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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재 “웹툰이 단행본으로도 사랑 받으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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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재 삼국지』가 개정판으로 완간됐다. 2002년에 출간된 『이문열 이희재 만화 삼국지』를 토대로, 나관중의 원작 소설 『삼국지연의』에서 벗어난 부분을 살피고, 중국 민중들 사이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에피소드를 일부 보탰다. 1800여 년 전 고대 중국의 이야기가 여전히 매력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만화가 이희재는 『삼국지』를 두고 “세상살이를 읽는 책”이라고 말한다. 수백 호걸들의 이야기 속에 삶의 지혜, 인간사가 녹아 있기 때문이다. 이희재는 대한민국 대표적인 사실주의 만화가로서 특유의 역동적이고 유려한 그림체를 선보인다. 원작의 진미를 잃지 않으면서도 작화의 매력을 살렸다. 『삼국지』에 쉽게 도전하지 못하는 독자들이라면 입문서로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만화다.

 

이희재는 20살 무렵 만화판에 들어와 1981년 『명인』, 『억새』를 발표하며 40여 년 동안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어린이 만화 『악동이』를 비롯해 『한국의 역사』,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저 하늘에도 슬픔이』 등을 그렸다. 지난해에는 서울역 고가를 넘나들며 살아온 서울시민의 일상을 ‘서울 만화경 展’을 통해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다. 오래 전부터 헌책방을 순회하며 문학, 사회학, 철학 책들을 쉬지 않고 탐독했던 그는 “전세계 독자들이 고전을 사랑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나를 돌아보고 성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삼국지』를 10대, 20대에 봤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는 그것이 항상 아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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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20대에 읽었더라면 더 좋았을 『삼국지』


개정판이 나왔다. 예전 책보다 훨씬 읽기 편하다.

 

휴머니스트가 책을 잘 만들지 않나. 예전 책과 크게 다름이 없으면서도 또 다르다. 책이 막상 나온 걸 보니 참 좋다. 휴머니스트가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을 13년에 걸쳐 만든 출판사 아닌가. 작가도 힘들지만 기다리는 출판사도 힘든 일이라, 동료 작가로서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었다. 『이희재 삼국지』 개정판을 내면서도 같은 느낌이다.

 

2002년에 『이문열 이희재 만화 삼국지』를 출간했으니 벌써 15년이다. 오랫동안 베스트셀러였고 독자층도 넓었다. 개정판 서문을 보니 “부모가 자녀에게 추천하면 좋을 책”이라고 썼다.


『삼국지』는 동양의 정서를 가득 품은 고전이다. 동양의 전형적인 캐릭터들이 다 모였다. 1,800년 전 중국의 역사를 우리가 지금 왜 알아야 하나? 그건 지금도 여전히 난세이고 지혜와 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삼국지』는 싸우는 이야기가 아니냐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본질적으로 인간 군상을 다룬 작품이다. 사람 사이의 관계를 헤아리고 자신을 돌아보며 성찰을 이끄는 작품이다. 고리타분한 고전이 아니라 세상살이를 읽는 책이다.

 

한 권에 수백 쪽이 넘는 활자책을 200여 쪽의 만화로 구성했다. 나관중 원작의 흐름을 살리기 위해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


곁가지들을 솎아내고 간결한 그림체로 표현하려고 했다. 초등학생부터 성인까지 함께 읽는 만화이기 때문에 그림을 지나치게 약화하거나 간결하게 표현하면, 작품이 지루해진다. 『삼국지』가 갖고 있는 알맹이를 적절한 선에서 잘 풀어나가고자 했다.

 

리뷰를 찾아보니, ‘보물 1호’로 『삼국지』를 꼽는 아이들도 있더라. 요즘 아이들에게 멀어진 고전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더라.


고전을 읽을 때마다 아쉬운 마음이 든다. 더 어린 나이에 읽었더라면 좋았을 거라는 생각 때문이다. 내가 『삼국지』를 10대, 20대에 읽었더라면 사람을 보는 눈이 더 깊어졌을 것 같다. 『이희재 삼국지』가 10권인데, 만화임에도 불구하고 10권을 읽을 생각을 하면 좀 부담스럽다. 소설이라면 더 큰 마음을 먹어야 할지도 모른다. 지금은 옛날처럼 느린 삶이 아니다. 뭐든지 빨리 변하고 유행도 자주 찾아온다. 고전을 봐도 무척 다양하게 재해석되고 있다. 하지만 고전은 고전이다.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이름이 오르내린 건 이유가 있다.

 

편집부에서 부록으로 『삼국지 고사성어』를 만들었다. 일상에서 자주 언급되는 삼국지 고사들을 엮었다. 『이희재 삼국지』를 그리면서 특히 기억에 남는 고사성어가 있나?


여러 가지가 인상 깊지만, 한 가지를 말하자면. ‘삼고초려(三顧草廬)’다. 오두막집을 세 번이나 돌아보라는 뜻인데, 내가 얻고자 하는 인재를 얻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고사다. 유비는 제갈공명보다 스무 살이 더 많지 않았나? 아직 실력이 증명되지 않은 제갈공명에게 큰 절을 하고 고개를 숙일 수 있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요즘 대통령 후보 토론회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한다. 나의 존재를 낮추면서까지 최선을 다할 수 있는 대통령은 과연 누군지, 과연 있는지. 덕을 갖는다는 것은 사회적 덕목이다. 삼국지는 용맹한 것, 지혜도 보여주지만 삶의 방향성도 알려준다. 30대에 『삼국지』를 처음 읽었는데 ‘왜 더 일찍 보지 못했을까’, 지금도 아쉬운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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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고초려(三顧草廬), 유능하고 지혜로운 참모를 물색하고 있던 유비에게 서서는 제갈량이라는 선비를 천거한다. 제갈량은 아우 제갈균과 더불어 초야에 묻혀 글을 읽으며 지내고 있었다. 유비는 제갈량을 만나기 위해 융중 와룡강 기슭에 있는 초가의 사립문을 찾는다. 하지만 숨어 사는 제갈량을 불러내는 일은 쉽지 않았고 결국 세 번째 찾아갔을 때야 비로소 그를 만날 수 있었다. 신분과 지위를 버리고 정성을 다하는 모습이 제갈량의 마음을 감동시킨 것이다. 유비의 지극한 인내와 겸손으로 인해 와룡강 외진 기슭에 숨어 살던 제갈량은 영웅들이 다투는 소용돌이 속으로 뛰어들게 된다. (『삼국지 고사성어』 35쪽)

 

곧 대통령 선거다. 『삼국지』를 빗대어 한 나라의 지도자가 본보기로 삼아야 할 인물은 누굴까.


유비의 모습을 닮아야 하지 않을까 싶다. 『삼국지』는 전형적인 캐릭터들의 경연장이다. 인간사의 흥미로운 모습을 다 갖고 있기 때문에 오랜 시간 동안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을 수 있었다. 이를 테면 장비는 용맹한 인물이다. 사나이의 세계에서 용맹한 것처럼 중요한 것은 없다. 관우는 실력이 있는데 신의도 있다. 자기가 믿는 사람과는 끝까지 간다. 또한 사람이 점잖다. 장비가 흥분할 때마다 장비를 차분하게 이끈다. 그리고 장비와 관우의 의견이 대립할 때 중재를 하는 사람은 유비다. 유비는 관우와 장비 두 사람의 지혜, 용맹함을 통제하고 또 십분 발휘하게 만든다. 지도자로서의 유비는 어떻게 보면 모자람이 없다. 독특한 캐릭터보다는 어딘지 모르게 싱겁지만, 다른 사람들은 품는 인물이다. 동양에서 주로 내세우는 큰 틀의 그릇이다.

 

혹 만화가를 하면 잘했을 것 같은 인물은?


하하. 글쎄, 생각해보지 않았는데. 아마도 제갈공명이 잘하지 않을까. 만화는 상투적인 유머만 있어서는 그릴 수 없다. 기승전결과 사유, 스토리텔링이 있어야 한다. 만사에 대해 여러 모로 고민할 줄 알아야 한다. 아마 장비가 만화를 그렸다면, 어느 한 장면을 잘 그릴 수 있겠지만 전체적인 흐름을 집어내긴 어려웠을 것 같다. 아, 방통도 만화가를 했으면 잘했겠다. 두뇌도 뛰어나고 유머러스 한 면도 많은 인물이다.

 

지금 사마천의 『사기열전』을 그리고 있다고 들었다.


『사기열전』 40대가 돼서야 읽었다. 읽는 내내 몹시 아쉬웠다. 20대에 읽어야 할 책이라고 생각했다. 출판용을 염두에 두고 있지만 웹으로도 연재하고 있다. 어시스트의 도움도 받으면 좋지만 내가 조직력이 약하다. 거의 혼자 작업하는 터라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은데, 나는 처음부터 출판사에게 좀 기다려 달라고 하는 편이다. 빨리 후려치듯이 끝내면 작품의 수명도 짧다. 오래 볼 수 있는 작품을 그리는 게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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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하고 같이 놀 때 예술은 작동한다


지금 세대는 “만화 = 웹툰’을 떠올린다. 후배 만화가들의 웹툰을 보기도 하나.


많이 본다. 워낙 많이 나오니까 안 볼 수가 없는데, 선택이 중요하다. 일반 문학이든 영화든 콘텐츠를 보려면 내 시간을 내야 하지 않나. 여가를 복되게 하려고 문화를 즐기는데, 간혹 시간을 낭비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래서 지혜롭게 선택하는 게 중요하다. 이왕이면 소모되지 않는 시간을 쓰는 게 좋으니까. 후배들을 만날 때마다 “재밌는 만화 없어?”라고 묻는다. 추천 받은 작품을 보려고 하는데, 대중의 사랑을 많이 받는 만화를 보면 때때로 엇비슷한 느낌이 많이 든다. 그런 작품은 크게 볼 필요는 없다.

 

명랑만화가 이정문, 시대극화의 대가 김종래의 문하생으로 만화계에 입문했다. 『명인』으로 데뷔한 건 11년 후다. 습작 기간이 비교적 길었는데 만화가로 데뷔하기까지 어려움은 없었나.


우리 때는 공식적인 데뷔 같은 게 없었다. 책을 냈다가 또 다듬어서 다시 내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습작기라는 게 따로 없다. 인생 자체가 습작기다. 지금도 만화를 그릴 때마다 ‘내가 이렇게 못 그리나?’, ‘이렇게 슬럼프가 오나?’ 싶다. 이럴 땐 조금 쉬면서 머리를 식힌 다음에 드로잉을 구성한다. 연필로 그리는 게 아니라 내 뇌를 정리해보는 거다. 구태의연하게 반사적으로 움직이면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없다. 뇌라는 게 비단 정신의 문제만이 아니다. 몸뚱이 전체가 될 수 있다. 몸으로 많이 그려봐야 실전에서 실력이 나온다. 관우의 눈썹을 그린다고 치자. 머릿속에서부터 상상하면서 손끝까지 내 몸을 다해서 그려야 한다. 몸하고 같이 놀 때 예술은 작동한다.

 

만화 외길을 걸었다. 딴 길로 좀 가볼까 하는 생각은 없었는지.


글쎄. 아마 다른 길을 갔더라면 선생을 했을 거다. 국어나 역사 선생님. 역사에는 재미있는 인간사가 있다. 축적된 인생사의 의미를 찾아내는 게 재밌다. 국어 또한 언어를 다루는 학문 아닌가. 언어를 다루면서 동시에 창작도 할 수 있다. 세월호가 얼마 전에 인양되지 않았나. 지금이라도 올라와서 다행이지만 아직도 미수습자가 있다. 미수습자의 가족을 생각하면, 아.... 그건 살아있는 생이 아닌 심정이 아닐까. 온기가 사라진 부모들의 표정을 볼 때, 우리가 어떤 태도로 삶을 살아야 하나. 어떤 말과 글을 사용해야 하나 고민하게 된다.

 

2003년에 『십시일반』에서 다리가 불편한 여학생의 고군분투 학교 생활기를 그렸다. 사회적인 문제를 만화로 많이 풀어왔다.


앞으로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다. 사회의 비주류들, 독특한 인물형들을 만화에 담고 싶다. 고은 선생은 『만인보』를 통해 만인의 이야기를 담지 않았나. 만화가 역시 내 이웃들의 이야기를 담아야 한다.

 

『악동이』를 추억하는 독자도 많다. 후속작 『아이코 악동이』는 어린이 잡지 <개똥이네 놀이터>에 연재한 작품이다.


새로운 시대의 악동을 그렸다. 악동이가 ‘아이코’를 만나 신비로운 모험을 하는 과정을 그린 만화다. 우리 전성기 때는 <보물섬>이라는 잡지가 있었다. 20만 부까지 나갔던 잡지인데, 하이라이트는 <아기 공룡 둘리>였다. 지금은 어린이만화의 창구가 너무 작다. <개똥이네 놀이터>가 약 7천 부 정도 나간 걸로 아는데, 파장이 다를 수밖에 없다. 만화는 언제나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매체다. 어린이들한테 들려줄 만한 인문학적 기초들, 이를 테면 한자 풀이도 만화로 이야기하면 아이들이 재밌어 한다. 지혜로운 이야기를 읽다 보면 현명한 학습이 저절로 된다.

 

연재한 작품이 단행본으로 나오면, 잘 팔리는 만화가 있는가 하면 연재 때만큼은 관심을 못 받는 만화도 있다. 이유가 뭘까.


책은 보는 매체이면서 동시에 소유할 수 있는 물건이다. 애정의 밀도, 소유의 감도 같은 게 영향이 있지 않을까. 기억의 메모리로 저장하는 것과 구체적인 사물로 소유하는 것 사이에 마음의 밀도가 다를 수밖에 없다. 윤태호의 『미생』, 주호민의 『신과 함께』는 연재 때도 사랑을 받았지만 단행본을 산 독자들도 많다. 웹으로 이미 봤지만 갖고 싶기도 한 책인 거다. 좋으면 소유하고 싶은 마음도 들기 마련인데, 이런 단계가 되려면 그래픽도 좋아야 한다.

 

눈여겨보는 후배 만화가가 있나?


공모전에서 발견한 ‘앙꼬’라는 친구의 만화를 봤는데 ‘이렇게 독특한 애가 있나?’ 놀랐다. 프랑스에서 유학을 한 30대 중반일 거라 예상했는데, 아버지가 나랑 동갑이더라. (웃음) 시상식에서 그 친구의 부모님을 만나 “여기까지 탈 없이 보내준 것 감사하다. 보통 재주가 아니”라고 말했다. 『나쁜 친구』로 제44회 프랑스 앙굴렘국제만화축제에서 ‘새로운 발견상(Prix Revelation)’을 받았는데, 한국인 최초로 알고 있다. 굉장히 주목할 만한 만화가다.

 

좋은 만화를 그리기 위한 덕목이 있다면, 혹은 좋은 만화가가 되려면 꼭 갖춰야 할 자질은 무엇일까?


글쎄, 나는 너무 일찍 선생의 지도를 받는 것에 반대한다.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자기 세계를 펼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앙꼬는 어릴 때부터 스스로 목에 백지를 걸고 다니면서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자기 눈에 보이는 걸 끊임 없이 그린 거다. 머릿속에 상념만 가지고 있으면 발전할 수가 없다. 우리 몸이 움직여야 한다. 가끔 TV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는데, 아쉬운 마음이 들 때가 있다. 보석 같은 친구를 발굴하고서는 그 친구의 개성을 순식간에 깨버린다. 물론 기초도 중요하고 가르침도 필요하지만 어디까지나 방향을 잡아주는 데서 멈춰야 한다. 미술을 포함한 모든 교육은 항상 부모, 교사들이 방해한다.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의 잠재력을 가둬두면 안 된다. 더 자유롭게 길을 열어둬야 고루해지지 않는다. 피카소가 왜 대단한가? 생각하는 것,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그렸기 때문이다.

 

『이희재 삼국지』를 특별히 추천하고 싶은 독자가 있다면.


어린이들부터 어른까지, 초등학생 3학년 이상부터는 모두 보면 좋겠다. 고전은 읽어놓으면 두고두고 얘깃거리가 된다. 삶의 순간순간 화술로써, 이야기로써도 기초가 된다. 부모가 먼저 읽고 아이에게 권하면 좋겠다. 결코 지루하지 않다. (웃음)


 

 

이희재 삼국지나관중 원저/이희재 저 | 휴머니스트
나관중 원작 소설 삼국지연의를 바탕으로 이희재 화백이 작화한 이희재 삼국지가 10권 구성으로 완간되었다. 화백의 손끝에서 그려진 수 백 명의 삼국지 영웅들이 2,000 쪽의 만화 속에서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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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효서 “변덕은 나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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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효서는 ‘나는 이쪽저쪽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지난 30년 동안 그가 오고 간 세계의 끝에는 서사와 비서사, 익숙함과 낯섦, 대중적 소설과 실험적 소설이 있었다. 소설집 『아닌 계절』은 후자의 세계와 더 가깝다.

 

모호한 공간과 뒤틀린 시간 속에 알 수 없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이름조차 가지지 못했거나 아무런 의미도 없어 보이는 이름으로 호명된다.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이렇다 할 관심을 가지지도 않고, 물론 영향을 받지도 않는다.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오직 하나. 그들이 피부로 감지하는 온도와 감촉, 그리고 소리다. 의심의 여지없이 말할 수 있는 ‘현실’이 있다면 겨우 그 정도일 지도 몰랐다. 숱한 감정들로 인지한 현실은 실제와 얼마나 같은 걸까. 이 의문에서 『아닌 계절』은 태동했다.

 

독자는 이야기가 서서히 부풀어 올랐다가 일순간에 꺼지는 ‘익숙한’ 구조를 기대하지만 작가는 의도적으로 맥락의 마디마디를 끊어놓았다. 덕분에 독자들은 작품 속에서 길을 잃는 생경한 경험을 한다. 왜 이런 소설을 썼을까, 의문이 드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소설가는 이러한 궁금증이 길게 이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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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짓궂은 장난


지난 4년간 발표하신 작품을 묶으셨어요. 계절의 감각이 살아있는 소설들인데요. 집필하실 때부터 계절을 염두에 두고 쓰셨나요?

 

처음부터 계절과 관련해서 쓰자고 생각했어요. 우리는 오감을 통해서 세상을 느끼잖아요. 그런데 소설들은 다 ‘오감이라는 건 사실 믿을 수 없다’는 것에서 출발해요. 우리가 감각을 터무니없이 믿어온 것에 대한 반성이죠. 감각이란 뭘까를 생각해 보면, 정말 우리가 믿어도 좋거나 믿을만한 감각이라고는 뜨겁거나 차갑거나, 이런 것밖에 없는 것 같아요. 가령 여름은 덥고 겨울은 춥다고 말하는 건 조금 분명해 보이는데 나머지는 이야기할 수 없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그래서 계절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었죠.

 

인물들은 외부세계에 큰 관심도 없고 영향을 받지도 않아요. 온도나 촉감, 소리 같은 방식으로 지각할 뿐이죠.


우리가 날씨를 보면서 느끼는 감정이 있잖아요. 그 느낌도 나한테서 나와서 대상에 투영되는 거거든요. 날씨가 좋아도 그 날 기분 나쁜 일이 있었다면 짜증나는 날씨라고 느끼는 것과 같은 거예요. 세상이나 내가 보는 모든 대상들은 이미 내 안에 구성돼 있는 것이고, 그것의 투영에 불과한 거죠. 그런데 정말 세상이 그럴까, 라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인물들로 하여금) 내 안에서 나가는 것을 묶어버리고, 바깥에 있는 세계나 대상을 피동적으로 받아들이게 한 거죠. 인물들은 마치 블랙박스처럼 그냥 보이는 것들을 계속 저장하면서 움직여요. 어떤 의지나 의도, 생각, 사념이 없어요. 그런 게 있으면 (외부의 것이) 들어오지 않고 튕겨 나가겠죠. 아니면 자기 안의 것이 나가기 바쁠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인물들이 다 맹하죠(웃음). 일종의 살아있는 인간 메모리처럼 돌아다녀요. 그 사람을 중심으로 사계절이 돌아가는 거고요.

 

또한 무심하게 현실을 관망하면서 감각으로 인지한 것에 대해서만 이야기합니다.


대표적인 게 춥다, 덥다, 그거죠(웃음). 그 외에도 뭔가 보이기도 하고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것들이 어떤 맥락을 형성하지 않아요. 맥락을 형성한다는 자체가 벌써 내가 작동한다는 거거든요. 내 사유, 내 관점으로 맥락을 형성하는 거잖아요. 화자들의 눈에 보이는 것들은 다 맥락을 형성하지 않아요. 그냥 이유가 없어요. 왜 그걸 보고 있는지, 왜 그런 말을 하는지, 별 이유가 없이 벌어지는 일들이에요. 기존의 소설은 그것들을 잘 구성하고 맥락을 연결해서 의미를 추구했죠.

 

소설집의 끝에는 안경수 화가와 주고받은 이메일의 내용이 실려 있어요. ‘오류’를 주제로 대화를 나누셨죠?


‘잠 못 이루는 사람들’이라는 전시회를 같이 준비했는데, 그때 주제가 ‘오류’였어요.

 

안경수 화가에게 보내신 메일에서 “양식화되어 이미 방향 지어진 독자의 감각에 ‘오류를 발생’시키고 싶은 짓궂은 의도”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소설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데 있어서 오류를 발생시키자는 생각은 없었어요. 그런데 오류를 키워드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까 ‘우리가 하는 일이 오류를 발생시키는 일이 아닐 것도 없잖아?’ 하는 생각이 든 거예요. 오류라는 건 어떤 원리나 원칙, 혹은 질서를 어기는 거잖아요. 세상은 의미와 질서로 가득 차있고 우리는 그걸 의심하는 건데, 그러면 나올 게 오류밖에 더 있겠어요? 하지만 ‘질서 밖이라고 해서 다 오류인가’ 싶기도 하죠. ‘질서 바깥에 있는 진짜를 오류라고 하면서 지키고자하는 질서라는 건 도대체 뭔가’, ‘그 질서를 스스로 인정하면서 살아야만 하나’, ‘그런 세계 속에서 우리가 살기를 원하나’라는 질문도 던지게 되고요. 그러다 보니까 내 작품이 아주 기꺼운 오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안경수 작가도 거기에 동의를 한 거죠.

 

두 분이 ‘선입견’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셨는데요. 『아닌 계절』에는 인물과 배경에 대한 친절한 설명이 없습니다. 독자의 선입견을 가능한 배제하고 싶으셨나요?

 

그렇죠. 인물의 이름까지도 밝히지 않은 소설이 있잖아요. 이름에 묻어 있는 선입견이 얼마나 많아요. 기존의 서사 중심의 소설들은 그런 걸 오히려 적극 활용하기도 하죠. 이름만 갖고도 인물 묘사를 반 이상 할 수 있는 건데, 저는 오히려 반대로 안 해버리는 거예요. 뿐만 아니라 여기가 한국인지 프랑스인지 영국인지 모르는 거죠. 공간과 연결시킬 수 있는 선입견이 있잖아요. 예를 들면 진도라고 했을 때 세월호, 진도 아리랑, 남도, 홍주, 이런 선입견이 있는 건데요. 그런 걸 배제하면서 가야 될 필요가 있었던 거죠.

 

그런 낯선 부분들로 인해서 독자들은 혼란을 경험하기도 할 텐데요.


이 소설을 어떻게 읽어야 될지 모르는 사람에게는 매우 답답하고 짜증나는 일일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들의 당혹감이 이 소설에 접근할 수 있는 일종의 이유도 될 수 있고, 그게 하나의 동기가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어쩌면 우리 모두는, 그것이 좋건 나쁘건, 다 자기가 구성해버린 세계에 빠져서 사는 것 아닐까 싶기도 한데요. 이런 생각을 하는 데에는 일종의 충격요법이 필요하잖아요. 사람을 당황하게 만들어서 ‘왜 이러지?’ 하고 질문하게끔 하지 않으면, 자기가 갖고 있는 생각이나 느낌을 계속 강화시키고 재생산하게 돼요. 그럴수록 더 깊이 빠지게 되고요. 예술이 할 일이 뭐겠어요. 그렇게 생각하는 흐름과 방향을 막아보고 훼방 놓는 거죠. 약간 짓궂은 장난 같은 거라고 할까요. 뒤에서 딱 때리고 도망가는(웃음). 그런 걸 예술가들이 하지 누가 하겠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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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상’인 것처럼 상상하면서 써요


한 독자는 「바다, 夏日」이 가장 엽기적인 내용이었다고 리뷰를 남겼더라고요(웃음).


중세에는 예술이 신앙이고 종교였죠. 거룩함의 표현이었어요. 그런 방식의 예술 활동을 승화라고 하는데, 승화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숭고하고 거룩하게 떠받들어 올려서 표현하는 거거든요. 위로 올라가는 거라고 할 수 있는데, 현대에 와서는 승화 예술 이론에 대한 반발이 생기죠. 거꾸로 내려오는 거예요. 승화하고 거룩하고 이상적이어야 했던 예술이 이제 더럽고 웃기고 엽기적인 것으로 내려오고 있는 거예요. 그게 일종의 충격요법이겠죠. 우리가 말하는 거룩함이란 무엇이며, 숭고함이란 무엇이며, 승화란 무엇이냐에 대해서 탈승화식으로 질문을 던지는 거예요.

 

말씀하신 ‘충격요법’은 어떤 결과를 가져올까요?


충격적으로 우리 삶의 진면목을 바라봐야 되는 거죠. 그동안 ‘예술이란 곧 아름다움이다’라는 식으로 숭고의 미학을 이야기했는데, 물론 지금도 숭고의 미학을 씁니다만, 지금의 숭고는 ‘탈승화의 숭고’예요. 「봄 나무의 말」 같은 작품도 굉장히 끔찍하잖아요. 저는 그걸 더 끔찍하게 장편으로 쓸 건데요. 끔찍한 걸 거룩하고 멋있고 세련되게 보여주는 게 아니라 말도 안 되게 막 보여주는 거예요. 극단적인 탈승화 방식이죠.

 

「바다, 夏日」의 ‘미음’이라는 인물이 엽기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뭘까요?


‘문학은 숭고해야 된다’는 전제가 깔리면 그런 것들이 엽기적으로 보이는 거죠. 그런데 우리 앞에는 거룩하거나 숭고한 것 빼고 무슨 일이든 다 일어날 수 있어요. 그렇게 생각하면 하나도 엽기적이지도 않고 ‘내 이야기는 아니지만 저쪽에 그런 이야기가 있을 수 있어’라고 생각하게 되죠. ‘꼭 행위의 근거가 있어야 돼?’ 싶기도 하고요.

 

근거가 있다고 해서 이해 가능한 일이 되는 건 아니니까요. 


그렇죠. 근거 자체가 허무맹랑하거나 악랄할 수도 있잖아요. 저는 아무 이유 없이, 근거 없이, 대책 없이, 한 인물을 ‘엽기적인 것 같으면서도 아닌 것 같은’ 모습으로 그린 거예요. ‘미음’이 선생이면서도 이상한 행동을 보이잖아요. 도대체 뭐하는 사람인지 알 수 없는 인물인데, 저한테도 낯설어요(웃음). 「12월 12일-이상에게」의 ‘이응’도 낯설고, 다 낯설죠.

 

「12월 12일-이상에게」은 이상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입니다. 이 소설은 어떻게 쓰게 되셨어요?


우선 저는 이상을 좋아했고, 이상 때문에 글을 쓰겠다고 생각한 거였어요. 그리고 문청 시절에는 정말 이상처럼 썼거든요(웃음). 그래서 애들한테 엄청 욕먹었죠. 아무것도 모르면서 흉내만 낸다고(웃음). 그런데 그런 기질이 계속 살아있어요. 제가 등단한 80년대에는 이상적이거나 실험적이거나 모던한 소설을 용납을 안했어요. 등단도 할 수 없었고요. 그리고 저 또한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시대에 저항할 수밖에 없잖아요. 몸으로든 정신으로든 저항하다 보니까 소설이 리얼리즘 방식일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시작을 했죠. 또 시골 태생이고 없는 집 자식이니까 얼마나 잘 맞아요? 쓸 것도 많고(웃음). 한편으로는 이상을 품고 있었지만 시대적으로 태생적으로 이쪽(리얼리즘)과 친근했어요. 그래서 나는 이쪽저쪽 왔다 갔다 해요.

 

「12월 12일-이상에게」에는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이 혼재되어 있는 느낌이에요.


‘이응’이라는 인물이 매일 걸어 다니는 코스가 있어요. 그런데 출발할 때는 현재였다가 저만치 가면 과거가 돼요. 한 사람이 하루에 겪은 일인데도 불구하고요. 그러다가 다시 현실로 돌아오죠. 질서라는 걸 흔들거나 깨기 위해서는 시간, 공간, 인간이라는 세 가지를 흔들어야 돼요. 그것들이 이 세계를 구성하는 최소 요소거든요. 셋 중에 하나를 흔들거나 셋을 다 흔들어 버리면 세계가 흔들리는 거예요. 「12월 12일」에서도 ‘이응’이 걸어 다니면서 시간이 달라짐에 따라 공간도 달라지죠. 주의 깊게 보면 그런 것들이 다른 소설에서도 나타나요. 한 시간에 두 개의 공간이 있거나, 한 공간에 두 개의 시간이 있죠. 그렇게 되면 내가 여기 있기도 하고 저기 있기도 하고요.

 

「하이눈, August」에서 그런 순간을 볼 수 있었어요.


그 소설에 보면 내가 여기 있는데 저기에도 내가 있죠. 시간 공간 인간이라는 것을 뒤흔들면 과거와 현재, 이 공간과 저 공간, 나와 또 다른 내가 겹쳐요. 이를테면 시간을 달리하면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가 동시에 존재할 수 있는 거고요. 공간을 달리하면 내가 여기와 저기에 동시에 있을 수 있는 거예요. 사실은 이런 것들이 소설 속에 전략적으로 들어가 있어요. 「12월 12일-이상에게」에서도 그런 게 보이는 거고요. 왜냐하면 아주 철저한 질서를 구축하고 있는 세계를 흔드는 방법은 시간, 공간, 인간 세 가지를 몽땅 흔들거나 그 중에 하나를 흔드는 거거든요. 독자들은 그렇게까지 읽을 수도 없거니와 읽을 필요도 없다고 생각해요. ‘왜 이렇게 낯설고 헷갈리게 썼지?’ 하고 이유를 한 번 생각해 보는 것, 거기까지만 가면 된다고 생각해요.

 

「12월 12일-이상에게」를 읽으면서 ‘이상도 이런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봤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상은 사람 자체가 다른 사람들하고 달랐잖아요. 그 사람은 원래 천재예요. 세상이 다 이상하게 보이는데, 다른 사람 눈에는 그런 이상이 이상하게 보이는 거죠. 그런데 제가 생각할 때 저는 천재도 아니고 이상한 놈이 아니거든요(웃음). 이상 같은 사람은 그냥 자기가 보고 느끼고 쓰면 작품이 돼요. 그런데 저는 이상으로 빙의를 해서, 내가 이상인 것처럼 생각하고 상상하면서 써야 겨우 원하는 작품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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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들은 ‘희생적 모성애’가 있는 것 같아요


천재들의 삶은 순탄치 않잖아요. 이상도 예외가 아니었고요. 그런 점에서는 천재가 아닌 편이 더 나은 것 같기도 해요(웃음).


이상은 사는 게 정말 힘들었죠. 저는 천재가 아니니까 안 힘들잖아요(웃음). 세상이 다 멀쩡해 보이거든요. 그러니까 멀쩡하게 보이는 세계를 어떻게 하면 안 멀쩡해 보이게 쓸까를 고민하죠. 글 쓰는 순간만큼은 이상의 눈으로 봐야 되니까 굉장히 힘들어요. 나머지 시간은 안 괴롭고요. 그런데 천재들은 쓰는 시간만 안 괴롭고 나머지 시간은 다 괴로울 거예요(웃음). 그러나 예술에 순교하는 예술가들은 그런 예술가들이 부럽죠. 고흐도 그랬고, 얼마 전에 <에곤 쉴레>라는 영화를 봤는데 에곤 쉴레도 여간 힘든 삶을 산 게 아니에요. 모든 유명한 예술가들을 보면 삶이 순탄치가 않아요. 예술혼이라는 게 짓궂잖아요. 쉽게 내주지 않죠. 어느 한 인간에게 정말 좋은 재능을 주면, 그것과 더불어 몇 배 더 힘든 삶을 줘요.

 

고흐는 생전에 한 점의 그림도 팔지 못했다고 하죠. 보통 사람의 눈으로 보면 ‘죽은 후에 영광을 얻은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기도 해요.


고흐는 남이 내 작품을 알아주지 않는다고 하여 작품을 포기하지 않았죠. 더욱이 ‘그러면 너희들이 좋아하는 그림을 그려주겠어’라고 하지도 않았잖아요. 저주 받은 천재인 거죠. 남들이 알아주는 않는 걸 고통스러워하고, 돈이 없어서 맨날 동생한테 아쉬운 소리를 하잖아요. 그런데도 그림은 여전히 그리고 있죠.

 

예술가로서 부럽다는 생각이 드세요?


예술가들은 그런 게 있잖아요. ‘나는 어떻게 돼도 좋으니 예술만 잘 살았으면 좋겠다’라고 하는, 그런 묘한 ‘희생적 모성애’ 같은 게 있잖아요. 내가 죽더라도 내 자식은 잘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그런 게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나를 고스란히 희생했는데도 불구하고 작품이 실패할 수가 있잖아요. 그걸 견디기 힘들죠. 그게 무섭고 두렵죠. 내 작품이 정말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예요. 만약에 내 작품이 좋은 작품으로 인정받고 성공할 가능성이 있다면, 당장 내일 죽는다고 해도 나는 그리로 갈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확신을 못하니까 고민하는 거죠(웃음). 그런데 나는 왔다 갔다 하니까, 그게 좋은 것 같아요. 아마 2년 정도 뒤에는 멀쩡하게 서사 중심의 소설을 쓸 거예요. 심지어는 드라마 같은 소설도 쓰게 될 거고요. 내가 좋으니까, 즐거우니까 하는 거예요.

 

「봄 나무의 말」은 굉장히 기이한 시도를 한 작품입니다. 왼손으로 쓰셨다고 알고 있는데요. 확실히 오른손으로 쓰실 때와는 다르던가요?


다름의 정도가 아니고, 저도 깜짝 놀랐어요. 머리가 하나이고 손은 두 개니까, 오른손으로 쓰나 왼손으로 쓰나 쓰기가 불편할 뿐 별 차이가 없을 것 같잖아요. 그런데 완전히 달라요. 왼손으로 쓰면 문장이 아이가 써놓은 것 같다니까요. 아이 아니면 바보가 쓴 것 같아요. 희한하지 않아요?

 

우뇌를 사용하느냐 좌뇌를 사용하느냐의 차이일까요?


정말 이상한 체험을 한 적이 있어요. 민가협(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에서 양심수들이 사는 독방을 하루 동안 체험하는 행사를 했었는데, 거기 참여했었거든요. 24시간도 아니고 8시간 정도 독방에 있는 건데, 저도 처음에는 ‘그걸 못하겠어? 하루 종일 소설 쓰느라 꼼짝도 안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닌데? 가서 오래간만에 소설구상이나 하지’하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몸을 가둬놓으니까 사고가 안 돌아가더라고요. 내일 원고 쓸 일이나 친구랑 술 먹을 일을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게 안 되더라고요. 마찬가지로 왼손으로 쓰는 것도 ‘글씨만 삐뚤빼뚤하지 문장이 다르겠어?’ 했는데 그게 아니더라고요. 글씨도 반전된 상태로 써져요. 나중에 장편으로 쓸 때는 반전된 글씨로 출간을 해볼까, 하는 생각도 있어요.

 

「봄 나무의 말」는 화자가 독특한 작품이기도 해요. 나무의 시선에서 이야기를 들려주셨는데요. 작가님께도 색다른 경험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인간사를 나무의 입장에서 보면, 우리 인간이 본 것과는 다를 거라고 생각했어요. 인간에 의해서 질서화 된 세계가 아닌 것이 보여질 거라고요. 그래서 나무를 택했지만 한계가 있죠. 내가 완전히 나무에 빙의될 수 없고, 나도 인간이니까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잖아요. 그렇다고 하더라도 글을 쓰면서 계속 ‘화자가 나무야’라고 생각하게 되잖아요. 그 효과만이라도 조금 가져가 보자고 생각했고요. 한 번 연습은 했었죠. 황순원문학상을 탔던 「명두」에서 나무가 화자였어요. 그때 효과가 좋아서, 한 번 해봤죠(웃음). 

 

장편 소설로 탄생할 「봄 나무의 말」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합니다.


실제로 쓰여질 작품은 더 참혹합니다. 전쟁으로 한 마을이 완전히 쑥대밭이 되고 몰살되는 이야기이고, 실제로 그런 경우가 많이 있었어요. 그런데 아직 우리 체제에서 그 말을 누구도 잘 못 꺼내거든요. 그 모든 금기를 걷어내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이 있어요. 아마 굉장히 잔혹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인상이 찌그러지면서 ‘도대체 이런 작품은 왜 쓰는 거야?’라는 반응이 올 거예요. 사실 저는 그런 이유 때문에 쓰려고 하는 거죠. ‘그러면 안 돼? 나는 그러고 싶다’라는 건데요. 예술은 항상 뭔가를 아련하게 하는, 혹은 미학적으로 포장된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완전히 버리지 못하니까 그 참혹한 사실에 대해서 말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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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쓰기 위해서 계속 딴짓을 합니다


올해 등단 30주년을 맞으셨습니다. 이제는 관성에 의해 편하게 작품을 쓰실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여전히 어려운 시도를 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노하우나 스킬에 의해서 대량생산되거나 갈수록 쉬워지는 건 사실 예술이 아니죠. 그리고 예술가들은 그렇게 되는 것이 가장 즐겁지 않고 재미없어요. 그러니까 늘 다르게 모색하는 것 자체가 즐거워요. 힘이 들어도 그래야만 살맛이 나는 존재들인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저는 계속 쓰기 위해서 계속 딴짓을 하는 거죠. 평생 달라지지 않고 자기 방식의 소설을 끝없이 생산하는 사람도 있는데, 저는 그 사람들이 존경스러워요. ‘어떻게 저렇게 평생을 똑같이 써올까, 지겹지도 않나’ 하고 신기해요(웃음). 그들은 문학 정치, 문학 사회학 쪽은 하는 사람들인데, 소설이라는 장르에 실어서 전달하려고 하는 내용을 굉장히 중요시해요. 그러니까 쓸 거리가 생기면 좋아하죠. 제 경우에는 쓸 거리가 있어서 좋아하는 게 아니라 ‘이건 이런 방식으로 써보고 싶어’라는 생각이 들 때 즐거워요. 막 쓰고 싶어지고요.

 

‘무엇을 쓰느냐’보다 ‘어떻게 쓰느냐’에 중점을 두신다는 이야기인데요. 예전에는 ‘어떻게’보다 ‘무엇을’에 방점을 찍으셨었나요?


그런 적이 있죠. 『비밀의 문』이라든가 『랩소디 인 베를린』같은 경우에는 굉장히 유장한 이야기가 있거든요. 현대와 과거가 맞물리면서 길고 오래된 이야기들이 진행돼요. 그러니까 어떤 사람들은 저한테 줄거리를 이끌어나가는 재주도 있다고 말해요. 가끔 보면 저도 ‘어떻게 내가 이런 이야기를 만들었을까’ 싶기도 해요. 그런데 그런 작업을 계속 하다 보면 지겹고 싫어요. 그러면 다시 ‘장난 한 번 쳐볼까?’하고 이쪽에 와서 작품을 만들어내는 거예요. 계속 하다가 또 재미가 없어지면 저쪽으로 다시 가고요. 저는 이것이 어떤 전략이라고 생각하지 않고요. 생겨먹기를 이랬다저랬다 변덕이 있는 거예요. 변덕은 나의 힘인 거죠(웃음).

 

지난 30년 동안 소설을 써오셨어요. 아직도 ‘나는 왜 쓰는가’라는 질문을 하시나요?


이제는 안 해요.

 

답을 내리셨어요?


‘왜 쓰는가’라는 게 거창한 질문 같지만, 계속 전업작가로 살아온 저 같은 사람에게는 생활고와 연결이 되는 질문이에요. 두 아이와 전업작가의 삶에 충실한 아내까지 셋의 생계를 내가 책임져야 되니까 ‘나는 왜 쓸까’ 하고 생계형 질문을 던지는 거예요. 거기에는 인문학적 질문도 섞여 있죠. 그런데 답은 항상 ‘모르겠다’로 가요.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이냐’, ‘그래도 써야지’ 그렇게 두 개의 답이 나와요. ‘모르겠어’와 ‘그래도 써야지, 뭐’ 그 두 개예요. 그래서 ‘왜 쓰는가’라는 질문을 안 하는 거예요.

 

결국 쓸 테니까, 굳이 답을 찾을 이유가 없네요.


왜 쓰는지, 그 이유에 대해서 멋있게 답하는 작가들도 있죠. 『나는 왜 쓰는가』라는 책도 있잖아요. 그런데 멋진 답을 내놓는다고 해서 스스로 그 답에 동의하게 될지 모르겠어요. ‘나는 왜 쓰는가’에 대해서 다 쓰고 나서 점을 찍는데 이건 답이 아니라고 후회가 밀려오면 어떻게 하겠어요. 결국 (왜 쓰는지) 모르는 거잖아요. 그래서 참 부질없는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숭산 스님을 좋아했는데, 스님이 늘 좌우명처럼 갖고 계셨던 게 있어요. ‘오직 모를 뿐’, ‘오직 할 뿐’이에요. 제 경우에는 ‘오직 모를 뿐’, ‘오직 쓸 뿐’인 거죠. 『선의 나침반』을 읽고 스님 말씀의 깊이를 조금은 받아들일 수 있게 되니까, 아주 자연스럽고 편하게 ‘왜 쓰는지 모르겠다, 다만 쓸 뿐’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고 보면 모르는 게 아니라 답이 나온 거죠(웃음).

 

‘오직 쓸 뿐’, 그것이 중요한 거군요.


‘왜 쓰는지 모르겠어, 그냥 쓰는 거야’ 하고 생각하는 거죠(웃음). 그래도 한 가지 이유를 이야기한다면, 하면서 지겹지 않고 즐겁고 뿌듯한 건 이것밖에 없으니까 계속 하는 거죠. 그런데 정말로 괴로울 때가 있어요. 나이가 드니까 감각이 떨어지거든요. 모든 게 노쇠해가니까 다 딱딱해지잖아요. 감각이 생명인데 감각 떨어지고, 기억력도 떨어져요. 여러 가지가 안 돼요. 그런데 또 욕심이 있잖아요. ‘지금까지 써왔던 그 어떤 내 소설보다도 더 잘 써야지’라는 마음이 있잖아요. 몸과 마음이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거예요. 이 두 방향의 갈등이 굉장히 고통스러운데, 요즘은 ‘어떻게 이 고통을 기쁨으로 바꿀까’라는 생각을 많이 해요.

 

소설가를 꿈꾸는 이들에게는 어떤 조언을 들려주세요?


문창과 학생들을 만나게 되면 늘 이야기하는 건데요. 대개 내 취향이 아닌 소설들은 안 읽잖아요. 자기 취향의 소설만 읽죠. 그건 자유이고 그럴 수밖에 없고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일반 독자에게는요. 그러나 문창과 학생이고 소설을 쓰고자 하는, 소설전문가가 되려고 하는 사람은 하나 혹은 두 개의 독법만 가지고 있으면 안 돼요. 어떤 작품도 읽어낼 수 있는 다양한 독법을 가져야죠. 그러려면 다양한 작품을 읽고 거기에 익숙해져야 돼요. 읽어내는 데에서 그치는 게 아니거든요. 그게 자신의 작품에 반영이 돼요. 그런 이야기를 해주죠.

 

편향된 독서를 경계해야 된다는 말씀이신데요.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해요.


소설을 쓰겠다는 사람들이 고집이 세서, 한 가지 방식을 자기 개성으로 삼아서 밀고 나가려는 경향이 있어요. 그런 사람들은 자기 작품, 자기 작품하고 비슷한 것만 작품으로 인정하잖아요. 스스로 자기 입지를 옹색하게 만드는 일이고, 더 좋은 작품에 대해서 눈을 못 뜨게 되는 거예요. 그러지 않기 위해서라도 골고루 읽어야 돼요. 일반 독자들은 대개 자기 취향으로 읽는데, 그러다 보면 두 가지 위험이 있을 수 있어요. 그게 진짜 자기 취향인지도 모르면서 자기 취향이라고 철썩 같이 믿게 되고요. 또 하나는 남에게 자신이 읽은 소설에 대해 말함으로써 상대방에게 쉽게 파악 당한다는 거예요(웃음).

 

“이건 누가 봐도 구효서 소설이다”라는 말보다 “한 사람이 썼는데 볼 때마다 작품이 다르네”라는 말을 듣고 싶다고 하셨어요. 『아닌 계절』은 확실히 그런 반응을 얻지 않을까 싶은데요. 독자들에게 듣고 싶은 또 다른 이야기가 있을까요?


이 소설들은 독자한테 말을 거는 이야기지, 일방적으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게 아니잖아요. 약간 딴지를 건다고 할까요. 독자한테 가서 ‘뭐해? 이거 한 번 볼래?’ 이러는 건데. 다만 독자들이 읽고 ‘이거 뭐지? 왜 이렇게 썼지?’ 하는 궁금증을 조금 길게 간직했으면 좋겠어요. 이게 뭐야, 하고 그냥 덮지 말고요. 그런 궁금증을 길게 간직한다는 건, 나에게 낯설고 내가 알 수 없다고 하여 배척하는 게 아니잖아요. 알 수 없고 익숙하지 않은 것들이 나를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세계나 생각으로 이끌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인정하는 거죠.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거예요. 답은 없어요. 다만 ‘나는 오래 그 문제에 대해서 생각해 봤어’라는 정도만 되면 딱 좋을 것 같아요.


 

 

아닌 계절구효서 저 | 문학동네
“쓰지 못하면 그 순간부터 즉각 존재를 환수당하는”, “쓰되, 다른 것이 아닌 소설을 써야 하는” 것이 소설가의 운명이라 말하는 작가 구효서. 올 초 제41회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자로 선정된 뒤 쓴 수상소감에서였다. 198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마디」로 등단, 올해로 등단 30년을 맞는 작가에게 더욱 특별한 소식이었으리라. 그의 아홉번째 소설집을 묶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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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원평 “이해할 수 없는 사람도 계속 사랑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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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아이가 있다. 아이는 말한다. “(나는) 남들이 왜 웃는지 우는지 잘 모른다. 내겐 기쁨도 슬픔도 사랑도 두려움도 희미하다. 감정이라는 단어도, 공감이라는 말도 내게는 그저 막연한 활자에 불과하다.”고. 감정이 없는 아이에게는 다행히도 엄마와 할머니가 있다. 이들은 불운한 사고로 곧 아이 곁을 떠나지만 또한 다행스럽게도 ‘심 박사’가 곁에 남는다. ‘알렉시티미아’라는 병을 안고 살아가는 한 인간이 사회 속에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바로 이런 것들이다. 그러니까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타인에 대한 편견 없는 시선’ 같은 것.


『아몬드』로 제10회 창비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한 손원평 작가는 “인간은 고등동물이지만 결국 굉장히 원초적인 어떤 것이 없으면 인간으로 성장할 수 없는 것 같”다고 말한다. 아이를 낳고 키우며, 너무나도 연약한 존재 앞에서 작가는 여러 가지 질문을 떠올렸고, 그 질문들은 하나의 이야기가 됐다. 감정이 없지만 사랑으로 흔들림 없이 자란 아이 윤재와 가진 것은 많지만 사랑이 부족해 어긋나버린 아이 곤이는 그렇게 탄생했다. 이들이 어떤 가능성을 가진 존재로서 만들어가는 이야기, 이것은 그 자체로도 지켜볼 만하다. 


<인간적으로 정이 안 가는 인간> 등 여러 영화의 각본과 연출 작업을 해온 영화인이기도 한 작가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묻자 “다작하고 싶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에게서 시작된 무수한 질문들이 어떤 모습이 되어 독자에게 읽는 즐거움을 안겨줄 것인지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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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 없다면 어떻게 세상을 바라봐야 할까


제10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이에요. 먼저 수상 축하드립니다. 기분이 어떠셨어요?

 

충격 받았어요. 며칠 동안 잠도 못 자고요. 진짜 될 줄 몰랐거든요. 사실 소설에 도전을 되게 많이 했어요. 될 것 같다, 싶을 때도 정말 안 됐고요. 그래서 안 되나보다, 생각을 한 거죠. 이때도 저는 기대도 안 했는데 수상했단 소식을 듣고 정말 충격 받았어요.(웃음)

 

이어 『1988년생』이라는 작품으로 ‘제주4.3문학상’도 수상하셨잖아요.


처음에 수상 소식 들었을 땐 울고, 떨리기도 하고 그랬는데요. 두 번째는 울진 않았어요.(웃음) 처음에 받은 상이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알렉시티미아’라는 병증에 대한 이야기예요. ‘감정표현불능증’이라고도 하죠. 소재가 강렬한데요. 어떻게 관심 갖게 되었는지 궁금해요. ‘작가의 말’에서는 출산을 거치며 윤재와 곤이, 두 아이를 만들게 되었다고 설명하기도 했어요.


아이를 낳고 여러 가지 생각을 했어요. 그러다보니 감정을 못 느끼는 아이라는 게 떠올랐는데요. 진짜 있을지 자료 조사를 하다가 병에 대해 알게 됐어요. 병을 먼저 알고 시작한 건 아니고요. 감정을 잘 못 느끼는 사람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시작됐어요.

