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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국 “헌책방, 사연 있는 책이 모이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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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로책방’에는 사연 있는 책들이 산다. 누군가와 만났고, 함께 시간을 보냈고, 그 기억을 몸에 새긴 채 살아간다. 이곳은 헌책방이다. 찾아오는 이들의 사정도 다르지 않아 각자의 사연을 안고 책방에 들어선다. 세월을 견뎌낸 책과 사람. 둘의 만남은 그 자체로 이야기가 된다는 걸  『아폴로책방』 은 보여준다. 이른바 ‘본격책방소설’이다. “모든 이야기는 책방으로 흘러들어온 상처 입은 책들의 과거를 상상하는 데서 시작됐다”고 말하는 저자는 현직 책방지기 조경국이다. 진주에 자리한 헌책방 ‘소소책방’을 지키고 있는 그는 헌책들의 보금자리, 그곳을 지키는 이의 일상을 세세하게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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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는 책 도둑이 없어요


이번 소설은 “사랑했던 책방과 인연을 맺었던 책과 책방에서 만났던 사람들에 대한 팬픽”이라고 하셨어요.

 

그렇죠. 책방을 하면서 계속 책과 가까이 있다 보니까 책에도 다 사연이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특히 헌책방에 있으면 사연 있는 책들이 들어오거든요. 실제로 제가 겪은 이야기를 소설로 만들 수는 없었어요. 그 분들이 읽으시면 가슴이 아프실 수 있으니까요.

 

어떤 일들이 있었나요?


아이들 책을 다 가져가라는 연락을 받은 적이 있었어요. 알고 보니 아이가 백혈병에 걸렸던 거예요. 집에 먼지가 있으면 안 좋은데, 책에는 먼지가 많이 묻으니까 다 치우셔야 했던 거죠. 아는 선배님의 책을 모르고 매입한 경우도 있었어요. 그 분이 힘든 일을 당하셨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책을 받으러 갔을 때는 그 분의 책인지 몰랐어요. 책을 가지고 나오신 분이 형수님이셨는데 직접 뵌 적이 없었거든요. 그런데 나중에 펼쳐 보니까 선배님의 이름이 책에 다 적혀 있더라고요. 그런 이야기들은 계속 생겨나는 것 같은데, 그대로 소설에 쓸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조금 변형해서 쓸 수는 있을 지도 모르겠어요. 슬픈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항상 행복한 이야기만 쓸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소설은 언제부터 쓰셨어요? 계기가 있었나요?


직장에 다닐 때 글쓰기 모임을 했었어요. ‘부지런히 글쓰기 당’이라는 의미에서 ‘부글당’이라는 이름을 가진 모임이었는데요. 글쓰기를 좋아하시는 주변 분들이랑 같이 온라인 카페를 만들었어요. 2주에 한 번 정도 글을 올렸고요. 처음에는 물건에 관한 리뷰를 썼는데 재미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예전에 썼던 글을 완성시켜서 올렸어요. 이야깃거리가 될 만한 걸 적어놨었거든요.

 

『아폴로책방』 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였어요? 


『무서록』 의 초판본에 얽힌 이야기였는데, 장편으로 계속 연재하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제가 진주로 내려가게 되면서 모임을 같이 하지 못하게 됐고, 그때 쓰던 이야기의 번외편으로  『아폴로책방』을 쓴 거죠. 그 소설의 주인공이 ‘다림’이에요.

 

‘아폴로책방’의 원래 주인이잖아요?


맞아요.  『아폴로책방』 은 ‘다림’이 떠난 뒤의 이야기이고, 『무서록』  초판본과 얽힌 이야기는 그 전의 내용인 거죠. 지금 계속 쓰고 있는 중이에요. 내년쯤 마무리 지으려고 생각하고 있는데, 스릴러도 있고 여러 장르가 섞여 있어요.

 

왜 헌책방을 열고 싶으셨어요?


진주에 중앙서점이라는 곳이 있었는데, 학창시절에 단골로 다니던 서점이었어요. 주로 컴퓨터 잡지를 사러 많이 갔어요. 그때는 <마이컴>, <PC라인> 같은 잡지가 있었는데, 게임 공략집 같은 부록이 있었거든요. 새 잡지를 사지는 못하고 2~3개월 지난 후에 과월호를 사서 짝을 맞췄어요. 제가 항상 가니까 서점 사장님이 책 추천도 해주시고 다른 사람보다 싼 값에 책을 주기도 하셨어요. 그런데 2000년대 중반쯤에 사장님이 돌아가신 후에 문을 닫았죠. 그때의 추억들이 저한테는 굉장히 소중해서, 나중에 고향에 내려가면 나도 헌책방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생각만큼 잘 운영하지 않고, 맨날 땡땡이 치고 놀러 다니고 있죠(웃음).

 

“자주 손님에게 책방을 맡기고 자리를 비워 불량하다 동네에 소문이 자자하다”고 하시던데, 사실인가요(웃음)?


네, 소문나 있어요(웃음).

 

항상 가게 문이 닫혀 있는 건가요(웃음)?


아니에요. 항상 열려 있어요. 24시간.

 

비어 있는 가게 문을 그냥 열어두시는 거예요? 불안하지 않으세요?


전혀요. 요즘에는 책을 많이 안 읽으니까 책 도둑이 없어요(웃음). 제가 책방에 없을 때는 손님들이 책 사진을 찍어서 휴대폰으로 보내주세요. 이 책 얼마냐고 물어보시는 거죠. 그러면 책값을 말씀드리고 키보드 밑에 놓고 가시라고 해요. 계좌이체를 해주시는 분도 계시고요. 어떤 때는 키보드 밑에 돈이 수북이 쌓여 있을 때도 있어요(웃음).

 

책방을 24시간 열어두시는 이유가 있나요?


열어놔도 별 상관이 없는 것 같아요. 예전에도 일이 생기면 친구들이나 손님들한테 가게를 맡겨놓고는 했어요. 처음 본 손님한테 맡겨 놓고 한참 나갔다 오기도 하고요(웃음). 만약 누군가 책을 훔쳐간다고 하더라도, 그 정도로 좋아하시니까 가져가서 읽으시겠죠. 그렇지 않을까요?

 

‘책 도둑은 도둑이 아니다’라는 말도 있지만, 엄연히 도둑이잖아요(웃음).


그렇기는 한데... 저도 정말 훔치고 싶은 책이 있었어요. 너무 구하기 힘든 책이었거든요. 『세계의 고서점』이라는 책인데, 오랫동안 헌책방을 다니면서 찾았는데도 구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런데 진주의 도서관에서 그 책을 본 거예요. 훔친다기보다는, 빌린 다음에 반납하지 않고 책값을 치르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웃음). 물론 그렇게 하지는 못했고요(웃음). 한참 후에 그 책을 구하게 됐어요. 저희 헌책방과 가까운 곳에 있는 동훈서점의 사장님이 구해주셨어요.

 

간절하게 찾으시던 책인데, 손에 쥐셨을 때 기분이 남다르셨겠어요.


정말 좋았죠. 그래서 책싸개도 하고(웃음), 보관을 잘하고 있죠. 나중에는 일본어 원서도 구했어요. 그 책을 간절하게 구했던 이유가 있었는데, 당시에 제가 여행을 떠나기 전이었거든요. 중국 칭다오에서 싱가포르까지 서점들을 찾아다닌 여행이었는데, 그 책을 보면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런데 3년 정도 여행 준비를 하는 동안 그 책을 구하지 못했어요. 나중에 여행을 다녀온 뒤에야 구하게 된 거죠.

 

지금도 구하기 어려운 책인가요?


그렇기는 한데, 이제는 그 책이 너무 옛날 이야기가 되어버렸어요. 책에 실린 정보를 가지고 서점을 찾아가 봐도 소용이 없는 거예요. 단지 역사로 남아 있는 거죠. 그 책에 보면 한국의 유명 헌책방들에 대한 이야기도 있는데요. 이제는 다 없어졌어요.

 


이런 책은 팔지 않습니다


헌책방에 책을 파실 때도 있죠?


제가 산 책을 헌책방에 가져가서 판 적은 없는 것 같아요. 한 번도. 지금은 제가 책방을 차려서 책을 팔고 있지만, 이전에는 한 번도 책을 판 적이 없어요.

 

책에 대한 소유욕이 강렬한 편이세요?


그렇죠. 그게 아니었다면, 어쨌거나 헌책방을 열지는 않았을 테니까요. 그런데 그 욕심을 끊고 헌책방을 차린 거죠.

 

헌책방을 열신 후에는 어떻게 됐나요? 욕구가 더 강해지셨어요?


책에 대한 욕심을 버릴 수는 없는 것 같아요(웃음). 좋은 책이 있으면 또 사게 되죠. 그런데 기준이 계속 높아지는 것 같기는 해요. 공간은 한정되어 있으니까, 소장하고 싶은 책을 고를 때는 조금 잰다고 할까요. 그리고 헌책방을 하고 있으니까 직장생활을 하던 예전보다는 예산도 많이 줄었죠. 거기에 맞춰서 사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도 많이 사는 것 같기는 해요.

 

직장생활하실 때는 수입의 10%를 책값으로 떼어 놓으셨다고요.


네, 월급 받으면 신촌에 있는 헌책방을 한 바퀴 돌았죠. 당장 볼 책들은 집으로 가져가고, 나머지는 다 시골로 보냈어요. 주말에 집에 내려가서 볼 책들은 진주로 보내고, 영 나중에 볼 책들은 하동 부모님 댁으로 보내고요. 지금은 책값을 정해놓지는 않고요. 사고 싶은 책이 있으면 그냥 사는 편이에요.

 

『아폴로책방』의 주인공을 보면, 책을 매입할 때 개인적으로 읽고 싶거나 소장하고 싶은 책은 따로 빼놓더라고요. 그러실 때도 있나요?


많죠. 좋은 책을 가져오시는 손님들이 있어요. 제가 읽고 싶은 책을 가져오시는 거예요. 그러면 매입을 했다가 그대로 집으로 가져가죠. 정리를 해서 소장할 책들은 남겨두고, 팔 만한 책들은 다시 책방으로 가지고 나오는 경우가 있어요. 그런데 좋은 책이 나오는 일이 갈수록 줄어드는 것 같아요. 사람들이 책을 사서 보는 일이 적기도 하고요. 대부분 베스트셀러가 많이 나오지, 정말 좋은 책들은 찾기 힘들어요.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라면 계속 소장하고 있을 테니까요.


그렇죠. 그러니까 자신이 정말 소중하게 생각하는 책이 헌책방에서도 값을 제대로 받을 수 있고 책방지기도 좋아할 만한 책이겠죠.

 

주인공은 “헌책방에 책을 팔고 가는 일은 인연을 끊는 것과 비슷”하다고 말해요. 헌책들을 보면서 우울과 슬픔을 느낀다고요. 같은 마음이세요?


책을 팔겠다고 연락해 오시는 분들 중에 열에 아홉은 아이들 책이나 철 지난 동화책, 참고서 같은 걸 팔기를 원하세요. 열에 한 분 정도는 책의 주인이 돌아가셨거나, 건강이 나빠지셨거나, 살림을 줄여서 더 좁은 집으로 이사를 가야 해서 좋은 책을 내놓으실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요. 그런 경우에는 손님들도 굉장히 안타까워하면서 가시고, 저도 그런 감정이 들죠.

 

책에서 예전 주인의 흔적을 발견할 때도 많을 것 같아요.


책을 살펴보다가 사진이 나오는 경우는 꽤 많아요. 그러면 빼서 보관을 해놓죠. 책상 옆에 있는 작은 함에 넣어 놔요. 영수증이라든가 책갈피 같은 것도 그렇고요.

 

영수증은 버리셔도 괜찮잖아요?


정말 오래된 영수증 같은 것도 있어요. 옛날에 수기로 쓴 영수증, 아니면 30~40년 된 초등학교 선생님의 월급 명세서 같은 거죠. 차용증명서가 나온 적도 있어요. 가끔 편지가 끼워져 있을 때도 있고, 굉장히 다양한 물건들이 나와요. 제 사진이 나온 적도 있어요. 예전에 책에 끼워놓고는 잊어버리고 팔려고 내놨던 거예요. 손님이 발견하시고 돌려 주셨죠.

 

언젠가 찾으러 올 거라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아니면, 찾으러 오지 않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모아두시는 건가요?


찾으러 오지는 못하겠죠. 잊어버렸을 테니까요. 그런데 별 의미 없는 것처럼 버릴 수는 없으니까, 그냥 계속 모아두는 거예요.

 

일부러 판매를 안 하시는 책도 있겠죠?


한글학자 최현배 선생님이 쓰신 『우리말본』이라는 굉장히 오래된 책이 있어요. 보니까 아들이 태어난 기념으로 이 책을 샀다고 적어놓으셨더라고요. 정말 예쁜 글씨체로 써놓으셨어요. 대학당이라는 서점에서 ‘1할 감’ 받아서 사셨다는 이야기까지도 쓰셨고요. 10% 할인 받아서 사셨다는 거죠. 그 책은 따로 빼놓고 판매 안 해요. 또 모윤숙 씨의 『렌의 애가』라는 옛날 시집이 있는데, 당시에 베스트셀러였거든요. 그 책에도 시를 멋지게 써놓으셨더라고요. 그런 책들은 판매를 못하는 거죠. 정말 책을 소중하게 생각해주실 분이라면 누구한테든 팔 수 있을 것 같아요. 연구 자료로 쓰신다고 해도 그렇고요.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팔기가 조금 힘들 것 같아요. 그리고 옛날 잡지 부록 중에 세계 명작 소설 같은 걸 단행본으로 만든 게 있어요. 그런 것들은 따로 모아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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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책을 20대에 만났다면 삶이 달라졌을 것 같아요


‘소소책방’을 여시면서 세 가지 버킷리스트를 정하셨잖아요. 콧수염 기르기, 오토바이 면허증 따기, 책방 찾아 세계 여행하기. 앞의 두 가지는 이미 이루셨고, 마지막 꿈은 현재진행형이죠?


네. 원래는 5월 초에 여행을 떠나려고 했는데, 예상보다 조금 늦게 출발할 것 같아요. 오토바이를 싣고 블라디보스토크로 가서 유럽 여행을 하려고 하는데요. 올해 러시아에서 월드컵이 열리다보니까 예약이 꽉 차있더라고요. 그래서 계획보다 늦어질 것 같은데, 올해 안에는 가려고 해요. 포르투갈의 렐루 서점을 반환점으로 해서 돌아오려고요.

 

예전에도 렐루 서점을 찾아가시려고 하셨죠?


그랬다가 싱가포르에서 돌아왔죠(웃음). 렐루 서점은 꼭 한 번 가보고 싶어요. 이번 여행은 5개월 정도 걸리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어요.

 

작은 동네 책방을 운영하는 게 쉽지 않잖아요. 경제적인 어려움도 있을 것 같은데요.


제 아내가 직장을 다니고 있기도 하고요. 사실 헌책을 팔아서 얻는 마진은 너무 적어요. 그러니까 온갖 일을 다 하죠. 작년에는 목수 알바를 하기도 했고요. 관공서나 사보, 사외보에 글을 쓰기도 해요. 책방을 비워두는 시간이 많은 데에는 그런 이유도 있어요. 다른 일들도 병행하니까요.

 

직장인으로 살 때보다 몸과 마음이 더 힘들 수도 있겠어요.


전혀요. 매달 일정한 돈이 들어오지 않는 것만 제외하면, 굉장히 행복하고 즐거워요. 제 마음대로 시간을 쓸 수 있기도 하고요. 많은 분들이 시간을 돈으로 바꿀 수 없다고 이야기하시는데, 저는 시간을 선택했을 뿐이에요. 저와는 다른 선택을 하시는 분들도 계신 거고요. 어떤 게 옳다고 말할 수는 없는 거잖아요. 그게 자신한테 맞으니까 하고 있는 거죠.

 

“헌책방 주인이 되지 않았다면 오토바이 수리공으로 살았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웃음). 앞서  『오토바이로, 일본 책방』을 쓰시기도 했고요. 오토바이를 사랑하시는 이유가 궁금해요.


어렸을 때 아버지 오토바이 앞에 앉아서 바람을 맞았던 기억이 있는데, 정말 좋았어요. 오토바이를 타면 굉장히 자유로운 느낌이 들어요. 물론 자전거를 타도 그런 느낌이 들겠지만, 그 정도 속도까지 가려면 몸을 굉장히 혹사시켜야 하잖아요. 그리고 차하고는 또 다른 느낌이에요. 온전히 내 몸을 다 드러내놓고 속도를 즐길 수 있다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책을 읽는 것과는 전혀 다른 매력이죠. 그리고 오토바이로 여행을 하면 비용도 적게 들고요. 아무데나 주차할 수 있어서 편해요. 춥고 비오는 날씨만 피한다면, 특히 요즘 같은 날씨에는 어디를 가도 좋죠.

 

단편마다 등장하는 책이 있고, 이야기의 끝에 짧은 책 소개가 실려 있어요. 각각의 책과 스토리는 어떻게 이으셨어요?


그 자체가 이야기가 있을 것 같은 책도 있었고요. 상황에 어울리는 책이 생각나기도 했어요. 처음에는 다른 책을 생각했다가 이야기를 고쳐 쓰면서 바꾼 경우도 있는데, 「세심탕의 봄」 같은 경우가 그래요. 거기 보면 『만가』라는 책이 나오는데, 원래는  『남명집』이었거든요. 그런데 이야기를 전개하다 보니까 그 책보다는 『만가』가 더 잘 어울릴 것 같아서, 나중에 이야기를 조금 고쳐 쓰고 바꿔 넣었어요.

 

『인도방랑』은 “스무 살 청춘의 필독서라고 해도 과하지 않을 것 같다”고 쓰셨어요.


그 책이 1960년대에 나온 여행기잖아요. 후지와라 신야가 20대 때 대학교를 그만두고 인도로 떠나서 정말 방랑을 하면서 쓴 건데, 사진과 글이 떼려야 뗄 수 없는 것 같아요. 사진하고 글이 그렇게 잘 어울리는 책도 드문 것 같아요. 대부분의 여행기가 너무 달달한 감성이나 정보에 치중해 있는데, 『인도방랑』  같은 경우에는 저 밑바닥에 있는 감성을 끌어내서 보여줘요. 만약 20대에  『인도방랑』  같은 책을 본다면 조금 더 깊은 여행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당장 즐기는 여행이 아니라, 실제 여행지의 사람과 생활에 대해서 조금 더 깊은 관심을 가질 수 있을 것 같아요. 그걸 바탕으로 글을 쓰거나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거고요. 저는 마흔이 되어서야 그 책을 읽었는데, 20대에 봤으면 지금쯤 다른 삶을 살았을 것 같아요. 훨씬 더 재밌는 일을 많이 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롤라이35 수집가」라는 단편을 보면, 등장인물이 책을 숨겨두기도 해요. 사고 싶은 책인데 책값이 모자라서요. 가끔 그런 손님들이 있지 않나요?


제가 그랬어요. 사진집을 굉장히 많이 모았었거든요. 사실은 신촌에 있는 책방 ‘숨어있는 책’이 그 단편의 배경이에요. 예전에 서울에서 일할 때, 월급을 받으면 ‘숨어있는 책’이나 ‘온고당’에 가고는 했어요. 대표님들께는 죄송한 이야기이지만(웃음), 당장 돈은 없고 꼭 갖고 싶은 사진집이 있으면 위치를 옮겨서 안 보이는 데 살짝 숨겨놨어요. 그리고 최대한 빨리 돈을 가지고 다시 찾으러 갔죠. 사실 사진집의 경우에는 대부분 초판 이상 찍지를 못하거든요. 보일 때 사지 않으면 다시 구하기가 너무 힘든 거예요. 그래서 저도 책을 숨겨둔 적이 있는데, 다 찾아오기는 했어요.

 

개인적으로 궁금한 책도 아니고, 잘 팔릴 책도 아닌데, 그럼에도 매입을 하실 때가 있어요?


책을 팔겠다는 분과 통화를 할 때, 그 분의 독서 성향을 알 것 같은 때가 있어요. 살짝 감이 오는 거죠. 그러면 그 분의 서재가 보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찾아가겠다고 할 때도 있어요(웃음). 서재를 보는 재미가 있거든요.

 

의외의 수확을 얻으실 때도 있겠네요?


그렇죠. 한 번은 만화 『장길산』을 발견한 적이 있어요. 백성민 선생님이 그리시고 풀빛출판사에서 만든 책인데요. 제가 볼 때는 정말 명작이에요. 그 책이 나온 지도 오래 됐고 구하기도 힘들어요. 중고로 나와도 가격이 비싸고요. 그런데 책을 매입하러 찾아갔더니 그 책이 있는 거예요. 처음에 전화를 받을 때는 만화책에 대한 이야기가 전혀 없었거든요. 『장길산』이 총 스무 권짜리 책인데 앞의 열 권만 있더라고요. 같이 파신다고 하셔서 완전 기쁜 마음으로 가져왔죠.

 


사라지는 책, 사라지는 사람들


『아폴로책방』 의 주인공과 작가님이 많이 닮았을까요?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고 하기는 조금 힘들 것 같아요. 어떻게든 제 경험이 묻어난 캐릭터니까요. 어떤 부분은 저랑 닮았고, 또 어떤 부분은 제가 원하는 모습을 갖다 놓았을 수도 있죠. 주변 분들께는 이 소설을 읽을 때 제 모습은 지워달라고 말씀드려요(웃음). 그래도 겹쳐 보시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주인공은 “책에서 인생의 정수 따윈 찾을 수 없다고 오래전부터 생각했다”고 하는데요. 동의하세요?


그런 것 같아요.

 

책을 좋아하시는 분들 중에는, 다른 어떤 매체보다 책이 더 우월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신데요.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책에서 나온 지식은 정말 정확하고 바꿀 수 없는, 절대 지식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신데요. 그것만큼 위험한 것도 없는 것 같아요. 실제로 경험한 것도 잘못된 지식일 수 있는 거잖아요. 책을 읽는다는 건 ‘더 좋은 또 다른 게 있지 않을까’ 하고 계속 의심하는 일이 아닐까 싶어요. 학습의 과정 또는 탐구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겠죠. 책방이 배경인 소설 중에 『모리사키 서점의 나날들』이라는 책이 있어요. 거기에 보면, 조카가 외삼촌에게 ‘삼촌은 그렇게 책도 많이 읽고 여행도 많이 다녔는데, 거기에서 인생의 뭔가를 찾았느냐’고 물어봐요. 그때 외삼촌이 타네다 산토카의 작품을 이야기해요. 타네다 산토카는 하이쿠 시인인데 ‘인생은 들어가도 들어가도 푸른 산’이라고 썼거든요. 그런 거죠. 책을 읽고 여행을 해도 알 수 없는 게 인생인데, 책을 읽었다고 해서 뭔가를 딱 정해서 이야기할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그렇죠. 독서도 많은 취미 중에 하나일 뿐이잖아요.


그냥 책이 좋아서 많이 읽으면 좋은 거지, 지식으로 다른 사람을 억누른다거나 단도직입적으로 잘라서 이야기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책을 많이 읽을수록 지평이 넓어진다고 하잖아요. 그게 맞는 것 같아요. 책을 읽을수록 훨씬 더 열린 자세를 갖게 되는 거죠. 좁아지는 게 아니고요.

 

『아폴로책방』 ‘본격책방소설’인데요. 책방소설이라는 말이 낯설게 느껴지기도 해요.


국내에 나온 책방소설은 없는 것 같아요. 책방이 배경이거나 책방지기가 주인공인 소설을 찾기가 힘들더라고요. 외국 소설들은 꽤 많이 찾아서 읽어봤고 재밌었어요. 그런데 아무래도 우리 현실하고는 약간 다른 것 같고, 마음이 바로 가지는 않더라고요. 앞으로는 이런 책방소설이 더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독립책방을 하시는 분들도 계시고 책방에서 모임을 하시는 분들도 많잖아요. 『아폴로책방』도 ‘손바닥 소설 쓰기’ 모임에서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썼거든요. 책방에서 소설 쓰기 모임 같은 걸 한다면 이런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나왔으면 좋겠고요.

 

‘아폴로책방’의 손님이 주인공에게 이렇게 말해요. “메말라 가는 오아시스를 홀로 지키는 늙은 촌장” 같다고요. 한 책방지기는 헌책방을 납골당으로, 자신을 납골당지기로 표현하기도 하는데요. 평소 갖고 계신 생각인가요? 


그렇죠. 서울은 드나드는 사람이 많지만, 지방도시의 헌책방들을 가서 보면 박제된 느낌이 들어요. 그리고 최근에는 헌책방들이 매출의 70~80%를 온라인에서 얻어요. 매장으로 찾아오는 손님은 갈수록 줄어들고, 온라인으로만 매매가 이루어지는 시대가 되어버린 거죠. 그나마 진주는 다른 중소도시보다 헌책방이 많이 남아 있는 편이에요. 군산에도 헌책방이 없고, 순천에도 한 군데만 있거든요. 마산도 없어요. 영록서점이라고 굉장히 큰 서점이 있었는데 얼마 전에 대표님께서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그런데 뒤를 이을 사람이 없는 거예요. 그 상태로 사라져버리는 거죠. 오래된 헌책방은 대부분 그런 상황이에요. 보수동도 마찬가지이고 인천 배다리도 그렇죠. 헌책방지기도 사람들이 의미 있고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직업이 아니라, 그 자체로 사라져가는 직업이 되는 거고요. 오랜 세월 헌책방을 지켜 오신 분들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시고 뒤를 이을 사람이 없으면, 그곳의 책들조차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사라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어쩌면 헌책방은, 아직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지 못한 책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주는 곳일지도 모르겠어요.


네, 버림받은 책들이 마지막으로 몸을 뉘일 수 있는 공간이죠. 그곳에서 선택 받을 수 있으면 너무 좋고요. 가끔 정말 안 팔릴 것 같은 책을 손님들이 골라 가실 때가 있어요. 그러면 정말 기쁘죠. ‘이 책을 사가는 사람이 있을까?’ 했는데, 책방지기도 모르는 가치를 손님이 발견하시는 경우가 있는 거예요. 오랫동안 묵혀 있던 책이 팔려나가면 정말 기뻐요. 

 

6월에도 새 책이 출간된다고 들었습니다. 『완벽한 서재를 꿈꾸다』라는 책이죠?


지금 퍼블리라는 콘텐츠 플랫폼에서 예약을 받고 있고요. 곧 디지털콘텐츠로 발행될 것 같아요. 그 뒤에 유유출판사에서도 책으로 나올 거고요.


 

 

아폴로책방조경국 저 | 펄북스
책방의 일상 속에서 작가는 ‘밥벌이와는 상관없이’ 사랑하는 책방, 인연을 맺었던 책, 책방을 찾은 사람들에 대한 팬픽이라고 할 만한 짧은 이야기들을 지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류승연 “장애는 장애일 뿐, 내 인생의 장애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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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에 장애 아이 보호자들을 만나보면 장애 아이가 자기한테 올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어요.”


류승연은 쌍둥이 남매의 엄마다. 이제 열 살이 된 남매 가운데 아들 동환이는 발달장애인. 장애인을 차별하면 안 된다는 말에는 이견이 없는 사회에서 그러나 장애를 가진 아이를 키우는 일은 외롭고 힘에 겨웠다. ‘세상이 갑자기 나한테 왜 이래?’라고 생각할 만큼 삶이 180도 바뀌었던 것이다. 그는 “미안해요. 죄송해요”라는 말을 달고 살아야 했고, ‘고개 숙인 엄마’가 되어야 했다. 내 아이가 장애인이라서 미안하다, 이 말은 특히 동환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간 이후 매일 같이 해야 했던 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일부 학부모가 동환이의 퇴학을 위해 교육부에 진정을 넣으려 한다는 소식을 듣고 말았다. ‘도저히 이렇게는 살 수 없어, 고개 안 숙여! 이제는 보호자들이 바뀌어야 해.’라고 생각한 류승연은 2016년 11월 <더퍼스트미디어>에 ‘동네 바보 형’이라는 글을 연재하기 시작한다. 연재글을 묶은 책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 에서 그는 장애인의 삶, 장애인 보호자의 삶을 자세히 보여주고, 아직까지 만연해 있는 사회의 편견과 차별의 실체를 낱낱이 고발한다. ‘장애 바이러스’가 묻은 괴생명체들처럼 여기는 시선이 장애인뿐만 아니라 장애인과 한 사회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피해를 주는 것인지 말한다. 배려의 차원을 넘는 훨씬 적극적인 차원에서의 인식 변화를 요구한다. “장애 아이들이 분노발작 일으킬 때” 장애인을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쳐다보고, 거부감 나타내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탓하며 쳐다보”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것은 장애인을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 모두를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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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자세히 보여주는 것만으로


2016년 11월부터 현재까지 <더퍼스트미디어>에 ‘동네 바보 형’이라는 글을 연재를 하고 있어요. 연재를 하기로 마음먹었을 때, 그 처음 순간 하셨던 생각이 궁금했어요. 어떤 생각을 하셨어요?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적기도 하셨는데요.

 

동환이가 사람들 사이에 부적응자로 있어야 했던 이유는 사람들이 동환이의 장애를 몰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동환이에게 편견을 갖고 있었던 거죠. 이 아이가 생각만큼 괴물은 아니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은 몰라요. 그러니까 특히 아이가 어릴 때, 보호자들은 작은 사건도 크게 만들죠. 우리가 알고 있다면 정보를 거를 수 있는데요. 모르는 사실은 듣는 것이 그대로 정보가 되는 거예요. 안 되겠다, 또 이런 일을 내 아들에게 겪게 하지 않으려면 이제는 알려야겠다, 한 거죠. 그런데 가르치려 하면 사람들은 다가오지 않아요. 보는 것만으로도 알게 되거든요. 일상을 자세히 보여주는 것만으로 스스로 알게 되는 것들이 있으니까요. 그런 마음에서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쓸 때 정말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뭔가요?


장애가 특별한 게 아니라는 것. 우리는 말로는 다 끄덕이고, 알아요. 다들 ‘다른 건 틀린 게 아니야’라고 하고요. 이 말에 반대하는 대한민국 사람은 한 명도 없어요. 하지만 실생활에서는 그렇지가 않아요.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죠. 저도 이기적인 생각에서 책을 쓰기 시작한 거예요. 내 아들만 그렇게 대하는 게 아니라 아들의 가족인 나, 우리 가족까지도 함께 ‘장애 바이러스’가 묻은 괴생명체들처럼 여기는 시선을 느꼈거든요. 제가 먼저 느껴버렸으니까요. ‘세상이 갑자기 나한테 왜 이래?’했었으니까요.

 

심지어는 가족 안에서도 장애를 모르는 경우도 많잖아요.


내 피붙이가 장애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이라면 그분들이 먼저 이해를 해야 해요. 예를 들면 친정 엄마가 그렇죠. 내 딸이 장애 아이를 키우고 있는 건 알아요. 힘든 건 알지만 쟤가 대체 뭘 하고 살지, 무슨 생각으로 살지, 아무것도 몰라요. 이 책을 쓰면서 사람들한테는 장애는 특별한 게 아니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는데요. 사실 장애가 가진 특성 때문에 장애인이 있는 가정은 특별한 환경 속에서 살게 돼요. 그 환경은 겪지 않은 사람은 몰라요. 그런 것을 알면 그들을 바라볼 때 좀 더 이해하게 되겠죠. 다른 가정들은 나나 너나 사는 것 비슷비슷하잖아요. 대충 이해가 되는데요. 장애인이 있는 가정은 많이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모르는 것이 있다면 읽고, 이해를 했으면 좋겠어요. 가족부터요.

 

이것 역시 저자의 경험이겠죠?


시어머니가 조금 먼 친척한테 동환이를 숨겼어요. 동네에서 친구 분들을 만나서도 손자가 장애라는 걸 말하지 못하셨고요.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서 처음으로 다른 친척 모임에도 데려가자고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쓰길 잘했구나(웃음) 생각했어요. 

 

제일 먼저 교사에게 추천하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어떤 마음에서 그렇게 생각했을까, 무겁게 느껴지기도 해요.


진정한 사회 변화를 원한다고 한다면 우리 같은 어른들이 바뀌는 게 제일 좋죠.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바꿀 방법이 따로 있는 것이고요. 어린 아이들은 학교에서 배워야 해요. 그 아이들은 지금부터 바뀔 수 있어요. 그걸 바꿔주는 게 오롯이 교사의 몫이에요. 어떤 교사를 만나느냐에 완전히 달려있죠. 일 년에 두 번 장애 교육을 받긴 하는데요. 너무 형식적이에요. TV로 보고, 얘기 하는 것으로는 안 돼요. 결국은 교사가, 담임선생님이 해야 하고요. 담임선생님의 역할이 매우 크죠. 반에 있는 장애 아동을 어떻게 대하고, 우리 반이라는 사회 안에 이 아이를 어떤 역할을 가진 구성원으로 두고 의미를 부여하느냐 자체만으로 아이들은 따로 장애인 교육 안 받아도 교육이 돼요. 그런데 대부분의 교사가 장애를 모르죠. 아이를 너무 겁내고 특수 교사한테 맡긴다든가 혹은 너무 잘해준다든가 하면 교육이 안 되거든요.

 

너무 잘해주는 것, 또 다른 의미의 대상화니까요.


당연하죠. 청소도, 뭣도 다 열외를 시키면요. 반 아이들은 그걸 보면서 그 아이를 나와 다른 사람으로 생각하게 되어버려요. 말로는 누구나, 대한민국 국민 모두 “장애가 뭐 어때”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아무도 그렇게 못하고 있다니까요. 그게 어릴 때부터 시작이에요. 교사들부터 시작해야 해요. 교사들이 먼저 장애인을 제대로 이해하고 아이들을 제대로 교육할 수 있어야 특별히 장애 교육을 안 하더라도 아이들이 성장한 20-30년 뒤에 사회가 바뀌어요. 교사들의 일이에요. 교사들이 아무것도 모르거든요. 제일 문제라고 생각해요.

 

연재하는 동안에도 많은 일이 있었어요. 초등학교에서 통합교육을 받다가 특수학교로 전학을 결심한 일도 있었고요.


‘도저히 이렇게는 살 수 없어, 고개 안 숙여! 이제는 보호자들이 바뀌어야 해.’라고 생각하면서 글도 쓰고요. 동환이가 2학년이 되면서는 먼저 다가가려는 노력을 했어요. 편지도 준비하고, 담임선생님한테도 장애인 교육을 내가 하겠다고 물어도 보고요. 열심히 해보려고, 바뀌려고 하고 있는데 전학을 권고 받은 거죠.

 

통합교육을 받았던 마지막 소풍 장면에서 ‘모든 어른들은 마음이 아팠다’라고 쓰셨죠.


그때 생각하면 또 슬퍼져요. 동환이가 불쌍해서요. 사실 동환이는 기억도 못하겠죠. 그날 하루 소풍 갔던 건 기억도 못할 것 같아요. 하지만 그것이 괜히 마음 아픈 건 우리 어른들인 거예요. 누구나 이게 동환이의 마지막 소풍이라는 걸 알고 있잖아요. 엄마인 제 입장에서는 쫓겨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 비장애인 또래와 함께 하는 마지막 기회가 될 것이라는 생각에 가슴이 저렸고요. 담임선생님은 장애 아이도 학생이니 좀 더 껴안았어야 했는데 라는 생각 때문에 가슴이 아프고요. 실무사 선생님은 특수교사에 대한 반발심이 생긴 거죠. 특수교사의 권고로 특수학교로 전학을 하게 된 거니까요. 우리 모두가 마음이 아팠죠. 장애에 대한 무지, 선한 의도에서 나온 실수, 이런 것들이 모여서 결국 전학을 결정해야 했죠.

 

 

전문가 육성이 선행되어야


구조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겠더라고요. 장애가 ‘인생을 모두 바꿔놓’았다고 표현하셨는데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어느 정도 삶에 영향을 끼칠 수는 있어도 사회가 제대로 역할을 한다면 한 사람의 인생이 이토록 극적으로 바뀌지 않아도 될 텐데 말이에요.


심지어 발달장애 영역은 더 인식이 낮아요.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서 복지 수준이 올라갈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오히려 전 정부보다 발달장애 관련 예산이 줄었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정부도 바뀌었고, 복지가 좋아지겠지, 라고 해요. 아니에요. 현실은 달라요. 예산 집행자들에게 아직까지 발달장애는 중요하지 않은, 소수의 문제라는 인식이 있는 거예요. 사실 저는 어렵게 키우는 사람이 아니에요. 복지 예산이 줄면 저 같은 가정, 아빠가 돈을 벌고 엄마가 아이들을 키우는 가정은 그다지 어렵지가 않은데요. 시설에서 생활하는 아이들, 차상위 계층이나 수급자 가정은 피부로 느낄 거예요.

 

가정의 소득 수준이 많은 것을 좌우하는 거예요.


사회가 그렇잖아요. 사는 지역에 따라 아이들이 가는 대학이 달라지는 것처럼 말이죠. 장애 아이들도 부모의 경제력이 있으면 어릴 때부터 조기교육을 굉장히 잘 받아요. 지금은 몇 백만 원 하는 조기 교실이 다 개설되어 있거든요. 하지만 돈이 없으면 어떡해요? 복지관을 이용하거나 어린이집에 종일 맡겨놓거나 해야죠. 어쩔 수 없어요. 장애 영역도 어쩔 수 없이 대한민국의 사회이기 때문에 돈이 있으면 그만큼 다르죠.

 

저자도 한 달에 백만 원이 우습게 나갔던 경험이 있었다고 했잖아요. ‘희망e든 카드(보건복지부 사회서비스 전자바우처의 국가바우처 통합카드)’로는 터무니없어요.


그 카드에 나오는 돈이 한 달에 22만원이에요. 그런데 치료실 비용 제일 적게 나가는 게 기본 하루에 4만원이란 말이에요.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4-5만원 선이에요. 한 달에 22만원이면 다섯 번밖에 못 받잖아요. 일주일도 안 되는 거죠. 돈 좀 있고, 여유 좀 있으면 아침부터 오후 몇 시까지 쭉 프로그램이 있는데요. 희망e든 카드는 하루에라도 다 쓸 수 있죠.  


복지 예산을 한 푼이라도 아끼려고 1등급 장애인 수를 줄이려 하는 건 아닌지, 왜 1등급을 받아야 하는 아이에게 1등급을 안 주기 위해 남의 평균을 가져다가 내 아이의 점수로 둔갑시켜 총점을 올리는 것인지 물었다.(중략) 아들을 매일 마주하는 모든 치료사들로부터 아들의 인지와 행동이 1등급 장애인에 해당한다는 소견서도 받아 함께 제출했다. 하지만 조정 신청 결과 역시 2등급 판정.(78쪽)

 

장애 등급 판정도 문제가 많은 것 같아요.


내년부터 장애 등급제가 폐지되는 건 아시죠? 큰 틀은 동의하는데요. 대안이 필요해요. 제일 좋은 대안으로 보는 게 ICF(국제기능장애건강분류, 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Functioning Disability and Health)예요. 1,400개 문항이 있어요. 우리는 장애 등급 판정을 할 때 몇 십 개 되는 문항에서 검사가 끝나는데요. ICF는 1,400개 문항이 있어서 이걸 하려면 보호자들이 다 붙어서 해야 해요. 대신 그렇게 되면 ICF 결과만 보고도 그 장애인에 대한 데이터가 구조화되어서 나오죠. 말은 거의 못하지만 화장실은 혼자 다닐 수 있어, 혼자 차 기다리는 것 가능해, 언어치료는 필요하고 장애인 콜택시는 필요 없어. 이렇게 되면 천차만별인 장애인 각각에 맞는 예산을 지원해줄 수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지금은 그런 제반 사항이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아요. 문제가 많죠.

 

‘장애인’이라는 말로 범주화 하기에는 장애인 개개인의 사정이 워낙 다른데 말이에요.


지금은 제도화 되어서 그 안에서만 해야 해요. 어떤 것은 필요 없는 아이도 있고요. 또는 너무 절실한데 더 치료 받지 못하는 아이들도 많거든요. 언어 다 되는 아이들이 언어치료 받을 필요가 없잖아요. 또 어느 지역에는 승마가 되고, 놀이 체육이 되는데 다른 지역에는 아예 그런 프로그램도 없고 그래요. 개인에게 맞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구조화 되어야 하고요. 그것을 위해서는 전문가 육성이 선행되어야 해요. 그런데 심지어 그것을 위한 전문가도 없어요. 그렇다면 5년 뒤라도 이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지금부터 전문가 육성 과정이라도 만들어야 하는데요. 그것조차도 안 하고 있어요.

 

‘장애인 컨설턴트 제도가 꼭 필요하다’고 하셨잖아요. 말씀하신 전문가 기반이 없으니까 계속 제자리인 건데요. 이 점에 있어 가장 시급한 문제는 뭐라고 보세요?


사실 이것도 10년, 20년 전에 비하면 춤을 출 정도로 많이 좋아진 거예요. 지금 20대 성인이 된 자녀를 둔, 부모 운동의 중심에 계신 보호자 분들이 투쟁하고 요구해서 그나마 바우처 카드라는 걸 받고 있는 거고요. 가족지원센터에 가서 상담도 받는 거예요. 장애인 콜택시도 마찬가지고요. 그 전에는 아예 아무것도 없어서요. 지금은 한 번 치료 받는 데 4만원‘밖에’ 안 하지만 당시에는 치료를 받으려면 집을 전세로 바꾸고, 또 월세로 바꾸면서 해야 했어요. 그럴만한 경제력이 없으면 우리가 어렸을 때 동네에서 봐왔던, 그냥 방치된 이상한 동네 형들이 되었던 거고요. 치료실 자체가 많지 않았던 데다가 부모도 장애를 몰랐죠. ‘모지리’ 태어났다면서 그냥 방치했잖아요. 이런 과정을 거쳐 그나마 지금까지 온 건데요. 왜 이렇게밖에 안 되느냐 생각을 해보면 사회 인식인 것 같아요.

 

네, 사회 인식이요. 정말 중요한 부분이에요.


선진국 복지 얘기를 많이 하잖아요. 외국은 복지가 잘 되어 있는 만큼 사회적 인식도 높아요. 장애 아이들이 분노발작 일으킬 때 우리나라처럼 안 쳐다봐요. 오히려 쳐다보고, 거부감 나타내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탓하며 쳐다보죠. 사회 제도, 복지의 변화라는 건 사회 인식이 함께 따라줘야 해요. 1세대 보호자 분들은 워낙 황무지였기 때문에, 사회 인식보다 일단 당장 국가 제도 하나 없는 것이 문제였기 때문에 열심히 운동해서 지금 우리가 누린 이 혜택을 주신 거예요. 하지만 그러느라 사회 인식을 함께 끌어올릴 여력은 없었던 거고요. 이제는 저 같은 사람도 생겨나기 시작하는 거죠. 사회 인식이 같이 바뀌어주지 않으면 더 이상 질을 바라볼 수 없어요. 필요에 의해 생겨난 존재겠네요, 생각해보니까.(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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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 빼지 마세요


특히 중요한 책의 메시지라고 한다면 장애는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일이다, 라는 점이었어요.


정말 그걸 사람들이 몰라요. 닥쳐보기 전에는 모르죠. 주변에 장애 아이 보호자들을 만나보면 장애 아이가 자기한테 올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어요. 장애라는 것은 그렇게 와요. 성인도 마찬가지죠. 동네에 친하게 지낸 집이 있어요. 거기 남편 분이 워낙 좋으셔서 눈이 오면 집 앞 청소도 먼저 하시고요. 인기도 많은 분이었는데요. 갑자기 회사에서 쓰러지신 거죠. 뇌출혈이었어요. 몸도 마비가 되고, 인지 수준이 네 살 아이가 되어버렸어요.

 

그런 면에서 이런 이야기들이 더 많이 전달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두 부분으로 나눠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우선 얘기한 것처럼 교사나 가족 안에 장애가 있는 피붙이들이 읽었으면 좋겠어요. 가슴에 가장 큰 대못을 박는 건 장애 바이러스가 옮을까, 쳐다보는 타인이 아니라 내 엄마, 내 아빠, 내 시어머니, 내 가족이거든요. 한편 연재를 시작할 때부터 정말 많은 장애인 보호자들과 소통을 하게 됐어요. 그러면서 느끼는 게 우리는 아직도 ‘장애도(島)’에 빠졌다는 사실을 모른다는 거였어요. 장애도에 빠져야만 좋은 부모라는 인식이 확산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고요. 여기서 나가려고 하면 죄책감이 들어요. 그래서 우리는 나 자신을 희생하고, 피를 내고, 불행해도 아이가 조금 더 밝아지면 된 것 같아요.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아요. 건강하지 않은 거고요. 오래 갈 수 없어요. 어떤 분이 어릴 때 힘 빼지 말라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이 싸움은 내가 죽든, 동환이가 죽든 둘 중 하나가 죽어야 끝나는 싸움이라고요. 그걸 알았으면 좋겠어요.

 

이제 나는 사람들을 만나면 아들의 이야기만 하지 않는다. 내 세상이 ‘장애’로만 가득 차 있던 과거와는 다른 모습이다. 대신 나는 나의 이야기를 하고, 남편의 이야기도 하고, 딸의 이야기도 한다. 이제 나는 ‘장애도’에서만 사는 게 아니라 ‘세상’ 속에서 함께 살고 있다. 보통 삶을 살고 있는 다른 엄마들처럼 말이다.(281쪽)

 

한편으로는 이 책이 딸 수인이와의 관계 성장기로도 읽혔거든요. 그 부분도 굉장히 중요해요. 장애인 형제를 가진 자녀들, 부모들이 어떻게 관계를 맺을 것인가 하는 부분 말이에요.


장애도에 빠져서 장애 아이를 위해 온갖 것을 다하면 그렇게 돼요. 사람의 에너지는 무한하지 않거든요. 그러면 장애 아이 기능 하나가 좋아지는 대신 스트레스가 다른 가족한테 가요. 제일 먼저 배우자, 그리고 비장애 형제자매죠. 대항하지도 못해요. 이렇게 힘들게 희생해서 장애 아이를 돌보고 있는 것을 아니까요. 싸울 투지도 못 갖고요. 차라리 참고 말지, 이렇게 되는 거예요. 가정이 파괴된다고 하잖아요. 마음의 파괴예요. 장애도에서 빠져나온다는 건 그렇게 봐요. 장애만 봤던 데에서 빠져나와 남편도 보고, 다른 비장애 형제자매도 보고, 무엇보다 내 자신도 볼 수 있게 되는 거예요. 우리는 평생 어린 아이를 키워야 하잖아요.

 

딸 수인이에게 정말 바라는 것이 뭔가요? ‘네 인생을 살아라’라는 말을 계속 한다고 하셨잖아요.


잠잘 때도 저는 동환이를 보고 자야 하거든요. 수인이는 십 년 동안 제 등만 보고 잤어요. 지금 상황은 장애인 가족이라는 특수한 사정 때문에 감내해야 할 자기 몫인데요. 다만 엄마이기 때문에 너무 미안해요. 적어도 수인이가 스무 살부터는 무조건 자기 인생을 살았으면 해요. 행여 제가 죽은 후에 동환이를 수인이에게 맡기는 짓은 절대 안 할 거예요. 어렸을 때 다른 아이들은 하지 않아도 될 인생의 많은 짐을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지고 살았기 때문에요. 스무 살부터는 네 인생을 살라고 정말 많이 얘기했어요. 양치하다가도 제가 “네가 기억할 게 뭐라고?” 물어요. 그러면 수인이가 “나만 행복하게 사는 것.”이라고 대답해요. 저는 수인이가 자기 인생을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사회를 위해서


시선을 주지 않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는 내용이 있었는데요. 무관심의 관심, 정말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멀쩡한 사람을 한 달 뒤에 괴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이 있어요.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을 비난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돼요. 잘못한 거 없지만 존재 자체만으로 그런 시선을 받는다고 생각해보세요. ‘여기서 나가’, ‘너 싫어’라는 시선 말이에요. 화장실을 가건 식당을 가건 버스나 지하철을 타건 하다못해 집 앞에 빵을 사러 가건 그 시선을 던진다면 어떻겠어요. 그 시선을 하루, 이틀, 십 년, 이십 년 겪는다고 생각해보세요. 괴물은 그래서 탄생하는 거예요. 이것은 장애 당사자, 장애 보호자뿐만 아니라 사회를 위해서도, 당신들을 위해서도 그렇게 해야 해요. 사회 차원에서 자존감이 잘 형성되고 밝고 명랑한 발달장애인과 어우러져 사는 게 좋겠어요, 이런 시선 때문에 위축되고 속에는 분노가 쌓여서 괴물이 되어 버린 발달장애인들과 사는 게 좋겠어요? 어쨌든 우리는 장애인과 같이 살 수밖에 없잖아요. 선택은 세상의 몫이에요.

 

우리 모두를 위한 길이죠.


시선 이야기는 그런 의미까지 같이 있어요. 당장 아이를 교육하는 데 도와주면 좋겠다, 라는 의미도 물론 있지만요. 사회적인 입장에서도 분명히 생각해봐야 하는 문제예요. 시선을 거둬주는 것이 장애인 보호자나 가족을 위하는 것이기 때문만은 아니에요. 사회, 나 자신의 입장에서도 생각을 해봐야 해요.

 

연재할 때나 책 나온 후에 특히 기억에 남는 반응이 있으세요?


벌교에 있는 고등학생들이 인터뷰를 해달라고 전화가 왔어요. 연재 글을 읽고 발달장애인 교육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하더라고요. 정말 놀랐어요. 아이돌에 관심 갖고 빠져있을 아이들 꿈이 바뀐 거잖아요. 그게 가장 많이 기억에 남아요.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형이라는 말류승연 저 | 푸른숲
발달장애인이 친구이자 동료, 이웃집 사람으로 받아들여지려면 장애인은 낯선 존재가 아니라 다르지만 다르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한 인간이라는 것을 알려야겠다고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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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 “책 만드는 사람도 발언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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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29일은  『출판하는 마음』이 출간된 날이다. 이틀이 채 지나지 않아 주변 사람들로부터 리뷰가 쏟아졌다. “아마 출판계 사람들이라면, 특히 마케터라면 이 책 다 읽고 있을 걸요? 서점 MD 마음 공약법으로요.” “친구가 읽던 걸 뺏어 읽었는데, 두 장 읽고는 사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하기야 나도 책이 서점에 풀리기도 전, 출간 소식을 듣자마자 미리 인터뷰를 청했다. 일주일을 보내며 책을 읽었다. 단숨에 읽을 수 있는 책이었지만 일부러 천천히 읽었다. 다 읽고 난 후 평을 하자면, “대한민국 출판인이 1만 명이라면, 1만 명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다”이다. 그래서 이 책의 초판 발행 부수를 물었다. 2천 부라고 했다. 부수를 굳이 밝히는 이유는 출판계의 현실을 독자들이 알았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은유 작가에게 말했다. “이 책은 적어도 올해 안에 1만 부는 팔렸으면 좋겠는데요.” 작가는 그럴 리가 없을 거라는 표정으로 작게 웃었다.

 

『출판하는 마음』 은 은유 작가가 단독으로 쓴 여섯 번째 책이다. 첫 번째 책 『올드걸의 시집』은 2012년에 나왔고 지금은 절판됐다. 이 책의 절반은 2016년에 출간된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 로 소개됐다. 『출판하는 마음』 은 출판사 제철소가 기획한 ‘마음’ 시리즈의 첫 번째 책이다. 은유 작가는 2년 전, 김태형 제철소 대표로부터 기획안을 받았다. “편집자, 마케터, 제작자 등 출판계 종사자들의 인터뷰집”이라는 말에 솔깃했고, 두 가지 기획의도가 그의 마음을 움직였다.

 

“첫째, 누구나 궁금해하지만 쉽게 물어보지 못했던 직업에 관한 물음과 답을 통해 우리 시대 청춘에게 현실적인 도움을 주는 직업 가이드를 제공한다. 둘째, 노동과 삶이라는 보다 본질적인 물음에 접근함으로써 독자들로 하여금 깊이 있는 사색의 시간을 갖게 한다.”

 

작가 은유는 첫 책이 절판되는 아픔이 있었지만, 2015년에 쓴 『글쓰기의 최전선』 으로 책 좀 읽는 독자들에게 좋은 평을 받았고, 이후 대한민국 편집자들이 꼭 한 번 일해보고 싶은 저자로 손꼽히고 있다. 지금도 하루가 멀게 청탁 메일을 받고 있지만, 지금까지 계약한 책은 단 두 권. 오래 전 눈밝은 편집자의 제안으로 쓰고 있는 독서 에세이와 청소년 노동 르포가 전부다. 왜 책을 더 계약하지 않았냐고 물으니, “책은 혼자 만드는 게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출판하는 마음』을 썼으니 작가 은유는 앞으로 더 신중해지지 않을까.

