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색채와 이색적인 패턴으로 단번에 시선을 사로잡는 가방, ‘모칠라’. 콜롬비아 원주민 ‘와유족’의 손끝에서 탄생한 이 가방은 2~3년 전부터 할리우드를 강타했다. 시에나 밀러, 패리스 힐튼, 케이티 페리, 바네사 허친스 등 수많은 셀러브리티들이 ‘모칠라 러버’를 자청했으며 한국 얼리어답터들의 관심도 뜨거웠다. 이에 편집숍 ‘스페이스 눌’의 대표이자 MD로 활동하고 있는 김정아 저자는 모칠라를 찾아 직접 콜롬비아로 향했다. 그녀와 함께 한국 땅을 밟은 모칠라는 지난 해 롯데백화점 에비뉴엘과 현대백화점 본점 등에서 소개되며 일 평균 600만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올해 4월에는 신세계 강남점에서도 모칠라 모노 팝업이 잡혀있을 정도로 업계의 관심도 뜨겁다고 한다.
자타공인 ‘도스토예프스키 전문가’이자 러시아 문학을 전공한 문학박사인 김정아 저자는 모칠라를 찾아 나선 여정 역시 “인문학적 호기심”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그녀는 과히라 사막에서 살아가고 있는 와유족과 만나 그들의 문화, 삶의 방식, 열정을 발견했다. 그것이 모칠라 안에 담기는 과정도 목격했다. 저자에게 있어서 모칠라는 단순한 가방이 아니다. “디오니소스적인 삶의 폭발적인 힘”을 간직하고 있으면서 “밝고 아름다운 생명력으로 충만한 색채의 향연이 넘치는” 예술작품이다.
와유족이 보여준 자연에 순응하는 삶, 거칠지만 단순하고 아름다운 삶에 감명 받은 저자는 그들이 문화와 전통을 지킬 수 있도록 작은 힘이라도 보태기 위해 『모칠라 스토리』를 출간했다. 패션 MD로서 제품을 판매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안에 담긴 가치와 의미를 알리기 위해 나선 것이다. 콜롬비아 정부는 와유족에 대한 사랑과, 이로 인한 한국과 콜롬비아 양국관계 증진에 기여한 저자의 공로에 감사하며 오는 3월 7일 콜롬비아에서 상공부 장관이 직접 방문하여 감사패와 공로상을 수여할 예정이라고 한다.
김정아 저자는 (주)샘플링의 대표이사로 편집숍 ‘스페이스 눌’과 모노 브랜드 스토어 ‘메릴링’의 대표 겸 MD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패션 MD :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편집숍 바잉의 비밀』이 있고 『죄와 벌 천줄읽기』,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천줄읽기』, 『악령』등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들 14권을 번역한 전문 번역가이기도 하다.
모칠라는 와유족의 열정이 만들어낸 작품
직접 콜롬비아에 가셔서 모칠라를 보셨을 때, 느낌이 어떠셨나요?
만드는 과정이 정말 쉽지 않더군요. 하루 종일 집안일을 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모든 여자와 소녀들이 뜨개질을 하는 겁니다. 그들이 어떤 환경에 사는지, 어떻게 모칠라를 만드는지 보고 나니까 이전과는 완전히 다르게 보이더라고요. 굉장히 소중해 지는 거지요. 정말 힘들게 한 땀 한 땀 만들어진다는 걸 보고 나니까 그냥 판매만 할 것이 아니라 내가 보고 느끼고 감동한 것들을 그대로 전달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모칠라 스토리』를 쓰게 된 계기이기도 합니다.
모노톤의 사막 한 가운데에 화려한 색과 무늬를 가진 모칠라가 놓여있는 풍경은 어떨지 상상하게 돼요. 굉장히 이질적이면서도 환상적인 느낌일 것 같아요.