 

아이를 낳고 기르면서 어떤 생각들이 들어 감정 못 느끼는 아이라는 소재를 생각하게 된 거예요?


아이와 교류를 감정으로만 하잖아요. 그러니까 감정은 인간이 가지고 태어나는 건데 이게 어디서 올까, 이걸 못 하면 아이는 어떨까, 이런 생각을 했었어요. 마침 병을 알게 된 거고요.

 

쓰면서 작가의 상상력을 가장 자극한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주인공 윤재가 감정을 조금씩 느끼게 되는, 그 변화에 시선이 많이 가기도 했거든요.


아이를 키우다보니 감정이라는 것을 서로 드러냄으로써 소통을 하고 있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감정만 가지고 소통하죠. 그런데 감정이 없다면 어떻게 세상을 바라봐야 할까, 어떻게 타인을 이해할까, 그게 소재이자 이 이야기를 상상하게 된 시초였어요. 쓰면서는, 어려움은 잘 몰랐고요. 그 다음부터는 그냥 내가 감정이 없다고 생각했을 때 세상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했죠. 모든 걸 팩트로 받아들일 것 같았어요. 누가 무언가를 했다, 먹었다, 걷는다, 이런 식으로요. 화를 낸다, 이런 것은 엄마가 가르쳐주어서 알고요. 상상력의 문제는 아니었고요. 이 아이를 어떻게 표현할까의 문제였는데요. 나는 감정이 있으니까 윤재를 표현할 때 주의를 하려고 했고요. 그렇게 잡아나갔던 것 같아요.

 

처음부터 제목이 ‘아몬드’였나요?


네, 쓰기 전부터 제목은 그거였어요. 이런 아이가 있을까 조사하다가 있다는 걸 알게 되고 바로 정한 제목이었어요. 그래서 이 제목이 끝까지 유지되기를 바랐는데 그렇게 되어서 감사하고, 좋아요. 왜냐하면 이 제목 안에 제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나 주제가 은유적으로 담겨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약간 귀여운 느낌도 조금 있고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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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에게 한 번 더 주는 시선, 사랑


서사 안에서 몇 가지 질문을 하고 있다고 느꼈어요. 한 가지는 탈정상에 관한 이야기인데요. 정해진 답이 없다, 평범하기 어렵다, 는 등의 이야기를 군데군데 하고 있거든요.


정상이냐 비정상이냐에 대한 이야기가 저의 주목적은 아니었는데요.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인간을 구할 수 있는 건 사랑이 아닌가, 이런 이야기 쪽에 좀 더 가까워요. 우리가 쉽게 사람을 이해한다거나 공감한다거나 소통한다는 이야기를 하지만 결국은 타인을 이해한다는 게 과연 가능한가 하는 의문이 들거든요. 타인을 공감한다는 게 가능한가, 라는 질문을 가지고 있었어요.

 

인간을 구할 수 있는 게 사랑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주인공은 조금 다르게 태어났잖아요. 그런 경우 보통 사이코패스가 되거나 할 수도 있죠. 그런데 엄마와 할머니, 주변 사람들이 햇빛과 물을 주잖아요. 결국 윤재가 나중에 그런 행동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흡수한 어떤 것들의 영향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한편 곤이도 다른 환경이었다면 전혀 다른 아이로 성장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런 걸 받지 못한 아이었죠. 결국 한 인간을 완성하는 두 가지가 타고난 기질, 주변 환경과 인간관계라고 할 수 있을 텐데요. 그러니까 좁은 의미의 사랑은 아니고요. 타인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쉽게 결론짓지 않는 것부터가 출발이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꼭 남을 공감한다, 이런 것이 아니더라도 말이에요.
 
사랑이라는 단어에 덧씌워진 이미지 때문에 오해할 수도 있겠어요. 작가님이 말하는 사랑은 좀 더 넓은 의미의 사랑이군요.


당신은 사랑 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이러는데 사랑을 안 주면 안 되는 존재가 다 인간인 것 같아요. 또한 당신이 어느 정도 그럭저럭 보통의 인간으로 자라났다면 일정 정도의 물과 햇빛을 받은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하고요. 인간은 고등동물이지만 결국 굉장히 원초적인 어떤 것이 없으면 인간으로 성장할 수 없는 것 같아요. 때문에 사랑이 대단히 박애적인 이런 것이라기보다는 타인에게 한 번 더 주는 시선, 또는 낙인을 찍기 전에 왜 저렇게 됐을까 하고 질문하는 것 자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실제로도 해요.


주인공들을 청소년으로 설정한 이유도 거기에 있어요. 성인의 경우는 조금 다른 것 같아요. 얘들은 아직 소년이라는 시기가 주는 고유의 느낌과 상징성이 있죠. 자아는 있으면서도 닫혀 있지 않잖아요. 그런 아이들의 가능성이 있죠. 반드시 청소년, 아이라서 가지는 가능성이 아니라 가능성을 가진 인간이라는 것을 소년이라는 존재 안에 넣은 것 같아요.

 

멀면 먼 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외면하고, 가까우면 가까운 대로 공포와 두려움이 너무 크다며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껴도 행동하지 않았고 공감한다면서 쉽게 잊었다.
내가 이해하는 한, 그건 진짜가 아니었다.(245쪽)

 

후반부에 윤재가 탓하듯이 생각을 해요. 느끼면서 행동하지 않고, 공감해도 쉽게 잊는다, 왜 그러냐, 하고 말이죠. 작가의 또 다른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윤재가 감정을 잘 느끼지 못하는 것이 한 개인의 병증이라고만 한정시키고 싶진 않았어요.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소통이나 공감이 쉽게 쓰이는 사회잖아요. 그 속에서 다시 한 번 환기해보고, 질문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윤재의 시선을 통해서요. 그런데 그렇다고 제가 독자들에게 ‘공감하세요’라고 하고 싶진 않고요.

 

주인공이 ‘다른’ 존재이기 때문인지 주변 인물들은 꽤나 단단한 인물들이에요. 엄마, 할머니는 물론이고요.


이런 인물이 있을 때 보통은 불우한 환경 속에서 자라 결국은 잔혹한 어떤 짓을 저지르는 캐릭터들을 우리가 더 많이 알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저는 그냥 윤재에게도 사랑을 주는 사람들을 만든 거예요. 왜냐하면 아이를 낳았을 때 지금은 건강하게만 자라길 바라고 있는데 전혀 다른 모습으로 자란다고 하더라도,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계속 사랑을 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거든요. 또한 원래대로라면 잘 컸을 아이가 이런 손길을 못 받았을 때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에서 곤이가 탄생한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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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도 한 때는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존재였다


이야기를 계속 써오셨잖아요. 이번 작품이 출산과 육아를 거치며 탄생한 이야기라고 한다면 출산 이전과 이후가 많이 달라진 건가요?


완전히 달라졌어요. 일단은 제가 전혀 몰랐던 새로운 세계니까요. 한 인간을 정말 처음부터 이해하거나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계기가 됐죠. 굉장히 큰 것 같아요. 또 당신도 한 때는 누군가에게 그런 의미를 주는 존재였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런 얘기를 생각할 정도로 아이가 큰 영향을 끼친 셈이죠. 다른 단편에도 아이에 대한 생각이 들어 있기도 한데요. 그런 것들이 출산 이후에 자연스럽게 변화하게 된 것 같아요. 알고 있는 모든 것들이 다 신기하게 보이는 계기가 됐어요.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게 됐고요.

 

창작욕을 불러일으키는 장면도 궁금해요. 주로 어떤 것에 자극을 받는 편이세요?


20대 때는 내가 봤던 한 이미지, 단편적인 것들이 단초가 되기도 했어요. 지금도 그런 게 단초가 되기는 하는데요. 지금은 뭔가 영감을 얻는다기보다 그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을 했느냐가 더 중요하게 된 것 같아요. 그래야 이야기를 완성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단상만 가지고 이야기를 만드는 게 아니라, 예를 들어 인간이 어떻게 해서 완성이 되는지에 대한 질문, 저런 일이 왜 일어날 수밖에 없는가 하는 질문들이 생길 때 이야기가 되는 것 같아요.

 

지금은 어떤 질문을 갖고 계세요?


그런데 그게 꼭 사회에 대한 구체적인 질문이 아니고요. 수없이 작은 단초들이 모여서 어느 순간 튀어나와서 도움을 주는 것 같아요. 모자이크의 한 부분처럼 말이에요. 가령 곤이가 브룩 쉴즈의 현재 모습 이야기를 하면서 하는 이야기들도 그런데요. 저도 주변 사람들이나 이해할 수 없는 장면들을 일상에서 보고 그때는 그냥 넘겨요. 그런데 나중에 다시 생각해보고 저 사람에게도 어떤 역사가 있었을지 몰라,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하거든요. 그런 거예요.

 

그러니까, 브룩 실즈는 젊었을 때 알고 있었을까? 늙을 거라고. 지금이랑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이 들어 있을 거라는 거. 늙는단 거, 변한다는 거, 알고는 있어도 잘 상상하진 못하잖아.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었어. 어쩌면 지금 길 가다 보는 이상한 사람들, 그러니까 뭐 지하철 안에서 혼자 중얼대는 노숙자 아줌마라든가, 무슨 일을 겪은 건지 다리가 양쪽 다 없어서 배로 땅을 밀면서 구걸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도 젊었을 때는 전혀 다른 모습일 수 있었겠구나, 하는 생각.(150쪽)

 

영화와 소설, 이 두 가지를 통해 각각 해내고 싶은 것들이 있나요? 혹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커다란 저만의 테마를 아직까지는 잘 모르겠어요. 아직까지는 나만의 거대한 테마가 있어서 그것을 향해 내 모든 작품들이 복무한다고 생각하진 않는 것 같아요. 언젠가는 그런 걸 발견하거나 결과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이 사람은 결국 공통된 게 이거구나’라고 결론 내려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요. 아직은 한 가지 주제가 나의 공통 관심사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없는데요. 영화나 소설이 각각 표현할 수 있는 게 다르잖아요. 영화 안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따로 있고요. 영화는 어쨌든 협업이니까요. 소설은 좀 더 인물이나 세계관을 내밀하게 표현할 수 있는 점이 있는 것 같고요. 두 가지가 굉장히 다르기 때문에 바로 그 이유로 저한테는 더 매력으로 다가와요.

 

『아몬드』를 영화가 아닌 소설로 해야 했던 이유도 있었을까요?


이야기를 나중에 누군가가 영화화할 수는 있겠죠. 그런데 이 이야기를 처음부터 영화로 하기는 좀 어려운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특히 한국 영화 시장에서 주인공 나이 대라든지 장르라든지 표현 방식 같은 것이 어려움이 있었죠. 그렇기도 했고요. 사실 시나리오는 시나리오대로 쓰고 있었기 때문에 이 작품은 소설로 쓰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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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작하고 싶다


『아몬드』는 고등학생 소년이 주인공이고, 『1988년생』 역시 작가와는 거리가 있는 인물들이에요. 재미있는 지점이었어요.


저는 제 내면 고백에 별로 관심이 없어요. 나의 자서전을 쓴다고 해도 쓸 이야기가 별로 없기 때문에 시나리오 등에서 인물을 만드는 작업을 계속 해왔고요. 때문에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 그 주인공의 캐릭터나 나이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 같아요. 생각해보니 30대 여자가 주인공인 경우는 없었던 것 같아요. 오히려 50대 여자, 40대 여자, 40대 남자는 있었는데 말이에요. 일부러 피한 건 아닌데요. 뭔가를 대변하기에는 아직 30대라는 시기를 제가 평탄하게 살고 있어서 그런지(웃음) 그냥 제 주제들에 안 맞았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저는 어떤 생각이 들었을 때 그대로 옮기기보다 변용시키려고 하기 때문에 그걸 다른 나이, 다른 성별의 사람에게 주거나 하는 방식을 취했던 것 같아요. 아, 지금 준비하고 있는 영화는 30대 여자가 주인공이에요.(웃음) 가리거나 피한 건 아니에요.

 

앞서 소설에 오래 도전했다고 말씀하셨잖아요.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분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도 있을 것 같아요. 어떻게 포기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웃음)


제가 어떻게 감히 조언을 하겠습니까.(웃음) 특히 문학은 전공도 아니고 해서 해드릴 말씀이 별로 없는데요. 그냥 어렵지만 자신감을 잃지 않아야 할 것 같아요. 그것도 힘든 일이긴 한데 그게 있어야 계속 쓰는 것 같거든요. 말하자면 ‘내가 더 잘하거든’ 같은, 결코 저들보다 못한 게 아니라는 자기 확신이 필요하단 생각이 들어요. 그것도 계속 실패하다보면 동력을 얻기 힘들거든요. 미끼가 있거나 누군가가 칭찬을 해줘야 하지 혼자는 힘들거든요. 저는 그래서 사소한 것들에 감사하기 시작했어요. 콘센트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일이잖아(웃음) 하면서 콘센트가 있으면 감사하자, 이렇게 된 거죠. 그럼에도 안 될 때마다 다시 그렇게 생각하게 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려요. 그래서, 이게 정말 중요한데, 응원해주는 가족들이 있어서 가능했던 것 같아요. 반복해서 실패를 경험할 때 그게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언젠가 꼭 해보고 싶은 이야기는 없으세요?


없어요. 내 인생의 역작, 이런 건 현재 없고요. 그냥 다작하고 싶다는 생각은 있어요. 물론 해보고 싶은 이야기도 있고, 생각해놓은 이야기도 지금 몇 개 있지만요. 이 이야기를 꼭 해야 한다는 생각은 없어서 없다는 대답을 드린 거고요. 다작하고 싶다는 말씀은 드리고 싶네요.

 

꾸준히 작업을 해오셨는데요. 지금은 육아도 병행하고 계시잖아요. 하루 일과가 어떠세요? 두 가지 일을 해낸다는 게 쉽지 않을 것 같거든요.


시간대 별로 할 일이 분명한 삶을 살고 있는데요. 주로 아이가 유치원에 가 있는 낮 동안 작업을 하고요. 시간이 없으면 밤에도 해요. 힘들긴 한데요. 어쨌든 그 덕분에 일의 속도가 빨라졌다는 점도 있어요. ‘마감빨’ 같은 게 있잖아요.(웃음) 아이가 자면 그 시간 동안 집중해서 막 하는 거죠. 일어나면 끝이니까요. 몇 시에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하니까 또 그 동안 집중해서 하고요. 그게 좋은지 안 좋은지는 잘 모르겠어요. 나중에는 바뀌게 될지도 모르고요. 나중에는 한 작품, 한 작품 고민을 많이 해야 할 때가 오지 않을까 싶어요.

 

영화와 소설은 함께 진행이 되나요?


A와 B가 하루에 진행된 적은 없는데요. A는 시놉을 써놓고, B는 초고를 고치고, 이런 식으로 비슷한 시기에 교차로 하는 경우는 있어요. 같은 작품을 하루에 하지는 못하죠. 어쨌든 작품에 몰입해야 하기 때문에요. 또 시간을 두고 나중에 보면 오히려 더 잘 보이는 것들이 있거든요.

 

독자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전해주세요.


책으로 하고 싶은 말은 다 건넨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라는 말뿐이네요. 


 

 

아몬드손원평 저 | 창비
영화보다 강렬하고 드라마처럼 팽팽한, 완전히 새로운 소설이 나타났다.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소년의 특별한 성장 이야기로, 첫 장부터 강렬한 사건으로 시작해 다음 페이지가 궁금해지게 만드는 흡입력 강한 작품이다. 또한 타인의 감정에 무감각해진 ‘공감 불능’인 이 시대에 큰 울림을 주는 소설로, 작품 속 인물들이 타인과 관계 맺고 슬픔에 공감하며 성장해 나가는 과정을 탁월하게 묘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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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배상민, 일본 작가 나카무라 후미노리에게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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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무라 후미노리 작가

 

자살을 예고하고 갑자기 사라진 여자, 다치바나 료코. 행방 불명된 연인을 찾기 위해 나라자키는 그녀가 잠시 몸담았던 종교 단체를 찾아가게 된다. 자신을 아마추어 사상가라고 소개하는 마쓰오 쇼타로가 이끌고 있는 단체 사람들로부터 그녀가 1995년 도쿄 지하철에 치명적 맹독가스 사린을 무작위로 살포한 옴진리교처럼 극단적 종교 단체인 ‘교단 X’의 신자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쇼타로의 저택을 나와 집으로 돌아가던 중 ‘교단 X’로부터 은밀한 부름을 받는다.

 

『교단 X』출간 기념 인터뷰에서 나카무라 후미노리는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처럼 인간이란 무엇인가, 세계란 무엇인가와 같은 궁극적인 질문을 정면으로 파헤치는 소설을 써보고 싶었다”라고 밝혔다. 작가의 말처럼 『교단 X』에는 종교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온갖 비현실적인 사건들뿐만 아니라 최신 과학, 생물학, 우주론 등이 총망라되어 있다. 그리고 그 방대한 지식들로 구축된 견고한 세계관을 『교단 X』에 투영시키고 있다.

 

나카무라 후미노리(中村文則)는 1977년 아이치 현 출생. 후쿠시마 대학 행정사회학부를 졸업했다. 2002년 『총(銃)』으로 신초 신인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등장했다. 그 후 2004년 『차광』으로 노마 문예 신인상, 2005년 『흙 속의 아이』로 아쿠타가와 상, 2010년 『쓰리』로 오에 겐자부로 상을 수상하며 일본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로 평가 받고 있다. 문학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인정받은 『쓰리』의 영어판은 미국 <월 스트리트 저널>의 ‘2012년 베스트 소설 10’에, 『악과 가면의 룰』영어판은 ‘2013년 베스트 미스터리 소설 10’에 선정되었다. 한국에서 출간된 작품으로는 『흙 속의 아이』 『모든 게 다 우울한 밤에』『쓰리』『악과 가면의 룰』『왕국』『미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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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상민 작가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에서 소설을 쓰고 있는 배상민입니다. 몇 년 전 자음과모음 출판사의 초정으로 한국을 방문하셨을 때 함께 술자리를 한 기억이 있습니다. 여럿이 모인 술자리였고, 제가 일본어를 전혀 하지 못해 가벼운 대화 이상은 나누지 못했습니다. 이후 저는 이번 출간된 『교단 X』를 포함하여 『쓰리』『악과 가면의 룰』등의 책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작가님의 책은 무엇보다 재미있었습니다. 그리고 읽고 나서는 깊이 생각할 수밖에 없는 의미가 뒤따랐습니다. 작가님의 책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작가님과 만났을 때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못한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이번 서면 인터뷰를 통해 작가님과 질문과 답변을 나눌 수 있게 된 것을 무척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그럼, 질문 드리겠습니다.

 

어떤 계기로 『교단 X』를 쓰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이 작품은 제가 읽었던 두 작품 『쓰리』와 『악과 가면의 룰』에서 보이는 선과 악에 대한 질문의 연장선상에 있으면서도, 문제의식의 초점이 선과 악마저 초월한 어떤 존재에 대한 질문이 새롭게 추가된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원자의 세계로 들어가면 서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존재의 문제라든가, 소립자의 세계에서 연결되는 다른 차원의 가능성, 인간을 개별자로서 존재하게 하는 의식 등이 그러합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님의 시선이라는 측면에서 이 작품이 시작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지금까지 써왔던 ‘악’을 더욱 깊이 파고들면서 동시에 그것에 대한 ‘광(狂)/선(善)’도 함께 쓰고 싶어졌습니다. 인간은 무엇인가, 그 세계는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대해 문학은 지금까지 여러 가지 대답을 해왔습니다만, 저는 이 소설에서 종교와 철학뿐만 아니라 정신분석과 물리학, 우주학, 생물학적인 면에서도 찾아내려고 했습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작가로서 19세기 및 20세기의 작가들은 몰랐던 현대의 최신 지식을 이용해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근본적 질문에 답하려고 했습니다. 저는 일본과 세계의 우경화를 문제시하고, 그러한 우경화의 흐름에 저항하고 싶었습니다. 그 외에도 전쟁, 빈곤 등 세계가 떠안고 있는 여러 문제에 대해서도 쓰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처럼 다양한 문제를 안고 있는 현재의 세계를 좋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 이 소설을 쓰게 되었습니다.

 

『교단 X』는 미스터리 혹은 추리 소설 등의 장르와 결합하면서도 철학적인 문제와 주제를 구사하고 있습니다. 대중 장르와의 결합을 시도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소설의 매력을 최대한으로 이용하고 싶었습니다. 예를 들면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인간의 심리와 종교 문제를 다루는 순수문학에 그치지 않고, ‘누가 부친을 죽였는가?’ 하는 미스터리 소설이기도 합니다. 마찬가지로 영국 신화도 운명을 다루는 깊이 있는 내용이면서 스토리가 재미있습니다. 그것을 목표로 하고 싶었습니다.

 

『교단 X』에는 다양한 성(性)의 묘사가 빈번하게 등장합니다. 이 소설에서 성은 어떤 의미를 내포하나요? 악한 쪽의 교주인 사와타리 교단을 결속시켜주는 매개체 이상의 의미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사와타리라고 하는 인물이 인식하는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그 전주(前奏)로서 다양한 성적인 표현을 쓸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일본에서는 우경화로 인해 성의 자유가 억압받는 경향이 있습니다. ‘교단 X’는 그것과 반대의 그룹으로서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교단 내부를 ‘성’적인 것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성이라는 것은 인간의 근본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순수문학의 세계에서 직접적인 성의 표현은 그다지 좋게 받아들여지지 않지만, 이 소설은 일본 사회에서 터부시되는 것을 포함하여, 순수문학 세계의 터부에도 발을 내딛는 것이기 때문에 성적인 묘사를 자주 등장시켰습니다.

 

‘교단 X’의 교주 사와타리가 흥미롭습니다. 이 사와타리는 어떤 인물인가요? 인간의 생과 사를 거머쥔 신이 되고 싶은 인물인가요? 아니면 신에게서 철저하게 배척당한 제3의 존재가 되고 싶은 인물인가요? 아울러 일본 사회 혹은 우리 세계의 무엇이 사와타리라는 인물의 출현을 가능하게 하는 것일까요?

 

사와타리는 신이 없다면 이 세계는 시시하고 지루할 거라고 생각하는 인물입니다. 자신과 제대로 된 이야기가 가능한 것은 신뿐이라고 생각하는 한편, 오만한 교주로 평가되는 인물입니다. 선과 악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파고듦과 동시에 정신적으로 금기시되는 것들이 지나치게 강조되면 그 반대작용으로 그와 같은 인물이 탄생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는 일본적인 인물은 아닙니다. 반(反)일본적인 인물인지도 모릅니다.

 

작가님의 작품들에서는 집요하게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서 악 그 자체가 되려고 하거나 혹은 그것조차 뛰어넘으려는 초월적인 인간 존재를 그리려고 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러한 존재를 그려내려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리고 소설에서 묘사되듯 이런 존재가 실제로 이 사회 혹은 세계를 움직이는 배후에 있다고 보십니까?

 

선과 악을 초월한 인물을 표현함으로써, 선과 악의 문제를 보다 깊게 파고들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사회 혹은 세계를 움직이는 배후는 ‘교단 X’의 사와타리 같은 인물이 아닌 작품에 등장하는 아프리카의 테러 주동자나 두 명의 공안 수사원 같은 인물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교단 X』를 보면 두 공안의 대화를 통해 드러나는 관습적인 직역(職域)이 인간의 양심을 마비시키는 것이라는 생각은, 아돌프 아이히만을 보고 한나 아렌트가 했던 ‘악의 얼굴은 평범하다’라는 말과 통하는 것 같습니다. 사실 한국 사회 역시 관습적인 직역만을 행하는 관료로 인한 피해가 만만치 않습니다. 일본 역시 그것이 사회의 중요한 문제 중 하나라고 보십니까?

 

일본에도 그런 문제가 있습니다만,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고 도망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일본 관료들이 저지른 부정한 사건들이 많지만, 그들은 집단 속에 얼굴을 숨긴 채 책임을 회피하려고만 합니다.


아베 정권이 들어선 이후 일본의 우경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특히 ‘전쟁 가능한 국가’라는 구호는 36년간 일본의 식민지를 겪었던 한국 사회의 일원인 제 입장에서는 매우 우려스럽습니다. ‘교단 X’의 교주 사와타리의 지시로 방송국을 테러한 시노하라는 야스쿠니 신사의 합사(合祀)와 참배 문제를 거론하면서,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젊은이들을 신성시하는 과거 일본의 군국주의 모습과 사이비 교단이라고 할 수 있는 ‘교단 X’를 위해 죽어서 영웅이 되려는 테러 집단의 의식을 동일시합니다. 이 지점에서 일개 사이비 종교 집단과 우경화된 일본의 모습이 겹쳐 보입니다. 이처럼 현재 진행되는 우경화는 일본 사회의 고유한 문제일까요? 아니면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본성의 문제일까요?

 

우경화는 일본도 그렇지만, 지금 세계 속에서도 보여지는 현상입니다. 모든 나라가 내향화(우경화가 심화되는 것)되어 다른 나라를 배제하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습니다. 인간은 자신이 없거나 자신의 인생에 대한 불만을 가졌을 때 강한 국가를 원하게 됩니다. 강한 국가와 자기 자신을 동화(同化)시킴으로써 자신이 강해진다고 착각하게 되고, 이러한 생각은 우경화를 가속화시킵니다. 한 방향으로만 치우쳐진 세계는 정말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교단 X』를 보면, 다카하라의 시선에서 아프리카 내전에 개입하는 다국적 기업의 문제 등을 다루기도 하고, 또 이러한 이익 추구에 일본 사회 역시 연결되어 있음을 지적하기도 합니다. 작품 세계가 일본 사회에서 세계로 확장되는 느낌인데요, 작가님의 관심이 세계로 확대되는 이유가 있나요?

 

세계의 부조리, 악과 같은 여러 문제를 작품으로 표현하는 것은, 작가로서 이러한 악에 대항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원래부터 세계 문제에 강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작품이 번역되어 여러 국가에서 읽혀지고 있는 지금, 그러한 문제들에 대해 말할 때라고 판단했습니다.

 

『교단 X』에서는 개인의 삶에서 받은 상처가 수치심과 분노로 작용하면서 종교 혹은 이념을 상징하는 사와타리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내맡기는 신자들이 등장합니다. 이것은 개인의 내면이 허약해서 발생하는 일일 텐데요, 작가님께서는 이러한 현상은 현대인들이 어느 정도 공유하고 있는 특성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그렇습니다. 종교에 빠지는 것과는 별개로 개인의 내면이 약해지게 되면 사람들은 강한 국가를 원하게 되고, 국가 전체가 우경화로 향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흐름은 전 세계적인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소설에서 세계의 큰 문제를 다루는 것과 동시에 개인사에도 주목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가지고 있는 개인적인 문제와 상처까지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교단 X』에서 선함을 대변하는 교주인 마쓰오의 교리는 물리학과 종교의 교리 등이 결합되어 있어 쉽게 이해가 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마쓰오의 교리는 이 책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사상이기도 합니다. 수학 공부를 할 때 앞 단원을 이해하지 못하면 뒷 단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마쓰오의 교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이 책 전체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읽은 혹은 앞으로 읽을 독자를 위해 마쓰오의 교리를 쉽고 간략하게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마쓰오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모든 다양성을 사랑한다’라고 하는 것과 ‘타인의 인생과 자신의 인생을 비교하는 것은 무의미하며, 이 경이적인 우주/세계는 당신 인생의 이야기 위에 있다고 생각해도 좋다’라는 것, 그리고 ‘평화를 사랑한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밖에도 많이 있지만, 여기서 다 설명 드리기는 힘들겠네요.

 

마지막으로 『교단 X』는 정치적인 소설이며, 일본 작가로서 한일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한국 독자들이 궁금해할 것 같습니다. 이와 관련해 한국에 독자들에게 남기고 싶은 메시지가 있으신가요?

 

지금 한국과 일본은 소위 ‘종군위안부’ 문제 등으로 양국 사이에 깊은 도랑이 생겼습니다. 저는 종군위안부와 관련해 피해를 입은 분들께 일본은 국가적 차원에서 확실하고 반성하고, 성실하게 사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당연합니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문화의 차이가 있고, 일본인 중에는 소녀상을 ‘저항’과 ‘평화’의 의미가 아닌, 이해되지 않는 행동으로 인식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소녀상이 늘어나는 것에 일본인이 반발할수록 우파인 일본 현 정부의 지지율은 오르게 됩니다. 이 문제가 일본의 우경화를 강화시킬까 봐 걱정이 앞서기도 합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저는 성실한 사죄를 하지 않은 일본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두 나라 사이의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하고 싶습니다. 저는 작가이기 때문에, 한일 작가끼리 이 문제를 서로 얘기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교단 X』와 같은 책이 일본에서 폭넓게 읽혀지고 있다는 것에서 아직 희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이 한국 독자들께도 읽히기를 매우 기대하고 있습니다.


▶ 인터뷰어 배상민 : 1976년 경남 진해에서 태어난 배상민은 2009년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단편소설 「어느 추운 날의 스쿠터」가 2012년 ‘젊은 소설’에 선정되었으며, 소설집으로 『조공원정대』와 장편소설 『콩고, 콩고』『페이크 픽션』이 있다.

 


 

 

교단 X나카무라 후미노리 저/박현미 역 | 자음과모음
공포’가 일상이 되어버린 현실을 살아가는 요즘, 우리 앞에 또 하나의 충격적인 공포가 재현된다. 아쿠타가와 상, 오에 겐자부로 상을 수상한 나카무라 후미노리는 데뷔 이래 지속적으로 탐구해왔던 ‘악(惡)’을 극한으로 밀어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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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피스토리우스, 자기 몸이 감옥이었던 사람의 분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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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피스토리우스와 그의 아내 조애나.jpg

마틴 피스토리우스와 그의 아내 조애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12살 소년 마틴 피스토리우스는 어느 날 희소병인 크립토코쿠스 뇌막염으로 의식불명에 빠지고 식물인간이 된다. 4년 후 기적적으로 의식이 돌아오지만, 눈짓으로도 알리기 힘들 정도의 마비 상태의 몸으로는 누구도 의식이 돌아왔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뜨거운 차를 식혀달라고 말하지 못하고, 몸이 불편하니 자세를 바꿔 달라고 요청하지도 못했다. 무엇보다 식물인간인 아들을 간병하느라 지칠 대로 지친 엄마가 눈앞에서 ‘네가 죽었으면 좋겠어’라는 말을 뱉는 걸 보고만 있어야 했다.


13년 동안 식물인간으로 살다 사려 깊은 간병인 버나가 의식이 돌아온 걸 알아채면서 마틴 피스토리우스의 삶은 천천히, 그러나 더욱 기적적으로 바뀐다. 지능 검사를 받고, 의사를 표현하는 컴퓨터 시스템의 힘을 빌려 살아있다는 걸 알렸다. 『엄마는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는 갇힌 몸으로 살아간 지옥의 삶과, 이후의 더 놀라운 삶을 이야기한다.

 

투병하던 모습.jpg

투병하던 모습

 

책이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책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나?

 

수년간, 책을 쓰는 것에 관해 종종 생각하곤 했다. 사람들도 그렇게 해보라고 나를 격려했다. 그러나 내 이야기를 공유할 준비가 되었다고 느끼기까지는 시간이 꽤 걸렸다. 『엄마는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를 쓰게 된 계기는 무엇보다도 내 이야기를 세상에 알림으로써 다른 이들을 도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 때문인 것 같다. 이런 희망이 있었기에 나는 미래에 초점을 맞출 수 있었다. 책을 쓰면서 가졌던 가장 큰 희망은 이 책이 어떤 식으로든 세상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정말 이 책이 그런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어서 매우 행복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가 되었을 때는 완전히 흥분했었다. 정말 기적 같은 일이다.

 

한국어, 즉 다른 언어로 책이 나오는 기분은 어떤가? 한국에 관해서는 알고 있는 게 있나?


내 이야기가 한국어로 소개되는 것은 가슴 벅찬 일이다. 한국의 독자들도 나의 책을 읽게 된다는 사실에 설레고, 행복하고, 동시에 겸허해지는 기분이다. 나는 한국에 가본 적은 없지만, 멋진 나라라고 생각한다. 놀라운 문화와 아름다움을 가진 나라다. 테크놀로지에 애정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테크놀로지에 의존해서 의사소통하고 일하는 사람으로서, 한국이 생산해내고 개발해내는 모든 테크놀로지에 대해 큰 경외심을 가지고 있다.


메건 로이드 데이비스와 공저했다. 어떤 식으로 같이 작업했는가?


메건과 나는 수많은 논의를 했고, 이를 통해 이야기를 어떻게 써나갈지 밑그림을 그렸다. 나는 8개월간 거의 매일 글을 썼고, 이렇게 쓴 글을 메건과 함께 다시 책의 형태로 재구성하여 『엄마는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라는 책으로 펴내게 되었다.


책이 나오고 가족의 반응은 어땠나?


가족들이 얼마나 흥분으로 들떴는지 모른다! 가족들은 내가 쓴 원고를 전혀 읽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몰라서 사실 조금 긴장했었다. 하지만 그건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가족들은 책을 정말 마음에 들어 했고, 특히 엄마는 이 책이 영원히 끝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책을 읽는 게 즐겁다고 말씀하셨다.


책을 쓰면서 오래전 고통스러웠던 일을 다시 복기하는데 힘든 점은 없었나.


그렇다. 과거를 되돌아보는 것은 때때로 이루 말할 수 없이 힘들었고, 고통스럽기까지 했다. 책을 쓰는 동안 실제로 악몽도 많이 꾸었다. 그러나 나의 책을 쓰는 일은 한편으로는 치유의 효과가 있었다. 나의 과거를 돌아보고 나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멋진 일이었다. 나는 부디 내 이야기가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품고 『엄마는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를 집필했다.


한국판 제목은 ‘엄마는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로, 원제 ‘GHOST BOY’와는 조금 다르게 나왔다. 책에서 가장 극적이고 가슴 아픈 장면이기도 한데, 이렇게 힘든 내용을 밝히는 데 마음의 부담이 있었을 것 같다.


물론 그랬다. 하지만 그런 말을 했다는 데 대해서 결코 엄마를 원망하거나 미워한 적은 없었다. 어떻게 해서 그런 말을 하게 되었는지 이해하기 때문이다. 나는 그 점에 대해서 화가 나거나 분노를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엄마에게 무한한 애정과 사랑을 품고 있다. 엄마는 정말로 힘든 시간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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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투병 전 마지막 가족 사진

 


버나가 당신을 ‘발견’하기 전까지, 몇 년 정도를 의식이 깨어 있는 상태로 보낸 건가?


나는 대략 13년간을 몸에 갇힌 채로 살았다.


몸에 갇힌 시간 동안 주로 어떤 생각을 했는가.


나는 주로 공상을 통해 현실에서 도피했다. 말 그대로 상상의 세계 속에 빠져들었다. 몸이 아주 작아져서 우주선으로 기어 올라가 멀리 날아가는 상상, 마법의 힘으로 제임스 본드 영화에 나오는, 로켓과 미사일을 장착한 날아다니는 물체로 휠체어가 변신하는 상상 등 온갖 종류의 상상을 하곤 했다.


때로는 물체가 움직이는 것을 관찰했다. 하루 종일 햇빛이 이동하는 것을 보고 있거나, 벌레들이 총총걸음으로 기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러다가 나의 의식 속에 빠져서 주변의 세계를 망각하게 되는 경지에 이르렀다.


나는 마음속으로 사람들과 대화를 하기도 했다. 사실은 아직도 곧잘 그렇게 한다. 조애나가 없을 때면 마음으로 그녀에게 이야기를 해버리고 만다. 그래서 함께 있을 때 그녀에게 실제로 이야기를 하려고 여전히 부단히 노력하는 중이다.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의사소통하는 방식은 다른 사람과 다르다. 리듬을 끊고 말을 하거나, 감정이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어려움도 있을 것이다. 불편한 점은 많겠지만, 의사소통에 특히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


말하는 속도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아무리 컴퓨터 프로그램을 빨리 다룬다고 해도, 정상인의 대화 속도에 비하면 말하는 데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 음성이 늘 똑같다는 점도 약간의 제약이 되지만 속도가 가장 큰 걸림돌인 것 같다.


사람들이 당신과 대화할 때 생각해주었으면 하는 점이 있나?


앞서 말했듯이 의사소통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점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또한,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으면 이야기해주길 바란다. 때로는 내 말을 이해하지 못했으면서도 알아들은 체 그냥 넘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나를 생각해서 그런다는 것을 알지만, 다시 말해달라고 하거나 이해할 수 있게 다른 표현으로 설명해달라고 하면 더 좋을 것 같다.


또한, 여러 가지 질문을 동시에 하지 않는 것도 도움이 된다. 대답을 타이핑하기 시작했는데 중간에 다른 질문을 받으면 대답하기 힘들다. 물론 그런 상황에 대처하는 법을 터득하는 중이긴 하지만.


세상과 연결된 점이 컴퓨터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공포심을 느낀다는 내용이 인상 깊었다. 삶이 너무나 깨지기 쉽다는 불안감이 든다고 했다.


처음에는 매우 힘들었고, 또다시 의사소통의 창구를 잃게 되는 것이 두려웠다. 특히나 의사소통을 위한 기기가 비싸다는 점 때문에 더더욱. 그러나 그것은 나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이제는 그 공포를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법을 배웠다. 다행스럽게도 지금은 의사소통 방법과 도구가 한 가지 이상으로 늘어서 걱정이 덜 된다.


오랫동안 선택이 없었던 삶을 살다가 시리얼을 고르거나, 신발을 결정하는 일 등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지금도 선택하는 일이 어려운지, 만약 그렇다면, 어떤 식으로 적응해나가고 있는지도 궁금하다.


다행히, 시간이 지남에 따라 스스로 선택하는 방법을 어느 정도 익혔다. 아직도 선택하는 일이 힘들 때가 있지만, 대체로 잘하고 있는 편이다. 선택하는 법을 배우는 데에는 조애나가 정말 큰 힘이 되어 주었다. 오랜 시간 동안 나는 무언가를 선택한다는 일을 하지 못한 채 살아왔기 때문에, 선택하고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을 소중히 여기고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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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피스토리우스가 학위를 받는 모습


현재 웹디자인 업무를 한다고 들었다. 일은 어떤가?


나의 일을 사랑한다. 나는 테크놀로지에 대해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있다. 또한 늘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새로운 기회를 가지는 것에 설렘을 느낀다. 나는 일할 수 있다는 사실이 믿을 수 없을 만큼 감사하고 행복하다. 내가 사회에 무언가 공헌할 수 있다는 데 자부심도 느낀다. 열심히 일해서 나의 꿈을 좀 더 실현할 수 있기를 꿈꾼다. 


지금 하고 있는 일 외에 새로 도전하고픈 일이나 취미가 있나?


나는 여행하는 것을 좋아하고, 새로운 곳을 구경하는 것을 좋아하며,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을 좋아한다. 현재 내가 도전해보고 싶은 일은 바로 휠체어 경주다. 최근에 휠체어 경주 클럽에 가입하기도 했다.


TED 토크 강연으로도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강연을 준비하는 데에는 많은 작업이 필요하다.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지 결정하고 컴퓨터에 이야기할 내용을 정확히 입력해야 한다. 책을 쓰는 데에도 역시 많은 작업이 필요했다. 책 쓰는 일은 강연에 비해 전체적인 구조를 짜는 데 더 많은 노력을 들여야 한다. 가장 큰 차이점이 있다면, 책에서 언어를 사용하는 것과 달리 강연은 아무래도 ‘말하기’를 통해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두 가지는 서로 매우 유사하다.


나는 TED 토크 강연을 한 것에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으며 매우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무척 떨렸지만 무사히 강연을 마칠 수 있어서 정말 기뻤다. 사람들이 나의 TED 토크에 많은 호응을 보내준 데 대해서 감사한 마음이다.


방송과 책 출판 이후 생활에 달라진 점이 있다면?


나의 삶은 예전과 그리 다르지 않다. 나는 여전히 우리의 조건에 알맞은, 특히 휠체어로 생활하기에 적합한 우리만의 집을 장만하고 싶다는 꿈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집필을 끝낸 2009년 이후로 몸이 좀 더 강해졌고, 운 좋게도 대학에 갈 수 있었고 운전하는 법도 배울 수 있었다. 


책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나?


때로는 아무리 작고 희박해 보여도 희망은 언제나 있다는 것. 상대가 이해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모든 이들에게 친절, 존중, 공감, 존경을 가지고 대하라는 것. 절대로 마음의 힘과 사랑과 신뢰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하지 말 것, 그리고 꿈꾸기를 멈추지 말 것. 마지막으로 삶을 즐기고 감사하게 여길 것.


만약 직접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된다면, 누구에게 무슨 말을 제일 먼저 하고 싶은가?


글쎄…… 아마도 아내 조애나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것 같다.


키우는 개, 코작의 이야기도 나온다. 개와 함께 있는 행복에 관해 말해준다면.


코작은 내 마음을 기쁨으로 채워주었고 늘 미소 짓게 해주었다. 코작은 늘 곁에 있어주는 나의 소중한 친구였다. 언제나 나를 반겨주었고 나와 함께 있는 것에 행복해했다. 또한 나의 장애에 개의치 않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주었다. 그래서 재작년에 코작이 죽었을 때 정말 슬펐다. 코작을 대신할 개는 결코 찾지 못하겠지만, 언젠가 집을 사게 되면 개를 한 마리 키우고 싶다는 꿈이 있다.


당신의 이야기를 접하는 한국 독자들에게 남길 말이 있다면?


사람들이 나의 인생 이야기를 읽어준다는 것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영광이다. 부디 독자들이 『엄마는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를 즐겨 읽어주었으면 좋겠고, 이 책이 독자들에게 감동과 영감을 주고 삶에 대해 긍정적인 감정을 남길 수 있기를 바란다.


 

 

엄마는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마틴 피스토리우스,메건 로이드 데이비스 공저/이유진 역 | 푸른숲
13년 동안 식물인간으로 살다 기적적으로 깨어나 삶을 되찾은 마틴 피스토리우스의 실화 『엄마는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가 푸른숲에서 출간됐다. 제목은 오랜 간호생활에 지친 나머지 자살 시도까지 했던 엄마가 마틴이 듣지 못하는 줄 알고 내뱉은 혼잣말이자 절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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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 “나는 소설가로 불리지 않아도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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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작가를 좋아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잘 쓴 작품? 마음을 움직인 한 문장? 또는 작품을 대하는 성실한 태도? 어떤 일도 어떤 감정도 면밀히 들여다보면 이유가 있다. 소설가 공지영이 쓴 단편집 『할머니는 죽지 않는다』를 읽고 나는 작정했다. 실로 오랜만인 소설, 왜 계속 산문집만 냈냐고도 물어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한 문장을 읽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제일 중요한 일은 설명할 필요가 없는데 그다음으로 중요한 일들은 많은 설명이 필요했다. 설명한다고 너그러이 이해받는 것도 아니었다.”(34쪽)

 

13년 만에 펴낸 소설집에는 표제작 「할머니는 죽지 않는다」를 포함해 5편의 단편이 실렸다. 2000년부터 2011년까지 틈틈이 문학잡지에 발표한 작품이다. 기괴한 환상소설 같기도 범상한 산문 같기도 한 작품들. 「월춘장구越春裝具」의 주인공 말마따나 ‘소설은 무엇일까’를 따져보려 했지만, 공지영의 소설은 순식간에 소화됐다. 눈으로 글자를 읽고 머릿속으로 문장을 해석하고 마음으로 툭 던지는 과정. 이 시간은 짧을수록 좋은가, 길수록 좋은가. 이 또한 가려보려 했지만 곧 부질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다만 「맨발로 글목을 돌다」의 주인공처럼, 오래도록 마음속에 데리고 살고 싶은 문장 몇 개를 옮겨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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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요즘 시대를 바라보면서 작정하고 쓴 느낌

 

편안해 보이세요. 소설집을 내셔서 그런지, 후련해 보이는 느낌도 있고요.

 

그런가요? (웃음) 책을 냈더니 인터뷰 요청이 많아요. 예전에는 기자간담회만 하고 끝났던 것 같은데, 요즘 매체가 너무 많아져서 그런가 좀 놀라고 있어요. 인터뷰는 웬만하면 안 하려고 해요.

 

거절하기 어렵지 않으세요?

 

솔직히 말하면 ‘작가에게 인터뷰가 필요할까?’ 그런 생각을 해요. 어차피 글로 다 녹아나잖아요. 인터뷰는 소설에 덧붙이는 사족 같은 게 아닌가 하는 거죠. 사실 작가한테는 물어볼 게 별로 없잖아요. 글로 다 쓰니까요.

 

소설 쓰는 작가이기 전에 한 사람으로 궁금한 점도 있잖아요.

 

독자 입장에서 생각하면 그렇죠. 좋아하는 작가를 더 알고 싶으니까. 인터뷰를 읽으면 충족되는 즐거움이 있어요. 제가 박경리 선생님을 좋아하는데, 인터뷰에서 풀 뽑고 사는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어요. ‘아, 선생님은 풀을 뽑으면서 글을 쓰셨구나’ 하고 장면이 상상되더라고요. 이런 즐거움이 있긴 해요.

 

2013년에 장편소설 『높고 푸른 사다리』를 쓰셨지만 단편소설집은 13년 만이에요. 이렇게 단편을 안 내셨나? 놀랐어요.

 

그러니까요.(웃음) 솔직히 말하면 단편을 발표하긴 했지만 잊어버리고 있었어요. 예전에는 소설이 다 두꺼웠잖아요. 한 권으로 묶을 양이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묶어보니까 충분히 양이 되더라고요. 사실 단편은 독자들에게 많이 잊혔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읽어주는 독자분들이 많은 걸 보고 되게 감동했어요. 우리 어릴 때, 작은 단편 모음집 같은 거 많이 봤거든요. 막 설레면서. 그때 생각이 나서 좋았어요.

 

평소 독자 리뷰는 좀 찾아보는 편이신가요?


거의 봐요. 가끔 시간이 나면 블로그까지 다 봐요. 『할머니는 죽지 않는다』리뷰도 몇 개 봤어요. 한 페이스북 친구분이 대통령 후보자들의 네거티브 캠페인을 보면서, 제가 소설에 쓴 문장을 다시 떠올렸대요. 인상이 깊어 캡처를 해놨어요.

 

혹시 이 문장은 없었나요? “진실은 너무 게으르다.”(125쪽)


어, 있었어요.(웃음) 『의자놀이』를 쓸 때도 비슷한 문장을 썼는데요. 내가 마음을 많이 넣어 쓴 문장을 발견해주는 독자를 만나면, 참 기뻐요. 고맙고요.

 

한국 사회에서 가장 게으른 진실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자기 자신이요. 사람들이 자기가 뭘 원하는지조차 모르는 것 같아요. 말하자면 눈을 똑바로 뜨고 깨어있지 않으면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을 구분조차 할 수 없는 세상이에요. 뭔가 유행하면, 사람들은 다 따라 하잖아요. 나의 선호와 관계 없이요. 저부터도 힘들어요. 그래서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으려고 노력하죠.

 

표제작 「할머니는 죽지 않는다」는 ‘죽음에 직면한 할머니를 둘러싼 가족들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에요. 임종 직전까지 간 할머니는 가족 누군가가 죽으면, 다시 살아나요. 주인공은 할머니가 죽지 않고 동생이 죽을까 봐 공포에 떨고요. 소설을 읽다 보면 아무리 악인이어도 조그마한 연민은 생기는데, 이 할머니는 도통 끔찍한 느낌이에요.


괴물이 되어버린 거죠. 현실에서도 괴물을 많이 봐요. 어떤 다면적인 느낌이 없는 사람, 마치 무슨 기계 같은 사람들이 있어요. 좀비라고 해야 하나요? 목적 지향적인 좀비. 정치권이야 뭐 참 많아 보이고요.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에 제가 이런 문장을 썼어요. “진실보다 무서운 건 진실이 밝혀진다는 것이라는 걸. 거짓이라도, 사랑하지 않는다 해도, 붙들고 있는 편이 나을 때가 있다.” 이 소설은 제가 2000년에 쓴 작품이에요. 「할머니는 죽지 않는다」는 2001년에 썼고요. 10년이 넘은 단편인데 마치 요즘 시대를 바라보면서 작정하고 쓴 느낌이에요.

 

무턱대고 한 방향으로 돌직구하는 사람을 볼 때가 있어요. 물론 그 방향이 옳을 때도 있는데요, 쉼 없이 오로지 앞으로만 달리는 사람을 보면 숨이 턱 막혀요. 바늘로 살짝 건드려도 작은 구멍조차 안 날 만큼 자기 고집만으로 똘똘 뭉친 사람에게는 말 걸기가 무서워요.

 

젊은 사람들이 그런 경우도 있어요. 생물학적으로는 너무 젊은데 마치 노인 같아요. 젊은 친구들한테 “산다는 게 다 이렇지 않나요?”라고 물으면 “아니에요, 선생님. 저희는 스펙을 쌓아야 해요”라고 답해요. 면접을 볼 때도 이미 학습된 앵무새처럼 답하는 거예요. 모두가 똑같은 대답만 하고 있을 때 참 답답해요. 현실을 보고 있노라면 이해가 가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은 찾아야 하지 않나, 세상이 원하는 내 모습으로만 갈 것인가’ 이런 고민은 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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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놓고 나서 이것이 소설일까 생각했다


소설에서 주인공이 “너는 왜 이 책을 썼니?”라고 물어요. 작가님께 지금 같은 질문을 하고 싶어요.

