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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철 “역사는 저지른 일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용하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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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과연 어디로 가고 있는가. 세상이 어렵고 미래가 불확실할 때마다 사람들은 과거에서 미래를 보겠다는 마음으로 역사를 찾았다. 과연 인간은 삶을 어떻게 혁신했으며 세계를 움직인 힘의 원천은 무엇일까? 오늘날 세계사를 판가름한 결정적인 문명의 사건을 보면서 미래를 예측할 수 있을까?


2015년 건명원에서 진행한 다섯 차례의 역사 강의를 묶은 『그해, 역사가 바뀌다』에서는 서울대 주경철 교수가 ‘역사’라는 틀로 문명을 크게 바라보고자 했다. 인간사를 큰 차원에서 이해하다 보면 우리의 어제는 어떻게 이뤄졌는지 이해하는 눈이 생기고, 나아가 미래세대의 내일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당위의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건명원은 창의적 리더와 인재육성을 위해 20대 청년을 선발해 1년 동안 다양한 강의를 제공하는 교육 단체이다.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조국이 더는 이런 후진적 비극을 겪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두양문화재단 오정택 이사장이 사재를 출연해 설립했다. 취지에 공감하고 참여한 주경철 교수는 『대항해시대』, 『마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등 문명의 형성과 미래를 탐구하는 활발한 저서 활동을 펼치는 역사가이자, 선생이자, 저술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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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역사를 볼 것인가


건명원 강의가 책으로 묶여 나왔습니다. 처음 수업을 제안받았을 때 어떠셨어요?

 

강의를 책으로 내자고 기획해서 처음부터 녹취하고 풀어냈어요. 건명원 교수 중에서도 주도하는 분이 있어서 저는 시키는 대로 했어요. (웃음) 배철현 선생이 먼저 건명원 아이디어를 내고 만들어 가면서 역사학 교수도 한 명 있어야 할 것 같으니 같이 하자고 제안하더군요. 이야기 들어보니 뜻이 좋아서 동의했죠.

 
건명원은 ‘창의적 리더 육성’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 기관이라고 소개되어 있습니다. 미래 세대를 길러낸다는 관점에 동의하셨던 건가요?


창의력은 여러 키워드 중 하나일 거예요. 미래 세대를 위해, 한국의 미래 세대를 위해서 학교 정규 교육 과정과는 별개로 젊은 사람을 모아 새로운 펌프질을 하고 이 사람들이 나름대로 훌륭한 일을 하게 해 보자는 전체 계획에 동의한 거죠.


총 5개의 부문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첫 번째로 콜럼버스를 통해 근대 유럽인들의 ‘심성’을 보고자 했는데요. 같은 주제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라는 책을 내신 적도 있으세요. 연구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가 있는 사람인가요?


처음에는 근대사에서도 유럽 내부를 공부하다가 유럽 역사나 문명이 어떻게 다른 문명과 만나는가에 관심이 생겼어요. 가장 큰 문제의식은 ‘왜 중국이 유럽으로 안 가고 유럽이 바다를 건너 먼 데를 가게 된 걸까’였어요. 왜 유럽이 그렇게 다이나믹하고 적극적인 걸까? 그냥 일반적으로 힘이 강해져서 퍼져나간 게 아닌 것 같아요. 사람들이 뭔가를 할 때는 그냥 하는 게 아니라 충동하는 기제가 있어야 할 것 아니에요. 문명 차원에서도 그런 이유가 있겠다는 생각을 해 봤어요. 그때 샘플로 눈에 띈 인물이 콜럼버스에요.


문명 전체를 보기에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만의 독특성도 있어요. 한 인물의 행동만으로 전체적인 역사의 추동을 이야기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


그래서 이 인물로 어떻게 당대 사람들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을 법한 집단적인 멘탈리티를 아는지 설명이 필요한 거죠. 제인 구달이 침팬지를 연구할 때 한 가지 방법은 침팬지 사회를 먼 데서 관찰하는 거예요. 많은 걸 얻죠. 하지만 멀리 봐서 볼 수 있는 것이 있고 못 보는 게 있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침팬지 연구에서도 다 이름을 붙여서 개체를 정해요. 개체마다 전쟁할 수도 있고, 고기를 먹을 수도 있어요. 그 개체에 대해서 아는 것이 다른 모두가 가진 속성일 수 있고 어떻게 특성이 어우러져서 어떤 사회를 유도하는지 알 수 있잖아요. 역사학도 그래요. 한 사회 전체를 조망해서 얻어내는 게 있고 앵글을 좁혀 한 인간을 들여다봐서 이 시대 인간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아내는 방법이 있죠. 현미경의 역사가 있고 망원경의 역사가 있는 거예요.


콜럼버스를 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아무나 그렇게 들여다본다고 잘 보이지 않아요. 200년 후에 역사가가 나를 통해 역사를 본다면 너무 일반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지금 사회를 잘 볼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요. 반대로 너무 이상한 광인을 들여다본다면 다른 인물과 아무런 관련이 없으므로 잘 볼 수 없어요.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기 제일 좋은 사람은 특이한 인간이에요. 그런 인간을 연구한 사례가 『치즈와 구더기』인데, 미시사 쪽 고전이죠. 그 방법을 모범사례로 삼아서 역사의 흐름에 있으면서도 특이한 인간을 보면 이 사람이 어떤 맥락으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알 수 있죠.


두 번째 주제로 넘어가서는 조금 더 거시적으로 보는 느낌이었어요. 개인적으로는 산업혁명 직전 일어난 근면혁명이 재밌었는데요. 한국 사회에서 아직 근면함을 척도로 삼는데, 이런 방식이 더는 유효하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근면혁명에 우리가 일상용어로 쓰는 ‘근면’이라는 친숙한 용어를 쓰지만 그렇다고 해서 친숙한 개념은 아니에요. 물론 근면혁명이 사람이 근면함으로서 혁명했다는 점에서 통하지만 그렇다고 도덕적인 의미로 열심히 일하면 잘 살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죠. 산업혁명 이전에 사회에서는 인구가 늘었다 줄었다 했어요. 쉽게 인구가 줄었다고 얘기할 게 아니라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굶어 죽거나 병들어 죽었다는 뜻이죠. 이런 파국을 막아야 하는데, 막는 방법이 사실 별거 없거든요. 토지를 늘리고 같은 땅에 더 많은 사람을 집어넣는 방법밖에 없어요. 근면혁명은 그 사회가 어쩔 수 없이 구조적으로 겪는 문제에 대해 마지막에서 두 번째 해결책으로 택한 전략이었던 셈입니다.


환경과 ‘인류세’에 관한 내용이 세 번째입니다. 기계 과학의 발전이 환경을 개선하거나 덜 파괴한다고 보는 쪽이신가요?


섣불리 이야기할 수는 없는데,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요. 기계화되고 환경 파괴가 이뤄지면서 긍정적인 효과가 쌓이는 이면에 엄청난 폐해 가능성이 있다는 걸 인지했다는 것 자체가 중요해요. 그래야 대비하잖아요. 인문학이든 과학이든 양면의 가능성이 있고 그게 중요하다는 걸 공유하면 해결책의 가능성이 있겠죠. 인문학자가 어찌 보면 단순해요. 파괴할 힘은 다시 말하면 개선할 수 있는 힘도 그 안에 있다는 게 더 우선 아니겠어요? 그래서 그 안에서 우리가 저지른 일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용하는 힘을 찾을 수 있으리라고 봐요.


책 말미에 학생들과 한 질문과 대답이 실려 있어요. 마지막에 미래를 낙관하는 이유로 식자율과 피임률을 들어주셨는데요.


근대에서 유럽이 발달한 현상을 보면 결국 사람들이 주체적으로 자신의 행복을 일궈낼 수 있다는 감각이 있어야 해요. 그걸 읽어낼 수 있는 게 자기 몸에 대해서, 자기 영혼과 주변세계와의 관계에 대해서 얼마나 잘 대응하고 주체적으로 해나가는지를 보는 것이거든요. 피임률은 그 사회에서 여자가 자기 삶을 디자인하는 지표였고, 조금 넓은 의미에서 세상을 얼마나 파악하는지 보여주는 게 식자율이죠. 문맹의 사회와 소설책이라도 몇 권 보고 대화가 이루어지는 사회하고는 달라요. 식자율과 피임률이 개선된다는 게 십 년 내에 세계평화가 온다는 건 아니에요. 긴 시간에 걸쳐서 뭔가 개선될 것 같다는 희망 섞인 주장에 가까워요.

 

강의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내용은 무엇이었나요?


우리 한 번 큰 시각을 가져 보자는 거죠. 일단 큰 차원에서 일부러라도 미래 예측을 해보자는 생각이었어요. 작은 차원이 안 중요하다는 게 아니라, 그건 다른 기회가 많으니까요. 그런 점을 강조하기 위해 책에는 ‘인류의 결정적 변곡점’으로 튀게 썼는데, 실제 의미하는 건 진짜 특정한 해에 역사가 바뀌었다는 게 아니라 크게 봤을 때 상징적인 사건들이 있다는 의미로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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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힘을 키우는 강의


학교 강의와 건명원 강의 간에 차이가 있나요?


건명원에서 완전히 새로운 별개의 지식을 배우는 건 아니에요. 같은 내용 가지고 학교에서 강의도 하고요. 다만 거기에 모인 사람들이 뜻에 동의하고 왔다는 게 참 중요해요. 어떤 마음가짐으로 출발했느냐가 중요한 거죠. 표현을 빌리자면 건명원에서는 사고의 근육을 단련해주는 거예요. 느슨하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약간의 하드 트레이닝을 해서 생각하는 힘을 키우는 거죠. 최종적으로는 자기가 어떤 사고방식을 택할 것인지, 사고 폭을 넓힐 것인지 배워요. 엔지니어, 법률가, 정치인을 키우겠다는 게 아니라 뭘 하든지 탄탄한 사고 능력을 키워서 내보내면 그중에는 큰일을 하는 사람도 있겠고, 그저 자기가 행복한 사람도 있을 거예요. 길게 보면 다 좋은 효과를 내리라는 순진무구한 희망으로 몇 년이고 계속 좋은 인재를 키우자는 거죠.


라틴어와 한문을 배운다고 들었는데, 창의력과 상상력을 키운다는 프로그램에서 암기 과목이 많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찬반이 있을 거예요. 저는 대체로 찬성에 가까워요. 첫 번째로 기본 취지에는 적극적으로 동의해요. 창의력이라는 게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뭔가를 만들어내는 거라고 생각하는 데 아니에요. 기존에 가진 걸 잘 엮어내는 게 창의력이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기본적인 고전을 알아야 한다는 취지예요. 또 하나는 언어를 안다는 게 또 다른 세계의 맛을 보는 건데, 고전 텍스트를 읽고 외우게 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생겨나는 뭔가가 있을 거예요. 살짝 맛봐서는 잘 모르니까 1년 동안 지지고 볶고 외우는 경험을 하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보면 고전어를 학생들에게 경험해보게 한다는 건 찬성이에요. 창의성을 키워주는 게 꼭 창의적인 방법이어야 하는지는 모르겠어요. 비창의적인 방법으로 창의적으로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요?


다른 선생님 수업도 듣는 편이세요?


첫해에는 시간이 되는대로 매일 갔어요. 좋은 교수들을 모셔다가 빡빡하게 강의하기 때문에 일 년 동안 잘 들어두면 많은 책을 읽은 것과 마찬가지예요. 강의해서 권하는 책을 봐도 도움이 많이 되죠.


다른 인터뷰에서 건명원의 미래를 묻는 질문에 아직 졸업생이 안 나와서 대답을 못 해주겠다고 하셨는데, 졸업생이 나온 이후니, 어떻게 될 것 같나요?


아직 두 회밖에 졸업을 안 해서 모르겠다는 게 답인데(웃음), 그렇게 대답할 수는 없으니 말을 해야겠죠. 강의 몇 개 들었다고 사람이 확 바뀌거나 그러진 않잖아요. 이걸 씨앗으로 삼아서 또 배우고 일하면서 더 큰 그릇이 되리라는 기대로 하기 때문에 졸업생들을 보면서 역시 이 친구들은 뭔가 되겠다고 생각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그중 몇 명은 많이 성숙해졌다 하는 학생들이 있어요. 하지만 눈에 안 보이는 학생이 더 좋은 일을 할지도 몰라요. 속으로 익어가고 있을 수도 있는 거고요. 아니면 부작용으로 잘난 척만 하는 사람이 나타날 수도 있죠.


건명원 2기 이후 과학 분야 강의가 추가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통섭을 목적으로 하고 계시다고 생각도 들고요.


딱히 목표로 통섭을 내세우기보다는, 정하웅 선생이나 김대식 선생은 이미 통섭을 하는 사람들이거든요. 뇌를 연구하는 건 다른 이공계와는 조금 다르니까요. 흔히 말하는 통섭, 통합을 은연 중에 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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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의 위기, 인문학의 위기


현재 대학 학제가 유연하진 않잖아요. 이전에 자율전공학부로 대학에서도 학제 간 교류 실험을 한 적이 있을 텐데, 비슷한 목적에서 시작한 건가요?


기본 철학은 비슷할 거예요. 실제로 문과로 들어온 학생이 이과 과목을 해 보고 이과 학생은 문과를 해보는 경우는 있어요. 강요는 안 해요. 통섭을 목적으로 하기보다는 대학이 몇십 년 동안 학제로 진행한 결과가 너무 과 위주로만 되다 보니 문제가 있다, 주체적으로 스스로 디자인하면서 공부해보라고 하는 게 주된 목적이었죠.


인문학의 위기라고 합니다. 인문학 관련 과를 폐쇄하는 대학도 많고요. 자본주의를 배격하는 입장은 아니시겠지만, 학문의 수익성을 재단하는 것에 대한 위기의식은 없으신가요?


위기의식을 느끼죠. 당장 대학이 쭈그러들고 제자가 자리 못 잡고 있는 걸 보면 가슴 아파요. 하지만 어제오늘 이야기도 아니고, 사실은 늘 있었던 이야기예요. 얼마나 당대 사람들이 예민하게 받아들이냐는 차이가 있어요. 하지만 대학을 운영하고 경영하는 입장에서 수익을 고려하는 건 참 속 좁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이나 유럽 명문 대학에는 역사학과 교수가 6, 70명씩 있거든요. 다 돈 들어가는 일이에요. 그렇게 하는 이유가 길게 보면 사회에도, 대학에도 좋은 일이라는 거죠. 역사나 문화를 공부한 학생의 몇 퍼센트가 대학원으로 가겠어요. 다 다른 일 하죠. CEO까지 올라간 사람들이 나중에 봤더니 인문학이 정말 중요하더라는 말을 해요. 인간의 기본 능력, 대화 능력과 판단 능력을 키워줬다는 거죠. 리더는 큰 걸 봐야 하잖아요. 통솔하고 이끌어가면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일은 역사학 교육이 제일 잘해요. 대국이 흥망하는 큰 드라마를 같이 보게 되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역사학자에게 미래를 묻게 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역사가 항상 반복되진 않는다고도 말씀해주셨어요.


표면적인 유사함 때문에 반복되는 것처럼 보이지 그렇지는 않아요. 반복이 있어야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데, 같아 보이는 사건이 일어났다고 같은 결과가 나오진 않거든요. 미래가 어떻게 되리라 하는 감을 잡을 수는 있지만 예측은 당연히 틀릴 수밖에 없어요. 인간이 지나온 행태를 보면서 인간과 사회가 대략 어떻더라 하는 통찰만 줄 수 있을 거예요. 정말 쓸데없을 수도 있지만 가장 중요할 수도 있는 영역에서 목소리를 내주는 거죠.


서울대 시흥 캠퍼스 관련해서 최근 점거농성 강제 해산이 일어나기도 했죠. 교수 입장에서 이야기하고 싶거나 이야기해야 할 말씀이 있으신가요?


캠퍼스가 과밀이에요. 그건 누구나 다 알아요. 새로운 학문이 늘어나고 새로운 실험실이 필요하죠. 몸과 마음이 다 자라라면 운동장도 필요할 거예요. 그래서 새로운 캠퍼스를 열어 뭔가 한다는 건 정말 좋은 일이에요. 축복 속에 새로운 캠퍼스를 만들어야 하는데, 조바심에서 일을 망친 게 아닌가 싶어요. 총장님도 큰 계획과 철학을 가지고 캠퍼스가 필요하다고 설득하고, 교수와 학생이 참여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논의하는 과정이 순조로웠다면 좋았겠죠. 말처럼 쉬운 게 아니겠지만, 그러라고 있는 대표 자리잖아요.


학생들도 안타까워요. 이미 다 계약하고 돈이 몰려 있는데 막무가내로 자본주의 투기라면서 무작정 백지화하라고 하면 안 되잖아요. 개인적으로 이야기해 보면 다 캠퍼스의 필요성을 절감하는데, 학생들끼리 모여 있으면 무조건 반대만 해요. 요새 왜 이러는 걸까 생각하고 있어요. 진짜 용기는 싸우려고 나가서 자기 잘못을 승인하는 게 진짜 큰 용기거든요. 양쪽 다 남은 거라고는 악밖에 없어진 것 같아요. 비감하고 있어요.


대학사회에서의 인문학부 축소와는 별개로 사회에서는 인문학 열풍이라고 해도 될 정도예요. ‘인문학’을 제목으로 단 책도 쏟아져 나오고요. 최근에는 방송에서 인문학을 주제로 강의하는 사람들도 많아졌죠. 인문학 강연 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우려는 합니다. 그것 자체가 나쁘진 않아요. 잘 운영되면 좋겠죠.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자기 내면에서 찾아야 하거든요. 제일 좋은 방법은 진득하게 앉아서 책을 읽는 거죠.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가면서 오래 사유해야 하는데 누군가가 이 책은 뭐가 중요하고 어떤 구절을 보라고 요약하면 그 자리에서 소화되고 끝나요. 비유하자면 패키지여행과 자기가 직접 계획한 여행의 차이라고 생각해요. 패키지여행으로 다녀오면 어디가 어디였는지 가물가물해지지만, 자기가 기획하고 자료 조사하면서 찬찬히 보고 가면 훨씬 마음에 남는 게 많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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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을 쓰는 게 영향력이 가장 크다


비서구권에서 나고 자라서 서구권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새로운 시각이 있을 것 같아요. 스스로 주류에서 비껴난 시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시는 편인가요?


콜럼버스를 신비주의자라고 해석했던 건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할 것 같아요. 하지만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이미 그런 연구가 나오고 있죠. 제가 제일 먼저 어떤 결과를 학계에 보고할 기회는 별로 없어요. 역사학은 사료를 봐야 하는데, 사료는 다 서양에 있으니까요. 그래도 관점을 그대로 수입하는 게 아니라 나름의 해석을 덧붙이다 보면 아무래도 주류 시각과는 다르겠죠. 서 있는 위치에서 보게 되어 있어요. 예를 들어 중국 학자들은 정말 중국 중심적이에요. 중국 황제의 은덕을 전세계에 펼쳤다는 기록을 보고 다른 사람들은 헛된 수사라고 하고 말지만, 중국 학자들은 사실로 받아들인다든지요. 지역마다 성격이 달라요.


학부 전공이었던 경제학이 연구에 도움이 되거나 영향을 끼친 게 있나요?


있겠죠? 글을 보고 사람들이 가끔 학부 때부터 인문학만 하는 학자들과는 다른 점이 보인다고 이야기는 해요. 무엇보다 사회과학적인 사고 방식이 인문학을 하는 사이마다 작용하고 있나보다고 생각해요. 학부 때 나라를 구하느라 공부는 안 했지만(웃음), 그래도 한창때 공부한 게 남아 있겠죠.


어떤 연구 내용이 생기면 먼저 대학원에서 교육하고 소화가 된 후에 교양 과목, 거기에서도 소화가 된다면 그다음에야 글로 쓴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연구에서 가장 첨단을 보기 위해서는 첨단의 차원에서 이야기해야 하는 거고, 그걸 그대로 가져오는 게 아니라 학부 수업에 맞는 틀로 몇 가지를 녹여 보는 거죠. 글쓰기는 또 그대로 가져오는 게 아니라 녹여낸 것 중 좋은 걸 쉽게 집어넣어서 푸는 거고요.


글도 많이 쓰시고 책도 많이 내셨잖아요. 선생의 자리와 작가의 자리, 연구자의 자리 중 어느 게 제일 잘 맞는다고 느끼세요?


시간에 따라 좀 바뀌어요. 글쓰기가 예전에는 비중이 작았거든요. 많이 쓰지만 저에게 정말 중요한 건 교육이라는 의식을 꽤 많이 가지고 있었어요. 우리 아이들을 잘 키우고, 연구는 소홀히 하지 않으면서 글도 써야지 하는 마음이었는데, 지금은 좋은 책을 쓰는 게 영향력이 가장 크겠다는 생각을 해요. 좋은 책이라는 건 오랫동안 공들인 책인데, 역시 사람들이 알아보더라고요. 굳이 나눌 수는 없는 문제지만, 연구와 교육과 글 세 분야가 잘 연관되는 게 이상적으로는 가장 좋죠.


같이 강의하는 배철현 선생님이 다른 인터뷰에서 박 전 대통령을 위해서 강의할 용의가 있다고 하셨어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우리나라 정치가들이 같은 말을 해도 설득력이 없어요. 정치 테크닉과는 별개예요. 오바마나 메르켈을 보면 기본이 되어 있어서 사람들에게 하고자 하는 바를 소개하는 게 갖춰져 있어요. 반드시 말을 잘한다는 말이 아니라 탄탄한 교육을 받아서 기본을 가지고 사회에 나간다는 거죠. 그런 사람들이 나라를 위해 일하면 훨씬 낫지 않을까, 막연한 이야기지만 그런 생각은 들어요. 그 표현 중 하나가 대통령이 와서 강의를 들으면 좋겠다는 말이었겠죠.


기본을 가진다는 건 무슨 뜻인가요?


잘 이해해서 잘 파악하고, 잘 분석하고 좋은 결론을 이끌어내고 그걸 사람들에게 잘 전달해서 이끄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건 사회 자체가 건강해야 해요. 이런 기본을 공유하고 있어야 얕은 사람이 나오면 허수아비라고 알아채고 탈락시키죠.

 


 

 

그해, 역사가 바뀌다 주경철 저 | 21세기북스
2015년 건명원(建明苑)에서 진행한 다섯 차례의 역사 강의를 묶은 이번 책은 서울대 주경철 교수가 ‘역사’라는 프리즘으로 문명의 오늘을 진단하고 통찰한 결과다. 우리의 내일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선진 인류로서의 책임과 지혜를 발휘하기 위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역사의 결정적 장면으로부터 이끌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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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작가 특집 ②] 장수민 “나쁜 동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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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회 창비좋은어린이책 원고 공모’ 저학년 부문 수상작으로 『헛다리 너 형사』가 선정됐다. 심사위원들은 “매력적인 캐릭터와 추리 기법의 플롯이 흥미롭고 문장이 안정적”이라며 호평했다. 앞서 『비밀귀신』으로 ‘제2회 열린아동문학상’을 수상했던 장수민 작가는 “재밌게 읽히면서 판타지 기법을 자연스럽게 활용한 새로움이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은 바 있다. 읽는 내내 ‘무슨 일이 벌어질지’ 궁금해지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작가의 바람은 다시 한 번 현실이 됐다.

 

『헛다리 너 형사』는 ‘모모 시’라는 공간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너구리 형사 ‘너 형사’의 범인 잡기 소동을 그린다. 의욕 넘치지만 그만큼 빈틈도 많은 주인공은 ‘헛다리’라는 별명을 얻지만 자신감을 잃지 않는다. 모든 동물의 관심사인 ‘털 자랑 대회’를 앞두고 전설의 여우 빗이 사라지는 사건이 발생하자 ‘너 형사’는 추적에 나선다.

 

작품은 개성이 뚜렷한 인물들을 보여주며 각자 추구하는 가치와 지니고 있는 아름다움이 다름을 일깨워준다. 추리 기법을 활용한 만큼, 이야기 곳곳에 감춰진 단서들로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한다. 어린이 독자들은 흥미를 잃지 않고 끝까지 이야기를 따라오면서 자연스레 논리적인 추론 방법을 터득하게 된다. 이에 덧붙여 장수민 작가는 “모모 시는 독특한 개성을 가진 동물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공동체”라는 것을 상기시켰다.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듯 보여도 사실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아이들 스스로 발견하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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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툴러도 괜찮아, 끝까지 열심히 하는 게 중요해


‘작가의 말’에서 말씀하시길, 이 이야기는 털이 빠진 라쿤에 관한 기사에서 시작됐다고 하셨어요.

 

오래 전의 기사인데 재밌다고 느껴서 스크랩을 해뒀었어요. 미국 켄터키 주에서 털이 빠진 라쿤이 발견됐는데, 처음에는 무슨 동물인지 알 수가 없었대요. 전설에 나온 흡혈 괴물이라는 소문도 있었고요. 그러다가 연구, 조사를 통해서 피부병에 걸려 털이 빠진 라쿤이라는 게 밝혀지면서 소동이 일단락됐다는 내용이었어요. 그 기사를 보고 재밌는 소재라는 생각이 들어서 메모를 해놨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다른 생각들이 보태졌어요. 너구리 형사 캐릭터가 떠오르면서 ‘전설의 여우 빗을 도둑맞은 사건과 그 도둑을 찾기 위한 여정’이라는 하나의 이야기로 묶어졌고요.

 

‘너 형사’처럼 빈틈 있고 허술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설정하신 이유가 있나요?


저학년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이야기잖아요. 처음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때 아이들은 잘할 수 있는 일보다 서투르고 실수를 하는 일이 더 많죠. 그럴 때 좌절하기보다는 끝까지 열심히 하는 게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이 이야기를 쓸 즈음에 제 자신을 봤을 때 ‘나는 왜 맨날 이렇게 헛다리를 짚지?’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때 ‘헛다리’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꽂히더라고요. 그래서 ‘너 형사’의 별명을 헛다리로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작품 속에 여우의 옛말 ‘Untitled-1.jpg’이 나와요. 놀이책 『무얼 살까?』에서도 풍성한 꾸밈말을 활용하셨는데요. 아이들이 책을 통해서 말에 대한 감각을 익힌다는 점에서 단어 하나도 신중하게 고르실 것 같아요.


『무얼 살까?』는 유아를 대상으로 한 책이다 보니까 아무래도 그런 부분이 있었죠. 『헛다리 너 형사』에 등장하는 여우 빗은 말 그대로 전설의, 아주 오래된 빗이다 보니까 현대어를 쓰는 것보다 옛말을 쓰는 게 좋을 것 같았어요. 그리고 이번 작품의 경우에는 처음에 이름을 짓는 데 많은 신경을 썼는데요. 기린 우체부 같은 경우에는, 이름은 딱히 없지만, 기억력이 좋거든요. ‘기억력이 좋은 기린 우체부’ 이런 식으로 나름대로 별명을 지었는데, 쓰면서 재미가 느껴지더라고요. 오 기자 같은 경우에도 ‘오지랖이 넓은 오랑우탄 기자’예요. 코뿔소 의사는 ‘콧대가 높은 코뿔소 의사’이고요. 동물들의 특징을 보고 연상할 수 있는 것들을 상징적으로 풀어간 건데, 약간 유아적인 발상이기는 하지만 저학년 아이들이 재미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너구리가 주인공인 이유는 무엇인가요?


너구리이기 때문에 ‘너 형사’라고 부르잖아요. 그런데 독자들한테 ‘너도 형사야, 같이 범인을 찾아 봐’라고 말하는 듯한 느낌도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사실은 이 작품을 쓰면서 제가 계속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이 정말 재밌었던 것 같아요. 읽는 독자들이 중점을 두는 포인트는 다 다를 거예요. 어떤 독자는 ‘너 형사’보다 ‘미오’에게 더 동질감을 느끼거나 공감할 수 있을 거예요. 독자마다 자신이 좋아하는 캐릭터나 포인트에서 재밌게 읽어주면 좋을 것 같아요.

 

등장인물이 동물이라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데 제약이 적었을 것 같아요. 어떠셨어요?


아무래도 그렇죠. ‘모모 시’라는 곳은 동물들이 모여서 사는 곳인데, 그곳의 규칙이나 사는 모습을 제가 상상해서 정하면 되니까요. 그런데 상상하는 단계에서는 굉장히 재밌었는데, 이야기를 하나로 엮을 때는 고민이 필요했어요. 독자가 읽었을 때 어색하거나 비약이 심하면 안 되잖아요. 자연스럽고 논리적으로 이야기의 흐름을 타야 하니까요. 그런 부분을 조정할 때는 고민을 했어요.

 

아름다움의 다양성, 개성에 대한 이야기도 담겨 있다고 생각돼요. 등장인물이 사람이었다면 표현하기 어려운 주제였을지도 모르겠어요.


‘모모 시’는 멋진 털을 가진 동물들이 많이 사는 도시잖아요. 말하자면 포유류 중심의 도시인 셈인데요. 등장인물들의 털이 굉장히 다양해요. 여우인 ‘미오’는 부드럽고 탐스러운 털을 가지고 있는데 ‘떠세’는 뾰족뾰족한 가시를 가진 고슴도치예요. ‘하리’는 짧고 곱슬곱슬한 털을, ‘너 형사’는 짧고 거친 털을 가지고 있죠. ‘무람’의 경우에는 털이 없어요. 털이 없는 게 부끄러워서 털옷을 짜서 입는 거북이죠. 처음부터 주요 인물들의 털에서 다양성을 보여주려고 설정을 했어요.

 

추리 기법을 활용해서 읽는 재미가 있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제가 추리 기법이 들어간 이야기를 좋아하기도 해요. 독자와 작가가 밀고 당기는 재미를 즐길 수 있는 것 같아서 재밌더라고요. 독자가 뒷부분을 다 예상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같이 추측하면서 따라갈 수 있잖아요. 이야기의 끝까지 집중력 있게 읽을 수 있고요. 특히 저학년 아이들 같은 경우에는 중간에 쉽게 지치거나 책을 덮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데 궁금증이 있으면 이야기를 끝까지 읽을 수 있죠. 그래서 ‘너 형사’가 마지막에 등장한 캐릭터였어요. 처음에는 ‘미오’가 주인공이 될 수도 있었는데, 나중에 ‘너 형사’가 생각나면서 주인공이 살짝 바뀐 거죠.

 

이야기 중간 중간 단서가 감춰져 있습니다. 어린이 독자들이 작품을 읽으면서 논리적으로 추론하는 방법을 배우게 될 것 같아요.


제가 공통 단서로 넣은 건 딸기였죠(웃음). 단서를 찾기가 너무 어려우면 아이들이 흥미를 잃을 수도 있으니까, 딸기가 저학년 아이들의 수준에 맞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정했어요. 독자에 따라서 단서를 눈치 채는 순간이 다를 수 있을 거예요. 앞부분에서 눈치 채는 친구도 있을 테고, 나중에 ‘너 형사’가 깨닫는 순간에 같이 알게 되는 아이들도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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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와의 책 읽기는 친구처럼

 

어린이책을 쓰시려면 어린이의 눈높이에서 보고 생각하셔야 되잖아요. 그런 감각은 어떻게 계속 유지하세요?


조카들과 자주 대화하고, 친구들과 모임을 할 때 아이들과 만나서 이야기하기도 해요.

 

아이들에게 출간 전의 작품을 보여준 적은 없으세요?


조금 두렵더라고요(웃음). 제가 아직 부끄러워서 쓰기 전에는 보여주지 못하고요. 전체를 보여주지는 않고 항상 일부분만 보여줘요. 앞부분의 몇 페이지만 보여주면서 ‘어때? 뒷이야기가 궁금해? 읽고 싶을 것 같아?’라고 물어보죠. 조카들을 만났을 때도 제가 글을 쓰고 있으면 뭐 하는지 물어봐요. 그럼 앞부분만 읽어 보라고 한 다음에 ‘어때? 재밌을 것 같아?’ 하고 물어보죠. 아이들한테서 소재를 찾기도 해요. 아이들이 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아이들은 저렇구나’ 생각하면서 직접적인 소재를 얻기도 하죠.

 

성인을 대상으로 한 책과 달리, 어린이책은 독자의 반응을 직접 들을 기회가 많이 없는 것 같아요. 리뷰를 남기시는 분들도 대부분 부모님들이죠.


특히 저학년이다 보니까 스스로 책을 선택해서 보기 보다는 부모님들이 선택하시는 경우가 많은데요. 저는 엄마들이 같이 동화책 읽는 건 좋다고 생각해요. 동화는 아이들을 위해서 쓰여진 이야기이지만, 담겨 있는 내용 자체가 우리들 사는 이야기잖아요. 엄마들이 같이 읽고 아이와 대화를 해주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아이한테 가르친다는 느낌보다는 ‘엄마는 이 부분이 재밌었는데 너는 어땠어?’ 하고 친구처럼 같이 대화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이야기하면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 확장되기도 하거든요. 아이들이 책을 읽고 나서 아이들이 엄마나 친구, 주변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다 보면 도움이 많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생각의 확장이 아이에게만 일어나는 건 아니잖아요. 아이들과 대화하다 보면 놀랄 때가 많아요. 미처 못 봤던 걸 알게 되기도 하고, 아이의 상상력에 감탄하기도 하고요. 그런 경험이 있으세요? 


그럼요, 많죠. 제가 조카들을 모델로 해서 이야기를 쓸 때가 있는데, 그럴 때 아이들이 알아채기도 해요. ‘혹시 이거 나야?’ 하고 의심하는 거예요(웃음). 그리고 요구를 해요. 뒷이야기는 이렇게 써달라고요. 그러면 고려해 보겠다고 말하죠(웃음). 어떤 아이들은 ‘나라면 이렇게 쓸 거야’라고 말하기도 해요. 얼마 전에도 친구랑 친구 아들과 만났는데 『헛다리 너 형사』가 곧 나온다고 하니까 ‘나라면 너구리 형사가 등장하는 이야기에 이런 걸 쓰겠어’ 하고 자기 생각을 덧붙여서 이야기하더라고요. 어른들은 생각이 고정되어 있거나 필요 이상의 것을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는데, 그런 면에서 아이들은 조금 자유로운 것 같아요.

 

좋은 책에 대한 생각도 아이들과 부모님 사이에 차이가 있겠죠?


그럼요. 아이들이 좋아하는 책과 엄마들이 좋아서 추천해주는 책들이 많이 다른 것 같아요. 엄마들 입장에서는 뭔가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을 권해주고 싶죠. 학습적으로든, 교육적으로든, 혹은 아이에게 잔소리하는 부분들을 책으로 품위 있게 전달할 수 있는 것들이면 좋겠다고 생각하죠(웃음). 그런데 요즘에는 깨어 있는 분들이 계셔서 아이들이 재밌어 할 포인트가 있는 책을 찾기도 하세요. 아직 저학년은 어리기 때문에 부모님이 선택해 주시는 경우가 많기는 한데요. 사실 책읽기는 책을 고르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는 것 같아요. 엄마가 선택의 범위를 정해주더라도, 아이들이 그 안에서라도 좋아하는 책을 고를 수 있게 하는 방법이 좋지 않을까 생각해요. 딱 한 권을 골라서 주기보다는 여러 권 중에서 아이가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거죠.

 

흔히 동화 작가님들께 묻는 질문이 있죠. 왜 성인 소설이 아닌 어린이책을 쓰시냐는 건데요. 반가운 이야기만은 아닐 것 같아요. 성인 소설 작가님들께는 왜 어린이책을 쓰지 않으시냐고 묻지 않잖아요.


아무래도 어린이책이 어른이 어린이들을 위해서 쓰는 거니까요. 어른이 자연스럽게 자기 이야기를 써서 어른들을 대상으로 책을 쓰는 것과는 조금 다르기 때문에 그런 질문을 하는 것 같아요. 저는 처음에 글을 쓰겠다고 대학에 들어갔을 때부터 동화를 쓰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저한테는 너무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오히려 그런 질문은 대학 때 더 많이 들었어요. 고등학생 때는 단순히 글 쓰는 게 좋았고 문학의 장르적인 개념도 잘 없었는데, 대학에 입학했더니 선배들은 다 전공이 나눠져 있더라고요. 오리엔테이션에서 만나면 ‘너는 뭘 쓸 거니?’라고 질문을 하는데, 저는 동화를 쓸 거라고 이야기를 했어요.

 

그때부터 동화를 쓰기 시작하셨나요?


제 대답이 굉장히 회자가 돼서 선배들이나 친구들을 만나면 저에 대한 인사가 ‘너 동화 쓴다며?’ 이렇게 된 거예요(웃음). 처음에는 그 말에 제가 약간 묶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는데, 하다 보니까 너무 잘 맞고 재밌더라고요. 제 성향 자체가 조금 더 미래에 대해서 꿈과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 같아요. 어른이 읽었을 때나 어린이가 읽었을 때나, 뭔가 어려움을 이기고 극복하고 성장하는 이야기였으면 좋겠는 거죠. 제 포인트가 성장이라는 데 많이 맞춰져 있더라고요. 거기에 아동문학은 너무 잘 맞는 장르인 거예요. 같이 동화 쓰는 친구들하고 만나서 이야기해보면 비슷하더라고요. 제 성향이나 기질이 동화에 더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모르겠어요, 소설 쓰시는 분들을 많이 안 만나봤고 잘 몰라서요. 그런 부분에서 조금 차이가 있지 않을까 짐작할 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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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동화는 없다


작가님의 작품을 읽었던 아이가 성장해서 ‘어렸을 때 그 작품, 그 인물을 너무 좋아했어요’라고 말하면 가장 감동적이지 않을까 싶어요.


그럴 것 같아요. 나중에라도 생각나는 인물, 스토리를 쓰고 싶어요. 기억에 남는 작품이요.

 

작가님에게도 그런 작품이 있었나요?


초등학교 때는 다양하게 이야기를 좋아하기는 했는데요. 저한테 기억에 남는 작품은 동화보다 중학교 때 읽은 『노인과 바다』예요. 지루하다고 말하는 친구도 있었는데 저는 너무 빠져서 읽었어요. 노인이 바다에서 계속 도전하고 힘겨루기 하는 장면이 너무나 인상적이었거든요. 어떻게 보면 『헛다리 너 형사』도 조금은 겹쳐지는 부분이 있더라고요. 제가 한 번에 능숙하게 잘 하는 일이 잘 없어서 그런 가 봐요(웃음).

 

청소년기 이전에는 어떤 이야기를 좋아하셨어요?


어렸을 때는 이야기책을 좋아했어요. 그때는 세계 전래 동화가 있었거든요. 그런 옛 이야기책들을 많이 읽었고요. 아동문학 중에서는, 굉장히 오래된 작품인데 방정환의 『만년샤쓰』가 기억에 남아요. 너무 가슴이 뭉클해서 기억에 남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좋아하는 작품이나 동화도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 변하는 것 같아요. 어른이 되어서 좋아했던 작품들은 미하엘 엔데의 『모모』『끝없는 이야기』예요. 오히려 어른이 되고 나서 상상력이 풍부한 이야기가 좋더라고요. 오카다 준의 작품처럼 현실에서 일어나는 판타지도 좋아하고요.

 

동화작가의 눈으로 볼 때 좋아하는 작품들은 어떤 건가요?


다음 작품을 구상할 때 새로운 작품을 쓰고 싶은 마음이 있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뭔가 새로운 포인트가 있는 작품을 찾게 되는 것 같아요. 기존에 있는 이야기보다는, 소재든 구성이든 새로운 지점이 있는 작품들이 좋아요. 작가로서 제가 다음 작품 쓸 때 참고가 될 만한 작품을 찾게 되더라고요. 새로운 작품이 좋아요.

 

사실,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는 게 참 힘든 일인 것 같아요.


그렇지만 노력해야 될 부분인 것 같아요. 작품은 계속해서 나오고 누적되지만 아이들은 30년 전 아이와 요즘 아이가 다르잖아요. 그런 것도 어느 정도 반영하면서 새로운 지점을 찾고, 자기 색깔을 담은 이야기를 쓰려고 노력하는 게 필요한 것 같아요. 완성도는 역량에 따라서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노력은 해야 되지 않을까 싶어요. 저는 어른이든 아이이든 성장하고 발전하는 사람이 좋은 것 같아요. 특히 성장기에 있는 아이들한테 내가 살면서 겪고 깨달았던 것들을 이야기를 통해서 알려줄 수 있다는 것, 그렇게 소통하면서 성장의 일부분에 일조할 수 있다는 건 정말 가치 있는 일인 것 같아요. 어린이들의 미래에 투자한다고 해야 할까요.

 

좋은 어린이책이란 어떤 걸까요?


기본적으로 나쁜 동화는 없는 것 같아요. 어른들이 아이들한테 들려주기 위해서 고민한 끝에 탄생한 이야기잖아요. 그리고 책 한 권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거든요. 물론 상업적인 요소들이 어느 정도 개입하기는 하겠지만, 기본적으로 작가들이 동화를 쓸 때는 좋은 마음으로 쓴다고 생각해요. 이 책이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쓰는 거죠. 그 대신 작가들이 새로운 작품을 쓰기 위해서 조금 더 노력을 해야 된다는 생각을 해요.

 

다음 작품의 집필은 시작하셨나요?


지금 마무리되고 있는 작품이 하나 있고요. 새롭게 들어가는 작품도 하나 있어요. 저는 소재를 찾으면 이야기가 완성될 때까지 계속 구성을 하는 편이에요. 그렇게 몇 가지 이야기들을 계속 구성을 하면서, 제가 생각하기에 어느 정도 이야기가 완성될 때 단번에 써요. 그래서 구성하고 있는 이야기들 사이에 나름대로 순서를 정해놓고 쓰고 있어요.

 

『비밀귀신』에서는 판타지 기법을, 『헛다리 너 형사』에서는 추리 기법을 활용하셨는데요. 새 작품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궁금증을 유발하실 계획인가요?


마무리하고 있는 작품도 판타지예요. 형제들 안에서 일어나는 폭력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폭력이라고 말하면 너무 큰 것 같지만, 형제 사이에 투닥투닥 때리고 싸우는 정도가 심할 때가 있더라고요. 그런데 그걸 폭력이라고 인식을 못하고요.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차는 걸 어느 정도 놀이로 볼 수도 있지만, 그렇게 해서 사고가 나기도 하잖아요. 그런 걸 의식하지 못하는 형제들 간의 이야기를 판타지적인 요소를 넣어서 풀어놓은 이야기예요.

 

판타지 요소가 가미된 만큼, 폭력이 직접적으로 묘사되지 않으면서도 흥미로운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이야기는 재밌게 읽되, 읽고 났을 때 교훈을 떠올릴 수 있으면 되는 거잖아요. 처음부터 직접적으로 이야기하면 잔소리 같이 들리죠. 그리고 기본적으로 책읽기는 놀이여야 되거든요. 놀면서 즐기면서 나중에 교훈은 덤으로 얻는 것이라고 할까요. 보통 어린이책은 재미와 교훈이 있어야 된다고 이야기하는데, 작가들마다 비중이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교훈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교훈을 줄 수 있는 재밌는 이야기를 쓰겠다고 생각하는 작가가 있는가 하면, 재밌는 이야기를 쓰면서 교훈을 덤으로 주겠다고 생각하는 작가도 있죠.

 

독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여주면 가장 기쁠 것 같으세요?

 

공감하는 포인트가 있으면 좋겠죠. 가장 좋은 건, 이 이야기를 읽고 나니까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고 말하는 거죠. 『헛다리 너 형사』안에서 아이들이 갇히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읽고 나서 본인의 생각이나 상상력을 확장했으면 좋겠어요. 저는 이 이야기를 같이 공유하자고 던져주는 것일 뿐이죠. 책을 읽고 나서 느낀 결과물은 한 가지일 수가 없잖아요. 사실 저학년 책은 조금 더 단순하고 명쾌한 이야기를 선호하는 경향은 있어요. 그런데 저는 겉으로 보여지는 것과 달리 안에 층층이 무언가를 두고 싶은 욕심이 있는 것 같아요.

 

『헛다리 너 형사』안에 층층이 쌓아두신 건 무엇인가요?


어떤 아이들은 이 이야기에서 ‘너 형사처럼 자신감을 가지고 끝까지 해야 돼’라는 것만 얻을 수도 있겠죠. 어떤 아이들은 ‘모모 시’의 털 자랑대회를 보면서 ‘털이 이렇게 다양하구나’까지 생각할 수도 있을 거예요. 또 어떤 아이들은 ‘미오한테는 여우 빗이 굉장히 소중한 물건이지만 하리한테는 쓰레기통에 버릴 만큼 하찮은 것이기도 하구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동물들마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다르다는 걸 알아챌 수도 있을 거예요. 이런 식으로 겉으로 보여지는 것 말고 이면에 있는 것들에서 아이들마다 발견하는 게 다를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다양하게 읽혔으면 좋겠어요.

 

‘자녀의 독서를 어떻게 도와줘야 할지’ 해답을 들려주신 것 같아요. 하나의 대답을 강요하지 말고, 질문을 하면서 생각을 계속 유도해야 하지 않을까 싶네요.


교과서에 실리는 이야기들은 내용 확인 문제를 풀잖아요. 정답이 정해져 있어요. 주인공은 어떤 성격인가요, 주제는 무엇인가요, 하는 식으로 정해져 있는 걸 배우는 거죠. 그렇게 교과서로 읽는 이야기가 아니라면, 정말 자유로운 독서에서까지 정답을 찾을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다양하게 즐겼으면 좋겠어요. 똑같은 책을 읽어도 느끼거나 표현하는 게 다를 수 있잖아요. 아이들이 책을 읽으면서 자기 정체성이나 색깔, 취향을 찾아가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헛다리 너 형사장수민 글/정가애 그림 | 창비
『괭이부리말 아이들』 『엄마 사용법』 『기호 3번 안석뽕』 등 주옥같은 창작동화와 숱한 화제작들을 발굴해 온 창비 ‘좋은 어린이책’ 원고 공모의 제21회 저학년 부문 수상작 『헛다리 너 형사』(신나는 책읽기 47)가 출간되었다. 의욕은 넘치지만 늘 헛다리를 짚고 마는 너구리 형사 ‘너 형사’의 범인 잡기 소동을 그렸다.

류시화 “덜 움츠리고 덜 비난하고 더 많이 예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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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길을 걷겠다고 노숙자가 되자 사람들은 제정신이 아니라고 했다. 시를 쓰고 책을 읽느라 학교는 낙제했다. 국문학을 공부하고 국어 교사가 되는 행운을 얻었으나 포기하고 잡지사에 들어간다. 하지만 반년이 안 돼 퇴사했다. 이후 클래식 음악카페를 열었지만 석 달 만에 문을 닫았다. 출판사에 취직했다가, 바바 하리 다스의 『성자가 된 청소부』원서를 읽고 그 책을 번역하겠다는 일념으로 회사에 사표를 냈다. 이후 뉴욕으로 떠났다가 인도의 명상 센터에 머물다가 서귀포에서 두 해를 살다 또 서울로 왔다. 지금도 한 해에 서너 번 인도를 여행한다.

 

류시화는 자신의 삶을 두고 “방황한다고 길을 잃은 것은 아니다”라고 했다. 인간은 ‘호모 비아토르Homo Viator’ 즉 떠도는 사람, 길 위의 사람이다. 봄이 자꾸 머뭇거리던 3월의 한낮. 류시화 시인과 마주했다. 그는 선택을 앞둔 순간 ‘이 길에 마음이 담겨 있는가?’를 생각한다고 했다. 불확실한 시대에 한 권의 책을 쓰고 남기는 일. 류시화는 “다만 길 위에서 당신과 함께 인생을 이야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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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독자란, 글을 나눠 읽는 동지

 

20년 만에 펴낸 에세이다. 30대 초반에 쓴 산문집은 바로 절판을 시켰다.

 

내가 깊이 경험하지 않은 것,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것에 대해 문학적 수사를 동원해 글을 썼다는 자책감이 컸다. 이후 ‘나 자신이 경험한 것만을 쓰자’고 결심했다. 경희대학교 국문학과에 문예장학생으로 입학해 산문을 몇 편 썼는데, 당시 우리를 가르치시던 소설가 황순원 교수께서 이런 말씀을 했다. “시는 젊어서 쓰는 것이고, 산문은 나이 들어서 쓰는 것이다.” 시는 고뇌를, 산문은 인생을 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제 산문을 쓸 만큼 나이가 들었다. 하지만 더 나이가 들어 ‘경전’을 쓰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 나는 언제까지나 그저 시인이고 떠돌이 여행자일 뿐이다.

 

평소 인터뷰를 안 하기로 유명하다. 독자들을 따로 만나는 행사도 하지 않았다.


강연과 인터뷰는 거의 사절해 왔다. 거절하는 것이 곤혹스러울 때도 있지만, 나는 글 쓰는 사람이지 말하는 사람은 아니라서 그렇다. 지금 이 인터뷰도 여러 차례 거절했지만, 출판 시장이 불황이기 때문에 도와줘야 한다는 요청에 등 떠밀려 하게 됐다. 이집트 사막에서 수행하던 초기 기독교 교부 중 한 명은 사람들이 찾아올수록 더 깊은 사막으로 달아났다. 세상에 나와서 좋은 말씀을 해달라는 사람들의 요청에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추하고 보잘것없기 때문에 세상에 얼굴을 내밀지 않는 것이다. 내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나의 덕행 때문이 아니라 나의 약점 때문이다.” 나도 그렇다. 내 글이 세상에서 읽히는 것만으로도 두려울 때가 있다.

 

시인으로서 독자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고 지금도 받고 있다. 독자의 관심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나는 작가이지만 ‘독자’라는 단어에 거부감을 느낀다. 한 권의 책을 읽을 때, 우리는 그 저자와 끈끈한 동맹 관계에 돌입한다. 그 관계를 형성하지 못하는 책은 실패한 것이다. 내게 독자란, ‘글을 나눠 읽는 동지’다. 시집과 번역서를 세상에 내놓을 때 나는 같은 공간대와 시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중에 적어도 천 명은 내 생각과 느낌에 공감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는다. 사랑은 곧 그 공감에서 출발한다. 알베르 카뮈는 “빗속에서 담배를 나눠 피울 때 우리는 동지애를 느낀다”라고 썼지만, 나는 내 글을 읽는 사람을 만날 때 같은 인간 존재로서의 동지애를 느낀다. 위대한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여행을 하다가 칠레의 탄광에 들른 적이 있다. 그때 갱도에서 일하던 얼굴이 새까매진 광부가 다가와 네루다를 와락 껴안으며 외친다. “당신을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그런 동지가 있을 때 우리는 이 세상 속에서 굳건해진다.

 

이 산문집은 골방에서 쓴 글이 아니다. 따라서 거리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여행자로서 만난 사람들이 당신에게는 스승이 아닐까 싶다.

 

러시아 출신의 게오르기 구르지예프는 20세기 유럽인들의 의식 변화에 큰 영향을 준 신비가이며 영적 스승이다. 그는 서양 문화권이 명상 교사나 스승들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토대를 닦았다. 심오한 사상에도 불구하고 그의 생애가 미스터리였는데, 훗날 어떤 이가 그를 가르친 스승들을 추적해 책을 썼다. 놀랍게도 그의 스승들은 구두 수선공, 향수 판매상, 마을의 숨어 사는 노인 등이었다. 여행지에서 우리는 낯선 여인, 혹은 처음 보는 아이와 눈이 마주친다. 그럴 때 우리는 언어가 달라도 삶에서 똑같은 경이와 슬픔을 느낀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똑같은 행복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 자신도 무너지거나 절망한 적이 많다. 그럴 때 나를 일으켜 세워 준 사람들, 내가 길을 잃었을 때 방향을 가리켜 보인 이들 모두가 나의 스승이다.

 

“인생은 관광이 아니라 여행이다”라고 했다. 주체적인 인생을 살라는 뜻인가?


“우리는 우리가 여행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여행이 우리를 만들어 나간다”는 말에 동의한다. “나는 계속 길을 감으로써 가야 할 곳을 발견한다”라는 말도 내가 좋아하는 글귀다. “우리는 새로운 세상을 보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보는 새로운 눈을 뜨기 위해 떠나는 것”이라는 명언도 있다. 자신의 편견과 판단 기준을 들고 여행하는 사람은 전보다 더 폐쇄적이 되어 돌아온다. 인도 여행 중에 힌디어를 배울 때, 어떤 새로운 단어를 알고 나면 그 단어가 일상 대화에서 자주 들린다. 없었던 단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늘 거기에 있었지만 내 귀가 듣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했을 뿐이다. 매일 힌디어 단어들을 새롭게 알듯이 여행은 세상에 대한 이해의 원, 인식의 원, 정신의 원을 넓히는 일이다.

 

근작이 2015년에 출간한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이다. 시를 더 많이 발표해야겠다는 생각은 없나?


