 않는 현실, 노력을 배반하는 상황들을 볼 때 아이러니를 많이 느끼는 것 같아요. 『홀』에서도 오기는 관계를 개선해보려고, 잘해보려고 아내와 여행을 떠나는 데 그게 파국의 계기가 되죠. 그런데 이게 또 완전한 파국인지,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인지도 알 수 없는 상황에 놓여요. 이런 아이러니가 이야기를 만드는 데 큰 추동력이 돼요.

 

편혜영 작품을 말할 때, 항상 ‘카프카’ 이야기가 빠지지 않아요. 폴란드 ‘올해의 책’ 선정에서도 “알베르 카뮈와 프란츠 카프카의 문체를 연상케 하는 작품”이라는 언급이 있었고요. 불편하거나 부담스러운 느낌은 없으신가요?


카프카는 자장이 넓은 작가잖아요. 많은 후배 작가들에게 영향을 미친 작가이고, 아직까지도 유효한 작품의 작가예요. 제 작품에서 카프카의 일부가 느껴진다는 것도 좋은 의미로 받아들여지고요. 카프카 작품의 기본 골조도 아이러니잖아요. 제 작품과 닮은 부분이 있기 때문에 그런 평가가 나오는 것 같아요.

 

과거에 “현실을 재현하는 것에 재미를 못 느낀다”고 하셨어요. 지금도 비슷한 생각을 하시는지요?


오래전부터 장편으로 쓰고 싶어서 제목까지 정해놓은 이야기가 하나 있어요. ‘아파트먼트’라는 제목인데, 아파트에서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예요. 쓰려고 노력했지만 계속 실패했어요. 사람들의 개인적인 일상생활이 소설 속에서 구체화되어 나오는 장면을 써야 하는데, 쓰는 게 그다지 재미있지가 않았어요. 저는 현실 그대로 재현되는 게 아니라, 현실이 조금 비틀리고 확대되어 재현되는 게 더 재밌더라고요. 넓게 생각하면 소설은 모두 현실의 반영이자 재현이니까 ‘재현’ 자체에 재미가 없다는 게 아니라 좁은 의미로서의 재현에 흥미를 못 느낀다는 뜻이에요.

 

그래도 언젠가 볼 수 있을까요?


에피소드는 많이 써놓았는데요. 장편이 아닌, 단편들을 묶은 소설집 제목으로 쓸까 생각하고 있어요. 저는 아파트라는 공간을 되게 좋아해요. 어릴 때부터 살아왔던 공간이고요. 고향이 서울이어서 그런지, 특정한 공간이나 자연이 아니라, 옛날식 아파트 같은 주거 형태에 대한 애틋함과 그리움이 있어요. 도시 인이 느낀 아파트라는 공간성은 투기나 부동산의 개념이 아니라, 주거지로서의 느낌이 더 강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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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의 지점은 독자마다 다르다


2000년에 등단하셨으니 세월이 조금 더 흐르면 20주년이 됩니다. 갓 등단했을 때와 지금을 비교해보면 어떠세요? 그립거나 아쉬운 면이 있으신지 궁금해요.


나름대로 다 좋은 것 같아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소설에 대한 생각이 편해진 면도 있어요. 모든 장면을 다 무겁고 꽉 차게 쓰지 않아도 좋다는 생각을 조금씩 조금씩 하게 됐고요. 예전에 소설을 지나치게 꽉 차고 정확하게 만들려고 했다면, 지금은 소설도 현실처럼 조금 흐트러져도 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어요. 그걸 알아가는 시기인 것 같아요.

 

『홀』에서 오기는 “사십대야말로 죄를 지을 조건을 갖추는 시기”(78쪽)라고 말해요. 허연의 시 「슬픈 빙하 시대 2」를 읽은 단상인데, 사실 그 시 속에는 사십대라는 표현이 없죠. 오기가 다만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에 그렇게 읽힌 거예요. 작가님도 지금 사십대이시니까 비슷한 심리로 그 시를 읽지 않았을까 생각했어요.


맞아요. 허연 선배의 시를 읽다가 느낀 것을 소설에 그대로 썼어요. 애당초 사십대라는 어구가 없었는데,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게 재밌었어요. 오기의 상황과도 잘 맞아떨어졌고요. 사십대는 삶의 형태를 달리하는 시기인 것 같아요. 이전까지의 삶의 결과를 보여주는 시간이기도 하고, 이후의 삶을 가늠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고요.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경험치도 필요하고 또 깊은 사고도 필요할 텐데요. 작가님은 경험보다는 생각에 더 많이 집중하는 편이신 것 같아요.


경험치가 그리 많지 않아서 경험에만 의지해서 쓸 수 없어요. 경험이 언제나 좋은 해석이나 결과를 주는 것도 아니고요. 그렇기는 해도 이야기 속에는 어떤 식으로든 경험이 반영되기 마련인데요. 사건을 만들 때도 그렇지만 인물의 성격을 형성할 때, 배경을 만들 때도 영향을 주죠. 내가 본 텍스트, 영상 이미지, 사진 이미지 등 전방위적인 것이 영향을 미치죠.

 

자료조사를 할 때, 적극적으로 취재하는 작가도 있고 책을 많이 보는 작가도 있어요.


저는 후자예요. 일단 누군가를 만났을 때, 보편적이냐 특수하냐부터 문제가 돼요. 그 사람의 이야기를 소설로 담는다고 했을 때, 내가 원하는 것과 전혀 다른 얘기를 하는 사람일 수도 있고요. 개인적인 성향이 반영된 직업적 특수성이 있을 수 있어서 그다지 신뢰하지 않아요. 객관적인 정보를 위해 책을 더 많이 살펴보는 편이에요.

 

작가는 독자에게 불친철할수록 좋다고 생각하시나요?


친절할 필요도 없지만요. 어쨌거나 이야기는 읽혀야 한다고 생각하는 쪽이에요. 이야기로써 흥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흥미의 지점은 독자마다 다르죠. 어떤 독자는 친절한 책을 좋아하거든요. 또 어떤 독자는 이야기는 불친절하지만 언어로서 의미가 풍부한 소설을 좋아하고요. 누군가를 겨냥한다고 하기보다는 자기 기질대로 쓸 수밖에 없는 지점인 것 같아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계세요. 보통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우선 “쓰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작가님은 “읽으라”는 말씀을 더 많이 하신다고요.


좋은 독자가 되어야 좋은 작가가 된다고 생각해요. 많이 읽어봐야 자기가 뭘 쓰고 싶은지도 알 수 있고요. 무작정 쓰려는 충동이 꼭 좋지만은 않아요. 그런 친구들의 경우, 일단 쓰기만 하려고 드는데, 소설은 일기가 아니니, 다른 사람에게는 어떻게 읽힐까에 관한 고민도 당연히 해야죠. 그러려면 우선 많이 읽어야 해요.

 

창작자로서의 모습은 다를지 모르지만, 일상생활에서는 집요한 그 어떤 면이 없으신 것 같아요.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걸, 지켜보는 성격이신 것 같은데요. 소설가로서 지니는 생존 본능 같은 게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작가로서 편혜영이 뭘 쓰면 좋을까. 그런 생각을 늘 하죠. 내가 계속 쓸 수 있는 소설은 뭔가’에 대한 고민은 작품을 쓰는 동안 계속할 것 같아요. 내가 쓰면서 재밌어하는 이야기, 내가 지금까지 써온 이야기와 완전히 다르지 않으면서 어느 정도 달라지는 이야기. 그런 것에 대한 고민은 매번 할 수밖에 없어요. 예전 작품과 어떻게 다른지, 그런 생각도 하게 되고요.

 

언젠가 문학평론가 신형철로부터 “내장을 만지는 글쓰기”라는 평을 들으셨어요. 소설가로서 받을 수 있는 평가 가운데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생각했어요.


저도 되게 좋아하는 표현이에요. 아주 내밀한 공간을 들여다보면서 서슴지 않고 만진다는 의미잖아요. 제 작품이 여전히 이 해석에 유효한 작품이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요.

 

모든 작품이 다 자식 같고 애틋하겠지만요. 조금 더 만져주지 못해, 주목받지 못해 아쉬웠던 작품이 있는지 궁금해요.


책으로 묶다 보면 교정 단계에서 좀 지쳐요. 작가인 나는 이미 다 아는 서사잖아요. 그 이야기를 계속 입으로 소리 내서 교정을 보다 보면, 어느 순간 지쳐서 토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그 정도까지 고치면 더 이상 손볼 수 없는 작품이죠. 항상 이런 과정을 거쳐 책으로 묶는 데도 출간된 책을 보면 꼭 어색한 문장이 눈에 띄고 부족한 부분이 보여요. 여기서 인물이 왜 이런 말을 했을까, 되돌아 생각해보면 아쉽죠. 『서쪽 숲에 갔다』는 대중적으로 인기가 많지도 않았고 문학적 평가를 좋게 받지도 않았는데, 제가 쓰고 싶은 몇 가지 이야기가 담겨 있는 작품이에요. 자기 자신에 대해 궁리하지만 끝내 알 수 없다고 고백하는 인물, 열심히 해보려고 했으나 결국 실패를 경험하는 인물, 정확하게 해석할 수 없는 세계같이 제가 좋아하는 모티프를 많이 가진 소설이에요. 이 작품을 어떤 식으로든 다른 이야기가 될 수 있도록 써보고 싶기도 해요. 궁리가 많이 되는 작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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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시공간을 함께 나누는 물건


작가로서, 또는 개인으로서 갖는 사적인 소망이 있나요?


계속 소설 쓰는 사람이 되겠다는 것. 여전히 읽고 계속 쓰겠다는 것이요.

 

평소에 소설 외의 어떤 장르의 책을 즐겨 보시나요?


잘 이해하지 못하는 구석이 많은데 과학책을 많이 읽어요. 객관적으로 서술된 문장을 좋아해요. 인간 본성에 대해 해석해놓은 문장도 좋고요. 어떤 통찰을 주는 문장을 읽을 때 좋아요.

 

지금까지 에세이집은 한 번도 발표하지 않으셨어요. 칼럼, 에세이를 많이 안 쓰는 편에 속 하시는데요.


잘 못써서 안 써요. (웃음)

 

이것도 “현실을 재현하는 것에 흥미를 못 느낀다”는 이야기와 같은 맥락인가요?


글쎄요. 예전에 청탁이 오면 쓰긴 했는데요. 칼럼 같은 경우는 시의성이 강하잖아요. 저는 대개 한발 늦어요. 재빠르게 현실을 포착하는 능력 같은 게 발달하지 않은 것 같아요. 에세이 같은 경우는 관심사가 다양하고 활동적인 분들이 소재를 많이 가지고 계세요. 저는 일과가 단조롭고 단순하다 보니, 비정기적으로 에세이를 몇 편 쓰긴 하지만, 정기적으로 쓰긴 좀 어려운 면이 있어요. 이런저런 매체에 쓴 짧은 글들을 모두 묶으면 에세이집이 되겠지만, 제가 생각하는 좋은 에세이집은 어떤 주제를 갖고 쓰는 책이에요. 나중에 에세이집을 낸다면 더 공부하고 기획해서 내고 싶긴 해요.

 

최근 눈여겨보는 젊은 작가가 있나요?


『참담한 빛』을 쓴 백수린 작가를 좋아해요. 믿음직하게 써나가는 친구라서 작품을 여러 곳에 자주 추천해요. 기준영 작가의 최근작 『이상한 정열』의 톤과 인물들도 좋아하고요.

 

사람들이 계속 책을 너무 안 읽는다, 읽을 시간이 좀처럼 없다고 하잖아요. 그럼에도 책을 꾸준히 읽는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을 것 같아요.


책은 여백과 글자를 함께 읽게 하는 독특한 물건이에요. 그게 흥미로운 것 같아요. 반드시 여백이 있다는 것. 작가가 미처 말하지 못한 것, 작가가 감춘 걸 다 찾아 읽게 되죠. 독자 입장에서는 책을 읽을 때의 공간과 시간이 고스란히 남겨지기도 하고요. 책이라는 물건은 공간과 시간을 함께 나눌 수 있는 흔치 않은 존재예요.

 

후속작, 궁금한데요.


경장편이 될 지, 중편이 될지 모르겠는데 올해 발표하려고 쓰고 있어요. 단행본으로는 아마 내년 초쯤 펴내지 않을까 싶고요. 소읍에 사는 두 남자 사이에서 일어난 이야기인데요. 소외나 냉담함, 전체주의적인 것과 개인적인 것 사이의 고민을 담는 이야기가 될 것 같아요.

 


 

 

재와 빨강편혜영 저 | 창비
한국일보문학상, 이효석문학상을 수상한 편혜영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다. 제약회사의 직원으로 쥐를 잡는 능력을 인정받아 파견근무를 가게 된 C국에서 아내를 죽였다는 혐의를 받고 쫓기다, 쥐를 잡는 임시방역원으로 일하게 되는 한 남자의 이야기를 특유의 그로테스크한 상상력에 밀도 높은 문장으로 표현해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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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근우, 기자야말로 ‘프로불편러’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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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불편러’는 어떤 상황에서 정치적 올바름이나 불평등을 이유로 불편해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신조어다. 보통 작은 일에도 예민하게 군다는 부정적인 말로 쓰인다. 그러나 <아이즈> 취재팀장 위근우는 오히려 프로불편러라는 말을 불합리함과 부담함에 대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들에 대한 자기 긍정의 표현으로 받아들였다.

 

『프로불편러 일기』는 <아이즈>에 실린 기사 중 그의 시각이 여실히 드러난 글을 엮은 책이다. 대중문화를 다루는 잡지의 기자이지만, 대중문화라고 해서 언제나 하하 호호 웃고 즐거울 수만은 없다.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기준으로 다뤄지지 않았던 문화 영역을 누구보다 빨리 이슈를 짚어내고 공론화시켰다는 점에서 위근우는 분명 훌륭한 기자다.


“기자라는 직업은 필연적인 프로불편러여야 한다. 세상에 대한 기자의 문제의식이란 예민함의 다른 말이다. 기자는 자신이 느끼는 불편함의 실체를 논리적으로 실증적으로 검증하고 그 검증의 과정을 정돈된 언어로 재구성해 세상에 피드백할 수 있어야 한다.”
-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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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라는 직업의 사회적 책임


제목을 신조어로 써서 강렬하다 싶었습니다. 제목을 이렇게 짓게 된 계기가 있나요?

 

이제까지 쓴 글을 모아 놓고 보니 불편하다고, 이건 좀 아니라고 말한 글이 많더라고요. 현상이나 사람, 방송 프로그램도 많이 비판했고요. 물론 지금까지의 모든 작업이 ‘프로불편러’의 시각으로 쓴 건 아니에요. 하지만 기자란 직업이 불편한 일을 쓰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적어도 이제까지 제 작업이 ‘프로불편러’와 동떨어진 것 같진 않다는 생각이었죠.


말씀하신 대로 비판한 글이 많았잖아요. 반발하는 반응은 없었나요?

 

생각해보면 책에 처음부터 나오는 게 일베예요. 당연히 일베 쪽에서는 안 좋아했던 거로 알고요. 메갈리아4 티셔츠 이야기하면서 ‘오늘의유머’ 사이트를 비판하기도 했어요. 댓글이나 SNS로 욕을 많이 먹었죠. 당사자의 반발이 있었던 건 아니지만 진중권 씨나 이동진 씨한테도 어느 정도 비판적인 태도를 보였고요.


두려움까진 아니었겠지만, 글을 쓰면서 파장을 예상한 적도 있나요?


글은 파장이 있으면 좋죠. 하지만 우선 제가 성의 있게 비판한다면 저쪽에서도 성의 있게 반론할 거라는 믿음이 있어요. 어떤 면에서는 선의라고 할 수 있죠. 비판하는 대상이 마음이 상하거나, 그분들의 반론에 제가 마음이 상할 수는 있겠지만 비판자와 비판 대상의 감정은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기자는 이러저러한 점이 기분 나쁘다고 말하고 끝내는 게 아니라, 어떤 점을 비판적으로 보는지 쓰는 사람이잖아요. 제 의견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담론이 부딪치는 걸 보면서 숙고하는 과정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렇게 보면 대립은 그렇게 중요한 일은 아니에요.


글의 파장이 클수록 기자도 주목받죠.


전 직장인 <텐아시아>에서부터 집중적으로 엔터테인먼트 관련 글을 썼는데, 그때는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하지만 <아이즈>에서 2015년 이후부터는 그 생각을 버린 것 같아요. 그 마음으로는 이야기할 수 있는 게 없더라고요.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넘어갈 수 없는 게 너무 많아졌어요.


세 가지 이슈가 기자라는 직업의 사회적 책임에 고민한 계기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첫 번째로 정치가 엔터테인먼트 형태로 소비되면서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하셨는데요. 정치와 정치적 올바름은 다른 맥락이지 않나요?

 

최근 들어 흔히 말하는 피씨함(politically correct:정치적 올바름)이 생활의 영역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고 있지만, 사실 정치 분야야말로 가장 정치적 올바름이 추구되어야 할 영역이라고 생각해요. 정치는 옳고 그름이라는 게 너무나 중요하잖아요. 가령 한 사람의 과격한 호모포빅한 발언보다는 차별금지법이 시기상조라는 정치인의 점잖은 한 마디가 더욱 그릇된 효과를 가져오죠. 예의 바르냐 아니냐, 재밌냐 아니냐, 솔직하냐 아니냐 같은 범주로는 정치인을 제대로 평가할 수 없어요. 만일 예능 프로그램에서 다루는 정치인이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사람이라면, 웃고 떠들면서 친숙하게 만드는 방식이 옳은 방식인지 고민할 수밖에 없게 되겠죠.


대중문화를 표방하는 잡지에서 정치를 이야기하는 것도 독자들 입장에서는 새로울 수 있겠어요.


<텐아시아> 때도 웹툰을 많이 다뤘던 이유가 TV만큼이나 대중적인 엔터테인먼트 영역이 됐다는 생각 때문이었는데, 어느 순간 정치가 엔터테인먼트가 됐어요. 그 전에도 <나꼼수>가 있었지만, 정치가 엔터테인먼트화 된 데에는 <썰전>이 컸다고 생각해요. 일차적으로는 사람들이 재밌어하는데 안 다룰 수는 없었어요. 하지만 함부로 다루면 큰일 나죠. 당장 지지자들이 분노할 수도 있고요. 만일 분노가 일어났을 때 정말 내가 떳떳할 만큼 비판하려면, 정치적 올바름은 필연적으로 고민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있었죠.


사회적 책임을 고민한 계기 중 두 번째가 세월호였어요. 나보다 어린 세대를 위해서 기자로서 뭘 할 수 있을지 생각이 드셨다고 했는데, 그 전까지는 기자님 세대를 어린 쪽에 두고 계셨던 건가요?


지금도 제 나이대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있는 것 같아요. 기성세대를 까는 건 쉬워요. 나는 피해 세대고, 저 낡은 무리가 내 기득권을 뺏어 갔다고 손가락질하기 좋은 포지션이죠. 기존에 제가 가진 비판적인 입장의 기사도 어쩌면 그랬을 수 있고요.


물론 10대 친구들이 배에 탄 건 우연이겠지만, 세월호가 그렇게 되고 나서 국가가 손을 놓고 이렇게까지 유족이 원하는 바가 하나도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 자체가 너무 이해가 안 됐어요. 제가 비록 조그마한 매체의 기자지만 10대나 20대에게는 그만한 발화 공간도 별로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지금 제일 열심히 하는 기자들이 다 제 또래기도 하고요. 그렇다면 이미 꽤 자리 잡은 상황에서, 우리 세대가 뭘 할 수 있는지 고민해야겠구나 싶었어요. 기성세대 비판이 잘못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이제는 제가 가진 걸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대중문화 기자라는 입장이 특이할 것 같아요. 언론의 책임이나 기자의 책임을 묻는 건 시사 쪽 기자인 경우가 많잖아요.


국정농단이 일어났을 때 흔히 언론은 뭐했냐고 비판하지만, 마찬가지로 우리 대중문화가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거나 저열해졌을 때 언론은 뭘 했냐고 물어야 해요. 연예 매체 기자들을 ‘기레기들’이라고 하는데, 분노의 표현으로 이해는 해요. 하지만 너무 당연히 연예 매체에는 딱히 기대할 게 없다고 하는 건 별로 좋지 않은 것 같아요. 시사 문제에서 언론은 뭐 하고 있었냐고 묻는다는 건 언론이 계속해서 감시할 필요가 있고, 그런 게 좋은 언론이라는 합의가 깔려있잖아요. 하지만 대중문화 쪽에서는 ‘너희가 그렇지 뭐’ 정도 밖에 안 나오거든요. 그보다는 조금 더 유의미한 생산적인 피드백이 있어야 좋은 기사를 쓰고자 하는 동기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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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페미니스트는…….


마지막 계기를 온라인 기반의 대중적인 페미니즘의 부흥으로 꼽아주셨는데요. 농담으로 ‘남성 페미니스트는 유니콘보다 귀하다’는 말이 있어요. 남성 페미니스트로서의 위치가 특이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적긴 적겠죠. 가부장제가 체화된 나라라서 그런지 페미니스트라고 말하는 사람도 적고, 자기가 페미니스트인지 모르는 페미니스트도 있어요. 또 개인적으로 페미니즘에 동의할지언정 발언하는 건 뜨거운 문제가 됐고요.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으로 주로 문장을 시작하죠.


그런 발언도 많고요. 확실히 트위터에서 페미니즘 이슈를 놓고 치고박는 걸 보면 남자 페미니스트에 대해 반발도 많은 것 같기는 해요. 그것과는 별개로 불필요할 정도의 애정과 과대평가도 받아요. 잘 인식해서 받아들여야죠.


남자 페미니스트가 운동으로서의 페미니즘에 끼칠 수 있는 ‘실천적’ 해악에 대해 발언하신 적도 있습니다.


저 같은 사람의 해악이에요. 기본적으로 남자 페미니스트가 한계를 알아야 한다는 입장이거든요. 페미니즘 이슈에서의 당사자성을 볼 때마다 느껴요. 제가 미처 몰랐던 것들이 너무 많아요. 가령 여성들이 당하는 추행이 얼마나 많은지를 진짜 모르는 거예요. 남자 페미니스트는 여자들이 같은 공간에서 숨을 쉬면서 느끼는 불안감과 공포가 짐작도 불가능한 거라는 건 알고 있어야 해요. 그것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발언하면 어떤 부류의 여성을 지울 수 있어요.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던 것도 여전히 남성중심주의적인 선에서 구성되어 있었다는 걸 느끼고 나서는 확실히 발언을 줄이고 더 많이 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남성 페미니스트들은 억울해하기도 해요.


소위 래디컬 페미니스트들이 ‘한남들은 다 닥쳐’ 하는데 서운해하는 남성 페미니스트들이 있어요. 되게 부질없는 것 같아요. 여성들이 한국 남자, 특히 진보나 페미니스트를 표방하는 남자에게 실망하거나 불신하는 건 그들의 경험을 종합해 볼 때 합리적이거든요. 그렇다면 남자 페미니스트들은 왜 우리를 안 믿어주냐고 할 게 아니라 묵묵히 페미니스트로서 노력하면 돼요. 누구한테 사랑받으려고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잖아요. 페미니즘은 옳은 거예요. 한국 사회는 분명 여성들에게 불평등하고, 잘못된 걸 고치자고 말하는 건 별다른 논증이 필요 없거든요. 억울해할 필요도 툴툴댈 필요도 없어요.


페미니즘이 여자 대 남자 대결 구도가 되는 것도 우려하게 됩니다.

 

가령 담론장이라는 게 제로섬 게임도 아니고, 남자가 발화한다고 해서 여자의 발언권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지 않냐는 이야기가 있어요. 줄어드는 게 맞아요. 왜냐하면 제가 페미니즘 이야기를 하면 유니콘 취급을 받으니까요. (웃음) 유니콘 취급을 받으면 인터뷰를 한 번 더 할 수도 있겠죠. 당장 발언들이야 한 마디 더 했다고 해서 여성들의 발언이 줄어들지는 않겠지만 지면을 제안받거나 강의를 하면 그 순간 제로섬 게임이 돼요. 그런 유혹에서 남자들은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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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의 방향


엔터테인먼트계, 대중문화계에서도 페미니즘 이슈가 계속 중요해질 거라고 생각하시나요?


적지 않은 문화 소비자층이 과거로 돌아갈 수 없게 됐어요. 그들은 계속해서 많은 걸 불편해할 거고 피드백을 무시할 수는 없을 거예요. 없는 것처럼 취급할 수는 없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대중문화를 다룬다고 했을 때 기준을 어디까지 잡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 같아요.


그렇죠. 사실 지금 다루는 내용도 엄청 커졌어요. 그래서 오지랖 넓다는 이야기도 듣고 있고요.


<아이즈>의 범위는 어디까지가 되는 건가요?


매체는 독자가 원하는 것과 독자가 알 필요 있는 것, 두 가지를 늘 충족해야 합니다. 핫한 주제는 분명 있어요. 정치 이슈나 페미니즘 이슈는 기사를 내면 실제로 조회수랑 반응도 많이 나오죠. 그런 민감한 주제에 관해 기자가 얼마나 전문적인 식견을 가지느냐는 중요한 한계기는 해요. 기자가 실제 연구자만큼 전문적으로 쓸 수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이것을 올바르게 다루는 게 독자들에게 필요한 문제라는 건 편집장 이하 내부에서는 다 공유된 것 같아요. 대중적인 어법 안에서 어느 정도까지 할 수 있을까 판단하고 할 수 있겠다 싶은 걸 쓰는 거죠.


굽시니스트와 장도리를 비교하면서 ‘이겨내는 것’과 ‘견뎌내는 것’의 차이를 말씀해 주셨는데, 지금 <아이즈> 방향과 맞닿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아이즈>가 나가서 싸우자는 운동 매체는 아니잖아요. 오히려 견뎌내기 위해 즐거움을 주자는 입장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즐거움을 추구하는 방향이 맞는데, 많이 못 했어요. 당장 페미니즘 이슈만 해도 즐겁게 다루고 싶은데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로는 즐겁게 다룰 수가 없어요. 그걸 어떻게 즐겁게 다룰 수 있겠어요. 즐겁게 만들고 싶은데 못 그럴 일이 너무 많아요. 세월호 이후로는 뭘 해도 어렵고요.


다른 매체에 비해서 자본의 영향을 더 받는 매체로 보이거든요. 편집권이 독립된 게 가장 크기도 하고요. 지원을 받는 곳이 있나요?


모기업이 편집권에 대해서는 상당히 독립을 보장해주고 있어요. 다만 지금 상태로 매체를 유지할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고민하고 있어요.


모여 있는 필진도 ‘프로불편러’의 시각이 뚜렷해요. 개개인의 능력이 주목받는 매체인 것 같아요.


취재팀장으로서 중간에 퇴사한 친구들이 몇 있어서 아쉬워요. 기존부터 같이 일했던 상당히 검증된 기자 외에 새로 온 사람들의 능력치를 끌어올리는 부분에서 제가 선배로서 부족했던 부분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특별한 예민함은 아닌 것 같아요


‘프로불편러’의 시각이 자신에게도 적용되나요? 자아 성찰이라든지요.


불편하다고 느낀다면 둘 중 하나예요. 본인이 틀렸거나 남이 틀렸거나. 그러려면 당연히 자기 걸 한 번 더 봐야 하죠. 자기가 가진 인식적 틀이 옳은가? 결국 제가 불편함을 느끼는 인식적 토대를 읽어내야 전문적인 ‘불편러’로서 어느 정도 제가 틀린 게 아니고 저게 잘못됐다는 확신으로 이야기를 해나갈 수 있겠죠.


어떤 사건이나 사회적 현상에 예민함을 가지는 기준이 있나요?


성격적인 부분이 확실히 중요한 것 같아요. 신념의 문제라고 생각했던 부분이 사실 상당 부분 성격의 문제더라고요. 제 성격이, 불편한 걸 못 봐주는 거예요. 하지만 저만 유별나게 불편한 내용이었다면 책을 내지 않았겠죠. 민주주의 사회 구성원이라면 인간은 평등하다는 것은 다 동의할 거예요. 어떤 특정한 성이기에 더 많이 범죄에 노출되는 불평등이 벌어져요. 생득적인 이유로 누군가가 더 많은 불의를 감수하면 안 되잖아요. 이런 부분에서 ‘쟤는 왜 이렇게 예민해?’라고 반응할 부분이 없지 않나요? 그게 특별한 예민함은 아닌 것 같아요. 평균적으로 아무 문제 없이 돌아가는 게 정말 보편적인 가치를 담보하고 있는가, 이 정도로만 질문하는 거죠.


성격이 예민한 편이라면 남들보다 힘들 것 같아요. 불편한 것들이 자주 보이잖아요.


멘탈이 예전보다는 많이 강해진 것 같아요. 재밌는 것도 많아졌어요. 전에는 말도 안 되는 소리 들으면 머리가 아팠는데, 지금은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머리가 아프면서도 웃기기도 하고요.


불편한 이슈들을 빨리 찾아서 기사화하는 것도 큰 특징이자 장점이라고 보거든요.


그렇죠, 남들 쓰기 전에 이슈를 짚어내는 게 중요해요. 속도 경쟁에서 숙고할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어쨌든 주간지는 속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매체거든요. 무언가 새로 나온 이슈에 사실 많은 함의가 있다면 우야무야 놓쳐서는 안 되는 거죠.


기삿거리나 기획 아이디어를 찾아내는 방법이 있나요? 트위터를 자주 보신다던가요.


사회 이슈는 아무래도 확실히 트위터가 빠르니까요. 엄청나게 빠르죠. 오늘 아침에 누군가 추앙받으면서 알티(리트윗) 되다가 오후쯤 조리돌림 당하는 곳이잖아요. 빠른 것도 있고, 확실히 미처 생각지 못했던 관점을 볼 수 있어서 좋아요.


TV 프로그램도 자주 보시는 편이죠?


첫 방송 하면 바로 봐야 하는데 지금은 그렇지는 않아요. 사람들 반응을 살피고 보는 편이에요. 많이 보긴 봐야 하는데, 그때마다 예능 프로그램이 재밌게 보기 어렵더라고요. 지금은 불편한 게 많아요.


SNS의 짧은 뉴스 동영상 같은 새로운 매체도 관심을 두고 지켜보는 편인가요?


솔직히 말하면 열심히 보지는 않아요. 확실히 저는 여전히 글이라는 방법으로 담론을 만들어내는 게 관심이 많은 사람이에요. 글은 생각을 정리해서 발화하는 데 명확한 장점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우선은 거기에 집중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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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는 눈


‘생업에 바쁜 이들을 대신해 성실하게 담론을 구성하고 역동적인 공론장을 여는 것’(98쪽)이 지식인과 언론의 역할이라고 하셨어요.


계몽 같은 걸 이야기할 때마다 선민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비난을 들어요. 저는 지식인의 역할이 우월함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분업이라고 보는 겁니다. 사회적으로 어떤 직업의 당위라는 건 사회적 분업의 결과라고 생각하거든요. 다들 생업에 바쁘고 상황만 봐서는 안에 있는 것들을 판단하기 어렵단 말이죠. 가령 파업이 일어나요. 그냥 보면 저 사람들은 내 길을 막고 있는 사람들일 뿐이잖아요. 저들이 왜 여기 나왔는지 왜 나올 수밖에 없었는지 보려면 자료 조사도 해야 하고 전문가 멘트도 들어봐야 하고 오래 걸리겠죠. 기자는 그런 걸 대신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넘어서서 독자들이 자신의 불편함을 인식하고 독자들도 말을 했으면 좋겠다고도 쓰셨어요.


불편함이 왜 일어난 것인가, 이것은 온당한가 하는 질문을 분업 차원에서 고민하고 정제된 언어로 사람들에게 이야기하는 게 일차적인 ‘프로불편러’의 역할이라면, 그다음으로 그로 인해 다른 사람들도 불편해지는 게 있겠죠. 미처 몰랐던 것들을 더 많이 알게 되면 세상 보는 눈이 많이 달라질 것 같아요.


방송에서도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감수성이 중요한 재능이라고 하셨는데요.


정치적 올바름과 재미의 문제가 어느 정도 분리되어 있지만, 최종적으로는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이제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걸 보고 웃긴 어려울 것 같아요. 가령 <마음의 소리>의 팬이고 지금도 계속 보지만, 얼마 전 에피소드에서 형 캐릭터가 여자친구 머리를 때리는 장면이 있었어요. 그게 조석 작가의 장르적 문법이라는 걸 알지만 문법이라고 넘어가는 게 맞는 걸까, 불편하고 찜찜한 거죠. 마음 놓고 웃을 수 없는 부분을 계속 안고 있어요.


엔터테인먼트 시장에서의 대상화 문제도 찜찜한 영역 중 하나일 것 같아요.


쇼비즈니스에서 어느 정도 대상화는 분명 있어요. 불편함의 상당 부분은 실제로 쇼비즈니스를 지탱하는 규칙이기는 해요. 하지만 합의된 규칙이니 넘어가야 한다고 보지는 않아요. 강연 시장에서 힐링이 사고파는 재화가 될 수 있는 것처럼, 쇼 비즈니스에서는 아이돌이 주는 환희, 귀여움, 잘생김, 섹시함, 열정 등등이 재화로 판매됩니다. 넓게는 인간적인 가치의 상품화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겠지만, 서로 거래를 통해 얻고 싶은 걸 얻고 딱히 피해 보는 사람이 없다면 허용 가능한 범위를 모색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건 아니’라는 기준을 고민하고 있어요. 대상에 대한 요구가 모순적이라거나, 인격에 대한 모욕이 되거나, 롤리타 콘셉트처럼 해당 대상을 넘어선 특정 다수에 대한 실천적 해악을 끼치는 것들에 대해서요.

 
계속 ‘프로불편러’로서 기사를 쓰신다면, 앞으로 쓰고 싶은 내용이 있나요?


지식 셀럽 관련해 쓰고 싶었는데 최근에 썼어요. 그분들이 가진 역할은 분명 긍정적인 부분이 있는데, 학자들의 전문 분야가 있고 대중적 지식인이 할 수 있는 범위가 있어요. 어느 순간 역할을 넘어설 때 가짜 지식이 유통되는 게 더 문제라고 생각하거든요. 정보는 엄청나게 쏟아지는데 여기서 진짜와 가짜, 옳은 것과 그른 것을 구분해 내는 게 중요해졌어요. 그걸 수용자한테만 맡길 수는 없으니 전달하는 미디어에서 조심해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옆에 있는 매체에서 계속 딴죽을 걸어야겠죠.


책을 누가 읽었으면 하나요?


‘나만 불편한가?’ 싶은 사람들이요. 명절에 친척들을 만났는데 나는 도저히 웃을 수 없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다들 웃고 있을 때, 윗사람의 농담이나 잔소리를 들었을 때 굉장히 불쾌한데 나만 불쾌한 것 같을 때, 평소에는 마음이 잘 맞는 친구들인데 페미니즘 이슈가 나오자마자 메갈이냐고 묻는 친구들 때문에 내가 뭘 잘못했나 싶은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프로불편러 일기위근우 저 | 한울
여성혐오와 일상의 폭력이 난무하고 “여전히 전근대적인 정치의식이 지배력을 발휘하고 반지성적 선동이 소위 정치적 진보 진영 안에서도 등장”하는 지금 이곳이 불편하지 않은 것도 참 어려운 일이다. “기자라는 직업은 필연적인 프로불편러”여야 한다고 말하는 웹매거진 [아이즈] 취재팀장 위근우가 섬세하고 치열하게 3년 반 동안 써온 글 85개를 선별하여 『프로불편러 일기』라는 제목의 책으로 묶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우석훈 “기저귀 갈 줄 아는 할아버지가 거의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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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원 세대』, 『불황 10년』등 경제와 계층에 대한 통찰을 꾸준히 전해온 우석훈 박사가 자신의 땀이 녹아있는 육아 이야기 『오늘 한 푼 벌면 내일 두 푼 나가고』로 돌아왔다. ‘두 아이의 아빠가 내 정체성’이라고 적을 만큼 우석훈 박사의 삶은 이제 오롯이 아빠의 역할을 중심으로 돌아간다.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고, 주말은 완전히 아이들과 함께 보낸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일을 줄여야 했다. 물론 그 역시 일을 줄이는 선택을 내리고 육아에 전념하면서는 조바심이 났다. 좋은 제안을 받으면 “마음이 하루에 세 번 바뀌”었다. 그러나 기다리는 수밖에.


“들어오는 일들이 있는데 ‘내년에 하면 안 되나?’ 생각해보거든요. 꼭 그때 해야 하는 일은 아니에요.”라는 우석훈 박사의 말은 자신을 ‘보조양육자’라고 칭하면서도 ‘양육자’에 방점을 찍어둔, 자신이 다른 누구도 아닌 ‘아빠’라는 사실을 단단하게 의식한 사람의 말이었다. “좀 달라야 한다는 생각”은 이제 더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는 중이다.

 

나는 소득을 줄이고, 연봉을 포기하고, 아픈 둘째 아이와 더 많은 시간을 갖는 길을 택했다. 다른 부모에게는 또 다른 선택지들이 있을 것이다.(중략) 이건 내가 가진 문화적 취향이고 정서적 선택이다. 나는 매순간, 조금이라도 더 행복한 것을 선택하면서 살아왔다. 먼 훗날의 더 큰 행복을 위해서 현재를 희생하는 방식으로 살아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지금 행복하지 않은데 어떻게 먼 미래에 행복할 수 있을까? 나는 그런 행복은 믿지 않는다.(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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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이 지불하는 몫이 너무 과하다


요즘 하루 일과가 어떤가요?

 

아침 8시 반에서 9시 정도에 일어나요. 세수만 하고 아이들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고요. 그러면 10시가 조금 넘어요. 그때부터는 두세 시간 책도 보고, 글도 써요. 그렇게 오후까지 계속 있을 수 있으면 집에 있고요. 일주일에 한두 번은 나와서 사람도 만나죠. 주말은 완전히 죽음이고요.(웃음) 금요일 오후부터 월요일 아침까지는 완전히 몸으로 때우는 시간이에요. 그나마 요즘은 두 아이가 둘이서 놀기도 하니까 조금 편해졌죠. 이전에는 둘을 다 신경 썼어야 했는데요. 지금은 조금 먼 거리에 있어도 돼요. 둘이 친해졌거든요. 잘 놀아요. 점점 더 편해지겠죠. 

 

『오늘 한 푼 벌면 내일 두 푼 나가고』는 육아에 관한 아주 꼼꼼한 기록입니다. ‘기록’의 의미가 많이 엿보이기도 하거든요.


이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영어 조기교육이 반드시 필요하지는 않다, 선행학습이 꼭 필요한 건 아니다, 하는 이야기를 꼭 한 번 써보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둘째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아파서 경황이 없었어요. 이 책은 틈나는 대로 겨우 메모해둔 것들이에요. 육아일기는 쓸 수가 없는 거더라고요.(웃음) 앉아 있을 시간 자체가 없으니까요. 둘째 백일 지나서야 조금씩 쓰기 시작했죠. 지나보니 메모해둔 것들이 도움이 많이 됐어요. 그런데 책을 쓰면서 정말 재미있었어요. 끝나고 나니까 이제 뭐하고 노나, 싶더라고요. 그래서 책이 두꺼워졌어요. 이대로 쓰면 두 권은 쓰겠더라고요. 많이 덜어냈어요.

 

앉아 있을 시간도 없다, 육아의 현실이겠죠.


게다가 두 아이가 같은 남자 아이라도 성격이 완전히 달라요. 그러다보니 선호하는 것도 다르고, 기저귀 떼는 방식도 다르고요. 보통 일이 아니죠. 똑같이 하는데도 다르더라고요.

 

거듭 사회가 담당할 수 있는 영역을 개인과 가정이 담당하고 있다고 문제제기 합니다. 특히 출산 장면에서 그랬어요. 이는 경험에서 온 것이기도 한데요.


둘째가 태어나자마자 숨을 못 쉬어서 집중치료실로 갔어요. 열흘 정도 입원을 했거든요. 첫째 때는 안 시킨 검사도 다 하고요. 검사 결과가 괜찮아야 퇴원을 할 수 있었어요. 보니까 병원비가 200만 원이 넘게 나온 거예요. 그래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렇게 출산하다가 생긴 일은 그냥 보험수가만 조정하면 되는 건데, 하고요. 어떤 경우에는 병원을 가야 하는데 돈이 무서워서 못 가는 일도 있을 것 같더라고요. 병원비 부분은 그렇게 개선이 어려운 일은 아니거든요. 생각만 조금 하면 할 수 있는 일이에요. 병원비를 내면서도 이런 비용은 괜히 지불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플 때 적절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건 그야말로 기본이잖아요.

 

몇 살 이전, 처럼 기준만 정하면 아무 일도 아닌 일이죠. 개인이 지불하는 몫이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산후조리원도 그래요. 곳곳에 방치된 부분이 많은 것 같아요. 조금씩 개선한다고는 하는데 경험하는 입장에서는 부족하다고 느껴요.

