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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독자야말로 진정한 ‘뒷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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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간의 삶이 그대로 역사라면 한 작가의 삶은 또 어떨까. 만주 장춘에서 태어나 유년을 평양에서 보내고 한국전쟁 과정에서 남쪽으로 온 어린 황석영. 그는 4.19로 친구를 잃고, 작가가 되고, 베트남전쟁에 참전하며 뚜벅뚜벅 역사의 중심으로 향해 간다. 5.18로 잃은 동료들을 가슴에 묻고서 광주를 세상에 알리고, 작가이자 활동가로 살던 황석영은 이후 방북과 망명, 수감을 거치며 그 자신이 역사를 써내기에 이른다. 작가 황석영이 써낸 자전 『수인』은 그가 겪어낸 역사와 그가 만난 수많은 역사 속의 사람들을 가장 가까이서 만날 수 있는 너른 광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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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잃은 작가의 운명

 

그러나 『수인』을 쓰는 일은 작가의 영혼을 쏟아 붓는 일에 다름 아니었다. 『장길산』 같은 대작을 써낸 황석영 작가도 삶의 기억을 소환하는 일이 여간 힘이 들지 않았다. 『수인』을 쓰는 도중 심각한 어깨 통증으로 집필을 중단해야 하기도 했던 것.

 

“촛불 집회를 몇 차례 나갔는데요. 아마 독감이 걸렸던 것 같아요. 그랬는데 감기가 나가지 않고 계속 아픈 거예요. 병원에 갔더니 폐렴이 지나갔다고 하더라고요. 오른쪽 어깨 통증이 늘 직업병처럼 있는데 거기에 물이 차서 뽑아냈고요. 나름대로 쓰는 게 힘들었던 것 같아요. 속에 있는 걸 다 끄집어내니까 너덜너덜 한 거예요. 책을 쓰면서 아팠던 게 그런 이유가 아닐까 싶어요. 몸살을 심하게 앓았죠. 몸에서 뭔가가 쑥 빠져나간 것 같아요.”

 

초고가 무려 6,000매 분량이었다. “잘한 것보다는 잘못한 것, 회한이 있는 것을 숨김없이” 써내야 한다는 아내의 조언에 따라 2,000매를 덜어냈다. 자전을 쓰며 읽게 된 살만 루시디의 『조지프 앤턴』도 도움이 됐다. 1988년, 이슬람교 탄생을 도발적으로 그린 소설 『악마의 시』를 출간한 후 끊임없이 가해지는 살해 위협을 피해 오랜 도피생활을 한 살만 루시디. 공교롭게도 황석영 작가가 망명생활을 하던 시기에 도피생활을 한 살만 루시디의 이야기를 읽으며 “다른 곳에서 도피와 망명을 한” 작가에게 일종의 동질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혹시 덜어낸 부분 중에 아쉬움이 남는 이야기는 없는지 물었다. 하나를 더 담을 수 있다면 어떤 이야기를 담고 싶은지, 어리석은 질문에 작가는 꾸밈없이 답했다.  
 
“편집 과정은 내가 파악하고 응낙했으므로 정당했다고 봅니다. 에필로그 부분은 석방 이후 이십 년 가까운 세월을 담았고 제목을 붙인다면 ‘세계와 나’정도 되겠는데요. 편집자의 견해는 ‘6,000매를 담으려면 3권이 되는데 판매에 불리하다’였지만 나로서는 ‘아직 제대로 숙성되지 않은 시간으로 보인다’였어요.”

 

황석영 작가가 쏟아 부은 지난 시간의 기록 『수인』은 작가의 방북과 망명 이후 국내에 귀국해 안기부로 끌려가 취조 받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태연한 표정을 가장해 기 싸움에서 밀리지 않으려는 작가의 모습이 긴장감 넘치는 드라마처럼 펼쳐진다. 자전의 첫 장면, 이것으로 전하고자 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처음부터 정해진 것은 아니었어요. 연대기 식으로 순차적으로 써놓았던 앞부분을 모두 버리고 다시 쓰면서, 감옥의 5년에다 현재 상황을 압축 시켜 놓고 과거와 현재로 드나들면서 천을 짜듯 직조하는 식으로 쓰면서 이렇게 된 것일 뿐이지 별다른 의미는 없어요. 굳이 말하라면 현재 우리의 ‘자유’를 제약하는 제도적 틀 가운데 ‘48년 체제’라는 것이 있는데요. 그것이 일제의 ‘치안유지법’을 개량한 ‘국가보안법’이라는 것이죠. 이 틀거리가 분단체제의 상징이기도 하고요. 이 분단체제를 유지하려는 국가권력의 얼굴이 공안 당국이죠. 그런 그들과 자유를 잃은 작가의 운명과 대면하는 것이 이 자서전의 첫 장면이 된 셈입니다.”  

 

자유였다. 황석영 작가는 자신의 일생을 일컬어 “자유를 향한 끊임없는 몸부림”이었다고 했다. 자전의 제목이 『수인』이 된 이유 역시 자유를 박탈당한 채 평생을 감옥에서 벗어나려 애쓴 작가의 삶을 가장 잘 대변하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시간의 감옥, 언어의 감옥, 냉전의 박물관과도 같은 분단된 한반도라는 감옥에서 작가로서 살아온 내가 갈망했던 자유란 얼마나 위태로운 것이었던가.
이 책의 제목이 ‘수인(囚人)’이 된 이유가 그것이다.(『수인 2』, 448-449쪽)

 

“결국은 일생을 돌아보면 자유를 향한 끊임없는 몸부림이었어요. 자유의 길이죠. 석방되기 위해 싸우는 것, 그러니까 이것이 ‘수인’이구나 싶어졌어요. 우리는 누구나 시간의 감옥에 갇혀 있고요. 또한 저는 작가니까 언어라는 감옥에 갇혀 있지 않습니까. 정치, 사회적으로는 분단된 한반도라는 감옥에 갇혀 있죠. 이런 한계로부터 벗어나려는 끊임없는 몸부림이 나의 평생이었다, 하는 생각을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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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로 돌아가면 얼마나 좋을까


이 한 권의 ‘역사책’이라고 해도 좋을 자전에는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김지하, 고은, 수전 손택, 은수미, 이해찬, 이문구, 김남조, 김훈, 조국 등 많은 사람들이 교차하며 역사의 현재를 깨닫게 한다. 단단하게 혹은 성글게 연결된 개인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서로에게 영향을 주며 큰 공명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알게 한다.

 

“동시대의 사람들이 각자 자기 깜냥대로 여러 일을 겪으며 살아가는데요. 그들이 서로의 주변에 있는 거죠. 누구는 죽기도 하고, 다시는 안 나타나기도 하고요. 누구는 다시 역사 속에 등장하면서 같이 가는 거거든요.”

 

그중 황석영 작가는 특히 잊을 수 없는 사람으로 작가는 문익환 목사를 꼽았다.

 

“다시 옆에 있었으면 좋겠어요. 참 순수하시고, 돌아가시는 날까지 소년 같았어요. 문 목사님과는 많은 일을 함께 겪었습니다. 문인간첩단 사건, 6월 항쟁 등. 대선배시지만 거의 동지, 전우와 같았어요.”

 

문익환 목사가 정자 위에서 혼자 대동강을 내려다보며 쉬고 있었다. 그는 방금 시 한 편을 썼노라며 수첩에 적은 싯귀를 큰 소리로 낭송했다. 우리 모두 어쩔 수 없는 낙천주의자들이었지만 이제 돌아가면 구속될 험준한 길을 앞에 두고 어쩌면 저렇듯 무사태평인지 나는 문목사가 낭송하는 시를 들으며 그의 순수한 열정에 감복했다.(『수인 1』, 202쪽)

 

어쩌면 단단하게 묻어두었던, 다시 꺼내보기가 괴로웠을 이야기들도 많았다. 어머니의 임종을 써내려간 작가의 글은 너무나 절절하다. 그밖에 좌절감에 몸을 떨었던 이야기들도, 슬픔에 지배당한 시절도 도무지 시간이 흐른 과거의 이야기라는 것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가깝게 전해진다. 특히 광주가 그렇다.

 

당시 황석영 작가는 광대 전용 소극장 공사를 하던 중 자금을 구하기 위해 광주를 떠나 서울행을 해야 했다. 금요일에 서울에 도착했고, 일이 해결되지 않아 주말을 서울에서 보낸다. 바로 그때, 그가 서울에 있던 그 주말이 1980년 5월 18일이었다. 결국 6월까지 광주로 돌아가지 못했고 이 사건은 작가가 “급진화 되는 계기”가 되었다.

 

“죽은 사람들에 대한 자책감이 많았어요. 당시 죽은 젊은이들 중에 함께 활동하던 분들이 많았거든요. 늘 얼굴이 생각나고 그러니까요. 그것이 아마 그 이후 활동가로 살게 된 원인이었을 것 같아요. 거기서부터 뭐가 뒤엉켰어요. 긴 방랑을 한 셈이죠. 문학으로부터 도망가 활동가로서의 삶을 산 셈이에요.”

 

다시 문학으로 돌아오기까지 긴 방랑의 시간들이었다. 그렇다면 작가를 다시 문학으로 돌아오게 한 결정적인 힘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이 책에도 나오듯이 문학은‘나의 집’이었으니까요. 나는 자신이 소설가라는 정체성을 한 번도 저버린 적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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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독자에 대한 예의


엄혹한 시절이었다. 『수인』을 읽는 마음은 내내 묵직하다. 잠깐, 좋은 기억을 물었다. 작가가 다시 돌아가고 싶을 때는 언제일까. 황석영 작가는 19살이던 1962년 「입석부근」으로 『사상계』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던 때를 꼽았다. 
 
“『사상계』에 「입석부근」이 신인문학상으로 선정이 되어 제가 수상자가 된다는 것을 신문 기사로 친구가 알게 됐어요. 그리고는 친구들이 술 사주고, 축하해주고요. 그날 첫눈이 왔는데요. 아, 그때로 돌아가면 얼마나 좋을까(웃음) 싶죠.”

 

방북 이후 4년 동안의 망명 생활을 끝내고 이후 5년 동안 감옥에 갇혀 수인생활을 해야 했던 황석영 작가는 『수인』에서 감옥 안에서 본 풍경을 이야기 사이사이에 사진처럼 보여준다. 사소한 것에 집착하거나 바깥소식에 온 신경을 집중하거나 단식을 하기도 했던 긴 시절이었다. 한 장면에서 작가는 젖은 담배꽁초를 주워 반쯤 피우다가 버리고는 수인 생활 동안 다시는 담배를 피우지 않겠다고 다짐하기도 한다. 자신은 비록 수인이지만 그 전에 인간이며 인간의 존엄을 지켜내겠다는 결연함이었다. 이에 대해 작가에게 물었다. 결코 내어줄 수 없는 인간으로서의 존엄,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그렇게 거창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세계의 어느 곳에나 존재하는 작가로서의 체신을 지키려던 것이었지요. 내 문학과 독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기도 했고요. 그때에는 대부분의 정치범이 그런 체신을 지키려고 나름대로의 노력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나의 독자라면 어떻게 판단할까, 하는 것이 늘 저의 선택의 기준”이었다는 황석영 작가는 “그들이야말로 나를 여기까지 오게 만든 진정한 ‘뒷배’”였다고 말한다. 시간이 흐르면 현재도 역사가 된다는 사실, 그것은 자명하지만 그런 시선을 갖고 현재를 판단하는 일은 무척이나 어렵다. 선택의 기로에 선 어려운 순간, 사람들은 쉽게 흔들리고 유혹에 굴복한다. 그럴 때마다 작가를 흔들리지 않게 해준 것은 문학, 그리고 독자뿐이었다.

 

그렇다면 그저 범인일 뿐인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나. 지금, 사회의 변화를 보고 미래를 희망하는 시민들이 잊지 말아야 할, 꼭 해야 할 일이 있다면 무엇일까. 작가는 스스로를 ‘낙천적 비관주의자 동시에 비관적 낙천주의자’라고 말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수많은 가치와 기준이 있겠지만 우리가 식민지에서 독립하여 나라를 세우면서 세운 ‘헌법’은 바로 민주주의라는 상식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그 공동체적 약속만은 지켜가겠다는 의지만 있다면 미래를 망칠 일은 적어 보여요.” 

 

작가는 2016년 가을과 겨울을 뜨겁게 수놓은 광장의 촛불에 대해 “유례없는 본보기를 보여줬다”면서 반가운 마음을 전했다. 등사기로 찍어낸 유인물을 길거리에 뿌리며 진실을 알려야 했던 시간을 지나온 작가에게는 남다른 감정이 있었을 것이다.  

 

“얼마 전에 ‘토리노 도서전’에 다녀왔는데요. 그곳에서 만난 이탈리아 작가 친구들이 전부 그래요. 전 세계가 반동의 시대로 접어들었는데 한국만 유난히 사회를 변화시켰다, 저력이 어디서 오느냐, 고요. 제가 한참 자랑을 했죠. 우리가 원래 미디어에 강한 민족이다, 금속활자도 우리가 제일 먼저 만들었다(웃음) 했어요. 70-80년대, 엄혹한 시절에 유인물 몇 장 뿌리고 그걸로 잡혀 가고 그럴 때에 비한다면 지금은 정말 미디어의 막강한 힘을 느껴요. 얼굴도 모르는 개인들이면서 서로에 대한 배려와 연대를 이뤄내는 것을 보고 많은 걸 느꼈어요.”

 

황석영 작가가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강조한 것은 역시 자유였다. 자신의 생애를 담은 자전에서 독자에게 딱 한 가지를 전할 수 있다면 그것은 자유다. “자유란 늘 ‘무엇으로부터의’가 전제되는 구체적인 가치예요. 그것은 추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남에게서 빼앗아 몇몇이 독점하려는 ‘자유’는 슬로건일 뿐 나의 것이 아니지요. 끊임없이 쟁취해야 할 나의 자유에 대하여 깊이 생각했으면 해요.”라는 황석영 작가는 이어 현재를 사는 모든 젊은이들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오늘은 어제 죽은 자의 내일이라는 말이 있지요. 사람은 내일이나 어제를 살 수 없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오늘을 사는 존재입니다. 바로 지금 이 현재가 우리의 생입니다. 함부로 할 수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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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인황석영 저 | 문학동네
우리 시대의 거장 황석영이 몸으로 써내려간 자전(自傳). 현대사의 굴곡과 파란을 고스란히 겪어온 그가 자신이 지나온 삶을 생생한 필치로 증언한다. 숨가쁘게 흘러온 작가 황석영의 생애가 이 책에 고스란히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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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 “확실한 자존감이 필요한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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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바쁘다. 정치할 때는 좀 외로웠는데 정치판을 벗어났더니 의외로 불러주는 곳이 많다. 그렇다. 유시민은 정치에 입문하기 전부터 책을 썼다. 시사 칼럼을 연재했고 토론 프로그램 진행자로도 일했다. 2002년 정치에 입문한 후에도 꾸준히 책을 써온 그. 2013년 정계를 은퇴한 뒤로는 ‘지식소매상’이라는 명함을 파고 전업작가로 살고 있다. JTBC <썰전>, tvN <알쓸신잡> 등에 출연 중이라 간혹 10대들에게는 “방송인이세요?”라는 질문을 듣지만, 그가 가장 긴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집필이다. 파주출판단지 지혜의숲에서 작가 유시민을 만났다. 책상 위에는 『국가란 무엇인가』를 올려두었다. 2011년 4월에 쓴 책으로 올해 1월 개정 신판을 출간, 현재 14만 부가 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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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국가인가?


『국가란 무엇인가』개정신판 리뷰를 보다가 재밌는 글을 발견했다. “책을 안 팔아줘야 한다.” 인세가 들어오지 않으면 정치판에 다시 나올까, 기대하는 독자들이 있더라.

 

웃자고 하신 이야기이겠지만, 정치하면 돈 못 번다.(웃음)

 

방송의 힘이 무섭긴 하다. 요즘 인기가 무척 많다. JTBC <썰전>과 tvN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의 시청자는 좀 다르지 않나? 방송을 보니 아내 분이 추천해서 출연하게 됐다고.


시즌제니까 그렇게 힘들지 않겠다는 생각도 있었고, ‘교양의 확산’이라는 관점에서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을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찍다 보니 독서로도 연결이 되더라. 정재승 박사나 김영하 작가, 황교익 칼럼니스트도 모두 책을 쓰는 사람 아닌가? 통영에서는 박경리 선생의 『토지』를 이야기하고, 또 네루의 『세계사 편력』도 언급되고. 사람들이 방송에 나오는 책을 좀 찾아 읽으시는 것 같더라.

 

<알쓸신잡> 출연진의 도서를 묶은 기획전도 한다. 가끔 베스트셀러 순위를 찾아보기도 하나?


집에서 신문을 두 개 구독하고 있어서 주말판이나 수요판, 북 섹션을 눈여겨본다. 무슨 기준으로 이런 책을 크게 소개하나? 싶을 때도 있지만, 신간을 보면 사람들의 관심사, 트렌드를 알 수 있으니까 볼 필요가 있다. 예컨대 『총,균,쇠』는 우리나라에 번역된 게 2005년 아닌가? 지금까지 스테디셀러인데 읽기 수월한 책이 결코 아니다. 과학자가 쓴 역사책이기 때문에 절반은 과학책이라고 볼 수 있다. 읽고 나면 엄청난 지적 자극을 받는 이 책이 오랜 사랑을 받는 걸 보면 우리나라 독자들이 장난 아니구나 싶다. 하지만 믿을 수 없는 베스트셀러도 많다. 이런 책을 뭐 하러 읽지? 이걸 책이라고 할 수 있나? 이건 그냥 소비재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물론 책의 기능은 다양하니까 생산재도 될 수 있고 소비재도 될 수 있지만, 가끔은 출판사에서 장난 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이런 생각이 들면 꼭 몇 달 후에 신문에 기사가 나더라.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책이 인기가 많다.


선거가 끝났으니 일시적 유행이 아닐까. 시간이 좀 지나 읽을 분들이 다 읽으면 또 다른 책을 읽지 않겠나. 나쁠 거야 없다고 생각한다. 남이 써준 게 아니라 본인이 쓴 책이라면 정치인의 책이든, 대통령의 책이든 가치가 있다고 본다.


『국가란 무엇인가』개정 신판이 6개월 만에 14만 부가 나갔다. 2011년에 초판을 찍은 책이니 개정판이 나오긴 좀 짧은 기간 아닌가 싶었다.


초판을 썼을 때는 내가 정치를 업으로 하고 있을 때라 절치부심이 심했다. 언론, 미디어에서 일종의 반지성주의가 심하다고 느꼈다. 무슨 말을 하면 그 주장이나 의견의 사실적 근거, 이론적 타당성의 여부를 보지 않고, 현실적인 어떤 정파적 대결의 맥락 안에서만 해석을 하니까 힘들었다. 어떤 해석에 이의를 제기하면 그것이 도덕적으로 문제 있는 행동인 것처럼 두들기고. 진보, 보수를 불문하고 일종의 반지성주의 아닌가? 하는 생각이 컸다. 정치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내가 생각하는 국가, 내가 생각하는 정치를 쓴 게 2011년의 『국가란 무엇인가』였다면, 개정판에서는 직업 정치인으로서 주장했던 대목을 덜어냈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국가와 정치를 분석하는 지식인의 시각을 분명하게 입혔다.

 

초판 원고 집필을 시작했을 때는 이명박 정부 3년 차였다. 2009년 1월에 용산참사가 있었고. 박근혜 정부 2년차인 2014년에는 세월호 참사, 2015년에는 메르스 파동, 2016년 10월에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터졌다. 아마 이 같은 사건이 없었다면 개정판을 쓰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이명박 정부가 권력의 폭주였다면 박근혜 정부는 국가의 사유화, 정부의 오작동이다.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파동을 통해 정부의 무능이 드러났다. 국가의 무기력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국가 권력을 사유화하고 오남용한 대통령과 측근들의 행위가 노출되자 대통령의 정치적 정통성이 무너지고 정부의 기능은 사실상 정지됐다. 촛불을 든 시민들은 자문했다. ‘이것이 국가인가?’ 나 역시, 이 질문을 던지면서 다시 한 번 대답을 찾아봤다. 그래서 나온 게 개정판이고.

 

서문에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을 썼더라.


좋아하는 말이다. 눈보라 치는 광장에 섰던 시민들에게 응원의 말이 될 것 같았다.

 

“훌륭한 국가는 우연과 행운이 아니라 지혜와 윤리적 결단의 산물이다. 국가가 훌륭해지려면 국정에 참여하는 시민이 훌륭해야 한다. 따라서 시민 각자가 어떻게 해야 스스로가 훌륭해질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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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얻을 수 있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은

 

글을 정리하면서 느낀 개인적인 소회는 없나?

 

우선 살아가는 방식이 많이 달라졌으니까. 사실 정치는 지적인 활동을 하기 참 힘들다. 일상 자체가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하는데, 사람을 만나는 시간이 너무 많아서 어떤 기업의 제품을 세일즈 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 자신을 판다는 게 좀 다를 뿐이지. 그러다 보니 거의 세일즈맨의 삶과 비슷한 면이 있다. 아주 많은 사람과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가볍게 접촉해야 하는데 이런 생활에서 어떤 기쁨, 삶의 의미, 자기 존재의 근거를 찾을 수 있는 사람도 있지만, 또 아닌 사람도 있다. 나는 후자였던 것 같고. 직업 정치 자체가 한편으론 굉장히 빛나 보이지만, 이면을 보면 상당히 공허한 활동이다.

 

작가의 삶은 반대가 아닐까 싶은데.

 

글 쓰는 일은 겉보기에는 그리 빛나는 일은 아니지만 내면적으로는 굉장히 충만해지는 일이다. 책을 읽고 생각하고, 글을 쓰는 이 행위 자체가 그렇지 않은가? 아주 극단적으로 생각해보면 정말 다른 삶의 패턴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개정판을 쓰면서 느낀 소회는 별 차이가 없다. 그러니까 글을 통해 사람을 만나는 것과 어떤 정치적 메시지를 통해 사람을 만나는 것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는 없다.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본다면.

 

인간이 만들어내는 관계와 사회질서, 그리고 그것들이 변화할 수 있는 폭과 깊이에 대해 예전이나 지금이나 큰 기대를 걸지 않는다. 사람들이 본질적인 변화를 가져오기에는 우리의 생애가 너무 짧다. 근원적인 변화를 이끌고 오기에 인간은 너무 어리석은 존재고. 그래서 소박하게, 그냥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하고 진실한 대화를 나누는데 의미를 두자,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요즘 젊은 세대로부터 ‘멘토’라는 칭호를 받고 있지 않나? 특히 대학생들에게 만나고 싶은 작가를 물으면 ‘유시민’이라는 이름이 빠지지 않는다.

 

멘토라는 것 자체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물론 하고 싶은 마음도 없고. 삶에서 그냥 생각과 감정을 주고받으면서 서로 자극이 되는 관계, 그 안에서 각자가 필요한 조언을 발견해내는 그런 관계 정도가 맞는 게 아닌가 싶다. 멘토라는 게 좀 웃기지 않나? 과연 어떤 사람들이 멘토로서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다. 멘토링을 해서 나온 결과는 누가 책임을 지나? 타인과의 관계에서 어떤 책임을 부여받는 일, 나는 하고 싶지 않다. 내가 하는 말, 내가 하는 주장, 내가 전달하는 보에서 뭔가를 발견했다면, 그 결과도 당신이 져야 하는 게 아닌가? 우리가 리영희 선생님 같은 분에 대해 말할 때, 그 분께 많은 걸 배웠다고 한다. 물론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하지만 그 분을 멘토로 생각하진 않는다. 즉 내 삶에서 요만큼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을 안 한다. 멘토, 멘티를 남발하는 것은 인격적 주체 또는 삶의 주인으로서 각자가 감당해야 할 책임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게 아닌가 싶다. 좀 발칙한 생각이긴 하지만.

 

예전에 한 작가가 이런 말을 했다. “사실 성공하는 사람들을 보면, 멘토링을 듣겠다고 강연장에 오지 않는다. 그 시간에 혼자 이미 실행한다. 책을 보거나.” 맞는 이야기 아닌가, 싶었다.

 

책이 훨씬 낫다. 왜냐면 책은 말보다 훨씬 더 압축되어 있으니까. 또 더 정제되어 있으니까 빨리 읽을 수 있다. 눈으로 읽는 게 말로 듣는 것보다 몇 배 빠르다. 자기가 집중하고 싶은 대목은 반복해서 집중할 수 있고. 서양 속담에 “좋아하는 책의 필자는 만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여러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데, 글은 필자의 어떤 한 면을 보여주는 것이라서 그 사람에게 그런 면만 있다고 생각하면 오해다. 만나보니까 다른 면이 보여 실망할 수 있고, 책은 괜찮았는데 말을 들어보니까 별로일 수도 있다. 말은 덜 압축되니까. 그래서 어떤 사람의 생각이나 감정, 그 사람이 중요하게 여기는 정보는 책으로 접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지 않나, 싶다. 책에서 얻을 수 있는 것보다 더 나은 걸 얻을 수는 없다.

 

동의한다. 만나면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저자는 “기대감을 드러내는 것도 저자에게는 폭력”이라고 하더라.

 

그럴 수 있다. 이해한다.

 

지금의 유시민은 어떤 시기라고 생각하나.


글 쓰는 사람으로서, 상대적으로 높은 긴장이 필요한 작업을 할 수 있는 마지막 시기가 아닐까 싶다. 나이도 들었고 공부도 부족하고. 작년까지 글을 많이 쓰느라 팔이 아파 상반기에는 작업을 거의 못했다. 지적으로 많이 긴장하고 써야 하는 글을 매년 쓰기엔 이제 힘들 것 같다. 앞으로 남은 몇 년은 어떻게 버틸 수 있겠지만, 그 시기가 지나면 긴장도가 높지 않은 장르의 글쓰기로 바꿔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여행, 도시 기행 같은 가벼운 글쓰기랄까. 그쪽으로 전환하는 게 맞지 않을까, 궁리 중이다.

 

살면서 후회하는 일이 있나?

 

딱히 없다. 모든 선택이 잘 되진 않았지만, 그 때 상황에서는 잘 판단해서 행동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나중에 생각해보니 판단이 잘못됐거나 결과가 안 좋았던 것도 있었지만 후회는 안 한다. ‘그 때 내가 잘못 판단했어’ 이렇게 생각할 뿐이지, ‘괜히 그랬어. 다른 걸 할걸’ 이렇게 생각하진 않는다. 당시에는 최선이었으니까. 내 선택이 왜 그랬지? 이유가 뭐였지? 그렇게 돌아보고, ‘비슷한 상황이 생긴다면 다르게 해야겠다’ 그 정도로 생각한다.

 

세상이 돌아가는 판을 볼 때, 화나는 일은 없나?

 

옛날에 강준만 교수가 자주 썼던 말인데, 공격적인 뻔뻔스러움? 그런 걸 느낄 때 화가 난다. 뻔뻔한 건 어느 정도 참아줄 수 있지만 그 뻔뻔함이 공격적인 형태로 표출될 때 화난다. 20대 때는 공격적인 무지를 볼 때 몹시 화났는데, 환갑을 바라보는 50대 후반에 들어선 후에는 권력을 잃어버린 자들의 뻔뻔스러운 공격성이 보인다. 3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는데 아직도 이런 모습을 보고 있으니, ‘사회의 변화라는 게 쉬운 게 아니구나’ 그런 생각이 든다.

 

유시민을 두고 ‘애증’을 표하는 사람이 많은데. 유시민이 애증하는 대상이 있나?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은 것 아닐까. 호불호가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애증, 이건 정치를 하기 전부터 많이 들었던 말이다. 일간지에 칼럼을 연재하고, 라디오 방송, 토론 프로그램도 진행했을 때도 내가 주장이 강한 편이니까, 항상 반대편이 많았다. 입장이 어떠하든 자기 주장이 뚜렷하면 반대편은 생기기 마련인데, 여기에 대해서는 ‘I don’t care’. 그 사람의 문제지 내 문제는 아니다. 나는 내 색깔대로 내가 살고 싶은 대로, 옳다고 믿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고, 이것에 대해 안 좋은 감정을 느끼거나 옳지 않다고 판단하는 것은 그 사람들의 몫이다. 내가 간섭할 문제가 아니다. 그래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보고 별로 마음을 쓰지 않는다. 오늘도 <썰전>에서 청와대 인선에 대해 비판했다고 문자 메시지, 메일을 엄청 받았는데 이것도 OK. 내가 남을 비판했으니까 남이 나를 비판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내가 비판한 당사자가 나에게 항의하지 않는 것처럼, 나도 나를 욕하는 SNS 유저들에게 항의하지 않는다. ‘That’s OK’하고 넘어간다.

 

오래 전 해명한 개혁당 ‘조개’ 발언이 지금도 페미니즘 관련 책에 등장하던데.


알고 있다. 온라인에 뭔가 한 번 나타나면 없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어쩌겠나. 명백히 왜곡된 보도였고 내가 항의를 했지만 시정이 안됐다. 계속 맥락 없이 인용되고 있는데, 이건 나의 과거 활동의 부산물이라고 생각하고 내버려둘 수밖에 없다. 내가 알려진 삶을 살았으니까, 내 모든 게 있었던 그대로 알려지기를 바랄 순 없다. 그래서 ‘욕을 하려면 욕을 해라, 내가 일일이 따라다니면서 그걸 바로 잡는데 인생을 쓸 수는 없다’가 내 태도다. 아무리 해명을 해도 안 듣는 상대들이 있다.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이제 해명을 안 한다.

 

우리나라 보수들이 ‘이런 책 좀 읽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은 안 하나?


글쎄. 내가 인문, 사회, 역사 쪽 글을 쓰는 사람인데도 이쪽 분야 책은 잘 안 읽게 되더라. 익숙해서 그런지 아니면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라서 그런지, 지적인 자극이나 긴장감이 별로 없다.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과학 책을 좀 많이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있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떤 의견을 형성하고 주장하게 될 수밖에 없지 않나? 그런데 이런 의견이나 주장의 토대가 되는 기본적 사실을 우리가 얼마나 알고 하나, 그런 의심이 많이 든다. 이를 테면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질문보다 ‘우리는 무엇이냐?’는 질문이다. 보통 인문학이 인간의 문제, 삶의 문제를 다룬다고 하는데, 과학도 부분적으로는 동일하다.

 

근거를 더 살펴야 한다는 말로 해석된다.


그렇다. 최근 과학자들이 발견해낸 물리적 존재로서의 인간에 대한 팩트로, 인문서나 사회 서적에 들어 있는 정보나 이론, 주장, 견해를 살펴볼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어떤 새로운 주장이 나올 때, 바탕이 되는 근거들이 얼마나 튼튼한가에 의문이 간다. 진보, 보수가 논쟁해서는 끝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우리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인간에 대한 과학적 사실을 토대로 접근하는 게 더 낫지 않나? 싶은 거다. 트럼프는 온실 효과도 부정하지 않는가. 이건 진보, 보수의 문제가 아니라 무지의 문제다. 그래서 최근에는 인문서, 사회과학서보다 과학책을 더 보고 있다. 좀 어렵긴 해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작년에 『사피엔스』를 읽고 극찬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최근에 재밌게 읽은 과학 책은 무엇인가?


『랩 걸(Lab Girl)』을 재밌게 읽었다. 여성 과학자 ‘호프 자런’이 식물에 비추어 세상을 바라보는 이야기인데, 과학 연구자들의 삶에 관한 내용도 있고 철학적으로 보면 페미니즘 시각도 전반적으로 깔려 있다. 올해 들어 가장 재밌게 읽은 책인데 지적으로도 아주 큰 도전을 받았다. ‘내가 아는 게 별로 없구나’라는 사실도 새삼스레 느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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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의 폭, 크기, 강도

 

새 정부, 문재인 대통령을 어떻게 보고 있나?

 

대통령이 굉장히 용기를 내서 일하는 것 같다. 그 점이 마음이 놓이고. 계속해서 용기를 갖고 할 수 있도록 국민들이 지켜봐야 하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한다.

 

책에서 “선호하는 국가론과 선호하는 리더십 스타일 사이에는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했다. 지금 대한민국은 어떤 리더십을 가진 사람들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나?

 

자존감이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스스로 판단할 줄 알고 옳고 그름을 가리려고 노력하는. 대통령은 최고 권력자 아닌가? 어디를 가나 대화를 주고받아야 한다. 그 자리에서 정서적으로 교감을 할 수 있는 게 중요한데 문재인 대통령은 참 잘한다. 문 대통령은 자존감이 엄청 강한 사람이다. 자존감이 강한 만큼 다른 사람에 대한 존중도 강하다. 그리고 상대방이 그걸 느끼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의 앞에서 위축되지 않고 셀카도 찍자고 한다. 상대가 나를 존중하지 않을 거라는 예측이 있으면 경직된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권력을 가진 앞에서는 긴장하게 되는데, 그 사람이 나를 존중하는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면 자연스러워질 수 있다. 지금 김정은 옆에 있는 사람과 문 대통령 옆에 있는 사람을 비교해봐라. 두 사회의 체제의 차이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권력자의 인격, 자존감의 차이를 보여준다. 그래서 나는 확실한 자존감을 가진 사람이 권력을 가졌으면 좋겠다. 그래야 뻔뻔하게 정치하지 않는다. 자기 무지를 공격적으로 과시하지도 않을 거고, 잘못했으면 잘못했다고 사과할 줄 알고.

 

『국가란 무엇인가』도 결국 정의와 존중 아닌가.

 

이 책에서 가장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 “민주공화국의 시민, 유권자라는 사실에 대해 대통령 자리에서 느끼는 만큼의 자부심을 시민들이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민주주의자가 없으면 민주주의가 잘 안 된다. 단순한 원리지만, 주권자답게 행동하는 민주주의자가 많아야 민주주의가 제대로 간다. 이번 촛불집회 때 가장 두드러진 대목이, 스스로를 대표하는 시민들이 많이 나왔다는 점이다. 우리 현대 사회에서는 별로 없었던 현상이다. 깃발 밑에 모이지 않고, 직접 만든 손팻말을 든, 자기 의견을 직접 대변하는 시민들이 대거 등장했다는 사실에 의미를 둬야 한다. 이건 자존감이 강한 시민이라는 증거다. 최근에 『자존감 수업』이 베스트셀러가 된 것도 나는 좋게 봤다.

 

자존감을 인지하는 독자가 많아진 현상에 대한 긍정적 인식인가?

 

그렇다. 사실 그런 책은 흔할 수 있지만,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오랜 임상경험을 토대로 일반 원리를 밝혀주니까. 제목이 독자들에게 크게 어필하지 않았나? 그건 스스로 자존감이 너무 약한 것 같다고 자각한 독자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아이를 키울 때, 절대 자존감을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다음부터 회복이 안 된다. 학교에서 성적이 많이 안 나오고 체육 시간에 다른 애들에 비해 체력이 조금 떨어져도 자존감이 있으면 견뎌낸다. 삶을 자기가 버텨낸다. 그런데 자존감이 무너지면 그 때부터는 막 나간다. 엄마한테 욕하고 대드는 것도 아이의 자존감을 파괴했을 때 나오는 현상이다. 엄마가 자존감을 지켜주는 양육을 했더라면 어떤 경우에도 엄마에게 욕하지 않는다. 사회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자존감이 진짜 중요하다. 사회의 리더가 됐든, 일반 시민이 됐든 간에 한 사회의 수준과 품격을 좌우하는 건 시민 개개인이 갖고 있는 자존감의 폭, 크기, 강도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든다.

 

젊은 독자들이 유시민에게 가장 궁금해 하는 질문을 찾아봤다. 토론 잘하는 법이 압도적이더라. 책과 방송에서도 종종 말했지만, 압축해서 이야기를 해준다면.

 

논리적으로 말을 잘하고 싶다면 일상적인 삶에서 누군가가 논리적이고 지적인, 정신적인 도발을 해오는 걸 즐겨야 한다. 자기도 도발하고 주변에 그런 친구들이 있어야 한다. 친구가 됐든, 동료가 됐든. 내가 운동권 생활을 꽤 했지 않나. 늘 그런 생활이었다. 사실 지금보면 다 틀린 이야기인데, 그 맞지도 않는 이야기를 두고 피 터지게 논쟁했다. 독일 유학 5년 동안도 늘 도전의 연속, 정치 생활 10년에서도 일상이 매일 공격과 방어였다. 그렇게 20년 넘게 살다 보니, 나도 모르게 사고 패턴이나 문장을 구사할 때 사용하는 어휘나 문장의 형식이 논쟁적으로 되더라. 그런데 정치는 그렇게 하니까 잘 안 된다. 정치는 세일즈라 논쟁해서 팔 수는 없으니까.

 

지적 도전을 많이 받으려면 책 읽기만큼 좋은 방법은 없을 것 같은데.

 

물론이다. 나는 책을 읽을 때마다 늘 생각한다. ‘이거 맞아? 이렇단 말이야? 이 이론이 맞다면 내가 지금까지 생각한 개념이 무너져야 하나?’ 매일이 도전이다. 책을 읽고 생각해보고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아닌 건 참고하고. 그렇게 가면 된다. 독서뿐 아니라 일상생활 모든 데서 도전 받고 응전 받는 걸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삶의 긴장감이 느껴진다. 최근 예능 프로그램 속 모습과는 다르다.(웃음) 역시 사람에겐 다양한 면이 있다. 다음 주에 유럽 여행을 간다고 들었다. 여행 작가가 오랜 꿈이지 않나? 여행서는 언제쯤 출간 예정인지.

 

그건 좀 시간이 걸릴 것 같다. 먼저 작업할 책이 있어서 준비 중이다.

 

어떤 책인가?

 

우리말로 옮기면 의미 전달이 좀 어렵던데. History of writing history. 일종의 ‘역사서 속의 역사’를 쓰고 있다. 역사 서술이 어떻게 바뀌어 왔는가를 찾아보는 책인데, 돌베개에서 나올 예정이다. 연말까지는 이 작업을 해야 해서 좀 바쁘다.

 

『국가란 무엇인가』를 읽은, 또는 읽을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 이런 책을 읽고자 마음먹은 독자에게 어쩌면 더 희망이 있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을 읽고 국가에 대해 이해를 하셨다면, ‘내가 사는 국가를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려면 내 몫은 뭐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뭐지?’를 생각해보셨으면 좋겠다. 그것이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정부의 한 책임자를 바꾸는 일도 수많은 사람이 보이지 않은 곳에서 노력해서 바뀐 게 아닌가? 일상적인 삶 속에서 헤아릴 수 없는 사람이 꾸준히 노력해야만 사회가 조금씩이라도 좋아지는 건 사실이니까. 그 일을 찾는데 조금이라도 이 책이 보탬이 된다면 더 없이 좋을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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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한 내용은 링크클릭!


 

 

국가란 무엇인가유시민 저 | 돌베개
2016년 10월 말부터 나라를 뒤흔든 최순실 국정농단, 세 차례에 걸친 박근혜 대통령의 국민 담화, 이어진 청문회와 특검, 대통령 탄핵 그리고 아직 판결이 내려지지 않은 여러 사안들까지. 그 일련의 과정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한번쯤 이런 질문을 던졌을 것이다. 왜 우리는 이런 국가에서 살고 있는가?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정혜윤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로 우리를 에워쌀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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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BS 라디오 PD, 에세이스트, 『침대와 책』, 『삶을 바꾸는 책 읽기』, 『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 『그의 슬픔과 기쁨』등을 쓴 저자이자 독서가. 이것 하나하나가 정혜윤이라는 사람의 정체성이다. “각자 몇 개의 정체성이 주렁주렁 있잖아요. 그 중 어떤 정체성을 내가 선택하는 거죠. 이 지상에서 내가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정체성을 갖고 있느냐 없느냐는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라는 정혜윤은 『인생의 일요일들』을 쓰면서 ‘일요일의 순간을 모으는 사람’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삼았다. 그 시간은 행복했다. 제비의 분방함, 부드러운 하늘이 주는 감동을 내가 갖는 언어로 설명해내려 애쓰는 일은 분명 그 자체로 행복이었다. 그 행복이 책을 타고 독자에게 전해진다.

 

정혜윤 PD는 이 행복, 좋아하는 것들의 정체와 이유를 찾고 좋아하는 것들을 더 늘리는 기쁨을 더 많은 사람들이 누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삶은 자주 나를 상처 입히고, 짓누르기 때문이다. 그런 시간에 약해지고 무너져 있기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동시키고 싶다는 생각으로 힘을 내는 사람들에게 정혜윤 PD는 자신이 가진 많은 ‘인생의 일요일’을 소개하고 싶었다. 생각만으로 기분이 좋아지는 일요일의 시간들을 선물하고 싶었다. 그렇게 세상이 한 뼘 더 넓고 깊은 곳으로, 조금은 살 만한 곳으로 남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 한 권의 책을 세상에 내놓았다. 

 

우리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인생의 일요일들’을 수식하는, 와 닿는 문구들이 곳곳에 있습니다. 삶이 내 안에 모이는 시간, ‘나는 안전하다!’는 느낌 같은 것들인데요. 멋진 편지를 받은 기분이 들었어요.

 

이 책에 ‘책이 오늘의 운세’라는 표현이 나오죠. 좋아하는 책 아무 페이지나 펼쳐서 오늘의 운세를 삼았다는 내용인데요. 일종의 토템이죠. 책이 제게 그런 존재였던 거예요. 살면서 책으로부터 받은 힘이 정말 큰데요. 그런 책을 나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거예요. 책을 읽은 후에 좀 더 힘을 얻거나 기분이 나아질 여지가 페이지마다 있는 책 말이죠. 어디를 펼치든지 보는 순간 훨씬 더 기분이 밝아지고 무게가 가벼워지는 책을 쓰고 싶은 소원이 제게 있었던 거예요. 사람들이 좀 더 힘을 내길 바랐어요.

 

사람들이 더 힘내길 바란 이유가 있었겠죠?


마음이 쓰라리거나 복잡하지 않은 삶이란 없다는 걸 알게 된 거예요. 사랑, 일, 인간관계 혹은 가족 때문에 어디선가는 남몰래 내 마음을 어떻게 추슬러야 할지 모르는 상황들이 다 있단 말이에요. 하다못해 발톱 통증까지 포함해서요.(웃음) 매일 매일이 좋은 날은 결코 아니죠. 당연히 좋지 않은 날도 있고, 힘을 못 내겠다고 생각하는 날도 있고, 마음이 밑바닥을 치는 날도 있는데요. 그럼에도 사람들은 자신을 위로하고 힘을 내려고 한다는 거죠. 그냥 ‘끝낼래’라고 하는 사람 별로 없어요. 그럴 때 정말로 도움이 되는 책을 쓰고 싶었어요.

 

덕분에 각자의 ‘인생의 일요일’이란 무엇인지도 따져보게 돼요. 


찰스 부코스키 책의 한 구절인데요. 라디오를 듣는데 말러 교향곡이 나오죠. 이때 찰스 부코스키가 혼잣말을 해요. “계속해 말러, 계속해 말러”라고요. 좋으니까 하는 말이죠. 바로 그 ‘계속해’라고 할 때의 순간이에요. 어떤 순간이 너무 좋아서 ‘여기 조금만 더 계속 되었으면 좋겠다’, ‘이대로 조금 더 있고 싶어’ 하고 생각하는 거요. 더 정확히 말하면 내 영혼이 더 밝아졌다는 뜻이겠죠. 일시적일지라도 다른 걱정은 없다는 뜻이겠죠. 그걸 ‘일요일’이라고 표현한 거예요. 순간의 충족성이 있는, 내가 좀 더 회복되는 시간 말이에요. 그것은 어느 오아시스 같은 시간이라고 해도 괜찮아요. 저는 그런 시간이 개인의 일상에 좀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내가 지상에 있는 것이 편안해지는 시간이 더 늘어나야 한다고 생각한 거예요. 이 책을 읽은 분들도 책을 읽고 내게는 언제가 일요일의 시간인가를 생각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고요.

 

맨 처음 그런 마음이, 이 책이 저자의 마음속에서 시작되는 장면이 궁금하네요.


예전에 독자와의 만남을 갔는데 한 분이 피곤에 지쳐 벽에 기대고 있는 거예요. 그분이 누굴까 궁금했는데 사인을 받으러 오셨더라고요. 어떻게 오셨느냐고 물었더니 소방관이라고 하시면서 출동 전에 소방차 앞에서 책을 읽으신다는 거예요. 힘을 내려고 책을 읽는다고요. 그때 약속을 했어요. 출동 전에 읽을 만한 책을 꼭 쓰겠다고요.(웃음) 사실은 그 약속의 결과예요. 또 한 번은 어떤 할아버지가 강연 때마다 매번 오셨어요. 『삶을 바꾸는 책 읽기』강연이었던 것 같은데요. 네 번째 쯤 됐을 때 어떻게 오셨느냐고 물었죠. 그분이 암 환자셨던 거예요. 병원에서 시간이 너무 안 가잖아요. 제 책 뒤편에 인용된 책 목록을 보셨는데 하나도 아는 게 없더래요. 살아 나가서 이 목록에 있는 책을 다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을 하신 거예요. 그리고 정말로 퇴원을 해서 다 읽으셨다고 하더라고요. 그분도 정말 큰 영감을 주셨죠. 『인생의 일요일들』을 쓸 때 정말로 이 두 분을 생각하며 썼어요.

 

쓰면서도 참 평화로웠을 것 같아요.


쓸 때 행복감이 굉장했어요. 궁금했어요. 왜 이 글을 쓸 때 이렇게 행복한가. 이를 테면 오늘 일몰이 참 예쁘지 않니, 라고 하는데 그것이 왜 예쁘고 좋은가를 표현하려고 굉장히 애를 썼던 거예요. 사람들은 꽃구경을 가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왜 그걸 좋아할까요? 그걸 표현해보고 싶었어요. 실은 우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기도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고 느껴요. 더 나은 일이 벌어지기를, 더 좋은 일이 생기기를, 더 좋은 일을 해볼 수 있기를 기도하죠. 그런 것들이 얼마나 다른 것들에 의해 도움을 받는지 모르겠어요. 하늘이 맑다는 이유로, 무지개가 떴다는 이유로 굉장히 좋은 기운을 받잖아요. 그렇게 제가 세계로부터 받은 좋은 에너지를 표현했기 때문에 굉장히 기뻤어요.

 

누구에게나 있지만 눈 밝은 사람에게만 발견되는 에너지란 생각도 들거든요. 내 삶의 일요일을 곰곰이 따져보는 게 얼마나 소중한 힘인지도 말이죠. 


우리의 일상을 구성하는 많은 것들은 사실 사소한 것들이에요. 사소하지만 어느 날은 결국 그런 것들로부터 위안을 받는단 말이에요. 마음이 아주 슬퍼본 사람은 알 거예요. 갑자기 눈앞에 너무 예쁜 꽃이 피어 있는 걸 희망의 징조로 여긴단 말이에요. 그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어딘가에는 마음을 기탁해서, 에너지를 나누면서 더 좋은 상태가 되려는 마음이죠. 가장 나쁜 일, 가장 슬픈 일조차 그곳에 함몰되지 않는 상태로 바꾸고자 하는 마음, 이걸 굉장히 귀하게 여긴 거예요.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데에 어떤 특별한 계기라도 있었을까요?


살면서 도저히 납득이 안 될 정도로 슬픈 처지의 사람들이 오히려 남을 위하면서 힘을 내는 걸 많이 봤어요. 경이로웠어요. 저 사람은 적개심과 환멸감을 품고 냉소적이거나 공격적으로 변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데 그들이 오히려 더 큰 걸 생각하는 거죠. 그때 받은 감동들이 대단해요. 사람에게는 우리 생각보다 훨씬 높은 차원이 있다고 생각했고요. 그게 저를 굉장히 숙연하면서 기쁘게 했어요. 나도 저 방향으로 가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한 할아버지가 분노에 몸을 떨면서 이렇게 말했어요. 테이블을 주먹으로 꽝 치면서요.

“선박 사고가 나서 아이들이 몽땅 죽은 곳이 한국 아니요? 선장과 그 일을 저지른 모든 놈들에게 저주 있기를…”

“그 애들은 그렇게 죽어서는 안 되는 거였어.”

“그래, 그 애들의 부모는 어떻게 살고 있소? 그 애들의 형제자매는 어떻게 살고 있소? 그 애들의 친구들은 어떻게 살고 있소? …그 애들의 방은 어떻게 됐소? 그 애들의 책과 옷은?”(170-171쪽)

 

예를 들어볼게요. 이런 이야기예요. 세월호 유족 한 분은 아들을 잃었어요. 시신이 늦게 올라와 시신을 만져보지도 못하고 장례를 치렀고요. 오랫동안 실어증을 앓았어요. 그분이 담양에 고등학생들을 만나러 가는데요. 그 자체가 너무 고통이죠. 담양행 자체가 어마어마한 직시의 용기를 의미하는 거죠. 그렇게 담양의 고등학교를 갔는데 남학생들이 오더니 그냥 그분을 안아준 거예요. ‘엄마 고마워’ 하면서요. 그런데 그 순간 이분이 불끈 힘을 내는 거죠. 실어증을 뚫고요. 우리 아들은 죽었지만 내가 지킬 아이들이 더 많다, 이 아이들을 위해 온 힘을 다해 뭐든 해봐야겠다, 생각하죠. 바로 이런 이야기들이에요. 그가 보여준 엄청나게 슬픈 용기, 그런 사람들까지도 힘을 내게 하는 에너지, 뭔가를 위해 자신의 힘을 쓰고 있는 삶, 그런 것들이 제게는 가볍지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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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처에 그리스는 있어요


많은 이야기들 중에서 딱 하나의 이야기만 가져간다면 저는 단연 쇠똥구리 이야기를 꼽을 거예요. 그것은 틱낫한 스님의 ‘종이는 종이 아닌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말을 떠올리게 하는 정말 멋진 이야기였거든요. 저자는 어떤 이야기를 가장 좋아하세요?


그리스 이야기를 썼지만 사실은 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것들이에요. 가장 빛나는 곳, 가장 천상의 평화를 누리는 곳인데요. 나플리오의 하늘은요, 그냥 전체가 분홍 바다예요. 보면 정말 충격 받아요. 그렇게 부드러울 수가 없고요. 지구가 그렇게 저한테 다정해보인 적이 없었어요. 분홍 꽃잎이 떠다니는 어떤 곳에 있는 것 같았어요. 이런 순간이 있어 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말 정서적 충격을 받았어요. 세상에서 가장 관대한 사람과 함께 있는 기분이었어요. 그런데 옆에 갑자기 너무 많은 제비가 신나게 나는 거예요. 정말 귀여웠어요. 근심 걱정 없는 세계를 보는 느낌이었죠. 그날 정말 많은 에너지를 받았어요.

 

시기적인 면도 영향이 있었겠죠? 2015년에 그리스를 다녀오셨잖아요.