 

청탁을 받아서 썼어요.(웃음) 이게 무슨 의미냐 하면요. 저는 프로 작가잖아요. 항상 쓰는걸 준비하고 있어요. 하지만 글을 쓴다는 건 너무 고통스러워서 자발적으로 쓰지 못해요. 머릿속에는 항상 꿰어야 할 구슬들이 쌓이고 있어요. 꾸러미 꾸러미별로 쌓여 있는데, 어느 순간 어떤 동기가 생기면 고통 안으로 빠지는 거예요. 프로 작가니까요. 기자님도 그렇지 않아요? 인터뷰를 왜 하겠어요?

 

(웃음) 그렇죠. 큰 동기죠. 이번 소설집을 보면 작가님 개인의 이야기를 녹여낸 장면이 많아요. 만약 소설이라는 타이틀을 지우고 읽으면 ‘공지영의 에세이야?’라고 생각할지도 몰라요.

 

작품을 쓸 때 이런 생각을 했어요. ‘소설이라는 장르가 꽤 젊은 장르임에도 불구하고, 자유로움이 너무 국한된 게 아닐까.’ 수많은 새로운 장르가 탄생하면서 소설도 어떻게 보면 위협을 받고 있는데 우리는 너무 갇혀 있어요. 말하자면 외연의 확장? 더 자유로워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설령 누가 저를 두고 소설가라고 부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냥 작가여도 돼요. 에세이, 소설을 마구마구 나누지 말고 ‘글’이라는 한 장르로 생각하면 어떨까. 『의자놀이』를 쓸 때, 그러니까 5년 전부터 이런 생각을 했어요. 어떤 종류의 것이든 글로 쓰는 모든 작업을 하고 싶은 마음이에요. 르포, 평전 같은 글도 많이 써보고 싶어요.

 

최근에 『공지영의 성경공책 세트』도 내셨더라고요. 출간된 지 한 달이 지났는데, 찾아보고 알았어요.

 

작은 출판사에서 냈는데 아직 많이들 모르시더라고요. 오래전부터 제가 매일 성경 말씀 묵상을 하고 있어요. 비슷한 책을 내고 싶다고 하셔서, ‘내가 특별히 고통스럽게 짜내지 않아도 되겠구나’ 싶어 가벼운 마음으로 냈어요.

 

문학잡지 『악스트 Axt』의 커버 스토리를 묶은 인터뷰집(『이것이 나의 도끼다』)도 나와서 작가님의 인터뷰를 다시 읽어봤어요. “산문은 시간만 되고 체력만 되면 몇 권이고 써낼 수 있다”고 하셨는데요. (2015년 11월 인터뷰)

 

산문은 쓰기가 되게 수월해요. 페이스북, 트위터에서 짧은 글을 올리는 것처럼 쑥쑥 써내려갈 수 있어요. 일상이 굉장히 뭐랄까, ‘낙수’라고 하죠. 그런 게 떨어질 때가 있거든요. 오늘 같은 날은 대선에 대해서 쓸 수 있겠죠. 쓰기가 귀찮아서 그렇지 쓰라고 하면 의미를 찾아서 쓸 수 있어요.

 

“써놓고 나서 이것이 소설일까 생각했다. 이런 것도 소설일까…… 그러면 소설은 무엇일까, 하는 내 안의 오래된 물음이 뒤따라 왔다. 누가 이것은 소설이고 이것은 소설이 아니라고 우리에게 말해주는가. (37쪽)

 

「월춘 장구」에서 주인공은 소설에 관해 자문해요. 작가님은 ‘소설은 무엇이다’라는 정의를 내리셨나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에세이를 읽다 해답을 얻었어요. 감독이 어느 날 손주가 쓴 ‘우리집 강아지’라는 글을 읽었어요. “어떤 날은 오소리 같고 어떤 날은 돼지 같고 어떤 날은 여우 같고 고양이 같은데 우리집 강아지는 결국 개다.” 감독은 이 글을 읽고 “영화 역시 여러 가지로 보일 수 있다”는 답을 얻었대요. 소설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영화 같고 연극 대본 같기도 하지만 결국은 소설이구나.’ 이후로는 좀 자유로워졌어요.

 

작가로서 한계를 느낄 때는 없나요?

 

늘 한계를 느끼죠. 너무 글이 안 써질 때. 머릿속에서는 항상 쓰고 싶은 게 있지만 안 나올 때가 있어요. 마감이 있으면 어떻게든 써내지만 후루룩 나올 때는 흔치 않아요.

 

트위터 프로필에 이렇게 쓰셨더라고요. “소설가 허락 없이 기사 금지 함.” 트윗이 기사화가 되는 걸 반대하시나요?

 

법적 제재는 없다고 해요. 하지만 별로예요. 트위터리안들이 퍼가고 인용하고 그러는 건 괜찮아요. 하지만 언론은 기사를 쓰고 돈을 벌잖아요. 내가 쓴 글로 기사를 채우고 이윤을 추구하는데, 내 동의 없이 하면 안 되지 않나요? 제가 뭐 사건을 만든 것도 아닌데요.

 

“그 힘은, 그렇게까지 목숨 바쳐 자신만 생각하는 사람에게서, 가여운 사람을 가엾게 여기지 못하는 사람에게서, 가난해서 마음을 굽혔던 것도 사람의 영혼을 상하게 하는 일이지만 힘으로 남의 것을 빼앗는 일도 사실은 자신의 영혼을 상하게 하는 일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에게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꼭 남을 해칠 필요는 없고 그래서 안 된다는 것을 믿지 않는 그런 사람에게서 나오는 힘이라는 것을.” (74쪽)

 

이번 작품도 그렇지만, 작가님의 글을 보면 언제나 약자 감수성이 있어요. 갑을 문제에도 예민하시잖아요. 좀 뭉뚱그린 질문이지만 어떤 ‘갑’들을 볼 때, 가장 화나나요?

 

자기 직원에게 반말하는 상사가 제일 싫어요. 같이 대학을 다닌 친구나 선후배가 중소기업 사장이 돼서 만났어요. 그런데 직원한테 반말을 하는 거예요. ‘얘가 미쳤나?’ 싶었어요. 물론 친해서 사석에서는 반말을 할 수 있어요. 하지만 다른 사람도 있는데 “어이, 그것 좀 가져와”라고 말하는 게 말이 되나요? 이것처럼 몰상식한 경우가 없다고 생각해요.

 

언젠가 이런 분을 만난 적 있어요. 존댓말을 하다가 반말로 정정을 해서 다시 말하는 거예요. 습관적으로 존댓말을 했는데 ‘내가 네 위에 있다’는 걸 보여주고자, 다시 반말로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는. 좀 충격적이더라고요.

 

그런 사람이 있어요? (웃음) 할 말이 없네요. 저는 만 20세 이상이 되는 사람들에게 허락 없이 반말하면 안 되는 법을 만들고 싶어요. 그렇게 하면 정말 달라져요. 언어는 내용의 산물이기 때문이에요. 어른들이 20대에게 함부로 반말하면 항의를 해야 해요. 얼마 전 미국의 한 행위예술가가 두 시간 동안 자기 몸을 마음대로 만져도 되는 퍼포먼스를 했어요. 한 시간까지는 시민들이 매우 정중하게 만졌대요. 그런데 한 시간이 좀 지나자 때리고 성추행하고 정말 난리가 난 거예요. 예술가는 물론 이런 상황을 예상했죠. 이런 말을 하더라고요. “저항하지 않는 자의 말로가 바로 이것이다.” 아무리 작은 일이라도 틀리고 무례한 일에 대해서는 분명히 저항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정글에서는 언제나 약자를 희생시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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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과 맞닿아있는 문제적 인물


작품 해설을 강유정 문학평론가가 썼어요. “공지영의 소설 속 공지영은 특수한 상황에 처한 ‘문제적 인물’이기도 하지만 적어도 어떤 보편성 안에서 우리와 전혀 다르지 않은 ‘개연적 인물’이기도 하다.”(240쪽) 이 말에 반기를 들 사람은 없을 것 같아요.

 

정확하게 표현했어요. 나는 문제적 인물이죠. 사람들은 보통 여러 가지 이유로 문제적 행동을 안 하죠. 저는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많이 했어요. 하지만 그 문제가 이 시대의 어떤 보편과 동떨어진다면 문제로 부각되진 않았겠죠. 보편과 맞닿아있는 문제적 인물이 된 거예요.

 

소설가는 문제적 인물을 창조하잖아요. 작품 안에서는 그래야만 하죠. 독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모르겠지만, 현실에서 사람들은 작가에게 어떤 굉장히 정중한 태도를 요구하는 면이 있는 것 같아요. “트위터를 하는 작가들은 모두 언팔하겠다”고 말하는 분들을 꽤 봤어요. 작가님은 트위터를 활발하게 하는 편이시잖아요. 작가 공지영보다는 사람 공지영에게 가까운 창구라고 봐도 될까요?

 

그러니까 이게 내 성격적 장점이기도 하고 결함이기도 한데요, 일단 입을 열면 계산하거나 숨기지 않아요. 개인적으로 장점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어떤 때는 공공성에 있어 물의를 일으키더라고요. 제가 그동안은 잘 몰랐는데 이제 알았어요. 그래서 요즘 생각해요. ‘수많은 사람 앞에서 내가 솔직하게 내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 맞나?’ 안 하겠다는 생각은 아닌데요, ‘너무 시끄러우니까 되도록 덜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아무래도 밖이 소란스러우면 방해를 받아요. 내 글에 집중하고 내 생각을 정리해야 하니까요. 말하자면 사물의 본질을 투시해야 하는데 집중력이 흐트러지죠.

 

장편소설을 쓰고 계신다고요.

 

올해 출간을 목표로 쓰고 있어요. 도입은 했는데 이런저런 일이 많아서 책상에 오래 앉기가 좀 힘들어요. 물론 완전 핑계지만.(웃음) 저는 몰입하면서 쓰는 스타일이라 쓰기 시작하면 밖에도 잘 안 가요. 지금은 책이 나와서 그런지 사회가 이래서 그런지, 좀 산만해졌다고 할까요? 하지만 사람들을 만나면서도 구슬이 계속 쌓이니까요. 다 일장일단이 있어요.

 

요즘 10만 부 이상 팔리는 책이 확실히 줄었잖아요. 예전에는 소설이 나오면 꽤 오랫동안 베스트셀러에 머물렀는데 요즘은 좀 드물죠. 체감하세요?

 

소설이 안 읽힌다, 그런 건 아닌 것 같아요. 하지만 일단 스타 작가가 없어요. 신경숙 표절사태 이후 평단의 태도에 독자들이 많이 실망하지 않았어요? 예전에는 권위 있는 사람이 책을 권해주면 좀 믿고 읽었는데, 이제는 그런 게 사라졌어요. 하지만 이게 꼭 장르의 문제는 아니라고 봐요. 과거에 어린이소설은 절대 안 팔렸지만 지금은 전 세계 독자들이 『해리포터』를 사려고 줄을 서 있잖아요. 오히려 책의 문제가 중요하지 장르로 볼 건 아닌 것 같아요. 지금은 소설 속에 담을 수 있는 세계가 아닌 것들이 많아요. 그런 의미에서 소설이 어떤 외연의 확장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해요. 『할머니는 죽지 않는다』를 내면서 짧은 단편을 많이 쓰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제가 무서운 걸 좋아해요. 엽기스럽지만 수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을 쓰고 싶어요. 「할머니는 죽지 않는다」는 내가 너무 좋아하는 부류의 소설이에요.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 씨와 낸 인터뷰집 『괜찮다, 다 괜찮다』에서 “작가가 계속 성장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고통, 고독, 독서”라고 하셨어요. 지금 10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는데요. 더 보탤 것이 있을까요?

 

아니요. 그때랑 똑같아요. 젊었을 때는 누군가의 말, 반응, 공감을 반영하곤 했는데 지금은 썩 필요하지 않아요. 공감해주지 않아도 제가 공감하니까요. 홀로 자가발전이 많이 이뤄진다고 할까요? 이제는 확실히 사람들의 말과 행동에 덜 반응해요. 그렇다고 생각이 바뀐 건 아니에요. 반응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는 걸 너무 많이 아는 거죠.

 

혼자 있는 게 확실히 더 좋으세요?


그럼요.(웃음)

 

자유로워진다는 것만큼 좋은 게 없어요. 남의 말 한 마디에 휘청대지 않고요.


저도 악플을 가끔 보잖아요? 물론 기분이 썩 좋진 않지만 ‘이 분이 별로 안 행복하시구나’ 그러고 말아요. 이제 좀 편해졌어요. 불필요한 일에 내 마음을 주지 않으니까 편안하죠. 나이가 드니까 에너지가 부족한 게 확실히 느껴져요. 그러니까 정말 에너지를 써야 할 곳에 쓰는 거예요. 왜냐면 한정되어 있으니까요. 점점 소중한 게 뭔지 알게 되니까. 화를 낼 시간보다는 사랑할 시간이 부족한 거예요.

 

이번 소설집 후기에 쓰신 문장이 생각나네요. “언제나 삶에게 두 번째 통조림을 주려고 합니다. 내가 삶을 더 많이 사랑할수록 나는 이 지상을 더 잘 떠날 수 있다는 것을 압니다.”(227쪽) 이 문장이 기억에 남는 건 ‘압니다’라고 쓰여 있어서예요. ‘더 잘 떠난다’ 혹은 ‘그렇게 해야 한다’가 아니라서요.

 

이 문장을 알아봐줘서 고마워요. 많은 걸 담고 싶어서 공들여 쓴 문장이에요. 이럴 때 글 쓰는 게 참 좋아요. 숨겨놨는데 신통하게 알아봐줄 때, 보물찾기하듯이 발견해주는 독자들에게 참 감사해요. 제가 삶이 너무 힘들었을 때 신경정신과를 다녔단 말이에요. 지독하게 힘들 때가 있었는데 결국 생각해보면 책을 통해 많이 치유된 것 같아요. 너무 진부하지만, 책 속에서 길을 발견할 때가 많아요. 엄마보다 더 잘 가르쳐주는구나 하는 생각도 했어요. 말하자면 책이 엄마였던 것 같아요. 낳게 해주고 간호해주고 앞으로의 길들을 제시해주고 그랬던 것 같아요. 저는 독자들에게 사인할 때 ‘더 사랑하는 하루’라고 써요.

 

『할머니는 죽지 않는다』가 특히 어떤 독자들에게 닿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나요?

 

아무래도 문학을 좋아하는 독자들이 읽으면 좋겠죠. 사회문제랑 꼭 연결시키고 그런 건 나중에 생각하고, 작품으로서도 재밌게 읽어줬으면 하는 생각이 들어요.



 

 

할머니는 죽지 않는다공지영 저 | 해냄
2000년 이후 집필, 발표한 작품들 중 21세기문학상, 한국소설문학상, 이상문학상 수상작과 신작 산문을 수록한 이번 작품집은, 작가의 매력적인 문장들과 속도감 있는 사건 전개 등이 돋보이는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어, 끊임없이 장편소설을 집필하면서도 단편소설이 갖춰야 할 소설 미학을 지속적으로 유지해 왔다고 평가받은 작가의 최근 작품 경향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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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데이터 과학자가 본 한국의 페미니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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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나(필명 양파)는 어릴 때 부모님을 따라 대한민국 대사관조차 없던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이민을 가 외국인 남편과 결혼해 두 아이를 낳았다. 그 와중에 일을 하면서 영국 옥스포드 대학교에서 석사과정을 마쳤다. 현재 런던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데이터 과학자로 일한다. 동양인 여성의 신분으로 타지에서 커리어를 시작해 유명 외국계 기업에서 촉망 받는 분야의 전문가로 일한다는 사실만 놓고 보면 노력으로 고난과 역경을 이겨 낸 자기계발서의 주인공 같지만, 정작 본인은 ‘노력보다 페미니즘의 덕’이라고 말한다.


양파가 운영하는 페이스북 페이지가 사람들의 전폭적인 공감을 받았던 계기 역시 페미니즘이었다. 인종차별로 유명한 남아공에서 유색 소수인종 여성으로 학위도 없이 일을 시작한 자신이 과연 한국에서 비슷한 조건으로 살았다면 이렇게 살 수 있을지 스스로 질문했을 때 답은 ‘NO’였다. 한국은 여성에게 특히 냉혹했고, 여성이 페미니즘을 이야기하기 시작하면 국적과 직업에 상관하지 않고 해하겠다는 협박이 들어왔다. 이런 상호작용은 왜 한국에 페미니즘이 필요한지 오히려 역설하는 계기가 되었다. 영국의 여성 데이터 과학자가 들여다 본 한국은 『여혐민국』이었다.


한국에서 만난 양파는 생각보다 한국 사정에 정통했고, 인터넷 유행어를 자연스럽게 구사했다. 이전에 썼다던 책 제목을 알아내려고 애를 썼지만 끝까지 말해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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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토크에 사람이 몰리는 이상한 나라


가족이랑 같이 오셨나요? 한국은 언제 떠나신 거죠?

 

네. 아이 낳고 출산 휴가 때 잠깐 나온 적 있었는데, 이민한 이후로 한국에서 보낸 시간을 다 더하면 3개월이 안 될 것 같아요. 91년도 갔으니까 초등학교 졸업할 즈음이었네요. 그때 남아공에 한국 대사관도 없고, 도시에는 한국 가정이 세 가정 있었어요.

 

오랫동안 한국을 떠나 계셨다고 들었습니다. 들어와서는 카카오, 구글 캠퍼스, 여세연(젠더정치연구소) 강연 등 스케줄이 빡빡하시더라고요. 처음 강연에서는 한국말이 잘 안 나오셨다고요.

 

들어온 지 일주일 정도 됐어요. 오랜만에 쓰는 언어로 글을 쓰면 힘들다고 하는 게 이해가 안 됐는데, 한국 와서 버벅거리는 이유를 알겠더라고요. 언제나 직장에서 사람들에게 설명하는 내용이니까 머릿속으로는 완벽히 알고 있는데, 생각해 보니까 그 내용을 동시통역해야 하는 거예요. 아예 모르는 말을 하면 괜찮은데 늘 말하던 스크립트에서 벗어나니까요.


페미니즘 관련 북토크도 하셨어요. 기분이 어떠셨어요?


음, 엄청 신기한 나라다? 왜 페미니즘 토크에 사람이 몰리는지, 이거 정상이 아닙니다. (웃음) 제 주위 젊은 여자들이 페미니즘 강연회에 갈 일은 여성학 전공하지 않는 이상 (없어요). 10명, 20명 오나 보다 해서 중국집 가서 할까 했는데 엄청나게 오셨어요. 역시 이상한 나라에요.


페이스북 페이지에 쓴 글이 책으로 나왔는데, 처음에는 블로그를 운영하셨다고 들었어요.


당시 메갈리아 논란이 많아서 작정하고 봐주겠다는 마음으로 오유와 일베를 쭉 보고 블로그에 글을 썼어요. ‘변방의 블로그니까 신경을 쓰겠어?’ 했는데, 신경 쓰더라고요. 사람들이 몰려와서 논쟁 댓글이 우르르 달렸어요. 그때 놀랐던 게, 제 블로그 글을 다 퍼가더라고요. 아마 공격용이겠죠. 저보고 죽여버리겠다고 댓글을 단 사람이 있었거든요. 무섭진 않았는데 그래도 혹 모르는 거잖아요.

 

이후 페이스북 페이지로 옮기신 건가요?


죽여버리겠다는 댓글은 걱정 안 하던 사람들이 ‘메갈 같은 곳에 빠지시면 안 된다’고 극구 걱정하는 글을 길게 쓰는 거예요. ‘양파님 글을 좋아해서 그러는데 오유를 보면 생각이 달라지실 거다’는 댓글도 있었고요. 피곤해져서 블로그를 닫고 페이스북으로 옮긴 후로는 주로 IT 관련 글을 올렸어요. 아무래도 남성 구독층이 많았죠. 그리고 강남역 10번 출구 살인 사건 전후로 여성이 많이 들어왔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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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때마다 다시 다짐한다


‘지난 10년 넘게 블로그를 하면서 성차별에 관한 의견을 약간이라도 피력하면 어떤 협박과 욕을 피드백으로 받는지를 아주 자세하게 겪었기 때문이다. 다시는 같은 일을 겪고 싶지 않았다’(29쪽)고 하셨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글을 쓰고 책을 낸 이유는 무엇인가요?


어찌어찌하다 보니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스펙을 가지고 있다고 하던데, 제가 말했을 때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게 다르더라고요. 한국에서 저와 비슷한 30대 후반의 여자가 이렇게 얘기하면 사람들은 ‘너 그러니까 시집 못 갔지’ 하는 수준으로 무시하는데, 같은 내용으로 제 스펙을 알려주면 다른 말을 하지 않는대요.

 
엔지니어가 느끼는 본능적인 기쁨이 있어요. 누군가는 누가 나를 필요로 한다는 데서, 인기가 많다는 데서, 뭔가를 만든다는 데서 기쁨을 느끼는 데, 엔지니어는 뭔가를 효율적으로 했을 때 되게 기분이 좋아요. 제가 하는 말 중에 딱히 신선하거나 새로운 관점은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런데도 훨씬 파급력이 있다고 한다면 효율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니, 더 낫겠다는 생각이었어요.


한국에 계시지 않고 눈치 볼 일이 없으니 더 편하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훨씬 편하죠. 제가 크게 손해 보는 것도 없고, 실제로 제가 얘기하는 게 도움이 된다고 하는 사람이 많이 있었고요.

 

마음 다잡고 갈 데까지 가보자. 나 같이 해외에서 일하고 살면서 뒷일 걱정 안 해도 되는 사람이 이렇게 몸 사리면 딴 사람은 어쩌냐. 페친 중 남자가 대부분인 한국 공대 여자들은 어쩌고, 찌질한 개저씨 상사나 선배들이 줄줄이 페북에 포진해 있는 사람들은 어쩌냐. ‘좋아요’ 하나 누르기도 무섭고 뉴스 공유 하나에도 지적질에 시달리는데, 그런 거 하나 없는 내가 도망가고 그러면 안 되지.
- 30쪽

 

페이지를 운영하시기 전에도 페미니즘적 시각을 가지고 있었나요?


안 그랬던 것 같아요. 영국에서는 보수 쪽에 속하지 않나 생각하고, 어떤 이슈에서는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생각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한국 기준으로는 엄청난 페미니스트가 되어 있더라고요. (웃음) 오해입니다. 지금은 트럼프 당선 전후로 해외에서도 페미니즘에 대한 재성찰이 일어나는 분위기인데, 4, 5년 전 영어권에서도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지만…’ 으로 말을 시작했어요. 페미니즘이라는 단어가 힙해진 건 좋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제가 정통 페미니스트 1급 자격증 시험을 본 것도 아니고, 그렇게 시험 봐서 페미니즘을 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고요.

 

글을 읽었을 때 그렇게 남성들에게 적대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어요.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적대적이래요. (웃음)


모두 여성혐오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으니, IT 분야의 SOA(Service Oriented Architecture)’ 개념으로 접근해 일일이 분노하기보다 원하는 걸 확실히 해서 받아내자는 말도 있었어요. 기존 페미니즘 운동과는 다른 결로 느껴졌어요.


‘너는 여혐이다’라고 말하는 게 무슨 도움이 되냐는 거죠. 내가 너 싫어한다고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는 게 별로 도움이 되진 않잖아요. 그럼 내가 원하는 게 이 사람을 욕하는 건지, 이 사람이 하는 행동을 그만하게 만드는 건지 생각해 보자는 거죠. 엔지니어의 접근 방식이긴 한데, 마음속에서 어떻게 구현하는지는 상관없지만 앞에서는 얼굴 평가하지 말라는 거예요. 결국, 사람이 변하기는 쉽지 않고, 행동의 변화 정도만 일어나도 어차피 원하는 건 달성한 셈이니까요.


개발자 컨퍼런스도 참석하셨는데, 한국 IT시장은 어떤 것 같나요?


여성 개발자 컨퍼런스에 다녀왔어요. 아무래도 조심스러운 게, 직장에 관한 조언도 제가 겪은 스타트업과 IT업계의 조언이 한국에서는 안 맞는 경우가 있어요. 저는 중소기업 옮겨 다니다가 지금은 큰 회사에 다니지만, 한국에서는 실패에 관대하지 않은 상황이라 저처럼 하면 좋다고 이야기하기가 힘들더라고요. 10시쯤 출근해서 6시나 7시에 퇴근하는 환경에서는 자기가 뭘 배우고 싶으면 저녁에 공부할 수 있지만 극한 노동 강도로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더 노력하라는 소리로 들릴 것 같아요. 밤 11시에 퇴근하는 사람 보고 관련 업계 모임에 나가서 뭔가 배워보라는 조언을 할 수는 없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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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차이로 본 한국의 여성혐오


여성 혐오를 미러링(mirroring) 하는 글을 자주 쓰셨어요. 백인과 동양인 사이 차별을 여성 차별에 빗댄다든지요. 아무래도 해외에서 살면서 겪은 경험이 글을 쓰는 데 녹아들게 되나요?


사실 아니에요. 주로 쓰는 미러링은 미국식 인종차별 인식이거든요. 남아공에서는 동양인은 안중에 없어요. 아시아계가 없어서 시골에 가면 신기해하면서 저보고 뮬란이라고 그래요. 또 80%가 흑인이라 백인들이 위기감에서 아시아인을 백인으로 쳐주는 경향이 있어요. 한국 사람들이 미국 등지에서 느끼는 인종 차별에는 반응하니까 이용한 거예요. 특히 남자분들은 서양에서 아시아계 인종으로서 자기 스펙이나 성격, 계급과 상관없이 보이는 것만으로도 차별받을 수 있다는 걸 피상적으로라도 이해하고 알아요. 그 말을 하면 이해하는데 한국에서 여성을 말하면 또 인종과 성별이 같냐고 딴지를 걸죠. 그래서 좀 웃겼어요.


그런 식으로 대비를 시키는 비유 중에 전라도 사람들을 차별하는 내용도 있었어요. 한국 상황도 익숙하게 받아들이시는 것 같아요.


동네마다 쌓아 온 고유의 역사가 있어요. 얘는 왜 얘랑 친하고 얘는 왜 서먹하고, 이 분식집은 가면 되고 저기는 안 된다는 것들. 이사하면 그걸 싹 잊어버리고 새로 그곳의 역사를 배워야 하는 거죠. 어떤 한 무리에서의 평가나 가치는 다른 곳에 가면 아무런 의미가 없거든요. 한국에서는 공부 잘하는 게 최고지만 남아공에서는 그런 아이들은 바보취급 받고 운동 잘하고 몸 좋은 애들이 인기 있는 것처럼요. 그렇기 때문에 아웃사이더는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어떤 걸 중요하게 여기는지 자세하게 볼 수밖에 없어요. 그런 게 계속 반복되니까 어렸을 때부터 절대적인 게 없다는 생각을 했어요. 부모님이 경상도 쪽인데, 엄마 아빠가 말하는 것도 어느 나라나 비슷한 게 있어요. 자신과 조금 다른 무리에 대한 편견이 어디나 있더라고요.


공통점이 있지만 차이점도 있잖아요. 역차별을 주장하는 남성들의 갈래가 한국과 서양이 다른 것 같다고도 하셨는데요.


처음 받은 협박에 겁을 먹었던 이유가, 영미권에서 안티 페미니스트라고 하면 테러리스트에 가깝게 무섭고 사회적으로 고립된 사람을 연상하거든요. 여성혐오 정서는 누구에게나 있지만 대놓고 여자들은 이렇다고 하는 사람이 드물어요. 그래서 한국 페미니즘을 싫어한다는 사람들이 테러리스트에 가깝다고 생각했어요. 그러고 나서 보니까 한국에서는 여성혐오가 그냥 주류사상인 거예요. 보통 사회 계층에 따라서 어떤 발언을 하면 그 사람의 교육 정도나 그 사람이 속한 배경이 측정되는데 한국은 여성혐오 발언이 그냥 다 퍼져 있어요. 그래서 좋은 점은 안 무서워해도 된다는 거, 모든 보통 남자들이 여자들은 어떻다고 얘기하니까 위험한 사람이 아니라는 거죠. 나쁜 점이라면 계급과 상관없이 모두가 피해의식으로 넘치는 반여성주의 남자들과 똑같아요. 그래서 놀랐어요.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한국은 여성혐오가 너무 보편적이고 평균적이에요.


아이를 키우고 일을 할 수 있었던 이유도 페미니즘 덕이라고 말한 내용과 연관이 될 것 같아요.

 

저한테 ‘양파 선생님 같은 열혈 워킹맘에게 하는 말이 아니고 제가 욕하는 여자들은~’ 하면서 말하는 분들 있거든요. 한국 워킹맘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건 제가 범접할 수 없는 수준이더라고요. 그렇다고 영국에서 애 낳고 사는 게 즐겁다는 건 아니에요. 그래도 아이를 키우는 일은 힘들고 출산휴가가 있어야 한다는 사회적인 동의가 있어요. 한국 여자들이 조리원 간다고 욕하는데 저는 출산휴가를 최대로 받고 남편도 받아서 둘 다 집에 있었어요. 어머니도 계셨고, 병원은 바로 옆에 있고 공짜고요. 외국에서는 출산하면 바로 출근하고 찬물로 샤워한다든가 하는 괴담 수준의 이야기가 있잖아요. 찬물로 왜 샤워를 하는 거예요. (웃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출산하고 나서 감염되지 않으려면 가만히 있어야 하는 게 맞는 말인데, 한국 여자는 진상이고 누릴 것만 찾는다는 프레임이 계속 가더라고요.


특히 워킹맘에게 씌우는 프레임이 있죠.


성공 신화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개인의 노력으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있어요. 한국에서 놀랐던 게 어른들에게 학창 시절에 후회하는 게 뭐냐고 물어보면 공부 안 했던 거라고 대답해요. 수학 같은 것도 열심히만 하면 잘 할 거라는 인식이 있어요. 극단적이긴 하지만 영미 쪽은 수학은 잘하는 사람들이 잘하고 억지로 시켜봐야 소용없다는 생각이 있거든요. 노력해서 된다는 생각은 결국 잘 안 풀리면 개인의 잘못이 되잖아요. 워킹맘이 특히 그런 이야기가 많은 것 같아요.


‘나는 운이 좋았다’는 말도 해주셨어요.


나 혼자 잘났고 독해서 하는 사람도 분명 있겠죠.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대부분이지 않나요? 소수의 독한 사람들, 운이 좋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명해서 너도 이렇게 노력하라고 하기보다는 간단하게 남자도 12개월씩 출산 휴가를 보내는 걸로 채용 문화를 바꿀 수 있어요. 지금은 남자를 고용하면 당연히 야근시키고 주말에도 출근시키면서 집에서는 부인이나 엄마가 도와줄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되어 있는 시스템 아래에서 기업들한테, 특히 중소기업한테 ‘너희가 여성을 챙기라’고 하면서 책임을 떠넘기는 것도 무책임해요. 돈 나가는 건 누구라도 싫어하잖아요.


양파 페이지의 글이 외국 상황을 전해주는 역할도 했다고 생각해요. 선진국의 휴가 시스템, 오페어(외국인 가정에서 일정한 시간 동안 아이들을 돌보아 주는 대가로 숙식과 일정량의 급여를 받는 프로그램), 혹은 외국의 여성혐오 등이요.


당연히 다 알지 않나 싶었는데 아니더라고요. 한 분이 정말 심각하게 출산휴가 제도를 사용하는 게 당연하냐고, 그럼 외국에서는 출산 휴가를 가면 어떻게 그 사람 업무를 대체하냐고 물어보신 적이 있어요. 저도 지금 휴가인데, 이번에 9일 썼어요. 올해 휴가는 36일이어서 아직 25일 남았어요. 보통 휴가를 2주씩 가니까 다른 사람이 일을 분담하는 게 자연스럽고 그건 제 잘못이 아니에요. 제가 휴가 신청할 때 일에 공백이 생겨서 문제가 생긴다면 그건 매니저 잘못이죠. 인력 관리가 그 사람 할 일이잖아요. 물론 중소기업에서는 정부에서 지원이 나와도 귀찮으니까 투덜댈 수 있지만, 최소한 어느 정도 규모에서는 휴가를 내는 걸로 뭐라고 하면 안 된다는 분위기가 있어요. 한국 내에서도 분위기를 바꿔야 하지만 그게 오래 걸리잖아요. 그래서 강제적으로라도 남자들은 무조건 출산 휴가, 이런 정책도 실행해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동성애 관련 글을 올리자 구독자가 쑥 빠져나간 적도 있으시다면서요. 한국의 보수성에 놀라기도 하나요?


성적으로 제일 예민한 것 같아요. 콘돔 이야기가 나왔을 때도 당연한 이야기인데 이게 왜 이슈가 되지 싶었는데, 사귀는 남자와 관계를 가졌으리라고 추론할 수 있는 말을 피하더라고요. 젊은이들이 사귀어서 놀러 가면 다른 방에서 잤다고 이야기하고요. 솔직히 눈 가리고 아웅인데,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정말 보수적이라고 느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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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스트 콘텐츠 지원을 더 했으면


기존에 냈던 책이 있다고 하셔서 『개발자를 부탁해』까지는 찾았는데, 다른 책은 못 찾겠더라고요.


선견지명이 있어서 그때도 나중에 이걸 보면 아주 깊이 쪽팔리겠다는 걸 알아서 가명으로 냈어요. 20대 초반에 한창 인터넷 소설 나올 때여서 한국어로 비슷한 내용을 쓴 거라……. 흑역사는 넘어가죠. (웃음) 아예 처음에 쓸 때 영어로 썼으면 더 큰 출판 시장에 나갈 수 있었으려나요?


그때와 지금 책은 느낌이 좀 다를 것 같아요. 주제도 다르고요. 


이제까지 한번도 책을 홍보한다거나 책을 냈다는 이야기를 안 했어요. 저한테는 글쓰기가 누구한테나 있는 나쁜 버릇 같은 거예요. 누구는 자전거를 타고 누구는 도박하고 술을 마시고 저는 책을 쓰죠. 하지만 전체적으로 페미니즘을 볼 때 제 책이 도움된다면 최대한 홍보하는 게 맞을 거예요. 지금도 보면 많이 불편하긴 해요. 본명으로 낸 거니 이제는 넘어간다고 말도 못 할 것 같고, 망했네요.


글쓰기를 ‘여성스러운 것’으로 생각해서 싫어했다는 고백도 있었어요.


이상하죠. 그런데 지금도 그렇게 생각해요. 개발자 회사에 있다 보니 사람들이 SNS를 안 해요.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는 제가 사회적이고 소통을 원하는 사람처럼 보이는데, 그것도 여성성의 고정관념 중 하나잖아요. 제 주위 샘플이 그런 남자들이다 보니 여자여서 글 쓴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도 계속 쓰고 계시잖아요. 쓰다 보면 자기혐오도 좀 줄어들 것 같은데요.


어제 십몇 년 동안 제 블로그 글을 봐주신 분을 만났는데, 처음에는 글 그만 쓰고 싶다는 말이 칭찬받고 싶어서 하는 말인 줄 아셨대요. 그런데 일관적으로 십 년이 넘게 자기 혐오를 하더래요. 지금도 그렇고 저는 시간이 있으면 사색하면서 수학 문제를 푸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안 되려나 봐요. 지금도 책을 보면 제 잉여 짓의 결정체 같고 그래요.


그래도 좋은 결과로 나왔네요. 글은 주로 언제 쓰세요?


아무 때나요. 커피 마시러 가는 대신 10분, 점심 먹고 10분. 엄청 빨리 쓰는 편이어서 정말 아무때나 써요. 주제를 정해놓고 쓰지도 않고요.

 

데이터 과학자도 일종의 스토리텔링일 텐데요. 글쓰기와 연관 지을 수 있는 부분이 있지 않나요?


글을 문학적으로 예쁘게 쓰는 사람은 아니에요. 어떤 정보가 있을 때 끼워 맞춰서 주제가 있는 이야기로 만드는 걸 잘하는 것 같아요. 데이터 과학도 결국 기존에 있는 데이터를 분석하고 맞추는 스토리텔링이거든요. 논리적으로 아귀가 맞고 사람들이 보기에 말이 된다 싶으면 통하는 영역이라, 그런 면에서는 글쓰기와 비슷하죠.


이야기나 소설, 픽션도 좋아하나요?


픽션 잘 못 읽어요. 사람의 의도를 잘 이해하는 편이 아니더라고요. 예전에는 영화를 봐도 무슨 소린지 이해 못 했어요. 지금은 나이 들고 데이터베이스가 쌓이면서 좀 나아졌는데 여전히 이해가 빠르진 않아요. 논픽션이나 대중과학서를 제일 좋아해요. 자세하게 설명하고 쉽고, 색인도 있어서 찾기 쉬운 책이요.


『여혐민국』초판 인세를 기부하신다면서요.


우선 제가 증쇄를 찍어본 적이 없어서 초판을 기부한다고 하면 2쇄를 찍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웃음) 돈에 관심이 없는 건 아닌데, 한국 계좌에서 돈 빼기가 너무 힘들어요. 이제껏 낸 책 인세도 엄마 까까 사드시라고 그냥 놔두고 있어요.


어디에 기부하실 생각이신가요?


저소득 여학생들에게 생리대를 기부했어요. 다음에는 다른 도시에 기부하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개인적으로는 페미니스트 콘텐츠 지원을 더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물론 떼돈을 벌 일은 없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은행 가서 해외에서도 인출되는 카드 만들 수 있냐고 물어봤더니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앞으로도 까까 펀드로 부모님이 빼서 쓰실 거예요. (웃음)


앞으로도 양파 페이지는 운영하실 생각이신 거죠?


예전에는 정말 편하게 신변잡기 올리던 페이지였거든요. 파티 가야 하는데 드레스 뭐 입을지 물어보는 글을 쓰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제는……


한국 페미니즘의 선봉장이 되셨죠. (웃음)


그러게요. 다른 홍보문구에서도 페이지 구독자 수가 계속 들어가는데, 사실 2만 5천 명이 자랑할 게 아니지 않나요? 인사이트 구독자는 백만 명인걸요. 하지만 아무래도 개인적인 글을 올리기는 힘들어졌고, 어떻게 할까 싶어요. 그래도 계속 글은 쓰겠죠?


 

 

여혐민국 양파(주한나) 저 | 베리북
페이스북 페이지 구독자 수 2만5천 명! 『여혐민국』은 런던 마이크로소프트의 데이터 과학자 양파가 한국의 여성들에게 건네는 선물이다. 때로는 톡 쏘는 사이다처럼, 때로는 눈물이 찔끔 나도록 한국의 여성혐오에 대해 솔직하고 치열하게 써내려간 페북 포스트들을 책으로 엮었다. 남편, 남친, 남자사람친구에게 여혐을 이해시키고 싶다면 당장 『여혐민국』을 손에 쥐어주자.

독보적인 록 스타일리스트, [Alexandr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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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로부터 7년. 다소 늦은 데뷔를 만회하듯 쉬지 않고 달려, 어느덧 독보적인 센스와 경이로운 실력을 갖춘 일본의 정상급 밴드로 발돋움한 [알렉산드로스]. 처음부터 '완벽한 존재'로서의 경이로움을 발했던 이 네 명의 록 스타일리스트들은, 국적에 얽매이지 않은 음악을 무기로 여러 나라로의 모험을 막 시작하고 있는 중이다. 성황리에 마무리 된 내한공연의 다음날, 홍대 근처의 모 스튜디오에서 실시된 인터뷰를 통해 그 날의 소감과 음악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과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었다. 그 곳에서 밴드는, 무대에서의 카리스마와는 또 다른 인간적인 매력을 쉴 새 없이 내뿜고 있었다.

 

어제 첫 한국 단독공연이 성황리에 마무리되었습니다. 내한은 2012년 <지산 록 페스티벌>, 2015년 <안산 M 밸리 록 페스티벌>에 이어 세 번째였는데요. 소감을 부탁드립니다.


카와카미 요헤이(이하 요헤이) : 저희가 가장 바라던 곳이었어요. 다행히 매진이 되었고, 많은 분들이 와주셨어요. 이곳에서 와서 다행이구나라고 다시 한 번 생각했고요. 어제 기분 좋게 술을 마실 수 있었습니다.


쇼무라 사토야스(이하 사토야스) : 한국에서의 첫 페스티벌이 기억에 남아요. 많은 분들이 저희들의 노래를 불러주셨어요. 정말 목이 터져라 말이죠. 그때의 그 진심은 제가 맞부딪혔던 경험 속에서도 굉장히 진한 추억으로서 자리 잡고 있는데요. 어제는 정말, 그걸 웃도는 진심을 맞닥뜨려서요. 완전히 불타올랐습니다.
 
[알렉산드로스]를 잘 모르는 한국  음악 팬들도 아직 많을 텐데요. 밴드명에 대해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요헤이 : 단순히 그 글자와 울림이 멋있어서 선택한 이름인데요. 이건 나중에 붙인 의미긴 하지만, 일본에서 나아가 여러 나라에서의 라이브를 통해 많은 팔로워들을 사로잡고 싶은 마음이, 역사적으로 위대한 영웅인 정복자 알렉산더 대왕을 닮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밴드명 양쪽 끝 괄호에 대해 묻자)그건 별 의미 없습니다. 방해가 되려나요?(웃음)

 

메이저 데뷔 후 두 번째 작품이자 통산 여섯 번째 작품인 <EXIST!>로 데뷔 후 첫 오리콘 차트 1위를 차지했습니다. 먼저 이 앨범의 타이틀이 무슨 의미를 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요헤이 : 저희들 꽤나 역사가 기네요. (지금의 멤버로 결성한 지) 벌써 7년째입니다. 저희도 어느덧 34살 정도가 되었고요. 실은 이런저런 무명 시기도 있었어요. 하지만 아직도 알려지지 않아서, 좀 더 좀 더 알려지고 싶다는 마음에 저희들 자신이 '우리들이 여기에 있다!'라고 말하듯 지은 이름입니다.

 

음악적 측면에서의 의미가 있다면요.


요헤이 : 전혀 없어요. (웃음) 다만, 록 뿐 만이 아니라 팝, 힙합, 재즈 같이 이런 여러 가지 음악을 좋아하거든요. 그것들을 하나로 모으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곡마다 작풍이 다르죠. 그것도 즐거운 일이고요. 그러다 보니 '이 밴드는 뭐지? 이 밴드는 진짜로 존재하는 걸까?'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 것 같아서. '아, 저희는 여기에 있.어.요.' 라는 의미를 담고자 했죠. (확실히 이번 음반을 듣고 음악적 폭이 넓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하자)좀 더 여러 가지에 도전해보고 싶었습니다. 원래부터 우리가 하는 음악의 장르를 좁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요. '너무 많은 걸 시도한 거 아니야?'하는 느낌이 들 정도로 말이죠.

 

개인적으로 'Feel like'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런 화사하고 가벼운 분위기는 좀처럼 느껴보지 못했던 것이어서 그런 것 같은데, 이 곡의 모티브는 어디서 나왔는지, 작업방식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요헤이 : 좀 더 가볍게, 자연스럽게, 무리하지 않게. 가사가 영어잖아요. 하지만 일본에서도 친숙한 분위기를 내고 싶었어요. 콧노래로 부를 수 있도록 만들고자 했습니다,

 

작업 영상을 봤는데, 드럼을 하이햇, 킥드럼, 스네어 등 각 부분을 따로 녹음하시더라고요. 어떤 의도였는지요.


사토야스 : 레코딩 할 때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해보는 것을 선호하는 타입인데요. 이 곡으로 말할 것 같으면, 우치코미(드럼머신 등에 미리 연주정보를 입력해 플레이하는 기법)적인 뉘앙스를 의도한 거였어요. 그 소리를 실제 드럼과 공존시키기 위해, 일부러 인간미를 옅게 하기 위해 파트별로 녹음을 했었죠. 같이 치는 것 보다는 햇, 킥, 스네어, 심벌을 각각 녹음함으로서 좀 더 재미있는 리듬을 만들어 낼 수 있었습니다.

 

<ALXD>에서 Interlude로 실렸던 'Buzz off'가 이번엔 완곡으로 실렸습니다. 이렇게 나눠서 실은 이유는 무엇인지요.


요헤이 : <ALXD>를 만들 때 이미 데모가 있어서 괜찮다면 앨범에 한 번 넣어볼까 싶었는데, 시간이 모자랐어요.(웃음) 그래도 이런 게 있으니 어떻게 할까, 마지막 트랙으로 넣어볼까 싶더라고요. 후보군이 4곡 있었고, 두 곡은 수록이 되었는데 두 곡은 데모로 남아있었어요. 아예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 상태로 놔두는 것보다 “이런 게 있거든요”라는 느낌으로, 영화로 치면 예고편 같은 거죠. 마지막에 “속편을 만들고 있습니다!” 하면 다음이 기대되잖아요. 이번 <EXIST!>에 완곡을 넣어야겠다는 생각은 그때부터 하고 있었어요. 만약 완성이 안됐으면 넣지도 않았겠지만, '이런 곡 만들고 있어요~'라는 뜻으로 앨범에 담았죠.

 

'Buzz Off'나 'クソッタレな貴?らへ(빌어먹을 네놈들에게)'와 같은 자전적인 이야기를 제외하면, 알렉산드로스의 가사는 특별히 메시지성에 무게를 두고 있지 않은 것으로 느껴집니다. 음악과 어울리는 어감을 이용한다고 할까요. 가사에 있어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요헤이 : 보통은 멜로디부터 만들고 가사를 쓰는 편입니다만, 이번엔 동시에 나온 게 많네요. <문라이트>도 그랬고...


이소베 히로유키(이하 히로유키) : 문송('ム?ンソング'), 문송


요헤이 : 아! 문송.(웃음) 그건 영화지. 물론 문라이트도 좋았지만요. 'ム?ンソング' 만들 때도 그랬지만, 최근엔 어쿠스틱 기타를 치면서 만들 때 나오는 말에서 '아 이게 정답이구나' 하는 느낌이 들어 가사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요. 메시지성이라는 게 조금은 건방지잖아요. '이런 걸 전하고 싶어!' 같은 느낌. 'Buzz Off'나 'クソッタレな貴?らへ' 만들 때에도 특별히 메시지를 넣을 생각은 없었고, 내가 지금 말해야 하는 것들을 찾아서 멜로디에 얹는다라는 식에 가장 가깝습니다. 메시지라는 건 자신의 의견이 있어서 모두에게 '어때? 모두 그렇지? 세계평화가 어떻다고?' 라는 느낌이잖아요, 그런 건 저와는 맞지 않네요. 무대에서 말할 건 아닌 것 같아요. 블로그에 적는다던가 하는 건 괜찮다고 보지만요. 물론 노래로 메시지를 전하는 분들도 분명 있고 그것도 좋다고 생각하지만, 저는 좀 더 자연스럽게 소리를 채우는 말을 찾아서 만들어가고 싶어요. 그러니까, 들어주시는 분의 판단에 달린 것 같아요. 매번 들을 때마다 다르게 이해되어도 상관없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들어왔던 곡들도 그렇고, 만약 곡에 메시지가 있더라도 저에게는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 곡들도 있으니까요. 그게 가사의 재미있는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가사의 기적이라는 게 굉장히 멋있구나 라는 생각은 종종합니다.
 
한국에서는 원 오크 록과 더불어 영어 잘하는 일본밴드라는 이미지가 강합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요헤이 : 제 영어는 시리아에서 익힌 거예요. 미국 영어도 아닌 영국 영어도 아닌, 시리아 영어라고 해야 할까. 좀 특수한 영어예요. 제가 일본으로 돌아온 지도 십 몇 년 됐습니다만, 잘 전해질수 있도록 발음에 신경 쓰고 있습니다. 근데 한국 분들이 어제 라이브에서 따라 불러 주실 때 굉장히 발음이 좋았어요. 노래도 잘했고요, “내가 졌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웃음) 케이팝에선 다들 영어 발음이 좋잖아요. 유학을 갔다 온 건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요.


히로유키 : 한국 아이돌은 노래도 훌륭하죠. 일본 아이돌은 전혀... (웃음)


요헤이 : “아이돌이라 부를 수 없겠구나, 아티스트구나.” 하고 생각해요. 멋지잖아요. 그 속에서 록밴드가 이겨 나가기는 굉장히 어렵죠. 그래도 반드시 해나가야겠다고 생각하지만요. 저흰 록밴드지만 멜로디를 아주 중시해요. 그러니까 한국 관객 분들에게도 콧노래로 따라할 수 있게, 일단 친숙해질 수 있도록 만들어가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앞에서 <문라이트> 이야기를 하기도 하셨는데요. 카와카미 요헤이씨는 영화에도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곡을 쓸 때 감상한 영화에 영향을 받기도 하는지요.


요헤이 : 많아요. 뮤지션으로서는 좋지 않은 일일지도 모르지만, 보통 술 마시러 간다거나, 놀러나간다거나, 뭔가 자극적인 생활을 하는 밴드맨이 많잖아요. 저는 전혀 안 해요. 정말 따분한 사람입니다.(웃음) 집에 틀어박혀서 영화를 보죠. 밖에 나갈 때도 영화 보러 갈 때뿐이고요. 해외에 있을 때만큼은 흥을 좀 내보자 생각해서 친구한테 클럽에 데려가 달라고 할 때도 있어요. 일본에서는 전혀 안가지만요. 일본도 그럴지 모르겠지만 일단 외국에서는 여러 유형의 사람들이 있어서 보는 것만으로 자극이 됩니다. 그래도 기본은 역시 영화가 아닐까 생각해요. (특별히 한 영화에 영향을 받았다거나 하는 곡이 있냐고 묻자) 그런 건 없네요. 여러 가지가 섞여서 표현되는 거라서요. 다만, 'For freedom'이라는 저희 데뷔곡이 있는데요. <브레이브 하트>에서 멜 깁슨이 한 대사에서 착안한 곡이에요. “For freedom!”하고 외치잖아요. 그 장면에서 따왔습니다.