 

국가의 출산 장려 정책이라는 게 탁상공론에 머무는 경우가 너무 많죠. 앞부분에서 첫 아이 지원을 늘려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정부가 별로 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라고 적기도 했어요.


지역별로 지원정책이 다 있어요. 그것도 넷째, 셋째, 둘째, 첫째 순이거든요. 그런데 첫째 아이 지원 수준을 올리는 게 사실은 맞아요. 넷째는 아무도 안 낳거든요.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고 해도 말이죠. 셋째도 낳으면 엄청 준다고는 하는데 그걸 위해서 셋을 낳아야지, 하고 생각하는 분은 별로 없을 거예요. 그럴 바에야 첫째 아이에게 지원금을 많이 주는 게 출산율 상승의 효과는 있겠죠. 하지만 돈이 많이 들잖아요. 절대 안 하죠.

 

지금 한국 수준에서 출산/육아 정책 분야에 가장 해결이 시급한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앞서 말씀드렸지만 병원비가 생각보다 많이 들어요. 약도 마찬가지인데요. 많이 쓰는 약은 보험에서 빼는 것 같더라고요. 점점 더 힘들어지고, 좋아지는 것 같진 않아요. 이야기는 많은데 실제 육아하면서 느끼는 건 전혀 다르거든요. 어린이집 옮기는 것조차도 너무 힘들고요. 자주 하는 이야기지만 대학도 옮기잖아요. 초, 중, 고등학교는 말할 것도 없고요. 그런데 어린이집만 안 돼요. 진짜 힘들어요. 일단 어린이집이 되면 아무 데도 이사 못 가요. 옮기려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니까요. 10% 정도 추가 정원만 허용을 해줘도 한결 나을 텐데 말이에요. 제도만 조금 손보면 될 일인데 답답하죠.

 

그렇게 안 하는 이유는 뭘까요?


현장과 동떨어진 곳에서 결정을 하니까 그렇죠. 이건 고도의 행정력을 발휘할 일도 아닌데(웃음) 말이에요. 반드시 예산이 필요한 일이 아니더라도 이런 것처럼 있는 것 안에서 조정을 하면 편해지는 것이 많아요. 야간 베이비시터 제도(공공 아이돌봄 서비스)가 있거든요. 하지만 대기 줄이 수천 킬로미터예요. 엄두도 못 내죠. 한두 번 알아보다가 포기했어요. 많은 것들이 명목상으로만 있는 거예요. 뭐가 되게 많긴 한데 보통의 경우 거의 해당이 안 되죠. 차라리 써놓지를 말든지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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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 않아도 될 것들이 많다


제목에 우선 공감하는 분들이 많을 거예요. 특히 육아에 있어 ‘오늘 한 푼 벌면 내일 두 푼 나간다’는 말이 참 절묘해요.


한 다큐에서 본 거예요. 평생 해녀로 사신 할머니가 나왔는데요. ‘저승에서 벌어 이승에서 쓴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씀 끝에 나온 말이에요. 생활하는 입장이 다 똑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다들 엄청나게 돈을 쌓아놓고 사는 것도 아니잖아요. 대부분 그럴 것 같아요. 돈이 있으면 있는 규모 안에서 먹고, 없으면 또 없는 규모 안에서 먹죠. 딱 두 배 나가는 것 같더라고요.(웃음) 지낼 만하면 유모차가 망가지고요.

 

유모차부터 도시 문화까지 아우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요. 경제학자 관점으로 본 육아, 생각할 부분이 많았어요.


한두 살짜리 아이에게 명품 브랜드 옷 입히는 건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죠. 기억도 못할 때인데 말이에요. 그 아이가 커서 그 얘기해주면 좋아하겠어요? 그 돈 그냥 주지(웃음), 할 거예요. 그러느라고 지금 돈이 없다면 과연 누가 이해할 수 있겠어요. 영어 유치원도 그렇더라고요. 우선 의미도 없고요. 아이도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요. 나중에 영어 하는 데 엄청난 효과가 있는 것도 아니고요. 대만은 우리 식으로 치면 초등학교 입학 전에 영어 과외 시키는 것을 금지시켰더라고요. 정말 영어를 가르치고 싶으면 영어 유치원 보낼 돈을 모아서 하와이로 몇 달 여행을 다녀오면 돼요. 그게 낫잖아요.

 

육아 산업은 절대 안 망한다고 하는데 ‘이것만큼은 꼭 해주고 싶다’는 마음에서 자유로운 양육자가 얼마나 되겠어요.


육아 산업도 망해요. 연구하시는 분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그분들은 90년대 말에 알았다는 거예요. 출산율이 줄고 산업이 위축될 거라고요. 고심하다가 럭셔리 전략을 택했다는 거죠. 아이들이 줄어도 단가를 높이고, 브랜드를 차별화시키는 방식으로요. 90년대 말에 그렇게 이미 했다는 건데요. 그러니 럭셔리 전략에는 한계가 없는 거예요. 가격으로 차별화시키는 건 최근 일이 아니에요. 하지만 그걸 모두가 따를 필요는 없잖아요.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될 것들이 많아요. 돈은 벌기가 힘들지 쓰기는 쉽거든요. 저는 자녀에게 돈을 쓰는 것에 대해 지적하는 게 아니에요. 다만 의미 있게 쓰는 게, 돈을 가지고 있는 게 낫다는 생각인 거죠. 돈을 부수면 다시 안 모이거든요.

 

갈등 장면이 많이 나오거든요. 가령 아이스크림을 사주면서도 고민을 하죠. 양육자가 가지고 있던 가치와 배치되는 결정을 해야 할 때가 많잖아요. 육아를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마주한 갈등의 순간은 언제였어요?


진짜 아이스크림은 안 먹게 하고 싶었어요. 지금도 초콜릿 안 사줘요. 그러면 뭐 해요, 할아버지가 사주는데요.(웃음) 이번 생일에는 초코 케이크도 사줬다니까요. 하는 수가 없어요. 되도록 안 먹이고 싶지만 너무 원하면 어쩔 수 없더라고요. 방법이 없는 것 같아요. 그래도 조금 덜 먹게 하고 싶은 마음이지만 잘 안 돼요.

 

그럴 때 어떻게 하세요? 계속 타협을 해나가는 건가요?


요즘은 자꾸 스마트폰을 보고 싶어 해요. 재미있는 것들이 워낙 많잖아요. 그래서 결국은 스마트폰과 TV를 연결 시켰어요. 안 보여줄 방법은 없고, 작은 화면을 보면 눈에 안 좋으니까요. 며칠에 한 번 30분 정도 정해놓고 보여주는 거죠. 타협을 한 거예요.

 

생애 주기에 따라, 자녀의 성장 과정에 따라 고민 주제가 달라질 텐데요. 이것만은 절대 안 하도록 하고 싶다, 하는 것이 있으세요?


게임기를 사달라고 하는 날이 오겠죠. 지금도 게임기를 보면 너무 황홀하게 쳐다봐요. 진짜 고민이에요.(웃음) 모르겠어요.

 

강하게 기억에 남은 대목이 있어요. 식사를 하면서 ‘세상에 굶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가르치는 부분이었는데요. 그 부분에서 양육자의 철학이나 가치를 느낄 수 있었어요.


그건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세상의 진실이기도 하고요. 시민으로서 당연히 알아야 하는 부분이에요. 밥투정을 할 때 세상의 절반이 굶는다고 말하면 처음엔 잘 이해를 못해요. 왜 밥을 못 먹느냐고 되물어요. 설명을 해도 반은 알아듣고, 반은 못 알아듣죠. 그래도 알아야 할 것들이 있죠. 모두가 우리 같은 것은 아니고, 어려운 사람들도 있다, 투정하면 안 된다, 가르치는 거죠.

 

그런 영역이 많이 있잖아요. 식사 이외에 잘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가르치는 내용이 더 있나요?


가난한 사람들이 있다, 그런 이야기는 하죠. 첫째는 최순실이 누군지도 벌써 알고 있어요. 계속 뉴스에 나오니까 묻더라고요. 거짓말을 많이 해서 사람들이 화가 났다, 맛있는 걸 자기 혼자만 먹었다, 사람들이 밥 먹으려고 줄 서 있는데 혼자 새치기했다, 얘기했더니 진짜 나쁜 사람이네(웃음) 하더라고요. 또 시장 놀이는 일찍부터, 세 살 쯤부터 했어요. 놀이처럼 하면서 교육도 되고요. 반드시 경제 교육이 아니더라도 가게가 무엇이고, 돈이 무엇인지는 일찍 가르친 것 같아요. 돈은 진짜 빨리 알았어요.

 

“고래 팔아요.”
“몇 마리 있어요?”
(중략)
우리는 그때부터 미끄럼틀을 ‘소중이네 고래 가게’라고 불렀다. 그 가게에는 고래가 세 마리 있고, 상어도 판다. 흥정이 끝나면 둘째는 주먹 쥔 손을 내민다. 고래를 팔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그걸 받아줘야 한다. 그러면 이번에는 손을 펴서 다시 내민다. 돈 달라는 얘기다. 그 손에 돈을 주는 시늉을 하면 거래가 끝난다.(227-2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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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지금은 버틸 수밖에


한 구절, ‘조바심은 인내와 기다림으로 바뀌었다’고 했어요. 여기서 질문이 떠오르더라고요. 육아로 많은 걸 희생한 듯한 느낌을 이야기했는데 실제 많은 사람들, 특히 여성의 경우 대부분이 주양육자이기 때문에 그런 고민을 많이 할 테니까요. 박사님은 이런 느낌 앞에서 어떻게 마음 정리를 하셨어요?


버티는 수밖에 없겠죠. 답이 없거든요. 사회 분위기도 호의적이지가 않고요. 계속해서 개선을 하자고 하니까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텐데요. 당장 지금은 버틸 수밖에 없을 거예요. 이런 상황에서는 조바심이라는 게 못 먹는 떡이랑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 경우도 좋은 제안이 많이 왔었어요.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해요. 마음이 하루에 세 번 바뀌더라고요. 안 간다고 해놓고는 다시는 이런 제안이 안 올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들고요. 그렇지만 결국은 기다리는 마음인 거예요. 다음에 또 오겠지, 하고요. 어쨌든 당분간은 육아에 전념할 생각이거든요. 아이가 아프면 우선순위가 다 바뀌어요. 하는 수 없죠. 아이들은 금방 크니까요. 또 아이들 보는 게 재미있어요.

 

참 새삼스럽게 느껴져요. 육아에 이렇게 참여하는 남성이 점점 늘어나고는 있지만 여전히 보조양육자에 머물러 있는데 말이에요. 주양육자, 보조양육자로 구분하는 것 자체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반증이기도 하겠고요.


보니까 아기 기저귀 갈 줄 아는 할아버지가 거의 없더라고요. 갈아봤어야 말이죠. 평생 기저귀를 한 번도 안 갈아본 거예요.

 

그런가 하면 박사님은 ‘두 아이의 아빠가 내 정체성’이라고 하기도 했잖아요. 이런 이야기를 더 많은 아빠들이 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저희 집도 주양육자는 아내예요. 다만 아내가 일을 하려다보니 제가 더 시간을 내야 하는 상황인 거죠. 아내도 많이 힘들어했고요. 제가 프랑스에서 지낼 때 본 건데요. 프랑스 엄마들은 출산 후 열 달이 지나도록 예전 몸매를 회복하지 못하면 좀 놀리는 게 있더라고요. 자기보다 아이를 더 돌보는 건 집착이라는 거죠. 이런 모습은 우리나라에선 상상하기 어렵잖아요. 저는 그런 걸 보고 살았으니 좀 달라야 한다는 생각을 한 거예요. 선진국은 이미 다 그렇게 지내고 있잖아요. 우리도 그렇게 되겠죠. 그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했고요. 어쨌거나 지금 당장은 아내보다는 제가 더 상황이 되니까요. 들어오는 일들이 있는데 ‘내년에 하면 안 되나?’ 생각해보거든요. 꼭 그때 해야 하는 일은 아니에요.

 

각자의 상황에 맞는 삶의 방식이 있는데 워낙 한국 사회는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한 면이 있어요.


제 차를 없앴는데요. 그러면서도 따져보니까 차 유지비를 생각하면 딱 절반만 가지고 택시 타거나 하면서 지낼 수 있겠더라고요. 차 없다는 핑계로 모임에 덜 나가도 되고요.(웃음) 이제는 아이들이 어린이집도 가고 하니까 낮에는 시간이 있거든요. 그때 글도 쓰고 해요. 많이 나아졌죠. 둘째까지 기저귀를 떼고 나면 이제 아이인 거지 아기는 아닌 거거든요. 좀 서운한 마음까지 들더라고요. 몇 년 간 집에 아기가 있었는데 이제 없는 거니까요. 더 이상 아기는 없고, 악동들만 남겠죠. 그게 아쉽더라고요. 그동안 충분히 놀고 좋은 마음, 편안한 생각으로 아이들이 자랄 수 있어야 뭘 배우더라도 되지 미리 스트레스 줄 이유가 없어요. 그런 상황을 만들어주고 싶어요. 흔들리며 사는 거고, 또 그런 게 생활이라고 생각해요. 아이들에게 돈을 많이 들인다고 좋은 것도 아니거든요. 그렇게 생각하면 아빠들이 육아에 시간을 더 낼 수 있을 것 같아요. 

 

모두에게 좋은 게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되네요.


워낙 집에서 아빠들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서요. 조금만 더 해도 만족도가 확 올라가요.(웃음) 하루에 한 시간 정도 책 읽어주는 게 체력적으로 죽도록 힘든 일일까? 아니거든요. 그렇게까지 어렵진 않을 것 같은데요. 게다가 요즘은 어린이집 가서 봐도 아빠들이 많이 보여요. 종종 있어요. 그런 아빠들이 결혼을 했겠지(웃음) 싶기도 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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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이 사위에게 권하면 어떨까


어떤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책을 쓰셨어요? 이 책을 누구에게 보여주고 싶으세요?


책을 쓸 때는 그런 생각이 아니었는데 쓰고 나서 생각해보니까 장인이 사위에게 권해주면 좋겠더라고요. 참고하면 좋겠어, 유럽 스타일이래, 하면서요. 결혼할 때 예단을 보내잖아요. 거기에 끼워 넣어도 창피하지 않을 것 같아요. 장모가 권하기엔 좀 그렇고, 장인이 사위에게 나는 이렇게 생각해, 라면서 권하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이 얘기를 했더니 장인이 사위에게 전쟁하자는 거냐(웃음) 하시더라고요.  
 
『88만원 세대』, 『솔로계급의 경제학』, 『불황 10년』등 경제와 계층에 대한 통찰이 담긴 책도 써오셨고, 『모피아』처럼 소설도, 『1인분 인생』처럼 삶에 관한 이야기도 책으로 꾸준히 써오셨는데요. 아직 쓰지 못한, 꼭 써보고 싶은 책이 남았다면 뭘까요?


에너지 분야 이야기를 거의 안 썼어요. 이쪽으로 더 써볼까 하는 생각이 있어요. 한동안 안 봐서 공부해야 할 게 많긴 하지만요. 자료도 업데이트 해야 하고, 현장도 봐야 해요. 몇 년 동안 약속 해놓고 못 쓴 책들이 많아서요. 일정대로 계속 책을 낼 계획이에요.

 

계획이 잡힌 다음 책은 뭐예요?


에세이예요. 50대 이야기를 해보려고 하거든요. 지금 생각하는 제목은 ‘남의 말을 50번 좋게 합시다’인데요. 50세가 넘으면 남의 말만 좋게 해도 밥은 먹고 살겠더라고요. 50대가 되면 욕하고 싶은 사람이 인생에 걸쳐 생기거든요. 성질대로라면 하루에 50번은 욕을 할 수 있어요.(웃음) 그런데 남의 말을 50번 좋게 하면 돈 벌 거예요. 어렵죠. 하고 싶은 대로 하면 최순실 씨처럼 되겠죠. 돈이 없어서 그 사람처럼 못 되는 거지 본능과 느낌대로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 사람과 많이 다르지 않을 거예요. 비싼 음식점에서 욕했다는데 막상 비싼 음식점에 갈 일이 없어서 못하는 거거든요. 나이 많은 할아버지들 보면 욕을 달고 살잖아요. 제 또래 이야기를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서요. 다음 책은 그 이야기가 될 거예요.

 


 

 

오늘 한 푼 벌면 내일 두 푼 나가고우석훈 저 | 다산4.0
곳곳에서 인구절벽과 보육대란을 논하는 시대, 저자는 실질적인 도움은 주지 않으면서 아이는 낳아야 한다고 강변하는 사회의 모순을 꼬집는다. 또 대표적인 복지 전문가답게 정책의 구체적인 수정 방향과 보완책 또한 제시한다. 프랑스와 미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 검증한 방식을 토대로 국내 상황에 특화한, ‘부모와 아이에게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는’ 길들이다.


조해진 “서로에게 빛이 되는 순간을 쓰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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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집이 출간된 후에 다시 읽어보니 ‘삶 자체는 실패가 정해져 있는 게임 같은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도 그 게임의 끝을 향해서 가는 건 ‘빛의 호위’가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조해진의 세 번째 소설집 『빛의 호위』에서 인물들은 각자 다른 현실의 무게를 이고 살아가지만, 동시에 서로의 삶을 지탱하는 빛이 되어준다. 어린 시절 친구에게 선물한 카메라는 그를 세상 밖으로 이끌고(「빛의 호위」), 세상을 떠난 언니는 동생을 살아가게 한다(「잘 가, 언니」). 철학과 강사에서 기초생활수급자로 추락한 인물은 중국인 제자를 통해 “살아 있다는 감각에 집중” 해야 함을 되새긴다(「산책자의 행복」). 누군가 무심코 혹은 온 생애를 다해 쏘아올린 작은 빛줄기가 어둠 속에 홀로 남겨진 이를 지켜주고 ‘살아 있음’을 감각하며 삶을 지속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인물들이 품어야 하는 상처는 개인적인 차원에만 머물러 있지 않다. 한 소녀의 고백하지 못한 마음은 수상한 시절을 만나 죄책감으로 남아버렸고(「사물과의 작별」), 역사의 과오 앞에 기약 없이 헤어져야 했던 연인도 있었다(「동쪽 伯의 숲」). 역사적인 폭력이 개인에게 남기는 상흔에 대해 오랫동안 천착해 온 소설가 조해진은 인물들의 입을 빌려 “나의 신념은 개인이 세계에 앞선다는 것”이라 말한다.

 

현실은 냉엄하고, 시대의 흐름은 거대한 물결 같이 덮쳐오고, 그 앞에서 한 개인은 별 수 없이 앓아야 한다. 그럼에도 생을 견뎌야 하는 까닭은 어디에 있는지, 무엇으로 하여금 살아낼 수 있는지, 우리는 묻고 싶다. 소설가의 조해진의 답은 간결하다. ‘작은 선의와 증여가 우리를 다시 살게 하고, 그 힘이 삶을 살아야 할 이유를 되비춘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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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시대를 외면할 수 없다


‘작가의 말’에서 “실은 늘 이번 소설집을 기다렸다”고 하셨어요.

 

이전보다는 조금 더 소통과 유대, 열려 있는 세계에 대해서 썼기 때문에 새로 시작하는 느낌이 들기도 해요. 예전 소설에서도 소외에 대해서 이야기했고 이방인도 등장했지만 조금 더 닫혀 있는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번 소설집의 인물들은 서로 계속 소통하려고 하고, 의도치 않은 작은 선의로 인해서 서로에게 살아가는 이유가 되기도 하잖아요. 그런 이야기들을 쓸 수 있게 되어서 기뻐요. 

 

『빛의 호위』에는 모두 아홉 편의 작품이 실려 있습니다.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발표하신 작품들 중에서 뽑으신 건데요. 이 작품들이 한 권의 책에 담긴 이유가 있을까요?


발표 시기로 보면 「동쪽 伯의 숲」을 가장 먼저 썼는데요. 그 작품을 쓸 때부터 기억이나 시대를 초월해서 조감하는 소설을 쓰고 싶었어요. 우리가 외면했던 역사적 사건 같은 것도 다루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고요. 「동쪽 伯의 숲」을 쓰면서 제 세계가 조금 확장되고 있다는 걸 느꼈었고, 그때부터 고민을 많이 하게 된 것 같아요.

 

어떤 고민이었나요?


예전에는 잘 인지하지 못했는데, 소설을 12년 넘게 쓰다 보니까, 결국 소설이 이 시대나 역사를 외면할 수 없더라고요. 외면하고 싶어도 외면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제가 독자였을 때를 생각해 봐도 사회 문제나 역사적 사건, 시대적인 아픔을 작가만의 시각으로 심도 있게 다룬 작품을 봤을 때 좋았던 것 같고요. 그러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그런 쪽으로 관심이 가게 되더라고요. ‘동백림 사건’(「동쪽 伯의 숲」)이나 ‘일본 유학생 간첩단 사건’(「사물과의 작별」), 「빛의 호위」에서의 ‘홀로코스트’ 같은 것도 그렇고요. 「작은 사람들의 노래」를 쓸 때는 세월호 직후였어요. 평범한 사람들의 무심함, 한나 아렌트가 말했던 악의 평범성, 시대의 아픔, 그런 것들을 자연스럽게 쓰게 되더라고요.

 

「동쪽 伯의 숲」은 ‘동백림 사건’ 다큐멘터리를 본 후 집필을 시작하셨다고요.


그런 사건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자세히는 몰랐어요. 공영방송의 다큐멘터리에서 사건을 경험한 사람들이 인터뷰한 걸 보고 조금 더 알아보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죠. 그 과정에서 작곡가 윤이상에 관련된 글을 읽었는데 너무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윤이상뿐만 아니라 당시의 똑똑했던 유학생들이, 능력 있고 재능 있는 사람들이 의도치 않은 사건에 휘말려서 이후의 삶이 많이 망가진 거잖아요. 물론 원상복귀 한 사람도 있지만요.

 

단순히 사건의 흐름을 쫓기보다 그 가운데 있었던 사람, 그에게 남겨진 상처에 주목하신 것 같아요.


사건을 그대로 재현하는 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미 알려진 사건이기도 하고요. 소설이라는 것, 문학이라는 것이 교훈을 주기 위해서 역사적 사건을 재현하는 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했어요. 소설에서의 역사는 작가의 어떤 태도로 재구성돼야 하고, 결국 한 사람에게 초점을 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윤이상 작곡가를 모델로 했지만 안수 리나 한나는 모두 가상의 인물인데, 그런 인물들을 통해서 개인에게 포커스를 맞춰서 쓰고 싶었어요.

 

「사물과의 작별」, 「동쪽 伯의 숲」은 ‘세계가 개인에게 지우는 무게’에 대해 말하는 작품 같아요. “나의 신념은 개인이 세계에 앞선다는 것, 이것이다”(「동쪽 伯의 숲」)라는 말이 핵심이 아닐까 싶은데요. 최근의 사회 현상을 보면 세계가 개인을 압도하고 있는 것 같지 않으세요?


맞아요. 사람들은 힘들어도 나름의 삶의 이유를 가지고 똑같이 살았던 것 같은데, 사실 우리를 지배하던 이 나라는 법도 없고 상식도 없는 나라였다는 걸 더 뼈저리게 느끼죠. 세월호도 그렇고요. 그렇지만 아무리 세계가 흉포하고 우리를 억압하더라도 개인에게는 시대에 맞섰던 신념이라든지 고유한 이야기가 있고, 그것을 말하는 것이 문학이 하는 일이라는 생각은 들죠. 그러니까 ‘시대가 아무리 우리를 압도하더라도 개인의 이야기가 있는 한 그것을 제어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건 없다’는 생각으로 썼던 것 같아요. 그리고 「동쪽 伯의 숲」이나 「사물과의 작별」은 제가 상상으로 채운 이야기잖아요. 실제로 그 시대, 그 공간에 가보지는 않았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우리의 상상이 있는 한 역사와 이 시대는 우리를 통제할 수 없고 막을 수 없다’는 생각으로 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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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에게 빛이 되는 순간을 쓰고 싶었다


「사물과의 작별」에 ‘유실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어쩌면 우리 모두가 유실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유실물로써 우리가 갖고 있는 기억을 증언하는 것이 중요한 일인 것 같고요.


제가 「동쪽 伯의 숲」을 쓸 때부터 소설의 외연이 확장되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씀드렸는데, 소설이 할 수 있는 증언의 역할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것도 하나의 이유였던 것 같아요. 사실 처음 소설을 쓸 때는 그냥 쓰고 싶은 것을 쓰는 거라고 생각했고, 소설에서의 증언이라든가 (소설의) 역할에 대해서는 크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소설의 책무나 임무에 대해서 생각하기에는 제 자신이 자격이 없는 것 같았고, 소설가는 그냥 글만 잘 쓰면 된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동쪽 伯의 숲」에서 희수가 고백하는 말 속에 당시 저의 고민이 많이 들어가 있었던 것 같아요. 계속 자격을 되물으면서, 좋게 말하면 겸손함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조금 소극적인 태도인, 그런 것에 오랫동안 익숙했던 것 같아요.

 

생각을 바꾸게 되신 데에는 어떤 이유가 있었나요?


부조리한 사건들을 겪고, 뭔가를 하려고 해도 잘 되지 않는 동시대의 여러 가지 일들을 보면서, 그래도 뭔가를 계속 끊임없이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이름 하나라도 기억하게 하는 것, 나 스스로도 기억하기 위해서 애 쓰는 것, 이런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아요. 독자나 세계를 향해서 망각하지 말자고 강요할 수는 없죠. 그렇지만, 이렇게 비유하면 될지 모르겠는데, 바다 위의 부표처럼 간헐적으로 반짝이는 빛 같은 것이라도 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동쪽 伯의 숲」에서 희수는 “내가 살아온 과정이 대단할 것도 없고 떳떳하지도 않은데 어떻게 나 같은 사람이 나 아닌 다른 이의 고통을 대변하며 잿빛 거리에 서 있을 수 있단 말인가” 하고 스스로 자격을 되묻죠. “작가가 작품 이외의 다른 채널로 말을 거는 게 합당한 건지” 자문하기도 하고요. 작가님도 비슷한 경험을 하신 것 같아요.


그 작품을 쓸 무렵에 용산(참사)도 있었고 ‘두리반’이라고 해서 강제 철거되어 쫓겨나게 된 식당도 있었어요. 그런 곳에서 동료 작가들과 어떤 활동을 하기는 했어요. 그런데 나갈 때는 분연히 나갔는데 피켓을 들고 거리에 서 있거나 낭독회를 할 때는 ‘내가 해도 되는 일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희수처럼 똑같이요. 나는 그렇게 유명하지도 않고, (소설가가) 글만 쓰면 되지 이렇게 해야 되나, 이것도 일종의 우월감 같은 건 아닌가,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고 굉장히 괴로웠어요. 그래서 집에 오면 다시는 하지 말아야지 생각했다가도 또 참을 수 없는 사건이 벌어지면 가게 되는 거예요. 그걸 반복하는 과정에서 ‘그래도 말을 해야 된다, 그래도 증언을 해야 된다’는 쪽으로 생각이 정해진 거죠.

 

「빛의 호위」에는 다큐멘터리 <사람,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와요. 영상 속에서 알마 마이어라는 인물은 말하죠. “거창한 수식어 뒤에 숨어 있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고도 정의의 증인이 될 수 있다고 믿는 건” 천진한 기만 같아 보인다고요. “알려 했다면 알았을 것들을 모른 척해놓고 나중에야 자신은 몰랐으므로 아무런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건데요. 따끔한 일침처럼 들렸어요.


그 작품을 쓸 때는 이런 사건은 없었지만, 홀로코스트 같은 야만의 사건들이 내가 살고 있는 시대에도 다른 얼굴로 펼쳐지고 있다는 걸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알마 마이어는 홀로코스트 생존자다). 제가 정말 좋아하는 작가 중에 프리모 레비가 있는데, 프리모 레비는 아우슈비츠 생존자잖아요. 프리모 레비도 인터뷰에서 ‘유럽인들은 유대인을 실은 기차가 어딘가로 가서 그들을 살해한다는 걸 몰랐을까’ 하고 질문했었어요. 그게 우리 시대에도 절묘하게 맞더라고요. 「빛의 호위」를 쓰고 난 후에 세월호도 있었는데, 똑같은 것 같아요. (진실을) 알려고 하는 데에는 노력이 필요하고 슬픔을 감수해야 되는데, 그것이 괴로우니까 미디어에서 하는 말이나 세상의 소문을 그냥 받아들이고 믿어버리는 것 아닐까 싶어요. 그런 일들은 우리 시대에도 똑같이 일어나는 것 같고요.

 

작가님의 작품에서는 사람을 바라보는 따스한 시선이 느껴져요. 요즘 같은 시기에는 사람에 대한 믿음이 흔들릴 것도 같은데요. 어떠세요?


매 순간 인간을 믿고 인간적인 것을 기대하지는 않죠. 저는 순간을 쓰고 싶었던 것 같아요. 소통하는 순간, 서로에게 빛이 되는 그 순간이요. 사실 그 순간이 지나면 더 불행해질 수 있어요. 더 쓸쓸해질 수도 있고요. 그런데 그 순간이 나머지의 쓸쓸한 침묵을 견디게 해주는 것 같아요.

 

「산책자의 행복」의 홍미영은 유독 안타까웠던 인물이에요. 철학과 강사였다가 기초수급자가 되어서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잖아요. 손님으로 온 옛 제자와 만나는 장면에서는 저절로 한숨이 새어 나오더라고요. 이 작품을 쓰시면서 마음이 아프셨을 것 같아요.


늘 생각했던 것 같아요, 홍미영이라는 인물을. 제가 시간 강사를 오래 하면서 주변에서 많이 보기도 했고 저도 그랬지만, 강사라서 그런 게 아니라 이 시대의 모든 사람들이 다 불안한 것 같아요. 언제 우리가 홍미영처럼 개인 파산을 겪을지 알 수 없고, 개인 파산까지는 아니더라도 원하지 않는 일을 하면서 살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잖아요. 사실 그런 일이 너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죠. 저 자신도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소설가라는 것도 어떤 정체성에 가깝지, 직업이라고 하기에는 사실 많이 어색하죠. 소설을 쓰는 일로 생계가 되는 건 아니니까요. 물론 그런 분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죠. 그래서 저도 그런 불안감을 늘 느끼고 살았던 것 같아요.

 

예전에 한 인터뷰에서 말씀하시길, 등단한 후에도 계속 일을 하셨다고요. 지금은 전업작가이신가요?


등단하고 나서 언어교육원 같은 곳에서 한국어 가르쳤었고요. 지금은 대학이나 시민 단체 같은 곳에서 글쓰기 강의를 하고 있어요. 글만 쓴 적은 거의 없었던 것 같아요. 한두 달 자투리 시간이 남아서 쓴 적은 있지만, 일 년 내내 글만 쓰고 산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폴란드의 한 대학에서 한국어강사로 일하기도 하셨어요. 그때 “신분 없는 삶을 조금 이해하게” 됐다고 말씀하신 바 있고요. 작가님 작품에는 ‘뿌리 내리지 못하고 떠도는 이방인’이 많이 등장하는데, 개인적인 경험이 영향을 미친 건가요?


그럼요. 『로기완을 만났다』도 그때 썼고요. 첫 번째 소설집이 『천사들의 도시』에도 몇 편에 걸쳐서 외국인이 나와요. 이방인, 외국인, 불법체류자, 입양인, 이런 인물들이 꾸준히 나왔는데요. 아마 직업과도 연관이 있는 것 같아요. 한국어 강사를 하면서 외국인을 계속 만났고, 봉사라고 해야 하나요, 그런 차원에서 무보수로 언어 교환도 했었어요. 그러면서 결혼 이민자 여성들을 만나보기도 했고요. 그런 것들이 암암리에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폴란드에 갔을 때 조금 더 체감하게 된 것 같고요. 그곳에서는 내가 봐왔던 이방인이 된 거니까, 신분이 불안정한 삶에 대해서 더 체감했던 거죠. 이번 소설집을 쓸 때는 그렇게 뿌리 내리지 못한 자들의 연대까지 담으면서, 제 나름으로는 조금씩 나아간 것 같아요. 

 

이방인의 감정이 낯설지만은 않아요. 문득 ‘나의 존재를 증명하거나 찾아 줄 사람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될 때가 있잖아요.


입양인, 외국인, 불법체류자, 같은 건 소재일 뿐이고 사실 우리의 모습이 다 투영되어 있죠. 우리도 넓은 의미에서는 다 이방인인 거죠. 서로에게 다 이방인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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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타인의 이야기’를 쓴 것 같다


집필이 끝나고 소설 속 인물을 떠나 보낼 때, 힘들지는 않으세요?


소설을 쓰고 나서도 늘 그 인물에 대해서 생각을 하죠. 제가 쓴 소설이니까 모든 소설의 인물들에 대해서 기억해요. 그들이 했던 말이나 표정, 생각, 성향, 저 혼자만 생각하고 소설에 쓰지 않았던 그들의 이력이나 말투, 다 알고 있고 기억해요. 그렇지만 소설을 쓰고 나서 특별히 어떤 인물을 생각하면서 아쉬워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계속 생각은 나죠. 기억할 수 있고요. 그런데 「사물과의 작별」을 쓸 때는 조금 슬펐어요. 고모의 삶을 떠올릴 때면 ‘나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계속 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사랑 받지도 못한 대상에게 계속 죄책감을 느끼면서 평생 살아왔다면, 나는 어땠을까’ 싶은 거죠.

 

「사물과의 작별」에서 고모가 갖고 있는 죄책감은 상상하기도 두려워요. 내가 타인의 삶에 엄청나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을지도 모른다는 거잖아요.


(사실은) 그게 아닐 수도 있다는 걸 알려고 하면 알았을 텐데, 고모는 스스로가 그걸 안 놓은 거죠.

 

이유가 뭘까요?


고모의 경우에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개입되어 있잖아요. 그 사랑의 감정을 혼자서라도 지키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에게 있어서 자신이) 특별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계속 믿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게 슬픈 거죠.

 

아홉 편의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에서, 유독 안부가 궁금해지는 인물이 있나요?


다 궁금하기는 한데요. 유독 궁금해지는 인물이라면 「동쪽 伯의 숲」의 희수인 것 같아요. 희수는 어떤 시를 썼을까, 사회 문제가 있을 때 계속 행동을 이어갔을까, 발터와 안수 리와는 계속 연락을 했을까, 궁금하고요. 「빛의 호위」에서 권은 다리가 나았을까, 그런 것도 궁금하죠(웃음). 이런 건 독자도 같이 상상해주면 참 감사할 것 같아요.

 

「번역의 시작」에서 안젤라는 자신의 세계 속에서 재해석한 언어로 이야기를 해요. 영수씨는 그림이라는 비언어적 소통방법으로 자신의 경험을 전달하고요. 두 사람을 보면 ‘언어라고 하는 것이 상황과 감정을 고스란히 전달하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들기도 해요. 작가로서 같은 질문을 해보셨을 것 같은데요. 어떠세요?


많이 하죠. 저는 언어는 불완전하다고 늘 생각해요. 한 번도 언어가 완벽한 도구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천사들의 도시』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썼던 것 같은데요. 제가 문장으로 소설을 쓰고 있지만, 그리고 나름 좋은 문장을 쓰려고 노력을 하지만, 제 문장이 소설의 모든 걸 보여준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분명히 여백이 있을 것이고 담지 못한 공백이 있고 침묵이 있을 거예요. 그건 읽는 자가 상상을 통해서 채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 소설을 읽고 촘촘하다고 말씀하시는 분도 있지만, 촘촘한 면도 있고 그래서 답답한 면이 있을 때도 있겠죠. 그렇지만 저는 여백을 많이 두는 글쓰기를 추구하고 있어요. 언어에 다 담지 못한 여백을 누군가 채워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죠.

 

작가님께서는 작품 속에서도, 그리고 말씀을 하실 때도 단어 하나하나를 조심스럽게 고르시는 것 같아요. 문장을 만들고 다듬는 데에도 많은 시간과 공을 들이시죠?


문장이 소설가의 거의 유일한 무기잖아요. 색깔로 표현할 수도 없고, 다른 걸로 어떻게 표현할 수 없잖아요. 문장밖에 없어요. 그런데 사실 등단 초기에는 수식도 많고 미사여구도 많은 문장을 썼어요. 그런데 글을 계속 쓰면서 ‘소설에 어울리는 비유를 쓰자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비유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소설에서 담고자 했던 분위기나 메시지와 어울리는 비유를 쓰려고 노력을 하는 것 같아요. 「산책자의 행복」에서는 낮달을 보고 닻 같다는 표현을 썼는데요. 주인공이 계속 물속을 걷는 기분이라고 하고, 외로움이나 추위를 느끼잖아요. 그런 것과 어울리는 비유를 찾았던 것 같아요. 그런 식으로 식상한 비유 대신에 소설에 어울리는 비유를 쓰려고 해요.

 

‘작가의 말’ 마지막에서 “이제야 나는, 진짜 타인에 대해 쓸 수 있게 된 건지도 모르겠다”고 하셨어요. ‘타인에 대해 쓰는 일’은 어때야 하는 걸까요? 그 일을 할 때 소설가는 어떤 태도를 갖춰야 할까요?


결국 소설은 타인의 이야기잖아요. 내 이야기가 아니라 타인의 이야기를 쓸 수밖에 없죠. 저도 등단할 때부터 계속 소외된 사람, 사회에서 도태되거나 버려진 인물들을 많이 썼는데요. 제가 느끼기에는, 타인의 이야기를 쓰면서도 내 생각이 더 중요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저 개인의 상처를 많이 생각했던 것 같아요. 뭐랄까요. 나의 어떤 서정, 나의 개인적인 상처 같은 걸 계속 상기하면서 썼던 것 같아요. 그런데 『빛의 호위』를 쓰면서는 작가로서의 나는 한 발 물러서고 인물들에 조금 더 집중했던 것 같거든요. 인물들이 자신의 한계를 깨닫고, 그러면서 소통을 찾아가고, 소통이 끝나면 다시 또 쓸쓸해지는, 그런 이야기를 인물들 자체에 조금 더 집중해서 썼던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이제야 나는 타인의 이야기를 쓴 것 같다고 한 거죠.

 

<채널예스>의 ‘명사의 서재’를 통해서 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내가 왜 쓰고 있고 써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 끝에 “해답이 될 가능성이 있는 하나의 단어”로 ‘위로’를 찾았다고요. 『빛의 호위』은 독자들에게 어떤 위로를 주게 될까요?


그건 독자마다 다르게 느끼겠죠. 제가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어요. 그렇지만 소설 속에서 인물들이 서로에게 무심결에 내뱉은 말 한 마디, 선물, 증여를 건네지 않았다면 그냥 고립된 채로 끝났을 거예요. 이야기가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 같아요. 그들의 작은 선의와 작은 증여가 결국 이 인물들을 살게 하고, 다시 그 힘이 처음의 선의를 베푼 사람에게 돌아가서 ‘뭐가 진짜일까, 삶은 왜 살아야 되는 걸까’를 되비춰요. 공통적으로 그런 이야기를 썼어요. 독자들이 자신의 삶에서도 그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것을 찾아가면 좋겠다는 생각은 들죠. 그런데 사실 소설은 강요할 수 없는 장르이고, 그걸 제가 강요할 수는 없고요. 바람이죠. 서로를 외면하지 않고 각자의 이야기를 찾아가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요.


 

 

빛의 호위조해진 저 | 창비
작가 조해진의 세번째 소설집 『빛의 호위』가 출간되었다. 2013년부터 2016년까지 발표한 작품을 묶은 이번 소설집에는 “소외와 불안의 문제를 개인의 삶을 통해 포착”하며, “이 시대에 호응할 수 있는 문학적 상상력이 무엇인지를 새롭게 환기한 작품”(심사평)이라는 호평을 받은 이효석문학상 수상작 「산책자의 행복」을 비롯한 9편의 작품이 수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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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레이(Imray), 디제이지만 클럽을 좋아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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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셋의 디제이 임레이(Imlay)는 해외 이디엠 신(scene)을 통해 먼저 알려진 사례다. 영국 인디 레이블 클라우드 레코드(Cloudhead Records)를 통해 선보인 '섹슈얼 파티(Sexual party)'는 새로운 사운드로 무장한 퓨쳐 베이스로 이디엠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궜다. 이디엠 전문 웹진 마그네틱 매거진(Magnetic magazine)에선 「게이즈(Gaze)」를 퓨쳐 베이스 Top 10으로 꼽으며 그의 행보에 주목했다.

 

지난 2016년 월드 디제이 페스티벌에 등장해 한국 이디엠 신의 루키로 다시 한 번 주목받은 신예 아티스트. 한국의 마데온(Madeon)으로 불릴 만큼 어린 나이에 디제이와 프로듀서를 겸하며 'Abstract bass'라는 단어로 자신만의 음악적 세계를 정의한다. 지난해 첫 EP <오리진>(<Origin>)을 발매, 퓨처 베이스를 기반으로 동양적인 선율을 짚어내는 그의 음악은 비단 동양풍에 그치지 않고 가장 한국적인 것을 향해 나아간다.