네, 그때가 한참 제가 세월호 방송 하고, 개인적인 일도 있고 해서 상당히 생각이 많았던 시기였어요. 슬프기도 하지만 사는 동안 어떻게 살아야 할까 싶었을 때죠. 어떤 삶을 ‘살았다’ 할 만하게 살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컸어요. 기왕 산다면 잘살고 싶어진 거예요. 이제는 약해지는 것, 핑계를 대는 것, 이런 걸 스스로에게 허용하고 싶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해도 다른 길이 있을 리가 없잖아요. 다만 그런 고민을 안고 그리스에 간 거죠. 그런데 정말로 이 책에 쓴 여러 가지 표현들은 과장이 아니에요. 너무 빛났고, 너무 또렷했어요. 그리스라서 생긴 일이라고만 할 수는 없겠죠. 하지만 제 시선이 그걸 열렬히 찾고 있었던 건 사실이에요.

 

그리스가 아닌 어디라도 그랬겠네요. 여행 하는 이유를 ‘출국할 때의 모습으로 돌아오고 싶지 않다’라고 꼽기도 했으니까요.


맞아요, 정말 선명하게 ‘이거였구나’하고 느낀 곳이 그리스였지만 도처에 그리스는 있어요. 도처에 해안선은 있고, 도처에 바위산은 있죠. 제가 마니에서 상상 속의 대화를 하잖아요.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 구원이란 무엇인가, 계속 질문하잖아요. 마음이 무거웠을 때 제비처럼 가벼워져서 날듯이 살고 싶긴 한데 그러기 위해 무엇을 바꿔야 할까, 하는 질문이 집요했던 시기였어요.

 

질문에 대한 답은 찾으셨나요?


테바이의 소나무 언덕에서 찾은 것 같아요. 저 자신이 누군가에게 아주 좋은 일이 일어나는 서막이 되는 거죠. 저는 누군가에게 좋은 일의 시작 같은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거든요. 조금만 배려하면, 조금만 노력하면 타인의 삶이 훨씬 덜 힘들어진다는 걸 굉장히 많이 느껴요. 왜냐하면 저도 힘들 때 하다못해 경비원 분이 “오늘 왜 표정이 어두워?”라며 염려하는 시선을 보내면 그것 때문에라도 밝아지고 싶었으니까요. 하늘, 바다, 한 편의 글, 시에서 늘 구원을 받았고요. 그것이 없는 척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세상에 좋은 것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이 누구에게나 있다는 거죠. 제 해답은 그때 품었던 끝없는 질문에 계속해서 충실하고자 하는 거예요.

 

좋은 것을 늘리려는 마음을 먹긴 하지만 세상에는 그것을 아래로 잡아끄는 것들이 너무 많이 있잖아요.


그러니까 이 책은 균형 감각이에요. 삶에 아무 일이 없어서 읽는 책이 아니라 분명히 끌어내리는, 무겁게 짓누르는 것들이 있음에도 읽는 책이거든요. 책에도 지옥에서 꽃 한 송이 들고 균형 감각을 맞췄다는 표현이 나오잖아요. 이런 책이나 우리가 갖는 일요일의 시간 자체가 사실은 균형 축이에요. 나머지 시간은 어렵고, 힘들고, 쓰라리죠.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살 수가 없고요. 먹고, 일하고만 살 수 없듯이 일요일의 시간으로 균형 축을 맞춰주는 거예요. 이 시간이 더 늘어나야 한다는 거예요.


각자 몇 개의 정체성이 주렁주렁 있잖아요. 그 중 어떤 정체성을 내가 선택하는 거죠. 재즈 애호가라든가 피콜로 연주자라거나 그림 그리는 사람이라거나 말이에요. 이 지상에서 내가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정체성을 갖고 있느냐 없느냐는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정말 공감해요. 적극적으로 선택해 나의 것으로 삼는 정체성이 하나쯤은 있어야 해요.


아무도 주어진 사회적 역할로만 살 수는 없어요. 제 경우 이 글을 쓰는 순간에는 ‘일요일의 순간을 모으는 사람’이 제 정체성이었어요. 일요일의 기억들을 모으는 사람이요. 이 정체성이 정말 행복했어요. 좋아하는 것들을 쓰면서 그 기운 속에 있는 거니까요. 우리는 우리가 좋아하는 것들로 우리를 에워쌀 수 있어요. 그것은 내가 무엇에 영향을 받을지를 선택할 수 있다는 거예요. 사물들은 분명 우리에게 영향을 미쳐요. 우리는 늘 영향 받는 존재들이죠. 그렇기 때문에 무엇에 영향 받을지 선택할 수 있는 거예요. 가령 저는 책에 영향 받기를 스스로 선택한 사람이에요. 또 돌고래만 보면 좋아요. 제비만 보면 정말 좋아요. 나는 이들에게 영향 받기를 선택했어요. 일요일이란 그것들에 지속적으로 영향 받는 시간인 거죠. 그래야만 균형이 맞춰져요.

 

안 할 일을 찾는 것


앞서 책을 토템 삼았다고 하기도 하셨고, 책에 영향 받기를 선택했다고도 하셨는데요. 어떤 책들은 특별히 더 와 닿잖아요. 저자에게 그런 책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할아버지, 제 능력 이상으로 해봤습니다.” 이 한 문장을 항상 외우고 있었어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영혼의 자서전』에 나오는 말인데요. 아침마다 ‘오늘의 운세: 내 능력 이상으로 한다’(웃음) 이렇게요. 사실 저는 그렇게 무엇을 많이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에요. 그렇지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겠다는 약속을 한 거죠. 책의 어떤 문장을 외우고 있다는 건 그 말에 영향 받겠다는 뜻이에요. 그 영향으로 원래의 나보다 좀 더 나은 모습으로 힘을 내 살아보겠다는 의미죠. 오늘의 운세로 다가온 그 문장의 힘으로 좀 더 분투하겠다는 거죠. 그리고 제 책도 누군가에게는 그렇게 되기를 너무나 원해요.

 

최근에 새로 발견한 책도 있을까요?


틈이 많진 않지만 틈나는 대로 책을 읽어요. 제가 좋아하는 책은 가령 이런 거예요. 흰눈썹긴목뜸부기라는 새가 있다고 해봐요. 걔네들이 멸종 위기인데 수많은 나라의 농민들이 의견을 모아 새끼 새가 자랄 때까지 풀을 베지 않기로 약속을 해요. 그래서 이 새들이 멸종을 면해요. 저는 그런 이야기를 굉장히 좋아해요. 내가 할 일이 있다는 느낌을 주거든요. 풀을 안 베면 되잖아요.(웃음) 내가 어떤 일을 조금 더 해서 남이 조금 덜 힘들어질 여지가 있는 책들을 좋아하는 거죠. 책이 저한테 힘을 준다는 건 바로 그런 뜻이에요. 할 일을 찾는 거고요. 혹은 안 할 일을 찾는 것과 같아요.

 

어떤 면에서는 삶의 철학처럼 들리기도 하는데요.


사실은 복잡한 마음의 소유자지만(웃음) 약함을 허용하지 말고 최대한 강해지면 좋겠어요. 그럴 때 많잖아요. 본심과 다르게 행동하거나 말을 할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 가능하면 남을 덜 힘들게 하는 게 강한 선택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것을 할 수 있게 하는 책, 그런 책이 좋은 책이고요.

 

문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참 멋진 정체성 같아요.


이유가 있는데요. 저는 읽고 정말 좋으면 그렇게 살고 싶어 해요.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나아질까 늘 궁리하는 사람으로서 독서를 하니까 어떤 문장은 정말 나한테 도움이 된단 말이에요. 원래의 나로서는 책이 없다면 이런 생각은 할 수도 없어요. 원래의 나는 그런 멋진 생각은 꿈도 못 꿔봤어요. 그런데 책이 있으니까 좀 닮아야겠어(웃음)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그 때문이지 사실 반드시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없어요. 그렇지만 그것이 분명히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에요.

 

그것은 세상에 대한 감수성이기도 하겠죠.


『리어 왕』 마지막 부분에 ‘이제 우리가 해야 할 말을 하지 말고 느끼는 것을 말하자’라는 표현이 나와요. 리어 왕은 정점에서 바닥으로 추락한 사람이죠. 그렇게 추락한 사람 이야기의 마지막 문장이 이것이라는 사실의 의미를 생각해봐요. 우리는 느낀다고 말하지만 안 느낄 수도 있어요. 안다고 하지만 모를 수도 있죠. 어떤 날은 무엇을 보고 눈물을 흘리는데 그렇게까지 진심은 아닐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때 나는 과연 살아 있는 건가, 누군가와 관계를 맺을 줄 아는 사람인가, 싶어져요. 그런데 옆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아무것도 못 느끼는 게 지옥의 핵심이죠. 저는 살면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타인에게 주의를 기울이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최대한 관대한 것, 최대한 친절한 것, 그것 외에 달리 제가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지, 더 찾아야겠지만요. 지금 알고 있는 것은 그거 하나예요.

 

CBS 세월호 2주기 특집 다큐 <새벽 4시의 궁전>으로 한국방송대상 다큐멘터리 부문 작품상을 받기도 하셨어요. 잘 알려졌듯 쌍용차 해고 노동자의 이야기를 담은 르포 『그의 슬픔과 기쁨』도 쓰셨고요. 그것들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가 돼요. 타인에게 주의를 기울이는 것, 말이죠.


라디오 PD, 독서가 등을 다 합친 나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하루하루가 모인 나는 무엇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한 관심을 갖고 살려고 굉장히 노력을 해요. 그래야만 꼭 필요한 사람에게 꼭 필요한 일을 할 수 있어요.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그것 외에는 태어나서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어요. 최대한 친절하고, 꼭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적절하게 짠하고 나타나서 도움을 주는 것 외에는 말이에요. 그 판단을 하려고 애쓰는 거죠. 그리고요. 저는 책읽기가 취미였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어요. 항상 죽기 살기로 읽어요.(웃음)

 

그렇다면 쓰는 건 어떤 마음에서 비롯되나요?


언제부턴가는 제가 쓴 글을 제가 닮아가고 싶어서 써요. 몽테뉴도 그런 표현을 했잖아요. ‘내가 쓴 글이 나를 만든다’고요. 저도 같아요. 지금의 나보다 글을 쓴 뒤의 내가 더 나아졌으면 좋겠어요. 내가 쓴 글이 나한테 영향을 많이 미쳤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저는 책 쓸 때 최선을 다하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늘 끝까지 가요. 그런데 그 책이 별로라면 그것은 저의 한계인 거예요.(웃음) 더 잘할 수 있는데 안 한 적은 없어요. 모든 책은 그 당시의 저고요. 어떤 책이 이전 책보다 나아졌다면 그것이 큰 기쁨이겠죠. 그러니까 책을 쓰는 것은 내가 어딘가에서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기쁨을 줘요.

 

앞으로 꼭 써보고 싶은 책도 있겠죠?


사랑. 제가 인간이 다 똑같지 않다는 걸 말하면 사람들은 별로 안 믿을 거예요. 그 말을 깊게,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은데요. 저는 인간성의 깊이를 말하는 거예요. 사람 안에는 우리가 모르는 면이 너무 많아요. 특히 그 사람이 길을 잃었을 때, 아주 슬픈 일을 당했을 때 다시 길을 찾는 삶의 기술, 그것만큼 중요한 건 없다고 봐요. 그때 길을 잃게도 하고, 찾게도 하는 게 사랑이에요. 내가 누구와 함께, 어떤 관계로 이 삶을 헤쳐 나갈지 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주의 깊게 관찰했어요.

 

독자의 ‘인생의 일요일들’을 응원하는 한 마디를 부탁드려요.


힘든 일이 있어도, 삶의 한쪽이 굉장히 쓰라려도 그냥 이대로 무너지지 않고 어떻게든 겪어내겠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이 책을 읽으셨으면 좋겠어요. 그럴 때 제가 곁에 있고 싶은 심정으로 쓴 부분이 꽤 있어요. 이 책을 읽으면서 각주로 자신의 ‘인생의 일요일’을 생각해보고 적어봤으면 좋겠어요. 확실히 그걸 쓰다보면 행복감이 들어요. 저는 일요일이 너무 많거든요.(웃음) 그리고 계속 더 가보자고요. 우리가 일요일들에서 힘을 얻는 이유는 여기서 더 가보려고 하는 거예요. ‘인생 별 거 있어’라고 말하기 위해서가 아니고요. 조금 더 강해지기 위해 이런 시간이 필요해요. 사람이 어떻게 당하고만 살아요? 그러면 안 되는 거죠.

 


 

 

인생의 일요일들 정혜윤 저 | 로고폴리스
『인생의 일요일들』은 아름답고 힘을 주는 것들로 자신을 둘러싸는 것이야말로 자기 치유의 비법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읽는 이에게 일상에서든 여행에서든 경탄과 영감을 주는 것들을 찾아내는 법, 그것들을 잊지 않는 법, 그것들로 자신을 감싸 치유하는 법을 알려준다. 책을 읽는 누구나 자신에게도 일요일의 시간이 있음을, 그 시간을 언제든 불러올 수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재즈 베이시스트 황호규 “순수한 음악인의 삶을 택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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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베이스 연주자 황호규는 지금까지 단 한 장의 앨범도 발표한 적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수년 전부터 재즈 연주자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거론되는 연주자이다. 그것은 미국의 셀로니어스 멍크 재즈학교(Thelonious Monk Institute of Jazz)가 격년으로 단 한 명 만 선발하는 베이스 장학생으로 그가 뽑혔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는 디디 브리지워터(Dee Dee Bridgewater), 테리 린 캐링턴(Terri Lyne Carrington)밴드에서 연주했고 지금도 정상급 재즈 연주자들로부터 지속해서 콜을 받고 있는 한국의 재즈 연주자다. 그럼에도 2011년 군 복무를 위해 귀국했던 황호규는 제대 후 현재 호원대학교 전임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러던 그가 드디어 자신의 첫 음반 <체이저 없이 스트레이트로 Straight No Chaser>(블루룸 뮤직)를 발표하고 새로운 활동을 시작했다. 한남동에 위치한 소속사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얼마 전 일본 투어를 다녀왔다고 들었다. 누구와 함께 연주했었나?


일본의 트럼펫 주자 토쿠(Toku)의 초청으로 함께 연주 여행을 다녔다. 토교를 중심으로 대략 아홉 번의 공연을 한 것 같다. 베이스에는 나, 그리고 드럼에는 상민이 형(이상민)이 참가했다. 공연에 따라 게스트들이 더해지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4중주단이었는데 트럼펫과 피아노가 일본 뮤지션, 베이스, 드럼이 한국 뮤지션으로 짜인 팀이었다.

 

전반적으로 느낌이 어떠했나?


일본 연주자들의 수준이 정말 높았다. 20대의 젊은 연주자들도 정말 잘 하더라. 일단 클럽들도 참 많고 연주자 숫자도 상당히 많기 때문에 그 정도의 연주 수준에 도달할 수 있는 것 같다. 다들 연주하는 것 그 자체를 너무도 즐긴다. 토쿠도 그렇고. 모두들 연주하는 것 그 자체를 매우 행복하게 여기고 오로지 그 음악에 집중하며 살고 있는 태도들이 좋아 보였다.

 

이번 앨범 이야기부터 해보자. 기타에 애덤 로저스(Adam Rogers), 피아노에 데이비드 키코스키(David Kikoski), 드럼에 제프 '테인' 와츠(Jeff 'Tain' Watts), 정말 쟁쟁한 멤버들이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전에도 해외 유명 연주자를 기용한 국내 연주자들의 음반이 있었는데, 기대만큼 좋지는 않았다. 연주의 적극성이 잘 느껴지지 않더라. 하지만 이번 음반은 달랐다. 서로 뭔가 만들어 보자는 열의가 느껴졌다. 이 멤버들은 어떻게 구성된 것인가?


그 멤버들 가운데 개인적으로 가장 가까운 사람은 제프다. 원래 밴드에서 베이스와 드럼이 서로 잘 맞아야하기 때문에 그런지 몰라도 미국 시절부터 유독 드러머들과 가장 가깝게 지냈다. 켄우드 데나드(Kenwood Dennard), 랠프 피터슨(Ralph Peterson), 테리 린 캐링턴 등 드러머들이 나를 밴드에 기용하더라. 특히 테리는 레코딩에서도 나를 불렀는데 2009년 음반 <나머지 이야기들 More to Say.......>에서 베이스를 몇 곡 쳤다. 물론 그 앨범에는 나 말고도 크리스천 맥브라이드(Christian McBride) 등 다른 베이스 주자들도 나오지만.

 

어쨌든 버클리 (음대) 유학시절부터 드러머들과 가깝게 지내다가 멍크로 진학한 다음에 제프를 교수로 만나게 되었다. 버클리 시절 자주 연주했던 동료들 가운데는 기타리스트 줄리안 라지(Julian Lage), 피아니스트 로렌스 필즈(Lawrence Fields)와 같은 친구들이 있었는데 로렌스는 그 시절에 이미 제프 밴드에서 피아노를 연주했다. 제프를 멍크에서 처음 만났을 때 그는 “로렌스로부터 내 이야기 많이 들었다”고 먼저 내게 말하더라. 그리고 제프와 듀오로 연주를 하고 있는데 트럼펫 주자 테런스 블랜처드(Terence Blanchard)가 들어오더니 「자이언트 스텝스 Giant Steps」를 셋이서 한 시간 동안 땀 뻘뻘 흘리면서 연주했다. 연주 끝나고서 우린 진짜 가까워졌다.

 

멍크에서 공부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와 군복무를 하는 중에도 종종 SNS를 통해 연락이 왔다. 군복무를 마쳤을 때 제프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가 이번에는 젊고 새로운 멤버들로 밴드를 교체해서 뉴욕의 빌리지뱅가드에서 일주일 동안 공연하는데 꼭 와달라는 거였다. 하지만 제대 직후 어떤 K-팝 스타 공연에 참가하기로 계약이 되어 있어서 그 밴드에 참가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제프가 계속 내게 연락을 줬다. 태국 재즈 페스티벌에 참가하는데 같이 가자는 거였다. 당연히 그땐 동행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작년에 피츠버그 재즈 페스티벌 때 제프로부터 또 연락이 왔다. 그래서 이번에는 간 김에 제프와 함께 앨범을 녹음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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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나머지 멤버들은 제프가 짜준 것인가?

 

아니다. 실은 내 머리 속의 계획은 기타, 베이스, 드럼으로 구성된 기타 트리오 앨범을 녹음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일순위로 생각이 든 것이 존 스코필드(John Scofield)였다. 존 역시 멍크 교수였기 때문에 잘 아는 사이였다. 그런데 작년 피츠버그 페스티벌을 포함해 내가 미국에 있는 동안에 존과는 도무지 일정이 안 맞았다. 그래서 대안으로 생각한 기타리스트가 애덤 로저스였다. 애덤은 몇 년 전에 웅산 누나와 워싱턴 DC에 연주를 갔다가 그때 편곡을 맡았던 존 비즐리(John Beasley)로 만났다. 그때 함께 연주하고서 느낌이 참 좋았다.

 

그런데 기타 트리오로 녹음해야겠다는 내 아이디어는 바뀌고 말았다. 제프 밴드 일원으로 피츠버그 페스티벌에 참가했다가 함께 연주한 데이브 키코스키에게 완전히 반한 것이다. 함께 연주하니 정말 좋았다. 데이브와 제프는 버클리 동기로 두 사람은 학창시절부터 단짝이었다. 둘이 연주할 때 교감은 정말 완벽하다. 내 앨범에서도 그 느낌을 살리고 싶었다. 그래서 피아노 트리오에 기타가 더해진 4중주 음반이 나온 것이다.

 

그들도 함께 녹음한 것은 처음이 아닌가?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런데 뜻 밖에도 애덤이 제일 열심히 녹음에 임했다. 그의 입장에서도 제프와 같은 최고 멤버와 녹음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녹음 장소는 펜실베니아 주 제프의 집 근처에 있는 옛날 교회인데 그곳을 제프가 매입해 녹음 스튜디오로 개조했다. 연주자들이 따로 부스에 들어가서 연주하는 게 아니라 한 자리에 모여 라이브 연주하듯이 녹음했다. 악기별로 따로 수정하고 편집할 수 있는 녹음이 아니라 아쉬웠지만 이런 스타일의 녹음도 나름 매력이 있다.

 

녹음하는 과정은 어떠했나?


멤버들이 모두 와인을 좋아한다. 게다가 날씨도 좋았고 그래서 두 곡정도 녹음 끝나면 와인 마시고 햇볕도 쬐면서 쉬다가 또 모여서 녹음하고........ 이틀 동안 캠핑하는 기분으로 즐기면서 녹음했다. 그러는 가운데 제프 앨범 녹음도 했다. 제프의 새 앨범에 베이시스트로 참여한 것이다.

 

앨범을 보니 오리지널 작품이 네 곡, 스탠더드 넘버 편곡이 네 곡, 반반으로 구성되어 있더라. 스탠더드 넘버는 편곡이 신선했고 오리지널 곡들도 스탠더드 넘버 체인지를 기초로 해서 만든 게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스탠더드 넘버를 바탕으로 오리지널 곡들을 쓴 것은 아니다. 직접 말로 이야기하긴 쑥스럽지만, 1, 2 번 트랙인 「비욘드 Beyond」와 「뷰티풀 마인드 Beautiful Mind」는 세월호의 비극을 마음에 그리며 쓴 곡이다. 첫 곡은 수학여행을 떠나면서 들떠 있는 아이들과 나중에 배가 침몰하기 시작하는 과정을 묘사했다. 약간 슬픔이 깃들어 있지만 생동감 있는 분위기로 시작해서 복잡한 코드 진행을 넣어 사고가 잃어나는 모습을 그렸다. 나중에 곡이 계속 뱀프(vamp)하면서 드럼이 휘몰아치는 솔로를 연주한다.

 

「뷰티풀 마인드」는 사고로 어린 생명들을 잃은 가족들의 마음을 상상하며 써 본 곡이다. 「뷰티풀 마인드」란 제목을 붙였지만 그 안에는 깊은 슬픔이 담겨 있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지 모르겠지만. 두 곡 모두 2014년에 썼다.

 

「사막의 추억 Memories of the Desert」은 어떤 곡인가?


사실 난 군복무에 관한 남 다른 사연이 있었다. 내가 입대한 것은 2011년 하반기였는데 원래 법에 의하면 2010년 12월 31일까지 무조건 군대에 입대해야 했다. 하지만 멍크에서의 내 수업은 2011년 여름이 되어야 끝나는 과정이었다. 버클리에 입학하고, 다시 멍크 장학생이 되어 군 입대를 연기했지만 이제 그 기한이 더 이상 연장 될 수 없게 된 것이다. 학교를 중퇴하고 군대에 입대해야 하나 고민도 했지만 멍크 재즈학교는 전액 장학금에 학생들에게 월급까지 나오는 학교였기 때문에 도중에 그만두면 그간에 받았던 혜택을 상당부분 금액으로 보상해야 했다. 할 수 없이 나는 학교를 마치고 군대 가기로 결심했는데 2010년 12월 31일이 지나면서 나는 군 기피 수배자가 됐다. 학교를 마치지 마자 한국으로 돌아가 군대 입대함으로써 이후에는 아무런 문제도 발생하지 않고 군복무를 무사히 마쳤지만 2011년 상반기에 내 마음은 무척이나 괴로웠다. 그래서 그때 뉴올리언스에서부터 혼자 차를 타고 애리조나를 거쳐 샌프란시스코로 여행을 떠났는데 그때 사막에서 본 풍경을 음악으로 담은 것이다. 사막에서 토네이도를 만났는데 여행을 끝내니 렌트카가 폐차 직전의 고물이 되었더라. 모래바람으로 한치 앞도 안 보였는데 그게 마치 바로 내일을 알 수 없는 내 인생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곡의 멜로디를 무거운 베이스 라인으로 끌고 갔다.

 

「저항 The Resistant」은 어떤 내용인가?


사실 이 곡도 「사막의 추억」과 비슷한 배경을 갖고 있다. 솔직히 말해 청춘을 바쳐 베이스와 재즈를 연마해 왔는데 음악을 펼쳐 보지도 못하고 군대에 가서 내 실력을 모두 잃는 게 아닌가, 불안하기도 하고 화도 났다. 다른 친구들은 편하게 계속 음악 하는데 나만 왜 군대를 가야 하나. 그땐 세상에 정말 반항하고 저항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 곡을 쓴 것이다. 물론 지금은 군대를 마치니 더욱 음악에 전념하고픈 마음이 생겨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스탠더드 넘버들의 편곡이 정말 참신했다. 편곡에 관심이 많은가?


버클리 시절 전공은 베이스 퍼포먼스였지만 또 다른 전공을 선택해 작/편곡을 공부했다. 빅밴드 편곡에도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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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이저 없이 스트레이트로」, 「넷이서 하나로 Four in One」, 「자이언트 스텝스」, 「내 사람이 되어 줄 건가요? Will You Still Be Mone?」 등은 재즈 연주자들이 많이 연주하는 곡들이다. 이 곡들을 통해 자신의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나?


「체이저 없이 스트레이트로」는 멍크 시절 테런스 블랜처드와 공부를 하면서 그가 남들이 하는 방식 말고 새로운 접근법을 생각해 보라고 해서 만들어 본 곡이다. 수업 때 칭찬을 많이 들었다. 특히 허비 핸콕(Herbie Hancock)이 칭찬을 많이 해줬다. 편곡은 이렇게 하는 거라고.

 

기타가 멜로디를 연주하기 전까지는 사실 「체이저 없이 스트레이트로」였는 지 전혀 몰랐다. 「자이언트 스텝스」도 마찬가지였다.


테렌스나 허비나 모두 독창적인 것, 남들이 하지 않은 방식으로 편곡하는 것을 높이 평가해 준다. 하지만 모두가 다 그런 것은 아니다. 그래서 그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블루스 느낌이 전혀 나지 않는 블루스 곡들을 몇 곡 작곡했다. 테렌스, 허비는 모두 그 곡들을 좋아했다. 그런데 배리 해리스(Barry Harris)에게 들려주었더니 “쓰레기”라고 한 마디로 평하시더라. (웃음) 나뿐만 아니라 내 친구들의 블루스를 듣고서도 똑같이 말씀하셨다. 이런 쓰레기 같은 블루스는 처음 듣는다고 하셨다. (웃음) 정통 비밥의 대가인 그의 입장에서 보면 그렇게 들렸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확실히 음악에서 정답은 없는 것 같다.

 

「내 사람이 되어 줄 건가요?」는 편곡도 기발했지만 선곡 자체가 뜻밖이다.


그 곡은 버클리 시절에 편곡했던 곡이다. 이 곡은 기타리스트 피터 번스틴(Peter Bernstein)의 연주를 듣고 좋아하게 되었다. 굉장히 빠른 템포의 연주였다. 그런데 그때 피아니스트 겸 편곡자인 빌리 차일즈(Billy Childs)가 버클리에서 특강을 했고 그 가르침으로 베이스 오스티나토를 쓰는 방식 그리고 오드 미터(odd meter, 변박자)를 사용하는 방식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됐다. 그러한 편곡을 많이 공부하면서 내 연주곡에도 그 방식을 적용해 본 것이다.

 

전반적으로 베이스 사운드가 굉장히 독특하더라. 옛날 뉴올리언스 베이스 주자들 소리 같기도 하고....... 본인도 그렇게 생각하나?


솔직히 말해 그 점에는 사연이 있다. 당시 미국에 들어갈 때 나는 내 개인 악기를 들고 가지 않았다. 친한 일본인 친구가 뉴욕 주에 사는데 그의 베이스를 빌리기로 약속해서 굳이 내 악기를 들고 갈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막상 갔더니 그 친구가 약속을 잊고 일본으로 가 버린 거였다. 차를 두 시간 동안 타고 가서 맨해튼에 가서 악기를 빌려 올까 생각했는데, 그러면 하루를 그냥 버리게 되는 거였다. 고민하다가 제프가 자기 집에 있는 싸구려 베이스로 그냥 녹음하자는 거였다. 그 베이스로 제프 앨범도 그냥 녹음했다. (웃음) 내 첫 앨범인데 우수하지 못한 베이스로 연주해서 사실 많이 아쉽다. G현에서 고음으로 올라가면 아예 소리가 나질 않았다. (웃음)

 

어떻게 하다가 재즈 베이스를 연주하게 되었나?


중학교 때부터 교회 성가대에서 일렉트릭 베이스를 연주했다. 그런데 같이 연주하던 친구가 드러머였는데 실력이 빠르게 느는 거였다. 누구한테 음악을 배우고 있냐고 물었더니 드러머 김희연 선생님으로부터 지도를 받는다고 했다. 그래서 그 선생님 통해서 베이스 선생님도 한 분 소개해달라고 부탁했는데 소개 받은 분이 장응규 선생님이셨다. 선생님으로부터 계속 일렉트릭 베이스 수업을 받았다. 그러다가 아마 1999년 즈음이었을 텐데 선생님이 이거 좀 들어 보라고 음반 두 장을 건네셨다. 그 음반이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의 <카인드 오브 블루 Kind of Blue>와 존 패티투치(John Patitucci)의 데뷔 음반이었다. 두 음반을 듣고 깜짝 놀랐다. 아! 이런 게 재즈구나. 풀 체임버스(Paul Chambers)의 콘트라베이스 소리가 너무 멋졌고 패티투치의 일렉트릭 베이스 소리가 너무 신기했다. 맨 처음에는 기타인 줄 알았다. 그래서 부모님을 설득해 낙원 상가에서 콘트라베이스와 6현 베이스를 사서 연습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2001년에 장응규 선생님이 서울재즈아카데미에 입학하라고 권하시는 거였다. 그래서 학교에 입학했다. 그리고 얼마 후 서울재즈아카데미와 교류하고 있던 버클리 음대에서 장학생 선발 오디션을 본다고 해서 응시했는데 운 좋게 장학생으로 선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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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수업 받으면서 주변으로부터 소질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나?


(잠시 생각하다가) 그런 이야기를 좀 듣긴 한 것 같다. 처음에 장응규 선생님을 만나 기 전에 한 기타리스트 분이 내 베이스로 속주 연주를 보여 주셨다. 그래서 무조건 빨리 치면 좋은 건 줄 알고 나도 일렉트릭 베이스로 속주를 구사했는데 그 나이 그 또래 중에서는 좀 잘 친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다. 나중에 콘트라베이스 연주할 때 당시에는 국내에서 콘트라베이스 연주하는 재즈 연주자가 몇 명 되지 않았다. 그런 중에 어린 내가 콘트라베이스를 들고 클럽에 나타나면 선생님들이 많이 귀여워 해주셨다. 그때 다른 베이스주자 대타로 가끔씩 연주하곤 했다.

 

버클리로 유학 가서는 어떠했나?


솔직히 난 음악에만 빠져서 살았고 악기만 연주했지 태어나서 영어 공부는 해본 적이 없었다. 그냥 연주 실력으로 버클리 장학생이 된 거였다. 그래서 2002년 여름 학기부터 버클리 생활이 시작되었고 가서 얼마 후, 그날도 연습실에서 혼자 베이스를 연주하고 있었다. 그때 한 일본인 색소폰 친구가 들어오더니, 정확히는 못 알아들었는데 자기랑 어디로 가자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리얼북>을 들고 그 학생을 따라 갔다. 갔더니 전부 흑인 학생들만 앉아 있는 거였다. 그러더니 자기들끼리 무슨 곡을 연주하자고 이야기하는 것 같더니 아무도 <리얼북>을 보지도 않고 무슨 곡을 연주하는 거였다. 무슨 곡을 연주하지도 몰랐고 설령 알아 들었다고 한들 도무지 따라 갈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그때까지 한국에서는 클럽에서도 스탠더드 연주할 때면 모두 <리얼북>을 펴놓고 연주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연습실 안에는 <리얼북>은 커녕 보면대도 없었다. 내가 가만히 있으니 이곡 몰라? 그러면 이곡 하자. 하고 또 다른 곡을 막 시작하는 거였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결국 내가 아는 곡을 하자고 해서 시작했는데 도무지 실력이 안 됐다. 그러자 일본인 친구가 날 너무 무시하는 거였다. 너 여기 왜 온 거냐. 그렇게 못하는데 이 학교에는 어떻게 들어왔냐며 핀잔을 주는데 기분이 너무 나빴다.

 

그런 경험 때문에 공부를 마치지 못하고 돌아온 사람을 본 적이 있다.


그 상황에서 내가 우울증에 빠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오기가 생기더라. 내가 너희들을 다시 만날 때는 모두를 밟아 주겠어.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학교에서 수업 듣고 연습실에 처박혀 연습만 하고 집에 가서 잠만 자고 다시 일어나 학교 가고 하는 세월이 시작되었다. 버클리는 토요일, 일요일 수업 없는 날도 새벽 두 시까지 학교 연습실을 개방했다. 그래서 휴일도 무조건 학교 나가 새벽 두시까지 연습했다. 새벽 두시가 되면 경비원 아저씨가 와서 이제 나가달라고 이야기했다. 그때 복도로 나오면 그 시간까지 남아서 연습하던 친구들을 늘 만나게 된다. 그러면 집에 가기가 아쉬워 마지막에 복도에 모여 잼을 했다.

 

답답함, 외로움, 회의 같은 건 없었나?


그런 생각 자체도 할 줄 몰랐다. 오로지 음악밖에 몰랐고 음악에 푹 빠져 살았다. 그런 생활을 약 2년 동안 한 거 같은데 어느새 나도 모르게 교수님이 나를 불러 함께 연주하자고 하고 학교에서 제일 연주 잘하는 학생들이 모여서 연주할 때 내가 거기에 끼어 있었다. 버클리에는 '버클리 앰배서더'라는 팀이 있는데 학교 내에서 가장 연주 잘하는 학생들을 모아 해외에 투어를 다니면서 학교를 홍보하는 밴드였다. 그 팀에 들어가게 됐는데 동양인은 내가 유일했다. 그래서 학교에 건의해 애초에 반액 장학생이었던 조건을 전액 장학생으로 바꿨고 어차피 무료이니 전공을 하나 더 선택해 작곡을 공부했다. 그래서 버클리를 5년 동안 다녔다.

 

요즘도 그렇게 연습을 하나?


그렇지 못하다. 그때보다 생활이 복잡해지니 연습 시간을 쉽게 잡을 수가 없다. 그래서 늘 나에게 부끄럽게 생각한다. 그런데 대가일수록 연습과 연주 시간을 철저하게 지키더라. 그것을 못하면 마치 금단현상처럼 신체적인 불안증세가 나타난다. 제프와도 태국에 갔을 때 여러 행사 때문에 며칠 연습을 못하니까 제프가 결국에는 스틱을 꺼내 바에 있는 테이블을 한참 두드리더라. 그렇게 해야만 마음이 놓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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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크 재즈 학교에는 어떻게 지원하게 됐나?


버클리 졸업하기 1년 전인 2006년에 한 번 응시했었다. 1차로 서류와 녹음을 제출하면 그 가운데서 몇 명을 선발해 마지막 라이브 오디션을 본다. 오디션까지 진출했는데 결국 떨어졌다. 2년에 한 명밖에 안 뽑으니 그러려니 했다. 그리고 버클리를 마칠 즈음이 되자 테리 린 캐링턴을 포함해 몇몇 뮤지션들이 나를 불러주기 시작해 기쁘기도 하고 정신이 없어 멍크는 생각에도 없었다. 더 공부하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생각도 들었고. 그런데 멍크가 다음 학생을 선발하는 2009년이었는데 2008년 12월 31일 그해 마지막 밤에 자다가 꿈을 꿨다. 허비 핸콕이 꿈에 나타나 나보고 또다시 응시하면 붙여주겠다고 말하는 거였다. 꿈에서 깨어났는데 그날 멍크 학교에서 혹시 다시 한 번 도전하지 않겠느냐고 내게 연락이 왔다. 신기했다. 그래서 2년 전에 냈던 서류, 녹음을 엉겁결에 다시 제출했더니 마지막 오디션까지 진출하게 되었고 결국 선발되었다.

 

피아니스트 조윤성 씨에 이어서 한국인으로 두 번째 아닌가?


그렇다.

 

멍크에서의 경험은 어떠했나?


멍크는 각 악기별로 한 명의 학생을 선발해 하나의 밴드를 꾸린다. 내가 입학한 기수는 트럼펫, 알토 색스, 테너 색스, 피아노, 베이스, 드럼 그렇게 여섯 명이었다. 그러면 대가 한 분이 방문해 함께 그 밴드와 함께 식사하고 대화하고 곡 쓰고 연습하고 그리고 무대에 같이 올라가서 연주하고 일주일 내내 함께 생활한다. 그러면서 밴드 안에서 진짜 즉흥적인 대화가 일어나게끔 유도해 주는 것이었다. 좋은 재즈 연주란 그 점이 제일 중요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대가 선생님들을 통해 진짜 음악인의 삶을 느꼈다. 그곳에서 존 스코필드, 제프 테인 와츠, 존 패티투지, 론 카터(Ron Carter), 잭 드조넷(Jack DeJohnette), 스티브 콜먼(Steve Coleman) 등 여러 대가들의 모습을 살필 수 있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잠시 생각하다가) 나도 현재 학교에서 가르치지만 그것이 제일 힘들다. 그러니까 우리는 음악을 하는 것 그 자체가 즐겁고 재밌고 하나의 목표가 되어야 하는데 음악을 해서 대학을 들어가고 음악을 해서 돈을 벌고 유명해 지는 것이 목표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 학교에서 음악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대부분 행복감 만족감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니 열심히 연습하는 것 자체가 안 되는 것이다. 음악에 재미를 못 느끼니 당연하다. 얼마 전 함께 연주했던 일본 음악인들도 우리와는 완전히 달랐다. 그들은 재즈를 연주하며 살 수 있다는 것 그 자체를 굉장히 기쁘고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돈을 별로 벌지 못하지만 그런 것은 별 문제가 아니었다. 이러한 가치관은 나 혼자 학생들에게 가르칠 수가 없다. 사회 전반의 분위기가 그렇게 안 되면 만들어질 수 없는 것이다. 내 자신도 음악으로 대학에 들어가야 된다고 생각한 적이 없고 그냥 음악이 좋아 열심히 했는데 그게 내게 좋은 약이 된 것 같다. 목표를 대학과 성공에 두었더라면 이렇게 열심히 못했을 것이다.

 

재즈의 대가들을 만나면서 그 점을 확인했나?


얼마 전 주변의 한 뮤지션이 웨인 쇼터(Wayne Shorter)의 집을 방문해 며칠 함께 있었는데 그 대가도 아직도 계속 연습하고 작곡하고 또 연습하는 생활을 계속 하더라는 것이었다. 존 패티투치도 아직도 클래식 연주자로부터 보잉(bowing) 레슨을 받는다. 그렇게 잘 하는데도 더욱 완벽하게 연주하고 싶은 것이다. 음악인의 삶은 늘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국내에서 안정된 직장도 얻은 샘인데 만족하나?


아마도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다시 미국에 가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사이에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아서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책임도 있지만 역시 음악인의 삶이란 계속 연습하고 창작하고 연주하는 게 맞다고 본다. 또 블루룸 뮤직이라는 좋은 회사를 만나서 그러한 삶에 훨씬 수월하게 도전 할 수 있을 것 같다. 또 버클리에서 만난 친구들이나 내 또래의 연주자들이 현재 뉴욕 재즈 동네에서 왕성하게 연주하고 있기 때문에 내게는 좋은 여건인 것 같다. 이번 음반을 내고서 조만간 내 생활의 방향도 결정될 것 같다.

 

사진 : 이한수
인터뷰 : 황덕호
정리 : 황덕호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두번째 직업 특집] ① 앨리스 전 “멈추면 시작되는 새로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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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조선, 저성장 시대, 고용의 종말, N포 세대, ‘으깬 아보카도 세대’… 무한히 늘어나는 비관적 시대 명과 세대명 안에서 사람들은 여전히 직업을 고민한다. 몇은 ‘헬조선’을 탈출하거나, 미래를 위해 현재를 포기하기보다 현재를 잡는 ‘욜로’를 택한다. 지금 하는 밥벌이를 넘어 다른 일을 꿈꿀 자유가 있을까? 한국 국적을 가지고도 외국에 나가서 일할 수 있을까?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스스로 외국에 나가 그 답을 찾아본 앨리스 전의 글은 카카오 브런치 구독자 1만 명을 넘어섰다. 당장 해외 취업에 관심 없는 사람이라도 커리어와 직업을 고민하게 만든 그의 글은 ‘첫 직업이 중요하다’는 통념에 맞서 틀에서 벗어나 도약을 위한 모험을 해보라고 권한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이 뭘 원하는지 아는 게 중요하고, 알기 위해서는 지금 자리를 벗어나 봐야 한다. 『당신의 이직을 바랍니다』에서 궁극적으로 원하는 건 이직이 아니라 변화와 ‘나 자신을 알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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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외국에서 일할 수 있을까요?


이력을 소개해 주시겠어요?

 

대학을 졸업하고 STX에너지에서 3개월 정도 일했어요. 원래 계속 외국으로 가고 싶었는데, 회사를 들어가고 나서도 포기할 수 없더라고요. 직업 없이 싱가포르로 가서 5개월 정도 구직 활동을 하고 헤드헌팅 회사에 들어가 돈을 벌다가, 이게 정말 내 실력일까 아니면 시장이 호황이어서 그런 걸까 하는 불안이 들었어요. 장기적으로 먹고살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겠다 싶어서 인적 자원 관련 플랫폼인 링크드인에 들어갔다가, 지금은 P&G에서 브랜드 마케팅을 하고 있어요.


카카오 브런치에 글을 올린 계기로 책이 나왔어요.


싱가포르에 있을 때 부모님도 주변 분들도 걱정하시니까 페이스북에 제가 어떻게 지내는지를 종종 썼어요. 글이 퍼지면서 개인적으로 해외 취업 관련 상담이 많이 들어오더라고요. 열심히 이메일로 답장하다가, 시간이 지나고 질문이 쌓이다 보니 물어보는 내용이 다 비슷했어요. 그래서 주로 궁금한 내용을 블로그에라도 써 놓으면 사람들이 편하게 와서 읽을 수 있겠다 싶어서 쓰기 시작했어요. 또 하나는, 저는 외국에서 잘 지내는데 사람들이 외국 나가면 힘들 거라는 둥, 인종 차별이 있을 거라는 둥 겁을 줘서 다른 사람들이 하고 싶은 걸 막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하고 싶다고 생각한다면 막기보다 용기를 주는 게 훨씬 나아요.


주로 어떤 내용을 물어보나요?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건 ‘해외 취업을 하는 방법’이 아니고 ‘내가 해외 취업을 할 수 있냐’인 것 같아요. 항상 자기가 왜 해외에 가고 싶어 하고 자신이 어떤 상황인지 길고 자세하게 사연을 써서 보내요. 그리고 마지막에 항상 ‘저도 외국에서 일할 수 있을까요?’하고 끝을 맺거든요. 이 책이 그 질문에 대한 답이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독자와의 만남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독자 만남에서도 질문을 많이 해주셨는데, 결국은 자기 경력이 이러이러한데 해외 취업이 가능한지 여쭤보시더라고요.


그만큼 한국 내에서 외국 취업의 기준이나 자료가 없어서 그런 걸까요?


방법은 많지만 지금 자신의 상황에 딱 맞춰서 말하는 건 또 다른 이야기인 것 같아요. 사람들은 전반적인 방법이나 답변보다 자신의 상황에 맞는 답변을 원하고 있는 게 아닐까요?


그래서 책의 결론이 ‘나만의 방법을 찾아야 한다’인 것 같아요.


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하는 거잖아요. 자기가 어려운 상황에 부닥치거나 어려운 결정을 해야지만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게 뭔지 알게 되거든요. 그 전까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몰라요. 그 상황에 가야지만 자기가 사교력이 좋은 건지, 혹은 알고 보니 사람들이랑 말하는 게 부담스러워서 집에 와서 혼자 공부하는 노력파인지 알아요.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다 달라요. 수능을 보거나 입사 준비를 한다거나 하는 모두가 비슷하게 겪는 상황을 벗어나 전혀 다른 문제를 부딪쳐 봐야 그때부터 나만의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하게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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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질문해야 하는 시기


한국에서는 도전을 더 무서워하는 경향이 있어요. 커리어 부분에서도 그렇고요. 남들을 따라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공포가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더 커요.


예전에 책을 볼 때는 우리나라만 사계절이 있는 줄 알았어요. 항상 한국의 장점으로 사계절이 뚜렷한 아름다운 나라라고 하잖아요. 그렇지만 대부분 나라는 사계절이 있잖아요. (웃음) 그런 것처럼 한국이 강대국 사이에서 독립을 유지하면서 우리만의 강력한 정체성이 필요했던 게 아닐까요? 그러려면 모든 사람이 동일하게 생각하는 게 중요하고요. 이제까지는 산업 발전 단계를 빠르게 밟으면서 항상 모범답안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 질문해야 하는 시기가 왔다고 생각해요.


책에서 말씀하신 ‘커넥팅 닷(connecting dot)’처럼 다른 커리어를 서로 연결해 움직일 때, 사회적 안전망이 없으면 떨어질 수밖에 없어요. 한국이 안전망이 없는 사회라는 이야기가 계속 나오는데, 싱가포르와 비교할 수 있을까요?


싱가포르도 안전망이 없어요. 대신 싱가포르는 기회가 많다는 것 자체가 안전망이에요. 한국 산업에서 손꼽는 대기업에 들어가면 비슷한 업계의 비슷한 규모의 회사로만 이직해요. 하지만 싱가포르는 전 세계 글로벌 회사들의 헤드쿼터가 다 있어서 옵션이 많았어요. 선택권이 많다는 것 자체가 망해도 아예 망하진 않게 해주는 것 같아요.


처음 싱가포르로 가야겠다고 생각했을 때도 그런 기회를 고려했나요?


할 수 있는 언어가 영어라면 영어인데, 영어를 쓰면서도 한국 관련 비즈니스가 많아서 한국인이라는 걸 강점으로 가져가는 나라가 아시아권에서 홍콩과 싱가포르 둘이더라고요. 홍콩은 조금 더 중국을 배경으로 하는 데다 산업 자체가 금융과 패션 중심지여서 저랑은 안 맞겠다 싶었어요. 싱가포르가 가장 일반적인 비즈니스를 많이 다루면서 세금이 낮아 글로벌 회사에 매력적인 곳이더라고요. 여러모로 생각했을 때 조건이 맞는 나라라고 생각했어요.


개인적인 안전망이 있었나요? 시도가 실패하면 그래도 부모님이 돌봐줄 거라는 기대라든지요.


부모님을 부양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이것도 배부른 소리겠지만, 그래도 한 가지 안전망은 제가 부모님을 보살펴드리지 않아도 된다는 거였어요. 부모님은 알아서 살고, 저는 제 몸 하나만 처리하면 된다는 생각이었어요.


직업 없이 외국으로 나간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우려했을 것 같아요.


어머니가 제일 먼저 반대하고, 아버지도 반대하면서 ‘너 그렇게 특별한 애 아니야’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되게 상처받았어요. 부모님이 항상 ‘넌 잘할거야’ ‘넌 특별해’ 하시면서 정작 제가 원하는 일에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고 말리시니까요. 하지만 부모님을 설득해서 나가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어차피 설득은 안 될 거니까요.


해외에서 일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계기는, 한국에서는 도저히 답이 없다는 느낌의 절박함이었을까요?


저 한국 좋아해요. 우리나라 너무 사랑해요. 한국이 싫다는 것보다, 한국이 필요로 하는 걸 줄 수 있으면 중요한 인재가 되잖아요. 저는 공업 인재도 아니고, 기초 학문에 기여할 순 없지만, 상경계 학생으로 한국에 가장 필요한 건 세계화라고 생각했어요. 결국 우리나라는 제조업을 많이 하는 나라고 밖으로 많이 팔아야 하는데, 앞으로 한국은 외국으로 물건을 팔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할 것 같았어요.


선구안이 있으셨네요.


세계화가 필요하다는 건 다 알고 있어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 없고 그 답을 내놓는 사람들도 외국에서 많이 산 사람들은 아닌 거죠. 예를 들어 비빔밥을 세계화하겠다고 브랜딩을 하지만, 정작 외국인이 한국에 오면 삼겹살을 제일 많이 먹거든요. 삼겹살이 싱가포르에서 진짜 유명해요. 그런 것들을 보면서 외국 경험이 중요하고, 그 경험을 가진 사람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해외생활에 관한 동경도 있었나요?


한국에서는 길거리에서 모르는 사람을 붙잡고 ‘하이’ 하는 게 어렵잖아요. 그런데 여행을 나가 보면 외국에서는 그게 편하게 되더라고요. 저조차도 한국과는 다르게 마음이 열리는 것 같고요. 교환학생이나 외국에 놀러 갔다 오신 분들은 느낄 거예요. 나와 전혀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을 만나는 게 한국보다 훨씬 수월했어요.


다른 사람을 만난다는 것, 이상한 사람을 많이 만나는 것에 신나 하는 성격이신 것 같아요.


한국 대기업에 다닐 때 점심을 먹으러 내려가면 다 같이 남자든 여자든 모두 비슷한 생김새에 검은색 정장을 입고 있는데, 그 광경이 되게 숨이 막혔거든요. 어느 날 그 자리에 외국인이 앉아 있는데, 그 사람이 너무 튀어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그냥 그 사람 앞에 가서 여기서 일하고 있는 이유랑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 물어보는 게 너무 좋았어요. 낯선 것, 그리고 똑같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 항상 좋았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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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야 하는 일, 하고 싶은 일


‘싫다면 하지 않을 자유’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 쉽지 않아요. 한국에서는 늘 참으라는 교육을 많이 하니까요.


조금만 생각하면 너무 당연한 거예요. 내가 하고 싶은 거 하기 위해 태어났지 억지로 살려고 태어난 건 아니잖아요. 당장 경제가 너무 빠르게 성장해서 어제와 내일이 명백하게 달라지는 게 보이면 물결에 휩쓸려 갈 수 있는데, 경제가 저성장 하면 노력을 붓고 남들보다 조금 빨리 간다고 해서 되는 것 같진 않거든요. 부모님 세대가 기초 욕구를 충족 못 한 시대를 살아온 분들이라 하고 싶은 일보다 해야 하는 일이 먼저 오는 걸 배운 거고, 지금은 당연히 충돌을 겪게 돼요. 사실 저도 가끔 저의 한국인다움에 놀랄 때가 있어요. 재택근무를 하면 마음이 불안한 거예요. 10시부터는 항상 메신저에 있어야 할 것 같고요. 다른 나라 사람들이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하는 걸 보면 불편하다가, 지금은 그게 너무 당연하고 부러워요.


