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antcast
Channel: 채널예스 : 만나고 싶었어요!
Viewing all 8510 articles
Browse latest View live

로 바이 페퍼스, ‘우주 전문 밴드’의 영역

$
0
0

 

image1.jpeg

 

지난해 데뷔한 3인조 록 밴드 '로 바이 페퍼스'(RAW BY PEPPERS)는 뛰어난 연주력과 정교한 음악으로 관계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해외의 슈게이징, 포스트 록 흐름에 닿아있는 이들은 음반에서 명확한 주제, 이야기를 설정하는 것이 특징이다. 데뷔 EP <Spaceship Out Of Bones>와 최근 발매한 정규 1집 <Cosmos>를 동시에 관통하는 소재는 '우주'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우주 전문 밴드'라는 별명을 붙이기도 했다.

 

단독 공연 며칠 후에 만난 밴드는 자신들이 반드시 우주에 국한된 팀은 아니라며 미소를 지었다. 이들은 그저 매 순간 치열하게 상의하고 때로는 다투기도 하며 '하고 싶은 음악'을 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음악에 관한 얘기에선 시종일관 여유롭고 자신감이 넘쳤다. 로 바이 페퍼스는 조만간 한국을 떠나 독일의 베를린으로 향할 예정이다. 더 넓은 세계로 진출해 본토의 록 인구를 사로잡겠다는 이야기를 전하며 세 멤버는 눈을 반짝였다.


데뷔 EP <Spaceship Out Of Bones>가 작년에 나왔는데 정확한 결성 시기는 언제쯤인가.


보컬&기타 김가온, 이하 가온: 2014년에 모이고, 2015년에 로 바이 페퍼스가 결성됐어요. 첫 앨범이 나오기까지 1년 정도가 걸린 셈이죠.

 

'로 바이 페퍼스'라는 밴드 이름에 대해 설명해 달라.


가온:처음엔 다른 이름이었는데 회사랑 계약하면서 '로 바이 페퍼스'라는 이름이 만들어지게 됐어요. 세 명 전부 색이 다르고, 이로 인해서 부딪쳤을 때 만들어지는 새로운 무언가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에 집중한 이름이에요.

 

원래 세 분의 음악적 지향이 비슷했나.


드럼 이광민, 이하 광민:완전 달랐어요. 시작점이 다른 세 명이 모여서 좋은 시너지를 내보자는 마음이 있었죠. 가온 형은 '라디오헤드' 쪽이고, 진우 형은 '레드 핫 칠리 페퍼스' 쪽이고, 저는 재즈나 블랙 가스펠, 팝 이런 거 좋아했어요.


가온:초반에 '스타일이 다른 우리가 같이 음악을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그때 제가 했던 말이 "우리는 평생 같이 싸우면서 음악을 해야 될 거다. 셋이 다르지만 그 다름으로써 만들어지는 결과물들을 보자"고 이야기했던 것 같거든요. 셋 다 그 점이 좋다고 긍정적으로 평가를 해서 그렇게 시작하게 됐죠.

 

그럼 주로 작업을 주도하고 리드하는 쪽은 가온 씨인가.


가온: 3% 정도 리드하는 거 같아요. 아주 조금이죠.


광민 씨는 원래 팝을 좋아했다고 하셨는데, 지금 음악이 힘들지는 않은가. 팝과는 거리가 상당히 먼데.


광민:계속 싸우면서 서로 영역에서 절충해요. 그러면서 음악이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시간이 좀 지났지만 첫 정규 앨범 발매와 단독 공연 개최를 축하드린다. 소감이 어떤가.


가온:완전히 만족스럽지는 않았어요. 첫 단독 공연이란 부담감도 있었고요. 이전에는 짧으면 30분, 길어야 1시간 정도 공연을 했는데 이번에는 1시간 반 구성이라 그동안 흐름을 끌고 갈 수 있을지, 에너지를 다 담을 수 있을지 고민이 됐습니다. 준비하는 과정도 힘들었고, 공연 중에도 우리가 100%, 120% 보여주지는 못했다는 생각에 좀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할 만큼 잘 하지 않았나 싶어요. (웃음)

 

앨범에 대한 만족도는 어떤가.


가온:저는 거의 90% 정도는 만족하는 것 같아요.


광민:저도 앨범 자체는 엄청나게 많이 만족하고 있어요. 저희끼리 음악 하다가 프로듀서 같은 외적인 요소들이 추가되면서 전체적인 완성도가 조금 더 올라갔다고 생각해요. 그 흐름을 봤을 때 너무 만족스럽죠.


진우 씨의 소감도 듣고 싶다.


베이스 이진우, 이하 진우:저는 앨범은 100% 만족하고요. 공연 자체도 그 당시에는 그게 저희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기 때문에 그것도 100% 만족하고 있습니다. 지나고 나서 아쉬운 점은 딱히 없었던 것 같아요.

 

작년엔 EP였는데, 올해 정규 앨범 <Cosmos>를 발매하면서 주위의 반응도 남달랐을 것 같다. 주위의 반응은 어땠나.


가온:자극을 받았다는 분들이 종종 있었어요.

 

음악 하는 사람들의 말인가.


광민:저희는 비주류라는 얘기를 많이 듣는데, 저희가 하고 싶은 것을 타협 없이 끌고 나가는 점에서 자극을 받았다는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그런 얘기를 들으면서 더 잘해나가고, 그런 걸로 성과를 이뤄야지 완성이 된단 생각에 책임감도 느꼈죠.

 

히트에 연연하지 않고 세 분이 하고 싶은 것을 딱 만들어 낸 것을 보고 주위에서 자극을 느꼈단 말인 것 같은데, 이 부분에 대해 자부심도 있을 것 같다.


광민:네, 엄청 있죠. 앨범 안에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부분이나 연주적으로 다른 것들을 시도했던 부분에서 자부심을 느끼고 있어요.

 

작년 EP <Spaceship Out Of Bones> 와 이번 정규 <Cosmos> 두 장 모두 우주를 테마로 한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광민:의도를 안 한 것은 아니지만, 반드시 우주 콘셉트로 EP를 내겠다고 다짐한 건 아니었어요. 다음 앨범은 또 어떻게 될지 모르죠.

 

우주에 국한된 건 아니란 얘긴가.


광민:수단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꼭 우주가 아니어도 저희가 표현하고 싶은 게 있다면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들의 첫 앨범 <Cosmos>는 우주에 기투(企投)된 소년들의 모습을 담았다. 큰 줄기는 이렇다. 우연찮게 불시착한 곳에서 이들은 마치 외계인처럼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어떤 것'들을 찾아내고, 그곳을 탐험하며 새로운 경험을 쌓아가다 총격을 받고 쓰러져 다시 지구로 온다는 이야기. 밴드는 T.S. 엘리엇의 말을 인용해 이야기를 정리했다. "우리는 탐험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탐험의 끝에서 우리가 출발했던 곳에 도달할 것이다. 그리고 처음으로 그 장소를 알게 될 것이다."

 

image2.jpeg

 


가온 씨는 앨범의 모든 가사를 직접 쓰셨는데, 스토리가 있는 일종의 콘셉트 앨범 아닌가. 테마, 콘셉트를 잡고 이야기를 만드는 것도 가온 씨의 몫인가.


가온:큰 틀은 거의 같이 잡았고, 그다음 세부적인 사항을 제가 담당하게 됐어요. 제가 글 쓰는 사람이 아니다 보니 이야기를 만드는 데 오래 걸렸어요. 기본적인 기승전결도 생각해야 하고, 좋은 내용을 쓰고 싶어서 중간중간 내용을 친구들에게 계속 말해줬어요. 이야기를 먼저 쓴 다음에 가사를 썼는데 우리가 어떤 메시지를 담을 것인지에 대해서 대화를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럼 단편 소설을 한 편 쓴 것과 다름없겠다.


가온:사실은 소설을 쓰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러면 제가 해야 할 부분들이 너무 많아지기도 하고 과연 좋은 소설이 나올지에 대한 의문도 들더라고요. 이야기는 어쨌든 표현 수단일 뿐이니 노래에 집중하자고 생각했어요.

 

결론적으로 <Cosmos> 앨범에 어떤 주제를 담고자 한 것인가.


가온:사실 우주가 엄청나게 넓은 세계잖아요. 저는 그 세계를 보면 나를 다시 알 수 있게 된다는 생각을 믿어요. 대우주를 알면 소우주를 알 수 있고, 소우주를 알면 반대로 대우주를 알 수 있는 것처럼요. 그거에 초점을 맞췄어요. 이게 우주를 여행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내면의 나를 탐구하는 앨범이거든요. 표현을 우주로 했을 뿐이에요. 결국 내면의 자아가 어떻게 발전되어 가고 어떻게 다음 단계로 넘어갈 것인지, 우리는 어떻게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을 앨범에 담았습니다.

 

앨범을 들어보면 녹음과 후반 작업에도 상당한 공을 들인 것 같다.


광민:원래는 작년 연말에 내고 싶었는데 작업이 빠르게 진행되지는 않아서 올해 3월에 춘천 상상마당 가서 녹음을 했어요. 5일 정도를 빌려서 곡을 전부 원 테이크로 녹음하고 그다음 믹스에 들어갔죠. 'Boost Knob'이라고 항상 협업하는 곳이 있는데 거기서 한 달여 정도 같이 살면서 매일 믹스했어요. 체력전이었던 것 같아요. 작년 4월 1일에 앨범이 나와서 올해도 4월 1일에 내고 싶었는데 조금씩 미뤄지다 보니까 5월에 나오게 됐네요.

 

녹음을 원 테이크로 한 이유와 만족도가 궁금하다. 어려운 과정이었을 것 같은데.


가온:저희는 EP 작업할 때부터 그렇게 해왔어요. 아무래도 3인조라는 한계가 있는데, 저희는 라이브에서 구현 안 되는 건 녹음에서도 하고 싶지 않거든요. 이런 상황에서 녹음마저 따로 하면 셋의 에너지가 사라질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원 테이크를 추구해왔죠. 그래도 잃는 게 있긴 해요. 마이크 간의 간섭이 너무 심하죠. 이번엔 더 좋은 스튜디오에서 녹음을 해서 소리가 안 겹치게 파티션 세우고 간격 설정을 했는데도 어쩔 수 없더라고요. 이번 녹음에서 이 부분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이 있을지 많이 이야기했어요. 그래도 원 테이크는 계속하게 될 것 같아요.

 

말한 것처럼 어려운 상황에서도 원 테이크를 고집하는 건 역동성을 위해서인가.


광민: 네, 그 에너지 때문이죠.

 

즉흥 연주를 추구하는 재즈와도 비슷한 맥락으로 들린다.


진우:드럼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하면서 조금씩 달라지는 노트들도 있어요. 그런 건 그냥 그러려니 해요. 아쉬운 느낌이 들면 다시 녹음해서 제일 좋은 합이 느껴지는 걸로 고르죠.


가온:그렇다고 완전히 재즈처럼 흘러가는 건 아니에요. 우리가 곡을 썼기 때문에 흐름이 정해져있고, 약속된 길이 있긴 해요. 에너지가 확실하게 모여 탁 터지는, 그런 걸 선택하는 거죠.

 

로 바이 페퍼스의 음악은 결코 쉽게 들리지 않다. 지난 <Spaceship Out Of Bones>에서는 그나마 멜로딕한 곡들도 있었는데, 이번 <Cosmos>에서는 멜로디 접근보다 소리 예술이나 연주 미학에 더 집중한 앨범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 대한 생각을 듣고 싶다.


가온:진짜 저희가 하고 싶은 걸 한 것 같아요. EP 때는 오히려 조금 '힙'한 감성도 들어있으면 좋겠고, 홍대 신에서 사람들이 따라 부를만한 곡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이런 고민도 적잖이 했거든요. 이번에는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우리가 맞다 생각하는 걸 무조건한다는 생각으로 만들면서 외부 신경을 안 썼어요.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한 결과물이 된 것 같습니다.

 

세 사람이 하고 싶은 것에만 집중을 했다는 이야기인가.


가온:우리가 생각하는 좋은 음악을 만들어보자 한 거죠.

 

물론 소수의 마니아를 꾸준히 모으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재의 음악이 대중과의 접점을 마련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하는 우려는 없나.


가온:예전에 록 밴드들도 보면 결정적 한, 두 곡으로 유명해지고, 커리어를 이어가는 밴드들이 많잖아요. 그 밴드들이 대중하고 통하고 싶어서 그런 노래를 썼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그들이 결과적으로 대중과 통하긴 했지만, 반드시 그것을 노리고 썼다고 생각하진 않는다는 얘긴가.


가온:그렇죠. 결과적으로 통하게 되는 거죠. 그들이 '우리가 그래도 대중하고 좀 통해야 되니까 타이틀을 이걸로 만들자'라는 식으로 곡을 썼다고 생각하지도 않고, 저 역시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아요. 통하면 당연히 좋겠죠. 우리도 만족을 했는데, 대중들도 만족한다면 다행인 거죠. 하지만 소수의 사람들이 좋아해 준다고 해도 누군가에게 감명이 된다면 충분하지 않나 해요.

 

현재의 포스트 록, 슈게이징에 기초한 음악 외에 또 다른 음악적 지향이 있는지 궁금하다.


가온:장르는 사실 붙여주시는 거잖아요. 저희가 뭘 지향하고 있진 않아요. 제가 딜레이(delay)를 적극적으로 쓰게 된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었거든요. 아무래도 3인조다 보니까 소리를 더 채워야 되는데, 딜레이를 쓰지 않고 클린 톤으로 채우면 만족이 안 되는 거죠. 그래서 공간계도 많이 활용하고, 앰프도 두 개씩 쓰게 됐어요. 저는 머릿속에서 음향 디자인을 할 때 기타가 옆으로 넓게 있고 가운데서 드럼이랑 베이스가 중심을 잡고 있는 모습을 그려요. 이걸 토대로 자연스럽게 자기 영역을 채워나가다 보니까 슈게이징, 포스트 록으로 만들어지게 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처음부터 '포스트 록을 하고 싶다'가 아니라 3인조로 출발해 음향적 공백을 채우다 보니 이런 스타일이 되었다는 얘긴가.


가온:네. 앞으로는 다른 악기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싶어요. 저는 지금도 한계가 많이 노출되고 있다 생각하거든요. 3인조의 한계는 필연적이잖아요. 다른 악기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거나, 어떤 방법을 또 찾아내다 보면 또 자연스럽게 그 악기의 특성에 맞춰서 장르가 바뀐다거나, 성격이 바뀐다거나 할 수 있겠죠.

 

<Cosmos>에는 한글 가사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물론 연주곡도 있지만, 앨범의 마지막 곡을 제외한 모든 가사는 영어로 이루어져 있다. 이에 대한 이유를 묻자 밴드는 망설임 없이 “영어로 가사를 잘 써서 더 많은 세계의 대중이 들을 수 있는 곡을 만들고 싶었다”라고 답했다. 한글이 없는 것을 아쉬워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이해하나 1집을 내면서 생긴 용기와 패기, 욕심의 결과였다는 것이다. 동시에 한국 생활을 정리하고 해외로 진출하게 된 것 역시 영어 가사의 중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image3.jpeg


해외 진출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려 달라.


가온: 늦어도 10월엔 나갈 생각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일단 베를린에 베이스를 잡고 유럽에서 활동을 해보려고 해요. 좋은 계약이 이루어졌거나 한 건 전혀 아니고요, 그냥 아무것도 없이 나가는 거예요.

 

아무 발판도 없이 베를린으로 간다는 얘긴가.


광민:일단 한국에서 외국으로 보내주는 일종의 에이전시 계약은 있지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죠.
가온: 처음에는 페스티벌 몇 개를 잡고 갈 생각이지만, 안 된다면 베를린 클럽을 위주로 공연할 거예요.
진우: 홍대 로컬이 아니라 베를린 로컬로 다시 시작하는 거죠.

 

그럼 서울에서의 활동은 어떻게 되는 건가.


광민: 8월까지는 공연이 잡혀있어서 그 일정은 다 소화해야죠. 9, 10월쯤엔 가기 위한 이민 비슷한 준비를 하지 않을까요. 현재로서는 돌아올 생각이 없어요.

 

현지에서 음반 작업도 할 계획인가.


가온:목표죠. 프로모션 하는 분들과 계약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투어를 돌 수 있을 만큼 인지도를 쌓고, 그 뒤엔 자연스럽게 현지 기획사들과 접촉을 거쳐서 앨범까지. 일단 거기까지 가는 게 목표입니다.

 

이번 1집을 통해 본격적인 발걸음을 뗐다. 앞으로 어떤 음악을 하고, 어떤 밴드로 남고 싶나.


광민:순간순간 느끼거나 하고 싶은 것들을 끝까지 놓치지 않고 갔으면 좋겠어요. 누군가를 따라 하고 이런 게 아니라 하고 싶은 거, 아무도 안 했던 거를 우리가 계속 찾아내서 앞서가는 선구자 같은 역할을 하는 밴드가 됐으면 해요. 그런 음악을 계속하는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여건 자체가 만들어지고 많은 사람들이 들어주면 좋겠죠.


진우:음악을 시작하면서 가진 막연한 목표인데요. 제가 세계적인 베이시스트가 돼서 한국 대중이 밴드 음악을 많이 좋아하게 되었으면 하는 목표가 있어요. 그런 걸 하고 싶어요. 밴드 음악도 대중이 인지하고 좋아하기 시작하면 엄청 성장할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그런 걸 이루어내는 사람 중 하나가 됐으면 좋겠고, 저희 팀이 그랬으면 좋겠어요.


가온: 항상 하는 이야기이지만 '로 바이 페퍼스' 같은 음악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라디오헤드 같은 거대한 밴드들이 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장르에 갇히지 않고 자기들 이름이 장르가 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일차적으로는 저희가 그런 밴드가 됐으면 좋겠고요. 지금 전 세계적으로 새로 등장하는 거대 록 밴드가 없잖아요. 문화가 뭔가 한 쪽 방향으로만 흐르고, 다양성이 사라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는데 다음 록 시대를 저희가 열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웃음)

 

이즘의 공식 질문이다. 각자 인생의 앨범을 3장씩 골라 달라.


가온:저는 처음에 크라잉 넛 3집 <하수연가>를 듣고 기타를 잡게 됐는데, 거기서 제가 가사나 메시지 쓰는 걸 배웠다고 생각해요. 게토밤즈의 1집 <Rotten City>에서는 제가 표현해야 하는 음악적 에너지를 배웠는데, 저는 아직도 그걸 몸에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라디오헤드의 <OK Computer>. 처음에는 이해가 안 되던 이 음악이 두 달을 반복해 들으니 어느 순간 귀에 들어오더라고요. 저의 음악관을 바꿔놓은 앨범이에요.


광민: JB 프로젝트의 <Brombo!>라는 앨범이 있는데 드러머 아키라 짐보, 베이시스트 브라이언 브롬버그가 연주했어요. 타이틀곡의 베이스 솔로를 들으면서 제 감수성이 엄청 달라졌죠. 제가 드럼을 치면서 블랙 가스펠도 많이 들었는데, 이스타엘 뉴튼이랑 뉴 브리드(Israel & New Breed)랑 같이 한 <Jesus At The Center>을 뽑고 싶어요. 카피를 잘 못하는 제가 완벽하게 '칼 카피'해서 의미 있는 앨범이에요. 마지막은 라디오헤드의 작년 앨범 <A Moon Shaped Pool>이요. 이 앨범을 들으면서 라디오헤드를 제대로 알게 됐어요. 그래서 엄청 소중하고, 형들과 만나기 시작한 접점이라고도 생각해요.


진우: 저는 처음에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공연 DVD를 보고 베이스를 따라 치다가 음악을 시작하게 됐어요. 그중에서 제일 좋아했던 게 <Blood Sugar Sex Magik>이에요. 그리고 뭔가를 터트리고 싶을 때는 더 유즈드(The Used)의 데뷔 앨범인 <The Used>를 들으면서 해소를 많이 했어요. 저도 펑크 음악을 많이 들었는데, 이 팀은 그냥 펑크라고 하기에는 조금 더 연주적인 면으로 다듬어져 있다는 느낌을 받았죠. 그리고 학교 다니다가 그 이전에 몰랐던 흑인 음악의 그루브에 대해 좀 더 확실하게 알게 해준 디 안젤로(D'Angelo)의 <Voodoo>를 뽑고 싶습니다.

 

인터뷰 :정민재, 강민정, 임동엽
정리 :정민재
사진 :김진우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최영미 “내가 시 해설을 시작한 이유”

$
0
0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돼지들에게』그리고 장편소설 『흉터와 무늬』, 『청동정원』을 읽으며 최영미 시인은 어쩌면 이렇게 아름다운 언어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궁금해한 적이 있다. 그 단서는 자전적 요소를 포함한 첫 번째 소설 『흉터와 무늬』에서 찾을 수 있다. 소설 속 주인공 하경은 학창 시절에 사흘에 한 권꼴로 책을 읽어내는 문학소녀(262쪽)다. 실제로 최영미 시인도 유년부터 수많은 세계 명시와 고전 소설을 읽으며 자랐다. 이렇게 세계문학을 두루 섭렵한 시간이 아름다운 그녀의 문학 언어로 이어진 것이다.

 

『시를 읽는 오후』는 오늘날 최영미가 있게 한 세계 명시를 소개한 책이다. 시인이 어릴 때부터 좋아한 사포, 브라우닝, 바이런의 작품을 비롯해 총 44편을 수록했다. 시의 원문과 번역은 물론, 작품 및 시인에 관한 최영미 저자의 친절한 해설도 덧붙였다. 번역의 경우, 저자가 직접 새롭게 번역한 시도 많다. 시를 해설할 때는 때로는 진지하게, 때로는 그녀 특유의 위트와 유머로 책 읽는 재미를 높였다. 

 

3.jpg

 

힘들 때 시를 읽으면 힘이 되어요

 

<채널예스> 인터뷰는 3년만입니다. 그간 근황을 말씀해주시면.

 

『청동정원』이후 좀 허탈했어요. 소설을 쓰면, 보통 10년 이상이 걸렸어요. 많은 시간 들여 썼지만, 기대한 만큼 성공하지 못했죠.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했고, 평단이 싸늘했어요. 그런 데 연연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작가라는 사람은 책을 내면 반응이 있어야지 거기서 정열을 얻고 다음 책을 준비하거든요. 글쟁이로서 경쟁력이 있나, 작가로 계속 살아도 되나 이런 고민을 계속 했어요. 한 2년 정도는 아무것도 안 했죠. 쉬었어요.

 

그러다가 문학 강의를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특강으로 시작했고, 8주 연속으로 하는 시 창작 강의를 생애 최초로 하기도 했죠. 그 전에도 잠깐씩 독자와의 행사, 사인회야 있었는데 지속적으로 독자를 매주 만나는 건 처음이었어요. 동시대 사람들 마음 속을 들여다 봤다고 할까요. 강의가 없었다면 만나지 못했을 사람들, 그들의 글을 보면서 요즘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하고 사는구나를 알게 됐어요. 이전에는 나, 나 주변 사람만 알았지 대중을 잘 몰랐던 거 같아요.

 

『시를 읽는 오후』는 어떤 계기로 연재하셨나요.

 

<서울신문>에서 연재 제의가 왔을 때 놀던 기간이 길어서 흔쾌히 연재를 시작했죠. 이 책 순서는 거의 연재 순서 그대로인데요. 처음 회부터 반응이 좋았어요. 

 

그래. 그래서 내가…… 사포의 뒤틀린 위트와 아이러니에 매료되지 않았다면, 지금쯤 나는 평범한 주부가 되어 적당히 편안한 중년을 보냈겠지. 너무 이른 나이에 사포에게 세뇌당하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보다는 부드러운 이미지의 시인이 되어, 더 폭넓은 독자들의 선택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감히 나를 노래하는 모험을 택하지 않고 그 혹은 그녀의 이야기를 아리송하게 심각하게 포장하는 재주를 익혔다면 비평가들의 칭찬과 상도 뒤따랐으련만…… 그러나 나는 ‘나’를 노래하다 안개처럼 사라질 운명인 것을…… (34쪽)

 

이번 글에서 가지 않은 길에 관해 종종 표현하셨는데요. 시인, 작가로서의 삶을 약간 후회한다는 인상도 들었습니다.

 

사실이에요. 후회를 많이 했죠. 연재하면서 옛날 일기장을 다시 봤어요. 사포, 브라우닝, 바이런을 다시 읽으면서 저를 이해하게 됐죠. 아, 오늘날의 내 성격이 이렇게 형성되었구나. 약간 뒤틀린 위트나 풍자, 서구적인 감수성이 내게 일찍부터 침입했다는 걸 깨달았죠.

 

시인의 삶, 당대에 인정받는 건 운명

 

시인이 안 됐다면 편안하게 살았을 수도 있다고 말씀하셨듯 책에 등장하는 시인 중 불우한 사람이 많아요. 시인은 불우한 걸까요. 아니면 선생님께서 끌리는 시인이 주로 불우한 편일까요?
 
양쪽 다 있겠죠. 대표적인 사람이 윌리엄 블레이크인데요. 무명 시인이었죠. 심지어 당대 영국 시인 동료들도 그의 존재를 몰랐을 거예요. 블레이크 시가 너무 독창적이라 이해 받지 못했다고 생각해요. 블레이크는 이런 말을 했어요. “인간을 파괴시키려거든 예술을 파괴시켜라. 가장 졸작에 최고 값을 주고, 뛰어난 것을 천하게 하라.”고. 이런 문구에 위안을 얻기도 했습니다. 저는 요즘 바이런보다 블레이크 시가 좋아서 강의 때도 많이 소개하는데, 사람들도 다 좋아해요.

 

그렇다면 선생님도 블레이크처럼 후대에 인정받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안 좋죠. 당대에 인정받아야죠. (웃음) 죽으면 끝이에요. 당대에 독자와 평단에 인정받으면 행복하겠죠. 그런데 그건 제가 노력해서 되는 게 아니고, 타고나는 거예요. 최승자 시인을 생각해봐요. 제가 좋아하는 시인이고, 스승인데요. 최승자 시인도 탁월함에 비해서 제대로 평가 못 받은 듯해요. 평단이 인색했죠. 그건 자기의 하나의 운명이죠. 어쩔 수 없고,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이번 책은 시 해설인데요. 소설이나 시와는 다른 독자를 염두에 두셨나요?

 

이 책은 한국 독자에게 주는 선물로 생각해요. 그렇지만 연재니까 마감에 쫓기느라 특정 독자를 생각할 겨를이 없었어요. 독자보다는 나와 대화한다고 생각하고 썼죠.『시를 읽는 오후』는 어린 시절 최영미를 형성한 시를 해설한 책인데요. 제가 시인으로 시작해서 소설과 산문을 내고, 다시 시로 왔거든요. 쓰면서 인생이 한 바퀴 돌아온 느낌을 받았어요.

 

손을 많이 탄 책, 공들여 만든 책입니다. 한국에서 알려지지 않은 시를 발굴하려고 했고요. 번역도 새롭게 한 시가 많아요. 기존 번역 중에 손댈 게 없는 건 안 했지만, 오역이 있다거나 요즘 우리 말에 어울리지 않는 예스러운 번역은 새로 했어요.

 

1.jpg

 

『시를 읽는 오후』는 세계 명시 입문서

 

책마다 역할이 있습니다. 이 책이 사회에 던지는 의미는?

 

이 책이 한국 사람들의 교양을 높이는 책이 되면 좋겠어요. 한국은 선택의 폭이 다양하지 않죠. 취향도 그렇고요. 영화 한 편 흥행했다고 하면 수백만 명이 몰려가고, 음식도 하나가 유행하면 거기로 몰려요. 세계의 명시를 읽으며 한국 사람들의 개성이 더 다양해지고, 자기와 다른 목소리를 이해하는 여유가 생기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책이 예뻐요. 내지에 색도 들어가 있고요. 소장용, 선물용으로 좋은 구성 같습니다.

 

이전 책인『내가 사랑하는 시』도 내지에 색을 넣었어요. 책을 만들면서 편집자에게 어린 시절 만들었던 시화집을 보여줬어요. 지금 세대는 모를 텐데요. 1970년대 서울 여학교에서는 예쁜 색깔 있는 종이에 시도 쓰고 그림도 그리면서, 그걸 친구들끼리 나눠 봤어요. 그 시절 시화집 공책이 딱『시를 읽는 오후』이런 느낌이에요.

 

직접 선물하고 싶은 사람 3명을 꼽아주신다면요?

 

아픈 환자들이 보면 좋겠어요. 병원에서 시간이 잘 안 가잖아요. 아무 페이지에서 보다 멈출 수 있는 책이에요. 두 번째는, 젊은 날 첫사랑이었던 독어를 가르치셨던 강양현 선생님. 1978년 선일여고 1학년 독일어를 가르쳤던 분인데, 찾을 수가 없네요. 그 분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수업 시간에 독어만이 아니라 독문학을 소개해주셨어요. 제게 문학에 대한 열정을 심어준 선생님이죠.

 

마지막은 청소년, 입시에 찌든 학생들. 저희 시절에도 입시는 힘들었는데, 세계의 명시를 읽으며 달랬거든요. 학교 공부가 지겨워질 때 군것질 하듯 시를 외우면서 스트레스 해소 많이 했어요. 이 책이 청소년이 읽기 쉬운 세계 명시 입문서이기도 해요. 영어 공부하기도 좋죠. 성문 종합 영어는 죽은 영어 공부고, 세계 명시를 외우면 최고의 영어 공부죠. 바이런, 예이츠의 시 한 편 정도 외우면 유럽 여행할 때 대접이 달라져요.

 

처음과 끝은 보통 다른 장보다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잖아요. 마지막 헤밍웨이 편은 최영미 특유의 위트가 빛나는 마무리이면서, 한편으로는 의외이기도 했습니다. 헤밍웨이는 소설가로 유명한 사람이니까요. 특별히 의도하신 바가 있는지요.

 

전혀 없어요. 원래 연재 마지막 편은 찰스 부코스키 시였는데, 저작권 문제가 걸린 거예요. 최근 사람이라, 그 사람 시를 쓸 대 허가를 받아야 했는데 저작권 때문에 못 다뤘죠.

 

시, 시인에 관한 자료도 많이 하셨을 텐데요. 이번 연재를 하며, 새롭게 발견한 시나 작품, 에피소드가 있다면.

 

도로시 파커요. 이번에 ‘베테랑’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죠. 아주 좋구나. 도로시 파커가 뉴욕시 44번가에 위치한 알곤킨 호텔에서 매일 점심을 함께 먹은 이런 에피소드, 이런 것도 새롭게 알면서 즐거웠어요.

 

4.jpg

 

최영미가 생각하는 예술이란

 

소설에 관한 질문을 드려볼게요. 『흉터와 무늬』가 1970년대를, 『청동정원』은 1980년대를 다뤘습니다. 자연스레 1990년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 나올 법한데요.

 

글쎄요. 그렇게 3부작을 쓸까 했는데,『청동정원』을 쓰고 진이 빠졌다고 할까요. 아직 에너지가 안 생긴 거 같아요.『시를 읽는 오후』가 반응이 좋으면 혹시 새로운 소설에 도전할 마음이 날지도 모르겠네요. (웃음) 1990년대를 쓴다면 연애에 관해 써야겠죠.

 

선생님을 둘러싼, 혹은 작품을 둘러싼 의도하지 않은 잡음이 많았습니다. 첫 시집인 『서른, 잔치는 끝났다』와 두 번째 시집 『돼지들에게』그리고 작년에는 페이스북 글도 한창 화제였는데요. 유쾌한 경험은 아니잖아요.
 
골치 아프죠. 지금도『서른, 잔치는 끝났다』에 관한 감상을 페북 메시지로 보내주세요. 그냥 그만 쓸까, 왜 난 오해의 한가운데 있을까, 한국 사회와 안 맞나? 갈등, 회의 많이 느끼죠. 그래도 지금까지 계속 제가 책을 냈잖아요. 앞으로 글을 더 쓸지 말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시를 읽는 오후』를 제 글을 읽는 독자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 이라는 심정으로 냈어요. 지금 심정이 이렇다는 거지, 붓을 아예 꺾겠다는 건 아니지만 당분간 집필 계획은 없어요.

 

개인적으로 『시대의 우울』을 인상적으로 읽어서, 예술과 여행을 결합한 에세이도 기대합니다.

 

반복을 못 참아요. 기행문은 써 봤으니 같은 종류의 책을 쓰진 않으려고요. 『공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를 냈기 때문에 스포츠 관련한 글도 쓸 계획이 없어요. 주변에서 제 유머와 위트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래서 콩트집을 쓰면 괜찮겠다는 생각은 해요.

 

며칠 전에 레미제라블을 보고 감동했는데요. 뮤지컬에는 시대, 사람 등 모든 게 들어가잖아요. 1980년대를 배경으로 한『청동정원』을 뮤지컬로 만들어 보고 싶은 마음은 있어요. 혼자 하겠다고 되는 게 아니라 제의가 와야겠죠. 1980년대에 관한 영화는 많이 만들어졌는데, 뮤지컬은 별로 없잖아요.

 

이번 책에서 에밀리 디킨슨을 다루며 집을 떠나기 싫다고 쓰셨잖아요. 예전에는 춘천에서 집필하신 적이 있는데요.

 

지금은 마포구에 사는데, 서울이 좋아요. 서울역도 가깝고, 공항도 가까우니 지방 강연할 때 편해요.

 

시, 소설, 미술이 선생님의 관심사이잖아요. 예술이란 무엇인가가 예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붙잡고 있는 화두일 거 같습니다. 예술이란 무엇일까요?

 

『시를 읽는 오후』에도 썼듯, 고통과 시간을 견디게 하는 힘 아닐까요. 그것이 낭만이고요. 힘들 때 시를 읽으면 힘이 되어요.

 

현재 선생님의 고통과 고민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지금은 여름이라 공기가 좋은데요. 가을이 되면 미세먼지가 심해질 거잖아요. 그게 고통일 테고, 고민은 글쎄요. 어머니 상태가 나빠지지 않으면 좋겠고, 내 삶이 좀 좀 안정되면 좋겠다, 이런 정도? 아, 지난 20년간 다녔던 홍대 수영장이 문을 닫은 게 큰 고통이네요. 홍대 대학원 갔을 때 가장 좋은 게 수영장이었는데요. 거기가 크고 넓고, 사람도 많이 없거든요. 그런데 그곳이 시설 점검 때문에 문을 닫아서 언제 다시 열지, 아예 폐쇄할지도 몰라요. 제 인생의 가장 큰 낙이 수영인데 수영 못 하는 스트레스를 어떻게 풀어야 하나 싶네요. 새로 다닐 수영장을 알아보고 있어요.

 

수영을 향한 사랑이 큰 듯합니다. 『청동정원』출간 이후 하고 싶은 것으로 바다 수영을 꼽으셨는데요.
 
그 뒤로도 바다 수영은 못 했어요. 겁이 많기도 하고, 바다 수영이 복잡하잖아요. 해변을 찾아 가야 하고, 춥고요. 또 해변에는 사람이 너무 많아요. 올해 지방 강의가 다섯 번이었는데 그 중 세 번이 제주였어요. 거기서 바다를 바라보며 수영을 하긴 했어요. 더 추워지기 전에 한 번 바다에 뛰어들어야 하는데요. (웃음)

 

예전 인터뷰에서 “지난 세월 동안 낙천적이고 긍정적으로 변해 왔다”고 하셨는데, 지금은 어떠세요.

 

지금도 그래요. 친구가 늘어났어요. 글 쓴다고 친구와 자주 못 만났다가 요즘은 강의하면서 많이 만나거든요. 제 강의를 들으러 오기도 하고요. 그들과 여행도 가고. 점점 더 낙천적이고 긍정적으로 변하고 있어요.


 

 

시를 읽는 오후최영미 저 | 해냄
3부 35개의 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동서고금의 명시들 중 시인이 특히 아껴 읽었던 작품들을 골라 특유의 섬세한 감성과 개성 있는 목소리로 번역해 옮기고 해설해 작품 원문을 함께 실은 책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정진호 “디톡스, 과학적으로 검증된 것 없다”

$
0
0

170829__뚡뀯_솽꼳_듄넫_믟뀳_?__꼮___15A8721.jpg

 

“우리가 약이라고 믿어온 것은 정말 약일까?” 의미심장한 질문으로 시작한 『위대하고 위험한 약 이야기』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약인 줄 알았던 것이 독이었음이 밝혀지고, 독을 다스려 약으로 삼았던 인류의 역사가 펼쳐진다. 죽음과 질병에 맞서 싸웠던 시간들이 과학과 만나 약으로 남았다. 그 지난한 과정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무엇이 약이 되고 독이 되는지, 약과 독의 작지만 큰 차이에 눈 뜨게 된다. 그 결과 현대인이 안고 있는 고민들-예컨대 ‘종합비타민은 반드시 먹어야 하는 걸까’, ‘술 깨는 약은 정말 효과가 있을까’, ‘디톡스는 필요할까’, ‘백신, 안심하고 맞아도 되는 걸까’와 같은 문제들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정진호 저자는 세계적인 독성학자로서 지난 30년간 화학물질의 인체 독성과 유해화학물질의 안정성을 연구했다. 중금속 비소에 관한 연구 공로를 인정받아 국내 학자로는 유일하게 〈케미컬 리서치 인 톡시콜로지 The Chemical Research in Toxicology〉가 꼽은 ‘지난 20년간 독성학 연구에 주요 공헌을 한 300인’에 선정되어 특집호 표지를 장식했다. 현재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의약학부 학부장을 맡고 있으며, 최근 불거진 ‘살충제 달걀’ 사태와 관련하여 <김어준의 뉴스공장> 등 다수의 매체에 출연해 유해화학물질에 대한 위험성을 알리고 변화를 촉구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170829__뚡뀯_솽꼳_듄넫_믟뀳_?__꼮___15A8780.jpg


가습기 살균제부터 살충제 달걀까지, 문제가 반복되는 이유는…


독성학자로서 갖고 계셨던 문제의식과 책임감이 책을 집필하신 이유가 되었을 것 같습니다. 어떠셨나요?

 

대중들을 보면 크게 두 가지 부류가 있는 것 같아요. 일단 약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사람들이 있죠. 다른 사람들이 좋다고 하면 솔깃해서 먹기도 하고, 약이라면 다 좋다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전문가를 신뢰하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좋다고 말하면 무조건 받아들이는 분들도 계셔서, 그런 부분은 바로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편으로는 약을 지나치게 기피하는 사람들도 있죠. 대표적인 게 ‘안아키(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 운동이죠. 모든 약을 배척하잖아요. 뿐만 아니라 새로운 민간요법이나 치료법이 제시되더라고요. 사실 그런 것들은 검증된 게 아니거든요. 약에 지나치게 의존하든 무조건 배척하든, 건강에 굉장히 관심이 많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이런 분들이 조금 더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정보를 체계화시켜서 전달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서 책을 쓰게 됐습니다.

 

가습기 살균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활동하기도 하셨어요. 이번 책에서도 문제의 원인을 설명해주셨고요.


가습기 살균제가 처음 판매된 게 1994년이에요. 특별법이 제정되기까지 20여 년이 걸렸고,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부분이 있죠. 그래서 이번 책에서 3단계로 나누어서 문제를 분석했습니다. 정부에서 제대로 관리를 하지 못하고 기업이 이윤만 챙긴 부분도 중요하지만, 제가 볼 때는 전문가들도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것 같아요. 굉장히 큰 문제점이고, 전문가들의 자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사망자가 발생하기 시작한 게 2006년인데, 판매 금지가 된 건 2011년이에요. 5~6년 동안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라는 걸 몰랐다는 거죠. 그게 심각한 문제였다고 봐요. 과학자들 스스로 반성해야 할 부분인 거죠.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보면서 느낀 건, 유해화학물질을 관리하는 데 있어서 정부의 구조적 문제도 있지만 과학자들의 기술 기반도 아직 취약하다는 거였어요. 이런 문제가 반복되다 보니까 ‘살충제 달걀’ 논란도 생긴 거죠.

 

살충제와 관련된 문제가 불거질 것을 예상하셨나요?


작년 연말에 한 신문사에서 토론회가 있었어요. 그때도 제가 ‘우리나라에서 농약과 살충제의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식품오염사고 위험이 가장 크다’는 이야기를 했었죠. 농약과 살충제의 허가와 등록은 환경부로 바꿔야 하고, 생산 현장의 관리는 농식품부가 유통과 판매현장의 관리는 식약처가 맡아 이중 점검을 해서 국민의 먹거리의 안전을 확보해야 한다고 발표했고요. 유해화학물질 관리에 있어서 정부는 국제적 표준에 맞도록 총체적으로 다시 봐야 돼요. 지금 ‘살충제 달걀’ 논란도 달걀에만 초점을 맞춰서 바라보는데, 그건 아니라고 생각하고 유해화학물질 관리에 대한 큰 그림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언론도 그렇고 정치권도 그렇죠. 큰 틀에서 바로잡지 않으면 이런 사태가 계속 반복 될 거라고 봐요.

 

큰 틀에서 보고 바꿔야 한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일단, 산업을 진흥하는 부서와 화학물질을 규제하는 부서는 같으면 안 돼요. 농식품부는 식품 생산을 관할하는 부서인데, 그런 입장에서 보면 농약과 살충제는 생산량을 증가시키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해당 부서에서 농약을 허가하고 규제 한다는 건 합리적이지 않죠. 그래서 선진국의 경우에는 산업생산 부서와 허가?규제 부서는 분리시켜요. 지금 우리나라는 농약과 살충제의 허가ㆍ등록부터 농가 현장에서의 관리까지 농식품부에서 다 하기 때문에 문제가 있죠. 그리고 농약을 등록?허가해주기 위해서는 효능과 안전성 평가 등 전문성이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그런데 농식품부는 그런 전문성을 갖추고 있지 않아요. 물론 환경부가 갖추고 있다고 주장하는 건 아니고요.

 

그렇다면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요?


지금 농식품부와 식약처의 역할 분담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가 나오는데, 식품과 먹거리에 오염된 농약 모니터링은 두 기관이 함께 크로스체크를 해야 되거든요. 농식품부는 생산 현장에서 농약 관리교육과 모니터링을 담당하고, 식약처는 마켓이나 유통 현장에서 모니터링하면서 체크해야 돼요. 또한 환경부는 수질, 대기, 골프장 등에서 농약을 모니터링해서 환경오염을 막아야 해요. 그러면 소비자들이 훨씬 더 안심할 수 있는데, 지금은 그런 것조차 체계적으로 안 되어 있는 거죠.

 

170829__뚡뀯_솽꼳_듄넫_믟뀳_?__꼮___15A8833.jpg


건전한 식생활 유지한다면 종합비타민 필요 없어


‘건강을 위해 종합비타민을 먹어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많이 받으신다고요. 책을 읽어 보니 ‘건강한 식생활을 유지하는 사람은 굳이 챙겨먹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비타민이 생리기능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요소인 건 맞아요. 결핍되면 괴혈병, 각기병 등이 생기잖아요. 과거에 영양 상태가 불량했을 때는 이런 질병들이 많았죠. 비타민은 우리 몸에서 만들어지는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음식물을 통해서 섭취해야 돼요.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의 경우를 보면 균형 잡힌 식사를 할 경우 비타민 결핍 증상은 거의 나타나지 않는 것 같아요. 균형 잡힌 식생활이라는 건 육류, 어류, 채소, 과일을 골고루 먹는 건데 그렇게 건전한 식생활을 유지하면 종합비타민을 먹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비타민을 챙겨 먹어야 하는 사람들도 있겠죠?


비타민이 결핍될 위험성이 있는 인구 계층은 있어요. 예를 들면 다이어트를 심하게 한다든지 편식을 하는 경우가 있겠죠. 그리고 술을 지속적으로 마시면 비타민 흡수를 억제하여 체내 비타민 양이 전체적으로 줄어들어요. 흡연자는 비타민 C가 특히 결핍이 많이 되고요. 임산부의 경우에도 비타민이 부족할 수 있어요. 그런데 종합비타민을 권하는 주요한 이론적 배경은 ‘활성산소 생성과 질병, 노화가 관련 있다’는 주장이에요. 비타민 C, 비타민 A, 비타민 E, 베타카로틴 등이 항산화 작용을 하니까 이런 것들을 먹으면 노화를 늦추고 질병을 줄이지 않을까 하는 이론이 있는 거죠. 최근에 그와 관련된 여러 연구들이 있었어요.

 

연구 결과가 궁금한데요?


<뉴잉글랜드 의학저널>에도 수만 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가 실렸는데, 과학적인 증거가 별로 없었어요. 흡연자를 상대로 한 실험에서는 오히려 폐암이 증가했다는 결과도 있었고요. 그래서 실험을 중단하기까지 했죠. 그러니까 (항산화 비타민이 질병?노화와 관련 있다는 이론은) 과학적 증거가 굉장히 약하다는 거예요.

 

임산부의 경우에는 꼭 ‘임산부용 전문 비타민제’를 먹어야 할 것 같아요. 비타민 A, 엽산을 과잉 섭취하면 기형아를 출산할 위험이 있다고요.


임산부만큼은 비타민 A, 엽산 때문에 비타민 부족과 과잉 섭취를 다 조심해야 돼요. 미국의 경우에는 의사 처방이 있어야 살 수 있어요. 산부인과에 가면 철분 제제와 임산부용 비타민을 처방해 주죠. 지금 우리나라 임산부를 대상으로 그런 규제는 하지 않고 있어요. 병원에서 비타민을 처방하지는 않으니까요.

 

최근에는 종합비타민과 함께 비타민 D를 먹는 사람들도 많아요.


지금의 40~50대는 비타민 C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을 거예요. 20~30대는 비타민 D 이야기를 많이 들을 것 같은데요. (일종의) 유행과 마케팅에 따르는 거거든요. 비타민 C는 노벨상을 받은 라이너스 폴링이라는 생화학자가 『비타민 C와 감기 Vitamin C and the Common Cold』라는 책을 쓰면서 ‘비타민 C 신봉자들’이 많이 생겼어요. 비타민 D도 마찬가지로 마이클 홀릭 박사가 책을 써서 여러 가지 이론으로 설명을 했는데, 미국에서도 비타민 D 결핍은 그렇게 많지 않은 것 같아요. 우리나라의 경우는 비타민 D 결핍에 관한 연구 자료들이 다소 차이는 있지만 그렇게 부족한 것 같지는 않고요. 마이클 홀릭의 책에서는 비타민 D를 충분히 먹으라고 하지만 지금 우리의 식생활은 영양 과잉이잖아요. 태양빛을 쬐면 우리 피부에서도 비타민 D를 만들 수 있고요.

 

‘슈퍼푸드’야말로 유행이 아닐까 싶은데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주로 특정 영양소나 항산화제가 포함된 것들을 슈퍼푸드라고 많이 이야기하는데요. <타임즈>, <뉴스위크>, 영국의 매거진 등에서 슈퍼푸드를 이야기하는 배경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어요. 케일, 양상추, 브로콜리, 시금치 같은 채소나 블루베리, 열대과일, 포도 같은 과일들이 슈퍼푸드라고 이야기하는 것들인데, 주로 미국 사람들이 쉽게 접하고 많이 먹는 식품들이에요. 견과류, 생선들도 그렇고요. 실제로 분석을 해보면 특정한 항산화 성분들, 비타민, 영양소도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미국이나 영국 사람들은 동양인에 비해서 채소나 생선을 안 먹거든요. 주로 육식을 많이 하고 영양불균형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많아요. 그래서 많은 언론들이 슈퍼푸드를 먹으면 영양 균형이 맞는다는 이야기를 하는 거죠. 그런 취지에서 이해하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꼭 상업적으로만 이야기할 수는 없는 것 같고요.

 

‘슈퍼푸드’는 음식으로 섭취하는 거니까, 효과가 적을지언정 ‘먹어서 나쁠 것은 없다’는 생각도 들어요.


편식하는 사람들에게는 슈퍼푸드가 굉장히 좋을 수 있지만, 균형 잡힌 식사를 한다면 반드시 섭취할 필요는 없고요. 슈퍼푸드의 영양소나 항산화제를 이야기하는 건 괜찮지만, 질병의 치료나 예방과 연결시키는 건 과학적인 근거가 전혀 없어요. 그리고 슈퍼푸드에 관한 연구 중에는 스폰서들의 지원을 받아서 이루어진 게 많아요. 케일이나 브로콜리처럼 일반적으로 먹는 식품이 아닌 특정한 식품들이 그런 경우가 많은데요. 이해관계가 있기 때문에 그대로 믿기는 어렵죠. ‘먹어서 나쁠 것은 없지 않느냐’고 물으신다면, 나쁠 것은 없어요. 다만 슈퍼푸드만 먹으면 안 된다는 거죠. 영양불균형이 초래되니까요. 여러 식품 가운데 하나로써 슈퍼푸드를 먹으면 좋고, 파우더나 알약 등 가공된 제품보다는 식품으로 섭취하는 게 좋아요.