 

또 다른 신예 씨피카(Cifika)와 함께 한 「리추얼(Ritual)」은 임레이의 아이덴티티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오리엔탈이라는게 과하면 한국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본풍이나 중국풍이 되어버려요. 한국은 음악으로 표현할 수 있는 요소가 많지 않기 때문에 차라리 자연스럽게 녹여내자, 싶었어요.” 힙스터들의 주목을 받는 소문의 디제이는 겸손하게, 그러나 단정적인 어조로 그의 생각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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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레이라는 활동명이 특이합니다.


임레이(Imlay)는 원래 미국에 있는 도시 이름이에요 사운드 클라우드를 처음 시작하면 '유저1388' 이런 식으로 이름이 생기는데 너무 평범하잖아요. 그렇다고 실명인 임재빈을 쓰기도 좀 애매해서 생각나는 지역 이름을 넣고 만들었어요. 결국 이름을 못 바꾸고 여기까지 오게 된 거죠. (웃음) 큰 의미가 있진 않습니다.

 

이디엠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음악을 시작할 즈음에는 그리 대중적인 장르가 아니었을 것 같은데요.


중학생 시절 힙합을 좋아했어요. 랩을 조금 해보다가 내 길이 아니라는 걸 깨닫고 프로듀싱 쪽으로 노선을 바꿔서 비트 찍는 연습을 했죠. 나중에 스크릴렉스(Skrillex)라는 아티스트를 알게 됐는데, 이 분이 미국에서 확 뜨던 때였고 다음 해에 마데온이 등장해요. 이 두 아티스트 노래를 정말 많이 들었어요. 프로듀서 입장에서 힙합 비트를 만드는 건 그렇게 힘들지 않았어요. 근데 이디엠은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하나도 모르겠더라고요. 기왕 이렇게 된 거 좀 더 어려운 걸 해보자 하는 도전의식이 생겨서. (웃음) 장르 자체가 희열에 관한 부분도 크잖아요. 들을 때도 즐겁고... 여기에 매료됐어요.

 

힙합과 이디엠은 상이한 부분이 있지 않습니까. 힙합에는 디스(dis) 문화가 있고 서로를 건드리는 가사가 있다면, 이디엠은 열정, 희열, 평화 같은 긍정적인 메시지가 주가 되는데, 갑작스러운 전환이 어렵진 않았나요?


힙합에 트랩이라는 장르가 있어요. 저는 트랩과 이디엠의 사운드가 가미된, '짬뽕' 장르를 해요. 한국 리스너 입장에서는 보통 이디엠 전에 힙합을 많이 듣는 것 같아요. 기존의 탑 백 차트에 없는 음악을 듣기 시작하면서 일렉트로닉 음악을 찾는 거죠. 제가 이디엠에 쉽게 접근할 수 있었던 것도 국내 힙합을 언더 시절부터 들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이게 발판이 됐어요.

 

베이스가 강한 덥스텝 음악을 많이 들으셨는데도 현재 하시는 음악은 상당히 부드러워요. 듣기에 좀 더 편하다고 해야 하나요.


사실 제가 디제이지만 클럽을 좋아하지 않아요. (웃음) 공연 가서도 제 무대만 하고 쉬는 타입이에요. 전 이어폰이나 페스티벌처럼 넓은 곳에서 '낮에' 듣는 걸 선호합니다. 그래서 듣기 좋은, 일상적인 음악을 만들고 싶어요. 지금 빌보드 차트만 봐도 이디엠 사운드가 가미된 곡이 많아요. 어떻게 보면 이어폰으로 '들을 수 있는' 음악을 만드는 게 저는 좀 더 대중들에게 접근하기 쉽다고 생각해요. 현장감 있는 음악은 집에서 들었을 때 그리 큰 감흥이 오지 않아요. 그러다 보니 감상을 고려해서 노래를 만들 때가 많죠.

 

디제잉을 하시는데 클럽을 좋아하지 않는다고요?


네. 한국의 클럽은 대개 음악만큼이나 남녀의 '썸씽'이 중요하잖아요. 그 사람들을 위해서 음악을 틀어야 하니까, 디제이 본연의 아이덴티티가 드러나는 음악보다는 사람들의 허리를 흔들 수 있는 노래로 셋 리스트를 채워야 한다는 게 힘들더라고요.

 

클럽 공연과 페스티벌 무대의 셋 리스트를 구성하는 기준이 다른가요?


크게 다르지 않지만, 무대가 잡히는 시간에 따라 조금 차이는 있어요. 낮이면 제 음악 중에서도 공간감이 느껴지고 차분한 음악을 많이 트는 편이고 늦은 타임이면 마이너 코드나 음습한, 베이스가 강한 음악을 위주로 틀죠. 시간대를 생각해서 곡을 준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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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의 작업과정도 궁금합니다. 뮤직비디오나 아트워크 등이 독특하다는 반응이 많아요. 음악 창작 이전에 이미지를 먼저 형상화하는 편인가요?


일단 곡 작업을 하기 전에 시각적인 것에 많이 의존하는 편이에요. 영화나 뮤직비디오, 잡지 같은 걸 즐겨 봐요. 시각적으로 자극이 됐던 것을 음악적으로 풀어내는 과정이죠. 예술 쪽 지인들이 많아서 그분들이 떠올리는 생각을 제가 음악으로 작업해요. 이미지나 색감에 집중해서 단순히 듣고 즐긴다기보다는 앰비언트 음악을 듣는 느낌으로 접근합니다. 그래서 작년까지는 가사 없이 추상적인 음악이 많았지만, 올해는 보컬이 있는 노래가 많이 나올 예정이에요.

 

앰비언트라면 사운드 스케이프가 그려지는 음악들을 좋아하시는 건가요?


그렇죠. 음악을 만들 때 사운드를 넓게 써서 현장에서 들으나 이어폰으로 들으나 공간감이 느껴지게끔 해요.

 

영상 연출이나 아트워크에도 의견을 많이 제시하고 관여하시나요? 시각적인 요소라 곡 해석에도 영향을 많이 줄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콘셉트를 많이 조정했는데, 도와주시는 분들이 워낙 다들 잘 해주시고 저랑 호흡도 오래 맞춰서 이제는 제가 신경 안 써도 알아서 잘 만들어 주세요. 그리고 결과물이 다른 아티스트의 손길을 거쳐 제가 생각했던 구도와 다르게 표현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자연스러운 작품의 결과 중 하나니까요.

 

밴드나 힙합 크루와는 달리 이디엠은 많은 부분을 혼자서 작업하는 음악으로 알고 있는데, 작업 과정이 외롭진 않나요?


외롭죠. (웃음) 알고 보면 어릴 때 컴퓨터 좋아하는 '너드(nerd)' 같은 애들이 이디엠을 좋아해요. 실제로 오타쿠 성도 짙죠. 주변 친구들 만나보면 미드, 영드 많이 보고, 게임만 하고, 피규어 모으고 애니메이션도 많이 알고요. 인터넷 세대가 등장하면서 미디 접근성이 용이해졌어요. 유튜브에도 강좌가 많잖아요. 데드마우스(deadmau5)란 아티스트도 '프로 너드'거든요. (웃음) 어떻게 보면 이디엠은 너드들의 신(scene)이 아닐까 생각이 들어요. 혼자 노는 것에 익숙한 사람들이요. 페스티벌도 결국 자본가들이 투자해서 이들을 무대에 세운 거지, 원래 이디엠은 인터넷 커뮤니티로 음악 공유하면서 채팅하는 문화에서 출발했거든요.

 

작년에 첫 음반 단위의 결과물이었던 EP <오리진>(<Origin>)이 나왔죠. 보도 자료와 인터뷰를 보면 스스로를 '동양풍', 'Abstract bass'로 소개하던데, 'Abstract bass'가 정확히 어떤 의미인가요?


그건 사실 제가 만든 이름은 아니고 매니지먼트에서 기획해주시는 분이 이런 타이틀로 나가면 좋겠다, 하셔서 붙여주셨어요. (웃음) 동양풍 음악은 재작년부터 했던 것 같아요. 당장 주변을 보면 프로듀서들이 서구 팝의 기본 틀을 좇고 있더라고요. 한국만의 특색을 찾기 힘들죠. 전 우리나라에서만 활동한 게 아니라 인터넷으로 좀 더 다양하게 교류해왔고 매니지먼트도 외국 회사인데, 그러다 보니 한국 아티스트면 한국적인 음악을 해야 그게 남들에게 더 자연스럽게 보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원래 이런 풍을 좋아하기도 했고요.

 

확실히 처음 들었을 때 여타 음악들과 다르긴 했습니다. 목관악기를 사용해서 만이 아니라, 선율이나 음악의 전개에도 동양적인 맛이 있었어요. 비슷한 장르의 플룸(Flume)같은 서양 디제이와는 결이 다르다고 해야 하나요. 어디서부터 영향을 받으신 건가요?


동양풍 음악을 일부러 찾아 듣지는 않습니다. 제 머릿속에 떠오르는 걸 그냥 만드는 편이에요. 오리엔탈이라는 게 과하다 보면 한국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본풍이나 중국풍이 되어버려요. 한국은 뭔가 형용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에 차라리 자연스럽게 녹여내자, 싶었어요.

 

동양풍이라고 하면서 사실은 일본풍인 음악들이 많기는 하죠. 마카이(Makai)나 오카와리(Okawari)같은 일본 디제이들은 그런 일(日)색 짙은 멜로디를 승부처로 삼아왔고. 그런데 임레이 씨는 씨피카와의 콜라보도 그렇고 한국적인 포인트를 잘 살리는 것 같았습니다.


인위적이지 않게 작업한 결과라고 생각해요. 「리추얼(Ritual)」은 제가 미국 살 때 씨피카 씨와 만들었어요. 둘 다 한국인이라서... (웃음) 계산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한국만의 느낌을 무의식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 아닐까요. 동양적인 음악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으면 오히려 착색돼요. 한국적인 것을 표면에 드러내려면 장구, 꽹과리를 칠 수밖에 없는데 그건 또 제가 하는 음악과 어울리지 않으니까... 굳이 따진다면 펜타토닉 스케일이라고, 도레미솔라 코드를 메이저 코드로 쓸 때가 제가 생각하는 이론적인 한국만의 색이에요.

 

<오리진>(<Origin>)에서는 특히 「슈라이(Shurai(high))」가 인상 깊었습니다. 전조되며 상승하는 후렴 멜로디나 전체적 리듬 구성이 신선했는데, 이 노래의 제작 비화가 궁금합니다.


한창 음악에 대한 욕심이 생겼을 때 쓴 곡이에요. 지금 제가 듣기에는 너무 '스트레스풀(stressful)'해서 좋아하지 않아요. 잘 만들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나온 음악이거든요. 의도한 대로 화려하게는 나온 것 같아요. 제목에 하이(high)라고 붙어있는데, 메인 멜로디는 같으면서 한층 톤 다운된 로우(low) 버전의 음악도 올해 나올 공개할 계획이 있어요.

 

그럼 반대로 편하게 썼던 곡은 어떤 건가요?


「임프레스(Empress)」요. 제가 대학교 다닐 때 입시 스태프를 했었어요. 매일 지친 상태에서 집에 들어오면 바로 기절하고 그랬는데, 어느 날 집에 들어왔는데 갑자기 멜로디가 떠올랐어요. 잊기 전에 대충 멜로디만 찍어놓고 잠든 후에 2주 뒤 완성했죠. 「잔잔(Zanzan)」도 힘 ‘일’(1)도 안들이고 만들었어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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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발표한 「플라워 플라워(Flower flower)」는 일본의 밀크(MYLK)와 같이 작업한 곡인데, 임레이 씨의 기존 곡들과 질감이 다르더군요. 일본 음악 같으면서 트로피컬 사운드도 있고 화려한 느낌이었습니다.


원래는 이 곡에는 영어권 보컬을 붙이려고 했어요. 보컬이 얼마나 중요하냐면, 어떻게 부르냐에 따라 곡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져요. 「플라워 플라워(Flower flower)」도 동양적으로 쓰긴 했는데, 일본 보컬이 노래하니까 완전히 일본 노래가 되더라고요. 밀크는 영국에 사는 일본 분이신데 정말 일본 특유의 스타일을 잘 살리는 보컬이거든요. 근데 이것도 나름대로 느낌이 있어서 그냥 진행했어요. (웃음) 보컬로 인해 곡이 많이 바뀐 노래죠.

 

최근 박명수 씨를 비롯한 연예인들이 디제잉에 관심을 갖고 도전하는 사례가 많아졌습니다. 디제이로서 이에 대한 생각이 궁금합니다.


디제이는 장벽이 없는 직업인 것 같아요. 과감하게 얘기하면 그냥 노래를 트는 일이잖아요. (웃음) 연예인들이 아무래도 인지도가 있으니 디제이로서 이름을 알리기에는 수월한 편이겠죠. 하지만 디제이는 퍼포먼스나 선곡뿐만 아니라 자신의 음악으로 현장에서만 들을 수 있는 음악을 플레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만의 콘텐츠가 있으면 모델, 연예인 출신의 디제이를 안 좋게 볼 이유가 없어요. 예를 들어 저는 발매되지 않은 곡도 잘 틀거든요. 아비치(Avicii)도 현장만을 위해서 곡을 쓰고 일부러 발매를 안 하기도 해요. 그래야 현장에 가는 메리트가 생기는 거잖아요. 누가 하면 진짜고 다른 사람이 하면 가짜고... 이건 아닌 것 같아요. 당장 우리가 방에서 좋아하는 음악을 선곡해서 트는 것도 일종의 디제잉이에요.

 

지난해 보아와 빈지노의 「노 매터 왓(No matter what)」 편곡, 종현의 「인스피레이션(Inspiration)」 작, 편곡에 참여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최근 이렇게 팝과 이디엠이 결합한 음악들이 대거 나오면서 장르적 대중성이 높아지고 있는데, 메인스트림과의 작업 소회가 궁금하네요.


그래서 좋아요. 에스엠 엔터테인먼트에 계신 A&R 관계자 분을 알게 되었는데, 음악 취향도 맞아 친해져서 참여하게 되었어요. 에스엠이 음악적으로 열려있는 곳이었어요. 제 색깔을 드러내고 자유롭게 표현하는 걸 좋아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일하는 게 재밌었죠. 그걸 계기로 종현 형과도 작업했는데 그 분도 굉장히 음악을 깊이, 많이 아세요. 문화를 얘기하고 콘텐츠로 만들어 내는 과정이 정말 즐거웠습니다.

 

종현의 「인스피레이션(Inspiration)」도 그랬지만 임레이 씨의 곡에서는 우리 가요적 멜로디 진행, 감수성이 느껴집니다. 어린 시절에 힙합 말고도 주류의 가요도 즐겨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던데요.


듣기는 했죠. 근데 어렸을 때는 제가 힙스터 부심 따위가 있어서 가요를 배제하고 진짜 음악을 듣자는 마음이 있었어요. (웃음) 어쩌다 보니 힙합과 이디엠 쪽 음악을 찾아 나선 것 같은데... 그래도 <뮤직뱅크>도 보고 빅뱅도 좋아하고 그랬죠.

 

보아, 종현에 이어 작업해보고 싶은 아티스트가 있나요?


친한 동생 중에 쿤디판다라는 래퍼가 있어요. 그 친구와 작업하기로 했어요. 유명인도 좋지만 아직 수면 위로 안 올라온 주변 친구들 음악을 큐레이팅 하고 싶더라구요. 진짜 다들 좋은 음악을 만드는데 항상 커넥션이나 기회가 없어서 사람들이 잘 몰라요. 본인들이 음악을 천천히 작업하는 것도 있고... 저만 듣기 아까워서 알리고 싶어요. 아니면 알려지지 않은 노래들을 소개하는 채널도 하나 만들까 생각하고 있고요.

 

올해는 기존의 이디엠 말고도 보컬 곡들도 많이 나올 거라고 하셨는데, 말씀하신 은둔 고수들을 만날 수 있겠네요.


지금도 준비하고 있는 곡들에 보컬이 한 명씩 붙어있어요. 아무래도 보컬이 없는 곡을 많이 쓰다 보니까 제 음악이 완벽한 구조를 갖추고 있진 않구나 싶었어요. 목소리도 좀 들어가고 하면서 제가 기획한 완벽한 구조를 갖춘 음악을 만들어 보려고요. 아직 어리니까 이런 시행착오도 겪어야죠. (웃음)
 

음악을 하면서 가장 기쁘고 인상적이었던 순간이 있다면요?

 

제 노래를 틀었을 때 사람들이 반응해주는 것만큼 기쁠 때가 없어요. 정말 감사한 일이거든요. 막상 클럽을 가거나 로컬 아티스트들의 무대를 보면 신나는 노래 틀기에 바쁘고, 관객들도 분위기를 띄워주는 디제이를 치켜세워요. 작년에 페스티벌 다니면서 회의감도 들었죠. 제가 아직 노래가 많지는 않아서, 지금 제 디제잉 세트를 보면 다른 아티스트 음악들이 많이 있어요. 구상해왔던 무대를 내가 만들고 있는가, 보면 아닌 거죠. 근데 지난 가을 이후부터 제가 집에서 곡 작업에만 매달리니까 노래가 많이 쌓이더라고요. 이제는 반 이상 정도는 제 곡만으로 무대에 설 수 있게 됐어요. 올해 조금만 더 준비하면 제가 생각하는 저만의 무대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선곡해온 곡보다 자신의 곡을 틀었을 때 폭발적인 반응이 나오는 걸 보고 기뻤다는 얘기지요?


네. 그게 제가 생각하는 제 옷을 입는 기분이랄까요. 그런 뮤지션이 한국에도 있어야 이디엠 신이 좀 커졌다고 말할 텐데, 실제로는 판만 커지고 그에 합당한 뮤지션은 좀 부족한 판국이에요. 그런 뮤지션들이 최소한 10명은 있어야 한국에도 이런 뮤지션들이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도 과거에 비해 이디엠 신(scene)이 커졌다고 실감할 때가 있을 것 같습니다.


일단 이디엠을 즐겨 듣는 층이 넓어진 것 같아요. 보통 일렉트로닉 페스티벌에 가면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아티스트들도 많이 오잖아요. 그런데도 노래를 다 따라 불러주시고, 라인업에 있는 디제이들의 음악을 미리 듣고 오세요. 요즘은 클럽에서도 내한 공연이 많이 이루어지고 다양한 파티가 열리거든요. 소수 인원일 때도 있지만 그걸 사람들이 어떻게 다 알고 오시는지 매 주말 밤을 즐기시더라고요. 지금은 시작 단계지만 나중에는 정말 괜찮은 신으로 성장할 것 같아요. 노는 문화를 넘어서서 듣는 문화로요.

 

성장 추세가 오래되진 않았지만 기반이 튼튼하다는 의미군요.


그렇죠. 아마 작년부터 그런 기미가 보였을 거예요. 미국조차도 2012년도 즈음에 확 불이 붙었는걸요. 지금은 우리나라에도 페스티벌이 정말 많이 생겼어요.

 

다른 디제이들과 비교해서 임레이만의 강점은 무엇일까요? 특히 음악에 한정해서 말한다면.


저처럼 실용음악과를 나온 디제이가 많이 없는데, 덕분에 체계적인 이론이 곡을 쓰는 데 도움이 많이 됐으니 장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아, 그리고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서 창작에 시간을 다 쏟아요. 보통 디제이들이 곡을 써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못 쓰는 이유가 바쁜 스케줄 때문이거든요. 집에 있는 시간이 없어요. 그래서 디제이와 프로듀서를 겸하는 게 정말 힘들어요. 반면에 저는 상주하고 있는 클럽도 없고, 바쁜 편도 아니에요. 이런 부분에서 클럽 디제이와 페스티벌 디제이는 별개로 생각해야 하는구나, 싶기도 했어요. 디제이들이 너무 힘들게 일을 해요. 곡 쓸 시간도 없고, 창작 활동을 할 만큼 안정적인 생활패턴도 없으니까. 그 전에도 전 집돌이였긴 하지만.... 집에서 쉬고 먹고 자는 걸 좋아해요. 저도 '너드'입니다. (웃음)

 

하지만 디제이와 프로듀서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음악을 제작하는 프로듀서가 직접 무대에 오르는 경우가 많고요. 구체적인 차이가 있나요?


한국은 특히 디제이와 프로듀서가 갈려요. 클럽 문화를 좋아해서 디제이를 하는 사람도 있고 저처럼 일렉트로닉 음악이 좋아서 프로듀싱을 시작한 사람도 있어요. 기반이 다른 거죠. 디제이들은 초점이 무대와 관객에 있기 때문에 좋은 선곡이 우선이에요. 프로듀서 역시 좋은 음악을 틀고 싶긴 하지만 '자신의 음악'을 틀어서 알리자는 의식이 더 강해요.

 

그렇다면 현재 본인의 음악을 대표할 수 있는 트랙은 무엇일까요.


「임프레스(Empress)」요. 무대에 서면 항상 첫 곡으로 틀어요.

 

이디엠 마니아나 팬들 사이에서 임레이 씨를 마데온에 비교하기도 합니다. 어린 나이에 커리어를 시작한 것을 비롯해서 여러 공통점이 있다고.


사실 저도 마데온을 진짜 좋아했어요. 저만의 음악을 정립하면서 많이 들었던 아티스트는 플룸, 스크릴렉스였고요. 참, 스크릴렉스도 프로 너드예요! (웃음)

 

한편으로는 단번에 이목이 쏠려서 부담스러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정도(正道)를 걷고 싶어요. 잘 가다가도 사람이 무너지잖아요. 어디로 흡수가 된다든가 본인의 음악을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따라한다든가... 저는 디제이면서 프로듀서니까, 생계유지를 위한 활동과는 별개로 제 작품은 잘 기획해서 제대로 만들려고요. (웃음) 사실 한국에서 크게 주목을 받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보란 듯이 좀 더 독창적이고 특이한, 음악을 좋아하는 그런 사람들과 어울린 것도 있어요. 진짜 리스너들이 원하는 뮤지션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죠.

 

이즘의 공식 질문입니다. 지금의 임레이를 있게 한 음반 석 장을 꼽아주세요.


마데온 1집보단 그 전에 싱글 단위로 냈던 트랙들이 좋아요. 「이카루스(Icarus)」 정말 좋죠. 스크릴렉스의 <뱅가랑>(<Bangarang>)은 너무 유명하고. 데이비드 게타의 <나씽 벗 더 비트>(<Nothing But The Beat>)'는 저에게 1등 앨범이에요. 이디엠을 알게 되는 그 과정에 있던 앨범이고, 그래서 제일 와 닿았던 작품입니다.
 

앞으로의 활동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솔직히 아직 모르겠어요. 원래는 외국으로 나가서 투어를 돌고 싶었는데, 이건 지금 제 첫 번째 목표가 됐어요. 멀리 본다면 저도 프라이머리 씨처럼 제가 기획한 팝 앨범을 만들고 싶어요. 해외에 디스클로저(Disclosure)나 메이저 레이저(Major Lazer)가 있듯이 한국에는 프라이머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제 색깔로만 이루어져 있는 가요나 팝 앨범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한국 보컬 피처링이면 더 좋겠죠. 사실 입으로는 한국적, 동양적 하면서 외국 보컬만 쓰고 있으니 제가 봐도 이치에 안 맞는 것 같아요. 이게 한국의 음악이다, 라고 할 만한 음악을 하고 싶어요. 지금 케이팝 시장이 잘 형성 되고 있으니 또 하나의 케이팝으로 포장하면 잘 받아들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웃음)

 
사진 : 홍은솔
진행 : 김반야, 정민재, 정연경
정리 : 정연경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임경선 “차분하고 스토익한 자율성 정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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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란, 후유증이 길면 길수록 좋다. 그러나 곱씹을만한 문장이 시도 때도 없이 나오는 건 좋지 못하다. 쭉 읽다가 훅 하고 들어오는 문장이 있어야 눈에 콕 박힌다. 책에도 강약 조절이 필요하다. 2005년 에세이스트로 첫 책을 출간, 9권의 에세이집, 3권의 소설, 1권의 여행서를 쓴 작가 임경선의 글은 군더더기가 없다. 아슬아슬한 듯 보이지만 따지고 보면 정갈하다. 지난 2월, 임경선은 글 쓰고 먹고 사는 이야기를 담은 9번째 에세이 『자유로울 것』을 펴냈다. 1달 만에 2만 5천여 명의 독자가 공감했고 곳곳에 리뷰를 남겼다. 출판사는 작가 임경선의 애독자들을 선별해 작은 식사 모임을 가졌고, 작가는 독자로부터 좋은 기운을 받아갔다. 오늘도 작가는 합정동 단골 카페 ‘커피발전소’에 출퇴근 도장을 찍는다.

 

임경선은 『자유로울 것』 23쪽에서 이같이 말했다. “솔직해짐으로써 타인의 비난을 감수할 것인가, 아니면 하고 싶은 말을 억누르면서 스스로를 미워할 것인가.” 그는 독자들에게 “가급적 전자였으면 좋겠다”며, “확고한 가치관 위에서 심플하게 솔직하자”고 했다. 출간 한 달이 지난 날, 작가에게 메일을 띄었다. 독자, 책, 작가, 자유, 태도에 대해 물었다. 성실한 작가는 답변을 요청한 날짜가 채 돌아오기 전, 답장을 보내왔다. 사족 없는 심플한 이야기가 무척 반가웠다. 가감 없이 답변을 전하고 싶었다. 마지막 질문에는 독자들이 화답해주시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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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절한 거리 두기가 가장 바람직하다


출간하자마자 반응이 뜨겁습니다. 최근에 11쇄를 찍었다고 들었어요. 기분이 어떠신가요?

 

책을 사주신 독자 분들께 감사한 마음과, 보다 현실적인 감상으로는, 조금 시간을 들여 다음 소설작업을 할 수 있겠다,라는 안도감이 듭니다. 책이라는 것이 잘 팔릴 때도 있고 덜 팔릴 때도 있는 것이 당연한 데도 막상 책이 출간되면 과거에 낸 책들 이상으로 사랑 받기를 욕심 내게 되는 것 같아요. 아무튼 하나 확실한 것은 기왕이면 덜 팔리는 것보다는 더 팔리는 것이 좋긴 좋습니다.

 

‘독자와의 만남’ 행사도 소규모로 열었어요. 오랜 독자들이 많이 참석하셨어요. 


열 명이라는 오붓한 멤버가 모여 앉아 두 시간 넘도록 대화를 나누면서 식사를 하는 독자와의 만남 행사는 『자유로울 것』출간을 하면서 처음 경험했는데요, 다들 처음 만나서 같이 밥을 먹으니까 마치 쇼셜 다이닝에 참여한 것 같았습니다. 신선하기도 하고 긴장되기도 하고 수줍기도 하면서 어느덧 밥을 다 먹어갈 즈음엔 친밀감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친밀감에는 공간의 아늑한 조명과 맛있는 음식도 꽤 큰 역할을 차지하고요. 무엇보다도 열 분의 독자들이 일반적인 ‘강연회’나 ‘토크 콘서트’ 형식의 만남보다도 이 식사 모임에 뽑힌 것을 훨씬 더 기뻐해주셔서요. 저야 ‘접대’모드로 한 분 한 분 대화 상대가 돼 드리는 등 신경 써야 할 것이 많아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많이 기뻐하시는 독자 분들의 얼굴을 볼 수 있어서 흐뭇했습니다.

 

아무래도 작가와 가깝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으니까요.


작은 규모의 행사이다 보니, 꾸준히 제 책을 읽어오신 분들이 많이 참석하셨어요. 저라는 사람에 대해서 이미 많이 파악을 하시고 오셔서 질문이나 대화의 주제들이 보다 더 구체적이고 솔직하고 본질적이 되어가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독자들을 만나면 좋은 기운을 받아간다”고 하셨어요. 독자들의 인생을 궁금해 하는 저자들이 그렇게 많지는 않아요.


개별적인 독자의 인생이 궁금하다기보다는 제 책을 좋아해주시는 핵심 독자 분들의 프로파일을 짚고 넘어가는 정도랄까요. 제가 나이 들어가면서 함께 나이 들어가는 독자층이 기본적으로 중심을 잡고 있는데요. 그래도 저는 끊임없이 고등학생이나 대학생 층의 신규 독자층들을 유입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남성 독자의 비중을 키우고 싶다는 마음도 크고요. 개인적으로 제가 가장 좋아하는 독자는 ‘제 책을 함께 읽는 모녀 독자’입니다. 

 

독자들과 소통을 꾸준히 하시는 편이시죠? 오랫동안 홈페이지도 운영하고 계시고요.


저는 평소에 말수도 별로 없고, 밖에서 만나는 사교모임은 거의 없습니다. 송년회도 한 건 정도예요. SNS를 통한 독자들과의 소통은 주로 트위터로 하는데, 트위터는 뉴스 등의 정보를 선별해서 얻기 위해, 그리고 내 취향의 사람들을 만나는 즐거움을 위해 합니다. 물론 책이 출간되면 신간을 홍보하는 용도로도 활용하죠. 자연히 독자 분들이 팔로우를 많이 해오시는데 말을 걸어오시면 대개 답신을 드립니다. ‘소통에 적극적’인 것은 아니고요. 가령 외국에서 호젓한 길을 걷다가 반대쪽에서 어떤 사람이 미소 짓거나 인사를 건네며 지나간다면, 저 역시 눈을 마주치면서 웃거나 인사를 건네요. 말하자면 그런 자연스러운 ‘스침’이라고 생각하니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않는 것뿐이에요.

 

가끔은 좀 부담스러운 독자도 있을 것 같아요. 끊임없이 피드백을 원하는 경우도 있잖아요.


저자-독자 관계로 처음 알게 돼서 이제는 친한 사이가 된 것도 다섯 명도 채 안돼요. 기본적으로는 저자-독자 간에는 적절한 거리 두기가 가장 바람직한 것 같긴 해요. 아무튼 ‘질척한 것’만큼은 사양해요. 신비주의적(?)으로 독자들 앞에 일절 나타나지도 않고, SNS를 하더라도 자신의 신간을 홍보하는 것을 민망해하시는 작가 분들도 계시는데, 작가마다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 감당할 수 있는 방식으로 독자들과 소통을 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저는 독자 분들을 어떤 ‘의미’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독자’라는 정체성은 늘 유동적이니깐요. 그래서 독자의 많고 적음, 칭찬과 비판에 일희일비해서는 작가로서 버틸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다만, 독자 없이는 작가는 존재할 수가 없다는 것은 엄중한 진실이지요. 나만 읽는 글을 쓰는 것은 일기장일 뿐이니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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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적으로 자기포장을 하지 못합니다


작년에 <채널예스>에서 ‘임경선의 성실한 작가 생활’이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연재하셨어요. 작가에게 필요한 세 가지, 중 하나로 ‘성실’을 꼽으셨는데요. 작가님 스스로 성실하다고 생각하시나요?


객관적으로 성실하다고 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고, 성실하다는 이야기는 주변에서 많이 듣는 편입니다. 꾸준히 성실하고 싶은 마음에 ‘임경선의 성실한 작가생활’이라는 칼럼 제목을 일부러 붙인 부분이 있습니다. 간판에 걸맞게 생활 좀 해보려고요. 제가 스스로에 대해 확신하는 부분은 차라리 성실함보다는 ‘일을 빨리 한다’와 ‘뜸들이는 시간이 없다’ 그리고 ‘차분하고 스토익한 자기규율(자율성)’ 정도일 것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작가 생활을 오래 해나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일상에서 체계를 잡아 꾸준히 글을 써나갈 수 있는 성실함은 필수라고 생각합니다.

 

칼럼 연재 당시, ‘남자 편집자’에 관한 글이 출판계에서 화제를 모았어요. 남자 편집자들이 좀 속상해했다는 후문이요. 책에도 편집자와의 관계에 대해서, 말씀해주셨는데요. 이제 막 책을 낸 저자에게 ‘편집자와 이렇게 관계를 유지’하라고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아, 그랬나요? 그랬다면 죄송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마주한 경험을 근거로 쓴 것이고 ‘싸잡아서’ 비난한 것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이제 막 책을 낸 저자 분께 편집자와의 관계에 대해 조언을 한다면요. 다섯 가지 정도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아요. 1. 보통은 편집자의 의견이 옳으니 그를 따르는 것이 맞지만, 내가 끌려 다니거나 무시당한다는 기분이 든다면 편집자나 출판사를 바꿔야 한다. 2. 가까워져도 공과 사를 구분해서 계속 좋은 의미의 긴장감을 유지하고 상대를 동등한 파트너로서 존중해야 한다. 3. 편집자가 소속 출판사에서 퇴사하고 1인출판사를 창업한다고 해서 ‘의리’나 ‘친분’을 이유로 출판 계약을 하지 않는 것이 좋다. 4. 자신과 서로 윈윈의 상호작용을 할 수 있는 ‘유능한’ 편집자를 찾아 가급적 오래도록 같이 일하는 게 좋다. 팀워크는 너무나 중요하니까. 5. 책의 표지디자인과 제목의 선정은 기본적으로 출판사에게 권리가 있지만 저자로서도 자신의 의견을 사전에 적극적으로 표현해서 보다 나은 결과물이 나오도록 애써야 한다. 

 

에세이는 솔직하지 않으면 빵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자기검열’은 꼭 필요하죠. 작가님은 솔직함의 정도를 어떻게 조절하려고 하시나요?


외국(주로 서양사회)에서는 어떤 사람의 성격을 평가할 때 ‘솔직하다’라는 말을 잘 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다들 당연히 솔직하고 자기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사니깐요. 자기표현이나 주장을 절제하고 주변과의 조화를 더 중시하는 한국이나 일본 문화에서나 ‘솔직함’이 하나의 성격 묘사로 간주되곤 하지요. 외국에서 오래 산 저로서는 그래서 ‘솔직하다’라는 평가를 받을 때마다 갸우뚱하곤 합니다. 그냥 나는 내 생각을 있는 그대로 말할 뿐이고 천성적으로 자기포장을 하지 못합니다. 다만 굳이 ‘자기검열’을 한다고 한다면 구체적인 실명이 에세이 속에 등장한다면 사전에 그 분께 허락 받고 누군가가 나의 글로 인해 불필요한 상처를 받을 우려가 있다면 편집자와 재차 상의합니다. 나의 솔직함이 타인을 상처 입히면 안되겠지만, 그 누가 뭐라고 한다 해도 그것이 저를 상처 입힐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자유롭게 타인과 연애(사랑)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태도는 무엇일까요?


전작 에세이 『태도에 관하여』에도 썼지만 ‘관대함’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마음에 누군가가 날아들어올 수 있게 활짝 열려있는 것, 내가 타인을 바라볼 때 그 사람의 단점보다 장점을 바라볼 수 있는 너그러운 마음, 사랑한다면 기꺼이 상처받을 가능성을 끌어안는 것, 상대의 사랑이 먼저 식어버린다 해도 스스로를 피해자, 상대를 가해자라고 단정짓지 않을 성숙함, 나에게 찾아온 그 어떤 사랑이라도 그 사랑 자체에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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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도 좀 불가사의한 기분입니다


개정판을 포함해 14권의 책을 내셨어요. 덜 팔린, 덜 주목 받은 책을 읽어준 독자들에게 특별한 마음이 든다고 하셨는데요. 가장 아픈 책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내 작업의 페이스메이커’라고 하신 『하루키와 노르웨이 숲을 걷다』일까요?

 

가장 덜 팔린 책은 『하루키와 노르웨이 숲을 걷다』였지만 동시에 그 책은 가장 애정이 많이 가는 책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덜 팔렸다고 해서 반드시 가장 아픈 것이 아니더라고요. 가장 아픈 책은 차라리 첫 책이었던 『러브 패러독스』였습니다. 출판사에서 만든 커버시안이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아 제가 반론을 제기해서 수정하긴 했지만 만족스럽지 못했고, 체감상 꽤 판매가 많이 된 것으로 느꼈지만 판매수량이나 인세에 대해서 명확하게 보고를 받지 못했던 것이 아쉽습니다. 저도 당시에는 이리저리 캐묻고 따질 수 있을 만큼 저자로서 권리 챙기는 방법을 잘 모르기도 했고요.

 

『자유로울 것』 208쪽에 “책 추천 요청만큼은 웬만하면 하지 말아주기를”이라고 하셨어요. 아마 이 책을 읽지 않은 독자라면, 또 요청할지도 모를 것 같은데요. 최근에 재밌게 읽은 신간 2권만 소개해주신다면요?


무라타 사야카의 소설 『편의점 인간』과 줌파 라히리의 에세이 『The Clothing of Books』(국내번역본 3월말 출간 예정)입니다. 전자는 1인칭 시점으로 담담하게 풀어나가는데 점점 심장을 쿵쿵 뛰게 하는 스릴감이 일품이었고 후자는 ‘내용이 아닌 표지로 판단 받는 책’의 억울함을 자신이 시각적으로 백인들 사이에서 눈에 띌 수 밖에 없는 인도계 미국인으로서 살아야 했던 경험에 비유하면서 풀어낸 부분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독서의 폭이 좀 좁다고 하셨는데요. 사실 어떤 면에 있어서는 좀 좁아도 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한데요. 앞으로 좀 다양한 장르의 책을 읽어볼 계획을 갖고 계신지요?


영화 <컨택트>를 감명 깊게 보고 테드 창의 원작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흥미롭게 읽게 되었습니다. 처음으로 SF소설을 읽은 셈인데요, 휴머니티가 가미된 SF물이라면 향후 조금씩 읽을 수 있게 될 것 같습니다. 기본적으로는 아름답고 슬프지만 담백한 문체로 쓰인 소설, 간결하면서도 서정적이거나 위트 넘치는 에세이를 선호하는 취향에는 큰 변함이 없을 듯합니다.

 

독립출판물을 또 내볼 계획은 없으신가요?


몇 달 전에 독립출판물 출판을 위해 등록해둔 ‘마틸다’출판사를 폐업 신고한 것을 보면 당분간은 낼 계획이 없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지난 번 『임경선의 도쿄』때 저희 집 안방 침대 옆에 책 2,000부를 쌓아놓고(정말 어마어마한 산더미였습니다) 매일 아침 택배박스를 싸서 서점 등에 보내곤 했는데, 이젠 체력적으로 그 육체노동이 힘들 것 같습니다(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역시 유능한 편집자와 조율해가면서 책을 만드는 일이 더 제게도 보탬이 될 것 같고요. 

 

후속작은 어떤 작품인가요?


‘교토’에 관한 서정적인 에세이입니다. 대략 8월 중에 나올 것 같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세 번째 장편소설을 준비할 생각입니다. 그건 내년에 나올 수 있겠지요.

 

지인 분께서, “네가 아프지 않아도 너는 작가가 됐을 것”이라고 하셨다고요. 작가가 되지 않은 삶이 상상이 되시나요?


그 지인은 제가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다닐 때의 절친한 친구였고 워낙 서로 주고받은 편지가 많아서 더 그렇게 느꼈을 거예요. 저는 작가가 되지 않은 삶이 상상이 얼마든지 되고요. 아마 회사에 계속 다녔겠죠. 운이 좀 따랐다면 개인방 하나 얻었을 테고요. 오히려 지금도 여전히 글을 쓰는 일이 직업이라는 게 스스로도 좀 불가사의한 기분입니다.

 

‘OO에 관하여’라는 책을 또 낸다면, ‘태도’ 말고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으신가요?


제가 좋아하는 ‘정서’에 관하여 글을 쓰고 싶습니다. 실제로 다음 책 제목이 ‘정서에 관하여’가 될 것도 같습니다. 아무튼 이 제목은 제가 미리 이 자리에서 찜 해놓기로 합니다(웃음).  

 

소설가 임경선으로서, 어떤 소설을 쓰고 싶으신지요?


제가 지향하는 이상적인 소설은 줌파 라히리의 『저지대』입니다. 각각의 인물 묘사가 섬세하고, 이야기는 깊고 아름답고 슬픈데 그 이야기를 담아내는 문체는 담담하고 섬세하면서도 간결합니다. 다양한 문화를 기반으로 하면서도 보편적인 공감대를 형성합니다. 등장인물들은 서로에게 어쩔 수 없이 상처를 주게 되지만, 그것은 결국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닙니다. 고로 각각의 등장인물들 모두를 이해할 수 있고 또 애정이 가게 됩니다. 제가 소설에서 꼽는 매력적인 요소를 한데 담아내고 있는 것 같아요. 혹은 쉽게 말씀 드린다면, 저는 아픔이나 상처를 가진 사람들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를 소설로 쓰고 싶습니다.

 

개인주의자 임경선으로서의 앞으로의 꿈, 소망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저 개인에 관해서는 56kg 체중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과 더 이상 갑상선암 재발 수술을 받을 일이 없을 것. 하나 더 욕심 낸다면 사랑하는 딸아이가 매력적인 사춘기소녀로 커가는 것을 꿈꾸고 있습니다. 마무리로 보탠다면, 남편의 탈모 증상이 극적으로 완화되기를 소망합니다. 

 

독자들에게 자유롭게 질문을 하나를 건넬 수 있다면요. ‘책을 좋아하는 독자’에게 어떤 질문을 해보고 싶으신가요?