 

아마 은유 작가가 이 책을 쓴 건, “레드카펫 위 주인공보다는 그 레드카펫을 준비하고 갈고 치우는 사람들에게 시선이 가는”(7쪽) 사람이기 때문일 테다. “타인의 노동을 존중하는 능력, 관계 속에서 자신을 보는 능력”(6쪽)을 가진 작가 은유와 그가 인터뷰한 출판인 10명의 이야기. 책이라는 물성을 탐닉하는, 세상에 많은 사람들에게 이 책이 잘 가닿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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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공동의 산물이니까요

 

한동안 인터뷰 작업을 안 하셨는데요. 오랜만에 인터뷰어가 되어 책을 쓴 소감이 궁금합니다.

 

서문에도 썼지만 실용 정보서와 르포르타주 사이의 책이니까요. 정보적 가치와 인식적 가치를 동시에 잘 담아보고 싶었어요. 출판계에 입문하는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그렇기 때문에 너무 비관적으로 쓰지 않으려고 했는데 수위를 조절하는 게 어려웠어요. 너무 세게 드러나면 르포르타주가 되고, 그렇다고 너무 적게 드러내면 미화할 수 있으니까요. 두 개의 긴장감을 어떻게 맞출 지에 대해 고민이 많았죠. 『출판 노동 목소리』 , 『편집의 정석』을 비롯해 책에 관한 책을 다시 읽으면서 균형을 맞췄는데, 평가는 독자 분들의 몫이니까요.

 

개인적으로는 정보의 양이 많아 좀 놀랐어요. 인터뷰이들의 이력도 굉장히 구체적으로 서술했고요. 또 놀란 점은 생각보다 젊은 출판인들이 많이 소개됐다는 점이에요.


너무 베테랑인 사람은 일부러 뺐어요. 이 책이 직업 입문서로써의 역할도 갖고 있어서요. 경력이 많은 사람, 직책이 높은 사람들은 젊은 실무자들의 생각과 고민을 잘 모르니까요. 본인도 잊어버리고요. 그래서 10년 안팎의 경력이 있는 사람들을 찾았어요. 김민정 문학 편집자만 예외적으로 경력이 많고, 다른 분들은 대개 5년 안팎이에요. 『회사가 싫어서』를 쓴 김경희(너구리) 저자를 인터뷰한 것도 젊은 목소리를 많이 담고 싶어서예요. 독립출판으로 진로를 개척한 분이잖아요. 독립출판을 시작으로 상업출판에서도 책을 내셨고요. 젊은 친구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어요.

 

처음부터 제목이 『출판하는 마음』 었나요?


이 제목은 나중에 알게 됐어요. 사실 원고를 쓰면서 혼자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너무 세도 안 되고, 약하면 존재감이 없으니까. 적절한 제목이 뭐가 있을지 생각해봤는데, 김태형 대표님이 제목은 『출판하는 마음』 이라는 거예요. 듣자마자 너무 좋다고 생각했는데요. 희곡 중에 <과학하는 마음>이라는 작품이 있대요. 대표님이 그 작품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들었어요.

 

10명의 인터뷰가 실렸는데, 편집자부터 시작해서 1인출판사 대표로 끝맺어요.


출판 작업 순서대로 넣은 거예요. 편집자가 기획하고 저자가 글을 쓰고 번역자가 번역하고, 디자이너가 책을 디자인하고, 제작자가 책을 만들고, 마케터와 MD, 서점인이 책을 팔잖아요. 이정규 코난북스 대표님은 1인출판사를 운영하는 입장에서 전체를 총괄하는 개념으로 마지막에 넣었어요.

 

섭외는 직접 하셨나요?


출판사 대표님이 추천해주신 분도 있고 제가 먼저 제안한 분도 있어요. 정지혜 사적인서점 대표님의 경우에는 저한테 첫 책방 지기 같은 느낌이 있었고요. 이환희 어크로스 편집자님은 앞으로 제 책을 만들어주실 분인데요. 아무래도 평소에 소통하는 관계였으니까 그 분의 책을 대하는 마음이나 태도 같은 걸 잘 알고 있었죠.

 

리뷰를 찾다가 블로그에서 인상적인 글을 한 편 읽었는데요. “코난북스 대표님의 글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허세롭지 않아서 좋았다. 너무 남루해보일까바 안 하려고 했는데 전혀 그렇지 않고 좋았다”는 이야기였어요. 제 느낌도 비슷해요. 굉장히 좋았고 인상적이었어요.


이정규 대표님이 말씀을 잘하세요. 대표님을 인터뷰했을 때가, 코난북스에서 ‘아무튼’ 시리즈가 나오기 전이었는데요. 책을 쓰는 와중에 ‘아무튼’이 나오면서 그 내용을 추가했죠.

 

기억에 남는 리뷰가 있었나요?


아무래도 책을 좋아하는 분들이 볼만한 책이잖아요. 초보 편집자인데 도움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많았고요. 마케터 분들은 편집자 이야기가 좋았다는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서문에 이런 이야기가 나오잖아요. “편집자가 SNS에 더 나은 표지를 골라달라며 시안 투표를 올리는 경우가 있는데, 북디자이너 입장에서는 미완의 시안이 공개되어 졸지에 익명의 대중에게 평가당하는 얄궂고 불쾌한 일이다.”(15쪽) 저도 이 시안 투표를 참 많이 했었는데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예요.


저도 그래요. 몰랐던 거죠. 작업에 대한 존중이 없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사람들은 잠깐 표지를 보고 나서 “폰트 좀 줄이고 색깔 좀 다르게 하면 좋을 것 같다”고 평하잖아요. 책의 전체 조화를 생각해서 작업한 디자이너 입장에서는 완전히 무시 당하는 기분이 들 수밖에 없죠. 며칠 전 제가 강연을 했는데, 어떤 분께서 저의 예전 책을 두고는 이런 말을 하셨어요. “이 책 디자인은 작가님이 하셨냐?”고요. 북디자이너가 따로 있다는 걸 모르는 분이 많아요. 그래서 『출판하는 마음』 이 많은 사람에게 읽히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 권의 책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모르는 분이 생각보다 많아요. 책 제목을 정하는 것도 편집자의 일이잖아요. 그런데 대부분 작가들이 직접 하는 줄 알아요. 한 권의 책이 만들어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필요한지 잘 모르세요.

 

프리랜서 에디터로 일하신 적이 있지만, 줄곧 출판계에서는 저자 입장이셨잖아요. 열 분을 인터뷰한 후, 저자로서 반성했거나 다시 생각한 부분이 있었나요?


가장 크게 배운 건 ‘책만 좋으면 알아서 팔린다’는 생각을 버리게 된 점이에요. 그동안은 책을 상품으로 생각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판매에 대해서는 한 발 빠져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자가 자기가 쓴 책을 홍보한다는 게 참 어렵고 민망하고 힘든 일이잖아요. 그런데 이번에 출판인들을 인터뷰하면서, 강매를 권하는 건 이상하겠지만 내가 써놓고 뒤로 빠지는 것도 무책임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교수들이 학교에서 제자들에게 자기가 쓴 책을 사라고 하잖아요. 교재로 쓰기도 하고요. 저는 『올드걸의 시집』이 나왔을 때, 글쓰기 수업 교재로도 못 썼어요. 안 사고 싶을 수도 있으니까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생각했었는데요. 그럴 것도 아니구나, 생각했어요. (웃음)

 

출판 마케터 분들은 만나보면, 홍보에 적극적인 저자, 편집자를 가장 좋아하더라고요.


문창운 사계절 마케터가 편집자에게 이런 말을 했잖아요. “100퍼센트 힘을 다 쓰지 말고 마케팅과 함께할 10퍼센트는 남겨주길 부탁합니다.”(233쪽) 이야기를 들어보니, 정말 그렇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떻게 보면 이 책을 통해 책에 대한 큰 인식의 전환이 이뤄진 것 같아요. 그동안은 책을 작가의 생산물로 생각했다면, 공동의 생산물이라는 개념이 확고해졌어요. 우리 출판계는 너무 작가만 드러나잖아요. 외국의 경우 편집자가 교수만큼 존경받는 직업인데, 우리는 아직도 편집자가 무슨 일을 하는 지를 모르는 경우가 많죠.

 

박흥기 사계절 출판제작자의 한 마디도 인상에 크게 남았어요. “직원들을 볼 때마다 지금처럼만 같이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당연하게 여길 수도 있는데 책 나오면 고맙다고, 고생했다고 얘기해주는 마음 씀씀이가 너무 고맙다.”(206쪽) 되게 평범한 이야기 같은데요. 이런 평범한 말들이 요즘 세상에는 드문 일이 되었어요.


박흥기 제작자님을 인터뷰하면서 많이 감화 받았어요. 이 분은 거래처를 자주 돌아다니시면서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신대요. 요즘 그런 사람 없잖아요. 다른 사람들의 고충을 들어야 제도적으로 고칠 수 있는 걸 파악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는데요. 이 분은 말하지 않고 들어주는 게 몸에 배어 있었어요. 한 출판사 직원이 이 분을 두고 “사계절 출판사에 봄이 왔다”고 하셨대요. (웃음) 너무 기억에 남아요. 조직에 이런 사람이 있는 게 흔한 일이 아니잖아요.

 

『출판하는 마음』 에 등장하는 출판인 10명의 공통점이 있을까요?


발로 많이 뛰는 사람, 지레 짐작하지 않고 현장을 중시하는 분들인 것 같아요. 김민정 난다, 문학동네 편집자의 경우도 책은 손으로 만져봐야 한다고 하잖아요. 노력 없이 되는 일은 없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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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 소통의 문제를 갖고 있는 독자라면

 

편집자에게는 여러 능력이 필요하겠지만, 저자를 섭외하는 일에서부터 책이 출발한다고 봐요. 섭외하기 위해서는 기획안을 써야 하고 저자의 마음을 움직이게 해야 할 텐데요. 저자들은 어떤 기획안을 받을 때,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갖나요?

 

저는 여성, 글쓰기, 청소년을 주제로 한 청탁이 많이 오는 편인데요. 대개 트렌디한 접근이 일반적이에요. 지금 제가 쓰고 있는 두 권의 책을 보면, 편집자로서의 자기 소신이 분명한 점이 인상적이었던 것 같아요. 편집자로서의 주관, 확신이 저의 관심사와 만나는 지점이 있었고 이걸 명확히 밝혀준 게 제 마음을 움직이게 한 것 같아요. 제 글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감사하지만 약간은 부담스럽거든요. 저는 편집자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욕망을 갖고 있는 사람인지가 중요해요.

 

동료 관계로 일하는 걸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물론이죠. “작가님, 좋은 글 써주세요”는 좀 이상해요. 저는 협업하는 게 좋아요. 그래야 힘들 때 토론도 하고 방향도 잡아갈 수 있어요. 저에 대한 신뢰를 보여주는 것보다 직업인, 편집자로서의 소신, 세계관을 보여주는 것이 더 중요해요. 그래야 저도 존중할 수 있으니까요. 예전에 젊은 한 편집자와 책을 만들 때, 제가 의견을 자주 물었어요. 그랬더니 그 편집자 분이 하는 말이 자기한테 의견을 물어본 사람이 제가 처음이래요. 너무 충격 받았어요. 작가들이 얼마나 권위적이었나, 반성해야 할 것 같아요.

 

김민정 편집자의 이야기에서 “진심을 발견했다”(30쪽)라는 문장이 나와요. 상투적인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제가 『출판하는 마음』에서 느낀 것도 ‘진심’이에요. 저자나 출판계에서 일하는 분들을 보면 삶을 깊이 보려고 노력하는 분이 많잖아요. 하지만 “대단한 악의와 의도가 아니라 타인의 노동에 대한 무지와 알려고 하지 않는 습관적 게으름에서 오는 것들”(15쪽)을 목격할 때가 많습니다.


섬세함을 길러진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일상생활에서 사고의 폭을 넓힐 계기가 많이 없어요. 만나는 사람도 일정하니까요. 저는 글쓰기 수업을 하면서 학인들의 내밀한 글들을 계속 읽으니까요. 그게 직업이니까 저를 돌아볼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아요. 하지만 의지가 있는 분들이더라도 일에 지치면 계기를 못 찾게 돼요. 그래서 제도 교육이 중요한 것 같아요. 어릴 적부터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말하는 걸 배워야 해요. 교육 없이 자라면 알게 되기가 어려워요. 어떤 식으로든 정보가 제공돼야 해요. 그런데 약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활자화 하기 어려워요. 전문가나 권위자에 의해 쉽게 대변되고 왜곡돼죠. 당사자가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출판사에서 작가들을 너무 과도하게 대접하는 부분도 문제라고 생각해요. 실무를 하는 출판사 직원들의 처우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 경우도 많이 봤어요.


‘그렇게까지 해줄 필요는 없다’는 생각을 해요. 이번 책에서 김경희(너구리) 작가를 저자로 인터뷰한 것도 저자의 어떤 근엄한 이미지를 깨고 싶은 부분도 있었어요. 누구나 저자가 될 수 있는 시대가 됐고 출판의 민중화가 이뤄졌잖아요. 시대가 바뀌었는데도 여전히 각 잡고 있는 분들을 볼 때면 좀 씁쓸해요.

 

이 글귀가 생각나요. “상대방과 마음의 속도, 의욕의 강도를 맞추지 않는 일방적인 열심희 태도가 외려 독이 될 수도 있겠구나.”(13쪽) 저 역시 일하면서 많이 느끼는 부분입니다.


주변에 편집자들이 많은데요. 밤낮으로 카톡 메시지를 보내는 저자들이 많대요. 자기 책이 너무 소중한 거죠. 물론 이해는 해요. 그렇지만 출판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의 열심은 상대를 너무 힘들게 하죠. 저도 이 책을 쓰면서 반성을 많이 했어요. 『글쓰기의 최전선』을 쓸 때 제목을 두고 고민을 정말 많이 했어요. 저로서는 좀 더 추상적이고 예쁜 제목을 쓰고 싶었는데, 대표님이 “작가가 유명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책의 목적성을 드러내는 게 좋다”고 말씀하셔서 따랐죠. 맞는 말씀이시니까요. 무지에서 오는 과한 개입은 상대를 힘들게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책을 저자들도 읽으면 좋겠어요. 판을 보면 그림을 잘 그릴 수 있으니까요.

 

『출판하는 마음』을 만들면서는 어떠셨나요? 저자와 편집자 간에 배려가 많았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그렇죠. 제철소는 1인출판사이기 때문에 김태형 대표님이 편집을 직접 하셨어요. 원고를 3개 정도 보내드린 후에 미팅을 했는데요. 만나서는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고, 원고 피드백은 메일로 주셨어요. 뭐랄까, 전혀 기분이 상하지 않게 핵심을 잘 집어 주시더라고요. 그래서 방향 잡기가 수월했어요. 번역가 홍한별 선생님도 책에 이런 말씀을 하셨잖아요. “편집자들의 빨간펜 지적을 받으면 빵점 맞은 기분이 든다.” 저도 글쓰기 수업할 때, 다른 사람의 문장에 빨간펜을 긋거나 그러지 않아요. 전체적인 느낌을 문장으로 써줘요. 빨간펜은 중요하지 않아요.


인터뷰가 굉장히 고된 작업이잖아요. 인터뷰한 걸로 끝이 아니고 녹취하고 내용을 선별하고 또 피드백도 받아야 하고요.


박태근 알라딘 MD 인터뷰는 녹취를 풀어보니 200매가 넘었어요. 품이 정말 많이 들었죠. 그래도 책 보는 사람으로서 이런 책을 쓰게 돼서 정말 뿌듯해요.

 

문창운 사계절 마케터가 이런 말을 했잖아요. “서울 서북부 감성(출판인들은 굉장히 좋아하는 저자이고 글도 훌륭하고 콘셉트도 좋고 출판계에서는 대환영을 받고 있는 책인데, 막상 시장에서는 큰 성과를 못 내는 도서들이 갖고 있는 감성, 228쪽) 솔직히 말해서 『출판하는 마음』 도 서북부 감성인데요.


(웃음) 출판계 사람들이 다 읽는다면, 1쇄는 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확장성이 생기면 사서 분들이나 일반인들도 읽으실 수 있을 것 같고요. 또 기대하는 독자는 자신의 직업 안에서 내부 소통의 문제를 갖고 있는 분들이에요.

 

2018년이 ‘책의 해’입니다.


좋은 행사들이 많이 열리는 걸로 알아요. 항상 생각하는 문제인데요. 출판사의 분발로 독서 인구를 늘리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캠페인이 아니라 교육, 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인문 도서도 예전에는 완만한 곡선으로 판매가 이뤄졌는데, 요즘은 절벽이라고 해요. 출간했을 때 반짝 팔리고 안 팔리는 거죠. 많이 아쉽고 안타깝고 그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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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들이 진 빠져서 도망갈 때, 너무 안타까워요

 

벌써 3년 전인데요. 『글쓰기의 최전선』 이 나왔을 때, 본인을 “무명 저자”라고 말하셨어요. 지금은 조금 달라지지 않았나요? 최근 배우 박보검이 JTBC <효리네 민박>에서 『쓰기의 말들』을 읽어 화제가 되기도 했어요.


저보고 자꾸 유명해졌다고들 하는데요. 제가 하는 일은 그 전과 똑같아요. 강연 의뢰가 좀 많이 오는 것, 추천사 부탁이 자주 오는 정도인데요. 제가 만나는 사람들은 예전과 다르지 않아요. 새로운 독자도 늘었지만 제 책을 사주는 분들은 여전히 평범한, 저랑 코드가 맞아서 자주 만나는 분들이세요. 주변에 그렇게 잘나가고 유명한 사람이 없어요. (웃음) 저를 잡아주는 건 저의 오래된  학인, 편집자, 친구들이에요.

 

추천사를 써달라는 요청도 많이 받으실 같아요.


많이 받는데 다 써 드리진 못해요. 『출판하는 마음』을 준비할 때는 너무 바빠서 도저히 짬이 안 났어요. 그런데 얼마 전 1인출판사 어떤책 대표님이 메일을 보내셨어요. 저자가 조선가정에서 자란 분이셨는데 할머니 할아버지가 이 분을 정말 살뜰하게 키워주셨나봐요. 에세이스트로 첫 발자국을 떼는 사람이라서 제가 꼭 추천사를 써주셨으면 좋겠다고 하시는데, 원고를 읽어보니 너무 좋은 거예요. 감동이 너무 커서 제가 울었어요. 삶에 대한 울림이 있는 글이었으니까요. 다른 건 몰라도 이 책은 꼭 해주고 싶어서 썼어요. 내가 있어야 할 자리는 여기가 아닌가 싶어요. 추천사는 정말 제안이 많이 오는데요. 저 말고도 써주실 분이 많을 것 같은 저자의 경우에는 거절해요. 이런 거절은 안 불편해요.

 

이번 책의 저자 소개에 “일하는 사람들이 글을 써야 세상이 좋아진다는 믿음으로 여기저기 글쓰기를 전파하러 다닌다”고 썼어요.


이오덕 선생님의 어떤 글에서 본 글귀예요. 학인들에게도 자주 이야기해요. 누구로 하여금 대변하게 하지 말라고요. 모든 사람이 자기 생각, 의견을 가진 사람으로 존재했으면 좋겠어요. 글쓰기 수업을 오래 하면서 느낀 것 중 하나인데요. 사회적인 성취를 많이 했지만 너무 위축되어 있거나 아픈 사람들이 많아요. 거짓 자아로 활동하게 되는 게 있잖아요. 내 약점, 결핍을 숨겨야 하는 일들. 하지만 자기 이야기를 자기 입으로 하면 당당해져요. 자존감을 가질 수 있어요.

 

이정규 코난북스 대표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잖아요? “제가 만든 책으로 인해 저자에게 방송 출연이나 강연 섭외가 온다든지, 다른 활동으로 이어지게 만드는 것도 책 만드는 사람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328쪽) 저는 『출판하는 마음』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책에 소개된 10인이 만든 책들이 나올 때, 독자들이 판권을 보면서 ‘아, 이 분이 작업한 책이구나’라고 생각하게 될 것 같다’고요.


그러면 좋죠. 사람들은 큰 것에 대한 선호가 너무 크잖아요. 대기업 선호처럼요. 출판계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는데요. 작은 것들이 잘 공존했으면 좋겠어요. 그게 책의 정신 아닌가요?

 

이경란 북디자이너가 직접 카드뉴스도 제작해주셨다고요.


정말 감동했어요. 요즘 엄청 바쁘시거든요. 책 잘 만들어줘서 고맙다고 밥도 사주시고. (웃음) 책이 잘 팔리는 것도 좋지만, 같이 일하는 사람들끼리의 만족과 신뢰, 이런 것들로 얻는 기쁨이 정말 크죠. 과정이 좋으면, 결과가 조금 부족해도 뭐 재밌어요.

 

아쉬웠던 부분은 없었나요?


아무래도 출판계의 그늘 같은 면을 많이 다루지 못한 게 아쉽죠. 소규모 조직이라는 곳이 말이 좋아 가족적인 분위기지 내부 착취가 많이 이뤄지잖아요. 조직은 계속 커가는데 개인들은 과잉 소모되는 것들을 볼 때 많이 속상하고 그래요. 출판계 원로들이 출판이 호황일 때, 문제의식을 갖고 복지나 임금 문제를 잘 만들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런 생각을 해요. 출판사도 이직률이 굉장히 높잖아요. 반성해야 할 부분이에요. 직업적인 자부심을 갖고 일할 수 있는데, 개인이 커 가기 너무 어려운 구조예요. 편집자들이 진 빠져서 도망갈 때, 너무 안타까워요.

 

만약 1인출판사를 연다면 어떤 책을 만들고 싶나요?


평범해 보이지만 평범해 보이지 않는 노력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 저는 르포르타주 작업을 많이 하고 싶어요. 학인들에게도 이야기했지만, 얼마 전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 을 읽었어요. 이 감독이 TV 다큐를 찍다가 영화계로 갔는데, 문제의식을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어떤 한 선배의 책에서 힘을 얻었다는 이야기가 나와요. 독자로서는 이런 점들이 굉장히 큰 정보거든요. 책으로 기록하는 게 정말 중요하구나, 그런 생각을 했어요. 우리는 르포르타주 라고 하면, 너무 진지하고 무겁게만 여기잖아요. 나랑 상관 없는 노동자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는데, 문제의식을 공유하면서 미학적인 쾌감도 줄 수 있는 르포 작가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저는 장사는 못할 것 같지만, 이런 부분에 있어서 작은 기반이라도 닦아 놓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이것 역시 가정이지만, 서점을 연다면요?

아마도 글쓰기 수업의 거점이 되는 공간이지 않을까요? 읽고 쓰고 말하는 공간으로써의 서점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단지 소비 행위 만이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곳이요.

 

아마 은유 작가에게 기획안을 보내고 싶은 편집자들이 이 인터뷰를 가장 많이 읽지 않을까 싶어요. 출판계에 막 들어온 신입이나 3년차 정도의 편집자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편집자로서 자기 목소리, 자기 세계관을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전체를 보면서 자기 역할을 고민하는 게 필요할 것 같아요. 편집자가 작가와 대등한 주체로 의견을 나누려면, 공부도 많이 하고 고민도 해야 해요. 그래야 자기 역할에 자부심을 갖고 좋을 책을 만들 수 있어요. 또 부당한 것에 대해서는 반드시 목소리를 냈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조금이라도 좋아질 수 있어요. 리베카 솔닛이 말했잖아요. “침묵도 용기도 전염된다.” 누군가 말하기 시작하면 옆에 있는 사람도 말할 수 있어요. 잘못 생각한 거라면 수정할 수도 있고요. 책이라는 게 곧 누군가에게 발언하는 거잖아요. 책 만드는 사람들도 많이 발언하면 좋겠어요.

 

책을 묶으면서, 고마운 사람들을 많이 떠올렸을 것 같아요.


책을 쓸 때 고마운 사람들을 직접적으로 밝히지 않는 편인데요. 너무 의례적인 것 같은 느낌이 있어서요. 그런데 『출판하는 마음』 을 쓰면서, 이 책을 내게 된 게 어쩌면 나랑 그동안 같이 일했던 편집자들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일 수도 있겠다, 생각했어요. 그래서 이 책을 저의 첫 에세이 『올드걸의 시집』을 만들어준 정미진 편집자에게 보냈어요. 지금은 을유문화사에 있거든요. 정 편집자에게도 제 책이 직접 기획한 첫 책이었고, 저에게도 실질적인 첫 책이었어요. 그래서 두루두루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빠른 등기로 보냈죠.

 

 


 

 

출판하는 마음은유 저 | 제철소
읽고 쓰는 삶이 만들어내는 작은 변화에 관한 깊이 있는 글쓰기로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은 작가 은유는 이 책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면모를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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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 “누구나 딴생각으로 좋은 생각을 발견할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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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철은 프리랜서로 일한 지 20년, 카피를 쓴지는 30년이 넘었다. 계속해서 쓰는 일이 직업이었고, 쓰다 보니 생활이 되었다. 카피라이터 경험을 책으로 이어서 『카피책』 『내 머리 사용법』『한 글자』  등을 펴내 작가가 되었고, 문재인 대통령의 슬로건이었던 ‘사람이 먼저다’ ‘나라를 나라답게’를 쓰면서 ‘대통령을 만들어 낸 카피라이터’라는 수식어가 추가되었다.


『틈만 나면 딴생각』에서는 그가 어떻게 시선 옮기기, 파고들기, 잘라 보기, 가까이에서 찾기 등 열두 개의 그릇으로 생각을 찾는지 보여준다. 좋은 생각, 맞는 생각만 하려고 애쓰다 보면 오히려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오히려 “글이 길을 벗어나는 것은 땅을 칠 일이 아니라 박수를 칠 일. 덩실덩실 춤을 출 일”이다. 30년 넘게 아이디어를 파낸 사람의 말이니 들어볼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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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어는 샘솟는 게 아니에요


『틈만 나면 딴생각』에 담고자 했던 내용은 무엇인가요?

 

책을 낼 때마다 조금씩 다른 책, 다른 글을 내고 싶었고, 다음 책은 또 어떤 다른 색을 입힐지 늘 고민해요. 이번 책에서는 생각이 떠오르는 게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제까지 생각과 아이디어가 떠올라서 그걸로 광고 카피와 책을 만드는 걸 반복해왔다고 생각했는데, 가만히 보니 생각은 떠오르는 게 아니고 계속 찾아야 하는 거예요. 생각이 떠오르는 건 정말 기적 같은 일이고, 아이디어가 막 샘솟는 사람은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낙엽, 양말, 커피와 같이 일상적인 소재로 글을 쓰면서 ‘당신도 딴생각을 할 수 있다’라고 장려하는 책이에요.


낙엽에 대한 글, 안개에 대한 글 모두 그 글 자체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있어요. 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글 하나하나는 기억이 안 나더라도 재밌다, 나도 이런 거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게 성공이죠. 꼭 글이 아닐 수도 있어요. 음악이나 조각,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이라면 자기가 지금까지 해온 방법 말고 자기만의 노하우를 만든다거나 하는 방식으로 응용할 수 있겠죠. 내가 옳은 생각, 바른 생각만 한 게 아닌지 툭 찌르는 힘만 있어도 의미가 있는 책일 거예요.


‘시선 옮기기’ 장에서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방식으로 글이 나와요.


처음에 ‘꼬리’가 책의 콘셉트였어요. 책 한 권을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에세이, 하나하나가 독립적이면서도 그게 또 다음 글로 절묘하게 연결되게 써보고 싶었죠. 계속 가다 보니 지루해져서 아예 생각의 그릇을 여러 개 보여주는 방식으로 바꾸었어요. 제가 생각을 어떻게 찾는지 들여보니까 열두 개 정도의 그릇이 마련되더라고요. 이게 전부는 아니겠지만 이런 식으로도 글감이나 아이디어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을 던진 거죠.


형식도 조금씩 달라요. 에세이의 느낌이 강한 글이나, 우화처럼 쓴 글도 있고요.


우화나 단상, 담담한 에세이, 여러 가지를 모아서 브레인스토밍 에세이라는 이름을 붙여 본 건데, 굳이 브레인스토밍이라는 단어를 강조할 필요는 없어요. 브레인스토밍이라는 게 여러 사람이 모아가면서 추출해가는 과정이라면 제 머릿속 여러 생각이 싸우고 논쟁하고 기대면서 추출해가는 과정이 또 하나의 브레인스토밍이라고 본 거죠. 사람의 생각 자체의 결과가 아니라 생각의 과정을 조금 더 볼 수 있는 내용을 쓰고 싶었어요.


책에서 소개한 열두 가지 그릇의 공통점은 뭘까요?


다 관찰이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 열두 가지가 다 관찰이고, 어떤 사물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뚫어지게 보는 거죠. 뚫어지게 보다 보면 정말로 구멍이 뚫릴 때가 있어요. 그때 본 것, 내가 구멍을 뚫은 것이 아주 좋은 발견일 수도 있고 허접스러운 발견일 수도 있는데, 무엇이든 해봐야 어떤 발견인지 알 수 있어요.

 

 

누구나 다 딴생각을 하니까요


책을 읽으면서 생각을 뽑아내는 과정이 집요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창의성 있는 사람, 혹은 크리에이티브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패턴이 과장돼서 알려졌다고 생각해요. 세월이 쌓이고 경륜이 쌓이면 남들보다 요령 있게 생각을 파는 방법을 아는 거지, 누구도 파지 않고 쑥쑥 나오는 생각은 없어요. 일하면서 계속 파다 보면 뭔가를 만난다는 확신은 있죠. 그런 경험을 자주 했으니까요. 항상 완벽하게 만족할 만한 금덩이를 발견하지는 못해요. 모든 글을 그렇게 쓰기 원하면 그 사람은 파기만 하다 죽을 거예요. 어떨 때는 구리 정도로도 나름 쓸만한 발견이라고 만족하고 양도 채우는 건데, 어찌 됐든 끌로 파고 돋보기와 쌍안경 들고 생각을 찾아 헤매야 한다는 거죠. 보다 보면 남들이 보지 못한 뭔가가 눈에 걸려드는 순간이 와요.


뭔가 보였을 때의 희열이 재밌죠.


크리에이티브한 일을 하는 사람이 그 힘든 일을 포기하지 않는 힘이 거기에 있어요. 앉아서 계속 파다가 뭔가를 보는 희열을 발전하고 확장시키는 거죠. 평가가 안 좋을 수도 있어요. 책을 쓰고 글을 써서 그게 상을 받고 베스트셀러가 되는 건 다음 문제고요. 계속 파다 발견하는 희열을 몇십 년 느껴 보니 결과와 상관 없이 이제는 안 하면 심심한 습관이 된 것 같아요.


딴생각을 장려하지 않는 세상이에요. 창의성은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창의적인 생각을 발견할 때까지의 시간은 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직업적으로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딴생각을 하게 되어 있는데, 직업이 아닌 사람이 딴생각을 하기에는 힘들죠. 시간적으로 여유도 없고, 딴생각이라는 단어가 가진 불순함 때문에 사회적으로 환영 받지 못하는 단어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창의성과 발상 전환은 또 중요하다고 강조해요. 딴생각이 결국 창의성과 발상 전환이거든요. 딴생각은 ‘아니오’라고 말하는 거예요. 정답에 대해 자꾸 아니라고 이야기하는 게 딴생각을 불러내요. 창의성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정답에게 자꾸 아니라고 이야기하면서 의심하고 부정하고 오답을 만들어내는 과정이에요. 창의성과 발상전환은 개념어라 어려워요. 딴생각은 쉽죠.누구나 다 딴생각을 하니까요. 조금 쉽게 실천할 여지가 있지 않을까요?


작가와 카피라이터라는 두 가지 소개가 따라다녀요. 두 직업 모두 크리에이터라는 명칭으로 묶일 수 있지 않을까요?


작가는 크리에이터보다 좀더 묵직한 뭔가가 있는데, 저는 다른 작가들의 깊이감은 못 따라가요. 그 정도의 작가도 못 되고요. 작가에 여러 종류가 있다면 약간 가벼운 카테고리도 있을 수 있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정도의 자리를 차지하려면 제 색깔을 계속 그쪽으로 만들어나가기 위해서라도 생각을 파는 작업을 계속 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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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세상에 보탬이 되는 일


최근 TV프로그램 <인문학 살롱>에 출연하시기도 했죠. 쓰는 삶을 살면서 동시에 말하는 기회가 늘어났어요. 글과 말 사이에 차이점이 있을까요?


무대에서 마이크 잡고 이야기하는 게 4,5년밖에 안 됐는데요. 이전에는 많은 사람 앞에서 무언가 이야기하고 설명하는 게 제 인생과는 전혀 상관 없다고 생각했어요. 책을 자꾸 쓰니까 출판사의 권유도 있고 해서 강연을 처음 했었죠. 정말 힘들다, 다신 안 해야지 했는데 강연 끝나고 들은 사람 중에서 다시 하자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말을 잘 못 해도 어떤 진심이 보일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재밌게 잘 이야기하는 사람만 강연을 하는 게 아니구나, 그래서 준비한 걸 한두 번 하다 보니까 또 들어오고 또 들어오고 해서…


꼬리에 꼬리를 물었네요. (웃음)


지금은 카피라이터인지 작가인지 강사인지 모를 정도로 요청이 늘더라고요. (웃음) 그런데 두 개 삶이 크게 다르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책은 조금 더 정밀하게 많은 사람과 대화하는 거고, 강연은 책보다는 덜 정교하지만 적은 숫자들의 사람을 만나니까 가깝고 친밀하게 금방 피드백이 오더라고요. 이런 만남이 작가에게는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 사람의 표정을 직접 느껴보면서 내 이야기나 글에 대해서 확신을 가지기도 하고, 길이나 답을 얻는데 도움이 돼요.


주로 무슨 내용으로 강연하시나요?


첫 번째가 발상 전환. 기업체에서 많이 요구하고, 두 번째로 글쓰기. 글쓰기는 여러 곳에서 요청이 와요. 처음에는 카피라이터가 자꾸 일 년에 한 권씩 책을 내니까 인터뷰하면서 대부분 ‘이런 생각은 어떻게 하냐’를 물어보더라고요. 그때마다 요령껏 답을 했는데 몇 번 하다 보니 정리가 되고, 그걸로 발상 전환 강의가 나온 거죠.


지방 선거가 다가오고 있어요. 정치 카피 요청을 많이 받으셨죠?


어쩌다 보니까 그쪽으로 하려던 건 아닌데 많이 하게 됐어요. 개인적인 이유는 부채감이죠. 광고판은 내가 살기 위해서는 남을 죽여야 하는 정글 같은 세상이잖아요. 남을 자르고 내가 올라서면 좋아서 밤새 술먹는 생활을 해왔어요. 그러다 노무현이라는 사람을 알게 되면서 과연 잘 살고 있는 건지 의구심이 들고, 사람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서 이 세상에게 배운 능력을 조금 더 사람 사는 세상으로 보탬이 될 수 있겠다 싶었어요. 나중에 나이가 들면 해야지 했는데 이제 할 수 있는 나이가 됐고, 어느 정도 영향력 있는 광고쟁이가 됐죠. 프리랜서여서 자유롭게 일감을 받을 수 있는 것도 있고요.


프리랜서가 아니었을 때는 광고 카피를 만들면서 부대낌이 있었을 것 같아요. 광고 카피는 결국 물건과 상품을 포장하는 건데, 인간성과 괴리된 상품을 팔 때도 카피를 써야 하는 순간이 있었을 거고요.


많았죠. 월급 받고 일할 때는 원하는 상품만 할 수 없고, 그러려면 사표 내고 나가야죠. 악성 광고주도 많았어요. 주로 돈을 많이 주고 전문가에게 광고를 맡긴 다음 그 사람의 말을 쓰지 않고 자기 말을 섞어놔요. 그래서 아무 것도 아닌 광고, 이상한 광고를 만들 때가 많죠. 그럴 때면 하자는 대로 해줬어요. 그저 제가 한 광고라고 떠벌이고 다니지 않았을 뿐이에요.


4,5 년 전부터 ‘내 이야기가 마렵다’는 표현을 자주 썼어요. 책이 계속 나왔는데, 여전히 ‘마려운 이야기’가 있나요?


광고장이는 남의 이야기를 대신해주는 사람이니까, 못했던 이야기를 분출하려는 듯이 글을 쓸 때가 있었어요. 그게 10년 정도 됐거든요. 지금은 마려워서 막 나오려는 글을 담기보다 마려움 자체가 습관이 된 것 같아요. 글을 쓰는 것 자체가 살아가는 이유가 됐어요. 그래서 계속 써야 하죠.


어떻게 쓰세요?


앉아서 연필 들고, 종이 깔아놓고요. 커피에 대해 쓴다면 계속 커피를 들여다보고 관찰하고요. 잘 안 풀리면 ‘커피는 바쁘다’ ‘커피는 노랗다’라고 아무 생각 없이 쓰는 거예요. 계속 쓰다가 뭔가 있을 것 같으면 거기를 파고 들어가서 찾아내요. 어느 정도 이야기가 나올 것 같아, 그럼 그걸 또 수정해요. 그 다음날 또 고치고요. 종일 하는 일이 책상에 앉아 있는 일이에요.


시쓰기랑 통하는 면이 있네요.


다 똑같을 걸요. 시뿐만 아니라 음악도 그럴 거고, 모든 예술이나 뭔가를 만드는 분야는 똑같을 거예요. 특히 글자 형태로 무언가를 표현하는 사람은 사물이나 현상이 하는 이야기를 더 많이 들어야겠죠. 이야기를 그대로 옮기는 거니까요.


술자리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셨어요. 요새도 술 자주 드시나요?


술 이야기를 자주 하니까 엄청 마시는 줄 아는데 그건 아니고요. 강의 때 많이 하는 이야기지만 술맛의 10%는 그 술을 빚은 사람이고 나머지 90%는 마주앉은 사람이에요. 술이 맛있는 게 아니라 그 사람과의 대화, 눈빛, 사람에 취해가는 게 술자리라고 생각하는데, 결국 다 핑계겠죠. 또 하나의 이유는 하루에 집중해서 뭔가 발견하고 확장시키는 시간은 6시간이 끝이라고 생각해요. 빠르면 아침 여섯 시 출근해서 열두 시 되면 오늘 할 일을 다 한 거예요. 오후에 계속 앉아 있어봤자 뇌가 활발하게 일을 못해요. 앉아있으면 스트레스만 쌓이고 오히려 슬럼프를 불러오는 요인이라고 생각해서 풀어놓는 거죠. 그렇다고 완전히 풀어주진 않아요. 어떤 고민거리를 가진 채로 술자리에서 느슨하게 풀어놓으면 생각이 발효가 잘 돼서 뭔가 던져줄 때가 있어요.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에는 핑계죠. (웃음)


다음 책으로 생각해 놓은 주제가 있으시다면.


늘 다음 계획이 없어요. 막 살아도 잘 살 수 있는 걸 자꾸 보여주는 게 목표라면 목표일 거예요. 『틈만 나면 딴생각』에 들어있는 메시지나 주제도 다 아는 이야기지만 어떻게 담느냐의 문제고, 알고 있었던 걸 다시 확인시켜주는 과정을 담았어요. 다음 책을 쓴다면 남들이 쓰지 않았던 그릇을 찾아서 써볼 것 같아요.

 

 

틈만 나면 딴생각정철 저 | 인플루엔셜
시선 옮기기, 국어사전 펼치기, 발걸음 옮기기, 온도 높이기 등 12가지 꼬리를 물고 펼쳐지는 딴생각들이 무려 184개나 담겨 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유진 “계속 ‘이슈파이팅’하는 글을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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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 스무 살이 된  『아빠의 페미니즘』의 저자 유진은 J라는 인물을 소개한다. 저자 유진의 아빠이자 ‘과도기적 남성상’인 J는 딸을 “멋진 사람으로 키우겠다. ‘여자’로 키우지 않겠다.”(40쪽)고 선언하는가 하면, 딸에게“네가 성(姓)을 버렸으면 좋겠다. 나에게 속한 사람으로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47쪽)고 말하고, “섹스도 임신도 결혼도 네가 원해서 하는 것이어야 한다.”(143쪽)고 말한다. 이 사회, 불평등한 세계를 살아갈 딸을 둔 아빠로서 J는 세상이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에 끊임없이 질문하고 반대한다. 그리고 그는 자신을 49점이라고 말한다.


“J는 힘든 직업”이다. 맞는 말이다. 가부장제가 말하는 정상적인 가족형태를 딸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아서 J는 아내에게 “사랑한다, 이혼하자.”고 해야 했다. 바뀌지 않는 세상에 딸을 살게 해 미안하다고 거듭 말해야 했다. 그리고, “그렇지만 진아, 고통을 감수하며 살지는 마라. 숨이 모자라도록 달려가지는 마라. 너의 생명을 깎아 세상을 바꾸려고 하지는 마라.”(178쪽)라고 부탁해야 했던 것이다.


“페미니즘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의 책들이 더 많아지는 것이 옳다”는 생각으로 ‘엄마의 페미니즘’보다 ‘아빠의 페미니즘’을 먼저 이야기했다는 저자 유진. 당부하건대  『아빠의 페미니즘』은 ‘아빠가 허락한 페미니즘’이 아니다. 이것은 ‘딸이 명령하는 페미니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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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부터 수다를 멈출 수 없는


표지가 재미있어요. 거울을 표현한 것인데요. 저자가 표지 디자인도 직접 하셨죠?

 

기술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은박으로 후가공 처리를 한 거예요. 나중에 찍는 거죠. 보통은 이렇게 디자인하지 않는데요. ‘미러링’을 상징하고 싶었어요. 역지사지가 안 되는 사람들을 위해서 서비스처럼 해주는 게 미러링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미러링이 혐오표현을 널리 퍼트리기 위한 게 아니잖아요. 결국은 비춰봐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죠. 이 책이 일종의 거울이 되어서 딸들에게 그리고 딸을 둔 아버지들에게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떤 모습인지를 비춰 생각해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비춰본다는 것은 일차적으로 자기 자신을 말씀하시는 거죠?


네, 자신의 지금까지의 삶과 앞으로의 삶을 비춰봐야 한다는 거고요. 개인이 모여서 공동체가 되고 사회를 이루는 거니까요. 더 나아가서는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 되었으면 한다는 거창한(웃음) 의도도 조금 있어요.


전에 썼던  『책구경』 과  『지드래곤을 읽다』도 제가 본문과 표지 디자인을 다 했는데요. 저는 이미지가 들어간 디자인을 별로 선호하지 않아요. 이미지를 다루는 책이라면 굉장히 중요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텍스트에 집중할 수 있는 디자인이 더 좋다고 생각해요. 실은 표지부터 수다를 멈출 수 없는 컨셉이랄까(웃음), 그렇습니다.

 

세 번째 책인데요.  『아빠의 페미니즘』에서는 책에 관한 이야기를 했던  『책구경』과 지드래곤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지드래곤을 읽다』와는 또 다른 이야기를 하셨어요. 이 책의 이유가 궁금했어요.


주제가 달라서 많이 다르게 느껴지실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저는 기본적으로 유행에 굉장히 민감한 사람이에요. 지드래곤도 그 당시 가장 잘 나가고, 제 기준에서는 가장 멋졌던 가수와 저의 이야기를 엮은 거였고요.  『책구경』 도 책이 매개체가 되긴 했지만 촛불, 탄핵, 대선으로 이어지는 대한민국의 정치 흐름에 대해서 관찰하고 기록한 것이었어요. 페미니즘 역시 이야기하는 분들은 계속해서 있어 왔지만 대중적으로 이렇게 크게 이야기 되고, 대중서적이 많이 쏟아져 나온 건 최근의 일들이잖아요. 그런 시간이 제게도 많은 영향을 줬어요. 저는 오늘을 계속 사는 사람인 것 같아요.

 

특히 궁금한 것이 ‘엄마’보다 ‘아빠’를 먼저 쓰셨다는 점이거든요. ‘엄마의 페미니즘’을 쓸 계획에 대해서도 책에 여러 번 언급하셨는데요. 그럼에도 왜 아빠가 우선이었던 건가요?


최대한 낯설게 하고 싶었어요. 역설적이지만 가장 낯선 주제, 가장 낯선 등장인물이 나왔을 때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부분도 있어요. 전형적이지 않기 때문에요. 지금 페미니즘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요. 아직 주목하지 않은 지점이 무엇일까, 나오지 않은 시선이 무엇일까, 이런 생각을 했거든요. 엄마와 딸의 관계보다 아빠와 딸의 관계가 좀 더 낯선 부분이 있는 것 같고요. 그래서 ‘그 많던 ‘딸바보’는 다 어디로 갔을까’, ‘‘딸바보’는 과연 아름다운 관계일까’라는 질문을 한 거예요. 

 

‘J’가 끝까지 저항 하면서 이 책을 쓰는 것에 반대했다고요. 책이 나온 후 반응은 어땠나요?


저는 아직 투표권도 없어요. 아직 독립을 못한 상태예요.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아서 아빠 모르게 책을 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에요. 그러고 싶지도 않고요.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끝까지 반대를 했던 건 이것을 굳이 책으로 내는 것은 위험하지 않겠니, 다치지 않겠니, 이런 걱정이었던 거죠. 기본적으로 그 모든 이야기가 다 응원과 지지를 전제로 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책이 나오고 난 반응은 딱 이런 거예요. “나 이제 밖에 나가서 어떻게 해야 해, 뭐라고 해야 해?”(웃음)

 

책이 주는 무게라는 게 있으니까요.


물론 J는 제가 만든 캐릭터고요. 굳이 이니셜을 쓴 이유도 그런 것이고요. J라는 사람, 저의 아빠라는 존재, 그 특정한 인물이 완벽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건 무의미한 논의라고 생각해요. 그럴 수도 없고요. 만약 그런 질문이 온다면 제 이야기로 받고 싶어요. 저도 완벽한 사람이 아니고요. 완벽해서 글을 쓰는 게 작가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작가가 꿈인 건(지금 작가라고 말해도 되는 건지 모르겠어서 꿈이라고 표현하는 건데요.) 작가가 완벽한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읽고, 쓰고, 말하는 사람이기 때문이에요. J 역시 과도기적인 남성상이기 때문에요. 그런 정도에서 이해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J를 과도기적 남성상이라고 했는데요. 조금 더 설명을 해주세요.


솔직한 표현이라고 생각해요. 자신이 살아온 세상과 자신의 딸이 살아갈 세상이 많이 다르니까요. 부모들, 어른들이 그 괴리나 차이에 대해 실감하게 되는 순간이 있잖아요. 그 순간에 차이를 외면하고 회피하면 무심하고 무책임한 사람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요. 그걸 직시하고 고민하는 순간 해줄 수 있는 말이 있다는 생각이 들 거예요. 사실은 해줄 수 있는 게 없구나, 하는 깨달음도 함께 찾아오긴 하지만요. 그 괴리감과 일종의 사명감이 동시에 들겠죠. 내가 지금껏 살아온 세상에 나의 딸을, 다음 세대를 머물게 해서는 안 된다는 사명감일 텐데요. J는 그 사이에 있는 존재라고 생각해요. 과도기적 남성상은 그런 의미예요. 궁극적으로 이상적인 세계에서는 페미니즘이 필요 없을 거라 생각해요. 그런 걸 배운 때도 있었지, 하는 식이 될 거라 상상하는데요. 그때가 되면 J라는 존재도 기록으로만 남겠죠.

 

 

J는 꽤 힘든 직업인 것 같아요


J는 스스로를 49점으로 평가해요. 또 J로 사는 것을 무척 힘들어하기도 하는데요. 충분히 짐작 가능하죠. 힘든 일이잖아요.


흔히 표현하는 사회생활이란 걸 하다 보면 비위가 뒤집히는 말과 상황, 사람들이 있잖아요. 거기에 휩쓸리지 않기가 어렵고요. 바깥에서 술자리를 한 후 J로 돌아오는 시간이 J에게는 에너지가 많이 드는 일일 거예요. 사회생활만 해도 힘든데, 술자리만 가도 힘든데 돌아오는 것까지 하려니 힘들죠. 그런 힘듦이 있었고요. 사실 최근 몇 년 동안은 J의 사회생활에도 약간 변화가 있어서요. 경력단절 남성이라고 보시면 되거든요. 딸의 교육에 힘쓴 시간이 몇 년 있었기 때문에 그런 일이 많이 없기는 했어요. 하지만 ‘사랑한다, 이혼하자’라는 글 경우처럼 이혼을 선언한다든지, 할 때는 힘들었겠죠. 실제 이혼을 하느냐와 상관없이 가족 안에서 그것을 선언하는 것도 실은 J가 주변의 모든 시선을 감당하고 있는 거잖아요. 모든 사람은 자신이 가장 힘들다고 생각하고, 저는 그게 사실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렇게 생각해도 J는 꽤 힘든 직업인 것 같아요.

 

내 생일 전날 밤, J는 나의 엄마에게 속삭였다고 한다. “사랑한다, 이혼하자.”

J와 나의 엄마는 평범한 가족의 평범한 행복으로 포장된 가부장적 구조의 가족 형태를 내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러나 이혼 자체가 목적은 아니므로, 이 그지 같은 세상의 질서에서 조금씩 벗어나려 한다고 덧붙였다.(163쪽)

 

저자가 평가를 하면 어때요? 저자가 보기에 J는 몇 점인가요?


굉장히 어려운 질문인데요.(웃음) 가족에게 어떻게 점수를 매기겠어요. 그렇지만 페미니즘의 관점으로 당신은 몇 점이냐고 물었을 때 J 스스로는 자신을 49점이라고 했잖아요. 제가 바라볼 때 J로서 그는 51점이라고 생각해요. 절반을 넘지 못하는 점수는 너무 짜다는 생각이 들고요. 그의 노력을 아니까요. 또 그 결과가 저라고 볼 수 있는데 저는 J의 말 덕에 페미니즘을 알았어요. 물론 J는 페미니즘 책을 저보다 더 읽은 사람도 결코 아니지만 어쨌든 시작을 하게 해준 사람이 J예요. 때문에 저는 J를 100점이라고 말할 수는 없으나 49점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가능하다는 의미에서 51점을 주고 싶어요.

 

J가 조금 다른 아빠라는 걸 언제 처음 느꼈나요?


학교를 안 가겠다고 선언했을 때 주변에서 많이 보인 반응이 “넌 부모를 잘못 만나서, 이상한 말을 많이 듣고 자라서 그렇다.”였어요. 그런 말을 실제로 해요, 사람들이. 선의로 그런 말을 하는데요. 저는 한 번도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오히려 그런 말을 나누지 못하는 관계가 더 이상하다고 생각하고요. J쯤도 못 되는 어른들이 훨씬 더 이상해 보여요. 왜냐하면 J는 이상한 존재가 아니잖아요. 49점도 못한다면 그건 정말 이상한 게 아닌가, 생각하고요. 좀 다르다는 건 느끼는 순간들이 몇 번 있었지만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자기만의 방’ 에피소드가 인상적이었어요. 진짜 남들과는 다른 J의 면모를 엿봤어요. 안방을 딸에게 내줬잖아요. 본인은 가장 작은 방을 택하고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생각해요.


꽤 어렸을 때부터 제가 안방을 썼어요. 공간이란 게 눈에 보여요. 매일 감각하는 것이고요. 그러면서도 의식하기는 쉽지 않죠. 거실에 부여된 아버지의 권위와 안방에 부여된 정상적인 결혼 생활의 형태랄까 그것이 굉장히 견고해서 깨기가 쉽지 않잖아요. 그러니까 이건 혁명인 거죠. 아파트에서 이룰 수 있는 최고의 혁명이에요. 그 꼭지의 마지막 문장이 “가장 작은 방에서 J는 행복하다고 했다.”(72쪽)거든요. J는 그렇게 해서 마음이 편안했던 거예요. 저는 지금껏 한 번도 방문을 닫아 두는 것에 대해 부모님과 갈등 있었던 적이 없어요. 서로 존중을 하면 배려도 하게 되는 거죠. 지금도 제가 안방을 쓰고 있는데요. 조만간 월세를 내야 합니다.(웃음) 경제적으로도 독립해야 하니까요.

 

J는 딸이 독립적인 한 인간으로 사는 것을 무척 중요하게 생각하고, 대했어요. 실제 그런 삶을 사는 입장은 어땠을까요? 그것 역시도 힘든 일이잖아요. 때로는 어떤 선택을 누가 해줬으면, 할 때도 있으니까요.


큰 선택이라면 큰 선택이죠. 힘들 때도 있고요. 하지만 저는 제가 대단한 경우라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모든 사람들이 매 순간 큰 결정을 내리고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학교에 가지 않는 선택을 했다고 해서 이게 더 큰 결정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대학을 간다고 결정하는 것도 굉장히 큰 결정이죠.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하는데요. 저는 그걸 즐기는 방법을 찾지 못하면 항상 괴로울 거라고 생각해요. 즐거워진 부분도 있고요. 좀 더 즐기려고 노력하는 부분도 있어요.