와유족은 과히라 사막에서 2~3 가구가 커뮤니티를 이루고 삽니다. 문명의 이기와 담을 쌓고 살던 사람들이라 집 안에 유리창도 하나 없는데,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가면 해먹과 모든 것들이 너무너무 화려한 색깔로 가득 차 있어요. 아이들을 봐도 정말 해맑은 눈빛과 넘치는 에너지를 가지고 있는데, 그 모든 것들이 핏속에 흐르는 것 같습니다. 모노톤의 사막에서 단순한 삶을 살다 보니, 그걸 보상하기 위해서, 또 원래 그들의 핏속에 흐르고 있는 열정을 토해내기 위해 훨씬 더 화려한 제품들을 만들게 되는 것 아닐까 하는 생각입니다.
그들의 삶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느끼기도 하신 것 같아요. 단순히 모칠라라는 제품을 판매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와유족에게 도움이 되는 방법을 고민하신 것 같더라고요.
그들이 만들어내는 제품들을 많이 사서 팔아주는 것도 직접적인 도움이 되기는 하지요. 그런데 기본적으로 패션 시장에서 영원히 핫한 아이템은 없습니다. 그만큼 변화가 많고 빨리 바뀌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모칠라는 와유족의 주 수입원이기 때문에 인기가 지속되어야 그들에게 지속적인 도움이 되는 겁니다. 그런 점에서 제가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다가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리게 된 거예요. 뭐든 이야기를 알면 더 재밌고 소중해지는 것이니까요. 올해 안에 『모칠라 스토리』가 영어로 번역되어 해외에도 소개될 것 같은데 더 많은 사람들이 모칠라에 관심을 갖게 될 것 같아서 기대하고 있습니다.
『모칠라 스토리』의 수익금의 50%가 와유족 아이들의 교육 지원을 위해 쓰인다고 들었어요.
와유족은 외부 세계와 차단된 채 살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교육을 시키지 않습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서구화된 교육이 없는 거지요. 제 생각에는 전통과 문화를 이어가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지만, 교육을 받고 나서 자신들의 문화와 전통의 의미를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그 소중함을 깨닫고 이어가는 게 더 의미 있는 일인 것 같거든요. 사실 교육이 없다는 건 미래가 없는 겁니다. 그래서 이 예쁘고 건강한 아이들에게 미래가 있는 삶을 주고 싶은 차원에서 교육 지원을 하고자 수익금의 절반을 기부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요즘 출판시장이 별로 좋지 않아 실제로는 얼마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 걱정입니다. 책 좀 많이 사 주세요(웃음). 나머지 수익금은 원래 후원해 오던 한국의 복지시설 ‘은혜의 집’과 대안 학교에 전달할 생각입니다.
실제로도 모칠라를 애용하신다고요. 지난 번 ‘파리 패션 위크’에도 가지고 가셨었죠?
네, 오렌지색 모칠라를 메고 갔었어요. 모칠라가 겉보기에는 굉장히 작아 보이는데 엄청 많은 것들이 들어갑니다. 가방 윗부분이 스트링으로 되어있어서 펼치면 더 커지고, 물건을 넣는 대로 가방 전체가 살짝 늘어나기도 해요. 정말 많은 것들을 넣고 다닐 수 있고, 또 엄청 가벼워요. 그리고, 때가 묻으면 물빨래를 해도 그대로고요. 자랑을 하자면 끝이 없습니다(웃음).
유럽에는 아직 모칠라를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셨는데, 최근의 반응은 어떤 것 같으세요?
하나 둘씩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제가 ‘파리 패션 위크’에서 만난 바이어 중에도 ‘이 가방을 어디에서 살 수 있냐’고 물어보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거든요. 그래서 제가 관련 정보를 알려주기도 했는데, 이제 그 바이어들이 모칠라를 많이 사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아직 모칠라를 모르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작년에는 갤러리아, 현대백화점 본점, 현대백화점 코엑스점을 중심으로 많이 판매됐는데, 올해는 서울 강북지역으로도 퍼져나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내년 정도 되면 부산이나 대구 등 다른 패션 도시에서도 사랑을 받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모칠라는 색과 무늬가 굉장히 화려해서 ‘내가 소화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실 것 같아요.