나뿐만 아니라 모든 시인은 한 가지 딜레마에 빠진다. 시를 쓰면서 동시에 내가 너무 많은 말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자책감이다. 이것은 다른 직업군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고민이다. 물건을 만드는 사람은 더 많은 물건을 만들기를 원할 것이고, 집 짓는 사람은 더 많은 집을 지으려고 할 거다. 그러나 유독 이 괴팍하기로 소문난 시인은 밤을 새워 시를 쓰고서도 스스로 단어와 행들을 줄이고, 마침내는 폐기해 버린다. 에밀리 디킨슨이 평생 시만 쓰고 1,770여 편의 시를 썼으면서도 작품을 거의 발표하지 않았던 것도 단순히 그녀의 개인주의적이고 비사교적인 성격 탓만이 아니라 그런 결벽증에 기인한 것이라고 나는 해석한다. 내가 제3시집 『나의 상처는 돌 너의 상처는 꽃』을 낸 것이 5년 전인데, 그 시들도 350여 편의 미발표시 중에서 고른 것이다.

 

평소 시를 종이에 쓰지 않고, 입속에서 수없이 중얼거리면서 외워 쓴다. 메모는 전혀 하지 않나?


메모를 할 때도 있지만 대부분 계속 소리 내어 암송하면서 시를 쓴다. 인도의 기차 안에 서는 이 방법이 매우 용이하고 효과적이다. 뜻 모를 말을 계속 중얼거리는 나를 머리가 이상한 자나 만트라를 외는 명상 수행자로 여기기 때문에 나도 사람들을 경계할 필요가 없다.

 

최근에 암송해서 쓴 시가 있나?


‘선운사 동백’이라는 제목의 시다.

 

당신과 나
그 사이에
아무도 없었던 적이 있었다
이 붉은 동백만이
모든 꽃은 다음에 피는 꽃에
지는 법
지금은
바닥에 떨어진 심장처럼
붉은 이 동백만이
당신과 나
그 사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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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호와 선동이 난무하는 시대,

시가 더 많이 필요하다


당신에게 문학은 어떤 의미를 갖나?

 

문학은 ‘은유’다. 은유로 말하는 것이 시이며 문학이다. 은유는 그 안에 많은 층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해석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그것이 문학의 은유가 주는 울림과 깊이다. 직설적인 표현과 구호가 지배하는 사회는 획일적이고 공격적이며 깊이가 얕다. 은유가 사라진 사회는 비극이다. 사람들이 은유를 이해할 인내와 상상력을 잃어버릴 때, 그들이 선호하고 열광하는 지도자들은 대개 직설적인 구호를 남발하고 돌직구를 날리는 선동꾼이다. 작가와 시인들은 여기에 동참하지 말아야 한다. 은유는 풀꽃이고, 강의 물결이고, 철쭉의 붉음이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 세계와 영혼의 세계도 은유로 가득 차 있다. 인도 시인 K. 사치다난단의 시에 이런 구절이 있다.

 

‘당신의 시선은 돌/ 그것이 유리처럼 나를 깨뜨린다’

 

최근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했나?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모든 예술인은 블랙리스트, 즉 위험인물 명단에 오른다. 이는 가장 힘없는 자가 예술인이면서 가장 강한 자가 예술인이라는 증거다. 말 그대로 ‘동태가 수상한 자’가 곧 예술인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 세상을 수상하게 보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가치관, 진행 방식 등을 째려보는 거다. 어느 정권에서든 편애를 받는 예술인은 예술인이기를 포기하고 기생하는 삶을 선택한 것이다. 예술인이 가장 멀리해야 하는 집단이 정치인, 권력자들이다. 도스토옙스키의 일화가 있다. 대문호 도스토옙스키는 혁명 운동에 가담한 혐의로 체포되어 총살 선고를 받았다. 그리고 다른 사형수들과 함께 사형 집행장으로 끌려간다. 죄수들이 말뚝에 묶이고 방아쇠가 당겨지려는 순간, 한 병사가 “중지!”를 외치며 달려온다. 황제의 특별 감형이 내려진 거다. 그렇게 해서 죽음 직전에 갑자기 자유인이 된다. 같이 밧줄에 묶여 있던 친구 하나는 이 일을 겪고 나서 정신이상자가 돼 버리지만 도스토옙스키는 죽음의 순간에 갑자기 살아난 그 순간을 결코 잊지 않았다. 그는 남은 생을 문학에 바쳐 ‘이미 죽은 사람들이 깨달은 것’을 표현하겠노라고 다짐한다. “과거를 되돌아보며 내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낭비했는가 생각했다. 삶은 하나의 선물이다.” 그 결심으로 도스토옙스키는 『죽음의 집의 기록』『지하 생활자의 수기』『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죄와 벌』등 불후의 명작들을 탄생시켰다.

 

“타인이 생각하는 나는 내가 아닐 때가 많다”고 했다. 자신을 잘 아는 것만큼 인생에 큰 도움이 되는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나 자신을 잘 알 수 있을까?


영화로도 만들어진 미국의 소설가 톰 로빈스의 소설 『카우걸 블루스Even Cowgirls Get the Blues』의 주인공 씨씨는 기형적으로 커다란 엄지손가락을 가지고 태어난다. 주위에서 손가락을 수술하라고 권하지만 그녀는 자신을 기형적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타인들의 평가가 아니라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자기 자신이라고 여긴다. 또한 세상 사람들이 사물을 보는 방식을 의심 없이 받아들이지 않고 그것에 저항한다. 거울 앞에 선 그녀는 자신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며, 성형수술을 받으면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있었지만 거부한다. 그리고 어느 날 실룩거리는 자신의 커다란 엄지손가락을 보다가 남다른 재능을 발견한다. 즉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히치하이커가 되기로 결심한 것이다. 거대한 크기 덕분에 그녀가 엄지손가락을 세우기만 하면 4차선 반대편의 차들도 멈춰선다. 그래서 그녀는 미국 전역을 히치하이킹으로 여행하며 새로운 삶을 발견해 나간다. 자신을 안다는 것은 ‘세상이 자신에 대해 말하는 것을 자기 자신으로 착각하지 않는’ 일이다. 또한 세상이 자신에게 부여한 역할이나 기능을 자기 자신이라고 오해하지 않는 일이다. 큰 엄지손가락은 그 자체로 아름답고, 따라서 숨길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세상은 결코 말해 주지 않는다. 여기서 비극이 시작된다. 자신의 불완전한 부분을 숨겨야만 완전하게 보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가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50여 권의 명상 서적을 번역했다. 출판사의 의뢰를 받아서 번역한 책이 아니라 직접 선택한 책들이다.


내가 공부하면서 읽은 책 중에서 나 자신의 영적 성장에 도움이 되고 마음에 울림을 주는 책을 선정해 번역했다. 나는 의뢰를 받아 책을 번역할 만큼 외국어 실력이 뛰어나지 못하다. 지금도 책 한 권을 번역하려면 수없이 단어를 찾아야 하고, 장발 머리를 쥐어뜯는다. 세상의 모든 번역가들에게 경의를 표하면서. 그래서 저자를 비롯해 세상의 모든 번역가들이 내 옆에 앉아서 나에게 조언을 해 준다고 상상하면서 작업한다. 그런 상상이 원활히 이루어질 때 일이 훨씬 수월해진다. 오로지 나의 힘만으로 번역한다고 생각했다면 작업이 불가능했을 거다. 히말라야 트레킹을 할 때 나는 나 이전에 그 길을 여행한 모든 존재가 내 옆에서 나와 함께 걷고 있다고 상상한다. 마음을 열고 그들의 안내에 따르려고 노력한다. 그러면 두려움과 고난이 사라지고 길이 열린다. 그때 나는 더 강하고 세상과 더 연결된다. 혼자라고 여기고, 거부하고 단절할 때 우리는 허약해진다.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의 표지는 20년 가까이 함께한 디자이너 ‘행복한 물고기’가 맡았다.


본문 편집 역시 15년 넘게 내 창작집과 번역서를 담당해 온 편집자가 맡아주었다. 그들의 올바른 판단과 헌신적인 노동으로 완성된 책이다. 나는 오래된 인연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좋다. 많은 것이 변해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표지화는 내 부탁을 두말없이 들어주는 일본 판화가 호사카 유코의 작품이다. 나 역시도 젊은 시절에는 독립적이고 자유로워지려고 노력했는데, 결국 깨닫게 된 것은 어느 누구도 이 세상의 상호의존과 연결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성장을 가로막는 것은 자기 중심성이다. 우리는 서로가 있어야만 온전해질 수 있다.

 

최근 ‘엮은 시집’이 많이 출간되고 있다. 1998년에 펴낸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이 시초가 됐는데, 몇 차례 출판사로부터 거절당했던 책으로 알고 있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은 내가 읽은 명상 관련 서적들에서 발견한 시들을 10여 년에 걸쳐 모은 책이다. 처음 이 원고를 출판사에 보냈을 때 반응은 “시를 읽는 독자는 거의 없다” “유명한 시인들보다 무명 시인들의 시가 더 많기 때문에 상품성이 부족하다” 등이었다. 그러다 대학교 후배가 일하는 출판사에서 겨우 내게 되었는데 1백만 부가 넘게 책이 판매됐다. 이 시집의 성공 이후 많은 엮은 시집이 출간된 것으로 알고 있다. 어떤 형태로든 시를 소개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구호와 선동이 난무하는 시대에는 시가 더 많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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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찬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사람이 가장 가난한 사람

 

여행 중에는 책을 들고 가지 않는다고 들었다. 대신 여행지에서는 책방을 들른다고.


어느 도시에 가든 먼저 그곳의 책방을 들르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특색 있는 책방과 책방 주인을 만나면 그 도시에 대한 인상도 당연히 좋아진다. 인도 델리의 옥스포드 서점이나 북웜(책벌레) 서점, 바라나시의 아시가트에 있는 서점들, 네팔 카트만두의 필그림 서점 등을 좋아한다. 이런 독특한 서점에서 책을 뒤적이며 하루 이틀 시간을 보내는 것은 내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쁨이다. 올해 1월, 델리 칸마켓의 서점에서 발견한 심리치료사 토머스 무어의 대표작 『영혼의 돌봄Care of the Soul』은 여행 내내 좋은 독서가 됐다.

 

인상 깊었던 대목이 있나?


어떤 남자가 사랑하는 여자와 심하게 다투고 나서 경솔하게 여자를 비난하고 결별하는 편지를 쓴다. 편지가 도착하기 전에 그는 여자에게 전화를 걸어 그 편지를 읽지 말라고 말한다. 여자는 편지를 받고 나서 바로 찢어 버린다. 그리고 호기심을 느껴 휴지통에 버린 편지 조각들을 보니까 남자가 적은 글씨와 단어들이 보인다. 하지만 여자는 유혹을 이기고 휴지통을 비워버렸고, 두 사람은 다시 예전의 사랑하는 관계로 돌아온다. ‘영혼의 돌봄’을 선택한 거다. 우리가 구덩이에 빠졌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더 구덩이를 파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얼른 빠져나오는 일이다. 책은 때로는 외롭기도 한 여행의 좋은 동행이 되어 준다. 여행 중의 독서는 그 저자와 함께 다닌다는 상상을 불러일으켜서 좋다. 국내여행도 마찬가지다.

 

지금 어떤 시집을 읽고 있나?


19세기 우르두 시인 미르자 갈리브의 시집들을 읽고 있다. 무굴 왕조의 마지막 시인이기도 한 그는 산문가로도 명성을 떨쳤다. 그가 쓴 가잘Ghazal, 즉 2행시가 계속 연결된 형식의 시들은 오늘날에도 인도와 아랍의 많은 전통 음악 가수들에 의해 불리고 있다. 갈리브는 종교의 형식 안에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삶과 내면에서 신을 발견하라는 것을 노래한 시인이다. 언젠가는 갈리브의 시들을 번역해 보려고 한다. ‘내 손금을 보려고 하지 말라/ 손이 없는 자에게도 행운이 찾아오리니’

 

번역가로 당신의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들도 많다.

 

일 년에 적어도 한 권은 번역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것이 이번 생에 내게 주어진 사명이라고 여긴다. 성경의 『시편』과 『아가서』를 번역하고 싶고, 인도의 고대 사상서 『바가바드 기타』를 번역하고 싶고, 소로우의 방대한 일기도 번역하고 싶다. 이 계획들을 10년 전, 아니 20년 전부터 해 오고 있지만, 매번 새로운 책들에 유혹당해 미루고 있다. 지금은 융 심리학자이며 원형 이론 전문가인 캐럴 피어슨이 쓴 『The Hero Within』을 번역하는 중이다. 우리 내면에는 고아, 방랑자, 전사, 이타주의자, 순수주의자, 마법사 등 6가지 심리적 원형들이 있는데, 이 중 어떤 원형이 자신을 지배하고 어떤 원형이 억압되어 있는지 이해함으로써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내용이다.

 

현실에 색을 입히는 법으로 ‘예찬’을 꼽았다. “덜 움츠리고 덜 비난하고 더 많이 예찬하라”고 했다. 당신은 세월을 보내며, 예찬의 대상이 달라졌나? 또 덜 움츠리게 되었나? 당신이 감동할 때는 어떤 순간인가?

 

우리는 나쁜 뉴스가 끊임없이 들려오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나쁜 뉴스’란 우리가 그것에 대해 어떻게 할 수도 없이 이미 일어나 버린 나쁜 일들을 의미한다. 세상뿐 아니라 개인의 삶에도 나쁜 뉴스가 계속해서 일어난다. 그 나쁜 뉴스들은 우리에게서 삶과 세상에 대한 ‘예찬’ 능력을 앗아가 버린다. 사실 이것이 우리 자신에게는 훨씬 더 나쁜 뉴스다. 프랑스의 소설가이며 심미가인 미셸 투르니에는 산문집 『예찬』에서 ‘볼바시옹volvation’이라는 단어를 소개한다. 이는 고슴도치가 조금만 위험이 닥쳐도 몸을 둥글게 움츠리는 현상을 의미한다. 고슴도치식의 방어법이다. 인간 역시 세상을 향해 마음을 닫는 반사적인 행동에 길들여진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에 대해 변화를 시도할 수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나쁜 뉴스가 아니다. 어김없이 봄이 오고, 세상의 모든 곳에서 일출과 일몰의 릴레이가 이어지고, 파도가 쉼 없이 춤추는 한 우리는 수많은 예찬할 것들로 둘러싸여 있다. 예찬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사람이 가장 가난한 사람이다.

 

예찬과 행복은 비례할까?

 

여기 좋은 일화가 있다. 삶과 세상에 대해 끊임없이 불평을 늘어놓는 제자에게 어느 날 영적 스승이 소금 한 줌을 물에 타서 마시게 한다. 그리고 묻는다. “맛이 어떤가?” 제자가 말한다. “너무 짜서 먹을 수가 없습니다.” 이번에는 스승이 근처 호숫가로 제자를 데리고 가서 호수에 소금 한 줌을 뿌리고는 호수의 물을 한 모금 마셔 보게 한다. 그리고 맛이 어떠냐고 묻자, 제자가 말한다. “시원합니다.” 스승이 “소금 맛이 나느냐?”고 묻자 제자는 “안난다”고 대답한다. 삶과 세상의 문제는 소금과도 같다. 소금의 양은 같지만, 우리가 얼마만 한 넓이의 마음으로 그것을 인식하는가에 따라 불평의 정도가 달라진다. 스승은 제자에게 조언한다. “유리잔이 되지 말고 넓은 호수가 되라.”

 

아마 책을 좋아하고 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당신의 인터뷰를 읽을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더 많은 책을 읽고, 더 많은 시를 읽으시길 바란다. 그것이 ‘영혼의 돌봄’이다. 우리의 눈은 활자를 읽어 내려가지만, 그때 우리의 영혼은 세상을 읽어 내려가고 풍요로워진다. 나는 우리가 “영혼을 가진 육체가 아니라 육체를 가진 영혼”이라는 말에 동의한다. 인도의 라자스탄 지역을 여행한 사람이라면, 낙타 사파리를 하면서 사막에서 텐트를 치고 하루나 이틀 자본 적이 있다. 자정 너머 밖으로 나오면 별들이 머리 위로 쏟아진다. 단단하게 못과 콘크리트로 고정된 지붕, 단단히 동여맨 관념들에서 벗어나 내 눈동자 속에 활자로 흐르는 별들의 반짝임을 갖는 것이 독서다.

 

시인이기 전에 한 개인으로 바라는 것이 있나?


언제나 나답게 사는 것, 그것이 나의 계획이고 소망이다. 여행을 더 자주 하고, 더 열심히 글 쓰는 것. 그리고 미래에 대한 일들보다 현재의 일에 더 집중하는 것. 13세기 페르시아 시인 루미의 시가 있다. ‘내가 무엇을 행하고 있는지/ 나는 알고 있는가/ 내가 나를 소유하는 순간은/ 숨을 들이마시는 동안인가/ 아니면 내쉬는 동안인가/ 내가 알고 있는 것은/다음은 무엇을 쓸지/ 연필이 알고 있는 정도/또는 다음에 어디로 갈지/ 그 연필심이 짐작하는 정도’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류시화 저 | 더숲
51편의 산문이 태피스트리를 직조해 가며 사람들의 마음에 있는 궁극적인 물음에 답하는 이 책은 오랫동안 그의 신작을 기다려 온 독자들에게는 그가 20여 년 전에 발표했던 첫 산문집보다 더 첫 산문집인 것처럼 신선하다. 그의 글들이 언제나 ‘지금, 살아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과도 무관치 않을 것이다. 다작하지 않는 작가이기에 그의 새 글을 읽는 마음이 각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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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그라퍼 배정애 “꿈을 말하면 길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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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앞에 나서길 부끄러워했던 제주 소녀는 이제 제주와 육지를 넘나들며 사람들과 캘리그라피로 소통하는 대한민국 대표 캘리그라피 작가 캘리愛가 되었다. 작년 말 예술 분야 베스트셀러에 오른 『캘리愛 빠지다』에 이어 이번 봄 『캘리愛처럼 쓰다』를 출간한 배정애 작가는 여전히 자신의 인기가 실감나지 않는다며 수줍게 웃어 보였다. 수업, 전시회, 행사, 간판 작업, 6권의 책 출간에 이르기까지 캘리그라피 전문가가 된 배정애 작가에게 캘리그라피는 일이 아닌, 즐거움이다. 그래서 그녀에겐 배정애 ‘작가’라는 호칭보다 ‘글씨 쓰는 걸 즐거워하는 배정애’가 더 어울렸다.

 

영어 통역을 전공해 21살의 어린 나이부터 13년간 제주그랜드호텔에서 근무한 배정애 작가는, 일본어 학원 선생님과 사제지간으로 만나 결혼까지 했다. 결혼과 동시에 호텔을 그만두고 학원 업무를 도왔던 그녀의 삶은 마흔 살을 기점으로 완전히 변했다. 꿈을 말하고 다니며 자신의 말에 책임지기 위해 꾸준히 연습했다는 배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전 제 삶을 보며 주변 사람들에게 ‘아프면 소문내라 하듯이, 하고 싶은 게 있으면 소문내고 다니라’ 고 해요. 저도 우연히 SNS에서 캘리그라피를 접하고 제주에 배울 데가 없어서 못 하고, 그저 주변에 말하고 다녔는데 좋은 기회들이 생겼거든요. 꿈을 말하고 다니면 길이 열리기도 하고, 내 말에 책임을 져야 해서 말뿐이 아닌 행동을 하게 돼요. 저도 꼭 캘리그라퍼가 돼야지 하고 시작한 게 아니라, 좋아서 하다 보니 기회가 왔고, 그걸 꽉 잡았어요.”
 
캘리와 사랑에 빠지다


캘리그라피는 어떻게 접하게 됐나요?

 

트위터에서 헤이데이 작가의 캘리그라피를 보고 재미있겠다 싶어서 배워보고 싶었는데 제주에 배울 데가 없어서 못 했어요. 막연히 캘리그라피를 배우고 싶다고 얘기하고 다녔는데, 이를 제 지인이 듣고 강좌 개설을 해주셨어요. 하지만 막상 도전해보니 너무 어려워서 8주간 수업만 듣고 접었어요. 그저 헤이데이 작가의 전시를 가고, 그분과 얘기해보는 것에 만족했죠.

 

어려워서 포기했던 캘리그라피를 어떤 계기로 다시 시작하게 된 거죠?


캘리그라피를 접은 지 1년쯤 지났을 때 캘리그라피로 장식된 바이브 앨범이 나온 걸 봤어요. 그걸 보고 다시 캘리그라피를 시작해볼까 해서 해보니 재미있더라고요. 캘리그라피에 다시 흥미를 느끼고는 그저 재미있어서 매일 2~3시간씩 글씨를 썼어요. 꾸준히 쓰다 보니 실력이 느는 게 보이기도 하고, 블로그에 게시하니 사람들이 칭찬도 해줬죠. 그러다 자주 가던 카페 사장님이 캘리그라피 전시를 열어보자고 기획해 주셔서 저의 첫 번째 캘리그라피 전시도 열게 됐어요. 전시회를 개최하며 제 작품이 판매되고, 간판 작업 문의도 들어오는 걸 보면서 내 글씨가 가치 있다는 자신감을 많이 얻었어요. 다양한 활동들이 자극제가 되어 2014년 10월부터 본격적으로 캘리그라피 학원도 시작했죠.

 

캘리그라피의 매력을 소개해주세요.


캘리그라피는 어찌 보면 단순한 글씨일 뿐인데, 그 글씨를 통해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게 놀라워요. 처음 헤이데이 작가의 캘리그라피를 보고 어떤 글씨는 기뻐 보여서 왠지 웃음이 나고, 어떤 건 슬퍼 보였거든요. 이건 저만 그런 게 아니었어요. 제가 전에 <괜찮아 사랑이야> 드라마 대사를 써서 올린 적이 있는데, 그걸 청각장애인 분이 보시고 그 대사가 어떤 감정이었을지 글씨를 보니 느낄 수 있다고 했어요. 저의 글씨를 기다려주시고 이를 통해 감정을 느껴주셔서 너무 감동했던 일화예요. 또 수강생 한 분이 그저 글씨인데 선물하려고 쓰다 보면 나 자신도 너무 좋고, 그걸 받고 좋아하는 상대를 보고 또 좋다고 하셨어요. 글씨로 사람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게 캘리그라피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요?

 

요즘 SNS 라이브 방송을 자주하시던데, 소통을 통해 달라진 점이 있다면요?


저는 원래 사람들 앞에 서서 말하는 걸 못하는 성격이었어요. 앞에 나가서 말할 일이 생기면 스스로 떨고 있는 게 느껴질 정도였죠. 호텔 일을 관두고 서비스 강사가 되고 싶어서 교육받았을 때도 앞에 나서는 게 너무 떨려서 그만뒀어요. 지나고 보니 그때 서비스강사로 교육받았던 것이 지금 사람들과 소통하는 데 도움되지 않았나 싶어요. 여전히 떨리긴 하지만 사람들 앞에 서는 게 재미있기도 하고, 라이브 방송을 통해 말하는 실력도 늘었죠. 제가 소소하게 경험했던 것들이 쓸모없던 게 아니라 다 나름의 이유가 있었고, 그것들이 다 쌓여서 저에게 도움이 된 거로 생각해요.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생긴 에피소드를 알려주세요.


유튜브 수업은 잘못 얘기하면 끊고 새로 찍어야 하고 혼자서만 계속 말해서 힘든데, SNS 라이브 방송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거라 재미있어요. 특히 제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지나쳤던 걸 초보분이 질문해주시면 이런 걸 모를 수 있구나 싶기도 하고, 저도 모르는 질문을 다른 분들이 알려주셔서 공부하게 돼요. 캘리그라피는 실수를 많이 해봐야 다음에 어떻게 고칠 수 있는지 알 수 있는데, 라이브 방송에서 실수담을 공유하면서 해결책을 의논해요. 또 라이브 방송으로 숙제를 내드리면 많은 분들이 숙제를 하고 결과를 남겨주셔서 놀라요. 막연하게 혼자 쓰는 거보다 숙제를 내드리면 꼭 하게 되니 은근히 숙제를 기다리는 분도 많아요. 특히 혼자 공부하시는 분들께 SNS로 피드백 드리면 좋아하세요. 라이브를 통해 덩달아 저도 힘을 받는거죠.

 

수업을 통해 학생들을 만나시는데, 제일 처음 수업했던 학생들 기억나세요?


그럼요. 기억나죠. 저의 첫 학생 중 두 분은 아직도 캘리그라피를 하고 있어요. 한 분 배운지 일 년 반 됐을 때 저랑 같이 행사도 나가고, 요즘은 자체적으로 강의도 많이 하세요. 다른 분은 중간에 조금 쉬셨다가 다시 시작하셔서 최근 처음으로 원데이 클래스도 열고 판매도 해요. 처음에 같이 시작했던 분들과 지금까지 함께 할 수 있어서 기뻐요. 이전에 헤이데이 작가님에게 캘리그라피를 시작하는 계기를 만들어줘서 감사하다고 했더니 ‘계기가 되어 줄 수는 있지만, 그게 끝까지 가는 게 쉽지 않다. 끝까지 가줘서 고맙다’ 라고 하셨거든요. 요즘은 제가 그 마음을 학생들을 통해 느끼고 있어요.

 

배정애, 캘리愛 작가가 되다


이제 본격적으로 작가님 책과 전시에 관해 얘기해볼게요. 첫 번째 책 『캘리愛 빠지다』를 쓴 과정이 궁금해요.


제가 드라마를 굉장히 좋아해서 블로그에 드라마 대사를 써서 자주 올렸어요. 그러다 보니 특정 대사를 써달라는 사람들 요청이 많았는데, 한 분이 <그들이 사는 세상> 대사를 부탁하셨어요. 출판사에서 이전부터 제 블로그 작업을 눈여겨 보다 결정적으로 그 글씨를 보고 연락 했대요. 그때 그 부탁을 들어드리지 않았다면 지금의 책들이 없었겠죠?


한창 컬러링 북이 유행할 때라 캘리그라피가 들어간 컬러링 북 『러브, 마이러브』를, 다음엔 뜯어서 사용하는 컬러링 책 『참 좋은 당신께』, 아들러 심리학 필사 책 『필사의 발견 오늘, 행복을 쓰다』, 그리고 노희경 작가님 20주년 기념 책 『겨울 가면 봄이 오듯 사랑은 또 온다』를 순서대로 출간했어요. 그러고 나서 비로소 『캘리愛 빠지다』를 1년간 준비해 출간했죠.

 

최근 『캘리愛 빠지다』가 5판까지 나왔는데, 좋은 반응이 어떠세요?


한 학생이 글씨를 쓰다 힘들자 ‘포기하지 말자’ 라는 말을 계속 썼어요. 그걸 보고 본인에게 하는 말이냐고 물어보니까 맞다고 계속 그 말로 연습했어요. 최근 그 분 실력이 엄청 늘어서 비결을 물으니 제 책을 3번씩 반복해서 따라 썼대요. 책으로 꾸준히 연습하니 자신감도 붙고 선도 좋아지는 걸 보고 내 책이 도움되긴 하구나 싶었어요. 초보자와 중급자 모두 계속 가지고 있으면서 나중에도 활용할 수 있는 책을 내고 싶어 1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작업했는데, 결과도 좋아서 힘이 나요.

 

책을 내고 변화한 게 있다면요?


이전에 제가 좋아하는 작가가 책을 내면 좋은 글을 써주신 거에 감사했는데, 이제는 그 감사 인사를 제가 듣게 되니 신기해요. 서울에서 원데이 클래스를 했을 때 빨리 마감되거나 부산에서 오신 분이 있다는 얘기에 놀라기도 하고요. 제가 열심히 쓴 책을 봐주는 사람이 없으면 소용없으니 그분들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출판사 대표님의 말을 자꾸 되새기고 있어요. 그래서 책을 사주시고, 수업을 들으러 와주시고, 라이브를 듣는다고 시간 내주는 분들께 자꾸 감사하게 돼요.

 

이번 신간 『캘리愛처럼 쓰다』은 어떤 내용인가요?


『캘리愛처럼 쓰다』는 따라 쓰기 책이에요. 이전 책이 활용 방법을 중점적으로 다루다 보니 온전히 연습할 수 있는 부분이 적었어요. 따라 쓰기 책을 요청하는 분이 많아 이번에는 문장 하나하나를 따라 쓰면서 연습할 수 있게 구성했어요. 여러 도구를 사용하고, 테마를 만들어 상황 별로 쓸 수 있는 문장으로 구성하고, 왜 이렇게 써야 하는지 구체적인 방법도 적어뒀어요. 그야말로 글씨 쓰는 방법을 제시해주고 연습할 수 있도록 안내해주는 책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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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그라피에 대한 궁금증을 풀다


작가님의 원래 필체와 캘리그라피 서체가 다른가요?


원래 제 서체는 되게 강하고 수직적이었는데, 귀엽고 동글동글한 서체도 연습했어요. 캘리그라피 행사에 가니 사랑한다 같은 다정한 말을 써달라고 부탁하는데, 원래 서체로 쓰니 너무 무서워 보였어요. 그래서 이젠 상황에 따라 강한 글씨를 쓰기도하고 귀여운 글씨를 쓰기도 하죠.

 

글씨와 더불어 직접 그림 그리시는데, 캘리그라피를 잘하려면 그림도 잘 그려야 하나요?


처음엔 그림을 정말 못 그려서 동생한테 부탁하거나 했어요. 하지만 행사 나가서 그림 그려달라고 부탁하시니 그림 연습을 안 할 수가 없었어요. 제가 그리는 그림은 되게 간단한 거예요. 글씨를 돋보이게 하기 위한 그림이어야 하니까요. 어디 가서 맘에 드는 조명이나 선인장을 발견하면 사진 찍어두고, 나중에 그걸 보면서 똑같이 그려요. 그림이든 글씨든 방법을 몰라서 못 하는데, 가만히 관찰하면서 똑같이 그려야지 하면 관찰력이 늘면서 잘 그리게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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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그라피에 활용되는 도구가 굉장히 다양하네요. 도구 소개 좀 해주세요.


가장 흔히 쓰는 붓 펜은 가방에 엽서랑 붓 펜, 물감만 있으면 어디서든 쓸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딥 펜은 잉크를 찍어서 쓰는 펜으로, 쓰면서 나는 소리가 좋아 많이 쓰는 펜이에요. 워터브러시는 물을 넣으면 색깔을 낼 수 있는 펜이에요. 포일을 이용한 캘리그라피도 있는데, 이건 글씨를 써서 레이저 프린터로 프린트하고, 그 위에 포일을 두고 열을 가해서 만들어요. 커피로 글씨를 쓰기도 하는데요. 밀크커피를 타 놓고 편의점 도시락 젓가락으로 커피를 찍어서 쓰는 거예요. 흔히 나무젓가락으로 쓰는데 이 편의점 도시락 젓가락이 특히 좋더라고요. (웃음) 캘리그라퍼는 도구 제한이 없어서 잡고 쓸 수만 있으면 어떤 재료도 도구가 될 수 있어요. 그래서 저는 화장품 가게에 가도 저 화장품으로 어떤 글씨를 쓸 수 있을까 생각해요.

 

제주에 살다


제주도에는 언제부터 사신 거예요?


원래 육지에 살다가 중학교 2학년 때 가족들이 전부 제주로 이사 오면서 계속 제주에 살았어요. 흔히 제주에 산다고 하면 이주하신 줄 아는데 원래부터 제주에 살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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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캘리그라피를 해서 특별한 점이 있을까요?


캘리그라피를 제주에서 해서 더 좋은 점은 자연을 보며 작업 할 수 있는 거예요. 저 자연을 어떻게 글자로 표현할까 싶은거죠. 아무래도 마음이 여유로우니 더 감성적이게 되어 글이 잘 써지는 것도 있고요. 제주어로 캘리그라피 작업을 해 보는 것도 재미있어요. 이건 ‘걱정이 반찬이면 상다리가 부러진다’ 라는 제주 속담을 쓴 거랍니다.

 

이효리 씨의 ‘소길댁’ 로고를 쓰신 거로 유명하잖아요. 어떤 연유로 쓰게 됐나요?


제주에서 열리는 하루 하나 마켓에 캘리그라피 작품을 판매했어요. 거기에 효리 씨도 나와서 옷을 팔아서 판매자끼리 알고 지냈죠. 그러다 효리 씨가 다음 달에 직접 고른 콩을 팔건데 거기에 쓸 ‘소길댁’을 써달라고 부탁해서 쓰게 됐어요. 제의받고 저도 되게 놀랐던 일이에요.


캘리愛의 꿈


사람들에게 캘리그라피가 어떤 의미로 다가가길 바라세요?


사람들이 캘리그라피를 너무 멀지 않게 느꼈으면 좋겠어요. 캘리그라피를 해 보기 전엔 글씨 쓰는 거니 쉽게 생각하고 시작하는데, 막상 해보면 어려워서 금방 포기하거든요. 스스로 나는 재능이 없어서 못 한다고 가둬두는데 그걸 깨고 나왔으면 좋겠어요. 캘리그라피는 실력의 차이가 아닌 시간의 차이거든요. 시간을 투자해서 계속 연습하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게 캘리그라피니까 천천히 갔으면 좋겠어요. 요즘 다 문자나 메일로만 연락을 주고받는 세상이잖아요. 엽서 한 장을 쓰더라도 캘리그라피를 이용해서 진심을 전달했으면 해요.

 

좀 더 욕심내서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요?


전에 한 학생이 선생님은 꿈이 뭐냐고 물었을 때, 마흔이 넘었는데도 이걸 물어봐 주는 사람이 있어서 행복했어요. 이 나이에 이런 질문을 받을 수 있다는 자체 만으로요. 저는 큰 꿈을 꾸기보다는 지치지 않고 갔으면 좋겠어요. 실제로 캘리그라퍼로 활동하다 생계랑 연계가 안 돼서 그만두는 분이 많아요. 혹은 캘리그라피를 직업으로 삼으면서 오는 스트레스 때문에 관두시는 분도 있고요. 내가 쓰고 싶은 글씨와 누군가 써달라고 해서 쓰는 글씨에는 분명 차이점이 있거든요. 전 이런 기복 없이 편안하고 즐겁게, 지금처럼 꾸준히 글씨 쓸 수 있으면 좋겠어요.

 

앞으로의 계획을 묻고 싶어요.


작년에 신간 작업을 하느라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들었어요. 그래서 올해는 제가 쓰고 싶은 글씨를 쓰면서 여유롭게 지내고 싶어요. 가능하다면 전시회 한 번 더 할 수 있게 글씨 작업하면서요.


 

 

캘리愛처럼 쓰다배정애 저 | 북로그컴퍼니
글씨 하나로 사람들의 마음을 촉촉하게 적시는 감성 캘리그라퍼, 캘리애(愛) 배정애의 두 번째 책. 출간하자마자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단숨에 분야 베스트셀러에 오른 첫 책 캘리愛 빠지다가 캘리그라피의 이론을 쉽고 충실하게 담았다면, 이 책은 ‘쓰기’에 방점을 찍고 매일매일 즐겁게 연습할 수 있는 워크북으로 꾸몄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신병주 “조선의 쫓겨난 왕들, 소통과 포용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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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다” 이 한마디에서 인터뷰는 시작됐다. 어쩌면 『왕으로 산다는 것』이 시작된 출발점일 지도 몰랐다. ‘조선의 리더십에서 국가경영의 답을 찾다’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시대는 달라도 한 나라를 이끄는 인물에게 요구되는 자질은 다르지 않다. 국민에 의해 선출된 권력이 국민에 의해 그 생명을 마감한 것처럼, 조선 시대에도 신임을 잃은 통치자는 왕위에서 끌어내려졌다. 시대의 흐름과 백성의 요구에 부응했던 왕은 성군으로 남았고, 그에 역행했던 왕은 혼군으로 기록됐다. 한 번의 큰 진통을 겪고 새로운 출발을 준비하는 지금, 우리가 이 책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왕으로 산다는 것』은 태조부터 순종까지 조선의 27명 왕 대부분을 조명한다. 왕이 되기까지의 과정과 왕이 된 후 펼친 정책, 그 곁에 있었던 참모들, 왕의 라이벌 등 주요한 사건과 인물들에 대해 들려준다. 매 순간 역사의 갈림길에 섰던 이들이 어떤 선택을 했는지, 그 이유와 결과는 무엇인지 지켜보고 있노라면 자연스레 현재의 시간을 되돌아보게 된다. 이곳에 필요한 해법과 이곳에 필요한 리더에 대해 자문하게 되는 것이다.

 

신병주 저자는 역사 대중화에 깊은 관심을 가져 온 사학자로 KBS <역사저널 그날>에 출연했으며 <역사추리>, <역사스페셜>, <불멸의 이순신>, EBS 어린이 역사 드라마의 자문을 맡은 바 있다. 현재 KBS1라디오 <글로벌 한국사, 그날 세계는>, EBS <신병주의 역사여행>을 진행하는 동시에 건국대 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어렵고 딱딱한 역사를 평이한 언어로 풀어서 설명해주는 그의 작업은 『왕으로 산다는 것』에서도 계속됐다. 이번 책은 2015년부터 <매경이코노미>에 연재되었던 동명의 칼럼을 엮은 것으로, 다양한 시각 자료와 함께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야기들로 채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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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겨난 왕들의 공통점


서문에서 ‘조선의 왕들이 보여준 긍정적, 부정적 리더십을 반면교사로 삼았으면 좋겠다’고 하셨는데요. ‘반면교사’라는 말 속에 책을 출간하신 이유가 함축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죠. 역사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고, 역사의 여러 상황들이 과거의 옛이야기로만 그치는 게 아니에요. 놀랍게도 지금의 시대와 비슷한 상황이 나타나요. 이번에 대통령 탄핵 사태를 맞았지만, 사실 조선 시대에도 왕이 쫓겨난 경우가 있었어요. 중종반정과 인조반정이 그것이죠. 그 왕들이 왜 그렇게 쫓겨났는지 상황을 잘 분석해 보면, 소통하지 않고 철저하게 측근들만으로 정치를 했어요. 반대 세력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탄압하고 포용의 리더십을 보이지 못했죠. 그 역사를 통해서 소통과 포용의 리더십을 보여야 된다는 걸 반면교사로 삼아야 해요. 훌륭한 리더십은 그대로 잘 수용을 하고 부정적인 리더십에 대해서는 극복해 나갈 때, 역사가 단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의 시대에도 정말 필요하다는 걸 느낄 수 있죠.

 

조선왕조가 500년 이상 장수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요?


백성을 위주로 정책을 펴는 것, 즉 ‘민본’이라는 것에 대해서 철저했어요. 우리가 흔히 왕이라고 하면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면서 굉장히 호화롭게 지냈을 것 같은데, 실제로 보면 그렇지 않았어요. 조선은 언론3사라고 해서 왕권에 대한 견제 기능도 강했고요. 드라마를 봐도 신하들이 제일 많이 하는 소리가 ‘아니되옵니다’라는 거잖아요. 그런 문화가 조성이 되어있었다는 거예요. 지금 그럴 수 있겠어요? 특히 탄핵된 대통령 앞에서는 ‘아니되옵니다’를 거의 못했잖아요. 그렇게 비교를 해보면 분명히 조선이라는 나라가 가지고 있었던 우위가 있어요. 전통 시대라고 해서 무조건 낡은 것이라고 볼 게 아니라, 이런 부분은 염두에 두고 봐야 되는 거죠.

 

왕들의 생활은 어땠나요?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호화롭지 않았다고 하셨는데요.


영조가 대표적인데, 철저하게 절약했어요. 처음에 정도전이 설계해서 궁궐을 지을 때도 그 규모가 상당히 크지 않았고요. 그렇게 왕이 검소와 절약의 정신으로 무장하고 있으니까 신하들도 그랬죠. 물론 그 중에서도 안 그런 사람이 분명히 있기는 했지만, 전반적인 문화는 그렇지 않았다는 거죠. 그래서 조선에서는 항상 청백리가 강조되는 거고요. 이런 청렴성, 도덕성 같은 건 지금의 우리 시대에도 상당히 요구되는 덕목이잖아요. 이 책에서 조선 왕들이 살아왔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보면서 ‘이런 면도 있었구나’라는 걸 자연스럽게 알게 됐으면 좋겠어요. 우리 삶에 적용해 볼 것들을 생각하면서 도움도 되고요.

 

책에서 영조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서 놀란 부분이 있었어요. 무신란이 일어났을 때는 문제의 원인을 “내가 덕이 부족한 탓”으로 돌리고, 청계천 준천 사업에 백성들을 동원할 때 “나는 백성들에게 혜택을 주지 못했으니 무슨 마음으로 백성을 괴롭히겠는가?”라고 슬퍼하더라고요. 지도자의 위치에 오르는 자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 아닌가 싶었어요.


특히 영조 같은 경우는 정치적으로 탕평책을 펴서 반대 세력까지도 포용했잖아요. 자신이 쓰라린 경험을 했기 때문에 그랬던 건데, 반대로 나갈 수도 있었거든요. ‘내가 당한 게 있으니까 똑같이 하겠다’라고 생각하는 건데, 연산군이 그런 리더예요. ‘우리 어머니 죽인 놈들 다 나와’ 한 거잖아요. 그런 군주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폭군으로 불리게 되는 거죠. 이런 이야기를 하면 묘한 기시감을 느낄 수도 있을 거예요. 그리고 말씀하신 청계천 공사는 당시 백성들이 홍수의 피해를 입지 않게 하려고 했던 건데, 그것도 임금 지불을 하면서 효율적으로 진행했죠.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왕들도 있는데요. 숙종도 그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책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기존의 사극을 통해 “인현왕후와 장희빈, 그리고 숙빈 최씨의 치마폭에 둘러싸여 궁중 음모의 중심에 있었던 왕이라는 이미지”로 그려졌어요.


영조와 정조가 뛰어난 리더십을 발휘하면서 정치 문화의 중흥을 이룩하게 된 데에는 숙종이라는 왕이 있었어요. 숙종이 46년간 재위했는데, 국방이나 경제, 문화 부분에서 많은 업적을 이루었죠. 그런데 우리는 숙종 하면 장희빈, 인현왕후 등 여성들과의 스캔들만 떠올려요. 편견을 가지고 있는 거죠. 그게 아니라 숙종이라는 왕이 이런 진면목을 가진 리더였다는 걸 강조하고 싶었어요. 성종의 역할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죠. 흔히 조선 전기에는 창업의 시기와 수성의 시기가 있다고 하는데, 성종은 수성의 시기가 도래할 수 있게 해준 왕이에요. 성종이 조선이라는 나라의 기틀을 빨리 잡았기 때문에, 물론 그 뒤에 사화와 당쟁과 전란이 있었지만, 그런 위기를 극복하고 바로 복귀시키는 자생력을 가질 수 있었던 거예요.

 

숙종과 영조가 즉위했던 시기를 ‘부국과 중흥의 시대’라고 정의하셨어요.

 

당시 호란 이후에 지나친 대결의 시대가 분명히 존재했지만, 그런 걸 극복하고 북벌에서 북학으로 나아갔어요. 저들을 오랑캐라고 여기면서 적대시할 게 아니라, 저들에게서 우리가 배워야 한다는 의식의 전환이 일어난 거죠. 현대사에서도 비슷한 경우가 있었죠. 우리도 예전에 공산국가와는 전혀 수교를 하지 않다가 점진적으로 개방의 시대로 나아갔잖아요. 그런 것과도 맥이 같다는 거죠. 그런 점에서 역사는 우리가 살아온 상황을 잘 비춰주고, 앞으로 살아가는 방향까지도 제시해줄 수 있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어요. 이 책을 읽으시면서 그런 지혜를 찾고, 역사에 조금 더 관심을 갖고 현장을 많이 찾아보셨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삶이 조금 더 윤택해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숙종과 마찬가지로, 흥선대원군에 대해서도 우리가 한쪽 측면만 보고 있는 건 아닌가 싶어요.

 

흥선대원군 이야기를 하면 보통은 쇄국정책을 떠올리는데, 일단 그 용어 자체가 부정적인 평가가 가미되어 있는 거죠. 흥선대원군 입장에서 보면 부국강병 정책이거든요. 외세가 침략하는 데 대해서 무기력하게 당하지만은 않겠다고 했던 건데, 어쨌든 준비가 덜 된 상황에서 전투를 벌여서 병인양요나 신미양요 때 조선의 피해가 컸었죠. 그러나 이후에 보여준 행보를 보면, 보통은 척화비를 세운 것만 알고 있는데, 국방지도를 다량으로 제작해서 지역을 확실하게 파악하고 거기에 필요한 국방시설 같은 걸 점검하는 노력도 했거든요. 그리고 내정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 업적들도 남겼어요. 이런 면모들도 같이 봐줘야 우리가 정당하게 평가할 수 있는 거죠. 가능하면 역사적 팩트를 이야기하고, 그것을 가지고 해석하는 것은 읽는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이런 면모도 있었구나’ 하고 생각 하게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해석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두고 싶으신 거군요.

 

그렇죠. 개인적인 해설이나 견해를 덧붙이면 평설처럼 되는 거잖아요. 가능하면 우리가 잘 몰랐던 조선 왕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어요. 어떤 식으로 살아왔고, 주요 업적은 무엇이었고, 최후의 모습은 어땠는지, 이런 것들을 이야기하고 싶었죠. 우리에게는 굉장히 풍부한 기록들이 남아있어요.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해서 개인의 기록, 문집에서 나오는 내용들만 잘 엮어도 그 자체로 흥미롭다는 거죠. ‘이런 일도 있었구나’ 하고 잘 몰랐던 사실도 알게 되고요. 굳이 해석을 더해서 살을 붙일 필요는 없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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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적을 대하는 리더의 자세

 

지금까지 재평가가 필요한 왕들에 대해 이야기했는데요. 반대로 재고의 여지가 없는 인물을 꼽는다면, 역시 연산군일까요?


그렇죠. 연산군은 재고의 여지가 없을 뿐만 아니라, 그 실체를 알게 되면 ‘이렇게까지 했어?’라고 할 정도예요. 대부분은 흥청이라는 기생들을 불러서 연회를 했다는 것만 알고 있는데, 신하들에게 신언패라는 걸 차고 다니게 했었거든요. ‘입은 화의 문이고 혀는 몸을 자르는 칼이다’라고 써놓고 입조심 하라고 한 거예요. 섬뜩하지 않아요? 그리고 모자에는 충성이라는 두 글자를 쓰고 다니게 했어요. 온갖 고문 기술을 개발하기도 했고요. 연산군 같은 경우는 이 책을 통해서 더 알게 되면 ‘저렇게 하니까 쫓겨날 수밖에 없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 거예요. 저도 연산군일기를 보면 ‘이런 왕실에 살았던 신하나 백성들은 어땠을까’ 생각이 들어요. 물론 연산군이 쫓겨난 왕이기 때문에 더 가혹한 기록이 이뤄졌을 가능성은 많지만, 어쨌든 기록을 토대로 보면 그래요.

 

<역사저널 그날>의 연산군 편을 보니까, 짐승들을 가둬놓고 활을 쐈다는 기록도 있더라고요. 정서적으로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닌가 싶어요.


그런 면에서는 문제가 많은 사람이죠.

 

사도세자도 정신질환을 앓았었죠?


있었다고 봐야죠. 그런데 사도세자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생기는 데 단서를 제공해 준 인물이 영조예요. 아버지가 워낙, 요즘 표현으로 하면 들들 볶으니까, 사도세자가 그렇게 만들어진 거죠. 조선시대에 왕과 아들의 관계는 그렇게 좋지 않은 사례가 더 많아요. 태조와 태종, 선조와 광해군, 영조와 사도세자, 흥선대원군과 고종이 그렇죠. 아마 권력 앞에서는 일반적인 부자 관계와는 다른 것 같아요. 태종과 세종, 세종과 문종은 관계가 좋았던 대표적인 사례로 볼 수 있죠.

 

『왕으로 산다는 것』에서 보니까, 영조는 본인뿐만 아니라 타인에게도 엄격한 사람이었던 것 같더라고요. 빈틈이 없는 사람 같았어요.


그렇죠. 초상화가 남아있지만, 일단 얼굴을 봐도 상당히 깐깐하게 보이시죠. 영조의 초상화는 당시의 실제 모습을 그린 거거든요. 그리고 영조는 유일하게 젊을 때와 나이 들었을 때의 모습을 다 볼 수 있는 왕이에요. 스물한 살 때 세제 시절에 그린 초상화(예진)와 51세 때 왕위에 있을 때 그린 초상화(어진)가 그대로 남아있어요. 그런데 그 사이에 체형 변화가 거의 없어요. 영조가 상당히 건강관리를 했다는 걸 알 수 있죠. 어진과 예진을 보면 상당히 체형이 마르셨어요. 

 

세종의 어진은 남아있지 않죠?


없죠. 만 원권 지폐의 그림은 후대에 그려진 거예요.

 

세종의 어진이 있었다면, 영조와 사뭇 다른 모습이었겠어요(웃음).


조금 비만하셨다는 이야기들이 있죠. 사실 그런 기록도 있고요. 『왕으로 산다는 것』에서 가능하면 주제와 관련된 도판을 많이 배치하려고 했는데요. 자료를 보면서 조금 더 생생하고 생동감 있게 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였어요.

 

조선에서 임금과 신하는 서로 견제하면서 정치적 균형을 맞췄는데요. 이 관계를 이상적으로 조율한 왕은 누가 있을까요? 탕평책을 실시한 영조 이외에 또 다른 인물이 있을까요?


영조 이전에 대표적으로 세종이 그랬죠. 적절하게 집현전 학자들도 등용하고, 신권도 적절하게 인정을 해줬어요. 성종도 그런 역할을 많이 했죠. 성종 때 ‘동국통감’, ‘경국대전’, ‘동국여지승람’과 같은 대대적인 편찬 사업이 이루어지면서 국가의 틀이 완성됐는데, 그런 작업은 신하들의 협조가 없으면 이루어지지 않거든요. 성종은 그런 방식으로 왕권과 신권의 균형을 잘 이루어나갔던 왕이죠.

 

숙종 같은 경우는 어떤가요? 한 당파를 견제하기 위해 반대 당에 힘을 실어주면서 인위적으로 균형을 맞췄는데요.


왕이 중심이 돼서 특정한 당파가 지나치게 비대화되는 것을 막았던 거죠. 그런 면에서 보면 숙종도 상당히 노련한 정치술을 발휘했던 왕이에요. 그때는 당장의 폐해가 너무 심했기 때문에 일당독주를 허용하지 않았던 거거든요. 결국은 숙종의 그런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영조의 탕평책이 가능할 수 있었던 거죠.

 

당시의 왕과 신하의 관계를 현재에 대입해 보면, 대통령을 필두로 한 여당과 야당의 관계라고 볼 수 있을 텐데요. 지금의 리더는 정적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정책 목표는 확실하게 설정하면서도 반대 세력에게까지도 협조를 구하는 리더가 필요하죠. 쉽지는 않겠지만 계속 노력을 해야 된다고 봐요. 당장은 힘들더라도, 그래야 안정적으로 오래갈 수 있으니까요. ‘너희들은 맨날 반대만 하니까 나는 우리 쪽으로 가겠다’라고 했을 때는 금방 또 한계를 보이잖아요. 그렇게 자꾸 정치 세력이 바뀌어버리면 정책들도 다 없어지고요. 그런 악순환들이 없었다고 보기 어렵죠. 그런데 어느 정부에서나 탕평을 이야기했거든요. 통합, 화합, 지역 갈등 해소를 매번 이야기해요. 그런데 현실에서 잘 지켜졌는지 생각해 보면 조금 회의적인 부분도 많죠. 이제는 진정한 정치적 탕평, 국민 화합을 이루어야 한다고 봐요. 쉽지 않겠지만 단계적으로 쌓아 가면 가능할 거라고 보고요. 조선 시대에도 성군의 조건 중 하나가 나의 시대에 완성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은 거예요. 내가 어느 정도 하고, 그 다음에 또 쌓아가게 한 거죠. 그렇게 축적된 기다림의 시간들도 필요해요. 빨리 쌓은 건 빨리 무너질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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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리더, 세종을 모델로 삼아야

 

최근 사드 배치를 두고 한중 관계가 악화되고 있습니다. 조선의 왕들에게서 배울 수 있는 외교의 원칙과 기술이 궁금해요. 광해군에게서 답을 찾을 수 있을까요?