 

170829__뚡뀯_솽꼳_듄넫_믟뀳_?__꼮___15A8868.jpg


백신, 믿고 맞아도 될까?


‘디톡스’ 열풍도 뜨거웠죠. 유해물질에 노출되지 않은 사람이 체내 독소를 뺄 필요가 있다고 보세요?


없죠. 디톡스는 과학 용어가 아니고요. ‘디톡시피케이션 Detoxification’에서 앞 글자만 따온 것 같아요. 과학계에는 해독제가 있죠. 화학물질이 다량 노출됐을 경우 각각의 독성 원리에 따라 만든 약이에요. 그런데 지금 판매되고 있는 디톡스는 제조 회사에서 무엇을 해독하는 것인지 명확하게 이야기를 못해요. 막연하게 숙변이라고 이야기하거나 미세먼지가 쌓인 폐를 깨끗이 한다고 이야기하는 식이죠.

 

‘디톡스’와 관련해서 우려하시는 바도 있나요?


우리 몸은 소량의 독소가 들어왔을 때 그걸 해독시키는 시스템이 아주 잘 되어 있어요. 디톡스가 들어갈 틈이 없죠. 오히려 디톡스가 몸 안에 들어오면 그걸 이물질이라고 느껴서 제거해야 된다는 부담을 느껴요. 디톡스가 외인성 물질(외부에서 들어온 물질)로 작용할 가능성도 많은 거예요. 디톡스의 종류도 많아서 다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과학적으로 검증할 수도 없고 검증된 것도없어요. 저는 우리 몸의 균형을 맞추는 게 건강 유지에 가장 중요하다는 걸 강조하고 싶어요.

 

처음 ‘안티백신운동’이 시작된 건 오래 전의 일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최근의 ‘안아키’ 카페 사태를 떠올려 보면, 아직도 신봉자들이 있는 것 같아요.


없어지지 않죠. 1798년에 에드워드 제너가 우두 접종법을 백신으로 명명했잖아요. 그 뒤로 많은 비판과 음모론이 뒤따랐어요. 당시 영구 정부에서 천연두를 막으려고 백신을 합법화시켰는데, 종교계에서는 동물의 분비물을 쓰는 것이 맞지 않다고 어마어마하게 반대했고요. 의학이나 제너의 이론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백신의 효과가 의심스럽다’, ‘부작용이 걱정된다’면서 굉장히 반대를 했어요. 그때 ‘백신접종의무 반대연맹’, ‘항백신 잡지’ 같은 것들이 생겨났죠. 그러다가 20세기 들어서 오랫동안 잠잠해졌는데, 1998년에 프랑스의 유명한 의학 학술지 <란셋>에 논문이 하나 발표됐어요. MMR(홍역, 볼거리, 풍진) 예방 백신을 맞으면 자폐증이 증가한다는 거예요. 그래서 어린이에게 백신 맞추기를 거부하는 움직임이 생겼죠.

 

결과는 어땠나요?


1998년 이전에는 10건 정도였던 홍역 발생 빈도가 2012년에는 2천여 건으로 늘었어요. 사망 환자도 있었고요. 논문을 면밀히 검토해 보니까 거짓으로 밝혀졌어요. 그래도 한 번 벌어진 일은 덮기가 쉽지 않은 거예요. 대중과 과학자들의 소통의 문제이기도 하죠. 의료계에서는 이 사건을 ‘지난 100년 동안 가장 악의적인 거짓말’이라고 하는데, 실제 현상을 보면 백신을 맞추지 않으니까 홍역 환자들이 어마어마하게 늘었잖아요. 이후에는 전염병이 창궐할 수도 있는 거예요. 17~19세기에 전염병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어요? 백신을 안 맞추면 그렇게 되는 거죠. 이런 사건들이 있었기 때문에 아직도 안티백신운동자들은 ‘의사들과 제약회사가 이해관계가 있어서 백신의 위험성을 은폐한다’, ‘실제로 백신은별로 효과도 없다’고 주장하는데, 그건 아니에요. 현상적으로 질병에 걸린 환자들이 늘어났잖아요.

 

내성이 생길 것을 우려해서 약을 안 먹고 버티는 사람들도 있어요.


말라리아 치료제도 계속 내성이 나오고 ‘슈퍼박테리아’도 현재 나와 있는 항생제가 듣지 않죠. 그런 게 인류한테 상당히 위협적인 거예요. 그런데 자기만 약을 안 먹는다고 해서 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항생제는 식품을 통해서도 우리 몸 안에 들어올 수 있죠. 농장이나 양식장에서 가축이나 어류들을 기를 때 항생제를 많이 쓰잖아요.  또한 우리나라가 약을 많이 쓰는 건 사실이에요. 감기 환자들에게도 관행처럼 항생제를 많이 쓰는데, 그 부분은 정부나 전문가들이 대책을 세워야 될 것 같아요. 그리고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의 문제는 병원과 약국에서 약에 대한 크로스체크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거예요. 내성이 생기는 건 굉장히 큰 문제예요. 2015년쯤에 기존의 모든 항생제가 전혀 듣지 않는 균주가 발생했는데, 그게 퍼져 나가면 인류한테 심각한 위험이 될 수도 있는 거거든요.

 

서문에 쓰신 바와 같이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할지, 건강을 위해 무엇을 먹어야 할지” 몰라서 혼란스러워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믿고 먹을 만한 약을 찾기 위해 참고할 만한 자료가 있을까요?


우리나라는 약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도 부재하고, 전문가를 불신하거나 스스로를 전문가라고 생각하는 ‘셀프전문가’들이 많아요. 블로그만 봐도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옮기잖아요. 약에 있어서는 그러면 안 되거든요. 병을 정확히 진단해서 처방 받고 약을 써야지, 남의 이야기만 듣고 먹었다가 치명적으로 병이 발생될 수도 있어요. 일단은 전문가의 의견을 따르는 게 좋아요. 모든 약에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다 부작용이 수반돼요. 이 부분에 있어서도 전문가의 의견을 많이 따르는 게 좋죠. 하지만 병원에서 의사와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부족하잖아요. 그래서 제가 제시하는 건, 국가에서 웹사이트를 개설해서 소비자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방법이에요. 증상, 원인, 약 복용 방법, 부작용 등을 간단하게 정리해서 질병과 약 사용에 관한 기초적인 지식을 전달하는 게 필요할 것 같아요.


 


 

 

위대하고 위험한 약 이야기정진호 저 | 푸른숲
건강과 행복을 위해 무엇을 믿고, 무엇을 믿지 말아야 할까? 세계적 독성학자 정진호 교수가 들려주는 약의 모든 것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강화길 “말하지 못할 뿐, 너무 흔한 일이에요”

$
0
0

 

482.jpg

 

남자친구의 다섯 번째 폭행. 진아는 그를 신고했다. 결과는 벌금 300만원. 그녀는 스스로를 보호할 필요성을 느꼈고 인터넷에 자신의 이야기를 올렸다. 위로와 공분의 목소리 사이로 비난과 질책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유독 눈길을 붙드는 한 줄의 악플. 과거의 자신을 아는 이가 남긴 것이 분명했다. 그를 만나기 위해 고향으로 향한 진아는 대학 시절 지인들과 재회하게 되고, 성폭력 피해자였던 친구들의 이야기를 알게 된다. 그녀들은 ‘다른 사람’이었을까. “사랑하는 사람에게 맞을 것처럼 보이는 여자”이거나 “천박한 여자”였을까. 소설가 강화길은 그녀들의 이야기가 “너무 흔한 일”이라 말한다.

 

527.jpg


남자 작가에게는 묻지 않는 것들


『다른 사람』으로 ‘제22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셨습니다. 당선 소식은 언제 들으셨나요?

 

정확히 언제인지 기억은 안 나는데, 퇴근하고 집에 가는 길이었어요.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었는데 전화가 온 거예요. 전화를 끊고 보니까 아이스크림이 다 녹았더라고요. 그래서 먹지 못했던 기억이 나요(웃음).

 

기분이 어떠셨어요? 믿기지 않던가요?


약간 그렇기도 했고요. 그냥 너무 좋았죠. 사실 등단했을 때도 조금 우여곡절이 있었거든요.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는데, (주최측에서) 제 신상정보를 잃어버리신 거예요. 그래서 기자님이 인터넷 검색을 하셔서 제가 졸업한 학교를 찾으셨대요. 요즘은 학교 수업에 인터넷 카페를 활용하니까 ‘국문과 강화길’ 이런 식으로 쓴 글이 있었던 거예요. 결국 부모님께서 사시는 전주 집으로 먼저 연락이 갔어요. 부모님이 전화하셔서 물어보시더라고요. 혹시 신춘문예에 투고했냐고, 지금 <경향신문>에 전화해 보라고요(웃음). 그렇다 보니까 제가 당선 연락을 정식으로 받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이번에는 무사히 전화를 받았구나’ 싶은 생각도 들었죠(웃음).

 

띠지에 적힌 ‘영페미의 최전선’이라는 표현이 강렬하게 다가와요.


이런 분위기와 시의성이 화제가 된다는 건 굉장히 고무적인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마치 영페미니스트의 대표 같은 느낌도 들잖아요. 제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도 아니고, 젠더 문제에 있어서 통찰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그래서 두려운 마음이 더 크죠. 여러 가지 고민도 하게 되고 책임감에 대해서도 더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등단 초기에는 여혐과 관련된 질문을 받으면 피하는 경향이 있으셨다고요.


여성 작가들은 그런 질문들을 많이 받아요. ‘여성으로서의 자의식을 갖고 있느냐’, ‘여성으로서의 글쓰기에 관심이 있느냐’ 같은 질문들이죠. 예전에는 그 질문들의 함의를 느꼈던 것 같아요. 어쩌면 시기와 상관없이 스스로의 검열이었을 수도 있고요. 왜냐하면 ‘여성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건 소품이 되고 쉽고, 지나치게 프레임적인 이야기이고, 선정적인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거든요. 학교를 다닐 때도 그랬고 합평을 할 때도 그랬어요. 실제로 증명된 적은 없는 이야기인데도 불구하고요. 조이스 캐롤 오츠, 마거릿 애트우드 같은 작가들을 보면서 공부하고 습작을 하면서도 그런 이야기를 듣는 거예요. 은연중에 ‘그런 걸 극복하는 게 예술가의 목표’라고 생각하게 되죠. 제 경우는 그랬던 것 같아요.

 

이제는 달라졌나요?


예전에는 ‘시작하는 단계니까 나를 이 프레임에 가두면 안 된다’는 무의식 같은 게 작동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질문을 피하거나 그것만 이야기하려고 하지는 않는다는 식의 대답들을 하게 됐죠. 등단 후에 그걸 극복하는 데에도 시간도 많이 걸렸어요. 

 

‘등단 이후 줄곧 여성문제를 이야기해온 작가’라는 수식어가 부담스럽지는 않으세요?


부담이 없지는 않죠. 그냥 이제까지 해왔던 이야기를 계속 했던 건데, 어느 순간 그런 작가가 되어 있는 거예요. 인터뷰에서 그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어요. ‘이런 이야기를 쓰면 프레임에 갇힐 수 있고 (창작 영역이) 축소된다는 말들이 있지 않느냐’고요. ‘그건 증명되지 않은 프레임’이라는 게 제 대답이었어요.

 

“마치 존재하지 않는 바이러스를 말하는 것”과 같다고 하셨죠.


그렇죠. 그게 저의 깨달음이었던 거예요. 정신을 차려 보니까 그런 작품들이 프레임에 갇힌 적은 없더라고요. 조이스 캐롤 오츠, 마거릿 애트우드, 박완서 선생님은 말할 것도 없고요. 항상 이 이야기를 해오던 사람들은 주제가 달라진다 해도 좋은 작품을 썼어요. 그러니까 그 말이 문제인 거죠. 이런 작품을 쓰는 게 (창작 영역을) 축소시킨다는 말이요. 이제 ‘누가, 왜’ 그런 말을 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등단 이후 줄곧 여성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건 맞는 말이기도 하고 틀린 이야기이기도 해요. 여성작가이고 직면하고 있는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당연히 녹아 들어가 있죠. 그게 마치 목적성을 가진 것처럼 이야기하는 건, 결국 ‘그런 작품을 쓰면 (창작 영역이) 축소된다’는 말을 하는 것과 똑같다고 생각해요.

 

주제가 ‘페미니즘’이 아닌 다른 것이었다면 어땠을까요?


이런 질문을 받지 않았겠죠. 제가 페미니즘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는 건 맞아요. 다른 작품에서 더 중요하고 깊이 있게 다루고 싶기도 해요. 만일 다른 주제를 이야기했더라도 분명히 페미니즘은 들어갔을 거예요. 그랬다면 페미니즘에 대한 질문은 나오지 않을 확률이 높겠죠. 제가 페미니즘에 집중하고 있는 이유는 그만큼 금기시되던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고, 이 이야기가 나왔다는 게 우리에게 불편하기 때문일 수도 있어요.

 

작가들에게 ‘여자나 엄마 얘기는 쓰지 말라’는 말을 듣기도 하셨다고요.


직접적으로 이야기하지는 않아요. 돌려서 말하는 거죠. 어느 정도는 걱정인 거예요. ‘너는 그런 거 쓰면 안 돼’라고 무시하려는 게 아니고 ‘이런 이야기보다는 다른 이야기를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말이 은연중에 나오는 거예요. 그걸 긍정하고 받아들이려면 내면을 깎아내야 되죠. 나를 죽이거나 버려야 되는 건데, 그런 면에서 저는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주변에 조언을 해주는 친구들도 있었고, 휘둘리기 쉬운 심정적인 상태도 아니었어요. ‘나는 이걸 하고 싶은데?’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극복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170904__?_■녅_믟뀴_?_듄넰_뚡뀫_ⓤ____15A0384.jpg


86년생 강화길


『다른 사람』은 기존의 페미니즘 소설과 구별되는 지점이 있는 것 같아요. 여성 인물들의 캐릭터가 다르다고 할까요.


그만큼 여자 캐릭터가 입체적으로 이야기되는 게 허락되지 않는 상황이었던 것 같아요. 선배들의 작품 속에 그런 인물이 없었다는 게 아니고요. 굉장히 많은 여성 캐릭터를 보여줬지만 그걸 단선적으로 해석하는 데만 집중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우리가 너무 많은 것들을 놓쳤다고 생각해요. 제 경우에는 주제에 맞춰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조금 다르게 보이는 것 같고, 크게 달라진 건 없다고 생각해요.

 

‘강한 페미니스트로 거듭나는 여성’이 전형적인 인물상이었다면, 이 소설의 인물들은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여줘요. 무엇이 정답인지 몰라 혼란스러워하는 거죠.


저한테는 그게 현실이라서 그랬던 것 같아요. 만화나 영화 속의 주인공처럼 어느 순간 각성을 한다면 좋겠지만, 각성을 한 후에도 고민과 상황은 이어지잖아요. 다시는 이렇게 행동하지 않겠다고 생각해도 똑같은 상황을 만나면 위축되고 고통을 겪기 마련이죠. 스스로에게 더 실망하고요. 그 모습을 많이 보여주고 싶었어요. 제가 많이 보고 느꼈던 복합적인 상황도 쓰고 싶었고요. 똑같은 사건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들 사이에 의견이 다르잖아요. 서로 반목할 수밖에 없고 연대할 수 없고요. 그런 데에서 오는 충돌 같은 걸 느꼈어요. 저에게는 생동감 있었던 이야기인 거죠.

 

누군가는 소설 속 여성들을 답답하게 여길지도 모르겠어요. ‘왜 자신을 적극적으로 지키지 못했어? 왜 저러고 살아?’라고 말하는 거죠. 그녀들은 왜 스스로를 탓하면서 참았을까요?


사회적인 무엇이 이유일 수도 있고, 개인적인 문제가 있을 수도 있죠. 인물들에 대해서 그렇게 말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해요. 여성이라고 해서 모든 여성에게 감정을 이입할 수도 없는 거고, 사실 그것 자체가 프레임이죠. 페미니즘은 ‘한 인간이 개별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주어진 캐릭터대로 행동하지 않는다는 거죠. 당연히 다르게 생각할 수 있는 거고, 그것이 지지 받을 수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이 소설의 인물들을 보고 싫어할 수도 있고 좋아할 수도 있어요. 저는 그게 더 건강하다고 생각해요. ‘이 소설을 읽고 동감하지 못했어? 왜 그래?’라고 말하는 게 더 좋지 않은 상황이라는 거죠.

 

주인공 진아와 친구들은 작가님과 동갑이에요. 1986년생인데요. 그녀들이 겪는 현실과 감정이 이전 세대와는 다르다고 느끼세요?


어떤 지점에서 구별된다고 단언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제가 이전 세대 여성들의 생활을 아는 게 아니니까요. 제 세대에 관한 이야기만 하자면, 어렸을 때부터 남녀는 평등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자라면서 그게 아니라는 걸 미묘하게 깨닫게 되는 거예요. 당연히 분노가 쌓이게 되고요. 저는 지방출신인데요. 예를 들면, 지방에서는 공부 잘하는 여자 아이들도 굉장히 좋은 대학이 아니면 서울로 진학하지 않는 경우가 있어요. 명문대도 아닌데 굳이 서울까지 갈 필요가 있냐는 무언의 압박이 있는 거죠. 그보다는 안정적인 직장이 보장되는 학교를 선택하는 식으로 타협을 해야 될 때가 있어요. 만약 오빠가 있으면 더 극명하게 느끼죠. 여동생이 양보를 해야 되는 거예요. 옛날에는 여자 아이를 아예 대학에 안 보냈잖아요. 저희는 대학은 갔지만 차이를 느끼기는 한 거죠.

 

연애를 할 때는 어떤가요?


요즘 가스라이팅이나 맨스플레인이라는 용어도 많이 쓰잖아요. 연애할 때 문제가 생기면 상대가 나를 압박할 때도 있고, 그러면 ‘내가 잘못한 건가? 내가 이해해야지’ 하고 받아들이기도 하죠. 여자들이 연애 상담하면서 이해하라는 말을 많이 듣잖아요. 사실 연애에서 발생한 권력관계인데, 그걸 자각하기보다 ‘내가 이해를 하고 넘어가 줘야지’ 하고 생각하는 상황에 놓이게 돼요. 심해지면 데이트 폭력이 되고 성폭력이 되는 건데도 불구하고요. 뭔가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은 드는데 명확하게 말할 수는 없고, 지금 당장 어떻게 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그래서 더 힘이 드는 것 같아요. 그런 과도기적 상황을 20대 때 많이 보고 느끼면서 ‘어쩌면 이건 세대 문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577.jpg


이건 너무 흔한 일이에요


성폭력 피해 여성을 비난하는 여성들도 있어요. 소설에도 그런 모습이 나타나 있는데요. 이런 상황이 생기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성들이 가지고 있는 여성혐오가 가장 비극적인 일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페미니즘에 직면하는 순간 제 안에 여성혐오가 있다는 걸 느꼈어요. 나의 젠더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부정했던 거죠. 사회에서 이야기하는 것들에 반응하기만 하고요. 그게 굉장히 놀랍고 힘들었어요. 내가 했던 실수들을 다 돌이켜 보게 됐으니까요. 여성들이 페미니즘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자기혐오를 했던 시간을 되짚게 돼요. 그게 너무 고통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해요.

 

『다른 사람』이라는 제목 안에 선 긋기, 단절의 의미가 담겨있는 것 같아요.


그렇죠. 다른 사람이 되고 싶기도 하고, 다른 사람으로 보이고 싶기도 하고, 어떤 군집에서 구분되고 싶기도 한 거죠. 누구나 자신이 특별해지고 행복해지기를 바라잖아요. 그러니까 사회에서 별로 좋지 않은 사람이라고 이야기되는 상대가 있다면, 그 상대가 나랑 같은 젠더를 가졌다면, 구분되고 싶어 하는 거예요. 결국 여성들이 가지고 있는 여성혐오라는 건 ‘나는 여자지만 저 여자와는 다르다’는 거죠.

 

‘너 같은 여자는 아니야, 너처럼 하지는 않아’라고 생각하겠죠.


여성혐오로 분류되는 군집에 자신이 포함되지 않는다는 걸 드러내려고 하는 건데요. 그 여성들이 잘못된 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자연스러운 거예요. (여성혐오를 하는 사람들과) 싸우는 건 너무 고통스럽잖아요. 또 지금까지 주입 받은 게 있기 때문에 (혐오의 대상이 된 여성들이) 옳지 않다는 생각도 당연히 하게 되고요. 그러니까 (혐오 대상인) 몇몇의 사람들은 계속 고립될 수밖에 없는 거예요. 어떤 때에는 여성들이 더 공격적인 단어들을 쓰기도 해요. 성적으로 문란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말들 있잖아요. 그런 걸 더 쉽게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어요. 사실 자기혐오에 가까워질 수 있는 거죠. 그런데도 계속 구분을 짓는 거예요. 나는 조금 다르다고요.

 

성적인 문제에만 국한되는 건 아닐 거예요.


모든 분야에서 발생한다고 생각해요. 글을 쓰는 데 있어서도 ‘다른 여학생들과는 다른 작품을 써야 돼’라는 압박을 받을 때가 있어요. 여성적인 작품 말고 다른 걸 써야 된다는 거죠. 사실 여성성이라는 게 얼마나 흥미로운 주제예요?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면 훨씬 확장될 수 있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중성적이거나 완전히 성별을 알 수 없는 걸 쓰게 되는 거예요. 저도 습작기에 했었던 시도예요. 그건 달라지기 위해서 하는 건데, 비슷한 일이 도처에서 발생하죠. 직장에서 일할 때도 여성성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을 부정하고 다른 걸 선택하기도 하잖아요.

 

소설 속 여성들은 성폭력을 당했던 경험을 갖고 있어요. 이들의 이야기에 영향을 미친 실제 사건도 있었나요?


많이 받는 질문인데요. 굉장히 특별한 사건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 너무 흔해요. 대한민국에서 80년대 중반 이후에 태어나서 대학을 다닌 여학생들은 이런 경험이 정말 많아요. 그 학생들이 어떻게 됐는지도 알고, 대학 안에서 끝나는 일도 아니에요. 이건 너무 흔히 일어나는 일이고 말하지 않을 뿐이에요. 사회적인 시선이나 여러 가지 문제 때문에 말하지 못하고 신고하지 못하고 그냥 넘어갈 뿐이죠.

 

페미니즘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소설이에요. 그렇지만 너무 페미니즘에만 초점이 맞춰져서 아쉬우실 것 같아요.


아쉬움도 있죠. 그런데 제가 선택한 건 명확하니까요. 한 소설을 쓰면서 하나의 소재에 대해서만 이야기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세계관이라는 건 굉장히 다양하게 얽혀 있기 마련이고요. 이건 덫이기도 해요. 이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었으면서도, 이 주제만 두드러지는 것 같다는 두려움을 갖는 건데요. 제가 여전히 그런 프레임을 의식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죠. 이런 복합적인 감정이 소설에 드러난 것들과 맞닿아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앞으로 이 부분에 대해서 조금 더 깊이 있게 생각하게 될 것 같고, 저에게 과제가 될 것 같아요. 페미니즘에 목적성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지만 쓰다 보면 당연히 나올 수밖에 없는 문제들이기 때문에, (페미니즘이) 중요하게 이야기되는 건 감사하게 생각해요.

 

다른 부분도 주목해줬으면, 하는 바람은 없으세요?


그냥 재밌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웃음). 이 작품은 페미니즘 소설이기도 하고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니까 여러 가지로 말할 수 있을 텐데요. 저는 끝까지 잘 읽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쓰기 시작했어요. 한 권의 소설이라는 건 어쨌든 끝까지 다 읽을 수 있어야 되는 거잖아요. 저널이나 이론서 같은 게 아니기 때문에, 그냥 소설로써 받아들여졌으면 좋겠어요. 독자에게 다가가는 한 권의 작품으로 기억되고요. 가장 우선적으로 듣고 싶은 건 재밌었다는 말과 함께 소설이 참 좋았다는 이야기예요.


 

 

다른 사람강화길 저 | 한겨레출판
전혀 다르게 보이는 단어들이 어떻게 한 부모 아래에서 태어났는지, 한 단어가 어떤 역사의 풍파를 맞아 지금의 모습으로 변했는지를 알면 세계사의 흐름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강주은 “장점을 먼저 봐요, 짧게 말하고 기다려요”

$
0
0

 

_15A1000.jpg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도 아무리 좋은 이야기라도, 오래 보고 오래 들으면 지루하다. 그런데 강주은의 이야기는 좀 달랐다. 기꺼이 오래 듣고 싶었다. 이유를 찾는다면 탁월한 배려, 온전히 대화에만 집중하는 눈빛 때문이다. 배우 최민수는 아내가 쓴 책 『내가 말해 줄게요』를 몇 장 읽고는 “아껴 읽고 싶다”며 천천히 책을 보는 중이라고 한다. 강주은은 107쪽에 이렇게 썼다. “제 바람은 나와 잠깐이라도 만나고 돌아설 때 ‘아, 느낌이 좋았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저는 그것만으로도 성공이에요.” 이 날도 성공이었다.

 

“제가 말하는 그 ‘조건 없는 사랑’은 저의 선택이에요. 내 삶의 원칙은 내가 직접 한 선택이어야 해요. 손해 안 보고 싶다, 조건 없이는 안 된다, 왜 참기만 해야 하나? 그런 생각도 존재하죠. 모든 선택은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범위에서 이루어져야 해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선택과 차단을 잘 판단해야 해요. 저는 조건 없는 사랑을 하겠다고 결심했어요. 그리고 그건 남녀 관계에 국한된 게 아니에요. 그것은 누구에게나, 어디서나, 언제나 해당돼요. 저는 집에서부터, 그러니까 남편, 자식, 부모에게 먼저 손해 볼 준비를 했지요. 『내가 말해 줄게요』 302~303쪽)

 

_15A0853.jpg

 

항상 나를 잘 돌보고 싶어요

 

인터뷰를 하기 전에 꼭 기도를 하신다고요. 오늘도 하셨나요?

 

항상 하니까요. 물론 오늘도 했죠. (웃음) 생각하는 자세가 제 생활 속에 오랫동안 배어있어요. 누군가를 만날 때, 상대가 처음 보는 사람일 때는 더 깊이 생각해요. 이 사람과 저로 하여금 어떤 일이 벌어질까, 어떤 뜻이 있을까, 어떻게 최선을 다할 수 있을까.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버릇이 됐어요.

 

‘강주은의 소통법’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책이 나왔어요. 인터뷰집인데요. 출판사에서 굉장히 공들여 만든 것 같아요.


여러 면에서 너무 고마워요. 출판사가 갖고 있는 문화도 너무 공감됐고요. 소통이 잘 됐어요.

 

책 제안을 흔쾌히 받으셨다고요. 그간 출간 요청이 많았을 텐데요.


그동안은 시기가 잘 맞지 않았어요. 학교 일을 하고 있으니까 시간도 안 났고요. 올해로 학교 일을 내려놓은 지 딱 1년이 됐는데요. 올해 초 슬럼프가 왔을 때, 미메시스로부터 제안을 받았어요. 특별히 계획하고 진행하는 일이 없었던 때라 타이밍이 딱 맞았죠. 5개월 동안 매주 만나서 인터뷰했어요. 무척 즐거운 시간이었어요.

 

어린 시절 성장과정부터 남편과의 만남, 결혼, 신혼, 부부생활, 자녀교육까지, 굉장히 깊은 이야기가 많더라고요. 인터뷰를 에세이로 가공하지 않아서 더 자연스럽게 읽혔어요.


일주일에 한 번씩 기획자, 편집자 분과 만났어요. 짧게는 4시간, 길게는 6시간씩 대화를 나눴어요.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제가 정신적으로 치유가 되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내가 어떻게 이 자리까지 왔지? 내가 어떻게 이런 삶을 살게 됐지?’가 정리되는 기분이었어요. 제 삶을 되돌아보게 됐고요. 정리하는 게 굉장히 고된 일이잖아요. 그런데 출판사가 너무 섬세하게 일을 해주셨어요. 그래서 생각하지 못했던 이야기까지 꺼내놓게 됐어요. 사람이 인터뷰를 할 때면 그 날의 기분, 생각들이 조금씩 다를 수 있잖아요? 그런데 편집자 분이 “제 이야기를 쭉 듣다 보면 일관성이 있다”고 하셨어요. 저는 이게 참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감사했어요.

 

‘최민수의 아내’ 같은 카피가 전혀 없더라고요. 온전히 강주은의 이야기에 집중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책을 받고 나서 정말 꿈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실감이 나지 않았죠. 이제는 ’남편 이름에서 내가 독립해야겠다’ 그런 생각은 없어요. 제가 어떤 이름으로 불려도 감사한 마음이에요. 나라는 존재 앞에 남편의 이름이 따라와도 전혀 상관없어요. ‘최민수의 아내로 내 인생은 끝나나’ 이런 생각은 이제 하지 않아요.

 

나이 듦의 변화일까요? 아니면 받아들인 걸까요?


과정이 생겼다고 할까요? 나름대로는 두 개의 생활을 살았어요. 서울외국인학교에서 대외협력 이사로 일할 때는 아내, 엄마라는 이름이 없었으니까요. 남편의 이름을 들을 일도 없었고요. 그런데 학교를 벗어나면, 남편 세상이 됐어요. 강주은 이라는 이름 앞에 ‘최민수의 아내’가 꼭 따라붙었죠. 제 이름이 다시 불린 건, 예능 프로그램 <엄마가 뭐길래>에 출연하면서부터예요. ‘깡주은’이라는 이름이 생겼으니까요.

 

방송을 통해 본 강주은의 모습이 책에도 곳곳에 비쳐지더라고요. 강인하면서 부드럽다고 할까요? 놀라운 건, 어린 시절의 이야기였어요. 너무나 일찍부터 엄마, 아빠를 배려하는 외동딸이었더라고요. 부모님으로부터 극진한 사랑을 받았지만, 부모님께 의존하는 모습은 없었던 것 같아요. 철도 굉장히 일찍 들었고요.


본능적으로 저는 행복감을 자주, 많이 느끼는 사람이에요. 작은 것 안에서도 행복을 발견하는 사람인데, 이게 노력하는 부분도 있지만 또 저절로 자연스럽게 되는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어릴 때부터 혼자 자랐기 때문에 크리에이티브한 마인드가 많았어요. 개구쟁이 같은 면도 많았고 혼자도 잘 지냈어요. 그런데 갓난아이 때는 그렇게 많이 울었대요. 너무 많이 울어서 어디를 못 데려가는 아이였죠.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어릴 때 많이 운 아이들이 굉장히 예민하대요. 새로운 환경, 낯선 공간에 들어가도 눈치가 살아있는 거예요. 제가 낯선 캐나다에 살다가 한국에 왔을 때, 정말 힘들었지만 이 눈치 하나로 견딘 것 같아요. 말이 안 통할 때는 눈치 밖에 없으니까요.

 

스스로를 잘 돌본다고 할까요? 균형감이 느껴져요.


저는 혼자 만의 시간을 정말 즐겨요. 그렇다고 허세 섞인 자신감은 아니고요. 그냥 어떤 일이 생길 때 스스로 물어봐요. ‘아, 지금 내가 하는 일이 옳은가?’ 거기에 대답하려고 자신을 객관적으로 돌아봐요. 그리고 항상 나를 잘 돌보고 싶어요. 엄마와 아빠를 보고 자라 오면서 어떤 부분에서는 본인들이 스스로를 돌아보지 못하는 걸 많이 봤거든요.

 

  

_15A0733.jpg

 

내가 상대에게 더 맞춰 줄 수 있는가


대화에 관한 책이 참 많잖아요. 항상 이야기되는 것들 중 하나는 ‘상대편의 입장에서 생각하라’는 거죠. 이 책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오지만, 좀 더 인상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이렇게 하라’고 말하지 않고, ‘저는 이렇게 하고 있어요’라고 말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제가 의도적으로 만든 습관들이 있어요. 감사의 표현을 하는 것, 안아 주는 것, 소통할 때 상대방의 입장이 되는 것, 어려운 일이 닥쳤을 때 그게 나중에 인생에서 더 좋은 재료가 될 거라고 믿는 것, 사람들을 만났을 때나 상황을 마주했을 때 장점을 찾는 것. 이런 것들이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제게서 스며나올 수 있도록 염두에 둬요. 웃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어릴 때 하나님께 예쁜 미소를 달라고 기도했어요.

 

“상대방의 장점을 화제로 삼아서 대화하면 잘 풀린다”는 이야기도 해주셨는데요. 이게 어려울 때도 있어요. 단점이 너무 도드라져서 장점이 잘 안 보이는 사람도 있고요. 그럴 땐 어떻게 하나요?


저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콤플렉스가 있다고 생각해요. 자신감이 많은 사람도 있지만, 대개 콤플렉스가 많아요. 다른 사람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를 많이 의식해요. 전전긍긍하기도 하고요. 어떤 사람은 그게 좀더 많아서, 자신을 보호하느라 실수가 나오고 단점이 더 도드라진다, 그렇게 생각해요. 일하다 보면, 손해 보는 걸 크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조금도 손해를 안 보려고 하는 사람이 있어요. 후자의 사람을 보게 될 때, 마음이 많이 가요. 그리고 찾아내고 싶어요. 이 분 마음속에 뭐가 있을지 궁금하고요. 답이 언제 나올지는 몰라요. 그런데도 제가 계속 노력해요. 의도적으로 손해보기도 하고 계속 마음을 내려놓아요. 그러다 보면 상대방도 자신을 내려놓더라고요. 자기 이야기도 하고요. 사람들은 모두 신비해요. 마음속에 많은 것이 있어서요. 단점이 먼저 보였어도 찾아 보면 장점이 없을 순 없어요.

 

대화할 때 목소리, 표정도 참 중요해요.


누구나 자신에게 잔소리를 하면 좋아하지 않잖아요. “어느 누구에서든지 가르치는 말을 듣는 건 불편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귀에 확 들어오더라고요. 누구라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내가 상대에게 듣고 싶은 목소리로 말하면 누구도 불쾌하지 않죠. 말을 많이 하는 것도 좋지 않아요. 말을 많이 해버리면 질문만 많아지고 정작 내가 전하고자 하는 의견이 사라져버리니까요. 말이 길어지면 일일이 설명하면서 구구해지고 효과가 없어요. 짧은 시간에 어떻게 말해야 상대방의 기분이 상하지 않으면서 원하는 걸 얻을까? 이런 고민을 항상 해요.

 

“나는 바보야. 잘 이해가 안 가. 내가 많이 부족해”라고 말하니, 어느 순간 남편의 태도가 달라졌다고요.


말소리나 표정이 더 부드러워지고 설명도 더 잘해줬어요. 우리는 조금 더 편하게 대화를 할 수 있는 부부가 됐죠. 사실 참 어려워요.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그걸 참는 것은요. 그러나 내 욕심과 기준을 내려놓고 소통해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해요. 저는 어떤 상황에서든 감정적이고 본능적으로 올라오는 감정으로 말하지 않으려고 해요. 그리고 상대로부터 원하는 반응이 나오지 않을 때는 좀 기다려요. 상대에게 섭섭한 순간이 있잖아요. 그런데 섭섭하다는 말을 그 순간에 하면 안 돼요. 상대방이 그 메시지를 받아들일 준비가 될 때까지, 심지어는 여기저기 부딪치며 상처를 입는 것까지 보며 기다려야 해요.

 

책 속에 ‘남편 최민수’를 굉장히 솔직하게 표현하셨어요. 사랑도 느껴졌지만 단단한 우정도 느껴졌어요.


예전에도 여러 번 말했지만 남편은 제게 꼭 필요한 재료이지만 제가 원하던 재료는 아니었어요.제 머릿속의 이상적 남편의 모습과 부합되는 게 하나도 없어요. 저는 점잖으면서 농담도 잘할 줄 아는 사람이 좋아요. 그런데 이상적 남편이라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모르겠어요. 아마 그런 남자를 만났으면 오늘의 행복을 가지지 못했겠죠. 남편을 통해 제가 상상도 못했던 저의 많은 재료가 드러났으니까요. 고마운 사람이고 감사한 존재죠.

 

194쪽에 ‘민수의 아침’이라는 만화가 나와요. 신혼 초 남편에게 주은 씨의 마음을 잘 전달하기 위해 그리기 시작하셨다고요.


그림을 잘 그려서 시작한 건 아니에요. 제 표현수단으로 그린 거죠. 밤새도록 촬영을 하고 온 남편이 이 만화를 보더니, 충격을 받고는 자고 있는 저를 깨워서는 막 울더라고요. “주은이가 이렇게 생각하는지 몰랐다”고 사과했어요. 당연히 몰랐을 거예요. 그 때까지 한 번도 표현하지 않았으니까요. 참았으니까요. 그런데 남편이 만화를 통해 제가 보던 세상을 한 번에 받아들였어요. 그렇다고 행동의 변화가 단번에 오진 않았지만, 우리 소통의 첫 번째 터닝 포인트가 됐죠.

 

결혼을 준비하는 사람, 혹은 신혼 부부가 이 책을 읽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결혼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다른 배경에서 자란 사람들이 결혼으로 하나의 길을 만든다는 건 그 자체가 전쟁이에요. 그런 과정에서는 누군가 희생을 더 해야 하고요. 결혼에서 중요한 건 상대와 잘 맞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상대에게 더 맞춰 줄 수 있는가, 그리고 둘만의 새로운 문화를 얼마나 잘 만들어 가는 가예요.

 

주은 씨 부부를 보면서, “위기를 함께 겪어서 관계가 더 단단해졌다”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저는 ‘쾅’하는 위기의 순간에 귀한 보물이 숨어 있다고 생각해요. 실패 끝에 열매가 맺히니까요. 실패에서 중요한 게 나오기 때문에 그 상황 밖에 나와서 그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어요. 우리는 여러 사건을 통해 더 신뢰하게 됐고 어떤 일도 같이 헤쳐나갈 힘이 생겼어요. 신뢰의 관계는 직접 만들어가는 거예요. 신뢰를 쌓으려는 우리의 의도가 중요하고요.

 

_15A0908.jpg

 

우리는 참 타인에게만 친절해요


요즘 강연도 종종 하세요.


그것도 참 쌩뚱맞게 하게 됐는데요. <엄마가 뭐길래>를 찍는 중에 제안이 왔어요. 생활에 관해 자유롭게 하면 된다고 했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았어요. 지금까지 스무 번 정도 한 것 같아요. 처음에는 엄청 떨렸거든요. 무대에 올라가는 일이 익숙하지 않아서요. 그런데 또 적응이 되더라고요. 요즘은 ‘스트레스 없는 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해요.

 

책 마지막 장의 주제가 ‘자녀교육’이에요.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면요?


아이에게 첫 교육은 가정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해요. 아이는 부모를 바라보고 자라요. 그래서 부모의 역할이 너무 커요. 지금 사회는 너무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잖아요. IT가 있고 인터넷이 있는 시대지만 정확하게 미래를 예측할 수 없어요. 부모가 자식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인간성인 것 같아요. 책임감, 배려, 감사, 실패를 통한 성장을 가르쳐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요즘 사회, 부모들은 오로지 경쟁에만 집중해요. 점수에만 혈안이 돼서 자식들을 공부하는 로봇으로 키우는 것 같아요. 으리으리한 대학교에 가서도 완전히 망가져요. 갈 때는 새파랗고 밝았는데 실패가 적응이 안돼 공부에 질려서 오는 거예요.

 

부모의 계획대로 크면 언젠가 무너지는 것 같아요.


맞아요. 저 역시 한국에서의 제 인생은 꿈도 못 꿨던 삶이에요. 제가 캐나다에서 자라오면서 상상하고 계획했던 그림이 전혀 없어요. 사람들은 TV 속의 저를 보면서 “참 힘들겠다, 참 대단하다”라고 말해요. 한편으로는 의구심을 가져요. “왜 저런 말을 하지? 왜 저런 행동을 하지?”하면서 지적하기도 하고요. 그러나 저 역시 불완전한 인간이에요. 100%로 살 수는 없어요. 아무리 리얼이라고 해도 방송에서 제 완전한 모습 그대로를 보이는 건, 불가능해요. 나의 삶을 이야기할 때도, 남의 삶을 이야기할 때도 성급한 판단은 하지 않아야 해요.

 

최근 큰 아들 ‘유성’군이 tvN <둥지탈출>에 출연하면서 화제를 모았어요.


유성이가 촬영할 때 컨디션이 너무 안 좋았어요. 포기를 해야 할 정도로 몸이 안 좋은 상태였는데 결국 다 찍고 왔어요. 보는 내내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드라마에도 잠깐 출연했는데 이야기가 많았어요. 최민수의 아들이니까요. 하지만 유성이의 연기가 매력적이지 않았다면, 출연은 불가능했을 거예요. 우리는 어떤 행동을 해도, 어떤 말을 해도 부정적인 반응이 완전히 없을 수 없어요. 그래서 아이들에게도 항상 감당해야 한다, 조심해야 한다, 라고 말해요. 요즘은 모든 게 기록되는 시대라서 SNS도 조심해서 사용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기도 하죠. 유성이는 지금 정치학을 전공하고 있지만 연기에 관심이 생겨서 외국에서 연기자로 활동하고 싶어 해요.

 

자식들은 부모로부터 적당한 간섭과 적당한 자유를 원해요. 그런데 각자가 바라는 이상적인 상이 똑같을 순 없는 것 같아요.


저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해요. 저희 부부는 자식과 시간을 많이 보내려고 애써요. 대화도 많이 하려고 노력하고 자유도 많이 주려고 하고요. 이 정도면 좋은 부모가 아닐까, 생각하는데. 이건 또 저희의 착각일 수 있어요. 얘들은 저희 부부만 보고 자라왔기 때문에 이것이 당연하게 여겨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격의 없이 어떤 이야기라도 할 수 있는 집안 분위기를 만든다”(361쪽)는 이야기가 눈길이 가더군요.


누구를 실망시킬까 두려워서 해야 할 이야기를 숨기지 말자고 늘 말해요. 상대가 가장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끔 인내심을 가지고 들어주는 자세를 준비하자고도 말하죠. 그런데 가장 중요한 건 부모가 먼저 시작하는 거예요.

 

타인과 잘 소통하고 싶은 사람들이 이 책을 볼 것 같아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시다면요.


내 앞에 와 있는 순간, 최선을 다하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우리는 참 타인에게만 친절해요. 하지만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일야말로 긍정적인 표현이 가장 필요해요. 거창한 목표를 세우기 보다는, 집안에서부터 가족에게 다정한 말 한 마디를 건네는 일부터 시작하셨으면 좋겠어요..

 

강주은의 삶 속에 ‘지금’이 가장 안정기일까요?


그럴 지도 몰라요. 하지만 저는 너무 편한 상태를 많이 좋아하진 않아요. 적당한 긴장감이 있는 상태가 더 좋아요. 때때로 위기가 오지만 결국 안 좋은 시기는 지나가요. 쓸데없는 일에 저의 에너지를 낭비하고 싶지 않아요. 위기에 너무 집중하지 않고, 빨리 움직여서 다음 단계로 가는 것. 그게 제 삶이에요.

 

 


 

 

내가 말해 줄게요강주은 저 | 미메시스
그녀의 남다른 소통 능력에 초점을 맞춘 이 인터뷰는 남편, 부모, 아이들과 나눴던 소통의 순간들을 공유하며, 그녀가 터득한 비법을 그대로 전한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주진우 기자 “이 책은 이명박 수사 기획서”

$
0
0

 

2295.jpg

 

“둑이 무너지고 있다”


십 년을 MB만 쫓아온 주진우 기자의 말이다. 아무도 말하지 않고, 아무도 묻지 않고, 아무도 찾지 않은 MB의 돈. 주진우 기자는 그 돈만 쫓았다. 그러면 MB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주진우의 이명박 추격기』는 한국 사회가 해결해야 할 적폐, 그 “알파이자 오메가”인 한 사람, MB를 따라 건너온 기자의 우여곡절 십 년 ‘실패기’다. 싱가포르에서, 캐나다에서, 스위스, 독일, 케이맨제도에서 기자는 번번이 증거 근처까지 갔다가 돌아온다. 기자가 만난 사람들은 두려워했고, 회피했다. 하지만 저 끝에 MB가 있는 것을 확신한 기자는 포기하지 않았다. BBK 특검, 내곡동 사저 특검을 이룬 기자의 취재는 아직 남은 ‘뉴클리어밤’을 예고한다. 그는 “국민들이 책을 더 많이 읽고, 수사가 어떻게 되는지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러면 MB는 금방 잡힌다.”고 당부했다. 기자의 말마따나 이것은 바로 우리의 돈을 빼돌린 문제다. 

 

아직도 이명박의 시대


출간 후 계속 베스트셀러 상위 랭크다. 예스24에서는 9월 2주 연속 1위를 기록하기도 했고. 예상했나?

 

1등은 늘 했으면 좋겠다 생각한다. 그런데 책을 낼 때마다 독자들이 많이 사주셔서 감사하다. 군자금으로 잘 사용하고 있다.(웃음) 어쩐 일인지 다른 서점에는 내 책이 안 보인다. 베스트셀러 코너에는 있지만 좋은 자리에는 없다. 광고를 하고 싶은데 안 받아준다. 아직도 우리는 이명박의 시대를 살고 있고, 특별히 이번에 서점에서 그걸 많이 느꼈다. 책 사인회를 하자고 했다가 취소된 곳이 여러 곳 있었다. 인터뷰를 하자고 했다가 취소된 인터뷰가 한 인터뷰보다 많다. 매체에서는 책과 관련해 인터뷰를 한 군데도 못했다. 영화 관련 인터뷰만 한두 개 하고. 굉장히 어려웠다. 괜찮다. 예스24 1등이 1등 아닌가.(웃음) 예스24 1등이 목표였다. 정말 감사하다.

 

영화 판권도 팔렸다.


책을 쓸 때 판권이 팔렸다. 상업영화사에 팔렸다. 류승완 감독도 내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하다가 안 하고 캐릭터만 써먹고(웃음) 말았다. 『주기자』도 팔렸는데 시절이 엄혹해서 영화가 안 됐다. 이번에는 잘 됐으면 좋겠다. 훌륭한 감독님이라 잘 됐으면 좋겠는데 어찌될지는 모르겠다. 다른 세상의 얘기니까.

 

세상이 바뀌었다고들 한다. 그러나 아직 멀었다고 말하는 것 같다.


아직 갈 길은 멀다. 대통령만, 청와대만 바뀌었을 뿐 사회 곳곳은 아직도 뿌리 깊은 선입견이 있고, 편향된 사람과 싸워야 하는 면이 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들은 내가 편향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아직 갈 길은 멀다고 생각한다. 특별히 이명박과 소위 보수라고 하는 메인 스트림, 거기가 아직도 견고하다는 걸 느낀다. 이번에 책이 나오고 더 그랬다. 언론에서 주목은 하고 있으나 소름 끼칠 정도로 침묵하고 있는 걸 느낀다. 아직 노력이 필요하구나, 생각했다. 더 가까이, 심장부로 가까이 가서 열심히 취재해야겠다. 다행히 독자들이 많아서 힘이 된다. 이 책 판 돈으로 며칠 후에 바로 취재 간다. 굉장히 긴장하고 있다. 부풀어 있다. 가고 싶던 취재였는데 약간의 취재비가 드는 일이었다.

 

읽는 내내 가장 많이 한 생각이 ‘아니, 말이 돼?’였다. MB에 대해 안다고 생각했지만 너무 몰랐던 거다. 많은 사람들이 같은 심정으로 읽었을 것이다. 책으로 무슨 말을 하고 싶었나.


(한숨) MB 문제가 아니라 우리 문제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우리의 돈을 빼돌린 문제다. 또한 정치라는 게, 이명박과 정치라는 게 먼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라는 말을 하고 싶다. 정치는 우리의 이야기다. 어른이라면, 깨어 있다면 사회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권력이라는 이름으로 국민들한테 함부로 하는 깡패집단(=권력집단)이 있다. 그를 떠받치는 게 검찰, 경찰, 국세청이고. 그동안은 이들이 정치와 권력이라는 이름으로 아무리 깡패 짓을 해도 사람들이 자신의 문제가 아니라고 외면해왔다. 권력이 세고, 무서우니까 외면한 거다. 그렇지만 이제는 깡패들이 뭐하는지 쳐다보자는 거다. 누군가는 소리도 쳐야지. 곁에서는 그냥 불 끄고 자는 게 아니라 하나 씩 불도 켜주고. 우리 아이들, 우리 사회가 좀 더 나아질 수 있도록 생각해보자, 이런 메시지가 전달되었으면 했다. MB가 얼마나 정치라는 이름으로, 국가라는 이름으로 나쁜 짓을 했는지 알리고 싶었다.

 

이것이 나의 문제라고 생각하면 대응은 확실히 달라진다.