항상 거칠게 이분법으로 돈이냐 꿈이냐를 생각하게 돼요. 먹고 사는 기준이 어디까지인가도 흔들릴 것 같고요. 외국에서는 먹고 사는 기준이 충족되는 느낌이 있었나요?


한국에서 길이 그렇게 많이 보이진 않는다는 게 있긴 있어요. 회사에 다니다 나가면 다 거기서 거기라고 말하는데, 그게 맞긴 맞거든요. 창업을 하거나 아니면 비슷한 분위기의 비슷한 분야의 회사로 이직밖에는 답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외국에서는 상품 같은 걸 만들 때도 훨씬 다양한 소비자들이 있어서 아무리 니치 시장(Niche market)이라도 인원이 꽤 되는 거예요. 한국보다는 훨씬 내가 어디에 맞춰서 살아갈 수 있을지 잘 보였던 것 같아요.


첫 번째 직업은 중요하지 않다고 강조해주셨어요.


외국에서는 대기업 공채로 모든 걸 가르지 않아요. 당연히 학교를 막 나왔고 많은 역량을 기대하지 않으니 첫 직업에서는 역량과 적성을 발견해 가면서 움직이는데 한국에서는 공채가 자격증인 것처럼 따라다녀요. 이게 떼어지지 않아서 한국에서는 더 어려운 것 같긴 해요. 하지만 지금은 안정적으로 비즈니스를 해도 다음 단계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태라서 희망이 있어요. 큰 기업에서도 새로운 영역에 들어가고 싶은데 잘 못 하겠으니 경험했던 사람을 데리고 오는 추세예요. 그래서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보고 뜨는 산업을 습득한 사람은 여기저기 필요로 하기 때문에 이직이 쉬운 편이에요.


일단은 뜨고 있는 산업에 들어가 보고, 그 이후에 자신이 원하는 걸 찾아서 가는 게 좋다는 말씀인가요?


사람마다 원하는 게 달라서 어떤 사람은 취미가 중요하고 회사는 돈 주는 존재일 뿐일 거예요. 그리고 어느 정도 내 시간을 보장해 준다면 대기업에 가는 것도 나쁘지 않아요. 하지만 첫 직업은 항상 자신이 선택하는 게 아니라 회사가 나를 선택하는 거더라고요. 최선을 다해서 연락하고 지원하면 회사가 선택하지, 결코 내가 목표한 모든 곳에 갈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어떤 회사가 나를 선택했다면, 그 회사에서 월급을 받으면서 다시 시작해 보는 거죠.


처음 싱가포르에서 취직했던 회사에서는 거의 최저시급에 가까운 연봉을 받고 들어갔는데, 이후로 연봉 협상은 어떻게 하셨는지 궁금해요.


항상 한국과 외국이 다른 점이라고 느낀 게, 외국에서는 정말 성과평가가 엄격해요. 연봉협상은 그 자리에서 협상하는 게 아니라 몇 개월 전부터 이미 시작된 거예요. 산업과 회사 상관없이 매니저와 일주일에 한 번씩은 일대일로 미팅을 하는데, 제가 얼마를 회사에 벌어왔고 기여했는지 명백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그 이후에는 제 가치가 보여요. 제가 이 회사에서 제일 돈을 많이 버는 헤드헌터라면, 이 회사는 저를 놓치면 안 되거든요. 스스로 연봉을 올려달라고 말할 필요 없이 매니저가 줄 수 있는 최대한을 줄 거예요. 영업처럼 명확하게 돈으로 보이는 분야가 아니라면 제가 했던 일에 관해 매니저에게 꾸준히 알려줘야 하겠죠. 상사가 제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아는 게 중요해요. 제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알게 되면 연봉 인상은 따라와요.


일단 성과로 내보여야 하는 거네요.


한국에서 성과 평과가 불공평하다고 들었어요. 승진할 차례에 따라서 한 사람에게 점수를 몰아준다든지요. 그럼 열심히 일할 맛이 안 나죠. 오히려 성과 중심의 환경에서는 제가 하는 만큼 보상으로 돌아오니까 그런 면에서는 훨씬 좋은 것 같아요.


일하면서 커리어 패스가 흔들리는 시점은 언제였나요?


과거에 해왔던 경험이 쌓이면서 먹고는 살겠다는 확신이 생긴 것 같아요. 하지만 지금 하는 일이 제 적성인지는 항상 헷갈리고, 이게 정말 나를 얼마나 건강한 질문인 것 같아요. 오히려 세상에 자기 커리어에 만족하면서 사는 사람이 적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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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직’은 변화하라는 의미


외국에 나와 보니 기업 문화가 궁극적으로 좋은 사람을 키우는 목표로 나가고 있다고 하셨어요. 어떤 식의 문화인가요?


예를 들면 회사 자체에서 직원들이 봉사활동을 하도록 격려해요. P&G에서도 NGO를 초대해서 마케팅 문제들을 같이 풀어주는 워크숍을 했는데, 이런 걸 하면 회사 입장에서는 시간과 돈을 쓰는 거예요. 하지만 행복하게 준비해요. 왜냐하면 물건만 파는 것보다 회사를 도울 수 있다는 역량이 있다는 걸 알 때 직원이 행복하니까요. 그리고 기본적으로 아이가 아프면 부모는 당연히 집에 가는 거예요. 당연하게 가족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걸 회사나 직원 모두가 이해하고 있는 거죠. 한국 회사에서 퇴근한다고 그러면 눈치 준다는 것도 듣긴 들었는데, 회사가 개인 삶을 존중하는 정도가 다른 것 같아요. 생각해보면 회사는 인격체가 아니고 그저 조직일 뿐인데 어떻게 회사가 개인의 삶을 존중해줄 수 있겠어요. 결국은 회사에 있는 리더나 매니저가 이해를 해주냐 안 해주냐의 차이인 것 같아요.


한국이든 외국이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부담은 다 비슷하긴 할 것 같아요. 이민 1세대로서의 다급함도 외국에서 성과를 내는 데 영향이 있을까요?


항상 불안해요. 제가 외국에서 회사를 잘리면, 비자도 없어지고 당장 며칠 만에 그 나라를 나가야 하잖아요. 그렇다고 그게 힘들었냐 하면 그것도 아니거든요. 이민 세대는 현지 사람들과 경쟁하지 않고 항상 제3의 무언가로 분류되기 때문에 호의를 좀 더 받기도 해요. 뭐라 설명할 수는 없는데 이민자들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장점이 있어요. 다른 나라에 와서 살고 세상이 넓은 걸 본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쉽게 판단하지 않는 어떤 관점이 생기는 것 같아요. 다른 사람에게 조금 더 마음을 열게 되고 서로 소통하게 되고요.


책 제목이 『당신의 이직을 바랍니다』이지만 이직 자체가 중요한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해외로 눈을 돌려보라는 의미도 있겠고요.


변화하라는 의미도 있었어요. 이직을 생각할 때는 항상 자신이 다니는 회사 밖에 다른 게 좋아 보이는데 지금 가진 걸 포기하기 어려운 상태잖아요. 그 상황에서 변화를 택했으면 좋겠어요. 자신이 변해야겠다는 마음이 든 순간 이미 문제가 생긴 거거든요. 행복하지 않으면 더 나아질 가능성은 항상 있어요. 변화 전 갈등과 고민하는 순간이 가장 최악이에요. 저도 외국 가기 전 회사를 그만두고 나가기 전까지의 고민이 가장 힘들었어요. 하지만 정작 변화하고 나면 새로 습득해야 할 게 너무 많고, 이렇게 다양하고 재밌는 세상이 있는데 고민할 게 없어요. 이직을 고민할 때가 제일 힘들어요.


‘이직’이 아니라 ‘변화를 바랍니다’였네요.


제목을 ‘변화를 바랍니다’라고 하면 시적이지 않아서요. (웃음) 자신이 회사에서 조금만 있으면 승진할 단계인데 누가 내 앞으로 오는 게 싫고, 그러면서 본인은 나갈 생각이 없는 고인 물이 된 사람들이 있어요. 적응력을 상실하고 회사에 남아 정치를 하고 리더에게 예쁨을 받는 게 편안하다면 회사는 경쟁에도 뒤처질 거고 개인에게도 좋지 않아요. 이런 사람이 이직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어요. 당신이 지금은 편하지만, 조금만 있으면 당신도 불편하고 당신 회사도 편한 상태가 아니게 될 거예요. 그게 안타까워서 이 제목을 썼어요.


꾸준히 사용되는 단어 중 ‘헬조선’이라는 말이 있어요. 세대 갈등으로 치환되기도 하고요.


한국에 들어오면 갑자기 턱에 보톡스를 맞아야 할 것 같고, 미용실이나 마사지샵도 한 번 더 가야 할 것 같아요. 안 하면 뒤처질 것 같은 분위기가 사회 전반에 있어요. 외국인들도 한국에 오면 갑자기 다른 서비스를 찾기 시작해요. 그게 어른들 세대만 만든 건 아닌 것 같아요. 뒤처지면 안 된다는 부담감은 세대와 상관없이 다 가지고 있어서, 한국만 나가면 괜찮아지더라고요. (웃음)


현재 P&G 마케팅 일은 만족하시나요?


제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일에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연장을 챙기는 과정이랄까요. 분명히 배울 건 많은 회사인데, 여기서 꾸준히 같은 일을 하고 싶냐고 물으면 그건 아니거든요. 더 재미있는 일을 찾는 도중에 이 경력이 중요한 디딤돌이 되어줄 거라는 의미에서 만족해요.


요새 꿈이 감자 농장을 짓는 거라면서요.


감자 농장은 핑계고요,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어요. 다양하고 똑똑한 사람들과 만나서 토론하는 게 저는 제일 재밌어요. 그것만 하고 살 수 있으면 좋겠어요. 물건에 대한 욕심은 별로 없거든요. 버릴 수 없는 게 집이랑 먹을 거라면, 감자 농장이랑 집이 있으면 해결되고, 그러면 아티스트나 독특한 사람들을 초대해서 재미있게 같이 살고 싶어요. 그리고 하나 더 욕심을 부리자면 유럽의 난민을 도울 수 있는 일을 했으면 좋겠어요. 장소와 커뮤니티가 형성되면 그 사람들의 재교육을 도와준다거나 하는 같이 할 수 있는 일이 생길 것 같아요.


책 쓰기 잘했다고 생각한 리뷰가 있었나요?


책을 읽고 자기가 하고 싶지 않았지만 억지로 했던 일을 멈췄다고 한 분을 보고 제일 뿌듯했어요. 그게 노력하는 삶이거든요. 자신이 원하지도 않았는데 하던 일을 멈추면 그때부터 멈출 줄 알게 돼요. 한 번 하면 할 수 있는데 그걸 멈추지 못해서 계속 끌려가는 거잖아요. 그리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어요. 오늘은 해외 취업을 원했지만 내일은 갑자기 한국 대기업에 들어가고 싶을 수도 있어요. 원하는 건 언제든지 바뀔 수 있지만 원하지 않는 걸 멈추는 건 결정과 선택이 필요한 일이에요. 일단 멈추면, 다른 게 시작될 거거든요. 
 


 

 

당신의 이직을 바랍니다 앨리스 전 저 | 중앙북스(books)
‘노오력’을 강요받는 세상에서 더 열심히 한다고 달라질 것 같지 않을 때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평범한 사회 초년생이었던 저자 앨리스는 평생 먹고살 수 있는 배틀필드(battlefield)를 찾아 더 넓은 세계로 뛰어들었다. 어렵게 들어간 대기업 STX를 3개월 만에 그만두고 무작정 싱가포르로 떠난 저자는 결국 그토록 원했던 워크&라이프 밸런스가 있는 삶을 쟁취해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재경 “연예계 생활에 위안이 되었던 강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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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과 함께 사는 사람들은 바쁜 와중에 혼자 있는 반려동물이 안쓰럽다. 밥이라도 좋은 걸 먹이고 싶어 고급 사료와 간식을 찾지만 여전히 마음이 찜찜하다면, 이미 당신은 집사이자 부모의 마음을 가진 훌륭한 반려인이다.


걸그룹 레인보우로 데뷔한 9년 차 연예인이자 3년 차 강아지 엄마인 김재경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3년 전 만난 반려견 마카롱과 조금이라도 더 건강하게 오래 같이 있고 싶다는 마음에 사료 급식이 아닌 자연식을 선택했다. 내 자식과도 같은 아이에게 어떻게 만드는지 알 수 없는 사료 대신 먹는 즐거움과 영양을 놓치지 않는 ‘진짜 음식’을 먹이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마카롱에게 하나씩 직접 만들어 먹였던 요리는 『개밥책』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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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주인공은 ‘마카롱’


김재경의 첫 책입니다. 받아보고 기분이 어땠나요?

 

책을 내기로 한 건 오래됐어요. 2년 가까이 됐는데 실용서이다 보니 마음대로 쓴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고요. 정보를 수정하고 다듬는 과정을 거쳐서 출판이 많이 늦어졌어요. 가장 마지막 작업이 표지 디자인이었는데 그때 느낌이 되게 이상하더라고요. 인쇄 들어간다고 연락받았을 때 더 가슴이 뛰기도 했고요.


마카롱이 책의 주인공이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강아지와는 어떻게 만나게 됐나요?


어렸을 때 꿈이 수의사였을 정도로 동물을 좋아했어요. 데뷔하고 바삐 살다가 우울했다거나 힘든 건 아닌데, 열심히 살면서 보상이나 힐링이 필요하다는 기분이 들던 참에 친구가 키우는 강아지를 보게 됐는데 너무 매력적이더라고요. 지금 마카롱과 같은 종의 강아지였는데, 뛰어다닐 때마다 에너지를 막 흘리고 다니는 거예요. 그 모습에 반해서 그때부터 이 종이 어떤 종이고, 강아지는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등 공부를 시작했어요. 성인이 된 후니까 책임감 있게 아이를 키워야겠다는 생각이었죠. 또 그때부터 매일 하루가 끝나고 침대에 누우면 오늘 하루 반려견이 있었다면 내가 얼마나 돌봐줄 수 있었을지 시뮬레이션을 했어요.


연예인 스케줄에 강아지 육아까지, 힘들었겠어요.


레인보우가 공백기가 되게 많은 팀이었어요. 때마침 공백기에 접어들었을 때 지금이면 강아지의 어린이부터 청소년 시기를 겪기 전까지 옆에서 돌봐줄 수 있겠다는 시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 아이도 그때 운 좋게 만나게 됐죠. 그 전에는 맨날 강아지가 있는 카페 가고, 개 있는 친구 만나서 놀고 그랬어요.


친구는 뒷전이고요. (웃음)


그런 식으로 계속 강아지들이랑 접촉하다가(웃음), 펫샵도 가보고 가정분양 하는 아이들도 만나봤는데 다들 이렇다 하는 느낌이 안 오는 거예요. 부서질 것 같이 작거나, 예뻐도 약해 보였고요. 근데 이 아이를 처음 안았을 때 엄청 무거우면서 건강한 느낌이 딱 오더라고요. 이제까지 아픈 적 한번 없이 잘 컸어요.


꼬똥 드 툴레아라는 종인데요. 종 설명을 좀 해주세요.


종의 수명 자체가 길어서 키워야겠다는 결심을 했어요. 평균 16년 정도 산다고 하니, 제가 노력하면 20년 넘게도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브리더 분의 말에 따르면 유일하게 알러지 반응을 일으키지 않는 종이라고도 해요. 보통 개 알러지는 개의 기름이 유발하는데 유분이 거의 없는 털이라 냄새도 거의 안 나고 되게 건조해요.


털이 많이 날리긴 하겠네요.


그렇게 많이 빠지진 않아요. 검정 옷 입으면 늘 돌돌이 테이프를 현관 앞에 하나, 거울 앞에 하나, 차에 하나 두고 살아야 하긴 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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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건강한 식단은 자연식


여러모로 개를 잘 보살펴줘야겠다는 생각이 있을 텐데, 왜 하필 자연식이었나요?


개 카페에 놀러 갔을 때, 그때도 유난히 건강해 보이는 아이들이 있었어요. 털도 빤질빤질하고 에너지도 흘러넘치고요. 견주에게 왜 이렇게 건강한지 물어보니까 사료를 안 먹이고 자연식을 한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때 자연식이라는 개념을 처음 접하고 조사를 해 보니까 이미 외국에서는 자연식에 관한 책도 많이 나와 있고, 우리나라에는 막 수입이 되려던 참이었던 거죠. 사실 너무 쉬운 원리예요. 개는 늑대과 동물이고, 늑대과 동물에게 가장 적합한 식단은 고기예요. 너무 당연한데 개는 사료만 먹고 살아야 오래 살고 건강하게 산다는 걸 당연하게 세뇌처럼 생각한 거죠. 어떻게 보면 사료는 만들어져 있는 가공식품 혹은 완제품이잖아요. 매일 인스턴트 식품을 먹기보다 엄마가 장 봐서 해준 음식이 맛있고 건강하다고 느끼듯이 제가 이 친구에게 해주면 되겠다 싶었죠.


사료보다는 자연식이 아무래도 공이 많이 들어갈 것 같아요.


처음에는 일주일에 한 번 만들다가 나중에는 익숙해져서 이 주에 한 번, 지금은 한 달에 한 번 많이 만들어놓고 먹이고 있어요. 처음에는 고기부터 방울토마토까지 일일이 사서 만들었는데 요즘은 생고기를 원하는 만큼 소분해서 파는 사이트가 생겼더라고요. 그래서 고기는 따로 주문하고 채소는 직접 사서 다듬고 큐브 형태로 얼려두고 그날그날 해동해서 고기랑 주고 있어요.


예전부터 레인보우 김재경 하면 손재주로 유명했어요. 핸드메이드 화장품, 은공예 등 다양한 분야를 섭렵하셨는데, 그 재주 중에 요리도 있었나요?


한때는 베이킹에 꽂혀서 주로 베이킹을 많이 했어요. 요리는 샐러드 같은 거 해 먹는 등 주로 제가 먹을 음식을 만들었지만, 이 아이 키우고 나서는 조금 더 개에 초점이 맞춰졌죠.


어머니가 요리사라고 들었어요.


아무래도 어머니가 요리하는 모습을 많이 봐 왔으니까, 영향이 있었겠죠? 책에 나온 음식 촬영도 어머니 촬영 스튜디오에서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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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마음을 알 것 같아요


이 책이 ‘카롱이에 대한 고마움을 담은 편지’라고 설명해주셨는데요.


일단 이 아이로 인해 저도 행복이 늘어났어요. 그 고마움이 가장 큰 것 같아요. 예전에 아침에 피곤하다고 찡그리면서 일어났다면 지금은 그럴 일이 없는 게, 일단 눈을 뜨면 이 아이가 꼬리를 막 흔들면서 나를 기다리니까 웃으면서 시작하고, 하루의 마무리도 웃으면서 하게 되고요. 헤픈 웃음이 많아졌어요. 가만히 있다가도 강아지만 보면 웃게 돼요.


제목이 ‘개밥책’이잖아요. 직접 제안하신 제목인가요?


네, 출판사 대표님이 반대하셨는데 제가 이 제목만큼은 양보할 수 없다고 했어요. 대표님이 ‘강아지 밥’이라고 하자고 했는데 느낌이 안 와닿고 이상한 거예요. ‘개밥책’이라고 하면 한 번에 와 닿고 들으면 안 까먹을 것 같았어요. 처음 책을 준비할 때부터 입에 붙은 이름이라, 이게 가장 마음에 들었어요.


 ‘개밥 만들기의 이론과 실제’ 같은 책이라고 생각했어요. 생각보다 기본 지식이 많이 들어가 있더라고요. 공부하는 데 힘든 건 없었나요?


일단 국내 자료가 많이 없다는 게 힘들었고, 해외 자료를 번역해도 너무 어려운 말이더라고요. 그동안 쉽게 풀어쓴 책보다 전공서 같은 느낌의 책이 많아서 조금 더 많은 견주분들이 공감하거나 쉽게 실생활에 적용할 만한 책이 필요하겠다고 느꼈어요.


알레르기 테스트 방법 등 실생활에 적용할 만한 예가 많이 나와요. 제외 식이로 알레르기 여부를 판단한다고 하셨는데요.


하나하나 먹여보면서 강아지의 피부나 변을 점검하는 방법인데, 쉽게 말해 먹이던 사료에 소고기가 들어가 있었으면 거기 없는 단백질원을 찾아서 먹여보는 거죠. 두부나 고구마, 코티지 치즈 등 쉽게 접할 수 있는 음식을 급여해보면 바로 반응이 나타나거든요. 긁는 횟수가 늘어난다거나 눈물이 많아지는 식으로요. 관찰하면서 보다가 제대로 알고 싶어져서 이번에 마카롱 생일선물로 병원에 가서 알레르기 검사를 했어요.


개한테도 알레르기가 다양하게 나타나나 봐요.


집에서 자주 키우는 화초나 식물에도 알레르기 항목이 있어요. 그런 식물에 반응이 있으면 어떤 화분은 키우면 안 된다는 식으로 실생활에 바로 적용이 되니까요. 자연식을 해도 아이 건강상태가 개선이 안 되고 눈물이 계속 난다고 하면 병원에 데리고 가셔서 정확한 검사를 해보시는 걸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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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북스 제공


말을 들어보니 거의 육아를 하신 거네요.


정말 이게 부모 마음이구나 하고 느꼈어요. 처음 접해보는 식재료를 안 먹을 때가 있어요. 호불호가 있으니까요. 이 아이는 정말 확실히 고기를 좋아하고 채소만 주면 안 좋아해요. 날고기 좋아하고 우족 주면 종일 질겅질겅 씹고 있어요. 교묘하게 섞어줘야 먹는데, 안 먹으면 예전에 엄마가 ‘빨리 밥 먹고 학교 가!’ 이런 말을 왜 했는지 알 것 같더라고요.


다 안 먹어도 되니까 한입만 먹어보라고 하시죠. (웃음)


그게 진짜 느껴지는 거예요. 그리고 이 아이가 밥을 먹으면 제가 밥을 안 먹어도 배부른 느낌, 이게 그 느낌이구나 싶었어요. 그래서 강아지를 키우면서 부모님에 대한 생각도 커지고 내가 얼마나 철없는 딸이었나 반성도 하고요.


부모님이 강아지 키우는 걸 보면서 뭘 이렇게까지 키우냐고 하셨을 수도 있겠는데요.


그렇게 심하진 않으셨어요. 이렇게 해 봐야 부모 마음을 안다고 하시더라고요.


정설령 수의사 님이 감수를 해주셨어요. 책을 내면서 새롭게 알게 된 점이 있었나요?


아무래도 제가 찾을 수 있는 최대한의 정보는 인터넷에 있거나 서점에서 산 책인데, 수의사님은 영양학을 전문적으로 연구하신 분이라 훨씬 더 정확한 정보를 갖고 계셨어요. 저는 이 아이가 좋아하는 식단 위주로 많이 짰는데, 나중에야 이 재료는 뭐에 좋았는지 정보를 알 수 있었죠.


조미료를 만들어서 필요할 때마다 급여한다는 부분도 있었어요.


꼼수인 거죠. 급하게 빨리 만들어줘야 하는데 고기밖에 없다면 조미료를 토핑으로 얹어만 줘도 다양한 맛과 영양소를 줄 수 있으니까요. 고기가 떨어졌을 때 현미밥이 있으면 죽으로 끓여서 황태나 연어 조미료를 넣어 주는 거죠. 사람 음식 할 때도 활용할 수 있고요.


사람이 먹는 재료랑 같은 재료로 급여하시나요?


네, 같은 재료로 써요. 레시피를 보면 쿠키랑 저키류 빼고는 다 인간과 개가 함께 먹을 수 있게 레시피를 구성했어요. 사람이 먹을 때는 소금을 넣는 식으로요.


과일도 강아지가 많이 좋아해요. 설탕이 안 좋다고 하는데, 과일도 당이라 많이 먹이면 위험할 것 같아요.


자연식 먹일 때 흔히 하는 실수 중 하나가 우리가 늘 보는 식재료잖아요. 사람이 먹는 양이 눈에 익숙하기 때문에 강아지에게도 그 기준으로 주게 된단 말이죠. 하지만 생각해보면 사람 몸무게의 10분의 1도 안 되는데 그만큼 주면 강아지에게는 매우 큰 양이에요. 줄 때는 항상 양을 생각해서 조금씩만 주는 게 중요해요. 별거 아니에요. 내가 먹는 양의 조금을 이 아이에게 주면 충분한 맛과 영양을 줄 수 있는 거죠.


어렸을 때는 자주 급여하다가 성견이 된 후에 급식 주기를 줄이셨다고요.


3개월부터 12개월까지 다섯 끼를 먹였는데, 끼니를 주는 시간 간격도 제 스케줄에 맞춰서 줬어요. 오전 10시에 첫 끼 시작해서 자정에 끝나는 일정이면 그 사이를 쪼개서 다섯 끼를 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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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아지가 위안이 됐어요


나중에 스케줄이 늘어나고 자연식을 급여하는 게 부담이 되진 않으셨나요?


대개 함께 다녔어요. 가수는 무대에 올라가는 순간이 3분에서 4분 정도밖에 안 되니까 무대 하고 내려오면 다 대기밖에 없었거든요. 대기하는 동안은 늘 이 아이와 있고 무대에 설 때만 떨어져 있었어요.


여덟 번째 멤버였네요.


네. 그래서 멤버들이 제가 이 아이 챙겨주는 거 보고 ‘언니의 개가 되는 게 훨씬 편할 것 같아’ 하더라고요. 가만히 있으면 밥 주지, 똥을 싸도 칭찬해 주지, 그래서 다들 카롱이를 부러워했어요. (웃음)


연예계 생활이 힘들기도 하잖아요. 마카롱이 어느 정도 위안이 되었을 것 같아요.


그렇죠. 뭔가 제 뜻대로 안 될 때가 있잖아요. 사회 나와서 처음 깨달았던 것 중 하나는 노력한 만큼의 성과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거더라고요. 어릴 때는 공부한 만큼 성적이 나온다고 배웠고 실제로 그랬고요. 그런데 사회는 그것과 별개로 노력을 아무리 해도 100%의 성과가 항상 나오는 게 아니기 때문에 괴리감도 컸고 되게 힘들었어요. 하지만 늪에 빠져있다기보다 딴 데 생각을 돌리려고 노력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취미를 많이 갖게 되기도 했고, 멤버들한테도 취미를 가지라고 권하기도 했고요. 이 아이가 온 이후로는 제 취미가 다 이쪽으로 쏠린 거죠. 요리도 이 아이를 위해서 하고 옷을 만들어도 이 아이 옷을 만들고요. 강아지가 온 후로 좋은 쪽으로 생각이 없어졌어요. 긍정적인 방향으로 작용하게 되고요. 밥도 챙기고 뒷바라지하면서 몸은 힘들어질 수 있었지만, 훨씬 만족감이 커졌어요.


지금은 가수가 아닌 연기자로서 활동하고 있어요. 소속사도 바뀌고요. 지금의 재경은 어떤 사람인가요?


그 이전과 이후가 달라진 건 딱히 없어요. 그 전에도 그렇긴 했지만 요새 더 내 삶의 질에 관한 생각을 많이 해요. 내가 어떤 삶을 살면서 그 삶이 반영되면서 나라는 사람이 완성된 거잖아요. 좋은 연기를 하려도 해도 내가 좋은 사람이어야 내 몸과 나 자신이 좋은 연기에 쓰일 텐데, 내가 한쪽 방향으로만 생각한다거나 매일 똑같은 패턴으로 살면 나는 딱 그만큼의 사람인 거죠. 그래서 많이 경험해보려고 하고 여행도 많이 가보려고 해요. 더 많이 다양한 걸 접하고 생각도 많이 열어두려고 노력을 하는 편이에요.


책을 낸 것도 다양한 경험 중 하나인가요?


그렇죠. 이걸 하면서 새로운 직업군을 경험해보기도 하고, 엄마의 마음을 느껴보기도 하고, 개를 사랑하는 극성 엄마가 되어볼 수도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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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북스 제공


여러 가지 집중하는 게 쉽진 않아요.


어릴 때부터 공부를 할 때도 하루에 한 권만 공부하는 성격이 아니었어요. 여러 과목 쌓아두고 하다가 집중이 떨어지고 질리면 덮고 다른 거 하는 식으로 반복하는 타입이어서, 지금도 그 습관이 묻어나는 게 아닐까요?


앞으로 계획이 있나요?


앞으로는 열심히 재밌게 살 예정이고요. 이전에는 무대를 통해서 좋은 에너지를 전달했다면 지금은 작품을 통해 대중들에게 좋은 에너지를 전달하고 싶어요. 또 좋은 에너지를 전달하려면 제가 좋은 연기를 보여줘야 한다는 전제가 깔리니까, 열심히 좋은 연기를 위해 연마하겠습니다.


다른 책이 나올 수도 있을까요?


꿈은 꾸고 있어요. 하지만 실용서는 아닐 것 같아요. 너무 어려웠어요. (웃음) 다음에 책을 낸다면 감성 에세이 서적이 되지 않을까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시다면.


이 모든 게 이 아이를 위해서 시작되긴 했지만, 결론적으로 돌아서 생각해보면 나를 위한 일이었던 것 같아요. 이렇게 요리해 주는 것도 제가 행복해서 했고,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면서 또 행복을 느꼈고요. 사람마다 본인에게 맞는 행복을 찾는 일이 중요하니까, 그게 강아지가 됐든 뭐가 됐든 모든 이가 찾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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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밥책 김재경 저 / 정설령 감수 | 21세기북스
저자인 김재경은 반려견과 행복한 시간을 오래 지속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자연식을 급여하기 시작했고, 그 마음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개밥책』에는 그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맛있고 건강하게 먹는 일이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반려견에게도 중요한 문제임을 고민한 흔적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모 가댓 “행복의 이유 말고 불행의 이유를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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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가댓은 구글 최고의 브레인 집단으로 불리는 ‘구글X’의 신규사업개발총책임자(CBO, Chief business officer)이다. 이전에는 IBM,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거대 테크놀로지 기업에서 근무하며 재능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성공의 궤도에 올랐을 때, 그는 자신이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때부터 ‘행복’은 모 가댓의 화두가 됐다. 행복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는지 고민한 끝에 자신만의 ‘행복 방정식’을 완성했다. 그로부터 수년이 흐른 후 2014년, 사랑하는 아들 알리가 세상을 떠났다. 의료 사고였다. 믿을 수 없는 현실, 견디기 힘든 절망이 가족을 에워쌌다. 그러나 모 가댓은 “행복 방정식이 극단적인 슬픔에 빠진 우리 가족에게도 여지없이 들어맞았다”고 말한다. 행복 모델 덕분에 절망적인 순간들을 견딜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아들이 세상을 떠나고 17일이 지난 후, 모 가댓은 『행복을 풀다』을 쓰기 시작했다. “세상 곳곳에서 쓸데없이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행복 모델을 알려주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개인적인 임무이자 알리의 유산을 이어가는 방법이었다. 그에게 있어 알리는 “평화와 행복과 친절의 역할 모델”이었던 까닭이다. 부자가 함께 써내려간 이야기에는 행복의 정의와 방법에 대한 철학적인 성찰이 담겨있다. 공학자가 찾아낸 행복 방정식이 산술적 방법으로 도출되었을 것이라는 예상은 기분 좋게 빗나간다. 모 가댓은 “행복은 불행이 없는 상태“라는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을 말한다. 아울러 “당신에게 일어난 사건이 당신의 기대와 일치하지 않거나 당신의 기대를 넘어서면 당신은 행복하다”는 명제를 바탕으로 “행복≥사건들-기대들”이라는 공식을 제시한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방식으로 문제에 접근하는 공학자다운 면모가 빛을 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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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니에요


‘행복 방정식’을 찾게 된 과정이 궁금합니다.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을 때 불행하다는 생각이 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저는 20대 후반에 누구나 원하는 성공적인 삶을 가졌지만 불행함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모두가 부러워할 만한 일을 가졌는데도 불구하고요. 그보다 몇 년 전에, 그러니까 제가 아직 성공하지 않았을 때는 항상 행복감을 느꼈던 것 같습니다. 성공한 어느 시점부터 불행하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죠. 제가 살아온 중동이라는 지역적 특성상 명상이나 다른 정신적인 치료를 받을 수 없는 환경이었기 때문에 행복을 찾기 위해 더 많은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의 행복 모델을 찾기까지 10년 정도의 시간이 걸렸고, 비로소 행복한 상태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결정적인 사건이 있었나요?


삶에서 많은 일이 일어났지만 그 중 대부분이 저를 불행하게 만들었습니다. 어떤 한 사건이 저를 불행하게 만들었다고 정의할 수는 없어요. 예를 들면 저는 훌륭한 아내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아내가 더 훌륭해지기를 원하고, 좋은 차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더 좋은 차를 사고 싶어 했던 것 같습니다.

 

알리가 세상을 떠났을 때 ‘행복 방정식’의 도움을 받아 슬픔을 이겨냈다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자식을 잃는다는 것은 인생에서 가장 큰 슬픔이자 고통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알리가 세상을 떠났을 때 저는 많은 심리적 고통을 느꼈습니다.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 없었고 우리 가족은 불행했습니다. 알리가 죽은 뒤 정확히 4시간 만에 두바이 정부로부터 전화를 받았습니다. (사망 원인이 된) 의료 과실에 대해 사과를 받았고, 더 정확한 조사를 위한 부검을 요청 받았습니다. 제가 그 내용을 아내에게 전달했을 때 아내는 ‘그렇게 한다고 해서 알리가 다시 우리한테 돌아오나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서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생각하게 됐습니다. 알리의 죽음 후에 우리 가족이 불행한 상태에 있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알리가 다시 돌아오는 것은 아니니까요. 알리를 잃은 후 제 마음속에는 고통이 있었고 머릿속에는 수많은 힘든 생각들이 있었습니다. 과연 그러한 생각들이 저에게 유익한 것인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면서 다시 한 번 진단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알리의 죽음이 ‘행복 방정식’에 영향을 미친 측면도 있을 것 같은데요. 어땠나요?


알리가 떠난 후로 계속 심리적인 고통에 시달렸습니다. 그때부터 조금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고, 고통을 극복한 지금은 알리가 떠났을 때보다 훨씬 더 평화로운 상태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삶에 대해서 진실을 본다면, 삶은 저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그것의 정확한 가치를 보려고 노력합니다. 예를 들어 제가 교통 체증에 휩싸여 있다거나 일을 하면서 힘든 순간이 있을 때, 그런 것을 알리의 죽음이 준 고통과 비교해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와 닿았습니다. 이러한 훈련을 통해서 지금 현재의 자신을 불행하게 만들지는 않습니다. 제가 『행복을 풀다』의 독자들에게 말해주고 싶은 것은, 우리는 삶에서 비극적인 일이 일어나기를 기다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전에 먼저 행복을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당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기를 원한다면, 기다리지 말고 직접 가서 실행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행복은 불행이 없는 상태”라고 정의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겨우 그 정도가 행복이란 말인가?’ 하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이 행복을 실제보다 더 부풀리고 과장하는 측면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습니다. 행복은 우리가 찾아야 되는 것이고, 성취해야 되는 것이고, 기다려야 되는 것이라는 생각은 현대사회의 가장 큰 거짓말 같아요. 저는 ‘행복이란 당신이 태어났을 때부터 가지고 있던 특성’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당신이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을 때, 다시 말하면 초기 상태에 있을 때 당신은 행복할 것입니다. 그런데 사회적인 압력이나 자라온 환경 때문에 그것이 변하게 되고,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서 다른 것들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추운 방에 있다면 행복을 느끼지 못할 겁니다. 그러나 적절한 온도를 유지해주면 다시 행복해지겠죠. 당신이 불행하다면 그 이유가 있을 거라는 이야기입니다. 그 이유를 없애면 다시 초기 상태로 돌아갈 것이고, 행복함을 느낄 것입니다.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행복해지는 이유를 찾는데, 그것보다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이유들을 찾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행복 목록(Happy List)’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어떤 순간에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끼는지 기록하는 건데요. 저자님의 ‘행복 목록’은 어떤 내용으로 채워져 있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모든 것에 행복함을 느낍니다. 저를 모르는 사람들은 제가 단지 성공했다고 해서, 좋은 직업을 가지고 있고 금전적인 여유가 충분하다고 해서 제가 행복하다고 정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물질적인 것 때문에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보시다시피 저는 그냥 심플한 티셔츠와 청바지를 입고 있습니다. 비싼 사치품이 필요 없습니다. 저는 좋은 사람들과 만나 대화를 나눌 때 행복하고, 좋은 커피 한 잔을 마실 때 행복하고, 딸의 미소를 봤을 때 행복합니다. 새로운 것을 배울 때도 행복하고요. 불행한 이유가 없다고 느낄 때 행복합니다. 저는 이것을 초기 상태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주변의 사람들을 둘러보면 행복 목록은 그렇게 어려운 내용으로 채워져 있지 않을 겁니다. 대부분 다 비슷할 것이고, 간단한 내용들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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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무조건’ 사랑하는 데는 이유가 필요 없습니다


저마다 추구하는 삶의 방식이 다를 텐데요. 때로는 타인의 평가 때문에 자신의 고집대로 밀고 나가기가 힘들기도 합니다.


우리는 항상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려고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불행한 이유 중에 두 번째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 같습니다. 당신은 당신 자체인 것입니다. 당신이 아닌 다른 사람인 체하면서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는 있죠. 그러나 그것은 실제 당신의 모습이 아니고, 그럴 때 당신은 공허함을 느낄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꾸며진 모습을 더 좋아하고 진짜 자신의 모습은 좋아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갇히게 됩니다. 더 큰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도 알아차릴 거라는 사실입니다. 당신이 꾸며진 모습을 보여줬다는 걸요. 그것은 당신을 더 가슴 아프게 만들 것입니다. 제가 알리를 통해 배운 사실이 있습니다. 알리는 자신을 너무나도 잘 믿었고, 자신과 같은 사람들이 다가오면 친구가 됐습니다. 삶에 대한 그의 견해는 참 인상 깊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못나거나 잘났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그 자신과 타인이 서로 다르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미 꾸며진 모습으로 타인과 관계를 맺은 사람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일단은 그것을 바로잡는 데 약간의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당신의 실제 모습을 보여주십시오. 그러면 아마 주변에 있던 사람들 중 70%는 당신을 싫어할 것입니다. 나머지 30%의 사람들은 당신을 좋아하고 그대로 곁에 남을 것입니다. 당신의 삶은 그 30%의 사람들과 함께하면 더 행복해질 것입니다. 자아에 대한 환상을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하나의 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우리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부족하다는 데 있습니다.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사회적으로 잘나야 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조금 더 예뻐야 되고, 조금 더 몸매가 좋아야 되고, 조금 더 재밌어야 된다는 등의 기대치가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은 당신 자체로 너무나도 아름답습니다. 당신 자신을 사랑하기 시작했을 때, 그때 행복은 당신과 함께할 것입니다.

 

책에서도 “당신 자신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하는 데는 어떤 이유도 필요하지 않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읽으면서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우리가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게 된 데에는 계기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먼저 찾아야 합니다. 아마도 성장 과정에서 부모님과 선생님의 영향을 많이 받았을 수도 있을 겁니다. 그들은 우리를 사랑했기 때문에, 우리가 조금 더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채찍질을 했던 것인데 이런 결과를 초래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더 이상 어린 아이가 아닙니다. 성인이기 때문에 ‘이제 그러한 주문은 필요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지금의 내 자신이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죠. 그리고 자신이 참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부모님이나 선생님, 친구들 등 다른 사람들에게 증명할 이유는 하나도 없습니다. 특히, 나 자신에게도 그것을 증명할 이유는 하나도 없습니다.

 

한국에서도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는 말을 흔히 합니다. 그런데 기대를 낮추거나 내려놓는 일이 생각만큼 쉽지 않아요. 저자님의 경우는 어떤가요? 기대를 낮추는 자신만의 방법이 있나요?


저는 굉장히 큰 기대를 설정합니다. 행복에 대한 많은 책들이 삶(일상)을 떠나야 행복하다고 말하는데, 저는 그렇게 말씀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현재 상황에서 더 열심히 해서 성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성공할 때 당신이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성공하면 당신의 기대치를 조금 더 높일 수도 있고, 그를 통해서 삶에 더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조금 슬픈 예를 들자면, 저는 제가 가진 모든 것을 알리에게 줄 수 있다고 기대했습니다. 아빠로서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주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한 기대치는 더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알리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삶은 제 기대치에 다가가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딸 아야에게 똑같이 하지 말아야 하나요? 제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삶을 아야한테는 주지 말아야 된다는 의미인가요? 아닙니다. 제가 알리에게 주고자 했던 모든 것은 자선단체를 만들어서 다른 사람들한테 나눠줄 수 있습니다. 저는 삶의 다른 분야에서 기대치를 조금 더 높이 설정했고 또한 실천했습니다.

 

기대가 엇나갔을 때 느끼는 실망감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만약 기대치가 사건보다 낮거나 높았을 때,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알리가 수술방으로 들어가기 전에 제가 그를 안았던 것이 인생에서 가장 감명 깊은 사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알리는 제 인생의 자랑이었습니다. 저는 그의 모든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제 곁에 없습니다. 삶은 제 기대치에 반영되지 못했습니다. 알리의 죽음으로 삶의 기대치가 떨어졌다고 해도, 그때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슬퍼한다고 알리가 되돌아올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한 일이 일어났을 때 우리는 전적으로 그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제 경우에 비춰보면, 우선 ‘우리가 무엇을 하든 알리는 다시 돌아올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에는 조금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면서 오늘보다 조금 더 나은 내일이 될 수 있게 만들어야 하고요. 저는 이러한 사실을 받아들였고, 1000만 명을 행복하게 만들자는 ‘1,000만 명 행복 프로젝트’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행복에 대해 말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한국에 와서 강연을 하고 있는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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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명의 사람과 행복에 대해 이야기하세요


삶을 게임에 비유하기도 하셨어요.


삶은 비디오 게임과도 같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게임을 하다 보면 어려운 면을 맞닥뜨릴 때도 있죠. 그것은 애초에 그렇게 설계되었습니다. 삶을 살아갈 때도 우리는 힘든 부분을 맞닥뜨릴 것입니다. 제가 알리와 함께 게임을 했을 때, 알리는 정말 최고의 전설적인 게이머였습니다. 게임을 하다가 어려운 상황과 만나면 다시 그 상황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제가 물어봤죠. 왜 굳이 어려운 부분으로 들어 가냐고요. 알리는 두 가지 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첫 번째는, 이건 우리가 이 게임에서 유일하게 재미를 찾을 수 있는 부분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이런 어려움을 통해서 우리가 더 많이 배우고 훌륭한 게이머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어요. 제가 ‘너는 레벨의 끝까지 올라가고 싶지 않니?’라고 물어보자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게임을 끝내야 되는데 누가 그걸 원하겠냐고요.

 

우리 삶에도 대입해볼 수 있는 이야기네요.


살에서 끝 레벨에 도달하면 우리는 죽습니다. 그런데 재미는 게임 안에 있죠. 어려운 순간은 우리가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시간입니다. 그 어려움을 통해서 교훈을 얻거나 더 성장하거나 발전할 수 있을 거고요.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 과거를 둘러보면 그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삶에서 어려운 부분은 지금 있을 수도 있고 미래에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어려움 자체를 즐기면서, 그것을 통해서 배우고 성장해나가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지난해에도 한국에서 강연을 하셨고, 이번에도 한국의 기업인과 대중들을 만나셨습니다. 그들의 모습에서 행복을 발견하셨나요? 한국인이 행복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이나 기준이 있을까요?


저는 한국을 너무 사랑합니다. 그리고 한국에 대한 좋은 인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누구보다 친절하고 똑똑한 것 같습니다. 이러한 국민성을 가진 사람들은 어떤 것을 하겠다고 목표를 설정하면 충분히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가치를 가진 민족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질문에 대한 제 의견은 필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한국인이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이거나 불행한 사람들이라고 제가 감히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한국은 10대의 자살률이 높은 나라이고, 성인 우울증이 가장 많이 나타나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행복을 찾을 수 없어서가 아니고, 행복을 우선순위로 설정해 놓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행복을 가장 우선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요소로 설정한다면, 한국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행복을 풀다』의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 책을 통해서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고, 어떻게 행복해지는지 예측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방법을 아는 것만으로 행복해질 수는 없습니다.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당신은 다른 사람들이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저는 이런 요청을 드리고 싶습니다. 만약 제 책을 통해서 행복함을 느끼셨다면, 10명의 다른 사람들에게 가서 행복에 대해 말해주십시오. 그리고 행복에 대해 공유해 주십시오. 그 10명의 사람들은 또 다른 10명에게 이야기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몇 년 안에 수백만의 한국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행복을 풀다모 가댓 저 / 강주헌 역 | 한국경제신문사(한경비피)
『행복을 풀다』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공학자이자 ‘구글X’의 신규사업개발총책임자(CBO)인 저자가 행복에 대한 여러 허상을 각개격파하면서, 행복을 위한 해법을 제시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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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소설 작가 특집] 김보영 “SF만 쓰는 작가는 적지만 SF소설은 무궁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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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지자’들은 태초의 세계 즉, ‘명계’의 존재들이다. 이들은 ‘이승(하계)’에 ‘아이들’을 만들어 내려 보낸다. 최초의 ‘분리’가 있은 후 하계는 다양한 형태로 진화를 거듭했고, 그곳에서 선지자들이 보낸 아이들은 학교에 간 학생처럼 교육을 받고 돌아왔다. “첫 등교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우리는 학기가 끝나면 낙제한 열등생처럼 민망해하며 돌아왔다.” 그래서 이들은 명계로 돌아오면 이승을 토론했다. 다시 내려가 ‘경이로운 경험’을 하고, ‘진짜 배움’을 얻었다. 그러나 ‘타락’한 ‘아만’이 이승을 진짜로 여기게 되면서 명계는 ‘분리’냐 ‘합일’이냐를 두고 치열한 논쟁을 벌인다. ‘가장 SF다운 SF를 쓰는 작가’라는 수식을 받는 작가 김보영이 그리는 사후세계 『저 이승의 선지자』는 이렇듯 사후세계라는 거대한 세계관을 통해 좋은 세계란 어떤 모습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단편집 『멀리 가는 이야기』, 『진화 신화』와 장편 『7인의 집행관』등을 쓰고 여러 앤솔로지를 통해 꾸준히 작품을 발표해온 김보영 작가는 어떤 이야기를 SF로 쓰느냐는 질문에 “문학의 모든 기능을 SF도 갖고 있고, 문학이 발현하는 기제를 SF도 다 갖고 있다”고 말했다. “조지 오웰이나 올더스 헉슬리를 온전히 SF작가로 볼 순 없지만 『1984』『멋진 신세계』는 SF의 고전”이라는 작가의 반문에 자꾸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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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인간적이고 현세에 천착하는 신


『저 이승의 선지자』의 세계가 그리는 상징과 은유를 읽는 일이 참 즐겁더라고요. 전 우주가 ‘이승(하계)’이라는 설정이나 과학적 자세를 견지하는 선지자 ‘탄재’의 존재 등도 그렇죠. 이 세계를 만들 때 가장 많이 하셨던 생각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해요.

 

『멀리 가는 이야기』 썼을 때도 그랬는데요. 한 이야기가 끝나면 마지막에 생각한 이야기를 그 다음에 이어서 진행했어요. 어린 마음이었는지『멀리 가는 이야기』를 쓸 때는 이것을 쓰고 다시는 아무것도 쓰지 않겠다는 생각이 좀 있었어요. 그 단편집의 결말이 우주의 끝, 세상의 끝으로 가는 거거든요. 여기까지 쓰면 더 할 얘기가 없겠지(웃음) 하는 생각이었는데요. 보니까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남더라고요. 죽음을 쓰고 나니까 또 사후 세계 이야기가 남고요.(웃음) 그렇게 사후 세계 이야기를 일 년 간 썼어요. 원래는 중편으로 썼는데 웹진 <크로스로드>가 분량 제한이 없는 곳이다보니 거의 장편 분량이 되었죠.


당시는 세계관이 정리되지 않은 채로 나왔다고 생각하는데요. 이번에 출판사 제안을 받아 전체적으로 다듬었어요. 우선은 우리 현실 과학적인 세계관을 기반으로 내가 납득할 수 있는 저의 사후 세계를 한 번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작가님 입장에서 이해할 수 있는 사후 세계요.


지옥이나 천국으로 사람을 나누는 건 늘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일단 인간이 선악으로 둘로 나뉜다는 게 이상하죠. 그리고 이승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저승에 계속 쌓인다는 것도 질량보존의 법칙을 생각하면(웃음) 이상해요. 저승이 아무리 커도 벌써 포화상태란 생각이 들어요. 윤회가 비교적 낭비가 적겠다고 생각했는데요. 윤회 역시 한 번 잘못하면 억겁의 세월을 미물로 살다가 해탈해야 끝나는 건 과하다고 생각했어요. 미물과 인간의 생이 뭐 그리 다른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비교적 가까운 세계관은 그렇다면?


한국 신화에 기반을 많이 두었지만 선지자들을 구성할 때 주로 생각한 것은 그리스 신화와 같은 다신교였어요. 다신교의 세계관에서는 모든 신들이 각자 인격을 가진 한 명의 신이면서 사물이면서 동시에 개인이잖아요. 저는 그 구조를 좋아해요. 아폴론이라는 신이 아폴론이라는 사람처럼 생긴, 한 명의 욕망을 갖고 개성을 가진 인간이면서 동시에 하늘에 있는 저 태양 그 자체고 태양의 속성을 가진 개념이죠. 그 구조를 한국식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선지자(신)의 이름 자체가 개념이고 속성이고 바라는 방향이잖아요. 선악이라든가 누가 더 중요하다는 개념 없이 어우러지는 세계관을 만들고 싶었어요.

 

앞부분에는 ‘타락’이라는 단어가 반복해서 나오고 ‘아만’과 ‘합일’해야 한다는 생각이 계속해서 나와요. 어쩌면 선악이 있는 것처럼 느껴졌는데요. 반복해서 ‘너는 나다, 우리는 하나다’라는 주문이 나오던 초반과 달리 뒤로 가면서 ‘분리’로 방향이 전환되죠. 이런 생각 변화는 어떤 맥락에서 일어난 건가요?


처음 구상했을 때는 분리에 무게를 싣는다고 생각했는데요. 쓰면서 제가 합일을 추구하는 세계에 너무 몰입해서 당시 버전은 합일에 좀 더 무게가 실렸어요. 지금은 분리에 더 가치를 두는 내용으로 많이 바뀌었고요.