 

어쨌든 외교 문제에 있어서는 광해군이 상당히 적절하게 잘했으니까요. 실리외교의 부분은 우리가 높게 평가할 수 있죠. 광해군이 인조반정에 의해서 쫓겨나면서 외교에서 잘했던 부분조차 청산의 대상이 돼버렸는데, 실제로 인조 때 호란이라는 전쟁을 맞은 상황을 고려하면 광해군의 외교 정책은 우리가 어느 정도 수용해야 했다고 생각돼요. 현재의 정치 문제와 연결을 해보면, 정부가 바뀌면 무조건 전 정부의 것들은 다 바꾸려고 하잖아요. 그런 건 지양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정부가 바뀌면 각종 부서를 개편하는데, 완전히 바람직하다고만은 볼 수 없지만, 조선시대에는 이호예병형공의 6조 체제가 그냥 이어졌거든요. 그래도 500년 동안 장수할 수 있었다는 거예요. 부처를 바꾸지 않는다고 해서 일을 못하는 게 아니라는 거죠. 그런 점에서 전대의 성과를 계승하려는 노력들이 중요한 것 같고요. ‘경국대전’과 ‘동국통감’도 세조 때 편찬을 시작해서 성조 때 완성됐듯이, 반드시 자신이 집권하는 시기에 성과를 이루려는 생각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시대를 잘못 만나서 뜻이 좌절된 왕들도 있었던 것 같은데요. 효종의 경우는 어땠나요?


결과적으로 시대의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왕이죠. 호란의 후유증을 극복하기 위해서 왕이 될 수 없는 위치에서 왕이 되었으니까, 소위 말하는 북벌이라는 이념을 국시로 삼을 수밖에 없었던 거예요. 모든 에너지를 그곳에만 집중시키니까 정책이나 민생, 복지 같은 부분은 거의 제대로 해놓지 못했죠. 대표적으로 효종 때 하멜 같은 인물이 표류해 왔는데, 청나라와의 관계 때문에 숨기려고만 했어요. 당시에 조선 사회가 가졌던 경직성을 보여주는 예죠. 효종 본인은 노력을 많이 했지만, 시대적인 목표라든가 과제 설정의 면에서 결과적으로 보면 제대로 되지 못했다는 거죠.

 

선조와 인종의 경우 임진왜란과 정묘호란, 병자호란을 겪지 않았다면 또 다른 모습의 군주로 역사에 남을 수 있었을까요?

 

역사에서 가정은 없다지만, 어쨌든 간에 한 나라의 리더가 전쟁을 초래했다면 상당히 문제점이 많은 거예요. 물론 상대가 침략해 왔으니까 어쩔 수 없었다고 하지만, 광해군의 사례만 보더라도 호란 같은 경우는 겪지 않아도 될 전쟁이었거든요. 그런 상황을 고려한다면 선조와 인종은 어쨌든 전쟁의 원인을 제공했고 전쟁을 맞은 왕이었어요. 특히 선조가 전쟁 때 보여준 처신은 상당히 부정적이었다는 거죠. 의주까지 피난을 갔잖아요.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고 하더라도, 일단은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에는 조금 힘들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선조는 초반에는 인물들을 양성하는 역할을 꽤 많이 했어요. 정철, 율곡 이이, 유성룡, 이항복, 이원익 등 아주 쟁쟁한 인물들을 많이 배출하거든요.

 

임진왜란으로 인해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한다고 볼 수 있겠네요.

 

전쟁 이후에 보여줬던 부정적인 측면 때문에 앞에서 잘했던 인재 양성 부분에 대해서 인정받지 못하는 부분이 있는 거죠. 특히 선조는 기축옥사 이후로 반대세력을 축출하고 선비들을 많이 희생시켰어요. 그런데 지금의 리더도 다르지 않아요. 특히 20~30년 이상 재위하면 똑같을 수가 없어요. 초반에 긍정적이었다가 후반에 부정적일 수도 있고, 반대로 갈수록 또 잘하는 리더도 있는 거죠. 그런 걸 한쪽으로만 볼 수 없다는 거예요.

 

누구나 공과가 함께 있다는 말씀이시죠?

 

그렇죠. 공과가 있죠. 어떤 측면에서는 그렇게 만든 시대적인 조건, 당시 주변 인재들의 등용 문제도 함께 고려해야 된다는 거죠.

 

『왕으로 산다는 것』에는 조선왕실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도 실려 있는데요. 그 중에서도 정치적인 식견이나 판단력이 뛰어났던 인물이 있었나요?

 

아무래도 이 책은 조선 왕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보니까, 결국은 왕비들 정도만 언급할 수 있었는데요. 그렇게 보면 소현세자빈 강씨 같은 인물을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남편 소현세자와 같이 청나라 심양에 갔을 때, 나름대로 새롭고 진취적인 여성상을 보여줬죠. 그런 부분 때문에 시아버지인 선조에 의해서 희생을 당한 안타까운 인물이기도 하고요.

 

명성황후의 정치적 판단에 대한 평가는 아직까지 논란의 여지가 있겠죠?


명성황후도 어쨌든 공과가 있고요. 초반에는 너무 민씨, 소위 말하는 척족을 등용한 게 사실이죠. 그런데 다른 관점에서 보면 오히려 고종보다 대외적인 인식이 뛰어난 측면이 있었어요. 특히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서는 러시아하고 어느 정도 외교를 맺어야 된다는 걸 알고 있었죠. 일본의 제거 대상이 됐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일본에게는 부담스러운 인물이었다는 걸 보여주는 거고요. 그만큼 만만치 않은 인물이었다는 걸 확실하게 보여주는 거예요. 한 때는 명성황후에 대한 평가가 조금 과장된 측면도 있었어요. 그렇다고 명성황후가 고종을 완전히 무력화시켰다고 볼 수도 없어요. 어떤 면에서 보면 고종과 협조 관계일 수밖에 없는 거죠. 고종과 완전히 척을 지는 모습은 아니라는 거죠. 그런 양면성이 있어요.

 

지금 우리 사회에는 어떤 리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지, 그 리더에게 어떤 왕을 모델로 제시해 주고 싶으신지 궁금합니다.


이 책에서는 세종에 대한 이야기는 상대적으로 조금 짧게 언급했어요. 워낙 유명해서, 인간 세종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썼는데요. 사실 세종이라는 왕은 본인도 뛰어난 리더였지만 주변의 인물들을 정말 많이 키웠어요. 장영실, 음악가 박연, 황희 정승, 김종서, 성삼문 등 본인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뛰어오르게 하는 리더였어요. 그렇게 주변 인물들도 자신의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리더가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번에 대통령 탄핵 때도 안타까운 게 너무 많았잖아요. 왜 그렇게 주변에 사람이 없었을까, 그 많은 관료들을 왜 저렇게 활용하지 못했을까, 그런 거에 대한 안타까움이 많았잖아요. 세종처럼, 본인도 정말 열심히 일하지만 주변 사람들을 함께 부각시키는, 그런 리더가 배출이 되면 우리 사회가 조금 더 나아지지 않을까 싶어요.


 

 

왕으로 산다는 것 신병주 저 | 매일경제신문사
이 책은 정통 역사학자로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는 건국대학교 사학과 신병주 교수가 500여년의 조선왕조 역사를 8개의 분류로 나누어 소개한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화가 황주리 “소설은 뒤늦게 만난, 자유를 향한 발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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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쓰는 화가 황주리. 황주리에게 그림은 그 자체로 자신이다. 다섯 살 때부터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해온 작업이다. 그는 매일 그림을 그린다. 그림에서 행복을 느낀다. 앞으로도 그림을 그릴 수 있기를 소망한다. 한편 소설은 뒤늦게 맞본 자유 같은 것. 매일의 일과를 온전히 그림에 쏟아 붓는 틈에 화가는 아무도 시키지 않은 ‘뜨개질’을 한다. 그렇게 가끔 뜨개질을 하다보니 어느 새 스웨터가 완성되었다. 『한 번, 단 한 번, 단 한 사람을 위하여』는 황주리의 두 번째 스웨터다.


생각해보면 이야기 만드는 것을 늘 좋아했다. 열 살 때, 한 달 치 일기를 미리 써놓았던 적이 있다. 가정 방문을 한 담임 선생님께 들통이 나긴 했지만 황주리는 그것을 “나의 첫 소설 수업”이라고 말한다. 다만 작은 메아리를 낳을 수 있는 스웨터를 몇 벌 뜨고 가고 싶다는 화가 혹은 소설가의 목소리가 총총히 빛나 보였다.


무엇보다 이 ‘그림소설’이 주는 독서의 새로운 즐거움이 소중하다. 활자와 활자 사이에 놓인 화가 황주리의 오랜 작품들이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가 하면 그림과 그림 사이에 놓인 소설가 황주리의 이야기들이 다채로운 빛을 내며 다가온다. 말하자면 그림을 ‘읽고’ 소설을 ‘보는’ 경험을 선사하는 작품들이다. 여러 죽음과 후회, 강렬한 사랑과 이별이 그림으로, 글로 표현되어 숨은 감각마저 일깨운다. 책을 덮자, 곧바로 다음 스웨터를 기다리는 마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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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그 시간에 대한 명상


독서에 다양한 자극을 주는 작품이에요. ‘그림소설’이기 때문이기도 할 텐데요. 어떻게 해서 쓰인 소설들인지 먼저 묻고 싶습니다.

 

공통적인 주제를 잡아보자면 이별에 관한 명상 같은 거예요. 이별에 대처하는 법을 오래도록 생각해온 사람의 이야기죠. 이별에 대처하는 법을 끊임없이 생각해왔어요. 에세이로도 계속 써왔고요. 그러다가 보니까 이별에 맞닥뜨리고 슬픔에 대처하는 방법 등등이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사람의 문제라는 생각이 든 거예요. 나의 이야기 혹은 타인의 이야기를 통하여 모든 사람을 건너는 이야기죠. 그런 공통적인 주제가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이별에 대처하는 법이란 사실 없거든요. 방법은 없고, 시간밖에 없는데요. 그 시간에 대한 명상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아요. 그러니까 결과가 중요하다기보다 그 순간순간에 대한 채색 같은 게 더 중요한 거죠.

 

오래도록 이별에 대처하는 방법을 생각해온 어떤 특별한 이유라도 있었나요?


감성이 예민한 사람이라면 아주 어렸을 때부터 생각해온 걸 텐데요. 제가 이별을 가장 먼저 생각하게 된 건 할머니였어요. 삼십 대에 혼자가 되신 할머니와 어렸을 때부터 함께 살았어요. 할머니가 98세까지 사셨는데 매일 자신이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말씀을 하셨던 거예요. 내일 죽을지, 모레 죽을지, 네가 학교 들어가는 걸 볼지 모른다는 말씀을 늘 하셨어요. 저는 매일매일 죽음에 시달렸어요. 오늘은 할머니가 안 돌아가셨다, 의 연속이 98세까지 된 거죠.(웃음) 그래서 다른 사람과 달리 어려서부터 그런 생각을 굉장히 많이 해왔던 게 사실이고요. 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시고,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몇 년 전에는 동생이 세상을 떠났어요. 이런 여러 가지 이별을 겪으면서 생각을 했던 거죠. 나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겪는 이별에 대한 명상을 말이에요. 순간순간 박혀있는 것들이 사랑이라면 전체적인 이야기는 이별이라는 생각이에요.

 

무엇보다 그림에서 시작된 이야기라고 들었어요.


굳이 구분을 하는 게 무의미하기는 해요. 예를 들어 동생이 사랑하던 불독을 제게 맡긴 적이 있어요. 그 녀석을 4-5년 키우면서 그림 38점을 그렸어요. 그 개가 세상을 떠난 다음에 그림들을 회상하다보니까 글이 쓰이게 된 거거든요. 꼬냑을 마시는 모습도 있고, 드레스를 입은 모습도 있고 한데요. 이런 모습에서 글이 나왔다고 할까요? 「불도그 편지」는 그렇게 만들어졌어요.

 

안경 연작도 인상적이에요. 「한 남자와 두 번 이혼한 여자」는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주인공은 저와 전혀 다른 성격의 캐릭터인데 안경에 관한 생각에는 제가 곳곳에 꽂혀 있죠. 중학교 때부터 안경을 썼고, 안경을 오래도록 모았거든요.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니 돋보기안경 몇 개가 남고,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니 선글라스가 남더라고요. 유품으로 남은 안경이 굉장히 강한 인상을 줬어요. 90년도에는 아우슈비츠에 갔더니 안경이 잔뜩 쌓여있더라고요. 그때 저도 모아둔 안경에 작업을 해보자고 생각해서 개인의 유품으로써 남겨진 이미지들을 담은 거죠. 전시도 했는데요. 안경에 관한 직업이 그렇게 많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어요.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캐릭터를 만든 거예요.

소설 쓰는 재미는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펼 수 있다는 점에서 자유를 향한 발걸음이라고 할까, 그런 데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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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모든 예술은 하나


예전 <채널예스> 인터뷰에서 그림을 안 그렸다면 소설가가 됐을지도 모른다고 하신 적이 있어요. 소설과 산문, 그림이라는 각각의 작업들이 서로 어떻게 공명하는지 궁금합니다. 서로 영향을 끼치나요? 각각의 영역을 대하는 작가의 태도는 어떻게 다른가요?


다섯 살 때부터 그림을 그렸기 때문에 그림은 제가 선택을 한 게 아니라 결정지어진 거라고 봐야 해요. 그림은 그냥 나예요. 매일 매일 하는 일이고요. 그림을 그릴 때 참 행복하다고 느끼고요. 지금까지 혹은 죽을 때까지 내가 하면서 행복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건 굉장히 복이라고 생각하죠. 반면 글을 쓰는 일은 인연이 닿은 거예요. 사실 모든 예술은 하나죠. 시간을 어디에 더 투여하느냐에 따라 비슷한 수준의 작업을 하게 될 텐데요. 저는 아버지가 출판사를 하셨기 때문에 워낙 집에 책이 많았어요. 독서량이 있었죠. 그러다 대학교 때 우연히 <문학사상>에서 원고가 급히 필요한데 그림 있는 에세이를 쓸 수 있겠느냐고 제안이 왔어요. 그렇게 여기저기 연결이 되어서 신문 칼럼도 생기고 계속 지면이 생긴 거죠. 책도 몇 권 냈고요. 그러다 에세이로 하는 이야기가 너무 한정적이란 생각이 들어 소설을 쓰게 된 거예요.

 

소설은 비교적 뒤늦게 찾아왔군요?


소설은 그러니까 선택이에요. 그림이 아닌 문자 매체로 여러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선택인 것 같아요. 그게 아주 뒤늦게 찾아온 거죠. 소설이란 생각의 씨줄, 날줄을 뜨개질 해나가는 일인데 이걸 멈추지 못하는 거죠. 특히 저 같은 사람에게는 뜨개질로 스웨터를 만들라는 말을 아무도 하지 않는데, 심지어 스웨터를 만들면 하는 거나 잘하라며 욕도 하는데(웃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뜨개질을 계속하는 이유가 분명히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정신의 수공업인데 그것이 제 자신에게 기쁨을 주기 때문이겠죠. 시대를 초월해 코드가 같은 사람이 소통할 수 있는 매개, 그 정도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작은 메아리로 충분해요. 나한테 소설은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스웨터를 몇 벌 뜨고 간다고 생각하면 될 거예요. 내가 진짜 싫은 사람이 이걸 읽는 게 뭐가 좋겠어요.(웃음)

 

그림과 글을 모두 짜고 있는 작가의 하루 일과는 어떤가요? 


매일 그림을 그리니까 글에 몰입하지는 못해요. 사실은 한 달에 며칠 쓰지 못해요. 아침에 일어나서 10시부터 12시까지 작업하고, 점심 먹고 2시부터 6시까지 그리고요. 저녁 먹고 또 8시부터 11시까지 작업하고 그래요. 일주일에 하루는 반드시 영화 두세 편 보려고 하고요.

 

그런데 그림과 소설 사이에 시간 간격이 있잖아요. 작가로서 작품에 대한 감상이 달라지기도 했을까요? 변화가 있었나요?


저는 그냥 매일 그린 사람이거든요. 끊임없이 나의 모든 사고와 세계관,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그냥 그대로 다 묻어나온 게 그림이죠. 분명히 내가 그린 그림이 맞는데 세월이 지나 그 그림을 훑어보면 새로운 발견을 하게 돼요. 유적을 발견하는 것 같죠. 말하자면 이미지의 고고학이에요. 마치 미리 그려놓은 그림을 뒤늦게 현실에서 발견하는 신기함이 있어요. 내 그림이 굉장히 소설적이고 반대로 소설은 굉장히 회화적인 것 같더라고요. 그것이 다른 사람의 그림과, 다른 사람의 소설과 구분되는 면일 것 같아요.

 

여행지에서의 이미지도 특히 인상적이에요.

 

NGO 단체를 통해 오랫동안 아프리카와 남미를 다녔어요. 그곳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이미지들을 얻었죠. 「바오밥 나무를 좋아하세요?」는 나이로비에서 얻은 거예요. 나이로비에서 사막지대를 데려다주는 조종사가 있었는데 시카고에서 왔대요. 파일럿 선교사인데 아프리카가 좋아서 여행 왔다가 그냥 지낸다는 거예요. 그 사람과 제가 오래도록 좋아했던 생텍쥐페리의 이미지를 섞어서 전혀 다른 캐릭터를 창조해낸 거죠. 저는 그런 게 너무 재미있어요. 역시 끊임없이 이별을 하는 사람의 이야기고요.

 

이별과 같은 맥락에서 읽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여러 인물이 잃어버린 것을 뒤늦게 찾아 헤매요. 후회라는 감각이 많거든요. 왜일까요?


저는 한 마디로 인간은 후회하는 존재라고 생각해요.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은 후회하는 존재라는 건데요. 그 어떤 선택을 해도 후회와 선택 사이에 있는 거죠. 그래서 그런 후회의 감정을 많이 다루지 않았을까 싶어요. 후회하는 인물들은 꼭 나의 모습은 아니고요. 내 주변에 있었던 내가 수없이 보아왔던 인물들의 모습일 거예요. 소설이나 영화를 많이 보는데요. 특히 영화 속에서 본 수없이 후회하는 사람들이 저장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래서인지 이 소설들은 ‘되는 이야기’라기보다는 ‘되어가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습니다. 결과보다 과정 그 자체를 깊이 사색해요. 여기에도 다른 이유가 있었을까요?


그게 삶이거든요. 주인공들의 공통점은 면허를 따기 위해 바쁘거나 성공을 하기 위해 애쓰거나 하는 사람들은 하나도 없다는 점이에요. 남는 장사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에요.(웃음) 그것은 제가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의 유형과도 비슷해요. 문학 취향이나 사람 취향이나 다 그런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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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유효기간


또한 빼놓을 수 없는 게 죽음이죠. 그 많은 죽음들은 역설적이게도 삶을 성찰하게 하거든요. ‘살아있다는 건’이라고 하면서 긴 호흡으로 말하는 대목에서 절정에 이르기도 하고요.


이 나이쯤 되면 굉장히 많은 죽음을 보게 돼요. 그것도 갑작스런 죽음이죠. 어제 같이 밥 먹었는데 오늘 죽었다는, 이런 것들을 많이 겪게 되는데요.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을 극복하는 게 너무 힘들어요. 요즘도 형제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영화를 보면 굉장히 오랫동안 우울하고 슬픈 생각이 드는데요. 특히 형제란 그렇죠. 그 애의 어떤 부분이 너무 싫고 심지어는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기도 하는데 사실은 그것이 나의 어떤 부분이었던 거죠. 싫어했던 부분이 내 어떤 부분이라는 걸 나중에 알게 되는데 그 애는 세상을 떠나버렸어요. 그러다 어느 날 네가 나인데,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런 것에 대한 생각들 역시 글에 많이 섞여 있어요.

 

살아 있다는 건 해가 뜨는 걸 바라보는 일이다. 살아 있다는 건 해가 지는 걸 바라보는 일이다. 살아 있다는 건 사랑하는 사람의 체온을 느끼는 일이다. 살아 있다는 건 세상의 맛있는 음식을 온 감각으로 음미하는 일이다. 살아 있다는 건 저 멀리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는 일이다, 살아 있다는 건 바람과 비와 눈을 맞는 일이다. 살아 있다는 건 아무리 기쁜 일도 슬픈 일도 매일의 일상보다 힘이 없다는 걸 깨닫는 일이다, 그 일상 속에서도 과거는 힘이 없다. 하지만 과거 없는 미래는 없다.(227쪽, 「바오밥 나무를 좋아하세요?」)

 

종교적인 면도 있는데요. 저는 무신론자예요. 지금도 장례식에서 종교로 인해 사람이 없어지게 되는 장면이 너무 싫어요. 그 사람을 기억하고 애도하고 싶은데 종교가 들어와서 자리를 차지하는 건 참 싫죠. 그럼에도 가까운 사람과의 이별에서 나를 일으킨 것은 불교적인 것들이었어요. 종교로써의 불교는 아니고요. 경전에서 보는 불교의 가르침이 많은 도움이 됐어요.

 

불상을 그린 그림도 곳곳에 있잖아요. 


동생이 죽고 나서 본격적으로 그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요. 실은 그것은 불교 이미지를 그리려고 한 것이 아니고 어떤 깨달음 때문이었어요. 동양의 보물은 붓다잖아요. 조각상으로써 말이에요. 그런 것에 관심을 갖다가 그린 거예요. 한 번은 다큐 프로그램을 따라 스리랑카를 다녀왔어요. 불교에 관한 모든 것을 본 거죠. 당시에는 너무 많이 봐서 지긋지긋하기도 했는데요.(웃음) 그 뒤부터 불상이 보이기 시작했어요. 요즘에는 한국에 있는 반가사유상이 제일 좋은데 왜 이게 나중에 보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그 예술적 형상에 매료된 상태예요. 불교라는 종교에 심취한 건 아니고요. 내 안의 불교죠.

 

예술적 의미에서 불교는 어떤 영감을 주나요?


내가 그리는 붓다는 인간 붓다예요. 사람들에게 종교적 심상을 불러일으키는 그런 게 아니고요. 진짜로 내 안에 붓다가 있거든요. 가끔 만나지기도 하고요. 그런 거예요. 이 세상에 너무 드문 것, 보석 같은 것, 그런 마음이에요.

 

다시 죽음 이야기를 좀 더 하자면, 다양한 죽음을 보는 것 자체가 삶을 더 깊이 성찰하려는 노력이 아닐까 싶기도 했어요.


죽음은 다른 게 아니고 유효기간이라고 생각해요. 여행을 가서 돌아올 날짜 즉, 유효기간이 없다면 그렇게 열심히 안 볼 거예요. 원고 마감일이 있어야 쓰잖아요.(웃음) 그런 느낌으로 늘 생각하면서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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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색깔이 다른 화양연화


한편 에필로그에서는 작품들을 짝사랑에 관한 이야기라고 설명하셨잖아요. 그건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요.

 
맨 처음 접한 짝사랑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이에요. 짝사랑이 품고 있는 에너지는 인류를 발전시킨 에너지라고 생각하는데요. 짝사랑은 반드시 남녀 간의 것이 아니더라도 해당이 되죠.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도전하는 것도 짝사랑이잖아요. 이를테면 제가 어렸을 때 진짜 부러워했던 풍경은 피겨 스케이트를 타는 친구였어요. 얼음판 위에서 친구가 날아다니는 그 모습을 저는 짝사랑했어요. 또 피아노를 기가 막히게 치는, 저는 지금도 그 모습을 짝사랑해요. 대표적인 짝사랑은 어머니의 짝사랑이죠. 그것은 상대적일 수가 없죠. 절대고독, 절대사랑이잖아요. 그런 거예요. 한 사람만을 바라보다 죽은 개의 짝사랑, 이런 모든 것을 포함한 짝사랑을 의미하는 거예요.

 

‘절대사랑’이라는 표현을 쓰셨는데 어떤 감정은 읽는 사람을 압도하는 느낌이 있었어요.


저는 남녀 간의 사랑도 그런 걸 좋아해요. 샨 사의 『바둑 두는 여자』라는 소설이 있는데요. 2차 대전 때 일본군 장교와 중국 여자가 길에서 바둑을 두는 내용이거든요. 여자는 남편이 있는데 남자는 여자를 짝사랑하는 거예요. 나중에 여자가 독립 운동을 하다 붙잡혀서 일본군이 있는 곳에 왔는데요. 군인들이 여자를 강간하려고 쫙 서서 기다리는 거예요. 그때 이 남자가 자기가 먼저 하겠다고는 들어가서 그 여자를 총으로 쏴 죽여요. 정말 강렬하죠. 저는 그런 이야기를 정말 좋아해요. 역시 남는 장사가 아닌(웃음) 그런 절대적인 순수에 대한 선호가 있는 거죠.

 

‘내 삶의 화양연화였다’는 표현이 눈에 띄었거든요. 그 문장을 작가님께 드리면 어떨까요?


늘 지나고 나면 그때가 화양연화였다고 생각하는데요. 죽을 때까지 늘 색깔이 다른 화양연화예요. 그러니까 늘 순간에 집중하면서 살아야 할 것 같아요. 오늘도 그렇고요.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죽는 날까지 그때가 화양연화였다고 생각하며 살고 싶어요. 그렇게 살아야 하고요. 진짜 공짜 여행이잖아요. 하루하루 사는 게 공짜 여행이라니까요.(웃음)

 

앞서 얘기한 후회라는 게, 결국 깨달음이기 때문에 후회인 거네요.


깨달음이기도 하고 욕심이기도 하죠. 놓지 못하는 거잖아요. 놓으면 후회할 일이 없죠. 저게 이것보다 낫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 때문에 후회하는 거니까요. 사실은 그것조차도 살아 있기 때문에 드는 감정들 중 하나이겠고요. 결국 제 작품의 핵심은 살아 있음, 살아 있기 때문에 나를 떠난 것들에 대한 감상인 것 같아요.

 

화가가 아닌, 소설가로서 황주리의 꿈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아까 말씀 드린 게 다예요. 그림은 직업이고, 마지막 순간까지 하는 일이고요. 소설은 늦게 만난 나의 선택이고, 즐거움을 주는, 자유를 향한 발걸음이죠. 남녀노소, 시대를 불문한 소통이고요. 진짜 원하는 게 있다면 흔한 얘기 같지만 『어린왕자』 같은 이야기를 하나 남기고 싶은 마음이 있죠. 그것은 어쩌면 소설가의 글도 아니잖아요. 나중에 소설로 분류된 것뿐이죠. 세월이 많이 흘러도 사람들의 생각 속에 늘 있는 이야기를 남기는 게 꿈이에요. 어마어마한 꿈이죠.(웃음)

 

그림에 있어 소망하는 바도 같을까요?


맞아요. 미술사에 남아서 알려지는 유명한 그림, 그런 것보다는 달력이랄지, 책 표지랄지, 그런 게 좋아요. 위안이 준다는 말이 너무 흔해져서 흔하게 들리는 것뿐이지 위안이라는 건 모든 게 다 위안이거든요. 그 안에서 나와 비슷한 절망을 발견해도 위안이고요. 어둠을 지나간 밝음도 있는 법이니까요.


 


 

 

한 번, 단 한 번, 단 한 사람을 위하여황주리 저 | 노란잠수함
화려한 원색과 열린 상상력을 바탕으로 독특한 회화세계를 구축한 신구상주의 계열의 가장 주목받는 화가 황주리는 평단과 미술시장 양쪽에서 인정받는 몇 안 되는 화가다. 이 책은 다양한 글쓰기로 뛰어난 산문과 소설을 발표해 온 황주리의 기발한 상상력과 눈부신 색채로 가득 찬 매혹적인 그림소설집이다.

포에틱 저스티스, ‘시와 랩은 형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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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에틱 저스티스(Poetic Justice). '시와 랩은 형제다'라는 신념 아래 시인과 래퍼, 음악평론가가 뭉쳤다. 이미 문단에서 일가를 이룬 김경주 시인과 한국힙합의 대부 MC메타, 힙합 전문 음악평론가인 김봉현 평론가가 그 주인공이다. '포에트리 슬램(Poetry Slam)'이라는 조금은 낯선 공연을 선보이는 그들은 시와 랩을 연결하는 퍼포먼스를 통해 우리 사회에 선언적 메시지를 선사하곤 한다. 철저한 비즈니스 관계(?)가 오랜 활동의 비결이라는 그들은 어느덧 활동 4년차에 접어들었다. 시와 랩이라는 형식을 넘어서 '목소리'라는 뿌리를 통해 소외된 것들에 대한 울림을 퍼뜨리고 있는 그들의 외침은 순수를 머금고 있었다.

 

'포에틱 저스티스(Poetic Justice)' 프로젝트가 언제부터,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궁금합니다.


김봉현 : 저와 김경주 시인이 처음 만난 게 2012년 가을 정도였어요. 문학 신에서는 '랩이 시냐?'라는 의문을 가진 시인 분들도 많으실 텐데 경주님은 그런 게 전혀 없으셨고 오히려 시와 랩에 공통점이 많다고 생각하고 계셔서 같이 접점을 찾아 뭔가를 해보자고 했습니다. 그것이 '포에틱 저스티스(Poetic Justice)'라는 형태로 나타나게 된 것이고요. 이후 실제 퍼포먼스를 해주시는 래퍼 분이 필요했는데 바로 떠올랐던 래퍼는 당연하게도 MC메타님이었어요. 랩 네임부터가 '메타포(metaphor : 은유)'인 것도 그렇고 여러모로 시적 은유를 함유한 분으로 알고 있어서 제안을 드렸더니 긍정적으로 답해주셔서 자연스럽게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MC메타 님은 이 프로젝트에 섭외를 제안 받으셨을 때 느낌이 어떠셨나요?


MC메타 : 굉장히 흥미가 있었죠. 가리온이란 팀을 만들고 나서 1집 앨범 준비하는 10여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랩 가사가 지닌 문학성을 배제한 적이 한 번도 없었어요. 랩 가사는 문학이다. 세이지 프란시스(Sage Francis)나 사울 윌리암스(Saul Williams) 같은 경우 시인이자 래퍼이자 슬래머(slamer)이거든요. 영화 <슬램>에서의 퍼포먼스를 보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걸 할 수 없을까라는 생각을 했는데 마침 이런 제안이 와서 반가웠어요.

 

팀 내에서 각자의 역할이 궁금합니다.

 

김봉현 : 저는 기획이나 공연, 오늘 같은 인터뷰 활동 등에 대해서 주도적으로 계획하는 역할이고요. 김경주 시인은 퍼포먼스에 필요한 텍스트를 직접 작성해주시고, MC메타 님은 직접 퍼포먼스를 해주십니다. 셋 다 각자의 영역에서 본업을 하고 있지만 이 프로젝트를 할 때는 모여서 같이 하는 식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포에틱 저스티스'라는 팀명의 의미는 무엇인가요?


김봉현 : <포에틱 저스티스>라는 영화의 타이틀이고 켄드릭 라마의 노래 제목이기도 한데요. 얼마 전 FM <배철수의 음악캠프>에 출연했을 때도 배철수 씨가 팀명이 너무 거창한 거 아니냐는 말씀을 하셨습니다만 (웃음) 저희가 '정의' 자체에 방점을 맞추어 지은 것은 아닙니다. 약간 관용어로써 인과응보 혹은 권선징악의 느낌이에요. '포에틱'이란 말이 가지고 있는 시적 숙성의 가치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시' 자체보다는 '시적'이라는 것의 중요성이요.

 

김경주 : 시와 랩의 공통점이기도 하지만 시적이란 것은 라임이 있어야 하잖아요. '포에틱'은 라임적인 거예요. 의미론적이지 않다는 거죠. 랩의 핵심은 래퍼들의 고백 에너지라고 생각해요. 사회학자나 소장학자들이 하는 말보다 더 깊게 전달될 수 있죠. 세상에는 많은 전달방식이 있지만 저희들만의 방식인 라임으로 계속해서 고백하겠다는 거죠. 정의적인 단어라기보다는 선언적 느낌이 강한 것 같아요.

 

포에틱 저스티스에서는 어떠한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나요?


김경주 : 우리 사회는 정의감은 넘쳐나는데 정의는 아직 자리 잡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사실 혐오가 일반화되어있는 사회잖아요. 일제시대 이후부터 해소되지 않은 원초적인 열패감 혹은 피해의식 같은 것들이 지금에 와서 어떤 혐오로 드러나고 있는데 그런 혐오들 속에서 저희들이 던져놓는 것은 저항의 메시지라기 보단 작은 선언 같은 것들이에요. 예를 들어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해 다루었을 때 정부를 비판하기 보단 그곳에 실제 어떠한 사람이 살았는지, 그 사람이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해 어떻게 바라보았는지에 대해 조명했어요. 그야말로 목소리를 대신해 주는 거죠. 그런 것들이 창작자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인상적이었던 작업이 있다면요?


김봉현 : 국립 현대미술관에서 공연한 것도 인상적이었고, 최근에는 <문학광장>에 연재를 시작한 '일인시위'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데요. 놀란 게 김경주 씨가 텍스트를 써주면 그걸 가지고 MC메타가 알아서 시의 라임을 랩의 형식으로 바꿔 살리는 거예요. 별다른 의논 없이도 그런 과정이 이루어지는 걸 보면서 엄청난 쾌감을 느꼈습니다. 경주 씨는 산문시를 힙합친화적 쓰고, MC메타는 김경주 시인이 유도한 포인트를 살린 것이 어우러진 셈이죠. 이런 결과물들을 통해서 많은 대중 분들이 시와 랩의 연결 지점들을 읽어내셨으면 좋겠어요.

 

MC메타 : 시를 전달 받으면 최대한 그 시가 갖고 있는 이미지만 파악하려고 해요. 시의 속 깊은 의미까지 파악하기엔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겉핥기식으로 먼저 맛을 보고 그 이미지에 기술적으로 시어를 형성할 수 있는 리듬을 찾아내요. 가장 기본은 라임이죠. 시인의 호흡으로 넣어놓은 접두어나 조사 한 음절이라도 찾아내는데 재밌게도 일정 간격으로 제 호흡 안에서의 라임이 존재해요. 그게 없을 때는 그 지점을 늘리거나 동일한 간격으로 또 다른 형식을 넣어 보거든요. 그러면서 제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랩 형식에서 탈피가 되는 자유를 느껴요. 가리온의 가사에서 그렇게 쓸 순 없겠죠. 이런 걸 통해서 시와 랩의 새로운 지점을 느끼곤 해요.

 

김경주 : 제가 매번 놀라는 건 MC메타님께 어떤 텍스트를 드려도 그 시가 가지고 있는 리듬감을 끌어내서 본인방식으로 소화하시는 거예요. 저는 그게 랩 훈련만을 통해서 나오는 이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MC메타님이 랩을 시작했을 때 근본적으로 시와 문학적 텍스트에 대한 아이덴티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봐요.

 

최근 『힙합의 시학』이라는 책을 번역하셨는데요. 책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김봉현 : 김경주 시인과 제가 같이 시와 랩에 대한 책을 써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그러던 와중에 이 책을 발견했습니다. 제 생각과 완전 빼닮았다고 생각할 정도로 내용에 굉장히 많은 공감을 했어요. 그래서 경주 씨와 제가 같이 번역을 하게 되었죠. 흥미로웠던 지점은 라임을 다양한 분류로 나누어 놓은 것인데요. 예를 들면 '절정'과 '편견'이란 단어가 보기에는 라임이 잘 맞는 것 같지만 실제 발음해보면 제대로 라임의 기능을 하지 못하거든요. 이 책에서는 이러한 라임을 '불완전 각운'이란 명칭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저자의 남다른 시선이 재밌는 것 같아요.

 

시와 랩을 연결하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도 있을 것 같습니다.


김봉현 : 얼마 전에도 힙합 신에서 나름 이름 있으신 분이 저의 활동에 대해 왜 시와 랩을 억지로 연결시키려고 하느냐라는 피드백을 하신 걸 봤는데 굉장히 안타까웠어요. 시와 랩을 연결시키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미국에선 1990년대부터 데프 잼이란 힙합레이블에서 모스 데프와 같은 래퍼들이 시를 낭독하고 슬래밍하는 등 시와 랩을 연결시키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었어요. 한국에선 그러한 논의가 없었고 있었다고 해도 선언적으로만 되었죠.

 

김경주 : 한국에서 유난히 우리의 포맷에 대해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시를 바라보는 태도 때문인 것 같아요. 최근 힙합에 대한 편견은 많이 누그러졌지만 시에 대한 것은 아직 안 벗겨졌다고 생각합니다. 유럽에서 시는 쓰기 위한 형태도 있지만 낭독하거나 다른 방식으로 전달하는 하는 게 되게 중요했거든요. 그런데 한국은 신춘문예 같은 출판의 형태가 시인의 중요한 자성적 태도였기 때문에 이것을 가지고 공연을 만들거나 이미지로 전환시키는 행위가 적응이 안 되는 거죠.

 

해외에서는 시와 랩에 대해 어떠한 시선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김봉현 : 미국에서도 아직까지 힙합을 폄하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우리나라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존중받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하버드 대학에 래퍼 나스의 장학기금이 생긴다든가, 많은 대학에서 카니예 웨스트의 가사를 전공과목 교재로 선택하는 이런 일들이 많거든요. 영국에서 셰익스피어 작품을 랩과 슬램을 통해 퍼포먼스하는 것으로 유명해진 아칼라(Akala)라는 친구도 재밌는 사례이고요.

 

MC메타 : 랩이 단순히 래퍼들의 삶을 노래하는 걸 벗어나 새로운 분야로 가는 측면도 보이고 있어요. 예를 들면 우탱 클랜의 즈자(GZA) 같은 래퍼들은 빅뱅에서부터 초끈 이론까지의 모든 이론 물리학의 과정을 랩으로 소화하고 그걸 대학에서 보여줘요. 또 수학이론이나 통계학 공식들을 랩으로 라이밍해서 그걸 교육용으로 사용하는 사례도 있고요. 이런 사례를 보면서 단순히 랩이 음악 안에서만 기능하는 게 아니라 어마어마한 확장성이 있다는 걸 느꼈어요. 반면 우리나라는 랩이 가진 가능성을 제한하려는 면이 없잖아 존재하고 포에틱 저스티스의 움직임은 그 구속을 풀어내고자 하는 측면이 존재하죠.

 

김봉현 : 사실 <무한도전>에서 설민석 씨가 한 것도 랩의 문화적인 접근이기 보다는 랩이라는 전달방식이 가진 효율성을 사용한 셈이죠. 라임과 리듬을 근간으로 하면 그냥 말하는 것보다 훨씬 더 기억을 잘 할 수 있잖아요.

 

소위 '스웨그 랩'이라 불리는 가사가 힙합 신에서 주류를 차지하고 있는 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김봉현 : 균형과 비율의 문제란 생각이 듭니다. 청소년들이 <고등래퍼>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해 '난 돈 많이 벌고 성공할거야'라는 이야기를 가감 없이 내뱉는 것에 대해 '천박하다'는 시선의 칼럼을 본 적이 있는데요. 전 그런 이야기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성공에 대해 말하는 어린 래퍼들의 얘기가 실은 생존경쟁이 심화되고 있는 한국사회를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아이러니하게도 1970년대 가난했던 흑인 래퍼들이 하던 이야기가 2016년도의 한국의 세태와 일치하면서 힙합이 대세로 올라선 것으로 볼 수 있죠. 아쉬운 건 다양한 이야기가 공존해야 하는데 성공에 대한 이야기의 비율만 극도로 높은 것이 안타깝습니다.

 

김경주 : 봉현 씨가 바라본 건 수용자 입장에서의 태도인 것 같고 만드는 사람 입장에선 조금 다를 것 같습니다. 창작자로서 자기의 진심을 담으면 그 진심은 최고의 웅변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난 잘났어. 돈 밖에 가진 게 없어'라고 진심을 다해 이야기한다면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랩의 매력적인 지점 중 하나는 어떤 작업들보다도 내적 근거를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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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에틱 저스티스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김봉현 : 기본적으로 랩이 시적이라는 것을 널리 알리고 싶고요. 저희가 연재하고 있는 '일인시위' 연재분을 모아서 책으로 내거나 퍼포먼스들을 모아서 앨범 형식으로 발매하고 싶습니다. 또 시와 랩에 한정짓기 보다는 다양한 분야에도 우리의 목소리를 확장시켜 세상에 울림을 전하고 싶습니다.

 

MC메타 : 제 랩 네임이 '메타포'지만 '매양 매'에 '다를 타', '매번 다르다'라는 뜻도 있거든요. 포에틱 저스티스에서의 활동들은 저에게 계속 새로운 도전을 하게 해준다는 면에서 굉장히 중요한 활력소예요. 이게 더 발전돼서 주변 분야에도 활발한 자극제와 촉매제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김경주 : 사람들이 '포에틱 저스티스'라는 단어를 통용되게 사용했으면 좋겠어요. 자신들이 목소리 내고 싶은 작업들에 대해서 따로 설명할 필요 없이 '이건 포에틱 저스티스야'라는 식으로요.

 

사진 : 이한수
인터뷰 : 김반야, 정민재, 현민형
정리 : 현민형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홍순성 “1인 기업가, 30대부터 준비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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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균 수명은 늘어나고 평생 직장은 사라진 시대, ‘1인 기업가’는 피할 수 없는 선택일지 모른다. 그러나 선뜻 시작하기란 쉽지 않다. 회사 안에서 수많은 직원들이 분업하던 일들을 오롯이 혼자서 도맡아야 하고, 자신만의 경쟁력으로 안정적인 수입을 창출해야 한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회사라는 울타리를 벗어나길 꺼려하는 이유다. 그러나 『나는 1인 기업가다』의 홍순성 저자는 “직장인이 회사 밖을 낭떠러지라고 추측하는 것은 바로 그 낭떠러지를 지나야만 만날 수 있는 평야를 보지 못해서”라고 단언한다.

 

11년차 1인 기업가인 저자는 직장인에게 효율성 업무 활용에 대한 맞춤 교육 컨설팅을 제공하는 클라우드 및 정보관리 컨설턴트다.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 포스코, SK텔레콤 등 다수의 기업과 서울대학교, 연세대학교, 카이스트 등에서 소셜미디어 및 스마트워킹 강좌를 진행한 바 있다. ‘홍스랩’의 대표인 동시에 ‘1인기업협동조합’의 이사장을 역임하고 있으며, 110만이 훌쩍 넘는 다운로드 수를 기록한 인기 팟캐스트 <나는 1인 기업가다>를 진행하고 있다.

 

『나는 1인 기업가다』는 홍순성 저자의 생존 노하우를 담은 책으로, 1인 기업을 시작하고 지속하기 위해 필요한 요소들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1인 기업가와 직장인의 차이”부터 “직장을 다니면서 1인 기업 준비하기”, “직장을 나오기 전 챙겨야 할 것들”, “1인 기업가의 연차별 생존 전략”, “1인 기업에 닥치는 위기와 관리 방법”에 이르기까지 저자 자신의 경험을 곁들여 현실적인 조언을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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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안에서 1인 기업을 준비하라


이제는 모두가 1인 기업가로 생존해야 하는 시대인 것 같기도 합니다. 평균 수명은 80세를 훌쩍 넘기고 있는데 정년은 50세까지 보장되지도 않잖아요.

 

제가 회사를 나와서 1인 기업을 시작할 때는 그런 생각을 한 건 아니었어요. 내 일을 탐구하고, 그 일의 가치를 찾고 발전시키는 게 목표였어요. 그런데 『나는 1인 기업가다』를 쓰고 나서 뒤돌아 봤더니 정말 사회가 변했더라고요. 스스로가 평생 고용을 해야 하는 게 요즘의 상황인 것 같아요.

 

IT 업계에서 일하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일을 선택하셨던 건데, 왜 ‘내 일’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을까요?


30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회사에서 하는 일이 조직 관리 쪽으로 바뀌었어요. 계속 엔지니어였다면 만족했을 텐데, 엔지니어 일은 없고 관리나 조직 운영이 전부가 되니까 어느 순간 내 일을 찾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리고 IT 업계에서 내 일을 하더라도 10년 안에 변화가 생길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 두 가지 이유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지 않았나 싶어요.

 

IT 업계의 특성상 직원들의 평균 연령이 낮잖아요. 회사에서의 내 자리가 계속 보전되는 게 아니라는 걸 체감하셨을 것 같아요.


당연한 거죠. 제가 서른두 살에 회사에 들어갔는데, 퇴사할 때 서른여섯이었어요. 지금으로 생각하면 되게 젊죠. 그런데 서른넷, 다섯이 되니까 당시 IT 쪽에서는 이미 노장이었어요. 저는 계속 현업에 있고 싶은데 관리나 영업으로 넘어가야 하는 상황이었죠. 그러니까 결국 내 일을 찾으러 가게 된 거고요. 어떻게 보면 답답한 사람이었죠. 제 일을 찾고 싶어서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대표님이 미쳤다고 그랬어요. 무모하다는 거죠. 그런데 4년 정도 후에 다시 대표님을 만났을 때는 ‘당시에는 몰랐는데 지금 와서 보니까 네가 하는 일이 맞다, 세상이 그렇게 변할 줄 몰랐다’라고 하시더라고요.

 

직장인들이 1인 기업가를 꿈꾸는 이유 중에는 기업 문화도 있을 거예요. 불필요한 사내 정치나 야근에서 자유로워지고 싶은 거죠. 1인 기업에는 이런 문제들이 없을까요?


더 어려울 것 같아요. 회사라는 조직과 떨어져서 진행을 하겠지만, 밖에 나온다고 해서 무인도에서 일을 하는 건 아니잖아요. 더 큰 조직에서 살아야 되니까 그 안에서 또 부딪히겠죠. 누군가를 만나게 될 때 항상 좋을 수만은 없잖아요. 외골수적인 생각을 할 수는 없죠. 다른 사람과 호흡하고 관계가 더 좋아져야 된다고 생각해요. 주위에서 1인 기업가 분들을 봐도 그런 분들이 오래 가는 것 같아요.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외골수적인 사람들은 전문성이 배제된 나머지는 꽝이죠. 그런 사람들은 오래 생존하기 힘들지 않을까 싶어요.

 

1인 기업가로 성공하기 위해서는 전문성과 함께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중요하겠군요.


그렇죠. 관계 능력이 뛰어나야죠. 고객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알아야 하는데, 그건 커뮤니케이션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거니까요.

 

책에서 말씀하시길, 1인 기업을 설립하기 위한 준비는 회사 안에서부터 시작하라고 하셨어요. 준비 기간은 얼마나 필요할까요? 3년 정도면 될까요?


전문직에 따라 다르겠지만 3년이면 어느 정도 충분할 것 같아요. 그런데 직장 생활 없이는 조금 힘들 것 같고요. 3~4년 정도 직장 생활을 경험한 다음에 1~2년 정도의 준비 과정을 통해서 자기의 업이 무엇인지를 찾아보면 좋을 것 같아요. 취업준비생이 바로 1인 기업을 시작하는 경우도 있는데, 커뮤니케이션 능력과 일의 프로세스에서 부족함이 있어요. 인맥이 없기 때문에 누구를 소개시켜주고 소개받는 방법이 없기도 하고요. 취업준비생이 바로 1인 기업에 뛰어드는 게 나쁘지는 않지만, 아이디어나 제품이 뛰어나서 바로 온라인으로 판매를 하거나 쉽게 누군가한테 전달할 수 있는 기획 능력이 없다면 쉽지 않을 것 같아요.

 

1인 기업을 준비하는 직장인 중에는 ‘언제 사표를 던져야 할지’ 고민하는 분들도 계실 거예요. 『나는 1인 기업가다』는 “외부 수입이 월급의 70퍼센트 정도에 이르면 본격적으로 새 직업에 몰두해도 좋다”고 조언합니다.


회사 밖에 나가서 외부 수입을 만들겠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는데요. 잘 안 만들어지잖아요. 회사 내부에서 조금이라도 수입을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월급의 70퍼센트면 적지 않은 금액인데, 회사 밖에서 그만큼 만든다는 게 엄청난 거죠. 그렇게 어느 정도 쌓아두면 퇴직금과 합쳤을 때 1년은 버틸 수 있을 거예요. 제 경우에는 기존에도 프리랜서 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주말에 제품을 판매하거나 강의를 하기도 했어요. 그래서 그런 부분은 잘 됐던 것 같아요.

 

‘퇴사 전에, 이것만은 꼭 회사 안에서 배워라’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은 게 있다면요?


만약 영업부서에서 일을 온라인 마케팅 능력이나 문서 작업 능력이 부족할 수 있어요. 일의 규모에 따라서 혼자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외부와 같이 해야 한다면 일하는 방법, 워킹 같은 것들을 알아야 할 거고요. 그런 것들이 기본적으로 1인 기업들이 필요로 하는 부분이 아닌가 싶어요. 세무는 생각 외로 어렵지는 않아요. 많은 분들이 어려워하실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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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기업가가 좋은 세 가지 이유

 

직장인으로 살다가 1인 기업가로 변신하셨는데요. 어떤 점이 제일 좋으세요?


시간이죠. 시간을 내가 통제할 수 있으니까요. 직장에서는 직급이 높더라도 시간을 통제 당할 수밖에 없잖아요. 휴가 중에도 전화가 오면 받아야 하고 그에 따라 해야 할 일들이 생기기도 하고요. 그런 점에서 1인 기업가에게는 시간의 자율성이 있는 것 같아요.

 

많은 직장인들이 ‘저녁이 있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하죠. 가족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도 하고요. 그런 부분에서는 많은 변화를 느끼시나요?


그렇죠. 1인 기업을 해서 뭐가 좋으냐고 물어보면 저는 크게 세 가지가 좋다고 이야기해요. 말씀하신 것처럼 가족과 지낼 수 있는 시간을 만들 수 있으니까 행복이 있고요. 두 번째는 일의 가치예요. 일에 가치가 있기 때문에 그 일을 앞으로 어떻게 성장시킬 것인가에 대한 투자도 있는 거죠. 마지막으로는 내 직업이 생긴다는 거예요. 누구나 자기 직업에 대한 가치가 컸을 때 만족도가 크잖아요. 그리고 가끔씩 ‘1인 기업은 가족을 지킨다’는 말을 하는데요. 아무리 바쁘더라도 1인 기업은 가족은 지키더라고요. 그만큼 시간을 투자할 수 있다는 거죠.

 

반대로 직장인들이 부러울 때는 없으세요?


월급이죠. 수입이 안정적이잖아요.

 

1인 기업의 가장 큰 단점이 ‘불안정한 수입’일 텐데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수익의 다각화’를 고민하신 것 같아요.


그렇죠. 농부는 3월에 농사를 시작해서 9월에 추수하잖아요. 겨울에는 쉬고요. 1년 중에 6개월 밖에 못 버는 건데, 그런 점에서 저희도 농부와 비슷하다고 생각돼요. 한 해, 두 해 겪어보면 알겠더라고요.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걸 투자하는 건 기존의 방식이고, 똑같은 시간에 다른 거 하나를 더하자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수익의 다각화라는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한 거예요. 1인 기업을 하다 보니까 뭐가 없는지, 뭐가 필요한지 보이잖아요. 수익의 다각화라는 것도 그런 걸 조금 더 늘려가는 방법인 거죠.

 

어쩌면 직장인으로 사는 게 더 수월할지도 모르겠어요. 1인 기업가가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다고는 하지만, 업무의 총량은 직장에 있을 때보다 더 많은 것 같기도 해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요. 처음부터 그러라고 하는 건 아니에요. 예를 들면, 처음에는 계약서 하나 쓰는 데 반나절이 걸릴 수도 있죠. 그런데 조금 지나면 계약서 하나 쓰는 데 5분이면 될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런 것처럼 해보지 않았던 일이면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갈수록 그 시간이 줄어드는 거죠. 그게 일의 프로세스를 줄이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는데, 아마 해가 갈수록 어떻게 하면 일을 빠르게 할 수 있는지 방법을 찾게 될 거예요.

 

동료가 없어서 힘들다고 느낄 때는 없으세요? 일과 관련해서 의논하거나 고민을 털어놓을 상대가 없는 거잖아요.


그런 외로움이 클 거예요. 저는 그 부분을 다른 방법으로 극복했는데요. 네트워킹이 일상화되어 있어요. 정기적으로 모임을 하고, 그때 만났던 사람들과 같이 차도 마시고 진행하는 것들이 항상 있어요. 그런데 아마 1인 기업가의 상당수가 외로움으로 지치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지금 저희가 있는 ‘비즈스퀘어’에도 저 때문에 오신 분들이 꽤 많아요. 같이 사무실을 쓰는 분들인데요. 상당수는 외로움 때문에 찾아오세요. 여기 오면 어제도 오늘도 만나게 되는 사람들이 있고, 또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거나 같이 점심을 먹을 수도 있잖아요. 그런 것들로 인해서 외로움을 조금 줄이는 부분이 있죠. 외로움이 줄면 일에 탄력을 받고요.

 

일반적으로 ‘1인 기업가’에게 고비가 찾아오는 시기는 언제라고 생각하세요?


첫 번째는 수익이 악화될 때겠죠. 어느 한 가지 일이나 상품이 잘 되는 경우도 있지만, 계속 그것으로만 수익을 창출할 수는 없잖아요. 새로운 것도 찾아야 하는데 그 사이에 공백기가 있죠. 그 시기를 얼마나 잘 관리하느냐에 따라서 위기를 넘길 수도 있고 못 넘길 수도 있을 거예요. 그게 자기 관리일 수도 있겠죠. 수익이 악화되고 불안정할 때, 그런 위기를 버틸 수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게 아닐까 싶어요.

