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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임명현 기자가 본 저항의 유예, 유예의 저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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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70일 파업’은 MBC의 분기점이었다. 파업이 끝나자 MBC 경영진의 ‘비인격적 인사관리’가 본격화됐다. 파업에 참가한 기자들은 업무에서 배제됐다. 해고나 강제 직종 전환이 빈번해졌다. 2003년 MBC에 입사해 사회부와 정치부 생활을 한 임명현 기자도 그 중 한 사람이었다. 1개월 정직. 정직 후에는 3개월의 교육발령으로 ‘신천교육대’ 라고 불렸던 MBC 아카데미에서 ‘브런치 만들기’까지 해야 했다. 이후 보도국 외곽을 떠돌아야 했던 기자는 2015년부터 성공회대 문화대학원에서 공부를 시작한다. 『잉여와 도구』는 그가 2017년 초 발표한 논문 「2012년 파업 이후 공영방송 기자들의 주체성 재구성에 관한 연구: MBC 사례를 중심으로」가 바탕이 되었다.


임명현 기자는 27명의 MBC 기자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 했다. 이중에는 파업 후 경영진에 의해 채용돼 배제된 기자들을 대체했던 시용기자, 경력기자도 4명 있었다. 『잉여와 도구』에 담긴 이들의 생생한 목소리는 파업 이후 MBC라는 조직 풍경을 놀랍도록 선명하게 보여준다. 상실과 저항 혹은 저항의 유예가 잘 짜인 다큐처럼 펼쳐진다. 이들은 각자가 처한 현실에 따라 발생하는 내밀한 입장차이를 솔직하게 이야기함으로써 바깥으로 손을 내민다. 이것은 그저 MBC라는 어떤 조직의 일만이 아님을 강변한다. 어두운 시간을 견뎌낸 이들의 참담한 증언, 그 목소리를 듣는 일이야말로 사회성 회복의 중요한 한 걸음임을 알게 한다.   

 

 

예상하지 못한 재난에 가까운


기록의 의미를 생각하게 되는 책입니다. 책 나오고 기분이 어떠셨어요? 단순한 출판의 기쁨을 느끼는 것만은 아니었을 것 같거든요.

 

이 책이 아니더라도 출판은 엄두가 안 나는 일이었죠. 막연한 바람은 있었어요. 마흔 살 전에 내 이름으로 된 책 한 권을 낸다면 어떨까 했는데요. 올해 서른아홉이에요.(웃음) 우선은 감사한 마음이 있고요. 책은 이 세계와 나를 둘러싼 상황을 마음대로 움직이기 어려운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대항적 실천이 아닌가 생각해요. 기본적으로는 힘든 상황을 달래는 목적이 있을 수 있겠고요. 또, 이런 상황이 다시 오지 않도록 고민한다는 부분에서 의미가 있을 거예요. 후에 비슷한 상황을 혹시나 겪게 될 사람들이 참고하거나 반영할 수 있도록 기록을 남긴다는 목적이 있었다고 생각해요. 일단은 저도 이 시기를 지나오면서 상황을 버텨내기 위한 수단이 필요했고요. 그것이 제게는 글쓰기였어요. 지난 몇 년 간 MBC라는 체제를 원하는 방향으로 바꿀 수 없던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실천 중 하나였던 거예요.

 

기록이라는 목적 외에도 내가 처한 힘든 상황을 달래는, 일종의 치유 목적도 있었다는 말씀이네요.


실은 이 상황은 예상하지 못했던 일, 겪어보지 못했던 일이라는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예상하지 못한 재난에 가까운 일이었던 거죠. 경험하지 못한 재난이 왔을 때 그 자체가 주는 심리적 충격이 있었어요. 상실이 주는 경험인데요. 이것은 기자로서의 나, 혹은 PD나 아나운서로서의 나의 상실이 주는 충격, 우리가 알고 있고 우리가 만들었던 MBC의 상실이 주는 충격이죠. 물론 누구나 상실을 겪어요. 그러나 납득이 가는 상실과 납득이 가지 않는 상실이라는 차원이 있다고 보는데요. MBC 사람들이 느낀 상실은 분명히 납득할 수 없었던, 이유를 알 수 없는 상실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런 경우 상실이 주는 상처나 충격은 더욱 컸겠죠.


제 경우 2012년 파업 때 징계를 받았는데요. 정직 사유로 주어진 게 다섯 가지였어요. 그런데 그 다섯 가지는 백 몇 명에게 해당되는 사안이었거든요. 그 중 저만 징계를 받았단 말이죠. 다섯 가지 외에 다른 이유가 있는 거잖아요. 그걸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아요. 그것이 신천교육대에 가고, 보도국 외곽을 떠돌면서 기자 일을 할 수 없게 된 중요한 이유였는데 말이에요. 삶에 많은 의미를 주던 주요한 정체성 하나를 상실했는데 이유가 납득이 가질 않는 거예요. 그러다가 ‘너무 나섰나? 총회 때 그런 발언을 안 했어야 했나?’ 하면서 자기혐오와 주변 혐오로 갔던 것 같아요.

 

자기혐오의 경험이 뼈아픈 점입니다. 책에서도 이른바 ‘내사화’를 아주 중요하게 다루고 있잖아요. 많은 당사자들이 그런 경험을 이야기하고 있어요.


저는 표현 욕구가 있는 편이라 SNS 같은 걸 안 한 적이 없거든요. 싸이월드 시절에는 클럽 같은 것도 하고요. PC통신도 했고, 지금은 페이스북도 하는데요. 그 시기, 2013년 봄부터 2015년 여름정도까지는 아무것도 안 했어요. 제가 삶에서 기록을 남겨놓지 않은 유일한 시기가 그때예요.


무의식에 잠겨 버린, 혹은 익숙해져버린 것들은 일일이 언어화하기 어렵잖아요. 그러다보니 내 상황을 내 말로 설명할 수 없고 그로 인한 답답한 같은 게 있죠. 글을 쓰는 과정은 그런 것들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잉여’와 ‘도구’라는 명명이 그렇죠. 


석사 과정에서 지그문트 바우만의 『쓰레기가 되는 삶들』이라는 책을 읽었어요. 후기 자본주의 저성장 사회에서 청년 실업 같은 것이 구조적 문제가 되어 갈 곳이 없어지는 사람들에 대해 쓴 건데요. 이게 제 이야기 같더라고요. 쓸모가 없어 버려진 것이다, 잉여는 실업과는 다르다, 버려진 존재는 다시 돌아올 수 없다, 는 말들이 계속 남았죠. 이전과는 전혀 다른 맥락에서 활용되는 존재일 뿐 과거처럼 자발적으로 참여하고 존재감을 확인해가던 삶은 아닌 거예요. 그런 면을 잉여라 표현한 거고요. 도구는 인터뷰에 자주 나오던 단어는 아니었지만 몇 번 쓰인 단어예요. 처음에는 무심코 지나쳤는데 분석하는 과정에서 주목을 하게 됐죠. 버려지지 않기 위해 이용당하는 삶을 수용해야 한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는 데 도구라는 단어로 개념화했어요.

 

영화 <공범자들>이나 박성제 기자의 『권력과 언론』도 그렇고요. 겉에서 보기에는 지금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고 느끼는 부분이 있는데요. 사실은 내부에서는 여러 형태로 싸움을 하고 있었던 거잖아요.


저항도 여러 층위가 있는 것 같아요. <공범자들>에서의 ‘저항한 사람’은 꾸준히 싸운 사람에 가깝지 않나 싶어요. 제가 더 주목하고 싶었던 것은 거기에도 못 낀 사람들이었어요. 영화 마지막에 이름이 쭉 올라가잖아요. 하지만 ‘저렇게 많은 사람 중에 내 이름은 없더라, 뭐하고 살았나 싶더라’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어요. 그들은 저항을 했다고 봐야하는가, 아닌가. 이것이 제가 가장 관심 있던 질문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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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항의 유예, 유예의 저항


MBC 내부 당사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았는데요. 읽다보면 이것이 MBC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돼요. 『잉여와 도구』가 보편성을 가지는 이유기도 하고요. 근본적으로 이것은 구조의 문제, 자본의 문제, 노동의 문제인데요.


보편성은 많이 의식했던 문제였어요. 지금도 느끼는 거지만 공영방송의 파업, 공영방송의 문제라는 것이 더 이상 사람들에게 이전 같은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주제가 아닌 것 같아요. 게다가 이것은 우리가 힘드니 관심을 가져달라, 식의 말 걸기인데 그러기엔 세상에 힘든 사람이 너무 많죠. 반드시 세월호, 쌍용차처럼 충격적인 사건을 겪은 사람이 아니라 하더라도 말이에요. 그러니까 MBC 문제라고 생각하면서 관심을 가져달라고 하기는 너무 민망해요. 고민을 많이 했어요.


권력이란 늘 갈라놓으려 하죠. 순수한 주민과 외부세력, 산 사람과 죽은 사람, 남아 있는 사람과 밖으로 추방한 사람, 이런 식이잖아요. 그러면 그 안에서 사람들이 파편화되면서 권력의 목표가 관철되는 거예요. 그러므로 결국 이것은 MBC만의 문제는 아니다, 사회의 표상이고 단면이다, 이 점이 전달되었으면 했어요.

 

잉여와 도구 사이에도 여러 존재들이 있고요.


원래 제목은 ‘잉여와 도구 사이’였어요. 그러면 ‘사이’가 너무 주목되는 것 같아 지금의 제목으로 결정했는데요. 그 사이도 분명 있을 거예요. 게다가 저는 지금도 낯선 느낌을 가질 때가 있어요. 어떤 경우를 보면 과연 내가 힘든 게 맞나, 어쨌든 MBC에서 월급을 받았으니까 이 정도로 사는 게 아닌가, 싶어질 때가 있거든요. 물론 정서적으로는 굉장히 힘들었지만 말이에요. 가령 MBC 안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언론사 지망생들이 있어요. 나이도 있는데요. 이들이 저한테 ‘MBC 정상화를 기원합니다’라면서 이 책도 사주고 그래요. 경제적인 게 다는 아니지만 이런 사람들한테 MBC 문제가 너무 심각하니까 관심을 가져달라는 말을 걸기가 진짜로 너무나 민망한 거죠. 우리는 기자생활을 할 때 이들의 문제에 얼마나 귀를 기울였으며, 혹은 정상화가 되어 기자생활을 한들 이들의 문제를 내 문제처럼 진정성 있게 고민할 수 있을까, 싶은 거예요. 책을 쓰면서 정말 많이 고민한 부분이에요.

 

시용기자, 경력기자를 바라보는 시선 혹은 이들이 MBC 사태를 바라보는 시선 등 이 모든 복잡한 양상을 이해하지 않으면 체질 개선은 어려운 일일 거예요. 그 하나하나의 문제를 짚는 게 굉장히 어려우면서도 중요한 문제일 테고요. 책이 이런 면들을 폭넓게 조명했다는 점이 의미 있었어요.


작년 촛불 집회 때 느낀 게 많은데요. 집회에 나간 사람 중에는 박근혜 후보를 찍었던 사람도 있을 거예요. 집회에 나가진 않지만 집회를 지지하는 사람 중에도 박근혜 후보를 찍은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문재인 후보를 찍은 사람들만 집회에 나가고 그들만 지지해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지 않았을 거예요. 그 과정에서 누가 ‘박근혜 찍었는데 촛불 집회 올 자격 있어?’라고 했다면 어땠을까요? 권력을 갖지 못한 사람들, 헤게모니를 갖지 못한 사람들이 문제적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는 결국 내 편을 많이 만드는 방법밖에는 없다고 생각해요. 진영을 넓히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사람은 약하기도 하고요. 잘못 생각할 수도 있죠. 저는 점점 사람의 판단은 완전할 수 없다는 것을 전보다 중요하게 생각하게 됐어요. 영토를 넓히려면 ‘너는 2012년에 파업 참가 안 했잖아’, ‘경력으로 들어왔잖아’라는 식의 언어로는 어려울 거예요.

 

쉽지 않은 문제잖아요.


감정적인 문제도, 원칙의 문제도 있죠. 청산은 어찌 하느냐는 질문도 있을 수 있고요. 다만 저는 신영복 선생의 ‘더불어숲’이라는 말을 좋아하는데요. 이건 한두 가지의 수종이 숲을 이룬다는 말이 아니거든요. 울창하고 장수한 나무도, 새끼손가락만도 못한 풀잎도 다양하게 있어야 숲이 오래 가는 거죠. 저는 최소한 망설이거나 번민하는, 분노와 부끄러움의 양가감정 사이에서 망설이는 사람들한테는 ‘괜찮으니까 와라’라고 해야 하지 않나 생각해요. 그래야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정말 나쁜 분들은 망설이지도 않아요.(웃음) 솔직하게 말씀 드리면 그런 생각을 많이 깔고 있는 책이에요.

 

그것을 ‘저항의 유예(혹은 유예의 저항)’이라고 표현한 부분이 있어요. 모멸감을 견디면서 버텨온 것도 일종의 저항으로 봐야 한다고요.


이런 거예요. 세월호 기사를 쓰는데 기사에 ‘참사’라는 단어가 10번 나와요. 데스크가 전부 ‘사고’로 바꿔요. 기자가 데스크와 싸워요. 징계 받은 사람들은 그걸 안 해버린 사람들이고요. 징계 안 받은 사람들은 사고라는 단어가 잘못됐다는 의견은 제시했어, 라면서 10개를 다 수용하거나 혹은 끝까지 항의해서 참사라는 단어 3개 정도는 관철한 사람들인 거예요. 밖에서 보기엔 아무 의미 없죠. 알기나 하겠어요? 하지만 내부 사람들은 그 지난한 논쟁을 하는 건데요. 과연 3개라도 참사라는 단어를 지켜냈다면 그것은 저항한 것인가, 아닌가, 라는 물음이 남는 거죠. 이것이 지난 몇 년 간 가지고 있었던 질문들이었어요.

 

답을 찾은 건가요?


최종 결론은 아니고, 중간 결론쯤 되는 생각은 있어요. 그런 것을 저항인지 아닌지 분류하긴 어렵지만 어쨌든 버티려고 하는 사람들이 가진 힘이 있다는 건데요. 비유를 해보면요. 부실한 벽돌로 집을 지으라는 거예요. 안 그러면 쫓아내겠다고요. 어떤 노동자는 시키니까 해야지, 부실한 벽돌인지 난 모르겠어, 라면서 열심히 집을 지어요. 그러면 그 집은 지어질 거예요. 언젠가는 무너지겠지만요. 그런데 이걸로 집을 지으면 안 되지만 그렇다고 거절하면 잘릴 거고 그러면 다시 돌아올 수 없고, 이러면서 고뇌하는 사람이 있어요. 좀 느리게 짓고, 그래도 조금은 덜 부실한 벽돌을 가져와보려고 하고요. 이런 것이 가지는 힘. 그런 힘이 있는 것 같아요. 물론 이 힘을 빌미로 타협하고 현실을 수용한 사람들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하거나 네가 한 게 정답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요. 이들에게 너는 앞으로 우리가 새로 지을 집에 함께할 자격이 없어, 오지 마, 라고 하는 건 또 아닌 것 같아요.

 

그 시간을 지나면서 가지고 있던 고민의 깊이가 느껴지는 말이네요.


저도 사실은 그 중 하나죠. 쫓겨났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변방에서 혁명을 주도한 것도 아니고요. 쫓겨난 변방에서 그냥 공부하며 살았던 거잖아요. 하지만 어쨌든 그런 시간을 버텨낸 힘들이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꼭 MBC 사람들뿐만 아니라 지난 몇 년을 살아온 한국 사람들도 그렇죠. 현존하는 권력을 바꾼 힘은 어디서 나오느냐고 했을 때 답답한 시기에 마음속에 눌러 두고 버텼던 것, 그 힘들이 갑자기 뚫고 나온 게 아닐까 하는 거예요.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요. 명료하게 말씀드리기에는 공부가 조금 덜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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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걸 알았지만 열심히 싸웠다


한 대목에서 ‘유사한 인사관리를 경험해 온 내부 행위자의 입장에선 매우 쉽게 이해되는 답변’이지만 제3자 입장에서는 의문이 남는다면서 기자가 이렇게 질문해요. 더 강도 높은 저항을 하지 않았느냐고요. 이것은 스스로에게도 많이 한 질문이었을 텐데요.


스스로도 명료한 답이 안 나왔기 때문에 주변에 집요하게 물었던 질문인데요. 아마도 기자를 준비할 때 특정 미디어를 정해두고 공부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예요. 그냥 기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여러 곳에 지원하고, 붙는 곳에서 일을 하죠.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기자가 되고 싶었고, 기회를 준 곳이 MBC였던 거죠. 한 사람의 기자로서 MBC라는 미디어를 이용하는 입장이었던 거예요. 그런 사람들이 많았다고 생각해요. 그러니까 기자라는 게 우선이고, MBC가 엉망진창이 되었다면 기자를 할 수 있는 다른 곳으로 가야겠죠. 여전히 기자를 기다리는 많은 현장들이 있고요. 그런데 안 그러고 있는 거죠. 왜일까? 대답은 잘 못하겠어요. 책에는 세 가지를 썼는데요. 그것은 저도 해당이 됐던 것 같아요.

 

세 가지라면?


하나는 경제적인 측면이죠. 연봉과 처우가 비교적 되는 회사니까, 이건 반박할 수 없어요. 쉽게 말해 연봉 수준이 높다고 할 수 없는 언론사인데 김재철 같은 사람이 왔다면 그 연봉을 감수하면서, 스케이트장 관리하면서 다닐까요? 당연히 옮기죠.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20년 동안 이런 뉴스만 하며 살 수는 없어요. 그래도 기자로서 가졌던 의미와 계획이 있었을 텐데 그건 아무리 돈을 줘도 아닌 거거든요. 결국 이 상황이 언젠가 끝나리라는 희망이 있었던 거죠. 마지막 이유는 MBC 구성원들이 형성하고 있는 의식인데요. MBC는 사주가 없는 회사다, 사장은 월급 받는 사장이고, 이 회사의 주인은 우리다, 라는 주인의식이 있다 보니까요. 현재 경영진이 주인이란 생각을 당연히 안 할뿐더러 내가 나가면 진짜 저들이 주인이 된다, 누구 좋으라고 나가냐, 하는 생각이 있었죠. 대략 이런 생각들이 얽혀 있었던 것 같은데요. 그래도 명쾌한 답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2012년 파업 직후 정직 1개월 징계를 받은 후 교육발령을 받아 브런치를 만들러 신천교육대로 갔잖아요. 그러면서 이걸 기록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아주 인상적인 기자적 태도였는데요. 이 또한 지난 시간 MBC에서 버텼던 하나의 이유이자 결과일 수 있을 것 같아요.

 

정말 브런치를 만들러 가나? 가서 뭘 만들어야 하나?(중략) 가지 말아버릴까…… 그러나 나는 우산을 펴고 있었다.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모멸감을 느낄지 모르지만 그래도 그것을 느끼는 것이 왠지 오늘의 나에게 주어진 숙명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록으로 남겨야 한다는 생각, 2012년 파업에 참가했던 언론 노동자들이 어느 날 회사의 명에 의한 교육으로 브런치를 만들었다는 사실이 어쩌면 한국 언론사에 남을 수도 있는데, 당사자로서 그 현장을 직접 경험하고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44쪽)

 

브런치 챕터는 책 때문에 새로 쓴 부분이에요. MBC 사람들이 고생한 사건의 상징으로 많이 보도된 건데요. 어디를 뒤져도 그날 구체적으로 그 사람들이 뭘 했고,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 기록이 없더라고요. 하다못해 동영상, 사진 하나도 없어요. 저도 기록하겠다고 영상도 찍고 했는데 잃어버렸어요. 사실 그날 느꼈던 감정 문제는 좀 심했어요. 기록하려고 갔지만 막상 그날의 기록은 아무 데도 안 썼거든요. 아무것도 못하겠더라고요. 이번에 기억을 더듬어 쓴 거죠. 아무튼 기억이 나요. 그날 굉장히 복잡한 기분으로 집에 와서 글을 쓸래야 쓸 수 없었던 게요. 그런 날이었어요.

 

한 인터뷰이도 기록해두지 않은 걸 후회해요. 모두들 이게 이렇게 오래갈 줄 몰랐던 거죠. 그러니까 2012년이 중요한 분기점인데요. 2012년 파업 종료 당시는 이후 5년 동안의 시간보다는 희망이 더 많았던 시기 같아요. 이후에는 그야말로 ‘비인격적 인사관리’를 통해 본격적으로 내부 갈등도 심화되고요. 개인적으로는 어땠나요?


희망으로 치면 파업 직후가 2014년, 2015년보다 훨씬 많았어요. 정확히 언제부턴지는 모르겠는데요. 저는 어느 순간 다 보기가 싫더라고요. 같이 고생하는 사람들은 만나봐야 답도 없는 얘기만 하고, 점점 그런 얘기도 안 하게 됐어요. 서로 처지가 빤하니까요. 더 분노할 힘도 없고요. 그러니 결이 다른 사람들과는 더 얘기를 안 하게 됐죠. MBC는 커뮤니티가 강한 조직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턴가 조금씩 달라졌어요. 경영진과 조금이라도 협력한 사람들, 협력해서 해외 연수 갔다 오는 사람들, 특파원 가는 사람들, 승진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도 그렇고요. 심지어는 제가 성공회대를 간 이유도 우리 회사 사람뿐 아니라 다른 회사 사람들도 보기가 싫었기 때문이었어요. 기자를 만나고 싶지가 않은 거죠. 제 일상을 설명하기도 어렵고, 굳이 언어화해서 설명한들 상대가 이해하는 것도 아니고요. 그런 식이었어요.

 

지인이 기자를 ‘고문 피해자’ 보는 것 같다고 말한 대목도 있잖아요.


아무도 보기 싫다, 내 삶이나 챙기자, 라는 생각이 사측이 원하는 사고방식이라는 걸 알면서도 어느 순간부터는 그렇게 됐죠. 섞이려고 하는 순간 번뇌가 몰려오기 때문에 그걸 감당하지 못했어요. 각자의 내상이 치유되지 않았기 때문일 거예요. 그때 삶이 나와 내 주변의 것으로 굉장히 줄어들었었죠.

 

최승호 PD는 이런 문제가 재발할 수 없도록 구조와 제도를 정비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얘기를 하는데요. 기자의 생각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파업 이후, 목적을 달성한 이후에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제도적으로 정비할 부분이 있고, 개인적 차원에서 변화시킬 부분도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권력에 종속되지 않도록 소유 구조를 바꿔야 하는 면이 분명히 있죠. 다만 제 생각에 제도란 최선을 위한 방법을 고민하는 게 아니라 최악을 막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는 쪽이어야 한다고 보고요.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사람이 완벽하지 않음을 인정하고 포용해서 우리 쪽 지형을 넓혀가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이질적인 존재를 한쪽에 남겨두면 상황이 변했을 때 또 비슷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잖아요. 이게 무슨 탁구도 아니고, 그러다가 MBC라는 조직 자체가 쇠락해갈 거란 우려가 사실 있거든요. 우리에게 제도를 결정할 수 있는 힘은 없지만 연대를 선택할 수는 있지 않나 해요. 고민하고 망설인 사람들에게 손 내미는 선택을 할 수 있는 힘은 우리에게 있으니까요. 사실 이것도 조심스러운 이야기예요. 부역자 청산, 과거 청산 여론이 워낙 강하기 때문에요.

 

사회적 분위기의 중요성도 짚지 않을 수 없어요. ‘빙산에 얹혀 있는 빙조각’이라는 표현도 쓰셨는데요.


지난 5년간의 경험이 제게 도움이 됐다고 느끼는 몇 가지 측면이 있어요. 그 중 하나가 미디어와 사회의 관계를 바라보는 데 있어 조금 다른 사고를 하게 되었다는 점이에요. 미디어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라는 질문이 우리한테 훨씬 익숙하죠. 한편 사회가 미디어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라는 질문은 조금 어색한 것 같아요. 그런데 15년 남짓 MBC라는 곳에 있으면서 관찰한 것들은 물론 미디어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도 있지만 그만큼 사회가 미디어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거예요. 종편이 노인의 보수화를 가속시킨 측면이 있겠지만 저는 그만큼 보수화 된 노인 집단이 있었기 때문에 종편이 등장, 지속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JTBC도 마찬가지고요. 사실은 그게 위로가 됐어요.

 

위로요?


파업에서 지고 몇 년 간 겪은 것들이 꼭 우리가 잘못해서, 더 열심히 싸우지 못하고 전략적으로 치밀하지 못해서인 것 같았거든요. 그래서 뭘 잘못했을까 하는 질문을 많이 던졌어요. 그때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라면서 자신을 향해서나 당시 집행부를 향해 화살을 던지고 서로 싸우고 갈등도 했는데요. 공부를 하면서 느낀 것은 파업에서 진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 중에는 빙조각 밑에 깔린 빙산의 움직임, 흐름이라는 게 있었다는 점이었어요. 거대한 흐름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대세에 따르고, 무저항으로 있었던 게 아니라 저널리스트로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하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생각하니까 조금 위로가 되더라고요. 잘못 싸워서 죽었다고 생각하면 잘못 싸운 자신이 후회될 텐데 죽을 걸 알았지만 열심히 싸웠다고 생각하니까 싸운 우리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지는 것 같았어요. 그렇게 보면 5년 전보다는 마음이 편안한 측면이 있어요.

 

논문을 발표했을 당시 한겨레 고명섭 기자가 칼럼에서 ‘비정상이 철거되는 날 잉여도 도구도 주체다운 주체로 돌아올 것’이라고 적었어요. 희망하세요?


‘탈식민이론’에 관심이 많이 생겼어요. 『식민지 트라우마』에 나온 식민지 조선 사람들의 생각을 보니까 정말 비슷하더라고요. 이전까지는 한반도를 차지해온 국가가 일본에 있던 국가에 비해서 문화적이라는 우월감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 역전이 된 거죠. MBC도 똑같아요. 그동안 무시했던 사람들이 MBC를 장악했으니까요. 탈식민 이후에 대한 프란츠 파농의 말이 와 닿더라고요. 우리 목표는 독립 자체도 아니고 당한 만큼 돌려주기 위함도 아니다, 흑인들이 잃어버렸던 인간성을 되찾기 위해서다, 이런 말이었던 것 같은데요. 김장겸 일파에게 빼앗긴 MBC를 찾아오는 독립도 중요하죠. 하지만 그건 기자로서 잃어버렸던 것을 되찾기 위해, 되찾아서 사회적으로 더 의미 있는 일을 하기 위해, 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고명섭 선배가 쓰셨던 ‘주체다운 주체’라는 표현도 그런 의미가 아닐까 생각하고요. 잃어버렸던 전문직주의, 잃어버렸던 기자 정신을 회복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가 될 거예요


 

 

잉여와 도구임명현 저 | 정한책방
2012년 파업 이후 파업 참가자들은 보도국에서 배제되어왔는데, 평조합원으로 참여한 후 말과 글의 힘을 빼앗긴 내부인이자 저널리스트로서 공영방송 내부에서 일어난 일을 내부인들의 증언을 통해 보여준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연경 “언젠가는 정상에서 떨어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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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 속의 김연경은 뜨거웠다. 코트 안에서 뿜어내는 열정이, 이따금씩 ‘식빵’을 찾는 화끈한 성격이, 수많은 우승과 MVP를 거머쥔 기록이, 모두 그러했다. 책 속의 그녀는 여전히 뜨거웠다.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면, 때로는 차가운 순간과 마주했다는 것. 키가 작아 ‘배구를 그만둘까’ 고민하던 시절도 있었고, 낯선 땅에서 외로움과 씨름하면서 ‘무엇을 위해 이 고생을 하고 있나’ 자문했던 시기도 있었다. 그러나 흔들림 속에서도 자신의 자리를 지켜왔다. 지난 시간, 김연경이 끝없이 되뇌었을 한 마디는 그대로 책의 제목이 되었다. 『아직 끝이 아니다』. 책을 사이에 두고 바라본 그녀는 예상보다 더 담백하고 단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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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올림픽, 마지막이 될 것 같아요


어제(26일) 귀국하셨죠?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조1위로 본선에 진출하신 것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올해 대표팀의 경기 일정이 빡빡해서 걱정하는 여론이 많았어요. 컨디션은 어떠세요?


힘든 건 당연한 거고요. 올해 대표팀의 마지막 대회였는데 시합을 잘 마무리한 것 같아서 기분이 좋고 홀가분하기도 해요. 내년에 있을 경기와 도쿄올림픽이 기대되는 해였던 것 같습니다.

 

오는 3일에 상하이로 떠나신다고요. 늘 바쁘게 지내는데 책까지 쓰느라 힘들었겠어요.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어요. 지금까지 제가 해왔던 일들을 이야기했기 때문에 편안하게 썼던 것 같고요. 좋은 이야기들이 많이 담겨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습니다. 제 이름으로 책을 낼 수 있다는 것도 기분 좋고요.

 

그동안 출간 제의를 많이 받으셨을 것 같은데요. 지금 책을 내신 이유가 있나요?


시기가 잘 맞았던 것 같아요. 도쿄올림픽을 목표로 준비하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타이밍이나 모든 면이 잘 맞을 것 같았어요. 제가 지금까지 해왔던 일들을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면 도쿄올림픽에도 관심을 가져주시고 응원해 주시지 않을까 생각도 했고요.

 

제목에도 ‘2020년 도쿄올림픽’에 대한 각오가 담겨있죠?


네, 그런 느낌인 것 같아요. 도쿄올림픽도 그렇고 이번에 중국으로 새롭게 이적한 것도 그렇고요. 또 아직 선수생활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들이 많은데, 계속 도전해 나간다는 의미에서 이렇게 제목을 정하게 된 것 같습니다.

 

도쿄올림픽이 “국가대표팀에서 뛸 마지막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쓰셨어요. 팬들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을 만한 이야기인데요. 대표팀의 요청이 있다면 언제든지 합류하실 생각인가요?


솔직히 모르겠어요. 제가 대표팀에서 오래 활동한다면 좋을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안 좋을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어린 선수들도 많은 경험을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저도 언젠가는 은퇴를 해야 될 시기가 오고요. 저희가 항상 올림픽에 초점을 맞춰서 준비를 해왔는데, 제가 4년 동안 계속 할지 안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다음을 준비한다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일단 3년 뒤면 제가 한국 나이로 서른세 살이거든요. 적지 않은 나이라고 생각이 되고, 제가 볼 때는 도쿄올림픽이 마지막이 될 것 같아요.

 

어느 때보다 금메달에 대한 갈증이 심하겠군요.


네, 금메달이면 정말 좋겠죠. 그런데 금메달이 아니더라도 한 번은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고 은퇴하고 싶은 생각이 아주 크기 때문에 꼭 메달을 따고 싶어요.

 

처음 책이 나온 걸 봤을 때, 기분이 어떠셨어요?


책에서 예전의 저를 많이 보게 됐어요. 어렸을 때 이야기부터 나오는데, 당시의 일들이 새록새록 떠오르니까 갑자기 감수성이 풍부해지고 감정적으로 변하더라고요. ‘내가 이랬구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예전에 추억이라든지 힘들었던 순간들이 필름처럼 스쳐 지나가는데, 정말 ‘다시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끔 만들어준 것 같아요.

 

책을 읽으면서 놀랐어요. 기존에 알고 있던 모습과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대중들이 김연경 선수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는 부분도 있을까요?


그런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실패 없이 성장했다’라거나 ‘노력 없이 여기까지 왔다’, ‘신체 조건이 좋기 때문에 지금까지 잘 됐을 거다’, 그런 것들이 아닐까 싶어요. 강하기만 할 것 같은 느낌도 있을 수 있고요. 그런데 책을 보시면 여성스러운 내면이나 소녀소녀한 감성도 담겨 있거든요(웃음). 약한 김연경의 모습도 들어있고요. 정말 많은 것들이 담겨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나 앞으로 어떤 일에 도전해야 될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교훈을 줄 수 있을 것 같아서 기쁘게 생각합니다.

 

고등학교 1학년까지 키가 작아서 고민이었다면서요?


엄청 힘들게 학창 시절을 보냈죠. 신체 조건이 좋지 않아서 나가지 못한 경기도 많았고, 최고참 선배인데도 불구하고 후배들한테 밀려서 경기에 못 나가기도 했어요. 그때 자존심이 많이 상하기도 했죠. ‘배구를 그만둬야 되나’ 하는 생각도 했었어요. 그런데 힘들 때마다 ‘나는 무조건 된다’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들을 계속 하면서 도전적으로 했던 것 같아요. 진짜로 마지막에는 되기는 했는데요. 모르겠어요. 지금도 ‘어렸을 때 어떻게 그렇게 잘 버텨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해요. 지금보다 더 강한 정신력을 갖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때 말고는 배구를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어요?


딱히 없는 것 같아요. 운동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고, 그냥 항상 즐거웠던 것 같아요. 이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많이 힘들기도 하지만, 그래도 너무 좋았던 것 같아요. 너무 좋아했어요. ‘그래도 좋아’ 이런 느낌이라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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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견을 제기할 수 없는 실력을 보여주겠다


프로 데뷔 후에도 힘든 순간들이 있었잖아요. 부상도 있었고, 해외 진출 때 적응하기도 쉽지 않았어요.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꼽기 힘든 것 같아요. 학창시절에도 힘든 일이 있었고, 프로팀에 갔을 때도 그렇고, 이적 문제 때문에도 힘든 부분이 있었고, 해외에 가서 적응하는 데도 힘듦이 있었는데요. 아무래도 최근에 있었던 일들이 가장 크게 느껴지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해외에 나갔을 때 초반에 적응 못하고 힘들어할 때가 생각나요. 최근에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 아닌가 싶고요. 또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못 냈을 때도 많이 상심했기 때문에, 그때도 힘들었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 보니까 힘든 게 많네요(웃음).

 

다음 달에 중국으로 가면 또 새로운 팀에 적응해야 하는데요. 걱정되지는 않나요?


예전에는 두렵고 걱정이 많이 됐는데, 지금은 그런 것보다 ‘가서 하다 보면 되겠지’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만큼 경험이 무서운 것 같아요. 경험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는 거죠. 중국에 계신 분들이 힘들 거라는 이야기도 해주시고 걱정도 많이 해주시는데요. 저는 두려움도 없고 그냥 ‘재밌을 것 같다, 다 잘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더 먼 데도 가봤는데, 잘 되겠지’ 하는 생각이 있어요. 걱정보다는 기대되고, 설레고,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힘든 순간마다 ‘실력으로 보여주자’라는 생각으로 돌파해온 것 같아요.


많은 운동선수들이 그렇게 생각했을 것 같아요. 사람들이 나를 모르고, 그래서 처음에는 조금 무시할 때도 있잖아요. 그럴 때는 딱히 방법이 없는 것 같아요. 친해지려고 노력을 하겠지만 그건 많은 시간이 필요한 일이고요. 운동선수로서 할 수 있는 건 ‘진짜 제대로 실력을 보여주자, 그러면 모든 게 바뀐다’라는 생각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막연하게 ‘진짜 잘하자’라는 생각으로 경기를 했었어요. 결국은 잘하는 사람한테 많은 사람들이 오는 거니까요. 진짜 이 악물고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누구도 이견을 제기할 수 없는 실력을 보여주겠다”고 쓰신 문장이 떠오르네요.


그 이야기를 지금 들으니까 약간 손발이 오그라드는 것 같은데요(웃음).

 

아시안게임에서 메달을 딴 후에 슬럼프가 찾아왔었죠?


그걸 슬럼프라고 해야 되는 건지 모르겠어요. 그 나이 대에 다들 그런 생각을 한다고 하더라고요. 갑자기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지’, ‘이걸 해서 뭐하지’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터키에서 이 고생을 왜 하고 있는 거야’ 싶었죠. 그런 게 슬럼프였던 것 같아요.

 

당시를 회상하면서 “나를 이끌고 있던 강력한 목표가 사라져서 그랬던 것 같다”고 하셨는데요. 지금은 또 다른 목표가 생긴 건가요?


도쿄올림픽이 가장 큰 목표라고 생각돼요. 올림픽만 바라보고 열심히 훈련하고 있고요. 지금도 힘든 순간들이 많이 있는데, 하나의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이겨내려고 합니다. ‘앞으로 3년 남았으니까 빡세게 한 번 해보자’ 그런 생각이에요(웃음).

 

가족 덕분에 선수생활을 계속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엄청 힘이 됐죠. 제가 이렇게 낙천적인 성격이 될 수 있었던 것도 부모님의 도움이 컸고요. 어렸을 때부터 하지 말라고 이야기 하시기보다 ‘너 알아서 해, 네가 편한 대로 해’라고 말씀해주신 부분들이 스스로를 돌이켜볼 시간을 줬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호기심을 보이면 다 한 번씩 해보게 하셨거든요. 호기심도 채우면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되나’를 생각할 수 있었어요. 그렇게 경험이 많이 쌓이다 보니까 도움이 된 부분도 있었고요. 슬럼프 때도 언니들이 많은 조언을 해줬어요. 그래서 이겨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가족들을 생각하면 힘들어도 쉽게 포기할 수 없었겠어요.


포기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기 전에 든든함이 느껴져요. 지금도 필요할 때마다 전화하면 제 옆에 있어줄 수 있는 사람들이니까요. 너무 많이 전화해서 문제죠(웃음). 모든 걸 다 필요로 해서 해달라는 것도 많고, 그래서 이제는 가족들이 피곤해해요(웃음). 어떻게 보면 10년 넘게, 거의 20년 가까이 저만 뒷바라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지금까지도 계속 도와줘야 돼요. 대표팀으로 (한국에) 오면 짐을 풀고 쌀 때도 그렇고. 이제 엄마도 연세가 있으시니까 힘들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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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에 뭘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투지와 승부욕이 굉장히 강한 것 같아요. 코트 밖에서도 그런가요?


어렸을 때는 그랬던 것 같아요. 예전에는 작은 게임에서도 이기려고 노력하고, 지면 열 받아서 ‘한 번 더 해’ 그랬던 것 같아요. 예전에 펌프나 DDR 같은 거 많이 했잖아요(웃음). 그런 작은 게임을 할 때도 승부욕이 넘쳤는데, 지금은 많이 줄어든 것 같아요. 여유로움이라고 해야 하나요. 이제는 ‘이거 이겨서 뭐하냐, 진짜 제대로 된 거 이겨야지, 여기에서는 져도 돼’(웃음), 그렇게 생각할 정도로 여유가 생긴 것 같아요. 많이 바뀌었죠.

 

코트 안에서는 ‘무조건 이긴다’라는 생각만 하신다고요.


그렇죠. ‘무조건 이긴다’라는 생각을 하죠. 어디가 아파서 뛸 수 없다든지, 우리가 전력이 약해서 안 된다든지, 그런 걸 하나씩 생각하다 보면 끝이 없는 것 같아요. 그러면 결국 자신의 페이스대로 하지 못하고 경기의 흐름에 영향을 줄 수 있죠. 항상 ‘무조건 이긴다, 이기자’라는 생각을 하고 경기에 임하는 것 같아요.

 

대표팀이 김연경 선수에게 너무 의지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어요. 이런 상황이 불안할 것 같기도 한데요. 어떤가요?


불안한 것보다 걱정이 많이 돼요. 그런데 선배 언니들이 ‘어떻게든 돌아간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없어도 팀이 돌아갈 거라는 생각은 드는데요. 많은 선수들이 조금 더 강한 마인드를 가지고, 우리가 해내야 된다는 걸 생각하고 뛰어야 한다고 봐요. 어떻게 보면 지금 제가 대표팀에 많이 치중하고 있지만, 후배들도 저만큼 생각하고 준비하고 연습한다면 그런 선수들이 모여서 좋은 팀을 만들 것 같아요. 한 명의 잘하는 선수가 아니라 모든 선수들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한 팀, 정말 ONE TEAM을 만들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잘해낼 수 있지 않을까 싶고요. 걱정이 되면서도 기대가 되기도 합니다.

 

후배들에게는 어떤 선배예요? 엄한 편인가요?


엄할 때는 엄하고, 프리할 때는 너무 프리한 것 같아요. 그런데 확실히 후배들이 불편해해요. 밥 먹을 때도 근처에 안 오려고 하고, 그래서 제 옆자리는 맨날 비어요. 제가 먼저 앉으면 먼 자리부터 앉기 시작해요(웃음). 그래서 제일 늦게 온 아이는 ‘아, 옆에 앉아야 되네’ 하고 터벅터벅 오는 느낌이에요. 저를 너무 불편해 하는 것 같아요.

 

서운하세요?


가끔 서운하기도 하더라고요. 그래서 아이들한테 이야기해요. 옆에 앉으라고요. 그러면 어두운 표정으로 ‘네’ 하고 오는데, 그런 거 보면서 ‘이야기하면 안 되겠다’ 생각해요. 제 옆에는 항상 친구나 한두 살 어린 친구들이 와요. 그래도 가까운 사이니까요.

 

나이 차도 중요한 것 같기는 해요.


네, 너무 나이가 많이 차이 나면 불편하더라고요.

 

대표팀에서 가장 어린 선수가 몇 살이죠?


스물하나인가 둘인가, 그럴 거예요.

 

7~8살 정도 차이가 나네요. 어려워할 법도 한데요(웃음).


아이들이 저한테 말을 잘 못해요.

 

대표팀을 떠나기 전에 ‘이건 꼭 후배들한테 가르쳐주고 싶다’고 생각하는 건 뭐예요?


지금도 조금씩 바꾸려고 하는 것 같아요. 경기장에서 미팅을 할 때 가끔 후배들한테 주도해 보라고 이야기해요. 말하는 방식이나 리드하는 방식을 이야기해주려고요. 후배들을 이끌기 위해서 해야 되는 부분들, 경기가 잘 안 풀릴 때 파이팅을 모으기 위해서 해야 할 이야기들, 그런 것들도 말해주고요. 제가 한국과 유럽에서 경기하면서 배웠던 것들을 조금씩 대표팀에서도 보여주려고 하는 것 같아요.

 

은퇴 이후도 생각하실 것 같아요. 책에 적으신 내용을 보면, 하고 싶은 일이 정말 많은 것 같아요.


모르겠어요, 뭘 하고 싶은지. 미국에 가서 배구에 대해 많이 배우고 공부를 더 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요. 행정 쪽으로 일하는 게 맞는 건지, 아니면 지도자 쪽으로 나가서 선수들을 가르치는 게 맞는 건지, 여러 방향 중에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어요. (언젠가) 정해지겠죠.

 

올해 처음으로 ‘김연경컵 유소년 배구대회’가 열렸어요.


네,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할 생각이고요. 잘 되면 좋겠어요. 결국 배구가 잘 되려면 저변 확대가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유소년 선수들이 많이 나올 수 있는 대회를 개최해주자는 생각을 했고요. 배구를 재밌게 가르쳐줄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배구가 정말 재밌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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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정상에서 떨어지겠죠


본인에게 팩트 폭행을 잘 하신다고요(웃음).


상대방한테도 많이 해요(웃음).

 

팩트 폭격기이시군요(웃음).


완전 죽음이죠(웃음).

 

스스로를 다독여줘야 할 때는 어떻게 하세요?


‘그래도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겠지’, ‘오늘만 날이 아니잖아, 다음에 또 기회가 있으니까 그때 만회하자’, 이런 식으로 생각하죠.

 

주로 경기 성적이 좋지 않을 때인가요?


진짜 말도 안 되게 못했을 때죠(웃음). 그때는 저한테 팩트 공격을 하면 안 돼요. 그런데 팩트 공격을 하기는 해요(웃음). 시합 끝나고 나서 ‘미쳤어, 그때는 이렇게 했었어야 했는데’ 생각하죠. 그러다가도 몇 시간 지나고 나면 ‘그래도 열심히 했으니까’ 하고 위로해요.

 

세계 배구 무대의 정상에 서 계시잖아요. 그만큼 불안할 것 같기도 한데요. 어떤가요?


이런 상태를 죽을 때까지 유지하는 건 힘든 일이니까요. 언젠가는 떨어지는 게 맞는 건데요. 그런 시점이 왔을 때 한 번에 확 무너지느냐, 아니면 조금씩 내려오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최고점에 머무르는 시기가 얼마나 유지 되느냐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고요. 최대한 유지하려고 발악을 하겠죠. 하다가 안 되면 조금씩 내려오려고 노력하는 거고요. 불안하기도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냥 제가 할 수 있는 걸 최대한 노력하는 게 맞다고 생각하고요. 그렇게 했는데도 안 된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할 수 있을 때 최대한 노력하자는 생각을 하곤 하죠.

 

상하이 구단에 합류하신 후의 일정은 어떻게 되나요?


가서 메디컬 테스트도 받고요. 선수들하고 처음 만나는 거니까 인사도 나누고, 앞으로 살게 될 집도 구경하면서 적응을 시작할 것 같아요. 연습하고 적응하면서 10월 28일에 개막전을 하고요. 그때부터 중국 리그가 시작될 것 같습니다.

 

한동안 한국에서 뵐 수 없겠군요.


네, 그럴 거예요. 플레이오프에 진출 못하게 되면 빨리 돌아오기는 할 텐데요. 결승까지 간다면 내년 3월 말이나 4월 초쯤 돌아올 것 같아요.

 

터키에 계실 때 팬클럽이 직접 찾아와서 응원해 주셨다면서요? 


많이 왔죠. 중국은 가까우니까 더 많이 오실 것 같아요.

 

팬들이 중국 진출을 무척 좋아했을 것 같아요.


저한테 다 중국 가라고 했어요(웃음). 물론 그것 때문에 결정한 건 아니지만, 그렇게 말씀을 많이 해주시더라고요. 무조건 중국 가라고요(웃음).

 

책에 김연경 선수 사진이 많이 실려 있어요. 과거 사진도 아낌없이 공개하셨고요. 팬들에게는 ‘굿즈’가 될지도 모르겠는데요. 소장각이죠(웃음).


이상한 사진도 있어요. 어떤 건 안 넣고 싶었는데 괜찮다고 그래서 넣었는데... 이게 뭐예요(웃음). 한복 입은 사진 보면 이건 뭐 강시도 아니고, 미치겄네(웃음).

 

표지 사진은 직접 고르셨어요?


원래는 얌전한 사진으로 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팬들이 ‘뭐냐, 이게’, ‘장난하냐’ 그래가지고(웃음), 출판사 대표님이 안 되겠다고 하시면서 바꾸셨어요. 그런데 지금 사진을 다들 마음에 들어 하시더라고요. 저도 마음에 들었어요.

 

책에 실린 사진 중에 가장 좋아하는 사진은 뭔가요?


저는 올림픽 때 사진을 좋아해요. 올림픽 예선전 사진하고, 리우올림픽 때 사진도 좋아요.


 

 

아직 끝이 아니다김연경 저 | 가연
한국 여자배구 사상 최고의 왼쪽 공격수 김연경이 주목받지 못했던 유년시절을 이겨내고 일본과 터키에 진출하여 세계를 사로잡은 이야기를 신간 [아직 끝나지 않았다]에 담아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박상 “음악은 삶이 그냥 웃기고 끝나는 게 아니라는 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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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은 오랫동안 ‘웃기는 소설가’였다. “꼭 알아들을 수 있는 말만 해? 이 사회에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이 뭐가 있어?”(『이원식 씨의 타격폼』중)라며 무분별한 농담으로 가득한 『말이 되냐』『15번 진짜 안와』『예테보리 쌍쌍바』같은 소설을 써냈다. 여러 종류의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살다가 비행기 특가가 뜨면 훌쩍 여행을 떠났고, 가서 특별한 뭔가를 하지는 않았다.


소설가 박상의 첫 번째 에세이집 『사랑은 달아서 끈적한 것』은 음악에 대한 열정과 집념, 음악이 끼어든 일상을 다뤘다. 농담은 여전하지만 조금 더 진중해졌다. 그의 말마따나 ‘격’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이해해도 좋을 것 같다. 웃기는 글을 쓴다고 웃기는 사람은 아닌데, 어느 정도 웃긴 건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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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현실적 유머


작가정신의 ‘슬로북’ 에세이 시리즈 두 번째 책으로 나왔어요. ‘자신의 속도를 잃어버린 현대인들에게 능동적인 삶의 방식이자 일상의 혁명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획된 에세이 시리즈’라고 설명이 붙어 있는데요.

 

어떤 측면에서 보면 ‘슬로우’가 맞죠. 남들은 열심히 출근하고 일하는데 혼자 집에서 글 쓰거나 여행 가거나 하니까요. 여행을 떠난다고 해도 계획도 없고 가서 맥주나 먹고요. 그렇게 살다 보니까 아르바이트를 할 때는 치명적으로 바쁘고 가장 빨라야 하는 아르바이트만 해요.


제목은 마음에 들었나요?


가제는 <채널예스>에서 연재하던 칼럼 그대로 ‘박상의 턴테이블’이었는데 사람들이 박상이 누군지도 모르고 너무 밋밋하다고 해서 칼럼 제목 중에 골랐어요. 제목에 사랑이 안 들어갔으면 했는데 다른 제목은 고를 게 없더라고요. ‘사막의 방광 고비’ 같은 걸 제목으로 할 수는 없으니까요. 제가 낸 책 중에는 가장 평범한 제목이 됐지만 마음에 들어요.


<채널예스> 에서 연재하던 칼럼이 묶였어요. 당시 갑자기 연재를 중단한 이유가 있나요?


그때 엄청 우울했어요. 포르투갈에서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갑자기 눈물이 나는 거예요. 아무 것도 못 쓰겠고 음악도 듣기 싫고요. 음악을 듣기 싫으면 도대체 음악 칼럼을 어떻게 쓰나 싶었죠.


고정적인 칼럼 수입이 있어도 밥벌이는 거의 안 되잖아요.


안 되죠. 칼럼 쓸 때도 계속 아르바이트했었어요.


최근에는 무슨 아르바이트를 했나요?


인천 살 때는 인천공항에서 비행기 띄우는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육체적으로 엄청 힘들더라고요. 여행용 가방이 2,30 킬로그램 되잖아요. 그걸 사람들이 낮은 화물칸 안에서 허리도 못 펴고 옮기거든요. 또 다른 일로는 오뎅집에서 카운터 보면서 오뎅 팔기도 하고요.


일자리는 주로 어떻게 잡아요?


써주는 데를 가요. 장발에 수염 기르고 나이 있는 사람은 웬만하면 안 뽑아주니까요. 굉장히 급하게 사람을 찾거나 아무도 지원을 안 하는 곳으로 가죠. 주로 몸을 쓰는 스타일인데, 이제 몸도 안 되겠어요. 가장 최근에 한 일이 헬스클럽에서 수건이랑 운동복을 빨래 업체에 가져다주는 일이었거든요. 젖은 빨래를 떠메려니까 이제는 허리가 안 되겠더라고요. 그래서 되게 슬펐어요. 이제 육체노동도 못 하면 뭐 해 먹고 사나, 그런 생각을 했죠.


항상 웃기고 싶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상황이 힘들 때도 있어요. 웃음이 안 나올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못 웃기는 거죠. 할 수 없어요. 그런데 찾아보면 한 줄기 웃길 게 있긴 있어요. 옛날에는 절대 안 웃겼던 게 갑자기 나이 드니까 웃기다는 생각이 드는 것들도 있고요.