"종이책을 즐겨 읽는 독자 분들은 ‘웹 소설’도 읽으시나요? 아니면 둘은 다른 유형의 독자들이신가요?" (남자 독자 분들께) 남자독자 분들은 일반적으로 여성작가가 쓴 작품들을 잘 읽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 이유가 뭔지요? 반대로 여성작가가 쓴 작품(소설/에세이)을 종종 읽으신다면 그 이유(혹은 동기)는 무엇인지요? 이 책을 살까 말까 고민하다가 결국 사지 않을 때(장바구니에서 제외시킴) 보통 그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인가요? 언제 ‘이 책을 사기엔 돈이 좀 아깝다’라는 생각이 드시나요?


 

 

자유로울 것임경선 저 | 예담
『자유로울 것』은 사랑에 대한, 그리고 글 쓰며 먹고사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일하며 ‘잘’ 살아가는 여성 롤모델을 찾기 힘든 요즘, 그의 삶과 생각은 남다르게 다가온다. 범접할 수 없는 누구의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라, 멀기만 한 경험담이 아니라, 나의 이야기로 체화할 수 있는 이야기이기에 더욱 삶의 지침으로 삼고 싶은지도 모른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하지현 “완벽할 필요 없다, 욕망의 적정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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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노력, 개인의 성공, 개인의 실패와 개인의 우울. 지난 세기, 한국 사회는 성장가도를 달렸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기치 아래 개인의 자기계발을 중요한 미덕으로 삼았고, 무엇보다 중요한 경제 성장을 위해 많은 가치를 후순위로 미뤄두었다. 개인은 언제나 노력해야 할 존재, 완벽해져야 할 존재, 성공을 지향하는 존재였다. 시간은 흐르고, 시대는 변화한다. 세계 유수의 학자들이 문명적 대전환의 시대를 말할 정도로 변화의 물살은 거대하다. 그 물살은 심지어 빠르기까지 해서 그 안에 사는 개인은 갈피를 잡기 어렵게 됐다. 이제 개인들은 불안하고, 우울하다.


이런 마당에 한국 사회는 여전히 ‘균질성’을 추구한다. 시대는 변했는데 사회는 변화를 따라잡지 못한다. 그 안에서 사람들은 여전히 치열하게 경쟁하고, 살아남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붓는다. 개인의 불안과 우울은 그런 ‘대한민국 마음’의 대표적인 증상이다.


건국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이자 『공부 중독』, 『심야치유식당』, 『그렇다면 정상입니다』등을 쓴 하지현 교수는 『대한민국 마음 보고서』에서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방식대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개인의 마음이란 사회와 긴밀하게 상호작용 하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개인은 완벽해질 필요가 없다고, 욕망을 적정선에 맞춰야 한다고 말한다. 완벽하지 않음, 그것 자체가 건강함이라는 말에 굵게 밑줄을 긋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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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균질성의 사회


최근 ‘공포에 가까운 불안’을 호소하는 사람을 많이 만난다고 했는데요. 이 대목을 깊이 생각하게 됩니다. 도대체 이와 같은 불안의 원인이 뭘까요?

 

불안하다, 우울하다는 사람을 제일 많이 만나는데요. 시간 축을 중심으로 생각하면 이해가 쉬워요. 불안은 미래에 대한 걱정이죠. 긴장과 불안은 사실 같은 원리예요. 적절한 수준으로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내 안의 자원을 끌어올리는 걸 긴장이라고 하잖아요. 하지만 미래에 대해 그 이상 과도한 걱정을 하거나 염려할 때 불안하다고 얘기를 하죠. 반면 과거를 반추하고, 후회하고, 그것이 지금의 나를 규정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우울하다고 이야기하게 돼요. 상담으로 만나는 사람들이 특히 불안을 더 많이 이야기하는 이유는 ‘예측불가능성’이라는 점 때문일 거예요. 과거도 삶이 예측 가능하다고 볼 수는 없었겠지만요. 특히 지금은 1년, 짧게는 6개월도 예상할 수 없게 되었잖아요. 돌이켜보면 작년 1월에는 지금의 정치적 상황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거예요. 때문에 전체적인 외부환경의 엄청난 변화 속에서 한 개인이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평온한 마음을 유지하기란 매우 힘든 거죠.

 

“많은 정신병리가 사회문화의 영향으로 발생한다”고 했어요. 사회의 영향임을 인지하는 게 중요할 텐데요. 


컵이 흔들려 물이 찰랑찰랑한 상태라고 한다면 컵을 붙잡아 멈추면 되죠. 그런데 탁자가 흔들리고 있어요. 그러면 아무리 컵을 붙잡고 있으려고 해도 안 돼요. 아래 놓인 탁자가 흔들리는데 어떻게 평온할 수가 있겠어요. 그것과 마찬가지의 상황에 놓여있고, 우리 사회가 변화하고 있기 때문에 불안과 공포라는 부분이 일상화되고 있다고 볼 수 있어요.

 

무엇보다 ‘불확실성’이네요. 한편 불확실성이란 한국 사회만의 특징은 아니잖아요. 이것이 시대적 특징이라는 점을 인식하는 것부터가 출발점이란 생각도 들어요. 이제 ‘주도적 노마드, 유목민으로 살아야 한다’고도 하셨어요.


『공부 중독』에서 우리가 갖고 있는 ‘공부만능주의’가 더 이상 효용가치가 없다고 이야기를 했었어요. 그 이외의 부분도 사실은 마찬가지인데요. 이전세대까지 통용되던 부분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하는 징후들이 보인다는 거죠. 또한 변화의 물살이 빨라지고 있다는 겁니다. 강물이 찰랑찰랑 흐른다면 나는 힘들긴 하겠지만 역방향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고, 가로질러 갈 수도 있을 텐데요. 물살이 너무 빠르다면 그 물살을 거스르는 게 훨씬 힘이 들겠죠. 문제는 물살의 방향마저도 굉장히 많이 바뀌었다는 거예요. 짧게 보면 십 년 전에 비해서도 그렇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아직 가던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가고 있어요.

 

그런가 하면 개중에는 분명 한국 사회만의 특징도 존재해요. 특히 한국을 ‘균질성의 사회’라고 표현하고 있죠.


심리학 하시는 분들은 ‘우리성’이라고도 얘기를 하시는데요. 한국인들은 ‘우리’라는 말을 특히나 많이 쓰잖아요. 우리 안에 들어가는 경우와 벗어나는 경우의 안전성 차이가 매우 크다는 걸 경험적으로 알고 있어요. 때문에 우리 안에 들어 있기 위해 굉장히 많은 노력을 하고 거기에 매우 많은 에너지를 씁니다. 관혼상제에 꼭 참여를 해야 하고, 회식에 가지 않으면 안 된다든지 말이에요. 실제로도 사회의 여러 면에서 우리, 집단 안에 소속되어 많은 이익을 취하는 사람들을 흔하게 볼 수 있잖아요.


‘이 정도 해야 한다’고 하는 보통과 평균값이 있을 거예요. 세칭 중산층의 기준을 생각할 수도 있겠죠. 문제는 이 나이에는 무얼 해야 한다, 는 부분에서 벗어나면 대단한 문제처럼 여기는 모습을 흔히 보게 된다는 거예요. 그러나 이것들이 더 이상 안전을 보장하지도, 성공을 보장하지도 않을 거라는 전망이 매우 많이 보이고 있기 때문에 안타까운 거죠.

 

그 결과 워킹푸어, 하우스푸어, 타임푸어 등 수많은 ‘푸어’를 양산하기도 했어요.

 

정신의학이나 심리학의 중요성이 강화되고 있는 점은 자기계발 열풍과도 맞닿아 있어요. 자기계발의 고급 버전이 인문학 열풍이라고도 볼 수 있을 텐데요. 그것들이 지향하고 있는 부분은 너의 변화, 너의 성장이에요. 네가 강해지지 않으면 경쟁력을 갖지 못한다는 방향성을 갖고 있거든요. 일견 옳지만 그 부분에서 빠져 있는 것은 사회의 영향이라는 부분, 사회의 큰 흐름이라는 부분이에요. 물론 그 안에서 성취하고 변화한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러지 못한 사람을 사회의 영향 때문이라기보다 개인의 문제로 여기는, 너의 실패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들이 일반화되었다는 거예요. 차별을 일상화하는 면들을 가져오게 된 거죠.

 

차별의 일상화요?


최근 젊은 친구들을 보면 ‘지균(‘지역 균형 선발 전형’의 준말)’이니 하는 식으로 아주 세밀하게 사람을 갈라놔요. 그것은 또한 아파트 시세와도 비슷하죠. 이곳은 비교적 최근에 지었으니 비싸야 하고 저곳은 오래됐으니 싸야 하는데 그렇지만 몇 층, 또는 향(向)이 어느 쪽인 집은 더 비싸도 된다는 식으로 세밀하게 가르고 줄을 세우잖아요. 그래야 안심이 되는 거예요. 그것이 차별의 일상화예요.

 

이와 유사한 문제 양상이 너무 많아요.


거식증 같은 병들, 그것은 서구화된 사회에서 특히 늘어난 거잖아요. 신체 이미지라는 것 자체가 대중문화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니까요. 대중문화의 영향을 받은 여성들이 다이어트에 대한 강박증을 가지게 되죠. 그 결과 ‘매력자본’이라는 말도 나와요. 날씬한 몸은 자기 관리가 잘된 사람의 것, 뚱뚱한 몸은 게으른 사람의 것이라고 여기죠. 체질 등 모든 것은 떠나서 말이에요. 그런 식으로 선입견을 갖는 게 상당한 문제라고 볼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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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을 적정화하기


개인을 미시적으로 분석하고 치유를 돕는 정신과 의사에게 신자유주의가 많은 짐을 지웠다고 분석하셨잖아요. 사회에 영향을 받는 게 개인이라는 점을 생각하자면 현직에 종사하는 입장에서 불만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그렇죠. 아무리 개인을 만나 이야기한다 해도 그 사람의 환경적 어려움을 배제하고는 이야기하기가 참 어렵단 말이죠. 60세에 고시원에서 혼자 지내고 있는, 고립된 분한테 아무리 항우울증 약을 처방한다고 해도 그분의 우울증을 좋아지게 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잖아요. 같은 60세 우울증 환자여도 집도 있고, 가족도 있는 분은 상대적으로 훨씬 빨리 좋아지거든요. 어떻게 보면 곤궁함, 사회적 어려움과 빈곤이라는 부분이 사실상 개인적 치유 자체를 어렵게 만드는 부분이 분명히 있어요.

 

바로 그것이 『대한민국 마음 보고서』를 쓴 이유이기도 하겠죠?


맞아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방식대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큰 사회의 변화를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요. 내가 열심히만 하면 삶을 통제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과 믿음이 있었죠. 이전 세대에는 사회가 팽창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이 가능했던 거예요. 지금은 그렇지 않죠. 그 안에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완벽이 필요 없다는 생각일 거예요. 욕망을 적정화하는 것이라 볼 수 있는데요. 저는 욕구와 욕망의 분명한 구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 안에서 개인이 강해질 수 있는 정도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이제 나 한 사람의 생존 능력을 극대화시키고 자아를 완벽하게 발달시키겠다는 욕망이 의미 없음을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했으면 한다. 나 하나 살아남는다고, 더 강해져서 옆 사람을 누른다고, 영속하는 행복은 오지 않는다. 완벽할 필요 없음을, 이길 필요 없음을, 욕망의 적정 수위를 조절하는 것이 생존에 위협이 되지 않음을 깨닫는 것이 우선해야 한다.(243쪽)

 

욕망의 적정화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일까요?


굳이 말하자면 욕구는 생존에 필요한 것들이죠. 욕망은 즐거움, 쾌락에 필요한 건데요. 욕구가 충족되면 ‘살았다’는 느낌이 들어요. 대부분의 복지는 욕구의 충족조차 안 되는 영역에 작동하잖아요. 기본적으로 그것이 되어야만 안전성을 줄 수 있고요. 그러나 그것만으로 살 수는 없어요. 개인의 욕망이 어느 정도 충족되어야 해요. 문제는 욕구와 욕망이 떡이 되어 붙어있다 보니 욕망의 추구가 실패했을 때 그 좌절감이 그냥 욕망을 충족하지 못했구나, 정도가 아니라 욕구도 충족 받지 못할 거라는, 생존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까지 야기한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둘을 적절히 분류해야 하는데 경쟁이 너무 심하다보니 그게 안 되는 거예요. 그런 면이 이 사회에 만연해있다고 볼 수 있어요.

 

자기계발의 환상과 불안이라는 점을 여러 번 생각하게 되네요.


저도 이제는 각종 인구 통계, 경제 통계 이런 부분들에 대한 관심들이 많아져서요. 그런 거시적 추이들을 많이 보게 되는데요. 요즘 나오는 이야기 중 흥미로운 게 노동 소득이 절대 자본 소득을 이길 수 없다는 이야기예요. 한국 사회는 아무리 당대에 소득이 많다 하더라도 이미 자본을 축적을 많이 해서 자본 소득을 얻는 사람들을 뛰어 넘기는 매우 어려운 형국이라는 거예요. 이전에 갖고 있던 중산층 신화는 자본 소득이 아닌 노동 소득을 어떻게 올릴 것인가의 문제였거든요. 안정적으로, 좀 더 좋은 노동 소득을 얻을 수 있는 자리 내지는 능력을 갖길 바라는 게 중산층의 이야기인데요. 지금은 그것 자체가 갖는 힘이 매우 미약해지고 있다는 거죠. 더 큰 문제는 교육이에요. 고급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의 수는 한정적인데 교육이 머니 게임처럼 되다보니 자본 소득을 보유한 사람들이 또한 좋은 노동력을 가질 수 있는 교육까지도 선점하게 되는 거예요. 결국은 자본 소득이 없는 사람들이 대단한 불안을 가질 수밖에 없게 됐어요.

 

교육 기회의 불균형이 가져올 문제도 결코 가볍지 않은데요.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진단하고 계세요? 중산층의 불안이라고도 할 수 있을 거예요.


첫째는 내 자녀의 미래 노동 능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부분에서의 불안이 있고요. 둘째는 내 노동 소득의 상당 부분을 미래, 자식에 물려주기 위한 투자 때문에 자신의 노후가 불안해진다는 면이 있어요. 진퇴양난의 상태가 지금 현재의, 세칭 중산층 지식인 내지는 386 세대가 갖는 엄청난 딜레마라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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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화’의 문제들


‘마음의 체력’ 즉, 정신이 충분히 성장하지 못한 채로 성인이 된 사람들 이야기를 반복해서 하고 있어요. 충동 조절에 어려움을 주로 20대 젊은 남성들이 겪고 있다는 점도 시선을 끌고요. 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60년대 외국에서는 청소년기에 보이던 것들이라 얘기하거든요. 제임스 딘의 ‘이유 없는 반항’ 같은 건데요. 그런 모습이 지금 20대 중반에 일어나요. 10대 후반에 해야 할 것들을 공부하느라 못했기 때문에 넘어간 거예요. 이 심리는 자신이 모든 걸 다 할 수 있을 것 같고, 불멸일 것 같은 전능감들을 가지고 있죠. 문제는 이 전능감이 훼손되는 것이 너무 싫기 때문에 연습만 할 뿐 실천은 하지 않는 거예요. 자신에 대한 기대치는 매우 높은데 비해 실제 자신에 대한 자존감은 매우 낮아요. 그 불균형을 인정할 수 없기 때문에 아예 아무것도 안 하고요. 그렇지만 전능감은 너무 강해서 최소한의 불편함 조차도 자신을 훼손한다고, 여겨 다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들을 보게 되는 것이죠.

 

이것이 한국 사회에서 특징적으로 볼 수 있는 면인가요?


반드시 그렇다고 볼 수는 없어요. 다른 나라에서도 일반적으로 많이 보이고 있는 징후들일 수 있고요. 다만 한국 사회에서도 그런 부분이 보이기 시작한다는 거고요. 대개는 두 영역에서 발견이 돼요. 하나는 순응도가 높은, 사회화가 매우 안 된 일부 잘 관리된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고요. 두 번째는 정반대인데요. 지난 10년, 20년 간 우리 사회에서 두드러지게 보이는 건 이혼의 일상화거든요. 그런데 이혼 가정, 특히 저소득층 이혼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을 보면 방치된 경우가 많죠. 이들을 그야말로 사회화를 접할 경험을 얻지 못하고 세상이란 정글 같은 곳이라고 경험하고 있는 친구들이에요. 이 친구들이 경우에 따라 극우화할 수도 있는 거고요. 미숙련노동자로서 자리를 놓고 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니까요. 가족 내에서 배웠어야 할 최소한의 훈육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상황에서 사회에 나왔기 때문에 어떤 고급 일자리의 일들을 해내지 못해요. 그런 채로 고립되어 지내다가 충동적 행동, 공격적 행동을 하는 경우들을 많이 봐요. 굉장히 우려스럽죠.

 

한편 심리학을 오남용하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심증이 커졌다고 하셨잖아요. 자신의 상태를 정확하게 안다고 착각하는 데에서 부작용이 많이 발생한다고요?


일견의 성찰은 필요해요. 하지만 지나칠 때 문제가 돼요. 다 설명할 수 있고, 안다고 이야기하는데 아무것도 안 하죠. 이건 불안이야, 이건 내 안의 아이가(웃음) 문제야, 이건 내 인생의 트라우마야, 하는 식으로 꽤 정확하고 유려하게 인식하거나 설명할 수는 있지만 그걸로 끝인 경우가 많거든요. 왜냐하면 알면 알수록 이것은 분명하고 확고하기 때문에 해결하기엔 너무 어려운 거죠. 그런 문제들은 대부분 어릴 때 어떠했다는 것으로 수렴되니까요. 고정된 과거가 현재를 규정하는 식으로 상당수 심리학 이론들이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럴듯하죠. 그러니까 그것이 프레임이 되어서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다 그런 식으로 설명해요. 하지만 그러다보면 현재 벌어지는 일도 모두 나의 불행, 결핍을 설명하는 데에만 이용되게 돼요. 우려할 만한 일이에요.

 

어떤 문제 상황이 ‘삶의 어려움’이라는 차원에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인데도 그것을 심리학적인 문제로 규정하는 경우 역시 많아졌다고도 하셨죠.


프로이트가 ‘있을 법한 불행인데 자신을 비극의 주인공으로 생각한다’고 했는데요. 많은 분들이 오셔서 나 같은 사람은 처음이지 않느냐고 물어요. 아니거든요. 패턴화된 경우가 많고요. 아주 특이한 사람은 드물어요. 그런데 그런 심리화 과정을 통해 자신의 과거가 이미 훼손되어 있다고 여기니까 어떤 일이 벌어져도 만족이 안 되는 거죠. 어떤 일이 벌어지면 이것 때문에 해결이 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점점 더 강해지는 경우들이 생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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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와 공정함, 시대의 가치


2016년 촛불, 그러니까 광장의 경험이 ‘버전업’의 기회라고 표현했는데요. 어떤 의미일까요? 상황을 낙관하고 계신 것 같은데요.


그러길 기대하는 거죠. 아까 얘기했듯이 ‘나’라는 존재가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그 수십만의 사람 사이에 있음으로 해서 좀 다른, 더 큰 경험을 하게 된 거예요. 나만 갖는 생각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에 고립감에서 벗어나 좌절감이 해결된 부분도 있고요. 그런 작은 실천이 불가능할 거라 생각했던 지난 몇 달 간의 변화들을 불러온 면이기도 하고요.

 

버전업 된 사회, 어떻게 전망하고 계세요?


무력감으로부터 탈피할 수 있는 것, 다수가 올바르다고 생각하는 것이 실제로도 작동하는 걸 우리가 확인하는 것, 이것이 시작되어야 된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정의라는 것과 공정함이라는 부분이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하는데요. 이번에 보았던 여러 가지는 그것과 다르게 돌아가고 있었고, 너무 촘촘하게 조직화되어 있는 불공평함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된 거잖아요. 조직화된 부분을 하나하나 드러내긴 힘들지만 핵심적인 부분이 드러났다는 건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을 해요. 대다수의 사람들이 정의와 공정함을 염원하고 있다는 부분을 이해하는 중요한 계기가 된 거예요. 큰 흐름으로 보자면 그럴 것 같아요.

 

정치적 올바름은 아주 중요한 시대정신의 하나라고 생각해요. 페미니즘, 차별금지법 등에 대한 담론들도 그런 차원에서 더 많이 이야기되는 것 같고요.


그동안 얘기하지 못했던 부분들이 테이블 위로 올라오게 된다는 게 중요하죠. 그동안 다른 걸 위해 나머지는 희생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건데요. 그 ‘언제’가 다음보다는 필요하다면 지금 충분히 기회가 되면 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죠. 충분한 합의를 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최소한 이런 의제가 있을 수 있다는 것만큼은 공유하면서 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이런 것 또한 우리가 사회에서 다뤄야 할 문제들이다, 라고 말이에요. 소수자 인권문제, 다문화 가정 문제, 기본권 문제 등 다양한 의제들이 있을 수 있잖아요.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런 부분들을 모두 다양성이라는 것 안에서 생각해야 해요. 길게 보면 생태계라는 것이 다양성 안에서 안전성이 확보되는 것이거든요. 모두 같은 권리를 가진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다양하게 생존해나가는 것이 인류라는 거대한 차원에서 지금처럼 급격한 환경의 변화가 오는 시점에는 매우 필요하다는 거죠.

 

이 책을 꼭 읽어야 할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떤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으세요?


평소 세상에 대해 관심 많은 분들일 텐데요. 세상의 흐름과 마음의 흐름이 엇나가지 않는다는 것, 사실은 아주 긴밀하게 상호작용하고 있다는 것, 여기에 궁금함이 있는 분들이 보시면 좋겠어요. 우리는 끝없이 세상과 상호작용하고 있는 존재예요. 혼자 있고 싶은 나와 집단 속에서 안정성을 느끼는 나는 다른 사람이 아니죠. 나는 진자운동을 하고 있거든요. 어떨 땐 가치관이 헷갈릴 수 있죠. 모임이 좋기도 하다가 혼자만 있고 싶기도 해요. 그럴 때 내가 미친 게 아닌가 싶잖아요. 그러나 그 모두가 나를 규정하고 있는 거거든요. 좀 더 주도적인 면이 때때로 있을 수 있고 그것은 또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거니까요. 그 안에서 나라는 사람이 환경의 큰 변화 안에 적응해가는 과정이라는 사실, 그런 사람이 더 건강한 사람이라고 할 수도 있을 거라는 말을 하고 싶어요.

 

책과 칼럼 등을 많이 쓰시잖아요. 마음의 진자운동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분들, 이 책을 읽었으면 하는 분들에게 최근 읽은 책 중에 그런 분들에게 권할 만한 책이 또 있다면요?


『대한민국 마음 보고서』뒷부분에 언급한 책들만 보셔도 좋을 것 같은데요. 권할 만한 책은 항상 <채널예스>에 소개하고 있어서요.(웃음) 『심리학에 속지마라』『정해진 미래』를 추천하고 싶어요. 『정해진 미래』는 인구 통계를 가지고 흥미로운 분석을 하고 있고요. 『심리학에 속지마라』는 앞서 나눈 ‘심리화’에 대한 부분을 잘 다루고 있는 책이에요. 지금은 『센서티브』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요. 이 책도 재미있어요. 민감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고요. 내성적인 것과 민감한 것은 다르다는 주장을 하고 있거든요. 곧 <채널예스>에 칼럼을 쓸 예정입니다.(웃음)


 

 

대한민국 마음 보고서하지현 저 | 문학동네
저자는 최근 10여 년 동안 한국인의 마음의 지형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즉 사회 전반에서 관찰할 수 있는 병리학적 징후들을 통해 그 마음에 켜진 위험신호가 어디에서 온 것이고 그것이 어떤 상황과 사회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것인지, 그 심리학적이고 사회학적인 의미를 분석한다. 이 책은 현재 대한민국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가 어떤 마음의 상태에 있는지에 대한 심리학적인 보고서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심용환 “헌법은 우리가 만들어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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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정국이 시작되면서 헌법은 국민적 관심사가 됐다. 다수의 시민은 권리를 되찾기 위해 헌법책을 펼쳤고, 일부의 정치인은 통치 구조를 바꾸기 위해 헌법 개정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어떤 경우에도 헌법을 이야기하기란 쉽지 않다. 난해한 법 조항과 복잡한 통치 구조, 이 두 가지를 명쾌하게 설명해 줄 대상이 부재한 까닭이다.

 

이러한 시대적 요구 속에서 『헌법의 상상력』은 탄생했다. 역사가 심용환이 저술한 이 책은 딱딱한 법리적 해석에서 벗어나, 역사와 인문학의 관점에서 헌법을 말한다. 대한민국의 헌법이 어떤 상황 속에서 탄생하고 성장했는지, 그 과정이 다른 나라의 경우와는 어떻게 다른지,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역사적 사건과 헌법이 긴밀하게 상호작용하면서 현재에 이르렀음을 보여주고 ‘지금의 현실은 헌법을 어떻게 변화시켜야 하는지’ 질문하게 만든다.

 

심용환 저자는 2015년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파동 때 대중의 주목을 한 몸에 받은 역사가다. 그가 SNS에 게재한 ‘카톡 유언비어 반박문’이 전국적으로 큰 화제가 됐고, 이후 팟캐스트 <김어준의 파파이스>, <노유진의 정치 카페>, <정봉주의 전국구>, 시사주간지 <한겨레 21> 등을 통해 국정화 교과서의 문제점을 알렸다. 왜곡된 역사적 사실을 바로 알리기 위한 그의 노력은 『단박에 한국사 : 근대편』, 『역사 전쟁』, 『심용환의 역사 토크』의 출간으로 이어졌고, TV 프로그램 <어쩌다 어른>, <말하는대로>에 출연해 임시정부와 위안부의 진실을 알리기도 했다.

헌법, 우리가 만들어낸 이야기


지난해부터 헌법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졌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가 『헌법의 상상력』을 집필하시는 데 영향을 미쳤나요?

 

그렇죠. 직접적인 계기는 『역사 전쟁』을 쓸 때였어요. 그때 일본의 사례를 검토했는데요. 1980년대에 일본의 극우파가 검정제도를 이용해서 교과서를 원하는 방향으로 개선하는 데 실패해요. 그런데 포기하지 않고 결집해서 개헌을 준비해요. 작은 실패 속에서 더 큰 꿈을 꾼 거죠. 그 정보를 접하고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우리나라에서도 작년 4.13 선거 전에 당시의 새누리당이 개헌 이야기를 했었잖아요. 그때쯤 출판사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런 주제로 책을 써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어요. 조사를 해보니까 단순하게 현행 헌법을 잘 설명해 주는 책이나 아주 어려운 법학 서적은 있는데, 우리나라의 헌법사를 체계적으로 다루거나 외국의 헌법 역사를 들려주는 책은 없는 것 같더라고요. ‘이건 내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블로그를 통해서 “이 책은 우리 시대에 대한 저의 대답”이라고 이야기하셨더라고요. 지금 우리가 헌법에 대한 상상력을 발휘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지금 촛불 혁명 정국이잖아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대통령을 합법적 절차를 통해서 무력화시킨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죠. 중요한 시기인 만큼 고민이 많았고, 정치인 캠프나 시민 단체에서 함께 활동하자는 제안을 받기도 했어요. 그런데 제가 보기에는, 다 의미 있는 활동이기는 하지만, 근시안적이고 정치공학적이라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연구를 하면서 발견하게 된 건, 과거에도 똑같은 일이 있었다는 거예요. 4.19 혁명이 끝난 후에도 사람들은 투표에나 관심이 있었지, 어떻게 새롭게 헌법을 만든 것인가에는 관심이 없었어요. 6월 항쟁이 끝난 뒤에도 김영삼이냐 김대중이냐, 후보 단일화냐, 여기에만 관심이 있었죠. 어떤 세계를 설계할 것인가에 대한 관심이 없었어요. 지금도 유사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고요.

 

결국 헌법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는 말씀이신가요?


‘촛불 혁명에 대한 제대로 된 결과가 어디로 모아져야 될까’라는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헌법이었죠. 기존 헌법이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가, 만약 헌법을 고쳐야 된다면 어떻게 고쳐야 되는가를 살펴봐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헌법 자체가 오늘 우리의 생활 전체를 규정하고 있다는 확신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헌법의 문제를 고찰한 거고 책 제목도 『헌법의 상상력』이라고 지은 거죠.

 

법학자가 아닌 역사학자가 집필한 책이라는 점에서 『헌법의 상상력』이 다른 헌법 관련 책들과 차별화 되는 지점이 있는 것 같아요.


비판적인 말이 될 수 있겠지만, 기존의 헌법학이라는 것은 결국 이론적이었다는 거예요. 매번 개념적으로만 접근한 거죠. 모든 나라의 헌법은 그 나라의 역사 과정 속에서 도출이 되잖아요. 입헌 전통을 최초로 만든 나라인 영국을 보면 봉건 귀족들이 존 왕을 겁박해서 최초로 문서를 만든 게 ‘마그나 카르타 대헌장’이에요. 그런 전통이 청교도 혁명이나 명예 혁명을 통해서 구체화된 거고요. 프랑스 같은 경우도 프랑스 대혁명을 통해서 국민 의회가 만들어졌고, 오랫동안 내각제로 가다가 해방 이후에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의원 내각제 전통에 대통령제를 섞은 거죠. 그래서 이원집정부제라는 모호한 제도가 만들어졌어요. 그러니까 각 나라는 다 자기들만의 역사적 과정 속에서 합법적인 체계를 만들기 위해서 헌법이라는 절차적 정의를 만든 거거든요.

 

역사를 빼놓고는 헌법을 이야기할 수 없다는 말씀인데요. 그 부분에서 『헌법의 상상력』이 가진 장점이 돋보여요.


역사성 속에서 개념이 나오는 건데, 우리나라에서는 법학자들이 다 개념적 접근만 하는 거죠. 그래서 생기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헌법이라는 게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버린다는 거예요. 그들만 연구하는 학문으로 여겨지고, 대중들 사이에서는 헌법이 별 의미가 없는 거죠. 실제로 우리는 다 헌법에 의지해서, 헌법이 보장하는 권리 속에 살아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요. 저는 역사학적 관점이나 인문학적 관점 속에서 헌법을 이야기한 거고, 그걸 통해서 헌법이 우리의 삶과 밀접한 이야기이고 우리가 만들어낸 이야기라는 걸 입증하고 싶었어요.

 

이전에도 헌법 조항들을 보신 적이 있나요?


제가 학원 강사로 일할 때 ‘법과 사회’ 과목을 가르친 적이 있어요. 지금은 ‘법과 정치’로 교과명이 바뀌었는데요.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서 저도 같이 공부를 하다 보니까 법이 굉장히 유용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법은 실생활을 규정하는 힘이고, 법이라는 절차가 있기 때문에 우리가 안전하고 공정하게 합리성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된 거죠. 그런 부분에서 재미를 느껴서 책을 많이 찾아서 봤어요. 헌법에 대한 책을 쓰기 위해서 한 일은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큰 도움이 됐죠. 적어도 헌법 조항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헌법을 근거로 해서 어떻게 법령이 만들어지는지에 대해서는 알게 됐으니까요.

 

책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헌법과 실제 생활이 유리되어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헌법 조항에 명시되어 있는 권리이지만, 실제로는 그 혜택을 받지 못하는 부분도 있고요.


그렇죠. 그건 대통령이 배신을 했고 국회의원이 배신을 했기 때문이에요. 이승만 대통령은 권력 연장을 위해서 두 번 헌법을 뜯어고쳤고, 박정희 대통령은 더 극단적이었어요. 쿠데타로 정권을 잡았고, 유신이라는 친위쿠데타를 일으켰잖아요. 전두환 대통령은 박정희 대통령이 했던 걸 한 번 더 한 거예요. 사람이 바뀌었을 뿐이지 똑같은 구조가 재현된 거죠. 그러니까 우리나라에서 헌법은 시민들이 혁명을 통해서 자기의 의사를 관철하는 수단으로 쓰인 게 아니라, (권력자가) 자신의 권력을 합리화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개정된 거예요. 4.19 혁명과 6월 항쟁을 제외하면, 그 과정을 무려 70년 동안 거친 거죠. 그러니까 헌법이 우리를 위해 존재한다는 개념 자체가 없는 거예요.

 

독재 정권을 경험하면서 시민들에게 각인된 헌법은 나를 지켜주는 것이 아니었겠죠. 나를 규제하고 탄압하는 것으로 인식됐을 거예요.


개헌과 관련해서도 8년 중임제냐, 의원내각제냐, 의원집정부제냐, 이런 이야기를 하잖아요. 그 자체가 이미 권력자들에 의해서 통제된 사유 방식이라는 거죠. 헌법 전문을 읽어보면 3분의 2 이상이 다 국민의 기본권이라든지 노동권, 사회권, 복지권 같은 권리 조항들이거든요. 근대 시민법은 시민혁명에 의해서 만들어졌기 때문에 국민의 권리 보장을 위해서 탄생한 거예요. 우리는 시작부터 좋은 헌법을 얻었지만 그걸 우리 걸로 체화시키지 못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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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대통령’ 보다 먼저 고민해야 할 것은…


최근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출연하셨을 때 ‘대한민국 수립 이후 가장 좋았던 헌법은 제헌헌법’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현행 헌법이 제헌헌법을 따라가지 못하는 부분이 있나요?


헌법학적 관점에서의 세련미는 지금 헌법이 더 좋은 부분이 있죠. 그러나 제헌헌법이 더 나아보이는 부분도 있어요. 대표적인 게 특권 계급 방지 조항이에요. 지금이 헌법에도 있기는 한데, 그냥 특권 계급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되어있어요. 제헌헌법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국회에서 이야기된 것 중 하나가 시간이 지나면서 경제가 불평등해질 수 있다는 거였어요. 특권 계급이 생길 수 있다는 거죠. 그러다 보니까 국가는 특권 계급이 생겼을 때 그것을 조정하는 역할을 한다는 발언이 나왔고, 아무 이견 없이 통과가 됐어요. 헌법이라는 것 혹은 국가의 의무는 특권 계급을 용납하지 않고 그걸 조정하고 관리하는 것이라는 의미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그런 이야기를 안 하잖아요. 그렇게 인지하고 있지도 않고요.
 
‘이익균점권’과 관련해서도 깊은 인상을 받으신 것 같아요.


저만이 아니라 많은 역사학자들이 제헌헌법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아마 이익균점권 조항 때문일 거예요. 이익균점권은, 기업을 운영하면서 발생한 이윤을 노동자와 경영자가 균점해야 된다는 조항이에요. 당시 국회에서는 이익균점권을 위해서 노동자의 경영 참여를 보장해줘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었어요. 요즘으로 말하면 이사회에 노동자 대표가 들어가야 된다는 말이죠. (제헌헌법에는) 그런 이야기가 들어가 있었는데, 박정희 정권이 들어서면서 기회 균등이라는 개념으로 바뀌었어요. 지금 우리 사회에는 특권 계급이 분명히 있잖아요. 그리고 기회의 균등이라는 말로 특권 계급을 포장해 주고 있죠. 그러니까 현행 헌법보다 제헌헌법이 정확하게 규정하고 있는 장점들이 있는 거죠. 이익균점권은 그걸 보여주는 단적인 예인 것 같아요.

 

책에서 지적하셨듯이 “제헌헌법의 급진성과 진보성을 격찬하면서 제헌헌법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여기에는 동의하지 않으시죠?


헌법을 명문을 어떻게 바꾸느냐가 중요한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우리 역사에서 대통령들이 큰 사고를 치기는 했지만, 국회의원들도 자신들의 권력 유지 수단으로 의원내각제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지금도 일부 정치인들이 똑같은 방식으로 개헌을 이야기하고 있잖아요. 중요한 건 권력 구조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생활 구조를 바꾸는 거죠. 헌법의 내용을 먼저 바꾼 다음에 생활 구조를 맞춰가는 방법도 있겠지만, 생활 구조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자연스럽게 개헌으로 맞물려서 헌법이 수정될 수 있겠죠. 우리가 오늘의 생활 세계를 어떻게 구체적으로 바꾸어갈 것인가에 대한 마음이 많이 모이고, 그 결과가 헌법에 영향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문화된 조항을 의미 있게 만들거나 개헌을 한다면, 그런 목적으로 해야 되죠.

 

대한민국 헌정사뿐만 아니라 미국, 독일, 일본, 프랑스, 칠레, 북유럽의 사례도 설명하셨는데요. 우리 헌정사는 너무 압축적으로 진행돼서,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부족한 부분들도 있는 것 같아요.


좋은 모델에 대해서만 쓰지는 않았어요. 우리나라 헌정사가 다른 나라보다 못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건 아니에요. 미국이나 프랑스, 북유럽은 좋은 모델들이죠. 그런데 일본이나 칠레는 분명히 나쁜 모델이거든요. 일본의 사례를 통해서 보여주고 싶었던 건 선거구제를 개선한다고 해서 소수당의 입장이 무조건 반영되는 건 아니고, 소수당이 꽤 많은 의석수를 갖고 있다고 해서 사회가 한 번에 바뀌는 건 아니라는 거였어요. 그리고 칠레는, 최근 헌법은 조금 바뀌었지만, 민주화가 된 다음에도 2000년 초반까지 대통령이 국방부장관을 임명 못했어요. 군부를 전혀 통제 못한 거죠. 우리나라는 그렇지는 않잖아요. 대통령이 군부를 다 통제할 수 있는 구조가 되니까요. 그런 부분에서 우리가 갖고 있는 우리 헌법의 장단점을 분명하게 보되, 다른 나라의 사례를 반면교사 삼을 필요는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일본과 프랑스는 각각 의원내각제, 이원집정부제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개헌을 논의하기에 앞서 살펴봐야 할 나라들일 거예요.


일본은 양원구조이고 중선거구제이기 때문에 국회의원을 많이 뽑죠. 내각책임제이기 때문에 내각 해산에 따라서 선거를 여러 번 하고요. 이런 전통을 60~70년째 가지고 왔어요. 그런데 그 가간 동안에 우리는 민주화 투쟁이 중요한 과제였고, 경험해본 게 대통령과 단원제밖에 없어요. 갑자기 의원내각제를 적용하면 혼동이 생길 수밖에 없겠죠. 그리고 이원집정부제를 하면 권력을 두 개로 쪼개기 때문에 나라가 잘 돌아갈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실제로 프랑스의 이원집정부제를 보면 총리와 대통령의 권한이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지 않아요. 헌법을 봐도 애매해요. 이원집정부제를 개념화시켜서 쉽게 이야기하기는 어렵다는 거예요. 어떤 나라든 그 나라의 역사 속에서 그 나라의 헌법 질서가 만들어졌어요. 그걸 인정하고 우리의 역사 속에서 우리의 헌법적 위상이 어디에 있는가를 보면서 풀어가야 된다고 생각해요.

 

19대 대선이 예정보다 빨리 치러질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그만큼 제2공화국이 출범한 과정이 궁금해지는데요.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 이후에 치러진 선거는 순조롭게 진행됐나요? 당시에는 헌법 개정까지 함께 이루어졌는데요.


다음 권력을 누가 잡느냐, 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혼란이 없었던 거거든요. 그 이중성을 인식해야 돼요. 지금도 다르지 않죠. 촛불 혁명의 결과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가능성이 높아지니까 다음 대통령은 누가 될 것이냐를 두고 싸우고 있어요. 우리나라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안정성은 사실은 비헌법적 태도 때문에 생긴 거예요. 이승만 대통령을 하야시켰을 때 사람들이 모여서 어떤 새로운 세계와 체계를 만들어낼 것인지를 고민했어야 돼요. 결국 헌법적 논의로 가야 되는 거였는데, 그렇지 않고 누구에게 권력을 넘겨줄 것인가를 고민했어요. 제2공화국 때는 의원내각제로 바뀌기는 했지만 결국은 야당인 민주당한테 권력을 준 거였죠.

 

6월 항쟁 이후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때는 김영삼한테 줄까 김대중한테 줄까 고민하다가 결국은 전두환 대통령의 2인자한테 주게 된 거죠. 어떤 새로운 세계, 사회, 경제 질서, 정치 질서, 국가를 만들 것인가를 논의하지 않고 후계자 논의로 돌리면서 쉽게 쉽게 넘어간 거죠. 그 대가가 뭔지 보세요. 결국 박정희 정권이 들어섰고 과거 독재 정권에서 권력을 가졌던 세력들이 현재까지도 기득권을 가지고 있어요. 역사의 변곡점에서 어떻게 바꿀 것인지 국민적인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진통을 거치면서 그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제대로 된 역사 청산이 안 되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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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을 말하는 사람들, 왜 그럴까?


