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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시드폴 “내 속도로 살고 싶어 제주에서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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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일을 하다 짬이 나면 동화를 썼다. 매일 산책하며 벚나무와 앵두나무, 동백나무와 인사했다. 루시드폴은 뭘 시작하면 열심히 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노래도 열심히, 귤 농사도 열심히, 책도 열심히 썼다. 화학 분자학을 연구했던 화학자, 이제는 제주에 사는 농부 루시드폴이 정규 8집 앨범이 담긴 에세이집 『모든 삶은, 작고 크다』를 펴냈다. 2년간 쓰고 만든 글과 노래가 한 편의 시처럼 담겼다. 책 제목을 듣자마자 “루시드폴스럽다”고 생각한 건, 쉼표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루시드폴에게 ‘꿈’을 물었다. 그는 “진부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내가 좀 더 단단한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고 했다. 또 자신이 아끼는 사람들이 건강하고 상처받지 않았으면, 제주의 작은 과수원이 지금처럼, 혹은 지금보다 더 평화롭고 조용한 곳으로 남아 있어주면 좋겠다고 했다. 이 꿈이야말로 작고 큰 삶이 아닐까, 루시드폴의 글을 다시 읽고 싶어졌다.

 

“어떤 ‘시절’의 내 모습이든, 그 시절이 고스란히 앨범 속에 있다. 그리하여 나의 과거는 앨범의 연대기로 남는다. 유학 시절을 생각하면 2집이, 지금은 세상에 없는 한 친구를 생각하면 3집이 떠오르고, 2년 동안 살았던 한옥 처마와 쪽빛 하늘을 떠올리면 6집이 떠오른다. 처음 서울에 둥지를 텄던 10평짜리 집 앞 골목을 생각하면 금세 4집이 떠오른다. 반대도 그렇다. 7집 속에는 처음 이 섬에 왔던 시절의 온갖 기억으로 빼곡하다. 나에게 앨범과 노래란, 픽션이 아닌 다큐멘터리이다. 그래서 나의 노래 속에는 나의 모든 것이 남아 있다.” (1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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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가볍지 않다고 생각하는 일

 

제주 공연은 어땠나요? 서울에서 하는 공연과는 달랐을 것 같아요.

 

출퇴근하는 기분이 좀 다르죠. 제주에서 사는데 제주에서 공연을 하니까요. 이번 공연에는 그동안 작업하느라 잘 못 봤던 친구, 형들이 많이 왔어요. 마치 출정식 같은, 혹은 투어의 시작과 앨범 작업의 끝을 축하해주는 기분이 들어서 더 ‘홈 그라운드’ 같은 느낌이었어요. 공연장이었던 돌문화공원의 극장은 뒷무대가 유리로 되어 있거든요. 언제나 특별한 느낌의 공간인데, 작년에 노루가 와서 노래를 듣고 갔는데 올해는 안 온 듯해서 조금 서운했어요. 근데 어떤 페친이 글을 남기셨더군요. 두 번 째날 앵콜곡을 부를 즈음 노루가 뛰어다녔다고요. (웃음)

 

책이 꽤 묵직해요. 앨범도 들어있지만, 사진도 많이 실렸어요.


사진이 많이 들어 있는 책은 판형이 너무 작으면, 사진에 눈이 잘 안 가더라고요. 그렇다고 잡지처럼 너무 크면 도록 같아서요. 타협점을 찾은 게 이 사이즈였어요.

 

노랫말을 원고지에 쓰셨더라고요.


원래도 종이에 글을 쓰는 편이에요. 제 딴에는 정서를 한 건데요. 책을 받아보니 정서가 아니더라고요. (웃음) 띄어쓰기가 틀린 곳도 있는데 한 문장으로 읽혔으면 하는 문장은 그대로 살렸어요.

 

제목을 읽고는 “루시드폴 이야기 같다”고 생각했어요.


영어 제목으로는 ‘Living small and tiny farm’인데요. 처음에는 그냥 ‘Living small’을 생각했어요. 굳이 표현하자면 ‘적당히 만족하는 삶?’ 거창하게 말하는 ‘심플 라이프’가 아니고요. 원래 부제로 생각했던 제목이었는데 책이 나오기 직전까지 마땅한 제목을 찾지 못했어요. 별의별 제목이 다 나오는 와중에 출판사 분들이 이 제목이 적당하겠다고 판단하셨나 봐요. 조금 무겁지 않나 생각하기도 했는데, 이 이상의 제목을 못 찾겠더라고요. 아직은 저조차도 낯선 데요. 어떤 문장이든, 하다못해 밴드 이름도 낯설다가 익숙해지는 순간이 있잖아요. 이 시간이 곧 오겠죠. 눈에 익숙해지고 입에도 익숙해지는 순간이요. 의미보다는 하나의 심볼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생각해요.

 

지난 앨범 타이틀곡이 「누군가를 위한,」이었잖아요. 이번 타이틀곡 「안녕,」에도 쉼표가 들어갔어요.

 
그냥 ‘안녕’이라고 쓰니까 ‘Goodbye’ 느낌이 나서요. 너무 길어지지 않을까 고민했는데 괜찮다고 해주셔서요. 그러면 넣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웃음)

 

책의 첫 장이 새 이야기(‘땅으로 내려온 날개’)로 시작돼요. 타이틀을 지우고 책을 보았다면 생태학자의 에세이인가, 싶었을지도 몰라요.


이 글은 꼭 앞에 넣고 싶었어요. 지금 저한테 가장 마음 아픈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 같은데요. 우리 일상에서 항상 마주치지만, 결코 가볍지 않다고 생각하는 일들이에요. 글과 함께 나오는 비둘기 사진이 있는데, 우연히 찍은 한 쌍의 비둘기예요. 전 둘의 관계는 몰라요. 친구인지 연인인지. 다 크지 않은 어린 새들이었는데요. 한 마리는 보통 사이즈. 다른 한 마리 목선이 가늘고 예쁜 맵비둘기였어요. 목선이 확연히 보이더라고요. 아직도 해가 질 무렵 제가 찍었던 사진을 보면 ‘이 친구들은 어디서 뭐 하고 살고 있을까’ 생각이 들어요.

 

글과 곡 작업을 함께 했나요?


완전히 별개로 작업했어요. 글 같은 경우에는 원고지를 앞에 두고 펜을 들 때까지, 무슨 이야기를 써야 할 지 생각이 쉽게 들지 않았어요. 뭐라도 써보면 되겠다는 생각으로 썼는데, 나중에 모인 글들을 읽어보니 곡과 연결이 되더라고요.

 

앨범을 책으로 내야겠다는 생각은 일찍부터 한 것 같아요.


제주로 내려오면서 앞으로 책만 내는 일은 안 할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뭐랄까 책을 내는 일련의 과정들이 좀 낯설었어요. 책을 내면 본의 아니게 연예인으로 분류가 되잖아요. 인터뷰를 해도 그렇고요. 제가 소속된 회사에서 앨범을 내는 일은 익숙한데 출판 쪽은 또 그렇지 않더라고요. 하지만 책을 낸다면 앨범과 함께 낼 것 같다는 생각은 있었어요. 이 앨범 바로 전에 제가 직접 책을 만들었잖아요. 의미가 있었고 또 재밌는 작업이었지만, 전문가가 만들어주시는 책은 아무래도 다를 테니까요.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사진도 많이 실렸어요. 귤, 아내, 곡을 만들고 녹음한 작업실까지.


모두 제가 찍은 사진이에요. 제가 나온 사진은 아내가 찍어줬고요. 사진을 찍는 걸 즐기는 편인데 기록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 같아요. 찰나를 기억할 수 있으니까요.

 

‘노래하는 집’ 오두막을 짓기까지의 과정이 꽤 자세히 나와요. 사진만 보면 굉장히 낭만적으로 보이지만 힘들었겠구나, 쉽지 않겠구나 싶었어요.


귤 수확이랑 같이 했거든요. 귤 주문을 받고 배송하는 일을 올해 1월까지 했는데, 눈이 떨리기 시작하더니 멈추지를 않는 거예요. 뭘 먹어도 소용이 없고. 병원에 가니까 막걸리, 커피 같은 걸 먹지 말라고 했어요. 겨우 커피와 막걸리를 통해 에너지를 대출받고 있었는데, 의사 분이 전부 끊어야 한다고 하셨어요. 평생 먹을 비타민, 마그네슘을 먹은 것 같아요. 그렇게 약발로 버티면서 완성했는데, 몸은 진짜 힘들었지만 마음은 항상 즐거웠어요. 아침만 되면 오두막을 함께 짓는 친구들 만날 생각부터 했으니까요.

 

몇 달 정도 걸렸나요?


작년 12월 1일에 착공했으니까 딱 4개월 걸렸어요. 오두막이 아래층 4평, 위층이 8평이라 총 12평이에요. 평당 3일을 생각하면 된다고 해서, 딱 1달 조금 넘는 계획을 세웠어요. 그런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는 거예요. 설계가 너무 엽기적이라서요. (웃음) 과수원 사이에 작은 공간으로 만든 거라 주변 나무들을 피해야 했고 또 비가 오는 날은 쉴 수밖에 없었어요. 책에 친구들과 쫑파티한 사진이 나오는데요. 정말 정신 없었어요. 하지만 정신 없게 행복했어요.

 

내가 지은 공간에서 직접 한 녹음, 이건 뮤지션에게 굉장히 특별한 경험일 것 같아요.


생각해보면 홈 레코딩이 아니라, 팜 레코딩이잖아요. 악기도 모르고 프로그램도 쓸 줄 모르는데, 내가 다 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맡길 수도 없는데? 일단 10월이라는 달이 나에게 올까? 고민이 정말 많았어요. 앨범이 나오는 날을 확실히 정했었거든요. 일단 체력이 정말 힘들었어요. 전날 늦게까지 녹음을 했더라도 아침에는 농장 일을 해야 했으니까요. 12월까지는 공연도 있고. 그래서 체력을 배분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낮에는 죽어도 곡을 못 쓰겠더라고요. 그래서 밤에도 해봤는데 그러면 다음 날 컨디션이 너무 안 좋고요. 결국 새벽에 작업을 했는데, 새벽에 쓴 곡이 엣지가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심지어 내가 곡을 다 쓴 다음에도 좋은지 나쁜지 모르겠고. 또 다른 좋은 노래를 들으면 좌절하고. 그러다 하나씩 녹음하고 악기가 입혀지면서 조금은 여유가 생겼어요.

 

“내 노래가 태어날 ‘노래의 밭’이 갖고 싶었다”고 말했어요.


돈으로 살 수 없는 유일무이한 소리를 담을 수 있는 곳, 나무를 돌보듯 키워낸 노래를 거두는 곳을 원했어요. 그리고 그곳의 빛과 향기와 계절과 울림, 모든 걸 고스란히 담을 수 있으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아무리 근사한 여행지에서 영감을 받고 아무리 좋은 스튜디오에서 깨끗하게 녹음을 해도 그것보다 좋을 것 같진 않았어요.

 

책에 실린 앨범의 곡 순서와 음원의 순서가 달라요.


다른 호흡으로 들었으면 해서 바꿔 놓았어요. 글이 없는 상태에서 음악을 들었을 때의 호흡과 글과 함께 들어주셨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엘범의 호흡이 달랐어요.

 
3번째 넣어주세요_) 워터마크필요없음_ 출처_ 안테나뮤직.png

       안테나뮤직

 

천천히 느릿느릿 살고 싶진 않아요.

 

「안녕,」 가사가 특히 좋았어요. 침묵이 더 편해졌다는 이야기가 참 좋았어요. 앨범이 나오고 책이 나왔으니, 그래도 한동안은 침묵할 수 없잖아요. 요즘 어떠신가요?


저는 말하는 일이 ‘충전’보다는 ‘소진’에 가까운 사람이에요. 물론 말하면서 더 에너지를 얻는 사람들도 있죠. 이를 테면 연예인이나 정치인들이요. 제게 말이란, 늘 즐겁지만은 않지만 제 작업이나 작품에 관해 이야기하는 건 크게 거부감이 없어요. 인터뷰 질문이 아무리 엉터리라고 해도요. 제 작품을 조금이라도 더 잘 알리고 싶고, 더 잘 보아달라고 부탁도 하고 싶으니까요. 공연장에서 멘트를 해야 하는 일도 괜찮아요. 팬들이 모인 곳이니까요. 하지만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 앞에서, 그것도 제 작품이나 작업물과 관계없는 말을 하는 건 여전히 곤혹스러워요.
 
2년 전 직접 재배한 귤을 홈쇼핑에서 팔아 화제가 됐어요. 아직도 루시드폴 포털에 검색하면 검색어로 홈쇼핑이 떠요. 그 때 굉장히 이슈였어요. 팬들은 무척 놀랐고요.


(웃음) 사실 처음에는 너무 하기 싫었어요. 글쎄요. 돌이켜서 생각해보면 방송을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커서 서울을 떠난 것도 있어요. 방송을 하지 않아도 음악을 계속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고요. 그 땐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 음악과 관련 없는 활동을 너무 적극적으로 하는 것이 썩 좋게 보이지 않았어요. 지금은 아니고요. 2년 전에도 이런 생각들이 있었고, 제주에서도 완전히 자리를 못 잡은 상태였거든요. 이런 저를 제가 너무 잘 알잖아요. 그런데 희열이 형이 “짧고 굵게 하나만 하자”고 했어요. 홈쇼핑 하나만 하면 딴 거 안 해도 된다고. (웃음) 그래서 하게 된 거죠.
 
새벽 시간 방송이었던 것 같아요. 7집 앨범과 동화책, 사진 엽서, 그리고 귤을 팔았어요. 재밌는 아이템이지만 홈쇼핑에서 썩 반길 상품은 아니었을 것 같아요. 너무 소량 판매라서요.


굉장히 부정적이었어요. 홈쇼핑은 자본주의의 첨병 같은 존재잖아요. 시간대별로 금액도 다르고요. 채널을 얻기가 무척 힘들었는데 결국 했죠. 처음에는 귤이니까 농수산홈쇼핑에서 팔려고 했어요. (웃음)
 
안테나뮤직 소속 뮤지션들이 대거 출연해 귤을 까먹는 장면을 연출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 안테나뮤직이 사옥을 옮기고 포맷을 새로 기획할 때였어요. 당시 제 앨범이 첫 앨범이었고요. 그래서 새벽 2시에 동료, 후배, 선배들이 대거 총출동했죠. 되게 고마운 만큼 미안한 마음도 많았어요. 제주에 살면서 연락도 잘 못했는데, 많이 친하지도 않은 후배들한테 이런 부탁을 해도 되나 싶고. 어쨌든 고맙고 좋은 추억을 만들긴 했죠.

 

제주에서의 일상은 어떤가요? 서울보다는 좀 느린 속도로 살고 있나요?


저는 천천히 느릿느릿 살고 싶진 않아요. 제 속도로 살고 싶어요. 매일매일 바쁘고 치열하고 촘촘하다고 해도 그게 나랑 맞는 속도면 별 문제가 없을 거예요. 서울에서 가장 힘들었던 건, 내가 살고 싶은 속도를 내가 제어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어요. 내가 기어를 쥐고 있는 것 같지가 않았어요. 굉장히 많은 관계가 있으니까 내가 그 관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어요. 내 속도로 살기 위해서는 이 관계들 속에서 떨어져 있어야겠다고 생각했죠. 적어도 핸들은 내가 쥐고 있어야겠다, 생각한 거예요.
 
제주에 살면서 방향과 속도를 분명히 했다는 느낌이 들어요.


제가 조절할 수 있는 속도니까요. 농부의 하루는 굉장히 일찍 시작돼요. 특히 여름에는 해가 빨리 뜨니까 일을 빨리 해야죠. 굉장히 일찍 일어나야 해요. 그리고 하루 3끼를 해먹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에요. 매일 뭘 먹을까 궁리만 해도 하루가 훌쩍 가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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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 쓰고는 제 삶이 이야기가 안 되더라고요

 

제주에서 살겠다고 결정한 계기는 특별했나요? 아니면 우연이었나요?


그게 좀 희한해요. 저희가 2014년 2월에 제주에 내려갔는데, 2012년 가을쯤 제주도로 여행을 갔어요. 서귀포를 많이들 가잖아요. 시내에 있는 이중섭미술관을 갔는데 바다가 보이더라고요. ‘아, 저기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연애를 시작한 지 4달이 되던 때였는데요. 아내는 일본에 있었고요. 통화를 하면서 “우리 나중에 결혼해서 제주에서 살까?” 물었더니, 아내가 “좋지”라고 했어요. 되게 낭만적인 수준에서의 대화였는데 아내가 일본에서 유학하다가 이런저런 상황 때문에 한국에 들어오게 됐어요. 2013년 봄이었는데 당시 저는 북촌에서 살고 있었고요. 앨범 작업을 하느라 바쁘게 시간을 보내면서 자연스럽게 제주에 대한 생각이 묻혔는데, 작업이 끝나자마자 여행을 갔어요. 아내랑 둘이 제주로요. 김녕, 조천 등을 돌아다녔는데 저희가 어느새 집을 알아보고 있더라고요.

 

책에 아내 이야기가 꽤 많아요. 첫 만남부터요.


안 쓰고는 제 삶이 이야기가 안 되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굉장히 사적인 이야기잖아요. 꼭 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면 안 하는 편인데요. 하지 않고서는 아무 이야기도 할 수 없었어요. 쓰고 싶은 이야기니까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아내는 제가 곡을 쓰던, 글을 쓰던 가장 먼저 보고 피드백을 주는 사람이에요. 이미 원고는 수없이 읽었는데, 이런 꼴로 보는 건 며칠 전이 처음이었어요. 굉장히 좋아했어요.

 

아내 분이 이미 책을 두 권 쓰셨죠?


독립출판물로 출간해서 저희가 직접 찍었어요. 가장 최근에 낸 책은 『아가풀과 노루별』이라는 시집인데요. 가끔 라이킷, 유어마인드 이런 서점에서 문자가 와요. 책이 팔렸다고 입금해준다고요. (웃음) 첫 번째 책은 50권 정도 찍었을 거예요. 글은 아내가 삽화는 제가 그렸어요. 아내는 계속 글을 쓰고 있으니까 작가죠. 저희 농장의 대표님이시기도 하고요.

 

아내와 함께 책을 쓸 계획은 없나요?


쓰고 싶어요. 독립출판으로 낼지 기성출판에서 낼지는 모르겠고요. 가능하다면 어디선가 내주시면 좋겠지만 굳이 또 내달라고 하고 싶진 않아요. 아내가 원고는 계속 쓰고 있으니까요. 정리되면 한 번 생각해 봐야죠. 아마 동화, 동시가 될 것 같고요.

 

“나에게 앨범과 노래란, 픽션이 아닌 다큐멘터리”라고 했어요. 이번 작품집은 루시드폴에게 어떻게 기억될까요?


지난 앨범 이후 지금까지의 나를 기록한 다큐멘터리가 되지 않을까요?

 

요즘 고민이 있다면요?


다음 앨범의 마스터링은 어디서 할까, 생각하고 있어요.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는 소망이 있나요?


비슷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는데요. 그냥 말수가 좀 적고 좀 멍청하고, 그러면서도 귀여운 할아버지가 되고 싶습니다.

 


 


 

 

모든 삶은, 작고 크다 루시드 폴 저 | 예담
2년 만에 발매하는 정규 8집이자 루시드폴의 첫 에세이인 이 책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어나는 생명과 자연에 대한 경탄, 그리고 놀랍도록 찬란한, 모든 ‘작은 삶’에 대한 이야기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재우 “변함없는 것, 우리 부부의 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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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만 팔로워의 개그맨 김재우 인스타그램, 시작은 2015년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강제로 ‘쉬어지고’ 있던 날들. “나를 찾는 사람이 없다는 것”에 상처가 컸던 때였다. 아내 조유리는 그런 남편에게 배낭을 사주며 말한다. “이왕 쉬는 거 쉬는 것처럼 쉬어.”라고. 김재우는 그 배낭을 메고 전국을 여행했다. 다니며, 마치 그림일기처럼,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처럼 인스타그램에 사진과 이야기를 올렸다. 이것이 김재우 ‘럽스타그램’의 시작이다.


게시물이 올라올 때마다 수백 개의 댓글과 수만 개의 ‘좋아요’가 달리는 그의 인스타그램을 본 몇몇 출판사에서 책 출간을 제의했을 때 김재우는 “자격이 안 된다”고 생각해 번번이 거절했었다. 그것을 지켜본 조유리가 함께 써보자고 제안했고, 『늘 그렇듯, 네가 좋으면 나도 좋아』는 부부가 다시 쓰는 일기처럼, 한 번 더 하는 프러포즈처럼 책이 되었다. 주구장창 카레만 먹게 되는 신혼의 이야기들, 고양이와의 동거 생활, 여행의 순간, 부부싸움과 가족에 대한 애틋함 등 평범한 누구나의 일상이 유쾌하고 재치 있는 개그맨의 언어로 펼쳐진다. 이로써 삶이 바뀌었다는 김재우. 그는 자신들의 일상을 따뜻하게 바라보고 좋아해주는 사람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인세 전액 기부라는 방법으로 표현하기로 했다. 그리고 오늘도 아내와의 작은 일상을 올린다. ‘#그게바로 #남자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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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함께 쓴다면 괜찮을 것 같아


‘이 책은 아내의 꿈을 이루기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전부입니다. 그게 이 책을 쓰게 된 이유입니다.’라고 적었어요.

 

김재우:여러 출판사에서 연락을 많이 주셨었어요. 번번이 거절을 했는데요. 아내에게까지 연락이 간 거예요. 김재우 씨를 설득해줄 수 있느냐고요. 그것도 끝내 거절을 했더니 아내가 “내가 차라리 오빠 쓰는 걸 도와서 같이 쓰면 어떨까?”라고 한 거예요. 원래 아내의 꿈이 작가이기도 했으니까요. 아내의 말을 듣고 그 다음 제의를 해온 출판사에는 승낙을 해서 쓰게 됐어요.

 

아내 분의 꿈이 원래 작가였다고요?


김재우:네, 여행 작가가 꿈이었어요.


조유리:책 읽는 것이나 쓰는 것 워낙 좋아해서 언젠가는 쓰고 싶다는 생각은 막연히 있었어요. 책 내는 걸 계속 거절을 하더니 제가 같이 해보자고 하니까 생각을 바꾸더라고요.

 

애초에 출판을 거절한 이유는요?


김재우:자격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책은 누군가가 돈을 주고 사야 하는 것이잖아요. 제 글은 누군가가 돈을 주고 읽을 만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어차피 인스타그램에서 볼 수 있는 것이기도 하고요. 돈을 지불할 정도의 자격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내가 같이 쓰자고 하니까 생각이 바뀌더라고요. 그동안 아내의 글을 봐왔잖아요. 아내의 글은 돈을 내고 볼 만하거든요.(웃음) 그래, 당신이 함께 쓴다면 괜찮을 것 같아, 이렇게 결심을 한 거죠.


조유리:인스타그램 자체는 신랑만의 얘기지만 둘의 얘기는 같이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책에 묶인 아내의 글을 보니 어떤 생각이 들던가요?


김재우:아내가 가끔 쪽지도 써주고요. 편지를 되게 많이 써주는데요. 저는 열 살 이후로 운 적이 없거든요. 찢어지고, 다쳐도 눈물 한 방울 안 흘리던 냉혈한이었는데 아내가 쓴 글을 보면 눈물이 나려고 할 때가 있어요. 아내의 글을 보고 그런 제 가슴이 움직인 걸 보면 글에 힘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죠. 사실 저처럼 연예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감정이 무뎌질 수밖에 없거든요. 그런 사람의 마음이 움직였다면 좋은 글이 맞는 것 같아요. 아내의 글은 엄청 따뜻한 글이에요. 그게 책에 잘 녹아있다고 생각해요.

 

아내 조유리 저자가 이 책을 ‘다시 한 번 쓰는 프러포즈 편지’라고 한 대목이 있거든요. 조유리 저자는 쓰면서 어떠셨는지도 궁금하네요.


조유리:원래는 이렇게 많이 쓸 생각은 없었어요. 저는 그냥 첨삭하는 식으로 조금만 넣으려고 했는데요. 몇 개 써서 “내가 생각한 건 이런 거야”라고 신랑을 보여줬더니 좋아하더라고요. 사실 저는 정말 끼어들기를 하려고 했던 건데요. 어쩌다보니 공동저자가 되었어요.(웃음)

 

짧게 쓰려던 글이 길어진 이유도 있을 것 같은데요.


조유리:신랑의 글이 사랑을 많이 받잖아요. 거기에 제 글이 들어가면 원래 사랑 받는 신랑의 글이 흐려질 거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재미있게 받아치는 정도로 써야지, 했었는데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거예요. 그 중에 신랑이 좋아하는 것도, 공감하는 것도 있었고요. 물론 “뭐야?” 이런 것도 있지만요.(웃음)

새롭게 고백하는 느낌도 있었을까요?


조유리:신랑이 보는 분들한테 쓴다면 저는 신랑한테 쓴 게 많아요. 하고 싶었던 얘기를 말로 하면 너무 부담스럽거나 민망할 때가 있잖아요. 그런 마음을 글로 쓰면 조금 더 가닿지 않을까 생각해서 쓴 글들이 좀 있어요.

 

김재우 저자는 아내의 글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글이 뭐예요?


김재우:사실 제가 아내의 글 중에 가장 좋아하는 글은 이 책 안에는 없어요. 제가 프러포즈를 하고 제가 받은 편지에 울었거든요.(웃음) 그 편지가 사실은 제일 감동적이고요. 책에 담긴 아내의 글 중에는 홍콩에서 아내가 좋아하는 사람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대목이 에요. 그때 제가 한 눈에 반해서 따라다닐 때거든요. 당시에 아내는 그걸 몰랐죠. 그냥 저런 사람이 있구나, 했었을 거예요. 제가 이렇게 스토커처럼 보고 있었다는 것도 모르고 말이에요. 그때는 아내와 말도 거의 안 섞어볼 때였거든요. 저는 공항에서 놀고 있었는데 아내는 그렇게 기도를 하고 왔다는 글을 보니까 새롭더라고요. 같은 시각, 같은 곳에 있었는데 그렇게 달랐구나 싶어서요. 그랬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막상 이렇게 글로 자세히 보니 새로웠어요.

 

함께 하는 책 작업도 처음인데 새롭게 알게 된 면도 있나요? 쓰면서 어땠나요?


김재우:쓰는 내내 정말 재미있었어요. 제가 아내에게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앞에 썼지만 책을 쓴 이유는 딱 하나거든요. 아내의 꿈을 이루어주고 싶은 마음이었는데요. 그것 때문에 하고 있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계속 재미있었죠. 이 사람에게 뭔가 쓸모 있는 일을 하고 있구나, 생각이 드니까요. 설거지도 많이 안 하고(웃음), 고양이 똥도 좀 덜 치우고요. 쓰면서는 제가 좀 많이 부려먹었죠. “어? 그럼 안 쓴다?” 이렇게 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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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마음의 상처


김재우 저자의 인스타그램을 많은 분들이 좋아하는 이유가 일상의 소소한 부분을 잡아낸다는 점일 텐데요. 두 분의 진짜 일상이 궁금해요. 책과 많이 닮아 있나요?


조유리:신랑의 첫인상은 ‘남자다움’이었어요. 운동하는 사람 같기도 하고요. 그래서 감성적인 부분은 별로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요. 생각보다 생각도 깊고, 소소한 면도 있어요. 저는 그냥 지나치는 것들도 신랑은 깊게 생각하거나 상상력을 발휘하기도 해요. 인스타그램에 쓴 걸 보면 저도 깜짝 놀랄 때가 많거든요. 이런 생각을 하는구나, 싶죠. 주변에 글을 좋아하거나 책 좋아하는 분들을 정말 많이 보는데요. 신랑은 심지어 책을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도 아니에요.(웃음) 그런데도 쓴 글을 보면 깜짝깜짝 놀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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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별로 #정리를 #해놓는것 #그게바로 #세계카레전집의길 #지옥의문 2016년 10월 23일(198쪽, 카레도서관)

 

두 분 결혼 소식 기사에 달린 악플 때문에 아내 분이 마음 쓰고 있을 때 남편 분이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주겠다고 안심을 시켜요. 어려운 순간을 맞는 김재우 저자의 태도가 엿보였어요.


조유리:신랑은 기본적으로 엄청 긍정적이에요. 반면 저는 생각이 많은 편이거든요. 뭔가 안 좋은 일이 있으면 그 일에 대해 너무 많이 생각하는 면이 있어요. 신랑은 다르죠. 그 당시에도 신랑이 저에게 어쩔 수 없다, 이미 일어난 일이다, 시간이 지나면 다 잊어버리는 일이다, 별 일 아니다, 그러니까 신경을 끊자, 이렇게 얘기를 하더라고요. 댓글도 아예 보지 말자고요. 사실 저야 평범한 회사원이니까 이런 게 어떤 식인지 몰랐죠. 그런데 악플을 딱 보고 나니까 많이 놀랍더라고요. 아직도 기억나는 게 몇 개 있어요. 5년이 넘었는데 말이에요. 지금은 재미있는 에피소드인데요.(웃음) 막상 그때는 ‘뭐야, 이런 사람도 다 있네’라고 생각하면서도 밤에 잠이 안 오더라고요. 그때 신랑이 큰 힘이 됐죠.

 

김재우 저자는 원래 그런 일이 있을 때 담담하게 넘어가는 편인 건가요? 아니면 아내를 위해서 의연한 척 한 걸까요?


김재우:사실 저는 너무 우여곡절이 많았어요. 잘못한 게 없이 나쁜 이야기를 되게 많이 들어야 했어요. 그렇게 생겼거든요, 사실. 저 사람 옛날에 문제 저지르지 않았나? 그게 제 이미지 중 하나였어요. 데뷔 15년 동안 사고 친 적 단 한 번도 없거든요. 그런데 제 얼굴이 사고 치게 생긴 상이에요.(웃음) 그래서 가만히 있어도 안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죠. 그거야 개그맨으로서 당연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모두가 저를 좋아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러니까 그 전까지는 정말 아무렇지 않았고, 생각도 깊은 편이 아니라 괜찮았는데요. 아내가 그런 얘기를 들으니까 저도 충격을 받았죠. 솔직히 기자 분과 마주 앉아 인터뷰를 하는 게 8년 만에 처음이거든요. 일체 어떤 인터뷰도 하지 않았어요. 저는 상관이 없는데 저로 인해 아끼는 가족들이 욕을 먹으니까요. 지켜야 할 사람이 생기니까 다르더라고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아직까지 긍정적인 에너지로 다 극복해내지는 못한 상황이에요.

 

그런 시기가 있었군요.


김재우:진짜 마음의 상처는 아무도 나를 기다려주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이었어요. 나를 찾는 사람이 없다는 것에 대한 상처가 엄청났거든요. 돈은 못 벌어도 되는데요. 누군가는 나를 기다렸으면 좋겠다고 늘 기대를 했었어요. 그런데 그 기대가 완전히 무너진 상태였고요. 인스타그램도 원래 가입은 했었지만 굳이 하고 싶지 않았어요. 나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이 아예 없었으니까요. 그런데 아내와의 이야기를 하나씩 올리기 시작했더니 우리의 이야기를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생겼어요. 그게 참 좋아요.

 

역시 그러한 직업에 대한 고민도 엿보여요. 이를 아내 분이 많이 이해를 해주시잖아요.


김재우: 5개월 내내 쉰 적도 있어요. ‘쉬어진’ 거죠. 제가 쉰 게 아니고요. 그런데 아내는 단 한 번도 “오빠, 왜 일 안 해?”라는 말을 안 했어요. 왜 돈 안 벌어오느냐는 말을 단 한 번도 안 했던 것 같아요. 유일하게 아내한테 한 번도 못 들어본 이야기예요.


조유리:결혼하고 바로 경제권을 제가 가졌거든요.(웃음) 그러니까 제가 조절이 가능했어요. 계획이 가능하니까 그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안 그랬다면 그런 얘기를 했을 수도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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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이 말하는 의리


일상을 기록하는 것, 어떤 좋은 점도 있었을까요?


김재우:일상을 하나씩 기록하면서 저희 인생이 조금 바뀐 것 같아요. 삶이 바뀐 것 같은데요. 일단은 일도 조금 더 왕성하게 하게 됐고요. 인스타그램은 아내 때문에 시작한 거거든요. 제가 너무 놀고 있으니까 아내가 배낭, 양말을 딱 주면서 “이왕 쉬는 거 쉬는 것처럼 쉬어, 오빠 가고 싶은 데 다 다녀와.”라고 한 거죠. 그 배낭을 메고 여행을 다니면서 인스타그램을 한 거예요. 부산도 갔다가, 전라도도 갔다가, 대구도 갔다가, 하면서 그림일기처럼 쓴 거죠. 그런 몇 년 동안의 시간을 거쳐 삶이 조금씩 바뀐 것 같아요. 그 전까지는 연예인으로서 기가 꺾였었어요. 너무 일이 안 들어오니까요. 인스타그램을 하고 난 뒤에 사람들의 반응도 달라졌죠. 이제는 제 모습을 봐주시는 거잖아요. 정말 그건 돈으로도 못 사는 거거든요. 그게 너무 좋아요. 오늘 있던 사인회에서도 그래서 오신 분들 한 분, 한 분 다 사진을 찍었거든요. 한 분도 빠짐없이 찍은 이유도 감사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인지 아내에 대한 남다른 애틋함 같은 게 있는 것 같아요.


김재우:그건 세상 모든 남편들이 같은 마음 아닐까요? 그런 마음을 얘기하면 ‘멍청이, 그걸 자랑이라고 하고 있냐’라면서 비웃을 것 같은데요.(웃음) 다 그런 거죠.

 

‘럽스타그램’의 대명사잖아요.(웃음)


김재우:아이고, 대부분 아내 디스예요.(웃음)


조유리:만약 인스타그램을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한 거였으면 공감 안 해주셨을 것 같아요. 사실은 인스타그램에 보여준 것보다 실제로 더 잘 챙겨주기도 하고요.

 

결혼 전과 후, 남편이 지금까지 몇 년 동안 전혀 변한 게 없는 건가요? 


조유리:신랑이 처음부터 그 얘기를 했어요. 지금 해주는 것보다 더 잘해줄 수는 없을 수 있다, 그렇지만 지금 해주는 것보다 못해주진 않을 거다, 라고요. 그 얘기를 처음 사귈 때부터 했었어요. 그 말을 들었을 때는 ‘뭐야, 더 잘해줘야지’(웃음) 이런 생각도 했는데요.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으니까요. 신랑은 처음 그때랑 거의 같아요. 책에도 썼는데 ‘우정’, ‘의리’ 같은 얘기를 여자 친구한테 하니까 황당하기도 했거든요. 제가 친구나 후배도 아닌데 말이에요. 그런데 결혼하고 나니까 이 사람이 말하는 의리가 뭔지 알게 되더라고요. 그때만 잘해주는 게 아니라 변함없는 것, 그게 이 사람이 말하는 의리였던 거예요. 저도 살면서 그게 무엇인지를 배웠죠. 

 

만난 지 2년쯤 된 어느 날, 오빠는 “결혼하면 서로에게 꼭 의리 지켜야 해.”라고 말해서 정말 화를 냈어요. 내가 무슨 남동생이나 친구도 아닌데 남녀 사이에 무슨 의리 같은 소리냐며 화를 내고 집으로 돌아왔어요. 결혼한 지금, 문득 그때의 의리에 대해 생각합니다. 함께한 지 8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전화를 자주 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이라면 불평하면서도 해 주는 것, 다른 일보다도 나를 먼저 생각해 주는 것, 이 모든 것이 그가 생각하는 ‘의리’더라고요.(53쪽)

 

사회생활 하면서 존경스러운 분들 많이 만나잖아요. 똑똑하거나 사회적으로 명성 있는 분들 많이 만나는데요. 인격적인 부분이나 사람을 대하는 면에 있어서 사실 가장 많이 배우는 사람은 남편이에요. 잘해줘야지, 하는 생각도 하고요.

 

이런 말씀 들으면 정말 좋으시겠어요.


김재우:아우, 창피해 죽겠어요. 이런 대화를 서로 안 하니까요.(웃음) 매일 장난만 쳤죠. 하지만 굳이 말 안 해도 알 수밖에 없어요. 아내는 저를 너무 많이 바꿔놓았어요. 자신을 제일 잘 아는 사람은 자신이잖아요. 제가 너무 많이 바뀌었어요. 그래서 누구를 만나는 게 정말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죠. 저는 너무 인격적으로 볼품없는 사람이었어요. 그러니까 아내한테 잘할 수밖에 없어요.

 

아내를 만나고 어떤 면이 변했다고 생각하세요?


김재우:예전의 저를 생각하면 진짜 아찔해요. 물론 아까 말씀드린 대로 잘못하고 산 적은 없지만요.(웃음) 범죄를 저질렀다거나 음주를 하거나 이러지는 않았지만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단점들이 있었어요. 그 단점들을 지금 생각하면 아찔한데요. 만약 아내를 만나지 못했다면 변하지 않았겠죠.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을 닮는 법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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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더 재미있게 생각하면


책 인세의 전액을 기부할 예정이에요. 이 아이디어는 어느 분의 것인가요?


김재우:아내도 넉넉지 못한 가정에서 자랐고요. 저 역시 마찬가지예요. 늘 마음속으로 누군가를 도와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렇지만 그렇게 살진 못했죠. 아내가 배낭을 사주면서 했던 말이, 기를 살려주려고 했던 말이겠지만, “오빠는 분명히 다시 일어날 거다. 그때는 좋은 일도 많이 하고 살자.”는 거였어요. 그 이후에 처음 한 기부가 저의 첫 광고로 받은 수익금이었어요. 그때부터 시작을 했고요. 마냥 마음속에 갖고 있던 생각을 이제야 실천하기 시작한 거예요. 저희가 힘들 때 얘기했던 거니까 그건 지키고 싶은 마음이에요. 기분도 정말 좋고요.


조유리:그래도 둘 다 일을 하니까요. 게다가 기부를 하고 나니까 좋았어요. 많은 분들이 고맙다고 말씀도 해주시고요. 또 저희 책 편집자 분이 긴 머리를 단발로 자르셔서 소아암 환자들을 위해 기부를 하신 거예요. 그런 것을 보면서 우리도 기부하길 잘했구나 생각했어요.


김재우:저희가 인세 기부를 안 했다면 여러분들이 이렇게 책을 사주시지도 않았을 거예요. 또 안 했다면 우리 통장에 얼마 들어온다, 정도로 밖에는 못 보는 거잖아요. 그런데 기부를 하니까 몇 명의 아이들을 수술 시킬 수 있다, 이런 생각을 할 수 있게 되니까 좋아요. 첫 광고 수익금을 기부했을 때도 몇 명의 아이들이 방학 기간에 밥을 먹었다, 라는 내용이 오더라고요. 그걸 보니까 돈으로 환산할 수가 없는 보람이 있었죠. 가치가 달랐어요. 지금도 딱 그런 마음이에요.

 

서로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평소에 못했던 쑥스러운 말을 해보면 어떨까요?  


조유리:신랑이 좋으면 늘 저도 좋아요.


김재우:아내가 저를 잘 가르쳐줘서 고맙죠.  

 

조유리 저자의 말은 제목에 담은 말과 같네요.


조유리:그 말을 신랑이 되게 많이 하거든요. 연애하던 시절에도 늘 하던 말이에요. 데이트할 때 “뭐 먹을까?” 하면 대개는 그냥 “너 먹고 싶은 거 먹어.”라고 하잖아요. 저희도 선택을 늘 제가 하니까 처음엔 좋다가도 힘든 거예요. 그래서 “오빠가 좀 해!”라고 했더니 말을 예쁘게 하더라고요. “네가 좋아하고, 맛있다고 하는 거면 나도 좋아.” 이렇게요.(웃음)


김재우:상대의 마음을 조종하는 거죠.(웃음) ‘아’ 다르고, ‘어’ 다른 거잖아요. 이렇게 말하면 화내기도 애매해져요. 이 말은 사실 “너 하고 싶은 대로 해.”와 다를 게 없어요. 

 

독자 분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도 있을 것 같습니다.


김재우:많은 분들이 제 인스타그램을 좋아해주시는 이유는 저희가 잘 살아서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우리랑 똑같이 사네, 라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저희는 그냥 똑같이 사는 이야기를 개그맨인 제가 조금 더 재미있게 푼 것밖에 없어요. 저희가 누구보다 더 잘살고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구보다 더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도 아니에요. 저는 개그맨이라, 워낙 생각 없고 낙천적이라(웃음) 똑같은 일이 있어도 그 일을 행복하고 재미있게 생각하거든요. 다른 분들도 어떤 일을 조금만 더 재미있게 생각하면 삶 자체가 재미있어지고 즐거워질 수 있을 것 같아요. 똑같은 일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인생도 조금씩 달라진다고 생각하고요. 이 책은 그런 책이에요. 재미있게 생각하는 방법을 전해드릴 수 있는 그런 책이니까요. 만약 인생이 우울하다는 생각이 들면 편하게 한 번 보셨으면 좋겠어요.


조유리:저는 사랑에 대한 기대가 별로 없던 사람이에요. 현실주의자라서요. 그러다가 만난 사람이 나 자신을 변화시키고,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이었던 거예요. 또 내가 행복해서 본인도 행복해지는 사람이고요. 그러니까 누구라도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고, 만나셨을 때 알아보고 꽉 잡았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웃음) 그게 이 책에서 제가 하고 싶은 말이었던 것 같아요.


 

 

늘 그렇듯, 네가 좋으면 나도 좋아김재우, 조유리 저 | 넥서스BOOKS
김재우는 수많은 강연에서 ‘내 곁에 있는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 주는’ 그만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손민호 “오름, 우리 사는 꼴과 똑같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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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 오름, 기행』을 읽으며 여행의 기억을 되짚었다. 다랑쉬오름과 성산일출봉, 그리고 가파도. 모두 낯설지 않았다. 그러나 책 속의 이야기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다랑쉬오름은 4?3 사건의 흉터가 남아있는 공간이었고, 성산일출봉은 제주를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만든 일등공신이었다. 제주를 가보았으나 보지 못한 것들이었다. 저자의 말을 빌리자면 “여행은 공감”일진대, 공감에 실패했으니 그곳을 안다고 말하기도 머쓱했다.

 

철저하게 외부인의 시선으로 관망했기에 그랬을 것이고, 단순히 ‘좋다’라는-싱겁기 짝이 없는 감탄만 연발했던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저자의 시선은 제주의 안쪽 깊숙한 곳에 있다. 이곳이 삶의 터전인 사람들, 그들의 눈으로 제주를 바라보고자 했다. 관광지로써 제주는 아름다울 뿐이지만, 살림의 근거지로써 제주는 척박한 땅이다. 저자가 섬 곳곳을 바라보며 이따금 서글픔을 토로하는 것은 그래서다.

 

그가 오름을 좋아하는 이유를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오름은 지지리도 못난 우리네 산이다. 낮고 작아 보잘것없는 우리네 꼴이다”라고 했으니, 애정하지 않을 방도가 없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제주의 오름은, 저자에게 있어 ‘인연’으로 점철된 공간이다. 깊이 마음을 나누었던 故 김영갑 사진작가가 가장 사랑했던 곳이고, 그의 사진을 보면서 “세상의 중심이 내가 아니란 걸”, “압도하는 한라산이 되지 못하고 엎드린 오름으로 사는 인생이 더 많다는 걸” 깨닫게 된 장소다. 그러므로 『제주, 오름, 기행』에 담긴 것은 제주와 오름과 여행에 관한 이야기이고, “결국 인연에 관한 이야기”다.

 

손민호 저자는 20년 가까이 <중앙일보>에서 기자생활을 하면서 팔 할을 문화부기자와 여행기자로 살았다. 그 중 15년은 제주의 오름을 오르내리며 보냈고, 긴 인연의 끝에서 『제주, 오름, 기행』을 썼다. ‘여행자가 한 번쯤 들러봐야 할’ 오름 40곳을 추려내어 역사, 설화, 지질, 문화 등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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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와 오름과 여행의 이야기


부제가 독특해요. “제주를 두 번째 여행하는 당신을 위한 오름 40곳”인데요. 직접 지으셨나요?

 

그럼요. 제목도 부제도 직접 지었어요. 원래 제목은 ‘제주, 오름, 여행’이었는데, 『제주 오름 여행』이라는 책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쉼표가 있는 게 다르지 않느냐고 했더니, 쉼표는 검색이 안 된대요. 그래서 기행이라는 단어가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바꾸게 됐어요. 이건 제주에 관한 이야기이고, 오름에 관한 이야기이고, 여행에 관한 이야기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쉼표를 넣었고요. “제주를 두 번째 여행하는 당신”이라는 표현은, 많은 사람들이 제주도를 가고 그래서 다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의미죠. 제주도를 가면 당연히 찾는 곳들이 있어요. 파리의 에펠탑,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 서울의 남산처럼 당연히 가는 곳이 있는 거죠. 그런데 두 번째 여행부터는 각자 취향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 같아요. 한 발 더 깊게 들어가게 되고, 제주도가 조금 더 궁금해지기도 하죠. 그런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도 오름을 간 적이 있지만, 이렇게 많은 이야기들이 있는지 몰랐어요. 책을 읽고 나서 다시 가면 분명 새롭게 보이는 것들이 있을 것 같아요.