웃기려고 시도하는 순간 안 웃길 때가 많아요.


최근에 가장 웃겼던 순간은 근엄한 얼굴이 되어버린 50대 아저씨와 우연히 술을 같이 먹었을 때였어요. 이 사람이 처음부터 끝까지 웃겨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계속 실패하면서도 어떻게든 웃기려 하는 게 되게 웃기더라고요. 저렇게는 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짠한 웃음이었어요. 계속 공부하고 연구하면서 아재 개그의 길로는 빠지지 말아야죠. 다행히 이번 책에서는 서너 군데는 웃긴 것 같아요.


그 정도면 만족하나요?


한 책에서 한 번만 웃기면 된다는 주의라, 세 번 웃겼으면 세 번 만족합니다.


진지함보다는 유머가 박상의 세계관에서 더 중요할 것 같은데요.


덜 생각하지만 생각 안 할 수가 없죠. 현실이니까요. 유머는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해요. 현실과 유머의 균형이 잘 맞으면 좋은데 현실 쪽에 중심을 맞추면 너무 진지해지고, 그럼 또 안 웃겨지고요.


‘진지할 땐 진지해야겠지만 그건 일상의 앱들을 돌리는 힘이고, 충전은 유머로 해줘야 한다고 본다(265쪽)’ 고 하셨어요. 자신의 유머로 충전이 되나요?


자기 유머로는 충전이 안 되고 계속 뭔가 다른 걸 봐야죠. 슬랩스틱 코미디는 의외의 상황을 되게 많이 만들거든요. 저게 왜 나오지 싶은 장면이 참 웃겨요. <총알탄 사나이> 식 개그라든가 슬랩스틱 코미디를 정말 좋아하는데 주성치가 명맥을 잇고 나서는 끝났죠. 이제는 다른 시대의 유머가 가야 하나 봐요. 유머도 패션에서 복고가 돌아오듯이 한 번 돌아올까 싶기도 하고요.


개그 프로그램을 보면 말이 빨라지기도 했어요.


맞아요. 매체도 달라지고요. 글자로 어떻게 웃겨야 할지, 사실 난감해요.


왜 웃기려고 하시나요?


유머는 제 존재성의 전부예요. 남을 웃기고 싶다는 게 아니라 제 존재를 관찰하는 신중한 태도입니다. 제 인생은 황망하고, 살려고 발버둥 칠수록 헛웃음이 나오더라고요. 나는, 살다가, 뭘 하든, 죽는다. 이것보다 웃긴 건 없지 않나요? 그래서 열심히 산다는 건 열심히 웃기는 것과 같다고 봅니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 웃기고 싶어요.


기존의 소설보다는 이번 에세이가 더 진지해지지 않았나 싶어요.


맞아요. 어쨌든 음악 칼럼이었으니 음악 이야기를 해야 하고, 음악 이야기를 하면서 웃길 순 없잖아요. 어떤 가수가 노래 부르면서 이런 표정을 지으면 웃기더라, 이렇게 쓸 순 없으니까요. 반은 진지하게 써서 균형이 맞았다고 봐요. 너무 장난스러운 것도 허무해지더라고요. 엄격하고 진중한 게 싫어서 반대급부로 웃기려고 하고 가벼우려고 하는 것도 그렇게 잘하는 것 같진 않아요. 진지함의 반대말이 유머는 아닌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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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우리 존재를 영원히 남길 방식


음악은 주로 어떤 때 들으세요?


아침에 침대에서 눈 떴을 때. 음악을 틀어야 일어날 수 있어요. 알람이 울림과 동시에 라디오를 틀고 음악을 들으면 하루가 시작되는 느낌이 들죠. 술 마실 때도 음악을 들어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다루긴 했지만, 아무래도 록이죠?


아무래도 록이죠. 최신곡이라고 할 법한 가요를 넣긴 했지만 양념으로 하나 껴 넣었다는 소리를 들을까 봐 처음에는 걱정 많이 했어요. 너무 시의성이 없나 해서요. 요새 다른 장르의 음악을 많이 들어요. 서서히 재즈를 들을 나이인 것 같아서 재즈도 시도를 하고, 라틴 음악이 좋아서 찾아 듣고 있어요.


좋아하는 뮤지션이 있나요?


요새 콜롬비아 국민가수인 카를로스 비베스가 좋아요. 나이 들어 보이는 음악인데 라틴 특유의 리듬이 있어서 듣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져요. 기분 안 좋을 때, 글 쓸 때는 늘 클래식이죠. 틀어놓고 듣다가 베토벤이 나오면 글을 쓴다는 조건반사를 정해 놨어요. 누군가 저기서 베토벤 곡을 열심히 연주하면, 저는 여기서 열심히 키보드를 쳐야 하는 거죠.


음악을 규정하는 ‘음악론’도 에세이에 많이 보여요.


이미 뻔하게 있었던 견해들이에요. 그냥 한번 복습하는 거죠. 저만의 새로운 음악에 대한 견해는 못 만들겠더라고요. 음악은 사람들의 삶이 그냥 웃기고 끝나는 존재가 아니라는 증명 중에서 가장 간절한 요소 같아요. 우리가 밥만 먹고 똥만 싸는 존재가 아니라는 가장 가까운 아우성이고, 아마도 우리 존재를 영원히 남길 방식 중에서 가장 세련된 똥 같아요. 플라스틱이나 종교적 비이성적 광신처럼 안 썩는 똥에 비하면 그리 나쁘진 않잖아요. 아무튼 현실로 돌아오면 아무 의미가 없는 것 같지만 세상에서 음악과 춤과 담배연기만 세련될 뿐이죠. 마약은 불법이고요.


여행 이야기가 많이 나와요. 음악을 규정한 문장에 음악 대신 여행을 넣어도 되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같은 맥락이에요. 둘 다 어쨌든 붙어서 가요. 집에서는 눈뜰 때와 술 먹을 때 말고는 안 듣지만, 여행 가서는 이상하게 계속 음악을 듣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늘 들었던 음악인데도 비행기 안, 기차 안에서는 더 좋고 새롭게 들리고요. 음악이 여행을 증폭시켜주는 것 같아요.


돈이 없는 작가가 이렇게 여행을 떠난다니 부럽다는 책 리뷰도 있었어요.


부러우면 저처럼 빚이 많아져야 해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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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릴 수 없는 꿈


요새 쓰는 소설이 있나요?


친구들이 제발 그 제목으로 쓰지 말라고는 하는데, 가제가 ‘삼탈리아 빈티지’예요. 경제관부터 다른 가상의 국가가 배경이에요. 시인이 사회에서 가장 고위직이고 가장 높은 가상 세계가 있고, 현실 세계에서는 한 남자가 한 여자를 통해서 인생을 배워가는 이야기를 쓰고 있어요. 성장해가는 남자가 결국 가상의 나라에 가는 이야기로 조금씩 쓰는데, 이런 이야기는 처음 써봐서 너무 어려워요.


다른 인터뷰에서 여성 캐릭터를 잘 못 쓰겠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여성인 주인공이 세 명이나 나와야 하는데 거기에서 조금 막혀 있어요. 굳이 여자가 남자를 키우는 역할을 해준다는 느낌을 줘도 안 될 것 같고요. 현명한 어떤 방법을 내야 할 텐데 그게 안 돼서 삼탈리아 이야기만 계속 쓰고 있어요.


소설을 표현하면서 ‘버릴 수 없는 꿈’이라고 하신 적이 있죠.


여전해요. 지금은 친구네 라면 가게에서 일하는데, 사실 주방장으로 가기로 했다가 열두 시간을 근무해야 하다 보니 도저히 소설을 쓸 시간이 없어요. 결국 교육 다 받아놓고 친구한테 못 한다고 했어요. 소설 쓰고 싶다니까 그럴 줄 알았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래도 어쩔 수 없었어요.


실험적이라는 평을 많이 들어 왔어요. 이제는 ‘격을 알아야겠다’는 말을 하신 적이 있는데, 격이라는 건 뭔가요?


너무 없어 보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20대부터 지난 삶을 쭉 돌아봐도 아무것도 남는 게 없다는 생각을 하면 갑자기 허탈해져요. 어떤 사람이 격을 가지고 한 20년 작업하면 그 사람이 남긴 건 꽤 많을 텐데, 저는 아무것도 안 하고 가볍게 놀기만 했던 사람처럼 보이나 싶기도 하고요. 그래서 아직도 옥탑방에 살며 아직도 빚이 많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과 결부되더라고요.


‘소설가는 짜임새 있게 구상해야 되는데 내 인생은 반대인 것 같다’는 표현이 있었어요.


워낙 실험 정신을 좋아해서 남들이 안 가는 데를 가보는 걸 참 좋아했던 거죠. 그런데 남들이 안 가는 이유가 있는 것 같더라고요. 위험한 데였구나, 갔는데 아무것도 없는 데였구나. 아, 그래서 안 갔구나. (웃음)

그래도 시도했다는 의의가 있잖아요.


심심하지 않았다는 의의는 있었죠. 남들보다 재미있게 살았던 것 같아요.


독자들이 그 재미를 알아줬을 때 뿌듯하지 않나요?


뿌듯해요. 재미 전달을 잘 했는지는 모르겠어요.


야구의 경험은 『이원식 씨의 타격폼』말이 되냐』, 락밴드를 했던 경험은 『15번 진짜 안와』로 나왔어요. 스스로 생각할 때 경험론자에 가깝나요?


능력치에 편파적인 한계가 있어서 몸은 돈 버는 데 쓰고 머리는 글 쓰는 데 써요. 그래서 머리 쓰는 일을 하면 상상력이 고갈되더라고요. 제 소설 속 인물들도 머리 쓰는 일을 잘 안 해요. 웃긴다는 게 일종의 두뇌 오류라면 이성이 잘 작동될 때 웃기기 힘들거든요. 반면 몸은 물만 먹어도 살이 찌거나 아무 걸림돌이 없는 데서 갑자기 자빠지거나 하면서 웃기는 요소를 만들기 쉽죠. 어떤 문장의 생명력은 경험을 기반으로 했을 때 더욱 생생해지더라고요. 그래서 몸으로 경험한 웃긴 점들을 수집하는 데 집중했어요. 그런 점에서는 경험론자가 맞네요. 상상력이 부족하다는 콤플렉스를 이렇게 방어해도 되나 모르겠지만요.


음악 하는 것과 소설 쓰는 걸 비교한다면 더 재밌는 쪽은요?


소설이 훨씬 재밌어요. 음악은 소설로 치자면 문장도 안 되어 있고 구조도 어떻게 짤지 모르는데 글자만 싸질러 놓는 실력이라 제발 남들이 몰랐으면 좋을 법한 취미예요. 소설은 쓰면 쓸수록 더 재밌는 것 같아요. 다른 프로들이 발전해 가는 모습을 보면 저도 따라잡고 싶고 맨 앞에 서고 싶기도 하고요.

다른 에세이를 써보고 싶은 생각이 있나요?


본격적으로 여행기를 써볼까 싶기도 해요. 포르투갈이나 베트남 여행기 등이요. 병행해서 쓰는데, 갑자기 라면 가게에서 아르바이트하게 돼서 언제 내게 될지는 모르겠어요.


마지막으로 ‘박상 마니아’들에게 덕담을 해주신다면.


육아나 직장생활 등 다른 일이 바쁘더라도 음악은 손쉽게 옆에 끼고 있을 수 있으니까요.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을 계속 좋아하면서 리얼한 인생만이 아닌 동떨어진 다른 분야들의 끈을 놓지 않았으면 합니다. 음악, 여행, 오뎅, 박상 에세이 등등 비현실적인 것들을 통해 조금이라도 궁서체인 현실을 잠시 릴랙스 할 수 있는 날이 되셨으면 해요. 그리고 부디 하루에 즐거운 농담이 백 번씩 생각나시길!


 

 

사랑은 달아서 끈적한 것박상 저 | 작가정신
“세상에나, 사랑 없이 사람이 어떻게 산단 말인가” 음악과 여행과 사랑과 추억의 감성충전 앙상블 소설가 박상의 ‘본격 뮤직 에쎄-이’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제이원 “등장인물은 모두 저의 조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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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팔기’, ‘박치기’, ‘말더듬이’, ‘아이씨’.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름들이 등장한다. 힙합이라는 마당 안에서 만나는 친구들이다. 이들은 어른들은 관심 두지 않는 서로의 놀라운 능력을 알아본다. 마음속에 품은 진짜 이야기를 랩으로 풀어낸다. “너만 믿어/ 정말 착해/ 담엔 더 잘해/ 완벽하게/ 칭친 격려로/ 날 옭아맬/ 생각 마 난/ 남이나/ 만족시키려/ 사는 게/ 아냐 난”이라며 세상에 펀치를 날리고, “잘못도 하고/ 망신도 당하고/ 후회도 하면서/ 깨달을 거야/ 내가 뭘 할지/ 뭘 좋아하는지/ 뭘 싫어하는지/ 나 스스로”라며 당당히 독립을 선언한다. 힙합을 통해 자유로움을 찾아가는 어린이들의 유쾌한 성장기 『4GO뭉치』는 네 명의 어린이가 ‘4GO뭉치’라는 힙합 크루를 이루고 세상 앞에 당당히 서게 되는 이야기를 담았다.


제이원이라는 이름을 쓴 『4GO뭉치』의 작가는 사실 『좋은 돈, 나쁜 돈, 이상한 돈』으로 제19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기획 부문 대상을 수상한 이력이 있는 권재원 작가다. 안 하고는 견딜 수 없는 것들이 오면 그것을 몰입해서 한다는 작가, 다양한 시도를, 거리낌 없이 몰입해 하는 작가에게서 ‘4GO뭉치’의 자유로움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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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장난이 좋았어요


어린이들의 힙합 성장기, 새롭고 흥미로운 내용인데요. 원래 힙합을 좋아하셨어요?

 

전혀 몰랐어요. 제가 <무한도전>을 보거든요.(웃음) 거기서 정준하 씨가 <쇼미더머니>에 나가는 미션을 했잖아요. 그냥 ‘완전 웃기겠다’ 생각하고 봤는데요. 심사평이 이해가 안 됐어요. 노래는 들으면 잘한 건지 어떤 건지 알겠는데 이건 안 그랬어요. 다 비슷해 보이는데 누구는 떨어지고 누구는 붙으니까 그게 아예 납득이 안 되더라고요. 잘하는 기준이 뭔지 알고 싶어서 다른 외국 랩퍼들 영상도 찾아보고 심사평도 찾아봤어요. 그러면서 흥미를 느꼈죠.

 

그때(2016년) <쇼미더머니>도 처음 보신 거고요?


네, 실은 오디션도 준비했었어요.(웃음) 나는 단어를 많이 아니까 승부를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더라고요. 상금이 1억이라는데 제가 빚이 많으니까 그걸로 갚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진짜 열심히 준비했죠. 책 쓸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랩 학원은 너무 비싸서 독학을 하려고 힙합 이론서를 보면서 공부했죠. 그러다 예선 통과를 하려면 나보다 못하는 사람을 앞에 세워서 상대적 잘해 보이게 하자는 전략을 짰어요. 주변 사람들을 설득하기 시작했죠. 창비의 한 편집자에게도 같이 오디션에 나가자고 전화를 했거든요. 랩 쓴 것도 보여주고, 준비하고 있다고 했더니 그 편집자 분이 너무 웃으면서 자기는 그게 더 웃긴다는 거예요. 함께 오디션에 나가지는 않겠지만 그 이야기를 책을 써보면 어떻겠느냐고요.

 

오디션 우승보다 책 출판이 더 확률도 높잖아요.(웃음)


편집자도 그 이야기를 했어요.(웃음) 그리고 오디션 준비를 하려고 랩을 계속 썼으니까요. 그걸 살짝 바꿔서 책을 쓰게 된 거예요.

 

책으로 계획된 게 아니었군요? 작가의 말에서 ‘더 많은 어린이가 랩을 즐길 수 있도록’ 책을 쓰겠다 결심했다고 했거든요. 특별한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편집자가 책을 쓰라고 해서요.(웃음) 그게 더 가능성이 있을 것 같다고 해서 쓴 거예요.

 

그럼 질문을 약간 바꿔볼게요. 힙합에 매력을 느끼게 된 이유는 뭐였어요?


말장난이 좋았어요. 저는 어렸을 때 언어를 제대로 배우지 못했어요. 여러 나라에서 짧게 지냈거든요. 지낸 나라도 다 다른 언어를 썼고요. 초등학교 직전에 한국에 들어와 정착하게 됐는데요. 이전까지는 저한테 언어가 별로 없었던 거죠. 엄마한테 들은 이야기인데요. 한 번은 친구들이 저를 집에 데려다주면서 제가 말을 못하느냐고 물었대요. 학교에서 몇 달 동안 한 마디도 안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부모님이 저를 웅변학원에 보내기도 하셨죠. 빨리 말을 배워야 하니까 사전을 달달달 외웠거든요. 제게는 그래서 단어가 사전처럼 분류가 되어 있어요. 글씨가 모양으로 보이기도 하고요. 패턴처럼 말이에요. 그런데 랩이 그 패턴을 많이 사용하잖아요. 굉장히 재미있었어요.

 

좋은 랩이라는 게 방금 말씀하신 이른바 말장난을 잘한 랩을 가리키기도 하잖아요.


같은 발음인데 뜻이 다른 것 있잖아요. 그런 걸 쓰는 것도 굉장히 재미있어요. 또 사람들이 행동하는 것도 좋았죠. 다른 사람은 별로 신경 안 쓰고,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자세가 있잖아요. 그게 엄청 좋았어요. 저는 굉장히 자만한 사람이고요. 기본적으로 그걸 고칠 생각이 없거든요. 그런데 지적을 많이 받았죠. 어떻게 인간이 그렇게 거만하냐고요. 그냥 그럴 만하니까 그런 거라고 생각했는데 힙합은 그게 허용되는 분위기잖아요. 그래서 되게 좋았어요.

 

그 해방감 때문에 힙합에 빠지는 분도 많은 것 같아요.


저희 부모님은 인성 교육을 엄청 강조하셨었는데요. 그 교육은 제게는 헛것이었어요. 교육을 따르지 않았을 때 그게 제 잘못이라고 비난을 받기도 했거든요. 그렇지만 ‘그 사람들도 만만치 않아’(웃음)라는 생각을 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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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친구들은 다 저예요


책에도 어른들의 불합리를 의아해하는 장면이 나오죠. ‘“뭐든 열심히만 하면 돼.”라고 말하며 마음이 넓은 척하면서 막상 아이씨가 어른들이 원하지 않는 일(게임이나 땅파기)을 열심히 하면 시간 낭비하지 말라고 한다.’는 대목인데요. 이것은 작가의 생각이기도 했군요.


네, 저는 부모님을 별로 안 좋아해요. 사이가 나쁘진 않은데 부모님과 있을 땐 제 모습을 완전히 숨기죠. 그 모습을 드러내면 바로 시정하려고 할 것을 아니까요. 때문에 자꾸 거리를 두게 되고 그런 건데요. 그러니까 책에 등장하는 이 친구들은 다 저예요. 나의 이런저런 모습이죠. 한눈팔기는 현재의 저고요. 박치기는 제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판타지의 저죠. 말더듬이도 어렸을 때 말 때문에 힘들었던 저고, 아이씨도 자기를 완전히 감춘 어린 시절의 저예요. 그렇게 이 친구들이 나온 것 같아요.

 

실제로 캐릭터의 배경이나 변화가 꼭 힙합을 하는 맥락이 아니더라도 흥미로웠는데요. 그것이 다 작가의 어떤 면을 갖고 있는 것이었다니 더 재미있게 들리네요.


그래서 편하게 썼던 것 같아요. 이러한 상황에서 이 친구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정확하게 제가 실제로 처했던 상황을 떠올려보면 나오는 것이었거든요. ‘그때 그들이 이렇게 했었지, 그때 난 이렇게 생각했었지’하는 식이었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자녀가 둘 있는데요. 아이들을 보면서도 상기하게 돼요. 저의 어린 시절을 아이들을 통해 다시 한 번 떠올리게 되는 거죠.

 

내가 좋아하지 않았던 어른의 어떤 면을 보여주지 않으려고 노력하게 된다는 의미인가요?


그런 것도 있고요. 아이들의 반응을 보고 ‘맞아, 나도 어릴 때 저런 반응을 했었어’라고 생각하게 되는 거예요. 나름대로는(웃음) 아이들과 친한 편이죠. 제 자신이 그렇게 제대로 어른이 되지도 않았고, 그러려는 의지도 기본적으로는 없으니까요. 저를 가장 가까이서 봐온 남편은 제가 초등학생에서 그냥 멈춘 것 같다고 해요. 지식만 확장이 되고, 그 외의 것들은 멈춰 있다고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하지만 그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 거죠.

 

나쁘지 않아요.


문제는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그 문제는 주변 사람들만 불편하지 저는 별로 안 불편한 거거든요. 가령 악의를 품으면 그 악의를 그대로 드러내지는 말아야 하잖아요. 그런데 저는 악의를 품으면 굉장히 잘 드러내는 편이에요. 바로 그 자리에서 상대방한테 드러내거든요. 그런 것들이 일단은 문제가 되죠. 제 장점에 대한 반작용 같은 거겠죠. 하지만 편한 것도 있어요. 상대방에서 저를 그냥 잘라버려요. 그러면 서로 스트레스를 안 받는 거죠. 그냥 대충 사는(웃음) 거예요.

 

‘제대로 어른’이라는 표현을 쓰셨는데요. 평균치, 타인의 시선 등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사회이기 때문에 그 말이 색다르게 들리는 부분도 있어요.


저는 평균이나 타인의 기준을 강요받는다고 그것을 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닌 것 같아요. 뇌에 그런 부분이 없는 것 같아요. 안 만들어졌나 봐요.

 

다시 상기하면 작가의 그런 면이 힙합이라는 장르와 굉장히 잘 어울리는군요.


제가 랩을 잘하는 건 절대 아니지만, 좋았어요. 그냥 편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왜 이렇게 늦게 만났을까요? 사실 힙합은 굉장히 대중적인 장르고, <쇼미더머니> 같은 프로그램도 일찍부터 화제였는데요.


음악을 싫어하거든요. 엄청 싫어해요. 잘 듣지도 않아요. 바이올린을 십 몇 년 째 하고 있는데요. 음악이 너무 싫고 이해가 안 됐기 때문에 시작한 거예요. 음악을 이해하는 게 어떤 느낌인지 항상 궁금해요. 해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했는데 계속 모르고, 그러니까 더 궁금하고 그래요. 이만큼 했는데 계속 모르면 언젠가 알 수는 있을까, 그게 또 궁금하니까 계속 하게 되고요. 지금은 약간 이해가 된 정도예요. 음악이 뭔지 이해되기 시작했고, 아직 좋아하진 않아요. 딱히 좋아하게 될 것 같지 않기도 하지만요. 이해가 되니까 음악 하는 사람들의 말에 공감할 수 있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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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GO뭉치』, 135쪽

 

안 하고는 견딜 수 없으니까


 

아이씨의 영어랩도 눈길이 가요. 잘 만들어진 랩이에요.


어릴 때 계속 외국에서 지내다가 한국에 들어왔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영어가 불편하지는 않아요. 그런 이유도 있고요. 또 아이씨는 다른 친구들과는 조금 다르니까 언어를 다르게 써서 다른 모습을 더 부각시킨 이유도 있죠. 그리고 아이씨는 어차피 여기에 있다가 외국으로 나갈 아이니까요. 미국으로 보내버렸잖아요.(웃음) 그런 애가 다른 걸 하는 게 낫겠다고 생각한 거예요.

 

특이하게도 등장인물들에게는 랩네임 외에 이름은 없어요. 주인공 한눈팔기(권재원)를 제외하고 말이에요. 게다가 한눈팔기의 이름은 작가님 본명이잖아요. 이름을 지어주지 않은 이유가 있나요?


굳이 본명을 밝힐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어렸을 때를 생각해봐도 그런데요. 친구들이랑 놀 때 다 그냥 ‘야!’라고 불렀던 것 같아요. 별명도 아니고 그냥 ‘야’였죠. 별로 누군가의 이름을 부른 기억이 없어요. 게다가 저한테는 이름이 그다지 의미가 크지 않거든요. 저희 아이들은 쌍둥이라서 그렇지만 한 명을 지칭할 때를 제외하고는 그냥 ‘야’라고 부르거든요. 사실 이름은 어쩌다가 남이 지어준 거잖아요. 어쩌다가 받아 걸린 게 이름인데 여기에 나온 이름은 스스로 지은 이름이에요. 그래서 받아 걸린 이름은 별로 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주인공에게 이름을 붙여준 이유는요?


자기애가 너무 강해서 그냥 넣고 싶어서 넣은 거예요.(웃음) 딱히 아무런 다른 중요한 이유는 없어요.

 

한편 한눈팔기, 말더듬이, 박치기, 아이씨 같은 이름들은 모두 개성 있고, 캐릭터와 잘 맞아요. 이름을 지으면서도 재미있었을 것 같아요.


그냥 이름이 먼저 떠오르면 캐릭터가 그 다음에 나왔어요. 그것 역시 일종의 말장난이었는데요. 저에게 말을 제대로 못했던 어린 시절이 있었잖아요. 그래서 말이 굉장히 중요했던 것 같아요. 말더듬이가 그런데요. 말을 더듬지만 그것에 개의치 않아요. 게다가 랩을 하죠. 그게 좋았어요. 말더듬이라는 말도 좋았고요.

 

말더듬이가 말을 더듬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완전히 큰 착각이다. 이 녀석은 말을 하지 않는다. 오로지 랩만 한다. 모든 말을 랩으로 승화시키는 것이다.

말더듬이는 아주 희한한 말까지 사용한다. 별의별 말이 말더듬이의 더듬이에 걸려들기 때문이다.(35쪽)

 

주인공 한눈팔기는 여자거든요. 중반 이후에 성별이 나오는데 실은 저도 아차 싶었던 부분이에요. 당연히 남자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대학 들어와서도 사람들이 저를 남자라고 생각했어요. 그때는 머리를 거의 밀고 다녔거든요. 도서관에 가면 티켓을 받았잖아요. 받아서 가보면 옆자리가 다 남자였어요. 목소리도 굵기 때문에 오해를 많이 받았죠. 폰팅이라고 있었어요. 마구잡이로 번호를 눌러서 전화통화를 하는 건데요. 가끔 여자에게 전화 와서 제 목소리를 듣고 마음에 든다고 하고 그랬어요. 여자라고 해도 믿지 않더라고요. 그런 경험이 많았어요. 남자로 오인 받는 경험인데요. 한눈팔기의 그 모습 역시 저인 거죠. 실제로 그런 차별적인 발언을 들으면 굉장히 분개하면서 대응했거든요. 완전히 저예요. 등장인물은 모두 저의 조각이에요.

 

눈에 띄는 문장이 있어요. 박치기가 소리를 만드는 이유에 대해 ‘안 하고는 견딜 수 없으니까 하는 것이다’라고 하는데요. 이 문장에서 일종의 자유로움 같은 게 느껴졌어요.


그 문장을 쓴 이유가 있어요. 저는 제 인생이 엄청 만족스럽거든요. 제가 하고 있는 게 좋아요. 그렇지만 이런 인생을 계획한 건 아니었죠. 이런 인생이 있는지 몰랐으니까 계획할 수도 없었죠. 그동안은 부모님이 당기는 대로 따라갔는데요. 더 좋은 걸 모른 척 할 수가 없었어요. 쫓을 수밖에 없었어요. 그건 그냥 그렇게 되어버린 거예요. 글을 쓸 때도 이게 좋을 것 같으니 쓰자, 가 아니라 머릿속에 생각이 쌓이면 그냥 쓰게 됐어요. 뭔가가 좋아지면 계속 그 생각이 머리에서 안 떠나잖아요. 가령 정말 예쁜 걸 봐요. 의지로 사지 않고 집에 왔지만 계속 그게 생각나서 결국은 얼마 뒤 그걸 사요. 그런 경험과 똑같은 거죠. 진짜 좋아하는 게 들어오면 안 하고는 견딜 수 없는 거예요.

 

하고 싶은 게 있어도 참고 견디는 이야기가 세상에는 더 많아요.

 

많이 듣는 말이 ‘시간만 충분히 되면 좋아하는 걸 좀 더 할 수 있을 텐데’라는 건데요. 시간이 남아도 과연 더 할까 싶어요. 지금 당신에게 그만큼만 의미가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해요. 진짜 좋았다면 다른 걸 계산하지 못하지 않을까 하는 거죠. 계산한다는 것이 이미 다른 걸 다 무시할 만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인 거잖아요. 물론 항상 그런 건 아니지만요. 시간이 없다는 걸 핑계 삼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그런 게 저는 많이 불편해요. 계속 아쉬워하는 것, 말이에요. 정말 하고 싶으면 애매하게 아쉬워하는 건 안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던 적이 있어요.

 

그런가 하면 안 하고는 견딜 수 없을 만큼 좋아하는 게 무언지 모르는 경우도 있는데요.


그럴 수 있죠, 저도 계속 몰랐어요. 서른까지는 좋아하는 게 없어서 다른 일을 잡다하게 했어요. 좋아하는 걸 모르는 건 잘못이 아니죠. 좋아하는 건 의지와는 별개로 선물처럼 오는 것 같아요. 제게는 글 쓰는 게 선물처럼 온 것이기도 한데요. 일종의 집요한 강박 같은 게 있거든요. 결과물을 내지 않으면 견딜 수 없어 하는 면이 있어요. 역시 성격이죠. 처음에 글을 쓸 때도 출판과는 상관없이 썼어요. 미술을 했었는데 수학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어요. 한 번 그 생각이 들어오니까 나오지 못하고 빠졌죠. 무모한 거 뻔히 아는데 쓰지 않을 수 없었던 거예요. 책이 안 나와도 일단 결과물을 봐야겠다고 생각했던 게 책을 쓴 시작이 됐죠. 계속 그런 식이었어요.

 

이전에는 없던 욕망이 뒤늦게 생겼다니 그것도 신기하네요. 생애주기에 따른 이유였을까요?


처음으로 돈을 안 벌기 시작했거든요. 할 게 없으니까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헌책방을 갔어요. ‘수학 이야기’ 같은 책을 사서 봤는데요. 우리 수학 교육에 문제가 있다고 하는데 그러면 내가 쓸 수 있는 여력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됐죠. 그래서 썼어요. 되게 우연히 쓴 건데 그때 쓰지 않았다면 뭘 했을지는 잘 모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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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는 당연하지 않은 것들


책으로 준비한 건 아니지만 책이 되고 난 후에 한 생각은 있을 것 같아요. 어떤 어린이에게 이 책이 다가갈 수 있을까요?


몰라요.(웃음) 그런 건 생각하지 않아요. 어린이 대상으로 책을 쓰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저한테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누가 읽는지는 염두에 두지 않아요. 그럴 수도 없는 게 누가 읽을지 어떻게 알겠어요? 그리고 누가 읽었을 때 이걸 어떻게 느낄 것인가, 역시 완전히 제 영역은 아니니까요.

 

그렇다면 나한테 말하는 것, 이것은 그동안 써온 책 모두에 해당하는 건가요?


그렇죠, 저는 약간 그런 식으로 써온 것 같아요. 어떤 지식 때문에 내가 움직였을 때 쓰는데요. 생각 같은 게 움직이면 그 지식이 책이 된 것 같아요. 공부하는 걸 좋아해요. 관심이 가면 어느 정도는 계속 공부하게 되는 것 같아요.

 

요즘 관심 두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도 궁금해요.


거짓말이에요. 이것 역시 ‘말’이죠. 말이 저한테는 당연한 게 아니어서 무척 중요해요. 기본적으로 편안한 모국어가 없는 상태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의미가 커요. 어떻게 보면 그래서 소위 말하는 상식 같은 것들이 들어오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말이 없으면 잘 형성이 안 되더라고요. 눈치, 분위기를 살피는, 동향파악, 같은 것. 저 사람들한테는 너무 당연한데 나한테는 당연하지 않은 것들이 많아요. 그래서 동음이의어, 말장난이 되게 좋게 다가왔던 것 같고요. 


마지막에 이야기의 막을 내린다면서 ‘일단 내린 거지, 결코 완전히 막을 내린 것이 아니다. 우리는 새로운 무대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잖아요. 다음도 준비하고 계신 건가요?


써놨어요. 그런데 창비에서 내줄지 안 내줄지 몰라서 그냥 갖고 있어요.(웃음) 이 책이 잘 되면 내줄 수 있을 텐데 아직은 알 수 없죠. 망하지 않아서 낼 수 있다고 하면 바로 원고는 보낼 수 있는 상태예요. 아이씨가 빠진 후 임시 멤버를 뽑는 게 다음 번 내용이에요. 잘 모르겠지만요.(웃음)


 


 

 

4GO뭉치J1 글 | 창비
“싫은 건 싫다고 말해, 마음껏 잘난 척해!” 힙합이 알려 주는 자기표현의 짜릿한 즐거움. 이야기의 비트에 빠지는 순간 단숨에 읽힌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글피 “만화가가 귀촌하기 쉽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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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가 부부인 김주영, 주태희는 글피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2010년 다음 웹툰에 <매지컬>로 데뷔, 이후 부침이 심한 웹툰계에서 꾸준한 팀 작업으로 〈레이어즈>〈라임 오딧세이〉 등의 작품을 냈다. ‘생계형 만화가’로 두 명이서 일해도 한 작품으로 원고료를 받으니 도시의 높은 물가는 항상 부담이었다. 번잡한 도시 생활에도 지칠 무렵, 둘은 귀촌을 결정하고 실제로 사는 내용을 『풀 뜯어먹는 소리』로 옮겼다.


도시가 붐비고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도시에 살던 사람들은 한 번쯤 귀촌을 고민한다. 하지만 도시가 아닌 곳에서 살아본 적이 없는 사람들에게 귀촌은 모험에 가깝다. 텃세가 심하다는데 어쩌지? 텃밭은 어떻게 가꾸나? 야생 동물은 없나?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에 감히 귀촌을 시도하지 못한다면, 천도복(주태희)과 치마요(김주영)이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읽으면서 상상해 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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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팟캐스트로 독자들을 만나셨다고 들었어요. 그 전에도 독자를 만난 적이 있나요?

 

김주영 : 아무래도 시골에 살다 보니까 지인이 아니면 저희를 아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동네에서 독자분을 딱 한 번 만난 적이 있는데, 정수기 AS 기사님이셨죠. 만화에서 보던 집이랑 정말 똑같이 생겼다고 하시더라고요. 너무 반가운 나머지 얼떨결에 아기들 육아용품이랑 빨래 쌓여있는 상태에서 만화에 나온 집이 맞다고 했어요.


농촌 생활에 관한 만화를 그리겠다는 기획서를 쓰는 내용부터 만화에 그대로 나와요.


주태희 : 처음에 편집부에서는 픽션을 많이 가미해서 가자고 했어요. 당시 다음 웹툰에 작가가 주인공인 일기 형식의 웹툰이 너무 많아서 그랬던 것 같아요. 안산에 살고 있었던 것도 서울로 배경이 바뀌고 여러 가지로 조정을 했죠.


김주영 : 생활툰에 가까운 일상툰을 생각했는데, 편집부에서는 판타지 같은 재미 요소를 넣고 싶어했었어요. 주인공이 작가가 아니었으면 했고, 시골에 할머니 할아버지만 있으니 캐릭터를 뽑을 만한 새로운 등장인물을 집어넣어 스토리 만화처럼 가면 어떨까 했는데, 아무래도 직접 겪은 경험을 설명하려고 하다 보니 일상툰이 아무래도 와닿고 저희도 캐릭터랑 동화가 되더라고요.


캐릭터가 원체 닮으셨어요.


주태희 : 일상툰이니만큼 비슷하게 그리고 싶었어요. 하지만 작업하다 보니 도저히 감정이입이 안 돼서, 술술 써 내려가기 위해 사실을 많이 집어넣었죠.


전작은 거의 판타지나 스토리 만화였어요. 일상툰이 새로운 도전이셨을 듯 한데요.


주태희 : 작품 세계가 바뀌다 보니까 그림체부터 다 바꿨어요. 이전에도 연필로 그려보는 등 도구를 바꿔보긴 했는데, 이번에는 아예 등신대가 달라져서 생소해 하시더라고요. 편집부에서도 여러 안을 냈을 때 이게 제일 좋다 해서 나온 그림체예요.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귀촌을 생각하는 분들에게 유용한 만화가 될 것 같습니다. 정보 전달도 염두에 두셨었나요?


김주영 : 처음에는 귀촌 판타지를 전파하면서 동시에 도시에서 살았을 때 느끼지 못하는 불편함을 알리고 싶었어요. 한국에 같이 살지만 지방 사는 사람은 도시 사는 사람과 차이가 있죠. 어떤 분은 ‘귀촌 안티 만화’라고 하기도 하시더라고요. (웃음) 좋았던 일 나빴던 일 다 합해서 사실 그대로 담아내려고 했어요.


주태희 : 귀촌이 큰 결정이잖아요. 도시에 살았던 사람이 막연한 이미지를 가지고 귀촌을 하게 된 경우도 많고 텔레비전에서 보고 즉흥적으로 시골 가서 살겠다고 마음먹기도 하는데, 제일 좋은 건 집을 무턱대고 사기보다 일 년 정도 살아 본 다음 여기서 살아도 괜찮겠다 결정하는 거거든요. 사실 저희가 시행착오를 간접 경험하는 책이 된 거죠. 이걸 읽고도 견딜 수 있겠다 싶으면 내려오시는 거고요.


마을 텃세라든지 사람들이 실질적으로 궁금해하는 부분도 고려하는 부분이 나와요. 만화에 나오는 마을은 ‘귀촌 마을’인데요.


김주영 : 6개월 이상 집을 찾아봤는데, 그 전에는 귀촌 마을이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어요. 만화에 나오는 사나래 마을은 실제로는 다른 이름이에요. 부동산 소개인이 도시에서 살던 사람들이 귀촌해서 형성한 마을이 있다고 알려줘서 알게 됐죠.


집 구하는데 어려움은 없으셨어요?

 

주태희 : 부동산 사진만 보면 집들이 너무 예쁘잖아요. 초반에는 소개한 집마다 감탄하면서 봤는데 직접 가서 보면 또 아주 다르거든요. 위치가 너무 산꼭대기에 있다든가 마을 한가운데 있다거나 하면서요. 논밭 한가운데 있으면 집으로 농약이 날아오기도 하고요. 송전탑 바로 뒤에 있는 집도 있었어요. 그래서 귀촌은 몇 번 왔다 갔다 해서 정할 게 아니고 열 번이든 몇 개월이든 많이 다녀도 제대로 된 집을 살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일이라고 느꼈어요.


치마요 :왔다갔다 하면서 비용은 많이 들지만, 들만한 가치가 있는 것 같아요. 위성 사진을 봤더니 무덤이 어마어마하게 많은 집도 있었어요.


주태희 : 만일 다시 도시로 돌아가려고 하면 그 집을 다시 팔아야 하잖아요. 이런 거 저런 거 다 따지면 집 구하기가 정말 어렵더라고요. 부동산 매물 사진에는 안 좋은 부분을 피해서 찍기도 하고, 봄가을에 집을 구하려고 많이 다니시는데 살아보니 눈이 쌓이고 길이 얼어버리면 차가 못 올라가는 전망 좋은 곳이 많아요. 정말 자급자족을 하지 않는 이상 도시나 읍내에서 장을 봐야 하는 일이 잦은데 차로 이동이 안 되면 들고 올라가야 하는 거죠. 택배가 안 올 수도 있고요. 알아봐야 하는 게 정말 많았어요.


김주영 : 저희는 너무 준비 없이 귀촌한 사례라서요. 만화 소개 글에도 ‘준비리스 귀촌 라이프’ 라고 쓰자고 했었어요. 나중에는 ‘몸에 좋도 맛도 좋은 귀촌’이 되었지만, 몸에는 적당히 좋긴 한데 맛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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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분들은 만화가 부부를 많이 이해하는 편인가요?


김주영 :마감을 한다고 불이 항상 켜져 있잖아요. 마을 입구에 있는 집이다 보니까 저녁에 조금만 늦게 들어오더라도 환해서 안심이 된다고 하시더라고요. 시골이라고 동네에 도둑이 없는 건 아니거든요.


주태희 :마을의 등대인 셈이죠. (웃음)


아기가 아플 때 갈 수 있는 병원 인프라가 없는 에피소드가 있었어요.


김주영 : 저희는 다 청년이고 젊어서 병원에 갈 일이 많이 없었는데, 나이 드신 분과 아기는 정말 병원이 가까워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주태희 : 나이가 들면 마음 편하게 귀촌해서 텃밭 기르는 생활을 꿈꾸시는 분이 많은데, 오히려 나이 드신 분들이 병원에 가까운 도시에서 사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도시도 응급실까지 가는 데 20분 걸릴 수도 있다’는 댓글이 있었는데, 시골은 시속 70킬로미터로 달려서 20분이 걸리거든요. 평일이나 겨울이 아닐 때는 그렇게 달려갈 수 있지만, 눈이 오거나 국도가 엄청 밀린다면 119에 전화해도 차가 못 들어오는 때가 있어요. 어머니가 다치셨을 때 당장 마을 아래에도 눈이 안 치워져 있었어요. 눈이 정말 많이 내릴 때는 군대처럼 눈을 치우는 동안 눈이 내리니까, 쌓일 때까지 내버려 두거든요.


김주영 :결국 눈을 다 쓸어서 어머님 모시고 나갔었어요. 운 좋게도 치우고 나니 눈이 그쳤었죠.


불안한 점은 있으시겠어요.


주태희 : 솔직히 마을 입구라서 위험한 일이 없을 줄 알았어요. 집이 고지대에 있는 것도 아니라서 미끄러질 일도 없어 보였고요. 그런데도 눈이 많이 내리면 밖을 못 나가니까 대비가 항상 필요하더라고요. 그런 생각을 아예 못하고 내려와서 만화에서 소재가 떨어질 일은 없었던 것 같아요.


김주영 :정말 심할 때는 일주일에 몇 개씩 소재 거리가 될 만한 사건이 일어나요. (웃음)


주태희 :손님이 와서 경치를 보고 감탄하는데, 집에 오자마자 딱 물이 안 나오더라고요. 변기도 안 내려가고 쌀도 못 씻고. 배달음식도 없고요.


소재 거리가 평생 연재할 정도인가요(웃음?)


김주영 :지금 쌓여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텃밭은 요새 어때요?


김주영 : 거의 야생으로 두고 있는데, 시골이다 보니까 음식쓰레기를 땅에 많이 묻는데 열심히 기른 작물은 두더지나 고라니가 와서 뜯어먹고, 음식물 쓰레기를 묻은 곳에서 너무 멀쩡하게 수박이랑 참외가 열리더라고요. 야생으로 나오면 온전하게 우리가 먹고, 열심히 기른 애들은 야생 동물이 더 열심히 먹어요.


주태희 : 초반에는 제목 그대로 정말 풀을 뜯어 먹었어요. 민들레나 물망초 등 나물이 너무 많아서 비빔밥 해 먹기 딱 좋더라고요. 백수 기간이라 돈이 없기도 했고요. 옆집에서 씨도 나눠주시고 해서 텃밭을 일군 적이 있는데,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고 나니 정말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어요. 육아를 한 숨 돌릴 쯤에는 둘째가 생겨서 다시 도돌이표가 됐죠.


김주영 :손이 많이 안 가는 작물은 괜찮아요. 아로니아라든가 토마토 같은 건 잘 자라는 편이에요.


천도복 :귀촌 하면 다 자급자족을 생각하시는데, 귀촌해도 사먹는 게 더 쌀 수 있어요. 농사를 지으면 너무 많이 남아서 주변 분들에게 보내는 게 걱정이 될 때도 있고요.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지 않아도 살 만하지 않나 싶어요. 실제로 저희 마을에서 조금 더 올라간 집들은 텃밭 없이 잔디밭만 해 놓고 개와 뛰어노는 용도로만 쓰시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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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촌을 결정할 때 주변 반대는 없었어요?


김주영 : 저랑 어머님이랑 성향이 비슷해서 귀촌하고 싶은 마음이 어느 정도 있었어요. 제가 옆에서 땔감을 열심히 넣어드린 거죠. 아버님이 가장 반대가 심하셨었어요.


주태희 :막상 집안의 남자들은 왜 가냐고 투덜대다가 막상 가니까 오길 잘했다고 좋아했죠.

 

아무래도 둘이 만화가라는 직업을 가졌기 때문에 귀촌 결정이 상대적으로 쉽지 않았을까요? 


김주영 :한 때 웹툰 작가 고료가 굉장히 낮았던 때가 있어요. 회당 거의 십만 원 가까이 받을 때가 있어서 원고료로는 절대 한국에서 못 살 것 같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처음에는 태국이나 필리핀처럼 적은 돈으로도 중산층에 가깝게 살 만한 나라를 상상했었죠.

 

주태희 :원래대로라면 맞벌이를 해야 하는데, 저희는 둘이 일하면서도 팀이니까 1인분의 수익밖에 없었거든요. 신혼여행으로 간 알래스카에서도 고민을 많이 했어요. 미국 사람은 이 넓은 정원을 가꾸면서 여유롭게 파티도 하고 사니까, 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살아도, 꼭 아파트에서 살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싶었어요. 하지만 이모님이 그래도 해외는 아니라고 만류하시더라고요. 알래스카는 동양인 보기가 정말 힘든 곳이에요. 알래스카 자체가 본토에서 너무 떨어진 곳이라 그런 곳에서 살다 보니 어려움을 잘 아셨던 거죠. 그 나라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이 아프기라도 하면 영어를 할 줄 모르는 사람은 큰일이 나죠. 말이 통하면서도 넓고 여유롭게 사는 방법을 생각하다 귀촌에 생각이 다다랐어요.


김주영 :애초에 어머님 아버님 다 상의를 드렸던 이유가, 따로 핵가족으로 사는 것보다 다같이 사는 게 비용적인 측면에서도 좋지 않을까 싶었어요. 처음에는 통나무집을 부모님 드리고 저희가 돈을 벌어서 옆에 집을 같이 짓고 살수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돈 문제가 항상 힘들더라고요.


전작에서도 여러 번 생계형 만화가라고 소개해 주셨는데, 주태희 님이 회사를 다니다가 만화가로 직업을 바꾼 것도 김주영 님의 권유였죠. 돌이켜 생각하면 어떤가요?


김주영 :아버지가 상견례 떄 신랑한데 이제 슬슬 직장을 잡아야 하지 않겠냐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신랑은 이미 만화가였는데. 그때 제가 막 화를 냈는데, 아버지도 남편이 안정적인 수입이 있어야 가정을 꾸리기 훨씬 쉬우니까 그렇게 얘기했다고 하시더라고요.


주태희 :귀촌과 마찬가지로 그렇게 안 했으면 일반 회사원으로 살았겠죠. 만화 그리자고 했던 그 순간부터 제가 안 갈 법한 길로 계속 간 거예요. 김주영이 아니었다면 평범하게 살았을 것 같아요. 결혼하고 5년 정도 됐는데 정말 제가 안 겪었을 만한 일을 너무 많이 겪었어요. 어느 순간 만화가가 되어 있고 작가라는 말을 듣고, 엊그제는 팟캐스트 인터뷰를 하고 이제는 책이 나왔어요.


모든 것은 김주영 님의 거대한 계획 안에……


김주영 :처음에 꼬드길 때 지금 받는 연봉의 10배 받게 해주겠다고 했는데, 아직 열 배를 향해 가고 있어요. 한참 가야 될 것 같긴 한데 아직 희망을 가지고 있긴 합니다.


주태희 : 실제로 만화가를 해보자고 설득하는데 스케치북에 몇 개년 계획을 그려 왔어요. 저도 순전히 웹툰작가가 얼마나 원고료를 받는지 모르고 잠깐 도와주는 마음으로 이력서랑 포트폴리오 준비하면서 시작했거든요. 그때는 사귀는 사이도 아니었고 이렇게 될 줄 몰랐죠. 공모전을 내고 웹툰 작업을 하면서도 이렇게 살면 평범한 루트로는 못 살겠다 싶었어요. 그래도 계속 하게 된 건 순전히 회사를 위해 뭔가 한다기보다 정말 내 작품을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일이 잘 되면 회사 거고, 안 돼도 회사에서 일정량의 돈을 받는 생활이 하루하루 계속된다고 생각하니까 갑갑함을 느꼈던 것 같아요. 정말 돈이 안 되지만 내걸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그게 좋아서 끝까지 해보자는 마음이 들었어요.


같이 거의 24시간을 붙어계시면서 일하는데, 장단점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김주영 :장점 쪽에 가까워요. 보통 직장인도 그렇고 회사에 가 있는 동안 어떻게 보면 강제로 떨어져 있는 거잖아요. 자기가 가장 오랜 시간 같이 있는 사람이 남편이나 배우자가 아니라 회사 직원, 학교 사람들 이렇게 되는데 저희는 항상 같이 있으니까 남들과는 다른 장점 같아요.


주태희 :싸우고 나서 남자는 회사 가서 풀고 돌아왔는데 부인은 아직 화가 안 풀렸다더라, 이런 일이 저희는 없죠. 출근을 안 하니까요. 어떻게든 계속 보고 일을 하려면 화해를 해야 되니까 빨리 풀고 다시 마감에 들어가는 거죠.


갈등이 생길 떄는 어떻게 하세요? 직업적으로요.


김주영 :대부분 남편이 져 줘요. 제가 정말 사소한 걸 가지고 태클을 걸 때가 많거든요. 예를 들어 그림을 맡은 사람에게 그림 부분을 건드리면 자존심이 상할 법도 하잖아요. 속눈썹을 세 개 더 그려 줘야 한다, 볼을 분홍색으로 해야 한다면서.


주태희 :투덜대도 알겠습니다,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하는 거죠.


김주영 :갈등이라기보다는 제가 마무리를 항상 힘들어 하는 편이에요. 특히 『풀 뜯어먹는 소리』는 한 에피소드가 마무리 되어야 다음 이야기가 마무리되는데 제가 마무리를 항상 힘들어하는 편이거든요. 혼자 괴로워하고 짜증내고 그러면 옆에서 받아주면서 방법을 던져주죠.


주태희 :둘일 때 그런 게 좋은 거죠. 막힐 때 서로 의지가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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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까지는 주로 다음에서 연재했어요. 향후 계획이 있나요?


주태희 : 지금은 NC코믹스 플랫폼에서 작업하고 있어요. 완결이 난 후에 공개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김주영 : 일상툰은 『풀 뜯어먹는 소리』로 계속 할 것 같고, 극화체 스토리 물은 아이가 있다 보니 이제 둘이 하는 데 한계가 있어서 어시스턴트를 구해서 작업할 것 같아요. 사실 『풀 뜯어먹는 소리』를 주구장창 하는 게 목표기는 해요. (웃음)


『풀 뜯어먹는 소리』는 몇 권까지 나올까요?