 

쓰면서 걱정한 건 없었나요? 오해하지 않았으면 하는 내용이 있는지 궁금해요.


책 얘기를 먼저 하면요. 페미니즘이 돈이 된다고 말들 하잖아요. 그건 굉장히 큰 오해예요. 돈이 안 됩니다. 이 책을 낼 때도 첫 번째 반응이 안 팔린다는 내용이었거든요. 도서관에 납품을 하잖아요.  『책구경』 은 굉장히 인기가 많았거든요. 그런데 이번 책은 같은 저자의 책인데도 ‘페미니즘’이 들어가니까 비교가 안 되는 수준으로 납품양이 줄더라고요. 또 제 애기를 하자면요. 한편에서 제게 ‘금수저’라는 이야기를 해요. 그것에 대한 얘기를 J와 나눈 적이 있는데요. J는 금수저 아니라서 미안하다(웃음)고 말했어요. 잘 닦은 놋수저쯤 아니겠느냐고요. 너무 반짝반짝 하니까 금수저로 보이나보다, 라면서 넘어갔는데요. 분명히 사랑 받고 자랐고, 부족함 없이 자랐지만 흔히 말하는 금수저라고 할 것은 없어요. 제 가장 큰 재산은 책이 멀리 있지 않았던 거고요. J의 말들, 엄마의 말들이 재산일 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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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발적 초졸 여성


“단지 읽고, 쓰고, 말하는 사람이고 싶다”(187쪽)고 하셨잖아요. 이 한 줄로 저자의 정체성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앞서 ‘계속 오늘을 사는 사람’이라는 말도 하셨는데요. 그렇다면 어떤 것을 읽고, 쓰고, 말하고 싶으세요?


계속 ‘이슈파이팅’하는 글을 쓰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 빨리 쓰는 게 저한테는 굉장히 중요하죠. 나한테는 중요한 이슈인데 이미 지나가버린 경우도 있으니까요.

 

책을 직접 만들겠다고 생각하신 것도 그런 이유인가요?


그런 영향도 있어요. 거치는 곳이 많으면 시간도 더 많이 들고, 비용도 더 많이 들잖아요. 어차피 국내에서는 아주 큰 출판사에서 프로젝트로 미는 경우가 아니면 안 팔리는 것은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차라리 조금 덜 팔아도 이런 형태가 낫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읽고, 쓰고, 말하기가 쉽지 않은데요. 그것은 셋 다 잘하기 쉽지 않다, 라기 보다 셋 중 하나라도 잘하기 쉽지 않다, 에 더 가까운 것 같아요. 제 경우 책을 읽는 나이에 가깝지 쓰는 나이라고는 보통 생각하지 않잖아요. 첫 번째 책을 17살에 썼으니까요. 어린 나이죠. 그때도 그걸 알았어요. 내가 너무 빨리 쓰고 있다는 걸요.(웃음) 하지만 그때도 제대로 읽으려면 써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또 제대로 말하려면 써야 하지 않나, 생각했죠. 이 세 가지는 연결되어 있고요. 그 중 하나라도 빠지면 완전하지 않은 구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 세 가지의 페달을 계속해서 밟는 게 되게 즐거워요.

 

읽는 게 끝나야 쓴다, 고 생각하기 쉽죠.


다음 단계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런 생각 때문에 저처럼 나이가 어린 사람들은 받아들이는 것에만 집중하게 되고, 나이가 든 사람들은 공부를 하지 않게 되는 것 같아요. 단계가 있다는 생각에서 발생하는 문제라고 봐요.

 

굳이 따지자면 조금 다른 길을 가는 것에 불안감이 덜하신 편 같아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불안감이 없다기보다 불안을 느끼는 지점이 약간 다른 것 같아요. 불안감은 굉장히 커요. 제가 학교를 안 다녔어요. ‘자발적 초졸 여성’이라고 적었는데요. 그 선택도 사실은 사람들이 이해하는 보통의 선택은 아니죠. 하지만 그럴 때마다 자주 하는 이야기가 “솔직히 말해봅시다, 시키는 대로 공부하고 대학 가면 취업이 잘 되나요, 창업을 할 수 있나요, 과연 그렇게 하면 삶이 평탄한가요?”예요. 어떤 길을 가도 험난하다면 내 마음 가는대로 가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반대로도 말할 수 있잖아요. 어차피 똑같이 망할 거면(웃음) 남들 다 하는 선택을 하는 게 조금 더 안정감을 느낄 수도 있을 텐데요.


제가 주로 그래요. 같은 생각에서 다른 결과가 나와요.(웃음) 이야기를 나누다가 사람들이 끝에 가서 “음?” 하는 게 있어요. 그런데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제가 특별하거나 대단한 사람이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아요. 그렇게 보이는 것도 싫고요. 그건 오해를 받는 거니까요. 그게 아니라 그냥 제 자신한테 솔직하고 싶은 마음이에요.

 

남들한테 어떻게 보이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닌 거죠.


표지의 거울은 남들의 눈에 어떻게 보이느냐 보다 먼저 내 눈에 내가 어떻게 보이는지, 내 눈에 다른 사람이, 이 사회가 어떤 모습으로 보이는지를 비추어보고 바라보는 게 먼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담은 것이기도 한데요. 저는 악플, 더 나아가서는 좋은 말도 많이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해요. 상처를 받는다면 남이 내게 어떤 말을 하고 어떻게 보는지, 하는 사실에 상처 받는 게 아니라 내가 아직도 이 모양이라는 사실에 상처 받는 게 더 맞지 않나 싶고요. 저도 제 거울을 그런 데에 쓰고 싶어요.

 

 

책 더미에서 태어난


많은 도구들이 있는데요. 그 가운데 읽고, 쓰고, 말하는 것, 책이라는 도구를 선택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숨길 수도 없고, 숨길 마음도 없는데요. J가 출판을 하던 사람이에요. 지금은 책을 거의 내지 않지만 지금까지 계속 출판사를 운영하던 분이고요. 엄마는 작가 일을 하시는 분이에요. 저는 책 더미에서 태어났다고 표현하는데요. 책 더미에서 자라왔고, 그 영향이 컸을 거라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그렇기 때문에 일부러 다른 걸 선택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해서 다른 분야에 관심을 쏟아보려고 했었는데요. 문득 왜 그래야 하지, 싶더라고요.(웃음) 지금까지 그런 환경에서 살았고, 한 축이 될 만한 나의 재산인데 말이에요.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해지네요.


구체적인 이야기는 할 수 없는 게 미래를 알 수 있는 사람은 없잖아요. 제가 많이 받아온 압력 중 하나가 “그러면 너는 커서 뭐하고 살래?”, “중학교 안 가면 대학은 어디 갈 거야?” 같은 거였거든요. 그때마다 의아했어요. 미래를 모르기는 모두 마찬가지일 거라 생각하고요. 저는 별로 내일을 뒤쫓으면서 살고 싶지 않아요.

 

지금 관심이 있는 것은 뭔가요?


아직 온 신경은 이번 책에 있어요. 여전히 페미니즘이 제게 가장 큰 이슈이고요. 이 책이 저한테는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예요. 다만 조금 더 크게, 한 발짝 뒤로 가면 페미니즘에 관심을 갖게 된 것 역시 앞으로 난 어떻게 살아야 하지, 라는 물음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요. 사회가 어떻게 흘러가는가에 대해 계속 관심을 가지고 있죠.


『지드래곤을 읽다』가 제 첫 책인데요. 거기에 두 가지 축이 있어요. 하나는 지드래곤이라는 인물이고요. 하나는 한국고전이에요. 조선시대의 사람들, 정약용, 박지원, 이런 사람들의 글인데요. 그들의 글에도 관심이 많아요. 한국고전을 계속 공부하고, 관련 책을 계속 내고 싶은 욕심도 있어요.

 

이 책을 읽지 않은 독자 분들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으세요?


이 책은 ‘아빠가 허락한 페미니즘’이 아니에요. ‘딸이 명령하는 페미니즘’이죠. 딸이 주체고요. 딸이 쓴, 딸에 관한 책이에요. 딸을 위한 책이죠. 아빠도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고요. 아빠는 페미니즘을 공부해야 한다는 이야기예요. 그것은 가능의 영역이 아니라 당위의 영역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야만 하죠. 그럴 수 있느냐 하면 잘 모르겠지만 그래야 하는 건 맞아요. 미심쩍은 부분이 있다면 책을 읽어봐 주셨으면 좋겠어요. 딸들이 먼저 읽고, J를 통한 제 말을 같이 공유하고, 그 다음에 자신의 아빠에게 건네면서 이 거울을 통해 서로를 비추고 대화 나눌 수 있는 계기가 되면 더 바랄게 없을 거예요.


 

 

아빠의 페미니즘유진 저 | 책구경
딸을 아끼고 사랑하며 염려하는 마음이 페미니즘이라는 것을 ‘아는 아빠’들이 스스로 페미니스트임을 선언하며, 목숨 걸고 페미니스트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빠미니즘 ; 아빠의 페미니즘’이라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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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스토리] 이승엽, 여전히 야구가 너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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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엽을 만나기 전, 호칭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됐다. 이승엽 전 선수? 이승엽야구장학재단 이사장? KBO 홍보대사? 이승엽은 쿨하게 “이승엽 씨”라고 불러달라 말했지만 ‘이승엽 선수’라는 말이 불쑥불쑥 튀어나왔다. 2012년 삼성에 복귀한 뒤 3차례 통합 우승, 프로 선수로서 이례적으로 은퇴 시점을 예고했고, 지난해 KBO 리그 최초 은퇴 투어의 주인공이 된 이승엽. 그는 한동안 ‘시간이 좀 늦게 흘러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나. 36. 이승엽』을 썼다.

 

프로야구가 생긴 1982년 이승엽은 일곱 살이었다. 공 던지고 치는 게 마냥 좋았던 꼬마 이승엽의 이야기는 1회 초였다. 1회부터 시작해서 9회, 연장전까지 들어가는 이승엽의 야구 일대기. 이승엽은 인터뷰 내내 책 뒷날개에 써 있는 문장 “나는 여전히 야구가 너무 좋다”를 되뇌었다. 그는 너무 가득 차기 전에 쉼표를 찍을 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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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선수로서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책 출간과 더불어 얼마 전 이승엽야구장학재단 출범식을 했다. 어떻게 보면 야구 인생의 후반전이 시작됐다.

 

좋은 의미를 갖고 출발한 일이다. 그동안 사랑을 많이 받았다. 내가 보탬이 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참여하려고 한다. 모범이 되는 재단을 만들고 싶고 투명하게 꾸려나갈 계획이다.

 

『나. 36. 이승엽』목차가 재밌다. 1화가 아닌 1회부터 시작해서 9회, ‘이승엽의 야구 수업’ 연장전까지 펼쳐진다.

 

출판사에서 공을 많이 들였다. 첫 책이라서 그런지 부담감이 컸는데 생각한 대로 잘 나온 것 같다. 사실 책을 냈다는 게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엊그제 아버지를 만나 책을 드렸는데 마음이 조금 이상했다. 영광스럽기도 하고 감사한 마음이 가장 많이 들었다.


야구 팬들이 가장 기다린 책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감사하다. 바라건대 진솔하게 읽어주셨으면 좋겠다. 수많은 이야기가 나오지만 한 가지만이라도 기억해주셨으면 한다. 뭐가 됐든 ‘이건 정말 좋은 말이다’라고 생각할 만한 것이 있다면 좋겠다.

 

두 가지가 기억에 남는다. “흔히 작은 성공을 통해 자신감을 얻으며 한 걸음씩 나아가는 게 좋다고들 하지만 나는 반대다. 어차피 해야 한다면 어려운 일에 먼저 덤빈다.”(37쪽), “아버지는 내가 야구를 시작할 때부터 ‘야구 못하는 선배들에게 더 잘하라’고 가르쳤다.”(120쪽)

 

책을 쓰면서 내가 참 좋은 말을 많이 들었구나, 주변에 좋은 사람이 참 많다는 걸 절실히 깨달았다. 나는 글쓰기 울렁증이 심한 편이라 도움을 많이 받았다. 두 아들 은혁이랑 은준이는 내가 밤에 책을 쓰고 있으면 발걸음마저 조용하게 걸었다. 이제 많이 놀아줘야 한다.(웃음)

 

제목을 마음에 들어 하는 독자가 많더라.

 

나 역시 만족스럽다. 출판사에서 후보를 몇 개 보내줬는데, 아무래도  『나. 36. 이승엽』이 가장 눈에 들어왔다. 요즘은 제목이 긴 책이 많이 나오던데, 운동선수가 쓴 책이라서 그런지 짧은 게 더 임팩트 있을 것 같았다. 출판사와 여러모로 잘 맞았다.

 

집필은 어렵지 않았나?

 

머리에 쥐가 나는 줄 알았다.(웃음) 야구는 몸으로 하는 스포츠인데, 글은 가만히 앉아서 써야 하지 않나. 한 시간 정도는 괜찮았는데 그 이상이 되면 몸이 적응이 안 돼서 그런지 어렵더라. 막판에 팩트 체크를 할 때는 다시는 책을 못 쓰겠다 싶을 정도로 고단했다. 인쇄되면 끝이니 심사숙고한다고 했는데 잘했는지는 모르겠다.

 

손석희, 박찬호, 김제동, 유재석에게 추천사를 받았다. 박찬호의 추천사는 특히 길었다고 들었다.


출판사에서 많이 줄여주신 걸로 안다.(웃음) 그간의 인연을 계기로 덜컥 부탁했는데 모두들 흔쾌히 써주셨다. 짧게 써줘도 고마웠을 텐데 네 분 모두 원고를 보내 달라고 요청하셨다. 읽고서 써야지 어떻게 쓰느냐며…. 특히 제동 형의 글을 읽고 나서 굉장히 감동받았다. 제동 형은 시인 같다.

 

사람 이야기가 유독 눈에 많이 걸리더라. 평소 인연을 중히 여기는 것 같다.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사람들에게 잘하진 못한 것 같다. 그동안은 야구만 잘하면 됐으니까, 주변 사람들을 잘 챙기지 못했다. 그런데 은퇴하고 나니 많은 생각이 스치더라. 조금 더 주위를 돌아봐야겠다고 생각하는 중이다. 나는 원래 좌완 투수였기 때문에 부상으로 인해 타자로 전향하면서 빨리 적응해야 한다는 부담이 컸다. 어릴 때는 소통보다는 독한 훈련에 더 집중했던 게 사실이다. 내내 야구만 하다가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프로 구단에 입단했으니까. 어릴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최고의 스승으로 백인천 감독, 박흥식 코치, 김성근 감독, 다카하시 요시히코 코치 등을 꼽았다.

 

나는 복이 많은 사람인데, 그중 가장 큰 복은 좋은 스승을 만난 거다. 홈런 타자로 성공할 수 있었던 데는 백인천 감독님의 영향이 컸다. 백 감독님은 KBO 리그 처음이자 마지막 4할 타자다. 삼성 라이온즈 개혁을 부르짖었던 감독님은 보스 기질이 강한 분이었다. 현재 KIA 타이거즈 퓨처스 감독인 박흥식 코치님은 나를 한결같은 마음으로 믿어주신 분이다. 김성근 감독님은 일본 무대에서 내가 무너질 뻔했을 때 일으켜주셨고 독기를 일깨워주신 분이다. 책에는 미처 담지 못한 인연도 많다. 요미우리 자이언츠, 지바 롯데 마린스 시절에도 많은 일본 감독님과 코치들께 야구의 정석을 배웠다.

 

 

실력도 중요하지만 인성을 잘 갖춰야 한다

 

이승엽을 말할 때 실력과 항상 따라붙는 것이 ‘겸손’이다. 책을 보니 아버지의영향이 아닌가 싶더라.

 

아버지에겐 특유의 카리스마가 있는데 나를 혼내거나 그런 일은 없었다. 부모님들은 대개 “너는 이렇게 해”라고 자식에게 명령하지 않나? 우리 부모님은 내게 그렇게 말한 적이 없다. 하지만 나는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고 믿었다. 아버지는 칭찬을 아끼는 편이었다. 항상 강한 모습으로 날 대했다. 뒤에서 묵묵히 응원하는 일이 아버지의 사랑법이었던 것 같다. 어릴 때는 어렵기만 했는데, 그런 아버지가 있었기 때문에 내가 야구에만 집중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초등학생 시절, 야구를 반대했던 아버지 아닌가?

 

집안에 운동선수로 대성한 사람도 없었고, 운동선수는 가정 형편이 어려운 사람이 하는 거라 편견이 심했던 시절이니까. 어떻게 보면 당연한 반대였는지도 모른다. 한 달 동안 매일 우리 집을 찾아와 설득했던 야구부 부장님이 아니었더라면 아버지를 설득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물론 나 역시 단식 투쟁까지 하면서 고집을 부렸지만. 그때는 정말이지 사흘 동안 밥을 먹지 않았는데도 배고픈지 몰랐다.

 

어릴 적 별명이 ‘똥엽’이었다고.

 

똥고집이 정말 심했다.(웃음) 막내아들이라서 그런지 고집이 참 셌다. 경상중학교 야구부에 들어간 건 감독님이 사주신 볶음우동 한 그릇 때문이었고, 경북고등학교에 진학한 건 서석진 감독님(현 TBC 해설위원)의 따뜻한 인품과 선수들을 챙기는 모습 때문이었다. 선생님이나 부모님의 의견을 생각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지금껏 내가 한 선택의 99%는 스스로 내린 결정이다. 그래서 나는 후회가 없다. 물론 내 선택이 항상 옳은 건 아니었겠지만 소소한 마음들이 나를 움직이게 한 적이 많았다.

 

2004년 일본 야구로 무대를 넓혔다. 약속 시간만큼은 칼같이 지킨다는 철칙이 있는데, 2013년 12월 11일, 기자회견장에 20분 지각했다. 이 일이 큰 사건이었다고 회고했다.

 

평소 지각하는 걸 싫어하기 때문에 잊을 수 없는 날이다. 일본행을 결심하기까지 정말 반대가 많았다. 하지만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라고 생각했다. 내가 살아야 할 시간이니 내가 결정하는 게 맞았다. 일본 선수 생활은 좋을 때도 있었고 실망스러울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일본 프로야구를 경험하면서 야구를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졌다. 일본은 야구 선수가 오로지 경기에만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 그라운드에서 100%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반면 기술적인 측면을 강조하기 때문에 선수들의 멘탈 관리 등이 아쉬웠다. 하지만 최근에는 일본인 메이저 리거들이 본국으로 돌아와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고기를 잡아주지 말고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는 말은 야구에서도 진리다. 야구를 가르치는 것보다 중요한 건 야구를 해야 하는 이유와 재미있게 하는 방법을 찾도록 돕는 일이다.

 

세리머니 철학이 인상적이었다.

 

세리머니 자체의 가치 판단은 어려운 것 같다. 관중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의 퍼포먼스를 보여줄 의무도 있으니까. 하지만 야구 선수들 간에 감정이 상하는 일은 피해야 한다고 본다. 세리머니를 하는 순간은 좋겠지만, 상대방이 느낄 감정도 생각해야 한다. 지나친 행동으로 인해 2차적인 피해를 입는 경우도 있으니까. 야구 역시 포커페이스가 중요한 스포츠라고 생각한다. 언제나 내가 최고일 수 없다는 걸 안다면 신중할 수밖에 없다.

 

36번은 이제 영구 결번이 되어 이승엽 고유 번호로 남았다.

 

내가 야구를 처음 시작했을 때의 번호는 27번이다. 프로 입단할 때 27번을 원했지만 이미 다른 선배가 달고 있었다. 투수 출신이던 나는 최동원 선배님의 11번도 원했지만, 역시 다른 선배가 갖고 있었다. 선택의 여지 없이 갖게 된 번호가 36번인데, 프로 3년 차에 정규 시즌 MVP에 오르면서 ‘이 번호가 내 운명인가’ 싶었다. 일본 무대에서는 33번, 25번, 3번을 달기도 했지만 애착이 가장 큰 번호는 역시 36번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아마추어 선수 가운데 등 번호 36번을 달고 뛰는 왼손 거포들이 부쩍 늘었다. 내게 36번은 행운을 부르는 부적 같은 번호다. 삼성에서는 영구 결번이 됐지만 대표팀에서는 달 수 있는 번호이니 후배들이 사용해준다면 반가울 것 같다.

 

야구 꿈나무, 후배 선수들에게 꼭 하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뻔한 말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프로 선수는 모범이 돼야 한다. 사람이니까 실수를 아예 안 할 수는 없겠지만 항상 신중하게 행동해야 한다. 실력도 중요하지만 인성을 잘 갖춰야 한다. 실패할 때의 마인드 컨트롤도 중요하다. 긴박한 상황에서는 누구의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본인이 헤쳐 나가야 한다. 내 의지보다 중요한 건 없다고 생각한다.

 

자녀를 운동선수로 키우려는 부모들이 꼭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무엇일까?

 

확고한 교육관을 갖고 아이를 대해야 할 것 같다. 스포츠는 본인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부모가 아무리 막아도 정말 하고 싶으면 해야 한다. 왜냐하면 안했을 때 평생 후회하기 때문이다. 선수가 되지 않더라도 후회 없이 사는 게 중요하다. 부모를 평생 원망하는 경우도 많이 봤기 때문에 내 아이의 의지를 잘살펴보는 게 중요하다. 내 아이들에게도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걸 자주 이야기하곤 하는데, 멀리 보는 지혜도 필요하다. 지금 당장의 어려움보다 미래를 생각해봐야 한다. 쓴맛이 결코 쓴맛으로 끝나지 않을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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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를 좋아하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다

 

가족 이야기도 꽤 많이 나온다.

 

조심스러웠지만 나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들이니까 쓰고 싶었다. 사실 아내와 아이들이 주목받을 때마다 기쁜 마음 한편에는 걱정스러운 마음이 든다. 불편한 건 나 혼자만 감당하고 싶다. 은퇴하면서 아이들이랑 시간을 자주 보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둘째는 요즘 아빠가 집에 많이 있으니까 아주 좋아 죽는다. 멀리서도 나만 보면 달려온다.(웃음)

 

아이들은 아빠의 책을 읽었나?


첫째 은혁이는 아직 안 읽은 것 같고, 은준이는 아직 어리고. 아내는 펴놓긴 한 것 같은데 어디까지 읽었는지는 모르겠다. 아내가 아이들 때문에 많이 바쁘다. 공부를 좀 덜 시켰으면 좋겠는데, 본인은 많이 시키는 편이 아니라고 한다. 아빠의 마음으로는 아이들을 많이 놀게 하고 싶다.

 

67쪽에 “아내가 있어서 이승엽이 있는 것”이라고 썼다.

 

아내가 나와 결혼했을 때가 21세였다. 정말 어린 나이였다. 야구밖에 모르는 남편을 둬서 답답한 게 많았을 거다. 그런데도 무엇이든 잘 해냈다. 내 건강과 스케줄은 물론이고 집안 대소사까지 도맡았고 일본어도 혼자 공부했다. 책에도 썼지만 둘째 은준이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내가 또 하나의 아들 같은 존재였다. 아내가 해준 내조에 비하면 지금의 나는 여전히 부족하지만, 이제 시간이 여유로워졌으니까 최선을 다하고 싶다.

 

사회생활 6개월 차인 지금, 어떤가?


너무 편하다.(웃음) 타이트한 일정이 없으니까 긴장감과 박진감이 떨어지지만, 확실히 편하긴 하다. 은퇴 투어를 마친 후에는 일부러 야구장을 가지 않았다고. 야구가 너무 하고 싶어질까 봐 가지 않았는데 지금은 평안한 상태다. 야구를 여전히 좋아하지만 보는 걸로 만족한다. 지금도 집에서는 TV 채널 5개를 돌려가면서 야구 중계를 본다. 야구선수로서는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후회는 전혀 없다.

 

차 마시는 모임을 즐긴다고 들었다.

 

술은 맛이 없어서 못 마시겠다. 가끔 누가 강하게 권하면 한두 잔을 할 때가 있지만 흔치 않다. 식사 모임을 하면 2차는 무조건 카페, 3차도 차를 마실 때가 있다. 수다 떠는 걸 좋아한다. 경기장 밖의 내 모습은 감성파다. 요즘은 나이가 드는 게 나쁘지만은 않다는 생각이 든다. 훨씬 안정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30대 때는 야구 선수로서의 이승엽만 생각했다면, 40대가 돼서는 가정을 더 생각하고 주변 사람들을 더욱 신경 쓰게 된다. 안타까운 건 요즘 은퇴 나이가 너무 빨라진 점이다. 60대도 충분히 일할 수 있는 나이 아닌가.

 

서재에는 주로 어떤 책들이 있나?

 

아이들이랑 읽고 싶은 책은 좀 챙겨두는 편이지만, 솔직히 책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그런데 이번에 책을 쓰면서 ‘아, 쉬운 일이 결코 아니구나’ 실감했다.(웃음) 야구인들, 선배들이 쓴 책은 챙겨 읽고 있다. 오래된 책이긴 하지만 『일본을 이긴 한국인』,  『허구연의 야구』  ,  『인생은 1%의 싸움이다』는 특히 좋아한다. 소설보다는 실화를 담은 책을 좋아한다. 『좋은생각』을 즐겨 읽는데, 읽다 보면 마음이 따뜻해져서 참 좋다. 영화도 스릴러, 멜로는 거의 안 본다. 아들이 보자고 하면 봐야 하지만, 내 취향은 <국제시장> 같은 작품이다. 이 영화를 보고 하루 종일 울었던 것 같다. 옆에서 말 걸면 “말 걸지 말라”고 하고. 그래서 슬픈 걸 잘 안 보려고 한다. 재밌는 영화가 좋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능력을 가질 수 있다면 어떤 능력을 택하고 싶나?

 

글쎄, 지금에 만족하기 때문에 원하는 게 딱히 없지만 어떠한 능력이라도 가능하다면 어린 학생들에게 공부 시간을 좀 줄여주고 싶다. 하나 더 가질 수 있다면, 모든 사람에게 직업을 줬으면 싶다. 요즘 안타까운 일이 너무 많아서 좋은 일이 생겼다고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

 

이승엽에게 세 가지 소원이 있다면?

 

우선 우리 가족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공부 잘하고 못하고는 전혀 중요하지 않으니까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잘 자랐으면 좋겠다. 둘째는 언젠가 야구계로 복귀한다면 내 능력이 한국 프로야구에 보탬이 됐으면 좋겠고, 이승엽야구장학재단이 많은 아이에게 꿈과 희망을 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 같다. 조그맣게 시작했지만 작게라도 도움이 됐으면 한다.

 

이승엽야구장학재단에서 주력하고 싶은 활동은 무엇인가?

 

리틀야구단 어린이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고 싶다. 이만수 감독님이 선수 시절, 우리 학교에 와서 일일 코치를 해주신 적이 있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데, 지금 초등학생인 아이가 커서 프로야구 선수가 됐을 때 “어릴 적 이승엽 아저씨한테 야구를 배운 적이 있다”고 말해주면 굉장히 뿌듯할 것 같다. 꼭 선수가 되지 않더라도 야구를 좋아하는 아이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고 싶다.

 

야구의 가장 큰 매력은?

 

일단 유니폼이 멋지다.(웃음) 축구도 농구도 반바지를 입고 하지 않나? 야구는 유일하게 감독과 선수들이 똑같은 유니폼을 착용한다. 23년간 야구를 하면서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 힘든 적은 있어도 싫은 적이 없었다는 게 내가 생각해도 큰 축복이고 행운이다.

 

벌써부터 복귀를 기다리는 팬도 많다.

 

어찌 됐든 야구와 관련된 일을 할 것이기 때문에 한 번쯤은 복귀하겠지만, 시기는 아무도 알 수 없다. 팀에서도 원해야 하고 나도 준비를 많이 해야 하니까.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지만 언젠가는 돌아갈 거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4~5년 후를 바라본다.


 

 

나. 36. 이승엽이승엽 저 | 김영사
단 한 시간도 야구 생각을 하지 않고 지낸 시간이 없던 그였기에 또 다른 도전과 기회들을 만들어갈 것이다. 진정한 그의 레전드는 바로 지금부터 다시 시작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에이칸, 태원준 “이 책은 B급 영화처럼 봐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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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으로 여행한 3년의 기록


참으로 파란만장한 이야기다. 안정적인 직장생활을 하던 은행원이 회사를 박차고 나와 벤처 사업가로 변신했고, 성공 가도를 달리다 회사에서 쫓겨나 빚을 떠안은 채 호주로 떠났다. 냉동 창고의 외국인 노동자로 일하며 1년을 보낸 끝에, 드디어 빚을 청산했다. 하지만 이야기는 끝나지 않았다. 우연히 찾아간 하우스 파티에서 ‘잠들어 있던 록 스피릿’이 깨어나는 걸 느꼈고 “길 위에서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며 여행하는” 삶을 시작했다. 음악으로 친구가 된 이들과 같이 작업하고, 또 다른 친구를 찾아 길을 떠났다. 버스킹을 하며 만난 이들은 잠자리를 제공해 주기도 했고, 새로운 뮤지션을 소개해 주기도 했다. 그야말로 ‘노 뮤직 노 트래블(No Music No Travel)’, 음악이 없었다면 계속되지 않았을 여행이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에이칸(AKAN, 본명 신현석). 학창 시절 록스타를 꿈꿨으나, 크나큰 열정과는 달리 재주가 부족하다는 걸 깨달았다. 이후 제3세계 국가로 여행을 다녔고, 대학 졸업 후 은행원이 됐다. 전술한 바와 같이 벤처 사업가로, 외국인 노동자로, 여행하는 히피로, 변모하기도 했다. 지금은 부산의 작업실에서 칼럼을 쓰고 음악과 영상 작업을 하며 ‘노 뮤직 노 트래블’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다.

 

『길 위에서 샤우팅! 노 뮤직 노 트래블』 (이하 『길 위에서 샤우팅!』) 에는 3년 동안 ‘음악으로 여행한’ 시간들이 기록돼 있다. 역사는 153번지에 위치한 셰어하우스에서 시작됐다. 냉동 창고 동료의 초대로 찾아간 그곳에서, 에이칸은 자신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음악과 친구들을 만났다. 그때부터 창고 녹음실을 만들고, 프로듀싱 기술을 익히고, 하우스 파티가 열릴 때마다 친구들과 함께 디제잉과 라이브 잼을 했다. 그리고 빚을 청산하던 날, 에이칸은 생각했다. 앞으로는 재미있는 일만 하며 살겠다고.

 

구체적인 계획도 없는 무모한 여행이었다. 길 위에서 음악을 만들고 연주하는 로드 트립, 그것만이 확고부동한 목표였다. 대학 시절 밴드 동아리에서 만난 후배 ‘빽껸’이 여정을 함께했다. 방콕에서 장기 체류 중이던 빽껸은 ‘21세기 히피가 되자’는 에이칸의 제안에 곧바로 호주로 날아왔다. 끝을 알 수 없는 길이 시작됐고, 두 사람의 곁에는 이미 40만 km나 달린 중고차가 있을 뿐이었다. 음악과 친구, 두 개의 연결고리로 이어진 여행은 끊어질 듯 끝없이 지속됐다.

 

지난 17일, 서교동에 위치한 트래블 카페 ‘We.AN’에서 작가 에이칸을 만났다. 그의 곁에는 반가운 얼굴이 있었다. 『엄마, 일단 가고봅시다!』 ,  『엄마, 결국은 해피엔딩이야!』 , 『엄마, 내친김에 남미까지!』의 태원준 작가였다. 여행이라는 공통의 관심사 덕분에 친구가 된 두 사람은 십 년 넘게 우정을 쌓아오고 있다고. 이야기는 자연스레 여행과 친구에 대한 것으로 흘러갔다. 『길 위에서 샤우팅!』에 담긴 바와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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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드플레이’ 보다 더 좋아하는 밴드예요


두 분의 여행 스타일이 사뭇 다를 것 같아요. 어떤가요?

 

태원준 : 에이칸은 한 곳에 오래 머물면서 그곳의 분위기를 느끼고 현지인이 되어 보는 듯한 느낌이에요. 음악으로 같이 소통하기 때문에 빨리 이동할 수도 없고요. 저 같은 경우는 미친 듯이 움직여야 돼요.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 쉬지 않고 움직여요. 웬만한 도시는 3~4일 정도 머물고요. 보통 일주일 걸려서 볼 것들을 그 시간 안에 다 봐요.

 

여행 스타일이 다르면 같이 다니기 쉽지 않잖아요?


에이칸 : 저희가 같이 여행을 했던 게 스물다섯 살 때였어요. 한국과 수단의 대학생들이 교류하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그때 이 친구랑 처음 만났고요. 같이 사하라 사막에 갔었어요.

 

이후에도 계속 인연을 이어오셨네요.


태원준 : 둘 다 여행을 하느라 같이 많은 시간을 보내지는 못한 것 같아요. 제가 한국에 있을 때는 이 친구가 여행 중이고, 이 친구가 한국에 있으면 제가 여행 중이고... 그래도 마음이 잘 맞아서 계속 교류한 거죠.


에이칸 : 그리고 원준이가 음악, 여행, 사진을 되게 좋아해요.


태원준 : 음악은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중에 하나예요. 여행하면 이동 시간이 길잖아요. 그럴 때 음악 듣고 영화 볼 때가 많죠.


에이칸 : 음악 스타일을 보면 여행 스타일을 알 수 있는 것 같아요. 이 친구는 콜드플레이를 제일 좋아하거든요. 마룬5도 좋아하고. 저는 조금 더 언더그라운드 스타일을 좋아해요.


태원준 : 저는 확실히 오버그라운드를 좋아해요. 그런데 콜드플레이보다 좋아하는 밴드는 ‘노 뮤직 노 트래블’이에요. 농담이 아니라, 진심으로 ‘노 뮤직 노 트래블’의 음악을 좋아해요.

 

‘노 뮤직 노 트래블’의 음악 중 제일 좋아하는 건 뭐예요?


태원준 : 「Chiller No.5」요. 정말 삶의 애환이 담긴 곡이거든요. 저는 이야기가 들어있는 노래를 좋아하는데, 「Chiller No.5」는 정말 이야기가 노래가 된 경우예요. 옆 냉동 창고에서 일하는 친구를 만나서, 이 친구가 만든 비트에 그 친구가 랩을 한 거거든요. 얼마나 재밌는 이야기예요? 여행자 입장에서는 ‘이건 정말 대박이다’ 싶은 거죠. 저는 콜드플레이도 좋아하지만 뮤지션으로서 이 친구를 정말 ‘리스펙(respect)’ 합니다. 물론 콜드플레이를 본다면 훨씬 더 영광이기는 하겠지만(웃음).

 

친구가 나란히 여행 작가가 됐는데, 기분이 남다르시겠어요.


에이칸 : 10년 전의 저는 여행 작가가 돼서 글을 쓸 생각이 없었거든요.


태원준 : 저도 여행 작가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에이칸 : 저도 그랬거든요. 서로 여행을 하면서 만났고, 시간이 지나고 보니까 이 친구도 책을 냈고 저도 책을 낸 거예요. 신기한 스토리 같아요.


태원준 : 되게 재밌지 않아요? 대학생 신분일 때 우연히 여행하면서 만났는데, 12년 뒤에 둘 다 책이 나온 거예요. 심지어 같은 출판사에서.

 

그렇죠. 태원준 작가님은 계속 북로그컴퍼니와 작업을 해오셨는데 『길 위에서 샤우팅!』도 같은 출판사에서 나왔어요. 출간에 도움을 주셨나요?


에이칸 : 원준이가 도와줬어요. 연결을 해줬죠.


태원준 : 도와줬다기보다, 원고를 보낼 출판사 중에 하나로 북로그컴퍼니를 추천해준 거죠. 제가 책을 낸 출판사도 고려해 보라고요. 그런데 마침 출판사에서도 좋게 보신 거고요. 둘이 인연이 있다는 걸 아니까 조금 더 친숙하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제가 출간을 부탁한다고 해서 출판사에서 책을 내주시는 건 아니잖아요. 제가 그런 위치에 있지도 않고요. 출판사가 보기에 마음에 안 들면 당연히 출간이 안 되죠. 이 친구의 글과 이야기가 충분히 좋았기 때문에 책으로 나온 거예요.

 

『길 위에서 샤우팅!』을 쓰실 생각을 처음 하신 건 언제였어요?


에이칸 : 처음에는 책을 쓰는 것보다 음악을 계속 만들고 기록하는 게 목표였어요. 빽껸이라는 친구랑 같이 여행을 하면서 음악으로 기록을 해나가자고 생각했고, 곡들이 모이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앨범을 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서 앨범 작업을 준비하다가, 이왕 기록하는 거 책으로도 한 번 내보면 어떨까 했던 거죠.

 

태원준 작가님께서는 원고를 먼저 보셨겠네요? 책이 나오기 전에요.


태원준 : 못 봤어요. 이 책이 한창 만들어질 때 여행 중이었거든요. 작년 8월부터 올해 2월까지 여행을 다녀왔어요.

 

어디를 다녀오셨어요?


태원준 : 티베트, 부탄, 방글라데시를 갔다 왔어요.

 

이번에는 어머님께서 동행하지 않으셨나요?


태원준 : 네, 이제는 홀로서기를 하려고(웃음).

 

책에서 여행 이야기를 들을 수 있겠죠?


태원준 : 물론이죠. 열심히 쓰고 있습니다(웃음).


 

우리 여행의 결정적 순간들


『길 위에서 샤우팅!』을  처음 보셨을 때, 어떤 느낌이 드셨어요?


태원준 : 재밌었죠. 딱 이 친구 스타일처럼 느껴졌다고 할까요. 정형화 되어 있거나 멋 부리는 글이 아니잖아요. 러프한 맛이 있다고 해야 되나. 그리고 친한 친구이기는 하지만, 호주에서 어떤 일을 겪었는지는 잘 몰랐어요. 이 친구가 힘든 시기에 떠났다 보니까 약간 은둔하듯이 있었거든요. 자주 연락을 주고받지 않았었어요. 그래서 이 책을 보면서 그때 에이칸에게 이런 일이 있었구나, 하고 알게 되는 것들이 있었죠. 짝사랑하는 여성도 있었고, 헛다리를 짚기도 했더라고요(웃음).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팠을 것 같기도 해요. 친구가 힘들어했던 시간이 기록돼 있잖아요.


태원준 : 책 초반에 보면 이 친구가 운영했던 회사 이야기가 나오는데, 저는 그 뒷이야기는 모르거든요. 책을 보고 알았어요. 그때 회사를 같이 운영했던 대표도 저랑 친구인데, 굳이 그 친구한테 물어보지는 않았죠. 에이칸한테 물어보지도 않았고요. 그 뒤에 에이칸이 다른 회사를 차렸다가 내쫓기듯이 나왔는데, 저는 그 사실도 몰랐었어요. 책을 보면서 일련의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다는 걸 알았죠. 사실 에이칸이 주변에 알리지 않았거든요.

 

친구로서 섭섭한 마음도 들었겠는데요?


태원준 : 그렇죠. 나한테도 이야기를 안 했네, 싶어서 섭섭하기도 했는데요. 공감이 가기도 해요. 당시에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그렇게 즐겁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뭔가 설명해야 되는 게 피곤했을 것 같고, 자꾸 물어보면 더 싫었을 것 같아요.


에이칸 : 이번에 책을 내고 북콘서트를 했는데, 그때 같이 회사를 운영했던 친구들도 왔었어요.

 

저라면 다시 만나지 않을 것 같은데요(웃음).


에이칸 : 솔직히 제가 완벽하게 잘 했다면 그런 일이 있었겠어요? 저도 약간 문제가 있었겠죠. 돌이켜 보면 그때는 20대 후반, 30대 초반이었으니까, 경험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 친구들만의 잘못이 아니라 저도 잘하지 못했다는 생각도 많이 들어요. 어떻게 보면 그게 제 길이 아니었다는 걸 깨닫게 되고요. 나중에 그쪽에서도 여러 가지 문제를 다 잘 해결 해줬어요. 시간이 지나고 나니까 다 같이 소주 한 잔씩 하고 ‘러브 앤 피스’ 되는 거죠.

 

그때 회사를 떠나지 않았다면 호주로 갈 일도 없었겠죠. 차라리 잘 된 일이었다고 생각하세요?


에이칸 : 살다 보면 ‘업 앤 다운’이 있잖아요. 그 전까지 큰 문제없이 살다가 그때 한 번 내리막길을 걸은 건데, 오히려 더 많은 걸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새로운 자극을 받기도 했고, 이렇게 앨범이랑 책도 나오고 인터뷰 할 수 있는 상황도 벌어진 거잖아요.

 

지금이야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사람한테 많은 상처를 받으셨을 것 같아요.


에이칸 : 그렇죠. 그때는 처음 경험해 보는 일이기도 했고, 호주로 갈 수밖에 없었어요. 다른 대안이 없었거든요. 한국에서 일하면서 빚을 갚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냥 한국에 있기 싫었어요. 우연히 호주로 이민 간 고등학교 친구가 워킹홀리데이를 이야기해줬고요.

 

호주로 떠나게 된 과정도 너무 드라마틱해요. 만 30세 생일을 1주일 앞두고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으셨잖아요?


에이칸 : 그랬죠. 사실 비자 신청을 하면 언제 나올지 모르거든요. 기간이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서, 길면 한 달이나 두 달이 걸릴 수도 있어요. 그 사이에 서른 살 생일이 지나가면 저는 호주를 못 가는 거였죠. 그런데 생일을 바로 일주일 앞두고 비자가 나온 거예요.

 

3년 동안 여행하면서 결정적인 순간들이 정말 많았는데요. 몇 가지 장면만 꼽아볼 수 있을까요?


에이칸 : 첫 번째는 한국에서 바닥을 쳤던 상황이죠. 두 번째는 153번지 셰어하우스에서 ‘로망’이라는 친구를 만났던 거고요. 그게 터닝포인트였던 것 같아요. 만약에 그곳에서 로망을 만나지 않았다면 ‘노 뮤직 노 트래블’은 시작되지 않았을 거예요.

 

셰어하우스에서 다 같이 쫓겨난 일도 빼놓을 수 없죠(웃음).


태원준 : 결국 술 마시고 쫓겨난 거였잖아요(웃음). 그때 안 쫓겨났으면 로드 트립도 안 갔겠죠.

 

맞아요. 참 신기한 일이에요.


에이칸 : 그러니까요. 운명이라고밖에 설명을 못 할 것 같아요.

 

태원준 작가님이 그런 상황에 놓였다면 ‘노 뮤직 노 트래블’ 같은 여행을 떠났을까요?


태원준 : 저는 엄청나게 즉흥적인 여행은 잘 안 가는 편인 것 같아요. 2박 3일이나 3박 4일 여행은 즉흥적으로 가지만, 2주 이상 중장기 여행이 되면 고민하고 계획을 세워서 떠나는 편이에요. 그래서 이 친구가 가진 추진력이 되게 신기해요. 어찌됐건 처음의 마음을 계속 밀고 나가잖아요. 그 모습을 지켜보는 자체가 재밌었어요. 이 친구에게 이런 면도 있구나, 싶었고요. 책을 보면서 처음 발견한 모습들이 있었어요. 저희가 같이 일을 했던 것도 아니고, 장기 여행을 떠난 적도 없으니까, 계속 뭔가를 추진하는 모습은 본 적이 없었거든요. 이 책을 통해서 친구의 다른 모습을 보게 됐죠.

 

후배 ‘빽껸’ 씨와 같이 여행을 하셨는데요. 만약 태원준 작가님께 제안을 했다면, 승낙하셨을까요?


태원준 : 일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면, 굉장히 오래 고민하거나 결국에는 힘들다고 했을 것 같아요. 제안을 들었을 때 굉장히 재밌다는 생각을 하면서 가고 싶어 했겠지만, 쉽게 OK 하지는 못했을 거예요. 이 친구가 아니라 다른 누가 말했어도 마찬가지였을 거고요.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다 멈추고 같이 여행을 하자고 하는데, 현실적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잖아요. 이후의 대안이 마련되어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래서 역사가 탄생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그 역사가 내 이야기가 될 거라고 확신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빽껸’ 씨가 단번에 수락한 것도 결정적인 순간 중 하나죠.


에이칸 : 그때 빽껸이 3년 동안 방콕에 있으면서 한국어 강사를 했었어요. 프리랜서처럼 파트타임으로 일할 수 있는 상황이었죠. 그 친구도 뭔가 리프레쉬가 필요한 상황에서 연락을 받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같이 여행을 하게 된 거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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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여행, 착한여행


‘빽껸’ 씨는 아직 태국에 계시죠? 레이블과 계약도 하셨다고요.


에이칸 : 네, 레이블과 계약해서 활동하고 있고요. 지금은 마음 맞는 친구랑 학원을 운영하고 있는데, 조금 더 음악 활동에 집중하려고 하고 있어요. 다음 주 정도에 빽껸의 솔로 앨범이 나와요. 아마 이번 달 말에는 런칭이 될 거예요. 타이틀곡을 들어봤는데, 정말 좋더라고요.

 

‘빽껸’ 씨도  『길 위에서 샤우팅!』을 봤나요?


에이칸 : 아직 못 봤어요. 태국에 가는 친구가 있어서 전해달라고 했는데, 출국이 조금 늦춰졌어요. 원고는 이미 보내줬고요.

 

어떤 반응을 보이던가요?


에이칸 : 그냥 ‘잘했네’ 이런 반응이죠. 그 친구도 말이 많은 스타일이 아니에요. 저랑은 완전히 반대예요. 말이 별로 없어요. 오히려 그래서 더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약간 음양오행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요. 저하고 다르게 빽껸은 덤덤한 스타일인데, 그게 되게 잘 맞았던 것 같아요.

 

두 분이 같이 장기 여행을 떠난다면 어떤 모습일까요?


에이칸 : 아마 저는 12시 이후부터 일어날 거고, 그때 이 친구는 이미 가고 없겠죠.


태원준 : 조식 먹고 어딘가 찾아가서 보고 있겠죠.


에이칸 : 밤 7시쯤에 펍 같은 데서 만나자고 하고.


태원준 : 저는 펍에 가서 그 날 보고 온 것들을 보여주겠죠. ‘이거 정말 대박 아니야?’ 하면서. 그러면 이 친구는 ‘이런 데가 있어? 내일 가봐야겠네’ 하겠죠.

 

태원준 작가님은 숙소로 돌아가서 주무시고, 에이칸 작가님은 그때부터 하루 일과를 시작하시고요(웃음).


에이칸 : 그런 스타일이죠. 서로 터치는 안 할 것 같은데, 만약 스케줄 대로 움직여야 한다면 의견이 갈리기도 하겠죠. 저는 조금 프리하게 ‘안 가면 말고’ 하는 스타일이라서.

 

서로의 여행 스타일을 꿈꾸기도 하세요? ‘언젠가는 저 친구처럼 여행해 보고 싶다’는 생각도 드세요?


태원준 : 저는 합니다. 지금까지 92개국 정도를 갔는데, 놀랍게도 휴양이 목적인 곳은 가본 적이 없어요. 보라카이, 발리, 사이판, 괌, 이런 곳은 한 번도 안 가봤어요. 가면 바닷가에 누워서 맥주도 한 잔 하고, 카페에 앉아서 음악 듣고 책을 읽기도 하는데, 제가 생각할 때는 그건 한국에서도 할 수 있는 일인 거예요. 제 취향은 그런 것들은 한국에서 즐기고 여행하는 동안은 다른 지역을 열심히 돌아다니는 거예요. 그게 일을 하면서 더 공고해지는 것 같아요. 제가 많은 곳을 다니고, 많은 것들을 보고, 계속 수집하고 기억하고 기록할수록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거든요. 그게 저한테는 선순환인 거죠. 한국에서 여행 이야기를 하면서 수익을 창출해서 또 여행을 가고, 거기에서 경험한 것들이 다시 이야기가 되는 거잖아요. 저는 그 선순환이 너무 좋아요. 여행을 하고, 이야기를 만들고, 다시 여행을 가고, 그게 평생의 꿈이거든요.

 

그럼에도 에이칸 작가님처럼 여행하고 싶으세요?


태원준 : 물론이죠. 휴양지에서 칵테일 한 잔 마시면서 해변을 바라보는 걸 꿈꿔요. 제 현실에서는 할 수가 없거든요. 이번에도 인도를 여행하면서 정말 예쁜 해변을 갔었는데, 썬베드에 한 시간쯤 누워 있으니까 지루해지더라고요. 그래서 또 움직여요. 재밌는 포인트들을 찾아 다니면서 사진 찍고 기록하고. 그렇게 되더라고요. 저한테는 에이칸 같은 여행이 잘 안 되는 거죠. 실질적으로 제가 바뀌기 전에는 못 하는 거예요. 그래서 더 하고 싶은 여행 스타일인 거죠.

 

에이칸 작가님은 어떠세요?


에이칸 : 저는 사람을 만나는 일에 꽂혀있는 것 같아요. 장소는 어디든 상관없고요. 음악을 통해서 누군가를 만나는 일이 저한테 가장 많은 영감을 주거든요. 저한테는 원준이 스타일의 여행이 조금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제가 호주에 오래 있었지만 어디에 뭐가 있는지 잘 아는 건 아니거든요. 예를 들면, 오페라 하우스나 하버브리지 같은 곳을 가기는 했지만, 지나가면서 보거나 그 앞에서 공연을 했어요. 음악 하면서 친구를 만들다 보면, 아무래도 로컬 음악이나 아트와 관련된 공간들을 가게 될 때가 많거든요. 그런데 대중이 원하는 정보는 다를 수 있잖아요. 그래서 원준이처럼 여행하는 것도 되게 좋은 것 같아요. 이 친구는 정보가 많으니까 쓸 수 있는 콘텐츠가 많잖아요.

 

‘나쁜여행’ 이라는 이름으로 페이스북과 사운드클라우드 계정, 유튜브 채널을 운영 중이시잖아요. 이름이 ‘나쁜여행’인 이유는 뭔가요?


에이칸 : 처음에는 브랜딩 차원에서 사람들이 보고 바로 인지할 수 있는 이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왜 나쁜여행이냐’라는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 자체가 브랜딩 효과가 있는 것 같아요. ‘나쁜여행’이라는 게, 약간 B급 영화 같은 느낌이 있는 건데요. 수준이 아니라 방향성에 있어서 그렇다는 거예요. 보통 여행을 떠나기 전에 인터넷의 정보들을 모으는데, 그런 게 아니라 로컬의 언더그라운드를 보여주는 거죠. 사람들이 잘 모르는 곳, 제가 음악과 연결해서 찾을 수 있는 정보들을 모아서 보여주는 채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름을 ‘나쁜여행’이라고 하면 재밌을 것 같았어요.

 

태원준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착한여행은 어떤 건가요?


태원준 : 저는 실제로 공정여행에 대해서 강의를 하고 있어요. 여행을 하면서 현지인에게 도움이 되는 소비를 하는 건 당연한 거라고 생각해요. 중요한 부분이고요.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거든요. 예를 들어서 한 도시에서 3박을 한다면, 이틀 정도는 편한 곳에서 잘 수도 있고 체인점 호텔에 머무르더라도, 하루 정도는 현지인이 운영하는 민박이나 게스트하우스를 이용하는 거예요. 물건을 살 때도, 대형 마트가 더 편리할 수 있지만, 조금 더 금액을 지불하게 되더라도 이왕이면 현지인이 운영하는 기념품 가게를 가는 거죠. 시장에서 흥정하면서 살 수도 있고요. 실제로 그게 더 재밌거든요. 환경 문제도 빼놓을 수 없어요. 여행자는 그 어떤 집단보다 많은 쓰레기를 배출해요. 여행하는 동안 필요한 것들을 사야 되잖아요. 집과 달리 모든 게 갖춰져 있지 않으니까요. 한국에서도 날이 더우면 페트병 한 병 정도 사먹겠지만, 동남아시아에 가면 하루에 500ml 생수를 10병도 마시거든요. 그러면서 환경이 많이 오염되고, 전혀 상관없는 사람들이 피해를 입어요. 보라카이가 그 예죠. 지금 폐쇄됐잖아요. 제가 생각하는 착한 여행은 현지인들을 위한 소비를 하고, 환경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여행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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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영화처럼


‘나쁜여행’ 유튜브 채널에서 「ONE LOVE」, 「From The Street」 영상을 봤어요. 두 곡 모두 여행을 하면서 만드신 건데요. 「From The Street」는 정말 인상적이더라고요. 여러 나라의 래퍼들이 모여서 하나의 음악을 만든 거잖아요.