저는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성자는 착하지 않다, 사람을 짚단처럼 본다’는 말이 맞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정말로 신들이 세계 전체를 공평하게 생각하고 모든 것을 다 고려한다면 그렇게 한 명, 한 명에게 섬세하게 착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신의 입장에서 보면 근시안적이고 세속적이라 해도, 좀 더 인간적이고 현세에 천착하는 신이 좀 더 우리를 사랑하는 신이 아닐까, 하지만 그런 신은 신들 세계에서 왕따를 당할 거야(웃음) 라는 생각으로 썼어요. 원래는 아만도 하나의 신처럼 그렸는데, 나중에는 평범한 사람들의 집단처럼 그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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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공간은 SF에서 언제나 존재할 수밖에


이번에 다시 쓰시면서 힘들었던 부분이 있었다면 뭐였어요? 


SF를 쓰면서 항상 겪는 곤란인데요. 내가 만든 세계지만 저도 결국은 현실에 박혀 있는 한 명의 인간이잖아요. 온갖 상식과 편견에 휩싸여 있고요. 처음 웹에 올린 버전을 다시 보니까 여러 장면에서 모순이 보이더군요. 이를 테면 처음에 등장하는 사람이 ‘또 다른 나’로 바뀌었는데요. 원래는 ‘어머니’였어요. 생각하니까 이 세계관에서 특정하게 내가 어머니라고 부를 존재가 있을 수가 없어요. 또 예전에는 아이들한테 ‘벌을 준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죠. 내가 이미‘상도 없고, 벌도 없다’는 말을 했는데 말이에요.(웃음) 그런 것도 많이 뺐어요. 그런 식으로 모순을 제거하는 작업이 많았어요. 보통 SF를 쓸 때 후반 작업이라면 이런 것들인 것 같아요.

 

흥미로운 작업 뒷이야기네요.


「다섯 번째 감각」이라는 작품을 쓸 때도 그랬어요. 그 소설 배경은 청각이 없는 세계거든요. 퇴고할 때 보니까 의성어가 그렇게 많이 나오는 거예요.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라는 식으로요. 그놈의 의성어는 퇴고할 때마다 나오더라고요.(웃음)「종의 기원」은 로봇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인데 퇴고하다 보니 로봇이 입맛을 다시고 있더군요! 결국 적당히 타협해서 인간을 많이 닮은 로봇이라고 설정을 다시 정리하죠. 『저 이승의 선지자』에서도 사실 탄재가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해요. 가장 인간적이기 때문에요. 조연이지만 탄재가 스토리를 붙들어주었으면 했어요.

 

탄재는 정말 매력 있는 캐릭터죠!

 

그리스 신화 같은 다신교 세계관에서 과학의 신이 생겨났다면 어린 아이가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어요. 이제 막 생겨나서 신들이 그를 이해 못하지 않았을까 하고요. 하지만 다음 세대의 주인이 되는 건 그 과학의 신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사실 후반부에는 탄재가 살짝 주신의 자리를 꿰찬 것처럼 보이죠. 그런 세계가 미래가 된 거고요.

 

꽉 차고 잘 조각된 SF도 매력 있지만 어떤 빈 공간 안에서 독자가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도록 하는 SF도 큰 매력이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쓰는 입장에서는 어떤가요? 완벽한 세계를 만들어서 독자에게 보여주고 싶은 욕구도 있을 것 같고요.


낯선 세계를 그리기 때문에 빈 공간은 SF에서 언제나 존재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모든 부분을 다 채울 수는 없어요. 사실 그 빈 공간을 많이 두는 작가도 있죠. 로저 젤라즈니처럼요. 듀나 작가님도 빈 공간을 두는 편이고요. 듀나 작가님은 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 자기 세계관을 설명할 욕구를 가지겠느냐는 말씀도 하셨었는데요. 맞는 말이기는 해요. 그 세계 사람들은 자기 세계관에 젖은 채로 활동할 테니까요. 로저 젤라즈니도 설명을 많이 하지 않는 편인데 역시 진입장벽이 좀 있어요. 물론 일단 그 작법에 익숙해지면 세계를 탐구하는 즐거움이 있지요. 저는 중간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일단 저는 한국어로 쓰고 있고, 만날 수 있는 독자가 적은 걸 생각하면 제 원래 성향보다는 많이 친절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SF작가로서의 고민으로 연결되는군요.


사실은 제 글쓰기의 가장 큰 과제가 그거예요. 잘 안 되니까 더 그렇겠지만. 퇴고할 때 가장 노력을 많이 기울이는 지점이 어떻게 쉽게 설명하고 어떻게 쉽게 받아들이게 하고, 그 설명이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할 것인가 하는 부분이에요. 첫 소설부터 어렵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당시 어렵다고 이야기 들었던 십 년 전 작품을 지금 독자 분들은 별로 안 어려워하시는 것 같다는 점이에요. 그걸 너무 믿어도 곤란하겠지만요.

 

SF를 쓰는 많은 분들이 비슷한 고민을 할 것 같아요.


SF는 항상 그런 게 있는 것 같아요. SF 안에서는 약간 신선하거나 평범한 수준에서 약간 나아간 이야기인데 대중 입장에서는 그것이 너무 앞서 나아가 있는 거죠. 하지만 한 번 생겨난 아이디어는 다른 문학이나 영화, 만화에 녹아들기 때문에 몇 년 지나면 대중에게도 익숙한 것이 돼요. 아이작 아시모프의 『파운데이션』이 최근 재간되었는데요. SF독자들은 너무 오래된 고전이라고 생각하지만 일반 독자들은 오히려 이제야 재미있게 읽으시는 듯해요.

 

결국 그렇게 오래도록 살아남는 작품들이 있고요.


고전이지만 허버트 조지 웰즈가 정석적인 기법을 썼어요.『투명인간』을 보면 처음부터 투명인간이 나타나지 않아요. 어느 날 여관에 손님이 오는데 날도 더운데 코트를 입고 얼굴을 붕대를 감싸고 있죠. 여관주인이 어느 날 그 사람의 입이 뻥 뚫려 있는 걸 보고 심한 장애가 있나 생각해요. 그러다가 머리가 없는 게 발견되고, 나중에는 몸 전체가 없어지죠. 그 다음에야 그 사람이 왜 그렇게 됐는지 설명해요. 이런 식으로 독자가 믿을 수 있는 수준을 한걸음씩 진전시켜서 일단 그 세계가 존재한다는 걸 독자들이 받아들이게 한 뒤에 과학적인 이야기를 하는데요. 물론 말은 안 되죠.(웃음) 하지만 최대한 당대 최신의 과학을 접목해 독자를 설득하는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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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와 『멋진 신세계』는 SF의 고전이다


지금 SF작법에 대한 고민을 말씀해주셨는데요. 그렇다면 내용, 어떤 이야기를 SF로 쓸 것이냐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궁금해져요. 최근 쓰신 단편들을 보면 무척 현재적인 이슈를 다루고 계시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가령 「빨간두건 아가씨」에서 다룬 미소지니 이슈도 그렇고요. 어떠세요?


저는 SF를 음악으로 비유할 때 락으로, 사람으로 비유할 때 여자로 비유하는데요. 사실 그 개별성과 구별성을 찾아내려고 사람들이 많이 노력하지만 실상 락의 90%는 다른 음악과 같고, 여자의 90%는 보통의 사람이죠. 문학의 모든 기능을 SF도 갖고 있고, 문학이 발현하는 기제를 SF도 다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문학이 현실을 말하는 만큼 SF도 현실을 말하죠. SF가 예전보다 좀 더 현재적이 된 것은 과학이 좀 더 대중화되었기 때문이고요. 과학은 논리적 사고라는 개념의 총체기 때문에 굳이 추구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발현할 수 있는 문학 장르라고 생각해요.

 

중요한 말씀이네요.


역사소설만 쓰는 작가는 적지만 역사소설이 무궁무진한 것처럼 SF만 쓰는 작가는 적지만 SF소설은 무궁무진하죠. 대부분의 거장들은 한 번씩 SF를 건드렸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고요. 조지 오웰이나 올더스 헉슬리를 온전히 SF작가로 볼 순 없지만 『1984』『멋진 신세계』는 SF의 고전이잖아요. 그리고 한국에서 제일 잘 팔리는 작가 중 한 명이 베르나르 베르베르인데 왜 계속 SF를 지엽적인 장르 취급을 하나요.(웃음)

 

『이것이 나의 도끼다』에서 진행하신 듀나 작가님과의 인터뷰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있었죠. ‘SF적인 것과 아닌 것을 구분하는 경계선이 점점 흐릿해진다’고요.


저도 SF를 쓴다는 생각을 하며 쓸 때도 있지만 제 소설을 쓴다는 생각이 많아요. 최근에 어떤 기획에서 제게 가장 영향을 준 작가를 쓰라고 해서 헤르만 헤세를 썼어요. 쓰다가 떠올린 건데요. 제가 어렸을 때엔 주로 모험 판타지를 썼고 엄청나게 많이 썼거든요. 그러다 고등학생 때 가치관이 많이 무너지면서 글을 못 쓰게 됐어요. 세상이 당연시하는 가치관들을 신뢰할 수가 없게 되었고요. 『데미안』은 당시의 제게 유일하게 도움이 됐던 책이에요. ‘네 안에 신이 있으니까 그 신을 믿어라’라는 말에서부터요. 글을 다시 쓰기 시작한 건 이것이 제가 세상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편이 됐기 때문이에요. 내가 세상에 대해 의문을 가진 것에 대해 하나씩 소설을 쓰고, 내 이야기에 몰입하면서 스스로 배우는 거예요. 제 글쓰기는 계속 그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쓰다 보니 SF로 분류 되었다는 게 정확하겠네요.


제가 어렸을 때는 국내에 SF 자체가 번역된 것이 많이 없었어요. 접하기도 힘들었고요. 그러니 다른 SF를 기준으로 삼고 형식을 구축한 것이 아니었어요. 처음에 글을 쓸 때에도 출판 생각이 완전히 없었어요. 이런 글은 아무도 실어주지 않을 거라고 굳게 믿어 의심치 않았고요.(웃음) 그냥 나를 위해서 한 권의 책을 완성하자는 생각으로 썼더니 SF 쪽에서 좋아하더라고요. 지금까지도 그런 것 같아요. 제가 당면한 현실과 내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을 쓰는 작업을 한국 문학에서는 SF가 받아주고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어요.

 

김보영 소설만의 주제의식이랄까, 자신만의 테마는 무엇인가요?


글쎄요, 그것은 독자들이 발견해주지 않을까요. 뭔가 있겠죠. 본인은 몰라도 우리가 다른 작가를 보면 알잖아요. 그런데 본인들은 아마 잘 모를 거라고 생각해요.

 

요즘 자꾸 걸리는 이야기가 있다면요?


우리나라 사람 누구나 그렇겠지만 세월호가 여전히 마음에 있고요. 최근에는 확실히 작년 한국 게이머 게이트 이후 일어난 일련의 인터넷 현상이 계속 관심사예요. 원래 여론 조작이나 인터넷‘밈’이 도는 현상은 정부 주도 하에 조작되거나 가짜 뉴스가 나가는 거라고 생각했었는데요. 그게 대중 안에서도 일어날 수 있더군요. 그 밖의 무수한 양상들에 대해서요. 그것을 타파하는 방법이 무엇인가 하는 것을 계속 생각하고 있어요.

 

대중에서 시작되는 여론전이라는 거죠.


사람을 사회에서 배제하는 언어가 너무 쉽게 돌고 있어요. 모 사이트의 해악은 그 사이트 활동만 안 하면 자신이 정당한 사람이라고 믿게 만든 것이 아니라, 특정 집단을 악마화해도 된다는 생각을 퍼트린 거라고 생각해요. 그 피해를 결국 모두가 입고 있고요. 거기서부터 다시 생각하고 있어요. 과거에는 정부 주도로‘노동자는 빨갱이’라는 말을 뿌렸죠. 그냥 인간인데 노동자니 시위꾼이니 귀족노조니 하는 편리한 이름을 붙여요. 이런 식으로 명칭을 붙이면 너무나 쉽게 대중은 그들이 인간이 아니라는 말을 입에 담게 돼요. 그런데 그런 배제의 언어를 지금은 대중이 만들어요. 하지만 내가 누군가를 인간이 아니라고 칭하는 그 순간 내가 인간이 아니게 된다고 생각해요.

 

여기 “호의도 적의도 없이”라는 표현이 나오잖아요. 호의도 적의도 없이 가해하고, 시스템을 악화시키는 경우도 너무 많죠. 그런데 명계의 선지자들은 ‘대의’가 있으니 생명을 잃는 것쯤은 아파할 일이 아니라고 말해요. 기시감이 들더라고요. 


대의에 경도되는 건 위험할 때가 많아요. 종교라는 이름으로 비인간적인 악행이 일어났듯이 말이에요. 사실 그것은 전체의 대의지 개인의 대의가 아니잖아요. 전체의 이상향에 나를 동일시했을 때 모자라고 아무것도 아닌 나 개인을 거대하다고 착각하게 되면서 인간이 끝없이 잔인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명계의 선지자들은 분명히 어떤 면에서 초월한 존재들이지만, 본질적으로 세계 전체에 자신을 동일시할 수밖에 없으니 개개인의 고통을 두고‘그게 왜 그렇게 대단한 일이지?’라고 생각하곤 하죠. 하지만 한 명의 개인으로서는 그 고통이 전부인 거죠. 그래서 전체에서 자신을 분리해 생각할 수 있는 개개인들이 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저 이승의 선지자』가 말하는 ‘분리’의 가치죠.

 

하지만 제가 소설에서 어느 한 방향으로 간 건 아니에요. 헤르만 헤세도 자기 생각의 위험성을 늘 알고 있었다고 생각해요. 외전에는 저쪽이 이긴 세계도 있고 이쪽이 이긴 세계도 있는데, 결국 가장 좋은 세계는 첫 번째 외전처럼 모두가 각자의 신념을 갖고 그 신념을 위해 투쟁할 자유를 갖고 그 자유의 권리를 인정하며, 우리가 자신의 스승을 선택할 수 있고 그들이 각자 자신의 가치를 위해 살아가는 세계가 아닐까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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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가 얼마나 멋진지 아느냐


인간의 선함 혹은 악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 작품은 선의에 많이 기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나름대로 심리학과를 나와 버린 바람에요.(웃음) 심리학은 인간을 과학적으로 보는 학문이죠. 모호하고 불분명한 실체가 아니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는 관점을 갖고 있는데요. 저는 그 지점이 바로 인간의 선함을 믿는 관점이라고 생각해요. 심리학에서 주로 쓰는 말이‘아픈 사람’이라는 말이거든요. 나쁜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아요. 아니면‘지금 힘든 사람’이라고 이야기하죠. 충분히 과학적인 방법으로 다시 나아질 수 있다고 보는 거죠. 이 나아진다는 것도 어떤 기준이 있는 게 아니라 본인이 행복하면 나아진 거예요. 그것도 역시 다 맞다 할 수는 없겠지만요. 저는 악한 사람이 아니라 약한 사람이고, 지금 힘든 사람이라고 보는 그 시선을 좋아해요. 그러면 그 사람에게 다음 미래가 있는 거잖아요.

 

대개는 나쁜 사람이라고 배제하는 쪽이 쉽기 때문에 그런 선택을 하기도 해요.


눈에 안 보인다고 사람이 없어진 게 아녜요. 그 사람들은 결국 현실에서 우리와 함께 살고 있고 살아가야 할 거예요. 배제보다 변화를 더 생각해야 하는 건 어떤 방법이 더 낫다 하는 것을 떠나서, 사람이 실제로 사라지거나 배제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쓰고 있는 게 있다면 들려주세요.


다음 달에 책이 나와요. 작년에 쓴 듀나 작가님, 장강명 작가님, 배명훈 작가님과의 공동 단편집이고요. 그 밖에 올해 계획하고 있는 것들은 다 예전 작품의 속편이네요. 계속 끊어지는 단편을 내기보다 한 번 낸 세계관 안에서 이야기를 더 풀어내는 작업을 하려고 해요.

 

이 작품은요?(웃음) 작가의 말에서 ‘나반은 수록한 것 이외에도 무수한 삶을 살고 있을 것’이라고 하셨잖아요.


기대해 주시면 고맙고요.(웃음) 이것 자체가 『7인의 집행관』의 확장 세계인 것 같은데요. 「미래로 가는 사람들」과「진화신화」에서 이어지는 단편도 생각하고 있고, 당장 쓰려고 하는 건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의 속편이에요.

 

2005년 작품 활동을 시작한 이래로 십 년이 넘는 시간인데요. 요즘에 환경이 많이 달라졌다고 느끼세요?


네, 전보다는 많이 좋아졌다고 느껴요. 4차 산업혁명(웃음) 때문인가? 예전보다는 SF작가에게 일거리가 많이 들어오는 듯해요. 사실 처음에는 책 출판하기가 굉장히 힘들었어요. 등단하고도 출판사와 많이 연락을 했는데 잘 안 됐죠. 『멀리 가는 이야기』도 2005년에 다 쓴 건데 실제로 나온 건 2010년이거든요. 그래도 어쩌면 그 어려움 속에서도 SF작가들이 열심히 쓰셨고, SF기획자 분들도 열심히 활동하신 덕분에 조금씩 기반이 생긴 것 같아요. 아직 갈 길이 멀기는 하지만, 요샌 SF를 쓰는 것에 대해 변명할 일은 많이 줄었지요. 요새 박상준 대표님과 <한국일보>에 연재하고 있는 글도 ‘SF가 얼마나 멋진지 아느냐’는 이야기기도 하고요.(웃음)

 

독자에게 하고 싶은 말도 있을까요?


글쎄요. 책은 많으니 보고 싶은 책 아무거나 보시라고 말씀드릴까요.(웃음) 사실 SF가 힘겨웠던 이유가 어떤 종류의 소설만 읽어야 한다는 강제가 사회에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렇지만 그냥 내가 좋아하는 것 읽으면 되거든요. 무얼 읽으라고 얘기하고 싶지 않아요. 좋아하는 걸 보다보면 또 SF도 보시게 되겠죠. SF는 여기저기 다 걸쳐져 있으니까요. 그렇지 않을까요?


 

 

저 이승의 선지자김보영 저 | 아작(디자인콤마)
저승에 물리적 삶이 있고 생태계가 돌아간다면 어떤 형태일까? 불멸의 생물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한국 SF 대표 작가 김보영이 그리는 아주 특별하고 아름다운 우주 이야기.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싱고와 신미나 사이, 시 읽어주는 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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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말줄임표 뒤에
가만, 돌을 놓는 사람
기도가
새가 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
언어의 숲에
불시착한 탐험가
詩누이, 「금붕어의 시간」 중

 

2014년 첫 시집 『싱고,라고 불렀다』를 낸 신미나 시인은 무엇보다 사람들이 시를 어렵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했다. 시를 받아들이는 통로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시를 쓰는 대신 웹툰을 그리고, 웹툰은 다시 『詩누이』로 묶여 책으로 나왔다. 평범한 30대 여성인 주인공 ‘싱고’의 추억과 기분을 그림으로 따라가다 보면 총 34편의 시를 만날 수 있다. 사람 나이로 69세인 고양이 ‘이응옹’의 충고도 함께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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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시인들의 시를 가볍게 만났으면


종이책 틀이 답답해서 웹툰을 시작하셨다고 나와요.

 

2015년 겨울에 네이버 ‘도전만화’에 웹툰을 올리기 시작했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시를 가지고 다른 장르로 변환하거나 같이 하는 시도가 거의 없었어요. 요새는 전에 비해 시가 음악이나 그림 등 다른 장르와 많이 콜라보 되는 것 같아요. 올린 지 한 달도 안 돼서 창비에서 연락이 왔으니, 어떻게 보면 시인이라는 프리미엄이 있어서 금방 기회를 얻은 거죠. 저 자신에게도 좋은 기회여서 해보자고 했어요.


주변에 알리지 않고 시작하신 건가요?


웹에 올리는 만화는 시의성에서 제약이 없잖아요. 어떤 공간에서도 들를 수 있고 공유도 쉽죠. 시집도 얼마 안 팔렸는데 누가 알려나 하고 조용히 올렸거든요. 무명의 독자가 숨어서 뭘 만든다고 여길 거로 생각했는데 의외로 여러 군데에서 연락이 왔어요. 아는 분들에게도 문자가 오더라고요.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카피라이터로 일하기도 하셨는데요. 기획할 때 시보다 그림이 먼저였나요?


보통은 시가 먼저였어요. 에피소드를 먼저 생각하면 시를 끼워 맞추게 되더라고요. 작업할 때 제일 어려웠던 게 시를 고르는 거였어요.


시를 골랐던 기준은요?


그나마 문단에서 잘 알려진 시인의 시를 골랐어요. 사실 덜 알려진 좋은 시도 참 많아요. 하지만 이런 시도가 처음이다 보니 그래도 대중들이 조금 알만한 분들로 모셨어요. 다른 분들은 조금 서운할 수 있겠다 싶기도 한데, 이게 만약 시리즈로 된다면 다른 분도 두루두루 다루고 싶어요.


주변 분들이나 독자들 반응은 어땠나요?


보수적으로 생각하는 분들도 있겠다 싶었어요. 불편한 시인이 있다면 빼야지 했는데 그런 분은 전혀 없으셨어요. 오히려 격려를 많이 하고 좋아해 주셔서 부담되면서도 참 고마웠어요. 연재하면서 독자분들이 편지처럼 댓글을 써주시기도 했어요. 나아가서 이 책을 읽고 시집을 사봐야겠다는 반응도 있었어요. 그런 반응이 나오는 게 참 고마웠어요. 시가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그렇게까지 진입장벽이 높은 장르는 아니라고 편하게 생각해주셨으면 해서요.


시를 어렵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죠.


그렇다고 해서 시가 쉬워야 한다는 말에는 동의하지 않아요. 어려우면 어려운대로 읽는 맛이 있고 다양성이 있지만, 어쨌든 이 책은 고등학교 이후로 시라는 장르를 접해보지 않은 사람이 부담 없이 에피소드를 곁들여 다양한 시인들의 시를 가볍게 만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어요.


웹툰이라는 장르가 젊은 세대에게 주로 친숙한 장르인데요. 웹툰으로만 소비되고 시로 안 넘어가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하셨을 것 같아요.


웹은 세로 스크롤 형식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휙 넘기게 되는데, 시를 안 읽고 휙 넘어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마음이 아파요. 목적은 어쨌든 시를 향유하는 느낌을 받았으면 했거든요. 시라는 장르가 너무 권위적이고 장벽이 높아졌어요. 전공하는 사람이 아니면 시집 산다는 이야기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요. 시집을 읽는 걸 별종이라고 생각하거나 마니악한 취미라고만 생각하지, 시집이 소비재가 될 수 있다는 차원까지 안 가더라고요. 문학이 소수를 위한 향유물이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이 다양하게 누리는 것도 문학의 권리라고 생각해요. 결과물이 어떤지는 각각 평가가 있겠죠.

 

일러스트레이션 기술은 언제 배우셨나요?


회사에 다닐 때도 일러스트레이션은 했어요. 다만 디자인을 전문적으로 배우지는 않아서, 처음 ‘시누이’를 그릴 시기에 전문적으로 프로그램을 다시 배워서 손은 좀 빨라졌어요. 처음에는 신나고 재밌어서 했지만, 연재 중반에 들어서니 자괴감이 들더라고요. 미리 정해놓은 게 없어서 직장인처럼 하루에 7시간 이상씩 그렸어요.


시를 쓸 때 마음과 그림 그릴 때의 마음이 다를 것도 같아요. 어떠신가요?


그리면서 재밌었어요. 텍스트가 표현하지 못하는 걸 그림이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쾌감이 있더라고요. 그림이 표현하지 못하는 부분은 텍스트가 상상력을 넓혀주기도 해요. 작업 자체는 상호보완적으로 갔던 것 같아요. 그림과 시가 물과 기름처럼 동떨어진 느낌이 들지 않고 긴밀하게 친구처럼 가길 바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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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시집은 ‘신미나’라는 이름으로 나왔지만, 이번 책은 ‘싱고’라는 필명을 썼어요.


분리하는 작업이 필요해서 상징적으로나마 필명을 붙였어요. 시는 이렇게 진지하게 썼는데, 웹툰에서는 ‘뻑살보다 다리지’ 이런 개그를 하면서 그리려니 제가 어디에 서 있는 건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작은 의식 같은 건데, 그림을 그릴 때는 싱고로 바꾸면 조금 더 마음이 가뿐해져요. 이름을 분리하니까 마음가짐을 짠, 하고 전환하는 느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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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할 수 없는 이야기


책에서 말해놓고 후회하는 장면이 자주 나와요. 실제로 고양이 ‘이응옹’을 붙잡고 하소연하기도 하세요?


신나게 이야기하고 집에 가서는 복기하는 거죠. 왜 그랬지 하고 자책하면서요. 이응옹이 되게 할아버지라, 늘 치킨이 오면 잔소리를 해요. 얌전하게 ‘내놓아라’ 하면서 냐옹거리고요. 새벽에 부시럭거려서 나가보면 애가 닭뼈를 물고 거실에다 놔요. 되게 웃긴 애예요.


1인 가구에서, 특히 1인 가구 여성이 고양이를 키우는 내용이 다른 웹툰으로도 많이 나왔어요.


대중의 흐름을 일부러 의식한 건 아닌데, 10년 동안 살아왔던 가족이라 실생활을 보여주다 보니 요새 트렌드랑 맞았던 것 같아요. 요새는 트위터에 고양이 찬양밖에 없잖아요. 지금도 황인숙 시인과 함께 ‘상냥한 사람들’이라고 조직을 만들었어요. 고양이를 위에 둔 사람들이요. 뜻밖에 행사가 커져서 돈도 많이 모이고, 사료 기증도 했어요.


소소한 일상 이야기와 함께 세월호와 여성 혐오 이야기도 들어갔어요. 사회에 시로 발언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으셨나요?


꼭 해야 한다는 당위보다는, 그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었어요.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말이죠. 어떻게 보면 책을 내는 것도 대단한 권력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우리가 목소리 내야 하는 부분을 주저하면서 말랑한 이야기나 쉬운 위안만 줄 수 있잖아요. 그런데 그러기는 싫었어요. 김현 시인의 「사랑」에서 동성애를 다루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답을 주는 게 아니라 문제점을 한 번 같이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어요. 뒷장이 재미없을 수도 있는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여성 혐오는 문단에서도 첨예한 문제입니다.


조직을 결성한다거나 이러진 않지만 제가 할 수 있는 루트로는 활동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시인 신미나로서 봤을 때는 참 어려워요. 80년대 시에서 사회적 문제에 목소리를 내는 게 구호 같은 경우가 많았거든요. 문학성 자체는 떨어져도 사회적 흐름으로는 가능했고, 그 방식이 더 힘이 셌을 수도 있어요. 지금은 내밀하게 다른 방식으로도 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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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의 반짝임을 놓치지 말자


『싱고,라고 불렀다』에서 김사인 시인은 ‘시류에 편승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평을 남겼어요.

 

왕따란 이야기를 아름답게 표현해 주신 거죠. (웃음)


토속적이라고 부르긴 그렇지만, 또래 시인과는 다른 시를 쓰고 있는 것 같기는 해요.


어쩔수없이 환경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 것 같아요. 시골 출생에 2남 5녀 중 여섯째로 태어났어요. 서울로 와서 객지생활하는 과정을 거쳐서 아랫세대도 아니고 윗세대도 아닌 중간에 끼인 환경이 되었죠. 제가 보고들은 세대는 아버지 세대라 60대 김사인 선생하고 만나서 대화가 막힘이 없고, 아래 나잇대인 안미옥이나 안희연 시인을 만나도 서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소화가 되더라고요. 보통 자기 이야기를 쓰면 촌스럽다는 인식이 있는데, 맞다 틀리다 문제가 아니라 스타일의 차이예요. 그래서 경험 때문에 중간 역할을 맡게 되는 것 같기도 해요.

 

첫 시집과 비교하면 『시누이』가 더 도시 느낌이에요.


첫 시집은 등단하고 7년 만에 시집이 나와서, 예전에 쓴 시도 많이 싣다 보니 시차가 있어요. 오히려 일상의 반짝이는 것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하다 보니 『시누이』가 일상에 더 밀접해졌어요. 시 쓸 때는 고통스러워야 하는 줄만 알았거든요. 시인들 보면 꼭 술 먹고 괴로워하고 그러잖아요. 이 작업을 하면서 어쨌든 오늘 하루의 반짝임을 놓치지 말자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예전에는 좋은 시만 쓴다면 내 생활이 약간 엉망이어도 괜찮지 않을까 했는데, 제가 너무 높은 데다 문학을 올려놨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이상하게 웹툰 작업을 할 때는 시가 안 써지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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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에서 일고여덟 시간 앉아서 그림을 그리는데, 시까지 쓰기에는 어렵지 않을까요? 저는 직업을 가진 시인도 대단하다 생각해요.


시인은 어쩔 수 없이 일해야 해요. 시를 쓰면서 교수로 먹고사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어요. 모두 생활인이어야 하죠. 『시누이』작업 때문에 못 썼다기보다, 제 마음이 안 고여서 못 쓴 거예요. 물리적인 시간에 쫓기다 보니 꺼내는 작업을 덜 했다 뿐이에요.


‘시누이’ 2가 나올 수도 있을까요?


다음은 뭐가 나올까요? 시동생? (웃음) 서윤후 시인도 노키드 만화가와 『구체적 소년』이라는 작업을 했는데, 잘되고 말고를 떠나서 그런 시도가 더 활발했으면 좋겠어요. 다른 작가도 여러 분야의 예술가들과 같이 협업하는데, 너무 형식에 얽매이지 않았으면 해요. 혼자 읽기 아까운 시가 많거든요. 읽고 말랑해지기도 하고, 자신을 돌아보기도 하고 자괴감에 시달릴 때는 정신차리기도 하고요. 문학이 거창하게 어깨에 힘주고 가는 게 아니기 때문에 유연해졌으면 좋겠어요.


다른 연재를 시작하셨다고요.


<조선일보>에 일주일에 한 번씩 그림과 시를 연재해요. ‘시누이의 그림일기’라고 이름 붙였는데, 동시같이 그림일기를 썼어요. 일기도 아니고 시도 아닌데 얇지도 않은 그림일기 같은 장르예요. 당분간은 계속 마감 생활자로 살지 않을까요?

 


 

 

詩누이싱고 저 | 창비
2014년 첫 시집 『싱고,라고 불렀다』를 펴내고 시인으로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신미나 시인이 어느날 ‘싱고’라는 이름으로 독자들에게 스케치북을 건넸다. 스케치북에는 단정하고 사랑스러운 그림들과 시 같은 에세이, 그리고 시 한편이 실려 있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박준 시인 “편지 같은 글을 쓰려고 노력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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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으로 알게 된 사람과 통화할 때, 박준의 첫 인사는 “시 쓰는 박준입니다”다. 시인이라는 걸 상대가 알지만 굳이 또 한 번 밝히는 건, 공손을 표하는 그만의 방식이다. 산문을 쓰더라도 자신의 정체성은 ‘시’에 있다는 것을 드러내는 인사이기도 하다. 박준은 책에 친필 사인을 할 때 “울어요. 우리”라는 글귀를 꼭 쓴다. “운다고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울면 뭐 어때요?”라는 속내의 줄임말이다. 박준이 두 번째 책을 냈다. 2012년에 펴낸 시집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가 며칠을 먹었다』이후, 5년 만이다. 두 번째 시집을 낼 줄 알았는데 산문집이다. 1주일 만에 3쇄를 찍은 책의 제목은 『운다고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박준은 이번 책을 두고 “앨범으로 따지면 1.5집의 개념”이라고 말했다. 시와 산문을 연결하는 다리 같은 책을 만들고 싶었단다. 덕분에 독자들은 산문 사이에 녹아 든 시를 만날 수 있게 됐다. 박준은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때 한 문장 정도의 말을 기억하려 애쓴다. 서두르지도 에두르지도 않는 게 그의 말버릇이다. 박준은 말한다. “타인에게 별생각 없이 건넨 말이 내가 그들에게 남긴 유언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같은 말이라도 조금 따뜻하게 예쁘게 하려 노력하는 편이다.”(19쪽)

 

누군가 우연히 이 책을 읽게 됐다면 행운아다. 사람 때문에 몸살이나 감기를 앓던 중이라면, 이 책은 해열제가 될지도 모른다. “같이 울면 덜 창피하고 조금 힘도 되고 그러겠습니다”라는 시인의 말은 지금 세상과는 좀체 어울리지 않는다. 그래서 더 듣고 싶은 시인 박준의 이야기. 지난 7월 7일, 한참 비가 내리다 잠깐 맑아진 한낮에 박준을 만났다.

 

 

박준 셀렉 (3).jpg

 

 

난 왜 이렇게 우는 이야기를 많이 할까


두 번째 시집이 나올 줄 알았는데 산문이에요. 소감을 물어도 될까요?

 

되게 부끄러워요. 책을 낼 때는 부끄러운 감정이 동반할 수밖에 없는데, 산문은 더 부끄럽더라고요. 시에는 화자라는 장치가 있잖아요. 소설로 치면 주인공이요. 걱정인형처럼 저를 대신할 누군가를 만들어놓고 쓰는데, 산문은 정말 맨 얼굴로 나서는 거니까요. 타인에게 말하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 내 내밀한 이야기를 할 때의 부끄러움이 크게 다가왔어요.

 

그럼 리뷰를 찾아보시긴 어려우시겠어요.


보긴 보는데 빠르게 봐요. 비평적인 글들은 좀 오래 보고, 칭찬해주는 글은 눈을 질끈 감고 봐요. 물론 좋은 마음으로요.

 

첫 시집도 그렇고 제목이 길어요. 제목만으로도 읽히는 감정이 있어요.


김민정 시인이 초고를 읽고 나서 지어준 제목이에요. 원고를 한 번 쑥 읽더니 뽑아주더라고요. 의심하지 않았어요. 첫 시집도 그랬고요. 책 제목은 제목 자체만으로도 매력이 있어야 하지만, 상품으로써의 가치도 생각해야 하잖아요. 가장 많이 고려한 건, 60꼭지의 산문을 관통할 수 있는 하나의 보자기 같은 말이어야 한다는 점이었어요.

 

가제가 따로 있었나요?


‘박준 산문집’이었어요. (웃음) 예전에 이문재 시인님의 산문집 제목이 『이문재 산문집』이었어요. 호미에서 나왔던 책인데 제목이 심플하고 너무 좋은 거예요. 그런데 3년 만에 제목을 바꿔서 개정판을 내셨어요. 『바쁜 것이 게으른 것이다』로. 개정판 서문을 보니, 본인이 약간 건방졌다는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멋을 안 부리면서 가장 멋을 부렸다”고. 제가 초판 제목이 너무 좋았다고 말씀 드리니, “책 제목에 자기 이름을 넣는 건 자살 행위”라고 하셨어요. 농담조로요. (웃음)

 

실천문학사에서도 계셨고 지금 창비에서 편집자로 일하고 계세요. 첫 시집이 2012년 12월에 나왔으니까, 이번 산문집은 편집자로서의 경력이 꽤 생긴 후 펴낸 책입니다. 저자로서, 편집자로서 양가감정을 갖고 책을 준비하셨을 것 같아요.


어떤 작가는 편집자의 의견을 전혀 수용하지 않고 본인의 신념으로 책을 내지만, 또 어떤 작가는 편집자가 개입하는 걸 원해요. 충분한 자리를 만들어주는 거죠. 저는 후자인 것 같아요.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충실히 듣고 그들이 주도할 수 있는 것들을 계속 열어둬요. 제가 신념이 있고 혜안이 넓다면 혼자 결정을 하겠지만, 그렇지 않거든요. 그리고 아무래도 혼자보다는 둘이 고민하는 게 좋잖아요. 책은 작가가 혼자 만들 수 있지만 혼자 만드는 건 아니에요. 저는 감사하게도 좋은 편집자를 만났지만 한편으로는 출판 시장을 너무 잘 아니까요. 늘 밝은 주제만 있는 세계가 아니니까 작가로서 편집자로서 갖는 회의도 많아요. 너무 잘 아니까 오히려 걱정이 많죠.

 

산문집이 예약 판매를 하는 건 조금 흔치 않죠? 초판을 1만 부 찍었다고 들었어요. 1주일만에 3쇄를 찍었고.


1만 부를 찍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 1만 부가 무슨 멍멍이 이름도 아닌데’ 걱정했어요. 두려움도 컸고요. ‘예판’이라는 것도 제겐 너무 낯선 거예요.

 

표지 그림이 퍽 인상적입니다. 영국에서 활동 중인 기드온 루빈의 작품인데, 국내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예요. 작가의 다른 작품을 찾아보니 얼굴 속 이목구비를 그리지 않더군요. 이 작품 제목도 「Untitled」입니다.


사실 반대했던 작품이에요. 작가가 이렇게 책 디자인에 개입해도 되나? 싶게 많이 반대했어요. (웃음)

 

왜요?


제 정서랑 너무 닮아 있어서요. 그림 자체는 너무 좋지만, 제 이야기랑 너무 거리가 가까워서요. 그런데 결국 편집자가 이겼어요. (웃음) 정말 이 그림은 피하고 싶었는데 지금은 잘했다, 싶어요. 그림의 두 주인공이 표정이 없잖아요. 두 사람의 관계도 모르겠고요. 연인인지 남매인지 알 수 없는 이야기가 많은 그림 같아요. 정적이지만 동시에 굉장히 동적이기도 하고. 또 그림 뒤에 두 노부부가 있는데, 이들의 미래인지 도저히 될 수 없는 미래인지. 물음이 많은 작품이에요.

 

독자 입장으로 보면 좋은 선택이지 않았나 싶어요. 우선 되게 궁금해지거든요. 이 작품에 어떤 글이 실렸길래 이런 그림을 표지로 썼나, 하고요.


미감이 조금이라도 있는 분들은 다들 좋아하시더라고요. 표정이 없어 무섭다는 분들도 계시고요. (웃음)

 

산문집 제목을 자꾸 읽게 돼요. 뒷말을 보태고 싶기도 하고요. 책을 보면 ‘울음과 숨’, ‘울음’, ‘그만 울고, 아버지’ 등 운다는 감정, 울음에 관한 이야기가 많아요. 이러다 울보 시인이 되는 건, 아닐는지요.


저도 어떤 경계를 생각하는데요. 맨날 추억을 파는 것도 아니고, 난 왜 이렇게 우는 이야기를 많이 할까. 그런데 제 고질적인 특징인 것 같아요. 소심하고 내성적이고 뭐 하나 오래 담아두고. 과거에 얽매이는 건 좋지 않겠지만 오래 품고 사는 것에 장점도 있어요. 현재를 살 때 기쁜 순간은 오래 기억하려고 하거든요. 또 반대로 더 빈번하게 일어난 슬픔은 현재진행형 같으니까 아쉬운 감정이 따라붙어요. 회상을 많이 하는 편이라 어쩌면 이런 글이 당연한 것 같기도 하고요. 억지로 없애고 싶진 않으니까요. 그러면 좀 이상할 것 같기도 하고ㆍㆍㆍ. 그래서 본의 아니게 그런 것들이 보여진 것 같아요.

 

음식에 관한 이야기도 많아요. 식도락가는 아니실 것 같았는데 지방에 가면 제철음식을 꼭 먹어보신다고요. 저는 순대 이야기가 인상 깊었는데 이제 간이랑 허파는 잘 못 먹을 것 같아요.


제가 서울 태생인데, 서울엔 사실 음식이 없어요. 종로김밥, 명동칼국수 정도가 있을까요? 딱히 음식 취향이 생길 수가 없는데, 20대 초반부터 여행을 자주 다녔어요. 특히 지방을 많이 갔는데 음식이 너무 다양한 거예요. 우리나라가 크다는 생각을 못했는데 사람들이 계절별로 다른 음식을 먹고 사는 게 신기했어요. 회색 같은 서울에 살다가 다양한 음식을 접하니 너무 좋더라고요. 다른 취미에 비해 크게 돈이 들지도 않고요. 제철음식이라는 게 귀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 때 많이 나온다는 거잖아요. 값이 많이 나가는 제철음식은 흔치 않죠. 제가 갖고 있는 즐거움 중에 꽤 큰 범위를 차지해서 글에도 자연스럽게 들어간 것 같아요.

 

박준 셀렉 (1).jpg

 

시인은 성공해도 삶이 바뀌진 않아요


첫 시집이 사랑을 많이 받았잖아요. 2년 전 인터뷰에서 “좋지만 씁쓸한 느낌도 있다”고 하셨는데 지금은 어떤가요? 꾸준히 독자들이 찾는 시집인데요.


최근에 생각이 좀 달라졌는데요. 영화로 치면 상업영화, 예술영화가 있듯이 시도 대중적이고 친절한 시가 있는가 하면 전통적인 시, 예술적인 시, 사회현실에 대해 발언하는 시가 있는 것 같아요. 대중들에게 쉽게 접근해서 시의 계단을 낮추는 작품도 필요한 게 아닐까, 생각해요. 가끔 SNS시를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을 받곤 하는데요. 굉장히 고마운 현상이라고 생각해요. 시의 시대였던 1980년대만하더라도 한국 시단에 남은 훌륭한 시인이 있었고, 문학사적으로 한 번도 증명되지 않았지만 독자들을 시로 유입한 대중적인 시인들도 많았어요. 일종의 하이틴 시집이라 불렸는데, 전 이 분들의 문학도 굉장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공존해야 한다는 거예요.

 

박준의 시는 어떤 목적성이 있을까요?


거칠게 표현하자면, 삶에 대한 이야기를 진솔하게 옮기는 거죠. 시를 쓰게 하는 동력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아무래도 첫 번째 목적은 시를 시답게, 혹은 문학답게, 예술답게 쓰는 일이에요. 반면 시는 시집이라는 상품을 통해 유통되잖아요. 시가 어떻게 읽힐 것을 가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이 시를 많은 독자와 공유할 수 있을까가 두 번째 중요한 목적이에요. 시를 시답게 만드는 첫 번째 목적과 함께 노력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8만 4천 부. 뛰어넘기 힘든 숫자의 시집이 팔렸어요. 첫 시집의 성공, 어쩌면 시인에게는 독이 될 수도 있지 않나요? 세상적인 성공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요.


시집으로서는 팔리기 힘든 부수인 게 맞고, 대중적인 사랑을 받은 게 사실에요. 큰 성공을 한 거죠. 우리 사회는 사람이 성공을 하면 삶이 바뀌잖아요. 그런데 시인은 성공해도 삶이 바뀌진 않아요. 인세라는 것도 그래요. 보통 10%를 받잖아요. 시집이 나온 지 5년이 됐으니 연봉으로 계산하면 천 몇 백만 원이에요. 제가 노동을 하지 않으면 생계가 유지 되지 않는 정도죠. 노동을 하지 않으면 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워서 그런지, 제 삶은 달라지지 않았어요. 어떻게 생각해보면, 문학이 가진 큰 힘 중 하나가 아무리 성공해도 삶이 달라지지 않는 게 아닐까 싶어요. 언뜻 저주 같지만 가장 큰 축복일지도 몰라요. 삶이 달라지지 않으니 사람도 달라지지 않고. 안하무인이 될 수 없는 거죠. 물론 사람이 좋게 변하면 다행이지만 안 좋게 변하는 경우도 많잖아요. 문학은 너무 다행인 게 달라지지 않아요. 제 일상도 그래요. 아침에 지각할까 걱정하면서 헐레벌떡 뛰어나와야 해요. 타인들의 눈치를 보며 관계를 유지하고, 틈이 날 때 시를 써야 하고요. 산문집이 어떻게 잘 팔린다고 해도 전 달라지지 않을 거예요. 저는 이게 좋은 것 같아요.

 

편집자로서의 박준은 어떤가요?


텍스트를 보는 신중함은 다른 좋은 편집자들에 비해 떨어지는 것 같고요. 다만 타인의 눈치라고 할까요? 그런 건 조금 잘 보는 것 같아요. 저희 어머니가 되게 엄하셨거든요. 어릴 때부터 늘 엄마의 기분을 살폈어요. 이게 약간 습관이 된 것 같아요. 편집자도 저자를 비롯해 책 만드는 여러 사람과 관계를 맺어야 하잖아요. ‘내가 이런 말을 할 때, 상대는 어떻게 생각할까’, 이런 의식이 좀 큰 편인데 편집 일을 하면서는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내가 어떤 글을 썼을 때, 독자가 어떻게 느낄까를 생각해보면 이제 조금 보여요. 생활인으로 타인의 눈치를 보는 것, 시인으로 내 문장이 독자에게 어떻게 전해질까를 생각하는 것이 비슷한 일인 것 같아요.

 

산문집을 보면 노동하는 이야기도 많이 쓰셨어요. 현장에서 입체적인 행위를 할 때 쓰인 글이 더 많다고 느껴졌어요. 그래서 저자가 더 입체적으로 보이기도 했고요. 글쓴이의 상황, 마음을 자꾸만 상상하게 되는 글인 거죠.


시와 산문이 좀 다른 게, 시인은 어떤 현장을 가더라도 구경꾼처럼, 행인처럼 서 있거든요. 예를 들어 용산참사가 일어났다고 하면 현장에서 뭘 하지 않아요. 그냥 물끄러미 보는 거예요. 시는 시공간에 대한 배경을 설명해 보편성을 줄 필요가 없으니까요. 어떤 장면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시가 갖고 있는 무언가를 이룰 수 있는데, 산문은 달라요. 어떤 현장성이나 장면들이 구체적이어야 해요. 불친절하게 툭 던져놓는 게 아니라 현장에 가는 것부터 시작해요. 시는 무엇을 탁 던진 후 생기는 감흥들을 내면화하면 되지만, 산문은 조금 더 친절할 필요가 있어요. 길을 좀 같이 열어주고 싶었어요.

 

지인들과 나눈 이야기, 전화, 문자 메시지도 소재로 자주 등장해요. 누구의 이야기도 그냥 훅 지나치지 않는 버릇이 있으신 것 같아요.


평소에 쓸데없는 말들을 잘 기록하는 편이에요. 친밀한 관계에서 주고받는 쓸데없는 말이 굉장히 아름다워서예요. 친밀한 관계일수록 쓸데없는 이야기의 비율이 높아지잖아요. 해도 되고 안 해도 그만인 이야기. 가장 아름다운 말들은 여기에서 나오는 것 같아요.

 

예전에 “시를 쓰는 일이 유서를 쓰는 것 같다”고 말했어요. 요즘도 그런 생각이 드시나요?


제가 슬픔을 오래 생각하기 때문일지도 모르는데요.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참 많은 사람을 만나는데, 어떤 사람과는 다시 안 보잖아요. 이 사람과 나눈 이야기가 마지막이 될 수도 있고요. 그것은 누가 죽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더 이상 볼 일이 없기 때문일 텐데요. 그렇다면 정말 ‘순간을 소중하게’라는 당연하고 평범한 말이 십분 이해가 되는 거예요. 어떤 말은 관계가 끝나도 마음속에서 오래 살아남으니까요. 그래서 한 마디 한 마디가 너무 중요하고, 글쓰기도 함부로 해서는 안 되겠다 생각해요. 이게 끝일지 모르면 더 잘해야 하잖아요.

 

지방 도서관에서 강연 요청이 들어오면, 자주 가시는 듯해요. 어떤 이야기를 주로 하시나요?


시, 혹은 문학이 왜 필요한지에 대해 이야기해요. 문학이라는 예술이 화려하거나 힘이 세지 않잖아요. 색이나 빛도, 음도 아니고, 크레용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 보면 약간의 믿음 같은 것일 수 있는데요. 경제가 가난을 구한다면, 문학은 삶의 마음 정도는 도울 수 있지 않나 생각해요. 지방 도서관에 가면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 분들, 평소 책을 읽지 않는 분들도 와계세요. 제가 누군지 모르시지만 누군가 온다고 하니까 오시는 거예요. 그런데 그 곳에 가보면, 어떤 마음가짐이 생겨요. 문학이 힘 없어 보이지만, 여전히 문학이라는 것을 마음에 들이고 사는 사람들이 보여요.

 

새로 산 책을 바로 읽는 경우는 드물다고요. 오래된 책을 여러 번 읽는 버릇이 있다고 들었어요.


제가 갖고 있는 독서의 방법은 여행이랑 비슷해요. 한 번 가본 여행지를 계속 가는 것처럼, 책도 마찬가지예요. 여기에 신뢰할 만한 사람들이 추천해주는 책들을 보태서 읽죠. 최근에는 의학, 과학 서적을 많이 읽게 돼요. 철학적인 죽음이 아니라 실제적인 죽음을 다룬 책인데요. 일로 읽는 책들은 대개 문학이니까요. 교양으로 공부로는 문학을 많이 읽지만, 즐거워서 읽는 책들을 보면 뜻밖에 다른 분야 책이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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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라지지 않을 줄 알았지만 그냥 한 거


시인으로서 말고, 인간 박준으로서요. 어떻게 살고 싶다, 그런 것들이 있나요?


시인이 대단하다는 생각은 당연히 없는데요. 시인이라서 얻는 장점이 하나 있어요. ‘어쨌든 간에 좋은 삶을 살아야 한다’ 이 생각을 한다는 거예요. 리얼리스트든 모더니스트든, 작가라면 누구나 자신의 삶이 창작물에 영향을 줘요. 배제하는 방식도 영향을 주는 거니까요. 마음이 황폐하면 글을 못 써요. 비판이 아닌 비난을 한 뒤에 글을 쓰면 좋은 글이 나오지 않아요. 그래서 일단 옳은 사람을 살아야 한다, 어떤 방식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좋은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때론 글로 먼저 질러놓기도 하고요. ‘좋은 삶을 살고 있다’가 아니라, ‘이렇게 살아야 한다’고 가정을 하면 따라가보려고 노력은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기억나는 문장이 있어요. “다만 앞으로 살아가면서 편지를 더 많이 받고 싶다. 편지나 분노나 미움보다는 애정과 배려에 더 가까운 것이기 때문이다. 편지를 받는 일은 사랑받는 일이고 편지를 쓰는 일은 사랑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인간 박준이 살아가고 싶은 모습이라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사실 종이 편지를 자주 쓰진 못해요. 다만 편지 같은 글들을 쓰려고 노력해요. 메일이나 문자, 편지 등의 글쓰기는 내가 하고 싶은 말만 하는 게 아니잖아요. 많이 생각해보고, 건강이나 날씨 이야기도 하게 되고. 이야기의 방식이 부드럽잖아요. 그게 좋아요.

 

‘세상이 아름다워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라는 문제를 생각할 때, 저는 작은 친절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이게 정말 진리라고 생각하지만 성공만 바라보고 사는 사람에게는 아닐 수 있겠구나, 그런 생각도 해요.


말씀하신 것 참 중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런 사람은 그런 사람을 알아보는 것 같아요. 오늘 아침에 제가 문방구에 갔어요. 복사할 것이 많아 잔뜩 들고 갔는데 비에 젖을까 봐 보자기에 싸고 또 비닐로 싸서 들고 갔어요. 종이 규격이 다 제각각이라 복사해주시는 분이 참 번거로우시겠다 생각했는데, 주인 분이 보자마자 아신 것 같았어요. ‘이게 얘한테 지금 소중한 거구나. 조금 바빠도 해줘야겠다.’ 이런 게 편지 같다고 생각했어요. 되게 감사했어요.