여행기자 생활을 오래 하면서 안타까웠던 부분이에요. 이런 콘텐츠가 제대로 정리가 안 되어 있거나 없다는 거죠. 그리고 사람들이 해외여행을 갈 때는 공부를 많이 하잖아요. 여기에 가면 이걸 꼭 봐야 된다, 하는 것들도 미리 알아보고요. 그런데 제주도에 갈 때는 그렇지 않죠.

 

 

제주와 인연을 맺은 지 15년이 되신 거예요?


여행기자로 찾아간 게 그렇죠. 그 전에도 개별적으로 여행을 가기는 했지만, 그건 잘 모르고 다닌 거고요. 정치부 기자에게 가장 중요한 출입처가 국회이듯, 한국에서 여행기자에게 제일 중요한 출입처는 제주도예요. 그래서 처음부터 제주도를 다니게 됐고, 그러다 보니까 알게 된 거예요. 중요한 건, 그 과정에서 인연이 쌓이게 된 거죠. 인연 때문에 더 가게 됐고, 더 사랑하게 됐어요. 지금까지 100번을 넘게 갔고, 작년에는 18번인가 간 것 같아요.

 

아직도 제주에 대해 모르는 게 많다고 생각하세요?


이건 제주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고, 모든 여행 기자가 마찬가지일 텐데요. 갈수록 넓어져요. 이를테면, 거의 모든 사람들이 제주도를 가봤다고 이야기하잖아요. 그런데 제주에도 제주시가 있고 서귀포시가 있죠. 성산이 있고, 중문이 있고, 월정리가 있어요. 동네마다 다른 거예요. 그래서 제주도 갔다고 이야기하지 않고, 이번에는 어느 지역을 다녀왔다고 이야기하는 거죠. 한라산에도 등반 코스가 크게 5개가 있어요. 한라산을 많이 다니는 사람들은 ‘이번에는 어리목을 갔다, 영실을 갔다, 성판악을 갔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해요. 갈수록 넓어지는 거예요.

 

책에 소개된 오름이 40개인데요. 이곳들만 제대로 봐도 상당히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책을 쓴 입장에서는 조금 아쉬워요. 지금 제주에 368개의 오름이 있다고 하는데, 돌아가신 김종철 선생님이 『오름나그네』에서 320개를 다루셨어요. 두꺼운 세 권짜리 책인데, 일종의 사전과 같은 거죠. 그런데 368개 오름 중에서 100개 정도는 동네 야산 같이 작은 것들이기도 하고, 사실 여행지로써 의미가 있는 건 60~80개 정도가 아닌가 생각했어요. 그 가운데에서 40개만 추리는 작업을 먼저 했고요. 책에 쓰지 못한 오름들이 있는데, 66개 정도 쓰면 여행지로써 갈 만한 데는 다 이야기한 것이 아닐까 싶어요.

 

오름이 발생한 역사부터 설화, 지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여행이 그런 거죠. 알 것들이 정말 많은 거예요. 음식과 관련된 이야기들도 있어야 되고요.

 

 

개인적으로 설화를 흥미롭게 읽었는데요. 책에 쓰셨듯이 “전설과 설화만 엮어도 흥미로운 제주 여행 콘텐츠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그리스를 갈 때 그리스 신화를 달달 외워서 가잖아요. 제주도에도 흥미로운 신화들이 많고 그럴듯하고 재밌는 이야기들도 많은데, 따로 찾아보지는 않아요. 그게 안타까운 거죠. 아직까지 한국의 관광 정책, 관광 산업에 문제가 많은 거예요. 여행기자로서 할 이야기가 많은데, 신랄하게 이야기했다가 편집 과정에서 들어낸 부분도 있어요(웃음).

 

기자님의 불만이 보이기는 했어요(웃음).


이 책을 쓴 저자는 둘이에요. 하나는 제주도와 개인적인 인연을 쌓은, 혹은 제주올레를 애정 하는 여행자 손민호의 자아고요. 또 하나는 여행기자로서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분석하고, 독자한테 정보를 알려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자아예요. 두 번째 자아로서 할 이야기는 정말 많죠. 관광이라는 분야가 문화체육관광부에 속해 있잖아요. 관광을 문화적인 콘텐츠 차원에서 바라본다는 게 한국 정부의 인식인 거죠. 그런데 지금의 관광은 오로지 산업, 돈 버는 것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어요. 예산이 배정돼도 다 인프라로 들어가죠. 안타까워요. 예산의 1/10만 콘텐츠에 활용돼도 좋을 것 같다는 아쉬움이 있어요.

 

 

책을 읽으면서 깨달은 게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제주를 찾지만 단순히 ‘소비’하는 데에만 그친다는 거예요.


그렇죠. 객체로써 소비되고 있다는 부분이 제일 안타까운 거죠. 오름을 가는 사람들이 많은데, 대부분 아무것도 모르고 올라갔다가 내려오잖아요. ‘경치 좋다’ 하고는 끝이에요. 요즘 예능 프로그램에도 오름이 나오던데 ‘올라갔더니 참 좋더라’ 하고 끝이더라고요. 그게 아쉬운 거죠.

 

제주의 지질학적, 역사적 가치를 생각하면서 찾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싶습니다. 저도 반성을 많이 했고요(웃음).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거죠. 우리의 문화적 가치도 담겨 있고, 역사적인 흔적들도 있잖아요. 함덕 해변을 예로 들면, 수심이 얕고 해안이 평편해서 어린이들이 놀기에 가장 안전한 해변 중 하나예요. 그런데 바로 그 옆에 있는 서우봉이 4?3 사건 때 가장 끔찍한 일이 벌어졌던 현장이라는 사실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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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갑, 제주, 오름


책에 실린 감상의 밑바닥에는 슬픔, 연민이 자리하고 있는 것 같아요. 이유가 있을까요?


갈수록 그런 것만 보여요. 이제 나이가 먹어서 그런지, 지지리 궁상으로 사는 모습만 보여요. 우리가 사실 그렇게 살기도 했고요. 전 세계 어디를 가도 마찬가지예요. 여행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공감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네들이 사는 모습을 보러 가는 거잖아요. 우리한테는 풍경인 건데, 풍경이라는 단어에는 객체와 주체의 거리가 있어요. 그런데 여행을 하는 건 그 안으로 들어가서 내가 풍경 안에 자리하는 거잖아요? 또 다른 관찰자가 봤을 때 나는 그 안에 있는 거죠. 그러려면 거리가 없어야 되니까, 가까이 가서 보게 되고 그들에 먼저 공감하게 되는 거예요.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던 사정들, 사연들, 과정들이 보이고 이해되고 같이 울게 되는 거죠. 여행은 결국 공감이라는 걸, 늘 생각해요. 그들의 일상으로 들어가는 것이 여행이라고요. 이건 저 혼자 하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임재천 사진작가의 책 제목도 『나의 도시, 당신의 풍경』이잖아요. 비슷한 맥락이죠. 당신들에게는 풍경이지만 우리에게는 일상이라는 거예요.

 

설문대할망 설화가 종종 등장하는데요. 제주 사람들에게 생존 자체가 큰 숙제였다는 걸 알게 됐어요.


인문학적으로 그렇죠. 모든 신화는 다 상징이잖아요. 고도화된 의미 체계들이고요. 그런 것들을 가만히 보면 알게 돼요. 왜 설문대할망은, 거대한 여신인데도 불구하고, 계속 일만 할까요? 말이 안 되잖아요. 사람들을 노예로 부릴 수도 있는데, 혼자 일을 다 한 거잖아요. 거기에는 제주 할망들의 삶이 투영되어 있는 거죠. 그렇게 큰 신도 제주에서는 노동을 해야 살 수 있다는 의미로 볼 수 있어요. 그걸 누가 가르쳐준 적은 없지만, 현장에서 보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알게 된 거예요.

 

‘나다, 살다, 들다, 걷다, 울다’라는 다섯 가지 주제로 오름을 구분하셨어요.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다섯 가지 동사잖아요. 동사는 사람들, 생명체가 하는 거죠. 사람의 이야기이고 우리의 이야기인 거예요. 오름을 하나의 대상으로 보는 게 아니라 우리 삶의 일부분으로 본다는 의미죠. 결국 이 책에 담고 싶었던 것은 제주와 제주 사람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사람에게 붙이는 동사로 구분하자는 생각을 했어요. 많은 동사 중에서 어떤 걸 선택할까 고민이 많았는데, 지금처럼 ‘나다, 살다, 들다, 걷다, 울다’로 정하길 잘한 것 같아요. 제 나름대로 오름을 이해하는 방식인 거죠.

 

故 김영갑 사진작가와 만나신 후에 오름이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나요?


제주도 자체가 다른 의미로 다가왔어요. 그 와중에 오름을 더 보게 됐고요. 제주도를 갈 때마다 거의 대부분은 오름밭을 헤매고 다니면서 시간을 보낸 것 같아요.

 

두 분이 함께한 기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고 하셨어요. 짧은 시간 동안 깊이 가까워지고 영향을 많이 주고받으셨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나요?


글쎄요. 가까워졌을까요. 2003년도 9월인가, 제주도에 취재 갔을 때 처음 만났고요. 그 자가 2005년 5월에 세상을 떠났으니까, (알고 지낸 시간은) 18개월 정도 되는 거죠. 그 와중에 제주도 출장을 갈 때마다 늘 시간을 내서 만났어요. 제가 많은 영향을 받은 거예요. 너무 갑자기 가버려서 황망했죠. 지금도 김영갑과 관련된 추모사업이라든지 여러 일들은 당연히 제가 해야 되는 일처럼 인식이 돼요. 죽고 난 뒤의 인연이 한참 더 길어진 거죠. ‘김영갑’으로 시작하는 기사보다 ‘故 김영갑’으로 시작하는 기사를 더 많이 썼어요. 그게 제일 아프죠.

 

처음 겸상을 하셨던 때의 이야기를 보면, 김영갑 작가님도 기자님을 가깝게 느끼셨던 것 같아요.


사람이 친해지는 데 시간은 큰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진실성, 진심이 더 크게 작용하는 것 같아요.

 

김영갑 작가님의 사진을 보셨을 때, 오름이 다르게 보이셨어요? 같이 오름에 올랐을 때 느낌이 남달랐나요?

 
그때는 이미 루게릭병이 한참 진행됐을 때라 같이 오름을 다니지 못했어요. 이야기만 해주고 갔다 오라고 하거나, 오름 아래까지 동행하는 정도였죠. 올라가지 못했어요. 일상생활도 거의 제대로 안 되고 있는 상황이었으니까요. 김영갑이 찍은 사진을 보면 ‘저게 뭐지?’ 싶었죠. 언젠가는 한 시간 동안 사진 하나만 쳐다본 적도 있어요. 혼자 주저앉아서 멍하게 사진을 본 적도 있고요. ‘이게 뭐지? 저 자는 도대체 뭘 말하고 싶었던 거지? 뭘 보고 싶었던 거지? 뭘 찍고 뭘 담고 싶었던 거지?’ 그러면서 오름을 하나씩 찾아다니기 시작했죠.

 

다른 작가의 오름 사진과 달리 김영갑 작가님의 작품에서 발견되는 게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이해죠. 대상에 대한 이해. 김영갑 사진의 제주는 참 심난해요. 바람도 많이 불죠. 그래서 김영갑을 말할 때 ‘제주의 바람을 찍고 간 사진작가’라고 흔히 상용구로 쓰는데요. 김영갑 사진을 가만히 보면 피사체가 하나예요. 다양한 풍경들이 쭉 나와 있는데, 그 풍경들을 그림 같다고 했을 때, 김영갑은 그림은 이미지를 그리면 되는데 사진은 그게 안 된다고 말했어요. 그러면 운이 좋아서 포착했을까요? 아니죠. 그냥 기다린 거예요. 그건 허구한 날 거기 살았다는 거잖아요. 그때는 길도 없을 때예요. 걷기 여행이라는 게 자기의 두 발로 뚜벅뚜벅 걸어서 들어가는 거잖아요. 다른 방법이 없는 거예요. 이건 저한테도 중요한 삶의 가르침이 된 건데요. 이 험난한 세상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데에는 방법이 없는 거예요. 힘들지만 어쩔 수 없는 거죠. 발에 물집이 잡히고 굳은살이 베기고 무릎이 나가도, 어떻게 하겠어요. 걸어서 가야죠. 김영갑이 그렇게 살았고 그렇게 사진을 찍었어요.

 

김영갑 작가님이 직접 봤을 법한 풍경도 촬영하셨죠? 책에 실려 있고요.


그렇죠. 김영갑 시선을 최대한 반영한 거죠. 김영갑이 찍은 많은 사진들을 제가 봤고, 전시가 되지 않은 것들도 많이 봤어요. 그러면서 김영갑 시선에서 제주를 보고, 특히 오름을 많이 보려고 노력했죠. 그런 시선이죠. 김영갑의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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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름은 우리 사는 꼴이잖아요


오름이 거창하지 않은 존재라서 동질감을 느끼시는 것 같아요. 안쓰럽게 바라보시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렇죠. 딱 우리 사는 꼴이잖아요. 어렸을 때 우리는 자기가 다 한라산인 줄 알았는데, 어느 정도 살아 보니까 한라산이 없는 거죠. 그냥 이름 없는 낮은 산 정도라고 할까요.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어떤 오름을 가는지도 모르고 올라가잖아요. 지나가면서 수없이 많은 오름을 보면서도 어떤 오름인지 모르고요. 그게 우리가 거리에서 사람들을 지나쳐가는 것과 비슷한 것 같아요. 각자가 소중한 하나의 세상이고 우주인데, 모르고 그냥 지나가잖아요. 저도 이제 쉰이 다 되어가니까 그런 게 보이는 거죠. 이런 이야기를 서문에 썼는데, 제 또래 독자들은 읽고 많이 울었다고 하더라고요. 젊은 독자들은 김영갑의 이야기를 읽고 울었다고 하는데, 40대 후반이나 50대의 독자들은 서문을 읽고 많이 짠했다고 해요. ‘아재궁상’이라는 이야기도 하고요(웃음). 지금 딱 제 심정, 심상, 감상인 것 같아요. 30대에는 절대 쓸 수 없는 이야기잖아요. 만약 그때 오름에 대해서 썼다면 다른 식으로 썼겠죠.

 

바깥의 시선으로 보면 여행기자는 최고의 직업인 것 같아요. 여행이 곧 밥벌이니까요. 하지만 고단하게 느껴지실 때도 있겠죠?


고단하죠. 문학 담당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어요. 사람들이 보면 시집, 소설책이나 읽고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기자 입장에서는 그게 밥벌이고 일인 거죠. 여행도 마찬가지예요. 어디에서 무엇을 취재할 건지 모든 계획을 세워놔야 하죠. 물론 출장 갈 때는 잠깐 개운한 기분이 들기는 하지만, 현장에 가면 똑같은 취재인 거죠. 바람이 있다면, 카메라를 내려놓고 한 번 걷고 싶다는 거예요. 가끔, 정말 마음에 드는 숲길에 대해서 기사를 쓸 때 이런 표현을 종종 썼어요. ‘혼자 이 깊은 숲길을 아무 생각 없이 걷고 싶다’, ‘그때는 카메라를 놓고 오고 싶다’고요. 그런데 저한테는 밥벌이니까 그럴 수 없는 거예요. ‘이 숲길에서 느끼는 정서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사진을 어떻게 찍어야 할까’ 생각하는 거죠. 그 숲길을 보여주기 위해서 다른 산에 올라갈 때도 있어요. 이건 일이죠. 즐기는 게 아닌 거죠.

 

여행기자는 어떤 여행을 떠날지 궁금해요. 일하지 않는 시간에 말이죠.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어디가 제일 좋아요?’라는 건데요. 그건 질문이 잘못됐어요. 여행은 ‘where’의 문제가 아니라 ‘with whom’의 문제예요. 누구랑 같이 가느냐가 제일 중요해요. 부모님을 모시고 갈 때 산을 넘어갈 수는 없잖아요. 애인이랑 같이 갈 때, 혼자 갈 때, 친구들이랑 놀러갈 때, 다 다르잖아요. 저는 두 아이의 아빠로서 모든 휴가 여행의 스케줄은 아이한테 맞추게 되죠. 어쩔 수가 없어요. 아이들이 원하는 곳, 좋아하는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데 몇 가지 추천을 해요. 학교에서 신라시대를 공부했다고 하면 ‘경주에 갈래? 경주에서 보고 싶은 게 뭐야?’ 하고 물어봐요. 아이들이 원하는 걸 적어오면 그걸 보고 스케줄을 짜주고요. 그렇게 해서 경주를 다녀온 적이 있어요.

 

자녀들과 오름을 가신 적도 있나요?


서우봉 아래에는 갔었죠. 함덕해변을 갔었거든요. 서우봉 꼭대기는 가파르기 때문에 가기 어려웠고, 중턱까지 올라갔었어요. 거기에서 내려다보는 포인트가 있거든요. 송악산도 같이 간 적이 있어요. 송악산은 평편하니까요.

 

여행기자가 아닌 여행자로서, 오름을 즐기는 방식은 어떤가요? 책을 보면 오름밭에 누워 계실 때가 많더라고요(웃음).


맞아요. 지금은 용눈이오름을 찾는 사람들이 워낙 많은데, 그래도 괜찮아요. 아침 일찍, 아니면 저녁 때 돗자리 하나 갖고 가셔서 펼쳐놓고 누우면 돼요. 오래 있을 필요도 없어요. 그러고 있으면 바람 소리가 들려요. 풀 소리가 들리고요. 전혀 다른 느낌이죠. 꼭 한 번 해보세요. 용눈이오름을 추천하는 이유는 완만하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드러누울 때가 많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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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같은 시기에 제일 좋은 여행지는 어디인가요?


11월이 제주도 여행하기 제일 좋을 때예요. 일단 비수기여서 제주도에 사람이 가장 없고요. 수학여행도 거의 안 와요. 더 중요한 건, 제주도는 단풍 섬이 아니라 억새 섬이라는 거죠. 지금이 억새가 제일 예쁠 때예요. 억새밭이 다 오름밭이라서, 11월은 오름 여행에 최고 좋은 때이기도 해요. 특히 지금 따라비오름에 가면 압권이에요. 책에 실린 (억새) 사진도 다 11월에 찍은 거예요. 그리고 10월 하순부터 노지 감귤이 나오거든요. 마을에 다니면 다 노란 감귤이에요. 지금이 감귤 색깔이 가장 예쁠 때죠. 중산간에 가면 억새가 은빛으로 반짝이고요. 또 겨울은 생선이 제일 맛있을 때잖아요. 이때부터 삼치, 방어가 올라오죠. 곧 모슬포에서 방어축제를 할 거예요. 여러모로 지금이 제주도를 여행하기에는 최고죠. 사람도 붐비지 않는 시기고요.

 

좋아하는 곳일수록 나만 알고 싶기도 하잖아요. 책을 쓰시면서 걱정은 안 하셨어요? ‘사람이 너무 많이 몰리면 어떡하지?’ 하고요.


그런 건 없었어요. 이미 망가진 걸 보고서 책을 내야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용눈이오름에 있는 레일바이크를 보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어요. 사실 레일바이크는 강원도 정선에서 폐선로로 만든 건데, 제주도는 철도의 역사가 없는 곳이거든요. 그냥 의미 없이 만들어 놓은 거고, 용눈이 오름을 그냥 지나가는 풍경으로써만 소비하는 거죠. 그런 아쉬움 때문에 책을 쓰게 된 부분도 있어요. ‘용눈이오름까지 가서 레일바이크만 타지 마시고, 여기도 꼭 한 번 올라가 보세요’ 하고 싶었던 거죠. 그리고 마지막까지 고민했던 게 둔지봉이었어요. 책에서 뺄까 잠깐 고민했어요. 김영갑이 마지막까지 떠올렸던 곳이기도 하고, 중산간은 개발되지 않은 풍경이거든요. 그런데, 언젠가는 바뀌겠죠. 제 것이 아니니까요.


 

 

제주, 오름, 기행손민호 저 | 북하우스
오름이라고 다 같은 오름이 아니어서 중산간 오름, 올레길 코스에 포함된 오름, 독특한 화산 지형으로 중요한 오름 등 저마다 흥미로운 사연이 깃들어 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탁환, 이원태 “백범 김구는 대장 김창수의 시절을 짚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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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가 김창수로 불리던 청년 시절, 명성 황후의 복수를 하겠다며 일본인을 죽인 사건이 있었다. 치하포 사건이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남았지만, 이후 백범 김구가 인천감옥소에 갇혀 사형 선고를 받았다는 사실은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 소설가 김탁환과 방송사 PD 출신 기획자 이원태는 김창수가 감옥에 갇혔던 순간을 주목했다. 가려진 백범 김구의 이야기를 세상에 드러내고 싶었다.


둘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온 창작 집단 ‘원탁’은 하나의 이야기를 장편 소설, 모바일 웹 소설, 영화, 드라마 등 모든 형태로 만들고자 한다. 이제까지 영화(무비)와 소설(노블)을 합친 ‘무블 시리즈’로 <조선 누아르, 범죄의 기원>, <조선 마술사>, <아편전쟁>에 이어 <대장 김창수>까지 네 번째 작품을 세상에 선보였다. 특히 이번 <대장 김창수>는 이원태가 직접 영화의 감독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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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의 가치를 높이는 일


두 분은 어떻게 작업을 같이하게 됐나요?

 

김탁환 : 전에는 텍스트 작업과 영상 작업이 서로 다른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나중에 제가 하는 소설 쓰기와 이원태 감독이 하는 영상 작업이 결국 이야기를 통해 콘텐츠의 가치를 높이는 일이라는 점에서 비슷하다는 걸 알게 됐죠. 마침 각자의 회사에서 나오는 시기가 겹쳐서 같이 뭔가 해보자 했어요.


이원태 : 제가 먼저 회사를 나왔는데, 김탁환 작가가 멀쩡히 잘 다니던 학교를 나오겠다고 해서 걱정을 많이 했어요. 우리 나이가 딱 마흔 될 즈음이었거든요. 작품에 몸을 던지고 싶은 기분이 있어서 가능했죠.


‘무블 시리즈’를 간단하게 소개한다면.


김탁환 : 보통은 소설을 완성하고 출간한 다음 드라마나 영화를 하는 사람들이 소설을 기반으로 영화를 만들어야겠다 하잖아요. 우리는 기획과 초고가 완성되면 일단 영화 산업 관계자들에게 보여주고 영화화가 결정되면 소설과 영화를 만들었어요.

 

이원태 : 아예 처음부터 두 마리 토끼를 잡자, 하지만 일단 영화가 가능한 걸 먼저 하자는 콘셉트였어요. 영화나 소설이나 픽션과 팩트 사이에서 인간들의 심리와 갈등과 재미를 다루는 점은 똑같잖아요. 애초에 영화가 될 만한 걸 먼저 만들어보자는 거죠.


‘원 소스 멀티 유즈’라는 말로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이원태 : 시대가 그런 것 같아요. 좋은 콘텐츠가 중요하지, 콘텐츠가 어떤 형태로 발현되는가는 두 번째 문제니까요. 실제로 <조선 마술사>는 드라마 제작사에서 아직도 가끔 연락이 와요. 좋은 이야기를 가지고 있으면 드라마나 영화, 공연, 뭐로든 다 할 수 있어요.


이제까지 함께 만든 이야기가 네 편이에요. 지금 활동을 스스로 평가해본다면요?


이원태 : 중간 점검 단계인 것 같아요. 네 작품 모두 영화 판권을 계약했어요. 그런데 아이템이 좋다고 확신했던 것만큼 물리적으로 영화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어서 이 방향이 맞을까 하는 고민이 있어요. 앞으로 같이할 기획도 다루기 어려운 아이템에 꽂혀 있어서 고민이죠.


김탁환 : 각자 성향은 섬세하고 여린데, 둘이 있으면 계속 센 것만 하게 돼요. 스케일이 큰 시대물에 특장점이 있고, 같이 만들면서 상승효과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우리 작품을 사 가는 사람도 그 점을 염두에 두는 것 같은데, 만들다 보면 이야기의 덩치가 너무 크니까 힘들어하죠.

 

정답이 아닌 균형점을 찾아서


이원태 감독님은 <대장 김창수>가 영화로는 데뷔작이에요.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한 영화이기도 하고, 부담이 심했을 것 같아요.


이원태 : 글을 쓰고 연출하는 건 부담이 별로 없었어요. 역사물이라고 해서 부담이 있는 것도 아니었어요. 실존 인물이 워낙 큰 인물이다 보니 백범 김구를 작품화한다는 것 자체가 부담이었죠. 시나리오도 처음에는 장르성이 명확하게, 재미있게 썼다가 지웠어요. 너무 드라마틱하게 만들어놓으면 실존 인물을 훼손할 수도 있으니까요. 한편으로는 하고 싶은 이야기 만들려고 영화 하는데, 겁나서 못 할 건 없다는 고집도 동시에 들더라고요.


역사적 사실과 재미 가운데서 어떻게 결론이 났나요?


이원태 : 재구성을 해서 영화적 재미를 높이면 원 인물을 훼손한다는 부담이 있고, 장르성을 줄이고 실제 이야기를 많이 넣으면 또 영화가 재미없어지는 거죠. 중간 지점으로 균형을 맞춰야 하는 상황에서 계속 각색을 하다 보니 제가 감당할 만한 균형점이 생기더라고요. 이 이상은 재미를 양보 못 하고, 이 이상은 역사를 못 건드린다는 균형점이요. 정답인 균형점이 아니라 제가 감독으로서 감당하는 균형인 거죠.


김탁환 작가님은 재미와 의미 둘 중에 하나를 고른다면요?


김탁환 : 재미도 있고 의미도 있게 해야죠. 이야기 자체가 사람을 끄는 힘이 있어야 하니까요. 『대장 김창수』는 사형까지 갔다 살아남아 탈옥하는 두 가지를 굉장히 짧은 시간 안에 펼쳐요. 세계 역사상 두 가지를 이렇게 짧은 시간에 한 건 백범 김구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 두 가지만 쥐고 있어도 엄청나게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오죠. 재미를 살리려고 소설 쓰면서 1인칭으로 할 건지 3인칭으로 할 건지 고민했어요. 그냥 1인칭으로 쓰면 차라리 『백범일지』를 봐야 할 것 같고, 3인칭으로 하면 청년 김창수의 내면을 드러내기 힘드니까요. 김구의 마음과 이영달(조선인이지만 어쩔 수 없어 친일을 택한 인천감옥소의 간수)의 마음을 둘 다 느껴야 설득이 된다고 생각해서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도 아니고 1인칭 김구 시점도 아닌, 김구와 이영달의 회고를 섞었어요.


등장인물도 달라졌어요. 의료 과장 조경신이 소설에서만 나왔다면, 영화에서는 독립신문 기자 한영희가 있었어요. 이영달은 소설과는 달리 영화에서 악독한 인물로 나오죠.


이원태 : 시나리오에서는 극적 구성이 더 필요하니까 인물이 변화하는 진폭이 더 커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소설은 분량이 영화보다 한계가 덜하니 사람의 내면을 글로써 표현할 수 있지만, 영화는 어떤 사건과 인물 사이의 갈등으로 사람을 표현해야 하니까 아무래도 사건을 더 강조하고 변곡점을 강조할 수밖에 없죠. 그래서 이영달 캐릭터가 영화에서 세졌어요.


영화에서는 강형식이 박동구나 이영달보다 주목받은 느낌이에요.


이원태 : 강형식이 전형적인 친일파로 보이는 게 싫었어요. 일제강점기 10여 년 전, 어디에 붙어야 잘살지 고민하는 캐릭터였어요. 잘산다는 게 개인의 욕심도 있고, 우리나라가 어떻게 잘살지 고민하는 것도 있는 거죠. 망해가는 나라의 엘리트 지식인이 일본을 이용하려는데 감옥의 인간 같지 않은 놈들은 협조하지 않는 부조리한 상황에 놓여 있다면 저라도 그렇게 행동했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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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 김창수>, 영화의 뒷편


주역인 조진웅 씨도 처음에는 역할이 부담스러워서 고사하셨다고 들었어요.


이원태 : 저와 같은 이유에요. 처음 시나리오 기획할 때 제가 할 자격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처음부터 들었거든요. 배우는 자기 이름과 얼굴을 전면에 내세워서 해야 하니까 부담이 더하죠. 그래서 3년 정도를 미뤘는데, 그 사이 조진웅 씨가 배우의 아우라가 잡히면서 어느 순간 자신이 생겼던 것 같아요. 투자사에서도 조진웅 씨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면 충분히 투자가치가 있다고 판단했고요. 그게 맞물리는 시기가 오더라고요.


이경영, 이선균, 박소담 씨 등 특별 출연, 우정 출연한 배우가 많아요.


이원태 : 이경영 배우는 시나리오를 보고 이런 영화는 해야 한다면서 쉽게 출연하겠다고 결정했어요. 이선균 배우는 조진웅 배우와 워낙 친해서 주저 없이 하겠다고 했고, 박소담 배우도 하고 싶다고 해서 들어왔어요. 원래 배우들이 특별출연 잘 안 하려고 해요. 다들 영화의 의미를 좋게 봐주셔서 그랬던 것 같아요. 고 진사를 맡은 정진영 배우도 어떻게 보면 분량이 적은데 흔쾌히 수락했어요.


영화의 결과와는 상관없이 빚을 진 셈이네요.


이원태 : 빚이라기보다, 인연이 생긴 거죠.


조진웅 배우에게 『백범일지』를 읽지 말라는 말도 하셨다면서요.


이원태 : 처음 만난 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첫 번째 하지 말아야 할 일이 『백범일지』를 읽는 일이라고 했어요. 김구 선생은 성정이 센 분이라, 글도 되게 세요. 자부심도 강하고 잘못했다고 말하는 것도 없어요. 저도 시나리오 쓰면서 그 글에 영향을 받고 너무 힘들었거든요. 그동안 힘든 건 나로 족하니까 배우는 시나리오 안의 김창수만 보고 해석하길 바랐어요. 다른 책을 참고하라고 줬었죠.


예를 들면 어떤 책이었나요?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가 도움이 많이 됐어요. 언제 죽을지 모르는 극한의 상황에 놓인 사람들의 감정을 읽는 데 도움이 많이 됐어요. 신영복 선생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일부 필사도 했어요. 『김대중 자서전』도 사형선고를 받았다가 집행이 풀리는 부분까지 몇 번을 읽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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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이야기

 

‘원탁’이 생각하는 좋은 이야기는 무엇인가요?


이원태 : 시대의 아픔과 인생의 부조리를 다룬 이야기를 평생 쓰고 싶어요. 살아보니까 인생이 참 마음대로 안 되는 부조리의 시간이더라고요. 타인을 왜곡하고 나 자신도 왜곡하는 불안정한 사람들이 섞여 있으니 부조리할 수밖에 없어요. 시대의 병폐와 인생의 아이러니를 드러내지 못하는 이야기는 쓸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해요.


김탁환 : 읽는 사람을 흔드는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작품을 읽고 마음이 흔들려서 자기가 확고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계기를 가지게 하는 이야기요.


작가님은 아무래도 소설 쪽에 더 애정이 가지 않나요? 원작으로 썼던 이야기가 영화로 나오면 기분이 어떤가요?


김탁환 : 소설의 상상력은 돈이 안 드니까 무한대잖아요. 영화나 드라마는 자금 압박이 있으니까 제가 상상한 것과 비슷하게 가지는 못하죠. 그래도 다른 소설가가 열 받는 것보다는 훨씬 덜할 거예요. 영화 작업에 관심을 가지고 많이 이해하는 편이니까요.


그런데도 영화 작업을 계속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김탁환 : 영화에 매혹돼서 그런 거겠죠. 영화를 좋아하고 영화로 만들어보고 싶은 이야기가 계속 떠올라요. 소설보다 영화가 어렵다는 생각은 많이 해요. 소설은 영화보다 제한이 없기 때문에 마음대로 쓸 수 있잖아요. 영화는 시간과 돈의 제약을 주고 그 안에서 최선을 다해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상반된 방식인 것 같아요. 여러 사람이 힘을 합쳐야 하고 과정도 아주 어렵죠. 처음에는 영화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요새는 영화를 이해하고 싶다고 생각해요. 감히 내가 영화를 한다기보다 영화를 이해하면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 데 훨씬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은 거죠.


서로 영화와 소설을 보면서 느낀 점이 있나요?


김탁환 : 영화를 보고 원태가 나보다 착하다고 생각했어요. 영화가 소설보다 따뜻하더라고요. 소설은 훨씬 더 난폭하고, 사람들 더 많이 두들겨 패고, 극단적이고 차갑거든요.


이원태 : 12세 이상 관람가였기 때문이지 제가 착한 건 아니에요. (웃음)


만일 실제 김창수, 백범 김구가 소설을 읽고 영화를 본다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요?


이원태 : 김구 선생님의 직계 유가족, 손자분들이 오셔서 영화를 보셨는데 정말 고마워하시더라고요. 할아버지가 정말 그런 말을 했을 것 같다고 말해주셨을 때 행복했어요. 헛짓은 안 했구나 싶어서 너무 다행이었죠. 김구 선생님도 마찬가지로 좋아하실 것 같아요.


김탁환 : 『대장 김창수』에서 『백범일지』보다는 보편적으로 감옥 이야기를 다뤘어요. 흔히 보는 역사소설의 방식이 아니라 장르 문법과 스타일이 들어가 있기 때문에 좋아하실지는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쓰다 보니 희망에 관해 이야기하기보다 처절한 절망에 관해 몸과 마음으로 느끼는 내용이 핵심이더라고요. 쓰다 보니 점점 어둡고 차가운 이야기가 되었어요. 절망의 바닥으로 내려가는 부분은 잘 썼다고 하지 않으실까요?


‘대장 김창수 2’가 나올 수도 있을까요?


이원태 : 배우들이랑 제작자가 만들자고 이야기해요. 관객은 많이 안 들었는데 지수는 높았거든요. 제작자가 세계 최초로 ‘원’이 안 됐는데 ‘투’가 나오는 영화가 되게 해주겠다고 했는데, 힘들어서 못 할 것 같아요.


김탁환 : 김구 자체는 이야기 가치가 높은 사람이죠. 지금 낸 책 분량으로 서너 권은 더 다룰 만한 이야기가 있는데…… 고민이에요.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


“주인공을 정할 때 추상적인 질문을 던지고 답을 줄 법한 대상을 찾는다”라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김창수는 어떤 질문에 대한 답으로 나온 사람인가요?


김탁환 : ‘어떤 국가를 만들 것인가?’였던 것 같아요. 그 질문 아래서 김창수가 유학, 동학, 기독교, 불교 등 모든 사상을 받아들이면서 조선 다음에 어떤 국가가 나와야 하는지 고민한 거죠. 그것도 책을 통해 접하는 게 아니라 이거다 싶으면 몸을 던지는 형태로요. 동학이다 싶으면 동학에 몸을 던지고, 의병이다 싶으면 죽을 뻔해요. 그 경험이 왕조나 제국이 아닌 민국의 형태로 상해임시정부를 시작하는 어떤 거대한 과정을 만들었다고 생각하거든요. 김구는 경험주의자였던 것 같아요. 다 해보면서 오른쪽과 왼쪽, 장단점을 자기 안으로 체화하고, 나중에 상해에서도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한테 대응하는 동력이 된 거죠.


역사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를 만들면서 특히 즐거울 때가 있나요?


이원태 : <대장 김창수>를 만들기 위해 계속 자료를 보고 준비를 하다 보면 어느 순간 진짜 김창수가 이 말을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어요. 그걸 대사로 뱉어내는 순간 엄청난 쾌감이 있더라고요.


김탁환 : 처음에는 과거로부터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역사 소설을 썼는데, 요새는 과거에서 배울 뿐만 아니라 과거 인물에게 제가 가르친다고 생각해요. 소설 안에 나온 여러 감정은 과거에 그 인물이 느낄 수 없었던 감정이나 생각이거든요. 상호 작용을 하는 거죠. 에드워드 핼릿 카가 ‘역사는 과거와 현재와의 대화’라고 했는데, 역사 소설은 그가 이야기한 것보다 백배쯤 더 대화인 것 같아요. 현재를 사는 제가 과거의 인물을 선택하는 순간부터 현재의 어떤 필요나 목적이 과거로 들어가요. 그래서 시간을 역행하는 즐거움이 있어요.


전작 『거짓말이다』는 과거가 아닌 당대의 문제를 다뤘었죠. 역사 소설을 쓰면서도 현재 사건이 영향을 끼칠 때가 있나요?


김탁환 : 과거에도 우리 사회에 문제가 많지만, 당대의 문제들이 있어요. 꼭 세월호에만 국한된다기보다, 소설가가 당대에 직면한 여러 가지 문제에 대응하면서 역사적인 비유가 아니라 당대의 목소리로 직접 붙어서 싸우는 방식을 고민하게 됐어요. 그 고민은 지속할 것 같아요. 『거짓말이다』는 역사물을 계속 써왔기 때문에 맷집이 생겨서 쓰기도 했고요.


맷집이요?


김탁환 : 소설은 감정을 이입하는 거잖아요. 한 작가가 어느 정도까지 비극을 감당할 수 있을지 생각했을 때, 다른 소설을 쓰면서 비극을 감당하는 힘이 생겼다고 봐요. 그래서 『거짓말이다』를 쓰면서도 비극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역사 소설에는 늘 사실을 왜곡했다는 비판이 따라요. <대장 김창수>는 어땠나요?


김탁환 : 이제 저한테는 그런 비판이 별로 안 들어오더라고요. 몇몇 작품에 대해서만 가끔 들려오고, 나머지는 영화로 다 몰려간 것 같아요(웃음).


이원태 : 역사물을 대할 때 유행처럼 ‘저거 진짜야?’ 하고 보는 태도가 생긴 것 같아요. 사실 역사물은 오래전부터 동서양 막론하고 많았는데, 유독 요즘 매를 맞고 있어요. 역사를 박물관이나 연구실에 모셔놓으면 김구 이름만 알고 일생의 이야기는 모르잖아요. 영화로, 드라마로, 소설로 자꾸 나와야 오히려 역사에 이바지한다고 생각해요. 관심 없이 덮어놓으면 그게 죽은 역사죠. 오늘의 우리가 오늘의 시선으로 소환한 역사가 빛이 생기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진위를 따지는 건 중요하지만, 가장 먼저 사실이냐 아니냐 색안경을 끼고 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독자와 관객이 ‘대장 김창수’를 어떻게 읽어줬으면, 봐줬으면 하나요?


김탁환 : 일단 두 개 다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다른 책이나 영화를 찾아보는 식으로 확장하면 더 좋겠죠.

 

이원태 : 감독이 처음에 “왜 김구 선생 일대기에서 이렇게 재미있는 부분이 묻혀버렸을까”라는 질문을 했는데, 그런 질문을 독자분들도 던졌으면 좋겠어요. 어떤 사람의 삶에서 왜 어떤 부분은 가려지는가. 그걸 다시 이야기로 만들어 드러내는 건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런 고민까지 확장하면 많은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아요. 텔레비전을 보면 5년 전만 해도 가려져 있던 게 지금은 다 드러나고 있잖아요(웃음). 이것도 어떤 힘으로 가려졌던 거고, 어떤 힘에 의해 또 드러나고 있죠. 백범 김구도 대장 김창수의 시절을 짚지 않고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우리는 드러내려고 하는 쪽인 거죠.

 


 

 

대장 김창수김탁환, 이원태 저 | 돌베개
탄환처럼 개화기를 질주한 문제적 인간. 새 세상을 만들려는 거의 모든 사상을 섭렵하며, 불의와 부당과 불공평에 맞서 싸웠으며, 내일 따윈 없다는 듯 온몸을 던졌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주수자 “스마트소설, 시대가 부르는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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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래와 문학이 같이 붙어 있었던 유럽 중세 음유시인의 노랫말, 구비문학으로 떠돌던 이야기가 정착해 기록이 된 이야기들, 인쇄술의 발달로 나타난 소설……. 시간에 따라 시대의 요구와 문학을 담는 그릇이 변화하면서 문학의 외양도 달라졌다. 초단편 소설, 엽편 소설, 모바일 소설, 스마트 소설 등이 나타난 연유도 ‘시대의 부름’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2012년에 계간 <문학나무>가 제정한 ‘스마트소설 박인성문학상’의 첫 번째 수상 작가 주수자는 1976년 20대 때 한국을 떠나 프랑스, 스위스, 미국을 거쳐 성인 시절을 보냈다. 외국 여행도 흔치 않던 시절, 객관적으로는 화려한 삶이었지만 ‘일종의 유배 같은 경험’이었다. 1998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2001년 소설로 등단했다. 오랜 시간 한국어를 잊고 지냈지만, 뿌리내리지 않은 채 유랑한 과거가 결국은 문학적 뿌리였음을 알게 되었다. 여러 소설 중 16편의 스마트소설을 모은 최근작 『빗소리 몽환도』를 들고 그의 집을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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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브리드 소설가


외국에서 오래 살다 오셨다고요.

 

제 배경에 하이브리드(hybrid)가 많아요. 경계에 있는 사람이에요. 프랑스에서 아들을 낳고, 스위스에서 딸을 낳았어요. 한국에서 미술을 공부했고 미국에서 신학을 공부했지만 소설을 써요. 소설로 등단했지만 시를 더 좋아하고 시인하고 어울려요. 국적도 미국이었는데 버렸어요. 한국 사람이냐 하면 뿌리는 다른 곳에서 만들어졌죠. 경기고와 서울대를 나왔지만 실제로는 좌파와 어울리고요. 이상한 두 가지 지점이 나한테 있어요.


이제까지 다른 나라에서 살면서 겪었던 경험이 경계인을 만든 걸까요?


환경이 나를 만든 건지, 나라는 사람이 원래 그런 건지 잘 모르겠어요.


한국으로 돌아와 금방 등단했다고 나와요.


돌아와서 <기독교 사상>에 번역 글을 기고했어요. 조사 같은 한국어 감각이 부족해서 소설가 선생님에게 자문했는데, 저보고 번역보다는 소설을 쓰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우연히 첫 번째 소설로 등단하게 됐고요. 최윤 소설가나 김혜순 시인과 친하다 보니 솔직하게 저한테 조언을 해줘요. 책을 많이 읽으라고 해서 우리 집에서 독서회를 하기 시작했어요. 그 과정에서 다시 문학을 알게 됐죠.


책 끝에 ‘너무 뒤늦게 우리말을 사랑하게 되었다’라고 쓰셨어요.


성인 시절을 한국에서 보내지 않아서 그런지 제가 어른답지 않다고 그러더라고요. 돌아와 한국어를 쓰려니 특이해요. 이방인처럼 떠돌다 한국에 다시 돌아온 후 우리말의 귀중함과 아름다움, 우리 문화와 정신의 고유함을 알게 됐어요. 요즘 한글, 훈민정음에 대한 서사시와 희곡을 쓰고 있어요. 한글이 얼마나 대단한지 새삼 놀라요.


다른 나라의 문학에 영향을 받기도 했나요?


영향을 받은 작가는 있어요. 보르헤스는 현대판 셰익스피어라고 생각해요. 책으로 만난 스승이죠. 『보르헤스 그리고 창작』이라는 책도 낸 적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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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만드는 소설


스마트소설 박인성문학상의 첫 번째 수상자이시죠.


스마트소설은 원고지 기준으로 7매, 15매, 30매 등 짧은 분량으로 쓰는 소설 장르에요. <문학나무>에서 원고 청탁을 받았었어요.


기존 소설과는 무슨 차이가 있나요?


개인의 의지와는 별개로, 시대가 규정하는 게 있다고 생각해요. 작년에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을 탄 이유는 무엇일까요? 한림원에서 우리 시대에는 장르의 경계가 사라진다고 생각한 게 아닐까요? 페이스북, 알리바바, 예스24만 봐도 이전의 시대에는 없던 거잖아요. 20세기 초에 근대 소설이 나왔을 때, 그 시기 살던 사람들은 자신들이 어떤 시대를 사는지 몰랐을 거예요. 여러가지 변화 중에도 가장 가까운 구조가 변하면서 내용이 변해요. 그럼 지금 시대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뭘까요, 한마디로 하면 스피드라고 생각해요. 정말 많은 사람이 『태백산맥』을 읽고 싶다고 생각해도 읽을 시간을 마련하지 못해요.


사람들이 시간이 없다 보니 짧은 소설을 원하게 될 거라는 건가요?


만약 어떤 사람에게 5분간 설명해서 알아듣지 못한다면, 그 사람은 50분이나 5일을 붙잡고 이야기해도 못 알아 들을 수밖에 없지요. 짧은 내용 속에도 함축적으로 전하고자 하는 바를 담을 수 있어요. 문학 하는 입장에서는 길게 쓰는 게 재미있죠. 구조를 가진 사람, 문학의 권력을 가진 사람은 변하지 않아요. 독자가 변하죠. 짧은 소설은 소설가가 노력하고 운동한다고 정착되지 않을 거예요. 요구가 있다면 독자가 저절로 선택하겠죠. 이미 1970년대에 라틴아메리카에서 미니픽션을 실험했었고, 스마트소설은 인터넷이 보급된 세대에 맞게 한국화하고 새롭게 명명한 것뿐이에요. 이름을 붙였다고 이런 장르, 저런 장르 나누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근원적으로, 소설은 소설이죠.