주태희 : 귀촌하면서 생각이 바뀐 것도 있고 해서 그런 걸 그리려고 해요. 아이가 커가면서 선택해야 하는 것도 많고, 육아나 교육 관련해서도 생활이 많이 바뀔 테니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흘러갈 것 같기도 하고요. 생각 같아서는 계획했던 것처럼 아이들이랑 크루즈 여행을 하는 내용을 그려볼까도 생각하고 있고요.


김주영 : 저희만의 계획이에요. 담당 피디님은 아직 모르세요. 앞으로 정말 집을 짓게 되면 그 내용도 만화에 나오게 되겠죠.

 


 


 

 

풀 뜯어먹는 소리 글피 글그림 | 네오카툰
방전된 일상에 충전을―! 웹툰 작가 부부의 도시 일탈 꿍꿍이~ 이것이 몸에 좋고 맛도 좋은 귀촌 라이프?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종광 “소설가로 산 20년, 가족을 팔아먹고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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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종광이 첫 번째 산문집 『사람을 공부하고 너를 생각한다』를 발표했다. 4년여 동안 <월간 샘터>에 연재했던 글 가운데 43편을 엮은 것으로, ‘이웃’이라는 주제로 들여다 본 소시민의 삶이 담겨 있다. 소설 『경찰서여, 안녕』, 『모내기 블루스』, 『처음의 아해들』등에서 발견되던 작가 특유의 입담과 해학은 어김없이 빛을 발했다. 이리저리 치이고 흔들리면서도 변함없이 삶을 견인해가는 서민들의 이야기가 웃음과 함께 감동을 안겨준다. 어수룩한 모습과 엉뚱한 사건이 폭소를 유발하다가도, 서툰 한 마디에 꾹꾹 눌러 담은 진심이 코끝을 찡하게 만들기도 한다.

 

작가는 능청스러운 태도로 이야기를 전달하면서 무심한 듯 툭툭 삶의 진실들을 떨궈놓는다. “도대체 뭘 견디는 것인지 문득문득 허무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견디”는 순간들과 “모두가 목숨을 거니, 목숨을 걸어도 실패자는 필연적으로 나올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가 이끄는 대로 ‘웃픈’ 이웃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지금 우리 사는 모습은 어떠한가’ 되돌아보게 된다.

 

책의 후반부에는 작가의 자화상이라 할 만한 7편의 글이 실려 있다. 소설가로 살아온 20년의 세월, “가족을 팔아먹은 자”로 살아온 시간들을 반추한 것이다. 한평생 농부로 살아온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아이의 이야기는 종종 소설의 밑천이 되어주었다. 이 얄궂은 운명을 돌아보며 작가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20년 가까이 가족을 팔아먹은 자는, 어쩐지 부끄러워, 반성도 해보고 변명도 해보고 핑계도 대보고 억지도 부려보고 별짓을 다 했건만, 창피함은 사그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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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을 팔아먹는 자


“산문집을 욕망한 게 진심이다”라고 쓰셨어요. “산문집 한 권 없다는 것이 거시기했다”고요.

 

몇 번 산문집을 내려고 했는데 잘 안 됐어요. 남들은 다 있는데 나만 없는 것 같아서 조금 부끄러운 감정도 있었던 것 같은데요. 이렇게 산문집이 나오니까 큰일을 한 것 같기도 하고, 진짜 좋았어요. 소설책이 나온 것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에요. ‘이제 나도 산문집 있다’ 이런 느낌이라고 할까요(웃음). 소설가가 산문집이 없으면, 왠지 산문을 못 쓰는 것 같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괴롭기도 했죠.

 

책이 총 3부로 이루어져 있잖아요. 1, 2부에는 <월간 샘터>에 연재하셨던 글이 실려 있는데요. 한 달에 한 번씩 소재를 찾으시는 일도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처음에는 한 달에 몇 편씩 써놓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게 안 되더라고요. 미리 써 놓은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고요. 마감 열흘 전쯤부터 고민을 했던 것 같아요. 소재가 있어서 바로 썼던 적도 있지만 고통스러운 때도 있었죠. 그 이유 중에 하나는, 건전하고 감동적이고 좋은 글을 써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어요. <월간 샘터>에 실리는 글이다 보니까 그런 컨셉으로 써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제 글은 그렇지 못하거든요. 뭔가 아이러니하다거나, 컬트적이라거나, 그런 부분이 있어서 고민이 있었죠. 그리고 서민들 위주로 글을 쓰다 보니까 힘든 부분도 있더라고요. 제 주변 사람들하고 비슷한 이야기를 썼는데, 그 분들이 그냥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이지, 특별히 기쁜 일이 있거나 감동적인 일이 있는 사람들이 아니거든요. 이번에 책을 내는 과정에서 글을 다듬으면서 조금 진심이 아닌 것 같거나 가식적으로 느껴지거나, 꾸며낸 것처럼 느껴지는 부분들은 많이 덜어냈어요.

 

주변 분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각색한 글들이 많은데요. ‘전철의 기타맨’ 같은 경우는 어땠나요?


제가 실제로 겪은 일이에요. 5년 전쯤에 1호선에서 그 분을 봤는데, 진짜 무서웠어요(웃음). 가운데 앉아서 연주하고 있으니까요. 누구든 숨소리만 내도 째려보고 시비를 거는 분위기라, 쳐다보지도 못하겠고 따지지도 못하겠더라고요. 속으로 ‘뭐라고 해야 되나’ 고민하게 되고요. 저는 ‘전철의 기타맨’ 같은 형태의 소설을 좋아해요. 그래서 아주 쉽게 썼죠. 사실은 취재를 다니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어서 아내나 동생,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돼지저금통과 표창장’은 제 동생 이야기예요. 동생이 검찰에서 일하는 공무원인데, 제일 인상 깊은 사건을 하나 이야기해달라고 했더니 그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실제로는 이러지 않았을까’ 생각하면서 최대한 재현해서 썼어요.

 

삶의 고단함이 묻어나는 이야기들인데, 어둡고 축축하지 않아요.


제 시각이 원래 그래요. 늘 서민들과 어울렸는데, 서민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불우한 이웃과 서민의 사이쯤 계신 분들과 많이 만났던 것 같아요. 그런데 치명적인 사고나 슬픈 일을 겪었다거나 그런 상태에 있다고 하더라도, 웃는 분들을 많이 만났어요. 해학적인 상태죠. 눈물 흘리면서 슬픈 사연을 이야기하기보다 웃으면서 슬픈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그런 분들이 더 많아요. 그럴 수밖에 없죠. 골방이나 안 보이는 곳에서 지내면서 폐인 상태로 지내는 분들은 바깥으로 나오지 않잖아요. 바깥으로 나온 분들은 그걸 어떤 식으로든, 말로든 웃음으로든 풀어내는 거죠. 어떻게 보면, 김유정 선생님의 소설이 지금 한국 사람의 정서와 딱 맞는 것 같아요. 정말 황당해서 돌아버릴 것 같은 상황인데도, 그 일을 겪는 사람들은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열심히 살아야지’ 하고 살아가잖아요.

 

3부에는 개인적인 이야기들이 담겨 있습니다. “가족을 팔아먹는 자”는 표제작이 될 뻔 했다고요.


처음에는 제목을 그렇게 지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어요. 그런데 아내가 싫다고 하더라고요. 기분이 조금 거시기할 것 같다고요(웃음). 그러면서 지금의 제목을 추천해줬어요. 저희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번 책을 읽으시고서 ‘우리는 가족을 팔아먹었다고 생각 안 해, 너무 마음 쓰지 마’ 그러시더라고요. 그런데 이번에 또 팔아먹을 일이 생겼어요(웃음). 추석에 어머니께서 재미난 일을 겪으셨더라고요. 소설로 쓸까 생각 중이에요(웃음).

 

소설가로 사실 수 있었던 건 부모님과 부인, 아이, 그리고 부모님 댁의 소 덕분인 것 같아요(웃음). “내가 이렇게나마 된 것은 소들 덕분이다”라고 하셨어요.


맞아요(웃음). 소에게 진짜 감사하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소를 팔아 등록금과 생활비를 대주셨다고요. 소들에게 볏짚이라도 줘야 할 것 같아요(웃음).


옛날에 많이 줬어요. 한 10년 동안은 겨울만 되면 아버지 어머니랑 짚 묶으러 다녔죠. 등단한 후에는 ‘그래도 일국의 소설가가 됐는데, 이 겨울에 논바닥에서 뭐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웃음). 그때는 짚 묶는 기계가 없었고, 기계를 부르려면 돈을 내야 하니까 아버지 어머니가 계속 짚을 묶으시는 거예요. 옛날에는 사람을 사서 묵었지만 이제는 사람들이 그런 일을 잘 안 해요. 품값에 비해서 일이 너무 힘드니까요. 추수할 때 벼를 거두는 방식이나 소에게 밥을 주는 형태도 계속 변해 왔죠. 소설을 쓸 때마다 그런 변화의 역사도 담아내려고 하고 있어요. <월간 샘터>에 연재할 때도 농촌 이야기가 많았어요. 그 중에 소설로 출간 예정인 것도 있어서 이번 책에는 싣지 않았는데요. 딱 하나 실려 있어요.

 

“낭만 삼겹살”인가요?


네, <월간 샘터>에 마지막으로 연재했던 글이기도 해요. 죽어가는 친구에게 찾아가서 (그 친구가) 먹으면 안 되는 소주와 삼겹살을 같이 먹으면서 노래를 부르는 이야기인데요. ‘이런 게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이다’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지금까지 연재했던 것 역시 그런 이야기라고 말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싶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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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로 시를 쓰고 있는 것 같아요


이번 책은 어머님의 고희연에 맞춰 출간됐다고 들었어요. 어머니께서 굉장히 기뻐하셨겠어요.


어머니가 그러시더라고요. ‘이번 책은 정말 잘 썼다, 재밌고 깊고 넓어졌다’고요. 그래서 제가 ‘이전에 쓴 책은 안 그랬나요?’하고 여쭤봤죠(웃음). 예전 작품들은 별로 재미도 없고 욕도 너무 많고 이상한 이야기가 많았대요(웃음). 그래서 충격을 받았죠. 부끄럽기도 했고요. 그런데 작가들이 꿈꾸는 게 재밌고, 깊고, 넓어지는 거잖아요. 어머니가 그 세 가지를 정확하게 짚어서 말하셔서 놀라기도 했어요. 그런데 이번 책은 소설이 아니잖아요. 저는 산문을 못 쓴다고 생각했는데, 어머니 말씀을 듣고 보니까 ‘내가 소설보다는 산문이 나은가?’ 싶기도 하더라고요. 어쨌든 어머니가 좋다고 생각하시는 책을 한 권 내서 다행인 것 같아요.

 

소설작법을 찾아 헤매던 학창시절의 이야기도 실려 있어요. 당시 『나의 습작기』를 읽고 “가난해야, 상처가 많아야, 연애를 많이 해야, 책을 많이 읽어야, 방황을 많이 해야 소설가가 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셨다고요(웃음). 실제로 소설가들이 그렇던가요? 연애도 많이 하고, 상처도 많이 받고요?


그럼요, 다 그래요(웃음). 『나의 습작기』는 1970년대 소설가 분들 이야기인데, 지금 봐도 그런 것 같아요. 저는 트라우마나 상처가 거의 없고 너무 괴팍한 편도 아니어서 ‘도저히 소설가가 될 수 없을 정도로 건전하고 평범한 마인드와 행동거지를 가지고 있는 것 아닌가’ 싶기도 했어요. 연애도, 작가들마다 다르지만, 저는 상당히 평범한 축에 속하는 것 같아요(웃음).

 

그때 “대학은 들어가고 봐야 한다는” 깨달음도 얻으셨죠?


지금은 다 대학에 가는 시대이지만 그때는 달랐거든요. 그런데 다 대학에 가셨더라고요. 그래서 정말 놀랐어요. 「까치방」의 이정환 선생님 한 분 빼놓고는 다 대학에 가셨더라고요. 그런데 고등학교 때 열심히 공부했다는 분은 한 분도 없거든요. 제일 건전하게 학창시절을 보낸 게 책을 읽은 거예요. 그렇게 공부를 안 했으면 대학에 못 가는 게 맞잖아요. 그런데 어떤 식으로든 다 갔어요. 그래서 진짜 깨달은 게 ‘다들 머리가 진짜 좋구나’라는 거였죠(웃음). 그러지 않고서야 잠깐 공부해서 대학에 갈 수는 없는 거잖아요. 그리고 제가 본 바로는 작가 중에 1/3은 문학 공부를 열심히 했지만, 1/3은 어중간하게 했어요. 1/3은 전혀 하지 않았고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책 많이 읽고 많이 써야 작가가 된다고 하지만, 그것도 억지로 맞춘 이야기일 수 있다는 거죠. 그렇게 따지면 문창과 나오면 다 작가가 돼야 하는데, 아직도 등단자를 배출하지 못한 문창과도 있는 것 같거든요.

 

소설가가 되기엔 너무 평범했다고 하셨는데요. 대학에서 ‘평범하지 않은 20대를 보내야 될 것 같다’는 생각도 하셨어요?


그런 생각도 많이 했어요. 고등학교 때는 일부러 기행을 해보기도 했고요(웃음). 그런데 대학을 가보니까, 일부러 기행을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냥 그런 경우도 많더라고요. 제가 나온 문창과에도, 다른 문창과도 마찬가지이겠지만, 그런 애들만 와 있었어요. 그래서 평범한 사람이 더 특이하게 보였죠. 대학을 다니는 동안 사람들이 정말 천차만별로 다르다는 걸 제대로 깨달았던 것 같아요.

 

한 때는 시를 쓰려고 하셨던 것 같아요.


정확히 말하면 시도 쓰고 소설도 쓰려고 했죠(웃음).

 

“내가 쓴 모든 시와 그 시가 담긴 디스켓까지 불태우”는 일도 있었다고 하셨는데요. 그때 20대 후반이셨죠? 이후로는 시를 안 쓰셨어요?


사실은 썼습니다(웃음). 스물아홉인지, 서른인지, 그때쯤 신춘문예 몇 번 써서 보내본 적이 있었어요. 등단하고 한 3년차까지 신춘문예에 시를 냈던 거죠. 

 

이제 시 쓰기는 그만두셨어요?


시는 이제 못 쓰겠더라고요. 시를 모르겠어요. 소설도 모르겠지만(웃음).

 

책에서 쓰시길 “소설은 노동과 같다”고 하셨는데요.


노가다라는 거죠, 뭐(웃음).

 

‘엉덩이로 쓴다’는 말과 같은 건가요?


그렇죠. 별다른 말은 아니고요.

 

시는 다른 것 같으세요?


다른 것 같아요. 분량으로 승부하는 게 아니고, 분량 채워봐야 의미가 없잖아요. 영혼을 담아야 되는 일 같은데요. 저도 영혼을 담았다고 생각했지만, 제가 볼 때는 저한테 비유 감각이 없는 것 같아요. 신춘문예나 제도권에서 원하는 시는 비유의 시를 원하는 것 같은데, 제가 생각하는 시는 그런 식이 아니고 「노동의 새벽」 같은 시였다는 거죠. 그러고 보면, 결국은 제가 쓰려고 했던 시를 소설로 쓰고 있는 것 같기도 해요. 옛날에는 희곡 소설을 쓴다고 생각했는데, 소설 시를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올해로 등단 20주년을 맞으셨어요. 소설가로 살아온 20년을 되돌아보신 소감은 어떠세요?


20년 만에 첫 번째 산문집을 내니까 좋아요. 지난 5년 동안은 여러 가지로 정신을 못 차렸던 것 같은데요. 꾸준히 책을 내고 소설을 쓰고 있기는 했지만 ‘내가 뭘 쓰려고 하는 거지’ 싶기도 했는데, 작년 가을부터는 쓸 방향이 잡힌 것 같아요. 이를테면 책이 나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한다든가, 출간이 되든 안 되든 계속 써야 한다거나, 그런 거죠. 이제 방황을 끝내고 단편은 한 달에 하나, 장편은 1년에 하나를 쓰자고 자연스럽게 결심하게 됐어요. 마음을 조금 넉넉하게 먹게 된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산문집을 내게 됐어요. 조금 있으면 소설집도 나올 예정이고요. 2년 전에 ‘조선통신사’라는 소설을 열심히 썼는데, 11월에 출간 예정이에요. 그렇게 하나씩 결실이 생기는 것 같아요(웃음).


 

 

사람을 공부하고 너를 생각한다김종광 저 | 교유서가
짧은 글 속에 우리네 이야기를 능청스럽고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읽고 나면 마음이 짠해지게 만드는 저자의 주특기를 유감없이 발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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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했지만’ 작곡가 한동준, 라디오 DJ이기 전 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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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의 '사랑했지만'의 작곡자 한동준, 그는 잊을 수 없는 1990년대 히트쌍포 '너를 사랑해'와 '사랑의 서약'을 내놓으며 한 시절을 풍미한 인기가수였다. 지금은 가수보다는 CBS 라디오(FM) 팝 프로 <FM 팝스>의 진행자로 이름이 더 자주 언급된다. 많은 팝 애청자를 확보하고 있는 이 프로가 막 방송 10년을 맞았다. 그는 “6개월만 하고 말 줄 알았다”며 '하고 싶은 걸 하게 해준' 청취자분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실제로 소문난 '팝 마니아'인 그는 방송 DJ를 하면서 취향의 벽이 사라져 일례로 이전에 별로였던 아바의 음악이 새삼 위대하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17일 이즘과 인터뷰에서 이제 가수는 안 하는 거냐는 질문에 “가수로서 노래를 만들고 앨범을 내야겠다는 생각은 한 순간도 놓쳐본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사실 그는 촛불집회에 참여해 노래를 불렀고 김광석 추모공연에 빠지지 않고 임하고 있다. 모처럼의 대화시간을 맞아 한동준은 팝 DJ로서의 소회는 물론이고 절친이었던 고(故) 김광석과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선배음악가 조동진에 대한 이야기도 조금의 거리낌 없이 풀어냈다. 숨길 수 없는 라디오 퍼스낼리티, 뮤직 맨 그리고 조동진과 김광석 '팬'이었다.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 <FM 팝스>가 눈 깜빡할 새 10년이 됐네요. 10주년 축하드립니다. 반면 가수로서는 2003년에 정규 음반을 낸 이후로 14년 동안 소식이 뜸하신데요. 그 사이에 한동준은 거의 가수가 아니라 '라디오 DJ'로 전향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저는 항상 가수라고 생각하고 있는데요. DJ가 같은 음악을 다루지만 자세가 굉장히 달라요. DJ는 대중에게 낮은 자세로 다가가는 반면 뮤지션은 그렇지 않거든요. 듣든 말든 난 이런 음악을 한다는 이런 거만한 면이 있죠. 근데 DJ를 하다 보니 자세가 달라지네요. 일상적으로 노래가 안 만들어져요. DJ는 사람들과 계속해서 공감하고 소통하는 직업이잖아요. 같은 음악을 중심으로 하는 직업인데 굉장히 다른 거죠. 그러나 가수로서 노래를 만들고 앨범을 내야겠다는 생각은 한순간도 놓쳐 본 적이 없어요.

 

일단 10년을 맞게 된 인간적인 소감 한마디 부탁드려요. 팝을 듣는 사람들이 현저히 줄어든 요즘 상황에서 팝 프로그램을 갖고 10년을 했다는 기분이 남다를 것 같습니다.


기적 같아요. 젊었을 때는 인생을 긴 텀(term)으로 보지 못 하잖아요. 그런데 제가 50(살)이 넘어가면서 10년, 20년 이렇게 보니깐 저는 제가 하고 싶었던 걸 다 했던 거 같아요. 이런 것들이 기적처럼 이뤄져서 어쩔 때는 겁이 나기도 합니다.

 

<FM 팝스> 를 처음 시작할 때 10년까지 갈 거라고 생각했는지.


전 6개월만 하고 말 줄 알았어요. 그전에 제가 불교방송에서 <밤의 창가에서>를 했었는데 그걸로 시작해서 DJ를 띄엄띄엄하고 그랬죠. 항상 한 텀, 그러니까 6개월을 해본 적이 없어요. 2000년 이후로 제가 결혼해서 DJ라는 직업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죠. 결혼하니까 생활이 된 겁니다. 그 전과 마음가짐이 달라진 거죠. 그런데 김형준(한동준 이전에 <FM 팝스>를 진행한 CBS프로듀서)에게 연락이 와서 맡게 됐어요. 기회가 온 거죠. 저에게는 제가 선곡하는 그런 기회가 온 거잖아요. 제가 선곡하면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거든요. 처음 몇 년은 가수 할 때처럼 열심히 했어요.

 

같은 팝 프로그램으로 MBC <배철수의 음악캠프>가 있죠. 그런데 프로 진행자 배철수는 자신이 가수가 아니라고 못 박아요. 한동준은 그래도 '가수다'라고 얘기를 하잖아요. 이게 무슨 차이가 있는 건가요.


철수 형은 공식적으로 은퇴를 하셨어요. 은퇴를 하겠다고 하고 은퇴를 하신 거잖아요. 노래를 안 하시죠. 음악캠프 공개방송 하실 때나 가끔 하시는 거지. “가수가 한번 은퇴했으면 끝이지!”라는 태도를 가지신 분이죠. 저는 아직도 노래를 부르러 다니고, 가끔 노래를 만들기도 하거든요. 노무현 대통령 추모 공연이라던가, 세상이 엉망진창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한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또 냈거든요. 돌아가시고 나서 바로 추모 곡을 만들었는데 그건 저작권 등록도, 발표도 안 했죠. 2009년 '강물처럼'이 그 곡이고, 그 다음 해에 만든 '사람이 사람으로'는 공식 음원으로 발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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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 DJ들은 자신의 애정과 취향을 반영한 곡을 선곡 소개하는 편인데요. 한동준의 <FM 팝스>는 철저히 그것을 묻어버리고, 청취자 지향을 중시하는 대중노선을 취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소문난 록과 팝 마니아라는 점을 감안하면 서운함이나 아쉬움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솔직히 안타깝고, 섭섭하고 그런 게 굉장한 스트레스였어요, 처음에는. 말도 못해요. 그런데 그렇게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하면 방송 못해요. 유로댄스를 틀면서도 제가 좋아해야 해요. 음악은 자기가 좋아하지 않으면 진짜 꼴도 보기 싫고 그런 겁니다.

 

청취자들을 배려하면서 음악영토가 확대 되는 게 있죠. 예전에는 듣지도 않은 음악이었는데 재평가도 하게 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로댄스는 팝송을 듣는 사람에게 뭐랄까, 굉장히 뜨거운 감자 같은 '난제'에 속하지요.


사실 나쁜 음악은 세상에 없잖아요. 그런데 머릿속에는 나쁜 음악이라는 생각이 들어있어요. 그러니까 '유로댄스'라고 하면 바람직하지 못한 생각들이 머릿속에 들어있거든요.

 

청취자들이 좋아한다는 것을 알지만 하루 여덟, 아홉 곡이나 방송하는 경우가 많죠. '너무 나온다'라는 생각도 들더라구요. 일각에서는 너무 청취자를 의식한다, 상업적이다 하는 비판 의견도 있습니다.


싫어하는 사람은 못 듣죠. 근데 비율이 그쪽이 훨씬 많으니까요. 그리고 대부분의 청취자들이 팝송을 라디오를 통해서 듣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아요. 마니아들이 그러지 대부분은 롤러장이나 나이트클럽에서 들은 '귀에 익은 노래'를 틀어주면 좋아하는 거죠. 처음에는 이걸 음악이라 생각을 안 했는데, 틀어야 하니까요. 그래서 좋아하려고 노력했어요. 어쨌든 유로댄스를 틀지 않으면 방송 하지 않는 것 같은 기분까지 들었어요. (웃음) 그리고 유로댄스는 분위기를 맞춰서 틀기가 좋아요. 비슷비슷하니까요. 마치 한 곡을 틀은 것 같잖아요, 노래들이.

 

유로댄스가 아니더라도 호감을 갖지 않았던 음악인데 재평가하게 된 곡이 있나요?


사실 제가 아바(Abba)를 별로 안 좋아했거든요. 특히 'Dancing Queen', 'SOS' 같이 널리 알려진 히트 곡들이요. 히트되지 않은 다른 곡을 오히려 들었는데, 아바는 다시 듣게 되면서 연주력도 그렇고 모든 면에서 진짜 굉장히 유니크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노래마다 엄청난 개성들이 있죠. 어렸을 때는 레드 제플린(Led Zeppelin), 퀸(Queen),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 정도를 들어줘야 음악 듣는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아바는 다시 들으면서 위대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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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이 DJ로 아는데 한동준은 한 시점을 풍미한 인기가수입니다. 결정적으로 '너를 사랑해', '사랑의 서약' 이 두 곡만으로도 이름이 남죠. 그리고 김광석이 부른 '사랑했지만'의 원작자이기도 하고요. 그 곡을 (김광석에게) 주게 된 경위가 궁금합니다.


비 오는 날 지하 녹음실은 굉장히 밀폐되어서 습기도 있고 그렇거든요. 거기 앉아서 순식간에 '사랑했지만'을 만들었어요. 10분도 안 걸렸던 거 같아요. 나중에 코드는 편곡 과정에서 건들긴 했지만 코드가 중요한 노래가 아니니까요. 그때 '더 클래식'의 박용준이 SM에 같이 있었는데 녹음 좀 해보자 해서 1절만 데모를 만들었어요. 그리고 그 당시는 김광석뿐만 아니라 많이 놀러 왔어요. 이수만 씨가 프로덕션을 한다니까 녹음실 구경도 할 겸 많이 놀러 왔다가 이거 한 번 들어보라고 하게 된 거죠. 그때 김광석은 2집 녹음하기 전이었어요. 저는 1집 녹음이 다 끝난 상태였고, 언제 또 낼 수 있을지 모르니 줬죠.

 

참, 그리고 SM(SM엔터테인먼트) 1호 가수였잖아요.


이수만 형님(그렇게 호칭했다)은 저를 그냥 동생으로서 대했을 뿐 아니라 아마도 본인이 음악하시면서 아쉬웠던 걸 저를 통해 '해소'하고 싶어 했던 게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록(rock)적인 요소를 갖고 있었고 저를 좋게 본 포인트가 바로 그것이었죠. 저를 픽업하게 된 노래가 '잊을 수 없어'라는 노래인데요. 그걸 우연한 기회에 이수만 형님이 듣게 되어서 운명처럼 만났죠. '잊을 수 없어'가 록 적인게 있는 노래이니까. 자신에게는 조금 부족한 그런 부분을 저를 통해 채우고 싶으셨던 거죠.

 

다시 돌아가서, 김광석의 곡 해석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요.


김광석의 구태의연한 그런 창법을 주변에서 좋아하는 사람들이 없었어요. 특히 '서른 즈음에'는 박자까지 잘못 불렀어요. 하여튼 바이브레이션도 그렇고 아주 평범했죠. 그런데 저는 '사랑했지만'이 타이틀이 될 줄 몰랐어요. 그냥 깔리는 곡이 될 줄 알았죠. 그리고 김광석이 '사랑했지만'을 내고 나서 계몽문화센터에서 출근하듯이 공연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공연은 그럭저럭했는데 이건 아니다 싶었던 게, 밴드로 했기 때문에 손해를 보며 공연을 한 거죠. 이후 소극장인 '마당세실극장'에서 통기타로 공연을 시작했죠. 한 달 동안 68~69회를 했어요. 그게 결정타를 날린 거죠. 하루에 2회씩 하고 주말에 3회를 했으니까요. 당연히 '사랑했지만'이 널리 알려졌죠.

 

이상호 기자가 <김광석> 영화를 만들면서 다시 김광석이 국민적 화제가 됐죠. 이걸 보면서 같이 음악 했던 사람으로서 느끼는 소회가 있을 것 같은데요.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정말 힘들었죠. 술을 안 먹으면 밤에 잠을 잘 수가 없었죠. 그때 기억이 생생해요. 그때 당시 정황이 김광석의 죽음에 대해서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는데 이게 어떻게 하다 보니까 세월이 흘러버린 거죠. 이번에 그 영화가 개봉되어서 수면 위로 올라왔고…. 공소시효도 지나서 법적 상황으로는 끝난 일이지만, 적어도 생전에 광석이가 죽기 전 상당히 재정적으로 조급하다는 느낌이 강했고 솔직히 기분이 그랬어요. 그게 다 가정적 상황에서 비롯한 것으로 저는 판단했어요. 이제 서해순이 화면에 나와 얼굴이 알려졌으니 세계 어느 곳에 가서 살아도 쉽지는 않겠구나…. 그 생각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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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유명을 달리한 언더그라운드 포크의 대부 조동진 이야기도 듣고 싶네요. 사실 하나뮤직이라 하면 대표 상징인 조동진 중심으로 뭉친 이른바 '조동진 사단'이잖아요. 또한 후배들에게 음악적으로 무한 경배를 받았던 인물이기도 하지요.


'물을 보며'라는 노래가 있어요. 변칙 튜닝으로 녹음을 했죠. 그 당시 그런 일이 없었죠. 원래 스탠더드 튜닝이 아니라 튜닝을 바꾼 변칙 튜닝으로 해서 프로그레시브한 느낌도 있고요. 원래 록 밴드를 하셨으니까. 그런 실험성도 있지만 만나서 이야기를 해보면 매료될 수밖에 없어요. 말씀을 무지하게 잘하시거든요. 그 안에 있는 철학, 문학적 표현 그런 게 정말 홀딱 빠질 수밖에 없는 거죠. 뛰어난 인간적 매력, 음악을 보는 시각, 능력도 그렇고. 그리고 그 형님의 장점은 나이 차이를 못 느끼게 만든다는 거죠. 그래서 젊은 사람들도 조동진 형님에게 빠져드는 거죠. 그리고 음악팬들에게 알려진 것과 다르게 말수도 많은 편이셨죠. 달변가였지만 절대 권위적이지 않았고요. 말 한마디 한마디가 다 주옥 같았죠.

 

조동진 선생님이 사실상 은둔, 그러니까 앨범도 거의 20년 가까이 내지를 않으셨죠.


대중이 볼 때는 은둔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뮤지션이 의도하지 않은 그런 게 있죠. 김민기가 '아침이슬'이나 '친구'를 데모할 때 쓰라고 만든 게 아닌데도 저항적인 것으로 보여 지는 것처럼, 조동진 형님도 은둔하려고 한 건 아닌 거죠.

 

조동진의 노래 중에 후대 사람들이 들었으면 하는 곡들을 꼽는다면요.


'진눈깨비'도 좋고, '내가 좋아하는 너는 언제나'라는 곡도 제가 개인적으로 좋았던 거고, '다시 부르는 노래'도 굉장히 단순하지만 들어봐도 좋을 것 같고, '당신은 기억하는지'는 제가 이번 추모 공연 때 불렀던 노래입니다. '물을 보며'는 아까 말씀 드렸던 변칙 튜닝 곡이고, '항해'라는 곡도요.

 

DJ를 하시면서도 공연은 계속해왔습니다.


공연까지는 아니고요, 노래를 부르러 계속해서 무대에 섰죠. 촛불(집회) 때도, 김광석 추모공연도 그렇고요.

 

가장 가까이에 예정된 공연이 있는지요.


지금은 없죠. 조동진 추모공연은 지난 9월에 했었죠.

 

내 인생의 팝 아티스트는 누군가요


딥 퍼플(Deep Purple), 빌리 조엘(Billy Joel)이 제일 크게 영향을 줬어요. 딥 퍼플은 대부분의 곡을 다 따라 부를 정도였어요. 사실 곡 쓰는데 있어서 영감을 준 사람들은 가요에 있어요. 이주호 씨가 있는 듀엣 '해바라기'인데요. 그 전까지는 팝송을 주로 들었으니 내가 저만큼의 경지는 못 갈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가요는 '들국화'까지도 힘들겠다 싶었는데, 해바라기는 괜찮았던 거죠. 쉽게 코드를 칠 수 있는 그런 노래인 거죠. 그래서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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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FM 팝스>와 관련해서 마지막으로 질문 드리겠습니다. 향후 프로를 이렇게 꾸미고 싶다는 나름의 소망이 있나요.


별다른 변화가 없는 게 장점이자 단점이 아닐까요. 별다른 변화를 안주는 게 필요하기도 하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송이라는 게 여지는 있는 거죠. 음악은 자기 고집대로 할 수 있지만, 방송은 방송 여건에 맞게 해야 하는 거라 생각해요.

 

아까 말한 것처럼 '하고 싶은 걸 하게 해준' 청취자 분들께도 인사 부탁드립니다.


임진모 선생님께서 공연 때 이런 축사를 적어 주셨어요. 한동준은 “스스로 빛을 내는 가수는 아니지만, 많은 이들과 협업, 소통하면서 비로소 빛을 내는 사람이다!”라고 하셨죠. 저의 성격을 잘 파악하고 쓰신 거 같아요. 방송이라는 게 결국 혼자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제일 중요한 게 대중이 원하는 방송을 하자, 즉 소통을 하자는 겁니다.

 

인터뷰 :소승근, 정효범
정리 :정효범
사진 :김도헌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강현식, 서늘한여름밤 “힘들 때는 힘들다고 얘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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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마음속에 울고 있는 아이가 한 명쯤 있다.’는 말은 그대로 진실일 것이다. 지표가 말해준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우울증 환자는 60만 명이 넘었다(643,102명). 조울증, 공황장애, 산후우울증 등 양상도 다양하다. 그러니 ‘내가 심리 상담이 필요할까?’라는 의문이 든다면, 답은 ‘그렇다’이다.


『어차피 내 마음입니다』와 네이버 블로그 ‘서늘한여름밤의 블로그’ 등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들여다봐 많은 공감을 얻은 서늘한여름밤 작가와 『저는 심리학이 처음인데요』, 꼭 알고 싶은 심리학의 모든 것』등을 쓴 강현식 대표는 심리 상담이 필요하지만 부족하고 잘못된 정보로 망설이는 많은 사람들을 위한 책이 꼭 필요하다는 데에 공감했다. 『제 마음도 괜찮아질까요?』는 두 전문가가 심리 상담을 가기 전 알아야 할 것부터 상담에 드는 비용, 상담에서의 태도와 잘못된 심리 상담 사례까지 조목조목 짚어낸 ‘심리 상담 가이드북’이다.  


그 자신 역시 6개월째 심리 상담을 받고 있다는 서늘한여름밤 작가는 “심리 상담이 힘이 많이 된다. 상담이 인생을 바꾸는 경험이라는 걸 많이 알게 되면 좋겠다.”며 많은 사람들이 전문가의 도움을 받고, 삶을 변화시키는 경험을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결국 이것은 상담심리학 전문가가 전하는 응원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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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출판이라도 해보자


분명한 목적이 있는 책이에요. 심리 상담을 모르는 사람들, 그러나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구체적이고 솔직한 이야기를 담았어요.

 

강현식:블로그 활동을 하면서 질문을 많이 받아요. 심리 상담이 궁금한 사람뿐 아니라 현재 상담을 받고 있는 사람들도 자신의 고민을 많이 얘기해요. 그럴 때마다 답변을 하기는 하는데요. 이런 부분에 대해서 대중과 더 소통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실 속살을 드러내야 하는 부분이 있어요. 그래선지 그런 부분을 다 담은 책은 나오지 않았던 것 같아요. 마침 편집자 분에게 제안을 받았고, 알고 지내던 서밤(서늘한여름밤, 이하 ‘서밤’) 작가에게 함께 해보자고 제안을 했죠.

 

서밤 작가는 제안을 받고 어떠셨어요?


서밤:이런 주제의 책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저도 출간 제의를 해오는 곳마다 이런 주제가 어떻겠느냐고 역제안을 했었는데요. 대부분은 너무 대중성이 없다면서 거절을 당했어요. 그래서 독립출판이라도 해보자고 생각하던 차였거든요. 마침 제안을 주셔서 흔쾌히 하게 됐죠.


강현식:서밤 작가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줄은 몰랐었어요. 서밤 작가 블로그를 보면서 통하는 부분이 있겠다 싶어 제안을 한 건데 서밤 작가도 준비를 하고 있었던 거죠.

 

출판사들이 거절한 이유나 이런 책이 아직도 없었던 이유가 있을 텐데요. 두 분은 그런 면에서는 부담이 없으셨어요?


서밤:저는 이미 잃을 게 없는 몸이라서요.(웃음) 이미 욕을 먹을 만큼 먹어서 말이죠.


강현식:저도 비슷해요. 서밤 작가만큼은 아니지만(웃음) 대부분의 이 분야 사람들이 가는 길과는 다른 길을 가다보니까 여러 이야기를 많이 듣게 돼요. 하지만 분명 누군가한테는 필요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너무 내부 이야기를 해서 간접적으로 어떤 전문가에게는 피해가 될 수 있는 이야기일 수는 있겠지만 말이죠. 무엇이 더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인지 생각했을 때 더 이상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다행히 서밤 작가가 함께 해줬으니까요. 자칫 딱딱해질 수 있는 내용이기도 했고, 여러 모로 든든한 동지를 만난 느낌이었어요. 주저하던 마음이 서밤 작가를 만나면서 확 편안해졌던 것 같아요.

 

대중성이 없단 이유로 몇 출판사가 거절했었다고는 하지만 막상 독자 반응을 보면 대중에게는 나름대로 갈증이 있었던 것 같거든요. 서밤 작가가 독립출판까지 생각했던 이유기도 할 테고요.


서밤:내담자에게 추천할 만한 책을 찾아본 적이 있어요. 상담 오기 전에 이런 책을 읽으면 상담이 어떤 건지 알 수 있겠다, 싶은 책을 찾는데요. 별로 없었어요. 대부분이 상담자 입장에서 상담을 어떻게 하면 잘할 것인가에 관한 내용이었어요. 내담자 입장에서 상담을 준비할 수 있는 책은 없더라고요. 아쉬움이 많았죠.

 

전문가 입장에서도 분명 필요성을 느꼈을 텐데 말이에요. 아쉬운 부분이에요.


강현식:병원에 가거나 다른 전문적인 서비스를 받는 건 해당 분야에 규격화된 형식이 있을 수 있어요. 하지만 심리 상담은 전문성 안에 규격화된 형식 못지않게 상담자와 내담자 사이에 벌어지는 관계적인 부분들이 있거든요. 마치 이런 거죠. 연애에 관한 책들이 있잖아요. 거기서 사랑은 이런 거다, 라고 하는데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있잖아요. 그런 면이 심리 상담에도 있어요. 그래서 이 책을 쓴 거예요. 상담자가 내담자에게 이야기하기 힘든 게 있어도 얘기를 해라, 그러는 게 상담을 제대로 받는 거다, 돈 내고 가서 선생님 이야기에 ‘네네’만 하는 건 아니다, 라는 말을 해주고 싶었어요. 그런데 상담자 입장에서는 이런 내용이 내담자들에게 자신들을 괴롭힐 수 있는 상황을 주는 것처럼 보일 수 있거든요. 어떤 상담자는 자신이 정말 내담자의 ‘선생님’이길 바라는 분도 있고요. 그런 이유가 아니었을까 해요.


서밤:일단 이런 내용의 필요성을 못 느낀 분들도 있을 거예요. 보통 상담자는 상담을 받으려고 찾아온 내담자만 만나잖아요. 찾아오기 전까지 어떤 고민을 하는지, 상담자한테 말하지 못하는 것은 무엇인지 모르죠. 저는 블로그를 통해 그런 질문을 정말 많이 받았으니까 필요성을 명확히 알았지만 다른 분들은 안 그랬을 수도 있어요. 또 오해 받을까 두려운 부분도 있을 테고요.

 

내가 심리 상담이 필요할까?


‘선생님’으로 상담자를 대해서 오는 문제는 책에서도 지적하고 있어요.


서밤:상담자와 내담자의 관계가 마치 선생님과 제자 같은 관계가 되는 거죠. 원래 상담자가 트레이닝 받기로는 상담자-내담자가 평등한 관계여야 한다는 거거든요. 그런데 내담자는 상담자를 ‘선생님’으로 부르니까요. 그러면 상담자가 나한테 답을 주길 바라게 돼요.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저 사람이 답을 알고 있는데 일부러 안 알려주고 있다, 고 생각하기도 하죠. 그런 오해를 교정하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요.

 

심리 상담의 아이러니가 있죠. 정작 변해야 할 사람들은 오지 않고 그 사람 때문에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상담을 받으러 와요. 때문에 ‘왜 내가 상담을 받아야 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텐데요. 이에 대해서 어떤 답을 들려줄 수 있을까요?


강현식: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이렇게 답해요. 괴롭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데리고 와라, 그게 가능하다면 그렇게 해라, 하지만 그가 오지 않으니 그냥 그 상처를 안고 갈 것인지 아니면 네가 변화를 시도해볼 것인지는 생각해봐라, 라고요. 그 사람은 변하지 않아도 너는 변할 수 있다는 건데요. 흔히 변화해야 한다고 하면 현재 내 모습이 잘못됐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게 내 잘못이냐’라는 반응이 올 때가 있는데요. 그때 분명하게 선을 긋죠. 당신 잘못은 아니지만 지금부터 당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당신의 고통은 커질 수도, 멈출 수도 있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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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문제 같아요. 상담을 통해 내담자는 변화할 수 있어도 내담자를 둘러싼 환경은 변화시킬 수 없잖아요.


서밤:잘못됐죠, 사회가.(웃음) 지금 한국 사회는 사회가 병들어서 상담으로 될 수 있는 부분에 한계가 있어요.

 

바로 그 점에서 필요성이 더 생기는 거고요. 책을 보면 누구나 심리 상담을 받을 대상이 된다는 저자들의 생각을 읽을 수 있어요. 하지만 보통은 어떤 경우에 있는, 어떤 사람들만 심리 상담을 받아야 한다고 여기는 것 같거든요.


서밤:저는 항상 이렇게 얘기하는데요. ‘내가 심리 상담이 필요할까?’라는 생각이 들면 무조건 필요한 거라고요. 이런 척박한 환경 속에서 그 물음이 싹 튼다는 것은 이미 내가 많이 힘든 거죠. 물음이 들면 100% 필요한 거예요. 그럴 경우에 꼭 심리 상담을 받았으면 해요. 요즘은 다들 힘들잖아요. 오히려 상담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게 오만이라는 생각도 들 정도예요. 인생에 한 번 쯤은 다 상담이 필요해요.


강현식: 한국 사회의 문화에서는 서로가 서로에게 솔직하지 못하도록 하는 압력이 있어요. 가령 아내한테 ‘나 죽을 만큼 힘들어’라고 말하면 아내가 너무 걱정을 하고 같이 흔들릴까봐 말을 하지 않아요. 너무 긴밀한 관계에서는 오히려 침묵하게 되잖아요. 부부 간에도,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 사이에서도 솔직함에 근거한 관계를 만들어간다기보다는 모든 관계가 사회적인 관계가 되는 거예요. 그런데 상담자와 내담자의 관계는 세상 어떤 관계보다 긴밀하고 솔직할 수 있는 관계거든요. 부부끼리 못하는 말도 상담자에게는 터놓을 수가 있어요. 그러니까 어딘지 삶에 에너지가 부족하다고 느낄 때는 상담이 필요할 때라고 저는 이야기를 많이 해요. 상담자의 전문성으로 솔직하고 친밀한 관계를 건강하게 만들어가는 데 도움을 주니까요.

 

한국 사회의 문화적 특성 탓에 겪는 고민도 많이 있겠네요?


서밤:일단 집단주의 문화라는 게 상담을 많이 저해해요. 왜냐하면 기존의 관계에서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인데요. 친구나 가족한테 이야기해서 문제를 풀려고 하니까 상담하러 오질 않죠. 저는 진로 관련 워크샵을 하는데요. 느낀 게 많아요. 사람들이 결국 자기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게 만다는 게 상담의 목적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내가 나대로 살면 사람들이 날 미워할 거야, 엄마 아빠가 나를 인정하지 않을 거야, 라는 생각이 강하다보니 쉽지가 않아요. 그런 건 문화적인 영향인 것 같아요. 관계 속에서도 잘 보여야 한다는 생각 말이에요.


강현식:한국은 가족과 굉장히 밀접해요. 상처도 밀접한 관계에서 받는 건데요. 그러면 필연적으로 가족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어요. 그때 많은 사람들이 말하기를 주저하거든요. 이유가 가족 이야기를 하면 마치 그들을 욕 먹이는 것 같다는 생각들이 있기 때문이에요. 그걸 깨는 것조차 어려워요. 상담이 서양의 개인주의 문화에서 발달했잖아요. 내가 힘드니까 전문가의 도움을 받자는 건데 한국 문화에서는 모두가 상담자예요. 그런 것을 넘어서 전문가를 찾아간다는 게 마치 깨지 말아야 할 금기를 깨는 것 같은 느낌인 거죠.

 

<채널예스> ‘하지현의 마음을 읽는 서가’ 칼럼(10월 10일자)에서는 ‘그냥 둬도 쉬면 좋아질 수 있는 것일 수 있는데’ 병원을 찾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거든요. 두 저자의 이야기와는 결이 좀 달라요. 어떻게 보세요?


서밤:저는 그런 경우에도 오는 게 맞다는 생각이에요. ‘너는 괜찮다’라는 말을 전문가에게 듣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꼭 문제가 있어서 가는 게 아니고요.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 받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상담을 받았으면 해요. 하지현 선생님은 너무 작은 문제 때문에 불안해하지 말아라, 우리 모두에게는 조금씩 미친 부분이 있다, 괜찮다, 라고 말씀하신 건데요. 그걸 직접 확인 받아야 하는 사람도 있으니까요. 전문가는 그러라고 있는 거고, 그렇다면 가서 확인 받아야죠.


강현식:한편으로는 전문직의 차이도 있는 것 같아요. 의사로 훈련 받은 분들은 대체로 진단과 처방을 하시잖아요. 환자와 관계를 맺고 관계 속에서 문제를 풀어가는 게 기본은 아니죠. 그런데 심리학자들은 전문가로서 평가도 할 수 있지만 관계를 맺거든요. 상담은 나의 상태를 전문가에게 확인 받음과 동시에 상담자와의 관계를 쌓는 일이에요. 상담자만큼 내 이야기를 공감해주고, 때로는 쓴소리도 해주면서 소통할 수 있는 관계는 별로 없죠. 때문에 저도 상담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특별히 내가 이상해서가 아니라 현대인들에게 이런 관계는 다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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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식 요리도, 분식도 있어야


앞서 심리 상담의 아이러니 이야기를 했는데요. 상담을 막는 또 하나의 오해가 상담을 받으면 문제가 완치될 것이다, 재발하지 않을 것이다, 라는 생각인 것 같아요.


서밤:감기 치료 한 번 받으면 다시 감기 안 걸리나요? 감기에 또 걸릴 거라고 해서 감기 치료를 안 받을 필요도 없잖아요. 지금 힘든데 말이에요. 상담도 마찬가지예요. 상담을 한 번 받고 끝나는 게 아니고요. 상담을 받았다 해도 언제든 다시 또 받을 수 있어요. 힘들 때마다 도움을 받으라고 전문가가 있는 거니까요.


강현식: 몸이 아플 때 병원에 가도 완치가 되진 않아요. 질병의 상당 부분은 완치가 목표가 아니라 현상 유지를 하면서 건강한 몸을 키우도록 하는 것이죠. 물론 경우에 따라 드라마틱하게 문제가 해결되는 일이 심리 상담에 있기는 하지만요. 완치가 안 되면 상담에 안 가겠다는 생각은 잘못된 것 같아요. 큰 병에 걸렸는데 완치가 안 된다고 했어도 병원에 안 갈 건 아니잖아요. 심리 상담에서는 내담자가 생각하지도 못한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관계를 맺을 수 있기 때문에요. 전문가의 상담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비용 문제도 중요해요. 책에서 아주 구체적인 숫자로 설명을 하고 있고요. 그런데 심리 상담을 위해 그만한 돈을 쓰겠다고 결심하기가 쉽지 않아요.


서밤:그렇지만 저는 친구들한테도 해외여행 한 번 간다 생각하고 돈 쓰라고 권유해요. 기분전환 하러 해외 가면 200~300만원 쓰지 않느냐, 그럴 바에는 상담 받는 게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말하죠. 물론 다양한 서비스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호텔식 요리도 있어야 하지만 분식도 있어야 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그래서 저는 센터에서 워크샵을 하거나 집단 상담을 해서 비교적 가볍게 자신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요. 하지만 전문가 집단이 비용을 낮추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돈이 없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국가가 책임져야 하는 부분이죠. 결국 돈이 없는 사람들이 물어야 할 것은 왜 서비스가 이렇게 비싼가, 가 아니라 왜 우리 지역 사회에서는 이 서비스를 나에게 제공하지 않는가, 예요. 그 점을 분명히 하고 싶어요.

 

국가나 지역 사회에 대해 사회적 제언을 해주신다면?


서밤:돈 좀 써라.(웃음) 정신 건강에 그렇게 돈을 안 쓰면서 자살률이 떨어지길 바라느냐고 묻고 싶어요. 자살 관련 기관에서 일한 경험이 있어서 실태를 조금 알거든요. 정부에서 돈을 안 써요. 또 전문가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전문가가 전문가의 역량을 발휘하도록 하지 않죠. 상담이란 게 한 번 한다고 좋아지지도 않고, 많이 한다고 나아지는 것도 아닌데요. 전문가에게 한 달에 상담 30개 해, 못했으면 돈 이만큼만 받아, 이런 식이니까요. 그런 상황인데 어떤 전문가가 거기서 자기 역량을 발휘하고 지역 사회에 헌신하고 싶겠어요. 나중에 이런 포스팅도 발행하려고 하는데요. 국회의원 투표할 때 정신건강 정책을 보는 것들을 해보려고 해요.

 

‘통제력 착각’ 이야기를 꼭 해야 할 것 같아요. ‘그때 이렇게 했으면 그런 일을 당하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계속 생각하면서 자기비난을 하는 건데요. 이 상태를 벗어나기만 해도 정신 건강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역시 쉽지 않은 일이고요.


강현식:저는 ‘지나간 사건은 통제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고민해보자’고 얘기를 많이 해요. 얘기뿐 아니라 여러 방법을 쓰기도 하죠. 한 번은 집단 상담을 하는데 집단원 중에 굉장히 큰 상처를 갖고 있는 분이 있었어요. 이 사람이 자기 탓을 했더니 다른 집단원이 그건 당신 잘못이 아니라고 말을 해줬어요. 당연히 잘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내 잘못이라고 해야 방법도 있을 것 같고, 속이 편하니까요. 그런데 한 집단원이 계속 당신 잘못이 아니라고, 소리를 지르며, 울며, 당신 잘못이 아니라고 강하게 한 거예요. 그때 이 사람의 마음이 확 열렸어요. 그걸 보면서 많이 느꼈어요. 말로 설명하는 것만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진심이 전달될 때 마음이 움직이는구나, 하고요. 관계 안에서 당신 잘못이 아니라고 강하게 얘기하면 조금 생각이 바뀌는 것 같아요. 저 사람이 많이 애써주고 있구나, 를 느끼면 그게 가능한 것 같아요.

 

집단 상담의 가능성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네요.