 

기본적으로 곡 작업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궁금합니다. 각 악기파트는 독자적으로 만들어 합주를 하는 스타일이신가요, 아니면 함께 모여서 의견을 공유하며 만들어나가는 스타일이신가요.


요헤이 : 멜로디와 드럼 구성을 만들고, 스튜디오에 만나서 의견을 공유하면서 만들어나가죠. 네 명의 프로듀서 같은 감각으로요.

 

예전에 비해 이번 <EXIST!>를 만들며 몰랐던 부분에 대해 특히 서로에 대해 더 알게 된 부분이 있는지요.

히로유키 : 엄청.(웃음)


요헤이 : 확실히 성장한 부분이 많다고 느껴져요. 매번 작품을 만들 때마다 '아 이 밴드라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돼요. 마음 든든하죠. 사실 하다보면 내가 모르는 나의 부분이 나오거나 하잖아요. 비장의 카드(?し球)를 내미는 게 아니라요. 연습하면서 새로운 자신이 나오기도 하고 서로 그렇게 함께 성장하고 있죠.


히로유키 :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감성이랄까, 가지고 있는 것들이 점점 변해가요. 아까 말했듯 비장의 카드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니라, 점점 자신의 내면에서 착착 완성되어가죠. 이런저런 음악을 듣는다든가, 여러 장소에 가본다든가 하는 과정에서요.


시라이 마사키 : '모두에겐 나에게 없는 것이 있다. 내가 없는 것들을 이만큼 가지고 있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정말 열심히 해야겠구나'라는 생각을 앨범을 만들면서 많이 했습니다.(웃음) 나도 지지 말아야겠다 싶었어요. 그렇게 자극을 받았고요. 다른 멤버들은 모르겠지만, 저는 멤버들이 좋은 라이벌이라는 느낌도 있습니다. 같이 열심히 하자라는 느낌도 있지만, 나 자신과 동시에 멤버들에게 지고 싶지 않달까요.

 

드럼세팅이 특이합니다. 다른 드러머에 비해 심벌을 굉장히 높게 고정해놓은 스타일인데, 무엇이 계기가 되어 이런 세팅을 유지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사토야스 : 계기는요. 이 팀에 들어오기 전에 했던 밴드 시절에 있었던 타이반(?バン : 두팀 합동공연) 공연 상대의 드럼이 왼쪽도 오른쪽도 굉장히 높게 세팅되어 있었어요. 그게 멋있어 보이더라고요. 거기서 슬쩍 빌려온 거고요. 또 하나 이야기하자면, 드럼세트라는 건 제 전용 놀이기구 같은 거잖아요. 놓여있는 것만으로 저 혹은 [알렉산드로스]라는 것을 알아봐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어요. 특히 페스티벌 같은데 가면 비슷비슷한 세트 속에서, 뭐 앰프 같은 건 외관만으로 알아채기는 힘드니까요. 알아 볼 수 있는 것은 사람 아니면 드럼세트 정도인거죠. 특징이 있는 드럼 세트 하나만으로도 그 밴드의 스테이지가 될 수 있도록 의도한 면이 있습니다.

 

이건 농담인데요. 혹시 겨드랑이에 땀이 나서 그런 건 아닌가하고 지인들과 이야기 한 적이 있었어요.


전원 : (대폭소)


요헤이 : 땀이 그 정도가 아니에요. (웃음)


사토야스 : 맞아요. 겨드랑이에서 끝나는 정도가 아니에요. (웃음)


히로유키 : 진한 회색 티셔츠를 입으면 땀을 알아보기 쉬울지도 모르겠는데.(웃음)


이번 달 말 마쿠하리 멧세 공연을 끝으로 기나긴 투어가 마무리 됩니다. 이후의 계획에 대해서 듣고 싶습니다.


요헤이 : 그 후에는 이제 제작을 해야죠. 다음 앨범 작업을 시작해볼까 싶습니다. 중간 중간 페스티벌이나 라이브 계획도 잡고 싶고, 집에 갇혀서 좋은 곡을 만들고 싶네요.


(영어가사만으로 앨범을 내실 계획은 있는지 묻자) 그런 쪽으로 목표가 잡힌다면 생각을 해보겠습니다만. 지금으로는 없네요. 물론 흥미는 있어요. 영어 곡은 충분히 만들 수 있으니까요.

 

진행, 정리 : 조아름, 황선업
사진 및 취재협조 : 유니버설 뮤직 코리아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박은령 “드라마 는 애증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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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 속에 막을 내린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가 동명의 소설로 다시 찾아왔다. 박은령 작가의 원작을 바탕으로 손현경 작가의 각색이 더해져 탄생한 『사임당 빛의 일기』는 드라마가 미처 보여주지 못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제작 여건상 수정이나 생략이 불가피했던 부분들까지 고스란히 살려낸 것이다. 사건의 내막과 인물들의 심리가 세세하게 묘사된 덕분에 독자들은 한층 더 견고하게 매듭지어진 작품을 만날 수 있게 됐다. 원작자인 박은령 작가로서는 드라마에서 다 보여주지 못한 이야기를 전할 수 있게 된 셈이다.

 

드라마 <앞집 여자>, <두 번째 프러포즈>, <인생이여 고마워요>, <고봉실 아줌마 구하기>를 통해 여성의 삶을 섬세한 시각으로 그려냈던 박은령 작가는 『사임당 빛의 일기』에서 ‘삶을 능동적으로 선택하고 살아가는 여성’, ‘조선의 워킹맘’으로서 신사임당을 조명한다. 작품 속에서 사임당과 ‘엇갈린 뫼우스의 띠’처럼 연결되어 있는 서지윤 역시 이러한 여성상을 보여주는 인물이다.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이야기 속에는 주체적으로 삶을 이끌어가는 여성의 열정, 그녀들 앞에 버티고 서있는 현실의 문제들이 자리하고 있다.

 

지난 달 7일, 종영을 한 달 앞둔 시점에서 박은령 작가를 만났다. 그는 ‘애증의 작품’을 떠나보내는 복잡 미묘한 감정과 소설에 담긴 ‘오리지널 스토리’에 대한 만족감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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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지널 스토리’를 담았다

 

원작을 바탕으로 손현경 작가님이 각색을 한 소설입니다. 두 작가님의 협업은 어떻게 이루어졌나요?

 

지금 드라마로 방영되는 것 외에도 굉장히 많은 수정고 버전들이 있었어요. 드라마는 여러 사람이 함께 작업하는 것이다 보니까 제 뜻대로 제작되지 못하는 부분들도 있는데, 그런 면에서 원작 소설이 있는 게 굉장히 만족스러워요. 다른 드라마 작가들도 부러워해요. 작가가 쓴 것과는 달리 방송되는 부분들도 많고, 때로는 그로 인한 비난도 뒤집어써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원래는 그렇게 쓰지 않았었다고 말할 수 없잖아요. 그런데 원작 소설에는 감정선이 상당히 잘 살아 있고, 제가 원했던 오리지널 스토리가 담겨 있으니까 만족도가 높아요.

 

웹소설 <사임당, the Herstory>도 연재하고 계시죠?


이번 작품을 하면서 굉장히 색다른 경험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수많은 수정을 거쳐서 드라마를 썼고, 원작 소설도 출간했고, 웹소설도 연재 중인데요. 하나의 이야기를 가지고 입체적으로 복습을 하고 있는 느낌이 들어요. 같은 이야기이지만 조금씩 달라요. 드라마는 드라마대로 더 부각해야 되는 면이 있고 더 잘 사는 부분이 있고요. 소설은 소설대로의 맛이 있어서 감정의 결 같은 건 훨씬 더 잘 드러나는 것 같아요. 사실 원작을 능가하는 영상물이 별로 없잖아요. 우리가 머릿속에서 상상했던 것과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진 작품이 다른 경우가 있죠. 지금은 CG 기술도 많이 발달해서 그 간극이 전보다는 훨씬 더 좁아진 것 같기는 한데요. 어쨌든 문자가 갖는 특유의 힘이 있잖아요. 그런 면에서 저는 굉장히 만족스러웠어요.

 

작가님의 드라마가 소설로 각색된 건 『사임당 빛의 일기』가 처음인데요. 드라마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을 것 같아요.


그럼요. 이전에도 관심은 있었어요. 웹소설 같은 경우에는, 네이버 측에서도 드라마를 웹소설로 연재하는 작업에 계속 관심이 있었다고 해요. 그런데 실시간으로 방송이 되는 상황에서는 드라마 작가가 아무것도 할 수가 없거든요. 그냥 숨 쉬기도 너무 힘들고 바쁘고, 밥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도 전혀 기억이 안 나는 상황이에요. 그러다 보니까 동시에 두 가지 작업을 한다는 게 불가능한데, 이번 드라마는 사전 제작이다 보니까 가능했던 거죠. 한 번 해보니까, 웹소설도 그렇고 소설도 그렇고, 나름 재미가 있어요. 함께 작업한 팀들과 손발이 잘 맞았고요. 상황이 된다면 계속 해보고 싶어요. 재밌는 것 같아요.

 

드라마 작업보다 더 좋은 점이 있나요?


작가의 원작을 온전히 살릴 수 있잖아요. 드라마는 협업이니까 현장에서 잘려버린 씬도 있고, 현장 상황에 따라서 ‘왜 이렇게 됐지?’ 싶은 부분들도 있어요. 소설에서는 편집이 되거나 촬영할 때 누락되는 부분이 없으니까, 그게 좋아요.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에서 아쉬웠던 장면도 있으셨겠죠?


운평사 소녀에게 그림을 주는 장면이 있는데, 원작에는 그렇게 쓰여 있지 않아요. 아이가 그림을 빤히 쳐다보니까, 사임당이 그 먹먹한 눈빛에 자기도 모르게 이끌려서 귤도 주고 그림도 주는 거거든요. 그 아이는 태어나서 아름다움을 처음 본 거예요. 유민으로만 떠돌다가 아름다움이라는 걸 처음 보고 매혹된 거죠. 그런데 드라마에는 그런 부분 없이 뚝 잘렸어요. 그냥 그림을 둘둘 말아서 냅다 줘버리더라고요. 그러면서 졸지에 민폐 여주가 되고 연기력 논란도 생기고 그랬죠.

 

서지윤이 사임당의 일기와 미인도를 손에 넣게 되는 과정도 드라마와 다르더라고요.


소설에서는 지윤이 자전거와 부딪혀서 넘어지면서 책상을 엎어서 물웅덩이에 떨어진 책들이 젖어요. 변상을 해야 되는 상황이 된 거죠. 그래서 미안하다고 울면서 돈을 건네주니까 주인이 괜찮다고 하는데, 그래도 지윤은 미안하니까 돈을 놓고 가거든요. 주인은 돈만 받을 수 없으니까 젖은 책을 조금 싸줘요. 그 안에 사임당의 <수진방 일기>가 끼어있는 거죠. 그런데 드라마에서는 갑자기 주인이 혼자만 마구 떠들더니 느닷없이 지윤에게 책을 막 떠안기더라고요. 그렇게 다 그려지지 못한 부분들이 있는데 원작 소설에는 고스란히 다 실려 있어요. 소설을 읽으시면 원래는 그렇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실 거예요. 

 

작가님의 목소리가 더 많이 담겼다고 볼 수도 있는데요. ‘다음에는 소설을 써봐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으셨나요?


다음 작품을 할 때도 가능하면 원작 소설이 있으면 좋겠어요. 요즘에는 방송사도 원작이 확보된 걸 선호하는 것 같아요. 아무리 시놉시스를 두껍게 쓴다고 해도 수십 장에 그치잖아요. 중간 중간의 디테일이나 문장과 문장 사이에 있는 이야기들, 감정들을 작가는 알지만 배우, 감독, 방송사는 몰라요. 그러니까 끊임없이 질문하고 끊임없이 설명해 줘야 되죠. 그러다 보니까 안에서 쓰고 있는 작가와 밖에서 촬영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소통이 안 되는 일들이 일어나거든요. 그런데 원작이 있으면 어떤 정서인지 확실히 전달할 수 있으니까 어긋남의 폭을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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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임당 빛의 일기>는 애증의 작품


웹소설 작업은 어떠셨어요?


저는 대중 작가이기 때문에 문체가 너무 어렵거나 읽는 데 덜컥 걸리면 별로 안 좋아하고, 무조건 재밌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빌 브라이슨의 글처럼 유머러스하면서도 막힘 없이 읽히고, 그 안에서 인문학적 깊이감도 발견되는 작품들이 좋아요. 제가 그렇게 썼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웃음), 어쨌든 쉽고 빨리 읽히는 글이 좋은데요. 그런 점에서 가독성은 괜찮다고 생각해요. 웹소설을 연재하면서 가독성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기도 해요. 정말 작법이 많이 다르더라고요. 처음에는 많이 헤맸는데 이제는 자리를 좀 잡은 것 같아요. 구독자 수를 보면, 이겸과 사임당이 헤어진 후에 사임당이 이원수와 결혼을 하니까 구독수가 우수수 떨어지는 것 같더라고요(웃음).

 

독자들의 반응을 작품에 반영하실 계획인가요?


그런 생각을 하죠. 그렇지만 대전제는 변할 수 없잖아요. 사실 드라마는 시청자들 반응에 빠르게 반응하는 맛이 있거든요. 그런데 웹소설은 배워가는 중이에요. 한 가지 대원칙이 있다면 잘 읽혀야 된다는 거예요. 읽히면서 걸리적거리면 안 되거든요. 배워가는 재미는 있어요. 이 작품을 하기 위해서 워낙 준비를 많이 했거든요. 그림, 한학, 중국 고전에 대한 공부를 굉장히 많이 했어요. 그런데 드라마는 휘발돼서 날아가 버린다는 아쉬움이 있거든요. 요즘은 다시보기를 하시는 분들도 많이 계시기는 하지만, 아무리 명작이라 해도 6개월 정도 지나고 나면 잊히잖아요. 저한테 <사임당 빛의 일기>는 참 애증의 작품인데, 징글징글해서 빨리 벗어나고 싶기도 하고요. 후속작 이야기가 나오는 걸 보면 마음이 묘하기도 해요. 굉장히 복잡한 마음이에요.

 

징글징글하다고 말씀하시는 이유는 뭔가요(웃음)? 드라마가 방영되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기 때문인가요?


우여곡절도 당연히 많았고요. 너무 오래 걸렸잖아요. 작업실에 들어갈 때면 마치 사임당 사당에 들어가는 것 같았어요. 몇 년 동안 감방에 살다가 나온 것 같은 느낌이에요. 원래 드라마 작가들이 그렇기는 한데, 이번 작품은 워낙 준비 기간도 길었고 그만큼 시청률이 나오지 못했기 때문에 그런 것 같기도 해요.

 

어제(4월 6일)는 시청률 1위를 기록했는데요.


동시간에 방영되는 작품들의 시청률이 조금 하락하면서 1위를 하게 된 거죠. 사실 저는 지난주부터 마음을 비웠어요. 시청률 9%, 10%를 가능하게 해주시는 분들께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요즘 같은 세상에 이만큼 봐주시는 게 어디냐’ 싶어요.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하잖아요. 특히 엔터테인먼트 쪽은 더 그렇죠. 그런데 3년 전 작품을 가지고 지금 다시 이야기를 하는 거니까요. 사실 3년 전에 입었던 옷을 지금 꺼내 입으면 이상해 보일 수도 있잖아요(웃음).

 

지금은 시청률이 크게 오르기 힘든 상황이 아닐까 싶어요. 종영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새로 유입되는 시청자를 기대하기 어렵겠죠. 


그렇죠. 지금까지 시청해주신 분들만 잘 봐주셔도 좋다고 생각해요. 어제(4월 6일) 회차에 나왔던 이야기들은 유리천장에 대한 거고 억울하면 남자로 태어나지 그랬냐는 건데, 사실 우리 여자들이 살면서 그 말 안 들어본 사람 있나요? 제가 대단한 페미니스트는 아닌데 그냥 여자 이야기, 여자 심리를 말한 거예요. 이겸도 제가 연애하고 싶은 가장 멋진 남자를 그려 넣은 거거든요(웃음).

 

여성의 삶과 심리를 세밀하게 묘사하는 작품들을 써오셨잖아요. 페미니스트가 아니실까 생각했었는데, 섣부른 짐작이었네요(웃음).


딱히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요.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서 의문은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저희 세대까지만 해도 그것에 대해서 크게 의문을 제기하면 돌 맞는 분위기였거든요. 저는 여성의 문제를 화두로 삼아서 작품을 쓰겠다거나 제가 페미니스트라는 생각은 해본 적은 없어요. 자연스럽게 저한테서 나오는 이야기를 쓰다 보니 그런 이야기가 나온 거죠. 제가 여자라서 그런 것 같아요. 여자가 남자 이야기를 잘 쓰는 건 조금 어려운 일이에요. 반대로 남자 작가가 여자 이야기를 잘 쓰기도 어려운 일이고요. 그냥 제가 살면서 느꼈던 것들, 제 안에 쌓여있던 것들을 제가 아는 이야기와 정서로 쓰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아요.

 

이번 작품에서 ‘삶을 능동적으로 선택하고 살아가는 여성’, ‘조선의 워킹맘’을 보여주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예술 활동을 하는 워킹맘이라는 점에서, 사임당과 작가님의 삶이 맞닿는 지점도 있지 않나요?


그런가요? 사임당에 대한 자료를 찾으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사임당의 모습이 실제와 일치할까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어요. 보통 사임당이라고 하면 대한민국 1등 엄마, 율곡 엄마라고 생각하잖아요. ‘과연 그럴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단 작품 수가 너무 많고, 물론 사임당의 작품이 아니라고 이야기되는 작품들도 많지만, 문헌 같은 데 보면 당대에 사임당이 산수화와 포도 그림으로 이름이 높았다고 하거든요. 그런데 지금 사임당의 산수화는 찾아보기도 어렵고, 우리는 「초충도」만 알고 있잖아요. 저도 글을 쓰지만, 좋은 엄마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아마 멋진 엄마이기는 할 거예요. 그런데 보통 아이들이 생각하는 기준에서의 좋은 엄마이기는 참 어렵거든요. 일단 1번이 일이니까요. 저는 1번이 아이들은 아니란 말이에요. 절대 그렇지는 않아요.

 

어쩌면 용기 있는 고백일지 모르겠어요. 많은 여성들이 ‘좋은 엄마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잖아요.

 

저는 처음부터 그렇게 생각했어요. ‘내가 행복하지 않은데 어떻게 좋은 엄마가 되고 좋은 아내가 돼? 내가 불행한데?’ 그렇게 생각을 했거든요. 어렸을 때 그게 되게 싫었어요, 사과 같은 거 깎으면 엄마는 남은 부분을 드시잖아요. 생선도 대가리만 드시고요. 그런 게 너무 싫었어요. 저희 엄마 세대에게는 너무 당연한 일인 건데, 저는 그러고 싶지 않았어요. 아이들하고 똑같이 먹었고 엄마는 허접한 거 먹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주지 않았어요. 아이들한테는 제가 이기적인 엄마겠죠. 가끔 아이들이 엄마 성격 진짜 이상하다고 말하기도 해요(웃음).

 

엄마의 1순위가 자신이 아닌 일이라는 점에서, 아이들이 상처를 받지는 않던가요?


초등학교 3학년 때 딸이 울면서 집에 온 기억이 나요. 과제물로 엄마에 대해서 조사해 오는 게 있었는데, 그 중에 ‘엄마가 가장 행복했을 때는 언제였나요?’라는 질문이 있었거든요. 저는 아무 생각 없이 ‘혼자 발리 여행 갔을 때’라고 대답했어요. 아이를 낳고 몇 년 후에 크리스마스 때 발리로 혼자 여행을 간 적이 있었는데, 그 때 수영장에서 밤하늘을 올려다보면서 너무 행복했거든요. 그런데 딸이 다음 날 울면서 왔더라고요. ‘엄마는 왜 그래?’ 하면서요. 다른 아이들이 발표하는 걸 들어보니까 다른 엄마들은 ‘엄마가 나를 낳았을 때’ 제일 행복했다고 대답했대요. 그래서 충격을 받은 거죠. 그때 제가 했던 대답이 지금은 이상하지 않을지 몰라도, 20여 년 전에는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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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는 세상을 좀 살아본 사람들이 쓰는 장르


결혼하신 후 10년 동안 일을 멈추셨던 걸로 알고 있는데요. 다시 일을 시작하기 쉽지 않으셨을 것 같아요. 결혼 이후 경력이 단절된 여성이 일터로 돌아오기란 지금도 쉽지 않은 일인데, 당시는 더 그랬겠죠.


10년 동안 완전히 글을 놓은 건 아니고요. 글짓기 교사 일을 했어요. 그런데 한 번도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놓은 적이 없어요.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의 엄마들한테도 저는 작가가 될 건데 지금은 아이도 낳고 해서 잠깐 쉬고 있는 중이고, 그 동안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고 이야기했어요. 제 커리어를 말할 필요가 있기도 했지만, 제 스스로 세뇌시켰던 거죠. 사실 그때는 굉장히 막막했는데, 만 번을 이야기하면 이루어진다는 인디언 속담을 듣고 저녁마다 거울 속의 제 얼굴을 보면서 이야기했죠. 너는 꼭 드라마 작가가 될 거야, 라고 이야기했어요.

 

결혼 전에는 <장학퀴즈>의 구성 작가로 일하셨었죠? 드라마 작가의 길로 접어드신 계기가 있었나요?


구성 작가를 그만두게 된 후에 자연스럽게 기회가 됐어요. 같은 방에 계시던 감독님이 드라마국으로 옮기게 됐고, 저더러 보조 작가를 해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때 정하연 선생님께서 미국에 오래 계시다가 귀국하셔서 다시 작품을 쓰시는데 <사랑의 종말>이라고 법정물 비슷한 작품이었어요. 그때 (보조 작가로) 변호사들을 만나서 질문하고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일을 했어요. 그것도 재밌더라고요. 그 작품이 끝나면서 감독님이 작품을 하나 써오라고 하셨는데, 쓰려고 하니까 아무 생각도 안 나고 안 써지는 거예요.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안 써지는 게 너무 당연하죠.

 

이유가 궁금한데요?


그때 제가 스물다섯 밖에 안 됐었는데, 무슨 세상을 알겠어요. 드라마라는 건 세상을 좀 살아본 사람들이 쓰는 장르가 아닐까 싶어요. 장르물 같은 건 조금 다를 수 있을 거예요. 퍼즐 조각을 짜 맞추는 거잖아요. 그런데 사람의 희로애락이 들어가 있고 감정선이 굴곡 있는 드라마는 인생을 조금 살아봐야 쓸 수 있는 것 같아요. 조금 파란만장하게 살아본 사람일수록 유리하죠.

 

<여명의 눈동자>를 보고 드라마 작가를 꿈꾸게 되셨다고요.


엔딩 대사를 보면서 정말 가슴을 쳤어요. 너무 드라마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여옥이가 지리산 위에서 “그들은 가고 난 남았다. 남은 자에겐 남겨진 이유가 있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부분이었는데, 그게 너무 좋았어요. 그때는 송지나 작가를 보면서 드라마 작가가 되겠다고 생각한 ‘송지나 키드’가 많았죠.

 

좋아하시는 드라마 작가와 작품이 궁금합니다.


계속 변하는 것 같은데요. 기본적으로 저한테 고전인 작품은 송지나 작가님의 <여명의 눈동자> 하고 제 스승님이신 김정수 선생님의 <그대 그리고 나>예요. 이금림 선생님의 <옥이 이모>도 있고, 김운경 선생님의 <파랑새는 있다>는 최고죠. 지금도 그 작품에 나오는 몇 개의 대사들을 기억해요. 요새는 박경수 작가의 작품을 정말 좋아해요. 매회 정말 쫀득쫀득하게 진행되면서 진짜 재밌더라고요. 사실 저는 압박하는 이야기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그래서 <사임당 빛의 일기>를 숨구멍이 많은 이야기로 쓴 것 같기도 한데요. 너무 조여 오는 이야기는 보는 게 힘들어요. 현실이 각박하고 힘이 드는데 드라마를 보면서 스트레스 받고 싶지는 않아요. 저한테는 드라마를 보는 게 힐링이고 조금 편하게 봤으면 좋겠거든요.

 

최근의 젊은 시청자들은 어떤 드라마를 좋아하는 것 같으세요?


지난 학기에 추계예대에서 강의를 하면서 학생들을 보고 많이 배웠어요. 드라마를 소비하는 혹은 시청하는 형태가 굉장히 많이 다르더라고요. 20대들은 굉장히 많은 떡밥을 전반부에 뿌리고 ‘그 떡밥들이 얼마나 쫄깃쫄깃하게 회수가 되며 그 퍼즐이 얼마나 잘 맞아들어가는가’에서 굉장한 쾌감을 느끼더라고요. 그 재미로 드라마를 보고요. 저는 그런 작품을 잘 쓸 수 있는 것 같지는 않아요. 지금 <사임당 빛의 일기>도 현대 장면이 어설프다거나 고리가 안 맞는다는 이야기들이 있는데, 사실 고리를 안 맞춰 써놓은 작품은 아니거든요. 원작에서는 다 맞아있어요. 그런데 촬영하고 편집하고 여러 사람 손을 거치는 과정에서 덜어지고 잘라지는 부분이 생기니까 아귀가 이상하게 뒤틀려 버린 거죠. 그게 온전히 작가의 몫처럼 되어버렸는데, 그런 점에서 소설이 위안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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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조 있는 사랑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사임당 빛의 일기』에서 서지윤과 사임당의 이야기가 계속 교차되잖아요. 그 모습을 보면, 시대가 변했어도 워킹맘으로 사는 고단함은 비슷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럼요. 저도 글 쓰는 사람이고 엄마이지만, 작가라는 사람들이 가족으로는 좋지 않은 것 같아요. 그 점이 딸들한테 미안해요. 그런데 사임당은, 우리한테 박제된 그녀의 모습은 흐트러짐 한 올 없는 사람인데, 정말 그랬을까 싶어요. 실제로 사임당은 7명의 아이들과 남편을 건사하면서, 집안 경제도 자신이 이끌어가면서, 자기 예술혼도 불태웠거든요. 얼마나 힘들어요. 그리고 지금 워킹맘들의 삶과 그렇게 다를까, 생각해 보면 그런 것 같지도 않은 거죠.

 

어제(4월 6일) 방송에서 사임당과 딸 매창이 나눈 대화가 떠오르네요.


엄마는 행복하냐고 물으니까 사임당이 이루 형언할 수 없는 표정으로 바라보잖아요. 저는 그 연기가 정말 좋았거든요. 그리고 ‘나는 정말 행복한가’에 대해서 대답을 못하잖아요. 그리고 달래죠. 네가 누군가와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그 딸이 딸을 낳을 때쯤 되면 세상이 조금 바뀌어 있지 않겠느냐고요. 그러니까 매창이 ‘그럼 나는요? 나의 행복은 누가 책임지나요?’라고 하는 거죠.

 

역사적 인물, 사건을 토대로 창작된 작품들은 종종 왜곡 논란에 휘말리잖아요. 그래서 더 많은 시간과 공을 들여서 자료를 조사하셨을 것 같아요. 어떠셨나요?


저보고 취재를 너무 많이 한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렇게까지 샅샅이 조사 안 해도 되는데, 너무 시간과 품이 많이 든다는 거죠. 그런데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빙산의 일각이라는 건, 그 아래에 있는 어마어마하게 큰 부분 중에서 꼭대기에 있는 조금만 보이는 거잖아요. 밑에 잠겨있는 부분을 다 아는 상태에서 조금만 보여주는 것과, 위로 드러난 작은 부분만 알고 그걸 잘 포장해서 보여주는 건 다르다고 생각해요.

 

율곡이 남긴 사임당에 대한 기록도 보셨죠? 어떤 생각이 드시던가요?


‘선비행장’이라고 하는데,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추억하면서 쓴 글이 있어요. 어머니 사임당이 강릉의 외할머니를 그리워하면서 새벽까지 방에서 소리 죽여 우는 날이 자주 있었다고 쓰여 있는데, 그건 아들의 생각이죠. 사임당이 자식 키우기 너무 힘들어서, 아니면 결혼 생활이 너무 불행해서, 혹은 두고 간 첫사랑 때문에 울었을 지도 모르는 거잖아요(웃음). 그건 엄마 마음이잖아요. 그걸 율곡이 어떻게 알겠어요(웃음). 작가들은 항상 남들과 다르게 보면서 ‘과연 그럴까?’ 하고 생각하고, 거기에서 또 다른 생각이 뻗어나가는 거긴 한데요. 율곡의 ‘선비행장’을 봤을 때도 저는 ‘아닌 것 같은데?’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엄마는 언제 제일 행복했어요?’라는 질문을 받고 ‘발리에 혼자 여행 갔을 때’라고 답한 것과 같은 지점이겠죠(웃음).

 

『사임당 빛의 일기』에서 중요하게 등장하는 소재가 ‘그림’과 ‘시’예요. 특히 시는 사임당과 이겸의 마음을 더 애틋하게 드러내 주는 것 같아요.


격조가 있는 사랑을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지금까지 제가 써왔던 드라마에서 몹시 중요하게 여겼던 게 ‘놓아주는 사랑’이에요. <고봉실 아줌마 구하기>에서도 그랬고 <두 번째 프러포즈>에도 그런 이야기가 있었는데요. ‘놓아주는 사랑’에 대한 이야기는 굉장히 저를 자극해요. 사실은 움켜쥐고 싶잖아요. 내 걸로 갖고 싶고, 어떻게든 못 가게 하고 싶고, 내 안에 놓고 싶잖아요. 그런 점에서 놔줄 수 있는 사랑이란 뭘까, 생각해 보면 정말 나보다 저 사람을 온전히 더 생각하는 것 같아요. 저 사람을 위해서 죽을 수도 있는 사랑인 거잖아요. 그리고 정신적으로 굉장히 많이 결속되는 거죠.

 

소설 『사임당 빛의 일기』의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세요?


일단 많이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여러 가지 상황들로 인해서 생략됐던 감정 선들을 책 속에서 보시고 ‘그래서 그랬구나’ 하고 고개를 끄덕여주시는 게 제가 제일 바라는 거예요. 그렇게 제 작품을 보고 호응해주시고, 어떤 위안을 느끼시고 행복해하시면 좋겠어요. 일단 재밌어야 되겠죠. 재미가 없는데 위안이 될 수는 없는 거잖아요. 그런 점에서 재밌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사임당 빛의 일기 박은령 원작/손현경 각색 | 비채
화제를 모으며 방영 중인 SBS 드라마 [사임당 빛의 일기]가 드디어 소설로 출간되었다.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속도감 넘치는 구성, 주인공 신사임당과 이겸의 예술혼을 고스란히 담아낸 영상, 개성 넘치는 캐릭터, 이야기 곳곳에 보석처럼 숨은 시(詩)와 옛 이야기…. 원작자인 박은령 작가와 정식 계약한 유일한 소설이며 일본 ‘신쇼칸’과 대만 ‘인류지고’ 출판사에서 번역 출간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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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건 “손을 뻗으려면 눈앞의 공기를 흩뜨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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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미노 조각이 넘어진다. 쓰러짐은 다음 조각으로 이어진다. 파장은 가시적이고 예측 가능한 범주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공기가 진동하고 흐름이 바뀌면서, 알 수 없는 곳에서 알 수 없는 변화를 이끌어낸다. 『공기 도미노』는 그 현상을 집요하고도 세밀하게 그려낸다. 6개의 장으로 이루어진 소설에서, 인물들은 각 장의 화자로 등장한다. 앞 장의 주변 인물이 다음 장의 화자로 등장하는 식이다. 이러한 구조를 통해 하나의 인물과 사건이 또 다른 인물과 사건으로 연결되는 ‘연쇄적인 흐름’은 더욱 또렷해진다.

 

인물들 사이의 관계, 사건의 밑바닥에는 혐오와 수치심이 자리하고 있다. 대부분 혈연으로 맺어져 있는 인물들은 가족 내의 서열이나 경제력, 도덕성, 성격 등을 이유로 상대를 멸시하거나 힐난한다. 때로는 가볍게, 때로는 격렬하게 부딪히며 갈등을 드러낸다. 그들이 만들어낸 파장에 의해 공간은 서늘하고 무거운 공기로 가득 채워진다.

 

소설가 최영건은 ‘2014년 문학의오늘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혜성처럼 등장했다. “도시적 육체성의 의미를 집요하고 냉정한 시선으로 객관화했다”는 평가를 받은 수상작 「싱크홀」은 ‘빈틈없는 객관적인 문체’, ‘사건을 바라보는 절제되고 집요한 시선’을 보여줬다. 끈질기게 내부를 파고들면서도 정제된 문체로 현실을 서술하는 미덕은 『공기 도미노』에서 다시 한 번 빛을 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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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 도미노』는 충돌에 의해서 진행되는 소설


등단 후 첫 책입니다. 『공기 도미노』이전에는 장편을 쓰시지 않았나요?

 

네. 단편으로 등단을 했고, 500매 정도의 경장편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등단 후에 했어요. 왜냐하면 작가가 되려고 오래 계획했던 게 아니라, 부끄러울 만큼 준비 없이 등단을 한 면이 있었거든요. 제가 국문과 학생인데 단편을 무조건 써야 되는 수업이 있었어요. 그때 과제로 쓴 작품을 선생님이 좋게 보셔서 신인상 공모에 내보자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큰 계획 없이 냈는데 등단으로 이어졌어요.

 

『공기 도미노』 집필은 언제 시작하셨어요?


2014년 하반기에 등단하고 나서 2015년부터 조금씩 쓰기 시작했어요. 초고는 상당히 빨리 완성했고, 그 뒤로 책이 나오기 직전까지 꾸준히 고쳤어요. 퇴고를 길게 한 편인 것 같아요.

 

문장을 다듬는 데에도 많은 공을 들이신 것 같아요. 간결해서 속도감 있게 읽히지만 가볍지 않고, 작품의 분위기와도 잘 어울리더라고요.


문장에 대한 집착이라고 할 만한 게 좀 심한 편이에요. 그래서 문장을 다듬는 데 시간을 많이 할애한 것 같아요. 문장을 군더더기 없이 쓰는 게 매력적으로 느껴지더라고요. 불필요함 없이 깔끔하고 리듬감도 있으면서 빠르게 읽히는, 저만의 문장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이번 작품은 “혐오와 수치심의 시대에 등장한 새로운 감수성”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작품을 쓰시는 데 계기가 된 사건이 있었나요?


극적인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직간접적인 경험들이 다 반영이 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직접적으로 혐오나 수치심을 당했던 경험이 있다면 말씀드리기 쉬울지도 모르겠지만 그건 아니고요. 젠더, 세대, 계층 간의 갈등들은 제가 20대 대학생, 대학원생으로서 계속 겪어오는 일이니까요. 그런 직간접적인 경험들이 많이 축적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다양한 세대와 계층의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노인들도 포함되어 있는데, 인물 묘사가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때부터 노인 봉사 활동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노인 분들을 많이 뵈었고, 어려운 상황에 계신 분들 뿐만 아니라 여러 계층의 노인 분들을 뵐 기회가 있었어요. 대학교에 들어와서 잠시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도 사장 분이 노인이시기도 했고요. 소설에 쓰인 게 제 경험은 아니지만 직접 겪고 느낀 바가 반영되어 있었던 것 같아요.

 

인물들은 다양한 이유로 서로 멸시하거나 혐오합니다. 경제력, 윤리성, 가족 내의 서열, 유약한 성격 등인데요. 이런 것들이 혐오와 수치심이 생겨나는 근원이라고 보세요?


혐오와 관련해서 하고 싶었던 작업이라고 한다면 ‘이것이 근원이다’라고 단언을 내리는 건 아니었던 것 같아요. 공론화 되는 혐오가 있고 공론화 되지 않는 개인의 내밀한 감정이 있잖아요. 『공기 도미노』는 충돌에 의해서 진행되는 소설이라고 생각하는데, 그 충돌들 중에는 거대한 이름이 붙여지는 혐오도 있을 거예요. 그런데 동시에 공론화에 적합하지 않은 종류의 충돌과 개인의 욕망도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 두 가지를 동시에 바라보려고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강자가 누구이고 약자가 누구인지 구분하는 게 공론화에 적합한 틀이라고 생각하는데요. 한편으로는 그런 부분만 공고하게 만드는 건 전부를 다 포괄하지 못하는 일이고, 어떤 비극을 새롭게 만들어 내는 일이기도 한 것 같아요. 그래서 강자와 약자에 대해서 말하는 동시에 그것이 아닌 것도 말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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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것에 대해서 쉽게 말하는 것이 무서워요


작가님이 혐오하는 것들은 무엇인가요?


혐오라는 말 자체가 조금 무서워서 ‘과연 혐오하는 게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데요. 혐오한다기 보다는 그냥 지양하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모르는 것에 대해서 쉽게 말하는 것이 아닐까 싶어요. 그게 가장 무서운 일 중에 하나인 것 같거든요. 발화라는 행위 자체가 지니는 무서움이 있는 것 같아요. ‘그것이 폭력은 아닐까’ 하는 느낌도 있고요. 『공기 도미노』라는 제목도 그것과 관련해서 짓게 된 제목인 것 같기도 해요.

 

작품을 쓰시고 나서 ‘내가 잘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썼구나, 이게 폭력은 아닐까’ 생각하신 적도 있으세요?


네, 많죠. 계속 고민하는 것 같아요. 지금까지 쓴 단편들을 소설집으로 출간하자는 제안도 있었는데 걱정이 되더라고요. 단편은 분량이 짧으니까, 제가 고민하고 있는 바를 해결하지 못한 채로 출판이 되어버릴까 봐 좀 무서운 것 같아요. 그래도 『공기 도미노』는 분량이 좀 있다 보니까, 제가 모르는 것에 대해서 쉽게 말하려 하지 않는다는 의도를 반영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 점이 만족스럽죠. 일단은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한 것 같아서요.

 

구조를 통해서도 ‘도미노’의 의미가 드러나요. 앞장의 인물과 사건이 뒷장의 이야기에 영향을 주면서 연쇄적으로 전개되죠.


제가 이 도미노의 최종적인 그림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저도 잘 모르고 있는 상태에서 계속 연쇄되는 것이고, 그 연쇄의 느낌을 포착하기 위해서 ‘도미노’라는 말을 사용한 거거든요. 결말에 가까운 장면처럼 보이는 극적인 장면들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게 누적이 돼서 최종적인 장면이 되는 건 아니에요. 그게 중요하게 느껴졌어요.

 

‘도미노’ 앞에 ‘공기’라는 단어가 붙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공기는 항상 있지만 손을 움직이는 순간 파동이 생기고, 그 파동이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모르는 거잖아요. 눈에 보이지 않지만 계속 움직이고 있고, 그 안에서의 행위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모르는 거죠. 그런 불안감을 ‘공기’라는 단어를 통해서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소현’은 비윤리적인 인물들에 대한 혐오를 가지고 있는데요. 아름답지만은 않은 결말을 맞게 하셨어요. 이유가 있나요?


모든 인물들이 그렇겠지만, 소현은 제 자신을 많이 닮은 인물이라고 생각해요. 모든 인간이 다 불완전하잖아요.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확신을 가져야 되고요. 그런데 확신으로써 일부에 대한 성취는 이뤄낸다고 하더라도, 전체를 보면 자기가 원하는 모든 걸 이뤄내기는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올바른 확신을 가지고 밀고 나갔을 때 생겨나는 ‘미처 다 챙길 수 없는 것들’이 있죠. 미처 다 성공시킬 수 없고, 미처 다 원하는 대로 할 수 없는 것들이 있잖아요. 그런 것들에 대한 언급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앞장의 화자로서 자신의 이야기를 했던 인물들이 뒷장에서는 타인에 의해 서술됩니다. 이렇게 배치를 하신 의도가 궁금해요.


제가 확신을 가지고 거기에 몰입할 수 있었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한 인물만의 서사를 구축하는 것에 매력을 느꼈을 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저는 확신을 의심하는 사람이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봤을 때는 어떤 느낌일까, 어떻게 타자화 될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저한테는 그게 중요한 일이라서 그런 식으로 설정하게 된 것 같아요.

 

때로는 자신보다 타인의 시선이 더 정확한 걸까요?

 

그렇지는 않은 거 같아요. 본모습이라는 건 하나로 규정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남들이 보는 그 사람의 모습도 있는 거고, 스스로가 바라보는 자기 자신도 인정받아야 할 모습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 소설에서도 다면적으로 보여준 것 같아요.

 

소설 속의 도미노가 무너지기 시작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하고 생각해 보면, 아무래도 확신들이 서로 부딪히는 것 때문이지 않을까 싶어요. 서로 믿음이나 자의식들이 부딪히는 거죠. 저는 자기 동일성과 충돌이라는 단어를 같이 연장선상에 놓고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자의식이 아주 단단한 상태에서 충돌을 벌인다는 건, 어떤 의미에서 비극을 만들어내는 일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후반부로 갈수록 여성 화자에게 무게가 실리는 것 같아요. 젠더와 혐오, 둘의 관계 속에서 말하고자 했던 건 무엇이었나요?


초고를 썼을 때는 남성으로 설정했던 인물이 있었어요. ‘소현’의 딸로 등장하는 인물인데요. 원래는 여성으로 하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너무 여성 인물들이 주도적으로 서사를 진행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인물들의 성별 비율을 맞춰야 된다는 생각으로 ‘소현’의 딸이 아닌 아들로 썼었는데요. 퇴고를 하면서 고민이 됐어요. 아무래도 남성 인물들이 서사를 주도적으로 진행하는 작품들을 많이 봐왔고, 거기에 익숙해져서 ‘남성 인물을 부각시킬 수 있어야 되는데, 왜 여성 인물들만 서사를 주도하는 것 같지?’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 것 같더라고요. 가끔씩 주변에서 여성 작가는 여성 인물에 대해서만 쓴다는 평을 듣기도 했고요. 그런 경험의 축적에 의한 설정인 것 같아서 퇴고하면서 여성 인물로 바꿨어요. 『공기 도미노』가 페미니즘을 주제로 하는 소설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그에 대한 고민이 있기는 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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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을 뻗으려면 눈앞의 공기를 흩뜨려야 한다


대부분 가족 관계 안에서 갈등을 겪어요. 이렇게 설정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어떤 사람한테든 일차적으로 인격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존재는 가족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거기에서 출발하고 싶었고요. 여러 계층이나 세대를 다루기에도 가족이 상당히 의미가 있을 것 같더라고요. 가족이라는 게 결코 완벽히 갈라서기 어려운 관계잖아요. 삶이라는 것도 내가 얽매여 있어서 절대 뿌리칠 수 없는 것인데, 그런 점에서 가족하고 닮아있는 것 같기도 해요. 그래서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좋은 지점이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또 다른 이유가 있다면, 제가 소설 속의 공간을 쓰는 데에도 민감한 편인데요. 집이라든지 밀실 같은 공간들을 그리기에도 가족 서사가 적합한 면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집은 가족들이 만들어낸 거대한 오브제라고 할 수 있잖아요.

 

말씀하신 것처럼 세밀하게 공간을 묘사하셨는데요. 그 공간들이 공통적으로 주는 느낌이 있다면 어떤 걸까요?


햇빛은 비추고 있지만 뭔가 쓸쓸하다거나, 아니면 그냥 유리창 같은 느낌인 것 같아요. 바깥이 보이지만 단절되어 있는 공간인 거죠. 항상 주어져 있고 변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이 항상 짊어져야 되는, 그런 공간으로 그리는 데 의미를 두었던 것 같아요. 비극에 어울리는 쓸쓸한 느낌도 주려고 한 것 같고요.

 

우리 사회에는 가족에 대한 환상 같은 게 있는 것 같아요.


그것도 맞는 말인 것 같아요. 이상적인 가족상도 뚜렷하고, 가족과의 관계가 상당히 삶을 좌우하잖아요. ‘연주’도 ‘복자’가 결혼을 강요하기 때문에 거기에서 느끼는 압박감이 굉장하고, 저도 주변에서도 그런 말들을 들어요. 결혼을 생각하는 사람들 중에서 ‘집에서 결혼하래’라는 이야기들을 하는 사람들이 많더라고요. 그렇게 강요를 받는 게 유독 한국 사회에 많이 있는 일 같기도 하고요. 가족은 태어났을 때부터 삶을 마감할 때까지 끊임없이 알력을 행사해 오고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인 것 같아요. 사회의 어떤 관계보다도 더 그렇죠.

 

등단 이전에 갖고 계셨던 불안감은 없나요? ‘등단을 할 수 있을까, 언제 등단하게 될까’라는 걱정들이요.


저는 쓰는 사람이 아니라 읽는 사람을 출발점으로 두고 있는 것 같아요. 책을 읽는 행위가 가장 익숙한 행위였고, 쓰고 싶다는 열망이 강한 편은 아니었어요. 그래서 ‘등단을 언제 할 수 있을까’라는 열망보다는 국내에 번역되지 않은 책을 보고 ‘이게 언제 번역될까, 외국어를 열심히 공부해서 이 책을 읽고 싶다’라는 열망이 더 강했던 사람인 것 같아요(웃음). 

 

문단에 등장하자마자 호평과 주목을 받으셨어요. 부담스럽다고 느끼신 적도 있나요?


부담스럽다는 생각을 많이 한 것 같아요. 오히려 작품을 발표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들 정도로 무엇을 쓰고 싶다는 확신도 없었고요.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어떤 문장과 장면이 좋은지, 스스로 천천히 정해 나가야 했거든요. 그래서 부담스럽기도 했고, 등단 후에 오히려 생각할 거리가 많았던 것 같아요.

 

그동안 단편을 쓰시면서 주제나 인물, 사건은 어떻게 찾아나가셨어요?


처음에는 ‘가장 말하고 싶은 게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부터 출발을 했는데요. 그게 ‘잘 모르겠다, 나는 모든 걸 알고 있는 사람이 아니다, 나는 불완전하다’는 인식으로 이어진 것 같아요. 그걸 드러내기에 적합한 인물들을 찾다 보니까 노인 분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다루게 된 것 같고요. 노인 분들을 보면 젊은이들보다 죽음을 인식하고 계신 것 같은 인상을 받을 때가 있거든요. 노인에 대한 저의 관심, 애정, 애착은 그런 데에서 비롯된 것 같아요. 저의 지각이나 사고 능력이 유한하듯이 제게 주어진 시간도 유한한 건데, 그런 유한성을 잘 전해줄 수 있는 건 노인 분들인 것 같았어요. 그래서 「감과 비」에서도 노인 분들을 중심으로 다루게 됐고요.

 

‘작가의 말’에도 “나는 불완전하다. 『공기 도미노』또한 그럴 것이다”라고 쓰셨어요. 많은 사람들이 불완전한 상태를 불안해하거나 불만스럽게 생각하는데, 작가님은 다른 것 같아요.


애초에 저한테는 완전하다는 건 불가능한 것 같아요. 제가 종교철학에도 관심이 있었는데, 신은 완전함을 상징하고 인간은 상대적으로 불완전한 걸 상징하는 걸 보면서 자연스럽게 불완전을 납득하게 된 것 같아요. 불완전하다는 걸 인식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면 오히려 비극을 발생시키기 더 쉬워진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공기 도미노』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문장, 혹은 이 작품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문장을 꼽는다면 무엇인가요?


다 최선을 다해서 잘 써보려고 한 문장들이기는 한데요. 책 표지 뒷면에도 쓰여 있는 “손을 뻗으려면 눈앞의 공기를 흩뜨려야 한다. 손을 뻗기 전의 장면을 부숴야 한다”는 문장이 아닐까 싶어요. 출판사에서 정말 잘 골라주신 것 같고, 너무 마음에 들어요. 선택을 한다는 건 이전의 상황을 변형시키는 거잖아요. 비약적으로 말하면 부수고 파괴하면서 또 다른 상황을 발생시키는 거죠. 그런 게 『공기 도미노』의 주된 정서인 것 같아요. 그런데도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거죠.


 

 

공기 도미노 최영건 저 | 민음사
최영건 작가가 민음사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를 통해 선보이는 장편소설 『공기 도미노』는 서로 다른 세대, 서로 다른 계층, 서로 다른 성별을 지닌 사람들 사이에 발생하는 불화와 반목을 세밀화처럼 근접한 시선으로 관찰하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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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 “상처 받지 않고는 뭔가를 배울 길이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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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40대가 되었다. 훨씬 편안해졌다. 정여울 작가는 그 편안함의 정체를 ‘솔직함’에서 찾았다. 상처 받지 않기 위해 “옹송그리고 있었는데” 그것은 거짓에 다름 아니었다. 점점 스스로를 고립시킬 뿐. 그는 이제 예전보다 자신을 훨씬 더 좋아한다. 변화한 자신을 지켜보는 것이 재미있고, 사람들을 만나 새로운 것을 알게 되는 게 좋다. 정여울 작가는 친구들에게 종종 말한다. 능력은 ‘오버’를 통해서만 길러진다고.


놀라운 일이다. 나이 듦과 도전이 함께 한다는 것은. 그것이 가능하다면 나이 듦과 젊음은 공존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여울 작가의 『그때, 나에게 미처 하지 못한 말』은 예민하고, 외롭고, 초조하고, 고집스러웠던 젊은 시절을 지나온 작가가 “힘들게 깨달은 것들을 조금이나마 덜 힘들게 배울 수 있도록 돕고 싶은 마음”으로 꾹꾹 눌러 쓴 글이다. 그는 어려운 시절을 보내는 사람들이 부디 자신을 더 온전하게 받아들이길, 삶을 더 다채로운 빛으로 채우길, 아직 완성형이 아니니 좀 더 자신을 깨고 나가보길 권했다. 사람들을 만나고, 책을 읽고, 여행을 다니며 얻은 놀라운 깨달음. 그것들을 정여울 작가는 “넉넉한 시골인심으로, 내가 아는 것을 아낌없이 다 퍼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그에게서 얻은 놀라운 통찰들이, 내게도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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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일찍 깨달았더라면


‘프롤로그’에서 30대에 맞은 변화 세 가지를 언급하셨잖아요. 이제 막 40대를 맞았는데요. 지금 맞이하고 있는 변화 혹은 감상에 대해 먼저 묻고 싶어요.