보통 모바일을 염두에 둘 것 같은데요. 모바일에서 보는 이야기는 가벼운 내용을 위주로 쓴다는 인식이 있어요.


그렇게 쓰는 사람도 있어야 해요. 다양한 소설이 나오는 건 좋죠. 하지만 제가 주장하는 스마트 소설은 짧게 이야기하면서도 통찰을 주고 깊이가 있어야 오래 생명이 유지된다고 생각해요. 문법이 난해하다는 말이 아니라, 철학이 없으면 모든 것이 붕괴돼요. 만약 시인이 이렇게 쓴다면 소설가보다 오히려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스마트 소설이라는 이름은 살아남을지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소설은 짧은 형태가 대세가 될 것 같아요.


지금 문학 형식도 시대정신이 만들어냈다고 보시나요?


큰 시대를 꿰뚫는 정신이 있어요. 예를 들어 우리나라 문학은 사실주의가 지배적이었어요. 전쟁을 겪고 생존이 너무 절박했기 때문에 사실주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거죠. 우주시대로 가면 SF가 늘어날 수도 있겠죠. 구체적으로 어떻게 갈지는 누구도 몰라요.


작가님 문학을 관통하는 주제가 있나요?


다른 소설가와 다를 바 없어요. 삶에 관해, 인간이 누구이고 삶이 무엇인지, 왜 우리가 여기에 왔나 하는 근원적인 질문에 대한 변용이겠죠. 예술은 근원적인 질문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보거든요. 그런 근원적 질문 없이 문학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요. 세상에 태어났으면 누구나 다 질문이 있어요. 그 질문 때문에 신학교도 간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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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세상도 사실은 환영이구나


『빗소리 몽환도』에 서양화가 장성순 화백의 그림이 같이 나와요.


유명한 분인데, 상복이 없으셨어요. 제 이모부기도 하셔서 가족이라는 이유로 받아올 수 있었어요. 색이 너무 아름다운 작품들이라 일부러 편집할 때 흑백으로 넣었어요. 이미지와 문자가 충돌하면 이미지가 너무 막강하니까요.


「거짓말이야 거짓말」은 백남준을 추모하는 내용입니다. 이전 세대 예술가에 대한 오마주로 봐도 될까요?


사실 그렇게 쉬운 사람은 아니에요. 들고양이가 이야기하지만 호랑이 심장을 가졌던 사람이죠.


16편 중 가장 아끼는 작품은 무엇인가요?


「놀이공원 무유위유」요. 한 달에 한 번씩 롯데월드 근처 커피숍에 가는데요, 위에서 쳐다보면 저는 거기 있는 사람들을 보지만 놀이공원에서 노는 사람들은 저를 못 보더라고요. 어느 날 매니저처럼 보이는 사람이 와서 구두약으로 바위를 닦더라고요. 가짜 바위를 진짜처럼 보이게 하려고 한 거죠. 아이들이 환호성을 지르고 기차가 인생처럼 돌아가는 데 그게 너무 이상해 보였어요. 그래서 우리 세상도 사실은 환영이구나, 너무 아름답지만 초월해서 보면 모든 것이 우스워지는 거죠.


대표작 「빗소리 몽환도」는 연극으로도 제작됩니다.


전기광 연출가가 일 년 반 전쯤 작품을 보내달라고 해서 「빗소리 몽환도」를 보내줬었어요. 희곡으로 만들어달라고 하길래 난생처음 또 희곡을 써 봤죠. 희곡은 정말 모르는데 이미지만 가지고 열심히 썼어요. 입말이 부족한 건 연극 하는 사람들이 메꿔 주고요.


책으로 묶인 걸 보면 만족하는 편이세요?


예스 앤 노(yes and no)죠. 『빗소리 몽환도』에서부터 문체를 바꿨어요. 소설이 자기를 풀어내고 상처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라 결국 통찰을 위한 것이구나 싶어서 드라이하게 쓴 편이에요. 저를 벗어나기는 어려운데, 감상적인 사실주의는 벗어난 것 같아요.

 

 


 


 

 

빗소리 몽환도주수자 저 | 문학나무
작가는 현실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보는 세계가 과연 있는 그대로 그 세계인가, 또 어디까지를 현실이라 부를 수 있는가? 이와 같은 질의를 통해서 인간 존재의 한계와 확장성을 사유하게 한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레일라 슬리마니 “타인의 미스터리함, 나의 가장 중요한 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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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가 죽었다. 단 몇 초 만에.(9쪽)

 

강렬한 첫 문장으로 시작하는 2016년 공쿠르상 수상작 『달콤한 노래』는 ‘평온한 듯하지만 광기로 가득한 일상 속을 들여다보는 작품(<리브르 엡도>)’, ‘모든 문장이 위대하다<라 크루아>’ 등의 평을 들으며 프랑스에서 지난 한 해에만 35만 부가 판매되었다. 평단과 대중의 호평이라는 큰 성취를 거둔 이 소설이 더욱 놀라운 것은 이것이 작가 레일라 슬리마니가 발표한 두 번째 소설이라는 점이다. 섹스에 중독된 여성을 등장시킨 첫 번째 소설 『오크의 정원에서』에 이어 두 아이를 죽인 보모가 등장하는 『달콤한 노래』까지, 작가는 여성의 이야기를 전면에 내세운다. “여성들의 이야기가 훨씬 더 매력적이고, 흥미로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는 작가는 여성의 삶에 대해 “혁명과 진화의 결과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시사주간지 기자로, 이주민으로, 여성으로 살아온 작가의 삶은 자연히 그를 페미니스트로 만들었다. “전 세계 도처에서 여성들이 이러한 삶에서 벗어나기 위한 전투를 벌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는 자각”을 갖게 되었다는 작가는 인터뷰 도중 한국의 페미니즘에 대해 물으며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이러한 작가의 시선은 소설 속에서도 큰 힘을 발휘한다. 여성이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압력, 사회적인 편견, 여성의 빈곤과 욕망 등 레일라 슬리마니가 펼쳐 보이는 여성의 이야기는 예리하고, 정확하다. 최근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장관급인 프랑스어 진흥 대통령 특별대사로 임명해 더욱 관심을 모은 작가 레일라 슬리마니. 그의 앞으로가 더욱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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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여성들의 삶은 혁명과 진화의 결과물


한국판과 프랑스판이 많이 달라요. 마음에 드세요?

 

한국어판을 보고 먼저 굉장히 예쁘다고 생각했어요. 커버가 두툼하고, 그림이 함께 들어가 있어서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일단 한글이라는 글자 자체가 굉장히 아름답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저는 전혀 이해를 못하지만요.(웃음) 그렇게 때문에 조금 더 신비롭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2016년 공쿠르상 수상에 이어 얼마 전 프랑스어 진흥 대통령 특별대사에 임명되셨어요. 작가로서도, 개인으로서도 큰 변화가 있었던 셈인데요.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크게 달라진 점은 없습니다. 저는 저 자신 그대로 남아 있다고 느낍니다. 개인적인 삶이나 활동하는 직업적인 삶에 있어 변한 것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다만 조금 더 겸손한 작가로서의 자세를 유지하는 것, 그것을 바라고 있습니다. 물론 최근 특사에 임명이 되었지만 이것에 있어서도 똑같이 생각합니다. 자연스러운 태도, 단순한 태도로 접근하고 싶습니다. 크게 변하는 부분은 없다고 말씀 드리고 싶어요.
 
모로코 출신, 기자에서 소설가로 이력이 다채롭습니다. 이런 경험이 작품에 어떻게 영향을 끼치고 있나요? 작가 자신의 삶의 궤적과 작품의 관계가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을까요?


저는 사실 기자라는 직업 또한 무척 좋아했습니다. 아시겠지만 <젊은 아프리카(Jeune Afrique)>라는 잡지사에서 일을 했는데요. 아프리카와 관련된 매체죠. 이 매체에서 일을 하는 동안에 아프리카, 특히 마그레브 지역으로 출장할 기회가 많이 있었습니다. 덕분에 아프리카의 삶에 대해 더욱 상세하게 자세한 부분까지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죠. 여러 번의 방문을 통해 현지의 분위기를 잘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런 부분은 소설 작업에도 큰 도움을 줍니다.

 

기자의 경험과 소설 쓰기라는 면에서는 어떨까요?


기자가 쓰는 기사는 독자들의 시선을 단번에 사로잡아야 합니다. 자신이 쓰는 글에 대한 반응이 늘 존재하는 직업입니다. 예를 들면 기사를 쓸 때 첫 세 줄에서 독자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지에 관한 것을 편집장이 판단하죠. 편집장 판단에 이것이 독자의 관심을 끌기 어렵겠다고 하면 바로 그 기사는 쓰레기통에 처박히게 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런 부분, 독자의 관심을 단번에 사로잡을 수 있는 글쓰기 훈련이 그때 많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한국에서도 여성 서사가 많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성폭력, 육아와 경력단절 등 여성의 삶이 다양한 형태로 이야기되고 있는데요. 작가의 경우, 여기에 관심을 두게 된 이유가 어떤 것인지 궁금해요.


일단은 여성 캐릭터가 훨씬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서 여성 이야기를 하는 것에 천착하기 시작했습니다. 여성 작가들이 소설을 쓰고, 출판을 하기 시작한 것, 더 나아가서는 여성이 소설을 읽기 시작한 역사는 남성의 역사에 비하면 훨씬 짧습니다. 항상 여성들의 삶은 내밀하고, 비밀스러운 영역에 국한되어 있었죠. 그러는 동안 남성 작가, 귀스타브 플로베르나 톨스토이 같은 대문호들이 문학적인 성취를 이루었어요. 저는 그 점에서도 여성들의 이야기가 훨씬 더 매력적이고, 흥미로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전까지 많은 남성들의 이야기를 해온 것에 비하면 말이에요. 현재 여성들의 삶은 혁명과 진화의 결과물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여성들은 일을 하거나 하지 않거나, 아기를 갖거나 갖지 않거나, 결혼을 하거나 하지 않거나에 대해 어느 정도 선택권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고 봅니다. 혁명과 진화의 결과물인 여성의 삶을 이야기로 풀어내는 것이 흥미롭다고 생각했어요.

 

혁명과 진화의 결과물인 동시에 여전히 혁명과 진화가 필요한 영역이기도 하고요.


삶의 관점에서 본다면 어머니가 되고, 그러면서도 직업적인 커리어를 유지하고, 개인으로서의 삶이 침범당하지 않는, 이것들의 균형을 맞추는 일이 어렵다고 생각해요. 물론 남성들에게도 어려운 점이 있겠지만요. 여성의 삶에 부가되는 압력을 생각한다면 그 정도가 훨씬 덜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하면 완벽한 어머니, 완벽한 직장인이 되는 동시에 개인의 삶도 지킬 수 있는지, 그 균형의 어딘가를 그려나가는 것이 제가 여성의 삶을 그리는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점이기도 합니다.

 

구체적인 계기가 있었나요? 한국의 여성들은 성범죄를 비롯한 여성혐오 범죄에 대한 공포가 관련 문제를 들여다보고 목소리를 내는 중요한 계기가 되기도 했거든요.


많은 분들이 저에게 질문을 합니다. 당신은 어떻게 페미니스트가 되었느냐고요. 그 질문에 대해 저는 항상 모로코에서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합니다. 저는 모로코에서 나고 오랫동안 그곳에서 자랐는데요. 길을 걷다가 페미니스트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어릴 때부터 남자와 여자는 다를 게 없다, 같다, 라는 이야기를 듣고 자랐지만 점점 나이를 먹으면서 같지가 않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여러 일들이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길을 가다가 남자 아이들의 희롱의 대상이 되기도 했고요. 성폭력의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안고 길을 걷거나 일상생활을 해야 했어요. 그러면서 계속해서 이렇게 살 수는 없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어느 곳이나 여성들에게는 비슷한 경험이 많네요.


밤길을 걸을 때도 어떤 사고가 일어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리는 것은 굉장히 고통스러운 일이잖아요. 또 직업을 구할 때 면접관이 아이를 가질 계획이 있는지 없는지를 묻는 상황도 있죠. 이런 것에서도 여성의 삶이 너무나 성 평등과는 거리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돼요. 이처럼 일상적으로 많은 일들이 늘 주변에서 일어났어요. 저는 이제는 수단, 콩고 같은 아프리카나 브라질, 아프가니스탄 등 전 세계 도처에서 여성들이 이러한 삶에서 벗어나기 위한 전투를 벌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는 자각이 들었어요. 여성들은 힘들게 일하면서도 훨씬 적은 임금을 받아요. 그러면서 빈곤 등 여러 문제에 노출이 됩니다. 더 이상 이렇게 살 수는 없다, 계속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 오늘날 제 입장을 만들었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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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인물과 이야기


주인공 미리암이 엄마로서, 여자로서, 사회인으로서, 며느리로서 느끼는 굉장히 세밀한 심리묘사가 인상적인데요. 끊임없이 흔들리는, 확신이 없는 순간들을 포착해내고 있어요.


미리암은 불안과 괴로움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에요. 미리암은 어렸을 때부터 더 많은 성취에 대한, 완벽한 삶에 대한 욕심이 있었던 인물이죠. 그런데 미리암이 나이를 먹고, 가정을 꾸리면서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차차 깨닫습니다. 첫째를 낳은 후 미리암은 모성에 완전히 녹아들어서 양육에 푹 빠져 지내는 시기를 보냅니다. 하지만 곧 이것이 자신에게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느껴요. 점점 더 실망을 하죠. 이때 미리암은 두 감정을 느껴요. 하나는 사회에서 주는 이미지에 대한 감정입니다. 어머니가 되는 것만으로 행복해야 한다는 사회적 관념이 있는데요. 자신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는 거예요. 한편 함께 공부한 동창을 우연히 만나면서 ‘그렇게 공부 잘했던 미리암이 집에서 아이나 보고 있다니’라는 시선을 상상하게 되죠. 그러면서 자신이 쓸모없어졌다고 생각을 하고, 모멸감을 느낍니다. 직장에 다니기 시작하면서는 또 아이들에 대한 불안함을 느끼죠.

 

그런 내밀한 심리에 공감을 하게 되기도 하고요.


미리암이 느끼는 감정은 모호함을 가진 감정이에요. 큰 사랑을 담아 아이들을 보면서도 아이들이 어떤 종류의 굴레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아이들이 있어서 자신이 충분한 자유를 느끼지 못하고,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었지만 그럴 수 없게 되었다는 생각이죠. 이러한 양가적인 감정으로 자녀들을 보고 있는 거예요.

 

또 한 명의 중요한 인물, 루이즈인데요. 스스로 설명하지 않는 인물이에요. 딸, 이웃 등 주변 인물들에 의해 설명되는 것이 대부분이고요. 루이즈를 이런 모호한 영역에 남겨둔 이유는 뭔가요?


루이즈는 처음부터 끝까지 신비로움, 미스터리를 유지하는 인물로 남겨두고 싶었습니다. 물론 부모 역할로써의 루이즈도 조명하고 싶었지만 전반적으로는 독자들이 끝까지 알 수 없는 인물이라는 인상을 갖게 되길 원했습니다. 퍼즐을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루이즈라는 퍼즐이 있다면 그 퍼즐의 모든 조각이 이 작품 안에 드러나 있는 것은 아니고요. 각각의 조각이 여기저기 퍼져 있는 것이죠. 그 조각들을 하나씩 맞추어 가면서 루이즈라는 인물의 정체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식입니다. 저는 그러한 방식으로 루이즈의 삶을 조명하고 싶었어요.

 

때문에 루이즈가 더 궁금해지기도 해요.


작품 안에서 루이즈가 어떤 사람인지, 이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끝까지 완전히 분명하게 알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말하거나 표현하는 일은 거의 없죠. 작품 안에서도 말을 많이 하지 않잖아요. 그렇지만 주변인을 통해 드러난 루이즈의 삶은 고독하고, 고통스러운 것이었어요. 다른 사람의 아이를 키우는 일을 했고, 많은 부분에 있어 복종하는 역할에 남겨져 있었습니다. 결국 루이즈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스스로를 위한 삶을 살지 못했어요.

 

잠깐 말씀하셨는데 루이즈 역시 여성으로서의 억압을 경험하죠. 딸 스테파니의 퇴학 에피소드인데요. 자녀의 비행이 엄마의 탓이 되는 모습을 보여줘요. 결국 딸은 퇴학을 당하고요. 이런 일련의 배제되는 방식에 대한 작가의 문제의식도 엿보입니다. 

 

루이즈는 딸에게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간청했다. 그녀는 자기 아이들을 얼마나 챙기는지, 아이들이 말을 안 들으면 얼마나 벌을 주는지 울면서 설명했다.(중략) 페랭 부인은 이것이 재판에 해당한다고 알려주었는데, 심판을 받는 것은 바로 루이즈 자신이었다. 그녀, 나쁜 어머니.(231쪽)

 

제게 중요한 것은 인물과 이야기입니다. 인물을 조명하는 과정에서 어찌 보면 사회적인 문제가 함께 드러난다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작품에서는 또한 기득권 심리, 이민자에 대한 배제 등 여러 부분의 문제를 솔직하게 표현하고 있잖아요.


제 작품이 사회 소설은 아닙니다. 그리고 저는 작품 안에서 사회적인 문제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하는 이야기, 제가 묘사하는 인물 안에 프랑스 사회의 문제가 어느 정도는 드러나기도 하겠죠. 이민자에 관한 이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사회적으로 소외 받는 계층의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기보다는 프랑스 부르주아의 삶, 그 안에 켜켜이 쌓인 이민자들의 삶이 맞물리는 접점에 제 이야기가 위치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사회적인 연구나 조사, 학문적인 영역에서의 이야기가 아니고요. 말 그대로 이야기 안에 사회문제가 녹아 있는 것이라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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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구성된 아름다운 인물


내 소설이 바라보는, 나에게 가장 중요한 하나의 주제가 있다면 뭔가요?


어려운 질문이네요.(웃음) 타인의 미스터리함이 저에게는 가장 중요한 주제가 아닌가 합니다. 사실 사람들은 서로가 소통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결국에는 드러내지 않은 부분이 누구에게나 있게 마련이죠. 또 서로 섞일 수 없는 부분도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 점이 저에게는 중요한 주제입니다.

 

타인의 미스터리함, 좀 더 구체적으로 듣고 싶어요. 앞으로 다뤄보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어떤 인물을 관찰한다는 점, 그것이 저에게 있어서는 굉장히 중요한 주제의 하나라고 할 수 있는데요. 제가 독자로서 어떤 소설을 읽을 때에도 잘 구성된 아름다운 인물을 볼 때 큰 매력을 느껴요. 그것이에요. 저도 작가로서 그런 인물을 창조해내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강하고, 아름답고, 정말 존재할 법한 인물 말이에요. 생동감 있는 인물을 그려내고 싶어요.

 

한 명의 독자로서 발견했던 그런 소설 속 인물은 누굴까요? 혹은 작가나 작품을 말씀해주신다면?

 
『안나 카레니나』, 『마담 보바리』입니다.

 

지금 쓰고 있는 작품이 있나요?


쓰고 있는 작품은 있지만, 말할 수 없습니다.(웃음)

 

마지막으로 한국 독자들에게 인사 한 마디 부탁드립니다. 


많이 읽어주세요.(웃음) 고맙습니다. Amities feministes(페미니스트의 우정을)!


 

 

달콤한 노래레일라 슬리마니 저/방미경 역 | arte(아르테)
“아기가 죽었다, 단 몇 초 만에.” 두 아이가 살해됐다. 완벽해 보였던 보모의 손에. 그녀는 왜 그토록 아끼던 아이들을 죽인 것일까.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윤하 “로커로서 꿈은 항상 가지고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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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중반 피아노와 록을 앞세운 당찬 소녀 윤하의 등장은 가요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음악을 막 알아가던 십대들은 윤하를 통해 록을 배웠고 마니아들은 아이돌 위주 시장에 밴드 사운드를 전면 배치한 어린 천재를 기특해했다. 이후 윤하 앞에는 섬세하면서도 강렬한 보컬로 수많은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짐과 동시에 팬들의 '음악적 우상'으로의 두 가지 과제가 주어졌다. 전자는 지금까지도 노래방 애창곡으로 자리하는 「기다리다」와 「오늘 헤어졌어요」 「괜찮다」의 발라드 트랙이 있지만, 후자에 있어선 <Supersonic> 이후 아쉬웠던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긴 공백기가 찾아왔다. 정규 앨범으로는 2012년, 미니 앨범으로는 2013년이 마지막이었다.

 

11월 10일, 5년 만에 다시 만난 윤하는 지난 시간과 앞으로의 계획을 차분하면서도 활기차게 풀어놓았다. 혼란했던 과도기를 거쳐 아티스트로의 자신감과 확신을 갖게 되었다는 그는 불안함과 위태로움 대신 성숙과 성장으로 그 기간을 정의했다. 특히 인터뷰 내내 거듭 자신을 성원해준 팬들에 대한 감사를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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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학 축제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계시네요.


SNS 노출 빈도수가 많아서 그런지, 빈도 자체는 과거보다 적은데도 많은 분께 알려지는 것 같아요.

 

얼마 전에는 연말 크리스마스 콘서트 <#RE>도 공개했는데요, 전체적인 구상이 어떻게 되는지?


새로운 시도가 많이 들어간 콘서트를 기획하고 있어요. 미발표곡이나 캐럴도 셋리스트에 들어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크리스마스 때는 새 앨범을 만나볼 수 있을까요?


음… 아직 정확히 결정된 건 없습니다. 논의 중이에요.

 

2012년 <Supersonic> 발매 이후 정규 앨범 소식이 없으셔서 더 기다려집니다. 새 앨범의 가장 큰 지향, 목표가 혹시 있나요.


음악적으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지 않아서 어떻게 말씀 드릴지 고민이 되네요. 우선 크게 생각하는 부분으로는 팬들의 니즈를 자각하는 게 오래 걸렸던 것 같습니다. <Supersonic>때만 해도 '윤하가 하고 싶은 음악을 듣고 싶다!'라는 마음으로 이해했는데, 그 이후 제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해보고 소통을 해보니까 다른 점이 있더라고요. 팬분들께서 원했던 건 그분들께 꿈을 심어줬었던, 과거의 제가 음악 하던 모습을 다시 보고 싶어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장르적으로는 회귀가 아닐 수 있지만, 마인드는 초기처럼 보다 더 대중적인 모습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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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만들기'라는 측면에서 볼 때 윤하 씨는 작업할 때 고민을 많이 하는 편인가요? 아니면 여유롭게 하는 편인가요?


생각이 많은 편이에요. <Supersonic> 발매 후 5년의 시간이 있었고, 빠듯하게 작업을 시작한 건 이제 2년 정도 됐어요. 많은 분과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 보니 중간에 그만두게 된 작업물도 있고요. 아직 진행 중이지요.

 

작업이 엎어졌던 경우는 제작 환경 때문인가요, 윤하 씨가 원해서 그런 건가요.


제가 중단했죠. 실제로 녹음을 했던 것도 있고, 가이드 단계만 된 것도 있고, 시도했다가 한 곡도 완성 못하고 끝난 것도 있었고요. 제가 원하는 게 뭔지, 해야 하는 건 뭔지, 사람들이 원하는 건 뭔지, 계속 고민하다 보니 작업이 길어지게 됐어요. 대중이 좋아하는 부분을 연구하고 따라간다고 해서 맞출 수 없다는 것도 받아들이는 과정이었고, 그렇다고 제가 진심으로 원해서 만든 것에 '어떤 결과가 나와도 수긍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윤하의 자아와 팬들이 원하는 음악 사이의 적절한 조절이 담겨있다고 해도 될까요.


그렇습니다!

 

윤하 씨가 새 앨범에 작곡, 작사로 참여한 비중은 어느 정도인가요.


요새 작업 방식이 많이 달라져서 트랙 메이킹, 탑 라이닝 따로따로 하는 부분도 있고, 여러 가지 섞어서 공동 작업을 하기도 해서 얼마 정도의 비중이라고 정확하게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최대한 모든 곡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비록 제가 크레딧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작업 내내 같이 있으려고 노력 중이고요. 모든 진행 과정을 같이하기 때문에 저의 비중이 작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곡을 같이 만들었어도 다른 분께서 생각하신 라인이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좋다면, 그분 이름으로 크레딧에 올라가겠지만요.

 

한창 앨범 작업 과정 중에 있으신 거네요.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으실 것 같습니다. 작업 하시는 동안 윤하 씨를 즐겁게 하는 것, 버티게 만드는 것들이 있을까요.


즐거움보다는 책임감 같아요. 팬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제일 컸고, 팬분들이 저의 버티는 힘이었죠. 그래도 즐거운 걸 꼽자면… 떠오르는 친구들을 만날 때? 이제 막 시작하는 신예 뮤지션들, 그 열정을 주체하지 못해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그런 아티스트들을 볼 때 같이 작업하고 싶다는 생각도 많이 들었고, 연락도 하면서 '나도 다시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너무 오랫동안 공백이었으니까요.

 

그 중 가장 관심이 갔던 음악이 있다면?


이제까지 제 기준에선 록 같은 백인 베이스의 음악을 했다고 생각하는데, 최근에는 흑인 베이스의 음악을 연구하고 많이 들었어요. 사운드 클라우드(Soundcloud)에서 유행하는 음악들에도 관심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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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백기라고 하셨지만 최근 <변혁의 사랑>의 「Love u」, <최고의 한방>의 「꿈은」, <닥터스>의 「Sunflower」, <신데렐라와 네 명의 기사>의 「I believe」 등 각종 드라마 OST를 통해 활동을 이어오시기도 했습니다. 그사이에 왜 윤하 씨가 화제의 중심이 되지 못했을까요.


너무 단발성 작품들이니까요. 팬들도 제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기 어려웠던 것 같고… 물론 그건 제가 자처했던 거죠. 제 내면을 보다 깊이 파악하고 싶어서 동굴 속에 들어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 시기에 인상적이었던 팬의 지적이 있었을까요. 팬들과의 사이는?


저에 대한 지적은 딱히 없었던 것 같아요. 이젠 서로 지적할 만큼의 나이가 아니기도 하고요. (웃음) 팬분들과는 시간이 갈수록 더 두터워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가장 최근 발매한 싱글이 유승우와 함께한 「티가 나」인데요. 자이언티의 「꺼내 먹어요」를 쓴 브라더수와 함께했습니다.


'콜라보레이션'이라기보다는 프로젝트성의 싱글이었어요. 브라더수가 1절까지 쭉 작사를 해서 보내줬고, 이후 2절 맞춰서 쓰다 보니 공동 크레딧으로 올라갔어요. 메일로만 진행하고 직접 대면하지는 않았던 작업이었습니다.

 

서태지 데뷔 25주년 기념으로 「Take five」를 리메이크하기도 했죠. 원곡의 활기찬 스타일 대신 부드러운 분위기가 도드라졌는데요.


「Take five」는 제가 직접 고른 곡인데요, 워낙 좋아하는 트랙이다 보니 저도 처음에는 편곡을 세게 가고 싶었어요. <Supersonic>의 「No limit」도 서태지 선배님을 좋아해서 나온 곡이고요. 그런데 '세게 갈 거면 왜 선배가 나에게 리메이크를 맡기셨을까.'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제가 하고 싶은 사운드는 강렬할 수 있지만, 제 목소리에 맞추려면 조금은 말랑하게 가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어요.

 

실제 서태지의 반응이 있었다면?


과거 2009년 ETP 페스티벌에서 섭외 제안이 오고 가면서 전해 들은 칭찬은 '기특하다'는 말씀이었어요. 정확한 음악적 이야기를 듣지는 못했지만, 저의 존재를 선배님께 각인시킨 것 같아서 뿌듯했습니다. 이번 작업 과정에는 담당자를 통해 연락이 오고 갔는데, 서태지 선배가 메일을 통해서 정확하게 수정할 점을 짚어 주셨어요. 덕분에 서로가 원하는 대로 잘 완성된 것 같아요.

 

윤하의 콜라보레이션 하면 에픽하이를 빼놓을 수 없죠. 최근 에픽하이도 앨범이 나왔는데요.


저는 '제4의 멤버'니까요!(웃음) 서로 도움이 필요할 때 부를 수 있는 좋은 관계라고 생각하고요, 이번 앨범도 잘 들었습니다. 오히려 리스너 입장에서 들을 수 있어서 더 좋았어요. 타블로 씨의 프로듀싱을 언제나 믿고 또 존경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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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해 비중격 만곡증 수술을 받았는데. 정확히 어디가 불편하셨나요?


어렸을 때부터 비염이 심했었는데 확인해보니 코뼈가 휘어 있었어요. 데뷔 이후로 1년씩 2년씩 계속 수술을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바쁘고 정신이 없어서 못 하게 된 시점이 있었어요. 그게 쌓이고 쌓이다 보니 비염 수술로는 안 된다고 진단을 받아서, 뼈를 잘라서 똑바로 붙이는 수술을 받게 됐어요.

 

비염은 어떻게든 목소리와 연관이 될 수 있는 부분인데요.


질타를 많이 받기도 했어요. 작년 <투유프로젝트 : 슈가맨> <복면가왕> 출연했을 때는 가창력 논란도 있었고요. 수술하기 전의 일들인데, 이후에는 노래 부를 때 콧소리가 좀 덜 나서 훨씬 편하고 귀도 또렷하게 잘 들려서 확실히 나아진 것 같습니다. 건강도 잘 관리하고 있고요. 다만 나이가 점점… (웃음)

 

<Supersonic> 때와 비교해보면 현재 음악 시장은 음원 지배력이 훨씬 강화되었습니다. 특히 실시간 차트의 힘이 훨씬 강해졌죠. 이런 현재 음악계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요.


제 시각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 패턴에 맞춰서 한다면 순리를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이고, 이 환경 속에서 뭘 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봐야죠.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더라도요.

 

윤하가 바라보는 음악계의 가장 아쉬운 점이 있다면?


기술도 좋고 사운드도 너무 좋아졌는데, 이걸 큰 스피커에서 들을 만한 기회가 없다는 게 제일 아쉬워요. 요즘은 스마트폰 스트리밍이 일반적인 감상 방법인데, 아무래도 제일 크고 제대로 듣는 건 녹음실, 마스터링실에서 가수 본인이나 작업자뿐이니까요.

 

2013년 <Subsonic> 이후로 드라마 OST든 공식 싱글이든 기존 스타일과는 다른 느낌의 곡으로 활동하셨습니다. 앞서 팬의 니즈에 대해서 이야기하셨는데 본인의 의지로 다양함을 추구한 건지, 아니면 '이렇게 해야 할 것 같다'는 압박 때문인 건지 궁금합니다.


제 의지가 강했어요. 새로운 걸 받아들이는 게 더디다고 생각했었고, 고집스러운 부분도 있었죠. 그래서 사람들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그것이 왜 인기 있고 매력 있는지를 알아보는 과정이었어요. 처음에는 대중의 니즈로부터 출발했지만 저의 니즈로 옮겨오면서, 그것이 굳어져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예능 프로그램에서 제안이 온다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제가 예능을 나가는 게 크게 불편하지 않다고 하면 나갈 생각입니다. '기회가 오면 재밌게 해야지' 정도랄까요. 음악을 제가 후회하지 않는 정도에서 만든다면, 이미지는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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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하 씨가 2006년 「Audition」 「비밀번호 486」 「혜성」으로 한국에서 데뷔했을 때 10대의 예쁘고 가녀린 여자 가수가 밴드 사운드를 한다는 사실이 굉장히 파격적이었습니다. 그 부분은 유지하려 하시나요? 혹은 새로운 플랫폼을 짜고 계신가요?


정말 결정적인 고민인데… 예리하신 질문이에요(웃음). 저는 욕심이 많아서 둘 다 가져갈 생각입니다. 음반 제작에서의 작업 방식이 너무 많이 바뀌어서 따라가 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는 플랫폼의 변화가 있겠지만, 라이브에서는 아무래도 밴드 사운드를 고집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윤하가 가지고 있었던 밴드 사운드는 꼭 갖고 가고 싶어요.

 

<Supersonic>의 「Break out」이나 「Rock like stars」와 더불어 과거 커리어를 보면 지금의 윤하와는 다른 로커로서의 모습도 강렬한데, 로커로의 아쉬움도 있지 않나요?


완전 있죠! 그 꿈은 항상 가지고 있을 거예요. 실현할 수 있을 거라 믿고 있고요. 콜드플레이가 내한했을 때 따로 만나서 얘기를 할 기회가 있었어요. 서로 CD를 교환하고 저의 음악을 들려주면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의외로 생각이 비슷해서 '나도 할 수 있겠는데?'하는 자신감을 얻었어요. 밴드 사운드에 대한 갈증과 희망은 계속 갖고 있을 거고, 공연에서도 또 다양하게 시도해볼 거예요.

 

크리스 마틴과 나눈 대화 중 가장 중요한 부분이 있었다면?


저의 고민을 크리스 마틴에게 이야기 했을 때, '듣는 사람들이 누구인가를 생각하지 말라'고 대답해줬어요. 듣는 이가 누구든 좋은 음악은 좋은 음악이고, 그 좋은 결과는 자신을 얼마나 믿느냐, 확신을 갖고 한 음악은 리스너를 가리지 않는다는 얘기를 듣고 많은 힘을 냈습니다.

 

커리어를 통틀어 가장 흡족한 음악적 결과물이 있다면?


정규 앨범 중에서는 <Supersonic>이에요. 사실 다 제 품에서 나온 곡들이라 좋아요. 훌륭한 사운드도 많고, 훌륭한 분들과 작업해서 좋게 나온 곡들도 많아요. 제 생각과 가장 근접하게 나온 곡은 「Home」을 꼽을 수 있겠네요. 의도했던 감성, 편곡, 가사 모든 게 정해진 틀 안에서 훌륭하게 나와서 뿌듯했어요.

 

2017년은 한국 데뷔 정규 앨범 <고백하기 좋은 날> 1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대중의 음악적 선택지를 넓힌 그 당찬 모습은 지금까지도 윤하를 기억하는 핵심 장면인데요.


정말 감사하죠. 그때 받은 사랑이 저를 지탱해주는 힘이 되고 있으니까요. 평생 잊지 못할 자부심이자 자신감, 기억입니다.

 

인터뷰 :임진모, 김도헌, 정효범, 정연경
정리 :김도헌, 정효범
사진 :김도헌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로타 “나는 성공한 덕후, 서브컬처를 좋아할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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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녀 사진작가’로 불리지만 이보다 먼저, 스스로를 ‘성공한 덕후’라고 말하는 로타 작가. 최근 온스타일 <뜨거운 사이다>에 ‘문제적 게스트’로 출연해 ‘롤리타 콘셉트 사진 논란’으로 또 다시 화제가 된 로타 작가를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여러 아티스트와 콜라보 작업으로 가장 바쁜 한 해를 보내고 있는 로타 작가는 2005년 공연사진 포토그래퍼로 활동을 시작, 현재 상업사진작가로 활발하게 일하고 있다.

 

“대학에서는 인테리어 공예를 전공했어요. 원래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고요. 그래서 게임 캐릭터 디자이너가 꿈이었는데 아무래도 한 공간에서 집중적으로 일해야 하잖아요. 갇혀 있어야 하는 게 답답한 느낌이었는데 우연한 기회로 사진을 찍게 됐어요. 취미로 시작했는데 지인을 통해 공연 사진을 찍게 됐죠. 굉장히 재밌더라고요. 대단한 분들도 많이 뵙게 됐고. 서태지 씨는 전담으로 5년 동안 찍었어요. 이효리 씨 공연 사진도 찍고 여러 아티스트들과 작업하면서 사진의 매력을 알게 됐죠.“

 

“<뜨거운 사이다>는 출연 전 날까지 고민했어요. 그런데 제가 출연하지 않으면 제 이야기가 오히려 곡해될 것 같더라고요. 저 없이도 이 아이템을 다뤘을 거니까요. 그래서 출연했죠. 득과 실이요? 글쎄요. 하고 싶은 이야기는 하고 왔는데, 해석은 제가 할 수 없으니까요. 대중이 판단하겠죠. 서브컬처라는 범위 내에서 제 사진을 받아들여주셨으면 하는데요. 우리나라는 아직 어려운 것인가, 생각하고 있어요.“

 

최근 로타 작가는 국내 유수의 게임 업체, 일본 출판사 슈에이사 등으로부터 작업 의뢰를 받고 있다. 미소녀 사진작가로 알려져 있지만 대부분의 작업들은 상업 사진이다. 근 2년 동안 사진집 『로타의 일본산책』, 『오후의 도쿄』, 『오키나와 버니』, 『Girls』 등을 펴내기도 했다.

 

“단행본 작업은 꾸준히 하고 싶어요. 아무래도 책으로 담기면 보는 맛이 다르니까요. 『로타의 일본산책』은 특히 아끼는 책인데, 글을 써주신 강한나 작가님의 글이 참 좋아요. 일본의 작은 공간, 솔직한 민낯이 많이 들어간 책이에요.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많은데요. 아직 초기 단계라 뚜렷하게 말씀 드리긴 아직 어려워요. 얼마 전에는 도쿄 긴자에 있는 츠타야 서점에서 전시회 제안을 받았어요. 이렇게 여기저기에서 연락이 올 때마다, 신기합니다. 일본에는 서브컬처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이 굉장히 많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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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타 작가는 필명 ‘로타’와 더불어 미소녀를 주로 찍는 탓에 ‘롤리타’를 콘셉트로 활동한다는 논란이 있다. ‘로타’는 오래 전부터 ‘로봇 덕후’였던 로타 작가가 만든 캐릭터 이름이다.

 

“로봇을 뜻하는 ‘로’자를 앞에 두고, 귀여운 느낌을 주려고 ‘타’를 붙였어요. 큰 뜻 없이 지은 이름인데, 설리 씨 사진을 찍은 후부터 이 이름이 ‘롤리타’의 준말이 됐더군요. 보는 사람에 따라 ‘그럴 수도 있겠다’ 생각했는데, 사실 제가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던 ‘롤리타’의 이미지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캐릭터였어요. 흔히 말하는 롤리타 콤플렉스의 의미를 잘 몰랐던 거죠. 그런데 따지고 보면 사람들이 생각하는 롤리타 이미지가 다 다른 것 같아요. 제가 10대 여성을 상업사진으로 찍은 적은 없어요. 교복 사진을 찍긴 했지만 아주 오래된 일이죠. 요즘은 찍지 않아요. 제가 찍고 싶은 사진은 매력적인 여성이에요. SNS 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는 편도 아닌데, 미소녀 사진을 하나 올리면 네티즌들이 쏜살같이 그 사진을 퍼나르죠. 다른 작업도 하고 있는데 이 사진에만 초점을 맞추더라고요.”

 

로타 작가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연락처를 공개했다. 자신이 찍은 사진과 모델, 가족을 비하하는 악플러를 상대로 고소도 진행 중에 있다. 그는 “학창시절 만화 속에 등장했던 아름다운 소녀들을 사진으로 담아낼 뿐, 롤리타를 콘셉트로 사진을 찍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유명인들의 사진을 찍으며 논란이 된 것일 뿐, 많은 대중매체에 퍼져 있는 롤리타적 요소를 왜 사진 작업에만 특히 부정적인 인식을 주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했다.

 

“제 의도와 달리 해석하는 분들이 계시는 걸 압니다. 그런데 누구나 어릴 적, 이성을 보면서 설레고 가슴앓이 했던 순간이 있잖아요. 그 이미지가 조금 야하고 섹시할 수도 있죠. 제 또래 분들은 많이 공감을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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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적으로 롤리타 논란이 있을 때, 사진을 전공한 로타 작가의 아내는 대범한 한 마디를 던졌다고 한다.

 

“원래 저를 만났을 때부터 제가 범상치 않았다고 해요. 저도 노출에 관해서는 고민을 좀 했었죠. 그런데 아내가 그러더라고요. ‘어중간하게 하지 말고 하려면 제대로 해라’ 그래서 힘을 좀 얻었죠. 최근에 일본 출장을 갔는데, SNS를 통해서 일본 독자 분을 몇 분 만났어요. 한국말을 잘 하시는 일본 독자 분이었는데, 예쁜 느낌, 아슬아슬한 느낌이 제 사진의 매력이라고 하더라고요. 글쎄요. 공격을 계속 받긴 하겠죠. 하지만 전 제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을 표현할 뿐이에요. 서브컬처로 표현하는 것인데 왜 꼭 사진은 이토록 논란의 중심이 되는 지 모르겠습니다.”

 

최근 밴드 몽니는 로타와 뮤직비디오 촬영을 하려고 했지만 팬들의 반발로 영상 공개를 철회했다. 로타는 과거 루싸이드 토끼 등 다수의 밴드와 사진 작업을 한 바 있다.

 

“공연 사진을 오랫동안 찍었고 음악도 좋아하니까요. 기회가 되면 좋은 작업을 하면 좋죠. 지난달에는 KT&G 상상마당 춘천에서 워크숍을 진행했어요. 학생들이랑 만나는 기회가 간혹 있는데 재밌어요. 동기 부여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참여하는데요. 사진이든 뭐든, 그냥 저냥 해서는 안 되는 것 같아요. 정말 재밌어서 빠져들어서 해야지 되는 것 같아요. 저는 그러다 이 지경이 된 건데요. (웃음) 막연한 생각보다 실행력이 더 중요해요. 즐기는 것도 중요하고요.”

 

로타 작가는 모델 사진을 찍을 때, ‘눈빛’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큰 디렉션은 되도록 하지 않으려고 한다. 다만 모델이 좋은 포즈와 좋은 눈빛을 보였을 때, 약간의 조언을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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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스러운 게 중요해요. 모델 표은지 씨 사진을 많이 찍었는데요. 이 분은 원래 직장인이셨어요. SNS를 보는데 느낌이 참 좋더라고요. 그래서 사진을 찍게 됐어요. 사진을 찍을 때 중요한 건 서로의 느낌이에요. ‘괜찮다’ 싶은 감정으로부터 시작되는 거예요. 어떤 매뉴얼을 주면 모델이 오히려 부담스러워 해요. 텍스트로 정리할 수도 있지만 그래서 일부러 안 해요. 정립하는 게 좋은 것도 있지만, 사진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레퍼런스라는 게 생기면 거기에 딱 맞추려고 하니까요. 자유로움보다 더 큰 미학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서브컬처 잡지를 만들고 싶다는 로타 작가는 오보이 김현성 실장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2018년의 목표는 유럽을 비롯해 일본, 대만 등으로 활동 영역을 넓히는 일. 그동안 작업한 사진들도 여러 단행본을 통해 독자에게 소개할 계획이다.


 


 

 

로타의 일본산책줄리아 로스먼 저/김선아 역 | 더숲
도쿄, 오사카, 교토 등지의 유명한 랜드마크뿐 아니라 평범한 거리, 상점, 아이들의 모습에서 일본인들의 일상 속 다양한 정취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최민석 “작가, 자학과 자학 사이를 오가는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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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한국의 소설가나 시인은 옆으로만 사진을 찍을까’ 소설가 최민석은 궁금했다. 그는 몇 가지 가설을 세웠다. 나름의 사정으로 옆모습으로 찍을 수밖에 없었던 작가들이 있었고, 그게 작가들의 특성인 줄 알았던 사진가가 있었다는 것. 그리고 또 한 사람, 등단의 감격에 취해 있던 신인이 있었는데, 그는 ‘감히 내가 카메라를 똑바로 바라봐도 될까’라는 고민 끝에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결국 이런 식으로 30년이 흘러버린 것”이라는 게 최민석의 해석이고, 에세이 『꽈배기의 맛』에 실린 첫 번째 이야기다.

 

상상해 보건대, 그 신인이 최민석 소설가였다면 태연하게 정면을 응시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처럼 “B급 문학을 지향하는 자”를 표방하면서 “나는 작금의 경색되고 위축된 B급 막장소설의 부흥이라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젊어지고 이 땅에 태어났”다고 선언한 이는 지금까지 없었기 때문이다. 최민석이라면, 기존의 관행을 답습하는 대신 ‘왜 안 돼?’라고 자문하면서 새로운 시도를 하지 않았을까. 

 

물론 최민석의 문학이 B급이 아니라는 건 독자들도 알고 나도 안다. 다만 우리는 그의 경쾌한 행보를 지켜보는 일이 즐겁다. 젠체하지 않고, 심오함을 가장하지도 않으며, 담백하게 이야기를 담아내는 까닭이다. 그 맛과 멋을 고스란히 담은 에세이 두 권이 출간됐다. 그 이름도 『꽈배기의 맛』『꽈배기의 멋』이다. “지나치게 달달하거나 느끼하지 않게, 그러나 적당한 기름맛과 설탕 맛이 배게” 쓴 글들이 자꾸만 손길을 잡아끈다.


책 제목은 짧게, 기억하게 좋게!


『꽈배기의 맛』은 기존에 출간하셨던 『청춘, 방황, 좌절, 그리고 눈물의 대서사시』의 개정판인데요. 『꽈배기의 멋』과 함께 내실 계획을 갖고 계셨나요?