 

“버티는 힘은 1인 기업가에게 가장 중요한 능력”이라고 하셨어요. 11년 동안 1인 기업가로 살아오시면서 어떻게 버티셨나요?


산이라는 게 올라가면 내리막이 있는 거 아니에요? 내리막에서 포기하면 다시 올라와야 되는 거잖아요. 어디든 또 다른 데를 가야 하죠. 어디에 정상이 있고 어디에는 골이 있는지 알면 버틸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겪어봤으니까요.

 

이 또한 지나갈 것이라고 아는 건가요?


물론이죠. 1인 기업을 시작하고 처음 한두 해에는 불안감이 있을 거예요. ‘이 또한 지나가리라’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지나가지 않을 것 같은 아픔 속에 살아가는 거죠.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이 또한 지나간다는 걸 경험해 봤기 때문에, 답답하게 버티기보다는 슬기롭게 푸는 방법을 찾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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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기업가가 될 준비, 30대에 시작하세요


‘1인 기업을 멈춰도 좋은 순간들’에 대해서 이야기하셨어요. ‘수익이 발생하지 않을 때’, ‘가족과 계속 부딪치며 행복감이 떨어질 때’와 함께 ‘개인의 한계를 명확히 알게 됐을 때’를 꼽으셨습니다.


자신의 수준을 분명하게 알아야 돼요. 자신이 할 수 있는 영역을 찾는 게 맞다고 봐요. 가끔 보면 너무 높은 꿈을 갖고 계신 분들이 계시는데, 몇 해를 봐도 똑같으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누군가는 그 사람한테 ‘당신의 한계는 여기까지입니다, 다른 길을 찾는 게 좋지 않을까요?’라고 말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1인 기업을 운영하면서 한계를 느끼기도 하셨어요?


많이 느끼죠(웃음).

 

그럴 때는 사업 모델을 바꾸셨나요?


조금씩 바꾸죠. 저는 전문성이 높으면 잘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전문성도 있어야 하지만, 적절한 타겟의 고객을 설정하고, 그 입맛에 맞는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능력이 함께 필요한 거죠. 전문성을 높이 쌓는 게 아니라 고객이 필요한 만큼의 양만 쌓으면 되더라고요. 그러기 위해서는 전환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책에서 거듭 강조하시는 것이 ‘미디어를 활용하라’는 거예요. 직접 블로그, 카페, 트위터, 페이스북, 팟캐스트 등을 운영 중이신데요. 이런 활동이 1인 기업가에게 필수적이라고 생각하세요?


다 해야 되는 건 아닌데요. 일단, 자신과 제품을 알릴 수 있는 홈페이지는 하나 있어야겠죠. 그리고 두 가지가 더 있으면 좋겠는데요. 바로 페이스북과 블로그예요. 직업에 따라서는 페이스북보다 인스타그램이 좋을 수도 있을 거예요. 타겟 연령대가 20대라면 특히 그렇겠죠. 페이스북과 블로그는 꼭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되고, 인스타그램까지 포함하면 세 개가 되겠네요. 홍보를 하려면 돈이 들어가는데, 미디어만 있다면 그 비용을 아낄 수 있어요. 페이스북은 잘만 관리하면 정말 좋은 툴이라고 생각해요. 1인 기업가에게 강력 추천하고 싶은 것 중 하나예요. 특히 페이스북 개인 계정을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자신을 어필하는 방법이 되고, 좋은 마케팅 장소이기도 하거든요. 자신이 속한 분야, 잘하는 일, 갖고 있는 네트워크를 잘 이용해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전달해 주면 훨씬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해요.

 

성공하는 1인 기업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업가 마인드”로 무장해야 된다고 하셨습니다. ‘직장인 마인드’와 ‘기업가 마인드’는 어떻게 다른가요?


직장에 다닐 때는 누군가의 지시를 받잖아요. 그런데 1인 기업은 스스로 해야 되는 거죠. 그리고 직장인은 직장의 매출이나 목표에 있어서 1년의 계획을 잡는 거고, 1인 기업가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제품을 통해서 1년 동안 매출을 만들어야 되는 경우가 있어요. 중간 중간 매출을 확대시키기 위한 전략도 세워야 되고요. 똑같은 일을 하고 똑같은 계획을 세우면서도 주체가 누구냐가 다른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1인 기업가는 시간을 스스로 통제해야 되는 역할인 거고요. 직장인은 회사의 녹을 먹으니까 조직과 커뮤니케이션을 하겠죠. 1인 기업가는 고객과의 커뮤니케이션이다 보니까, 다변화된 고객들을 수용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할 거고요.

 

지금 이 책이 꼭 필요한 이들을 꼽는다면 누구일까요?


1인 기업을 시작하려고 할 때 선배나 멘토가 필요하잖아요. 그럴 때 이 책을 보면 어떻게 10년이 쭉 흘러가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1인 기업을 운영한지 1~2년 정도 됐을 때 보면 그 동안 자신이 해온 게 맞는지 점검할 수 있을 것 같고요.

 

40대 직장인들이 서둘러 봐야 하는 책이 아닌가 싶기도 해요. 퇴직 이후의 삶을 설계해야 하는 시기잖아요.


나이가 들수록 회사 일 외에 자신을 위해서 쓸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잖아요. 지출의 비중은 점점 커지고요. 30대보다는 40대에 심하고, 40대보다는 50대에 더 심하죠. 결국은 30대에 준비해야 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40대에 준비하게 되면 그만큼 쏟을 수 있는 시간도 적을 뿐만 아니라 투자할 수 있는 비용도 많지 않으니까요. 그런 점에서 30대, 특히 30대 중반 정도가 이 책을 가장 많이 읽어야 되지 않을까 싶어요.

 

1인 기업가 중에서, 성공까지는 아니더라도, 안정적인 궤도에 오른 사람들의 비율은 얼마나 될까요?


1년을 못 버티는 사람이 반 정도 될 것 같아요. 수입이 안정적이지 않고, 내가 이 일을 왜 하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럴 수도 있고요. 1인 기업을 어떻게 운영하면 될지 정보가 없는 거예요. 제가 1인 기업 포럼을 시작한 가장 결정적인 이유가 그거였어요. 스타트업이나 벤처는 창업 지식을 가르치잖아요. 그런데도 실패를 하는데, 1인 기업에 대해서는 창업 지식을 가르쳐 주는 데도 없어요. 1인 기업가에게도 창업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신의 1인 기업이 왜 실패하는지 알려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포럼을 통해서 1인 기업가들에게 당신들은 절대 외롭지 않다는 걸 알리고 싶기도 했고요.


 

 

나는 1인 기업가다홍순성 저 | 세종서적
막상 1인 기업을 시작하겠다고 해도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막막하다. 이 책은 퇴사 전에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어떤 비즈니스 마인드를 가져야 할지, 일은 어디서 해야 할지, 시간과 수입은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등 1인 기업에 도전하면서 실제 맞닥뜨리는 문제들을 자세히 풀어간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손현주 “누구나 가슴 속에 우는 아이 하나쯤은 있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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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없는 세 남매의 이야기 『불량 가족 레시피』로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한 바 있는 손현주 작가가 ‘애니멀 호더(animal hoarder, 동물의 수를 늘리는 것에 집착하는 사람들을 이르는 말)’인 엄마와 낡은 버스에서 살아가는 가족의 이야기 『소년, 황금버스를 타다』로 돌아왔다. 교육열 높은, 부유한 동네 ‘청당동’. 그 한 구석 공터에 버려진 낡은 버스에는 주인공 ‘이주노’의 가족이 산다. 자꾸 유기견과 유기묘를 데리고 오는 엄마, 어린 동생과 셋이서 지내는 버스 생활은 불안하기 짝이 없다. 친구들에게 들킬까, 아픈 개가 죽을까, 열다섯 살 주노는 온갖 걱정을 가슴에 품은 채 가족 안에서, 학교에서 불안한 줄타기를 이어나간다.


문제는 주노의 가족뿐만이 아니다. 소위 명문학교라는 주노의 학교에는 전학생을 괴롭히는 ‘밥통들’이 있고, 문제를 해결해야 할 의무가 있는 담임선생님은 그러나 이들의 폭력을 외면하며, 주노는 어쩐지 첫사랑을 시작한 것 같다. 그러는 사이에도 아빠의 죽음 이후 우울증을 겪고 있는 엄마는 세상과 드세게 싸우며(혹은 싸움을 걸며) 하루하루를 살아낸다.


모두가 마음이 쓰인다. 한창 주변이 신경 쓰이는 사춘기의 주인공 주노와 남편을 잃고 궁핍한 형편에 두 아이를 키워내야 하는 엄마, 그 엄마 밑에서 제대로 보호 받지 못하는 많은 동물들과 의외의 아픔을 가진 밥통들까지. 『소년, 황금버스를 타다』는 재료가 듬뿍 들어간 풍성한 요리 같다. 여러 번 다른 맛을 내며 이야기의 다채로운 즐거움을 선사한다. 그 안에 있는 폭력과 계층 갈등과 사회 문제의 쓴맛은 이야기가 진행되며 새로운 맛으로 모습을 바꾼다. 이것이 작가가 말한 이야기의 즐거움, “인간 군상이 모여 있는 재미있는 이야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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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불완전한 존재들


주인공 ‘주노’의 꿈에 등장한 ‘황금버스’라는 장치가 재미있어요. 이상적인 공간인데요. 처음에 어떤 이미지를 상상하고 만들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버스에서 사는 가족이라는 것은 미리 구상을 했고요. 인터넷에서 많은 개와 고양이를 데리고 살다 집에서 쫓겨난 가족에 대한 기사를 보고 소설을 시작한 거거든요. 그들이 버스로 가게 된 것은 상상인데요. 버스라는 공간은 굉장히 누추하고 비루한 공간이잖아요. 주노도 얼마나 버스를 떠나고 싶겠어요. 그러나 고정되어 있고 움직일 수 없는 공간이지만 상상 속에서는 얼마든지 다를 수 있죠. 하늘을 날 수도 있고요. 황금버스는 그런 공간이에요. 주노 스스로가 이 공간이 이랬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꿈꾸는 욕망의 공간이죠. 누추한 버스에서 멈춰있는 게 아니라 꿈을 가지고 갈 수 있다는 하나의 희망인 거예요. 버스는 사실 절망의 공간이기도 하거든요. 그러나 주노가 꿈을 꾸기에 따라서는 같은 버스라도 희망의 공간으로 바뀔 수 있는 거죠.

 

버스라는 공간을 상상하게 된 이유가 있었나요?


어렸을 때 살던 동네에 종점 버스가 있었어요. 그 공간이면 개도 충분히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기사에서도 가족이 쫓겨난 직후에 공터에 있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생각하게 된 거예요.

 

황금버스를 꿈 혹은 희망이라고 읽을 수 있다면, 누추하고 비루한 상황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가슴에 황금버스 하나쯤 두라고 말하는 듯도 하네요.

 

맞아요, 그것이 실제 현실에는 다가오지 않을지라도 누구나 그것 하나 정도는 품고 살아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 거예요. 그것이 살아가는 힘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있었어요.

 

그런 응원이 필요한 것은 우리 모두가 불완전한 존재들이기 때문이겠죠. 가장 덜 불완전해 보이는 인물 ‘예지’ 마저도 결핍이 있잖아요.

 

누구에게나 결핍이 있어요. 대부분은 자기만 결핍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니에요. 속을 보면 누구에게나 말하지 못한 자기 환경 속 결핍이 있거든요. 상대적일 뿐이죠. 등장인물들도 그래요. 각자 모두 나름대로 결핍이 있잖아요. 그러니 누구에게나 황금버스도 필요한 거죠.

 

특히 작품 안에 등장하는 어른들은 모두가 저마다의 문제를 안고 있어요. 어딘가 어른스럽지 않은 모습이기도 하고요. 어른들을 굳이 그런 모습으로 두드러지게 표현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어른이라고 성숙한 존재는 아니죠. 어른이라고 할지라도 누구나 가슴 속에 우는 아이 하나쯤은 있는 거고요. 다 불완전한 존재들이라고 생각해요. 모습만 어른일 뿐이지 여전히 자기모순에 빠져 있고, 부조리한 현실을 견뎌나가는 것뿐이죠. 결국 각각의 욕망대로 움직이는 거라고 저는 생각해요. 동물병원 원장도 그렇고요. 오히려 그 인물들이 현실에 가까운 인물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현실에서는 훨씬 더 치사하고 견딜 수 없는 모순에 빠져 있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래서 자기 앞의 생을 어떻게 할 수 없는 자가당착적인 삶에 빠질 때도 있거든요. 이 소설에 등장하는 어른들은 자기 욕망대로 행동하면서 각각의 자리에서 움직이는데요. 오히려 그게 현실이라고 바라봤어요. 소설적 인물이지만 공감이 가는 현실적 인물들이라고 할 수 있어요.

 

문학, 특히 청소년 문학에서 그런 현실적인 인간형을 보여준다는 것이 의미가 있을 거예요.


청소년들은 아직 알을 깨고 나가지 못한 상태잖아요. 현실이 어떤 건지 정확히 모르죠. 세상은 그들이 생각하는 것과 달라요. 저는 이 안에서 청소년들도 현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면 했어요. 동물병원 원장도 유기견 치료를 돕지 않잖아요. 우리 생각과 다르죠. 현실은 너희들이 생각하는 이상 세계의 모습과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아갈 수 있었으면 했어요. 다들 자기 한계를 갖고 있는 거니까요.


사실 성장이 바로 그것인 것 같아요. 보기에는 너무 이해 안 되는 것들이지만 현실의 틈새를 조금씩 열고 나가보면 새롭게 깨닫게 되는 부분이 있죠. 그것이 성장이라고 봐요. 그래서 어른들의 모습을 포장하기보다 각각의 상황 속에서 그 나름의 최선을 다하는, 그런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싶었어요.

 

대표적인 인물이 엄마예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일삼지만 자녀로 인해 변화하게 되죠.


엄마는 굉장히 문제적 인물이죠. 주노가 아니라 엄마가 문제적 인물이기 때문에 주노는 어쩔 수 없이 영향을 받는 인물인데요. 사실 대다수 청소년 시기에 문제적 인물은 청소년 자신이 아니라 주변부라고 생각해요. 결국 환경이 그 아이를 문제적 인물로 만들잖아요. 부모도 어찌할 수 없는 환경적 부분이 자신은 문제적 소년이 되고 싶지 않은데도 자기도 모르게 문제적 소년이 되는 상황을 만드는 거죠. 『불량 가족 레시피』도 주변부가 문제였어요. 태어나면서부터 어찌할 수 없는 환경 말이에요. 때문에 저는 아무래도 그런 쪽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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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의 사정


큰 상실을 겪었고, 가난하고, 우울하고, 불안한, 그래서 마음이 쓰이는 인물이 바로 엄마였어요. 작가님도 그러셨을 것 같은데요.


제일 마음 쓰이는 건 엄마였죠. 주노도 마찬가지지만요. 이야기는 또한 엄마가 우울증, 그리고 아이들을 혼자 키워야 하는 현실을 극복하고 자신을 일으켜 세우는 과정들이잖아요. 자기도 어찌할 수 없는 시간들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무기력과 두려움의 공간으로 유기견과 유기묘를 데려오는 거죠. 사실 성숙한 사람 같으면 그렇게 할 수 없죠. 그런데 엄마는 대책이 없어요. 자기 심리 상태가 통제되지 않기 때문이에요. 그렇게 해서라도 내면의 허전함을 채워야 했을 거고요. 싸워나갈 힘을 유기견을 통해 얻었을지 몰라요. 발단은 작은, 한 마리 유기견이었지만 자신도 모르게 불어난 건데요. 우리도 자기 앞에 놓인 문제를 스스로 치우지 못하는 모순에 빠지기도 하거든요. 어떤 결단을 내리는 건 죽을 만큼의 고통을 겪어야만 가능하다고 봐요. 누가 얘기해도 소용이 없죠. 엄마 역시 그러다가 자식의 결핍된 모습, 자기 때문에 아들이 피해를 받고 있는 현장을 보고서야 결단할 수밖에 없었던 거예요.

 

결단을 내려야 했던 순간도 무척 마음이 아파요. 주노의 아픔을 마주하고 미안하다고 말하는 엄마 모습이 오래 기억에 남더라고요.


요즘 그렇잖아요. 명문 학교 보내놓으면 그것 하나로 다 한 것 같고, 아이가 행복할 거라고 많이 생각하는데요.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걸 주노를 통해서 알 수 있죠. 이 아이에게는 명문 학교가 의미 없잖아요. 그게 고통의 진원지기 때문에요. 그런 모습도 다각도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재료가 많고 다채로운 인물들이 등장하거든요. 인물의 내면을 상상하는 데 도움이 된 것들이 있었나요?


제 이야기들이 있어요. 아주 추운 겨울, 재래시장에 간 적이 있었어요. 거기서 거리를 돌아다니는 개를 우연히 봤는데 험상궂고 털이 다 얼어붙은 개였어요. 제가 그때 새우깡을 샀는데요. 개에게 그 과자를 뜯어 줬거든요. 과자를 너무 잘 먹는 거예요. ‘새우’는 그렇게 탄생했죠. 잊히지가 않더라고요. 엄마의 심정도 마찬가지인데요. 저도 자녀를 세 명 키웠어요. 그런데 자녀를 혼자 키운다는 건 굉장한 공포가 있었을 거란 생각을 해요. 남편이 죽고 혼자 자녀를 키우는 과정은 엄청난 고통이었겠죠. 저 역시 육아를 하면서 경험한 우울감이 있는데, 그때는 현실을 외면하고픈 마음이 있거든요. 그러니 상당히 황폐했을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 부분들이 많이 담겨 있는 것 같아요.

 

생생한 장면들이 있었는데 역시 이유가 있었네요.


새우가 죽은 장면도 직접 겪었던 일이에요. 개를 한 마리 입양했는데 바이러스에 감염이 된 개였던 거예요. 그 개를 살리려고 정말 애를 많이 썼어요. 병원도 하루에 몇 번씩 가고요. 그런데 너무 어린 개가 이미 바이러스에 감염이 되어서 살리기가 어렵더라고요. 며칠 째 누워서 기운을 못 쓰고 있더니 어느 날 여태껏 쓰러져서 일어나지도 못했던 강아지가 현관 쪽에 앉아 있는 저한테 비척비척 걸어와서는 제 무릎에서 숨을 거뒀어요. 제 무릎까지 정말 죽을힘을 다해 걸어온 거죠. 그때 너무 많이 울었어요. 상상하지 못했던 깨달음을 그때 얻었죠. 자기를 살리려고 애썼다는 걸 개도 알았던 거잖아요. 마지막 고마움의 표현을 제게 하고 숨을 거뒀어요. 그 생각이 너무 오래 남았기 때문에 새우의 죽음도 그런 장면으로 그리게 됐어요.

 

“새우야…….”
새우는 내 목소리에 힘겹게 눈을 뜨더니 뭔가 힘없는 몸을 간신히 일으켜 한 걸음 두 걸음 내 쪽으로 비척거리며 걸어왔다. 내게로 오는 시간은 아주 느리지만 분명 새우가 몸을 일으켜 내게 오고 있었다. 잠시 후 새우는 내 발치에 다가와 간신히 몸을 뉘었다.(중략)

직감적으로 새우의 숨소리가 끊어졌다는 사실을 여윈 몸에서 전해지는 체온을 통해 알 수 있었다.(170-171쪽)

 

쓰면서 따로 취재를 하신 부분도 있었나요? 가령 중학교 교실에서 『이기적 유전자』를 읽는 장면도 있었거든요.


오랫동안 학원을 했었는데요. 그러다보니 학생들의 상황을 잘 알고 있는 편이었고요. 그것이 주노의 상황과 대비가 되잖아요. 주노 입장에서 그것은 어느 나라 외국어보다도 더 안 들리는 소리들이죠. 그런 차이를 보여주려고 했어요.

 

맞아요, 바로 그 장면에서 계층 문제를 짚어내고 있어요. 학교 폭력이 발생하는 장면도 같은 맥락이죠.


맞아요. 계층적 사다리가 없으면 상당히 힘든 구조가 있죠. 그러나 학교 폭력의 문제는 꼭 그런 측면만은 아니에요. 요즘 아이들에게는 부모가 주는 스트레스가 너무나 많아요. ‘밥통들’ 캐릭터는 그렇게 그리려고 했어요. 이렇게 좋은 학교에서도 폭력이 일어나고, 그 속을 들여다보면 부모의 욕망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상황에서 발생한 경우죠. 물질적인 건 아주 풍요롭지만 주변에서 과도하게 요구하는 것들이 더 무서워요. 아이들이 부모가 원하는 만큼을 채워주지 못했을 때 혹독하게 비난받고, 상처를 또 받거든요. 그랬을 때 학교 안에서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킨다는 점을 경고하고 싶었어요. 폭력의 가해자도 하루아침에 그렇게 되지 않은 거죠. 저마다의 사정에 놓여 있기 때문에요. 단순한 폭력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고요. 그 아이에게조차도 이유가 분명하게 있다는 걸 보여주려고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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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군상이 모여 있는


『불량 가족 레시피』에서 다룬 ‘코스프레’ 소재나 이번 작품에서 다룬 ‘애니멀 호더’의 문제 등을 보면 작가의 관심사가 폭넓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요. 지금 관심을 두고 있는 이슈는 뭔가요?


학교와의 결별을 생각하고 있는데요. 자퇴하는 학생들의 삶에 대해 관심을 많이 갖고 있어요. ‘이것이 정상’이라고 하는 시스템, 정규 교육의 문제점이죠. 거기서 오는 어려운 부분이 분명히 있어요. 지금의 학생들은 아주 다양한 문화적인 환경에 놓여 있고 기성세대보다 더 자유롭잖아요. 게다가 그들이 살아 갈 세상은 공부 중심의 세계보다는 다양성이 더 많아진 세계거든요. 반드시 학교 교육을 통해서가 아니라 각자의 재능에 따라 다양한 삶을 꾸릴 수 있다고 봐요. 정규 교육을 통해 사회에 진출하는 사람도 있지만 학교를 그만 두고 자신만의 또 다른 삶을 개척하는 사람도 많다고 생각하고요. 그래서 학교를 그만둔 아이들의 삶에 대해 관심이 있어요. 그들이 어떻게 또 자신의 삶을 잘 개척해서 살아가고 있는지 그런 부분을 관심 있게 보고 있죠.

 

학교 바깥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많지 않은 게 현실이잖아요.


많지 않죠. 그러나 그것 또한 삶이에요. 꼭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도 없는 거거든요. 무조건 공교육만이 최고라 할 수는 없는 거예요. 아이들은 학교 안에서 여러 문제로 학교를 그만 두고 싶은 마음이 많거든요. 아직 학교는 입시 중심에 갇혀서 다양성을 수용하지 못하니까요. 결국 어쩌면 이들이 기성세대보다 더 많은 것을 보고 있을지도 몰라요. 물론 학교도 많은 노력을 하고 변화하는 과정이라고 보는데요. 시간이 걸리겠죠. 지금 당장은 학교를 그만두는 학생이나 학교에 적응 못하는 학생을 무조건 문제아라는 시각으로 바라봐서는 안 될 거예요. 그건 정말 이분법적 사고죠. 지금 시대에 맞지도 않고요. 세상은 너무 빠르게 바뀌고 있어요. 획일화된 사고만을 강요하는 그런 학교를 더 이상 학생들은 참을 수 없죠. 저는 학교 바깥에서도 삶을 잘 개척해나갈 수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기도 해요. 당장 계획이 있는 건 아니고요.

 

결국 이 질문을 드려야 할 것 같아요. 좋은 이야기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재미있게 읽히는 이야기가 좋은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재미있기만 해도 역할을 다한 거라고 봐요. 책이 꼭 교훈을 얻어야 하는 건 아니라고 보고요. 그 책을 읽고 웃을 수 있었고 울을 수 있었으면 그거면 충분하겠죠. 아이들에게 그 이야기가 비상구 역할을 하고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게 해야죠. 그런 이야기를 만드는 게 작가들의 사명이라고 생각해요. 너무 권위적이거나 의미만 두는 책을 아이들에게 강요하는 것도 폭력이라고 봐요. 그래서 저는 가독성도 있고, 감정도 다양하게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싶은 생각이 언제나 많아요.

 

재미를 준다는 것 역시 쉬운 게 아니잖아요. 재미있는 이야기를 가볍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늘 해요.


재미 주는 게 상당히 어렵거든요. 그냥 아주 슬픈, 눈물을 쭉 뺄 수 있는 이야기, 그것도 그 역할을 다 한 거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그런 이야기가 별로 없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다른 재미있는 것들도 너무 많으니까요. 그래서 이제는 작가들이 재미있는 요소를 많이 배워야 한다고 생각해요. 너무 무게만 갖고, 경고만 주고 끝난다면 좀 결국 외면 받겠죠. 어차피 문화적인 거잖아요. 독자가 없으면 의미가 없잖아요. 그래서 작가들이 진지하게 많이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대중적인 지지를 받으려는 노력은 꼭 해야죠.

 

그런 의미에서는 작가님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문제들을 이야기 안에 담는 것도 대중과 소통하려는 노력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그렇죠, 왜냐하면 청소년 문학에 단순한 주제 하나를 전달하려는 면이 많아서 싫더라고요.(웃음) 교훈을 상정해두고 그 주제 하나만 이야기하는 건 재미가 없잖아요. 제가 재미가 없어요. 좀 심심하죠. 저는 서사 중심, 캐릭터 중심으로 가는 걸 좋아하는데요. 그러다보니까 조금 더 변동성이 커지는 요소를 가져가려고 하는 거죠. 사건도 많고요. 그렇게 역동적으로 가는 게 제 성격에 맞는 것 같아요. 조금 영화적인 서사를 좋아하거든요. 장면도 상상이 되고, 좌충우돌하는 요소가 많은 이야기를 좋아해요. 인물 역시 교훈적인 인물보다 예외적인 인물들이 좋고요. 조금 모자란 듯하지만 어쨌든 그것이 다 인간들의 다양한 모습이죠. 그런 인물들끼리 부딪치게 놓고 이야기를 만드는 게 제 스스로 더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결국 인간 군상이 모여 있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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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요소만 쫓아 다녀도 괜찮다


작품을 시작할 때도 그런 이야기가 떠올랐을 때 시작하는 건가요? 어떤 생각이 들 때 이것을 소설로 써야겠다, 생각하시나요?

 

극적인 걸 좋아해요. 첫 장을 썼을 때 한계상황에 몰려 있는 상황에서 이야기를 시작하는 편인데요. 평범한 인간이 균형이 깨졌을 때 어떤 생각과 행동을 하며 상황을 돌파해 나가는지 제가 궁금하거든요. 그런 이야기로부터 시작했을 때 스스로 흥미가 생기기도 하고요. 주인공의 인생이 어떻게 전개되어 갈까 하는 호기심이 내 안에 있어야 글이 시작되는 것 같아요. 특히 장편을 주로 쓰다보니까 내가 재미있지 않으면 길게 호흡을 끌고 갈 수가 없겠더라고요. 나 스스로 인물에 빨려 들어 갈 요소가 없으면 독자를 설득할 자신이 없어서요.

 

이야기의 즐거움을 모르는 분들에게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 당부의 말도 해주실 수 있을까요?


저는 지금 초등학생 대상 책들을 많이 봐요. 어른이라고 꼭 어려운 책을 읽을 필요는 없어요. 두껍고 글밥이 많은 책을 펼치면 우선 부담이 오잖아요. 그럴 때 성인이라고 성인책을 읽는 게 아니라 어렸을 때 읽었던 책들 중에 못 읽은 책들을 읽어보면 좋을 것 같아요. 나이와 상관없이 말이에요.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림이 함께 있는 책을 선정해서 봐도 되고요. 거기서부터 조금씩 확장해나가는 거죠. 재미있는 요소만 쫓아 다녀도 괜찮다고 생각해요. 굳이 관심 없는 것들을 고문하듯 읽을 필요는 없잖아요. 흥미 요소가 있는 것들만 쫓아가는 독서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공감 가는 캐릭터 하나, 호기심 요소 하나거든요. 그런 걸 발견하고 읽으면서 나의 재미를 찾아가는 것도 좋을 거예요.

 

흥미로운 책 읽기네요. 요즘 초등학생 대상 책을 읽으신다고요?

 

제가 동화에도 관심이 많아서요. 초등학생 대상으로 한 다양한 분야 책들이 굉장히 잘 나와 있더라고요. 인문 분야도 그렇고요. 지금은 영상에 많이 익숙하잖아요. 그러니까 책에 삽화라도 같이 들어가 있으면 한결 이해의 폭도 넓어지거든요. 중요한 건 책을 읽고 아는 거잖아요. 그것도 굉장히 좋은 독서의 출발점이라고 생각을 했어요. 초등학생 대상의 책을 읽은 다음 성인 대상의 같은 책을 읽으면 부족한 부분을 메우며 확장하는 독서가 되죠. 영화를 먼저 봤으면 그 다음 책을 읽을 수도 있겠고요. 내가 쉽다고 느끼는 걸 먼저 찾아서 독서를 해나가면 훨씬 즐겁게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 독서를 직접 하기도 하셨었나요? 그렇게 이야기의 즐거움을 느낀 경험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진주귀걸이 소녀』가 그랬어요. 저는 영화를 먼저 보고 호기심에 책을 찾아본 경우에요. 그런데 이 작품 안에서 요하네스 베르메르라는 화가를 또 발견한 거죠. 호기심이 생겨서 요하네스 베르메르라는 화가의 <화가의 아틀리에>라는 그림을 또 찾아보게 됐고요. 그렇게 호기심이 이동하는 경험을 한 거예요. 이런 방식으로 읽어도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독서는 어린 아이 같은 호기심이 가장 큰 원천이 되는 것 같거든요. 그런 부분들은 다양하게 경험하면 책이 주는 즐거움에 빠지게 될 거예요.


 

 

소년, 황금버스를 타다 손현주 저 | 자음과모음
전작에서 짜임새 있는 스토리텔링으로 ‘가족’이라는 둘레에 새로운 정의를 제시하며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손현주 작가가 이번에는 한부모 가정, 애니멀 호더, 계층 갈등, 교내 집단 괴롭힘 등의 사회적 이슈를 적절한 비율로 반죽해 특별한 미감을 지닌 이야기로 빚어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안녕하신가영 “좋은 뮤지션 보다 그냥 뮤지션이 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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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부형 뮤지션’ 안녕하신가영이 첫 번째 산문집 『언젠가 설명이 필요한 밤』을 출간했다. 프로젝트 앨범 『단편집-그리움에 가까운』과 함께 발표한 이번 책에는 지난 1년 동안 그녀가 내딛었던 계절의 사이, 그 순간에 머물렀던 진솔한 감정들이 담겼다. “안녕하신가영 보다는 백가영에 가까운 책”이라고 그녀는 말했다. 뮤지션 안녕하신가영으로 느끼고 고민하는 것들과 함께 평범한 한 사람으로서 백가영의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봄의 햇살과 가을의 바람이 다르듯, 안녕하신가영이 지나온 시간들도 서로 다른 빛깔로 남았다. 우울한 날에도, 가슴 설레는 날에도, 그녀는 여전히 안부를 물어왔다. 그 인사는 ‘잘 지내나요?’ 보다는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에 가까워 보인다. 안녕하지 않은 날들조차 괜찮은 거라고, 속삭여주는 까닭이다. 책에 깃든 그녀의 목소리는 독자들의 ‘쉽게 잠들지 못하는 밤’을 지켜준다. 안녕하신가영의 노래가 그러한 것처럼.

 

‘좋아서 하는 밴드’의 베이시스트로 활동했던 안녕하신가영은 2013년 싱글 <우리 너무 오래 아꼈던 그 말>을 발표하며 솔로로 데뷔했다. 편안한 멜로디와 감미로운 목소리로 평범한 일상, 남다른 감성을 들려주며 단숨에 주목을 받았고, 2015년 정규 1집 앨범 <순간의 순간>을 발표했다. 최근 선보인 <단편집-그리움에 가까운>에는 지난 해에 새롭게 발표한 다섯 곡의 노래가 수록됐다. 「겨울에서 봄」, 「인공위성」, 「우울한 날들에 최선을 다해줘」, 「어디에 있을까」, 「그리움에 가까운」 등 계절의 분위기와 온도를 담고 있는 노래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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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가장 사랑하는 노래는 「겨울에서 봄」


첫 번째 책입니다. 처음 손에 쥐었을 때 느낌이 어땠나요?

 

부끄러웠어요(웃음). 실물로 접하게 되니까 조금 당황스러운 거예요. 책이 발표되기 전에 보면서 ‘이걸 시중에 내놓아도 될까’라는 생각도 했는데, 그제야 실감을 한 것 같아요. 그동안은 그냥 재밌게만 작업하면서 별다른 생각을 못했는데 현실이 되니까 조금 당황스럽더라고요. ‘진짜 내가 읽는 책이랑 똑같네’ 이런 생각이 들면서, 제가 해보지 않은 분야에 도전한 거니까 당황스러운 마음에 친구들한테 많이 물어봤어요. ‘진짜 책을 내도 될까?’ 하고요. 그런데 이미 (되돌리기엔) 늦었다고 그러더라고요(웃음).

 

최민석 작가님은 이 책을 “살이 찌지 않는 맥주”에 비유하셨어요.


너무 마음에 드는 추천사였어요.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작가님이기도 하고요. 바쁘신 와중에도 이 책을 다 읽어 주시고 저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상태에서 써주신 글이잖아요. 그래서 너무 감사하고 좋았어요. 최민석 작가님이 아니었다면 이렇게까지 잘 써주실 분을 못 찾았을 것 같아요.

 

「언젠가 설명이 필요한 밤」은 앨범 <순간의 순간>에 실린 노래의 제목이기도 해요. 이 곡에 대한 애착이 강한 것 같은데요. 어떤가요?


곡에 대한 애착이라기 보다, 곡은 사실 다 소중하거든요. 그런데 「언젠가 설명이 필요한 밤」이 처음 발표됐을 때는 사실 큰 반응이 없었어요. 그런데 너무 신기하게도 점점 많은 분들이 찾아주시더니 가장 사랑 받게 된 노래가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저도 개인적으로 너무 감사한 노래죠. ‘정말 사람들이 생각하는 게 비슷하구나’라는 것도 느끼게 해준 곡이고요. 또 밤마다 이 노래를 들어주시는 분들이 많이 계세요.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다는 생각에 많이 뿌듯하죠.

 

예전에 한 인터뷰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곡으로 「언젠가 설명이 필요한 밤」을 꼽으셨어요. <단편집-그리움에 가까운>이 발매된 후에는 가장 애착 가는 곡이 바뀌었나요?


매일 매일 바뀌어요(웃음). 정말 계속 바뀌는 것 같아요. 요즘에는 「숨비소리」가 가장 애착이 가는 것 같아요. 아마 며칠 뒤면 또 바뀔 텐데요. 요즘 제주도가 가고 싶기도 하고, 그렇게 단숨에 써내려간 노래가 거의 없거든요. 몰입하면 빨리 쓰는 편이기는 한데, 그렇게 한 번에 완성했던 노래는 거의 없는 것 같아요. 그만큼 몰입해서 했던 작업이어서 그런지 애착이 가고요. 당시에 제가 경험했던 제주도의 풍경이나 추억들이 떠올라서 그런 것 같기도 해요. (곡을 쓸 때가) 이맘때쯤이기도 했고요.

 

이번 앨범의 수록곡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무엇인가요?


「겨울에서 봄」이요. 지금 계절에 딱 어울리는 노래인 것 같아서, 지금 많이 사랑해줘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뮤지션 이전에 여자 백가영으로서 「어디에 있을까」도 사랑해 주고 싶을 것 같은데요(웃음).


그렇습니다(웃음). 저에게 필요한 노래이기는 하죠(웃음).

 

「겨울에서 봄」은 <JTBC 뉴스룸>의 엔딩곡으로 나왔었죠? 「우울한 날들에 최선을 다해줘」도 그렇고요.


네, 「겨울에서 봄」을 두 번 정도 틀어주신 것 같아요. 저는 정말 덕을 많이 봤죠. 최고의 마케팅이 아니었나 싶은데요(웃음). 정말 감사하고 있습니다.

 

「우울한 날들에 최선을 다해줘」가 선곡된 날에는 인스타그램에 방송 화면을 올리기도 했어요. 직접 방송을 보고 있었나요?


집에 TV가 없어서 항상 본 방송 보다 늦게 보는 편이기는 해요. 매일 보지도 못하고요. 그런데 항상 <JTBC 뉴스룸>에 노래가 나온 날은 계속 연락이 오고 (지인들이) 인증샷을 보내주더라고요. 평소에 조용하던 전화가 울리기 시작하면 ‘설마?’ 하는 생각도 해요(웃음). 너무 너무 좋죠, 저는.

 

처음 소식을 들었을 때는 기분이 어땠어요? 


정말 소름이 돋았어요. 그리고 항상 중요한 타이밍에 노래가 나와서, 저도 (영상을) 찾아서 보는 데 소름이 돋더라고요. (앵커) 멘트까지 해주셔서 가족들도 너무 좋아하고요(웃음). 정말 감사해요. 그 날 방송국 방향을 바라보면서 잠들었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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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플 때 영감이 떠오르는 것 같아요


이번 책에서 솔직한 모습들을 보여줬어요.

 
솔직한 책이었다는 이야기를 많이 해주시더라고요. 제가 계속 뭔가를 쓸 준비를 하면서 다녔거든요. 언제라도 쓰고 싶을 때는 써야지 생각하면서요. 그러다 보니까 저의 주관적인 가치관이라든가 에피소드들이 많이 들어간 것 같아요. 솔직하게 쓰기도 했고요.

 

그 중에서도 안녕하신가영의 내밀한 속내를 가장 잘 보여주는 글이 있다면 어떤 건가요?


이별에 대한 이야기들이 그렇지 않았나 싶어요. 책 뒷부분에 그런 이야기들이 많이 나오잖아요. 저도 책으로 받았을 때 ‘괜찮을까’ 싶기도 했어요. (보통) 하이킥 한다고 하죠(웃음). 그런데 이것도 저의 한 단편이었으니까 싣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이별 이야기를 혼자만 아는 것과 모든 사람들이 아는 건 느낌이 다를 것 같은데요. 게다가 이제는 지울 수도 없는 기록이 됐잖아요.


저는 그런 기억들을 잃는 것보다는 가지고 있는 걸 좋아하는 편이에요. 시간이 지나면 힘들어했던 부분들도 괜찮아지는 건데, 그런 걸 잊어서 안타까운 것 보다는 그냥 ‘그랬었지’ 하고 남겨두는 걸 좋아하는 편인 것 같아요. 제가 기억력이 조금 나쁜 편이어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다 잊고 싶어 하지 않는 성격이에요.

 

“이별에 관한 꽤 좋은 특효약”을 갖고 있다고 하셨어요. 그 중 하나가 ‘조금 작고 불편한 신발을 신고 오랜 시간 걸어 다니기’인데요. 시도해 보셨어요?


안 해봤어요(웃음). 조금 뜬금없는 친구가 있는데 그런 이야기를 해주더라고요. 작고 불편한 신발을 신고 오래 걸어 다니면 발이 너무 아파서 정신적인 것까지 아플 수가 없대요. 자기도 안 해봤는데 너는 꼭 해보라면서 알려주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알겠다고 하고 한 귀로 흘렸는데, 나중에 그 말이 생각나서 신어보기는 했거든요. 그런데 발까지 아프기는 싫어서 안 해보기는 했습니다(웃음).

 

“나의 1차 뮤즈는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 또는 상황’”이라고 쓰셨는데요. 왜 유독 슬플 때 영감이 떠오르는 걸까요?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약간 우울한 기분이 들 때 확실히 뭔가 잘 써내려가지는 것 같아요. 창작이라는 활동은 조금 건강한 에너지로 해야 된다는 생각을 항상 하는데요. 제가 우울감에 빠져있다고 해서 너무 딥(Deep) 하게 들어가는 것 보다는 그런 무드를 조금 즐기는 편이에요. 그러다 보니까 슬플 때 영감이 많이 떠오르는 것 같아요. 밝은 노래를 쓸 때도 그렇고, 기본적으로는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이나 상황에서 영감을 많이 받는 것 같아요.

 

「너에게 간다」, 「네가 좋아」 같은 노래들은 어떤가요? 사랑을 시작할 때 쓴 건가요?


그런 노래들은 밝은 기분으로 썼던 것 같아요(웃음).

 

노래를 듣는 사람이 느끼는 기분과 창작자의 마음이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네요.


이번에 책을 내면서 저에 대해서 새롭게 발견한 게 있어요. 그동안은 가사나 글을 쓸 때, 특히 가사를 쓸 때 100% 저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었거든요. 지금도 100% 경험과 진실만으로는 곡을 쓸 수 없다고 믿고 있기는 해요. 그런데 책이 나오면서 그동안 써온 곡들을 한 번 돌아보니까 다 저의 이야기더라고요. 그 사실을 깨닫고 나서 개인적으로 조금 충격을 받았어요. 그래도 조금 냉철하게 써왔다고 생각했는데 곳곳에 저의 기억들과 가치관들이 묻어있더라고요. 그런 걸 보면서 앞으로도 좋은 에너지를 많이 가져야겠다고 느끼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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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신가영을 사로잡은 노래들


앨범이 나올 즈음 도피성 여행을 떠나곤 하신다고요. 이유가 있나요?


당연한 것이기는 하지만, 작업을 할 때 조금 필요 이상으로 열심히 하는 편이에요.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스스로 탈탈 털린다고 할까요. 그렇게 완성을 하고 난 뒤에도 발표가 되기까지 공백이 있는데요. 그 시간을 잘 못 견디겠더라고요. 발표날이 굉장히 기다려지나 봐요. 그래서 항상 도망을 갔었어요.

 

이번 앨범이 발매될 때는 어땠나요?


이번에는 정말 시간이 없어서 여행을 못 갔어요. 할 일도 너무 많았고, 보통은 앨범만 발매하는데 이번에는 책까지 같이 나오니까, 그동안 살아오면서 가장 바빴던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도피성 여행을 떠나지 못했는데요. 이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그렇게 떠난 도피성 여행은 늘 조금 외롭더라고요(웃음). 간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시간이 많으니까 제가 어찌할 바를 모르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적응을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여행을 다녀오신 곳이 파리였죠?


네, 2월에 다녀왔어요. 그러고 보니 다녀온 지 얼마 안 됐네요(웃음). 파리를 다녀오다 보니까 막판에 더 바빴던 것 같아요. 파리에서는 일을 하지는 않았거든요. 그래서 바빴나 봐요(웃음).

 

「숨비소리」는 제주도 여행에서 만든 곡으로 알고 있어요. 여행이 많은 영감을 주나요?


오히려 곡 작업을 안 하고 싶다고 느껴요. 여행은 여행일 뿐이니까, 여행마저 일이 되는 건 싫어요. 그런데 그렇게 무방비 상태에 놓여있을 때 영감이 많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특히 「숨비소리」 같은 경우는 정말 아무 생각 없이 갔던 해녀박물관에서 너무 깊은 감명을 받은 거예요. 그래서 박물관에서 나오자마자 정신 없이 써내려갔던 곡이에요. 멜로디는 추후에 붙였지만 가사는 거의 단숨에 다 썼어요. 저에겐 너무 특별한 경험이었어요.

 

안녕하신가영을 사로잡는 노래들은 어떤 건가요?


옛날 노래들인 것 같아요. 조금 옛날 노래들의 가사를 좋아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고요. 요즘에는 장필순 선생님 노래를 많이 듣고 있거든요. 장필순 선생님이라든지 이문세 선생님의 음악처럼 약간 러프하지만 메시지가 있고, 왠지 모르게 가슴 아픈 음악들이 너무 좋아요. 음악은 편식을 많이 안 하는 편이어서 트렌디한 팝도 많이 듣고 아이돌 음악도 좋아하고 다양하게 듣는 편이에요.

 

옛날 노래를 들으면서 ‘이런 가사를 쓰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하나요?


그렇죠. 윤종신 선배님의 노래들도 가사가 너무 좋잖아요. 제가 딱 그 시절의 음악에 영향을 많이 받은 것 같기는 해요. 토이, 윤상, 김동률 선배님의 음악에서 알게 모르게 영향을 많이 받지 않았나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같이 작업해 보고 싶은 선배 뮤지션이 있다면요?


지금 말한 분들은 다 너무 좋죠. 언젠가 토이 앨범에 참여하게 된다면 너무너무 기쁠 것 같아요.

 

<유희열의 스케치북>에서 섭외가 들어오면 바로 승낙하실 것 같아요(웃음).


그렇죠. 저는 방송이 조금 안 맞는 체질이기는 한데, 그래도 <유희열의 스케치북>은 꼭 출연하고 싶은 유일한 프로그램이에요.

 

방송 체질이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이유는 뭔가요?


그런 끼를 타고 나지는 않은 것 같아요.

 

<김제동의 톡투유-걱정 말아요 그대>에서는 전혀 긴장하지 않은 모습이던데요(웃음).


그런 척을 한 거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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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뮤지션 보다 ‘그냥’ 뮤지션이 좋아요


『언젠가 설명이 필요한 밤』을 보면 카페에서 느끼고 경험한 일들의 기록이 많아요. 주로 카페에서 작업하세요?


작업을 하는 건 아니고 커피를 마셔요(웃음). 그냥 소소한 일상의 재미인데요. 평소에 끄적거리는 걸 좋아해서 그런지 그게 작업으로 이어질 때가 많고, 그런 장소가 카페인 것 같아요. 카페도 계속 똑같은 데를 간다기 보다, 평소에 걸어 다니는 걸 좋아해서 일부러 멀리 있는 카페를 걸어서 가기도 하고요. 그러다 보니까 일상에서 영감 같은 게 많이 얻어지나 봐요. 걸으면 영감 같은 게 많이 떠오르더라고요.

 

카페에서는 주로 어떤 일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나요?


음악을 듣고요. 책을 읽고, 썼던 가사들을 필사해 보기도 하고, 정말 ‘끄적끄적’이라는 단어로밖에 설명이 안 되는데요(웃음). 저는 뭔가를 쓰는 걸 되게 좋아하거든요. 책을 읽다가도 좋아하는 부분이 나오면 그냥 따라서 써보기도 해요. 가사 같은 것도 끄적거리고요. 쓰는 행위에서 영감을 많이 얻기도 해요.

 

가사도 항상 손글씨로 쓰시는 것 같더라고요.


네. 그리고 저만의 의식 같은 게 있는데요. 보컬 녹음을 하러 갈 때 항상 가사를 꼭 손으로 써가서, 그걸 보면서 노래를 하는 편이에요. 그렇게 쓰면서 마인드컨트롤이 되기도 하고요. 제가 그 곡을 처음 썼을 때의 기분 같은 걸 기억하기도 해요. 

 

책을 읽어 보니 카페를 고르는 기준이 까다로우신 것 같아요. 어떤 카페를 좋아하세요?


혼자 있어도 별로 어색하지 않은 카페를 좋아하는 것 같기는 해요. 그리고 가끔은 프랜차이즈 카페가 가고 싶을 때도 있거든요. 도서관 같은 곳에 가고 싶을 때는 그런 카페를 찾아서 가는 편이고요. 평소에는 그냥 조용하고, 너무 저에게 친절하지 않은 사장님이 계시고(웃음), 커피가 맛있는 카페를 좋아해요.

 

단골 카페를 물어보면 안 되겠죠(웃음)?

 

이미 많이 공개가 돼서 아시는 분들이 계신 것 같기도 한데요(웃음). 진짜 단골인 곳은 제가 말을 안 해요. 약간 남겨두는 거죠. 사람들이 ‘나만 알고 싶은 뮤지션’이라는 말을 할 때가 있잖아요. 저는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합니다(웃음).

 

“언젠가 내 얼굴이 많이 알려져서 카페를 선정할 때 조명을 가장 먼저 고려해야 한다면 나는 이 직업을 그만둘 수도 있을 만큼 불행할 것 같다”고 썼어요. 일상의 균형이 깨어질까 봐 걱정되나요?


아뇨. 걱정을 할 정도의 그런 건 아닌 것 같아요. 아무래도 제가 얼굴 보다는 목소리가 훨씬 더 많이 알려져 있고, 얼굴을 아시는 분들은 극소수인 것 같거든요. 그래서 지금은 소소하게 재밌는 정도고요. 아직까지 그걸 걱정을 해야 될 만큼은 아닌 것 같아서 다행이라고 느끼고 있어요.

 

홍대 출신 뮤지션 가운데 활발하게 방송 활동을 하시는 분들도 계시잖아요. 그렇게 많이 유명해지는 건 좋아하지 않을 것 같아요. 어떤가요?


저는 얼굴이 많이 알려지는 건 싫을 것 같아요. 생각이야 바뀔 수 있는 거지만, 말씀드렸듯이 저는 방송체질도 아니고요. (방송은) 제가 하고 싶은 분야가 아니기도 해요. 묘하게 긴장이 되는 활동 영역이어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아직까지는 모르겠어요.

 

“세 가지 소원”이라는 글을 보면 ‘좋은’ 뮤지션 보다 ‘그냥’ 뮤지션이 되고 싶은 것 같아요. 그러려면 대중의 반응에 무뎌질 필요도 있을까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는 정말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어요. 어떤 결과물이든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는 하고 싶은 말이 생겨야 곡으로 만들 수 있는 타입이기 때문에 대중을 의식해서 곡을 써본 적은 단 한 번도 없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이미 무뎌진 지는 오래된 것 같아요. 당연히 사랑을 받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이 곡을 썼을 때 대중 분들이 좋아하실까’ 그런 기대를 안 한 지는 오래 된 것 같아요. 곡마다 가진 힘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매니아틱한 곡이면 그런 분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거고, 두루두루 사랑 받을 수 있는 운명을 타고난 곡은 또 그렇게 된다고 믿고 있어요. 그때그때 저에게 주어진 곡들을 최선을 다해서 잘 발표하는 게 가장 맞는 것 같아요. 좋은 뮤지션의 기준을 알 수가 없듯이, 음악 활동을 하는 데 있어서 저의 가장 큰 목표는 오랫동안 할 수 있는 힘을 잃지 않는 거거든요. 지금 즐겁게 할 수 있는 것처럼 이대로 꾸준히 이어나갈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저한테는 가장 큰 힘이 될 것 같아요.

 

“내려놓음”에서 말씀하신 부분이 떠오르네요. “듣는 사람들은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다. 당연히 모든 사람들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없으며 언제까지고 기대에 부응할 수도 없다”고 하셨죠. 그런데 대중의 기대나 반응이 시들해지면 음악을 계속 하는 게 어려워질 수 있잖아요. 그런 두려움은 없나요? 다 내려놓았나요?


그래서 항상 그때그때 최선을 다하는 편인 것 같아요. 그리고 ‘내려놓음’이라는 글에도 썼듯이 작업이라는 게 절대 녹록지 않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최선을 다하는 이유는 그래도 모두를 만족시키고 싶다는 욕심이 없지는 않기 때문이거든요. 그래서 최선을 다하는 거고요. 앞으로의 저의 숙제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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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가영’ 없는 백가영의 책


최근 안녕하지 않았던 순간도 있었나요?


「그리움에 가까운」이라는 노래를 작업할 때였던 것 같아요. 정말 저를 괴롭혔던 곡인 것 같은데요. 쓰여진 지 2~3년 된 곡인데 발표를 하기까지 너무 오래 걸렸어요. 제 경우에는 곡이 완성될 때까지 그렇게 몇 년씩 걸리지는 않거든요. 그런데 「그리움에 가까운」은 건드리기가 너무 아픈 노래 중에 하나가 됐어요. 그러다 보니까 건드리기만 해도 제 스스로 힘들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계속 완성을 못하다가 본격적으로 작업을 해야 되면서 이 곡을 스스로 마주하게 됐는데, 이상하게 인트로를 작업할 때부터 자꾸 눈물이 쏟아지는 거예요. 제가 딱히 그런 상황에 처해 있지 않은데도, 이 곡이 가진 힘이 그랬나 봐요. 그래서 본의 아니게 많이 빠져들었던 곡인 것 같아요.

 

그렇게 안녕하지 못할 때는 어떻게 하세요? 