에이칸 : ‘플레잉 포 체인지(playing for change)’라는 프로젝트가 있는데, 처음 그 영상을 봤을 때 충격을 받았었어요. 너무 좋아서요. 언젠가 이런 작업을 해보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플레잉 포 체인지’의 ‘Stand By Me’라는 영상을 보시면, 「From The Street」라는 싸이퍼 게임(cypher game)이 그 프로젝트에서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걸 아실 수 있을 거예요. ‘플레잉 포 체인지’ 프로젝트를 진행한 프로듀서는 여행에서 만난 스트리트 뮤지션들을 상대로 녹음을 했어요. 예를 들면, 미시시피에서 기타리스트를 만나서 녹음을 하고, 덴버에서 보컬을 만나서 녹음하고, 파리에서 바이올린 연주를 녹음하는 식이에요. 그걸 다 모아서 하나의 노래를 만든 거죠. 저는 그걸 힙합 버전으로 만든 거고요. 「From The Street」에 참여한 친구들은 ‘Dream Chaser’라는 주제로 꿈을 좇는 이야기들을 하게 됐어요. ‘플레잉 포 체인지’의 프로듀서는 그 프로젝트에서 나온 수익금을 전부 기부했는데요. 저도 제가 좋아하는 음악으로 앨범이 나오고 음원 수익이 나오면 제3세계 어린이들 음악 교육을 위해서 쓰고 싶어요. 말 그대로 ‘변화를 위한 연주’인 거죠.

 

「ONE LOVE」의 메인 보컬은 누군가요? 프로 뮤지션 같던데요?


에이칸 : 발리에서 만난 ‘아디즈’라는 친구인데, 뮤지션이에요. 코러스는 일반 여행자 50명이 부른 거고요. 처음에 여행할 때는 메인 보컬이 없었어요. 기타 라인 하나만 가지고 다니면서 보컬을 찾으면 요청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친구들을 만나면 코러스 파트를 녹음했고요. 계속 메인 보컬은 없었던 거예요. 그러다가 ‘로망’을 만나러 발리에 갔을 때 ‘아디즈’를 소개받았어요. 거기에서 메인 보컬을 녹음하고 홍콩에서 노래를 완성했죠. 「ONE LOVE」는 거의 2년 가까운 시간의 기록인 거예요.

 

책에 보면, 여행하면서 만난 친구들의 인터뷰가 실려 있어요. 당시에는 책을 쓰실 계획이 없었는데, 어떻게 인터뷰어 역할을 하게 되셨어요?


에이칸 : 책을 쓰려고 인터뷰한 건 아니었고요. 친구들이랑 녹음을 할 때면 항상 세 가지 질문을 던졌어요. 저는 여행하다가 만난 사람들에게 기본적으로 두 가지를 물어보거든요. 첫 번째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곡’에 대한 건데요. 대부분은 잘 떠올리지 못해요. 그럴 때 ‘네가 죽기 전에 듣고 싶은 노래가 무엇인지’ 물어보면 대답이 나와요. 두 번째 질문은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여행지’에 대한 거예요. 음악을 들으면서 이 두 가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인터뷰에서 다룬 주제들이 자연스럽게 나와요. 음악 하나에 담겨 있는 엄청난 사연들이 있는데, 저는 그런 임팩트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 친구가 죽기 전에 듣고 싶은 음악을 들어 보면 어떤 사람인지 느껴지는 거죠. 100%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그게 제가 음악을 통해서 소통하는 방법이에요.

 

인터뷰를 하면서 친구들에게 들었던 말 중에서, 가장 큰 영향을 받았거나 가끔씩 곱씹게 되는 말이 있나요?


에이칸 : 빽껸이랑 했던 인터뷰가 제일 방점이었던 것 같아요. 빽껸이 그런 말을 했거든요. “여행을 하면서 지금 내가 하는 이 여행이 하나의 로드 무비라면 이보다 더 재미있는 로드 무비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 나하고 에이칸 단 둘만 볼 수 있는 영화라는 게 아쉬울 뿐이야” 어떻게 보면, 그 말이 책을 쓴 계기이기도 해요. 그리고 항상 그 이야기를 했었거든요. 나중에 우리가 할아버지가 된 후에도 곱씹을 만한 안주거리가 생겼다고요. 제일 즐겁고 뜨거웠던 시간을 우리가 함께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여행을 하면서 문득문득 내가 유연해지고 있음을 실감했다”고 하셨어요.


에이칸 : 여행이랑 음악, 그 두 개가 가장 제 가슴을 뛰게 만드는 것 같아요. 가슴이 뛰게 된다는 건 순수해진다는 의미인 것 같고, 순수해지다 보니까 유연해지는 거죠. 다른 말로 하면, 저를 가장 설레게 하는 두 가지이기도 해요. 앞으로 살아가면서 또 다른 것들이 생길 수 있겠지만, 지금까지 제 경험을 바탕으로 보면 음악과 여행이 가장 큰 축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같고, 그로 인해서 변화가 생기는 순간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유연해진 만큼, 예전보다 덜 전전긍긍하실 것 같아요. 계획이 틀어진다 해도요. 어떠세요?


에이칸 : 그건 그래요. 물론 현실에 대해서 계속 고민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죠. 완전히 자유인이 돼서 평생 여행 다닐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면, 어딘가에는 베이스캠프를 차려야 하잖아요. 그런데 먼 미래의 일까지 생각하면서 계획을 세우는 건, 예전보다 덜한 것 같아요. 5년, 10년, 20년 뒤를 생각하기보다는 1년 정도를 생각한다고 할까요. 예전보다 주기가 훨씬 짧아진 거죠. ‘1년 안에는 이걸 해보자, 이후에는 그때 상황에 따라 생각하면 되니까’라는 마음인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더 자유롭게 생각하게 되고요.

 

태원준 작가님의 경우는 어떤가요? 여행 전후에 달라진 게 있다면 뭘까요?


태원준 : 짧은 시간 동안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닌 것 같은데요. 생각이 유연해지는 건 당연한 일인 것 같아요. 다름의 차이를 인정하기가 훨씬 쉬워지는 것 같거든요. 많은 문화, 풍경, 사람을 만나다 보니까 내 안의 세계가 확실히 넓어져요. 가끔 줄어들 때도 있죠. 한국에서 바쁘게 일하다 보면 변해 있는 걸 느껴요. 넓어졌다고 생각했는데 무늬만 그랬구나, 싶으면서 다시 또 나가서 열심히 넓혀 오는 거죠. 계속 경계를 넓히기 위해서 여행을 하면서 조절을 해야죠.

 

태원준 작가님, 친구를 대신해서 『길 위에서 샤우팅!』을 홍보해 주신다면요(웃음)?


태원준 : 근래에 나온 여행기 중에서 가장 파란만장하고 흥미진진한 여행기가 아닐까 싶어요. 책을 보시면 에이칸과 동화돼서 끝까지 따라가실 수 있을 거예요. 글 자체가 마치 나의 시선으로 진행되는 듯한 느낌을 주거든요. 여행에도 여러 가지 분위기와 스타일이 있잖아요. 제삼자 입장에서 관찰하는 느낌의 책도 있고 화자의 뒤를 쫓는 듯한 느낌이 드는 책도 있는데요. 이 책은 마치 내가 작가의 친구가 돼서 같이 여행하는 듯한 느낌이 있어서 생생해요. 많은 분들께 추천해 드립니다(웃음).

 

에이칸 작가님도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시겠죠?


에이칸 : 굉장히 큰 의미를 두기보다는, B급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으로 이 책을 읽으셨으면 좋겠어요.


태원준 : 저는 블록버스터처럼 빵 터졌으면 좋겠어요. 100쇄도 찍고(웃음).


에이칸 : (웃음) 그런 거 있잖아요. 혼자 야식 먹을 때 <무한도전>을 틀어놓고 보는. 그런 것처럼, 진지하게 보기보다는 부담 없이 읽으셨으면 좋겠어요. 빽껸이랑 에이칸, 그리고 제가 만났던 많은 친구들과 같이 고물차에 탑승해서 여행하시는 느낌을 받으셨으면 좋겠고요. 이 책을 통해서 ‘노 뮤직 노 트래블’에 조금 관심이 생기셨다면, 저희가 만든 음악을 들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길 위에서 샤우팅! 노 뮤직 노 트래블에이칸 저 | 북로그컴퍼니
짬짬이 인터넷을 뒤져 음악 프로듀싱 기술을 익힌 그는 하우스 파티가 열릴 때마다 친구들과 함께 디제잉과 라이브 잼을 하면서 제 인생 최고의 암흑기에 로큰롤 펀치를 날리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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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출판물 저자를 만나다] 마음을 위로하는 동물 친구들 – 구자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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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들에게 작가 구자선을 소개해 주세요.


학교에서 전공은 애니메이션이었어요. 3학년 즈음부터 그림책을 만들고 싶어서 혼자 일러스트 작업도 해보고 관련 수업을 듣기도 하다 보니 애니메이션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와 그림책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따로 생기더라고요. 졸업하고 나서는 일 년에 한 번 정도 애니메이션 콘셉트 영상을 팀 VCR과 같이 작업하고, 『휴게소』  등의 삽화 작업도 가끔 받아서 하고 있어요.

 

『여우책』 의 여우 그림이 인터넷 상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어요.

 

처음에 자기 홍보를 위해 뭔가 해보려고 하루에 그림 한 장과 글을 같이 SNS에 올렸어요. 쉽게 그릴 수 있는 그림으로 하나씩 노출했더니 VCR에서도 그 그림들을 보고 같이 책을 내보자고 작업 제안을 했어요.

 

『여우책』 을 출판한 출판사 이름 자체도 ‘VCR’이에요.


사실 VCR은 학교 선배와 동기들이 만든 창작집단이었어요. 애니메이션 과 졸업한 학생들이다 보니까 일러스트에 강점이 있는 분들이 많아서 애니메이션 작업과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을 같이 하고 있어요. 제가 합류하기 전에도 합동지 개념으로 몇 번 책을 냈는데, 후원한 분들께 드리는 형식으로만 작업했었어요. 『여우책』과 이지혜 작가님의  『사랑을 찾아서』를 내면서 겸사겸사 출판사 등록을 해서 출판사 일도 겸하고 있습니다.

 

그림책은 인쇄가 까다롭지 않나요?


요즘에는 영상을 주로 다루고 있지만, 어쨌든 이미지를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이라서 출판 영역에도 손을 대고 있어요. 그림과 책을 떼놓을 수 없어서요. 저는 운이 좋았던 게 책을 내면서 프로듀서 님이 간단한 흐름만 잡은 채로 나머지는 전적으로 제 의견을 받아 진행해주셨거든요. 작업 진행 과정 자체도 도움을 많이 받아서 힘든 부분은 거의 없었어요.

 

팀 내부에 출판을 따로 맡은 분이 계세요?


각 업무마다 대표자가 있다기보다는 두어 명 정도 작업을 같이 나눠서 진행하는 편이에요. 지금은 <비긴 어게인2> 오프닝 및 아트워크 작업 등 영상 작업에 치우쳐 있기는 한데, 창작집단의 느낌이 아직은 남아 있어요. 이번에 『여우책』  전시를 대전에서 했는데 VCR에서 인력을 지원하고 연락은 제가 다 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각자 할 수 있는 부분을 맡아서 해요. 영상 작업을 주로 하시는 작가님들은 매일 출근하듯 모이고, 저는 가끔 콘셉트 아트에 같이 참여하는 식이죠. 지금은 책 인쇄 부분을 주로 김보성 작가님이 진행하고 있고, 원래는 김가와 씨가 『여우책』  ,  『사랑을 찾아서』  , 『ILLY』  세 권을 총괄해 맡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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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님도 영상 작업을 하셨죠? 작업을 꼭 책으로 해야 한다는 마음은 아니신 것 같아요.


가장 최근에 한 건 ‘월간 윤종신’, ‘신치림X에디킴’ 뮤직비디오 콘셉트 아트 작업이었어요. 일러스트 작업도 좋아하지만 기회가 생기면 영상 작업을 꾸준히 하고 싶어요. 요즘 세상이 하나만 해서는 안 되는 세상이기도 하고, 아무래도 영상을 공부한 사람이다 보니까 평면 작업에서 느끼는 한계를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해요.

 

최근 두 번째 책 『엄마, 있잖아』가 나왔어요. 작고 귀여운 책이에요.


작은 책을 좋아해요. 『엄마, 있잖아』를 만들 때도 사람들에게 선물하기 좋은 크기로 작게 만들고 싶었어요. 초판은 『여우책』의 동생 느낌으로 작게 만들었는데 단가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아서 재쇄부터는 판형을 바꾸려고요. 작으면 제본 과정에서 수작업을 많이 해야 한다더라고요.

 

부수는 얼마나 됐나요?


1쇄는 500부 정도요. 2쇄부터는 쭉 1000부씩 찍고, 『여우책』은 6쇄째 찍고 있어요.

 

책이 안 팔리는 요즘 시대에서는 선방했다고 여겨집니다.


다행이에요. 그렇게 유명한 집단이 아니었는데도 언리미티드 에디션 처음 나갔을 때 스페셜 부스로 자리를 받아서 초반에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여우책』을 낸 지도 꽤 오래됐는데 최근까지도 전시 문의도 주시고 계속 좋아해주시는 분들이 있고요. 『엄마, 있잖아』도 좋게 봐주셔서 여러모로 독립출판이었지만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다음 작업을 하는 원동력으로 삼고 있어요.

 

그림의 질감이 포근해요. 어떻게 작업하세요?


보통은 수채화로 많이 작업해요. 수채화 작업이 60%, 이후에 포토샵에서 디지털 기반이 40% 정도 들어가는 것 같아요. 질감은 거의 수채화로 작업했다고 보시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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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동물을 주제로 작품을 만들어 왔어요.


성격이 살가운 편이 아니기도 하고요, 사람 이야기를 할 때 사람으로 보이는 캐릭터보다 동물에게 가지는 일차적인 따뜻함을 통해 보여주는 게 더 편해요. 귀여운 동물 사진이나 영상을 볼 때 가장 영감을 많이 받기도 하고요. 『엄마, 있잖아』도 엄마 해달과 아기 해달이 손잡고 자는 영상을 보고 만들었어요. 동물들의 애정이 엄청나게 순수하게 느껴질 때가 있잖아요. 그런 점에서 사람에게 느끼는 복잡한 감정보다 훨씬 가깝게 다가올 때가 있는 것 같아요.

 

SNS를 통해 반려동물을 그려주는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어요. 동물을 키우시나요?


그 프로젝트의 솔직한 계기는 ‘좋아하는 일 하면서 돈 벌고 싶다’였어요. (웃음) 제가 동물을 그릴 때 정말 좋아하더라고요. 결과물도 마음에 들게 나올 때가 많고요. 동물을 엄청 좋아하지만 그만큼 책임감이 들기도 하고, 제 생활이 그렇게 안정적이지 않아서 스스로 반려동물을 키우지는 않아요.

 

창작자들은 안정적인 생활을 하는데 어려움을 느끼죠.


지금 입시 학원에서 강사 일을 하고 있어요. 그게 주 수입원이고, 일러스트레이터 일이 주기적으로 오는 편이 아니지만 그것도 본업이라고 생각해서 두 개를 계속 병행해요. 봉사랑은 다른 느낌인데, 제가 할 수 있는 일로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게 좋아서 입시 강사 일도 힘들지만 나름 보람을 느끼고 있고요. 일러스트레이터 일도 남에게 영향을 끼친다는 점에서 좋아요.

 

국제엠네스티와 같이 한 ‘세계 여성의 날’이나 ‘성소수자 혐오반대의 날’ 그림 작업도 비슷한 일일까요?


작업을 좋게 봐주시고 연락을 주셔서 저도 좋아하는 작업이에요. 소수자를 위한 작업을 계속 하고 싶고, 그런 의미에서 국제엠네스티와 같이 한 작업이 저에게 정말 도움이 많이 됐어요.

 

이후 출판 계획이 있나요?


길게 잡아서 올해 1년 정도는 책으로 신작을 낼 것 같진 않아요. 만약 하게 된다면 요즘은 우울증에 대한 이야기나, 성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를 소재로 작업을 해보고 싶어요. 준비가 많이 필요한 작업이어서 충분히 생각한 후에 만드려고요.

 

 

 

 


 

 

여우책구자선 저 | VCR
품에 안고 속삭이는 듯한 단문의 문구와 부드러운 질감의 수작업 일러스트로 이루어진 한 장의 그림 편지 같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고전문헌학자 배철현 “수련, 결국 불필요한 것을 버리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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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어려운 이야기다. 그런데 듣고 보면 또 쉬운 이야기다. 어떻게 보면 간단하지만 또 어떻게 보면 복잡하고 어렵다. ‘수련’에 관한 이야기다. 전작  『심연』에서 고독을 통해 나를 외부와 단절시키라는 메시지를 던지던 배철현 교수가 이번에는 본격적으로  『수련』을 들고 와서 나를 찾아나서라고 말한다. 나를 찾는 것이야 안 하겠다고 할 이유가 없지만, 그 방법이 이상하다. 그 전에 난데 없이 가진 것을 버리라는 것이다.

 

버리기는커녕 주워 담아도 부족한 시대. 아무리 공부를 하고 또 습득을 해도 더 좋은 대학 더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 벅찬 시대. 하나라도 더 차지해야 중간이라도 갈까 말까 한 이 시대에 버리라니. 그나마 가진 것도 거의 없는 우리에게 있는 것도 버리라니. 정말 어리둥절해진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 단순해지기까지 하라고? 점점 더 복잡해지는 이 시대에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닦아 내 능력을 한 단계 올리기도 바쁜 와중에 버리고, 단순해 지는 것이 과연 맞는 일일까?

 

하지만 조금씩 알 것도 같다. 배철현 교수가 이야기한 것들을 다시 한번 나의 생활에 비춰 되짚어 보면 말이다. ‘나는 하루의 시간을 오롯이 나를 위해 얼마나 쓰고 있는가. 내가 무엇을 해야 행복한지 생각해 본 적 있는가. 지금 나는 나의 행복을 위해 정말 해야 될 것을 하고 있나, 아니면 그냥 하던 대로 하던 것만 생각 없이 하고 있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하나 둘 내 생활에 덕지덕지 붙어 있는 군더더기 같은 것이 보인다. 익숙해서 몰랐던 삶의 찌꺼기도 보인다. 그리고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좋다고 해서 하고 있던 일들도 보인다.

 

아직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지만 나도 모르게 ‘수련’의 세계로 입문해 버렸는지도 모른다. 여러분은 어떤가. 배철현 교수와 함께 자신만의  『수련』의 세계로 들어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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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 뭔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하지 않는 것

 

이 질문부터 드려야 할 것 같아요.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전작  『심연』이라는 책이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을 받았었는데요, 이번 책  『수련』 은 『심연』과 어떤 관계에 있다고 봐야할까요?

 

저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자산은 개인이라고 생각했어요. 있는 그대로의 개인이 아니라 숙고하는 개인, 더 나은 자신을 연습하고 훈련하는 개인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시민들이 숙고하지 않는 한 자유민주주의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개인이 어떻게 더 나은 자신이 될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네 가지를 생각하게 된 것이죠. 그 첫번째가 ‘심연’이라는 것인데 자기 자신을 깊게 알기 위해서는 스스로 자신을 오롯이 볼 수 있는 고독이라는 시간, 즉 자신을 외부로부터 독립시키는 시간과 장소를 ‘심연’이라는 상징어로 사용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혼자 있으면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바로 수련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태권도를 한다고 생각하면 노란띠에서 빨간띠 정도가 수련이라고 할 수 있죠. 그 다음 세번째 단계가 누에고치가 나비가 되기 전 상태인 ‘정적’에 해당되고, 마지막으로 나비가 되는 네 번째 단계가 ‘승화’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수련’은 한 개인이 더 나은 자신이 되기 위한 전체 4단계에서 두 번째에 해당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수련’이라는 것은 내 안에 있는 것을 고찰한 후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과정에 있는 거네요.

 

그래서 수련은 주로 자신에게 불필요한 것들, 즉 흉내라든지, 욕심이라든지, 식탐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수련’은 뭘 하는게 아니라 뭘 안 하는 거예요. 버리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내가 뭔가 부족한 것은 많아도 뭔가를 버릴 것이 있나하는 생각이 드는 시대입니다. 버린 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 좋을까요?

 

자신을 삶을 가만히 보면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있어요. 제가 예를 들어서 엄청나게 많은 돈을 갖는다든지, 권력을 갖는다든지 하는 것은 필요 없는 것이거든요. 그 대신 저는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죠. 제가 정치가가 된다거나 배우가 된다거나 하지 않겠죠. 왜냐하면 저하고 맞지 않으니까요. 대신 저에게 맡겨진 인생의 배역이 따로 있다고 봐요. 그런데 자기가 맡은 배역을 알기 전에 주위 사람들이 너 이것도 필요한 것 같아, 이것도 해야 돼, 하는 일이 많죠. 하지만 중요한 것은 내가 해야 될 한 가지를 찾기 위해서 굳이 안 해도 되는 것들을 솎아 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버린다는 것의 의미입니다.

 

 

버린다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지를 찾는 과정

 

자신의 배역과 내가 해야 될 일을 찾는 다는 말은 책에 소개되어 있는 로마 제국의 시인 호라티우스의 말과도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호라티우스는 시간을 ‘남을 부러워하던 세월과 지금 이 순간으로 구분된다’고 말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이 말을 통해서 우리는 어떤 것을 얻으면 좋을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간을 흘려 보내요. 우주 안에서 모든 것을 삼켜 버리는 것이 시간이거든요. 시간 앞에서는 모든 것들이 사라져 버립니다. 시간이 모든 것을 판단해주는 마지막 판단자이자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괴물이에요. 그래서 이 시간을 포착해야 되는데요, 그런데 내 시간을 포착하기 위해서는 온전한 내가 돼야 하는데 내가 내 시간을 포착하지 않으면 보통은 남들이 만들어 놓은 게임의 룰에 의해서, 남들이 만들어 놓은 법칙에 의해서 움직일 수 밖에 없어요. 호라티우스가 말한 다른 사람을 부러워하는 세월이란 이런 의미고, 지금 이 순간은 뭐냐하면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을 강제적으로 만들라는 것입니다. 내가 나를 변화시킬 수 있는 시간은 지금 밖에 없습니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될 어떤 것입니다. 내가 될 어떤 것을 위해 준비하는 것이고 그것을 수련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좋은 미래를 위해서 지금은 힘들어도 조금은 참고 미래를 위해 투자하라는 말을 듣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한 마디 해 주신다면 어떤 말을 해 주고 싶으신가요?


질문에 ‘좋은 미래’라는 단어를 사용했잖아요. 좋은 것이 무엇이냐 스스로에게 물어보라는 것입니다. 그 좋은 것이 좋은 차 타고, 좋은 집에 살고, 떵떵거리고 사는 것이 좋다고 하면 그래도 상관 없지만, 자신에게 좋은 것이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것, 그 한 가지라면 다르죠.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려면 자신의 생각을 깊이 보고, 내 환경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좋은 것을 찾지 못하는 이유는 자신에게 좋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를 모르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닌가, 혹은 자신에게 좋은 것이라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좋은 미래는 사회나 부모나 친구들이 말하는 좋은 미래를 좋다라고 착각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좋은 것을 찾으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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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나의 삶에 관한 이야기

 

선생님은 학창 시절에 어떤 미래를 꿈꾸셨나요?


저는 정신없었어요. 방탕하고 남 부러워하고 허송 세월한 시간이 50년이었어요. 그래서 앞으로 제가 100살까지 살 건데 남은 50년은 그렇게 안 살겠다, 내가 원하는 대로 살겠다고 생각했어요. (웃음)

 

그렇다면 책에 있는 내용은 어떤 점에서 선생님 자신의 이야기가 되겠네요?


제 얘기예요. 제가 수련하면서 느낀 점을 적은 거예요.

 

워낙 많은 언어를 공부하시고, 전공하신 것으로 유명해서 원래 언어에 대한 의지나 목표가 있었는지 궁금해 하는 분들도 많거든요. (배철현 교수는 샘족어, 아랍어, 인도어, 고대 히브리어 뿐만 아니라 고대 이집트 상형문자나 쐐기문자 등 다양한 고대 언어를 연구한 고전문헌학자로도 유명하다.)


언어를 공부한 것은 제가 좋아서 한 것이지 교수가 되기 위해서 한 것은 아니에요. 제가 전공한 언어는 그에 대한 과도 없고, 전공한 사람도 없고, 그저 좋아서 한 거예요. 그건 당시 미국에서 공부할 때 제 지도 교수를 잘 만나서 공부를 하게 됐어요. 그렇게 좋아하는 공부를 하다가 운 좋게 교수가 된 것이고요. 그러다가 50세쯤 돼서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내가 내 삶을 내가 결정해서 내가 나가겠다고 나 스스로 선언을 했어요. 그래서 1년 동안은 제주도 가서 살았었고요. 지금은 경기도 가평 설악면에 집을 짓고 살고 있죠.

 

지금 그곳에 생활은 어떠신가요?


제 인생에 있어 가장 탁월한 선택이었어요. 거기서 생활하면서 자연도 보고, 개도 키우고 하면서 자연스럽게 내 자신에 몰입하는 삶으로 바뀌어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어떻게 보면 가평에서의 삶이 선생님께서 말씀 하신 4단계의 삶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겠네요.


가평에 안 갔으면  『심연』이라는 책은 못 썼을 것이고, 이번  『수련』 도 아마 못 썼을 거예요.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지를 찾기 위해 나머지를 버리는 과정

 

단순함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선생님은 책에서 인생이란 단순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라고 쓰셨어요. 그런데 이 말이 참 쉬운 것 같으면서도 어렵습니다. 어떻게 해야 단순함을 만들어 갈 수 있을까요?

 

예를 들어 최고의 체조 선수 코마네치의 움직임을 보면 단순해요. 양학선 선수나 김연아 선수의 움직임도 단순합니다. 그러나 그 단순함에 가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와 연습을 했겠어요. 그래서 이 단순함은 궁극의 정교함이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련을 통하지 않고서는 단순함이 나올 수 없어요. 따라서 단순함이란 것은 자신이 갖고 있는 한 가지를 찾기 위해서 나의 시간을 단순하게 만드는 과정입니다. 그리고 내가 만나는 사람도 단순하게 만들어야 됩니다. 자신에게 집중하기 위해서요. 그러면서 이 단순함이 내가 해야 될 한 가지를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갖다 줍니다.


선생님께서 아까 말씀하신 버리는 것과도 관계가 있겠네요.


똑같습니다. (웃음)

 

단순함이란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것 이외에 다른 것을 버려 나가는 과정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완성되어 가는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에겐 나 자신에게만 집중할 만한 여력이 없습니다. 스마트폰과 SNS 없는 삶을 생각할 수 없고, 그 만큼 다른 사람이 사는 모습에 관심이 많습니다. 또한 나 역시 다른 사람으로부터 관심을 받고 싶어 하죠. 『수련』에는 이렇게 나에게 집중하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타인에게 눈을 돌리고 그것이 ‘시기’가 된다고 했습니다. 나에게 집중하고 나 자신을 객관적이고 지속적으로 관찰하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 필요할까요?

 

다른 사람이 나에게 관심이 있는 경우가 있어요. 그건 내가 나에게 관심있을 때 다른 사람이 나에게 관심을 갖게 되는 거에요. 내가 나를 존경할 때 다른 사람이 나를 존경합니다. 자기를 가장 깊이 사랑하는 사람이 남을 사랑할 수 있어요.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남을 사랑한다는 것은 거짓말입니다. 그래서 서울대에서 요가수트라 수업을 할 때 체육복 입고 눈감고 앉아 있으라고 해요. 그러니까 학생들이 좀이 쑤시는 거죠. 그리고 제 수업에는 핸드폰 가지고 들어오면 F에요. 그 시간에 자신에게 집중해야 되기 때문이죠. 그런 것을 하지 않고는 성숙한 인간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부러움의 대상이 있다면 관심을 가질 수도 있는 것 아닐까요?


부러움의 대상이 지금은 자기 자신이 되어야 한다. 내가 될 자기 자신이 유일한 부러움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죠.

 

내가 될 미래의 내가 부러움의 대상이 돼야 한다는 것이죠?


그렇죠. 그래서 그걸 가지고 매일매일 수련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수련을 실천하려고 하면 쉽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선생님만의 현실적인 수련 방법이 있다면 살짝 알려 주세요.


저는 제가 가서 꼭 필요하지 않은 모임은 절대로 안 갑니다. 저는 아침에 일어나서 1시간씩 앉아있는데, 항상 다짐을 하고 기도하는 내용은 이거예요. 오늘 내가 하지 말아야 될 것이 무엇인가.

 

네, 책에서 봤습니다.

 

그걸 한 6년 동안 하니까 할 게 없더라고요. 내가 하지 말아야 될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면 충동적으로 습관에 의해서 하는 행동들이 있어요. 그런 것들을 안 하면 됩니다. 쓸데 없이 핸드폰을 보고 서핑을 한다든지, 쓸데 없이 이상한 과자를 먹고 있다든지하는 것처럼요. 그래서 사실은 이 과정에서 생각한다는 것은 ‘내가 무엇을 생각하는 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에요. 내가 무엇을 생각하면 생각한 것이 행동이 되고, 그것이 반복이 되면 습관이 되고, 습관이 되면 운명이 되는 것이기 때문에 내 생각을 장악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 말과 생각과 행동을 내가 생각한대로 하자는 것이죠. 가만히 생각해보면 대부분이 생각들이 어제까지 하던거 그냥 하는 거에요. 그게 습관이라는 거죠. 대부분 사람들의 일과를 보면 90%가 습관적으로 하던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 세달 정도 어느 기간만 습관적으로 하는 것들을 적어 보고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체크 하는 거에요. 그리고 저녁에 내가 실천했는가 보고, 그러다가 내가 정말 잘 할 수 있는게 뭐냐 그걸 한 번 뽑아보라는 거죠.

 

우리가 학교를 다닐 때도 그렇고, 직장에 다닐 때도 그렇고 무엇을 할 것이냐를 쓰는 일에는 익숙해도 무엇을 하지 않을 것이냐를 적어나가는 것에는 낯설어서 그런지 그 말씀이 독특하게 다가옵니다.


그래서 제가 책에서 말한 ‘창조’란 말이 그런 뜻입니다. 사실 창조는 쓸데 없는 것을 안 하는 것입니다.

 

창조라는 것은 보통 없는 것을 뭔가 새롭게 만들어 내는 것이라고 알고 있는데 하지 않는 것이라고 하시니까 혼란스럽습니다.


없는 것을 어떻게 만들어냅니까? 있는 것에서 쓸데 없는 것을 덜어내는 것이죠. 없는 것을 만들어낸다는 거짓말이 어디 있습니까, 세상에.

 

선생님과 말씀을 나누다 보니까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도 없고, 질문을 많이 할 필요도 없을 것 같습니다. (웃음)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 빼고 다 버리는 것 하나로 다 끝났어요? 하하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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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와 내가 함께 수련하며 삶을 변화 시키는 책

 

선생님은 수많은 언어를 공부하시면서 재미있다는 표현을 쓰셨습니다. 지금은 세상에 존재하고 있지도 않은 언어들을 공부하시면서 어떻게 어려운 게 아니라 재미있을 수 있을까요?


첫 번째는 아무도 모르니까 제가 속여도 모른다는 것이죠. (웃음) 인간은 언어 이상의 것을 생각할 수 없으니까 각각 문화가 다르다는 것은 표현하는 방법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다고 생각한 거에요. 영어에서는 어떻게 표현했고, 이집트 사람들은 어떻게 표현했고, 메소포타미아나 그리스 사람들은 어떻게 표현했을까. 이 사람들 사이에 공통점은 있을까. 이런 것에 관심이 있어서 맨 처음에는 종교 경전을 공부했어요. 종교 경전은 단어 하나가 역사에요. 수 만년의 역사가 들어있어요. 그래서 그 의미를 고고학적으로 캐보면 문장이나 그 경전이나 고전에서 의미하는 것을 살짝살짝 보여줘요. 그것을 발견하는 재미가 있는 거죠.

 

혹시 그런 오래된 언어를 공부하시다가 당시 사람들에 대한 놀라운 발견을 했다거나 하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으신가요?


히브리어에 ‘말’이라는 단어가 있어요. 이 단어가 어떤 때는 ‘word’라는 뜻도 되고 어떤 때는 ‘사건’이라는 뜻도 돼요. 그래서 이게 왜 이럴까 생각했는데, 문제는 영어나 한국어처럼 지금 우리가 쓰는 언어가 문제지 옛날 히브리 사람들은 말을 하면 반드시 행동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한 거에요. 말에서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것을 ‘거짓’이라고 했어요. 하지 않을 거라면 말하지 말아야 하는 거죠.

 

그러면 결국 거짓말이라는 것이 탄생하면서 말과 행동이 분리되었다고 할 수도 있겠네요.


그렇죠.

 

이런 재미로 언어를 공부하셨나 보네요. (웃음) 그런데 선생님도 삶에 집중하는 것 외에 다른 것에 눈을 돌릴 때가 있으신가요?


아침을 시작할 때 1시간 정도 앉아 있고, 그리고 뛰어요. 한 3킬로미터에서 4킬로미터를 뛰죠. 진돗개를 키우고 있는데 개와 함께 뛰죠.

 

선생님은 하루 종일 일에 집중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운동은 할 시간이 없을 줄 알았는데, 운동을 많이 하시네요?


운동 많이 해요. 요가도 하고, 필라테스도 하고. 모든 것을 다 집중하기 위해서 하는 거죠. 육체적으로 운동을 해야지만 몰입할 수가 있어요. 미국에 있는 제 지도 교수가 저에게 이런 말을 했어요. “미스터 배, 운동을 하고 시간 나면 공부하세요.” 제가 딱 그 스타일이에요. 그래서 운동에 시간을 많이 할애하고 있어요. 운동도 수련이죠.

 

그러면 조금 짓궂은 질문을 하나 드려보겠습니다. 책에 보면 식탐이야기를 하시면서 탐닉과 쾌락에 대해 말씀하셨는데요, 선생님을 자극하는 탐욕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있어요. 좋은 책을 보면 막 사려고 해요. 특히 외국 서적을 막 사요. 절제해야 되는데 안 돼요. 예스 24에도 제 이름으로 들어가 보면 외국 서적을 대한민국에서 제일 많이 샀을 거에요, 아마.

 

제가 원하던 탐닉에 관한 답변은 선생님에게도 이런 면이 있구나 하는 것이길 바랐는데, 당황스럽습니다. (웃음)

 

하하하. 영화도 좋아합니다. (웃음)

 

그렇다면 다른 개인적인 질문 하나를 더 드려보겠습니다. 선생님의 헤어스타일이 독특하다는 의견이 있는데요, 패션이나 헤어스타일에 관심이 있으신가요?


패션에 관심이 당연히 있어야죠. 패션은 자기 몸을 가꾸는 것이고 자기 몸이 다른 사람에게 보여지는 것이기 때문에 패션에 대한 관심은 당연히 갖고 있어야 되는 것이고 그것을 안 가지고 있다는 것은 말도 안 되죠.

 

그러면 헤어스타일도 선생님이 원하는 스타일로 하신 거네요?


저에게 맞는 헤어스타일을 해 주는 곳을 찾아서 거기만 가죠.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고 저한테 맞는 것을 찾은 것이죠.

 

결국 헤어스타일마저도 선생님이 말씀하신 ‘수련’과 맥락이 닿아있네요.


그렇죠. 하하하.

 

선생님이 아직도 버리지 못한 것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책에 대한 욕심을 아직 버리지 못했어요.

 

혹시 책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습관을 만들 수 있는 선생님만의 비법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자신이 생각하는 좋은 책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보세요. 여러 번 읽는 것이 좋습니다. 한 번 읽었다고 그 책을 다 아는 사람은 없을 거에요. 여러 번 읽으면 한 번 읽었을 때하고는 또 다른 의미를 선물로 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수련』을 읽는 독자들에게 한 마디 해 주신다면요.


『수련』은 머리로 쓴 것이 아니라 제 가슴과 다리로 쓴 책입니다. 제가 수련하는 과정을 적은 것이거든요. 그래서 여기 있는 것이 다 제 얘기예요, 여기 버려야 할 것이 다 제 얘기입니다. 즉 저의 고백서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단순히 읽지만 말고 아침에 한 10분 정도 앉아있고, 한 바퀴씩 뛰면서 운동을 하면 이 책이 더 이해가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따라서 이 책은 저와 같이 수련해 가는 책이고 독자들의 삶도 같이 변화하기를 기대합니다.


 

 

수련배철현 저 | 21세기북스
하루 10분, 자기 자신을 직시할 수 있게 도와주고 자신이 열망하는 최선의 삶을 살기 위해 무엇을 버리고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지 생각해볼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선사할 것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하재영 “사람들이 외면해버린 개들은 어디에서 죽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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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책 냈을 때는 부끄러웠는데요. 이 책은 사람들이 많이 알고, 관심 갖는 사람들이 늘어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해요.”


장편 『스캔들』과 소설집  『달팽이들』을 쓴 소설가 하재영의 첫 논픽션은 개들의 비참한 생태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작업이었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을 내고 하재영 작가는 책이 많이 알려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전에 없이 초조했다고 말했다. 소설을 쓸 때와는 달랐던 것. 이 책에는 그런 시급함과 간절함이 있었다. 그 말을 하는 작가의 눈에 맑은 눈물이 맺혔다. 왜 아니겠는가. 반려견 ‘피피’와 함께 사는 그가, 그 수많은 버려진 강아지들의 눈빛을 마주해야 했던 그가, 개 문제에 관심을 갖고 삶을 쏟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꼼꼼하게 기록한 그가 이 책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닿기를 바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유기견 임시보호를 하면서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하재영 작가는 그러나 이 문제가 단순히 유기견 범주에서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이내 깨닫는다. 유기견 문제와 번식견 문제, 식용견 문제는 지독한 순환의 고리 속에 연결되어 있었다. 우리 사회에서 다른 어떤 동물과도 비교할 수 없는 반려동물이라는 탁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동시에 식용동물, 그것도 법의 테두리 밖에서 처참한 방식으로 다뤄지는 개들. 그 많은 개들은 어디에서 죽는가. 이 문제를 아는 우리는 무엇을 시작할 수 있는가. 하재영 작가는 “이것은 제 고민의 과정”이라면서 계속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아주 조금이라도”넓혀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 말은 언제나 옳다. 그리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고민하는 이들에게 한 권의 책을 권한다.

 

저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사고방식 안에서 나는 모순적이고 위선적이고 동물의 고통에 대해 말을 꺼낼 자격조차 없다. 그러나 다수의 사람들이 이런 인식을 갖고 있더라도 어차피 마찬가지니 이것도 저것도 신경 쓰지 말자고, 불편한 이야기 따위는 집어치우고 살던 대로 살자고 말할 수는 없다. 이것이야말로 가장 경계해야 할 태도다. 전부 아니면 전무라는 사고방식은 우리에게 일관성을 강요한다. 그러나 일관성보다 더 중요한 것은 동기를 부여하는 것, 시작하고 개입하는 것이다.(292-2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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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을 그만두지 않는 것


취재와 인터뷰가 보통 힘들지 않았을 것 같아요.

 

책에 다 싣지 못했어요. 인터뷰도 많이 했는데요. 취재는 더 힘들었죠. 원래 관심을 갖고는 있었지만 번식장이나 개농장 같은 곳을 가본 적도 없으니까요. 어떻게 취재를 해야 할지 전혀 몰랐었어요. 완전히 맨 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취재를 해야 했죠. 보통 그런 상황에서는 인터넷 검색을 하잖아요. 그런데 너무 의아할 만큼 관련 정보가 없었어요. 특히 한국의 현실을 알리는 자료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자료가 부족하더라고요. 인터넷에도 우연히 개농장을 봤다는 사람 이야기, 잃어버린 개를 찾다가 번식장을 발견했다는 이야기 같은 게 있긴 하지만 주소가 있거나 하지도 않고요. 어떤 곳은 대충 짐작이 되어서 무작정 가보기도 했어요. 인터뷰도 그렇죠. 도살하는 장면을 봤다는 분이 있었는데요. 쪽지든 메일이든 보내서 만나달라고 했어요. 대부분은 답도 없어요. 확인 여부조차 알 수 없는 거죠. 결국 초반에 했던 그런 취재들은 거의 다 실패했어요.

 

그렇지만, 아무리 고생스러워도 해야 했던 거죠?


유기동물 구호단체에서 활동을 하던 것이 계기였어요. 처음엔 되게 불안했어요. 이 작업을 잘하는 건 둘째치더라도 시작이나 할 수 있을까 싶었던 거죠. 책 계약을 하거나 청탁 받은 것도 아니었거든요. 그냥 혼자 해봐야겠다고 하고 시작했던 거고요. 내가 이것을 시작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도 없었기 때문에 그만 둬도 누구도 알지 못하고, 뭐라 할 사람도 없었어요.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정말 많이 들었는데요. 그래도 열심히 취재를 다니다보니 아는 활동가 분들이 생겼어요. 그때부터 일이 조금 진행되기 시작했어요. 감사하게도 도와주시는 분들도 계셨고요.

 

책 도입 부분에 반복해서 자신의 도덕적 한계, 이기적인 계기에 대한 자각, 자기모순의 당혹감 같은 것들을 말하고 있거든요. 완전히 자의에서 책을 시작했던 거라면 더욱 궁금해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셨어요?

 

유기견들을 또다른 피피라고 여기는 것은 나의 감상주의이자 이기주의였다. 그래도 나는 그 이기심 때문에 유기견을 구하는데 힘을 보태고 싶었다.(중략) 이제부터 나는 그 이야기를 할 테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나는 내게 특별해진 존재를 다른 존재에게 투사하지 않고서는 아무 행동도 할 수 없는 것일까? 나는 어디에서 타자와의 공존을 시작할 수 있을까?(44-45쪽)

 

‘피피’라는 강아지와 살면서 관심이 생겼고요. 다들 그렇겠지만 처음에는 아무 생각이 없죠. 어느 날 강아지와 살게 됐고, 나는 그냥 얘를 잘 책임져야 한다, 정도일 거예요. 거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는 게 힘든 부분이기는 한 것 같아요. 어쨌든 동물 관련 문제를 계속 생각하고, 유기동물 관련 활동을 하면서 필요성을 느꼈어요. 이렇게 나에게 모순이 많지만 이것을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하고 싶었어요. 세상에 또 다른 피피들이 있는 거잖아요. 강아지뿐 아니라 동물 전체로 문제를 확대한다면, 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하는 것들이 시작이었고요. 사실 이 고민은 지금도 실천적인 부분에서 해결하고 뭔가를 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어쨌거나 고민을 그만두지 않고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범위를 늘려가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요.

 

책을 쓰겠다고 다짐한 결정적인 이유도 있었다면 듣고 싶어요.


구호단체 후원만 할 때는 안타까움, 연민은 있었어도 저 존재들이 내 삶에 같이 있는 존재라는 생각은 솔직히 안 들었어요. 물론 후원이 좋은 일이지만 그것이 아주 쉬운 것은 내가 실제로 행동하지는 않지만 동참하고 있다는 위안이 크기 때문이잖아요. 저도 그랬었는데요. ‘팅커벨 프로젝트’에서 임시보호를 요청받은 거예요. 지금은 서울시비영리단체고 센터가 따로 있지만 당시에는 센터도 아니었거든요. 저는 혼자 살고 있었기 때문에 임시보호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데 아침에 같이 눈 뜨고, 같이 밥 먹고, 산책 다니고 하다보니까 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당시에는 번식견, 식용견 문제까지는 생각 못하고 유기견에 대한 없었던 글을 써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요. 들여다보니까 그것만 떼어서 생각할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그래서 조금 더 넓혔던 거고요. 2015년에 독일 유기동물 보호소에 견학단으로 다녀왔는데 그때 확실하게 구체화가 됐죠.

 

남양주 개농장 이야기를 프롤로그에 쓰면서 “어딘가에서 이 책의 첫 문장을 시작해야 한다면 시간은 2017년 6월이어야 하고 장소는 남양주의 개농장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18쪽)고 했거든요.


모든 개농장이 음악을 틀진 않아요. 당연히 개 짖는 소리가 먼저 들리죠. 그런데 이 개농장은 음악 소리가 산에 엄청나게 크게 울려 퍼지고 있었어요. 하필 그때 나온 노래가 올드팝이었고요. 음악이 불러일으킨 기억 같은 게 있었어요. 뭔가 되게 이상한 기분이었어요. 개농장에 울려 퍼지는 음악 소리, 그 음악 때문에 생각난 고등학교 때의 제 모습, 동물에 관심 갖기 전까지의 제 모습 등이 겹치면서 그랬죠. 그래서 첫 장면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첫 장면이라기보다는 집필을 시작하면서 이 얘기를 먼저 써야지, 생각했던 거예요. 제일 처음 쓴 꼭지가 그 부분이었고요 책이 나올 때까지도 그게 책의 첫 부분이었으면, 했었어요.

 

책을 읽기 전과 후가 굉장히 달라지는 경험을 했는데요. 방금 말씀하신대로 프롤로그에서 보여주는 작가 자신의 ‘동물에 관심 갖기 전까지의’ 모습과 닿아서 그 느낌이 더 극대화되는 것 같아요.


그 전에도 개농장 사진 같은 건 봤었거든요. 그런데 그곳에서의 느낌은 너무 달랐어요. 청각과 후각, 시각 모든 게 엄청나게 감각적으로 자극을 주더라고요. 그 날이 저한테도 굉장히 강렬했던 것 같아요.

 

 

눈이 마주친다는 것


더구나 반려견과 생활하는 입장에서 쓰는 것이 얼마나 괴로웠을까요. 애견미용사 김명진 씨가 한 말, “아, 개도, 동물도 극한 상황에서는 차라리 죽고 싶어하는구나. 사람이면 벌써 자살했을 거예요.”(79쪽) 같은 부분은 읽는 것조차 쉽지 않은데 말이에요.


인터뷰도 그런데요. 일단 현장에 다녀왔을 때 제일 힘들었던 것은 눈빛이었어요. 개들의 눈빛이 있어요. 저는 취재 명목으로 관찰을 하고, 개들도 저를 관찰하는데요. 그러다보면 당연히 눈이 마주쳐요. 눈이 마주친다는 건 이상한 일인 것 같아요. 눈이 마주쳤는데 구하지 못하고 돌아와야 하는 거죠. 사실 저는 어떤 상황이나 사건보다도 그 눈빛이 너무 강렬하게 기억에 남고요. 오래 시달려야 하는 문제였어요.


책에 눈빛에 대해 묘사를 해보려고 했었어요. 저한테는 그것이 가장 강한 것이었으니까요. 그런데 못했어요. 그건 안 되는 일이었던 것 같아요. 누군가의 표정이나 눈빛에 대해서 언어로 표현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잖아요. 특히 곧 죽임 당할 동물의 눈빛을 어떻게 쓸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그건 안 되는 일이란 생각이 들어요. 안 되는 일이지만 그게 그렇게 쓰고 싶었어요. 제 죄책감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안 됐어요. 못 썼어요.

 

한 활동가가 “동물을 사랑하는 일이 사람을 증오하는 일이 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요.”(267쪽)라고 했지만 참, 쉽지가 않아요.


저도 항상 고민하고, 기억하려고 하는 문제예요. 누군가를 위해서 목소리를 내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하는 이 마음이 또 다른 누군가를 혐오하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늘 하죠. 하지만 상당한 노력이 필요한 일이에요. 며칠 전에도 일이 있었어요. 한정애 의원이 동물 관련 법안 발의를 많이 하세요. 그런데 육견업자들이 한정애 의원 사무실 앞에서 시위를 했어요. 자기 농장의 개들을 철장에 넣어 와서 개들을 불태우려고 했어요. 개들이 엄청나게 두려워하는 상황에서 개들한테 휘발유를 끼얹고 말하자면 퍼포먼스를 한 거죠. 경찰 제지로 결국 불발이 되긴 했는데요. 우리나라 동물보호법에서는 어쨌든 그 사람들로부터 개를 빼앗을 근거가 없기 때문에 이 개들은 그 사람들이 다시 데리고 갔어요. 솔직히 그런 걸 보면 피가 거꾸로 솟아요. 하지만 그렇더라도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이 분들을 배제할 수는 없다는 것을 의식적으로 갖고 있는 거예요. 네, 노력이 필요한 것 같아요.

 

애쓰는 사람들과 가해자가 따로 존재한다는 건 늘 절망적인 일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나라는 동물보호법이 아주 약한 나라거든요. 그러니까 번식업자들이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거죠. 개식용에 관해서는 아예 법이 없어요. 불법도, 합법도 아닌 무법지대예요. 법이라는 최소한의 장치가 없을 때 사람이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 몰라요. 게다가 그 존재가 약하고, 돈과 연결됐다면 아주 잔인해질 수 있어요. 인간의 선함과 연민에 기대서 잘 돌아갈 거라고 생각할 수 없어요. 그렇게 생각하는 건 너무 순진한 거고요. 한 사람의 번식업자나 한 사람의 육견업자한테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라고 하는 건 문제와 크게 상관이 없는 것 같아요. 법이 제대로 작용해야 하는 거죠. 동물보호법이 강력해져야 하고, 구체적이 되어야 해요. 결국 책을 쓴 것도 그 이유예요. 정치인들은 사람들이 관심 갖지 않고, 목소리 내지 않는 문제에 절대 움직이지 않잖아요. 이 문제에 대해 같이 목소리 내는 사람들이 많이 필요해요. 그래서 법이 바뀌어야 문제가 조금이라도 해결이 되니까요.

 

동물보호단체 ‘행복한 강아지들이 사는 집’, 약칭 ‘행강집’의 ‘행강대부’ 박운선 대표가 “반드시 없어져야 할 곳이 경매장”(94쪽)이라고 지적하는데요. 취재를 하면서 작가님이 특별히 시급한 문제라고 생각한 것은 무엇이었나요?


저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활동가들이 공감하고 있는 것이 ‘허가제’예요. 지금은 신고제인데요. 대부분 신고를 안 하죠. 이것을 허가제로 바꾸어야 해요. 이것이 불법 번식장을 없애는 첫 걸음이라고 생각해요. 작년에 바뀌긴 했는데요. 지금은 지켜봐야 하는 단계인 것 같아요. 결국 문제는 그것이죠. 강아지들이 너무 많다는 것. 너무 많고요. 많으니까 사람들이 쉽게 키워요. 잘못이라는 생각도 없이 내가 키우던 강아지가 새끼를 낳으면 남한테 주잖아요. 개식용의 경우에는 강요할 수는 없지만요. 책을 보고 판단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저는 어쨌든 반대를 하는 입장인데요. 이 문제가 진짜 어렵죠.

 

책에서 말한 “한국 사회에서 개의 분열된 위치가 만들어내는 여러 서사”(53쪽) 때문인 거죠. 반려동물이자 식용동물인 개의 처지 말이에요.


사실 개식용 문제는 현행법만 잘 지켜도 유지가 안 되는 산업이에요. 그런데 개고기 문제에 있어서는 아예 손을 놓고 있는 거죠. 축산물 위생관리법도 적용 안 되고, 식품위생법도 안 돼요. 아무것도 적용하지 않는 거예요. 당연히 적용을 해야죠. 어떻게 이런 업계가 있을 수가 있어요. 문제는 사람들의 인식이 그렇지 않다는 거잖아요. 책에서 계속 그 이야기를 한 것도 이 책을 읽고 사람들의 인식이 조금 바뀌었으면 하는 의도가 있었어요.

 

어느 나라도 축산물로 지정한 적 없는 종을 우리나라 축산업에 추가하고, 나아가 동물복지까지 개선하려면 막대한 비용이 든다. 게다가 1900년대 이후 세계적으로 새로운 동물을 주된 축산 종에 포함한 사례가 거의 없기 때문에 이 비용은 산출도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법화를 해서 기준에 맞는 축종과 사육과 도살 방식을 연구하고, 이에 상응하는 시설 마련을 한다면 그에 따른 비용은 어마어마할 것이다.(중략) 하지만 신뢰할 수도 없고 그 수요마저 줄고 있는 개고기를 합법화하느라 엄청난 혈세를 쏟아붓는 것이 ‘합리적’인 일일까?(215쪽)

 

안전과 위생을 담보할 수 없는 축산물이라는 점만 제대로 봐도 개식용이 어떤 문제를 갖고 있는지 잘 알 수 있어요.


국가에서 축산물로 규정하지 않는 고기를 먹는다는 게 어떤 일이겠어요. 축산물로 규정 했어도 위생과 안전에 문제 생기는 경우를 많이 보잖아요. 사람들은 그런 문제에 또 예민하거든요. 그런데 국가가 관리하지 않는 고기가 어떠리라는 것을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합법화된 것들은 문제가 생기면 추적할 수 있지만 이것은 당연히 추적도 못하죠. 이런 얘기를 하면 그러니까 합법화를 하자는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에 합법화에 얼마나 많은 비용과 노력이 필요한지,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지 적은 거예요. 정부 입장에서도 불가능한 일이거든요. 그 이야기를 하려고 했어요.