 

네. 『청춘, 방황, 좌절, 그리고 눈물의 대서사시』은 두 달 만에 절판을 했으니까, 기회가 되면 반드시 같이 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고요. 『꽈배기의 멋』은 원고가 쌓이면 출간하려고 했는데, 그때 개정판과 같이 내려고 처음부터 생각했어요. 그 생각을 한 4년 전쯤에 했는데, 예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네요.

 

제목 이야기를 해볼게요. 『청춘, 방황, 좌절, 그리고 눈물의 대서사시』는 아버님께서 아직도 제대로 기억을 못하신다고요(웃음).


아무도 몰라요. 애독자도 모르고 저만 알아요. 사실은 이번에도 제목을 그대로 살려서 내고 싶었어요. 그런데 출판사마다 원고를 검토하면서 제목을 바꿨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그러면 독자들이 옛날 책인 줄 모르고 살 수 있지 않느냐’고 했죠. 독자가 중요하니까요. 그래서 기존의 제목을 고집하려고 했는데요. 어떻게 하다가 행사 때 독자들을 만났어요. 제 애독자들이 몇 명 있어요. 정말 극소수의 팬들이 있는데, 그 극소수의 사람들은 제 모든 책을 다 소장하고 있거든요.

 

왜 굳이 ‘극소수’라고 하세요?(웃음)


한 열세 명 정도 돼요(웃음).

 

극소수라니요. 드러나지 않은 분들이 많습니다(웃음).


‘샤이 최민석’인가요(웃음). 이해는 됩니다. 내가 최민석의 독자라는 걸 드러낼 수 없는 그 심정(웃음). 아무튼 그 애독자들도 저 책의 제목을 기억 못하는 거예요. ‘청춘 방황 좌절’이라고 하고. 심지어 『능력자』도 아직까지 ‘능력자들’이라고 하는 분들도 되게 많거든요. 결론은, ‘저 제목에 대한 고집은 나 혼자 갖고 있었던 거였구나, 저 제목은 아무도 애착을 느끼지 않는구나’ 싶었다는 거죠. 그래서 결국 바꾸자는 출판사 제안에 동의했어요.

 

『청춘, 방황, 좌절, 그리고 눈물의 대서사시』이라는 제목에 유독 애착을 느끼시는 이유가 있나요?


일단 제목을 한 번 정해 놓으면 책으로 낸 이상 바꾸기 어렵잖아요. 이미 그 책은 하나의 생명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그리고 새 책인 줄 알고 잘못 사는 사람들도 있을 거고요. 원래 저는 『꽈배기의 맛』의 표지에 ‘『청춘, 방황, 좌절, 그리고 눈물의 대서사시』개정판’이라고 써야 된다고 했는데, 출판사에서 미관상의 이유로 책날개에 쓰자고 하더라고요. 인터넷에는 항상 표기를 해달라고 말하고 있어요. 서문의 첫 문장도 “이 책은 2012년에 발간한 에세이 『청춘, 방황, 좌절, 그리고 눈물의 대서사시』의 개정판이다”라는 건데요. 이런 게 마음에 많이 걸려요.

 

『꽈배기의 맛』, 『꽈배기의 멋』이라는 제목은 어떤 것 같으세요?

 

편집자가 제안한 제목인데요. 예전에 <채널예스>에 ‘최민석의 영사기’라는 칼럼을 3년 정도 연재했어요. 그때 영화 <끝까지 간다>를 보고 칼럼을 썼는데, 서사가 이리저리 가면서 계속 꼬이더라고요. 그래서 그 에피소드의 제목을 ‘꽈배기의 맛’이라고 붙였어요. 꼬아도 꼬아도 이야기의 맛이 산다고요. 편집자가 그 글 제목이 마음에 든다는 거예요. 뭔가 최민석 에세이 같다면서요. 그래서 제가 ‘왜 꽈배기의 맛이냐, 내 책은 꽈배기와 별 상관이 없다’고 하니까, 「꽈배기의 맛」이라는 꼭지를 하나 쓰라는 거예요. 그런데, 두 권이 동시에 출간되니까 제목을 ‘꽈배기의 ~’ 아니면 ‘~의 맛’ 이렇게 맞춰야 하잖아요. 결국 『꽈배기의 맛』으로 정하고 같은 제목의 꼭지를 쓰고, 2권은 『꽈배기의 멋』으로 하고 또 같은 제목으로 꼭지를 썼어요.

 

제목은 마음에 드세요?


편집자의 감을 믿었어요. 주변에서도 어울린다했고.

 

이제 제목에 대한 고집은 버리신 건가요(웃음).


네, 그냥 제목은 짧으면 좋다, 짧고 기억하기 좋으면 좋다고 생각해요.

 

편집자 분이 ‘최민석스럽다’고 말씀하신 게, 무슨 뜻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아요.


저는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몰랐어요. 근거가 없잖아요. 이게 왜 내 책의 제목 같냐고 하니까 그건 설명할 수 없대요. 설명할 수는 없는데 그런 것 같은 느낌이 있다는 거예요. 저는 직관, 느낌, 이런 걸 믿지 않고, 논리를 믿어요. 그래도 편집자가 일단 제안을 하니까 주변에 물어봤죠. 주변 사람들이 다들 나쁘지 않다는 거예요. 일각에서는 괜찮다고 하고요. 그러면 그렇게 가자고 했죠. 대신 「꽈배기의 맛」이라는 꼭지 글을 쓸 수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서 제목을 결정하자고요. 못 쓰면 못하는 거니까요. 그런데 쓰다 보니까 써지더라고요(웃음).

 

이성적, 논리적으로 설명될 수 없는 것은 불신한다고 하셨는데요. 상당히 의외예요. 소설에서는 그렇게 허풍을 늘어놓으시면서...(웃음).


만나면 되게 배신감 느낀다고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어요. 의외로 바른 생활 사나이라고, 심지어 실망했다고 하시는 분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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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원고를 들춰보는 이유는...


『꽈배기의 맛』은 6년 전에, 『꽈배기의 멋』은 3년 전에 쓰신 글이잖아요. 오래전 원고를 다시 보시는 느낌은 어땠나요?


부끄럽죠. 그 사이에 제가 많이 변했으니까요. 6년 사이에 나이도 먹고, 경험도 쌓였으니까. 사람과 세상은 변하기 마련이잖아요. 시간이 지날수록 도덕적인 기준도 높아지고, 나도 그렇게 되고.... 이렇게 되니까, 원고가 옛날만큼 재미있지 않더라고요. 게다가 조금이나마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만하고 문제가 될 만한 내용은 빼다 보니까 더 재미가 없어지는 거예요. 원래 원고가 가지고 있던 투박하지만 날 것의 매력들이 점점 사라지는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춘, 방황, 좌절, 그리고 눈물의 대서사시』는 시장에서 제대로 유통이 못 됐으니까, 다시 내야겠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도 독자들이 『꽈배기의 맛』을 보고 웃어주시고 즐겁게 읽었다고 말해주시니까, 부끄럽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그래요.

 

지난 원고를 다시 꺼내서 보시는 일이 있기는 한가요?


어쩌다 한 번씩 보기는 하는데요. 보통은 마감은 임박했는데 도저히 쓸 뭔가가 떠오르지 않을 때, 옛날에 버린 것 중에 쓸 만한 거 없나 다시 뒤지는 거죠(웃음). 실은 『능력자』가 그렇게 해서 나온 책이에요. 등단하고 첫 슬럼프가 왔을 때, 소설 그만 쓰고 재취업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고 제주도로 내려갔어요. 일종의 이별여행이었죠. 소설과 나와의. 그런데 민박집 주인이, 왠지 모르겠는데 계속 김광석 노래를 틀어 놓는 거예요. 제주 생막걸리를 마시면서 있는데, 그때가 또 겨울이었어요. 쌀쌀하고 추운데 제주도는 바람도 세잖아요. 막걸리를 홀짝홀짝 마시는데 김광석 노래는 계속 나오고, 밖은 춥고...

 

삼박자가 딱 맞아떨어졌네요(웃음).


‘더 늦어지면 취직도 못해’ 이렇게 생각하고 자려고 방에 들어갔는데요. 그런데 뭔가 아쉬운 거예요. 그런 느낌 있잖아요. 헤어진 연인과의 연애편지를 들춰보면서 ‘얘랑 이런 일도 있었지’ 하는, 그런 심정으로 지나간 원고를 보게 되더라고요. 그때 노트북 폴더에 버린 원고가 하나 있었어요.

 

『능력자』의 초고가요?


(제목이) ‘너절한 자아’, 부제는 ‘느는 건 자학뿐’이라는 원고였어요. A4 30페이지 정도를 써놨더라고요. 그래서 쓱 보는데, 술이 취해서 그랬겠죠, 버린 것 치고는 약간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나쁘지 않은데?’ 하다가 ‘젠장, 오기다’, ‘이거 한 번 써보고 때려치우든지 말든지 하자’ 싶어서 다음 날 서울로 올라와서 『능력자』를 썼어요. 다 쓰고 뭐라도 결정해보자 했는데, 고맙게도 ‘오늘의작가상’ 수상작으로 선정됐어요. 그래서 작가 생명이 조금 연장된 거죠. 아, 옛날 원고를 들춰볼 때를 물어보셨는데, 결론은 ‘주로 마감이 임박했는데 소재가 없을 때’, ‘뭔가 술을 마시고 회한에 젖었을 때’ 정도가 되겠네요.

 

『능력자』는 필명으로 내고 싶으셨어요?


필명으로 지원을 했어요. 무슨 필명을 썼는지는 기억이 안 나요. 출판사에서 본명으로 내자고 해서 그러자고 했었죠.

 

이유가 있었나요?


아직도 『능력자』의 몇 장면 중, 마음에 안 드는 데가 있어요. 제가 쓰고 싶은 게 잘 안 나왔어요. 스스로 정한 기준에 못 미친다고 생각해서 필명으로도 지원했어요. 내가 생각하는 문학은 그 보다 좀 더 정교해야 한다고 여겨서, 종종 스스로를 ‘B급 소설가’라 부르기도 했어요

 

『꽈배기의 멋』에는 <대학내일>과 타 매체에 기고하셨던 글들이 실려 있죠?


기본적으로는 제 블로그에 썼던 글들이에요. 다시 에세이를 써야겠다고 생각하고서 혼자 매주 금요일 6시까지 써서 올리고 있었어요. 그때 <대학내일>에서 연재를 해 달라고 해서 블로그에 쓰던 글을 <대학내일>에 발표를 한 거죠. 발표 매체가 바뀌었을 뿐이지, 갑자기 대학생에게 맞는 글을 쓰거나 하지는 않았고요. 물론 그렇다고 해서 40, 50대를 위한 글을 쓰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아무튼 크게 바뀌지는 않고 매체만 바뀐 거예요. 그리고 중간에 월간지나 패션지 같은 데에서 한 번씩 청탁받아서 쓴 글 중에서 책에 실을 만하다고 생각되는 것도 실었고요.


소설의 맛


예전에는 에세이를 쓰려고 소설가가 됐다고 하셨는데요. 시간이 흐르면서 생각이 달라지신 것 같아요.


어쨌든 소설로 등단을 했기 때문에 소설가잖아요. 공식적인 직업도 소설가고. 결국 소설가니까 소설을 써야죠. 처음에는 에세이를 쓰는 방편으로 소설가라는 직업을 택했는데, 쓰다 보니까 소설의 세계에서 재미를 조금 느꼈어요.

 

소설의 맛인가요(웃음)?


네, 소설의 맛(웃음). 소설 쓰는 재미도 느꼈고 읽을 때의 재미도 느꼈어요. 좋은 소설을 쓰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부담도 느껴지고요. 지금 작업 중인 원고를 끝내고 나면, 다음에는 장편 소설을 쓰려고 해요.

 

안 그래도 장편소설 소식이 궁금했어요. 이제 내주실 때가 됐는데, 싶더라고요.


낼 때가 됐죠. 지금 마음 같아서는 글로벌한 소설을 써보고 싶어요. 여러 나라를 배경으로 했으면 좋겠고, 순문학이면서도 장르문학 성격이 있는 작품이었으면 좋겠어요. 이종교배물 같은 소설이요.

 

어렸을 때 첩보원이 되고 싶으셨다고요. 지금도 첩보영화를 자주 보시죠? 


좋아하죠. 그래서 약간 그런 느낌의 소설을 써보려고 해요. 추리와 스릴러에 순문학 성격을 더한 소설을 구상중이에요.

 

대부분 자신이 잘하는 일, 주위의 반응이 좋은 일을 밀고 나가잖아요. 그런데 작가님은 계속 방식을 바꾸시는 것 같아요.


코엔 형제를 좋아하는데요. 필모그래피를 보면 영화가 다 달라요. <인사이드 르윈>은 음악영화, <아리조나 유괴사건>은) 코미디, <파고>는 느와르예요. 이 형제는 똑같은 걸 하기 싫어하는 거예요. 새로운 걸 하면 재밌다는데, 저도 약간 그래요. 약간 다른 말이지만, 작가는 운동선수가 아니에요. 60대 이후에도 체력과 정신력만 받쳐준다면 집필을 계속 할 수 있어요. 이때껏 제가 책을 몇 권 내지도 않았는데, 사람들이 ‘최민석은 이러 이러한 글을 쓰는 작가가 아닌가’ 라고 평가한다고 해서, 그 평가에 기대 60대 이후까지 비슷한 작품을 쓰는 건 무리라고 생각해요. 물론, 좋은 평가에 고맙긴 하지만요.

 

길게 내다보신다는 생각이 드네요. 


오해 없이 받아들여졌으면 좋겠어요. 사실대로만 말하자면, 두 번째로 쓴 단편 소설이 등단작이 됐어요. 사실상 제대로 습작을 못한 거죠. 그러니 등단 이후에 쓴 작품들에 제 부족한 점들이 그대로 담겨 있어요.  그래서, 저는 등단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기간을 일종의 습작 기간이었다고 여겨요.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에라도 새로운 시도를 계속 해야 작가로서 지경이 넓어질 것 같아요. 향후 20년간 이런 저런 새로운 시도를 해서 지경을 넓히고 싶은 마음도 있고, 진짜 잘하는 게 무엇인지 발견하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이런 시도는 60대가 될 때까지는 계속 하고 싶어요. 그때 가서 잘하는 걸 모두 끌어 모으면 나름의 역작을 쓸 수 있지 않을까요? (웃음).

 

『쿨한 여자』, 『너의 눈에서 희망을 본다』, 『풍의 역사』모두 장르가 달랐다고 볼 수 있는데요. 말씀하신 ‘다양한 시도‘의 산물인 셈이네요.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준비되지 않은 초보였어요. 청탁을 받으면 마감에 쫓기면서 썼고, 쓰자마자 발표했어요. 여유하게 연구하고 구상해서 작품을 써본 적이 없어요. 항상 촉박했어요. 실전이 좋은 훈련이라고 여겼지만, 매번 방향성은 스스로 잡아야겠다고 생각 했어요. 그러다보니 단편보다는 장편에 방점을 둬야겠다고 느끼게 되더라고요. 그럼, 단편을 통해서 새로운 시도를 맘껏 해보고 장편을 쓰면서 그걸 활용해보자, 이렇게 여겼죠. 그런데 막상 장편을 쓰다보면 새로운 시도를 막 하고 싶은 거예요. 결국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뒀어요. 소설가로 산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내 스타일은 이거야, 독자들이 기대하는 게 이런 거야’라는 생각에 맞춰서 스타일을 고집할 때가 아니라고 여겨요. 아직도 공부해야 되고 계속 새로운 시도를 해야 돼요.

 

‘소설가로서 이런 발언을 하려면 조금 용기가 필요했을 것 같다’고 생각되는 지점들이 있었어요.


첫 번째는 뭔가요?

 

“소설가가 되기 전까지 읽은 소설은 총 두권”이라는 고백입니다. 굳이 말하고 싶지 않을 수도 있고, 많이 읽은 척 하고 싶을 수도 있잖아요?


눈치가 없어서 그런 거예요(웃음).

 

(웃음) “가진 서적 중에 완독에 성공한 책은 5%도 되지 않”는다는 말은 어떤가요?


그건 지나치게 솔직해서 그런 거고요(웃음).

 

근사한 집을 지으면 “최소한의 서재만 유지하며 살 것”이고 “서재는 작고, 부엌은 크게” 짓겠다고도 하셨는데요.


제가 자취를 오래 해보니까 부엌은 크면 클수록 좋더라고요. 여행을 다니고 인간의 경험이 쌓일수록 식문화에 대한 지경이 넓어지잖아요. 음식에 대한 정서는 기억에 의한 거니까. 고향 음식, 엄마 밥을 그리워하는 것도 정서 때문에 그런 게 크잖아요. 『베를린 일기』를 예로 들어서 이야기하자면, 독일에서 석 달 동안 우울하게 지낼 때 먹었던 따뜻한 수프가 있어요. 저에게 그건 그냥 수프가 아니라 그때의 생활까지 소환시키는 음식인 거죠. 이런 경험들이 쌓이면 점점 먹고 싶은 음식 종류가 다양해져요. 그런데 요리 마다 조리 기구가 다르잖아요. 게다가 소스랑 기름도 다르고. 결국, 확장된 취향에 응하려면 부엌도 커져야겠더라고요.

 

서재는요?


서재가 작아도 책이라는 건 어차피 머릿속에 들어가는 거잖아요. 잊어버리는 건 결국 내가 못 써먹는 거거든요. 그리고 요즘은 인터넷으로 기본적인 정보는 찾을 수 있어요. 필요한 건 고급정보죠. 그러니까 두꺼운 책, 깊이 있고 훌륭한 책, 읽었지만 모든 것을 기억할 수 없는 것들, 예컨대 백과사전 류의 책들을 모아두는 공간만 있으면 되죠. 래퍼런스용으로 언젠가 글을 쓸 때 필요한 것들을 보관하는 거예요. 그리고 평생에 감동의 여진이 남아있는 작품이라면 버리지 못하죠. 그런 것만 추리면 서재가 그렇게 클 필요가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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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자학과 자만 사이를 오가는 존재


‘그래도 내가 작가인데, 웬만한 규모의 서재는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은 해본 적 없으세요?


혼자 살 때 책으로 집을 다 채워 넣은 적이 있어요. 지금 집의 거실에 책을 배치하기도 했었는데요. 결국은 책 먼지가 많아서 알러지 때문에 콧물만 나고, 자꾸 기침 나고, 1년 내내 감기 안 떨어지고, 책벌레 생기고(웃음). 시간 지나니까 ‘내가 저걸 다 읽을 것도 아닌데... 다 허영이다’ 싶더라고요. 결국은 생활의 핵심만 남기게 되더라고요. 결과적으론 소장하던 책의 대부분을 기부하고, 팔고, 버렸어요. 그래도 남은 건 집에서 제일 작은 방에 다 넣어놨어요. 이제 책이 중심이 아니에요. 생활의 중심에는 아이의 미끄럼틀이 있죠(웃음).

 

“한 명의 평범한 문필업 종사자에 지나지 않는 사람 역시 재능이 조금씩 증발되는 운명을 거부할 수 없다”고 쓰셨습니다. 소진된다는 불안감이나 두려움이 들 때도 있으세요?


이미 새로운 이야기가 잘 안 나오는 시기예요. 짧은 글 한편이라도 쓰는 게 너무 어려워요. 그래서 불안감을 느끼는 시기는 이미 지났어요. 쓰기 어려운 게 현실이에요. 새로운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는 것도, 결국은 ‘영감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겸허한 자세로 하고 있는 거예요. 글은 쓰면 쓸수록 더 어려워지는 것 같아요. 왜냐하면 내 기대치는 자꾸 올라가니까요. 그리고 독자들도 새로운 작품이 나오면 발전된 모습을 원하지 퇴보된 모습을 원하지는 않을 거잖아요. 저 역시도 그렇고요. 그래서 쓰면 쓸수록 더 어려워지고, 불안해지는 것 같아요.

 

앞서 저희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작가님은 계속 색다른 시도를 하시잖아요. 그래서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시는 것 아닐까요?


역으로 얻는 에너지도 있어요. 물론, 새로운 걸 배울 때 소진되는 에너지는 있죠. 훈련할 때 흘리는 땀처럼 말이에요. 그런데 운동선수가 훈련할 때 땀을 흘리지만 결과적으로는 근육을 얻잖아요. 새로운 걸 하면, 그걸 연구하고 파악하는 데 훈련 에너지는 들어가지만 그 세계의 정서와 흐름을 파악하게 돼요. 예컨대 스릴러나 로맨스 작품의 경향을 파악하게 되고 이야기 공식을 얻게 되는 거죠. 그게 결국은 저의 에너지로 쓰이는 거예요. 거기에서 매력적인 부분을 발견하면 또 새로운 자극을 받고, 그게 동력이 돼서 또 소설을 쓰는 거고요. 잘하는 것만 계속 하는 것도 상당히 좋은 일인데, 이것저것 하면서 얻는 에너지도 있어서 저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꽈배기의 맛』에 6년 전에 쓰신 유서가 있어요. “써야 할 것을 꾸준히 써냈던 글쟁이로 기억해주길 바란다”고 쓰셨는데요. 소설가 최민석이 ‘써야 할 것’은 어떤 이야기라고 생각하세요?


마감?(웃음)

 

마감이 닥친 글인가요(웃음)?


네, 급한 마감이 있는 글(웃음). 농담이고, 써야할 글이라는 건 내가 쓰고 싶은 글이에요. 누가 ‘너 이거 써라’라고 말하는지는 않으니까요.  저에게는 ‘스스로 쓰고 싶어서 정한 목표를 달성했는지’가 중요해요. 예컨대 제가 지금 쓰고 싶은 장편이 있잖아요. 저한테는 써야할 글인데요. 그걸 잘 써내면 매우 기뻐져요. 그게 작가로서 저의 가장 큰 기쁨이죠. 그걸 못 써내면 깊은 좌절감에 빠져 술에 취한 채 밤거리를 배회하고 있겠죠(웃음). ‘난 틀렸어, 이제 도저히 쓸 수 없어’ 이러면서(웃음).

 

그런 생각, 종종 하세요?


작가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자만과 자학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존재예요. 잘 써질 때에는 좋다 못해 자만하기도 하고, 안 써질 때는 의기소침하다 못해 자학하기도 해요. 그건 여러 번 경험하는 거죠.

 

자학의 순간 뒤에도 다시 쓸 수 있는 건, 자만의 순간이 오기 때문인가요? 어떻게 다시 글을 쓰세요?


마감이 있으니까...(웃음).

 

뒤에서 나를 밀어 주는 힘이네요(웃음).


그런 감상에 빠질 여유가 없습니다. 무조건 써야 돼요.

 

“써야 할 것을 꾸준히 써냈던 글쟁이로 기억해주길 바란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으세요?


6년 전에 쓴 거라, 제가 그 말을 썼다는 것도 기억을 못하고 있어요(웃음). 지금은 그냥 모든 마감에 감사하면서 쓸 뿐이에요. 나에게 청탁을 한 사람과 내 글을 읽은 사람들이 실망 안 하기를 바랄 뿐이에요. 한 편 한 편 쓰는 게 쉽지가 않아요.


 

 

꽈배기의 맛 멋 세트최민석 저 | 북스톤
읽던 자리 아무데서나 쿡쿡거리거나 빵 터지게 하는 그만의 유머가 이번에도 빛을 발한다. 1편 『꽈배기의 맛』에서 이제 막 발을 내딛는 작가의 열기와 다짐이 읽힌다면, 2편 『꽈배기의 멋』에서는 어느덧 등단 7년차를 맞은 작가로서의 일상이 묻어난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구혜선 “부정당했기 때문에 계속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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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알레르기성 쇼크(아나필락시스, anaphylaxis)로 방송 활동을 중단했던 배우 구혜선. 그가 작가이자 작곡가로 다시 섰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증상 때문에 식욕을 완전히 잃었었다는 그는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음악으로 지탱했다고 말했다. 『구혜선 악보집』은 직접 작사, 작곡한 음악 30곡을 담은, 그에게는 버팀목과도 같은 책이다. 글, 그림, 연출 등 배우라는 활동 외에도 다양한 타이틀로 활동해온 구혜선은 음악이야말로 가장 힘들 때 나온다면서 『구혜선 악보집』을 내는 과정이 “굉장한 탈출구”였다고 설명했다. 『구혜선 악보집』에 마치 그림자처럼 죽음과 이별의 이미지가 짙게 드리운 것은 그러니 자연스러운 결과일지 모른다.

 

오랫동안 함께 해온 최인영 프로듀서와의 음악 작업에 큰 애정을 내보인 구혜선은 이번 악보집을 시작으로 의심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시나리오집(12월 중순 출간 예정)과 남편 안재현과의 일상을 사진에 담은 ‘안구의집’을 이어 출간할 예정이다. ‘지금은 모든 것을 버리고 그로 인해 다시 태어나고 싶은 소망을 갖는 때’라고 적었듯 구혜선은 다시 씩씩하게 바깥으로 나간다. 오는 11월 29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 북카페‘디어라이프’에서 팟캐스트 <예스책방 책읽아웃>의 공개방송으로 진행되는 북콘서트에서 구혜선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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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제일 힘들 때 나와요


주위에서 건강 걱정을 많이 했을 텐데, 요즘 좀 괜찮으신가요?

 

너무 건강한 척, 씩씩한 척 했더니 그게 조금 힘들었는데요. 아픈 게 밝혀진 다음부터는 사람들이 잘해줘요.(웃음) 병이라고 보기는 조금 어려운, 증상이에요. 게다가 원인이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니까요. 원인을 알기까지 굉장히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무조건 회피하는 게 답이라 한동안 뭘 먹어야 할지 몰라서 식욕이 완전히 없어졌었어요. 계속 굶었었는데요. 그래도 요즘에는 조금씩은 먹어요.

 

악보집이지만 짧은 글이 군데군데 실려 있는데 거기에서도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이미지들이 있어요. 이별, 죽음, 무덤 같은 것들인데요. 아팠던 때의 작가가 많이 담겨 있는 거겠죠?


네, 아플 때 쓴 글들이에요. 거의 아플 때 나온 글들이고요. 그때는 완전히 저기 가 있었어요. 저기, 먼 곳에요. 밥도 못 먹고, 식욕도 없고, 어떤 욕구 자체가 다 끊긴 시기였어요. 건강이 좋지 않으니까 생각만 많아지고요. 그러니까 이런 글들이 나오더라고요. 고통스러운.

 

아팠지만, 아파서 결과물이 나온 거라고 생각하면 참 얄궂어요. 창작자 입장에서는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개인으로서는 너무 힘든 시간이고요.


아이러니하죠. 그 상황에 몰려야 글이 나오니까 어느 순간 스스로를 그 상황에 몰아붙이고 있잖아요. 창작을 할 때에 그 상황을 만들 때도 있어요.

 

그림, 음악, 글, 영상 등 다양한 작업을 하시잖아요. 각각의 작업을 대하는 태도도 저마다 다를 것 같아요. 방금 몰아붙이는 상황을 만들 때가 있다고 하셨는데 그때는 어떤 작업이 나오는 건가요?


음악이 제일 힘들 때 나와요. 어려울 때, 제일 슬플 때 나오죠. 기쁠 때는 제 음악은 신경 안 쓰고 남의 음악 들어요.(웃음) 한편 의외로 그림은 굉장히 정신 바짝 차리고 있을 때 되죠. 그림은 정확하게 ‘작업’이에요. 작업에 대한 에너지를 그림에 쓰고요. 글은 글마다 조금 다르거든요. 짧은 글은 때때의 감성을 담은 것이고 긴 글은 목적이 있는 것이잖아요. 시나리오 같은 경우는 목표를 정해놓고 쓰니까 작업할 때의 태도와 비슷하죠.

 

말씀을 들으니 어느 정도 분류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짧은 글과 음악, 그림과 시나리오 등으로 나뉘네요.


확연하게 구분이 돼요. 차이가 많이 날 거예요. 그렇게 생각하면 『구혜선 악보집』이 나온 게(웃음) 어떤 건지 짐작 되실 것 같아요. 이게 또 새로운 시작이겠죠. 이것이 없었다면 계속 거기에 머물러 있었을 테고요. 음악을 시작하니까 다시 마음을 비워낼 수 있었어요. 바깥으로 나올 수 있었고요. 『구혜선 악보집』이 나오기 전까지는 아무런 활동을 안 했거든요. 그 전 상황에 계속 갇혀있던 거예요. 사실 이번 작업이 굉장한 탈출구가 됐죠. 

 

가장 처음 수록된 글 마지막 부분에서 ‘지금은 모든 것을 버리고 그로 인해 다시 태어나고 싶은 소망을 갖는 때’라고 적었잖아요. 여기서도 일말의 희망 같은 것이 느껴지죠.


그 글만 3년 전에 쓴 글인데 지금도 똑같은 생각이에요. 그러니 저는 변한 게 하나도 없는 셈이죠.(웃음) 매번 이 시기가 되면 그런 생각에 잠기나 봐요. 해가 거의 다 가고, 가을이 지나는, 10월 31일 즈음이면 항상 그 생각을 해요. 한 해를 정리하고, 새롭게 시작하고요. 계속 반복되는 것 같아요.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그렇게 정리를 하면 씩씩하게 한 해를 보내게 되기도 하는데요. 올해는 초에 아프면서 내내 좋지는 않았죠. 올해는 참 길더라고요. 


너무 힘들어서 상황을 바꿔야겠다, 작업을 해보자, 라는 순간의 생각도 있었던 건가요?


생각도 사실 했죠. 생존 본능으로 말이에요. 그런 상황에 처하니까 살기 위해서 본능적으로 작품이 막 나왔던 것 같아요. 안 그러면 그 낭떠러지에서 다른 선택을 했겠죠. 낭떠러지에 매달려 있을 때는 극단적인 생각을 하잖아요. 작품으로 해소를 하느냐 아니냐, 이런 극단성에서 나온 작업인 것 같아요. 이번 작업은 굉장한 탈출구가 됐어요. 덕분에 극단적인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죠.

 

창작 작업이라는 것이 구혜선 작가에게는 삶으로의 회귀와 같은 거군요.


막 떠드는 거잖아요. 속 얘기를 불특정 다수에게 막 떠드는 작업을 하지 않으면 결국에는 생각에 함몰돼서 극단적인 방향으로 가는 경우가 사실 많죠. 그 상황에 몰입해 있다 보면 그런 감정까지도 가고요. 그러니까 그것을 꺼내는 작업이라서요. 작업을 해서 상황으로부터 빠져나오면 다시는 가고 싶지 않아져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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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를 많이 부여하게 되는 책


악보집 작업을 최인영 프로듀서와 함께했어요. 두 분 함께 작업한지 오래 되셨죠?


계속 최인영 프로듀서와 작업을 했어요. 처음 뉴에이지 음악을 시작할 때부터 작업을 같이 했었는데요. 전혀 모르는 회사에 있는 음악하시는 분으로 만났던 거죠. 그렇게 인연이 됐어요. 저는 연주자가 아니잖아요. 제가 작곡을 한 것을 가장 제 생각답게 편곡을 해주시고, 연주를 해주시는 정확한 기술을 갖고 있는 분이 최인영 프로듀서였어요. 제가 생각을 하고, 기술력까지 있으면 좋겠지만 그것이 가능한 건 그림뿐이에요. 혼자 하는 작업은 그림뿐이고요. 다른 건 전부 협업해야 하는 영역이죠. 음악도 협업해야 하는 것 중 하나예요.
 
호흡이 딱 맞는 분과 계속 작업할 수 있다니, 굉장한 행운이에요.


감성적으로 정확하게 통하지 않으면 안 되는 거잖아요. 일단 저는 믿는데요. 이 사람이 잘한다는 걸 믿어요. 그가 내 감정이 어떤지 정확히 안다기보다는 사실 굉장히 비슷한 사람인 거죠. 비슷한 느낌을 갖고 있는 분이라고 생각해요. 진짜 감사하죠. 그건 영화 작업도 마찬가지인데요. 계속 작업해 온 팀이 있어요. 저는 우리 팀에 대해 믿음이 있어요. 다 알아서 잘하거든요. 내버려두면 다 알아서 잘하겠지, 생각하는 거예요.

 

상대에 대한 깊은 신뢰가 없으면 실은 불가능한 일이겠죠.


저는 인간관계를 잘 못해서 인간관계를 통해서 발생되는 것이 소중하죠. 말 그대로 의심이 많기 때문에 모르는 사람을 보면, 잘 모르겠거든요.

 

앞서 이별과 죽음에 대한 감상을 많이 느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이번 악보집에서 그 생각이 가장 많이 담긴, 특별히 작가에게 의미를 갖는 곡을 꼽는다면 어떤 곡인가요?


‘십 년이 백 년이 지난 후에’라는 곡이에요. 프로듀서에게 곡을 맡기고 아버지가 계시는 예천에서 지냈어요. 그곳에서 그냥 생각에 빠져 지냈는데요. 곡을 맡은 프로듀서가 편곡을 하잖아요. 그런데 그게 텔레파시처럼 딱 맞았어요. 휴대전화로 음악이 와서 산 속에서 그 음악을 듣는데 정확히 저의 생각이 담겨 있더라고요. 더구나 ‘달빛’이라는 곡은 공동작곡이거든요. 제가 작곡을 했는데 최인영 프로듀서가 편곡을 했더니 다른 곡이 됐어요. 결과물이 너무 좋았어요. 그러니 이건 편곡이 아니라 공동작곡인 거예요. 그래서 그 곡은 공동작곡으로 올렸어요.

 

피아노곡과 기타곡이 구분되어 있어요. 기타곡에는 가사가 있고요. 곡을 만들 때의 차이가 있는 건가요?


크게 다르진 않고요. 화음이 있는 걸 피아노곡으로, 코드로만 진행되는 걸 기타곡으로 구분했어요. 이건 연주곡 악보집이잖아요. 대중화된 악기는 피아노와 기타인데요. 피아노는 장소의 구애를 받고 기타는 그렇지 않아요. 그런 것들을 충족시킬 수 있는 악보집을 만들려고 하다보니 이런 구성이 된 것 같아요.

 

악보집을 내기까지 출판사로부터 거절도 몇 번 당했다고 들었어요. 악보집을 내면서 대중의 반응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을 텐데요.


이건 정말 구매하시기 쉬운 책은 아닐 것 같아요. 저도 선물 드릴 때 피아노 치는 분이 계시면 전해주라는 개념으로 했는데요. 다만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성취감이 있고요. 함께 작업해주신 것에 대한 감사함이 있어요. 요즘은 음원 자체가 거의 디지털에 모여 있잖아요. 연주곡에 대한 창작 자체도 줄어들고 있죠. 이런 작업을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야만 또 같이 성장할 수 있어요. 그런 의미를 많이 부여하게 되는 책 같아요. 악보는 세계 공용어잖아요. 누구나 볼 수 있으니까 또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연주하고 싶어 하시는 분들 정말 많거든요. 악보가 필요해요. 계속 만들어야죠. 고전적인 방법이지만 이것을 유지하지 않으면 사라져버릴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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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인간으로 이해하지 못할 때


힘든 상황이 닥쳤을 때, 거기에 깊이 빠지는 편인가요? 무척 힘들었다는 느낌이 들어요.


사실 상황 자체가 굉장히 힘들진 않고요. 그 이후에 발생되는 일들이 어려운 거죠. 아프고, 쓰러지고, 이거는 문제가 아니에요. 아프면 병원에 가면 되죠. 그러나 그 이후 발생하는 사회적인 문제들, 약속과 자본과 분쟁 같은 것들이 있잖아요. 이런 이후의 과정들이 굉장히 힘들죠. 백수일 때는 아파도 상관이 없는데요. 일을 했을 때, 약속으로 똘똘 뭉쳐있을 때는 사실 힘들었어요. 그걸 겪으면서 사회 구성원들의 배려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고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잖아요. 배려가 있지 않으면 반드시 그 과정에서 배로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있는 것 같아요. 또 거기서 도움을 주신 분들도 기억에 오래 남고 그렇죠. 이것도 머릿속에 가지고 있다가 나중에 재미있게 만들어볼 수도 있을 거예요.(웃음) 이제는 웃지만 웃지 못 할 상황이 계속 발생됐었거든요.

 

드라마 하차 말씀이시죠?


네, 그건 사고잖아요. 정말 큰 사고죠. 다들 모르는 일이 일어난 거니까요. 어떤 건 협의해야 하고, 어떤 건 협의하면 안 되고, 이런 것들이 너무 많았어요. 쉰다고 쉬는 게 아니더라고요. 평소에는 세상이 냉정하지 않아요. 문제가 발생됐을 때 냉정해져요. 이럴 때 일과 인간관계가 더 잘 보이기도 했어요.

 

이런 경험이 어떤 작품으로 나올지 궁금해지네요.


제가 언젠가는 어디에 일러바치는 성격이더라고요.(웃음) 경험을 어떤 방향으로든 항상 기록하고, 남겨요. 이유는 모르겠어요. 표현이라고 하지만 그냥 본능 같아요. 번번이 의심하고, 기록해요. 곧 나올 시나리오집이 의심에 관한 이야기인데요. 본질적으로 그게 없이는 쓸 수 없는 거라는 생각도 해요.

 

결국 구혜선 작가가 기록하게 되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라고 할 때 아마도 사람에 대한 깊은 관심이 아닐까 싶어요.


인간의 본질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는 편이에요. 인간을 인간으로 이해하지 못할 때 생기는 문제들이 항상 있잖아요. 최악의 상황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사람을 분명히 변질시켜요. 그러니까 최악으로 몰아붙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궁지로 몰아붙이지 않는 것이 중요하죠. 사회가 워낙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고 하는 경우가 많아서요. 자비, 용서가 좀 필요한 시간이 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죠. 이해가 없으면 어렵다고 생각해요. 인간을 강제하면 사람은 대개 저항하게 되잖아요. 완전히 비뚤어지기도 하고요. 사실 저도 글을 쓸 때는 굉장히 비뚤어지는 면이 있거든요. 결국 제 작업은 인간을 많이 공부하는 과정 같아요.

 

인간적이지 않은 장면을 많이 봤기 때문일까요?


30대가 되니까 다르더라고요. 10대 때는 겪을 것 다 겪었고, 20대 때는 놀 것 다 놀았어요. 이제 30대가 되니까 어느 정도 경험도 있고, 남을 속이는 것도 정확하게 할 수 있고, 어떻게 악용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알게 되더라고요. 그러니까 삶이 굉장히 피곤해지고, 사람들이 다 적으로 보였어요. 30대는 굉장히 힘든, 욕망의 고지에 가까운 나이 같다는 느낌이 들어요.

 

배우, 영화감독, 작가 등 워낙 다양한 경험을 했기 때문에 더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오해를 받기도 했었어요. 다 해봐야만 인간을 관찰하고 통찰할 수 있는데 사회는 그걸 못하게 하죠. 전문적인 것을 강요한다고 해야 할까요? 그런 면에서 많은 경험을 했죠. 영화감독을 했다는 것 때문에 배우로서 의견을 제시할 때도 오해를 받았고요. 20대 때는 음악을 조금 한다더니, 하면서 질타를 아주 많이(웃음) 받았어요. 맷집이 좋아졌죠. 뭘 해도 두드려 맞던 때였던 것 같아요. 그걸 계속 해나가다 보니까 서로를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는 것 같기도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다른 영역에 도전을 했어요. 도전을 할 때마다 어려움을 겪었을 텐데 말이에요. 그 에너지는 어디서 나왔던 걸까요? 


저항의 힘이죠. 부정되지 않았다면 오히려 계속 못했어요. 그때 칭찬 받고, 인정받았으면 안 했을 거예요. 계속 부정당했기 때문에 계속 할 수 있었던 것 같은데요. 정말 부정의 에너지는 엄청나더라고요. 누군가 나를 나쁜 사람이라고 하면 내가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필사적으로 저항하는 거예요. 저는 부모님이 엄청 엄격하셔서 어릴 때 사이가 안 좋았어요.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과 잘 지내는 거예요. 그러면서 이제는 부모님이 왜 그랬는지 알게 된 거죠. 사실 자격지심도 있고, 피해의식도 어마어마했어요. 지금도 그런 면이 좀 있고요. 없으면 못해요. 열등감도 있어야 계속 하는 거죠. 일찍 꼭대기가 되면 더 이상 삶의 이유가 없잖아요. 그러니 꼭대기를 원하면서도 됐을 때가 두렵죠. 되지 않겠지만요.(웃음)

 

지금 원하고 있는 꼭대기는 뭐예요?


뭐든 원해요. 원하는 건 뭐든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거예요. 그게 된다고 믿고 가는 거죠. 혼자 김칫국도 마셔요. 되면 어떡하지(웃음), 큰일이네, 잘 되면 안 되는데, 이러면서요. 요즘에는 잘 안 돼서 참 다행이다, 잘 안 됐으니까 계속 한다, 이런 생각으로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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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시간으로 돌아가는


악플 때문에 힘들어 한 적이 있다는 인터뷰를 봤는데요. 좀 놀랐어요. 악플이 많은 줄 몰랐거든요. 직업에 대한 고민과 닿아 있기도 할 텐데, 연예인이란 너무 많은 관심을 받는 직업이잖아요.


저도 부정할 수가 없는 게 저도 질투를 해요. 나도 누군갈 보면서 되게 비뚤어져요. 내 생각대로 잘 모르면서 나쁘게 보기도 하고요. 그걸 극복하려고 굉장히 노력하지만 하루에도 여러 번 질투하죠. 지나가는 사람만 봐도 질투가 나는 건 어쩔 수가 없어요. 질투해서 뭐해, 라면서 인내하는 거지 사실은 그 생각을 하기 전까지는 질투를 했다는 거잖아요. 실은 그게 지금은 힘이 되기도 해요. 질투의 힘, 부정당하는 것의 힘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요. 그런 시기를 거치고 있는 것 같아요.

 

반면에 tvN <신혼일기>를 찍으면서 의외로 반응이 좋아서 놀랐다고도 했어요.


아마 <신혼일기>를 했을 때는 우리가 질투 날 만큼 좋아보이지는 않았나보다(웃음) 싶은데요. 들여다보니 별 거 없잖아요. 그냥 사람 사는 건 다 똑같고요. 남편한테도 항상 하는 얘기예요. 다 똑같아요. 막상 들여다보면 밥 해먹고, 대충 입고, 씻지도 않고 그렇죠. 거기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려고 하는 순간 망가지지 않을까 해요. 그 당시에는 우리도 별 거 없다는 걸 보여주는 게 목적이었으니까요.

 

12월 중순에 시나리오집이 이어 출간 예정이고요. ‘안구(안재현&구혜선)네집’도 나올 예정이라고 들었어요. 이 기획은 어떻게 하게 된 거예요?


제가 의견을 드린 건데요. 구체적으로 한 건 아니고요. 큰 그림만 만들었어요. 남편을 꼬드겼죠. 지금 ‘안구네집’ 때문에 고민이 많아요. 아날로그 형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는데요. 이제는 사진도 별로 중요하지 않잖아요. 그냥 찍고, 없어져버리죠. 그래서 즉석 사진 있잖아요? 한 장만 있는, 그런 사진 위주로 정확하게 기록이 되었으면 좋겠는 장면을 남기려고 해요. 그런데 이게 생각보다 쉽게 나오지가 않아요. 자연스럽게 나와야 하는데 마음먹고 “가만히 있어, 찍어!”(웃음) 하게 되니까요. 한참 그런 딜레마가 있었어요. 또 아무래도 저희의 직업이 보여지는 직업이니까 너무 편안한 건 어렵고 그래서 수위를 조절하는 게 쉽지 않더라고요. 이런 저런 어려움이 많아요. 지금껏 몇 백 장을 찍었는데 건진 건 몇 장 안 돼요. 계속 찍고는 있어요.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서도 고민을 하고 있고요. 단순히 개인적인 행복의 시간을 넘어서는 공감이 있어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다양한 작업을 많이 하셨잖아요. 더 해보고 싶은 작업이 남아 있나요?


그림, 음악, 영화, 글 등 많이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한 영역이거든요. 연기를 제외하고는 전부 저의 이야기를 하는 영역이죠. 연기는 다른 사람의 것을 표현해내는 영역이라 조금 힘들고요. 그 외에는 사실 굉장히 게으르고 관심도 없어요. 생활에 대한 지식도 많이 떨어지고요. 경제관념도 많이 떨어져요. 남편은 저와 다르거든요. 그래서 최근에 싸우기도 했어요.(웃음) 버스를 타는데 남편이 교통카드를 자기 것만 찍고 탄 거예요. 남편은 그게 당연한데 저는 “두명이요”라고 하면 되잖아(웃음) 이러면서 싸웠죠. 그런 것도 어찌보면 제가 시스템에 뒤떨어지는 거죠. 게다가 너무 빨리 변해서 몇 년만 놓쳐도 못 따라가겠더라고요.

 

악보집도 계속 나올 예정인가요?


음악 작업을 계속 할 거예요. 곡이 또 모아지면 악보집을 또 내야죠. 이것도 사실 한 번에 30곡이 나온 게 아니거든요. 곡이 쌓이고 책으로 나온 거라서요. 결과가 단 시간에 올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고요. 길게 바라보고 있어요. 항상 너무 길게 봐서(웃음) 문제이긴 하지만요. 제가 하는 뉴에이지 음악도 유통기한이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시대를 반영하지는 않고, 개인의 시간으로 돌아가는 음악인 것 같아요. 가요는 시대를 반영하잖아요. 그 음악을 들으면 우리는 그 시대로 돌아가서 추억할 수 있는데요. 그것과 제 음악은 조금 다른 영역에 있는 것 같아요. 