지나가다 돈 천 원만 뺏겨도 화난다. 그런데 세금이라는 이유로, 국가라는 이유로 어마어마한 돈을 뺏겼다. 적어도 ‘4대강 사건’ 하나로만 성인 한 명 당 천만, 이천만 원은 뺏겼을 거다. 강을 판 건 환경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자원외교, 국내 석유 수급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방산비리가 자주국방을 위한 것이 아니었듯 말이다. 이 돈이 백조에서 이백조 가량 된다. 성인 한 명에게 이천만 원은 빼앗아간 거다. 우리 문제잖나.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뺏겼지만 우리 아이들, 청년들은 뺏기지 않고 그들이 공부하고, 놀고, 꿈을 펼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자는 이야기다.

 

그런데, 왜 이명박인가. MB가 상징하는 것은?


그나마 DJ, 노무현 정부 들어 사회가 바른 방향을 잡았었다. 경제도 제대로 가고, 민주주의와 법치주의가 되돌릴 수 없는 단계로 들어섰다고 생각했다. 검사들이 대통령한테 대들고, 측근들 다 잡아가고 할 정도로 성숙된 사회까지 갔지 않았나. 인권이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복지도 얘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명박 들어 이 패러다임이 바뀐다. 시대가 거꾸로 돌아갔다. 다시 돈과 출세, 취업을 위해 영혼을 팔아야 하는 이상한 사회로 갔다. 바로 이 패러다임을 만든 게 이명박과 그의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그 패러다임 안에서 박근혜는 주사 맞고, 드라마 본 거고. 이명박과 주변 사람들을 잡는 것, 특별히 그들이 국민을 팔아 번 돈을 찾는 것은 개혁의 첫 걸음이다. 알파이자 오메가다. 이명박은 그렇게 우리한테 소중한 사람이다.(웃음)

 

2281.jpg

 

이명박의 본질은 돈이다


추적기가 십 년의 세월을 아우른다. 긴 시간인데. 지금 시점에서 MB와 주변 인물들의 현재를 보면 무슨 생각이 드나. 몇 사람을 제외하고 이들은 지금도 잘 먹고 잘산다.


잘살고 있다! 지금 이전 정권의 비리라고 나오는 게 국정원 댓글의 ‘외곽’부대다. 국정원도 아니고, 댓글을 달기 위해 돈을 받은 민간인 이야기를 하고 있다. 거기서 이명박까지 가려면 너무 멀다. 그리고 꼬리가 잘릴 거다. 사다리를 열 개를 타고 넘어가도 이명박은 빠져나갈 거다. 이명박의 돈을 찾아야 한다. 이명박의 목적은 정치도 뭣도 아니고 돈이었다. 목적이 분명했기 때문에 이명박이 그렇게 좋아하는 돈을 찾아 돈 이야기를 하면 그때는 조금 이명박과 주변 사람들의 실체를 깨닫게 될 거다. 그래서 돈 문제로 풀어나가고 싶었다. BBK 문제를 ‘에리카 김’에서 풀어나가고 싶었듯이. 이명박의 본질은 돈이다.

 

오직 돈이 목적이었을까? MB는 몰라도 주변인들, 많은 엘리트 특권층까지? 심지어 사람을 죽이면서까지 말이다. 이해가 안 된다.


돈 때문이다. 너무 많은 돈이니까. 같이 돈을 만들었는데 한두 개는 발각된다. 그 경우 검찰 수사가 시작되면 돈의 실체가 드러날 것 아닌가. 이때 공범 중 하나가 죽거나 사라진다. 이것을 ‘저수지’라는 이야기로 시작한 거다. 사실 그들을 건들지 못했다. 검찰도, 시스템도,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다. 하지만 모두가 알지 않나. 4대강 사업을 하는데 그것이 국가나 국민을 위한 게 아니었다는 걸. 돈이 빠져나갔다. 어딘가로 사라졌다. 그런데 아무도 얘기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얘기한 거다.

 

꼬리를 잘라가며 지킨 그 ‘많은’ 돈을 기자가 쫓는다. 때문에 기자도 죽음의 그림자에서 자유롭지 않았다고 밝혔다. 두렵지 않나. 책 리뷰 대부분이 ‘주기자를 응원한다’, ‘주기자를 보호하자’였다. 


그래서 더 떠드는 것일 수도 있다. 무서워서. 퇴근길 밤에 차가 달려들었다. 그날은 너무 놀랐다. 그 다음날은 무섭더라. 그리고 그 다음날은 아침에 일어날 때 몸이 떨렸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무섭지만 그래서 떠든다. 또 그런 일이 있으면 ‘내가 잘 쫓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 힘으로 간다.

 

『주기자의 사법활극』출간 때 강연 취재를 갔었다. ‘왜 그렇게까지 하느냐’는 관객 질문이 있었는데 기자의 답은 ‘기자니까요’였다. 책에서도 ‘나의 일은 나보다 중요하다’고 했는데.


권력을 감시하는 건 기자 본연의 업무다. 권력을 가진 사람들한테 대드는 게 내 일이다. 이건 당연한 일인데. 권력이 깡패 짓을 했는데 어떤 기자도 얘기를 안 했다. 나는 그걸 외면할 수 없어서 했다. 다른 기자들이 같이 서 있었다면 이렇게 외롭진 않았을 거다. 그런데 기자들이 다 도망가 버렸다. 나는 원래 한 서너 번째에 서 있던 기자였는데 앞에 있던 기자들이 다 도망간 거다. 어느 날 보니 맨 앞에서 혼자 돌을 던지고 있더라. 사람들은 나만 쳐다보고. 어쩔 수 없이 못 도망가고 있다. 나도 사실 얼른 튀고 싶었다.(웃음) 하는 동안은 계속 돌을 던져야지,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

 

진실을 밝혀도 아무도 함께 기사를 받아 써주지 않았다.


받아 써주지 않을뿐더러 소송을 당한다. 받아 써주지 않고, 욕먹고. 생활이니까 받아들인다. 하지만 어떨 때는 집에 들어가면 무릎이 탁탁 꺾인다. 특별히 이번에 그랬다. 이명박 대통령을 위해 많은 준비를 했다. 책이 나왔고, ‘돈의 신’이라고 북 OST도 나왔다.(쓸데없이 고퀄이다.(웃음)) 굉장히 정성을 들였는데 아무 데도 안 받아준다. 어디서도 노래를 틀어주지 않는다. 다큐멘터리 <저수지 게임>도 나오고, 잘 되고 있는데 조용하다. MB가 나에게는 관심을 가지거든. 뭘 하는지 알지만 효과적으로 그들이 막고 제어한다. 그걸 보니 참 답답했다.

 

최승호PD의 <공범자들>관객이 24만이 넘었다. 봤나? 어땠나? <저수지 게임>도 5일 만에 5만이 들었다.


오늘(9/13) 오전에 MBC 파업 지지 연설하러 다녀왔다. <공범자들>도 더 잘 돼야 한다. 쌍용차를 다룬 다큐 <안녕 히어로>가 더 잘 됐으면 좋겠다. <저수지 게임>은 뭐. 무엇보다 책이 잘 돼야 한다. 영화보다 책이 잘 돼야 한다.(웃음)

 

2340.jpg

 

개혁의 처음이자 완성이 MB다


‘적폐청산’이라는 말이 흔한 수식이 된 것 같다. 그렇지만 반드시 청산해야 할 것들이 있는데. 기자의 생각은 어떤가?


MB보다 심한 적폐는 없다. 생각해보자. MBC 사장이 MB보다 중요한가? 댓글부대가 MB보다 중요한가? 모든 것보다 MB가 중요하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래서 오직 그분만 모신다. 다만 MB를 제외하고라도 바뀌기는 해야 한다. 그래도 나는 MB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개혁의 처음이자 완성이 MB라고 생각한다. 그에게 온갖 적폐가 다 달려있다. MB에서 국정원, MB에서 언론, 모두 망가뜨리고 시스템을 새로 만든 사람이 MB다.

 

너무 많은 일을 했다.


오랫동안 청와대에 있던 정보원이 있었는데 자기는 MB가 좋다고 하더라. 이유를 물었더니 출장을 다녀오든 무엇을 하든 항상 새벽 다섯 시에 출근해서 일을 하고 있다더라. 박근혜는 안 보였다고 하고. 그 사람이 새벽 다섯 시부터 일해서 우리나라가 이렇게 된 거다. 이상득이 링거 투혼 한다고 주사 맞고 전용기 타고 다니면서 외국 나가서 다 망했지 않나. 자기들 돈을 빼돌리려고, 사기 치려고 그렇게 열심히 한 거다. 본질을 알았으면 좋겠다.

 

MB라는 적폐를 풀기 위해 여러 갈래가 있다. 시급한 것을 꼽는다면?


책에 몇 가지 사례와 수사할 거리를 남겨 놨다. 이것은 수사 기획서이기도 하다. 검사들이 조금 읽기는 해서 피드백이 오고 있다. MB의 돈 얘기를 풀면 다른 건 쉽게 풀린다. 다른 건 MB가 빠져나갈 구멍이 많다. 댓글이니 뭐니 MB를 향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전혀. 그건 MB까지 가기 위한 단계가 너무 많다. 그렇지만 돈은, 이 저수지는 뭐 하나만 나오면 MB는 끝난다. 수사기관이 빨리 나와 줬으면 좋겠다. 그걸 위해서는 국민들이 책을 더 많이 읽고, 수사가 어떻게 되는지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러면 MB는 금방 잡힌다.

 

역시 열쇠는 국민인가.


박근혜를 잡은 건 특검이 아니고 국민들의 열망이었다. 아이들이 죽고 나라가 망가지는데 대통령이 혼자 사라져서 뭘 하는지 모르겠다, 이 사람은 안 된다, 라고 해서 바뀐 것이 박근혜였다. 국민의 힘으로 여기까지 온 거다. MB 역시 국민이 구속시킬 수 있다. 국민은 관심을 갖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밤에 집집마다 불만 켜도 깡패들은 더 폭력을 저지르지 못한다. 외면하지 않으면 된다.

 

검찰도 정권도 아직까지 MB 잡는 걸 부담스러워 한다고 했다.


이 정권은 너무 도덕적이어서.(웃음) 저쪽은 범죄를 저지르다 잡혀도 보복한다고 얘기하지 않나. 언론에서도 다 써주고 말이다. 전직 대통령이니까 어렵긴 할 거다. 그런데 국민들이 잡자고 막 하고 있다. 책을 조금만 더 많이 읽으면, 그러면 MB는 간다.

 

솔직히 말해서, 상황을 낙관하나?


사실 이 책은 실패기다. 수많은 실패를 담았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있다. 결코 질 수 없는, 져서는 안 되는 싸움을 한다고 생각한다. MB를 못 잡고, 내가 잡힐 수도 있다. 지금까지는 지지 않았지만 MB 기사를 썼다가 수많은 고소고발에 끌려 다니지 않았나. 운 좋게 살아남아 있는데 운이 나빠서 잘 안 될 수도 있다. 그래도 진다고는 생각하지 않고, 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항상 희망은 놓지 않고 있다.

 

아직 남은 소송이 10여 개나 된다.


최근에 ‘내란선동’ 소송을 김제동과 함께 당했다. 소송이 줄어들지 않는다. 하지만 뭐, 소송은 나의 힘이고 나의 인생이고 생활이다 생각한다.(웃음) 친구다 생각한다. 좀 친하기 싫은 친구. 어차피 버린 몸이다. 사실 이런 삶을 꿈꾸지 않았다. 나는 자유주의자고 개인주의자다. 개인의 행복과 자유, 사랑을 숭상하는 사람인데 얼굴도 팔리고 이렇게 살게 됐다. 시대가 그런 거니까. 또 다른 사람들이 깡패를 보고도 얘기를 안 하고 있으니까 나라도 해야지.

 

<저수지 게임>에서도 다루고 있는 ‘농협 210억 대출 사건’을 MB의 전형적인 수법이 녹아 있는 사건이라고 분석했다. 비교적 ‘적은’ 돈이지만 이 사건을 제대로 짚는 게 MB 돈 문제를 푸는 힌트가 된다고.  


그 사건에는 힌트가 많이 숨겨져 있다. MB가 정권을 잡자마자 금융권 힘 있는 자리에 MB 사람들이 낙하산으로 투하됐다. MB는 망한 회사를 사거나 만들어서 그곳에 돈을 투하한다. 회사는 조금 있으면 망하고 돈은 다 날아간다. 그런데 돈을 투하한 은행과 정부에서 돈을 찾지 않는다. 돈을 찾으려고 하면 저수지에서 발견되거나 왕따를 당하거나 사라진다. 돈이 사라졌는데 돈을 쫓아가보면 이명박의 흔적이 있고, 그가 뭘 했는지 알아낼 수 있다. 그런데 그 돈을 안 찾는다. 수십조, 백조가 넘게 사라지는데 찾아야지. MB와 MB 주변에서 했다는 건 누구나 아는 얘기다. 나는 그 얘기를 쫓아다녔던 거다. 왜 안 하지, 나라도 해야지, 이렇게.

 

이 사건만 해도 벌써 증거들을 많이 없앴다. 그런 영역이 많을 거다.


그렇다, 지금도 없애고 있을 거다. 지금도 농협에서는 제보자들을 압박하고 꼬리를 자르고 있다. 문제가 있었고 절차상 하자가 있었으나 MB와 관련 없다, 이렇게 결과를 내놓겠지. 지금껏 그랬다. 같이 해먹었으니 그러는 거다.

 

2065.jpg

 

끝까지 한다


어려운 싸움이다. 불균형이 너무 커서 과연 MB라는 적폐를 청산할 수 있을지 자꾸 묻게 되는 것이다.


어렵겠지. MBC 사장 바꾸는 것도 그렇게 어려운데 진짜 ‘MB 씨’ 아닌가.(웃음) 어렵다. 수십 년 동안 우리나라를 지배한 메인 스트림이다. 메인 스트림의 거두를 잡자고 하는 거다. 이건 국민들이 도와주고 관심 갖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여러분들이 관심을 가지면 MB는 잡을 수 있을 거다. 잘 안 되면 내가 잡히겠지. 그럴 수도 있다.

 

책 뒤에 예고한 MB를 포토라인에 세울 기사도 나왔다. 추이가 궁금하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굉장히 뜨거운 반응이 있다. 그런데 아무 언론도 써주지 않고 보지를 않는다. 어쨌든 이번에 MB와 관련된 가장 의미 있는 기사를 썼다. 또 준비하고 있다. 다행히 책이 잘 돼서 그 취재를 위해 해외로 떠날 수 있게 됐다.

 

MB는 구속되고, 그 돈을 국민들에게 나눠주고, 떠나는 꿈을 책에 적었다. 정말 꿈대로 된다면, 다음 타깃도 있나?


아니, 만약 꿈대로 MB를 잡는다면 좀 쉬고 싶다. 대선 때까지 전력질주를 했고 이후에도 너무 달렸다. 조금 힘들다. 요즘은 조금 지쳐있는 상태다. 그래서 쉬고 싶은데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 나를 너무 많이 썼다. 생각처럼 잘 안 돼서 지친다. 책은 잘 돼서 감사한데 언론에서 너무 안 도와줘서 말이다. 책도 내고 엑셀을 계속 밟았다. 그리고 결정적인 기사를 썼는데 MB는 너무 강해서 꿈쩍도 안 한다. 그래도 끝까지 한다. <그것이 알고 싶다>도 하기로 했고. 하도 떠드니까 그래도 조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최근 <한겨레>에서 『삼성을 생각한다』를 쓴 김용철 변호사를 찾아간 기사를 냈더라. 김용철 씨는 삼성 관련해서는 할 얘기 없다면서 인터뷰를 거절했다. 기자의 지쳤다는 말에서 그 기사가 떠오른다.


그럴 수도 있다. 김용철 변호사는 물론이고 고영태 같은 사람도 그렇지 않나. 과거가 어땠든 가장 중요할 때 진실의 편, 정의의 편에서 용기를 냈다. 그런데 용기를 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갔다. 미안해 죽겠다. 자기가 입을 벌려서 주어진 게 감옥뿐이다. 그게 안쓰럽고 미안해서 계속 면회도 가고 있다. 그런 사람들을 떠올리면 안타깝다. 그런데 나는 내가 자발적으로 몰아붙인 거니까. 나는 내가 어떻게 되더라도 후회는 없다. 험한 사람들이 와서 입에 담지 못할 협박을 할 때면 무섭다. 기분 나쁘다. 그래도 시대가 이 모양이면 그럴 수 있지 않나 생각한다. 선배들과 비교해보면 나는 그래도 행복한 편이다. 책이 1등을 하고, 친구들이 북콘서트를 해주고, 고맙지. 그러면 됐다.

 

연대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말이다. 가까이서, 혹은 멀리서 넓게 지지해주는 사람들이 기자에게는 큰 동력인 것 같다.


요즘 MB 블랙리스트라고 나오는데 나는 그들과 다 친하다. 블랙리스트로 찍히면 주변에 사람이 하나씩 떠난다. 혼자 외롭고 무섭다. 김규리도 그랬다고 하지 않나. 그 얘기를 이제야 한다. 너무 마음이 아프다. 그러나 블랙리스트라고 하는 우리들이 다 친하니까 우리끼리 잘살 수 있다, 그렇게 말한다. 나도 기자 사이에서 완전히 아웃사이더다. 사주한테, 권력한테, 삼성한테 눈치 안 보고도 잘살 수 있다. 충분히 멋있게 살 수 있다.

 

언젠가 일이 다 끝나고 쉴 때, 하고 싶은 일이 있나.


나의 큰 공적은 박근혜, 이명박, 삼성이었다. 지금 두 개가 정리 됐다. 그런데 이명박까지 될지는 모르겠다. 다 끝난 이후까지는 생각 안 해봤다. 일단 전력질주다. 계속 간다. 둑이 하나씩 둘씩 무너지고 있는 게 보인다. 나는 MB를 너무 좋아해서 MB를 위한 계획을 많이 세워놓았다. 사랑의 이벤트다. 기자들이 기사 쓸 거리가 없어서 고생하는데 나는 아니다. MB는 무궁무진하다.

 

주진우가 말하는 기자의 일이란.


나는 누구한테 모범이 될 만 한 건 아니다. 나 말고 ‘미디어몽구’라고 있다. 혼자서 카메라를 들고 취재한다. 굉장히 가치 있는 일을 한다. 그 친구가 더 잘 됐으면 좋겠다. 돈도 더 많이 벌고 더 좋은 기사 쓰면 기자들이 그 친구를 보고 ‘회사에 매달리지 않아도, 사주한테 잘 보이지 않아도 되는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을 거다. 기자들이 많은 길을 찾아봤으면 한다. 언론인들이 다각도로 도전하고 모험해서 길을 열어주었으면 한다. 나처럼 계속 거대권력에 돌 던지고 당하는 건 표본이 될 수는 없다.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고통스럽다.


 

 

주진우의 이명박 추격기 주진우 저 | 푸른숲
주진우 기자는 『주진우의 이명박 추격기』에 이명박이 서울특별시장, 대한민국 대통령 자리에 앉아 ‘해드신’ 그 돈을 숨겨놓은 저수지를 찾아, 일본ㆍ홍콩ㆍ싱가포르ㆍ미국ㆍ캐나다ㆍ스위스ㆍ독일ㆍ케이맨제도 등 전 세계 곳곳을 발로 뛰어온 10년을 담았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장석주 “시는 날것, 살아있는 것, 매번 새롭게 읽히는 것”

$
0
0

 

_15A1324.jpg

 

좋은 시는 지옥에서 올라온 물건, 놀랍고 의외의 것, 예기치 않은 사건이다. 시는 직관으로 직관을, 무의식으로 무의식을 드러낸다. 이 창의성의 총체, 의외의 발상, 관성적 익숙함의 전복! 시가 종이에 쓰이고 종이에 인쇄되는 것이라면 모든 시는 피와 종이의 전쟁이다. 누가 시가 전쟁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있는가?(189-190쪽)

 

“정체성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게 시인”이라는 장석주에게 그러므로 시란 가장 가깝고, 가장 즐겁고, 가장 새로운 것이리라. 『은유의 힘』에는 시인 장석주의 뜨거운 시적 정의가 가득 담겨있다. 비밀은 ‘은유’다. 이 비밀의 정체를 하나씩 해체하며 40년 동안 받아온 시에 대한 물음들, 시가 무엇인지에 대한 시인만의 대답을 기록했다. 우리를 위해 대신 울어주는 존재 시인. 그들이 대신 말해주는 삶의 이면들을 따라가는 일은 어쩌면 단순한 삶을 조각 내는 일, 더 나아가 삶을 새로운 모양으로 조각하는 일일 것이다. 그것이 시의 무용함이 주는 가장 위대한 효용이다.

 

놀라움이 있는, 시


공저를 제외하고도 올해 지금까지 출간한 책만 일곱 권이에요. 출간 일정이 유동적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도 많은 숫자인데요. 매일 새벽에 일어나 규칙적으로 글을 쓰신다고요.

 

결과적으로 다작이죠. 하지만 매일 그렇게 쓰니까요. 일 년에 육천 매 안팎으로 쓰기를 십 년 이상 하고 있거든요. 지금도 출판사에 넘어가 있는 원고가 다섯 개 정도 있고요. 쓰고 있는 원고가 약 열세 권 분량의 작업이에요. 오래된 것은 5-6년 째 쓰고 있고요. 내년이면 총 저서가 약 백 권 넘게 될 것 같네요.


매일 새벽 세 시나 네 시에 눈을 떠요. 그때부터 대여섯 시간 쓰고요. 밥 먹고, 산책하고, 오후에 집 근처 카페에 가서 서너 시간 또 작업을 해요. 그리고는 들어가서 조금 쉬다가 일찍 잠자리에 들죠. 아주 규칙적인 삶을 살아요. 사람도 거의 안 만나고요. 지금이 제 인생에서 아마 가장 생산성이 높은(웃음) 시대예요. 갑자기 많이 쓴 건 아니고 꾸준히 써왔어요.

 

책의 면면도 다양해요. 『조르바의 인생수업』, 『사랑에 대하여』부터 이번 『은유의 힘』까지 다방면의 글쓰기가 눈에 띕니다.


다 장르가 다른 책들이죠. 가까운 시일 안에 나올 책은 ‘고양이와 재즈, 하루키 탐구서’예요. 하루키에 관한 글들만 구백 매 가까이 해서 출판사에 원고가 넘어가 있어요. 지금 쓰고 있는 책은 ‘베이비부머를 위한 변명’이고요. 베이비부머의 삶을 탐구한 내용이에요. 여러 방면으로 계속 작업 중이에요.

 

이 정도 되면 주요 관심사를 특별히 묻는 것도 무리가 있을 것 같은데요. 정말 다양하네요.


역시 제일 큰 관심은 인간이죠. 인간 탐구. 이에 관해서는 또 출판을 기다리는 원고가 있는데요. 제 관심은 문학, 작가, 인간 등에 대한 것들이 많아요. 사물도 관심이 있고요. 현재 <조선일보>에 ‘장석주의 사물극장’이라는 글을 연재하고 있거든요. 작가와 사물에 관한 글을 백 개정도 쓰려고 하고 있어요. 작가나 유명인들과 그들이 애착을 가졌던 사물을 통해서 인간을 보는 거예요. 결국 그것도 인간으로 돌아오는 거죠. 이제 마무리해야 할 원고가 죽음에 관한 것이고요.

 

시에 대해 쓴 『은유의 힘』도 생각해보면 인간과 문학에 대한 관심사의 연장선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아요. 특히 문학인데요. 글에 등장하는 다양한 시적 정의가 인상적이에요.


40년 째 시를 써왔고요. 제 정체성에서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게 시인이죠. 그동안 끊임없이 ‘시가 뭐예요’, ‘시를 어떻게 써요’와 같은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는데요. 이 책은 40년 동안 받아온 그 물음들에 대한 제 대답이에요. 저에게도 시가 뭔데 평생 이렇게 붙잡고 있는가 하는 의문 같은 것들이 있었고요. 따라서 제게 강렬한 정서적 충격을 주었던 시들, 보들레르나 랭보, 네루다, 릴케, 휘트먼, 서정주, 이육사 그리고 최근에 등단한 시인들의 시를 넘나들며 자유롭게 썼어요. 이 글들은 쓰면서 굉장히 몰입했던 글들이에요.

 

‘좋은 시는 예기치 않은 사건’, ‘시는 그림자들의 노래’ 라고 했어요. ‘시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이 될, 선생님의 정의를 이 자리에서 들려주신다면 어떨까요?


좋은 시는 반드시 사물과 경험에 대한 새로운 발견을 품고 있어야 해요. 독창적이어야 하죠. 독자들에게 놀라움 같은 것들을 줘야 해요. 새로운 인지에 닿게 하는 힘, 놀라움 같은 것들이 있어야 좋은 시라고 할 수 있겠죠. 진부한 감상을 늘어놓는 것은 좋은 시가 될 수 없어요. 그것은 개인의 한탄이나 넋두리, 감정의 배설에 지나지 않아요. 오히려 좋은 시들은 감성을 억제해요.

 

그러면서 유진목 시인의 시를 꼽으셨죠. 「식물의 방」이라는 시를 읽으면서였는데요.


유진목 시인의 시를 읽을 때 좋았어요. 그러면서 왜 이 시가 좋은지 생각해보는 거죠. 유진목 시인의 시를 읽기 전에는 시인의 이름조차 몰랐거든요. 시집을 통해 시인의 이름을 알게 됐고, ‘좋은데? 다른 시인과 다른 부분이 있는데?’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이성복 시인이 그랬고, 김행숙 시인을 처음 봤을 때 그랬고, 최근에 황인찬 시인, 유진목 시인을 봤을 때 그랬어요. 나를 놀라게 하는 부분을 갖고 있는 거죠. 늘 보지만 놓치고 있던 부분들을 탁 잡아채서 독자들에게 줘요.

 

그런 시가 시간을 견디는 거라고도 하셨죠.


그렇죠, 시간은 굉장히 파괴적인 거거든요. 따라서 좋은 시들은 시간이 흘러도 진부해지지 않는 거죠. 시간을 견디는 새로운 힘 같은 것들이 내장되어 있는 거예요. 그런 시들이 좋은 시들이에요.

 

_15A1187.jpg

 

눈 밝은 비평가가 더 나와야


이른바 ‘예언자 없는 시대의 시’가 나아가야 할 곳을 물어야 할 것 같아요. 시가 많은 곳에서 살해당하고 매장 당했다는 문제의식도 내보였는데요.


한국만 해도 시인이 오만 명이라고 해요. 한 해에도 수많은 시집이 쏟아져 나오고, 수많은 시들이 발표되고, 그 시들이 SNS를 통해 유통되죠.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아주 다양한 시들이 새겨져있고요. 그런데 저는 많은 시들이 옥석이 가려지지 않은 채 함부로 뿌려지고, 오용되고, 남용되고 있다는 생각을 해요. 좋은 시와 그렇지 않은 시들이 뒤섞여 있는데요. 좋지 않은 시들이 마치 좋은 시인 양 제시되면 독자들이 혼란을 겪을 수 있겠죠. 그런 면에서 고급 감식안을 가진 비평가들이 독자들을 훈련시켜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많은 비평가들이 시를 정확하게 잘 읽어내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시를 읽는 데 있어 독자들을 더 혼란스럽게 하고 있지 않은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여기 필요한 비평가의 역할이라면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김현 선생 같은 분은 시인을 행복하게 했던 비평가예요. 김현 선생의 눈에 띈 시인과 시들은 풍부한 의미로 재해석되고 그렇게 독자들에게 주어졌거든요. 마치 성찬을 받는 느낌이죠. 시인도 행복하고 독자도 행복해요. 그런 비평가들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황현산, 신형철 비평가처럼 눈 밝은 비평가들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그런 비평가들이 지금은 너무 드물다고 봅니다.

 

지적하신 오용되는 시, 좋은 비평의 부재 등으로 인해 독자가 시에 가닿지 못하게 되는 일도 많아요.


비평가들의 소임이 굉장히 중요해요. 저는 우리 시대의 비평가들이 그런 소임을 다하지 못했다는 생각을 늘 해요. 좋은 시인이란 좋은 비평가에 의해서 읽혀진 시일 거예요. 정말 좋은 시인도 좋은 비평가를 만나지 못하면 그 가치가 충분히 드러나지 않을 수가 있거든요. 물론 어느 땐가는 드러나겠죠. 하지만 되짚어보면 우리가 좋은 시라고 생각했던 시인들은 좋은 비평가가 먼저 알아보고 독자들에게 시인을 소개했다는 거예요. 

 

시가 시대에 따라 재해석되는 한편 시대 가치도 변화해요. 변화하는 가치에 따라 다시 비판적으로 읽어야 하는 부분도 있고요. 가령 김수영 시인의 「죄와 벌」 같은 시의 폭력성에 대해 회자된 적이 있는데요. 이에 대해 글을 쓰시기도 하셨잖아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 시를 지금 페미니즘 시각으로 읽으면 김수영은 나쁜(웃음) 마초죠. 그렇지만 그 시만 단편적으로 읽어선 안 되고 김수영의 생애사라는 큰 맥락 속에서 읽어야 해요. 김수영은 결코 자기가 완전한 인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남자로서, 가장으로서 완벽한 존재도 아니고요. 늘 자신이 비굴하고, 한 인간 존재로서 남루함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인식했는데요. 그런 것들을 감추지 않고 폭로했다는 것이 다른 시인들과 다른 점이에요. 실수, 실책, 비루함, 나약함, 속물성, 자기 존재 안에 깃든 폭력성 이런 것들을 끊임없이 폭로하고 마주서려고 했던 거죠. 그 시도 그런 맥락에서 봐야 하죠. 그 시의 다른 뜻은 ‘내가 이렇게 비루한, 마초적 인간이야’라고 자기폭로를 하고 있는 거예요. 그런 자기 폭로의 정점은 아내를 때린 것에 대한 반성이 아니라 우산을 두고 왔지, 혹시 아는 사람이 있었으면 어쩌나, 이런 걱정을 하는 자기 자신에 대한 폭로예요. 이것은 철저하게 자기 성찰적 행위인 거예요.
 
앞서 말씀하신 비평가의 역할을 다시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어요. 텍스트와 함께 콘텍스트를 읽어내는 것이 필요한데 그것을 한 명의 독자가 해내기는 어려운 일이잖아요.


시인 전체 생애의 맥락, 혹은 그 시인이 살았던 시대 전체의 맥락 속에서 시를 읽어낼 수 있는 것은 훈련된 비평가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에요. 그런 면에서 시를 이해하고 접근하는 데에 비평가들의 도움을 받아야 하죠. 그런데 요즘의 많은 비평가들이 그런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어요.

 

그렇다면 보통의 독자들은 시를 어떻게 대하면 좋을까요?


시를 자주 읽고, 외우는 경험도 해보면 좋겠어요. 시가 갖는 리듬과 사유들의 흐름, 맥락이 자양분처럼 스며들어 오도록 하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시는 날것, 살아있는 것이거든요. 그런 것을 마치 죽은 것, 고정불변의 의미체, 닫힌 텍스트로 접근하는 것이 학교에서 배운 시죠. 시는 어떤 맥락 속에서 읽어내느냐가 중요하고요. 내 경험과 감정의 맥락이 달라질 때 그 시도 다르게 다가와요. 하나의 시는 그것을 수용하는 독자에 따라 매번 새롭게 읽힌다고 생각하죠.

 

시의 남용을 말씀하셨지만 한편으로는 SNS 덕분에 시가 더 넓은 곳으로 가닿기도 한다는 생각도 들거든요.


시가 의미의 집약이라는 점에서 SNS와 잘 맞다 싶어요. SNS로 전달하기가 좋죠. 그렇지만 그게 시의 전부라고 생각하면 큰일인 거죠. 시는 그보다 훨씬 더 엄청난 장강(長江)이고 산맥일 수도 있는 거예요. 그것을 작은 것, 단순한 것, 풀잎이나 물방울 같은 것으로만 오해할 수도 있다는 거고요. SNS를 통해 시를 받아들이는 것도 좋지만 좋아하는 시인이 있다면 그 시인의 대표적 시집을 통째로 읽어보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_15A1214.jpg

 

불행을 대신 살아주는 존재


한국사회가 들떠있다는 진단도 하셨는데요. 그 지점에서도 시 읽기는 좋은 처방이 될 것 같아요.

 
한국사회는 들떠있고, 과장되고, 피상성으로 넘쳐나는 곳이거든요. 그러니까 자기를 돌아보는 고독의 시간을 많은 사람들이 갖지 못하는 것 같아요. 때때로 일어나는 반응과 자극으로 이루어진 즉물적 삶을 사는 데 우리가 너무 몰두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죠. 멈추고, 고요 속에서 자기 삶을 들여다보는 그런 시간이 더 필요할 거예요. 자기 관조의 시간이죠. 한국사회가 지나치게 성장 일변도의 시대를 거쳐 왔잖아요. 실적을 내야하고, 생산성과 효율성을 섬겼죠. 그러다보니 멈춰서 자신을 들여다보는 시간의 가치를 잃어버렸어요. 그런데 한 편의 시를 깊이 읽을 때 우리가 그런 시간 속으로 들어갈 수가 있거든요. 그런 면에서 시는 또 상당히 중요하죠.

 

생산성과 효율성에 대한 반문이 중요하겠네요. 책에서도 ‘쓸모가 있는 것, 유용한 것만이 가치가 있는가’ 라고 하셨죠.


사실 시의 여러 쓸모에 대해 이야기를 했지만 시는 우리 삶의 다양성에 견주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실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거예요.(웃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쓸모없는 것에 대한 인간의 왕성한 호기심, 열정 같은 것들이 뜻밖에도 문명 발전의 촉매가 되었다고 생각해요. 동물은 절대로 생존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 쓸데없는 짓은 안 하잖아요. 먹이활동과 생식활동뿐이죠. 그런데 인간들은 그것 말고도 이상한 짓들을 한다는 거죠. 잔디밭에 작은 공을 굴려서 집어넣는다든지 검은 돌과 흰 돌을 나눠 쥐고 한 점 씩 놓는다든지 노래를 부른다든지 그림을 그린다든지 시를 쓴다든지. 이런 것들이 모두 쓸데없는 짓이죠. 결국 문학이나 예술에 대한 열정은 근본적으로 쓸모없는 것에 대한 열정이거든요. 이런 것들을 통해 인류 문명이 더 새로운 단계로 도약하는 동력을 얻을 수 있었다는 거예요. 인간이 먹는 문제, 후손 만드는 문제에만 집착했다면 오늘날 같은 다채로운 문명 세계도 열리지 않았겠죠.

 

그렇게 보면 시인들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는 셈이군요.


시인은 늘 빈둥대고, 백수 같고, 멍청해 보여요.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사회가 획일화, 표준화하려는 압력 속에서 견뎌내고 ‘NO’ 할 수 있는 존재인 거죠. 우리를 대신해서 울어주는 존재, 우리 불행을 대신 살아주는 존재일지도 몰라요. 조선시대 때 ‘곡비’라는 직업이 있었거든요. 대신 울어주는 직업이 있었어요. 시인들은 그런 존재가 아닌가 싶어요. 우리들의 슬픔과 불행을 우리를 대신해 아파하고 울어주는 존재가 바로 시인들이죠. 그런 존재들을 우리가 허용하고, 포용하고, 함께 가야 하겠죠. 생산 활동에 참여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회의 기생충으로 보는 것은 전형적인 유물론적 세계예요. 실제로 소련에서 요세프 브로드스키(Joseph Brodsky)가 노동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재판을 받고 추방됐잖아요. 그 재판을 보면 그게 얼마나 웃기는 사건인지, 얼마나 인간에 대한 단편적인 이해에 그친 사건인지 알 수 있어요.

 

그런 역할을 하고 있는 동시대의 시인들을 호명해주는 작업도 많이 필요할 것 같은데요. 특별히 주목하는 젊은 시인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이장욱, 유희경, 박준 같은 시인들이죠. 그밖에도 보석 같은, 새로운 시가 끊임없이 나오거든요. 지금도 나오고 있어요. 그렇지만 그것은 각자의 감성과 취향이 다르기 때문에 차이가 날 수 있고요. 수고스럽지만 자기 힘으로 그런 시인을 발견해내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에요. 그런 즐거움을 저한테 다 빼앗으라고 얘기해서는 안 되겠죠.

 

故마광수 작가 추모글을 <중앙일보>에 쓰셨어요. 작가를 ‘우리 사회 전체가 공모해서 죽인 것’이라고 하면서 『소돔 120일』을 쓴 사드에 비견했는데요.


마광수 교수나 사드나 바타유가 다를 바가 없어요. 같은 길을 간 사람들인데 사드나 바타유는 대단한 사람이고 마광수는 아니라고 말할 순 없는 거죠. 사드의 『규방철학』이나 바타유의 『눈 이야기』보면 마광수 교수와 똑같아요. 역겹고, 더럽고, 인간 욕망의 밑바닥을 다 드러내죠. 그러나 그것은 허구, 상상 속 이야기거든요. 누구나 그런 이야기를 쓰는 게 아니에요. 1980년대에 그런 이야기를 쓴 건 마광수 교수 하나였어요. 저는 그런 우리의 지식 생태계 혹은 문학예술 생태계 속에서 다양성의 존재가 인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솔직히 말하면 이것이 제 취향은 아니에요. 하지만 마광수 교수가 상당히 중요한 인물이라는 거죠. 정말 좋은 작가, 시인은 한 사회가 금기시하는 것마저 뚫고 나가야 하고요. 그러면서 시대화의 불화가 생기는 것이거든요. 문학사를 보면 위대한 작가와 시인들은 언제나 그 시대와 불화한 사람들이 많았어요. 벌써 평가가 바뀌고 있고요. 앞으로 더 바뀔 거라 생각해요.

 

『즐거운 사라』출간으로 당시 출판사 대표였던 시인도 함께 수감된 일까지 있었잖아요.


마광수 교수가 쓴 것이 외설적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게 아니에요. 그런 좀 이상하고 기이한 짓을 하는 존재도 필요하다고 용납해야 한다는 거죠. 그 사람을 마치 1급 전염병 보균자처럼 사회에서 격리시키고, 감옥을 보내고, 모욕을 주고, 불이익을 당하게 했던 건 굉장히 야만적인 거예요. 검찰 권력이 문학의 가치와 의미를 따지고 독자가 읽어도 되는지를 판단하려고 하는 자체가 대단히 잘못되었던 거죠. 그것은 문단 내 비평가들의 일이에요.


당시 적용된 것이 ‘음란문서 제조 및 반포’에 관한 법률 위반이었거든요. 거의 사문화된 법을 가지고 강의 중인 대학 교수를 감옥에 넣었다? 그 정도 중대 사안이 아니잖아요. 출판사 대표를 새벽에 붙잡아다 감옥에 넣고요. 굉장히 어리석은 짓이죠. 저희가 도망을 가지도 않고요. 책이 나와 있으니 증거인멸 우려도 없는데 말이에요. 일종의 망신주기, 모욕주기였던 거죠. 응징이었던 거예요.

 

권력의 전형적인 길들이기였군요.


1991년에 검찰이 『즐거운 사라』를 처음 출판한 서울문화사 측에 자진수거를 명령했어요. 그래서 자진수거를 했죠. 그때 마 교수가 억울하다, 꼭 책을 다시 냈으면 좋겠다 했어요. 원래 제가 내려고 했던 책은 『자궁 속으로』라는 작품이었거든요. 마 교수가 억울해 하기에 『즐거운 사라』를 읽어봤더니 사드의 『규방철학』과 표현 수위에서 크게 차이가 없었어요. 출간을 했더니 감히 검찰 권력의 역린을 건드렸다 해서 화를 낸 거였죠. 결국 두 달 만에 풀려났어요. 엄청난 사회적 소동에 비하면 너무나 아무것도 아니었던 거죠. 하지만 그것이 마 교수에게는 평생의 트라우마가 됐어요. 제 경우도 마찬가지고요. 그 이듬해에 출판사를 접었고, 사업이나 가정에서 엄청난 내상을 입었어요. 결과적으로 풍비박산이 났어요. 이혼을 당했고요. 빈털터리가 됐어요. 이후 십 년 동안 엄청나게 고생을 했죠. 이런 것들은 그동안 얘기한 적이 없기 때문에 잘 모르고 드러나지 않았던 부분이지만요.

 

이제는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신 건가요?


이런 내용을 앞서 얘기한 ‘베이비부머를 위한 변명’에 다 쓰고 있어요. 그것을 빨리 출간하고 싶어요. 요즘 굉장히 열심히 쓰고 있는 글이에요. 글의 일부를 페이스북에 올리고 있는데요. 반응이 엄청나더라고요.

 

_15A1498.jpg

 

천 개의 대답을 보여주는 시


이 책을 독자들이 어떻게 읽어줬으면 하세요?


시가 어렵다고 생각하는 분들에게 시의 비밀을 좀 알려주고 싶었던 거예요. 시의 비밀을 은유라고 봤고요. 그 은유를 보면 시라는 수수께끼를 다 풀 수 있다고 힌트를 준 거죠. 사실 시는 은유의 덩어리거든요. 왜 은유를 쓰는지, 은유를 왜 쓰는지, 어떤 은유가 좋은 은유인지, 이런 것들을 정말 자유롭게 펼쳐놓았으니까요. 시를 어렵다고 느끼는 독자들이 시에 좀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계기를 주면 좋겠어요.

 

그 면에서 확실히 성공하신 것 같아요. 이 책을 읽으면 시가 읽고 싶어지거든요.


책에서 또 한 가지, 시를 읽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어요.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던 것과 다른 방식의 시 읽기죠. 시를 시 자체로 즐기고 향유하는 방식을 보여주려고 했어요. 시 해석도 마찬가지예요. 얼마나 시가 다채롭게 해석될 수 있는지 봤어요. 시는 항상 하나의 대답이 아니에요. 천 개의 독자가 읽으면 천 개의 대답을 보여주는 것이 시거든요. 그래야만 좋은 시고요. 시는 모든 부분이 명확하지 않아요. 시의 30% 정도는 해석되지 않는 부분, 미스터리로 남아 있어요. 그래서 끊임없이 연구자들에게 그것을 해석하려는 열망을 불러일으키는 시가 좋은 시라고 생각해요. 100% 다 이해되는 시는 생명이 짧다고 생각하죠.

 

계속해서 다시 읽히는 시, 고전이 된 시들이 좋은 시겠죠.


이를 테면 1934년에 이상의「오감도」가 <조선중앙일보>를 통해 매일 15일 동안 연재가 되었는데요. 원래는 30일 연재 예정이었다가 독자의 항의 때문에 중단한 거였죠. 당대의 독자들은 전혀 그 시를 이해할 준비가 안 되어 있던 거예요. 뭔가 모욕당한 것 같은 느낌을 받은 거죠. 그 「오감도」 연작은 지금도 새로운 해석이 나와요. 수천 편의 연구자 논문과 비평이 쏟아졌지만 아직도 완전히 해명되지 않았죠. 「오감도」1호에서 ‘무서운아해와무서워하는’ 열세 명의 아해는 과연 누구를 가리키는가, 무슨 뜻인가, 해석이 안 됐어요. 다양한 해석이 나왔지만 시대를 달리해서 새로운 해석들이 나올 수 있는 시죠. 그런 시, 그런 문학 작품, 결국 시간을 견디는 작품이 고전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 ‘틈’이 시의 핵심이군요.


요즘 젊은 시인들의 시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요.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독자들에게 그 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그동안 부족했다는 거죠. 보통 시인들이 시집 한 권을 완성하는 데 짧게는 삼 년에서 보통 오 년, 길게는 십 년도 걸리거든요. 그걸 단숨에 집어 삼키려고 하면 안 돼요. 시인이 그것을 내놓기까지 창작과정에서 겪은 것들을 어렴풋하게나마 따라가면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쩌면 시집 한 권을 읽는다는 것이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어쨌든 시를 읽는 것은 우리 감정생활을 굉장히 윤택하게 해주고 삶을 풍부하게 만들어요. 사물을 보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하죠. 낯설게 보게 하고요. 익숙한 것들에 대한 새로운 인지를 제시해요. 삶이 익숙하고 되풀이되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 안에 너무나 많은 변화, 흥미로움이 뒤섞여 있거든요. 그러니까 시를 열심히 읽고 향유하는 사람들은 삶이 지루하거나 권태롭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은유의 힘장석주 저 | 다산책방
저자는 시가 생성되는 비밀의 핵심을 은유라고 보고, 그에 관한 사유와 영감으로 가득한 문장들을 풀어놓는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신현림 “반지하에 살면서 세상이 다르게 보였다”

$
0
0

‘내 인생의 반은 이미 지하로 갔다’고 시인은 말했다. 몸의 절반이 땅 속에 묻힌 채 살아온 10년의 세월, 절망이 찾아든 순간도 있었지만 ‘나는 자살하지 않았다’고 적었다. “네가 나를 이해 못 하고 / 내가 너를 이해할 수 없어도 / 우리라는 구름 울타리가 있어 자살하지 않았다”는 것. “쓸쓸한 나와 같은 너를 찾아 / 슬픔에 목메며 / 슬픔의 끝장을 보려고 / 나는 자살하지 않았다”던 시인은 슬픔의 끝에서 희망을 길어 올렸다.

 

신현림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반지하 앨리스』에는 해가 들지 않는 공간으로 내몰리는 삶의 고단함, 그럼에도 생을 지속하는 이들을 향해 건네는 위로가 담겨있다.

 

『지루한 세상에 불타는 구두를 던져라』를 시작으로 『세기말 블루스』, 『해질녘에 아픈 사람』, 『침대를 타고 달렸어』를 거치며 ‘당대의 제도권적 여성 담론을 뒤흔든 가장 전위적인 여성 시인’으로 손꼽혀 온 신현림. 늘 세계를 새롭게 해석하고 미적 지평을 갱신해 온 그녀의 이야기는 『반지하 앨리스』로 이어진다. 8년 만에 찾아온 이번 시집에서는 “절망을 넘는 도발적인 아름다움과 위로와 저항정신”을 보여준다.

 

장르의 경계를 넘나드는 전방위적인 활동으로 주목 받기도 한 시인은 지난 8월, 시집과 같은 제목의 사진전 ‘반지하 앨리스’를 열었다. 집이라는 공간에 대한 또 다른 해석으로 큰 호평을 받았지만, 전시회가 끝난 뒤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후배 작가에게 사진 모티브를 도용당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 다시 한 번 절망이 찾아온 순간에 만난 신현림 시인은 여전히 의연했다. 반지하에 불시착했으나 희망을 놓지 않았던 앨리스다웠다.


신현림-셀렉-3컷_-본문에는-사진-3장만-올려주세요-(3).jpg


반지하에 살면서 세상이 다르게 보였어요


8년 만에 나온 시집입니다.

 

5권중에 3권은 계속 8년 간격으로 시집이 나왔어요. 『세기말 블루스』이후에 나온 시집들이 그렇게 됐네요. 그런데도 두 권 분량의 시가 또 있어요. (써 놓은) 시도 많고, 사진도 많아 고민이 될 때가 있어요. 이걸 언제 다 내나 싶어서.

 

그만큼 편집 과정도 쉽지 않으셨겠어요. 


시집 제목이 원래대로 돌아왔지만, 제목이 두 번 바뀌어 순서도 전부 바꾸고 시 편수가 많아 힘들었죠. 줄인 것이 90편이었는데 줄이고 또 줄여서 68편이 실렸어요.

 

시집을 빨리 내고 싶다는 조급함은 없으셨어요?


연륜으로 조급함을 내려놓는 여유가 생기는 것 같아요. 나이 듦의 장점이나 소중함, 가치라고 할까요. 청춘 자체는 조급성이 특징이에요. 삶의 최고 목표가 돈이나 명예가 아니잖아요. 목표는 인격의 성장이에요. 인격의 성숙함. 그걸 통해서 세상에 사랑을 다 주고 가는 거죠. 사랑과 물질을 나누는 사람으로 사는 일이 정말 중요한데, 그런 진정한 목적이나 가치를 잃어버린 현대인들이 많다는 느낌이에요. 자본주의에 실용주의에 찌든 자신을 한발 떨어져 멈춰 서서 돌아봐야만 세상이 좋게 바뀝니다.

 

이번 시집의 제목을 보면, 반지하라는 공간과 앨리스로 지칭되는 인물들의 의미가 중요한 것 같아요.