 

두 번째 책, 첫 산문집을 묶으면서 아쉬운 점은 없었나요?


너무 뜨거워서, 너무 강렬해서 못 쓴 이야기들이 많거든요. 그게 아쉽죠. 책이라는 게 독자들에게 가는 거잖아요. 나에게 너무 특별한 경험이라도 보편화하는 지점이 없으면 못 써요. 아무리 강렬한 기억이라도 제가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 그 기억과 화해할 수 있는 능력이 없으면 못 써요. 시간이 대부분 해결해주지만, 시간이 능사가 아닌 일도 있으니까요. 언제쯤 내가 그 기억들을 쓸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좀 아쉽죠.

 

어떤 독자들에게 이 책이 가닿으면 좋을까요.


목소리가 작은 사람이요. 실제적인 목소리가 아니라, 내 의견은 분명하지만 그 분명함을 전하지 못해서 그냥 품고 있는 사람이요. 이 책이 그 분들에게 위로나 힘이 될 수는 없겠지만요. 말하지 않고 넘어간 것에 대한 장점도 있거든요. 아무리 발버둥쳐도 달라지지 않는 세상이 분명 존재하잖아요. 열심히 노력해도 안 되는 것들이 있는데요. 그럴 때 전 생각해요. ‘달라지지 않을 줄 알았지만 그냥 한 거야’. 달라질 걸 기대하지 않고 하는 일들이 많아졌으면 해요.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박준 저 | 난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은 ‘시인 박준’이라는 ‘사람’을 정통으로 관통하는 글이다. 총 4부로 나누긴 하였지만 그런 나눔에 상관없이 아무 페이지나 살살 넘겨봐도 또 아무 대목이나 슬슬 읽어봐도 우리 몸의 피돌기처럼 그 이야기의 편린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조영수 교수 “‘붉은악마’를 떠올릴 때 어떤 느낌이 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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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같은 색깔을 보고 있는가? 미국의 사상가이자 시인인 랄프 왈도 에머슨은 ‘언어에서 그 나라의 영혼을 거의 모두 추론해낼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 말에 따르면 각 나라의 언어가 같은 대상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따지는 것은 그 나라가 어떤 곳인지를 엿볼 수 있는 배율 좋은 현미경과 같다. 가령 색채는 어떨까. 경기대 독문과 조영수 명예교수는 일찍이 여기에 주목했다. 그는 미국에서 유학하던 1970년대에 미국인들과 자신이 같은 색을 보고 얼마나 다른 연상을 해내는가를 발견하고 색채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색채 연구는 그야말로 ‘색달랐다.’ 조영수 교수는 『색채의 연상』에서 영어와 독일어, 한국어 색채 언어의 어원을 찾고, 각 나라에서 같은 색채를 어떻게 다른 이미지로 연상하는지 살핀다. 이것은 다른 세상에 다가가는 특별한 나침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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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적인, 한국어


처음 색채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장면이 흥미로웠어요. ‘회색’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인식차이 때문이었는데요.

 

그 전에는 몰랐어요. 미국 대학원 재학시절인데요. 40명 정도 앉아 서로 이야기를 하는데 정말로 충격이었어요. 그들과 내가 그 정도로 같은 색을 다르게 보는지 몰랐어요. 피부로 느낀 순간이었죠. 그때처럼 적나라하게 느낀 적이 드물었어요.

 

동료 대학원생들은 회색을 ‘세련된’, ‘우울한’, ‘도회적인’ 등으로 표현했다. 최인훈의 『광장』을 읽으면서 우리 세대가 회색에 대해 일률적으로 느꼈던 ‘애매한’, ‘회색분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이라는 답은 한 명도 없었다.(6쪽)

 

본격적으로 책을 써보겠다고 생각하셨을 때는 언제였나요?


2001년에 미국을 갔어요. 그때 자료를 많이 수집했어요. 영어와 독일어, 한국어를 비교해보겠다는 생각도 그때 했고요. 마침 안식년을 가니까 연구를 해보겠다고 생각했지요. 계속 숙제처럼 가지고 있었어요.(웃음)

 

내용을 크게 두 부분, 색에 대한 나라별 인식차이와 한국어의 색채언어 연구로 나누어 볼 수 있을 텐데요. 쓰시면서 특별히 주목한 부분은 어떤 건가요?


우리가 여태껏 한국어 색채언어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하고 순수한 우리말이라고 생각했던 면이 있거든요.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예를 들면 ‘연두’, ‘분홍’이 다 순수한 한국어인줄 아는데요. 그게 아니라는 걸 알고 저도 놀랐어요. 책을 쓰면서 느낀 게 우리말, 한국어에서 중국어를 빼면 절대 안 되는구나 하는 점이었어요. 그걸 빼면 한문을 모르는 세대가 왔을 때 문화의 70%가 사라진다는 생각을 했죠.

 

때문에 단어의 기원을 많이 살펴보셨어요.


그것은 전공이 독어학이기 때문인데요. 한국어는 독어와 완전히 다른 ‘우랄알타이어’고, 독어와 영어는 같은 어족이잖아요. 게르만어에 속하는데 그 중에서도 서게르만어거든요. 2차 자음 변화 등으로 갈라지죠. 예를 들어 영어의 ‘eat’이 독일어에서는 ‘essen’이고요. 공통적인 부분이 많아서 이 두 언어가 상당히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그런데 살펴보니 숙어나 여러 부분에서 두 언어가 완전히 다른 현상을 나타내더라고요. 어족과는 상관이 없다는 것, 완전히 다른 언어로써 각자의 특색이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알았죠.

 

한국어의 색채 언어를 연구하면서 새롭게 발견한 것도 있었겠죠?


순수한 우리말로된 색채 언어는 다섯 개밖에 안 돼요. ‘빨강’, ‘노랑’, ‘하양’, ‘파랑’, ‘검정’. 나머지는 다 중국어예요.

 

색채의 의미가 결국 언어와 문화, 개인의 경험과 사고, 역사적 상황의 총체라고 말씀하셨죠. 이 내용을 이해하고 보면 흥미롭게 읽히는 면이 많아요. 


‘검정’이라는 말과 ‘그믐’, ‘그늘’과 다 연결되거든요. 또 ‘벽색’, ‘옥색’, ‘곤색’, ‘청색’ 등의 단어가 다 ‘파랑’의 범주에 해당하는 말들이에요. 단어의 기원과 역사적 배경을 보면 이해할 부분이 훨씬 많죠. 한편 특별히 발견한 것은 우리말에 상당히 개념어가 적다는 점이에요. ‘무엇에 대해 논하라’고 할 때 ‘논하라’의 부분에 한문이 아닌 우리말로 대체하기가 힘들죠. 반면 감각적인 언어나 부사 등이 굉장히 발달해있는 언어고요.

 

깊이 들어가면 언어의 특성과 그 사회의 문화 혹은 사고 특성과의 연관성도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더 연구를 해야겠죠. 이 책은 대중서니까요. 원래는 이 책에도 일일이 각주를 넣었었어요. 그러다 다 뺐어요. 긴 내용을 많이 줄인 부분도 있고요. 고민을 많이 했지만 지금의 형태가 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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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ce in a blue moon?


‘빨강’에 대해 한국인들은 압도적으로 ‘열정’이라는 연상을 일으켜요. 다른 나라와 대단히 다른 인식 차이가 있더라고요.


지금도 주변에 한 번 물어보세요. 2002년 ‘붉은악마’를 떠올릴 때 어떤 느낌이 드는지 말이에요. 대부분은 정열적인, 하나가 되는 느낌이라고 해요. 열에 아홉은 그렇게 느낄 텐데요. 다른 나라 사람들은 빨강을 보고 과히 그렇게 느끼지 않아요. 위험이나 분노 등 다른 느낌을 연상하는 경우도 많거든요. 다르게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겠죠.

 

빨강이 또한 흥미로운 것은 책에 소개된 프랑스의 한 연구에요. 종업원에게 빨간색 티를 입혔더니 팁을 30%나 더 받았다고요.


뿐만 아니라 운동선수들에게도 빨간 옷을 입히면 결과가 더 좋다는 내용도 있어요. 최근에는 부산에 있는 한 매장에서 개업식에 빨간색 속옷을 입으면 좋은 일이 있다면서 이벤트를 했는데 큰 매출을 올렸다고 하더라고요. 색채와 관련해서 보면 정말 재미있는 사실들이 많아요.

 

‘파랑’도 재미있어요. 한국은 신조어를 만들 때 ‘블루’를 많이 사용한다고, 의문이라고도 하셨잖아요.


영어에서 ‘I feel blue’라고 하면 우울하다는 말이잖아요. 또 음담패설을 ‘blue joke’라고 표현도 한다고 해요.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말로 ‘블루’를 좋아해서 뭐든지 그 이름을 붙여요.(웃음) 한 번은 이태원 근처 식당에 ‘once in a blue moon’이라고 쓰여 있는 것을 봤어요. ‘blue moon’은 굉장히 드문 때를 말하거든요. 식당에 그 이름을 붙였기에 가끔 오라는 의미인가(웃음) 생각하며 웃었죠. 아마 ‘청춘’처럼 파랑을 좋은 의미로 많이 썼기 때문인 것 같아요.

 

한민족에 대해 ‘백의민족’이라는 수식이 실은 오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분석을 하셨거든요. ‘흰색’에 대한 이야기도 생각할 거리가 무척 많았습니다.


조선시대에는 보통의 평민들에게 진분홍이나 꽃분홍 같은 좋은 색을 못 입게 했어요. 공주가 입는 색이기 때문이었는데요. 중국은 노랑을 황제의 색이라고 해서 못 입게 했고요. 흰색도 여러 가지 이야기가 많은데요. 고려 시대에 흰색을 입었기 때문에 조선 시대에는 입지 말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있고요. 흑색은 흉노의 색이니까 입지 말라고 했다는 자료도 있어요. 지배층에서 색에 대해 굉장히 많은 제한을 두었어요. 염료를 수입해야 했으니 그랬기도 했을 테고요. 심지어 백색도 그냥 백색이 아니고요. 무명색이죠. ‘소복(素服)’할 때 ‘소(素)’는 그 색을 의미해요.

 

각 색을 다루고 설문조사 결과를 붙여두셨잖아요.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미국이나 독일어 사용자에 비해 한국어 사용자들이 색채에 좀 더 편향적인 결과를 보이더라고요. 여러 생각을 하게 하는 대목이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런 면이 굉장히 강한 것 같아요.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특히나 ‘기타’ 항목에 따로 내용을 적지 않아요. 귀찮아서일까요.(웃음) 미국 사람들은 기타에 여러 내용을 적는데 한국 사람들은 거의 적지 않더라고요. 의견도 많이 쏠리는 편이고요. 바깥에서 보기에는 의아하게 느낄 수 있는 대목인데요. 글쎄요. 여러 이유가 있겠죠.

 

색채에 대해 이제는 마케팅 영역에서도 많이 관심 두고 있어요. 책에서 국내 출판사들이 책 표지에 어떤 색을 사용하는가에 관해서도 살짝 엿보았거든요.


‘노랑’은 주로 ‘위로’, ‘따뜻함’에 관한 책에 사용하고요. ‘빨강’을 표지에 사용하면 더 많이 팔리는 경향이 있어요. 색채를 연구하는 분들 중에는 기업에 색채 컨설팅을 하는 분들도 있거든요. 가령 음료 신제품을 출시할 때 빨간색이 나을 것인가 노란색이 나을 것인가를 연구하는 거죠. 다양한 분야에서 색채에 관심을 두고 있어요. 음악치료와 함께 색채치료(미술치료)를 하기도 하잖아요. 이미지 컨설팅에서 당신에게 어떤 색이 어울리는지도 다루고요. 이렇듯 점점 색채에 관한 관심이 확대되는 것 같아요. 더 나아가면 해외에 수출할 때 현지에서 선호하는 색채가 무엇인지를 고려하는 방식도 가능할 거예요. 빨간색도 똑같은 빨간색이 아니니까요.

 

이 책을 만날 독자가 꼭 하나 가져갔으면 하는 생각이 있을까요?


이 분야에 더 관심을 갖고 여기서 다룬 책을 더 읽어주면 좋겠어요.(웃음) 질문을 많이 던진 책이니까요. 많은 분들이 더 관심을 가지시면 좋겠죠. 우리가 어떤 색채에서 떠올리는 것이 다른 나라 사람들과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도 필요할 테고요.

 


 

 

색채의 연상조영수 저 | 가디언
조영수 경기대 독어독문학 명예교수, 무의식을 지배하는 색채의 강력한 영향력을 풀다! 색채는 나라마다 특정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아니면 보편적인 의미를 갖고 있을까?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동진 “퇴사에 필요한 건 담력 아닌 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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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언젠가, 한번쯤 퇴사준비생이 됩니다”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모든 직장인에게 퇴사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다. 회사 안에서 상상하는 퇴사는 짜릿하지만, 회사를 나서는 순간 그것은 녹록치 않은 현실이 된다. 그래서 퇴사준비생에게는 취업준비생에 버금가는 준비와 실력이 필요하다. 아이디어와 통찰력은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요소다. 벤치마킹할 대상을 찾는다면 과정은 훨씬 수월해진다. 『퇴사준비생의 도쿄』가 선진 도시 도쿄로의 여행을 제안하는 이유다.

 

『퇴사준비생의 도쿄』는 차별화된 철학과 스타일로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한 도쿄의 가게들을 소개한다. 커피를 공짜로 제공하면서도 돈을 버는 ‘시루 카페’, 경매라는 독특한 방식으로 특수부위를 판매하는 고깃집 ‘호우잔’, 취향에 따라 조합할 수 있는 맞춤 시계를 판매하는 ‘Knot’ 등 25개의 핫스팟이다. 이들이 걸어온 길을 살펴보면서 『퇴사준비생의 도쿄』는 “10년이 흘러도 변하지 않을 5가지 키워드”를 발견했다. 언젠가, 한번쯤, 퇴사를 경험할 당신이 주목해야 할 ‘성공하는 비즈니스의 비결’이다.

 

이 책의 저자들 역시 한때는 ‘퇴사준비생’이었다. CJ E&M, 현대카드, 홈플러스, GS칼텍스 등 대기업에서 근무했고 퇴사의 관문을 거친 후 ‘트래블코드’에서 새로운 자신의 일을 찾았다. 여행 콘텐츠 기획사인 ‘트래블코드’는 고객들이 자신의 관심사, 취향, 가치관에 맞춰 여행을 떠날 수 있도록 다양한 상품과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안한다. 『퇴사준비생의 도쿄』역시 ‘비즈니스 인사이트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고안하는 과정에서 탄생했다. 채널예스와 만난 ‘트래블코드’의 이동진 대표는 자신들의 여정이 런던과 뉴욕 등 또 다른 선진 도시로 이어질 것임을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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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에 필요한 건 담력 아닌 실력


‘퇴사준비생을 위한’ 비즈니스 트립을 제안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첫 번째 이유는 저희 스스로가 퇴사준비생이자 퇴사생으로 도쿄에서 비즈니스 아이디어와 인사이트를 얻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고요. 두 번째 이유는 퇴사를 보다 건설적인 방향으로 이야기하면 좋을 것 같다는 바람 때문이었습니다. 요즘 퇴사가 화두잖아요. <요즘 젊은 것들의 사표>라는 다큐멘터리도 그렇고, 주변 친구들이나 선후배들을 봐도 퇴사에 대한 고민과 갈증이 있는 것 같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건설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퇴사를 해야 될 이유, 퇴사를 하겠다는 의지에 대해서는 많이 이야기하는데, 실제로 퇴사를 하려면 어떤 고민과 준비가 필요한지에 대한 논의는 별로 없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결국에는 쳇바퀴 돌 듯 회사로 돌아가는 모습들도 발견되거든요. 그런 부분들을 조금 더 건설적으로 바꿔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실제로 퇴사를 하기 위해서 어떤 고민과 준비가 필요한지 생각해 보자는 취지에서 퇴사준비생의 관점에서 바라보기로 한 거죠.

 

퇴사 유경험자의 눈으로 볼 때, 퇴사를 위해 필요한 건 무엇인가요?


가장 필요한 건 담력이 아니라 실력이라고 생각했어요. 사람들은 용기 내서 사표를 내면 된다고 이야기하는데, 실제로 해본 사람의 입장에서는 담력으로 퇴사를 해서는 조금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퇴사를 한 후에도 자신이 하는 일을 바탕으로 경제생활을 할 수 있을 만큼의 실력이 있어야 되는 거죠. 그 출발점은 비즈니스적 관점과 인사이트를 갖는 거라고 생각해요. 사업 선정부터 시작해서 운영 방식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으로 보는 과정에서 필요한 기초적 핵심 역량이니까요. 그것들을 키우기 위해서 선진 도시들을 들여다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우리나라와 국민경제소득 차이가 있기 때문에, 그로 인해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이나 소비문화가 존재하거든요. 어떻게 보면 가까운 미래를 볼 수 있는 거죠. 그러면서 새로운 비즈니스 아이디어와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첫 목적지로 도쿄를 선택하신 이유가 있나요?


도쿄는 트렌드가 앞서 있는 도시이기도 하지만, 잘 들여다보면 트렌드뿐만 아니라 업의 본질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하고 있어요. 비즈니스 모델을 재해석하는 능력도 가지고 있고요. 깊이 있는 장인 정신도 가지고 있죠. 그런 것들을 벤치마킹하면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서울과 도쿄 사이에는 시차가 없지만, 실제로 가보면 시차를 발견할 수 있어요. 전통과 미래를 넘나드는 도시라서 서울과는 다른 시간 차이가 느껴지거든요. 그리고 서울과 도쿄는 문화적으로도 가까우니까 벤치마킹할 것이 많을 것 같았어요.

 

왜 퇴사를 결심하셨어요?


사실 회사를 다니는 게 그렇게 싫거나 재미없지는 않았어요. 그런데 전략기획 관련된 업무를 하면서 갈증을 느꼈던 부분이 있었어요. 『미생』의 언어를 빌리자면 ‘사업 놀이’라는 개념인데요. 신사업 부서라든지 전략기획 부서는 새로운 일을 만들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서 기획안을 만들잖아요. 그러면 재무 부서에서는 최선을 다해서 ‘왜 이 사업에 지금 투자를 하면 안 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해요. 현업 부서에서는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일을 할 여력이 없다고 이야기하고요. 회사에 있는 모든 부서들이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새로운 일을 할 수 없는 구조인 거죠. 그런 것들에 있어서 갈증을 느끼고 있었어요.

 

계기가 된 사건이 있었나요?


그러던 차에 도쿄에 출장을 갔다가 너무 가보고 싶었던 ‘츠타야 티사이트’를 찾아갔어요. 그런데 그곳이 주는 영감이 너무 좋은 거예요. ‘죽기 전에 이런 공간을 하나 만들고 죽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벤치마킹을 하려고 마스다 무네아키의 책들을 보기 시작했죠. 그 중에 『라이프 스타일을 팔다』라는 책이 있는데, 그 중에 인상 깊은 내용이 있었어요. 마스다 무네아키도 회사를 다니고 있었는데, 회사에서는 자기가 생각하는 새로운 기획들을 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는 거죠. 그래서 자신의 기획을 비즈니스로 구현해 보려고 회사를 그만두고 ‘츠타야’를 만든 거예요.

 

당시 작가님이 느꼈던 갈증과 다르지 않았네요.


마스다 무네아키가 30년 전에 도쿄에서 느낀 걸 지금의 서울에 있는 저도 느낀 거죠. 공간과 시간을 떠나서 회사를 통해서 새로운 것들을 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책을 보면서 마음의 결심을 굳히게 됐어요. 물론 누군가는 회사를 통해서 새로운 일들을 할 수 있고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갈 수 있겠지만, 저에게 허락된 기회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새로운 것들을 선보이기 위해서 비즈니스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회사를 그만두게 된 거예요.

 

‘퇴사 전에 이것만은 꼭 준비하라’고 조언해 주고 싶은 게 있다면요?

 

불편할 걸 각오하고 회사를 나오는 게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쉽게 말하면 마음의 준비인 거죠. 과거보다 소득이 줄어드니까 소비생활이 바뀌면서 불편한 부분도 당연히 있고요. 시스템적으로도 불편해요. 회사 다닐 때는 아무것도 아닌 것들, 예를 들면 포스트잇이나 펜 같은 작은 것들도 어떻게 보면 큰 혜택이거든요. 그런 것들도 불편해지죠. 그리고 회사를 직접 운영하다 보면 일과 생활의 경계가 없어져요. 시간을 뜻대로 활용할 수 있는 부분도 분명히 생기지만, 의도하지 않아도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을 수 있어요. 그런 것들도 어느 정도 감안해야 하는 것 같아요. 또 회사에서는 자기 일만 하면 되잖아요. 부서별로 나눠져 있으니까요. 그런데 회사에서 나오면 그런 구분이 명확하지 않아요. 거기에서 오는 불편함도 있죠. 반대로 보면 즐거움일 수도 있어요. 다양하게 경험해볼 수 있는 거니까요. 이런 모든 것들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회사를 그만두면 일하는 시간도 줄어들고 ‘저녁이 있는 삶’을 살 것 같은데, 실제로는 더 무서운 전쟁터로 뛰어드는 거군요.


맞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자기 시간을 더 갖겠다거나 조금 더 편하게 생활하겠다는 생각으로 회사를 그만두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봐요. 기반이 잡힐 때까지는 의도하는 결과를 쉽게 낼 수 없는 것 같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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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치마킹, 본질과 원리를 이해해야


‘발견, 차별, 효율, 취향, 심미’의 다섯 가지 기준으로 25개 스팟을 소개하셨습니다. 다섯 가지 키워드는 어떻게 고르셨어요?


제가 ‘timeless’,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가치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중요시 여기기도 하고요. 아마존 CEO 제프 베조스가 한 이야기 중에 ‘많은 사람들이 10년 뒤의 변화에 대해서 예측하려고 하는데, 예측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10년 뒤에도 변하지 않는 가치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했잖아요. 저는 그 이야기에 굉장히 공감해요. ‘그러면 변하지 않는 키워드들이 뭘까’를 생각해 봤죠. 모든 기업들이 새로운 시장을 발견하려고 하고, 경쟁자와 차별화되려고 하고, 효율적인 방식으로 운영하려고 하고, 고객의 취향을 이해해서 니즈를 맞추려고 하고, 이왕이면 심미성을 추구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제가 볼 때는 그게 모든 기업들이 추구하는 방향성이지 않을까 싶어요. 그래서 이 키워드들을 중심으로 도쿄를 취재한 거죠.

 

25개의 스팟은 어떤 기준으로 결정하셨나요?


처음에는 목적지 100곳 정도를 추렸어요. 책, 잡지, 인터넷 사이트를 통틀어서 한국어로 된 자료, 영어로 된 자료, 일본어로 된 자료를 총망라했죠. 그걸 바탕으로 해서 인테리어만 화려하거나 유행을 탈 것 같거나 북적대기만 한 곳들은 제외했어요. 그러니까 50곳 정도가 남더라고요. 지난해 11월에는 현장 답사를 가서 직접 봤는데, 실제로 가보면 기대했던 것과 다른 곳이나 실제로 봐도 괜찮지만 콘텐츠로 만들기에는 스토리텔링이나 메시지가 충분하지 않은 곳들은 제외했어요. 그렇게 해서 최종적으로 선택한 곳이 책에 소개된 25곳이에요.

 

가장 인상적이었던 곳은 어디였나요?


책에 담은 모든 곳들이 인상적이었지만, 꼭 한 곳을 꼽으라고 하신다면 ‘호우잔’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경매를 통해서 고기를 판매하는 가게죠? 깊은 인상을 받으신 이유가 궁금한데요?


저희가 목적지를 사전 조사할 때, 어떤 메시지와 스토리텔링이 가능할지 가설적으로 예측한 부분이 있었거든요. 다른 곳들은 그 예상이 어느 정도 일치했는데 ‘호우잔’은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어요. 경매라는 게 재미를 위해서 하기도 하지만, 한정된 재화를 가장 비싼 가격에 판매해서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하는 거잖아요. ‘호우잔’도 당연히 그럴 줄 알았어요. 특수부위라는 한정된 제화를 경매를 통해서 가장 비싼 가격에 팔 거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가보니까 완전히 다른 거예요. 처음에 1/10 가격에서 경매를 시작해요. 그리고 호가를 하다가 30~40% 가격에 낙찰이 되고요. 이게 어떻게 된 거지, 하고 조사를 해보니까 경매를 하는 이유가 이윤의 극대화가 아닌 고객 만족 극대화에 있더라고요. 그렇다면 경매를 할 때마다 손해를 보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는데, 조사를 해보니까 그 안에는 치밀한 전략이 숨어있었어요.

 

경매가 시작되기 전에 판매하는 일반 메뉴와 차이가 있나요?


일반 메뉴로 판매하는 고기는 정가가 상대적으로 비싼 편이에요. 다른 가게보다 5% 정도 비싼 가격에 팔아요. 그런데 경매에 참여해서 (저렴한 가격에) 특수부위를 먹게 되면, 고객 입장에서는 더 싸게 먹는 거거든요. 경매 전에는 조금 더 비싼 가격에 먹다가 경매를 통해서 특수부위를 확 싸게 먹는 거예요. 결과적으로 고객 입장에서는 이득을 보는 거죠. ‘호우잔’ 입장에서는 경매 전에 조금 더 많은 이윤을 남긴다는 장점이 있고요. 그리고 경매를 통해서 판매가의 30~40%만 받고 팔아도 원가는 보전이 되거든요. 이윤은 남지 않지만 매출을 올릴 수 있는 수단이 되는 거예요. 그리고 경매를 하는 시간이 절묘해요. 보통 7시부터 저녁을 먹잖아요. 그러니까 8시에, 손님들이 어느 정도 식사를 한 후에 경매를 시작하는 거죠. 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느 정도 배가 부른 상태에서 경매에 참여하니까, 아무리 싸더라도 많이 먹지는 못해요. 입가심, 맛보기 정도로만 먹는 거죠.

 

잠재 고객을 확보하기 위한 아이디어도 있더라고요.


맞아요. 경매를 30분 동안 6번 정도 하니까, 한 경매당 5분 정도 소요하는 거거든요. 그런데 5분 동안 계속 호가를 하는 게 아니에요. 3~4분 정도는 특수부위에 대해서 설명을 해줘요. 어떤 부위이고, 어떤 특징이 있고, 어떻게 먹을 때 제일 맛있는지, 설명해 주는 거예요. 어떻게 보면 고객을 교육시키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할 수 있죠. 사람들이 그런 정보를 인지하고, 또 경매를 통해서 맛을 보면, 다음에는 돈을 주고 사먹을 수도 있잖아요. 경매 자체가 단기적으로 손해지만 다음번을 위한 투자라고 볼 수 있는 거예요. 그리고 경매라는 특수한 시스템을 도입하다 보니까 언론에 소개되면서 홍보도 되고요. 스피커를 통해서 경매 과정을 중계하면서 가게 밖에 있는 사람들의 흥미를 유발하기도 해요. 그들을 잠재 고객으로 만들 수도 있죠. 그런 부분들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비즈니스 트렌드 등 한국과 일본이 서로 다른 점도 있을 것 같아요.


제가 봤을 때는 판매하는 방식에 가장 큰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예를 들면, 똑같은 아웃도어 의류를 판매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는 지금 이 제품이 유행이라거나 할인 중이라거나 신상품이라는 걸 내세운다면 도쿄에서는 기본적으로 라이프 스타일을 제안하는 거예요. 물론 우리나라와 같은 방식도 있겠지만요. 이를테면 겨울에 산행을 좋아하는 고객과 바다낚시를 좋아하는 고객에게 맞춰서 필요한 제품을 제안하는 거죠. 이 제품을 사용해야 되는 컨텍스트를 이야기해주고 ‘그런 라이프 스타일을 즐기기 위해서는 이 제품이 필요합니다’라고 넌지시 이야기하는 거예요. 동일한 선상에서 놓고 봤을 때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차이가 이 부분인 것 같아요. 책에서 소개한 ‘츠타야 가덴’의 경우도 토스터기를 판매할 때 새로 나왔다거나 할인 중이라는 걸 내세우는 게 아니라 ‘토스트를 먹는 31가지 방법’을 제안하는데요. 이런 것들은 소비자들의 소비 성향이 고도화될수록 필요한 판매 방식이 아닌가 생각돼요.

 

‘쿠시야 모노가타리’의 경우 국내에도 이 튀김 가게를 벤치마킹한 곳들이 있더라고요. 도쿄만큼 반응이 뜨겁지는 않은 것 같은데, 양국 소비자들의 성향이 달라서 그렇겠죠.


기본적으로 소비자들이 성향도 다르고 소비문화도 다르기 때문에 그런 것 같아요. 아무리 같은 동양권이고 문화적으로 유사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도쿄에 있는 브랜드나 아이템을 그대로 가지고 왔을 경우에는 성공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기존의 브랜드나 아이템을 그대로 가지고 오실 생각으로 도쿄를 벤치마킹하시거나 이 책을 보시는 방식은 권유하고 싶지 않고요. 본질과 원리를 이해해야 되는 것 같아요. 그 업체가 그 아이템을 그런 방식으로 판매하는 이유, 그것을 추구하는 원리를 보고 벤치마킹하고 인사이트를 얻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걸 응용해서 한국의 소비자와 소비문화에 맞는 방식으로 바꿔서 비즈니스를 만들어야 성공할 수 있죠.

 

‘시루 카페’는 대학생들에게 무료로 커피를 제공해요. 유지비는 기업들이 부담하고요. 최근 일본에서는 기업들이 대졸자를 모셔가는 상황이라고 들었는데, 그렇기 때문에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 아닐까요?


맞아요. 사실 ‘시루 카페’에 대한 반응이 엄청나요. 독자 분들의 반응을 봐도 그렇고, 제가 블로그에서 ‘시루 카페’에 대한 포스팅을 했을 때 공유되는 횟수를 봐도 그래요. 그런데 말씀하신 대로 환경적인 차이를 고려해야 되거든요. 일본의 경우에는 구인난을 겪고 있잖아요. 회사가 사람을 구하지 못해서 발을 동동 구르는 상황인 거예요. 그에 반해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구직난이잖아요. 취업하기 어려운 상황이죠. 그런 기본적인 차이가 있어요. 이런 환경의 차이 속에서 ‘시루 카페’라는 모델을 그대로 들여오기는 어려울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객에게 팔던 제품을 기업에게 판매하는 방식’은 벤치마킹할 만한 모델이라는 거죠. 이걸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바꾸는 방법을 고민하고 판단해야 할 것 같아요. 잘 변형시킬 수 있다면 충분히 성공 가능한 모델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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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계기가 있습니다


국내에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가게가 여럿 있었어요. 그 중 하나가 ‘카노야 애슬리트 레스토랑’인데요. 앱을 통해서 매장에서 판매하는 음식의 재료와 칼로리를 공개한다는 점이 마음에 들더라고요.


앱을 통해서 자신이 먹은 음식의 칼로리와 영양 성분을 확인할 수 있죠. ‘카노야 애슬리트 레스토랑’에서는 ‘타겟을 좁혀서 오히려 타겟이 더 넓어지는’ 역설이 생겼어요. 대부분 기업이나 매장을 운영하시는 분들이 ‘어떻게 하면 더 넓은 타겟을 정해서 소구할까’를 고민하시는데, 그러다 보면 다 놓칠 수도 있거든요. ‘카노야 애슬리트 레스토랑’의 경우에는 명확하게 운동선수들을 위한 식단으로 시작했어요. 그런데 사실 운동선수가 많지는 않으니까 대중화하기에는 조금 어려운 타겟이라고 생각했죠. 웰빙족은 너무 넓은 타겟이고요. 중간에 연결고리로 찾은 게 조깅족이었어요. 생활체육인들을 대상으로 식단을 만들고 제공하기로 한 거죠. 정기적으로 조깅을 하는 사람은 건강한 음식을 먹을 것 같잖아요. 그런 인식을 토대로 포지셔닝을 한 거죠. 실제로 가게에 가보면 조깅족들도 많이 오지만 양복 입은 사람들이 훨씬 더 많아요. 건강식을 먹고 싶어 하는 회사원들이 많이 오는 거죠.

 

‘마루노우치 리딩 스타일’은 책을 중심으로 하는 편집숍입니다. 편집숍의 특성상 프랜차이즈처럼 확장하기가 어려운데요. 충분한 수익이 나올 만한 구조일까요?


두 가지 측면에서 접근해야 할 것 같아요. 첫 번째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는 거죠. 과거에는 전국적으로 많은 매장을 오픈하는 식의 규모의 경제를 통해서 큰 수익을 추구하는 구조였어요. 그런데 이제는 고객들의 니즈가 점점 세분화되고 추구하는 바가 다 다르기 때문에, 하나의 모델을 똑같이 복제해서 많은 매장을 운영하는 시대는 점점 지나고 있어요. 도쿄만 하더라도 ‘마루노우치 리딩 스타일’ 외에도 엄청나게 많은 편집숍이 있거든요. 그런데 프랜차이즈 형태로 운영되는 게 아니라, 각자의 지역과 커뮤니티를 가지고 자기만의 비즈니스를 만들어가요. 하나의 동일한 모델로 여러 매장을 운영하는 것보다 각각의 특색 있는 모델을 다양하게 선보이는 추세로 바뀌는 것 같아요. 또 하나의 측면은, 수익에 대한 기대 수준이 낮다는 건데요. 큰 기업들은 일정 수준의 이익이 발생해야 수요자를 만족시킬 수 있겠지만, 작게 편집숍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이걸 통해서 큰돈을 벌겠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아요. 일정 수준의 경제생활을 할 수 있고, 자신이 제안하는 걸 통해서 커뮤니티가 형성되고 제품이 판매되는 걸 보면서 기쁨을 느끼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매장이 대단히 커야 된다거나 전국적으로 많은 수가 있어야 된다는 생각을 하지 않죠.

 

‘비즈니스 트립’의 다음 목적지는 어디인가요?


런던을 생각하고 있고요. 이미 취재를 한 번 다녀왔어요. 8월부터 콘텐츠 제작을 시작하려고 준비 중이고요. 세 번째 도시는 뉴욕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크게 봤을 때 대륙을 기준으로 선정한 거예요. 도쿄는 아시아의 선진 도시로써 들여다본 거고요. 런던은 서유럽의 선진 도시로, 뉴욕은 미주의 선진 도시로 선택한 거죠. 모두 선진 도시라는 공통분모는 있지만, 각 문화권에 따라서 달라지는 여러 형태들이 있을 수 있으니까요.

 

도쿄, 런던, 뉴욕 등의 선진 도시들과 비교했을 때 한국의 경우는 어떤 것 같으세요? 퇴사 이후의 창업은 대부분 치킨집으로 이어지는 게 현실이기도 한데요.


그 현상을 폄하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사회 구조적으로 리스크에 취약하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안정적인 비즈니스를 추구할까’라고 생각하는 경향은 있을 수 있다고 봐요. 분명한 건, 건강한 사회는 아니라는 거죠. 우리나라도 조금 더 다양성이 필요한 시기에 왔다고 생각해요. 도쿄, 런던, 뉴욕과 서울을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기는 힘든 것 같아요. 우리나라의 경우는 식민지배도 받았고 전쟁도 경험했기 때문에 역사의 단절이 분명히 존재하잖아요. 전쟁 이후 폐허에서 시작하기도 했고요. 런던이나 도쿄처럼 역사가 깊은 도시와 일대일로 비교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분명히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요한 변화가 있겠죠?


저희 아버지 세대는 먹고 사는 게 어려웠기 때문에 비즈니스를 하면서 철학이나 스타일을 고민할 겨를이 없었어요. 그런데 이제는 먹고 사는 건 어느 정도 수준에 올라왔잖아요. 그러니까 지금의 세대는 조금 더 철학과 스타일을 가지고 비즈니스를 만들면 좋겠어요. 개성 있고 다양하게 만들어가는 과정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일부의 지역, 기업, 매장에서 그런 것들을 추진하는 모습이 보이고 있다고 생각하고요. 조금 더 활성화되고 보편화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서울 시민들의 라이프 스타일도 더 다양해지고 삶의 질이 올라갈 것 같아요.

 

‘리스크를 감당할 수 있는 힘’이 중요한 것 같은데요. 책에 소개된 사례들에서도 초기 자본금을 낮추기 위해 고민한 흔적들이 보여요.


시계를 맞춤제작 하는 가게인 ‘Knot’의 경우도 그랬죠. 처음부터 매장을 오픈한 게 아니었어요.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서 인터넷 매장을 열었고, 어느 정도 반응을 얻은 후에 다시 한 번 크라우드 펀딩을 해서 오프라인 매장을 열었어요. 초기 비용이라든지 리스크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첫 매장은 기치조지에 있는 외진 곳에 오픈했고요. ‘파이트 클럽 428’의 경우도 그렇죠. 크라우드 펀딩을 활용하는 등 초기 리스크를 최소화하려는 노력들이 곳곳에 있죠.

 

가게가 외진 곳에 있으면 사람들을 찾아오게 만들어야 되잖아요. 그러니까 아이템을 고민하게 되고, 결국 선순환이 이루어지는 것 같아요.


그렇죠. 과거에는 자본력을 가지고 그냥 목 좋은 데에 매장을 열면 됐거든요. 그게 가장 큰 경쟁력이니까요. 만약 그럴 수 없다면 조금 더 외진 곳으로 들어가되, 그걸 상쇄할 만한 아이디어와 컨셉만 있으면 충분히 가능하다는 거예요. 게다가 요즘은 SNS나 지도가 잘 발달돼 있기 때문에 매장이 외진 곳에 있더라도 사람들이 찾아가죠. 컨셉과 아이디어만 괜찮다면요. 그런 점에서 보면 환경적으로 많이 바뀐 것 같고, 과거처럼 중심 상권이나 노른자 땅을 고집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퇴사준비생의 도쿄』가 어떤 책으로 기억되길 바라세요?


지금처럼 퇴사가 화두일 때, 불평불만만 할 게 아니라 조금 더 건설적으로 대안을 찾고 고민을 하고 준비를 하는 계기가 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요. 에필로그에도 썼지만, 제가 좋아하는 말 중에 하나가 “누구에게나 계기가 있습니다”라는 거예요. 퇴사를 고민하는 사람, 또는 미래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책이 ‘해보고 싶다, 해볼 만 하다’라고 생각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퇴사준비생의 도쿄이동진, 최경희, 김주은, 민세훈 공저 | 더퀘스트(길벗)
퇴사준비생에게 필요한 건 ‘담력’이 아니라 ‘실력’이다. 취업과 마찬가지로 퇴사에도 실력을 키우기 위한 준비가 필요하다. 회사의 브랜드, 시스템 등에 기댄 실력이 아니라 독자적인 경제생활을 하기 위한 진짜 실력 말이다. 그 중에서도 비즈니스 아이디어와 인사이트를 갖추는 것이 출발점이다. 이 필수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으로 선진 도시를 들여다볼 것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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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 양윤옥 “히가시노 게이고의 문체는 번역자에게 고마운 텍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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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비너스』는 어느날 고양이를 진찰하던 수의사 하쿠로가 의문의 전화를 받으면서 시작된다. 울리는 벨소리는 미스터리 소설에서 고전적으로 쓰는 도입부지만, 히가시노 게이고는 클리쉐를 쓰면서도 흥미진진함을 놓치지 않는다. 이공계 출신의 추리소설가라는 독특한 이력으로 첨단 과학이나 의학과 같은 주제를 능수능란하게 다루기도 한다. 1985년 에도가와 란포 상을 받으면서 데뷔한 후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추리소설, 사회파 소설, 판타지 등 다양한 분야의 작품을 50편 넘게 발표하면서도 자신의 사생활을 드러내지 않는 작가이기도 하다.


노출을 적게 하기로 유명한 히가시노 게이고를 대신해 번역가 양윤옥에게 『위험한 비너스』만의 매력이 무엇인지 서면 인터뷰를 요청했다. 번역가 양윤옥은 1992년 무렵부터 번역을 시작해 히라노 게이치로의 『일식』, 아사다 지로의 『철도원』,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등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작품을 번역한 대표적인 일본 문학 번역가이다.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이 워낙 많기도 하지만, 그중에서도 번역가에 양윤옥의 이름이 빠지지 않습니다. 같은 작가의 작품을 계속 번역하는 소회가 궁금합니다.

 

맨 처음 번역한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은 2007년 『붉은 손가락』이었습니다. 아, 그게 벌써 십 년 전이네요. 그 뒤로 <가가 형사 시리즈>를 연달아 번역하게 됐습니다. 『악의』에서부터 『졸업』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 『내가 그를 죽였다』 『잠자는 숲』, 그리고 개인적으로 아주 인상 깊었던 단편집 『거짓말 딱 한 개만 더』까지 일곱 권이 연속으로 나왔습니다. 덕분에 히가시노 게이고만이 가진 특징을 충분히 파악할 수 있었죠. 한 작가를 이만큼 집중적으로 번역할 기회를 가진 것은 번역자로서 큰 영광이고 행운입니다.


『위험한 비너스』는 출간과 함께 베스트셀러 목록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는데요. 번역가가 봤을 때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이 사랑을 받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우선 문체가 담백해요. 이 작가는 각각의 등장인물의 생각이나 감정, 주장을 단순히 관찰하는 역할만 하는 느낌이 듭니다. 작가 자신의 생각은 거의 드러나지 않아요. 자신을 최대한 감추는 포즈를 취하는 것이죠. 게다가 등장인물과도 일정한 거리를 둡니다. 마치 타인처럼. 타인이니까 이 작가는 등장인물들의 의식을 알지도 못하고 굳이 헤집으려 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그들의 행동이나 말을 관찰해서 그대로 기록하는 식이에요. 이건 소설이 감정 묘사나 의식의 흐름 쪽으로 기우는 것을 막아주는 아주 효과적인 장치가 됩니다. 특히 추리소설은 냉정한 객관성을 어떻게 끝까지 견지하느냐가 중요하니까요. 작가 자신의 주장은 마지막까지 최대한 감춰두고 등장인물이 스스로 움직일 때까지 기다린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일정한 거리를 두고 마치 타인처럼 관찰한다―. 거기서 담백한 문체가 나오는 것 같아요. 사건 위주의 속도감 있는 전개도 그런 장치 덕분에 가능합니다. 그래서 읽기도 편하고 재미도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물리법칙과 수학 문제, 과학적인 법칙을 잘 쓰기로 유명합니다. 특히 이번 작품에는 프랙털 도형, 울람 나선, 리만 가설 등 생소할 만한 단어들을 검색하셨다고 하셨는데요. 이번 작품을 통해 새롭게 알아낸 사실이 있다면요? 비과학전공자로 번역에 어려움은 없나요?


이 작가는 정말 공학 전공자답게 과학 분야의 소재를 자주 사용합니다. 이번에도 그런 단어들이 소설 곳곳에 점점이 박혀 있어요. 하나같이 과학자, 수학자들이 평생을 바쳐 연구한 것들입니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세기의 난제도 있고. 그런 걸 모두 다 이해하고 소설을 쓴다거나 번역한다는 것은 애초에 어려운 일입니다. 단지 겉핥기가 되더라도 가능한 한 많은 자료를 훑어보고 만져보고 냄새도 맡고 귀로 들어보기도 한다, 라는 과정을 거치는 정도예요. 이건 뭘까, 궁금하다, 라는 순수한 호기심이 충족될 때까지 실컷 둘러봅니다. 인터넷이 있어서 정말 좋죠. 거의 은총입니다. 마감 날 따위는 잊어버리고 이 사이트 저 사이트 인터넷 서핑으로 며칠을 보내기도 합니다.


수많은 과학의 성과 중에서 이 작가가 그 소재를 골라냈을 때는 아마 그보다 몇십 배의 ‘반짝이는 호기심’을 갖고 자료들을 섭렵했겠지요. 그렇게 해서 마침내 콕 집어낸 것이니까 이건 뭐, 재미있지 않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할 거예요.


잘 알지 못하는 소재가 나왔을 때, 그것을 흡족할 때까지 훑어보는 과정을 거치면 번역의 질이 달라질까? 그건 잘 모르겠어요. 아무튼 ‘아차, 내가 이렇게 서핑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 다음 주 월요일에는 번역원고 보내야 하는데’라고 안달복달하면서도 역시 좀 더 알아보는 짓을 ‘저절로’ 하게 됩니다.


이를테면, 「옮긴이의 말」에서도 말했지만, 서번트증후군 화가 스티븐 윌트셔에 관한 것. 이건 이번에 『위험한 비너스』를 번역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정말로 재미있어서 서핑을 멈출 수 없는 서프라이즈’였어요. ‘인간 카메라’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사람입니다. 그가 전 세계 도시의 상공을 한 차례 비행한 뒤에 자신의 뇌에 저장된 도시 모습을 대형 캔버스에 그대로 재현하는 프로젝트. 관련 내용이 인터넷에 많이 올라와 있습니다. 이미 아시는 분도 많겠지만, 아직 모르시는 독자분들은 인터넷으로 꼭 검색해보시기를 권합니다.


반전이 있는 소설도 많이 작업하셨습니다. 첫 번째 독자로 반전을 즐기고 나서, 번역을 하려고 다시 앞부분으로 돌아오면 처음에는 지나쳤던 내용이 새롭게 다가오기도 할 것 같은데요, 『위험한 비너스』는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추리소설은 되도록 미리 읽지 않고 곧바로 첫 번역에 들어갑니다. 미리 읽어버리면 ‘복선’이나 ‘반전’을 이미 아는 상태에서 번역하게 되겠죠. ‘안 본 눈 삽니다’라는 재미있는 말이 있는데, 첫 번역 때는 ‘안 본 눈’이 필요한 게 아닌가 합니다. 아무래도 자칫 무의식중에 ‘이미 아는 눈’으로 단어를 선택하지는 않을지, 걱정이 되거든요. 첫 번역 때, ‘엇, 이거 뭐야?’라는 독자로서의 두근거리는 즐거움이 담겼으면 하는 바람에서 되도록 미리 읽지 않으려고 하는 편입니다.


『위험한 비너스』는 사전 검토를 위해 미리 읽었지만, 다행히 여러 개의 미스터리가 복잡하게 얽혀 있고, 마지막 대반전을 위한 복선이 전체적으로 삽입되어서 미리 읽었던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되었습니다. 아무튼 여주인공 자체가 복선이었으니까요. 두 번째, 세 번째 윤문(번역 문장을 고르는 작업) 때, ‘이미 아는 눈’으로 그녀에 관한 부분은 다시 미세하게 조정하는 작업을 해야 했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사생활을 절대 밝히지 않는 작가로도 유명합니다. 작가의 폐쇄성이나 작가의 기존 인터뷰 등 작가의 생활이 번역에 영향을 끼치는 게 있나요?


이상한 말인지도 모르지만, 작가와 작품은 별개의 생물입니다. 대부분의 작가들은 자신의 손을 떠난 작품을 자기 스스로 이러니저러니 말하는 것을 쑥스러워해요. 내가 쓴 것이 아니라 나에게 잠시 들어온 ‘소설의 신(神)’이 쓴 것, 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닐까요. 문학론, 사상론을 공식적인 자리에서 밝히는 작가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사적으로 만나면 자신의 소설에 대한 이야기보다 오히려 평범한 사람으로서 일상적인 잡담을 나눕니다. 번역자로서 작품에 대해 무한한 존경과 애정을 품고 있지만, 저는 작가를 꼭 만나고 싶다는 생각은 별로 해본 적이 없습니다. 번역은 작품과의 일대일 대결, 이라고 할까요.


물론 작품에 대해 밝힌 문학론, 사상, 인터뷰, 기사 등은 번역하는 동안에, 혹은 마무리하는 단계에서 찾아봅니다. 독자를 소설로 이끌어주는 재미있는 얘깃거리가 되니까요.


앞서 히가시노 게이고 문체가 담백하다고 하셨지요? 상대적으로 다른 문체의 작가보다 번역이 쉬운 편일까요?


중문(重文), 복문(複文)이 줄줄이 이어지는 문장은 번역하기도 어렵고 독자가 읽기도 어렵습니다. 등장인물의 의식세계나 어떤 일의 내밀한 기척을 정밀하게 포착해내려는 소설이죠. 이런 소설들은 난해함이 미덕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히가시노 게이고는 문장이 짧고 스토리 위주로 속도감 있게 진행되니까 상대적으로 번역하기 쉬운 편입니다. 추리소설은 원래 오락성을 추구하는 장르라서 대부분의 추리 작가들이 쉽게 잘 읽히는 ‘재미’에 중점을 두지 않을까요. 그런데 술술 읽히는 문체라는 게 말처럼 그리 쉽게 써지지 않아서 이것에 성공하는 작가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문체는 번역자에게는 고마운 텍스트입니다. 다만 짧고 쉬운 문장일수록 세심한 주의가 필요한 경우도 없잖아 있기는 합니다.


여름 추리소설을 찾는 이들에게 히가시노 게이고는 재미와 분량을 절대적으로 보장받는 작가이기도 합니다. 분량이 많다는 건 번역 일이 많다는 뜻이기도 할 텐데요. 번역하는 데 얼마나 걸리셨나요? 긴 분량의 작품을 번역할 때 짧은 분량의 작품과 다른 점이 있나요?


네, 책의 ‘볼륨’도 재미의 중요한 요소지요. ‘두툼한 소설’을 머릿속에 그려보니까 그냥 독자로서 아주 흐뭇한 기분이 드네요. 그걸 들고 어딘가에 틀어박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고 있는 장면―.

두툼한 소설은 단순히 원고지 매수가 많다는 것만이 아니라 그 작품을 ‘살아내는’ 기간이 길어진다는 뜻입니다. 한 작품을 일주일을 사는 것과 두 달을 사는 것은 거기에서 살고 있는 동안에도, 거기에서 벗어날 때도 전혀 다른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단편이나 중편을 ‘작은 방’이라고 한다면 대작 장편은 ‘큰 방’인가, 그렇지는 않고 아예 규모가 다른 ‘건축물’이 되어버립니다.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시선도 있어야 하고, 균형도 잘 잡아야 하고, 마음을 일정하게 유지하고, 점점 가중되는 피로도 적절히 조정해야 합니다.


얘기하다 보니 뭔가 거창해졌네요. 어떻든 좀 힘들더라도 두툼한 책을 번역했을 때 훨씬 더 뿌듯한 보람이 있고, 물론 번역료도 두둑해집니다.