어쩔 수 없이 음악에 매진하는 것 같아요. 그냥 음악가의 숙명이라고 생각해요. 보통은 그런 식의 작업을 많이 안 하고 싶거든요. 슬픈 노래라고 해도 건강한 에너지로 작업하고 싶은데, 어쩔 수 없이 몇몇 곡들은 ‘그렇게 작업을 해야 되는 노래구나, 그런 운명의 노래구나’라고 느껴요. 그래서 그것마저 받아들이려고 하죠(웃음). 그렇게 타고난 곡들은 어쩔 수 없이 오래 걸리는 것 같아요. 「그리움에 가까운」이 작업하는 데 몇 년 걸렸던 것처럼, 잊고 지내기도 하고 많이 회피를 하거든요. 그래도 이번 앨범에 꼭 싣고 싶은 곡이라서 정말 울면서 작업을 했어요.

 

그렇게 힘들게 낳은 곡들은 나중에 들을 때에도 괴롭고 아플 것 같아요.


오히려 발표가 되면 조금 홀가분해지는 것 같아요. 완성을 했다는 안도감도 들면서 오히려 털어버릴 수 있는 거죠.

 

“내가 했던 인터뷰들을 읽을 때면 취준생들의 자소서를 보는 것 같다”고 했어요. “이게 나라고?” 하는 생각이 든다고요. 인터뷰 기사 속의 자신이 낯설게 느껴지나요?


아무래도 인터뷰 때는 조금 정리된 말들을 많이 하려고 하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그 내용을 텍스트로 봤을 때는 그런 기분이 들 때가 있더라고요. ‘멋있는 척을 했나?’라고 느낄 때도 있고요(웃음). 그래서 조금 재밌었어요.

 

인터뷰를 하다가 알게 되는 자신의 모습도 있지 않나요?


맞아요. 바뀌기도 하고요. 인터뷰를 하면서 가치관들이 정리가 되는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곡 설명을 할 때도 인터뷰를 몇 번 하다 보면 정리가 많이 되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인터뷰 자체는 조금 필요한 활동인 것 같아요.

 

『언젠가 설명이 필요한 밤』이 안녕하신가영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줄까요? 


안녕하신가영 보다는 백가영에 가까운 책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재밌는 게, 제가 책을 내기 전까지 다섯 번 정도 정독을 했거든요. 정말 꼼꼼하게 틀린 부분이 없는지 봤는데, 제 이름을 빼먹었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이 책에는 제 이름이 한 군데도 안 나와요. 정말 큰 오점을 남겼구나 싶었고(웃음), 그런 재미가 있는 것 같아요. 백가영에 가까운 책이지만 이름은 어디에도 실려 있지 않은 거죠.

 

이번 책이나 인터뷰를 통해서 안녕하신가영이 어떤 모습으로 비춰지면 좋겠어요?


거기까지는 생각을 못해본 것 같아요. 저는 솔직한 편이기는 해서, 보여주고 싶은 모습이 있다고 해서 (그대로) 보여줄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을 해요. 말을 하다 보면 그 사람이 어느 정도 나오잖아요. 그래서 평소에 좋은 생각을 많이 하고 더 나은 내가 되어야겠다고 많이 느끼거든요. 왜냐하면 라디오를 진행할 때도 그렇고, 공연을 할 때도 문득문득 제가 튀어나올 때가 있거든요. 그래서 평소에 ‘나는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을 많이 해야 되는구나’라고 느끼고요. 잘 되지는 않지만 노력을 하고 있는 단계입니다.


 

 

언젠가 설명이 필요한 밤안녕하신가영 저 | 빌리버튼
이 책『언젠가 설명이 필요한 밤』은 안녕하신가영의 프로젝트 앨범 ‘단편집’과 동시에 진행되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또 다시 찾아온 봄의 이야기를 음악과 글로 표현했다. 각 계절마다 새로운 노래를 발표했고, ‘단편집’에 담긴 노래 [겨울에서 봄], [인공위성], [우울한 날들에 최선을 다해줘], [어디에 있을까], [그리움에 가까운]을 만들며 써내려간 일상 이야기와 생각을 이 책에 고스란히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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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책 작가 특집 ③] 박하령 “아이들의 자생력을 인정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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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일곱 살 정하돈은 우연히 PC방에서 악마가 쓴 연애편지를 발견한다. 누구도 이 ‘구라의 냄새가 독해도 너무 독한’ 이야기를 믿어줄 리 없지만, 어릴 적부터 단짝이던 은비는 하돈의 말을 믿고 편지에 쓰인 악마 ‘아낙스’를 찾아볼 것을 제안한다. 아낙스는 하돈 앞에 나타나 인간 친구가 되어 달라고 부탁하고, 같은 반 모범생인 서진유는 악마의 주문을 써서 부모의 구속으로부터 자기를 풀어 주길 원한다. 아이들의 욕심과 유혹은 점점 커지는데, 과연 이 모든 건 악마의 계획이었을까?


제10회 비룡소 블루픽션상 심사위원들은 “판타지에서 흔히 보이는 선악의 대결 구도가 아니라, 인간을 악마의 ‘딴지’에 대해 선택을 할 수 있는 존재로 그린다는 점”에서 『반드시 다시 돌아온다』를 수상작으로 선정했다. 게임에서만 살아있다는 기분을 느끼는 정하돈, 학교에서 이름난 모범생이지만 방에 CCTV까지 두고 감시하는 엄마에게서 벗어나려는 서진유, 거침없는 성격 탓에 상처를 받고 학교를 그만둔 은비 등 자신이 선택하고 싶지 않았지만 상황에 끌려다녔던 아이들이 스스로 선택하는 과정이 그려진다.


『반드시 다시 돌아온다』를 쓴 박하령 작가는 2010년 KBS 미니시리즈 공모전에 <난 삐뚤어질 테다!>로 당선되어 드라마 작업을 하다 2014년 『의자 뺏기』로 제5회 살림 청소년 문학상을 받았다. 어느 이야기를 통해서든, 한국의 청소년들에게 ‘삐뚤어져도 좋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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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와 의미가 동시에 있어야 한다

 

프로필에 글을 다루는 일을 업으로 삼다가 본격적으로 청소년 이야기를 썼다고 나왔어요.

 

처음에는 출판 쪽 일을 하다가 잡지가 재미있을 것 같아서 <가정조선>에서 일했었어요. 습작을 오랫동안 하다가 2010년에 드라마가 공모전에 당선되면서 시놉시스를 계속 썼지만, 드라마로 나오진 않았어요.


『의자 뺏기』가 첫 번째 소설이었나요?


원래 <난 삐뚤어질 테다!>도 소설로 썼어요. 그러다 시나리오로 쓴 게 당선돼서 미니시리즈로 작업했어요. 내용이 미니시리즈로 다루기에는 맞지 않아서 계속 쓰다 『의자 뺏기』를 쓰기 시작했죠.


<난 삐뚤어질 테다!> 내용은 모르지만, 제목만 보면 비뚤어지려고 작정한 모범생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해요. (웃음)


제 기본 원칙이, 모든 아이는 조금 비뚤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비뚤어지면서 스스로 자정 작용을 해야지 너무 모범생으로 자라다 보면 제대로 자기 걸 얻어가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살림 문학상에 이어 청소년 문학으로 두 번째 상을 타셨어요. 기분이 어떠세요?


당연히 째지죠. (웃음) 사실 살림 문학상을 타고 나서는 다시는 공모에 내면 안 되는 건 줄 알았어요. 하지만 워낙 책이 안 읽히기도 하고, 환경 자체가 상을 받아야 책이 나오다 보니 다시 도전했어요. 어찌 됐든 작가는 독자와 만나야 하니까요. 물론 제가 제대로 썼나 검증받고 싶은 욕심도 있었고요.


‘대화에서 직설적인 교훈이 보여서 아쉽다’는 심사평이 있었어요.


아낙스의 입을 통해서 주제를 이야기하는 부분이 조금 있어요. 너무 대놓고 얘기하는 게 문학적이지 않을 수도 있고, 아이들도 가르치려 드는 것 같아서 싫어할 수 있어요. 하지만 흥미 위주로만 가면 안 좋다고 생각하거든요. 책을 읽으면 반드시 뭔가 남아야 한다는 강박관념까지는 아니지만 의미가 남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씨실과 날실이 서로 짜이듯이 재미와 의미가 들어가야 한다는 게 제 모토예요. 유머 코드를 넣어서 웃고 즐기는 가운데 반추하면서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을 넣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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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훨씬 많은 가능성을 지닌다


주인공인 모범생 진유, 게임중독인 하돈, 홈스쿨링 은비는 너무나 다른 모습을 보여요.


역할이 서로 달랐어요. 은비도 주관이 분명하지만 사회성이 떨어지는 부분이 있고, 진유는 우리나라 교육 현실의 대표적인 희생양이지만 여전히 모범생이고요. 진유가 고민할 때 하돈이 웃으면서 공부가 전부가 아니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건 각자가 다른 처지이기 때문에 다르게 해결책이 나올 수 있다고 봤어요.


악마의 주문을 얻게 된다는 설정을 아이들이 좋아했을 것 같아요.


현실 자체가 답답하기 때문에 주술적 힘이라든가 현실에서 떨어진 뭔가에 많이 매료된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이 조금 더 재미로 접근할 수 있을 만한 게 뭐가 있을까 하다 악마라는 소재를 썼어요.


악마인 ‘아낙스’는 인간처럼 실습과정도 있고 교육을 받는 수련생으로 소개되는데요.


유소년 악마인 거죠. 우리 머릿속에 있는 악마들은 인간이 할 수 없는 획기적인 일을 아무거나 할 수 있잖아요. 그 설정을 제한하고 싶었어요. 악마는 악마인데 엄청난 일을 할 수 없게끔 일부러 설정한 거예요. 인간이나 악마가 둘 다 한계가 있는 상황 안에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향을 찾도록요.


아낙스가 ‘악마는 정해진 일만 하게 되어있는데 인간은 자기 삶을 선택할 수 있다’면서 인간을 부러워하는 장면도 있어요.


아이들이 먼저 자생력을 가지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이 소설 안에서도 그렇지만 엄마들이 아이들에게 주입식 교육을 하고 본인이 원하는 방향으로 아이들을 몰고 가잖아요.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자기가 어떤 사람인지 자각하지 못하고 크는 경우가 되게 많아요. 심지어 대학교 들어가서도 엄마한테 전화해서 이제 뭐 하냐고 물어본다는 거죠. 나이가 들어서야 비로소 나는 뭐지 해서 갑자기 자기 길을 가는 경우도 많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자생력을 가져야 한다는 걸 강조하고 싶었어요.


아낙스는 오히려 어른의 편에서 말하는 느낌이더라고요. 홈스쿨링 하는 은비에게 편식한다고 말하기도 하고요.


여기서 악마는 자기들에게 정해진 일이 있어요. 저승사자가 사람이 죽으면 데려가는 역할이듯이 악마는 인간의 안 좋은 부분을 자극하는 일만 하게 정해진 거죠. 그런 역할에 비해서 인간들은 훨씬 많은 가능성을 가지고 있지만 시키는 대로만 살아가고 있잖아요. 그 부분을 아쉬워하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아낙스 입을 빌렸어요.


악마한테 걸려 넘어지는 아이들의 이야기는 작가님 개인적인 경험을 반추하고 쓰는 편인가요?


그건 매일 하지 않나요? (웃음) 어렸을 때부터 상당히 공상을 많이 하고 살았어요. 흔히 어른들이 말하는 쓸데없는 생각이요. 제가 만들어낸 이야기에 제 자신이 휩쓸려서 감정이 이랬다저랬다 할 때가 있었어요. 오늘은 기분이 이래서 뭘 못하겠다, 하는 순간이 있잖아요. 나중에 오랜 시간을 살고 나서 깨달은 것 중 하나가, 감정도 사실은 선택하는 부분이더라고요. 소모적으로 감정 때문에 시간을 보냈던 때가 많거든요. 그래서 아이들도 감정도 너무 많이 휩쓸리지 않으면서 악마한테 걸리는 딴지를 피해갔으면 싶었어요.


감정도 선택이라는 말을 들어도, 막상 자기 일로 닥치면 잘 적용이 안 될 것 같아요.


물론 그렇죠. 그래도 분명하게 알면 조금 빨리 나오는 경우가 있어요. 아이들도 미리 알고 있으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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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자율성을 존중하자


게임 중독에 관해서도 말하고 싶은 게 있으셨나요?


청소년 소설은 주제가 한정된 편이에요. 이 작품 전에 왕따 문제를 소재로 썼는데 주제 자체는 다루어야 하지만 식상하다고 느껴지더라고요. 엄마들이 게임중독에 걸린 남자애들을 많이 걱정하는 걸 듣다 보니 언젠가 미뤄놓은 일은 다시 돌아온다, 현재는 항상 과거를 업고 온다는 걸 주제로 게임중독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글을 쓰면서 주제가 먼저 나왔던 거네요?


항상 소설을 쓸 때 주제를 하나 선정하고 주로 제목을 먼저 정해요. 이 소설은 제목 먼저 머리에 떠올라서 거기에 맞는 이야기를 만들었어요.


한국 사회에서 아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문제의식이 작품 전반을 관통합니다.


실질적으로 아이들이 자생적으로 자기 생각을 하게끔 교육받지 못하는 상황에 관한 이야기예요. 제목에서 반드시 돌아온다는 게 첫째로 현재가 미래를 가져올 것이라는 의미, 또 하나는 문제를 덮는다고 해서 없어지는 게 아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우리가 이 일을 할지 저 일을 할지는 결국 나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거죠.


청소년을 위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건 언제였나요?


아이를 낳고 논술 학원 선생님을 잠깐 하면서 고등학교 학생들을 많이 만났는데 가슴이 아팠어요. 어떤 아이에게 순수하다고 장점을 칭찬해 줬더니 다음날 네가 얼마나 바보같이 하고 다니면 선생님이 순수하냐고 이야기를 했냐는 식으로 엄마한테 혼났대요. 그런 식으로 아이들을 한쪽으로 몰거나 부모에게 존중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정말 많았거든요. 그건 일종의 폭력이에요. 아이들을 보호해줘야 하는 장치가 필요한데 그게 부모여야 되잖아요. 어렸을 때부터 가정에서 그렇게 자라서 크면 그 생각을 쉽게 바꿀 수 없지만, 청소년만 되어도 외부적인 자극이나 자기 자신이 공부해서 재정립하는 시기가 있어요. 그래서 청소년 소설에서 그런 주제를 이야기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직선으로 가는 구슬과 곡선으로 가는 구슬을 보면 실제로 곡선으로 가는 게 훨씬 빨라요. 굴곡이 있어야 탄력이 생겨서 올라오는 힘이 생기거든요. 그게 없는 아이들은 어느 순간 딱 멈춰요.


어렸을 때부터 이야기를 좋아하는 편이셨어요?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하는 이야기를 듣는 아이들이 있고 선생님 치마 끝에 있는 실밥과 머리끈에 집중하는 아이들이 있잖아요. 저는 산만한 스타일이었어요. 그때는 성적표에 ‘주의가 산만하여….’라고 쓰여 있으면 자책감이 들었는데, 어른이 되어 보니 아이들은 다 다르게 생겼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랑 같은 수업을 들어도 다 암기하는 능력이 있는 친구가 있었어요. 저는 아니거든요. 그 친구와 나는 공부한다는 것 자체가 애초부터 출발지점이 다른데, 각자의 캐릭터는 존중 받아야 해요. 우리나라에서는 공부 잘하는 아이가 줄넘기도 잘하고 노래도 잘하고 춤도 잘 춰요. 그게 결국 자신감이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공상하는 아이들은 공상하는 만큼 각자의 역할이 있고 그걸 인정해야 자신감이 생기겠죠.


결국에는 교육환경 문제인 것 같아요. 사회 나가서 잘못을 저지르는 어른도 교육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요새 제 주변 사람들을 보면 대학을 나오고 취직이 잘 안 돼요. 절대적으로 취직이 어렵기 때문에 안 될 수 있잖아요. 하지만 회복 탄력성이 있는 아이들은 1안이 안 되면 2안을 바라보는 여유가 생기는데, 그게 없는 아이들은 1안이 안 되면 이미 자기 생은 끝났다고 생각하는 상황 자체가 건강하지 않은 사회인 거죠. 자존감 없이 큰 아이들은 자기 색이 있을 수가 없어요. 그 아이들이 배포를 가지고 자기 페이스로 가려면 청소년 소설에서도 그런 주제를 많이 이야기해 줘야 하지 않나 싶어요. 사실 아이들보다는 부모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많아요. 진유 엄마도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그런 부모들이 있어요.


주인공이 한부모 가정에서 크다가 새엄마를 만나요. 소위 정상적인 4인 가정을 안 드러냈다는 면에서 ‘정상적인 가정’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메시지도 느껴졌어요.


정상, 비정상이라는 설정 자체가 잘못됐죠. 정상이라는 정의가 있으면 반드시 비정상이 있어야 하는 거잖아요. 가정은 반드시 엄마 아빠가 있어야 되는 건 아니라는 거죠. 사람이 생긴 것도 다르고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에 다양한 패턴에 우열을 가지고 이야기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를 전하려고 일부러 더 설정을 집어넣은 것 같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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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코드가 맞아요


작품에서 청소년이 주로 쓰는 용어가 많이 나오는데요, 자료 수집은 어떻게 하셨어요?


제가 워낙 청소년 문제에 민감하기도 하고, 청소년 소설을 쓰려다 보니 계속 아이들 용어를 열심히 공부하게 돼요. 그래도 아이들은 그런 거 따라 쓰지 말라고 해요.


예전에 유행어가 너무 많이 나오는 다른 소설을 봤는데 조금 어색하더라고요.


그 용어가 상황에 딱 맞는 경우가 있거든요. 그래서 자꾸 쓰게 되는데 아이들 입장에서는 거슬린대요. (웃음) 실제 뉘앙스랑 다르게 쓰는 부분도 있더라고요. 많이 자제해서 쓰려고요.


주인공이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LOL : League of Legend)’를 즐기는 장면도 자세히 나와요.


아들이 피씨방에서 아르바이트를 잠깐 했는데 중학생 중에 몇십만 원씩 쓰면서 게임을 하는 아이들이 있대요. 워낙 주인공 캐릭터가 많다 보니까 한 번 들어가면 헤어나오지 못하고 너무 많은 시간을 소진해요. 그래서 소설 속에서도 다 합하면 몇 시간이나 게임을 하는지 계산하는 장면이 나와요. 자기가 얼마나 많은 시간을 게임에 소진했는지 아이들이 봤으면 했어요.


그렇게 좋아하던 게임인데 막상 해야 하는 게임이 되니 흥미를 잃더라고요.


소설 속 하돈이가 엄마가 돌아가시고 자기 감정 상태를 풀어낼 곳이 없기 때문에 게임을 할 때 비로소 자기 존재감을 느낀다는 말을 해요. 아이들이 자율적으로 활동하지 못하기 때문에 게임에 매료되기도 하지만, 현실에서 도피하는 차원으로 게임 하는 경우도 많아요. 일종의 중독인 거죠. 사실 어른도 재미있기 위해 술 먹고 노래방 가듯이 아이들도 즐거움을 찾는 건 존중해요. 하지만 현실로부터 도피하게 하는 것들에는 원인이 있어요. 게임 하는 걸 부정하진 않지만, 너무 중독되는 것도 주체적인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거죠.


아드님은 게임 많이 하셨던 편인가요?


네, 걔는 원없이 해서(웃음), 실컷 하다 결국 자기가 원하는 길로 갔어요. 제가 어렸을 때부터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보라고 했다는 면에서 잘못 키우진 않은 것 같아요. 어렸을 때부터 공부만 시킨 애들은 어느 순간부터 힘을 잃어버리게 되니까요.


걱정되셨을 만도 한데요.


인생 길게 놓고 보면 중요한 게 아니더라고요. 그때도 나중에 다른 소리 하지 말고 지금 할 수 있을 때 해보라고 말하는 편이었어요. 부모는 자식보다 진도가 조금 더 빨리 나간 사람일 뿐이고, 자식을 키우는 건 진도가 덜 나간 사람을 도와주는 차원이에요. 우리나라는 가족이라는 이유로 나중에 네가 돈을 벌고 나를 만족하게 해야 한다는 판타지가 잘못 설정된 것 같아요.


청소년이라고 하면 아주 어린 아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른도 아니라서 맞춰서 이야기하기 힘든 나이잖아요. 그런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글을 쓰면서 부담스러운 영역이 있을 것 같아요.


성인 소설도 써보려고 했었는데, 쓰다 보면 감정 전개가 잘 안 돼요. 왜 그러지 생각해봤는데 제가 사회인으로서 가져야 할 현실 감각이 약간 떨어지더라고요. 아이들처럼 상상의 나래를 펴고, 이상한 이야기 많이 하고, 좌충우돌하는 감정에 훨씬 익숙해서 아이들하고 더 코드가 맞는 것 같아요. 결국 저한테는 사회적으로 약자이고 아직 완성되지 않아 보호받아야 하는 청소년의 이야기를 써야 하는 필연성이 생겨요.

 

요새 쓰고 있는 작품이 있나요?


탈고한 소설이 하나 있는데, CODA(Children of Deaf Adults; 청각장애인 부모에게서 자란 건청인 아이를 일컬음) 이야기를 썼어요. 어렸을 때부터 어른의 문제를 통역하며 살아야 하기 때문에 부모에게 책임감을 느끼고 측은함을 느껴야 하는 게 있어요. 부모 아래서 상처받거나 힘들어하는 아이들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반드시 다시 돌아온다 박하령 저 | 비룡소
데뷔작인 『의자 뺏기』로 2014년 제5회 살림 청소년 문학상 대상을 수상하며 이미 청소년 문학가로서의 저력을 보여 준 바 있는 박하령은 이번 작품 속에 십 대들이 주입된 선택이 아니라 자기만의 색을 가지고 스스로에게 맞는 선택을 하고 있는지 한번쯤 돌아보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았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윤성원, 타나 정 “주얼리, 겁내지 말고 모험을 즐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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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주얼리로 지위와 부를 과시하려는 구시대적 사고가 남아 있다면, 이제는 자신의 안목과 취향을 과시하는 쪽으로 프레임을 옮겨야 할 때다. 주얼리는 사치품이 아니라 통찰력을 키워주는 가치품으로 바라볼 때 더 없이 매력적인 존재인 것이다.(20쪽)

 

『잇 주얼리』, 『보석, 세상을 유혹하다』와 칼럼, 강연, 전시기획 등으로 주얼리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를 전해온 윤성원 교수. 그의 새 책  『나만의 주얼리 쇼핑법』은 그야말로 ‘주얼리 쇼핑 바이블’이라 할 수 있다. 얼굴형에 맞는 귀고리 착용법이나 의상과 어울리는 디자인의 목걸이부터 지금 유행하는 주얼리 트렌드, 콜렉팅과 투자 제안까지 하고 있으니 말이다. 무엇보다 그는 이번 책을 통해 주얼리란 모든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가치품’이라는 사실을 말하고자 했다. 주얼리에 담을 수 있는 이야기는 거의 무한에 가까우며 그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각자의 개성이 한층 더 빛을 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얼리 디자이너 타나 정은 윤성원 교수의 말에 적극 동의한다. 스타일링의 하나로만 여겼던 주얼리에 점차 매력을 느껴 본격적으로 주얼리 디자이너로 활동하면서 한 경험들 때문이다. 타나 정은 이제 자신만의 이야기를 담아 세상에 말을 걸고 있다. 무엇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주얼리에 자신 있게 도전하고 거기서 재미를 느끼길 바란다.


윤성원 교수가 이끌고 있는 주얼리 프로젝트 그룹 ‘더쇼케이스랩’은 타나 정을 포함해 미네타니 김선영, 코이누르 송진희, 타넬로 정수연, 파나쉬 차선영, 다비데초이 최경미, 디아카이브 강민정, 제이미엔밸 제이미 킴 등 여덟 명의 주얼리 디자이너와 함께 주얼리 인사이트를 널리 알리고자 흥미로운 활동들을 하고 있다. 이들은 『나만의 주얼리 쇼핑법』출간을 기념하며 오는 4월 17일까지 압구정 라움에 위치한 브릿지앤드에서 주얼리 전시회를 연다. 이들의 활동이 주얼리에 대한 인식을 훨씬 더 향상시키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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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아름답게


『나만의 주얼리 쇼핑법』저자 소개 중에서 특히 ‘주얼리 스페셜리스트’라는 수식이 눈에 띄는데요. 주얼리 스페셜리스트는 주로 어떤 일을 하나요?

 

윤성원: 주얼리를 디자인 하는 분도, 만드는 분도, 판매하는 분도 계시잖아요. 주얼리 스페셜리스트란 주얼리의 정보, 역사, 마케팅, 디자인, 트렌드 등을 모두 다룰 수 있는 주얼리 전문가예요. 국내에는 제가 유일하다고 할 수 있는데요. 제가 쌓아온 저만의 콘텐츠가 다양한 분야를 다루고 있다는 면에서 그렇게 지칭한 거고요. 정확히 구분한다면 주얼리 컨설팅과 브랜드 컨설팅을 하는 컨설턴트, 칼럼을 쓰는 칼럼니스트,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 전시 기획을 하는 큐레이터이기도 하죠. 정리하자면 저는 주얼리 인사이트를 나누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말씀을 듣고 보니 스페셜리스트인 동시에 주얼리 전반에 대해서는 제너럴한 면이 필요한 일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윤성원: 뉴욕에서 보석 공부를 하며 느낀 건데요. 국내 소비자들이 패션이나 아트 쪽에는 아주 고급한 수준을 갖고 계신데 주얼리에서만은 아직까지 잘못된 정보를 많이 갖고 계시더라고요. 그러니까 주얼리를 보러 가셔서는 어떻게 하면 값을 깎을 수 있을까만 생각하고, 팔면 얼마인가부터 생각하는데요. 그렇게 되면 디자인이나 만드는 과정의 가치는 다 사라져요. 그것이 참 안타깝다는 생각을 했고요. 소비자와 소통하고, 업계 내부와 소통하는 중간자로서 국내 주얼리 소비자의 안목도 아트나 패션만큼 높이고 싶다는 사명감을 갖게 됐어요. 그러다보니 주얼리 자체뿐 아니라 디자인, 트렌드, 마케팅 등 다양한 분야를 공부하면서 역사까지 다루게 됐죠. 앞으로도 계속 소비자와 소통하는 주얼리 업계의 대리인이 되고 싶은 마음이에요.

 

디자이너 타나 정은 처음부터 주얼리 디자인을 하신 건 아니었잖아요? 주얼리 디자인을 시작한 계기가 무엇이었나요?


타나 정: 학교 때는 제품 디자인과 패션 디자인 전공을 했어요. 제가 학교 다니면서 방송 활동을 했었거든요. 주로 정보 전달이나 영화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요. 매주 촬영이 있을 때면 스타일리스트 분이 옷을 가져다주셔서 그것을 그냥 입을 수밖에 없었어요. 하지만 옷과 달리 주얼리는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한을 주셨거든요. 제 촬영을 위해 주얼리를 가지고 매번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본 거예요. 내 촬영을 위한 좀 더 독특하고 예쁜 주얼리는 없을까 하다 직접 만들면서 디자인을 시작했죠. 그러다보니 주변 분들이 제가 착용한 주얼리에 대해 문의를 주시더라고요. 권유도 있고 해서 장난 반, 진심 반으로 ‘타나’라는 주얼리 브랜드를 만들게 됐어요. 그때는 지금처럼 전문적으로 하지는 않았지만 주얼리 업계에 발을 들이게 된 계기가 된 셈인데요.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진지하게 공부를 한 거죠.

 

두 분 모두에게 드릴 수 있는 질문인데, 보석에 과연 어떤 매력이 있었던 걸까요?


윤성원: 저는 처음 보석을 배울 때 뉴욕에서 보석 감정을 배웠거든요. 스톤을 배우다보니 인류 역사보다 훨씬 오랫동안 땅에 묻혀 있던 것이 세상에 나와 가공을 거쳐서 우리가 착용할 수 있는 형태로 만들어진다는 점이 놀라웠어요. 어떻게 땅 속에 이런 아름다운 빛깔과 광택을 가진 보석이 있었을까 싶더라고요. 또 시간이 흘러도 심한 충격을 주지 않는 이상 유지가 되고, 그 안에 이야기를 입힐 수 있고, 사람의 감성을 입힐 수 있잖아요. 아마 그래서 보석을 좋아하게 된 것 같아요.


타나 정: 제 경우 주얼리를 스타일링으로 먼저 접근했던 거잖아요. 주얼리는 좀 더 내가 예뻐 보일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죠. 실제 제 브랜드 이름 ‘타나’가 ‘difference in beauty’라는 뜻이 있어요. 유니크한, 다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모토를 가지고 있거든요. 처음에 생각한 주얼리는 나를 더 예뻐 보이게 만들면서 내 아이덴티티를 잘 표현해줄 수 있는, 내 스타일링의 종착지라고 볼 수 있는 거라고 받아들였죠. 그러다 브랜드를 발전시키면서 점점 저도 파인 주얼리(Fine Jewelry, 고가의 보석으로 만든 고급 주얼리)의 매력에 사로잡혔어요. 지금은 전체 라인을 파인 주얼리로 제작하고 있는데요. 제 생각에 주얼리는 모든 사람에게 그가 가진 본연의 아름다움을 좀 더 아름답게 해주는 것 같아요. 디자인을 할 때도 거기에 더 중점을 두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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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길 수 있는 주얼리


주얼리에 담긴 이야기가 무엇보다 흥미로웠어요. 팬시 컬러 다이아몬드(fancy color diamond, 유색 다이아몬드)가 해외 유명인들이 착용하면서부터 더 큰 관심을 가지게 됐다는 이야기 같은 것들은 트렌드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거예요.


윤성원: 강의할 때도 항상 이야기를 하는데요. 스톤을 알면 더 흥미로워지고, 역사를 알면 더욱더 흥미로워지고, 마지막으로 주얼리를 디자인하는 아티스트를 제대로 알게 되면 정말 주얼리에 빠질 수밖에 없어요. 아직까지는 소비자 혹은 독자가 스톤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태, 그러나 어설픈 정보를 갖고 계신 상태가 많은데요. 제대로 알려주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이 책은 주얼리에 관한 모든 것을 집약한 책이라고 볼 수 있어요. 처음 이 책의 가제를 ‘주얼리 쇼핑 바이블’이라고 생각했었거든요. 그 정도로 많은 내용을 담으려 했어요.

 

컬러 다이아몬드에서 핵심은 무조건 색이다. 희소성과 아름다움에 섹시하기까지 한 컬러 다이아몬드를 그 어떤 보석도 뛰어넘을 수 없는 상황이다.(중략)
팝 가수 제니퍼 로페즈는 영화배우 벤 에플릭과 헤어지면서 250만 달러짜리 6.1캐럿 해리 윈스턴 핑크 다이아몬드 반지를 돌려주었고, 할리 베리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300만 달러짜리 오렌지 다이아몬드 반지를 끼고 등장했다. 데이비드 베컴도 아내 빅토리아 베컴에게 핑크 다이아몬드 반지를 선물했다.(247-24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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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파니의 128.54캐럿 옐로 다이아몬드 목걸이((c)Tiffany & 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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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시 인텐스 핑크 다이아몬드 반지((c)FD Gall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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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갓의 블루 다이아몬드 반지((c)FD Gallery)

 

주얼리에 대한 국내 소비자의 저조한 인식에 안타까움을 많이 표현하셨는데요. 주얼리를 디자인하고 만드는 입장에서는 어떠세요? 역시 아쉬운 점이 많겠죠?


타나 정: 지금 뉴욕에 살고 있어요. 한국은 가끔 들리는 정도였는데요. 와서 보면 너무 트렌트에 민감해요. 뷰티, 패션 트렌드는 전 세계 어디에도 뒤지지 않잖아요. 그런데 그에 비해 주얼리에 대한 인식은 너무나 부족한 것 같아요. 특히 지금은 삶의 질, 잘 먹고 잘 입고 잘 사는 것에 대한 인식이 크게 향상되었잖아요. 반면 주얼리는 정말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음에도 인식이 따라오지 못한 것 같아요. 얼마 전에 경주에 다녀왔는데요. 박물관에서 신라시대의 유물을 보고 정말 감탄했어요. 몇 천 년 전에도 보석을 즐기고, 소중히 여기면서 문화의 한 부분으로 자리했었는데 아픈 과정을 거치면서 그것은 뒷전으로 두고 다른 부분만 성장을 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윤성원: 첨언 하자면 패션이나 아트 소비자가 주얼리 소비자이기도 하거든요. 같은데 왜 이럴까 생각해보면 얘기한 대로 역사적인 과정이 있었던 것 같아요. 특히 조선시대 유교의 영향으로 상업을 억제하고 청빈한 생활을 강조했던 면이 영향을 끼쳤을 거라 생각해요. 보석을 사치품으로 잘못 받아들이게 된 것 같아요. 물론 보석은 부의 상징이었죠. 유럽에서도 그랬어요.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고, 21세기에는 더 이상 보석이 부의 상징만은 아니거든요. 이제는 누구나 주얼리를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기 때문에 오히려 자신의 안목을 과시하면서 차별화하려고 엄청 노력하고 있어요. 나라는 급성장한 반면 보석에 관해서는 이제야 변화하고 있는 것 같단 생각을 해요.

 

확실히 경험이 중요한 것 같아요. 경험이 없다면 계속 지금과 같은 수준에 머물게 되겠죠. 책을 쓰신 이유이기도 할 텐데요.


윤성원: 책을 쓸 때 모든 독자층을 염두에 두긴 했어요. 일단 주얼리를 처음 접하는 20대가 읽으면 가장 좋겠죠. 왜냐하면 처음부터 제대로 된 정보를 가지고 시작하면 그 사람이 30대, 40대가 되었을 때 훨씬 도움이 될 거란 생각 때문이에요. 한편 30-40대 층은 과도기에 있어요. 이들이 제대로 된 소비를 하고, 스타일링에도 도움을 줄 내용도 많이 있거든요. 이분들에게는 과감하게, 타인의 시선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내게 어울리는 주얼리를 발견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해요. 50대 이상 분들은 어느 정도 보석을 향유한 분들이죠. 이분들은 여유가 된다면 투자를 하거나 수집을 하셔도 되거든요. 그럴 때도 이 책이 도움이 될 거예요.


타나 정: 경험이 정말 중요해요. 주얼리는 많이 해보셔야 해요. 뉴욕에서 주얼리 디자이너로 활동할 결심을 하고 트렁크쇼(trunk show, 의상이나 보석 등 신제품이 출시되었을 때 소수의 상위소비자(VVIP)를 위해 개최하는 소규모 패션쇼)에서 고객들을 만나던 시기였는데요. 아는 분이 백인 여성 분 친구를 모시고 왔어요. 얼굴에 화장기도 하나도 없고 꾸미는 것에 전혀 신경을 안 쓰는 분이시더라고요. 그분이 의외로 제가 디자인 한 자개로 된 꽃잎 모티브의 커다란 귀고리를 해보셨죠. 그건 제가 봐도 아무나 쉽게 소화하기 힘든 디자인이었거든요. 그런데 아직도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는 게, 그분이 그 귀고리를 하고 거울을 딱 보는데 너무 수수해 보였던 사람이 갑자기 반짝반짝 빛이 나는 거예요. 본인도 그걸 느끼고 놀라더라고요. 정말 만족해하시면서 그걸 가져가셔서 정말 뿌듯했던 기억이 있어요. 그런 것 같아요. 직접 해보는 게 중요해요. 

 

이제 막 주얼리를 시도하려는 초보자 분들에게 구체적인 스타일링 제안을 하나 해주시면 어떨까요?


윤성원: 책에 썼듯이 20대는 나의 스타일을 찾는 모험의 시기예요. 일단 건강한 피부와 젊음이 있어 무엇을 하든 어울려요. 그러나 아직 본인의 스타일을 모르는 게 단점이죠. 때문에 이것저것 다 시도를 해봐야 해요. 심지어 커다란 귀고리를 해도 괜찮은 게 젊음의 특권이거든요. 그러면서도 결혼식, 졸업식 등 행사에 다니고 경험을 하면서 어느 순간 나에게 이런 게 어울리고, 이것은 어울리지 않는구나 하는 것을 발견하게 되어 있어요. 반드시 시행착오가 필요하기 때문에 비싸지 않은 것들로 다양한 스타일을 시도해보시면 좋겠어요. 절대 비싼 주얼리에 투자하라는 건 아니에요. 싸고 다양한 스타일을 시도하면서 모험을 즐기라고 말하고 싶어요.


타나 정: 저의 20대를 돌아보면 패션을 전공한 학생이었기 때문에 장신구에 관심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옷의 한 부분으로 생각했던 것 같아요. 다이아몬드, 진주는 엄마들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고요. 그래서 저도 윤 대표님의 말에 전적으로 동감해요. 아직 아무것도 없는 상태니까 작은 스터드(stud, 귓불에 딱 붙는 스타일)부터 시작하든 큰 후프 귀고리부터 시작하든 다양하게 겁내지 말고 시도하면서 내 스타일을 찾아가는 게 가장 정답인 것 같아요.

 

남성의 경우는 어떤가요? 남성도 제안할 수 있는 주얼리가 있을까요?


윤성원: 아무래도 시계가 먼저더라고요. 체감을 많이 했는데요. 주얼리에 있어서는 아직까지는 우리나라 남성분들은 어색하게 생각을 많이 하시는 것 같아요. 그러나 커플링은 끼시죠. 그러니까 다른 건 어렵더라도 커플링을 할 때만큼은 제대로 하셨으면 해요.


타나 정: 저는 심지어 최근 남편을 시험 삼아 도전해봤어요. 남편도 시계 외에는 하는 장신구가 없었어요. 그런데 저는 뉴욕에 살다보니 거리에 정말 멋있는 사람들을 많이 보거든요. 특히 유럽 사람들은 남자들이 주얼리에 정말 관대해요. 팔찌를 열 개 씩 착용하거나 큰 반지를 끼고 다니기도 하고요. 그게 절대로 이상해 보이지 않는 거죠. 그래서 남편에게 슬그머니 팔찌를 하나 채워봤어요. 저희 브랜드 모티브로 제작한 작은 팔찌를 시계와 같이 차라고 선물했는데요. 처음에는 민망하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요즘은 남자들도 다 한다고 강하게 권유를 했더니 처음엔 어색해했는데 이제는 시계를 차면서 꼭 팔찌도 함께 하고 나가더라고요.(웃음) 남자들도 교육이 필요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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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타나 정

 

초보자들이 가장 많이 하는 스타일링 실수도 있을 것 같아요. 


윤성원: 너무 세트에 집착하시는 분들이 있어요.(웃음) 옛날 유럽에서는 귀족이나 왕족이 반드시 그렇게 세트 착용을 하긴 했습니다. 심지어 일곱 개 세트, 브로치나 머리 장식까지 하는 경우가 있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렇지 않죠. 21세기는 확실히 믹스 매치가 유행이에요. 같은 주얼리를 갖고도 자기가 어떻게 스타일링 하느냐에 따라 다르거든요. 본인의 개성과 이야기를 넣어 하는 것에 따라 같은 주얼리라도 구성이 달라지기 때문에요. 세트는 두 종류까지, 그러나 세 종류 이상 넘어가면 너무 재미없고 이제는 조금 촌스럽다는 느낌까지 들 정도가 됐어요. 세트라 해도 약간 디자인이 달라진 거면 괜찮은데 정말 예물함에 들어 있을 법한 세트라면 그대로 하는 게 아니라 다양하게 믹스 매치 해보면 어떨까 제안하고 싶어요.


타나 정: 처음에는 멋모르고 귀고리, 목걸이, 반지, 팔찌를 다 차잖아요. 제가 제안 드리고 싶은 건 일단 다 하시고 거울을 보신 다음에 과감하게 하나는 빼버리시라는 거예요. 나중에 정말 스타일링 기술이 좋아져서 팔찌를 다섯 개 차고 반지를 열 손가락에 다 차고도 내 스타일을 잘 표현할 수 있으면 괜찮지만요. 그렇지 않은 경우는 착용한 것들이 반드시 선택한 옷과 어울릴 리도 없고, 너무 과한 느낌이 들게 하거든요. 그게 초보자들이 많이 하는 실수 같아요. 일단 나도 모르게 다 착용했을지언정 외출 직전에 거울을 딱 보고 무조건 하나는 빼는 거죠. 목걸이를 여러 개 레이어드 했으면 귀고리는 생략한다든지, 손에는 아무것도 끼지 말자, 하고 뺀다든지 하는 식으로 하나씩 빼는 연습을 하는 것도 처음 스타일링을 할 때 좋은 팁이 될 수 있어요.  

 

귀고리는 얼굴 가장 가까이에서 안색을 보완해주고 형태에 따라 착시효과를 준다. 이런 이유로 화장이나 머리 손질이 덜 됐을 때도 귀고리만으로 ‘드레스업’ 효과가 있는 것이다. 따라서 귀고리는 유행 상품인지 의상과 어울리는지를 따지기 전에 얼굴형부터 고려해야 한다. 쉽게 말하면 귀고리로 얼굴의 넓은 부분은 좁게, 채워야 될 부분은 볼륨감 있게 만드는 것이다.(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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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석의 다양한 매력


앞서도 잠깐 언급하셨는데 더 이상 주얼리가 사치품이 아니라 가치품이다, 나의 개성을 만드는 한 요소다, 라는 점을 많이 강조하고 있거든요.


타나 정: 이야기를 물려줄 수 있는 게 또한 보석이에요. 저는 할머니가 어머니에게, 어머니가 제게 물려주신 반지도 있고요. 지금 손에 하고 있는 반지는 시어머니가 주신 반지예요. 디자인이 완벽하게 제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몸에 지니고 있으면 왠지 그 마음을 느낄 수 있어요. 그래서 제가 2년 반 전에 출산을 했는데 그때 제 디자인의 귀고리를 하나 만들었어요. 그 귀고리를 나중에 며느리한테 물려줄 수 있겠다 생각해요.

 

패션과 닿아 있는 부분도 많은데요. 주얼리에도 유행이나 흐름이 있잖아요. 앞으로의 트렌드 예측도 가능한가요? 


윤성원: 아무래도 패션보다는 느리긴 하지만요. 완만한 흐름이지만 반드시 유행이 있긴 있어요. 아직까지는 믹스 매치가 유행을 하고 있고요. 올해까지는 초커(choker, 목에 꼭 맞는 스타일의 목걸이)가 계속 강세일 것 같아요. 귀고리는 길게 늘어지는 형태나 스테이트먼트(statement, 크고 입체감 있는 스타일)가 유행하고 있죠. 연예인들 레드카펫 사진을 보시면 지금 가장 유행하는 스타일을 쉽게 알 수 있는데요. 대부분 초커, 드롭형 귀고리를 많이 하고 있는 걸 볼 수 있어요. 또 겹쳐서 착용해서 자기만의 스타일을 보여주는 쪽이 당분간은 계속 될 거라고 보고 있습니다.


타나 정: 파인 주얼리 디자인을 하면서 항상 여러 방식으로 착용할 수 있는 디자인을 염두에 두려고 해요. 아무래도 고가이다 보니까 그런 면이 있죠. 짧은 목걸이를 샀지만 옷에 맞춰 긴 목걸이를 하고 싶을 때도 있잖아요. 그때 긴 목걸이를 또 사자니 가격 부담이 있어요. 그래서 저는 웬만한 크기 이상의 목걸이는 항상 길이를 조절할 수 있게 디자인을 해요. 귀고리도 마찬가지죠. 유행이 달라지는 면이 있어서 스터드이면서도 긴 레이어를 얹어서 다른 형태로 즐길 수 있는 멀티 기능의 디자인을 했어요. 그런 게 요즘 소비자 분들에게 반응이 좋은 것 같더라고요.

 

문화에 따라 선호하는 주얼리가 다르기도 할 것 같은데요. 어떤가요?

 

윤성원: 큰 맥락은 비슷한데요. 나라에 따라 선호하는 크기나 스톤은 조금 다른 면이 있어요. 한국은 아무래도 유색석에 관대하기보다는 아직은 조심스러운 편이거든요. 백인들은 하얗고 금발이라 그런지 다양한 색을 소화하고, 다양한 스톤을 즐기는 면이 보이기도 해요. ‘오팔’이 해외에서는 정말 인기 많은 보석인데 체감 상 국내보다는 해외가 훨씬 더 많이 즐기고 있는 것 같아요. 똑같은 오팔은 어찌보면 없어요. 다 자세히 보면 무늬가 달라요. 휘광성도 있고요. 그런 천연 특유의 효과를 아는 사람들은 그걸 더 좋아하고 가치를 부여하는 것 같아요.

 

국내에 조금 더 소개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뭐가 있을까요?


윤성원: 방금 말씀 드린 오팔이나 ‘파라이바 투어멀린’, ‘스피넬’ 등인데요. 명품 브랜드에서는 되게 많이 쓰고 있는 보석이에요. 그런 유색석이 아주 비싸지도 않으면서 좋은 경도도 갖고 있고 장점이 많은데요. 아직까지는 다이아몬드, 사파이어, 루비, 진주 까지만 익숙하고 나머지 보석은 조금 낯설어 하시는 것 같아요. 저는 천연석의 다양한 종류를 활용했으면 하는 마음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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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재미있는, 주얼리


윤성원 교수님이 대표로 있는 주얼리 디자이너들의 프로젝트 그룹 ‘더쇼케이스랩’의 이번 전시가 흥미로웠어요. 어떻게 기획하게 된 건가요?


윤성원: 책을 쓰면서 전시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책이 나올 때쯤 저희 ‘더쇼케이스랩’의 멤버 몇 분이 작게라도 파티 차원에서 뭘 해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하신 건데요. 이왕 하는 거니까 제대로 하자고 생각했어요. 책을 세 부분으로 나누었잖아요. 주얼리를 ‘하다, 사다, 투자하다’ 중 ‘하다’와 ‘사다’ 두 부분을 가지고 저희 디자이너 각자 자신 있는 주제로 전시를 꾸렸어요. 그래서 상당히 책에 충실한 전시가 됐죠. 기존에 있던 것들이 아니라 철저하게 새로 만들어서 쇼케이스로 보여주고, 뒤쪽에는 데일리로 착용할 수 있는 디자인을 제시했어요. 덕분에 오신 분들은 주얼리가 생각보다 재미있다는 걸 아실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전시에 큰 만족을 하고 있어요.

 

책이 중심이면서도 각 디자이너가 자신 있는 주제를 맡았으니 볼거리가 더욱 풍성해진 것 같네요.


윤성원: 예를 들면 타나 정의 경우에도 자신 있는 주제를 물어보고 제가 3대 귀보석을 맡아달라고 한 거예요. 그렇게 나오다보니 디자이너 입장에서는 본인만의 컬렉션이 만들어진 거죠. 전시도 풍부해졌으니 저도 정말 감사하고요. 쌍방의 시너지 효과가 있었다는 면에서 전시가 재미있게 된 것 같아요. 게다가 이번 전시를 통해 타나 정은 국내 최고의 편집샵에서 러브콜을 받아 바로 계약을 하게 됐어요. 전시를 기획한 입장에서도 무척 기뻤죠. 이런 다양한 디자이너가 많이 알려져야 보석 전체의 시장이 커진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디자이너 주얼리에 많은 관심을 가져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타나 정: 이 전시를 계기로 그렇게 된 거예요. 그 전까지는 공식적인 활동은 못했는데요. 이 전시에서 타나 정이라는 디자이너가 있고, 뉴욕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를 한국에 알리게 됐고요. 덕분에 이제 본격적으로 한국에서 활동을 할 수 있게 됐어요.

 


 

 

나만의 주얼리 쇼핑법윤성원 저 | 시그마북스
화려한 귀고리 하나로 우울한 기분이 날아가거나, 볼드한 목걸이 하나로 자신감이 넘쳐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또 친구들과 우정 반지를 맞추기도 하고, 연인과 커플링을 하기도 했을 것이다. 주얼리에는 이와 같은 나를 돋보이게 하는 마력과 나만의 개인적인 의미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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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오페라단, 성경은 옛 이야기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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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는 음악을 주로 한 연극이다. 오페라가 되기 위해서는 16세기 말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음악극의 흐름을 따라야 하며, 작품의 모든 대사가 노래로 표현되어야 한다. 16세기 전에 있었던 종교적인 음악극도 있었지만, 이는 종교극으로 구분되고 오페라의 영역으로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사단법인 하늘오페라단은 이런 풍토에 새로운 도전을 시도하는 오페라 그룹이다. 보통 오페라를 생각할 때 알 수 없는 외국의 언어로 긴 시간 동안 떠드는 지루한 극을 연상하지만, 하늘오페라단은 기독교인이라면 누구나 알 법한 성경 안의 이야기를 소재로 극을 만들고 무대에 올리고자 한다. 큰 비용이 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잘 알려진 공연만 무대에 올라가는 상황을 뚫고 굳이 새로운 노래와 새로운 연극을, 그것도 성경의 이야기로 만드는 까닭은 무엇일까. 하늘오페라단 단장 김정규 테너와 단원 차승희 소프라노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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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라노 차승희, 외국에서의 생활


소프라노 차승희는 초등학교 2학년 무렵 미국으로 이민했다. 미국에서 쭉 자라서 줄리아드 대학과 대학원을 졸업했다. 미국 시카고 오페라단의 <돈 파스코라레>의 노리나 역, 오하이오 오페라단 <라보엠>의 무제타 역, 뉴저지 오페라단의 <코지 판 투테>, 뉴욕 오페라 앙상블의 <몽유병의 여인> 등 미국 주요 오페라단에서 주역으로 활동하며 커리어를 다져 나갔다. 특히 줄리아드 대학은 미성년자일 때 입학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열일곱 살에 줄리어드에 들어갔거든요. 성악 부문에는 대학원으로 많이 들어가고, 나이 어린 학생은 많이 안 받은 케이스라 최연소라고들 하는 이야기가 붙었는데, 역사상 통틀어서 최연소는 아닐 거예요. 미국에서 활동하면서 오페라나 가곡 위주로 많이 하고, 기독교인이라 오라토리오 등 기독교 음악 쪽으로도 많이 활동했어요.”

 

이민 가정은 한인 교회를 통해 결속력을 느끼고 외국에 적응하는 경우가 많다. 소프라노 차승희도 어린 시절 미국으로 떠나 한인 교회를 다니면서 신앙에 눈을 뜨게 되었다.

 

“부모님은 불교를 믿으시다가 이민 하신 후에 기독교인이 되었죠. 저도 한인 교회에 학생회에서 같이 어울리는 교제 시간도 있기 때문에 관심을 두다가 차차 신앙에 눈을 떴어요.”

 

4월 17일 열리는 하늘오페라단 창단 기념 칼라 콘서트에서 차승희 소프라노는 ‘어메이징 그레이스’ 와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등 찬송가도 부를 예정이다. 기독교인이라는 정체성이 하늘오페라단을 같이 하게 된 원동력이 되었을까?

 

“김정규 단장님이 오페라단을 만들면서 같이 하자고 제안했었어요. 오페라에서 기독교 소재를 많이 다룬다는 게 좋아서 같이 하겠다고 했죠. 이번 음악회도 ‘요셉의 꿈’이라는 주제로 하게 되는데, 이런 방향으로 많이 했으면 좋겠어요.


악기로 복음을 전할 수도 있지만, 노래로 복음을 전하는 방법은 사람의 목소리에 가사가 들어가면서 직접 사람들에게 전하는 방법이라 영향이 클 것 같아요. 제가 받은 성악이라는 달란트를 다른 사람들에게 잘 전달해서 복음화할 수 있으면 그게 축복인 것 같아서 많이 참여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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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에게 적용되는 성경 이야기

 

이어 하늘오페라단 단장인 김정규 테너에게 어떻게 창단하게 됐는지 물어보았다. 김정규는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하고 독일 뉘른베르크 국립음대 최고연주자과정을 졸업했다. 파울린케 오페렛타 콩쿠르 1위, 국제 나비부인 콩쿠르 1위, 국제 바이에른 콩쿠르 2위 등 화려한 콩쿠르 입상 전적이 있으며, 교회에서 장로를 맡은 신실한 기독교인이기도 하다.

 

“오래 전부터 오페라단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어요. 많은 분이 도와주시면서 작년 8월부터 실천에 옮겨 드디어 창단 공연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오페라단의 첫 작품으로 세상에 작곡이 된 오페라를 만들까 하다가 첫 작품을 성경 이야기로 해보자는 결심을 했어요. 전 세계적으로 베르디 이후에 성경 이야기로 큰 오페라 작품을 만든 적이 없어요. <나부코>(주세페 베르디의 오페라. 바빌론에 잡혀간 히브리인들의 이야기로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이 유명하다)이후에 요셉의 이야기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들었죠.”