강현식:한국 사람들은 내 얘기를 남에게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너무 강해서 집단 상담을 해보자고 하면 거부하는 경우가 많아요. 오해를 어떻게 풀어야 할지 고민이 많았어요. 사실 집단 상담에서 자신의 과거는 얘기 안 해도 되거든요. 그런 게 아니라고 해도 일단 다른 사람이 있다는 자체가 부담이 되는 것 같아요. 저는 고민 끝에 집단을 공개해보자고 생각했어요. 지금 집단 상담을 찍어서 유튜브에 올리고 있거든요. 저도 처음엔 누가 올까 싶었어요. 비밀보장이나 익명성이 그렇게 중요한 나라에서 말이에요. 그런데 생각보다 많이 오셨어요. 대신 무료이긴 하고요. 어쨌든 서밤 작가나 저나 집단 상담이라든지 정신 건강 이슈, 혹은 정책적인 면 등에서 고민을 많이 하고 있어요. 전문가로서 계속 홍보를 하고 중요성을 말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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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다시 살아볼 기회가 있다


전문가로서 느끼는 변화도 있을까요?


서밤:블로그를 한지 3년 정도 되는데요. 상담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많아요. 처음에 말했을 때는 와 닿지 않지만 몇 년에 걸쳐서 얘기하니까 ‘나도 상담 받아 볼까?’ 이렇게 변하는 것 같아요. 제 주변에서도 상담을 되게 많이 시작했고요. 저도 꾸준히 상담 받고 있어요. 상담 받으면서 제 인생도 많이 변하고 있고요. SNS에도 상담 받고 어땠다, 하는 얘기가 많이 올라오는데요. 그런 걸 보면 신기하기도 하고, 많은 분들이 마음의 작업을 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위로가 되기도 하고 그래요. 젊은 분들은 확실히 그런 면에서는 거부감이 덜한 것 같아요.


강현식:심리 상담에 대한 인식이 바뀐 것도 느끼고요. 더 크게 느끼는 건 정신과에 대한 인식 변화예요. 생각보다 정신과에 가는 인식이 문턱은 정말 많이 낮아진 것 같아요. 상담 오시는 분들 얘기 들어보면 약 먹고 있다고 하시는 분들도 많거든요. 그런 변화 중 하나는 연예인들이 TV에 나와서 말하는 거죠. 공황장애 같은 것을 얘기하니까 대중들도 ‘갈 수 있구나’라고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서밤: 세월호 이후에도 변화가 많았던 것 같아요. PTSD(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대해서도 많이 알게 되면서 오시는 분들도 있고요.

 

실질적으로 심리적인 어려움을 겪는 분들에게 해줄 수 있는 조언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서밤:제가 그림일기를 통해서 항상 얘기하는 것은 ‘네가 미친 것 같겠지만 나도 그렇다, 다들 이상하다’인 것 같아요.(웃음) 그럼 뭐 어때, 다 힘든데 좀 솔직하자, 힘들 때는 힘들다고 얘기하자, 라고요. 저는 그걸 그림일기로 다 얘기하거든요. 오늘 이렇게 슬펐고, 혼란스러웠다, 말하는데요. 그때그때 솔직한 것, 이게 지금 제 관계에서 많이 시도하고 있는 거예요. 힘들 때 밝은 척하지 않고, 내 얘기 하고 싶은데 참으면서 상대 얘기 들어주지 않고, 그런 것들이요.


강현식:솔직함이 최선이라는 것 절대 동의해요.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입장에서만 상대를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저는 좀 물어보라고 많이 얘기해요. 다 아는 것 같지만 사실은 모르는 게 많아요. 물어보고 솔직하게 얘기해서 관계라는 것을 제대로 만들어보자는 얘기를 해주고 싶어요.

 

당연한 얘기지만 두 저자도 심리적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가 있잖아요. 그럴 땐 어떻게 하세요?


서밤:울어요.(웃음) 엉엉 웁니다. 울고, 친구들한테 얘기하고, 그림일기 그리고, 그렇게 많이 하고 있어요. 그림일기가 엄청 치유가 많이 돼요. 저라는 사람에게 있는 문제를 얘기하면서 하나씩 더 받아들이게 되니까요. 자기가 부끄러워하는 걸 얘기할 때 가장 많이 치유가 되는 것 같아요.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얘기했는데 누군가 공감해주면, 적어도 내 스스로한테 얘기해서 스스로가 달래줄 수 있으면 큰 도움이 돼요.

강현식:집단 상담을 하면서 계속 느꼈던 건 솔직하게 내 감정을 표현해야 한다는 점이었는데요. 그게 막상 아내와는 잘 안 됐어요. 정서적으로 너무 가깝고 삶이 얽혀있으니까요. 그러다 너무 힘든 시기가 있었거든요. 아내와 끝까지 싸우다가 어느 순간 이 사람의 마음이 궁금해지는 거예요. 그래서 솔직하게 물었어요. 왜 그렇게 얘기했느냐고, 솔직한 마음이 궁금하다고요. 그러니까 솔직하게 마음을 얘기하더라고요. 그때 생각했어요. 진짜 진심을 사랑하는 사람과 나누면 거기에서 힘이 난다는 걸요. 지금은 아내도 있고요. 주변에 그렇게 솔직하게 마음 나눌 관계들이 있어요. 그 관계들이 제 삶을 많이 잡아주고 있죠. 

 

이 책을 어떤 분들한테 권하고 싶으세요?


서밤:내 삶을 다시 살아볼 기회가 있다는 걸 믿는 분들한테 선물하면 좋을 것 같아요. 타고나길 잘 타고난 사람도 있겠지만 아닌 사람도 많잖아요. 제 경우 태생적으로 우울하고 불안한 기질을 많이 타고났고, 그렇게 많이 살아왔는데요. 이런 삶 말고 다른 삶도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있는 분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어요. 익숙한 불행 대신에 낯선 행복을 만나고 싶은 분들이 읽으시면 좋겠어요.


강현식:저는 십 년 정도 땅만 쳐다보고 다녔어요. 사람들이 싫고 무서워서요. 그런데 공부를 하면서 물어볼 수 있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어요. 저는 상담을 받고 상담에 참여하면서 관계가 정말 편해졌거든요.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상담을 통해 처음 알게 된 거예요. 그 다음부터는 눈치 보지 않는 훈련을 하게 됐기 때문에요. 저는 이 책을 관계 때문에 힘들어하는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어요. 변화의 실마리를 책을 통해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제 마음도 괜찮아질까요?강현식, 서늘한여름밤 저 | 와이즈베리
‘나도 혹시 심리상담이 필요할까?’ 한번 쯤 고민해봤다면,한 권으로 끝내는 ‘심리상담 가이드’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제리안 “로맨스 소설 쓰려면 모바일을 기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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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를 보면서 ‘저건 나도 쓰겠네!’를 외치며 밥숟가락을 내려놓은 사람들에게 혹할 만한 작법서가 하나 나왔다. 제목부터 확실한 『나도 로맨스 소설로 대박 작가가 되면 소원이 없겠네』. <문학바탕>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해 잡지사 기자, 출판사 편집장을 지내다 전업 소설가로 사는 제리안 작가가 로맨스 소설을 쓰는 방법, 그중에서도 ‘잘 되는’ 로맨스 소설을 쓰는 방법을 파고들었다.


웹과 모바일 플랫폼에서 알음알음 명성을 얻은 로맨스 소설은 영화로, 드라마로 만들어지면서 원작의 인기를 한층 더 올려놓았다. 누구나 플랫폼을 기반으로 쉽게 자기 작품을 올리면서 ‘대박 작가’에 도전할 창구가 많아졌다. 그러나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로 상위 1%가 되기는 하늘의 별 따기. 제리안 작가는 잘 나가는 작품이 가진 공통점을 찾아내고, 그것을 ‘법칙’으로 정리해 로맨스 소설 쓰기에 도전하는 사람들에게 쉽게 따라 하는 길을 열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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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잃어버린 작가들에게

 

책 표지가 귀엽네요.

 

로맨스 작법서에 웬 고양이 사진이냐고 많이 말씀해주시더라고요. 집에서 제 별명이 ‘뚱냥이’거든요.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우는데 그중에서 제가 제일 뚱뚱한 고양이 같다고 신랑이 놀려서 출판사 대표님에게 그 이야기를 했는데, 이렇게 표지를 해주실 줄은 몰랐어요(웃음). 저는 마음에 들어요.


표지에 동물이 들어가면 성공할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광고에서도 3B(beauty, beast, baby)가 중요하다고 하잖아요. 저도 기대를 많이 하고 있는데 리뷰를 보면 다들 좋게 읽어주신 것 같아요.


원래 글쓰기 수업을 많이 하셨었다고요.


소설 수업은 아니고, 일반적인 태크니컬 글쓰기나 시 작법 수업, 치유하는 글쓰기 등의 교사 연구를 많이 했었어요. 기자 출신이기도 해서 기사작성법 강의도 했고요. 요즘에는 진로 특강을 다니면서 어떻게 하면 작가가 될 수 있는지 도움을 주는 활동을 해요.


그중에서도 로맨스 소설 작법으로 책을 써야겠다는 계기가 있었나요?

 
로맨스 소설은 웹을 기반으로 하다 보니 순수문학과 너무 다르더라고요. 처음에는 로맨스 소설이 아니라 그냥 일반 연애 소설로 접근해서 썼어요. 운이 좋아서 출판사와 계약은 했지만 발표하고 나니 너무 재미없다고 욕을 많이 먹었죠. 처음 나온 『허니문 트릭』이 순수문학 반, 로맨스 반 어정쩡한 포지션이었다면 그 작품을 토대로 웹 소설화 해서 완전히 다시 쓴 게 『결혼계약』이에요. 쓰다 보니 독자들이 원하는 것과 작가가 쓰고자 하는 방향성이 다르더라고요. 고민하던 차에 저처럼 답답해하는 사람이 많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삽질을 했지만 처음 시작하거나 어떻게 해야 하는지 길을 잃어버린 작가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노하우를 공개한 거죠.


꽤 두툼한 노하우 책이 되었어요.


욕심이 많아서 한 권에 모든 걸 다 담고 싶었어요. 『수학의 정석』처럼요. 이 책만 있으면 로맨스 소설이나, 소설을 써보신 적 없는 분이더라도 참고해서 쓸 수 있게요.


로맨스 소설은 언제 쓰기 시작하셨어요?


2013년 즈음 웹 소설이 시작되고 바로 들어간 편이에요. 그때는 다들 웹 소설을 이해 못 하는 시절이었어요. 기존에 있던 콘텐츠가 책을 웹에 올리면 그게 그대로 웹 소설이 될 거라고 생각하고 접근했었는데, 나중에야 다르다는 걸 알게 됐죠.


3, 4년 만에 판이 많이 커졌네요.


규모도 처음에는 몇억 하다가 몇백 억, 지금은 천억 단위로 이야기하니 짧은 시간에 엄청나게 성장한 거죠.


실제로 플랫폼 안에서도 시장이 커졌다는 실감을 하시나요?


플랫폼마다 정말 작품이 넘쳐나요. 포화 상태여도 매일매일 신작이 업데이트되니까 기존에 있는 작가들의 연재도 신작에 묻혀요. 그래서 모든 플랫폼에서 프로모션이나 마케팅이 중요할 수밖에 없어요. 대형 작가 사이에서도 어느 출판사를 만나 어떻게 프로모션 해주느냐에 따라 매출 차이가 크게 나요. 업계 분들이 반 농담으로 백 배 차이 난다고 말할 정도로 수입 차이가 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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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는 대리만족을 원한다


워낙 한국의 드라마가 ‘기승전사랑’이라는 오명이 많았잖아요. 의학 드라마도 사랑, 법정 드라마도 다 사랑으로 귀결된다면서요. 한국인이 특히 로맨스를 좋아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우리나라는 사회적인 분위기라든지 남녀 관계에서 낭만이 부족해서 더 갈구하는 것 같아요. 유럽을 보면 길거리에서도 자연스럽게 키스하거나 다정다감하게 굴잖아요. 유교 사상까지는 아니겠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다른 사람들 눈치를 많이 봐요. 결혼하고 신혼 기간이 지나면 ‘가족끼리는 그러는 거 아니다’라고 하고요. 하지만 꿈은 꾸잖아요.


이야기에서 대리만족을 찾는다?


그렇죠.


한국판 로맨스의 특징으로 ‘일편단심’과 ‘해피엔딩’을 꼽아주셨어요. 독자들 반응도 비슷한가요?


저도 처음에는 독자들을 고려하지 않고 막 되는대로 썼었거든요. 최근작 『케미하우스』는 6명의 남녀가 나와요. 처음 기획은 6명끼리 자유롭게 연애하다 나중에 누가 누구랑 커플이 될 것인지 맞추는 식으로 했는데, 출판사 편집자가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게 안 먹힌다고 하더라고요. 어떤 사람이 도둑질하면 욕을 안 먹더라도 불륜으로 걸리면 완전히 사회적으로 지탄받는 등 아직 알게 모르게 관습적인 게 있어요. 성공한 로맨스를 살펴보니 역시나 관습적으로 일편단심과 해피엔딩이 나오더라고요. 독자들이 슬픈 결말을 너무 싫어해요. 만일 슬프게 끝났다, 그럼 외전 빨리 올려달라고 댓글을 달아요. 그게 아니라고 믿고 싶은 거죠. 어쨌든 오락으로서 돈 주고서 보는 건데, 왜 독자를 우울하게 만들고 기분 나쁘게 하냐는 항의예요. 생각해보면 만족을 얻기 위해 보는 거니까, 그 말이 맞죠.


부제가 ‘생초보도 5주면 쓸 수 있는 돈 버는 로맨스 글쓰기’예요. 5주로 잡은 이유가 있나요?


30화 완결을 목표로 매일 1화씩 쓰고 나머지 5일 동안 퇴고하면서 마무리한다는 의미로 5주를 잡았어요. 처음부터 70화, 100화를 염두에 두면 완성을 못 하거든요. 처음 쓰시는 분이라도 30화 정도면 써볼 만 하다고 생각해서 체크리스트를 만들었어요.


구체적인 내용으로 넘어가볼게요. 프롤로그는 길게 쓸 필요 없고 티저의 역할로만 활용하라고 하셨는데, 어떤 내용을 보여줘야 하나요?


신인 작가분들이 제일 많이 하는 실수가 프롤로그를 너무 거창하게 푸는 거예요. 아름다운 서사를 한참 읽다 보면 솔직히 지쳐요.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게끔 분위기나 배경, 어떤 사건이 일어나겠다는 예고편을 보여주는 건 좋은데, 무엇보다 주인공이 빨리 등장해야 해요. 주인공이 먼저 나와주면 독자들은 이 사람이 주인공이고 이 사람의 시점에서 시작되는 이야기라고 받아들이게 돼요. 거기까지만 유인을 하면 캐릭터의 매력이 많을수록, 사건의 폭이 클수록 흥미진진하게 받아들이는 거죠.


특별한 키스 장면을 만들어 내는 방법도 말씀해 주셨어요. 아이디어를 얻는 방법이 있나요?


로맨스 소설을 쓰시는 분들은 드라마나 영화 등 영상을 많이 보실 것을 권해요. 시각적인 자극이 먼저 와야 묘사를 하기 쉽거든요. 오만가지 상상을 평상시에 하면(웃음) 모든 장소에서 소재가 될 만한 게 보이고요. 특별한 키스를 만드는 방법은 의외성이에요. 드라마에서 ‘거품 키스’라든지 ‘OO 키스’라고 만들어내는 방법은 정말로 뜬금없는 장소에서 키스할 만한 상황과 분위기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하는 거거든요. 예전에 <시크릿 가든>에서 윗몸일으키기 하다가 키스하는 거, 우리 생각 못했잖아요. (웃음)


로맨스 소설 작법이라고 하지만 다른 소설에도 적용 가능한 내용이에요. ‘로맨스의 3박자’를 소재, 배경, 캐릭터로 잡았다든지요.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로맨스에 최적화된 소재나 배경이 있을 거예요. 사실 우주 공간이 배경이어도 좋은데, 가장 잘 먹히는 배경으로는 사무실이 있어요.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공간이자 반면에 가장 싫은 공간이기도 하거든요. 회사 가면 무슨 낙이 있겠어요, 매일 소처럼 일만 하고 집에 가도 ‘건어물녀’처럼 쉬고 있을 테고요. 가장 지루한 공간을 어떻게 탈바꿈하느냐에 따라 설렘의 코드로 작용할 수 있거든요. 아니면 더 나아가서 아예 3세계로 나아갈 수도 있죠.


요새 로맨스 판타지가 많이 보이는 것 같아요.


완전 효자 종목이에요. 너무너무 잘 팔리고 있죠. 로맨스 판타지는 10대부터 40대까지 다 보거든요. 40대 넘어서는 소녀 감성을 회복하면서 10대가 볼만한 걸 40대가 합류해서 보니까 매출이 높죠. 10대는 웹 소설보다 웹툰을 훨씬 많이 보지만, 그래도 웹 소설을 보는 인구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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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적인 캐릭터 만들기


‘친구 삼고 싶은’ 여자 주인공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여자 주인공에게 친근감과 호감이 들어야 그의 사랑과 일이 궁금해요. 독자들에게 호감이 안 간다는 건 매력이 없다는 거죠. 읽다 보면 내 이야기 같은, 내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친구 이야기 같은 느낌이 드는 게 친근함의 역할이에요. 그리고 독자들은 그 친구가 그냥 친구가 아니라 자랑스러운 친구가 되길 원하더라고요. 댓글에서 ‘역시 넌 똑똑해’ ‘역시 상황판단이 빠르군’ 하면서 여주인공을 친구로 인식하고 공감하고 몰입하면 성공한 거죠. 다가설 수 없는 캐릭터라면 그런 댓글을 달지 않을 거예요. 또한 친구를 넘어서 자신에게 없는 점이 있고 당차게 인생을 개척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면 대리 만족으로 느끼고 닮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요. 내 이야기이자 내 친구의 이야기, 내가 닮고 싶은 ‘워너비’의 이야기면 사랑을 받는 거죠.


평면적으로 단순한 캐릭터가 효과적이라고 하셨는데, 소설에서 주인공의 성격을 일관적으로 가져가기 쉽지 않아요.


성격이라는 건 사실 그 사람의 속성이기 때문에 변하지 않아요. 주인공이 반응이 달라질 수는 있겠죠. 그건 성격이 변한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속마음이 바뀌면서 반응이 달라진 거죠. 하지만 이 점을 오해하면 뒤로 갈수록 주인공의 성격이 다르게 바뀌어요. 독자들이 갈수록 성격 이상해진다고 댓글을 달게 되고요. 매력은 계속 유지하되 상황에 따른 반응을 다르게 하면서 독자들이 주인공이 질투하는 거라고, 혹은 기분이 나쁜 거라고 짐작할 만한 대사를 써주는 게 좋아요.


반대로 남자 주인공은 완전히 빠져들어야 하는 대상이라고 조언하셨어요. 이런 남자 주인공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다섯 가지 방법을 소개하고 있는데, 사실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인간 성격의 유형이에요. 남자 주인공이 호감을 살 만한 다섯 가지 특징을 다 가지고 있으면 좋겠지만 사람이 그럴 수 없잖아요. 하나만 갖추고 있어도 내용과 분위기가 달라질 거예요.


책을 준비하면서 심리학을 공부하셨나요?


워낙 관심도 많았지만 책을 쓰면서 로맨스가 작법만 공부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라고 느꼈어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려면 사람의 마음을 먼저 알아야 하니 공부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주인공과 주인공의 갈등이 왜 일어나는지, 이 두 사람의 마음 속 깊이 들어가서 심리를 내밀하게 들여다보면 보여요. 하지만 처음 쓰시는 분들은 에피소드만 가지고 갈등을 일으키려고 하다 보니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심리학에 관심을 두게 됐죠.


순수문학에서는 그 사람의 내면 묘사가 복잡하다면, 장르 소설은 단순하고 사건 위주로 가야 한다고 조언해 주셨어요. 단순하게 표현하기 전에 공부를 많이 해야겠네요.


순수문학에서는 갈등을 문장으로 풀어요. 문장으로 그 사람의 심리 묘사를 많이 하는데, 로맨스에서는 갈등을 사건과 대사로 푼다는 차이가 있을 뿐 로맨스든 순문학이든 심리에 관심을 두고 접근해야 하는 건 맞아요.


혈액형별 심리나 별자리에 따른 인간 구분이 캐릭터 만드는 데 도움을 준다는 말씀도 있었어요.


절대적인 방법은 당연히 아닌데요, 정말 캐릭터 못 만들겠다 하는 분들은 하나의 방법론으로 참고할 수 있어요. 혈액형은 표면적으로 사람의 유형을 네 가지로 구분해 놓잖아요. B형은 활발하고 A형은 소심하다는 식으로요. 어떤 상황이 일어났을 때 O형의 사람이라면 어떻게 반응할지 대화로 풀어나가 보는 거죠. 별자리 운세를 보면 오늘의 행운 아이템이나 색이 나오는데, 그런 점에 착안해 캐릭터마다 어떤 색을 좋아하고 어떤 스타일로 옷을 입는지 생각하다 보면 전체적인 외형의 이미지도 그릴 수 있고요.


갈등 요소도 중요하다고 말씀해주셨는데, 캐릭터가 서로 평등한 관계여야 갈등이 잘 일어난다고 하셨어요. 서로 평등한 캐릭터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가장 좋은 방법은 회사 안에서 직급을 너무 떨어뜨리지 않는 방법이 있을 수 있어요. 예를 들어 남자 주인공이 팀장이라면 여자 주인공은 대리 정도인 거죠. 사장과 평사원이라도 평사원이 사장의 약점이나 볼모를 쥐고 있으면 가능해요.


예전 드라마나 로맨스 소설을 보면 부잣집 남자와 신데렐라 이야기가 많이 나와요. 요새도 적용할 수 있나요?


신데렐라는 불변이에요. 영원한 아이돌이죠.


신데렐라 스토리에서는 어떻게 대립 구도를 형성할 수 있나요?

 

신데렐라는 사회적 위치보다는 일단 예쁜 게 무기예요. 솔직히 평사원이 사장에게 눈에 들 정도면 매우 예쁘다는 뜻이거든요. 그 사실 자체가 갈등의 시작이 될 수 있어요. 사장이 완벽하고 냉정한 사람이었는데 아무에게도 보여주기 싫었던 약한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될 수도 있고요. 계기를 주는 건 무궁무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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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틱 로맨스의 가능성


보면서 웃었던 부분이 있어요. ‘남녀 성기에 이상한 이름을 붙이면 안 된다.’ (웃음) 왜 안 되나요?


이상하잖아요. (웃음) 로맨스에서 한창 러브신에 몰입하고 있는데 갑자기 ‘뿡뿡이’가 튀어나오면 독자들이 읽다가 확 깨는 거죠. 사용하실 거면 분명 러브신 전에 언급이 있어야 해요. 그걸 갑자기 서사로 풀면 독자들이 이해를 못 하죠.


러브신을 표현하는 데 한계가 있지 않나요? 수위가 높아지려면 자주 해야 되는데 늘 다른 표현을 찾기도 쉽지 않고요.


저도 너무 힘들어서 다른 작가는 어떻게 하나 물어본 적도 있어요. 오히려 줄거리를 쓰는 것보다 러브신이 제일 스트레스를 많이 받더라고요. 같은 걸 다르게 표현해야 하는데, 기왕에 쓸 거라면 조금이라도 색다른 표현으로 하면 좋죠. 그래서 깨달은 건 감정과 배경이에요. 감정의 폭을 잘 묘사하면 같은 신이라도 계속 달라져요. 행동의 묘사보다는 감정을 따라가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에로틱 로맨스 중에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가 대 히트를 기록한 적이 있죠. 그런 책이 한국에서도 나올 가능성이 있을까요?


우리나라에서도 에로티카와 에로틱 로맨스 장르가 급성장하고 있어요. 그동안에도 니즈는 있었지만 음지에서 숨어 보던 독자들이 이제는 당당하게 요구하는 시기가 왔고 실제로 구매가 많이 일어나요. 『나도 로맨스 소설로 대박 작가가 되면 소원이 없겠네』라는 책을 썼지만, 솔직히 돈을 벌려면 에로틱 로맨스를 쓰시면 돼요. 월급처럼 안정적으로 구매가 일어나거든요. 유행도 안 타고요. 하지만 대부분 작가가 에로틱 로맨스를 쓰기 망설여하세요. 자기 이름 걸고 쓰는데 부끄럽다 이거죠. 지금은 과도기 아닌 과도기인 것 같아요. 이전에는 풋풋한 로맨스, ‘심쿵’하는 로맨스가 많았다면 지금은 더욱 농염한 에로틱 로맨스로 많이 넘어왔어요. 이 부분이 성장하고 좋은 작품이 많이 나오면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같이 히트하는 작품도 나오겠죠. 멀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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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문장력과 방법만 알면 돼요


책을 보면 한 번쯤 ‘나도 써볼까?’하는 생각이 들 것 같아요. 하지만 시장이 성장 추세에 있더라도 다들 성공할 수는 없잖아요.


그렇죠. 도전하는 분들이 많아졌다는 건 진입장벽이 낮아졌다는 뜻도 있지만, 그만큼 나눠 먹을 파이가 줄어들었다고도 볼 수 있거든요. 그래서 돈을 버는 작가가 반이라고 하면 반은 못 번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있었어요. 나머지 돈 버는 작가도 스타 작가라는 사람은 100명 안쪽이고 나머지 작가는 한 달에 정산을 얼마 받는지 모르는 거죠. 그래도 제 생각에는 지금의 레드 오션을 얼마든지 퍼플 오션으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마추어가 아닌 작가분들 중에서도 정말 좋은 로맨스 작품을 쓰려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독자들도 대단한 걸 바라는 게 아니에요. 소재와 트렌드, ‘심쿵’ 포인트와 약간의 문장력만 있으면 독자들에게 인정받기 쉬워요.


인터넷의 ‘웹소설 10계명’을 소개해 주셨어요. 첫 번째로 모바일 기기가 가장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가독성이죠. 읽기가 편해야 해요. 같은 분량이라도 플랫폼에 따라서 행간과 자간이 다르기 때문에 읽기 어려울 때가 있어요. 일반소설로 한 문장이 한 줄이라면 모바일 기기에서는 네 줄이 돼요. 그래서 상대적으로 너무 길게 느껴지는 거예요. 종이나 A4용지로 아무 문제가 없던 문장이 모바일 기기로 보면 더 길어져요. 그래서 투고하시기 전에 모바일 판형에 맞춰 퇴고하시면 훨씬 도움이 돼요.

 


웹소설 작가와 전자책 출판사 관계자들이 밝힌 웹소설 쓰기 10계명


1. 독자가 모바일 기기로 소설을 본다는 사실을 절대 잊지 마라.
2. 문장은 최대한 짧게 써라.
3. 문단 개념을 잊어라.
4. 한 문장마다 줄을 바꾸고, 한 줄을 띄어 써라.
5. 이야기는 서사 대신 대화 형식으로 진행하라.
6. 영화 시나리오와 유사하게 써라.
7. 독자들은 화면을 내렸다가 다시 위로 올리는 걸 귀찮아한다.
8. 스토리는 시간 순으로, 문장은 이미지가 떠오르게 구성하라.
9. 1화는 5500자면 족하다. 단, 1화 내에 기승전결을 갖춰라.
10. 드라마처럼 마지막 부분에는 다음 회가 궁금하도록 끝내라.

 


지망생이 많아지면서 개인적으로도 글을 봐달라는 요청이 많이 들어올 것 같아요.


너무 많아요. 가끔 블로그에서 무료 첨삭 이벤트를 열 때가 있어요. 그러면 시나리오, 드라마 대본, 소설 등 온갖 장르를 다 보내오세요.


습작을 보면서 안타까운 점이 있나요?


태도나 자세 때문에 안타까울 때가 많아요. 별다른 노력을 안 한 채 막연하게 작가가 되면 좋겠다는 분들이 제일 안타깝죠. 무조건 만나달라고 하는 분도 많아요. 제가 만난 적도 없고 생판 모르는 남인데 그걸 봐 드려야 할 의무는 없잖아요. 그 답답함이 안타까움으로 변해서 책을 쓰게 된 것 같아요.


앞으로 습작하시는 분은 이 책을 보면 되겠네요.


제일 많이 질문하는 내용을 넣기도 했고요. 자료가 생각보다 많이 없더라고요. 로맨스 장르 자체를 정리한 책은 거의 없고 정보가 한정적이기 때문에 많이 답답해하실 거예요.


요새는 무슨 작업 하세요?


신작 로맨스 쓰고 있어요. 코미코의 ‘심야 작가’라는 코너에서 독점 계약으로 오픈할 것 같아요.


하루에 시간을 정해 놓고 쓰시는 편인가요?


예전에는 쓰고 싶으면 쓰고 자고 싶으면 잤는데, 직업적으로 글을 쓰고 나서부터는 정해진 시간에 쓰려고 많이 노력해요. 아침에 남편 출근하고 나서는 저도 집에서 일하는 거죠.


독자가 이 책을 읽고 실제로 도전한다면,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좋을까요?


글을 써야지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 오고 멀미가 날 것 같잖아요. 흰 바탕에 커서만 깜박깜박 하고요. 그러면 못 시작해요. 제가 잘 쓰는 방법은, 밤을 자기 전에 상상해요. 꿈을 꾸는 거죠. 드라마 한 장면도 좋고, 가슴 뛰게 하는 주인공들의 키스 장면이라든지 공상을 하다 보면 쓰고 싶은 욕구가 갑자기 생길 때가 있어요. 그 순간에 생각나는 지점부터 써 내려가면 돼요. 1화부터 배경 쓰기 전에 쓰고 싶은 지점부터 자유롭게 쓰는 거죠. 일단은 자기가 설레고 가슴 뛰는 게 로맨스 소설 쓰기의 기본인 것 같아요.


글을 쓴 다음에는 어떻게 출판사에 연락하면 될까요?


자기 성향에 맞게 무료로 연재하는 플랫폼에서 시작하셔도 되고요. 무료로 연재하다 보면 많은 분이 보고 출판사에서도 눈에 띄는 신작은 연락을 할 거예요. 무료 연재의 좋은 점은 곧바로 피드백을 받아볼 수 있다는 거죠. 혼자 쓰는 게 너무 지루하고 자신 없다면 무료로 연재하면서 반응을 보실 수 있어요. 독자 의견을 보면 방향성을 잃을 것 같다, 혼자 쓰는 게 좋다고 하시면 완결 원고까지 다 쓴 다음에 로맨스를 전문으로 하는 출판사에 투고할 수도 있어요.


마지막으로 로맨스 소설에 도전하는 독자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로맨스라고 하면 쓰는 작가도 스스로 부끄러워하는 분위기가 있어요. 필명도 이름으로 쓸 만한 필명이 아니라 아무렇게나 짓고요. 많은 분이 직장을 다니면서 두 번째 직업으로 하느라 정체를 밝히고 싶지 않고 싶다고 들었는데, 어쨌든 본인이 로맨스 작가라는 사실을 조금 더 자랑스러워 해도 좋을 것 같아요. 로맨스 분야로 모든 플랫폼이 먹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크기 때문에 문화 콘텐츠를 이끌어 가는 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자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나도 로맨스 소설로 대박 작가가 되면 소원이 없겠네제리안 저 | 앵글북스
독자들의 호응을 얻으며 끝까지 로맨스 작가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런 질문에 기성작가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 똑같은 대답을 들려준다. 다른 작품을 많이 읽어보고, 많이 써보라고. 과연 그게 전부일까?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독립출판물 저자를 만나다] 하루도 빼놓지 않은 1년의 이야기 -최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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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 최경식은 첫아이를 낳고 ‘무엇이든 꾸준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그림일기를 시작했다. 2014년 1월 1일부터 시작해 만 3년을 꾸준히 하루도 빠뜨리지 않고 그림과 글로 채우자 책으로 엮어보라는 주변 사람들의 조언이 늘어났다. 아내와 같이 차린 디자인 회사인 ‘소보로’ 이름으로 출판사 등록을 하고 처음 1년 동안의 일기를 책으로 엮었다. 독립 출판이면 책만 만들어도 될 텐데 굳이 출판사를 차린 이유는, ‘ISBN을 한번 찍어보고 싶어서’였다.

 

“건축 공부를 하다가 군대 대신 병역 특례로 건설회사에서 일하려고 했는데, IMF가 터지면서 건설 회사 일자리가 모두 없어졌어요. 그래서 정보처리 기능사를 따서 IT 업체에 들어간 걸 계기로 건축이랑은 살짝 어긋나게 됐죠. 이후 회사에 다니면서 설계 관련 업무와 해외 영업을 하다 회사를 그만두고 일러스트를 시작했어요. 아내도 찬성해줬고요.”


배운 게 있어서일까, 최경식 작가의 그림책 『파란 분수』는 세밀한 펜화로 건축적이라는 평가를 많이 받았다. 『매일 그림 매일 일기』는 기존 작품과는 다르게 두꺼운 펜으로 쓱쓱 그려나갔다는 느낌이다. 아내와 두 아이와 함께 살며 떠오르는 이야기를 풀어내기 좋은 그림체다.


“『3시의 나』를 보면 매일 오후 세 시에 작가가 무엇을 했는지 그림일기를 그려요. 저도 비슷한 시도를 해보고 싶더라고요. 아이가 어릴 때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재밌어서 아이가 자란 흔적을 남기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어요. 매일 그리려면 간단한 스타일이 좋더라고요. 메모 애플리케이션 같은 곳에 글을 매일 써놓고 나중에는 2~3일에 한 번씩 그림을 그리기도 했어요. 파브리아노 종이에 그림을 그리고 스캔해서 작업했죠.”


최경식 작가는 예전부터 ‘토시기’라는 캐릭터로 일상을 그린 적이 있다. 토끼 귀에 사람 몸, 듬성듬성 난 수염과 눈코입은 귀엽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어디선가 본 것만 같은 친근함을 남긴다. 『매일 그림 매일 일기』에서는 기존의 캐릭터가 아닌, 그림쟁이 아빠의 캐릭터로 일상의 한 부분씩을 기록으로 남겼다.


“소보로 출판사 이름으로 2015년 일기도 낼까 하는데 항상 재고를 놔둘 데가 문제예요. 『매일 그림 매일 일기』는 독립 서점마다 조금씩 비치했는데, 대형 서점에 들어가려면 매일 주문이 있을 때마다 물류센터에 보내야 한다고 해서 포기했죠. 그렇게 하려면 배본 업체를 거쳐야 할 텐데 잘 모르기도 하고, 일단은 소소하게 혼자 해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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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서점 일부에 넣었던 책은 알음알음 연락이 오면서 취급하는 곳이 점점 늘어났다. 보통 독립 서점마다 처음에 샘플 한 부와 다섯 권 정도를 비치한다고 한다.


“『매일 그림 매일 일기』를 그리면서 좋았던 건, 일단 저도 꾸준히 할 수 있다는 뿌듯함이 있어요. 다시 일기를 들추면 그 날의 일이 많이 떠올라요. 저만의 역사가 생겼다는 게 좋아요.”


2014년부터 2016년 말까지 3년을 꼬박 썼다. 잠시 쉬었던 그림일기는 둘째가 생기면서 펜을 바꿔서 다시 도전 중이다.


“글로 에세이를 쓰려고 하면 어려워요. 제가 그림 그리는 사람이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지만, 글로 써보니까 제가 재미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일단 글을 적게 쓰고 그림과 같이 있으면 둘 다 힘을 받는 것 같아요. 그림도 계속 그리면 느니까요. 계속 그리고 관찰하다 보면 기록물이 쌓이지 않을까요?”


독립 서점의 도서 리스트에 에세이는 빠지지 않는다. 그만큼 사람들에게 자기 일상을 표현하고 싶다는 본능이 있는 게 아닐까. 처음부터 어렵게 시작하기보다는 간단한 그림과 함께 한 줄이라도 먼저 시작해보는 것이 좋다고 작가는 말한다.


“회사를 그만둔 게 2007년 말이었으니, 일러스트레이션을 한 지는 10년 정도 됐어요. 많이 벌진 못해도 일은 꾸준히 들어오게 됐는데, 그래도 먹고사는 일을 하다 보면 창작하기가 쉽지 않아요. 『파란 분수』와 고규홍 작가님과 함께 쓴 『도시의 나무 친구들』로 강연을 나갈 때마다 아이들을 만나는데, 정말 순수하게 저를 좋아해주더라고요. 그래서 창작을 하나라도 더하고 싶다는 생각이 샘솟아요. 앞으로 무슨 작품으로 나올진 모르지만, 많이 사랑해주세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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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일기를 시작하려는 독자들에게 추천하는 책


『3시의 나』 아사오 하루밍 지음/이수미 옮김 | 북노마드

1년간 매일 오후 3시에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를 그림과 글로 기록한 책이다. ‘오늘’과 ‘순간’에 집중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깨닫게 한다.


『안자이 미즈마루』 안자이 미즈마루 지음/ 권남희 옮김 | 씨네21북스
자유로운 선과 색상으로 허술한 듯 보이는 안자리 미즈마루의 그림을 보고 있자면 ‘나도 쉽게 그릴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든다


『잘 그리지도 못하면서』 김중석 글?그림 | 웃는돌고래
그림을 그려서 먹고사는 ‘평범한’ 일러스트레이터의 이야기이자, 여느 작가들과는 달리 사람 만나는 것을 힘들어하지 않는 ‘남다른’ 작가의 이야기. 그림 작가의 현실적인 삶이 생생하게 그려지는 책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11월호 커버스토리] 이병률, 한 장의 그림을 구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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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역 도착. 이병률은 오늘도 어김없이 목적지로 곧장 향하지 않았다. 카페를 기웃거리다 사진을 몇 장 찍은 뒤 인터뷰 장소로 왔다. 1박 2일 일정도 아닌데 큰 트렁크를 끌고 온 이병률은 “서점에서 인터뷰한다고 해서요. 책 좀 담아가려고 트렁크를 가져왔죠”라고 첫인사를 나눴다. 산문집 『끌림』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등을 펴내며 여행 작가로 더 유명하지만, 이병률이 언제라도 가장 바라는 건 오래 전하지 못한 안부를 시로 전하는 일이다.

 

첫 시집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를 펴낸 지 올해로 14년. 이병률은 그간 책상의 속도에 맞춰 차곡차곡 쌓인 시들을 발표했다. 다섯 번째로 묶인 시집의 제목은 『바다는 잘 있습니다』. 40년 만에 통권 500호를 돌파한 문학과지성 시인선 503번째 작품이다. 이병률은 「시를 어떨 때 쓰느냐 물으시면」에서 “시는 쓰려고 앉아 있을 때만 써지지 않지”라며, “시는 나아가려 할 때만 들이치는게 아니어서 / 멀거니 멈출 때 / 흘린 것을 감아올릴 때 / 그것을 움푹한 처소에 담아둘 때 / 그 때”라고 썼다. “마음속 혼잣말을 그만두지 못해서 그 마음을 들으려고 가는 중”(시인의 말)이라며, “너무 많은 꽃을 피웠으니 / 다 됐다고 응석을 부려야 할까”(「착지」)라고 어색한 농을 던지는 이병률의 시들은 어쩐지 쉬이 읽히는 것 같지만, 좀체 마음속을 떠날 줄 모른다. “넘어야겠다는 마음이 있습니까 / 저절로 익어 떨어뜨려야겠다는 질문이 하나쯤은 있습니까?”(「청춘의 기습」) 때때로 단호한 이병률의 시심(詩心)은 사람에게 피어 사람에게 꽂힌다. “이제 감각도 없는 굳은살”(「사람의 재료」)을 파고들어 작은 균열을 내고야 만다. 올해가 지나기 전, 어쩌면 마지막일 수 있는 바다의 안부를 들으며 곰곰 생각했다. “오래 붙들고 산 풍경 같은 것”(「노년」)이 나에게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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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의 속도에 맞춰 나온 시집


부산은 얼마 만에 오셨어요?

 

며칠 전에도 지인의 장례 때문에 왔었어요. 밤에 내려왔다가 바로 서울로 올라갔어요. 오늘은 그래도 여유로운 일정으로 왔어요. 부산은 언제 와도 좋아요. 지인들이 꽤 있는 편이라 보고 싶었던 얼굴도 보고 술도 한잔하고 그러죠. 낯선 기류를 희석시키려면 살짝 취하는 것도 좋잖아요. 부산은 바다가 있지만 도시 같은 느낌도 있어요. 센텀시티를 가면 도시 속의 도시에 있는 기분이랄까요? 이국적인 느낌도 들고요.

 

대형 서점은 좋아하지 않는다고요. 여긴 어떤가요?

 

중고 서점이니까 빈티지 느낌을 많이 기대했어요. 공장을 리모델링한 공간이라고 들어서요. 아마 세월이 좀 더 흐르면 새로운 분위기가 나겠죠? 시간이 가져다주는 멋이 생길 테니까요.

 

오랜만에 독자들을 만났잖아요. 『바다는 잘 있습니다』를 펴낸 후 첫 행사로 알아요.

 

정식으로 하는 시 행사는 참 오랜만이었어요. 제가 즐겁게 해드릴 게없어 걱정이었는데, 모두 따뜻하게 반겨주셨어요. 그리고 좀 놀랐죠. 이 많은 분이 제 산문집이 아닌 시집을 들고 계셔서요. 아무래도 시는 좀 어렵고 특이하기까지 한 장르이잖아요. 독자분들의 진지한 눈빛, 응원하는 눈빛을 보면서 굉장한 느낌을 받았어요. 특히 사인회 끝에 ‘파란 티셔츠 군단’이 등장해 큰 감동이었죠. 서점 직원분들이 퇴근 시간이 가까웠는데도 제게 사인을 받겠다고 줄을 서 계시는데, 큰 선물을 받은 느낌이었어요. 공간이나 책들도 구경할 겸, 스태프들의 선물을 사 들고 꼭 다시 가보려고요.

 

다섯 번째 시집입니다. 『눈사람 여관』이후 딱 4년 만에 나왔어요.


시집을 내면서 참 고마웠던 게, 어느 한 편 몰아서 쓰지 않았거든요. 어떤 시들은 청탁의 밀도, 간격에 의해서 쓰이기도 하는데요. 2, 3달에 3, 4편씩. 1년에 12편씩 쓰게 되는 상황, 과정들이 감사했어요. 늘 시심을 갖고 살지만 결정적인 힘, 계기도 중요하니까요. 이번 시집을 묶으면서 내 책상의 속도를 생각해봤는데요. 책상의 위생은 어지럽지만, 꽤 균일한 속도가 있지 않았나 싶어요.

 

파란색 표지가 잘 어울려요.


테두리가 보라색이 될 거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렇다면 표지 색은 파란색이면 좋겠다 싶었죠. 이 시집을 만들 때, 김애란 작가의 『바깥은 여름』을 읽고 있었는데요. 작품도 무척 좋았고 표지도 인상적이었죠. 그래서 내 시집도 파란색 계열이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고요. 평소에도 파란색을 좋아해요. 파란색 계열의 셔츠를 자주 입는 편인데, 제가 새 옷을 입고 출판사에 가면 스태프들이 “또 파란색이냐”는 말을 해요(웃음).

 

시집 제목을 지으면서는 어떤 생각을 하셨어요?


제목은 내 안부를 궁금해하지 않는 사람에게 던지는 나의 안부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해요. 바다는 그냥 등장한 것일 수도 있어요. 그냥 먹먹한 상태라고 할까요? 시집을 준비하면서의 제 마음 상태가 담겨 있겠죠. 저는 책을 낼 때마다 좋은 기분이 들지 않아요. 그리고 이런 기분이 드는 게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하죠.

 

좋지 않은 기분이라면 어떤 상태일까요?


내가 무슨 일을 저질러놓고 난 직후에는 선명한 감정을 만나기 쉽지 않잖아요.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객관적으로 느껴볼 수 있는데, 막상 그때가 되면 애써 모른 체하기 일쑤죠. 작가가 쓰는 일은, 작가가 책을 내는 일은 작가 개인에게는 일종의 범행의 영역이거든요. 내가 세상 위에 함부로 저질러놓은 난장판이기도 하고요.

 

간혹 제목을 먼저 읽고 시를 찾아 읽을 때가 있어요.


2장에 실린 시 「시를 어떨 때 쓰느냐 물으시면」을 읽을 때 그랬죠. 시라는 게 의식하고 쓰긴 어렵잖아요. 하지만 때때로 의식하고 쓴 시가 좋게 느껴질 때도 있어요. 정말 눈에 힘을 풀고 순하게 앉아 있잖아요? 굉장히 멍청한 느낌으로요. 그럴 때 걸리는 시들이 있고, 혼자서 무척 쓸쓸한 시간에 이렇게 저렇게 걸리는 문장들이 있어요. 굉장히 메마른 상태인데, 순간순간 스며드는 것들이 있어요. 꼭 메모하지 않아도 며칠 뒤에 또 떠오르는 문장들도 있고요. 증식이 된다고 할까요? 어떤 한 문장이 다른 문장을 채 가고, 또 어떤 순간들을 채 가곤 해요.

 

「왜 그렇게 말할까요」를 읽으면서는 문득 반성하는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내가 받는 상처, 혹은 우리가 상처받는 지점에 대한 시예요. 시간만 지나도 아무렇지도 않을 일들과 말들 앞에서 우린 당장 호흡 곤란이죠. 저 역시 제가 쏟아낸 많은 상처 되는 말들이 누군가의 무엇을 부셔버렸을 거예요. 어쩌면 저는, 내가 했던 말로도 돌아서서 아파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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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도 조금, 전달력에 있어 마음을 써보자.

 

김소연 시인이 이번 시집의 발문에서 “이병률의 시는 대단한 결기로 포장되어 있지도 않고 냉소나 환멸로 손쉽게 치환되어 있지도 않으며, 그래도 그럭저럭 살 만하지 않느냐 눙치려 들지도 않는다. 낙담의 자리에서 ‘지탱하려고 지탱하려고’ ‘힘을 모으는’ 은은하고도 든든한 모습으로 서 있다”고 했어요. 이병률 시인은 자신의 글을 두고 “낮고 적막하고 물기가 배어 있다”고 말한 적이 있고요.

 

아무래도 혼자 있을 때와 누군가와 같이 있을 때의 모습이 조금은 다를 수밖에요. 지금 저는 혼자 있는 시간을 자주 내기 어려운 상황이라서요.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생기면 그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만끽하려고 해요. 먹는 걸 좀 덜 먹더라도요. 왜냐하면 그래야 이 시간들이 입체적으로 쓰이기 때문이에요. 저는 사람들과 술 마시는 걸 좋아하지만 혼자서는 마시지 않아요. 시간이 후딱 지나가버리는 게 싫기 때문이에요. 혼자 있을 때는 뭐라도 선명하게 하고 싶어 하죠. 맨 정신으로 시간을 빨아들인다고 할까요? 약간은 다르게 시간을 보내고 싶어요.

 

사람은 혼자 있을 때 비로소 진짜 모습이 나온다고 하잖아요.


표정을 볼 때도 그렇고요. 혼자 있으면 어떤 식으로든 이방인이 되는 순간이 생기죠. 그런 순간에 스멀스멀 문장들이 피어나고요. 작가라면 누구나 문장을 기다리고 좇을 텐데요. 저는 혼잡한 공간 속에 있는 것도 즐기는 편이에요. 제가 감각적으로 정체되지 않는 느낌이랄까요? 새로운 기류로 세척 받는 기분이 들어요. 여기 부산 F1963이 그런 곳 같아요.


「지구 서랍」에서는 ‘나의 궁리’라는 이야기가 나오죠. 저는 ‘궁리’라는 표현을 참 좋아해요. ‘생각’과는 좀 다른 느낌이라서요. 요즘 이병률 시인이 하는 궁리는 무엇일까, 궁금했어요.

 

한 장의 그림을 구하는 거예요. 길에서 만난 어떤 풍경, 모르는 사람의 인상 같은 게 며칠, 길게는 한 달도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을 때가 있는데요. 그런 그림을 찾고 있는 중이에요. 최근에 얻은 그림 한 점이 있어요. 말 못 하는 장애를 가진 어느 분이 전철에서 영상 통화를 하면서 수화를 하는 거예요. 수화를 하는데 그 목소리가 너무 크다는 생각까지 들었죠. 바깥에서 들어오는 빛이 교차하면서 그 사람이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굉장히 뭐랄까, ‘마음이 메이기’까지 했거든요. 그런 장면은 얼마 후, 시를 쓰는 순간에 불쑥 장면으로 묘사되곤 하죠.

 

문득 「사람의 재료」가 떠오르네요. 시의 화자는 자신이 약속한 장소가 아닌 곳에 도착합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상황은 아무렇지 않아요. 굉장히 매끄럽고 자연스럽죠.

 

지금은 누구든 만날 수 있고, 매일매일 약속을 꽉꽉 채울 수 있는 세상이 됐어요. SNS 때문이죠.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장점은 있어요. 하지만 내가 누구를 만나고 있는지 모를 때도 있죠. 저 역시 SNS를 통해 사람 구경을 많이 해요. 특히 인스타그램을 통해 많이 하죠. 재밌고 신기할 때도 있고, 내가 보는 타인의 모습이 맞나 헷갈릴 때도 있어요. 「사람의 재료」를 쓸 때는 여러 개의 방을 떠올렸어요. 이 방에 쓱 들어가도, 저 방에 쓱 들어가도 너무나 자연스러운 상황을 상상했죠. 내가 들어간 곳은 이 방인데, 정작 나를 기다리는 곳은 다른 방인 거죠. 미래의 조망이라고 할까요? 어쩌면 어떤 다짐일 수도 있겠고요.

 

‘시인의 재료’라는 제목으로 연작시를 쓴다면요. 어떤 이야기가 들어갈까요?

 

글쎄요. 저는 시의 미래가 밝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문학의 미래도 그렇고요. 좋은 빛이 비치고 있진 않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는 쓸 수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해요. 시인은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다고들 하잖아요. 이 말을 좋아하진 않지만 어느 정도 동의해요. 그러니까 지금도 어디에선가 시인은 태어나고 있겠죠. 시인은 시를 쓰지 않으면 피가 통하지 않으니까요. 독백 속에, 방백 속에 내 목청에 있는 것들을 토해낼 수밖에 없어요. 잔인한 표현이지만 어떤 식으로든 갈아내서 즙을 만든다고 할까요. 콩나물시루처럼 키워낸다고 할까요.

 

쓰면서 가장 아팠던, 힘들었던 시가 있나요?

 

「무엇을 제일로」라는 시가 그런 시 중 하나죠. 「몇 번째 봄」 「있지」도요. 「무엇을 제일로」는 되도록 담담히 쓰려고 한 사랑시예요. 사랑이 끝나고 난 후의 누구나 느낄 수 있는 막막함이 고스란히 담긴 시죠. 끊으려고 하지만 여전히 살아 꿈틀거리는, 내 몸 안에 각인된 세포들, 화석들. 인간은 그 앞에서 약해질 수밖에 없겠죠. 어떤 사람의 한 부분을 오래 기억하고 싶지만 살다 보면 그 부분에 감싸인 여러 온도, 여러 순간이 폭풍이 되어 돌아오는 순간이 있어요 막아낼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태풍이겠죠.

 

마지막으로 쓴 시는 「착지」이겠죠?