줄거리의 핵심이 되는 그림 <관서의 망>에서 ‘원망’의 반대말로 ‘관서’를 고르셨는데, 혹시 염두에 두었던 다른 단어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관서(寬恕)’는 ‘죄나 허물을 너그럽게[寬] 용서(容恕)함’이라는 뜻입니다. 어려운 한자어죠. 저도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아예 독자들이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관용(寬容)’이나 ‘용서’로 바꿔버릴까, 아니면 비슷한 말로 ‘관면(寬免)’이 그나마 나을까, 많이 망설였습니다. 아, ‘관면’도 낯설기는 마찬가지인가요?


어려운 한자어를 쓰면 불편해하고, 때로는 ‘일본어를 번역하지 않고 그대로 뒀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번역하는 사람으로서는, 작가가 ‘용서’나 ‘관용’, 혹은 ‘너그럽게 봐줌’이 아니라, 일본에서도 잘 쓰지 않는 ‘관서’라는 단어를 어렵사리 선택해서 썼을 텐데 그걸 마음대로 바꿔버리자니 아무래도 주춤하게 됩니다. 짧은 한자를 한글로 풀어쓰면 아무래도 문장이 길어지는 것도 마음에 걸립니다. 이것을 정확히 담아낼 우리말이 없을지, 네, 나름대로 고민하죠. 작가와 독자 사이에서 줄타기랄까. 한자에 대한 방침이 다른 두 나라 사이를 중재하는 작은 외교전이랄까.


정 생각이 안 날 때는 ‘우리말 사전에 실려 있는 단어라면 되도록 작가의 뜻을 살리기’로 하고 있습니다. 독자분이 소설을 읽는 동안에 새로운 우리 한자어를 익힐 기회, 라고 둘러대면서.


일본어의 음독 방법으로 인해 줄거리가 진행되는 등, 번역자의 각주를 달아야만 이루어지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각주를 달지 않기 위해 애쓰는 편인가요?


동음이의어의 언어유희, 철자나 구절을 바꿔서 전혀 다른 뜻을 만들어내는 아나그램은 번역자에게는 악몽의 패닉입니다. 정말로 꿈을 꿔요. 딱 맞는 우리말을 내놓아라, 안 그러면 구워 먹겠다~. 성공하는 비율은 낮고, 결국 주를 달게 됩니다. 주가 길어지면 독서의 몰입도를 해친다는 게 일반론입니다. 특히 스토리 위주로 속도감 있게 진행되는 소설은 주를 최대한 짧게 효과적으로 치고 빠져야 합니다. 꼭 필요할 때는 다 읽은 뒤에 되짚어볼 수 있게 「옮긴이의 말」에서 언급하기도 합니다.


번역자로서는 주를 마음껏, 아주 길게 달고 싶을 때가 더 많습니다. 하지만 지면은 한정되어 있으니까 작품 이외의 내용은 최대한 잘라내는 것이 바람직하겠지요. 


워낙 많은 작품을 번역하면서도 「옮긴이의 말」이 빠지지 않습니다. 독자 입장에서는 작품을 이해하는 재미를 주지만, 기존에 있던 소설을 번역하는 것과 달리 「옮긴이의 말」은 직접 써야 하는 부담이 있는데요. 보통 어떤 내용을 중점적으로 쓰고자 하시나요?


「옮긴이의 말」, 네, 이것만 안 써도 번역하기가 수월할 것, 이라고 투덜거릴 때가 많습니다. 소설 한 권을 번역하면서 완전히 불태워버렸는데 그 재를 다시 뒤적여 한참 더 불씨를 유지해야 하니까요.


우선 최대한 많은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하려고 합니다. 공식적으로 알려진 등단 과정, 문단 내에서의 위치, 작품 경향, 수상 내역, 일화 같은 것들이죠. 두 번째로는 칭찬할 만한 점을 빠짐없이 찾아내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 책을 사주신 독자를 위해 장점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최대한 맛볼 수 있도록 안내한다고 할까, 그런 작업입니다.


역자님만의 번역 방법이 있나요? 가령 하루에 언제 일어나 작업은 어떻게 하는지 등 사소한 방법이 듣고 싶습니다.


27인치 모니터를 쓰고 있는데, 큰 화면을 둘로 나눠 등장인물의 이름, 지명 등을 한쪽에 메모하면서 일하면 편리합니다. 그리고 첫 번역 때는 자칫 단어에 집착하면 나무만 보고 숲을 잃는 우를 범할 수 있으니까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로 문장 속에 일단 다 적어놓고 앞으로 척척 나아갑니다. 전체를 파악한 뒤에 차근차근 생각해나가면 되니까요. 등장인물의 관계도는 따로 손으로 직접 그려두는 게 좋습니다. 아날로그가 필요한 순간이죠.


윤문 작업은, 첫 번역을 한 부 남겨놓고 따로 복사해서 하는 것이 좋습니다. 두 번 세 번 문장을 고르다 보면 ‘첫 느낌’이 사라질 수 있는데, 그런 때 아직 흥분이 생생한 첫 번역이 도움이 됩니다.


장시간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일이라서 스트레칭은 필수입니다……. 라고 생각하는데 깜빡 잊어서 몸이 굳어버릴 때가……. 매번 작심삼일로 끝나지만 산책이나 스포츠센터, 주민센터 운영 프로그램, 휴일을 갖자, 라는 로망은 포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일본 문학 번역 전문가로 자리매김하셨는데, 문학 중에서도 추리소설부터 스릴러, 인터넷 소설, 라노벨 등 작품 폭이 넓습니다. 전혀 다른 작품을 동시에 작업하거나 바로 바꾸어서 작업할 때는 어떻게 하시나요?


「옮긴이의 말」을 보내고 ‘아, 이제 진짜 끝났다~’라는 실감이 드는 순간, 그 소설은 망각의 세계로 사라집니다. 뭔가 다 불태웠다고 할까, 최선을 다해 온갖 애증의 격전(추태 포함)을 벌인 끝에 이제 이별해도 여한이 없다고 할까. 아주 나중에야 다시 어느 대목이 불현듯 생각나는 일은 있지만, 일련의 작업을 끝낸 직후에는 그야말로 슈슈슉 미련 없이 빠져나가는 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한 권 끝냈으니 놀러 나가볼까, 라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그간 밀려나 있던 새 소설의 스토리가 더 궁금합니다. 당장 ‘새 글’ 표시를 마우스로 콕 찍을 때가 전체 번역 과정 중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입니다. 아마도 번역자의 가장 중요한 자질은 ‘이야기를 광적으로 좋아한다’는 것과 ‘성질 급함’이 아닌가 싶습니다. 장르 불문, 시대 불문, 난해도 불문, 이라는 게 가장 이상적이지요. 각각의 작가마다 개성 강한 톤으로 써내는 문장이니까 번역자의 할 일은 그것에 최선을 다해 몰입하는 것뿐입니다.


기점 언어에 친숙한 독자들이 번역에 아쉬움을 표하는 때도 잦습니다. 특히 원작의 팬층이 두터울수록 번역에 관한 여러 말이 나올 텐데요, 독자 반응도 확인하는 편이신가요? 번역을 평가하는 말을 들을 때 어떤 기분인지 궁금합니다.


번역은 반역이다, 라는 명언을 만들어낸 분의 심정을 해가 갈수록 더욱더 실감합니다. 새 소설이 출간되면 독자들의 반응을 검색해보기도 합니다. 모골이 송연하죠. 번역할 때 참고하기도 하고, 눈에 띄는 대로 해명할 것은 해명하고 사과할 것은 사과하기도 합니다. 독자 여러분께 부디 잘 봐주십사고 이 기회에 인사 올립니다.


번역하신 책 중에서 가장 애정을 느끼시는 작품이 있나요? 혹은 가장 우여곡절이 많았거나 인상 깊었던 작품이 있으신지요.


아사다 지로, 무라카미 하루키, 오쿠다 히데오, 나카무라 후미노리, 이사카 고타로, 그리고 사쿠라기 시노……. 젊은 작가로는 스미노 요루, 오카자키 다쿠마……. 모두 다 열거할 수가 없네요.


가장 애정을 느끼는 작품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마음을 들볶지 않는 착한 소설이에요. 사람살이의 깊은 기척을 어떤 과장도 없이 스르륵 길어 올리고, 게다가 적절히 통속적이기도 합니다. 뭔가 힘들고 세상이 시끄러운 때일수록 친구처럼 곁에 두고 위안을 받고 싶은 소설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작업은 히라노 게이치로의 『장송』입니다. 1, 2권을 합해 천육백 페이지의 대작입니다. 그해 늦가을과 겨울, 봄의 차가운 책 냄새가 아직도 기억날 정도. 책장 사이사이에서 쇼팽의 음악이 물처럼 흐르는 소설입니다.


마지막으로『위험한 비너스』를 추천하는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일단 읽기 시작하면 끝까지 다 읽고 싶다, 라는 소설의 재미가 단연 뛰어납니다. 몇 개의 스토리가 정교하게 엇갈리는 것도 대단합니다.


단지 이 이야기는 ‘일본 남자들, 어째 패기가 없고 약해빠졌어. 안 되겠다, 일단 속마음을 솔직하게 다 말해버리게 하자!’라는 발상에서 시작한 기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여성 독자들에게는 마음 불편한 부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아직 한국 남성들은 그런 위로를 받을 단계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그래도 ‘관서의 망’을 좀 더 너그럽게 펼치고 읽는다면 정직에서 출발한 뜻밖의 해결책이 찾아지지 않을까, 기대합니다.


 

 

위험한 비너스히가시노 게이고 저 / 양윤옥 역 | 현대문학
히가시노 게이고가 새롭게 발표한 『위험한 비너스』는 “서스펜스, 서프라이즈, 카타르시스, 그리고 로맨스까지…… 그야말로 호사스러운 한 권의 소설”(일본 서평 전문지 [다 빈치])이라는 평을 받고 있는 작품으로, 그동안 작가가 선보인 다채로운 스펙트럼의 미스터리가 오락성 짙은 서사로 펼쳐진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조선희 “소설이 역사를 배반하지 않도록 하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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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부터 1956년까지, 일제강점기와 해방공간 그리고 한국전쟁의 시간들. 조선희 장편소설 『세 여자』가 조명하는 지난 시간들이다. 이 소설의 시선이 닿는 공간 또한 광활해서 여기에는 경성과 평양, 상해와 모스크바, 크질오르다까지 등장한다. 역사의 복판에서 치열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 그들의 투쟁과 서글픈 일생을 생생하게 그리는 『세 여자』는 그것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어긋났던 퍼즐 조각이 다시 맞춰지는 감각을 선사한다. 이 시기를 제대로 살피는 일이 과연 현재를 제대로 지켜보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씨네21> 편집장과 한국영상자료원 원장, 서울문화재단 대표 등을 지낸 조선희는 이 작품을 2005년에 집필하기 시작했다. 허정숙이라는 놀라운 인물을 만난 덕이었다. 그리고 한 장의 사진. 암울한 시대, 1920년대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화사한 세 여자의 사진 한 장을 보고 이들을 주인공 삼기로 결심했다. 품고, 꺼내는 시간을 반복하는 동안 40대에서 50대를 맞은 작가는 ‘그녀들과 함께 백 년 넘게 산 기분’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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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화창하고 깨끗해요


역사의 그늘 아래 묻혀 있던 인물들을 재호명하는 작업이었습니다. 써야 했던 이유랄까요. 어떻게 이 이야기를 쓰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2000년대 초반이었어요. 말하자면 사회주의 계열의 인물들에 관한 연구가 시작된 게 1990년대 이후죠. 공산권이 무너진 후부터잖아요. 그 당시에 관련된 책, 기사 등을 보다가 허정숙을 발견한 거죠. 결혼을 다섯 번 했고 성이 다른 아이를 몇이나 낳았다는 이야기, 중국으로 무장 투쟁하러 갔었고 평양으로 갔다는 이야기들이었어요. 먼저 사적인 부분들도 신기했죠. 냉전시대에 교육을 받고 책을 읽은 세대라 ‘신여성’이라고 하면 거의 나혜석만 있는 줄 알았고요. 독립운동이라면 김구나 유관순이었거든요. 일단 허정숙이라는 이름부터가 생경했는데 그의 삶이 참 흥미진진했던 거예요.

 

허정숙이 먼저였군요.


네, 허정숙을 들여다보니까 주변에 있던 또 다른 여자들도 보이고요. 주변의 남자들까지 보이면서 점점 재미있어졌어요. 그러다가 (표지 수록)사진을 발견한 거예요. 제게는 이 사진이 굉장히 신선했어요. 1920년대는 암울한 시대인데 이 사진은 너무나 화창하고 깨끗해요. 밝고 화사하잖아요. 세 여자들도 정말 구김살 없는 모습이죠. 이 이미지가 제게 너무나 강렬했기 때문에 일단 세 여자를 큰 줄기로 해서 소설을 써야겠다고 결심하게 됐어요.

 

허정숙에 관한 자료는 다른 두 여자, 주세죽과 고명자에 비해 많았다고 들었어요. 역사적 사실이 아주 많이 들어간 작품이라 쓰면서도 고심한 부분이 많았을 것 같습니다. 사실과 허구의 균형이 중요한 문제였을 텐데요.


역사 속 실재했던 인물들로 재미난 이야기를 만들겠다고 생각했다면 자세가 달랐을 거예요. 그랬다면 역사적 사실을 무시하고, 멋대로 각색할 수도 있었을 텐데요.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세 여자이기도 하지만요. 동시에 역사 그 자체가 주인공이기도 하거든요. 저는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역사의 역설들, 거짓말들, 그 모든 것들을 이야기하고 싶었거든요. 때문에 소설적 상상력을 발휘해 하나의 허구의 공간을 만들어야 했어도 그것이 역사 기록의 틀을 벗어나지 않도록 나름대로 절제를 하면서 썼죠. 말하자면 소설이 역사를 배반하지 않도록 하려고 주의했던 거예요.

 

소설에 이름 석 자가 정확히 나오는 인물들은 모두 실제 인물이라고 하셨죠.


맞아요, 그리고 날짜가 명시된 부분도 모두 사실이에요. 인용 부분도 모두 실제 자료고요. 그렇게 저를 말하자면 앵커로 해서 역사적 사실들을 적고 주변을 메우는 방식으로 썼다는 것을 적시하고 싶었어요. 이런 방식으로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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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조하고 싶었던 것들


프롤로그에서 주세죽의 딸 비비안나 박의 목소리로 ‘어머니를 그런 무서운 고독에 살게 만든 건 시대였다’고 말해요. 허정숙을 가리키며 ‘여자들이 치르는 전쟁이 더 치열했다’고도 했는데요. 여기에 집중해서 읽어도 좋을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특히 허정숙의 목소리로 당시 여성이기 때문에 겪어야 했던 더 큰 문제들에 대해 많이 말하고 있잖아요.


말하자면 이 소설에서 허정숙이 사회를 보는 역할을 하고 있죠. 세 인물 중 특히 허정숙은 그 시대로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주체적인 인물이거든요. 아무리 공산주의자고 투사라고 해도 개인이 시대의 한계를 넘어설 수는 없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주세죽, 고명자 같은 경우 남자들 뒷수발을 하거나 휘둘리는 인생을 살았던 거고요. 반면 허정숙은 자기 주관이 너무나 확실하고, 여성으로서의 정체성도 대단히 확실했던 인물이에요. 실제로 <신여성>이라는 잡지의 편집장도 했고요. 다른 두 인물과는 색깔이 달랐죠. 젠더 의식이 아주 강하게 있었던 인물이거든요. 그러니까 정숙이 당시 시대와 더 날카롭게 부딪쳤을 것 같아요. 자료도 많이 나와요. 아버지 허헌이 딸을 기숙신학교에 보냈는데 거기를 뛰쳐나오고, 상해로는 가지 못하게 했는데 간 건 모두 팩트죠. 이런 것들을 선연하게 드러내고 싶었어요.

 

세 남자는 낮에 조선일보에서 일하고 밤에는 훈정동 집으로 몰려갔다. 낮에는 신문기자, 밤에는 공산청년회의 이중생활이었다. 신문기자라 하나 경영난에다 정간을 밥 먹듯 하니 월급이 나오다 말다 했다. 훈정동 아지트키퍼 세죽은 부엌을 벗어나지 못했고 정숙은 그게 불만이었다.
“너, 밥하는 거 배우려고 유학 갔니? 한 계급이 다른 계급을 착취하는 체제를 뒤엎자고 혁명하는데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누군가 다른 사람의 노동력을 착취하는 건 이율배반이야. 남편과 아내 사이라도 말이야.”(『세 여자 1』, 133-134쪽)

 

이야기의 현재성에 대해 많이 생각했거든요. 한 갈래가 방금 이야기한 ‘여성’이라는 측면이라면 다른 갈래는 ‘지금 한국사회는 해방공간, 한국전쟁의 연장선에 있다’는 말에 있는 것 같아요. 해방공간을 제대로 조망하는 게 아주 중요한 문제인데요.


정말 그렇죠. 아주 평화롭고 멀쩡한 일상을 살고 있지만 사실 계속 뒷골이 당기는 거잖아요. 우리는 분단이라는 상황, 전쟁의 위협 같은 것들이 상존하는 상황에서 일상생활을 하고 있어요. 이것들은 전부 식민시대, 해방공간과 한국전쟁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이고요. 우리 사회에 이념으로 편을 가르는 것이 거의 습관처럼 존재하잖아요. 정치적으로 극렬해지는, 쉽게 격앙되는 사회적 에너지가 있는데요. 그것이 해방공간의 트라우마, 그것의 연장선이 아닌가 생각을 해요. 2권에는 그런 판단들, 당시 지식인들의 정치적 판단에 대해 조금 더 정확히 이야기하려고 노력을 했어요.

 

1권에서 다룬 ‘101인 사건’, 2권의 ‘반탁운동’ 등 몇 군데 저자의 아쉬움이 읽히는 대목이 있어요.


해방공간은 정말이지 ‘모스크바 3상회의’가 하나의 블랙홀이 되어서 모든 다른 이슈를 다 빨아들여버렸어요. 그것 때문에 거의 내전이 벌어진 거거든요. 좌우가 다시 확 갈라졌고요. 그 전에는 친일이냐 아니냐, 민족이냐 친일이냐 하는 구도였는데 모스크바 3상회의 때문에 프레임이 바뀌었어요. 친일파도 반탁 머리띠만 두르면 다시 애국자가 됐죠. ‘미-소 공동위원회’ 같은 것은 사실 분단 문제를 해결하는 절차였는데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로 사회가 이성을 잃었다고 할까요. 이 이야기는 진짜 강조하고 싶었던 거예요. 학창 시절에는 우리가 약소국이라 미국과 소련 강대국에 의해 분단되었다고 배웠잖아요. 물론 분단의 단초를 놓은 건 미국과 소련이지만 그것을 고착화시킨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건 한국의 정치인들이거든요. 그런 걸 정확히 알아야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어요.

 

인물에 대한 재평가 의도도 있었던 것 같아요. 어땠나요?


당연히 그래요. 말하자면 잊힌 역사를 복원한 거잖아요. 우리가 역사 인물에 대해서도 가치판단을 하는데요. 시대에 따라 판단이 다르죠. 기준이 달라지는 건데요. 상대적으로 저는 백범 김구가 조금 과대평가 되었다고 보는 거예요. 독립운동가로서의 김구, 1945년 이전의 김구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높이 평가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도 『백범일지』를 보면서 엄청 감동 받았고요. 그런데 사람 인생이 길어서요. 처음부터 끝까지 다 옳지는 않을 수 있죠. 그러니까 저는 1945년 이전의 김구는 옳았지만 그 후 한 4년 동안 그가 한 실책들은 1945년 이전에 쌓았던 업적들을 다 상쇄하고도 남음이 있는 그런 실책이었다고 생각해요. 냉전구도에서 마땅한 민족 지도자가 없었기 때문에 어쨌든 김구가 약간 우상화된 면이 있고요. 그런 면에서 조금 냉정하게 보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몽양 여운형에 대해서도 조금 다른 시각이 있었어요.


여운형은 실제로 저평가 된 게 사실이죠. 여운형도 1990년 이후에 조명되기 시작했거든요. 그런데 해방공간에서 그 상황을 가장 넓게 보고 멀리 봤던 사람은 여운형이었던 것 같아요.

 

냉전시대가 끝나고 우리 사회에서 과거사 재조명 노력이 이어졌지만 여전히 부족한 부분이 많아요. 특히 북쪽 인사들의 경우, 여전히 낯설죠.


김구나 여운형은 어쨌든 남한의 역사 속에 있는 사람들이잖아요. 그런데 북으로 간 사람들, 그들은 북에서도 잊혔거든요. 숙청당한 사람들은 그렇잖아요. 남과 북에서 모두 잊혔죠. 그런 인물들 중에서는 최창익이라는 인물을 가장 중요하게 복원했다고 할 수 있어요.

 

특별히 최창익에 집중한 이유라면 무엇일까요?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게 최창익은 주인공 허정숙의 남편이기도 했고요. 북한 초창기에 정치 세력은 크게 보면 김일성을 중심으로 한 ‘빨치산파’가 있었고, ‘소련파’, ‘남로당파’, ‘연안파’가 있었는데요. 김일성은 어떻게 생각하면 분단이 되면서 소련 군정이 들어왔다는 사실 때문에 간택된 낙하산(웃음) 같은 존재죠. 정치적으로 운이 어마어마하게 좋은 사람이에요. 그런데 상대적으로 역량에 비해 역사의 뒷장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 대표적으로 박헌영과 최창익이에요. 남로당파가 박헌영을 중심으로, 연안파가 최창익을 중심으로 위계화 되어 있었잖아요. 그러니까 이 둘이 중요하게 다뤄질 수밖에 없는 거죠.

 

맞아요, 정말이지 운이 좋은 사람이 참 많다는 생각을 했었어요.(웃음)


그럼요. 해방공간의 남한에서도 정치인들이 여럿 뜨고 지지만 결국 이승만이 되잖아요. 두 가지 같아요. 운과 본인의 권력 의지죠. 운은 곧 타이밍이라고도 할 수 있고요. 그 두 가지가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웃음) 그런데 김일성 같은 경우는 권력 의지도 의지지만 어쨌든 당시에 소련군 대위였다는 것이 무척 크게 작용했고요. 소련 군정이 북한 정권을 구성할 때 그 사실이 당연히 김일성으로 하여금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게 했던 거죠.  

 

이 대목에서 다시 또 허정숙이 빛났어요. 수많은 사람들이 뜨고 지는 동안 끝까지 자리를 지켜낸 인물이잖아요.


탁월하죠. 여러 요인이 있는 것 같아요. 일단은 김일성이 허정숙의 아버지 허헌을 굉장히 신뢰했던 것이고요. 또 허헌이 오래 살았다면 어떤 종류의 갈등이 있었을 거예요. 김두봉도 처음에는 환영 받았지만 말로가 처참하거든요. 그렇지만 허헌은 초창기에 김일성한테 큰 힘이 되어주고 안타깝게 사고사를 했죠. 그런 허헌의 딸이라는 사실 때문에 김일성이 끝까지 허정숙을 보호하려 했던 면이 있고요. 또 여자이기 때문에 자기의 정치적 라이벌로 생각을 안 했죠. 다른 하나는 허정숙이 계파적으로 움직이지 않았다는 사실이에요. 이것은 아주 독특한 점이에요. 처음부터 그랬어요. 조선공산당 활동할 때도 허정숙은 다른 파벌 남자와 사귀었거든요.

 

계파적이지 않은 허정숙의 선택이라는 건 굉장히 뛰어난 정치적 감각 같으면서도 정치적이지 않은 면이라 흥미로워요.


저도 사회생활을 했고, 어떤 정치 구도 안에 놓일 때가 있었지만요. 정말이지 파벌을 배반하기는 쉽지가 않아요. 그런데 이 사람은 거듭 파벌을 배반하거든요. 그것은 이 여인이 대단히 강했던 거고요. 자신의 감정, 직관으로 자신의 사회적 관계를 뛰어넘을 수 있을 만큼 어마어마하게 강했던 거예요. 그러니까 나중에 북한에서 파벌들이 단체로 숙청되는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거죠. 계파적으로 행동하지 않았으니까요. 너무나 안 정치적이었기 때문에 그 정치판에서 살아남았던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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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내적인 흐름들


이밖에 쓰면서 마음에 남았던 인물이나 사정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볼 때마다 목이 메어왔던 장면들이 있어요. 1929년 김단야가 서울 도화동 집에서 고명자와 살다 소련으로 떠나죠. 그때의 이별. 그것은 영원한 이별이잖아요. 꼭 일터 나갔다 저녁에 호떡이라도 사갖고 돌아올 것처럼 떠났다, 고 썼는데요. 이것은 그게 마지막이겠다는 걸 알기 때문에 정말 목이 메는 거죠. 그 하룻밤을 같이 지내는 장면이 그래요. 누군가는 소설에 베드신이 왜 이렇게 없느냐(웃음)고 하던데요. 그 마지막 밤, 거기에 어떻게 베드신을 넣을 수가 있겠어요. 그런 상황에서 말이에요.


또 하나는 허정숙이 경성을 떠나 중국으로 갈 때인데요. 당시는 전화(戰火)가 불붙는 상황이었고, 일본이 파죽지세였기 때문에 중국으로 간다는 건 곧 사지로 가는 거였거든요. 아들과 아버지를 경성에 두고 떠날 때는 아마 살아서 돌아오지 못하리라고 생각했을 것 같아요. 그래서 떠나는 장면을 긴 호흡으로 썼는데요. 아마 굉장히 비장했을 거다, 생각했죠.

 

고명자의 외로운 죽음 장면도 마음에 많이 남아요.


실제로는 그렇게 안 죽었을 가능성도 많아요. 한국전쟁 초창기 근로인민당사에서 의용군 모집할 때 고명자가 거기 나와 있는 모습을 누가 본 것이 마지막 기록이거든요. 어떤 기록에 보면 고명자가 퇴각하다 폭격을 맞아서 죽었다는 기록도 있고요. 사실 고명자에 관해서는 거의 창작이거든요. 수예라는 코드가 고명자의 일생에 굉장히 중요한데요. 그것도 실은 창작이에요. 그런데 제가 고명자를 사고사로 다루고 싶지 않더라고요. 죽음 자체를 좀 더 차분하게 다루고 싶어서 그렇게 그렸죠.

 

사실은 소설이 출간된 후 고명자의 사촌동생 분을 만났어요. 아마 그분을 미리 만났다면 이야기가 많이 달라졌을 것 같아요.

 

소설을 끝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요. 쓰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나 다시 생각하게 된 부분이라면 무엇일까요?


우리 세대는 대학에서 역사 공부를 많이 했어요. 때문에 저도 이런 소설을 쓰겠다고 생각할 수 있었을 거예요. 만약 이것이 너무나 낯선 정보였다면 아예 엄두도 못 냈겠죠. 그럼에도 소설을 위해 자료를 들여다보니까 정말 모르는 게 많더라고요. 여기 나오는 이야기의 90%는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던 것 같아요. 모스크바 3상회의에 대해서도 정확한 내용이 뭔지, 그에 따라 국내 정치인들이 어떤 식으로 이합집산 했는지, 결과적으로 사태가 어떤 식으로 발전했는지, 이런 것에 대해서는 사실 거의 모르잖아요. 때문에 저도 소설을 쓰는 동안 역사의 내적인 흐름이랄까 이런 것을 거의 처음 들여다본 거예요. 재미있던 것은 해방공간에서 허정숙은 북한 권력의 핵심에, 고명자는 여운형의 바로 곁에 있었던 것이죠. 이런 것들은 당시 상황을 입체적으로 조망하기에 굉장히 좋은 위치였다고 생각해요.

 

한 장의 사진으로 소설을 결심했을 당시에는 이런 진행은 생각도 못했을 텐데 참 놀라운 일이에요.

 
허정숙과 고명자도 그렇지만요. 주세죽도 그렇죠. 소련의 조선인들이 겪은 가장 극명한 사건이 강제이주잖아요. 그런데 하필이면 주세죽이 유형을 카자흐스탄으로 갔기 때문에 그 사람들과 만나요. 그런 것도 우리가 이 세 여자를 통해 민족의 역사를 입체적으로 볼 수 있는 아주 절묘한 면이라고 생각해요.

 

에필로그에 등장한 목소리여서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주세죽의 딸이 끝내 엄마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도 무척 절묘한 역사의 한 장면이라고 느꼈거든요. 그 시대를 살았던 세대를 다음 세대는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잖아요.


비비안나는 스탈린 세대죠. 그래서 주세죽은 딸로부터 전혀 이해받지 못했어요. 그 자신이 정치적으로 굉장히 박해 받은 사람인데 딸과의 세대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고독하게 삶을 마감했죠. 아마 그런 사람들이 많을 거예요. 중국에서도 문화대혁명 때 부모 자식 간에도 그런 일들이 있었잖아요. 비슷하겠죠. 그런데 정말 그 시대는 역사의 장난이라고 할까요, 눈 먼 역사의 흐름에 치어 비운의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어요.

 

역사의 내적인 흐름을 이해하고 오늘을 사는 일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늘 하는데요. 그런 차원에서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도 있을까요?


우리 세대의 딜레마라면 말이죠. 사회적으로는 반공 상식이 있는데 대학에서는 공산주의를 하나의 대안으로 보는 바람이 확 불었다는 거예요. 그 양쪽이 다 정리가 필요한 부분 같아요. 이 소설을 쓰면서 저도 제 젊은 시절의 정치적 환경에 대해 한 번 정리를 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지금 우리 사회에 대한 생각들과 이데올로기란 무엇인가 하는 부분도 어느 정도 정리가 된 것 같고요. 많은 분들이 그럴 기회를 가진다면 좋을 거예요.

 

이데올로기에 대해 정리된 저자의 생각,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공산주의는 1848년 ‘공산단 선언’으로 시작됐죠. 19세기에는 이것이 하나의 사상으로 존재했는데요. 20세기에 이것이 전 지구적인 투쟁의 주제가 된 거죠. 그런데 20세기가 끝나기 전에 그 투쟁이 이미 종료가 되어버렸어요. 90년에 공산권이 해체되잖아요. 지금은 북한 정도가 남았지만 그건 이미 하나의 봉건 파시즘 체제지 소비에트 체제라고 볼 수 없고요. 그렇다면 공산주의란 무엇인가, 이 세 여자들은 쓸데없이 고생만 한 건가 하는 의문이 들죠. 그러나 저는 공산주의라는 것이 있었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타락하지 않았다고 봐요. 마르크스주의라는 게 대안으로 떠오르지 않았다면 자본주의는 지금보다 훨씬 더 사악해졌을 거예요. 그런데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가 가능해졌던 건 공산주의와의 대경합의 시대, 냉전시대라고 부르는 시대를 지나면서 같아요. 자본주의가 수정자본주의가 되고 서방진영이 대항 이데올로기의 장점을 흡수해 더 체질이 강해질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고 생각해요.

 

에필로그에서 같은 이야기를 하셨어요. 마르크스의 이론과 레닌의 혁명이 ‘자본주의 세계를 더 인간답게 만드는 데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다. 그것은 하나의 역설이었다.’라고요.


소비에트 체제라면 우리가 더 가까울 거예요. 기초 단위의 의회나 행정의 거버넌스 체제를 보면 그래요. 완전히 거미줄처럼 작동하잖아요. 예술인 지원도 다 민간인이 들어가서 심사하고요. 이게 말하자면 소비에트거든요. 저는 지금 한국 사회가 정치적 민주주의라는 면에서는 아주 진화한 사회라고 생각해요. 노동자에 관한 법 같은 것은 나날이 개선되고 있잖아요. 이처럼 공산주의 장점을 통해 대중 민주주의가 훨씬 발달할 수 있었다고 보는 거죠. 지금도 경제민주화 등이 큰 이슈고 빈부격차도 심하지만요. 그래도 이런 대립 덕분에 전체적으로 자본주의가 조금 더 조심하면서 인간적인 형태로 발전되어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요. 21세기에 공산주의란 더 이상 체제나 이념 문제가 아니에요. 그러니 종북좌파니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되레 이상한 거죠. 이제 공산주의는 가치관, 철학, 정책의 문제로 남게 된 거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어려운 작업을 마무리하셨는데요. 다음 계획에 대해서 듣고 싶습니다.


이게 너무 힘들었기 때문에 당분간은 글을 못 쓸 것 같아요.(웃음) 그런 생각은 해요. 살다보면 쓰고 싶어질 때가 있을 거라는 생각은 하죠. 최근 읽은 소설 중에 『옅푸른색 잉크로 쓴여자 글씨』라는 짧은 장편이 있는데요. 아주 복잡하고 긴 이야기가 아니라 간단하면서 극명한 삶의 단면을 보여주는 이야기에 확 끌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들더라고요. 지금 소설을 생각하는 건 전혀 아니고요.


 

 

세 여자조선희 저 | 한겨레출판
박헌영, 임원근, 김단야… 각각의 무게감은 다를지언정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과 한국 공산주의운동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름들이다. 그런데, 이들의 동지이자 파트너였던 주세죽, 허정숙, 고명자 이 여성들은 왜 한 번도 제대로 조명되지 못했을까. 이 소설은 우리가 몰랐던 세 명의 여성 혁명가, 그들의 존재를 담담히 보여주고 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승희 “워터파크로 떠나기 전에 엉밑살 잡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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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이라는 것을 한번 해보자!』는 누구나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셀프 홈 트레이닝’ 방법을 알려준다. 일러스트레이터 이승희의 글과 그림으로 완성된 이 콘텐츠는 TLX의 네이버 포스트에 시리즈로 연재되며 16만 팔로워의 사랑을 받았다. 이상적인 몸매의 헬스 트레이너가 아닌 후덕한 몸매를 가진 캐릭터 ‘용자’가 내세워 독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낸 것이다. 다이어트가 인생 최대 목표인 용자, 그녀만이 들려줄 수 있는 리얼한 고민과 운동 과정은 고스란히 책 속에 담겼다. 특히 시간과 장소에 구애 받지 않는 46가지 운동법, 214가지 동작을 월별로 구성해 365일 다이어트 계획을 제안한다.

 

이승희 일러스트레이터와 함께 『운동이라는 것을 한번 해보자!』를 펴낸 TLX는 피트니스 멤버십 서비스를 제공한다. 전국 3,500개 피트니스, 뷰티, 힐링 시설과 제휴하여 소비자가 원하는 만큼 시설을 이용하고 해당 금액만 결제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추었다. 이승희 저자는 “『운동이라는 것을 한번 해보자!』는 힐링과 다이어트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책”이라고 말하며 “홈 트레이닝이 너무 힘들다면 TLX 서비스를 이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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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트를 재밌게 하는 방법


일러스트로 구성된 다이어트 책은 흔치 않잖아요. 처음 연재를 제안 받으셨을 때 의아하게 생각되셨을 것 같기도 해요

 

그렇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운동을 재밌게 알려줄 수 있을까를 생각했어요. 그리고 다양한 다이어트 콘텐츠를 찾아 봤어요. 그 중에는 다이어트를 강요하는 느낌이 드는 것들도 있었는데, 저는 다이어트도 재밌게 하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제가 실제로 동작을 따라 하면서 느끼는 어려움이라든지 떠오르는 생각들을 담으면 재밌을 것 같았고요. 
 
시리즈를 연재하시면서 독자들의 반응도 보셨겠죠. 어떤 이야기들이 많았나요?


실제로 용자가 존재한다고 상상하는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아닌가요? 작가님을 모델로 만들어진 캐릭터라고 생각했어요(웃음).


물론 제가 예전부터 그려왔던 캐릭터이고 저를 빗대어 만든 캐릭터이기는 해요. 그런데 이렇게까지 살아있는 생명체로 보실 줄은 몰랐던 거죠. 댓글을 보면, 용자를 조금만 날씬하게 그려도 ‘용자 언니 살 빠졌다’고 실망하세요. 커플 운동법을 그리면 ‘용자한테 남자친구가 생겼다’고 화내기도 하시고요(웃음).

 

배신감을 느꼈나 봐요(웃음).


네. 그리고 사무실에서 운동하는 방법을 그리면 열심히 일했다고 칭찬도 해주시고요. 용자 언니한테 일 너무 많이 시킨다고, 운동 좀 그만 시키라고도 하세요.

 

많은 분들이 ‘용자’에게 친근감을 느끼시는 것 같아요. 리얼한 캐릭터라서 그럴까요?


그렇기도 하고, 자신이랑 비슷하거나 조금 못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웃음). 우리 모두에게 그런 면이 있잖아요. 어떤 부분에서는 굉장히 뛰어나지만 또 다른 면에서는 부족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자는 열심히 하니까, 그 모습을 보고 감정이입을 하시는 게 아닐까 싶어요. 그리고 그림을 그리기 전에 제가 한 번씩 동작을 따라 해 보거든요. 그래서 제 감정이 그대로 녹아 들어가 있고, 그 점에 더 공감하시지 않을까 생각해요.

 

인터뷰를 보고 배신감을 느끼시는 독자 분들도 계실 것 같아요. ‘용자’와 달리 작가님은 다이어트가 필요 없으실 것 같거든요(웃음).


그래서 ‘인터뷰를 하는 게 맞을까’ 생각하기도 했어요. 인터뷰 전에 살을 더 찌울까, 사진을 보정해서 더 통통한 모습으로 내보낼까, 하는 우스갯소리도 했는데요(웃음). 제가 생각하기에는 우리가 다 못난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책 속에도 저의 그런 면이 담겼을 것 같고요.

 

프롤로그에서 “언제부터 다이어트가 내 인생 최대 목표가 되었을까?”라고 하셨는데, 작가님이 아니라 ‘용자’의 이야기였나요?


아뇨, 그건 저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물론 다이어트에 국한된 건 아니지만, 내가 남들보다 더 괜찮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누구나 가지고 있잖아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끊임없이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내가 더 나은 모습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거죠. 꼭 다이어트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아요. 제 경우에는 피부가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거든요. 그런 것부터 시작해서 남과 나를 계속 비교하게 되는데, 비교하지 않고 살면 얼마나 편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실제로 저도 살이 많이 쪘던 적이 있었어요. 그래서 제가 이런 이야기를 쓸 수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해요. 
 
책에 소개된 동작이 200가지가 넘어요. 운동법은 직접 찾으셨나요?


평소에 운동법을 많이 찾아보고 실제로 따라 해요. 직접 콘텐츠를 개발하기도 하고요. 기존에 나와 있는 운동법이 워낙 많으니까, 주변에 아는 분들에게 연락해서 ‘이렇게 콘텐츠를 만들어도 괜찮을지’ 물어보기도 해요. 연재되기 전에는 TLX 측에서 한 번 검토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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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필요한 건 ‘엉밑살 잡기’


작가님께서 가장 효과를 많이 본 동작은 무엇이었나요?


아무래도 간단하면서도 어디에서나 할 수 있는 게 스쿼트잖아요. 그래서 집에서 꾸준히 하는 편이에요. 그리고 여성들은 하체 고민을 많이 하잖아요. ‘마일리 사이러스 운동법’이 유행하기도 했고요. 많은 분들이 그 운동법을 따라 하면서 효과를 보셨다고 하더라고요. 저 역시도 효과가 좋았던 것 같아요. 7가지 정도의 동작으로 이뤄져 있는데 스쿼트, 와이드 스쿼트, 런지 등 다리와 관련되어 있는 모든 운동이 들어있어요. 

 

7월에는 ‘단기간에 각선미 살리는 다리 운동’을 제안하셨어요. ‘마일리 사이러스 운동법’도 실려 있나요?


똑같은 동작은 아니지만 거의 다 비슷해요. ‘다리 라인 만드는 운동 4가지’, ‘허벅지 안쪽 살 빼는 운동 4가지’ 같은 것도 그렇고요.

 

『운동이라는 것을 한번 해보자!』는 1년 동안 ‘용자’의 다이어트 과정이 담겨있는데요. 직접 따라 하기에 부담스럽지 않은 운동량이에요.


동작을 정확하게 따라 하면 10분만 해봐도 굉장히 힘들어요. 그런데 가지 수가 적으니까 독자 분들은 기분이 좋으실 거예요(웃음). 저도 이 콘텐츠를 만들면서 동작을 따라 하다 보니까 효과를 많이 봤고요. 항상 배에 힘을 준다든지 걸을 때 몸에 힘을 주는 습관이 생겼어요. 자세를 바로 잡는 것만으로도 2kg 정도가 빠진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너무 운동하기 싫을 때는 TV를 보면서도 자세만 똑바로 하자고 생각해요.

 

‘셀프 홈 트레이닝’ 방법을 알려주는 책입니다. 그만큼 별다른 도구가 필요 없어요. 휴지, 페트병, 침대, 쇼파 등을 이용하는데요. 어떤 걸 자주 활용하세요?


생수통이나 허리띠를 많이 쓰는 것 같아요. 수건도 괜찮고요. 다 집에 있는 것들이니까 실제로 활용하기 쉬운 것 같아요.

 

본격적인 휴가철이 시작됐어요. 지금부터 다이어트를 하면 워터파크로 떠날 수 있을까요(웃음)? 조금 늦은 감이 있어서 포기할까 싶기도 하거든요.  


늦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책에 실린 7월의 운동법을 보셔도 좋을 것 같고요. 8월에는 가슴을 업시켜주고 엉밑살을 정리해주는 동작들이 실려 있어서 같이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특히 추천해 주고 싶은 동작이 있나요?


어느 것 하나 뺄 동작이 없는데요(웃음). 아무래도 엉밑살을 잡아주는 동작이 아닐까 싶어요. 셀룰라이트가 있으면 보기 안 좋잖아요. 그런 점에서 ‘엉밑살 잡는 운동 4가지’를 추천해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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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트는 내 몸과 만나는 시간


‘홈 트레이닝’의 장단점이 있을 것 같아요.


자신과 쉽게 타협하게 되는 게 힘든 점인 것 같아요. 목표한 만큼 하려고 하는데 조금만 정신이 해이해지면 안 하고 포기하게 되는 거죠. 그래도 마음만 먹으면 손쉽게 할 수 있으니까, 그게 홈 트레이닝의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집에서 계속 스쿼트를 하거든요. 운동이 너무 하기 싫을 때는 안 하는 게 맞는 것 같고요(웃음). 일단 하려고 마음을 먹었으면 어쨌든 목표한 개수는 채우려고 노력하는 게 최고의 방법인 것 같아요.

 

TV를 볼 때나 설거지 할 때처럼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는 것도 좋겠죠? 주로 어떤 시간에 운동하세요?


저는 주로 양치할 때 발 뒤꿈치를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운동해요. 아침에 일어났을 때 운동하는 게 굉장히 좋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양치할 때 하거나 자고 일어나서 바로 스트레칭을 해요. 다이어트도 습관이잖아요. ‘아침에 일어나면 무조건 스트레칭을 한다’라는 습관을 들이면 그렇게 어렵지만은 않은 일인 것 같아요. 

 

‘알코올 섭취 전후 알아서 살 빠지는 운동’, ‘모임 후 단시간에 살 빼는 운동’도 소개해주셨어요. 다이어트 의지가 무너지는 순간에 필요한 동작들인데요. 운동하기 싫을 때는 어떻게 하세요?


모든 운동은 다 의지력의 문제인데, 그 의지력을 깨부수는 게 술을 마시거나 과식을 했을 때잖아요. 그런데 운동을 하고 나면 기분이 좋거든요. 특히 술을 마시고 나서 운동을 하면 땀이 쫙 빠지면서 술이 깨는 효과가 미미하게나마 있어요(웃음). 운동을 하고 났을 때의 기분에 대한 중독이 없으면 하기 힘든 거죠. 그러니까 운동을 하기 싫을 때는 운동 후의 기분을 떠올리면 다시 하게 돼요. 

 

실패 없는 다이어트를 위해서 필요한 게 있다면 무엇일까요?


책을 읽는 것도 그렇고, 취미 생활은 다 재밌어야 하는 거잖아요. 다이어트는 육체를 힘들게 하는 거라고 생각하니까 재미가 없는 것 같아요. 이 책은 사람들한테 운동이 재밌을 수도 있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어서 썼어요. 다이어트가 내 몸을 괴롭히면서 해야 되는 게 아니고 매일매일 스포츠처럼 재밌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좋지 않을까 싶어요. 삶의 활력소라고 생각하면 즐기면서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꼭 10kg, 20kg을 빼야 인생의 큰 목표를 이루는 건 아니니까요. 매일 하다 보면 다이어트에 대한 인식이 바뀌지 않을까 생각해요.

 

다이어트를 통해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나요?


꼭 살을 뺀다기보다는 내 몸과 계속 만난다고 생각하면 좋지 않을까요. 사실 자기 몸에 집중하는 시간이 거의 없잖아요. 머리만 계속 쓰는 거죠. 그런데 몸이 똑똑해야 머리도 잘 돌아가는 것 같아요. 저도 콘텐츠를 만들 때 몸을 움직이고 나면 아이디어가 잘 떠오르거든요. 저는 다이어트를 통해서 큰 목표를 이루거나 예뻐지려고 하는 것보다는, 내 몸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것 같아요. 다이어트가 삶의 이벤트 같은 거죠.

 

앞으로 일러스트레이터로서 보여주고 싶은 작업이 있다면 어떤 건가요?


이전에도 카드 뉴스나 SNS에서 그림 작업을 했지만, 이번 책을 통해서 제가 어느 정도까지 할 수 있는지 스스로 가능성을 알게 된 것 같아요. 앞으로는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을 통해서 일기 형식의 내용을 써볼 계획이고요. 지금은 그걸 바탕으로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기회를 열어놓는 정도인 것 같아요.


 

 

운동이라는 것을 한번 해보자!이승희, TLX 공저 | 21세기북스
매일 다이어트를 결심하지만 변함없는 후덕함을 자랑하고 있다면, 살집은 유지되지만 다이어트 결심은 늘 무너지고 있다면...! 네이버 포스트 연재물을 통해 이미 122만 명이 열광했던 그녀, 운동 친구 “용자”와 만나야 한다. 용자가 알려주는 운동은 어렵지 않고,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마쓰모토 하지메 “내가 하는 일은 혼란과 정상의 중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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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 먹튀(먹고 도망가기), 무엇이든 얻어서 생활하기 등 살아남기 능력에서 두각을 보인 마쓰모토 하지메는 당당하다. 자본주의 안에서 누구든 자본이 없는 사람은 가난뱅이가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부터 찌개 집회, 맥주 파티 투쟁, 카레 데모, 냄새 테러 등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돈을 안 쓰면서 자유롭게 살아가는 기술을 전파했던 그가 이번에는 돈을 벌면서도 자본주의에 반기를 들 만한 방법을 소개한다.

 

『가난뱅이 자립 대작전』은 재활용품 가게 ‘아마추어의 반란’, 매일 점장이 바뀌는 술집 ‘난토카 바’, 가난한 사람도 묵고 갈 수 있는 ‘마누케 게스트하우스’를 맨땅부터 일으켜 세운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책이다. 동료 만들기부터 시작해 행사 경비 조달하기, 본격적으로 가게를 차릴 때 밟아야 하는 절차, 행정 기관과 민원인을 상대하는 잔기술까지 공간을 만들고 운영하는 데 필요한 조언과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세계 곳곳의 ‘가난뱅이들의 공간’을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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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와도 늘 열려 있는 공간

 

2010년 G20 회의 당시 한국에 오려다 블랙리스트로 지정되어 강제 출국당한 적이 있었다. 이번에 올 때는 괜찮았나?

 

그 이후로는 괜찮다. 한국에 올 때마다 입국 심사에서 왜 그때 입국 거부가 되었는지 물어보면서 30분 정도 붙잡혀 있기는 하다.

 
지금 주로 하는 일은 무엇인가?

 

주로 두 가지 일을 한다. 일본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와 재활용 가게, 술집을 안정적으로 운영한다. 두 번째로는 해외에 있는 친구들과 재미있는 일을 하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새로운 일을 계속하면서 우리가 가진 공간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간다.

 

전작 『가난뱅이의 역습』이 데모 방법을 주로 알려줬다면, 이번 책은 공간 만드는 법에 초점을 맞춘 것 같다. 공유 공간이 중요한 이유는?

 

예전에는 재미있는 데모나 반란을 많이 소개했다. 그것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이 언제 와도 늘 열려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공간이 있다면 매일 오는 사람뿐 아니라 지나가다 들리는 사람, 흥미를 느끼고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 우연히 찾아오는 사람들 등 매일 다른 사람들이 찾아올 수 있다.

 

이전에 공간이 없었을 때는 어땠나?

 

이벤트를 하면 그때만 모이고 다 헤어지는 게 아쉬웠다. 그래서 다음 이벤트가 오기 전에 접촉할 수 있도록 사무실을 빌렸는데, 늘 아는 사람, 오는 사람만 오더라. 의외성이 없었다. 그다음으로 생각한 게 누구나 편하게 올 수 있는 가게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순서대로 하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다.

 

독일의 스쾃, 프랑스의 공유 공간 등 일본이 아닌 곳도 소개했다.

 

한국도 그렇겠지만, 공간을 빌리려면 반드시 돈이 든다. 월세를 내야 하고, 집주인에게 갑자기 쫓겨나기도 한다. 책에서 소개한 해외 공간은 불법이나 위법 행위를 해도 어느 정도 통용이 가능한 범위가 있는데, 일본은 조금 어렵다. 그 대신 집주인과 친해지면 월세를 반으로 줄이는 등 편의를 봐주는 경우가 있다.

 

집주인과 잘 지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겠다.

 

노력을 들였다기보다 재밌어서 했다. 집주인이나 지역에 사는 할아버지, 할머니와 친해지면 재미있다. 같이 술도 마시면서 그들이 가진 물건도 공짜로 받고, 남는 공간이 있다면 소개받기도 한다. 지역에 사는 분들과 관계를 잘 만드는 것도 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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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어떻게 사용하는가가 중요하다

 

공간을 만드는 구체적 방법으로 먼저 동료를 만들어야 한다고 꼽았다. ‘일단 뭔가 저지른다’는 방법으로 동료를 만든다고 했는데, 어떤 의미인가?

 

물론 사람에 따라서 동료나 친구를 만드는 방법이 달라진다. 나는 주로 친구의 친구를 사귀는 경우가 많고, 술집을 다니다 보면 아주 친해진다.

 

‘난또까 바’를 열네 명이 각자 따로 운영한다고 들었다. 운영자들끼리 서로 원하는 바가 다르거나, 의사소통이 잘 안 될 때 해결하는 방법이 있나?

 

의견이 안 맞는다 해도 의견을 맞추려고 따로 노력하지 않는다. 뜻이 맞지 않아 나가는 사람도 꽤 많다. 나갔다 들어왔다 하면서 운영하고 있다.

 

나가면 월세 내는 사람이 줄어들 텐데.

 

10명까지는 줄어도 괜찮다. 14명은 2주에 한 번은 반드시 와서 가게를 운영한다. 그렇게 하면 한 달에 두 번 오게 되는데, 2주에 한 번 오기 힘들면 한 달에 한 번 오는 식으로 인원을 늘리는 방법도 있다.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참여하는 사람이 항상 있다. 난또까 바뿐만 아니라 게스트하우스에 놀러 온 손님이 재밌으니까 해보겠다는 식으로 무한히 사람이 늘어난다.