 


 

 

구혜선 악보집구혜선 저 | 더디퍼런스
소설과 영화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활동하고 있는 그녀의 사진과 직접 쓴 짧은 글이 함께 수록되어 있어 잔잔한 감동과 아름다운 선율이 하나 됨을 느껴 볼 수 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윤고은 “악은 자기 위치를 지키고 싶은 데서부터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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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고은 소설에는 기발한 상상력이 가득하다. 첫 번째 장편소설 『무중력 증후군』에서 제2의 달을 띄웠고, 단편 「1인용 식탁」에서는 혼자 밥 먹는 법을 가르치는 학원을 만들었다. 두 번째 장편 『밤의 여행자들』에서는 재난 여행만 기획하는 여행사를 차렸다. 이렇듯 그녀가 쓴 이야기에는 세상에 없던 사건이 생기거나, '아니 이런 일로 먹고 사는 사람이 실제로 있단 말인가?' 하는 의문을 품을 만한 직업이 등장한다. 과연 다음에는 어떤 기발한 이야기가 펼쳐질까.


우선 세 번째 장편인 『해적판을 타고』 표지는 가을을 연상하게 한다. 심오한 의미는 없고, 표지 색이 노란색이어서다. 노란색 하면 은행나뭇잎이 가장 먼저 생각나는데, 노란색 - 은행나뭇잎 - 가을 이런 연상인 셈이다. 개인적으로는 푸르렀던 나뭇잎이 떨어지는 가을이라는 점에서는 쓸쓸함을, 노란색에서는 따뜻함을 느낀 작품이 이번 소설이다. 실제로 이 작품에는 냉기와 온기가 공존한다.

 

소설 속 주인공 유나네 가족은 마당이 딸린 집에서 산다. 어느 날, 갑자기 마당이 파헤쳐지고 정체 모를 아저씨들이 와서 땅 속 깊이 뭔가를 묻는다. 동네 사람들이 해로운 폐기물이라고 수군댄다. 그 날 이후, 실제로 마당에서는 왕지렁이가 출몰했고 동생은 키가 자라지 않는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돌아가는 상황은 차갑기만 하다. 이렇듯 『해적판을 타고』는 인간을 둘러싼 환경을 다룬 소설이다. 전작에서 골몰했던 생존을 향한 작가의 고민이 이번 작품에도 투영되었다.

 

버리는 방식이 곧 살아가는 태도

 

『늙은 차와 히치하이커』이후로 1년만에 책을 냈습니다. 그간 어떻게 지내셨나요.

 

단편소설과 칼럼을 꾸준히 썼고요. 강의와 여행도 하면서 지냈어요. 2017년을 시작할 무렵에 세운 계획은 약간 틀어졌지만요. 예를 들어 규칙적인 운동과 외국어 공부, 하루에 물 7컵 마시기, 뭐 그런 거. 그 계획이 습관처럼 박히지 못한 건 ‘예스블로그’에 연재했던 『해적판을 타고』탓이 커요. 1월부터 연재를 하는 바람에, 그 연재가 최우선이 되어버린 거예요. 전 카페에서 글을 자주 쓰는데, 글을 쓰고 나면 운동하러 갈 의욕이 뚝 꺾이거든요. 달콤한 게 먹고 싶을 뿐이죠. 그래서 아예 운동복, 그러니까 점퍼 안에 요가복 같은 걸 입고 카페로 가기도 했는데 좀 더 운동하러 가기 편한 환경을 만들어준 거죠. 그런데 운동복을 입으니까 운동을 하지 않고 단지 글을 써도 운동을 한 것 같은 착각을 주더라고요. 요즘 옷들이 좋아서 그런가, 서너 시간 동안 활달한 요가를 한 기분으로 글을 쓰곤 했어요. 운동복을 입고 글 쓰는 게 은근히 좋아요. 땀 흡수도 도와주고요, 물론 땀 흘리며 글 쓰지는 않겠지만 설사 내가 땀을 흘려도 흡수해주는 무언가가 내게 있다는 건 기분상 도움이 돼요. 근육 잡아주는 탄탄한 소재도 좋고요. 덕분에 지금 쓰고 있는 소설에 ‘라이팅웨어’가 등장하게 됐어요. 글 쓸 때 도움이 되는 스포츠룩에 관한 얘기예요. 사실 소설 쓰는 행위도 스포츠와 닮은 점이 많아요!
 
『늙은 차와 히치하이커』에 실린 정소현 소설가와 대담에서도 밝혔지만, 인물의 생존에 집중한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이전 장편인 『밤의 여행자들』의 주제도 생존이었어요. 『해적판을 타고』역시 생존에 관한 소설인데요.
 
요약하자면 생존 아닌 건 없을 테니까요. 생존이란 말은 살아남은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을 동시에 떠올리게 해서 자주 곱씹게 돼요. 그리고 생존에 대해 생각하다 보면 늘 ‘쓰레기’까지 이어지게 돼요. 버려진 것, 용도를 다한 것, 선택의 기로에서 선택받지 못한 것, 그게 쓰레기잖아요. 사람들이 무언가를 버리는 방식이 우리가 곧 살아가는 태도를 보여주기도 하니까, 쓰레기에 관심이 많아요. 이번 소설은 그 쓰레기를 내 집 마당까지 끌고 와서 좀더 밀착된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무서운 건 이 가족이 마당을 누군가에게 ‘빌려준’ 것뿐이라는 거죠. 처음부터 영구적으로 마당을 제공하기로 한 게 아니라, 임시로 빌려준 입장이니까 더 괴로울 거예요.
 
올해 탈원전 담론도 활발했는데요. 시대를 앞서나간 소설이 아니었나 싶어요.
 
몇 년 전에 『밤의 여행자들』을 쓸 때만 하더라도 한국에서 싱크홀 관련 기사를 많이 보진 못했던 것 같아요. 지금에 비하면요. 「늙은 차와 히치하이커」도 그랬죠. 생존배낭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그걸 쓸 때만 해도 생존배낭이 뉴스에 등장하고 국회에 등장하고 그런 건 아니었거든요. 종종 「1인용 식탁」을 혼밥 문화, 1인 문화와 연결 짓는 분들도 계신데 그 작품도 쓸 당시에는 혼밥이란 개념이 없었어요. 이런 상황들이 재미있지만, 어찌 보면 당연한 것도 같아요. 소설과 현실을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으니까요. 뭐가 앞서 가고 뒤에 오고 그런 거라기보다는, 손으로 허공을 휘저어도 뭐가 걸리는 거죠. 최근엔 「부루마블에 평양이 있다면」이란 소설에서 ‘개성신도시’나 ‘평양2차분양’ 같은 얘기를 했는데 이것도 언젠가 가능할 거예요.

 

『해적판을 타고』가 어느날 갑자기 주인공 집 마당에 정체 모를 폐기물이 묻히는 이야기잖아요. 환경, 생태를 다뤘는데, 첫 장편인 『무중력 증후군』에서부터도 환경을 향한 작가님의 관심이 드러났어요. 미세먼지라든지, 태안 기름 유출 이야기도 나왔거든요. 이렇게 환경을 향한 관심이 남다른 계기가 있을까요. 
 
신문 볼 때도 환경 섹션을 잘 봐요, 지구와 우주에 관한 기사도요. 내가 살고 있는 터전에 관한 관심은 자연스러운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제가 지인들에게 건네는 안부인사가 ‘먼지 조심하세요’ 하는 걸 최근에 깨달았어요. 뭘 자꾸만 조심하라고 말하게 되고, 나열하자면 끝이 없기 때문에 뭉뚱그려서 ‘먼지’로 포장했어요.
 
작가님이 그리는 재해가 자연만 개입하는 사건은 아니잖아요. 인간과 엮이면서 사건이 더 커지는 면이 있어요.
 
인간이 원인 제공을 하는 경우가 정말 많으니까요. 우리에게 리모컨이 없다고 믿는 거대한 재난재해도 파고들면, 우리에게 뭐라도 있었던 경우가 더 많고요. 인간의 주머니 속에 들어있는 그 리모컨에 관심을 갖고 있어요. 그게 어떻게 생겼을지, 거기에 어떤 버튼들이 있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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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은 자기 위치를 지키고 싶은 데서부터 시작

 

『해적판을 타고』에서의 해적판이 『어린왕자』인데요. 『어린왕자』를 선정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어린왕자 삽화야 워낙 유명하니까 여기저기 많이 보이잖아요. 기본적인 이미지는 같아도 그리는 사람에 따라서 사소한 부분들, 모양이나 색감이 다를 수 있고요. 어느 빵집에서 본 어린왕자 이미지에 자꾸 눈길이 가더라고요. 유독 어린왕자의 목도리가 위로 치솟아 있어서, 위험하게 느껴졌거든요. 정말 어디 나무나 기둥 같은 곳에 걸릴 것처럼. 아니면 이미 나무 같은 데 걸려있거나. 생떽쥐베리가 그린 어린왕자의 삽화를 요즘 사람들이 더 예쁘게, 귀엽게, 그리는 과정에서 목도리가 좀 유연해진 것뿐인데, 제겐 강렬했어요. 그때 이후로 어린왕자 삽화를 볼 때마다 전 좀 기괴하고 공포스럽게 여겼던 것 같아요. 그런 이미지를 활용하고 싶었어요. 어릴 때 읽었던 『어린왕자』와 시간이 한참 지나 읽은『어린왕자』는 느낌이 좀 다르기도 하잖아요. 어릴 때는 ‘가로등 켜는 사람’은 그저 단역에 불과했는데, 지금은 그 사람이 주인공 같아요. 그렇게 시차를 두고 읽었을 때 다양한 접근이 가능하다는 점도 선택의 이유가 됐어요.
 
윤고은 소설은 사람을 극단적으로 나쁘게 묘사하진 않잖아요. 이번 작품에서 소장이 악역으로 등장하긴 하지만요.
 
한정된 것을 나눠야 하니까 거기서 모든 문제가 시작되는 것 같아요. 누구나 가해자가 될 수도 있고 피해자가 될 수도 있죠. 다만 그런 시험을 당할 기회가 내 삶에 없길 바랄 뿐인 거고요. 그런데 우리가 어떤 집단 안에서 하나의 부품으로 존재할 때는 문제가 좀 복잡해져요. 제 소설 속에 등장하는 악은 자기 위치를 지키고 싶은 데서부터 시작돼요. 불안한 거죠.
 
악이 개인 차원보다는 조직 차원이라는 의미인데요. 작가님 소설을 보자면 전작도 그렇지만 이번 소설에서도 조직이 돌아가는 생리를 촘촘하게 묘사해요. 그래서 작가님이 회사 생활을 한 적이 없다는 걸 알았을 때는 놀랐어요.
 
사실, 조직 아닌 곳이 없잖아요. 굳이 회사가 아니더라도, 세 사람만 모여도 조직이죠. 물론 매일 같은 시간대에 출퇴근하는 삶을 길게 해 본 적은 없지만, 제 주변에 직장인들이 많아요. 오히려 직장 생활 경험이 없어서 더 잘 보이는 패턴도 있고요. 매일 아침 출근 시간에 만원 지하철에 올라타는 사람이랑 저처럼 어쩌다 그 시간에 타게 된 사람은 관심사가 다르니까요. 전 이동할 때 머리 속이 환기되는 느낌을 자주 받는데요. 그걸 돕기 위해서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휴대폰을 잘 안 봐요. 주변 모두가 자극이 되거든요. 열심히 보고, 주워 담느라 바빠요.
 
결말만 보자면 전작보다는 밝은 느낌이에요. 『늙은 차와 히치하이커』에 수록한 「된장이 된」도 따뜻한 작품이었고요. 작가님이 변한 걸까요. 
 
『해적판을 타고』의 결말이 아주 따뜻하다고는 느끼지 않아요. 어쩌면 이 삼남매는 엄청난 트라우마를 겪고 있을 수도 있죠. 앞으로 사태가 잘 해결될지 어떨지도 모르고요. 다만 『밤의 여행자들』에서는 마지막에 인물이 혼자 남겨졌다면, 이번 작품에선 가족과 친구와 함께라는 게 달라요. 거기서 어떤 체온이 느껴진다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겠지요. 그 온기로 유나네가, 이 십대들이 잘 자라났으면 좋겠어요. 그들 말대로 기억하면서요.
 
유나네 가족이 마당 있는 집에서, 직원 숙소로 가며 마당을 잃어버리잖아요. 대도시에 대부분이 사는 우리들 상황이랑 비슷하네요.
 
소설 속의 마당이란 건 진짜 물리적인 ‘공간’을 말하는 걸 수도 있겠지만, 어떤 ‘시간’처럼 볼 수도 있어요. 구체적인 나이는 다 달라도, 모두에게 ‘유년’이란 게 있을 테니까요. 누구에게나 유년은 마당을 닮은 시간이에요. 마당은 밀폐된 공간이 아니잖아요. 위가 뚫려 있기 때문에 뭐든 날아올 수 있어요. 위에서 내려다볼 수도 있고요.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만큼 어떤 가능성이나 유연함을 가진 공간일 수도 있죠. 마당처럼 유년기의 우리가 그랬을 거예요. 우린 어른이 되면서 그런 마당을 잃어버리지만, 다시 되찾기 원하고, 그리워하죠. 그렇지만 또 마당으로 다시 돌아가라고 하면, 위가 뚫려있는 그 구조가 두려워질 거예요. 부담스럽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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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심하는 순간을 만들라

 

『무중력 증후군』에도 나왔던 '심플라이프'라는 잡지가 또 등장해요. 실제로 있는 잡지인가 싶어서 찾아도 봤습니다.
 
허구죠. 제가 이미 다른 소설에 쓴 것, 특히 고유명사들을 다시 불러오는 걸 즐겨요. 사람 이름이나 잡지 이름도 그렇고요. 문장도요.「책상」에 나오는 문장이 『무중력 증후군』의 첫 문장이라든가, 이런 식이죠. 그 문장은「평범해진 처제」에도 등장해요. 제 소설을 읽으시는 독자들이 이런 걸 발견하면서 깨알재미를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어떤 부록 같은 거예요. 제가 만든 이름들에 대한 안부 같은 것이기도 하고요.
 
이번 작품에서 쓰고 나서 잊혀지지 않는 장면을 꼽아주세요.
 
뒤뒤하고 유나가 풍력발전기를 앞뒤로 하고 걷는 부분들을 좋아해요. 실제로 제가 풍력발전기의 그림자를 인상적으로 봤던 기억이 있어요. 발전기의 날개가 리드미컬하게 돌아갈 때 그 날개의 그림자가 갯벌 위에 펼쳐졌거든요. 제가 눈으로 봤던 것보다 더 아름답게 쓰고 싶었죠. 뒤뒤와 유나가 위로라는 말을 ‘위로(Up)’와 ‘위로(Comfort)’로 구체화하는 부분도 좋아해요. 제가 실제로 동음어, 유의어를 이용한 장난들을 좋아하거든요. 실제로 제가 발음이 비슷한 말을 혼동해서 해프닝이 벌어지는 경우도 많고요. 최근에는 부산에 갔다가 남항대교를 라망대교로 알아들은 거 있죠. 라망대교, 라망대교, 그 말을 들으면서 약간 프랑스풍이네, 뭐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은데, 사실 ‘라망’이 아니라 ‘남항’이었던 거죠. 참고로 라망은 불어로 연인이란 뜻이래요. 그렇게 해서 지도에는 없는 ‘라망(연인)대교’가 탄생했어요. 재미있는 건 이런 식의 실수가 제 소설의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는 거죠. 물론 일부러 실수하는 건 아니고요. 소설엔 좋은데 몸이 고생해요.
 
분량에 관한 질문을 드릴게요. 작가님의 장편은 조금 짧고, 단편은 조금 긴 편입니다.
 
현재까지는 제게 익숙한 호흡이었던 것 같아요. 이 정도의 장편, 그리고 이 정도의 단편이요. 앞으로는 어떨지 모르겠어요.
 
윤고은, 하면 상상력이 뛰어난 작가라는 평이 많습니다. 평소 상상력은 어떻게 단련하나요?
 
글쎄요. 『해적판을 타고』작가의 말에도 이렇게 썼는데, 먼지들이 뭉치면 별 폭발을 이뤄낼 수 있다고요. 모든 게 다 특별한 먼지라고 생각해요. 언제 어디서 나타날지도 모르기 때문에, 반짝하고 올 때 재빨리 기록해두죠. 그렇지 않으면 지나가버려요. 가끔 마중도 나가요. 머리 감을 때 아이디어가 잘 떠오르거든요. 옛날부터 그랬어요. 심지어 술 마시고 기억이 가물가물해진 것도 머리 감기가 해결해줘요. 지압 효과가 있어서 그런가요? 샴푸로 범벅이 된 손가락을 재빨리 수건으로 닦고 욕실을 뛰어나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 방금 떠오른 순간을 재빨리 메모하기 위해서죠. 그래서 한번은 메모지와 펜을 욕실에 뒀는데, 오히려 아무 생각이 안 나더라고요. 생각이 오면 바로 받아적을 준비가 되어 있는데 아무 신호가 없었어요. 아무래도 중요한 건 ‘멍’이에요. 멍하니 멈춘 순간, 목적 없는 산책, 그런 거요. 방심하는 순간을 만들고, 그 순간 무언가가 떠오르면 그때부터는 스피드죠. 모기 잡듯 재빨리 손을 움직여야 해요. 방심과 기록, 그게 전부 아닐까요.
 
이제 곧 등단한 지 10년입니다. 달라진 점, 변하지 않는 점이 있나요?
 
달라진 건 새로운 이름이 생겼다는 점이죠. 윤고은은 소설을 쓰기 시작하면서 만든 이름이니까요. 택배나 전화나, 전 두 이름으로 다른 내용들을 받는 셈이거든요. 그런 구분이 양쪽 모두를 자유롭게 해요. 웃긴 게, “여보세요.” 했다가도 작가 윤고은을 찾으면 제 목소리가 좀 바뀌어요. 뭐랄까 약간 우아한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하는 것 같더라고요. 또 다른 이름의 입장에서 보면 확실히 그래요. 윤고은을 찾는 전화가 스팸전화일 리는 없으니까요. 변하지 않은 건 여전히 제겐 아무도 밟지 않은 눈밭이 있다는 거예요. 어떤 발자국도 남아있지 않은, 아주 새하얀, 저만 알고 있는 공간이요. 저만의 리듬과 저만의 보폭이 있다는 걸 의심해본 적은 없어요. 그 믿음 하나로 쓰는 거거든요. 약간의 두려움과 설렘을 동반한 채로요.

 

2018년, 내년의 계획을 알려주세요.

 

2018년에 장편소설 한 권이 출간될 거예요. 좀 특별한 경매에 대한 얘기예요. 월간지에 새 장편도 연재할 계획인데, 그건 결혼에 대한 얘기가 될 거예요. 당연히 새해가 되면(혹은 그 전에라도) 운동을 통 크게 또 1년씩 끊을 것 같은데, 운동복을 입은 것만으로도 이미 운동은 충분했다, 고 우길 수도 있겠죠. 그렇지 않기를 바라면서!


 

 

해적판을 타고윤고은 저 | 문학과지성사
해결할 수 없는 미로에 갇힌 듯 점점 마당 밖의 세상으로부터 고립되어가는 가족의 이야기에 주목함과 동시에, “이게 저희 가족만의 문제가 아닌 거 아니에요?”라며 의문을 던진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동영 김하나 “팟캐스트 ‘예스책방 책읽아웃’, 들어보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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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다른 두 사람, 『내가 정말 좋아하는 농담』, 『힘 빼기의 기술』을 쓴 김하나 작가와 『너도 떠나보면 나를 알게 될 거야』, 『나만 위로할 것』, 『잘 지내라는 말도 없이』등을 쓴 김동영 작가에게 최근 공통점이 생겼다. 도서 팟캐스트 <예스책방 책읽아웃>의 진행자가 된 것.

 

예스24와 BC카드가 공동 제작하는 팟캐스트 <예스책방 책읽아웃>에서 둘은 ‘김하나의 측면돌파’와 ‘김동영의 읽는인간’이라는 이름을 걸어두고, 지난 10월 19일부터 격주로 방송을 진행하는 중이다. 팟캐스트를 종일 듣는 김동영 작가, 팟캐스트를 거의 듣지 않는 김하나 작가, 수다를 떨 듯 게스트와 만나는 김동영 작가, 반듯하고 정확하게 묻고 듣는 김하나 작가. 이렇듯 두 사람은 다르다. 김하나 작가는 “저희 둘의 프로그램 제목이 바뀐 것 같은데요.”라고 말하기도 했다. 전혀 다른 두 가지 색깔이 교차하는 곳, 팟캐스트 <예스책방 책읽아웃>, 이곳에서 그만큼의 다양성, 그만큼의 새로움을 기대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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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경쟁 팟캐스트요?

 

팟캐스트 진행 처음 제안 받았을 때 어땠나요? 고민도 있으셨나요?

 

김하나: 1년을 꾸준히 진행해야 한다는 것 때문에 고민을 조금 했었는데요. 팟캐스트 진행은 재미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평소에 따로 만나기는 어려운 분들을 모실 수 있는, 일적으로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거니까요. 제가 궁금한 것도 물어볼 수 있고, 그 사람을 알아갈 수도 있는 좋은 기회잖아요. 일단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새로운 경험을 하는 거라 ‘재미있겠다’ 생각했어요.

 

김동영:저는 6개월인 줄 알았거든요. 그동안은 긴 여행 갈 일이 없겠지 생각하고 수락했는데요. 처음 제안 받았을 때는 책 팟캐스트를 새로 만들려면 더 재미있거나 유익해야 하는데 과연 그 안에서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죠. 책 팟캐스트가 이미 많으니까요. 사실 출연료가 괜찮았고(웃음), 집에서 가까운 곳에서 방송을 하니까 수락하게 됐어요.

 

김동영 작가님은 평소에 팟캐스트를 많이 듣는다고 알고 있어요. 그러니까 제안을 받았을 때도 먼저 프로그램의 성격을 생각해보셨던 거네요?

 

김동영:네, 많이 들어요. TV나 라디오를 안 듣고 팟캐스트를 듣거든요. 이미 책에 관한 팟캐스트는 강자들이 많잖아요. 스타일도 다양하고요. 그래서 프로그램이 특이하지 않으면 정말 묻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어요. 전체 팟캐스트가 2,000개가 넘는다고 하더라고요. 그 중 순위를 100위까지 매기는데, 그 안에 들기가 진짜 힘들잖아요. 제대로 해야 할 텐데, 하는 걱정이 좀 많았죠.

 

팟캐스트의 매력은 뭔가요? 많이 듣는 이유가 궁금해요.

 

김동영:우선 TV나 공중파에서 다루지 않는 주제들을 많이 다뤄요. 제가 좋아하는 음모론 같은 것들도 있고요. 책에 관한 팟캐스트를 봐도 그렇죠. TV, 라디오처럼 신간만 다루는 게 아니라 특정 분야를 중점적으로 다루거나 하거든요. 공중파가 균형적이라면 팟캐스트는 지극히 편향된 정보를 준다는 점도 흥미롭죠. 정치는 말할 것도 없고요. 듣다가 의견이 다르면 안 들으면 그만이고요. 라디오와 방식은 비슷하지만 팟캐스트는 전혀 성격이 다르다고 생각해요. 팟캐스트는 솔직함이 매력을 주는 것 같아요. 모르는 건 모른다고 얘기하거나, 하는 식이죠.

 

김하나:김동영 작가님은 잘 알고, 많이 들으시니까 색깔을 어떻게 만들지 고민하셨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저는 팟캐스트에 대한 지식이 없었어요. 그래서 오히려 그 부분에는 고민이 없었던 것 같아요. 라디오도 잘 안 듣거든요. TV도 거의 안 보고요. 소리가 나면 작정하고 듣는 편이지 틀어놓고 무얼 잘 못 하는 편이라서요.

 

방송이 이제 막 2회 정도 나간 상황이에요. 서로의 팟캐스트를 청취하신 소감이 듣고 싶습니다.

 

김동영:나는 저렇게 할 수 없는데,(웃음) 하는 것을 느꼈죠. 김하나 작가님은 오프닝부터 정확하게, 발음도 확실하게 잘하시더라고요. 전달력도 있고요.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도 확실하셔서 참 재미있게 들었어요. 그래서 처음에는 걱정을 좀 했는데요. 나중에는 오히려 아예 다르게 방송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어요. 그래도, 부럽죠.

 

김하나:저는 도리어 진행자와 게스트 사이에 공간이 거의 없는 것처럼 느껴져서 부럽던데요. 딱 붙어서 공간이 없는 것처럼 느껴져서 김동영 작가님 방송 좋았어요.

 

두 분이 ‘김하나의 측면돌파’와 ‘김동영의 읽는 인간’을 격주로 진행하고 계시는데요. 앞으로 나의 프로그램이 어떤 모습이었으면 좋겠다고 하는, 프로그램의 지향점도 있을 것 같아요.

 

김동영: 사실 작가들의 취향이나 관심사를 물어보고 싶어요. 이미 쓴 글에 대해서는 많이 말하지 않아도 말이에요. 그건 이미 나온 것이니까요. 기본적으로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되면 궁금해서 책도 읽어보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책을 소개해서 그 사람을 아는 것보다 그 사람의 매력적인 부분을 많이 끌어내서 책으로 연결되게 하는 쪽이 저한테 잘 맞는 것 같아요. 우선 저는 얕기 때문에(웃음) 수다 떨듯이, 소개팅 하는 식으로 얘기하는 게 편하더라고요.

 

김하나:말씀을 듣다보니 저희 둘의 프로그램 제목이 바뀐 것 같은데요.(웃음) 저는 평소에도 얘기할 때 또박또박 묻고, 듣는 스타일이에요. 그런 면이 그대로 팟캐스트에 옮겨간 것 같아요. 제가 참여하는 ‘얕은 지식’이라는 모임에서 디자이너 분이 사람마다 어울리는 서체를 붙여준 적이 있어요. 저만 서체를 두 개 정해줬는데요. 하나는 ‘타임즈뉴로만(Times New Roman)’이라고 해서 신문에 들어가는 정격적인 모양의 서체고요. 다른 하나가 ‘개발새발체’였어요. 술 취했을 때와 평소가 다르다고요.(웃음) 그러니까 팟캐스트는 타임즈뉴로만에 해당하는 모습으로 진행하고 있는 거예요. 제가 할 수 있는 부분은 그래서 더 정격적인 부분인 것 같아요. 말을 정확하게 구사하려고 노력하고, 말끝을 흐리지 않고 끝까지 또박또박 얘기하려고 하고요. 실은 성우 수업을 들은 적이 있거든요. 말을 정확하게 하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을 또 재미있어 하는 것 같아요. 진짜 바뀌었네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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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 팟캐스트로 생각하는 프로그램도 있나요?

 

김동영:김하나 작가님 프로그램과 제 프로그램이 아예 다른 것 같은데요. 김하나 작가님은 <김태훈의 책보다 여행>일 것 같아요. 그 프로그램은 깊이가 있어요. 정보도 많고요. 김태훈 선배가 원래 그런 스타일이 아닌데(웃음) 그렇게 하시더라고요. 한 번 제가 출연해서 완전히 망쳐놓고 왔는데요. 제 프로그램은 아무래도 요조 씨와 장강명 작가가 진행하는 <책, 이게 뭐라고>이 아닐까 싶어요. 듣기가 무척 편안하더라고요. 목소리도 듣기 좋고요. 아, 사람들이 이래서 좋아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잘하시는 것 같아요.

 

김하나:이제라도 시장조사를 해야겠네요.(웃음) 가끔 <송은이 & 김숙 비밀보장>처럼 화제가 되는 것들은 한 번 씩 듣고 그랬지만 워낙 팟캐스트를 즐겨 듣거나 하질 않아서요. 다만 요즘은 다음 책 원고 때문에 그림을 그리는 게 있는데요. 그릴 때는 소리가 있는 게 더 좋더라고요. 지금 말씀하신 팟캐스트를 쭉 들어봐야겠습니다.

 

혹시 섭외하기 힘들지만 꼭 초대하고 싶은 게스트가 있나요? 이 인터뷰 기사로 초대장을 보내는 심정으로 말이죠.(웃음)

 

김하나:처음에 모시고 싶다고 말씀드렸던 분이 있는데요. 황정은 작가님이에요. 『백의 그림자』를 읽고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쓰러졌거든요. ‘이 사람이 너무 좋다’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요. 나중에 팟캐스트를 진행하신다고 해서 들은 적이 있어요. 목소리가 내 상상과 너무 다르지 않았으면, 하고 생각하면서 떨리는 마음으로 들었는데 제가 생각한 목소리여서 또 좋았어요. 그리고, 아이유 씨요.(웃음)

 

김동영:떠오르지가 않는데요. 론리플래닛 편집자 분들이 궁금하고요. 만화가 분들도 만나고 싶어요. 황석영 작가님도 뵙고 싶네요. 워낙 이야기꾼이시고, 팟캐스트에 출연하시면 또 재미있을 것 같아요. 마종기 시인도 좋아요. 그런데 시인 분들 특징이 항상 따뜻하겠다고 하는(웃음) 그런 게 있어서 걱정이에요.

 

김하나:이렇게 막 던져도 되면(웃음) 저는 윤여정 선생님을 뵙고 싶습니다. 배철수 씨도 좋을 것 같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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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턱 낮아진 팟캐스트, 과연 미래는?

 

팟캐스트는 무엇보다 진행자에게 많이 기대는 면이 있잖아요. 그래서 드리는 질문인데요. 두 분이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나는 어떤 사람인지 직접 설명을 해주신다면?

 

김동영:어렸을 때 읽기, 받아쓰기를 잘 못 했거든요. 잘하는 게 진짜 없었어요. 체육도 안 좋아했고요. 그림도 싫어해서 여행을 가도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안 가요. 이번에 포틀랜드에서 두 달 있었는데요. 무료 전시가 있어서 갔는데 힘들었어요. 봐도 이해도 안 되고 그래서요. 저는 돈 주고 사는 걸 좋아해요. 옷 사는 걸 좋아했었는데 지금은 LP 사는 거 정말 좋아하고요. 거의 재즈 LP를 사 모으고 있어요. 80년대 이전 것을 주로 LP로 사서 모으고 있죠. 블루노트에서 나온 건 거의 사는 것 같아요. 취향이 때때로 바뀌는 것 같아요. 예전의 저는 새로운 걸 해보는 것도 좋아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안 그래요. 사람들이 식물 같은 사람이라고 할 정도예요.

 

김하나:예전에는 딱 만나는 사람만 만나고, 정해진 대로 하는 걸 좋아하고, 칸에 딱딱 넣는 것을 좋아하는 타입이었어요. 집도 반듯하고, 깨끗하고, 이런 걸 좋아했고요. 책에도 쓴 내용인데요. 실연 이후 어느 순간 이러면 안 되겠다, 살아야겠다 싶어서 모임을 만들고, 유연성에 대해서 굉장히 크게 느끼게 됐어요. ‘나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칸 안에 넣어두고 나를 보호하려고 했다면 지금은 일단 만나서 적극적으로 물어보고, 같이 좋아하는 걸 하게 됐죠. 그러다보니 세계가 확 넓어졌어요. 화분 속에만 있다가 숲으로 나오게 된 거죠. 그 뒤에 인생이 훨씬 편안해졌어요. 지금은 그럴 수도 있지, 이런 것도 재미있네, 라는 걸 많이 생각하는 것 같아요. 팟캐스트도 예전 같았으면 거절했을지도 모르겠어요. 지금은 뭐든 일단 해보자고 생각하니까요. 팟캐스트도 하다보면 늘 수 있고요. 적어도 나는 팟캐스트 진짜 아니구나, 라도 알 수 있게 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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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분이 정말 다르신 것 같아요. 그리고 어떤 변화를 비교적 최근에 겪으셨고요.

 

김하나:몇 년 사이의 일이죠. 저는 지금이 조금 더 재미있어요. 제 동거인은 어지르는 것만 할 줄 알지 정리정돈이라고 하는 건 도려낸 것처럼 없는 사람이에요.(웃음) 저는 매일이 카오스고, 뒤죽박죽이긴 한데요. 그래도 재미있어요.

 

김동영:저도 3-4년 사이에 그렇게 된 것 같아요. 김하나 작가님과는 반대 같은데요. 저는 숲에 있다가 화분으로 왔거든요. 사람도 예전에는 정말 많이 만나고 어울렸는데 어느 순간 달라졌어요. 그만 만나야겠다는 자각도 없이 점점 모임이 없어져서 요즘은 고양이와 집에 누워서 자는 게 제일 좋아요.

 

김하나:저도 그게 제일 좋긴 해요.(웃음)

 

앞으로도 팟캐스트가 계속 성장할 거라고 보세요?

 

김동영:지금 꽤 많은 것 같은데요. 정점이었던 것 같아요. 팟캐스트가 확장될 수 있었던 게 지난 10년 동안 정치적인 문제가 컸기 때문이잖아요. 공중파에서는 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이곳에서 제한 없이 할 수 있었고요. 정치 팟캐스트가 엄청 많았거든요. 정권이 바뀌고 나서는 많이 없어지기도 하고, 하던 분들도 주제를 바꿔서 하고 있는데요. 이전에 정치적인 팟캐스트가 많았다면 지금은 취미나 교양 쪽으로, 어쩌면 교육방송처럼 성격이 변화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무엇보다 중요한 건 지속성이니까요. 지켜봐야 할 것 같아요.

 

김하나:계속 들어오셨으니까 감지하신 걸 텐데요. 팟캐스트를 잘 안 듣던 국외자 입장(웃음)에서는 팟캐스트는 그냥 앞으로 잘 되는 게 아닌가, 했어요. 앞으로 TV보다 유튜브가 훨씬 가능성이 많아지는 것처럼 말이에요. 팟캐스트에 대해서도 막연하게 그렇게만 생각했었어요. 1, 2위 하는 팟캐스트들은 광고 수익도 엄청나다고 하더라고요. 앞으로 또 규제도 생길 테지만 문턱이 낮아지고, 아무나 아무말대잔치를 할 수 있어서 낙관적으로 생각했던 것 같아요.

 

당분간 팟캐스트로 독자 분들은 만나게 될 텐데요. 앞으로의 다짐이나 제작진에게 바라는 점이 있나요? 청취자 분들에게 한 마디 하셔도 좋습니다.

 

김동영:원고를 잘 소화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저도 능숙하게 읽고 싶어요.(웃음) 무엇보다 우리끼리 재미있었으면 좋겠어요. 하는 사람들끼리 친하고 재미있으면 듣는 사람들도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왜냐하면 우리도 다른 사람이니까요. 특별하지 않은 사람이고요. 그러니까 이왕 할 거면 우리가 재미있어야 다른 사람들도 재미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김하나:준비하면서 게스트의 책도 읽고, 방송에서 게스트와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약간은 팬심이 생기잖아요. 저는 제가 느낀 팬심이 잘 전달되고, 게스트가 빛나는 방송을 하고 싶어요. 책 자체의 매력도 있고, 게스트의 삶의 궤적에도 매력이 있을 텐데요. 그걸 아주 작게라도 새로운 각도로 던져줄 수 있다면 좋겠죠. 게스트가 이 팟캐스트에 나와서 기분이 좋았으면 좋겠고요. 듣는 사람도 매력적인 사람이 세상에 또 한 명 있구나, 느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우연히 들었는데 그 사람 되게 매력 있더라’ 이런 반응이면 제일 좋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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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분 곧 책도 출간될 예정이시죠?

 

김동영: 12월에 내려고 계획하고 있는데요. 지금 제가 교정지를 안 넘기고 있어요. 고칠 게 너무 많아서요. 지금까지 책 네 권을 내면서 쓸 때마다 내 글에 감동 받았거든요.(웃음) 잘 팔리겠다, 이러면서 만족하고 그랬는데 이번에는 정말 모르겠는 거예요. 너무 별로인 것 같고요. 처음으로 제 이야기를 썼거든요. 물론 여행 에세이에서도 제 이야기를 했지만 그때 쓰던 문체와 다르기도 하다보니까 이게 재미있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서요. 고민이 많아요.

 

김하나:지금 작업하는 책은 12월이 가기 전에 무슨 수를 써서든 나와야 하는 책이에요. 다이어리처럼 나오는 책이거든요. 그림도 들어가고요. 창의성과 브랜딩이 섞인, 소재들을 정리한 워크북 개념의 책이에요.

 

2017년 읽은 책 중에 ‘올해의 책’으로 꼽는 책이 있다면 추천해주세요.

 

김하나:『면역에 관하여』라는 책 정말 좋았어요. 번역가 김명남 님이 번역하셨는데요. 트위터에 칭찬을 써놓으셨더라고요. 부산에서 올라오는데 부산역 서점엘 갔거든요. 훑어보다 보니 김명남 님이 한참 얘기하셨던 그 책이 딱 있는 거예요. ‘면역’에 관해서 읽어 뭐할 거야, 싶으면서도 나도 모르게 그 책을 샀죠. 읽어보니 너무나 매력이 대단한 책이었어요. 너무 묘해서 작가의 배경을 봤더니 아빠가 의사고 엄마가 시인이더라고요. 과학과 시가 묘하게 성질변화를 일으키는 게 한 편, 한 편이 다 좋았어요. 정보성으로 시작해 갑자기 아름다운 은유로 빠졌다가 하는 거죠. 이런 맛이겠거니 하고 입에 넣었다가 먹고 나면 ‘어라? 너무 맛있는데!’ 이렇게 충격 받는 경우 있잖아요. 한 편, 한 편이 그런 글들이었어요. 그 전에 이런 형태의, 이런 맛을 주는 글을 못 봤던 것 같아서 저한테는 충격이었어요.

 

김동영:저는 몇 년 째 올해의 책이 『중력과 은총』예요. 진짜 안 읽히고 너무 어려운데 제목이 참 좋잖아요. 파리에 있을 때 한국문화원에 있는 도서관에 간 적이 있어요. 『당신이라는 안정제』쓸 때였는데요. 거기서 제목만 보고 너무 좋아서 빌려봤어요. 내용은 잘 모르겠는데요. 문장이 정말 좋아요. 진도는 안 나가는데 읽고 있는 자신이 멋있는 거 있잖아요. 그런 책이에요. 언젠가 꼭 다 읽겠지, 생각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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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심상정 “살아온 삶으로 말하는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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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유례 없는 대통령 탄핵으로 시작된 한발 앞선 대선은 밭은 일정만큼 후보들의 행보도 바빴다. 낮은 지지율을 이유로 TV 토론회 참가가 무산될 뻔한 심상정 후보는 더욱 맹렬하게 활동했다. 1분 1분이 소중한 상황, 대선후보 4차 TV 토론회에서 각 후보에게 1분씩의 추가 발언 기회가 주어지자 심상정은 망설임 없이 ‘최후의 1분’을 ‘성소수자의 인권과 자유는 존중되어야 한다’는 발언에 썼다. 그 1분에 사람들은 감동했다. 출구조사 결과가 나오자 후원금이 물밀 듯이 들어왔다.


반짝스타는 아니었다. 심상정은 언제나 거기에 있었다. 전국노동조합협의회 쟁의국장, 전국금속노조 사무처장,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통합진보당, 정의당 등 진보를 기치로 건 곳마다, 세월호 농성장, 쌍용차 정리해고자 분향소, 대학생 강좌 등 언론의 눈이 미치지 않은 곳에도 이름이 떠다녔다. 대학에 들어가 노동운동을 시작할 때부터 40여 년 동안 약자의 편에 서 있었다. 대선은 그중 한 발자국에 불과했다.


대선 이후로 한참 시간이 흐르고 『난 네 편이야』가 나왔다. 대개 대통령의 후보의 책은 지지세력을 모으려는 이유로 대선 전에 출판하고는 한다. 굳이 지금 나오는 이유도 궁금했지만, 무엇보다 궁금했던 건  이토록 열심히 약자의 편에 섰던 이유였다. ‘철의 여인’을 거쳐 ‘2초 김고은’과 ‘심블리’가 되기까지, 그를 만들었던 배경과 존재 이유를 『난 네 편이야』 가 설명해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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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한 사람들

 

대선 때 워낙 자주 뵈어서 그런지 그동안 안 보이신다 싶었어요. 어떻게 지내셨나요?

 

지난 2년 동안 정의당 대표와 대선, 총선을 거치면서 아침에 너무 일정에 쫓기다 보니 운동을 못 했어요. 그래서 맹렬한 운동권이 되었어요. (웃음) 국회에 체력단련실이 있어서 웨이트 운동도 하면서 체력 단련에 힘쓰고 있어요. 지난 시기는 A4용지밖에 못 봐서 이제야 책도 좀 보고요. 예전에 못 다녔던 강연도 좀 다니고, 방송에 하도 안 나온다고 해서 JTBC 프로그램 <나의 외사친>에도 나올 거예요.


나름 바쁘게 보내셨네요.


그렇죠. 당대표 시절에 여러 공식 일정에 쫓기면서 소홀히 하고 못 했던 걸 지금 챙기고 있는 것 같아요. 현안하고는 조금 거리를 두지만, 그래도 여전히 정치인으로서는 바쁘게 살고 있어요.


주변 분들이 책을 봤나요? 가족 반응은 어떻던가요?


아직 내용까지 읽은 사람은 남편밖에 없어요. 저보다 제 삶을 더 꿰뚫어보고 있어서 오류 교정을 많이 해줬죠.


책에 아드님이랑 같이 찍은 사진도 들어가 있어요.


처음으로 아들하고 정식으로 찍어 봤어요. 대선 이후로 우리 아들에 관한 관심도 커져서 출판사에서 판촉에도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 것 같아요. (웃음) 그런 게 아니더라도 같이 찍고 싶었어요. 이제까지 유별난 삶을 살다 보니까 우리 가족은 인생은 결국 고독한 것이고 각자 책임진다는 마음이 있어요. 하지만 가족이라는 공동체가 에너지의 원천이라는 걸 남편과 아들, 저, 세 사람이 각자 잘 느끼면서 살고 있지 않을까 싶어요. 초반에 아들이 어렸을 때는 엄마로서 늘 미안함이 있었고, 지금은 아들이 청년이 되어서 엄마로서보다는 정치인으로서의 미안함이 더 크죠.


이번에 『난 네 편이야』를 내면서 또 하나 일을 마무리하셨어요. 기억을 복기하는 과정이었을 텐데요.


국정감사 기간하고 겹쳐서 개인적으로 마무리를 잘 못했다는 아쉬움이 조금 있어요. 이번에 다시 쓰면서 참 드라마틱하게 살아왔다는 생각도 들고, 많은 고비를 어떻게 잘 넘겼구나, 기특하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예전에 책을 쓸 때와 비교하면 그때그때 삶의 과정에서 함께 했던 사람들을 더 생각하게 되기도 했고요. 함께 걸어오지 않았다면 오늘의 제가 있을 수 있었나 하는 생각이요. 그립고 감사하죠.


이름을 공들여서 호명했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나이를 먹어서 그런지, 철이 들어서 그런지 과정 하나하나에서 떠오르는 이름이 있었어요. 함께했던 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이 많이 있어요.


미안한 마음을 책으로 표현했다는 생각도 들고요.


제가 하고자 하는 일에 투철하고 사명감으로 자신에게 엄격하게 살아왔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해왔던 것 같아요. 요즘 생각하면 우리가 겪어온 시절이 아주 엄혹한 시절이었죠. 고단한 삶을 헤쳐 왔잖아요. 그 과정에서 함께해 온 사람들이 정신적으로, 물리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텐데, 그때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표현하지 못해서 때로는 서운할 수도 있고 오해를 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새삼스레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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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의 말


대선 토론에서 말을 잘한다는 평이 많았어요. 책에서도 진보 정치인이 말을 잘 하는 이유를 ‘책임질 말만 한다,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다수를 위한 말을 한다’라고 적어주셨는데, 심상정에게 말을 잘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정치인에게 말은 재주라기보다 곧 그 정치인의 가치이자, 비전이자, 소통이자 책임이거든요. 정치인이 말을 잘한다는 것은 국민에게 신뢰를 받는다는 거죠. 지역구 주민 중 한 분이 다른 사람 말은 못 믿어도 심상정 말을 믿는다고 말씀해 주신 적이 있어요. 국회에서 심상정에게 주어지는 권력이 있다면 그건 제 권력이 아니라 주민들 거라는 생각을 늘 하죠.


국정감사에서 임금피크제에 관해 '사자후'를 지른 영상이 유명해지기도 하셨죠.


아무래도 서민들을 대변하는 정당이니까 기득권자에게 단호한 말을 할 수밖에 없었어요. 제가 말한 만큼 또 실천하려고 애쓰고요. 정치는 말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치인의 말은 단순한 말이 아니게 되죠. 대부분의 지지자들은 자신을 대표하는 사람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주는 게 좋은 말이에요. 결과적으로 사람들의 신뢰를 획득하는 게 좋은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말을 하는 힘은 어디서 생기는 건가요?