반지하에는 이중적인 해석이 있어요. 반지하는 서민의 상징이면서, 제 인생의 반은 이미 지하로 갔다는 뜻이죠. 지금 청춘들도 반지하로 가고 있죠. 그래서 「반지하 앨리스」라는 시에서 진정한 소통을 그렸어요. 나와 같이 반지하로 간 세대와 (지금) 반지하로 가고 있는 세대가 차를 마시면서 관계의 진정한 소통을 꿈꾸면서 썼어요. 어떻게 보면 반지하는 낮과 밤을 구분할 수 없는 공간이에요. 어느 학자가 이야기하길, 건물이나 집 안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인생의 94%라고 해요. 그만큼 자연과의 교감을 잃어버린 삶이죠. 그 부분에 대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어요. 제가 『사과밭 사진관』이라는 사진집에도 그 내용을 썼었어요. 내가 왜 사과밭으로 갔는지. 그리고 넷째 시집에서 애머슨의 말을 인용했는데 “인간은 우주의 광대한 힘에 의해 살아가고 있다. 그 힘에 눈을 뜨면 누구나 행복해진다”는 거였죠.

 

앨리스의 의미는 어떤가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따오신 거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좋아해요. 다들 그런 꿈 있잖아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나 『어린 왕자』 같은 책을 한 권 내고 싶은 꿈이요. 시대를 넘어 누구나 공감하고, 감동하는 동화적인 작품을 쓰고 싶은 거죠. 제가 쓴 동시 「초코파이 자전거」도 교과서에 실려 있는데, 딸아이를 키우면서 썼던 이 시들이 지금도 좋거든요. 『어린 왕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변하지 않는 삶의 지혜가 녹아 있고 상상력이 충만한 책이잖아요. 그래서 좋아하는 것 같아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같은 경우에는 앨리스가 맞닥뜨리는 황당하고, 낯설고, 기이하고, 신비로운 세계가 삶의 본질을 꿰뚫고 가는 상상력이라 깊이 공감되잖아요. 저도 반지하에 살면서 바라보는 세상은 또 다르게 보였어요. 서민들은 거주지를 통한 괴로움을 평생 겪지 않나요?

 

2년마다 이사 다니는 일이 쉽지만은 않죠.


거주 문제만큼 힘든 게 없지요. 하지만 너무 비관적으로만 생각하지는 말아요. 가진 게 없으면 없는 대로 심플하고, 집중력이 커져요. 힘든 상황에서도 마음의 창문을 하나 만들어야 돼요. 꿈꾸고, 숨 쉬고, 마음껏 상상력의 날개를 펼칠 수 있는 마음의 비밀 문을 만드는 게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이자 비법이 아닌가 생각돼요. 

 

「나는 자살하지 않았다」라는 연작시도 실려 있어요. 제목과 달리 내용에서는 희망이 엿보이는데요. 바꿔서 이야기하면 ‘나는 자살하고 싶었다’는 뜻이기도 해요.


또 다른 시집 제목 후보였죠. 삶에 지칠 대로 지치면 자살은 많이들 생각하지 않나요? 누구나 ‘자신을 곤두박질치게 만드는 절망감’이 들 때가 있죠. 젊은 날에 저도 자살을 많이 생각했어요. 지금은 아이를 키우고 있지만, 그때는 ‘자식도 없이 마흔을 맞는다는 게 무엇일까’ 싶기도 했고요. ‘이렇게 아이도 없이 살다가 가도 되나’ 하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때 메모해뒀던 걸 쓴 거예요. 또 우리나라는 저출산 고령화로 제일 먼저 사라질 나라라는 뉴스가 오늘 나왔더군요. 문제의 가장 큰 뿌리는 심각한 빈부 격차, 신성함과 사람들 사이의 따스한 믿음과 연민조차 무너진 현실입니다. 그걸 뼈아프게 느낍니다.고요히 따스한 혁명이 필요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님을 살게 한 것은 무엇인가요?


자식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겠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결국은 사랑으로 돌아오는구나, 나만 알다 가면 뭐 하나’ 하는 절실한 깨달음 속에서 제가 중요시 여기는 상상력이 넘치는 창작이 있기 때문이죠.

 

끝까지 문학을 포기하지 않으신 이유도 있겠죠?


저는 천직이에요. 시도 그렇고 사진도 그림도 다 운명이라고 느껴요. 운명을 받아들이고부터는 더 적극적으로 창작을 하게 되네요. 젊은 날의 초심을 앞으로도 계속 밀고 갈 거예요.

 

신현림-셀렉-3컷_-본문에는-사진-3장만-올려주세요-(1).jpg

 

진정한 성공은 깨끗하게 이름을 남기는 것


「백 년 의왕 사람」에서 “눈보라 치는 길을 가 봐야 / 추운 사람들을 잊지 않는다”고 쓰셨어요. 삶이 편안하지 않았기 때문에 얻게 된 것도 있을까요?


당연해요. 마음의 위안을 삼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실제로 어려워 봐야 어려운 사람들을 이해할 수 있어요. 그리고 돈만 모으고 자기만을 위해 살면 뭐해요. 그런 사람들 하나도 안 부러워요. 일부러 고난과 청빈을 택하는 삶과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삶은 고귀해요. 가난한 자를 기억하고, 자신이 가진 물질을 나누지 않으면 안 됩니다. 밥을 굶는 아이들과 미혼모, 청년세대와 노인들 너무나 많습니다. 특히나 불로소득자들은 누군가의 땀과 노동에 감사하고, 나눠야 할 책무가 반드시 있어요. 저도 청빈하게 살면서 지혜를 얻고, 배우는 삶과 사랑과 물질을 나누는 삶을 추구하고 애씁니다.

 

지난 8월에는 ‘반지하 앨리스’라는 이름의 사진전을 여셨어요. 공간에 대한 이야기가 두드러졌던 것 같은데요. 작가님께서 직접 머무르셨던 곳들인가요?


네. 반지하집에서 십 년을 살았고, 유랑민처럼 떠도는 인생이죠. 항상 시대적인 고민을 안고 있어요. 제 고민 중에 하나는 빈부 격차를 줄여서 가난한 사람들을 구하고 자살을 막는 거예요. 삶의 의미나 목적을 다시 세우는 목소리를 내야 된다는 작가적 의무감이 있어요. 도처에서 신성함과 자기정체성과 양심을 잃어버리고 인간성을 상실한 모습들이 많이 보이잖아요. ‘내가 왜 인간인가’에 대한 끝없는 질문과 답을 찾아 <반지하 앨리스>에 담았어요. 이번 전시회에서는 사진과 같이 그림을 선보였는데 평이 좋았어요.

 

전시회장을 찾은 분들의 호평이 이어졌던 것 같아요.


“역사적인 장소나 추억의 장소, 사람을 기억하는 장소에서 만나는 사과를 담아낸 ‘사과, 날다’ 등 지난 12년 동안 세상과 인간존재의 성찰을 지속적으로 펼쳐온 작가의 사과여행과도 이어지면서 또 다른 지평을 보여준다. 일상이미지에 사과작업을 더함으로써 일상과 기억 속 이미지를 초현실주의자들처럼 전혀 엉뚱하게 이어 붙이는 그녀만의 특징도 나타나 있다”는 평이었죠.

 

말씀하신 ‘사과여행’과 관련해서 사진 모티브를 도용당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이 일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요?


이번 일은 예술이 모티브와 정신까지 포함하며, 작가적 양심과 기본 자존심이 얼마나 중요한지 말해줍니다. (도용한 사람은) 주목 받은 젊은 작가라는데, 지금까지 보여준 작가 자세는 교만하고 수준이 낮은 게 아닌가 싶어 논쟁의 가치도 없다고 봐요. 큰 담론을 가지고 시작한 제게 계속 피해와 상처를 주기에 제 페이스북에 올려봤고 큰 여론이 있었어요. 관객이 예술을 완성한다는 뒤샹의 의견처럼 여론으로 이 문제를 풀고 싶었어요. 댓글 여론을 통해 도용의혹사건의 주인공인 36세 여성작가가 해당 작업을 접고, 도의에 어긋난 태도를 반성하고, 큰 깨달음이 있길 기도합니다. 접고 사과할 때까지 저만의 기록으로 계속 남길 겁니다.

 

13년 동안 사과를 모티브로 작업해오셨잖아요. 도용 사실을 아신 건 언제였나요? 작업을 중단하라는 이야기를 전하셨죠?


3년 전에 들었고, 찾아보고, 충격 받고 아팠죠. 지인을 통해 ‘하필 왜 사과이고, 왜 던지느냐’는 항의를 2번이나 전했었어요. 수업시간에 ‘신현림이 사과를 가지고 작업하는데’라는 말도 나왔다는데, 리서치도 안 했는지 그 작가는 무시했어요. 리서치는 작가로서 기본입니다. 하다가라도 중단했어야 양심 있는 작가죠. 이 자체가 이미지의 모방과 도용이고, 죄의식의 실종, 도덕불감증이라 보여집니다.

 

두 작업 사이의 유사성을 부정하기는 어려워 보여요.


제 사과는 하나의 우주이자 생명이고 사랑이라는 컨셉인데, 장소마다 다니면서 사과 던지며 찍는 게 저와 똑같아지니, 기가 막히죠. 사과 개수로 진실을 가리려 하지만, 뻔히 모티브 도용의혹으로 관객은 본다는 겁니다. 외국에 보여주려고 준비했단 소문도 들었는데, 13년 작업한 작업을 약탈하는 것과 뭐가 다르며, 얍삽한 짓이 아닌지 묻고 싶어요. 소재는 누구나 찍을 수 있지만, 모티브의 오리지널리티는 지켜져야 합니다. 예술은 모티브에서 시작해서 정신의 영역까지 다 안고 있어요. 2007년 처음 사과작업을 보여줬을 때 이런 작업은 제가 처음이라고, 사과던지기 등 20년 넘게 꾸준히 해보시라고 어느 큐레이터 선생님은 용기를 주셨죠.

 

상대 작가가 사과를 하면 일이 마무리될 텐데, 쉽지 않네요.


‘도용하는 사람은 죄의식이 없어서 계속 도용한다’는 아는 디자이너 선생님 말씀이 잊히질 않네요. 왜 예술이 존재하는가,라는 질문에 나는 감히 단언할 수 있어요. 도의적 책임을 다하고, 예술이 정직한 노동임을 보여주고, 그리하여 세상을 선하게 바꿔가는 일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윤동주 시인의 「서시」를 읊지 않아도 우리가 살아있는 분명한 이유의 하나는 도덕성을 지키는 일입니다. 모티브 도용혐의가 걸린 작업은 접어야 상식이죠. 역지사지하여 남을 아픔을 알고, 깨우치고, 새 각오로 다시 살길 기도합니다. 반드시 그래야만 작가로서 살 수 있습니다. 진정한 성공은 자신의 이름을 깨끗하게 남기는 일일 겁니다.

 

신현림-셀렉-3컷_-이-사진은-제일-마지막에-올려주세요.jpg

 

사랑과 행복의 방법을 생각해야 돼요


『반지하 앨리스』에는 현 시대에 대한 비판도 담겨 있습니다. 「쿨한 척하는 디지털 당신」, 「물음 주머니」를 보면 작가님의 눈에 비친 이곳이 어떤 모습인지 짐작하게 돼요.


정치적 적폐부터 없애려는 노력이 있어 세상에 빛이 보이기도 합니다. 나약하고 서툴고 모여 사니 부조리한 일들 투성이입니다. 빈부격차, 경쟁이 깊어질수록 버티기 힘든 곳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바꿔보려는 노력으로 한판 붙어 싸워볼 만한 세상입니다. 결국 싸움은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그 싸움이 드넓은 사랑으로 나아가길 꿈꿔봅니다.

 

‘현실을 외면하는 시는 시가 아니다’라고 말씀하신 바 있죠.


시인에게 있어서 현실에 대한 인식은 절대적이에요. 자기 안에 갇힌 언어 놀이하는 후배들을 볼 때가 있는데, 누구의 영향인지 참으로 안타까워요. 이에 대한 성찰이나 반성이 있지 않으면 앞으로의 문학도 걱정이 돼요. 자기를 돌아보지 않고, 지금 이 세계를 돌아보지 않는다면 문학이 왜 있는 건지요. 본질을 꿰뚫고 가지 않으면 안 됩니다.

 

촛불집회, 세월호 참사에 관한 작품들도 눈에 띕니다.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시면서 어떤 느낌을 받으셨나요?


세월호에서 학생들과 시민들을 꺼내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우리는 거대한 죽음을 관람하는 사람들이 되어버렸어요. 바다를 보면 기쁘기보다 먼저 아픕니다. 이후 촛불혁명의 응원을 받아 대통령이 당선됐고, 시민들의 열망을 문재인 대통령 스스로 잘 아시고, 열심히 뛰실 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촛불혁명을 통해서도 드러났지만 적폐가 쌓이고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면 누구라도 심판을 받아야죠. 그런 변화가 지자체까지 이어져야 합니다. 10년간 국민으로서 아프고 꿈꿨던 일을 시인으로서 『반지하 앨리스』시대정신을 절실히 담았어요. 

 

이번 시집에서 작가님이 꿈꾸시는 세상의 모습도 확연히 보이는 것 같아요.


‘왜 우리는 더 행복하지 못할까, 더 사랑하지 못하고 있을까, 덜 슬프지 못할까, 더 친절하게 대하지 못할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에 대한 성찰과 커다란 사랑의 실천이 필요하다는 거죠. 점점 경쟁이 심해지다 보니까 우리가 너무 긴장해 있어요. 저도 긴장할 때가 많아요. 지금 이걸 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절박함 때문이죠. 모든 걸 놓아두고 나만이 아닌 우리 모두 더 사랑하고 행복할 방법들을 생각해야 돼요. 디테일하게 세워야죠. 그건 버킷리스트와도 통할 거예요. 내가 살아서 할 일들인 거죠. 제가 늘 생각하는 게 ‘나만 알다 죽으면 뭐 하나’라는 거예요. 나눠야죠. 물질도 나누고 사랑을 다 주고 가야죠.

 

시선집을 출간하실 계획이라고 들었습니다. 작은 출판사를 설립하신다고요.


‘사과꽃’이라는 이름을 7~8년 전에 지었고, 참 많이 망설였어요. 남의 자본으로 2권 내 본 경험이 있어요. 어려운 때 작은 출발을 하네요. 1인 출판의 작고 야무진 구멍가게라 할까. 무조건 제 창작 우선이다 보니, 이 시대의 경쟁과 속도를 따라갈 마음은 전혀 없습니다. 제일 먼저 한국대표시를 재정리하는 101권의 책으로, 11월안에 1차분 출간예정입니다. 김소월의 시로 시작하여, 훌륭한 평론가 분들께 해설을 부탁해놨어요. 디자인 틀은 우리나라 최고의 북디자이너 중 한 분이 견본 초벌을 보여주신 상태예요. 내년에 또 2차분 맡을 평론가를 주변 교수와 시인들과 의논하여 정하려고요. 스테레오 타입으로 아무 비판 없이 답습하는 방식은 싫습니다. 존경하는 선배님들과 상의하고, 제대로 엄정하게 만들려 합니다. 만만치 않은 이 작업은 제 오래된 꿈이고, 겁나고 매력적인 모험이며 사명이에요. 조용히 알차고 소박하게 천천히 해볼게요.


 

 

반지하 앨리스 신현림 저 | 민음사
“쓸쓸한 나와 같은 너를 찾아/ 슬픔에 목메며/ 슬픔의 끝장을 보려고/ 나는 자살하지 않았다” 처절한 고백은 삶의 고통과 아픔에 몰입하는 대신 함께 슬퍼할 사람을 찾고 그 슬픔을 견딤으로써 오히려 슬픔의 끝장을 보는 힘이 된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한 “비정규직은 정규직 월급의 1.3배를 받아야 한다”

$
0
0

170915-이한_IMG_8853.jpg

 

경제를 이야기할 때 성장과 분배 어느 한 편을 택해야 하는 이분법적 사고 안에서, 비정규직 제도는 확대하거나 폐지해야 할 대상이다. 비정규직을 둘러싸고 갑론을박하는 동안 국민 경제에 기여하지 않는 ‘중간 착취자’, 즉 비숙련 노동자를 공급하며 임금을 깎아먹는 도급 부문이 늘어났다. 사람들은 비정규직 문제를 노동자 대 사용자의 밥그릇 싸움이라며 제대로 보지 않으려 했다.


변호사이자 시민교육센터 대표인 이한은 노동 변호사로 일하면서 비정규직 문제를 조금 더 큰 틀에서 보고 싶었다. 충격과 고통을 최소화하면서 비정규직 제도의 사회적 기능을 활용하는 해법을 생각하자 간접 고용 부문을 최대한 제거하고, 사회에서 가장 많은 부담을 지는 비정규직 노동자는 정규직보다 더 많은 임금을 받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중간 착취자의 나라』에서는 그 주장을 풍부한 실례와 적절한 비유로 뒷받침했다.

 

170915-이한_IMG_8814.jpg

 

비정규직은 사회 전체적으로 불가피한가


웹툰 <송곳> 말미에 책 광고를 냈더라. 적절한 광고라고 생각했다.

 

최규석 작가님하고 잘 안다. <송곳>이 끝나간다 하길래 광고를 내면 좋겠다고 출판사에 부탁했다. 광고는 잘 나온 것 같은데 광고 효과는 아직 지켜봐야겠다.


법률 내용을 다루면서도 쉽게 쓰려고 노력한 것 같다.


용어 자체를 많이 고칠 수는 없었다. 문장을 단문으로 많이 써서 속도감 있게 연결되도록 하고 직관적인 비유로 설명하는 부분을 많이 넣으려고 했다.


가제로 ‘착취냐 협력이냐’를 생각했다고 들었는데, 실제 제목으로는 ‘중간 착취’라는 명확한 말이 들어갔다.


간접 고용에 초점을 맞춘 책이라, 가제로는 뭘 이야기하려고 하는지 분명치 않았다. 중간 착취라는 단어 자체가 법률 단어기도 하다.


노동 전문 변호사라는 이름으로 일하고 있는데, 상담이나 소송을 진행하면서 만난 사람들이 비정규직이나 도급업을 다루기로 한 계기가 되었나.


맞다. 경비 업무 하는 사람들이 2년이 지나도 원청에서 고용을 승계하지 않고 중간 업체 이름을 바꿔 계속 일하는 사건이 있었다. 소송 자체는 임금을 적게 줬다는 내용이었는데, 살펴보니 중간 업체가 노동을 지휘하는 게 아니라 원청이 지휘했다. 실제로 원청과 중간 업체 사이의 계약서에 노동 조건과 방법이 매우 세세하게 나와 있더라. 대학 식당에서 일하는 조리사 노동자들이 정리 해고를 당했는데 식당의 기준을 복지회로 둔 경우도 있었다. 복지회는 돈이 없으니까 정리 해고의 요건이 되는데, 대학 전체로 보면 대학은 재정이 튼튼했다. 실제 노동을 사용해 이익을 얻는 사람과 노동법적인 관계의 당사자를 불일치시킬 때 많은 권리 박탈이 일어난다.


파견 업무 2년이 지나면 고용 간주가 된다고 들었다.


파견이라고 하지 않고 도급 형식으로 불법 파견을 한다. 아웃소싱 업체가 일을 완성해주는 것처럼, 장판 깔아달라 하면 장판 까는 전문가가 오는 계약인 것처럼 해놓고 실제로는 교육을 시키지 않고 사람만 보낸다. 현행법상으로는 자기를 고용해달라고 청구할 수 있는 권리인 고용 의무 규정이 적용되는데, 6, 7년 일하면서도 아웃소싱 업체가 계속 바뀌니까 고용주가 계속 바뀐다고만 생각하지 자신에게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상담하면서 노동자 측에서만 볼 게 아니라 시야를 넓혀서 과연 사회 전체적으로는 불가피한가, 도움이 되는가를 보고 싶었다.

 

170915-이한_IMG_8893.jpg

 

부담을 지는 사람이 더 많은 보상을


여러 비정규직 양상 중 간접 고용과 기간제에 집중해 설명했는데.


간접 고용은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두 가지 경우에만 허용하자는 입장이다. 예를 들어 변호사 사무실을 하면서 홈페이지를 만들고 싶은데, 변호사 사무실 안에는 홈페이지를 만들 만한 인력이 없다고 치자. 그러면 홈페이지 설립 업체에서 전문가를 파견 보내서 일할 수 있다. 또 하나는 정년까지 보장하는 조건으로 파견 업체에서 사람을 고용할 수 있다. A업체에 일이 필요하면 투입하고 그 일이 끝나면 B업체에 보내는 식으로 고용을 유지하면 사업장에서도 일시적인 기간에만 노동이 필요할 때 파견 업체로부터 인력을 받을 수 있고, 노동자들도 일자리가 늘어나면서도 상시 고용될 수 있으니 고용의 안전판 역할을 한다.


적재적소에 노동력을 공급하려면 기간제 비정규직이 필요하다.


계절적으로 수요가 변한다거나 유행 따라서 노동력의 수요가 바뀐다. 노동이 더 필요한 부분으로 이동을 빠르게 해주는 역할을 기간제 비정규직이 떠맡되, 부담을 졌으니 임금은 더 많이 받아야 한다. 예를 들어 에어컨 회사에서 계속 일하는 사람과, 여름에는 에어컨 회사에서 일하다 겨울에 다른 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 있다면 왔다 갔다 하는 사람에게 더 공정하게 보상을 줘야 한다. 직장을 옮기면서 실업 상태도 반복되니 반복 실업에 빠지는 사람에게는 국가가 최후 고용자의 역할을 해줘야 한다.


구체적인 대안으로 비정규직의 임금을 정규직의 1.3배로 제안했다. 그러나 포괄 임금제로 사람을 부리는 추세에서 실효성을 생각했을 때 비정규직에게 더 많은 임금을 주게 하면 과연 사용자가 비정규직을 고용할지 회의가 든다.


포괄 임금제는 사실 근로기준법에 위법한 제도다. 대법원에도 포괄 임금제로 해도 된다는 판례는 전혀 없다. 근로기준법에는 일 8시간, 주 40시간 근로하고 당사자들이 합의하면 연장 근로나 탄력적 근로 시간제를 실시할 수 있다고 쓰여 있을 뿐, 아무리 찾아봐도 포괄 임금제라는 개념은 등장하지 않는다. 사실 이 법리는 판례가 잘못 만들어낸 법리다. 포괄 임금제를 허용하면서 우리 사회에서 여가와 노동의 분배라든지 일자리 분배 등 많은 것이 일그러졌다. 판례에서도 그 점을 깨닫고 최근 경향을 보면 포괄 임금제가 허용되는 범위를 줄이고 있다. 감시 단속 근무와 같이 실 근로 시간을 계산하기 어려울 때만 포괄 임금제가 허용된다고 보는데, 나는 그것에도 동의하지는 않는다.


이유는?


감시 단속 근무도 근로 시간을 계산할 수 있다. 다른 데 가지 못하고 사용자의 지휘 명령을 기다리면서 앉아 있는 시간이 다 근로 시간이다. 이미 판례가 확립된 법리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판례가 모순되는 측면이 있다. 경비원이든, 방제 근로자든, 고시원 총무든 다섯 시간 앉아 있어야 하면 그 다섯 시간이 전부 노동이다. 지금 행정부에서도 노동부 장관이 포괄 임금제를 철폐하겠다는 이야기를 했고, 그렇게 된다는 전제 아래서 가지 않으면 이 사회의 어떠한 근로기준법이나 노동 시간과 관련한 개혁도 의미가 없다.


실업은 임금 하락보다 사회적 비용이 더 많이 발생한다고 했는데, 자세히 설명한다면.


최근 정규직 노조에 계신 분이 이 책을 보고 정규직 노조원과 토론을 하면서 다수가 비정규직 처우를 개선하는 건 지지할 수 있는데 정규직화는 곤란하다고 했다. 사람들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나뉘어 있으면 회사가 어려울 때 정규직의 임금을 깎거나 정리 해고할 필요 없이 비정규직만 내보낼 거라는 암묵적인 희망과 신념이 있다. 하지만 실정 연구 결과를 보면 정규직 비율이 높을수록 단결력이 높아져 정리 해고자 구조 조정이 빈번해지지 않는다. 또한 비정규직만 해고하면 회사의 관점에서는 비용 절감이지만, 이 사람들이 먹고사는 비용은 계산되지 않는다. 이 비용은 친지나 가족, 국가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데 소득이 없으면 극히 돈을 아끼고 사회 소비가 더 크게 줄어든다. 총수요 관리 측면에서도 회사 안에서 사람이 나가는 것보다 전체 노동자가 순환 휴업이나 휴직을 하거나 임금 인상을 자제하는 식이 사회 경제적으로도 좋고 개별적으로도 좋다.


생산성도 전체적으로 낮아진다고 말했다.


전직이나 전보를 경험한 사람은 알겠지만 안 해본 일 하면 되게 힘들다. 회사 안에 꾸준히 있어야 그 회사 자체의 조직 원리나 일하는 방식, 내부적으로 필요한 지식을 습득하면서 시너지 효과가 발생한다. 회사 다니다 말고 또 다른 회사로 옮기다 보면 시너지 효과가 발생할 만한 인적 자본이 축적되지 않는다. 숙련 형성의 기회가 없다고 표현하는데, 광범위한 수의 사람들, 인구의 반이 되는 사람들의 숙련기를 박탈해버리니 사회 전체적으로 생산성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170915-이한_IMG_8969.jpg

 

분석적 엄밀함


독자평 중에 “이한은 존 롤스의 후계자 같다”는 평이 있었다. 그만큼 철학자 존 롤스의 ‘정의의 원칙’에 상당히 입각해 책을 썼다고 하던데.


맞다. 사회 쟁점을 생각할 때 원칙이 없으니 사람들이 정치를 이익 투쟁의 장으로 생각하고 갈등이 일어나면 다 자기 밥그릇 싸움으로만 본다. 이러한 갈등을 원리에 의거해 해결할 방법이 없는지 정치 철학자들이 오랫동안 토의해왔고, 헌법의 규정도 그런 정치 철학적 논의와 무관하지 않다. 우리나라 헌법에 경제 민주화 조항이라든가 균형 있고 고루 성장하는 경제 발전 등 추상적인 개념이 나온다. 이러한 개념은 정치 철학에서 간취해야 할 것들을 간취해 치열하게 해석해야 우리가 구체화할 수 있다. 즉각적으로 연상되는 걸 가지고 할 수는 없다.


이전 저서 『정의란 무엇인가는 틀렸다』에서도 정의를 보려면 인식을 첨예하게 가져가야 한다는 입장이었던 것 같다.


요즘에는 사람들이 규범적인 문제에 대해 탐구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별로 안 한다. 직관적으로 이미 가진 신념에 아첨하면 옳은 이야기고, 그것과 반대되면 틀린 이야기라고 한다. 직관도 자기 스스로 독자적으로 세운 게 아니라 전반적으로 눈치의 더듬이를 세워서 사회 전반적으로 뭐라고 말하나 보고 그걸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건 사실 두뇌를 외주화한 거다.


비정규직 문제도 같은 선상에서 이해해도 되나?


사회 정책적인 문제에 있어서 흔히 듣는 이야기가 있다. “비정규직 문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양극화 문제다.” 그럼 정규직을 비정규직화하든가 아니면 비정규직에게 정규직과 같은 임금을 주면 문제가 해결되겠다고 여긴다. 하지만 비정규직 문제의 해법은 전반적으로 노동과 자본 사이의 협약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가의 문제지,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격차를 어떻게 해야 한다는 문제가 아니다. 분석적 엄밀함을 가져가는 것은 타당한 문제 해결에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요새 관심은 무엇인가?


기본적인 관심사는 헌법이다. 추상적인 의미에서의 헌법이 아니라 삶들의 진영과 자기 입장, 상상력과 공감의 한계성에도 불구하고 그 취약성에 갇히지 않고 평화로운 공정과 협동을 해결하고 도모하는 매개체로서 헌법상 원리를 보고 싶다. 그걸 제대로 해석하려면 역시나 정치 철학적인 엄밀함이 필요하다. 근본적으로 정치 철학의 흐름을 정리해서 자유, 평등, 착취, 권리란 무엇인가에 대한 내용을 향후 10년 내에 정리해보고 싶다.


책을 누가 읽어줬으면 하나?


비정규직이 문제라고 막연히 생각하는 모든 분이 읽었으면 한다.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분도 그 근거를 점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제일 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행정부 공무원들, 정치가들, 청와대 고위 공직자들이다. 민정수석께도 두 권 보내드렸다(웃음).

 


 

 

중간착취자의 나라 이한 저 | 미지북스
『중간착취자의 나라』의 저자 이한 변호사는 비정규직 제도의 사회적 기능을 충분히 활용하면서도 부정적 충격과 고통을 최소화하는 새로운 해법, 즉 경제적 효율성과 정의의 원칙을 모두 만족시키는 비정규직 해법을 제시한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배명훈 “소재가 오컬트스러워도 충분히 SF다”

$
0
0

170914-배명훈_IMG_8700.jpg

 

고고학 연구에 도움이 되는 심령현상들을 과학적으로 측정해 역사 연구의 끊어진 고리를 연결해주는 학문, 고고심령학. 외떨어진 천문대 한쪽에서 조용하게 연구를 이어나가던 고고심령학자 조은수는 어느 날 서울의 중심으로 호출된다. 갑자기 나타난 성벽, 어떤 디지털 기기로도 기록되지 않지만 사람의 눈으로는 목격되는 빙의된 성벽 때문이다. 성벽을 목격한 사람들의 죽음, 의문의 코끼리, 몇 가지 심령현상이 가리키는 답과 오래된 문헌이 예언하는 대재앙, 조은수를 비롯한 고고심령학자들은 눈처럼 흩어진 사건의 조각들을 저마다의 눈부신 능력으로 한 곳에 모은다. ‘물론 이 이야기는 실화다.’ 오래된 언어와 건축, 각지의 장기 규칙으로 들여다 본 세계의 본질을 말 그대로 ‘기록’한다. ‘심령’이 어떻게 ‘학문’과 만나 가장 과학적인 태도로 사건의 전말을 밝혀내는지 집중력 있게 따라간다.


「누군가를 만났어」의 고고심령학, 「광장의 아미타불」의 코끼리 ‘아미타브’, 『은닉』에서의 조은수 캐릭터와 작가의 중요한 주인공인 김은경을 『고고심령학자』라는 작품 한 곳에 모은 배명훈은 이 지적인 소설을 통해 혼령, 빙의, 고고심령학이라는 소재가 주는 이미지를 보기 좋게 무너뜨린다. 의미의 확장은 이런 데서 일어난다. 소재가 주는 공포스러움은 합리적이고 냉철한 학자적 접근으로 희석된다. 작가는 증명되지 않는 소재를 증명하는 과학적인 과정 그 자체를 통해 SF라는 장르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대답한다. 그러니까 “소재가 오컬트스러워도 충분히 SF”가 되는 것이다. 


작품 해설에서 소설가 정소연은 “배명훈은 또 아주 새로운 소설을 썼”다고 말했다. 책을 덮고 나면 그 말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이 작가는 『고고심령학자』로 하나의 전혀 다른 지평을 열었다.

 

170914-배명훈_IMG_8711.jpg

 

이것은 충분히 SF다


‘아주 새로운 소설’이라는 정소연 작가의 해설, 어떠셨어요? 여기에 이어지는 ‘물론 이 이야기는 실화다’라는 작가의 말도 교묘한데요.

 

되게 좋은 이야기 같아요. 전에는 제가 쓴 걸 평론가 분들이 리뷰하는 데 성공 못 하시는 경우가 있었어요. 아직까지도 있긴 한데요. 그것을 ‘내가 SF를 쓰니까, 작법이 익숙하지 않은가?’ 하고 생각했거든요. 최근에 느낀 건데 SF 작법과는 다른 문제 같아요. 정소연 작가님이 하신 말씀도 그 이야기예요. SF에도 규칙 같은 게 있고, 무엇을 읽으면 된다는 부분이 있다, 그런데 『고고심령학자』는 그것도 아닌 새로운 소설이었다는 거였죠. 좋았어요. 한편 불편하긴 하고요.

 

불편하다고요.


계속 해석이 안 되니까요. 작품만 있고, 독자 리뷰만 있고, 중간에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없잖아요. 다른 작가들은 그게 있으니까 부럽죠. 처음엔 진짜 작법 때문인 줄 알았어요. 문단에서는 인물 중심으로 많이 보니까 그래서 계속 세계 이야기를 한 거예요. 그건 지금도 유효한 것 같긴 해요. 제가 SF 작가 중에서도 세계 부분을 좀 더 강조하는 것 같거든요. 결국 SF를 떠나서 제 소설은 세계의 본질에 대한 이야기에 더 가깝지 않나, 생각도 들어요.

 

외로운 작업이겠어요. 눈 밝은 사람이 제대로 읽어내 주면 좋을 텐데요.


그렇죠, 해석이 나와야 완성이 되잖아요. 독자 리뷰도 그 역할을 분명히 해요. 하지만 그것 외에 비평의 영역이 있는데 그 영역에서 완성이 안 되니까요. 제가 하는 작업이 축적이 잘 안 되는 느낌이에요. 물론 여러 권 쌓이면 어쩔 수 없이 축적은 되죠. 그런데 작가가 어떤 새로운 것을 개척하면 비평이 따라와서 그만큼 영역이 확장되는 거잖아요. 그게 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아마 독자나 출판계가 보기에는 저 혼자 쭈뼛쭈뼛 나가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제 느낌은 그렇진 않거든요. 중력 이야기를 한참 다뤘어요. 그건 어느 정도 됐다고 생각해요. 『청혼』, 『첫숨』, 『예술과 중력가속도』같은 작품에서 제 나름으로는 발전하면서 연습을 하고 있던 거거든요. 그런데 그게 나올 때마다 산발적으로 읽혀요. 좀 아쉽죠. 정소연 작가님이 해주시면 좋은데 바쁘셔서요.(웃음)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말씀하셨는데요. 이 작품은 SF에 대한 작가의 새로운 대답처럼 읽혔거든요. SF가 무엇인지 다시 질문하게 하는 작품이었어요.


제게는 SF가 도구 같아요. SF를 몇 년 해온 분들한테는 그분들이 옛날에 읽은 SF를 다시 재현해내는 게 중요할 거예요. 당연해요. 좋은 외국 소설을 읽었던 분들은 그걸 한국적으로 재현해내는 게 중요한 목표죠. 순문학이든 SF든 마찬가지로요. 그런데 저는 그런 욕망은 전혀 없어요. 쓰고 싶은 걸 쓰는데 그게 SF가 되는 경우였거든요. 세계에 대해 쓰니까 SF랑 잘 맞는 거죠. 보면 소재를 SF적으로 개발해서 그 소재가 할 수 있는 이야기를 잘하는 게 SF를 잘 쓰는 것 같은데요. 그게 맞기도 하지만 조금 아쉬워요. 그렇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면, 올해 같은 경우 인공지능 이야기가 엄청 많아지는 거예요. 공모전 심사 같은 걸 해보면 그래요.

 

보통 독자들도 SF라고 하면 떠올리는 소재들이 있어요.


제가 데뷔하던 2005년 정도에는 생명공학 이야기가 엄청 많았거든요. 황우석, 그 영향이었겠죠. 소재가 던져지고 그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저는 제 질문은 제가 던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내가 대답할 질문을 내가 던져서 대답하는 것. 그러다보니까 약간 다른 사람들과 다른 걸 쓰고 있는 것 같아요. 물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생각하고 있는 공통의 질문도 있겠죠. 가령 페미니즘 같은 것은 모두가 하고 있고, 저도 하고 있고요. 그런 것도 있긴 하지만 다른 것들도 있는 거죠.

 

『고고심령학자』로 논의를 가져와보면 어떨까요? ‘고고심령학’이라는, SF와는 가장 멀어 보이는 소재를 다루고 있어요. 그런가 하면 이 소재를 다루는 작가의 태도는 굉장히 논리적이고 합리적이죠. 이 소재와 태도의 배반이 굉장히 흥미롭거든요.


보통 SF가 과학소설이라고 하는데요. 그 ‘과학’이라는 부분이 사회과학이어도 되는 거고요. 인문학이어도 된다고 이야기를 하거든요.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게 쓰면 못 알아봐요. 보통은 자연과학이나 공학 쪽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죠. 물리학이나 천문학 쪽, 그런 거예요. 그래서 하드SF를 쓸수록 좋은 거라고 믿는 사람도 많죠. 물론 활동하시는 작가들은 전혀 그렇게 생각 안 하고 있고요. 제 경우는 사회과학 내지는 인문학에서 이야기하는 과학적인 접근 방법, 그것에 집중해서 쓰기만 하면 소재가 오컬트스러워도 충분히 SF다, 라고 생각해요. 사실 SF를 쓰겠다고 쓴 건 아닌데요. 정소연 작가님의 해설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던 게 그런 부분인 거죠. 충분히 SF로 읽힐 수 있다, 는 이야기 말이에요.

 

과학적인 접근 방법이라는 태도는 작가의 작품에서 그리 낯선 것은 아니에요.

 

『타워』에도 계속 공부하는 사람들이 나오잖아요. 저는 그게 SF적이라고 생각해요. 과학적인 방법으로 지식으로 도달하는 것, 그 부분이에요. 제가 생각하는 저의 SF는 이것과 세계 부분이고, 그것을 계속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굉장히 지적인 소설이거든요. 이 작품의 세계관에 진입하기 전에 겪는 당황스러움이 있긴 하지만 일단 들어가면 무척 설득력이 있고 몰입하게 만들어요.


저도 걱정스러웠어요. 걱정이 돼서 주변에도 물어봤거든요. 좀 아카데믹한데 어렵지 않을까 하고요. 그런데 오히려 우주가 안 나와서 쉽대요.(웃음) 보통 독자들은 우주나 로봇이 나오면 이 세계와 다른 세계를 설정하잖아요. 거기 빠져드는 게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SF 독자는 그게 재미있어서 SF 독자인 거고요. 그런데 이 소설은 그건 아니잖아요. 물론 혼령이 나오긴 하는데 그건 보통 사람들이 그냥 이 세계에 포함시켜주는 무엇 같아요. 그것 외에는 다 현실의 연장선이라 웬만큼 어려워도 읽혔던가 봐요. SF 독자는 이 소설에 대해 다른 세계를 상상하게 하는 요소가 귀신이니까 불만이 있을 수 있는데요. SF 독자가 아니던 분들은 그래서 안 어렵더라, 라고 하시더라고요.

 

170914-배명훈_IMG_8757.jpg

 

성벽에 관한 이야기


오래 구상하고 쓴 소설이에요. 준비기간이 거의 8년 정도라고요. 이런 이야기를 쓰겠다고 생각한 이유도 있었을 텐데요.


처음 구상 당시 가제는 ‘벽’이었어요. 그동안 성벽 관련된 공부를 하고 있다는 얘기도 한참 했었는데요. 원래 『신의 궤도』 다음에 이걸 쓰고 싶었어요. 그런데 『신의 궤도』가 나온 후 느낌이 ‘문학계에서 소화가 안 됐다’였어요. 좀 아쉬웠어요. 일단 이런 걸 또 쓰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 다음에 『은닉』이 나온 거예요. 그때 『고고심령학자』를 냈으면 무척 다르게 받아들여졌겠죠.


『신의 궤도』가 나온 게 2011년이니까 그때부터 성벽을 보고 다녔어요. 『신의 궤도』에도 스페인 부분이 많이 나오는데요. 스페인에서 이것저것 보고 다닌 것 중에 성벽도 있거든요. ‘아빌라’가 그래요. 그곳에 중세 성벽이 그대로 남아 있는 데가 있거든요. 성벽 안에 구시가의 도시들이 있고요. 좋아하고, 관심이 많았어요.  

 

나름대로의 필모를 생각하셨던 거군요.


그때는 이런 타이밍에서는 『신의 궤도』같은 것을 계속 낼 게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꼭 문단 쪽에 맞춘다는 의미는 아니고요. 한 번 씩 왔다 갔다 하면서 쓴 거죠. 『청혼』같은 것도 내고 했으니까요. 제 나름대로는 엄청 신경 써서 안배를 했던 것 같아요. 제 독자의 지형이 하나가 아니라는 것도 그때 깨달았고요. 서로가 서로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두 개 이상의 독자 군에 걸쳐 있다는 걸 알았는데요. 사실 되게 좋은 거죠. 그런데 조금 힘들긴 했어요.

 

그런데요. 성벽에 매료된 건 어떤 이유였을까요?


예전에 한 다큐를 봤어요. 파리에서 고고학자들이 발굴을 하는데요. 와인 저장실 한쪽 벽에 옛날 성벽이 있었다는 걸 알고 그냥 놔둔 게 있었어요. 그런 걸 발굴하러 다니더라고요. 너무 재미있잖아요. 우리는 그런 게 없나, 했는데 있더라고요. 형태 그대로 남아 있는 곳도 있고요. 청계천 파면서 나온 흔적들을 종로에 가면 그대로 볼 수 있잖아요. 가로망, 길 같은 것은 조선 시대에 내놓은 것이 그대로인 곳들도 많아요. 성벽이 있던 자리도 그렇고, 성벽 안쪽에 사는 사람들과 바깥에 사는 사람들, 그런 것들이 재미있더라고요. 많이 보고 다녔어요. 유럽도 가면 구시가에 가서 성벽 흔적 보러 가고요. 좋더라고요.

 

성벽의 역사성, 특징 등에서 비롯한 작가의 가설과 그걸 풀어나가는 소설의 방식이 아주 흥미롭거든요.


서울 역사 부분은 공부를 했어요. ‘참여연대’ 같은 곳에서 하는 강의도 들으러 가보고요. 오랫동안 공부를 한 거죠. 이중 도시 이야기도 그때 듣고요. 영국이 델리에서 한 것을 보고 일본이 서울에서 하려고 한 건데요. 식민지 도시를 그렇게 잘 만드나 봐요. 원래 도시를 고사시키려고 옆에 더 큰 도시를 만들어버리는 거죠. 그런데 일본은 영국만큼 부자가 아니었고요. 용산에 만들려다가 홍수 때문에 철수를 했어요. 그렇게 공부한 이야기들을 썼어요. 여기엔 별로 안 썼는데 타이페이가 좋은 연결고리거든요. 서울이랑 굉장히 비슷해요. 그곳과 비교하면 서울이 이런 도시구나, 하는 게 보여요. 타이페이는 전에 「타이페이 디스크」라는 단편으로 쓴 적이 있어요. 계속 이 책으로 가기 위한 소재 같은 이야기는 쓰고 있었죠.

 

살펴보니 다른 작품 곳곳에서 발견할 것들이 있더라고요. 고고심령학이라는 소재도 『안녕 인공존재』에 수록된 『누군가를 만났어』에 등장하고요. 여기 등장하는 코끼리 ‘아미타브’도 『타워』의 「광장의 아미타불」에 나와요. 하나의 작품이 닫힌 텍스트가 아니게 된다는 점이 재미있어요.


여기 나오는 조은수는 『은닉』에 나온 그 조은수 캐릭터고요. 김은경도 딱 은경이 방식으로 나오죠. 열려있죠. 그러니까 이게 『신의 궤도』뒤에 나왔으면 사람들이 다 알아봤을 텐데 지금 나와서 잘 못 알아봐요.(웃음) 아쉽지만 그런 걸 어떻게 다 알겠어요. 제가 발표하는 지면 중에는 문예지 지면도 있고, <과학동아>도 있고 그렇거든요. 그걸 동시에 읽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어요. 어쩔 수 없죠. 그래서 단편집을 많이 내고 싶어 하는 편이에요. 묶지 않으면 모르니까요.

 

이야기를 완성하는 데 실마리를 찾기 어려운 부분은 없었나요? 여러 갈래의 이야기가 치밀하게 조직되어 있어서 연결에 고심하시지 않았을까 싶더라고요.


이야기 구조는 5년 전에 완성된 거예요. 공부를 엄청 많이 했고, 계획한대로 썼죠. 고무줄 노래 부분은 원래 없었는데 넣었고요. 원래 다른 데 넣으려고 연구하고 있던 건데 딱 맞을 것 같아서 넣었어요. 장기 부분, 서울이 이중 도시라는 부분이 있었고 이것을 고고심령학으로 파고들겠다는 구상은 딱 있었고요. 천문대는 우연히 가게 되면서 들어왔어요. 천문대 귀신 이야기 진짜 있는 거거든요.(웃음) 거기에 고무줄 노래 이야기까지 넣어서 완성이 됐죠. 사실 그건 안 힘들었는데요. 막상 구체적으로 쓰려니까 더 공부해야 하는 부분이 있었어요. 구체적으로 채워 넣는 게 힘들었어요. 원래 고고심령학자 소재는 『타워』의 ‘빈스토크’ 소재와 함께 한 30년 써먹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건데요. 시리즈물로 쓰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너무 힘들게 써서요. 잘 모르겠어요. 너무 힘들었어요.(웃음)

 

거의 하나의 학문 전체를 연구한 느낌이라서요. 힘들었다는 말이 뭔지 확 전해지네요.


네, 고고심령학 자체가 힘든 건 아니었어요. 사실 『누군가를 만났어』전에도 쓴 단편이 있어요. 그걸 개작한 게 『누군가를 만났어』라서 벌써 처음 생각한 고고심령학에서 한 단계,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면이 있죠. 이번에는 방향을 많이 바꿨지만요. 고고심령학은 괜찮았는데 서울 관련 이야기도 그렇고 힘들었죠. 편집자 분이 힘드셨어요. 사실 관계를 다 확인하느라고요. 장기 규칙도 다 확인해야 하고 그랬으니까요.

 

170914-배명훈_IMG_8643.jpg

 

주인공, 김은경


‘새로 눈이 오지는 않았지만 정상으로 가는 길은 눈으로 하얗게 덮여 있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잖아요. 저는 이 눈 이미지를 따라 책을 읽었는데 이것도 재미있더라고요.


그랬군요. 그건 사실 일부러 계획한 건 아닌데요. 눈 이야기가 많이 나온 건 제가 소백산 천문대에 있었기 때문이에요.(웃음) 석 달 간 일주일 씩 왔다 갔다 했거든요. 매일 산책을 갔어요. 천문대도 거의 꼭대기인데 조금 더 올라가면 ‘연화봉’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 있어요. 거기는 눈이 계속 쌓여있었거든요. 눈 구경 엄청 많이 했죠. 눈에 찍힌 토끼 발자국 같은 것도 거기서 본 거고요.


눈 이야기를 아주 오래 전에 쓴 적이 있어요. 늑대 이야기인데요. 그 세계에서 메시아처럼 내려오는 눈송이 하나가 있었어요. 그때 또 공부를 했었죠. 눈 결정 관련된 책 보면 정말 예쁘잖아요. 같은 모양의 눈송이는 하나도 없고, 전문가는 눈송이를 보면 대기의 상태가 어떤지 알 수 있고, 그런 내용들이었어요. 그런 내용이 담긴 거예요.

 

그 작품은 어디 수록 됐어요?


발표 안 했어요. 데뷔하기 전에 쓴 거예요. 데뷔 전에도 한 달에 한 편 씩 썼거든요. 대학원에서 논문 쓸 때도, 회사 다닐 때도 그 속도로 썼어요. 저는 썼던 걸 계속 붙들고 고치는 편은 아니고 새로 쓰는 편이에요. 그러면 좋은 점은 작품이 계속 남는다는 거고요. 지금도 습작할 때처럼 청탁 없이 쓰고 싶어서 쓰는 걸 많이 하거든요. 예전처럼 많이는 못하는데 하려고 노력해요. 청탁 받고 쓰면 재미가 없어져요. 그냥 쓸 때는 정말 재미있거든요. 사실 한 달에 한 편이 그렇게 빠른 편인지 몰랐어요. 직업으로 할 거라고도 생각 못했죠. 어쩌다보니, 『타워』때문에 전업 작가가 된 것 같아요.

 

한국 작가로서 한국어로 작품을 쓴다는 자각에 대한 이야기를 꾸준히 해오셨어요. 이번 작품은 그런 면에서 분명한 수준에 올라와 있다는 생각이 들고요. 이제는 독자들도 한국에서 벌어지는, 한국인이 주인공인 SF를 편안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아요. 변화를 느끼세요?


많이 바뀐 것 같아요. 특히 원래 SF 안 쓰시던 분들이 SF를 써도 된다고 생각하는 부분에서 많이 느끼죠. 그 문제가 해결이 된 거예요. 김중혁 작가님의 『나는 농담이다』가 그렇죠. 우주에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한국 사람이 나오잖아요. 저뿐만 아니라 다른 SF 작가들도 한국 이름을 쓰고 있는데요. 그게 축적이 되어서 이제 안 어색하게 된 거겠죠. 요즘도 한국 사람이 백인 남자 주인공처럼 움직이는 경우도 있어요. 많이 있죠. 그런데 계속 그것만 하고 있었다면 다른 영역의 창작자들이 쓰지 않았겠죠. 저변이 넓어지고 있다고 느껴요. 생각보다 폭 넓게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 같아요.