 

20대에서 30대가 될 때는 걱정이 굉장히 많았던 것 같아요. 받아들이기 어려웠어요. 20대에는 서른이 굉장한 나이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래서 서른이 너무 어렵고 무서운 느낌이 많았어요. 그런데 마흔은 생각보다 훨씬 덜 두렵고 편했어요. 약간 포기한 느낌도 있고요.(웃음) 젊다는 것이 주는 부담감이 있죠. 30대는 일단 주변에서 젊다고 보아주는 나이잖아요. 반면 40대는 위아래로 편해져요. 좀 더 균형감을 찾아야겠다는 생각도 많이 하고요. 마흔 이후의 삶은 더 재미있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예전에는 꿈을 이루겠다는 생각으로 너무 고통 받은 것 같아요. 그러나 지금은 뭔가를 해내려는 피곤한 자기 착취로부터 벗어나 조금씩 느리게 좀 더 행복한 나를 만들어가자는 마음이에요. 오히려 그때는 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할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하고, 그러면 굉장히 기분이 좋아져요.

 

그때는 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할 수 있는 것들이란 뭘까요?


대부분의 것들은 사실 경험 때문에 가능한 거거든요.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은 경험으로 인한 거예요. 그 전에는 할 수 없을 것 같았는데 막상 해보니까 되네, 이런 것들이 30대에 많이 형성이 돼요. 그러면서 좀 더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이 생기죠. 그렇게 스스로를 좋아하는 마음이 그 전보다 많이 생긴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그것이 가장 큰 힘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책으로 전하고자 한 핵심 메시지이기도 할 것 같아요. 힘든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에게 40대가 되어보니 이렇더라, 하면서 많은 응원을 건네고 있거든요.


많은 분들, 특히 30대 분들은 고민이 비슷하더라고요. 사회에서 약간은 자리를 잡았지만 불안하죠. 그렇지만 예전 30대와 지금 30대의 다른 점도 있어요. 지금 30대는 인생을 즐길 줄 알거든요. 아등바등 살기보다 삶 자체를 즐기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저는 그 마음이 굉장히 좋다고 생각해요. 그걸 좀 더 일찍 깨달았더라면 삶이 훨씬 풍요롭고 타인에게도 너그러워졌을 것 같더라고요. 그런 부분을 더 호소하고 싶었어요. 제가 힘들게 깨달은 것들을 조금이나마 덜 힘들게 배울 수 있도록 돕고 싶은 마음이 컸죠.

 

삶의 가치가 많이 변화하고 있는 것 같긴 해요. 과거에 비해 훨씬 현재와 행복에 집중하려고 노력하기도 하고요.


여전히 미디어에서는 성공하는 법, 노화를 방지하는 법(웃음) 등을 중심으로 억지로 나이 들지 않게 만들려고 하잖아요. 그러나 그것은 더 나이 듦을 슬프게 하는 지름길인 것 같고요. 나이는 들되 더 아름답게 나이 드는 법을 생각하면 훨씬 더 우리 삶이 멋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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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은 ‘오버’를 통해서만 길러진다

 

무엇보다 핵심은 나라는 사람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내용일 것 같아요. 나를 온전히 받아들이자고 여러 번 말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에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정확히 알기도 쉽지가 않잖아요.


좋아하는 것도, 싫어하는 것도 알아야 하는데요. 그건 타인과의 만남을 통해서만 제대로 알 수 있더라고요. 가고 싶은 곳, 만나고 싶은 만남으로만 한정을 해버리면 자기를 진정으로 실험해볼 수 없게 되죠. 제 경우 책을 쓰고, 여행을 하는, 나를 던져야만 하는 일들을 하면서 바뀐 것 같아요. 예전의 저는 ‘은둔형 외톨이’ 기질이 있었어요.(웃음) 그게 나쁘다는 생각이 안 드는 거예요. 혼자 있을 때 제일 좋고요. 그런 게 너무 좋아서 제 가능성을 많아 닫아버렸던 것 같아요. 특히 20대에 많이 그랬죠. 30대에는 그런 특성을 받아들이고 바깥과 소통하려는 노력을 많이 했어요. 책도 가장 많이 썼고, 여행도 일처럼 많이 다녔고요. 특히 강의가 저를 많이 바꿨어요. 강의는 진짜 무서워하고 싫어하는 거였거든요. 그런데 만나지 않고 글만 쓸 때와 직접 사람들을 만나고 질문 받을 때가 전혀 달랐어요. 훨씬 배우는 게 많더라고요. 독자들과 대화하는 느낌이 정말 좋았어요.

 

혼자 있을 때 제일 좋다는 말 공감해요.(웃음)


저도 그랬는데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게 훨씬 좋구나, 깨달았어요. 예를 들어 바이올린 솔로보다 4중주를 더 좋아하거든요. 그런 것처럼 제 삶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혼자 빛나기보다는 사람들과 함께 오랫동안 천천히 만들어나가는 무언가를 하고 싶은데요. 그게 책을 만들고 강의를 하고 인문학을 공부하는 길인 것 같아요. 그것을 통해 배운 것들을 독자들과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 있죠.

 

겪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것들이 분명히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친구들한테 하는 말이 있는데요. 능력은 ‘오버’를 통해서만 길러지는 것 같아요. 오버는 위험하기도 하죠. 자기 자신을 던져야 하는 거니까요. 그런데 내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것만 하다보면 삶이 바뀌지 않더라고요. 약간 못할 것 같은 것들을 해보면 좀 달라요. 주변에 40대에 수영 배우는 분도 있고, 자전거 여행을 하는 분도 있어요. 약간 힘들면서도 내가 예전부터 하고 싶었는데 자신을 못 믿어서 하지 못한 것들을 한다면 삶이 더 풍요로워져요. 대부분은 잘할 것 같은 것만 하거든요. 그러다보면 비슷한 쪽으로만 능력이 발달해요. 어떤 면에서는 점점 더 경직되는 거죠.

 

첼로를 배우신다고 들었어요. 첼로 연주를 통해 얻은 깨달음도 눈에 띄더라고요.


첼로를 잘할 줄 알았어요.(웃음) 진짜 어렵더라고요. 인생에서 제일 어려운 것 중 하나였어요. 4년 정도 됐는데 생각보다 많이 안 늘어요. 창피한 수준이죠. 그렇지만 선생님과 2중주를 하며 배우는 게 정말 많아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뭔가가 있어요. 우리는 항상 언어로만 대화하잖아요. 그런데 음악으로도 대화할 수 있다는 걸 알았죠. 언어를 뛰어넘는 소통이 있다는 걸 느꼈을 때 굉장히 희열을 느꼈어요. 그렇게 멋지지 않아도 스스로 충만한 느낌, 그게 참 좋아요. 여러분도 조금 나를 오버하는 것, 본래의 가능성을 뛰어넘는 무언가를 먹고 사는 것과 상관없는 곳에서 한 번 도전해보시면 좋겠어요.

 

성인이 된 이후 유독 효율성, 생산성을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삼았던 것 같아요. 생각해보면 그런 도전을 학창시절에는 많이 했는데 말이죠.


저도 30대 초반까지는 뿌리 깊은 모범생이었던 것 같아요. 갑갑한 인생이었던 것 같은데요. 혼자 여행을 다녀보고 알게 된 게 많아요. 함께 열 번 여행 다니는 것보다 혼자 한 번 여행하는 것이 훨씬 더 많은 걸 배우더라고요. 일단 고생을 하게 되고요. 자기의 밑바닥과 최고점을 보게 되죠. 또 짐이 많으면 힘들기 때문에 점점 내 맨 몸으로 할 수 있는 걸 생각하게 돼요. 훨씬 더 강해지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사회가 요구하는 강인함이 아니라 내적으로 강인해지는 느낌, 그 감성이 참 좋았어요. 점점 나이 드는 게 재미있어지기도 했고요. 삶이란 참으로 정직해서 내가 쏟아 부어야만 뭔가가 오지 외부에서 공짜로 좋은 자극이 오지는 않더라고요. 찾아 나서야만 보이는 것들이 있어요. 그러려면 끊임없이 새로운 사람을 만나려고 노력해야 하고 때로는 싫은 것도 해봐야 해요. 예전에는 상처받기 싫어서 옹송그리고 있었는데 상처 받지 않고는 뭔가를 배울 길이 없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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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을 느끼는 것도 능력


스스로를 ‘후회중독자’라고 표현했는데요. 개중에는 좋은 후회라고 할 만한 것도 있겠죠?


보통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려고 많이 노력하잖아요. 상처와 비슷해요. 상처 받지 않으려는 것, 후회하지 않으려는 것이 너무 과도한 방어기제더라고요.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느끼거든요. 저 사람은 방어기제가 높구나, 하고요. 그러면 점점 날 어렵게 생각하고, 날 안 건드리게 돼요. 점점 고립되는 거죠. 후회와 상처를 자꾸 피하려다보면 점점 약해져요. 면역력이 떨어지는 것처럼 말이에요. 누군가 상처를 줬을 때 대화를 시도하면 대놓고 상처주진 못하더라고요. 꿈쩍도 안 하고 도망치려 하고 상처 받은 모습을 보여주면 더 상처를 주는 사람들이 있어요. 사실 못된 마음이죠. 하지만 대화를 시도하면 그 속에서 서로 마음을 열게 되더라고요. 상처를 준 사람에게 오히려 한 걸음 더 다가가는 거죠. 그랬을 때 결과가 훨씬 좋았어요. 예전보다 성장했다고 느끼고요.

 

성장은 달리 표현하면 건강이라고 해도 좋겠네요.


모든 것이 생각보다 훨씬 말랑말랑하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사회는 단단한 장벽이라고 생각하잖아요. 무언가를 하려는 게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고, 함부로 달려들었다간 죽을 수도 있다고 이야기해요. 위험요소를 강조하다 도전을 못하게 되죠. 그런데 사회가 생각보다 빈틈이 많아요. 또 사람의 마음도 그렇고요. 보이는 것보다는 참 틈새가 많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그 틈새에 조금씩 스며들어가는 게 글쓰기와 예술, 소통의 힘이란 생각도 하고요.

 

한편 한 스님의 말, ‘친한 사람을 멀리하고, 어렵고 불편하고 친하지 않은 사람을 가까이’하라는 게 알쏭달쏭하면서 무척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작가님의 입으로 좀 더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요.


생각하면서 성장하게 되는 말이죠. 그게 ‘화두’인 거죠. 스님의 이 말씀은 마음의 관성을 벗으라는 말씀이에요. 우리 마음의 관성은 편한 사람과 계속 가까이 지내고 싶어요. 그들은 내 말에 쉽게 공감하는 사람들이죠. 눈을 마주치고 살아온 사람들끼리는 말하지 않아도 통해요. 그런데 그런 사람들만 만나다보면 언어발달도 떨어져요. 단어도 생각 안 나죠. 개떡 같이 말해도(웃음) 찰떡 같이 알아들으니까요. 자극을 피하게 되는데요. 반면 친하지 않고, 사실은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과 대화하다보면 머리가 좋아지는 거예요. 온갖 언어와 근거를 다 들어 그를 설득하려고 하고요. 그러다보면 내 자신이 발전해요. 더 성숙해지고요.

 

이른바 ‘꼰대’라고 하는 분들을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변하지 않고,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죠.


자기가 모르는 세계를 못 견디는 거예요. 세계를 모두 자기에게 친숙한 것으로 환원시킬 뿐이죠. 다 안다고 생각하고, 새로운 세계가 없다고 생각하는 게 노화거든요. 모든 것에서 경이를 느끼고 감동을 느끼는 것도 능력이더라고요. <윤식당>의 윤여정 씨를 보면서 사람들이 감동하는 것은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여유롭고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다 듣는 열린 모습 때문인 것 같아요. 그렇게 늙어가는 게 정말 쉽지 않아요. 좋아하는 사람을 멀리하고 싫어하는 사람을 가까이하는 것은 저도 굉장히 힘들어요. 그런데 그것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삶이 바뀌더라고요. 반대로 해보려고 노력하게 되고요. 스님의 이 말씀은 제게도 정말 큰 도움이 돼요.

 

‘나잇값 못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구절도 많이 와 닿거든요. 나이 많은 사람들에게 바라는 점도 있을 것 같아요.


나이 많은 선배들이 흔히 하는 말이 있죠. “편하게 하세요.” 그런데 그 말도, 듣는 후배 입장에서는 오히려 불편할 수 있거든요. 그것보다는 자연스럽게 편안한 분위기가 되도록 이쪽에서 먼저 노력을 해야 해요. ‘저는 권위적인 사람이 아니에요’라고 하는 것보다 자유롭고 탈권위적인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여줄 때 저쪽에서도 믿어줄 수 있게 되죠. 먼저 내가 편안해져야 상대방도 나를 편안히 여기게 되니까요. ‘어린 사람들이 나를 불편해하는 것 같다’는 눈치조차 없는 분들도 많죠. 자신이 아주 유머러스하고 농담도 잘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저쪽에서 내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억지로 웃어주는 건 아닐까’ 한 번 질문을 던져보는 것도 좋아요. 이제는 명령하거나 지배하고 통제하는 리더십의 시대가 아니에요. 배려와 공감의 리더십만이 타인의 마음을 진정으로 움직일 수가 있어요. 나이 어린 사람들에게도 언제나 무언가를 배우겠다는 의지가 중요할 것 같아요.

 

무상성을 ‘모든 것이 덧없다, 그래서 허무하다’는 의미로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무상성이란 바로 ‘이 세상 그 무엇도 영원하지 않음을 깨달음으로써 지금 내 곁에 있는 모든 것들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라는 것을, 나는 그제야 알게 된 것이다.(156쪽)

 

화두라고 할 만한 대목이 또 하나 있어요. 바로 ‘무상성’에 관한 이야기였는데요. 유리잔이 이미 깨졌다고 생각할 때 유리잔이 더욱 소중해진다는 이야기는 꼭 가지고 있어야 할 생각인 것 같아요.


무상성은 사실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에요. 저도 다 이해하진 못했는데요. 『트라우마 사용설명서』에 나온 말을 읽으면서 세계관이 확 바뀌더라고요. 우리는 더 오래가는 것을 찾아다니잖아요. 하지만 최고의 관계를 맺고 있더라도 그 사람과 언젠가 헤어지겠다는 생각을 하면 오히려 이 순간이 더 소중하다는 걸 알게 돼요. 참 어렵죠.(웃음) 아름다운 유리잔을 보면서 이게 이미 깨졌다고 생각하는 건 정말 놀라운 전환이죠. 그렇지만 그것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보면서 그 사람이 이미 날 떠났다고 생각해보면 관계가 달라지는 걸 느낄 수 있을 거예요. 무상성이란 말은 항상 가슴에 품고 있는 말이에요. ‘구방심(救放心)’이라고 하잖아요.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게 모아주는 말, 그런 말 같아요.

 

독립, 자존감, 습관, 용기 등 여러 단어들로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데 그 중 꼭 하나를 가져갔으면 하는 게 있다면 무엇이 있나요?


책에는 안 나오지만 책 전체, 밑바닥에 깔려 있는 것은 정직함, 솔직함이에요. 20-30대에는 연기력을 기르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아요. 상처 받아도 안 받은 척, 관심 있는데 없는 척하면서 자존심을 지키려고 한 적이 많았는데요. 그런 게 아무 소용없더라고요. 30대 중반부터 변한 것 같아요. 솔직하지 못한 건 결국 삶에 진실하지 못한 것일 수 있겠다는 위기감이 딱 생겼어요. 조금 촌스러워 보여도 모르면 바로 묻고, 다가가고 싶으면 상처 받을지라도 먼저 말을 걸어보려고 해요. 그 순간을 놓치면 다시는 기회가 안 오니까요. 더 아이처럼 덜 꾸미고 말하는 법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점점 더 편안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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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나물을 꾹꾹 눌러 담은 느낌


편안해졌다는 감각이 많이 전해져요. 타인에 대한 너그러운 시선도 즐겁고요. 그런가 하면 타인에 대한 시선을 확장시키면 사회에 대한 시선으로 가닿잖아요. 작가님이 생각하는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덕목은 뭘까요?


나는 별로 특별한 힘이 없으니까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세상을 점점 더 나쁘게 만들 수 있어요. 촛불시민들이 해낸 일을 보세요. 처음에는 촛불 하나로 시작되었잖아요. 저마다 ‘이런 나라에서는 제대로 살아갈 수 없다’, ‘촛불을 들어 내 마음을 표현하자’라는 소박한 믿음으로 광장으로 나갔는데, 몇 년 동안 전혀 해결되지 못한 채 더 나빠지기만 하던 것들이 이제 가능해졌어요. 기적 같은 일이에요. 하지만 결코 신비로운 기적이 아니죠. 촛불을 들었던 사람들, 촛불을 응원하는 사람들 모두가 하루하루 조금씩 만들어낸 지극히 현실적인 힘이지요. 우리 삶도 그렇다고 생각해요. ‘그런 일이 과연 가능하겠어?’하고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을 때도 단 한 사람이 매일매일, 그 일이 이루어질 때까지 노력하겠다고 마음먹으면 정말로 세상이 바뀌어요. 그 한 사람의 힘을 믿을 때 나 자신뿐 아니라 내 주변의 세상, 우리가 속한 더 커다란 세상도 바뀔 수 있습니다.

 

매일같이 글을 쓰고 강연하는 일을 좋아하신다고 했지만 힘들 때도 있을 텐데요. 슬럼프에 빠지신 적은 없나요?


슬럼프 속에 뭔가 배울 게 있다고 생각해요. 슬럼프를 제거하려고만 하지 말고, ‘왜 슬럼프가 왔을까’를 곰곰 생각해 보면 그 속에 뭔가 해답이 있을 때가 많아요. 지나치게 자신을 혹사시켜왔다면, 그 자기착취의 원인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는 거죠. 내 삶에 대한 불만족, 과거의 실패에 대한 지나친 보상심리, 반드시 타인에게 인정받아야 한다는 부담감이 합쳐져 슬럼프를 만들어낼 때가 많아요. 방아쇠는 외부에 있는 경우가 많지만, 슬럼프가 심화되고 확장되는 회로는 내 안에 있을 때가 많거든요. 때로는 ‘반드시 잘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보다는 ‘그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 하자’라는 소박한 생각이 훨씬 좋은 결과를 가져와요. 또 어떨 때는 어느 정도의 스트레스가 도움이 되기도 해요. 전혀 긴장하지 않은 상태, 전혀 아무런 스트레스도 없는 상태에서는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요. 어느 정도의 긴장, 적당한 정도의 슬럼프까지 즐기려고 노력해요.

 

정말 쉽지 않은 일인데요.


어떻게 피할 도리가 없기 때문에 정말 피할 수 없다면 어쩔 수 없이 즐겨보자, 라는 약간은 자포자기적인 상태가 오히려 도움이 될 때도 있어요. 그리고 되도록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그 일 말고 ‘잠깐 다른 일에 몰두해 보자’라는 생각도 도움이 되지요. 저는 몇 시간 음악을 들어보기도 하고, 옛날 영화를 보기도 하고, 아무런 목적 없이 산책을 하기도 해요. 내 문제로부터 거리를 두는 시간을 가져보는 거죠. 그렇게 조금씩 슬럼프와 친해지고, 슬럼프를 피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슬럼프와 대화하고 놀아본다는 생각으로 그 시간을 보내는 것이 도움이 되었어요.

 

지금 어떤 상황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으신가요? 이 책을 만날 독자들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왜 열심히 해도 일이 안 풀리지’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잖아요. 왜 세상은 내가 노력하는 만큼 문을 열어주지 않을까, 하고 억울하고 서운할 때요. 그때 친구가 필요한데 친구에게도 의지하기 어려울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저는 책이 가장 좋은 친구라고 생각해요. 책과 친구가 되면, 서운할 일이 없거든요. 그저 책 속의 메시지를 내가 조금씩 받아들이면 돼요. 책 속의 인물과 가상의 대화를 하기도 하고요. 그렇게 외로움을 스스로 극복하고 싶은 분들이 이 책을 친구로 삼았으면 좋겠어요. 그림은 많고 글은 조금인 아주 느슨한 책들의 유행에 실망한 한 독자가 제 책을 이렇게 표현하셨더라고요. “인심 좋은 할머니가 하나라도 더 주려고 콩나물을 꾹꾹 눌러 담은 느낌”이라고요. 그 표현이 그렇게 고맙고 따뜻하더라고요. 저는 바로 그런 사람이 되고 싶거든요. 넉넉한 시골인심으로, 내가 아는 것을 아낌없이 다 퍼주고 싶어요.


 

 

그때, 나에게 미처 하지 못한 말 정여울 저/이승원 사진 | arte(아르테)
이 책은 40대의 문턱에 들어선 작가 정여울이 30대를 지나오면서 느끼고 깨달은 것들을 담은 에세이다. 30대가 가지고 있는 고민이나 불안에 대해서는 위로와 응원을 건네면서도, 우리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인생의 소중한 가치들을 나이, 관계, 포기, 선택, 독립, 이기심, 후회, 균형 등 20개의 키워드로 풀어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지코 “내 애티튜드는 스스로를 가두지 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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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데이 원 버즈(One day, One verse)! '지코(Zico)'하면 하루에 절(節) 하나씩을 창작해내는 성실함이 먼저 떠오른다. 타고난 래핑 역량에 더해진 피땀 어린 노력은 힙합이 대중음악의 대세로 부상한 시의와 맞물려 진즉에 '탈(脫)아이돌 랩 스타'의 탄생을 알렸다. 부모가 이름을 아는 래퍼, 동시에 으뜸의 핫한 아이돌이다. 언더 태생의 랩과 힙합을 주류 아이돌 형식으로 전하고 있지만 지코의 랩은 명확하고 흐름도 잘 포착되고 자연스러워 자체가 하나의 예술이란 평가를 받는다. 아직 래퍼로 기억되지만 '너는 나, 나는 너'와 최근의 'She's a baby'가 말해주듯 노래도 만만치 않다.

 

그의 확장성은 이뿐만 아니라 프로듀서 분야에서도 두드러진다. “올해가 지나고 나면 제 음악보다는 제가 만든 음악이 더 나올 거예요!” 서울 강남의 한 스튜디오에서 만난 지코는 인터뷰에서 '힙합'으로만 규정되지 않고 '(모든)음악'을 하는 뮤지션이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적극적으로 대화를 펼쳤고 음악 얘기에 신나하는 모습이었다. 마주 앉은 탁자 주변은 열기가 달아올랐다. 지코는 자신의 정체성과 의향을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인터뷰 내내 마치 랩 가사를 고민하듯 정확한 언어를 골라내려는 성의를 잃지 않았다.

 

음원 차트에서 호응을 얻고 있는 신곡 'She's a baby'의 만들어진 과정이 궁금하다.


만들 당시 코드워크에 대한 판타지가 많았어요. 남들이 흔하게 사용할 수 있는 코드를 최대한 실험적인 보이싱 기법을 사용해서 색다르게 느끼도록 하고 싶었거든요. 제가 영국에 갔을 때 듣는 취향이 많이 달라졌는데 런던에서 브리티시 뮤지션들 음악을 계속 들으면서 코드를 생각했고 한국에 돌아와 반주 녹음을 진행했습니다. 맨 처음에 미디로 작업한 것을 리얼 기타 사운드로 바꾸는 과정에서 굉장히 어려움을 겪었지만요.

 

후렴구가 매력적인데 솔직히 '때찌때찌'는 약간 오글거린다.


처음부터 이런 말랑말랑한 짝사랑을 주제로 할 생각은 없었어요. 시크하고 스타일리시한 곡을 만들려고 했는데 멜로디 허밍을 하다 보니까 'Baby'가 입에 붙는 거예요. 저 스스로 노래 실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기 때문에 제가 가지고 있는 호흡과 하드웨어가 최대치로 발휘될 수 있는 발음을 사용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좋은 딕션이 좋은 가창을 만들잖아요. 그래서 후렴에 자연스럽게 'She's a baby'가 착안되었고, '때찌때찌'는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나왔어요. (웃음) 상대방을 보호해줘야 된다는 가사 프레임 안에서 이런 저런 말을 중얼거리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때찌때찌'라고 나왔습니다.

 

곡의 마무리도 독특했다.


그게 원래 뒤에 까지 따다다다 끝나는 거였는데 제가 에디팅을 하다가 잘못 뒤로 밀린 거예요. 그래서 기타가 살짝 잘리고 베이스가 나와 있는 거죠. 콘트라베이스로 끝난 거죠. 구성이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죠. 야! 이거 대박이다, 이거다. 오류가 낳은 창작? 곡도 더 짧았으면 했었는데 잘 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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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랩만 하는 게 아니라 음악을 한다!”

 

'너는 나 나는 너'도 그랬지만 근래 노래로 무게 중심을 이동하는 듯 보인다.


근본적인 이유는 그냥 음악 때문이에요. 저는 제 자신을 뭔가 반박불가의 래퍼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뮤지션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지 않아요. 절 표현하는 악기 중 하나로써 태동은 랩이었지만 음악 자체를 하는 뮤지션이기 때문에 어떠한 감정들의 디테일한 표현이 필요할 때 보컬을 사용하는 거 같아요. 정확한 피치와 호흡을 이용할 수 있는 노래만의 장점을 살리는 거죠.

 

랩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생각보다 단순해요. 예전에 <힙합플레이야 쇼> 되게 흥행 했었잖아요. 공연 영상 중 '도끼'형이랑 예전 '슈프림 팀'이 함께 3MC 곡을 하는 걸 봤는데 너무 멋있는 거예요. 지금은 언더그라운드 문화가 많이 수그러들었지만 그 당시만 해도 대한민국 힙합의 언더그라운드 영역이 확실했거든요. 황금기였죠. 그래서 래퍼가 되고 싶다는 꿈이 생기고 가사를 적기 시작했죠. 특히 버벌진트 형과 이센스 형의 랩에 감명, 강한 영향을 받았습니다.

 

본인 스스로 지코 랩의 강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전달력. 딜리버리(delivery)인 것 같아요. 랩은 일단 첫 번째가 전달이라고 생각해서 녹음 할 때도 아무나 불러놓고 모니터링을 부탁해요. 가사를 아예 안보여주고 랩을 들려준 다음에 어디 안 들리는 데 있냐고 물어보고 그걸 꼭 피드백해서 다시 녹음을 해요. 가사지 안보고도 잘 들릴 수 있게요.

 

지코하면 감각적인 펀치라인이 연상된다. 펀치라인에 대한 생각은.


단순히 말장난이 될 수도 있고 시사적이고 의식 있는 메시지로도 전달될 수 있는 것 같아요. 저는 펀치라인이란 개념을 굉장히 좋아해요. 재밌잖아요. 다만 그게 랩이라는 장르가 가지고 있는 문학적인 요소에 피해를 주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생각합니다. 곡에 집중돼야 할 때 펀치라인을 써야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우겨 넣으시려는 분들도 종종 존재하고 저도 한때 그랬던 적도 있어요. 펀치라인을 안 써도 가사를 충분히 잘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기 때문에 굳이 사용할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저도 요즘에는 펀치라인을 잘 사용하지 않아요. 일단은 조금 고갈이 난 것도 있고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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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상업적인 음악도 좋아한다!”


엠넷 <쇼미더머니 4> 출연할 때 기분은 어땠나.


재밌었어요. 재밌는데 고통 속의 환희라고 해야 할까요. (웃음) 되게 들떠서 좋은 게 아니라 짜증나고 열 받는 와중에 재미있다는 느낌이요. 그 당시에는 제가 프로듀서 라인업으로 확정되자마자 '네가 피타입을 심사해?'라며 평생 먹을 욕을 다 먹었어요. 그래도 저는 '와! 이거 뒤집기 되게 좋은 상황이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편견이란 게 많으면 많을수록 반전을 줬을 때 더 큰 효과가 일어날 거란 걸 믿고 정말 패기로 했어요. 그런 전투적인 심리 덕에 저에 대한 편견을 부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최근 힙합의 상업화가 힙합의 원류를 흐리고 있다는 관점에 대한 생각은.


전 제 스스로를 '애티튜드(attitude)'라는 프레임 안에 가두고 싶진 않아요. 저는 상업적인 음악도 너무나 좋아하거든요. 제가 어떤 주제를 다루었건 대중들이 그 곡에 대해 공감해주고 심지어 오글거린다고 해줘도 그런 모든 반응들이 흥미로워요. 근데 그렇다고 제가 그 반대 측면에서 활동을 안 하는 게 아니거든요. 정말 확고하게 본인의 신념에 가득차서 자신을 딱 규정짓고 그 독자적인 영역 안에서 꾸준히 자리를 지켜주시고 잘 활동해주셔서 문화의 다양성을 보존해주는 고마우신 분들도 많아요. 반대로 그렇지도 않은 상황에서 괜히 자신 없어서 한 프레임에 가두는 경우가 또 있는 것 같아요. 왜냐면 다 두들기기엔 벅차거든요. 근데 저는 솔직히 다 두들길 수 있어요. 인터뷰 끝나고도 조금 있다가 블락비 멤버끼리 가서 춤추고 모레에는 혼자 부산 가서 힙합공연할 거예요. 그러고 또 돌아와서 프로듀싱하겠죠. 저는 이 다양한 포지셔닝에 절대 스스로의 한계를 정하고 싶지 않아요. 더군다나 그걸 음악 안에서의 태도로 가둬두기는 더욱 싫은 거죠. 이렇게 저 스스로를 가두지 않는 거 자체가 제 애티듀드인 것 같아요.

 

블락비의 멤버로서 지코, 래퍼로서 지코는 꽤 달라 보이는데.


사실 블락비를 힙합 아이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블락비를 이야기할 때 '힙합'을 안 붙여요. 데뷔 초반에는 랩 트랙이 대다수고 랩으로 계속 프로모션해서 힙합이라고 불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후 앨범부터는 랩 트랙이 없어요. 그냥 음악이거든요. 힙합이란 건 정체성이 뚜렷하잖아요. 남들이 봤을 때 블락비를 보고 힙합이라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블락비는 좋은 음악을 만들고 다양한 모습과 콘셉트를 보여주는 보이밴드일 뿐이죠. 랩을 많이 했던 그룹이지만 장르를 보면 업템포가 더 많아요. 힙합의 이미지를 얻기 위해서 '힙합'을 옷의 태그처럼 붙이고 다니기에는 블락비가 힙합에 기여한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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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락비는 힙합 그룹이 아니라 좋은 음악 하는 보이밴드다.”


프로듀서로서도 눈에 띄는 성과를 얻고 있다.


스무 살 때 블락비가 소속되어 있던 프로덕션과 엔터테인먼트 사가 갈라지게 되면서 언 발에 오줌 누는 격으로 작곡을 시작하게 됐어요. 어릴 땐 힙합에 대한 고집이 있어서 무조건 4분의 4박자에 루프 음악 아니면 안 듣는 시기도 있었는데 프로듀싱을 하면서 음악에 대한 카테고리 자체가 넓어지기도 했죠. 처음 작곡 시작할 땐 블랙 아이드 피스(Black Eyed Peas)나 퍼렐 윌리암스의 너드(N.E.R.D.), 더 드림(The Dream)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작곡 시작하고 나서는 편식하지 않고 다양하게 듣는 편이에요. EDM만 빼고요. 그쪽은 제 취향이 아닌 것 같아요. (웃음)

 

지금까지 프로듀싱한 블락비의 곡 중 가장 자랑스러운 곡은.


'Jackpot'이요. 솔직히 말해서 내 곡을 두고 '짱'이라고 얘기한 적 많이 없거든요. (웃음) '와! 어떻게 이걸 만들었지??!!' 편곡 대박이죠. 유튜브에서 저 멀리 유럽 사람들 음악 뒤지다가 우연히 발견한 보석 같은 느낌이에요. 4분의 4박자에서 트리플로 갔다가 스윙으로 가는 다채로운 패턴도 그렇고, 한 곡에 여러 장르와 다양한 리듬 계열이 담겨 있어요. 이건 지금 만들라고 해도 못 만들 것 같아요.

 

'Very good'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그 곡은 정말 오래 걸려 만들었거든요. 한 5개월 걸렸죠.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만든 거예요. 이걸 하고 싶어! 록에서 쓰는 드럼이 들어갔으면 좋겠어! 그러다가 제목을 뭘로 하지? What's your name? Very good!!!!

 

프로듀서로서 자신감을 줬던 곡을 꼽는다면.


송민호의 '겁'입니다. 의미가 좀 컸던 것 같아요.

 

본인이 노래한 것 중에서 괜찮다고 생각하는 곡은.


보컬한 건 'She's a baby'가 그래도 제일. 가장 최근이니까요. 잘 부르고 싶어서 꽤 고생을 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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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저의 음악보다는 제가 만든 음악이 더 많이 나올 겁니다.”


줄곧 함께 작업하는 팝타임(Poptime)이 누군지 궁금하다.


저한테 지대한 음악적 영향을 주는 정말 중요한 형이에요. 코드에 대한 영감을 계속 저에게 던져주고 그걸 토대로 제가 멜로디를 쓰면 다음날 같이 편곡해요. 또 시간적인 여유가 부족할 때 제가 벌여놓은 작업물들을 전달하면 정리하는 데 도움을 줘요. 엄청 부지런하고 사운드에 대한 개념이 결벽 수준으로 완벽한 형이라서 저에게도 정말 필요한 동반자입니다. 어느덧 음악 같이 한지도 7년째이고요.

 

싱글 위주의 음원발매가 계속 되었는데 정규 앨범 발매 계획은.


계속 구상하고 있긴 하지만 현재의 촉박한 스케줄 상황 속에서 정규 앨범은 힘들 것 같아요. 제가 한국에 한 5개월은 없어야 가능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듭니다. (웃음) 올해까지는 지코가 광고든 방송이든 엄청 많이 나올 것 같고, 올해가 지나고 나면 지코보다는 지코가 만든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 거 같아요. 제가 저의 음악을 내는 것보다 제가 만든 음악이 더 많이 나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인생의 앨범 세 장 정도를 뽑는다면.


일단 타블로 형의 <열꽃>. 정말 말도 안 되는 가사로 저에게 정말 큰 충격을 준 앨범이고요. 카니예 웨스트(Kanye West)의 <Graduation>, 그리고 나스(Nas)의 <Illmatic>입니다. 요즘에는 켄드릭 라마(Kentick Lamarr) <Section.80> <Good Kid, M.A.A.D City>, 그리고 작년 12월에 나온 제이 콜(J. Cole) <4 Your Eyez Only>! 한 사람, 자기 친구를 위해 만든 앨범이잖아요. 대박이에요.

 

지금까지 가장 중요했던 순간들, 세 가지를 꼽아 달라.


첫 번째는 열여덟 살에 버벌진트 형 앞에서 제 음악을 들려줬을 때예요. 버벌진트 형이 눈을 감고 가장 인상 깊었던 구절을 말해주었을 때 이제 음악을 자신감 있게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두 번째는 제가 과거에 사회에 큰 물의를 일으켰을 때예요(2012년 태국 비하 인터뷰 발언 사건). 그때는 절대 못 잊어요. 항상 반성하고 있죠. 매년 해가 바뀔 때마다 그때를 생각하면서 그 당시의 사진을 올려요. '영원한 건 없다.' 지금 제가 이렇게 살고 있어도 당장 내일 아무 것도 안 남고 없어질 수도 있는 거잖아요. 이제 그걸 늘 생각하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제 가치를 지혜롭게 잘 활용할 수 있을 때 최대한 세상에 더 많이 남겨두고 싶어요. 세 번째는 마마(MAMA)에서 베스트 남자가수상 받았을 때입니다. 이 정도 상이면 내가 뭔가 하긴 했다는 기분이었어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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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낯섦이다”


지코만의 장점, 필살기는 무엇이라고 보나.


시도인 것 같아요. 지금은 사람들이 눈치 챘어요. '쟤가 항상 예상 못할 걸 들고 온다!'라는 걸요. (웃음) 이번에 'She's a baby'로 완전 눈치 챈 거 같아요. 저는 제 자신을 복제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하고 싫증도 되게 잘 내요. 한번이라도 사용한 단어나 주제, 멜로디 진행을 반복하기를 싫어합니다.

 

팬들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


저랑 같이 목적지 없는 여행한다고 생각하셨으면 좋겠어요. 전 다음 역 어디라고 안 알려줄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어딜 가든 간에 그 낯섦을 함께 즐겼으면 좋겠어요. 낯섦, 제가 정말 좋아하는 거예요. 요즘엔 청취자들이랑 그런 어떤 유대 관계가 생기는 거 같아요. 의리라고 할까요. 솔직히 'Bermuda triangle' 때 본인 취향과 안 맞지만 의리로 들어준 측면도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지코가 이런 거 했네!' 그런 거 하지 말라곤 많이 안하시더라고요. 이젠 저의 마인드에 대해 이해해 주시는 것 같고, 편하게 정해져 있지 않은 곳을 같이 걸어갔으면 좋겠습니다.

 

사진: 김진우
인터뷰: 임진모, 김반야, 정민재, 현민형
정리: 임진모, 현민형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배성태 “결혼, 생각보다 훨씬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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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장을 보고, 나란히 누워 TV를 보고, 늦은 야식을 먹고, 야구장 데이트를 한다. 출근을 돕고, 퇴근 후에 함께 저녁을 먹으며, 좋은 날 함께 자전거를 탄다. “기억을 사진처럼 만들어두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배성태의 그림 장면들이다. 작가의 그림은 일상을 한 편의 드라마로 만드는 매력이 있다. 별 것 아닌 일상인데 그림 안에서 빛이 난다. 작가는 지금 정말로 행복하리라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구름 껴도 맑음』은 네이버 그라폴리오, 인스타그램 등에 연재한 그림을 모은 것이다. 작가는 결혼 후, 신혼생활을 하면서 소중한 순간들을 놓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행복한 순간, 소소하고 평화로운 일상들을 한 권의 책 안에 붙잡아 생활의 역사를 만들었다. 이 작업은 언제까지 가능할까. 배성태 작가는 삶이 변하고 나이 드는 과정을 계속 그려내고 싶다고 말했다. 자신의 일상이 누군가의 공감을 받고, 가끔은 위로가 되며, 짧은 순간 휴식이 될 수 있다면 즐겁게 그릴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니 공감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대로 지나쳐도, 좋은 것도 즐기는 마음으로 가볍게 봐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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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훨씬 좋았어요


특별하고 빛나는, 짧은 순간이 아니라 소소한 일상, 평화로운 순간을 그리고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좋았어요. 그런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생각하게 되고요. 이걸 기록하고 싶다고 생각한 이유가 있을 텐데요.

 

특별한 건 기억을 하겠죠. 그런데 이건 너무 사소한 기억이다보니 잊어버리기 십상이에요. 그 기억들을 간직하고 싶었어요. 기억을 사진처럼 만들어두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요. 그림으로 할 수 있는 거니까 그리기 시작했어요. 그림을 보면 그때의 기억이 다시 떠올라요. 전후 과정도 모두 기억이 나거든요. 그게 좋았어요.

 

『구름 껴도 맑음』이라는 제목은 어떤 의미예요?


너무 다들 힘들다고 하는 세상이다보니까요. 힘들기도 한데 막상 힘든 와중에도 또 좋더라고요. 그 감정에 어울리는 말이 없을까 하다가 바로 튀어나온 말이에요.

 

이 자체가 하나의 기록이잖아요. 그런데 그림을 잘 안 보신다고요.(웃음)


기록은 좋은데요. 제가 기억을 재구성해서 그리는 거잖아요. 조금 더 담백하게 그릴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제가 생각할 때는 너무 달달한 거죠. 제가 보는데도 조금 그렇더라고요. 간지러워서요.(웃음)

 

그림을 처음 그리던 신혼 초기와 지금은 조금 다른가요?


제 생각에는 똑같은 것 같은데요. 예전에는 서로의 다른 모습에 치중해서 그렸다면 지금은 정말 사소한 일들에 집중해서 그리거든요. 그래서 더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신혼 초와 지금, 다를 수 있겠죠.

 

이전에 비해 지금 그리는 그림이 어떻게 다른지 구체적으로 듣고 싶어요.


예전에는 서로 다르게 자란 남녀가 만나서 섞이는 과정을 그린 거라면 지금은 어느 정도 서로를 알고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죠. 그래서 상대적으로 처음보다는 조금 덜 달달하지 않나 생각해요. 저도 그런 부분을 조금 빼고 싶었고요.

 

일상의 소중한 순간을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은 결혼 후에 생긴 거죠?


네, 장거리 연애를 했어요. 그러다보니 많이 못 만났어요. 연애기간은 3년이었지만 사실 가까이에서 1년 만난 사람들보다 많이 못 만났으니까요. 그래서 결혼을 빨리 하고 싶었는데요. 해보니까 정말 좋은 거예요. 생각보다 훨씬 좋았어요. 생각지도 못했거든요. 그러니까 그냥 흘려보내기는 아깝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죠.


저는 일상을 그리는 것 자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보는 것도 별로 안 좋아했고요. 그리는 것도, 소년 만화 같은 것을 동경했고 그리고 싶었는데요. 일상이 행복하다보니 저절로 나오게 된 것 같아요.

 

다양한 순간을 담았는데요. 이 중 특별히 좋아하는 장면이 있다면 뭔가요?


가장 첫 부분에 나오는 흰색 배경의 그림인데요. 다른 그림들은 색이 가득 차 있는데요. 이것만 백지예요. 이 그림을 그리면서 우리가 앞으로 색을 채워나간다, 이렇게 생각을 했었거든요. 아무것도 없는 살림이지만 앞으로는 이곳을 우리의 기억으로 채워나가자는 생각을 했고요. 그 생각이 지금도 좋아요. 그래서 이 그림을 제일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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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떠오르는 감정들


작업 방식도 궁금해요. 사진을 찍어두시는 건가요? 메모를 하시는 것 같기도 하고요.


메모를 해요. 메모하는 습관을 들이고 있어요. 예전에는 그런 습관도 없었는데 말이에요.(웃음) 안 적어놓으면 자꾸 잊어버리더라고요. 사소한 순간이니까요. 그 순간에 ‘이걸 내일 그려야지’ 하면서도 안 적어놓으니까 잊어버려요. 그래서 생각났을 때 최대한 빨리 적어두죠.

 

작업 시간은요? 오래 걸리는 편인가요?


잘 되는 날이 있고 잘 안 되는 날이 있는데요. 그런 걸 따졌을 때 평균적으로 한 작품당 두세 시간 정도 되는 것 같아요.

 

잘 안 풀릴 때는 어떻게 하세요?


끝까지 해보려고는 하는데요. 너무 안 되면 그냥 안 그려요. 차라리 다음에 그리는 게 더 잘 나오기도 하고요. 더 빨리 그릴 수도 있더라고요. 다른 걸 그리는 것도 아니에요. 하나가 안 되면 다 안 되거든요. 그냥 그 날은 쉽니다.(웃음)

 

프리랜서는 내가 사장이자 직원이잖아요. 더 이상 쉴 수 없을 때, 나를 일로 돌아오도록 하는 장치가 필요할 때도 있더라고요. 어떠세요? 다시 일에 집중하기 위해서 하는 일도 있나요?


사실 그리는 게 저한테는 재미있는 일이니까요. 조금 쉬다보면 또 하고 싶어져요. 그래서 순식간에 또 빠져들게 되는 것 같고요. 너무 하기 싫을 때도, 어쨌든 이게 절 먹여 살리는 거니까요.(웃음) 움직이게 되더라고요.

 

아내 분은 직장생활을 하고 계시잖아요. 그것에 대한 감각도 많이 보였어요. 그게 작업에도 큰 자극이 되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더 그런 것 같기도 해요. 저도 직장생활을 안 해본 건 아니거든요. 한 2년 정도 해봤는데요. 출퇴근 하는 게 진짜 쉽지가 않더라고요. 특히 저는 지방에서 1년, 서울에서 1년을 했는데요. 서울에서 출퇴근을 할 때는 출퇴근 자체가 너무 힘든 거예요. 일도 힘들겠지만 출근하고 퇴근할 때 진이 다 빠지잖아요. 그걸 생각하니까 아내를 보면 짠한 느낌이 많아요. 자기는 별로 일 안 했다고도 하는데 그냥 짠하죠.

 

작업시간을 질문한 이유가 있었는데요. 무심코 그림을 넘기면서 재미있다, 공감된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요. 그림 하나를 그리는 시간은 길 텐데 보는 입장에서는 순식간에 넘어가니까 작가가 좀 아쉽기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런 불균형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내 그림을 이렇게 봐달라, 하는 당부의 말 같은 것도 있을까요?


제 생각은 다른데요. 차라리 빨리 소비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기본적으로 저는 이 그림들이 완성도가 높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도 어차피 그 순간 떠오르는 감정들을 바로 그린 거니까요. 사실 전날 그린 그림을 다음 날 보면 약간 새벽감성처럼(웃음) 저도 이상해보일 때가 있거든요. 아쉬움은 별로 없어요. 어차피 작업하는 시간도 다른 만화 작가들에 비해서는 터무니없이 순식간에 그릴 수 있는 내용들이거든요. 만화 작가들은 하나를 그리기 위해서, 스토리를 완결하기 위해서 끝까지 이끌어가잖아요. 어찌보면 지겨울 수 있거든요. 그런데 저는 바로 떠오르는 것, 그리고 싶은 것만 그리기 때문에 차라리 더 재미있고 즐기면서 그릴 수 있는 거죠. 그림에 그런 제 마음이 녹아있고요. 그러니까 사람들도 제 그림을 너무 깊게 들여다보지 말고 가볍게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공감하는 그림이 있으면 보고, 아니면 그냥 넘기고요.

 

만화가 아니라 일러스트라는 도구를 선택한 이유도 그것인가요?


만화의 호흡이 되게 길잖아요. 계속 끌어가야 하는데 저는 그걸 못했어요. 전공이 만화인데 그걸 못해서 한 컷부터 시작한 거예요. 한 컷부터 하다가 지금은 4컷 만화도 하고 있거든요. 그렇게 하다가 나중에는 긴 호흡의 만화를 그려보자는 게 목표예요.


만화는 제가 못해서 포기했던 거라 한 번 닿아보고 싶은 건데요. 어쨌든 제가 잘하는 걸 하고 싶고요. 저는 이쪽을 더 잘하는 것 같더라고요. 이 작업을 쭉 하면서 병행을 해보려고 해요. 잘 되면 좋고요.

 

지금 작업하고 계신 만화 작업도 있나요?


현재 하고 있는 것은 없어요. 그게 제게는 부담이 되어서 말이에요. 졸업을 하면서 자격지심 같은 게 많이 생겼었어요. 일부러 만화도 안 보고, 그리지도 않고 그랬거든요. 하고 싶은데 못하니까 보기도 힘들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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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겪은 일상들


또 다른 주인공, 아내 분은 그림을 보면 뭐라고 하나요?


일단 잘 안 봐요.(웃음) 그려서 보여주면 좋아하긴 하는데요. 자기 이야기다보니 부끄러워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또 자기가 생각했던 그때의 기억과 제 기억이 다를 수 있잖아요. 그런 차이가 재미있다, 신기하다고 하긴 하는데요. 정말 즐겨보는 독자는 아닌 거죠. 그래서 목표는 아내가 즐겨보는 그림을 그리자는 것이 되었어요.

 

같은 일을 놓고도 달리 기억한다는 사실을 알게 됨으로써 서로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면도 있을 것 같은데요. 이 그림이 두 분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지 궁금해요.


아무래도 처음에는 저만 생각하고 제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렸던 것 같아요. 반면 지금은 좀 달라졌어요. 아내가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림을 봐왔잖아요. 제가 어떤 걸 그리는지 알고요. 그래서 ‘이런 것도 그리면 재미있겠다, 그려봐’라고 얘기해주기도 하고요. 제가 그리면 ‘이건 이렇게 바꾸는 것도 좋겠다’고 말하기도 해요. 항상 검사를 받아요.(웃음) 각자가 가지고 있는 감성이 조금 다를 수 있잖아요. 그래서 꼭 물어보려고 해요. 아무리 가까이 있는 사람이라도 제가 가지고 있는 것과 다를 수 있기 때문에 물어보죠. 어쨌든 정말 사소한 일이라도 들여다보면 이야기가 생기더라고요. 원래 취지가 정말 사소한 일을 그리자는 거였으니까요. 현재를 즐기다보면 이야기는 떠오르는 것 같아요.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의 장점도, 단점도 있잖아요. 내가 노출되는 것에 대한 부담은 없으세요? 아내 분이 검사도 한다고 하셨는데요.


아내가 검사한다는 것은 그런 의미는 아니고요. 아내는 일단 하고 싶은 것은 하라는 식인데 제가 그냥 보여주는 거고요. 아내도 예전에는 넣지 말라고 했던 그림들이 있었거든요. 너무 사생활이기도 하니까요. 일단 한 번도 보여주지 않았던 저희만의 모습이고요. 저희로서는 부담스럽죠. 그런데 그런 그림도 책에 다 넣었어요. 왜냐하면 어차피 이것들이 저희만 겪는 일은 아닐 것 같더라고요. 굳이 숨길 필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령 ‘비하인드 스토리’ 부분을 보면 처음 결혼을 허락 받기 위해 아내의 부모님을 만나러 갔을 때 겪은 일이 나오잖아요. 거기서 작가가 어머니께는 하얀 거짓말을 하죠. 이런 내용을 주변 사람들이 알게 되는 게 신경 쓰이지 않았는지 궁금했거든요.