확실히 재미있겠다.


원하면 이번에 점장 부탁드린다. (웃음)

 

활동에서 ‘재미’를 추동하는 것 같다. 보통 재미있는 일을 한다고 하면 의무를 저버리고 소홀히 하는 사람을 떠올리는데, 가게를 여는 방법으로 ‘다른 가게에 가서 도제식으로 배운다’는 얘기도 있었다.


딱히 스스로 열심히 하거나 고생한다는 느낌은 없다. 재활용품 가게도 다른 가게에서 일하면서 나도 한번 열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에 시작한 거라 결과적으로는 도제식으로 배운 게 되었지만, 다 재미있어 보여서 시작한 일이다. 힘든 일을 꼽아보자면, 가게를 열고 나서 동네 주민들이 시끄럽다고 할 때 대응하거나 하는 게 제일 힘들다.

 

일을 벌이려면 돈도 필요하다. 굿즈나 기념품 등을 만들어서 자금을 마련했다고 들었다. 팔면서 재고 문제는 없었나?

 

주로 티셔츠와 백지, 사진집이나 얇은 책자, 스티커를 만들어 팔았다. 가끔 실패할 때도 있지만, 대체로 괜찮았다.

 

포장마차도 시도했다. 손익분기점을 넘었나?

 

모르는 사람도 오기 때문에 뜻밖에 이익이 나온다. 물론 가끔 실패한다.

 

모금 방법을 쓴 장의 마지막에 ‘돈 버는 일은 사기에 가깝다’는 말을 했다. 자본주의를 반대하는 입장으로 돈을 만들면서 마음이 불편한 점은 없었나?

 

을 버는 것 자체는 나쁘게 생각하지 않는다. 돈을 벌어 어떻게 사용하는가가 중요한데, 회사가 있다고 치면 사장만 풍요로운 생활을 하고 직원은 가난하게 생활하는 게 나쁜 거지, 돈을 많이 벌어서 다른 사람에게 나눠주거나 환원하는 일은 매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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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생활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사건

 

이전 『가난뱅이의 역습』 이후로 하는 일이 조금 달라졌다. 계기가 있나?

 

예전에는 고엔지에서 재활용품 가게를 했다. 거기서도 어떻게 하면 얼빠지고 재밌는 가게를 만들지 그 생각만 했다. 이후로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어나고 바뀌었다. 어떻게 하면 다른 지역 친구를 사귀고 그 친구들과 재미있는 일을 할 수 있을지 주로 생각한다.

 

후쿠시마 원전 사태 전에는 다른 사람을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없었나?

 

이전에도 재미있는 일을 벌이는 사람이 다른 지역에도 많다는 건 알고 있었다. 교류도 있었다. 하지만 원전 사고 이후에야 그 사람들과 뭔가 같이 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해졌다. 요새는 일본 내보다는 다른 지역 쪽으로 시선이 간다. 가까운 아시아권을 중심으로 다니고 있다.

 

반핵과 반전을 이야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때는 사회 상황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우리 생활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었다. 도쿄를 벗어나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는 상황까지 왔었다. 그 전에는 주로 월세를 싸게 해달라는 등 바보스러운 데모를 주로 해 왔다. 정부를 상대로 직접 데모를 한 건 그때뿐이었다.

 

어쩔 수 없는 데모라도 재밌게 하려고 애쓴 것 같다.

 

물론 지금까지 해온 데모의 경험이 있기 때문에, 해온 방식대로 하고자 했다.

 

한국에서도 신나는 일을 벌이는 친구들을 많이 만났나?

 

나라가 달라서 자주 만나진 못한다. 올해 9월에 ‘노 리미트’라는 행사를 준비하느라 자주 연락하고 있다.

 

책을 읽었을 때 조금 더 에너제틱하고 시끄러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말하는 걸 보니 그렇게 수다스럽다거나 한 성격은 아닌 것 같다.

 

어제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약해진 것도 있다. (웃음) 어제 독자와의 만남이 있었는데, 즐거웠다. 책은 신기하고 재밌는 매체라, 책을 읽고 온 독자들과는 더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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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란과 정상의 중간

 

세계적으로 저성장 기조가 계속 이어지면서 이탈한 사람들, 재미있는 일을 찾는 사람이 늘어났다고 봤다. 이 시대 사람들이 예전과 비교해 가난뱅이가 많이 나타나는 세대라고 보나?

 

물론 예전에는 열심히 일하면 돈을 벌 수 있었다. 지금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돈을 벌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세대와 비교했을 때 늘어난 것 같긴 하다.

 

한국에서는 젊은 세대가 일자리와 자본이 없는 이유를 윗세대에서 찾기도 한다. 일본에서도 윗세대 탓이 있다고 보는 편인가?

 

일본도 물론 윗세대의 책임이 약간은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가치관이 달라서라고 본다. 예전 세대는 열심히 하면 자본이 늘어나는 고도성장기를 살았기 때문에 그런 가치관을 가졌고, 지금 세대는 저성장 시대를 살아내기 때문에 돈 버는 일 말고 다른 새로운 재미난 일을 하는 사람이 늘어났다고 생각한다. 다른 가치관을 강요하는 게 윗세대의 책임이 아닐까.

 

본인이 생각하는 빈곤의 기준은 무엇인가?

 

가난뱅이라고 하면 대개 돈 없는 사람만을 생각한다. 하지만 일류 기업이나 대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도 가난뱅이라고 생각한다. 일을 안 하면 가난해지기 때문이다.

 

그럼 얼마나 있어야 부자라고 생각하나?

 

아무 일도 안 해도 돈이 많은 사람이 진짜 부자가 아닐까?

 

대학교 때부터 노숙 동아리에 들어가는 등 여러 활동을 했다. 예전부터 늘 재미있는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나?

 

그렇다. 대학에서 재미있는 활동을 하는 사람이 많더라. 물론 진지하게 운동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그 사람들의 말도 다 맞는 말이었지만 덜 매력적이었다. 오히려 조금 바보스러운 일을 벌이는 사람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한국은 운동권이라는 개념이 있다. 활동하면서 기존 운동권과 충돌하기도 하나?

 

물론 일본에도 운동권이 있다. 사회적인 일에 관해 전문적으로 의견을 내고, 어렵고 진지한 이론을 내는 사람도 있다. 내가 데모를 할 때 충돌할 때도 있고, 바보 같은 놈이라고 무시할 때도 있다. 적극적으로 함께 하거나,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데모한다고 나선다고 혼나기도 한다.

 

한국이나 일본 모두 혼란을 일으키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 풍토가 있다. 다른 사람에게 미움을 받는다거나, 튀어 보인다는 생각은 없었나?

 

물론 혼란을 일으키는 사람은 싫어한다. ‘저 사람 또 일 쳤다’고 싫어하는데, 내가 하는 일은 혼란과 정상의 중간에 있다고 본다. 책에 소개한 일들은 지역 주민과 관계를 이미 다져놓은 후에 일으키는 혼란이기 때문에 무슨 일이 일어나면 ‘아~ 마쓰모토가 했구만~’ 하고 넘어갈 때가 많다. 그래서 지역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게 중요하다.


지역 사람과 연을 만들어놓으면 일을 만들어도 그렇게 큰 혼란이라고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뜻인가?


맞다. 작은 이벤트를 하면 굳이 주변 주민들에게 알리지 않고 진행할 때가 있는데, 크게 일을 벌일 때면 사전에 이야기를 다 해놓는다. 작은 행사 후에 불만이 들어오면 사실 이러저러한 일을 했다고 말하면 다들 그렇구나, 하고 넘어간다. 모르는 사람이 내 집 앞에서 뭔가 해서 사람들이 몰려들고 시끄러우면 싫은데, 아는 사람이 하면 그냥 넘어가게 되는 것과 비슷하다.


다른 사람과 다른 길을 걷는다고 생각하나? 미래를 생각하면 어떤 기분이 드는지도 궁금하다.


다른 사람과 꼭 그렇게 다른 행동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평범한 삶을 살고 있지 않나? 지금 하는 가게가 망한다고 해도 그걸로 인생이 끝나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든 될 거라는 생각이다. 미래도 괜찮을 거라 생각한다.


어떤 일을 할 때가 가장 즐겁나?

 

처음 만난 사람과 알게 될 때다. 도쿄 고엔지 지역이 아닌 다른 지역 사람들이 게스트하우스에 와서 장기체류를 한다든가, 난또카 바에 새로운 사람이 들어올 때 제일 재미있다.


요새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국경을 없애는 것인가?


물론 나라가 없어지지 않는 한 국경은 없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당면한 상황에서 우리의 문화를 공유하는, 우리만의 문화권을 만드는 게 최종적인 방향이다.

 

한국의 독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책을 소개해 달라.


한국과 일본은 문화적으로 가깝고 환경적으로도 비슷하다. 중국이나 홍콩, 타이완도 공통점이 많다. 다른 나라에 가보고 경험하는 건 자기 자신에게도 분명 플러스가 된다. 책에 실린 부록을 이용해서 다른 나라의 공간으로 놀러 갔으면 좋겠다. 예전 책에도 데모하는 방법 등을 써서 독자들이 읽고 재밌어했지만, 직접 시도해 보니 잘 안 됐다는 반응이 많았다. 『가난뱅이 자립 대작전』은 해외 여러 사람과 사이좋게 지내고 네트워크를 만들자는 취지로 썼기 때문에 이전 책보다 실천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 이 책을 가지고 다른 나라에 방문해보길 바란다.


 

 

가난뱅이 자립 대작전마쓰모토 하지메 저 / 장주원 역
자본주의에 대항해서 공짜로 살아가는 기술과 반란의 노하우를 가공할 유머로 전달한 『가난뱅이의 역습』의 저자 마쓰모토 하지메. 그가 신작 『가난뱅이 자립 대작전』을 들고 돌아왔다! 이번에 출간된 『가난뱅이 자립 대작전』은 살아남기 능력에서 최강이라 할 그가 20년간 갈고닦아온 자립의 노하우를 전격 공개한 책이다.

아이엠낫(iamnot), ‘힙’보다는 ‘팝’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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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싱글만을 내오던 록밴드 '아이엠낫'(iamnot)이 막 정규 1집을 발표하면서 활동의 닻을 높이 들어 올렸다. 얼핏 신인 같지만 임헌일, 김준호, 양시온 셋 멤버의 이력을 따지면 중견이라고 할 만큼 이미 존재감을 확보한 그룹이다. 밴드의 프런트맨 임헌일부터 그간 '메이트'와 '브레멘'을 거쳤다. 싱글 활동으로 활동 토대를 다진 밴드는 첫 앨범을 기획하면서 '힙'이 아니라 대중적 지향의 의미에서 '팝'을 선택했고 그 회심의 산물 < Hope >는 더 많은 대중에게 다가가자는 지향을 거의 완벽하게 구현했다.

뛰어난 소구력은 수록곡 10곡 중 단 한 곡도 놓치지 않게 만든다. 거기에다 조금도 귀에 걸리지 않는 견고한 사운드, 불안이 만성화된 요즘 청춘들을 일깨우는 희망 독려의 메시지 등 수작이 될 조건을 두루 갖추었다. '대중적 성향'과 '실험'은 동행 가능한가, 충돌하는 것인가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산재한 2017년의 역작이다. 아이엠낫은 “우리가 하고 싶은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잘할 수 있는 것, 원래 잘해왔던 것을 끄집어내 보자”는 자세로 작업에 임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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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시온(베이스)


양시온 씨는 베이스와 신시사이저 프로그래밍 등 앨범 작업을 주도했다. 고생이 상당했을 것 같다. 자기소개를 부탁드린다.


양시온: 원래 '브레멘'이라는 밴드로 같이 시작했습니다. 중간에는 '월러스'라는 밴드를 잠깐 했었고 이적과 정준일 씨 프로듀싱 작업을 도왔습니다. 곡으로는 「Eyes open」이 어려웠어요. 편곡 자체는 빨리 나왔는데, 좀 더 좋게 만들려고 막 가다 보니 너무 다른 방향으로 갔습니다. 여행을 한번 갔다 왔다고 할까요. 처음 생각했던 게 지금 이 곡인데, 다른 편곡으로 갔다고 다시 돌아온 셈입니다.

 

선우정아가 참여한 곡인데 처음부터 피처링을 생각했나.


양시온: 처음에는 피처링을 생각하지 않았어요. 원래 헌일이가 옥타브를 높게 불렀습니다. 그런데 그걸 '여자가 하면 어떨까' 했는데 그때 딱 생각난 사람이 선우정아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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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호(드럼)


김준호 씨도 자기소개를 해 달라.


김준호: 역시 브레멘을 같이 했고, 이후에 '스픽아웃'이라는 밴드를 잠깐 한 것 외에 밴드 활동은 거의한 게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뮤지컬에 연주로 참여하고 있어요.

 

김준호 씨는 아이엠낫 앨범 작업을 마치고 난 지금 어떤 기분인가.


김준호: 일단은 굉장히 잘했다는 생각이 들고, 두 친구에게 고마움을 느낍니다. 제가 뮤지컬을 하면서 앨범에 참여율이 그리 높지가 않았거든요. 근데 제가 일하는 동안 시온이가 편곡도 멋있게 해놓고, 헌일이는 제가 쓴 곡에 가사도 도와주고 이런 부지런한 친구들을 만나서 전 편했습니다. 제가 많이 배우고 있고 그래서 미안한 감정도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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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헌일(보컬, 기타)


임헌일 씨가 앨범 전체적인 면에서 색깔과 지향을 정한 것으로 안다. 싱글은 비교적 강성의 록을 취해왔다. 왜 이번 정규는 '팝'스럽게 간 건가. 이게 앨범의 중요한 지점일 것 같다.


임헌일: 그 고민을 제일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것 때문에 정규 앨범 작업이 제일 늦어지기도 했고요. 한 1년 정도를 보낸 것 같아요. 시간을 좀 보내다가 그냥 우리가 하고 싶은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잘할 수 있는 것, 원래 잘해왔던 것을 다시 끄집어내 보자는 얘기가 나왔습니다. 그동안 써왔던 곡 중 좋았다 싶은 것들을 공유하면서 트랙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그랬더니 지금 앨범과 비슷한 트랙들이 나왔어요. 우리가 없는 새로운 것을 찾아서 떠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겠지만, 첫 정규 앨범에서는 그동안 만들어온 고유의 색깔을 더 확실하게 다지기로 했죠. 음악은 좀 무거웠지만 사실 '브레멘'부터 팝적인 작업은 쭉 해왔거든요.

 

대중적으로 가자고 방향을 정하고 나서 어떤 곡들을 작업했나.


임헌일: 사실 「Happiness」라는 곡은 제가 솔로 활동을 하려고 만든 곡이었고요. 「Fly」도 마찬가지로 쓰고 가지고 있던 곡이었어요. 그러다가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곡도 만들어볼까?'라는 얘기가 나왔을 때 이 곡들을 꺼냈습니다. 준호가 쓴 「Wake up」도 자신이 솔로 활동을 하려고 만든 곡인데, 저희가 거의 뺐다시피 해서 이번 앨범에 넣었어요. (웃음) 원래는 좀 로킹(rocking)하고 개러지 스타일의 음악을 추구하다 보니 그런 (대중적) 스타일은 생각을 못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점점 서로 접점이 생기다 보니깐 지금의 틀이 어느 정도 만들어진 것 같아요.

 

김준호: 사실 꽤 자연스러운 것 같아요. 원래 해왔던 게 세서 이번엔 다르게 하자고 생각했습니다. 앨범을 부드럽게 가보자 했을 때 그냥 제가 핸드폰에 녹음한 곡을 들려줬는데 좋아하더라고요. 「Just believe what I say」와 「Hope」가 그랬고, 「Wake up」은 이미 저희 첫 단독 공연에서 혼자 어쿠스틱 느낌으로 공연하기도 했어요.

 

이번 음반의 방향을 잡고 나서 곡을 모을 때 어떻게 전체적 그림을 잡았나.


임헌일: 기존에 해왔던 스타일 4 정도, 힘을 빼고 이야기와 메시지를 중시한 음악이 나머지 6이라고 생각했어요. 사실 앨범을 위해 새로 쓴 곡이 없을 정도로 원래 갖고 있던 음악들이었습니다. 그 안에서 톤 맞추고, 편곡 작업을 생각했죠.

 

예를 들어 「Wake up」도 쓴지 꽤 오래되었다는 얘긴가.


김준호: 쓴 지 1년 정도 됐습니다.

 

「Happiness」와 「Rbty」를 싱글로 냈다. 하나하나 곡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린다.


임헌일: 「Happiness」를 만들고 데모 제목과 가사가 없었을 때 그냥 「Happiness」라고 적어놨어요. 그리고 준호가 만든 「Wake up」에서 영감을 받아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을 했지요. 음악 자체에 힘이 있고 밝아서 어울릴 것 같았어요. 행복의 거추장스럽고 대단한 얘기를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작년에 앨범 작업을 할 때 많은 고통을 경험했습니다. 그 고통을 뛰어넘어 행복이라는 단어가 일상적인 언어이면서, 당연한 감정이 되길 바라며 쓴 곡입니다.

 

「Happiness」로 시작해 마지막 곡이 「Hope」로 전체 콘셉트를 일관되게 유지했다고 본다. 메시지가 두드러진 앨범이다. 막연히 긍정적 메시지를 설파하는 게 아니라 젊음이 겪는 고통을 충분히 드러내면서 희망을 얘기하기에 더 설득력을 갖는 것 같다. 「Wake up」부터 코러스 가사 '다시 일어나 자신을 향해/더 크게 회쳐봐 넘어져도 괜찮아/자신을 믿어 끝까지 싸워'는 왠지 눈물 난다. 상상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영감을 받아 쓴 느낌이 드는데, 혹시 준호 씨는 혼자 사나.


김준호: 아니요. 결혼해서 아내랑 같이 살고 있어요. 가사는 제가 레슨 하는 학생들에게 많이 해주는 얘기에요. 용기 없고, 자신 없는 애들에게 그냥 믿으라고 말하는 거죠. 원래 가사는 굉장히 셌어요. '근거 따윈 필요 없다. 그냥 믿어라!'라는 식이었는데, 헌일이가 듣고 좀 부드럽게 노래처럼 고쳐주었지요. 하지만 다른 사람 아닌 저 자신을 위해 쓴 곡입니다.

 

이승열이 피처링한 「Fly」는 앨범 내에서 어딘가 모르게 약간 동떨어진 느낌을 받았다.


임헌일: 그 곡은 아까 말한 것처럼 제 솔로 앨범에 넣으려고 생각했던 곡인데, 막상 밴드로 연주해보니 굉장히 매력적이었어요. 앨범을 준비하면서 다른 아티스트와의 작업을 전제하고 있었습니다. 「Fly」는 만들 때부터 이승열 선배님의 목소리를 염두에 두고 요청을 드렸죠. (두 사람의 보컬 높이와 컬러가 비슷하다고 하자) 제가 부른 「Fly」 1절이 아직은 불안한 사람이 다독이는 느낌이라면, 2절 '두려워 마'하고 승열이 형이 나오는 부분은 되게 보듬어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희가 여기서 굉장히 감동했거든요.

 

컨트리적 요소로 시작해 일렉트로닉 댄스 팝 느낌이 강한 「Rbty(Running back to you)」는 대중 흡수력이 높게 들린다.


임헌일: 요즘 학교(호원대 실용음악과)로 강의를 나가면서 가르치기도 하지만, 반대로 젊은 친구들이 곡을 어떻게 쓰는지 배우기도 하거든요. 근데 되게 단순하더라고요. 코드 4개를 계속 돌리면서 거기에 멜로디와 가사를 얹는 방식. 정말 재미있다고 느껴서 저도 아주 흔한 패턴 코드 4개를 만들고, 거기에 훅을 만드니 어느덧 곡이 그냥 쉽게 완성이 돼버렸어요. 편곡을 시온이에게 부탁했더니 지금 스타일의 이디엠이 나왔습니다.

 

「Just believe what I say」는 어떤 곡인가.


김준호: 「Wake up」과 마찬가지로 이것도 제가 솔로를 생각하고 만든 곡입니다. 그런데 밴드와도 잘 어울리겠다고 판단해서 멤버들에게 들려줬습니다. 들어보더니 헌일이가 가벼운 느낌이라서 빼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이건 집에서 작업한 곡이라 작게 녹음했다고 설명했더니 한 번 더 듣고는 하자고 했어요.

 

「Fireworks」는 제목처럼 터뜨리는 헤비 사운드의 곡이다.


임헌일: 펑크(Funk) 음악에 대한 굶주림이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많이 변했지만, 제가 대학(02학번) 다니던 그 시절만 해도 실용음악과에서는 16비트 펑크가 굉장히 핫한 음악이었어요. 그래서 오랜만에 그때로 돌아가 아이엠낫이 하는 펑크 음악은 재밌지 않을까 해서 시도를 해본 곡입니다.

근데 듣는 느낌은 다르다.


임헌일: 네, 후반부에 터지는 부분이 있어서 그럴 겁니다. 음악적으로는 큰 어려움이 없었는데, 이 곡에는 어떤 가사를 붙여야 할지 고민을 정말 많았어요. 보통 노래를 먼저 만들고 가사를 붙이는 편입니다. 그래서 가이드를 불러놓고 계속 들으면 이 곡이 무슨 말을 하는지 느낌이 올 때가 있거든요. 그랬더니 '우리의 삶'이 떠오르더군요. 특히 무대 위에 오르는 우리의 삶은 한순간 사람들을 위해 밝게 터지고 사라지는 불꽃놀이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이런 식으로 가사를 쭉 적어보니 이야기가 잘 나왔습니다. 하지만 가사론 가장 마지막에 나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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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전에 펑크 얘기도 했는데 이번 앨범의 '팝'을 떠나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진짜 하고 싶은 스타일은 뭔가.

 
임헌일: 저는 포스트 록을 정말 좋아하고요. 밴드는 시규어 로스나, 넓은 세계관을 가진 음악을 좋아해요. 그래도 이번 앨범에 그런 세계관이 기타 연주와 은연중에 녹아있는 것 같아요. (웃음) 예전에는 그런 음악으로 '끝까지' 가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는데, 지금은 자연스럽게 스며든 정도가 좋다고 생각합니다.

「Iamnot blues」는 제목 그대로 블루스다.


임헌일: 이거는 되게 재밌는 곡이에요. 이런 식의 곡 작업을 여전에도 꽤 했거든요. 싱글로 낸 「Psycho」나 「The brand new blues」처럼 원래 있는 블루스 형식에 저희만의 독특함을 엮은 곡이에요. 버스(verse)는 블루스이지만, 코러스는 템포 변화와 독특한 패닝이 특징입니다. 그리고 이 부분을 공연에서 라이브로 해보니 정말 재밌더라고요.

 

김준호: 제가 제일 좋아하는 곡입니다.

시온 씨가 맨 먼저 얘기한 곡 「Eyes open」은 아직 미완이란 느낌이 든다. 고생을 많이 했겠지만 완벽을 품어낸 것 같지는 않다.


양시온: 지점을 찾았지만, 처음의 느낌을 뛰어넘지는 못했어요. 그래서 그냥 처음의 느낌을 잘 완성한 곡이에요.

 

김준호: 편곡을 바꾸고 싶다고 말하더라고요. 저희는 괜찮은데 헤비메탈의 올드한 느낌이 난다고, 그래서 곡을 힙합처럼 바꿔보기도 했어요.

 

곡은 헌일 씨가 썼다. 어떤 개념으로 시작한 곡인가.


임헌일: 운전하다가 버스 파트 멜로디가 생각이 났어요. 이걸 완전 러프하게 녹음해서 편곡에 편곡을 거쳐 협업으로 만들었습니다. 원래는 마이너하고 어두운 음악도 좋아해서 라디오헤드의 <In Rainbows> 느낌도 생각했는데, 저희 앨범과 너무 동떨어진 분위기여서 그 접점을 찾는 데 어려웠습니다.

 

앨범이 단 하나 비슷한 곡 없이 다 다르다. 스타일을 너무 다양하게 가져가다 보니 단점도 있을 것이다. 세 사람이라서 그렇겠지만, 처음부터 다양하게 가자는 합의가 있었나.


임헌일: 외골수보다는 다양한 데에 관심이 많아서요. 발라드를 좋아하면서 록도 좋아하고, 가요도 좋아하다 보니 그냥 수용되는 범위가 넓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굳이 앨범에 색깔을 정하지는 않았어요. 저도 여러 가지가 들어간 앨범을 좋아해서 저희 앨범도 다양하게 들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Lost」는 세 사람의 노력이 잘 결합된 곡으로 생각된다.


임헌일: 시온이가 이번 앨범에서 유일하게 쓴 곡이에요. 원래 버전은 피아노와 어쿠스틱 기타, 시온이의 보컬만 딱 있었거든요. 데모를 들었는데 캘리포니아의 굉장히 황량한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 친구가 아주 힘들구나 생각했었는데. (웃음) 그 느낌을 최대한 담아서 작업했어요. 어차피 편곡은 시온이가 했고, 저는 가사와 어떻게 불러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거든요. 그래서 가사는 사막에서 길을 잃은 사람의 이야기, 요즘 우리의 모습,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어딘지 모르는 곳에 귀를 막고 가는 상황을 담아냈어요.

아이엠낫이 추구하는 메시지의 토대는 상실감 아닐까 한다. 「Lost」가 말해준다. 이런 상실감이 어디서부터 오는 건가.


양시온: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제가 20대 때 보고 마음속에 그렸던 30대의 아티스트가 돼 있지 않은 게 가장 큰 이유 같아요. 어쨌든 제가 20대에 스스로를 봤을 때는 멋진 아티스트로의 성장 가능성을 바라봤는데 막상 30대 됐을 때 '나는 그렇게 멋있는 뮤지션이 됐나'하는 좌절감도 들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벗어나고 있나.


양시온: 네, 조금은.... 처절은 아니었어도 30대 중반이면 집도 사고, 차도 사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돌이켜보면 많이 가지고 있어서 욕심 때문에 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멤버들과 앨범을 만들면서 같이 얘기도 많이 했습니다. 과연 10억이 있으면 행복할까. 최순실은 행복할까. (웃음) 자연스럽게 앨범의 가사들도 그런 방향으로 흘러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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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곡을 썼을 때는 사운드를 어떻게 잡았나. 예를 들어 엠비언트라던지, 단순하게 간다든지 하는 것들....


양시온: 저는 유투(U2) 같은 생각을 많이 했어요. 좀 전통적인 록이면서 「One」 같은 곡을 생각했는데, 헌일이는 비우는 것을 추천하더라고요. 피아노에 기타 정도만 얹어서 가자고, 그래서 그 절충점을 딱 잡았습니다.

 

김준호: 정재일 씨의 스트링 편곡이 제일 잘 발(發)한 곡이에요.

 

마지막 「Hope」는 어떤 곡인지.


김준호: 「Wake up」을 쓰고 노래하면서 저한테 용기를 주고 나서 실제로 뭔가를 해보자는 생각을 했어요. 예를 들면 저도 드러머이지만, 솔로 활동을 하고 싶은 마음도 있고요. 실제로 준비는 하고 있지만, 아직 초기 단계입니다. 그런데 이게 용기를 내서 막상 하려니깐 고민과 두려움이 많아지더라고요. 그래서 이런 심정을 곡 안에 담아봤습니다.

 

이 앨범을 한마디로 규정한다면.


임헌일: 이 앨범은 지금 우리의 모습이다. 「Lost」랑 「Rbty」가 서로 이어지는 가사거든요. 길을 잃고 구원을 기다리지만, 우리끼리는 서로 희망을 이야기하는 거죠. 잘 될 거라는 얘기보다는 그냥 서로 잘하고 있다는 격려를 할 수 있는 게 희망이라고 생각했어요. 지금 잘하고 있고 이렇게 할 수 있는 누군가가 옆에 있다는 게 희망이니까요. 또 그게 음악 하는 즐거움 아니겠습니까.

 

양시온: 전 방금 생각했는데 36년 동안 품은 진주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동안 저희가 해왔던 작업에서 얻어온 모든 것들을 압축한 앨범이 아닐까 합니다. 예를 들어서 헌일이는 메이트, 준호는 뮤지컬, 저는 프로듀싱을 한 것처럼 말입니다.

 

준호 씨는 어떻게 규정하고 싶나.


김준호: 생각이 안 나네요. (웃음) 고민을 많이 한 앨범? 여태까지의 싱글보다도 곡이나, 가사에 참여도 많이 했고요. 가사도 곡당 거의 세 가지 버전은 만들면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공이 좀 많이 들어갔죠.

앨범에서 어느 곡이 제일 당기나.


김준호: 「Iamnot blues」를 제일 좋아한다고 말은 하는데요, 솔직히 다 좋아서 어느 한 곡 뽑기가 어려워요. 그런데도 이 노래를 뽑은 이유는 우리의 음악이 정말 자연스럽게 녹아든 곡이어서죠. 헌일이가 그런 곡을 써올 때마다 놀라요. 기타 리프도 멋있고 해서 항상 이 곡을 가장 좋아한다고 말합니다.

 

임헌일: 저는 「Fly」를 뽑는데요. 노래를 가장 적게 불러서. (웃음) 노래하는 사람은 대부분 그렇겠지만 보컬은 늘 가장 고민하는 부분이죠. 사실 저도 노래를 만들어서 불러놓고, 이게 불편하게 안 들리나 많이 노력하거든요.

 

그럼 안 맞아서 고생했던 곡은?


임헌일: 「Happiness」 노래하는 게 제일 힘들었어요. 멜로디도 많고, 생각했던 것보다 가사를 붙이니 쉽지 않은 것도 있고요. 톤을 잡는데 제일 오래 걸렸던 것 같아요.

 

앨범을 만드는데 걸린 시간, 녹음실에서 보낸 시간은?


양시온: 편곡 2달. 녹음실에서 2달. 이렇게 4개월을 보냈습니다.

 

마스터링은 왜 '스털링 사운드' 스튜디오의 크리스 겔린저(Chris Gehringer)에게 맡긴 건가. 어떤 사운드를 원한 건지.


양시온: 사실 탐 코인(Tom Coyne)이라는 엔지니어를 고려했는데 마스터링 4일 전에 그만 세상을 떠났어요. 그 스튜디오에서 두 번째로 인정받는 분이었는데. 어쩔 수 없이 다른 비슷한 엔지니어를 찾다가 크리스 겔린저를 찾았습니다. 이전 앨범은 제가 마릴린 맨슨과 블랙 키스(Black Keys)를 좋아해서 강한 사운드를 가진 엔지니어에게 맡겼었죠. 그런데 겔린저는 콜드플레이, 아델 등과 다양하게 작업을 했던 인물이죠. 이번 저희 앨범도 상기한 것처럼 하나의 색깔이 아니고 전체를 아우르는 트렌디함과 팝적인 감각으로 뭉쳐서 나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한 마디로 사운드의 다양성과 현대적인 느낌을 위해서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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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일 씨는 얼마 전 스페인에 다녀왔다고 들었다. 방송 출연도 했던데 어떤 일로 가게 된 건가.


임헌일: 스페인 주재 한국 문화원에서 <코리아 뮤직 페스티벌>이라는 이름으로 국내 뮤지션들을 초청해서 한국 문화에 관심 있는 현지인에게 알려주는 행사였습니다. 그 전 주에는 김사월 씨가 갔었고, 그다음 주가 제 차례였어요. 원래 '독백'이라고 해서 게스트와 세션 없이 혼자서 공연하는 콘셉트로 1년 전부터 섭외가 들어왔던 거예요. 그 아이엠낫 앨범 준비하기 전부터 꼭 저를 초청하고 싶다고 해서요. 거기서도 나름대로 프로그램을 잘 준비해줘서 현지 라디오도 나가고, 아이엠낫 앨범도 소개했어요. 놀랐던 건 한국 교민들이 아니라 현지 팬들이 많이 좋아해 주시더라고요. 공연 끝나고 사인도 해달라고 해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만약 아이엠낫 다음 앨범을 만든다면 어떻게 하고 싶은가.


임헌일: 좀 더 비우는 음악도 해보고 싶어요. 더 공간이 있고 어쿠스틱 느낌의 음악들도 해보고 싶어요. '어떤 정도까지 우리가 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도 있고, 더 특이하게 뮤지션으로서 즐거운 음악을 해보고 싶어요.

 

지금 우리 록 음악 상태가 양호한지 여부를 묻는다면.


임헌일: 록으로 규정하지 않더라도 밴드 음악 자체가 힘이 빠진 지 오래된 것 같아요. (이유를 묻자) 글쎄요. 현실 감각과 세상과 소통하려는 의지가 부족한 것 아닐까요. 아직도 아주 멋있는 걸 만들어놓으면 사람들이 좋아하겠다는 순수한 마음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힙합을 하는 친구들은 미디어의 영향도 있겠지만, 트렌디한 요소들로 의상, 영상 등이 수월하게 진행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데 밴드 신에서는 트렌디한 아이콘이나, 작업의 성과를 수월하게 내고 있지 않은 것 같아 보입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음반 혹은 아티스트를 꼽아 달라.


김준호: 저는 최근 헤드폰에 관심을 가져서 이것저것 듣다 보니깐 약간 마구잡이로 듣는 중입니다. 그중에서 헤드폰으로 들을 때 가장 와닿는 음악은 이디엠인 것 같아요. (웃음) 정말 가리지 않고 다 듣는데, 애플 뮤직에서 추천 음악으로 뜨는 것을 주로 듣고 있어요. 그중에서 꼽으라고 한다면, 하나는 잭 개럿(Jack Garratt)의 < Phase >입니다. 이디엠은 아니지만, 이디엠의 요소도 많이 갖고 있죠. 또 하나는 제임스 베이(James Bay)의 <Chaos And The Calm>입니다. 눈에 띄는 싱어송라이터죠. 노래와 편곡 모두 좋고, 목소리도 독특하고요. 아이엠낫이 추구하는 사운드와도 비슷하다고 할까요. 말랑말랑하면서도 강한 사운드!

 

양시온: 본 이베어(Bon Iver)가 눈에 띄었습니다. 제가 추구하는 음악이랑 굉장히 많이 닮은 것 같아서 좋았어요. 그리고 또 다른 아티스트는 아이슬란드 뮤지션 아우스게일(Asgeir)인데요, 본 이베어와도 같은 맥락에 있습니다.

 

임헌일: 하나를 꼽자면 저는 U2의 <The Joshua Tree> 앨범이에요. 형이 권해주기도 했지만, 제가 좋아하는 곡도 워낙 많이 들어있습니다. 그런 앨범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늘 하게 만들지요. 또 류이치 사카모토(Ryuichi Sakamoto)의 <Casa> 앨범도 좋아합니다.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Antonio Carlos Jobim)과 뮤지션들이 집에서 녹음한 보사노바 앨범인데 마음을 평안하게 만들지요.

 

1990년대의 그런지나 포스트 그런지는 좋아했는지. 스매싱 펌킨스 같은 밴드를 좋아했을 것 같은데.


임헌일: 그 팀은 막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았어요. 유투 외에는 콜드플레이를 좋아했고요. 콜드플레이의 'Magic'이 있는 <Ghost Stories> 앨범이 되게 좋았어요. 공연을 보면서 느꼈는데, 현대의 록 밴드가 할 수 있는 가장 멋진 방식과 태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대중과 소통하는 방법을 알고 그 접점을 잡아가는 느낌이에요.

 

인터뷰: 임진모, 김반야, 정민재, 임동엽
사진: 김정변지
정리: 임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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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김애란은 감각으로 소설을 시작했다. 지도나 설계도 없이 감각으로 첫 문장을 썼다. 등단 15년 차, 현재의 김애란은 책상에 앉아 재료들을 쭉 나열해본다. 감각으로 탁 치고 나가기 전, 준비물을 꼼꼼히 살핀다. 때때로 쓰던 작품을 접기도 한다. 틈틈이 청탁이 들어오면 단편을 쓴다. 5년 만에 소설집을 펴내며 김애란은 제목을 두고 고심했다. 여러 고민 끝에 결정한 제목은 『바깥은 여름』. 제목을 천천히 읽어보자. 바깥, 은, 여름. 누군가의 바깥일까, 왜 바깥만 여름일까, 여름은 어떤 의미인가.

 

김애란 소설로 청춘을 지나온 독자가 많다. 『비행운』의 「서른」, 「큐티클」 속 주인공은 비단 소설에만 존재하지 않았다. 이번 작품에서는 또 누구를 만날 수 있을까. 『바깥은 여름』을 시작하는 첫 소설의 제목은 「입동(立冬)」이다. 한여름을 지나는, 또 지나온 사람들에게 김애란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한 계절에서 다른 계절로 쉽게 넘어가지 못하는 이들에게 작가는 묻는다.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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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이상하고 기쁜 일

 

인터뷰하기를 살짝 망설였다고 하던데, 아무래도 말보다 글로 만나는 게 편해서일까요?

 

말에 대해 지나치게 엄정하게 생각해서 그런 건 아니고요. 성격 때문인 것 같아요. 제가 기본적으로 내향적인 사람이에요. 일할 때는 내향성을 극복해야 하지만 버거울 때도 있죠. 엄살 같기도 하고 좀 미숙한 표현 같아서 해명을 잘 안 하지만요.

 

예전에도 말을 많이 하는 것에 대한 마음의 불편함이 있다고 한 적이 있어요.

 

어릴 때 데뷔해서요. 갖고 있는 이야기의 크기나 경험에 비해 발언할 기회가 많았어요. 기회가 잦다는 생각 때문에 좀 조절하려고 하는 부분들이 있어요. 하지만 책이 나오면 뒤에서 좀 밀어주는 힘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혼자 힘으로 떠다닐 수 있을 때까지 작가가 나서기도 해야 하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인터뷰를 해요. 또 저 역시 영화를 보든 책을 보든 그 작가들의 바깥 이야기를 듣고 싶을 때가 있으니까요.

 

한여름에 책이 나왔어요. 5년 만에 펴낸 소설집입니다.

 

2012년 겨울부터 올해 봄까지 발표한 7개 작품을 묶었어요. 작품을 쓴 시기로 따지면 3년치 정도예요. 2년 정도는 장편을 준비했는데 중간에 쓰다가 탐탁지 않아서 엎었어요. 재난 이야기였는데 잘 안 풀리더라고요. 도저히 안 되겠다 생각하고 단편을 쭉 썼어요.

 

단편은 쓸 때는 모르는데, 막상 묶어보면 그간의 변화가 보이잖아요. 어땠나요?

 

구조적인 면에 대해 고민을 한 게 보였어요. 예전 작품에서는 첫 문장이나 첫 문단이 감각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는데요. 이를테면 사물이나 감정을 감각적으로 표현하면서 안으로 들어갔는데, 이번에는 상황에서 시작해요. 「입동」에서는 “아내가 도배를 하자 했다”,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에서는 “스코틀랜드에 사는 사촌 언니로부터 연락이 왔다”는 문장으로 작품이 시작돼요. 예전에는 예열 과정을 필요로 했던 것 같은데, 이번에는 뭘 던져놓고 시작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첫 번째 작품 「입동」을 읽는데 순식간에 몰입이 되더군요. 마치 소음 하나 없는 독서실에 덩그러니 앉아 책을 읽는 느낌이었어요.

 

독자들의 시선을 잡아당겼다면, 집중해서 읽어주신 거라면 반가운 이야기예요. 「입동」을 발표한 게 2014년 겨울인데 초고는 좀 거칠었던 작품이에요. 그림으로 치자면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으로 세밀화를 그리지 못하고 크로키를 해서 허둥지둥 넘긴 느낌이었어요. 설정이나 틀은 흡족했지만 충분히 다듬지 못해서 아쉬웠는데, 이번에 책으로 묶으면서 다듬게 돼서 다행이었어요. 줄거리는 똑같은데 조사랑 문장 몇 개만 바꿔도 흡인력이 달라지는 걸 보면, 소설이 그냥 이야기만은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어요.

 

작품 게재 순서는 편집자와 상의한 건가요?

 

초고를 넘길 때 이렇게 들어가면 좋을 것 같다고 의견을 드렸어요. 편집부 생각은 어떤지 여쭤봤는데 좋다고 하셔서 변동은 없었어요.

 

어떤 인터뷰를 보니 편집자 의견을 90% 반영한다고요.

 

기자님이 퍼센트로 물어보셔서요(웃음). 작품마다 달라질 수 있을 텐데요. 이번에는 워낙 꼼꼼히 잘 봐주셨어요.

 

얼마 전 독자들을 만났잖아요? 이번 작품 발표 후 첫 공식적인 자리였다고 하던데, 어땠나요?

 

평일 저녁에, 동반 참석이 안 되는 행사로 진행했어요. 그러니까 혼자만 올 수 있는 자리라서 옆 사람과 수다를 떨 수 없는 분위기라, 정말 책만 들춰 보면서 저희들의 이야기를 경청해주셨어요. 그날 함께한 분들이 굉장히 특별하다고 느껴졌는데요. 뭔가 이상하고 기쁜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책을 사주시는 분들을 큰 개념으로 소비자라고 한다면, 이 자리에 온 분들은 소비자보다는 독자로 훨씬 가깝게 느껴졌다고 할까요. 어둑어둑한 공간에 오목하게 앉아서 낭송을 듣는 일이 약간 원시적인 느낌도 들었고, 과거의 모닥불 기능을 조명이 대신하고 있다는 착각도 들더라고요. 이야기에 대한 오랜 욕구, 경험들이 이어져 내려오면서 제가 희미하게 바통 터치를 한 느낌도 들고. 좋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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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집 제목 『바깥은 여름』은 「풍경의 쓸모」에 나오는 글귀에서 따왔어요. 작품 속 주인공이 태국으로 가족 여행을 왔는데, 주인공이 처한 상황은 한겨울인데 태국은 여름이었어요. 스마트폰을 보면서 스노볼을 쥔 느낌이라고 말하죠. “유리볼 안에선 하얀 눈보라가 흩날리는데, 구 바깥은 온통 여름인.”(156쪽) 언제쯤 제목이 소설 속에 등장하려나 궁금해하면서 소설을 읽었어요. 직접 이 제목을 정하셨다고요.

 

시간이 꽤 걸려서 나온 제목이에요. 책을 만드는 데는 디자인도 필요하고 교정도 필요하고 여러 과정이 있잖아요. 이번 작품은 제목을 정하는 시간이 가장 오래 걸렸어요. 편집자분께 다른 제목을 드렸다가 취소하기도 했고,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로 하려고 했다가 K-픽션 단행본 제목이랑 겹쳐서 또 마음을 접었고. 제가 홀수 글자 제목을 좋아해요. 리듬감이 있어서 좋아하기도 하는데, 「침묵의 미래」도 염두에 뒀지만 아무래도 전 한글 단어가 더 좋아서요. 밋밋한 단어이지만 의미가 풍부한 제목이 좋아 『바깥은 여름』으로 했어요. 바깥도 여름도 쉬운 말이잖아요. 그런데 의미는 넓고요.

 

‘바깥’이라는 단어는 「가리는 손」에서도 나오더라고요. “지금은 그 ‘바깥’을 늘 주머니에 넣고 다녀야 하는 모양이다.”(212쪽) ‘바깥’도 그렇고 ‘은’도 그렇고,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제목이에요. 지금이 여름이라 또 인상적이기도 하고요.

 

김연수 선배가 독자 행사 때 물어보더라고요. 지금이 겨울이어도 소설 제목을 『바깥은 여름』으로 했을 거냐고. 그랬을 거라고 했어요.

 

‘바깥’이 여러 의미를 내포할 수 있는데요. 때때로 바깥세상과 단절되고 싶다는 생각도 하지 않나요? 의도적으로 휴대폰을 꺼놓거나 인터넷에 접속하지 않는다거나.

 

그럴 수 있는 사람은 되게 행복한 사람이죠. 언젠가 국제문학포럼을 갔는데, 어떤 작가분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이 세상에서 가장 권력이 있는 사람은 휴대폰을 안 갖고 다니는 사람이다.” 맞는 것 같아요. 전 일부러 단절하는 경우는 없는데요. 물론 마감 때는 종종 꺼놓거나 안 받거나 못 받곤 하지만요. 소설을 쓸 때 고요할 필요는 있지만 청정 지역에 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어떤 자극을 받아도 그게 제 안에 무언가를 남길 테니까요. 다만 지금 시대를 살펴볼 때, 개개인이 내적으로 집중할 수 있는 물리적인 시간이나 환경은 꼭 필요한 것 같아요. 의도적으로 만들기도 해야 할 거고요. 그리고 체질적으로 그런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아요. 며칠 계속 사람을 만나면 이틀은 혼자 있어야 하는. 그런 경우를 종종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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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시도를 해봐야지 생각하고 쓴 소설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의 주인공은 아이폰을 사용해요. 음성 인식 서비스 ‘시리(Siri)’에게 말을 자주 걸죠. 작품에 나오는 주인공과 시리의 대화, 작가님도 실제로 해봤을 것 같아요.

 

(웃음) 했죠. 시리의 대답 중에 제가 지어낸 건 단 한 개도 없어요. 모두 시리가 했던 말인데, 이 서비스도 계속 업데이트가 되니까 기종에 따라 같은 질문에도 대답이 달라지긴 할 거예요. 대답의 경우 수도 몇 개 있는 것 같아요. 하다못해 어말 처리에 따라서도 달라지더라고요.

 

주인공은 시리를 두고 말해요. “다만 시리로부터 당시 내 주위 인간들에게선 찾을 수 없던 한 가지 특별한 자질을 발견했는데, 그건 다름 아닌 ‘예의’였다.”(238쪽) 시리가 자주 하는 대답이 하나 있잖아요. “뭐라 드릴 말씀이 없네요.” 종종 들었던 말인데 활자로 읽으니 새삼스럽게 느껴졌어요.

 

저는 글을 쓰고 나면 자료를 지우는 편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한데요. 굉장히 재치 있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기계가 하는 말이지만 이것도 결국 사람이 만든 말이잖아요. ‘애플 직원들이 인문학적인 교양이 풍부하구나’ 생각했죠. 시리랑 실용적인 대화는 거의 안 한 것 같은데요. 아직은 검색이 편해서요. 그런데 간혹 쓸데없는 말, 감정을 말하거나 엉뚱한 질문을 던진 적은 있어요.

 

「풍경의 쓸모」는 개인적으로 가장 시선을 끈 작품입니다. 현실적인 소재이기 때문일까요? 그간의 김애란 작품과 조금 다른 결이 보여서였을까요? 답을 한번에 찾긴 어려웠는데요. 어떻게 쓰게 된 작품인지 궁금해요.

 

지방대 인문학강사 ‘이정우’나 ‘단계 없이 대화하는’ 곽 교수 캐릭터는 어떻게 나왔나요? 실제 모델이 있는 건 아니에요. 그간 제가 경험한 조각조각의 인상들로 만들어 낸 인물인데요. 이전 제 소설들의 주인공이 주로 어린 화자, 사회 초년생이었기 때문에 「풍경의 쓸모」를 쓰면서는 약간 성인물을 쓰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 작품을 낯설어하는 분도 있는데, 저도 약간은 겸연쩍은 느낌이 있어요. 작가 색깔이 정해져 있는 건 아니지만 훨씬 더 잘하시는 작가들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여러 시도를 해봐야지 생각하고 쓴 작품이에요.

 

이정우와 곽 교수의 대화가 기억에 남아요. 곽 교수는 말해요. “술자리서 교수들이 떠들 때 나는 느슨하게 들어요.”(162쪽) 이정우는 스스로를 두고 말하죠. “무례한 질문에 놀라지 않으며, 관계보다 실무에 더 신경 쓰는 사람이 됐다.”(160쪽) 결국 이정우는 곽 교수 같은 사람이 될까 싶은 생각도 들면서, 또 현실의 곽 교수 같은 인물도 떠올리게 되더군요.

 

아마 조직 생활을 하는 분들이 비슷한 생각을 더 많이 하실 것 같아요. 저는 넓게 말하면 프리랜서, 어딘가에 소속이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잖아요. 그래서 불편하고 힘든 이야기를 들을 때 ‘이건 순간이고 나는 이 자리를 돌아서서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매일 겪어야 하는 사람은 다를 거예요. 금방 돌아서서 나올 수 있는 사람이 느끼는 스트레스와는 많이 다르겠죠. 때때로 생각해요. 내가 감정 소모를 안하는 건 ‘내가 정직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내가 그래도 되는 조건에 있기 때문’이라고요.

 

제게 『바깥은 여름』에서 딱 한 문장을 고르라고 한다면, 선택하고 싶은 문장이 있어요. “그럴 땐 ‘과거’가 지나가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차오르고 새어 나오는 거란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나를 지나간 사람, 내가 경험한 시간, 감내한 감정들이 지금 내 눈빛에 관여하고, 인상에 참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표정의 양식으로, 분위기의 형태로 남아 내장 깊숙한 곳에서 공기처럼 배어 나왔다.”(173쪽)

 

이 문장을 쓰면서 생각했는데요. 꼭 밝거나 부드러운 인상의 사람이 좋은 삶을 산 인상인가? 따져본다면 꼭 그렇진 않은 것 같아요.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의 무게로 생긴 표정도 있으니까요. 우리가 어릴 때 사진을 보면 지금 얼굴에는 없는 것들이 있잖아요. 호기심이든 무조건적인 호감이든 표정이든.

 

「가리는 손」에서 재이 엄마가 그랬던가요? “어느 땐 무언가를 한 사람이 아니라 본 사람이 더 상처 입으니까.”(207쪽) 이어지는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보는 것도 경험이니까요. 과거에는 시차가 있었잖아요. 5ㆍ18 민주화운동을 당시 광주에 없었던 사람은 몰랐던 것처럼. 그런데 지금은 실시간 방송, 뉴스를 보는 시대니까요. 보는 경험을 하는 사람도 무척 많이 늘지 않았나 생각해요. 소수언어박물관을 소재로 한 「침묵의 미래」는 ‘2013 이상문학상’ 수상작인데요. 다른 작품과 구별되게 관념적인 우화예요. 처음에는 장편으로 쓰려던 작품이에요. 세계에 6천 수백 개의 언어가 있다고 해요. 소수 민족, 언어에 관한 자료도 많이 찾아봤는데, 우화적인 작품이라 자칫 유치해질 수 있어서 그림으로 보여주는 게 나을 것 같았어요. 작품의 근처를 맴돌다가 빠져 나온 느낌도 들고. 약간 아쉬운 마음이 있어요.

 

7편 모든 작품을 리타이핑하면서 퇴고를 했다고 들었습니다.