 

트위터에서 한국 사람이 백인처럼 움직이는 걸 두고 <서프라이즈> 보는 기분이라고 하기도 했잖아요.(웃음)


맞아요, 진짜 그래요.(웃음) 실제로 많이들 써요. 활동하고 있는 SF 작가들은 안 그렇거든요. 공유하고 있는 것도 있고요. 비평은 없지만 동인 정도의 뭔가는 분명히 있는 거죠. 그런데 공모전 같은 데 나오는 글들은 전혀 달라요. 우리가 극복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그대로 들어가 있어요. 미국 사람처럼 쓰고, 사람들이 <서프라이즈>처럼 나와요. 제일 충격적인 건 섹스로봇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건데요. 그 부분이 너무 안 좋아요. 그래도 다 극복했다, 우리는 다 페미니즘 소설을 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에요. 문단에서 문제되고 있는 강간 소설, 딱 그 구조잖아요. 남자 일인칭 주인공의 캐릭터를 확보하려고 고통 받는 여자를 만드는 거죠. 그런데 SF에 돌파구가 있던 거예요. 섹스로봇을 넣으면 인간 여자를 강간하지 않고 그 이야기를 쓸 수 있다고 생각을 하나 봐요. 그래서 심사평에 ‘절대 그거 아니다’라고 썼어요.

 

페미니즘에 관한 이야기도 애써 많이 하시죠. 심지어 『고고심령학자』에는 주인공들이 모두 여자예요. 주인공 김은경은 작가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인물이기도 하고요. 


애써 얘기를 많이 하고 있어요. 특히 SF 쪽에는 남자들이 전문가 자리를 많이 차지하고 있거든요. 그걸 여자 작가들이 더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어요. 올해 많이 바뀌었고요. 소설 안에서도 물론 그렇죠. 어렸을 때 잘 배운 덕분인데요. 외교학과를 나왔는데 제가 다닐 때만 해도 여자 비중이 점점 높아져서 40% 정도 됐었어요. 지금은 여자가 훨씬 많고요. 그런 변화를 하던 과여서 1학년 때부터 페미니즘을 많이 배웠어요. 제가 주인공을 은경이로 한 것도 그래서였을 거예요.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으면 여자로 주인공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다행이었죠.

 

예전 『예술과 중력가속도』출간 기념 행사에서 김은경을 계속 쓰겠다고 말하기도 했잖아요. 함께 나이 먹는 인물로 말이에요.


은경이를 은퇴시킨 것 같은 때가 있었어요. 그게 많이 걸렸었는데 계속 쓰겠다고 생각한 이후로는 계속 은경이가 나오고 있어요. 『아직 우리에겐 시간이 있으니까』에 수록된 「외합절 휴가」가 그 다짐 후 처음 나온 중편이에요. 거기서는 은경이가 오랜만에 나와서 조금 어색해요.(웃음) 『고고심령학자』에서는 능숙하죠. 잘 되고 있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하려고 해요. 저는 젠더 경험이 있는 건 아니고, 다른 여자 작가들이 쓰는 부분을 쓸 수는 없잖아요. 사실 제가 쓸 필요까지도 없고요. 그렇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는 거죠. 그게 중요하겠더라고요. 꼭 남자여야 하는 게 아니면 여자 등장인물들이 나와서 해도 된다는 걸 자꾸 보여주는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고고심령학자』의 여성 인물들이 주는 의미가 크죠. 각각의 인물뿐만 아니라 인물 간 관계도 전에 없던 모습들이에요.


그런 말씀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여자들끼리의 동료애를 정세랑 작가님이 되게 좋아하셨어요. 근데 별 게 아니잖아요. 같이 일을 하는 것뿐이잖아요. 그리고 이 책에서는 아무도 연애를 하지 않아요. 그것도 그런 이유 중 하나였는데요. 여자 등장인물은 연애를 하는 순간 캐릭터가 이상해져요. 묘하더라고요. 전혀 안 해야 되겠더라고요. 심지어 저는 외형 묘사도 거의 안 하거든요. 그것 역시 페미니즘에서 배웠던 것과 같은 거예요. 외모를 평가하면 안 되는 거란 얘기를 오래 들어서요. 그게 저한테는 맞는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고고심령학자』를 읽었으면 하는 의외의 독자가 있나요?


주요 타깃은 대학원생이 되지 않을까 했어요. 제일 좋아할 것 같아요. 너무 유능한 사람들이 나오긴 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무협지 같은 거라고 할까요. 고수들이 나와서 하는 걸 보는 느낌이긴 하잖아요. 그런 면에서 재미있을 것 같긴 해요. 그런 분들이 많이 보셨으면 좋겠는데 바쁘시겠죠?(웃음) 이 책은 잘 팔리고 반응이 좋아야 후속편을 쓸 수 있을 텐데요. 안 그러면 사실 너무 힘들어서 후속을 써내기까지는 시간이 한참 걸릴 것 같거든요. 많이 읽혔으면 좋겠어요.

 


 

 

고고심령학자배명훈 저 | 북하우스
“고고심령학은 공식적으로 존재하는 학문이 아니었으므로 박사학위 같은 것은 따로 존재하지 않았다. 심령학적인 관찰을 통해 고고학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자 하는 학문. 고고심령학은 대강 그렇게 정의되는 학문 분야였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양수경, 방송보다 자신의 목소리로 하는 공연

$
0
0

 

image1.jpeg

 

반가운 이름이다. 양수경. 대중음악이 예술의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만큼 절정이었고 숨 가빴던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반 활약했던 많은 가수 가운데 인기와 이미지 측면에서 단연 전국적 선두였다. 로맨틱 터치의 특급가요 '사랑은 창밖의 빗물 같아요'를 비롯해 '바라볼 수 없는 그대', '그대는', '이별의 끝은 어디인가요', '당신은 어디 있나요', '사랑은 차가운 유혹' 등 히트곡도 부지기수였다. 그 노래들 가운데 상당수는 10-20대 젊은 지향성이 주도했던 그 시절에 '성인 풍'을 두르면서 양수경에게 드물게 중장년 팬이 몰리게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혼과 육아, 여동생 양미경(2009)과 기획사 예당 엔터테인먼트 대표였던 남편(2013)의 죽음 등 잇단 무거운 사적(私的) 상황에 의해 오랫동안 미디어, 무대와 작별했던 그가 얼마 전 마침내 본격 컴백을 가동했다. 신곡도 내놓고 27년 만의 단독 공연도 감행한다. 올드팬들은 반가울 수밖에 없다. 공연 티켓은 단숨에 매진되어 한회 더 하기로 했다고 한다. 양수경은 이즘 인터뷰에서 “방송보다는 제 목소리, 제가 낼 수 있는 색깔로 공연을 많이 하고 싶다”는 소망을 피력했다. 공백이 길었음에도 가창 에너지를 조금도 잃지 않고 있다는 평가와 관련해 “나도 내가 맑은 소리를 가지고 있음을 최근에야 알았다. 전에는 개념 없이 노래했다.”고 말했다.

 

오랜만에 돌아왔다. 얼마 만인가.


1998년도에 결혼했으니까 1997년도까진 나왔던 것 같아요. 1998년쯤부터 거의 안 나오다가 작년에 다시 나온 거죠. 안 나온 거도 정말 기를 쓰고 안 나온 거예요. 어느 무대든지 노래로 복귀하고 싶었거든요. 그렇게 친하고 좋아했던 (전)영록 오빠가 라디오에서 인터뷰해달라고 할 때도 안 나갔어요. 언젠가 다시 돌아올 때 제대로 하겠다는 마음이었죠.

 

작년에 <불후의 명곡>으로 복귀했다.


경연은 제 감성하곤 안 맞아요. 경연은 감성을 적시는 거보다는 어떤 커트라인에 맞춰야 하는 거라서 자유롭지 못할 거예요. 그 자유롭지 못함이 좀 불편해요. <복면가왕>이란 프로그램도 두 달을 고민하다가 '내가 다시 방송을 해서 나를 알리는 것도 좋지만 그건 못 하겠다' 해서 2주 전인가 3주 전에 안 하겠다고 했거든요. 지금까지 살면서 큰 약속을 저버린 건 딱 그거 하나예요. 못 하겠더라고요.

 

대개는 전성기가 지나고 컴백을 할 때 신곡에 대해 부담스러워한다. 반면 작년에 미니앨범도 냈고 현재 신보 작업이 마무리 중인 것으로 안다.


과거와 지금은 신곡의 개념이 좀 다른 것 같아요. 히트가 되고 안 되고는 제가 결정하는 게 아니니까 곡 하나하나가 조심스럽긴 한데, 내가 활동하는 걸 알린다는 의미라고 할까요 그전에는 아무것도 몰랐을 때고 내면 들어줄 때였잖아요. 그러니까 웬만하면 앨범도 잘 나갔고 또 다음 앨범 준비하고. 그렇지만 지금은 웬만큼 좋아서는 찾아서 듣지 않잖아요. 현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인데 저의 경우는 '옛날 가수' '지나간 가수' 이런 게 앞에 항상 붙죠. 새로운 것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가수도 있는데, 전 제 색깔 지키기도 힘든 것 같아요. 작년에도 너무 고민하다가, 솔직히 100%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신곡을 냈어요. 지금도 녹음해둔 곡은 여러 개 있어요. 어떤 게 신보에 담길지는 모르겠지만요.

 

아직 타이틀곡을 정해놓은 상태는 아닌가.


보도에 나온 건 있지만 다른 어떤 곡도 타이틀이 될 수 있죠. 조금 더 작업하고 싶어요. 곡이 대체로 슬픈 사랑 얘기, 발라드인데 저는 좀 밝은 걸 하고 싶어요.

 

밝다는 게 전성기 곡으로 설명한다면 어떤 노래?


'사랑은 차가운 유혹'이나 '그대는'이요. 이별을 해도 너무 아프진 않았으면 좋겠어요. 우리 나이의 이별이 애들처럼 몇 날 며칠 죽고 살고 그런 것도 아니고, 그냥 덤덤하게 보낼 수도 있는 그런 나이잖아요. 너무 슬픈 건 아니었으면 좋겠어요.

 

양수경 씨 노래가 옛날부터 아주 슬픈 노래는 아니었지 않나.


그래도 살다 보니까 이런저런 사연도 있고 해서 (웃음) 조금 더 슬퍼 보이나?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이별 노래가 좀 없었으면 했는데 목소리 자체가 이별 노래, 아픈 사랑 노래가 잘 어울리나 봐요. 굳이 그런 걸 안 하고 싶었는데.


오는 9월 9일과 10일 이틀에 걸쳐 서울 이화여대 삼성홀에서 27년 만에 단독 콘서트를 갖는다. 일단 매진을 축하한다. 콘서트 구성을 어떻게 할 예정인가.


지난 시간의 나와 새로 시작하는 나. 1, 2부로 나눠서 20곡 정도 부를 예정이에요.

 

양수경의 히트곡은 다 들을 수 있는 자리겠다.


다는 아니고, 하다 보니까 몇 곡은 빠지더라고요. 그리고 참, 제가 리메이크 앨범을 내려고 하거든요. 레퍼토리는 트로트 쪽이 살짝 많은데, 나훈아 '갈무리'도 들어가고 장윤정의 '애가 타', 최진희 '미련 때문에', 조용필 'Q', 심수봉 '그때 그 사람'도 있고.... 어떤 게 빠지고 들어 갈진 모르겠는데 아무튼 팝 발라드는 없어요.

 

이유가 뭔가.


저는 대중가수니까 대중이 많이 기억하고 좋아할 수 있는 노래를 하고 싶어요. 앞으로도 그런 기획 앨범을 낼 거예요. 주위에서 어차피 판도 안 팔리는데 왜 판을 내느냐고 얘기를 많이 하는데 사실 저는 항상 애기 아빠가 다 해줬던 사람이라 의식이나 뭐 그런 게 없었어요. 그래서 그런지 약간 도전 의식도 생기고.

 

대중이 기억하고 좋아하는 노래를 하고 싶다.

 

예전에 노래 부를 때 방송 무대에서 많이 웃지도 않았고 카메라 보는 시선도 변화 없이 '멍하게' 쭉 쳐다보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 모습이 순진, 순수해 보여서 좋아하는 남자들이 많았던 걸로 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노래를 시작했거든요. 그래서 사회생활을 잘 몰라요. 지금도 가끔 좀 분위기 썰렁하게 하는 질문을 할 때가 있어요. 그리고 항상 고등학교 때부터 매니저가 있었잖아요. 애기 아빠(고 변대윤 회장)가 가기 전까지는 누군가가 항상 옆에서 해주니까 노래하는 거 외에는 다른 생각을 많이 할 필요가 없었죠.

 

1988년 '바라볼 수 없는 그대'가 첫 앨범은 아닌 걸로 안다.


그전에 고등학교 때 음반이 나왔다가 잘 안 됐죠. 1983년인데 그때는 예당이 아니라 서라벌 레코드사인가에서 음반이 나왔고 1984년인가 방송을 한 번 했는데 잘 안 됐어요. 첫 앨범은 음악성도 없었던 것 같고 제작해주신 분도 그렇게 많이 정성을 들인 것 같진 않아요. 국악예고 다닐 때였죠.

 

국악예고를 다녔는데 왜 대학은 영화과(서울예술대학)로 갔나.


제가 민요를 굉장히 잘 해서 국악예고에서 박귀희 선생님의 수제자로 발탁이 되어 그 집에 들어가려고 하던 날, 학교에서 가수 한 명 추천해달라는 작곡가 선생님이 계셔서 저를 추천해주신 거예요 그때도 국악은 가요보다 사정이 힘들었던 것 같아요. 벌이든 사람들의 인식이든. 근데 저는 돈을 벌고 싶었거든요. 그것도 아주 많이요. 너무 가난했으니까요. 제가 집의 기둥이 되어야 하니까 국악과 가요 사이에서 고민을 많이 했는데 결국 가요로 갔죠. 당시엔 실용음악과 이런 게 보편화되지 않았을 때인데, 연기란 장르에도 꿈이 있었고 연예인이 될 거면 이것저것 다 공부를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영화과를 갔어요.

 

3-4년 무명을 거치고 '바라볼 수 없는 그대'로 성공을 알렸다. 사실상 데뷔곡이 된 이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어땠나.


당시에 이 곡을 작곡한 같은 소속사의 가수 박강성 씨가 이런저런 노래를 들려주고 하나씩 녹음을 하는 중이었어요. 근데 그거만 안 들려주더라고요 자기가 할 거라고. 그러다가 들었는데, 사람이 감이란 게 있잖아요. 심장이 두근두근하면서 이건 무조건 히트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강성 씨에게 달라고 졸랐죠. 그때가 이선희 씨 '나 항상 그대를' 그 노래가 나오고 리듬 앤 블루스가 좀 될 때였거든요. 일단 듣고 너무 좋았어요.

 

다음 히트곡이 '그대는'이다. 미드템포에 가볍게 댄스도 할 수 있는 곡이었는데 양수경의 순수 외모도 가장 어필했던 것 같다.


근데 전 정말 싫어했어요. 멜로디가 너무 단순했거든요. 반복되는 단순함. 그땐 그걸 몰랐던 것 같아요. 지금은 대중적 가요가 좋아요. 근데 그땐 어렸을 때라 (폼이 안 나서라고 그랬냐고 하자) 솔직히 말하면 약간 그랬던 것도 같아요. 그때 이지연도 있지 이상은도 있지. (웃음) 

 

image2.jpeg


 이기고 싶었던 라이벌은 이지연

 

말이 나와서인데 당시 라이벌로 여긴 가수는 누구였나. 왠지 이 가수는 이기고 싶다 하는..


저는 이지연이요.

 

근데 이지연은 흔히 라이벌로 김완선을 언급했던 것 같은데...


완선이는 우리보다 훨씬 선배에요. 지연이는 저보다 꿈이 높았던 거죠. 저는 지연이와 같은 해에 데뷔를 했고 매일 보고 예쁜 애니까. 쟤보단 좀 잘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이선희나 김완선은 높아 보였고.

 

이지연이 라이벌이었다고 했는데, 둘 모두 대표곡이 묘하게도 전영록과 관계가 있다. 이지연의 '바람아 멈추어다오', 양수경의 '사랑은 창밖에 빗물 같아요'. 당시에 그런 걸 의식했나.


저희 둘이 너무 많이 비교가 됐잖아요. 그때 그런 라이벌 의식을 가진 건 아닌 것 같은데, 우연히 그렇게 곡을 받게 됐어요. (전영록에게 가서 이지연에게 곡을 줬으니 나에게도 달라 이런 건 아니었냐고 묻자) 전혀 아니었어요. 영록 오빠는 저의 우상이었고 제가 팬이었잖아요. 지연이하곤 상관없었어요.

 

'사랑은 창밖에 빗물 같아요'는 로맨틱하고 지적이고 예쁜 곡이다. 노래할 때 기분이 좋지 않았나.


저는 처음 딱 들어서 심장이 막 뛰는 곡은 무조건 히트 된다고 생각하는데, '사랑은 창밖에 빗물 같아요'를 들었을 때 그랬어요. 영록 오빠가 다른 곡도 많이 줬는데 다른 건 아니었던 거죠. '오빠, 그냥 아무거나 불러봐'했는데 '이건 아닐 거야' 하면서 불러준 노래가 그 노래였어요.

 

처음 '이 밤~'할 때 이미 승부가 났다.


지금도 '이 밤'이라는 시작의 두 글자 때문에 연습 많이 해요. 저의 가장 대표곡이기도 하고…. <가요 톱텐> 1위는 아니어도 무조건 히트한다고는 생각했어요.

 

'사랑은 창밖에 빗물 같아요' 그다음에 딱 생각나는 곡은.


'이별의 끝은 어디인가요'죠. 참 좋았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때가 저의 가장 전성기였던 것 같아요. 3집 수록곡인데 그때 한 앨범에서 네 곡 정도가 히트했어요. '이별의 끝은 어디인가요' 다음으로 '당신은 어디 있나요', '못 다한 고백', '알 수 없는 이별'. 그때 일본 활동을 하느라 제대로 국내 활동을 못해서 아쉬웠지만요.

 

일본에서도 인기였다는 얘기가 기억 난다.


제가 일본에 가면 일본 사람이냐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일본어에는 받침이 없어서 그런지 가요 부를 때보다 목소리가 훨씬 더 좋아요. '사랑의 세레나데'라는 곡이 있는데 그게 NHK 빼놓고 이곳저곳 방송국에서 전부 신인상을 받았어요. 그땐 일본 문화가 개방되지 않았던 시절이라 우리나라에선 없는 노래죠.

 

아까 3집이 진짜 전성기라고 했는데 왜 전성기로 표현한 건가.


일단은 스케줄이 엄청 많았고, 금전적인 거도 얘기 안 할 수가 없죠. 돈을 더 벌 수 있는데도 시간이 없어서 못 벌 정도였으니까요. 거기에 일본까지 간 거죠.

 

'당신은 어디 있나요'도 3집 곡인데 그 노래를 좋아하는 팬들이 많았다.


저도 좋아했어요. 저한테는 그런 게(뽕) 잘 어울려요. 21살, 22살쯤 KBS 프로그램 <신인무대>에 나갔을 때 심수봉 씨의 '그때 그 사람'을 불렀는데 되게 좋았어요. 가수마다 색깔이 있잖아요. 제가 발라드지만 (이)지연이나 (이)상은이처럼 아이들을 타겟으로 한 게 아니고 약간은 성인적인 가요를 했죠. 지금도 그게 너무 좋아요. 작곡자인 (김)범룡이 오빠 사무실에 가서 들었을 때 실은 다른 노래를 추천해줬어요. 근데 그 노래를 불러보니까 심장을 뛰게 하는 거예요.

 

당시 딴 가수들은 좀 더 어리고 발랄한 쪽인데 반해 양수경 씨만 나이 대가 더 위인 쪽 노래를 했다. 걸이 아닌 우먼이었다고 할까. 그게 싫지 않았나.


그거 제가 고른 거예요.

 

거기에 TV로 보인 그 멍한 표정도 호감 창출에 한몫했다고 본다.


제가 어려서부터 혼자 있는 걸 좋아하고 책을 좋아했는데, 늘 생각이 많았어요. 그런 게 생활처럼 되어있어서 노래할 때도 그렇지 않았나 싶어요.

 

만약 외모에 강점이 있었다면 어디에 있었다고 보나.


말씀하신 맹하고 순진한 거? 그런 얘기를 많이 들었죠. 그때는 절대 강점으로 생각하지 않았고요. 실은 진짜 정성들여서 카메라 보고 노래한 거였어요. 몰입이죠. 근데 그게 맞는 거였더라고요. 전 그걸 몰랐는데 요즘 트레이닝하면서 보니까 선생님이 움직이질 못하게 해요. 움직일 때마다 음이 틀려지더라고요.

 

전성기의 거의 마지막 곡이 '사랑은 차가운 유혹'이다. 그때 소속사 사장(변대윤)이 암 판정을 받았던 것으로 안다. 나중 극복하지만 그래도 당시 활동에는 어려움을 겪었을 것 같은데 그때 상황을 듣고 싶다.


그쯤 제가 ABU(아시아?태평양 방송 연맹) 가요제를 갔어요. 그때 엄정화 씨도 같이 갔는데, 정화가 저한테 “언니, (변대윤) 사장님 배에 뭐가 만져져서 우리 다 만져봤다” 이러는 거예요. 저는 그게 장난인줄 알았는데 진짜로 뭔가 있었던 거예요. 암 덩어리였던 거죠. 아무튼 그리고 한국에 와서 저는 이제 활동을 시작하고 이 사람은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았는데 3개월 밖에 못 산다는 판정을 받은 거예요. 그 사람이 저희 집 앞에 와서 자기가 다 나아서 오면 결혼해달라고 하더라고요. 사실 전 재벌 집에 시집가고 싶었어요. 전 너무 가난해서 사람들이 없어서 받는 멸시, 엄마가 고생한 거 보고 자라는 거 이런 게 싫었어요. 그래서 꿈이 조금 달랐죠. 우리 집에선 저 아니면 가난에서 탈출 시켜줄 사람이 없는 거예요. 변대윤이라는 사람이 그 정도 급은 아니었죠.

 

아무튼 그 앨범(4집)부터 히트곡이 줄어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일본에 너무 많이 가있었어요. 왔다 갔다 했고, 어떤 노래를 하더라도 제작자와 가수가 딱 들어서 너무 좋아 이렇게 해야 되는데 저는 자꾸 아니라고 하는데 제작자는 계속 좋다고 하고... 그리고 안 되려면 어떤 이유를 대도 어떤 상황이 되어도 안 돼요. 그럴 때였나 봐요.

 

1992년 5집 <한 번 더 생각해봐요>인가, 그 앨범은 완전 실패였다. 시대가 바뀌어서일까 아니면 본인의 문제였을까.


저의 문제도 있었고 서태지가 나오면서 음악적으로 변화가 많은 시기였죠. 그리고 제가 일본에 주력을 많이 할 때라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했어요.

 

양수경에게 대중가수의 정체성을 부여한 이가 남편 고 변대윤 씨라고 생각하나.


그렇기도 한데, 당시에는 돈을 벌겠다는 목표가 저를 끌고 온 것 같아요. 돈을 벌기 위해 히트를 내야 했고, 음악을 했던 거죠. 그땐 그런 욕심이 지배했죠. 얼마 전에 한 달 동안 우리나라 여가수들, 외국 여가수들 공연하는 거만 계속 봤어요. 이 사람은 왜 지금 노래를 이렇게 하고 있고 어떤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고 있나 등등요. 제가 나이 들어서 노래할 거라는 생각을 안 해봤거든요. 과거에는 돈 아니면 성공 때문에 노래를 했는데 이제는 내가 어떤 가수가 되어야 하지, 내가 무슨 색깔을 갖고 있지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것 때문에 한 달 이상을 모니터 했는데 분명히 내가 할 수 있는 색깔이 있더라고요. 첫 시작은 애기아빠(고 변대윤)가 동기 부여를 해줬고 그게 지금의 저를 있게 해줬지만, 아마 지금부터 제가 가수로 가야 하는 건 오로지 제 책임인 것 같아요.

 

image3.jpeg


 무엇보다 팬들의 추억, 내 추억을 훼손하지 않아야

 

어떤 색깔을 지니고 있다고 느낀 건가.


전 깨끗하고 맑은 목소리가 강점이란 거. 그리고 사람들의 추억을 훼손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 제 추억이기도 하고요.

 

얼마 전 전영록 콘서트에서 보고 깜짝 놀랐다. 발성이 20-30대와 겨뤄도 될 정도로 안정되어 있고 성량도 좋아 보였다. 한창때는 솔직히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리고 그동안 사생활이 평탄치 않았던 걸로 알고 술도 많이 했다는 것을 방송에서 밝힌 것을 봤다. 그런 것을 전제하면 목소리 보전에 선전했다는 느낌이다.


그렇게 하고 싶어요. 어제도 '이별의 끝은 어디인가요'를 2시간 불렀어요. 부를 때마다 소리가 다르거든요. 콘서트 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좋은 소리가 나오는지를 알아야 하니까요. 전 제가 그렇게 맑은 소리를 낼 수 있는지 몰랐어요. 옛날에는 개념 없이 불렀던 것 같아요. 어렸을 때니까 근육도 받쳐줬으니까 힘으로도 불렀을 거고. 그러니 전 진짜 축복받은 가수예요. 제가 가지고 있는 실력보다 히트곡도 많이 냈고. 지금도 축복이에요. 제가 이 나이에 다시 시작할 수 있고, 아까 말씀해주셨듯이 여러 풍파를 겪고 나서도 목소리가 건강하다고들 말씀해주시니까요. 제가 저를 많이 학대하고 그런 시절이 있었는데... 그래도 작년 1년 연습 기간은 제가 산 기간 중에 몇 번째로 힘들었던 그런 시간인 것 같아요.

 

다시 자신을 찾는 시기였기 때문에?


지금 소속사 오스카이엔티 대표(전홍준)가 제일 먼저 저한테 한다는 말이 “어디 가서 노래하지 마세요.”였어요. 너무 못한다는 거예요. 저는 나름대로 자신이 있었는데. 그래서 1년은 죽어라 연습만 했죠. 그 시간이 너무 값졌어요. '하늘은 왜 나한테 모든 걸 다 가져가셨나'하는 좌절의 시간도 있었거든요.

 

소속사 대표와 양수경 둘 다 용기 있는 결정이었을 것 같다. 다시 활동의 나래를 펴야 할 양수경 씨 입장에서 전홍준 대표의 무엇을 본 건가.


그동안에 했던 세계에서 벗어나 또 다른 세계에서 (음악을) 하고 싶었어요. 같은 음악 계통이긴 하지만 애기아빠와는 연결되지 않은 쪽으로 하고 싶었죠. 음악적으로는 오스카이엔티 거기 있는 가수들을 쭉 봤는데 대중가수라고 하기에는 조금 마니아틱한 가수들도 있었거든요. 소속 가수의 면면을 보고 가수의 색깔을 잘 끄집어 내준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 쪽으로 좀 많이 할 수 있겠구나. 저는 늘 색깔이 없다는 게 좀 불만족이었거든요.

 

전성기 시절 발표한 곡 가운데 스스로 가장 아쉬움이 남는 꼽는다면.


먼저 가장 아쉬운 곡은 '바라볼 수 없는 그대' 앨범에 수록된 초기 곡 '외면'이란 노래에요. 제가 좋아하고 제가 정성 들인 거보다는 대중이 더 좋아해주고 저의 대표곡이라고 꼽을 수 있는 노래인데 사실 전 그만큼 정성을 들이지 않았고 심지어 저는 그 노래를 너무 싫어했어요.

 

팬들이 왜 이 곡을 좋아한다고 생각하나.


가사나 멜로디가 단순하고 좋으니까요. 아까 말씀하셨지만 단순한 게 대중가요인데, 그때는 제가 음악적인 이론을 모른다는 헛헛함 때문에 음악적 허영이 있을 때인가 봐요. 그게 아니었다면 '외면'이라는 노래를 더 잘할 수 있었는데 괜히 싫다고 그러고... 정말 아쉬워요 '외면'이라는 곡이.

 

가장 맘에 드는 곡은.


지금 생각해도 좋은 건 '사랑은 창밖에 빗물 같아요'. 왜냐면 이렇게 모든 사람이 좋아해주는 노래고, 비만 오면 틀어줘서 저를 사람들 기억에서 잊지 않도록 해준 노래잖아요. 새삼 좋아하게 된 노래에요.

 

어렸을 때 좋아했던 가수는 누구인가.


개인적으로는 전영록 씨를 너무 좋아했어요. 누구를 좋아할 때 왜라는 건 없잖아요. 어느 날 가슴에 훅 들어온 거예요. 그러니 제가 영록 오빠가 작곡한 곡 '사랑은 창밖의 빗물 같아요'를 노래하고 또 그 곡이 사랑을 받았을 때 기분이 어땠겠어요. 그리고 저는 남진 나훈아 선생님 두 분께 다 배울게 많지만 전 특히 나훈아 선생님이요. 가수로서 지켜야 하는 것을 아시는 분이세요. 그분은 옷이 구겨진다고 무대 올라가기 전에 앉지도 않아요. 그런 작은 거 하나부터 철저하게 외롭게 사시면서 가수를 방해하는 모든 걸 안 하신 분이죠.

 

여가수 중에선 꼽는다면.


이미자, 패티김 선생님. 두 분 다 가수로서 자기 절제가 정말 훌륭하신 분들이고 끊임없이 노력하시고 운동하시고 연습하시고....

 

팝 가수 중에서는.


팝 가수는 아니지만 안드레아 보첼리(Andrea Bocelli)를 좋아해요. 그 소리는 어떻게 표현이 안 되죠. 정말 사랑하는 남자가 있는데 훌리오 이글레시아스(Julio Iglesias). 나이를 먹어서 정말 속상한 사람이 있다면 훌리오 이글레시아스에요. 그분은 저음과 고음의 차이가 없어요. 숨을 어디서 쉬는지도 모르겠어요.


국악예고 다니며 국악에서 배운 것은.


흔히 말하는 트로트의 '뽕' 필 아닐까요. 제 노래에 그 느낌이 나오는 건 그게 남아있지 않나 싶어요. 한창때 성인 대상의 <가요무대>와 영 제네레이션 대상의 <젊음의 행진>을 같이 했던 가수는 저 하나였거든요. 저밖에 없어요. 저는 <가요무대> 나가는 게 너무 신나고 재밌었는데 그때 아이들은 <가요무대>를 싫어했죠.

 

오랜 시간 자리를 지켜준 팬들도 각별할 것 같다.


제가 전홍준 대표에게 농담으로 “자꾸 저한테 그러면 팬클럽에 얘기해요” 하죠. 이게 협박이에요. (웃음) 제가 가장 힘들었을 때 팬카페 가서 보면 우리가 있으니까 힘내라고, 거기 18년 동안 지켜줬던 팬들을 보고 그때 진짜 많이 울었던 것 같아요. 그 어느 다정한 포옹이나 말보다 우리 있으니까 돌아오시라고.

 

케이팝 한류에 대해 선배로서 눈에 들어오는 후배 가수가 있는지. 양수경에게도 과거 ABU(아시아 태평양 방송 연맹) 가요제 입상 등 국제가수 이미지가 있다.(양수경은 1991년부터 이 국제가요제에 참여해 1992년과 1994년 최고 인기가수 상을 받았고 1994년에는 동유럽 가요제인 러시아 백야 축제에 참가해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엑소와 방탄소년단 인기가 굉장한 것 같아요. 케이팝이 가요계의 국제적 위상을 위해서도 그렇고 국가 발전을 위해서도 그렇고, 너무나 훌륭한 일들을 하고 있는 거잖아요. 선배로서 뿌듯합니다. 하지만 그 아이들이 그게 끝나고 나서도 가수로서 정체성을 계속 갖고 살아갈지 살짝 걱정돼요. 성공해서 돈이라도 벌 수 있는 친구들은 그 추억으로 살겠지만...

 

인기를 누리다가 떨어지는 게 더 견디기 어렵다.


말할 필요가 없죠. 무명보다 그게 더 어려워요. 정말 힘들죠. 너무 힘들지.

 

음악계에서 어떤 가수로 기억되길 바라는지.


이제는 누군가에게 잊혀진 가수가 아니었으면 좋겠고... 제 목소리, 제가 낼 수 있는 색깔로 공연을 많이 하고 싶어요. 방송 출연하고 그런 건 좀 자제를 많이 할 것 같고 공연 쪽으로. 그게 늘 하고 싶었던 거니까요.

 

인터뷰 :임진모, 정민재
정리 :임진모
사진 :홍은솔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박생강 “인간 관계 속에서도 공허한 게 우리네 삶”

$
0
0

설가 박진규는 2005년 『수상한 식모들』로 제11회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한 뒤, 2014년 『나는 빼빼로가 두려워』에서 필명인 박생강으로 작품을 발표했다. 그리고 2017년, ‘박생강’이라는 필명으로는 두 번째 장편소설을 내놓았다. 제13회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작인 『우리 사우나는 JTBC 안 봐요』가 그 작품이다. 이 소설은 헬라홀이라는 멤버십 사우나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는다.

 

멤버십 사우나답게, 이곳을 드나드는 사람은 일반인은 아니다. 연예인, CEO, 고소득 전문직 등등 소위 대한민국 상위 1퍼센트였거나, 지금도 1퍼센트인 사람이 회원이다. 이들을 관찰하는 주인공인 손태권은 과거에는 소설가이자 논술 강사였고 지금은 사우나 매니저다. 태권의 눈에 비친 1퍼센트를 통해 작가는 우리 사회의 소우주를 소설 한 편으로 응축한다. 이렇게만 소개한다면 이번 작품이 꽤나 무겁게 느껴지지만 박생강 특유의 블랙유머가 곳곳에 녹아 들었다. 덕분에 독자들은 꽤나 진지한 소재이나, 부담스럽지 않게 이야기를 즐길 수 있다. 그의 이전 작품과 마찬가지로 『우리 사우나는 JTBC 안 봐요』도 경쾌함과 재미, 재기발랄함이 장점인 소설이다.

 

리사이즈05.jpg
 

지금까지 쓰면서 가장 힘들었던 작품

 

제13회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작인 『우리 사우나는 JTBC 안 봐요』가 책으로 나왔습니다. 그간 근황을 말씀해주신다면.

 

상을 받은 지 몇 달 후에 우연히 프리랜서 기자로 취직했어요. 형사들만 볼 수 있는 전문지인데요. 한 달에 살인과 사기 각각 한 건, 그러니까 총 두 건을 취재하기 위해 전국 각지 강력반 형사를 만나 인터뷰를 합니다. 해결된 사건을 형사들이 어떻게 수사했는지를 촘촘히 기록해서 르포형식의 기사를 쓰죠. 이 일 때문에 조금 바쁘네요.

 

원제가 『살기 좋은 나라?』였는데요. 제목이 바뀐 사연이 궁금해요.

 

출판사에서 제목이 평이하니 좀 더 눈에 들어오는 제목이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글은 밝은데 제목이 다소 어둡다는 평도 있었고요. 농담 삼아 ‘우리 사우나는 JTBC 안 봐요’는 어때요, 했는데 이걸로 정해졌어요. 다소 낚시성 제목인데요. 읽은 사람은 알겠지만, 소설에 딱 한 장면 나올 뿐이고, 이 소설이 정치적 함의가 있는 내용은 아니거든요. 있다고 생각하셔도 뭐 괜찮지만요.

 

이건 좀 다른 이야기인데, 어쩌다 보니 작년부터 JTBC 시청자 위원을 하고 있어요. 한 달에 한 번, 사장님과 보도국장님 등 제작진들과 만나 방송에 대한 의견을 주고 받는 자리에 나가죠. 막상 책이 출간되니 거기서 “제가 ‘우리 사우나는 JTBC 안 봐요’라는 소설을 썼습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하기가 뭔가 민망하더라고요. 출판사에서 사전에 JTBC 측에 출간 전 제목에 관한 허락을 받아 문제는 없었지만요. 하여튼 JTBC에서 JTBC 안 보는 제목의 소설을 쓴 작가가 저라고 아직 고백은 못했습니다. 그래도 아시는 분은 알겠죠.

 

전작인 장편소설 『나는 빼빼로가 두려워』, 『보광동 안개소년』, 『내가 없는 세월』, 『수상한 식모들』과 소설집 『교양 없는 밤』에서는 주로 현실과 환상이 섞인 이야기를 썼습니다. 이번 작품은 현실적인 이야기인데요. 박생강이라는 필명을 쓴 뒤로 문학관이 변했다고 이해해도 될까요.

 

그런 것까진 아니고요. 박생강이라는 필명은 이 소설보다는 『나는 빼빼로가 두려워』와 상관이 있어요. 문체에 관한 고민을 많이 하던 시기였어요. 『수상한 식모들』로 등단하고 나서 일부 비판적인 평을 들었죠. 수상작으로 가벼운 내용, 가벼운 문체 아니냐고. 그 후에 무겁고 진지하게 쓰려고 노력도 했어요. 물론 나와 맞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처음에 내가 썼던 모습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발랄한 필명도 하나 만들고. 마침 열린책들에서 내는 첫 한국소설이기도 했고, 그 쪽에서도 필명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셨어요. 그래서 박생강이라는 필명이 태어났죠. 당시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이번 소설이 상을 받았으니, 이제는 ‘박생강’이란 이름을 기억하시지 않을까요. 문학관이 바뀐 건 아니에요. 솔직히 문학관이랄 게 별로 없는 것 같기도 합니다. 하여간에 독특한 알레고리 설정이 없는 수기같은 소설을 쓴 건 처음이긴 하네요. 그래도 어딘가 등단작인 『수상한 식모들』과 비슷한 부분도 있을 것 같습니다. 소설가라는 사실을 숨긴 수상한 사우나 매니저가 등장하잖아요.

 

이번 소설은 겪은 일을 옮기면 되니, 전작보다는 상대적으로 쓰기 편했을 듯한데 어땠나요.


쓰면서 가장 힘들었던 작품이 이번 소설이 아닐까 해요. 초고를 쓰면서, 세 가지 방향을 생각했어요. 하나는, 상류층 실생활과 속내를 다루는 미드스타일 스릴러. 또 하나는, 노동하는 자의 고통을 진지하게 다룬 묵직한 리얼리즘. 마지막이, 이곳에서 벌어지는 우스꽝스러운 일을 고백하는 풍자형식인데요. 첫 번째는 답이 안 나왔어요. 상류층의 남자들이 다들 벗고 있지만 벌거벗은 사생활을 파악하기는 힘든 곳이어서. 상류층의 아랫도리 사정은 잘 알지만, 아랫도리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는 알 수 없는 곳이었다고나 할까…… 두 번째 방법은 제가 일하면서 노동의 고달픔을 느낀 적이 별로 없었기에 거짓말로 쓰는 것 같았죠. 정말 편하게 일해서 이게 일인가 싶은 날도 있었답니다. 결국 마지막 방향으로 썼는데, 쓰면서 거리 두기가 쉽지 않았어요.. 회원님들의 운동복과 양말을 관리하는 나와 소설을 쓰는 나를 분리하는 작업이 은근 힘들었어요. 다 쓴 다음에 과연 분리를 잘했나, 싶은데 독자도 헷갈릴 거예요. 이게 작가가 겪은 일인지, 허구인지를요. 그럼에도 어쨌든 무겁고 슬픈 이야기를 독자가 재밌게 읽었으면 하는 마음가짐이 있었는데, 의도가 어느 정도는 적중한 듯해요.

 

리사이즈01.jpg

 

박생강이 사우나에 간 이유

 

소설을 끝낸 뒤에 사우나에 가신 적이 있나요?
 
상 받고 책 나오기 전 5월에 갔어요. 후임이 사랑니 발치 때문에, 저에게 하루 일해줄 수 없느냐는 연락이 왔죠. 조금은 두렵기도 하고 뭔가 기대도 되었던 듯하네요. 이곳의 이야기를 쓴 거 아니냐고 누군가 말할까 봐요. 허무하게도 아무도 모르시더라고요. (웃음) 그저 여기서 다시 일하는 거냐는 질문에 ‘땜빵’이라는 답변만 수 십 번 했네요. 심지어 조금 친하게 지냈던 젊은 회원님에게 왜 소설은 안 쓰고 다시 돌아왔느냐는 농담 섞인 말도 들었어요.

 

소설을 보면 헬라홀 사우나가 유지 보수가 잘 안 되는 사우나잖아요. 그럼에도 지금까지 건재한데요. 영업 비결이 있을까요?

 

비싼 가격의 멤버십이라는 프리미엄이죠. 노인이 당당하게 다닐 수 있는 피트니스가 많지 않아요. 소설 속 인물들도 한때는 1퍼센트였지만 지금은 뒷방 할아버지잖아요. 그래도 이곳에서는 인사 깍듯하게 하고, 대접 해드리니까요.

 

신변잡기로 인터뷰가 흘러가는 듯하지만, 궁금해서 물어볼게요. 작가님은 목욕탕 가는 걸 좋아하시나요?

 

이곳에서 일하게 되기까지 얽힌 일화가 있어요. 2014년까지는 책을 내고, 소설 강의를 하며, 대중문화 칼럼을 쓰는 등등의 일로 생계 유지를 했어요. 그 뒤로 강의가 끝나고, 계약한 책도 모두 냈어요. 2005년에 등단해서 10년 정도 썼으니, 저 개인적으로는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해서 좀 쉬자, 혹은 어쩌면 영영 쉴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생각했죠. 소설을 덮는다고 내 삶이 끝나는 건 아니니까. 내가 낸 책들이 망한 거지, 내가 망한 건 아니외다 이런 생각들이 있었고요. 2015년부터 다른 직장을 찾아보려고 알아보던 중이었어요. 글 쓰지 않는 다른 일, 그리고 이왕이면 시간 여유가 있고 편한 일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게을러서.

 

주변 권유로 사주와 타로를 함께 보는 점집에 갔는데요. 그 분이 저의 사주를 보더니, 사주는 좋은데 화가 많다, 이런 사주는 물이 필요하다고 알려줬어요. 특히나 올해부터는 물과 거리가 멀어지는 시기이니, 이럴 때는 매일매일 사우나를 가면 좋은 글도 나오고 잘 풀린다고 권해주더라고요. 그때 운명처럼 구인 사이트에서 사우나 매니저를 구한다는 정보를 봤어요. 이거다, 돈 안 내고 매일 물에 가는 거니 나쁘지 않겠다, 해서 사우나 일을 시작한 면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렇게 일 년 내내 목욕탕을 다니다 보니, 습관이 되어서 요즘은 한 달에 두세 번은 가요.

 

리사이즈03.jpg

 

소설가란 계급화된 사회에 속하면서도 속하지 않은 존재

 

소설 속에 다양한 인물이 등장합니다. 이곳을 소설로 옮기겠다고 마음 먹었을 때 절대 빼놓지 말고 넣어야겠다 생각한 사람이 있나요?

 

팀장님. 10년 동안 문학인으로 살다가, 그곳에서 처음 공적인 관계로 만난 사람이 팀장님인데요. 정말 열심히 사는 생활인이죠. 양말, 수건을 각 잡고 물기가 있으면 바로 바로 닦는 그런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소설로 과장해서 그리고 싶은 욕망을 품게 하셨죠. 회원 중에서는 보르헤스로 그린 분. 몸에 반점이 많고, 천천히 걸어 다니는 노인인데요. 그 느린 걸음 때문에 더더욱 눈에 띄었죠. 다른 회원분들은 그 회원님을 싫어했어요. 저희는 안쓰럽게 생각했고. 어떻게 보면 웃기고 억울했죠. 갑을병 중 병인 게 사우나 매니저인데, 사우나 매니저가 상류층 회원님을 안쓰럽게 생각하다니, 이러면서. 또 파편으로 흩어진 ‘말’을 인물로 구체화시키고픈 생각이 있었고요.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말처럼, 일을 하면서 정말 많은 말을 듣거든요. 쓸모 없는 대화들이 대부분이지만 그 안에는 그들의 고통, 생각, 가치관이 은근히 담겨 있었으니까요. 그걸 엮어서 형상화 하면서 여러 인물이 태어났죠.

 

사우나 회원이 1퍼센트이거나, 한때 1퍼센트였던 사람이잖아요. 이들이 나머지 99퍼센트와 다르다고 느낀 순간,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똑같은 인간이구나를 느낀 순간을 알려주신다면요.

 

평소에는 다 벗고 있으니 이 사람들이 1퍼센트인지 99퍼센트인지 모르죠. 빈부에 따라 똥배 타입이 어떻게 다른지 이런 건 판단이 안 되더라고요. 그런데 멤버십 사우나라서 그런지, 옷장에 자주 지갑을 놓고 가요. 돌려주기 전에 궁금해서 보면 어떤 때는 100만 원짜리 수표가 열 장씩 들어있어요. 그런 거 보면 돈 많다, 와우, 이런 생각 들고. 그리고 2015년에 기업 CEO가 운전기사를 모욕하고 폭행한 사건이 화제였는데요. 우리는 그 CEO의 갑질을 욕하는데, 나이 많은 할아버지 회원님들은 보면서 다르게 이야기하더라고요. 저 운전사는 모시던 분을 고발했으니 평생 양심의 가책으로 괴로워할 거라고. 아, 저 분들은 다르구나 느꼈죠.

 

어쩔 수 없는 사람이구나를 생각하게 하는 순간은 많아요. 가장 인상적인 건, 소설에서 구체적으로 그리진 않았는데 이분들도 눈치를 많이 봐요. 상류층이니까 갑질이 심하겠거니 싶지만, 꼭 그런 건 아니었어요. 무식해 보이지 않으려 하고, 있어 보이려 하고. 비슷비슷한 레벨의 사람들이 한 공간에 있으니 더욱 그렇죠. 타인은 지옥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상위 1퍼센트에 가깝다 해도, 이분들도 계속 눈치를 보는구나, 싶었죠. 물론 타인을 흉볼 때는 직접 당사자에게 말하지는 못하고, 병인 우리에게 와서 은근히 흉을 봅니다. 저런 수준의 교양 없는 회원은 알아서 좀 걸러내라고.

 

사우나에서 보는 사람이 문단이나 출판계 사람과는 다른 사람이잖아요. 소설가는 어떤 사람인가를 다시 생각해 볼 때도 있을 듯합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소설가란 어떤 존재인가, 라는 고민을 진지하게 해 본 적은 없습니다. 이런 생각은 들었어요. 사우나 매니저 일을 하면서도, 저는 소설가잖아요. 소설가란 계급화된 사회에 속하면서도 동시에 속하지 않는 존재구나,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여러 면을 들여다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요.

 

2005년 이후로 장편소설 다섯 편, 소설집 한 편을 냈습니다. 이렇게 꾸준히 책을 낸 비결이 있다면 공개해주세요.

 

계약이 되어 있었으니까요. (웃음) 사실 제 꿈은 제 이름으로 된 소설 한 권이었기에 등단과 함께그 꿈은 이뤘던 셈이고요. 그 추후의 작업은 사실 다 계약에 의해서… 여하튼 책을 내다 보니 10년이 흘렀고요. 그래서 계약을 완수한 뒤에는 소설을 접어야 하나 생각도 했던 거죠.

 

작가님 팬이라면 슬퍼할 소식이네요.
 
저를 아는 몇몇 분들을 빼고서 제 팬을 눈으로 확인한 적이 없어서 모르겠어요. (웃음)

 

그래도 독자 리뷰를 읽어 보면 꽤 있는 듯한데요.

 

독자 리뷰라고 하니, 아직도 기억에 남는 리뷰 몇 가지 소개할게요. 등단작 『수상한 식모들』은 꽤 많이 팔렸어요. 당연히 리뷰들도 많이 올라왔죠. 인상적인 리뷰가, 박민규 소설인지 알았는데 잘못 샀다는 글. 또 하나는, 초등학생이 쓴 리뷰인데요. 읽어보니 문장이 엉망이고 주제가 확실하지 않아서 앞으로 논술 공부하는 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거 같다는 내용이었어요. (웃음)

 

작가님 작품이 논술 공부용은 아닌 듯해요. 논술은 딱딱 떨어지는 논리를 좋아하는데, 선생님 작품에서는 인물이나 사건이 모호하고 복잡하잖아요. 이런 소재를 즐기시는 이유는요?

 

어릴 때부터 신화, 전설, 민담을 좋아했어요. 귀신 나오는 이야기에도 관심이 많았고요. 동국대 다니면서 불교나 무교를 접할 기회가 많았고요. 이런 요소가 제 소설 속 DNA에 들어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그래서 제 소설이 두 발로 힘차게 걷다가 귀신처럼 다리 없이 흐물흐물해지는 경향이 있나 봐요.

 

작품에서 섞일 수 없는 존재를 자주 형상화하잖아요. 『보광동 안개소년』의 주인공은 얼굴이 안개로 이루어졌고, 이번 소설 『우리 사우나는 JTBC 안 봐요』의 태권 역시 사우나에서 유령 같은 존재인데요. 이런 존재에 천착하신다는 인상도 받았습니다.