 

오페라를, 그것도 종교적인 의미가 담긴 오페라를 사람들이 보러 올 수 있을까? 이러한 의문은 김정규 테너에게는 부차적인 고민이었다. 성경의 이야기라고 해서 기독교인만 보러 올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아니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도, 젊은 사람, 나이 든 사람도 모두 힘들고 어려운 시절인데, 이 상황에서 용기를 줄 수 있는 이야기가 요셉의 꿈일 수 있다는 거죠. 요셉이 노예로 팔려 가서 갖은 고생을 하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이집트의 총리까지 되는 인간승리의 이야기잖아요. 요셉의 꿈은 성경적인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현시대에 사는 사람들이 고난을 이기고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주는 오페라가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거예요.”

 

극예술이 무대에 올라가기까지는 많은 사람이 필요하다. 클래식이 서양 교회 음악에서 시작한 뿌리를 생각해 봤을 때, 성악가 중에 기독교인이 많다는 건 부인할 수 없다. 또한 많은 사람이 같이 만들어나가는 무대이다 보니 비용이 걱정될 법도 하다.

 

“교회에서 찬양 드리다가 성악을 하는 분들이 많아요. 그러다 보니 믿음 있는 좋은 선생님을 많이 만나서 같이 할 수 있었죠. 오페라단을 운영하면서 사람의 지식을 가지고 운영하지는 않았습니다. 창단 공연을 올리기까지 이끄신 이가 하나님이라고 생각하고 그 부분으로 지금까지 왔어요. 물론 대관비며 오케스트라비만 해도 어마어마합니다. 금전적인 걸 걱정하지 않는다는 건 거짓말이지만, 그래도 많은 분이 도와주셔서 어느 정도 있는 상태에서 시작하는 데다 하나님이 해주실 걸로 믿고 시작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를 널리 알리는 데는 부족함이 없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말을 듣는 중 의문이 들었다. 하나님의 역사를 알리는 여러 가지 방법 중 왜 오페라단이었을까? 예배 말고도 문화적인 활동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성가가 곡조 있는 기도라 그랬거든요. 우리가 오페라를 통해서 찬양할 때 그 찬양이 하나님의 말씀을 멜로디로 듣는 거니 뭔가 다르지 않을까요? 전 세계의 어떠한 문화든 모든 문화는 종교에서부터 시작됐다고 봅니다. 베르지모 오페라가 나오기 전 모든 음악극은 왕이나 신화, 성경 이야기 등으로 만들었어요. 종교를 싸고 있는 게 문화고, 그렇기 때문에 수금과 비파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게 문화라고 봅니다. 우리가 오페라를 만들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때 문화가 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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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가 해야 할 일

 

김정규 테너는 현시대의 문화에 관해서도 걱정했다. 사람의 정신을 소양하는 문화가 아니라 화를 내게 만드는 문화가 많아졌다. 지금 시대에 기독교인이 해야 할 일이 많은 이유다.

 

“문화가 결핍된 게 많은 사람이 어려워하고 정신적으로 피폐한 이유라고 봅니다. 사람의 정신을 함양하고 올바른 생각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게 문화예요. 흥분시키는 것이 문화가 아닙니다. 모든 매체가 지금은 사람을 흥분시키는 방향으로 가고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성경 이야기는 사람의 사용설명서입니다. 성경대로 하면 사람이 남을 미워하지도 않고 편안해요. 그래서 오페라를 통해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라는 메시지를 던져주고 싶습니다.”

 

오페라 하면 옛날 노래를 예전 방식으로 올리는, 그야말로 옛날 노래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러나 클래식은 오래된 노래기 때문에 가치 있는 게 아니라 예술로서 가치가 있다고 김정규 테너는 말했다.

 

“유행가는 유행이 지나면 없어지기 때문에 유행가이거든요. 클래식은 골동품으로서 가치가 있는 게 아니라 예술로서 가치가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클래식 성악을 시작하지만 10년, 20년을 연구하고 연습해야 비로소 무대에 설 만한 실력이 나와요. 그만큼 힘든 게 성악입니다. 요셉의 꿈도 요셉 한 사람의 이야기, 옛날이야기가 아니라 현재도 적용 가능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만들었습니다.


옛날 요셉도 있지만 현재를 사는 모든 개인이 다 요셉입니다. 누구나가 다 어려움을 겪고 어딘가에 올라가려고 애쓰잖아요. 하지만 힘들고 고통도 받아요. 요셉도 우물에 버려졌다가 끌려 나와 노예로 팔려가고, 종살이를 하다 감옥에 가는 고통을 겪었잖아요. 고난과 고통을 두려워하지 말자는 메시지가 있는 거예요.”

 

기독교인의 성공 기준은 ‘하나님’이다.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물욕과 더 나은 자리를 성공의 기준으로 삼지 말고 다른 기준으로 세상을 보라는 메시지는 동일하게 적용된다.

 

“성공의 기준을 좋은 직업, 돈 많이 벌고 좋은 집에 사는 걸로 삼는 게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걸 성공이라고 보면 이 세상의 물욕은 없어지고 인생은 성공한 거예요. 기독교인이라면 그렇게 생각하는 겁니다. 그럼 세상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개의치 않게 됩니다.”

 

하늘오페라단은 4월 17일 창단 공연을 시작으로 오페라 <요셉의 꿈>을 만들어 공연할 계획이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 등 뮤지컬이나 다른 장르로 만들어지고 있지만, 오페라는 상업성이 약하기 때문에 쉽게 도전하지 못하는 장르기도 하다. 하늘오페라단은 국내에서 공연한 뒤에 해외로 진출할 계획도 있다.

 

“앞으로 중국이나 미국에서도 공연할 계획입니다. 클래식도 한류처럼 외국에서 한국 사람들이 많이 하고 있어요. 우리나라 성악가들이 노래를 참 잘 해요. 오페라를 가지고 한국의 기독교적인 면이라든지 여러 메시지를 가지고 갔으면 합니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고 하나님의 종교입니다. 사람들이 교회를 이상하게 보거나 부정적으로 보는데, 사람이 부정적인 거지 하나님이 부정적인 게 아니거든요. 오페라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고 젊은 친구들에게 하나님의 가치관을 심어주는 조그마한 밀알이라도 될 수 있다면 저는 만족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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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마틴 피스토리우스, 자기 몸이 감옥이었던 사람의 분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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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피스토리우스와 그의 아내 조애나.jpg

마틴 피스토리우스와 그의 아내 조애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12살 소년 마틴 피스토리우스는 어느 날 희소병인 크립토코쿠스 뇌막염으로 의식불명에 빠지고 식물인간이 된다. 4년 후 기적적으로 의식이 돌아오지만, 눈짓으로도 알리기 힘들 정도의 마비 상태의 몸으로는 누구도 의식이 돌아왔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뜨거운 차를 식혀달라고 말하지 못하고, 몸이 불편하니 자세를 바꿔 달라고 요청하지도 못했다. 무엇보다 식물인간인 아들을 간병하느라 지칠 대로 지친 엄마가 눈앞에서 ‘네가 죽었으면 좋겠어’라는 말을 뱉는 걸 보고만 있어야 했다.


13년 동안 식물인간으로 살다 사려 깊은 간병인 버나가 의식이 돌아온 걸 알아채면서 마틴 피스토리우스의 삶은 천천히, 그러나 더욱 기적적으로 바뀐다. 지능 검사를 받고, 의사를 표현하는 컴퓨터 시스템의 힘을 빌려 살아있다는 걸 알렸다. 『엄마는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는 갇힌 몸으로 살아간 지옥의 삶과, 이후의 더 놀라운 삶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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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병하던 모습

 

책이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책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나?

 

수년간, 책을 쓰는 것에 관해 종종 생각하곤 했다. 사람들도 그렇게 해보라고 나를 격려했다. 그러나 내 이야기를 공유할 준비가 되었다고 느끼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렸다. 『엄마는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를 쓰게 된 계기는 무엇보다도 내 이야기를 세상에 알림으로써 다른 이들을 도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 때문인 것 같다. 이런 희망이 있었기에 나는 미래에 초점을 맞출 수 있었다. 책을 쓰면서 가졌던 가장 큰 희망은 이 책이 어떤 식으로든 세상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정말 이 책이 그런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어서 매우 행복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가 되었을 때는 완전히 흥분했었다. 정말 기적 같은 일이다.

 

한국어, 즉 다른 언어로 책이 나오는 기분은 어떤가? 한국에 관해서는 알고 있는 게 있나?


내 이야기가 한국어로 소개되는 것은 가슴 벅찬 일이다. 한국의 독자들도 나의 책을 읽게 된다는 사실에 설레고, 행복하고, 동시에 겸허해지는 기분이다. 나는 한국에 가본 적은 없지만, 멋진 나라라고 생각한다. 놀라운 문화와 아름다움을 가진 나라다. 테크놀로지에 애정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테크놀로지에 의존해서 의사소통하고 일하는 사람으로서, 한국이 생산해내고 개발해내는 모든 테크놀로지에 대해 큰 경외심을 가지고 있다.


메건 로이드 데이비스와 공저했다. 어떤 식으로 같이 작업했는가?


메건과 나는 수많은 논의를 했고, 이를 통해 이야기를 어떻게 써나갈지 밑그림을 그렸다. 나는 8개월간 거의 매일 글을 썼고, 이렇게 쓴 글을 메건과 함께 다시 책의 형태로 재구성하여 『엄마는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라는 책으로 펴내게 되었다.


책이 나오고 가족의 반응은 어땠나?


가족들이 얼마나 흥분으로 들떴는지 모른다! 가족들은 내가 쓴 원고를 전혀 읽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몰라서 사실 조금 긴장했었다. 하지만 그건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가족들은 책을 정말 마음에 들어 했고, 특히 엄마는 이 책이 영원히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책을 읽는 게 즐겁다고 말씀하셨다.


책을 쓰면서 오래전 고통스러웠던 일을 다시 복기하는데 힘든 점은 없었나.


그렇다. 과거를 되돌아보는 것은 때때로 이루 말할 수 없이 힘들었고, 고통스럽기까지 했다. 책을 쓰는 동안 실제로 악몽도 많이 꾸었다. 그러나 나의 책을 쓰는 일은 한편으로는 치유의 효과가 있었다. 나의 과거를 돌아보고 나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멋진 일이었다. 나는 부디 내 이야기가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품고 『엄마는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를 집필했다.


한국판 제목은 ‘엄마는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로, 원제 ‘GHOST BOY’와는 조금 다르게 나왔다. 책에서 가장 극적이고 가슴 아픈 장면이기도 한데, 이렇게 힘든 내용을 밝히는 데 마음의 부담이 있었을 것 같다.


물론 그랬다. 하지만 그런 말을 했다는 데 대해서 결코 엄마를 원망하거나 미워한 적은 없었다. 어떻게 해서 그런 말을 하게 되었는지 이해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 점에 대해서 화가 나거나 분노를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엄마에게 무한한 애정과 사랑을 품고 있다. 엄마는 정말로 힘든 시간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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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투병 전 마지막 가족 사진

 


버나가 당신을 ‘발견’하기 전까지, 몇 년 정도를 의식이 깨어 있는 상태로 보낸 건가?


나는 대략 13년간을 몸에 갇힌 채로 살았다.


몸에 갇힌 시간 동안 주로 어떤 생각을 했는가.


나는 주로 공상을 통해 현실에서 도피했다. 말 그대로 상상의 세계 속에 빠져들었다. 몸이 아주 작아져서 우주선으로 기어 올라가 멀리 날아가는 상상, 마법의 힘으로 제임스 본드 영화에 나오는, 로켓과 미사일을 장착한 날아다니는 물체로 휠체어가 변신하는 상상 등 온갖 종류의 상상을 하곤 했다.


때로는 물체가 움직이는 것을 관찰했다. 하루 종일 햇빛이 이동하는 것을 보고 있거나, 벌레들이 총총걸음으로 기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러다가 나의 의식 속에 빠져서 주변의 세계를 망각하게 되는 경지에 이르렀다.


나는 마음속으로 사람들과 대화를 하기도 했다. 사실은 아직도 곧잘 그렇게 한다. 조애나가 없을 때면 마음으로 그녀에게 이야기를 해버리고 만다. 그래서 함께 있을 때 그녀에게 실제로 이야기를 하려고 여전히 부단히 노력하는 중이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의사소통하는 방식은 다른 사람과 다르다. 리듬을 끊고 말을 하거나, 감정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어려움도 있을 것이다. 불편한 점은 많겠지만, 의사소통에 특히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말하는 속도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아무리 컴퓨터 프로그램을 빨리 다룬다고 해도, 정상인의 대화 속도에 비하면 말하는 데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 음성이 늘 똑같다는 점도 약간의 제약이 되지만 속도가 가장 큰 걸림돌인 것 같다.


사람들이 당신과 대화할 때 생각해주었으면 하는 점이 있나?


앞서 말했듯이 의사소통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점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또한,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으면 이야기해주길 바란다. 때로는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으면서도 알아들은 체 그냥 넘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나를 생각해서 그런다는 것을 알지만, 다시 말해달라고 하거나 이해할 수 있게 다른 표현으로 설명해달라고 하면 더 좋을 것 같다.


또한, 여러 가지 질문을 동시에 하지 않는 것도 도움이 된다. 대답을 타이핑하기 시작했는데 중간에 다른 질문을 받으면 대답하기 힘들다. 물론 그런 상황에 대처하는 법을 터득하는 중이긴 하지만.


세상과 연결된 점이 컴퓨터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공포심을 느낀다는 내용이 인상 깊었다. 삶이 너무나 깨지기 쉽다는 불안감이 든다고 했다.


처음에는 매우 힘들었고, 또다시 의사소통의 창구를 잃게 되는 것이 두려웠다. 특히나 의사소통을 위한 기기가 비싸다는 점 때문에 더더욱. 그러나 그것은 나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이제는 그 공포를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다. 다행스럽게도 지금은 의사소통 방법과 도구가 한 가지 이상으로 늘어서 걱정이 덜 된다.


오랫동안 선택이 없었던 삶을 살다가 시리얼을 고르거나, 신발을 결정하는 일 등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지금도 선택하는 일이 어려운지, 만약 그렇다면, 어떤 식으로 적응해나가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다행히, 시간이 지남에 따라 스스로 선택하는 방법을 어느 정도 익혔다. 아직도 선택하는 일이 힘들 때가 있지만, 대체로 잘하고 있는 편이다. 선택하는 법을 배우는 데에는 조애나가 정말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오랜 시간 동안 나는 무언가를 선택한다는 일을 하지 못한 채 살아왔기 때문에, 선택하고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을 소중히 여기고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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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피스토리우스가 학위를 받는 모습


현재 웹디자인 업무를 한다고 들었다. 일은 어떤가?


나의 일을 사랑한다. 나는 테크놀로지에 대해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있다. 또한 늘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가지는 것에 설렘을 느낀다. 나는 일할 수 있다는 사실이 믿을 수 없을 만큼 감사하고 행복하다. 내가 사회에 무언가 공헌할 수 있다는 데 자부심도 느낀다. 열심히 일해서 나의 꿈을 좀 더 실현할 수 있기를 꿈꾼다. 


지금 하고 있는 일 외에 새로 도전하고픈 일이나 취미가 있나?


나는 여행하는 것을 좋아하고, 새로운 곳을 구경하는 것을 좋아하며,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을 좋아한다. 현재 내가 도전해보고 싶은 일은 바로 휠체어 경주다. 최근에 휠체어 경주 클럽에 가입하기도 했다.


TED 토크 강연으로도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강연을 준비하는 데에는 많은 작업이 필요하다.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지 결정하고 컴퓨터에 이야기할 내용을 정확히 입력해야 한다. 책을 쓰는 데에도 역시 많은 작업이 필요했다. 책 쓰는 일은 강연에 비해 전체적인 구조를 짜는 데 더 많은 노력을 들여야 한다. 가장 큰 차이점이 있다면, 책에서 언어를 사용하는 것과 달리 강연은 아무래도 ‘말하기’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두 가지는 서로 매우 유사하다.


나는 TED 토크 강연을 한 것에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으며 매우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무척 떨렸지만 무사히 강연을 마칠 수 있어서 정말 기뻤다. 사람들이 나의 TED 토크에 많은 호응을 보내준 데 대해서 감사한 마음이다.


방송과 책 출판 이후 생활에 달라진 점이 있다면?


나의 삶은 예전과 그리 다르지 않다. 나는 여전히 우리의 조건에 알맞은, 특히 휠체어로 생활하기에 적합한 우리만의 집을 장만하고 싶다는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집필을 끝낸 2009년 이후로 몸이 좀 더 강해졌고, 운 좋게도 대학에 갈 수 있었고 운전하는 법도 배울 수 있었다. 


책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나?


때로는 아무리 작고 희박해 보여도 희망은 언제나 있다는 것. 상대가 이해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모든 이들에게 친절, 존중, 공감, 존경을 가지고 대하라는 것. 절대로 마음의 힘과 사랑과 신뢰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지 말 것, 그리고 꿈꾸기를 멈추지 말 것. 마지막으로 삶을 즐기고 감사하게 여길 것.


만약 직접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다면, 누구에게 무슨 말을 제일 먼저 하고 싶은가?


글쎄…… 아마도 아내 조애나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것 같다.


키우는 개, 코작의 이야기도 나온다. 개와 함께 있는 행복에 관해 말해준다면.


코작은 내 마음을 기쁨으로 채워주었고 늘 미소 짓게 해주었다. 코작은 늘 곁에 있어주는 나의 소중한 친구였다. 언제나 나를 반겨주었고 나와 함께 있는 것에 행복해했다. 또한 나의 장애에 개의치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주었다. 그래서 재작년에 코작이 죽었을 때 정말 슬펐다. 코작을 대신할 개는 결코 찾지 못하겠지만, 언젠가 집을 사게 되면 개를 한 마리 키우고 싶다는 꿈이 있다.


당신의 이야기를 접하는 한국 독자들에게 남길 말이 있다면?


사람들이 나의 인생 이야기를 읽어준다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영광이다. 부디 독자들이 『엄마는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를 즐겨 읽어주었으면 좋겠고, 이 책이 독자들에게 감동과 영감을 주고 삶에 대해 긍정적인 감정을 남길 수 있기를 바란다.


 

 

엄마는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마틴 피스토리우스,메건 로이드 데이비스 공저/이유진 역 | 푸른숲
13년 동안 식물인간으로 살다 기적적으로 깨어나 삶을 되찾은 마틴 피스토리우스의 실화 『엄마는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가 푸른숲에서 출간됐다. 제목은 오랜 간호생활에 지친 나머지 자살 시도까지 했던 엄마가 마틴이 듣지 못하는 줄 알고 내뱉은 혼잣말이자 절규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기주 “『언어의 온도』, 뺄셈 방식으로 접근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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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랏빛 표지의 작은 책 『언어의 온도』가 예스24 종합 베스트셀러 4주째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언어의 온도』는 지난해 8월에 출간된 이기주 작가의 여덟 번째 책으로, 일상에서 발견한 의미 있는 말과 글, 단어의 어원과 유래를 담았다. 출간된 지 반 년이 지나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일은 무척 이례적인 일. 인스타그램, 트위터 등에서 많이 회자됐지만 SNS의 반응으로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일은 흔치 않다. 예스24 독자들은 “무심한 듯한 섬세함을 느낄 수 있는 책”, “따뜻한 남자의 일기를 훔쳐보는 기분”, “소소하게 읽기 좋은 책”이라고 『언어의 온도』를 평했다.

 

『언어의 온도』를 쓴 이기주 작가는 경제지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현재 출판사 ‘말글터’ 대표로 일하고 있다. 『언어의 온도』는 출판사를 열면서 두 번째로 출간한 책. 활자 중독자를 자처하며 서점을 배회하는 일이 취미인 이기주 작가는 평소 쉽게 쓰기 위해 수없이 고민한다. 되도록 따뜻한 언어, 간결한 문장으로 표현하기 위해 노력한다. 『언어의 온도』는 이기주 작가가 지금까지 쓴 책 중에 가장 짧고 가볍지만, 가장 많은 독자와 통하고 있다. 출판 업무를 챙기느라 쉴 틈 없이 바쁜 이기주 작가를 서면으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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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건져 올리는 글감에는 생명력이 있다

 

책이 독자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고 있어요. 바쁜 일상을 보내고 계실 것 같아요

 

제가 글을 쓰고 꾸준히 책을 펴낼 수 있는 건 온전히 독자분들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제 책을 읽어주시는 분들께 늘 감사한 마음입니다. 『언어의 온도』가 많이 읽히면서 저도 분주해진 건 사실이지만, 분주할수록 제 삶의 본질에 집중하려 해요. 본질을 놓치면 모두 놓치게 되잖아요. 기둥이 뽑히면 건물이 폭삭 주저앉는 것과 같은 이치죠. 제 삶을 떠받치는 기둥은 ‘글’과 ‘책’입니다. 글을 쓰고 활자를 읽고 책과 관련된 일에 젖어 들고 거의 매일 서점을 드나들면서 하루 대부분을 보냅니다.

 

『언어의 온도』을 쓰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 사람들의 대화를 엿듣는 버릇이 있는데요. 꽤 의미 있는 문장이 귓속으로 스며들 때가 있어요. ‘스며든다’는 표현보다 ‘들이닥친다’는 표현이 더 적확할 듯한데요. 그러면 어로(漁撈)에 나갔다가 만선의 기쁨을 안고 귀항하는 어부처럼 괜스레 마음이 들뜨곤 해요.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차갑고 지저분한 말이 제 달팽이관을 난도질할 때도 더러 있어요. 그때마다 생각하죠. 언어에도 나름의 온도가 있구나. 따뜻함과 차가움의 정도가 저마다 다르구나, 하고요. 이런 생각을 책으로 엮었습니다. 다만 말과 글에 관한 정보를 단순히 나열하거나 “이렇게 하면 좋을 텐데요"라면서 독자의 손을 억지로 잡아당기긴 싫었습니다. 그저 제가 펼쳐놓은 이야기를 들여다보면서 독자 스스로 자신의 삶과 언어와 세계관에 대한 질문을 가슴에서 퍼 올렸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죠. 많은 분이 제 의도를 헤아려주신 것 같아요. 감사한 마음입니다.

 

일상의 작은 에피소드를 잘 관찰하시는 것 같습니다. “엿듣고 기록하는 일을 즐긴다”고 하셨는데요. 글의 소재를 어떻게 발견하시나요?

 

글쓰기 좌우명이 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좌우봉원(左右逢原)’이라는 말을 가슴에 새겨서 간직하고 있는데요. 좌우에 있는 것을 취해 근원을 헤아린다 혹은 주변의 사건과 현상 모두가 학문 수양의 원천이 된다, 라는 뜻으로 풀이할 수 있어요. 글쓰기 소재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굳이 먼 곳에서 찾을 필요가 없지요. 세계적인 석학의 강연보다 부모가 들려주는 조언 한마디가 인생에 도움이 될 때가 있고, 신문의 경제면 기사보다 때로는 동네 편의점 사장님의 한마디가 훨씬 피부에 와 닿는 경우가 있어요. 일상에서 건져 올리는 글감에는 생명력이 있거든요. 그걸 눈과 귀로 채집해서 가슴으로 한참 들여다보곤 해요. 사람이든 현상이든 겉으로 대충 봐서는 몰라요. 유난히 호탕하게 웃는 사람은 남보다 많이 울어본 사람인지 모릅니다. 희맑아 보이는 사람일수록 남모를 슬픔의 밑바닥에 도달해서 밤새 베갯잇 적셔가며 꺼이꺼이 울어본 경험이 많더군요. 사람과 사물을 둘러싼 외피를 벗겨내고 속과 뼈대를 보려고 노력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육안(肉眼)이 아니라 심안(心眼), 그러니까 마음의 눈을 부릅떠야 하죠. 물론 그게 말처럼 쉽지 않지만 말이죠.

 

에피소드로 시작해 단어의 어원, 유래를 소개하는 글이 많습니다. 평소 단어에도 관심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글을 쓸 때, 단어 선택의 기준 같은 게 있을까요?

 

“너를 생각해”와 “너만 생각해”라는 문장은 비슷하면서도 느낌이 달라요. 한글은 점 하나, 조사 하나로 말맛과 의미가 달라지는 섬세한 언어입니다. 문장을 쓴다는 것은, 단어를 물감 삼아 지면과 화면을 채색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므로 직업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우리말의 결과 무늬를 바지런히 공부하고 틈틈이 보듬어야죠. 언론인 생활을 마감하고 작가로 살아가기로 한 날, 제가 가장 먼저 한 일도 사전에 켜켜이 쌓인 먼지를 탈탈 털어내는 일이었어요.

 

글쓰기는 '퇴적'과 '침식'을 동시에 당하는 영역입니다. 프랑스의 문호 기 드 모파상은 "흰 종이를 검은색으로 물들여야 한다"고 강조했죠. 꾸준히 글을 쓰다 보면 글쓰기 내공은 덩달아 성장하는 것 같습니다. 시간의 흐름과 함께 퇴적된다고 할까요. 하지만 읽고 쓰고 생각하는 일을 내려놓으면 쌓였던 내공이 어느새 깎이고 떨어져 나갑니다. 침식당하죠. 살다 보면, 공부는 끝이 없다는 뻔한 말이 새삼 무겁게 다가올 때가 있어요. 글쓰기가 꼭 그래요.

 

참, 저는 책을 출간하기 전에 어머니께 가장 먼저 보여드립니다. 제 책의 첫 번째 독자는 제 어머니입니다. 그래서 쉬운 말을 어렵게 비틀어서 쓰거나 현학적인 표현을 남발하지 않는 편인데요. 표현이 미려하고 문장의 하중(荷重)이 무겁다고 해서 무조건 깊이 있는 글이 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편하게 읽히면서도 중량감 있는 메시지를 드러내는 게 중요하죠. 머리를 물들이는 생각과 마음의 밑바닥에서 들끓는 감정을 장황하게 나열하기보다 간결하게 표현하기 위해 노력해요. 단, 쉽게 쓰기 위해 수없이 고민해요.

 

예스24 종합 베스트셀러 4주째 1위입니다. 신간 도서가 아닌 책이 뒷심으로 1위를 하는 경우가 흔치 않은데요. 저자로서 소감이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슬쩍 샛길로 빠져서 제 생각과 마음을 전하고 싶어요. 우리말에는 시옷으로 시작하는 단어 중에 아름다운 단어가 많습니다. '사랑', '숨결', '숲'이 그렇죠. 특히 전 숲이라는 낱말을 발음할 때마다 숲을 걷고 있는 상상에 잠기곤 해요. "숲~"에선 바람 소리가 들려요. 거기에는 나무의 이파리와 이파리가 부대끼며 서걱거리는 소리가 배어 있어요. ‘숲’이라는 명사가 이러할진대 온갖 나무가 무성하게 우거진 진짜 숲은 오죽할까요. 어쩌면 숲은 다리로 건너가야 하는 공간이 아니라, 시각과 청각 촉각 등 오감을 총동원해서 지나가야 하는 공간인지 모릅니다.

 

책이라는 숲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어요. 한 권의 책은 수십만 개의 활자로 이루어진 숲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자음과 모음으로 우거진 숲을 우사인 볼트처럼 쏜살같이 내달리기보다 최대한 느릿한 걸음으로 거닐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제 바람과 진심이 전달됐는지, 『언어의 온도』라는 작은 숲을 자기만의 리듬으로 산책하는 분이 갈수록 늘고 있는 듯해요. 정말 감사한 일이죠.

 

『언어의 온도』‘책 속 구절’이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 많이 회자되고 있습니다. 혹시 기억에 남는 독자나 리뷰가 있으신가요?

 

세월이 흐를수록 입 밖으로 꺼내고 싶지만 쉽게 꺼내지 못하는 말이 늘어만 갑니다. 자꾸만 말을 삼키게 되죠. 다만 삼켜버린 말이 그냥 사라지거나 흩어지는 건 아닌 듯해요. 마음 한구석을 정처 없이 배회하는 느낌입니다. 숨이 붙어 있는 말이기에, 다시 밖으로 꺼내는 것도 가능할 테죠.

 

마음의 언저리에서 안쪽으로 욱여넣었던 언어를 슬며시 불러내서 차곡차곡 쌓으면 꽤 압축적인 문장이 됩니다. 그 문장을 조합해 문단을 구성한 다음 문단을 쌓아서 한편의 글을 축조하고 다시 그걸 책으로 엮을 수도 있습니다. 말을 아껴서 책을 만드는 셈이죠. 『언어의 온도』를 쓰면서 ‘그냥’의 함의에 대해 적은 글귀가 있어요. 이것도 위와 같은 발효와 숙성을 거쳐 태어난 문장입니다.


"'그냥'이란 말은 대개 별다른 이유가 없다는 걸 의미하지만, 굳이 이유를 대지 않아도 될 만큼 충분히 소중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후자의 의미로 그냥이라고 입을 여는 순간 ‘그냥’은 정말이지 ‘그냥’이 아니다." 이 문장에 공감해주시는 분들이 많더군요. 저와 감정의 주파수가 비슷한 분들이라고 할까요.

 

평소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에서 『언어의 온도』에 대한 리뷰를 자주 찾아보곤 하는데요. 몇몇 리뷰에서 "책 제목이 흰색이면 더 예쁠 텐데"하는 내용을 봤습니다. “제목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의견도 있었죠. 이후 독자들의 말씀이 제 마음의 비탈길에서 눈송이가 되었고, 또르르 굴러 내려가면서 점점 눈덩이처럼 불어났어요. 그래서 표지를 조금 수정했습니다. 제목을 은색에서 흰색으로 바꿨습니다.

 

책 판형이 작고 가볍고 예쁩니다. 책을 디자인할 때,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으신지요?

 

오르한 파묵의 책을 읽다가 이런 글귀를 봤어요. '독서 무용론'을 제기하는 이들에게 어퍼컷을 날리는 문장이라고 생각해요. "당신 주머니나 가방에 책을 넣고 다니는 것은, 특히 불행한 시기에, 당신을 행복하게 해줄 다른 세계를 넣고 다니는 것을 의미한다."

 

『언어의 온도』를 가방에 넣고 다닐 만한 책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작고 가볍지만, 틈틈이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책이라면 금상첨화가 아닐까 싶었죠. 판형과 내지에 대한 고민을 거듭했어요. 디자인 회사에 자문한 뒤 실마리를 찾았습니다. 종이책의 아날로그적 물성(物性)을 살리기 위해 장식적인 요소를 최대한 들어내기로 했죠. 덧셈이 아닌 뺄셈 방식으로 접근했어요. 제 선택과 포기에 도움을 주신 디자인 회사 관계자 여러분, 특히 박은영 대표님과 박가예 실장님께 감사를 드리고 싶어요.

 

요즘 출판사에서 일하는 분들이 베스트셀러의 이유를 찾기 위해, 작가님의 책을 사서 읽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자이기도 하지만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으신데요. 출판인으로서 생각하는 베스트셀러의 조건이 있을까요? 또 좋은 책은 어떤 책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글쎄요. 전 아직 이런 질문에 감히 답할 수가 없습니다. 질문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럴 만한 깜냥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말을 아끼고 싶습니다. 책도, 작가도, 서점도, 출판이라는 영역도 그리 간단하지 않으니까요.

 

다만 좋은 책은 '정서적 윤활유’를 제공한다고, 조심스레 이야기하고 싶어요. 군 시절 전방 지역에 근무하면서 소나무를 우러러볼 때가 많았어요. 추위 속에서 제 색깔을 유지하는 게 신기했거든요. 그런데 생각보다 이유가 간단하더군요. 기온이 내려가면 소나무는 프롤린과 베타인이라는 물질을 스스로 분비한다고 해요. 일종의 자체 윤활유인 셈인데, 덕분에 한겨울에도 세포가 굳지 않고 초록빛을 유지할 수 있어요. 우리가 독서를 통해 얻는 깨달음도 일종의 정서적 윤활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독서의 효용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게 없죠. 더 깊고 유연한 삶을 살도록 도와준다는 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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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 후, 전국 일주를 하면서 주요 서점 탐방


경제지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해 지금은 작가, 출판인으로 활동하고 계세요. 그간의 사회 경험이 출판을 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됐을 것 같은데요.

 

토마스 매카시 감독의 영화 <스포트라이트>를 보면, 베테랑 기자들이 아동 성추행 사건의 이면을 파헤치기 위해 한 발 한 발 전진하며 취재 방향을 넓혀 나가요. 기자는 묻고 기록하는 사람이죠. 미심쩍은 사건과 현상 앞에서 송곳처럼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며 취재하고 그걸 기록해야 해요.

 

기자가 수행하는 업무는, 송나라 시대의 문인 구양수가 글 잘 짓는 방법으로 꼽은 ‘삼다(三多)’와 일정 부분 맥이 닿아 있어요. 그 유명한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이죠. 읽고 쓰고 생각하는 행위를 반복해야 글쓰기 기초 체력을 기를 수 있다는 건데요. 언론인으로 살아가면서 위 세 가지를 꾸준히 실천했던 것 같아요. 그때 몸에 밴 습관이 글을 쓰고 책을 기획할 때 적잖이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다만 저는 특정한 경험이 어떤 일을 하는 데 아주 큰 도움이 된다, 라고 도식적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어차피 경험대로,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게 인생이잖아요. 남보다 특별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아 나가는 게 삶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인생은 '자전거 타기'와 달라요. 자전거 타는 법은 한 번 제대로 배우기만 하면 됩니다. 오랜만에 안장에 앉더라도 페달에 발을 얹고 적당히 힘을 주기만 하면 그리 어렵지 않게 자전거를 밀고 나아갈 수 있어요. 내가, 아니 자전거가 땅을 밟기만 하면 정겨운 바람이 옆으로 따라붙고 길과 사람은 어느새 하나가 되죠. 그러나 자전거에서 내려오는 순간, 마음을 베이는 듯한 통증을 절감하며 서늘한 진리 하나를 깨닫게 되죠. 인생은 자전거 타는 법과 다르다는 것을, 아무리 피나는 훈련을 하고 수없이 넘어져도 좀체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 넘쳐난다는 것을. 그저 우리는 삶의 번민과 슬픔을 가슴 한편에 적당히 절여둔 채, 살아온 날들의 동력으로 페달을 굴리며 꾸역꾸역 전진하는 것뿐이죠. 저 역시 저만의 페달을 밟으면서 인생과 출판을 공부하고 있어요. 도착지 없는 여정일 거라고 생각해요. 평생 페달을 밟아 나가야죠.

 

출판사를 만들어 처음으로 펴낸 책이 『언어의 온도』입니다. 직접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혼자 글을 쓰고 교열하고 편집과 발행까지 하면서 진이 빠지는 일이 허다했어요. 책을 알리는 일도 녹록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서 밀려오는 어둠을 받아들일 수는 없었어요. 우리는 어떤 일에 실패했다는 사실보다, 무언가 시도하지 않았거나 스스로 솔직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더 깊은 무력감에 빠지곤 하잖아요. 밤새 뒤채였어요. 고민했어요. 결국 『언어의 온도』를 출간한 후 혼자 전국 일주를 하면서 주요 서점을 탐방했어요. 총 넉 달이 걸렸어요.

 

책을 들고 서점을 찾는 일은 제게 일종의 순례(巡禮) 행위입니다. 제 책이 머무는 곳을 답사하면서 책의 운명을 가늠하기도 해요. 서점을 방문할 때마다 문학 분야 MD님들과 관계자 분들이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을 많이 해주셨어요. 서점이라는 숭고한 공간에서 귓속으로 스며든 말들은, 그냥 흩어지지 않고 제 가슴에 눌러앉았어요. 정말 크고 깊은 도움이 됐어요.

 

전 여전히 활자의 힘을 믿어요. 책의 가치를 신뢰해요. 종이책의 낱장을 넘길 때 솟아나는 사각거림, 종이와 손이 맞닿을 때 전해지는 미묘한 감촉을 편애해요. 거기서 도저히 벗어날 수가 없어요. 그리고 활자의 집합체인 책을 끌어안은 채 단어와 문장을 더듬거리며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존재에 대한 믿음이 여전해요. 무엇보다 독자 분들의 관심과 응원이 제게 번져올 때마다 몸과 마음을 추스르곤 했어요. 책과 사람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무너지지 않았던 것 같아요.

 

특별히 어떤 독자에게 『언어의 온도』를 추천하고 싶으신지요?

 

잠시나마 삶의 공백(空白)이 필요한 분이 읽어주셨으면 해요. 세상이 변해도 너무 빨리 변해요. 하룻밤 자고 일어나면 다음 날이 낯설기까지 해요. 심지어 옳음과 그름의 기준도 시시각각 달라져요.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턱까지 오른 숨을 참아가며 뛰다 보니, 스스로 “타임 푸어(time poor)”라고 외치는 분들도 많아요. 다들 시간이 부족해요. 현실이 그래요.

 

다만 사람에 치이고 삶에 지칠수록 자기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꼭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정말 이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무언가 소중한 걸 잊고 산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을 때 우린 마침표 대신 쉼표를 찍어야 하는지 몰라요. 공백을 갖는다는 건 스스로 멈출 수 있다는 걸 의미하죠. 제 힘으로 멈출 수 있다면 홀로 나아가는 것도 가능할 겁니다.

 

그러니 가끔은 멈춰야 해요. 억지로 끌려가는 삶이 힘겨울수록, 누군가에게 얹혀가는 삶이 버거울수록 우린 더욱 그래야 하는지 몰라요. 물론 각자의 방법으로요. 공백을 만드는 데 정해진 매뉴얼이나 법칙 같은 게 있을 리 없죠. 『언어의 온도』를 펼쳐 드는 순간, 누군가의 일상에 작은 여백이 생겼으면 해요. 제 책의 페이지를 넘기시면서 점심(點心), 그러니까 마음에 점 하나를 찍으셨으면 해요. 그러면서 잠시나마 삶을 돌아보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글을 잘 쓰고 싶어 하는 독자들에게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점을 두 가지만 꼽아주신다면요?

 

어려운 질문이네요. 저도 늘 고민하는 문제입니다. 글쎄요. 전에는 '이런 문장을 써야지'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문장이 ‘나’를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쓰는 일' 못지않게 '사는 일'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잘 쓰기 전에 살아야죠. 우답(愚答)이군요.(웃음)

 

글쓰기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용기라고 생각해요. 한 편의 글을 완성하는 과정은 글을 고치는 행위의 연속이죠. 작가라고 해서 무조건 일필휘지로 글을 써 내려가는 건 아닙니다. 글쓰기를 업으로 삼는 사람일수록 문장을 수정하는 데 공을 들이죠. 한마디로, 라이팅은 리라이팅(Writing is rewriting)이죠.

 

문제는 한 편의 글을 써 내려가는 여정에서, 다리가 꼬여 바닥을 뒹굴거나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사실이죠. 아무리 머리털을 쥐어뜯어도 참신한 단어와 문장이 떠오르지 않을 때가 있어요. 모니터가 매의 눈으로 째려보는 날이 있어요. 그런 날이면 들숨과 날숨보다 종일 한숨을 더 많이 토해내야 해요. 두려움 때문에 감히 펜을 들지 못하죠.

 

그러나 용기를 낸다는 것은 두려움을 완벽하게 이겨내는 게 아니라 그 농도를 묽게 희석하는 건지도 몰라요. 두려움을 완벽하게 지울 수 있는 사람은 없을걸요. 두려움보다 더 소중한 것으로 머리와 가슴을 채울 뿐이죠. 전에 신영복 선생님의 글을 읽다가 눈에 들어온 글귀가 있어요. 최근에 YES24의 김도훈 MD님 덕분에 제 기억 속에서 가물거리던 신영복 선생님의 문장을 다시 끄집어냈는데요. 이런 내용입니다. "큰 슬픔을 견디기 위해서 반드시 그만한 크기의 기쁨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작은 기쁨 하나가 큰 슬픔을 견디게 합니다.”

 

글쓰기 감각과 능력을 키우는 것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네요. 작은 용기로 큰 두려움을 연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약간의 용기를 내면 아무도 밟지 않은 하얀 여백 위에서 마음껏 뛰놀 수 있어요. 안 가본 길에 들어선다고 해서 흔들릴 이유도 없습니다. 낯선 길로 들어서면 그때 비로소 새로운 풍경이 눈에 들어올 테니까요.

 

후속작을 쓰고 계신지요? 앞으로의 계획을 말씀해주세요.

 

최근 인문 분야 신간을 준비하고 있어요. 말과 사람에 대한 고민을 책으로 엮고 있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제가 글을 쓰고 책을 낼 수 있는 건 독자 분들 덕분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해야 할 일도 명백해요. 독자 분들이 차분히 거닐기 좋은 ‘활자의 숲’을 제 방식으로 조성하는 것뿐입니다. 비옥한 땅에는 잎이 무성한 나무를 심고, 바람만 닿을 수 있는 벼랑 끝에는 동백꽃을 심고, 물이 없는 곳에는 맑은 계곡물을 끌어들여 연못을 만들까 해요.

 

부지런히 고민하고 옹골지게 준비할게요. 제가 만들어놓는 숲에서는 길을 잃고 헤매도 괜찮습니다. 겨울을 견디며 봄의 꽃망울을 품어도 좋습니다. 후드득 지는 동백꽃 앞에서 시린 기억을 불러내 서럽게 울어도 괜찮아요. 앞으로도, 의미 있는 활자의 숲을 조성해 나갈게요. 산책하듯 거닐어주세요.

 

『언어의 온도』를 아끼는 독자 분들께 자유롭게 한 마디를 남기신다면요.

 

정말 자유롭게 얘기할게요. 얼마 전 집 근처 커피숍에서 커피를 연료 삼아 글을 써 내려가다가 노트북을 닫고 밖을 나섰어요. 봄 햇살을 온몸에 바르고 싶었어요. 봄바람의 흥얼거림을 듣고 싶었다고 할까요. 봄이잖아요.(웃음)

 

입구 쪽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불쑥 들여다봤는데요. 한 생애를 다 겪은 것 같은 메마른 얼굴 하나가 저를 쳐다보고 있더군요. 문득 '거울을 보는 행위'에 대해 생각했어요. 다들 매일 거울을 봐요. 옷매무시를 고치고 얼굴을 치장하기 위해서만 거울을 보는 게 아닐 테죠. 얼굴에 남아 있는 비극을 은연중에 지우고 싶어서, 아니면 얼굴에 남아 있는 희극을 더듬으며 덩실덩실 춤을 추고 싶은 마음에 거울을 응시하는 게 아닐까요. 자신을 돌보기 위해, 자신을 응원하기 위해, 자신을 용서하기 위해, 혹은 자신을 미워하지 않기 위해 거울을 보는 건지도 몰라요.

 

인생은 친절하지 않아요. 하루에도 몇 번씩 우리에게 슬픔과 좌절을 강요하죠. 다만 저는 삶이 버겁거나 제가 느끼는 죄책감이 비겁함으로 둔갑하려는 순간마다, 영화 <굿 윌 헌팅>에서 로빈 윌리엄스가 들려준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대사를 나직하게 읊곤 해요. 그러면서 하릴없이 되뇝니다. “살면서 내가 진정으로 용서해야 하는 대상은 남이 아니라 나인지 몰라….” 인생을 살면서 우린 늘 무언가를 다시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새로 시작하기 위해서는 ‘나’를 용서할 줄 알아야 합니다. 여전히 많은 것이 가능해요. 여전히.

 


 

 

언어의 온도 이기주 저 | 말글터
『언어의 온도』는 저자가 일상에서 발견한 의미 있는 말과 글, 단어의 어원과 유래, 그런 언어가 지닌 소중함과 절실함을 농밀하게 담아낸 책이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문장과 문장에 호흡을 불어넣으며 적당히 뜨거운 음식을 먹듯 찬찬히 곱씹어 읽다 보면, 각자의 ‘언어 온도’를 되짚어볼 수 있을지 모른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산울림’ 김창훈 “앞으로의 삶을 더 음악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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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록의 전설 '산울림' 하면 대부분은 먼저 3형제의 맏인 김창완을 떠올린다. 산울림의 숱한 명곡들을 써냈고 팀의 간판이자 정신적 기둥이라는 점에서 그러한 연상은 정당하다. 하지만 1970년대 록 수요자들은 둘째 김창훈의 지분도 만만치 않았음을 기억한다. 베이스기타를 맡았고 좋은 곡을 썼으며 때로 록 성향이 짙은 노래를 목청껏 질렀던 '또 하나의 축'이었다. 다시 청춘음악의 흐름을 록으로 돌리는데 기여한 1977년 대학가요제 대상 수상 곡 샌드페블스의 「나 어떡해」부터가 창완 아닌 창훈이 썼다.

 

산울림 2집에 실린 사이키데릭의 극치 '이 기쁨'과 3집의 명작 「내 마음(내 마음은 황무지)」을 위시해서 애청곡인 「회상」, 「독백」, 「소낙비」, 「산할아버지」 등이 모두 창훈 오선지의 결과물이다. 덜 알려지긴 했지만 산울림 5집의 「오솔길」, 「봄」, '포도밭으로 가요', '무녀도'로 이어지는 연작은 그의 표현 컬러가 얼마나 변화무쌍하고 재기에 넘치는 가를 증명한다. 댄스 여가수 레전드 김완선의 오늘을 있게 한 곡 '오늘 밤'과 '나 홀로 뜰 앞에서'가 김창훈 작곡과 프로듀싱이 가져온 개가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미국에서 사업을 하던 때인 1992년에 첫 개인 앨범을 냈고 막내 김창익의 사망에 따른 산울림 해체 직후 2집(2009)을 발표한데 이어 3집 <행복이 보낸 편지>(2012) 그리고 지난해 10월 4집 <호접몽>등 성실하게 솔로활동에 임하고 있다. <호접몽>은 빼어난 곡 질감으로 찬사를 받았다. 의욕 충천한 그는 본격적으로 록의 영토를 찾기 위해 밴드 '블랙스톤즈'를 결성했다. 3월에는 새 밴드와 함께 첫 콘서트를 갖기도 했다. 왜 밴드를 만들었느냐는 질문에 그는 “본능 때문”이라고 답했다. 인터뷰 내내 겸손을 잃지 않았지만 음악에 대한 의지를 전하는 대목에서는 톤이 꽤 올라갔다.

 

지난해 하반기에 5년 만에 네 번째 앨범 <호접몽>을 발표했습니다. 다분히 록적이었던 전작에 비해 템포를 많이 조절하지 않았나 생각이 드는데요.


그 전에 디스코그래피를 설명 드려야겠네요. 2009년 2집 <The Love>는 우리 막내가 갑자기 그렇게 된 후 음악에 대한 조급함, 창작에 대한 갈구, 나에 대한 치유 등의 감정이 뒤섞인 앨범이라고 할 수 있죠. 미국 아티스트들과 엮은 1992년 독집 첫 앨범의 미흡했던 점을 보완하기 위해 한국 뮤지션들과 작업을 했죠. 하지만 그때 제가 미국에서 사업을 했던 관계로 한국에서 음악작업을 하는 게 한계가 있다 보니 3집 <행복이 보낸 편지>는 다시 미국 뮤지션들과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사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낸 앨범이었습니다.

 

왜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나요.


첫 앨범이 하비(hobby), 취미라는 개념에서 냈다면 <The Love>앨범은 여러 가지 사고를 겪은 후에 그리고 당시 제 역량을 충분히 쏟아 부어 프로페셔널하게 만든 앨범인데 음악 시류도 바뀌고, 제가 (한국에) 와서 활동할 수 있는 여건도 아니다 보니 나름 좌절이 생겼죠. 그럼에도 팬클럽인 '산매(산울림 매니아)'로부터 신곡에 대한 니즈(요구)가 계속 올라왔어요. 다시 창작에 대한 욕구가 생겼죠. 하지만 제작비 부담이 만만치 않았죠. 여기서 산매(산울림 매니아)의 도움과 주문이 있었습니다. 끝이라는 생각으로 임했습니다.

 

팬들이 어떤 주문을 하던가요. 좀 전에 얘기 드린 것처럼 3집 <행복이 보낸 편지>는 산울림 전성기 때 「내 마음(내 마음은 황무지)」와 같은 곡에서 더러 구사한 그로울링(growling) 보컬이 등장할 만큼 록 성향이 강하던데요. '난난 여기, 넌넌 저기'라는 곡은 싱글로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좀 강력한 음악을 해 달라!, 록을!!” 그런 주문이었죠. (당시 K팝 시장이 댄스음악으로 굳어지던 때라 더 그런 것 아니었겠느냐 하자) 그랬겠네요. 어쨌든 과거에 했던, 조금 전 얘기한 「내 마음(내 마음은 황무지)」와 같은 헤비 록 스타일의 곡을 갈구하더라고요. 거기에 포커스를 맞춘 점이 있지요.

 

그래도 미진한 구석이 있었나 봅니다.


아쉬움이 있었어요. 충분히 시간적으로, 더 숙성을 시키고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밴드적인 요소가 아쉬웠죠. 그러니까 곡 자체가 록적인데 밴드의 하모니가 완벽하지 않았다는 느낌이랄까요. 그리고 또 시간이 간 거죠. 제가 그래요. 지쳤다가도 3, 4년 지나면 뭔가 꿈틀꿈틀 다시 곡이 나오더라고요. 다시 안하려고 했던 앨범 작업인데 <호접몽>앨범을 구상하게 됐죠. 결정적 계기는 창완형과 식사 자리였어요. 2016년 설 때 창완이 형과 밥을 먹는데 뜬금없이 “이제는 곡을 많이 써가지고 발표를 했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왜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 나이가 들어가니 더 정력적으로 음악을 하자는 얘기?


그런 것도 있을 것 같고. 외로움이 있었을 지도 모르겠고, 음악적으로 '김창완밴드'를 꾸리고 있지만 뭔가 아쉬운 부분이 있었다든가. 아니면 내가 주변에서 휘젓기를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점도 있을 겁니다. 산울림 음악의 어쨌든 한 축이니 그걸 계속 해주길 바랐나 싶기도 하고. 아무튼 그게 제게 굉장히 큰 자극이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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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석동」 싱글은 지난해 초에 공개되었지요.


첫 싱글을 내면서 팬들에게 어떻게 약속을 했냐면 “매달 싱글을 하나씩 내서 그게 쌓이면 2016년 말에 정규 4집을 내겠다!”고 했어요. 그래서 두 번째 싱글 '어머니'까지 냈는데, 그 다음 싱글을 준비하며 데모 버전을 레이블 <미러볼뮤직>의 이창희 대표에게 들려줬는데, 너무 깜짝 놀라는 거예요. “싱글로 찔끔찔끔 내는 거보다 빨리 모아서 앨범으로 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이렇게. (어떤 곡이었냐고 묻자) 「절규」였습니다.

 

들어보니 「4월의 눈물」과 「절규」가 옛날 (김창훈) 록을 즐겼던 사람이라면 확 꽂힐만한 곡이던데요.

 

「사운즈 오브 러브」에도 깜짝 놀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 곡이 앨범 타이틀이죠? 「사운즈 오브 러브」보다 전 「커피마니아」에 끌렸습니다.


네. 저도 원래 「커피마니아」를 생각했는데 그쪽에서 모니터를 하면서 「사운즈 오브 러브」를 골랐고 타이틀곡이 둘이어도 된다고 해서 더블 타이틀이 됐죠. 「사운즈 오브 러브」와 「커피마니아」. 그렇게 정규 앨범이 된 거예요.

 

전작과 지향점에서 차이가 있다면.


크게 세 가지가 있어요. 3집 때는 제가 (기업에서) 풀 타이머로 일을 하고 있을 때예요. 그런데 이번 <호접몽>은 프리랜서가 돼서 시간적으로 굉장히 자유로운, 따지고 보면 40년 만에 제일 자유로운 상태에서 쓸 수 있었어요. 제목이 된 「호접몽」이라는 곡도, 제가 자다가 일어나서 썼으니까요. 새벽 한시인가 두시인가 됐는데, 예전 같으면 내일 출근해야 되기 때문에 그렇게 못하지(웃음). 일어나서 서너 시간 작업했던 것 같아요. 시간적으로 어떤 것이 딱 포착이 되었을 때 내일을 생각하지 않고 올인할 수 있잖아요. 그게 3집과 큰 차이였죠. 두 번째로는 녹음 방식을 바꿨다는 것. 3집의 아쉬웠던 점을 메우기 위해 미국에서 밴드를 결성해 그들에게 미리 데모를 들려주고 녹음실에서 제가 노래를 부르면서 바로 녹음에 들어간 거죠. 세 번째는 주제 면인데요, 그간 다루지 않았던 것들을 다루고 싶었고, 그러다 보니 또 자연히 장르 면에서 다양함을 얻을 수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작업을 하면서 떼려야 뗄 수 없을 것 같은 '산울림 코드'를 지키려고 하나요, 아니면 완전 별개인 '창훈음악'에 집중하려 하나요? 왜냐면 그 두 가지가 모두 있는 것 같아서요.