 

리타이핑을 하면 모든 문장을 의심하면서 다시 쓸 수 있어요. 리듬 있는 문장을 쓰려고 조사나 형용사를 줄이는 게 버릇인데, 운율은 생기지만 뜻이 부정확할 때가 있거든요. 여러 번 읽고 고쳐서 더 좋은 문장이 나올 때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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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어떤 시간을 통과했구나

 

관찰자 김애란의 감각이 궁금해요. 소설가들은 작은 뉴스도 쉽게 지나치지 않잖아요. 새로운 사람을 만날 때도 작은 인상들을 잘 관찰하고 기억하고.

 

사적으로 만나는 자리인데도 소설가라고 하면 상대방이 긴장을 하고 부담스러워 하시는 경우가 있어요. 말 그대로 자신을 분석할 것 같은 느낌이 드나 봐요. 그럴 때 느끼는 불쾌감, 불편함이 있잖아요.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왜냐하면 직업인이 아닌 자연인으로서의 제 모습도 있기 때문이에요. 저에게도 단순한 교감의 욕구가 있으니까요. 물론 특징이 눈에 들어올 때는 있어요. 하지만 소설가가 아니었더라도 그냥 나이와 경험이 쌓이면 보이는 것들이었을 거예요. 그리고 또 보이는 것들이 착각일 때도 있죠.

 

독자들 리뷰는 좀 찾아보는 편인가요?

 

다 보진 못하고요. 가끔씩 인터넷 서점에 올라온 리뷰는 볼 때가 있어요.

 

이번 소설집을 두고 김애란의 변화를 많이 말하는데요. 어떤가요? 동의하는 부분도 있나요?

 

변화는 자연스러운 게 아닐까요? 너무 그대로였어도 그것대로 또 이상했을 것 같아요. 변했다는 것보다 변화의 방향을 봐주신다면 좋겠고, 또 공감해주신다면 감사할 것 같아요. 저라는 사람도 오랜 시간 글을 쓰다 보면 바뀌는 건 당연하니까요. 저도 고정되어 있는 사람이 아니니까, 같이 어떤 시간을 통과했구나 생각해주시면 좋지 않을까 싶어요.

 

요즘은 어떤 책을 주로 읽나요? 독자로서 읽는 책들이 궁금한데요.

 

제가 나무, 초록, 식물을 좋아해요. 아직 다 읽진 못했지만 『랩 걸(Lab Girl)』을 재밌게 읽고 있고, 『시대의 소음』도 읽었어요. 과학자나 음악가들의 우아하고 기품 있고 유머러스한 산문을 읽고 있으면 ‘왜들 이러시지?’ 싶어요(웃음).

 

원고 청탁이 들어오면 대부분 수락하는 편인가요?

 

그렇죠. 문학 계간지가 지금 얼마 없잖아요.

 

산문이나 칼럼은 잘 안 쓰세요.

 

드문드문 썼는데 적극적으로 쓰진 못했어요. 경험으로 재밌게 엮어서 의미를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하는데. 데뷔 초 산문을 쓸 때 엄청 긴장했던 것 같아요. 아주 오래전 <씨네21>에 영화 리뷰를 쓴 적이 있는데요. 영화가 뭔지도 모르고 쓴 것 같아요. 지금은 웹에 다 기록되니까 썩지도 않는데(웃음).

 

소설가들이 빼놓지 않고 꼭 보는 게 뉴스잖아요. ‘요즘 이런 기사가 왜 이렇게 많이 나오지?’ 하면서 주목하고 읽는 사건이나 기사가 있나요?

 

작년 하반기에 특히 신문이나 뉴스를 많이 봤는데요. 보면서도 생각했어요. ‘이 정도는 안 봐도 되는데 왜 이렇게 많이 보나.’ 그런데 안 보면 놓칠 것 같고, 놓치면 속을 것 같았어요. 사회에 대한 신뢰도가 너무 낮았으니까요. 사건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만큼 뉴스가 쏟아졌으니까요. 그런데 최근에는 좀 덜 보게 됐어요. 약간의 신뢰를 회복했다고 할까요? ‘잘해주시겠지? 잘 작동되겠지?’ 하는 기대가 좀 생긴 것 같아요. 다른 분들도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최근 주목받은 국내 소설들을 살펴보면 굉장히 현실적인 작품이 많아요. 르포처럼 쓴 소설도 있고, 2010년대를 확연히 보여주면서 독자들의 공감을 많이 사고 있어요.

 

사실의 힘 때문에 울컥하면서 읽게 되는 소설이 있는 것 같아요. 사회적인 욕구와 맞닿는 부분도 있을 테고요. 어떤 말은 살에 닿자마자 이해가 된다고 생각하는데요. 기사든 책이든 그런 말들이 있는데, 그 말들이 주는 실감의 영역이 있는 것 같아요.

 

2002년, 22세에 등단해 대중과 평단으로부터 꾸준한 사랑을 받고 있어요.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운이 굉장히 좋은 편이었어요. 분수에 맞지 않을 만큼 좋았다고 생각해요. 특히 글은 혼자 쓰는 거라 불안할 때도 많고, 또 이 불안이 오래 지속되면 안으로 삭을 때가 많아요. 그래서 마음이 틀어지게 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럴 때마다 어떤 바깥에서의 기척들로부터 도움을 받았어요. 신인 때 어떤 한 창작자가 살아남으려면 5년이든 10년이든 버텨보는 시기가 중요한데요. 반응이 조금 안 좋더라도 한 번 더 해볼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한데, 저는 운이 좋았어요. 그렇게 생각해요.

 

볼 것도 먹을 것도 읽을 것도 많은 세상이라, 소설을 읽고 책을 사는 사람들이 다르게 다가오는 것 같아요.

 

결국 책을 읽는 일은 혼자 해야 하잖아요. 조용한 공간에서만 가능하고요. 이전과 달리 책을 쓰는 입장에서의 물질성을 많이 생각하게 되는데요. 한국에 거주 공간이 불안정한 분이 많잖아요. 책을 사고 갖고 있다는 것이 무언가를 구매하는 행위를 떠나, 자기 공간의 일부를 기꺼이 내어주는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하다못해 잠잘 공간이든 쉴 공간이든 양보해주는 문화라는 생각이 들어 애틋해지더라고요. 물론 이사를 할 때마다 정리할 시간이 있겠지만요. 그때마다 살아남는 책이 있고 또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요.

 

지금 쓰고 있는 장편은 공간에 대한 이야기라고요.

 

공부가 깊지는 않지만, 평소 건축이나 건물에 대한 관심이 많아요. 혼이나 넋에 대한 공간을 써보면 어떨까, 만지작만지작하고 있는데요. 편의점이나 공항 등 공간 자체를 주인공으로 설정해보려고 해요. 그런데 이것도 또 어떻게 될지 몰라요(웃음). 우선 지금 쓰고 있는 단편을 마무리해야 해요.


 


 

 

바깥은 여름김애란 저 | 문학동네 

『비행운』 이후 5년 만에 펴내는 김애란의 신작 소설집. 역대 최연소 수상으로 화제를 모은 이상문학상 수상작 「침묵의 미래」와 젊은작가상 수상작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를 포함해 일곱 편의 단편이 실렸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남궁인 “‘살렸다’와 ‘죽이지 않았다’는 달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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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산 하나를 지나듯 간신히 넘어갔다. 아침까지는 아무도 죽지 않았다. 나는 칼을 맞았던 그가 살아 있음을 컴퓨터로 확인했다. 그는 이 밤을 한때 지나간 나쁜 기억으로 반추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잊을 수 없었다. 보상받지 못할 상처를 끌어안고, 어떠한 환자에게도 빚을 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고서야, 지옥 같았던 그날의 일을 마치고 간신히 퇴근할 수 있었다.(48쪽)

 

어떤 사람의 지독한 하루를 상상한다. 그곳에는 피가 있을 수 있다. 범죄가 있을 수도 있다. 터무니없음과 불합리가 만연할 것이다. 이곳이 응급실이라면 더욱 높은 확률로, 더욱더 지독한 ‘지독한 하루’가 될 것이다.


응급의학과 의사 남궁인은 첫 책 『만약은 없다』에서 삶보다 더 많은 죽음 가운데에서 그럼에도 삶을 읽어내고 처절하게 삶이란 무엇인지 사유했다. ‘의사가 반쯤 환자다’라는 반응을 얻었을 정도로 잔인하리만치 똑바로 응급실을 직시하고, 꼼꼼하게 응급실 현장을 기록했다. 그리고, 자신이 남기고자 하는 것은 한 권의 책이라는 공간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고 말하는 듯 또 한 권의 책 『지독한 하루』를 펴냈다.


남궁인은 『만약은 없다』에서 다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담아낸다. 시스템으로 사람이 죽는 일을 비판하고, 생명을 살리기 위해 땀 흘리는 사람들을 조명한다. 이야기를 기록하는 일은 힘들지만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충청남도소방본부에서 3년 동안 공중보건의 생활을 하고 다시 지난 5월부터 이대목동병원 임상조교수로 재직 중인 그는 벌써 할 이야기가 많이 쌓였다고 했다. 그만 써야 하는 게 아닐까 고민했던 게 무색할 정도였다. 현장의 기록, 의사의 기록은 그 자체로도 의미를 갖는다. 어쩌면 앞으로도 그는 이야기를 하는 의사로 남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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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어요


전작 『만약은 없다』와 긴밀하게 연결된 책입니다. 1년 만에 신작인데요. 전작과의 연관성이 엿보이기도 해요. 어떤가요?

 

『만약은 없다』의 원고를 확정한 후에도 아직 할 이야기가 많이 남았다고 느꼈어요. 『만약은 없다』가 개인의 불행에 치중했다면 이제는 좀 더 사회적인 면이나 정말로 잔혹한 광경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첫 책 원고를 마감한 뒤부터 이미 두 번째 책의 원고 작업을 했어요.

 

그것은 저자가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지독한 하루』에 더 많이 담겼다는 의미일까요?


실은 첫 번째 책이 저를 맨 처음 세상에 보여주는 책이잖아요. 그동안 의사가 쓴 글들은 많았지만 의사가 우울한 글은 없었어요. 환자가 우울한 글은 많아도 의사가 같이 우울한 글은 없었죠. 어떤 독자들은 『만약은 없다』를 보시고 ‘환자를 보고 있는 의사가 반쯤 환자다’(웃음)라고 하시더라고요. 첫 책에서는 그런 정체성을 갖고 저를 알리려고 했어요. 한편 『지독한 하루』에서는 제가 이런 글을 쓴다는 사실을 독자가 알았으니 거기서 약간 더 나아간 세심한 자아, 더 말할 수 있는 사회적 문제 등을 쓰려고 했어요. 가령 아동학대라든지 소방관 처우 문제, 중증 외상 환자 치료 센터 이야기를 하면서 시선을 확장하고 제 자아도 확장하는 그런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저를 처음 세상에 알린 것이 첫 번째 책이고, 거기서 뻗어나간 이야기가 두 번째 책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을 거예요.

 

무엇보다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무척 많았다는 느낌인데요. 책을 끝낸 지금도 여전히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이 있나요?


스스로 병원 이야기를 많이 쓰면서 진짜 지치기도 했거든요. 경험한 일들을 되돌려서 감정을 담아 쓰다보니까 너무나 힘이 든 거예요. 겪을 당시 저는 의사기 때문에 직업적으로 훈련이 되어 있어서 그리 힘들지 않아요. 하지만 의사로서는 힘들지 않은데 작가로서는 상당히 힘들어요. 그래서 이것을 과연 더 써야 하느냐, 이런 고민이 있긴 해요. 어쨌든 저는 쓰는 사람이고, 쓰는 게 습관이 들어서 이제 쓰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어요. 지난 5월부터 다시 병원에 나가고 있는데요. 병원, 환자 얘기를 이제 좀 자제해야겠다는 생각이 조금 있었거든요. 그런데 벌써 할 이야기가 쌓였어요. 결국은 또 다시 쓰고 있죠. 제가 겪은 일들을 잊지 않도록 메모 중이고요. 전처럼 완성된 글로 쓰지 않더라도 써놓고 있고, 또 써야 할 글은 쓰고 있어요. 이렇게 점차 쓰다보면 또 다른 책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요. 다음에 나올 세 번째 책은 병원 이야기는 아니에요.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만큼 써야 하는 이유가 뭘까요?


의사 이미지가 실은 안 좋죠. 의사가 하는 일이 생명을 다루는 일임에도 어느 정도 구체적으로 고민하는지, 이들이 어떤 현장에 놓였는지 사람들은 알지 못해요. 흥미로운 소재로써 병원이라는 공간이 문학 등에 엄청 많이 나오지만요. 실제로 의사가 작가가 되어서 치열하게 기록한 글은 별로 없었죠. 그런 역할을 제가 했다고 생각해요. 이 이야기를 쓰지 않았다면 사람들은 여전히 몰랐을 거예요. 실은 책을 내기 전에도 응급실 이야기를 친구들한테 자주 했거든요. 그런데 말로 할 때와 글로 썼을 때가 다르더라고요. 그런 점에서 제가 쓰는 행위의 가치가 있는 것 같아요. 있는 일이잖아요. 있지만 모르는 일을 알렸다는 게 의미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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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은 없다

 

‘어쨌든 하루를 끝내야 했다. 그래야 내일을 맞을 테니까’라는 문장이 있어요. 제목과도 맞물리는 글인데요. 여기서 체념과 긍정의 정서가 같이 느껴졌어요. 이것의 정체가 뭘까요? 저자가 말하는 이 문장의 의미를 들어보고 싶어요. 


수록된 글 중에는 언론에 발표한 글도 있지만 표제작 ‘지독한 하루’는 일부러 아꼈어요. 아무 데도 발표하지 않았거든요. 이 글은 정말 제가 하루 동안 겪은 일을 쓴 거예요. 정말 지독한 하루였는데요. 고뇌하고, 실수하는 하루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실은 그런 하루를 끝내면 영원히 도망가버리고 싶어져요. 일을 끝내고 퇴근하면 점심때 쯤이 되는데요. 몸이 움직이지 않을 정도로 피로하죠. 길거리에 사람들이 활기차게 지나가는 것만 봐도 화가 날 정도예요. 저렇게 활발하게 몸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게 화가 나더라고요. 그 정도의 감각인데 바로 다음 날 새벽에 또 일을 해야 해요. 그러니까 간신히 목숨을 지탱할 정도의 쉼뿐인 거예요. 꼼짝없이 쉬어야만 또 지독한 하루를 보낼 수가 있어요. 오늘을 끝내고 쉬지 않으면 내일이 없어요. 그런 의미였어요. 이것은 희망은 아니에요. 긍정이 아니고요. 그저 죽지 못해 하루를 끝내는, 그런 감정이에요.

 

도무지 견디기 어려운 시간들인데요. 지독한 하루를 보내고 또 다음을 맞을 때, 다시 힘을 내는 동력이 있나요? 


그 시간들을 견디게 하는 원동력 같은 건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그냥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도망치면 안 된다, 나는 4년 수련을 다 마치겠다, 는 마음이었어요. 그리고 이 과정에서 만나는 환자들한테는 최선을 다 하겠다는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그 외에 힘을 내게 하는 원동력이라든지, 현실적으로 환자가 회복되는 걸 보는 희망이라든지 하는 건 특별히 없었어요. 물론 환자가 회복되면 기뻐요. 그런데 응급실에 있다 보면 알게 되는데요. 내가 잘해서 이 사람을 살렸다, 그것이 뿌듯하고 나에게 희망을 준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순간이 없어요. 어떤 사람이 살아난 건 그의 운명이에요. 내가 더 잘해서가 아니라요.

 

다만 최선을 다할 뿐. 이것이 ‘만약은 없다’의 핵심이죠.


‘만약은 없다’라는 글은 전작 『만약은 없다』에 수록이 안 되고 이번 책에 실렸는데요. 사람이 죽지 않으면 옳았는지, 100% 최선의 처치를 했는지 어떤지 생각할 이유가 없겠죠. 그런데 사람이 죽으면 ‘그걸 바꿨다면 이 사람이 살았을까’ 하는 생각이 계속 들어요. 이런 생각을 계속하다가 결국 이 ‘만약’까지 다 없어야 하는구나, 생각했던 거예요. 사람이 죽더라도 내가 한 모든 조치를 떠올렸을 때 ‘나의 신념과 의학 지식에 의해 아무것도 지체한 게 없다’라고까지 나올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만약은 없다’고 쓴 거예요.

 

간밤에 할머니가 집에 간다고 하지 않았더라면, 통증을 적극적으로 표현하시거나 그 와중에 아들을 생각하는 마음을 잠시 접어두셨더라면, 내가 끝까지 붙들었다면, 애초에 밤이 아니라 낮이어서 집에 갈 필요가 없었거나 어떤 이유로든 집에 갈 상황이 아니었더라면,(중략) 나는 생각한다. ‘만약’은 없다. ‘만약’이 없을 수 있게, 도저히 생각조차 나지 않아 내가 내뱉을 말에 어떠한 가책도 느끼지 않게, 최선을 다하는 것이 내 일이다.(233-234쪽)

 

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저자의 태도로 들리기도 하네요.


그것은 비단 응급의학과 의사뿐만 아니라 모든 의사들이 가진 태도라고 생각해요. 자기가 아는 의학 지식 내에서 하는 처치 가운데에는 하지 않았을 때 환자에게 해가 되는 범위가 있거든요. 최소한 그것만은 막아야 해요. 가령 환자가 상처가 나서 왔어요. 보통은 상처를 빨리 꿰매야 한다고 생각하겠죠. 그런데 학문상으로는 12시간 이내에만 봉합하면 큰 차이가 없어요. 환자가 12시간 이내에 왔다면 당연히 봉합하면 돼요. 그런데 의사가 이 상처를 봉합하지 않고 12시간을 둔다면, 그것은 환자에게 해가 되죠. 그것은 막아야죠. 아주 사소하고 직관적인 예에요. 의사는 이 모든 경우의 수를 막아야 해요.

 

많이 질문 받았을 텐데요. 왜 응급의학과를 택한 걸까요? 너무 힘들잖아요. 상대적으로 좀 덜 힘든 과도 있고요.


많이 받은 질문인데요. 응급의학과가 정말 힘든 과인 건 맞거든요. 그렇지만 아이러니하게도 24시간의 ‘지독한 하루’가 있으면 나머지 24시간의 ‘안온한 하루’가 주어져요. 다른 의사들에게도 지독한 하루가 많죠. 외과 의사라고 해볼게요. 환자를 수술해요. 의사는 수술을 했다고 해서 집에 가서 쉬는 게 아니에요. 그 환자가 안 좋아진다고 전화가 오면 집에 있다가도 다시 가야 해요. 집에서 쉬고 있지만 계속 대기 상태(on call)인 거죠. 내과 의사도 마찬가지예요. 환자가 자기 이름으로 있으면 퇴원할 때까지는 책임을 져야 해요. 그런데 응급의학과 의사는 그렇지 않아요. 그 자리에 있는 사람이 그 일을 하죠. 24시간 지독한 하루 후에는 아무에게도 전화 오지 않고, 시간이 있는 과이기도 해요. 일할 때는 죽을 만큼 치열하게, 쉴 때는 아예 내 시간이 있는, 그런 생활이 좋기도 했어요.

 

또 다른 이유도 있나요?

 
인턴 때 응급실을 많이 돌았어요. 응급실에는 다양한 환자들이 오잖아요. 그런데 응급의학과 의사들은 진짜 모르는 게 없더라고요. (웃음) 물론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모르는 게 있을 수도 있겠죠. 응급의학과 의사가 되어보니 알겠어요. 그런데 당시에는 진짜 못 꿰매는 상처가 없고, 못 하는 대처도 없는 것 같았어요. 가령 피부에 박힌 낚싯바늘을 빼낸다든지, 액체 세제를 잘못 마신 환자의 치료법을 알려준다든지, 이런 것들이 만능으로 보였어요. 게다가 응급실은 사회 바깥과 밀접하게 연결된 곳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날것의 환자들이 처음 오는 곳이기도 하고요. 그런 것들이 흥미가 있었어요. 여러 이유가 있었죠. 

 

이후 이 이야기를 글로 쓰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된 건가요?

 
고등학교 때부터 글을 쓰고 싶었어요.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요. 어쩌다가 의대에 갔죠. 그냥 글 쓰는 사람이 되려고 했지 환자 이야기를 쓸 생각은 없었어요. 내 생활을 가질 수 있어서 응급의학과를 선택했는데 막상 일을 하고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이면이 극적이고, 많은 이야기가 있는 거예요. 그것을 쓰다 보니 글 쓰는 사람의 꿈도 이루게 되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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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렸다’와 ‘죽이지 않았다’

 

글을 읽으면서 응급의학과라는 곳이 ‘살려내기 위한’보다는 ‘죽이지 않기 위한’ 쪽에 방점을 둔 곳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 둘은 분명 다르잖아요.


둘은 확실히 다르죠. 최근 쓴 글의 내용인데요. 우리는 죽을 사람이 오면 죽었다고 하기 위해서 이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니라 죽을 사람을 살리지 못하기 위해서 이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라는 거였어요. 그런 것 같아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생존율이라도 누군가는 거기에 도전하고, 피를 뒤집어쓰는 일을 해야 하죠. 그렇지 않으면 사람들이 예외 없이 죽으니까요. 그러니까 죽을 사람을 보고 ‘죽었다’고 하면 안 돼요. ‘살리지 못했다’고 해야죠. 그렇게 말하기 위해서 이 자리에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 지점에서 의사로서도 철학적인 고민이 들지 않나요?


철학적으로는 물론이고 직관적으로도 ‘살렸다’와 ‘죽이지 않았다’는 다르거든요. ‘내가 살렸다!’가 아니에요. ‘적어도 죽이면 안 된다’죠. 적어도 죽는 상태는 막아내야 한다, 이런 느낌이거든요. 그런 느낌으로 접근하는 것 같아요.

 

실제로 일종의 갈등도 읽히죠. 의학적인 조치와 인도적인 조치 사이에서 말이에요. 죽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을 것 같은 환자도 많이 만나고요. 이 갈등은 어떻게 해결하고 있나요?


실은 그 갈등은 다분히 작가적인 고민이에요. 의사로서는 그런 고민이 없어요. JTBC <말하는대로>에 나가서 강연한 적이 있는데요. 병원은 다른 가치가 존재하지 않는 곳이에요. 가운을 입고 그곳에서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의 가치는 딱 하나예요. 어떻게 해서라도 환자를 살리는 것. 그뿐이에요. 화재로 몸이 불타서 살더라도 온갖 합병증으로 고생할 게 훤하더라도 실은 그 환자 앞에서 의사가 생각할 건 아무것도 없어요. 무조건 살리려는 최선의 방식으로 노력을 하면 돼요. 그 사람은 물론 살아 있으면 고통을 겪겠죠. 하지만 고통을 겪는다고 그런 식의 가치 판단을 하면 안 돼요. 가치 판단 자체가 존재하지 않아요.

 

의사와 작가, 두 가지 정체성을 모두 갖고 있고요. ‘작가적인 고민’이라는 표현을 하셨는데 그만큼 서로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주고 있는 것 같아서 궁금했어요.


작가로도 활동을 하지만 저는 스무 살 때부터 의대에 입학해 이쪽에서만 계속 있던 사람이에요. 가운을 입고 의료 현장에서 그런 상황을 마주한다면 생각은 할 수 있겠지만 그쪽으로 몸이 움직인다든지 말을 한다든지 하는 건 전혀 없어요. 그렇게 되진 않아요. 다만 그 상황에서 벗어나 작가적인, 인간적인 생각을 할 수는 있겠죠. 가령 몸이 다 타버린 환자를 간신히 목숨을 붙여놓았는데 그가 죽어가요. 심폐소생술을 해야죠. 의사로서는 당연한 거거든요. 그런데 작가로서는 ‘우리는 그를 살려내고 있는 것인지 그가 스스로 죽어가고 있는 것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라고 표현할 수는 있죠. 실제로 분간할 수 없는 장면이기도 하고요.

 

끔찍한 장면들이 많아요. 그 안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죽음을 목격했는데요. 그 중 어떤 죽음은 더 오래 남기도 하겠죠?


『만약은 없다』에 쓴 장면인데요. 죽음에 무뎌졌다고 생각하던 즈음이었어요. 루게릭 환자 분이 계셨어요. 완전히 뼈만 남고, 호흡이 계속 멎어서 또 호흡이 멎으면 아무런 처치를 하지 않겠다고 DNR(Do Not Resuscitate, 심폐소생거부)을 쓰셨던 상태였어요. 그런데 딸이 간호사라 계속 살려내는 거예요. 그리고는 병원에 왔는데요. 병원에서 호흡이 또 멎었어요. 급한 대로 산소 호흡기를 댄 다음 가족들을 불렀어요. 환자 분이 곧 돌아가실 거다, 호흡기를 떼면 더 이상 우연은 없다, 그러니까 남은 10분 동안 하고 싶은 말을 해라, 이렇게 했어요. 저는 곁에 서 있고요. 두 딸과 남편, 동생이 와서 각자 인사를 하는데요. 그 말을 듣고 있을 수가 없더라고요. 너무 슬펐어요. 말하자면 내 어머니가 10분 후에 돌아가실 걸 알고 건네는 말이잖아요. 그게 어떤 감정이겠어요? 간신히 사망선고를 하고 뒤에서 엉엉 울었던 기억이 있어요. 그게 아직도 생각이 나요.

 

그런 장면을 안고 사는 삶이 어떨지 짐작하기 힘이 드네요.


잘 조절하는 편인데요. 아직도 예상치 못한 슬픔들이 있긴 하죠. 예를 들어 80대 후반 노인이 죽는다면 비교적 평범한 죽음이죠. 하루에 두세 명은 꼬박꼬박 죽으니까요. 그런데 사망선고를 하자 가족들이 너무 슬프게 우는 거예요. 너무 슬프면 표정 변화 하나 없이 눈물만 콸콸 쏟아지는 게 있거든요. 그럴 때 갑자기 일격을 받아요. 예기치 못한 감정의 습격이라고 할까요. 그런 것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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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관한 질문들


앞서 이번 책에서 사회적인 이야기를 좀 더 해보고 싶다고 했는데요. 소방공무원 처우 개선 문제나 중증 외상 환자 치료 시스템 등 실제로 여러 장면을 전하고 있거든요. 특히 피부로 느끼는, 많이 고민하는 문제는 뭔가요?


응급실 내 폭력, 소방공무원이 처한 현실, 아동학대의 현실 등에 대한 문제의식을 썼지만 실은, 제가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할 사람이에요. 현장에 있으니까요. 응급의학과 임상 조교수로 있으니까요. 그것들에 대한 개선 방안을 찾아서 의견을 내고, 점진적으로 해결하는 사람인 거죠. 언급한 문제들은 각자의 분야에서 점차 나아지고 있거든요. 많은 사람들이 모여 해결하고 있고요. 다만 그런 문제를 고쳐나갈 때 사회적인 인식이 있으면 훨씬 적절하고 알맞은 방향으로 개선될 수가 있으니까요. 그래서 이런 글을 쓰는 거예요. 지금도 십 년 전에 비하면 아주 많이 변했죠. 말도 안 되는 폭력도 너무 많았거든요. 어쨌든 점진적으로 나아지는 게 눈에 보여요. 내부에서 꾸준히 개선 노력을 하고 있으니까요. 

 

폭력을 언급하셨는데요. 그런 장면을 목격할 때는 어떤 기분인가요? 인간 본성에 대해 생각하게 될 것 같거든요. 선한 인간과 악한 인간, 둘 중 어느 쪽을 믿나요? 요즘의 화두이기도 해서 질문 해봐요.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고 늘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그렇지만 아프면 어쩔 수 없구나, 생각하죠. 나름대로 뭔가 사정이 있었겠지, 하는 식으로 늘 이해하려는 편인데요. 그렇게 이해하려고 노력해야만 이해된다는 게, 글쎄요. 응급실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선하다고 주장하기 어려울 때가 있지만요. 그저 선하다고 이해해야 한다, 정도로 생각하고 있어요.

 

책에서 중요한 질문을 하나 얻었어요. ‘죽음은 과연 공평한가’라는 것이죠. 에필로그에서도 동료의 죽음을 기록했잖아요. 이를 통해 어떤 말을 건네고 싶었나요?


의사였던 사람이죠. 위암이었는데요. 동료들은 알아요. 일정 확률로 그렇게 안 좋은 사람이 있고, 그들은 결국 죽는다는 걸요. 그걸 늘 봐온 사람들이니까 의학적, 과학적으로는 이해할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그 사람이 하필 내 동료, 친구였던 거죠. 감정적으로 이해가 되겠어요? 죽음은 평등하다는 문제에서 어떤 사람을 보며 저 사람이 언제든 내 친구, 가족 혹은 내가 될 수 있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되죠. 에필로그에 쓴 제 동료는 끝까지 환자를 돌보다가 죽었어요. 그걸 보면서 주어진 삶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기리고 싶더라고요. 이런 죽음에 관한 질문들 사이에서 말이에요.

 

이 책을 한 마디로 설명한다면 어떨까요? 저자가 전한 많은 이야기를 관통하는 저자의 메시지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누군가의 안온한 하루는 곧 누군가의 지독한 하루이기도 하다, 이런 것 같아요. 그냥 이런 환경, 이런 곳에서 지독한 하루를 보내는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이 책으로 사람들에게 삶과 죽음을 생각해라, 사회에 대해 생각해라, 이렇게 어쭙잖게 말할 건 아닌 것 같아요. 다만 이렇게 어딘가에서 치열한 현장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 까지가 제가 할 수 있는 말이에요. 제일 처음에 기대한 메시지도 이것이고요.

 

또 다른 책으로 만날까요?


세 번째 책은 ‘독서일기’가 될 거예요. 원고는 거의 썼고요. 조만간 나올 것 같아요.(웃음) 지금은 제가 후반 작업 중이니까요. 올해 안에는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지독한 하루 남궁인 저 | 문학동네
그의 하루는 지독하다. 매일같이 찾아오는 죽음의 공포가 지독하며, 죽음의 문턱까지 간 환자를 다시 삶의 영역으로 돌이켜야 하는 긴박한 과제가 지독하며, 어쩔 수 없이 이 세상을 떠나버린 환자와 이별하고 또 이별해야만 하는 일이 지독하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한동일 “수업의 마지막은 늘 질문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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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 대법원인 로타 로마나(Rota Romana) 변호사이자 가톨릭 사제인 한동일은 2010년부터 2016년까지 서강대학교에서 ‘초급 라틴어’ 수업을 가르쳤다. 24명으로 시작한 수업은 그다음 학기에 67명, 이후 학기마다 200명이 넘는 학생이 듣는 인기 수업이 되었다. 배우기 어려운 언어 중 하나로 꼽히고, 공통어로 채택한 국가가 없는 사어(死語)를 배우려는 학생이 그렇게 많은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한동일 저자의 글은 어학에 그치지 않고 그리스 로마 시대의 문화, 오늘날의 이탈리아 등 종합적 인문 교양 지식을 넘나든다. 『라틴어 수업』이라는 제목을 보고 라틴어를 배우고자 하는 마음으로 책을 연 사람이라면 라틴어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동사 변화표가 앞에 나오지 않는 걸 보고 당황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은 라틴어를 유창하게 쓰기 위한 문제집이 아니다. 공부는 공부로서 족하다는, ‘공부 노동자’의 고백이자 나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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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를 시작한 계기


6년간의 강의가 책으로 엮여 나왔어요. 기분이 어떠세요?

 

이 책은 수업 시간에 라틴어를 설명하고 마지막에 학생들에게 조금씩 나누고 공유했던 이야기예요. 어떻게 보면 내가 공부하면서, 일상을 살면서 실패하고 무너지고 느꼈던 게 오히려 이 사람들에게는 또 다른 가능성으로 나가오는구나 싶었어요. 처음에 이 수업이 알려지고 취재 요청이 왔을 때 제 전제조건이 제가 주가 되는 게 아니라 학생들이 주가 되는 기사를 써야 한다고 했어요. 오늘 인터뷰도 똑같이, 제가 잘했다기보다는 보잘것없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었던 학생들 덕에 있었던 거예요. 학생들 덕분에 제가 이야기했던 내용을 다시 정리하는 기회가 되었고, 내가 준비했던 단계를 넘어서 다른 단계로 넘어간 기분이 들었어요.


강의와 책은 다른 느낌이 들었을 것 같아요.


일단 책을 쓰면서 도대체 내가 강의 시간에 무슨 이야기를 했을까 싶었어요. (웃음) 한 학기 강의가 끝나면 어떤 학생이 수업 노트를 정리해서 보내줄 때가 있어요. 공부를 시작했던 제 미천함과 약함이 오히려 학생들에게 와닿았던 것 같아요. 강의를 끝나고 이 책을 쓰게 됐을 때 예전에 학생이 보내준 파일을 보니까 놀랍게도 6년간 이야기했던 것들이 파노라마 지나가듯이 연결이 되더라고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 책 덕분에 저를 정리하는 기회가 됐어요. 책을 쓰는 과정에서 제 마음의 결을 보고 보잘것없는 것들을 공유하면서 많은 것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겸손하게 말씀하시지만 동아시아 최초의 바티칸 대법원 로타 로마나 변호사이자, 가톨릭 사제이시기도 하시죠. 로타 로마나는 뭐고, 교회법이란 무엇인가요?


교회법을 잘 모르는 게 당연해요. 천주교 관계자도 교회법이 종교적인 내부 규율 정도로 생각할 때가 많아요. 유럽 법의 원천을 로마법으로 아는데, 그다음에 있는 게 교회법이에요. 예를 들어 기판력이나 상소, 항고, 이런 개념이 다 교회법에서 나왔어요. 결과적으로 우리 민법도 교회법의 영향 아래 있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로타 로마나는 단순히 교회 재판소가 아니라, 유럽 중세 시대의 국제 재판소라고 봐야 합니다. 구교와 신교가 부딪치면서 가장 먼저 쟁점이 되었던 게 종교의 자유였죠. 하지만 종교의 자유를 들여다보니 거기에는 양심에 관한 문제, 신념에 관한 문제, 양심과 신념을 표현하려다 보니 출판 및 표현의 자유, 그걸 더 나아가면 집회 및 결사의 자유가 필요해요. 바로 종교 자유 문제에서 헌법의 기본권이 나온 거예요. 지금도 정교조약에 의해서 교회 법원에서 판결을 내리면 국가 법원에서 같은 효력을 가지게 됩니다.


로타 로마나 내에서는 라틴어를 주로 사용한다고 들었습니다.


신학교를 나왔기 때문에 저희는 라틴어 공부가 의무였어요. 일단 외우기부터 시작하는 수업이라 의무적으로 1년이 끝나면 다들 해방이라고 기뻐하는데 저는 이 언어가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라틴어, 영어, 독일어 등 외국어를 매일 한 시간씩 공부했어요. 그렇게 쭉 이어지다 유학을 가서 대법원 준비를 하자 그때부터 라틴어로 시험 보고 강의하고 과제물 내는 생활이었어요. 라틴어 교수님을 섭외해서 이탈리아 문장을 들려주면 그 자리에서 라틴어로 번역하는 식으로 수업을 받았어요.


첫 의뢰인은 동양인이라는 걸 보고 실망하고 그대로 나갔다고요. 요새는 어떤가요?


요새는 로타 로마나 안에서 해결되지 않은 사건을 바로 받기 때문에 장기 미제 사건을 주로 담당해요. 로타 로마나 안에서는 유명해졌죠.


강의는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아주 우연한 계기였어요. 저에게 양어머니가 한 분 계시는데, 제가 신부로서 제단에 서는 게 아니라 강단에 서야 할 사람이라고 생각하셔서 서강대의 아는 선생님에게 이야기를 해주셨어요. 마침 강의가 비어 있었고, 첫 번째 학기를 시작하게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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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입니까?


‘초급 라틴어’는 언어 수업이라기보다 종합 인문 수업에 가깝다는 평이 있었어요.


약을 친 거죠(웃음). 곧이곧대로 라틴어 문법만 가르쳤다면 아마 계속 24명으로 수업했을 겁니다. 대개 관련된 문헌이나 명문을 뽑아서 문장에 대한 문법적 설명을 하고, 수업 말미가 되면 제가 느꼈던 어려움을 학생들과 공유했어요. 처음에 강의할 때는 수업 외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걱정 때문에 라틴어 외 다른 이야기를 곁들이는 걸 주저하고 두려워했어요. 하지만 시험 답안지에 어떤 학생이 덕분에 학교라는 울타리를 넘어서 세계를 보고 문화를 보게 되었다고, 감사하다고 적어주었더라고요. 그래서 소극적으로 이야기했던 것들을 넘어서니 수업시간이 더 풍부해졌어요. 유럽에서 찍었던 사진도 같이 보여주고요. 라틴어와 관련된 걸 사진과 함께 설명하니 학생들이 거기에 귀를 쫑긋쫑긋 세우더라고요.


선생님이 느꼈던 어려움이라는 건 뭐였나요?


대부분 어렸을 때부터 제가 공부 잘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학창 시절에 공부 못 했어요. 그저 공부를 놓지 않고 계속했어요. 아침 일곱 시부터 밤 열한 시까지 공부하면 저도 모르게 마음이 울적하고 아픈 거예요. 하나의 책이나 작업이 끝나고 다음 작업으로 넘어가기 전 쉬는 게 제일 괴로워요. 그 사이 저와 관련된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고요. 그래서 빨리 다른 작업을 들어가고는 했어요.


하지만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말하고 따라 하라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어떤 학생이 저와 이야기하고 싶다고 찾아오면 이미 그 사람은 자기가 생각한 방법과, 나름 세웠던 결론도 있어요. 제일 좋은 방법은 그 사람이 내린 결론에 확신을 주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질문에서 그 사람이 원하는 답이 무엇인지 듣고 그 답에 확인과 확신을 주는 게 수업이라고 생각했어요. ‘이건 이거다’가 아니라 ‘나는 이런 것을 겪어서 이렇게 생각하는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합니까?’라고요. 수업의 마지막은 늘 질문이었어요.


라틴어는 부수적이고 젊은 친구들에게 하는 말이 수업의 주가 된 것 같아요.


1시간 15분 수업이면 한 시간은 라틴어 공부했어요. (웃음) 다만 새 단어가 나올 때마다 그 단어와 연관된 이야기를 하나씩 했죠. 예를 들어 장점과 단점(defectus et meritum)을 설명하면서 제 경험을 곁들이는 거예요. 저는 심장 혈관이 선천적으로 기형이에요.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니 공부를 몰아쳐서 하는 게 불가능한 거예요. 그러다 보니 항상 시간을 나눠서 공부하고, 대인관계는 꽝이 되었어요. 신체적 약점이 공부하는 데는 장점이 됐는데, 이 장점이 오히려 사람들과 함께하고 감정을 나누는 데에는 미성숙했기 때문에 단점이 된 거죠. 장점이 장점으로만, 단점이 단점으로만 남지 않는다는 걸 설명하고, 결론은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요. ‘그렇다면 당신의 장점과 단점은 무엇입니까?’


유럽에서는 ‘남보다 잘하는 게 아니라 나의 전보다 잘하는 것’을 평가의 기준으로 삼는다고 말씀해 주셨는데, 실제 강의할 때는 어쩔 수 없이 상대 평가로 점수를 매겨야 합니다.


우리나라 성적 평가 방식처럼 비교육적인 건 없는 것 같아요. 대학에서 30%는 A, 40%는 B, 나머지는 C나 D 이렇게 주잖아요. 학생들에게 팀플레이 정신을 가르쳐줘야 하는데 늘 경쟁 상대로만 보게 돼요. 그래서 강의할 때 중간고사는 고학년부터 A를 주기 시작해서 아래로 내려가겠다고 했어요. 아무래도 학년이 높으면 취업이다 뭐다 스트레스받을 일도 많은데, 혹시 그들 가운데 이제까지 한 번이라도 A 를 받아본 적 없는 사람이 받으면 얼마나 기분 좋겠어요. 대신 진짜 학점은 기말고사에 공정하게 주겠다고 했죠.


학생들이 억울해하진 않았나요?


한 번에 결정되는 게 억울하다는 이의 제기도 있었어요. 그 말도 맞아요. 하지만 더 많은 사람이 좋은 점수를 자기 의사와 상관없이 획득하고 자신감을 가진다면 그것도 좋지 않을까? 그랬더니 받아들여 주더라고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라틴어 문구 중 ‘합의가 법을 만든다(Consensus regem facit)’는 문구가 있어요. 비록 현재 시스템 안에서는 상대평가밖에 할 수 없지만, 잠시만 경쟁자들 말고 합의하면서 다른 걸 볼 수 있다는 게 좋은 교육으로 가는 과정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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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질문하는 공부


공부를 ‘틀을 만드는 작업’으로 비유해 주셨어요.


공부하면 좋은 성과보다 항상 나쁜 결과가 나올 때가 많아요. 준비한 만큼 결과가 똑같이 나오는 게 아니라 더 적게 나오기도 하잖아요. 항상 결과를 요구하는 공부는 원하는 결과가 안 나오면 다 무용지물이죠. 그런 식의 공부는 우리에게 실패감밖에 줄 수 있는 게 없어요. 틀을 만드는 작업은 실패감만 주는 공부 안에서 어떻게 생존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작업인 거죠. 삶이 죽음을 선택하라고 할 때 죽음을 선택하지 않고 삶을 선택하는 게 희망인데, 그런 힘이 생기려면 사고의 틀이 필요해요. 사고의 틀은 한번 좋은 걸 보고 맛있는 걸 먹는 경험으로 끝나는 게 아니에요. 끊임없이 내 마음의 결을 보는 게 틀이에요. 그 틀을 보다 보면 어느 날 내가 무언가 놓고 싶은 감정에도 패턴이 보여요.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신다면.


무조건 외우고 집어넣는 고문을 놔두고 내 마음의 결을 보고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극적으로 더 들어가다 보면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질문하는 게 제가 말한 틀이에요. 틀이 만들어지면 똑같이 시험 통과하려고, 취직하려고 공부해도 차원이 다르다는 거예요. 그랬을 때 공부해서 남 주는 것도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지금 우리가 왜 힘든지 보면 공부를 잘하는 사람들이 자기가 한 공부를 남 주지 않았기 때문이거든요. 공부를 열심히 한 사람들이 자기와 가장 가까운 몇몇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방법만 연구했잖아요. 우리가 조금만 더 나아갔더라면, 우리 젊은이들이 힘든 걸 다른 방식으로 고민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사고의 틀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떻게’보다 ‘왜’를 더 고민한다는 말로 받아들여지는데요. 지금 생각하는 ‘공부를 왜 하는가’에 대한 답은 무엇인가요? ‘배워서 남 주자’인가요?


답이라고 하긴 좀 부끄럽죠. 저는 사실 공부가 도피였어요. 어렸을 때부터 가정환경이 힘들어서 공부했어요. 조그마한 단칸방에 책상 하나, 그 옆에는 TV가 있고 모든 가족이 단칸방에서 살았어요. 시험 기간이니까 조용히 해주고 그런 건 없었어요. 환경을 잊으려고 공부를 했었죠. 서강대학교 왔으면 사실 얼마나 다들 공부 열심히 했겠어요. 그런데 이 친구들이 다 스스로 낙오자 같다고 생각을 하는 게 저를 자극했던 것 같아요.


라틴어를 배우는 사람들의 이유 중에는 ‘있어 보여서’라는 것도 있습니다. 뭔가 배우는 데는 거창한 이유가 필요 없다고 하셨는데, 경험에 비추었을 때 나온 이야기인가요?


우리가 어떤 일을 왜 했냐고 질문받으면 사실 왜 했는지 몰라요. 시작은 유치할 수도 있어요. 우리 친구들에게 꼭 이야기해주고 싶은 건, 공부는 기억하고 암기하는 게 아닌 것 같아요. 학생들이 제일 많이 이야기하는 것 중 하나가 ‘선생님 저 공부 안 했어요’ ‘어제 놀았어요’ 이거예요. 저는 그게 순수하게 정말 놀아서 그랬다고 보지 않아요. 왜냐하면 저도 어떤 날은 내일이 시험인 줄 알면서도 오늘 아무것도 안 하고 그냥 보러 가서 망친 적이 있거든요. 그때 제 마음을 돌이켜 보면 공부할 수 없을 만큼 아픔이 있어서였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이 사람이 어떤 걸 아파하는지 보지 않고 물리적으로 왜 공부를 안 하는지만 보는 거죠. 여기서부터 방향이 잘못됐어요. 조금이라도 그 사람의 마음을 읽어줬다면 작은 것을 보고서도 대단하다고 말해줄 수 있어요. 미천하게, 미약하게 보는 것들이 공부라고 생각해요. 대학에서 실질적인 이용이 될 수 있는 것만 가르치지 막상 내가 왜 이걸 하는지 근본 질문을 사고하고 훈련하는 걸 가르치지 않아요. 그게 아쉬웠는데 아마도 이 수업이 조그만 갈증을 해소하는 데 도움을 주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라틴어에 관심 있는 학생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시다면.

 

라틴어는 절대 쉬운 언어가 아니에요. 유럽에서 왜 이걸 고등학교 아이들에게, 그것도 대학을 가려는 아이들에게 시킬까 생각해 봤는데, 벼락치기가 안 되는 언어라서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책에 하비투스(habitus)라는 단어가 나와요. 영어의 habit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습관이라는 말도 있지만, 옷이라는 뜻도 있어요. 수도승들이 입던 옷을 하비투스라고 불렀어요. 서양의 수도승은 일어나 기도하고 밥 먹고 같은 시간에 일하는 생활을 매일 같은 시간에 하잖아요. 아마도 라틴어는 아이들에게 습관이라는 옷을 만들어줄 수 있는 언어인 것 같아요. 습관이 된 사람에게는 법학전문대학원에 가도, 의대에 가도 덜 어려운 훈련인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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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이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가 되기를


아무래도 한국에서 제일 유명한 라틴어라면 ‘카르페 디엠(carpe diem, ‘현재를 붙잡아라’라는 의미)’이 떠오를 것 같아요. 최근 유행어 ‘YOLO(You Only Live Once)’도 비슷한 맥락일 것 같은데요. 원뜻과 다르게 소비를 촉구하고 현재의 즐거움을 좇는 어구로 사용되는데, 한국만의 특성일까요?


한국만의 정서에 편승한 상업적인 이유도 있겠죠. 그걸 제가 평가하기는 어려워요.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한국은 갈라파고스처럼 별난 사람들 같아요. 택시 타고 가면 기사분이 정치 이야기를 하고, 모든 문제에 관심이 많잖아요. 하지만 한꺼풀 벗겨 놓고 정말 전문가가 있는지 생각했을 때 저는 의문이 들어요. 보통의 일상을 사는 사람들이 그렇게까지 정치와 경제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더 많이 알아야 하고 더 많은 걸 신경 써야 하는 사회인 거죠. 결국은 우리가 서로를 신경 쓰고 사회를 신경 쓰면서 느끼는 피곤감을 어떻게 완화할 수 있을지 생각하는 게 우리 공부가 아닐까 싶어요. 우리가 다른 사회를 부러워만 할 줄 알지 그 사회가 어떻게 그것을 위해 시간을 할애하고 노력했는지 평가하는 것도 필요하고요.


언어 차이도 흥미로웠어요. 다른 언어를 듣다 한국어를 들으면 서로 존중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든다고 하셨는데요.


서울에 오면, 공항부터 경쟁이에요. 우리 말이 너무 거친 것 같아요. 다른 언어에서는 나이 때문에 ‘너’라고 부르는 게 아닌데, 우리는 같은 나이만 친구로서 말을 트는 게 너무 제한적이에요. 라틴어가 좋은 언어고 한국어가 나쁘다는 게 아니라, 어떻게 인식하고 발전시켜갈까 하는 숙제가 남았다고 생각해요. 로마인들은 로마의 속국이었던 스페인이나 프랑스를 식민지라고 생각하지 않고 ‘공동의 조국’이라는 표현을 썼어요. 그게 가능했던 이유는, 로마는 명령하기보다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하는 존중의 언어였기 때문이죠. 이 어렵고 힘든 언어를 통해서 지배받는 사람도 지배받는 생각을 안 했던 거예요. 우리가 회사에서 부장과 팀장 등의 직책 이름을 없앤다고 해서 존중할 수 있을까요? 결국 서로 존중하는 언어가 됐을 때 자유롭게 자기 사고를 전달하는 게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천주교 사제 서품을 받았지만, 보수적인 종교계와는 다른 발언을 하시기도 합니다. 수업에서 성경에 예수의 본 의도가 온전히 담기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든지, 동성애 관련해 언급하시기도 하고요.


신이 있다면 신학과 법학이 인간 존재가 처한 문제를 해결해나갈 수 있는 도구가 되길 바라지 않았을까요? 그게 진짜 신이잖아요. 신이 없다면 인간의 이성으로 하면 되겠죠. 크고 작음을 떠나 종교는 정원일 수밖에 없어요. 정원은 우리가 계획하고 원하는 수목과 수종만 있을 수 있고 나머지는 잡목과 잡풀이라고 불러요. 하지만 자연에는 잡목과 잡풀이 있을 수 없죠. 시시콜콜하게 대답하기보다 이렇게 이야기하는 게 나을 것 같아요. 사도 바울은 믿음에 의해서 할례가 된 게 중요하지 유대인인지가 중요한지 물었어요. 그때는 됐는데 왜 지금은 안 될까요?


『교회 법률용어사전』도 올해 3월에 내셨어요.


『교회 법률용어사전』은 2005년부터 작업해서 2015년에 초역이 끝나고 2년간 윤문하는 과정을 거쳤어요. 윤문 작업이 끝나고 나서야 『라틴어 수업』작업을 한 거죠. 전에 냈던 책 『유럽법의 기원』과 『카르페 라틴어』가 모두 교회 법률용어사전 때문에 나왔어요. 맨 처음에 사전 원문이 이탈리아어로 되어 있어서 저만의 이탈리아 어 사전을 만들었다가, 이번에는 라틴어 문법이 어려워서 라틴어 문법을 종합해보자는 생각에 책을 냈어요. 또 작업하다가 중세 유럽법이 너무 어려우니까 『유럽법의 기원』도 쓰고요. 이런 기본적인 작업이 끝나고 나서야 교회 법률용어사전을 쓰게 됐어요.


앞으로 계획이 있나요?


초보자를 위한 유럽 수준의 라틴어 책과, 라틴어 한국어 사전을 만들고 싶어요. ‘초급 라틴어’를 강의하면서 가장 큰 성과라면 일을 공유해주는 많은 사람이 생겼어요. 현지 법조인들, 라틴어 사전을 협조해주는 친구 등이요. 처음 한국에 와서 힘들게 작업할 때보다는 시간이 좀 줄어들지 않을까 싶어요.


 

 

라틴어 수업 한동일 저 | 흐름출판
한국인 최초, 동아시아 최초 바티칸 대법원 로타 로마나(Rota Romana) 변호사이자 가톨릭 사제인 한동일 교수가 2010년부터 2016년까지 서강대학교에서 진행했던 강의를 책으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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