 

의도한 건 아닌데 그렇게 흘러갔네요. 치밀하게 인물과 사건을 설정하고 쓰는 소설가도 있는 반면, 저는 희미하게만 잡아두고 써가는 편인데요. 그럼에도 이렇게 흘러가는 건 무의식 중에 이런 존재에 천착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 사실은, 이런 존재가 지금 우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도 않은 것 같네요. 우리 모두 어딘가에 속하려 하지만 속하지 못하잖아요. SNS에 친구가 많아도 실제로는 외롭고요, 수많은 인간관계 속에 있으면서도 늘 공허하고.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죠. 역시나 제 소설 속 인물이 특이한 것 같진 않네요.

 

리사이즈04.jpg

 

박생강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하셨는데요. 어릴 때부터 문학소년이었나요?
 
문학소년이라기보다 글쓰기 담당, 이랬지 않나 싶어요. 제가 시골에서 고등학교를 나왔는데요. 제가 알기로는 저희 고등학교 역사가 70년이 넘었는데 문예창작학과로 진학했던 사람이 저 포함 딱 두 명인 걸로 알고 있어요. 하여튼 독후감, 글짓기 대회 대표, 친구 연애편지 대필, 친구 반성문 대필 등등 이것저것 많이 썼던 것 같습니다. 돌이켜보니 뭔가 문학소년보다는 ‘문학셔틀’에 가까운 삶이었던 것 같네요. 또 하나 글은 많이 썼는데 그때도 악필이었고 지금도 비슷하다는 사실이 좀 서글픕니다.

 

영향을 준 작가, 작품이 있다면요?

 

좋아하는 작가들은 국내외를 통틀어 어마어마하게 많고, 또 누군가를 딱 손꼽기도 애매합니다. 좋은 작가들을, 각기 다른 이유로 좋아하니까요. 저의 등단시기와 맞물려서 생각하면 2005년 그 시기에는 살만 루슈디를 즐겨 읽었어요. 『한밤의 아이들』, 『무어의 마지막 한숨 』처럼 신화와 역사가 섞이고, 텍스트가 살아 있는 미궁처럼 꿈틀거리며 빠져들게 만드는 이런 소설을 언젠가 써봐야겠다 생각했어요.

 

『나는 빼빼로가 두려워』를 쓸 때는, 미하일 불가코프의 『거장과 마르가리타』를 재밌게 읽었어요. 소비에트의 독재를 이렇게 재밌게 깔 수 있다니! 블랙 유머와 판타지, 역사와 종교에 대한 사유 등 매력적인 디테일이 넘쳤죠. 물론 작가 개인의 삶은 참으로 불행했지만요.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텐데, 저는 『나는 빼빼로가 두려워』『거장과 마르가리타』의 귀엽고 미니멀리즘적인 오마주로 쓴 측면이 있어요. 역시나 저 말고는 아무도 눈치 못 챘으리라 생각합니다 (웃음)

 

블랙 유머라고 하셨는데, 『내가 없는 세월』에서는 다소 약했지만 그 외 대부분 작품에서 작가님의 개그 욕심을 느꼈습니다. 실제로 작가님은 어떤 사람인가요?

 

내성적인데, 소심하지 않은 것 같아요. 막상 사람을 만나면 두려워하진 않는데, 만남을 귀찮아하는 편이라고 할까요. 그리고 글을 쓰는 사람이다 보니 말장난에 대한 욕망이 있어요. 비틀기에서 오는 재미? 혹은 되게 슬픈 이야기를 우스꽝스럽게 쓰거나 엄청나게 천박한 이야기를 우아하게 쓰고 싶은 욕망이 늘 있죠. 트릭스터라는 신화적 존재가 있잖아요. 경계선에 있는 광대, 장난꾸러기, 도둑의 신이자 사기꾼의 신인 헤르메스 같은 그런 이미지를 개인적으로 좋아해요. 스스로 경계선 상에 있는 인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고요. 지킬박사와 하이드 아니고 지킬이 하이드로 변하기 전에 나사가 빠지면서 실실 웃기 시작할 때의 정서가 있는, 그런 사람?

 

지금까지 주로 현대, 수도권을 배경으로 소설을 쓰셨습니다.

 

학생일 때 파주에서 서울로 가기 위해서는 한 시간에 한 대 있는 기차를 타야 했어요. 그때는 거의 서울 나올 기회가 없었죠. 대도시를 향한 호기심, 욕망이 있었어요. 대학에 와서 서울을 돌아다니며 신기했던 건 고층빌딩, 이런 화려함이 아니었어요. 드라마틱한 양지와 그늘의 대비였죠. 파주는 작은 동네에요. 가난한 사람도 있고 부자도 있지만 삶의 모습은 비슷하거든요. 서울은 어떤 곳은 화려하지만 어떤 동네는 허름해요. 그리고 그 경계가 빌딩 하나를 두고 나뉘기도 하죠. 그 대도시의 시공간을 넘나드는 입체적인 지형도를 문학적으로 탐구해보고 싶다는 욕망은 늘 있어요.

 

몇 년 동안 1960년대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범죄, 나이트클럽 문화, 관공서 비리 등등의 텍스트와 사진을 많이 모았어요. 나중에는 이걸 기반으로 장편소설을 써 보려 해요. 단순히 옛날을 향한 향수나 독재정권에 대한 비판 같은 것이 아니라 누구도 관심 기울이지 않던 개인사에 초점을 맞춰 그 시대를 보여줄 수 있는 문학적 방법을 모색해 보고 싶어요. 반짝반짝 빛나다가 바람에 훅 날려가는 반짝이 같은 삶에 대해서 말이죠. 언제 이루어질지는 모르겠어요. 아직은 깜냥이 안 되는 듯해서, 자료만 많이 모으고 있어요.

 

『나는 빼빼로가 두려워』에는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중요한 건, 그러니까, 삶이에요. 소설을 쓴다는 건, 그러니까 소설의 문장이란, 우리가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일상의 순간들을 문장이라는 틀로 잡아 기록하는 것이지요(62쪽).” 그렇다면 소설가 박생강의 삶이란 무엇일까요?

 

너무 어려운데요. 저는 항상 그래왔는데, 앞날을 촘촘하게 계획하고 살지는 않았어요. 지금 이 순간에 충실했어요. 움직이고 싶은 대로 움직였고 즉흥적이고 충동적으로 즐겁게 살려는 면이 있죠. 술과 담배와 액티비티에 취미가 없고 도박은 좋아하지만 재능이 없습니다. 그래서 보통 지적 탐구나, 여행, 삶의 방식 바꾸기 뭐 이런 쪽으로 흘러간 것 같고요. 결과적으로 잘됐든 안됐든 안 한 거보단 낫다고 생각해요. 그러다 보니 의외로 생각지도 않은 기회를 얻었던 적들도 있었고요.

 

구상 중인 다음 작품은요?

 

처음 등단한 후에 10개 정도 쓰고 싶은 소설의 제목을 뽑아본 적이 있네요. 그런데 그 10개와 상관된 소설은 한 번도 쓴 적이 없어요. 돌이켜 보니 당시 저의 상황이나 제가 꽂혀 있던 이미지나 사건들과 연관된 걸 썼어요. 지금은 형사를 만나며 사기와 살인 사건을 들으니까 이런 이야기가 나올 것 같은데요. 추리소설은 아닐 듯해요. 추리소설을 쓰기에 저는 범부 이하의 논리력을 갖춘 사람이라서요. 사실 범죄에는 피의자와 피해자 말고 참고인 등 사건과 흐릿하게 이어져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요. 그들을 소재로 흑백의 스케치 같은 단편을 써 보고 싶어요. 그리고 독자들이 웃으면서 읽을 수 있는 독특하고 컬러풀한 콩트집도 한 번 써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우리 사우나는 JTBC 안 봐요박생강 (박진규) 저 | 나무옆의자
대한민국 1퍼센트 남자들이 벌거벗고 있는 사우나, 거기서 사우나 매니저로 일하는 소설가. 상류층 세계의 ‘구멍’을 들여다보는 우리 시대의 속 깊은 풍속도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보영 “영어 유치원, 보내지 않아도 됩니다”

$
0
0

 

 

이보영-사진-(5).jpg

 

외국인이 묻는다. “How are you?” 우리는 대답한다. “I’m fine. Thank you. And you?” 세 개의 문장이 한 세트처럼 흘러나온다. 물 흐르듯 자연스럽다. 외국인의 응답이 돌아온다. 문제는 이때부터다. “Um….” 정적이 흐른다. 뭔가 말하기는 해야겠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용건부터 꺼내자니 너무 서두르는 느낌이고, 무슨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감이 안 잡힌다. 이때 필요한 건 ‘스몰톡’이다. 큰 의미 없는 소소한 이야기이지만 상대와 나의 거리를 좁혀줄 ‘잡담’이 필요한 것이다. 물론, 영어로 편하게 수다를 떠는 게 쉽지만은 않다. 그래서 『이보영의 대화가 편해지는 영어잡담의 힘』이 탄생했다.

 

“스몰톡이야말로 관계를 트기 위해, 자신의 존재를 표현하기 위해, 정보를 교환하기 위해 그리고 자신을 어필하고 필요한 얻기 위해 해야 할 소통과 관계의 필수 요소”라고 말하는 이 책은 스몰톡의 기본 기술, 핵심전략, 소재, 표현을 소개한다.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한 사람이라면 귀 기울여 볼만 하다. 『이보영의 대화가 편해지는 영어잡담의 힘』은 평이한 문장과 간결한 구성을 내세워 ‘기분 좋게 영어로 대화 나눌 수 있는 상대’가 되는 방법을 알려준다.

 

이보영 저자는 EBS FM의 <Morning Special>과 <귀가 트이는 영어>, KBS FM <이보영의 생활영어> 등 다양한 방송 활동을 통해 대중과 만나 온 ‘100% 국내파 영어강사’다. ‘이보영의 토킹 클럽’ 등 영어프로그램을 기획했으며, 어린이와 예비 영어 교사를 위한 교육을 이끌어왔다. 그 노하우를 담아 『이보영의 하루 15분 영어습관』, 『이보영의 영어회화 사전』, 『이보영의 비즈니스 영어』, 『이보영의 여행영어회화』등 다수의 저서를 집필했다.

 

이보영-셀렉-3컷--(1).jpg


스몰톡은 ‘지금, 여기’에서 시작하세요


많은 한국인들이 ‘스몰톡’을 어려워한다고 하셨어요. 이유가 뭘까요?

 

스몰톡까지 배울 기회가 없었던 것 같아요. 특정한 목적에 맞는 문장을 만드는 게 우선되다 보니 단어와 문법을 배우기 바빴죠. 물론 중요한 부분이지만,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서는 분위기를 업시킬 필요도 있잖아요. 자연스러운 이야기를 하려면 최소한 2~3분가량 대화가 오가는 게 필요한데요. 그 대화의 스크립트만 써도 2~3페이지가 넘어가요. 그러니까 교과서에 담아낼 수가 없는 거죠. 학교 교과서뿐만 아니라 일반 교재도 마찬가지인데, 대화에서 핵심이 되는 것만 실어놓은 거예요. 예를 들면, 외국인을 만나면 ‘Where are you from?’부터 묻게 되잖아요. 이때 상대방은 자신의 정보를 너무 많이 캐려는 것 같아서 좋아하지 않거든요. 자신이 한국 사람임을 먼저 밝히고 ‘당신은?’이라고 묻는 게 더 좋겠죠. 그런데 우리는 너무 긴장한 나머지 질문만 하는 거예요.

 

“내 얘기부터 시작하라”는 건 책에서도 강조하신 부분이에요.

 

처음에는 서로 경계를 하게 되니까요. 이 책에는 처음 만나는 사람뿐만 아니라, 서로 알고는 있지만 가깝지 않은 사람들과의 대화도 많이 넣었어요. 이웃사촌의 경우에도 얼굴은 알지만 대화 한 번 나누지 않는 경우도 많잖아요. 그러다가 마트에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게 될 수도 있고요. 그럴 때 접근 방법이 다를 수 있죠. 우리는 ‘외국인과 이야기할 때는 종교, 정치성향에 대해서는 물으면 안 된다’고 배웠지만, 외국인들이 그런 이야기를 전혀 안 하는 건 아니거든요. 가족이나 친구, 아주 친한 사이에는 대화의 소재가 되기도 해요. 한국 사람들은 이분법으로 나누다 보니까 어디에 맞춰서 말을 해야 할지 모르는 거죠. (국제) 학회나 회의에 가서 발표할 때 말할 내용을 준비해가면 큰 문제는 없어요. 외워서 말하는 거야 어렵지 않죠. 그런데 발표 전후에 상대방과 친목을 다질 수 있는 계기는 많이 놓치잖아요. 문화 차이 때문에 실례를 할까 봐 말을 잘 못하기도 하고요. 그럴 때 필요한 표현들을 상황에 따라 보아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스몰톡’에서 가장 자주 쓰이는 50가지 주제가 실려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즐겨 사용하시는 주제가 있나요?


한국에 대한 이야기요. 세부 주제는 시류에 따라 달라지는데, 최근에는 한국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 같아요. 저는 인피니트와 샤이니한테 너무 고마워요(웃음). 그 분들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어느 외교관도 할 수 없었던 일을 해준 것 같아요. 한국에 대한 외국인들의 관심이 높아졌으니까요.

 

적합하지 않은 주제도 있겠죠?


두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어요. 하나는 화장에 대한 이야기, 외모에 대한 이야기는 절대 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한국에서는 ‘피곤하신가 봐요, 입술이 부르텄어요’라든지 ‘화장이 들떴어요’ 같은 이야기들을 하잖아요. 걱정되는 마음에 하는 이야기인데, 영어권에서는 절대로 그런 말을 하지 않아요. 화장이라는 건 자기 결점을 가리기 위해서 하는 건데 굳이 왜 언급하느냐는 거죠. 또 한 가지는 결혼 유무에 대한 질문이에요. 우리는 ‘결혼 하셨어요?’ 물어보고 안 했다고 하면 ‘왜 아직 안 하셨어요?’라고 하잖아요. ‘아이가 있어요?’ 물어봤을 때 한 명이라고 답하면 ‘둘 셋은 나아야지’ 이야기하기도 하고요. 외국인들은 그런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아요. 하면 안 돼요.

 

가장 무난한 대화의 소재가 있을까요?


‘Here and now’가 제일 좋아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는 거죠. 첫 인사를 나눈 뒤에 ‘여기 분위기가 좋네요, 와본 적 있으세요?’ 하고 장소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식이죠. 거기에서부터 시작해서 이야기가 뻗어나가는 거예요. 날씨 이야기도 좋아요. 지금 여기에서 벌어지는 일이고, 누구나 날씨의 영향을 받잖아요. 그런데 ‘It’s sunny’라는 한 마디로 끝날 수도 있으니까 자신의 감정을 덧붙여서 말하는 게 좋죠. ‘It’s sunny. I love sunny weather’ 처럼요. 그러다가 ‘오랫동안 비가 안 내렸네요. 올해 가물었나 봐요’ 하면서 다른 이야기로 넘어갈 수도 있고요. ‘당신이 살고 있는 지역은 어떤 가요?’ 물어볼 수도 있죠. ‘어디는 홍수가 났다던데, 지구온난화가 큰일이에요’ 하면서 환경 문제를 이야기할 수도 있고요. 처음부터 지구온난화에 대해서 말하는 것보다는 지금의 날씨부터 시작해서 대화를 이어가는 게 훨씬 낫죠.

 

‘영어회화 수준이 어느 정도 되면, 스몰톡은 자연히 되는 거 아닌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맞아요. 스몰톡의 표현을 보면 크게 어렵지 않잖아요. 그런데 아는 것과 말할 수 있는 것의 간극은 굉장히 커요. 정량화할 수는 없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서 비유하자면, 보통 1:200 정도로 보거든요. 듣는 게 200이라면 그 중에 하나를 말하는 거예요. 쉬운 문장인데도 말하기 쉽지 않은 건 그래서죠. 아무래도 영어를 많이 접하면 말할 수 있는 것도 많아질 거예요. 그렇다고 체계 없이 외국 영화, 드라마, 음악을 감상하는 건 큰 효과가 없어요. 영어에 노출은 많이 될지 모르지만, 집중하고 신경 쓰지 않으면 소음인 거거든요. 외국어를 공부할 때는 신경을 많이 쓰고, 귀를 기울이고, 써보기도 하고, 똑같이말해보는 연습을 해야 돼요. 많이 듣다 보면 자연스레 말할 수 있게 될 거라는 생각은 맞지 않아요.

 

이보영-셀렉-3컷--(2).jpg


‘당신은?’이라고 되물으세요


‘스몰톡’이 어렵게 느껴진 적도 있었나요?


저도 스몰톡을 잘 못했어요. 오래된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예전에 모임에 갔다가 화장실에서 연습한 적이 있어요. ‘내가 학생들한테 가르칠 때 무슨 이야기를 했지?’ 생각해 봤더니 눈 마주치기, 악수하기, 말 크게 하기, 내 이야기 먼저 하기가 떠오르더라고요. 그래서 전략을 세웠죠. 첫 번째는 눈 마주치기, 두 번째는 손을 뻗으며 웃기. 그 다음에는 웃으면서 내 이야기를 먼저 하고 Yes/No로 대답할 수 있는 질문부터 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더라고요. 무슨 이야기를 먼저 해야 하고, 무슨 이야기를 나중에 해야 할지 세세하게 계획을 세우고 가면 나도 상대방도 부담이 없어요.

 

학창시절에 ‘I’m fine. Thank you. And you?’를 통으로 외우신 분들 많을 거예요(웃음). 굉장히 친숙한 표현인데요. ‘And you?’라고 묻는 게 대화의 좋은 기술이라면서요?


주고받는 말이 되는 거죠. 말씀하신 표현을 들여다보면 ‘어떻게 지내세요?’(How are you?) 라고 물었을 때 ‘네, 저는 잘 지내요’(I’m fine)라고 답하는 거잖아요. ‘Thank you’라고 말하는 건 ‘물어봐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건데 우리말로 표현하자면 ‘덕분에 잘 지냅니다’ 쯤 되는 거죠. 그 뒤에 ‘당신은 어떻게 지내시나요?’(And you?)라고 덧붙이는 거니까, 얼마나 교양 있는 말이에요. 보통 교과서에 나오는 영어라고 하면 무시하거나 죽은 영어라고 취급하는데, 그건 정말 잘못된 거예요. 간단한 첫인사로 시작해서 ‘한국에 오신지 오래 되셨어요?’라거나 ‘저는 이런 일을 하고 있는데, 실례지만 어떤 일을 하시나요?’라고 물으면서 대화가 이어지는 거죠.

 

상대의 말을 따라 하면서 맞장구를 칠 수도 있죠. ‘당신 말을 이해했다’는 표현이기도 하고요. 이때는 어휘를 다양하게 사용해야 할 것 같아요.


저는 그걸 전략이라고 보는데요. 상대가 한 말을 반복하는 이유는 ‘당신의 말을 알아들었다, 지금 대답을 생각하는 중이다’라는 걸 알리기 위함이에요. 그런데 이게 효율적이지 않은 대화법이라고 지적하는 경우도 봤어요. 예를 들면 ‘어디 사세요?’ 하고 물었는데 ‘어디 사냐고요?’라고 답하거나, ‘이름이 뭐예요?’ 했더니 ‘저요?’라고 말하는 경우죠. 그래서 단어를 바꾸면 좋다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어떤 차를 드시겠어요?’라고 물으면 ‘무슨 차를 마시는 게 좋을까요?’ 하고 대답하거나 ‘차’를 ‘음료’로 바꾸는 식이죠. 이렇게 이야기하면 무슨 뜻인지 이해는 되지만 ‘그래서 무슨 말을 하라는 거야?’ 싶잖아요. 그래서 이번 책을 쓰게 된 거예요. 구체적인 표현을 알려주는 책이 있어야 할 것 같았어요.

 

오랫동안 영어 교육을 해오셨습니다. 교육 현장에서 느끼시는 변화도 있나요?


우리나라에서는 영어 교육이 비즈니스 아이템이 된 측면이 있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진지하고 심각하게 공부하는 사람을 보기 힘들어진 것 같아요. ‘가만히 있으면 주변에서 알아서 떠먹여줄 거야’라는 생각을 갖게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더라고요. 외국어는 나선형으로 발달하기 때문에 계속 반복 학습을 해야 되는데, 그걸 모르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요. 왜냐하면 (영어) 사업을 하시는 분들 중에 ‘3개월이면 (영어가) 된다’, ‘이것만 하면 된다’고 이야기하시는 분들이 계시잖아요. 세상에 그런 건 없거든요. 그렇다 보니까 영어 교육을 하는 사람들은 돈을 많이 버는데, (소비자는) 돈은 돈대로 쓰고 여전히 영어를 못하는 거예요. 공부 방법을 잘 모르니까요.

 

영어 말하기의 경우는 어떤가요?


우리나라가 OECD 국가 중에서 영어 말하기 성적이 항상 최하위인데, 영어 말하기에 있어서는 조금 변화가 있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면, 이제는 취업을 할 때도 토익 스피킹이나 오픽을 보잖아요. 그런데 그것도 2주 정도 공부하고 끝이에요. 그냥 교재를 외워서 시험 보거든요. 그래도 점수는 어느 정도 나와요. 문제는 취직이 된 후에도 현장에서 수습이 안 된다는 거죠. 결국 다시 영어 말하기를 공부해야 되는 거예요.

 

이보영-사진-(6).jpg


영어 유치원, 보내지 않아도 됩니다


‘영어 유치원, 꼭 보내야 할까?’는 끝나지 않는 고민인 것 같아요.


제가 얼마 전에도 유치원 자녀를 둔 어머님들을 만났는데요. 그때 말씀드렸던 게 있어요. 이 아이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자신이 살면서 알아야 될 모든 영어를 미리 배울 수는 없다는 거예요. 그리고 자라면서 to부정사를 계속 볼 텐데 제대로 알지는 못할 거라고 말씀드렸어요. 그렇지만 용어와 용법을 몰라도 to부정사를 사용해서 말하는 습관을 갖게 되면, 모국어를 배우는 것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거든요. 물론 모국어와 외국어를 배우는 방법이 똑같을 수는 없어요. 외국어 공부는 방법도 다르고 더 많이 해야 돼요. 그렇지만 외국어를 편안하게 느끼고 많이 써보면, 그 안에 숨어있는 원칙과 패턴이 자기 것이 되는 건 맞는 것 같아요. 모국어나 영어나 똑같아요. 아이들이 그런 경험을 하게 하려면 부모님이 욕심을 조금 내려놓으시고 지켜봐 줘야 된다고 생각해요. 영어 유치원에 보내지 않아도 된다는 거죠.

 

일찍부터 영어책 읽기를 시작하는 분들도 계신데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요즘 영어 교육에 관한 책이 많이 나오잖아요. 영어 동화책을 1천 권 읽혀라, 자신의 아이는 이렇게 읽혔다, 그런 내용도 있는데요. 안 읽혀도 됩니다. 해리포터 (원서로) 안 읽어도 돼요. 아이가 좋아하는 쉬운 책을 또박또박 여러 번 읽는 것이 제일 좋아요. 그 영어를 바탕으로 해서 더 어려운 영어 책을 읽게 돼요. 준비도 안 된 아이한테 어려운 책을 읽으라고 하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제가 제일 잘한 일 중 하나가 저희 아이들한테 그런 걸 권하지 않은 거예요.

 

자녀들의 영어 교육은 어떻게 지도하셨어요?


많은 부모님들이 저희 집 아이들은 영어를 굉장히 잘하는 줄 아세요. 물론 지금은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기 때문에 영어를 잘하게 됐는데요. 두 아이가 다 영어를 못했어요. 둘째는 남자 아이인데 특히 더 못했고요. 그런데 재밌는 게, 이 아이는 같은 책을 계속 반복해서 읽었어요. 2~3년 전에 읽었던 똑같은 책을 또 읽는 거예요. 그럴 때 엄마들은 답답하죠. 더 어려운 책을 읽으라고 해요. 그런데 저는 그냥 놔뒀어요. 아이가 어렸을 때 조금 산만했는데,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고마웠어요. 그런데 책을 반복해서 읽으면 갈수록 단어가 더 보이거든요. 스토리를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점점 더 많은 단어가 눈에 들어오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은 과목 중에서 영어를 제일 잘해요.

 

대표적인 ‘국내파 영어 강사’입니다. 어학연수나 유학을 가지 않고 한국에서 영어를 공부하셨는데, 그 방법이 궁금해요.


제가 공부한 방법을 이야기하기가 참 조심스러워요. ‘그게 정석인가 보다’ 하고 생각하실 수 있잖아요. 그게 아님에도 불구하고요. 이렇게 말씀드릴 수는 있을 것 같아요. 영어 교육을 공부하면서 제가 과거에 공부했던 방식을 대입해 보니까 ‘영어 잘하는 사람들의 특징’에 해당되는 것들이 몇 가지 있더라고요. 영어를 잘하는 사람들은 귀를 잘 기울여요. 예를 들면 미드를 보더라도 그냥 보는 게 아니라 중간에 멈추는 거죠. (배우가) 말하는 걸 다시 듣고, 받아 적고, 자막과 비교해요. 모르는 게 있으면 찾아가면서 용법과 예문을 적어놓고요. 심지어 녹음까지도 해요. 자신이 아는 영어와 그들(원어민)이 아는 영어를 비교하면서 차이가 뭔지 생각하는 거죠. 그 차이를 뛰어넘어 보려고 애쓰고요. 그렇게 공부하는 사람이 영어를 잘해요. 제 경우에는 (영어 표현을) 외우기도 했지만, 그걸 제 말로 바꾸려는 노력을 했어요.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말해야지’ 하고 혼자 연습을 많이 했어요. 혼잣말도 하고 녹음을 해보기도 하고요. 그랬더니 정말 (영어를) 쓸 수 있는 기회가 오더라고요.

 

이번 책을 쓰실 때 예상 독자를 생각하셨나요?


기본적으로 영어로 문장을 말할 수 있지만 앞뒤의 시작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분들이나, 대화의 마무리를 어떻게 해야 할지 애매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 영어로 대화를 많이 해봤지만 항상 아쉬움이 남았던 분들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만들었어요. 그 과정에서 아주 기본적인 내용들부터 시작하게 됐고요. 그래서 영어 회화를 시작하시는 분들이 보셔도 좋을 거라고 생각해요. (책을 바탕으로) 살을 붙여 가면 되니까요. 어쩌면 다른 사람들이 빙 돌아오는 길을 처음부터 바로 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영어 공부는 꾸준하게 습관을 들여야 하잖아요. 이 책은 50일이면 독파할 수 있는데, 그때쯤 또 다른 책을 내주셔야 하지 않을까요(웃음).


그러고 싶어요. 다음 단계로 이어지는 책을 만들면 좋겠어요. 아마 제가 처음부터 긴 내용으로 썼다면 독자들에게 부담이 됐을 거예요. 그래서 이렇게 간단하게 출발을 했는데, 앞으로는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책을 만들고 싶어요. 독자가 손에 잡지 않는 책은 가치가 없다고 생각해요. 특히 이 책은 실용서이기 때문에 독자들이 잘 이용했다고 하실 때 보람을 느끼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도움이 됐으면 좋겠고요. 많이 보시고 많이 따라 말하시길 바라요. 회화 책은 절대 눈으로 공부할 수 없어요. 듣고 따라 읽는 게 제일 중요해요. 책 속의 QR코드를 이용하시면 미니 강의를 들으실 수 있는데, 이게 팟캐스트로 연결이 되거든요. 주치(Jooch Nam) 선생님이랑 많은 내용들을 이야기했어요. 책과 함께 활용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보영의 대화가 편해지는 영어잡담의 힘이보영 저 | 말랑(mal.lang)
스몰톡(잡담)을 영어회화 학습에 어떻게 접목하면 되는지 친절히 설명하고, 실제 원어민들이 즐겨 쓰는 영어잡담 주제와 영어소스들을 모아 실제 상황에서도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도록 훈련시켜준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차현호 “예술의 섬 나오시마 성공 요인은 ‘거리두기 전략’”

$
0
0

차현호-셀렉-3컷-(3).jpg

 

『자전거 건축 여행』에서 30일 동안 후쿠오카부터 도쿄까지 1,600㎞를 달리며 일본의 여러 건축을 탐방했던 건축가 차현호가 이번에는 세토내해(???海)를 선택했다. 일본 혼슈와 시코쿠 사이의 바다와 주변 해안지역을 가리키는 세토내해. 이곳에서는 2010년부터 3년마다 ‘세토우치 트리엔날레’라는 국제 예술제가 열리고 있다. 이 특별한 예술제는 ‘베네세’라는 한 기업에서 시작되었다. 소외되고 멀어진 섬 지역을 사람들이 즐겨 찾는 곳으로 만들자는 기업의 아이디어에 지역 주민들이 호응했다. 여기에 안도 다다오와 야마자키 료 등 유수의 예술가들이 참여를 한 것. 봄부터 가을까지 108일 동안 개최된 2016년 예술제에는 무려 10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다녀갔다. 『나오시마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는 예술제가 3회째를 맞이한 2016년, 건축가 차현호가 봄과 여름, 가을에 걸쳐 예술제가 열리는 섬 곳곳을 체험한 이야기를 담았다. 안도 다다오의 아름다운 미술관, 세상에 없는 수신자에게 편지를 보내는 우체국, 조용하게 자리 잡은 바다가 보이는 카페까지 건축가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새 달력을 뒤지며 나오시마로 가는 교통편을 알아보게 된다. 아니나 다를까, 차현호는 “사진으로 보는 작품과는 느낌이 완전히 다르죠. 꼭 한 번 가서 느껴보셨으면 해요.”라고 말했다.

 

170920__롟뀫_믟뀱_メ꼺_⒰꼳_α꼳___15A3047.jpg

 

섬의 복권, 세토우치 트레엔날레


부제를 ‘어느 건축가의 예술 섬 순례기’라고 적고 있는데요. 예술은 물론이고 건축과 지역 재생 등이 고루 버무려진 책이에요. 책으로 전하려 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먼저 듣고 싶습니다. 

 

2000년대 중반, 회사에서 나오시마(直島)에 갔었어요. 제가 있던 팀이 건축가 안도 다다오를 만나러 갔던 건데요. 안도 다다오가 프로젝트를 하게 된 팀들에게 자신의 건축 투어를 시켜줬거든요. 그런 기회에 나오시마를 보게 됐어요. 그때는 어떤 곳인지 전혀 몰랐죠. 다만 굉장히 새로웠어요. ‘지중미술관(地中美術館)’이나 혼무라(本村) 마을의 ‘이에 프로젝트(家project)’ 같은 것들을 보고 감동을 받았어요. 그때 글을 남기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당시에는 미술관 등을 중심으로 써보려고 했는데요. 조사를 하다 보니 나오시마도 그렇고, ‘세토우치 트리엔날레’ 예술제가 열리게 된 배경이 보였어요. 쇠퇴한 섬들의 복권이라는 목적이 있던 거죠. 단순히 미술 이야기만 하는 예술제가 아니구나 생각했어요. 그래서 지금과 같이 예술과 지역 재생 등의 이야기가 함께 섞이게 되었어요.

 

기록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곳이죠. 이야깃거리도 무척 많고요.


그렇죠, 누구한테 소개해주고 싶은 곳이에요. 열두 개 섬마다 상황도 다르고요. 주민 연령대도 다르거든요. 마을의 영광을 되찾자는 마음으로 모인 젊은이들이 있는 섬도 있고요. 가서 봤을 때 십 년 더 있으면 미술관만 남는 이상한 섬이 될 수 있겠다 싶은 곳도 있거든요. 세토우치 지역은 6, 70년대에 임해공업단지가 생긴 곳이에요. 지역 경제는 발전하는데 환경오염이 문제가 됐죠. 나오시마 북쪽에는 지금도 미쓰비시 제련소가 있거든요. 그런 상황에 더해 도시화가 진행되어 주민들이 섬을 다 빠져나갔어요. 이런 큰 두 가지 이유가 전반적인 세토우치 지역의 쇠퇴를 가져왔죠. 나오시마는 그러니까 상대적으로 운이 좋았던 거예요.

 

베네세 그룹 덕분이었죠.


세토우치 지역 위쪽에 오가야마(岡山)라는 도시가 있는데요. 그곳에 기반을 둔 기업이 베네세 기업이에요. 어린이 위주의 교육 문화 사업을 하던 기업인데요. 노년층, 장년층을 대상으로 해서 그들이 즐길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보자는 취지로 나오시마를 선택한 거예요. 처음에는 누구나 의아했을 거예요. 만일 통영 어디 오염된 지역의 섬에 세계적인 문화 예술 공간을 만들겠다고 한다면 우리도 그렇겠죠. 안도 다다오도 처음에는 의구심을 가졌다고 하더라고요. 예술 향유 주체들은 다 도시에 있는데 이렇게 먼 지역까지 누가 오겠느냐고요. 결국 그것을 민간 기업과 관의 도움으로 성공시켰죠. 관에서도 주민과의 마찰을 중재하는 역할을 많이 했어요.

 

상상력에 놀랄 수밖에 없어요. 한 기업의 의지가 얼마나 많은 변화를 일으켰는지 생각하면 더욱 그렇죠. 베네세 그룹 이야기를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국내 기업도 사회공헌 차원의 투자를 되게 많이 하거든요. 큰돈을 투자해서 공원을 조성하기도 하고, 공연장도 만들고 하잖아요. 다만 차이가 있다면 단발성에 그친다는 점이 아닐까 해요. 지역 활성화에 어떤 촉매가 될 만 한 규모의 사업을 기획해서 추진하면 더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들더라고요.

 

새로운 문화가 정착되려면 기업이나 관의 의지 못지않게 현지 거주 주민들과의 공감대가 중요할 거예요. 그런 면에서도 세토우치 지역들의 행보가 주목할 만합니다. 오기지마(男木島)의 ‘온바(乳母) 팩토리’ 같은 경우가 그렇잖아요.

 

온바(乳母)는 일본말로 ‘유모, 유모차’를 말한다.(중략) 차량이 통과할 수 없는 길, 계단, 비탈길, 좁은 골목길이 이어지는 오기지마에서 온바는 간단한 물건을 담고 종횡무진 다닐 수 있는 생활필수품이다. 온바팩토리는 이들의 수레를 멋지게 수리, 디자인해서 주민들에게 돌려주거나 새로운 스타일의 온바를 만들기도 한다.(139쪽)

 

세토우치 트리엔날레 목적 자체가 섬들의 부흥에 있으니까요. 트리엔날레가 열리기 전에 작 품 공모를 하는데요. 선정된 사람들은 작품을 만들어서 갖고 오는 게 아니라 현지에 와서 그 지역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를 가지고 지역 주민,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만들거든요. 그 과정에서도 주민들이 자기가 찾지 못했던 섬의 아름다움 같은 것들을 느끼게 되기도 해요. 2013년 예술제에서 선보인 야마자키 료의 간장 프로젝트가 그렇죠. 스튜디오에 간장을 유리병에 담아서 전시를 했어요. 8만 개의 농도가 다른 간장을 그라데이션이 지도록 쭉 담아 전시한 거예요. 주민들도 매일 보던 간장이 그렇게 아름답게 바뀔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죠. 병에 간장 담는 작업을 주민들과 함께 하기도 했거든요. 대단하죠. 한편 2016년에는 그런 프로젝트가 적어서 아쉬웠다고 하기도 하더라고요.

 

170920__롟뀫_믟뀱_メ꼺_⒰꼳_α꼳___15A3018.jpg

 

몸으로 느끼는 것


2016년 봄부터 여름, 가을 기간 동안 본격적으로 트리엔날레를 다녀오셨어요. 실제로 가서 보니 어떻던가요? 생각과 달랐던 부분도 있었나요?


저도 처음에는 트리엔날레 이전에 제대로 만들어진 뮤지엄 몇 군데를 봤어요. 베네세 기업에서 투자한 미술관들을 먼저 봤죠. 그 미술관들, 굉장히 좋거든요. 그래서 가기 전에는 섬마다 화려한 미술관들과 재미있는 볼거리가 굉장히 많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는데요. 사실 그렇진 않았어요. 200개 정도의 작품이 나왔다고 하는데 작은 집 안에 들어 있는 작품 같은 것이 대다수를 차지하거든요. 생각했던 것보다는 섬마다의 편차가 조금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것도 나쁘지 않았어요. 사람이 거의 안 올 것 같은 곳에서도 주민 분들이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고, 설명을 하려고 하시더라고요. 열정이 대단했어요. 자랑스러워하는 분들이 많았어요. 도시의 미술관과는 다르죠. 어쩌면 트리엔날레를 즐긴다는 건 편안함, 휴식 같은 것 같아요.

 

전체적인 느낌이 그랬거든요. 한적하고, 편안한 느낌으로 축제를 즐길 수 있는 곳이 아닐까 싶었어요.


그런데 나오시마 같은 곳은 사람들이 정말 많았어요.(웃음) 미술관에 오전 9시 반에 도착했거든요. 개장이 11시니까 시간이 많이 남았잖아요. 그런데도 사람이 정말 많았어요. 반면 조그마한 섬들은 고즈넉하고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이 많았죠.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카페도 있고요. 대도시 여행도 괜찮은데요, 각 섬마다 느낌이 달라요.

 

특별히 좋았던 곳을 꼽아본다면 어떨까요?


기억에도 남고, 꼭 추천하고 싶은 곳은 니시자와 류에(西?立衛)가 설계한 ‘데시마 미술관(豊島美術館)’이에요. 말했듯 근사한 미술관들이 많죠. 돈을 많이 들여 만들었으니 당연하겠죠. 안도 다다오의 지중미술관, 이누지마의 ‘세이렌쇼 미술관(精?所美術館)’, 데시마 미술관, 이 세 곳이 베네세 그룹에서 만든 곳인데요. 세 곳 모두 동일한 맥락은 있어요. 첫째, 세토우치 지역의 자연과 미술관이 분리되지 말 것. 공간과 작품이 딱 달라붙어 있는 거죠. 둘째가 자연을 어떻게 해석했느냐 예요. 지중미술관은 세토우치 자연 풍경을 해치지 않기 위해서 땅에 집어넣었고요. 세이렌쇼미술관의 건축가 산부이치 히로시는 자연의 힘으로 작동하는 미술관을 만들었어요. 공기의 흐름을 이용해 기계적 순환 장치를 쓰지 않고 바람을 만들어내요. 한편 데시마 미술관은 공간에서 선적인, 정신적인 세계를 다뤘고요. 세 미술관을 보면 약간 시대에 따라 진화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해요.

 

내부는 천장과 벽의 경계가 없어 꼭대기 부분의 구멍 가장자리에서 주변으로 갈수록 구조체의 부드러운 곡선을 따라 그러데이션을 그리며 어두워진다. 사람들은 앉거나 눕거나 서서 하염없이 침묵에 빠져든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있음에도 정말 고요하다.(84쪽)

 

세 미술관만 봐도 건축과 공간의 상호작용이 건축에 있어 굉장히 중요한 요소라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세토우치 트리엔날레와 관계된 건물들 대부분은 마을 안에 들어 있는 집을 개조해서 작품을 들여놓은 것이 대부분이에요. 그러다보니 그곳에 거주하는 마을 분들의 생활과 단절되어 있는 게 아니죠. 어떤 집이 비면 그 건물 내부 혹은 마당 같은 공간에 작품을 놓는 거예요. 그러니까 세토우치 트리엔날레는 건축에 대한 해석, 이런 게 아니라 건축 공간을 몸으로 느끼는 것에 더 가까워요. 모든 건물이 그렇진 않지만 많은 곳들이 가보면 느낄 수 있는 게 대부분이에요. 사진으로 보는 작품과는 느낌이 완전히 다르죠. 꼭 한 번 가서 느껴보셨으면 해요.

 

일반적으로 예술 작품과 건축, 생활이 밀착되어 있는 경우가 많지 않잖아요.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는 것이 흥미로운 대목이거든요.


예술을 통해 섬을 변화 시킨다는 취지에 잘 들어맞는 게 오시마(大島)예요. 예술제를 기획한 분들은 오시마를 말하지 않고 트리엔날레를 말할 수 없다고 하기도 하는데요. 오시마는 우리로 치면 예전 소록도 같은 곳이에요. 나병 환자들을 수용하던 곳이죠. 2000년대 들어 법이 폐지돼서 그분들도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되었는데 수십 년 간 격리되어 있었으니 나갈 수 있다 해도 갈 곳이 없는 거죠. 한 기사를 보니까 식당 출입을 거부당한 사례도 있더라고요. 그런데 그분들이 예술제를 통해 변화를 경험하셨어요. 그분들이 썼던 생활도구, 해부대 등이 전시되었거든요. 겨우 물건을 전시하는 정도에 불과했는데 사람들이 와서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을 해주는 경험을 통해 용기를 얻었다고 하더라고요. 주변을 보고 변화를 했다는 것이 바로 예술제가 내세웠던 ‘복권’의 시작점이었다고 생각해요.

 

차현호-셀렉-3컷-(1).jpg

 

거리두기 전략


예술의 힘을 상기하게 되네요. 건축가인 저자 입장에서는 건축 또한 그런 힘을 가진 영역이라고 말씀해주실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떠세요? 저자가 건축에 매료된 이유도 궁금하고요.


도시 재생 차원에서 볼 때, 건축이 들어가서 성공한 경우가 있긴 있죠. 스페인 ‘빌바오’가 그런 경우잖아요. 구겐하임 미술관을 짓고 나서 사람들이 엄청나게 오죠. 처음에는 미술관을 보러 사람들이 많이 오니까 미술관이 생기면 사람들이 오는구나, 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실제로 도시학자들 의견은 조금 달라요. 빌바오가 미술관을 짓기 전까지 도시에서 추진했던 도시 재생 정책들이 있는데요. 보행 가로를 만들고, 수경 공간을 연결하는 등의 일을 했거든요. 그러니 누가 와서 뭘 짓더라도 성공했을 거라고 말하기도 하는 거죠. 그런 것 같아요. 건축이 도시 재생, 섬들의 재생에 기여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죠. 하지만 지역 기반, 배경을 갖지 않으면 단순히 건축만으로는 힘든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 트리엔날레도 멋진 공간과 미술관들이 있지만 열두 개의 섬이 전부 그렇진 않거든요.

 

건축이 장소성과 얼마나 밀접하게 조응하느냐의 문제겠네요.


그렇죠, 예술제도 세토우치라는 지역과 떼려야 뗄 수 없잖아요. 건축이 모든 것을 다 해결해주는 건 절대 아니에요.

 

앞서 미술관이 주변 공간과 “딱 달라붙어 있다”는 표현을 하셨는데요. 그것이 가능하려면 어떤 조건들이 선행되어야 할까요? 도시 재생과 지역의 복권은 한국 사회에도 중요한 이슈라서 구체적인 궁금증이 생기거든요.


이전까지의 도시 재생의 방법 중 하나는 전면 철거 후 재개발 사업을 통한 것이었죠.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긴 한데요. 박원순 서울시장 이후부터 주민 주도 도시 재생 사업이 많이 활성화됐어요. 혜화동에 ‘장수마을’이라고 있거든요. 그곳도 이전 추진은 철거 후 재개발이었는데요. 뒷부분에 있는 서울 성곽과 심한 경사로 인해 개발이 어려웠어요. 그 때문에 진행이 안 되고 있다가 주민이 원하는 방향의 재생을 논의한 거죠. 그것처럼 일차적으로는 실제로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할 거예요. 주민들이 주도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필요해요. 요즘에는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주민 주도의 사업 추진을 점차 늘려가고 있는 것 같아요.

 

책에 국내 한 지자체에서 진행하려다 무산된 ‘쪽방촌 체험관’을 짚었잖아요. 간혹 그런 엉뚱한 사례가 보이는 건 여전히 주민 주도라는 중요한 전제를 외면한 결과일 거란 생각이 드네요.


재생을 ‘사업’으로 추진하는 거죠. 사실 공무원 분들도 고민을 많이 하셨을 거예요. 그런데 일단 주민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보다 외부에서 힘을 가져와 바꾸어보려고 했던 거겠죠. 오시마 사례처럼 주민들이 필요를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외부의 힘을 들여오려고 하다보면 자칫 주민들이 구경거리가 될 수 있는 거죠. 그런 점에서 온바 팩토리가 기억에 많이 남았는데요. 주민들이 필요한 게 무엇인지에 초점을 맞춰 작품을 만들어낸 거잖아요. 외부에서 멋진 게 들어와서 구경거리를 만든 것이 아니고요. 그게 중요할 것 같아요.

 

지역과 밀착되고, 나아가 활성화 되는 데에는 스토리텔링도 중요한 요소더라고요. 메기지마(女木島)의 ‘도깨비 동굴’이나 아와시마(粟島)의 ‘표류 우체국(Missing Post Office)’가 좋은 시사점을 줬어요.


표류 우체국은 저도 공감이 갔어요. 누군가와 이별하고, 더 이상 만날 수 없거나 연락할 수 없는 분들을 대신해서 역할을 하는 곳이잖아요. 그런 개념이 흥미로웠어요. 그 점에 있어서 특별히 제 나름의 느낌이 있었는데요. 일종의 전략이랄까요? 국내든 어디든 간에 핫플레이스가 생기면 그곳에 더 많은 사람들이 와서 즐기고, 외부에 소개도 될 수 있도록 사업이 추진되길 원하잖아요. 그런데 나오시마는 안 그런 것 같아요.(웃음) 그것은 ‘거리두기 전략’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나오시마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도시와 멀리 떨어진 시골마을이라는 그 거리를 좁히려고 하지 않았다는 데에 있는 것 같아요. 물리적, 심리적 거리가 있는 거죠.

 

거리두기 전략, 대단히 새로운 관점인데요.


외딴 사찰에 갈 때 가는 길에 몸과 마음을 정화하는 과정이 필요한 것처럼 그런 것 같아요. 도시에 떠나 다른 곳으로 가는 느낌을 계속 유지하길 바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인터넷에서 이미지가 돌아다니지 못하게 해둔 곳도 있고요. 먹을거리나 숙소 등을 화려하게 마련하고 알려서 편안하게 지내도록 하지도 않잖아요. 와서 직접 보고 느껴 가기를 원하는 것 같아요. 거리감 유지가 성공의 한 요인이란 생각을 많이 했어요.

 

책에도 사진을 담지 못해 스케치로 갈무리한 곳도 있었잖아요.


책을 낸다고 사진을 요청했는데도 안 주더라고요.(웃음) 『자전거 건축 여행』을 냈을 때는 요청해서 받았거든요. 그런데 이번엔 안 그랬어요.

 

차현호-셀렉-3컷-(2).jpg

 

건축의 재미있는 면들


화학을 전공하다가 어느 날 건축을 하게 됐고, 건축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책으로 쓰기도 하셨는데요. 건축에 관한 어떤 이야기를 남기고자 하세요?


어쩌다 세 번째 책까지 내게 됐는데요. 건축이라는 것이 실용분야이면서도 예술적인 면도 있죠. 때문에 다가가기 어렵다고 느끼시는 것 같아요. 저는 그런 것만은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너무 그것들을 학문적으로만 이해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부담감을 느낄 필요는 없어요. 실생활과 밀접한 분야이기도 하니까요. 건축의 그런 면을 소개하는 일을 하고 싶었던 게 처음 목표였어요. 앞으로도 그런 작업을 계속 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건축이 가지는 스펙트럼이 워낙 넓으니까요. 학문으로써의 건축뿐 아니라 경제적 차원에서도 건축은 많이 이야기되잖아요. 저자는 이 양 끝단의 가운데에서 문턱을 낮추는 역할을 하려고 하시는 것 같아요.


집짓기 관련 실용서는 되게 많이 나오는 것 같아요. 일본 저자들의 책도 많고요. 요즘에는 교수님들이 쓰는 책들도 간혹 보이는데요. 그런 분야의 중간이라면 중간일 수도 있고요. 건축의 재미있는 측면을 짚어보고 싶다는 생각이에요.

 

요즘 관심 두고 있는 주제는 뭔가요? 앞으로 하려는 이야기가 뭔지 들려주세요.


지역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해보려고 해요. 이번에 예술제를 바탕으로 세토우치 지역에 대한 이야기를 했잖아요. 다른 지역도 더 들여다보고 싶어요. 국내에도 재미있는 곳이 많은데 저는 일본이 흥미롭더라고요. 공간의 느낌도 좋고요. 주의 깊게 보고 있는 지역이 몇 곳 있어요. 세토우치 지역 중 한 곳도 있는데요. 본토와 시코쿠(四國) 사이에 섬들이 굉장히 많아요. 그 사이에 자전거가 다닐 수 있는, 본토와 연결된 길이 있어요. 그것을 보다보니까 새로운 공간들이 있더라고요. 기회가 되면 그 이야기를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일본에 흥미를 느끼는 이유가 있을까요? 구체적으로 좀 더 듣고 싶은데요.