어느 한 쪽으로 단정 짓기는 어렵죠. 말씀하신 대로 두 가지가 다 있다고 봐야겠죠. 산울림이 표현하지 못했다든가, 산울림이 당시 다루지 못했던 것들, 표현의 한계나 주제의 한계, 그런 것들에 대한 아쉬움을 해결하는 부분이 하나 있고, 또 하나는 지금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산울림이라는 백그라운드와 이미지가 있기 때문에, 완전히 동떨어지기에는 태생적 한계가 있잖아요. '산매'라는 팬들이 있고. 그걸 배제하는 것은 어렵잖아요.

 

죄송한 말씀이지만 「코엑스 러브」와 같은 곡에서 보면, 형 창완과 음색이 비슷한 게 있더라고요. 쉬 구분이 안 되는 거예요. 김창완밴드가 낸 앨범인가 착각할 때가 있어요. 산울림 활동 때 김창훈씨가 노래했을 때, 그 땐 완전히 달랐습니다.


아주 거칠게 가거나 천진난만하게 가는 부분이 공존했죠. 여기서 제게 숙제를 던져주시네요 하하하. (이 대목에서 밴드 '블랙스톤즈'가 인터뷰 장소에 도착했다)

 

신보는 젊은 뮤지션의 앨범과 다르게 '어른답게' 자신의 욕망, 갈증, 갈망, 약간의 서운함 등등 여러 자신의 감정들이 어떤 울타리 속에서 꾸려낸 것 아닌가, 그렇게 규정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거짓말하지 않는, 누군가 말대로 '엮지' 않은 리얼 앨범이라고 봅니다. 1차 관객인 블랙스톤즈 멤버들에게 묻습니다.


김태일 : 좋았어요. 잘 만든 앨범.


나성호 : 「절규」를 듣고 밴드에 합류할 결심을 했죠. 뭔가 더 좋은 곡들이 나올 수 있겠다, 새로운 음반을 할 때 뭔가 제대로 된 걸 내볼 수 있겠다, 그런 생각.


유병열 : 자연스러운 앨범이라고 느꼈어요. 요즘 나오는 음악들이 워낙 가공도 많이 하고 자르기도 많이 하고. 그런데 딱 들으니 '원 테이크'더라고요. 최고 미국 세션 맨도 아니고 우리 정서랑 다른 게 있는데도 좋더라고요. 내추럴 느낌?

 

록 연주에 관한 한 유병열(기타), 나성호(드럼), 김태일(베이스)은 말 그대로 베테랑이다. 각 악기에 관한 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사람들이다. 안치환의 밴드 '자유' 그리고 윤도현밴드 출신 유병열이 주도한 밴드 '비갠후' 등을 거치며 이력을 축적, 많은 제자와 후배를 거느리고 있다. 공연에는 이들의 연주를 보려고 찾아오는 악기지망생들도 많다. 김창훈이 이런 굵직한 경력의 멤버들과 손잡았다는 것 자체가 부담을 넘어서는 그의 의욕을 말해준다. 그는 “최소 10년은 흔들림 없이 간다”고 강조했다.

 

1, 2, 3, 4집 다 록밴드 세션들과 함께 했고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아예 팀을 새로 결성했습니다. 근데 멤버들이 다루기 쉽지 않은 베테랑들입니다. 록이 대세인 시절도 아니고.... 참 어려운 결정이라고 보이는데요. 그렇게 밴드에 집착하고 고집하는 이유가 뭔가요.


본능일 겁니다. 산울림으로 시작했고 밴드가 하나의 DNA이기 때문에 밴드 외에는 생각을 잘 해보지 않은 거죠. 그리고 본능 외에 부언을 드리면, 우리나라도 좀, 밴드다운 밴드가, 오래가는 밴드가 있어야 한다는 아쉬움이 있잖아요. 그런 것에 대한 어떤 막연한, 막연하지만 또 현실이 그렇게 넉넉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시도는 해야 되는 것 아니겠어요. 제가 하고 싶은 얘기, 또 아우들도 하고 싶은 얘기를 자유롭고 풍요롭게 펼칠 수 있는 장이 필요했지요.

 

이번 싱글 「독백」이 블랙스톤즈와의 첫 작업이 되는 거죠.


그렇죠. 질문을 하시겠습니다만 제가 이 곡 녹음을 하면서 우리 아우들의 음악적 역량, 감성, 이게 매우 섬세하고, 또 제가 원하는 수준 이상으로 잘 표현해줬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왜 옛날 산울림 7집 수록곡인 「독백」을 선택했나요, 대중적 친화력 때문에?


사실 (밴드와의) 싱글보다 공연 일정이 먼저 확정이 됐어요. 3월 3일부터 5일까지. 밴드는 작년 10월에 결성이 됐구요. 그러면서 여러 곡을 블랙스톤즈 식으로 다시 만드는 작업을 시작한 거죠. 곡을 좀 더 익히고, 숙성을 시킨다는 계획으로 2017년 하반기에나 싱글을 내지 않겠나 생각을 했는데, 편곡 수준이 만족한 수준에 오르고, 더 시간을 끈다고 크게 달라질 것 같지가 않아서, 그리고 공연 즈음에 맞춰서 싱글을 내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발표하게 된 거예요. 근데 공연하면서 열 몇 곡 레퍼토리를 올렸는데 그 중 멤버들이 뽑았던 곡이 「독백」이에요. 거의 만장일치였죠. 산울림 곡을 공연에 올리는데 그게 싱글이 된 것뿐입니다. 마니아층에게는 알려진 곡이지만 젊은 층은 모르는 곡이라는 점도 작용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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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호접몽>앨범 얘기로 돌아가 어떤 곡이 본인 마음에 들던가요.


제 나이나 경력이나 그런 데에 어울리는 테마나 곡은 사실 「호접몽」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앨범 명일 수밖에요. 곡을 쓰면서 마음이 편해졌어요. 그게 비교적 이후에 나온 곡이거든요. 어찌 보면 최신곡이랄 수 있는데, 앨범의 전체적인 균형이나 조화가 그 곡으로 인해서 잘 정리되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아이디어 전개에 있어서 표현이 쉽지 않았습니다. 또 애착이 가는 건 「코엑스 러브」죠. 리듬, 코드 전개 그런 것들이 맘에 들었죠. 제가 원했던 건 간단한 것 같지만 듣기는 어려운 코드! 그 곡이 코드가 네 개인가 밖에 안 되거든요. 근데 그게 묘하게 배열이 되면서 자연스러우면서 다양한 느낌이 나왔어요. 또 하나는 라이브 했을 때 비틀스 「Hey Jude」같이 뒷부분에 관중과 호흡을 할 수 있는 곡은 없을까 했는데 「코엑스 러브」 후반부가 그렇죠.

 

「코엑스 러브」도 그렇고, 「커피 마니아」 후반부를 들으면 아직 피치가 살아있습니다.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청년의 아우성이 여전하던데요.


고맙습니다. 칭찬을 해주시지만 앞으로 더욱 개선하고 극복해 나가야 할 요소로 생각해요.

 

아까도 말씀드렸습니다만 3집 <행복이 보낸 편지>수록곡인 「부메랑」과 '알리바이'는 그로울링 요소가 두드러졌는데 <호접몽>에서는 싹 후퇴했습니다.


아, 그 보컬 관련해서는… 그로울링을 끝까지 하는 것은 저도 부담스럽고, 관객들도 부담스러운 것 아닌가 하는 반성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걸 전(全)곡으로 구성하는 것보다는 부분, 부분 배치하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절규」라든가 「커피 마니아」 등은 노멀(일반적인) 보컬과 그렇지 않은 것을 섞어서 하는 방식으로 나온 거죠.

 

이번 앨범을 정의하신다면.


글쎄요. 아쉬움이 덜한 앨범? 그동안 앨범을 내면 항상 아쉬움이 남았거든요. 그러다 보니 앨범이 나온 뒤 잘 안 듣게 돼요. 하지만 이번 <호접몽>앨범은 늘 차에서 틀어놓고 들을 정도로 아쉬움이 들지 않아요. 또 이번 앨범을 통해서 아우들과 '블랙스톤즈'를 결성하게 되었잖아요. 블랙스톤즈를 만든 앨범이기 때문에 굉장히 각별한 앨범이기도 합니다.

 

블랙스톤즈 멤버들은 어떻게 연결이 된 건지.


4집이 작년 10월에 나오면서 주변의 제안 내지는 교감으로 밴드를 결성해보자는 의견이 툭툭 던져졌어요. 그러면서 미러볼뮤직의 주선으로 우리 큰 아우(유병열을 이렇게 불렀고 멤버들은 아우라고 했다)랑 컨택이 됐고 큰 아우가 아우들을 규합했죠.

 

지금까지 본인이 쓴 곡 가운데 기억나는 곡은요? 검색하면 나오겠지만 직접 듣고 싶습니다.


많이 알려진 것 중 하나가 「나 어떡해」, 그리고 「회상」, 창완 형이 독집 앨범 <기타가 있는 수필>에서 부른 '초야'가 기억나고... 이번에 발표한 「독백」, 김완선이 부른 '오늘 밤', '나 홀로 뜰 앞에서', 그리고 「산할아버지」, 「내 마음(내 마음은 황무지)」를 꼽을 수 있겠네요. 「내 마음」은 원래 제목은 '황무지'인데, 그 당시는 심의를 받았잖아요. 들어보지도 않고 금지 때릴까 봐 '내 마음은'을 붙인 거예요.

 

형(김창완)과 비교해서 곡 만드는 것에 있어 어떤 차이가 있나요.


글쎄요. 그건 평론가의 몫으로 보는데요. 산울림 시절에는 형이 프론트맨이잖아요, 그러다 보니 저는 양념 같은 역할, 샐러드의 소스 같은 역할, 그런 역할을 했다면 개인 앨범에는 제가 표현하고 싶은 정서를 충분히 담았다고 할 수 있겠네요. 어떻게 보면 1~4집의 개인 앨범에 저만의 음악적 컬러가, 표현이, 개성이 더 잘 드러나 있지요.

 

블랙스톤즈는 그래서 김창훈의 개성을 부각하는, 새로운 음악 쪽으로 가야겠지요. 이 대목에서 기타리스트 병열 씨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유병열 : 저는 솔직히 뭐 형님을 '완전 새롭게' 그런 쪽으로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건 한계가 있다고 보구요, 몇 십 년을 쌓아온 창법이나 표현력을 단숨에 바꿀 수는 없단 말이죠. 그리고 형님이 가진 그 '늙지 않은' 톤이 있어요. 김창완 형님도 마찬가지고 그 산울림의 소년 같은 톤이 있잖아요. 그걸 최대한 살리면서, 편곡적인 것만 올드하지 않게 해야 한다고 봐요. 이런 생각도 들었어요. 우리나라 40대 이상의 음악, 어덜트 문화가 없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있어봤자 트로트 음악, 댄스 음악 이렇게 두 가지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어른들이 들을 수 있는 음악. 형이 그런 걸 하실 수 있지 않을까. 지금 40, 50대가 제일 할 게 없어요. 붕 떠 있는 문화잖아요 사실. 뭐가 없는. 그래서 올드한 정서도 흐르지만 구닥다리는 아닌, 현대적 요소를 넣은 것을 하고 싶습니다.

 

그 현대적인 요소, 그 모던함을 어떻게 사운드와 곡조로 담아내느냐가 관건이라고 보는데...


나성호 : 아직은 시작 단계인 것 같아요. 시도하는 단계.


김태일 : 근데 진짜 고민되는 부분이에요. 계속 고민하고 있습니다. 지금 얘기하신 게 그러니까 가장 어려우면서도 우리가 해야 하는 부분이라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블랙스톤즈와의 음반 계획은요


현재 앨범을 준비하고 있어요. 한창 준비 중인데, '0집'으로 나갑니다. 0집. 제로요. 0집으로 제목을 다는 것은 다 리메이크, 리믹스 넘버이기 때문입니다.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진 산울림과 제 곡을 블랙스톤즈가 재해석을 하는 거죠. 「독백」같이. 이걸 10곡정도 해서 0집으로 낼 거예요. 그리고 나서 비로소 1집을 만들 겁니다. 어제 제가 곡을 쓰기 시작했는데, 1집은 우리 블랙스톤즈 멤버들의 역량을 아니까, 그걸 충분히 극대화해서, 조화롭게 꾸밀 겁니다. 저도 최대한 자유분방하게 쓰려 하고. 제가 솔로로 발표했던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의, 아주 비정형적인, 틀이 없는 그런 음악, 그런 걸 지금 꿈꾸고 있어요.

 

'세대 간 소통'을 들먹이지만 소통은 안 되더라도 '동행'은 해야 될 것 같아요. 그런 앨범을 만들어주셨으면 합니다. 고통당하는 20대들에게 기성세대로서 최소한 미안함을 갖는 그런 성격의 앨범.


제목이 하나 딱 생각이 났는데, 좋게 잘 받아들이고 잘 구현해 보도록 하지요.

 

3월 초 공연에 대한 산매를 비롯해서 관객들의 인상은 어땠나요.


산매의 반응하고 우리 어머니의 반응하고 말씀을 드릴게요. 어머니가 토요일에 공연을 오셨는데, 밴드에 대해 걱정을 많이 하셨나 봐요. 이 밴드가 잘 될까. 88세이신데, 워낙 공연을 워낙 많이 다니시고 해서 뭔 연주 실수를 하고 이러면 다 아세요. 그런데 보시고 나서 한시름 놨다고 그러는 거예요. 첫 곡에 이미 안심을 했다는 거예요. 걱정이 한 번에 사라졌다면서 “둘째는 둘째다. 둘째의 컬러나 개성이 확실히 달랐다.” 아마도 '형과 비슷하면 어떡하지?'하는 우려가 있었나 봅니다. 블랙스톤즈와 김창완밴드를 사과와 오렌지 혹은 사과와 배처럼 같은 과일이지만 완전히 다른, 그렇게 말씀하셨죠. 그렇게 말씀을 하셨고. 산매는 이제 우리 밴드 멤버들에게, 멤버마다 굉장히 호감을 갖고. 또 저와 잘 조화가 된다고 해요. 본인들이 바라던 음악을 해주었다고 아주 기뻐했습니다. 반응이 뜨거웠어요.

 

태일 씨는 창훈형이 베이스를 연주하신 분이라서 부담은 없었나요.


김태일 : 시간이 조금 필요하구나(라고 생각했어요). 무대에서만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있잖아요. 내 마음을 적셔주는 부분이 더 많았으면 좋겠는데 아직은. 그래서 그게 좀 더 확장됐으면 좋겠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서로 대화도 하고 연습도 많이 하면서 이미지를 그려나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게 제 숙제인 것도 같아요. 전체적인 면에서, 개선되어야 할 부분이 많은 것 같아요.

 

창훈 형의 장점을 성호 씨가 말한다면.


나성호 : 가사에 있어 예를 들어 '보고 싶다' 같은 얘기 하나를 해도 다르게 표현을 하시거든요. 그걸 음악적으로 구현하는 게 우리의 가장 큰 숙제라고 생각해요. 아까 말씀하셨지만, 테크닉 좋고, 뭐 이렇게 녹음해서 가고, 뭐… 잘하는 사람들 많아요. 정말 잘하는 친구들 많죠. 그래서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선배님의 강점은 표현이 다르다는 겁니다. 좀 전에 말했듯이 같은 말을 해도. 우린 그걸 우리가 음악적으로 잘 그려내야 한다는 거죠. 어찌 보면 숙젠데요, 가장 중요한 문제 같아요.

 

밴드의 리더 격인 병열 씨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밴드에 임했는지.


유병열 : 저는 뭐 딴 거 없어요. 그냥 순수하게 접근했고요. 약간의 혼란스런 시점에 제가 어렸을 때 정말 힘들 때 통기타를 치면서 노래했던 곡이 「독백」이었어요. 그처럼 뭔가 좀 어루만져지는 느낌. 일단 맹목적이겠지만 계산적인 것 없이 그냥 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출발했죠. 이제 저도 나이를 먹었고 편안하게 연주하는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잘난 체 안 하고, 너무 테크닉적이지도 않은 그런 연주와 음악이랄까요. 제가 몇 개를 치지 않아도 함께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 그런 생각이 결성에 가장 크게 작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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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의 미래에 대해 한마디 하신다면


우리가 계속 해나가는데, 한글, 한국어가 갖고 있는 강점이 있다고 보거든요, 그래서 한글이 가진 한계가 어딘가 이런 생각도 하게 되는데, 그래서 우리 음악에서 한글 가사가 영어가 표현할 수 없는 아주 델리키트하면서 한글이 갖고 있는 어떤 장점들, 그런 것을 음악으로, 언어적으로 표현을 하고 싶습니다. 이게 하나의 샘플이 될지 모르겠지만 예를 들어 「코엑스 러브」에 '말을 더듬 더듬 더' 라는 가사가 있잖아요. 그게 사실은 어법으로, 문법적으로 맞지 않는 단어죠. 그렇지만 한글만이 표현할 수 있는 거라고도 보이거든요. 긴장을 하고 분위기가 위축되어 있는데 '더듬더듬'까지 말이 안 나올 거 아니잖아요. 언어가 완성이 안 되잖아요. 그래서 거기가 끊어지는 거거든요. 손이 떨리는데 뭐 딱 떨어지겠어요. 그런 불완전을 언어로 표현한 건데. 이런 언어에 대한 고민이 앞으로의 곡에 반영이 될 수 않을까 합니다.

 

그게 특기 아닌가요. 전공이신데. 이런 질문을 주변에서 해왔습니다. 형 김창완과는 달리 직장 생활을 오래 해왔는데, 생업과 음악 창작이라는 두 모습 간의 균형이랄까, 그런 걸 맞추는 데 어려움을 느낀 적은 없는지요. 그 두 가지가 분리되는 것인지 아니면 함께 뒤섞여 있는 것으로 느끼는지요.


굉장히 좋은 질문인데, 양쪽에 다 이방인적인 요소가 있어요. 직장생활을 하는 데 뮤지션이라는 백그라운드가 결코 도움이 되지 않아요. 우리 때는 딴따라라는 단어가 유행을 했고. 특히 사회생활, 그러니까 직장생활의 세계에서는 절대 이게 도움이 되는 게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같은 결과물을 내더라도 항상 사실을 삐딱하게 본단 말이지(웃음). 근데 하나의… 그러면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부분은, 그런 비판, 어떤 편견, 이런 것을 극복할 수 있는 비결은 그래도 대체적으로 창의적이란 시선이었죠. 그래서 직장생활 속에서도 그걸로 버텨 온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또 하나는 직장 생활을 했기 때문에, 제가 음악적으로는 채무가 많잖아요. 어떻게 보면 음악적으로 미완성적인, 이쪽도 완전치 않고 저쪽도 완전치 않은, 그런 것을 후반부에 제 나름대로 어떤 매듭과 완성을 시키고 싶은 그런 마음이 있어요. 그동안에 이제 양다리적인 그런 인생을 정리 하고, 보다 무대 중심 내지는 앞으로의 삶을 더 음악 중심으로 옮겨가는, 그런 전환점이 되도록 해야지요.

 

음악 중심이라는 것은 결국 뭘 하나 하더라도 행복해야 한다는 의미겠지요.


그래요. 3집 <행복이 보낸 편지>에도 그런 테마가 담겨있죠. 행복이 주변에 있는 거고, 우리 삶에 있는 건데. 그런 것들이 우리 음악을 통해서 저의 어떤 성찰과 사색이 대중과 폭넓게 호흡이 되면 더 좋겠죠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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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 블랙스톤즈. 왼쪽부터 김태일(베이스), 나성호(드럼), 김창훈(보컬), 유병열(기타)


사진 : 박수진
인터뷰 : 임진모, 정민재, 조진영
정리 : 임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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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솔지 “한 글자가 갖는 힘이 굉장히 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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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 종, 홈, 개, 못, 톡, 잠, 초. 손솔지 작가의 『휘』에 수록된 여덟 편의 소설 제목이다. 왜 한 글자인가. 그러나 이 질문은 왜 한 글자가 아니어야 하는가, 로 돌려줄 수 있다. 한 글자는 힘이 세다. 그 한 개의 글자는 그대로 어떤 세계이며 몸짓. 손솔지 작가는 “이 방법이 내가 재미있게 쓸 수 있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한 글자에서 파생되는 수많은 이야기를 상상하면서 울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삶은 고통스럽고 누구나 외롭다. 하지만 바로 그 이유로 사람들은 자신의 고통과 외로움을 선뜻 입 밖에 내지 않는다. 손솔지 작가는 그렇게 떠오르지 못하는 “평범한 우리들의 이야기”를 끌어올린다. 어린 아이의 목소리로, 개의 목소리로, 폭력에 신음하는 여성의 목소리로 “우리는 다 같이 억압되어 있는 현실”이라 말하며 그들에게 자유를 주려고 애쓴다. 마지막 장을 넘기자 아주 조금은, 떠오른 기분이 들었다.

 

빛은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저 그 은밀하고 그늘진 구석까지 지치지 않는 마음으로 비춰줄 뿐이다. 한순간 바람이 깊이 불어와 심지에 달라붙어 타오르던 불씨를 앗아간다. 그러나 이내 웅크리고 있던 몸을 펼치듯이 푸른 불꽃이 심지를 붙들고 일어선다. 또렷하게 진실을 바라보는 눈동자처럼, 절대로 꺼지지 않을 등대의 불빛처럼.(252쪽, 「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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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재미있게 쓸 수 있는 방식


수록된 단편들의 제목이 모두 한 글자로 되어 있어요. 이를 테면 한 글자 연작인데요. 한 글자로 소설을 써보겠다고 생각한 이유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제일 처음 쓴 소설이 「휘」예요. 등단 전이었는데요. 단편을 많이 써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쓰려니 막막했어요. 등단을 위한 소설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런 걸 쓰려고 하니까 방법을 모르겠더라고요. 시험을 위한 공부처럼 등단을 위한 소설을 써서 등단한들 그렇게 해서 얻는 게 뭘까 싶었어요. 그건 아니라고 생각했고, 소설을 위한 소설을 쓰기로 했죠. 그렇게 마음을 먹고 하얀 모니터 앞에 앉아 있는데 바람이 휘휘 불면서 창문을 톡톡 두드리는 거예요. 그때 우연찮게 어른들 말씀이 떠올랐어요. 이름에 무슨 글자가 들어가면 뭐가 사납다, 는 식의 이야기가 있잖아요. 미신이죠. 그런데 무심코 들은 그 말이 떠오르면서 만약 이름에 바람이 부는 소리 ‘휘’가 들어가는 사람이 있다면 어떤 인생이 펼쳐질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쓰기 시작했는데 쓰는 게 너무 재미있었어요. 이 방법이 내가 재미있게 쓸 수 있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된 것 같아요.

 

소설을 위한 소설을 썼다고 했는데 등단작은 막상 다른 작품이었죠?

 

등단하던 해에 그렇게 한 글자로 쓴 단편들과 이전에 써두었던 단편을 다 투고했어요. 그 중 하나가 된 거예요. 「한 알의 여자」는 대학교 때 썼던 소설이거든요. 이 작품이 되고 나니 내가 잘못 가고 있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소설을 혼자 쓰잖아요. 누가 가르쳐주는 사람도 없고요. 학교 다닐 때만 해도 그렇진 않은데 말이에요. 그래서 등단 소식을 들었을 때 한편으론 기쁘면서도 앞으로 어떡하지,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기쁨보다 불안함이 컸어요. 이후에도 방황을 많이 했죠. 그러던 중에 아는 분이 적극적으로 투고해보라는 조언을 해주셨어요. 그러려면 많이 써보자, 장편을 써보자, 생각해서 써서 투고를 했고, 그게 운 좋게 됐어요. 『먼지 먹는 개』가 그거죠. 그제야 조금 자신이 생기더라고요.(웃음)  

 

어떤 대목은 글자를 그 자체로 이미지로 보고 있기도 해요. 활자 혹은 언어에 대해 깊이 생각해온 작가의 면모가 엿보이기도 하더라고요.


소설 한 편에 굉장히 많은 글자가 들어가잖아요. 어느 순간 글자를 남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 글자, 한 글자가 많은 의미를 지니고 있고 한 글자가 갖는 힘이 굉장히 큰데 왜 이렇게 덧붙이고 덧붙여 설명하려고 하지,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다 ‘휘’라는 한 글자로 소설을 쓰고 나니까 한 글자가 갖고 있는 힘을 좀 더 꺼내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다음에 쓴 소설이 「종」이에요. 그렇게 열 편 정도를 더 쓰게 됐고요. 

한글은 모양 자체도 예쁘잖아요. 모양이 가지는 의미와의 조합이 저는 굉장히 좋다고 생각해요. ‘악’이라는 글자도 기역이 압정처럼 뾰족하게 박히는 느낌이 있죠. 발음할 때도 그렇고요. 깊은 곳에서 나오는 소리잖아요. 그런 걸 가지고 쓰는 게 재미있었어요.

 

아버지 이름에는 악樂 자가 들어 있었다. 늘 즐겁게 살기를 바라던 조부의 뜻이었다. 아버지는 정말 즐거웠을까. 적어도 어머니만은, 아버지의 그 이름에 깊이 찔려 치명상을 입은 채로 겨우 삶을 연명했다. 날카로운 기역 받침에 가슴 한구석이 꾹 압정처럼 눌려 이따금 참지 못한 비명을 흘리곤 했다.(13쪽, 「휘」)

 

중의적인 표현도 많죠. 가령 「종」이나 「초」 같은 작품이 그래요. 한국 소설에서만 맛볼 수 있는 즐거움이에요.

 

모국어의 장점이겠죠. 만약 번역이 되어 외국 사람이 읽는다거나 외국 사람이 한국어를 공부해서 읽는다면 좀 애매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텐데요. 우리는 배우지 않아도 갖고 있는 이미지라는 게 있으니까요. 그것을 이용하면 좀 더 감각적으로 읽는 분들의 마음을 두드릴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소설을 쓰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부터 늘 한국어와 한글의 아름다움을 놓치면 안 된다,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라고 생각을 해왔어요.

 

확실히 아주 미세한 결들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점에서, 그것을 모국어로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독자가 획득하는 장점들이 있죠.


쓸 때 힘든 글이 읽을 때 편하고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술술 읽히는 글도 쓸 때 굉장히 많은 고민을 하잖아요. 물론 결을 자세히 보고 세세하게 쓴다고 해서 굳이 그걸 다 찾아주시길 원하진 않아요. 그 중에서 이 부분 정말 공감한다, 이거 나중에도 생각나더라, 라고 하는 부분이 한 군데라도 있으면 성공했다고 생각하고요. 그걸 하는 게 저는 무엇보다 재미있어요.

 

그렇다면 작가가 좋아하는 소설이 궁금해집니다. 어떤 소설을 좋아하세요?


신기한 건 예전에 제쳐두었던 소설인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크게 공감이 되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빠져 읽다보면 늘 달라요. 주변에서 무슨 소설이 재미있느냐고 물어오면 항상 이렇게 대답해요. 지금 막 마지막 장을 덮은 소설이 제일 재미있다고요. 그게 제일 재미있더라고요. 여러 사람이 있듯 소설도 굉장히 여러 소설이 있잖아요. 같은 작가의 작품 안에서도 각 작품이 가진 매력이 다르고요. 그래서 때때로 다른 것 같아요. 기본적으로 어려서부터 즐겨 읽었던 건 추리소설이고요. 미스터리 소설 좋아해요. 가장 최근에 읽은 소설도 추리소설이네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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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압된, 우리의 현실


한편 다루고 있는 소재에 시선이 가요. 화자가 ‘개’인 작품도 있고(「개」), 고3 교실을 밀도 있게 다루기도 해요(「홈」). 등장인물들이 많은 경우 가난하거나 삶의 고통에 놓여 있는데요.

 

아무래도 현실에 놓여 살면서 느끼는 약자로서의 불안이나 힘든 점들에 대해 집중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가진 게 많고, 억울하거나 힘든 게 별로 없는 사람은 말하지 못한 고민이 덜할 거라고 생각해요. 표현할 수 없는, 해도 되는지 모를 고민이 있는데요. 유난한 거 아닌가 싶지만 사실은 굉장히 큰 고민들이 있죠. 저는 이게 어떤 특정 약자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하고 쓴 건 아니고요. 그냥 평범한 우리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길을 지나가다 본 평범한 학생이나 아파트 난간에 기대 바닥을 보며 노는 어린 아이나 지나가는 개나 전부 들여다보면 살면서 갖게 되는 힘든 부분들이 있을 거예요. 그런 게 있다는 걸 보여주는 게 문학이라고 저는 생각해요.

 

“절대로 남이 되어보지 않고는 남의 심정을 상상할 수 없는 사람의 뒷모습”이라는 「초」의 한 대목이 떠오르네요. 작가는 그 반대편에 있는 존재들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작가는 타인의 아픔을 알고 공유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저도 그렇게 생각하는데요.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어요. 모두 그걸 느끼고 있는데 살다보면 힘들어요. 바쁘게 사느라 공감하고 연민하면서도 지우고 살아야 하잖아요. 지금 당장 먹고 살기 너무 힘드니까요. 계속 흘러가는데 멈출 수도 없어요. 그럴 때 작가가 특별한 것은 아니고, 다만 잠깐 멈춰 서서 그런 면을 짚어서 글로 쓰고 보여주는 역할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또한 등장인물들은 자유를 갈망하는 존재들이라고 느꼈어요. 관계나 상황에 억눌려서 해방이 필요해보이는 주인공들이 많더라고요.


우리는 다 같이 억압되어 있는 현실이잖아요. 압정이 잡아 누르듯이 다 현실에 붙잡혀 있는데요. 숨이 좀 트이는 순간, 공간이 필요하죠. 그것이 참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때문에 아무래도 다들 무언가로부터의 자유를 원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것은 작가가 바라보고 있는 세상이기도 할 텐데요.


네, 저는 모두가 그렇다고 생각해요. 얼마 전에 역삼 쪽을 걸어가는데 ‘수면의원’이 있는 거예요. 그쪽에 평범하게 많이 있는 병원이더라고요. 그리고 맞은편에는 ‘카페인프리’ 카페가 있고요. 이제는 커피를 마셔도 잘 수 있다(웃음), 이러면서요. 신기하기도 하고 충격을 받기도 했어요. 잠을 자고, 먹는 건 기본적인 욕구잖아요. 놓아두면 다 할 수 있는 부분인데 그렇지 못해요. 자는 것, 먹는 것조차 다 어디 한 곳에 매여 있는 거죠.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충족이 필요한데 그게 지금은 안 되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부터의 자유를 모두가 필요로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한국 사회라서 더 두드러지는 면이라고 생각하세요? 어떠세요?


시대적인 상황이기도 한데요. 한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억압도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다른 사회도 비슷한 생활을 하며 살아가겠지만 그중에서도 각자 나라가 가지는 특성이 있잖아요. 한국이 가지는 구조적 문제가 있죠.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속으로는 다들 계급적인 부분에 얽매여서 살아야 하고요. 퇴근 시간이 퇴근할 수 없는 것도 그런 것 같아요. 하면 하는 거지만, 할 수 없잖아요. 그런 한국 사회만의 특이한 부분들도 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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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작가

 

「휘」에 등장하는 소녀나 「톡」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엄마 등을 보면 여성이기 때문에 더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요. 여성 서사가 많이 요구되고 있기도 한데요. 여성의 삶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어떻게 그리려고 한 건지 듣고 싶습니다.


요즘 가장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 그 부분이에요. 등단작 「한 알의 여자」는 남성 권력 중심 사회에서 억압 받고 살아왔기 때문에 그것이 당연하다고 믿고 있는 여자의 이야기예요. 그 작품으로 등단했는데 어느 자리에서 제가 ‘페미니스트 작가’로 소개가 되더라고요. 그런 생각 자체를 안 하고 쓴 소설이기 때문에 좀 놀랐던 것 같아요. 그때도 그냥 평범하게 우리가 느끼는 힘든 부분에 대한 소설이라고 생각하고 쓴 거였거든요. 페미니스트까지는 아닌데, 라고 생각했었어요. 여자이기 때문에 힘든 적은 많이 있었지만 그걸 딱히 어떻게 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던 면이 있거든요. 내가 얼마나 억눌려 있었는지 인식을 갖고 있지 않으면 쓸 때도 나오지 않잖아요. 그래서 요즘 많이 공부도 하고, 소설도 보고 있어요. 내 스스로가 신념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요. 아직도 모르는 부분이 많다고 생각해요.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가능성은 훨씬 커지죠. 그게 중요한 것 같아요.


무례한 상황을 많이 만나요. 만나왔고요. ‘이 사람 무례하네’하고 참아왔던 수많은 순간들이 있는데요. 지금 와서 생각하면 나도 누가 조금 더 빨리 이걸 알려줬거나 이런 소설을 좀 더 빨리 읽었다면 좀 마음이 편했을 것 같더라고요. 내가 참아야 할 게 아니라 저 사람이 잘못한 거였다는 사실을 좀 더 일찍 깨달으면 훨씬 편한 것 같아요.

 

공부하고, 이야기하고, 이야기를 읽는 과정에서 많은 여성들이 자신이 경험한 일들의 정체를 확인하게 되면서 달라지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요.


달라지는 부분 안에서 자존감을 찾는 면도 있고요. 평등 사회로 가기 위해서 지금은 여성이 얼마나 억압 받고 있는지를 아는 게 첫 번째 단계인 것 같아요. 그래서 그에 대한 소설에 집중하고 싶은 마음이 좀 있어요. 게다가 여자로서의 억압을 생각하다보면 널리 퍼지거든요. 장애를 가진 분들의 차별도 그렇고, 동물도 그렇고요. 내가 약자이고, 피해를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가해하는 경우도 굉장히 많잖아요. 그걸 생각하면서 살려고 하다보니 굉장히 마음이 힘들고, 고민해야 할 부분도 많아지는 것 같아요. 이런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많이 생각하게 되면서 점점 어려워져요.

 

정말 어렵죠!


‘예쁘다’는 말을 듣는 게 기분 좋은 일이 아니라는 걸 배우는 게 어려웠거든요.(웃음) 그걸 칭찬으로 듣고 자랐잖아요. 착하다, 예쁘다, 여성스럽다, 차분하다, 여자는 이래야지, 라고 하는 말이 자라면서 크게 기분 나쁘게 들리지 않았어요. 이미 순응하고 물들면서 자라왔기 때문이기도 한데요. 예쁘다는 말을 들으면 이제는 내가 왜 예뻐야 하지, 이런 고민을 요즘에 많이 하게 되더라고요. 예를 들어 머리를 한다거나 화장을 한다거나 귀고리를 한다거나 하는 게 남을 위해서는 아니잖아요. 기본적으로는 자기만족이죠. 그렇게 하고 싶어서 하는 거잖아요. 누굴 위하여 하는 일은 아니에요. 그걸 스스로 알고 나서 나갔을 때랑 모르고 나갈 때 인식의 차이가 굉장히 큰 것 같아요. 개개인이 고쳐야 할, 생각해봐야 할 문제들이 있다고 얘기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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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 이건 아니라는 걸 깨달았지 않나요


「초」는 세월호 이야기예요. 어려운 이야기를 어렵게 쓰셨을 것 같아요. 읽는 마음도 참 어려웠거든요. 쓰는 마음이 어땠을까 싶더라고요.


단편집을 내보자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정말 넣고 싶었던 작품이 「초」였어요. 써놓은 소설은 아니었는데요. 단편 계약을 할 당시가 한창 촛불집회를 다녔을 때였거든요. 주말마다 광화문을 다니면서 골병이 들고 있을 때였어요.(웃음)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여기 안 나왔으면 정말 큰일 날 뻔했구나, 하고요. 책만 보고,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으면 사회나 사람들의 아픔에 대해 알 수가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면서 「초」를 단편집 마지막에 넣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써지지가 않는 거예요. 구상만 정말 여러 번 바꾸었어요. 이야기를 만들어내야겠다고 생각하고 구상을 하다보니 너무 억지스럽고,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이 들더라고요. 이슈를 이용하고 싶어서 쓰는 건 아니잖아요. 그 고민 때문에 오래 걸렸어요.

 

실제로 작가 자신이 굉장히 많이 들어 있는 소설이기도 하거든요.


그러다 어느 날 비가 내리는 날이었는데요. 광화문 찬 바닥에 앉아서 깨달았어요. 이 주제에 관해서는 그냥 내가 느낀 그대로를 쓰면 그대로 봐주는 분들이 계실 거라는 생각이 든 거예요. 집에 돌아와서 제게 있었던 일들, 우리에게 일어났던 그 날의 일들을 썼어요. 그러니까 이 소설은 소설이지만 어찌보면 에세이 형식을 갖고 있는 거죠. 제 마음이 좀 많이 들어가 있고요. 화자도 저고요. 저도 평범한 시민 중 하나였고, 그 날을 힘들게 보낸 사람 중 하나였죠. 저는 우리 모두 평범한 날을 보냈고, 안도했고, 아니라는 걸 깨닫고 공통적으로 아파했고, 이건 아니라는 걸 깨달았지 않나요, 하고 물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런 형식으로 쓰게 된 거예요. 현실과 소설 사이의 경계를 밟고 제 마음을 더 가까이 들여다보는 그런 느낌이었어요. 

 

앞으로 어떤 소설을 쓰고 싶으세요?


우리가 울 것 같은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잖아요. 그런데 정말 길에서 줄줄 울면서 살진 않잖아요. 이 거리감을 잘 조절해야지 하면서도 소설 쓰면서 자주 울어요. 특히 「초」를 쓰면서 많이 울었는데요. 이 소설을 쓰고 나니까 정말 소설 쓰는 게 어려워졌어요. 소설이라는 건 그냥 쉽게, 재미있어서 쓸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은 것 같아요. 누군가에게 소설을 보여주려면 스스로를 다잡고 써야겠구나, 그런 마음을 많이 느꼈어요.
살면서 지우고, 누르고 살아야 하는 부분들이 있잖아요. 꼭 한 번 생각해봐야 할 문제지만 그러지 못해서 생각의 근육이 없는 분들에게 제 소설을 잠시 펼쳤을 때 ‘어쩌면 이런 걸 잊고 살아서 더 힘들었는지도 몰라, 누군가를 더 힘들게 했는지도 몰라’라는 생각을 갖게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쓰고 있어요.

 

현재 갖고 있는 가장 큰 고민은 뭐예요?


두 권의 소설을 내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편하게 읽기가 힘들다는 의견을 들었어요. 그런 부분이 뭘까, 어떻게 하면 읽기 편하면서도 이해를 할 수 있게 할까, 하는 고민이 있고요. 저 스스로도 그런 생각을 하는데요. 묘사나 표현하는 데 비해 스토리가 잔잔하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멈춰서 풍경을 보는 게 아니라 같이 헤쳐 나가듯이 빠져들어서 가는, 그런 변화무쌍한 소설을 쓰면 어떨까 생각을 해요. 지하철에서 소설을 읽다가 내릴 때가 되어 책갈피를 꽂았을 때 다음이 어떻게 될지 너무 궁금해지는 소설들이 있잖아요. 그런 부분을 가지면서 사회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소설을 쓰는 게 지금 제 가장 큰 목표 중 하나예요.

 

이제 막 손솔지 작가를 만난 분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해주세요.


좀 어려운데요.(웃음) 너무 힘들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꼭 하고 싶어요.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다들 같은 고민을 하셨겠지만 저는 틀렸다는 생각을 되게 많이 했거든요. 이러면 안 되는데, 인정 받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이 원하는 나로 살아야 하는데, 하는 고민을 굉장히 많이 하면서 자랐고 지금도 많이 하면서 살아요. 그런 생각으로 고통 받는 분들이 저뿐만 아니라 굉장히 많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럴 수도 있어요. 실수하는 사람도 많고, 어쩌면 잘못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틀린 건 아니거든요. 우리가 모두 스스로를 보듬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억압이 다른 곳으로 잘못 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서요. 남의 슬픔에 공감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나의 슬픔을 스스로 공감할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많아요. 그리고 그럴 때 소설을 읽고요. 소설은 작가와의 소통이기도 하지만 스스로와의 소통이기도 하잖아요. 그렇게 지내면 좀 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손솔지 저 | 새움
기발한 서사, 낯선 상상력, 섬세한 묘사로 독자와 언론으로부터 호평을 받아온 신인 작가가 그려낸 ‘우리’ 이야기, 『휘』가 출간되었다. 이 책에는 ‘휘, 종, 홈, 개, 못, 톡, 잠, 초’ 한 글자 제목의 소설 여덟 편이 실렸다. 작가는 한 글자가 가진 마법 같은 힘을 포착해 그것에 홀린 듯 이야기를 펼쳐낸다. 아무것도 없는 흰 바탕 위에 새겨진 글자들은 소리였다가 문장이었다가 인물이 되고 마침내 서사를 이룬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YES24 채널예스

신경림 “내 가슴에 와서 쾅 닿았던 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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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클』에는 ‘신경림 시인이 가려 뽑은 인간적으로 좋은 글’ 40편이 실려 있다. 시인의 말을 빌리자면 “가슴에 와서 쾅 닿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글들”의 모음이다. 일상에 대한 고백과 성찰로, 삶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으로, 치열한 예술혼으로, 아름다운 문장으로, 40편의 수필은 각기 다른 이유로 가슴을 치고 지나갔다.

 

이상, 정지용, 박목월, 김소월부터 최인호, 류시화, 박민규, 함민복에 이르기까지 한국 문학계의 버팀목이 되어준 작가들의 작품뿐만 아니라 이중섭, 이어령, 장영희, 신영복, 손석희 등 자신의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대가들의 글을 한 데 모았다. 김수환 추기경, 법정 스님, 이해인 수녀의 수필에서는 삶을 끌어안는 뜨거운 마음이 느껴진다.

 

시인은 말을 아꼈다. 이처럼 눈부신 작품들을 어떤 순간에 만나게 됐는지, 그 안의 무엇이 가슴을 뭉클하게 했는지, 애써 설명하지 않는다. 그러나 독자는 자꾸만 시인에게 말을 걸고 싶어진다. 지금의 자신을 이루는 글들, 혹은 한 때의 나를 지탱해 주었던 글들에 대해 대화를 나누고 싶어진다. 그렇게 한 사람의 독자에게서 시작된 ‘반추의 작업’은 점점 더 많은 독자들에게 퍼져나간다. 『뭉클』은 그들 사이를 이어주는 징검다리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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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와서 쾅 닿았던 글들이에요


『뭉클』이라는 말이 주는 느낌이 너무 좋습니다. 강렬하게 다가오면서도 긴 여운을 남기는 것 같아요. 제목은 직접 지으셨나요?

 

읽을 때 ‘뭉클’하고 제 가슴에 와 닿았던 글들을 모은 것이니까, 그런 뜻에서 제목을 짓게 된 거죠. 많은 사람들이 정말로 뭉클할 것 같다고 이야기하더라고요. 문학적이거나 강압적인 것도 아니고, 뭔가 가슴에 와서 쾅 닿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글들이었죠.

 

그런 글들을 만날 때는 어떻게 하세요? 필사를 하시거나 책장에 표시를 해 두시나요?


따로 모아둔 건 하나도 없어요. 제목만 기억했다가 찾은 거죠. 이 책에 실린 글 중에도 어렸을 때 읽고 나서 처음 대하는 글들도 많아요.  ‘아, 그 글을 찾아야겠다’ 해서 찾은 작품들도 있고요.

 

책의 서문에서 출간 이유를 밝히셨어요. “시라면 좋은 선집이 많이 나와 있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꺼내 읽을 수가 있지만, 산문은 그렇지 못해 늘 아쉬웠다”고요.


나 자신도 이런 글을 다시 찾아보려고 하면 어디서 찾아야 될지 모르니까 못 찾고 있거든요. 이렇게 엮으면 요즘의 젊은 사람들이 좋은 글을 대하는 데에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이 책을 만들기까지 젊은 시인들이 많은 도움을 줬어요. 제 기억 속에 있던 글들을 다시 찾을 수 있도록 도와줬죠.

 

그 작업이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아요. “막상 찾고 나면 실제 글과 기억 속의 글이 다른 경우도 없지 않았다”고 하셨는데요.


그래서 책 속에 들어가지 않은 글도 있고요. (끝내) 못 찾은 글도 없지 않아 있죠. 어릴 때 읽는 것이 반드시 올바로 읽은 건 아니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대체로 그때 감동을 받았던 글들은 지금도 뭉클해요. 받아들이는 감성은 그때와 지금이 다르기는 하겠지만요.

 

“글을 선選하는 기준은 어디까지나 ‘문학적’이 아니고 ‘뭉클’임은 말할 것도 없다”고 쓰셨습니다.


문학적이라는 게 기준이 된 건 절대 아니죠. 그냥 문학 공부를 하는 한 사람으로서, 젊은이로서 읽은 거니까요. 문학적인 기준과는 상관없죠. 때에 따라서는 그것이 문학적인 것과 기준이 같을 수도 있지만, 때에 따라서는 같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거예요.

 

어리석은 질문입니다만, ‘그렇다면 문학적인 것은 무엇인가’ 궁금해집니다. 문학에서 부수적인 것들을 다 덜어내고 나면 최후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요?


문학적이라는 것에 대해서 한 마디로 이야기하기는 어렵지만, 정서만 가지고 문학을 하는 건 아니고요. 문학이라는 건 껍데기가 같이 있는 거죠. 알맹이만 덜어내면 아무것도 남지 않죠. 알맹이를 감싸고 있는 껍데기 자체도 문학적 본질이에요.

 

우문현답입니다(웃음). 선생님께서는 이 수필들을 언제 처음 만나셨나요?


대개 중고등학교 때 읽은 글들이에요. 대학 들어와서 읽은 글도 몇 편 있지만 대체로 고등학교 때 읽은 글들이에요.

 

그래서인지 『뭉클』에 실린 글 가운데에는 이미 우리 곁을 떠나신 분들의 작품이 많아요.


그런 분들이 남긴 글 가운데 좋은 글들이 참 많잖아요. 흘려 보내기가 너무 아깝죠. 이런 글들은 우리가 꼭 기억해야겠다는 마음으로 만든 책이기도 해요. 우리 손주들한테도 그런 글들을 콕 짚어서 ‘이 글은 꼭 읽어 봐라’ 이렇게 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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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의 감동을 시간을 뛰어넘는다


청춘 시절에 읽으셨던 작품들이 많다고 하셨는데요. 다시 보시면서 그 시절이 그리워지지는 않으셨어요?


그 시절이 그립다기보다는, 지금 읽어도 여전히 감동스러운 글들이 참 많아요. 역시 그때나 지금이나 글을 대하는 감성은 같다는 생각이 들고, 그건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돼요. 좋은 글은 언제나 감동을 주죠. 금방 와 닿고 유행처럼 돌아다니는 글들은 오래 가지 않잖아요. 진짜 좋은 글이 주는 감동은 시간을 뛰어넘어서 오래도록 이어진다는 생각이 들어요.

 

시인의 마음은 다를 것 같습니다만, 보통 사람들은 젊었을 때의 민감했던 감성이 시간이 갈수록 무뎌지니까 슬픈 것 같아요.


시인도 당연히 그렇죠. 무뎌지지 않는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다만 늙으면 늙는 대로, 젊을 때와는 다른 또 하나의 감성이 있는 거죠. 젊을 때는 가지거나 느끼지 못했던 감성을 가지고 세상을 보는 거니까 그 나름으로 의미가 있는 거고요. 젊을 때의 빼어난 감성만 옳은 게 아니잖아요. 나이 들어서 둔해진 감성을 가지고 세상을 보는 눈 또한 훌륭한 데가 많죠.

 

책에 실린 수필 중에서 최인호 소설가의 「나의 소중한 금생今生」, 박목월 시인의 「평생을 나는 서서 살았다」에는 나이 듦에 대한 성찰이 담겨있어요. 다시 읽으시면서 감회가 남다르셨을 것 같은데요. 어떠셨어요?


‘역시 그 나름으로 세상을 보는 눈이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죠. 물론 나하고 시각이 꼭 일치하는 건 아니지만, 그 나름으로 호소력도 있고 재미난 게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 취향하고 일치해야만 좋은 글이 아니잖아요. 세상을 보는 눈이 나와 달라도 다 좋은 글들이죠. 그리고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세상을 보는 눈이 재밌게 느껴질 때가 많아요. 좋은 글들을 보면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소통해나가는가, 어떻게 아름다운 감정들을 섞으며 살아가는가’ 하는 생각도 들죠.

 

『뭉클』에 수록된 작품들은 서로 다른 요소로써 뭉클함을 안겨주는 것 같아요. 


그렇죠. 다 다르죠. 그게 글의 매력이죠. 뭉클하게 해주는 요소가 똑같다면 재미없잖아요. 이렇게 뭉클하게 해주고 저렇게 뭉클하게 해주고, 그렇게 다 다르면서 사람이 사는 것도 보여줘요. 거기에서 오는 뭉클함이 있죠. 문장이 아름다워서 뭉클한 작품도 있지만 어느 한 대목만 가지고 뭉클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고, 전체적으로 주는 느낌이 뭉클한 글들이 많죠. 그러니까 우리가 옛날 산문들도 빠트리지 말고 읽어야 되는 것 같아요. 외국에서는 아이들한테 문장을 가르칠 때 옛날 글들을 읽게 하거든요. 우리가 살아온 삶의 결 같은 것이 묻어있으니까요. 우리가 잊어버린 작가들의 글도 다시 찾아서 읽어 보고 ‘그 글에서 좋은 건 무엇인가, 우리가 얻을 것은 없는가’ 다시 한 번 생각해 봤으면 좋겠어요.

 

첫 번째로 실린 작품이 김유정 소설가의 「필승 전前」인데요. 곤궁한 처지에 놓인 작가가 쓴 편지글이에요. 읽으면서 가슴이 많이 아팠습니다.


가슴 아프죠. 절실하잖아요.

 

이런 아픔에 공감하셨어요?


그렇죠. 가슴이 아파서 뭉클했죠. 슬프기도 하고요. 이렇게 치열하게 산 사람들이 어려움 속에서 얼마나 열심히, 얼마나 어렵게 살았는지 보여지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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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에 사로잡혀도, 살아가야죠


『뭉클』은 산문을 엮은 책인데요. 요즘 사람들은 긴 글을 읽는 걸 피로해하는 것 같아요. SNS에서 짧은 문장들로 소통하는 데 익숙하고요.


짧은 문장만 선호하는 건 참 안 좋은 것 같아요. 우리 생활에서 문학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거예요. 전 세계적인 현상이기는 하지만, 여하간 우리의 삶에서 큰 손실이라고 생각해요.

 

주로 어떤 시간에 시를 쓰시는지 궁금해요. 집필하시는 시간이 정해져 있나요?


그렇지 못해요.

 

그러면 시상이 떠오를 때마다 메모를 하세요?


아니요. 그냥 머릿속에 메모하고 잊어버리면 안 써요. 잊어버리면 그건 쓸 만한 가치가 없는 거니까요. 그리고 한 번 쓰려고 했다가 잊어버리면 언젠가 생각이 나요. 그것이 차거나 보이면 거의 대부분 새벽에 일어나서 서너 시간씩 쓰는 게 습관이 됐죠. 그때 머리가 제일 맑으니까요. 그런데 나이가 들어서는 조금 게을러졌죠.

 

다음 시집을 준비하고 계세요? 언제쯤 출간이 될까요?


당장 계획은 없고요. 제가 시집을 내는 주기가 대개 4~5년 정도인데, 지난번에 낸 시집(『사진관집 이층』)이 2년 전쯤이니까요. 한 2년은 더 있어야 될 거예요.

 

오랫동안 작품 활동을 해 오신 만큼 미발표작도 많을 것 같습니다.


미발표작은 없어요. 처음에는 발표 안 된 작품이 많았죠. 그런데 나이가 들면 (시를) 써달라는 데가 여러 군데 있으니까 미발표 작품을 남겨놓기가 쉽지 않죠.

 

최근 희망이 없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절망이 가득한 시대에 시를 쓴다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자문해 보신 적 있으세요?


그렇죠. 그러나 사람이 절망에 사로잡혔다고 해서 안 살아가는 건 아니잖아요. 살아가야죠. 옛날이나 지금이나, 사람이 살아가면서 ‘우리 시대가 행복한 시대다’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늘 자기가 사는 시대는 불행하다고 생각하죠. 우리나라도 일제시대 때 정치적으로 탄압을 받으면서 얼마나 고통 받았어요. 그리고 가난했죠. 해방 후에도 정치적 혼란과 가난이 이어졌고, 그때는 자유도 없었죠. 언론 자유도 없었던 때니까 지금 같은 이야기를 하면 잡아갔죠. 우리가 정말 어려운 시대를 살았던 건데, 그때에 비하면 좋은 세상이 됐죠. 지금은 그것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 더 절망적이지만, 이것도 극복이 되겠죠.

 

지난 1월에 출간된 『천만 촛불 시집』에도 참여하셨어요. 촛불 속에서 희망을 발견하셨나요?