그렇죠. 패션계에 있는 저도 그랬으니까요. 그런데 화려한 색깔의 모칠라는 그냥 하얀 티셔츠에 청바지만 입고 들어도 너무 예쁩니다. 포인트가 되는 거지요. 모칠라가 원래는 크로스백이어서 크로스로 메도 너무 예쁘고, 끈을 묶어 보통의 숄더 백으로 들어도 좋습니다. 보수적인 고객들은 단색이나 톤 다운된 컬러의 모칠라를 좋아하시는데, 외국에서도 톤 다운된 컬러들이 많이 판매됩니다. 남자 분들도 메고 다니고요. 커플로도 많이 들지요. 똑같은 디자인에 크기만 다르게 해서 엄마와 아이가 같이 메기도 하는데 정말 귀엽습니다. 저희 매장에서도 아이들 모칠라가 가장 먼저 다 팔렸을 정도입니다. 패셔너블한 엄마나 할머니들이 딸, 아들, 손자, 손녀를 위해 사시는 거지요.
좋은 모칠라를 고르는 방법
모칠라는 ‘세상에 하나뿐인 나만의 아이템’이기 때문에 더 매력적인 것 같아요. 샘플을 보여주고 주문을 해도 똑같은 제품이 제작되지는 않는다면서요?
저희가 제품을 수입할 때 검품 과정을 거치는데, 조금이라도 주문한 부분과 다르면 난리가 나고 불량으로 처리되지요. 저도 콜롬비아에서 직접 골라온 모칠라가 다 소진되고, 콜롬비아의 파트너를 통해 모칠라를 주문하고 제품을 받았을 때, 다 다른 모습이라서 깜짝 놀랐습니다. 오더 시트에 ‘똑같은 아이템이 배송된다는 보장을 할 수 없다’고 써있기는 했지만 달라도 너무 다른 거예요(웃음). 어떤 때에는 현지에서 제품을 보내주시는 분한테 사진이 옵니다. 샘플은 핑크색 제품이었는데 파란색으로 만들어졌다고요(웃음).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다시 제작을 요청해야 하냐고 물어보는데 그냥 저는 다 받겠다고 합니다. 그래도 판매할 자신이 있으니까요. 신세계나 SK플래닛처럼 저희가 납품하는 곳에는 다 검품을 하고 가능한 실제 오더에 가깝게 보내줍니다. 약속이니까요. 하지만 ‘스페이스 눌’이 판매하는 것은 다 그대로 받습니다. 다 예쁘니까요.
와유족 입장에서도 샘플과 똑같이 반복적으로 만드는 게 더 쉬울 텐데요. 타고난 창의력을 참을 수가 없는 걸까요(웃음)?
의도적으로 ‘저기에 꼭 맞춰서 만들어야지’라고 생각하지를 않는 거예요. 마음에 그런 틀-문명사회가 만들어 놓는 틀 자체가 없는 거지요. ‘이걸 꼭 따라서 해야 되겠다’는 개념 자체가 없는 겁니다. 샘플을 봤으면 색깔과 패턴 같은 주요 요소만 파악하고 그 다음에는 자기 식대로 뜨는 거예요. 지금의 저한테는 그런 생각의 자유로움이 너무 사랑스럽습니다.
샘플을 만드셨을 때는 해당 컬러와 패턴의 조합이 최상이라고 생각하셨을 텐데요. 예상하신 모습과 다른 제품을 받고 실망하신 적은 없으세요?