우선 우리나라와 비슷한 점도 많고요. 그러면서도 일본의 건축 수준은 세계 건축계 중에서도 큰 부분을 차지할 정도거든요. ‘프리츠커상(Pritzker Architecture Prize,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건축 분야 최고 권위의 상)’을 받은 분들도 많고요. 공간 자체를 만들어내는 기술력도 좋죠. 특히 일본 건축에 흥미를 느꼈던 점 중 하나는 굉장히 개념적인 건데 그것을 짓는다는 거예요. 주택도 그렇고요. 가령 유리로 만든 주택은 바깥에서 보이잖아요. 그런데도 건축가가 지으면 그것을 받아들이는 거죠. 일본의 그런 건축 문화, 특히 현대 건축을 흥미롭게 보고 있어요.

 

마지막 질문인데요. 이 책을 어떤 분들이 읽었으면 하세요?


기본적으로는 여행에 초점을 두고 있어요. 아까 말했듯이 직접 느끼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 많거든요. 실제로 그곳에 가실 분들이 꼭 읽어보셨으면 좋겠어요. 공무원 분들도 한 번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웃음)


 

 

나오시마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차현호 저 | 아트북스
이색적인 현대미술과 일본의 시골 풍경이 충돌하고 갈등하면서도 조화를 이루는 그 묘하고도 생경한 광경을 기록한 예술 순례의 길. 지은이의 발자국을 따라 바다의 미술관으로 함께 떠나보자.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독립출판물 저자를 만나다] 책은 공부의 결과가 아닌 시작 - 전기가오리

$
0
0

_15A9979.jpg

 

전기가오리의 ‘스탠퍼드 철학 백과의 항목들’ 시리즈 책은 작고 얇다. 그러나 펼쳐보면 보기와 다르게 진중한 서양 철학에 관한 말이 쏟아진다. 이후 출판한 ‘근대 철학 총서’와 ‘서양 철학의 논문들’ 시리즈도 마찬가지다. 가벼워 보여 가볍게 시작했다가는 큰코다친다.


전기가오리는 사실 공부 모임에서 시작했다. 전기가오리 공부 모임 운영자이자 출판사 대표인 신우승은 철학 공부를 하다 보니 번역물이 쌓여 자연스레 책으로 묶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호기심이 많고 추진력은 좋은데 기세가 떨어져서 뭘 읽기 시작하면 끝까지 못 읽어요.그래서 철학 관련 글을 같이 읽을 사람들을 모집하면서 공부 모임을 시작했어요. 관심을 가지고 이것도 저것도 읽고 번역하다 보니 계속 모임이 커지고 번역한 텍스트도 많아졌어요.”


번역한 결과물로 책을 내고 싶었으나 안 팔리는 책을 펴내겠다는 출판사를 찾기 힘들었다. 결국 직접 출판사를 차렸다. 최근에는 피터 애덤슨의 팟캐스트 <빈틈없는 철학사> 시리즈를 번역한 ‘빈틈없는 철학사’ 시리즈도 냈다. 그야말로 ‘빈틈없이’ 철학사의 전 영역을 밀도 높게 다루겠다는 욕심이다. 현재까지 나온 원서의 양으로 볼 때 이 시리즈로만 100권이 넘어갈 예정이다.


“라인업도 다양하고 (독립 출판 중에는) 제일 전문적이라고 자신합니다. 재수없나요?(웃음) ‘빈틈없는 철학사’ 빼고는 다 전문서예요. 일반적으로 서점에서 보는 철학 책들은 다 입문서입니다. 전기가오리는 입문 내용보다는 되도록 한 학자의 좁은 주제에 관한 논문을 한국어로 옮기고 비전공자에게 정확하게 전달하고자 고민합니다.”


정확하게 전달하려면 정확한 번역이 필요하다. 철학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요인 중에는 생소한 번역어도 한몫한다. 외국어로 쓰인 철학 개념을 단어 하나하나 옮기다 보면 가뜩이나 어려운 주제가 더욱 어렵게 와 닿는다.


“칸트나 헤겔의 저서를 번역하면 출발 언어에 매우 큰 비중을 둡니다. 텍스트의 한 단어라도 빼면 번역을 잘못했다고 여기죠. 원 텍스트의 의미를 왜곡하지 않으면서 자연스러운 현대 한국어로 번역하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for’를 흔히 ‘~를 위해’라고 번역하지만, 전기가오리에서는 주로 ‘하고자’ ‘하려고’ 등으로 번역합니다. 사소하지만 그게 쌓이면 다른 문장이 되거든요.”


별다른 홍보 없이, 독자가 혹할 만한 디자인 없이 전문 내용을 다루는 책이 많이 나갈 가능성은 희박하다. 어떻게 지속적으로 활동하는 출판사가 될 수 있었을까. 답은 협동 조합 같은 후원자 제도다. 출판되는 모든 도서에 후원인의 이름을 기재하고, 후원자가 신청하면 ‘설명 배달 왔습니다’라는 제목의 방문 공부 시간을 누린다.


“책 판매보다는 후원자를 늘리는 데 신경을 많이 써요. 이번 달에 후원자가 500명이 넘었습니다. 이전에 냈던 방식대로 책을 내면 금방 흑자가 나겠죠. 하지만 이번에 내는 책은 디자인에 신경을 쓰려고 합니다. 그러면 제책 비용과 디자인 비용은 늘어나겠지만 거기까지는 해보려고요. 저희에게 장기적으로 중요한 건 공부하는 공간을 내는 겁니다.”

 

_15A9810.jpg


독립 출판을 하는 사람들은 책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는 때가 많다. 반면 신우승은 지식을 전파하는 데 꼭 책을 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책의 만듦새보다는 책이 가진 지식을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싶었다. 하지만 후원자들은 전기가오리의 책에 반응을 보였고 후원자의 요구에 맞춰 전기가오리도 변화하고자 한다. 초판을 다 판매한 책은 표지 및 내지 디자인을 바꾸고 PUR 제본 방식으로 부피가 작으면서도 잘 펴질 수 있게 했다.


“처음에는 홈페이지에 공부 모임에서 번역한 내용을 올렸는데 아무도 안 읽었어요. 책을 내니까 반응이 있더라고요. 후원자들이 책의 물성을 더 원하는 느낌이 들어요. 후원자들이 책을 받고 만족하면 저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보상이 됩니다.”


출판사의 활동 중에는 일요일마다 하는 ‘왜 이렇게 안 끝나는 세미나’라는 제목의 세미나도 있다.장소를 정해 모여서 모든 사람이 철학 관련 텍스트를 상당한 부분까지 이해할 수 있는 걸 목표로 하는 공부 모임이다.


“기본적으로 선생과 학생을 구분하지 않고 공부 모임을 진행합니다. 공부를 오래 하면 학생이 강의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공부 모임에 온 사람들에게 많이 요구하는 편이고, 질 좋은 번역을 해서 그분들의 이름으로 책을 내려고 합니다. 이른바 아카데미에 권위를 허락하는 이유는 거기서 석사, 박사를 받으면 그 사람의 학문적 수준이 어느 정도 될 거라고 보장을 하기 때문이죠. 전기가오리도 궁극적으로 그런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기가오리의 이름은 플라톤의 『메논』에 나온 전기가오리의 비유에서 따 왔다. 메논은 소크라테스와 논쟁하다 궁지에 몰리자, 소크라테스가 마치 전기가오리처럼 생겼고, 전기가오리처럼 접촉하는 사람들을 마비시킨다며 인신공격을 서슴지 않는다. 그러나 플라톤은 여기서 철학자의 자세를 발견한다. 전기가오리가 스스로 마비되면서 남들을 마비시키는 것처럼, 철학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난관에 빠뜨리지 않고 서로 새로운 차원에서 함께 탐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전기가오리도 ‘서로 같이 자극을 주고받고 지적하는 데 불편함이 없는 관계’를 추구하고자 한다.

 

_15A9960.jpg

 


전기가오리의 주요 출간 시리즈


스탠퍼드 철학 백과의 항목들


『스탠포드 철학 백과』는 세계 유수의 학자들이 공동으로 집필하는 철학 백과사전이다. 집필진을 학자로 엄밀하게 제한하지만 정기적으로 업데이트하고 누구에게나 자료를 공개하기에 철학을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훌륭한 텍스트다. 주요 항목을 골라 번역해 낼 예정이다.

 

서양 철학의 논문들


잘 알려진 철학자의 덜 알려진 문헌, 정통적인 해석에 얽매이지 않는 연구, 철학의 특정한 문제를 상반되게 해석한 논문 등을 소개하는 시리즈.

 

근대 철학 총서


칸트와 헤겔을 중심으로 근대 철학의 1차, 2차 문헌을 번역하는 시리즈. 헤겔의 『논리의 학』 원전 및 연구서, 요벨의 『헤겔 정신현상학 서문 읽기』 및 우드의 『칸트』 등을 준비 중이다.

 

빈틈없는 철학사


2010년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진행하는 철학 팟캐스트를 주제별로 묶어 낸다. 고대 철학에서부터 출발해 최근 첫 번째 책 『초기 그리스 철학』을 출간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니시야마 마사코 “출판사에는 단골이 없죠”

$
0
0

 

_15A3451.jpg

 

작은 규모와 적은 인력으로 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있다. ‘대표 외에 노동자 3인까지로 구성된 출판사’, 즉 1인 출판사다. 규모의 경제가 압도하는 사회에서 소자본으로 경쟁하는 것이 가능할까 싶지만, 이들은 대형 출판사가 할 수 없는 일을 해냈다. 신인 작가를 발굴하고 독특한 개성을 가진 책을 만들면서 출판계에 활력을 불어넣은 것이다. 일본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출판 선진화를 이룬 일본에서도 1인 출판사의 숫자는 증가하는 추세다. 그들은 ‘왜’ 1인 출판사를 설립했고 ‘어떻게’ 운영하고 있을까. 해답의 실마리는 『일본 1인 출판사가 일하는 방식』안에 담겨있다.

 

『일본 1인 출판사가 일하는 방식』은 활약이 두드러지는 일본의 소규모 출판사들을 취재한 책이다. 저자 니시야마 마사코가 10곳의 출판사 대표와 만나 함께 나눈 이야기를 기록했다. 1인 출판사가 책을 만드는 과정, 그 안에서 교차하는 달고 쓴 순간들을 엿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책방 운영자, 북코디네이터, 저널리스트의 칼럼도 실려 있어 책을 매개로 한 다채로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일본의 대표적인 시인으로서 소규모 출판사와 활발하게 협업해 온 다니카와 슌타로와의 인터뷰도 눈길을 끈다.

 

니시야마 마사코 저자는 1997년부터 예술문화지 <프린츠 21> 편집부에서 근무했다. 2002년에는 아동서 출판사 프뢰벨관 편집부로 자리를 옮겨 일하다가 2014년에 프리랜서가 됐다. 그림책 기획, 편집, 서평 등의 활동을 하고 있다. 지난 19일에는 ‘제4회 파주 에디터스쿨’의 강연자로 초대되어 한국을 찾았다.


일본-메인-3컷-(1).jpg

 

일본 출판계의 90%는 중소 출판사


어제 ‘파주 에디터스쿨’에서 강연하셨죠?

 

미국의 저널리스트 분과 대만 독립출판사 대표님과 이야기를 했는데요. 각각 다른 관점에서 1인 출판사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어서 재밌었습니다. 특히 대만에는 독립출판사연맹이 있다고 하더군요. 1인 출판사를 운영하시는 분들의 조합 같은 건데, 아직까지 일본에는 그런 조직이 없습니다. (대만이) 앞서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파주 출판단지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낙원 같은 곳이라고 생각돼요. 일본에는 정부가 계획을 세워서 조성한 출판단지가 없습니다. 그래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고요. 여러 가지 의미에서 한국 출판업이 진보되어 있다고 느꼈습니다.

 

이번이 첫 번째 한국 방문이라고 들었습니다. 이전에도 한국의 출판 시장을 관심 있게 지켜보셨나요?


인터뷰에 오기 전에 새로 나온 책을 봤는데요. 『책의 미래를 찾는 여행, 서울』이라는 책이었습니다. 한국의 서점, 출판사, 인터넷 서점에서 일하시는 분들의 인터뷰가 실려 있어요. 책에서 추천하는 책방도 몇 군데 다녀왔고요. 책을 읽으면서 ‘일본의 서점이나 출판업계도 이러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겠구나’ 하는 걸 느꼈습니다.

 

오히려 일본에서 한국의 미래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출판시장의 규모, 독서인구의 숫자에서 한국보다 앞서 있잖아요.


예전에는 그랬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일본에 서점이나 출판사가 많고 번역되는 책들도 많기 때문에, 대만이나 한국 분들이 많이 보시고 참고해주신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런데 이제는 대만이나 한국이 일본을 앞지른 게 아닌가 싶습니다. 무엇이든 흡수하는 속도가 굉장히 빠르니까요. 그리고 지금의 일본은 인구 감소 사회이기 때문에 독서인구 자체도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한국과 대만 사회는 경쟁도 심한 편인데, 그렇기 때문에 판매의 기술이나 아이디어를 고민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상황인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는 일본보다 앞서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한국에서는 1인 출판사가 증가하는 추세이고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해졌는데요. 일본의 경우는 어떤가요?


최근 일본에서 작은 출판사들을 소개하는 잡지가 나왔는데요. 지금까지 서점이나 책을 소개하는 잡지는 많았지만, 이렇게 소규모 출판사에서 만드는 책을 소개하는 잡지가 나온 건 처음입니다. 무크지인데 많이 판매가 되어서 다음 호도 출간될 예정이에요.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나 출판업계 사람들 사이에서는 1인 출판사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되는데요. 일본에는 약 3500개 정도의 출판사가 있습니다. 사원이 10면 이하인 출판사는 2000곳 정도이고, 1000명 이상 일하는 큰 출판사는 30개 정도예요. 전체 규모를 보면 중간 규모이거나 더 작은 소규모 출판사가 90% 정도인 거죠. 『일본 1인 출판사가 일하는 방식』을 만든 출판사도 중간 정도의 규모인데요. 원래 중소 규모의 출판사가 대부분입니다. 1인 출판사라는 것도 어제 오늘 시작된 게 아니라 옛날부터 있었어요. 특히 학술?인문계열 쪽에서는 옛날부터 유지했던 형태입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서 새롭게 주목 받게 되었죠.

 

1인 출판사가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 DTP(desktop publishing)이 가능해진 것이 첫 번째 요인이라고 생각돼요. 디지털 사회가 되면서 책을 만드는 작업이 진화했기 때문에, 개인도 작은 규모로 책을 만드는 게 가능해졌고 쉬워졌죠. 두 번째로는, 일본에서도 경제 성장의 시대가 끝나고 사람들의 가치관이 바뀌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공통되는 행복의 형태 같은 것이 있었죠.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회사에 취직해서 자기 소유의 집을 갖는, 그런 형식의 큰 이야기가 있었던 거예요. 그런데 이제는 사람들의 취향이 세분화되면서 작은 이야기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출판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작은 형태의 상업이 늘어나고, 자신이 생각하는 행복의 형태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그 중 하나로 1인 출판사도 있고요. 사회 전체의 라이프 스타일이 변화하는 가운데에서 원래 있었지만 알지 못했던 것들에 주목하게 된 것 같습니다.

 

다른 산업에 비해서 출판은 혼자서 하는 게 더 힘들지 않나요?


출판이라는 일 자체가 원래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이고 팀으로 하는 게 보통인데요. ‘외부의 스태프와 함께 하느냐, 내부의 스태프가 함께 하느냐’의 차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점에서 분업하기는 쉽다고 할 수 있는데, 일본의 경우에는 유통 문제가 어렵습니다. 지금 일본에서 출판사를 만드는 것 자체는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에요. 하지만 책을 유통시키고 판매해서, 그 이익이 다음에 출간할 책으로 이어지게 만들기까지가 무척 어렵죠.

 

자본의 문제가 가장 큰 단점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죠. 반대로 가장 큰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혼자서 정할 수 있다는 거죠. 큰 출판사에서는 자신의 기획이 통과되지 않는 경우도 있잖아요. (출판에) 관여하는 사람이 그만큼 많기 때문에 이익을 얻을 수 없는 책은 세상에 내놓을 수 없는 건데요. 지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인건비인데, 1인 출판사는 혼자 하기 때문에 인건비가 들지 않습니다. 그리고 1인 출판사이기 때문에 성립되는 출판 기획이 있죠. 큰 출판사에서는 낼 수 없는 책도 타산을 맞춰서 만들 수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입니다.


일본-메인-3컷-(2).jpg

 

출판사에는 단골이 없다?


1인 출판사를 운영하시는 분들은 능동적, 주체적으로 삶을 사시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리듬에 맞춰서, 자신의 소신을 지키면서,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는 거잖아요.


다른 사업과 비교했을 때 출판이 가진 특별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그 중에서도 가장 특별한 건, 많이 팔린다고 해서 꼭 좋은 건 아니라는 겁니다. 말하자면 리피터(リピ?タ?, 단골)가 없다는 거예요. 빵집의 경우에는 빵이 맛있으면 계속 찾아오는 사람이 있겠죠. 그런데 책은 그렇지 않잖아요. 한 권 한 권에 승부를 걸어야 합니다. (이 책을 만들면서) 그런 일에 자신의 힘을 들여서 일하는 사람들을 취재했는데, 다양한 가치를 인정하는 모습을 관조할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일본의 경우는 동일본대지진을 전후해서 지금까지 자신이 일하던 방식, 살아온 방식을 되돌아보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확실한 실감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거죠. 작아도 확실한 것, 혹은 개인과 개인이 왕래할 수 있는 연결을 추구한다고 할 수 있는데, 그런 부분이 개인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에게 강한 울림을 주는 것 같습니다.

 

단골 이야기를 하시니까 생각나는 출판사가 있습니다. 책에 실린 ‘미시마샤’인데요. 이 출판사에는 서포터 제도가 있다고 하셨어요. 고정 독자층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1인 출판사의 대안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미시마샤의 서포터 제도는 굉장히 독특한데요. 말하자면 회원에 따라 랭크가 있어서 연회비를 모으는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사실 미시마샤는 소규모 출판사 중에서도 특수한 위치에 있어요. 사장인 미시마 씨의 캐릭터 자체가 독특해서, 뜨거운 영혼을 가진 출판인 캐릭터에 매력을 느낀 사람들이 많고요. 회사 자체의 팬도 있거든요. 미시마 사장과 미시마샤의 활동 자체를 응원하는 서포터가 있는 거예요. 최근에는 잡지가 없어지면서 연재 형태로 콘텐츠를 쌓아나가는 매체가 없어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정기 간행물에 소설이나 에세이를 연재해서 그게 모이면 서적화 했죠. 매번 글을 실을 때마다 원고료를 지불하고 서적화하면 인세가 들어오는 형태로 사업을 유지했어요. 지금은 그 대신 웹 연재가 있죠. 미시마샤의 경우에는 콘텐츠를 쌓을 수 있는 매체를 직접 만들고 있는 셈이에요. 웹에서는 무료로 발신하기 때문에 서포터를 통해서 제작비를 메우는 거죠. 잡지가 해온 역할을 대신하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시마샤의 서포터 제도도 그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요.

 

미시마 대표의 책 『좌충우돌 출판사 분투기』는 국내에도 번역 출간됐습니다. 이 책에 실린 1인 출판사들의 책 중에 한국에서 출간된 것이 또 있나요?


이번 책에 이시바시 다케후미(저널리스트) 씨가 쓴 글이 실려 있는데요. 직접 거래 대행업을 하는 회사 ‘트랜스뷰’에 대해 쓰셨어요. 그와 관련된 책(『책을 직거래로 판다』)이 8월에 한국에서 출간됐습니다. 트랜스뷰가 하는 일을 다룬 책이에요. 트랜스뷰의 대표가 구도 히데유키라는 분인데, 출판 유통 부분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직접 거래를 시작했어요. 자신의 회사뿐만 아니라 여러 출판사가 함께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 유통 대행을 떠올리게 됐고, 서점과 출판사를 연결하는 사업을 2013년부터 하고 있어요. 말하자면 직접 거래 대행업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 노하우를 소개한 책이 백원근 선생님의 번역을 거쳐 한국에서 출간됐습니다.

 

‘트랜스뷰’가 직접 거래를 대행해 줌으로써 유통 단계가 줄어들고, 그 결과 서점이 가져가는 몫이 늘어나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일본에는 3500개 출판사가 있고, 서점과 편의점을 제외하면 12000 군데에서 책을 판매합니다. 1년 동안 신간으로 나오는 책이 약 7만 권이고, 기간은 20만 권이 있어요. 이 책들을 일괄적으로 거래하기 위해서 일본에서는 자동배본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서점의 크기라든지 판매 실적을 보고 자동적으로 나누어서 배본하는 거예요. 문제는 반품률이 40%가 된다는 겁니다. 마음대로 책을 보내고 그 대신 필요 없으면 반품해도 된다는 시스템이기 때문이에요. 여러 가지로 낭비가 많죠.

 

그렇다면 ‘트랜스뷰’의 시스템은 어떻게 다른가요?


자동배본을 하지 않고 서점이 주문한 책을 바로 바로 보냅니다. 아무래도 자동배본은 큰 서점에 유리한 방식이에요. 서점의 규모나 판매 실적에 있어서 작은 서점이 따라가기 힘들고, 그래서 베스트셀러를 주문해도 그 숫자만큼 책이 오지 않거든요. 그리고 중간 단계를 거치면 책을 빨리 받아볼 수가 없고 3주 정도 걸리는데, 이렇게 느리면 서점에 책을 주문하는 사람이 점점 없어지잖아요. 아마존 같은 경우는 클릭하면 그 다음 날 책이 오니까요. 트랜스뷰는 이런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하고 있어요. 출판사들이 신간 주문서를 만들어서 한 달에 한 번 모으고, 그 결과를 반영해서 패키지를 만들어 서점에 보내는 방식이에요. 기존 서점뿐만 아니라 1인 출판사에게도 고마운 곳이죠. 실적이 없는 상태에서는 중개사와 계약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데, 트랜스뷰가 거래 대행을 해줌으로써 책을 낼 수도 있고 유통도 시킬 수 있으니까요.

 

1인 출판사에 미치는 영향도 있나요?


이시바시 다케후미 씨가 이 책에 글을 써 주실 당시에는 직접 거래 대행업을 이용하는 출판사가 26군데였는데요. 올해 8월에는 65군데가 되었어요. 2년 사이에 2배 이상 늘어난 거죠. 트랜스뷰 같은 직접 거래 대행사가 늘어난 것도 1인 출판사가 증가하는 것을 뒷받침해 주는 요인 중 하나입니다.


_15A3251.jpg

 

작아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한국의 경우, 처음 인터넷 서점이 등장했을 때 동네 서점들이 문을 닫는 현상도 생겼습니다. 최근 들어 동네 서점이 다시 증가하는 추세인데요. 이제는 경쟁 관계가 아니라 공존 관계인 것 같아요. 인터넷 서점 덕분에 동네 서점은 모든 책을 구비할 필요가 없어졌죠. 특색 있는 책, 우리 가게에만 있는 책을 선별해서 판매하면 되니까요. 일본의 경우도 그런가요?


일본도 그렇다고 볼 수 있어요. 인터넷 서점 때문에 동네 서점이 망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그런데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1인 출판사에서 나온 책을 진열하는 곳은 큰 서점이거든요. 굉장히 세세하게 상품을 갖추고 있으니까요. 1인 출판사에서 나온 책을 전부 망라하고 있는 건 대형 서점이에요. 역 앞에 있는 작은 서점을 지탱하고 있는 건 큰 출판사에서 나온 잡지라든지 대중적인 책 같은 거고요. 저는 인터넷 서점이 동네 서점을 망하게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취향이 점점 세분화되면서 동네 책방도 그 동네의 수요를 세세하게 파악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어려운 시대가 된 것 같아요. 단순히 책을 파는 것뿐만 아니라, 동네가 필요로 하는 것을 잘 맞춰야 하는 것 아닌가 싶습니다. 동네 책방의 가장 큰 장점은 서로 모일 수 있다는 점인 것 같아요. 문화적인 거점이 되는 것도 서점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넷 서점만의 장점도 있겠죠?


동네 책방과는 다른 장점이 있는 것 같아요. 일본에서도 출판 불황이라는 말이 나온 지는 오래 됐는데, 아동서 판매량은 제법 괜찮은 편이거든요. 이와 관련해서 굉장히 좋은 일을 하는 인터넷 서점이 있어요. ‘그림책내비’인데요. 2001년에 창업한 이후로 축적된 독자 리뷰가 총 34만 건이에요. 그림책을 선택하는 사람들의 지침이 되어주고 있죠. 그리고 출판사가 허가한 책의 경우는 그림책의 전 페이지를 볼 수 있어요.

 

인터넷으로 책의 전문을 볼 수 있다면, 실제로 구매하는 독자는 줄어들지 않나요?


그림책은 내용을 확인 안 하고 사는 경우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내용을 보고 좋으면 사는 거예요. 그래서 판매가 늘어난 것 같아요. 저작권 문제 때문에 책의 전문을 공개할 때는 출판사의 동의가 필요한데, 이 작업을 함께 하려는 출판사가 많다고 해요. 인터넷 서점이 종이책이 판매되는 걸 서포트하는 거죠. ‘그림책내비’는 종이책과 디지털, 출판사와 독자, 인터넷 서점과 리얼 서점 사이에서 역할 분담이 굉장히 잘 이루어지고 있는 한 예가 아닐까 싶습니다. 결국 리얼 서점과 인터넷 서점은 서로 다른 역할이 있는 것 같아요. 각각의 특기를 살려서 독서의 즐거움을 공유해 나가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점점 늘릴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면 될 것 같습니다.

 

최근 무라카미 하루키의 신작 소설이 출간됐죠. 한국에서도 대형 출판사가 판권 계약을 맺었는데요. 소자본의 1인 출판사는 유명 작가와 계약하기가 힘든 게 현실입니다. 이건 장점이자 단점인 것 같아요. 유명 작가와 계약하는 대신 신인 작가 발굴에 뛰어들고, 그 결과 개성 있는 책들이 탄생하니까요.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고 재밌는 부분이기도 하죠. 서점뿐만 아니라 다른 산업의 경우도, 보통은 큰 자본이 있으면 유리하잖아요. 그런데 독자 입장에서 보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책도 읽고 싶지만, 이 책이 나온 가와데쇼보신샤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마니악한 책도 읽고 싶은 거예요. 결국은 다양한 방식으로 둘 다를 읽을 수 있는 게 가장 좋은 것 같아요. 작은 것도 좋고 큰 것도 좋다고 하면서 공존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제일 좋죠. 작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을 소중히 여기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반드시 많이 팔린 책이 가치가 있는 건 아니잖아요. 옛날에 나왔던 순문학 작품을 요즘에는 무료로 읽을 수 있는 것만 봐도, 책의 가치라는 건 돈으로 쉽게 측정할 수 없는 거죠. 규모의 크기와 상관없이 공평하고 평등하고 다양하고 자유로울 수 있는 새로운 룰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다니카와 슌타로 시인은 일본의 대표적인 시인이죠. 한국에서도 사랑 받는 시인인데요. 소자본 출판사와 작업을 많이 하셨더라고요. 그 이유에 대해 뭐라고 말씀하시던가요?


시인의 세계에는 작은 출판사가 굉장히 많아요. 일본에서는 시집을 내는 출판사는 규모도 작고 존속하기 어려운데요. 다니카와 슌타로 선생님은 작지만 의지가 되는 출판사와 계속 협업해 오셨기 때문에 경험적으로 알고 계세요. 한편으로는 시인이라는 직업 자체가 독립적인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혼자서 무언가를 한다는 점에서 그렇죠. 다니카와 슌타로 선생님은 다양한 사람들과 협업을 해왔고, 그걸 즐기는 분이에요. 작은 출판사와 함께 일하면서 좋은 점 중에는 의사소통을 하기가 쉽다는 점도 있어요. 큰 출판사는 담당자가 있고 그 위에 또 관리자가 있고, 단계마다 승인을 받아야 하잖아요. 작은 출판사는 사장과 직접 이야기하기 때문에 빠르게 소통할 수 있죠. 함께 일한다는 일체감도 굉장히 크고요.

 

책 제작 장인에 대한 책을 준비 중이시라고요. 책을 기획하게 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1인 출판사를 운영하실 계획은 없나요?


이번 책을 만들면서 책 제작 장인에 대한 인터뷰도 넣을까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타입이 달라서 다른 책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출간 예정입니다. 1인 출판사 운영 계획에 대해서 물어보셨는데, 사실 저도 트랜스뷰의 유통 시스템에 대해서 내고 싶은 책이 있습니다. 지금 기획하고 있는 책이 두 권인 셈인데요. 어쨌든 제가 하고 있는 프리랜서 일과 병행하는 형태가 될 것 같습니다. 독립적인 출판 레벨을 만들어서 책을 낼 계획이기는 합니다. 내년에는 그림책이나 또 다른 형태로 나올 것 같고요. 책 제작 장인에 대한 책도 비주얼 북으로 출간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본 1인 출판사가 일하는 방식니시야마 마사코 저 / 김연한 역 | 유유
일본 1인 출판사 대표들의 꿈과 희망, 그리고 말 못할 속사정.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10월호 커버스토리] 오래, 잘, 재밌게 그리는 허영만

$
0
0

20170818YES2439442_BW.jpg

 

 

판돈을 대놓고 주식 투자를 해서 실시간 중계로 이 돈의 증, 감을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엄청난 아이디어였다. 이건 묻지 않고 히트할 수 있다는 촉이 섰다. OECD 국가 중 경제 교육이 부족한 편인 대한민국 국민의 관심을 재테크 중의 한 방법인 주식으로 바꿔놓을 수 있다.
<허영만의 3천만원> 1화 중


『허영만의 만화일기』출간 기념 간담회에서 허영만 화백은 앞으로 주식 관련 만화를 연재할 예정이라고 폭탄 선언을 했다. 연재 플랫폼은 웹진 <채널예스>. 그것도 가상의 이야기가 아니라 직접 자기 돈으로 주식에 투자하는 과정을 그리는 만화다. ‘생활 툰’보다는 ‘생활 밀착형 실시간 경제 교양 만화’라고 이름 붙이고 싶다.


40년 넘게 만화를 그리면서 열 손가락을 넘길 만한 히트작을 만들었다. 만화가 윤태호가 스스로 ‘허영만 키드’라고 부를 정도로 허영만은 한국 만화계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거장이다. ‘선생님’과 ‘화백’ 호칭을 들으면서 편하게 다닐 법도 하다. 그러나 그는 나이가 들었다고 연신 이야기하면서도 여전히 단단하다. 촬영 장소에서 재킷을 벗자 꾸준히 운동하는 사람의 몸이 나왔고, 가방에서는 37권 째 그리고 있는 『허영만의 만화일기』공책이 나왔다. 머릿속에서는 금방이라도 다음 작품의 아이디어가 나올 듯했다.


인터뷰를 하는 도중 역으로 주식을 하고 있는지 질문을 받았다. 졸지에 요새 산 주식을 털어놓고 시장 전망을 토론했다. 뭐라도 하나 더 남겨주고 싶다는 건강한 욕심이 보였다. ‘돈은 곧 탐욕’이라는 말과 다르게, <허영만의 3천만원>에서는 정말 건강한 돈을 보여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20170818YES2439467.jpg 

 

잘 알고 덤벼라

 

『커피 한잔할까요?』를 연재하던 때 주식을 주제로 만화를 그려야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오르셨다고요.

 

 보통 한 작품이 끝나고 그다음 아이디어를 짜지 않아요. 평소에 준비해놓은 소재로 바로 다음을 이어 가지. 생각만 하다가 이번에 시작하게 됐어요.


시장 질서 교란 행위 금지법 등 여러 가지로 법률을 검토해보셨다고 들었어요. 다른 작품과 비교했을 때 걸림돌이 많은 편인가요?


잘못하면 잡혀가요. 자문단을 구성해서 거의 실시간으로 주식 시장을 중계하려고 했더니 위험하다는 거예요. 그 사이 주가를 가지고 조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자기도 모르게 휩쓸려 갈 수도 있다는 거죠. 자문해주는 사람들도 자기 생활이 있는데 법에 저촉될 여지가 있다고 하니까 주춤하더라니까요. 올 초까지는 거의 포기하고 있었죠.


그런데도 밀어붙이셨어요.


처음에 주식 만화 그린다고 하니까 사람들이 『타짜』 같은 만화를 생각했어요. 주식 시장에서 작전 짜고 사기 쳐서 돈 버는 내용이 아니냐는 거죠. 그런 음모 세력 이야기가 제일 재밌기도 하지만, 지금까지 스토리 만화와는 전혀 다른 만화를 그리려고 했어요. 독자들이 적어도 주식과 재테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만화를 안 놓을 것 같았거든요.


실제로 돈을 잃게 될 수도 있을 텐데요.


시작할 때는 시장이 좋았는데, 바로 북핵 위기설이 터지고 하필 안 좋을 때 독자들을 만나게 됐어요. 돈이 불어나는 걸 보여줘야 사람들이 좋아할 텐데.


기존 작품 중에는 『부자사전』이 떠오릅니다.


『부자사전』은 다른 사람의 돈 이야기지만,<허영만의 3천만원>직접 움직이는 거니까 다르죠. ‘잘 알고 덤벼라. 모르면 깨진다’는 말을 하고 싶었어요. 우리가 아파트 살 때는 직접 가보잖아요. 집 모양도 보고, 위치나 주변 시설 다 고려하지 않아요? 아파트는 그렇게 열심히 살펴보면서 왜 주식은 공부하지 않고 무작정 남들 하는 대로 따라가느냐 이거죠. 주식을 사려면 그 회사 자본금이 얼마고 전망과 오너의 자질은 어떤지를 공부하라 이거예요.


부자가 되라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아요. 작품을 쓴 목적이 있나요?


만화를 준비하면서 주식 관련 공부를 많이 했어요. 완전한 가치 투자를 하면 안정적으로 수익을 유지할 수 있어요. 진작 알았던 사람들은 그 시스템을 밟아 오는데, 나 같은 사람은 이제 늦었잖아요. 다른 사람들은 나처럼 하지 말라는 거죠. 이제까지 돈 생기면 옳다구나 하고 집 넓히고 나머지는 은행에 뒀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그게 참 바보 같더라고요.


‘젊은 세대들이 나 같은 전철을 밟지 않게 해야겠다’는 말이 나와요.


옛날에는 정기 적금을 3년 넣으면 두 배가 됐어요. 지금은 이자율이 점점 내려가더니 1%, 2%대예요. 아무리 해도 안 모인다고 해서 돈 생기면 어디 놀러 나가고 자동차랑 휴대폰 바꾸지 말라는 거죠. 월급이 모자랄 정도로 소비하고 있어요. 얼마큼의 저금이라도 은행에 무턱대고 넣지 말고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지고 주식을 모으라고 잔소리를 하게 돼요. 나중에 슬퍼지거든요. 초기 투자금 3,000만 원이 늘어나고 줄어들다가 5,000만 원이 되고 1억 원이 되면 그때쯤 관심 있게 보는 사람이 많이 늘어날 거예요. 관심을 두다 보면 일반 사람들의 경제 관념도 지금보다는 훨씬 높아질 거고요. 나도 지금 주식을 모르는데 무슨 교육을 하겠어요. 만화를 보고 배우라는 이야기가 아니고, 재미있게 슬슬 만화를 읽으면서 이런 방법도 있다는 걸 은연중에 알게 되면 좋잖아요.


자문단과 메시지를 주고받으면서 주식을 사는 내용으로 구성했어요.


왜 이 종목을 사고파는지 이야기해달라고 했지만 설명이 부족할 때도 있어요. 또 매매하는 내용만 나오면 독자들이 재미없겠죠. 그래서 앞에는 이야기를 풀어놓고 뒤에는 매매하는 걸 직접 보여주는 두 가지 방식으로 가려고 해요.


재미와 의미,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쉽지 않은데요.


두 마리 토끼를 좇다 보면 가는 길에 노루를 만날 수도 있는 것 아니겠어요(웃음).

 

 

3.png

 


젊은 사람만 만화를 봐요

『허영만의 만화일기』는 꾸준히 그리시나요?

 

오늘 들고 온 게 37권째예요. 애당초 출판사 청탁이 있어서 그리기 시작한 건 아니고, 그려놓고 옆 사람들에게 보여주다가 재밌다는 말이 출판사로 들어가서 출간하게 됐어요.


종이에 만화를 그리다가 태블릿으로 옮기면서 고생하시는 내용을 봤어요.


이제는 태블릿을 많이 쓰긴 하는데 불편해요. 터치감이 아주 안 좋아요. 종이는 걸리거나 매끄럽거나 하는 맛이 있는데 화면은 스피드 조절이 안 되니 펜이 너무 빨리 가버리면 선이 못 따라와요. 손하고 펜이 항상 화면에서 떨어져 있다 보니까 매번 사방을 조정해도 잘 안 맞더라고요. 일기를 만화로 그리는 이유 중 하나도 종이에 그리고 싶다는 마음이 있어서예요.


요즘 시대와 맞지 않는다고 느끼실 때가 있나요?


될 수 있는 대로 시대를 앞서가려고 하는데, 역시나 세대 차이가 있으니까 자주 뒤처진다는 생각이 들어요. 요즘 TV 프로그램을 보면 말이 너무 빨라서 못 알아들을 때가 있어요. 그건 나이에서 오는 거죠. 그런데 젊은 세대들이 앞서 나가는 게 내가 바라는 방향이 아닌 것 같으면 거기로 갈 필요가 없어요. 세대가 얼마나 빠른지 쫓아가다 보면 인생이 끝나요. 난 나 나름대로 세계를 또 만들어야죠. 쫓아가지 않아도 재미있는 일이 얼마든지 있어요.


하지만 역시 사람들이 찾아주지 않는다고 느낄 때 힘들죠.


웹툰 플랫폼에서 연재해보니 유료로 하니까 사람들이 잘 안 보더라고요.


<채널예스>에서 연재하기로 한 건 새로운 플랫폼을 시도하는 일환인가요?


잘 모르겠어요. 요새는 영화화되고 드라마화되고, 돈벌이가 되는 만화를 찾고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웹툰은 페이지가 정해져 있는 게 아니잖아요. 무한대로 페이지를 쓸 수 있으니 꼭 드라마화되는 만화만 있을 이유가 없어요. 문예적인 작품이나 다른 이야기를 하는 작품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 틀이 좁아진 것 같거든요. 최근 만화 소재를 보면 젊은 사람만 만화를 보게 되어 있어요. 아동 만화에서 청소년 만화, 성인 만화로 연결되어야 하는데 연결이 안 되니까 항상 시장이 안 커요. 지금도 아동 만화, 영화화될 만화 아니면 야한 만화만 나오잖아요. 그런 걸 안 좋아하는 사람들은 중간에 오갈 데가 없으니까 다른 곳으로 가버리죠. 다른 데서도 독자층이 너무 젊어서 주식 만화는 곤란하다는 답변을 받았는데, 아들하고 술 마시면서 ‘이제는 그만하라는 분위기인가’ 하고 이야기한 적도 있어요. 아들도 그만하면 됐다고, 쉬라고 하고요.


그만두겠다고 하면서도 새 작품을 가지고 나오세요.


쉰다는 의미가 아무 일도 안 한다는 의미와 같다면 그것 또한 서글퍼요. 사실 이 만화의 독자 반응이 좋아야 해요. ‘봐라, 영화화되지 않아도 드라마화되지 않는 만화도 반응이 나오지 않냐’고 큰소리를 쳐야 하거든. 이거 해서 안 된다면…. 또 하나 해보고 싶은 소재가 있기는 한데(웃음).


이미 영화화, 드라마화된 작품이 많아요. <타짜> <비트> <식객> 등 찾아보니 총 23편이더라고요. 작품이 손을 떠나면서 마음에 안 든 적도 있을 것 같아요.


다 좋겠어요? 하지만 나름대로 수십, 수백 명이 최선을 다해서 만든 작품이고, 이미 내 손을 떠난 작품들이에요. 그러니 뒷산에서 시집간 딸 집 보면서 굴뚝에서 연기가 나나 안 나나 쳐다보고 다시 발걸음을 돌려야죠. 그걸로 됐어요.


창작 생활을 오래 해도 재미있어야 한다는 불안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 같은데, 어떠세요?


어떤 식의 재미를 찾느냐가 달라져요. 20, 30대였을 때는 영화 같은 하드보일드 소재도 쓸 수 있는데, 요새 영화 포스터를 볼 때 총 들고 나오는 영화는 보기가 싫어요. 벌겋게 물감 칠해서 죽어나가면 저 사람들 쇼하고 있다는 생각밖에 안 들고 재미가 없어요. 주로 유럽 영화를 많이 보는데, 배경만 봐도 본전 빠지는 영화로 보죠.

 

1.png

 

오래 하면서 잘해야죠


다양한 소재를 다루는 것으로도 유명하신데, 계속 메모하는 습관이 있을 것 같아요.


많이 하죠. 가정주부가 시장에 가서 자기가 사고 싶은 물건 딱 하나만 사 가지고 오지 않듯이, 당장 오늘 먹진 않더라도 좋은 게 있으면 사듯이, 연재를 하려면 이것도 좋겠고 저것도 좋겠다 하면서 계속 소재를 찾아요. 주간지, 월간지, 아동지, 성인지 여러 매체에 맞는 걸 준비하다 보면 맞겠다 싶은 이야기가 항상 생겨요. 그중에 가장 좋은 걸 고르고 쓰고 또 쓰고, 계속 다음 걸 준비해요.


만화를 그리면서 창작의 기쁨이나 의의를 생각하시는 편인가요?


의의라기보다는 그냥 습관이죠. 그런데 남들이 못 하는 재주가 있고, 그걸 보여주면 옆에서 즐거워하는 게 너무 좋아요. 그래서 107세까지 만화를 그리다가 죽겠다는 말을 많이 하고 다녔어요. 독자들하고 호흡하는 만화는 아니더라도 나 혼자 그리며 낄낄대는 만화는 아마 죽기 전까지 그리게 될 거예요.


『허영만의 만화일기』<허영만의 3천만원>모두 오랫동안 작업해야 하는 작품이에요.


이게 인기가 있으면 주식 시장이 끝나지 않는 한 계속해서 그릴 거예요. 덤으로 3,000만 원이 불어나면 노후 자금으로 쓸 수도 있겠죠. 혹시나 부자 되면 로마네 콩티 마시면서도 계속 그려야지요.


허영만을 생각하면 부지런함이 떠올라요. 스스로 나태해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있나요?


그렇게 과장할 정도로 부지런하진 않아요. 매번 마감이 있고 경쟁을 해야 하니까 부지런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지. 나라고 놀고 싶지 않겠어요. 할 수 없이 부지런해야지. 특히 일간지 연재를 할 때는 매일 마감을 해야 하니까 굉장히 쫓겨요. 가만히 있으면 편하죠. 하지만 기다리는 독자들을 위한 창작하는 사람의 의무로라도 가만히 있으면 안 돼요.


후배를 위해서라도 원고료를 받고 새 길을 개척해야 한다는 말씀을 하신 적 있어요.


내가 최대한 많이 받아내야지 후배들도 그만큼 따라올 수 있는 거 아니겠어요. 요새는 광고 많이 받아서 추가로 수익을 챙겨 가니까 문화가 조금 달라지긴 했어요. 경박스러울지 모르지만 많이 버는 사람이 후배들의 롤모델로 나서줘야 해요. 우리가 잘 모르는 골프나 미식축구도 누가 얼마 받고 계약을 했다고 하면 사람들이 관심을 두잖아. 만화가도 마찬가지예요. 1억, 2억이 아니고 연간 몇십 억 버는 사람이 나와야 해요. 일반 대중의 만화를 보는 눈이 높아지는 건 시간이 걸려요. 돈이 엄청나게 왔다 갔다 하면 금방 시각이 달라지죠. 다만 광고가 많이 붙는 게 좋은작품은 분명히 아닌데, 만화의 가치가 수익을 많이 챙기는 쪽으로 달라질까 봐 걱정은 돼요.


예전에는 허영만이 ‘2등 전문’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었죠?


1등 했던 사람들이 다 없어졌어요. 『독고탁』 그린 이상무, 『공포의 외인구단』 이현세 형, 그다음에는 무주공산이더라고요.


오래 하는 게 재능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오래 하면서 잘해야죠. 회사에서도 좌천돼서 부서도 없이 책상 하나 가지고 근근이 오래 하는 것보다 자기에게 맞는 역할 충분히 하면서 오래 하는 게 좋잖아요. 만화에서도 작품을 내면 사람들이 관심을 두고 잊히지 않는 것이 오래 해도 보람이 있죠. 주변에서 찾아주는 위치에 있으면서 오래 해야 해요.


이제까지 가장 힘들었던 때는 언제인가요? 원고료가 적었을 때나, 1980년대 공장식으로 작품을 뽑아냈을 때인가요?


많이 그려야지 유지가 될 때도 힘들었지만, 그보다 사회적으로 만화가 저급 문화로 취급당하던 1960, 1970년대가 제일 힘들었어요. 사람 만나서 직업이 뭐냐고 물으면 만화 그린다고 선뜻 이야기를 못 했어요. 옛날에는 5월만 되면 대본소에서 만화를 무작위로 걷어 가서 성인 비디오랑 같이 불태웠어요. 어린이에게 안 좋은 거라 이거지. 그런 걸 보면 참 참담했어요. 적어도 이제는 그런 일을 겪지 않으니까. 돈도 되면서 좋은 만화를 그리는 작가를 많이 만들어내야 해요.


요새 눈여겨보는 젊은 작가가 궁금합니다.


만화체 만화나 콩트를 몇 개 찾아서 재밌게 봤어요. 극화같이 나온 만화는 예전에 했던 걸 또 보는 기분이 들어서 잘 안 보게 되더라고요. 요새 분위기는 어떤가 하고 일부러 만화를 보기도 해요.


『술꾼도시처녀들』의 미깡 작가와 함께한 인터뷰를 읽은 적 있어요.


젊은 작가 중에 만나고 싶은 사람을 묻길래 미깡이라고 했죠. 얼마 전에도 같이 술 한잔했어요.


최근 부산글로벌웹툰센터 개관 기념으로 허영만과 윤태호의 원화 전시회를 하고 있습니다.


부산에서 웹툰 작가들에게 상당히 신경을 많이 쓰고 배려를 하고 있더라고요. 고마웠어요. 다들 서울에서만 하려고 하는데, 부산에서도 작업할 수 있는 여건이 됐구나 싶어요. (윤)태호가 만화책을 갖다 주길래 봤는데 참 잘 나왔어요. 나도 욕심이 나서 태호한테 웃으면서 “태호 내면의 힘을 믿는다. 나는 너한테 안 진다” 그랬죠.


시작하는 작가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책상에서 승부가 납니다. 끈질기게, 꾸준하게 책상에서 일어나지 말아요. 내실이 중요해요. 친구들이 먼저 데뷔해서 100m 앞서 가 있다고 유리한 거 아니에요. 데뷔하기 전까지는 충전하는 시간이지, 데뷔하고 나서는 충전보다 방전이 많아요.


요새는 어떤 일이 가장 즐겁나요?


수시로 바뀌는데, 어제도 즐거웠고 오늘도 즐겁고 내일도 즐거울 거라 생각하려고 애써요. 주변에서는 내가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하는데, 나름대로 맺힌 것도 있고 바라는 것도 있으니 기분 나쁜 일이 생길 때도 있죠. 그러면 화실로 출근하는 차 안에서 혼자 크게 웃어요. 기분이 훨씬 나아지거든요. 부정적인 생각을 안 하니 조금 편해지더라고요. 아무래도 즐거운 일은 맛있는 술자리죠. 좋은 친구들과 좋은 술과 맛있는 밥이 있는 술자리. 많이 마시고 취할 나이는 아니에요. 그럴 때는 지났어요.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그다음 끼니 먹을 때까지 입에 계속 남아 있어요. 모처럼 그런 음식을 만났다고 하면 아주 기분이 좋죠.