 

책의 여러 사례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국가 차원에서는 이 문제에 대한 다급한 인식이 전혀 없는 것 같아요.


짐작하기로는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조차 개식용은 법이 아니라 관습으로 인식하는 것 같아요. 어차피 지금까지 먹어왔던 것이지 않느냐는 거고요. 절반 이상의 국민들 역시 개식용은 한국의 문화라고 생각하는 상황이잖아요. 당장 법을 만들고, 어떻게 하지도 않지만 지금 있는 법으로 해결하려고도 하지 않는 것 같아요. 심지어 동물을 죽이면 동물보호법에 의거한 처벌을 당연히 받아야 하잖아요. 그런데 누군가 강아지를 죽였는데 먹으려고 했던 것이라고 하면 경찰이 그냥 가거든요. 어쩔 수 없다고 하는 거예요. 이런 일이 계속 생기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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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외면해버린 개들


책에서 다룬 유기견, 번식견, 식용견의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많이 있잖아요. 모두가 책을 읽으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 혹시 그런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해주고 싶으세요?


그게 어려운 것 같아요. 왜냐하면 그쪽의 말이라는 건 되게 간단해요. 예를 들어 소나 돼지는 먹는데, 라든가 합법화 하면 간단한데, 같이 간단하게 얘기할 수 있잖아요. 그런데 이 간단한 한 마디를 반박하기 위해서는 많은 얘기를 해야 하죠. 사실 모든 문제가 그래요. 쉽게 내뱉는 사람들은 한 마디로 얘기하지만 아니라고 얘기하려는 사람에게는 엄청나게 많은 언어가 필요한 거죠. 저도 어쩔 수 없이 한 마디로 반박할 말은 아직 찾지 못했어요. 그냥 제가 알고 있는 것들을 잘 얘기하려고 하는데요. 글쎄요. 사람에 따라서도 다를 것 같고 그러네요. 

 

워낙 다층적인 이야기라서 어려운 문제이긴 할 텐데요. 이 책을 통해서 꼭 강조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저도 기획 단계에서는 유기견 이야기를 생각한 거고요. 개식용 문제 이야기를 꼭 해야 할까, 생각한 적은 있었어요. 유기견 이야기만 하면 얼마나 공감 받기 쉽겠어요. 하지만 개식용 이야기가 나오는 순간 절반의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꼭 써야 할까, 생각을 했었죠. 그런데요. 반려견이었다가 유기견이 된 개들만 많은 게 아니고요. 반려견의 지위를 얻지 못해서 모든 사람들이 외면해버린 개들이 어디에서 죽느냐는 이야기를 했을 때 이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더라고요. 한국에서 반려견이 아닌 모든 개들은 다 그렇게 되는 거예요. 보호소에서 안락사 되든, 개농장이나 도살장에서 죽든 둘 중 하나밖에 없는 거거든요. 결국 번식견, 유기견, 식용견이 다 맞물려 있어요. 모든 결과가 원인이고, 원인이 결과인 거죠. 이 순환의 고리에 놓고 이 문제를 봐야 하는 문제가 있어서 어떤 한 부분을 떼어서 얘기하는 것은 올바르지 않은 것 같아요.

 

책 후반부의 ‘자격 없는 자의 응답’ 부분이 굉장히 중요한 것 같아요. “나는 비거니스트도, 실천주의자도 아니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를 늘려가려고 애쓰는 사람일 뿐이다.”(292쪽)라는 내용인데요. 그러니까 우리는 과정 자체를 이야기해야 하는 거죠.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거든요. 사실 이것은 내 안의 모순과 싸우는 일인 것 같고요. 자기는 아무것도 안 하면서 하나라도 하려는 사람을 위선적이라고 하는 건 말이 안 돼요. 처음에는 저도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과 싸워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는데요. 지금은 거기에 집중하기보다 내 안에 모순에 조금 더 집중하고 있어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아주 조금이라도 넓혀갈 수 있는지 고민하는 게 더 생산적이니까요. 이것은 제 고민의 과정이기도 해서요. 이런 부분을 읽으시는 분들과 공유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

 

한 권의 책을 완성한 지금, 그동안에 해결된 고민도 있으세요? 혹은 지금 어떤 고민을 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이것은 끝이 없는 고민 같아요. 일단 현대사회는 모든 소비가 동물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부분이니까요. 친구 중에도 완벽한 비거니스트이자 활동가가 있어요. 그렇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너무 많이 소비하고 있죠. 저는 윤리적 선택이라는 말은 하고 싶지 않지만요. 어쨌든 윤리와 관련된 문제고 나의 선택이 나의 도덕성에 달린 문제라고 했을 때, 이것이 어려운 이유는 행위에 대한 결과를 내가 알 수 없기 때문이에요. 한 끼 식사에 고기를 안 먹는다고 해서 목숨을 구하는 동물이 있긴 한 건지, 단 한 마리의 고통이라도 줄긴 한 건지 알 수도 없고요. 동물실험을 안 하는 제품을 선택했다고 해서 정말 동물실험을 당하는 동물 한 마리라도 목숨을 구한 건지 확인할 수가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것을 특히 지속해나간다는 건 너무나도 힘든 문제 같아요. 그런 고민이 책의 시작이었고, 끝이었다고 하면 그것은 계속 되는 것 같아요.

 

스스로 가장 보수적인 입장, “인간이 동물을 이용하는 것을 전부 없애지 못하더라도 고통은 언제나 최소화되어야 한다는 입장이다.”(276쪽)라고도 하셨어요.


책에 ‘동물권’이라는 말을 쓴 이유는 동물보호가 마치 인간이 시혜를 베푸는 것 같은 인식을 주기 때문이었어요. 하지만 동물권이라는 말을 그렇게 쉽게 쓸 수가 없는 것이 이것은 동물해방과 짝을 이루는 개념이고요. 동물 관련 단체 중에서도 좀 더 급진적인 분들이 이것을 표방하고 있거든요. 자기 삶에서의 실천이라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요. 그렇게 본다면 제가 그 단어를 쓴 것에는 꽤 부담이 있어요. 저도 아직 거기까지 가 있는 사람이 아니고요. 결국 제가 뭔가를 주장하기 위해서는 자기 성찰이라는 게 있어야 하는 거잖아요. 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얘기할 수 없는 것이고요. 그래서 제가 가장 보수적인 입장이라고 했을 때 그것은 지금 제 단계에서 할 수 있는 말인 것 같아요.

 

지금, 우리가 이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뭘까요?


주변에 책을 냈다고 했을 때 동물에 관심이 없다는 분들이 있었고요. 동물을 좋아하시는 분들은 마음 아파서 못 볼 것 같다고 하셨어요. 양쪽에서 이렇게 외면을 당하면 내 책은 안 팔리는구나(웃음) 했는데요. 제가 책에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중 하나가 인터뷰였어요. 제가 쓰는 부분은 감정도 절제하고 쓰려고 했지만요. 인터뷰를 할 때나 인터뷰를 정리할 때는 달랐어요. 그분들의 삶이 주는 엄청난 감동 같은 게 있었거든요. 이분들의 삶의 드라마가 저한테는 정말 중요한 부분이었고요. 만약 그게 없었다면 이 책은 전혀 다른 모습이 됐을 거예요. 그래서 이 책에 대해 꼭 얘기하고 싶은 것은 이게 동물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저는 이것을 사람에 대한 이야기로 생각하고 썼다는 거예요. 다만 그들이 동물에 자신의 삶을 건 사람들이다보니 이들을 통해 사람이 아닌 존재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는 거죠. 이것을 꼭 강조하고 싶어요.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하재영 저 | 창비
한마리의 강아지에서 시작한 여정이 동물권에 대한 윤리적ㆍ철학적 고민으로 확장되며,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 대해 곱씹게 한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초등학교 엄마들은 왜 ‘독서 하브루타’에 열광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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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의 자녀 교육 방식인 하브루타는 탈무드를 공부하는 방법으로써 가족과 함께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단순히 지식을 습득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지식을 바탕으로 질문을 만들어서 대화와 토론을 즐기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유대인들은 탈무드 속의 다양한 생각들을 자신만의 지혜로 만들어간다. 많은 이들이 유대인의 성공 비결로 하브루타를 꼽는 이유다. 독서하브루타는 책읽기와 하브루타를 접목시킨 것으로, 책을 매개로 질문을 만들고 생각을 나누면서 지혜를 쌓아가는 활동이다. “함께 책을 읽되 ‘토론’보다는 ‘질문’으로 시작해 보자”고 제안하는 것.

 

서울금북초등학교에는 2015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학부모 동아리 ‘금북 독서하브루타’가 있다. 남미숙 교장은 ‘학부모를 위한 자녀 교육법 강좌’의 일환으로 하브루타를 소개했고, 이를 계기로 동아리가 만들어졌다. 이들은 엄마들끼리 모여서 혹은 각자의 집에서 아이와 함께 독서하브루타를 이어가는 동시에, 여러 아이들을 모아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에는 ‘엄마 선생님’으로 활약한다. 

 

동아리원들은 독서하브루타를 통해 자아를 찾고 힐링을 경험했다고 말한다. 뿐만 아니라 아이와 함께 질문하고 답하는 과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루어졌고, 아이의 눈높이로 세상을 바라보게 됐다고 덧붙인다. 독서하브루타란 무엇이고,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이기에, 이렇게 놀라운 변화를 일으키는 걸까. 모든 해답은  『대한민국 엄마표 하브루타』  안에 담겼다. 지난 2년 동안 서울금북초등학교에서 독서하브루타 활동을 이끈 남미숙 교장과 7인의 엄마 선생님들이 생생한 경험담을 들려준다.

 

지난 26일, 서울금북초등학교에서 남미숙 교장과 ‘엄마 선생님’ 방은정 씨를 만났다. 40여 년간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 온 남미숙 교장은 『내 아이의 강점은 분명 따로 있다』를 비롯한 다수의 교육서와 교과서를 집필했고, <소년조선일보>에 아이들과 학부모를 대상으로 상담 칼럼을 연재했다. 방은정 씨는 초등학교 4학년 쌍둥이의 엄마이자 독서하브루타 지도사로서, 금북초등학교에서 관련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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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미숙 교장

 

엄마들 사이에서 소문난 ‘독서하브루타’


독서하브루타를 시작하신 계기가 있었나요?

 

남미숙 : 황순희 선생님이라고 독서하브루타를 개발하신 분이 계신데요. 그 분이 다른 학교에서 독서하브루타를 운영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래서 황순희 선생님을 모셔서 강의를 듣고, 우리 학교에서도 독서하브루타를 해보자고 생각했죠. 하브루타에 대해서 공부를 하다 보니까 독서뿐만 아니라 굉장히 여러 가지 영역이 있고 그 본질은 관계, 소통, 생각의 확장에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제가 교장공모제를 통해서 금북초등학교에 왔는데, 그때부터 경력 단절 여성들의 일자리 창출과 재취업에 초점을 맞췄었어요. 독서하브루타는 엄마들의 자아실현에도 도움이 됐죠. 가정에서만 하브루타를 하는 엄마들도 계시지만, 이 활동을 통해서 경력을 이어가는 분들도 계시거든요.

 

하브루타 지도사로 활동하시는 건가요?


남미숙 : 그렇죠. 엄마 선생님들이 수업 시간에 아이들을 지도하시는 것도 보수를 받고 일하시는 거거든요. 저는 엄마들에게 동기부여를 해주고 기회만 주었을 뿐이고요. 엄마들이 모여서 공부를 하고, 부족함을 느끼면 한양대학교 사회교육원에서 수업 들으면서 자격증을 따기도 했어요. 황순희 선생님께서 그곳에 강좌를 개설하셨거든요.

 

현재는 동아리 4기 엄마들이 활동 중인데요. 이렇게 오랫동안 좋은 반응을 얻을 줄 아셨어요?


남미숙 : 1기 엄마들이 활동을 하면서 참 좋았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그게 소문이 나면서 빨리 2기를 모아달라는 요청이 있었고, 그렇게 4기까지 오게 됐어요. 독서하브루타를 경험해 본 엄마들이 나 자신의 힐링을 위해서도 너무 좋은 활동이라고 느꼈기 때문에 이렇게 이어져온 것 같아요.

 

직접 경험해 보신 입장에서는 어땠나요? 힐링이 많이 되셨나요?


방은정 : 너무 재밌는 시간이고요. 이제 저희는 무엇을 공부하러 가는 입장이 아니에요. 독서하브루타를 한지 거의 2년이 되었는데, 잠깐 여행을 갔다 오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다양한 생각들을 들으면서 작은 내 자신이 어디에 위치해 있는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생각하게 돼요. 현재 내 자신을 인식하고, 그러면서 앞으로의 시간을 계획해 보게 되고요.

 

독서하브루타가 엄마들의 자아발견, 자기계발에 영향을 미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방은정 : 제 경우에는 독서하브루타를 하면서 과거를 다시 돌아보게 됐어요. 예를 들면 『행복한 청소부』라는 책을 가지고 ‘내가 진짜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 만들기를 하면서, 아이들 낳기 전에 직장 생활 하면서 가졌던 고민들을 다시 떠올리게 됐어요. 당시에 회사를 다니고 있었지만 사실은 선생님이 되고 싶었거든요. 현재의 내가 그때의 고민을 다시 떠올리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계기가 됐어요. 현재와 미래를 바라보는 시각도 새롭게 가지게 됐고요. 가족 간의 관계에도 도움이 됐어요. 시댁과 문제가 있던 부분들도 하브루타로 풀었고요. 지금은 남편과도 그림책 하브루타를 하고는 해요. 그림책을 통해서 질문을 만들고 생각나누기를 하면서 일상의 문제들을 풀어가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전에도 책읽기는 계속 하셨을 텐데, 왜 독서하브루타를 하면서 달라졌을까요?


방은정 : 제가 예전에 아이들한테 책을 읽어주던 방식은 그냥 많이 읽는 거였어요. 10권을 쌓아놓고 다 읽은 후에 ‘아, 오늘 정말 책 재밌게 읽었다’ 하고 끝이었죠. 그런데 독서하브루타를 하면서부터는 책 한 권을 가지고도 아이랑 1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눠요. 책을 읽는다는 게, 예전에는 지식을 그냥 눈으로 보고 습득하는 과정이었다면, 이제는 질문을 통해서 생각을 나누는 과정이 된 거예요. 그러면서 일상의 문제들을 푸는 도구로 계속 사용되고 있는 것 같아요.

 

아이들에게 가능한 많은 책을 읽히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시잖아요. ‘책 만 권 읽기’가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었고요. 하브루타를 처음 시작할 때는 ‘이렇게 천천히 읽어도 되나?’ 하는 생각에 조바심이 날 것도 같아요. 어떠셨어요?


방은정 : 조바심은 전혀 없었어요. 왜냐하면 답답한 부분이 많이 해소됐거든요. 기존에는 책을 읽은 후에 남는 게 뿌듯함 말고는 없었어요. 그런데 하브루타 시간에 질문 만들기, 생각나누기를 하니까 아이의 깊숙한 생각을 알 수 있고 내 생각도 아이한테 깊숙이 전달할 수 있더라고요. 그게 너무 매력적이었어요. 요즘에는 도서관에 갔을 때 책을 쌓아놓고 읽는 엄마들을 보면 가서 하브루타를 하고 싶은 욕망이 올라와요(웃음). ‘이렇게 다 읽으면 뭐해요’라고 말하고 싶지만 못하죠. 혼자 앉아 있는 아이한테는 살짝 다가가서 책 한 권을 내려놓고 ‘우리 그림으로 질문 만들기 해볼까’ 하고 말해보기도 해요(웃음).

 

독서하브루타 시간은 어떻게 진행되나요?


방은정 : 도입부에서는 책에 대한 관심도를 높이기 위해서 관련된 사항들을 함께 이야기하고요. 책을 읽고 내용을 파악한 다음에 생각나는 질문을 만들어요. 그 질문들을 가지고 생각나누기를 하고요. 질문들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거나 원하는 내용을 골라서 글쓰기나 연극 등 갖가지 활동을 해요. 이게 일반적인 단계예요. 초반에는 엄마가 질문을 해서 아이가 대답하도록 진행했고요. 그 단계를 넘어서면 아이가 질문을 하도록 만들었어요. 아이들이 더 많은 질문을 만들어내게 하는 것이 저희의 가장 큰 목표거든요. 스스로 만든 질문을 가지고 더 넓게 생각하도록 이끄는 게 좋죠.

 

갈수록 아이들이 엄마에게 질문을 하도록 만들어야 하나요?


남미숙 : 질문을 주고받는 것에 초점을 두기보다는, 질문을 매개로 대화가 이루어지고 서로의 생각이 교환된다는 걸 생각하면서 접근하면 좋을 것 같아요. 질문을 해야 된다고 생각해서 의문문으로만 대화를 나누는 게 아니고요. 어떤 질문이 만들어지면 거기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나가는 거죠. 그 대화 속에서 또 다른 질문이 나올 수도 있고요. 그래서 어떤 때에는 질문 하나만 가지고도 1시간 동안 대화가 이어지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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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은정 학부모

 

 

내 아이가 좋아하는 책으로 시작하세요


아이들에게 주로 어떤 질문을 하세요?


방은정 : 예를 들어서 수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면 ‘수에 대한 개념이 왜 생겼을까?’라는 질문부터 했던 것 같아요. 아이가 질문과 답을 원활하게 하지 않더라도 핵심이 되는 부분에 대해서 엄마가 질문을 하면서 그것에 대해서 생각하는 시간을 갖게 해주는 거죠. 질문은 항상 원점부터 시작했던 것 같아요. 10은 왜 생겼을까, 100은 왜 생겼을까, 사람들은 왜 나눗셈을 할까, 이런 질문들이죠. 아이가 대답을 하면 저도 다시 질문을 하고, 그렇게 질문하고 대답하는 과정을 계속 이어가는 거예요.


남미숙 : 요즘에는 수업 시간에도 하브루타 방법을 많이 활용해요. 수학, 사회, 국어 등 다양한 과목에서 하브루타 방식으로 원리를 찾아가는 거죠. 짝과 같이 질문을 통해서 대화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어요. 수학 수업의 경우에도 하브루타 방식으로 진행하면 단순히 문제를 푸는 데에서 끝나지 않아요. 친구랑 둘이 질문을 가지고 대화를 나누면서 원리를 깨쳐나가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훨씬 더 가치가 있어요.

 

독서하브루타를 하시면서 내 아이의 몰랐던 부분을 새롭게 알게 되셨나요?


방은정 : 그럼요. 저희 아이들은 남자 여자 쌍둥이인데, 둘이 성향이 너무 달라요. 딸아이 같은 경우에는 내향적이고 자기표현을 잘 못하는 성격이에요. 그런데 독서하브루타를 하면서 아이의 장점을 발견하게 됐어요. 느리지만 깊이 있는 질문을 한다는 게 느껴지더라고요. 아마 하브루타를 하지 않았다면 그 장점을 발견하기 어려웠을 것 같아요. ‘그냥 책을 좋아하는 아이구나’ 정도로 생각했겠죠. 단순한 그림책을 보면서도 깊은 생각을 하는 아이라는 걸 알 수 없었을 것 같아요.

 

학교 안에서도 아이들의 변화가 관찰될 것 같은데요. 어떤가요?


남미숙 : 외부 강사님들이 오실 때마다 우리 학교 아이들은 정말 다르다고 이야기하세요. 수업 시간에 생각하는 것도 다르고, 발표하는 것도 다르고, 질문의 내용도 너무 좋다고요. 저희가 1년 마다 한 번씩 아이들이 자기 소개하는 모습을 영상에 담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요. 촬영하시는 분이 다른 학교에서도 같은 작업을 하신 적이 있대요. 그런데 이전에 본 아이들과는 너무 다르다고 하시는 거예요. 그 친구들은 외워서 자기 소개를 하는데, 우리 학교 아이들은 살아있는 자신의 언어로 이야기를 한다는 거예요. 저희가 하브루타 수업을 한지 2년 정도 됐는데, 오시는 강사님마다 놀랐다고 이야기하세요. 일단 스스로 질문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도 그렇고, 수업 시간에 활발하게 자기 생각을 말한다고요.

 

‘어떤 책으로 독서하브루타를 해야 할까’ 고민하는 분들이 계실 것 같은데요. 책 고르는 기준을 갖고 계세요?


방은정 : 현재 내 아이가 가지고 있는 고민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면서 책을 고르는 경우가 많아요. 수업을 할 때도 그렇죠. 동아리 아이들의 고민이 뭔지 파악해서 거기에 맞는 책을 찾아서 가지고 가요. 이전 시간에 아이들의 관계가 별로 안 좋았다면 친구 관계에 관한 책을 준비해서 수업하는 거죠. 요즘 엄마하고 관계가 별로 안 좋은 아이가 있으면 엄마와 관련된 책을 고르고요. 일상의 고민들을 책으로 가져가는 거예요.

 

독서하브루타를 처음 시작하는 엄마들은 어떤 책을 선택하는 게 좋을까요?


남미숙 : 저는 손녀랑 같이 하브루타를 하고 있는데요.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제가 읽어줬던 책이 있어요. 자기한테는 굉장히 익숙한 책이니까 저를 만날 때마다 그 책을 읽어달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하브루타를 만나기 전에는 그냥 일방적으로 읽어줬어요. 그런데 아이가 더 자라고 책에 익숙해지다 보니까 책 속에서 궁금해 하는 것들이 생기기 시작하는 것 같아요. 궁금해 하는 걸 가지고 이야기를 해나가니까 더 좋은 것 같고요. 그래서 제가 생각하기에는, 내 아이가 굉장히 좋아하는 책을 가지고 엄마가 가볍게 질문을 만들어내면서 시작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아이가 대답을 하는 과정에서 ‘너는 궁금한 거 없어?’라고 물으면 아이도 질문을 만들 거고요. 꼭 새로운 책을 사서 시작하지 않아도, 아이가 좋아하는 책으로 해보는 게 어떨까 싶어요.

 

하브루타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가 정답을 찾지 않는 거잖아요. 네 생각은 맞다 혹은 틀리다, 네 질문에 대한 정답은 이거다, 이렇게 정의내리지 않아야 하는데요. 엄마 입장에서는 인내가 필요한 일이기도 해요. 적응하기까지 힘들지 않으셨어요?


방은정 : 이 질문에 대한 생각은 저와 다른 동료들이 조금 달라요. 저는 독서하브루타를 하기 전에도 아이들을 별로 구속하지 않고 화내는 않는 엄마였거든요. 그런데 저희 동아리 엄마들이 다 그렇지는 않았어요. 그렇다 보니까 초반에는 엄마가 부드럽게 ‘학교 잘 다녀왔니?’라고 말하면 아이들이 ‘엄마 오늘 하브루타 하고 오셨어요?’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그런 과정 속에서 저희는 ‘그동안 아이들이 엄마한테 느꼈던 감정이 무엇인지’ 생각하게 됐어요. 엄마는 정말 최선을 다해서 아이들을 대했지만 아이들이 엄마를 대하는 마음속에는 이미 벽이 있다는 걸 인정했죠. 그 벽을 허물 수 있는 방법은 진심으로 사과하는 거라고 생각해서 진심을 담아서 아이들한테 말했어요. ‘엄마가 예전에는 명령조로 지시하듯이 말했었는데 이제부터는 그렇게 안 하려고 노력하려고 해. 그러니까 너도 엄마가 하브루타를 할 때 적극적으로 임해주지 않겠니?’라고요. 사과하는 시간을 오래 가졌던 것 같아요.

 

엄마 입장에서는 질문을 던지면서 기대하는 답이 있을 수 있는데, 바람과 달리 아이가 엉뚱한 이야기만 할 수도 있겠죠? 그러면 참을성 있게 기다려줘야 할 텐데, 쉽지는 않을 것 같아요.


방은정 : 이제 저희는 견디는 단계는 지나갔는데요. 초반에  『돌멩이 수프』라는 책으로 하브루타를 할 때 이런 일이 있었어요. 늑대가 돌멩이를 지고 닭의 집을 찾아와서 문을 두드리는 부분이 있는데, 그때 문을 열어줘야 하는지에 대해서 질문을 만들고 생각나누기를 했어요. 그런데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 중에는 ‘엄마, 문을 열어주고 같이 수프를 끓여 먹으면 되지 않을까요?’라고 하는 거예요. 엄마 입장에서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거죠. 그때 저희가 생각한 건 ‘너를 해칠지도 모르는데 문을 열어주면 절대 안 돼’라고 말하는 건 하브루타가 아니라는 거였어요. 그런 마음을 내려놓자고 생각했죠. 사실은 아직도 내려놓는 연습을 하고 있는데요. 내려놓으면 하브루타가 더 잘 되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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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아이를 알지 못한다


독서하브루타를 시작한 초기에 힘든 점이 있었다면 어떤 건가요?


방은정 : 집에서 하브루타를 하려고 할 때 아이들이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게 가장 힘들었죠. 질문을 하면 네, 아니요, 글쎄요, 이런 식으로 대답하는 것도 힘들었고요. 어떻게 하면 그런 대답들을 막을 수 있을까 고민하다 보니까, 엄마들이 조금 더 좋은 질문을 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더라고요. 질문하는 연습을 더 하는 수밖에 없죠. 그래서 열심히 질문 만들기를 하는 거예요.

 

아이들이 하브루타의 재미를 알게 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리나요?


방은정 : 처음에는 저희가 조금 잔머리를 굴렸어요. 아이들이 수업 끝나고 나서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게 어렵잖아요. 그래서 하브루타 수업을 놀 수 있는 시간으로 만들자고 생각했어요. 수업을 통해서도 재미를 느끼고, 수업이 끝난 후에도 재밌는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해야 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초반에는 일부러 수업을 재밌게 했고요. 그래도 재미없어 하는 아이들이 있을 텐데, 그런 아이들도 수업에 계속 나오게 하기 위해서 수업 후에 놀이 시간을 줬어요. 공원에 가서 같이 놀게 했죠. 그 시간 때문에라도 하브루타에 나오게 한 거예요. 그렇게 일정 시간이 지나고 나니까 아이들에게는 재밌을 수밖에 없는 수업이 됐어요.

 

아이들 눈높이에 맞춰서 질문을 던지는 것도 중요할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아이들의 시각에서 소통할 수 있을까요?


남미숙 : ‘나는 이 아이를 모른다’는 것을 전제로 이야기해야 돼요. 우리가 가장 많이 하는 실수가 있어요. ‘나도 4학년이었던 때가 있고, 그때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알기 때문에, 지금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런데 내가 4학년이었을 때의 환경과 지금 4학년 아이들의 환경은 너무 다르기 때문에 나는 이 아이를 몰라요. 아이의 생각을 온전히 듣는다는 마음으로 접근해야 돼요. 저는 아이들하고 이야기할 때 ‘나는 정말 너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라, 그래서 너에 대해서 듣고 싶어’라는 생각으로 다가가요. 그러면 아이들한테서 많은 이야기를 끄집어낼 수 있어요. 제가 40년 동안 많은 아이들을 만나면서 알게 된 건 아이들 각자가 너무나 다르다는 거예요. ‘너는 이럴 거야’라는 짐작으로 접근하면 아이가 거기에 맞춰서 따라와요. 그렇지만 진정한 의미에서의 대화는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아요. ‘나는 너를 잘 모르겠어, 네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너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라는 태도로 접근하면 아이가 자기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죠.

 

금북초등학교에서 하브루타 수업은 어떻게 운영되고 있나요?


남미숙 : 우리 학교는 세 개의 작은 학교로 나눠져 있어요. 1, 2학년은 ‘생태놀이학교’ 3, 4학년은 ‘책과 함께 크는 학교’ 4~6학년은 ‘자유학기제 예비학교’예요. 하브루타 수업은 3, 4학년 아이들이 듣고 있어요. 현재 3~6학년 아이들은 다 하브루타 수업을 했던 아이들이고요.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에 엄마 선생님들이 수업을 진행하시는데, 1년에 10차시 정도 돼요. 그리고 독서하브루타뿐만 아니라 수업 시간에도 선생님들이 하브루타식으로 하세요. 하브루타 연수를 받는 선생님도 많이 계시고요. 하브루타 모임을 만들어서 연구를 하시기도 해요. 독서하브루타만 하는 게 아니라 수업 전체가 하브루타가 되다 보니까 효과가 있는 것 같아요.

 

하브루타를 하면서 아이들과 문답을 주고받으면 수업 속도가 느려지지 않나요?


남미숙 : 옛날과는 많이 달라져서요. 지금은 속도를 빼는 교육과정이 아니에요. 그리고 하브루타 방식에 익숙해지면 선생님은 더 편할 수 있어요. 아이들이 질문을 만들어 내고 답하거든요. 서로 토론하고 가르쳐주면서 수업이 이루어지는 거예요. 선생님은 처음에 문제제기를 하고 아이들이 질문을 만들어 내기까지만 도움을 주면 돼요. 그 다음부터는 아이들이 굉장히 활발하게 수업에 참여해요. 사실 선생님이 일방적으로 주는 수업은 선생님도 힘들어요. 아이들이 살아서 움직이는 걸 보면 선생님은 행복하죠. 보람도 느끼고요. 그래서 선생님들이 참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모든 선생님이 하브루타를 하고 계신 건 아니지만, 많은 선생님들이 하브루타에 관심을 갖고 계세요. 아이들이 하브루타 방식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에, 선생님이 조금만 관심을 가지시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되어 있고요.

 

『대한민국 엄마표 하브루타』 를 읽고 ‘나도 아이와 같이 독서하브루타를 해보고 싶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 텐데요. 먼저 경험해 보신 입장에서 조언해 주고 싶은 내용이 있을까요?


방은정 : 첫 번째는 내 아이와 얼마나 소통이 되는지를 먼저 확인하시라는 거예요. 소통이 안 되고 있는 상황이라면 관계 문제부터 회복하셔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으면 하브루타는 절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또 말씀드리고 싶은 건, 하브루타를 시작하실 때는 그림책 하나 놓고 그림만 가지고 30분 동안 이야기하시라는 거예요. 처음부터 그림책을 다 읽은 후에 질문을 만드는 건 어렵거든요. 그림을 보면서 엄마가 질문 하나 하고, 아이가 질문 하나 하고, 그 과정을 반복하시는 거예요. 그림만 놓고 하브루타를 하다가, 그 다음에는 책 제목만 놓고 하브루타를 하고, 이후에는 한 문장만 놓고 하브루타를 하고, 이런 과정을 6개월 정도 하시면 어떨까 싶어요. 여유 있게 생각하시고요. 그러면서 아이가 ‘이 책 너무 재밌어, 엄마 이 책 읽고 하브루타 해요’라고 말할 때까지 기다리셔도 좋을 것 같아요.

 

교장 선생님은 어떠세요? 하브루타를 시작하시는 분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남미숙 : 이 책을 읽으시고 아이와 둘이 독서하브루타를 하겠다고 생각하시는 것보다는, 엄마들끼리 먼저 시작하셨으면 좋겠어요. 엄마들이 모여서 독서하브루타를 한 후에 집에 가서 아이와 함께 해보고, 엄마들끼리 주기적으로 만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아이와 하브루타를 해 본 경험을 서로 나누는 거죠. 조언도 해주고요. 그냥 우리 아이랑 둘이 해봐야지, 라고 생각하면 이런 저런 일들 때문에 미루다가 점점 결심이 희미해지거든요. 그래서 엄마들끼리 먼저 해보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고요. 꼭 많은 사람이 모일 필요 없이 4명 이상이면 좋을 것 같아요. 아이하고만 하브루타를 하는 게 아니라 남편과도 같이 해보면 좋을 것 같고요.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잖아요. 지금 모임을 같이 하고 있는 사람들과 독서하브루타를 시작해 봐도 좋고, 옆에 있는 친구와 먼저 해봐도 좋아요. 시간이 지나면 아이들을 모아서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수업을 진행해도 좋을 거라고 생각해요.

 

독서하브루타를 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원칙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남미숙 : 처음 우리나라에 하브루타가 소개될 때는 학습에 도움이 되고 지적 능력을 키워 나가는 방식으로 인식된 면이 있는 것 같아요. 저는 그게 먼저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가장 중요한 건 관계이고, 아이의 질문을 통해서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게 되는 것 같아요. 그 수준에 맞춰서 대화가 이루어지는 것 같고요. 앞서 방은정 선생님께서는 관계가 회복된 다음에 하브루타를 하자고 말씀하셨는데, 저는 생각이 약간 달라요. 하브루타를 하다 보면 관계가 좋아지기도 하거든요. 하브루타에서 중요시 여기는 게 질문인데, 질문을 한다는 건 상대의 이야기를 듣겠다는 각오이기도 하죠. 서로 대화를 해나가는 수단이자 내 생각을 정리해보는 수단이기도 해요. 그래서 하브루타를 하다 보면 관계가 좋아지고, 그러다 보면 학습효과나 창의력도 높아지는 게 아닌가 싶어요. 지금 관계가 어설프다고 해도 가볍게 하브루타식 대화를 시작해 보시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해요. 질문을 가지고 대화를 하면 내 생각을 강요하지 않거든요.


 

 

대한민국 엄마표 하브루타김수진, 김현주, 방은정, 이미경, 이혜민 저 외 2명 | 공명
엄마의 자신 있는 분야를 선정해 하브루타를 이끈 미술하브루타와 음악하브루타까지 질문과 토론, 웃음으로 가득한 시끄러운 교실과 가정에서의 다양한 하브루타 수업 현장들로 가득하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수연 “영유아 훈육을 둘러싼 부모들의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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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저귀를 겨우 떼고 나니 이제는 훈육 걱정이다. 아이의 자존감을 위해서 하고 싶은 말을 꾹 참고 24개월을 키웠는데 아이는 어린이집에서 사회성이 가장 떨어지는 아이라고 한다. 스마트폰, TV는 멀리하고 주말에는 바깥 활동도 많이 했는데, 아이는 갑자기 내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다. 어른들께 인사 잘하라는 말은 이제는 알아들을 것 같은데, 시큰둥하다. 권위적인 부모가 되고 싶지 않아 그렇게 육아 책도 열심히 읽고 전문가들의 강연회도 찾아다녔는데 도저히 해답이 보이지 않는다. 나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훈육은 과연 언제부터 시작해야 하는 걸까.

 

위 사례를 들은 아기발달전문가 김수연 박사는 단호하게 말했다. “훈육은 0세부터 필요하다.” 말귀를 알아듣지도 못하는 신생아 때부터 훈육이 필요하다고? 놀라기 전에 ‘훈육’의 개념을 바로잡고 가자. 훈육은 단순히 부모의 말을 잘 듣는 아이로 키우기 위한 일이 아니라, 아이가 남을 배려하고 잘 어울리며, 책임감과 자존감 높은 성인으로 성장하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영유아발달심리학, 발달신경학을 공부하고, 이스라엘 아동발달연구소에서 영유아 발달평가 프로그램을 운영한 김수연 박사는 현재 ‘김수연아기발달연구소’를 운영하며 수많은 부모와 아이를 평가, 상담하고 있다.

 

김수연 박사가 쓴  『0세부터 시작하는 감정조절 훈육법』은 25년 넘는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핵가족화된 육아 환경에 적합한 0~5세 훈육 방법을 제시하는 책이다. “자존감 높은 아이로 키우고 싶다”는 부모들에게 김수연 박사는 말한다. “스스로 감정을 조절할 기회를 줘야 한다.” 화내지 않고 내 아이를 훈육하고 싶다면, 아이의 발달 특성과 기질을 잘 살펴보자. 태어났을 때부터 작은 자극으로 스스로 감정을 가라앉히도록 도와주면 감정조절 능력이 향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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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기적인 특성을 전제로 한 훈육이 필요

 

0세부터 훈육을 시작해야 한다는 이야기, 굉장히 낯설다.

 

힘든 일이 발생했을 때 느끼는 스트레스를 충동적으로 표현하지 않도록 도와주려면 훈육은 0세부터 시작해야 한다. 요즘 부모들은 아이에게 “NO” 소리를 하지 않아야 하는 강박관념이 있는데, 애착 개념과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0세부터 훈육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는 아이에게 감정을 조절할 시간을 주라는 뜻이다. 아이를 방치하라는 말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아기의 스트레스 상황에서 부모가 스스로 안정감을 잃지 않고 천천히 호흡하면서 다가가라는 뜻이다.

 

울 때 바로 안아주지 않으면 애착에 문제가 생기지 않나?


중요한 게 ‘바로’라는 지점인데. 아이가 울면 다가가서 먼저 양육자의 얼굴을 보여주라. 그러면 아기의 불안이 감소된다. 일단 양육자의 얼굴을 보여준 후, 장난감을 보여주면서 “괜찮아”하고 양육자의 안정적인 목소리를 들려주면서 불안한 감정을 가라앉힐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면 된다. 굳이 안아서 흔들어주는 강한 자극을 제공하지 않아도 스스로 감정을 조절할 수 있으면, 양육자와의 안정적인 애착관계 형성이 어렵지 않다.

 

부모의 즉각적인 반응이 없으면, 아이가 상처받지 않을까?


평상시에 잘 먹이고 잘 놀아주고 보호하는 태도를 일관되게 보인 양육자라면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아이도 양육자가 자신을 위해서 위험한 행동을 저지한 것이라는 걸 잘 안다. 그렇기 때문에 정서적인 불안이 발생하거나 감정조절을 하기 어려운 아이로 성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을 잘 보호하고 상대를 배려할 줄 아는 성인으로 성장할 수 있다.

 

아이의 기질, 발달 특성을 알고 훈육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0세부터 시작하는 감정조절 훈육법』은 0세부터 48개월 이후까지, 월령별로 구분해 훈육법을 소개했다.


5세 이후는 말로 하는 훈육이 가능하지만, 그 전까지는 대화로 훈육이 불가능하다. 말귀를 잘 알아듣지 못하는 애를 두고 부모가 말로 설명하고 타이르고 훈육하면, 아이에게는 그저 소음이다.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신다”로 들릴 뿐이다. 발달기적인 특성을 이해하고 훈육하는 게 정말 중요한데, 문제는 지금은 핵가족 시대, 독박육아라는 점이다. 대가족 사회에서는 저절로 보고 배우는 부분이 있었다. 조부모나 형제들을 보면서 스스로 습득하는 부분이 컸는데, 요즘은 엄마와 나, 단둘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거리 두기, 안전문 스킬을 활용하라는 거다.

 

책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방법이 ‘거리 두기’다.


아주 단순하다. 바람직한 일을 하면 애정을 주고, 그렇지 않은 행동을 하면 멀어지는 거다. 말로 화내는 것도 아이 입장에서는 다가오는 거다. 말로 훈육하는 것은 5세 이후나 가능하다.

 

‘거리 두기’ 기술을 썼는데도 다음날 똑같이 행동할 때는 어떻게 반응해야 하나?


0~5세 훈육은 반복적으로 같은 반응을 보여주어야 하는 과정이다. 한두 번 기술을 적용하는 걸로는 아이에게 인식되기 어렵다. 낯선 환경에서 떼를 쓰는 경우에는 최소 4회 정도의 같은 경험이 주어질 때, 아이가 비로소 양육자의 의도를 이해한다.

 

5세 이전의 아이에게 체벌을 가하는 경우는 어떻게 보나? 회초리는 과연 효과가 있나?


회초리는 아이가 잘못을 뉘우치게 하기보다 양육자에 대한 두려움을 증가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 손찌검은 회초리보다 더 큰 인격적인 모욕감을 느끼게 한다. 더구나 얼굴 부위에 손찌검을 당하면, 오랫동안 기억이 나서 성인이 되어서까지 마음에 큰 상처로 남는다. 특히 독박육아에 있어서 체벌은 절대 안된다. 아이를 키워본 경험이 많고 아이의 어떤 경우에도 화가 나지 않는 사람이라면 체벌해도 된다. 이를 테면 훈장 선생님 같은. 하지만 육아에 경험이 없는 사람이 체벌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이중 체벌하는 경우도 많다.


이중 처벌을 하면 아이가 상처를 받는다. 거리 두기, 밖으로 데리고 나오기, 안아서 안전문 안에 두기 등 신체를 구속하는 방법은 아이의 충동적인 행동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행동으로 보여준 거다. 행동으로 훈육한 후 다시 말로 야단치면 아이가 이중 처벌을 받았다고 느낄 수 있다.

 

 

17개월부터 집안일을 함께하는 게 좋다

 

엄마, 아빠가 생각하는 올바른 훈육법이 달라 고충을 겪는 가정도 많다.


훈육도 주양육자가 중심을 잡고 하는 것이 좋다. 주양육자가 너무 못할 경우는 보조양육자가 하되, 주양육자가 보조양육자의 입장에 서서 아이에게 반응해야 한다. 울면서 오는 아이를 다독이면서, “아빠(엄마)가 너의 이런 행동 때문에 화가 난 거잖아. 네가 아빠(엄마)한테 사과할까?”라는 식으로 가야 한다.

 

과제 중심형 사고를 하는 양육자는 훈육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런 경우 아이들의 돌발적인 행동에 매우 당황하고 일관된 훈육태도를 유지하지 못한다.


육아는 체력으로 도전하는 것이지, 정보로 해결할 일이 아니다. 요즘 부모들은 고학력화가 되어 회사에서 일을 하듯 정보를 습득하고 분석해서 육아법을 찾아내려고 하는데, 내 아이에게 딱 맞는 최선의 육아법을 찾는 건 너무나 어려운 일이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우선 법적 부모의 역할까지를 목표로 삼아야 한다. “아이가 성장하고 발달할 수 있는 의식주와 교육, 놀이 환경을 제공해준다”고 생각하는 게 좋다. 최고의 양육환경을 제공해주는 게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면 해야 할 일은 끝이 없다. 만약 육아휴직 중에 육아 우울증이 심하면 직장으로 복귀하는 것이 좋다. 이스라엘에서는 1년 이상 독박육아를 할 경우 양육자가 육아우울증을 경험하게 되고 감정기복이 심해져서, 1년 이상의 독박육아는 권하지 않는다. 미국에서 1만 명 이상의 어린이를 상대로 조사한 연구 결과(2014년)가 있는데, “아이가 2세 이하일 때 엄마가 일을 하고 있어도 5세 시점의 학습능력이나 문제행동 등과는 관련이 없다”고 설명한다. 결국 아동발달에 영향을 주는 주요 요인은 엄마의 정신건강, 부부의 친밀도, 보육원의 보육의 질에 있다. 엄마든 아빠든 조부모든 보육사든 상관없이 주양육자가 애정을 갖고 양육을 하는 게 더 중요하다.

 

육아를 정말 즐기면서 하는 사람도 간혹 있다.


100명에 1명 정도, 즉 1% 정도는 있다. 지인 중에 유학을 가서 박사과정까지 수료했는데 아이를 낳고서 육아가 너무 좋다며 학업을 그만둔 사람이 있다. 있긴 하지만 정말 흔치 않은 케이스다. 이건 타고난 경우다.

 

아이의 발달을 저해하는, 가장 문제라고 생각하는 육아 방식은 무엇인가?


과잉 간섭과 과잉 보호가 문제다. “내가 다 해줄게, 나만 믿고 살아”는 아이의 성장을 막는 행동이다. 유럽에서는 1년 이상 육아휴직을 할 수 없다. 왜냐면 엄마가 애를 계속 데리고 있는 것이 아이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기 때문이다. 1년간 독박 육아를 한 엄마들을 연구한 결과 우울증과 감정기복이 심했다. 엄마의 체력이 떨어지면 보육의 질은 당연히 낮아질 수밖에 없다. 매일같이 열심히 놀이터를 데리고 가는 것보다 연령에 맞는 어린이집 뇌발달 프로그램을 참여하는 게 훨씬 좋다. 예전의 대가족 사회에서는 모방 학습이 가능하기 때문에 어린이집을 안 보내도 되지만, 지금은 다르다.

 

부모의 컨디션이 정말 중요한 게, 체력이 달리면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일도 아이에게 화를 낸다.


물론이다. 말실수도 피곤해서 나오는 거다. 훈육을 해야 하는 상황인데 부모가 너무 피곤하다면, 차라리 아이에게 다가가지 않고 멀어지는 게 부작용이 덜하다. 부모가 아이에게 거리를 두는 행동만으로도 아이는 메시지로 받아들인다. 자기를 반성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는 거다. 하지만 문을 닫고 들어가면 버림받았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안전문을 활용하는 게 좋다.

 

책 속 부록으로 ‘월령별 집안일 함께하기 훈육 매뉴얼’이 실렸다. 말귀를 알아듣기 시작하는 17개월부터 집안일을 하는 게 좋다고 강조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의 한 교수가 84명의 성장과정을 추적 분석한 결과, 이른 나이에 집안일에 참여할수록 성공할 가능성이 크며, 아이들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왜 그럴까, 집안일이 아이에게 인생 전반에 필요한 책임감, 능숙함, 자립심, 자아존중감을 가르치기 때문이다. 특히 만 3~4세 때 집안일 참여도가 20대 중반의 성공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으며, 15~16세까지 집안일에 참여하지 않다가 하게 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고 말한다. 집안일은 아이에게 가족을 배려할 기회를 제공하는 일일뿐 아니라, 일상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보여준다. 이 때, 부모의 말투도 중요한데 권유형으로 말하는 게 좋다. 단, 부모가 편하기 위해, 시켜 먹기 위한 심부름은 하지 않는 게 좋다.

 

아빠들이 최소 3~6개월간의 육아휴직을 갖는 것이 좋다고 했는데, 왜 3~6개월인가?


발달심리학에서는 낯선 사람을 신뢰할 수 있는, 애착관계가 만들어지는 기간을 6개월로 본다. 아빠라는 존재를 신뢰할 수 있게 되려면 최소 3개월에서 6개월은 아버지가 육아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 정서감정을 잘 읽지 못하는 양육자들이 아이의 심리를 이해하려면 아이와 지내는 시간을 가능한 많이 만드는 게 좋다. 아이가 넘어져서 몸이 아플 때 어떤 표정을 짓는지, 부모의 눈치를 볼 때, 곤란한 상황에 놓였을 때 어떤 행동을 하는지 부모가 알아야 한다. 아이의 표정과 행동, 말을 많이 관찰할수록 아이의 심리를 파악할 수 있는 능력도 커지고, 아이에 맞는 훈육도 가능하다.

 

아내들의 인내도 필요한 것 같다. 남편들도 육아에 동참하고자 노력하는데 성에 안 차니 부부 갈등이 생긴다.


남편이 실수했을 때 못 본 척 넘어가주는 지혜도 필요하다. 아내가 선생님같이 가르치려는 태도를 보이면 그 일을 다시 하기 싫어한다. 육아와 가사 중 남편이 더 쉽게 생각하는 일이 있다면, 그 편을 택하는 게 좋다. 야단치는 것도 좋지 않다. 야단을 맞으면 육아에 대한 공포를 빨리 없애기가 어렵다. 작은 일에도 칭찬해주는 지혜가 필요하다.

 

훈육 고민을 갖고 있는 부모들에게 꼭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영유아기 때의 훈육은 체벌을 가해야 하는 나이가 아니다. 영유아기 때는 어떤 잘못을 해도 되는 나이다. 부모가 한 번 말해서 아이가 알아들을 수 있는 시기는 만 5세 이후다. 그 이전에는 규칙을 정해도 어길 수 있는 시기다. 한큐에 아이가 변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아이와 밀당을 해야 한다. 네 번을 똑같이 반복해서 차가운 매너를 보여야 한다. 아이는 극도로 자기중심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아이에게 가장 큰 충격은 부모가 자신에게 애정을 거두는 일이다. 옳지 않은 행동을 했을 때, 아이에게 관심을 주지 않으면 아이는 자신이 잘못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어릴 때부터 상대를 배려하는 아이로 키우지 않으면, 커서도 달라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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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 독자들이 물었다

'0~5세 자녀를 둔 부모들이 가장 많이 하는 훈육 고민'

 

생후 4개월 아기가 분유 타는 시간도 못 참고 악을 쓰며 운다.

 

주양육자가 아이가 태어났을 때부터 쭉 칭얼거릴 때 빨리 다가갔을 확률이 크다. 생후 4개월이면 가족의 얼굴도 인지할 수 있고 목소리로 가족을 알아챌 수 있다. 그동안 아기의 욕구를 빨리 해결해줬다면, 지금부터는 조금 천천히 아이에게 다가갈 필요가 있다. 아기 앞에서 분유를 타면서 안심시키는 표정을 짓고, “괜찮아, 기다리세요” 하는 말을 천천히 반복하면서 기다리는 연습을 시키면 된다. 시간이 걸린다고 해서 엄마에 대한 신뢰를 저버리지 않는다. 분유를 다 타면 다가가서 “잘 기다렸다”고 칭찬해주면서 천천히 분유를 먹이자.

 

생후 5개월인데, 혼자서 놀지 못하고 계속 놀아달라고 한다. 어떻게 반응하는 게 옳은가?

 

마찬가지로 아이가 칭얼댈 때마다 빨리 반응해줬을 가능성이 높다. “기다리세요. 이제 5개월이 되었잖아요. 기다리는 연습도 필요해요”하고 안정적인 목소리(비난하는 목소리가 아닌)로 말하고, 그래도 칭얼거린다면 자극이 많은 밖으로 아기를 데리고 나가는 게 좋다.

 

16개월 아들인데 또래에게 물건을 빼앗겨도 가만히 있는다.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모르겠다.

 

16개월이면 몸의 움직임이 많아지는 시기다. 질적운동성이 부족한 경우 공격적인 성향의 아이를 만나면 미리 포기하는 모습을 보인다. 질적운동성은 5세 이후 스포츠 활동을 통해서 향상시킬 수 있는 능력이다. 아이가 억울하게 빼앗겼다면 친구나 친구의 양육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다시 가져다주는 게 좋다. 속상한 마음에 다그치거나 장소를 벗어나기보다는 장난감을 다시 가져다주면서 “괜찮아, 속상해하지 마”라고 말해주는 게 좋다.

 

19개월 여자아이다. 평소에 밥을 잘 안 먹는다. 밥을 치우면 그때야 짜증을 부리며 먹기 시작한다. 아이에게 자꾸 “안 된다”는 말을 하게 돼서 마음이 너무 괴롭다.

 

훈육을 위해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해야 할 때는 해야 한다. 대신 평소 즐거운 시간을 보낼 기회를 아이에게 충분히 주어야 한다. 놀고 싶은 아이의 욕구가 충족되지 않은 상태에서 안 된다는 메시지를 많이 주면,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의 짜증이 폭발한다. 특히 엄마에 대한 반항심을 먹는 시간에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 엄마가 원하는 것이 자신이 밥을 많이 먹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19개월이면 잘 걸을 수 있는 나이이므로 넓은 환경에서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게 좋다. 가능하면 아이가 “안 돼.”라는 말을 하지 않을 환경에서 시간을 보내는 게 좋다.

 

25개월 남자아이인데 종종 동생을 때리고서, 안 때렸다고 한다.

 

60개월의 아이라면 거짓말일 수 있지만, 25개월 아이는 자신의 생각을 언어로 잘 표현하지 못한다. 25개월 아이의 문장을 너무 신경 쓰면 안 된다. 헛말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숏타임인지장애를 떠올려야 한다. 뭔가를 때린다는 건 반사적인 행동이라서 어떤 스트레스가 있었을 경우가 있다. 이럴 때는 부모가 침묵, 또는 거리 두기 스킬을 써야지, 자꾸 다가가서 말을 한다고 해도 아이는 잘 알아듣지 못한다.

 

30개월 딸인데 물건을 잘 던진다. 정색하면서 야단쳐도 씨익 웃고, 신경을 쓰지 않고 있으면 밥상에서 물컵을 확 엎어 버리기도 한다.

 

무반응, 거리 두기를 하는 게 좋다. 30개월이면 아이도 물건을 던지면 안 된다는 걸 안다. 그동안 부모가 너무 오냐오냐 했을 가능성도 있다. 이런 행동을 수시로 한다면, 화를 내거나 다가가지 말고 침묵을 해야 한다. 부모의 침묵을 보면 아이도 겁을 먹는다. 그래도 울면 안전문에 아이를 데리고 가서 혼자 반성하고 감정을 조절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게 좋다.

 

32개월 남자아이, 40개월 여자아이를 키우는 할머니다. 마음이 약해서 아이들에게 훈육하기가 어렵다. 아이의 엄마, 아빠는 야근을 많이 하기 때문에 주말에만 거의 아이를 본다. 할머니 입장에서 어떻게 훈육하는 것이 옳은가?

 

요즘 조부모들이 너무 안쓰럽다. 딸, 며느리, 아들, 사위 눈치를 너무 많이 본다. 손자 하나 멋지게 키워주고 싶다고 말하는 조부모들을 종종 본다. 문제는 누가 주양육자이냐는 문제다. 할머니가 주양육자라면 할머니의 기준에 맞춰 아이를 키워야 한다. 할머니와 시간을 많이 보내고 있어도 주양육자가 엄마라면 엄마의 기준에 맞춰 훈육해야 한다. 할머니 말을 잘 안 듣는 아이라면, 아이랑 타협해야 할 때 “엄마한테 전화해볼까? 엄마한테 물어볼까?”라고 접근해야 한다.