처음에는 정말 놀랐습니다. ‘핑크색으로 주문했는데 왜 보라색이 왔지?’ 싶었지요. 이유를 물어보니, 집에 갔는데 그 색깔의 실이 없었답니다(웃음). 그래서 그냥 받았습니다. 제 눈에는 다 똑같이 사랑스럽고 다 똑같이 의미가 있는 제품이니까요. 저희 매장에서는 다 판매가 잘 되니 상관이 없기도 하고요. 제가 만약에 그 제품을 받기를 거절하면 그 사람은 처음부터 다시 뜨개질을 해야 하잖아요. 물론 나중에 누군가한테 팔리겠지만, 어쨌든 그 사람이 기대하던 돈은 그만큼 빨리 안 들어오는 거지요. 제가 지불하는 물건 값이 그들에게는 즉각적인 일용할 양식이 된다는 사실을 직접 보고, 알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못하는 것이고, 안 하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중국산 ‘가짜 모칠라’도 많다고 들었습니다.
많습니다. 모칠라 뿐만 아니라 콜롬비아에서 수작업으로 만들어진 모자도 있는데, 실제로는 굉장히 비싸거든요. 그런데 가짜 제품이 싸게 팔리고 있습니다. 게다가 동대문 같은 곳에서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훨씬 더 두꺼운 실로 뜬 모칠라가 굉장히 싼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어요. 비교를 하지 않는 이상 잘 모를 정도입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서 콜롬비아 대사님도 걱정을 많이 하고 계시더라고요. 그래서 저희 회사를 통해서 모칠라를 판매하는 업체들은 ‘공식 인증처’라는 편지를 직접 써주셨습니다. 물론 콜롬비아에서 직접 모칠라를 사오는 다른 업체들도 있긴 하겠지만, 인터넷에서 너무 싼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면, 가짜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나를 뜨는데 적어도 3주라는 한 여인의 삶이 들어가는데, 너무 싸면 이상한 거지요.
책에서 “좋은 모칠라를 고를 때 눈여겨봐야 할 요소들”을 설명해주기도 하셨어요.
제가 강조하는 것 중에 하나가 태슬(tassels)이 풍성해야 한다는 거예요. 저희가 주문한 제품들은 다 풍성한 태슬을 가지고 있어요. 대부분 태슬이 빈약한데, 그러면 전체적으로 가방이 예뻐 보이지 않아서 제가 주문할 때마다 강조하는 부분입니다. 그 다음으로 중요하게 봐야 할 건, 스트랩과 바디의 연결 부분입니다. 이 부분의 마무리가 잘 되어있는지 보셔야 하고요. 모칠라는 수작업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실이 끝나는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어요. 모칠라를 아주 잘 만드는 사람들은 스트랩이 있는 부분에서 끝을 맺는데요. 그렇게 하면 실의 끝부분이 보이지 않아 깔끔하지요. 간혹 스트링이 나오는 구멍이 한 개인 경우가 있는데, 저희가 불량이라고 이야기하는 제품입니다. 원래는 두 개의 구멍이 있어야 하거든요. 그 외의 부분에서는 조금씩 차이가 있을 수 있어요. 패턴의 한 부분이 빠져있을 수도 있고요. 그런데 저는 그것도 그냥 귀여운 것 같아요. 수작업 제품의 매력이라고 할까요.
지금까지 많은 제품들을 발굴하고 유통해 오셨는데요. 모칠라에 갖고 계신 애정은 남다른 것 같습니다. 제품을 만드는 사람들과 직접 만나 호흡하셨기 때문일까요?
사실 저한테는 브랜드 하나하나가 다 소중합니다. 대부분 제가 디자이너와 직접 일하고 있는 브랜드들이거든요. 중간에 홀 세일러들을 통해서 사오는 브랜드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하나가 다 소중하지요. 그런데 모칠라처럼 만드는 사람들의 일용할 양식과 직접 연결된 브랜드들은 많지 안습니다. 모칠라가 세상에 나오게 된 과정만 봐도 그렇습니다. 부족의 존폐가 달려있지 않았다면, 아마 와유족은 끝까지 외부 문명을 차단하고 살았을 거예요. 대단한 고집이고 대단한 자부심이지요. 에스파냐어를 사용하는 땅에서 몇 백 년을 살았으면서도 아직까지도 자신들의 언어 와유니키를 쓰고 콜롬비아 법대신 자신들의 법을 따르고요.