 

맞아요. 원고를 정리하면서 마지막으로 쓴 시예요. 쓰고 나니 조금 재밌더라고요. 나도 이제 이런 시를 쓰네? 나도 능 청스러워진 건가? 큭 웃기도 했고요.


겨우 종이 한 장으로 자리 차지를 하고는
벚꽃 사과꽃 날리는 길가에 겁 없이 드러누워
너무 많은 꽃을 피웠으니
다 됐다고 응석을 부려야 할까
- 「착지」 부분

 

시인은 어떤 말도 쉽게 놓아주지 않는 것 같아요. 「지구 서랍」의 화자는 “내 옆을 흘러가는 사람의 귀한 말들을” 모아요. 그리고 각각의 말들을 마음의 1층, 2층에 담아요. 더 깊이 새겨야 할 말들은 1층에, 조금 쉬이 놓아줘야 할 말은 2층에 담죠.

 

우연히 한 노인의 말을 엿듣게 됐어요. 순간 제가 동일시되면서 찌릿찌릿하게 아프더라고요. 사람이 나이가 들면 의연해지고 둔감해질 것 같은데, 생각보다 쉽지 않아요. 만약 잘된다고 하더라도 그건 내 모습 같지가 않고요. 어떻게든 내 마음에 녹아들죠. 최근에 오랫동안 인연을 쌓아온, 제가 되게 좋아했던 후배와 거리를 두게 됐어요. 제가 후배를 어떤 일 때문에 꾸짖었는데 서운했나 봐요. 용서해달라고 미안하다고 메일을 썼는데 받아주지 않더라고요. 좋았던 시기가 길었던 친구라 애정이 깊었는데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중국 여행을 갔는데도 계속 생각나는 거예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요. 세상에는 어찌하기 어려운 일들도 있으니까, 제가 잘 털어버리면 되는데 너무 힘들었어요.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 또 서운하기도 하고. 인간의 숲을 못 떠난 것 같아요. 못 떠날 것 같아요.

 

떠날 수 없겠죠. 인간의 숲을 떠나면 시를 쓰기 어려울지도 모르고요.

 

아마 그럴 거예요.

 

시집은 한 번만 읽기 어려운 책이에요. 만약 한 번에 휙 읽히는 시집이라면 그건 시가 아닐지도 몰라요. 부산으로 오면서 시집을 읽고 또 읽었어요. 눈길이 오래 머물게 되는 시들이 있어 반가웠어요.

 

『눈사람 여관』까지는 제 세계에 갇혀서 시를 쓴 부분이 많았어요. 그런데 이번 시집을 묶으면서는 누군가에게 전달하는 역할도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예를 들면 배우나 시를 낭송하는 사람도 원래의 오리지널을 잘 전달해야 하는 역할이 있잖아요. 요즘은 세상 잘 모르겠는 시들이 워낙 많으니까 이번 시집에는 나라도 조금 전달력에 있어 마음을 써보자, 이런 의식이 있었어요. 그리고 또 다른 변화라면, 1시집부터 5시집 지금까지 연결성을 갖는 작업을 ‘시간’이라는 바탕 위에 한 것 같은데요. 6시집은 달라질 거라는 것, 그런 예감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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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받을 의무가 아닌 권리를 말하죠

 

시심(詩心)을 갖고 산다는 일은 어떤 걸까요?

 

시심은 모든 것을 평화롭게 하지요. 끊어진 것들을 연결하고 흩어진 것들을 모으죠. 실제로 시심은 뭐라 정의할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것일 텐데요. 그렇기에 더 영혼에 관여하는 것일지 도 몰라요. 내 영혼의 중심에 시심이 들어 있다는 건 분명 행운이에요. 누구에게든 시심이 있다면 그럴 거고요.

 

누군가 그러더라고요. “시인은 어떤 이상한 행동을 해도 용서해줘야 한다.” 이해가 가면서도 또 조금도 수긍할 수 없는 이야기였어요. (웃음)

 

아마 시인들에게는 모두 ‘취급주의’ 스티커를 붙여야 할 거예요. 그런데 이 스티커는 개개인마다 다 달라요. 이병률 것, 박준 것, 이문재 것, 안도현 것. 다 달라야 해요. 예술가는 자기 자신에게 농밀하게 젖어 들어 있는 사람이잖아요. 소설가, 에세이스트보다는 조금 수위가 높을지 몰라요.


이병률을 취급할 때 주의 사항이 있다면요. 어떤 내용이 들어가야 할까요?

 

저는 혼자 감정을 쌓아가는 걸 좋아해요. 혼자 감정을 만드는 게 전공인 사람이니까요. 그런데 그걸 저에게 일일이 알리고 자신의 감정을 강요하는 사람은 숨이 막히죠. 공기가 안 통하고요. 저는 식물 같은 사람이 맞는 듯해요. 어쩌면 나무? 어떤 면에서든 과한 것은, 글쎄요(웃음).

 

인터뷰집 『안으로 멀리 뛰기』에서 ‘디테일이 주는 여운’을 이야기한 적이 있어요.

 

제가 디테일이 있으니까 디테일이 있는 사람이 좋아요. 사랑스러워요. 하지만 무턱대고 바랄 건 아닌 세상이 됐죠.

 

불러주는 곳이 많잖아요. 시인으로서 출판사 대표로서 여행 작가로서. 혼자 있는 시간은 어떻게 챙기나요?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을 꽤 좋아하지만요. 결국 혼자 하는 것이 더 멀리 갈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요. 틈틈이 혼자 있는 시간을 만들어요. 오늘 부산에 오면서도 기차를 탔는데, 기차를 탈 일이 많아진 게 참 좋다고 생각해요. 기차를 타면 밀린 잠을 자도 되고 전화기를 꺼놔도 괜찮으니까요. 좋아하는 후배들의 책도 챙겨 읽고 참 편안해요. 시집을 읽기 가장 좋은 공간 중 하나이기도 하고요.

 

편집자로서 책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사람에게 열려 있는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쓸 수 있는지”라고 했는데, 어떻게 발견하시나요?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은 눈빛이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에요. 이런저런 관계를 통해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실험한 듯한 태도를 보인다고 생각해요. 자기 안에 갇힌 부분이 덜한, 유연한 사람인지를 보려고 해요. 사람에 대한 애정 없이는 좋은 작가가 되기도 어렵지만 좋은 편집자가 되기도 어려워요.

 

시 또는 산문을 잘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이 마음은 꼭 갖자’고 한 마디를 해주신다면요?

 

자기를 가장 닮은 작가가 누구인지, 그 작가와 나의 거리는 어느 정도인지 자주 생각해보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또 ‘사람들은 무엇으로 살지?’ ‘무엇에 관심이 많지?’ 등 인간에 대해 열려 있는 마음이 글을 잘 쓰게 하지 않을까 싶어요.

 

“혼이 있는 작가, 다른 사람의 행복에 관여하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말이 기억납니다. 행복에 관여한다는 것은 글로써 행복을 전달하고 싶다는 의미일까요?

 

그렇습니다. 책이 하고 있는 역할이기도 하니까요. 책을 읽으면서 사는 사람은 분명 그림자도 다를 거라는 생각인데, 자기 취향을 정리 정돈하는 데 있어 책은 좋은 기능을 하죠. 그리고 막막한 미래에도 선명하게 관여하니까요. 책은 우리한테 ‘사랑받을 권리’가 있노라고 계속 힘찬 메시지를 던져주면서 우리 내면을 풍부하게 가꿔줘요. 사랑받을 의무가 아닌 권리를 말하죠.

 

잘 사는 방법으로 “나보다 20세 많은 친구, 나보다 20세 적은 친구를 만들라”는 말씀도 하셨죠?

 

너무 멋진 말인데 너무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우선 나부터 열려 있어야 하니까요. 때때로 저도 지쳐요. 제가 못 따라가니까요(웃음). 하지만 오래 길게 보자는 마음이 늘 있어요. 다른 세계를 들여다보게 해준다는 면에서는 좋은 친구이면서도 동시에 무척 훌륭한 책이니까 늘 그렇게 만들려고 하는 편이에요.


따뜻한 말을 주로 하는 작가들은 때때로 오해를 받아요. 현실에서 마주친 모습이 따뜻하지 않을 때 독자들은 실망하고요. 인터뷰집을 읽다가 훅 들어온 문장이 있었어요. “까칠함 같은 건 사람을 좋아하는 제가 사람을 밀어내기 위한 도구가 되었어요. 그 많은 사람을 다 만나고 살 수는 없을 테니까요. 내 까칠함으로 물러나는 사람이 있다면 어느 정도 성공인 거죠.”(『안으로 멀리 뛰기』 67쪽) 묘한 위로가 됐어요.

 

사인회를 하는데 갑자기 긴 질문을 하는 독자가 있어요. 질문은 안 하고 우는 분도 계시고요. 양해를 구하면 “어머, 글이 가짜야” 하면서 울며 가세요. 저는 생각하죠. ‘무엇이 가짜인가?’ 어떤 사람이든 싫어하고 미워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저도 물론 상처를 받으면 아프죠. 하지만 상처 없이는 좋은 사람이 될 수 없어요. 까칠함이 저의 방패막이 된다면 까칠함은 필요해요. 제 자신도 지켜야 하니까요.

 

언제 가장 행복하고, 언제 가장 슬픈 감정을 느끼나요?

 

무엇 때문에 행복하고, 무엇 때문에 언제 슬픈가보다는요. 아무 이유도 없이 불쑥불쑥 찾아와요, 그런 감정은. 저는 맘대로 시간을 쓰는 사람이니까요. 작가가 그런 사람이기도하고요. 불쑥 그런 감정에 휩싸일 때 제가 인간적인 상태에 놓인 것 같아 좋아요. 그게 행복이건 슬픔이건.

 

지금 이병률에게 『바다는 잘 있습니다』가 딱 한 권 있어요. 앞에는 사춘기를 막 지나고 있는 중학생부터 막 정년 퇴직한 가장, 아르바이트생, 전업주부, 백수까지 다양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있어요. 한 사람에게만 시집을 선물해야 한다면 누구에게 주실 건가요?

 

자신이 뭘 좋아하는지 모르는 20, 30대 젊은 독자가 있다면 그분에게 선물하고 싶어요. 세상 속에서 갇혀 있는 군인에게 줘도 좋을 것 같고요. 다들 너무 어렵잖아요, 힘들잖아요. 청춘이 가장 안쓰러워요. 불안으로 가득 찬 시기니까요. 저 역시 그 시기를 너무나 불충분하게 즐겼고요. 시를 읽는다고 해답을 찾긴 어려울지 몰라요. 하지만 우리는 어떻게든 사람이 될 테니까요. 각자의 궁리를 통해 사람의 집을 지을 테니까요.


 

 

바다는 잘 있습니다이병률 저 | 문학과지성사
온전히 혼자가 되는 일에 골몰하며, 자신을 확인하고 동시에 타인을 발견해가는 뜨겁고도 명확한 인식의 순간들로 주목받았던 『눈사람 여관』(2013) 이후 쓰고 발표한 시 60편을 묶고 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치호 발행인 “아빠들을 위한 잡지, 누가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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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드저널』낯선 이름의 잡지다. 그런데 잡지를 받아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섭외에 응한다. 콘텐츠의 진심, 정체성, 퀄리티에 믿음이 가기 때문이다. 『볼드저널』은 볼드피리어드가 만드는 라이프스타일 매거진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버지’들을 위한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주 독자층은 20,30,40대. 온라인 미디어를 통해 ‘대담한(bold) 아버지들을 위한 콘텐츠를 제공하고, 정기적으로 하나의 주제에 집중하는 책을 발행한다. 『볼드저널』은 다양한 아버지들의 얼굴과 일상을 담는다. 콘텐츠이면서 다큐멘터리 프로젝트, 또 브랜드로써 독자들을 만나고 있다.

 

지난 2016년 5월에 『볼드저널 1호』를 발행, 최근 여섯 번째 『볼드저널 6호: 탈것』을 펴낸 김치호 볼드피리어드 대표를 만났다. 다양한 장르의 독립출판물이 쏟아지는 지금, 회사를 설립해 잡지를 창간한 배짱은 어디에서 시작됐을까. 투자를 받지 않고 이런 잡지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 가능한 일일까. 『볼드저널』의 출발과 지금을 들여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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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지만 단단해 보이는 삶, 이것이 볼드한 삶

 

벌써 6호다. 한 번 읽은 사람은 또 사게 되는 잡지다.

 

첫 호를 만들 때는 섭외가 무척 힘들었다. 편집장, 에디터들의 인맥을 동원해야 했는데 지금은 훨씬 수월해졌다. 잡지를 보여 드리거나 홈페이지(http://boldjournal.com)에 올라온 콘텐츠를 보여 드리면 대부분 섭외에 응해준다.

 

잡지를 창간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산업디자인을 전공하면서부터 잡지에 대한 매력은 계속 느끼고 있었다. 디자인 일이 무척 고되지 않나. 고되지만 재밌는 일이기도 하고. 영상 작업에도 흥미가 있어 대학 때 단편영화도 찍어보고 영화감독을 꿈꾸기도 했는데 적성에는 맞지 않았다. 대신 디자이너로서 스토리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매거진B』를 만들면서 브랜드를 다루는 경험도 했기 때문에 그래픽물로써의 책을 한 번 제작해보면 어떨까 싶었다. 『볼드저널』은 미디어로써의 매거진이기도 하지만, 이 자체가 제품이다. 브랜드로의 매체라는 개념을 갖고 있다.

 

왜 아버지를 주제로 삼았나?


개인적인 이유가 있었다. 디자이너로 일하다 보니 야근이 잦았다. 회사 생활은 만족스러운 편이었고 일도 흥미로웠지만 가족관계는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 오랜만에 퇴근을 일찍 했다. 아이들이랑도 좀 놀다가 잠을 자려고 하는데 첫째가 나에게 오지를 않더라. 그 때 첫째가 여섯 살이었는데 충격을 받았다. 이렇게 계속 일과 가정을 병행해도 되는 걸까, 고민하다가 상사에게 물었다. “이렇게 사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그랬더니 “원래 다 그런 거야”라고 하더라. 다들 하는 평범한 말이었지만 물음표가 생겼다. 좀 더 다르게 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했다. 그러다 아버지들의 모임에 참여하게 됐는데, 나에겐 선배 뻘인 한 아버지가 사춘기에 접어든 아들과의 관계 때문에 너무 힘들다며 고민을 털어놓았다. 돈도 있고 명예도 부도 다 가진 분이었는데 행복해보이지 않았다. 내 삶의 우선순위를 다시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삶의 기본을 가정에 둬야 한다고 생각했고 사표를 썼다.

 

회사 설립은 어떻게 준비했나?


구체적인 플랜을 갖고 회사를 관군 건 아니다. 직장을 그만두고 3개월 정도는 가족들이랑 여행을 떠났다. 생각을 좀 정리한 다음 평소에 친분이있었던 에디터를 만나  『볼드저널』의 구상안을 말했다. 볼드피어리드가 2015년 8월에 설립됐는데, 구체적인 논의를 시작한 시점에서 약 1년 정도 준비한 셈이다. 1호를 만들 때는 직원이 5명이었고 지금은 10명이다.

 

일과 가정의 균형을 말하는 잡지다. 직원들은 정시에 퇴근하는지?


(웃음) 마감 기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정시에 퇴근한다. 처음에는 자율 출근제를 실시했는데 직원이 늘어나다 보니 최소한의 관리가 필요해서 출근은 오전 10시, 퇴근은 오후 6시에 하고 있다. 회사 대표로서는 야근을 해야 하는 상황들이 종종 있지만 예전 회사와 비교하면 개인 시간이 월등히 많아졌다.

 

『볼드저널 6호』는 ‘탈것’을 주제로 다뤘다. 치과의사 김형규 부자, 뮤지컬배우 김소현 손준호 가족 인터뷰를 비롯해 ‘남자들이 자동차와 같은 탈것에 열광하는지’, 미래의 탈것, 탈것의 문화공간, 오래된 차를 소유하는 방법 등을 다뤘다.


이 시대의 탈것은 이동수단라는 개념에서 개인의 취미를 충족시키는 수단이 됐다. 여가용 차량, 바이크, 세그웨이, 전동 킥보드와 같이. 어릴 적 꿈속에서 그리던 ‘탈것’과 현재 내 일터와 가정을 오가며 경험하는 현실적 이동 수단으로써의 ‘탈것’의 경계가 좁혀지고 있다. 『볼드저널 6호』는 요즘 시대에 가족의 삶 안에서 탈것의 의미를 살펴봤다. 달라진 시대의 새로운 탈것이 현대 아버지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주 독자층은 아무래도 젊은 아빠인가?


30,40대 남성이 55%, 20,30대 여성이 45%를 차지한다. 사실 발행 초기 때만해도 젊은 아빠들이 압도적으로 많이 읽을 거라 생각했는데, 『볼드저널』을 보는 독자들은 마니아층이더라. 신기한 건 여성 독자들이 꾸준히 읽어준다는 사실인데, 표지가 예뻐서 일까? 궁금하다.

 

주변 남자들에게 읽히고 싶어서가 아닐까? 신혼부부, 또는 예비부부가 읽으면 더없이 좋을 것 같다.


종종 결혼을 준비하는 분들이 잡지를 재밌게 읽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굉장히 기분이 좋았다. (웃음)


『볼드저널 Bold Journal』은 어떻게 짓게 된 이름인가?


고민이 많았다.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 거니, 직설적으로 ‘Papa’가 들어가야 하나? 아니면 태도를 말해야 하나? 아니면 상징적으로 집을 의미하는 ‘base camp’도 생각해봤다. 『볼드저널』의 카피로 쓴 ‘Life Lessons’도 생각해봤는데, 그건 캐치프레이즈로 빼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볼드 Bold’는 원래 좋아하는 단어였는데, 어떻게 보면 성공만을 위해 달려가는 게 아니라 약간은 궤도에서 이탈하면서 인생의 기쁨을 찾아가는 결심 자체가 ‘볼드’한 선택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우리 제호를 보면, 글자가 두꺼운 편은 아니다. 강하고 두꺼워야만 단단한 삶을 의미하진 않기 때문이다. 대세가 아닐 수 있지만 얇지만 단단해 보이는 삶, 이것이 볼드한 삶이라고 생각했다. 회사 이름을 ‘볼드피리어드’로 지으면서 자연스럽게 저널 이름이 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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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으로서, 살아가야 할 방향성에 대한 레퍼런스를 만들고 싶다

 

반응이 가장 좋았던 주제는 무엇인가?


독자 분들마다 다른 것 같다. Play를 좋아하신 분도 있고 House를 재밌게 보신 분들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사춘기를 다룬 3호 ‘Puberty’를 흥미롭게 봤다. 평소 해왔던 생각들을 많이 엿볼 수 있었고. 5호 ‘House’도 반응이 좋았다. 집을 꾸밀 수 있는 노하우들도 소개되어 실용적인 측면에서도 반응이 좋았다.

 

제작비가 꽤 높을 것 같다. 종이나 인쇄, 사진 등의 퀄리티가 굉장히 높다.


아직 많은 부수를 찍진 못하기 때문에 권당 제작비를 생각하면 높은 게 사실이다. 잡지를 팔아 돈을 번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볼드피리어드는 미디어팀과 브랜드 컨설팅으로 나눠져 있다. 5:5 비율인데, 컨설팅으로 수익을 내고 미디어에 투자하고 있다. 최근에 와디즈에서 크라우드펀딩으로 라이프로그 다이어리 프로젝트를 소개했는데 펀딩에 성공했다. TOOLS라는 작은 브랜드를 만들었는데 『볼드저널』독자 분들이 좋아할 만한 사은품, 굿즈를 만들어보려고 한다.

 

잡지가 권당 1만 8천 원이다. 인터넷서점에서는 10% 할인된 금액으로 살 수 있지만, 계간지 잡지라고 해도 꽤 비싼 편에 속한다. 가격 때문에 구입을 망설이는 독자도 있지 않을까? 오래 잡지를 만들고자 정한 가격인가?


오래 만들겠다는 개념보다는 첫째는 원가를 생각했다. 그런데 사실 1,2천원 차이는 크지 않다. 어차피 잡지는 만들면 마이너스니까. 수익보다는 오히려 콘텐츠의 질은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싶었다. 잘한 건지는 잘 모르겠다. (웃음)

 

단행본 작업은 계획에 없나?


생각은 하고 있다. 어떻게든 내보자고 생각하고 있는데 일정이 그렇게 쉽지만은 않다. 만든다면 『볼드저널』의 일러스트레이션을 꼭 넣으려고 한다.

 

오른쪽에는 영문으로 기사를 읽을 수 있게 했다. 


이건 내 아집이 들어 있기도 한 문제인데(웃음). 처음 『볼드저널』을 만들었을 때, 한국에서 몇 분이나 읽을까 의문이 들었다. 잡지가 더 많이 전파되려면 해외 인지도도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고 마케팅적인 측면도 염두에 뒀다. 또 우리나라와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는 나라도 있을 것 같았다. 미주나 유럽은 이미 가족 중심의 삶을 살고 있지만, 우리나라처럼 급성장한 문화권에서는 워커홀릭들이 많지 않나.

 

현재 해외 서점에서도 판매 중인가?


대만 서점에서 판매 중이고 영국, 미국에서도 잡지를 보내달라고 해서 접촉 중이다. 해외 시장은 조금씩 늘려가려고 생각 중이다. 지인으로부터 들었는데 프랑스의 한 서점에서 『볼드저널』을 봤다고 하더라. 아마 개인적으로 구입하셔서 판매 중인 것 같다.

 

국내 정기구독자들은 많이 늘고 있나? 온라인서점, 오프라인서점 판매 추이도 궁금하다.


정기구독은 꾸준히 늘고 있지만 숫자가 큰 편은 아니다. 아무래도 4대 온라인서점에서 판매가 가장 높고, 홍대 땡스북스, 속초 동아서점에서도 판매가 되고 있다.

 

발행인으로서 가장 힘든 점이 있다면.


글쎄, 아직까지 크게 힘든 점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잡지를 만드는 일이 너무 재밌다. 물론 콘텐츠를 직접 만드는 에디터 분들이나 디자이너, 사진작가들은 고되겠지만. 우리는 즐겁게 잡지를 만들고 있다.

 

아버지로서의 변화도 있나?


(웃음) 물론이다. 아이들과 함께 있는 시간이 길어진 점이 가장 좋다. 요즘 첫째가 한창 팽이에 빠져 있는데 『볼드저널』‘play’ 호를 읽다 힌트를 얻어 보드게임을 같이 하고 있다. 아내도 처음에는 잡지를 만든다고 했을 때 조금 불안해한 면이 있었는데 지금은 굉장히 응원해준다. 아버지로서의 나는 『볼드저널』을 만든다고 결심한 순간부터 삶의 방향성이 바뀐 것 같다. 나이든 어른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레퍼런스를 『볼드저널』을 통해 말하고 싶다.

 

7호의 주제는 무엇인가?


두 가지를 염두에 두고 있는데, 헤리티지(heritage)를 다룰 가능성이 높다.

 

『볼드저널』를 좋아하는 독자, 예비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주변을 보면 가정을 꾸리는 일 자체에 대해 두려움을 갖고 있는 분이 많다. 재정적인 부분을 비롯해서 시간적인 부분까지 닥쳐올 어려움을 많이 생각하는 것 같다. 하지만 가정을 만드는 삶은 실제로 경험하면 두렵지 만은 않다. 인생의 다른 차원의 경험이 될 수 있다. 『볼드저널』을 만들 때, 직원 두 분이 미혼이었는데 지금은 가정을 꾸렸다. 『볼드저널』은 일과 가정에 있어서 균형적인 삶을 추구하기 때문에 독자들이 그 삶을 살 수 있도록 가이드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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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드 저널 bold journal. (계간) : 6호 [2017] 편집부 | 볼드피리어드
일과 가정의 균형을 지키며 창의적으로 삶을 꾸려가는 아버지들을 위한 잡지 〈볼드 저널〉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미경, 엄마로서 가장 후회하는 말은 ‘엄마 어떡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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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번을 미안해도 나는 엄마다


‘국민언니’ 김미경이 ‘국민엄마’로 돌아왔다. 『언니의 독설』, 『꿈이 있는 아내는 늙지 않는다』등을 통해 여성들의 멘토로 손꼽혀 온 그녀가 엄마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담아 새 책을 펴낸 것이다. 『엄마의 자존감 공부』에는 28년간 세 아이의 엄마로 살아온 저자의 경험과, 그녀가 강연 현장에서 만난 많은 엄마들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책은 “행복한 아이로 키우려면 아이가 자신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 자신의 자존감”이라고 강조한다. 아이의 자존감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이따금씩 흔들릴 때마다 다시 자존감을 채울 수 있도록, 부모가 “자존감 텃밭”이 되어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엄마의 자존감 공부』는 아이 내면의 자존감을 끄집어내는 방법, 그리고 엄마의 자존감을 단련하는 솔루션을 제시한다.

 

지난 27일, 신라아이파크면세점 VIP 라운지에서 『엄마의 자존감 공부』북시사회가 개최됐다. ‘시사회’라는 이름에 걸맞게 책의 내용이 처음으로 공개되는 자리였다. 당일 오전부터 인터넷서점에서 예약판매를 시작한 『엄마의 자존감 공부』는 오는 8일부터 전국 서점에서 만날 수 있다. 이지애 아나운서의 사회로 진행된 이 날의 시사회에는 서울경기 지역의 ‘맘’ 카페 운영자 및 육아와 자녀교육을 주제로 블로그를 운영하는 파워 블로거 등 35명이 초청됐다. 엄마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려줄 김미경 저자와 함께, 프로 주부로 거듭난 개그맨 정종철 씨가 ‘아빠 대표’로 참석했다.

 

지난 1월에 ‘엄마’라는 또 하나의 이름을 얻게 된 이지애 아나운서는 “아이를 키우면서 미안한 마음이 드는 순간들이 있었다”고 말하며 ‘천 번을 미안해도 나는 엄마다’라는 책의 부제에 깊이 공감했다. 개그맨 정종철은 “이 책이 엄마에게만 해당되는 건 아닌 것 같다. 엄마뿐만 아니라 아빠도 분명히 알아야 되는 내용이라고 생각한다”며 “엄마와 아빠의 자존감이 올라갈수록 자녀들의 자존감도 올라가는 좋은 효과가 있기 때문에, 아빠들도 이 책은 반드시 읽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두 사람은 『엄마의 자존감 공부』에 담긴 핵심 내용을 직접 낭독하면서 출간의 의미와 주제 의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김미경 저자는 “세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진짜 중요한 건 자존감이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면서도 ‘나에게 제일 강한 자존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자존감을 파헤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자녀 교육 앞에서 흔들리고 괴로워하는 엄마들에게 자존감의 중요성을 알려주기 위해 책을 썼다고 밝히며 “25년간 강의하면서 느낀 게 있다면, 모든 콘텐츠는 내 몸을 통과할 때까지 기다려야 된다는 거다. 몸을 통과하지 않고 머리로만 쓰면 책이 어렵고 재미없다. 몸을 통과하고 나면 책이 재밌고 간결하고 쉬운 말로 써진다”고 덧붙였다. 『엄마의 자존감 공부』를 집필하는 데 2년이란 긴 시간이 필요했던 이유다.

 

아이는 내가 낳은 게 아니에요. 아이 스스로 나온 거예요. 세상에서 가장 큰 모험을 하고 엄마를 만나기 위해서, 우리를 엄마로 만들어주기 위해서, 죽을 힘을 다해서 나온 거예요. 죽음과 삶을 맞바꾼,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일을 하고 나온 거라고요. 그렇게 어마어마한 힘을 갖고 태어난 아이인데, 엄마들은 ‘갓난아기가 뭘 알겠어’ 하고 생각하죠. 자신이 넣는 대로 반응할 거라고 생각하고, 직장도 그만두고 아이한테 집중하려고 해요. ‘아이라도 잘 키워야지’라고 마음먹는데, 그게 제일 무서운 마음이에요. ‘엄마는 너 때문에 사는 거야’라는 말은 더 무섭죠. 그때부터 아이를 내 마음대로 하게 되는 거예요. 요즘 아이들이 갈수록 폭력적이 되는 이유를 아세요? 생명에 대한 존중감을 갖지 못한 엄마와 함께 살면 폭력적이 될 수밖에 없어요. 엄마가 나 자체를 ‘괜찮은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걸 알거든요. 자기가 조금이라도 따라오지 못하면 무시하고, 바보 취급하고, ‘엄마가 이렇게 잘해주는데 왜 못하니?’ 하고 위협하는 걸 알거든요. 그래서 폭력적으로 변하고 자존감을 가질 수 없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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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자존감을 키우는 ‘엄마의 리액션’


엄마는 아이보다 나이를 더 먹어서 든든한 게 아니다. 아이보다 두둑한 자존감 나이를 먹어서 든든한 것이다. 든든한 엄마를 둔 자녀와 빈약한 엄마를 둔 자녀는 어렸을 때부터 삶을 대하는 기본자세가 다르다. 아이가 매사 자신감이 없고 무기력하다면 엄마인 나의 자존감 나이를 먼저 들여다봐야 한다. ‘내 자존감 나이는 과연 몇 살인가?’ (『엄마의 자존감 공부』 232쪽)

 

자존감 나이는 신체 나이와 비례하지 않는다. 때로는 엄마의 자존감 나이가 아이보다 더 어린 경우도 있다. 아이가 문제 상황과 맞닥뜨렸을 때, 이 엄마들은 아이보다 더 두려워하면서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을 보인다. 이때 아이들은 ‘자존감 지지대’를 잃고 만다고, 김미경 저자는 말한다.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느껴지는 위험하고 불안한 감정은 부모한테만 이야기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이것조차 부모한테 이야기할 수 없다면 아이들은 ‘자존감 지지대’가 없는 거예요. 기댈 데가 없는 거죠. 굉장히 쓸쓸한 거예요. 이런 사람들 대부분이 불안하게 아이를 키워요. 그런 엄마 밑에서 컸기 때문에 자기 자존감이 바닥인 거죠. 그런데 아이라는 대상이 있다는 건, 자존감이 바닥인 엄마도 같이 클 수 있는 기회예요. 묘하게도, 아이가 탄생할 때 같이 키워갈 수 있는 나의 어떤 부분도 함께 탄생해요. 자존감이 낮았던 사람도 아이의 탄생을 계기로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될 수 있어요. 같이 자존감을 키워나갈 수 있는 중요한 기회가 되는 거죠.

 

‘엄마의 리액션이 곧 아이의 자존감’이라고 말하는 저자는 ‘아이들은 부모 앞에서 잘난 척을 하면서 자존감을 키운다’고 말한다. 그리고 『엄마의 자존감 공부』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세 아이를 키워보니 자존감에 가장 좋은 양분이라는 게 있었다. 엄마의 뜨거운 공감, 그리고 ‘살리는 해석’이다. 아이가 스스로 해냈다고 느끼는 그 순간, 아이의 기쁨에 충분히 공감하고 함께 즐겨주는 것, 작은 기쁨을 큰 축제로 만들어주는 것 말이다”

 

저희 아들이 고등학교 2학년 때 자퇴하고 집에 왔을 때, 저는 ‘축 자퇴’라는 플래카드를 걸었어요.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해준 적이 있어요. “자퇴한 건 나뭇가지가 부러진 거랑 똑같아. 부러진 나뭇가지는 반드시 다른 방향을 가리키거든. 다른 방향을 가리키기 위해서, 어떤 사람의 경우에는 반드시 부러져야 될 때가 있어. 너는 다른 방향을 가려고 열여덟 살에 자퇴라는 게 배치가 된 거야. 그러니까 엄청난 메시지를 안고 있는 불행인 거지. 너는 엄청 유명한 뮤지션이 될 거야, 자퇴했으니까” 이게 제가 아들한테 해줬던 자존감 리액션이었어요.

 

그녀는 아들이 검정고시에 붙었을 때도 축하 플래카드를 걸고 ‘조기 졸업식’을 열어줬다. 아이의 친구와 친척들을 초대하고, 직접 만든 상장을 아들에게 안겨주면서, 아이가 이룬 성과에 뜨거운 ‘리액션’을 보냈다.

 

아이들이 인생에서 힘든 일을 겪을 수 있거든요. 그때 엄마들의 자존감 텃밭이 두터워야 돼요. 아이가 힘들 때, 바닥을 칠 때, 내 텃밭에 있는 흙을 퍼다 아이한테 넣어줘야 되잖아요. 그래야 아이가 살죠. 그러니까 엄마는 아이를 낳은 순간부터 자존감이 충만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공부해야 돼요.

 

엄마의 자존감은 외부에서 끌어다 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안에 두고 수시로 꺼내 쓸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낄 수 있는 대상이 있어야 하는데, 저자는 이를 일컬어 ‘자존감 과목’이라 말한다. “그걸 하는 동안은 스트레스 받지 않고 몰입할 수 있고 친구처럼 지낼 수 있는 나만의 ‘자존감 과목’이 적어도 두 개는 필요하다”는 것. 그 대상은 먼 곳에 있지 않다. 살림하는 공간 속에서도 요리를 하고, 아이들 옷을 만들고, 화초를 기르면서도 얼마든지 자존감을 키울 수 있다. “나만의 자존감 과목을 계속 키워가다 보면 나중엔 그것이 내 든든한 ‘자존감 지지대’가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에게도 두 가지 자존감 지지대가 있어요. 하나는 옷을 만드는 거예요. 옷을 만들면서 매일 제가 성장하는 거거든요. 4년 동안 옷을 만들면서 제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고 느꼈어요. 내년에는 비영리 패션브랜드 ‘리리킴’에서 패션쇼를 해요. 미혼 엄마들과 ‘Brave Girls’라는 캠페인을 할 거예요. 제가 만든 서른 벌의 옷을 입고, 자원 봉사 연예인들과 미혼 엄마들이 같이 무대에 설 거예요. 제가 사랑하는 그 엄마들을 챙기면서 나이 오십에 잘 늙어가고 있다고 느끼는 게 제 자존감이에요. 또 하나의 자존감 지지대는 영어인데요. 60세 이후에는 외국에 나가서도 강연을 하고 싶어요. 나중에 방송에 나와서 ‘옛날에는 스타 강사였어요, 굉장히 유명했어요’ 이런 말 하고 싶지 않고, 한 단계 진화하고 싶어요. 영어 공부를 시작한지는 꽤 됐고요. 내년부터는 제 강의를 영어로 바꿔서 유튜브 방송을 시작할 예정이에요. 그게 저한테는 60세 이후의 커리어를 지키는 자존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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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를 읽으려면, 초조하면 안 돼요


『엄마의 자존감 공부』북시사회를 마치며 김미경 저자는 “이 책이 여러분 몸을 한 번 거쳐 가서 여러분 아이의 몸도 한 번 거쳐 갔으면 좋겠다. 그래서 정말 행복하고 자신감 있는 아이들을 여러분이 만들어주셨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그리고 행사의 마지막 순서인 사인회를 마친 후, 짧은 인터뷰에 응했다.

 

‘자존감’이 중요한 키워드로 부상한지 오래 됐습니다. 좀처럼 그 열기가 식지 않고 있는데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밖에서 꺼내 쓸 게 없으니까요. 자존감은 내 안의 힘이잖아요. 우리가 대부분 꿈을 이룬다거나 무언가를 성공한다고 할 때 외부의 힘을 끌어다 써야 된다고 생각하잖아요. 내 안의 힘을 꺼내 쓰는 것이 제일 중요한데, 많이 외면됐던 거예요. 그런데 갈수록 외부의 힘을 끌어다 쓰는 게 막히면서, 이제는 ‘내 안에 있는 걸 꺼내서 써야 된다, 내 안에 있는 것이 최고다’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는 거죠. 자존감이 가장 근원이에요. 내 안에 있는 힘을 꺼내 쓸 줄 아는 사람이 남의 힘이 들어와도 그걸 이용할 줄 아니까요. 외부의 것으로만 채워진 사람은 금방 빈털터리가 되잖아요.

 

엄마들이 본의 아니게 아이의 자존감을 해치는 말들을 하게 되잖아요. 주로 어떤 말들을 하는 것 같으세요?


대화하면서 ‘너는 그것도 못 하냐’라고 하는 건 보통이고, 비교를 하기도 하죠. 오빠나 형이랑 비교하는 거요. 그리고 네가 엄마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고 말하기도 하는데요. 엄마의 똑똑한 평가가 아이의 자존감을 낮출 때가 많아요. 아이를 조롱하고 무시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고요. 엄마의 앞선 지도도 아이들한테 따라오라고 말하는 건데, 아이는 질질 끌려가는 느낌을 받죠. 그러니까 우리가 생각하는 혹독한 엄마의 교육 방식이 대부분 자존감을 낮추는 거죠. 신기하게도, 잘 계발된 교육 방식일수록 자존감을 망치는 거예요. 그래서 요즘에는 공부는 잘 하는데 욕하고, 망가지고, 분노하는 아이들이 많아져요.

 

‘이 말은 아이들에게 해주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하시는 게 있나요?


우리 아이들한테 제일 자주 하는 말은 ‘너 정말 괜찮은 애야, 진짜 훌륭해, 괜찮아’라는 거예요. 이 말을 농담이 아니라 정말 진심으로 하거든요. 저는 처음부터 잘했던 건 아니에요. 큰 아이 키울 때는 정말 못된 언니처럼 키웠어요. 어떤 아버지들이 못된 형처럼 키운다면, 저도 못된 언니처럼 한 거죠. 학교에서 반장을 못 하면 ‘왜 반장을 못해? 그냥 손을 들어! 네가 안 한다고 했지?’ 하는 식이었어요. 그러다가 아이를 셋을 낳아 키우면서 변했는데, 특히 아들이 자퇴했을 때 너무나 큰 고통이었어요. 아들과 같이 지하에서 올라오면서 내 자존감도 커졌죠. 그때 깨달은 거예요. 저한테 계기가 된 거죠. 처음부터 엄마 노릇을 잘했을 리가 있겠어요? 그래서 우리 큰 애한테 제일 미안해요. 제가 제일 어리숙하고 바보 같을 때, 제 딸로 태어나서 고생 많이 했거든요.

 

아이 앞에 무릎을 꿇고 사과한 적도 있으시다고요.


우리 딸이 대학에 들어갔을 때 무릎 꿇고 사죄한 적이 있어요. ‘엄마가 너무 미안했다, 잘못했다, 너한테 너무 많은 상처를 줬다’고 이야기했죠. 그런 점에서 제일 잘 키우고 있는 아이가 막내인 것 같아요. 모든 시행착오를 겪은 후에 제가 가장 엄마다워졌을 때, 엄마의 모습을 갖췄을 때 태어났거든요. 그래서 아이한테는 ‘너는 정말 괜찮은 아이이고, 훌륭한 아이다’ 이런 이야기들을 진심으로 해줄 수 있었어요.

 

부모가 아이를 닦달하면서 자존감을 깎아 내리는 이유 중에 하나는 ‘초조함’이 아닐까 싶은데요. 『엄마의 자존감 공부』를 보면, 느긋한 마음으로 지켜봐 주신 것 같아요.


살아보니까 세상에는 두 가지 시계가 있는 것 같아요. 사회적 알람과 운명적 알람이 있는데, 운명적 알람이 내 시간이에요. 그게 울려야 뛰고, 그게 울려야 시작이 돼요. 사회적 알람에 맞춰서 뛰는 게 아무 의미가 없는 거죠. 예를 들면, 저는 쉰네 살에 처음으로 두 달 동안 유학을 가봤어요. 유학이 꿈이었는데 한 번도 못 가봤어요. 그런데 갔을 때 너무 재밌었거든요. 그때 제 알람이 맞춰져 있었던 거죠. 제가 아이들을 기다려줄 수 있었던 이유도, 자기만의 운명적 알람이 따로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불안을 느끼면서도 참으면서 ‘너희는 잘 될 거야’ 하고 우긴 게 아니에요. 알면서 기다린 거예요. ‘사람은 때가 있어, 너는 나중에 잘 될 거야’, ‘가만히 보니까 네 안의 고통을 지나면 무언가 될 것 같아’, ‘너는 서른다섯이나 돼야 꽃필 아이구나’ 이런 느낌이 아이를 보고 있으면 와요. 전제 조건은, 딴 집과 비교하지 않아야 된다는 거예요. 초조하지 않아야 아이를 읽을 수 있어요. 초조하면 불안해서 아이가 읽히지 않아요.

 

강연에서도 “정말 아이를 잘 키우고 싶으면 옆집하고 헤어지세요”라고 말씀하신다면서요? 지인들과 만날 때도 아이들 이야기는 잘 안 하세요?


안 하죠. 아이가 어디 학교를 갔다거나, 뭘 가르치고 있다는 이야기는 못하게 해요. 저는 ‘네 이야기를 하라’고 해요. 네 남편 이야기도 하지 말고, 네 아들 이야기도 하지 말고, 네 이야기를 하라고요. 그래서 제가 만나는 친구들은 우리 이야기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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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후회하는 말은 ‘엄마 어떡하니?’


사춘기 아이들을 두고 “문 닫으면 수도승, 나오면 조폭”이라고 쓰셨어요(웃음). 자녀분들이 모두 사춘기를 지났죠?


다 겪었죠. 영혼이 똑똑한 아이들이니까요. 마음이 똑똑한 아이들일수록 사춘기를 겪어요. 그 시기에 아이들은 ‘나는 누구지? 나는 뭐하고 살아야 되지? 이게 맞아?’라고 질문을 하는 건데, 영혼이 똑똑한 아이들일수록 깊이 들어가서 질문해요. 그래서 깊은 사춘기를 겪어요. 사춘기를 세게 겪는 아이들은 재수가 없어서 그런 것도 아니고, 그 아이들이 나빠서 그런 것도 아니고, 부모가 운이 없어서 그런 아이를 만난 게 아니에요. 마음이 강한 아이들일수록, 자기에 대해서 성찰하는 아이들일수록, 사춘기를 깊게 겪을 수밖에 없어요. 엄마들이 기뻐해 주고 격려해 주고 기다려 줘야 되는 거죠. 사춘기 때 제일 필요한 말이 ‘넌 괜찮아’, 그리고 ‘난 널 믿어’예요. 시간이 되면 블랙홀에서 빠져 나와요. 우리 아들이 사춘기 때 이런 말을 했어요. ‘엄마, 나 블랙홀에 들어가 있거든. 밖에서 엄마가 재촉한다고 쉽게 나갈 수 있지 않아. 별에서 나가는 방법은 별의 기운이 떨어졌을 때 나가는 것뿐이야. 그러니까 엄마는 밖에서 기다려’라고요.

 

뮤지션이라 그런지 표현이 남다른데요?


감성이 풍부한데, 그래서 속 썩이는 거죠(웃음). 그런 아이들은 결국 다른 길을 가더라고요. 저는 아들이 자퇴했을 때 ‘이건 다른 길로 가려는 신호이지, 자퇴 자체에 초점을 맞추면 안 된다’는 걸 느꼈어요. 아들이 주는 메시지가 그거였거든요.

 

역시 아이를 가장 잘 아는 건 엄마라는 생각이 드네요.


아이들마다 각기 다른 색깔의 사춘기를 지나요. 누구는 우울한 색으로 지나고, 누구는 폭력적으로 지나고, 어떤 아이들은 엄마랑 대화를 끊고 지내기도 해요. 그런데 그건 문제가 아니에요. 앓는 중이고, 아이들이 빠져 나와요. 그때 엄마의 자세가 중요해요. 울고 있지 말라는 거죠. 자랑스럽게 맞아줘야죠.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들이 많이 하는 말이 ‘제발 대화 좀 하자’가 아닐까 싶은데요. 그런 말은 안 하셨어요? 그냥 기다리신 거예요?


그럼요. 아이들 입장에서는 엄마랑 대화가 안 되잖아요. 그 때는 자기들이 신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엄마 입장에서는 속이 타들어가잖아요.


물론 그렇죠. 그런데 말을 안 한다고 해서 모르는 게 아니잖아요. 그리고 사춘기 아이들이 속 깊은 대화는 잘 안 하려고 하는데, ‘밥 먹었니? 오늘은 뭐했니?’ 같은 일상의 대화는 가능하잖아요. 그런 일상의 대화도 끊어질 정도로 아이를 압박해 나가면 안 돼요. 그러다 보면 슬슬 아이가 밖으로 나오죠. 스스로 대화를 하고 싶어 할 때도 있고요.

 

자녀들에게 했던 말 중에 후회되는 것도 있나요?


있죠. 우리 아들이 자퇴했을 때 저도 모르게 이런 이야기가 나왔어요. ‘그럼 너 중졸인데, 나 어떡하니?’ 그때 정말 많이 울고 반성했어요. 제가 그 날부터 변한 거예요. ‘너 어떡하니?’가 아니라 ‘나 어떡하니?’라는 말이 제 입에서 나온 게 너무 부끄러웠어요. ‘미쳤나 봐, 나는 애미도 아니다’ 싶었죠. 내가 창피할 걸 걱정한 거잖아요. 그 날 많이 울고 이튿날 ‘축 자퇴’ 플래카드를 붙인 거예요. 마음을 다시 먹었거든요. ‘이 아이의 엄마인 나는 무엇이 되어야 하나’에 대해서 생각한 거죠. 그때 우리 아들한테 정말 미안했어요. 그런데 우리가 아이들보다 서른 살이나 더 먹은 사람인데도 늘 실수하고 바보짓을 해요. 너무 많이 하죠. 그게 참 안타까운데요. 그렇게 같이 크면 돼요.

 

책의 마지막에, 따님이 쓴 ‘엄마 고발장’이 나와요(웃음). 이후에 업데이트된 내용이 있는지 궁금한데요?


아마 지금도 있을 거예요. 언제 한 번 업데이트해야 될 것 같아요.

 

가끔씩 아이들한테 물어보세요? 엄마한테 서운한 일이나, 엄마가 잘못한 일 없냐고요.


네, 아이들 말이 나중이 엄마 죽은 다음에 책 쓸 거니까 걱정하지 말래요(웃음). 아이들한테 저는 너무 바쁘게 일하면서 사는 엄마인데, 한 번씩은 저한테 은인이라는 느낌을 받는 것 같아요. 인생의 고비 때 가장 큰 도움을 받은 것 같은데요. 딸이 미대에 다니면서 꿈에 대한 기로에 서 있을 때, 저는 아이가 원하는 걸 하도록 적극적으로 박수 쳐주고 기다려 줬어요. 아들은 고등학생 때 그랬고요. 막내는 뭐라는 줄 아세요? ‘저는 저 정도는 아니에요’ 이런 식으로 이야기해요(웃음). 누나랑 형을 보면, 자기 정도는 충분히 감당하실 거라고 생각한대요(웃음).

 

거꾸로 아이들에게서 힘을 얻은 적도 있으시겠죠?


어른이라고 해도 처음 사는 오늘을 살잖아요. 저도 한 번도 갱년기를 맞이해본 적이 없었고, 그래서 굉장히 힘들었어요. 그때 오히려 아이들이 저를 위해주더라고요. ‘엄마, 지금부터 시작이야’라고 말해주고 ‘지루하게 한국에만 있지 마, 엄마는 외국에 나가서도 강의할 수 있어’ 하면서 엄마는 매력 있고 잘할 수 있다고 말해줬어요. 아마 제가 늙으면 아이들이 제 자존감이 되어줄 것 같아요. ‘엄마, 괜찮아. 아파도 살 수 있어’ 이렇게 해줄 것 같아요. 제가 자존감 토양을 다 퍼줬으니까, 이제 반대로 아이들이 저한테 퍼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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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다운 모성이 최고의 모성이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엄마는 수없이 죄인이 된다”고 쓰셨어요. 엄마들은 이 죄의식을 어떻게 해야 될까요?


엄마는 계속 미안한 거죠. 그런데 그 상태로 있으면 안 돼요. 미안한 감정을 계속 가지고 있으면 엄마 노릇을 하기 힘들어요. 죄책감만으로는 안 되는 거예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모성은 ‘김미경 모성’이에요. 저는 다른 사람의 모성은 알고 싶지도 않고, 하지도 못해요. 우리 집 아이들은 내 모성에 길들여진 자식들이에요. 내 새끼니까. 그러니까 엄마들이 자기다운 모성이 최고의 모성이라고 믿어야 돼요. 특히 일하는 엄마들을 보면 너무 죄책감을 가지는데요. 저는 ‘아니야, 이 모성이 맞아, 집에 들어가면 더 이상해질 거야’라고 말해요. 자녀와 꾸준히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고 좋은 순환이 이루어질 수 있는 모성이 제일 좋은 모성이에요.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모성이 제일 좋은 모성이라는 거죠. 그러니까 죄책감을 갖지 말아야 해요.

 

책에서 “나를 위한 가장 괜찮은 선택을 나 스스로 할 수 있다고 믿는 힘”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 엄마들이 기억해야 할 말인 것 같아요.


그렇죠. 내가 엄마로서 제일 좋은 선택을 하고 있다고 스스로에게 이야기해야 돼요.

 

집필하시는 동안 ‘친정엄마’를 떠올리기도 하셨을 것 같아요. 어떤 느낌이 드셨어요?


우리 엄마는 제가 어렸을 때 자존감을 키워줬어요. 심지어 태몽도 지어냈다니까요. 꿈에서 백마 탄 기사가 걸어가고 수천 명이 그 뒤를 따라갔는데, 엄마가 신발을 벗어 던지고 뛰어가서 그 말꼬리를 잡았다고 했어요. 그러고 나서 나를 낳았다고, 너는 수천 명이 따를 거라고 하셨거든요. 그런데 엄마 친구가 이야기해줬어요. 그게 다 뻥이라고. 너희 엄마가 시골에서 아이들을 키웠지만 훌륭한 아이로 키우고 싶어서 거짓말을 했다고 하시더라고요. 우리 형제들 태몽은 다 엄마가 지어냈어요.

 

어머님의 ‘빅픽쳐’였네요(웃음).


저는 마흔 살까지 그 사실을 몰랐어요. 그런데 우리 엄마가 정말 고마운 사람이고 대단한 사람인 거죠. 얼마 전에 여든셋이 되셨는데, 침대에만 누워계신 지 5년이 다 되어가요. 너무 고생하셔서 뼈마디가 다 부서지셔가지고, 화장실도 못 가시고 밥도 누워서 드시거든요. 얼마 전에는 목숨을 끊으려고 하셨어요. 저한테 전화하셔서 그러시더라고요. 누워서 밥을 먹으니까 엄마가 짐승 같다고요. 살 필요가 없는 것 같아서 베란다에서 뛰어내리려고 하셨대요. 그런데 베란다까지 기어갈 수가 없었다는 거죠. 사람이 병을 오래 앓으면 자존감이 바닥을 치잖아요. 나 같은 인간은 쓸모 없다는 생각까지 들고요. 그래서 제가 매일 엄마랑 통화하면서 제 자존감을 엄마한테 넣어줬어요. ‘엄마, 고생 많이 했잖아. 우리가 잘된 거 봐. 엄마가 아니면 이런 김미경이 나왔겠어? 나는 오늘도 엄마 이야기하고 다니는데, 엄마가 이러면 안 되지. 우리 엄마 대단한 사람인데. 지금도 내 말 다 알아듣잖아’ 하면서 한 달 내내 애썼어요.