 

정치인의 말은 설득의 힘을 가져야 한다고 보거든요. 늘 정치인은 변화를 말해야 하고, 그 변화의 말이 설득력이 있을 때 힘이 되잖아요. 그렇지만 최근 정치 환경에서 적대적이고 증오가 난무하는 말은 감정과 분노만 키울 뿐이지 국민을 설득할 수 없어요. 그래서 말이 중요하죠. 여러 이견에도 불구하고 조금이라도 나은 결과를 만들려는 노력하는 거잖아요. 서슬 퍼런 증오의 언어가 아니라 정치적 대표자로서의 어떤 자각과 책임에서 말이 나와야 한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정치인의 언어가 세상을 파괴할 수도, 또 세상을 행복하게 만들 수도 있어요. 지금 우리 사회에서 난무하는 증오의 언어로는 세상을 바꿀 수 없습니다.


정치인으로서의 말도 있겠지만, 책에서는 정치인이 아닌 개인 심상정의 말을 더 해주신 것 같긴 해요.


이 책은 결국 살아온 날의 이야기인데, 제가 가지고 있는 비전이나 정책보다 살아온 삶으로서 말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겉으로 표현할 때에는 짧은 시간 내에 하나의 정책이나 하나의 단호한 의견으로 피력되지만, 어떤 정책과 의견을 형성하는 데 어떤 수많은 사람과의 만남, 고뇌의 과정이 있잖아요. 대통령 선거로 짧은 시간 내에 토론과 공약을 보셨지만, 심상정의 말을 신뢰하기 위해서 제가 살아온 삶을 국민에게 보고한다는 심정으로 글을 썼어요.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노동

 

젊을 때부터 한 노동운동의 역사가 담겨 있어요. 그야말로 파란만장했는데요.


너무 노동 이야기 많다고 걱정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심상정과 노동을 빠뜨릴 순 없으니까요. (웃음) 노동이 계속 부정적인 단어로 사용이 되잖아요. 노동자라는 개념 자체가 블루칼라로만 협소해지기도 하고요. 노동이 부정적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우리 사회에서는 노동이라는 단어 자체가 시민권을 제대로 획득하지 못했습니다. 노동, 하면 천하고 불온한 것으로 인식했어요. 그러나 촛불혁명을 거치면서 이제 노동은 천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핵심 가치라는 것을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고 봐요. 노동권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불순한 게 아니라, 노동권을 짓밟고 배제하려는 사람들이 위헌적 세력이라는 상식을 적극적으로 확대해 나갈 때가 되었습니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도 ‘노동이 당당한 나라’를 슬로건으로 걸었는데요.


노동이 대선 슬로건으로 나온 건 대한민국 정치사상 최초였어요. 정의당 내에서도 노동이란 단어의 뜻이 너무 협소하니까 조금 더 보편적이고 국가적인 의제를 내자는 의견이 있었어요. 노동에서 과격한 이미지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있거든요. 하지만 대다수 젊은 청년들은 ‘노동이 당당한 나라’를 알바하고 비정규직으로 사는 삶의 정당한 권리를 인정받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였어요. 그래서 가슴 뭉클했죠. 이번 대선에서 노동을 국민 모두의 삶에서 가장 핵심적인 가치라는 걸 당당하게 말할 수 있었다는 걸 가장 큰 보람으로 생각해요. 자기 노동을 소외시키고 깎아내리는 문화는 과감하게 개선이 되어야 한다고 보는 거죠. 곧 될 겁니다.


곧 될까요?


그럼요. 새로운 대한민국은 노동권이 결국 직장에서의 촛불이라는 걸 인식할 때 가능해져요. 노동권이 인정받는다는 건 개인의 입장에서는 자기가 한 일에 대해 공정하게 평가받는 사회가 된다는 뜻이거든요. 오바마 전 대통령도 늘 가족을 풍요롭게 하고 싶다면 노동조합에 가입하라고 했고, 메르켈 총리도 총리가 되어서 나쁜 점은 공무원 노조를 탈퇴할 수밖에 없어서 아쉽다고 했어요. 선진 자본주의 국가, 시장경제를 유지하는 국가의 지도자들에게는 노동이 매우 중요한 정치적 언어인데, 우리나라에서만 냉전적 이데올로기가 악용되면서 노동이 폄하되었죠.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이 되었으면 노동자들에게 정당하게 성과를 되돌려야 한다는 것, 그게 시대정신이죠.


폄하된 의미로 쓰인 단어는 되돌리기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 노동헌법 개헌 토론회를 했어요. 개헌 헌법 전문에 노동의 가치와 평등의 가치를 넣자는 내용이 골자입니다. 원래 제헌헌법에는 노동과 노동자라고 되어 있는 부분을 이승만 정권에서 근로와 근로자로 바꾸었어요. 현행 노동 3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근거로 관련 조항을 개헌해야 한다는 토론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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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임 있는 정치세력


정의당 대표에서 물러나셨습니다. 이제 이정미 의원이 당 대표가 되었는데, 기대하는 바가 있나요?


제가 3기 대표였는데, 총선과 대선이 있었던 시기였고 정의당의 생사기로에서 당을 맡다 보니 굉장히 허덕이면서 대표를 했죠. 지난 대선에서 구체적인 결과는 미흡했지만, 정의당이 뭘 하려고 하는지 국민들에게 알리는 일은 잘 한 것 같아요. (이정미 의원에게) 지난 대선에서 우리가 얻은 국민의 호감을 적극적 성과로 갈무리하고, 저보다는 더 많은 걸 남기는 대표가 되라고 했었죠.


정치계 내에서 여성 대표로 서기 쉽지 않아요. 여성이 리더로 서려면 추가로 벽이 생기는데, 정의당 내에서 연속으로 여성 대표가 서는 것에 반감을 표하는 사람은 없었나요?


의외로 전혀 없었어요. 대표가 여성이냐 남성이냐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여성 대통령이 되어서 여성 대중의 삶이 얼마나 달라졌나 생각해본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여성들이 3선하고 중진 의원이 된들 급식 노동자를 ‘밥하는 아줌마들’이라고 폄하하는 사람이 있다면, 여성 기업 임원이 늘어난다고 하더라도 그 임원들이 여성 노동자들에게 치명적인 해가 되는 기업 환경 조성에 앞장선다면 매우 불행한 일이에요. 다만 여성들이 능력을 펼치는 자리가 더 많아지면 좋겠다는 바람은 가지고 있죠. 젠더 의제 자체가 사회적, 정치적으로 주목받지 못하는 현실에서 용기 있게 의제화 하는 역할은 정의당이 해 왔다고 봅니다. 앞으로도 노력할 거고요.


진보 1세대를 권영길, 본인은 2세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앞으로 3,4세대 진보 정치인을 기대한다고도 쓰셨는데요.


생물학적인 연령으로 새로운 세대가 생기는 게 아니라, 진보정당이 군소정당 시대를 넘어서고 유능한 정치인들이 대거 양성되는 과정에서 새로운 세대가 나타날 거라고 봐요. 이런 잠재적인 청년 정치인들에게 자기 능력을 발휘하는 자리를 줘야 하고 공간이 허락되어야 하는데, 정의당만 해도 당세가 약하고 선거제도가 승자독식제도다 보니 기회 자체가 적죠. 이번에 선거제도가 제대로 바뀌어서 잠재적인 리더들이 정치인으로 활동하는 기회가 확 열렸으면 좋겠어요.

 

 

심상정의 민주주의

 

‘민주주의는 반민주주의자에 맞서는 싸움에서 더 나아가, 민주적인 제도와 기구를 다수의 합의에 의해 잘 운영할 수 있다는 믿음을 쌓는 일’(274쪽)이라는 표현이 있었습니다. 보수를 비판하는 방식으로만 진보를 말하지 않고 어느 편이든 합의를 쌓겠다는 의지로 읽혔는데요.

 

제가 생각하는 민주주의는 시민과 정치인이 협업하는 체계예요. 냉소보다 낙관을, 혐오보다 신뢰를 키워갈 수 있는 시스템이죠. 지난 촛불 정국에 시민들은 정치를 불신하지 않고 오히려 제 임무를 수행할 것을 적극적으로 요구했어요. 이런 경험이 한국 사회에 하나하나 축적된다면 분명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 거라 확신합니다.

 

운동권 내의 6월 항쟁의 기억을 촛불집회에 대입시키는 걸 반대하는 의견이 있습니다. 주도 단체에 의해 조직되는 게 싫다는 움직임이라든지요. 운동권 거부와 87 체제 이후 다른 광장을 만들겠다는 움직임은 어떻게 보고 계시나요?


시민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에 대해서 평가하고 평론하는 건 제 역할이 아니에요. 다만 이러한 상황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할지에 대해 약속할 수 있을 뿐이죠. 비록 원내 6석의 소수 정당 국회의원이지만, 서로의 차이에 집중하기보다 서로 처해있는 공통의 조건을 바라보려고 합니다.

 

대선 토론회 때의 1분이 아직 사람들의 머리에 깊이 남아있습니다. 앞으로 그러한 1분이 주어진다면, 어떤 사람에게 쓰고 싶나요?

 

대한민국에 분명히 존재하면서 헌법상 기본권을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국민’은 아니지만 분명히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요. 그런 사람들을 위하고 싶은 거죠. 한 사회에서 가장 보이지 않는 존재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가 그 사회의 성숙도를 나타내주는 지표라고 봅니다.


책을 통해 하고 싶은 말씀이 있었다면.


지난 겨울 광장에서 촛불을 들었던 모든 사람. 대통령이 바뀌면 내 삶도 바뀔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품고 있는 청년들. 좋은 정치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을 청소년들. 아무리 노력해도 박빙의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워킹맘들, 여성들. 그들에게 우리가 함께 만들 좋은 정치를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냉소하지 않고 함께 꿈꾸면, 함께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도요.



 

 

난 네 편이야심상정 저 | 인플루엔셜
분노와 감동이 뒤엉킨 생생함과 함께, 어떤 이들이 세상을 바꿔왔는지, 어떻게 세상을 바꿀 수 있는지, 그 변화의 가능성에 대한 놀라운 통찰들이 함께 한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커버 스토리] 조남주 “82년생 김지영 씨, 지금은 어떤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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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0월 1쇄, 2017년 11월 41쇄, 42만 부. 민음사에서 펴내는 경장편 시리즈 ‘오늘의 젊은 작가’에 조남주 작가가 투고한 소설 『82년생 김지영』의 기록이다. 누구는 울분을 토하면서 읽었다고 말하고, 어떤 이들은 문학성을 따지며, 또 다른 이들은 남성을 바라보는 시각을 지적하며 화살을 쏜 작품. 하지만 조남주 작가는 1년 남짓 ‘서울 변두리 대단지 아파트 24평형에 전세로 거주 중인 34세 주부 김지영 씨’를 열심히 호명했고, 대한민국 실제 82년생 김지영 씨의 삶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청소년기에 IMF를 겪으며 진로 결정에 제약을 받고, 엄마가 되는 즈음인 2012년 무상 보육 제도가 실시되면서 잉여 취급을 받으며, ‘맘충’ 소리를 듣고 있는 지영 씨. 이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1978년생 조남주 작가는 서울에서 3남매의 막내로 태어났다. 엄마가 없을 때, 오빠 밥도 아버지 밥도 언니가 차리는 모습을 보고 자랐고, 10년간 시사?교양 프로그램의 방송 작가로 일하다 결혼했고, 출산을 계기로 휴직했다. 소설을 쓰기 시작한 건 집에서 쓸 수 있는 글이었기 때문이다. 1년 전, 무명이던 조남주 작가에게 인터뷰를 청했을 때 그녀는 말했다. “딸아이 하교 시간 전까지만 끝내주세요.” 이로부터 1년 후, 조남주는 ‘올해의 책’ 저자,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하지만 시간의 제약은 같았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녀에게 책상이 생겼다는, 발언할 수 있는 창구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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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면서 느끼는 문제의식을 담고 싶다

 

꼭 1년 만에 다시 봬요. 작년에는 『82년생 김지영』의 운명을 조금도 예측할 수 없었어요.

아무도 몰랐죠. 그땐 책을 내고도 인터뷰도 많이 안 했고요.

 

그간 어떻게 지냈나요?


크게 달라진 건 없어요. 여전히 엄마로 아내로 주부로 살고요. 글을 쓰는 시간이 좀 길어졌죠.

 

강연회 요청도 많이 받으시죠?


종종 와요. 정책 간담회 같은 자리에서도 가끔 연락이 오는데요. 그때마다 내가 해야 할 역할들에 대해 고민하게 됐어요. 그리고 고민의 결과는 내가 어떠한 자리에 앉아 있는 게 아니라 이 자리에 적합한 여성이 앉을 수 있도록, 이러한 사회 분위기가 조성되도록 제안하는 역할을 해야겠다는 다짐이었어요. 나만 발화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발언할 수 있도록 돕고 싶은 마음이 커요.

 

페미니즘 소설 『현남 오빠에게』가 출간됐어요. 여성 작가 7인의 소설집인데, 표제작을 쓰셨어요.


올해 4월쯤 편집자님한테 연락을 받았어요. 페미니즘 앤솔로지를 기획 중인데 써볼 생각이 있냐고 하셔서, 메일을 받자마자 “네, 할게요”라고 했어요. 최근 페미니즘 도서가 많이 출간되고 화제도 됐지만, 처음부터 이런 목적을 갖고 기획된 ‘소설’은 제가 알기론 처음인 것 같아요. 힘을 좀 보태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제가 듣기론 작가분들이 대부분 바로 수락하셨다고 해요.

 

가스라이팅(gaslighting: 상황 조작을 통해 타인이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들어 현실감과 판단력을 잃게 만드는 심리 상태) 개념을 소재로 선택했습니다.


가스라이팅에 대해 단편이 됐든, 장편이 됐든 써보고 싶은 생각이 있었어요. 때마침 단편 제안이 와서 구체적으로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았어요.

 

「현남 오빠에게」의 주인공은 20세 이후 10년간 교제한 남자 친구의 청혼을 거절하며 편지를 씁니다.


시사?교양 프로그램 작가로 일할 때 가정 폭력 피해여성을 만난 적이 있어요. 경우는 좀 다르지만 자신의 피해 상황을 잘 인지하지 못하는 점, 인지했지만 쉽게 빠져나오지 못하는 상황을 그려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그것들이 모두 당사자의 탓이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줄곧 높임말로 편지를 쓰던 주인공은 마지막 장을 쓰면서 반말을 해요. “그동안 오빠가 나를 한 인간으로 존중하지 않았다는 것, 애정을 빙자해 나를 가두고 제한하고 무시해왔다는 것, 그래서 나를 무능하고 소심한 사람으로 만들었다는 것. 오빠가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나를 돌봐줬던 게 아니라 나를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사람으로 만들었더라.”(38쪽) 소설을 읽고 나니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아요. “왜 10년을 그 폭력 속에서 견뎠지?”라고만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시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썼어요. 사실 주인공이 10년 동안 애인에게 끌려 다녔지만, 어떤 면에서는 되게 똑똑한 사람이에요. 막판에서야 프러포즈를 거절한 것 같지만, 그동안 친구와 따로 연락하고, 간접적이지만 자신의 입장도 여러 번 말했고, 이사도 말없이 준비했어요. 부모의 큰 도움 없이 타지에서 자기 앞가림도 잘했고요. 이렇게 치밀하고 똑똑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끌려가다 보면 흔들릴 수 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어요. 주인공은 나름대로 치밀한 사람이에요.

 

제목에서 ‘한남’이 연상된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런 의도는 없었어요. 남자 주인공 이름을 뭘로 할까 고민했을 때, 문자 어감상 끊어 가는 느낌이었으면 했어요. 그래서 이름의 마지막 글자에 입술이 맞물리는 받침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자연스럽게 ㅁ, ㅂ 등을 생각했고요. 남, 섭 같은 글자 안에서 조합하다가 문득 ‘남자 주인공은 스스로를 현명하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약간 반어적으로 지은 이름이에요. 책이 나오고 나서 비슷한 이야기를 듣긴 했는데요. ‘한남’이라는 단어를 알긴 하지만 실제로 들어본 적은 거의 없어요. 인터넷에서만 봤던 글자죠. 누군가가 ‘한남’을 연상한다면 제목을 바꾸는 게 맞았을까 생각했을 때… 글쎄요, 그동안 ‘김치녀’ 같은 성희롱적인 발언도 뜻과 달리 교묘하게 많이 사용됐잖아요. 문제를 지적하면 “왜 이렇게 예민하게 생각해”라는 반응을 보이고요. 만약 ‘한남’을 떠올렸다면 거꾸로 생각해봐도 될 문제가 아닐까요?

 

「현남 오빠에게」를 읽고 난 소감은 “『82년생 김지영』을 쓴 작가가 쓴 소설이 맞구나”예요. 톤이 달라지지 않아서 좋았어요. ‘확 다른 작품을 쓸 거야, 변화를 보여줄 거야’라는 생각을 했을 법도 한데요.


“페미니즘 작가로 이미지가 굳어지는 것이 부담스럽지 않으냐”는 질문을 종종 받아요. 그런데 사실 전 그런 부담이 없어요. 『82년생 김지영』으로 알려졌기 때문에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고요. 책이 나오고 다양한 반응을 접하면서, 어쩌면 남성들도 여성의 이야기를 듣고 싶고 들을 의지도 있었는데 기회가 부족했던 게 아닌가 싶어요. 그렇다고 제가 앞으로 꼭 비슷한 주제의 소설만 쓸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아요.살아가면서 느끼는 문제의식들을 작품에 자연스럽게 담고 싶어요. 이번 작품을 쓰면서 다른 작가들과 소재가 겹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신기하게도 하나도 겹치지 않았어요. 너무 다 다른 내용이라서 놀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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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정말 울컥했던 작품

 

『현남 오빠에게』출간 소식을 다룬 기사에 이런 댓글이 달렸더라고요. “10년 전엔 성공학, 처세술, 자기계발서, 지금은 페미니즘. 팔아먹기 위한 양산형 도서들은 언제나 존재하는 듯.” 페미니즘 도서가 과연 잘 팔리는 책인가 하는 의문이 들면서 참 씁쓸했어요.


몇 달 전 ‘네이버 책문화 생중계’에서 인터뷰했는데 악플이 많이 달렸다고 하더라고요. 『82년생 김지영』으로 말하고자 했던 이야기를 모든 사람이 동의할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페미니즘은 돈이 된다, 돈을 보고 기획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글쎄요, 콘텐츠라는 게 사람들의 관심사, 흐름을 탈 수밖에 없죠. 그런데 왜 페미니즘은 너무 큰 색안경을 끼고 볼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최근 유행하는 자기계발서에 대해서는 호불호가 있지만, 역사나 인문학 관련 책들이 한창 주목받을 때는 “역사가 돈이 된다, 인문학이 돈이 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어보지 못한 것 같아요. 페미니즘을 두고 ‘돈’을 연결시킨다는 건, 페미니즘을 누군가의 진지한 고민이나 삶의 방식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그냥 유행으로 치부하고 싶은 마음이 아닐까요.


그래서 돈이 되든 안 되든 페미니즘에 대해 말하는 모습을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해요.

 

반면 응원의 메시지도 많아요. 최근 한 독자님이 단 댓글인데요. “우리의 소심한 한 마디가 모여 세상과 사회를 바꾸는 힘이 됩니다.” 감동이었어요.


소심한 한 마디.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실 책에 관한 부정적인 평가 때문에 힘들진 않았어요. 지금 제 고민이라면 ‘『82년생 김지영』이후의 내 역할이 어디까지인가’예요. 페미니즘에 관해 한두 번이라도 발언한 저에게 독자들이 기대한 바가 있을 테니까요. 또 해야 하는 바도 있을 거고요. 어디까지 해야 하느냐의 문제가 있을 텐데요. 제가 능력이 안 될 수도 있으니까요. 1년 동안 이 고민이 가장 컸던 것 같아요.

 

최은영 작가의 「당신의 평화」는 가부장제의 두 얼굴을 그린 작품이에요. 맏딸로 태어난 주인공 ‘유진’은 엄마 ‘정순’으로부터 오랜 집착의 대상이 됐죠. 엄마는 주인공에게 애증의 대상이 되었고요.


인상적인 부분이 있었는데요. 유진이 남동생의 배우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참 좋았어요. 흔히 배타적인 관계로 생각하는 사이일 수 있잖아요. 그런데 유진은 일단 호의를 갖고 상대를 대해요. 실제 찾아보면 이런 경우도 많을 거라 생각해요. 이런 설정들이 좋았고요. 엄마와 딸 사이에는 각자만 알고 있는 말 못 할 감정이 많잖아요. 이런 감정들을 굉장히 잘 표현한 작품이라고 생각했어요. 남자 독자들은 이 소설을 어떻게 읽을까도 궁금했고요.

 

세 번째 수록작인 김이설 작가의 「경년更年」도 인상적이었습니다. 딸을 키우는 엄마로서 크게 공감하지 않았을까 생각했어요.


읽으면서 정말 울컥했던 작품이에요. 주인공의 딸아이가 초경을 하는 장면을 읽으면서 ‘우리 딸한테도 이런 순간이 닥치겠구나, 내 고민들이 한 단계 달라지겠구나’ 싶었어요. 아이가 “생리가 뭐야?”라고 물었을 때 답해준 적은 있지만, 정작 상상은 못 해봤던 장면이었어요. 아들 가진 엄마, 딸 가진 엄마들의 입장들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보게 한 작품이었어요.

 

소설 독자에게 읽히는 것으로만 끝나지 않았다

 

14개월간 42만 부. 국내 소설이 이만큼 주목을 받은 해가 근래에 없었어요. 흔히 사회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고들 하지만, 많은 독자가 『82년생 김지영』을 읽고 공감한 것처럼 암울한 미래만 있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현남 오빠에게」 작가 노트에도 썼는데요. 여자로 사는 일에 대해 자주 생각해요. 어쩔 수 없다고, 별일 아니라고, 원래 그렇다고 생각했던 일들에 대해 자주 의심해요. ‘모두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결말을 믿지 않지만 동시에 절대 불가능한 결말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출간 후 입소문으로 꾸준히 책이 팔렸지만, 금태섭 의원이 국회의원 300명에게 선물하고, 노회찬 의원이 청와대 오찬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선물하면서 『82년생 김지영』의 판매가 급격히 늘었어요.


생각지도 못한 일이어서 기쁘면서도 너무 놀랐어요. 흥미로운 건 두 국회의원 모두 남성이라는 점이에요. 여자들이 더 공감하는 이야기였을 텐데, 남자 독자들이 발견해줬다는 게 뜻밖이었어요.

 

사실 저도 생각해봤어요. ‘만약 여성 의원이 『82년생 김지영』을 두고 호평을 늘어놓았을 때 과연 같은 반응을 얻을 수 있었을까?’


비슷한 생각을 했어요. 이 주제를 두고 여자들이 이야기했을 때 받아들이는 방식과 남자가 했을 때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르구나. 만약 여성 의원이 이 책을 선물했다면 다소 거북했을 수도 있었을 것 같고요. 남성 페미니스트들이 더 용감하게 발언하는 모습을 많이 보고 싶어요.

 

지난 8월 다큐멘터리 <SBS 스페셜>에 실제 1980년대생 김지영 씨들이 출연했어요. 한 지영 씨는 “소설 읽으면서 내 이야기인 줄 알았다”고 말했어요.


방송을 봤는데 기분이 이상했어요. 어쨌든 제가 쓴 김지영은 실체가 없는 가상의 인물이잖아요. 그런데 실제 김지영 씨가 눈앞에 보이니까 처음에 드는 생각은 ‘마음이 짠하다’였어요. 눈앞에서 그들의 생활을 보고 있으니까 ‘그분들에게 정말 위안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최근 <한겨레>에서 통계, 증언으로 ‘82년생 김지영들’의 삶을 공개했어요.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낸 ‘82년생 여성의 노동 시장 실태 분석’에 따르면 82년생 남성의 경제 활동 참가율은 93. 4%지만, 여성은 독박 육아 탓에 59. 8%, 월급은 동년생 남성보다 67만 원이 적었어요.


소설을 계기로 그동안 크게 주목하지 않았던 어떤 존재, 어떤 삶의 방식들에 주목해주신 것 같아 저에게도 고무적인 일이었어요. 소설 독자에게 읽히는 것으로만 끝나지 않고 여러 방식을 통해 한 세대, 그리고 내가 처한 현실도 생각해볼 수 있었다는 게 참 고맙고 좋았어요.

 

『82년생 김지영』을 읽은 독자들의 성별을 따져보면 여성이 78%, 남성이 22%라고 해요. 지금은 좀 격차가 줄었을 것 같기도 하고요.


간혹 남성 독자들의 리뷰를 들어요. 불편했다고 하는 분도 계시지만 옆에 있는 동생, 친구들의 삶을 생각해보게 됐다고도 하세요. 제 주변에 있는 남성이나 어르신들을 보면서 가치관이 한번에 확 바뀌긴 어렵다고 생각해요. 다만 내가 어떤 행동을 했을 때 다른 사람의 눈을 의식하게 됐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큰 변화라고 생각해요.

 

개인의 삶에 있어서는 변화가 있었나요? 혹시 개인 책상이 생겼을까요?


얼마 전에 이사하면서 방에 책상을 하나 들여놓았어요. 그전까지는 주로 식탁에서 글을 썼는데, 사실 지금도 거의 식탁에서 써요. 딸아이가 초등학생 2학년인데 아직 엄마가 항상 눈앞에 있었으면 하나 봐요. 아이가 방에서 저를 보려면 제가 식탁에 앉아 있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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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이 생길 때 소설을 쓴다

 

‘글 쓰는 여자는 힘이 세다’는 말에 긍정하는지 궁금합니다.


동의해요. 발언권이 있는 사람은 힘이 셀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현남 오빠에게」에서 주인공은 편지로 거절 의사를 전했잖아요. 자기 생각을 발언하고 글로 쓰는 일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스스로의 생각에 논리를 세울 수 있으니까요. 또 글을 쓴다는 건 직접 대면해서 받을 수 있는 어떤 공격에서 한 단계 물러설 수 있는 편리도 있어요. 기록의 의미도 있고요. 대면에서의 스피치 또한 중요하지만, 자료가 될 만한 글을 많이 쓰고 남기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소설을 쓰면서 자주 깨달아요.

 

최근 <경향신문> 토요판에 연재했던 ‘그녀의 이름을 부르다’가 막을 내렸어요.


1년간 썼던 픽션이에요. 어떤 가상의 인물을 잡아서 소설 형태로 담았어요. KTX 여성 승무원부터 성주 소성리 할머니, 임산부, 워킹 맘까지 대상이 되는 범위가 크기도 작기도 했는데, 대부분 글을 쓰기 전 직접 만나서 인터뷰했어요. 마지막 글은 파업에 참여한 MBC 여자 아나운서들의 이야기를 썼고요. 흩어지는 글이 될까 조금 아쉬운 마음이 있었는데, 내년쯤 책으로 묶을 계획이에요.

 

네 번째 장편은 언제 볼 수 있을까요?


예전에 써놓았던 소설이 한 편 있어요. 불법 체류자들이 사는 가상의 맨션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에요. 또 여중생들이 고등학교 입시를 준비하는 이야기를 쓰고 있는데 내년쯤 선보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지금까지 발표한 세 편의 장편 『귀를 기울이면』『고마네치를 위하여』『82년생 김지영』은 두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투고한 작품이라는 것, 그리고 모두 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점이에요. 예전 인터뷰에서 기억이 남는 답변이 있었는데, “수상도 기쁘지만 무엇보다 책으로 묶일 수 있다는 것이 더 기쁘다”는 말이었어요.


2011년에 ‘문학동네소설상’으로 등단했지만 청탁은 거의 없었어요. 꾸준히 쓰고 두드리는 수밖에 없었죠. 『82년생 김지영』은 정말 기대를 안했던 작품이에요. 후보에 올랐길래 ‘아, 그래도 후보에는 올랐네’ 싶은 마음이었어요. 문학상이라는 걸 받는다는 기대가 전혀 없었어요. 전화로 수상 소식을 들었을 때도 “아, 네”라고만 답했던 것 같아요. 전화를 끊고 나서도 “아, 네”라고 혼잣말을 했어요. 예전에 제가 ‘내 작품이 소설 서가에 꽂히든, 에세이 코너에 꽂히든 내가 쓸 수 있는 글을 써야지’ 하고 생각했다면, 이제는 ‘내가 쓴 소설도 문학’이라고 조금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한 독자의 말이 아직도 생각납니다. “소심한 말 한 마디가 중요하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건 지금 당장은 나를 예민하게 보고 이상하게 보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발언하고 나면 상대가 자신의 발언에 대해 생각해본다는 점이에요. 나를 대하는 태도도 달라집니다.


소설을 쓰기 전에도 사소한 이야기는 꾸준히 했던 것 같아요. 동네 엄마들과 이야기하는데 누군가가 “이런 건 아빠들이 잘하잖아” “남자들한테 시켜야지” 같은 말을 하면 “우리 집은 제가 하는데요” “여자들도 잘하는 사람 많아요”라고 했어요. 되게 소심한 표현 같기도 하고, 내가 너무 사람들을 불편하게 하나 싶기도 했지만 우리 아이들이 평등하게 살고, 올바른 가치관을 갖게 되면 좋은 거니까요. 불편한 말이라고만은 생각하지 않아요.

 

요즘 주로 읽는 책들은 무엇인가요?


올해는 특히 읽어야 해서 읽은 책이 많았던 것 같아요. 리베카 솔닛의 책 중에 그간 못 읽었던 책들을 읽었는데요. 그녀의 초기작인 『걷기의 인문학』과 최근작인 『여자들은 자꾸 같은 질문을  받는다』를 인상 깊게 읽었어요. 올여름에 나온 『여공문학』도 좋았는데, 호주 태생인 저자가 한국에 왔다가 또래의 10대 여공들을 만나 이들의 수기와 자서전, 소설에 관한 연구를 시작했다고 해요. 지금까지 제가 제대로 읽은 여공 문학은 『외딴 방』밖에 없는 것 같더라고요. 이 책도 굉장히 재밌었고, 페미니스트 홍승은, 홍승희 저자의 책도 기억에 남아요. 윤단우 작가님의 『꽃이 아니다, 우리는 목소리다』도 좋았는데, 윤 작가님의 글은 워낙 많은 여성의 인터뷰를 통해 나온 것들이라 어떤 작품을 읽든 도움이 돼요. 그래서 항상 챙겨 읽고 있어요.

 

TV 보는 것도 굉장히 즐기신다고요. 작년 인터뷰 때 “딸하고 기분 좋게 볼 TV프로그램이 없어서 아쉽다”며 “여자들끼리 잘 먹고 잘 사는 이야기를 TV로 보고 싶다”고 했는데요. 최근에는 여성 패널들만 등장하는 예능 프로그램이꽤 생겼어요.


일단 반가워요.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보면서도 ‘누가 무슨 소리를 해서 내 마음이 불편해지려나’ 그런 생각을 종종 했거든요. 긴장 없이 편하게 보는 프로그램들이 생겨 좋아요. 좀 더 다양한 여성이 많이 나오면 좋겠어요. 외모와 무관하게 머리가 희끗한 사람, 배가 많이 나온 사람들도 TV에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질문이 생길 때 소설을 쓴다”는 이야기는 아직도 유효할 것 같아요. 지금 조남주 작가님이 던지고 있는 질문은 무엇인가요?


고령화 시대잖아요. 결혼을 필수로 생각하지 않는 시대이고, 예전의 가족이 양육을 수행하는 형태였다면, 지금은 아니에요. 이미 가족은 돌봄을 수행할 수 없는 상태가 됐는데 가족 구성원들은 돌봄을 필요로 하고, 사회적으로 돌봄 기능이 없을 때 우리는 어떤 고민을 하게 될까? 구체화되진 않았지만 이 문제에 대해 써보고 싶어요.

 

 


 

 

82년생 김지영심상정 저 | 인플루엔셜
소설은 김지영 씨의 이야기를 들은 담당 의사가 그녀의 인생을 재구성해 기록한 리포트 형식이다. 리포트에 기록된 김지영 씨의 기억은 ‘여성’이라는 젠더적 기준으로 선별된 에피소드로 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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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아 “결혼한 후 여성에 대한 억압을 체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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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남자의 아내, 한 여자의 남편이었던 사람. 피아노를 가르치는 대학 교수, 요양병원 의사, 작가 행세를 한 미궁의 인물. 『친밀한 이방인』에 등장하는 ‘이유미’라는 인물은 대학 입시에 떨어진 순간부터 가족과 주변 인물들에게 거짓말을 하고, 가짜의 삶을 살아간다. 이 거짓말 하는 삶은 매혹적이다. 거짓 증명서 한 장으로 권위와 삶의 안정감, 사랑, 돈, 심지어는 세상의 호의까지 얻게 된다. 이유미라는 인간의 본질은 그대로인데 세상은 조건에 따라 그를 달리 보고, 이유미는 두려움을 느끼면서도 점점 더 커지는 거짓말을 막지 못한다. “그 다음을 생각하지 않고 일단 돌파하거나 저질러버리는 습성 같은 것들”에 흥미를 느낀다는 정한아 작가가 보여주는 거짓말이 남다른 것은 이 거짓 안에 진실됨이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유미의 거짓말은 때로 누군가를 구원했고, 누군가에게는 선물이 되었다. 진짜가 있는 거짓, 또는 거짓이 있는 진짜. 『달의 바다』, 『리틀 시카고』 이후 5년 만에 세 번째 장편을 써낸 정한아 작가는 자신의 작품을 관통해온 ‘진실된 거짓말’에 대한 꽤나 무거운 질문을 독자 앞에 내놓았다.


이유미뿐 아니라 『친밀한 이방인』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거짓말을 한다. 특히 여성들은, “여성이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생존해나가기 위한 필연적인 결과”로써 거짓말을 한다. 출산과 육아를 거치면서 여성에 대한 차별과 억압을 체감했다는 정한아 작가는 여성이라는 소수자성이 갖는 삶의 고통을 자신을 꼭 닮은 주인공과 자신이 꼭 닮았다고 느끼는 이유미를 통해 섬세하게 보여주었다. 공고한 가부장제 안에서의 여성, 개성의 말살로 고통 받아야 하는 여성에 대한 관심은 지금의 정한아 작가에게 중요한 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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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밀한’ 이방인


거짓말하는 인물 혹은 인물들이 등장하는 소설입니다. 거짓말이라는 단어에서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는데요. 이 소설은 조금 다른 거짓말을 얘기하는 듯했어요.

 

일단 현실을 거침없이 돌파해나가는 인물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현실의 제약, 자기에게 주어진 조건들을 뚫고 나가는 주인공 말이에요. 그것이 무엇일까 생각했을 때 떠오른 게 거짓말이었어요. 단순히 사기꾼의 거짓말이 아니라 그 안에 어떤 진실됨이 있어서 어떤 면에서는 인물에 동의하게 되는 그런 거짓말인데요. 연민을 느끼게도 하는, 그런 거짓말쟁이에 대해 쓰면 어떨까 생각했던 것 같아요.

 

거짓말 안에 있는 그 진실됨 때문에 자꾸 생각하게 되는 것인데요. 거짓말이 언제나 거짓말은 아니잖아요.

 
반대로 우리가 거짓이 섞이지 않은 관계라고 말하곤 하는, 한 번도 의심한 적 없는 관계라고 해도 사실은 거짓이 있죠. 그것처럼 거짓 안에도 진실이 있을 수 있는데요. 그 진실이 무엇일까, 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질문 같아요. 인물을 예로 들어 말씀드리자면요. ‘나’와 ‘이유미’는 두 명이면서도 한 명인 인물로 구상했어요. 나이도 비슷하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성이죠. 주인공은 아주 보편적이고 평범한 단계를 밟아 지금은 결혼생활을 하고 있고요. 이유미는 주인공과는 정반대로, 사기꾼으로 살아가고 있죠. 그런데 이 둘 중에 누가 더 거짓말쟁이일까, 혹은 누가 더 진실될까 묻는다면 답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작품을 쓰면서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이것과 저것을 구분할 수 없다는 점을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 많아요.


소설이 인터뷰로 구성이 되잖아요. 그런데 인터뷰이들이 이유미에 대해 추억할 때, 묘한 그리움이 있거든요. 당했음에도 그런 미묘한 감정이 있어요. 과연 그게 무엇일까 생각하게 되죠. 관계 안에서 이들이 무언가를 나누었던 거잖아요. 꼭 진실과 거짓으로 양분해서 판단할 수 없는 것들이 인간관계에서는 있죠. 심지어 실연을 당하고 사기를 당했어도 어떤 부분은 진실되게 기억하듯 말이에요.

 

제목을 따져봐도 그렇죠. 소설에 들어갈 때는 ‘이방인’에 주목하게 되는데 점점 ‘친밀한’에 신경이 쓰이는 거예요. 그런 변화가 흥미로운데요. 주인공 역시 점차 이유미에게 밀착된 감정을 느끼게 되는 거잖아요.


주인공이 이유미에게 친밀함을 느꼈던 건 여성의 서사인 것 같아요. 말하자면 이 두 여성이 동시대를 살아가는데 한 명은 부르주아 계층의 부모님과 환경에서 자랐고, 다른 한 명은 고아 출신, 장애를 가진 부모님 아래에서 자랐잖아요. 그럼에도 이 둘이 공통점을 갖게 되죠. 거짓말인데요. 이것이 여성이 남성 위주의 사회에서 생존해나가기 위한 필연적인 결과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사회에는 여성의 역할, 여성에게 기대하는 바가 있고요. 여성은 그것에 자발적으로 자신을 맞추어나가요. 주인공은 그런 면에 아주 탁월하게 거짓말을 한 사람이고, 실패했죠. 그런가 하면 이유미는 사랑받고 존중받는 관계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있었는데요. 정상적인 방식의 소통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거짓말로 계층적인 배경을 이용해요. 배경을 이용했을 때 사람들은 좀 더 쉽게 관계 맺음을 하잖아요. 특히 여성적인 어떤 것을 이유미는 지어내거든요. 그런 것들로 소통할 수밖에 없었다는 면에서 두 인물이 닮았죠.

 

성장 배경이나 초기 삶의 경험이 전혀 다른 두 인물이 여성이라는 소수자성으로 놀랍도록 비슷한 곳에서 만나게 된다는 점이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작품 안에서 여성으로서의 경험을 공들여 그린 이유도 그 때문이겠죠?


두 번째 장편 『리틀 시카고』와 이번 『친밀한 이방인』사이에 5년의 공백이 있었는데요. 그동안 결혼과 출산을 했어요. 저는 사실 여성으로서 사회적인 패널티를 경험해본 적이 별로 없었어요. 늘 학교 안에 있었고, 어렸을 때 등단을 했기 때문에 그랬던 것 같은데요. 물론 무의식 안에 떠도는 여성성의 억압이 저에게도 있었겠지만 그것이 저를 현실적으로 제압하거나 제약이 된 적은 없었거든요. 그런데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후에 정말 체감을 했어요. 여성이라는 이유로 붙박여야 하는 자리가 있다는 사실, 그것으로 인해 고통을 느꼈죠. 다른 게 아니라 발화하는 것조차 금지되어 있다는 것에 고통을 느껴야 했는데요. 그런 면이 주인공의 서사에 많이 드러나 있어요. 주인공이 광기와 불행으로 떨어진 이유는 이 사람의 결혼생활이 남달라서가 아니죠. 자기의 불행과 외로움을 발화할 수 없었기 때문이에요. 그런 점은 자전적인 요소가 될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런 면에서 여성으로서의 경험이 소설을 쓰면서 어려움으로 작용하기도 했나요?


네, 사실 이유미를 쓸 때는 굉장히 신났어요. 거침이 없었는데요. 주인공의 이야기를 쓸 때 쉬우면서도 어려운 면이 있었는데요. 바로 그런 면들인 것 같아요. 그래서 주인공의 이야기를 쓸 때는 더 균형을 잡으려고 애를 썼어요. 그게 항상 어려운 것 같아요.

 

결혼과 출산, 육아에 있어 여성은 많은 부분 소외당하는 사람이에요. 전담자로 격리되고, 정형화된 이미지로만 존재해요. 그 안에서 여성은 고립되고 서로 만나지도 못하죠.


소설은 언제나 내적인 동기에서 시작하는데요. 소설가로서, 제가 느끼는 소수성이 없이는 글을 쓸 수 없어요. 그러니까 고통 받을 때, 고통당하고 있다고 느낄 때 그 원인을 찾아 나가죠.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그 원인에 대해 발화를 하기만 해도 어떤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그것을 언어화 하지 못하고, 막연한 두려움과 불안감 속에 있을 때 사실은 일말의 자존감도 허락되지 않는 상황으로 추락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게 여성에게 있어 가장 비극적인 지점이고요. 이 작품을 쓸 때는 한 번 끝까지 써보자, 라는 생각이 있었어요.

 

앞서 자전적 요소가 있을 거란 말씀을 하셨는데요. 특히 육아에 대한 주인공의 생각들이 그럴 것 같아요. 부탁할 때, 구체적으로 알려줄 때에만 아이를 돌봐주는 남편, 아이 키우느라 보낸 시간을 경력 삼을 수는 없다는 말까지 그야말로 몸의 언어란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그런 생각을 같은 여자들끼리도 말하지 못하죠. 내가 괴물처럼 보일까봐. 아이를 위해 보내는 시간을 내가 낭비라고 느끼거나 불행하다고 느끼는 것에 대해서 사실은 다들 느끼잖아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거든요. 나는 어머니다, 어머니로서 정말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 라는 자아도취에 빠져 있는 여성이 이 시대에는 없다고 생각해요. 다들 굉장한 괴로움과 불안감을 느끼는데 그것을 발화할 수 없는 거죠. 어머니의 위대함을 거스르는 말을 자기가 할 수 없고요. 무엇보다도 나의 불완전함을 드러내는 것이 도리어 나에게 패널티로 작용할까봐 두려운 마음이 다들 있는 것 같아요.

 

그 모든 생각들 때문에 벗어버리지 못하는 코르셋도 존재하고요.


그렇죠, 자기 검열 같은 것이 있죠. 혹은 스스로도 무의식적으로 정말 괜찮다고 느낄 수도 있긴 할 것 같아요.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차마 얘기할 수 없는 것도 있고요. 다만 그 상태에서 안간힘을 다해 자기최면을 걸겠죠.

 

개인으로서 여성이 겪는 그런 어려움을 사회가 너무 외면하고 있는 게 또 현실이죠. 


주인공의 어머니도 아버지와의 관계에 파탄을 맞잖아요. 저는 가부장제 아래에서 결혼제도라는 것에 희망이 없다는 생각을 하는데요. 왜냐하면 굉장히 견고한 역할 분담인데 그것은 가능하지가 않기 때문이에요. 한 인간이 그렇게 규격화된 존재가 아닌데 어떻게 그 역할에 딱 맞추어 행복할 수가 있겠어요. 그런 면에서 굉장히 회의가 많이 들어요. 가정 안에서의 가사 노동과 양육 노동의 덧없음과 무의미함 같은 것들을 남편은 잘 모르죠. 숱한 보이지 않는 노동 속에서 가정들이 유지되고 있는 거거든요. 개성의 말살과 한 여성, 어머니의 희생으로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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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같은 대담함


등장인물 중 주인공의 아이 정도를 제외하면 거의 모두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데요. 가부장제 아래의 가정이라는 공간에서 사실 모두가 연극을 하고 있는 셈이에요.


그러다보니 진실된 관계맺음이 없고요. 개개인의 욕구나 진실된 관계에 대한 욕망 같은 것들이 해결이 안 되는 거죠. 점점 더 편협하고, 피상적인 관계맺음만 가능해지는 거고요. 진짜 가까운 사람들 사이에서마저도 말이에요.

 

주인공의 어머니 역시 아버지와 이혼하려는 속내를 딸에게 모두 얘기하지 않죠. 모두 같은 맥락이에요.


되게 어려운 일이에요. 자기 언어를 가져야만 발화가 가능하잖아요. 특히 어머니 세대, 중년 여성에게는 자기 언어가 정말 없어요.

 

한편 이유미가 첫 번째로 거짓말을 하게 되는 게 다름 아닌 ‘입시’라는 점도 눈길이 가요. 더구나 이유미가 다음 단계의 거짓말로 넘어갈 때 각종 수료증, 증명서 등을 위조하는데 참, 쉽죠. 권위, 배경 등에 기대는 사회의 허점을 잘 보여줍니다.


자격증이나 면허증이 있으면 그것을 신뢰하고, 그것을 기반으로 관계 형성이 가능해져요. 그것에 기반해 이유미는 결혼도 하잖아요. 저는 그런 점이 재미있는 것 같아요. 사람들은 참 사람을 쉽게 믿거든요. 그 권위가, 그것이 가짜일 수 있다는 생각을 잘 못하고요. 작가의 말에 거짓말쟁이, 사기꾼에 대한 애정을 적기도 했는데요. 저는 굉장히 생명력이 강한 어떤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커요. 그것들이 저에게 오래 남아 있는 것 같아요. 그것을 일종의 삶의 의지로 해석하는 면도 있는 것 같고요. 물론 도덕적으로는 틀렸지만, 불법행위지만 그 과정에서 보이는 의지 같은 데에 시선이 가요. 한계 앞에서 보통은 멈추는데 거기서 더 나아가는, 그런 사람들에게 항상 더 애정이 가는 것 같아요. 드라마를 보더라도 악역들에게 저는 더 매력을 느끼거든요.