패션전문가 김정아를 움직이게 하는 힘 ‘인문학’
모칠라가 세상으로 나오게 된 과정에 대해 더 듣고 싶어요.
3년 전 과히라 사막에 심각한 가뭄이 들어서 물 자체가 없어진 시기가 있었습니다. 짐승도 다 죽고 정말 심각한 상황이었지요. 정부가 도움을 줄 수 있는 정도도 지났고, 부족에게는 생사가 달린 문제였어요. 그렇다 보니까 자신들의 토산품인 모칠라를 팔아 달라고 NGO 같은 곳에 요청을 한 겁니다. 그 기관에서는 패션계와 연결을 시켜줬고, 할리우드 스타들이 모칠라를 들기 시작한 거지요. <보그>를 비롯한 각종 럭셔리 패션지가 모칠라를 실으며 세계적인 화제가 되었습니다. 때맞추어 분 에스닉 붐도 한 몫 했구요.
그때 모칠라를 보시면서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귀엽다고 생각은 했어요. 그런데 저희 숍 분위기 자체가 시크해서 조금 거리가 있다는 생각이었습니다. 잡지나 인터넷의 모칠라는 전부 블링블링한 색깔밖에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저희 매장에서 판매하면서 보니까 회색의 모칠라 같은 제품들도 정말 많이 찾으시더라고요. 그러니까 충분히 시크하게 들 수 있는 제품인 거지요. 그동안 화려한 색깔의 모칠라가 많이 알려져서 그렇지, 기본적으로 많이 판매되는 제품들은 보헤미안 스타일의 톤 다운된 컬러예요. 모칠라가 여름 아이템으로 알려져 있는데 사실은 그렇지도 않습니다. 사계절 아이템으로 충분히 쓸 수 있어요. 저도 잘 메고 다니거든요. 주로 핫 컬러들은 여름에 많이 판매되고요. 겨울에는 주로 톤 다운된 컬러들을 찾으시지요. 그런데 시에나 밀러가 들어서 유명해진 모칠라는 계절과 상관없이 꾸준히 판매됩니다. ‘시에나 밀러 모칠라’는 연령에 관계없이 다들 좋아하십니다.
시에나 밀러가 들었던 ‘핑크 팜팜이 달린 모칠라’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어요.
시에나 밀러가 들어서 예쁜 건지, 아니면 그 모칠라가 예뻐서 시에나 밀러가 든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웃음). 저희 매장에서도 가장 많이 판매되고 있는 모칠라입니다. 여자친구에게 깜짝 선물하기에 최고의 아이템이지요.
모칠라의 패턴들은 각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하셨는데요. ‘시에나 밀러 모칠라’를 구입하신 분들은 많지만 그 패턴의 의미를 아시는 분은 많지 않을 것 같아요.
거의 없을 겁니다. 콜롬비아 사람들도 잘 모르는데요. 저는 모칠라를 보면서 ‘여기에는 틀림없이 상징적인 의미가 있을 거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똑같은 무늬들이 다양하게 응용이 돼서 만들어지는데, 아무 의미도 없는 걸 수백 년 동안 뜨개질하며 후대에 전할 것 같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물론 새로운 것들이 추가되기는 하겠지만요. 그래서 이건 틀림없이 어떤 의미가 있는 거라고 생각을 하고 조사를 했습니다. 인문학자의 호기심에 궁금한 것은 못 참는 개인적인 성격 탓에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구할 수 있는 모든 자료를 다 읽었습니다. 미국에서 공부하는 딸의 아이디로 인터넷 도서관에 들어가 영어로 된 모든 자료를 구해서 읽고, 스페인어로 된 건 대사관에 번역을 요청했습니다. 또 와유와 관련 된 책들도 인터넷으로 주문해서 다 공부했습니다.
‘시에나 밀러 모칠라’의 패턴은 흰 개미를 형상화한 거라고요.