『헌법의 상상력』에 이어서 곧바로 『심용환의 역사 토크』가 출간됐는데요. 새 책에서는 위안부, 친일파, 식민지 근대화론 등 근현대사 ‘역사 전쟁’의 핵심 쟁점을 다루셨어요. 이 가운데 가장 바로잡고 싶은 내용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가장’이라는 말은 조금 부담스럽고요. 책에 실린 여섯 가지 주제가 다 바로 잡히면 좋겠어요. 그래야 우리 마음속에 국정교과서의 가능성이 사라진다고 생각해요. 아시다시피 제가 꽤 긴 기간 동안 국정교과서와 싸워왔잖아요. 그러면서 내린 결론은, 제도 이전에 마음의 싹을 없애야 된다는 거였어요. 위안부를 둘러싼 유언비어에 현혹되어서도 안 되고, 이승만 박정희에 대한 너무나 근거 없는 미화도 바로잡아야죠.

 

‘위대한 고대’를 그리는 건 열등감이라는 이야기도 실려 있죠?


옛날에 우리가 굉장히 큰 영토를 가졌어야만 한다는 생각이 중국에 대한 열등감이거든요. 우리가 왜 영토에 대한 콤플렉스를 가져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스위스가 영토가 크기 때문에 자랑스러운 나라도 아니고, 프랑스가 큰 나라라서 문화가 발전한 거 아니에요. 그렇다면 러시아가 더 발전했어야죠. 그 나라와 그 민족만의 고유성이 있는 거고, 우리의 내제적인 가치에 주목해서 자부심을 가지면 되는 거예요. 무조건 영토가 커야 한다는 건 남의 나라를 침략하자는 건데, 그게 일본의 제국주의와 뭐가 다른지 모르겠어요.

 

아직까지 우리 사회는 근현대사에 대한 이야기를 조심스러워하는 것 같아요. 국사 교육만 보더라도, 고대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가르치면서 근현대사는 간략하게 짚고 넘어가죠.


『헌법의 상상력』에도 썼듯이 독재 정권이 발전하면서 교육중립성이 강조돼요.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이 강조되는 거예요. 결국 학교에서 역사를 배울 때 옛날 이야기만 배우라는 뜻이죠.  옛날 이야기는 토론거리가 되지 않고 암기거리가 되거든요. 오늘의 이야기는 그냥 놔둬도 할 이야기가 있어요. 독재 정권, 인권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아이들이 이야기를 하기 시작해요. 토론까지 안 되더라도 화라도 내는 거죠. 사건 자체가 충격적이기도 하지만, 오늘의 우리랑 가까운 이야기라서 재밌는 거예요. 나랑 유관해야 재미가 있는 거죠. 돌덩이 쪼개고 광개토대왕이 땅을 늘리고... 그건 너무 먼 이야기이고 좋아하는 아이들만 좋아해요.

 

교육자의 정치적 중립이 독재 정권과 맞닿는 지점이 있었군요.


헌법과 법질서와 통치 정책을 통해서 학생들의 눈과 귀와 사고방식을 막아버리고, 또 한편에서는 교육정책을 통해서 근현대사 이야기를 못하게 한 거죠. 그러다가 2004년 이후부터 ‘근현대사’ 교과서가 만들어지게 되고 우리나라의 민주화가 더 진척되면서, 근현대사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상황이 된 거고요. (국정 교과서가) 그 흐름을 역행해서 막아버리려고 했지만 이제는 국민 의식이 많이 올라왔기 때문에 강한 저항에 부딪힌 거예요.

 

『헌법의 상상력』, 『심용환의 역사 토크』에서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에 대한 이야기도 하셨는데요. 부담스럽지는 않으셨어요?


제 생각에 역사가는 망루에 서 있는 사람 같아요. 정치가들은 창칼을 들고 현장에서 싸우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역사가들은 현장에서 직접 싸우는 사람이라기보다는 망루 위에 서서 흘깃 보는, 그 대신 조금 더 멀리 볼 수 있는 사람인 것 같아요. 역사가가 지혜로운 현자라서가 아니라, 높은 데 있고 망원경을 들고 있으니까, 다가오는 위험을 경고해줄 수 있는 사람들인 것 같아요. 저는 그 역할을 충실하게 하고 싶은 거죠.

 

역사가로서 망루에 서서 본 것을 서술할 때, 개인적인 해석이 개입될까 봐 많이 우려하실 것 같거든요. 어떠세요?


해석과 왜곡은 달라요. 왜곡은 목적을 가지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결론을 정해놓고서 그림을 그리는 거예요. 역사적 사실을 넣을 건 넣고 뺄 건 빼면서요. 해석은 사실과 자료들을 존중하고 그 위에서 합리적인 논리구조를 만들어서 이야기를 펼치는 거죠. 그러니까 해석은 자유로운 거예요. 다만 그 해석은 합리성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여러 비판 가운데 생존해내야 하는 거죠. 저는 헌법이라는 팩트를 소개하는 게 아니라 헌법 이야기를 꺼낸 거잖아요. 이건 해석이죠. 해석은 자유롭게 하되, 그 대신 책임이 있어야 하고 논리적이어야 하고 합리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으면 수준 미달인 거죠.

 

만약 개헌이 이루어진다면, 반드시 포함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 내용이 있나요?


아주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경제 개혁과 사회 복지라는 두 축이 핵심 화두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렇지 않는 한 저는 개헌은 반대예요. 지금 개헌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국회에도 개헌을 연구하는 모임이 있어요. 그 사람들이 왜 모일까요? 국민들을 위해서 재벌을 개혁하고 중소기업 위주로 살리고, 생활 세계를 개선시킬 정도의 사회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해서 모일까요? 전혀 아니죠. 자신이 대통령이 될 수 없는 한, 대통령의 권한을 줄이고 자기 것을 많이 갖기 위해서 개헌 논의를 하는 거죠.

 

무엇을 전제로 개헌이 논의돼야 할까요?


일례로 재벌을 어떻게 해체할 것인지, 타이완 모델로 갈 것인지 북유럽 모델로 갈 것인지, 이런 식의 논의 속에서 개헌이 진척된다면 적극 찬성이에요. 사회권, 기본권, 노동권이 개선되는 방향으로 이루어지면 찬성하죠. 그리고 요즘에는 성소수자 문제나 여성 문제에 대한 이야기도 많잖아요. 이런 주제들도 앞으로 큰 화두가 되겠죠. 사람들의 가치 판단, 사회적 합의 속에서 결론을 내리게 될 거예요. 이런 것들이 개헌의 주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의 생활 세계와 관련된 문제에 초점을 맞춰서 개헌 논의가 이루어진다면 기꺼이, 어떤 진영과도 함께 이야기할 거예요. 그런데 지금과 같은 식으로 정치권력 논의로 흘러가는 건 조금도 찬성하지 않아요.


 

 

헌법의 상상력심용환 저 | 사계절
우리는 누구나 헌법이 보장하는 삶을 살 권리가 있다. 『헌법의 상상력』은 지금껏 대한민국 헌법이 우리에게 보장하고자 했던 정의가, 또한 그것이 우리에게 제공하고자 했던 가치가 무엇이었는지 돌아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정의와 가치가 무엇인지 내다보는 기회도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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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소희 “사교육보다 마음의 체력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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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한 권이면 육아는 문제 없겠는데요?” 읽어도 읽어도 끝이 없는 육아서. 이 같은 극찬을 받은 책이 궁금해 읽기 시작했다. 여행작가 오소희가 쓴 『엄마 내공』. 명문대에 보낸 엄마의 무용담 같은 건 담겨 있지 않다. 교육 광풍에 휩쓸리지 않고 자기 소신을 갖고 아이를 키우고자 하는 엄마들의 진솔한 고민과 해답이 들어 있다. 오소희가 생각한 『엄마 내공』의 타깃 독자를 이렇다. “험난한 경쟁 사회에서 내 아이가 가장 빨리 달리길 원하는 엄마가 아닌, 이 치열한 경쟁판에서 좀 더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엄마.” 후자에 점을 찍고 있는 엄마, 아빠라면 오소희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한 줄 한 줄 진지하게 읽다 보면 다가올 육아의 광풍이 두렵지만은 않다.

 

“아이는 자신의 놀이대상만큼 큰다. 무조건 데리고 자연으로 가라. 키즈카페 가지 마라. 그곳은 빤한 놀이공간이다. 놀이에 빤한 정의를 심어줄 뿐이다. 그런 세팅이 안 되어 있으면 쭈뼛대는 아이로 자라날 뿐이다. 놀이는 언제 어디서나 무한한 가능성으로 시작될 수 있는 것이다. 아이들은 그 가능성을 가지고 놀아야 한다. 이 모든 ‘가능한’ 놀이가 아이에게는 배움이다. 네 친구들이 허구한 날 모여서 말하는 ‘공부’나 ‘배움’의 정의를 바꿔라. 그들이 말하는 건 배움이 아니라 ‘시험’이다. 네 아이는 아직 시험 칠 나이가 아니다. 배울 나이다. 하늘로부터도, 땅으로부터도, 먼지로부터도.”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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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공부해야 할 건 행복해지는 법


여행작가의 육아 에세이, 좀 의외라고 생각했다.

 

결심하고 쓴 건 아니다. 동생들에게 아들 어릴 때 키운 이야기를 했더니, 좀 더 많은 이야기를 해주면 좋겠다고 하더라. 의외로 젊은 엄마들이 육아 이야기를 들을 데가 없더라. 블로그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는데 핵심은 “유아 때부터 실컷 놀려라. 그 이후에는 못 논다. 기왕이면 자연에서 놀자”였다. 우리나라 학력 사회는 무척 완고하다. 변하지도 흔들리지도 않는다. 결국 흔들리는 건 부모다. 제아무리 건강한 교육관을 지녀도 아이가 클수록 흔들린다.

 

“어차피 누구나 흔들린다. 뿌리라도 건강하게 해두자”는 말이 인상적이더라. 이 책의 핵심이 아닌가 싶었다.


놀지 않은 아이는 결코 후반부의 미친 학력 요구들을 버틸 마음의 체력이 키워지지 않는다. 자기주도적으로 공부하라고 말할 게 아니라, 엄마 스스로가 자기주도적으로 공부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우리가 공부해야 할 건 행복해지는 법이다. 엄마가 먼저 생을 즐기는 모습을 보여줘야 아이도 행복하게 자란다. 아빠가 가사 분담을 안 하면 엄마는 스트레스를 받고 아이에게 화를 낸다. 그것은 좋지 않은 일, 아닌가?

 

육아 고민에 대한 해답을 올리자, 엄마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블로그 댓글을 보면 그야말로 ‘내공’이 깊은 부모들이더라.


30개씩 달린 댓글을 읽다 보면 답이 나오더라. 이렇게 좋은 생각을 가진 엄마들이 많다는 걸 절감했다. 뭉클하고 감동이었다.

 

질문이 구체적이니까 답변도 구체적이다. 실제 생활에 바로 적용될 수 있는 해답을 많이 찾았다.


사람들이 그러더라. “여기는 왜 이렇게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이 오냐”고. 수두룩하게 달리는 댓글을 보면서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우리 삶이 정말 바쁘지 않은가? 그런데 시간을 내서 남의 고민에 이렇게 진심으로 귀를 기울여준다는 게 놀라웠다. 최대한 자신의 경험을 빗대어 조언을 해주는 모습 자체가 훈훈하고 아름다웠다. 이런 행위가 연속적으로 계속 일어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온 모임이 ‘엄마당’이다. 사회 탓만 하면서 살 수는 없으니까.

 

정기적으로 독서토론회를 한다고 들었다.


서른 분 정도 모이는데, 매달 하고 있다. 나는 1회 때만 참석한다. 내가 주인공이 되면 안 되니까. 각각의 엄마들이 돋보여야 한다. 자기 의견을 말할 수 있어야 제대로 된 토론이다.

 

『엄마 내공』이야기로 좀 들어가보자. 4개 장으로 나눠져, 총 27개 질문에 대한 답을 달았다. 첫 번째 장이 ‘사교육’이다. 지금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다니는 자녀를 둔 부모가 가장 관심을 가질 주제다. 눈에 띄는 건, 무조건 사교육은 좋지 않다고 말한 점이다. 현실적인 상황에서의 적절한 조언들이 많다.


유아의 사교육이 이토록 광범위하게 이슈가 되는 건 전세계에서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왜 유일할까? 보탬이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취학 연령은 만 7세 전후다. 그 때가 되면 효과적인 사회활동과 학습이 가능하다고 보는 거다. 만약 만 3세 때부터 효과적인 학습이 가능해서 그때부터 요령껏 가르치면 대학 입학 때쯤 명석한 청소년으로 자란다고 치자. 그렇다면 전 세계의 취학 연령이 바뀌어야 하는 것 아닌가? 사교육의 문제는 일찍부터 스스로 생각하고 싶은 것을 생각할 기회를 갖지 못하도록 차단시키는 거다. 주어진 수업의 주제에 대해 생각하도록 강요 받고, 스스로 만져보고 싶은 걸 만질 기회도 갖지 못한다. 스스로 깨치면 하나씩 배워나갈 힘을 박탈당하는 거다. 지금 영어 단어를 곧잘 외지만 혼자 옷을 못 입고 밥도 못 먹는 7살 아이와 영어가 뭔지 모르지만 옷도 잘 입고 밥도 뚝딱 잘 먹는 7살 아이가 있다고 치자. 어떤 아이가 학교생활에 적응을 잘할까? 자율적인 아이의 성취가 뛰어난 건 당연한 이치다.

 

그래도 부모는 걱정한다. 내가 혹시 아이에게 경험치를 덜 줘서 덜 발달하진 않을지.


이런 마음을 드는 건, 모두 상업적인 활동, 즉 사교육 시장 때문이다. 뭘 해야만 계발이 되는 건 아니다. 남자 아이들이 5,6살이 되면 공룡을 좋아한다. 더 어릴 때 자동차를 좋아하듯이. 크고 힘센 거에 몰두한다. 뽀로로를 좋아하다가 지나가는 것과 같은 이치다. 놓쳐서 큰일이 나는 애들은 따로 있는데, 그런 애들은 절대 안 놓친다. 부모가 곤충을 일부러 보여주지 않아도 곤충을 잡고 논다. 사교육 시장에서 해야 한다는 것들에 다 귀를 기울이면 피차 피곤해진다. 적당히 보살피고 난 후에 부모 인생, 내 관심사를 돌봐야 한다.

 

엄마도 엄마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것처럼?


육아와 가사 일을 하다 보면 책 읽는 시간을 내는 게 정말 어렵다. 짬짬이 읽을 수밖에 없다. 꼭 책이 아니고 영화, 운동을 해도 좋은데 꾸준히 하는 게 중요하고,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게 좋다. 혼자 방에서 보는 게 아니라 함께하는 대상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 키우는 것도 그렇다. 굉장히 반응적인 생활이다. 아이가 배고파하면 엄마는 밥을 차려줘야 하지 않나? 반응적인 생활만 이어지면 삶이 피곤하다. 나라는 존재는 어디 있지? 생각하게 된다. 엄마들도 자기 스스로에게 나오는 반응적인 삶을 살 필요가 있다. 통풍구가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독서도 좋은 수단이다. 엄마들이 꼭 알아야 할 것 중 하나는 ‘내가 건강해야 육아도 건강하다’는 점이다. 공부든, 상담이든, 취미생활이든, 내가 건강해질 방도를 마련해야 한다.

 

한글 사교육, 엄마표 영어, 영어 유치원에 관한 조언도 부모들이 관심을 가질 주제다. 영어유치원은 추천하지 않았다.


영어유치원은 학습을 영어로 접하게 하는 곳이다. 유아기는 놀면서 체험하는 나이지, 책상 앞에 앉아 무언가를 배울 나이가 아니다. 만약 놀이를 우선하되 놀이 환경이 영어로만 이루어지는 영어 유치원이 있다면 대안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영어를 학습시키기 위해서 놀이를 동원한다. 차라리 초등학교 5, 6학년 때 어학연수 1년 정도를 확실하게 보내는 게 낫다. 물론 부모처럼 돌봐줄 수 있는 보호자가 있는 전제하에서.

 

형편상 어학연수를 못 가는 경우도 많다. 매주 외국인을 만나 ‘일대일 회화’를 하는 방법이 그래도 가장 현실적이지 않을까, 싶다.

 

부모가 아이와 영어를 같이 배우면 가장 좋다. 아이와 함께 영어를 연습하는 환경이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엄마표 영어에 관한 질문도 많이 받는데, 블로그에는 길게 썼지만 더 좋은 엄마표 영어 책들이 많기 때문에 각자의 환경에 맞는 방법을 선택하는 게 좋다.

 

짧게나마 엄마표 영어 방법을 소개한다면.


핵심은 영어를 환경으로 접하는 거다. 아이들은 패턴이 있을 때 더 쉽게 받아들인다. 차로 이동하는 시간이 많은 상황에서는 차에서 오디오북을 듣고, 밤에는 엄마가 집에서 읽어주는 것도 방법이다. 엄마가 영어를 사용할 때의 핵심은 엄마가 영어를 즐기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부가 아닌 일상적인 대화와 놀이를 통해 엄마도 함께 영어가 늘어나야 한다. 아이들에게 언어는 환경이다. 얼마나 자연스러운 방식으로 얼만큼 영어적 환경을 접하게 하느냐가 관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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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엄마는 아이의 나이와 비례해 쿨해지는 엄마


대안학교에 관한 조언도 현실적이더라. 실제 지금 고등학생인 아들이 대안학교에 다니다가 국제학교에 들어갔다. 물론 아이의 선택이었다.


4학년 겨울방학 때였다. 아들이 갑자기 “나 이러다 홈리스 될 것 같아”라고 말했다. 되게 충격 받았다. 그런데 이해가 되더라. 우리 사회가 아주 일찍부터 이야기하지 않나. 좋은 대학에 들어가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지. 학교를 떠나면 이런 이야기만 수없이 하니, 충분히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우리 부부는 공동체 생활이 좋았던 터라 혼란스러웠지만, 결국 아이의 선택을 존중했다. 평소 나는 ‘아이의 선택을 부모가 좌지우지하는 것보다 차라리 등골을 빼서 주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는 쪽이다. 대안학교와 공교육은 많이들 알다시피 서로 다른 장단점을 가진다. 중요한 건 학교를 선택함에 있어 내 가족의 교육 철학과 내 아이의 성향이 어떤 교육과 어떤 식으로 사이 좋게 지낼 수 있는가다.

 

예민한 아이의 관계 맺기, 아이를 향한 타인의 관심에 대처하는 법 등 마지막 장에 소개한 내용도 부모들에게 큰 도움이 될 조언이다.


꼭 넣고 싶었던 내용이다. 질문은 짧았는데 쓰다 보니 긴 답변을 쓰게 됐는데, 어릴 땐 뜨겁게 마음을 나누다가 크면 차갑게 독립시켜 보내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성인이 된 자식까지 전면에 내세우고 안달하면서 산다. 특목고 재학생을 가르치는 지인이 한 말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매년 다른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매년 같은 아이들이 온다”는 거다. 똑같이 무기력하고 똑같이 엄마와의 관계가 끝장난 아이들을 만난다는 말에 충격을 받았다. 부모라는 노동은 ‘당신의 희생이 고마웠다’라는 자식의 말을 들을 때, 나아가 ‘당신의 삶이 좋아 보였다’라는 말을 들을 때 의미를 찾는 노동이다. 좋은 엄마는 아이의 나이와 비례해 쿨해지는 엄마다.

 

영유아 딸을 키우는 엄마들은 특히 낯선 사람들이 쉽게 하는 스킨십에 예민하다. 요즘 정말 무서운 세상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차단이 아니라 교류”라고 했다. 젊은 엄마들의 의견이 끝까지 하나로 모여지지 않았는데.


책에 실린 고민은 시각장애인이 아이에게 초콜릿을 주고, 뽀뽀를 해달라고 한 사건이었다. 엄마들의 댓글에서 언급된 성교육 방식은 대체로 옳았다. 때에 따라 자신의 몸에 대한 어떤 요구에도 ‘노’라고 말할 줄 알아야 하고, 지속적인 성교육도 이뤄져야 한다. 하지만 아이가 세상과 교류할 시간을 헷갈려서는 곤란하다. 서양 사회와 비교하는 부모들이 많지만 이곳은 아시아, 공동체 문화가 깊숙하게 자리잡은 한국이다. 타인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사회에서 불신을 줄이기 위해 해야 할 일은 삭제와 차단이 아니다. 교류와 신뢰다. 명백히 께름칙하게 느껴지는 사람, 그런 접촉은 주저하지 말고 막아야 하지만, 모든 기회를 안전이라는 이름으로 차단하면 안 된다. 이 아이도 언젠가 성인이 되고 엄마가 되고 할머니가 된다. 하나의 독립된 인간으로 엄마 품에서 나간다. ‘안전’은 정말 중요하지만 부적절한 영역까지 안전이라는 이름으로 제한하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기억에 남는 말이 있다. “똥은 어디에나 있다. 인간이 있는 모든 곳에 있다. 중요한 것은 똥을 완벽하게 피해 가느냐의 여부보다 똥을 밟았을 때 ‘에잇, 재수 없어’하고 떨쳐버릴 힘을 지녔는가의 여부다.”(249쪽) 이 문장을 읽고 나니, 다가올 일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더라. 성공적인 육아에 대한 공포도 사라졌다. 엄마들이 꼭 이 부분을 눈 여겨 읽으면 좋겠다.


어디서나 태도가 중요하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아들 부모에게는 설득이 좀 쉬웠는데, 딸 부모들은 끝까지 어려워하더라. 수비, 방어만 가르쳐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가 그래도 예전보다 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다. 내가 세계 여행을 하면서도 얼마나 많은 일, 독특한 사람들을 겪었겠나. 여행이 좋은 건, 큰 시야를 가르쳐준다는 사실이다. 옆으로도 커지고 위, 아래로도 커진다. 문화인류학을 공부하지 않아도 다양한 사람을 접하며 얻는 것들이 있다. 자신이 겪을 일에 대해 불필요한 조바심을 배제할 수 있다. 미디어에 나오는 나쁜 뉴스들만 보면서 이 시대가 아주 몹쓸 세상인 양, 걱정과 근심 속에 사는 건 우리 모두에게 손해다.

 

아이의 존재감을 높이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건, 아이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게 아닐까 싶다.


물론이다. 『엄마, 내가 행복을 줄게』의 기저는 아이와 이야기하는 순간 순간을 소중하게 생각한 것이었다. 아이를 키우면서 어떤 말을 해야지, 어떤 말을 안 해야지, 하는 것은 없었다. 최대한 눈높이를 맞추고 아이가 하는 말을 열심히 들었다. 내가 아는 한 성심성의껏 대화했다. ‘이 쪼그만 게 뭐라고 나불나불 떠들어?’가 아니라 ‘이 작은 뇌로 최선을 다해 느끼고 말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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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라이프 스토리를 갖는 일


여행을 시작하는 적정 나이는 6세라고 했다. 대개 어릴 때는 기억 못하니까 무리해서 여행 갈 필요는 없다고들 하는데.


아들 중빈이는 만 3세 때 했던 터키 여행을 이야기하곤 한다. 가장 뚜렷하게 기억하는 건 트램이다. 사람들은 아이가 어릴 때 한 여행은 기억이 안 난다고 하지만, 중요한 건 기억이 아니라 태도다. 자신을 열어야 할 순간에 열어 버리는 것, 그래 보는 것이다. 여행 중에 열어본 경험은 태도가 되어 퇴적층처럼 정직하게 쌓인다. 부모는 아이가 살아 있음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는 사람이다. 내 경험상 아이와 여행하기 가장 좋은 나이는 6세부터, 초등학교 저학년까지다. 어릴수록 현장을 체험하기 좋다. 10세를 넘기면 아이는 함부로 뛰어들지 않는다. 경계 없이 다가가기보다 주변을 판단한다. 일상이 힘든 시기일수록 여행의 건강함을 믿었으면 좋겠다. 물론 해외 여행일 필요는 없다. 시골 장터, 산림욕장도 좋다.

 

‘사춘기 아들과의 여행’을 고민하는 엄마에게는 “아들을 믿고 여행의 전권을 맡겨보라”고 했다.


직접 계획하고 준비하고 실행하게 하는 게 좋다. “뭐든 네 맘대로 해라. 네가 인솔자다. 법에 저촉되는 것만 아니면 모든 것이 네 손 안에 허용되어 있다”고 말해봐라. 물론 처음엔 힘들다. 시간도 비용도 아까울 거다. 그러나 참아보자. 한 번쯤은 아이에게 주인공이 되는 기쁨과 책임감을 선사해보면, 아이는 자신이 무엇을, 얼마만큼 해낼 수 있는 사람인지 알게 된다. 또 중요한 건, 엄마가 전적으로 자신에게 의지하고 자신을 믿는 존재일 수도 있다는 걸 느끼게 하는 거다.

 

성격상 바깥 활동이나 여행을 싫어하는 부모도 있다. 억지로라도 많이 나가는 게 좋을까?


‘어떤 부모 밑에서 태어나느냐’는 팔자라고 생각한다. 나 같은 엄마를 둔 아들도 팔잔 거다.(웃음) 실외보다 실내 활동을 좋아하는 부모들도 물론 많다. 지나치게 집에만 있고 나태하면 곤란하겠지만, 실내 활동도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 아이가 좋아하는 보드게임을 할 수도 있고. 비타민A만 먹고 살 수 없으니까, 때로는 바깥도 나가야겠지만 억지로 하는 건 좋지 않다. 아이는 주어진 환경에서 가져갈 것을 잘 가져간다. 이건 꼭 해야지, 이런 마음보다는 조금 편하게 생각하면 좋겠다.

 

아들은 어릴 때의 여행을 어떻게 기억하나?


여행을 많이 한 것에 대해 고마워한다. 자랑스러워하기도 한다. 사춘기는 지독한 암흑기 아닌가? 사춘기가 끝나고 중학교 3학년쯤 되면, 애들이 약간 멋져진다. 의젓해지면서 상남자 포스를 풍긴다. 그리고 자신이 어릴 때 경험한 것들의 가치를 안다.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겠지』를 보면 맨 마지막에 아들이 내게 한 말이 실려 있다. “엄마, 여행할 때 동안 나한테 잘해줘서 고마워.” 당시에 아들이 어떤 의미를 알고 말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자기도 나이를 조금씩 먹으면서 알게 되는 것이다. 내게 독특한 라이프 스토리가 있다는 것을. 그런 것에 대한 고마움을 간혹 표현한다.

 

지금도 세계 여행을 다니고 있나?


1년에 한 번 정도 가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함께 여행을 한다는 것에 큰 기대감, 기쁨을 느낀다. 지금의 여행은 대부분 봉사활동이다. 발리에 ‘페르마타 하티’라는 고아원이 하나 있다. 아들 중빈이가 어릴 때부터 갔던 곳이다. 중빈이가 아이들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쳐주면 아이들이 밴드를 만들고, 연극을 가르쳐주면 대본을 완성시킨다. 작년 겨울부터 봉사활동과 여행을 접목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발리로 여행 온 가족들이 하루 이틀, 봉사활동에 참여해보는 거다.

 

반응은 어떤가?


봉사활동이 끝났는데도 아이들이 고아원을 안 떠나려고 한다. 아이들이 봉사를 하면서 느끼는 점도 있지만, 눈에 띄는 건 부모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는 점이다. 평소 한국에서는 오로지 자기만 보던 부모였는데, 고아원 아이들 수 백 명을 돌보는 모습을 보니 엄마, 아빠가 새롭게 보이는 거다. ‘우리 엄마도 나 말고 다른 돌볼 곳이 있구나’를 깨닫는다.

 

만약 다시 아들을 신생아 때부터 키운다면, ‘이건 좀 더 잘해볼 걸’ 아쉬운 점이 있나?


단순하다. 아들이 입이 무척 짧다. 워낙 안 먹는 아이였기 때문에 이유식을 좀 더 잘해보면 나았을까? 정도다. 모든 아이에게는 부모를 애 먹이게 만드는 한 가지 요인이 있지 않은가? 어떤 아이는 말을 되게 늦게 하고, 어떤 아이는 잠자는 걸 힘들어 하고. 내가 잘못하면 애가 크게 잘못될 것 같은 어마어마한 책임감 속에 아이를 키우는데, 지나고 보면 모두 하나의 과정이었구나, 싶다.

 

육아에 관한 내공, 지혜는 여행으로부터 배웠다고 할 수 있을까?


물론이다. 내가 아이와 같이 여행을 한 건, 아이를 등에 둘러업고 대학에 다닌 것과 같다. 사실 되게 불리한 입지일 수 있다. 아이랑 함께 학교를 왔다 갔다 하는 건. 그런데 이런 학생이 공부를 더 열심히 하지 않나? 절실하니까. 여행을 통해 아이와 내가 같이 성장한 건 분명하다.

 

이번 책으로 인해, 여행작가로서의 정체성이 흐려지지 않을까 걱정되진 않았는지.


나는 ‘여행작가를 해야지’하고 시작하지 않았다. 여행을 떠났는데 내용이 괜찮아서 글로 썼는데, 책이 나오게 된 거다. 어떤 시기에 갈망하고 몰두하는 주제가 생기는데, 그걸 어떻게 해내면 책으로 나온다. 이게 내가 사는 방식이다. 나는 문학가나 소설가가 아니다. 열심히 살면 책이 되어서 나오는 사람이다. 그동안 내가 아이를 키우는데 몰두했으니까, 아이와 대화를 나누는데 집중했으니까 『엄마 내공』이 나온 거다. “무엇을 하겠다”가 아니라, “계속 열심히 살겠다”가 나의 모토다.

 

2년 후는 어떤 삶에 몰두하고 있을까?


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독립을 할 테니, 나에겐 가장 큰 프로젝트가 끝난다. 이것을 기념하기 위한 막 살기가 좀 있지 않을까? (웃음) 일단 하고 싶은 걸 다 할 거다. 혼자 여행을 할 수도 있고 페르마타 하티를 몇 개월 다녀올 수도 있고. 굉장히 기대하고 있다.

 


 

 

엄마 내공오소희 저 | 북하우스
『엄마 내공』은 대한민국의 많은 엄마들에게 ‘아이와 함께하는 세계여행’의 로망과 가능성을 안겨주었던 오소희 작가가 자신이 운영하는 블로그 ‘태평양의 끝’에서 수많은 엄마들과 주고받았던 자녀교육에 대한 질문과 대답을 엮어낸 책이다.

고미솔 “교훈 없는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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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솔은 20년간 방송작가로 살았다. 치열하게 앞만 보고 달리는 생활이었다. 그러다 일을 위해 간 남태평양의 작은 섬에서 삶의 전환기를 맞이한다. 가난하고 척박한 섬, 고래잡이로 생활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놀랍도록 환한 웃음을 마주한 다음부터다. 작가는 그들에게서 삶의 곤궁과 환희가 한 자리에 함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닫는다. 작가는 그곳에서 “굉장히 바라는 게 많으면서도 악의가 없이 순수한, 경계 없음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움을 보면서 뭔가가 깨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동화를 쓰기 시작했다.


작가의 첫 동화책 『잠자는 숲속의 어린 마녀』는 그런 깨달음과 하나의 이미지로부터 시작됐다. 환한 웃음, 내리쬐는 햇살, 순수하고 경계가 없는 공동체를 그린 「따꾸라까라까와 해님 접시」, 마녀라는 정체성에 의문을 가지고 답을 찾아가는 질문으로 가득한 이야기 「잠자는 숲속의 어린 마녀」 두 작품은 모두 고미솔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형태의 이야기이자 이야기를 쓰는 사람으로서의 작가를 튼튼하게 지탱해줄 버팀목이 될 이야기이다.


삶의 힘든 순간, 작가 곁에 동화가 늘 함께 했던 것처럼 더 많은 사람들이 동화를 읽고 동화가 주는 위안을 알게 되길 바란다는 고미솔 작가. 그가 전하는 이야기의 즐거움, “산다는 건 이렇게 즐거운 건가, 기대할 수 있는 그 무엇인가, 다음에 뭐가 또 있는 건가, 이런 즐거운 기대나 설렘”을 계속해서 기다려볼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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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같이 웃는 소년의 얼굴


표제작 「잠자는 숲속의 어린 마녀」는 꽤 철학적이에요. “깨어 있지도 죽어 있지도 않은 이상한 삶”이라는 구절도 인상적이었거든요. 처음부터 이런 층위의 이야기를 구상하셨던 건가요?

 

굳이 명칭을 붙여야 한다면 제 이야기는 우화에 가까운 것 같아요. 리얼리즘 동화는 확실히 아니고요. 기승전결, 갈등과 해결, 이런 것들이 있는 드라마의 구조는 확실히 아닌 것 같아요. 그보다 좀 더 원초적이고 본질적인, 삶에 대해 질문하는 이야기들이죠. 「잠자는 숲속의 어린 마녀」도 동화 캐릭터를 가져와 다시 쓴 셈인데요. 이것은 실은 제가 갖고 있는 동화 체험에서 비롯된 것 같기도 해요. 제가 워낙 어렸을 때부터 신화, 동화를 굉장히 좋아했거든요. 동화 중에서도 기승전결이 확실한, 현대적인 의미의 동화보다는 다른 이야기를 더 좋아했어요.

 

다른 이야기라면 구체적으로 어떤 걸까요?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가 안데르센의 『인어공주』예요. 그게 원체험인 것 같아요. 동화에 대한, 이야기에 대한, 문학이라는 것에 대한 원체험이요. 『인어공주』도 기승전결이 확고하긴 하죠. 그렇지만 캐릭터나 결말이 달라요. 인어공주가 죽음을 택하잖아요. 그렇게 착하고, 예쁘고, 훌륭한 사랑을 하는 인어공주가 왕자에게 끝내 버림받고 스스로 죽음을 택해요. 삼천 년 동안 공기가 되었다가 무엇이 되었다가 영혼을 얻기까지 방황을 해야 하는데도 말이에요.

 

해피엔딩이 아니에요.


이 이야기를 열 살 때 쯤 봤는데요. 굉장한 충격이었어요. 아무리 애써도 얻을 수 없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경험한 거죠. 볼 때마다 슬펐고요. 그 감정을 잊을 수가 없었어요. 굉장히 원초적이고 본질적인 질문 하나를 저한테 준 거죠. 이후에도 좋아한 동화는 그런 식이었어요. 비교적 이미지가 강하고 좀 더 본질적인 원형에 가까운 이야기들 말이에요. 그러다보니까 동화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제일 처음 떠오른 것도 이미지였죠.

 

이미지요? 어떤 이미지가 떠올랐어요?

 

‘따꾸라까라까’라는 이름과 함께 햇살 같이 웃는 소년의 얼굴이 딱 떠올랐어요. 「따꾸라까라까와 해님 접시」도 기승전결과는 무관하죠. 한 순간의 이미지이고요. 그 아이의 웃음과 따꾸라까라까라는 단어를 떠올리면서 한 순간 삶에 대한 정수 같은 것을 얻었다고 할까요. 그것을 표현하려다보니 이 이야기가 된 거예요. 

 

「잠자는 숲속의 어린 마녀」도 비슷하게 시작이 됐나요?


비슷해요. 어떤 아이가 자기가 마녀인 게 슬퍼서 죽어버리는 장면이 딱 떠올랐어요. 걔가 왜 죽었을까 생각하고, 그 애는 계속 죽어야 하나, 돌아올 수 없을까, 할머니는 어떨까, 이런 걸 생각하다보니 그 아이의 심정과 질문을 생각하게 되었어요. 그렇게 이야기가 나오게 된 거예요. 제가 이야기를 쓰는 방식 자체가 그런 것 같아요. 구성을 정하고 시작과 끝을 계획해서 쓰는 게 아니고요. 그냥 어떤 장면이 먼저 오고, 그 장면이 너무 인상적이고 너무 좋아서 그걸 계속 생각하다가 어떻게 더 재미있게, 진실되게 표현할까를 고민하면서 쓰게 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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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접시, ‘라말레라(Lamalera)’


말씀을 들으니 이야기에서 받은 인상이 맞았단 생각이 드는데요. 서사보다 이미지가 더 중요한 이야기란 생각을 했거든요. 한 장면이 먼저 떠올랐다고 하셨는데 어떤 순간에 그런 경험을 한 건가요? 영감의 순간이 있었을까요?


「잠자는 숲속의 어린 마녀」는 잘 모르겠는데요. 「따꾸라까라까와 해님 접시」는 아주 확실해요. 오랫동안 방송작가로 일했는데요. 언젠가 남태평양에 있는 작은 섬 ‘라말레라(Lamalera)’에 한 달 쯤 간 일이 있었어요. 이 라말레라라는 섬 이름이 ‘태양의 접시’라는 뜻이었어요. 이유를 들어보니 다들 잘은 모르시지만 섬이 접시처럼 약간 파인 모양으로 되어 있는데 해가 떠오르면 꼭 해를 받치는 접시 같아 그런 것 같다는 거예요. 정말 사랑스럽다고 생각했어요. 한편 보통 방송작가 일은 아주 전투적인데 그곳에서는 할 일이 없었어요. PD가 매일 원주민들과 고래 잡으러 나가서 촬영하고 저는 섬에 남아 기다려야 했거든요.(웃음) 종일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고래가 나타나지 않아 철수하는 생활을 한 달이나 해야 했어요. 동화가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거죠. 그 전에는 한 번도 도시와 사람, 일을 떠난 적이 없었는데 말이에요.

 

남태평양의 작은 섬에서 하염없이 고래를 기다리는 생활, 그 자체로 한 편의 동화 같네요.


특이한 건 그 섬만의 언어가 따로 있었어요. 그 언어를 쓰는 인구가 1,000-2,000명 정도 되는 거예요. 이제는 말이 점점 사라지고 몇 개만 남았는데 그 중 하나가 ‘따꾸라까라까’예요. 그 말을 정말 많이 쓰더라고요. 이 말이 ‘괜찮아’, ‘하쿠나마타타’라는 뜻이거든요. 그 사람들은 이 말을 입에 달고 살더라고요. 한 달 동안 고래가 안 와서 굶어 죽을 지경인데도 그랬어요. 그 섬은 땅도 너무 척박하고 생계를 이을 아무 방법이 없어 국제포경위원회(IWC)에서 포경을 허용한 몇 안 되는 곳이거든요. 가난이 뚝뚝 떨어지는데 아이나 어른이나 다들 따꾸라까라까 하며 지내요. 해를 닮은 그 환한 웃음으로 말이에요. 한 달 간 그걸 보며 지내다보니 제가 전염이 된 거죠.(웃음) 어느 날 아이 얼굴이 떠올랐고, 라말레라 이야기를 써야겠다, 그런데 그건 동화여야겠다, 이렇게 됐어요.

 

따꾸라까라까가 처음부터 그 섬에 살았던 건 아닙니다. 어느 해질녘 바닷가에 우두커니 있던 그 아이를 사람들이 발견했지요. 따꾸라까라까가 어디서 왔는지, 누구인지 다들 궁금하게 여겼지만 알 길이 없었습니다. 왜냐면 따꾸라까라까는 그 섬의 말을 몰랐거든요. 그런데 어떻게 이름이 따꾸라까라까라는 걸 알게 되었냐고요? 그건 이렇습니다.

처음 그 아이를 발견했을 때 누군가가 물었답니다.

“너 어디에서 왔니?”

그랬더니 아이는 방긋 웃으며 말했습니다.

“따꾸라까라까.”(83쪽)

 

「따꾸라까라까와 해님 접시」의 세계는 아주 이상적이죠. 어디서 온지 모를 아이를 마을 사람 모두가 돌아가며 먹이고, 재워요. 정말 아름다운 공동체예요. 애정의 시선을 많이 느꼈는데 정확히는 라말레라에 대한 애정이었군요.


그런 느낌을 주고 싶었는데 그걸 받으셔서 정말 기뻐요. 실은 이 작품을 쓰고 주변 몇몇 어른들한테 보여줬는데 대부분 ‘장난하냐’(웃음)는 반응이었거든요. 제가 굉장히 존경하고 존중하는 어른들이었는데 그런 반응을 보인 거예요. 그래서 처음에 많이 좌절했죠. 교훈이 뭐냐, 현실적이지 않다, 이런 말을 들어서요.

 

「잠자는 숲속의 어린 마녀」도 고양이가 할머니인지 분명히 밝히지 않는 등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있죠. 확실한 메시지를 찾고 싶어하는 경우라면 그렇게 반응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하지만 바로 그 점이 이 이야기들의 매력이었다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세상에 옳고 그른 게 있고, 이것과 저것은 다르고, 인과관계가 명확하고 분명한 어떤 게 있는 줄 알고 살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어느 순간 그게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예요. 선과 악이, 여자와 남자가 명쾌하게 이분법으로 구분된다고 믿었던 것이 실은 허구였다는 느낌을 어렴풋하게 받을 때 그 섬에 간 거죠. 그곳에서 갑자기 어떤 걸 보게 됐고요. 그곳 사람들은 가난한데 전혀 불행하지 않은 거예요. 오히려 제가 더 불행했어요. 굉장히 바라는 게 많으면서도 악의가 없이 순수한, 경계 없음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움을 보면서 뭔가가 깨진 것 같아요. 목표한 그곳으로 가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게 깨지고, 어디서 헤매고 있는 건지 나를 의심하게 되었고요. 그렇게 세상을 의심하던 무렵에 갑자기 작은 빛을 하나 만났고 그게 동화를 쓰는 지금의 방향으로 모아진 것 같아요.