 

48개월 아이인데, 공공장소에서 너무 소란스럽게 행동한다. 제멋대로 뛰어다니는 걸 어떻게 봐야 하나?

 

아이의 인지발달이 정상범위에 속한다면, 공공장소에 도착하기 전에 아이에게 기대하는 행동을 미리 알려줘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의 지시에 따르지 않으면, 조용히 아이를 안고 밖으로 나온 후, 2-3분간 분리시킨 후 다시 데리고 들어가면 된다. 4번 정도 반복해서 훈육을 했는데도 아이의 행동이 수정되지 않는다면, 아이가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하는 공공장소에는 데리고 다닐 수 없다. 반복적인 훈육으로도 수정되지 않는다면, 아이의 인지발달이 정상범위에 속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발달평가가 필요하다.

 


 


 

 

0세부터 시작하는 감정조절 훈육법김수연 저 | 물주는아이
첫아이 훈육에 어려움을 겪는 초보 양육자, 둘째아이만큼은 올바른 훈육을 하고 싶은 부모, 주양육자가 되어 손자 손녀를 돌보고 있는 조부모 모두에게 큰 도움을 줄 것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박찬일 “노포에 자랑스러움과 걱정거리를 안겨드린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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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식당』 이후 4년. 박찬일은 전국의 ‘노포’를 취재해 어디에도 알려지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담고 다시 돌아왔다. 모두 26곳의 노포, 노포의 평균 나이 50년이 넘는 대단한 목록이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노포의 장사법』  속 쟁쟁한 노포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역사이고 과거로부터 찾은 식당의 미래였다. 


취재는 쉽지 않았다. ‘어떤 중식당은 짜장면만 일고여덟 그릇을 먹었다.’(374쪽) 그래도 섭외에 실패했다. 어떤 곳은 간청하는 박찬일이 “불쌍해서” 수락해주었다. ‘용마갈비’는 70년대-80년대 서울 외곽 인구 폭발 성장에 있어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곳이기에 꼭 담고 싶었다. “갈비 정말 많이 먹으러 갔”고 간신히 허락을 받았지만 사진만큼은 끝내 거절 당했다. 이런 이야기가 얼마나 많을까. 낮술도 많이 먹었고, 몸도 많이 상했다. 하지만 좋으니까 했다. 해야만 했다. ‘숭덕분식’의 떡볶이, ‘41번집’의 포장마차 요리들, 기사식당으로 성공신화를 쓴 ‘성북동돼지갈비집’, 오사카의 ‘오모니(어머니를 일본어 발음으로 읽은 것)’와 을지로 노가리 골목을 만든 ‘을지오비베어’까지.


몸고생, 마음고생이 많았지만 취재 과정에서 얻은 영감이 많았다고 박찬일은 말한다. 특히 그는 인터뷰 말미에 “노인이 갖고 있는 힘이 있다. 노인 직원을 고용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장수한 식당, 노포. 장수한 노인의 건강법을 엿보듯 장수한 식당의 철학을 엿보는 일은 그렇게 닿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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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것의 소중함


취재 기간이 길었던 것 같아요. 2년 전 취재도 보이고 그렇더라고요.

 

심지어 그동안 돌아가신 분들도 계세요. 세 분이 돌아가셨고요. 지금도 아프신 분들이 많아 걱정이에요.

 

그 촉박함, 초조함 같은 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기록이 중요하죠. 그때는 기록의 중요함을 몰랐으니까요. 이것은 사실 민속기록인데요. 문학 영역에는 많이 있었지만 여기에 이런 시도는 없었던 것 같아요. 언론에서 인터뷰 하는 정도인데요. 언론에서도 이것이 의미 있다고 생각하지를 않았어요. 정치인, 예술인에 대해서는 <중앙일보>의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이라고 연재도 있었잖아요. 하지만 거기에 요리사나 밥집 주인이 나오는 건 못 봤어요. 밥이라는 건, 밥집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대중에게 그렇게 가치 있다고 판단이 안 되었던 거죠.

 

왜 그랬을까요? 너무 가까이 있기 때문일까요?


원래 그랬죠. 흔한 것은 소중한 줄 모르는 법이니까요. 우선 본인들이 귀중한 걸 알지 못했어요. 식당들이 왜 이제야 ‘since’를 붙이는 걸까요? 영어를 쓴다는 자체가 새로운 유행이란 뜻이죠. ‘since2015’도 있잖아요.(웃음) 그것도 오래된 거예요. 4년 가는 식당도 많지 않아요.

 

한편 책에 등장하는 노포들은 평균 50년이 훌쩍 넘는 곳들이죠.


삼십 몇 년 된 집도 있는데요. 가치가 있기 때문에 넣었어요. 그 정도 되는 식당도 별로 없죠.

 

그 이유를 한국 근현대사의 역사적 맥락에서 읽어내셨잖아요. 전쟁을 겪으면서 유실된 것들도 많다고요.


그렇죠, 그게 제일 큰 요인이기도 할 거예요. 하지만 외국의 예를 보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아요. 유럽이라고 전쟁이 없었나요? 1차, 2차 세계대전 다 겪었잖아요. 일본도 공습 엄청 당하고, 파괴된 경험이 있고요. 도쿄는 완전히 평평해졌었어요. 워낙 폭격을 받아서요. 그런데도 노포가 살아남은 것은 오래된 것의 소중함을 누군가가 인정해준다는 거겠죠. 우리는 밥집은 천하다고 생각했고요. 주인들도 자신의 밥집을 대를 물려줄 거라고 상상도 안 했잖아요. 다들 돈 벌면 그만두어야지, 그 마음으로 하거든요. 이제야 이것이 소중하다는 걸 알아채는 분위기죠. 이제야.

 

그만큼 험한 일이기도 했고요.


험하고, 인정받지 못하고요. 사회적으로 장인이 존중받는 분위기가 없고 오래된 것의 소중함을 인정해주지 않는 분위기가 작동한 거죠. 옛날에 조선백자가 개밥그릇이었다잖아요. 실제 있었던 일이에요. 학예사, 인사동 고미술상 같은 분들이 플라스틱 바가지를 주고 개밥그릇을 빼앗아왔대요. 오래된 것의 가치를 몰랐던 무지의 시대가 있었던 거죠. 우리는 항상 새로운 걸 좋다고 했잖아요. 노포에 가도 싹 헐어버리고 새로 지은 집 되게 많아요. 옛날에 쓰던 것 하나도 안 남기고요. 다 버렸죠. 이제야 인정받는 건데요. 이것 또한 결국은 인접 국가의 영향이에요. 일본에서 영향을 받는 거예요. 가슴 아프죠. 우리 스스로 그 가치를 왜 미리 알지 못했을까요. 제 생각에는 이런 책이 적어도 2000년대 초반에는 나왔어야 해요. 유사한 책은 있었지만 이렇게 깊이, 오래된 것에 초점을 맞춰서 그것의 가치를 집중적으로 조명한 책들이 없었어요. 그런 게 좀 속상하죠.

 

취재의 어려움이 짐작도 되는 것이 이런 작업이 없었으니까요. 다 처음부터 시작인 거잖아요. 무엇이 제일 힘드셨어요?


이런 문화가 없으니까요. 주인들도 몰라요. 왜 우리집을 하느냐, 라고 해요. TV 촬영이라도 하면 그것이 어떤 가치가 있는지 즉각적으로 이해할 텐데 아니잖아요. 옛날이야기를 하라고 하고, 옛날 사진을 달라고 하고 그러니까요. 이게 무슨 가치가 있는지 잘 몰랐어요. 일단 섭외가 안 돼요. 또 사기꾼들이 많았죠. 식당 소개해준다면서 기사나 잡지를 사라고 하는 경우도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경계심도 많아요. 제가 누군지 알게 뭐예요?(웃음) 그리고 대개 노포가 자료가 없어요. 자료가 없으면 인터뷰가 어렵잖아요. 뭐가 있어야 그것을 되물어보고 하죠. 왜 식당을 시작하셨는지부터 시작해야 하니까 짧은 시간에 밀도 있는 이야기가 어려운 거예요. 몇 번 가서 들은 이야기들이 많아요. ‘수원집’ 같은 경우는 열 번 가까이 갔어요. 제가 적자가 심하게 났어요.(웃음) 그래도 좋으니까 했어요. 돈 벌려 했으면 애저녁에 안 했어요.

 

섭외 설득에 도움이 되었던 좋은 논리가 있었는지 궁금하네요.


논리는, 없어요. 자꾸 가서 낮술도 먹고 강짜 부린 것밖에 없어요. 술기운에 “아, 인터뷰 좀 해주세요!” 하는 거죠. 이분들은 논리적으로 설득한다고 해도 안 되고요. 정서적으로 다가가는 거죠. 낮술 먹고, 자꾸 가서 얼굴 비치고요. ‘을지면옥’, ‘용마갈비’ 다 그렇게 했어요. 한 번에 시원시원하게 된 게 별로 없고요. ‘조선옥’도 한 서너 번은 가서 고기 먹었어요.

 

끝내 설득이 안 돼서 쓰지 못한 곳도 있는 건가요? 


인터뷰가 안 됐으면 못 나갔죠. 취재기로만 써도 된다면 했겠는데요. 우리 책을 낼 때 원칙이 주인이 나와서 인정하고 승낙할 때까지 안 쓰는 것이었어요. 변두리의 돼지갈비라는 것이 70년대-80년대의 서울 외곽 인구 폭발 성장에 있어 굉장히 중요한 것이거든요. 그래서 ‘용마갈비’를 담았는데요. 그분의 사진이 없어요. 적극적이지 않으셨어요. 하고 싶지 않다고요. 얘기는 해줄게, 책을 내신다니, 하는 정도였죠. 갈비 정말 많이 먹으러 갔어요. 어느 중국집은 몇 번이나 갔지만 끝내 안 하신다고 하셔서 못 썼고요. 남대문의 어느 곳은 저희 취지를 제대로 설명도 하지 못했어요. 저희가 사기 치는 것 같아서 거부하신 것 같아요. 중요한 식당인데 못했어요. 안타까운 거죠.

 

 

우리 삶의 비늘들이 다 문화재


후기에서 “아마도 노포 프로젝트의 마지막 작업이 될 것 같다”(387-388쪽)고 하셨는데요. 취재의 어려움이기도 하지만 세대교체의 시기를 지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 같아요.


기억이 희미하신 거죠. 오래된 얘기니까요. 가면 나이 든 단골손님들이 와서 새로운 얘기를 자꾸 해줬어요. ‘수원집’에서는 과거 정보기관에 근무하셨던 분이 계셔서 얘기를 들었죠. 60년대에는 인천에서 배가 나가려면 정보기관의 허락을 받아야 했어요. 북한 인접지역이니까요. 허락을 받는 동안 여기 앉아서 술 먹고 기다렸다는 거예요. 지금도 배는 해양경찰정 산하 지구대에 허락을 받아야 해요. 지금은 경찰에 신고를 하지만 옛날엔 정보기관의 허락을 받았던 거죠. 배가 월선과 월북에 많이 쓰였거든요. 그런 뜻밖의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곁에서 노중훈 작가님은 졸기도 하고요.(웃음)


아이, 그러니까요.(웃음)

 

노중훈 작가님의 사진도 절묘해요. 순간포착이 있었어요.


사진을 찍고 가는 게 아니라 노중훈 작가는 나랑 같이 움직이는 거거든요. 얘기를 듣고 어떤 것을 찍어야 하는지 파악하는 거죠. 사진이 생동감이 있잖아요. 진짜 저와 팀이죠. 노중훈이 술값 한 번도 안 냈어요. 꼭 좀 써주세요.(웃음)

 

노포의 비결을 하나 꼽는다면 ‘한결같음’일 텐데요. 방금 단골손님 말씀도 해주셨지만 책에도 단골들의 “기묘한 연대감”(6쪽)을 적어두셨거든요. 이 이야기를 조금 더 듣고 싶어요.


그런 게 있죠. 서로 몰라요. 그런데 앉아 있다가 무슨 얘기 한 마디 꺼내면 “그랬어요?” 하면서 같이 앉아서 마시는 거예요. 이 집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거겠죠. 공통의 정서들이 있는 거예요. 그것에서 촉발되는 것들이 있어요. 그런 것을 발견할 때 좋죠. 술주정도 많았어요. 어떤 분이 갑자기 “필승!”하고 저한테 인사를 하더니 술주정을 부리는 거예요. 저는 해병대 아니거든요. 그러더니 저를 때리려고 하더라고요. 그때 곁의 노인 분이 “이놈 자식! 나가, 인마!”라고 하시면서 저를 구해주신 적이 있었어요. 그분 성함이 ‘김영원’이에요. ‘수원집’에 나오는 분이에요. 4년 전 이야기예요. 살아 계신지 모르겠어요.

 

‘숭덕분식’이라든지 ‘41번집’같이 떡볶이집이나 포장마차 같은 곳도 담으셨잖아요. 새로운 목록이라 더 눈이 갔어요.


책 작업으로 제일 기분이 좋았던 건 이것을 통해 ‘당신들이 가치 있는 일을 했습니다’라고 제가 처음으로 인정해준 사람이었던 것 같다는 점이에요. 출판사와 제가 이 책을 만들어서 묶어냈잖아요. 현장에서는 여러 번 얘기를 했지만 자신들의 일이 가치 있는 일이었다는 것을 책을 통해 비로소 물리적인 형태로 받아들이게 된 거죠. 독자가 책을 사서 본다는 건 우리 가게를 인정하는 거잖아요. 자랑스러움과 걱정거리를 안겨드린 셈이에요.


번듯한 가게, 장사 잘 되는 집은 노포가 돼요. 별 문제가 없죠. ‘우래옥’, ‘하동관’, ‘한일관’ 이런 곳들은 워낙 잘 나가던 곳이죠. 그런데 분식집, 포장마차 같은 곳은 오래 안 해요. 포장마차를 50년 한 집이 있나요? 떡볶이집 중에 ‘숭덕분식’보다 더 오래된 집이 없어요. 오래 안 하니까요. ‘숭덕분식’은 놀라운 집이에요. 지금도 초등학생들이 와서 먹고 그래요.

 

“이런 살아 있는 우리 삶의 비늘들이 다 문화재”(386쪽)라고 했죠.


무형문화재, 인간문화재가 반드시 예술에만 해당하잖아요. 왜 식당은 해당이 안 되느냐고요. 곰탕 만드는 것이 어떻게 문화재가 아니겠어요. 무형문화재, 보이지 않기 때문에 사람에게 부여하는 거잖아요. 봉산탈춤을 추는 사람에게 무형문화재를 줘요. 식당도 마찬가지예요. 국밥을 보존할 수는 없죠. 그걸 만드는 법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 문화재 지정을 해줘야 해요. 서울 한양 음식 가운데 남아 있는 것이 설렁탕, 곰탕 밖에 없어요. 장국밥이죠. 그리고 구한말 냉면이요. 그런 것에 왜 무형문화재를 안 줄까요. 그건 정책당국이 음식 만드는 사람의 기술에 대한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거예요. 그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우리 삶이 훨씬 더 밀접하게 담겨 있거든요. 비단은 지키고 무명은 버려야 하나요? 그건 아니잖아요.

 

개중에 ‘을지오비베어’부분 말미에 을지로 노가리 골목이 2015년 ‘서울문화유산’으로 선정된 점을 언급하셨고요. 작은 변화들이 이제야 생겨나고 있는 것 같아요.


책이 나오고 며칠 후에 박원순 시장님에게 밤에 전화가 왔어요. 깜짝 놀랐어요. 노포에 대해서 할 얘기가 있으면 언제든지 전화 하라고 하시더라고요. 서울시가 서울문화유산 하는 것 보고 놀랐죠. 문화유산 사업을 시작한 지자체가 별로 없거든요. 이런 가치를 알고 있는 것 같아서 조금 안심했어요. 어쨌든 이것은 지켜질 가능성이 높아진 거잖아요. 그 동판 하나 붙여두면 그분들도 자부심을 갖고 일하실 수 있거든요. 이나마 시작된 것도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국가 차원에서 해야 할 일이 더 있어요. 안타까워요.

 

사회적인 인식 이야기를 하지만 분명히 공공 영역에서 선행해야 하는 작업이 있는 거죠.


공공에서 한다는 건 결국은 예산을 편성한다는 거예요. 돈이 있어야 움직이죠. 예산을 편성하고 가치를 인정하는 데에 이 책이 기여를 했으면 좋겠어요. 책 팔아서 돈을 얼마나 벌겠어요. 다만 이런 일을 한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이 보람이죠. 정말 힘들었어요.  『백년식당』 작업했을 때도 다시는 안 하겠다고 했었는데요. 또 하게 될 줄이야.(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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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포의 수많은 상징들


‘하동관’과 ‘팔판정육점’의 오래된 관계가 굉장히 중요한 시사점을 주더라고요. 대를 이어 신뢰에 기반해 계속해서 거래를 유지하고 있잖아요.


거기는 주문할 때 아무 말도 안 하고요. 고기를 갖고 오면 달아보지도 않아요. 서로 할 얘기가 있어도 안 해요. 지난 번 고기가 질이 안 좋았어요, 그런 얘기 일절 없어요. 그런 고기가 있을 수 있겠죠. 왜 없겠어요. 하지만 말을 안 하는 거예요. 보내는 사람(팔판정육점)도 마찬가지죠. 예를 들어 갑자기 고기값이 폭등해요. 그래도 당장은 말을 안 해요. 몇 달 후에 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얘기해요. 그러면 이쪽(하동관)은 그냥 알았다고 하죠. 상도덕을 지키는 분들이 있다는 거예요. 흔히 ‘깎아야 맛’이라고 하잖아요. 하지만 꼭 그런 것은 아니거든요. 장사를 해보니까요. 깎으면 깎은 만큼 줘요. 그게 장사예요. 깎는 건 바보짓이라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신용할 만한 거래처는 깎으면 안 돼요. 달라는 대로 줘야죠. 책에 등장한 노포들은 거의가 다 그래요. 거래처가 아주 오래됐고, 잘 안 바꿔요. 우리가 모르는 생태계가 그 안에 있어요. 그것이 대세가 아니라는 게 너무 속상할 뿐이죠.

 

자영업자가 약 500만 명에 달한다고 하는데요. 이런 부분에 대한 이해도 중요할 것 같아요.


강의도 듣고 자료도 모으면서 공부하시지만 이런 말은 없겠죠. 물건 값 보지 말고 받아라, 네 가게를 시작했으면 50년 할 각오로 해라, 라는 말은 없잖아요. 노포의 수많은 상징들을 모범으로 삼아서 식당을 열겠다고 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아요. 하지만 이것이 진짜 살아 있는 장사법이죠. 오래 살아남은 가게들이 어찌 살아 있을까를 배우면 훨씬 더 오래 장수할 수 있는 가게가 될 거예요. 그렇잖아요. 장수한 노인의 식사법과 인생관을 배우면 장수할 가능성이 높아요. 노포도 노인이잖아요. 그런 곳의 장점을 배우면 장수할 가능성이 높죠. 그래서 제목이  『노포의 장사법』 이에요. 이 책을 저는 식당 전략서로 읽히길 원한 건 아니었지만요. 실은 이게 전략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눈 밝은 사람은 찾아내겠죠.

 

『백년식당』  출간 당시 <채널예스>와의 인터뷰에서도 노인 이야기를 많이 강조하셨잖아요.


사람이 가진 것을 우리가 무시해요. 골동품은 좋아하잖아요. 그런데 사람이 갖고 있는 것을 대하는 자세나 태도가 부족한 것 같아요. 노포라는 것이, 식당 안에 뭔가가 있지 않아요. 주인의 머릿속에 있죠. 그게 물리적인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거든요. 그 물리적인 형태만 봐서는 절대로 따라할 수 없고요. 따라하는 집은 되게 많은데 잘 되는 집은 별로 못 봤어요. 하지만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 안에 진수가 있어요. 노포 자체가 생물이 된 거거든요. 어떨 땐 무서워요. 오래된 것에 귀신 붙는다고 하잖아요. 이 가게에 귀신이 붙은 것 같아요. 사람으로 인해 영적인 존재가 되어버린 거죠. 50년 이상 된 집은 다른 느낌이 있잖아요. 그런 것이 아닌가 싶어요.

 

상징적인 장면이 이런 거예요. 젊은 사람들이 그 분위기에 압도돼서 조용히 식사하고 나오잖아요.

 

부민옥은 아무나 가는 집이지만 또 아무나 가지 않는 집이다. 대중식당이니 누구나 들어갈 수 있지만, 묘한 기에 눌려서 아무나 들어가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런 집이 서울 중구 다동 언저리에 여럿 있다. 이 집 역시 오랜 단골들의 출입처다(섭외가 어려워 미루다가 이번에 어렵게 문턱을 넘었다). 손님도 홀의 직원도 주방 요리사도 사장도 다 나이들었다.(57쪽)

 

어떨 땐 푸근하기도 해요. 마음 편하죠. 할아버지 집에 가면 한 번 갔을 때는 약간 어색하잖아요. 하지만 자꾸 가면 편하죠. 그런 게 노포의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요즘은 젊은 사람들이 와요. 20대-30대들이 많이 와요. 의외로 많이 오죠. 냉면집에 많이 오잖아요. 놀랍지 않아요? 깜짝 놀랄 일이죠. 그렇게 계속 이어지겠죠.

 

 

식당의 미래


못하겠다고는 하셨지만 혹시 이 작업을 한 번 더 하게 된다면 소개하고 싶은 곳은 어디예요?


인천 배다리에 있는 전설적인 노포가 있어요. 안 한다고는 했지만 책을 또 낸다면 꼭 싣고 싶은데요. 제가 좋아하는 집 중 하나예요. 남겨두고 있었는데요. 그곳 할머니가 다치셨어요. 지금 편찮으시고 가게는 임시 폐점한 상태인데요. 아마 다시 못 나오실 것 같아요. 연세가 많으시고, 병원에 계시면 못하죠. 주방에 혼자 계셨거든요. 진짜 맛있었어요. 그곳을 이 책에 썼어야 했는데 말이에요.

 

‘조선옥’만 해도 기록물로는 처음이잖아요. 기록하지 않으면 사라질 곳들을 생각하니 앞서 말한 초조함이 다시금 떠오르네요.


그 집이 인터뷰를 안 하다가 처음으로 했어요. 그러니 얘기를 잘해주지 않죠. 선대가 안 계신다니까 후대가 기억하는 것도 아무래도 적고요. 충분히 자료가 없는 거예요. 후대가 전해주는 이야기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거든요. 직접 겪은 게 아니니까요. “그랬다고 한다.”죠. 그렇게라도 듣는 것이 안 듣는 것보다는 낫고요.

 

‘토박이할머니순두부’는 다른 책에 썼지만 너무 좋아서 다시 썼다고 하셨어요. 이유가 뭘까요?


책 나온 후 제일 먼저 전화 온 분도 그곳의 김규태 사장님이에요. 고맙다고 하시더라고요. 70년대 초반에 시작했으니까 거의 50년이 됐는데요. 두부에 잔재주를 안 부려요. 지금까지 그렇게 해요. 딱 알아요. 이 사람 미련한 사람이군, 해요. 지금 그곳이 유명해져서 난리예요. 평창올림픽 때문에 난리가 났는데요. 그런데도 똑같이 할 거예요. 빨리빨리 안 해요. 뭐든지 빨리 하면 문제가 생긴다는 거예요. 과정을 압축해야 하잖아요. 그것이 산업의 논리죠. 판두부를 만들려면 무거운 것으로 눌러야 해요. 수분이 빠져서 두부가 되는 거거든요. 누르는 것의 무게를 어떻게 결정하는가, 예요. 30분 만에도 만들 수 있어요. 꽉 누르면 되잖아요. 그런데 그곳은 가벼운 것으로 눌러놓아요. 천천히 내려가요. 옛날 무게를 그대로 유지하는 거예요. 콩을 불리는 것도 그렇죠. 미지근한 물을 넣으면 금방 붇잖아요. 그럼 맛이 없대요. 찬물로 불려요. 오래 걸려요. 진짜 대단하죠.

 

꾸준히 노포의 변하지 않음을 이야기했지만 한편으로는 삶의 형태에 따라 조금씩 바뀌어온 모습들도 반드시 짚어야 할 것 같아요. 기사식당도 그렇고요. 직장인들의 퇴근시간 변화에 따라 오픈 시간이 빨라진 곳도 있었어요.


식당의 존재와 융성, 폐퇴는 전적으로 사회사적인 관점에서 결정될 수밖에 없어요. 정치경제사죠. 설렁탕에 국수를 넣은 게 강제였거든요. 박정희 시절에 쌀을 아끼려고 그랬어요. 떡볶이도 그렇죠. 수입밀가루로 싸게 만들 수 있게 되고, 수도권 인구폭발로 초등학생들이 많아졌어요. 그러니까 번성할 수 있었죠. ‘을지오비베어’도 생맥주의 대중화와 관련이 있어요. 이전까지 생맥주는 고급이었어요. 고급 양식당에서 팔고 그랬던 것을 맥주회사에서 대량으로 소비할 만한 시스템으로 구축했어요. 월급쟁이들이 많아지고, 이들이 생맥주가 싸지니까 호프집에 와서 먹게 됐죠. 사회의 성장, 정치경제의 변화와 다 결합되어 있어요. 특히 기사식당이 그런 거고요. 서울의 인구 성장, 교통 인프라의 부족으로 택시의 수송분담률이 굉장히 높았거든요. 택시기사들이 밥을 먹을 공간이 필요했던 거예요. 안 그랬으면 그런 식당이 못 생겨났겠죠. 감자탕, 떡볶이, 포장마차 등은 특히 그런 영향이 컸어요.

 

지금 일어나는 변화들 가운데 관심 있게 지켜보고 계신 건 뭔가요?


소비인구의 감소나 소비의 결정권을 젊은이들이 쥐게 되었다는 점, 혼자 사는 가구가 늘어나는 것 등인데요. 그게 식당에 그대로 반영이 되잖아요. 원래 고기는 1인분 안 팔았거든요. 지금은 꽤 많이 생겼어요. 홍대 인근에 많아요. 월급이 줄고, 개인화, 파편화 되면서 혼자 먹게 되는 거죠. 이런 변화 흐름에 저도 고민을 하고 있어요. 우리 가게가 30년 가는 노포가 될 수 있을까, 고민이죠. 이대로 유지해서 노포가 될까, 아니면 끊임없이 트렌드를 반영해서 노포가 될까, 저는 잘 모르겠어요. 모든 식당들이 사회의 격변기에 대응을 해왔지만요. 지금처럼 예측불가한 시대가 또 없었던 것 같아요. 다 힘들었죠. 다 예측 안 되긴 했는데요. 어떤 면에서 지금은 더 불리한 예측을 하고 있어요. 잘 안될 거라는 그림자가 요식업에 비치고 있잖아요. 걱정들이 많아요.

 


 

 

노포의 장사법박찬일 저/노중훈 사진 | 인플루엔셜
트렌드, 마케팅, 브랜딩 없이도 꾸준히 단골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빛나는 장사 비결, 비용이나 마진과 같은 경영이론으로 설명되지 않는 그들의 우직한 승부수를 만날 수 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강창래 “그럭저럭 살지 말고, 행복하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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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와는 거리가 멀었던 남편이 부엌으로 향했다. 암 투병중인 아내를 위해서다. 식욕도 소화력도 잃어가는 아내는 남편이 만든 음식만 겨우 입에 댈 뿐이다. ‘아내가 맛있게 먹을 수만 있다면...!’ 남편의 마음은 간절하지만 생각만큼 쉽지는 않다. 요리라고는 라면을 끓여본 것이 거의 전부였으니 무리도 아니다. 재료는 어떻게 고르고 손질해야 하는지, 어떤 순서로 조리해야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인터넷에서 레시피를 찾아보지만 주방에 들어서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진다. 그래서 기록을 시작했다. 페이스북에 조리 과정을 적어 내려갔다.

 

더없이 담백한 레시피일 뿐인데, 읽은 이들은 슬픔이 보인다 말했다. 이야기의 주인은 말을 아끼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전해져오는 무언가가 있었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밥을 짓는 마음, 그 시간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알 수 없는 불안함 같은 것들이다. 가슴을 파고드는 그 기록들은 한 권의 책으로 엮여 세상에 나왔다. 제목은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 부제는 ‘떠나는 아내의 밥상을 차리는 남편의 부엌 일기’다. 서효인 시인의 말처럼 “침샘과 눈물샘이 동시에 젖는” 이야기다.

 

저자 강창래는 정혜인의 남편으로 35년을 살았다. 동네 친구로 만나 부부의 연을 맺은 두 사람은 출판계 ‘동지’이기도 했다. 아내는 출판사 알마의 대표였고, 남편 역시 오랫동안 출판 편집기획자로 일했다. 글 쓰는 인문학자로『책의 정신』 , 『인문학으로 광고하다』 , 『유쾌한 창조』 , 『재능과 창의성이라는 유령을 찾아서』  등을 쓴 강창래는 올리버 색스의 『편두통』을 옮긴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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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나서 읽지 못했어요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라는 제목이 긴 여운을 남깁니다. 직접 지으셨나요?

 

아닙니다. 책을 낼 생각으로 쓴 글이 아니다보니까 어떤 제목이 좋을지 생각도 못 해봤고요. 사람들에게 어떻게 읽힐 것인지 감도 잘 못 잡았었어요. 페이스북을 보고 편집자가 책으로 만들자고 제안을 했는데, 그때 저는 ‘이게 책이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었어요. 누군가에게 들려주기 위해서 썼다기보다는 그냥 제 삶을 기록해두고 싶어서 썼던 글이었으니까요. 글을 쓰는 게 몸에 배어 있기도 했고, 글을 써야 내가 살아남겠다는 생각도 했었어요. 힘든 중에도 글을 쓰는 순간이 행복했거든요.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할 때였으니까요. 이전의 책들은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서 쓴 거였지만, 이 책은 그렇지 않았어요. 책이라는 게 쓰고 나면 제 손을 떠나는 거지만, 이 책은 원래부터 제 손에 있지도 않았다는 생각도 들어요. 그래서 제목도 편집부에서 결정하게 했죠.

 

아내를 간병하면서 쓰신 기록인데, 다시 보면서 힘들지 않으셨어요?


힘들지요. 어쨌든 저도 편집자 출신이기 때문에 좋지 않은 문장을 못 보는 성질이고, 끊임없이 고쳐나가야 좋은 글이 된다고 생각하는데요. 이 책은 못 보겠더라고요. 책이 나올 때쯤 돼서 앞부분을 조금 보기는 했는데, 눈물이 나서 못 보겠더라고요.

 

문장이 아름답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 이야기들을 해주시는데, 개인적으로 글쓰기에 대해서 새로운 생각도 생긴 것 같아요.

 

이전에 쓰셨던 문장과는 달라진 것 같으세요?


그런 부분이 있죠. 글을 쓰는 입장, 내용 같은 것들이 다 달랐으니까요. 글쟁이 입장에서 보면, 에세이를 어떻게 쓰는지 알게 되는 계기가 됐다고 할까요. 이게 참 묘한 것 같아요. 굳이 슬픔을 전달하고 싶지 않았는데도 사람들이 매우 슬퍼하고, 또 문장이 담담하고 아름답다고 이야기하잖아요. 편집자 말로는 문장이 잘 절제되어 있어서 그런 것 같다고 해요. 저희 안사람도 편집자였는데 그렇게 칭찬을 해줬어요. 늘 제 글에 대해서 독하게 비판만 하다가(웃음), 마지막 선물처럼 그렇게 칭찬을 해주고 갔죠.

 

굉장히 담백하게 쓰셨는데, 어떻게 그러실 수 있었는지 의아합니다. 감정을 토로하고 싶은 마음이 드셨을 것 같거든요?


그런 면이 있기는 했는데요. 당시에는 안사람을 보살펴주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쓰러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 강했던 것 같아요.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이었고요. 그러다 보니까 고통과 슬픔 같은 것도 편하게 털어내지 않으려고 했을 거예요. 그렇게 하는 것도 무너지는 거라는 생각이 있었으니까요. 그런 요인들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싶어요. 가끔 혼자 울 때도 있었죠. 너무 힘드니까. 슬퍼서 울기도 했겠지만,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잖아요. 음식을 조금 먹을 수 있게 해주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답답하고 힘들었죠. 그런데 누구한테 이야기를 하겠어요. 이야기할 수 있는 데가 없지요. 그러면 서재에서 조금 울기도 하고 그랬어요.

 

절제된 문장이지만 행간에 마음이 다 담겨 있는 것 같아요. 독자들은 그걸 발견하고 슬퍼하고, 또 감동을 받는 것 같고요.


저로서는 그런 생각 없이 쓴 거죠. 당시에 제 상황이 그랬던 것 같아요. 감정적으로도 절제를 해야 했고, 어디 드러낼 수도 없는 상황이었죠. 그런데 레시피는 써놔야 될 것 같았고... 사실 레시피를 써야 하는 이유가 슬펐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저절로 그렇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훈련된 결과일 수도 있어요.  『인문학으로 광고하다』를 썼을 때 글이 좋다는 반응들이 있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저도 제 글이 마음에 든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어떻게 그럴 수 있었냐고 물어보면 잘 모르겠어요. 당시에 인터뷰를 하고 책을 쓰기까지 네 달밖에 안 걸렸는데, 내용에 푹 빠져 있었어요. 이번 책은 그보다 더 긴 시간이 걸렸을 수도 있죠. 훨씬 긴 세월 동안 글을 썼고, 책을 읽었고, 글쓰기 강의도 많이 했으니까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총체적으로 나온 결과물인 것 같아요. 글쓰기가 몸에 배어있지 않았으면 안 썼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요.

 


겨우 3년만 했을 뿐이잖아요


당시에 글을 쓰시면서 위로를 얻기도 하신 것 같은데요. 요리는 어땠나요? 의무감으로 하시는 일 아니었나요?


아뇨. 결과적으로 저한테도 참 좋은 영향을 미친 것 같아요. 내가 뭘 좋아하는지 알게 되는 과정이기도 했던 것 같거든요. 사실 경상도에서 자란 남자다 보니까 어릴 때부터 부엌에 안 들어가는 사람이었거든요. 또 안사람이 음식을 굉장히 잘했어요. 제가 들어가 봐야 방해만 됐죠. 설거지는 가끔 했지만요. 그런데 안사람을 보살피면서, 힘든 과정을 겪기는 했지만, 음식을 제대로 만들 줄 알게 된 거예요. 그리고 내가 만든 음식을 먹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는 게 참 좋더라고요. 특히 안사람이 ‘맛있네, 정말 잘 만들었다’고 말해주면 너무 좋은 거죠. 내가 무언가를 해줬을 때 사람들이 행복해 하는 얼굴을 보는 것, 그걸 내가 참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요즘에는 좋아하는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해서 요리를 해줘요. 지금은 그때보다 음식을 훨씬 더 잘하거든요(웃음).

 

맛 평가에 있어서는 아내 분께서 엄격하셨던 것 같아요(웃음).


조금만 이상하게 만들면 안 먹었어요. 이걸 나 먹으라고 만든 거냐고 화도 내고 그랬거든요. 그래서 조금 울었던 적도 있어요(웃음). 나는 만들 줄 몰라서 그런 건데... 그래도 열심히 만들었다는 이유로 봐준 적이 없었어요. 제대로 만들면 정말 맛있다고, 먹고 싶었었는데 이제 살 것 같다고 했죠. 그런 이야기를 하는 순간에 누군들 행복하고 좋지 않겠어요. 그러다 보니까 시간 날 때마다 제대로 요리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자꾸 익힌 거죠. 그러면 먹는 사람들이 행복해하고, 그걸 보는 내가 너무 좋으니까요. 만드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거나 그래서 힘들다는 생각은 별로 해본 적이 없어요. 아침에 7시쯤 일어나면 서너 시간 동안 부엌에 있으면서 준비하고 정리하고, 그러다 보면 오전이 다 지나가고, 그제야 다리가 아프다는 걸 느끼는 시간들을 보냈지만 저한테는 그 과정이 나쁘지 않았어요. 괴롭고 힘들다는 생각도 없었고, 의무니까 해야 된다는 생각도 안 들었어요.

 

간병하실 때는 많이 바쁘셨잖아요. 혼자 식사하실 때는 대충 때우기도 하셨고요. 요즘은 어떠세요?


잘 먹어요. 이제는 요리하는 데 익숙해져있고 재밌어요. 빠르고 쉽게 잘 만들 수 있는 실력이 생겼다고 할까요. 제가 콩나물국을 좋아하는데, 아침에도 10분이면 국 끓일 준비를 다 해요. 굉장히 익숙해진 거죠. 시간도 많이 안 걸리고 맛있게 만들 수 있으니까 굳이 안 해먹을 이유도 없어요. 요즘에는 몸이 조금 힘들어져서 잘 먹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맛있는 거 잘 해 먹어요(웃음).

 

‘당신이 나를 돌봐줬으면 좋겠어’라는 부탁을 처음 받으셨을 때, 어떤 기분이 드셨어요?


그냥 해야 된다는 생각밖에 없었어요.

 

‘내가 어떻게 요리를 해?’라는 생각은 안 하셨어요?


잘 해야 될 텐데, 라는 생각이 없지는 않았죠. 그렇지만 선택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냥 해야 된다는 생각이었죠. 안 사람이 못 먹거나 잘 먹지 않고 화내면 받아들이고 잘하려고 애를 썼고요. 또 금방 잘 했어요. 안사람이 그런 이야기를 했었어요. 내가 당신이 한 밥을 이렇게 오랫동안 먹을지 몰랐다, 게다가 맛있기까지 한 밥을.

 

3년 정도 간병을 하셨는데, 그동안 부부 사이에도 변화가 있었나요?


그렇기도 했죠. 사실은 암 선고 받기 전에 관계가 좋지 않았어요. 암 선고를 받고 제가 보살펴주기로 하고, 그 과정에서 안사람이 원하는 걸 해주고 싶었어요. 30년 동안 같이 산 사람이잖아요. 얼마나 긴 세월동안 해줘야 할지는 모르지만, 나밖에 해줄 사람이 없잖아요. 또 안사람이 저를 정말 좋아했어요. 제가 해야 하는 일이고, 안사람이 원하는 일이니까 하려고 했던 거죠. 애를 쓴 거예요. 최선을 다했다고 말하기에는 낯 뜨거운 면이 있고요. 잘하려고 애를 쓴 거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잖아요.


따지고 보면 저는 겨우 2~3년 한 셈이고, 안사람은 저한테 30년 동안 밥을 해줬잖아요. 1/10 정도 되는 시간인데 뭐가 그렇게 길겠어요. 차이가 있다면, 아직도 사회적으로 여자가 밥을 하는 건 당연하고 남자가 하면 특별한 것처럼 이야기된다는 거죠. 게다가 저는 글로 썼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는 거고요. 따지고 보면 그게 그렇게 힘든 일일까 싶어요. 저는 30년 동안 밥을 받아먹었는데, 의리를 생각하더라도 어떻게 그걸 안 하겠어요.

 

곁에서 아드님이 큰 힘이 되어준 것 같아요.


옆에서 참 많이 도와줬어요. 제가 아들을 다시 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죠. 사실 아이가 다 크고 나면 속 깊은 대화를 할 시간이 많지는 않잖아요. 엄마가 아플 때 아들이 어떻게 할지, 그건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거죠. 또 같이 간병을 하다 보니까 서로에 대한 이해도 조금 더 깊어졌어요. 아들이 있어서 든든하기도 했죠. 그 부분이 굉장히 컸어요. 아들이 없었으면 내가 끝까지 할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해요. 물론 끝까지 하기는 했겠지만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은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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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통해서 삶을 생각할 수 있기를


아내 분과는 동네 친구이셨다고요.


고등학교 때부터 한 동네에서 살았어요. 알고 지낸 세월이 40년인 거죠. 따지고 보면 인생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시간이죠.

 

한 시기를 함께 보냈던 사람과 헤어지면, 내 삶에서 그 시간이 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잖아요.


뚝 떨어져 나가는 것 같죠. 마치 그 시간이 무덤으로 들어가는 느낌이죠.

 

그 사람하고만 공유할 수 있는 시간과 경험이 있고요.


그럼요. 정말로 우리는 친구처럼 살았기 때문에 그런 게 있죠. 그렇기 때문에 관계가 나빠졌다고 해도 서로에게 필요한 건 요구하기도 했고, 또 기꺼이 하기도 했던 거예요.

 

오랜 친구이자 부부였고, 출판계 일을 함께 하는 동지이기도 하셨죠. 정혜인이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다고 생각하세요?


79년부터 알고 지냈는데, 여자로 본 적도 없고 만나 적도 없었어요. 그냥 친구처럼 지냈죠. 그러다가 제가 제대를 하고 만났을 때 이 사람이 사는 모습을 보고 감동하게 된 계기가 있었어요. 안사람이 아트 타일 개발자로 일할 때 회사에서 정말 촉망 받는 직원이었어요. 월급도 상당했죠. 그런데 이 사람이 자기를 위해서는 아무것도 할 줄을 몰라요. 어릴 때부터 집안을 책임졌는데, 자기는 싼 신발을 사서 밑창이 떨어질 때까지 신어도 동생들은 금강제화 같은 곳에서 신발을 사서 신겼어요. 자기 건 아무것도 챙길 줄 모르는 사람이었어요. 처음 만났을 때 ‘어떻게 저런 사람이 있을 수 있을까’ 싶었죠. 저 사람이 원하는 걸 하면서 살게 해주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고요. 출판계 사람들도 다 알 거예요. 옆의 사람이 불편해 하면 자기가 못 견디는 사람이었어요. 그래서 늘 옆의 사람을 불편하지 않게 해주려고 애를 썼죠. 출판사를 협동조합으로 만들고 싶어 했던 이유도 그렇고요.

 

지켜보시면서 안타까운 마음도 드셨겠어요.


성인군자 같은 면모가 많은 사람이죠. 자기 것은 너무 못 챙기고, 남의 것은 어떻게든 챙겨주려고 하고. 인간적으로 굉장히 존경스러운 사람이었어요. 제가 농담 비슷하게 진담으로 하는 말이 있는데, 성인군자처럼 살아가는 사람하고 같이 사는 건 참 힘들어요(웃음). 그런 의미에서는 많이 힘들었어요. 그렇지만 어떤 사람인지 아니까 인간으로서 존경하는 마음은 끝까지 사라지지 않았어요. 제가 안사람을 보살펴준 것도, 인간적인 존경심이 없었다면 쉽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보면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이죠. 그래서 출판계에서도 다들 참 좋아했죠. 일에 있어서는 단호했지만, 대체적으로 다들 좋아했어요. 이 사람이 성격이 그렇다 보니까 문병 오는 것도 싫어했을 거예요. 상대방도 불편할 거고, 당사자도 조금이라도 부담스러운 면이 있으니까, 그런 상황을 안 만들고 싶었던 거죠.

 

간병하시는 동안 ‘카르페 디엠’, ‘이 순간을 즐기자’는 생각을 자주 하셨던 것 같아요.


그렇죠. 거의 주문에 가까웠죠. 제가 늘 소개하는 낱말 중 하나가 ‘콜래트럴 뷰티(collateral beauty)’예요. 부수적인 아름다움이라는 뜻인데, 굉장히 슬픈 상황이지만 그 속에 한줄기 빛이나 기쁨 같은 것들이 늘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슬픔에만 빠져 있지 말고 그것들을 찾고 느끼고 누리라는 거죠. 시간이 지나고 보니까, 저도 그러려고 애를 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안사람이 호스피스 병동에 마지막으로 두 달 동안 있었는데, 떠나기 전에 저한테 참 위로가 되는 이야기를 해줬어요. 저랑 함께했던 그 3년이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는 거예요. 사실은 참 아이러니한 거죠. 서로가 더 건강하고 더 뭔가를 잘할 수 있었을 때보다 그 시간이 훨씬 더 행복했다고 하니까요. 사실 이전의 30년도 행복하게 살려고 애를 썼던 세월일 텐데, 암 선고를 받고 행복해졌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죠.

 

떠나는 순간까지도 많은 걸 남겨주셨네요.


그러니까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돌이켜 보면 간병하는 동안 얻은 것도 참 많죠. 힘들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어떻게든 그 세월을 잘 견뎌내고 즐겁고 행복한 순간들을 만들려고 애를 쓴 거잖아요. 만약에 제가 그렇게 안 했으면 평생 마음에 무거운 짐을 지고 있었을 텐데, 그렇다고 마음의 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안 한 것과 비교하면 가벼운 편이죠. 저는 그냥 해야 할 일을 했을 따름인데 많은 사람들이 응원해주고, 칭찬해주는 것도 부수적으로 얻은 것들이죠. 따지고 보면 제가 얻은 게 더 많은 거잖아요. 의도한 건 아니지만 이렇게 책도 내게 됐고요. 어차피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면 잘 넘긴 셈이라고 생각되기도 해요. 안 그랬으면 좋았겠지만,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나는 고통의 시간에 드물게 찾아주는 지극히 짧은 기쁨을 남겨두려 썼지만 독자는 오히려 슬픔을 읽는다”고도 하셨어요.


저한테 그 시절은 스냅 사진처럼 꼭 남겨두고 싶었던 순간들이었던 거예요. 그런데 많은 분들이 제 바람대로 읽어주시는 것 같아요. 책을 읽고서 슬펐지만, 살아있는 동안 조금 더 사랑하고 행복해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저한테는 그보다 더 좋은 이야기가 없죠. 죽음 자체를 생각하기보다는 죽음을 통해서 삶을 생각하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에요. 그냥 그럭저럭 살지 말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고요. 그렇게 읽어주시는 것 같아서 글쟁이로서는 참 기쁜 일이에요. 의도하지 않았지만 다 담기게 됐고, 의도한 것 이상으로 받아들여주시는 것 같아요.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강창래 저 | 루페
그나마 입에 대는 거라곤 남편이 마음을 다해 만든 요리뿐. 고통과 아픔 대신, 음식으로 만들어내는 짧은 기쁨의 순간을 붙잡아두기 위해 쓴 남편의 부엌 일기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동식 “제일 무서운 이야기는 인간의 욕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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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식은 ‘공장 출신 소설가’다. 중학교를 중퇴하고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와 주물공장에서 십 년을 일했다. 종일 금속을 녹여서 뜨고, 붓고, 단추나 옷핀 등을 만들었다. 글은 인터넷 유머사이트 ‘오늘의 유머’ 공포 게시판에 올린 게 시작이었다. 한두 개씩 달리는 댓글이 신기하고 재미있어서 계속 썼다. 어떤 때는 하루에 세 편도 올렸다. 자극적인 소재를 쓰는 건 싫었다. 귀신도 안 믿었기에 귀신 이야기도 쓰지 않았다. 제일 무서운 게 인간이어서 인간 이야기를 썼다. 한 사람이 쓴다고 믿기에는 너무 많은 양이어서 ‘혹부리 영감’ 아니냐는 댓글이 달렸다.

 

삼백 편이 넘게 쌓인 이야기는 대리사회의 김민섭 평론가가 기획을 맡아 『회색 인간』으로 시작해 총 5권의 소설집으로 묶여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공장에서 탄생한 작가라지만, 공장은 이야기가 담긴 장소였을 뿐이다. 인터넷 댓글로 시작한 작가는 이제 공장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전업 작가가 되었다. 카페가 아직 어색하다는 이 작가는, 그의 글은 이제 어디를 향하게 될까. 

 

피드백을 받으면 무조건 나아져요


작가로 유명해졌어요. 인터뷰도 많이 나오고요. 가족들 반응이 어때요?


올해 책 나오고 어머니께서 너무 좋아하셨어요. 사실은 전화할 때마다 매번 작가님, 작가님하고 부르셔서 부담이에요. 아마 바깥에서도 자랑을 엄청 하고 다니시나 봐요.


공장 동료분들은 뭐라고 하던가요?


인터뷰 오는 길에도 박카스 사 들고 갔어요. 외모 관리 좀 하라고, TV 나오는데 그렇게 다녀도 되냐고 타박만 받았어요. 제가 공장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생각 자체를 못 하시는 것 같아요.


인터뷰에서는 늘 인세 이야기가 나와요. 궁금하실 분이 있으니까 다시 여쭤보고 싶어요.


예전에는 3년은 아무것도 안 해도 먹고 살 정도로 벌었다고 했는데, 지금은 거의 5년 정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먹고 살 정도는 번 것 같아요. 공장에서 일할 때의 몇 달 어치 월급을 한꺼번에 받으니까 돈을 이렇게 많이 벌어도 되나 싶을 정도예요. 작가가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이라고 한마디 했다가 어디 가서 그런 말 하지 말라는 말 듣긴 했어요. 지금도 딱히 돈 쓰는 건 없어요. 어머니에게 꼬박꼬박 부치는 돈이랑, 부산 갔을 때 킹크랩 사 먹은 정도예요.


공장을 그만두면서 당분간은 맛있는 거 먹고 여행을 다니겠다고 게시판에 올리신 적이 있어요.


여행은 직접 하니까 다르더라고요. 차멀미가 심해서 여행은 가봤자 지하철로 갈 수 있는 곳만 갔어요. TV 나오는 맛집 중에 혼자 가도 될 만한 곳을 골라서 가기도 하고요. 예전에 배달시켜 먹으면 죄책감이 들어서 주로 집에서 대충 먹었는데, 돈이 한 번에 들어오니까 2, 3만 원짜리 먹어도 되지 않나 싶어서 저번에는 난생처음 아귀찜을 시켜 먹어봤어요. ‘내가 아귀찜을 시켜 먹는구나, 성공했구나’ 싶었어요. 


작가로서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할 기회가 점점 더 많이 생기잖아요. 독자들을 만날 때는 어때요?


최초로 독자들과 만난 게 사인회였어요. 웬만하면 안 하려고 했는데 댓글 달아주시던 분이 암 투병 중이었는데 꼭 보고 싶다고 하셔서 열었어요. 첫날에는 거의 땅만 보고 있었어요. 최근에 도서관에서 행사하는데 그분이 또 오셨더라고요. 처음에는 말도 못하더니 지금은 많이 늘었다고, 완전히 달라졌다고 해주셨어요.

 

스스로도 말 솜씨가 늘어났다고 느끼세요?

 

이제는 사회자가 있으면 아무 부담 없이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혼자 말해야 하는 자리는… 처음에는 나름대로 PPT도 준비해서 한 시간 반짜리 강연을 갔는데 10분만에 끝내 버렸어요. 그래서 남은 시간은 제발 질문해 달라고 했었죠. 그 다음에는 고등학교에 강연하러 갔는데, 제가 고등학교를 처음 가 봤거든요. 학생들 에너지가 장난이 아니더라고요. 거기서도 사실 준비한 건 20분 만에 끝났는데 학생들이 호응이 너무 좋고 잘해줘서 마음 편하게 했어요. TV에서만 볼 줄 알았는데 자기 티셔츠 벗어서 사인해달라는 친구도 만나고요.  

 

많은 경험을 하셨네요.

 

초반에 비하면 정말 많이 나아졌죠. 

 

댓글로 인해 글이 점점 나아졌다고도 하셨어요. 뭐든 빨리 배우시는 것 같아요.

 

피드백을 받으면 무조건 나아진다고 생각해요. 중학교를 중퇴했으니 글쓰는 방법을 배운 적도 없어서 처음에 쓴 글 보면 엉망진창이에요. 상황에 오류가 있어요, 맞춤법이 안 맞아요, 결말에서 캐릭터의 행동이 이해 가지 않아요, 이런 댓글이 달리면 거기 맞춰서 다음에 쓸 때는 더 신경 썼어요. 맞춤법도 같은 걸 틀리면 또 틀렸다고 욕먹을까 봐 몇 번씩 보면서 억지로 외웠어요. 조언이 달리면 그게 100% 옳다고 생각하고 무조건 따랐어요. 그럴 수 있었던 이유는 누가 의견을 제시하면 다른 분이 나서서 그건 아닌 것 같다는 의견이 나오거든요. 두 분이 토론하고 다른 분이 끼어들면서 의견을 내다보면 결국 정답으로 가요. 마지막에 살아남고 ‘좋아요’가 많은 의견을 따르면 되니까 최고의 환경이었죠. 그렇게 하다 보니 점점 책에서 배우는 것보다 오히려 더 글 쓰는 법을 알게 되더라고요.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면 좋겠다는 댓글이 많이 달리기도 했어요.