제가 드러나는 건 괜찮은데요. 말씀하신 부분은 아버님이 드러나는 대목이었잖아요. 그러니까 혹시 아버님을 부정적으로 보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조금 부담스럽더라고요. 그런데 책을 아버님도 다 보셨거든요. 보시고는 그냥 “재미있다” 하시더라고요.(웃음) “배 서방, 나랑 닮았다” 하시고요. 저를 아시니까요. 저도 알고요. 아버님이 나쁜 의도로 물어보신 게 아니잖아요. 순수한 우려였고, 그런 여러 가지를 생각하다보니 괜찮아졌어요. 아버님이 나쁜 의도로 물어보신 게 아닌데 그 장면을 넣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어요.

 

어머니 반응은 어떻던가요?


아(웃음), 그건 안 물어봤어요. 혹시 속상하실까봐서요. 어차피 지금 잘 사는 모습 보시고 계시니까요. 물론 처음 보셨을 때는 놀라실 수 있겠는데요. 이해하실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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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껴도 ‘맑음’


앞으로도 이 작업은 꾸준히 계속 되나요?


할 것 같아요. 삶이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어떤 웹툰은 보면 십 년 동안 연재하면서 나이 먹어가는 모습이 보이잖아요. 가령 혼자 시작했다가 결혼을 하는 경우도 있고요. 저도 그런 식으로 하고 싶어요. 결혼하면서 시작했고,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고 하는 모습을 그려보고 싶어요. 독자도 저와 함께 커가는 거잖아요. 그게 좋은 것 같아요.

 

굉장히 길게 보고 계시는군요.


일단은 희망이죠. 재미있을까, 하는 고민은 해요. 지금은 어쨌든 신혼생활을 그리다보니 연애와 맞아 떨어지는 부분도 있잖아요. 그런데 나중이 되면 어떤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야 사람들이 공감해줄까, 라는 생각도 하거든요. 지금은 제가 좋아서 그리는 거고, 그걸 많은 분들이 좋아해주셨잖아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것이 후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죠. 제가 좋아서 그리지만 공감을 안 하실 수도 있는 거고요. 그렇게 되면 어찌되었든 그림은 재미로만 그리고 일은 다른 걸 찾아봐야겠죠.(웃음)

 

SNS로 독자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에요. 최근에 보니까 말풍선을 공란으로 두고 독자가 내용을 채워 넣는 이벤트도 하셨던데요.


가장 먼저는 사람들과의 소통이었어요. 저는 보여주는 것밖에 하지 않으니까요. 말을 빼면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넣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해봤는데 반응이 괜찮은 거예요. 처음엔 사람의 경험이 다 똑같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한 경험을 다른 분들도 했겠지, 생각했거든요. 그런 생각으로 이 장면에서는 다른 사람들도 저와 비슷하게 말하겠지, 하는 생각으로 그렸어요. 그래서 이것도 비슷하게 채우기 쉽겠지 생각했는데요. 비슷한 것도 있지만 다른 것도 있더라고요. 사랑도 똑같아 보이는데 정말 여러 가지잖아요. 그 속에 또 아주 다양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있고요. 그런 것이 재미있어요.

 

다른 것들이라면 어떤 걸까요? 기억나는 게 있으세요?


생각보다 힘든 분들이 많더라고요.

 

힘든 일상이 많죠. 그런데 『구름 껴도 맑음』에는 다툼이나 갈등이 별로 없어요. 그것이 이 그림에서 위로 받는 이유이기도 하겠지만요. 일부러 안 그리시는 건가요?


진짜 없어서예요.(웃음) 이런 말을 하면 어떻게 들으실지 모르겠는데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한테 잘 말을 안 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어쨌든 제 일상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고 해서 제가 억지로 그런 그림을 그리거나 지금 그리는 것을 자제하거나 일부러 막거나 할 생각은 없어요. 웹툰 같은 것 보시면 악플 되게 많은데요. 저는 악플이 지금껏 손에 꼽을 정도거든요. 한두 개 정도밖에 없었어요. 플랫폼 차이는 있겠지만 별로 없었던 터라 그냥 이렇게 계속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해도 되겠구나, 생각해요. 잘 이해해주시고, 받아주시는 것 같아요.

 

성향이 긍정적이신 것 같아요. 밝은 쪽을 더 보려고 노력한다는 느낌이 있어요.


네, 전 그런 것 같아요. 힘든 감정에 빠지면 다 힘들게 보이더라고요. 감정 기복이 있는 편이라 새벽이 되면 되게 우울해지기도 하고 그렇거든요. 그런데 그럴 때는 그냥 있기보다 차라리 재미있는 걸 하는 게 더 빨리 빠져나오게 되기도 해요. 그래서 ‘맑음’ 쪽을 더 보려고 해요. 어쨌든 그게 더 기분이 좋으니까요. 그 상태를 유지하려고 애쓰는 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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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싶다


주로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으로 활동하시죠?


재미있는 게 두 플랫폼을 사용하는 사람의 성격이 완전히 달라요. 구체적으로 설명 드릴 수는 없어요. 계속 쌓여온 경험이라서요. 그런데 어떤 그림은 인스타그램에서는 굉장히 반응이 좋은데 페이스북 쪽으로 가면 거의 반응이 없어요. 그런 것도 굉장히 많아요. 댓글 반응이나 그런 것도 확연하게 달라요. 이용자 연령, 성향 차이도 조금 있는 것 같고요.

 

개인적으로는 어느 쪽이 더 좋으세요? 좀 더 편안한 채널이 있나요?


제가 조금 더 소통하기 편안하고, 그림을 올리기 좋은 게 인스타그램인 것 같아요. 어쨌든 페이스북은 그림과 글이 함께 보이는 곳이라서 레이아웃 자체가 와 닿지 않아서요.

 

앞으로 또 어떤 작업을 계획 중인가요?


고양이를 좀 더 그리고 싶은데요. 확장을 계속 해나가고 싶어요. 지금은 5월 중순부터 고양이에 관한 웹툰을 시작할 예정이에요. 처음에 막연하게는 고양이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싶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래서 『구름 껴도 맑음』에도 고양이를 계속 등장시켰고요. 그러다가 4컷 만화를 그리기 시작했고요. 웹툰을 연재하게 됐는데요. 나중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계속 고양이와 관련 있는 작업을 함께 해나가고 싶어요.

 

원래 고양이를 키웠던 건 아니죠?


결혼하면서 키웠어요. 원래 고양이를 안 좋아했어요. 아내 설득에 넘어가서 키우게 됐는데요. 진짜 고양이에 대해 전혀 몰랐던 거죠. 편견도 많이 갖고 있었고요. 키워보니 너무 좋아요. 고양이 그림을 많이 그리려고 해요.


 

 

구름 껴도 맑음배성태 글,그림 | 중앙북스(books)
『구름 껴도 맑음』은 젤리, 두 마리 고양이와 함께 사는 한 커플의 달달한 신혼을 그린 일러스트레이션 북이다. 인스타그램, 네이버 그라폴리오, 페이스북에서 10만 명의 팔로워들을 설레게 한 배성태 작가의 그림들이 담겨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진화의학자 권용철 “아이들이 편식하는 건 당연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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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몸은 아직 원시시대』는 진화의학의 관점에서 우리 몸을 살피는 책이다. 진화의학은 인체가 환경에 따라 변화하고 적응해 온 과정에 중점을 두고 건강을 바라보는 시각으로 적응의학이라고도 한다. 『우리 몸은 아직 원시시대』는 몸이 생활습관을 따라잡지 못하는 데에서 병이 생긴다고 이야기한다. 아직도 우리 몸은 원시시대와 크게 다를 바 없는데 주위를 둘러싼 환경은 고도로 발달된 현대시대라는 것이다. 이에 권용철 저자는 “어떤 체질과 어떤 유전자형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그에 맞는 건강관리를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진화의학자이자 의학박사인 권용철 저자는 정신과 전문의 시절 진화의학을 접했다. 비만과 식이장애를 공부하면서 단편적인 치료 방법에 한계를 느끼다가 질병의 근원을 탐구하는 진화의학에 매료되었고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질병 치료에 있어서도 음식이 가장 중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한 그는 외식 브랜드 ‘닥터로빈’, ‘옐로우팟’, ‘감천양조장’ 등을 런칭했으며 현재 청년 멘토 소사이어티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이미 넌, 위대한 생존자』, 『닥터로빈 슬리밍 레시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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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처방이 똑같은 게 말이 되나요?


의학 정보를 담고 있는 책인데 내용이 어렵지 않아요.

 

처음에는 많은 내용을 담았는데 덜어냈어요. 전문서적이 아니라 대중서적이잖아요. 많은 부분을 요약해서 담았어요. 관련 논문들을 찾아서 덧붙이기도 했는데, 그러다 보니까 내용이 어려워지더라고요. 
 
의학계 연구 결과를 보면 서로 상반된 것들이 많잖아요. 그 사이에서 대중은 혼란을 경험하고요.


그렇죠. 상반된 이야기가 많으니까 어디로 갈지 모르는 거예요. 그게 책을 쓴 동기예요. 우리 인류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가장 근본 원리를 이해하면 건강 정보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이야기하는 이론과 상반된 이론도 얼마든지 많을 거예요. 반박하려고 마음먹으면 수없이 많은 논문들을 찾아낼 수 있을 거고요. 저 또한 거기에 반박하려고 하면 많은 논문을 찾아낼 수 있을 텐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그래서 이 책은 이론 서적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조금 다른 시야를 가지고 바라봤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쓴 거예요.

 

결국 취사선택은 본인이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맞아요. 그래서 정확하게 취사선택할 수 있도록 이해를 하는 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강연을 할 때 늘 하는 이야기가 있는데요. 된장찌개 레시피를 배울 때 한국 주부는 취향에 맞게 재료를 가감할 수 있을 거예요. 된장과 마늘, 생강이 어떤 맛인지 이해하고 있으니까요.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면 어떨까요? 가령 북유럽 사람이라면 레시피에서 가르쳐주는 대로 만들어야 될 거예요. 응용을 할 수 없겠죠. 그리고 누군가가 다른 레시피를 가르쳐주면서 이게 더 좋다고 하면 헷갈릴 거예요. 건강 정보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내 몸을 이해하면 훨씬 더 쉽게 접근할 수 있겠죠.

 

이번 책에 빗대어 이야기하면 ‘진화의학’이 되겠네요. 인간이 어떻게 진화해 왔는지 알면 어떤 것이 몸에 좋거나 나쁜지 알 수 있다는 말씀이시죠? 


인간은 서로 다른 환경에 맞춰서 적응해왔어요. 예를 들면 사막에 사는 사람들은 눈썹이 길잖아요. 모래바람을 피하기 위해서 그렇게 진화한 거거든요. 그런데 지금의 의학 정보는 눈병이 나면 똑같은 처방을 하는 거예요. 한국에 사는 사람과 일본에 사는 사람이 비슷하게 생겼지만 다 똑같지는 않잖아요. 일란성 쌍둥이도 다르다고 하는데 어떻게 처방이 똑같을 수 있겠어요. 그러니까 TV나 책에서 ‘어떤 병에는 무엇이 좋다’고 이야기하는 건 말이 안 된다는 거예요. 어느 정도의 공통분모는 가지고 있겠지만요. 진화의학, 적응의학에서 이야기하는 건 우리 몸이 어떻게 적응해 왔는지 알면 병이 생겼을 때 원인과 치료 방법을 아는 것도 수월하다는 거예요.

 

진화의학에 매력을 느끼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식이장애를 공부하다가 진화의학을 알게 됐는데요. 식이장애를 가지고 계신 분들 중에 너무 비만하거나 마른 분들이 계세요. 질병으로 식이 조절이 안 되는 경우죠.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의지박약이라거나 자기 관리도 못한다고 말하거든요. 그러면 이 사람들은 왜 자기 의지로 조절을 하지 못할까, 생각하다 보니까 근본적인 회의가 든 거예요. 원인은 밝혀졌죠. 식욕을 증가시키는 호르몬이 뇌를 자극하고 식욕을 억제하는 호르몬은 적게 분비돼서 계속 먹게 된다는 건데요. 더 근본적인 건 왜 호르몬에 불균형이 왔느냐, 하는 거잖아요. 결국은 우리가 생존하는 과정에서 그렇게 됐다는 걸 이해하게 되면서 진화의학이 너무 재밌었어요. 그래서 공부를 시작했고요.

 

아직도 진화의학은 낯설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당시만 해도 진화의학이 전통 학문은 아니었어요. 진화의학과가 있는 것도 아니고 전문의 과정이 있는 것도 아니었죠. 지금도 없어요. 그래서 제가 진화의학을 공부할 때 전부 사사를 받아야 했어요. 연구하시는 분한테 가서 배우고, 컨퍼런스나 학회를 찾아가고, 논문들을 보면서 공부할 수밖에 없었죠. 그런데 그렇게 하다 보니까 점점 재밌는 거예요. 예전에는 진화의학이 학문이라기보다는 재밌는 가설이었는데, 유전자에 대한 이야기들이 나오면서 각광을 받기 시작했어요. 사람이 적응하는 과정에서 유전자 스위치가 켜지거나 꺼진다는 게 이해가 되기 시작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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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토피 환자, 암에 걸릴 확률이 낮은 이유


책에도 ‘유전자 스위치’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데요. 특정 유전자가 활성화되거나 비활성화되는 건가요?


실제로 유전자 스위치가 켜지고 꺼지고 해요. 진화의학, 적응의학에서 볼 때 질병은 내가 적응하는 과정이에요. 우리 몸에 균이나 독성물질이 들어오면 그걸 정상적으로 뱉어내기 위해서 기침을 하잖아요. 설사도 마찬가지고요. 이론을 확장하면 암이 생기는 원인도 똑같습니다.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으면 대장은 그걸 처리하기 위해서 세포를 증식해야 돼요. 그러면서 면적이 넓어집니다. 그게 도를 넘으면 암이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암을 치료하는 것도 우리 몸이 그렇게 적응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든 것을 찾아야 되는 거죠. 그걸 들여다보지 않고 암에는 뭐가 좋다는 이야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아토피는 “몸에서 보내는 고마운 경고”라고 하신 것도 같은 맥락인가요?


같은 거죠. 아토피는 아기가 스스로 독성 물질을 해결하지 못해서 보내는 경고예요. 그런데 우리는 스테로이드를 발라서 경고를 끄는 거예요. 빨간 불이 켜졌는데 강제로 선을 바꿔서 녹색 불을 만드는 거죠. 저희 둘째 아이가 어렸을 때 아토피가 아주 심했어요. 그때 병원에 가서 알러지 검사를 했는데, 달걀하고 호두에 심각한 알러지가 있더라고요. 그 음식들을 끊고 열흘 만에 좋아졌어요. 다른 사람한테는 호두가 치매를 방지하는 좋은 물질인데, 이 아이한테는 독성 물질인 거죠. 그러니까 호두를 먹으면 다 좋다고 하는 게 거짓말이라는 거예요. 사람은 적응한 방식에 따라서 다 다른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데, 말이 안 되는 거죠. 동일한 질병이 오더라도 다르게 치료해야 된다는 건 밝혀져 있는 사실이이에요.

 

“아토피가 있는 사람은 성인이 된 후에 암에 걸릴 가능성이 현저히 낮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고 하셨어요. 


몸 안에 독성 물질이 들어왔을 때 알람 기능이 예민한 사람도 있고 예민하지 않은 사람도 있어요. 예민하지 않은 사람은 약간의 독성 물질을 먹어도 전혀 느끼지 못하죠. 그렇지만 내부 장기들은 염증이 생기고 공격 당하고 있거든요. 그런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독성 물질을 먹었기 때문에 결국 암이 오는 거예요. 실제로 아토피에 걸린 사람들을 조사해 보니까 암에 걸릴 확률이 적었다고 해요. 독성 물질을 못 먹었기 때문이죠. 물론 ‘안아키(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 카페’의 사람들처럼 증상이 굉장히 심한데도 약을 먹지 말라고 하는 건 정말 잘못된 거예요. 심한 상태면 약을 먹고 치료를 해야죠. 그렇게 되기 전에 ‘아토피가 단순히 약만 먹고 해결할 문제인지, 독성을 피할 것인지’ 선택하자는 이야기고요. 요즘은 대부분 독성을 피하는 쪽으로 선택을 해요.

 

“운동하면 늙는다”고 말씀하신 이유는 활성산소 때문인가요?


그렇죠. 운동을 하려면 에너지가 필요하잖아요. 그러기 위해서 미토콘드리아가 산소를 가지고 지방, 단백질, 탄수화물을 태워서 에너지를 만들어요. 그런데 산소를 태우면 반드시 매연이 나와요. 그게 활성산소예요. 이 활성산소가 왜 나왔는지를 보면, 과도하게 운동하고 에너지를 쓰는 과정에서 공기 중의 독성 같은 게 몸 속에 들어온 걸 파괴할 목적으로 만든 거예요. 활성산소는 무조건 나쁜 게 아니에요. 필요한 거예요. 그런데 아쉽게도 활성산소는 정상적으로 독소만 죽이는 게 아니라 우리 몸도 공격을 하거든요. 그게 노화를 만드는 거예요.

 

평소에 운동을 하세요?


합니다. 움직이는 게 중요한데 현대인들은 못 움직이잖아요. 그러면 운동을 해야 돼요. 어쩔 수 없는 거예요. 운동할 때 얻는 득과 실을 따져서 자신한테 뭐가 더 유리한지 따져야지, 운동을 하는 게 좋다 안 좋다로만 이야기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서 살을 빼는 데는 유산소 운동이 좋은데, 그 대신 노화가 온다는 부작용은 감수해야 되는 거죠. 운동을 한다면 그저 많이 움직이는 정도, 조금 빠르게 걷는 운동이 제일 좋다고 생각합니다. 너무 운동을 안 해서 몸이 많이 망가진 사람들은 활성 산소가 생기더라도 유산소 운동을 하는 게 필요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활성산소를 최대한 줄이고 계속 몸을 움직여주는 게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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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식하는 아이에게 음식 강요하지 마세요


저녁을 적게 먹고 배고픈 상태에서 자는 것도 노화를 막는 데 도움이 된다고요.


우리 유전자는 음식이 많지 않은 상태에서 살아남았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음식을 절약하는 유전자의 스위치가 켜져 있어요. 먹는 날보다 굶는 날이 더 많았기 때문에 음식이 들어오면 몸에 쌓아야 되는 거죠. 그리고 음식을 항상 먹을 수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세포가 죽는 걸 방지하는 쪽으로 유전자 스위치를 켰어요. 이런 역할을 하는 것 중에 대표적인 게 ‘시르투인(sirtuin)’이에요. 그런데 지금은 음식을 많이 먹잖아요. 유전자는 그대로인데 들어오는 음식은 많아지니까 혈관 벽이나 간, 뇌 등에 저축을 해요. 그리고 세포를 잘 안 죽이죠. 그러면 암이 오는 거예요. 이게 문제예요. 그리고 ‘시르투인(sirtuin)’은 유전자를 수리하기도 하는데, 배가 고픈 상태에서 잠을 자면 이 호르몬이 훨씬 많이 분비됩니다. 그러면서 노화를 방지하죠. 이건 진화적으로 증명된 거예요.

 

최근 ‘고지방 식이’ 열풍이 불었는데요. 이 식단의 효과를 주장하는 사람들도 진화를 이야기 합니다. 인간이 탄수화물을 섭취한 역사는 매우 짧고, 훨씬 더 긴 시간 동안 육류를 섭취했다는 거예요.

 
맞는 이야기입니다. 진화적으로 이야기하면 우리 몸은 탄수화물을 해결할 수 있는 유전자가 없습니다. 탄수화물을 먹은 지 불과 8천년 밖에 안 됐잖아요. 그런데 탄수화물이 많이 들어오니까 그걸 처리할 수 있는 유전자가 하나 켜졌어요. 인슐린이라는 호르몬을 분비하는 유전자가 켜진 건데요. 인슐린은 탄수화물을 지방으로 바꾸는 역할 밖에 하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탄수화물을 먹으면 안 되는 종인데 탄수화물을 먹는 게 문제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육류 위주로 섭취하라는 이야기에도 오류가 존재해요. 야생 동물을 잡아서 분석해 보면 지방이 20% 이하인데, 사람이 키우는 동물은 지방이 38%이거든요. 같은 고기가 아닌 거죠. 이런 사실은 생각하지 않고 단편적으로만 이야기하면 실수를 범하는 거예요.

 

그렇다면 ‘고지방 식이’를 제대로 하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고기를 먹으면 살이 빠지고 건강해진다는 건 맞는 이야기인데,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탄수화물을 안 먹는 거예요. 탄수화물은 끈적한 상태라서 혈관 속에서 당이 계속 무언가 하고 붙거든요. 그러면서 활성산소와 똑같이 산화시키는 작용을 해요. 문제는 탄수화물의 끈적함이 기름기와 만나는 건데, 기름을 먹고 탄수화물을 먹는 순간 기름기가 혈관 벽에 붙습니다. 그러니까 완벽하게 탄수화물을 안 먹고 고기만 먹으면 다이어트를 할 수 있는데, 실현가능성은 적다는 거예요. 우리 주변에 탄수화물로 이루어진 음식이 너무 많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탄수화물을 안 먹기는 거의 불가능하잖아요.

 

자녀의 편식 때문에 고민하시는 분들도 많을 텐데요. 책을 보니, 아이들이 음식을 거부하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더라고요. 몸이 아직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거죠?


아이와 어른이 음식을 해독하는 능력이 똑같지 않습니다. 그건 말이 안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이는 음식을 거부하는 방법으로 살아남은 거고요. 한 예로, 아이들은 브로콜리를 본능적으로 거부합니다. 브로콜리를 먹고 나면 갑상선으로 가는 아이오다인을 방해하거든요. 아이들은 그걸 해독 못하니까 안 먹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이들이 편식을 하는 건 당연한 겁니다. 그렇다면 편식을 안 하고 독성이 든 음식도 많이 먹은 어른은 어떻게 해결했을까요? 진화의학은 명쾌하게 답을 찾습니다. 어른들은 장내 세균총을 다양하게 해요. 그런데 아이들은 장내 세균총이 다양하지 않거든요. 음식을 먹었을 때 해독할 수 있는 장내 세균이 없어요. 아이들의 편식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인 거죠.

 

부모 입장에서는 아이가 거부한다고 해서 계속 안 먹이기에는 불안할 거예요. 그래도 계속 기다려줘야 할까요?


그럼요. 편식 조금 한다고 영양 결핍이 생기지 않습니다. 생각을 바꾸셔야 돼요. 우리는 너무 과잉한 게 문제인 상황이에요. 그리고 1980~90년대의 영양학이 우리 머릿속에 끼친 해악으로 골고루 먹어야 된다는 생각을 절대 못 버려요. 하지만 영양학은 버려야 될 학문이라는 이야기가 지금도 있고, 이미 미국에서는 많이 폐기하고 있습니다. 영양학을 믿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그런데 아직도 우리나라 TV에서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죠. 마케팅이 불안을 조성하는 측면도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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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은 모두는 위대합니다


평소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세요?


건강관리 잘 안 합니다.

 

식단을 까다롭게 관리하지도 않으시고요?


건강관리에서는 음식이 제일 중요해요. 거의 70%가 음식에서 좌우된다고 봐야 되는데요. 몸에 외부 물질이 들어오는 곳은 위장과 폐 밖에 없어요. 그런데 폐는 내 마음대로 조절할 수가 없잖아요. 공기를 마음대로 바꿀 수는 없으니까요. 그런데 음식은 조절할 수 있죠. ‘한 사람에게는 음식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독성’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진화의학에서 너무 중요하고 핵심적인 이야기입니다. 자기한테 맞는 음식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해요. 그러려면 가족의 히스토리를 봐야 됩니다. 부모님, 그 부모님의 부모님이 살았던 환경, 식습관, 병력 같은 것들이 우리 유전자에 상당히 많은 영향을 미쳐서 유전자 스위치가 거기에 맞춰져 있을 가능성이 높은 거죠. 그걸 들여다봐야 돼요. 절대적인 좋은 건강법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대다수에게 적용되는 건강관리법도 있을까요?


대부분의 사람에게 맞는 것은, 물론 다른 경우도 있습니다만, 적게 먹는 겁니다. 소식은 너무 중요합니다. 물론 음식을 너무 안 먹어서 마른 사람에게 소식하라고 하면 안 되고요. 소식이 잘 안 된다면 장내 세균을 돌아봐야 돼요. 나의 세균총을 어떻게 건강하게 만들까를 고민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건 스트레스예요. 야생에서 사냥을 할 때는 스트레스 호르몬이 분비되는 상태가 유리했어요. 그런데 이게 어마어마한 희생 위에 올라선 거거든요. 모든 장기가 망가지기 시작해요. 사냥을 할 때는 몸이 조금 상하더라도 먹이를 잡아서 먹는 게 낫기 때문에 그런 상황을 만든 건데요. 우리는 계속 그런 상황을 유지하고 있어요. 현대인들의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를 측정해 보면 정상보다 높습니다. 매일 전쟁하고 있는 것과 똑같은 거예요.

 

스트레스 호르몬 분비를 낮추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긍정적인 생각을 계속 한 다음에는 스트레스 호르몬을 수치가 낮아져 있었다고 해요. 스트레스 호르몬 센서를 만드는 스위치가 켜지는 거예요. 스트레스를 없애는 방법은 이건 전쟁 상황이 아닌 태평성대이고, 나한테는 좋은 일이 생긴다는 생각을 하는 거예요. 스트레스를 낮추라는 말씀을 드리기 위해서 덧붙이면, 우리는 이미 충분합니다. 지금보다 더 생존이 어려웠던 시절에도 살아남았잖아요. 이미 걱정할 필요가 없는 상태에 와 있는 거예요.

 

진화의학 이야기를 들으면 생명체가 경이롭다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 몸이 스스로 조절을 한다는 게 신기하고요.


진화의학을 공부하면서 느낀 게 우리 생명, 살아있는 것들은 너무너무 위대하다는 거예요. 위대하지 못했으면 죽었어요. 살아남지 못합니다. 다람쥐의 예를 들어볼까요? 지금 지구상에 살아남은 다람쥐는 겁도 많고, 아무리 먹이를 많이 줘도 땅에 묻어놓고 먹어요. 왜 그런 줄 아세요? 날카로운 이빨과 큰 덩치를 가진 다람쥐들은 나무 밑에서 도토리를 먹었는데, 이 덩치도 작고 날카로운 이빨도 없고 겁이 많은 다람쥐는 도토리를 뺏길까 봐 땅에 묻어놓은 거예요. 그리고 도망갔다가 아무도 없을 때 몰래 와서 먹었죠. 그런데 덩치 크고 강한 다람쥐들은 멸종했거든요. 진화의학자들이 그 이유를 연구해 보니까 도토리에 있는 탄닌 성분 때문이었어요. 떫은 맛을 내는 탄닌은 맹독한 성분인데, 발효가 되면 없어지거든요. 그래서 도토리를 땅에 묻어뒀다가 먹은 다람쥐만 살아남은 거예요. 이 다람쥐가 겁쟁이일까요? 결국 승자입니다. 세상에는 위대하지 않은 생명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살아남은 것들은 정말로 위대한 겁니다.


 

 

우리 몸은 아직 원시시대 권용철 저 | 김영사
절대적 건강관리법을 거부하는 진화의학자 로빈 박사의 잃어버린 수명과 건강을 회복하는 아주 특별한 해답과 지침. 그리고 내 몸에 가장 잘 맞는 가장 근원적이고도 명쾌한 해답. 건강에 대한 단편적 정보와 잘못된 상식을 뿌리째 뽑는, 건강 염려증을 앓고 있는 현대인들을 위한 정확하고 똑똑한 건강 가이드.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한기연 “뭘 하면 이보다 나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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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표지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이 도시에 불안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는 말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을까. 내일 해야 할 일이 걱정되고, 그 결과가 좋지 않을까 두렵고, 타인과의 관계가 어그러질까 초조하고, 아직 갖지 못한 것들에 조바심이 나고, 누구도 보장해 주지 않는 노후가 위태로운데, 우리는 불안으로부터 자유롭다 말할 수 있을까.

 

어쩌면 이 도시는 불안으로 채워진 공간일지 모른다. 그 속에서 우리는 휘청거리며 서 있다. 이렇듯 “수시로 찾아오는 불안 때문에 죽을 듯 힘겨운 사람들”을 위해 『이 도시에 불안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는 쓰여졌다. 책 속에는 당신과 나와 다르지 않은 인물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각자 다른 사연 속에는 불안의 다양한 얼굴들이 감춰져 있고, 저자인 한기연 임상상담심리 전문가는 그 모습을 가만히 응시한다. 그리고 우리의 불안의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는지 알려준다.

 

오랜 시간 마음이 아픈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온 저자는 더 많은 이들을 치유하기 위해 다수의 책을 집필해왔다. 『나는 더 이상 당신의 가족이 아니다』, 『서른다섯의 사춘기』, 『나는 왜 아이에게 화가 날까』, 『슬럼프 심리학』, 『분노 스스로 해결하기』등을 출간했으며, 현재 호연심리상담클리닉에서 치료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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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이 보낸 초대장’ 받는 사회


불안을 호소하는 이들을 많이 만나오셨는데요. 주로 어떤 유형들이 있나요?

 

진단 분류 체계를 보면 매사에 불안을 느끼는 범불안장애도 있고, 고소공포증이나 폐소공포증 같은 특수 공포도 있는데요. 제가 보기에는 결국 실패에 대한 불안, 인간관계에서 버려지거나 혼자가 될까 봐 두려워하는 불안, 이 두 가지로 크게 대별되는 것 같아요.

 

지금 이 도시에는 불안을 촉발시키는 사회적 요소도 많은 것 같아요.


불안을 자극하는 비즈니스가 성행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외모에 대한 것이 대표적이죠. 그리고 블로그를 보면서도 불안을 느끼잖아요. 나도 그곳으로 여행을 가야 할 것 같고, 그 맛집에 가봐야 할 것 같고, 그렇지 않으면 뒤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죠. 브랜드는 말할 것도 없고요. 아이들 교육에 있어서도 불안을 자극하는 비즈니스가 있어요. 안 하면 큰일 날 것처럼 말하죠. 사방에서 불안을 주입 당하고 있는 형국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매일 불안으로부터 초대장을 받고 있는 건데, 마음의 평정을 유지하고 사는 게 힘든 시절임은 맞는 것 같아요.

 

SNS가 보편화되면서 실시간으로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게 됐죠.


그렇죠. 과장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다른 사람의 SNS를 볼 때는 그 사실을 잊어버려요. 자기도 부풀려서 쓰거든요. 그러니까 눈에 보이는 게 과장된 모습이라는 생각은 못하고 빨리 쫓아가야 될 것 같은 느낌만 받는 거예요.

 

“‘열심히’나 ‘최선’이 이토록 부담스러운 시대는 처음인 듯”하다고 하셨는데요. 이제는 한 발 더 나아가서 ‘열심히만 해서는 안 돼, 잘 해야지’라고 말해요. 이런 말들이 낙오에 대한 불안을 부추기는 것 아닐까요?


그렇죠. 말 자체만 놓고 보면 틀린 게 아니에요. 문제는 비교가 전제되어 있다는 거죠. ‘~보다 더 잘 해야’ 되는 거예요. 그런 인식이 점점 심화되고 있고, 벗어나기가 참 힘든 것 같아요. 어떤 면에서는 상충된다는 느낌을 받아요. 요즘 사람들은 개별성, 개성, 유니크한 걸 좋아하잖아요. 그런데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것도 같이 상승하거든요. 그 둘은 같이 있기 힘든 건데도 불구하고요.

 

책의 제목처럼 불안은 누구나 느끼죠. 그런데 어디까지가 정상의 범주인지, 어느 정도가 위험한 수준인지 모르겠어요.


심리학자들이 판단하는 기준은 ‘그런대로 일상생활이 유지가 되느냐’ 하는 거예요. 산다는 건 기쁨과 성취감, 좌절감 등이 씨실과 날실처럼 같이 있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희로애락을 자연스럽게 느끼고 살면 정상범위예요. 그렇지 않고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면 문제가 생겼다고 볼 수 있죠. 책에 나와 있는 많은 사례들처럼 모니터를 계속 보고 있는데도 진전이 없거나, 그래서 앉아있는 시간은 더 길어졌는데 생산성은 떨어지거나, 그럴 수 있어요. 특히 수면이나 섭식이 정상적으로 잘 되지 않는다면 병증이라고 할 수 있겠죠.

 

상담실을 찾아오시는 분들은 불안 정도가 심각한 수준이겠죠?


상대적인 비교는 의미가 없어요. 낮은 수준의 불안을 가지고도 본인이 잘 지내고 있지 못하다는 느낌이 들어서 찾아오실 수 있고요. 훨씬 더 심각한 상황인데도 늘 그렇게 불행하고 고통스럽게 살아왔기 때문에 ‘이게 당연한 거야’라고 생각하면서 오시지 않는 분들도 있어요. 제가 일하는 곳은 신경정신과와는 구별이 되다 보니까, 타인에게 아무런 피해를 끼치지 않고 일상생활을 잘 하고 있으면서도 찾아오시는 분들이 많아요. ‘이것보다는 조금 더 나은 삶이 있을 것 같아, 이건 너무 효율적이지 않아, 나답지 않아’라는 느낌이 든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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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나도 불안 중독?


관계 안에서 느끼는 불안은 ‘거절에 대한 공포’에서 비롯되나요?


그렇겠죠. 연인 관계든 동성 관계든, 홀로 된다는 게 두려운 거겠죠. 이렇게 이야기하면 유행가 가사 같지만,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버려짐이 두려운 거예요. 그건 사실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원초적 공포일 수 있죠.

 

‘좋은 사람 콤플렉스’가 심해서 그런 걸까요?


그건 원인이 아니라 결과일 거예요. ‘좋은 사람 콤플렉스’가 있어서 관계 불안이 생겼다기보다는, 관계에서 자신이 충분히 받아들여지지 못하거나 자신이 매력이 없어서 언젠가 버려질지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잘 보이려고 하는 거예요. 그게 ‘좋은 사람 콤플렉스’겠죠.

 

이런 사람들은 거절을 잘 못하고, 자기 의견을 말하지도 못하는데요. 어떤 조언을 해주세요?


상담치료, 심리치료는 조언하는 과정은 아니에요. 조언은 이미 충분하죠. 이 책뿐만 아니라 어느 책을 꺼내서 봐도 넘쳐나잖아요. 조언이라는 건 결국 이성적이고 인지적인 과정인데, 그 내용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렇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어떻게 하라는 조언은 상담 마지막 부분에, 정말 필요성이 있을 때 잠깐 하는 정도예요. 주된 작업은 아니고요. 지금까지 ‘고통스럽지만 효율성이 없는’ 방식을 고수해 왔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게 하는 시간이 상담의 대부분을 차지해요. 쉽지는 않은 일이죠. 습관이라는 굳은 벽에 갇혀있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고요. 지금까지 지켜온 방식을 버렸을 때 상황이 더 나빠지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누구도 해줄 수 없잖아요.

 

상담이 끝나갈 때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시나요?


뭘 해보면 좋겠는지 물어보게 되겠죠. ‘뭘 하면 이보다 나을 것 같아요?’ 하고요. 대답이 본인의 입을 통해서 나와야 돼요. 저는 ‘그럼 같이 해보자’라고 이야기하는 거고요. 상담이 끝나갈 때는 실제 행동과 연결이 돼야 해요. 생각과 감정과 행동이 맞아떨어질 때 벗어나게 되는 거니까요.

 

완벽주의 성향의 사람들도 불안에 취약할 것 같은데요. 대부분은 자신이 완벽주의자라는 걸 모르지 않을까요?


아니라고 하죠. 그 분들은 자신이 하는 게 당연한 수준이고 성실성의 지표라고 생각할 때가 많아요. 그런데 찬찬히 살펴보면 그런 말로 방어하고 있다는 걸 본인이 고백하게 되죠. 성실성의 지표와 완벽성을 가르는 기준은 효율성이에요. 예를 들어서, 일을 할 때 마감을 지키지 못하고 계속 늦추면 다른 부분들이 어그러지잖아요. 그런데도 ‘나는 성실하다, 최선을 다하고 있다’라고 생각한다면 병적인 완벽성이라고 이야기하게 되죠.

 

‘불안에 중독된 상태’에서는 어떤 징후들이 나타나나요?


일단 걱정을 너무 많이 하겠죠. 우리가 새로운 일들을 맞을 때는 설레거나 기대하거나 잘해야 된다는 의욕을 갖는데, 불안한 사람들은 점점 생각의 양이 많아져요. 내일 할 일, 이번 주에 할 일에 대해서 세세하게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거죠. 그 정도가 되면 숨고 싶어지기도 해요. 실제로 잠수를 타는 사람도 있고요. 그런데 모든 신경정신과적 또는 심리적 문제가 명확하게 선을 그을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이쪽은 이상한 사람들, 저쪽은 건강한 사람들, 이렇게 구분이 되는 건 아니라는 거예요. 다 연속선상에 있기 때문에 한 스푼이 더해지면 이쪽으로 가고, 한 스푼이 빠지면 저쪽에 있는 거죠.

 

불안이 생존에 도움이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예요. 자신이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건 많이 걱정하고 대비했기 때문이라고 믿는 거죠.


책에서 불안을 종교로 삼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는데요. 같은 의미예요. 그렇게 살아온 분들은 불안해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믿기 어렵죠. 우리가 잠들기 전에 내일 할 일에 대해서 생각하잖아요. 어떻게 할지 생각하고 ‘이렇게 하면 괜찮겠다’ 하고 잠이 들어요. 그런데 불안을 종교로 삼는 분들은 그 생각을 하느라 밤을 새는 거예요. 시간이 갈수록 생각은 더 많아지고요. 그렇게 되면 불안이 나를 돕는다고 할 수 없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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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에게 학습되는 부모의 불안


『서른다섯의 사춘기』에서 방황하는 30대 중반의 심리를 이야기하셨는데요. 그들도 불안이 생존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할 것 같아요. ‘지금의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노후 준비를 위해 새로운 일을 찾아야 할지’ 고민하지 않으면 생존이 어렵다고요.


그 불안이 책임감 있는 인간의 태도라고 생각하는 건데요. 솔직해질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그건 불안이라고 부를 수는 없고, 고려하는 거죠. 그리고 행동으로 연결을 시키잖아요. 행동으로 연결되면 불안이 사라져요. 생각이 행동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그 간극에 불안이 끼는 거예요. 30대에 노후를 생각하는 건 당연하죠. 그래서 외국어를 공부하거나 새로운 일자리를 찾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그런 일들이 고통스러우니까 잘 하지 않게 되고, 이따금씩 걱정은 되는 거죠. 걱정이라도 해야 책임감 있는 사람인 것처럼 느껴지는 거예요.

 

그런 순간에 불안을 느끼는 거군요.


사실은 안타깝죠. 행동으로 연결된다는 건 의지와 자기 훈련이 바탕 되어야 되는데 그게 잘 안 되잖아요. 그러니까 자꾸 무릎이 꺾이는 거고요. 차라리 ‘나는 게을러서 (노후 준비를) 미리 못하겠다, 그냥 짤릴 때까지 회사에 다니다가 짤리면 그때 가서 생각하자, 산 입에 거미줄 치겠어?’라고 생각하면 낙관적이에요. 그 편이 낫죠.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하는데 계속 불안해하는 거나 낙관적으로 생각하고 마음을 편히 가지는 거나 결과는 똑같잖아요.

 

『나는 더 이상 당신의 가족이 아니다』, 『나는 왜 아이에게 화가 날까』는 가족 안의 심리 문제를 들여다 본 책이었어요. 불안도 예외가 아닌 것 같습니다. 부모가 불안에 쉽게 반응하면 아이가 그 모습을 보고 학습하겠죠?


그건 거의 99%라고 봐요. 특히 불안은 전염성이 굉장히 크죠.

 

자녀 앞에서는 불안을 내색하지 않는 게 좋을까요?


정답이기는 한데요. 부모-자식 관계에서는 언어나 행동으로 전달되는 것만 있는 게 아니고 피부로 전달되기도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는 자신의 말과 행동을 자각하고 자제해야 돼요. 그렇게 하면 조금이라도 줄지 않겠어요? 그게 부모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이죠. 그리고 인간은 계속 고정된 상태로 살아가는 물체가 아니잖아요. 말과 행동을 자꾸 깨닫고 다르게 하려고 애를 쓰면 피부로 전달되는 부분도 줄어요.

 

고통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으로 ‘자기비난’을 학습하는 아이들이 있다고 하셨어요. 어떤 경우에 그렇게 되나요?


부모가 나를 고통스럽게 할 때예요. 그럴 때는 부모만 아니면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겠죠. 그런데 부모-자식 관계는 그럴 수 없잖아요. 게다가 아동기에는 부모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어요. 부모가 나를 고통스럽게 한다고 해서 그 상태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아이는 부모를 좋은 사람으로 남기는 걸 택해요. ‘내가 나쁜 아이라서, 내가 잘못해서, 이런 일이 생긴 거야’라고 생각하면 살 희망이 생기거든요. 다음에 더 잘하면 달라질 가능성이 있는 거잖아요. 그러려면 부모를 좋은 사람으로 남겨야 하는 거예요. ‘자기비난’을 점점 더 세게 하게 되는 거고요. 성인이 된 후에도 마찬가지예요.

 

성인이 된 후에도 부모의 뜻을 거스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자신이 계속 순종하면 가족 모두가 행복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겠죠?


‘나만 순종하면 모두가 편한데’라는 생각이 함정이에요. ‘모두’에 나는 빠져 있잖아요. 나는 가족이 아니에요? 그건 아니잖아요. 『나는 더 이상 당신의 가족이 아니다』라는 제목에 담긴 의미가 그거였어요. 나도 가족이라면, 나도 행복해야 된다는 거죠. 그래야 ‘모두’라는 말에 위배되지 않잖아요. 지금부터라도 판을 다시 짜야 돼요.

 

이번 책에는 불안에서 벗어나는 여러 가지 방법이 담겨 있어요. 공통적으로 ‘행동’을 하라고 강조하시는데요. 생각을 멈춰야 한다는 의미인가요?


그렇죠. 불안의 강도가 센 사람들은 너무 많은 생각(over thinking)을 계속해요. 생각을 통해서 불안을 잠재우려고 하니까 생각이 더 늘어나고, 그러면 불안이 더 심해지는 악순환이 시작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무조건 생각을 끊으라는 거예요. 정 안 되면 몸의 자세라도 바꾸세요. 별 것 아닌 행동부터 시작해서 조금 생산적인 행동으로 옮겨가면 더 좋겠죠. 가장 초보적인 단계는 일단 움직이는 거예요. 산책이라도 하는 게 낫다는 거죠.

 

아마도 불안을 느끼고 계신 분들이 『이 도시에 불안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를 펼치실 것 같아요.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 없으세요?


책의 제목이 눈에 들어오는 분들이 읽으시지 않을까 생각하는데요.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은 달라질 수 있다는 거예요. 제가 오늘 아침에 산책하다가 토끼를 만났거든요? 저희 집 뒷산에 누군가 방목해서 키우는 토끼들인데, 처음에는 사람 발자국 소리만 들려도 도망을 갔어요. 그러다 몇 년 전부터는 도망가지 않더라고요. 사람들이 먹을 걸 줘서 그런가 봐요. 그런데 오늘 아침에 보니까 저한테 다가오는 거예요. 그 모습을 보면서 불안한 사람들이 토끼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뭔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나면 숨잖아요. 그리고 아무것도 안 보죠. 토끼들이 안전하다는 걸 깨닫고 점점 경계를 푼 것처럼, 숨지 말고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려면 ‘시작점이 달라질 수 있다’는 확신, 신뢰가 있어야 되죠. 그래야 숨을 가다듬고 눈을 크게 뜰 수 있을 거예요.


 

 

이 도시에 불안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한기연 저 | 팜파스
이 책은 현대인의 숙명과도 같은 감정인 불안을 호소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의 두려워하고 힘겨워하는 내면이 무엇인지 살펴한다. 더 나아가 무엇이 그들을 이렇게 불안하게 만들고, 불안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아본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박산호 “베테랑 번역가도 몰랐던 영단어 사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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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나 의리를 저버림’. 배신의 사전적 정의다. 단어가 믿음을 저버리는 순간도 있다. 기존에 알고 있던 뜻으로는 의미가 통하지 않을 때다. 베테랑 번역가도 피해갈 수 없는 이 시간들을 일컬어 박산호 저자는 ‘번역의 배신’이라 명명했다. 그리고 15년 동안 번역을 하며 수집한 “원어민은 자주 사용하지만 한국인은 잘 모르는 단어의 다양한 의미”를 모아 『단어의 배신』에 담아놓았다.

 

배신이라는 뜻을 가진 영어 단어로는 ‘Betray’가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단어가 ‘정보나 감정을 무심코 노출시키다’라는 의미로도 쓰인다는 것. 『단어의 배신』은 당신이 철썩 같이 믿었던 의미를 배신하는 동시에, 깊숙이 감춰져 있던 많은 뜻들을 슬며시 드러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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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에 대한 편견이 무서운 것 같아요


번역가로서 『단어의 배신』같은 책을 기다리셨을 것 같아요.

 

이렇게 따로 정리해 놓은 책은 없었기 때문에, 번역가들이 혼자서 각개전투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고 할 수 있어요. 후배들은 조금 더 편하게 일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고요. 단어의 다른 뜻을 몰라서 오역을 하는 경우도 잦은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번역 아카데미에서 특강을 하면서 관련 리스트를 만들었는데, 그게 이번 책을 쓰는 데 도움이 됐어요. 저도 보면서 오역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됐고요.

 

사전에서 단어를 찾아보면, 사용 빈도가 낮은 뜻풀이는 뒤쪽에 실려 있잖아요. 그런 의미들도 번역에서 많이 쓰이나요?


번역도 그렇고 사실은 회화에서도 많이 쓰이거든요. 한국 사람들이 초등학교 때부터 영어 공부를 하는데 비해서 영어를 잘 하지 못한다고 하는데, 그 이유 중에 하나가 단어를 수학 공식처럼 외우기 때문인 것 같아요. 예를 들면 ‘apple=사과’라고 생각하고 그 외에 다른 의미가 있을 거라는 상상력은 차단하잖아요. 그렇게 하는 게 점수를 따기에는 쉽겠지만, 조금 더 깊이 영어 공부를 하거나 유창하게 현지인과 대화하려고 할 때는 막히는 거죠. 그 점이 굉장히 안타까워요.

 

오역의 사례를 발견하실 때가 있죠?


책의 경우에는 원서까지 대조해서 볼 시간이나 여유가 없어서 잘 모르고요. 드라마나 영화 같은 걸 볼 때 가끔 그런 경우가 있죠. 신문기사에도 오역이 종종 나오잖아요. 아주 드문 경우는 아니죠.

 

기억에 남는 문장도 있을까요?


동업자로서 이야기하면 안 될 것 같은데요(웃음). 예를 들면 ‘treat’라는 단어에 ‘치료하다’라는 의미가 있고 ‘~를 좋게 대우하다, 대접하다’라는 뜻도 있어요. 그런데 번역가가 두 개 뜻을 헷갈린 모양이에요. ‘아픈 아이들을 치료해줘야 합니다’ 하고 호소하는 내용이었는데 ‘아픈 아이들을 좋게 대우해줘야 합니다’라고 번역했더라고요. 영상 번역가들은 워낙 시간에 쫓기면서 번역을 하거든요. 그래서 순간적으로 그렇게 됐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런 경우가 아니라 하더라도 평소 우리가 단어의 의미에 대해서 갖고 있는 편견이 무서운 것 같아요.

 

오역을 하신 적도 있나요?


많이 했죠. 특히 초기에는요. 번역가는 프리랜서이니까 일이 많이 들어와도 거절하기 힘들잖아요. 할 수 있는 한 많이 일을 맡다 보면 시간과의 싸움이 되고, 그러면 단어 체크를 못하고 ‘이 단어는 이런 의미겠지’ 하고 넘어갔다가 오역하게 되는 경우도 있어요. 초기에는 몰라서 오역할 때도 있었고요. 미처 바로잡지 못하고 출간이 되면 다음 쇄를 찍을 때 교정을 하죠.

 

‘단어의 배신’을 맛볼 수 있는 예들이 많았어요. 그 중에 하나가 ‘I work in-house’라는 표현인데요. ‘회사에 출근해서 근무한다’라는 뜻이라고요.


‘house’가 원래 집이라는 뜻이잖아요. 그 집이라는 의미와 차별화를 두기 위해서 책에는 ‘in-house’라고 표기를 했어요. ‘passion’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는데, 우리가 주로 알고 있는 뜻은 열정, 격정이죠. 그런데 종교적으로 ‘예수의 수난’이라는 뜻도 있거든요. 그럴 때는 대문자를 써서 ‘Passion of Christ’라고 표기를 해줘야 돼요. 그렇지 않으면 열정, 격정이라는 뜻과 구분이 안 되니까요. 종교적인 뜻이 들어간 단어는 대문자로 표기해 주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I’ll give you a ring tonight’라는 문장은 정말 오해할 법해요. ‘반지를 준다고? 청혼하는 건가?’ 하고요(웃음).


저도 한 번 겪었던 일이에요(웃음). 뉴질랜드에서 어학연수를 했는데, 그때 외국인 남자친구가 똑같은 말을 했었어요. 그래서 ‘반지를 준다고?’하고 혼자 김칫국을 마셨는데, 알고 보니 전화를 한다는 뜻이더라고요(웃음). 그때는 저도 영어를 잘하지 못했던 때라서 ‘ring’이라고 하면 반지만 생각했던 거예요. 그런데 뉴질랜드는 영국과 관계가 깊다 보니까 전화를 한다고 할 때 ‘call’보다 ‘ring’이라는 단어를 더 많이 쓰거든요. 그냥 ‘I’ll ring you’라고도 많이 써요. 사실 그때부터 언어에 대한 감각을 많이 키우려고 했던 것 같아요. 영미인들이 쓰는 영어랑 우리가 쓰는 영어가 많이 다르다고 할까요. 그래서 우리가 회화를 할 때 더 많이 긴장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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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책 = blue magazine?