 


 

 

허영만의 만화일기허영만 저 | 시루
인생 같은 만화를 그리다, 어느덧 만화 같은 인생을 살아온 70세 현역의 허영만 화백. 숨 돌릴 틈 없이 빠듯하게 찾아오는 마감일과 철저하고도 밀도 있는 취재 일정에 몸과 마음이 바짝바짝 마르는 만화 인생이었지만, 그저 그림이 좋고 만화가 좋아 손에서 펜을 놓지 않은 나날이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임병걸 “갑도, 을도, 청년도, 버스 운전사도 시를 쓸 수 있다면”

$
0
0

임병걸-셀렉-3컷-(3).jpg

 

KBS 기자생활 31년, 줄곧 경제 현상을 쫓아온 기자 임병걸은 KBS 보도본부 경제부장과 사회부장을 지낸 바 있는 베테랑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 자신이 또한 10여 년 째 시를 쓰고, 읽어온 시인이기도 하다는 점이다. 『시로 읽는 경제 이야기』는 시인과 경제 베테랑이라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두 정체성을 가진 저자가 시에서 경제를, 경제에서 시를 발견하는 독특하고 흥미로운 결과물이다. “지구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지구 바깥에서 봐야” 한다는 저자의 말처럼 『시로 읽는 경제 이야기』에서 그는 시와 경제에 대한 독자의 가시지 않은 낯섦을 간단히 무너뜨린다. 상인의 고단함을 노래한 시부터 라면과 국수를 이야기한 시, 생명의 탄생을 감탄하는 시를 소개하며 시 안의 경제를 읽는다. 경제는 그로 인해 거대 담론이라는, 수치와 통계라는 가면을 벗고 친숙한 모습을 드러낸다. 임병걸은 시가 삶과 동떨어진 것이 아님을, 내 삶의 문제를 지켜보고 있음을, 그로 인해 위로 받고 성찰할 수 있음을 알게 된다면 바랄 것이 없다고 말했다. 그의 말마따나 누구에게나 시심은 있으므로, 이 바람은 실현 가능할 것이다.

 

임병걸-셀렉-3컷-(2).jpg

 

실은 다 겹치고, 넘나드는 것


시와 경제, 두 단어가 한 곳에 만나서 일으키는 파열이 재미있습니다. 시, 그리고 경제라는 말을 꺼낼 때 갖는 평균의 생각이 있는데요. 책은 이 둘을 연결하는 것으로 어떤 생각의 전환을 일으키고자 했던 것 같아요.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것들이 사실은 그렇게 다른 것을 얘기하고 있지 않아요. 그동안 흔히 접한 시는 전형적인 시, 서정시죠. 하지만 시는 그런 것만 있는 게 아니거든요. 시인이 어디 진공 상태에서 사는 게 아니니까요. 시인도 생활인이고, 의식주의 문제를 고민해요. 이들도 생활이 주는 고통이나 도단, 혹은 기쁨을 느껴요. 시를 찬찬히 들여다보면 굉장히 많은 시들이 그런 삶의 문제들을 소재로 삼고 있죠. 경제 현상도 마찬가지예요. 경제 현상이란 숫자, 통계, 거대한 트렌드이기도 하지만 실은 인간의 감정, 희노애락이 굉장히 많이 작용하는 영역이에요. 결코 거창한 담론만 있는 게 아니거든요. 그런데 이것들이 안에서는 잘 보이지 않아요. 지구가 어떻게 생겼는지는 지구 바깥에서 봐야 하는 것이고요. 그래서 경제와 시를 서로의 바깥에서 보자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양자가 각각의 접점들이 굉장히 많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이렇게 테마를 정했던 겁니다.  

 

바깥에서 더 잘 보이는 것들이 분명히 있었던 것 같아요.


경제 현상도 경제가 아닌 것 같은 외부에서 볼 필요가 있어요. 스티브 잡스는 경제를 인문학 관점에서 본 것이고요. 예술의 관점, 혹은 이런 문학의 관점에서 보면 경제 현상이 입체적으로 보여요. 경제 안에서 성장이니 고용이니 조세니 하는 것들만 봐서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는데요. 그건 시도 마찬가지죠. 시 안에서만 보려면 한계가 있죠. 시를 예술의 관점에서만이 아니라 저처럼 전혀 다른 경제의 관점에서 보면 시의 지평이 넓어질 거예요.

 

하지만 역시, 그 접점을 발견해냈다는 게 책의 가장 흥미로운 점이에요.


사실 늘 접점에 있어요. 인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의식주이고, 그것의 총합이 경제인 것이니까요. 시도 그것을 테마로 삼고 있는데 다만 서술하는 방식이 다른 거죠. 표현하는 방식이 경제를 일반적으로 해석하는 방식과 다를 뿐이죠. 미술도 마찬가지 아니겠어요? 화가의 작품을 자세히 보면 굉장히 탈경제적인 것 같지만 영향을 많이 받아요. 참여미술은 더더욱 그렇지만 생활 속의 여러 가지들이 모티프가 되는 거죠. 요즘 흔히들 ‘가로지르기’라고 많이 하는데요. 그 양자들을 함께 읽어보고 싶었어요. 이것들은 편의상 나누어둔 것이지 실은 다 겹치고, 넘나드는 것이죠.

 

본질이라는 것을 생각하게 하는 말씀이네요.


자본의 욕망이라는 문제에 대해 써놓은 글이 있어요. ‘끝없는 소비로 쌓아놓은 바벨탑’이라는 이야기였는데요. 그런 것들을 단순히 수요, 공급으로만 해석할 수는 없다는 거예요. 감정의 문제가 많아요. 유행도 마찬가지죠. 과시욕 같은, 어떻게 보면 파토스에 연결이 되어 있는 거예요. 요즘의 경제학들은 그런 부분을 감안해서 분석해내는 것들이고요. 신고전경제학 이론만 가지고 분석할 수 없는 부분이 있어요.

 

시와 경제, 어느 쪽에 방점을 둔 글인가 하면 선뜻 어느 한쪽이라고 말하기 어려워요. 고르게 균형을 이루고 있었거든요. 시가 경제를 설명하기 위한 도구도 아니고, 그 반대도 아니죠. 쓰면서 중요하게 생각한 기준이 있었을 것 같습니다.


설정한 주제, 의도가 그렇기 때문에 양자 간 균형이 굉장히 중요하죠. 이것이 저것을 설명하는 부수적인 것이 아니라 양자가 대등한 거예요. 한쪽은 문학, 한쪽은 사회과학이지만 말이에요. 시인이라고 시만 먹고 사는 것도 아니고요. 역시 시인이 밥만 먹고 사는 것도 아니에요. 반대로, CEO를 위한 인문학 강좌가 왜 나오겠어요. 경제 현상도 인문학적 요소, 인간의 욕망이나 예술적 요소를 무시하고는 불완전할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당연히 양자 간 균형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텍스트 상에서도 양자를 그런 건강한 대립관계에 놓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임병걸-셀렉-3컷-(1).jpg

 

모두 다 시인이 되는 세상


서점, 최저출산율, 기차, 소주 등 다양한 요소가 글의 시작이 되지만 공통적으로 읽히는 주제들이 있었어요.


제가 쓴 글을 자세히 보시면 일관된 결론들이 있어요. 자본의 문제를 이야기하지만 자본의 약점들, 자본의 폐해들을 조금은 시 혹은 시라고 말하여지는 것들로 극복해내자는 뜻이 있거든요. 거기에 사실은 방점이 있어요. 단순히 현상을 설명하는 것만은 아니죠. 가령 돈이라는 게 세상의 군주처럼 되어 있지만 그게 다는 아니라는 이야기거든요. 그래서 송경동 시인의 시 「화폐」를 소개한 거예요. 떨어지는 낙엽들, 아름다운 열매가 왜 화폐가 아니겠는가, 하는 거죠. 어려운 문제지만 말이에요.


돌아가신 김현 평론가께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어요. ‘문학의 효용은 쓸모없는 것의 쓸모 있음을 통해 쓸모 있는 것의 쓸모없음을 가르쳐주는 것’이라고요. 굉장히 적확한 표현이라고 생각해요. 흔히 시심이라고 말하는 것들을 통해 과도한 욕망, 물질, 쾌락, 소비의 문제를 제어해 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이야기들이에요. 

 

‘집짓는 목수도, 거리의 노점상 아저씨도, 우유를 배달하는 아주머니도, 자동차 정비를 하는 청년도 한 줄 서정시를 쓰는 세상을 꿈꿔봅니다’(41쪽)라고 적은 대목이 있었잖아요. 중요한 메시지예요.


누구나 사실은 그런 시심들을 가지고 있어요. 단순하게 표현하면 아름다운 노을을 보고 감탄하는 것이고요. 사랑하는 사람을 봐도 그런 것이죠. 다만 이런 시심들이 과도한 물질에 압도된다고 할까요. 혹은 왜곡되어 있어서 발현하지 못하는 면이 있다는 거예요. 과도한 물질, 돈이 들어가는 데에서는 절대로 시가 나올 수 없어요. 골프장 가서 시 쓰는 거 보셨어요?(웃음) 결국 모든 이, 버스 운전하시는 분이든 마트 점원이시든 시를 쓸 수 있다는 말은 두 가지 함의를 갖는 건데요. 하나는 과도한 물질로부터 벗어나야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그분들도 최소한의 생존이 보장되는 수준의 복지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에요. 지나친 욕망이나 지나친 물질도, 지나친 궁핍도 시를 못 쓰게 만들기 때문에 누구나 시를 쓸 수 있는 세상이라는 것은 그 양자를 지양한 어느 균형점 같은 것이죠.

 

그 균형점에서 시심을 찾아내는 일이 여러 면에서 중요하겠어요.


농부도 마찬가지죠. 생명을 키워내는 일을 하는 분이, 땅을 다루고 물을 다루는 분이 어째서 시심이 없겠어요. 다만 너무 농업이 피폐하고, 당장에 빚더미 때문에 농약을 먹고 자살하는 판이니 말이에요. 한 평 공간에 종일 서서 일하는 마트 점원이 어떻게 시를 쓰겠어요. 그러나 그분들이 최소한의 생활이 가능하게 되면 거기서 시가 나오지 않을 리 없겠죠. 이것이 제가 책을 쓴 이유이기도 해요. 그래서 모두 다 시인이 되는 세상, 이게 가능하면 좋겠죠. 신동엽 시인의 「산문시 1」에 보면 “스칸디나비아라든가 뭐라구 하는 고장에서는 아름다운 석양 대통령이라고 하는 직업을 가진 아저씨가 꽃리본 단 딸아이의 손 이끌고 백화점 거리 칫솔 사러 나오신단다.”라고 했잖아요. 좁게는 최소한의 복지가, 더 넓게는 모든 형태의 권력 분산이 되어야만 갑도, 을도 시를 쓸 수 있는 거죠.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는 이야기예요.

 

시인이라고 시만 먹고 사는 것도 아니고, 역시 밥만 먹고 사는 것도 아니라고 한 방금의 말을 다시 떠올리게 되네요. 


가끔 놀랄 때가 있어요. 제 주변에도 보면 시인이 아니지만 말씀드린 그런 조건이 되었을 때 나오는 몇 마디 이야기가 다 시가 되는 경우가 많거든요. 과도한 쾌락과 과도한 궁핍이 없으면 제가 보기에는 모두 좋은 시들을 써내지 않을까 생각이 들죠.

 

아마 그것은 경험이기도 할 거예요. 30년 넘게 기자 생활을 했고, 10년 넘게 시인으로 산 경험이 이런 이야기를 가능하게 한 거겠죠.


조심스럽긴 한데요. 근본적으로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많은 문제들이 있잖아요. 빈부의 문제, 폭력성의 문제, 지역 간 균형이나 갈등 문제, 고령화 문제라든지 노인 빈곤이라든지 말이죠. 이처럼 굉장히 중요한 문제들이 있는데 시를 읽는다고 해서 그런 것들이 치유되진 않을 거예요. 그러니까 우선은 이 이야기가 그런 본질을 덮는 부작용을 낳으면 곤란하다는 대전제가 있어요. 그 문제들은 그것대로 해소해야죠. 여기에도 일관되게 구조적인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고요. 다만 그렇다고 그 문제들이 다 해결되면 인간이 평화롭고 행복해지느냐 질문한다면 역시 그 또한 필요조건이라는 의미예요. 시는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는 않지만 위로의 기능은 분명히 있다는 거고요. 또 하나는 위로를 받는 도중에 욕망을 줄이는 기능을 분명히 한다는 거예요.

 

과도한 욕망을 계속 언급하셨지만 사실 내 욕망이 과잉이라는 점을 스스로 깨닫기는 쉽지 않아요.


내가 큰 아파트에 살고 싶고, 부와 명예도 쌓고 싶다고 할 때 그것을 이루지 못하는 현실에서 겪는 좌절이 있죠. 그걸 시를 읽음으로써 위로를 받기도 하지만요. 시를 읽다보면 내가 갖고 있는 것이 옳은 것인가, 너무 과도한 욕망은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을 통해 욕망 자체를 줄이게도 되거든요. 비록 욕망을 이루지는 못하지만 다른 소중한 것들도 있다는 사실, 인간의 삶에서 이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해요. 그러다보면 자기 목표가 과도하게 물질 지향적, 세속 지향적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닌가 하는 성찰을 하게 되는 거죠. 이것은 시만이 갖는 고유한 기능은 아니지만요. 다른 것보다 강렬한 기능이라고 봐요. 언어 중에서도 가장 밀도가 높은, 가장 추상 수준이 높은 시는 강렬한 사유와 성찰을 필요로 하니까요. 시를 잘 읽다보면 엄청난 울림이 있어요.

 

더 많은 욕망을 이야기하고 이 가치를 젊은이들에게 요구하던 사회에서 점차 욕망의 적정화를 이야기하는 수준으로 한국 사회가 변화하고 있는 것 같긴 합니다.


우선 과연 젊은이들이 수년 전에 비해 정서적인 면을 중요시하는 삶으로 가고 있는지는 확실치 않아요. 몇몇 현상은 나타나고 있죠. 직장을 관두고 제주도로 간다든가 말이죠. 그러나 그런 것만 가지고 이야기하기에는 여러 통계나 조사가 여전히 과도한 물질에 휘둘리고 있다고 말하고 있어요. 다만 시를 포함한 문학과 예술들이 그런 것들을 제어한다고 할까요. 견제, 완화하는데 분명히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봐요. 시집을 많이 사지는 않지만 모바일이라는 장치가 일상을 지배하다보니까 시가 많이 읽혀요. 시야말로 이런 환경에서 유통, 가공, 활용되기 제일 좋은 장르죠. 그래서 과거에 비해 좋은 시들을 많이 보고 있다고는 생각해요. 블로그, 페북 등에 가보면 좋은 시들이 엄청 많이 인용되고 퍼 날라지고 있잖아요. 이런 상황에서는 그 좋은 시를 쓴 시인들이 그에 상응하는 어떤 대가를 받을 것인가에 대한 사회 공동체의 고민이 필요할 거고요. 일단 이런 현상 자체는 바람직하다고 봐요.

 

_15A3984.jpg

 

“천억이 백석의 시 한 줄만 못하다.”


일상과 시가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는 것 같아요. 어떠세요?


저는 이런 저런 모임에 가면 꼭 시를 읽어요. 동창회, 동아리 모임 같은 곳인데요. 처음엔 이런 자리에서 시를 읽어주면 우습지 않을까 했어요. 그런데 대부분은 그렇지 않아요. 이 사람도 감동을 받을까 싶던 사람조차 굉장히 좋아해요. 제 오만한 생각이었던 거죠. 그러니까 저는 시가 갖는 강력한 힘에 대해 확신을 하는 겁니다. 미켈란젤로에게 어떻게 ‘피에타’ 같은 인간이 빚을 수 없을 것 같은 조각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내가 조각한 게 아니고 돌이 가진 원래의 것을 발현시킨 것이다’라고 답을 했어요. 저는 이와 비슷한 생각을 해요. 이들은 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던 시에 감동할까. 시심이 원래 있는 거예요. 돈 버는 게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말이죠. 그 사람 안에 있는 줄을, 녹슬어 있지만 완전히 끊어지진 않은 줄을 시가 건드려 준 것이라고 봐요.

 

그러니 이 책이 갈 수 있는 곳도 많을 테고요. 지금의 시, 현실을 이야기하는 시들을 많이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말이죠.


이런 시들을 보며 시가 우리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찾으면 좋겠죠. 이걸 계기로 시를 들여다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만 한다면 바랄 것이 없어요. 시 외에 인용한 텍스트들도 그런 것이 대부분이고요. 저는 어쨌든 시의 외연을 넓히는 것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시의 본령이 누가 뭐래도 서정인 건 틀림없는데 그것이 다는 아닌 것 같아요. 그림도 마찬가지잖아요. 여러 가지 추상 표현, 설치, 팝아트 등으로 분화하잖아요. 시도 매우 다양하다, 시가 현실과 유리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요. 사람이 자기 생활 속에서 공감하는 것이라면 훨씬 더 감동을 받을 수 있거든요. 장사를 하는 분들이 김연대 시인의 「상인일기」를 보시면 정말 공감할 거예요. 여기에 인용된 시인 분들은 모두 훌륭한 분들이죠. 이 책을 계기로 그런 분들의 시들을 재조명하는 기회가 된다면 바랄 게 없어요.

 

하늘에 해가 없는 날이라 해도

나의 점포는 문이 열려 있어야 한다

(중략)

 

상인은 오직 팔아야 하는 사람
팔아서 세상을 유익하게 하는 사람
그러지 못하면 가게 문에다
묘지라고 써 붙여야 한다
(김연대, 「상인일기」 일부)

 

주제에 딱 맞는 시를 고르는 일도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십 년 동안 꾸준히 갈무리해 온 거예요. 그래서 이 책을 쓰겠다고 생각한 것이기도 해요. 이런 테마로 쓰겠다고 하고 시를 찾았다기보다는 말이죠. 시를 쭉 갈무리 해두다보니까 이런 시는 저널리스트로서 소개를 해봐야겠다 생각을 한 것이죠. 다만 저는 정말 우리나라의 시인들의 시는 세계 어느 곳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는 탁월하고 빼어난 시들이 많다고 생각했어요. 비록 시가 세상을 주도하는 시대는 오래 전에 끝났고 지금은 참 어려운 시절이지만 말이에요. 시인들이 갖고 있는 표현력이라든지 철학적 깊이, 고뇌 등은 결코 어디 내놓아도 뒤지지 않아요. 보석 같은 시들이 정말 많구나, 하고 느끼니까 쓰는 것이죠. 공부도 많이 되고, 위로도 많이 됐어요.

 

특별히 좋아하는 시는 어떤 시들인가요?


현실을 집약한 경제 분야에서 일을 해서 그런지 몰라도 구체적인 것들을 담아내는 시들이 좋아요. 시인으로 말하자면 함민복 시인, 복효근 시인, 정일근 시인, 고재종 시인, 이런 분들이 좋죠. 아주 쉬운 언어로 시를 써요. 오세영 선생이 세상에 네 종류의 시가 있다고 했거든요. 말하고자 하는 뜻도 어렵고 표현도 어려운, 뜻은 깊은데 표현이 쉬운, 뜻은 별 게 아닌데 표현이 어려운, 뜻도 별 게 아니고 표현도 별 게 아닌(웃음). 저는 그 중에 꼽자면 두 번째, 뜻은 깊은데 표현이 쉬운 시들이 좋아요. 물론 제가 아주 난해한 시를 읽어낼 힘이 없어서일 수도 있어요. 그러나 어쨌든 지금 언급한 분들의 시들을 읽을 때 저는 아주 흐뭇해져요.

 

시를 꾸준히 갈무리해두셨다고요?


정몽주 선생의 시 중에 ‘하인 딸려 놀이 나가서 술 한 잔 먹고 돈도 다 떨어졌는데 돌아올 때 보니 그 안에 시어(詩語)가 수북이 담겨 있었다’고 하는 내용이 있어요. 저는 그런 기쁨 때문에 시인들이 시를 쓴다고 봐요. 시어 하나를 찾아내느라 몇 년을 고민하죠. 그것이 무슨 돈이 되겠어요. 그러나 시인에게는 엄청난 것이죠. 그런 것처럼 지금 저에게 무엇이 가장 큰 재산인지 묻는다면 내 블로그에 갈무리해둔 수만 편의 시와 수만 개의 텍스트라고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어요. 그건 아무 환금성이 없어요. 하지만 금덩이가 주는 즐거움과는 전혀 다른 거예요.

 

다시, 시가 주는 강력하고 놀라운 힘이네요.


너무나 유명한 일화지만 ‘길상사’가 예전에 ‘대원각’이라는 요정이었잖아요. 그 주인이 백석 시인의 연인이었던 김영한인데요. 당시 천억도 넘는 것을 쾌척했거든요. 기자들이 물었어요. 아깝지 않느냐고요. 그때 김영한 보살이 이렇게 얘기해요. “천억이 백석의 시 한 줄만 못하다.”라고요. 저는 그 말이 과장이 아니라고 봐요. 저는 큰 보물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이 책에 경제라는 장르로 풀어놓은 것은 지극히 일부고요. 관심을 많이 갖고 있는 불교에 관한 것도 많이 있어요. 음악, 미술, 무용에 대한 좋은 시들이 엄청나게 많아요.

 

그런 시도 소개할 계획이 있으신 거죠?


순차대로 글로 풀어놓고 싶고요. 시를 매개로 음악이든 미술이든 이야기를 해보려고 해요. 정말 빛나는 사유의 보석 같은 시들이 많아요. 그것에 비하면 아까 얘기했듯이 시인들의 사정이 너무 열악하죠. 그런데 이렇게 열악한 상황에서도 좋은 시가 많이 나와요. 대단히 존경스러운 일이에요. 최근 최영미 시인의 해프닝이 있었지만 가슴 아픈 일이죠. 그게 현실인데요. 그걸 계기로 많은 분들이 시인들의 삶에도 관심을 가지고, 시집도 많이 사서 읽으시고, 이런 저런 시 낭송회도 많이 만들어 시인들도 초대해서 강의도 들어보시고 하면 좋겠어요.

 


 

 

시로 읽는 경제이야기임병걸 저 | 북레시피
삶의 애환과 본질을 꿰뚫어보는 고통스러운 아름다움, 시 속의 경제, 경제 속의 시!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수련 “잘 잃어버리는 것이 중요하다”

$
0
0

 

170926-이수련_IMG_9135.jpg

 

도서 검색대에 ‘애착’을 입력하면 2천 400여 종의 책이 뜬다.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단어 ‘애착’은 “부모나 특별한 사회적 인물과 형성하는 친밀한 정서적 유대”를 뜻한다. 애착육아는 필수 불가결의 선택이라 여겼는데, “어떻게 엄마의 사랑을 잃어야 하는가”를 부제로 넣은 책 『잃어버리지 못하는 아이들』의 가제는 ‘애착육아에 반대한다’였다. 정신분석학 박사인 저자 이수련은 “애착은 깨질 때 비로소 완성된다”고 말한다. 현대는 분명 모든 것에서 풍요로워졌다. 그런데 왜 괴로움을 겪는 아이들은 늘어만 갈까. 부모가 아이의 손을 놓는 시기가 지나치게 늦어졌기 때문은 아닐까? “아이의 성장은 누가 무엇을 언제 어떻게 주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말은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이야기다.

 

이수련 저자는 파리8대학에서 정신분석학 석사, 렌느2대학에서 임상심리학 및 아동청소년 임상심리학 석사를 마치고, 파리7대학에서 정신분석학 박사를 취득했다. 프랑스의 여러 아동청소년병원, 메디컬심리센터에서 일했고 현재 고신의대 ‘인문사회의학 행동과학 연구소’ 객원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한스아동청소년상담센터에서 정신분석 임상을 실천하고 있다.

 

이수련-셀렉-3컷-(2).jpg


사랑의 관계에만 매달리면 내 존재는 점점 비어 간다


제목만 읽고 놀라는 독자들이 꽤 있더라. 어떻게 시작된 책인가?

 

센터에서 주로 아동청소년을 상담하는데, 가장 인상깊었던 것이 아빠들이 뭘 해야 할지 몰라서 곤혹스러워 한다는 점이었다. 우리가 육아에 있어서 아빠의 역할이라고 하면, 딱히 또렷하게 떠오르는 게 없다. 무서운 아빠, 상냥한 아빠, 엄마를 사랑하는 아빠 등 이미지로 떠올리는데, 이런 이미지들이 아빠의 근본적인 의미를 정해줄 순 없다. 아빠와 엄마의 정확한 애착의 궁극적인 목표를 이야기하고 싶었다. 가제를 ‘애착육아에 반대한다’고 했지만, 엄마와 애착 관계를 맺지 말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애착이라는 유대 속에 정말 강조되어야 할 것은 애착의 목표에 있다. 바로 애착 관계에서 벗어나 아이가 독립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서문에 퍼즐 이야기가 나온다. 퍼즐 조각을 하나라도 잃어버리면 퍼즐 맞추기는 실패작이 되고 만다는 이야기다.


모든 것이 고정되어 대체가 불가능하면 무언가 어긋났을 때 해결할 방도가 없다. 아이의 성장도 마찬가지다. 아이는 언젠가 ‘내 것’을 잃어야 하는 순간을 마주한다. 이건 애초에 ‘내 것’이 아니었던 ‘기존의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이는 성장하면서 대체나 교환의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다. 엄마에게 부모에게 묶여 있는 기간이 오래 지속되면 사회 구성원으로 성장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포대기 육아’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애착을 중시한다. 현대사회가 발전한 만큼 아이들도 빠르게 성장할 것 같지만 그만큼 불안 요소도 커졌다. 아이의 독립 시기가 빨리질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엄마와의 애착 관계는 굉장히 중요하다. 애착 과정에서 아이는 자신의 것을 만들기 때문이다. 애초에 자기의 것을 만들지 못하면 잃어버릴 수조차 없다. 핵심은 엄마로부터 벗어날 때,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어른인 아빠, 선생님, 사회로부터 여러 도움을 받아 내가 잃어버린 걸 찾아낼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즉 가능성을 가진 상실이다.

 

문제는 아이가 성장하는 만큼 양육의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다. 자녀가 갓난아기 때의 부모의 역할과 청소년기, 성인이 되었을 때의 역할은 다르다. 잃어버려야 한다, 분리되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건 애초에 맺었던 최초의 관계를 정리하라는 것이지, 엄마가 사라진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물질적으로 지나치게 풍요로워서 결핍을 용납하지 않는 사회다.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전제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물질적인 만족에 집착한다. 아이에게 물질적인 것을 계속해서 채워주면, 아이는 엄마와 맺었던 관계를 다 잃어버려서 아무리 좋은 걸 줘도 만족하지 못한다. 물질적인 것으로 자신의 것을 채워야 하니까, 아이는 떼를 쓰고 집착한다. 그렇게 집안에 물건은 쌓이지만 현실 속 아이의 삶은 공허해진다.

 

책에서 가장 강조하는 부분은 “엄마의 사랑을 잘 잃어야 한다”는 것인데.


아이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 만나는 사람이 엄마다. 엄마의 사랑은 아이에게 힘과 자신감을 준다. 아이가 엄마를 떠올리면서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다고 스스로 믿는 순간, 엄마의 사랑은 완성된다. 엄마는 가장 튼튼한 울타리인데, 튼튼한 울타리가 되는 건 아이가 엄마의 품을 떠날 수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 엄마가 베푼 사랑이 정말로 의미 있는 사랑이 되는 건, 아이가 그것을 얼마나 잘 잃는가에 달려 있다. 엄마가 준 사랑을 잘 잃은 사람만이 현실의 고통 앞에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리고 사랑을 잘 잃을 수 있으려면 그만큼 견고한 사랑의 힘을 믿을 수 있어야 한다.

 

“엄마의 사랑에는 반전이 있다”는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다. “엄마의 응답에만 종속되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독립적으로 원하지 못한다”고 했다.


사랑의 응답처럼 내 존재를 가치 있게 해주는 것은 없다. 하지만 이 사랑의 응답을 얻기 위해 내 것, 내가 바라는 것을 포기하게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얻지 못해도, 그에 대한 응답을 얻으면 그 관계를 견뎌내지만, 사랑의 관계에만 매달리면 자신의 존재는 점점 비어 간다. 엄마가 주는 것, 엄마의 보살핌, 엄마의 사랑만이 줄곧 강조되고 지속되면 내가 바라는 것이 지워질 가능성이 크다.

 

한국, 프랑스에서 실제 아이들을 상담하면서 겪은 사례가 많이 등장한다.


상담센터에 심각한 문제를 안고 오는 아이들도 있지만, 정상적인 경우도 있다. 부모가 아이와 함께 상담을 하고자 할 때, 가장 큰 원인은 아이의 우울함이다. 아이가 무기력하고 의욕이 없어 학교에 가기 싫어하고 공부하기 싫어해서 상담 오는 부모들이 종종 있다. 이런 경우를 살펴보면 부모는 아이를 놓지 못하면서 사회적인 가치를 아이가 잘 흡수하길 바란다. 우리가 협약을 체결한다고 했을 때, 이 때의 협약은 나의 가능성을 인정해주는 평화로운 법이어야 하는데 나를 옭아매는 강압적인 법이 행사되면 내 존재가 법 안에 매인다. 지금 한국 아이들의 상황이 이와 다르지 않다. 외부에 있는 가치들이 강압적으로 ‘이게 좋으니 이걸 해’라고 강제하고 있다. 이 안에서는 자신의 삶을 찾을 수 없다.

 

“아빠의 역할은 엄마의 역할과 분명히 다르다”고 지적했다. 어린시절 아빠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엄마와 아이 사이를 가르는 것’인데, 가장 중요한 것은 ‘엄마가 아빠를 소개하는 방식’에 있다고 강조했다.


엄마는 아이와 가장 먼저 만난다. 아무 소개 없이 직접 만나는 유일하고 특별한 사람이다. 하지만 아빠는 다르다. 아빠는 엄마가 이야기하고 바라보고 옆에 머무는 사람이다. 아이가 아빠를 바라보는 건 엄마가 바라보기 때문이다. 엄마와 관련한 사람은 아이의 경쟁자가 된다. 그러면 아빠도 아이의 경쟁자일까? 그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래서 엄마의 소개 방식이 중요하다. 엄마, 아빠, 아이의 관계가 정리되는 건 엄마가 아빠를 어떻게 생각하고 바라보는지, 그것이 아이에게 어떻게 보이고 전달되는지에 달려 있다. 엄마는 아이에게 아빠를 자신의 ‘배우자’로 소개해야 한다. 엄마 옆자리는 아빠의 것이라는 메시지를 줘야 한다. 그래야 아이는 비로소 바깥세상으로 자신의 자리를 찾아 나선다. 또한 아빠를 다른 한 명의 ‘부모’로 소개해야 한다. 내 성장을 지지해줄 또 한 명의 어른으로 아빠를 생각해야 한다.

 

부모의 역할을 잘하기 위해서는 부부의 역할도 중요하다.


물론이다. 부모로서 아이를 잘 키우려면 다른 역할들을 내려놓으면 안 된다. 자신들을 위해서도 그렇지만 아이를 위해서는 더욱 그렇다. 부부 관계는 아이에게 어떤 식으로도 영향을 미친다.

 

엄마가 없고 아빠만 있는 경우는 주양육자 개념으로 이해해야 할까?


생물학적인 엄마가 없다면 누군가가 엄마 역할을 대신하고 있을 거다. 아빠가 될 수도 있고 할머니, 이모, 새엄마가 입양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아이가 생애 최초로 만난 어른과의 만남 속에 이뤄지는 일들이 엄마의 기능이다. 아이는 첫 번째 만난 어른의 말과 보살핌을 통해 자신의 것을 만든다. 중요한 건 이것이 한 명의 개인이라는 사실이다. 추상적인 개념, 일반적인 것들을 통해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수련-셀렉-3컷-(1).jpg

 

아이 스스로 어려움을 극복해나가는 방식들이 분명히 있다


정보 과잉 시대다. 엄마들이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하나라도 빠뜨리면 안 될 것 같은 시대다. 육아서에 나오는 해법도 너무 제각각이라 취사 선택이 어렵다.


일반적인 육아서는 사회적 관점이나 경험을 토대로 한 발달론이다. 생물학적 발달단계를 기준으로 하거나 아니면 심리학적 관점이다. 나는 정신분석학이니까 아무래도 새로운 관점일 수밖에 없다. 요즘 부모들은 발달론에 따른 과정을 굉장히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내 아이의 성장이 지나치게 뒤쳐질 때 당황하는데, 문제가 발생할 때는 항상 원인이 있다. 왜 문제가 생겼는지, 그 지점을 되짚어보면 된다. 사실 좀 느린 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 문제를 극복했을 때 더 좋은 효과를 가질 수도 있다.

 

상담한 아이들 중에 잘 극복한 사례가 있을까?


성장이 늦은 경우는 아니고, 평범한 어려움들을 겪고 있는 아이였는데, 그 중에는 엄마와의 관계도 있었다. 그런데 아이가 엄마를 너무 잘 이해해줘서 놀랐다. 누가 봐도 아이에게 힘든 부모는 엄마였고, 아빠는 아이를 잘 이해해주는 편이었는데 아이가 상담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물론 엄마가 무섭고 힘들어요. 그런데 엄마는 저를 24시간 돌보지만 아빠는 퇴근 후 잠깐이잖아요. 아빤 우리를 잠깐 참아주면 되는데 엄마는 되게 오랫동안 참아야 하니까 엄마의 태도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어요”라고. 아이는 오히려 아빠가 엄마를 좀 이해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사실 엄마가 자신을 힘들게 하는 부분이 많은데, 그걸 이해하는 방향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렇게 아이 스스로 어려움을 극복해나가는 방식들이 분명히 있다.

 

 

정신분석학자로서 육아서를 볼 때, 염려스러운 부분은 없나?


굉장히 구체적인 답들을 제시하는 육아서를 읽을 때 걱정이 조금 앞선다. 구체적인 지침을 가릴 수 있다는 건 사실 통계학적인 거다. 100명의 케이스가 있는데 80명은 맞더라 하는 부분인데, 사실 이런 구체적인 지침들 때문에 오히려 역효과가 날 때가 있다. 현상이 같다고 해서 모든 원인이 같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당연히 해결책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어떤 사례를 알았을 때, ‘이런 경우도 있구나’ 생각한 후에 자신의 상황을 고민해야 하는데 곧바로 모방해서 적응시키면 초점이 안 맞을 수 있다.

 

30대 후반 직장인에게 “육아 책을 읽어 보니, 엄마가 이해됐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내 친구의 경우 아이도 없고 결혼도 안 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자신의 부모님의 어떤 문제가 많이 생각났다고 했다.

 

육아에 관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부모 독자들이 많이 읽겠지만 젊은 사람이 읽어도 좋겠다, 싶었다.


이 책은 육아서라기보다는 인문서에 더 가까운데 부모, 선생들이 읽어줘도 좋겠지만 사실 젊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젊은이들이 어른에게 기대할 것이 무엇이고, 자신이 어떻게 성장했는지 알면 인생에 큰 도움이 된다.

 

정신분석학을 전공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드라마틱한 동기는 없다. 대학에서 불문과를 나왔고 친구와 비평학회에서 문학 비평을 했다. 그 때 자크 라캉이 한창 유행했는데, 더 공부하고 싶은 마음에 유학을 갔다. 그런데 이론적인 공부를 계속하다 보니까 너무 어렵고 왜 하는 지도 모르겠고 힘들었다. (웃음) 그래도 공부하러 갔으니까 공부를 했는데, 정신분석으로 박사를 따고 난 뒤에 임상심리학 석사를 하고 나니 조금 알겠더라. 임상 과정에서 아동청소년병원, 메디컬 심리센터에서 심리치료를 했는데 중증 아이들이 많았다. 3년 정도 병원에서 아이들을 접하니, 정신분석이 우리의 삶에 굉장히 깊이 연관되어 있다는 걸 알겠더라. 어떻게 보면 공부를 시작한 특별한 이유는 없었지만, 공부를 하다가 마지막에 찾은 것 같다.

 

책 마지막 부분에 ‘배움’에 관한 내용이 있다. 대한민국은 사교육시장 아닌가. 아이가 자신의 취향과 적성을 찾기 전에 진이 빠진다. 부모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이야기는 없나?


아이를 좀 믿어줬으면 좋겠다. 사실 아이들도 보는 게 많다. 커서 돈을 벌지 못할까봐 벌써부터 걱정하는 아이들도 많다. 몇 달 전 초등학교 5학년 꼬마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저는 하고 싶은 게 작가인데 돈을 못 버니까 대기업에 가야겠는데, 그건 너무 재미없을 것 같아 걱정이에요”라고. 아이들도 어른 못지않게 사회적으로 안정된 삶을 버리지 않는다. 중학생, 고등학생은 더할 거고. 그런데 부모들은 지나치게 걱정한다. 부모가 아이에게 자유롭게 뜻을 펼칠 수 있는 여지를 열어주고 인정해주고 대우해주면, 아이는 오히려 부모가 바라는 방향으로 갈 수 있는 확률이 더 커진다. 내가 통제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라는 건, 부모의 착각이다.

 

아무래도 엄마들이 가장 먼저 변해야 하지 않나 싶다.


엄마가 아이에게 지나치게 집착하는 이유 중에는 ‘자기 삶의 가치를 아이를 통해 증명하고자 하는 의미’가 분명히 있다. 부모도 아이가 자신을 떠난 이후의 삶을 생각해야 한다. 아이가 떠난 후의 내 삶이 공허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엄마로서의 삶을 너무 오래 살지 말았으면 한다. 우리는 굉장히 오래 산다. 한 사람으로서 긴 인생을 살아가는 것을 견뎌내야 한다. 자기 자신을 단단히 만들 필요가 있다. 엄마도 아이가 자신에게서 분리되는 것을 잘 이겨내야 한다. 엄마도 하나의 독립된 개인으로 분리돼야 한다.

 

다음 책의 주제는 무엇인가?


어른의 태도에 관해 쓰고 싶다. 요즘 친구들을 만나면 자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대개 가족, 친구, 지인들에 대해 말하지 현재의 자신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자신이 자식일 때는 부모 이야기, 부모가 되면 자식 이야기를 한다. 나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부족한 삶이 아닌가 싶다. 우리는 이제 너무 오래 살지 않나. 그런데 어떤 직책, 역할에 너무 오래 묶여 온전한 내 모습을 보기 어려워 한다.

 

 


 


 

 

잃어버리지 못하는 아이들 이수련 저 | 위고
마의 사랑이 아이를 압도할 때, 아이가 아빠의 세계로 초대받지 못할 때, 아이의 성장은 멈춘다. 아이들이 반드시 잃어버려야 할 사랑, 그리고 그것을 채우는 아빠, 배움, 학교의 역할에 대하여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KK(카미키타 켄), 서브컬쳐의 존재감을 드러내다

$
0
0

혹시 우타이테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가수(歌手)와는 다른, 노래꾼에 가까운 의미를 지니는 우타이테(歌い手)는 일반적으로 일본의 유명 웹사이트 니코니코동화에 아마추어 보컬리스트들이 보컬로이드의 곡들을 커버해 업로드하는 이들을 일컫는다. 1인 미디어가 활발해진 지금의 트렌드와도 맞닿아 있다고도 할 수 있는 이 콘텐츠는, 거대한 서브컬쳐 신을 형성하며 많은 스타를 낳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그 중 특히 우리나라에서 군계일학의 존재감을 보이고 있는 것이, 바로 10월 말 한국을 찾는 KK, 카미키타 켄이다.

 

절망을 희망으로 치환시키는 가사와 온기를 머금은 목소리는 이미 많은 이들을 매료시킨 지 오래. 아마추어를 넘어 자신의 풀 네임을 건 싱어송라이터로도 활동중인 그는, 제대로 홍보 한 번 한적 없는 한국에서의 열광적인 반응에 대해 신기해함과 동시에 무한한 감사를 보냈다. 내향적이었던 그가 사람들의 앞에 나서기까지의 이야기. 그의 행보가 궁금했던 이들에게 이 서면 인터뷰가 좋은 참고자료가 되기를 바란다.

 

image1.jpeg


10/28, 29 양일에 걸쳐 내한공연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한국은 첫번째 방문이신데요. 간단한 인사 먼저 부탁드립니다.


일본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카미키타 켄이라고 합니다. 이번에 이렇게 한국에서 불러 주신 것은 한국에 계신 여러분께서 제 노래를 좋아해주신 덕분입니다. 무척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한국 공연이 결정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으셨을 때 어떤 기분이셨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평소 한국에 대해서는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계셨는지요.


저에 대한 한국에서의 관심의 목소리가 높아졌다는 것은 평소에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걸 알게 되고 나서 시간은 조금 걸렸지만 드디어 보답하러 갈 수 있어서 굉장히 기쁩니다. 한국에 대해서는, (일본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만) 특히 힘겨운 세상에서 고민하고 계시는 젊은 세대의 분도 많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런 분들에게 뭔가 노래로 전달할 수 있는 것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KK, 카미키타 켄이라고 하면 한국에서 가장 인지도와 인기가 높은 우타이테 중 한 분이신데요. 특히 한국에서 인기가 많은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솔직히 직접적인 이유는 잘 모르겠습니다. 한국 분들을 향해서 메시지를 보낸 적도 없기에, 인터넷에서 서서히 퍼져나간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앞서 말한 대로 한국 분들이 끌어안고 있는 감정에 제 노래가 힘이 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2009년, 니코니코 동화에 '안녕 Astronauts'를 투고하며 데뷔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계기로 투고하게 되셨는지, 그리고 무슨 이유로 해당 곡을 택해 부르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원래 저는 사람들 앞에서 뭔가를 보여주는 것이 불가능한, 내향적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니코니코 동화는 저에게 있어 첫 자주적인 발표의 장소였습니다. 나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했을 때, 가장 가까이에 있던 게 노래였습니다. 곡을 선택한 이유는 단순히, 멋진 곡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선곡에 정평이 나 있는 KK(選曲に定評のあKK)라는 태그가 붙을 정도로, 유명하지 않더라도 자신에게 어울리는 곡을 골라내는 솜씨가 뛰어난 것으로 유명했는데요. 선곡을 하는 자신만의 기준이라던가 방법이 있다면 무엇인지요.


당시에는 다양한 작곡가분들의 노래에 어떻게 내 노랫소리를 맞춰갈까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곡을 고를 때에는 우선 제 목소리로 부른 후 스스로 들어보고 나서 판단했습니다. 불러보고 싶다는 마음뿐만 아니라, 작곡가분이나 들어주시는 분들이 위화감을 느끼진 않을지 신중하게 생각했습니다.

 

image2.jpeg


'それがあなたの幸せとしても(그것이 너의 행복이라 하더라도)'엔 원곡에 결핍되어 있는 온기를 완벽하게 표현해 내고 있는 보컬이 굉장히 인상적으로 다가옵니다. 그래서 그런지 KK의 대표곡 중에 하나로 꼽히기도 하는데, 이 곡을 들었을 당시 어떤 느낌이 들었는지, 그리고 어떤 점에서 이 곡을 불러야겠다고 생각하셨는지 듣고 싶습니다.


이 곡만이 특별히 강하게 감정을 넣은 곡은 아닙니다. 그래도 여러분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곡이기 때문에, 제 노랫소리보다도 더 근저에 있는 곡 자체의 힘이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작곡가 하리피(HarryP)와의 콜라보레이션이 특히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인기곡인 'アマテラス(아마테라스)'를 포함해, 그의 작품에 전곡 피쳐링을 담당했던 < Back of the Eyelid >까지 여러 곡을 함께 했는데, 어떻게 그의 곡을 처음 부르게 되었는지, 어떤 점이 잘 맞아 지속적으로 작업을 진행하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그가 만든 '우리들의 Let it be' 라는 곡을 부르고 나서 마침 도쿄에서 보컬로이드 관련 이벤트가 있어서 직접 인사하러 갔습니다. 조금 시간이 지난 뒤 그에게 연락이 왔는데, 다음에 투고할 예정인 'HEAVEN'이라는 곡을 부르지 않겠냐는 권유를 받았습니다. 물론 바로 OK했고, 처음으로 음악 스튜디오에서 노래를 녹음했습니다. 그 후 첫 라이브도 그와 함께 했고, 진정한 의미로 절 음악의 세계로 이끌어 준 것이 그라고 생각합니다. 그에겐 그런 은혜를 입고 있습니다.

 

2015년 카미키타 켄 명의로서는 첫 작품인 < SCOOP >를 선보였는데요. 전곡 작사, 작곡을 도맡으며 싱어송라이터로서의 존재감을 드높인 작품입니다. 우타이테로 투고하기 전부터 음악을 해오셨던 건지요.


그로부터 3년 전, 2012년 즈음부터 서서히 제 곡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 무렵부터 언젠가는 제 곡을 스스로 부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우타이테 KK로도 이미 유명세를 탄 시점에서, 한 발 나아가 카미키타 켄 명의로 앨범을 내게 된 경위를 듣고 싶습니다. 자신의 곡이 담긴 노래를 사람들 앞에서 부르기로 결심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스스로 곡을 만들게 되고 나서부터 그런 욕구가 생겼습니다. 또 한편으로 “KK”라는 존재는 저 개인 안에서는 어디까지나 캐릭터이며, 나 자신의 마음의 대변자는 될 수 없었어요. 그런 의미에서 나 자신의 말을 하는 것이라면, 카미키타 켄이어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카미키타 켄의 목소리나 가사가 있는 것은 전부 제 과거가 그렇게 만든 것이라 생각합니다. 말하고 싶은 걸 잔뜩 찾았어요. 그리고 “KK” 덕분에 그에 귀를 기울여주는 사람을 만날 수 있었어요. 정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心音>와 비교하면 좀 더 힘을 주어 부르는 듯한 느낌입니다. 마치 목소리가 등을 밀어주는 것처럼요. 본 작품을 작업하며 전과 다르게 보컬에 있어 신경 쓴 점은 무엇인지요. 그리고 보컬로이드 곡을 부를 때에 있어 마음가짐과, 자신의 곡을 부를 때에 있어 마음가짐의 차이에 대해서도 여쭤보고 싶습니다.


큰 차이는 없습니다. 그저 제가 쓴 곡은 모든 음과 가사에 담긴 의도를 알고 있기에, 표현하는 방법에 있어서 보다 리얼리티가 있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첫 미니앨범인 < TIDE >는 좀 더 서정성이 극대화 된 느낌입니다. 기타보다는 피아노 위주의 편곡을 비롯, 좀 더 힘을 빼고 숨쉬듯 음을 짚어나가 한결 편안하게 들리는데요. 이 작품을 통해 KK와 카미키타 켄 간의 구분점이 확실해졌다고 생각합니다. 본인께서는 이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계신지요.


< SCOOP >에 비해서 < TIDE >는 외향적인 앨범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곡에 대한 언어성이 추가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SCOOP >는 지금 생각하면 과거를 질질 끌면서, 골똘히 생각하며 만들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점에서 < TIDE >는 저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의 하나로서 각 곡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笑え'가 '사랑해'로 들려서 한국 팬들 사이에 화제가 되기도 했던 '웃으며 피어나줘'가 실려있는 최근작인 < LAYERED > 역시 < TIDE >에 이어 미니앨범의 형식을 띄고 있습니다. 연속해서 풀앨범이 아닌 미니앨범을 내놓은 이유가 있다면, 그리고 < TIDE >에 비해 신경써서 작업한 부분이 있다면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笑え' 이야기는 처음 알았습니다. 화제가 되었다니 영광입니다. < LAYERED >의 수록곡 6곡은 성격이 다른 곡으로 하려고 했습니다. LAYERED=층, 감정의 층을 만들어내는 것이 컨셉이었거든요. < SCOOP > 나 < TIDE >에 없는 측면을 만들어내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image3.jpeg


항상 힘겨워 하는 이들의 손을 잡아주는 듯한, 희망적인 가사를 많이 쓰시는데, 정작 자신이 힘들어 위로받고 싶어질 때 주로 들으시는 음악이 있으시다면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딱히 그런 곡은 없습니다. 애초에 그런 툴을 정한 적이 없습니다. 제가 느낀 괴로움이나 고민은 결국 왜소한 것이라고 알고 있기에, 그렇다면 저 이상으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살아가는 편이 좋을 거라 생각합니다. 물론 그 마음을 음악으로 환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곡을 만들고 녹음하는 것과,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하는 라이브 투어는 또 다른 느낌일 것이라 생각이 드는데, 앨범을 만드는 것과 라이브를 하는 것 간의 가장 큰 차이점이랄까. '전자가 이것이 좋다면 후자는 이것이 좋다'하는 점을 말씀해주신다면요.


CD를 만드는 것은 문자 그대로 '물건을 만드는 것'입니다. 심혈을 기울인 작업의 집약체이므로, 반복되는 갈등과 도전이 있습니다. 그러는 동안 서서히 형태를 갖춰가는 과정이 제게 있어 가장 충실한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한편 라이브는 '표현'입니다. 한 번뿐인 열량과 감정을 전하는 장소이며, 그 순간이 충족되는 시간입니다. 더욱이 그 순간을 관객분들과 공유할 수 있다는 건 멋진 장소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한국 팬들에게 기대하고 있는 점,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사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첫 한국 공연이 첫 해외 공연이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응원이 이 스테이지를 만든 것이라는 긍지를 가져 주세요.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 같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손을 맞잡는 것. 그건 무척 중요하며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스테이지에서 여러분의 그 모습을 제게 보여 주세요. 진심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인터뷰 :황선업
협조 :제이박스 엔터테인먼트(J-Box Entertainment)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Viewing all 8510 articles
Browse latest View live


<script src="https://jsc.adskeeper.com/r/s/rssing.com.1596347.js" async> </scrip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