룰루무야(Rulumuya) 패턴은 흰 개미라는 뜻입니다. 하얀 색이 나타내는 순수함과 함께 자신이 속한 그룹에 대한 충성을 나타내지요. 와유족에 전해지는 전설을 보면 흰개미가 신화적인 존재이고, 다 만들어 놓은 모칠라를 갉아먹어요. 그런데 와유족의 해석이 재미나고 감동적입니다. 흰 개미는 모칠라가 망가졌을 때 다시 고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 존재라고 해석하는 겁니다. 굉장히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거지요. 그리고 자연에 대한 완벽한 순종입니다. 그들이 사는 집도 마찬가지예요. 저는 그들이 사는 집이 그들의 사고관을 그대로 반영해 준다고 봅니다. 집을 짓기 위해서 나무를 베는 게 아니라 떨어진 나뭇가지를 주워서 만들어요. 말라 죽은 선인장의 속을 사용하기도 하고요. 그들의 세계관과 사고관은 자연에의 완벽한 순응입니다. 그들에게는 자연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완벽한 순응의 대상인 거예요.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인문학자에서 패션전문가로 변모하신 지 10년이 지났습니다. 전혀 다른 분야에서 큰 성공을 이루셨는데, 그 비결이 궁금합니다.
저를 10년 동안 움직이게 한 것은 재능 있는 사람을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입니다. 저는 좋은 옷을 볼 줄 알고, 어디를 어떻게 변경하면 더 잘 팔리겠다는 건 잘 알지만,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무언가를 만들어 낼 능력은 없습니다. 한 마디로, 응용력은 있으나, 창의력은 없는 거지요(웃음). 그런데 세상에는 창의력도 있고, 세계관도 분명하고 옷도 사랑하고 잘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어떻게 어디에 팔아야 할 줄 모르는 거지요. 그리고 어떤 아이템을 고객이 좋아하는지 잘 모르는 거지요. 그런데 저는 그들이 잘 모르는 그 부분들을 잘 알고 있는 것이고, 그런 것들이 저를 움직이게 하는 겁니다. 결국 사람과 사람 간의 관계이고, 또 다시 인문학인 셈입니다. 제가 봤을 때는 그래요.
『모칠라 스토리』역시 “인문학적 호기심”에서 만들어진 거라고 할 수 있겠죠.
처음에 과히라 사막에 가게 된 것 자체만 봐도 그렇죠. 인문학적 호기심이 없었다면 그냥 리오아차(과히라 사막과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작은 시골 마을)에 가서 모칠라를 사왔겠지요. 아니, 리오아차까지 가지도 않았을 거예요. 다른 사람들처럼 한국에서 홀 세일러를 찾아서 주문했을 겁니다. 그렇게 하지 않은 건 궁금했기 때문이고, 과히라 사막에 가서 어떤 사람들이 어떤 여건에서 어떤 방식으로 모칠라를 만드는지 직접 보고 온 겁니다. 그러고 나니까 더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인문학자인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더 없을까’를 생각하다가 모칠라에 대해서 조금 더 알리기로 한 겁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모칠라에 더 관심을 갖고, 더 좋아할 수 있잖아요. 저는 그걸로 만족합니다.
모칠라는 ‘착한 소비’의 실천
패션계는 다른 어떤 분야보다 유행에 민감하고 변화 속도가 빠르잖아요. 사람들이 열광할 만한 아이템을 미리 알아보는 감각도 있어야 하고요. 그를 위해서 노력하시는 부분이 있나요?