‘black’에는 ‘보이콧을 하다’, ‘고도의 군사 기밀’, ‘그로테스크하다’라는 뜻도 있다고 하셔서 놀랐어요.


저는 오히려 ‘blue’가 놀라웠어요. 우리는 흔히 야하다고 하면 ‘red’를 떠올리잖아요. 홍등가라는 단어도 있듯이요. 그래서 야하거나 음란한 걸 이야기할 때는 당연히 ‘red’를 쓸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야한 영화는 ‘a blue video’, 도색 잡지는 ‘blue magazine’이라고 해서 놀랐어요. 또 ‘blue’에는 ‘귀족의, 고귀한’이라는 상반된 의미도 있거든요. 참 묘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책을 쓰는 계기가 된 단어가 있었나요?


『단어의 배신』이라는 제목을 짓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된 단어는 ‘betray’였어요. 번역 중인 소설에서 여주인공의 행동을 묘사하는 문장 중에 ‘betray’라는 단어가 나왔는데 ‘배신하다’라는 의미로는 도저히 해석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무슨 뜻이지?’ 하고 생각했는데 ‘숨겨져 있던 감정이 나오다, 무심코 드러내다’라는 뜻이 있더라고요. 단어는 정말 배신을 하는 구나 싶어서 놀랐고, 이런 단어들을 모아보면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렇게 전혀 다른 뜻을 가지고 있는 단어들은 외우기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어떻게 기억하세요?

 
지금도 계속 단어를 외워요. 얼마 전에 특강을 하면서 영어 공부법을 정리해 드린 적이 있는데, 어떤 분께서 암기 말고 다른 방법이 없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그래서 ‘어느 정도 기초가 쌓이면 다른 방법으로 공부할 수 있는데, 처음에는 계속 외워야 됩니다’ 했더니 굉장히 좌절하셨어요(웃음).

 

‘어떻게 하면 영어를 잘할 수 있나요?’라는 질문을 많이 받으시잖아요. 그럴 때 알려주시는 비법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처음에는 기초를 쌓는 훈련을 많이 해야 돼요. 그래서 제가 말씀드리는 건, 기본 1형식부터 5형식까지 문장을 완벽하게 외우면 기본적인 문장 구조가 체화될 거라는 거예요. 그 다음에는 쉬운 텍스트를 가지고 공부하시는 게 좋은데요. 자신이 하는 일과 관계가 있거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 책을 쉬운 것부터 읽으시는 거예요. 많이들 오해하시는 게, 영어 공부를 하려면 당장 <코리아헤럴드>나 <타임>를 읽어야 할 것처럼 생각하시는 건데요. 처음부터 그렇게 할 수는 없잖아요. 저도 뉴질랜드에 처음 갔을 때 길거리 표지판을 보고 단어 암기를 시작했어요. 맥도날드에서 쟁반에 깔려 있는 종이에 쓰여 있는 단어들도 외우고요. 그러면서 점차 단어 수준을 올렸거든요. 제가 볼 때는 그런 방법이 가장 좋은 것 같아요.

 

외국어는 오랜 기간 꾸준히 공부해야 하니까, 시작부터 부담이 되기도 해요.


짧은 시간에 실력을 늘리려면 하루 종일 하면 될 것 같아요. 10년 동안 하루 한 시간 공부하는 것보다 6개월 동안 하루에 6~7시간씩 공부하는 게 효과가 확실히 빠르거든요. 그냥 외국인 친구들과 편하게 대화할 수 있는 수준을 원하시면 다를 수 있겠지만, 그게 아니라 영어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으시다면 적어도 6개월에서 1년 정도는 하루 종일 영어를 공부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영어에도 신조어, 줄임말이 많죠?


그렇죠. 작년쯤에 현대 소설을 번역하는데 ‘R.I.P’이라는 단어가 나왔어요. ‘rest in peace’의 줄임말인데, 그때만 해도 그 의미를 몰랐어요. 그래서 그냥 ‘R.I.P’로 남겨놓은 채로 출판사에 초고를 보냈는데, 편집자 분께서 ‘rest in peace’라는 뜻인 것 같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때 반성을 했죠(웃음). 따로 공부가 필요하구나, 하고요. 한국어도 마찬가지이지만 요즘은 영어도 약자로 많이 쓰니까요.

 

번역가는 계속 공부해야 하는 것 같아요.


제 딸이 중3인데, 나중에 절대 번역가는 되지 않겠다고 해요(웃음). 엄마처럼 나이 들어서도 공부하고 싶지 않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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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는 숨어있는 존재


영어만큼이나 한국어에 대한 감각도 중요할 텐데요. 이런 감각은 어떻게 키우세요?


번역 초기에는 책도 많이 읽었고요. 문장을 유려하게 쓰기 위해서 드라마도 굉장히 많이 봤어요. 보면서 대사를 받아썼죠. 옛날 소설들을 보면 다 문어체로 되어있더라고요. 저는 그게 너무 지루해서 ‘나는 그렇게 번역하고 싶지 않아’라는 생각을 했어요. 묘사 같은 부분은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인물들의 말은 스크립트에 있는 것처럼 재밌게 쓰고 싶었거든요.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까 제가 구어체를 잘 쓸 수 있을지 걱정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아침드라마부터 시작해서 미니시리즈까지 다 보고 좋은 대사가 나올 때마다 받아썼죠. 그게 굉장히 도움이 많이 됐어요. 시를 읽는 것도 도움이 많이 됐고요.  
 
작품은 번역을 거치면서 재창작된다고 볼 수 있는데요. 그에 비해 번역가가 주목 받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아요.


극소수의 번역가를 빼놓고는 그렇죠. 그나마 조금 희망적인 건 옛날보다 독자들의 수준이 높아졌다는 거예요. 그만큼 번역에 대한 요구치도 높아졌지만, 동시에 번역을 음미하면서 읽는 분들도 많아지셨거든요. ‘믿고 보는 번역가’에 대한 이야기도 하시고요. 제가 번역한 작품이 출간되면 리뷰를 찾아서 보기도 하는데, 가끔 ‘박산호 번역가가 번역해서 믿고 본다’고 하시면 너무 뿌듯한 거예요. ‘나름 고생한 게 헛되지 않았구나’ 하는 느낌이 들죠.

 

‘숨은 조력자’처럼 여겨져서 힘들 때는 없으세요?


조력자도 아니고 그냥 숨은 사람, 얼굴 없는 사람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영화 <히든 피겨스 Hidden Figures>를 보면서 제목을 너무 잘 지었다고 생각했어요. ‘figure’가 숫자라는 의미도 있지만 사람이라는 뜻도 있잖아요. 사람과 숫자를 다루면서 거기에 숨어있는 걸 밝혀내는 이야기인데, 제목을 정말 잘 지은 것 같아요. 그리고 영화를 보면서 너무 공감했어요. 어쨌든 번역가도 숨어있는 존재잖아요. 작품이 좋으면 원작이 너무 뛰어나다고 하지, 번역을 잘했다고 말하지는 않잖아요(웃음). 반대로 책 내용이 안 좋으면 ‘번역이 이상해서 그런 걸 거야’라고 말할 때가 있죠(웃음). 『대리사회』를 읽었을 때도 번역가는 정말 대리기사와 똑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번역을 계속하시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번역의 즐거움’은 무엇일까요?


제일 첫 번째는 저의 생계 수단이라는 거죠. 아시겠지만 여자가 나이 들어서도 계속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잖아요. 번역은 체력이 허락하고 독자들과 출판사가 받아주는 한 계속 할 수 있어서 굉장히 좋은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책을 너무 좋아하기도 하고요. 번역을 하기 전에는 ‘내가 좋아하는 책을 실컷 읽으면서 돈도 받다니, 이런 환상적인 직업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을 해보니까 실제로 그런 것 같아요.

 

SNS에서 손목 통증을 호소하시는 걸 봤어요(웃음).


컴퓨터를 오래하는 일들이 다 그렇듯이 육체적인 직업병은 있죠(웃음). 이제 운동도 좀 해야 될 것 같고요. 같은 출판 업계에서도 번역가는 가리워진 존재 같으니까, 그런 게 조금 안타깝죠. 가장 중요한 건 인공번역이 나와서 떨고 있는 거예요(웃음).

 

컴퓨터가 단어의 뜻을 빠르게 찾을 수는 있겠죠. 하지만 많은 의미 중에서 딱 맞는 하나를 고를 수 있을까요?


실용서처럼 정해진 틀 안의 이야기는 번역기에게 넘어가고 문학이나 시, 철학 같은 경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그런데 실용서나 자기계발서 같은 비교적 쉬운 일을 할 때도 있어야 되잖아요. 사람이 항상 어렵고 까다롭고 힘든 일만 할 수는 없는데 ‘그건 기계가 하니까 너희들은 어려운 것만 해’라고 하면 정말 곤란해지는 거죠. 게다가 번역료가 그렇게 높지 않거든요. 책이 많이 팔리지 않는 상황이니까요. 들이는 노력이나 품에 비하면, 3D 업종이라고까지는 말할 수 없지만, 큰 대가를 얻을 수 있는 건 아니죠.

 

번역가들의 처우가 좋은 편은 아닌 것 같아요.


그래도 저는 굉장히 운이 좋은 극소수에 포함되어서 자리를 잡았지만, 자리를 잡기도 굉장히 힘들어요. 오히려 영상 번역 같은 경우는 단가가 계속 떨어지고 있어요. 제가 영상 번역으로 번역 일을 시작했는데, 그때가 15년 전이거든요. 그때보다도 단가가 더 낮아지고 있다고 해요. 물가는 계속 오르고 있는데 말이죠. 어떤 분들은 하루키처럼 다른 번역가들도 외국에 가서 일하는 줄 아시지만 그렇지 않아요(웃음). 그리고 저도 외국에 가서 일한 경우가 많았지만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더라고요. 다른 사람들은 놀러 왔는데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일하는 게 사실은 조금 슬퍼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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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는…


다독가이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취미도 일이 되면 쳐다보기 싫을 때가 있는데, 번역가님은 쉬실 때도 책을 읽으시더라고요. 


워낙 책 읽는 걸 좋아하다 보니까 번역 일을 하게 된 것도 있고요. 약간의 강박관념 같은 게 있는 것 같아요. 번역가들에게는 오역을 한다는 것도 큰 상처이지만, 문장이 자연스럽지 않거나 잘 안 읽힌다는 평가를 받아도 상처가 되거든요. 그래서 책을 읽기도 하죠. 책 읽기가 재밌기도 하지만 일의 연장선상에서 문장을 매끄럽게 하기 위해서 읽기도 하는 거예요. 저도 독자로서 외국 소설을 읽을 때 의아하게 생각하게 되는 부분이 있었거든요. 그때는 번역가가 된다는 생각을 전혀 안 하고 있을 때였는데, 번역을 시작한 후에는 ‘내 책을 읽는 독자들은 그렇게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문장에 치중하게 됐고, 그러려면 많이 읽는 수밖에 없죠.

 

일하는 시간과 그 외의 시간이 구별되지 않는 것 같기도 해요. 힘들지 않으세요?


그건 아니에요. 이 일이 밥벌이이기도 하고, 저도 아이가 있고 가장이다 보니까 다른 분들이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는 만큼 해야 되는 거죠. 그런 점에서 여자 번역가에 대한 편견이 있는데, 남편이 돈을 벌어오니까 적당히 일해도 되지 않냐는 거예요. 적당히 품위 유지비 정도만 벌면 되지 않냐고요. 그런데 저는 가장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아빠들이 일하는 만큼 하고 있는 거고, 그 정도의 책임감도 갖고 있어요. 오래 일하고 싶으니까요. 그렇지만 말씀하신 대로 번역을 끝내고 나서도 책을 읽으니까, 쉬는 것 같지 않은 느낌은 있어요.

 

머리를 비우고 싶으실 때는 어떻게 하세요?


영화를 보는데요. 문제는 영화를 봐도 ‘저거 오역인데?’ 싶은 순간이 있다는 거예요(웃음). 그래서 일본 영화를 봐요. 아무 생각 없이 즐기면서 볼 수 있거든요. 일본 드라마도 보고요.

 

『단어의 배신』에서 인문학적 지식을 얻는 즐거움도 컸습니다. 단어의 유래와 그 결과 파생된 의미를 따라가다 보면 역사와 문화까지 알게 되더라고요.


단어 하나를 보더라도 다양한 각도에서 보면 상상력이 커지는 것 같아요. ‘black’이라는 단어를 봤을 때도 ‘왜 보이콧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거지? 보이콧과 black은 어떤 이미지가 있지?’ 하고 생각할 수 있고 ‘왜 야한 잡지를 blue magazine이라고 했을까?’ 하고 생각하다 보면 상상의 여지가 많아지죠. 그러면서 생각이 깊어지고 넓어지고요. 그러지 않고 단어를 공식이라는 틀에 가두니까 제한적이고 틀에 박힌 사람이 되는 것 같아요. 단어의 변천사를 보면 재밌는 단어가 굉장히 많아요.

 

번역가를 꿈꾸는 분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는 책이 될 것 같아요. 저자님께도 그런 책이 있었나요?


있어요. 『번역의 탄생』이라고, 저희 번역가들에게는 성경과 같은 책이에요. 제가 학생들한테 항상 추천하는 책이기도 하고요. 예비 번역가들 사이에서는 이미 너무 유명한 책이에요. 사실 번역에 대한 책이 거의 없거든요. 별로 길잡이가 없었죠. 그런데 『번역의 탄생』이 나와서 다들 보면서 큰 충격을 받았고 굉장히 좋은 책이라고 이야기해요. 실제로도 도움이 많이 됐고요. 번역에 대한 이론뿐만 아니라 실제적으로 어떻게 해야 되는지 너무 정리를 잘 해준 책이에요.

 

번역하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건 무엇인가요?


두 가지인 것 같아요. 하나는 원작자가 원하는 의도를 잘 옮기는 거고요. 또 하나는 의도를 잘 옮기되 독자가 즐겁게 읽을 수 있도록 번역하는 거예요. 그게 저의 모토예요.


 

 

단어의 배신박산호 저 | 유유
우리는 처음 세상에 태어나서 낯선 단어를 어떻게 배우고 익혔을까? 한 입 깨물면 아삭 소리가 나는 빨갛고 동그란 것을 가리키며 누군가 ‘사과’라고 알려 주었다. 우리는 이렇게 단어를 일대일 공식처럼 외우다가 점차 다채로운 말들의 풍경과 소리를 채집하면서 단어의 맛을 알아 간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로다운 30, “범접할 수 없는 연주력으로 평가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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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음으로 느린 템포의 혼을 흔드는 듯한 블루스'라는 뜻에서부터 로다운 30는 온전히 블루스를 표방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음악은 비단 하나의 장르로 치부하기엔 담겨진 것이 차고 넘친다. 블루스가 로큰롤을 낳고, 펑크(Funk)와 소울을 창조하며 일궈왔던 대중음악의 역사의 흐름을 집약해 담아냈다. 시대의 흐름과 교류, 영향의 연결고리를 무작위로 오가며 '하나의 결'을 취해냈다. 한국 대중음악의 명반으로 자리한 두 번째 정규앨범 <1>이후 5년 만에 발표한 < B >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스타일의 집합체다. 그들은 다시금 < B >를 마스터피스로 새겼다.

 

이즘에서 몇 차례 진행되었던 리더 윤병주와의 단독 인터뷰와 다르게 그의 곁에서 오랜 시간 함께 연주한 베이시스트 김락건과 새롭게 영입된 드러머 최병준과 함께한 시간이었다. 멤버들은 늘 그렇듯 모든 면에 세심하고 진중한 태도로 인터뷰에 임하는 모습이었다.

 

지난 앨범인 <1>가 팬들과 평단의 엄청난 호평 속에서 꾸준히 사랑받았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 작품에 임하는 부담감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지난 앨범과 비교해 이번 앨범에서 따로 변화를 준 부분이나 특히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

 

윤병주 : 곡들은 이전 <1>앨범 나온 이후로 조금씩 생각을 했는데, 크게 무언가 달라졌다기보다는 드럼이 최병준으로 바뀌면서 이 친구하고 더 잘 맞게 할 수 있는 방향으로 편곡에 조금 신경을 썼다. 편곡이 많이 바뀐 곡도 있을 테고, 최병준이 들어온 후에 만든 곡들도 있고, 자연스럽게 변화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새로운 드러머 최병준씨의 가입 계기가 무엇인가.

 

윤병주 : 새로운 드러머를 구하려고 할 때, 이번에는 기존에 알고 있던 사람들 외에 새로운 얼굴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다. 우연히 페이스북에서 클럽 에반스(Club Evans)에서의 연주 영상을 보았다. 그 1분짜리 동영상 속에서의 재즈 드러머 연주가 굉장했다. 펑키하고 특유의 그루브에 매료되었달까. 수소문 끝에 지인을 통해 그 드러머(최병준)에게 록밴드를 할 의향이 있는지 물어봐 달란 부탁을 했고, 연락처를 받아 만나기로 했다. 그래서 브이 홀 위층에 있는 카페에서 처음 만나서 우리 CD를 주고 '듣고 생각이 있다면 같이 하자' 제안했다. '좋다'라는 답변을 받고 첫 합주를 하고 함께하게 되었다. 그때가 2015년 3월이었다.

 

최병준씨에게 묻고 싶다. 사실 윤병주씨, 김락건씨와의 나이 차이가 20살 가량 나는 삼촌뻘이다. 음악적인 부분을 떠나서 가입 제의가 왔을 때 부담스럽거나 하지는 않았나? (최병준-1992년생, 윤병주-1971년생, 김락건-1972년생)

 

최병준 : 처음에는 나이를 몰랐는데, 나이를 알게 되고 나서는 '큰일 났다'는 생각을 했다. 일단 합주는 하기로 했으니 그 이후에 안 하겠다는 말까지 생각하고 왔다. 그런데 막상 합주를 해 보니 형들의 연주가 너무 좋더라. 그동안 들어보지 못한 소리였고, 형들이 이렇게 멋진 소리를 가지고 있구나 싶었다. 그리고 나이를 떠나 형들이 오픈 마인드라서 친구 같기도 하고 친한 형 느낌도 나고 해서. 물론 첫째 이유는 로다운 30의 연주와 깊이 있는 음악이었다.

 

반대로 물어보면 멤버들에겐 조카뻘 되는 멤버를 영입한 것인데 의사소통이라던가 세대 차이 같은 쪽에서 부담감이 있었을 수 있겠다. 드러머의 나이가 고려 대상은 아니었는지.

 

윤병주 : 병준이도 그런 것 같고 나도 어릴 때부터 음악을 같이 하는 데 있어서는 나이 차이가 별로 상관이 없다. 나이를 의식하면서 대하지도 않고, 내 밑이면 락건이나 병준이나 비슷하고, 내 위면 한두 살 형이나 열 살 넘는 형이나 크게 다르다고 생각은 하지 않으니까 불편함은 없다.

 

김락건 : 마찬가지다. 로다운 30로 오래 활동하면서 같이 공연하는 수 많은 밴드의 친구들이 병준이랑 나잇대가 비슷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음악적으로 대화한다거나 공연 후 뒤풀이 자리에서 같이 어울리며 시간을 보내는 일이 익숙하다. 부담감이나 그런 것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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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윤병주씨 개인 SNS에서 최병준씨 가세 이후 지난 2년 동안 밴드는 성장해 왔다고 언급한바 있는데, 드러머의 교체로 밴드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

 

윤병주 : 어차피 새 멤버가 들어오면 그때부터 시작이라 생각한다. 그때부터 로다운 30은 새로운 성장을 했을 것이다. 이를테면 첫 합주 때랑 내일 공연과는 굉장히 차이가 클 것 아닌가. 우리가 느끼는 것일 수도, 남들이 느끼는 것일 수도 있지만. 병준이가 '에반스 잼 데이'를 오래 해서 곡 연주에 있어 즉흥적으로 맞추거나 연주 눈치가 굉장히 빠르다. 그래서 병준이 들어온 이후에는 합주를 전보다 덜 해도 괜찮은 퀄리티의 공연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번 앨범 타이틀 < B >는 무슨 의미인가?

 

윤병주 : 저번 앨범이 1이어서 이번에는 2나 3을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B가 두 번째 알파벳이고, '병'준이와 첫 앨범이고, 붕가붕가 레코드에서의 첫 음반이기도 하고, 그 이상의 의미는 끼워 맞춘다. 블루스 락이니까 B... 흑인음악이니까 B... 그리고 원래는 작년에 발매할 예정이었다. 병신년에 발매하려고 했던 의도도 포함이다.

 

언급처럼 소속사를 붕가붕가로 옮겼다. 계기가 있었나? 새로운 식구들과의 합은 잘 맞는지? 대표인 고건혁씨는 윤병주씨의 엄청난 팬으로 알고 있는데, 대우가 남다를 것 같다.

 

윤병주 : 2014년 전 레이블에서 나왔을 땐 우리끼리 하려고 했다. 앨범도 우리가 돈 모아서 제작한다든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몇 달 후에 붕가붕가 레코드의 곰사장이 만나자 하더라. '레이블 이름이 창피하지만 않다면 같이 하는 게 어떻겠는가?'라고 제안을 해서 흔쾌히 같이하게 되었다. 평소에도 소속된 아티스트들과도 친했고 <블루스 더, Blues>(2012)라는 컴필레이션 앨범에 참여했었고. 그때가 2014년 말이었던 것 같다.

 

과거 인터뷰에서 앨범 <1>은 “이건 힙합 음반이다”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이번 〈B〉도 같은 연장 선상에 이라는 기분이 드는데 오히려 더 힙합스러운 기분이 든다.

 

윤병주 : 이게 무슨 힙합인가 록 음반이지. (웃음) 내가 만든 '내 앨범'에는 '내가 자주 듣는 음악'의 요소가 담겨 있는 것 같은데, 그런 관점에서도 한번 봐 달라는 의미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을 거다. 기본적으로 록 음악이지만 여러 각도에서 들어 보면 또 재밌는 걸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했던 거였다. 보통 밴드 음악 들으면서 그렇게까지 생각하고 듣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기도 하고.

 

작품에는 재미있는 장치들이 있다. 특히 이번 작품에서 「일교차」와 「가파른길」에서 생뚱맞게도 에어혼이 등장한다. 최근 트랜드라 할 EDM에나 90년대 초반 힙합 음악에서 들을 수 있던 요소라고 생각하는데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인가?

 

윤병주 : 첫 곡 「일교차」 에서는 그 부분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아무것도 안 들어간 「일교차」 러프믹스를 듣는데 '여기에 에어혼 들어갔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어서 넣었다. 하나 넣고 나니까 「가파른길」 앞부분에도 생각이 들어 넣었다. 특별한 의도는 없다. 청자가 각자 다르게 받아들이는 것이 음악의 재미나 맛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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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 자료에 따르면 나카무라 소이치로씨와의 일화가 재미있는데, '알아서 해주세요'라는 요청은 사실 엄청난 신뢰에서 나오는 것일 테다. 이런 신뢰에 관련된 일화 같은 것이 있나?

 

윤병주 : 사실 그동안 일본 록 밴드 음악을 수차례 접하긴 했는데 그렇게 마음에 와닿지는 않았다. 그런데 2000년대 초중반 유라유라 제국(ゆらゆら帝國 유라유라 데이코쿠)이라는 밴드를 알게 되어 좋아했다. 2008년인가 김창완 밴드가 첫 앨범을 녹음하는데 그때 그 밴드 멤버였던 하세가와(김양평)씨와 녹음 방식에 관해 얘기를 했다. 그때 유라유라 제국의 음반을 녹음한 나카무라 씨와 같이 하면 재밌겠다는 얘기가 오갔었다.

 

이후 김창완 밴드의 첫 EP <The Happiest>를 나카무라가 한국에 와서 녹음하게 되어 그때 인연이 생겼고, <1>앨범부터 그분께 맡겼다. 그분은 객관적인 기준으로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자신만의 세계가 있고 믹스를 할 때 주관적이고 감성적으로 접근한다. 전체적인 밸런스도 밸런스지만 이 곡에선 이게 포인트다 싶으면 그 부분을 극대화시키고 다른 부분을 거기 맞추는 식인데 그게 나랑 생각이 맞는다. 따로 말을 안 해도 결과물을 보내주면 '역시'라는 말이 나온다. 만약 내 생각과 다른 결과물이 오더라도 그것조차 그 사람의 주관이 딱 들리는 게 재미있다. 평범하고 밸런스 좋은 믹스보다는, 내가 내 음악을 들을 때 그런 부분이 더욱 재밌게 다가온다.

 

하세가와 요헤이, 김양평씨께서 라디오스타에서 신윤철씨와 한국 최고의 기타리스트로 언급한 적이 있다. 방송을 보면서 굉장히 반가웠었는데, 동의 내지는. 이 부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본인이 가장 좋아하거나 아끼는 한국 연주가가 있는가?

 

윤병주 : 글쎄 잘 모르겠다.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그냥 우리와 함께하는 연주자 모두를 좋아하는 것으로 하겠다. (웃음) 사실 이번 앨범 발매 공연에 백업 기타리스트로 초대된 서건호라는 친구를 소개하고 싶다. 로다운 30 라이브는 보통 세 명이 어떻게든 해결하곤 했는데 〈 B 〉앨범은 3인조 라이브로 소화하기 어려운 트랙들이 많다. 그런데 앨범 발매 공연이라든지 록페스티벌 같은 특별한 공연에는 세컨 기타나 건반 주자와 함께 색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생각이 있다.

 

특히 앨범 발매 공연은 앨범에 들어간 느낌이랑 똑같이 하고 싶어서 기타와 건반이 있으면 좋겠다 싶었다. 서건호라는 친구는 어린 나이에 뚝배기들(The Bowls)이라는 밴드의 리더로 활동을 하며 EP나 싱글도 몇 장 내고, 라이브 공연하며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이 친구의 연주력은 차치하더라도 밴드에서 본인이 리더가 아니었을 때 어떻게 하면 팀에 적절히 보탬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역시 든든하게 로다운 30을 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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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트랙은 마지막 「그대가없었다면」이다. 곡에 대한 무드가 흑인 소울, 알앤비 음악에 가깝게 느껴진다. 특히 전에 없던 가창력이 두드러지는 전개, 후반부 솔로 연주가 백미라고 생각한다. 보컬에 대한 자유도라고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후주의 연주는 차치하더라도 앨범으로 따지더라도 보컬에 대한 이야기가 많을 것 같은데. 어떤가? 곡에 관해 이야기 한다면?

 

윤병주 : 내가 부르기 편하고, 잘 어울리고, 노래로 표현할 수 있는 한계는 어디인지 스스로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그 안에서 최대한 노력하는 편이다. 전보다 좋아졌다면 그냥 전보다 더 많이 했기 때문에 나아진 것일 테고, 기타나 보컬이나 다 그런 것 같다. 곡에 맞춰서 하되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이 어느 만큼인가 그 정도만 생각한다.

 

「저빛속에」에서 인트로에 등장하는 나레이션이 예사롭지 않다. 시절이 시절인 만큼 약간의 정치적인 색을 드러내는 것은 아닐 거라고 생각되지만, 꼭 물어보고 싶었다. 내용만 듣기로는 그냥 잘살아 보자라는 메시지인 것 같기도 하고. 어떤 의도인가?

 

윤병주 : 그 곡은 이번 앨범 녹음 초반(2015)에 만든 곡이다. 녹음은 그때 마쳤지만 그 목소리를 삽입한 건 2016년 말에서 2017년 초 정도였다. '저빛속에'의 가사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면서 만들었다. 그 곡이 그리는 상황은 나라의 상황일수도, 정치의 상황일수도, 인디 씬의 상황일 수도, 개인적인 상황일수도 있다.

 

'개인적인 상황'에 관련해서 병준이에게 했던 이야기가 있다. 밴드에 합류해 2년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병준이 입장에서는 록페스티벌 무대도 처음 서보고 처음으로 대중음악상도 받아 보고 여러 좋은 일이 있었다. 그때 앞으로 이게 다일 수도 그리고 아무것도 없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조금 실망하는 눈치였다. (웃음) 그래도 함께 노력은 하자라는 말로 마무리 했었다.

 

비슷한 케이스인데 오아시스(Oasis)의 <Dig Out Your Soul>에 수록된 리암 갤리거 작품인 「I'm outta time」에 존 레논의 목소리를 삽입했을 때 오노 요코가 항의를 한 적이 있다고 하던데, 그런 부담은 없었나.

 

윤병주 : 없었다. 누가 항의하면 오히려 좋은 거고. 항의할 만한 사람한테까지 이 음악이 들려주면 성공이지 싶다. (웃음)

 

로다운 30의 팬이라면 멤버 각자의 프로젝트에도 관심이 많다.

 

김락건 : 까나리소다 멤버들과는 종종 합주하고 곡 작업도 하고 가끔 클럽 공연도 하고 그렇게 하고 있다, 아직은 말씀드릴만한 계획은 없다.

 

최병준 : 덕스트릿이 5월 말에 정규 앨범이 나온다. 이성찬그룹(LSG)이라고 기타리스트만 다른 밴드가 있는데 3집 정규 녹음을 하고 있고, 더 더블유 앨범도 있고. 요즘은 닥스킴(Docskim) 형과 새로 만든 키이스방이라는 팀이 있는데 그 팀은 참 특이하다. 건반 3명에 기타, 드럼 이런 조합인데 활동 준비 중이다.

 

윤병주 : 에로디는 앨범이라도 나오면 말씀드리겠다. 천천히 조금씩 준비하고 있다.

 

최병준씨의 연주를 들어보면 재즈와 록 음악을 넘나드는 정력적인 연주가 압권이다. 많은 팀에 소속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는가?

 

최병준 : 연주가 좋고 같이 하는 사람들이 좋으면 팀을 하는데, 사실 다 했다면 20개 정도 되었겠다. 줄이고 줄여서 이 정도다. 어쨌든 연주 좋고 사람 좋으면 같이 하는 것 같다.

 

윤병주 : 개인적으로 병준이랑 같이 하게 되면서 재즈 연주하는 친구들과 교류가 생긴 것도 좋은 것 같다. 로다운 30은 록밴드지만 언제나 즉흥적인 프리한 애드립 연주를 즐기는 밴드고, 그런 부분에서 이런 친구들이 하는 거랑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많다. 재즈 신에서 록밴드 생각하면 '정해진 것만 한다'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반대로 록에서 재즈 신에서 바라보면 실용음악과에서 '배운 것만 한다'라는 선입견이나 오해가 있다. 우리라도 그런 교류가 생겨서 서로 즐겁게 연주할 수 있고 그렇게 되는 모습이 좋다.

 

김락건씨의 2014년 취향회수 프로젝트에서 하신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스티비 레이 본의 음악을 들려주시며 위대한 기타리스트의 플레이를 돕는 조력자로 본인의 위치를 이야기 해주셨는데, 기타리스트이자 리더인 윤병주씨와의 활동에 관해서 이야기 듣고 싶다.

 

김락건 : 같이 밴드를 하고 있지만 어쨌든 나 역시 음악적으로 병주 형의 팬이기에 밴드를 같이 하게 되어 영광이라는 생각이 늘 있다. 로다운 30의 음악은 대부분 병주 형이 작곡하고 저는 베이스 라인을 옆에서 만드는 등 보완을 하는 위치에 있는 게 가끔은 내게 어울린다는 생각이다. 나 자신이 작곡한다는 면에선 부족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음악을 오래 하고 있지만 그건 연주를 하고 있을 때 그 순간이 즐겁고 그런 순간 때문에 계속하는 것이다. 평소에도 스티비 레이 본(Stevie Ray Vaughan)을 좋아해서 연주 영상을 가끔 보는데, 그의 밴드 더블 트러블(Double Trouble)의 베이시스트 토미 섀넌(Tommy Shannon)이 무대에서 스티비 레이 본의 기타솔로를 마치 관객처럼 감동하며 감상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게 떠올라서 한 이야기다.

 

윤병주씨와 2번의 인터뷰를 진행했지만 이즘 공식 질문을 드린적은 없는 것 같다. 음악가나 음악 팬 입장에서 가장 절대적인 아티스트, 혹은 앨범을 뽑자면?

 

윤병주 : 생각나는 것이 너무 많다. 2000년 이후로 한 장만 뽑자면 예 예 예스(Yeah Yeah Yeahs)의 1집 <Fever To Tell>(2003). 그리고 퍼퓸(Perfume).

 

김락건 : 올 맨 브라더스 밴드(The Allman Brothers Band)의 <At Fillmore East>(1971), 베이시스트이다 보니 연주자로서는 잭 브루스(Jack Bruce), 존 폴 존스(John Paul Jones), 존 엔트위슬(John Entwistle)를 좋아한다.

 

최병준 : 로버트 글래스퍼 익스페리먼트(Robert Glasper Experiment)를 좋아한다. 존경하는 드러머는 너무 많지만, 4명만 꼽자면 존 본햄(John Bonham), 비니 콜라우타(Vinnie Colaiuta), 크리스 데이브(Chris Dave), 데니스 챔버스(Dennis Chambers)다.

 

로다운 30은 사람들에게 어떤 밴드로 기억되고 싶은가?

 

최병준 : 아직 그런 이야기를 할 정도로 로다운 30 활동을 한 건 아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범접할 수 없는 연주력을 가진 밴드였다”라는 평가는 꼭 받고 싶다.

 

김락건 : 우리의 음악을 들었을 때 좋아해 주시면 감사 할 뿐이다. 항상 열심히 활동하고 있는 현재진행형 밴드로 기억되고 싶다.

 

윤병주 : 역시 크게 다르지는 않다. 우리나라에서만의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보통은 어느 정도 활동하다가 나이가 어느 정도 이상 되면 현재의 활동보다는 과거에 머문 경우가 있다. 쉽게 이야기해서 '옛날에 이런 음악을 했던 사람'이 보통의 포지션이다. 하지만 내가 영향을 받고 좋아해 온 뮤지션은 대부분 항상 현재 진행형이다. 현재진행형, 로다운 30은 그런 기억으로 남고 싶다.

 

인터뷰 : 신현태, 조해람
정리 : 신현태
사진 : 붕가붕가레코드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홍석천, “어차피 욕먹을 거 좀 더 놀 걸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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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커밍아웃 이후 17년이 지났다. 당시 서른 살이었던 배우 홍석천은 고정 출연하던 6개 방송 프로그램에서 퇴출당하고 누구도 불러주지 않은 채 3년여를 보냈다. 처음 창업한 가게는 실패했고 모아둔 돈까지 모두 썼다. 삶이 바닥을 친 기분이었다.


시간이 지나 홍석천은 마흔일곱이 되었고 이태원에서 내로라하는 음식점 사장님이, 쉴 틈 없는 스케줄을 소화하는 방송인이, 젊은 세대에게 꿈을 말하는 강연자가 되었다. 세상은 느리지만 꾸준히 변했다. 『찬란하게 47년』은 ‘아름다운 게이, 홍석천 지랄발광 에세이’라는 부제를 달고 그동안 홍석천이라는 사람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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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책은 조금 더 쉬웠다


사적인 내용을 쓰는 데 부담은 없었나.

 

내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부담보다 주변 사람들과 가족 이야기를 하는 게 부담이 됐다. 안 그래도 책 내고 누나들이 내가 그렇게 힘든 마음인지 몰랐었다고 문자를 보내왔다. 사람이 말과 말로 하면 싸움이 나서 마음속에 있는 말을 제대로 못 할 때가 많은데, 글로 읽으니까 내가 그런 상태였는지 알았다고 하더라.


전 애인 이야기도 나왔는데 괜찮나.


이름은 가렸으니까 괜찮다. 사실 책에 나온 것보다 더 깊은 관계도 있었는데 아직은 조심스럽다. (웃음) 조금 더 나이가 들면 쓸 수 있지 않을까.


이제까지 책을 두 번 냈다. 첫 번째는 커밍아웃 직후에 낸 『나는 아직도 금지된 사랑에 가슴 설렌다』, 두 번째는 2008년에 낸 『나만의 레스토랑을 디자인하라』다. 이번 책은 두 책과 인생 전체를 아우르는 느낌이다.


첫 책은 커밍아웃 이후에 썼다. 당시만 해도 게이라는 단어를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터부시되는 분위기가 있어서 자체검열하고, 또 2차 검열하고, 나온 사람의 이름이랑 상황도 다 바꾸면서 썼다. 두 번째는 비즈니스를 하면서 창업할 때 조언을 담은 책이었는데, 사업에 대해 아직 내공이 덜 쌓였을 때 내서 아쉬움이 있다. 지금은 레스토랑 운영 15년째에 커밍아웃은 17년째니 무슨 이야기를 해도 될 정도의 공력이 쌓인 거지. 그래서 이번 책은 조금 더 쉬웠다.


홍석천이 어떻게 느끼는지, 홍석천의 습관은 무엇인지 등 사소한 이야기가 담겼다.


연예계 생활이 25년, 나이도 50 가까이 됐는데 이제 와서 멋있고 예쁘게 나를 포장하는 게 웃긴 것 같았다. 있는 그대로 이야기해 보자는 생각이었다. 내 이미지가 되게 밝고 쾌활하고 늘 해피 바이러스라고 이야기하는 데 혼자 있으면 피곤하고 지치고 우울한 성격이 나온다. 그래서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자기가 봤을 때 홍석천은 늘 행복한 것 같은데 의외라고 이야기했다.


후배들에게 혹은 아래 세대에게 하는 말도 많았는데.


인권, 성공하는 노하우, 청년들 창업 다양한 주제로 강연을 많이 하는데, 내 스토리를 끌어내면 사람들이 재밌어하더라. 누가 나를 좋아하고 누가 나를 싫어하는지 모르지 않나. 강연하면서 사람들과 직접 부딪치고 반응을 보면서 누가 나를 좋아하는지 알았다. 내 솔직한 이야기를 풀었을 때 사람들 반응이 너무 재미있었고, 어떤 친구들은 나를 롤모델로 삼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서 더 나이 먹기 전에 책을 쓰고 더 꺼내놓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년에게 ‘스스로 변화도 해보지 않은 상태에서 헬조선이라고 명명’(184쪽)하고 가만히 있기보다 바꿔보라고 조언했다.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봤을 때 젊은 세대가 너무 움츠러들어 있다고 느끼나?


꿈을 꾸는 자들이 꿈을 다 이루지는 않는다. 다 이룰 수 없지만 노력하는 과정이 행복하고, 노력하면서 배우는 게 있다. 누군가 나보다 앞선 사람과 비교해서 불행해지는 거다. 비교하지 않는 방법을 배워서 행복한 거고, 그게 행복에 가까워지는 마음이라는 걸 이야기하고 싶은 거다.


행복을 ‘주변 사람들과 가족들까지 연결돼야 느껴지는 감정’이라고 했는데, 홍석천에게 행복은 무엇인가.


커밍아웃했을 당시 행복을 꿈꾸는 게 사치라는 걸 이미 알았다. 행복하게 보이는 삶을 선택할 수 있는 사람이 자기 자신을 찾겠다고 온 가족을 흔들어놓는 이야기를 해버린 거지. 사실은 되게 이기적인 행동이었다. 하지만 결국 나 자신의 행복을 찾는 과정이었고, 가족도 진정으로 행복한 게 뭔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 주변 사람들은 누가 있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 애인이 될 수도 있고 오랫동안 잘 지낸 친구가 될 수도 있고, 나와 같이 가게를 하는 매니저 직원도 있다. 예전에는 어느 때든 무언가를 잃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구두쇠처럼 나한테도 안 쓰고 남한테는 기본만 쓰고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이렇게 아끼고 살아봐야 한 몸 없어지면 끝이라는 생각이 들어 아끼는 동생들 데리고 해외여행도 다녀왔다. 안 해봤던 행동인데 상대가 너무 행복해하는 걸 보면서 나도 행복하더라. 물론 머릿속에서는 계산기가 돌아가지만 유쾌한 경험이었다. 이런 것들이 쌓이면서 내 인생이 조금 더 풍요로워진 느낌이 든다.


그렇게 퍼주다가 상처받은 이야기도 책에 나와있다. (웃음)


사람한테 상처받은 건 사람으로 치유가 된다. 내가 더는 누구에게 마음을 안 주고 진심을 안 보여주겠다고 해도 또 누군가를 만나면 터놓게 된다. 나는 기억력이 부족한 게 장점이다. 일주일 전 있었던 일을 잊는 놀라운 기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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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는 책임지겠다는 의지


책 끝에 레시피를 소개했다. 추천한 메뉴 선정 기준이 있었나.


처음에는 음식에 얽힌 에피소드를 소개하려고 하다가 구성이 애매해서 레시피북으로 따로 떼어냈다. 좋아하는 사람을 집으로 초대하고 그럴싸하게 요리를 만들어서 ‘오, 이런 능력이?’ 하면서 한 스텝 더 나아가라는 뜻이었다. (웃음)


힘들 때 요리가 위안이 되었다고 했는데, 요리를 자주 하는 편인가?


요새는 너무 바빠서 잘 못 한다. 나는 주로 간단한 접근법으로 요리한다. 냉장고에 있는 걸로 간단하게 만들어서 이야기 나눠가며 맛있게 먹는 게 좋다.


맨 처음 개업한 ‘아워 플레이스’는 그렇게 성공하진 못했다. 식당이 자기 길이 아니라고 생각한 적은 없었나?


좌절은 했지. 2002년에 식당을 내면서 이태원에서는 옥상 테라스가 가능할 줄 알았다. 외국 루프탑바를 가서 옥상이 이렇게 좋은 곳이구나 느끼고 내가 만들겠다고 했는데 망하기 일보 직전까지 갔다. 하지만 자존심은 있어서, 커밍아웃하고 바닥까지 갔는데 마지막으로 새로 시작한 레스토랑마저 망가지면 인터넷으로 호모 새끼라고 욕했던 모든 나의 적들에게 승리의 기쁨을 안겨줄 것 같았다. 그래서 애들 월급 주고 손해 메꾸려고 나이트클럽 DJ를 뛰었다. 그거 아니었으면 정말 망했을 거다.

 

지금은 운영하는 가게는 몇 개인가?


10개다. 오늘 대구 현대백화점 푸드코트에 하나 더 열었다.


식당마다 메뉴나 스타일을 다 다르게 하나?


요즘은 선택과 집중을 하려고 한다. 내가 제일 좋아하고 제일 많이 아는 게 태국 음식이다. 예전에는 이태원에 나 말고도 태국 음식점 하는 사람들 많아서 다른 걸 해야 하나보다 생각하고 이것저것 해 봤는데 10개 중에 서너 개는 계속 적자였다. 나중에 나보다 훨씬 뒤에 시작한 후배들이 더 잘하길래 봤더니 집중을 하더라. 나쁜 말로 하면 할 줄 아는 게 그것밖에 없는 거고 좋은 말로 하면 집중하는 거다. 그래서 나도 태국 음식에 집중하기로 했다.


백화점 입점 등 새로운 시도는 조금씩 하는 것 같은데.


백화점 레스토랑은 나랑 안 맞다. 대중들이 편하게 와서 먹고 가는 지하 푸드코트가 내 성격에 맞다. 다른 일에서도 편하게 나한테 다가왔다가 일 다 보면 가고, 내가 필요하면 또 왔다가 쏟아놓고 가면 된다.


레스토랑 이름이 모두 ‘마이’로 시작한다. 의미가 있나?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스티브 잡스가 아이 시리즈를 한 걸 보고 따라 했다. 뉴욕 친구한테 아이폰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더니 ‘내 폰’이라는 뜻이라고 하더라. 뉴욕 힙한 애들은 ‘마이’라고 안 하고 ‘아이’라고 한다는 거다. 그럼 내가 ‘마이’를 써야 되겠다 싶었다. 처음 낸 레스토랑은 ‘아워 플레이스’였지만 한국어 발음으로 ‘아워’는 어려운데 ‘마이’는 쉬우니까. 이후로 ‘마이’만 붙이면 홍석천 가게라고 사람들한테 인식시키고 싶었다. 책임감이다. 홍석천 브랜드면 실망하지 않는다는 책임을 스스로 지고 싶었다.


사장님이지만 세입자 시절도 있었다. 네이버TV <경리단길 홍사장>에서 건물도 짓고, 지금은 건물주가 되었다. 기분이 어떤가?


여기(‘마이 스카이’)가 그때 지은 건물이다. 지을 때 거의 매일 공사 끝나면 이 앞에 와서 혼자 조명 키고 밤에 기둥 쓰다듬었다. (웃음) 세상 다 가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지금 1층부터 4층까지 통으로 세를 줬는데 세입자 마음을 아니까 제대로 월세를 못 받겠더라. 사실 더 받을 수 있는데 패션 하는 젊은 친구들이라 자기네들이 낼 수 있는 만큼만 받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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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바뀌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생각도 바뀐다


커밍아웃 이후와 달리 지금은 방송 프로그램이 많이 늘었다. 주로 동성애 코드나 음식점 사장으로 소비되는데, 연기자로서의 홍석천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 것 같다.


한때는 그런 마음이 강했다. 그래서 47년이라는 게 나한테는 중요하다. 이제는 여유로워지고 지혜로워지고 남의 말도 들을 수 있게 됐다. 사람들이 나를 탑게이로 부르든, 게이 커뮤니티의 유일한 셀럽으로 인지하든, 이태원 레스토랑의 상징적인 인물이 됐든 더는 조급해하지 않기로 했다. 이렇게 지내다 보면 좋은 드라마 작품을 받을 수도 있는 거고, 그럼 연기자로 설 날도 올 거다. 죽는 날까지 계속 새로운 걸 기대하고 도전하면서 실패도 해 보는 거지 뭐.


단역으로는 꽤 많이 출연했다.


이제까지 나를 관리해주는 매니지먼트 회사가 없어서 그런가 보다. 누가 나한테 이렇게 포지셔닝하고, 그 역할은 하고 이건 하지 말라는 식으로 관리했으면 안 그랬을 수도 있는데, 당시에는 나를 불러주는 사람이 너무 고마웠다. 그래서 까메오 한 씬이라도 불러주면 가고, 새벽 두 시에 어디냐고, 보고 싶다고 부르면 집에 들어가는 길이어도 다시 돌아갔다. 이제는 행사장 같은 곳에서 누가 불러주면 내가 이걸 꼭 해야 하는지 그쪽에 물어본다. 나를 부르는 이유가 내 마음을 움직이면 하겠다고 한다.


연기자, 음식점 사장, 게이로서의 정체성 중에서 지금 홍석천에게 가장 큰 건 무엇인가?


나는 여전히 방송이 즐겁고 연기할 때가 제일 행복하다. 사람들도 방송 나오는 홍석천을 친근하게 여기는 것 같고. 홍석천이 사업을 한다는 건 요새 들어서야 조금씩 알려지는 것 같다.


17년 전 한 커밍아웃을 계속해서 말해야 하는 게 지치진 않나?


지친다. 하지만 해가 지날 때마다 내 생각과 느낌이 다르다. 그리고 나만 바뀌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생각도 바뀐다는 게 중요하다. 옛날 같았으면 대한민국은 내가 이렇게까지 성공할 수 없는 나라다. 어쨌든 이 정도까지 할 수 있는 건 표현은 안 하지만 어느 정도 내가 열심히 살았으니 인정해주겠다는 사람이 늘었다는 거다. 그게 내 개인 투쟁의 목표다. 가게를 브랜딩하듯이 개인 홍석천이라는 브랜드도 만드는 거다. 그래야 이태원에서 아무 생각 없이 놀고 있는 10대, 20대 아기 게이들이 홍석천이라는 꼰대를 보고 나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지 않겠나. 생각해보면 나도 20대 초반에는 노는 게 재밌고 아무 생각 없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인권에 대해서도 고민할 수 있고, 다른 사람과 정체성이 달라도 생활은 같이할 수 있다는 걸 당연시하는 날이 올 거다. 박근혜 정권이 언제 끝날지 몰랐는데 새로운 세상이 오지 않았나.


LGBT 이슈에 민감한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정권이 그렇게 희망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수 있다. 대선 토론회에서 ‘동성애를 반대한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고. 이번 정권을 희망적으로 보는가?


되게 희망적으로 본다. 토론회는 그렇게 넘어가면 된다. 동성애자를 불지옥에 태워 죽이라는 소리가 아니었지 않나. 동성애자든 일용노동자든 다른 사람을 신경 쓰는 것과 똑같이 우리의 목소리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으면 그걸로 됐다. 나는 그 가능성을 봤다.


대선 당시 안희정 지사 지지 선언을 했었는데.


지지 선언 하려고 간 게 아니라 고등학교 선배라서 출정식에 와달라고 했다. 내가 다닌 고등학교에서 송중기, 홍석천, 안희정이 3대 유명인인데 안희정 형님이 제일 인지도가 떨어지니 분발하라고만 말했다.


표 계산이 안 된다면 (성소수자 지지 발언을) 부정해도 된다는 발언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한테도 똑같다. 표 계산해서 불리하면 부정하셔도 된다. 그분이 동성애에 관해서 잘 모른다. 관심을 가질 기회도 없었고, 동성애자를 만날 기회도 없었다. 그냥 인생에서 잘 모르는 분야인 거다. 그럼 이제부터 알려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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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점짜리 기독교인


커밍아웃한 유명인 자체가 없다. 아직까지 유명인 중에서는 유일한 오픈리 게이인데, 더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나?