 

그런가 하면 두 동화는 모두 마녀나 노래 못하는 음치동물들, 말 못하는 따꾸라까라까까지 작고 소외당했던 존재들을 소환해요. 작가의 감수성을 느낄 수 있었는데요. 그런 작은 것을 향한 관심이 어디서 비롯되었는가 하는 질문도 생기더라고요.


어렸을 때부터 정말 책을 좋아했는데요. 동화를 읽던 시절만큼의 즐거움을 주었던 책은 없었어요. 이후에도 물론 좋은 책을 많이 만났고, 지금도 많이 읽지만요. 처음 글자를 배워서 가난하지만 엄마가 애써 사준 동화 전집을 읽었을 때는 그것이 거의 천국 같은 거였죠. 계몽사 전집이었는데요. 매일 그 책을 읽으려고 학교에서 집까지 막 뛰어서 왔어요. 그 중 특별히 좋아하는 동화는 지금도 집에 가지고 있을 정도예요. 살면서 힘들거나 살기 싫어질 때는 꼭 동화를 찾게 되더라고요. 그런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해요.

 

동화의 힘, 이야기의 힘이네요.


나중에야 깨닫게 됐는데요. 빛이 들어오는 방에 커다란 책상이 있고 그 위에 노트와 연필이 놓여 있는데 거기에 제가 앉아 있는 이미지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제게 있었더라고요. 저는 거기 앉아 동화를 쓰고요. 그래서 어렸을 때 꿈을 물으면 동화작가라고 했는데 잊고 살았던 거죠. 너무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어린 시절의 꿈 같은 것을 재발견한 시기가 왔던 거예요.

 

여러 의미에서 그 섬에서 지낸 일이 선물 같이 왔던 거군요.


네, 선물이라는 단어가 정확해요. 특히 이 두 작품은 저한테 선물처럼 그냥 왔어요. 굉장히 짧은 시간 안에 썼고요. 독자 분들이 어떻게 읽어주실지 모르지만 저는 정말 좋아요. 

 

지금까지도 가지고 있다는 동화는 뭐예요?


엘리너 파전이라는 작가의 『보리와 임금님』인데요. 다시 번역되어 나온 걸 봤는데 그 느낌이 안 살더라고요. 계몽사 판을 꼭 읽어보세요. 정말 아름다워요.

 

꼭 찾아봐야겠습니다.(웃음)


문학이란 결국 경험하지 않은 것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거잖아요. 『보리와 임금님』을 읽으면 굉장히 생생하게 감정을 체험해요. 섬세하고요. 『보리와 임금님』에는 교훈도 없어요. 그런데 문장 하나하나가 갖는 온도나 감수성 같은 것들이 아주 아름답거든요. 게다가 이야기가 관습적이지 않아서 보고 나면 자꾸 질문하게 돼요. 무슨 얘기지(웃음) 하고요. 처음에 읽었을 때는 아름다운 것 같은데 무슨 이야기인지 기억이 안 나요. 다음 날 또 읽고, 또 읽고, 외울 지경으로 읽게 되는 힘이 있는데요. 그것이 단지 무슨 얘기인지 몰라서는 아니더라고요. 그게 나의 감수성을 두드린 거고 그래서 읽는 즐거움을 선사했던 거죠. 읽을 때마다 새로운 이야기라서 정말 좋아해요. 많은 작가를 좋아하지만 저한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작가를 말한다면 주저 없이 『인어공주』와 엘리너 파전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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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건 이렇게 즐거운 건가


어렸을 때부터 책을 많이 읽었다고 하셨잖아요. 힌트를 좀 주실 수 있을까요? 어린이들이 책을 안 읽어 고민하는 분들도 많으니까요.


제 경우는 그냥 어떤 이야기를 발견하는 즉시 그 세계에 완전히 매혹돼서요. 그냥 이야기를 보는 게 너무 좋았어요. 단지 좋았는데요. 그런데 어린이들에게 책을 권하는 문제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면 지금 어린이들에게는 너무 재미있는 것들이 많아요. 제가 어렸을 때도 만화도 있고, TV도 있었지만 영화를 그렇게 쉽게 보러 갈 수도 없었고 요즘처럼 채널이 많지도 않았잖아요. 이렇게까지 많으면 아무리 저라도 책 봤을까 싶긴 하거든요.


어린이들에게 어떤 책을 읽힐 건가 하는 고민은 전혀 할 필요가 없고 그냥 책을 읽는 즐거움을 소개할 필요는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그 소개란 건 부모가 책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될 거라고 생각해요. 굳이 어린이들이라고 해서 그림책을 읽어야 한다든지 동화를 읽어야 한다든지 이럴 필요는 없고요.

 

반대로 성인이라고 동화책을 읽을 필요가 없는 것도 아니겠죠.


그렇죠, 성인이라고 소설책만 읽어야 하거나 동화책을 읽지 말아야 하는 건 아니죠. 만화책도 너무 좋잖아요. 저는 배워야 할 모든 교양은 만화책으로 다 배웠어요.(웃음) 청소년기에 일본에서 들어온 순정만화가 정말 많았는데 테마가 발레, 피겨스케이팅, 테니스, 이런 거였어요. 저는 진짜로 그게 뭐든지 만화로 다 배웠던 것 같아요. 그냥 책을 읽는 경험을 하고 익숙해지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더 재미있는 것들에 책이 밀린 상황에서 책을 쓰는 마음은 어떤가요? 마음 속 수신자는 어떤 사람들이에요?


일단 저는 제가 보고 싶은 이야기를 써요. 독자는 전혀 가정하지 않고 쓰는 게 사실인데요. 약간 질문을 바꿔서 이런 이야기를 어떤 목적으로 썼느냐고 한다면요. 저는 교훈이 없는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아무 교훈도 없고 단지 그 안에 진짜 삶에 대한 진실된 체험과 하나의 이미지가 있는 이야기가 쓰고 싶어요. 말하고 싶은 교훈은 없고요, 그냥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읽고 얻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감정은 있어요. 그저 재미있었으면 좋겠어요. 즐거움을 공유하고 싶어요. 산다는 건 이렇게 즐거운 건가, 기대할 수 있는 그 무엇인가, 다음에 뭐가 또 있는 건가, 이런 즐거운 기대나 설렘을 줄 수 있으면 좋겠죠.

 

그런 의미라면 특히 동화라는 장르가 잘 어울리기도 하네요.


고민이 있었어요. 주변에 고급 독자가 많이 있는데요. 그분들이 냉정하게 말씀하시기를 당신은 속을 다 내비칠 용기가 없어서 소설을 쓰지 않고 동화의 세계로 도망가는 거라고 했어요. 이야기를 써놓고도 3년 동안 그게 고민이었어요. 가혹한 현실과 정면으로 맞닥뜨릴 자신이 없어서 우화의 세계, 신비의 세계로 내가 도망가는 건가 하고요. 그렇다면 너무 비겁한 것이고, 그렇게 도망간 문학이 좋은 문학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름의 결론은 아무 이유 없이, 내가 쓰고 싶고 보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쓰고 싶을 뿐(웃음)이라는 거였어요. 누가 말릴 수 있겠어요. 그럴 질문과 3년 간 힘겨루기를 하다가 출간제안을 받았을 때 정말 감사하게 수락하고 용기를 낸 거예요. 이제는 그런 말들이 저한테 별로 상처가 되거나 아픈 장애가 될 것 같진 않아요.

 

반드시 모든 이야기가 내밀하고 어두운 곳을 향할 필요는 없겠죠. 다양한 이야기가 다양한 방식으로 흘러나오는 그 자체가 좋은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죠? 별로 잘하지도 않는데(웃음) 말이에요. 소설을 쓰는 것이 진지한 문학이고 동화를 쓰는 것은 약간 덜 진지한 문학이라는 편견도 없지는 않은 것 같아요. 영화 시나리오를 쓰는 것은 진지한 창작이고, 드라마를 쓰는 것은 덜 진지한 창작이라는 생각과 비슷한 거죠. 사실 그 평가가 아팠던 건 그런 구별이 엄밀히는 제 안에도 있었다는 이야기거든요. 동화를 써야겠다고 생각하면서도 한 구석에 어느 정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던 거죠. 말하자면 이전에 치열하고 진지하게 살았던 내 삶에서 후퇴하는 것처럼, 너무 이른 은퇴를 하는 것처럼 스스로가 느꼈던 부분이 있었죠. 그걸 주변 사람들이 예리하게 포착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 그것에 대해서 저 스스로도 많이 점검하게 됐어요. 나름대로는 답을 얻은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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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를 찾아가는 다양한 방식에 대한 이야기


동화가 워낙 일찍부터 보는 책이라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을 것 같거든요. 자칫 기존의 관습이나 고정 관념을 답습하게 될 수도 있을 테고요. 균형을 잡는 게 큰 숙제일 것 같아요. 어떠신가요?


이상한 건요, 지금 쓰고 있는 이야기도 그렇고 구상하고 있는 이야기도 그렇고 제 모든 이야기가 두 가지 공통점이 있더라고요. 우선 자기가 누군지 모르는 아이들이 계속 나와요. 마녀도 자기 정체성을 부정하던 아이가 정체성을 받아들이는 순간 진짜 인생이 시작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하는데요. 그건 제 인생 자체가 그랬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제가 누군지 너무 궁금했고 왜 사는지, 어디로 가는 중인지, 다음에 뭐가 있는지가 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질문이었어요. 그 질문을 변주하는 것 같아요. 자기를 찾아가는 다양한 방식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을 발견했고요. 또 하나는 의외의 결론이에요. 그렇게 찾아가는 자기는 기존 동화에서 발견하는 목표달성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오로지 주인공에게만 유효한 목표달성이더라고요. 다른 사람의 목표달성과는 상관이 없더라고요. 어린 마녀가 도달하는 목표달성은 자신이 마녀라는 걸 알게 되는 데까지인 것처럼 말이에요.

 

많은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결말이기도 하죠.


어떤 친구는 이야기가 시작되는 곳에서 끝나는 것 같다고도 하더라고요. 그런데 제 이야기는 늘 그런 식인 것 같아요. 내적인 질문에 대답하는 거고요. 외적인 질문에는 콧방귀 끼는 거예요.(웃음) 나는 내 질문에 대답하는 게 중요해, 하는 식이에요.

 

앞으로도 그럴까요?

 

글쎄요, 지금 쓰고 있는 이야기와 그 다음 이야기까진 그래요. 그 다음에도 그럴지는 모르죠. 좀 다른 이야기도 써보고 싶지 않을까요?


 


 

 

잠자는 숲속의 어린 마녀고미솔 글 | 북극곰
오랫동안 방송 작가로 활동한 고미솔 작가가 동화 작가로서의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고미솔 이야기책 『잠자는 숲속의 어린 마녀』에는 독특하고 기발한 상상력이 가득한 두 편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조용래 “박근혜 전 대통령,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해줬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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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더 시대적 문제가 응축된 가족이 있을까. 최태민 씨의 의붓아들이자 일명 ‘조순제 녹취록’의 주인공 조순제 씨의 아들 조용래 씨가 기록한 최 씨와 조 씨 일가, 그리고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관계를 다룬 책 『또 하나의 가족』을 읽은 감상이다.


먼저 중심에 최태민 씨의 부인이자 최순실 씨의 모친이기도 한 임선이 씨가 있다. 임선이 씨의 손자이기도 한 조용래 씨는 할머니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최 씨 일가가 임선이라는 사람이 없었다면 하나의 가족 형태로 유지되기가 불가능했을 거예요. 할머니의 카리스마, 영향력 같은 것들이 최 씨 일가를 구성하는 핵심이거든요.”


돈에 대한 강렬한 임선이 씨의 집착은 “서로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교주” 같은 관계였던 최태민 씨와 박근혜 전 대통령 사이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적극적으로 그들의 관계에 가담하고 사적 이득을 취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일상 생활에 관한 소소하고 민감한 모든 것을 관리했으며 그중 일부는 며느리 김경옥에게 시키”기도 하면서 돈 관리를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정치 입문 당시 운동원들에게 두둑히 돈을 챙겨준 것도 임선이 씨였다. 그리고 끝내 최순실 국정 농단이라는 기막힌 사태의 씨앗이 되었다. 


일찍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권력에 대한 강한 욕망을 한 눈에 알아본 최태민 씨는 “누구도 박근혜에게 다가가지 못하도록 기를 쓰며 차단”했고, 박정희 전 대통령 사후 그가 남긴 돈을 조순제 씨를 이용해 옮겨오기도 했으니 이 ‘또 하나의 가족’이 저지른 부정의 뿌리가 얼마나 깊은지 가늠하기 조차 힘이 든다.


조용래 씨는 자신의 기록이 새로운 변화에 단초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완성했다. 가족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나 반드시 기록해야 할 이야기라고 생각했으므로 남기고, 말했다. 아버지가 권력에 가까워질수록 형편이 넉넉해졌다가 가족들로부터 배제당하며 몰락했던 집안의 경험을 말하며 이를 거울 삼아 우리 사회가 지난 세대의 부정의 고리를 끊어내기를 바랐다. 많은 사람들이 기회만 닿는다면 얼마든지 최순실이 될 수 있음을 경계해야만 이 사회가 다음 단계로 올라설 수 있을 것이라고 조용래 씨는 여러 번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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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선이의 욕심에서 비롯된


제목의 의미를 먼저 이야기해보고 싶은데요. 다양하게 읽힐 수 있는 내용이에요. 제목을 『또 하나의 가족』으로 정한 이유가 뭔가요?

 

대통령과 가족이 된다는 것, 생물학적 가족이 아닌데 권력에 가까워지는 과정을 봤어요. 대통령과 특별한 관계가 형성되는 것 자체가 부정부패와 맞닿아 있는 부분이죠. 그런 차원에서 이해할 수 있는 제목인데요. 다른 하나는 저희 조 씨 집안과 최 씨 집안이 또 하나의 가족이었다는 점이 있어요. 최 씨 일가와 박근혜 씨와의 관계 역시 분리하기 어려운, 가족적인 분위기로 형성되어 있다는 점들을 모두 포함해 비유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앞부분에 실은 가계도에서도 조 씨 일가와 최 씨 일가, 그리고 박근혜 전 대통령이 각각 점선으로 연결되어 있죠.


그렇게 보여주고 싶은 이유가 있었어요. 특별한 권력과 가까워지는 과정의 시작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가 제가 파헤쳐보고 싶었던 거예요.

 

“훗날 벌어지게 될 비극적인 사태는 바로 임선이의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했어요. 임선이 씨를 주목해서 일련의 일들을 읽으면 많은 부분 이해가 됩니다.


그게 제가 발견한 부분이기도 해요.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를 보아 왔잖아요. 최 씨 일가가 임선이라는 사람이 없었다면 하나의 가족 형태로 유지되기가 불가능했을 거예요. 할머니의 카리스마, 영향력 같은 것들이 최 씨 일가를 구성하는 핵심이거든요. 돈 문제를 이야기하기 이전에 말이죠. 할머니를 굳이 악의 몸통이라고까지 표현한 부분은 아버지(조순제)를 통해 전해 들었던 부분이기도 합니다.

 

아버님 조순제 씨는 할머니 임선이 씨를 어떻게 말씀하셨어요?


돈에 관한 한 참 억척스러운 사람이었어요. 돈에 대한 집착이 강력했어요. 그렇게 억척스러울 수밖에 없던 현실이 있었죠. 워낙 가난했고요. 할머니는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어요. 자기 이름을 겨우 쓸 정도였으니까요. 글은 몰랐던 반면 숫자에는 굉장히 밝았던 거죠.

 

최태민이 새로운 종교를 만드는 동안 임선이는 딸 넷과 전처들의 자식 셋을 같이 키워야 했다. 지독한 계모라는 말과 함께 독한 일수쟁이라는 말도 들었다.(중략) 하루나 이틀까지는 기다려 주었지만 그나마도 사흘째 날에는 가차 없이 실력행사에 들어갔다. 영천시장과 중림시장에서 임선이가 올라가 앉지 않은 방앗간 기계가 없었다. 빌린 돈을 갚기 전에는 기계를 아예 못 돌리게 으름장을 놓은 것이다.(32-33쪽)

 

임선이 씨의 적극적인 방조 아래 최태민 씨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최태민 씨의 역삼동 집에서 밀회를 나누던 장면이 나와요. 돈과 권력에 민감한 임선이 씨의 면모를 엿볼 수 있죠.


밀회라는 것은, 제가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그 집안 분위기 상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에요. 집안에 종교적인 특별함이 있거든요. 실체가 어떤 종교인지는 명확하게 보여드릴 수 없지만 종교적인 연대나 신뢰가 박근혜 씨와 최태민 씨 사이에 분명히 존재했어요. 종교적 신뢰와 연대감이 굳건했다는 건 분명해 보여요. 주문을 외운다거나 하는 특별한 종교의식도 그 집안에서는 낯선 풍경이 아니었고요. 모든 관계는 그런 종교적인 신념으로부터 시작된 거라고 보고 있어요.  


“박근혜와 최태민은 서로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교주”라고도 표현하고 있잖아요.


서로에게 그랬다고 봐야 해요. 굉장히 깊은 존경과 존중, 예의가 철저했어요. 정말로 떠받들었어요. 그게 낯설지 않았죠. 왕족이 없는 시대지만 사실상 왕가, 왕녀로 대우를 하셨던 거고요. 저희 할머니나 어머니(김경옥 씨) 모두 마찬가지로 아주 착한 백성이 절대 군주를 모시는, 그런 풍경이 있었어요.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런 거예요. 내가 내 권력을 위임하고 나는 백성이 되는 시대는 끝이 났어요. 새로운 시대는 대통령이라고 해도 깊은 내막까지 전부 들춰봐서 철저하게 감시하는 현명한 시민들의 세상이라는 거죠. 이것을 모두가 받아들여야 한다는 거예요. 시민과 권력자 사이에 경계는 없다는 거고요. 저는 50대가 됐어요. 어머니는 80대시고요. 자식 세대는 20대잖아요. 딱 중간에서 보면 다음 시대가 가야 할 모습이 이것이라는 게 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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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부패를 이야기해야 한다


시민들이 대통령을 군주라고 여기지 않은지는 꽤 됐습니다. 80년대 민주화 항쟁도 그렇고요. 그럼에도 여전히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있는 거죠.


할머니만 해도 1920년대에 태어나셨으니까요. 그 시대 분들이죠. 저희 어머니는 1940년대에 태어나셨고요. 이분들은 일제시대에 태어나 6.25를 겪었어요. 사실 우리가 왕정을 스스로 극복하지 못했잖아요. 일본에게 빼앗긴 왕을 회복하고 싶은 감성적인 콤플렉스가 있었던 거죠. 그래서 박정희가 강력하게 독재를 한 것을 받아들일 수 있었고요. 박정희를 잃었을 때 여전히 잃어버린 왕을 또 기다린 백성들이 있었다는 겁니다. 그분들의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기성세대와 그런 문제로 갈등을 겪는 분들이 주변에도 참 많아요.


저희 어머니도 박근혜 전 대통령이 너무 억울하다고 생각하세요. 안타까워하시고요. 저는 그렇다고 비판하고 싶진 않아요. 그 시대가 그랬으니까요. 저는 어머니와 함께 광화문 가서 저는 촛불집회 가고, 어머니는 태극기집회 가고 그랬어요. 어머니는 어머니의 시대를, 저는 지금 시대를 사는 건데요. 이것 역시 ‘또 하나의 가족’이죠.


결론은 부정부패를 이야기해야 한다는 거예요. 책 전체에서 단어 하나만 남기고 다 지우라고 한다면 부정부패 하나만 남기고 싶어요. 그 시대가 그렇게 부패했고, 그게 지금까지 그대로 있었다는 점을 말하고 싶어요. 치명적인 건 과거의 부정부패가 지금은 아주 세련된 형태로 진화했다는 거죠. 그 문제가 이 책의 본질이에요. 이 문제를 깊이 들어가서 봤으면 좋겠어요. 

 

이번 사태로 인해 부정부패를 타파할 변화가 시작되었다고 보는 건가요?


저는 과거와 단절이 있을 거라고 봐요. 이 상황을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잖아요. 못 받아들이잖아요. 이게 건강한, 새로운 사회로 가는 모습이다, 새로운 시대가 이렇게 열린다, 저는 이렇게 봐요. 홍콩 생활을 2년 정도 했는데요. 홍콩의 변화된 모습을 보고 너무 놀랐어요. 과거 홍콩의 모습은 볼 수가 없더라고요. 그렇게 된 데에 ‘염정공서(廉政公署, ICAC, 홍콩의 반부패 수사 기구)’라는 수사처가 있었던 거예요. 염정공서가 생긴 지 십 년 만에 새로운 세상으로 바뀌었어요. 그게 너무 부럽더라고요. 그런 변화는 우리도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요.

 

책에서 한 단어만 남긴다면 부정부패라고 하셨는데요. 그렇다면 책을 쓰시면서 이 책이 부정부패 척결에 어떤 기여를 할 거라 생각하셨어요?


아버지가 어떻게 차근차근 그쪽에 가까워졌는지를 보고 자랐잖아요. 생생해요. 집안이 조금씩 나아졌어요. 나중에는 몰락을 했죠. 이 과정 자체가 부정부패의 모습이에요. 또한 부모님의 유산을 물려받는 과정에서 가족이 해체되는 풍경은 여느 집과 비슷하죠. 제 친구들 중에도 많거든요. 형제 사이에도 탐욕과 욕심이 작용해요. 이게 나라의 큰 부정부패에도 작용한다는 걸 한 번 생각해보고 싶어요. 저희 집안에는 그게 다 응축되어 있는 거예요. 그것들을 시대의 흐름에 따라 연결시켜 본 거예요. 시대별 흐름을 보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더 많을 거라 생각합니다.  

 

어려운 일이었을 텐데요. 가족의 치부를 다 드러내야 하는 작업이었으니까요.


굉장히 짧은 시간 써낸 책이에요. 이 책에는 많이 못 담았고요. 못 담은 이야기들이 되게 많아요. 처음에는 마땅한 방식을 찾지 못해 소설 형태로 썼거든요. 최종까지 변화를 많이 겪었죠. 그 과정에서 덜어내야 했던 얘기들이 있는데요. 그 이야기들은 좀 더 정리를 해보려고 해요.


특히 제 아래 세대들은 그들이 진짜 건강하고 현명한 시민으로 성장해야 하잖아요. 때문에 중간에 있는 세대로서 새로운 시대를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난 세대의 부패를 버려야죠. 앞으로 이런 게 또 반복될 수는 없을 거예요. 확신이 있어요.

 

덜어낸 이야기는 다른 책으로 낸단 말씀이시죠? 그건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일까요?


가족 내부의 대화와 생활상, 평범한 여느 집에나 있는 풍경이 여기도 있었다는 것이죠. 아버지가 말씀하셨던 것처럼 처음에는 비극적이지 않았다는 건데요. 지금은 완전히 비극이죠. 각 과정마다 다 이야기들이 있어요. 그런 것들을 남겨 놓으면 기록으로써의 의미가 있으리라 생각해요. 누구나 다 그 시절을 볼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그러려면 아픈 치부를 더 드러내야죠. 누구에게나 욕심이 있겠죠. 그러나 건강한 가족이 되는 방법이 건강한 나라가 되는 방법과 맞닿아 있다는 점을 알았으면 좋겠어요. 탐욕과 욕심을 스스로 얼마나 절제해야 하느냐 하는 부분도 생각해볼 기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저희 집안이 대표적으로 해체된 집안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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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부끄러운 과거


책을 쓰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있었나요?


홍콩에서 지낼 때인데요. 퇴근 후에 자려고 누워서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틀었는데 뉴스에서 아버지 음성이 나오는 거예요. 일이 벌어졌다는 건 알고 있었죠. 그런데 실은 최순실이라는 기사를 일부러 안 봤어요. 심정이 복잡해지더라고요. 저 문제가 내 문제일 수 있었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고요. 아버지가 더 악착 같이 권력을 도모했다면 다 제 문제일 수 있잖아요. 그게 너무 불편해서 최순실과 관련된 뉴스는 외면하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아버지 음성이 들리는 순간 눈물이 났어요. 주체가 안 되더라고요. 그때 뭘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처음에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다가 아버지 목소리가 매일 뉴스에 나오는 걸 보면서 이건 아니다, 진실을 더 남겨야겠다, 생각을 한 거예요. 여과 없이 날 것으로 아버지와 할머니 이야기를 보여주면 역사에 진실이 좀 남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때부터 열심히 쓰기 시작했어요.

 

처음 일이 터졌을 때, 최순실이라는 이름이 뉴스에 나올 때는 어떤 생각을 하셨어요?


느낌이 있었어요. 단순히 뉴스 한 줄이 나오기 시작할 때부터 이미 이게 끝까지 가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대통령 탄핵까지 예상한 건 아닌데요. 최순실 문제만큼은 다 밝혀지겠구나 직감을 했죠. 멈출 수가 없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것은 곁에서 직접 보아왔던 그 사람들의 성격이나 생활을 알았기 때문인가요?


그들이 한 부정부패가 보통 사람이 생각한 것보다 엄청나다는 걸 직감했던 거예요. 심지어 지금 (최순실 씨가)감옥에 있지만 이 정도가 전부일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명확하게는 모르지만 더 있을 거라는 느낌은 있어요. 뭔가 더 깊은 부패가 있을 거라는 심증을 지울 수가 없어요.

 

해명하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나요? 가령 아버지 조순제 씨에 대해서라든지 말이죠.


아니요, 아버지가 관여한 일들이 다 부정한 일들이잖아요. 다만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직전에 슬퍼하셨던 것, 괴로워하셨던 것은 제게 각인된 풍경들인데요. 거기에 대한 회한이 조금은 있어서 그것을 담아내고 싶었어요. 아버지는 자기 손으로 정치인을 만들고, 이미지를 만들고, 뒤에 숨어서 했던 일에 대한 죄의식이 있었는데요. 자기가 했던 일이 정당하지 않았던 일이라는 것에 대한 후회가 있었기 때문에 그런 자기를 모른다고 부정하는 박근혜 씨를 용서할 수가 없었던 거죠. 심지어 녹취에 참여했던 40년 지기도 조순제를 모른다, 녹취에 참여하지 않았다, 했거든요. 권력에 가까울 때는 다 가까운 척 했던 사람들이 그런 거예요. 더 슬프죠. 저는 아버지의 슬픔은 많이 이해하는 편이에요.

 

권력과의 거리에 따라 체감한 사람들의 태도 변화가 상처였군요.


사실은 모든 사람들이 최순실이에요. 대통령이 특별히 내 의견에 귀 기울여주는데 누가 싫겠느냐고요. 미래의 최순실이 생기지 않으려면 최순실이 어떻게 했는지를 보고 도덕성이랄까 하는 관념을 조금씩 기준 삼아야 하지 않나, 생각해요.

 

아버지 조순제 씨가 “너무 더러운 물에 사는 물고기는 어느새 혼탁한 물에 익숙해져 갑자기 깨끗한 물을 넣어주면 죽어버린다. 그때 상황이 꼭 그런 혼탁한 물과 그런 물에 익숙한 물고기들 천지였다.”라고 했었죠.

 

아버지도 그런 일인 줄 알면서도 했죠. 익숙해져서 했고, 반쯤은 어쩔 수 없이 반쯤은 따라서 했고, 욕심도 부렸던 거죠. 이제 와 아버지가 배제당하고 물려받은 것 없다고 제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건 아니고요. 다 부끄러운 과거니까 부끄러운 과거를 있는 그대로 남겨두는 것, 그것에만 의미를 두면 이것을 보는 의미가 있을 거라 생각해요. 이걸 보고 앞으로 그러지 않으면 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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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전체 내용 중 저자와 직접 연관이 있었다고 할 만한 것이 있다면 영남대 입학 비리 사건이에요. 그때 기억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저는 서울에 살았어요. 그곳까지 가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하고 싶은 게 있었는데요. 어쩌다보니 그랬어요. 부정부패의 결과죠.

 

그 장면에서도 아쉬움이 남는 게 당시 사회적 분위기가 비리와 권력을 비판하는 쪽으로 흘러가던 시기였잖아요. 그때 역시 기회가 있었던 거죠. 그렇지만 결국 전부 뿌리 뽑지는 못했어요. 그런 장면을 지금 다시 지켜보고 반면교사 삼아야 할 거란 생각이 들거든요.


그런 이유 때문에 본문에 있는 내용인데 굳이 저자 소개에 가져온 거예요. 저도, 아버지도, 할머니도, 미화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어요. 그러면 책 쓰는 의미가 없으니까 창피한 것을 진실로 남기는 게 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아버지가 그걸 하셨으면 좋았을 텐데 못 하시고 슬프게 돌아가셨잖아요. 허망하게 돌아가셨거든요. 저는 그렇게 죽기 싫어요. 내가 죽을 때는 그렇게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죽고 싶지 않아요. 지금 좀 창피한 게 낫죠. 창피하게 살아도 창피하다고 얘기하고, 미안하다고 얘기하고, 죽을 때는 마음 편하게 죽고 싶어요. 자식 세대에 부끄럽다는 마음 없이 말이에요. 아버지가 그러시는 걸 봤기 때문에요.

 

이번 사건을 쭉 지켜보면서 가까이 있던 입장에서 ‘이건 정말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 있나요? 하나 꼽는다면 무엇일까요?


솔직히 저런 풍경은 이해할 수 있었어요. 이상한 이야기인데 아버지도 그러셨었거든요. 시키는 대로 말 한 마디 토씨 하나 안 바꾸고 그대로 하는 바보다, 이런 이야기는 옛날부터 많이 들었던 이야기여서 이상하지도 않았어요.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때, 박근혜 당시 후보가 아버지를 모른다고 한 이전과 이후에 아버지가 해주신 이야기의 풍경은 너무나 달라요. 그때 이야기가 의미가 있는 이야기죠. 돌이켜보니 이건 잘못됐다, 내 인생이 잘못됐다, 생각한 계기도 당시 박근혜에게 부정을 당하면서부터였으니까요. 더구나 아버지는 박근혜 씨가 거짓말했다는 것만으로 폭발했던 것도 아니에요. 아버지 친구들, 지인들 반응 때문이었어요. 그들은 아버지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알잖아요. 그 사람들이 아버지를 의심하는 거예요. 저렇게 대놓고 모른다고 할 정도면 뒤로 뭘 좀 받았겠지, 입 닦았겠느냐, 이게 치명적이었어요.

 

그때는 이미 투병 중이셨죠?


2007년 4월에 이미 6개월 선고를 받았으니까 절반이 지나서 3개월 밖에 안 남았을 시기예요. 그런데 아버지가 뭘 하시겠다고 하니 걱정이었죠. 실은 겁도 났고요. 대통령이 될 수도 있는 사람을 대놓고 폭로하면 무사할까, 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런데 아버지가 쓰신 진정서 초안을 보고 막을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그때도 그 폭로가 묻혀버렸죠.


최순실의 범죄 혐의가 비교적 분명하게 드러났을 때쯤이 되어서 나온 거예요. 박근혜 전 대통령과의 연결고리가 비교적 분명히 드러나서 실체가 보일 때쯤이죠. 십 년이 걸렸는데요. 결국 그렇게 될 게 뻔히 보였던 것 같아요.

 

주변 사람들은 그렇게 될 거라 생각했을 정도인데 당사자들은 아니었잖아요. 처음에 그들이 보였던 반응을 생각하면 알 수 있어요. 시종 모르쇠로 일관했었죠.


적응 됐을 거예요. 마인드 세팅이 그렇게 됐을 거예요. 거기에다 잘못을 인정하라고 한들 의미가 없죠. 기대를 했어요.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 정도 해주면 좋았겠다고요. 많은 사람들이 누군가 미안해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보잖아요. 그렇게 만든 사람, 대통령 자리까지 올려준 사람, 다 미안해할 일인데 아직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사람을 못 봤어요. 대통령이 미안하단 말 한 마디를 해주면 좋았겠는데 아직도 저러시니, 답답하기는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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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순제 녹취록에 다 있다


책 작업을 하며 새롭게 하게 된 생각도 있었나요? 의외의 발견이 있었는지 궁금한데요.


부정부패에 대한 부분은 시작부터 갖고 있었고요. 전체 흐름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고요. 초고 원고 분량이 많았는데 양을 줄이고 흐름만 보여주는 걸로 정리를 했죠. 솔직히 말씀 드리면 본문을 안 읽어도 예민하게 보는 사람들은 녹취록만 봐도 다 있다는 걸 알 수 있을 거예요. 거기 다 있어요. 왜 단어를 그렇게 추상적으로 쓰면서도 사실이라는 걸 이해할 수 있게 얘기를 했는지 알 수 있죠. 아버지의 말투를 저는 알잖아요. 그걸 아는 입장에서 읽으면 완벽해요. 다 있어요. 진정서에도 이미 ‘공유’, ‘국정농단’이라는 단어를 다 쓰셨거든요. 아버지 불쌍해서 쓰긴 썼지만 자랑스러운 건 아니니까 씁쓸하죠. 자랑스러운 가족도 아니고요. 어찌 보면 지탄 받는 집안이잖아요.

 

그런가하면 방송 출연이나 인터뷰 등 언론활동을 하고 계신데요. 특별한 이유가 있다면요?


사람들이 책을 과거의 기록으로 더 많이 읽었으면 해요. 이것 하나가 기회가 되어서 부정부패가 이렇게 진화했다는 점을 볼 수 있다면 다음 시대에는 좀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어요.


헌법 재판소 판결문 전문을 백 번 넘게 읽었어요. 딱 한 문장만 건지면 되겠더라고요. ‘좌우의 이념 문제가 아니다’라는 것이에요. 부정부패, 그게 이 책과 맞닿아 있어요. 그 이야기를 독자 분들에게 꼭 하고 싶어요. 탄핵 백 번 해도 안 바뀌려면 안 바뀌어요. 그런데 한 번으로도 바뀔 수 있을 것 같긴 해요.

 

핵심은 과거 청산이겠네요.


네, 청산이에요. 제게는 고모들 기억이 너무 많아요. 좋았던 기억 많죠. 최순실 고모가 저 데리고 제주도 여행 가서 맛있는 것도 많이 사주고 했거든요. 귀여움 많이 받은 조카예요. 최순득 고모가 겨울에 스키장도 많이 데려가고요. 그런 가족이 이렇게 돈에 의해 해체되었죠. 할머니가 그렇게 만든 거고요. 돈이 많아 불행한 가족이죠.


 

 

또 하나의 가족조용래 저 | 모던아카이브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를 초래한 최순실 게이트. 10년 전 이미 이런 상황을 놀랍도록 정확히 예측한 사람이 있다. 바로 최태민의 의붓아들이자 최순실의 의붓오빠인 조순제. 『또 하나의 가족』은 조순제의 아들 조용래가 아버지 조순제와, 장기간 박근혜의 집사 역할을 했던 어머니의 증언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최태민ㆍ임선이ㆍ박근혜의 68년 역사를 담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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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 임인건, ‘야누스’의 과거와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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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문을 연 클럽 '야누스'는 한국인에 의해 운영되면서 한국 재즈 연주자들이 정기적으로 연주한 최초의 재즈클럽이다. 재작년에 야누스는 37년의 세월을 뒤로 하고 새로운 경영진에게 인수되어 현재 '디바 야누스'란 이름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하지만 한국의 올드 재즈팬들은 옛 시절의 야누스를 잊지 못한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도 그 시절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그곳에서 오랜 세월을 연주해 온 연주자들이다. 그 중 한 사람인 피아니스트 임인건은 얼마 전 새로운 곡을 통해 야누스에 대한 기억을 담은 새 음반 <야누스, 그 기억의 현재>를 발표했다.

 

현재 제주도에 살고 있는 임인건은 가끔 서울에 올라온다. 하지만 이 음반에 관한 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그가 서울에 온 어느 일요일을 우리는 놓칠 수 없었다. 저녁 시간 강남의 한 녹음 스튜디오에서 그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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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개인적인 느낌일 수도 있지만, 나는 이 음반이 너무 좋았다. 들을 때 마다 뭉클하다.


그런가? 고맙다. 그런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어야지 (웃음)

 

이제 초창기 야누스에서 연주하시던 선생님들이 음반을 녹음할 기회가 그리 많지 않을 터인데, 그것도 옛날 스탠더드 넘버들을 연주한 것도 아니고 후배가 쓴 새로운 곡들을 마치 자신들의 곡인 것처럼 노래하고 연주한 것을 들으니 기분이 너무 좋더라.

 

선생님들도 녹음이 끝나고 참 좋아하셨다. 일단 내가 전화를 드리면 이전보다 훨씬 반갑게 받아 주신다. 오, 인건아! 이런 식으로. (웃음)

 

언제부터, 어떻게 클럽 야누스와 인연을 맺게 되었나?


1986년 즈음이었는데 지금은 은퇴하신 트럼펫 주자 강대관 선생님의 소개로 연주를 시작했다. 강대관 선생님과는 명동 롯데호델에서 함께 연주를 했는데 그때 드럼에는 고(故) 최세진 선생님, 기타에는 목우영 선생님이라고, 최세진 선생님과 오래 전부터 함께 연주한 친구 분이셨는데, 정말 스윙 기타를 예쁘게 치시는 분이셨다. 아무튼 그 분들과 처음으로 재즈 연주를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강대관 선생님이 클럽 야누스에서 피아노를 맡아 달라고 하셨다. 원래 야누스에는 신관웅 선생님이 피아노를 연주하셨는데 이미 신관웅 트리오로 활동을 시작하셔서 야누스에 오지 못하셨고 그 다음 피아니스트가 이영경 씨였는데 얼마 후 내게 그 제안이 들어왔다.

 

그럼 언제까지 야누스에서 연주했나?


맨 처음 연주했을 때 야누스가 이화동에 있었던 시절이었고 그 다음 이대 후문 쪽으로 이사 갔다가 얼마 후에 지인들의 도움으로 청담동으로 이사 갔고 마지막으로 교대역 쪽으로 이사를 갔는데 내가 제주도 내려간 것이 2013년이니, 27년 동안 연주한 셈이다. 매주 토요일 밤이면 야누스에서 연주했다.

 

야누스를 떠날 때 기분은 어떠했나?


알지 않는가. 야누스는 늘 경영이 어려웠다. 많은 사람들이 재즈가 무엇인지도 모르던 시절부터 재즈클럽을 시작했으니 얼마나 어려움이 많았겠는가. 그런 중에 내가 2012년에 제주도로 내려 갈 결심을 하고 야누스를 계속 경영하시던 보컬리스트 박성연 선생님께 말씀 드렸더니 박 선생님이 말리셨다. 그래서 일 년이 또 그렇게 흘러갔다. 하지만 내 마음이 바뀌지 않아 이듬해에 다시 선생님께 제주도로 가겠다고 말씀 드리고 결국 야누스에서의 마지막 연주를 했다. 마지막 날이라고 내 앨범에 참여했던 지훈이(최지훈, 보컬리스트)가 왔고 어떤 손님 한 분, 그렇게 관객 딱 두 사람만이 있었다. 그들 앞에서 박 선생님 노래를 반주해 드리고 그날 공연이 끝났다. 야누스의 마지막 시절에는 관객이 한 사람도 없던 날들도 많았다. 그래서 연주자들에게 출연료를 줄 형편이 못됐고 그래서 돈과 관계없이 야누스를 위해 자발적으로 무대에 서고자 했던 연주자들만이 왔었다. 그런데 그날, 마지막 연주를 끝내고 무대에서 내려오니 박 선생님이 오만원이 들어있는 봉투 하나를 건네시면서 “자, 퇴직금이야” 하시는 거였다. 그리고 봉투를 건네시고는 주방으로 들어가셔서 나오시지도 않는 거였다. 봉투를 쳐다보면서 한 동안 그냥 있었다. 그리고 언젠가 '퇴직금 오 만원'이란 곡을 써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아직 못 썼지만 언젠가는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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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음반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첫 번째 곡 「I'll Remember 이판근」은 이판근 선생님과 임인건씨의 공동 작곡으로 되어 있다. 언제 만들어진 곡인가.


이번 음반 만들면서 먼저 야누스에서 음악감독을 오래 하신 이판근 선생님의 작품을 꼭 담고 싶었다. 그래서 선생님께 전화 드려 피아노 솔로를 위한 작품 하나 그리고 재즈 1세대 선생님들과 함께 연주할 수 있는 곡 하나, 모두 두 곡을 써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그런데 이젠 연로하셔서 힘 드셨는지 딱 한 곡, 그것도 왼손으로 연주할 베이스 음 두 마디만 작곡을 해놓으셨더라. 그러시면 “네가 알아서 멜로디 만들어서 연주해” 하셨다. 그래서 거기에 멜로디를 덧붙이고 해서 한 달 만에 곡을 만들었다. 애초의 생각과는 달리 배선용(트럼펫), 김지석(테너 색소폰), 이원술(베이스), 임주찬(드럼) 등 후배 연주자들과 녹음했다.

 

「별빛의 노래」는 어린이 합창단도 등장하고 뭔가 희망을 주는 노래인 것 같다.