 

비록 일그러진 삶의 의지일지라도 말이죠.


어떻게 보면 대담함 같은 건데요. 아이 같은 대담함이죠. 그 다음을 생각하지 않고 일단 돌파하거나 저질러버리는 습성 같은 것들이 저는 굉장히 흥미로워요. 제 자신이 불안과 겁이 많은 사람이라 그런지는 모르겠어요. 그런 면이 흥미롭고 재미있어요. 질서를 자발적으로 깨트리는 사람들이잖아요. 바이러스 같은(웃음) 존재들이죠. 그런데 그런 바이러스들이 인류의 생명력을 더 강하게 만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우리가 축사에 갇혀서 규칙대로 살아가고 있다면 그런 존재들이 있어서 인간의 의외성들을 이야기해주는 것 같아요. 

 

『리틀 시카고』도 기지촌이라는 소재를 다루셨는데요. 중심부에서 벗어난 다른 존재들을 이야기하게 되는 것도 그런 이유였겠군요.


네, 그런 것 같아요. 이번 책에서 거짓말에 대한 이야기를 쓰겠다고 마음먹고 보니 역사적으로 정말 유명한 거짓말쟁이들이 많았더라고요.(웃음) 인간 습성의 하나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시대별로 굵직한 거짓말쟁이들이 많은데요. 공통적인 것은 그들이 다 거짓말을 통해서 거짓말을 하지 않으면 갈 수 없었던 곳에 갔다는 거예요. 발도 데마라라는 사람이 있어요. 자기 이야기로 영화도 찍었는데요. 학교 선생님, 군의관, 철학과 교수, 교도소 소장 등을 가짜 증명서로 해냈어요. 이 사람과 이유미가 비슷한 속성이 있는데요. 자기의 출신과 계층을 벗어나기 위해 전문성을 위증했죠. 그로 인해 삶이 굉장히 외로웠고요. 증명서들이 요구하는 능력이 있는데 그걸 위해서 굉장히 공부도 열심히 했거든요. 끊임없이 도마 위에 올라가야 하니까요. 그런 것들이 흥미로우면서도 한편으로 슬퍼 보였어요. 거짓말을 유지해나가는 것이 얼마나 외로웠을까 싶더라고요.

 

맞아요, 이유미라는 인물을 얘기할 때 외로움을 떼어놓고 말할 수 없어요. 거짓말이란 자기 존재의 부정인데요. 자신을 의심하고, 타인의 시선으로 봐야 하니까 자아가 얼마나 고립되겠어요.


진실된 자신의 모습으로는 관계맺음이 아예 안 되는 거죠. 나를 계속 가짜 인물로 만들어야만 관계맺음이 된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불안하고 왜소해져요. 그렇죠, 이유미는 그런 존재죠.

 

중제목 중에 ‘가짜 거짓말’이라는 표현이 나오거든요. 이 절묘한 표현이 소설을 잘 대변하고 있는 것 같아요.


사실 이 소설을 읽고 난 독자들이 ‘나도 속았구나’라는 이야기를 하는 게 저한테 되게 중요했거든요. 그러려면 거짓말이라는 것의 고정관념을 넘어서야 했는데요. 그런 부분을 뒤에 등장하는 ‘진’과 이유미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것들로 보여준 거죠. 이유미는 진이라는 인물을 살리는 거짓말을 했던 거잖아요. 그러니까 가짜 거짓말은 독자들을 속이는 장치로써 표현한 말이에요. 결국 진짜라고 했을 때 그 안에 거짓말이 있고, 가짜라고 했을 때 그 안에 진짜가 있고, 그런 것들이 재미있는 것 같아요.

 

게다가 이유미의 대학 제자는 그에게 구원받았다고까지 말을 하잖아요. 진도 마찬가지고요. 결국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거짓말이 어떤 거짓말이냐를 짐작하게 돼요.


그것이 『달의 바다』때부터 저의 화두 같아요. 거짓말인데 굉장히 진실된 거짓말에 대한 생각을 하는 것 같은데요. 이유미에게는 굉장히 상반된 여러 가지 속성이 있잖아요. 그것은 또 한 마디로 말하면 이유미라는 인물을 하나로 수렴할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거든요. 누군가는 이 여자로 인해 구원 받았지만 한편에서는 이 여자에 대해 얘기도 하고 싶지 않다고 하고요. 타자성이죠. 이유미라는 인물을 하나의 언어로 규정할 수 없는데요. 그것은 모든 인간이 그런 거라고 생각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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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을 계속 할 수 있을까


끝까지 가는 사람들과 타자성, 복잡성과 같은 문제의식은 어디에서 비롯된 건가요?


아까 이야기한 소수자성 같은 게 아닐까 싶어요. 민감한 자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작가가 되고, 그런 사람들이 고통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되는 것 같은데요. 그런 소수성으로 인해 발화할 수 없는 아픔 같은 것들을 고민하는 것 같아요. 얼핏 보기에는 범법자거나 실패한 사람처럼 보이는 누군가에 대한 애정을 그래서 가질 수밖에 없는 것 같고요. 어떤 동료의식 같은 걸 느껴요. 실은 주인공에게 자전적인 요소가 훨씬 많이 들어있는데도 저는 이유미를 저인 것처럼 느끼거든요. 그것은 제가 가지는 정체성의 문제 같아요. 아직도 내가 소수자라고 느끼는 그런 부분들 말이죠.

 

그것은 아마 여성이라는 것과 떨어질 수 없는 거겠죠?


아마 그렇겠죠. 글쎄요. 사실은 인간이라는 것이기도 하고요. 그것이 좀 더 구체화되어서 지금의, 30대의 저에게는 여성이라는 것이 소설의 중요한 모티프가 된 것 같아요.

 

지극히 평범한 인간들이 평범하게 걷고 있는 길 위의 풍경처럼 그들의 결혼생활도 그랬다. 우리가 질서를 연기하는 한, 진짜 삶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 그렇다면 진짜 삶은 어디 있는가? 그것은 인생의 마지막에서야 밝혀질 대목이다.(133쪽)

 

결국 진짜 삶은 어디에 있는가, 라고 한 그 질문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인간이라는 것이 얼마나 우습고 연약한 존재인지, 얼마나 가짜 관계 속에서 가짜 이야기를 하다가 죽음에 맞닥뜨리는지 생각했어요. 얼마나 후회스러워요. 내가 정말 원하는 것, 진짜 말하고 싶었던 것, 정말 함께 하고 싶었던 사람과 같이 하지 못하고 무엇을 위한 연극인지 모를 연극을 하다가 죽음에 다다르게 되지 않나 생각하면 말이에요.

 

그런데 정말로 자기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모르는 경우도 있잖아요. 외면하는 경우도 있고요.


하지만 그게 절대 좋은 방법이 못 돼요. 결국 그게 자기를 소외시키거든요. 정말로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물어보지 않으면 내가 나를 소외시키게 돼요. 그러면서 결국은 병으로 빠지게 돼요. 광기이든, 이상한 사람으로 변화하든 그렇게 된다고 생각해요. 자유와 정반대의 의미에서 병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민감하게 깨어있어서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이고, 내가 지금 옳게 가고 있는가, 라는 질문을 해야만 하죠. 안 그러면 나도 불행하고, 관계도 불행해지는 게 아닌가 싶어요.

 

그 질문은 참 어려워요.


굉장히 피곤하고요. 너무 에너지 소비도 많아요. 그냥 정해진 공식대로 사는 게 훨씬 편하죠. 그래서 사람들이 불안한 거고요.

 

소설을 쓴다는 것은 그 괴로운 고민을 가장 적극적으로 수행한다는 것이기도 하잖아요. 굉장히 힘들지만 어찌보면 꽤나 건강한 태도 같기도 한데요. 작가의 삶에 있어 소설가의 정체성은 어떻게 작동하고 있나요?


뗄 수 없죠. 이 소설 안에서도 주인공이 소설쓰기 흥미가 떨어지니까 곧장 추락하잖아요. 지금까지 나를 구성하고, 나를 끌고 다녔던 것이 없어졌을 때 길을 잃은 것처럼 느끼는데요. 그리 부지런한 작가가 되지는 못하지만 저 역시 그런 것 같아요. 쓰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과 쓰고 있다는 위안이 저의 삶을 지탱하는 데에 굉장히 중요한 요소예요. 다른 작가들도 다 마찬가지일 거예요. 사실 정말 보상이 없는 일이거든요.(웃음) 그 작업의 기쁨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더 무섭죠. 그 기쁨이 얼마나 크기에 보상도 없는데 다들 그렇게 쓰나, 싶고요.

 

주인공이 출산과 육아를 거치면서 소설쓰기에 대해 이게 다 무슨 소용인지 생각하잖아요. 그런 질문을 작가 스스로도 당연히 하셨을 것 같아요.


아이러니 한데요. 소설을 그만 쓸 수 있게 될 거란 생각을 정말 계속 하게 돼요. 등단했을 무렵에 선생님들이 그런 말씀을 하시면 잘 이해를 못했거든요. 왜냐하면 그때 저는 모든 걸 다 잃어도 계속 이걸 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사랑과 같죠. 예전에 조경란 선생님이 누군가를 계속 사랑하고 싶은데 사랑이 안 될 때도 있는 거다, 라는 얘기를 하신 적이 있는데요. 30대가 넘어가면서 체감이 되더라고요. 작업을 계속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해요. 내적인 동기 외엔 정말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제가 그만 쓴다고 해서 어떤 일이 벌어지지도 않고요. 그저 쓴다는 정체성과 동기부여가 전부인 일이기 때문에 그런데요. 또 밥을 먹고 일어나게 돼요. 그런 시기 같아요.


 

 

친밀한 이방인정한아 저 | 문학동네
한 소설가가 자신의 소설을 훔친 비밀스러운 인물의 행적을 추적해나가는 이 유려한 미스터리는 때로는 더 나은 삶의 조건을 쟁취하기 위해, 때로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거침없이 삶을 뒤엎는 한 인물의 일생을 여러 사람의 목소리를 겹쳐가며 복원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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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출판물 저자를 만나다] 올해 회사 생활은 괜찮으셨나요? – 구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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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미굴 같은 사무실에서 햇빛을 못 보고 살면서 종일 일하는 직장인들이 스스로를 자조할 때 ‘일개미’나 ‘노예’ 등으로 부른다. 흔한 자조에 빗대 ‘직딩들이여, 개미굴에서 안녕하신가?’ 인사를 건네며 책으로 풀어 쓴 작가가 있다. 『일개미 자서전』에 담긴 직장에서 분투한 구달 작가의 사연은 독립 서적 독자들에게 공감과 웃음을 남겼다. 상업 출판계에서 일하던 또 다른 ‘일개미’ 편집자도 애독자 중 하나였다. 편집자의 제안으로 절판된 『일개미 자서전』이 임진아 작가의 일러스트레이션과 추가 에피소드를 덧붙여 새로 나왔다. 600부에서 절판된 독립 출판물은 기성 출판으로 접점을 넓혀 독자들을 더 많이 만날 예정이다. 외피는 바뀌었지만, 여전히 웃기고 슬프고 후련하다.

 

“자기 계발서나 경제?경영서를 위주로 내는 출판사에 들어갔어요. 저와 성향이 맞지도 않고 월급이 너무 적다 보니 월급을 조금이라도 많이 주는 대학 출판부로 옮겼는데, 제 방향성하고는 더 멀어지더라고요. 인생을 살면서 제가 주인공인데, 현실에서는 항상 미미하고 하찮은 일개미처럼 일하는 게 부조리하다고 느꼈어요. 답답하던 차에 독립 출판으로 내 취향에 맞고 내 방향에 맞는 책을 직접 만들면 되겠다 해서 처음 시작했어요.”


구달 작가는 대기업에 ‘묻지 마 취업’ 후 출판 편집자로 전향해 여러 회사를 전전했다. 동료와 ‘아부 천재 홍 대리’ 같은 직장인의 애환을 담은 책을 내면 어떨까 공상하다 독립 출판물에 생각이 미쳤다.


“스토리지북앤필름에서 진행했던 ‘사진집 만들기’라는 수업을 들으면서 독립 출판물을 어떻게 제작하고 유통할 수 있을지 배웠어요. 수업의 결과물로 첫 책이 나왔죠. 처음에는 서점 세 군데에 입점을 시작해 점점 늘려나갔어요. 간이 작아서 책을 낼 때마다 사람들이 안 읽을까 봐 적은 부수로 시작해 나중에 추가 제작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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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출판물을 내기로 한 데에는 비용이 적게 든다는 이유도 있었다. 20만~30만 원 정도의 제작비로 첫 책이 팔리면 그 수익으로 추가 제작을 하는 식이다.


“독립 출판을 하면서 다양한 제작 시도를 하시는 분이 많아요. 저는 제 글을 다른 사람들한테 보여주고 싶어서 독립 출판을 시작했거든요. 디자인은 잘 모르는 영역이라 최대한 간단하게 만들고 글에만 집중했어요.”


구달 작가가 처음 낸 책은 평가판 소프트웨어로 만들었다. 비용을 낮추려면 후가공도 없어야 했다. 직장을 다니면서 시간과 자본을 쪼개 쓰려니 선택한 방법이었다.


“독립 출판을 자기를 표현하는 수단으로만 생각하고 이걸 받아들이는 독자가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아요. 너무 자기 감정만 토해내거나, 편집이 안 되고 정돈이 안 된 내용을 그대로 책으로 내는 걸 보면 조금 안타까워요. 책을 내고 읽어주기 바라는 거라면 독자들의 입장에서 창작물을 정리하는 최소한의 과정을 거쳤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비용을 줄였다고 해서 허투루 만들었다는 뜻은 아니다. 독립 출판도 엄연히 독자와 작가가 만나는 통로이기에 말하고 싶은 내용이 독자에게 잘 전달될 수 있도록 고민해봐야 한다.


『일개미 자서전』을 단행본으로 다시 내자는 제안을 받았을 때 엄청 좋았어요. 편집자로 일할 때 저자와 미팅하러 많이 갔던 카페에서 작가의 입장으로 편집자를 만나니까 뭐라도 할 수 있는 기분이 들더라고요. 편집자로 일할 때는 너무 많은 의견을 조율해야 하고 최종 결정권자의 결정을 기다려야 하는데, 독립 출판물을 만들면서는 모든 걸 제 결정으로 할 수 있으니 너무 편했어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제가 하는 선택이 옳은지 확신이 없어서 무섭기도 하고요. 이중적인 장단점이 있어요. 독립 출판으로는 구달이란 이름으로 4종을 내서 알아보고 읽어주시는 분이 있지만, 기성 출판으로 새로 나온 책은 어떻게 읽어주실까 궁금하기도 해요.”


기성 출판과 독립 출판 사이, 제작 방식과 규모의 경제의 차이는 있지만 책을 만드는 사람들과 독자는 계속해서 접점을 만든다. 새로 만든 『일개미 자서전』은 더 많은 독자를 만날 기회가 생겼다.


“네 번째 직장을 그만두고 일년 반 동안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어요. 지금 여유를 가지고 생활한 경험이 쌓여서 나중에 더 깊은 내용을 다룰 수 있겠다는 생각이에요. 올해는 구체적인 성과가 없는 상태로 벌어놓은 돈을 쓰면서 살았어요. 불안함을 극복하면서 적금 통장 잔액이 0원이 될 때까지는 한번 버텨보려고요.”


『일개미 자서전』에서 고민한 내용은 그대로 삶으로 이어졌다. 구달 작가는 현재 봉급 생활자의 꿈을 접고 프리랜서 편집자로 일하면서 글쓰기로 먹고사는 방법을 모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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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치면 행운! 구달 작가의 다른 책


블라디보스토크, 하라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바롭스크까지 러시아를 여행하며 담은 여름 풍경 사진집. 풍경마다 러시아 소설 구절이 들어가 있다.


고독한 외식가
솔로 직장인 외식가의 열여섯 끼니에 관한 내용. 식사마다 일러스트를 그리고 떠오르는 단상이나 상황을 글로 표현했다.


한 달의 길이
직장을 그만둔 뒤 보낸 한 달을 서른 개의 장면으로 옮겼다.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을 하지 않은 채 보낸 순간을 세세하게 담았다.

 


 

 

일개미 자서전구달 저/임진아 그림 | 토네이도
숱한 고뇌와 번민 끝에 마침내 작은 해방구를 찾은 구달의 이야기가 캄캄하기만 했던 당신의 개미굴 생활에 한 줄기 시원한 숨구멍이 돼줄 것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공간디렉터 최고요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물건은 버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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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자에 끼워둔 엄마의 편지가 있고
내가 고른 스피커가 있는 곳.
친구들이 선물한 나뭇가지가 벽에 걸려 있고
며칠 전에 산 향기 좋은 바디워시가 기다리는 곳
가만히 앉아서 제자리에 있는 물건들만 봐도 기분이 좋아지는 곳.(39쪽)
 
공간디렉터 최고요는 자신의 공간이 구석구석 나의 손길과 취향이 닿은, 그래서 바라만 봐도 행복해지는 공간이 되길 바랐다. 창문 한쪽에 난 못생긴 구멍을 아침마다 커튼으로 잘 가리고, 모든 물건에 제자리를 찾아주고, 아주 신중하게 물건을 들였다. 공간은 살아있는 것이어서 바라보고 만져줄수록 나와 닮은 모습이 되었다. 20년 넘은 낡은 빌라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공간이 되었고, 잡지와 뮤직비디오 등을 촬영하는 멋진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좋아하는 곳에 살고 있나요?』는 그 많은 이야기를 담은 최고요의 공간을 엿보게 함과 동시에 나의 공간을 잘 가꾸는 일의 즐거움을 알게 해주는 책이다. 무엇보다 최고요가 디자인을 공부해서, 공간디자인 회사를 운영해서 가능한 일만은 아님을 알게 하는 것은 공간과 꼭 닮은 최고요 자신과 그 모든 것을 닮은 글 때문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늘 공간에 관심을 두고, 작은 변화가 가져오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다름 아닌 ‘나의 공간’을 지키고자 애써온 최고요. 공간을 꼭 닮은 사람, 사람을 꼭 닮은 공간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는 그의 블로그에 한참이나 빠져 머물다가 나의 공간을 둘러보고, 작은 물건 하나를 버렸다. 거기에도 즐거움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좋아하는 곳에 살고 있나요?』를 통해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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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정말 최선의 모습일까?

 

‘주도적으로 공간을 바꾸어 사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삶이 다르다’라고 한 건축가 승효상 선생의 말이 자꾸만 생각났어요. 저자 역시 이 말에 많이 동의할 것 같아요.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잖아요.(웃음)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게 많이 없어요. 집안, 부모, 자기를 둘러싼 환경처럼 갖고 태어나는 것들이 있고, 자기가 바꿀 수 있는 것들이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흔히 ‘금수저’라고 하는, 좋은 환경을 갖고 있는 분들조차도 공간에 대한 인식을 많이 못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어쩔 수 없는 거라고 생각하고, 부모님과 같이 사는 집이든 혼자 사는 집이든 그 공간을 주어진 것, 받아들여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은데요. 저는 그걸 바꿀 수 있지 않을까 많이 생각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그랬어요. 부모님 집에서 사는 답답함 같은 게 있었거든요. 혹은 좋았던 부분에 대한 기억이 있죠. 그랬기 때문에 혼자 살게 되면서는 ‘이게 정말 최선의 모습일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사람들은 자신을 꾸미려고 노력하고, 최선의 모습을 찾으려고 되게 노력하잖아요. 저는 집에 그런 노력을 해보고 싶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공간에 관심이 컸던 것 같아요. 어떤 이유였을까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제 자신을 확인 받고 싶은 마음에서 온 건지, 정말 저 자신을 위해 그렇게 하는 건지 사실은 모르겠어요. 사람들이 저희 집에 오면 “여기 정말 좋다, 너 같은 공간이다.”라고 하거든요. 그 말이 좋기도 해요. 그러니까 다른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이유가 아예 없는 건 아니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요. 그래도 역시 나를 위해서 하는 이유가 더 크지 않나, 라고 생각해요. 처음엔 경계가 더 모호했죠. 남한테 보이는 것도 사실은 중요하니까요. 가깝게는 부모님부터 친구들, 혹시나 집을 방문하는 사람들한테 창피하지 않은 공간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좀 있었던 것 같거든요. 그런데 계속 공간을 가꾸면서 저에게 어울리는 방법들을 찾으며 살다보니 이렇게 하면 할수록 내 자신이 뚜렷해지는 느낌이 많이 들었어요.

 

자신이 뚜렷해지는 느낌, 정말 중요하잖아요.


이걸 이해 못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분들에게도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제가 훌륭한 사람이나, 뛰어난 사람이 아니고 그냥 평범한 사람이니까요. 평범한 사람인데 이런 작은 노력을 해서 느낀 기분을 다른 사람도 느끼면 좋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책을 펴낸 이유도 거기에 있겠네요.


처음엔 자신이 없었어요. 다들 돈 낭비라고 하잖아요. 괜찮은 걸까, 그런 생각을 많이 했는데요. 제가 느낀 기쁨을 알려주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저도 공간 디자인 일을 하고 있지만 자신의 공간을 남에게 의뢰해서 바꾸려면 비용이 발생하잖아요. 스스로 자기 공간을 가꾸면서 사는 데에는 그리 큰돈이 들지 않거든요. 또 이건 제가 가서 해줄 수 있는 일도 아니에요. 집마다 찾아다니면서 이렇게 하면 돈 안 들어요, 이렇게 하면 집이 예뻐져요, 라고 할 수가 없고요.(웃음) 그러니 집을 가꾸면서 든 생각들을 쓸 수 있었던 게 저 나름대로는 좋은 프로젝트가 되었던 것 같아요.

 

공간을 가꾸어서 얻은 희열을 제일 처음 느꼈을 때는 언제였어요?


집이 갑자기 어려워졌었어요. 호주에서 학교를 다녔는데요. 한국에 돌아오기 전에 부모님이 이사를 하신 거예요. 그 집이 우리 집 같지 않다는 생각을 많이 했죠. 전체적인 집안 분위기도 안 좋았고요. 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에 돌아와서 그 집에 몇 달을 살아야 했는데요. 제 방은 곰팡이도 엄청 폈고, 지저분했어요. 그 방을 이대로 두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여기만이라도 즐거운 공간이어야 되겠다, 싶어서 매일 집을 청소하고 가꿨어요. 좁은 집이 아니었는데 매일 청소하고, 곰팡이도 다 지우고, 결로 방지 페인트로 칠하고, 액자도 걸고, 이케아에서 제일 싼 테이블도 주문해서 방에 뒀죠. 벽에 붙어 있던 책장은 옮겨서 방을 구분하고 그 안쪽을 책상 공간으로 만들어 예쁘게 썼어요. 그러니까 느낌이 확 다르더라고요. 물론 그 이후에도 집안 상황이 좋아지진 않았어요. 그래도 제가 좀 살겠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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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서 지낼 때도 공간에 대한 관심은 많았죠?


원래 집 꾸미는 건 좋아했죠. 호주에서도 다른 사람들은 그냥 남의 집에 들어가서 한 공간 차지하고 살았는데 저는 방이 다섯 개 있는 백 년 된 집을 렌트해서 꾸미고 방마다 사람 구해서 받고 그랬어요. 헌 가구 파는 곳에서 가구 사다가 채우고요. 저는 늘 제가 렌트를 해서 사람을 구하고 방세를 충당하는 식으로 살았어요.

 

 

아주 작은 것도 놓치지 않으려는 마음

 

‘공간이란 아마도 살아있는 것’이라는 대목이 중요할 것 같아요. 저자에게서 전달 받는 것은 삶의 태도라는 측면이거든요. ‘가꾼다’는 표현이 딱 맞아요.


동물, 식물도 예뻐하는 걸 안다고 하잖아요. 공간도 정말 표시가 많이 나요. 공간을 어떻게 만지느냐에 따라 정말 달라요. 이석원 씨 블로그에서 본 건데요. 누나네 집이 너무 좋아서 누나가 이사 가면 그 집에 꼭 살 거라고 했는데 정작 자기가 그 집에 들어가 살아보니 그 집이 그 집이 아닌 것 같다는 글이 있었어요.

 

공감을 많이 했어요. 그런 경험 많잖아요. 좋아하던 카페가 장소는 그대로고 주인만 바뀌었는데 전혀 다른 공간처럼 느껴지는 경험 말이에요. 엄마가 있을 때랑 없을 때 집이 다르고요.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아침에 꼭 하는 일 중 하나가 커튼을 제자리에 놓는 거예요. 한쪽 벽에 못생긴 구멍이 있거든요. 그걸 가리는 거죠. 아주 작은 건데 그런 것으로 차이가 생기는 것 같아요.

 

화장한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더라고요. 가리고 싶은 곳은 가리고 강조하고 싶은 곳은 강조하잖아요. 집도 마찬가지겠죠.


공간도 공간이지만 물건 때문에 굉장한 차이가 나요. 가구도 아닌, 작고 사사로운 물건들에서 차이가 난다는 건데요. 지금 집은 그래도 빈티지 가구도 좀 있지만 이태원 집은 정말로 대표적인 자취 가구들만으로 이루어진 집이었어요. 차이는 작은 소품이죠. 저는 소품 살 때 정말 신경을 많이 써서 사거든요.(웃음) 집을 예뻐한다는 건 아주 작은 것도 놓치지 않으려는 마음 같아요. 그것 없이 급하게 집을 꾸미려고 하면 조명 바꿨는데도 안 예쁜 것 같고, 그렇게 돼요. 결국 조화를 이루어야 하거든요.

 

완벽함의 덫에 대해서도 언급하셨잖아요. 공간을 가꾼다는 것을 단번에 완성형의 무대처럼 바꾸는 것이라고 오해하기 쉬울 것 같아요.


자연스럽게 하는 것도 중요하고요. 비워놓는 것도 되게 중요해요. 사방을 가득 채운다고 예쁜 게 아니잖아요. 미술작품, 좋은 물건, 예쁜 사람을 생각하는 것과 똑같이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물건을 신중하게 들인다고 했는데요. 이를 테면 ‘가성비’, 비용에 대한 필요나 시급성 같은 이유로 그렇게 하지 못할 때가 많아요. 가령 ‘뽁뽁이’ 같은 거죠.(웃음) 정말 안 예쁘지만 하면 따뜻하잖아요.


저희 집에 뽁뽁이는 못했어요. 잡지 촬영 하면 떼야 하니까요. 그런데 그런 게 없다면 뽁뽁이는 할 것 같아요. 하고, 커튼으로 가려두면 되잖아요. 너무 크게 해치지 않는 선에서 말이에요. 빨간 꽃무늬가 막(웃음) 있는 것만 아니면요. 저도 나름대로 모든 것에서 타협을 하거든요. 정말 갖고 싶은데 비싸면 사지 않고요. 제가 가질 수 있는 것 중에서 나의 기준을 충족할 수 있는 것들을 찾는 거예요. 대신에 불편하다고 해서 막 물건을 사진 않아요. 그건 하지 않아요. 절대 안 해야지, 하고 생각하는 것들 중 하나예요.

 

공간을 가꾼다고 했을 때 흔히 예쁜 물건을 사들이는 걸 생각할 텐데 정작 저자는 전혀 다른 얘기를 하고 있는 셈이에요.


예쁜 물건을 사들이는 게 아니라 집에 있는 것 중에서 생각하는 거거든요. 어떤 물건을 내가 가지고 있고, 그 물건을 어떻게 하면 예쁘게 보이게 할까를 생각하는 거죠. 물론 예뻐서 사는 것도 있겠죠. 저희 집에도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놓이는 그런 것들이 있어요. 하지만 그것뿐만 아니라 가지고 있었던 것들, 여차하면 버려지는 것들 중에서 진짜 보물 같은 걸 찾는 거예요. 소재도 좋고, 오래갈 것들인데 대충 보면 버려질 만한 것들 있잖아요. 예를 들면 저는 조그만 나무 의자를 갖고 있어요. 그런 걸 챙겨서 가지고 다니는 마음이 필요하지 않나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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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버려야 한다는 말도 많이 하시죠.


마음을 불편하게 할 만큼 잡동사니가 된 것들이 있거든요. 그런 걸 버리라는 의미이고요. 집에 있는 것들 중에는 반드시 또 챙겨두어야 할 것들도 있어요. 구분을 잘해야 하는 것 같아요.

 

하루를 살아도 기분 좋은 곳


눈에 띄는 ‘꿀팁’이 몇 가지 있어요. 가령 어려운 것보다 쉬운 것부터 시작 하라든가 면적을 많이 차지하는 것을 바꿔라, 같은 것들인데요. 특별히 저자가 많이 하는 조언은 뭔가요?


제일 많이 하는 조언은 자연스러운 게 좋은 거라는 말이에요. 조금 개인적이기는 한데요. 밝은 형광등 같은 것을 지양하라는 말을 많이 해요. 디자이너 필립 스탁이 했던 유명한 말이 있어요. ‘모든 것을 비추는 것은 아무것도 비추지 않는 것과 같다’는 말인데요. 형광등이 온 집안을 밝혀주는 건, 그건 조명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정말 있어야 하는 곳에 적당한 조도로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너무 센 형광등이 집에 있으면 좀 부자연스럽다는 느낌이 있고요. 조명을 좀 자연스럽게 바꾸면 어떨까 싶어요. 형광등 중에도 전구색이라고 노란 빛이 나는 게 있거든요. 자취 초창기에 했던 건데요. 그렇게 하면 분위기가 조금 달라져요. 밝은 조명은 몸에도 그리 좋지 않다고 해요. 저녁에는 적당히 어두워져야 몸에 좋다고 하더라고요. 등이 너무 밝으면 천으로 덧대주기만 해도 분위기가 훨씬 부드러워져요. 그것부터 해보셔도 좋을 거예요. 굳이 밝은 걸 선호하는 분이 아니라면 말이에요.

 

한 번 해보고 싶은 팁이네요.


그 다음 다른 걸 해보고 싶다면 패브릭 얘기를 하는데요. 사실 집을 예쁘게 보이고 싶을 때 할 수 있는 딱 한 가지 방법이 있어요. 예쁜 걸 꺼내고 안 예쁜 걸 숨기면 돼요. 진짜 만고불변의 진리예요. 그걸 하기가 어렵죠.(웃음) 카페나 옷가게 같은 곳을 지켜보면 쉬운데요. 테이블 위에 뭐가 올라가 있어야 할까 싶으면 카페를 보세요. 초 하나, 작은 소품 하나 정도잖아요. 집에도 그렇게 하면 돼요. 이 장소도 참고할 게 많네요. 사장님이 센스가 있는 분이에요. 잡동사니처럼 보일 것도 선반 위에 올려서 멋스럽게 했어요. 관심을 많이 두면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좋다고 느낀 이미지 모으기, ‘무드보드’(보드판 위에 이미지를 보기 좋게 모아놓은 것) 만들기를 해보라고 하셨는데요. 정말 많이 보는 수밖에는 없는 것 같아요.


관심조차 두지 않으면 어떻게 할 수 있겠어요. 뭐든 관심을 쏟아야 하는 것 같아요. 집에 관심을 계속 쏟아야만 쓸데없이 돈만 써서 집을 채우려는 생각도 버릴 수 있고, 하루를 살아도 기분 좋은 곳에 있을 수 있는 거겠죠. 좋은 공간에 있고 싶어서 여행도 가잖아요. 가면 또 “여기가 내 집이면 좋겠다”(웃음) 이런 말도 하고요. 거기에서 끝내지 않고, 조금만 더 해보셔도 좋을 것 같아요.

 

거의 모두가 이사하는 삶을 살잖아요. 나의 공간이라고 할 만한 곳에서 오래 지내기가 힘드니까 선택의 문제가 되는데요. 작은 변화를 시도해보는 게 중요하겠죠.

 

저는 이게 있으면 우리 집이다, 라고 생각하는 몇 가지 물건이 있어요. 이 물건들을 두면 이 공간은 그때부터 우리 집이다, 이런 느낌이 있어요. 현관에 들어섰을 때 볼 수 있게 놓아둔 물건 대부분이 그런 것들이거든요. 신발장 위에 둔 것들, 그것들이 약간씩 달라지긴 하지만 그렇게 놓아두면 생각이 달라요. 그 물건들, 아까 말씀드린 나무 의자, 매일 쓰는 제 침구 같은 것들인데요. 냉장고도 그런 물건 중 하나인데요. 비싸고 좋아서라기보다 제가 쓰기에 썩 괜찮은 것이기 때문이에요. 디자인이며, 크기며, 그게 마음에 들어서 가지고 다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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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가꾼 집에는 애정도 많이 느낄 것 같아요.


이태원 집은 사실 제 다음에 이사 와서 살 분에게 물건까지 다 처분하고 왔는데요. 저는 사실 그런 것도 재미있어요. 제가 살기 위해 메이크오버한 집에 또 다른 사람이 살게 되는 거잖아요. 제가 좀 더 좋게 만든 집에 다른 분이 살게 되는 것도 좋은 것 같아요. 저 역시 이사를 했고, 전에 갖고 있던 가구 대부분은 다 처분했지만 이사한 집도 제 집 같은 느낌이 그대로 남아있으니까요. 집을 구성하는 것에 대한 생각을 다르게 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유행 따라 쉽게 사면 그만큼 쉽게 버리게 되는 것 같더라고요. 잡동사니와 오래 곁에 둘 물건을 잘 생각해보는 일이 시작이겠네요.


이가 들수록 개성이 점점 뚜렷해지고 자신의 삶에 대한 태도가 뚜렷해지잖아요. 저는 가능하면 유행을 안 탈 것 같은 물건을 사려고 해요. 이제는 싼 맛에 사들이는 건 안 하는 것 같은데요. 저도 자취 초반에는 그렇게 사기도 하고, 다 버리기도 하고 그랬어요. 그런 경험도 필요한 것 같긴 해요. 처음부터 누가 알려주지 않잖아요. 그래서 버리는 것도 취향 찾기에 중요하다고 썼거든요. 일본에 곤도 마리라는 분이 계시는데요. 그분이 ‘설레지 않는 물건은 다 버려라’라는 말을 했어요. 충격적이죠. 그분이 컨설팅한 사람들 중에는 뭘 가지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하더라고요. 평생 쓸 면봉보다 더 많은 면봉을 갖고 있는 사람도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물건을 솎아내는 일이 필요하고요. 그러면 내가 이 물건에 취약하구나, 를 알아낼 수 있어요. 일단 내가 뭘 가지고 있는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으니까요.

 

옷, 문구류 등 특히 많이 살펴봐야 할 것들이 떠오르네요.


그릇이나 의미 없는 상자나 그런 것들, 많죠.  

 

저자에게도 그런 물건이 있었나요? 의식하지 못해 자꾸 쌓였던 물건이요.


옷이나 스타킹이요.(웃음) 스타킹이 너무 많은 거예요. 양말, 스타킹인데요. 제가 지난 5월에 이사를 했거든요. 한 가방 안에 스타킹이랑 양말이 가득 들어있었는데 그걸 보니 가슴이 답답하더라고요. 보풀 일어나서 엉망진창인 스타킹, 짝 안 맞는 양말, 구멍 난 양말, 이런 식이더라고요. 그래서 가방 안에 있던 걸 다 버렸어요. 그리고 이번에 스타킹을 다섯 개 샀어요. 이 겨울은 스타킹 다섯 개로 나고, 이것들이 엉망이 되면 이것도 다 버리고 내년에 다시 사겠다, 이 생각을 했죠. 아, 화장품 샘플도요.(웃음) 여행은 일 년에 한두 번 밖에 안 가는데 여행가면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받아요. 그것도 다 버렸고요. 누가 샘플 준다고 하면 안 받으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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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한 물건은 무조건 제 자리에


저자가 갖고 있는 공간 가꾸기 제1규칙은 뭔가요?


쓰자마자 정리하기예요. 설거지는 바로 하고요. 사용한 물건은 무조건 제 자리에 갖다 놓아요. 그렇게 안 하면 순식간이거든요. 눈 깜짝할 사이에 엉망이 돼요. 저는 그걸 방지하려고 여기에 있으면 안 되는 물건이 있다고 하면 바로 정리하죠. 이를 테면 주방에서 사용하는 접시가 서재에 있으면 안 돼요. 집에서 작업하다보면 컵이 잔뜩 쌓이거든요. 그러다보면 거기에 쓰레기도 쌓여요. 의자에 겉옷 하나 걸어두면 그 순간 거기는 엉망진창이 되잖아요. 그래서 항상 공간을 쳐다보면서 이게 여기에 있어야 하는 물건인지 아닌지를 생각해요. 아니면 바로 치우면 되니까요. 어렵게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하죠. 유지를 어렵게 만드는 건 자기 자신이거든요. 습관 때문인데요. 나를 힘들게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저는 해요.

 

단정하게 공간을 만드는 것이 생활에도 정말 큰 영향을 끼치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정말 생각해요. 제가 얼마나 더 나은 사람이 됐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요. 적어도 집 때문에 기분이 안 좋을 일은 없어요. 집에서 우울한 적도 없고요. 그게 인생에서 사라진 게 저는 좋아요. 부모님과 같이 살 때는 내 마음대로 못하는 게 많으니까 답답하기도 하고 그랬거든요.

 

책에 도움 받을 분들이 많을 것 같아요. 책을 쓸 때 상상했던 분들은 어떤 분들이었어요?


저 같은 분들을 상상했어요. 과거의 저 같은 사람이요. 어떻게는 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고 또 딱히 누군가가 도와줘서 좋은 곳에 살 수 있지도 않은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고 생각했어요. 또 포기해야 할 것 같은데 포기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 있잖아요. 내가 사는 공간 포기하고 싶지 않지만 어쩔 수 없다,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읽어보셨으면 좋겠어요. 

 

앞으로 꼭 해보고 싶은 작업이 있는지 궁금해요.


인테리어 업체도 많고, 잘하시는 분들도 많은데요. 저는 조금 다른 것들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정확하게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고 결정한 건 아닌데요. 하지만 일이나 프로젝트를 그런 식으로 항상 생각하고 있어요. 다른 걸 해보고 싶다는 생각 말이에요.

 


 


 

 

좋아하는 곳에 살고 있나요? 최고요 저 | 휴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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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최성수 “풍류에 시를 더하는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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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 가요계에서 강세였던 '발라드'의 막강한 마켓파워를 견인한 인물 최성수. 감칠 맛 나는 선율과 아련한 노랫말을 써낸 싱어송라이터로, '남남', '동행', '해후', '풀잎사랑' 등 잇단 히트 퍼레이드를 펼친 '빅'가수였다. 그의 음악은 당대 누구에게도 찾아볼 수 없는 성인 풍에다 노랫말은 전업 시인을 방불케 했다. 음악계에 등장한지 어느덧 35년의 세월이 흐른 베테랑이지만 그는 지금도 지속적으로 움직이는 진행형 가수다.

 

막 유명 시인들의 작품에 곡을 붙인 <시가풍류방(詩歌風流房)>이란 앨범을 냈다. 시 노래로 풍류를 제공한다는 제목에 그의 근래 지향이 축약되어있다. 서울 동부이촌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온화하고 여유로운 웃음으로 가득했다. 나이가 들고 또 고통스런 현실에 처했어도 인터뷰 내내 강한 음악 열(熱)을 드러내며 신나게 대화를 이끌어갔다. 먼저 “왜 앨범이 이렇게 늦었나?”고 물었더니 시가풍류방은 연작 앨범으로 발표할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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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앨범활동은 지속하리라고 봤다. 근데 기대와 다르게 10년 만에 앨범을 냈다. 왜 이렇게 늦었나.


주지하다시피 제작환경이 여의치 않았고 내 경우 사건 사고가 있지 않았나. 미국에 있는 시간도 많았고 매니저도 없었고... 결정적으로 '내면 뭐하나'라는 생각 때문에 늦었다. 11집 앨범을 가지고 돌아오는데 시간이 너무 걸린 건 사실이다.

 

행여 음악 자체에 대한 회의가 생긴 것은 아닌가.


그럴 리가 있나. 난 언제나, 어떤 경우라도 음악으로 돌아간다.

 

막 발표한 새 앨범 <시가풍류방> 은 유명 시인들의 시로 엮었다. 소개해 달라.


제목 그대로 '시 노래'이며 고은, 김용택, 도종환, 안도현 등 존경하는 시인의 시에 곡을 붙였다. 일일이 사용허락을 받았다. 실은 올해 초 '시가미다방'이라는 타이틀의 디지털싱글을 냈다. 두 곡이었는데 도종환 시인의 '다시 오는 봄'과 제주 시인으로 지난 9월말에 세상을 떠난 권재효 시인의 '술 먹게 하는 봄밤'이었다. 우연히 접하게 된 '다시 오는 봄'은 나와 가족이 힘들었을 때, 지금도 힘들지만, 다시 서게 할 수 있는 위로를 제공했다. 노래로 만들고 싶다는 의욕이 생겼다. 앨범 <시가풍류가>는 디지털싱글의 기획을 확대한 것으로 보면 되겠다. 위 두 곡도 여기 수록되어 있다.

 

시에 곡을 붙인다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원래 멜로디를 만들고 뒤에 가사를 붙이는 스타일이다. 이미 만들어진 것, 그것도 남의 글을 가지고 멜로디를 붙인다는 게 어찌 쉽겠는가. 시의 의도와 감성도 전달해야 하는 것 아닌가. 굉장히 어려웠다.

 

도종환 시인의 경우는 문화체육부장관이 되기 전인가.


좀 전에 말한 디지털 싱글 '다시 오는 봄'에 이어 앨범의 첫 곡인 '구름처럼 만나고 헤어진 많은 사람 중에' 역시 도종환 선생의 작품이다. 당연 장관이 되시기 전에 사용허락을 받았다. 장관이 될 줄은 전혀 몰랐다. (노래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 물었더니) 좋은 노래로 만들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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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힘들었던 곡은?


'고뇌하는 청춘에게라'로 이건 고은선생의 시가 아니고, 인터넷 네이버 캐스트에 들어가면 고은선생 인터뷰 기사가 있는데 내용이 맘에 들어서 그것의 일부를 가지고 만든 것이다. 시가 아니라 인터뷰 내용이라서 힘겨웠지만 자랑스럽기도 하다.

 

요즘 청춘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힘들 것이다.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이다. 그래도 미래가 있지 않나.

 

앨범 전체적으로 아코디언을 많이 사용했다.


나와 잘 어울린다. 첼로, 피아노와도 조합이 좋고. 아코디언 소리가 자칫하면 '뽕'으로 느껴질 수 있는데 이 러시아 친구 알렉스 세이킨(Alex Sheykin)는 팝과 클래식에 능통한 덕에 뽕 느낌을 최소화했던 것 같다.

 

이 앨범의 중요한 포인트는.


조윤성 피아니스트로 몇 곡 빼놓고 다 피아노를 쳐주었고 편곡에도 결정적이었다. 그와 공연을 많이 다니면서 감각을 공유하게 됐다. 내 음악을 고급스럽게 만들어줬다고 할까. 아버지가 재즈 1세대 드러머이신 조상구씨다. 조윤성 때문에 앨범에 격이 부여되었다고 본다.

 

시를 노랫말로 곡 만드는 작업은 이번 단발로 끝나나.


그렇지 않다. 이미 황동규, 고정희, 마종기, 나태주, 이정하, 최영미, 류시화 등등 시인의 작품으로 곡을 만들어 놓았다. 소설가 이외수, 이해인 수녀의 작품도 있고... 50곡을 만들었다. 차례차례 다 녹음할 계획이다. <시가풍류방>은 시리즈, 연작으로 전개한다.

 

하긴 1980년대 후반 전성기 시절 워낙 최성수 노래가 시적(詩的)이었다는 평가를 받았고 심지어 '시보다 더 시적인 노랫말'이라는 찬사도 나오지 않았는가.


과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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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후' 가사는 언제 들어도 고감도라는 생각이 든다.


젊은 시절 방황하며 술집 다니며 사람들한테 이것저것 들은 얘기를 가사로 옮긴 것뿐이다.

 

기성 시를 가져다 곡을 쓰는 결정적인 이유가 행여 노랫말 만들어내는 감각이 둔화해서 그런 건 아닌가.

 
그럴 수도 있겠다. (웃음) 시와 인연은 지금이 아니라 오래전이다. 어렸을 때부터 시집을 가지고 다니며 읊곤 했다. 우리 시절에는 그런 사람들이 제법 있었지 않나. 1983년 첫 앨범인 <그대는 모르시더이다>를 발표하기 전에 이미 신석정 시인의 '임께서 부르시면'에 멜로디를 붙인 곡을 내놓은 바 있다. 시를 계속 응시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지난 1989년, 납북 작가의 작품이 해금되던 시기 친하게 지낸 한 KBS 프로듀서가 정지용 시인의 <향수> 시집을 주면서 여기다 노래를 붙여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정말 어려워서 포기했다. 그런데 후에 김희갑선생이 토씨하나 바꾸지 않은 채 그걸 만든 것을 듣고 정말 놀랐다. 존경스러웠다. 그때 엄청난 충격으로 이 작업을 염두에 두어왔다.