촛불을 보면서 ‘정말 우리나라는 희망이 있는 나라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이런 어려움을 국민들의 의지로 이겨낸 나라가 얼마나 되겠어요. 그러나 우리가 촛불이라는 데에 너무 끌려가서 마치 촛불 자체가 우리의 모든 것인 것처럼 생각하면 안 되겠죠. 앞으로의 일이 더 많잖아요. 촛불집회는 지금까지 우리를 가로막고 있던 방해물들을 치워준 거고, 이제는 망망대해와 비슷한 거예요. 거기에서 새로운 역사를 써가는 거죠.

 

요즘 청년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도 드시겠어요.


안타까운 마음보다는 부러운 마음이 많이 들죠. 안타까운 건 젊은 사람들이 일자리가 없으니까, 그래서 안타깝죠. 물론 우리 세대가 젊었을 때는 일자리가 더 없었죠. 그러나 지금과 그때는 달라요. 그때는 다 없었던 거고, 지금은 일자리가 있는 사람들은 대기업 같은 데 들어가서 돈을 많이 벌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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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너무 어렵게 쓰는 건 문제라고 생각해요


최근 주목하고 계신 젊은 시인이나 시집이 있을까요?


별로 많이 안 읽기는 했는데, 김성규 시인의 작품도 좋았고요. 일일이 이름을 이야기하지는 않더라도 좋은 시를 쓰는 젊은 시인들이 많죠.

 

선생님께서 젊은 시절 시를 쓰시던 때와는 많이 달라졌다고 느끼세요?


많이 달라졌죠. 뭔가 어렵게 쓴다고 할까요. 너무 어렵게 쓰는 건 문제라고 생각해요. 시도 소통인데 조금 알게 써야죠. 시도 남한테 뭔가를 이야기하는 거잖아요.

 

사람들이 점점 시와 멀어진다는 지적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닌데요. 말씀하신 것처럼 시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더 그런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요즘 사람들이 시를 안 읽는다고 말하는 건 예전에도 그랬어요. 제가 처음 문단에 나올 때도 ‘요즘 시인들이 너무 시를 안 읽는다’는 이야기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시라는 건 옛날부터 소수의 사람들이, 언어적 미적 감각이 있는 사람들이 특별히 좋아하는 거였죠. 온 국민이 다 읽는 건 아니거든요. 그러니까 시가 전 국민한테 읽혀서 시인이 영웅처럼 떠받들리는 기대를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시 자체가 외로운 작업이고, 시를 읽는 것은 외로운 자들끼리의 대화거든요.

 

지난 몇 년간 문학계가 굉장히 시끄러웠습니다. 표절 논란도 있었고 성폭력 논란도 있었는데요. 지켜보시면서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나도 문학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지만 정말 문학하는 사람들이 대오각성 해야 된다고 봐요. 옛날부터 알게 모르게 성폭력적인 것이 용인되는 분위기가 있었는데, 그냥 적당히 넘어가거나 ‘시 쓰는 사람들이니까 조금 보통 사람들하고 달라’ 하고 생각했던 거거든요. 그런데 그것은 용납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다른 사람들하고 똑같이 지켜야 될 건 지켜야 되죠. 그리고 문학하는 사람들에게는 시인, 소설가, 작가이기 전에 시민이라는 생각이 있어야 돼요. 시민으로서 탈선은 결코 용납이 안 된다는 거죠. 표절에 대해서는, 어디까지가 표절이고 어디까지가 영향을 받아서 쓴 것이냐 하는 문제가 항상 있어왔지만, 표절은 본질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문제죠.

 

이런 논란들이 문학에 대한 대중의 애정을 식게 만든 것 같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문학은 숭고하고 우리에게 정신적으로 깨우침을 주는 것이라 생각하잖아요.


일반인들도 ‘문학인은 보통 사람들하고 다르다’는 생각을 가질 필요가 없어요. 똑같은 거죠. 문학인들은 뭔가 다르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성폭력적인 분위기가 용납됐던 거잖아요. 용납돼서는 안 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요. 문학인을 똑같은 눈, 똑같은 잣대로 봐줘야 돼요. 어떤 때에는 ‘문인들은 이래도 된다’고 하고, 또 어떤 때에는 ‘문학인이 왜 그래?’라고 하면 안 되죠. 

 

『뭉클』의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세요?


좋은 글은 공간과 시간을 초월해서 존재하는 거니까, 그렇게 생각하면서 글을 즐겨주기를 바라는 마음이에요. 좋은 글은 10년 전에 쓴 거나 100년 전에 쓴 거나 요새 쓴 거나, 다 큰 기쁨을 주고 위안도 주고 힘이 되는 거잖아요. 그렇게 생각하고 좋은 글을 많이 찾아 읽었으면 좋겠어요. 그럼으로써 좋은 글과 좋지 않은 글을 분간하는 힘도 스스로 생기는 거니까요. 글을 선택해서 읽는 힘은 자기 스스로 얻게 되는 것이지 누가 해주는 게 아니에요. 스스로 읽어서 생기는 거죠.


 

 

뭉클최인호,신영복,김수환,법정,손석희,이해인 등저/신경림 편 | 책읽는섬
『뭉클』은 신경림 시인이 오랫동안 마음의 책장 속에 간직해두었던 수필들을 엮은 책이다. 사실 이 책을 누가 엮었는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60년 넘게 시를 품고 살아온 사람이 건네는 글이라면, 그 마음과 함께 읽히지 않을까.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YES24 채널예스

주진형 “한국의 민주주의는 ‘일리버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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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혜원 의원은 이 책을 “대통령 후보자들한테 보여주려고” 급히 만들었다고 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가 문제인지,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알 수 없었던 여러 문제들에 대해 갈피를 잡게 해준 것이 주진형과의 대화였기 때문이다. 손혜원 의원의 페이스북 라이브 방송으로 진행한 주진형과의 대화, ‘경제, 알아야 바꾼다’(일명 ‘경제알바’)가 책의 모양새를 갖추고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 과정이다.


스스로 “경제 정책 만들어보기가 취미”라는 주진형은 『경제, 알아야 바꾼다』에서 일자리 문제, 재벌 문제, 직장 민주화와 연금, 조세 등 열두 가지 주제를 꼼꼼하게 짚는다. 어느 한 대목 빠른 해결책이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동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문제들이 사실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핵심은 원청-하청으로 구분되는 계층의식과 중앙집권형 국가구조라고 지적한다. 노동 안에서의 불평등을 말하지 않는 진보와 자본 안에서의 불평등을 말하지 않는 보수를 모두 비판하는 주진형의 ‘전복적’ 진단이 얼마나 더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다음 세상으로” 이동시킬지, 무척이나 궁금하다.

 

우리 사회는 원청과 하청으로 갈려 있다. 우리가 의식적으로 이렇게 만든 것은 아니다. 조선시대의 신분사회 코드에 일제강점기의 국가운영 방식, 전후 미국식 제도가 복잡하게 뒤섞인 결과다. 이 세 가지가 모여 지금과 같은 퇴행적 갈라파고스 사회를 만들었다. 각자도생의 반상사회, 중앙집권적 관원 대리체제, 관료와 재벌기업이 주무르는 경제.(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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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원청-하청의 문제


페이스북 라이브로 ‘경제알바(경제, 알아야 바꾼다)’를 시작할 때, 두 분이 특별히 기대하셨던 건 뭔가요?

 

주진형: 그냥 하자고 해서 따라했기 때문에(웃음) 별로 생각한 그림이 없었어요. 정말 준비 없이 시작했어요. 사실은 위험한 거죠. 물어봤는데 ‘모르는데요’라고 할 수도 있고, 틀린 소리를 할 수도 있는 거라 원래는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거죠. 그런데, 어떻게 하다, 그렇게 됐어요. 그렇죠?


손혜원: 즉흥적으로, 되는 대로 한 번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믿음이 있었죠. 방송을 하면서 주 선생(주진형)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고민을 하고, 마음속에 그것들을 정리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했어요.

 

준비 없이 방송을 시작한 게 사실이라면 놀라운 일인데요. 열두 가지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 각 주제에 대해서 굉장히 꼼꼼하게 다루고 있거든요.


주진형: 농담이기도 하지만 진담인 게, 저는 경제 정책 만들어보기가 취미예요. 다른 사람들보다 오래 됐죠. 아버님이 경제학자고, 어려서부터 정치, 경제, 사회 이야기를 들으며 컸고요. 고등학교 때나 학부 때도 교과서와 지금 내가 보는 한국 사회를 비교해 들여다보는 버릇을 갖고 있었던 것 같아요. 곰곰이 관찰하는 거죠. 미국에서 공부할 때도, 세계은행에 다닐 때도 항상 비교 분석을 하던 버릇이 있었어요. comparative economic systems(비교 경제 시스템)이라고 할까, 그걸 항상 했죠. 전공이 아닌 분야도 마찬가지였어요.


손혜원: 오래 알고 지냈는데요. 주진형은 굉장히 창의적이에요. 또 지난 20대 총선 때는 함께 일을 했잖아요. 정책 공약 만드는 것을 보면서 ‘이게 진짜다’라는 생각을 했죠. 그냥 내가 주진형의 목소리를 사람들에게 듣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거예요. 그러다 욕심이 나서 이걸 책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고요. 한 번, 두 번, 세 번, 방송이 쌓이면서 이것은 이 자체로 굉장히 중요한 책이 되겠다고 생각했죠. 저는 이 책을 대통령 후보자들한테 보여주려고 급히 만들었습니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 대통령 될 사람이 이 책을 보고, 지금 우리한테 벌어진 문제들에 대해 주 선생이 얘기하는 전략이나 정책에 귀를 기울였으면 좋겠어요. 본질이 뭔지,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를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어렵다, 해결책이 없다, 는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어요. 한 번도 명쾌한 정답이 있다고 말하지 않아요. 다만 문제의 핵심이라고 할 만한 것이라면 ‘원청-하청’을 꼽을 수 있을 텐데요.


주진형: 한국에 돌아와 기업을 몇 년 다녀보니까 굉장히 이상한 대립이 있어요. 하나는 나라 경제 소득 수준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임금을 받고 있는 대기업 노동자인데요. 자기들의 기득권은 절대로 건드리면 안 된다는 그 태도가 다른 어느 나라의 노조보다 극심해요. 반면 나머지 사람들은 그야말로 정글에 놓여 있죠. 이 양자 사이의 불평등 또는 보호망의 차이에 대해 아무도 얘기를 안 하는 거예요. 왜 다른 나라에는 없는 현상이 한국에는 이렇게 극심하게 드러나게 될까를 들여다보면서 생각하게 된 게 그런 것들이죠. 원청-하청을 말하면 사람들이 금방 이해를 하더라고요. 체감하는 일이니까요.

 

보호망 바깥이 정글이기 때문에 계층 분화가 더욱 극심해진다는 진단도 하셨죠.


주진형: 진보 측에서도 여러 불평등을 말하지만 자본과 노동 간의 불평등을 이야기하지 노동 안에서의 불평등 얘기는 안 해요. 마찬가지로 막상 자본가 안에서도 중소기업 하는 사람들이 느끼는 것과 대기업 하는 사람이 느끼는 것은 전혀 다른데 그걸 뭉뚱그려 얘기를 하고요. 이 구조의 이유를 오랫동안 생각해왔어요. 그런데 대개 그렇지만 회사나 산업, 국가도 다 연결이 되어 있거든요. 각각의 문제는 보이지만 눈에 보이는 문제만 풀어서는 해결이 안 되죠. 문제 안에도 우선순위가 있는 거고 그것이 결국은 우리 안에 있는 계층적 의식, 또 그 의식을 유지시키는 중앙집권적 관료 체제, 두 가지로 본 거예요. 그걸 깨뜨려야 하는데 한국 사회가 자발적으로 진화해 온 나라가 아니라 자꾸 다른 곳의 트렌드를 끼워 맞춰온 곳이다보니 실은 자기가 누군지 우리가 모른다고 느낀 적이 굉장히 많아요.

 

비유적으로 좋은 옷이긴 한데 남의 옷을 입고 있다고 표현하셨어요.


주진형: 사실 민주주의도 우리 것이 아니에요. 한국 사람이 생각하는 민주주의는 한 마디로 일리버럴(illiberal, 자유를 제한하는)해요. 민주주의 사회에 사는데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사고방식은 아주 일리버럴하죠. 민주주의를 하기 위해서는 개인을 존중해야 하죠. 존중의 첫째는 자유인데요. 이 개념이 전혀 없는 문화에서는 불가능한 거잖아요. 정치와 사회의 발전이라는 것이 기술을 수입하는 것과는 달라서 수입이 불가능한 거죠. 결국 일반 대중의 소득이나 교육 수준에 따라 개개인이 변화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요.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가 부르주아 혁명에 가까울 만한 의식을 가질 수 있었던 세대는 70년대 이후 세대가 아니겠느냐, 라는 이야기를 책에서 한 거고요. 결국 한국 사회는 도시화, 산업화된 환경에서 대다수 사람이 자란 세대가 사회의 주역이 될 때 비로소 확 바뀔 거다, 그 전까지는 어렵다, 그렇게 생각해요.

 

그 중에서도 연대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의미 있게 들렸거든요. 각자도생의 원인이자 결과이기도 한데요. 이것도 세대가 바뀌면 좀 변화할 수 있다고 보세요?


주진형: 리버티(liberty, 자유)에 대한, 또는 인권, 개인에 대한 존중이라는 부분에서는 세대 간 차이가 있는데요. 연대라는 점에서는 세대와 무관하게 그런 경험을 별로 안 갖고 있다고 봐요. 어떻게 보면 연대 경험을 하면서 만들어내는 것들이잖아요. 386세대가 많이 기성화 되었다고는 하지만 우리가 공동의 경험을 겪었다는 것에 대한 연대의식이 정치적으로 좀 있거든요. 그러나 그것은 일회성이고 꾸준하게 가기 위해서는 계층 간 연대의식, 계급 안에서의 연대의식 같은 것들이 있어야 할 텐데요. 한국에서는 아직도 계급의식은 안 만들어졌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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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금, 나와 상관없는 것?


중앙집권체제도 문제의 핵심이에요. 들여다보니 공기업을 포함해 GDP의 45%를 중앙관료가 집행하고 있었잖아요. 정말 놀랐어요. 당연히 민주적으로 견제도 되고 있지 않은 부분인데 이런 진단이 왜 더 크게 들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주진형: 그런 얘기를 하는 사람이 없는 건 아니에요. 정치적으로, 진영 논리로 접근을 하니까 막상 중요한 의미는 빠지게 되는 거죠. 보수 측에서는 민영화를 해야 한다든가 하는 식으로 접근을 하고요. 진보 측에서는 국영화를 해야 한다고 접근을 해요. 막상 그 부분의 거버넌스(governance, 국가경영)가 어떻게 되는가에 대해서는 양쪽이 다 얘기를 안 하는 거죠. 그러나 사실은 기득권 세력에서는 민간 기업도 영향력을 끼치는 상황이니 거버넌스는 자신들의 약점이거든요. 진보 쪽은 공공부문에 있는 것만을 마치 금과옥조처럼 생각하고요. 실은 민영화가 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는 것들도 많거든요. 그런데 그쪽에서는 말도 못 꺼내게 하잖아요. 보이지 않지만 더 중요한 거버넌스에 대해서 한국은 별로 관심이 없는 거예요. 원래 그런, 당연한 거라고 생각을 하고요. 포커스가 잘못된 거죠. 어떻게 공공이 이익에 부합하게 운영되도록 거버넌스를 바꿀 것이냐가 더 중요할 수도 있는데 관심이 없어요.

 

그러니까 조세 지출에 대한 제대로 된 통계도 없었고요. 국회 예산정책처가 2003년에야 만들어졌다면서요.


주진형: 삼성전자에 갔는데 월급 내역을 보니 아예 세금 내역을 안 보여주고 있는 거예요. 궁금해서 주변에 물어봤더니 몰라요. 그래서 인사부에 물어봤더니 설명을 해주는데요. 설명해주는 사람의 표정은 ‘왜 이런 걸 알고 싶어하세요?’(웃음)였어요. 전혀 자기 세금에 관심이 없는 거죠. 그런데요, 잘 생각해보면 이유가 있어요. 세금이 워낙 적어요. 때문에 관심이 없는 거예요. 영향이 별로 없어요. 1억을 받아야 이런 저런 공제 떼고 나면 천만 원 내니까요. 그런데 서양은 훨씬 높아요. 공제 없어요. 실제적으로 20% 정도를 내거든요. 그래서 서양은 대학 때는 한창 진보 흉내를 내다가 회사 들어가서 월급 받아보고 공화당으로 돌아선다는 애들이 많아요.(웃음) 그런데 한국 사람은 세금이 워낙 적고, 온통 간접세니까 나와 직접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공제가 많아 실제 내는 세금은 많지 않다는 점을 여러 통계자료를 제시하며 분석하고 있거든요. 눈에 띄는 부분이었습니다.


주진형: 한편 세금이 낮은 나라치고는 세금 올리는 것에 대한 반응은 그 어느 나라보다 극심하죠. 그것도 되게 독특한 현상이에요. 유럽이나 미국 같은 나라는 우리보다 세금이 더 센데도 이런 저런 것들을 마련할 때 정치적으로 싸움이 일어나긴 해도 일반 대중이 벌떼처럼 일어나서 증세 반대한다는 식으로는 안 나오거든요. 그 이유는 국민들이 내가 낸 세금을 내가 받는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국가가 가져간 돈 중에 너희들이 나한테 해준 게 뭐 있는데, 라고 생각을 하니까요.

 

맞아요, 주변에도 보면 낸 만큼 바뀌면, 낸 만큼 받을 수 있으면 세금 더 낼 의향이 있다고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거든요. 하지만 믿음이 없는 거죠. 세금이 제대로 쓰이는지 의심부터 하게 되잖아요.


주진형: 저부담 저복지이기 때문에도 그렇지만요. 보면 실제로 경제 성장을 위해 길을 닦거나 인프라스트럭처(infrastructure, 도로, 하철, 항만, 공항, 학교, 병원, 공원 등과 같은 사회적 생산 기반), 재단 만들고 공단 만드는 데에는 열심히 쓰지 개개인한테 직접 들어오는 식으로는 우리가 세출을 잘 안 했어요. 제대로 된 나라라면 세금을 물리기 위해서는 소득에 세금을 물려야 하는데요. 일본도 그렇고 한국도 그렇고 소득이 굉장히 불투명한 체제예요. 일본은 지금도 금융실명제도 제대로 안 되는 나라예요. 한국도 사유재산 등록이 굉장히 불투명한 나라죠. 때문에 소득에 기초를 둔 세금 부과가 구조적으로도 어렵죠. 게다가 그들이 중앙집권의 권력을 갖고 있으니까 자기한테 세금이 올라가는 방식으로는 하질 않았고요. 그것은 국가가 나를 대변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안 해왔단 의미예요. 국가란 나에게 조(租)와 역(役)을 시키던 것이지 내가 주인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 나라 사람들인 거죠.

 

이 논의를 기업 공간으로 가져온다면 어떨까요? 저자는 증권사 등 기업 재직 당시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등 파격 행보로 많이 회자되기도 했는데요. 아쉬움이 많으실 것 같아요.


주진형: 이게 바로 원청이 갖는 기득권에 대한 욕심이 아니면 설명할 수가 없는 거예요. 다른 나라도 기업이 적자가 나고 어려우면 폐업할 수도 있고, 사람을 줄일 수도 있죠. 물론 그것에 대해 노조가 좋아하진 않고, 파업을 하는 경우도 있긴 하지만요. 한국처럼 이렇게 극렬하진 않거든요. 왜 저렇게 극렬한지 생각하면 워낙 원청과 하청 사이에 격차가 크니까 나가는 순간 내려가야 되는 것 때문인 것이죠. 적은 차이라면 이렇게까지 극렬하진 않을 거란 말이에요. 


그것은 또 연결하면 사회보장의 문제기도 할 거예요.


주진형: 네, 그래서 사람들한테 실업보험을 더 올리자고 제안하는데 아무도 관심이 없어요. 놀라울 정도로 말이에요. 아니, 어떻게 일 년에 8-9조를 걷는데 아는 사람도 없어요. 독특한 나라인 거죠. 굉장히 독특한 나라예요.

 

실업보험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부탁드립니다. 책에서도 아주 중요한 부분으로 다루고 있거든요.


주진형: 복지제도 이야기를 할 때 처음은 노령연금이에요. 그 다음이 건강보험, 그 다음이 실업보험이거든요. 사회의 역사를 보면 그래요. 그만큼 우선순위가 높은 이슈죠. 그런데 한국은 국민연금도 그렇고, 건강보험도 그렇고, 사회적 요구가 없을 때 그냥 들어왔어요. 실업보험도 마찬가지죠. 그러니까 막상 제도의 주인이어야 하는 사람들이 도리어 관심이 없는 상황이었던 거예요. 그 제도는 말하자면 ‘상놈’들이나 걱정할 문제, 내 일은 아니야, 이런 거죠. 그것이 문제를 이렇게 만든 건 아니었나 생각해요. 실업보험을 사람들이 인식했던 건 김대중 정권 말부터였던 것 같아요. 소위 IMF 위기 이후, 자기들은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중산층 중에도 해당되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니까요. 그렇지만 여전히 여론 주도층은 실업보험이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2006년 1분기 실업보험 신규 신청자가 30만 명인데 언론은 이를 보도하지 않는다, 그런데 상위 10%에 해당하는 대기업, 공기업 부문에서 대량감원을 하려고 하면 큰일이 난 것처럼 난리다, 중산층 이상에만 이득인 정책이 많다, 고 한 지적들이 떠오르네요.


주진형: 그런 숫자를 전혀 몰라요. 뉴스도 별로 없죠. 실업보험이 게토화된 거예요. 나는 열심히 해서 그런 상황을 막으면 돼, 라고만 생각해요. 대변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에요. 사실 이들을 대변해야 할 게 정의당이어야 해요. 그러나 그들은 대기업 노조에서 안 나가는 것만 열심히지 나간 사람을 어떻게 하자, 는 자기 일이 아니에요. 10%와 90%를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90% 중에서도 가운데 40-50%는 그런대로 살아요. 문제는 하위 20-30%의 사람들이죠. 이들은 정말 아무도 이들의 목소리를 정치적으로 대변하는 데가 없거든요. 그러니까 이슈화가 안 되는 거죠. 실업보험이 정말 요긴한 사람들은 목소리가 없고 그런대로 목소리가 있는 사람들은 실업보험 그거 얼마 된다고 뭐, 이렇게 생각하는 거예요.

 

노인 빈곤 문제도 같은 거죠.


주진형: 노령연금도 그렇죠. 원청에 있는 사람은 부동산 가격 오르고, 퇴직금 받고 하면 국민연금 신경 안 써도 됐어요. 게다가 우리나라에서 힘 있는 공무원, 교수들은 저희들끼리 따로 연금이 있었고요. 한국에 왔을 때 정말 놀랐어요. 교수들이 국민연금에 관심이 없는 거예요. 사학연금은 아주 잘 알고요. 자기 것이니까요. 이런 사람들은 자기 부모들도 다 부양가족으로 넣으니까 건강보험 문제에도 관심이 없고요. 다 연결이 되어 있어요.

 

건강보험에 대해서는 소득수준별 부과 방식에 대한 요구가 계속 있어왔잖아요.

 

주진형: 자영업자가 재산 기준으로 건강보험을 내기 때문에 불합리하다는 이야기는 다들 알고 즉각적으로 반응해요. 그런데 그걸 해결하는 방법 중 하나가 월급 받는 사람들이 부모를 공짜로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을 없애야 한다고 하면 놀라요. 암묵적인 거죠, 사실은. 이번에도 못 바꿨잖아요. 조금 바뀌는 것도 얼렁뚱땅 넘어갔는데 기사화도 안 됐고요. 신문사에 정책 좀 담당한다는 지인들에게 물어봐도 몰랐다고 해요. 큰 문제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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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야 바꿀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본인의 문제임을 아는 것일 텐데요. 그래야 목소리도 낼 수 있고요. 결국 시민정치교육의 부재가 굉장히 큰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요. 책에서는 ‘사람을 키우는 교육’이라고 표현했어요.


손혜원: 요즘 팟캐스트가 굉장하지 않습니까. 공부한다는 거예요. 뉴스나 종편에서 전하는 왜곡된 정보 때문에 목마름이 있었는데 팟캐스트를 통해서 해소를 할 수 있는 거예요. 이렇게 알게 된 지식을 써먹는 거고요. 욕구가 엄청났던 거죠. 특히 경제 이야기는 어렵잖아요. 아무리 들어도 써먹을 수가 없어요. 그런데 ‘경제알바’는 어렵고 무서운 이야기를 쉽게 해주니까 입에 올릴 수가 있는 거죠. ‘직장 민주화’가 그래요. 그건 너무 당연한 거잖아요. 그걸 보니까 ‘맞아, 맞아’ 하면서 퍼지는 거잖아요. 실은 이건 제가 제물이 되면서(웃음) 한 건데요. 그래도 한 이유가 일반인들이 경제도 좀 알았으면 좋겠다, 그래야 바꿀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저부터도 굉장히 많은 걸 알게 되었고요.

 

자기 회사의 인사 제도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도 모르고 사장이 되는 사람이 많습니다. 거기에 비해 외국은 아래 단계부터 모든 결정을 자기가 하는 습관을 들입니다. 그래서 좋은 결정을 하는 사람이 계속 올라가는 거예요. 윗사람에게만 잘 보여서 되는 게 아니라 좋은 결정을 해온 사람이 올라가는 겁니다.(중략) 우리는 능력이 아니라 누구를 알아야 위로 올라갑니다. 대강 보면 별게 아닌 듯해도 사회 전체로 치면 얼마나 큰 문제냐는 거죠.(192-193쪽)

 

주진형: 이것은 거꾸로 말하면 정통 미디어의 실패예요. 어느 나라나 언론은 광고 수익에 의존하는 거라 기득권 세력의 앵글이 주조를 이루기 마련이라고는 얘기하는데요. 한국은 그것에 더해 족벌이 메이저 언론을 소유하고 있죠. 방송도 조종하고요. 이런 나라가 없거든요. 왜 대중이 정치나 경제에 대한 교육이 낙후되었는가에서 하나의 큰 이유는 바로 언론이 기득권 세력에 지나치게 포획되었기 때문이라는 거죠. 일본도 그 문제가 있는데요. 한국은 너무 심하죠. 그렇지만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거니까 국민들도 그만큼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것이고요. 지식인들도 그만큼 소위 민주 국가를 자치적으로 운영할 만한 경험이나 지식 자체가 워낙 얕았던 사회가 아니었나, 생각해요. 사실 아시아가 다 그렇고요. 저는 항상 일본이 우리의 최대치다, 라고 하거든요. 그렇게 생각할 때가 많아요.

 

책에서 다룬 열두 가지 이슈 중에 개인적으로 가장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는 이슈를 꼽는다면 무엇인가요?


주진형: 연금이죠. 지금 불이 난 거예요. 당장 사람이 죽고 있는 문제죠. 다른 분야는 그래도 조금 이러한 문제가 있다는 인식이 있는데 연금은 너무 오해가 커서요. 식자들 중에서도 그렇거든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얼마 전에도 페이스북에 올렸는데요. 우리 인구를 보면 30년대 생이 80대, 40년대 생이 70대잖아요. 이들 숫자에 비해 50년대 생의 숫자가 엄청 크다고요. 지금도 이렇게 난리가 났는데 이들 50년대에 태어난 베이비부머 세대가 늙기 시작하면 한국 사회는 난리가 날 거예요. 차라리 그게 문제가 되면 그들의 자식 세대가 위기감을 더 느낄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면 아마 뭐가 바뀔까요. 기가 막히죠. 지금은 아예 말도 못 꺼내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연금제도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의식 수준은 놀라울 정도예요. 워낙 30년 동안 이상하게 박혀서 그 선입관을 버린다는 게 쉽지 않을 거예요.


손혜원: 제 경우 연금 문제는 정말 관심이 없었어요. 국회에 들어와서 관심을 갖게 된 거죠. 그런데 주 선생 말을 들어보니 이해가 되더라고요. 처음엔 굉장히 힘들었는데 한 단계, 한 단계 들어가다보니까 어느 순간 화가 나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다음으로 가고, 다음으로 가고, 그렇게 된 거죠. 저는 정말로 확 다음 세상으로 가는 그런 계기가 되었어요. 또 직장 안에서의 문제를 ‘직장 민주화’라는 단어로 시작했잖아요. 재벌이나 중소기업의 문제를 원청과 하청으로 이야기했고요. 그랬을 때 본질을 이해하게 되고, 패러다임 자체를 바꾸게 된 것 같아요.

 

대선 앞인데요. 각 후보들이 내놓은 경제 정책 중에서 흥미롭게 본 것이 있으세요?


주진형: 보니까 기초연금을 올리는 문제에 대해서는 다양한 제안이 있더라고요. 어쨌든 기초연금을 올린다는 얘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대담한 것이거나 금기시 되던 것이었는데요. 이제는 안 그런 것 같아요. 또 하나는 아동수당 이야기예요. 이 이야기가 비교적 자유롭게 개진이 되고 그런 면에서는 조금씩 진전은 있는 것 같아요. 또한 문재인 캠프가 도심 재개발 이야기를 했어요. 시외곽에 신도시를 만드는 게 아니라 도심 주거지역의 재개발을 통해 환경을 개선하겠다고 하는데요. 그 얘기가 나오기까지 20년이 걸렸다는 것도 신기하긴 하지만요. 그게 다 부동산 신화를 이제 포기하면서 가능해졌다고 생각하거든요. 도심 재개발을 소규모로 하자는 얘기는 처음 나온 거라 굉장히 흥미롭게 봤습니다.

 

정치를 하는 입장에서 시민의 변화와 참여 필요성을 많이 느낄 것 같거든요. 당부의 말이나 다짐의 말이 있다면 듣고 싶습니다.


손혜원: 이 얘기들을 끝없이 했으면 좋겠어요. 될 때까지 말이에요. 문제가 이거다, 라는 이야기를 계속 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바뀔 것 같아요. 주진형 혼자 하는 걸 제가 하게 됐고, 이 책을 본 사람들과 다 같이 하게 됐잖아요. 이것이 합창이 되어서 안 할 수 없게 되었으면 좋겠어요.


 

 

경제, 알아야 바꾼다주진형 저 | 메디치미디어
경제, 어렵게만 느껴진다면? 현장 경험과 이론을 겸비한 주진형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조각조각 불분명했던 퍼즐이 완성된 그림으로 선명하게 맞춰진다. 밤낮없이 일하는데 우리는 왜 이렇게 여유가 없는 걸까? 거침없는 경제학자 주진형이 우리 앞에 진실을 내놓는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송희, 최서윤 “청년을 명명하기 전에 들어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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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애들은 버릇이 없다’, ‘요즘 젊은이들은 취직도 안 되고, 너무 불쌍해’, ‘요즘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이 단어가 인기라며?’……. ‘요즘 젊은이들’은 언제나 동네북이다. 사회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자리에서는 모든 걸 포기한 가장 불쌍한 세대, 기득권을 보호하는 입장에서는 끈기없고 나약한 세대, 그러면서도 기존과는 뭔가 달라야 하는 세대로 옷을 입힌다.


잡지를 만들고 글을 쓰는 청년들이 모여 한국 사회에서 느꼈던 좌절과 공감을 묶은 책이 『미운 청년 새끼』다. 독립 잡지 <계간 홀로> 편집장 이진송, <월간 잉여> 편집장 최서윤, <캠퍼스 씨네21>기자 김송희는 청년에 대해 ‘떠들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청년을 정의하려는 세대론보다 자기 경험을 푼 ‘썰’이 오히려 이 시대 청년론은 무엇이고, 청년은 누구인가를 잘 보여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먹고사니즘, 정치, 문화, 연애, 주거 등 청년과 가장 가까운 만큼 중요한 주제를 다뤘다.

 

짐이 곧 청년이니 내 이야기가 청년세대를 대변하는 이야기, 라는 자의식은 없다. ‘나’따위가 뭐라고 감히 세대를 대표한단 말인가. 다만 지금을 이야기 하는 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기에 힘닫는 데까지 풀어내보려 한다. ‘청년’으로 분류되는 몇 사람의 이야기에서 공통점을 추리고 서툴게 분석해 지금 청년세대는 무엇이다라고 섣불리 말하고 싶지 않다.

이건 그냥 ‘내’ 이야기다. 거기서 우리를 발견한다면 다행이겠다.
-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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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송희(좌), 최서윤(우)

 

이게 나만 겪는 문제가 아니구나


‘미운 청년 새끼’라는 제목은 이진송 저자가 먼저 생각했다고 들었다.

 

김송희 처음 나왔던 아이디어는 ‘별일 없이 산다’, ‘우아한 청년 생존법’ 등이었는데, 다른 세대가 청년을 가리키거나 지칭하는 제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카톡 채팅방에서 우리를 ‘미운 청년 새끼들’이라고 생각하는 거 아니냐 농담을 하다가 나온 제목이다.


저자들이 생각한 ‘미운 청년’, ‘청년 새끼’는 어떤 사람들이었나?


최서윤 N포 세대라는 명칭은 내가 원하는데 못한다는 뉘앙스가 있다. 못 하는 게 아니라 안 하는 게 이득인 것 같아서 결혼이나 내 집 마련을 안 하는 걸 선택하는 건데 방송에서는 가난한 청년을 포르노처럼 소비한다. 청년을 불쌍히 여기고 시혜적인 태도로 콩고물을 던져주는 분위기에서 문제의식을 느껴 위악적으로 지은 느낌도 있었다. ‘그래, 우리는 새끼들이다, 어쩔 건데?’ 이런 느낌.


김송희 패러디한 <미운우리새끼>라는 방송은 3, 40대 남성들이 결혼을 못 했기 때문에 찌질한 거고 집안 살림 잘하는 여성만 들어오면 해결될 것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보여준다. 그럼 여성은 그 집에 청소해 주러 들어가는 건가? 페미니즘 감성이 없는 방송을 패러디한다는 걱정도 있었다.


같은 나잇대의 사람들도 서로 경험하는 게 다르다. 시대 문제를 계급론으로 볼 것인가, 세대론으로 볼 것인가 하는 해묵은 논쟁도 있듯이, 청년을 규정하는 기준을 정하기 어렵다.


최서윤 잡지를 만들고 매체에 소개되면서 청년 이야기를 대변한다고 나올 때 오해할 여지가 있겠다는 마음이 든다. 나와 비슷한 견해가 있다고 느끼거나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이 공감하고, 그 목소리가 집합적으로 나올 때 담론 형성이 되는 거지 총체적으로 한 사람이 대변해서 담론이 만들어지는 건 아닌 것 같다. 이 책도 삶의 배경이나 활동, 생각을 최대한 경험 위주로 쓰려고 했다.


김송희 대학생들이 볼 때 나는 세대 차이 나는 어른일 것이다. 나도 아직 사회에서 불안정하다는 느낌이 드는데 대학생이 보면 나는 안정적인 직업을 가진 기득권 세대일지도 모른다. 그럼 내가 청년이 맞나? 이런 고민을 하게 된다.


청년 세대 내에서도 우리는 불행하고, 불행하기 때문에 바뀌어야 한다는 내재화된 의식이 있을 것 같다.


김송희 청년이라는 말에 피로가 쌓여 있다. 청년 세대가 너무 힘들다고 생각한 게 10년 전인데 10년 동안 청년을 위해 뭐가 달라졌나 생각해 보면 아무것도 없다. 청년을 지칭하는 언어만 바뀌었다. 오히려 3, 40대가 청년을 궁금해한다. 요즘 대학생들이 쓰는 유행어가 실시간 검색에 뜬다. 트렌디해야 한다는 압박이 모든 세대에게 있다. 청년 세대 관련한 책도 주제별로 이미 많이 나와서, 청년들부터 또 청년 얘기구나 하고 오히려 안 볼 것 같다. 이 책은 전체적인 맥락이나 세대의 경향성을 분석하는 게 아니라, 나는 직장에서 이랬고 어떤 집에 살았다는 신상팔이 이야기다. 이게 나만 겪는 문제가 아니구나, 내가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고 조금씩 나아지는 변화를 체험하는 이야기가 모여 있다고 생각해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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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송희 저자

 

주거와 먹고사니즘


공저자 세 명이 다 여성으로서 청년 담론을 이야기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기존의 청년 담론이 여성을 배제하고 이뤄지는데, 여성 청년 셋이 모이면 다른 결의 이야기가 나온다. 주거 면에서도 여성으로서의 주거 문제가 더 취약하다든지.

 
김송희 필자 세 명이 정해지고 난 뒤에는 여성들끼리 이야기하는 청년이 의미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여성이기 때문에 안전을 챙겨야 해서 집세가 더 올라가는 부분이 생긴다. 처음에 집을 구할 때 아무 생각 없이 공사가 안 끝나서 문이 덜 닫히고, 화장실을 밖에서 보려고 하면 언제든지 볼 수 있는 트인 공간의 집을 가계약했다. 어머니가 같이 올라와서 보시더니 여자애가 어떻게 이런 집에서 사느냐고 계약을 철회하고 조금 더 비싼 집을 얻어주고 내려가셨다. 1층집에서 살았을 때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조금만 고개를 돌려도 집 안이 보여서 여름인데도 커튼을 치고 살았다. 안전 면에서 생각해 보면 여성들은 진입하지 못하는 집이 많다.


최서윤 신혼부부에게는 대출 혜택이나 공공주택 당첨비율이 높다. 1인 가구로 결혼하지 않을 예정이고 자식을 낳지 않을 예정이면 복지 혜택을 받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가난하면 이웃에게조차 방해가 되는 내용이 있었다. 늘 이웃하고 영향을 주면서 살 수밖에 없는데, 점점 관계 맺기가 힘들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


김송희 도시에서 이웃과 관계가 없다는 걸 삭막하다고 이야기하고, 농촌에서 서로 숟가락이 몇 개인지 아는 걸 지향해야 하는 목표로 이야기하는데, 귀향한 사람은 농촌 사회가 얼마나 폐쇄적인지 이야기하곤 한다. 도시에도 적당한 거리감으로 살고 싶어도 살 수 없는 주거 환경이 있다. 옆집에 4인 가족이 사는데, 좁겠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집의 모든 짐이 집앞과 옥상의 계단을 점거하고 있으니 불편하다. 감자와 양파까지 내놓고 사는데 내가 가서 카레라도 해 먹으면 어쩌려고 그러나 싶다. 하지만 불편한 걸 말하는 순간 더 불편해지는 관계가 되니까 조심하게 된다.


‘탕진잼’, ‘시발비용’ 등 신조어가 계속 언론에 나타난다. 미래의 희망이 안 보이는 상태에서 현재의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비용으로 소개한다.

 

김송희 대학생에게 물어보면 기사에 나온 신조어는 이미 한 발짝 유행이 지날 때가 많다. 그리고 분석하는 것 자체를 웃긴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기성 언론, 소위 큰 언론에서 청년을 다룰 필요성은 있다. 경향성이 보이는데 안 다룰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이런 명명이 한계가 있을 수 있고, 초반에는 이 분석 틀이 유효할지라도 곧 낡아진다는 걸 알면 좋겠고, 소비하는 입장에서도 그걸 알고 소비했으면 좋겠다.


지금은 어느 정도 일의 의미와 ‘먹고사니즘’ 사이에서 합의를 찾았나?


김송희 아직 모르겠다. 나이가 든다고 없어지는 고민은 아닌 것 같다. 연봉 올라가는 속도보다 전세금 올라가는 속도가 훨씬 빠르다. 계속 일하는데 내 삶이 개선되는 게 보이지 않는다면, 열심히 모으고 살아도 재계약할 때 그만큼 올려달라고 하면 삶의 질이 전혀 나아지지 않는다. 최근 같은 일을 하는 40대 선배들 집 구경을 했는데 집에 돌아오니 내가 너무 가난뱅이처럼 느껴지더라. 예전에는 선배보다 잘 될 거라는 생각을 했는데 요새는 선배만큼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왜냐하면, 못 할 것 같아서. 온라인 집들이를 보면 대부분 신혼부부 집이다. 안정적인 부자라서 인테리어를 하는 게 아니라 집에서 투자를 받고 모은 돈과 대출을 껴서 집을 꾸밀 수 있는 유일한 시기라 그런 것 같다. 이렇게 살려면 결혼밖에 답이 없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고. (웃음) 삶이 한발짝 나아가려면 어떤 변화의 지점이 있어야 하는데 주변을 보면 결혼밖에 없다. 나는 저렇게는 못 살 텐데 이런 생각이 든다.


최서윤 결국 결혼 때 부모들이 재산 분할을 하게 되니까 자본이 생기는 유일한 기회가 된다. 나는 결혼을 안 하려고 마음을 굳힌 상태에서 결혼식 때 냈던 돈이 너무 아까워서 이제부터는 결혼식에 안 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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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서윤 저자

 

 

문화, 죽은 듯 살지 않기 위해 찍 소리 내기


변화를 위해 여러 가지 활동을 했다. 보드게임인 ‘수저게임’도 이슈가 됐는데, 게임을 만들게 된 계기가 있나?


최서윤 정치 참여해 봤자 바뀌지 않기 때문에 투표를 안 했다는 사람을 설득하려고 하니까 나도 꼰대가 되는 느낌이 들었다. 직접 게임에 참여해 법안이나 정책이 영향을 미치는 걸 보면서 현실에서도 유사한 정책을 정책 입안자들에게 요구해야겠다는 걸 느끼게 하려고 했다. 박근혜 탄핵정국으로 정치 혐오증이 없어지고 관심이 높아진 것과 비교하면 수저게임은 미비한 효과를 내지 않았나 싶다. (웃음)

 

수저게임은 방송을 타면서 원작자를 표기하지 않아 불편해진 지점도 있다고 들었다.


최서윤 방송을 꾸리는 개개인은 좋은 사람이 많다. 힘의 대칭 구조에서 큰 언론은 창작자를 홍보해 줬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데, 인식적인 문제다. 조직 내부, 회사의 관행이나 예산 편성, 매뉴얼 없음이 불편한 결과를 낳았다고 느꼈다.


‘글 값이 똥값이다’라는 말처럼, 콘텐츠 제작자들이 제작에 투입한 노력과 시간을 보답 받지 못하는 문제도 언급했다.


최서윤 돈이 없는 주체들끼리 같은 의식을 가진 때는 좋아서 할 수 있다. 다만 돈이 있는 주체에서 콘텐츠를 쓸 때는 공공기관에서 지원금으로 할당하든 방송국 예산 편성을 확충하든 돈이 필요하다. 창작자들은 주로 나이브하게 이런 게 없으니까 만들어보고 싶다는 이유로, 재미있어 보인다는 이유로 만들지, 상업적인 기획으로 저작권을 등록한다든가 법무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안 한다. 그래서 법적인 보호에서는 취약해질 수밖에 없는데,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법적으로만 해결하려고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매뉴얼과 문화 내에서 정비될 수 있다.


김송희 기자나 글 쓰는 일을 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다. 그러면 네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고 사람을 저렴하게 쓰려고 한다. 최근 직장 생활에서도 느낀 게, 남 보기에 좋은 직장이 다니기 힘들다. 외부에는 아름다운 것처럼 보여도 그런 회사가 내부는 뒤틀려 있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너 아니어도 하고 싶다는 사람 많다면서 인력을 쉽게 대체하고 줄 서 있는 인력을 한 명씩 골라 가져가니까. 좋아하는 일을 하니까 돈과 성취감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다.


최서윤 콘텐츠 만드는 일에 절박하게 매달리지 않으려면 이거 말고도 할 거 많다, 나 혼자 할 거라는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다들 여유가 없다. 결국 그게 가능하게 하려면 기득권의 부를 나눠 가져야 하나? 이런 생각이 든다.


자존감을 높이거나 스트레스 해소하는 방법이 있나?


김송희 택배 뜯을 때 너무 기쁘지 않나?


최서윤 회사에 속하지 않고도 먹고 살 수 있을 정도로 운이 좋았기 때문에 ‘시발비용’을 쓰지 않아도 되는 부분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창작이 자존감을 높일 방법인데, 요새는 창작자가 많아서 빨리 소비되다 보니 자극적인 소재로 관심을 끌려는 일베식 산업화 경쟁이라든가 불행 배틀 등이 일어나는 것 같다. 모두가 자존감을 높일 방법으로 일상 속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접촉 지점을 소소하게라도 만들어야 할 텐데, 그렇게 일상을 재편하기 위해서는 개인만의 노력으로는 어렵다.


730 프로젝트는 기존과 다른 인간관계를 맺으려는 시도로 보였다. 페이스북 친구와 1년에 한 명씩 2년 동안 같이 밥을 먹는 프로젝트였는데.


최서윤 그 프로젝트를 보고 한 달에 한 번씩 새로운 페북 친구를 만들었다고 알려준 분도 계셨다. 내 삶이 권태롭거나, 일상이 재미없을 때 새로운 사람을 통해 활력을 얻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다. SNS가 어떤 프로젝트나 업무를 같이 하기 위한 인력 플랫폼이기도 하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상품으로 노출해 활용하는 사람도 많고, 비슷한 업계 사람끼리 교류하는 장이 되는 게 있다.


김송희 그렇게 취향으로 공동체가 만들어지는 것 같다. 핏줄이나 자라온 곳과 상관없이 취향만 맞는다면 서로 관계가 없던 사람들하고도 쉽게 다가갈 수 있게 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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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서윤(좌), 김송희(우)

 

이런 관계를, 이런 정치를 원한다


고양이와의 동거 이야기도 들어갔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게 1인 가구의 자존감을 키우는 한 방법일 것 같다.


김송희 내가 밥을 주고 보살펴서 이 친구가 따뜻한 방에 누워 배를 까고 편히 자는 걸 보면 내가 그래도 세상에서 좋은 일 하나는 한다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보면 형용모순인데 부모님이 나를 필요로 하는 건 부담스럽고 은혜를 갚아야 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어떤 동물이 나를 좋아하고 의지하면 위안이 되는 부분이 있다.


최서윤 고양이를 귀엽게 생각하면서도 키우진 않는다. 남의 집 고양이 사진을 보면서 만족하는 부분이 크다. 은행에서 대출받는 걸 싫어한 이유도 고정적인 지출이 생기는 게 싫어서다. 최대한 이 시스템에 속박이 덜 된 채로 살다 가고 싶은 마음이다.


김송희 반려동물을 키워야겠다는 결정에서 가장 큰 부담이 그거다. 사료랑 모래값으로 고정적인 지출이 생기는데 내가 현재 벌고 있는 돈을 계속 벌 수 있다는 확신이 없다. 아직은 젊으니까 하루에 5만 원 못 벌겠어 생각하지만, 나이 들어서까지 생각하면 내 미래가 불안한 상황에서는 큰 결단이다. 부모님을 진심으로 존경하는 친구들을 보면 자식을 키우고 책임지는 걸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평범한 일상을 유지하는 것도 어려운데 생명을 20년 넘게 책임지고 키우는 게 엄청난 일이고, 무서워서 자식을 못 키우겠다는 게 지금 우리들의 현실에 대한 인식인 것 같다. 나한테 불리한 걸 떠나서 자신이 없어 그런 것도 있다.


청년을 말하면서 기성세대와의 갈등으로 크게 가를 수 있을 것 같은데, 부모나 상사 등 다른 세대와 불화한다고 느끼나?


최서윤 나이와 세대 간 갈등이라기보다 조직에 속한 개인으로 어쩔 수 없는 영역이 있다. 비슷한 나이여도 사장에 빙의해서 경영적인 결정을 하는 사람이 있고, 조직의 위치가 개인의 성향을 만드는 부분도 있다. 지금의 20대들은 애초에 연공서열보장이 안 되는 부분이 있고, 이미 안정적으로 계약이 된 4,50대는 계속 이 사회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계층이기 때문에 세대 간 갈등으로 보여지는 측면이 있다.


김송희 청년 세대는 부모 세대와 불화하리라고 생각하는 것도 편견이다. 지금 20대 중에는 부모와 진로나 장래로 충분히 대화를 나누고 열린 생각으로 이해해주는 부모도 분명히 있다.


최서윤 중요한 건 미리 판단하지 않고 물어보면 된다고 생각한다. 지레 이럴 거라고 생각하고 먼저 대상화하기 전에 좀 들었으면 좋겠다.


1억 모으기 목표는 어떻게 되고 있나.


최서윤 원래는 대출 없이 모아서 1억을 만들어 협동 주택을 만들자는 목표였는데 이제는 대출을 받아야 할 것 같다. 협동 주택은 돈 있는 사람을 모으고, 그 사람과 잘 지낼 수 있어야 하며, 같은 곳을 계약해서 집을 세워야 한다. 이론적으로는 그런 방향으로 가는 게 좋겠지만, 실질적으로는 매우 복잡한 일일 것이다. 가족이 때로는 지겹고 숨 막히고 말이 통하지 않는 부분이 많다는 걸 발견한 세대라, 비슷한 세대끼리 소통하는 공동체를 만들겠다는 욕망이 생길 것 같다.


김송희 추석이 지나면 며느리가 아니더라도 모든 커뮤니티가 가족 때문에 스트레스받은 이야기로 넘쳐난다. 1년에 한두 번 보는 가족 때문에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는다면 왜 만나는 건가 싶다.


앞으로 계획은?


최서윤 일단 돈을 벌어야 하지 않을까. 조그만 일들을 모아 한 달의 생활비를 만드는 게 단체에 소속되지 않은 사람의 필수 조건이다.


김송희 대학생 타깃 잡지를 만드는 일을 하기 때문에 나이가 더 들면 이걸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은 든다. 다행히 지난호 마감을 하고 맥주를 마시는데 이것 때문에 일을 계속하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 맛있더라. 사람들이 잡지를 보지 않는 시대가 올 거고 그럼 내 경쟁력을 다른 방향으로 키워야 할 테지만, 그래도 재밌는 일이었으면 좋겠다. 성취감 느끼는 일이고 사람들로부터 글 잘 봤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자리였으면 좋겠다. 계속 내 삶을 비감만 할 게 아니라 그럼에도 이 부분은 좀 낫다는 희망을 발견해야지, 안 그러면 너무 우울하다. 주거에서도 대출을 알아본다든지, 동네를 옮긴다든지 하는 노력을 들여야 한다.

 

삶에서 어떤 관계를 꿈꾸나?


김송희 나보다 나은 사람과 비교하고 비관하는 건 안 된다. 자기보다 상황이 나은 사람은 항상 있다. 그걸 비교하고 부러워하기 시작하면 열등감이 되고 자격지심이 되더라. 최대한 차단한 상태에서 서로에게 좋은 에너지를 많이 만드는 게 필요하다. 다만 내 상황에만 관심을 가지면 이 상황이 반복된다. 청년 세대를 위한 직장을 많이 만들어달라고 운동하던 사람이 취업하고 자신의 문제는 해결됐다고 끝나면 또 다른 문제가 계속 생긴다. 나 말고 공동체 문제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개선을 위해서 작은 노력이라도 하는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최서윤 대통령 선거가 눈앞인데, 그런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사회 구조가 되기를 바란다.


대통령 선거 이야기가 나왔으니, 청년으로서 대통령에게 바라는 게 있나?


김송희 최근에 어차피 대통령이 세상을 나아지게 만들 수 없는 사회니까 우리를 화내지만 않게 해달라는 글이 인상 깊었다. 어떤 정책을 펼치든지 그 결정이 공동체에 좋은 결과를 위해 낸 결정이라는 걸 설득시킬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최서윤 GDP 같은 수치는 이제 중요하지 않고 수치가 아닌 사람들의 삶이 나아지고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는 한국 사람이 될 수 있게 많이 일해줬으면 한다. 우리도 기득권을 편들어 주지 않는 대통령에게 그 진심이나 행위를 알아주는 게 보상이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김송희 항상 아파트값 잡는 공약이 나오는데 나는 서울에 아파트를 가질 수 있을 거라는 걸 상상조차 해본 적 없는 사람이라 부동산 정책이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책을 누가 읽으면 좋겠나?

 

최서윤 도서관 이용하는 분들은 도서관에 신청해 달라. 자기 돈 주고 사도 어차피 집에 놓을 데 없는 거 아니까 바라지 않는다.


김송희 국회의원만 사도 300권이다. 청년들 따라잡으려고 신조어 공부하기보다 이 책을 봤으면 한다.


 

 

미운 청년 새끼최서윤,이진송,김송희 공저 | 미래의창
대한민국 청년은 어디에서, 어떤 생각을 하며,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청년이 대한민국을 헬조선이라 일컫는 이유, 자신을 흙수저라 자조하는 이유, N포세대라는 말이 미치도록 싫은 이유를 가장 생생한 목소리로 담았다. 먹고사니즘, 정치, 문화, 연애, 주거까지 다섯 개의 주제는 청년의 삶을 관통해 대한민국과 청년의 현주소를 다각도로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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