이 곡은 기본적으로 나 같은 음악인의 마음을 노래한 것이지만 같은 음악을 했던 박성연 선생님의 음성으로 노래하면 더욱 설득력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박성연 선생님을 생각하면서 가사를 썼다. 이제 다들 아시지만 박성연 선생님은 건강상의 이유로 야누스를 매각하시고 현재 병원에 계신다. 이 음반도 병원에서 스튜디오를 오가시면서 녹음하셨다. 병원에 계실 때 안부 전화를 드리면 그래도 감사하고 늘 즐겁게 산다고 말씀하신다. 사실 우리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인생을 살다 보면 즐거운 일도 있고 슬픈 일도 있다. 하지만 음악 하는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역시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면서 얻었던 기쁨, 그때 얻은 힘으로 살아가는 것 같다. 가사 중간에도 나오지 않는가. “내가 노래하면 모든 세상, 다 같이 함께 노래해/ 내가 슬퍼하면 모든 세상, 어두운 회색 빛 되네.”


그래서 어린이 합창이 들어가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해서 합창을 넣었다. <재즈피플> 김광현 편집장 딸, 피아니스트 비안 딸, 원술이 딸.......모두 와서 노래해 주고 스튜디오 밖에서 아버지들은 모두 사진 찍고. (웃음)

 

박성연 선생님이 건강 때문에 녹음을 힘들어 하시지 않았나?


참 그게 걱정이었는데 정말 의욕을 보이셨다. 그런데 이번 노래들이 선생님이 늘 부르시는 재즈 스탠더드 넘버가 아니라 새로운 창작곡이니 연습이 더욱 더 필요하셨다. 맨 처음에는 힘들어하셨지만 “내가 소화해 낼게요.” 하셨다. 하지만 병원에서 노래 연습을 할 수도 없어서 병원으로부터 허락을 받고 잠시 퇴원해 댁에 가셔서 혼자 노래 연습을 하시다가 다시 입원하곤 하셨다. 일주일에 2, 3회 그렇게 하셨다. 그 일을 위해 페이지 터너의 홍원근 대표는 선생님을 댁에 모셔다 드리고 노래 연습이 끝날 때까지 밖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끝나면 다시 모시고 병원으로 가는 수고를 맡아서 했다.


선생님께서는 가수는 절대 가사를 보면서 노래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시는 분이다. 그래서 녹음하실 때도 이 곡들의 가사를 전부 외워서 부르셨다. 또 완전히 아날로그 방식으로 작업하셔서 틀린 부분만 수정해서 녹음하고 편집하는 게 아니라 틀리면 처음부터 다시 노래를 부르셨다. 재밌는 것은 「별빛의 노래」 가사 중에 “우주가 생긴 지 백오십억 년”이란 부분이 나온다. 그런데 선생님이 녹음한 것을 나중에 들어보니 “우주가 생긴 지 백오십 년”으로 되어 있더라. (웃음) 녹음 당시에는 아무도 그 사실을 몰랐다. 나중에 발견하고서는 어떻게 하든 '억'자를 넣으려고 했는데 도무지 기술적으로는 안 되더라. 그래서 나중에 선생님께 말씀드려 할 수 없이 그 곡을 다시 녹음했다.

 

이전에도 가사를 많이 썼었나?


아니다. <All That Jeju>에 처음 실렸던 「하도리 가는 길」이 처음 쓴 가사였다. 그 앨범에 실린 다른 곡들의 가사는 전부 다른 분들이 써 준 것이었다. 「하도리 가는 길」은 노래와 가사가 거의 동시에 만들어 졌다. 거의 3~4시간 만에 만든 것 같다. 그래서 가사가 너무 짧은 거 같아 다음 날 2절 가사를 썼다. 나도 신기했다. 내가 가사를 쓸 수 있다니. 그래서 이번 음반을 만들면서, 특히 박성연 선생님을 생각하면서 가사를 써봤는데 의외로 써지더라. 전에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는데 음악도 만들고 나면 내가 만든 것 같지 않고 내가 경험했던 모든 것들이 '나를 통과해서' 음악으로 표현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가사도 마찬가지다. 쓰고 나면 내가 만든 것 같지 않고 무엇인가가 나를 통해 표현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바람이 부네요」도 가사가 참 좋다.


전화로 박성연 선생님 문안인사를 드렸는데 그때 느낌을 글로 써봤다. 언젠가는 전화를 드렸더니 어제 밤 창가에 달이 떠 있어서 달을 보면서 참 좋았다고 하시더라. “바람이 부네요. 춥진 않은가요/ 밤 깊어 문득 그대 얼굴이 떠올라.”라는 첫 가사는 그 말씀에서 생각이 난 거다.


앨범이 발매되고서 얼마 후에 성수 아트홀에서 기념 공연을 가졌는데 박성연 선생님이 병원에서 외출할 수 있는 시간이 딱 두 시간이었다. 리허설 같은 것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그래서 선생님이 무대에 오르는 시간에 맞춰 병원에서 출발하시고 도착하시고서 얼마 후에 바로 노래 하시고 노래 끝나자마자 바로 차로 이동해 휠체어를 타고 병실로 이동하신 거다. 화려한 조명과 박수갈채가 있던 공연장에서 몇 분 안에 늦은 밤 깜깜하게 불이 꺼져있는 병실로 갑자기 들어서신 거다. 그 일을 맡은 후배가 그 느낌을 나중에 내게 전해주었는데 그때 선생님이 느끼셨을 고독이 전해졌다. 그때 「바람이 부네요」의 가사 첫 머리가 다시 머리에 떠오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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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곡은 합창곡으로 또 다른 버전이 실려 있다.


곡이 만들어 졌을 때 홍원근 대표와 편곡을 맡은 이원술 씨가 선생님 노래에 합창을 더하면 좋을 것 같다는 의견을 내놨다. 나는 선생님의 고독감을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에 합창이 잘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는 의견이었고 그래서 그럴 바엔 「별빛의 노래」에 합창을 넣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결국 합창은 두 곡 모두에 쓰였는데 「바람이 부네요」는 선생님 노래에 합창을 더하지 않고 합창 버전을 따로 만들었다.

 

「하도리 가는 길」은 <야누스, 현재의 기억>이 기획되기 이전에 이미 만들어진 곡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 이전 앨범 <All That Jeju>에 처음 실렸다. 하지만 그때도 이 곡을 원래는 이동기 선생님이 불러주셨으면 하고 기대했었다. 이동기 선생님은 클라리넷 연주자로 모두들 알고 계시지만 실은 노래 실력도 대단하시다. 하지만 이전 앨범에서 갑자기 이동기 선생님 목소리가 등장하는 것이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아 강아솔 씨가 부른 것이다. 물론 강아솔 씨는 제주 사람이어서 그 감정을 잘 알아 노래를 잘 해주었지만 내 마음 속에는 언젠가는 이동기 선생님 목소리로 이 곡을 녹음해야겠다는 생각을 했고 이번 음반에 그 꿈을 이뤘다.

 

「하도리 가는 길」은 트럼펫 버전도 실려 있던데 그 곡도 너무 좋더라.


사실은 원래 계획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동기 선생님이 「하도리 가는 길」을 보컬 버전으로 녹음하고 계시던 중에 밖에는 트럼펫 주자 최선배 선생님이 다음 곡을 녹음하러 대기하고 계셨다. 그때 사람들이 아이디어가 떠올라 최선배 선생님께도 「하도리 가는 길」을 부탁드려보자고 했다. 즉흥솔로는 하실 필요 없으니 그냥 테마만 불어 달라고 부탁드렸다. 그런데 정말 너무나 아름다운 플뤼겔호른 소리로 그 곡을 부셨다. 원래 소리는 음반에 담긴 소리보다 훨씬 아름다웠다.

 

그러고 보니 앨범에는 세 분의 원로 연주자들이 모두 한 곡씩 주연이 되어서 녹음을 남기셨다.


원래는 이동기 선생님의 「When You Wish Upon a Star」와 김수열 선생님의 「미스터 김수열」 모두 무반주 솔로로 녹음하려고 했다. 그런데 원술이가 김수열 선생님과 듀오로 녹음을 꼭 남기고 싶다고 해서 콘트라베이스와 이중주로 녹음했는데 아주 훌륭했다. 그래서 이동기 선생님 클라리넷 독주는 이미 녹음이 되어 있지만 여기에 약간의 반주를 더하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피아노 반주를 넣었는데 일반적인 재즈 스타일로 연주하니까 너무 상투적으로 되더라. 그래서 이미지 하나를 떠올렸는데 내가 달에 도착해 보니 피아노 한 대가 놓여 있고 그 앞에 앉았는데 어디선가 먼 하늘에서 클라리넷 연주로 「When You Wish Upon a Star」가 들려오는 장면을 떠올렸다. 별은 하늘에서 반짝이고. 그때 느낌으로 건반을 눌렀는데 그 느낌이 '프리(free)'하게 나오더라. 그 녹음을 선택했다.

 

이동기 선생님도 작년부터 건강이 안 좋아 지셨는데.......


폐에 문제가 생기셨는데 간도 함께 안 좋으셔서 치료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그 좋아하시던 담배도 못 피우시고........그래도 노래하고 연주하실 때 보면 여전히 정정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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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천국」은 그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별로 깊은 뜻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김수열, 최선배 선생님과 함께 마이너 키에 빠른 템포의 곡을 연주하고 싶어서 만든 곡이다. 아직도 정정한 두 선생님의 솔로 연주가 돋보인다. '잃어버린 천국'이라고 제목 붙인 것은, 현재도 그런대로 좋지만 그래도 지나간 과거, 선생님들이 다들 젊으실 때 야누스에 모두 모여 연주하던 시절이 정말 좋았기에 그런 제목을 붙여 보았다.

 

수록곡 중에 가장 뜻밖의 제목이 「개복동 꽃순이」였다. 어떤 의미의 곡인가?


제주도로 내려가고 나서 얼마 후 군산에서 미술 작업을 하고 있는 후배를 만나러 그곳에 갔다. 그의 작업실이 군산 개복동에 있는데 개복동은 현재는 슬럼화 되어 있는 군산의 구도심이다. 밤이 되면 동네 전체가 깜깜해 진다. 술을 한 잔 하고 그 거리를 걷는데 왠지 옛날 야누스가 생각이 났다. 사실 그때까지 나는 늘 스탠더드 노래만 불러오던 박 선생님이 우리말로 된 노래를 부른 앨범 하나를 구상하고 있었는데 개복동 거리를 걷는 순간에 단지 박 선생님을 위한 앨범이 아니라 야누스 전체를 기억하는 앨범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맨 처음 생각한 앨범 제목이 <야누스 이야기>였다. 그러니까 개복동은 이 앨범을 처음 생각하게 했던 장소였다.


사실 개복동이 이렇게 슬럼화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건일 텐데 2002년도에 이곳에서 대형화재가 나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그곳은 성매매업소가 밀집되어 있는 환락가로 그곳에서 일하던 많은 여성들이 희생당한 것이다. 그런데 화재 이후에도 여러 문제 때문에 그 지역이 오랫동안 그대로 방치 되어 있어서 미술 하는 내 후배가 그 안으로 들어가 봤다고 한다. 여성들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미로처럼 만든 끔찍한 건물 안에서 그곳에서 일하던 여성의 것으로 보이는 십일조 헌금 봉투와 그 위에 쓴 메모를 발견하고 그 이야기를 후배가 해주었다. 그래서 그 이름 모를 여성을 위한 곡도 한 곡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복동은 이 앨범을 만들게 한 영감을 주었던 곳이기에 그 곡 역시 이 앨범에 넣었다.

 

「길 없는 길」도 박성연 선생님의 독백처럼 들린다.


맞다. 외로운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음악인들의 모습을 담은 노래다. 여성 재즈 보컬리스트 열 분이 코러스를 맡았는데 그 편곡을 말로 씨가 맡아 주었다. 그 중에서 네 분은 스캣 솔로도 넣어 주었다. 맨 처음에 말로, 다음에 웅산, 박라온, 장정미 순으로 등장한다.

 

마지막에 「야누스 블루스」가 없었다면 앨범이 좀 슬펐을 것 같다.


옛날 사람들이 북적거리던 시절, 활기 넘치던 야누스 음악회를 회상하면서 한 곡을 쓰고 싶었다. 어떤 형식이 좋을까 고민했는데 역시 단순한 블루스를 부기우기 스타일로 연주하는 것이 제일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곡에는 이동기, 김수열, 최선배 선생님이 모두 나오신다. 사실 부기우기 피아노는 평소에 별로 칠 기회가 없는데 막상 해보니 왼손이 8비트로 계속 움직여야 해서 굉장히 힘들었다. 손목이 저리더라. (웃음)

 

이 앨범은 단순히 과거의 야누스를 회고한 음반이 아닌 것 같다.


맞다. 그래서 제목이 <야누스, 그 기억의 현재>인 것이다. 단지 과거를 회상하는 것이 아니라 야누스에서 함께 하던 사람들의 현재 모습, 현재의 나를 통해 바라보는 과거가 담겨 있다. 요즘은 그 생각에 한참 빠져 있는데, 과거를 회상하거나 미래를 상상하는 것 모두다 현재에서, 현재의 내가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과거나 미래가 실은 모두 현재에 담겨져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이 앨범은 현재의 이야기인 것이다.

 

결론적으로 정말 의미 있는 앨범 한 장이 만들어 졌다.


선생님들이 아직 노래하고 연주하실 수 있을 때 이 작업을 할 수 있어서 너무 좋다. 박성연 선생님께는 계속 노래를 만들 테니 힘닿는 만큼 계속 불러달라고 부탁드렸다. 이 음반을 위해서 이원술 씨가 정말 애 많이 썼다. 내가 제주도에 있다 보니 앨범을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이 부족했다, 대신에 원술이가 프로듀싱, 편곡, 베이스까지 맡아서 하고 선생님들 식사도 다 책임져 주고.......드러머 허여정도 참 많이 도와주었다. 또 홍원근 대표도 늘 박 선생님 모시고 다니면서 참 애 많이 썼다. 이 음반은 내가 만들었다고 말하기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이 손길이 담겨 있다.

사진 : 박재규
인터뷰, 정리 : 황덕호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희재 “사랑에 관해 교감하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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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가 ‘천만 관객 시대’에 진입할 무렵, 그 중심에는 김희재 작가가 있었다. <국화꽃 향기>, <실미도>, <누구나 비밀은 있다>, <공공의 적2>, <홀리데이>, <한반도>등 관객에게 깊이 각인된 작품들의 시나리오가 모두 그녀의 손끝에서 탄생했다. 탁월한 이야기꾼의 면모를 여실히 드러냈던 작가 김희재의 행보는 소설 『소실점』으로 이어졌다.

 

미스터리 소설 『소실점』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아나운서 최선우의 죽음, 그 속에 감춰진 진실을 쫓는다. 그녀는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인물이었고, 여대생들의 롤모델로 손꼽히던 유명 인사였다. 낯선 남자의 집 안에서 알몸의 변사체로 발견되는 건 그녀답지 않은 마지막이었다. 사건 수사를 맡은 강주희 검사는 거짓 같은 진실, 진실 같은 거짓과 마주한다. 용의자는 자신이 최선우의 섹스파트너였다고 주장하며, 그녀가 SM섹스를 즐기는 변태적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고 진술한다. 최선우의 남편은 그녀가 조금도 흐트러짐이 없는, 존경스러운 아내였다고 말한다. 강주희 검사는 혼란 속에서 중심을 잡기 위해 애쓴다. 그리고 마침내 찾아낸 증거를 열쇠로 진실에 한 발짝 다가선다.

 

물론, 진실은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하나의 단서가 발견될 때마다 사건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되고, 진실을 찾는 독자들의 추격전은 속도가 빨라진다. 끝까지, 흥미롭게, 이야기를 따라오게 만드는 김희재 소설가의 탄탄한 내공이 빛을 발한다. 미스터리 소설로써 『소실점』이 주는 장르적 쾌감은 결코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게 만든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작품은 인간의 내면과 관계의 본질을 조명하면서 잊히지 않는 질문을 남긴다. 그에 답하기 위해, 어쩌면 이야기를 다시 따라가야 할지도 모르겠다. 쉬이 휘발되지 않는 여운을 가진 작품임에는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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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 멜로는 쓰지 못할 것 같아요

 

『소실점』이 첫 번째 소설입니다. 지금까지 소설을 쓰지 않으셨다는 게 의아하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사실은 인터넷 교보문고에 「Free as the Wind」라는 작품을 연재한 적이 있어요. 공동 작가와 함께했는데, 지금처럼 전자책이 활성화되지 않던 시절이라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어요. 기황후를 주인공으로 한 1인칭 소설이었고, 뮤지컬 판권이 팔렸는데 제작되지는 않았어요. 워낙 대작 사이즈고 창작 뮤지컬로써는 조금 독특한 소재이다 보니까 그런 것 같아요. 일차적으로 그런 시도가 있었고요. 에세이를 내면서 저자가 책을 가진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이전에는 시나리오집을 출간하신 적이 있으시죠?

 

<공공의 적2><한반도>의 시나리오집이 나왔어요. 그리고 회사 ‘올댓스토리’를 시작하면서 라이터스컷(writer’s cut) 시나리오를 출판했었는데 작가의 오리지널 시나리오와 촬영용 시나리오, 작가의 코멘터리가 실린 시나리오를 담았었어요. 그렇게 출판에 대한 경험들이 쌓여가면서, 책을 통해서 독자와 만나는 건 온전하게 저자가 책임을 지는 만남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영화나 드라마는 연기자의 옷도 입혀지고 연출자의 의도도 들어가고, 여러 가지 요소가 더해지는 상황이잖아요. 책을 써서 독자와 만나는 건 굉장히 다르다는 걸 알게 됐죠. 그러면서 조금씩 마음의 준비를 해왔던 것 같아요. 그런데 워낙 많은 일들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으니까 선뜻 시도를 하지 않다가 이번에 시작하게 된 건데, 굉장히 재미있는 작업이었어요. 바로 두 번째 작업도 들어갔고요.

 

집필 중이신 작품도 소설이죠?


네. 『소실점』이 미스터리와 멜로가 섞인 작품이라면, 지금 쓰고 있는 건 호러와 멜로가 섞인 장르예요.

 

『소실점』에서 사랑에 관해 이야기하셨는데, 정통 멜로가 아닌 미스터리를 택하셨어요. 그 이유가 궁금했는데, 이번에는 호러와 접목시키려고 하시네요(웃음).

 

남녀가 만나서 알콩달콩 사랑하는 멜로를 보는 건 참 좋아해요. 김은숙 작가님 작품들도 다 좋아하고요. 대사도 잘 쓰시고 캐릭터도 잘 잡으시잖아요. 그런데 너무 좋아하면서도, 제가 선뜻 도전할 수 있는 장르는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태양의 후예>에 보면 죽은 줄 알았던 서상사가 돌아와서 연인과 재회하는 장면이 있잖아요. 저는 그냥 무덤덤하게 보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다음 장면에서 하사관이었던 친구와 만나는데 울컥하더라고요. 김하사가 열중쉬어 자세로 울먹울먹하면서 머리만 기대는데, 두 사람이 교감을 나누는 모습에 갑자기 울컥한 거예요. 그러면서 ‘나는 (멜로가) 안 되나 봐’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웃음).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사랑은 반드시 에로스적인 사랑은 아닌 것 같아요. 그런 사랑에 관해서 쓰려면 정통 멜로 장르의 이야기로는 조금 어려운 것 같고요. 그러다 보니까 (다른 장르와) 결합이 되는 것 같기도 해요.

 

영화 <국화꽃 향기>는 정통 멜로라고 볼 수 있는데요. 각색하실 때 어떠셨어요?

 

<국화꽃 향기>는 제가 안 하겠다고 했던 작품이에요. 그런데 영화사 대표님이 꼭 읽어보라고, 이건 꼭 김 작가가 해줘야 된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불치병 부분을 빼자고 했는데 그게 핵심인데 어떻게 빼냐고 하시고, 그러면 아기 이야기를 빼자고 했는데 거기가 바로 핵폭탄인데 뭘 빼냐고 하시더라고요. 그 두 개를 빼면 이 작품을 왜 하냐고요(웃음). 그래서 저는 못 하겠다고 말씀드렸는데 무조건 해야 된다고 하시는 거죠. 스토리라인은 바꿀 수 없다고 하시니까, ‘나는 여기에서 뭘 이야기할 수 있지?’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 결과 원작 소설과 달라진 점이 있나요?

 

사실 영화 <국화꽃 향기>는 포장은 멜로로 되어 있지만 죽음에 관한 이야기예요. 소설은 대학교 때 만난 연인이 7년 뒤에 라디오를 매개로 다시 만나서 결혼하게 되는 이야기인데요. 저는 여자 주인공이 약혼자와 부모님을 잃게 되는 사건을 넣었어요. 사랑했던 사람들이 어느 한 순간에 다 사라져버리는 경험을 지나가게 된 거죠. 시나리오를 쓸 때 제가 생각하는 작품의 의도에 대해서 써서 넣었었어요, 일부러.

 

의도하신 바는 무엇이었나요?

 

인간은 누구나 죽음의 경험을 두 번 하게 되는데, 한 번은 사랑하는 사람이 먼저 떠나가는 것이고 또 한 번은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내가 떠나는 거예요. 태어난 존재들은 반드시 경험하게 되는 거죠. <국화꽃 향기>를 쓰면서 생각했던 건 이런 거였어요. 내가 남겨졌던 기억을 통해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떠나야 하는가’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던 거죠. 여자 주인공이 다시 찾아온 어린 후배의 사랑을 받아들일 때도 언제 죽을지 모르는 인생에 관한 생각이 있었던 거죠. 아기를 지우고 더 치료에 전념하지 않았던 것도, 사랑하는 사람 곁에 사랑할 대상을 남겨주고 가고 싶어서였고요. 그러니까 <국화꽃 향기>는 한 사람이 죽음에 대한 두 번의 경험을 지나가면서 한 선택에 관한 이야기예요. 포장은 멜로이지만 작가의 주제적인 측면에서 멜로는 아니었어요.

 

소설 『국화꽃 향기』에서 여주인공의 이름은 ‘미주’였어요. 영화에서는 작가님과 같은 ‘희재’로 바뀌었는데요. 이름은 직접 지으셨어요?

 

이름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요(웃음). 주제를 바꾸려다 보니까 여자 주인공이 중성적인 이름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아이의 이름을 미리 지어놓고 떠나면 좋겠다고 생각했고요. 그때 남자 주인공 이름은 서인하라고 지어놓은 상태였고, 아이 이름은 두 사람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와서 재인이라고 지으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재’자가 들어가는 중성적인 이름을 찾아가 재영이라는 이름을 지었어요. 그런데 감독님이 마음에 안 든다고 하시는 거예요(웃음). 캐릭터도 김 작가님이랑 비슷하니까 희재로 하자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절대 안 된다고 했죠. 관객들이 알면 저를 자의식 과잉의 미친 여자로 볼 거라고요(웃음).

 

결국 감독님이 이름을 바꿔버리신 건가요(웃음)?


어느 날 PD를 만나러 갔는데, 문을 열고 들어가니까 뮤직비디오가 나오고 있더라고요. 그런데 제목이 <희재>인 거예요. (영화보다) 뮤직비디오가 먼저 나온 거죠. 그래서 제가 이게 무슨 일이냐고 그랬는데 감독님이 워낙 강경하셔서(웃음), 주인공 이름도 희재로 바꾸시고 노래 제목도 그렇게 지으셨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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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관해 교감하고 싶었어요

 

에세이 『나이 듦에 대한 변명』을 출간하신 후에 <채널예스>와 인터뷰를 하셨어요. 그때 “우선 시나리오를 쓸 때는 구상 단계가 굉장히 길어요. 집필에 투자하는 시간은 3분의 1도 채 되지 않아요”라고 말씀하셨는데, 소설 집필 과정은 달랐나요?


비슷해요(웃음).

 

<공공의 적2>의 시나리오는 18번이나 고치셨다고 들었는데요. 집필하시는 시간이 결코 적지 않을 것 같아요.

 

그렇게 18번을 고쳐 쓰는 것도 결국은 앞의 구상이 달라지는 거고요. 고쳐 쓰는 전체 시간 중에서 실제 집필하는 시간보다 구성을 바꾸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쓴 거예요.

 

시나리오는 대사 외의 부분은 영상으로 대체가 되잖아요. 그런데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 서술해야 하니까, 더 치밀한 작업이 필요하지 않나요?


아무래도 시나리오 집필보다는 단어를 고르거나 문장을 만드는 데 훨씬 더 공을 들인 건 사실에요. 그런데 소설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제가 문장에서 수사를 많이 쓰지 않는 편이거든요. 제일 공을 많이 들이는 부분은 깔끔하게 표현하기 위해서 불필요한 걸 빼는 거예요. 또 하나는, 시나리오를 쓰다 보면 지문에 의성어 의태어를 많이 쓸 수밖에 없거든요. 연출이 되어야 하는 부분이니까요. 그런 의성어 의태어적인 표현을 조금 절제하기 위해서 애를 썼어요. 그런 점에서 문장의 달라짐에 대해서 주의를 기울인 부분은 있죠. 같은 분량의 시나리오를 쓰는 것에 비해서 시간과 노력이 조금 더 들었다고 봐야죠.

 

시나리오가 영화로 제작되는 과정에서 많은 내용이 달라지기도 하잖아요. 그에 반해 소설은 완전히 작가의 작품으로 세상에 나오니까, 느낌이 많이 다르셨을 것 같아요.


제가 온전히 책임을 지고 누군가의 간섭을 받지 않는다는 부분은 좋았던 것 같은데요. 저는 소설이든 영화든 퍼블리싱이 되는 순간에 다 보내요. 이건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그래서 굉장히 감격스러워한다든지 그런 부분이 적은 편이에요. 이 작품을 빨리 보내고 다음 작품을 써야지, 하고 옮겨가는 편이에요. 사실 퍼블리싱 되기 전에, 편집자한테 넘기는 순간 거의 다 버려요(웃음).

 

‘작가의 말’에 적으시길 다음 작품을 쓰는 것이 “작품에 함몰되지 않는 저만의 방법”이라고 하셨어요. 다 쓴 작품을 떠나 보내기 위해서 몰입할 다음 작품을 찾으시는 건가요?


그것보다, 써야 될 게 너무 많은데 시간이 너무 없는 편이라 빨리 써야 되는 거죠. 죽기 전에 써보고 싶은 게 너무 많은 거예요(웃음). 늘 시간이 모자른 편이다 보니까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저는 (시나리오를 쓰기 전에) 만화스토리로 시작했잖아요. 그때 워낙 많이 쓰고 빨리 썼어요. 애초에 라이팅 자체를 힘겨워하지 않도록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그래서 그런 것 같아요. 정말 피를 찍어서 작품을 쓰시는 작가님들을 뵈면 존경스러워요. 한 문장 한 문장을 자신의 피와 살처럼 내놓으시는 분들을 보면 참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들죠. 그런데 제가 훈련한 방식이 그렇지 않다 보니까 저는 그렇게 쓰는 스타일은 아니고요. 많이 쓰죠. 많이 쓰다 보면 좋은 거 하나 나오겠죠(웃음).

 

『소실점』은 미스터리 소설이잖아요. 장르의 특성상 ‘독자가 예측하지 못한 결말을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도 있었을 것 같거든요. 어떠셨나요?


끝내 제가 독자들과 교감하고 싶은 게 ‘이건 몰랐지?’는 아니었으니까요. 사랑에 관한 걸 교감하고 싶었기 때문에, 진작 다 알게 되더라도 그게 그렇게 큰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작품의 진폭이 크니까 아마 독자들이 굉장히 의심하면서 끝까지 올 거라는 생각은 했어요. 그런데 지금 쓰는 작품을 보면, 연재 방식으로 쓰고 있는데, 눈치 빠른 사람들한테는 반전 요소가 들키더라고요. 호러 장르이지만 큰 반전이 있거든요. 제가 두 개의 반전 요소를 심어놨는데 하나는 진작에 들키더라고요. 다른 하나는 모르고요. 그래도 예상 못한 반전을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세 번째 장치를 넣게 됐어요.

 

먼저 작품을 읽으신 분들이 반전을 눈치 채지 못했을 때, 쾌감이 느껴지셨나요(웃음)?

 

네. 그래도 나중에 알려졌을 때 ‘에이, 뭘 그거 가지고 그래요’라고 할까 봐, 그에 대한 초조함은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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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소실점』, 영화로 탄생할까?


『소실점』은 ‘시점’에 대한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네가 인식한 나는 나 자체가 아니라 너의 시각을 통과한 나이고, 그것은 나의 실존과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지”라는 말이 의미심장하게 들리더라고요.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경향들이 많이 있죠. 믿고 싶은 대로 믿고 싶어 하고요. 거기에서 벗어나면 굉장히 화를 내죠, 많은 관계들이.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준다고 해서 그거에 대해서 어떤 책임도 같이 나눠서 져줄 것도 아니면서 말이죠. 게다가 현대 사회로 넘어오면서 포장된 이미지로 살지 않으면 생존 자체가 위협을 받는 직업들도 많아졌잖아요. SNS 시대에는 더 그렇고요. 그것 때문에 서로 간에 불행하면서도, 포장하고 사는 사람이나 그걸 감시하는 사람이나 서로 불행하면서, 본질적인 걸 오픈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있는 것 같아요. 그걸 통해서 교감을 할 만큼의 에너지도 들이지 않으려고 하고요. 이런 부분들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누구나 여러 모습의 ‘나’를 가지고 있죠. 그 중에서 상황이나 상대에 맞는 모습을 뽑아서 가면처럼 쓰고요. 이런 주제로 작품을 쓰게 되신 계기가 있었나요?


겉으로 드러나는 메시지는 사회적인 가면 쓰기에 관한 것일 수 있어요. 제가 그런 메시지에 관심이 있는 모양이에요. 예전에 희곡을 써볼까 생각했을 때 가지고 있었던 아이템이거든요. 싸이월드에 그런 글을 쓴 적도 있어요. 가면을 바꿔 쓰는 연습을 부지런히 하지 않으면 어느 순간 가면과 내 얼굴이 붙어버리고, 더 이상 가면을 부지런히 바꿔 쓰지 않아도 사람들이 알아서 인사하고 알아서 높은 자리를 주는 순간이 온다고요. 그럴 때 굉장히 완고하고 무례한 사람이 된다고 썼었는데요. 저한테 사회적 가면에 대한 생각이 조금 있는 것 같아요.

 

『소실점』에 대한 따님의 반응이 궁금하다고 하셨어요. 어떤 반응을 보이던가요?


블로그인가 페이스북인가, 어디에 글을 올렸더라고요. 자기가 책을 잘 안 읽는데 두 시간 반 동안 내리 읽었다고, 딸이 책을 읽는 모습을 보고 싶으면 빨리 두 번째 소설을 쓰라고요(웃음). 저희 딸하고 저는 모녀 관계라기보다는 친구 같은 사이라서 격려성 이야기를 하지는 않고요. ‘잘 썼네, 재미있구만 뭐’ 하더라고요(웃음). 이번 소설이 19금 미스터리이다 보니까 제가 직접 주기는 뭐하다고 말했었거든요. 알아서 보면 몰라도 엄마로서 주기는 좀 그렇다고요. 그랬더니 ‘뭐 이걸 못 준다고 그래, 좋구만’ 하더라고요.

 

말씀하신 것처럼, 작품 속에 수위 높은 묘사들도 등장해요. 쓰실 때 힘든 부분은 없으셨어요?


네. 이 작품을 내놓으면 작가의 경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거라는 생각도 했어요. 이게 경험 없이 쓸 수 있는 거냐는 식의 이야기가 나올 텐데,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람을 만나면 제가 <실미도>를 썼다는 것도 좀 참고를 해달라고 이야기를 해야겠다 싶었어요(웃음). 상상의 힘이라고 하는 것을 양쪽 극단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작품이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면서요. 저한테는 전투씬을 상상하는 거나 정사씬을 상상하는 거나 크게 다르지 않아요. 다 유사한 상상의 근거니까요.

 

『소실점』이 영화로 제작된다면 어떤 모습일까’라는 생각도 해보셨어요?


처음부터 영화를 보고 기획을 한 작품이고, 이미 영화 판권에 대한 이야기도 있어요.

 

출연 배우에 대한 생각도 하셨겠네요?


제작사와도 계속 논의하고 있는 부분이에요.

 

시나리오 각색도 직접 하실 거죠?


생각 중이에요. 제작사 쪽에는 원칙적으로는 안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어요. 왜냐하면 작가로서 할 말을 다 했다고 생각하거든요. 시나리오로 넘어가면 굉장히 테크니컬한 작업이 될 텐데, 저는 다 쏟았으니까 영화를 통해서 새롭게 이야기할 만한 건 별로 없어요. 제 손을 떠난 작품 같거든요. 그래서 다시 이 이야기로 들어가는 거에 대해서는 조금 회의적인데... 만약 제작사가 정말 필요로 하고 감독님이 같이 작업하고 싶다고 하시면 그럴 수도 있겠죠. 그런데 작가로서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요.

 

다른 사람에 의해서 작품이 변형될 수도 있는데, 싫지 않으세요?


그런 생각하면 영상 작업은 하기 힘들어요. 다 같이 협업하는 거고 굉장히 많은 사람의 노력이 들어가는 거라서, 협업을 위해서 내가 열어줘야 하는 부분에 대해서 유연한 태도를 갖고 있어야 돼요. 그렇지 않으면 굉장히 마음에 상처도 많이 받고, 이게 내 작품이다 아니다 하는 마찰이 생기기도 하죠.

 

본인의 의도에 반하는 방향으로 영화가 만들어지면, 원작자 입장에서는 마음이 너무 아플 것 같아요.


마음이 아프죠.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감독으로 살아간다는 건 한 작품에 목숨을 다 거는 거예요. ‘더 잘할 수 있는데 다음을 위해서 남겨둬야지’ 이런 생각을 못해요. 그 순간에 다 쏟아 부어서 증명하지 않으면 다음이 보장되지 않는 직업이에요. 현 작품에서 자신이 가진 패를 다 보여주고 목숨을 걸고 정말 최선을 다한 거예요. 그런 결과에 대해서 뭐라고 하는 건 능력 없다고 욕을 하는 거거든요. 제가 그렇게 재능이 풍부한 사람이 아니라서 그런지, 저는 능력 없는 걸 가지고 별로 욕하고 싶지는 않아요(웃음). 약간 아마추어리즘이기는 한데요. 정말 죽을 만큼 노력을 다했는데 그것밖에 안 됐으면, 거기에는 백만 가지 사연이 있었겠죠. 재능의 문제일 수도 있고, 재정의 문제일 수도 있고, 현장 상황의 문제일 수도 있고, 사람이 너무 좋아서 모질지 못해서 그랬을 수도 있고, 현장에서 괴물이 되어야 하는 순간에 괴물이 되지 못한 착한 성품 때문에 타협하다가 그렇게 됐을 수도 있고... 정말 백만 가지 사연이 있는 건데, 그걸 가지고 뭐라고 하고 싶지는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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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사랑에 대한 이야기예요


『소실점』의 강주희 검사는 “인간의 내면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최선우의 사망 사건을 맡게 되는데요. 소설가로서 같은 궁금증을 갖고 계실 것 같아요. 어떠세요?


저는 크리스찬인데, 내밀한 인간의 죄성에 관한 생각을 굉장히 많이 해요. 다른 사람을 볼 게 없어요. 저를 정직하게 보면 돼요. 누구나 가슴 속에 굉장히 저열한 욕망을 가지고 있으면서, 마치 자신은 그런 게 없는 사람인 것처럼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잖아요. 대부분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참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사람은 그걸 굉장히 잘해요. 자기 자신한테 잘하는 거죠. 자신의 죄는 미워하지만 자신을 정말 사랑해요. 그러면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미션은, 내가 내 죄에 대해서 너그럽게 용서하고 나를 사랑할 수 있었듯이, 나를 보듯 그 사람을 보기만 하면 되는 거예요. 그러면 죄만 미워하고 사람은 안 미워할 수 있어요. 그런데 자꾸 교묘하게 그렇게 안 하려고 하는 거예요. 그런 죄성에 관한 생각을 제일 많이 해요.

 

소설을 읽을 때 결말을 미리 보는 분들도 계시잖아요. 먼저 『소실점』을 읽은 독자로서 ‘이 작품만은 꼭 순서대로 따라가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은데요(웃음). 작가님은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 없으세요?


제가 이 작품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라고 했잖아요. 자신이 생각하는 사랑에 관해서, 사랑이 도대체 무엇일까에 관해서 생각해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소설에는 남녀 간의 사랑으로 그려져 있기는 하지만, 에로스적인 사랑만 이야기하는 건 아니에요. 내가 보답 받기 위해서 사랑하는 것은 아닌가, 사랑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에 대해서만 사랑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사랑할 만한 가치가 있는 대상은 누구나 사랑할 수 있지만, 사랑할 만한 가치가 없는 존재도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진짜 사랑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해보시면 좋을 것 같고요.

 

앞으로도 계속 장르문학을 쓰실 계획인가요?


네.

 

장르문학에 대한 편견들이 있잖아요. 휘발성 강한 오락물, 킬링타임용 소설이라고 치부하는 건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장르문학을 선택하신 거예요(웃음)?


미스터리, 스릴러, 호러를 흔히 장르문학이나 중간문학이라고 하잖아요. 이런 작품들이 좋은 영화가 되고 좋은 드라마가 돼서 다양한 콘텐츠로 발전해 나가는 모델을 잘 안착시키고 싶어요. 그렇게 해서 이 일을 하시는 분들에게 좋은 길을 만들어 드리고 싶기도 하고요. 제가 알기로는 굉장히 힘들게 작품세계를 유지하면서 작업을 하시는 많은 작가님들이 계시는 장르예요. 그런 분들이 정말 애써서, 여러 가지를 희생해 가면서 지키고 있는 분야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영화나 방송은 조금 많은 부분에서 대중적인 환호를 받는 분들도 계신데, 물론 다 그런 건 아니고 여전히 많이 힘드시지만, 장르문학에 있어서는 외국 소설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것 같아요. 노력을 많이 할 테니까 조금 더 애정을 가지고 작가님들을 응원해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장르문학이라는 콘텐츠가 가진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지금은 웹툰이 우리나라 원작 시장에 거의 다 기여하고 있어요. 참 좋은 웹툰을 많이 만들어주셔서 독자들도 즐겁고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도 기획을 할 수 있는 거죠. 그런데 웹툰은 창작 시간도 굉장히 길고 노동력도 많이 들어가고, 그러다 보니까 제작비도 굉장히 높거든요. 그리고 웹툰의 특성상 이야기의 힘과 그림의 힘이 공존하는 상태이기 때문에, 영상으로 제작되거나 다른 형식의 콘텐츠로 넘어갈 때 이야기적 요소만 추려내는 작업을 해야 되거든요. 그에 비해서 장르문학은 이야기 자체의 힘으로만 가져가고 있는 거니까, 콘텐츠의 원작으로써 굉장히 좋은 토양이 될 수 있고요. 제작 시간이라든가 제작 비용이 웹툰에 비해서 굉장히 적게 들어요. 이 시장을 활성화시켜야 대한민국 콘텐츠가 세계시장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체력을 키울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소실점김희재 저 | CAB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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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시미 이치로 “부모가 건강하지 않아도 자식은 행복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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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움받을 용기』, 『나를 사랑할 용기』, 『행복해질 용기』등에서 삶의 의미를 입체적으로 살펴온 기시미 이치로가 색다른 질문, 『나이 든 부모를 사랑할 수 있습니까』를 가지고 한국을 찾았다. 나이가 들어 점점 약해지고 병이 들기도 하는 부모와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는 일이 가능한지를 따지는 것이 꽤나 도발적이라고 생각한 처음의 인상과는 달리 기시미 이치로의 글은 시종 침착하고 편안했다. 저자는 실제 20대 대학원 시절에 어머니를, 50대에 아버지를 간호하면서 병든 부모를 간호하는 일의 어려움과 관계를 회복하는 놀라움, 오늘을 사는 즐거움을 발견했다. 힘들 때도 많았지만 치매를 앓았던 아버지로부터 삶의 지혜를 얻기도 하고, 함께 간호하는 아내로부터 건강한 태도에 대한 통찰을 발견하기도 했던 것.


그는 “과거를 버리고,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지면” 된다고 강조한다. 언제나 건강하고 든든했던 부모였든 대화도 없고 싸움만 잦았던 부모였든 “지금은 그리로 눈을 돌리지 말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좋은 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믿는 것만이, 지금 그리고 여기에 집중하는 것만이 오늘의 행복을 찾고 살아갈 용기를 갖는 하나의 길잡이별이 될 것이다.

 

벚꽃 피는 계절에 벚꽃 구경을 시켜드리려고 부모님을 모시고 외출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벚꽃이 보고 싶어서 즐기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 꽃놀이를 부모님을 위해서 간 것이 아니라 부모님도 같이 가서 즐긴 것이라고 생각하면, 혹여 부모님이 나중에 꽃놀이 간 사실을 잊어버렸다 하더라도 그 일로 낙담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꽃놀이를 함께 간 것을 기억하든 잊어버리든 상관없이, 그 시간을 부모님과 함께 즐길 수 있으면 되는 겁니다.(1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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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지면


수명은 길어지는 반면 가족이라는 틀은 헐거워지고 있습니다. 이 점은 일본과 한국 사회가 비슷할 텐데요. 이런 현실에서 나이 든 부모를 사랑할 수 있느냐는 꽤 도전적인 질문을 던졌어요. 