예전에는 혼자가 외롭고 힘들어서 그런 바람이 있었다. 하지만 17년 혼자 있다 보니까 이제는 기대가 별로 없다. 커밍아웃하라고 말은 안 한다. 그건 각자 판단이니까, 커밍아웃하라고 다그치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윗사람들이 다 없어지고 내가 제일 윗사람이 되었을 때, 아예 새로운 세대가 왔을 때는 (커밍아웃한 사람이) 되게 많을 거다.


기독교인이지만 가장 LGBT 이슈에 극렬한 반응을 보이는 게 기독교계이기도 하다. 신앙적인 갈등도 요새는 많이 내려놓은 편인가?


지금도 그렇고 그때도 그렇고 내 종교 때문에 많이 힘들었다. 어느 순간 종교 때문에 스스로 자신을 부정하는 존재가 된 거다. 나는 신이 버린 존재인가? 잘못된 사람인가? 그런데 가만 보니까 나를 욕하는 사람들도 별로 완벽해 보이지 않더라. 100% 성경 말씀 따라서 사는 사람이 이 땅에 하나도 없는 것 같은데 이 이슈에서만 다들 당당하다. 그래서 신이 원하는 100점짜리 신의 아이들이 있다면 당신들이 100점인지 한 번 생각해보시고, 내 목표는 90점짜리 아들로 살다 가는 것이니 나머지 10점은 (동성애자인 걸로) 까고 간다고 했다. 90점이면 A니까. (웃음) 나중에 내가 하나님한테 가서 당신 뜻대로 나 잘살았냐 물어보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야지, 안 그러면 교회 갈 때마다 나머지 교인들 눈치 보면서 어떻게 앉아 있나.


90점짜리로 살겠다는 마음이 스스로 검열을 많이 만들어낼 것 같다.


그래서 하고 싶은데 못 하는 것도 많다. 이런저런 파티도 가보고 싶고 방탕하게도 놀고 싶을 때가 있는 법인데, 항상 그러면 안 되지 그러다가 나이만 먹었다. 어차피 욕먹는 거 좀 더 놀 걸 그랬다.

 

지금이라도…….


늦었다. 이제 힘들다. (웃음)


성소수자가 주변에 지지자나 믿을 만한 사람을 만드는 것도 중요할 것 같다. 비(非)성소수자가 주변 사람들을 지지할 방법이 뭐가 있을 것 같나?


예를 들어 시청 앞에서 퍼레이드를 하면 기대하지 않았던 행사에 맞닥뜨린 시민들의 반응을 본다. 처음에는 좀 당황하지만 그중에 많은 분이 박수와 환호를 해주는 것 자체가 매우 큰 힘이고 변화다. 심지어 우리 가게 온 손님들과 사진 한 장씩 찍을 때도 옆에서 ‘존경한다’ ‘힘내라’며 다른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인을 주는 것도 그들에게는 큰 용기다. 그런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는 게 이쪽 친구들에게는 힘이 된다. 이런 작은 변화 하나하나가 나한테는 중요하다. 성격상 거창한 거 싫어한다. 시간 걸려도 천천히 바뀌면 된다.


동성애자뿐 아니라 트렌스젠더 등 다른 이슈도 많다. 성소수자 이슈에 연대해 목소리를 낼 생각인가?


요즘에는 친한 (트렌스)젠더 동생들이 몇 생겼다. 생각해보니까 나도 트렌스젠더의 삶을 겪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겪어보고 이야기를 나눠보고 나서야 이 친구들이 가진 고민이 다르다는 걸 알고, 세상이 이들을 바라보는 눈도 우리를 바라보는 눈과 다르다는 걸 알았다. 모든 이슈가 다 똑같지는 않다.


예전에는 트렌스젠더와 게이를 혼동해서 질문하기도 했다.


나보고 왜 수술 안 하냐고 물어보고 그랬다. 그때 비해서는 많이 변했지.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나 계획이 있나?


당장은 부산과 대구, 영등포, 양평 등에 가게를 새로 낸다. 연극 <스페셜 라이어>도 6월부터 공연하고 새 예능 프로그램도 촬영할 계획이다. 스케줄은 그렇지만, 원래 계획은 잘 이야기하지 않는편이다.


용산구청장에 나갈 생각도 있다는 기사가 계속 돌았다.


어느 날 갑자기 나이가 많이 들어서 사명감을 가지면 할 수도 있는 거고, 뜬구름 잡는 계획에 불과하다. 정말 나갈 거냐고 물어보는 사람은 있는데, 그때마다 ‘아직 아닙니다’ 한다.


책을 누가 읽어줬으면 하나?


어제 북콘서트에 어떤 어머니가 고등학교 2학년 아들을 데리고 왔더라. 아이가 앞으로 뭘 해야 할지 생각이 없어서 맨날 싸우다가 책을 보고 같이 온 거다. 끝나고 아들이 많은 생각을 했다고 고맙다고 하더라. 그게 사실 책의 목적이다. 나와는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사람들에 대해서, 내 주변에 어느 날 갑자기 있을 수 있는 사람임을 각인시켜 주는 거다.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 네 친구, 네 형, 네 인생의 조언자가 될 수도 있으니 무서워하지도 말고 경계하지도 말고, 인생이 힘들 때 나 같은 경험을 했던 사람을 통해 어깨를 토닥이는 책이다.


 

 

찬란하게 47년홍석천 저 | 스노우폭스북스
이 책은 2000년, 어느 날로 시작된다. 방송에서 한창 주가를 올릴 무렵 선언한 커밍아웃은 홍석천 자신과 가족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는다. 언론과 대중은 커다란 범죄가 일어난 듯, 거칠게 그를 몰아붙였다. 마치, 세상이 용납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처럼. 어릴 적부터 꿈꾼 방송인으로서의 삶도 끝난 듯 보였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문창기 이디야 대표 “어떻게 하면 직원들이 재밌을지 고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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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인터뷰에서 가장 많이 나온 말이다. 기업가의 언어라고 하기엔 넓은 말. 그러나 문창기 이디야커피 대표가 말하는 꿈은 명확했다. 좋은 커피를 만들고, 출근하고 싶은 회사를 만들고, 정직한 프랜차이즈가 되어 가맹점의 이익을 더욱 높이는 것. 특히 문창기 대표는 직원의 평균 나이가 30세인 회사의 대표이자, 젊은 고객들이 찾는 커피 업체의 대표로서의 책무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때문에 직원들과 독후감을 핑계로 소통하고, ‘뮤직페스타’ 축제를 개최하고, 일하고 싶은 회사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가맹점주의 자녀와 매장 근무자 대상으로 장학금을 지급하기도 했다. 세 끼를 제공하는 높은 수준의 직원 식당과 매년 전 직원이 가는 해외여행 등은 여러 매체에서 다루었을 정도로 눈에 띄는 대목이다. 무엇보다 작년 입사 직원 중 아직 퇴사자가 한 명도 없다는 것은 대표의 자랑거리기도 하다.


신나는 문화. 문창기 대표는 “즐거운 사람들이 커피를 만들어야” 맛있는 커피가 나온다고 믿고 있다. 『커피 드림』은 그가 이디야라는 곳을 통해 어떻게 즐거움과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왔는지 적어 내려간 책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소탈하게 전하고 있다. 문창기 대표는 잘 알고 있다. 고객과 내부 고객(직원, 가맹점)을 모두 만족시켜야 하는 프랜차이즈는 어렵다. 어려운 만큼 더 고민하고 잘해내고 싶다.


그러니까 문창기 대표는 정말 꿈이 많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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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통해 희망을


책 전면에 드러내고 있는 ‘드림’, ‘꿈’이라는 단어를 먼저 이야기해보고 싶습니다. 이디야가 꿈을 꾸고,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책인데요. 지금, 대표님의 ‘꿈’에 어느 정도나 가까워졌다고 보시나요? 그리고 그 ‘꿈’이란 궁극적으로 어떤 것인지 함께 말씀 부탁드립니다.

 

젊은 친구들이 점점 어려워지고, 현실이 각박해지는 상황이라 꿈이라는 개념을 많이 잃고 사는 것 같아요. 저는 커피라는 매개체를 통해 꿈을 이룰 수 있다, 꿈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제목 고민을 많이 했죠. 회사 입장에서 보자면 최선을 다해 좋은 커피와 음료를 개발하는 것이 우리의 꿈이죠. 가맹점주님들의 매출을 올리고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꿈이고요. 커피란 문화예요. 희망이 없는 시대에 커피를 통해 희망을 만들어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먼저 방금 답변에서도 그렇고, 책에서도 가맹점의 이익을 아주 중요하게 말씀하고 계시거든요. 프랜차이즈 본사와 가맹점의 불공정 계약 관련해서는 사회 문제로 많이 거론되기도 하는 상황이라 더욱 눈에 띄는 부분인데요.


아마 다른 분들도 하기는 그렇게 할 거예요. 다만 그것이 현실로 이루어지느냐가 관건인 것 같아요. 본사도 노력을 많이 해야 하는데요. 점주님들이 희망을 갖고 열심히 할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해주는 게 본사의 이익보다 중요해요. 거꾸로 생각을 했어요. 보통 기업들이 직원들에게 열심히 해라, 매출 달성하면 보상을 줄게, 라고 하는데요. 저는 먼저 혜택을 주면 직원들이 즐겁게 더 열심히 하지 않겠느냐 생각한 거거든요. 점주님들도 마찬가지예요. 역시 일하실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중요한 거죠. 저희는 로열티도 업계 최저 수준이고요. 마케팅 비용도 모두 본사 부담이에요. 행사 개최 비용도 본사에서 100% 부담해요. 그러다보니 점포도 많이 늘고,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또한 앞서 젊은이와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어요. 이디야는 비교적 젊은 이미지가 있거든요. 대상 고객층도 젊은 편이죠?


저희 직원 평균 나이가 30세가 조금 넘어요. 젊은 친구들이 많고요. 고객들도 젊죠. 때문에 젊게 접근을 하려고 노력을 많이 해요. 젊은 기업 문화가 되어야 하죠. 신나는 문화가 되어야 해요. 직원들이 출근하고 싶은 회사를 만드는 게 저의 꿈인데요. 놀이터를 만들어주고 싶다는 마음이 가장 커요. 작년에 입사한 직원들은 아직까지 퇴사자가 한 명도 없어요.

 

경영에도 영감이 필요할 텐데요. 지금도 고민이 있거나 하면 책을 찾아보세요?


네, 책을 찾아보는 편이에요. 요즘은 너무 바빠서 많이 못 읽고 있는데요. 책을 특이하게 봐요. 책을 다 읽을 수가 없어서 목차를 봐요. 그 중에서 봐야 하는 부분만 골라 읽거든요. 그게 전부였어요. 그런 걸 모아 힘이 생기는 거거든요. 그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데 요즘은 책 볼 시간이 없을 정도로 정신이 없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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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은 회사 돈으로


전 직원이 매월 한 권의 책을 읽고 독후감을 써내야 한다고 들었어요. 그런 인사이트를 직원들도 가져갔으면 하는 바람이신 거죠? 효과가 있나요?


직원들에게도 자주 하는 이야기인데요. 나중에 나를 이디야 회장보다 책 읽으라고 잔소리했던 사람으로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말해요. 그게 가장 소중한 거예요. 제가 경험한 것이고요. 이디야가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 책을 통해 내부 고객 만족이라는 걸 찾아냈기 때문이니까요. 직원들도 인생에 있어 힘이 들 때 책을 찾아봤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그래서 매달 꼭 독후감을 써요. 그것은 또한 소통의 개념도 있죠. 독후감은 저만 보거든요. 거기에 직원들이 개인적인 이야기도 하고 그래요. 그런 게 직원과 저 사이에 쌓이는 거죠. 그게 모이면 역사가 돼요. 의미가 크죠.

 

바쁜 시간을 쪼개 직원 한 명 한 명과 소통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닐 텐데요.


그게 저의 일이에요. 어떻게 하면 직원들이 재미있을까, 무엇을 직원들에게 줄까를 고민하는 게 제 일이죠. 그걸 더 잘하고 싶어요. 회사가 잘 되니까 유지하기 위해서 더 잘해내고 싶죠. 그런 생각으로 한 것이 작년 말 전 직원 프로필 사진 촬영을 한 거였어요. 생애 최고의 사진을 찍어주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틀에 걸쳐 했거든요. 회사에 ‘막뚫굽펴(‘막힌 곳은 뚫고 굽은 곳은 펴고’의 줄임말, 직원이 제안하면 대표에게 바로 알람이 간다)’라는 제도가 있는데요. 거기에 명찰 사진이 너무 안 예쁘다는 이야기가 올라오더라고요. 그렇게 하게 된 거죠.

 

막뚫굽펴, 본사 커피랩, 가맹점주 자녀 장학금 등 주목할 만한 것들이 많았습니다. 이디야를 이끌어오면서 가장 잘한 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직원을 대상으로 한 것 중에는 해외여행을 꼽을 수 있어요. 매년 가고요. 올해도 미국 시애틀과 샌프란시스코로 갈 예정인데요. 이디야 인수 전에 있던 회사에서 직원들과 홍콩을 간 적이 있어요. 나중에 만났는데 홍콩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해외여행이 좋은 추억이 됐구나, 생각했죠. 또 해외여행은 회사 돈으로 가는 게 제일 좋아요.(웃음) 직원들을 일 년에 한 번 정도는 해외여행 보내고 싶다고 생각한 거죠. 물론 글로벌 이슈가 있어요. 해외에 나가서 경험을 쌓는 것이 중요하죠. 회사의 큰 이념이 전 세계 어디를 가든지 이디야 커피를 맛볼 수 있도록 하는 거니까요. 계속 매년 한 번 씩 해외를 가고 있어요. 이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에요. 직원들이 즐거워야 해요. 직원들이 즐겁지 않은 다음에야 계속 해외를 끌고 갈 순 없어요. 그건 노동이거든요. 직원들에게 자극을 자꾸 주고 싶어요.

 

자연스럽게 말씀하시지만 쉽지 않은 이야기로 느낄 수도 있어요.


어렵지 않아요. 회사 돈이 내 돈이 아니면 돼요. 내 돈이 아니고 직원들이 번 돈이니까 가능해요. 보통 회사들이 착각을 해요. 회사 돈이 오너의 돈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건 망하는 지름길이에요. 회사 돈이고, 직원들이 번 돈이니까 아깝다고 생각하면 안 돼요. 직원들이 쓴다는 걸 왜 말려요. 회사에 피복비가 있거든요. 일 년에 120만 원을 옷 사 입으라고 줘요. 제가 은행 다니던 시절에 피복비가 있었어요. 지금은 다 없어졌는데요. 저는 이왕이면 우리 이디야 직원들이 옷을 잘 입을 수 있도록 회사에서 지원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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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덕목은 정직이고 도덕성


이디야가 직면한 가장 큰 위기는 뭐라고 보시나요? 또 어떻게 그것을 극복하고자 하는지 궁금해요.

 
외부 환경이라면 작년에 유행했던 저가 브랜드였을 텐데요. 그것은 오래 가지 못할 거라고 봤어요. 왜냐하면 그 가격 갖고는 점주에게 돈이 안 되거든요. 인건비 많이 들죠, 유지가 안 돼요. 제품의 질이 좋을 수가 없거든요. 이디야 커피가 15년 전에 이미 1,700원이었거든요. 그때도 이면도로에 매장을 냈고요. 같은 자리라도 15년이면 월세가 몇 배 올랐을 텐데 지금 가장 좋은 자리에서 그 가격에 팔고, 인건비 주고, 좋은 재료를 쓰기란 불가능해요. 그건 나쁜 거예요. 프랜차이즈가 가져야 할 첫 번째 덕목은 정직이고 도덕성이에요. 가맹점주의 인생이 좌우되는 거거든요. 창업자들이 다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에 그런 책임감이 있어야 해요. 어떻게든 잘 되도록 본사도 노력을 해야 하고요. 가맹점이 잘 못 되면 본사도 오래 못 가니까요. 상식적인 거죠. 본사는 고객과 가맹점 모두에게 만족을 줘야 해요. 어렵지만 조화롭게 해야죠.

 

국내 커피 산업이 포화상태라는 이야기도 오래 되었잖아요. 유행에 워낙 민감하기도 하고요. 이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하고 계세요?


트렌드가 빨리 변해요. 저희도 긴장하고 계속 트렌드에 맞게 나가야 하죠. 그게 참 어려워요.

 

2010년 ‘베이징 선언’ 이후 가맹점을 꾸준히 확장해왔어요. 현재 2,000호가 넘었는데요. 얼마나 더 확장이 가능하다고 보나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저도 궁금해요. 가맹점의 이익이 되지 않으면 더 이상 하면 안 되거든요. 그때가 멈출 때예요. 그런데 다행인 점은 선례가 있다는 점이에요. 타 브랜드에서도 저희와 같은 고민을 했었다고 해요. 그 브랜드 가맹점이 현재 3,800개 정도 있어요. 우리가 그 브랜드보다는 영업권이 작으니까 아직은 가능할 것 같다는 생각이에요. 지금 추세라면 향후 5년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 싶고요. 그 이후가 문제죠. 우리 브랜드를 지키면서 책임감을 가져야 하니까요. 지금부터 단단하게 준비를 해야죠. 그 점은 지금 굉장히 중요하게 고려하고 있어요.

 

앞으로 이디야를 통해 꼭 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면 뭐가 있을까요? 어떤 새로운 실험을 구상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경영 수업을 받은 것도 아니고, 경영 학도도 아니에요. 기업을 운영해본 사람도 아니고요. 다만 정직한 경영을 하고 싶었어요. 정도(正道)경영을 표방하고 있는데요. 모든 게 급히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요. 정직하게 천천히, 차곡차곡 만들어 나가면 그게 이루어지는 거거든요. 저희 회사가 그렇죠. 작은 매장, 뒷골목에 위치한 매장이 묵묵히 가격 대비 최고의 품질로 고객의 사랑을 받았고요. 그것이 조금씩 모여 여기까지 온 거거든요. 참 감사한 부분인데요. 아직도 해볼 것들이 많아요. 꿈 이야기를 했지만 커피 대학이나 학교를 만들어보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그곳에서 많은 분들이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싶어요.

 

기업의 사회 참여나 상생은 시대정신이라고 해도 무방할 텐데요. 이에 관해서는 어떤 특별한 철학이 있으신 것 같아요.


제가 경영수업을 받았다면 못했을 거예요. 은행원 출신인데요. 은행원으로 얻은 경험과 반대로 더 했어요. 보통 계산을 하거든요. 인풋이 있으면 아웃풋이 있어야 한다거나 말이죠. 그런데 숫자를 보면 안 되거든요. 본사 1층에 ‘이디야 커피랩’ 공사를 할 때도 그랬어요. 공사비를 보여주지 말라고요. 금액을 따지다보면 우리가 이루고자 하는 것을 이루기가 어려워지거든요. 돈 생각을 하면 그렇게 돼요.(웃음) 저는 경험이 없다보니 더 공격적으로 할 수 있었고, 다른 방식으로 해볼 수 있었던 거죠.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하기가 참 힘들었는데요. 터널 끝이 안 보일 때 서점에서 책을 많이 찾아봤어요. 그러다가 찾은 게 ‘내부고객을 만족시켜라’라는 말이었어요. 어찌보면 운이 참 좋았던 거죠. 그것이 첫 번째예요. 내부고객을 만족시켜라. 그렇게 지금까지 이어져왔어요.

 

과연 좋은 경영이란 무엇일까요?


남들은 제가 경영이라고 하면 웃을 거예요. 진짜 좋은 경영자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정말 모르겠어요. 어쨌든 내부 고객 만족이 중요하고요. 가맹점주님들과 같이 성장해야 한다는 점도 정말 중요해요. 꿈이란 같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지 우리의 꿈만 이루어져서는 안 되는 거니까요. 결국 상생이죠. 다른 하나는 소통이고요. 사실은 그것만 잘해도 어느 기업이든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작년에는 본사 직원도 한 달에 한 번 무조건 매장으로 나갔어요. 거기서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요. 현장 경영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렇게 서로 소통하면서 즐겁게 일하고, 즐거운 사람들이 커피를 만들어야 맛있는 커피가 나오는 거죠. 그런 여러 노력이 필요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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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커피 수준, 최고더라


경영을 하면서 커피의 매력을 새롭게 알게 된 부분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커피란 특히 어떤 점이 매력적이던가요?


매개체가 된다는 점이 가장 좋아요. 술 한 잔 하자는 말은 사실 겁나는 이야기거든요.(웃음) 커피는 그렇지 않아요. 편하게, 즐겁게, 가볍게 커피 한 잔 하자고 할 수 있죠. 가벼운 이야기로 시작해서 깊숙한 이야기로 이어질 수도 있고요. 가슴을 열게 한다는 점에서 참 좋은 것 같아요. 신나는 매개체가 될 수 있기 때문에요. 커피 자체도 매력이 있고요. 요즘은 커피 기술도 많이 개발이 되었거든요. 더 많은 맛이 있고요. 이제는 더 많은 커피 문화가 생겼어요. 세계를 다녀봐도 한국의 커피 수준이 최고예요. 많이 하는 이야기인데요. 같은 스타벅스도 미국과 한국은 달라요. 한국이 훨씬 좋아요. 그만큼 수준이 높고, 그 안에서 우리가 살아남는다면 해외로 나가는 건 문제 없다고 봐요.

 

해외 진출도 계획하고 계신 건가요?


해외는 계속 고민하고 있어요. 본사 입구에 태극기를 크게 걸어두었는데요. 미국 스타벅스 본점에 가보니 성조기를 크게 꽂아두었더라고요. 그걸 보고 우리도 사옥이 생기면 태극기를 꽂자고 생각했죠. 거기에 ‘대한 커피 만세’라고 돌에 새겨두었고요. 세계로 한국 커피가 나간다는 다짐이에요. 그것 역시 꿈이죠. 직원들에게도 미래가 있는 거고요. 욕심이 있어요.

 

경영의 특성상 부침이 있을 수밖에 없을 텐데요. 꾸준함을 유지하기 위해서 꼭 지키려 하는 습관이나 자신만의 규칙이 있을까요? 생활인으로서의 태도도 듣고 싶습니다. 기사를 읽는 분들에게도 좋은 힌트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메모를 해요. 기록한다는 것, 그것이 답이에요. 평상시에 문득 생각나는 아이디어가 있잖아요. 누굴 만나더라도 좋은 이야기가 있고요. 그런 것을 메모해두면 후에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떠올라요. 일은 복잡해도 머리는 단순해야 하거든요. 단순해야 방향을 잡을 수가 있는데요. 거기에 가장 큰 도움을 주는 게 메모예요. 문제는 결국 하나거든요. 그 문제만 해결하면 되는 거예요. 메모는 그것에 도움을 많이 줬죠. 단순화하는 것, 그렇게 해서 해결하면 쉬워요.

 

요즘은 많이 책을 읽지 못하셨다고 했지만 흥미롭게 읽은 책이 있다면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을까요?


김정운 박사의 『에디톨로지』를 몇 해 전에 읽었는데요. 참 좋아요. 친분이 있어서 추천하는 건 아니고요.(웃음) 그리고 『커피 드림』을 추천해야죠.(웃음) 실패하고, 어려웠던 순간에 대한 내용도 모두 넣었으니 경영을 하시는 분들에게도 한 번 보셨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고 싶고요. 젊은 친구들에게도 꿈을 가진다면 이룰 수 있는 게 분명히 있더라, 라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또 우리 직원들에게도 전할 이야기가 있죠. 우리가 지금까지 거쳐 온 이야기가 이 한 권에 다 있거든요. 그때 나는 이런 생각을 했고, 직원들을 자랑스럽게 생각했고, 고마웠다는 이야기를 노골적으로 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은 이 책 전체가 그 이야기예요. 저 혼자 만든 건 아무것도 없었어요. 같이 이룬 거니까요. 

 

특히 강조하고 싶은 내용을 꼽아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정도경영이 필요하다는 생각이에요. 직원들이 좋으면 그 자체가 의미거든요. 열심히 한 직원들과 신나게 즐기면서 함께 해결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해결 못할 일은 없어요.


 

 

커피 드림문창기 저 | 한국경제신문사(한경비피)
커피 전문점이 포화상태에 이르면서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브랜드도 적지 않은 이 시점에, 오히려 사업의 기초를 탄탄히 하며 꾸준히 성장해가는 이디야커피의 성장 비결은 무엇일까? 그 경영의 비밀을 이디야커피 문창기 대표의 목소리로 직접 듣는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영하 “팩트 따윈 모른다. 그냥 그들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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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와 나」의 주인공은 ‘모든 걸 궁금해하는 프루스트형 소설가’다. 김영하 작가는? 물론이다. 원고지를 채워야 사는 소설가는 매우 사소한 사건도 쉽게 잊지 않는다. 카페를 가도 집회에 가도 신문을 읽어도 사람들의 표정과 목소리를 샅샅이 살핀다. “세상 사람들은 지나치게 작가들에게 잘해주고 있는 것 같아요.” 이건 또 무슨 소린가? 김영하의 이야기다. 약속한 시간에 원고도 주지 않으면서 언제나 ‘선생님’ 소리를 듣는 작가들의 세계. 문학을 지나치게 신비화할 때, 김영하는 눈살을 찌푸린다.

 

소설집 『오직 두 사람』은 김영하가 7년간 상실을 목도하며 쓴 작품이다. 창조성을 잃은 철없는 작가, 아이를 유괴당한 부모, 아버지의 죽음을 지켜보는 딸, 탈출의 희망을 버린 청춘 등을 그렸다. 소설을 쓸 당시, 김영하는 자신이 상실을 쓰고 있는지 알아채지 못했다. 묶인 작품을 다시 읽고 나서야 상실이 보였다. 그리고 2015년에 쓴 문장 하나를 기억해냈다. “이제 우리도 알게 되었습니다. 완벽한 회복이 불가능한 일이 인생에는 엄존한다는 것, 그런 일을 겪은 이들에게는 남은 옵션이 없다는 것, 오직 ‘그 이후’를 견뎌내는 일만이 가능하다는 것을.”

 

상실 후의 견딤. 김영하가 창조한 소설 속 인물들은 어떤 결말을 만들어낼까. 희극도 비극도 없는 시대, 소설은 과연 독자에게 가닿을 수 있을까. 매일같이 팩트 체크를 해야 하는 시대, 팩트 따윈 없는 소설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김영하는 말했다. “작가는 팩트를 확인하고 인용할 근거를 찾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이들을 대신하여 ‘잘 느끼는’ 사람” 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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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정신은 우리를 숨 막히게 한다

 

7년 만입니다, 단편집은.

 

시간이 꽤 걸렸죠? 7년 동안 쓴 작품을 묶은 거라 기억이 잘 안 나더라고요. 비교적 최근에 쓴 소설은 기억이 나지만 오래된 작품은 좀 이상해요. 장편은 어떤 이야기가 쭉 진행되다가 끝나면서 출간이 된단 말이에요. 여행에 시작과 끝이 있듯이, 어떤 결말이 모여서 해단식을 하는데 단편은 그런 게 없어요. 오래된 작품을 다시 읽으면 과거에 내가 보낸 편지 같기도 하고, 좀 달라요.

 

낯선 느낌이 드나요?

 

좀 그렇죠. ‘내가 쓴 문장이었나?’기억이 잘 안 나는 문장도 있고. 소설가는 당시에 자신이 뭘, 왜 쓰는지를 잘 몰라요. 쓴 다음에는 돌이킬 시간이 별로 없고요. 단편을 묶어 책을 내는 데 의의가 있다면, 다른 작품들과의 관계 속에서 찾을 수 있어요. ‘아, 내가 7년 동안 이런 문제에 대해 생각해왔구나’, 그런 걸 알게 되는 거예요. 이번 작품들은 일관되게 무언가를 상실한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옥수수와 나」의 소설가는 창조성을 상실하고, 「아이를 찾습니다」의 부모는 아이를, 「오직 두 사람」의 주인공은 아버지를 잃었잖아요. 일곱 단편을 쓴 게 2010년부터 2017년인데, 내가 계속 상실의 문제를 고민했다는 걸 최근에서야 알았어요. ‘뭘 잃어버렸냐?’ 하면 그건 잘 모르겠어요. 많은 걸 잃어버렸겠죠.

 

출판사에서 이번 소설집 제목으로 「신의 장난」을 밀었다고 들었어요. 가장 김영하 소설다운 제목이라고 생각했는데요. 『오직 두 사람』으로 결정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장난’이라는 단어의 어감이 좋지 않았어요. 소설 전체를 아우르는 제목은 아닌 것 같았어요. 상실 이후의 삶을 생각해볼 때, 「오직 두 사람」이 가장 잘 어울리겠다 싶었어요.

 

작가로서 가장 행복할 때는 “장편을 쓰는 순간”이라고 했어요. 단편을 쓸 때는 어떤가요? 비교적 가벼운 마음으로 쓰지 않나요?


‘단편으로 써야지’ 하고 시작하는 작품은 별로 없어요. 보통 장편으로 시도해요. 「오직 두 사람」도 그래요. 장편으로 써보려고 계획한 소설인데, 쓰다 보면 장편이 안 될 때가 있어요. 단편은 쓰는 입장에서 너무 빨리 끝난다는 느낌이에요. 이 세계에 오래 머무르고 싶은데 너무 빨리 돌아오는 느낌이랄까. 몰입의 경험이 참 좋은데, 단편은 그런 느낌이 없어요.

 

단편은 대개 청탁이 들어오면 쓰나요?


이번 소설의 상당 부분은 미리 써놓은 작품이에요. 청탁이 들어오면 그동안 써놨던 소설을 보내죠. 언젠가부터 마감에 맞춰 쓰는 작품이 드물어졌어요.

 

혹시 가장 빨리 쓴 작품은 「옥수수와 나」일까요?


맞아요. 며칠 만에 신나게 다 썼어요. 미친 듯이 거침없이 썼다고 할까요? 제 호흡에 가장 잘 맞는 소설이에요. 수정도 거의 안 했어요. 넣을 것도 뺄 것도 없더라고요. ‘쓸데없는 농담이긴 한데 빼자니 좀 그런’ 장면들은 있었죠.

 

2012년 제36회 이상문학상 대상 수상작입니다. 이번 소설집에서 가장 속도감 있게 읽은 작품이에요. 주인공은 자신이 옥수수라는 망상에 시달리는 소설가예요. 계약금을 받았는데 작품이 안 써져서 괴로워하죠. 친구에게는 이렇게 말해요. “모든 작가는 편집자에게 이렇게 거짓말을 한다. ‘뭐 다 써봐야 알지. 열심히 쓰고 있기는 해.’”(60쪽) 실제 김영하는 어떤가요?


편집자한테 거짓말은 잘 안 해요.(웃음)

 

마감을 어긴 적이 없다고는 들었어요.


마감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예전에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때, 수업을 3번 빠지면 무조건 F학점을 줬어요. 강의 시작하기 전에 계약서도 받았어요. 사인하라고 했죠. 왜냐하면 소설을 잘 쓰는 건 가르쳐줄 수 없지만 마감을 지키는 건 가르칠 수 있기 때문이에요. 세상에 나가면 제때 원고를 쓰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될 텐데, 천재라면 F를 받아도 상관 없지만 그렇지 않다면 마감이라도 잘 지켜야죠. 사회에 나온 학생들이 그래요. “정말 중요한 가르침이었다”라고. 먹고 살려면 제때 넘겨야 하거든요. 글 안 써진다고 잠수 타고, 연락 안 되고, 그렇게 살면 안 되잖아요. 학생들 중에 숙제를 완성하지 않고 넘기려는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이 한 시기에 도달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오래 고친다고 해도 나아지지 않아요. 저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고요. 그래서 때가 되면 원고를 보내요. 내 능력의 70, 80%를 써야 한다, 그런 철학을 갖고 있어요.

 

완벽주의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네요.


얼마 전에 안자이 미즈마루의 에세이를 읽었는데 “대충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더라고요. 제 생각도 비슷해요. 물론 끝까지 최선을 다하면 좋겠지만, 소설은 스포츠가 아니에요. 예컨대 피겨선수라고 하면 명확히 도달해야 하는 목표가 있잖아요. 트리플 악셀이 라든지. 스포츠는 점수가 나오지만 소설은 그렇지 않잖아요. 지독하게 최선을 다하는 자세로 소설을 쓸 때, 어떤 위험 같은 게 있어요. 지독한 정신은 우리를 숨 막히게 해요. 어느 정도 수준이 되면 받아들이고 내보내야 해요. 저는 한 사람이 어떤 때에 도달할 수 있는 한계, 경지가 있기 때문에 밤을 샌다고 드라마틱하게 나아지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또 세상에는 훌륭한 편집자가 많아요. 제가 놓친 걸 잘 봐주죠. 작가는 ‘이 이야기가 말이 되나’ 그런 것에 집중해야 해요. 소설은 좀 비어 있어야 해요.

 

마감을 쪼아야 작품이 잘 나온다는 작가들도 있어요.


시간이 쪼들릴 때 높은 창조성이 생기는 경우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전 여유 있는 순간에 좋은 생각이 나지, 마지막에 몰리면 생각이 안 나요. 인간의 마음속에 어떤 프로그램이 있다면, 제 경우는 프로그램의 설정이 자동적으로 이뤄질 때 글이 더 잘 써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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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아갈까, 질문 만이 남겨진 상태


「아이를 찾습니다」는 2014년 겨울에 발표한 소설이에요.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해죠. 「옥수수와 나」는 미친 듯이 쓰셨다고 했지만, 이 작품은 다를 것 같아요.


장편으로 쓰고 싶었고 쓸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쓰는 동안 참 힘들었어요. ‘어떤 말도 안 되는 운명으로부터 인간은 탈출할 수 없는 것인가’ 이런 생각도 들었고. 모든 인류사가 그랬겠지만, 특히 요즘은 어떤 일을 당하면 회복이 불가능해진 세상 같아요. 삶이 순식간에 무너져버리는 너무 잔혹한 세상이 된 게 아닐까. 세월호에 탔다가 돌아오지 못한 한 기간제 교사의 아버지는 성대가 녹아내 릴 정도로 울부짖었다고 하잖아요. 공동체가 살아있었던 시절에는 비극 이후의 삶을 상상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너무 가혹해졌어요. 가습기 살균제 사건도 그래요. 아픈 아이를 위해 선의로 살균제를 사용했는데, 결과는 치명적이었어요. 과학기술의 발달, 진보된 민주화로 훨씬 문명적인 삶을 살 것 같았는데 아닌 거죠. 아이를 낳았을 때의 위험이 너무 커요. 사회 공동체가 아무런 뒷받침도 하지 않는 세상에서 아이를 낳는다는 건 위험한 결정이 됐어요.

 

결말을 읽으면서 ‘이건 어떻게 생각해야 하지’ 싶더라고요. 가족이 다 떠난 상황에서 찾아온 새로운 가족. 이것이 과연 끝인가, 시작인가? 해피 엔딩인가, 절망인가? 고민했습니다.


인물이 겪게 되는 상황이 비극도 희극도 아닌, 회색 지대에 있기 때문일 거예요. 이번 소설집의 다른 인물들도 비슷해요. 분명한 선과 악, 좋고 나쁨의 문제가 아니라 어찌할 수 없는 교착 상태에 놓여 있으니까요. 「오직 두 사람」에서 주인공도 아버지로부터 해방됐지만 또 막막하기도 하거든요. 이건 저뿐 아니라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도착해 있는 지점일지 몰라요. 우리는 민주화 운동도 해봤고 뉴타운 열풍에도 있어봤고, 국정농단 사건도 겪었잖아요. 뭔가가 끝났지만 뭐가 시작됐는지 뚜렷하게 보이지 않아요. 어떻게 살 아갈까, 질문 만이 남겨진 상태예요.

 

소설을 쓸 때마다 안전한 거리를 생각한다고 했어요. 단편은 장편보다 조금 거리가 가까워도 될까요? 작가가 거리감을 준다 한들, 독자 개개인마다 다를 수밖에 없지 않나 싶기도 한데요. 속도감도 그렇고요.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소설은 ‘감동적인 데 막상 밑줄을 치려고 하면 어디에 쳐야 할지 모르는 소설’이에요. 뺄 것도 없고 더할 것도 없어 보이는 작품이죠. 밑줄을 친다는 건, 그 부분이 확 도드라지는 거잖아요. 결말이 났을 때, 약간의 당황이라고 할까요? ‘이게 뭘까?’ 하면서 감흥에 사로잡히는 작품이 좋아요. 읽는 속도와는 무관해요. 예를 들어 『백 년 동안의 고독』같은 작품은 어디 딱히 밑줄 칠 데도 없고 한 호흡에 읽히지도 않는단 말이에요. 한도 끝도 없이 나오는 에피소드가 불필요한 것 같은데 또 필요하고, 이윽고 거대한 벽화 같은 게 완성되죠.

 

단편을 쓸 때도 취재를 하시나요?


취재는 거의 안 하죠. 다만 평소에 이런저런 일들이 유심히 봐요. 이를테면 사람들은 기사를 볼 때 제목만 보는 경우가 많잖아요. 저는 기사를 읽을 때 굉장히 디테일하게 봐요. 사건이 발생한 시간, 인물의 나이, 현장에 있었던 작은 단서까지 세세하게 읽어요. 학교에서 소설을 가르칠 때, 학생들에게 똑같은 신문을 나눠줬어요. 신문에서 소설, 영화의 이야깃거리를 찾아보라고 했어요. 여섯 개 조가 찾아낸 이야기를 보면 같은 게 하나도 없어요. 다 달라요. 사람들은 소설이나 영화가 될 수 있는 이야기는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요. 중요한 건 어떻게 가공하느냐죠. 세상에는 매일 굉장히 많은 양의 기사가 나오잖아요. 기사만 꾸준히 관심 있게 봐도 많은 이야깃거리를 찾을 수 있어요.

 

「신의 장난」은 방탈출 게임을 소재로 한 작품입니다.


잠시 해외에 있었는데 방탈출 게임이 엄청 유행이었어요. 신기하게 생각하다 한국에 오니까 이미 많이 하더라고요. 가서 해보진 않았어요. 조사만 조금 했죠.

 

주인공 ‘정은’의 독백이 인상적이었어요. “나는 우울을 믿어. 인간은 천둥이 치고 비가 퍼 붓는 궂은 날씨에는 울적하도록 진화했어. 인류가 이렇게 진보한 건 섣불리 움직이지 않고 끝없이 자신의 과오에 집착해온, 사실 나 같은 우울증 환자들 덕분이야. 그들은 헛된 희망을 품지 않아. 스스로를 과신하지도 않고. 그래서 살아남은 거야.”(151쪽) 소설가 김 영하의 세계관이 읽혔어요.


문학 작품의 주인공들을 보면 외향적이고 활 달한 사람이 거의 없어요. 오히려 과하게 내성적인 사람이 많죠. 아마 외향적인 독자들 은 ‘소설 속 주인공들은 왜 이렇게 생각이 많고 상처를 잘 받냐’고 생각할 거예요. 하지만 이게 바로 사회에서 소설에게 맡겨진 역할이에요. 내성적으로 성찰하고 필요 이상으로 인간 관계를 깊이 생각하는 것. 활발한 사람들이 개척만 했다면 우리는 벌써 죽었겠죠. 그리스 로마 시대의 ‘카산드라’는 예언의 능력을 받았지만 아폴론의 사랑을 거절한 대가로 설득력을 빼앗긴 인물이에요. 정확한 예언을 하지만 사람들은 그녀의 말을 믿어주지 않죠. 소설, 문학이 하는 게 바로 이거예요.

 

굳이 찾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사람, 현실에 서는 존재감이 없는 사람이 소설에서는 주인공이죠.

 
『인비저블』이라는 책이 있어요.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죠. 공항에 가면 안내 시스템이 있죠. 그걸 설계한 사람이 있고요. 이 사람들의 일은 무척 중요하지만, 이들이 일을 잘하면 잘할수록 보이지 않아요. 콘서트에서 음향을 조절하는 디자이너도 일을 잘할수록 존재가 보이지 않아요. 편집자나 번역가도 마찬가지예요. 오자나 오역이 나오면 그때야 눈에 띄죠. 이번 국정농단 사건에서 최순실의 태블릿PC를 JTBC 기자에게 건넨 경비원이 알고 보니, 진보정당의 당원이었잖아요? 최순실이 어떤 사람인지 가까이에서 지켜봤을 거예요. 그러다 사건이 터졌을 때 중요한 역할을 했죠. 그 사람은 자신의 존재가 드러나지 않았을 때도 사람을 돕고 있었어요. 문학은 바로 이런 자아를 위해 마련된 공간이 아닐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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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글만 쓰고 있으면 사람을 만날 수 없다

 

작품을 쓸 때는 칩거도 하신다고 들었는데, 강연은 활발하게 하는 편이세요.


말하는 건 크게 어렵지 않아요. 글 쓰는 건 지금도 어렵지만, 강연은 힘든 일이 아니라서 시간이 크게 뺏기지 않는 한에서 필요하다면 해요. 또 다른 이유를 꼽자면 소설은 혼자 쓰잖아요. 조수도 뭐도 없어요. 방안에만 틀어박혀 혼자 글만 쓰면 정신건강에 안 좋아요. 「아이를 찾습니다」 같은 소설을 쓸 때면 정말 미칠 것 같아요. 가끔 살아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러 가야 해요. 강연장에서 생각지도 못한 질문을 받으면 ‘아! 사람들이 이런 문제를 겪고 있구나’ ‘실제 사람들의 고민은 이런 거구나’ 느껴요. 혼자 글만 쓰고 있으면 사람을 만날 수 없어요.

 

6월 2일에 첫 방송되는 나영석 PD의 차기작 tvN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에 출연하신다고요. 예능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하는 것은 처음이신 것 같은데요.


처음에는 나영석 PD가 하는 프로그램인지 몰랐어요. 유시민 작가, 황교익 칼럼니스트, 정재승 교수가 출연한다길래 재밌겠다 싶었어요. <1박2일>의 지식인 버전이 될 것 같은 데, 나중에는 까나리액젓을 먹어야 하는 건 아닌가 걱정돼요.(웃음)

 

예전에 남성 집단과 어울리는 걸 썩 좋아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출연진이 모두 중년 남자예요. 어쩌면 ‘꼰대’ ‘아재’ 소리를 듣기 너무 좋은 조합일지 몰라요.


그렇죠. 어쨌든 저도 한국에서 아저씨가 됐단 말이에요. 최근 들어 페미니즘에 관련된 책을 많이 읽어요. 문학계 이슈이기 때문에 한국의 많은 남성 작가가 읽고 있을 텐데요. 21세기 한국 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흐름이라고 생각해요. 페미니즘에 맞춰 제가 살아온 인생을 보면 부끄럽기 짝이 없어요. 대세라는 걸 떠나 페미니즘은 옳아요. 옳은 흐름이에요. 인권은 동의하고 동의하지 않는 문제가 아니에요. 유엔이 동성애자와 성전환자들의 권리를 인정하는 결의안을 채택했잖아요. 이건 합의를 한 거예요. 합의를 했으면 닥치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닥치고 받아들이는 정신, 이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닥치고 받아들인다? 이런 태도를 갖는 게 쉽지 않잖아요.


사람들과 만나 이야기를 하면 여전히 주저하는 부분도 있고, 이건 좀 과하지 않냐고 말하기도 해요. 하지만 우리는 기득권자이기 때 문에 바보일 수 있거든요. 모르는 거예요. 사람은 자기가 경험한 한도 안에서 생각하니까. 이해가 안 된다고 틀렸다고 생각하는데, 아닐 수 있거든요. 저는 밤거리를 돌아다닐 때 걱정을 안 해요. 누구한테 잔소리를 듣는 일도 없고요. 지금까지 이 사회에서 사회적 약자로 살아본 적이 없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에 있어서는 모른다고 가정하고 시작해요. 개그우먼 김숙 씨가 윤정수 씨에게 말했잖아요. “남자가 좀 조신해야지.” 40, 50대 남성들에게 필요한 건 어쩌면 조신함이 아닐까 싶어요. 조신하게 삼가는 태도, 비단 우스갯소리만은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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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어떻게 보면 황혼의 장르

 

최근 몇 년간 “현실이 더 소설 같아서, 소설을 읽을 필요가 없다”라는 이야기가 많이 들렸어요. 작가에게도 지난한 시간이 아니었나 싶어요.


모두가 큰 상처를 입었죠. 사람들은 스스로를 잘 몰라요. 괜찮다고 말하지만, 지난 몇 년간 우리는 다른 나라에서는 상상하지 못할 험한 일을 겪었어요. 몇 년 동안 애도가 금지 당하기도 했으니까요. 하지만 이제 어느 정도 추스를 때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소설이 좀 읽힐 거라는 기대감이 있나요?


아무래도 그렇지 않을까요? 조금은 기대해요. 고통을 치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더 고통받은 자를 읽는 거예요. 그들이 어떻게 감내하고 견뎠는지를 보면서, 인간의 내면성을 회복할 수 있어요. 타인에게 공감하며 연대 해야만 우리 힘도 강해져요.

 

팩트만 읽기도 어렵다고 하는데요.


현실과 소설은 완전히 다른 세계라고 생각해요. ‘어떤 게 더 재밌냐’가 아니죠. 존재하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요. 사람들이 정보를 자꾸 찾는 건 불안감 때문이에요. 사람이 불안하면 소설을 읽을 수 없어요. 내 가족이 수술을 하면 병원 대기실에 앉아 있잖아요. 열 몇 시간이 걸릴 수 있는 상황에서 보호자가 대기실에서 소설을 볼 수 있나요? YTN 뉴스만 봐요. 불안한 사람들이 읽을 수 없는 게 소설이에요. 소설은 어떻게 보면 황혼의 장르예요. 어떤 일이 지나가고 돌아보는 장르죠. 소설에는 정보가 없어요. 나와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인물들이 윤리적인 딜레마를 겪는 걸, 지 켜보는 거예요. 그러면서 깊은 수준의 문제 들을 생각해보는 거죠. 많은 현대인이 게걸스럽게 정보를 수집하지만, 커다란 만족감 같은 건 얻지 못해요.

 

2015년에 펴낸 산문집 『말하다』에서 “모든 것이 털리는 저성장 시대, 감성 근육으로 다 져진 영혼은 아무도 빼앗을 수 없다”고 했어요.


소설 안에는 다양한 감정이 있잖아요? 그 감정을 다양한 방식으로 라벨링하는 것이 소설 읽기라고 생각해요. 감성 근육이 단단하면 감정의 폭군이 자신을 지배할 때, 최소한 이 감정이 뭔지 알아요. 자기감정을 잘 알면 느낌을 조율할 수 있어요. 너무 많이 느껴서 고통받는 사람은 본 적이 없어요. 느낌이 뭔지 몰라서 고통받는 거죠. 자기감정을 잘 느끼고 정확한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훨씬 더 강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SNS, 칼럼 등을 통해 사회적 발언도 꾸준히 하고 계신데요. 비슷한 맥락일까요?


지금 제가 연희동에 살고 있는데, 2년 전에 난개발 문제로 개발업체와 싸운 일이 있어요. 그때 저희 집까지 연대하러 와주신 분들이 있었는데 굉장히 고마웠어요. 누군가 그런 도움을 필요로 할 때, 나로서 크게 힘든 일이 아니라면 하려고 해요.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동성애 발언이 논란이 됐을 때, 제가 페이스북에 짧은 글을 올렸더니 누가 저를 말리면서 그러더라고요. 정치적으로 잘못 해석될지도 모르는데 괜히 아사리판에 끼지 말라고. 하지만 힘이 있는데, 그걸 쓰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나요? 발언권이 있다면 발언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예상하지 못한 욕을 먹을 뿐이지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에요.

 

‘책 읽는 대통령’이라며 기대하는 독자도 많아요. 문재인 대통령에게 추천하고 싶은 소설이 있다면요?


엠마뉘엘 카레르의 『적』을 읽어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인데요, 마을 사람 모두가 의사라고 알고 있었던 한 사람이 어느 날 자기 가족 모두를 죽여버려요. 이 사건을 접하게 된 작가가 팩션으로 쓴 소설이에요. 왜 이 이야기를 권해드리고 싶냐면, 제가 보기에 문재인 대통령은 굉장히 좋은 사람이에요. 선량한 사람이고 남의 고통에 공감할 수 있는 분인 것 같아요. 하지만 대통령은 악에 대해서도 많이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누구나 선한 사람을 좋아하지만 리더라면 악이 무엇인가, 인간의 악함, 나쁜 것들을 어떻게 적절히 제어하느냐도 중요해요. 문재인 정부가 출발을 참 잘했잖아요.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됐고요. 하지만 그들이 성공하기를 바라는 사람만큼 실패하길 바라는 사람도 꽤 있거든요. 지도자라면 악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해요. 누가 악한 마음을 먹어도 함부로 사람을 해 칠 수 없는 세상을 만들어야 하니까요.

 

한 독자가 “김영하의 작품을 읽고 싶은데 아직 한 권도 못 읽었다. 출발하는 작품으로 소설 한 권을 추천해달라”고 한다면, 어떤 작품을 골라주시겠어요?


『오직 두 사람』. 언제나 가장 최근에 쓴 작품이죠.(웃음) 이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소설도 자기 시대와 가까울 때 가장 즉각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100년 전, 200년 전 소설을 읽으려면 어렵잖아요. 배경도 시대도 다르니까요. 이왕이면 최근 한국을 배경으로 쓴 소설로 시작하는 게 좋아요. 갈수록 더 잘 쓰고 있어서 그런 건 아니고요.


 

 

오직 두 사람 김영하 저 | 문학동네
작가 김영하의 신작 소설집이 출간되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 이후 7년 만이다. 제9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 「아이를 찾습니다」, 제36회 이상문학상 수상작 「옥수수와 나」를 포함해 일곱 편이 실렸다. 묘하게도 편편이 무언가를 ‘상실’한 사람들, 그리고 ‘상실 이후의 삶’을 사는 이들의 이야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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