 

공장에서 글을 구상할 때면 영화 한 편 만든다고 생각했어요. 장면이나 영상을 머릿속으로 떠올리고 그걸 글로 쓰는 거죠. 그래서 제 글에서 문단도 자주 나눠요. 문단을 나눌 때마다 장면이 바뀐다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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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 속에서라도 나쁜 사람이 당했으면


항상 같은 이름의 등장인물을 쓰시더라고요. 김남우, 임여우, 홍혜화 등이요.


너무 많이 쓰다 보니 일일이 이름을 지을 수가 없어서, 같은 이름을 반복해서 썼어요. 이름을 지어줄 때마다 캐릭터의 배경이나 성격을 묘사해야 하는데 그게 잘 안 돼서요. 묘사한다고 또 길게 쓰면 이야기가 늘어지거든요. 그래서 남우는 ‘남우주인공’에서, 여우는 ‘여우주인공’에서 따 왔어요. 홍혜화는 혜화역 지다가다가 히읗이 세 개 들어가면 재밌을 것 같아서 홍혜화라고 지었어요. 공치열은 꽁치에서 나왔어요. 꽁치 하면 마르고 까불까불할 것 같아서요. 이야기마다 같은 이름에 비슷한 역할을 주는 거죠. 남우는 약간 상식적이려고 노력하는 사람, 최무정은 무정하고 차가운 이미지, 공치열은 어리고 철없고 동생 같은 역할을 계속 주다 보면 독자들이 저절로 이미지를 상상하거든요. 그럼 묘사를 안 하고 넘어가도 돼요.


요괴나 외계인은 어떻게 쓰게 됐나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시작하려다 보니 외계인을 도구로 사용했어요. 외계인은 완전 말도 안 되는 소재는 아니잖아요. 요괴는 한 번 썼더니 사람들이 많이 좋아해 줘서 여러 번 등장시켰었어요.


돈이나 건강 등을 걸고 사람들이 경쟁하는 구도가 자주 나타나요.


공포 게시판에 글을 쓰다 보니 기본적으로 무서운 글을 써야 했어요. 인간이 욕망하는 것들을 써야 인간이 왜 무서운지를 보여줄 수 있더라고요. 결국 인간이 차별, 욕망, 욕심, 불평등 이런 것밖에 없잖아요. 영원히 죽고 싶지 않다거나 돈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욕망도 항상 있고요.


인간을 계급으로 나누는 이야기도 많았어요. ‘무엇이 인간인가’ 생각하게 되기도 하고요.


지금도 현실에서 인간을 계급으로 나누고 갑질을 하는 일이 많아요. 그걸 그대로 썼던 것 같아요. 누구나 사람을 계급으로 나누는 것에 대한 분노와 화가 있고 잘못된 거라는 걸 알면서도 동시에 현실은 그렇다는 걸 알아요. 공감 포인트가 되니까 좋아해 주시는 것 같아요.


주로 인터넷 댓글에서 소재를 찾으신다고요.


어떤 부당한 사건이 일어나면 댓글로 욕이 엄청 달리잖아요. 그런 걸 보면 저도 공감하거든요. 현실에서 안 된다면 이야기 속에서라도 나쁜 사람들이 당하게 하고 싶었어요. 권선징악을 통쾌해하고, 어리석게 욕심내다가 어리석게 망하는 구조를 독자들이 좋아하니까 저도 많이 쓰게 되고요.


대부분 작가는 자기가 처한 상황을 이야기에 드러내는 경우가 많은데, 작가님은 오히려 주변 상황은 안 쓰시는 것 같아요.


다른 작가분들처럼 글을 쓰는 게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을 거예요. 재밌게 쓰는 게 목적이었지 제가 가진 생각을 담는 게 목적이 아니었거든요. 인터넷에서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저 재미나 놀이로 댓글을 다는 것처럼요. 그리고 제 주변에 특이한 일이 없어서 넣을 만한 사건이 없었어요. 서울 올라와 10년 넘게 살았는데 친구도 없고, 집과 공장을 다니는 일을 반복했어요. 되게 재미없게 살았어요.


지금은 어떤가요?


지금도 주로 집에만 있어요. 다른 점이 있다면 인터뷰나 강연이 있죠. 집에만 있다 보니 제가 내성적인 성격이고 사람 만나는 걸 싫어할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나가니까 재밌어요. 그래서 나갈 일이 있으면 좋아요. 그게 달라진 게 신기해요. 하지만 아직도 이유 없이는 안 나가요.

 

괜찮아요. 나갈 이유가 없으면 안 나가는 사람도 많아요.

 

아, 그래요? 저는 항상 집에만 있었거든요. 평생 산책이라는 말을 이해 못 하는 삶을 살았어요. 산책을 왜 하는지 아직 잘 모르겠어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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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가 사라진다는 아쉬움


지금은 카카오페이지에서 글을 연재하고 있어요.


이제는 독자들이 저를 아마추어라고 생각하지 않고 작가라고 생각해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야 하고요. 그래서 봐주는 게 없어요. 최근에는 ‘초심을 잃었다’라는 댓글을 받아서 반성 많이 했어요. 제가 봐도 초심을 잃었다고 느껴져서요. 돈을 받으니까 부담도 있어요. 공짜로 올릴 때는 책임이 없으니까 마음껏 올릴 수 있었는데 이제는 너무 짧아도 안 되고 너무 황당해도 안 되고요. 원고를 쓸 때와 올라갈 때 시간 차이가 나니까 바로 피드백이 반영되지 않는 게 제일 안타까워요.

 

공장을 그만둔 이후로 글쓰기에 영향이 있었을 것 같아요.


맞아요. 공장에서는 단순반복 작업이고 지루한 시간이 너무 많으니까 한 편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구상하고 나서도 시간이 남으면 점검도 하고, 다른 이야기를 한 편 더 쓰기도 하고 그랬거든요. 머릿속에 그대로 남아있으니까 퇴근하고 집에 가서 씻고 앉으면 그대로 옮기기만 하면 됐어요. 지금은 실시간으로 생각하고 뼈대만 구상해도 시작하다 보니까 자주 막혀요. 괜히 단어 생각 안 나고 막히면 인터넷 들어가서 검색하고 뉴스 댓글 달다가 시간이 지나가 버리더라고요.


산책해 보시는 게 어때요? 한 번 시도해 보세요. (웃음)


아, 산책의 효과가 그거군요. (웃음) 생각을 정리하려고 하는 거였네요.


앞으로도 김동식 소설집이 계속 나오게 될까요?


아직 계획한 건 없어요. 출판사에서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책을 홍보할 생각이라고 하시더라고요.


아이들이 읽어도 좋을 것 같아요. 잔인하거나 읽기 힘든 장면이 나오지 않고, 외계인과 요괴 등 아이들이 좋아할 소재가 많아요.


예전에 ’이건 초등학교 수준의 글’이라는 서평을 받은 적이 있어요. 그게 악평이 아니라 맞는 말이었던 거죠. 저는 누구든 읽어주시면 감사해요. 학교에서 학생들이 책 읽기를 싫어하는데 제 책은 너무 재밌어하더라는 반응이 많았어요. 강연회에서 만난 한 초등학생 친구는 요새도 연락하고 지내요. 최근 나온 책을 사인해서 부쳐주기도 했어요.


요새 자주 다니는 사이트가 있나요?


공포 미스터리 게시판은 거의 모든 커뮤니티마다 있는데, 요새는 활발한 게시판이 없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공포 게시판 활동이 굉장히 활발했어요. 창작글 올려주시는 분도 많았고, 어떤 분은 댓글로 단어를 달면 그걸로 짧은 소설을 짓기도 했고요. 지금은 그런 커뮤니티가 죽은 게 많이 아쉽죠.


앞으로 책을 더 많이 읽고 습작하라는 말과, 공부하지 말고 쓰던 대로 쓰라는 이야기를 동시에 들으셨을 것 같아요. 같이 글쓰기를 공부하는 사람들을 찾아볼 생각도 혹시 하셨어요?


딱히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그런 무대가 사라진다는 아쉬움은 있죠. 글 쓰는 데 가장 큰 힘이 피드백이잖아요. 댓글이 적으면 힘이 안 나요. 지금은 카카오페이지 연재가 끝나면 어디에 써야하지 싶어요. 만일 더 이상 쓸 곳도 없고 찾는 독자도 없다면 다시 다른 공장에 들어가야겠죠.

 

 

 


 


 

 

회색 인간김동식 저 | 요다
갑자기 펼쳐지는 기묘한 상황, 그에 대응하는 인간들의 행태는 우리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전개되며 이야기에 빠져들게 하고 농담처럼 가볍게 읽히지만, 한참을 곱씹게 만드는 매력이 있는 작품들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인순이 음악인생 40년의 소회, ‘잘 버텨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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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브 퀸, 라이브 여황(女皇). 인순이의 정체성과 궤적과 관련해 그를 이 수식 외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을 것 같다. 그는 무대에서 성장했고 공연을 통해 오늘날 '살아 있는 음악전설'로 점프했다. 어쩌면 공연과 인순이는 동의어일지도 모른다. 숨 가쁜 호흡으로 무대에서 고통과 환희를 동시에 쏟아내면서 어느덧 40년이란 장구한 이력을 쌓았다. 여성 3인조그룹 '희자매'로 데뷔해 '실버들'로 전국적 지명도를 쾌척한 그는 이후 인순이와 리듬터치, 밤이면 밤마다, 열린 음악회, 친구여, 거위의 꿈, 혼혈의 진실(다른 인종의 장점이 합쳐진 사람), 아버지, 해밀학교(다문화대안학교) 등 중요한 모멘트와 함께 역사적 인물이 됐다. 성수동 '서울의 숲' 부근 북카페에서 만난 그는 즐겁게 리얼하게 또 노래하듯 대화를 이어갔다. 40년의 소회를 겸손하게 '잘 버텨왔다'는 말로 축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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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한지 4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이렇다 하기에 그리 큰 건 없는 것 같다. 열심히 하던 와중 40년이 흘렀고 잘 버텨왔다고 생각한다. 달리 이쁜 표현이 없는 것 같은데 '잘 버텨왔다'가 적절한 것 같다.

 

음악 활동을 제외하고 개인적으로 중요했던 순간을 뽑는다면.


내 아이를 만난 순간. 한 인간으로서, 여자로서, 새로운 순간을 경험한 순간이었다. 그전까지는 모든 순간들이 나의 위주로 돌아갔다면, 아이를 낳고 나선 아이를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가더라. 지구에서 달로 간 느낌이랄까. 신세계를 영접한 기분이었다.

 

딸을 출산하고 나서 일이 더 잘 풀린 것인가요.


거의 그렇게 얘기해도 될 것 같다. 음악인생에서 꽤 중요한 순간인 1994년 <열린 음악회> 출연이 딸 낳기 1년 전이었으니까. 아이를 갖고 나서, 내가 쓰러지면 왜 안 되는지, 왜 더 열심히 해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40년을 오게 한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다른 가수들이 '방송 위주의 가수'라면 나는 시작부터 '쇼 위주의 엔터테이너'인 것 같다. 옛 매니저 한백희 씨의 제안이기도 했지만 제가 원하기도 했고, 하다 보니 재미도 들었고. 홍보에 효과적인 방송 출연보다 공연 위주로 활동하다 보니 ('친구여' 이전에는) 히트곡이 적다. 그러나 내가 복이 많은 지, 홈런을 여러 번 치게 되었다.

 

공연에서 인순이 노래의 창법, '내 노래는 이것이다' 하는 것은?


내가 노래 하나하나의 주인공이 되는 것. 이 노래의 주인공이 된다면 자연스레 표현들이 살아난다. <열린 음악회> 출연 이전, 슬럼프를 겪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방방곡곡의 나이트클럽들을 순회했고 밴드와 함께 야외 공연도 자주 했다. 미군 부대에서 공원 이곳저곳까지 찾아다니며 팝을 시작으로 옛 음악까지 넓은 레퍼토리를 소화했고, 그중 몇몇 곡들은 비록 나의 곡이 아니었더라도 내가 주인공이 된 느낌이었다. 그 후 <열린 음악회>에서 '님은 먼 곳에'와 'La bamba'를 불렀는데 예상하지 못한 앙코르 요청이 쏟아졌다. 당시 무대감독과 상의 끝에 부르고 싶은 걸 하라고 해서 공원에서 어르신들을 위해 불렀었던 '창부타령'과 '사설 난봉가'를 무반주로 불렀다. 근데 그게 (호응이) 터졌다. 노래마다 내가 주인공이 되는 것, 그것이 내가 부르는 노래들의 핵심이다.

 

인순이의 3요소를 이렇게 표현해도 될까요. 소울풀(Soulful), 파워풀(Powerful), 댄서블(Danceable)!


나는 여기서 태어나고 여기서 자랐기에, 사실 나의 음악적 기반은 뽕필('뽕'의 느낌)이다. 다른 가수들보다 팝을 맛있게 불렀다고 할까? 거기서 '소울풀'이란 키워드가 나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워낙 무대 위에서 노래하며 춤추는 걸 즐기다 보니 '파워풀'과 '댄서블'이 따라붙은 것 같고. 하나 더 추가하자면 '의상'. 드레스부터 핫팬츠까지, 내가 부르는 노래마다 당시 시대적 유행을 고려하여 의상을 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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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자매는 어떻게 출범하게 됐으며 히트곡 '실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희자매는 한백희 씨 아이디어다. 미8군에서 노래했던 언니(한백희)의 스타일을 그대로 물려받은 거다. 그때 희자매 멤버 셋이 정말 노력을 했다. 발레 슈즈도 신어보고, 설장구와 한국무용도 배웠다. 섹시 콘셉트를 가동한 것도 사실이다. 여가수는 대리 만족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실버들'은 서구적인 트로트라고 해야 할까. 그저 심플한 트로트가 아닌, 편곡 자체가 풍성하고 고급진 곡이다.

 

인순이와 리듬터치는 어떤 구상에 따른 것인가요.


많은 분들이 리듬터치를 그룹 혹은 별도 팀으로 오해하는데, 실은 나의 사설 무용팀 이름이다. 백댄서로 구성된 리듬터치를 만들면서 처음으로 남자들을 섭외했고, 마이클 잭슨의 'Billie jean' 등 유명 팝 레퍼토리들을 연습하고 준비했다. 아이디어 구상까지 다 해결했다. 예를 들어 호남을 가면 남진 선배의 곡들을 준비한다던지, 어르신들이 많은 곳에 가면 올드 팝이나 트로트를 위주로 하고. 무대 구성부터 의상까지, 공연의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나름대로 고민을 많이 했었다. 정말 끊임없이 작전을 세웠었던 것 같다. 맞다. 작전이다(웃음).

 

행사장이든 공연무대에서 관객을 압도하는 스타일입니다. 인순이씨 다음 순서에 있는 가수가 한때 '왜 인순이 뒤에 나를 배치했느냐?'며 불만을 표하기도 했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습니다.


예전 가수들은 요즘처럼 가성이 아니라 통성으로 불렀기에 성량이 대단하다. 그렇기에 옛 마이크를 쓰면 편한데 요즘 마이크를 쓰면 불편하다. 콘서트 때 마이크 헤드를 옛 모델로 바꾸면서 조절한다. 또한 음향효과를 부각시키기 위해 MR보다 밴드 셋을 선호한다. 실력만 있는 어린 친구들이 아니라 옛 것과 트렌드에 모두 능한 농익은 연주자들을 주로 섭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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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세대와 접점을 마련하면서 인순이 노래인생의 프레임이 새롭게 구축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방송에서 세 가지 모멘트로 정리하신 것을 기억합니다.


첫 번째 모멘트는 1996년 박진영이 써준 곡 '또'였다. 나는 롤 모델인 패티김 선배처럼 되기 위해서 하루하루를 살았던 사람이다. 항상 선배처럼 드레스를 입었고 무대를 소화하는 것도 그에게서 영감을 많이 받았다. 그러던 와중 박진영 씨를 만났고, 함께 음악 얘기를 하다 내가 트로트를 하겠다고 하니 그가 '요즘 가수들이 선배님을 따라 하고 있는데, 선배님이 트로트 외에 다른 모습을 보여주시는 게 좋을 것 같다. 나이 들면 다 트로트 해야 하는 것이냐'라고 했다. 나는 당시 음악을 오래하려면 옛 것을 불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기에, 그냥 알겠다고만 했다. 그 후 그에게 연락이 와서 가보니 김형석 씨와 같이 있었고, 그분들과 함께 노래 '또'를 냈다. 그 곡이 히트하면서 젊은 사람들에게도 내 이름을 알릴 수 있었다.

 

두 번째 모멘트는요.


결정적인 곡, 2004년 조PD '친구여'다. 박진영 씨가 트렌드를 따르라고 했으나 사실 나는 재즈를 하고 싶었다. 재즈를 배우러 미국에 유학을 다녀온 후, <EBS 스페이스 공감>과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 대학로 등을 순회하며 재즈 공연을 했다. 그러던 와중 (댄스그룹 소방차 출신의 제작자) 정원관씨에게 연락이 왔다. 피처링을 해달라는 전화였다. 사실 피처링 때문에 여러 가수들에게 받은 데모 CD들이 쌓여있던 시기였다. 피처링이라는 것이 한창 인기를 얻던 시기였지만, 듀엣도 아닌 생소한 개념이라 전부 거절했었다. 그러나 정원관 씨에게 받은 곡과 가사는 너무 마음에 들었다. 당시 조PD 씨는 27살, 나는 47살이었다. 친구에 대한 27살의 생각과 47살의 생각이 다를 것 같아 재밌을 것 같아 찾아가서 녹음을 했다. 그리고 바로 헤어졌는데, 어느 날 TV 공연 5번만 해달라는 연락이 왔다. 그 곡이 1위 후보로 올라간 것이었다. 정말 놀랐다.

 

마지막 모멘트는 말씀하지 않아도 알 것 같네요. '거위의 꿈'이겠지요.


그렇다. 내 콘서트는 처음엔 신나게 뛰면서 노는 노래들로 시작하다 잔잔한 노래들로 마지막에 감동을 주는 형식으로 구성된다. 10여 년 전의 당시에도 어떤 노래들로 감동을 줄까 고민하다 문득 '그래요 난, 난 꿈이 있어요' 부분의 멜로디가 떠올랐다. 찾아보니 김동률과 이적의 프로젝트 '카니발'의 곡이었고 바로 결정했다. 가사가 정말 내 얘기가 같아 당시 연습하면서 정말 많이 울었다. 어렸을 때부터 '너는 성공을 못할 것'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지만 나는 '두고 봐, 나는 대기만성 형 인간이기 때문에 언젠간 난 올라갈 것이다'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그 노래 가사가 나의 삶을 대변하고 있었다.

 

당시엔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곡이었고 5분이 넘는 노래였기에 이 '거위의 꿈'을 누가 좋게 들어줄까 걱정하던 와중, 신곡을 홍보하기 위해 <윤도현의 러브레터>에 나갔다. 세 곡을 준비해달라는 요청에 신곡과 '친구여' 그리고 '거위의 꿈'을 선곡했는데, 유명하지 않은 곡을 부른다는 말에 주변에서 만류를 했다. 그러나 나는 PD에게 이 프로그램을 보는 청춘들에게 꿈이란 화두를 던져보겠다며 밀고 나갔다. 결국 기립박수가 나오더라. 그 후 많은 사람들이 제가 부른 '거위의 꿈'을 많이들 찾아주셨다. 원곡자인 이적 씨와 김동률 씨를 찾아가 허락을 받고 이듬해 1월에 싱글로 발표했다. 그 해 11월 <뮤직 뱅크>에서 섭외 요청도 왔다. 어린 친구들을 위해 나가서 불렀는데 원더 걸스의 'Tell me'를 제치고 1위를 했다. 수능이 얼마 남지 않았던 시기여서 그랬나(웃음).

 

이적과 김동률은 어떻게 반응하던가요.


둘 다 좋아했다. 이적 씨와 김동률 씨의 골수 팬들께서는 곡을 훔쳤다(?)고 생각을 하시던데, 어떤 노래를 세대를 불문하고 꾸준한 인기를 받는 국민가요로 만드는 건 쉽지 않다. 그저 곡을 재조명했을 뿐인데, 그쪽 팬 분들에게 지금까지도 욕을 먹고 있다. (웃음) <The Voice of America>에 출연한 한 친구가 나의 팬이라고 말하더라. 그 친구가 '거위의 꿈'을 또 한 번 리메이크하고 있단 소식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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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 본인이 생각하는 중요한 노래는?


<에레나라고 불리운 여인>에 수록된 '비닐 장판 위의 딱정벌레'를 꼽겠다. <에레나라고 불리운 여인>이란 소설과 함께 냈던 음반이었다. 혼혈인으로서의 나의 삶에 대한 노래다. 그리고 드라마 <기억>의 OST '선물'. 가사가 정말 내 이야기다. 죽고 싶은 날도 많았고, 삶의 끈을 놓으려고 할 때 나에게 힘을 주는 것들에 대한 노래이다.

 

하인즈 워즈, 다니엘 헤니 등 혼혈 붐이 일었을 때, 2006년에 한 이동통신사 광고에 출현했지요. 혼혈이라는 것을 부각하고 싶지 않았을 것 같았는데, 과감한 시도였다고 봅니다.


누군가 한 번은 이야기를 하고 지나가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게 내가 되어야 한다고 느꼈다. 나는 '넘어진 자리에서 일어나야 한다!'라는 생각을 늘 하고 있다. 상처가 나면 감추지 말고 그 자리에서 아물게 해야 한다. 내가 받은 상처들을 사람들에게 드러내야 이 땅에서 당당히 살 수 있을 거라 판단했다. 어렸을 때부터 나를 놀리는 사람들과 싸우면서 깨달은 것이다. 인정하는 것이 해답이었다.

 

2013년에 강원 홍천에 설립한 해밀학교에 대해 얘기를 들려주세요. 운영의 측면에서 어려움을 겪으실 것 같습니다.


공립이 아니기 때문에 지원을 못 받는다. 재정 지원제도가 있긴 하다. 그걸 해주면 참 고마울 것 같은 마음은 늘 가지고 있다. 말씀하신대로 운영이 어렵다.

 

해밀학교가 주는 도덕적 만족도는 어떠한가요.


1000%. <열린 음악회>부터 '친구여', '거위의 꿈' 등 나의 스토리는 다른 가수들에겐 찾아볼 수 없는 서사들 아닌가. 마치 기적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고, 이를 나눠야 한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다. 한 수녀님과 양로원을 할 생각도 했고, 고아원을 만들 생각도 했다. 그러다 다문화 이야기가 한창 화두였던 2010년, 이것이 내가 해야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이 아이들도 어렸을 때의 나처럼 힘들 것이라 느꼈다. 내가 받았던 상처들을 잘 알기에, 그것들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 내가 도와주는 게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다. 우리 학교를 졸업한 아이들이 사회에 나갈 때 흔들리지 않을 만큼의 굳은살을 가지고 나갔으면 한다. 우리의 목표다.

 

인순이를 가수로 만든 사람이나 계기가 있을까요.


사실 나는 가수에 대한 꿈이 없었다. 커서 노래를 하는 건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우리 엄마는 나에게 뭘 해줄 수 없으니 '너 뭐 할래?'라 묻지 못하고, 나는 엄마가 나에게 뭘 해줄 수 있는 여건이 안 되는 걸 뻔히 아니 '뭐 하고 싶어요'란 말을 못하고. 그저 둘이 얼굴만 보고 울고 웃고 살았다. 설마 우리 같은 사람이 가수가 될 수 있을까, 상상도 못했다. 그러나 나의 담력을 키워준 사람은 학창시절 음악선생님인 것 같다. 음악시간만 되면 나를 불러 아이들 앞에서 노래를 시켰다. 자신감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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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할만한, 본받을 만한 혹은 출중한 역량이 부러운 뮤지션이 있다면?


다이애나 로스(Diana Ross)와 웨일즈 출신의 가수 셜리 베시(Shirley Bassey)를 좋아한다. 다이애나 로스는 그야말로 여자의 매력이 물씬 풍겨나는 사람이다. 물론 노래도 잘하지만. 요즘 가수들이 아무리 노래를 잘해도 다이애나 로스만큼 여자 같은 여자는 없는 것 같다. 그가 보여준 여자의 모습을 닮고 싶었다. 노래를 표현하는 방식은 셜리 베시다. 그가 노래하는 영상들은 마치 3분짜리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을 준다. 그의 손짓과 표정은 늘 노래의 내용을 말한다. 또한 듣는 이에게 어떤 감정과 내용들을 전달하기 위해 가사를 꼭꼭 곱씹으며 노래한다. '셜리 베시를 알기 전의 나'와 '알고 난 후의 나'의 정체성이 다른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자기 노래를 드라마로 만드는 건 셜리 베시가 거의 유일한 가수인 것 같다.

 

눈여겨보는 후배가 있나요.


예전처럼 가수들이 한 스타일로 노래를 부를 때는 평가의 잣대가 뚜렷했다. 그러나 요즘은 다들 각기 다른 개성들이 있어서 무엇을 잘하고 못하는지 판단할 수 없다. 기본기보다는 개성의 시대다. 발음이 정확해야 하고 숨소리도 나지 않아야 노래를 잘한다는 말을 듣던 예전에 비해, 요즘은 오히려 숨소리가 나고 발음도 꼬아야 매력 아닌가. 그래서 나도 발음을 꼬아서 노래를 해볼까 생각 중이다. (웃음)

 

향후 행보에 대해.


작곡가에게 아주 재미난 곡을 써달라고 요청했다. '아버지'와 '거위의 꿈' 같이 감정이 깊게 들어가야 하는 곡들을 부르고 나면 정말 지친다. 휘청거릴 만큼 에너지 소모가 크다. 게다 작곡가들이 주는 노래들을 보면 음역대가 높은 노래들이 대부분이라 부담이 된다. 그래서 젊은 층과 다시 만날 수 있는, 정말 재밌는 노래를 하나 부탁했다. 나도 실실 웃으며 부를 수 있는 노래가 될 것이다. 기대해 달라.

 

 

인터뷰 : 임진모 이택용 박수진
사진 : 박수진
정리 : 임진모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대도서관 “유튜브, 시작 안 하는 게 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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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초등학생 장래희망 1위에 연예인과 아이돌을 밀어내고 ‘1인 크리에이터’ ‘유튜버’가 자리 잡았다. 이제 콘텐츠라고 하면 텍스트보다 영상을 먼저 떠올리고, 궁금한 게 있으면 먼저 유튜브에 검색하는 시대다. 영상 플랫폼 중에서도 유튜브는 압도적이다. 한 달에 15억 명 이상이 유튜브를 시청하고, 분당 400시간 분량의 영상이 새로 올라온다. 연예인들도 하나씩 유튜브 채널을 만든다는 소식이 어색하지 않고, 주변의 누구도 유튜브 채널을 시작했다더라 하는 소리가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그중에서도 대도서관은 '유튜브의 유재석' '유교방송'이라고 불리며 170만 명이 넘는 구독자를 자랑한다. 다른 사람들이 인기를 위해, 광고 수입을 위해 약자를 희화화하고 눈살을 찌푸리는 영상을 올릴 동안 대도서관은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콘텐츠가 아니어도 성공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현재 미디어 콘텐츠 회사 ‘엉클대도’의 대표이사이자 대표 크리에이터로 1인 미디어 판을 넓히는 데 적극적으로 기여하는 그가 이번에는 영상에서 나와  『유튜브의 신』을 냈다. 대도서관의 조언은 간단하다. “생방송 말고 편집 방송으로 시작하되, 내가 관심 있고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지속가능한 콘셉트로 기획해 일주일에 최소 두 편씩 1년간 꾸준히 업로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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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짐을 알려주는 책


영상 매체에서 텍스트 매체로 넘어온 기분은 어떤가요?

 

기존에도  『대도서관 잡(JOB)쇼』를 내긴 했어요. 사실 그건 EBS 프로그램 내용을 옮겨놓은 거라 제가 썼다고 할 순 없는 책이라, 이번에는 정말 만만치 않다는 걸 느꼈어요. 이름이 대도서관이기도 하지만, 집에 책이 엄청 많아요. 읽지는 못해도 엄청 사모아요. 어떻게 이 많은 책이 나올까 싶었는데, 이 많은 책에서도 베스트셀러가 되는 건 어렵겠구나 싶어요.


유튜브도 마찬가지인걸요. 이 많은 채널 중에 어떻게 성공할까 싶어서요. (웃음) 제목이 ‘유튜브의 신’이에요. 대도서관은 허세로 유명한 캐릭터라 어울리는데, 작가인 나동현 입장에서는 멋쩍기도 했을 것 같아요.


맞아요. 저는 너무 거만한 제목 아니냐고 했는데 출판사 쪽에서 믿어달라 하셨어요. 마케팅의 감각이랑 경험이 저보다 많은 분들이니 저도 수긍했죠. 오히려 다른 제목이었으면 밋밋하고 기억에도 안 남을 것 같은데 나와 보니까 입에도 붙고 시청자분들도 좋아하시더라고요. 제가 신이라는 뜻이 아니라 이 책을 읽고 유튜브를 시작한 분이 신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니까요.


대도서관tv에서도 책 이야기 많이 하셨죠?


어떻게 보면 기존의 미디어와 영상을 융합하는 시도였어요. 다른 미디어랑 책을 연결해서 책을 잘 안 보는 사람들에게 보여주면 출판업계가 잘 되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중소기업 제품을 대도서관tv로 홍보하는 걸 봤어요. 잘 안 알려진 영역을 홍보하는 것도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는 목표 중 하나인가요?


맞아요. 그래서 광고를 되게 많이 찍어요. 1인 크리에이터는 연예인이 아니기 때문에 광고 회사에서 만들어놓은 틀에 얼굴만 비춘다고 해서 광고 파급력이 크지 않아요. 우리만이 소통하는 언어로 영상화해서 시청자와 소통할 때 친근감을 주거든요. 그중에 가장 중요한 게 기획력이고, 그 기획력을 알리고 싶은 마음을 책에 많이 녹여냈어요. 많은 분이 영상을 만들면서 출연자라고만 생각하고 기획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더라고요. 유튜브 기술을 알려주는 책보다는 마음가짐을 알려주는 책이었어요.

 

실천할 만한 기술도 적혀 있어요. 세대별로 기획 예시를 들어주기도 하고요.


많은 분이 처음 시작할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요. 자기가 좋아하는 게 뭔지 모르는 분들도 많아서, 어느 정도 구체화해서 보여주면 처음 시작할 때 편하지 않을까 싶었어요. 특히 마지막 부록에 나이별로 제가 그 입장이 되었을 때 어떻게 기획할지 계획표를 아예 써드린 부분이 대표적이에요.


왜 하필 유튜브일까요?


지금 1인 미디어 성장의 가장 큰 핵심은 유통이에요. 유튜브 이전에도 동영상 사이트는 많았어요. 하지만 유튜브는 유통망을 완벽하게 혁신시켰죠. 하나만 올려도 전 세계에서 그 영상을 보고, 유튜브에 광고를 팔면 전 세계에 있는 영상에 붙일 수 있어요. 한국에서 한국 영상을 올려서 미국에서 보면 미국에서 판 광고가 보이고 크리에이터에게는 미국에서 돈이 들어와요. 책으로 치면 책을 한 권 냈을 때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책을 판 거나 마찬가지예요.

 

 

1인미디어의 판을 만드는 과정


다들 광고 수입을 바라고 유튜브에 뛰어들어요. 돈보다 자기 채널만의 브랜드를 찾으라는 말은 쉽지만, 막상 길을 찾기는 어려워요.


그래서 에세이 형식으로 제 이야기를 담았어요. 제가 어떤 순간에 어떤 선택을 했는지, 하나하나의 선택이 당시에는 돈이 안 됐지만 결론적으로는 저에게 수익이라든지 여러 가지를 가져다줬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어서요. 단순히 돈을 벌려고 조회수를 높이기 위해 영상을 만들면 오히려 돈이 안 벌리는 사태가 벌어진다는 걸 알리고 싶었어요. 유튜브 입장에서는 조회수 잘 나오는 영상에 수익을 더 주는 건 손해예요. 올리는 사람 입장에서는 자극적이거나 음란한 영상을 올리면 조회수를 올리기 쉬우니까요. 광고주들 입장에서는 질 낮은 영상에 광고가 붙으면 안 되니까 유튜브도 조회수로 광고를 주기보다 그 채널에 얼마나 좋은 영상이 모여있는지에 따라 광고를 주는 알고리즘을 잘 짜야 광고를 더 많이 유치할 수 있겠죠. 그래서 오히려 자극적인 영상보다 정체성이 뚜렷한 영상을 올리는 게 훨씬 이득이고, 그러면 시청자도 단골이 되면서 이미지 브랜딩이 되면 외부에서 협업 제안이 들어올 수도 있고요.

 

결국에는 자본이 문제를 해결할 거라는 낙관적인 생각을 가지고 계신 거죠?


낙관적이기보다 현실적이라고 생각해요. 낙관하기 위해서는 그래야만 하는 현실적인 이유를 찾아야 하거든요. 요즘 세대에게 공부를 하라고 하면 ‘왜?’라고 해요. 왜 해야 하는지 이유가 나와야 하는 세대예요. 저도 비슷하게 자극적인 영상보다 질 좋은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서는 왜 그렇게 가야 하는지 이유가 확실해야 해요.


처음 시작할 때부터 욕하지 않는 방송으로 명성을 쌓아나갔어요.


당시 인터넷방송은 B급을 넘어 C급이었고 너무 자극적이었어요. 물론 그때도 착한 방송 하는 분이 있었지만 인기가 상대적으로 적었죠. 성격 자체가 욕을 잘 안 하는 성격이다 보니까 그 와중에 코믹한 요소가 잘 넣어진다면 분명히 잘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다행히 그게 통했던 것 같아요.


“아무리 재미가 중요해도 최소한의 품위는 저버리진 말자”는 말도 비슷한 맥락일 것 같아요.


요즘 인터넷 방송도 공중파 못지않게 선을 넘는 발언이라든지 행동은 반드시 처벌받아요. 그게 반드시 계정 삭제라기보다, 사회의 지탄이든가 법적인 처벌이 될 수도 있겠죠.


“나는 더 많은 사람들이 유튜브 채널을 만들어 자기 일상과 아이디어를 공유하길 바란다. 동영상을 제작하고 업로드하는 과정에서 성취감을 느끼고, 타인과의 유대감을 느껴보길 바란다. 이런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광고 업계가 유튜브에 주목할 것이다. 그러면 유튜브로 좋은 광고가 많이 유입될 테고, 유튜브 생태계는 건강하고 활가차게 성장할 것이다. 이런 선순환 구조는 나 한사람만 잘한다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시작은 한 사람이 할지 몰라도 결국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야 하는 일이다.”

- 217쪽


부모님들은 아이가 유튜버가 되고 싶다고 하면 일단 걱정하시잖아요. 유튜브에서 물의를 빚은 사건이 뉴스로 나오면서 자극적인 면만 주목받기도 하고요. 책 내용은 어떻게 유튜브를 이용해서 1인 미디어를 만들 수 있을지 보여주지만, 한편으로는 1인미디어가 나쁜 게 아니라는 주제가 깔려 있어요.


특히 유튜브는 교육적으로도 좋다고 봐요. 부모님 입장에서는 1인 미디어를 겪어본 적 없고 뭔지 모르기 때문에 걱정이 되죠.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은 오히려 아이들이 아니라 어른들이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어른들이 모르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어떤 조언도 해줄 수 없어요. 어른들이 ‘너 그거 보지 마’라고 해도 아이들은 ‘왜’가 풀리지 않으면 보지 않을 이유가 없거든요. 아이들이 유튜버가 되고 싶다고 하면 주말에 하루는 콘텐츠 촬영을, 하루는 편집을 해보자고만 해도 굉장한 교육이에요. 지금 사회에서 기획력이 중요한데 기획력을 가르쳐주는 학교는 아무 데도 없어요. 같이 만들다 보면 그다음에는 아이들이 스스로 자기 콘텐츠를 만들려고 공부를 하기 시작해요. 배울 이유가 생겼으니까요.


20대, 30대 직장인에게는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유튜브를 시작해야 하는 이유로 꼽았어요.


방송 주 시청자층이 17~30세가 제일 많아요. 이분들이 제일 많이 상담하는 게 ‘저는 꿈이 없어요’예요. 뭘 해도 지치고 힘들어하고요. 저는 사람들이 성취감으로 살아간다고 생각해요. 어떤 작은 것이라도 성취했을 때 그 기쁨이 커요. 하지만 교육에서는 성취감을 주기가 너무 어려워요. 잘 되는 사람들은 한정되어 있고 잘 된 사람조차 앞으로 어떻게 될지 미지수니까 불확실한 기분이 우울함으로 이어진다고 봐요. 아이들이 게임에 빠지는 이유도 비슷해요. 게임은 매 단계를 거치면서 성취감이 뚜렷하거든요. 유튜브를 통해서도 비슷한 성취감을 느낄 수 있어요.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영상을 하나 완성하는 것만으로 성취감이 느껴져요. 내가 좋아하는 취미는 나 혼자 할 때는 혼자 하고 끝나는 거였지만, 콘텐츠로 만들어서 올리면 사람들의 반응을 볼 수 있잖아요. 물론 욕하는 사람도 있겠죠. 그런 사람들은 무시하면 돼요. 그런 작은 성취감이 쌓이다 보면 이걸로 인생이 바뀔 수도 있거든요.


인터뷰를 많이 하셨어요. 바쁘면서도 인터뷰를 거절하지 않은 이유로 1인 미디어에 대해 할 말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했는데요.


제가 하는 일은 1인미디어의 판을 까는 과정이기도 해요. 부끄럽지만 제가 선구자 같은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책임감을 가지고 판을 깔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TV에 출연하거나 인터뷰하는 과정에서도 1인미디어가 제대로 된 무언가라는 걸 알리기 위해 설득하는 과정이 많았어요. 판이 잘못 깔려서 자극적인 영상을 올리는 사람이 대세가 되고 자극적인 콘텐츠가 주가 되면 1인 미디어는 결국 무너지거든요. 발전가능한 모델로 만드는 게 중요해요. 대기업들이 광고를 주기에도 ‘어? 1인미디어 시장이 시골인 줄 알았는데 고속도로는 깔려있네? 그럼 우리도 광고해볼까?’ 하는 마음이 들어야 하거든요.


유튜버인 윰댕 님과 함께 회사를 차리기도 했어요.


엉클 대도도 판을 만드는 하나의 기반이죠. 보통 1인미디어에서 편집자를 쓰면 정식 직원 계약이 아니라 모호한 파트너쉽을 맺어요. 그럼 편집자에게 커리어가 남는 것도 아니고요. 사실 크리에이터 입장도 중요하지만 제작 크리에이터 분들, 편집자나 촬영자의 기반을 다지기 위해 회사를 차린 것도 있어요. 엉클 대도는 크리에이터 전문가 집단에 가까워요. 편집 전문, 기획 전문, 경영 전문가를 모은 거죠. 나중에 이 분야에서 교육이 필요할 때 교육 커리큘럼으로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편집자들의 편집 방법, 촬영자들의 촬영 방법을 나중에 책으로 낼 수도 있고, 시작하려는 분들에게 컨설팅을 해주는 방향으로도 생각하고 있어요.


직원은 몇 명 정도인가요?


10명 정도 있습니다. 편집자 비율이 제일 높아요. 1인 미디어 업계에서는 편집자라고 해서 편집만 하지 않고 어느 정도 기획이나 작가의 역할도 해야 해요. 가성비가 중요하니까요. 기존 미디어에서는 정말 좋은 퀄리티의 영상을 만들지만 제작비 부담이 크죠. 저희는 제작비가 적지만 그만큼 퀄리티가 조금 낮고요. 이상적인 콘텐츠는 중간 어디쯤 있다고 믿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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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를 가진 자가 오래 살아남는 시대


170만 구독자를 지닌 채널을 운영하지만 연예인이 될 생각은 없다고 하셨어요.


(웃음) 기본적으로 관종이에요. 관심종자. 유명해지는 건 관심 있고 좋아요. 연예인이 되기 싫다는 건 좀 다른 이야기예요. 유튜버들에게 물어보면 대부분 연예인 안 한다고 할 거예요. 돈을 훨씬 많이 벌고 유명해지지만 대신 감독님이나 PD님이 불러줘야 일할 수 있는 거고, 지금 인기가 많더라도 안 불러주면 그대로 일이 끊기잖아요. 그런 불안 때문에 다른 크리에이터들하고도 쓸 만큼 벌고 하고 싶은 일 충분히 하는 게 복 받은 일이라고 많이 이야기해요.


대도서관의 특성이 1인미디어에 적합한 것 같아요. 피아노를 연습한다면 바로 집에 흡음벽을 설치한다든지, 무언가 새로 시작하면 실행이 빠른 편이에요.


지금 유튜브는 재미의 시대지만, 앞으로 유튜브는 전문성의 시대가 올 것 같아요. 저도 개인적으로 여러 가지 공부를 많이 해봐요. 메이크업, 요리, 피아노 등 대부분 돈 벌어서 뭔가 배우는 데 써요. 가치 있는 것들을 경험해 보고요.


계속 자기 채널만의 색을 강조하지만, 자기 색을 찾으려면 시도와 실패의 과정이 있어야 해요. 크리에이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자기가 좋아하는 취미가 있는 게 중요해요. 그게 해결되면 단순히 어떻게 보여줄지만 생각하면 되죠. 예를 들어 미술을 너무 공부하고 싶은데 부모님의 반대라든가, 생활의 어려움으로 다른 일을 하고 있다면 미술에 관한 관심을 1인 미디어로 풀어보는 거죠. 남들은 잘 모르는데 나는 관심이 있어서 알고 있던 내용을 사람들에게 재밌게 설명해주는 거예요. 한 번 틀이 잡히면 제목과 그림만 바꾸면 되거든요. 기획하는 과정에서 생각보다 돈이 안 된다고 느꼈던 일들이 오히려 자신에게 큰 성취감을 주고 나아가서 커리어가 될 수도 있어요. 시작을 안 하는 게 손해죠. 기자님도 해 보세요.


기자가 오히려 전문성이 없을 때도 있어요. (웃음) 온갖 걸 취재하지만 깊게 알진 못하거든요.


잡다하게 관심이 많다는 거죠? 그게 최고의 1인 미디어 감성이에요. 대부분의 크리에이터가 그래요. 그게 기획자 마인드에요. 얇지만 넓어야 좋은 1인미디어 기획자라고 생각해요. 어디에 뭐가 있는지 알아야 어디서 구할지 알 수 있거든요. 깊이가 얕으면 전문가 도움을 받아서 파 나가면 돼요. 그러면 자기 전문 분야가 어느 정도 나오게 돼요.


대도서관이 벌일 모험의 기반이기 때문에 1인미디어 시장에 투자한다고 하셨어요.


저에게도 이득이 돼요. 모두가 파이를 늘리지 않고 자신이 먹을 걸 뺏기지 않으려고 한다면 그 시장은 망할 거예요. 1인미디어가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가치가 된다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플랫폼의 지배자가 세상을 지배한다고 했는데, 지금은 콘텐츠를 가진 자가 오래 살아남는 시대 같아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정말 똑똑하고 인터넷망이 잘 되어 있잖아요. 자원은 별로 없지만 잘 되는 분야에 대해서는 정말 똑똑해요. 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튜브를 하다 보면 한국이 진짜 좁다는 걸 느끼고 결국 한국인이 아니라 50억 지구인 대상으로 할 수 있는 걸 찾아요. 영어를 배우거나 영어를 안 해도 되는 콘텐츠를 하거나요. 그럼 해외에 물건을 가져다 파는 거나 마찬가지거든요.


대도서관이 벌일 앞으로의 모험은 무엇인가요?


푸드 채널과 예능 코미디 채널이 두 개 정도 더 나올 거예요. 지금 나오는 콘텐츠보다 조금 더 가볍게 보는 쿠키 느낌으로, 우리 식으로 재미를 줄 방법을 고민하고 있어요. 윰댕 님은 키즈 채널을 새로 준비하고 있어요. 키즈 채널의 주요 목적은 글로벌이에요. 말이 통하지 않는 콘텐츠도 키즈 채널이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언어의 장벽을 깨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유튜브의 신나동현 (대도서관) 저 | 비즈니스북스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기발한 콘텐츠와 남다른 창의력으로 성공을 일궈낸 대도서관의 이야기를 통해 1인 크리에이터 세계의 모든 것을 속속들이 알려줄 것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방승호 선생님 “아이들과 10분만 놀아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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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 활짝 열려 있는 방승호 교장선생님의 교장실. 인형 탈을 쓴 채로 교문에서 학생들과 인사하고, 기타 들고 담배 피우는 학생들 곁에서 노래를 부르는 이 재미있는 교장선생님은 ‘가수’라고 적힌 자신의 명함을 학생들에게 돌리며 교장실에 놀러 오라고 말한다. 그 말을 듣고 찾아온 학생이 있으면 일단 “걔한테 진짜 잘해”준다. 간식도 주고, 팔씨름도 하고, 노래도 부르며 쉬는 시간 10분을 보낸다. 그게 전부다. 그러다 보면 학생들은 자신의 고민과 꿈에 대한 이야기를 묻지 않아도 스스로 했다. 선생님은, “먼저 뻥을 치고 구하라고 용기를” 줄 뿐이었다.


“아이들 철들게 하는 방법은 따로 없어요. 같이 놀아주면 자동으로 철이 들어요.”라는 방승호 선생님. 현재 서울아현산업정보학교 교장으로 재직 중인‘노래하는 교장’ 방승호 선생님의 『일단 한번 해 봐, 용기는 공짜니까』는 선생님이 만나온 학생들의 이야기, 학생들에게 꼭 전해주고 싶었던 응원의 이야기다.


희망을 잃은 학생들에게 꿈을 찾도록 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좋아하는 것을 이야기하고, 사소한 꿈이라도 이룰 수 있도록 곁에서 응원해주는 것, 그것이 방승호 선생님의 역할이었다. 인터뷰 현장에서도 서슴없이 기타를 꺼내 들어 노래 하는 방승호 선생님은 자신의 노래 부르는 모습이 학생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다고 믿는다. 게다가 자신은 가수라는 꿈을 이뤘으니, 일거양득이다. 기타 치는 손가락에 학생들이 발라준 빨간색 매니큐어가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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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뻥후조치’


무엇보다 제일 먼저 하신 이야기가 ‘꿈’이라는 점이 좋았어요. 뒷부분에는 꿈이 없어도 괜찮다고 말씀하시지만요. 꿈을 찾는 것이 왜 중요한지, 그것이 학생들에게 어떤 구체적인 변화를 가져오는지 발견하는 것이 큰 의미가 있었어요.

 

저희 아현산업정보학교가 사실은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하루 5시간은 엎드려 잘 수 있는 능력을 가진 학생들만(웃음) 올 수 있는 곳이거든요. 그런데 그 아이들이 모두 천재예요. 몰랐던 자기의 능력을 비로소 드러내는 것, 그것이 꿈 아니겠어요? 저는 아이들과 상담할 때 마지막에 꼭 물어보는 게 “네 꿈이 뭐니?”거든요. 상담할 때 항상 ‘모험놀이’를 하는데요. 아이들이 놀이를 통해 무장해제가 돼요. 과거나 자신의 상황에서 딱 벗어나요. 온전히 지금 이 순간만 있어요. 그 끝에 나온 자신의 꿈은 진짜죠. 그것을 많은 학생들과 경험했어요. 저도 그러다가 나의 꿈이 뭔지도 생각해보게 됐거든요. 누구나 꿈은 가지고 있어요. 숨겨진 꿈을, 묻혀 있는 꿈을 어떤 방법으로 찾을 수 있도록 해주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자기 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해주면 돼요. 그러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던 거예요.

 

자기 소리를 들을 수 있게 놀이로 마음의 문을 열어주는 것이군요.


그리고 좋아하는 것을 한참 얘기해요. 그런 다음 “공통점이 뭐야? 어떨 때 좋아하는 것 같아?”라고 물어봐요. 공통점만 찾아도 한결 쉬워지거든요.

 

선생님 자신의 꿈도 생각해보게 되었다고 하셨어요. 그것이 노래였나요?


저도 계속 생각해본 거예요. 나는 뭘 할 때 제일 좋지? 그러다 떠오른 것이 노래였어요. 그때부터 아이들한테 뻥을 치기 시작했어요.(웃음) 제 좌우명이 ‘선뻥후조치’예요. 말을 해놓고 그 다음에 행동을 하는 건데요. 성경에 ‘구하라, 얻을지어다’라는 말이 있잖아요. 같은 거예요. 그래서 아이들에게도 먼저 뻥을 치고 구하라고 용기를 주는 거죠. 결국 교육은 자기 안에 묻힌 꿈을 학교라는 공간 안에서 찾도록, 용기 내도록 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 꿈이 무엇이든지 말이에요. 그래서 제목에도 ‘용기’라는 단어를 넣은 거예요.

 

그 꿈이 무엇이든지 말이죠.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찾도록 한다는 점이 중요할 것 같아요.


그럼요, 다 한 발짝이에요. 두 발짝이 아니죠. 한 번에 두 발짝 뛰는 사람은 없어요. 아무리 큰 꿈도 한 발짝이에요. 제가 학생들과 상담할 때 늘 마지막에 꿈을 얘기하면서 그 끝에는 그 꿈을 위해 오늘 해야 할 일을 정해요. 딱 한 가지, 아주 사소한 것부터 시작해요. 가령 운동을 해야겠다고 한다면 30분만이라도 땀 흘리면서 운동하게 하는 거죠. 수학을 해보고 싶다고 하면 10분이나 20분만 해보도록 해요. 작가 되고 싶은 아이들도 많거든요. 그러면 진짜 책꽂이에만 꽂혀 있던 소설책 한 권을 읽게 하면 돼요. 그걸 관리하고, 확인해주는 작업이 곁에 있는 멘토가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지구력이 없으니까 아이들에게 네가 어떻게 하는지 선생님이 궁금하다, 하면서 톡이나 문자로 보내게 하는 거예요. 그러면 책 읽는 사진, 운동하는 사진이 와요.(웃음) 지지하는 사람이 생긴 거잖아요.

 

밤에도 문자가 오고, 학생들과 메일도 많이 나누고 하시면 개인적인 시간도 부족하고, 바쁘시겠어요.


이게 힘들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걸로 에너지를 얻어요. 20년을 이렇게 했잖아요. 게다가 조금 전에도 5년 만에 제자들이 찾아왔는데요. 저더러 젊어졌다고 해요.(웃음) 상담하는 선생님들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가 상담 하고 나면 지친다는 건데요. 놀이를 하면 에너지가 서로 커져요. 저도 얻는 게 많죠. 아이도 은연중에 저한테도 칭찬을 보내주거든요. 그렇게 다음 친구를 만날 수 있는 힘을 나도 얻어요. 더군다나 저는 그것이 노래로 품어지고, 책으로 품어졌잖아요. 이런 경험을 하니까요. 힘들지 않아요. 생각을 바꿔보면 돼요. 결석을 60일 하는 학생, 도둑질을 하는 학생이 있다고 해봐요. 걔 때문에 고생한다고 생각하면 힘들죠. 그런데 연구를 한다고 생각한다고 하면 축복인 거예요. 일부러 찾으려면 힘들잖아요. 저한테는 연구할 수 있는 학생이 700명 있는 거죠.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은 선생님께서 만나온 학생들이 써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지금 말씀과 통하는 것 같아요.


굉장히 중요한 말씀인데요. 제가 두 줄도 못 썼던 사람이에요. 언젠가 ‘두 줄도 못 쓰던 사람이 책 내는 방법’ 같은 책을 쓰고 싶은데요.(웃음) 토목과 출신이거든요. 글 때문에 콤플렉스도 많이 느꼈고요. 지금도 글 잘 쓴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데요. 저는 아이들 이야기를 전달한다고 생각해요. 이렇게 아파하는 아이들이 있어요, 이래서 공부를 포기했어요, 이렇게 뭔가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있어요, 이걸 그냥 전달하는 거죠. 그래서 상담에 집중하는 거예요. 진짜 거짓말이 아니고요. 아이들이 한 얘기를 그대로 전하는 거예요.

 

선생님과 모험놀이를 떼어놓을 수 없겠죠. 이것은 어떻게 하시게 된 거예요?


미국에서 연수를 받을 때 이렇게 짧은 시간에 사람을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게 있구나, 하는 걸 딱 깨달았어요. 놀이가 5분, 10분 만에 사람을 확 바뀌게 해요. 어느 순간 다른 사람의 손을 잡고 있고, 소통하고 있는 거죠. 이거다, 싶었어요. 그걸 학교에서 한 거죠. 계속 아이들과 했어요. 강의도 많이 했고, 그러다가 책을 쓰게 된 거고요. 

 

모험놀이 방법 몇 가지만 간단하게 설명해주세요.