 

어머님께도 변화가 있었나요?


하루는 전화를 하셔서 ‘미경아, 나 똑똑한 것 같아’ 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건강했을 때의 나는 예뻐하고 늙은 나는 미워하는 게 불공평한 대우라는 걸 느끼셨대요. 나 자신을 공평하지 않게 대한다는 걸 깨달으셨다는 거죠. 그래서 병약하고, 아무것도 못하고, 누워서 밥 먹는 자신도 사랑하게 됐대요. 그리고 통증을 데리고 살기로 마음먹으시고, 아침마다 통증한테 호령을 했다고 하시더라고요. ‘너는 네 할 일 해라, 나는 내 할 일 할겨’ 하고요. 그러면서 누워서 자서전을 쓰기 시작하셨어요. 점점 마음의 병을 치유해 나가시고요. 어렸을 때는 엄마가 저한테 자존감을 줬잖아요. 그런데 엄마도 살다 보면 자존감이 바닥날 때가 있어요. 저는 엄마가 병약해지셨을 때 자존감을 퍼드렸죠. 그렇게 필요한 순간에 자존감이 세대를 오가는 거예요. 아이만 잘 되는 집 없다니까요. 다 같이 선순환 돼야 해요.

 

비영리 패션 브랜드 ‘리리킴’을 운영하시면서, 수익금을 미혼모 돕기에 쓰시잖아요. 미혼모들을 위한 사단법인 ‘그루맘(GROWMOM)’도 설립하셨고요. 이번에는 『엄마의 자존감 공부』도 출간하셨는데, 엄마라는 화두에 집중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엄마가 되기 전의 김미경은 내 안에 있는 힘의 60%도 못 내고 살았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엄마가 되고부터는 내 안의 힘의 150%, 200%까지 꺼내 쓰는 거예요. 엄마는 나한테 엄청난 기회였던 거죠. 그래서 엄마로서 자신의 힘을 꺼내서 쓰는 여자들에게 사랑을 느껴요. 좋아해요. 저는 미혼 엄마들을 ‘Brave Girls’라고 불러요. 아이를 낳을까 말까 고민하면서 남편 없이 혼자 아이를 낳았잖아요. 입양 보낼까 혼자 키울까 고민하면서, 직업도 변변히 없는 상황에서 아이를 키우기로 결정했고요. 그런 용기가 어디 있어요? 만나보면 눈에 총기가 있고 똑똑한 미혼모들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그런 엄마들한테 세 번째 용기가 되어주는 건 너무 나다운 일이에요. 그냥 너무 끌렸고, 계획을 한 것도 아니에요. 자연스럽게 스며들어서 시작한 일인 거죠. 사단법인을 만든 이유도 규칙적으로 지속적으로 하기 위해서예요. 마음 가는 대로 하다 보면 바쁠 때 안 할 수도 있잖아요. 일이 돼야 열심히 하지 않겠어요? 그래서 만든 거예요.

 

내년에는 미혼모들과 함께하는 패션쇼를 여신다고요.


4월에 진행할 계획이에요. 미혼 엄마들하고 연예인들이랑 같이 무대에 서서 당당하게 행진하는 거죠. 제가 하고 싶은 일 중에 하나는, 미혼 엄마들이 용기 있게 살아갈 수 있도록 마음을 정화시켜 주고 교육하는 일이에요. 또 하나는 사회적인 인식 개선이고요. 그게 미혼 엄마들을 위해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잖아요. 이번에도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는데, 다 같이 모여서 키즈카페에서 아이들 놀게 하고 선물 주는 거예요. 주변에 도와주시는 분들이 너무 많아요. 미혼 엄마들이랑 파티한다고 하면 선물도 보내주시고요.

 

오는 11일부터 <김미경의 톡앤쇼> 시즌 3가 시작됩니다. 이번 책의 주제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죠?


그럼요. ‘부모의 자존감이 아이의 미래다’라는 주제로 진행되는데요. 그동안 엄마들이 한 번도 깨닫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치유도 되고 용기도 갖게 해주는 자리가 될 것 같아요. 잘못된 건 반성도 하고요. 저는 아빠들이 많이 왔으면 좋겠는데, 어떨지 모르겠어요(웃음).

 

엄마로서 최근에 고민하고 있는 건 무엇인가요?


글쎄요... 아, 이런 게 있겠네요. 딸이 시집가면 아이를 키워줄까 말까(웃음). 실질적인 고민이죠. 딸은 저한테 안 맡기고 자기가 키울 거라고 하는데요. 내년에 시집가는데, 날짜가 다가오니까 혹시 엄마가 키워줄 생각 있느냐고 물어보더라고요. 저는 ‘엄마 생각 좀 해보고 말할게’ 하고 아직 대답을 안 하고 있어요(웃음). 그런데 제 시간을 나눠줘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은 해요. 딸이 저한테 나눠준 시간이 있거든요. 자식으로서 당연히 가져야 될 시간을 일하는 엄마한테 나눠준 게 있죠. 지금은 딸도 일을 하다 보니까 제가 시간을 나눠줘야 할 것 같아요. 우리는 서로 빚을 지고 빚을 갚는 사이거든요. 끈끈한 전우애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네가 나를 도와줬으니 나도 너 도와줄게, 같은 마음이 있죠. 그래서 어떤 방식으로든 (손주를) 키워주기는 할 거예요.

 

워킹맘으로 살아갈 딸을 보면서 측은한 마음도 드시겠어요. 같은 워킹맘으로서 느끼는 동병상련이라고 할까요.


그렇죠, 그 마음을 알죠. 그래서 제가 전력을 다해서 24시간 붙어 있지는 않겠지만, 도움을 줄 수 있는 시스템을 생각해내려고 해요(웃음). 이제 몇 년 안에 제가 엄마가 아닌 할머니의 포지션으로 넘어갈 텐데, 그때는 할머니로서 두 세대의 자식을 가지는 거잖아요. 그 아이들이 다 각자의 자존감을 가지고 살 수 있도록 해야죠. 그때도 역할이 안 끝날 거예요. 저도 아직까지 아버지나 엄마한테 확인 받는 게 너무 많거든요. ‘내가 맞지? 이래도 돼지?’ 하고요. 이제 제가 그 역할을 해야죠.


 

 

엄마의 자존감 공부김미경 저 | 21세기북스
전국의 강연장에서 수많은 엄마들의 등을 쓸어내리며 토닥이며 나눈 진솔한 이야기, 정답을 몰라 흔들리는 엄마들에게 던져줄 해답을 신작 〈엄마의 자존감 공부〉에 담았다.



비벡 와드와 “무인자동차가 상용화되면 부동산이 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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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이 익숙해졌지만, 아직 첨단 기술이 어떤 결과를 불러일으킬지는 장담하기 힘들다. 무인자동차를 도입해 교통사고가 일어난다면 누구의 책임이 될지, 차량이 줄어들면서 주차장이 줄어들면 무슨 일이 생길지 상상하기 쉽지 않다.


듀크대 ‘창업연구 상용화 센터’ 연구 감독, 싱귤래리티대 교수, 스탠퍼드대 기업지배구조센터 및 카네기멜런대 공과대 석학회원인 비벡 에드와 교수는 이러한 상황에서 전체적인 그림을 제시해 주는 4차 산업혁명 전문가이다. 글로벌 스타트업 콘퍼런스인 ‘아시아 비트’에 초청된 비벡 에드와 교수에게 서면으로 인터뷰를 요청했다. 곧 출간 예정인 『무인자동차 안의 운전자』의 내용을 중심으로 한국의 4차 혁명의 모습은 어떨지 가늠하기 위해서다.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기존의 산업혁명이 사후에 부여된 언어라면, 세계경제포럼에서 처음 등장한 단어인 4차 산업혁명은 현상이 일어나기 전 명명한 단어라 이해하기 쉽지 않다. 본인이 생각하는 4차 산업혁명이란 무엇인가?


3차 산업혁명은 한 마디로 기계화와 제조업으로, 한국은 이를 통해 많은 혜택을 누렸다. 그런데 지금은 인공지능, 센서, 나노기술, 유전적 변이에 대한 염기서열 분석 기술,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최첨단 기술과 융합 등, 다양한 분야에 다양한 기술이 적용되는 시대다. 특히, 기술의 융합으로 전 산업을 뒤흔들 수 있는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의 탄생이 가능해진다.


3차 산업혁명 시대에, 한국은 서구보다 백 년이 뒤처진 상태였다. 따라서 모든 걸 배워야 했고 달라져야 했다. 그러나 전 세계에서 4차 산업혁명이 벌어지면서 한국도 서구와 같이 같은 지식과 기술을 접하게 됐다. 백 년을 기다릴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아니, 오히려 한국이 세계를 이끌 수도 있다. 새로운 산업을 창조해 크게 도약할 수 있다.


그래서 내 연구실에서 IGM 그룹과 함께 자신의 기업을 바꾸어 신사업으로 가려는 한국 기업에 꼭 필요한 것을 가르치고 있다. 바로 핵심 기술과 그 기술 융합에 대한 올바른 이해다. 그동안 IGM 그룹을 통해 한국의 CEO들에게 가르친 것도 이 점이다.


『무인자동차 안의 운전자』에서는 다가올 시대의 모습을 <매드맥스>와 <스타 트렉>에 소개된 미래상으로 비교했는데, 둘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이라고 보나.


‘기술을 어떻게 사용하느냐’다. 인류의 가장 오랜 기술인 불을 포함해 모든 기술은 선하게도 혹은 악하게도 사용될 수 있으니까. 첨단기술의 힘으로 신기한 일들이 현실로 이루어지고 있는 걸 보면, 머지않은 장래에 인류는 필요한 만큼의 식량을 생산해 내는 능력과 건강하게 사는 능력을 지니게 될 것이다. 공짜에 가까운 청정에너지를 무한대로 쓰고 누구에게나 교육이 제공될 것이다. 하지만, 살인 바이러스를 만들어 내거나 지구를 파괴할 수도 있지 않은가. 첨단 기술로 인해 빈부, 교육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기술이 특별한 지식이 되어 어려운 문자처럼 읽지 못하게 되면서 사람들의 분노가 쌓임으로 사회는 분열을 일으키게 된다. 기술을 현명하게 사용하고, 인류가 창조해 낸 번영의 혜택을 함께 나눈다면  <스타 트랙>의 미래를 이룰 수 있다. 아니면, <매드 맥스>다.


형평성, 위험성, 자율성 이 세 가지 기준을 놓고 신기술 적용을 생각해봐야 한다고 했는데, 기업의 입장에서는 형평성이나 자율성, 위험성보다 이익을 먼저 추구할 가능성이 높다. 플랫폼과 시장, 기술을 장악한 업체가 정보를 공유하지 않고 돈으로 환원하는 데 초점을 맞출 거라는 미래 전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분명하다. 기업은 이익을 추구할 것이다. 투자를 멈추거나 위험 부담을 피하려 들 것이다. 내가 예측하기에 이래서 향후 7년에서 10년 사이에 수많은 기업이 파산할 것이다. 간단하다. 둘 중 하나, 변화를 이끄는 기업이 되거나 변화의 희생자가 될 것이다.


기술의 진보를 무시하는 CEO들은 단기간은 잘 해 나갈 것이다. 이익이 발생하면서 두툼한 보너스를 챙길 테니까. 그러나 이건 파산으로 가는 길이다. 지금 기대이익은 백 퍼센트 미만인데 기대손실은 무한대와 같으니까.


스타트업은 센서 기반 기술 의학 기술 등 다양한 분야를 이끌겠지만, 인공지능은 대기업이 이끄는 추세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스타트업이 협업하고 서로 윈-윈할 방법이 있다면.


한국의 기업들이 사용하고 있는 인공지능 기술은 초보 단계의 기술이다. 그저 낡은 데이터 분석 도구를 그들이 인공지능이라고 부르는 것과 바꿔놓았을 뿐, 그건 인공지능이 아니다. 인공지능이 정확히 무엇인지, 어떤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스타트업과 일부 국가의 기업들은 인공지능이 뭔지 제대로 이해함으로 넓고 큰 시야를 갖고 있다. 나는 기업에 진정 놀라운 새 시스템에 발맞춰가려면 스타트업을 배우고 또 함께 일하라고 충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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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이 평등하려면


‘수확 과속의 법칙 The Law of Accelerating Returns’으로 혁명과 발전이 기하급수적으로 일어난다는 전망을 내놓았다. 어떤 경우 이 법칙을 따라가게 되는가.


이 법칙은 지금 작동 중이다. 디지털화한 모든 기술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한다. 실제로 전 산업, 전 분야가 디지털화되어 빠른 속도로 첨단화되고 있다. 이 법칙이 농업에서 에너지, 의약, 교통 등 모든 분야에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는 내 책 『무인자동차 안의 운전자』에 나와 있다.


로봇과 AI로 일자리가 없어질까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주로 단순 작업 영역이 가장 먼저 대체될 것으로 예상한다. 19세기 산업혁명 당시 러다이트 운동처럼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의 기술을 반발하는 과도기가 올 텐데, 이 시기를 어떻게 잘 헤쳐나가면 좋을까?


나도 그 점을 가장 우려하고 있다. 노동력이나 지식이 요구되는 대부분의 일은 로봇과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더 잘하게 될 것이다. 사람이 할 일은 점점 더 줄어든다. 일은 덜 하고 원하거나 필요한 걸 다 가질 수 있다면 행복해할 사람도 있겠고, 화가 나서 러다이트 운동가들처럼 자동화와 기술을 중단하라고 외칠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수많은 사회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이 책을 쓴 목적은 바로 기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모두에게 알려서 미래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토론을 시작하자는 것이다. 앞으로 닥칠 변화와 미래 사회로의 변환을 더욱 수월하게 이룰 수 있도록 대비해야 하지 않겠는가.


신기술의 혜택을 사회에 골고루 나눠주며 사람들이 신기술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도록 이끌어야 할 기관들’(7쪽) 이 필요하다고 했다. 기술이 인간에게 공정하게 적용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반드시 모든 사람이 신기술의 수혜자가 되도록 해야 하고, 이를 위해 슬기로운 정책을 개발해야 한다. 이 책에서 나는 모든 기술을 알아보고, 그 기술에서 어떤 이익을 얻을 수 있는지, 또 리스크는 무엇인지 살펴보았다.


먼저, 급속하게 발전하는 기술을 제대로 알고 그 영향력을 이해하자. 이것이 내 책이 주장하는 바다. 그리고 나서, 적절한 정책을 개발해 사람들이 변환을 잘 이루어내도록 도와줘야 한다. 모두가 함께해야 할 일이다.


‘기술의 평등’ 장에서는 기술로 인해 위험보다 보상이 많도록, 기술에 의존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기술을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 설명해 준다면.


가장 좋은 주체적 활용 예는 무인자동차가 아닐까. 노인이나 앞을 못 보는 이들에게는 기동성을 제공하고, 부모들은 안심하고 자녀들을 학교에 보낼 수 있다. 교통비가 크게 줄어들어 누구나 그 혜택을 받게 된다. 주체성이 증가하고 또 모두에게 좋다.


그런데 무인자동차는 인간에게 통제권이 없음을 뜻한다. 기술이 목적지를 알려주고 차가 움직인다. 사람들은 점점 로봇에 의존하고 운전하는 방법을 잊어버린다. 자동차가 주는 운전하는 재미와 독립성은 사라져 버린다. 주체성이 상실되고 또 모두에게 좋지 않다.


자, 어느 쪽을 택할까? 나는 주체성과 사생활 보호권(자동차가 우리가 간 곳을 모두 추적할 테니까)의 상실에도 불구하고 무인자동차를 선택하겠다.


무인자동차로 경제적 혜택이 클 것이다. 도시에 따른 부동산 가격 차등이 완화된다면 어떤 미래를 상상하고 있나.


한 도시에서 자동차와 주차를 위해 사용하는 토지는 전 토지의 1/3에 달함으로 상당한 영향을 줄 것이다. 차량수도 줄고 대부분의 주차장도 필요 없게 된다. 게다가, 멀어도 상관이 없다. 무인 자동차는 속도제한이 필요 없으니 도심에서 좀 떨어진 곳에서 살아도 된다.


그러나 새로운 스마트도시가 건설된다면, 그곳에 살길 원할 것이다.

 

가치와 가격의 전환이 이루어질 것은 분명하다. 모든 건 도시 당국자들과 개발자들이 우리 앞에 닥쳐오고 있는 변화에 얼마나 잘 대처하느냐에 달려있다. 바로 기업의 대표들과 투자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변하는 기술을 잘 알아야 하는 이유다.


‘무인자동차에 올라탄 운전자처럼, 우리는 데이터의 홍수에 휩쓸리지 않고 명확하게 진실을 직시해야 한다. 그러려면 결정을 내리고 시각을 형성하는 데 필요한 정보의 양을 제한하고 단순화해야 한다.’라고 했다. 개인의 차원에서 정보량을 제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답하기 쉽지 않다. 더 많은 정보를 원해서 관련 기술 회사들이 정보를 걸러내는 걸 원치 않는가 하면, 정보가 너무 넘쳐 주어진 정보를 소화하기 힘들기도 하다. 내가 주장하는 가장 좋은 해결책은 기술 자체에 선택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정보를 어느 정도 걸러내기를 원하는지, 뭘 보기를 원하는지를 사용자가 선택하는 것이다. 기술 산업이 어떻게 인간의 선택권을 박탈해 기술에만 매달리는 중독 상태에 빠트렸는지, 그리고 그 결과, 인간이 얼마나 행복을 상실했는지. 기술이 우리에게 주는 즐거움을 되돌려 받기 위해 무엇을 할 필요가 있는 지에 대해 다음 책에서 말할 계획이다.


부자들이 더 비싼 최신 기술을 구매하는 건 기술 발전에 대한 비용 지급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결국 모든 사람이 혜택을 받을 거라 보는 편인가?


그렇다. 지금 서울 거리의 사람들이 들고 있는 휴대전화를 보자. 수년 전만 해도 돈 있는 사람들만 쓸 수 있는 스마트폰을 이제는 돈이 좀 없어도 모두 쓰고 있다. 부자들이 들고 있는 삼성의 휴대전화 신 모델은 돈이 없는 사람도 사용할 수 있다. 2년을 참아야 살 수 있겠지만. 부자가 가난한 이들을 보조한 결과가 되지만 모두에게 혜택이 돌아가니 좋은 일이다.


인터넷으로 모든 게 연결되면서 별다른 보호 장치 없이 인터넷상에 개인 데이터가 돌아다니는 상황을 우려했다. 개인 데이터를 올리는 상황에 동참하거나 동참하지 않거나 둘 중 하나인 상황인데, 현 상황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정보가 해킹 당하는 뉴스를 자주 접하면서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본다. 미국에서는 한 신용평가기관 해킹 사건으로 1억 4천 3백만 명의 개인 정보가 해를 입었다. 시장에 나와 있는 사물인터넷 기기들 또한 안전하다는 보장이 없어 사생활이나 데이터가 안전한 상황이 아니다. 나는 이런 기기는 사용하지 않는다. 보호 장치가 덧붙여진다면 모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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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전망하다


마이크로바이옴microbiome 분야를 가장 흥미롭고 유망하고 논란이 적은 기술로 꼽아주셨다. 자세히 설명해준다면.


인체 장기 내에 공존하는 각종 박테리아를 칭하는 ‘마이크로바이옴’은 내가 가장 재미있어하는 분야다. 인체 조직 전체를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마이크로바이옴’이 우리의 환경 및 유전자와 건강을 연결하는 잃어버린 고리 일 수 있다. 우리 몸 안에 어떤 박테리아가 있고, 거기에 유전자가 어떻게 반응하는지와 우리가 느끼는 건강 사이에는 무슨 연관이 있는지 발견해내는 연결고리. 우리의 건강과 웰빙을 결정하는 것은 우리가 지금 먹고 있는 약이 아니라 장기 내 세균일 수 있으니까.


한국인들이 아주 흥미롭게 느끼리라 생각되는 점은 마이크로바이옴 분야가 발전하면서, 한국의 옛 조상들이 써 온 대체의학과 많이 닮아가고 있다는 점이다. 의료진들이 증상이나 한 장기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하나의 복합적인 에코시스템으로 들여다볼 수밖에 없게 되면서, 질병이나 장애의 증상만이 아닌, 인체 전체를 들여다봐야 한다는 깨달음이 자리잡고 있다. 김치를 생각해보자. 김치는 소금에 절인 발효 음식이다. 세균, 마이크바이옴의 역할 덕이다. 건강에 대한 이해는 서구의 의료진보다 한국의 옛 조상들이 한발 앞서 있는 것 같다.


‘교육의 미래’ 장에서 디지털 교사와 인간 코치가 아이를 가르치는 미래상을 제시한다. 인간 코치와 디지털 교사의 역할은 무엇인가.


인간이 스승이나 코치가 된다. 각자의 개성을 발전시키도록 학생들을 도와주고 가치관과 도덕성을 불어넣어 준다. 수백 년 전부터 이어 온 한국의 교육과 다를 바 없다. 인도에서 학생과 스승은 여전히 서로 존중하는 관계다. 궁극적으로는 전문적인 지식과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자문에 응하여 의견을 말해주는 스승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 기업가는 모든 기술 분야를 이해하고 빠른 결정을 내려야 한다. 리더가 이 시대 배워야 할 덕목은 무엇인가.


한 기업의 리더는 고용인들이 위험을 감수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도록 힘을 실어줘야 한다. 무엇이 가능한지 스스로 알아내, 고용인들이 크게 생각하도록 격려해야 한다. 리더는 명령이나 지시를 내리는 자가 아니다. 지지하고 양육하는 자다.


종이책의 종말을 10년 넘게 이야기하지만, e-book과 함께 종이책은 아직 무너지지 않았다. 앞으로 디지털 콘텐츠 시장은 어떻게 될 것으로 전망하나.


미래에도 종이책은 존재하겠지만 보기 드물어질 것이다. 대부분 뭔가를 배우려면 가상현실에 들어가 배우거나 경험하는 것을 선택하기 때문에, 그만큼 더욱 줄어들 것이다.


마지막으로 동아시아의 기업가, Startup, 소비자에게 4차 산업혁명시대를 맞아 어떻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견을 밝혀달라.


특별히, 한국의 기업가들에게 말하고 싶다. 세계를 이끌어 갈 기회가 있다고.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변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전통적 가치관을 보존해왔고 열심히 일하기 때문이다. 첨단 기술에 대해 배우고, 그 기술로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한국의 위상뿐만 아니라 전 인류의 위상을 높이게 될 것이다. 혁신이 이루어지는 마당은 누구나 들어설 수 있다. 기업가는 그 누구든 기업을 새롭게 변화시켜 인류가 당면한 난제를 풀 수 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제월 “말과 글은 일종의 화살표와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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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수사로 살던 이제월은 이후 공부방, 대안학교 등에서 여러 사람을 만나고 가르치는 일을 했다. 공부하고, 배움을 나누는 일을 꾸준히 해온 그는 읽는 일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더 많은 사람과 깊이 읽는, 그리하여 제대로 사유할 수 있도록 하는 활동을 시작한다. 공부집단 ‘현현당’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현현당에서 이제월이 사람들과 처음으로 읽은 텍스트는 다름 아닌 ‘해리포터 시리즈’. 그 강의가 『만일 해리포터가 삶을 바꿀 수 있다면』으로 묶였다. 


왜 해리포터였을까. 이제월은 이 안에 “하나의 완전한 비유”로써의 세계가 자리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보편적이며 고전적인 이 이야기가 “어른이 되지 못한 어른”들에게 다시 어른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준다고 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제월의 해리포터 읽기는 제목과 헌사, 인물 읽기에 그치지 않는다. 작품 속 인물들을 통해 우리의 진정한 모습을 찾고, 질문한다. 인간의 연약함을 알지만 선택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당위로까지 뻗어나간다. 차별과 혐오를 사유하고, 진정한 사랑을 발견한다. 해리포터라는 훌륭한 이야기를 도구 삼아 이제월은 삶을 바꾸는 생각의 단초들을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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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작품


공부집단 ‘현현당’에서 진행한 읽기강의 첫 책이 ‘해리포터’ 시리즈였다고요. 다른 책이 아닌 해리포터라는 텍스트를 선택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판타지 장르를 좋아하긴 해요. 판타지란 가상의 것들이어서 판타지가 아니에요. 사실 모든 픽션이 가상이죠. 그 중 판타지가 갖는 위치는 그 가상이 기존 현실과 상관없이 현실을 뛰어넘을 수 있다는 점이에요. 별도의 세계를 만들어버리죠. 가령 『남한산성』이 판타지적이지만 판타지가 될 수 없는 것은 그 픽션은 전부 우리가 익히 아는 세계의 나머지 모습, 실제 역사까지 끼어든 모습이기 때문이에요. 판타지란 그 세계의 질서, 원리, 상식, 문화 등을 기본적으로 다 설정하거든요. 일반적인 픽션에서 어떤 사건, 인물 성격이 어느 만큼은 우연적이라면 판타지는 아무리 사소해 보이는 것도 전부 본질적이고요. 전부 상징이 된다는 거죠. 그래서 우리가 본질적인 이야기를 할 때, 특히 하나의 완전한 비유로서 이야기할 때는 판타지가 유리하다고 생각해요.

 

완전한 비유로 본질적인 이야기를 한다는 점이 중요할 것 같네요.


예수나 부처 같은 분들도 중요한 얘기를 할 때 항상 비유를 드셨잖아요. 그분들에게 철학적으로 설명할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에요. 비유로 말할 때 그 이야기가 통째로, 살아있는 채로 본질적인 것들을 전해주기 때문이라고 봐요. 물론 그렇다 해도 현현당을 처음 할 때 어떤 책으로 시작하느냐가 중요했죠. 첫인상을 형성하는 거니까요. 처음엔 진지하게 목록을 짜봤어요. 그런데 아내가 학생 중에는 초등학생도 있는데 되겠냐면서 지나가듯 해리포터 이야기를 꺼내더라고요. 듣고는 그게 맞는 것 같아서 해리포터로 결정하고 책을 다시 정독했죠.

 

다시 읽어보니 어떻게 다르던가요?


그냥 읽었을 때는 놓쳤던 것들도 있더라고요. 90년대에 해리포터가 처음 나왔을 때 1, 2편을 보고는 좀 평범한 작품으로 여겼거든요. 이후 『해리포터와 불사조 기사단』을 탐독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다시 작품을 쫓아가보기 시작했어요. 『해리포터와 불의 잔』을 보면서 이 작가가 앞 작품에서는 준비를 한 것이고, 본격적인 이야기는 여기서 펼쳐지는구나, 하고 알게 됐죠. 그러면서 나머지 작품과 영화를 찾아봤어요. 이 이야기는 굉장히 보편적이고 고전적인 이야기라는 생각을 했고, 학생들과 이야기해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죠.

 

해리포터 시리즈의 구체적인 미덕이라면, 뭘까요? 강의의 도구로 삼을 만큼 매력적이고, 이야기로써의 가치가 있다고 본 이유는 뭔가요?


해리포터는 수억 명의 사람들이 읽었어요. 우연히 읽은 게 아니라 굉장히 열광하며, 사랑하면서 읽었잖아요. 이 인류 단위에서 펼쳐진 사랑이 무가치하거나 약한 것일 리 없다고 봤고요. 대중의 취향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존중하면서, 배우는 자세로 읽은 거죠. 심지어 그 안에서 발견한 보편성과 세계성에는 특별한 특징이 있었어요. 하나는 작가가 이야기를 잘 전달하는 데에 욕심을 내고 있지, 미문을 만드는 데에 집중하고 있지 않았다는 점이에요. 영문을 보더라도 그래요. 사용된 단어 수도 그렇게 많지 않거든요. 다른 하나는 익숙한 문화 코드를 기꺼이 가져다 쓰고 있다는 점이죠. 익숙한 것들로부터 이야기를 펼친다는 것은 모두를 초대했다는 거예요. 마치 예수가 잔치에 초대한 사람들이 이 핑계, 저 핑계로 안 오니까 왕에게 길거리로 나가서 아무나 데려오게 했다는 비유처럼요. 작가는 문학으로부터 등 돌린 수많은 사람들이 들어올 수 있는 잔치를 벌인 거예요.

 

대중들이 열광한 이유도 거기에 있을 것 같아요.


그러한 속성을 더 강화시킨 것이 문장이 가진 육체성이라고 생각해요. 추상적인 묘사가 거의 없어요. 그런 묘사가 있어도 우리가 평소에 쓰는 정도의 단어들로 하죠. 우정, 정직 같은 별로 심오할 것 없어 보이는 이야기를 직접 해요. 그런데 이게 발화되는 순간에 굉장히 심오해지거든요. 각자의 삶의 결, 무게, 길이, 그 스펙트럼에 따라 거의 무한대의 변형을 가져와요. 그걸 여기서 울려내는 거죠. 또한 작가가 모든 것을 과도하게 정의하거나 그것이 아니면 절대 읽을 수 없는 형태로 문장을 만들지 않음으로써 읽는 사람이 누구든 자신이 가장 공감할 수 있는 곳으로 들어갈 수 있게 돼요.

 

해리포터라는 인물에 대해 ‘빈 인물’이라고 표현했는데요. 그와 같은 의미네요.


네, 인물이 차 있을 때도 강렬함을 끌어낼 수 있는데요. 그러면 그걸로 끝나요. 어디 갔더니 멋있는 경치가 있더라, 하고 돌아오는 것과 비슷하죠. 조지프 캠벨의 표현을 들자면 꿈은 개인이 꾸지만 만일 집단이 꿈을 꾸면 그것은 신화가 된다고 하거든요. 해리포터는 현대의 신화를 만든 거예요. 신화는 한 편으로는 이 세계를 이해하게 해주고, 다른 한 편으로는 아직 어린 사람이나 삶의 변두리에서 몽롱하게 있는 사람을 일깨워서 어른이 되게 하거든요. 과거 수많은 문화에서 어른이 되는 성인식이란 건 죽을 수도 있는 위험을 감내하는 거였어요. 굉장히 생생한 것이었는데 오늘날에는 그런 게 없잖아요. 때문에 어른이 되지 못한 어른이 많은 상태죠. 이 작품은 그 어린 시절 했어야만 한 것들이나 알고도 외면했던 것들, 잘 몰라서 지나친 것들을 다시 경험하게 하면서 어른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여느 베스트셀러와 다른 가치가 있는 책들이라고 봤어요.

 

그 중 흥미로운 것이 스네이프 교수를 읽어냈다는 점이에요. 가장 은폐된 인물, 가장 그윽하고 강력한 인물이라고 봤잖아요.


실제로 사건이 벌어진 데에는 언제나 단 하나의 처음만 존재하죠. 의미에도 그런 게 있다고 생각해요. 더 고대의 것일수록 참된 것이고, 다음에 오는 것들 전부를 규정하는 거죠. 어릴 때의 경험이 다음 경험을 규정하듯 말이에요. 단순히 시간적인 순간에 대한 것이 아니라, 영원성을 가진 것과 상관있다면 그것은 나머지보다 더 중요해요. 예를 들어 누가 누구를 사랑할 때요. 그것을 본인과 타인이 인지하는 데에는 시차가 있을 수 있어요. 그러나 그가 처음 사랑하게 된 순간부터 사랑은 이미 작동하고 있어요. 사실 작가가 처음부터 스네이프가 그런 위치를 갖는 것으로 설정했는지 잘 몰랐어요. 수업을 하면서 깨달은 거죠. 이 이야기가 말이 되려면, 진실성을 가지려면 스네이프가 처음부터 해리를 더 깊은 의미로 사랑하고 있어야 한다는 걸요. 근원적인, 어떤 호오를 다 덮을 만큼의 애정이 있어야 한다고 본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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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위대함


결국 해리포터라는 잘 짜인 이야기를 도구 삼아 ‘읽기’에 관해 말하고 있거든요. 첫 문장 “글을 읽는다는 것은 글이 아닌 것을 함께 읽는 것이다.”라는 말에서 중요한 저자의 메시지를 읽을 수 있죠.


정확히 읽어주셨어요. 만일 쓰인 것이 중요하다면 결국 우리는 식자(識者)들의 말에 따라야 하고요. 우매한 사람을 계몽하는 이들의 시혜에 감사해야 하는 사람들로 전락해버려요.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말과 글은 일종의 화살표와 같아요. 손가락을 뻗었을 때 손가락이 가리킬 수 있는 한 먼 데까지 계속 짚어나가는 거죠. 이것들이 하나둘 문장과 만나고, 문장과 문장이 만나면서 생각의 유연성을 얻는 거예요. 하나의 책을 얻어 10만큼의 메시지를 얻었다면 실은 내가 얻은 것은 그 메시지 자체가 아니고요. 10보다 훨씬 더 큰 양의, 어떠한 메시지를 올바르게 읽어낼 수 있는 힘이라고 생각해요.

 

읽기를 특별히 강조하시는 이유는 뭘까요?


대안학교에서 새로운 커리큘럼을 짜서 수업도 해보고, 여러 활동을 해봤어요. 가장 중요한 것은 살면서 속지 않고, 속이지 않고, 남에게 지배당하지 않고 그렇다고 남의 위에 군림하지도 않는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개나 고양이를 개와 고양이가 아니라 사람 같이 대하는 건 바로 인간이기 때문이거든요. 어떤 악한 사람을 만나도 그를 인간적으로 대하는 것은 내가 그와 같은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고요. 『보이지 않는 사랑은 아주 작습니다』를 보면 표제의 다음 구절은 ‘그 뒤에 숨어 있는 보이지 않는 위대함에 견주어 보면.’이라고 적혀 있는데요. 우리가 읽는 글도 충분히 위대하고 거대하지만 거기에는 그 이상의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거죠. 그러니 읽기가 중요해요.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에서 해리에게 덤블도어가 다음과 같이 말해요. “우리의 진정한 모습은, 해리,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우리의 선택을 통해 나타나는 거란다.”라고요. ‘글이 아닌 것을 함께 읽는’ 훈련이 부족한 사람들의 사회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앞서 말씀하신 ‘어른이 되지 못한 어른들’이라는 표현도 상기하게 되고요.


한글 덕택에 문맹률이 매우 낮은 반면 문해맹률은 굉장히 높아요. 대화와 토론이 불가능한 수준이라는 수치를 본 적이 있는데요. 쓰인 글만 읽는, 정확히는 그것을 외워버리는 데에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오직 다른 한 가지로 치환하는 것에 너무 익숙한 학습을 해왔죠. 더군다나 거기서 얻은 성취, 심지어 이른 나이의 성취가 일평생에 과도하게 작용하고요. 인간 수명이 백세를 넘긴다고 하는 판에 고작 만 스무 살도 안 됐을 때의 성취로 끝까지 평가받는 거죠. 하지만 아주 어린 아이의 직관, 아무것도 배우지 않은 사람의 직관도 모두 통할 수 있어요. 우리에게는 공통점이 더 많고요. 그것은 육체성에 기인하는데요. 육체성은 정신성과 구별되는 게 아니죠. 이 육체성이 정신성을 가장 잘 구현하고 있거든요. 때문에 표현되지 않은 것들을 읽어내는 게 매우 중요해요. 어떤 배경과 어떤 사고를 가지고 이렇게 진술하고 있는가를 읽을 줄 알아야 해요. 의도가 없는 일은 없다고 생각해요.

 

숨은 의도를 발견하는 것, 그것은 어떤 변화를 가능하게 할까요?


가능성을 다시 확인할 수 있게 되죠. 범주 안에서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게 돼요. 책에서 흑인 노예제 폐지에 관한 이야기를 했는데요. 그게 불가능하다고, 말도 안 된다고 했던 믿음에 거스른 사람들이 있는 거거든요. 그렇게 우리는 결정된 삶에서 결정하는 삶으로 조금씩 변화해왔다고 생각해요. 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할 때 민주주의가 소위 말하는 중우정치가 아니라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가 될 수 있을 거예요. 보통 사람들이 전문가의 말 가운데 참과 거짓을 가리는 힘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읽기를 통해 누구나 가능하다는 건가요?


나이 드신 어른들, 글자도 못 읽는 분들이 너무나 분명하게 사리분별하시는 모습을 익숙하게 보아왔어요. 반면 제 또래나 선배, 대학도 나오고 그랬다는 분들이 사리분별 못하는 모습을 많이 보죠. 감각이 사라진 거죠. 읽고 있는 것들에 갇힌 거예요. 저는 읽고 있는 것들이 우리를 가두는 벽이 아니라 딛고 올라가서 나아가는 것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러니 제가 읽어낸 것도 유일한 읽기가 아니에요. 닫힌 세계에 제가 문을 냈다면 마침내 독자는 과감하게 문고리를 열고 바깥으로 나가서 자기가 원하는 대로 읽고 원하는 대로 쓰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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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말을 배우는 것


인터뷰 시작 전에 언어의 예언적 속성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해주셨는데요. 글 바깥의 것을 읽는다는 금방의 이야기와 닿아있는 이야기 같아요.


예언이란 말의 어원을 살펴보면 ‘대신 말하다’라는 의미가 있어요. 신을 대신해서 말했다는 뜻이 있는데 고대인들에게 신이란 모든 것이기 때문에 곧 이 세계 자체를 말해요. 세계는 당연히 자신을 다 알고 있어요. 컵을 쳐내면 물이 엎어질 것을 아는 건 예언이 아니라 당연한 거예요. 그런데 아무도 그 말을 하지 않을 때 내가 한다면 그게 예언의 기능을 하는 거죠. 게다가 이렇게 단순한 일이 아니라 원인과 결과 사이의 거리가 멀 때에는 보이는 것 외에 아무것도 없다고 단정해버릴 수 있거든요. 이때 언어는 본질에서는 늘 있었고, 반드시 올 것이고, 이미 작동하기 시작했지만 한계 안에서 보이지 않는 걸 예견할 수 있어요. 인간이 다른 모든 존재와 다르게 살 수 있었던 건 언어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언어는 감각이 아닌 정신을 다룰 수 있는 것이고요. 언어를 통해 우리는 거대한 육체를 갖는 거예요. 이 책을 통해서도 저 혼자는 할 수 없는 대화를 여러 곳에 읽힐 수 있는 거죠.

 

언어를 통해 인간이 개인의 한계를 뛰어넘어 집단의 가능성을 갖는다는 말씀이네요.


예전에 다큐멘터리를 봤는데요.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한 후에도 네안데르탈인이 훨씬 신체적으로 우수했다고 해요. 그런데 그들의 목젖의 위치가 조금 달라서 우리와 같은 정교한 발음을 못했죠. 빙하기가 왔을 때 그들은 한 개인으로서는 뛰어났지만 여럿이 해야만 하는 것들을 못했기 때문에 멸종했다는 거예요. 이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봐요. 

 

읽기에 대한 폭넓고도 깊은 시각을 제안하고 계시는데요. 강의에서 꼭 전하는 말이 있다면 들려주세요.


먼저 쓰인 것, 쓰인 세계를 올바로 읽고 나면 쓸 수 있다는 말이에요. 그 전에는 남들이 쓴 대로 흘러가고 있을 뿐이고요. 읽고 나서 쓰기 시작할 때 비로소 내 삶을 사는 거죠. 그 전에는 남의 의도대로 공부하는 거예요. 선생님이라 해도 마찬가지죠. 자기 생각대로 가르치는 게 아니라 정해진 의도대로 재현하는 거예요. 아이들이 왜 이렇게 수동적일까요? 커리큘럼 자체가 수동적이었기 때문이에요. 수동적인 사람, 황국신민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잖아요. 그것 자체를 바꿔야죠. 또 하나는 자기 자신을 믿으라는 말인데요. 많은 이들이 권위자에게 굴복해요. 하지만 부족하고 불완전해도 스스로가 더 나은 것을 하려고 애써야 해요. 그건 모두가 마찬가지예요. 자기 안에 있는 신성한 것들이 타인에게 있는 범상한 것들에 지지 않게 해야 해요. 자기를 소중히 여기는 것, 저는 이것이 모든 독서자의 가장 중요한 소양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교육 현장에 대한 이야기로도 들리네요.


학교 교육에서 가장 커야 하는 건 자기 말을 배우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영국, 프랑스와 같은 나라들의 공통점은 자기 말을 너무 소중히 여긴다는 점이에요. 알다시피 프랑스의 바칼로레아 같은 경우는 여러 날에 걸쳐 우리의 수능을 치르는데 하루를 철학을, 하루는 모국어를 치죠. 언어는 결국 사고를 하고, 우리를 우리에 갇히지 않게 해요. 넘어서서 경험하고, 행동하고, 누릴 수 있게 하는 게 언어거든요. 자기 말이죠. 자기 말로 하루를 살고 움직이면서 가장 정확한 어떤 것을 찾아가는 훈련, 저는 이것이 가장 민주적인 교육이라고 생각해요. 민주주의는 말이 많은 거예요. 시끄럽고 불편한 거죠. 그래도 서로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고 그 말을 최대한 존중하고요. 잔인하지 않기 때문에 저는 민주주의가 좋거든요. 불확실하고 시끄러울지라도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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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약한 고리


미소지니(misogyny, 여성혐오), 서대문형무소를 바라보는 대목 등에서 저자의 시선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정확히 어떤 것인지 묻고 싶어요. 저자가 바라보고 있는 곳은 어떤 곳인가요? 


우리가 연결되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을 많은 일들이 연결되었기 때문에 일어나요. 특히 한국은 그 사실을 민감하게 느끼는 특별한 조건에 처한 나라인데요. 하나의 세계가 있고, 그 세계의 무게가 너무나 커질 때 거기에 매달린 여러 개의 사슬 중에서 가장 먼저 깨지는 것은 가장 약한 고리예요. 미국이 탄소를 많이 배출하면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가 물에 잠기는 것처럼 말이죠. 저는 세계의 연결성 때문에 해결하고 싶은 어떤 문제이든 그 문제를 푸는 제대로 된 시작은 우리 가운데 가장 낮고, 가장 약한 자리라고 생각해요. 다만 심연에는 아무나 들어가지 않죠. 제가 간디 같은 사람이면 그처럼 살 수 있었겠지만 저는 고작 이만큼 할 수 있는 사람이에요. 하지만 할 수 있는 게 더 늘어난다면 마다하진 않겠고요. 제 아이가 커나가는 세상을 위해서라도 지금은 저의 최선이 이거였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말을 걸고, 이야기를 들어주기를 청하는 거예요.

 

누구나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만큼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 많이 해요.


그리고 그 할 수 있는 일은 내 손이 미칠 수 있는 곳 중에서 가장 열악한 곳이어야 하죠. 이 책의 독자는 여러 사람이 될 테니까 말씀을 드리면요. 전반적으로 우리에게 가장 만연한 문제는 가장 오래된 노예제도라는 말도 있는, 여성 문제라고 생각을 하고요. 사회가 여성의 위치를 제대로 찾아주지 않으면 저는 남성도 노예상태라고 생각해요. 또한 최근에 잔인한 십 대 범죄가 알려지고 있죠. 저는 ‘알려진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 범죄가 예전보다 많아졌는지에 대해서는 의심이 있는데요. 소년법 개정 같은 이야기가 화두에 오르잖아요. 저는 그들이 결정하지 않은 세계에 대한 짐을 왜 그들에게 지우는지 묻고 싶어요. 그들이 책임을 지게 하려면 그들에게 선거권도 주고, 학칙 개정권, 학교 운영권도 주고 해야 해요.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요?


공부집단 현현당을 운영하고 있어요. 실은 방 한 칸 가지고 있지 않고요. 그냥 모여서 공부하는 거예요. 할 수만 있다면 계속 하고 싶은데요. 놀이터나 도서관처럼 현현당을 이용할 수 있는 데까지 확장하고 싶어요. 또한 저 자신이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책을 쓰고 싶은 것은 ‘제월이란 사람이 현현당을 하더라’가 아니라 누구든 취지에 공감한다면 자기만의 현현당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에요. 라이프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 제가 희망하는 건 그거예요. 아주 평범한 사람들, 조금만 건드리면 클 수 있는 사람들이 서로를 만나고 서로를 이끌어주면 좋겠어요. 현현당의 모토가 그것이거든요. ‘현현역색(賢賢易色, 다른 사람의 현명을 좋아하기를 색을 좋아하듯 함)하며 세상을 건너는 사람’이라고요. 저는 그런 사람들이 늘어났으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이 책을 꼭 읽었으면 하는 분들이 있다면요? 


글을 아는 모든 머글들, 즉 마법을 할 줄 모르지만 알아볼 수 있고 배울 수 있는 모두에게 권하고 싶습니다.(웃음)


 


 

 

만일 해리포터가 삶을 바꿀 수 있다면이제월 저 | 항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누구나 좋아하는 해리포터 연작(총 7편)을 대본 삼아, 쓰인 글 속에서 본래의 이야기를 읽어내려는 새로운 시도를 담았다.




뤼트허르 브레흐만 “급진적인 생각을 불편해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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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어느 때보다 부유하다. 지금 가장 가난한 국가의 생활형편은 1800년 가장 부유했던 국가보다 낫다. 사람들의 기대수명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소수를 제외한 전 인류가 굶주렸던 시대를 지나, 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이 비만을 걱정한다. 젖과 꿀이 흐르고 내일 먹을 것을 걱정하지 않는 이상향이 이미 현실로 다가왔지만, 평등하고 행복한 세상이 도래할 거라는 예상은 틀렸다. 사람들은 서로 반목하고 계급 간 격차는 점점 심해진다.


독립언론 <코레스폰던트>를 이끌며 유럽 언론인상 후보에 오르는 등 유럽의 젊은 사상가로 새롭게 떠오른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이 시대야말로 정치로 돌아가 새 유토피아를 찾을 시간이라고 주장한다. 자본주의만으로는 풍요의 땅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뤼트허르 브레흐만이 꿈꾼 유토피아에서는 모든 국민에게 현금이 무상으로 지급되고, 사람들은 주당 15시간 노동으로 생활에 필요한 재화를 얻는다. 나아가 국경을 개방해 이민자들이 자유롭게 나라를 넘나들 수 있다. 공상에 불과하다는 반응이 먼저 나올 법 하다. 그러나 구체적인 자료와 쉬운 논증으로 재반박하는 의견을 따라 읽다 보면 제목처럼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 속으로는 불가능한 꿈을 품자”라는 누군가의 명언이 떠오른다.


『리얼리스트를 위한 유토피아 플랜』은 25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어 국제적으로 일어나는 기본소득 운동에 더욱 힘을 보탰다. <워싱턴 포스트> <가디언> 등에서 이 책을 특집 기사로 다루었고, 뤼트허르 브레흐만은 TED 강연에 출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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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원한다


『리얼리스트를 위한 유토피아 플랜』전에 세 권의 책을 냈다. 전작 반응은 어땠나.

 

기존 책은 모두 네덜란드 어로 나왔고, 네덜란드 독자들에게 더 익숙한 주제를 다뤘다. 번역한 책을 아마존에 올리고 어떻게 되나 싶었는데 번역 제안이 많이 들어왔다.


이번 책은 많은 나라에 소개되었다. 책을 집필하면서 이 정도로 알려질 거라 예상했나?


물론 놀라운 일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전혀 놀랍지 않기도 한다. 당연히 이 책을 쓸 때까지만 해도 이렇게 반향을 일으킬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사람들이 이 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올해 2월부터 호주, 노르웨이, 한국, 미국 등지를 방문하면서 모두가 왜 부국도 빈곤 문제에 시달리는지, 왜 사람들이 아직도 의미 없는 일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했다. 많은 사람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갈망하고 있다는 사실이 명확해졌고, 모두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가고 싶어 한다.


물질적인 면만 본다면 유토피아가 도래했지만, 사람들에게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날 이유’는 없어졌다고 표현했다. 과거에 비해 풍요로워진 지금 세대 사람은 성장하려는 욕구가 없다고 보는 편인가?


풍요의 땅에 온 것을 환영한다.


멋진 삶을 누리고, 거의 모든 사람이 부유하고 안전하고 건강하게 생활하는 무릉도원에 발을 디딘 것을 환영한다. 이곳에서 유일하게 찾아볼 수 없는 것은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날 이유이다.
- 23쪽


나를 포함한 지금 젊은 세대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난 이후의 세대인데, 베를린 장벽은 자본주의가 이기고 공산주의가 무너졌다는 의미기도 하다. 이후 유토피아적인 생각을 가지면 안 된다는 분위기가 있었다. 우리는 경제 성장과 다음 아이폰 시리즈가 어떻게 생겼을지만 생각하면 됐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와 트럼프 당선 등으로 이제는 사람들이 경각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더는 현 상태에 머무를 수 없고 유토피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나타난 것 같다.


유토피아를 구현하려는 조건을 크게 세 가지로 잡은 것 같다. 기본 소득, 국경 없는 세상, 주당 15시간 노동 등이다.


유토피아에 관한 생각은 항상 지금 무엇이 잘못되었는가에 따라 출발한다. 아까 말했듯 부국에서 아직도 수백만 명이 빈곤에 시달리는 문제가 있다. 이러한 문제에서 기본소득에 대한 생각이 출발했고, 아직도 사람들이 많은 일에서 가치 있다고 느끼는 데서 주당 15시간 근무가 나왔다. 특히 한국의 노동자들이 긴 노동시간으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알고 있다.


여러 가지 대안이나 주장이 있을 텐데, 이 세 가지를 중점적으로 주장한 이유는?


물론 유토피아를 전망하기 위한 다른 제안은 많다. 예를 들어 지금의 민주주의를 새롭게 발전시켜 참여민주주의로 변모해야 한다는 파격적인 아이디어도 가지고 있다. 용기를 내고 상상력을 발휘해서 예전에는 비현실적이라고 깎아내리던 주장을 극복하고 과거에서 벗어나는 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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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은 게으름이 아닌 현금의 문제


기본 소득이라는 개념은 예전부터 있었고 요새 들어 활발하게 다시 일어나는 추세다. 특히 기본 소득에 주목한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가 가진 큰 문제들에 해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빈곤은 인격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돈이 부족해서 생겨난다. 이러한 빈곤의 문제를 가장 문명화된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이 바로 기본소득이다. 급진적인 생각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어떤 면에서는 아주 실용적인 생각이기도 하다. 당장 내일부터라도 실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캐나다나 핀란드, 실리콘밸리 등지에서 실험하고 있다.


기본소득이 반대에 부딪히는 이유는 실질적인 재정의 문제가 아니라 인식의 문제라고 본다. 책에서 말했듯 일을 하지 않으면 돈을 줄 수 없다, 빈곤한 사람은 노동으로 빈곤을 벗어나야 한다는 인식 때문이라고 보는데, 그 인식을 타파할 만한 아이디어가 있나?


좋은 질문이다. 40년 전만 해도 미국의 리처드 닉슨이 기본소득을 도입할 뻔했다. 기본 소득을 실현하는 장애물은 물리적인 기술이나 금전이 부족해서가 아니고, 이데올로기적인 문제가 맞다. 이러한 시점에서는 ‘일이 무엇인가’에 대한 재정의 작업이 필요하다. 주로 사무실에 앉아 무의미한 서류 작업을 하며 페이스북을 들여다보는 유급 직업이 얼마나 많은가? 반면 자원봉사나 가사, 육아, 이런 무급 일은 가치를 생산하고 어떻게 보면 진정한 부를 창출하는 일이다. 생각의 전환으로 모든 것이 이루어질 수 있다.