감이라는 건 어느 정도 노력해도 되기는 합니다. 하지만 더 큰 건 사실은 그릇의 차이인 것 같습니다. 제가 바이어들을 많이 만나잖아요. 다들 물건을 잘 골라서 삽니다. 그런데 물건을 잘 고르는 사람은 좋은 바이어이긴 하지만, 브랜딩을 할 수 있는 브랜드 매니저는 또 다른 문제입니다. 그건 인성이요, 사람의 크기입니다. 몇 년 만 가르치면 대부분의 경우 바잉에 대한 감은 가르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브랜드를 어떻게 전개할 것인지, 이걸 과연 한국 시장으로 가져와야 할 것이지, 한국 시장에서 어떤 포지셔닝으로 가져 갈 것인지, 또 이 브랜드를 어느 누구 보다 사랑할 수 있는 지 등 브랜딩에 대한 것은 바잉보다 훨씬 더 큰 책임이 따르는 것이기도 하고, 기본적으로 그릇의 크기가 돼야 가능한 거라고 봅니다. 그건 가르치기가 힘든 부분입니다. 브랜드가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지, 앞으로 얼마나 성장할 것인지, 그런 것들을 알아보는 데에는 인문학적인 힘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브랜드 비하인드를 보고 디자이너의 근성과 세계관을 보는 힘이 필요해요. 그래서 패션에 대한 아무런 전문지식도 없는 인문학자인 제가 좋은 브랜드들을 독점으로 가져올 수 있었고, 그래서 지금껏 잘 버틴 것 같습니다.
인문학적인 토양이 패션 MD로 일하시는 데에 도움이 된 거네요.
지금까지 1세대, 2세대 멀티숍이 다 실패했습니다. 개인 멀티숍도 그렇고, 심지어 대기업이 운영한 멀티숍들도 문을 닫았습니다. 벌써 3세대 멀티숍이 등장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 대기업이 운영하는 회사가 아닌데도 살아남은 곳은 저희가 유일할 겁니다. 저희가 다른 곳보다 돈이 많아서가 아닙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인문학적인 소양이 알게 모르게 도움이 많이 된 것 같습니다. 제가 책을 엄청 많이 읽거든요. 그게 당장은 필요가 없는 것 같은데 저로 하여금 스트레스를 이기는 힘이 되어주기도 하고, 또 생각하는 힘,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걸 보게 하는 힘을 주기도 한 것 같습니다.
낮에는 패션전문가, 새벽에는 인문학자로 살고 계신데요. 두 개의 시간이 서로 보완해 주는 측면도 있겠어요.
제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건 공부입니다. 요리나 운전을 포함해 다른 건 다 못합니다(웃음). 사실 패션계는 전쟁터입니다. 그 안에서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에 정말 처절하고 힘들어요. 저희는 회사가 크지 않기 때문에 제가 영업도 맡아서 하고 있습니다. 혼자서 책 읽고 공부하는 것 좋아하는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같은 제겐 그 스트레스가 더 크지요. 물론 패션계에 있는 좋은 분들과 만나 얘기 할 때는 2-3시간도 금방 가고, 그 때는 내가 언제 히키코모리였나 싶지요.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 중 하나는 운동이고, 운동 후에도 안 될 때는 공부를 합니다. 스트레스 받을 때는 공부가 엄청 잘 돼요(웃음). 공부를 열심히 하거나 글을 쓰거나 번역을 하는 데 빠져 있다 보면 카타르시스의 순간이 찾아 옵니다. 만약에 제가 인문학자가 아니었으면 패션계에서 10년이 아니라 3년도 못 버텼을 거예요. 오히려 저한테는 공부를 하는 게 굉장히 감성적인 부분입니다. 저의 지적 욕구를 채워 주고, 낮 동안의 어지러웠던 일상사로부터 마음을 정화시켜주거든요. 저한테는 없어서는 안 되는 부분입니다.
자신의 취향과 잘 맞는 편집숍을 찾으면, 한 곳에서 여러 브랜드 제품을 구입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그만큼 편집숍에는 바이어의 취향이 큰 영향을 미치는데요. ‘스페이스 눌’이 지향하는 스타일은 어떤 건가요?