 

앨범 제목에 붙이고 있지만 나이 들면서 '풍류'라는 개념에 집중하고 있는 것 같다. 계기가 있는지.


계기라기 보단 세상이 지금 멋이 없어졌다. 만나서 술도 취할 때까지 마시고, 함께 어울리고 그래야 하는데 인생이 더 푸석푸석해지고 각박해진 것 같다. 풍류가 사라진 것이다.

 

풍류란 키워드에 시를 더하는 작업은 분명 어울림이 있다.


요즘 들어서 '노래'보다 시가 멋있는 것 같다. 예전 문학의 밤이다 시가의 밤이다 해서 자주 그런 행사가 있곤 했는데 요즘은 시 낭송이라는 것이 없어진 것 같다. 우리나라만큼 시가 위대한 나라가 없는 것 같은데... 시집이 가장 많이 발매되는 나라, 그래도 시를 대우해주는 나라 아닌가.

 

밥 딜런이 노벨문학상을 받았을 때 기분은 어땠나.


우와! 멋져보였다. 게다가 시상식에 불참하겠다고 한게 더 멋있어 보였다. 내게 동기부여가 되었다. 내가 기획하고 있는 <시가풍류방> 작업도 의미가 있겠구나 생각했다. 이전에 '외로우니까 사람이다'처럼 정호승 시인의 시를 노래한 안치환 같은 가수들을 보고 새롭게 방향을 설정하기도 했다. 히트곡이 있다고 해서 그것만 노래하고 다니는 것보다는 이러한 새로운 작업들을 하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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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기 시절 자신의 곡을 들으면 어떤 기분인가.


옛 곡에 만족하지 않는 스타일이라 그러지 않았는가. 옛 노래들을 들으면 손발이 오그라든다. 난 고인물이 싫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은 '남남', '동행', '해후', '기쁜 우리 사랑은', '잊지 말아요'보다도 '풀잎사랑'을 좋아한다. 거의 대표곡이 이 곡으로 정리된 것 같다. 고맙기도 하지만 제일 오글거려서 싫다.

 

그럼 전성기 작품 중에서 덜 알려졌지만 맘에 드는 곡은. 알려지지 않아서 아쉬운 곡.


내 음악은 어덜트 컨템포러리, 성인 발라드로 분류될 텐데 통상적으로 '뽕'의 느낌이 살아있는 노래들이 잘 맞는다고 하더라. '장미의 눈물', '당신' 이런 노래들을 지금 들어보면 좋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확실히 이문세의 팝 발라드보단 '뽕기'가 스민 발라드인 것은 맞다. 그것을 의식하고 썼나.


의식하진 않았다. 그 당시엔 흥얼흥얼하면 무조건 뽕느낌, '뽕필'이 나왔다. 하지만 뽕이라고 불리는 것은 싫었다.

 

최성수가 좋아하는 최성수 곡은.


'텔레비전을 보면서'와 '위스키 온 더 락'... 라이브할 때는 거르지 않는다.

 

지금 당장하고 있는 음악 작업은?


박종인 시인의 '미술관에서 애인을 삽니다'에 곡을 붙였고 '행복한 눈물'로 유명한 미국추상표현주의 작가 로이 리텐슈타인의 작품에 통상적인 언어들을 붙여 곡을 만들었다. 또 1960년대에 이미 굉장히 모던한 퍼포먼스를 보여준 프랑스 작가 이브 클라인의 2014년 공연에 영감을 받아 노래를 만들었다. 이 세 곡을 묶어서 미술관 컨셉트의 미니 앨범을 내려고 한다. 기대해 달라. 그리고 이정하 시인이 쓴 시 '친구'와 마르코라는 이름의 이탈리아 팝 작곡가의 악곡을 붙인 곡도 낼 예정인데, 시가 곡이 잘 붙어서 굉장히 만족스럽다. 마르코가 '린도마니'라는 딴 곡도 줬는데 이 곡은 내가 가사를 붙였다. 맘에 든다. 작업은 거의 완료한 상태고 녹음만 하면 된다.

 

근래 곡을 쓸 때 사용하는 코드는 예전과 다른가


텐션을 많이 집어넣는다. 나인스 코드도 잘 쓰고... 하지만 요즘엔 점점 멜로디의 싸움인 것 같다. 멜로디는 아직 자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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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안대학교 실용음악과 교수이기도 하다. 학생들에게 역점을 두고 교육하는 것은.


노래를 부르던 연주를 하던 스스로 곡을 쓰라고 주문하고 강조한다. 그래야 살아남는다고. 작사 작곡이 음악가로 살아남는 방법이다.

 

음악가로서 예술가로서, 멜로디 만드는 것과 작사 중에 어느 부분이 어렵나.


가사 쓰는 게 더 어렵지만 다 힘들다. 가사든 멜로디든 하루아침에 되는 게 아니다. 음악을 많이 들어야 한다. 그래야 영혼의 근육이 발달해 감성 결과물이 나오는 거다. 책을 많이 읽고 영화를 많이 보고 노래를 많이 듣는 수밖에 없다.

 

가사와 곡이 잘 붙은 우리 명곡을 꼽는다면.

 

우선은 박인수 이동원의 '향수'를 뽑고 싶다, 시를 이용한 가수의 정수라고 할까. 고은 시에 김민기가 곡을 붙인 '가을편지' 그리고 '아침이슬'. 요즘 친구들이 '아침이슬'이란 노래를 잘 모르는 것 같은데, 싱어송라이터 문화는 물론 우리 민주주의를 대변하고 이끌어온 노래라고 생각한다. 문화유산이다. 이런 노래가 있다는 게 자랑스럽다.

 

인터뷰 : 임진모 이택용
사진 : 이택용
정리 : 임진모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선영 “내일은 내일에게 맡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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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영 소설가가 『내일은 내일에게』로 돌아왔다. 『시간을 파는 상점』, 『특별한 배달』, 『열흘간의 낯선 바람』에 이은 다섯 번째 청소년 소설이다. 인터뷰 내내 하나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텅 빈 방안에 홀로 남겨진 소녀. 아이를 짓눌렀을 차가운 공기와 두려움이 떠올라 연신 눈시울이 붉어졌다.

 

소녀의 이름은 ‘연두’. 열일곱의 아이 곁에는 부모가 없다. 낮고 허름한 동네에서, 새엄마와 이복동생 ‘보라’와 함께 살고 있다. “애초에 너라는 아이는 계획에 없던 거였어” 새엄마는 거침없이 말했고, 종종 매질도 했다. 학교에서는 친구도 없이, 있는 듯 없는 듯 지내고 있다. 다 큰 어른조차 감당하기 힘든 현실. 그 속으로 아이를 밀어 넣어야 했던 소설가 김선영은 “지금의 청소년들도 연두, 너를 보며 힘을 냈으면 한다”고 편지를 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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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의 나를 위로해주고 싶었다


연두는 참 단단한 아이인 것 같아요. 저라면 연두처럼 못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시련을 겪으면 생각이 상당히 많아져요. 생각이 깊어지고 무게가 생기죠. 어린 나이지만 곰삭는 게 생기기 시작하는 것 같아요. 사실 연두는 눈물이 정말 많은 아이잖아요. 어마어마하게 여린 거예요. 만약 연두가 울지 않았다면 살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해요. 많이 울었기 때문에 견뎌나갈 수 있었던 것 아닐까 싶죠. 눈물이 숨통이나 탈출구처럼 됐다고 할 수 있는데요. 인생에서 죽음이나 상실을 뛰어넘는 시련은 없잖아요. 그렇다 보니까 작은 일들은 아무렇지 않은 거예요. 그래서 단단해 보이는 거죠. 시련 자체가 아이를 단단하게 해주는 것 같고, 자신이 선택하는 것 같기도 해요. ‘내가 단단해야지만 이 세상을 살 수 있겠구나’ 생각하는 거죠. 주어진 상황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끊임없이 생각하는 아이 같아요.

 

“이 소설은 어른이 된 내가 십대의 ‘나’를 위로해 주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되었다”고 하셨어요. 연두가 작가님을 닮기도 했죠?


저도 어렸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아홉 살 때였어요. 몇 년 동안 앓으셨고, 밖에 나가서 들어오지 않으셨고... 일종의 불화죠. 현실과의 불화 때문에 어머니 옆에 안주하지 않으셨던 것 같아요. 그 시대의 아버지들은 불화할 수밖에 없었어요.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겪으면서 굉장히 큰 시련을 받았잖아요. 현실에서 뭐가 그렇게 중요하고 소중하겠어요. 그 사람이 겪는 상실감이 있고,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에요. 그런데 어머니도 같은 시기를 지나오셨거든요. 그렇지만 불화조차도 표현하실 수 없는 거예요. 그보다 자식이 훨씬 더 중요했던 것 같아요. 저는 어머니의 그런 단단함을 보고 자랐어요. 저희 집이 딸만 다섯인데, 어머니가 혼자 다 키우셨어요. 그 모습을 보면서 ‘엄마 때문에 열심히 살아야겠다, 저렇게 열심히 나를 키우시니까 공부라도 열심히 해야겠다, 책이라도 열심히 봐야겠다’라는 생각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연두의 목표는 “고3이 끝날 때까지 내 몸속에 있는 눈물을 말려버리는” 건데요. 작가님도 다르지 않으셨다면서요?


얇은 막이었죠. 건드리면 터지는 거예요. 선생님들이 말을 못 시킬 정도로요. 제가 고3 때 어머니께서 뇌졸중으로 쓰러지셨어요. 저희 자매에게는 엄마밖에 없는데. 그때 ‘내가 어른으로 자랄 수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시기에는 아침에 한약을 달여서 어머니께 드리고 나서 학교에 늦게 갔어요. 온 몸에는 한약 냄새가 나고, 제가 늦게 올 아이도 아니니까, 선생님도 아셨죠. 그래서 크게 혼내지 않으시고 ‘이리 와, 왜 이렇게 늦었어?’라고 물어보곤 하셨어요. 그런데 저는 그때부터 울기 시작하는 거예요. 엄마가 아프셔서 늦었다고 이야기해야 하는데, 그 말을 못하는 거예요. 그렇게 여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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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목울대까지 차있었던 게 아닐까요? 말을 꺼내려고 하면 눈물부터 나오는 거죠.


톡 건드리기만 하면 우는 거예요. ‘아버지는 언제 돌아가셨니?’라는 말만 들어도 그랬어요. 돌아가신 지 10년이 넘었는데도. 제가 슬픔을 각인시키는 강도가 남들보다 세지 않았을까 싶어요. 나만 아버지가 없는 것도 아니고 나만 가난한 건 아니잖아요. 그런데 굉장히 예민하게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그 예민함 때문에 결국 작가가 된 거죠. 혼자 유난을 떤 거고요. 한편으로는 그렇게 유난을 떨지 않았으면 어떻게 견딜 수 있었겠나 싶기도 해요. 연두도 굉장히 유난을 떠는 거죠. 겉으로는 굉장히 잔잔하고 얌전하고 단단해 보이지만, 속은 늘 그런 상태인 거예요.

 

이 아이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혼자 남겨지는 일이에요.


연두뿐만 아니라 누구나 그런 것 같아요. 혼자 사시는 분들도 마찬가지고요. 혼자 사는 게 좋기는 하지만, 끝끝내 혼자 남겨질까 봐 두려운 거잖아요. 현대인의 삶이 자꾸 파편화되고 개인주의화되다 보니까 혼자 되는 걸 지향하면서도 두려워하는 것 같아요. 그건 어마어마한 필요와 어마어마한 불필요가 같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예요.

 

그렇죠. 혼자 남겨지는 건 누구나 갖고 있는 근원적인 공포일 거예요.


맞아요. 소설에서 고양이 ‘네로’도 그랬죠. 계속 혼자 길고양이 생활을 하다가 ‘얌이’라는 친구를 만나서 사랑했는데, 어느 순간 ‘얌이’가 보이지 않았던 거예요. 그래서 스스로 죽게 되는데요. 저는 달리는 자동차에 뛰어드는 고양이를 진짜로 봤어요. ‘동물도 자살을 해? 어떻게 자살을 할 수 있지?’ 싶었는데, 고양이도 그런다고 하더라고요. 너무 놀라웠어요. (소설에 등장하는) 다리 밑에서 죽은 텐트남도 결국 외로움 때문에 죽은 거죠. 고독사잖아요. 벨기에 겐트 공원에서 죽은 소년도 그래요. 소설 속에 기사로 넣었는데, 복지 시설을 나와서 텐트에서 지내다 죽었어요. 그런데 이틀이 지날 때까지 아무도 발견을 못한 거죠. 연두도 그런 세상을 계속 보면서 공포에 떠는 거죠. 가난한 것도 두렵지 않고, 엄마한테 맞는 것도 두렵지 않고, 저이가 새엄마인 것도 두렵지 않아요.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는 게 가장 두려운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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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멋진 어른이 되어 있을 거야!


첫 장의 제목부터 의미심장한 것 같아요. ‘저지대의 아이들’인데요. 연두와 보라의 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줘요.


저지대를 가보면 진짜 우울해요. 예전에 서울에도 타워팰리스 옆에 비닐하우스 집들이 있었잖아요. 아주 극명하게 대비를 이뤘죠. 양극화가 굉장히 심각한 사태이고, 그게 우리 아이들한테도 고스란히 오는 거예요. 펜스를 쳐서 아이들이 지나가지 못하게 하잖아요.

 

통학로를 차단하는 일들이 있죠.


네, 말도 안 되는 거예요. 어떻게 사람들이 이럴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죠. 주공아파트에 사는 아이들과 민간아파트에 사는 아이들의 학군을 다르게 해달라고 요구하기도 하잖아요. 뉴스에 빈번하게 나와요. 장애인 시설이 생기는 것도 반대하고요. 이건 정말 총체적인 문제예요. 그들과 같이 가야 되는 거거든요.

 

‘이규’라는 인물이 생각나요. 시각장애인인데, 그와의 첫 만남에서 연두가 두려움을 느끼기도 했어요. 함께하면서 생각이 달라졌고요.


계속 연두가 놀라잖아요. ‘어떻게 이렇게 밝지? 안 보이는데 두려움이 없을까?’ 하고요. 제가 그랬거든요. 어렸을 때 친척집에 갔는데 오빠가 시각장애인학교에 그네 타러 가자는 거예요. 허락도 없이 그래도 되냐고 그랬더니 오빠가 괜찮다는 거예요. 그네를 타다가 시각장애인 아이들이 다가오는 걸 봤는데, 제가 두려워했던 건 ‘나는 저 아이들을 볼 수 있는데 저 아이들은 나를 못 보잖아, 그렇다면 나를 어떻게 이야기해줘야 할까?’라는 거였어요. 소설에도 그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사실은 그 사람들이 우리를 두려워할 텐데, 현실은 거꾸로 우리가 두려워하잖아요. (관련 시설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고요. 그런 이야기도 하고 싶었어요.

 

소설 속에서 사회적인 문제를 언급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청소년 아이들도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서 같이 사회를 만들어갈 사람들이니까 분명히 알아야 된다고 생각해요. 늙음도 알아야 되고, 죽음도 알아야 되고. 그래서 제 소설에는 항상 할머니가 나와요. 네 현재 상태가 유한하다는 걸 잊지 말라는 거죠. ‘나는 곧 늙는다, 죽는다, 스스로를 어찌하지 않아도 죽을 수 있다’ 그걸 잊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강연에 가서도 늘 이야기를 해요. ‘그러면 지금 네가 얼마나 빛나는 줄 알겠니?’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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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이나 특별수업을 통해서 아이들과 계속 만나시잖아요. 작품 활동에도 영향을 미칠 것 같은데요. 어떤가요?


구체적인 에피소드를 주지는 않아요. 아이들은 듣는 입장에서 일면만 보여주거든요. 그런데 아이들을 만나고 나서 제 생각이 달라지죠. 좋은 글을 더 많이, 부지런히 써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돼요. 소설 쓰기에 있어서 소재가 되거나 저를 자극하는 것은 뉴스예요. 신문 스크랩을 굉장히 많이 하는 편인데, 신문을 보면 이야기가 막 생겨요. 신문기사의 엄청난 수혜자죠. 『시간을 파는 상점』도 신문 기사에서 시작된 아이디어였어요. 해외토픽 단신을 스크랩해 놨다가, 나중에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아이들이 자꾸 죽는 걸 보면서 ‘시간 때문에 죽는 거구나, 시간에 대한 생각을 달리 하게 해서 죽음을 멈춰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쓰게 됐고요.

 

계기가 된 사건이 있었죠? 선생님이 ‘너, 내일 보자’라고 했는데 아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저희 동네에서 일어난 사건이에요. 죽은 아이는 저희 아들의 중학교 동창이었고요.

 

많은 충격을 받으셨을 것 같아요.


저희 아들한테 소식을 들었는데, 너무 충격 받았죠.

 

아드님도 힘든 시간을 보냈을 것 같습니다.


너무 놀랐죠. 야자 끝나고 집에 왔는데 입을 꾹 다물고 자기 방에 들어가 있더라고요. 무슨 일이 있다는 게 느껴졌어요. ‘무슨 일이 있구나, 왜?’라고 물었더니 대답을 안 해요. 그러다가 엄마, 하고 저를 부르더라고요. ‘엄마, 친구가 죽었어’ 그러는데... 제가 문설주에 기대 있다가 푹 주저앉았어요. 진짜 내 아들이 어떻게 된 것 같았어요. 너무 마음이 아팠고요. 제가 2010년 겨울에 이 소설(『시간을 파는 상점』)을 쓰기 시작했는데, 그 시기에 매일 청소년들의 자살 소식이 보도됐어요. 2010년, 2011년에요. 이 땅에 사는 엄마로서 고민을 안 할 수가 없었죠. ‘왜 우리 아이들이 그렇게 죽어가야 되지? 이유가 뭘까?’ 그러다가, 각자의 사연은 다 다르겠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똑같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가 아들의 친구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 거예요.

 

그 아이는 내일이 다가오는 걸 견디기 힘들었던 거죠?


선생님이 ‘내일 이야기하자, 오늘은 그냥 가’ 이렇게 이야기했는데, 이 친구는 내일이 너무 두려웠던 거예요. 그런데 시간은 흘러가는 거고, 내일 아침에 선생님한테 혼난다고 해서 그 시간에 영원히 멈춰 있는 게 아니잖아요. 아이가 이런 생각을 했다면 살 수도 있었을 텐데, 그래서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써보자고 마음먹었어요. ‘조금만 견뎌 봐, 지나가면 흐릿해지고 괜찮아지고 그러면 살 수 있어’라고 말해주고 싶었던 거죠. 그 소설을 쓸 때 소원은 딱 한 가지밖에 없었어요. 한 명이라도 살릴 수 있으면 써야겠다, 라는 거였죠. 그런데 제법 많은 아이들이 비슷한 고백을 들려줬어요. ‘선생님은 소원을 이루셨어요’라고 말해주는 편지도 받은 적이 있어요.

 

정말 뿌듯하셨겠어요.


네, 작가가 되기를 잘했구나, 생각했어요. ‘아버지 없이 가난하게 산 것도 잘한 거구나, 안 그랬으면 작가가 되지 않았겠구나, 가장 낮은 곳에 있는 사람들을 이렇게 마음 아프게 생각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고요. 출신 성분이 좋았다면 나 잘난 맛에 살았겠죠. 그런 상황이 되어 본 사람들은 알아요. 그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아는 거예요. 저도 그런 것 같아요. 너무 마음이 아프고, 전국에 있는 연두들에게 힘내라고 말해주고 싶었어요. 그렇게 너를 담금질하고 자라면 정말 멋진 어른이 되어 있을 거라고, 언젠가는 그늘에서 사는 친구들에게 도움 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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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내일에게 맡겨


연두에게 미안한 마음을 갖고 계신 것 같아요. 극한의 상황으로 몰아붙여서 그럴까요?


그렇죠. 그래서 몸도 많이 아팠어요. 저는 마음이 위장에 있다고 생각하는데요(웃음). 문제가 생기면 그 부분이 딱 멈추는 것 같아요. 딱딱하고 뭉치고 밥도 제대로 못 먹어요. 연두 이야기를 쓸 때도 너무 힘들었어요. 연두에게 이입했다가 밥을 먹으면 속이 너무 안 좋은 거예요. 몸이 전체적으로 안 좋았어요. 하물며 연두는 어떻겠어요. 정말 미안했죠.

 

그래도 ‘이상’ 아저씨가 있어서 다행이에요. 연두가 알바하는 카페의 주인이면서, 가장 따뜻하게 연두를 감싸주는 인물이죠.


연두가 사람들을 대할 때 가장 중심을 뒀던 건 존중이었어요. 저 사람이 나를 존중 하는가, 그렇지 않은가. 어른들은 아이라는 이유로 존중하지 않으려고 할 때가 있잖아요. 넌 몰라도 돼, 라고 말하기도 하고요. 저는 어렸을 때 거기에 굉장히 불만이 많았던 것 같아요. 이상은 연두를 존중해주죠. 밀크티 한 잔을 주더라도 손잡이가 달린 도자기 찻잔에 담아서 주는데, 연두는 그걸 ‘너를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는 거야’라는 표시로 읽어요. 그리고 굉장히 중요시했던 것 같아요. 누군가를 존중한다는 건 말을 하지 않아도 느끼는 거잖아요. 연두도 다른 이들을 존중해요. 고양이도 존중하고 당집 할머니도 존중하죠. 멋진 아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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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두를 통해서 아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요?


연두를 보고 조금 힘을 냈으면 좋겠어요. ‘연두도 살고 있잖아, 이런 상황이지만 한 번도 자신을 포기하려고 하지 않았잖아’라고 말하고 싶은 거죠. 그런데 우리 아이들은 너무 쉽게 포기해요. 성적 때문에 포기하는데, 학교와 집에서 포기를 시켜요. 소설에서 보라가 ‘엄마는 한 명도 많다’고 이야기하는데, 엄마가 있어서 살기도 하지만 엄마가 있어서 망치기도 해요. 현재 우리나라의 십대 아이들이 그래요. 아이가 스스로 자랄 수 있도록, 힘이 생길 수 있도록, 못 본 척하는 게 필요해요. 저는 그게 최고의 육아라고 생각해요.

 

아이들 곁에 ‘이상’ 같은 어른 한 사람만 있어도 달라질 텐데, 안타까워요.


그렇죠. ‘내가 너를 계속 지켜봐 줄 거야’라고 말해주는 사람만 있어도. 사실 이상이 연두에게 해주는 건 하나도 없잖아요. 연두가 당당하게 알바해서 대가를 받는 거고, 이상은 기쁘고 즐겁게 할 수 있게 해주는 것뿐이에요. 물론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거지만, 그렇다고 이상이 연두의 보호자가 돼줄 수도 없거든요. 학비를 대줄 수 있는 사람도 아니에요. 이상도 (사회에서) 약자니까요. 중요한 건, 약자는 약자가 돕는다는 거예요. 고지대, 신지구의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절대 저지대의 삶을 알지 못하죠.

 

너무 멀리 내다보면 막막해지기도 하는데요. 『내일은 내일에게』라는 제목은 ‘오늘을 버티는 것만으로도 훌륭해, 잘하고 있어’라고 말해주는 느낌이에요.


연두의 경우에는 계속 혼자 되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지만, 그건 아직 벌어진 일이 아니거든요. 혼자 되지 않았는데 계속 혼자 될 걸 두려워해서 현실이 공포스러운 거죠. 저는 ‘그건 그때 가서 걱정해도 돼’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너의 스무 살도 걱정하지 말라고 하고 싶고요. ‘열일곱의 오늘을 잘 살면 스무 살도 괜찮을 거야, 스무 살의 오늘을 잘 살면 서른 살도 괜찮아질 거야’라는 거죠. ‘내일은 내일에게 맡겨, 그냥 오늘을 잘 살아’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내일이 걱정되고 지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생각될 때, 주문처럼 ‘그래, 내일은 내일에게’라고 말하면 굉장히 마음이 편해져요. 다만 전제 조건이 하나 있죠. 지금 충실하라는 것. 오늘의 시간을 충실히 사는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말일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내일 더 안 좋아질 수도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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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두를 단단하게 만드는 또 한 가지가 있다면, 책이 아닐까 싶어요.


책을 좋아하거든요. 휴대폰도 없고 TV도 없는 아이인데, 사실 연두한테는 그런 결핍이 엄청난 풍요예요. 반대로 우리 아이들은 풍요로워서 결핍인 상태죠. 기기와 문명과 먹거리가 너무 풍요로워서, 결핍으로 채워질 수 있는 것들을 못 채우고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삶에는 마이너스만 있는 게 아니에요. 마이너스 사건이 벌어지면 반드시 플러스 결과를 줘요. 연두가 굉장히 부정적인 상황에 놓여 있지만 그게 안 좋게만 작용한 건 아니거든요. 그 결과 단단해졌고, 철이 들었고, 속이 깊어졌고, 배려할 줄 알게 됐고, 넓게 볼 수 있게 됐잖아요. 반대로 정말 안온한 상황에 있는 아이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플러스 요인이 많은 것 같지만, 결핍으로 인해 채워질 수 있는 부분들은 없는 거죠. 그게 더 영혼이 가난할 수도 있어요.

 

학창시절부터 문학에 꿈을 품으셨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고요. 결혼 이후에 첫 소설을 쓰기 시작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작가님을 보면서 용기를 얻는 아이들도 많을 것 같아요.


요즘 청소년 아이들은 기대 수명 연령이 120세예요. 아이들한테 ‘몇 년 남았어?’라고 물어보면 100년도 넘게 남았다고 대답하죠. 고3도 101년이 남은 거잖아요. 저는 아이들에게 ‘너희 앞날은 100년이나 남았으니 조급해 하지 마’라고 이야기해요. 그리고 스스로를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해줘요. ‘선생님은 중고등학교 때 내가 뭘 할 때 가장 즐거워했는지, 뭘 할 때 가장 잘했는지 알고 있었어’라고 하면서 ‘그래서 마흔 살에 그 일을 직업으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소설을 쓰기 시작한 거야’라고 말해요. 50살에 해도 되니까 20살에 하려고 하지 말라는 거예요. 40살에 해도 되니까 30살에 하지 말라는 거고요. 60살에 시작해도 40년이 남아 있어요. 대신, 스스로를 파악하고 있어야 하죠. 내가 가장 재밌고 좋아하는 일이 뭔지 알면 딴 일을 하면서도 거기에 계속 관심을 갖고 있거든요. 계속 하게 되거든요.


 


 

 

내일은 내일에게 처방전김선영 저 | 특별한서재
주인공 연두는 십대 시절 김선영 작가와 많이 닮았다. 스무 살이 되기 전에 몸속 눈물을 말려버리는 것이 목표인 것도 실제 김선영 작가가 십대 시절 늘 가졌던 생각이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연두처럼 툭하면 우는 일밖에 없었고, 나는 무사히 어른으로 자랄 수 있을까, 라는 불안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고연주 “나다움이 뭔지 알려주는 젠더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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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와 여자에 관한 오래된 말이 있다. 남자는 수학을 잘하고, 여자는 국어를 잘한다. 여자는 약하고 남자는 강하다. ‘팩트체크’를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이 시대에도 유령처럼 떠다니는 말이다. 여성과 남성 간의 차이보다 개인의 차가 더 크다는 연구 결과는 많지만, 여성성과 남성성이라는 ‘젠더 박스’는 여전히 공고하다. 사람들은 늘 존재하지 않는 이상적인 남성과 여성을 상상하면서 자신이 충분히 남성적이지 않거나 여성적이지 않다고 생각한다.


여기 오래된 말이 하나 더 있다. 아이들 앞에서는 찬 물도 함부로 마시면 안 된다는 말. 그만큼 아이들은 빠르게 배운다. 여자아이는 분홍색, 남자아이는 하늘색으로 갈라진 마트 문구 코너에서, 엄마와 아빠가 서로에게 말하는 방법에서 배운다. 네 살 아이들에게 여자 마네킹과 남자 마네킹에게 옷을 입히라고 하면 검은색 중절모와 분홍색 모자를 같이 씌우지만, 여섯 살 아이들은 여자 마네킹에는 여자 옷을, 남자 마네킹에는 남자 옷을 구분하면서 입힌다. 그 사이 남자와 여자의 옷이 다르다는 걸 깨우친 것이다. 어린 아이뿐만 아니라 성별 정체성을 본격적으로 형성하는 십 대 시기, ‘젠더 교육’이 중요한 이유다.


서울시 젠더자문관으로 일하는 김고연주 박사는 석사와 박사 논문 모두 청소년을 주제로 해서 쓸만큼 청소년에 관한 관심이 많았다. 자기 정체성을 만드는 십 대 시기, 성별이분법을 의식하지 않고 ‘젠더 박스’를 해체했으면 하는 마음에 『길을 묻는 아이들』, 『조금 다른 아이들, 조금 다른 이야기』등에 이어 『나의 첫 젠더수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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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체성을 고민하는 10대들에게


책을 쓰는데 얼마나 걸렸나요?

 

2014년부터 썼어요. 출산과 육아, 특히 올해는 1월부터 서울시 젠더자문관으로 일하면서 결국 3년 넘게 걸렸어요. 바쁜 와중에 오래 쓰면서 편집자가 많이 길을 잡아주고 아이디어도 많이 주셔서 도움을 받았어요. 첫 번째 원고보다는 훨씬 잘 나온 것 같아요.


청소년을 위한 성 인지 교육에 적합한 책이라고 생각했어요.  


사회적으로 성평등 교육은 어렸을 때부터 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지만, 학교는 제일 보수적인 공간 중의 하나이기도 하죠. 여학생들도 젠더와 관련한 내용을 접할 기회가 없고, 남학생들은 아예 무지한 상태에서 반감만 키우고 있잖아요. 그래서 여학생뿐 아니라 남학생에게도 반감을 주지 않는 방식의 책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이었어요. 제 의견보다는 여러 가지 자료나 연구, 통계를 가지고 접근하려고 했고요. 책을 쓰는 데 3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여성 혐오 문화가 더 악화되었기 때문에 시기적으로 환영받는 책이 되어버렸어요. 그래서 참 역설적인 것 같아요. 3년 전에 냈다면 지금보다 덜 환영 받았을 책인 것 같고, 안타깝기도 해요.


주변 반응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지금 정말 필요한 책이라고 말씀하신 분들이 제일 많았고요. 언제 이렇게 책을 썼냐는 반응도 많았어요. 공무원이 되고 나니까 출간기념회 안 하냐, 그런 얘기도 하시고요. (웃음)


표지에 여러 스타일의 사람들이 나와요. 안경을 쓴 긴 머리 사람, 턱수염을 기르고 목걸이를 한 사람 등이요.


표지 만드느라 고생을 많이 했다고 하더라고요. 기초적인 수준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잘 나타낸 것 같아요.


젠더라는 말이 아무래도 생소한 개념이라고 생각해요. 성이나 섹스보다는 어색한 개념이잖아요. 제목에 젠더를 명시한 이유가 있을까요?


제목에 성평등을 쓸까, 젠더를 쓸까 여러 고민을 했었어요. 자기 정체성을 고민하는 10대들이 조금 더 자유롭고 평등한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고 한 책이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구성된 성이라는 의미로 ‘젠더’라는 용어를 쓰는 게 맞죠. 하지만 젠더라는 용어가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는 것도 맞아요. 교육계에서는 성평등이라는 용어를 더 자주 쓰기도 하고요. 성평등, 하면 무슨 의미인지 뚜렷하지만 젠더라는 말을 들으면 무슨 말인지 잘 모르잖아요. 하지만 오히려 잘 모르는 용어이기 때문에 페미니즘에 관한 반감을 잠재울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페미니즘을 전면에 내세웠다면 내용과 상관없이 반발이 심했을 텐데, 학문적이고 잘 모르는 단어를 쓰면 오히려 수용성을 높일 수 있다는 생각이 있었죠.


구체적으로 성평등과 젠더가 어떤 차이가 있죠?


제가 봤을 때 젠더는 성평등의 근거가 되는 개념인 것 같아요. 성평등이라고 하면 당연한 거라고 여기잖아요. 하지만 성평등을 이야기하면서도 이미 여성과 남성은 평등하다거나, 오히려 여성이 우월하고 남성이 역차별받고 있다거나, 여성과 남성은 선천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모든 면에서 같을 수 없다는 식의 반발이 나타나죠. 젠더 개념에 그런 반발에 대한 답이 있기 때문에 조금 더 명료한 단어라는 생각이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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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연대에서 나올 가능성


선천적 힘이나 선천적 차이도 교육에 의해 변화한다고 하셨는데, 교육이 어떻게 선천적인 차이를 발현할 수 있나요?


시몬 드 보부아르가 ‘여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는 말을 했어요. 주디스 버틀러도 ‘젠더는 수행하는 것이다’라고 했었죠. 보통 섹스는 본질적으로 있는 성, 젠더는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성이라고 인식했는데 점점 이론이 발전하면서 섹스도 만들어진다는 논의가 많아지고 있어요. 선천적 힘이라든가 소질, 차이라는 것도 사실은 사회에서 만들어지는 부분이 많다는 거죠. 이를테면 여자는 힘이 약하고, 남자는 힘이 세다는 인식도 사회적으로 여성이 운동하는 걸 장려하지 않고, 남성들은 운동을 많이 하게 되면서 선천적 차이를 넘어 공고해지죠. 여성과 남성의 신체 차이에 대한 연구에서 사실 그렇게 큰 차이는 없다는 결과가 많이 나와요. 여자는 언어를 잘하고 남자는 수학과 과학을 잘한다고 알지만, 어떤 나라에서 어떻게 교육을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도 하고요. 오히려 남성과 여성의 차이보다는 사람들 사이의 차이, 여성 내부의 차이, 남성 내부의 차이, 인종들 간의 차이가 더 크다는 연구 결과가 많아요.


성별 차이가 선천적이지 않다는 걸 강조하는 이유는, 성별 역할이 정해져 있다는 고정 관념 때문에 차별이 일어난다고 보기 때문인가요?


여성과 남성의 신체적 차이가 사회적인 차별을 만들어내는 근거로 활용될 때가 많아요. 가장 큰 차이로 출산이 있죠. 출산 능력과 모성은 별개라는 연구 결과가 많이 나와 있어도, 여성은 출산 하고 모유 수유를 할 수 있으니 아이를 키우는 게 맞고 남을 돌보는 능력이 뛰어나다는 식으로 기대되는 역할이 생겨요. 만일 성별의 차이가 사람에 따라 다르고 사회적으로 만들어진다고 한다면, 여성과 남성이 좀 더 자유롭게 자신의 삶을 계획하면서 살아가는 게 가능할 것 같아요.


책을 읽으면서 이른 나이부터 성별을 구분한다는 내용이 흥미로웠어요. 언제 어디서 배우게 되는지 궁금하기도 하고요.


딸을 키우고 있는데, 지금 35개월이에요. 치마를 입겠다거나 공주 옷을 입혀 달라는 이야기를 해요. 아빠가 남자라는 걸 알고 엄마가 여자라는 걸 알고요. 주변에서 보는 거라든지, 제가 입히는 옷 등을 보면서 상당히 빨리 아는 것 같아요.


그렇다고 해서 유치원 때부터 성 인지 교육을 시키지는 않잖아요.


그래서 서울시에서는 어렸을 때부터 성 역할을 강화하는 교육을 하지 않기 위해 유치원 교사와 어린이집 교사들에게 성평등 교육을 하려고 계획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그림에 항상 여자 선생님이 등장한다든지, 여자가 앞치마를 하고 있다든지 하는 것들 것들을 반례로 들 수 있고요. 여자는 인형을 갖고 놀게 하고 남자는 자동차를 가지고 놀게 하는 방향은 좋지 않다고 교육하기도 해요.

 

 

사회에서 여성에게 여성성을 강요하는 게, 남성에게 남성성을 강요하는 것보다 더 심하다고 생각하는데요.


아무래도 자유의 문제인 것 같아요. 누가 자유를 누리고 누가 자유를 억압하는지를 묻게 되는 거죠. 권력이 많은 사람일수록 더 많은 자유를 누리고 그런 사람들이 사회적 약자의 권리를 제한하게 되는데, 누가 권력을 가졌나 생각해 보면 성별로 명확하게 권력 관계가 작용하는 걸 알 수 있어요. 그래서 사회적으로 여성들이 성차별을 인지하고 문제를 제기할수록 남성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던 권력이 훼손된다고 느낄 수 있어요. 당연하게 누리던 생득적인 것을 빼앗긴다는 공포심도 느끼고요. 그러면서 여성을 더 억압하는 방식으로 여성 혐오가 나타나는 형국인 것 같아요.


남성에게도 성별이분법이 ‘맨 박스’로 강요되는 측면이 있어요.


강해보여야 한다는 생각에 카톡 단체창에서 성희롱 발언을 하는 남성이 너무 많죠. 남성들이 여성을 폄하하면서 남성 연대가 공고히 구축되는데, 저는 그 안에서 괴로움을 느끼는 남성들도 되게 많다고 생각해요. 그게 겪어본 유일한 문화이고 생존 방식이기 때문에 어떻게 저항해야 할지 모르는 게 아닐까요. 여성 동료를 희롱하는 카톡방의 모든 멤버가 그걸 함께 즐겼을까 생각해보면 저는 그렇지 않은 남성이 분명 있을 거라고 보거든요.


남성 청소년에게도 어떻게 여성 혐오와 젠더 인식을 보여줄 수 있을지 고민이 많으셨을 것 같아요.


학교에서도 흔히 ‘느그 엄마’라면서 ‘패드립’을 한다고 하잖아요. 정말 재미를 느끼는 아이도 있겠지만, 마음에 상처를 받는 아이들도 분명 있을 거예요. 그런 문화에서 약자로서의 개인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모르기 때문에 괴로워하면서도 동조하고 공모하게 되는 경우도 많이 있을 것 같아요. 아이들이 그 문화 안에서 어울리지 않아도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 바로 책에서 이야기한 ‘자기의 힘을 기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사회적으로 부여되고 강요하는 젠더 정체성에서 벗어나서 좀 더 나다운 것, 내가 원하고 내가 행복한 것을 찾고 실천하는 방법을 찾는 거죠. 제일 중요한 건 그런 사람들이 나만 있는 게 아니라는 발견일 것 같아요. 남성연대에 남성들이 들어가 있는 이유는 거기가 다수고 전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그런 식의 남성연대를 하지 않고도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고 한다면 얼마든지 그 공간을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이어트나 연애처럼 청소년이 관심을 가지는 주제를 다뤘어요.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타나는 연애 각본이 청소년에게 영향을 주고 있는데요.


영향이 많죠. 10대들이 연예인을 좋아하면서 스트레스를 풀고 성적인 욕망도 해소하게 되는데, 연예인들의 언행이나 작품에서 자연스럽게 체득하는 게 있는 것 같아요. 문화 콘텐츠 중에는 이성애적이고 성차별적으로 구성되는 작품이 많아요.


문화 콘텐츠 생산자들은 흔히 ‘잘 먹히는 코드’를 넣어야 한다는 압박이 있어요. 생산자들의 윤리를 고민해야 하는 지점이기도 하고요.


무엇이 좋은 것이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를 많이 생각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아요. 문화콘텐츠의 수용자들이 누구인가 봤을 때 젊은 여성들의 파워가 세다고 생각해요. 문화상품을 적극적으로 소비하면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젊은 여성들이라는 거죠. 그 젊은 여성들이 무엇을 원하는가 파악을 해야 하는데, 특히 지금도 페미니즘 도서가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잖아요. 많은 사람이 페미니즘을 접하고 성차별과 젠더를 인지하면서 그전까지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게 되고 불편함을 느끼게 되죠.


한국의 청소년들에게는 연애 각본보다 연애를 금기시하는 게 더 문제가 되지 않을까 싶거든요. 교육계에서 연애를 터부시하는 걸 해결하는 게 더 우선해야 하지 않을까요?


부모나 학교는 연애를 못 하게 하죠. 하지만 아이들은 하고 있어요. 그게 제일 문제인 것 같아요. 아이들이 학교나 사회가 못 하게 하는 걸 하니까 비밀스러운 방식으로 하고, 그러다 보니 훨씬 위험하게 연애할 수밖에 없어요. 무엇이 성평등한 관계인지 교육하지 않으니 기존에 가진 젠더 각본, 연애 각본을 답습하는 방식으로밖에 할 수 없죠. 이제는 청소년이 할 수 있다는 걸 인정하고, 이 친구들이 어떻게 하면 평등한 연애를 할 수 있을지 가르쳐야 한다고 봐요.


결국 청소년보다 어른이 먼저 바뀌는 게 우선이지 않을까요? 어디서부터 교육을 해야 할지 고민이 되기도 하고요.


사실 그 말씀은 맞아요. 성인이 바뀌는 게 당연히 먼저겠지만 참 힘든 것 같아요. 성인들을 교육할 방법 자체가 드물고요. 대학에서 오래 강의를 했었는데, 대학생만 해도 성인이다 보니까 교육 효과가 낮아요. 이미 자기 생각을 깊게 만들어놓은 상황이고 자기 생각을 잘 바꾸지 않죠. 대학에서 여성학은 교양 수업으로 한 번이나 들을까 말까 하고, 그나마 대학을 졸업하고 나면 어디서 성평등 교육을 듣겠어요. 직장에서 제대로 교육하는 것도 아니고요. 성인 대상 교육이 필요한 건 맞지만 교육 기회가 없고 교육 효과도 굉장히 떨어진다는 거죠.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교육이 되어야 하는데, 사실 이 책도 성인들이 보기에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엄마 아빠들도 아이들을 잘 키우기 위해서는 성평등 의식을 가지고 따라가야 하고요. 아이들은 계속 이런 인식을 키워가고 있는데 부모가 성차별로 삶을 제약한다면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거든요. 부모들도 교사들도 꼭 이 책이 아니더라도 성평등에 관한 책이나 교육을 많이 접했으면 해요.


기존 저서에서도 청소년에 관한 주제를 많이 다루셨어요.


석사와 박사 논문 모두 청소년 성매매를 주제로 썼었어요. 청소년들을 만나고 그들의 문화를 공부하면서 청소년 성매매를 하는 10대 여성들이 사회적으로 문제 있는 특수한 아이들이 아니라는 걸 느꼈어요. 청소년 성매매는 여성 문제이면서 연령 문제가 결합한 첨예한 문제인데,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게토화된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적인 문제라고 생각하게 됐죠. 하지만 청소년 성매매를 이야기하면 계속 일반 사회와는 별개의 이야기, 문제아들에 관한 이야기로 읽히는 경우가 많아서 오히려 청소년 전반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할 필요가 있겠다고 느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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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자문관이 하는 일


서울시 젠더자문관으로 활동하고 계시죠.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나요?


서울시에서 진행하는 모든 사업이 성평등적으로 진행할 수 있게 자문하는 업무예요. 지금 하는 일로는 고위공무원들 대상의 성인지 교육을 하고 있어요. 공무원사회는 위계가 강하기 때문에 부서장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다들 따라가는 방식이기 때문에 고위 공직자들의 인식이나 의지가 중요하더라고요. 공무원들이 사업을 진행할 때 어떻게 하면 성평등한 사업을 할 수 있을지 안내하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서울시 내부에서 먼저 인식 변환 작업을 하고 계신 거네요.


시가 하는 사업에 성인지 감수성이 들어가야 그게 결국 시민들을 위한 서비스가 되고, 시민들도 성평등한 사업의 수혜를 입을 수 있어요.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어가려고 하는 거죠.


처음에는 반발이 있지 않았나요?


아무래도 반발이 있었겠죠. 공무원 일이 정말 많잖아요. 그중에서도 예산 담당 주무관들의 일이 엄청난데, 일이 더 얹어지는 방식이었거든요. 그래도 공무원들이 성평등 정책을 해야 한다는 필요성은 인지하고 있어서 그게 왜 나냐, 이런 식으로 반응하진 않았던 것 같아요. 짧은 시간 안에 모든 공무원에게 교육을 하는 건 어렵기 때문에 젠더자문관과 같이 일하는 젠더 정책팀, 각 부서에 젠더업무담당자들이 지정되어 있어요.


서울시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이나 사업이 많은데, 젠더자문관이 그 모든 걸 다 확인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앞으로 계획이 어떻게 되나요?


사실 처음이라서 어떻게 해야 할지 파악이 안 될 때가 많았는데, 올해 경험을 바탕으로 내년부터는 구체적으로 실효성 있는 계획을 세울 수 있을 것 같아요. 대부분 여성 부서에서만 성평등 정책과 여성 정책을 하고, 나머지 부서는 성 인지 문제에서 자유롭다고 생각해요. 서울시에서도 모든 부서와 모든 정책에 성 인지 과정이 들어가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젠더자문관을 만들었던 거죠. 지금은 젠더라는 게 무엇인지, 성평등 정책을 왜 모든 부서가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인식을 전환하는 게 더 시급한 상황인 것 같아요.


 


 

 

나의 첫 젠더 수업김고연주 저 | 창비
청소년을 향해 글을 쓴 이유는, 십 대가 성별 정체성을 본격적으로 형성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혐오의 말’이 넘실대는 세상에서 청소년들이 배려와 공존의 가치를 잊지 않고, 여성과 남성으로서 긍정적인 정체성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돕는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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