주당 15시간 근무를 주장했는데, 본인은 하루에 몇 시간 일하는지 궁금하다.


일을 어떻게 정의하냐에 따라 다르다. 주 15시간 일해야 한다는 주장은 우리가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할 시간을 늘려야 한다는 뜻이다. 어떤 사람들은 주 15시간 근무가 현실이 되더라도 그들이 하는 일을 사랑한다면 계속 자기가 하던 일을 할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면 주당 15시간 노동은 소파에 앉아 아무것도 하지 말자고 주장하는 게 아니다.


전통적인 회사나 직장에서는 왜 노동 시간을 못 줄이고 있을까?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개인의 노력만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서점에 가 보면 적게 일하고 행복해지라는 자기계발서는 많다. 하지만 쉽지 않다. 먼저 속한 집단의 법에 따라 달라진다. 어떤 나라에서는 시급 노동자를 고용하는 것보다 일부 사람들에게 월급을 주면서 일을 많이 시키는 게 더 이익이 될 때가 있다. 두 번째로 더 큰 이유로는 문화적 차이가 있다. 특히 한국이나 일본 같은 아시아에서는 일하는 척하면서 상사 눈치를 보는 관료주의 때문에 일하는 시간이 늘어난다. 물론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네덜란드나 어느 나라에서도 이런 일은 일어난다.


구체적인 방법을 제안한다면.


너무 오랫동안 일한다고 이야기하면 모든 사람이 고개를 끄덕인다. 모두 강력하게 동의하지만, 사람들은 항상 자기만 그렇게 느끼는 거라 생각한다. (웃음) 모든 사람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대화의 장을 늘려나가면서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로는 육아휴직 등의 정책적인 해결을 제안하고 싶다. 우리는 더 이상 가난하지 않은데 무의미한 일을 너무 많이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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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국은 이민자를 받아들여야 한다


국경이 세계 역사를 통틀어 최대 차별요인이라고도 주장했다.


60%의 소득이 태어난 나라에 따라 정해진다는 통계가 있다. 나는 네덜란드에서 태어나길 선택하지 않았다. 그건 그냥 운이다. 세계화 시대를 살면서 상품은 전세계를 돌아다니는데, 상품을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사람은 국경을 넘어가지 못한다. 만약 당신이 운이 나쁘게 빈국에서 태어났다면 더 나은 직업이 있어도 옮겨가지 못하는 셈이다.


전 세계적으로 이민을 막는 이유는 여러 가지라고 생각한다. 언어라든지, 문화적으로 어쩔 수 없이 남는 사람들은 국경을 개방했을 때 빈국에 남게 되면서 더 악화된 상황을 맞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의견을 듣고 싶다.


많은 조사 결과를 봤을 때 부국으로 이민하면 가장 크게 혜택을 보는 사람들은 이민자들 자신이다. 그들의 임금은 8배에서 10배까지 오른다. 사람들은 게으르고 오염된 존재로 보기 쉬운데, 이민자들은 이민자는 창의적이고 기업가 정신으로 무장한 존재들이다. 그리고 이민자들이 이민 간 국가의 혜택을 덜 받는 편이기도 하다. 그들이 본국에 보내는 돈과 나중에 고국으로 돌아가는 비율을 봤을 때 고국에 남아있는 사람도 혜택을 보게 된다. 원조 기구에서 돈을 받는 것보다 이민을 간 사람들이 보내는 돈이 3배 정도다. 이민한 나라, 본국, 이민자와 그 가족 모두가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국경을 열라는 말은 부국이 이민자들에게 더 관용적이어야 한다는 뜻인가?


물론이다. 그게 가장 중요하다. 국경 개방은 주 15시간 노동과 기본 소득보다 훨씬 급진적인 주장이다. 하루아침에 일어날 수는 없고 단계적으로 일어나야 한다. 하지만 지금 사회의 부정의와 불평등을 봤을 때 가장 중요한 계획이기도 하다.


네덜란드가 이민자를 보는 분위기는 어떤가?


90년대에는 관용이 넘쳐나는 사회였다. 그런데 지난 1, 2년간 사회가 많이 변하면서 이민자에 대해 두려움이 커졌다. 사실 이러한 공포는 우파 정치인이 부추긴 면도 있다. 국민들 입장에서는 현상을 완전히 바꿀 대안이 없다면 우파가 내놓는 포퓰리즘 정책에 동조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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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을 묻기보다 대화의 장을


이제까지의 상황을 만들어 낸 것에 대한 책임이 부자 계급에게 있다고 보는 편인가?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에 손가락을 겨누고 싶지 않다. 물론 정치인을 비난하기는 쉽다. 하지만 중요한 건 같이 협력해서 우리 모두 함께 어떻게 잘 풀지 논의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 그런 측면으로 보면 언론인이나 학자, 작가 할 것 없이 다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책임이 있다. 학계에서는 미시적인 분야로 파고들기만 하면서 결과를 내놓고, 저널리스트도 과장된 사실만을 보도한다. 권력이 있는 중, 노년의 사람들은 비관적인 관점을 내놓을 뿐이다. 이 사람들을 모두 비난한다면 다 할 수야 있겠지만, 어떻게 보면 누구도 비난할 수 없다.


좌파에 대해서도 전문 용어를 구사하면서 단순한 문제를 복잡하게 만든다고 비판했다. 좌파 지식인도 책임이 있을까?


일반적으로 좌파는 대립하는 반대쪽만 알고 있어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고정 관념, 혐오, 미디어, 인종 차별, 경제 성장 등 모든 것에 반대한다. 최근에는 한 뉴욕의 지식인이 ‘모든 것에 반대한다’는 제목으로 책을 쓰기도 했다. (웃음) 무엇에 반대하는지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궁극적으로 무엇을 원하느냐가 중요하다. 마틴 루터 킹이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고 했지 ‘나에게는 악몽이 있습니다’라고 말하진 않았다. 모든 좌파를 일반화시키려는 건 아니지만, 비전이 없이 반대만 하려는 점은 문제라고 생각한다.


실제 정치인이나 은행가 등 책을 읽어야 할 사람이 읽지 않고 노동자 계급만 이 책을 읽을까 걱정된다.


사실 2주 뒤에 런던의 큰 은행에서 강의할 예정이다. 은행가, 우파, 비즈니스 리더들도 이대로는 안 된다는 점에는 동의하는 것 같다. ‘무의미한 일’ 장을 쓰고 나서 IT업체나 은행, 로펌에 근무하는 사람들이 나에게 이메일을 보내며 자기가 많은 돈을 벌고 있지만 사실 가치 있는 일, 세상에 기여하는 일은 하지 않고 있다고 고백하듯 말했다. 돈과 권력이 있는 사람조차도 이 아이디어에 동감한다. 좌우할 것 없이 모든 사람을 통합하는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물론 이런 아이디어를 불편해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역사를 통틀어 비추어 봤을 때 이러한 불편함도 싸워 이겨내야 할 것들이다.


GDP 나 GNP 등 성장을 재는 지표에 회의를 품고 있다고 했다. 이에 문제를 제기하고 나온 ‘지구 행복 지수’나 ‘인간 계발 지수’ 등도 긍정적으로 보진 않았는데, 어떤 방식으로 우리가 지금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을까?


GDP만큼 멍청한 수치는 없다. GDP가 올라가면 모든 게 나빠진다. 가장 높은 임금을 받는 변호사는 실제 GDP에 기여하는 바가 없다. 나는 성장을 한 숫자로 표현하는 것에 회의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포괄하는 단 하나의 숫자보다 여러 가지의 지표가 있는 대시 보드를 활용해 활발한 정치토론을 하고 어떤 숫자를 포함할지 같이 이야기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시다시피 많은 통계와 수치에는 항상 정치적인 가정과 판단이 들어간다. 숫자 이면에 무엇이 있는지 보는 게 숫자 자체보다 중요하다.


언론인으로서 수치를 어떻게 다뤘으면 하는 방향이 있나?


어떤 수치를 쓰든 자신의 가정을 투명하게 독자들에게 밝히는 게 중요하다. GDP만 하더라도 신문을 보면 GDP가 올라갔다든지 떨어졌다는 것만 이야기하지 그 성장 이면에 왜 이 수치를 쓰고 있는지는 설명하지 않는다.


구체적인 자료를 쓰면서 혹시나 틀린 자료가 아닐지, 자료를 적절치 못하게 쓰고 있는지 우려가 들기도 할 것 같다. 책을 쓸 때 의견에 다른 자료를 찾았거나 했을 때는 어떻게 하나?


먼저 자료를 고를 때 변호사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기 고객을 변호하는 것처럼 내 의견을 변호하기 위한 자료를 많이 준비한다. 내 의견에 반하는 기사를 쓴 동료 언론인에게 자문을 구하기도 한다. 내 의견에 회의적인 시각을 보이는 동료나 독자가 오히려 내 의견을 증진시키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무엇보다 지적으로 통일된 의견을 내놓겠다는 마음과 세상을 바꾸겠다는 열정 사이에서 균형을 잘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버트런드 러셀도 “바보와 현자의 차이점은 바보는 자기 확신이 가득하고 현자는 의심이 많다는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듯이, 자기 의견이 항상 나쁘다거나 미쳤다고 할 필요는 없지만, 자기 의견을 의심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옆에서 구경만 하는 똑똑한 사람도 되지 않아야 한다.


기자로 활동하는 <코레스폰던트>는 광고 없이 유료 회원만으로 운영한다고 들었다.


광고를 붙이는 순간 광고주에게 독자를 파는 거다. 우리는 훌륭한 기사를 독자들에게 팔고 싶었지 독자를 팔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기사를 사는 사람들을 고객이라고 부르지 않고 멤버라고 부른다. 책을 발간하기 전에도 몇 개 에세이를 미리 올렸는데 독자들이 많은 피드백을 주면서 책의 결과물이 더 좋아졌다. 저널리즘을 하는 훌륭한 새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오만한 주류 언론인들은 ‘나는 모든 걸 알고 있어, 내가 독자에게 설명하겠어’ 라며 기사를 쓰지만 독자들이 언론인보다 더 많이 알고 있을 수도 있다. 교육에 대해 기사를 쓴다면 수천 명의 교사가 기자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 그들의 지식을 활용하고 배울 수 있다. 그게 <코레스폰던트>에서 하고자 하는 ‘일’이다.


‘새롭게 떠오르는 유럽의 젊은 사상가’라는 표현이 있다. 나이가 급진적인 생각을 하는 데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나?


(웃음) 그럴지도. 어떤 사람은 매우 젊지만, 상식적으로 매우 완고하고 지루할 수도 있다. 반대 사례도 있고. 나이와 사상은 비례하지 않는 것 같다. 젊다는 게 어떤 가치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중요한 건 비현실적인 생각을 가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다.


마지막으로 한국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변화가 필요하다면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하는 것도 감수해야 한다. 내 책을 읽거나 기사를 보는 사람들이라면 사람들과 대립하는 상황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물론 쉽지 않다. 사람들이 연대해서 함께 일어나는 게 필요하다. 가만히 앉아 있다면 편하겠지만 매력적인 삶은 아닐 것이다.

 

 

 

 


 


 

 

리얼리스트를 위한 유토피아 플랜뤼트허르 브레흐만 저/안기순 역 | 김영사
남성의 육아휴직과 보육을 뒷받침하는 방향으로 주당 근로시간을 단계적으로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생동감 넘치는 일화들과 성공 스토리를 통해 철저하게 검증해낸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윤나 “말이라는 주제가 나를 뜨끔하게 만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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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이라는 말에는 ‘음식이나 물건 따위를 담는 기구를 통틀어 이르는 말’ 외에 ‘어떤 일을 해 나갈 만한 능력이나 도량 또는 그런 능력이나 도량을 가진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는 의미가 있다. 그렇다면 ‘말그릇’이라는 말도 가능해진다. 말을 해 나갈 만한 도량을 가진 사람, 정도가 될까. 이 말은 또한 말의 도량이 부족할 수 있다는 의미도 된다. 누구나 말을 한다. 하지만 누구나 말그릇이 크진 않다. 감정에 속아 지나치게 화를 내고, 상대와 자신을 상처 주며, 자신의 말을 쏟아내는 작은 말그릇의 소유자들을 떠올려본다. 


『말그릇』의 저자 김윤나는 말그릇이 큰 사람은 “말 이전에 사람”을 볼 줄 안다고 설명한다. 상대에 대한 관심, 경청의 자세, 꼭 필요한 말을 하는 용기가 말그릇이 큰 사람에게는 있다는 것이다. “기술 이전에 관심”이라는 말에 여러 번 힘을 준 김윤나는 특히 두 가지를 강조한다. “정적인 시간을 만들어서 감정을 알아채고, 이름 붙이고, 이름에 맞게 표현”하기(‘잠시 멈춤 질문’)와 사람들에게는 같은 사건을 두고도 서로 다른 반응을 보이는 각자의 ‘공식’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무엇보다, “말에 대한 이해는 사람에 대한 이해로부터 출발해야 하고요. 사람에 대한 이해는 나로부터 출발해야 해요. 나부터 잘 챙기셔야 해요. 저는 강연 마무리 할 때도 늘 “밥 든든히 드시고, 잠 충분히 주무시고, 대화 잘 하세요.”라고 말해요. 정말 중요한 일이에요.”라는 것이 저자의 당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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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말 ‘그릇’인가


새삼 말이라는 게 굉장히 무거운 습관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책이에요. ‘한 마디에는 평생의 경험이 담겨있다’고도 하셨죠.


강의든 책이든 계속해서 말하게 되는 주제가 있잖아요. 인생의 프로젝트(웃음)가 있는데요. 저는 가까운 관계에 있는 사람들과 주고받는 말에 대한 굉장한 동기와 목표가 있어요. 한 사람의 강력한 동기나 목표는 대개 어린 시절과 깊은 관련이 있잖아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일곱 살 때 부모님이 이혼을 하셨는데요. 형제자매가 없었고, 그 과정을 혼자 지켜봐야 했어요. 그때부터 왜 우리는 서로를 지키지 못하는가에 대해 관심을 뒀던 것 같아요. 그때는 언어로 이렇게 정리하지 못했지만요.

 

부모님의 이혼 경험이 말이라는 질문에 큰 영향을 줬군요.


예를 들어 부모님이 싸우는데 “너 때문이야!”라고 해요. 하지만 본심은 그게 아니잖아요. 우리는 본심을 너무 말하지 못하는 거죠. 말을 순간의 감정으로 툭툭 뱉어내고, 평생 그 말을 후회하며 사는 경험을 해요. 그걸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보며 느꼈어요. 이후 심리학, 교육학을 공부하면서,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이론적으로는 많이 알지만 저 역시 정작 가까운 관계에서는 말이 배운 대로 안 됐어요. 입에 배인 대로만 되고요. 머릿속은 꽉 차있는데 왜 변하지 않을까, 고민을 참 많이 했죠. 그 과정에서 말이 그 사람 자체를 이해하지 않고는 변화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너무 많이 깨달았어요. 그렇다면 나의 무엇을 이해해야 내가 변할 수 있을까, 부모가 겪은 시행착오를 똑같이 겪고 싶지 않은데, 이런 생각을 많이 했고요. 그래서 제 첫 책 『나공부』도 나를 이해하는 법에 관련된 책이죠. 『말그릇』은 그 연장에 있고요. 이런 감정과 공식, 말 습관 등에 대한 이야기는 치열한 고민 안에서 나온 거예요.

 

말에 대한 고민은 사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것이잖아요.


강의나 코칭을 할 때 확인을 했어요. 많은 사람들이 툭 내뱉은 말 때문에 후회하고, 아파해요. 부모가 자식한테, 상사가 부하 직원한테, 부부 간에 그런 일이 일어나요. 그런 것들을 지켜보면서 나만 그런 것이 아니구나, 작동하는 방식은 다 비슷하구나, 하는 것들을 알게 됐어요. 결국 말이라는 것은 제 인생의 경험이자, 앞으로도 세상에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하게 될 이야기의 주제이기도 해요.

 

제목이 재미있어요. ‘말그릇’은 어떻게 만든 말인가요?


말 ‘기술’이 아니라 왜 말 ‘그릇’인가를 생각하면 좋을 것 같아요. 대화에는 기술이 필요하죠. 사람들이 말을 너무 못하거든요.(웃음) 원하는 것들을 표현할 줄 몰라요. 사람들이 만나면 저한테 기술을 알려달라고 해요. 경청하는 기술, 아이와 대화하는 기술 말이에요. 시간이 부족할 때는 기술만 알려드리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다고 바뀌지 않죠. 제가 만난 리더 중에 ‘까까리더십’을 갖고 있는 분이 계셨어요. ‘까라면 까’리더십이요. 그분에게 칭찬하는 기술을 가르치라는 미션을 받았는데요. 아무리 기술을 가르친다 한들 직원들에게 칭찬을 하지도 않고, 칭찬을 해도 직원이 ‘저 분이 변했구나’라고 봐주지 않는 거겠죠. 결국 기술 전에 나는 그 말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되는가를 생각해야 한다는 거고요. 그 은유로써 ‘말그릇’이라는 말을 제목으로 삼았어요. 

 

말그릇이 작은 사람들의 특징은 뭘까요? 특징을 설명해주시면 이해가 더 쉬울 것 같아요.


핵심은 말그릇이 작은 사람은 사람을 보지 못한다는 거예요. 말로만 다 채우려고 해요. 그럴수록 불안하니까 자꾸만 말을 하죠. 말이 쏟아져 나오고, 불필요한 말을 계속 하게 돼요. 남을 가르치고, 비난하죠. ‘나니까 너한테 이런 말 해주는 거야’(웃음) 같은 말을 해요. 말이 넘치죠. 이런 사람들은 내 말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상대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살피지 못해요. 사람의 말 중에는 말줄임표, 괄호 안의 말이 있거든요. 진짜 하고 싶은 말인데요. 말그릇이 작은 사람들은 사람을 볼 줄 모르기 때문에 괄호 안의 말을 찾으려고 하지 않아요.

 

반대로 말그릇이 큰 사람은요?


말그릇이 큰 사람은 말 이전에 사람을 볼 줄 알아요. ‘그렇게 말하는 이유가 있을 거야, 사정이 있겠지’ 하는 거예요. 상대에 대한 관심이 있기 때문에 말을 자르지 않아요. 거기에 내 말을 욱여넣지 않고 끝까지 들을 줄 알죠. 설령 내 뜻과 다르더라도 그건 상대의 맥락에서 있을 수 있는 이야기라고 여기고 호기심을 갖고요. 그러면 질문하게 되어 있어요. 듣고, 받아들일 줄 아는 거죠. 그렇게 채우는 연습을 많이 하다보면 필요한 순간에 정확하게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할 줄 알게 돼요. 말그릇이 작은 사람은 너무 많은 말을 꺼내기 때문에 진심과 본심을 상대가 헷갈려하거든요. 말만 번지르르 한 건 금방 들통이 나게 되어 있어요.

사실 대화를 조금 해보면 상대가 말만 번지르르하다는 건 금방 눈치 채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거의 본능적으로 말이에요.


우리에게 그런 직관이 있어요. 타고난 본능 같은 게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말그릇이 큰 사람들은 말을 아낄 줄 아는 동시에 필요할 때 말을 하는데요. 그러려면 용기가 필요하거든요. 내 마음을 정확하게 읽고, 필요한 말을 정확하게 할 수 있기 때문에 물러서지 않아요. 비겁하지 않죠. 도움이 필요하거나 조언을 구하고 싶고, 외롭고, 힘들 때 말그릇이 큰 사람을 찾아가면 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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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이 아니라 관심


저자 역시 말그릇이 큰 사람을 만나 치유되는 경험을 한 적이 있죠?


둘째를 낳은 지 6개월 됐는데요. 둘째를 낳는 인생 경험이 저도 처음이죠. 나이도 있고, 커리어도 있고, 여러 어려움이 있잖아요. 급한 마음에 주변에 도움을 구했어요. 둘째 낳아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고요. 이때 많은 사람들이 자기네 인생만큼 조언을 해주셨죠. 낳지 마, 고생이야, 하고 싶은 거 해, 라든지 경력이 다가 아니다, 키우게 되어 있다, 라든지 말이에요. 이 조언은 모두 진심이에요. 저를 다 걱정해주시는 마음이죠. 그런데 정말 마음이 흔들렸던 조언은 친한 선배 언니의 말이었어요. 언니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네가 둘째를 갖고 싶어 한 이유가 뭐야? 상황을 아는 것 같은데 포기하지 못하는 너의 마음이 궁금해.” 이 말을 들은 순간 그동안의 고민을 풀어놓게 되고, 언니와 제가 연결되는 걸 느꼈어요. 정말 해소가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이 사람이 정말 나의 인생에 관심이 있구나, 느낀 거죠.

 

결국 상대에 대한 진심 어린 관심이네요.


네, 상대에게 관심이 없으면 말을 내 인생으로 자꾸 채워요. 저는 비유하기를 무대 핀 조명으로 하거든요. “고민이 있어”라고 할 때 핀 조명이 그 사람에게 딱 떨어져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들어주는 척 하다가 핀 조명을 자기가 탁 꿰차는 거죠. 계속 스포트라이트를 자기만 받는 거예요. 그런 사람을 만나면 헤어질 때 왠지 마음이 씁쓸했던 경험 누구나 있잖아요.

 

젊은 사람들이 어른들과 얘기하기 싫다고 하는 가장 큰 이유가 그런 거잖아요.


정확해요. 조직 리더들을 많이 만났잖아요. 팀장, 임원 같은 분들인데요. 먼저 그 구성원들 인터뷰를 많이 해요. 꼭 얘기하는 게 “나 때는 말이야”라는 말 좀 안 했으면 좋겠다고 하죠.(웃음) 듣고는 있지만 속으로는 안 그렇다는 거예요. 하지만 그 어른들은 얼마나 진심이겠어요. 나 같은 시행착오 겪지 말라고 하는 말인데요. 그건 진짜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아요. 큰 도움이 되는 경우는 열에 하나 정도 될까요.

 

앞서 말그릇이 큰 사람은 상대에 관심을 갖고 질문을 한다고 하셨는데요. 필요한 질문을 제대로 던지는 것, 정말 중요한 일이지만 쉽지 않아요. 어떤 질문을 해야 할까요?
 
좋은 질문에는 깊이가 있다. 아주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풍성한 스토리를 끌어올린다. 좋은 질문은 예리하다. 상대방이 놓치고 있던 것을 정확하게 상기시킨다. 강력한 질문들은 간결하다. 불필요한 생각을 덧붙이지 않기 때문에 군더더기가 없고, 균형이 잡혀 있다.(중략) 가장 좋은 질문은 자신의 머릿속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상대방의 이야기 속에서 나온다.(271쪽)

 

질문 정말 중요하죠. 그런데 저는 워크샵에서 질문 강의를 한 후, 제발 돌아가서 질문 좀 하지 마시라고 해요.(웃음) 부작용이 너무 크거든요. 사람에 대한 관심은 쏙 빼고 기술만, 괜찮아 보이는 질문만 던지는 거예요. 그럼 잘 안 되죠. 특히 가까운 사람에게 하는 질문은 기술 이전에 이 두 가지를 기억하라고 늘 강조하거든요. 첫째, 유도질문 하지 말자. 답정너(웃음)죠. 질문해놓고 듣지 않으면 유도질문이거든요. 그러면 유도질문이라는 걸 알기 때문에 답하지 않아요. 둘째는 상대가 신날 수 있는 질문을 찾으면 돼요. 여기에는 기술이 아니라 관심이 필요하죠. 예를 들면 아이 키우는 전업주부에게 “아이 키우기 힘들지. 그래도 내 새끼 정말 잘 낳았다, 이럴 때는 언제야?”라고 물어보는 거죠. 얼마나 그 마음에 불이 지펴지겠어요.

 

직장 안에서는 어떻게 해볼 수 있나요?


팀장님들을 만나보면 키워놓으면 나간다는 말씀을 많이 해요. 육성할 필요 없다고요. 그럴 때 “여태까지 후배들 키우면서 그래도 이 맛에 사람을 키우지, 했던 순간은 언제예요?”라는 질문 하나면 완전히 달라져요. 말은 이렇게 하지만,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지만 그래도 내가 해야지, 이런 마음을 스스로 갖는 거예요. 그걸 반드시 “선배가 그러면 되겠어요?”라고 말할 필요가 없어요. 에너지가 솟을 수 있는 질문은 상대를 보면 다 알아요. 이 두 가지만 기억하고 해보시면 좋을 거예요. 그렇게 정말 질문이 사람을 힘나게 한다는 사실을 스스로 느낀 후에는 기술을 배워서 사용하시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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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단어를 찾아야


특히 ‘잠시 멈춤 질문’은 정말 도움이 많이 되는 기술이거든요. 현재 자신의 감정을 잠깐 멈춰 생각해보는 게 대화를 훨씬 좋게 할 수 있다는 건데요.


강연에서 지금의 감정을 표현해보라고 하면 많은 분들, 특히 남자 분들은 좋다, 나쁘다만 말해요.(웃음) 열 받는다, 짜증난다, 우울하다, 이게 전부거든요. 이것도 굉장히 중요한 감정이죠. 분노도 꼭 필요한 감정이고요. 우울도 그래요. 사람들에게 도움을 이끌어낼 수 있는 기능이 있는 감정이에요. 그런데 한국은 지금 분노 중독 아니면 우울 공화국이잖아요. 이 두 가지 감정만 느껴요. 이 감정은 매우 강렬해서 색깔로 치면 원색에 가깝거든요. 한편 많은 감정들은 파스텔색이에요. 누드 베이지 같이 미세한 감정이 있는데 이런 감정은 관찰하고 발견해야 하는 감정이에요. 생각하거나 음악을 듣거나 잔잔한 파도를 볼 때 스미는 게 있잖아요. 언어로 표현은 안 되지만 말이에요. 그런 순간의 감정을 잘 발견해서 언어를 붙여주는 게 정말 중요해요.

 

굳이 예를 들자면 지금 내가 우울한 건지, 서운한 건지, 외로운 건지 따져볼 일인 거잖아요. 비슷한 것 같지만 다른 감정들이고요.


그런데 우선 정적인 시간이 별로 없어요. 너무 바빠요. 그나마 정적인 시간이라면 화장실 갈 때 정도일까요? 그때도 휴대전화부터 찾으시죠. SNS 검색하고, 좋아요 누르고요. 이때 느끼는 감정은 파스텔톤일 수가 없어요. 질투처럼 강렬한 감정에만 계속 노출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정적인 시간을 만들어서 감정을 알아채고, 이름 붙이고, 이름에 맞게 표현하는 삼박자를 맞춰야 해요. 너무나 중요해요.

 

감정에 이름 붙이는 것도 연습이 필요할 것 같아요. 일상에서 어떻게 해보면 좋을까요?


재테크할 때 자산을 챙기는 것처럼 감정 단어에도 자산이 조금 있어야 해요. 불편한 감정이 올라왔을 때 이게 서운함인지 실망감인지 걱정인지 두려움인지 분노인지 찾아야죠. 단어가 일단 있어야 하고요. 또 불편한 감정은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잖아요. 어떤 사람은 심장이 막 뛰고요. 얼굴이 빨개지거나 손에 땀이 나기도 해요. 모두 불편하다는 신호죠. 그걸 알아차렸다면 잠깐 멈추고 빨리 내 안에서 감정 단어를 찾아야 해요. 그러면 폭발하지 않아요. 분노가 아니라 실망이구나, 하고 이름을 붙이는 순간 감정이 10점에서 3점에서 뚝 떨어져요. 그걸 느껴야 원하는 대화를 할 수 있어요. 그저 실망감인데 그걸 10점으로 표현해버리면 상대는 그 3점의 마음을 모르잖아요. 10점만 보고 그 사람을 판단하기 때문에 점점 더 대화가 어려워지는 거예요.

 

모두들 꼭 해보시면 좋겠어요. 효과도 즉각적이고 좋더라고요. 해보고 느꼈어요.(웃음)


직장에서 상사가 “이따위로 할 거면 때려 치워!”라고 하면 진짜 성질나잖아요. 그런데 이 연습이 잘 된 사람들은 ‘저 사람의 감정은 불안이구나, 진짜 나를 나가라고 하는 게 아니야’라는 걸 알아요. 그걸 알면 훨씬 덜 열 받고요.(웃음) 본래 자기 업무에 빨리 집중할 수 있어요. 그렇게 해서 누군가를 자꾸 이해하고 저 사람과 잘해보려고 하는 게 중요하다기보다 내가 잘 되면 자연스레 상대의 감정도 보이게 되어 있다는 의미예요.

 

도대체 왜 이렇게 감정 단어가 많지 않고, 특정한 감정에만 휘둘리는지 따져보면 사회적으로 감정 표현을 경시하는, 도외시하는 분위기가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가령 친구들한테 남자친구와 헤어졌다고 말을 해요. 그러면 실은 그 친구가 느꼈을 감정을 서로 나눠야하거든요. 친구가 느꼈을 두려움, 절망감을 먼저 나눠야 하는데 우리는 “야, 소개팅 날짜 잡아”라고 하죠. 감정을 나누지 않아요. 더구나 남성 문화에서는 감정을 표현하면 진다고 생각하고요. 그런 면에서 사회적으로 감정을 빨리 해결하려고 하고, 감정 드러내지 않는 걸 전략적인 우세라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던 것 같아요. 더 큰 문제는 가정 안에서부터 시작됐죠. 자녀가 느끼는 수많은 부정적인 감정이 있는데요. 부모는 아이가 감정을 표현하면 훈육을 해요. 저희 세대는 더 심했죠. 감정을 표현하도록 길러지지 않은 거예요. 감정의 보따리가 많았을 텐데 말이에요. 실은 보호자가 이 아이가 불안한 걸까, 걱정이 되는 걸까, 정말 화가 난 걸까, 잘 분리하도록 연습을 시켜줘야 해요. 이것이 그대로 사회로 이동한 거죠. 확장판일 거예요.

 

가정 안에서부터라도 좀 더 편안하게 감정을 말할 수 있으면 좋겠네요.


요즘 저희 아이가 간식을 많이 먹으려고 해요. 그래서 먹을 때를 정했거든요. 어느 날 먹고는 또 먹겠다는 거예요. 굉장히 소리를 지르면서 말이에요. 그러면 저도 갈등을 하죠. 성질대로 할까(웃음) 배운 대로 할까 하는데요. 제가 물었어요. “지금 ‘앵그리’가 10만큼이야? 이 정도로 화가 난 거야? 네 마음이 궁금해.”라고요. 가만히 생각하더니 “그 정도는 아니고요. 내가 아쉬워요.”하는 거죠. 그 다음부터는 “엄마, 아쉬워요.”라고 말을 하게 됐어요. 아이들은 조금만 애를 쓰면 되더라고요. 어릴 때부터 그 교육이 가능해지면 감정 표현이 자연스러워지고, 어른이 되어서도 화를 내는 게 아니라 아쉽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거예요. 또 다른 사람이 화를 낼 때 저 사람이 아쉬운 걸까, 화난 걸까가 똑같이 궁금해질 거예요. 그게 중요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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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안테나의 출발은 나 자신


13년 동안 기업 등을 대상으로 강의를 해오셨잖아요. 이때 변화를 가로막는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건 무엇이던가요?


감정을 모른다는 게 제일 큰 장애물이고요. 못지않게 큰 장애물은 ‘공식’이에요. 각자의 삶은 너무 다르고, 각자가 자신의 공식이 가장 자연스럽고 옳다고 생각해요. 자신의 공식을 의심하지 않죠. 이 두 가지가 가장 고치기 어려워요.

 

같은 사건을 두고도 사람들은 각자의 공식이 있어서 서로 다른 반응을 보인다는 거죠. 자신의 경험에서 내린 결론들이 있기 때문에 말이에요.


공식은 버리기가 어려워요. 심지어 내 공식을 수정하면 마치 내가 잘못 살아온 것처럼, 내 생각이 잘못된 것처럼 느끼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고집을 피우고,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하는 건데요. 동의와 공감-인정은 다른 거잖아요. 동의는 ‘네 말이 맞아’고, 인정은 ‘너는 그럴 수 있겠구나’잖아요. 이걸 구별하는 게 중요하고요. 무엇보다 직장 생활에서는 어느 한쪽의 공식이 버려져야 하잖아요. 협업이 중요하다는 공식A가 있고요. 속도가 중요하다는 공식B가 있다고 할 때, 프로젝트를 진행하려면 한쪽이 선택돼요. 그런데 이때도 공식을 인정하는 건 아주 중요해요. 사람과 공식을 분리해야죠. 우리가 A공식을 따를 수밖에 없지만 네 생각은 존중해, 네가 보기에는 이해 안 되는 면이 있겠지만 어떤 부분을 더 설명하면 이해에 도움이 될까, 이 자세는 완전히 다른 거예요.

 

무엇보다 직장인들에게 도움이 될 조언들이 많은데요. 저자가 생각한 이 책의 독자는 누구였나요?


아주 간단해요. 말 때문에 한 번 쯤 고민해보신 분이라면 누구나 읽어보셨으면 좋겠어요. 다 읽으란 얘기네요.(웃음) 그러니까 말에 많이 상처 받은 사람이요.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줬는지 걱정이 되는 사람들도 물론이고요. 말이라는 주제가 나를 뜨끔하게 만든다면 이 책을 읽어보시면 좋겠죠. 특히 제가 강조하고 싶은 건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예요. 조직의 사례도 많지만요. 우리 모두가 대인이 될 필요는 없거든요. 모든 사람을 다 포용하고 모든 장면에서 감정을 읽어주는 것, 저도 안 돼요. 하루는 아이를 혼내기도 하고, 똑같아요. 하지만 그냥 흘려보내면 안 되는 장면은 있다고 봐요. 부부싸움을 자주 하다가도 유난히 배우자의 어깨가 처진 날, 아이가 유난히 치대는 날, 흘려보내면 안 되죠. 이때는 나를 조금 추슬러서 말을 건넬 필요가 있어요. 수고롭더라도 그런 장면은 놓치지 않으면 좋겠어요.

 

앞서 이야기 나눴지만 그런 장면은 외면할 뿐이지 실은 용하게 다 알아챌 수 있잖아요.


맞아요, 게다가 요즘 느끼는 건 말 실력은 체력과 관련이 있다는 건데요.(웃음) 아이를 키우면서도 많이 느껴요. 넘길 때는 넘길 수도 있죠. 하지만 저는 이런 생각을 해요. 사람 사이의 관계에는 계좌 같은 게 있다고 봐요. 어떨 때는 잔고가 플러스일 때가 있고요. 마이너스일 때도 있죠. 그걸 잘 살펴서 아직 잔고가 넉넉하다 싶을 때는 그냥 넘어가는 것, 괜찮다고 봐요. 근데 잔고가 아슬아슬할 때 힘들어하면 입금을 해야죠.(웃음) 조금 힘들더라도 가끔은 나를 희생하는 사랑, 용기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내가 힘들 때는 그냥 넘어가도 괜찮다는 말이 위로가 되네요.


이 책을 잘못 읽으시면 남들만 채우시다가 내 그릇이 깨져버릴 수 있어요. 느끼셨겠지만 모든 안테나의 출발은 나 자신이거든요. 말에 대한 이해는 사람에 대한 이해로부터 출발해야 하고요. 사람에 대한 이해는 나로부터 출발해야 해요. 나부터 잘 챙기셔야 해요. 저는 강연 마무리 할 때도 늘 “밥 든든히 드시고, 잠 충분히 주무시고, 대화 잘 하세요.”라고 말해요. 정말 중요한 일이에요.


 


 

 

말 그릇김윤나 저 | 카시오페아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보고, ‘나는 과연 말의 책임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인가’ 성찰해보고, 관계에서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무엇을 더 고려해야 하는지 알아본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박지현 “폭식, 의지가 약해서 생기는 문제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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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푼다는 사람들이 있다. 다이어트를 하면서 일주일에 하루쯤은 마음껏 음식을 먹는다는 사람들도 있다. 이른바 ‘간헐적 폭식’인데, 생각보다 흔한 경우다. 하지만 자신이 폭식증을 앓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흔히 폭식증이라고 하면 고도비만을 떠올리는 까닭이다. 어쩌면 우리는 ‘식이장애 치료가 필요한 사람 = 그 증상이 심각한 소수의 사람들’이라고 인식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오해는 초기 치료 시기를 놓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실제로 식이장애를 앓는 사람들 중 대부분은 증상이 발생한 한참 후에야 병원을 찾는다. 치료자 입장에서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내 몸을 사랑하게 되는 날』의 두 저자, 김준기 정신과 전문의와 박지현 상담심리사도 예외가 아니다.

 

국내 최초로 식이장애 클리닉을 설립한 김준기 전문의는 20여 년간 꾸준히 식이장애를 치료하고 연구해왔다. 박지현 상담심리사는 가족체계적 관점과 정신분석적 관점으로 매년 1,000케이스가 넘는 식이장애 상담을 진행해 왔다. 두 사람은 ‘마음과 마음’ 클리닉에서 함께 환자들을 돌보면서 ‘어떻게 하면 치료의 문턱을 낮출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리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초기 단계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내 몸을 사랑하게 되는 날』을 공동 집필했다.

 

이 책은 ‘폭식증 자가 치료 워크북’으로써, 실제 내담자에게 적용하여 효과를 입증 받은 8주 과정 프로그램을 제안한다. 스스로 식이 태도를 점검해볼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고, 폭식의 유형과 원인을 설명하며, 단계별로 해법을 알려준다. 폭식을 유발하는 신체적 상태뿐만 아니라 심리적, 정서적 요인까지 함께 돌아본다. 식이장애 초기라면 약물 치료 없이도 증상의 호전을 기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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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이장애의 밑바닥에는 ‘수치심’이 있다


‘간헐적 폭식’을 하는 경우는 드물지 않은 것 같아요. 그래도 ‘내가 폭식증은 아니지’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을 텐데요. 폭식증을 앓는 경우가 생각보다 흔한가요?

 

주위에서 그런 질문을 많이 받아요. 엄청나게 마르거나 과체중인 분들이 병원을 찾아오지 않느냐고요. 그런데 꼭 그런 건 아니고요. 마일드한 경우부터 굉장히 심각한 경우까지, 섭식장애의 범주는 다양해요. 일반적으로는 식사를 불규칙하게 드시다가 시작하는데요. 특히 다이어트를 하다 보면 식사를 거르게 될 때가 있잖아요. 그러다 보면 폭식을 할 확률이 높아지죠. 그게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폭식, 과식의 증상인데요. 그렇게 안 좋은 습관이 진행되다 보면 위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시는 경우가 많아요.

 

책을 보면, 폭식증과 거식증이 서로 관련이 있는 것 같아요.


그렇죠, 연결이 되어 있죠. 폭식증이나 거식증이나 출발은 똑같거든요. 식이를 제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거예요. 그런데 개인의 성격적인 특성이라든지, 서로 다른 부분은 있죠. 거식증 분들은 완벽주의가 조금 더 심하다고 할까요. 절제력이 굉장히 뛰어나신 분들이에요. 그만큼 식욕을 잘 참으시는데, 그러다가 폭식증에 걸리는 경우도 있어요. 거식증은 두 종류로 나누는데요. 폭식을 동반한 거식증과 동반하지 않는 거식증이 있어요. 거식증으로 출발했다가 다시 폭식증으로 바뀌어서 체중이 급격히 증가하는 경우도 있고요.

 

반대의 경우는 어떤가요? 폭식증을 앓다가 거식증이 생기기도 하나요?


거식증까지 진행되지는 않지만, 거식과 폭식을 반복하죠. 진단에 있어서는 거식증과 폭식증이 구별되지만,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데요. 굳이 구분을 짓자면, 거식증 분들에 비해서 폭식증 분들은 더 충동조절이 안 된다고 할 수 있어요. 감정의 기복이 굉장히 큰 거죠. 반대로 거식증 분들은 감정을 안으로 다 삭이는 분들이고요. 사실 거식증은 참아서 병에 걸리는 거거든요. 폭식증은 바깥으로 내지르는 거죠. 그래서 폭식을 하기도 하고, 술을 마시거나, 자해를 하거나, 자살 시도를 하거나, 난잡한 성생활을 동반하는 경우도 있어요. 가족 분위기도 굉장히 달라요. 거식증은 겉으로 드러나는 가족의 문제는 거의 없는 편이에요. 그런데 들여다보면 서로 불편한 이야기들은 하지 않는 거죠. 암묵적으로 가족 안에서 금지되어 있는 거예요. 감정 표출도 잘 하지 않고, 좋은 것들만 이야기하는 거죠. 반면에 폭식증 가족은 감정 표출이 과잉이에요. 누가 봐도 혼란스럽고, 큰 소리가 많이 나고, 싸우고, 그런 분위기가 있는 편이에요.

 

증상이 어느 정도일 때 폭식증, 거식증 진단을 받게 되나요?


일상생활에 방해가 될 정도로 섭식문제가 침범했을 때 진단을 내려요. 다이어트를 예로 들면, 대부분 처음에는 건강하게 시작했다고 말씀하세요. 하루 세끼 다이어트 식단으로 먹고 운동을 했다고요. 그런데 살이 조금 빠지고 나면 욕심이 생기잖아요. 그러면 더 소량을 먹고 나중에는 기초대사량에도 못 미치는 칼로리를 섭취하게 되는데, 폭식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결국 대인관계에도 영향을 받죠. 사람들과 식사 약속을 해도 마음 놓고 음식을 즐길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러면서 약속을 취소하기도 하고요. 폭식을 한 날에는 우울감이 심해지거나 자책하고 비난하는 감정들이 생기면서 일상생활에 침범하는 정도가 강해지죠. 나중에는 외출하는 게 점점 어려워지고 대인관계 기피로 이어지기도 해요. 자신이 너무 살이 쪘다고 생각하는 거죠. 본인의 바디이미지가 부정적으로 생기는 거예요. 그렇게 일상생활이 거의 마비가 되면 저희가 섭식장애로 진단을 내릴 수 있어요.

 

폭식증이든 거식증이든, 식이장애 문제의 큰 원인 중 하나는 ‘낮은 자존감’인 것 같아요.


공통적으로 자신을 사랑하지 못해서 생기는 거라고 할 수 있죠.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니까 자꾸 보여지는 것에 집착을 하는 거예요. 보통 사춘기 때 발병하는데요. 왜냐하면, 안 그래도 자신이 무가치한 존재라고 생각하는 상황에서 보여지는 것조차 뚱뚱하고 예쁘지 않다고 느끼면 너무 부끄러운 거예요. 저희가 ‘Toxic shame(유독성 수치심)’이라고 하는 감정인데요. 식이장애 분들의 감정 가장 밑바닥에 깔려 있는 게 깊은 수치심이에요. 자신의 존재 자체가 부끄러운 거죠. 사람들이 처음 나를 봤을 때 보이는 게 몸인데, 남들이 볼 때 마른 몸이 좋다고 생각하고 계속 마르려고 하는 거죠. 거기서부터 출발하는 거예요.

 

가족, 특히 양육자의 영향이 클 것 같은데요. 가정 내의 불화, 양육 과정에서의 상처를 경험한 경우가 있나요?


굉장히 심각한 트라우마가 많은 분들도 있고요. 그렇지 않더라도 양육 과정에서 어머니로부터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받지 못했던 경우가 많아요. 어머니가 정서적으로 불안한 상태였을 수도 있고, 특별히 집에 문제나 불화가 없었더라도 어머니가 정서적 반응을 잘 못해줬을 수도 있죠. 어렸을 때부터 성취 중심적, 목표 지향적으로 압박을 받거나 비난을 받은 경우도 있을 수 있어요. 당시 어머니가 우울감이 있어서 아이와 거리를 두었거나, 아이와 스킨십하고 같이 노는 시간이 부족했을 때도 그럴 수 있고요. 사실, 자신이 무가치하다는 생각은 스스로 드는 게 아니잖아요. 아이들은 0세부터 3세까지 사랑을 많이 받아야 ‘내가 사랑 받는 존재구나’라고 아는 거죠. 사랑을 받지 못하면 ‘나는 쓸모 없는 존재구나, 엄마를 힘들게만 하는 존재구나, 가족 안에서 나는 안 좋은 아이구나’ 하는 부정적인 인식이 생기죠.

 

먹는 걸로 스트레스를 풀다가 식이장애가 생기는 경우도 있나요? 외모에 대한 강박은 전혀 없는데도 불구하고요.


거의 없기는 한데요. 간혹 열에 한 명 정도 그런 경우가 있어요. 다이어트에 관심도 없고 마른 몸을 가지려고 하지도 않는데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식이장애가 생긴 환자도 있었거든요. 제가 기억하는 사례는, 100kg의 여성분이셨는데요. 어머니가 자꾸 체중에 대해서 부정적인 피드백을 하시는 분이었어요. 본인은 지금의 몸에 만족을 하고, 오히려 말랐을 때보다 현재가 더 만족스럽다고 하는데요. 어머니가 자꾸 (살을 빼라고) 스트레스를 주니까 먹는 걸로 푸는 거죠. 그런 경우도 있기는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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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욕을 허용하세요


책에서 제안하시길, 8주 동안 ‘자기관찰일지’를 적어보라고 하셨어요. 이 과정에서 많은 분들이 어려워하거나 실수하는 부분이 있다면 어떤 건가요?


식단만 적으시는 분들이 많아요. ‘식단일지’가 아니라 ‘자기관찰일지’인 만큼, 식사를 어떻게 했는지만 보라는 의미는 아니거든요. 그때의 생각과 감정을 관찰해 보라는 거예요. 그런데 많은 분들이 ‘자신이 식사를 어떻게 잘 조절을 했는가’에만 초점을 맞춰서, 조절을 잘하면 기분이 좋고 조절을 못하면 자책하는 내용만 써오세요. 그러면 ‘식사할 때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들여다보시라’고 말씀드리죠. 그런데 그걸 굉장히 어려워하세요. 사실은 그게 잘 안 돼서 폭식이 생긴 거거든요. 힘든 생각이나 어려운 감정을 느끼지 않으려고 폭식을 하는 거예요. 지금까지는 생각과 감정에 대한 질문을 해준 사람도 없었고, 그걸 관찰해본 적도 없었던 건데요. 그러다 보니까 자신의 감정 상태나 생각을 적는 걸 어려워하세요.

 

‘외모 강박을 부추기는 사회 분위기’도 식이장애가 생기는 원인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날씬한 몸이 아름답다는 생각이 보편적인데, 그런 말들에 흔들리지 말라고 조언해 주기도 하시나요?


행동주의적으로 방법을 제시하는 건 조금 어렵죠. 어쩔 수 없지 자극이 되니까요. 그런 말을 들으면 나도 살을 빼야 될 것 같고, 아무래도 위축되잖아요. 제일 핵심은 자기 중심을 잃지 않는 거예요. 자꾸만 보여지는 것에서 자신의 가치를 찾으려고 하면 쉽게 흔들리죠. 마른 몸뿐만 아니라 성적, 일에서의 능력 등 끊임없이 비교를 하잖아요. 그걸 통해서 자신의 가치나 정체성을 확인하려고 하면 넘어질 수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자신의 고유 가치를 확신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이끌죠.

 

결국 근본적인 치료는 자존감을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거군요.


어려운 일이기는 한데요. 흔들릴 수는 있지만 넘어지지 않게 해야 하잖아요. 남과 비교해서 자신의 존재 가치가 높아지는 게 아닌데, 그걸 확신할 수 있는 마음을 갖추는 게 상담의 목표이기도 해요.

 

이 책은 ‘자가 치료 워크북’이잖아요. 한편으로는 혼자 힘으로 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합니다. 오랫동안 전문가의 상담을 꾸준히 받지 않아도 될까요?


가능한 분도 있어요. 책을 보시면 자신을 들여다볼 수 있는 질문들이 수록돼 있는데요. 그 질문들에 답하다 보면 자신을 볼 수밖에 없어요. 그러면서 자신이 어떤 부분에서 힘들었는지, 왜 자꾸 다이어트에 집착하려고 하는지, 그런 이유만 발견하셔도 인사이트가 생길 거예요. 스스로를 애써 통제하려고 하지 않고, 조금 과식했더라도 ‘괜찮아’ 하고 자신을 다독여줄 수 있다면 충분히 자가 치료가 가능하거든요. 만약 자신의 문제를 알았는데도 해결이 안 된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죠.

 

폭식을 세 가지로 분류하셨어요. ‘배고픔으로 인한 폭식’, ‘감정(마음고픔)으로 인한 폭식’, ‘스트레스성 폭식’인데요. ‘마음고픔’과 ‘스트레스’로 인한 폭식은 비슷한 부분이 많을 것 같아요. 치료 방법의 차이가 있나요?


스트레스성 폭식은 급성 스트레스가 있는 상황에서 먹는 걸로 안식처를 삼는 경우예요. 상사가 자신을 괴롭힌다든지, 친구가 자신을 소외시켰다든지, 누가 봐도 눈에 보이는 급성 스트레스가 있을 때죠. 일단 먹으면 기분이 좋잖아요. 실제로 음식을 많이 먹고 단 음식을 먹으면, 기분을 좋게 해주는 세로토닌 호르몬의 전구물질이 나와요. 그러니까 스트레스를 받으면 무조건 먹는 걸로 가는 건데요.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방법이 굉장히 다양하거든요. 책에서도 음식 말고 다른 것으로 관심을 분산시킬 수 있는 방법들을 소개하고 있어요. 스트레스성 폭식은 그런 대처기술을 알려줌으로써 ‘당신을 즐겁게 해줄 수 있고 위로를 줄 수 있는 음식이 아닌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고 행동주의 기법으로 많이 접근하고요. 마음고픔으로 인한 폭식의 밑에는 어렸을 때부터 생긴 깊고 핵심적인 감정들이 있어요. 그에 대한 정서적인 조절 치료나 트라우마 치료를 하게 되죠. 증상이 조금 나아지면 스트레스성 폭식에서 다뤘던 대처기술을 활용할 수 있게 하고요.

 

스트레스를 푸는 다양한 방법들에 대해서 이야기하셨는데요. 많은 환자들이 선택하고 효과를 봤던 건 어떤 것들인가요?


개인의 선호도가 반영될 수밖에 없는 거라, 환자 개인의 특성에 따라 달라요. 음악을 듣거나 명상하는 방법을 추천해 드리기도 하고요. 손으로 하는 일을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는 손을 이용할 수 있는 작업을 알려드리죠. 개인의 취향이나 특성에 맞게 같이 찾아가요. 상담을 통해서 놓치고 있었던 부분이나 잊고 있었던 부분들을 찾기도 하죠. 어렸을 때 미술을 좋아했다면 그런 학원을 등록하게 하는 거예요. 외향적인 성격의 분들이나 외로움을 많이 타시는 분들은 혼자 하는 활동이 쉽지 않을 수 있어요. 그럴 때는 그룹으로 같이 배울 수 있는 활동이라든지 다른 사람과 같이 할 수 있는 운동을 할 수 있게 하죠.