‘스페이스 눌’은 ‘일부러 멋 부린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 편안하고 쉬크한’ 컨셉이라고 할 수 있어요. 굉장히 고급스럽고요. 일단 소재는 우리나라 최고입니다. 제 피부가 굉장히 예민해서 제가 다 입어봅니다. 그리고 제가 브랜드를 보는 눈이 있는 건지, 처음 바잉을 해서 1~2년 정도 판매하다 보면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다 관심을 가집니다. 해외에서의 반응도 덩달아 뜨거워 지고요. 아마 너무 많이 사서 그럴 거예요(웃음). 제가 대학생 때부터 샀던 게 딱 두 가지입니다. 책과 옷! 그게 알게 모르게 도움이 된 거지요. 저희는 약간 어른스럽고, 몸매를 드러내지 않고, 편안하게 떨어지는 실루엣이면서, 쉬크한 옷들을 판매합니다. 너무 과하지 않으면서도 일반적인 옷처럼 보이지는 않는 거지요. 그 미묘한 차이가 굉장히 중요해요. 그게 어려운 거예요.
『패션 MD』의 두 번째 책을 준비하고 계신다고요.
총 4권의 시리즈로 나올 것 같습니다. 첫 책이 ‘바잉 편’이었는데 지금 쓰고 있는 두 번째 책이 ‘브랜드 편’이에요. 수많은 브랜드의 홍수 속에서 옥석을 가려내는 것과 또 브랜딩의 노하우를 알려드리려 합니다. 세 번째 책에서는 전 세계의 핫한 쇼룸들에 대해서 쓸 예정이에요. 프로페셔널 바이어들이 밥줄 떨어진다며, 쓰지 말라고 협박(!)하는 책입니다. 마지막 이야기는 『패션 MD』에서도 짧게 말씀드렸던 ‘민족성에 따른 국가별 협상법’이 될 거고요. 그 부분이야말로 인문학자가 아니면 도저히 써낼 수 없는 거지요. 인문학이라는 게 실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거든요. 어찌됐든 패션도 ‘브랜드와 브랜드의 관계’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요. 제가 독점적으로 쇼룸을 전개하고 있는 브랜드들과 계속 관계를 이어올 수 있는 것도 ‘이 사람이라면 내가 믿을 수 있다’는 신뢰를 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대기업들이 수십 배의 미니멈을 오퍼하며, 계약을 하자고 해도 저하고 계속 거래를 하는 거예요. 물론 사람됨도 이유이겠지만, 저의 사람됨의 굉장히 많은 부분이 인문학적 배경에서 비롯된 것 아닐까 싶습니다.
번역 중이신 책도 곧 출간되나요?
제가 도스토예프스키 전집을 계약했기 때문에 번역을 계속 하고 있습니다. 대작들은 거의 다 나왔고, 도스토예프스키 단편과 소련의 작가 불가코프의 작품을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 작업이 끝나면 제가 편역을 해놨던 도스토예프스키 장편을 완역본으로 출간하려고 합니다. 그게 가장 큰 작업으로 남아있습니다. 세계적으로 도스토예프스키 장편전집은 많지만, 그 전집을 한 사람이 다 번역한 경우가 없습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모든 작품을 굉장히 잘 알아야 가능한 일이고, 또 시간과 노력이 아주 많이 걸리는 작업입니다. 그래서 전집이 나와도 각각의 작품을 다 다른 사람이 번역해서, 개개 작품의 톤이 다 다릅니다. 저는 편역 작업을 통해, 도스토예프스키의 작품을 수 차례씩 읽었고, 두꺼운 해설을 쓰며, 작품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기 때문에 문제는 없을 거라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으세요?
『모칠라 스토리』와 모칠라에 대한 많은 관심과 사랑을 부탁드립니다. 현명한 소비, 착한 소비의 실천이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모칠라 스토리김정아 저 | 알에이치코리아(RHK)
2016년 여름, 국내 패션업계를 달궜던 아주 독특한 패턴의 가방이 있다. 강렬한 실의 색감과 어우러진 패턴은 단숨에 핫한 아이템을 찾아다니는 패션 피플들의 잇(it)아이템이 되었다. ‘모칠라’라는 패턴만큼이나 새로운 어감을 지닌 이 가방은 전통부족 와유족의 손끝에서 만들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