팔씨름이 제일 간단해요. 손을 잡는 순간 아이들이 반응하거든요. 아니면 주머니에서 동전을 하나 꺼내요. 아이들한테는 눈을 감으라고 하고 동전을 한 손에 쥐어요. 그런 다음 양 손을 주먹 쥐어 보여주죠. 어느 쪽에 동전이 있는지 찾으라고 해요. 선택한 제 한쪽 주먹을 힘껏 펴보라고 하고, 저는 주먹을 꽉 쥐고 있어요. 그러면 서로 금방 얼굴이 벌겋게 되죠. 이런 식으로 손잡고, 겨루다 보면 자연히 말이 돼요. 선생님한테 대들어서 여기에 왔잖아요? 그런데 놀이를 하고 나면 여기 왜 왔는지 몰라요.(웃음) 순간 잊어버려요. 재미있죠? 학생들 앉혀놓고 “너 인마, 선생님한테 이러면 안 돼. 반성문 써.”해도 안 되잖아요. 그런데 이렇게 몇 번 놀면 아이들에게 사과할 수 있는 힘이 생기더라고요. 금방 “잘못했어요.”라고 해요. 놀고 나면 이제 서로 화는 못 내거든요. 먼저 사과하고, 얘기가 되는 거예요. 참 신기해요. 

 

 

꿈이 들끓는 아이들


처음에 “모두 천재”라는 말씀을 하셨는데요. 어떤 의미인지 좀 더 듣고 싶어요.


처음 이 학교에 와서 보니까 전부 공부를 포기한 학생들이잖아요. 궁금한 거예요. 언제, 왜 공부를 포기했는지 말이에요. 그래서 상담을 시작했고요. 그렇게 공부 포기한 시점과 이유를 알게 됐는데요. 공부를 포기한 아이들이 끝에 하는 게 게임이더라고요. PC방에 가는 거죠. 그래서 학교에 PC방을 만들었어요. 농담으로 ‘인터넷중독자과’라고 해서, 뽑을 때도 게임으로 뽑았어요. 거기서 프로 선수도 나왔죠. 그러니까 천재 맞죠? 다들 천재잖아요. 중국에는 심어도 5년 동안 자라지 않는 대나무가 있대요. 그러다가 5년이 지나면 엄청나게 자란대요. 자라지 않는 동안 뿌리를 내린다는 거예요. 저는 우리 학교 아이들이 뿌리를 내리는 거라고 생각해요.

 

성적보다는 봉사와 출결 점수가 더 중요한 학교, “나는 이런 학교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100쪽)라고 하셨죠.


성적도 중요하죠. 하지만 그 외에 다른 것을 잘하는 아이들 많거든요. 다양화 되어야 해요. 공부만큼 중요한 게 없지만요. 공부라는 것이 국영수만은 아니라는 거죠. 게다가 공부 잘하는 능력을 가진 아이들은 얼마 안 될 거예요. 지금 학교는 떨어뜨리는 교육을 하거든요. 그렇다면 나머지는요? 그 아이들도 하고 싶은 게 들끓고 있어요. 그런 학생들이 우리 학교에서 꽃을 피우는 거예요. 책에서도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더구나 꽃 피우기가, 꿈을 드러내기가 쉽거든요. 조금만 만져주면 돼요. 한 달도 안 걸려요. 얼마나 웃겨요. 우리 학교 학생들 50%가 담배 피우거든요. 학교에서는 전혀 안 피워요. 자존감이 딱 생기면 절제하는 능력이 생기는 거죠.

 

떨어뜨리는 교육, 이라는 말씀이 따갑습니다.


우리도 다 그랬잖아요. 그러면서 혹시나 해서 쳐다보고 있어요. 그런데 문제는요. 과거에는 잘하는 아이들이 사회적으로도 잘살게 됐는데요. 지금은 그 후도 문제잖아요. 지금은 아무리 명문대를 나와도 그것만 믿고 있으면 큰일 나잖아요. 다양화가 중요한 거죠.

 

지금 인터뷰 하고 있는 이곳 교장실이 교장실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재미있는 공간이에요. 인형과 간식이 가득하거든요. 이렇게 교장실을 연 계기는 무엇이었어요?


저는 아침마다 명상을 하는데요. 명상을 하다 보면 아이디어가 많이 떠올라요. 아침에 명상하고, 쓰면 새로운 생각이 올라오더라고요. 처음에는 교장실을 열었다기보다 교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어요. 호객행위를 한 거예요. 나를 알려야 하니까요. 교실을 다니는 건 감시 개념이잖아요. 그래서 일단 교실에 들어가지 말자고 다짐했어요. 교실 문 열고 “얘들아, 내가 누군지 아니? 내가 교장이야.”하고 나오는 거예요.(웃음) 27개 반 도는 데 20분도 안 걸려요. 그렇게 한 달을 돌면 그때부터는 아이들이 먼저 “교장선생님 오셨다.”해요. 복도에서 인사하기 시작하고요. 훨씬 친근해지죠. 저녁에도 “굿모닝”하고 그러면(웃음) 저절로 친해지는 거예요. 또 명함도 돌렸죠. ‘가수’라고 적힌 명함이에요. 명함 주면서 한 명 씩 다 악수를 했어요. 저를 안전망이라고 생각하도록 하는 거예요. 집에 가면 아이들이 다 자랑을 해요. 교장선생님한테 명함 받았다고요.

 

없던 경험이니까요.


좋아하더라고요. 그런 다음에 교장실에 놀러오라고 했어요. 한 명이 오면 걔한테 진짜 잘해줘야 해요.(웃음) 친절하게 하고, 웃고, 노래 부르고 해야죠. 초코파이도 주고요. 무한리필이에요. 요즘은 그냥 안 주는데요. 가위, 바위, 보 해서 이기면 줘요. 무조건 져주죠. 제가 주먹만 내는 거 아이들이 알거든요.(웃음) 교장실은 열고 자시고 생각할 틈도 없이 열린 거예요. 그렇게 모험놀이도 하게 된 거고요. 아무리 웃긴 얘기도 5분 이상 듣는 애들은 없거든요. 저는 그냥 놀이 하고, 노래 한 곡 들려주고 그래요. 10분 금방 가거든요. 그러고 그냥 가는 거예요. 그래야 또 와요. 교육 받는 느낌 들면 안 오니까요.

 

노래를 직접 불러주신다고요?


여기 온 친구들은 제 노래를 꼭 들어야 해요. 안 들으면 안 돼요.(웃음) 담배 피우다 걸리면 저하고 하루 종일 노래해야 해요. 꿈 이야기를 하잖아요. 담배 피우다 걸린 아이한테 “선생님 꿈이 가수였어. 내 노래 한 번 들어볼래?”하고 노래를 들려주는 거예요. 제 노래 중에 <No Tabacco>라고 ‘금연송’이 있어요. 그걸 불러주죠. 이 노래의 작곡가가 드라마 <도깨비>의 OST 프로듀셔 안영민 씨예요. 가사는 제가 썼고요.

 

노래 듣기 - https://www.youtube.com/watch?v=nTkABSHHx5w 

 

학생들에게는 선생님이 어른이지만 친구 같은 느낌이겠네요. 그렇게 하다가 말문이 트이면 상담을 하게 되는 거고요.

 

친구 같고, 여기서 배고픔도 해결하고, 순간 재미있게 놀고 그런 거죠. 그렇게 말을 하기 시작하면 자기 이야기를 솔직하게 하게 돼요. 이야기 하고 돌아서면서 아이들이 제일 많이 하는 이야기가 “돌아보니 너무 좋아요”예요. 이런 얘기를 누구와 했겠어요. 저는 부모님들한테도 이 얘기를 해주고 싶어요. 10분만 놀아주자고요. 인성교육이거든요. 나와 여기서 노는 게 학생의 일상에 얼마나 되겠어요. 그런데 잠깐이지만 엄청나게 영향을 받더라고요. 가정에서도 똑같겠죠.

 

단짝 친구인데 한 명은 무척 밝고, 자신의 꿈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생각을 가진 반면 다른 한 명은 자신감도 없고 비관적이던 사례가 떠오르네요.


그 둘은 음악 하던 친구들인데요. 한 명은 어떤 이야기를 해도 긍정적인 거예요. 부모님 영향이더라고요. 예고 입시에 떨어졌을 때도 그 학생의 부모님은 그 순간 “너는 또 다른 것을 할 수 있다”고 한 거예요. 그런 말을 들으면 아이의 자존감이 확 올라가요. 누가 매 순간 잘할 수 있겠어요. 그런 친구들은 표정이 달라요. 그런데 다른 친구는 부모님이 엄격하고, 자신들의 기준에 따르기를 바랐어요. 그러면 아이들이 힘들어지는 거죠. 자존감도 확 떨어지고, 무엇을 해도 부정적으로 대해요. 저는 그런 측면에서 부모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부모의 지지는 자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유산이에요. 상담을 해보니까 그래요. 확연하게 구분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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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복 받은 직업, 선생님


책의 가장 큰 미덕은 변화할 수 있다는 믿음이라고 생각해요. 지금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더라도 조금만 다가가면 금방 변화하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계속 들려주고 계시잖아요.


바뀌는 정도가 아니에요. 그런 학생일수록 더 큰 점프를 할 수 있어요. 얼마 전에 한 학생의 아버지가 찾아왔어요. 아이가 첫 월급을 탔는데 학교에 기부하고 싶다고요. 정말 감동적이었어요. 늘 게임만 하던 아이였으니 얼마나 부모가 속 썩었겠어요. 그런데 정말 지지해주고 원하는 것을 하도록 지켜봤거든요. 결국 게임으로 프로 입단을 했죠. 걔는 앞으로 더 성장할 거예요.

 

학생들이 꿈의 싹을 틔우는 계기 가운데 인상적이었던 것이 “작지만 확실한 성공이 가능한 계획”(56쪽)을 세우도록 하는 것과 “성공의 ‘느낌’에 익숙해지는 훈련”(65쪽)을 하는 것이었어요.


밤에 차를 타고 부산에 간다고 해보세요. 라이트가 부산까지 비춥니까, 눈앞만 비춥니까. 눈앞만 비추잖아요. 한 발짝이에요. 작지만 확실한 실천 하나가 중요해요. 그 하나를 가지고 그날 출발하게 하는 거예요. 그리고 저는 꼭 물어봐요. 네가 듣고 싶은 말이 뭐냐고. 보통은 “잘했다”라는 말을 듣고 싶다고 하거든요. 그럼 그 말을 그대로 해주는 거예요. 참 사소하잖아요? 그런데 결코 사소하지 않다니까요. 이것은 부모님은 해주기 힘들죠. 그래서 학교의 선생님 역할이 굉장히 중요한 거예요.

 

현장에 계신 선생님들께도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실 것 같아요.


아이들을 자꾸 만나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어렵게 만날 필요 없어요. 놀이로 만나면 되거든요. 제가 하는 모험놀이는 몇 가지 기술만 가지고도 할 수 있어요. 놀이를 하면 굉장히 많은 문제가 풀려요. 저는 나눔이 팔자를 바꾼다고 생각하는데요. 교사만큼 나눌 수 있는 직업이 없어요. 아이들한테 아침에 따뜻한 말 한 마디 해주는 것, 볼 때마다 한 마디 해주는 것이 아이들에게는 축복으로 변해요. 아이들과 가장 가까이에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선생님이에요. 구조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어요. 그걸 귀찮다고 생각하면 서로 원형탈모예요.(웃음) 아이들에게 선물을 줄 수 있는 자리가 선생님이니까요. 축복 받은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내용으로 강의도 많이 하시죠?


일 년 치가 잡혀 있어요. 저는 강의료를 안 받거든요. 여행 다닌다고 생각하고 주말에만 다녀요. 성경책에 나와 있거든요. 절대로 돈과 명예는 같이 갈 수 없대요. 저는 별 건 아니어도 돈에 집착하면 내가 하는 일을 못할 거라 생각해요. 저는 모험놀이 진짜 오랫동안 하고 싶거든요. 노래하고, 책 쓰는 일을 계속 하고 싶어요. 그러려면 돈에 구애받으면 안 되죠. 그래서 그러는 거예요. 제가 잘나서도 아니고요. 마음 편한 게 최고예요.

 

가수시니까(웃음), 앨범도 계속 내시고요.


음반은 책의 OST예요. 책이 일곱 권, 음반도 일곱 개거든요. 계속 책에 맞게 내는 거예요. <No Tabacco>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이냐 하면요. 인문계 고등학교 갔을 때인데 전부 담배를 피우더라고요. 다들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워요. 학생 한 명이 양치를 못하겠다고 하는데 너무 미안했어요. 고민을 하다가 다음 날 기타 들고 화장실 앞에서 노래를 하기 시작했어요. 그때는 이 노래가 없을 때니까 김광석의 <일어나>를 불렀죠. 복도에 노래가 울리잖아요. 열 명이 모여 듣더니 조금 지나니까 50-60명이 모였어요.(웃음) 애들이 담배 피우지 말라고 얘기 안 해도 다 알아요. 제가 왜 노래를 하는지. 그때 메시지 교육의 중요성을 체감했어요. 문화의 중요성도 느꼈죠. 애들이 돌아서면서 “야, 우리 학교 재미있지 않냐?”라고 하는 거예요. 사진과 영상을 찍어서 다 올려요. “골 때린다”, “개좋아”라면서요.(웃음) 그 영상을 보고 안영민 씨가 연락이 와서 만들게 된 게 이 노래예요. 재미있죠?

 

영화 같은 이야기네요.


그때부터 진짜 대중가수가(웃음) 된 거죠. 그리고 작년에 영화도 찍었어요. 다큐멘터리인데요. 일 년 동안 저를 찍었거든요. 후반 작업 중으로 알고 있어요. 올해 연말에 아마 상영될 거예요.


노래하는 게 혼자서는 역부족이니까 그 다음에는 버스킹 조가 만들어지고, 드럼 치는 학생, 기타 치는 학생, 노래 부르는 학생이 하나씩 모이고 그랬거든요. 수시로 이곳, 저곳 다니다보니 학교에 담배가 사라졌어요. 한 달 걸리더라고요.

 

에너지가 넘치시는데요. 이런 아이디어를 아침에 하는 명상에서 많이 얻으신다고요?


톨스토이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에 중요한 것을 성장이라고 보더라고요. 성장을 얻으면 행복하다고요. 그렇다면 어떻게 행복할 것인가, 몰입 얘기를 하는 거예요. 명상은 몰입으로 들어가는 데 최고의 방법이에요. 20년 전에 신문에서 한 줄, 참선을 봤어요. 그때 절에 들어가서 일주일 간 묵언을 했고요. 그 뒤로 지금까지 하루도 안 빼놓고 명상을 했어요. 아침에 기본적으로 30분 이상 하는데요. 그 안에 굉장히 많은 것들이 이어져요. 명상 자체가 저 자신을 평화롭게 하고요. 고요한 나와 만날 때마다 성장하는 느낌이 들어요. 명상 후에 쓰는 것까지 하면 내면의 소리를 듣는 데 큰 도움이 돼요.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일주일에 두 시간은 꼭 나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이죠. 공연도 보러 가고, 청바지도 사러 가고요.(웃음) 자기와의 데이트를 해요. 호랑이 탈을 쓰고, 노래를 부르고, 하는 모든 아이디어는 다 그렇게 찾아 왔어요.

 

요즘 고민하고 계신 건 뭐예요?


건강해야겠다는 생각이죠. 건강해야 노래도 계속 할 수 있으니까요. 특별하게 걱정이나 고민은 많이 없어요. 저는 걱정거리가 있어도 그것을 더 좋은 무엇인가를 하라는 메시지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걱정이 없을 수는 없겠지만 그것을 잘 여과시키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일단 한번 해 봐, 용기는 공짜니까방승호 저 | 보랏빛소
교육 현장에서 직접 만난 아이들과의 재기발랄하고 생생한 대화, 그리고 각장 말미에 제공하는 시의적절한 ‘방승호의 찰지고 똑 부러지는 용기 메시지’를 준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시노다 나오키 “죽기 전 마지막 식사는 가쓰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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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로 근무 시간이란 점심 이전과 이후로 나뉘기 마련이다. 점심시간을 기다리며 오전 업무를 처리하고, 퇴근시간을 기다리며 오후 업무를 견뎌내는 게 평범한 직장인의 모습 아닐까. 그만큼 직장인들에게 ‘오늘의 점심 메뉴’는 변함없는 관심사다. 문제가 있다면 회사 근처 식당은 한정되어 있고, 늘 ‘거기서 거기’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 어제 먹은 메뉴와 그제 먹은 메뉴가 헷갈리는 것도 무리는 아닐 터다. 나는 삼일 전, 일주일 전의 점심시간에 무엇을 먹었는지 기억할 수 있을까? 일상의 쉼표 같은 이 시간을 더 다채롭게 채울 수는 없을까?

 

시노다 나오키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여행사의 샐러리맨인 그는 1990년부터 매끼 먹은 음식을 일기에 기록해왔다. 『시노다 과장의 삼시세끼』 가 떠오르는가? 맞다, 23년 동안 써온 ‘그림식사일기’를 공개했던 바로 그 주인공이다. 첫 책이 출간되고 2년여가 흐르는 동안 저자는 과장에서 부장으로 승진을 했다. 물론 샐러리맨으로서의 일상은 변함없이 이어졌고, 일기쓰기도 멈추지 않았다. 『샐러리맨 시노다 부장의 식사일지』에 담긴 것은 그 시간들의 기록이다.

 

여전히 그는 맛집 개척을 즐기고 마음에 드는 식당을 발견하면 지겨울 때까지 찾아가는 ‘음식 스토커’다. 그 날 먹은 음식을 쓰고 그리면서 하루를 마감하는 것도 똑같다. 무려 28년 동안 이어져 온 일과다. 그의 식사일기를 보고 있노라면, 무심코 지나친 순간들도 기록을 거치면서 특별해진다는 걸 알게 된다. 눈으로 음식을 맛보며 상상하는 즐거움은 덤이다.

 

시노다 나오키는 스물일곱 살부터 식사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후쿠오카로 전근을 가게 되면서 현지의 맛있는 음식을 기록해두자고 생각했던 것. 그는 음식점에서 사진을 찍거나 스케치를 하지 않고, 기억에만 의지해서 그림을 그리고 감상을 남겨왔다. 2012년 NHK의 한 프로그램을 통해서 23년 동안 써온 일기를 공개하며 화제를 모았고, 이를 계기로 첫 번째 책 『시노다 과장의 삼시세끼』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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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메시, 샐러리맨의 점심


한국에 처음 오신 건가요?

 

10년 만에 왔습니다.

 

당시에 한국 음식을 스토킹하셨어요(웃음)?


그때는 사원 여행으로 왔던 거라 자유 시간이 없었습니다. 서울을 둘러볼 시간이 없었는데요. 이번에는 조금 더 깊게 즐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제도 그렇고 오늘 아침에도 주변 산책을 했어요. 문 연 식당들도 봤고,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한국 독자들과의 만남도 예정되어 있죠?

 

네, 무척 기대하고 있고요. 일정 사이사이에 시간을 마련해서 한국의 맛있는 음식을 즐기고 싶습니다. 제가 여행 회사를 다니는 사람이라 이렇게 말하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투어로 찾아가는 가게보다는 지역 사람들이 많이 가는 가게를 가고 싶습니다.

 

2012년에 방송을 통해서 처음 식사일기를 공개하셨어요.


원래 그림을 그리고 문장을 쓰는 걸 좋아했습니다. 그때는 23년 정도 써온 일기가 있었고요. 마침 그 해에 NHK에서 <사라메시(サラメシ, 샐러리맨의 점심)>라는 프로그램이 시작됐습니다. ‘내 일기가 소개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투고를 해보자’라는 마음에서 투고를 했었어요.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쓴 일기는 아니지만, 사람들이 보고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궁금했습니다. 그랬더니 전화가 왔어요. 그래서 출연을 하게 됐죠. 그때 제가 해외 출장을 가려고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10분만 전화가 늦게 왔다면 못 받았을 거예요. 그러면 방송에 나가는 일도 없었을 거고, 책이 출판되지도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서울에 와서 인터뷰를 하는 일도 없었을 것 같고요. 우연적인 일들이 많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50세 생일을 기념해서 일기를 공개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그렇다기보다는, 그 해에 저희 딸들이 대학교와 고등학교 수험 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도 아버지로서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요즘도 방송에 출연하시나요?


아직도 취재를 요청하는 경우가 있어서 출연하기도 하고요. 가끔 지역 방송에 나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식당 주인이나 손님들이 알아보는 경우가 많겠어요. 솔직하게 음식을 평가하기가 어려워졌을 것 같은데요?


제가 쓴 책이 가이드북이 아니기도 하고, 의외로 잘 들키지 않습니다. 아는 가게는 마음에 들어서 가는 곳이기 때문에 애초에 좋지 않은 평가는 잘 쓰지 않고요. 몰래 가는 곳은 들키지 않고 있어요. 그래서 그런 영향은 없는 것 같습니다. 책에는 안 좋은 이야기가 별로 없는데요. 노트에 쓴 내용 중에는 악평도 있습니다(웃음).

 

“저의 은밀한 꿈은 이 책에 나와 있는 어딘가의 식당에서, 제 책을 보고 오셨다는 분과 우연히 만나게 되는 일입니다”라고 쓰셨어요. 실제로 그런 경험을 하셨어요?


그런 분을 스친 경우는 있었습니다. 가게 주인이 ‘책을 보고 왔다는 사람이 있었어’라고 말하는 걸 들은 적이 있어요. 직접 마주친 경우는 한 번도 없었습니다.

 

처음 간 가게의 주인이 먼저 알아보는 일도 있을 것 같은데요.


그런 경우는 없었습니다. 아무래도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서 그런가 봅니다(웃음).

 


전단지 나눠주는 음식점은 가지 않아요


『샐러리맨 시노다 부장의 식사일지』는 점심식사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직장인에게 점심은 아침, 저녁과는 또 다른 의미가 있는 걸까요?


회사에 가면 점심을 가장 기대하게 될 것 같고요. 지금은 일본 직장인들의 점심식사 사정도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다들 용돈도 적어졌고, 그래서 도시락을 사서 먹는 경우가 굉장히 많아요. 그런 의미에서 보면 점심시간은 리프레시를 할 수 있는 귀중한 시간이라고 생각하고요. 저는 밖에서 먹은 음식만 그림으로 그리는데, 음식의 맛을 기록한다기보다는, 나중에 봤을 때 ‘이 때의 나는 이런 음식을 먹었구나’ 하는 경향을 알 수 있는 기록이라고 생각합니다. 통계를 내는 걸 꽤 좋아하기도 하고요. 점심에 내가 무엇을 먹었는지 기록하는 것은 그만큼 제가 점심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의미인 것 같습니다. 저녁이나 주말에는 집에서 먹는 경우가 많은데요. 그럴 때는 다양함이 조금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매주 같은 걸 먹을 때도 있고요. 물론 아내 흉을 보는 건 아니지만요(웃음). 점심에는 새로운 가게를 개척하면서 무한하게 가능성을 넓힐 수 있습니다.

 

회사 근처에 새로운 식당이 생기면 일단 가서 맛을 보신다고요.


새로운 가게를 개척해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고요. 가능한 많은 것들을 먹고 그리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여러 가게를 가려고 노력해요. 그런 것들이 다 상승효과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점심시간에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편이어서, 여러 가게에 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 취미와 실질적인 이익을 겸한 작업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국에는 ‘월요병’이라는 말이 있는데요. 일본에도 비슷한 말이 있나요?


일본에도 그런 것이 분명히 있기는 합니다. 월요일이 되면 회사에 가기 싫은 거죠. 그런데 저는 화요일을 주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전 주의 금요일보다 이번 주 금요일이 더 가까워지는 시점이니까요. ‘지난 주말이 즐거웠다’고 생각하기보다는 ‘이번 주말에 뭐하지?’라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거예요. 어떻게든 월요일만 극복하면 화요일부터는 주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꽤 긍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새로운 식당을 개척할 때의 요령’도 공개하셨어요. 전단지를 나눠주는 음식점은 피하신다고요.

쿠폰을 내놓는 가게들 중에는 좋은 가게가 별로 없습니다. 저는 그런 가게를 ‘가서는 안 될 가게’ 리스트에 포함시킵니다. 전단지를 받아서 ‘여기는 가면 안 되겠다’ 하고 꼭 체크를 하죠. 겉모습만 봤을 때 꽤 괜찮은 가게라 하더라도 쿠폰을 나눠주는 경우에는 가지 않습니다.

 

이유가 뭔가요? ‘장사가 잘 안 되니까 쿠폰을 나눠주는 걸 거야’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쿠폰에 나와 있는 할인된 가격이 원래 가격이고 거기에 덧붙인 금액으로 판매하는 가게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손님이 없기 때문에 쿠폰을 나눠주는 걸 텐데요. 좋은 가게는 처음에 조금 고생을 하더라도 어찌됐건 손님이 몰리기 마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제대로 하면 쿠폰을 나눠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쉽게 쿠폰을 내놓는 건 좋지 않은 것 같습니다. 물론 그 중에도 좋은 가게가 있기는 하지만 저는 본 적이 별로 없는 것 같고요.

 

새로운 맛집을 찾는 과정에서 실패하는 경우도 있는데요. 28년 동안 식사 일기를 쓰시면서 실패율이 많이 낮아진 것 같으세요?


꽤 줄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실패는 하고 있고요. 다섯 번 연속으로 실패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것도 나름대로 즐거운 일입니다. 안 좋은 이야기를 쓰는 것도 그렇고요. 음식을 맛없어 보이게 그리는 것도 꽤 어려운 일이라서, 맛없게 보이려고 열심히 그리다 보면 오히려 맛있어 보이게 그려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 보니 맛없는 식당에 가게 되는 것도 다 즐거운 경험이 되고 있습니다. 한 번은 새우를 튀긴 가키아게를 먹었는데, 너무 딱딱해서 새우의 화석 같은 느낌이었어요(웃음). 그래도 실패는 꽤 많이 줄어든 편입니다. 앞서 전단지를 나눠주는 가게는 가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렇게 하는 것으로도 실패율을 어느 정도 낮출 수 있습니다.

 

실패율을 낮추는 데 식사 일기가 도움이 됐을까요?


그다지 관계는 없는 것 같습니다. 인생 경험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56년이나 살았으니까요(웃음).

 

‘손님이 많은 집에는 다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보편적인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는 줄을 많이 서는 곳에도 잘 가지 않습니다.

 

핫플레이스로 떠오른 음식점이라고 해도요? 그런 소문에는 흔들리지 않으세요?


네, 그다지 흔들리지 않습니다. 작년에 일본에서는 로스트비프동, 츠케멘, 팬케이크 같은 것들이 유행했었는데 저는 가지 않았습니다. 책에도 팬케이크가 나오기는 하는데 줄 서서 먹어야 하는 곳은 아니고요. 꽤 맛있는 가게라서 잘 갑니다. 로스트비프동, 츠케멘, 팬케이크를 싫어하는 건 아닙니다. 그 음식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그런 가게들은 유행을 타고서 여러 곳이 생겨나기 때문에, 사람들이 줄 서서 먹는 곳이라고 해도 가지 않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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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쓰돈을 먹고 죽을 수 있다면


“아무리 취했어도 30종류까지는 접시의 무늬까지 기억할 수 있다”고 하셨어요. 그게 어떻게 가능한가요?


익숙해졌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처음 일기를 쓰던 당시에는 디지털 카메라가 없었습니다. 필름 카메라밖에 없었기 때문에 기록을 하는 데는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외울 수밖에 없었죠. 그러다 보니까 익숙해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외우지 않으면 그림을 그릴 수가 없습니다. 보면서 그림을 그리는 사생은 익숙하지 않고요. 일단 외우고 그걸 소화한 다음에 그림을 그려야 됩니다.

 

‘똑같게 그리는 것’이 가장 중요한 건 아니군요.


네, 똑같이 그리는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나한테 어떻게 보였는지를 그리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 노트에 있는 그림은 사생이라고 할 수는 없고, 저는 그림을 그릴 때 먹었을 때의 인상까지 그리고 싶어 합니다. 맛있었던 음식은 맛있게 그리고 싶고 더 강조하게 마련이죠. 어떻게 보면 그림은 거짓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그린 그림을 보시고 사진과 비교해 보시면 아시겠지만, 실제로는 이렇게 보일 리가 없습니다. 그릇에 담긴 음식을 위에서 바라본 모습을 그렸는데, 그 아래에 그릇도 같이 그려 넣었거든요. 사진을 찍는다면 위에서 한 컷, 옆에서 한 컷, 두 장을 찍어야 되는 거죠. 그런 면에서 그림으로 그리는 게 효율적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림을 배우셨어요?

 

아니요. 물론 초등학교 중학교에서 미술 수업을 들은 적은 있지만 전문적으로 배운 적은 없습니다.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서, 철이 들 때부터 이미 그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그동안 쓴 노트의 일부를 가지고 왔는데, 보시면 그림이 변화했다는 걸 아실 겁니다. 선을 그리는 펜은 처음부터 지금까지 똑같은 펜을 쓰고 있는데, 수성펜은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지금의 브랜드를 쓰게 됐습니다. 만화가들이 색을 입힐 때 많이 쓰는 유성펜이 있는데요. 이 노트에 쓰면 번지기 때문에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물감을 사용하면 더 많은 색을 낼 수 있겠지만 말리는 데 시간이 걸리고요. 그래서 저는 다른 시도들을 하고 있습니다. 수성펜을 물에 적셔서 옅은 색을 내거나 하는 거죠.

 

“죽기 직전의 마지막 식사는 가쓰돈”으로 하고 싶다고 하셨어요.


어렸을 때부터 가쓰돈을 좋아하기도 했고요. 저다운 음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젊은 시절에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었어요. 나가이 가후라는 작가가 마지막에 가쓰돈을 먹고 죽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요. 그만큼 건강했다는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만약 거동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이 안 좋다면 마지막 식사로 가쓰돈을 먹을 수 없겠죠. 그런 인생을 살고 싶다는 뜻입니다. 제가 나가이 가후를 특별히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마지막에 가쓰돈을 먹고 죽었다는 게 굉장히 부럽다고 생각했습니다. 동경의 대상이라고 할 수 있겠죠(웃음).

 

이번 책은 일본 샐러리맨의 식사 일기인데, 한국의 직장인들이 읽으면서 공감할 수 있을까요?


글쎄요. 같은 샐러리맨이니까요. 점심에 혼자 식사하는 경우도 많을 테고, 저와 동년배이고 먹는 걸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공감하실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한국에 머무시는 동안 드시는 음식들도 일기에 기록하실 건가요?


네.

 

기대하시는 메뉴가 있을까요? 잡채를 좋아하신다고 알고 있는데요.


뭘 먹어도 맛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는 매운 음식을 좋아하거든요. 기대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한국에서 이렇게 책을 내게 되어서 정말 기쁩니다. 이 책을 보신 분들이 조금이라도 일본에 흥미를 갖게 되신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일본에는 이렇게 이상한 일을 하는 아저씨가 있구나’ 하고 생각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웃음).


 

 

샐러리맨 시노다 부장의 식사일지시노다 나오키 저/박정임 역 | 앨리스
밥이 맛있으면 오후 업무도 힘차게 할 수 있다는 시노다 부장의 활력 충전은 과연, 맛있는 음식에서 비롯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정해연 “나를 죽이는 것도, 나를 살리는 것도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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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끔찍한 얘기가 될 수도 있다. 한 남자는 왜 자살을 결심하게 됐을까. 그리고 그 자살을 위해 왜 동반 자살이라는 방법을 선택한 것일까. 그런데 그 남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니 얘기는 더 복잡해진다. 자살을 결심하기 전 이미 그를 죽이려는 사람이 있었고, 그건 바로 그의 부모였다. 왜 부모가 자신의 아들을 죽이려 한 것일까. 그런 의문을 담고 떠나게 된 동반 자살 여행. 하지만 절박한 심정으로 가게 된 마지막 길 마저 그에겐 사치였을까. 그 여행은 동반 자살이 아니라 한 살인마의 정신 나간 살인 파티였던 것이다. 죽으러 간 곳에서 이제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남자. 그리고 그에게 다가온 따뜻한 가족의 손길. 그것은 바로 존경의 대상인 동시에 질투와 미움의 존재였던 친형, 즉 가족이었다. 하지만 이야기는 거기서 그렇게 아름답고 포근하게 끝나지 않는다.

 

『더블』, 『악의』 , 『봉명아파트 꽃미남 수사일지』등의 작품으로 미스터리 스릴러 독자들의 시선을 빼앗았던 작가 정해연이 『지금 죽으러 갑니다』 를 통해 들고 나온 주제는 가족이다. 나를 행복하게 만들 수도 있고, 하루하루를 고통 속에서 살아가게 만들 수도 있는 가족. 그렇기 때문에 가족이라는 존재는 한 없이 따뜻할 수도 있고, 반대로 한 없이 잔인할 수도 있나 보다. 정해연 작가가 스릴러의 소재로 가족을 선택한 것은 바로 그 이유 때문이다. 나의 행복을 마지막까지 함께 해야 할 가족이 나를 죽이려 하는 상황. 혹은 내가 마지막까지 믿을 수 있는 가족이 나를 이용하고 있다는 상황. 그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느끼고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인가.

 

죽음 직전에 깨닫게 된 삶의 의지와 살기 위해 발버둥 칠 때 예상치 못하게 찾아온 차가운 배신과 진실. 『지금 죽으러 갑니다』를 통해 여러분은 또 다른 스릴러의 맛을 경험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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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간이 죽음을 결정하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가족

 

『지금 죽으러 갑니다』 는 어떤 작품인지 간단하게 소개해 주세요.

 

가족과 얽힌 어떤 사고, 즉 주인공 태성의 부모가 아들인 주인공을 죽이기 위해 아들의 방에 연탄을 피우게 되고, 그런 사건으로 인해 인생의 의미를 잃어버린 주인공이 인터넷 동반 자살 카페를 찾아가서 자살 여행을 떠나게 되는데, 거기에서 우연히 살인마를 만나게 되는 일을 겪으며 아이러니하게 죽으러 갔다가 살기 위해 도망쳐 나오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기본적으로는 가족간에 관계를 다루고 있어요. 가족이란 것이 원래 좋은 사이기도 하고 친밀한 사이기도 하지만 그래서 더 잔인해 질 수도 있는 것이 가족이라는 것이거든요. 그런 것을 더 극대화해서 표현한 작품입니다.

 

제목이 대단히 강렬한데요,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제목 얘기를 많이 하세요. 어떤 분들은 일본 소설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패러디냐는 말씀을 하시는데요, 물론 그 작품의 제목을 참고해서 조금 비튼 것은 맞아요. 그리고 그 작품은 감동적인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 이야기를 비틀어서 죽음하고 이어졌을 때 좀 더 섬뜩하거나 잔인해 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선택한 제목이죠. 그런데 제가 생각할 때는 이 소설의 내용하고 가장 잘 부합하는 제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동반 자살을 하러 갔다가 벌어지는 일이니까요. 그런데 우연히 그 작품이 국내에서 영화로 리메이크 되면서 그 바람을 타려고 일부러 지은 것 아닌가하는 느낌도 받을 수 있는데 그건 아니고요, 『지금 죽으러 갑니다』는 2014년에 처음부터 정하고 쓴 제목이에요.

 

작품을 읽으면서 세 가지 키워드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먼저 ‘죽음’이 떠올랐고, 그 다음에 ‘가족’ 그리고 마지막으로 ‘사회 시스템’이 떠올랐는데요, 먼저 ‘죽음’에 대해서 이야기 하자면 ‘죽음’을 소재로 한 작품은 많이 있죠. 하지만 그 중에서 ‘집단 자살’을 소재로 선택하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처음에 이 작품을 쓰려고 할 당시에 뉴스를 보는데 강원도에 집단 자살을 하러 오는 사람이 많다고 하는 얘기를 들었어요. 팬션을 빌려서 집단 자살을 하는데, 사람들이 와서 고기도 먹고 하룻밤 자는 거에요. 그런데 팬션 주인이 보면 일반 여행객들처럼 보였다는 거죠. 그리고 그 다음날 아침에 보면 사람들은 죽어 있고요. 고기도 먹고, 술도 먹은 다음에 죽은 건데, 저 사람들은 내일 죽을 건데 오늘의 감정은 어땠길래 저렇게 술 마시고 고기 먹고 할 수 있었을까. 이런 생각부터 출발을 했고요, 거기에 사람이 죽는다는 결정을 할 때까지 가족이 어떤 역할을 하는가, 어디까지 내몰려야 저런 결정을 하는가하는 생각을 하면서 시작하게 된 것이죠.

 

작품 속에서는 자살 카페와 집단 자살에 관한 이야기가 상당히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는데요, 취재는 어떻게 하셨나요?


인터넷 자살 카페를 소재로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자살 카페에 들어가 보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아예 검색 조차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요. 왜냐하면 다른 사람이 죽음에 관한 결정을 하는 그 절박한 상황까지 내가 자료 조사를 목적으로 이용해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런 자료 조사보다는 우리가 접할 수 있는 기사라든가 하는 것에다가 상상을 좀 결합해서 했어요. 자살 카페나 자살을 시도했던 사람들을 호기심이나 탐미해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작품과 관련된 사건 중에 기억에 남는 것이 있나요?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은 없는데요, 작년에 일본에서 어떤 사람이 집단 자살 모집을 했는데 결국에는 그게 살인마가 기획한 것이었던 사건이 있었어요. 지금 이 작품과 똑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인데 정말 안타까웠어요. 이 작품은 사실 장르가 스릴러이다 보니까 아무래도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는 강한 소재를 찾고, 잔인하게 표현된 것인데 이런 일이 현실에서 벌어진다고 생각하면 정말 슬프고 씁쓸하죠. 누군가의 상상으로만 가능해야 하는 것인데, 그게 현실에서 일어난다는 것이 슬펐어요.

 

한 사람에게 있어 ‘죽음’, 그것도 ‘자살’이라는 것은 많은 의미를 담고 있을 것 같습니다. 선생님이 생각하는 ‘죽음’이란 어떤 것입니까?


결국은 지금 힘든 것을 끝낸다는 것이거든요. 제가 작품 안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썼어요. ‘죽고 싶다고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그건 사실은 살고 싶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주변 사람들에게 죽고 싶다고 하는 것은 나 안 죽게 위로해 달라는 이야기라는 거예요. 이런 메시지를 넣고 싶었고 잔혹하고 어두운 내용이지만 사람이 사람을 죽게 만들 수 있지만 결국 살리는 것도 사람이라는 얘기를 해 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 작품에서 말하고 있는 죽음은 ‘누군가 구할 수 있는 죽음’, 혹은 ‘내가 선택은 할 수 있지만 동시에 선택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를 살리는 것도 죽이는 것도 가족


그런데 사실 죽음에서 시작되기는 했지만 진짜 끔찍한 것은 죽음에 가족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가족이라는 것이 내 삶에 영향을 많이 주는 만큼 이 작품에서는 가족이란 것이 비중있게 다뤄지고 있는데요, 죽음과 가족을 연결시키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처음에 ‘자살’이라는 소재를 선택하고 나서 사람이 가장 자살을 하고 싶은 순간, 그리니까 주인공 태성이 자살을 결심하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을까 구상을 하다 보니 만일 그에게 화목하고 나를 지탱해 주는 가족이 있었다면 자살을 선택하게 되었을까라는 생각을 했어요. 결국은 가족에게마저 내몰리게 되는게 마지막이 아닐까 생각을 한 거죠. 저는 항상 가족이 가장 잔인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가족 안에서의 불화라는 설정을 하게 되었는데요, 작품에서는 형제 간의 질투를 좀 더 일그러지고 빗나간 방향으로 표현하게 된 것입니다. 결국 가족이 한 사람을 자살로 내 모는데 있어 가장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설정한 것이죠.

 

한 사람을 죽음으로 내 몰 수도 있고, 반대로 살 수 있게 만들 수도 있는 존재가 가족이라는 얘기가 되겠네요.


그렇죠.

 

소설 속에 보면 주인공 태성에게 있어 형 진성은 질투의 대상이면서도 존경의 대상이고, 든든한 존재이면서 또 죽음으로 몰아가는 존재이기도 한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주는데요, 이 진성이란 캐릭터는 어떻게 구상하게 된 것인가요.


가족 안에서 부모님 말고도 주인공 태성을 버리고 싶어하는 인물을 만들어야 겠다고 생각했는데요, 얼마전에 끝난 <나의 아저씨>라는 드라마에 보면 이런 대사가 나와요. ‘아무도 보지 않을 때, 쓰레기통에 쳐 넣고 싶은 것이 가족이다’

 

일본 배우 기타노 다케시가 했다는 말이죠.


네, 근데 그건 진짜 버리겠다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으로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이겠죠. 하지만 진짜 버릴 수 있는 인물이 필요했고, 그것이 바로 주인공의 형 진성이라는 캐릭터입니다. 나의 성공에 누군가가 기대거나 하는 것 자체가 싫고 그런 존재는 모두 진짜 버리고 싶은 인물이 진성이라는 얘기예요. 그렇게까지 극단적으로 몰고 나가야 태성이라는 인물의 감정이 조금 더 부각될 것 같았습니다.

 

태성이라는 인물을 좀 더 선명하게 보여주기 위해 극단적인 설정을 하게 된 것이네요.


그렇죠. 사실 전체적으로 다 극단적인 가족이에요. 태성이라는 캐릭터도 굉장히 나약한 인물인데요, 예를 들어 형이 잘 나가면 자신도 열심히 하는 쪽을 선택할 수도 있는데 그렇지 않고 뒤틀린 선택을 하게 되죠. 부모라고 해서 무조건 부정, 모정이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여기에 등장하는 부모는 그런 것이 전혀 없는 모습을 보여주죠. 그런데 충분히 있을 수 있는 가족이라고 생각해요. 자식을 버리는 부모도 있고, 학대하는 부모도 있어요. 반대로 자식이 부모를 버리기도 하고, 없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하고요. 그렇게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가족이라는 것에 관한 문제를 집약하고 있는 것이 주인공 태성의 가족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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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도 스릴러도 결국에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


작품 속에 등장하는 주요 무대가 집단 자살 카페 사람들이 만나 가게되는 어떤 산 속의 별장입니다. 그 장소는 실제로 있는 곳인가요?


아니요. 없어요. (웃음)

 

순전히 선생님의 머릿속에서 만들어진 공간인가요?


네, 왠지 진짜로 있으면 안 될 거 같은 끔찍한 공간이죠. (웃음)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거기에 등장하는 장소가 명소가 되기도 하는데요. 그래서 저는 이 작품에 등장하는 산 속의 별장과 그 주변에 있는 목욕탕과 같이 사건이 벌어지는 주요 무대에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런데 너무 끔찍한 장소라 독자들이 가보고 싶어 하시지 않을 것 같아요. 그런데 얼마전에 소설 『7년의 밤』 이 영화로 나왔는데, 거기에 등장하는 별장이 여기와 비슷할까하는 생각은 했어요. 사실 실제 있는 공간을 무대로 하면 쓰는 것이 쉽기는 한데 『지금 죽으러 갑니다』에 나오는 장소는 공간을 보고 한 것은 아니에요.

 

이 작품에 등장하는 별장을 보고 히가시노 게이고의 『가면산장 살인사건』  에 나오는 별장이 떠올랐어요. 그래서 혹시 실제 참고로 한 장소가 있나 궁금했어요.


이번에는 없었는데 처음 스릴러를 쓸 때, 『더 볼』이라는 작품이 있었는데 거기에 오토 캠핑장이 나와요. 그건 제가 오토 캠핑장에 대해서 잘 몰라서 제 작품 이미지와 맞는 장소를 찾아서 그걸 참고로 묘사를 하기도 했어요.

 

이렇게 상상력 만으로 어떤 사건을 만들 때 주로 어디서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아이디어를 떠올리시는 편이신가요?


소재가 자연스럽게 떠오르면 좋은데요, 제가 쓰는 소재들은 주로 부딪히는 것들이 많아요. 예를 들어 이 작품에 나온 것처럼 죽으러 갔는데 살기 위해 도망쳐 나오는 이야기라든가 이런 것들을 좋아하기 때문에 평소에 뉴스라든가 SNS를 통해서 사건이나 사연을 많이 듣는 편이예요. 그런 것들을 보다가 꼭 소설 한 편이 될 만한 소재가 아니더라도 좀 재밌는 것이 있으면 소재 노트에 적어 놓고 나중에 작품을 쓸 때 보면서 이것과 이것을 붙이면 재밌을 것 같다 하는 게 나오면 참고를 하죠. 그런 식으로 많이 하는 것 같아요.

 

공상을 일부러 하지는 않는 편이신가요?


만약에 예를 들어 지금처럼 앉아 있는데 누군가가 큰 가방을 갖고 오면 ‘저기에 뭔가 이상한 게 들어 있는게 아닐까? 그렇다면 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같은 상상을 하긴 해요. (웃음) 그런데서 아이디어가 나오기도 하고, 길거리를 지나가다가 생각이 떠오르기도 하고, 가만히 앉아 있다가 나오기도 하고 그건 특별히 어떤 방법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아요.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의 작품을 쓰시다 보니까 일상에서도 그런 생각을 많이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계속 그런 생각을 하니까, 이게 일종의 산재가 있어요. (웃음) 밤길도 무섭고요, 악몽도 많이 꿔요. 이번 작품 『지금 죽으러 갑니다』에 특히 잔인한 묘사가 많이 나오는데요, 그러다 보면 그걸 떠올릴 수 밖에 없고 좀 리얼하게 표현하고 싶어서 계속 떠올리다 보니 악몽도 꾸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런 부분을 쓸 때는 표정도 이상해져요. 특히 사람 죽이는 장면을 신나게 쓰다 보면요. (웃음) 그래서 그런 부분은 낮에 카페 같은 곳에서는 못 써요. 표정이 이상해 지니까. 하하하. 한 번은 어머니가 표정이 이상하니까 왜 그러냐며 걱정을 하시더라고요. (웃음)

 

처음엔 로맨스 장르로 작품을 시작하셨잖아요? 후회하지는 않으세요? (웃음)


아니요, 그건 아닌데요. (웃음) 원래는 제가 초등학교 때부터 저희 작은 언니가 도서관에서 추리소설만 빌려오고 그런 소설을 좋아하다 보니까 따라 읽다가 추리, 미스터리를 좋아하게 됐는데 우연치 않게 로맨스를 쓰게 된 거예요. 그런데 저는 기본적으로 인간에 대한 관심이 많아요. 로맨스가 인간의 사랑에 관한 것이라면 스릴러 장르는 진짜 인간의 내면을 다루거든요. 그러다 어느 날 저희 오빠가 ‘좋아하는 걸 한 번 써 보지 그래’라고 하는 거예요. 그럴까하고 쓰게 됐고 그게 운 좋게 출판까지 이어지게 돼서 스릴러를 쓰게 됐는데 써 보니까 나는 코드가 이쪽이 맞구나 하는 걸 느낀 거죠. 그렇다고 완전히 전향한 건 아니에요. 콘텐츠진흥원에서 하는 스토리 공모전에서 상 받은 작품은 엄밀하게 따지면 청소년 문학이예요. (웃음) 그래서 결국 저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걸 좋아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지금은 쓰는 것 자체에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스릴러 장르지만 만일 소재가 떠올랐는데 스릴러가 아니라면 또 쓸 수 있겠죠. 또는 로맨스에다가 스릴러를 가미 할 수도 있고, 청소년 문학에다가 스릴러를 가미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아몬드』라는 청소년 문학도 어떻게 보면 스릴러거든요. 그런 식으로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사실 저는 읽으면서 『지금 죽으러 갑니다』에서 주인공 태성과 같이 살기 위해 살인마로부터 도망치는 민서라가 서로 로맨스적인 감정을 느끼지 않을까하는 기대도 했거든요.


그렇지 않아요. 그건 그냥 동질감일 뿐이예요. 물론 둘이 같이 어둠 속을 뚫고 가지만 자기만 살아 남았을 때 느끼는 것은 슬픔이 아니라 내가 살아남았다는 것에 대한 안도감 같은 것이죠. 그것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결국 저 혼자 엉뚱한 상상을 했네요. (웃음)


사랑도 중요한 것이니까요. (웃음)

 

혹시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선생님만의 독특한 취미가 있다거나 여행 방법 같은 것이 있나요?


특별히 여행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닌데요, 여행을 가면 예전에는 그냥 관광을 했다면 지금은 공간을 봐요. 그 공간이 뭔가 특별할 수 있잖아요. 예를 들어 여행까지는 아니더라도 카페에 갔는데 벽장이 있는 카페가 있더라고요. 그러면 ‘저 벽장은 뭐지? 저 안에는 뭐가 있는 거지?’ 생각을 해요. (웃음) 그 안에 뭐가 있다거나 트릭이 있을 수 있다는 상상을 하는 거죠. 그러니까 독특한 공간이 있으면 독특한 생각이 들게 되는 거예요. 뒷문이 있다거나 하면 한 번 슬쩍 보게 되고요. 이렇게 공간을 유심히 보는 습관이 하나 있고, 여행지에 가서도 사람들이 하는 얘기를 자세히 들으면 공감되는 문장을 쓸 수가 있어요. 그런 것들을 좀 신경쓰는 편이예요.

 

 

사회의 변방으로 밀려난 사람들에 대한 무관심


이 작품에는 사회 구조를 비판하는 내용도 담겨 있어요. 재벌이 등장하고 그로 인해서 인간성이 왜곡되는 부분이 있는데, 선생님이 이야기 하고 싶은 우리 사회의 모습은 어떤 것인가요?


저는 상처받은 사람들에 관해 관심이 없는 사회에 대해 말하고 싶었어요. 결국은 회사든 사회든 자기 것만 챙기는 사회를 말하는 것이죠. 자살을 결심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을 포함해서 어쨌든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무관심한 현실을 좀 더 말하고 싶었어요. ‘자살하는 사람들은 나약해서 그렇다’거나 하는 말에도 사실 무관심이 녹아 있어요. 사회적인 문제라기 보다는 가정 내에 문제로만 보고 모든 것을 가정에서 해결해야 하거나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것으로 보는 것도 무관심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죠. ‘네가 나약해서 그래’라고만 보는 사회의 모습이 이 작품 속에서 그려졌다고 생각해요.

 

최근에 관심을 갖고 있는 다른 사회 문제가 있으신가요?


아동 학대요. 요즘 아동 학대에 관한 것을 쓰고 있는데 아동 학대를 우리는 때리는 것과 같이 물리적인 폭력만 생각하기 쉽잖아요. 그런데 방치도 아동 학대고 폭력적인 말도 아동 학대거든요.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요즘엔 아동 학대에 대해 관심을 많이 갖고 있어요.

 

다음 작품은 아동 학대에 관한 것인가요?


아니요. 다음 작품은 이미 썼던 작품인데 CJ E&M하고 카카오 페이지에서 하는 추.미.스. (추리, 미스터리, 스릴러) 공모전이라고 있어요. 거기에서 금상을 탄 작품인데, 이번 작품과는 완전히 다른 점이 있어요. 『지금 죽으러 갑니다』 에는 정의로운 인물이 단 한 명도 안 나오잖아요. 단 한 명도 정의롭지 않은데 그 작품에서는 어떤 사건과 그 날에 대해서 파헤치는 정의로운 인물이 주인공이 될 거예요. 그 작품이 차기작이 될 것이고요, 제가 아동 학대에 대해 이야기 한 것은 시나리오에 관심이 있어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습작을 하면서 아동 학대에 관심이 생긴 거예요. 그래서 그런 것과 연계해서 쓰면서도 차기작은 좀 더 훈훈하고 따뜻하면서 즐거울 수 있는, 약간 유머 코드도 있는 작품을 쓰고 싶어요.

 

오늘 작가님과 대화를 나누면서 큰 깨달음을 하나 얻게 됐어요. 그게 뭐냐하면 ‘미스터리 작가라고 해서 절대 괴롭고 우울하게 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웃음)


하하하. 우울하지 않아요.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한 마디 해 주신다면요.


스릴러는 결국 읽는 사람들이 재미있게 책장을 넘기면 그것만으로도 감사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읽는 그 시간이 지루하지 않고 즐겁게 넘어갔으면 특별히 제가 이 안에 어떤 뜻을 내포하고 어떤 설정을 담고 있다는 것을 다 몰라도 상관이 없다는 거죠. 왜냐하면 스릴러는 계속 스릴이 이어져야 되고 스릴이 이어진다는 것은 재미가 있다는 것이거든요. 그래야 스릴러 장르가 앞으로도 사랑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재밌게 읽어 주셨다면 그것만으로 감사하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또 그렇게 하기 위해서 국내 작가들도 노력하고 있으니까 책을 선택해 주시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감사한 것인지 잘 알고 있고 사랑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해 드리고 싶어요.


 

 

지금 죽으러 갑니다정해연 저 | 황금가지
한 남자가 인터넷 자살 카페를 통해 동반 자살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쾌락살인마를 만나 아이러니하게도 살고 싶어지며 벌어지는 이야기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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