 

“폭식증 치료의 원칙은 ‘식욕을 허용’하는 것”이라고 하시면서 네 가지 식사원칙을 제시하셨는데요. 첫 번째가 ‘기계적으로 먹기’예요. 어떤 사람들은 ‘배고프지 않을 때 음식을 먹으면 필요 이상의 칼로리를 섭취하게 된다’고 주장하는데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닌데요. 개인마다 식이중추가 달라요. 식이중추는 배고픔과 배부름을 조절하는데요. 하루에 한 끼만 먹어도 괜찮은 분들이 있어요. 그런데 정말 특수한 케이스죠. 보편적으로 모두가 한 끼만 먹어도 괜찮은 건 아니거든요. 일반적으로 봤을 때는 하루 세 끼를 규칙적으로 먹어줘야 과식을 하지 않고 폭식을 하지 않는 거예요. 그리고 다이어트 하시는 분들을 보면 굉장히 잘 참거든요. 일단 다이어트를 했다는 건 식욕을 굉장히 잘 누른다는 거예요. 특히 많이들 하시는 게 탄수화물은 안 먹는 건데, 탄수화물만 허용 안 한다고 생각하시지만 놓치시는 부분이 있어요. 만약 식사 약속이 있는데 메뉴에 탄수화물이 들어가 있다면 약속을 취소하는 거예요. 사회적인 관계도 다 누르는 거죠. 기본적으로 다이어트를 하시는 분들은 굉장히 많은 것들을 누르고 포기하고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그걸 조금 허용해 주시라는 거예요.

 

식욕을 참다 보면 폭식을 하게 되는 거죠?


용수철이 눌려 있다가 한꺼번에 폭발하는 게 폭식이거든요. 그러면 시상하부 안에 있는 식이중추 자체가 불안정해져요. 우리 몸에는 소위 말하는 배꼽시계라는 게 있어서, 시간을 보지 않아도 점심이면 배고픔을 느끼는데, 그렇게 하면 배꼽시계가 망가지는 거예요.

 

항상 음식을 곁에 두고 조금씩 자주 먹으면 어떨까요? 식욕을 억누르지 않아도 되잖아요.


시간을 맞춰서 먹는 게 제일 좋아요. 뇌를 안정시키는 방법이거든요. 배꼽시계를 회복하는 방법은 기계적으로 먹을 걸 넣어주는 거예요. 뇌가 인식할 수 있게 해주는 거죠. 배고픔을 느끼지 않더라도 아침 점심 저녁을 챙겨 먹는 거예요. 제가 상담할 때 자주 하는 말이 있어요. 자신의 배꼽시계를 믿지 말라는 거예요. 이미 배고픔을 느끼지 못하게 되어버렸으니까요. 규칙적으로 시간을 맞춰서 밥을 먹되, 그게 습관이 되지 않았다면, 처음에는 소화시킬 수 있는 만큼만 먹는 거예요. 몸이 받아들일 수 있는, 허용할 수 있는 범주부터 시작하는 거죠. 점차 식사량을 늘려나가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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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식, 의지가 약해서 생기는 문제가 아닙니다


음식을 섭취하는 방법과 관련해서 ‘마인드풀 이팅’을 권유하셨어요. 먹는 대상과 행위를 음미하라는 건데요. 이 방법이 폭식증 치료에 도움이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음식을 천천히 섭취하는 효과가 있는 건가요?


상담할 때 물어보거든요. 폭식을 할 때 어떤 맛, 감정, 생각이었냐고요. 보통은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고, 아무 맛도 느낄 수 없었고, 그냥 정신 없이 먹었다’고 하세요. 그렇다는 건 자기의 모든 것들을 다 느끼지 않는 거예요. 폭식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그 순간만큼은 힘든 생각이나 스트레스를 다 잊게 해주는 거거든요. 그때는 아예 자기가 없는 거예요. 음식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이게 무슨 맛인지, 무슨 색깔인지 모르고 그냥 정신 없이 먹게 되거든요. 마인드풀 이팅이라는 건 천천히 음미하면서 먹되 자신을 보라는 거예요. 어떻게 먹고 있는지, 어떤 맛인지 보라는 거죠. 처음부터 감정을 보라고 하면 힘들어 하시거든요. 지금 내 몸 상태도 잘 모르겠는데 갑자기 감정을 물어보면 어렵잖아요. 마인드풀 이팅의 첫 단계는 신체 감각을 보는 거예요. 그 다음은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거고요. 결국에는 마인드풀 이팅을 하면서 자신을 보도록 훈련을 시키는 거예요.

 

다이어트에는 요요 현상이 뒤따르잖아요. 폭식증도 한 번에 해결되는 게 아니라면서요? 몇 번의 굴곡을 반복하는 과정을 거친다고 하셨는데, 이 시기에 많은 분들이 포기하실 것 같아요.


포기하시는 분들이 많죠. 그래서 잠적하시는 분도 있고요. 자책을 심하게 하시는 분들은 ‘내가 또 조절을 못했구나’ 하면서 자기 탓을 하시는 거죠. 그래서 제가 상담 초반에 말씀을 드려요. 회복의 속도라는 게 일직선으로 좋아지는 게 아니라 상태가 아니라 좋아졌다 나빠졌다 반복을 한다고요. 그게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설명 드리는데요. 그럴 수밖에 없어요. 폭식 자체가 나의 힘든 감정과 생각을 누르기 위해서 하는 거잖아요. 그리고 식사를 챙겨 먹다 보면 한편에서는 살이 찐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과연 이렇게 해도 살이 빠질까?’라는 불안도 있거든요. 그러다 보면 계속 자기 자신과 싸운단 말이에요. ‘이게 정말 맞는 걸까? 조금 덜 먹어야 될 것 같은데, 이렇게 했다가 살이 더 찌는 거 아니야?’ 이런 두려움도 있어요. 그리고 마음의 상처라는 게 상담 몇 번 받는다고 해서 갑자기 좋아지는 게 아니잖아요.

 

불안과 두려움을 또 다시 음식으로 달랠 수도 있겠네요.


그동안 제일 쉽게 선택했던 방법이 폭식이었기 때문에 뇌에도 이미 각인된 게 있고요. 사실 다른 방식을 선택하는 게 쉽지가 않아요. 습관을 바꾼다는 게 굉장히 어렵잖아요. 치료를 받다 보면 자신을 잘 다독이면서 가기도 하지만, 컨디션이 안 좋거나 스트레스 많이 받거나 감정 상태를 컨트롤하기 어려울 때는 무너지기 쉽죠. 이전까지는 그럴 때 쉽게 선택했던 방법이 폭식이었기 때문에, 한동안 폭식을 안 하다가도 다시 할 수 있어요. 자연스러운 코스거든요. 그럴 때 저는 횟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 말씀드려요. 당시에 내가 어떤 마음이었고 어떤 생각이었는지, 나를 알아가는 게 중요하다는 거죠. 나를 어떻게 다독이느냐가 중요한 거고요. 굴복을 반복하면서 좋아지는 거거든요.

 

식이장애 증상이 호전되면 환자가 자각하나요?


그렇죠.

 

그때 나타나는 징후들은 어떤 건가요?


감정이 가라앉고 자책하는 날이 있어도 음식으로 풀지 않아요. 그렇게 스스로 조절하는 자기 모습을 보면서 ‘내가 더 이상 힘들어도 폭식으로 가지 않는구나’라는 걸 알아가는 거죠. 그리고 폭식을 했다고 하더라도, 예전 같으면 심하게 자책을 하고 다음 날의 약속을 다 취소했다면, 이제는 예정된 스케줄도 다 소화하거나 자책하지 않고 ‘아니야, 어제는 그럴 수 있었어, 오늘 다시 잘하면 돼’ 하면서 스스로를 다독이는 거예요. 그런 걸 보면서 깜짝 놀라고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 힘이 생겼구나’라는 걸 알 수 있죠.

 

식이장애로 힘들어하는 분들에게 꼭 당부하고 싶은 게 있다면요?


폭식은 의지가 약해서, 음식 조절을 잘 못해서 생긴다고 많이들 오해하세요. 그리고 숨어서 폭식을 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까, 그 행위에 대해서 굉장히 부끄러워하시고 자책하시는데요. 그렇지 않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식사를 잘 챙겨 먹지 못하면 어쩔 수 없이 나오는 신체적인 폭식이 있을 수밖에 없거든요. 그리고 감정 상태가 너무 힘들다 보니까 다이어트 문제와 겹치면서 어쩔 수 없이 나오는 생리적인 반응이에요. 절대 의지의 문제가 아니거든요. 본인이 부끄러운 것도 아니고 숨어서 하면서 자책할 일도 아니에요. 조금만 도움을 받으시면 좋아지시는데, 자신의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남들하고 달리 숨어서 폭식하는 문제 있는 존재야’라고 스스로를 범죄자 취급을 해요. 낮에는 잘 지내는 것 같은데 밤에는 폭식을 하니까, 그게 자신의 이중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폭식의 원인에 대한 오해부터 바로잡아야겠네요.


이건 정말 의지가 약해서 생기는 문제도 아니고요. 제때 치료만 받으시면 나을 수 있는 거예요. 그런데 자꾸 의지의 문제이고 노력의 문제라고 생각하니까, 감추다가 증상이 커지는 거죠. 그리고 폭식은 자신을 비난한다고 해서 나을 수 있는 게 아니에요. 스스로를 격려하고 위로하는 힘이 커질수록 극복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는 게 치료의 열쇠예요. 이걸 다이어트 문제라고 생각하면 이상한 곳에서 방법을 찾게 돼요. 더 살을 빼야 될 것 같고, 더 운동을 열심히 해야 될 것 같고, 더 밥을 굶어야 될 것 같고, 더 다이어트 식단을 독하게 짜야 될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거죠. 거기에서는 절대 해법이 나오지 않아요.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에 치료의 열쇠가 있기 때문에 인식을 바꿔주셨으면 좋겠어요.

 

이 책을 가장 잘 활용하는 방법에 대해서 조언해 주세요.


자기관찰일지를 꾸준히 잘 활용하시면 될 것 같아요. 실제로 제가 상담을 하는 과정이기도 해요. 자기관찰일지를 쓰면서 자신이 무엇 때문에 폭식을 하는지 알 수 있는데요. 그러려면 일단은 식사를 잘 하셔야 돼요. 뇌를 안정시키는 게 먼저거든요. 그 다음에는 내가 지금 어떻게 먹고 있는지 식사 점검을 하시고요. 자신이 스트레스 때문에 폭식을 하는지, 밥을 잘 안 먹어서 폭식을 하는지, 마음고픔 때문인지 알아가야 돼요. 그러고 나서 깊이 있는 나를 만나러 가는 거예요. 어렸을 때부터 왜곡된 생각들, 나에 대한 왜곡된 감정들, 자주 드는 힘든 생각, 그런 걸 들여다보는 거죠. 8주 동안 자기관찰일지를 쓰면서 나를 만나러 가는 여행을 한다고 보시면 돼요. 깊이 있는 나의 상처까지 보게 되면, 나중에는 자책하고 비난했던 나한테 미안해지기 시작해요. ‘나 자신을 너무 혹독하게 학대했구나, 나를 연민의 눈으로 바라봐야겠다’ 이런 마음이 생기기 시작할 거예요.

 

독자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완벽한 여성이 되려고 노력하지 마세요. 사람은 완벽할 수가 없잖아요. 완벽함을 추구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전제인데, 스스로 자꾸 속는 거거든요. 다이어트를 열심히 하시는 분들은 모든 면에서 완벽해지려고 해요. 일이든 공부든 관계든 몸매든, 보여지는 게 너무 중요한 거예요. 그렇게 되면 자신을 학대할 수밖에 없고 자기 본연의 가치를 잃어버릴 수밖에 없어요. 완벽한 여성이 되려고 하지 말고 파워풀한 여성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가장 매력적인 건 나다움을 유지할 때인데, 다이어트에 몰입하다 보면 나다움을 놓치게 되거든요. 자기다움이 뭔지 아는 게 파워풀한 여성인데, 자꾸 퍼펙트한 여성이 되려고 하니까 모든 면에서 통제를 할 수밖에 없는 거예요. 성취를 많이 이룬 거 같은데 허무하고 기쁘지 않고 너무 힘든 거죠.


 

 

내 몸을 사랑하게 되는 날 박지현 저/김준기 공저 | 수오서재 |
하루에 한 챕터씩 총 8주 동안 잃어버린 식사 조절력을 회복하고 잦은 폭식으로 낮아진 자존감을 강화하는 법을 단계적으로 알려준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고명환 “‘be’와 ‘have’를 7:3정도로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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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만 원 가지고 서울에 올라와서 집을 네 채를 사고, 일 년에 10억 매출을 내는 식당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개그맨이자 뮤지컬 제작자, 식당 경영자이자 독서가인 고명환. 한 달 평균 20-30만 원의 책을 산다는 그는 어느 강연을 가든 이 첫 마디로 강연을 시작한다. 자본도, 인맥도 없던 자신이 연매출 10억 식당의 사장이 된 비법을 가르쳐주겠노라고 말하면 하나같이 눈을 번쩍 뜬다. 그러면 고명환은 7년 동안 1,000권의 책을 읽으며 깨달은 이야기를 전하기 시작한다. 


『책 읽고 매출의 신이 되다』에서 고명환은 성공의 비법은 오직 독서라고 말한다. 책에서 말하는 것을 사색을 통해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그대로 실천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종래에는, 성공이 과연 무엇인지 다시 생각할 수 있게 된다고 말한다. 돈으로부터의 자유, 독서가 고명환이 얻은 가장 큰 깨달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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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적이고 실패가 없는, 책 읽기


새벽에 일어나 독서를 하신다고요.

 

이제는 습관이 되어서요. 어제는 새벽 한 시 반까지 읽었는데요. 알람도 안 맞추고 잤는데 오늘 다섯 시에 깼죠. 요즘은 눈을 딱 뜨면 ‘책 읽어야지’ 하는 생각에 다시 잠이 안 들어요. 어차피 일어났으니 책을 읽는 거죠. 그러다 다시 졸리면 억지로 읽는 게 아니라 편하게 자기도 하고요. 오늘은 일어나서 한 시간 반 정도 읽는데 진짜 좋았어요.

 

주로 읽는 분야가 있으세요?


예전에는 좋아하는 것만 읽었는데 지금은 안 가리게 됐어요. 읽다보니까요. 경제경영서나 자기계발서 위주로 읽다가 철학서를 읽게 됐고요. 소설도 별로 안 읽었었는데요. 억지로라도 읽자 생각하다가 꽂혀서(웃음) 지금은 소설 읽는 비중이 훨씬 많아요. 한국소설 많이 읽고요. 예를 들면 『82년생 김지영』, 『영초언니』같은 책들 재미있게 읽었어요. 『언어의 온도』같은 베스트셀러도 다 읽었죠. 이번에 노벨문학상 수상한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도 최소한 한 권만이라도 읽어야지 해서 『남아 있는 나날』을 읽었는데요. 정말 재미있게 읽었어요.

 

목록이 줄줄이 나오네요.(웃음)


베스트셀러는 챙겨보려고 해요. 또 예전에는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작품들 읽다가 다 포기했거든요.(웃음) 그런데 『남아 있는 나날』은 정말 재미있었어요.

 

오늘 아침에 읽은 책은 뭔가요?


최진석 교수님의『탁월한 사유의 시선』을 읽고 있어요. 이 책 정말 잘 읽혀요. 진짜 추천하고 싶어요. 최진석 교수님의 글이 정말 좋아서 언젠가 교수님을 꼭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도 하고 있어요. 여기서 철학적 시선의 높이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가즈오 이시구로가 왜 노벨문학상을 받았는지 이해가 되는 거죠. 다른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사랑 이야기가 묘하게 남아서 궁금하잖아요. 그러니까 계속 보게 되고요. 그것이 이야기의 힘이라고 생각했어요.

 

책에서 받는 지적 자극이 정말 굉장하잖아요.


맞아요, 어젯밤과 오늘 책을 읽으면서도 생각이 정말 많이 정리됐어요. 물론 당연히 책을 여러 권 읽어야 이런 책도 만나는 거죠. 이 책도 서점에 갔다가 우연히 눈에 띄어서 샀거든요. 표지에서 최진석 교수님이 째려보고 있더라고요.(웃음) 책과 만나는 타이밍이 있는 것 같아요. 주변에도 어렵게 느끼는 책은 너무 당장 읽으려고 하지 말라고 얘기하거든요. 제가 『죄와 벌』을 20대 후반에 샀다가 마흔에 읽었어요. 중간에 몇 번을 도전했는데 안 된 거죠. 그런데 마흔에 읽을 때는 진짜 달랐어요. 그때 제가 하도 『죄와 벌』 이야기를 하니까 아내가 싫어할 정도였어요. 싸울 때도 “당신의 저 깊숙한 곳에 진짜 당신이 있으니까 찾아봐”라고 했으니까요.(웃음)

 

책에서도 느꼈지만 저자에게서 느껴지는 감정을 고르라면 ‘고양감’일 것 같은데요. 원천은 역시 책일 테죠.


열심히 사는 건 자신 있었거든요. 원래 잠이 없기도 했지만 자는 걸 별로 안 좋아했어요. 뭐라도 해야 하는 거죠. 그러니까 별의별 방법을 다 시도해보고, 남들 해봤다는 건 다 해본 거예요. 그러다가 가장 효과적이고 가성비 좋은, 안정적이고 실패가 없는 건 책읽기뿐이라는 걸 알게 된 거죠. 심지어는 사람들이 너무 독서를 안 하니까 지금은 독서가 최대 무기가 되잖아요. 다른 노력보다도 말이에요.

 

책이 읽기는 쉬워도 쓰기는 정말 어렵잖아요. 저자가 갖고 있는 거의 모든 것을 응축한 것이 책이라고 한다면 독자에게는 그만한 좋은 도구도 없죠. 책을 직접 쓰기도 하셨으니 더 많이 느꼈을 것 같아요. 


음반을 내본 사람은 알 거예요. 조영구 형이 음반을 내고 활동하고 있어요. 엊그제 방송에서 만났는데요. 음악방송을 나갔다가 엄청 혼났다는 거예요. 사실 그 형도 노래방 같은 데 가서 보면 노래 진짜 잘하거든요. 그러니 음반까지 냈죠. 그런데 막상 음반을 내보면 내가 진짜 노래 못하는구나, 느껴요. 글도 마찬가지예요. 저도 혼자 써보기도 하고, 강의 자료도 쓰고 그래서 자신은 있었는데요. 편하게 생각했다가 애를 먹었죠. 이 정도 길이의 글을 써본 적이 없잖아요. 덕분에 또 한 차원 높은 세계를 만났고요. 또 써보니까 독서도 달라지는 것 같아요.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은 반드시 쓰게 되어 있거든요. 전혀 관련이 없던 사람도 읽다보면 자꾸 쓰려고 해요. 그것이 또 책의 힘이잖아요. 『글 잘 쓰는 독종이 살아남는다』의 저자 사이토 다카시의 말에 동의하는데요. 읽고 쓰는 걸 해야 해요. 말하는 기술만 배우는 건 의미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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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권을 읽으면


여러 책을 소개하고, 인용하는데요. 특히 세스 고딘의 『이카루스 이야기』는 ‘인생의 책’이라고 했어요.


무엇보다 제가 교통사고 난 후의 깨달음과 닿아있는 이야기였기 때문인 것 같아요. 여러 표현이 있는데요. 명령과 복종만 기다리는 긴 줄에 서 있지 말고 빨리 그 줄에서 나오라는 말을 하거든요. 『이카루스 이야기라는 제목 자체가 그래요. 사회에서는 겸손을 말하잖아요. 대기업, 공무원 취업이 좋다는 얘기는 자꾸 낮게 날라는 말을 하는 거예요. 높게 날라고 가르쳐야죠. 누가 개천에서 용 나는 시대는 지났다고 하기에 제가 성질을 내면서 말했거든요. 개천에서 용 나던 시대의 대학생들은 진짜 책을 읽었어요.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게 만드는 책들을 읽었죠. 그런데 지금 대학생들은 1학년 때부터 취업모드잖아요. 지침이 될 만한 책을 읽을 수가 없어요. 낮게 나는 거죠. 세스 고딘은 낮게 날면 날개가 젖어서 언젠가 빠질 수 있다고 하거든요. 높게 날아서 태양에 찌더라도 다른 세상은 한 번 보고 죽어야죠. 그 말에 푹 빠져서 세스 고딘 책을 거의 다 읽었어요.

 

책을 읽으면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 있다는 말씀인가요?


무조건 나온다고 생각해요. 책을 안 읽어서 개천에서 용이 안 나오지 책을 읽으면 안 그럴 거예요. 책을 읽은 후 겪는 의식의 폭발이 없었기 때문에 끌려가는 삶을 사는 거죠. 스스로 의식의 폭발을 느끼면 오히려 자기가 먼저 대기업 같은 직장을 안 선택하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도 돈을 충분히 벌게 될 거라고 생각해요. 연예인이니까, 인맥이 많으니까, 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건 절대 아니에요. 저보다 더 유명한 연예인도 식당 차렸다가 망하기도 하잖아요. 그게 아니고요. 사람마다 편차가 있겠지만 책을 읽고 의식의 폭발을 경험하면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책에서 발견한 것 중 특별히 가슴에 품고 있는 말이 있나요?


지금도 실행에 옮기는 것들이 있죠. 『보랏빛 소가 온다』도 그 중 하나예요. 계속 누런 소만 보이다가 보랏빛 소가 나타나면 시선을 끈다는 내용이잖아요. 그건 마케팅 기법 중에 정말 최고인 것 같아요. 이걸 알았으니 행동을 해야죠. 제가 운영하는 가게가 4년 차거든요. 지금 판모밀을 만드는데요. 원래는 없었고, 육수를 따로 끓여야 하니까 일도 힘들죠. 그런데 저희 가게는 90% 이상이 단골이다보니까 4년 쯤 되니 조금 지루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누런 소만 계속 보인 거죠. 보랏빛 소를 한 마리 등장시켜야겠다, 해서 판모밀을 낸 거예요. 역시나 요즘은 오시는 분들이 판모밀을 너무 좋아해요.

 

감자탕 집에서 여름에 냉면 파는 경우와는 다르죠.


그런 것과는 다른 거죠. 장사가 안 돼서 갑자기 여름에 ‘냉면 개시’ 이것과는 다르죠. 우리는 잘 되고 있지만 손님의 반응이나 느낌을 읽고, 새 메뉴를 개발한 거니까요. 읽어내는 것 또한 능력인데요. 여름이면 냉모밀이 엄청 인기인데 10월만 돼도 날씨 때문에 판매가 떨어져요. 그런데 판모밀은 꾸준해요. 차가운 국물에 담군 게 아니라 찍어서 먹는 거니까 기온이 10도 정도로 떨어져도 찾으시더라고요. 책을 내고 제 책을 읽으신 분들에게 연락을 많이 받았어요. 세스 고딘을 아예 몰랐었는데 알게 해줘서 고맙다고요. 더 많은 분들이 읽어서 알고 실천하시면 좋겠어요.

 

뒷부분에 책 목록을 정리해놓기도 했어요. 이 책이 디딤돌이 된다면 다음 발걸음을 어디로 옮길지 알게 해주는 유용한 지침이에요.


이 책을 읽고 나서 끊기는 게 아니라 연결이 되게 하고 싶었어요. 사명이기도 한데요. 이 책을 읽으면 『이카루스 이야기가 엄청 읽고 싶어지고요. 『이카루스 이야기를 읽으면 또 읽을 책이 생겨요. 저도 그렇게 따라갔어요. 혹은 이 책을 읽고도 『이카루스 이야기가 아닌 다른 책을 읽고 싶어질 수도 있잖아요. 그건 그 독자의 취향이에요. 취향을 모를 수도 있는데요. 그걸 알려면 많이 읽는 수밖에 없어요. 많이 읽으면 뭘 좋아하는지 안다고 하잖아요. 많은 독서가들이 3,000권을 읽으면 왜 태어났는지 알게 된다는 말을 하더라고요. 천 권 쯤 읽은 저도 3,000권까지 읽으면 『죄와 벌』에서 말하는 가장 깊숙한 곳의 나를 만나게 되겠죠. 그러면 흔들림이 없을 거고요.

 

그렇다면 저자 역시 여전히 ‘가장 깊숙한 곳의 나’를 찾고 있는 중인 거군요?


네, 지금 서재에 2,000권정도 있고 다 읽은 건 1,700권정도 되는데요. 아직도 사놓고 못 읽은 책도 많죠. 지지난 주에 몽테뉴의 『수상록』을 샀는데 아직 안 되겠더라고요.(웃음) 뛰어넘을 때가 있을 테고요. 저도 5-6년이 지나면 지금보다 더 훈련이 되니까 3,000권정도는 읽지 않을까 생각해요.

 

배고픈 소크라테스


독서로 얻은 저자의 사회적인 면, 사업 등에서 겪은 큰 변화와 성취를 적고 있지만 실은 삶의 변화도 많을 거예요. 구체적으로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 얘기해주신다면요?


너무 많이 바뀌었죠. 후배들한테 책을 아무리 읽으라고 해도 말을 안 듣더라고요. 그래서 생각한 게 내가 뭔가를 이뤄야 설득할 수 있겠다, 였어요. 어쩔 수 없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이런 이야기를 해야 말을 듣겠구나 싶더라고요. 그래서 자꾸 사업에 관한 쪽으로 이야기를 한 건데요. 솔직한 생각은 이래요. 돈이 많고, 쓰면 좋을 것 같지만 저는 정말로 돈과 행복이 비례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추석이 지나고 가게가 좀 비수기여서 책을 많이 읽었는데 저는 이번 달이 정말 행복했어요. 하지만 그냥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고 말하면 안 먹힐 테니까 자꾸 그런 이야기를 한 거예요. 단계적으로 이야기해야죠. 저는 이제는 돈이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어요. 해외여행을 그렇게 가고 싶지도 않아요. 이 정도가 되면 대기업 직원이나 공무원이 아니더라도 만족도를 찾으면서 돈만을 쫓지는 않게 될 거예요.

 

삶의 적정 수준을 찾게 되는 거겠죠.


이름이 기억이 안 나는데요. 세계적인 골퍼가 이런 말을 했더라고요. 마스터즈 우승의 기쁨도 하루 반나절이 지나니까 없어지더라, 라는 건데요. 저는 그게 인생이라고 생각해요. 100억을 벌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것 좋죠. 하지만 돈을 목표로 사는 게 허무해진다는 걸 그만큼 벌어보진 않았지만 알게 됐어요. 돈으로부터 좀 자유로워진 거고요. 반론도 있겠죠. 연매출 십억 식당이 있으니까 그런 거 아니냐고요. 맞아요. 그래서 후배들에게도 얘기해요. 일단은 벌어라, 라고요. 안 벌고는 제 이야기를 절대 알 수 없을 거예요. 안 벌고 책을 읽어서 깨달은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책을 안 읽으니까요.(웃음) 그러니까 벌어보라고 얘기해요. 최대한 빨리 벌어보고 그 다음에 돈이 별 것 아니라는 걸 알고 나야 이해를 하겠죠.

 

한편 책읽기가 모든 문제 해결을 가능케 하는 건 아니잖아요. 워낙 책읽기를 강조하고 있기 때문에 자칫 오해를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여기에 대해서 어떤 답을 해줄 수 있을까요?


저도 그게 걱정돼서 ‘무조건 독서다!’라고만 한 게 아니고요. ‘독서와 사색이다’라고 분명히 적고 있거든요. 독서 후에 사색이 반드시 필요해요. 예를 들어 칸트를 공부했다고 해봐요. 칸트의 사상을 외우고, 말하고, 가르치면 철학을 하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죠. 하지만 그것으로부터 독자적인 나만의 가치관을 세우고 행동할 줄 알아야 해요. 이것이 지금 읽고 있는 최진석 교수님의 말인데요. 그 말에 정말 공감이 갔어요. 우선 인생이 답답하게 느껴지고, 쳇바퀴 도는 듯 사는 것 같이 느껴지면 서점에 가서 책을 읽으라고 말하고 싶고요. 사색을 통해 답을 찾았으면 좋겠어요.

 

결국 ‘매출의 신’보다는 ‘책 읽고’에 더 방점이 있는 거군요.


『소유냐 존재냐』를 읽고 명확하게 깨달았어요. ‘have’와 ‘be’의 이야기죠. ‘매출’은 ‘have’잖아요. 그러니까 저는 책 읽기를 ‘have’로 꼬셔서 당신의 ‘be’의 가치를 높여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죠. 그래서 지금 기획하고 있는 다음 책에서는 완전히 매출에 관한 이야기는 사라지고, 정말 책에 대한 이야기만 하려고 해요. ‘have’가 없을 수는 없죠. 하지만 지금은 너무 그것만 중요해졌잖아요. 저는 ‘be’와 ‘have’를 7:3정도로 생각하자고 말하고 싶어요. 어떻게든 내 ‘be’의 가치를 높여야죠. 그러면 인생이 달라질 거예요. ‘have’만 쫓아서는 분명 공허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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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휘발유


앞서 ‘사명’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요. 책 읽기의 이로움을 알리는 게 저자에게 왜 중요한가요?


저는 윈-윈을 좋아해요. 나의 개인적인 승리도 좋지만요. 이 책을 읽은 분들이 ‘책이 읽고 싶어진다’는 반응을 주실 때 정말 좋죠. 그걸 목적으로 쓰기도 했고요. 저는 리뷰를 많이 보는데요. 이 책 안에 더 많은 책이 있고, 인생과 시간, 자유에 관한 이야기들이 있어서 정말 좋았다는 내용들이 있었어요. 그게 정말 좋더라고요. 사람들은 자기계발서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하는데요. 저는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다른 책을 읽다가 지칠 때 자기계발서를 읽고 주유하면 되거든요. 이 책은 휘발유죠.(웃음)

 

그래서 구체적인 노하우도 적으신 거죠? 가령 아기의자를 내줄 때 손님 앞에서 물티슈로 닦아준다, 같은 것 말이에요. 굉장히 세밀한 것들을 솔직하게 소개하고 있잖아요.


아내가 너무 비법을 다 공개한 거 아니냐고 하긴 했어요. 하지만 저는 어차피 이걸 실행에 옮기는 사람은 10%도 안 된다고 말했어요. 저희 가게 육수 끓이는 거 있잖아요. 알려줘도 해낼 사람이 별로 없어요. 솔직히 아기의자는, 신경이 좀 쓰여요.(웃음) 지금은 숙제처럼 해요. 그 전에는 자신 있게 뛰어가서 닦았는데요. 이제는 제 책을 보셨을 수도 있으니까요.(웃음) 열심히 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책 읽기를 유혹하는 역할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신 거죠?


너무도요. 쉬운 말로 ‘책 전도사’ 이런 거죠. 벌써 2-3년 전부터는 강연을 하면 항상 첫 마디가 이거예요. “300만 원 가지고 서울에 올라와서 집을 네 채를 사고, 일 년에 10억 매출을 내는 식당을 가지게 되었습니다.”라고요. 그 비법을 알려드린다고 하면 눈빛이 달라져요. 군부대에서 오후 두 시에 강의를 해도 들어요.(웃음) 강의 갈 때 책을 열 권 이상 들고 가는데요. 한 권 씩 설명을 해주면서 마지막에 세스 고딘 이야기를 하는 거죠. 이렇게 강의에서 항상 돈으로 꼬여서 책으로 끝내요. 이런 활동을 계속 하고 싶어요. 개인의 삶에도 도움을 주고 싶고요. 이왕이면 사회적인 변화도 이끌어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정확히 어떤 상황에 있는 사람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으세요?


일단은 개그맨 후배들 생각도 많이 했어요. 일단 코미디 프로그램이 없어졌잖아요. 후배들이 고민을 많이 하죠. “형, 뭐해야 해요? 잘하는 거 하라는데 개그밖에 없어요. 뭘 해야 해요?”라고 해요. 거기에 대고도 예전부터 책 읽으라는 말을 많이 했는데요. 안 읽어요. 그런 후배들에게 이 책을 꼭 권하고 싶어요. 또 출발을 앞둔 사람들에게도 권하고 싶은데요. 제가 뮤지컬 강의를 십 년 째 하고 있거든요. 방학 때 25명 씩 대학생들을 계속 만나요. 늦게까지 연습도 하고, 술자리도 있으니까 얘기를 많이 하는데요. 이 친구들에게도 꼭 권하고 싶죠.

 


 


 

 

책 읽고 매출의 신이 되다고명환 저 | 한국경제신문사(한경비피)
이 책은 닥치는 대로 많이, 빨리 읽고서 그저 무언가 바뀌었노라고 말하지 않는다. 책이 일러주는 대로 따라가고 실행해보면서 그 효과를 실제로 검증해온 기록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동영 김하나 “팟캐스트 ‘예스책방 책읽아웃’, 들어보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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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다른 두 사람, 『내가 정말 좋아하는 농담』, 『힘 빼기의 기술』을 쓴 김하나 작가와 『너도 떠나보면 나를 알게 될 거야』, 『나만 위로할 것』, 『잘 지내라는 말도 없이』등을 쓴 김동영 작가에게 최근 공통점이 생겼다. 도서 팟캐스트 <예스책방 책읽아웃>의 진행자가 된 것.

 

예스24와 BC카드가 공동 제작하는 팟캐스트 <예스책방 책읽아웃>에서 둘은 ‘김하나의 측면돌파’와 ‘김동영의 읽는인간’이라는 이름을 걸어두고, 지난 10월 19일부터 격주로 방송을 진행하는 중이다. 팟캐스트를 종일 듣는 김동영 작가, 팟캐스트를 거의 듣지 않는 김하나 작가, 수다를 떨 듯 게스트와 만나는 김동영 작가, 반듯하고 정확하게 묻고 듣는 김하나 작가. 이렇듯 두 사람은 다르다. 김하나 작가는 “저희 둘의 프로그램 제목이 바뀐 것 같은데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전혀 다른 두 가지 색깔이 교차하는 곳, 팟캐스트 <예스책방 책읽아웃>, 이곳에서 그만큼의 다양성, 그만큼의 새로움을 기대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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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경쟁 팟캐스트요?

 

팟캐스트 진행 처음 제안 받았을 때 어땠나요? 고민도 있으셨나요?

 

김하나: 1년을 꾸준히 진행해야 한다는 것 때문에 고민을 조금 했었는데요. 팟캐스트 진행은 재미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평소에 따로 만나기는 어려운 분들을 모실 수 있는, 일적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거니까요. 제가 궁금한 것도 물어볼 수 있고, 그 사람을 알아갈 수도 있는 좋은 기회잖아요. 일단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경험을 하는 거라 ‘재미있겠다’ 생각했어요.

 

김동영:저는 6개월인 줄 알았거든요. 그동안은 긴 여행 갈 일이 없겠지 생각하고 수락했는데요. 처음 제안 받았을 때는 책 팟캐스트를 새로 만들려면 더 재미있거나 유익해야 하는데 과연 그 안에서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죠. 책 팟캐스트가 이미 많으니까요. 사실 출연료가 괜찮았고(웃음),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방송을 하니까 수락하게 됐어요.

 

김동영 작가님은 평소에 팟캐스트를 많이 듣는다고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제안을 받았을 때도 먼저 프로그램의 성격을 생각해보셨던 거네요?

 

김동영:네, 많이 들어요. TV나 라디오를 안 듣고 팟캐스트를 듣거든요. 이미 책에 관한 팟캐스트는 강자들이 많잖아요. 스타일도 다양하고요. 그래서 프로그램이 특이하지 않으면 정말 묻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어요. 전체 팟캐스트가 2,000개가 넘는다고 하더라고요. 그 중 순위를 100위까지 매기는데, 그 안에 들기가 진짜 힘들잖아요. 제대로 해야 할 텐데, 하는 걱정이 좀 많았죠.

 

팟캐스트의 매력은 뭔가요? 많이 듣는 이유가 궁금해요.

 

김동영:우선 TV나 공중파에서 다루지 않는 주제들을 많이 다뤄요. 제가 좋아하는 음모론 같은 것들도 있고요. 책에 관한 팟캐스트를 봐도 그렇죠. TV, 라디오처럼 신간만 다루는 게 아니라 특정 분야를 중점적으로 다루거나 하거든요. 공중파가 균형적이라면 팟캐스트는 지극히 편향된 정보를 준다는 점도 흥미롭죠. 정치는 말할 것도 없고요. 듣다가 의견이 다르면 안 들으면 그만이고요. 라디오와 방식은 비슷하지만 팟캐스트는 전혀 성격이 다르다고 생각해요. 팟캐스트는 솔직함이 매력을 주는 것 같아요. 모르는 건 모른다고 얘기하거나, 하는 식이죠.

 

김하나:김동영 작가님은 잘 알고, 많이 들으시니까 색깔을 어떻게 만들지 고민하셨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저는 팟캐스트에 대한 지식이 없었어요. 그래서 오히려 그 부분에는 고민이 없었던 것 같아요. 라디오도 잘 안 듣거든요. TV도 거의 안 보고요. 소리가 나면 작정하고 듣는 편이지 틀어놓고 무얼 잘 못 하는 편이라서요.

 

방송이 이제 막 2회 정도 나간 상황이에요. 서로의 팟캐스트를 청취하신 소감이 듣고 싶습니다.

 

김동영:나는 저렇게 할 수 없는데,(웃음) 하는 것을 느꼈죠. 김하나 작가님은 오프닝부터 정확하게, 발음도 확실하게 잘하시더라고요. 전달력도 있고요.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도 확실하셔서 참 재미있게 들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걱정을 좀 했는데요. 나중에는 오히려 아예 다르게 방송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어요. 그래도, 부럽죠.

 

김하나:저는 도리어 진행자와 게스트 사이에 공간이 거의 없는 것처럼 느껴져서 부럽던데요. 딱 붙어서 공간이 없는 것처럼 느껴져서 김동영 작가님 방송 좋았어요.

 

두 분이 ‘김하나의 측면돌파’와 ‘김동영의 읽는 인간’을 격주로 진행하고 계시는데요. 앞으로 나의 프로그램이 어떤 모습이었으면 좋겠다고 하는, 프로그램의 지향점도 있을 것 같아요.

 

김동영: 사실 작가들의 취향이나 관심사를 물어보고 싶어요. 이미 쓴 글에 대해서는 많이 말하지 않아도 말이에요. 그건 이미 나온 것이니까요. 기본적으로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면 궁금해서 책도 읽어보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책을 소개해서 그 사람을 아는 것보다 그 사람의 매력적인 부분을 많이 끌어내서 책으로 연결되게 하는 쪽이 저한테 잘 맞는 것 같아요. 우선 저는 얕기 때문에(웃음) 수다 떨듯이, 소개팅 하는 식으로 얘기하는 게 편하더라고요.

 

김하나:말씀을 듣다보니 저희 둘의 프로그램 제목이 바뀐 것 같은데요.(웃음) 저는 평소에도 얘기할 때 또박또박 묻고, 듣는 스타일이에요. 그런 면이 그대로 팟캐스트에 옮겨간 것 같아요. 제가 참여하는 ‘얕은 지식’이라는 모임에서 디자이너 분이 사람마다 어울리는 서체를 붙여준 적이 있어요. 저만 서체를 두 개 정해줬는데요. 하나는 ‘타임즈뉴로만(Times New Roman)’이라고 해서 신문에 들어가는 전격적인 모양의 서체고요. 다른 하나가 ‘개발새발체’였어요. 술 취했을 때와 평소가 다르다고요.(웃음) 그러니까 팟캐스트는 타임즈뉴로만에 해당하는 모습으로 진행하고 있는 거예요. 제가 할 수 있는 부분은 그래서 더 전격적인 부분인 것 같아요. 말을 정확하게 구사하려고 노력하고, 말끝을 흐리지 않고 끝까지 또박또박 얘기하려고 하고요. 실은 성우 수업을 들은 적이 있거든요. 말을 정확하게 하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을 또 재미있어 하는 것 같아요. 진짜 바뀌었네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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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 팟캐스트로 생각하는 프로그램도 있나요?

 

김동영:김하나 작가님 프로그램과 제 프로그램이 아예 다른 것 같은데요. 김하나 작가님은 <김태훈의 책보다 여행>일 것 같아요. 그 프로그램은 깊이가 있어요. 정보도 많고요. 김태훈 선배가 원래 그런 스타일이 아닌데(웃음) 그렇게 하시더라고요. 한 번 제가 출연해서 완전히 망쳐놓고 왔는데요. 제 프로그램은 아무래도 요조 씨와 장강명 작가가 진행하는 <책, 이게 뭐라고>이 아닐까 싶어요. 듣기가 무척 편안하더라고요. 목소리도 듣기 좋고요. 아, 사람들이 이래서 좋아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잘하시는 것 같아요.

 

김하나:이제라도 시장조사를 해야겠네요.(웃음) 가끔 <송은이 & 김숙 비밀보장>처럼 화제가 되는 것들은 한 번 씩 듣고 그랬지만 워낙 팟캐스트를 즐겨 듣거나 하질 않아서요. 다만 요즘은 다음 책 원고 때문에 그림을 그리는 게 있는데요. 그릴 때는 소리가 있는 게 더 좋더라고요. 지금 말씀하신 팟캐스트를 쭉 들어봐야겠습니다.

 

혹시 섭외하기 힘들지만 꼭 초대하고 싶은 게스트가 있나요? 이 인터뷰 기사로 초대장을 보내는 심정으로 말이죠.(웃음)

 

김하나:처음에 모시고 싶다고 말씀드렸던 분이 있는데요. 황정은 작가님이에요. 『백의 그림자』를 읽고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쓰러졌거든요. ‘이 사람이 너무 좋다’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요. 나중에 팟캐스트를 진행하신다고 해서 들은 적이 있어요. 목소리가 내 상상과 너무 다르지 않았으면, 하고 생각하면서 떨리는 마음으로 들었는데 제가 생각한 목소리여서 또 좋았어요. 그리고, 아이유 씨요.(웃음)

 

김동영:떠오르지가 않는데요. 론리플래닛 편집자 분들이 궁금하고요. 만화가 분들도 만나고 싶어요. 황석영 작가님도 뵙고 싶네요. 워낙 이야기꾼이시고, 팟캐스트에 출연하시면 또 재미있을 것 같아요. 마종기 시인도 좋아요. 그런데 시인 분들 특징이 항상 따뜻하겠다고 하는(웃음) 그런 게 있어서 걱정이에요.

 

김하나:이렇게 막 던져도 되면(웃음) 저는 윤여정 선생님을 뵙고 싶습니다. 배철수 씨도 좋을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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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턱 낮아진 팟캐스트, 과연 미래는?

 

팟캐스트는 무엇보다 진행자에게 많이 기대는 면이 있잖아요. 그래서 드리는 질문인데요. 두 분이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나는 어떤 사람인지 직접 설명을 해주신다면?

 

김동영:어렸을 때 읽기, 받아쓰기를 잘 못 했거든요. 잘하는 게 진짜 없었어요. 체육도 안 좋아했고요. 그림도 싫어해서 여행을 가도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안 가요. 이번에 포틀랜드에서 두 달 있었는데요. 무료 전시가 있어서 갔는데 힘들었어요. 봐도 이해도 안 되고 그래서요. 저는 돈 주고 사는 걸 좋아해요. 옷 사는 걸 좋아했었는데 지금은 LP 사는 거 정말 좋아하고요. 거의 재즈 LP를 사 모으고 있어요. 80년대 이전 것을 주로 LP로 사서 모으고 있죠. 블루노트에서 나온 건 거의 사는 것 같아요. 취향이 때때로 바뀌는 것 같아요. 예전의 저는 새로운 걸 해보는 것도 좋아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안 그래요. 사람들이 식물 같은 사람이라고 할 정도예요.

 

김하나:예전에는 딱 만나는 사람만 만나고, 정해진 대로 하는 걸 좋아하고, 칸에 딱딱 넣는 것을 좋아하는 타입이었어요. 집도 반듯하고, 깨끗하고, 이런 걸 좋아했고요. 책에도 쓴 내용인데요. 실연 이후 어느 순간 이러면 안 되겠다, 살아야겠다 싶어서 모임을 만들고, 유연성에 대해서 굉장히 크게 느끼게 됐어요.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칸 안에 넣어두고 나를 보호하려고 했다면 지금은 일단 만나서 적극적으로 물어보고, 같이 좋아하는 걸 하게 됐죠. 그러다보니 세계가 확 넓어졌어요. 화분 속에만 있다가 숲으로 나오게 된 거죠. 그 뒤에 인생이 훨씬 편안해졌어요. 지금은 그럴 수도 있지, 이런 것도 재미있네, 라는 걸 많이 생각하는 것 같아요. 팟캐스트도 예전 같았으면 거절했을지도 모르겠어요. 지금은 뭐든 일단 해보자고 생각하니까요. 팟캐스트도 하다보면 늘 수 있고요. 적어도 나는 팟캐스트 진짜 아니구나, 라도 알 수 있게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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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분이 정말 다르신 것 같아요. 그리고 어떤 변화를 비교적 최근에 겪으셨고요.

 

김하나:몇 년 사이의 일이죠. 저는 지금이 조금 더 재미있어요. 제 동거인은 어지르는 것만 할 줄 알지 정리정돈이라고 하는 건 도려낸 것처럼 없는 사람이에요.(웃음) 저는 매일이 카오스고, 뒤죽박죽이긴 한데요. 그래도 재미있어요.

 

김동영:저도 3-4년 사이에 그렇게 된 것 같아요. 김하나 작가님과는 반대 같은데요. 저는 숲에 있다가 화분으로 왔거든요. 사람도 예전에는 정말 많이 만나고 어울렸는데 어느 순간 달라졌어요. 그만 만나야겠다는 자각도 없이 점점 모임이 없어져서 요즘은 고양이와 집에 누워서 자는 게 제일 좋아요.

 

김하나:저도 그게 제일 좋긴 해요.(웃음)

 

앞으로도 팟캐스트가 계속 성장할 거라고 보세요?

 

김동영:지금 꽤 많은 것 같은데요. 정점이었던 것 같아요. 팟캐스트가 확장될 수 있었던 게 지난 10년 동안 정치적인 문제가 컸기 때문이잖아요. 공중파에서는 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이곳에서 제한 없이 할 수 있었고요. 정치 팟캐스트가 엄청 많았거든요. 정권이 바뀌고 나서는 많이 없어지기도 하고, 하던 분들도 주제를 바꿔서 하고 있는데요. 이전에 정치적인 팟캐스트가 많았다면 지금은 취미나 교양 쪽으로, 어쩌면 교육방송처럼 성격이 변화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지속성이니까요. 지켜봐야 할 것 같아요.

 

김하나:계속 들어오셨으니까 감지하신 걸 텐데요. 팟캐스트를 잘 안 듣던 국외자 입장(웃음)에서는 팟캐스트는 그냥 앞으로 잘 되는 게 아닌가, 했어요. 앞으로 TV보다 유튜브가 훨씬 가능성이 많아지는 것처럼 말이에요. 팟캐스트에 대해서도 막연하게 그렇게만 생각했었어요. 1, 2위 하는 팟캐스트들은 광고 수익도 엄청나다고 하더라고요. 앞으로 또 규제도 생길 테지만 문턱이 낮아지고, 아무나 아무말대잔치를 할 수 있어서 낙관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아요.

 

당분간 팟캐스트로 독자 분들은 만나게 될 텐데요. 앞으로의 다짐이나 제작진에게 바라는 점이 있나요? 청취자 분들에게 한 마디 하셔도 좋습니다.

 

김동영:원고를 잘 소화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저도 능숙하게 읽고 싶어요.(웃음) 무엇보다 우리끼리 재미있었으면 좋겠어요. 하는 사람들끼리 친하고 재미있으면 듣는 사람들도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왜냐하면 우리도 다른 사람이니까요. 특별하지 않은 사람이고요. 그러니까 이왕 할 거면 우리가 재미있어야 다른 사람들도 재미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하나:준비하면서 게스트의 책도 읽고, 방송에서 게스트와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약간은 팬심이 생기잖아요. 저는 제가 느낀 팬심이 잘 전달되고, 게스트가 빛나는 방송을 하고 싶어요. 책 자체의 매력도 있고, 게스트의 삶의 궤적에도 매력이 있을 텐데요. 그걸 아주 작게라도 새로운 각도로 던져줄 수 있다면 좋겠죠. 게스트가 이 팟캐스트에 나와서 기분이 좋았으면 좋겠고요. 듣는 사람도 매력적인 사람이 세상에 또 한 명 있구나, 느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우연히 들었는데 그 사람 되게 매력 있더라’ 이런 반응이면 제일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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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분 곧 책도 출간될 예정이시죠?

 

김동영: 12월에 내려고 계획하고 있는데요. 지금 제가 교정지를 안 넘기고 있어요. 고칠 게 너무 많아서요. 지금까지 책 네 권을 내면서 쓸 때마다 내 글에 감동 받았거든요.(웃음) 잘 팔리겠다, 이러면서 만족하고 그랬는데 이번에는 정말 모르겠는 거예요. 너무 별로인 것 같고요. 처음으로 제 이야기를 썼거든요. 물론 여행 에세이에서도 제 이야기를 했지만 그때 쓰던 문체와 다르기도 하다보니까 이게 재미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서요. 고민이 많아요.

 

김하나:지금 작업하는 책은 12월이 가기 전에 무슨 수를 써서든 나와야 하는 책이에요. 다이어리처럼 나오는 책이거든요. 그림도 들어가고요. 창의성과 브랜딩이 섞인, 소재들을 정리한 워크북 개념의 책이에요.

 

2017년 읽은 책 중에 ‘올해의 책’으로 꼽는 책이 있다면 추천해주세요.

 

김하나:『면역에 관하여』라는 책 정말 좋았어요. 번역가 김명남 님이 번역하셨는데요. 트위터에 칭찬을 써놓으셨더라고요. 부산에서 올라오는데 부산역 서점엘 갔거든요. 훑어보다 보니 김명남 님이 한참 얘기하셨던 그 책이 딱 있는 거예요. ‘면역’에 관해서 읽어 뭐할 거야, 싶으면서도 나도 모르게 그 책을 샀죠. 읽어보니 너무나 매력이 대단한 책이었어요. 너무 묘해서 작가의 배경을 봤더니 아빠가 의사고 엄마가 시인이더라고요. 과학과 시가 묘하게 성질변화를 일으키는 게 한 편, 한 편이 다 좋았어요. 정보성으로 시작해 갑자기 아름다운 은유로 빠졌다가 하는 거죠. 이런 맛이겠거니 하고 입에 넣었다가 먹고 나면 ‘어라? 너무 맛있는데!’ 이렇게 충격 받는 경우 있잖아요. 한 편, 한 편이 그런 글들이었어요. 그 전에 이런 형태의, 이런 맛을 주는 글을 못 봤던 것 같아서 저한테는 충격이었어요.

 

김동영:저는 몇 년 째 올해의 책이 『중력과 은총』예요. 진짜 안 읽히고 너무 어려운데 제목이 참 좋잖아요. 파리에 있을 때 한국문화원에 있는 도서관에 간 적이 있어요. 『당신이라는 안정제』쓸 때였는데요. 거기서 제목만 보고 너무 좋아서 빌려봤어요. 내용은 잘 모르겠는데요. 문장이 정말 좋아요. 진도는 안 나가는데 읽고 있는 자신이 멋있는 거 있잖아요. 그런 책이에요. 언젠가 꼭 다 읽겠지, 생각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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