 

저는 20대에 어머니를, 50대에 아버지를 간병한 적이 있습니다. 힘이 들었지요. 지금은 현실적으로 그와 같은 일을 겪으면서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주변에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조금이나마 편안하게 그 시간을 보낼 수 있는지 조언할 부분을 고민했습니다. 이것이 이 책을 쓰게 된 이유입니다.

 

실제 저자의 체험을 많이 담았는데요.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분들에게 꼭 전하고자 한 메시지를 꼽는다면 무엇일까요?


부모와 자식 간에 어떻게 좋은 관계를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저도 아버지와의 관계가 좋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부모와 관계가 좋지 않았다 하더라도 앞으로 좋은 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깨달았습니다. 이 점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미움받을 용기』에서도 강조했던 ‘지금, 여기’라는 부분을 이번 책에서도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 상황에 집중한다는 것이 관계 개선에 어떤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과거를 버리고,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지면 앞으로의 관계를 좋게 만들 수 있습니다. 과거를 극복하는 것인데요. 아버지께서 어느 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잊어버린 건 어쩔 수 없다”고요. 치매에 걸린 분들은 늘 의식이 몽롱한 것이 아니고, 어느 날 갑자기 하늘이 맑아진 것처럼 의식이 맑아지는 순간이 있거든요. 과거가 있다고 해도 잊어버리는 아버지인데 아버지 스스로가 과거를 잊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순간이 있었던 것이지요. 아버지는 가능하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다고 하셨어요. 결국 부모나 자식이나 모두가 지금까지의 관계는 지난 것이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면 앞으로 좋은 관계를 구축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부모 자식 간의 간호에 대한 이야기를 썼지만 이것은 인간관계 전반에 적용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와 닿는 이야기지만 실제 생활 안에서 실천하기 어려울 때가 많잖아요. 매 순간 감정을 통제하기도 쉽지가 않고요. 실천을 방해하는, 가장 경계해야 할 생각이 있다면요?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라 생각하고 포기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부모와 자식의 이상적인 관계에 대해 알고 있다면 관계를 지속할 수 있습니다. 감정적이 될 수밖에 없지, 하고 생각해서 포기하면 현실을 바꿀 수는 없는 것이지요. 저도 항상 침착한 상태로 있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감정적으로 어려움을 느낀 적도 있어요. 그러나 바꾸려는 생각을 가져야만 현실도 바꿀 수 있습니다.

 

저자가 부모님을 간호하는 과정에서 감정적 어려움을 느꼈을 때 어떻게 대응했는지, 구체적인 장면을 들려주세요. 같은 상황에 있는 분들에게 힌트가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버지께서는 거의 하루 종일 주무셨어요. 아침 드시고 주무셨다가 점심 전에 일어나셨죠. 어느 날은 일어나셨는데 오전 11시 50분이었어요. 점심시간까지는 10분이 남았고, 저는 곁에서 원고 작업 중이었습니다. 점심 식사를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얘기를 드리자 그 순간 아버지가 굉장히 분노하셨습니다. 그런 작은 것에 신경이나 쓰는 너는 나쁜 놈이다, 하시면서 말이에요. 저는 그때 남은 10분을 아버지께 드리기로 결심했습니다. 아버지가 다시 주무실 때 다시 일을 하면 되는 건데 그 10분 때문에 아버지와 안 좋아지고 저도 마음이 안 좋았던 거니까요. 서로 분노하느라 에너지를 쓰지 않는 게 상황을 바꾸는 좋은 장치가 됩니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이미 권력다툼일 뿐입니다. 자기가 옳다는 고집을 피우면 안 됩니다. 상황을 좋게 하는 것이 중요하지 누구의 말이 옳은지 따지는 것이 중요한 건 아닙니다.

 

한 구절이 떠오르네요. ‘인간관계에서는 주는 것만 생각하면 됩니다’라고 한 부분이요. 내가 한 만큼 상대도 해줬으면 하는 마음을 버려야 한다는 거였어요.


인정받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간호나 육아가 굉장히 괴로운 일이지요. 저희 아이가 어렸을 때 7년 동안 유치원 등하원을 맡아 한 적이 있습니다. 후에 아이에게 아빠가 데려다주던 기억이 나느냐 물었어요. 전혀 기억을 못 하더군요. 아이를 자전거 뒷자리에 앉힌 채 자전거가 넘어져서 아이가 다친 적이 있는데 그것만 기억하더라고요.(웃음) 나이 든 부모와의 관계는 더 힘들죠. 방금 한 것도 잊어버리니까요. 어느 날 아버지께서 “고맙다”고 하셨습니다. 식사 준비를 하던 때였어요. 다 드신 후 식기를 가져가려고 했더니 그때 다시 “고맙다”고 하셨죠. 그리고 바로 다음 순간 “밥 아직 안 주냐”고 하셨어요.(웃음) 고맙다는 말을 하신다면 좋겠지만 만약 그런 말을 안 하시더라도 실망하지 않는 것, 그것이 중요한 점입니다. 공헌감을 가지면 인정받고 싶다는 마음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즉 타인에게 공헌할 때 우리는, 설사 아무도 그것을 알아주지 않아도 ‘나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주관적인 감각, 곧 ‘공헌감’을 가지면 그걸로 족한 걸세.(중략) 이미 자네도 눈치 채 지 않았나? 바로 “행복이란 공헌감이다.” 이게 행복의 정의라네.(『미움받을 용기 1』, 287-2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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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을 벗는 노력


부모와 자식이 인간 대 인간으로 마주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관계는 비교적 수직적인 관계이기 때문에 한쪽이 노력한다고 가능한 것은 아닐 텐데요. 이런 불균형 속에서 변화를 위한 실천 방법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아버지가 어느 날 저에게 카운슬링을 받아보고 싶다고 하셨어요. 한 달에 한 번 카운슬링을 했죠. 카운슬링을 할 때 저희 관계는 부모와 자식 관계가 아니었어요. 인간 대 인간의 관계, 수평적 관계였습니다. 그 관계가 정말 마음 편하고 즐겁다는 걸 서로가 경험했습니다. 페르소나(persona)라는 말이 있지요. 라틴어로는 ‘가면’이라는 의미로 영어 ‘person’ 즉, 사람이라는 말과 관련이 있습니다. 부모가 부모라는 가면을 벗는, 자식이 자식이라는 가면을 벗는 노력을 한 번이라도 한다면 관계는 달라질 겁니다. 저도 올해 서른이 되는 아들이 있는데요. 그러나 저는 아버지가 제게 고민을 털어놓은 것처럼 아들에게 고민을 털어놓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고민이나 약점을 보여주는 건 굉장한 용기가 필요한 것이니까요. 아직 아들에게 고민을 털어놓을 용기는 없습니다.(웃음)

 

카운슬링이 아주 좋은 계기가 됐네요. 반드시 카운슬링이 아니더라도 비슷하게 서로 마음을 허심탄회하게 보여줄 계기가 필요하겠군요.


카운슬링으로 관계가 달라지기 전까지는 아버지가 하는 말에 악의가 있다고밖에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한 번은 카레를 만들어드렸는데요. 세 시간이 걸렸어요. 밀가루를 볶는 일부터 시작했거든요.(웃음) 그런데 아버지가 카레를 드시자마자 “다시는 만들지 마라”라는 거예요. 맛이 없어서 그러신 줄 알았는데 이후 관계가 변하고 보니 그때 진짜 하고 싶었던 말씀은 “넌 학생이니까 공부에 집중해라, 나 때문에 이렇게 손이 가는 일은 만들지 말아라”라는 의미였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관계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한쪽이라도 용기를 가진다면 말입니다. 제 경우 아버지께서 훨씬 더 용기를 갖고 계셨던 것 같습니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부모를 간호해야 하는 상황에 놓일 텐데 그때 간호하는 일을 부모와의 관계를 변화시킬 기회라고 생각한다면 조금 편안해지지 않을까 싶네요.


저는 10년 전 심근경색으로 3년 투병을 했습니다. 병이 낫고 나니 전처럼 일을 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는데요. 그때 마침 아버지가 치매라는 것을 알게 되었죠. 모처럼 사회에 복귀하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아버지 때문에 불가능하게 되었다는 생각에 괴로웠습니다. 그러나 어차피 아픈 직후였기 때문에 일 자체는 많지 않았거든요. 지금처럼 어제는 도쿄, 오늘은 서울에 있는 생활을 했다면 모르지만 말이에요. 일을 적게 했기 때문에 간병이 가능했습니다. 저는 만년의 아버지를 간호할 수 있었던 것이 행복했다고 생각합니다. 어머니도 제가 25살에 돌아가셨는데요. 대학원을 다니고 있을 때라 매일 간호할 수 있었습니다. 반 년 휴학을 하고 간호했는데 그것이 굉장히 행복한 일이었다는 사실을 나중에 깨달았습니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라면 싫어하거나 피하지 말고 즐거워하는 게 좋겠죠.

 

물론 어려운 일이긴 하겠지만요.


육아는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 예측이 되지만 간병은 아닙니다. 굉장히 오래 사실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해야 합니다. 간병이 앞으로 몇 년이나 계속될까 생각하면 간병 자체가 괴로운 일이 되어버리겠지요. 지금 이 순간 부모와 어떻게 좋은 관계를 맺을지에 집중하면 훨씬 좋을 겁니다. 간호 자체는 굉장히 에너지를 소모하는 일이긴 한데요. 앞으로를 생각하면 더 힘들어요. 오늘 어떻게 즐겁게 보낼까,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쪽이 낫습니다.

 

그때 저는 ‘사람은 한 번밖에 죽지 않아!’하고 스스로에게 되뇌었습니다. 이상한 일이지만, 그런 생각이 제가 현실을 받아들이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가끔 침실 문을 열어보면 아버지가 평온하게 코를 골며 주무시고 계셨습니다. 그러면 아버지가 살아 계신 것만으로도 고맙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소에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아버지가 감정적이 되어 화를 내셔도 침착하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나이 든 부모를 사랑할 수 있습니까』, 140-1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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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으로 남을 용기


여러 번 생산성을 기준 삼는 것을 경계했어요.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사람에 대해 생산성을 기준으로 생각하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가 있을까요?


우리에겐 일할 수 있는 젊음이 있기 때문에 일에 가치관을 둘 수 있지요. 그러나 젊은 사람도 병에 걸리면 일을 못합니다. 저도 10년 전 심근경색 때문에 일을 다 잃었는데요. 전혀 미동도 못하는 상태였습니다. 이런 내가 과연 살아갈 가치가 있는지 고민을 했었습니다. 가족한테 해만 끼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 생각했습니다. 만약 이렇게 쓰러진 사람이 가족이나 친한 친구였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하고 말입니다. 아무리 건강이 안 좋다 하더라도 그가 살아있는 것 자체에 행복을 느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자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다른 사람에게 공헌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 생각을 나 자신에게 적용시켜도 괜찮았던 거지요. 살아있는 것 자체를 기뻐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있습니다.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계속된다 하더라도 나의 가치 자체는 저하되지 않는 것이지요.

 

굉장히 중요한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일할 수 있는 사람은 일을 하면 됩니다. 정신병원에서 일한 적이 있습니다. 60명 정도의 환자가 모여 있는 곳이었어요. 요리를 만드는 시간이라 식재료를 사러 가자고 했는데 5명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장을 보고 돌아왔더니 요리를 돕겠다는 분이 15명이 되었습니다. 요리가 다 돼서 먹을 때가 되자 대부분의 환자들이 왔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장 보러 가거나 요리 만들 때 도움주지 않은 사람들을 탓하지 않았습니다. 암묵적으로 이해를 하는 거죠. 일할 수 있는 사람도, 일할 수 없는 사람도 같은 가치를 가지고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 겁니다. 생산성을 보고 사람의 가치를 정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은 자신의 생산성을 따지느라 우울감에 빠지는 사람들이 많기도 하죠. 그런 분들에게도 도움이 되는 이야기 같아요.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렸을 때부터 부모 또는 세상으로부터 있는 그대로 있어선 안 된다는 가르침을 받으며 자라왔는데요. 있는 그대로 있는 것이 나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그런 나 자신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학벌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하잖아요. 그래서 열심히 공부하지만 입시에 성공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 결과 부모, 사회의 기대에 못 미친 사람은 도리어 나빠지고자 생각을 해버립니다. 적극적으로 문제 행위를 일으키기도 하죠. 소극적인 사람은 마음의 병을 갖게 되기도 합니다.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특별히 좋아지지도, 특별히 나빠지지도 않아도 괜찮다고 말합니다. 보통으로 남을 용기를 가지라는 것이죠. 있는 그대로의 나로 시작하자고 이야기합니다. 경쟁이 아니어도, 자기 자신을 높이려는 노력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그 노력 자체는 중요하지요. 지금의 문제는 경쟁을 시키는 거예요.

 

경쟁이 문제인 이유는 뭔가요?


이기려고만 생각하죠. 부정행위를 하더라도 이겨야 한다는 거예요. 그런 사회에서 사는 사람의 삶이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경쟁에서 이기는 것과 생산성을 생각해서 나는 가치가 없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생산성에 가치를 두지 말고, 경쟁을 생각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해요. 그런 식으로 살아가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부모가 자녀에게 가르쳐야죠. 나이 든 부모는 이제 경쟁하지 않죠. 생산성에 있어서도 아무것도 안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방금 있었던 일도 잊어버리고요.(웃음) 젊은 자식은 그런 부모가 불쌍하다고 여길 수 있어요. 그러나 어찌보면 인간으로서 이상적인 삶을 살고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도 그런 식으로 살아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면 좋을 겁니다.

 

살아있는 것 자체로 누군가에게 공헌하고 있다고 하신 앞의 말씀과 같군요.

 

공헌감을 가지면 자기 자신이 가치가 있다고 느낄 수 있죠. 스스로에게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면 용기를 가질 수 있고요. 그것은 대인관계를 만드는 용기입니다. 젊은 사람에게도 간호부터 시작한다는 것이 하나의 새로운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아버지 간호를 할 때 지금 간호 하지 않고 강연을 하면 돈을 많이 벌겠다, 생각한 적이 있어요. 한 번은 아버지께 물어봤어요. 매일 간호를 하지만 아버지는 주무시기만 하니까요. 제가 오는 의미가 별로 없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아버지가 “아니, 네가 와주니까 안심하고 잘 수가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때 저의 가치는 아버지 곁에 있는 것 자체에 있었던 것이죠. 그걸 인정할 수 있으려면 용기가 필요한 거예요. 밖에서 일하고 돈 버는 것만이 인생의 가치는 아닙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상황을 바꿀 순 없지만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에 달린 것 같은데요. 그중에서도 ‘진지한 것과 심각한 것은 다르다’는 말이 무척 의미 있는 태도가 아닐까 싶어요.


진지해지는 게 중요하죠. 엉터리로 사는 건 좋지 않을 겁니다. 그렇다고 심각해질 필요는 없습니다. 이런 태도의 차이는 관계에도 큰 차이를 가져옵니다.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항상 웃음을 잃지 않는 사람이 진짜 대단한 거죠. 간호를 받는 부모가 괴로워하는 자식을 볼 때 절대 좋을 리는 없습니다. 나 때문에 자식이 힘들다고 생각하는 건 정말 불행한 거죠. 자식도 부모를 헌신적으로 간호했다고 행복해지는 건 아니에요. 자식이 행복하기 때문에 부모에게 공헌하고 좋은 간호를 할 수 있는 겁니다. 자식은 부모를 간호하면서도 행복해져도 됩니다. 간호 때문에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건 아들러가 말하는 ‘원인론’이거든요. 무슨 일이 있다고 불행해지는 것도 행복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부모가 건강하든 건강하지 않든 자식은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고 행복해져도 되는 것이죠. 자식이 행복하면 행복이 부모에게 전염됩니다.

 

앞서 말씀하신 대로 그것은 모든 인간관계에 해당하는 말이겠죠.


어느 날 아버지가 물으셨어요. 언제 장가갈 생각이냐고요. 결혼한 지 30년이 넘었는데(웃음) 아버지는 제 아내를 인지하지 못하신 거죠. 나중에 아버지가 요양 시설에 들어가게 되셔서 아내와 함께 시설에 다녔는데요. 아버지가 아내에게 “당신은 오늘 당번이십니까”하셨어요. 그곳 직원인 줄 아셨던 거죠. 그런데 아내는 그 말에 서운해 하지도, 화를 내지도 않았습니다. 젊은 직원으로 오인 받아 좋다고 할 뿐이었습니다.(웃음) 매 순간 화를 내고 있으면 간호는 못해요.

 

마지막으로 비슷한 시간을 보내고 계신 분들에게 응원의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여러 번 말씀드렸지만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라는 말 밖에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런 말은 좀 그렇지만 부모가 언제까지 살 거란 보장은 없죠. 부모가 돌아가셨을 때 후회하지 않도록 오늘 이 하루를 살아가는 용기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간호를 할 때 후회하지 않는 일은 없다는 것도 알아두어야 하고요. 나중에 반드시 후회하는 순간이 오더라고요. 그것은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부모한테 완벽한 간호를 하지 못해도 자신은 괴로워해서는 안 됩니다.

 

행복, 육아, 일 그리고 부모와의 관계 등 다양한 이야기를 전해오셨는데요. 다음 책은 어떤 이야기가 될까요? 준비하고 계신 책이 있는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지금 쓰고 있는 책은 ‘살아갈 용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특히 죽음에 초점을 맞춰 쓰고 있습니다. 불교에 ‘생로병사(生老病死)’라는 말이 있죠. 이 네 가지 괴로움 중 첫째는 태어나는 것(生) 혹은 사는 것입니다. 살아가고 있을 때 고생도 있지만 좋은 일도 있다는 건 거짓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살아가는 것 자체가 괴로움입니다. 아들러는 모든 고민은 대인관계에 있다고 얘기를 하는데요. 그런 의미에서는 대인관계가 살아갈 즐거움이 될 수 있어요. 고통 자체를 없애는 게 아니라 고통 속에서도 얼마나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지 그것을 추구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죽음(死)을 가장 큰 고통이라고 믿고 있는데 그것에 대한 견해를 바꾸는 책을 쓰고 있습니다.


 

 

나이 든 부모를 사랑할 수 있습니까기시미 이치로 저/박진희 역 | 인플루엔셜
베스트셀러 『미움받을 용기』의 저자이자 아들러 심리학의 권위자인 기시미 이치로가 이번에는 ‘나이 든 부모와 어떻게 지낼 것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가지고 돌아왔다. 실제 저자가 20대에 어머니를 뇌경색으로 잃고, 50대부터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간병하면서 깨달은 인생의 깊이와 참뜻이 담겨 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민식 PD “당신만 되는 영어 공부법이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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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소문으로 29쇄를 찍은 책이 있다. 김민식 MBC PD가 쓴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 시트콤, 로맨틱 코미디를 만들던 PD는 어쩐 일로 영어책을 쓰게 된 걸까? 이유인즉, 그는 현재 비제작부서에서 일하고 있다. 알만한 사람은 알 MBC 파업 이야기는 차치하고, 김민식 PD의 프로필을 살펴 보자. 우선 그는 대학에서 자원공학과를 전공, 1992년에 한국3M 영업직으로 들어갔으나 세일즈를 하기엔 끈기가 부족했다. 이후 한국외대 통역대학원에 입학하여 통역사가 되려고 했으나 시트콤을 너무 좋아한 나머지 1996년 MBC 공채로 들어가 <!느낌표>, <일요일 일요일 밤에>, <뉴논스톱>을 만들다가 돌연 드라마 PD로 변신, <내조의 여왕>, <글로리아>, <여왕의 꽃> 등을 연출했다.

 

방송인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들어가고 싶었던 그 방송사에서 김민식 저자는 ‘영어 잘하는 PD’로 통했다. 회사 선배들은 “얘가 우리 회사에서 영어를 가장 잘해”라며, 덕담을 던졌지만 김민식 PD에게는 비수처럼 꽂혔다. 연출력을 인정 받아야 하는 직종을 두고, 영어 실력을 치켜세우다니. 이것은 국가대표 축구선수에게 탁구를 잘 친다는 말이 아닌가? 이후 김민식 저자는 ‘통역사 출신 PD’라는 타이틀을 불식시키기 위해 로맨틱 코미디 PD로 20년의 탄탄한 경력을 쌓았다.

 

독자들이 오해할까 미리 말한다.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는 영어학습서가 아니라 자기계발서다. 그러니 이 책은 영어 공부를 할까 말까,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는 독자를 위한 책이다. 영어에 대한 강한 동기 부여를 준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재미, 전직 시트콤 PD의 전적이 어김없이 발휘됐다. 아마 이 책을 읽다 중간에 책을 엎는 독자는 흔치 않을 것이라 장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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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책 한 권, 출근시간 20분만 활용해도


드라마 PD가 영어책을 썼다. 어떻게 쓰게 된 책인가?

 

평생을 로맨틱 코미디 PD로 살고 싶었는데, 2년 전 가을 비제작부서로 발령이 났다. 사람이 부당한 인사 대우를 받으면 잠을 잘 수가 없다. 며칠 동안 새벽 3,4시에 눈이 떠졌다. 나는 과연 뭘 할 수 있을까, 오만 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결국 내가 선택한 일은 컴퓨터 앞에 앉아 블로그에 글을 쓰는 일이었다. 마음이 힘들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기분이 좋아질 수 있는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곰곰이 따져보니 20년 전 영어 공부를 할 때가 정말 좋았다. 열정이 넘쳤던 그 때를 떠올리면서 글을 쓰던 중에, 5년 전 첫 책을 함께 만든 출판 에이전트를 만났다. “나 요즘 너무 꿀꿀하다”고 하소연하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책을 낸 출판사가 망했다는 거다. (웃음) 개정판을 내보자고 제안을 했는데, 그대로 내고 싶진 않았다. 첫 책의 한 챕터였던 ‘공짜영어스쿨’을 더 깊게 써보기로 결정했다.

 

책이 출간된 날짜가 1월 11일이다. 3달이 채 되지 않았는데 29쇄를 찍었다. 예상했나?


전혀, 꿈에도 몰랐다. 내가 첫 책으로 받은 인세가 총 500만 원이다. 3년 동안 회사에서 드라마를 찍으면서 시간이 날 때마다 밤새서 정말 열심히 썼는데, 시간당 인건비를 따져보면 정말 작은 액수다. 차라리 드라마 연출을 열심히 하는 게 낫다. 책이 이렇게 잘 되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인터뷰나 홍보 활동도 많이 안 했다. 순전히 입소문으로 책이 팔린 건가?


아무래도 온라인서점의 리뷰 덕을 본 것 같다. 하루는 담당 편집자에게 전화가 왔다. 출판사에서 앱 푸쉬 메시지 광고를 돌렸는데, 그 날 200권이 나갔다고 하더라. 광고를 하면 이렇게 즉각적인 반응이 있나 했더니, 모든 책이 그렇지는 않다고 하더라. 내가 파악한 바로는 책 소개를 읽고 들어온 독자가 리뷰를 읽고 구입까지 이어진 게 아닐까 싶다.

 

특히 기억에 남는 리뷰가 있나?


내 개인 블로그(공짜로 즐기는 세상 / 티스토리)에 와서 댓글을 달아준 할머니 한 분이 있다. 할머니께서 1월에 부부 동반으로 다낭에 놀러갔는데, 현지 면세점 직원과 영어로 대화하는 걸 보고 친구들이 보고 깜짝 놀랐단다. 친구들이 “내가 너를 수십 년을 봐왔는데 어떻게 이렇게 영어를 잘하냐?”고 부러워했다고 하더라. 할머니는 내가 책을 내기 1년 전부터 꾸준히 블로그 글을 읽으셨던 분이다. 무척 반갑고 감사했다.

 

시트콤, 로맨틱 코미디를 만들었던 PD답게 우선 글이 찰지다. 읽자마자 빠져든다.


“재밌게 읽었다”는 평을 들을 때, 제일 고맙다. 아무리 좋은 공부법이라도 재미가 없으면 따라 하는 사람이 적을 테고, 그러면 좋은 공부법의 의미도 퇴색된다. 어떤 일이든 재미가 있어야 지속할 수 있다. 요즘 PD 후배들을 만날 때마다, 책을 쓰라고 말한다. PD는 책을 쓰기 좋은 저자군이다. PD는 항상 대중을 향한 스토리텔링에 단련이 돼 있기 때문이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자막을 쓸 때는 7살부터 70살까지 모두 이해할 수 있는 문장을 써야 한다. 자막을 쓰는 마음으로 책을 쓴다면, 좋은 책이 정말 많이 나올 것 같다.

 

책 이야기로 들어가보자. 제목이 곧 핵심이다. “영어책 한 권을 외우면 영어 울렁증이 사라진다”는 말은 사실 많이들 하는 이야기인데, 영어 공부에 생각이 없던 사람도 책을 읽으니 공부하고 싶은? 해야 할 것 같은 마음이 생기더라.


영어 공부는 버티는 힘이 중요하다. 쉬운 공부는 효과가 없다. 책 한 권을 외우는 것만큼 확실한 방법도 없다. 힘들어도 6개월만 버티면 머릿속에 영어의 기초가 확고하게 들어선다. 나는 인생을 바꾸고 싶다는 심정으로 영어 공부를 시작했다. 하고 보니 재밌었고 인생도 바뀌었다. 매일 문장 10개를 외우면 몇 달이면 책 한 권을 다 외운다. 회화책 한 권을 외우면 영어의 말문이 열린다. 내가 통역대학원을 나왔지만 영어책을 쓸 생각은 없었다. 책 한 권을 외우는 방식이 나한테만 적용됐다면 책을 쓰지 않았을 거다. 마흔을 넘기면서 일본어 공부를 시작했는데, 히라가나도 모르는 상태에서 일본어 회화책을 한 권 외웠다. 그런데 또 되더라. 중국어 역시 같았다. 이게 독특한 게 아니라 일반적으로 된다는 확신을 가졌기 때문에 책을 썼다.

 

우선 비용이 특별히 들지 않는 방법이라 좋다. 어떤 상황에 있는 사람도 책 한 권이면 가능하다.


보통의 공부가 그러듯 시작은 쉽다. 교재 앞부분은 쉬워서 진도가 잘 나간다. 하지만 후반부에 들어서는 어려워진다. 문장도 어려워지고 누적된 표현의 가짓수가 많아지면서 복습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몇 달째 열심히 했는데도 실력 향상이 눈에 보이지 않을 때, 그 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가는 게 중요하다.

 

한 과 공부를 끝낼 때마다, 휴대폰 메모장에 대화 주제를 기록해두는 방법을 추천했다. 쏠쏠한 팁이다.


책 한 권을 끝까지 외우기 위해서는 매일 한 과씩 외우고, 전날까지 외운 걸 복습하는 공부가 중요하다. 복습할 때 핵심은 책을 보지 않고 영어 문장이 떠올라야 한다는 점이다. 인사, 날씨, 학교, 길 찾기 등 메모장에 주제를 기록해두고, 저녁에 퇴근하고 집에 와서 쉴 때 눈을 감고 그날 종일 외운 과를 소리 내어 암송해본다. 기억이 나지 않는 과는 메모장의 주제를 보고 다시 기억을 떠올린다. 이렇게 매일 반복하면 언젠가는 눈을 감고 책 한 권을 통째로 외운다.

 

132쪽에 실린 ‘전철 출근 20분’ 활용법은 상당히 실용적이다.


지옥철을 타는 분들도 있겠지만 그래도 20분 정도는 짬이 나지 않나? 영어도 반복 학습이 중요하다. 아침에 공부한 교재 학습 내용을 휴대전화 카메라로 찍고, 페이지 전체를 한 번, 한글 번역 부분만 따로 한 번, 이렇게 두 번에 나눠 찍는다. 자투리 시간이 날 때, 휴대전화 사진의 한글 번역을 보고 영어 본문을 떠올린다. 그게 힘들면 전체 화면을 보고 몇 번 읽어보고, 다시 한글만 보고 문장을 외운다. 요즘은 스마트폰 덕분에 어디서든 영어 공부를 할 수 있는 환경이다.

 

회화가 중요하다는 건 누구나 안다. 그런데 상대방의 반응을 살피다 보면,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맞는 지적이다. 하지만 콩글리시가 안 되면 잉글리시도 안 된다. 문법, 발음 신경 끄고 콩글리시로 시작할 필요가 있다. 완성된 문장만 던지려도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사람은 영어가 늘지 않는다. 아는 단어만 몇 개 던져줘도 말은 통한다. 좋은 상대는 그 단어를 받아서 문장을 만들어 돌려준다. 콩글리시로 시작해서 잉글리시의 길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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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가 주는 세 가지 즐거움 ‘여행, 독서, 연애’


예스24 종합 베스트셀러 순위(3월 4주)를 보면,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의 뒤를 잇는 책이 『영어회화 100일의 기적』이다. 2015년에 출간된 이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른 이유는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에서 회화책으로 추천했기 때문이다.


순위를 종종 보는 편인데, 내 책이 사랑 받는 것도 좋지만『영어회화 100일의 기적』이 순위에 오른 것도 기쁘다. 책을 읽은 독자들이 실제로 영어 공부를 하기 위해 이 책을 샀다는 증거니까.

 

넥서스 출판사에서 혹시 연락이 왔나?


(웃음) 담당자가 전화를 했다. 본인이 영어학습서를 내는 동안, 학습서가 종합 순위에 오른 게 처음이라고 하더라.

 

이 회화책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사실 어떤 책으로 시작해도 좋다. 집에서 굴러다니는 영어 교과서도 좋다. 책을 선택한 건, 블로그를 보는 분들의 요청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한 권 골라달라고 해서 하루는 서점, 도서관을 쫙 돌았다. 『영어회화 100일의 기적』을 고른 건, 100일 동안 매일 하나의 회화 상황을 공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법 설명보다는 시작부터 바로 회화 공부에 들어가니까, 처음부터 공부하는 보람을 느낄 수 있다. 중간에 포기하게 되는 책은 효율적이지 않으니까.

 

영어가 주는 세 가지 즐거움으로 ‘여행, 독서, 연애’를 꼽았다.


내가 인생을 즐겁게 사는 가장 큰 비결이 영어다. 대학 4학년 때, 처음 유럽으로 배낭 여행을 갔다. 여행 경비는 전국대학생영어토론대회에 나가서 받은 상금과 과외를 해서 번 돈으로 마련했고. 영어가 되니까, 싼 숙소를 찾는 일도 맛집을 찾는 것도 너무 쉬웠다. 물론 외국인 배낭족과도 부담 없이 수다를 떨었고. 돌아오는 길에 ‘앞으로 죽을 때까지 매년 한 번씩 해외여행을 떠나자’고 결심했고, 1992년부터 지금까지 매해 한 번도 빠짐없이 여행을 다니고 있다.

 

독서와 연애는 어떤 의미인가?


대학생 때 미국 작가 스티븐 킹에 빠져 살았다. 한국에서 인기를 끌기 전이라 번역본이 없었다. 원서로 읽기 시작해서 나중에는 나우누리 통신 동호회에 한 편, 두 편 번역해서 올렸다. 재미 삼아 한 번역인데 나중에 출판사에서 책까지 냈다. 학창 시절 번역으로 짭짤한 부수입을 올렸다. 재미로 시작한 번역이 돈벌이가 됐다. 연애는 사실 마인드 게임이다. 자신감이 없으면 게임에서 진다. 대학 1,2학년 때 나는 못생긴 외모를 의식하는 바람에 자학 개그를 연발하다 번번이 차였다. 결국 연애를 못해보고 군대에 갔는데, 복학한 후로 멋진 연애를 해보겠다는 결심으로 주말마다 열심히 책을 읽었다. 영어에 대한 자신감과 함께 책을 많이 읽으니, 어떤 주제가 나와도 대화에 탄력이 생겼다. 결국 20대 후반에 연애를 즐길 수 있었다. (웃음)

 

10년 이상 영어 공부를 해도, 막상 영어를 사용하는 시간을 계산해보면 24시간도 채 되지 않는다는 사람이 많다. 업무상 영어를 많이 쓰는 직종도 생각보다 많지 않다.


수십 년간 우리말만 하고 별일 없이 살았다고 해서 외국어가 필요 없다, 라고 말할 순 없다. 평생 여행도 안 다니고 한국에서만 살 건 아니지 않나? 어려서 영어를 배울 때 스트레스가 컸던 건 시험 탓이다. 인생을 살면서 한 번도 넘어지지 않는 사람은 없다. 넘어지지 않는 법을 배우는 게 아니라,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영어 공부도 마찬가지다. 진짜 창피한 건, 창피 당할까 봐 시도도 하지 않는 거다.

 

요즘도 취미 삼아 일본어, 중국어 회화책을 암송한다고.


시간이 날 때마다 문장 10개를 외운다. 아르헨티나 여행 중에는 스페인어 기초 회화를 암송했다. 유창하게 스페인어를 할 생각은 없다. 그냥 지금 이 순간, 고맙다고 말하고, 반갑다고 인사만 할 수 있을 정도도 좋다. 책을 눈으로만 읽으면 실력이 늘지 않는다. 머리로 이해하기보다 입으로 자꾸 소리 내어 훈련하는 게 좋다. 어학 공부를 시작할 때는 적은 분량을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드는 학습법이 좋다. CNN, 팟캐스트를 들으며 공부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초보일 경우 이런 공부는 세월만 좀먹을 뿐 효과는 거의 없다. 기왕 결심을 했다면 기초 회화를 외우는 게 좋다. 머리보다는 습관을 믿어야 한다.

 

아버지가 학교 영어 교사였다. 하지만 영어 공부에 큰 도움을 준 것 같진 않더라.


(웃음) 중학교 때, 영어 시험 성적이 잘 나오는지 그것만 확인하셨다. “네가 회화를 잘해야 한다”그런 말은 하신 적이 없다. 아버지는 나를 의사로 만드는 게 꿈이었다. 하지만 나는 책 읽고 글 쓰는 걸 좋아하는 전형적인 문과생이었다. 아버지는 “글쟁이는 돈을 벌기 어렵다”고 했다. 이번 책의 첫 인세가 나오면, 통장을 보여드리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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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도 꾸준히 쓰고 있다. 평일에는 매일 하나씩 꼭 쓰는 것 같던데.


주말에는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어서 평일에만 쓰고 있다. 책을 내고 나니, 주변에서 “나도 책을 쓰고 싶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내 대답은 “블로그에 우선 글을 쓴 다음에, 좀 모아지면 출판사에 투고하라”다. 그런데 “아니, 형, 출판사랑 우선 계약부터 하고 싶은데요”란다. (웃음) “정말 미안한데, 세상이 그렇지는 않더라”고 답해줬다.

 

독서 일기도 많이 쓰더라. 책벌레였고 지금도 그런 듯하다.


책을 정말 좋아한다. 내가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든, 먼저 고민하고 책을 쓴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도서관에 가서 키워드만 검색하면 모든 책이 다 나온다. 20대들이 독서를 즐기지 못하는 이유는 어릴 때 너무 숙제, 논술 위주로 책을 접했기 때문이다. 필독서를 권하는 건 별로다. 본인이 선택한 책만큼 좋은 책은 없다. 독서, 여행, 연애 중에 여행은 돈이 있어야 하고, 연애는 상대가 있어야 하지만 독서는 본인의 뜻만 있으면 어디서든 할 수 있는 취미다. 영어공부는 정말 필요한 사람만 해도 되지만, 독서는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20대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는 시기고 30,40대는 좋아하는 일을 잘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시기, 50, 60대는 사회로부터 받은 것을 나누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사회로부터 받은 게 많다. 좋은 직장, 좋은 직업으로 누린 게 많다. 50대 이후는 책을 쓰는 시기로 결심하고 블로그를 만들었다. 내가 얻은 노하우를 나누고 싶다.

 

염두에 둔 후속작이 있나?


두 권이 더 나올 거다. 두 번째 책은 노는 인간 이야기다. 어떻게 하면 잘 놀 수 있을까, 그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386세대의 비극을 볼 때가 많다. 너무 열심히 살아서, 너무 공부만 열심히 해서 사회에서 인정을 받지 못하고 불현듯 조직에서 미끄러질 때, 좌절하는 사람을 많이 봤다. 이제 우리는 퇴직 후를 걱정해야 하는 나이다. 길게 놀아야 하는데 다들 패닉 상태다. 운 좋게 경제성장의 흐름을 타고 승승장구하다가 조직에서 나왔을 때, 무기력해 한다. 찾아보면 세상에서는 공짜로 즐길 수 있는 놀 거리가 무궁무진하다. 작년에 나는 서울 둘레길을 한 코스씩 다 걸었다. 이제는 인공지능 시대가 아닌가? 수명이 엄청나게 늘어나기 때문에 긴 시간을 놀아야 한다. 돈 안 들이고 놀 수 있는 방법을 이야기하고 싶다.

 

세 번째 책은 여행인가?

 

궁극의 놀이는 여행이라고 생각한다. 여행을 통해서 어떻게 자기계발을 할 수 있는지, 어떻게 자기 삶의 외연을 확장할 수 있는지를 써보려고 한다.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를 읽은, 혹은 앞으로 읽을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최근에 읽은 리뷰 중에 기억에 남는 글이 있다. “당신이 해봐서 됐다고 남들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 마라”는 이야기였다. 마음이 굉장히 아팠다. 내가 20살 때부터 책을 미친 듯이 읽은 이유는 인생을 너무 바꾸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 외모부터 전공, 모든 게 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 자신을 바꾸기 위해서,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을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 보려고 책을 읽었다. 누군가가 책으로 자신의 성공을 이야기한다면, 나는 그 책을 읽고 싶다. 결국 나는 내가 읽고 싶은 책을 쓴 거다. 모든 사람이 이 책으로 성공적인 영어 공부를 할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읽어 보고, 또 한 번 행동에 옮겨 보고, 성공과 실패를 판단해야 하지 않을까. 나 혼자만 성공한다면, 세상의 모든 책은 효용이 없어진다.

 

4월 9일에 ‘댓글 부대’ 행사도 연다. 출판사와는 별개로 저자 혼자 진행하는 행사인데, 무료이고 장소도 꽤 넓더라. 벌써 1,000여 개의 댓글이 달리긴 했지만, 240명이 들어가는 곳을 채울 자신이 있나?


(웃음) 지금으로선 많이 올 것 같다. 블로그에 글을 올리면서 많은 분들과 인연을 맺었다. 영어 공부의 실전으로 뛰어든 분들인데, 두 시간 동안은 즐거운 수다를 나누고 이후에는 경의선 숲길을 산책하면 어떨까 궁리 중이다. 장소 대여료도 내가 낸다. (웃음) 책이 잘 되어서가 아니라, 사회에 빚진 마음이 좀 많다. 조금이라도 내가 할 수 있는 한, 좋은 에너지를 전해주고 싶다. 행사는 별도 신청 없이 그냥 오면 된다. 4월 9일 일요일 2시, 가톨릭청년회관 다리, 니콜라오홀 대강당이다. 아, 서점 독자들과의 만남은 4월 25일에 한다.

 

영어책 한 권 외우는 방법

 

1. 매일 할 것
암송 공부는 주말 하루에 몰아서 하기보다 매일 조금씩 꾸준히 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2. 양보다 빈도
매일 최소 20분 이상 시간을 내어 영어 문장을 읽고, 눈을 감고 외워보세요.

 

3. 누적 암송
그날의 목표를 달성한 후에는, 반드시 처음부터 그날 외운 것까지 복습해주세요.

 

4. 눈을 감고 책 한 권을 외우는 게 목표
처음엔 책을 보고 공부하고, 다음에는 쪽지를 보고 문장을 암송하고, 궁극적으로는 단원의 주제나 제목만 보고 한 과의 회화를 기억해내는 것이 암송 공부의 목표입니다.

 

5. 학습 진도는 매주 한 번씩 이곳에 댓글로 남겨주세요
자신이 이전에 남긴 글에 댓글로 꼬리를 답니다. 가급적 짧게 한 줄 진도를 남겨주시길 부탁 드립니다. 첫 댓글은 '마법의 주문을 외워봅시다'에 남겨주세요. 첫 번째 올리는 댓글은 길게 각오를 남겨주셔도 좋습니다. 의지가 결연할수록 더욱 공부가 단단해지니까요.

 

▶김민식 PD의 블로그
http://free2world.tistory.com/1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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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김민식 저 | 위즈덤하우스
중학교 영어 교과서 외우기로 영어 세계에 입문하여 아무도 토익, 토플을 공부하지 않던 시절에 취미로 공부한 영어 덕분에 외국계 기업에 취직하고, 미국의 [프렌즈] 같은 시트콤을 만들고 싶어 드라마 피디가 된 사람이 있다. 회화 학원 한 번 다니지 않고 30년 독학으로 습득한 영어 공부 노하우를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에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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