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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혁 “을의 세계관으로 본 시내버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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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기사의 책이니 버스에서 책을 읽었다. 평일 오전 6시 40분에 탄 시내버스, 기사님이 내 책 제목을 슬쩍 보았나? 웬일인지 급정거 한 번 없이 1시간을 달려 회사에 도착했다. “정말 열심히 살아야, 겨우 살아진다”는 시내버스기사 허혁의 이야기. 몸으로 빚은 글을 읽으며 5분마다 마음이 풀썩 내려앉았다. 30개의 정류장을 지나치기가 무섭게 수십 개의 감정이 몰아쳤고, 안 읽었으면 참 아쉬웠겠다 싶었다. 무명 저자의 첫 책에 긴 추천사를 쓴 김민섭 작가는 “’아니 저기 ‘그냥 버스기사’라면서요’라는 심정이 되고 말았다”고 했다. 딱 내 마음이었다. 스스로를 ‘그냥 버스기사’로 생각하기에 나올 수 있는 글이었다.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 몇 군데 직장을 옮겨 다니다 20년 가까이 조그만 가구점을 운영했다. 아버지가 물려준 빚을 청산한 날, 이제는 달리 살아보자고 다짐했다. 2년간 관광버스로 경력을 쌓고 시내버스 기사가 된지 5년 차. 하루 18시간씩 버스를 몰다 보니 다양한 내 모습이 보였다. 수시로 천당과 지옥을 넘나들며 타인(손님)을 바라봤다. “오전에는 선진국 버스기사였다가 오후에는 개발도상국, 저녁에는 후진국 기사가 된다. 친절은 마인드의 문제가 아니라 몸의 문제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23쪽)

 

2년간 버스요정이 날아다 주는 글감을 모아 원고를 완성했다. 서점에 들러 베스트셀러를 펴낸 출판사 목록을 정리해 메일로 투고했다. 전체 메일로 보내는 법을 몰라, 이매일 주소를 하나하나 옮겨 적었다. “52세 전주시내버스 기사입니다. 기쁜 소식 기다리겠습니다.” 50곳에 투고한 후, 아무래도 모자를 것 같아 다시 책방에 들러 출판사 메일 주소를 40개쯤 적었을 때, 한 통의 전화가 왔다. 황은희 수오서재 대표였다. “선생님 책을 꼭 내고 싶습니다.” 덜덜 떨리는 목소리였다. 버스기사 허혁은 답했다. “원고는 다 읽어 보셨는지요? 감사하지만, 다 읽고 난 후 다시 연락을 주시지요.” 며칠 사이 출판사 십여 곳에서 메일과 전화로 연락을 해왔다. 하지만 그가 이미 수오서재로 마음을 결정한 한 후였다.

 

허혁 저자에게 “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 는 어떤 책일까요”라고 물었다. “을의 세계관으로 본 시내버스 이야기”라고 답했다. 시내버스를 한 번이라도 타본 사람이라면 읽어봐 주었으면 좋겠단다. “갑이 을의 노동을 완전하게 이해하고 배려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미의 정점”이라고 말하는 전주 전일여객 시내버스기사 허혁. 출판사는 그의 글에서 조사 몇 개만 바꿨을 뿐, 허혁이 바라본 차창 밖 세상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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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능력의 70%를 쓰며 사는 사람이 현명하다

 

오랫동안 내고 싶었던 책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많이 들떠 있어요. (웃음) 자제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첫 책인데 반응이 좋아요. 조금 들떠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책을 내고 많이 울었어요. 솔직히 말해서 그동안의 제 삶이 보상받는 느낌이에요. 손님을 태우고 가다가도 울컥해서 참느라고 혼났어요. 힘들었던 삶에 대한 보상심리가 이런 걸까 생각이 들어요. 생각을 안 하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있네요.

 

투고하신 원고라고요.


원고에는 유통기한이라는 게 있잖아요. 오래 전에 초고를 썼던 글이라 올해 안에는 꼭 내고 싶었어요. 사실 투고를 200군데쯤 보내려고 했어요. 하나는 걸리겠지, 하는 심정으로요. 홍지서림에서 출판사 메일 주소를 적고 있는데, 수오서재 대표님에게 전화가 왔어요. 제가 투고를 오전 7시쯤 했는데 11시쯤 전화가 온 거예요. 여대생 같은 목소리로 책을 내고 싶다며 덜덜 떠시는데, 딱 직감이 왔어요. 올 것이 왔구나. (웃음)

 

나중에 대형 출판사 여러 곳에서 연락이 왔을 때, 갈등하시진 않았나요?


제가 삶의 경륜이 있잖아요. 출판사의 네임밸류보다는 내 글을 잘 이해하는 곳에서 내고 싶었어요. 책에 대한 이런 설렘을 갖고 있다는 게 무엇보다 좋았어요. 이제야 나한테 버스요정이 찾아왔구나, 싶었죠.

 

인터뷰 전에 작가님의 페이스북을 찾아가 보았어요. 책 홍보를 많이 안 하시더라고요.


차분해요. 제 마음이. 어차피 책은 이미 던져졌잖아요. 내가 어떻게 막 해서 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 책도 이 책의 운명이 있는 거니까요. 과도한 욕심을 내서 될 일은 아니라고 봐요.

 

원고 수정이 거의 없었다고 들었어요. 투고했던 원고의 제목도 같았나요?


처음 제목은 “천 개의 길, 천 개의 시내버스”였어요.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는 본문 원고에서 발견한 문장이에요. 제가 진짜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바로 탈근대거든요. 출판사에서 이 제목을 제안해줬을 때, 정말 통쾌했어요.

 

영화 <패터슨>에 나오는 이야기지요?


<패터슨>은 뉴저지 패터슨이라는 도시에서 23번 버스를 모든 시내버스 기사를 주인공으로 한 독립영화입니다. 도시 이름이 패터슨인데 기사 이름도 패터슨이죠. 주인공은 틈틈이 시를 써요. 영화 후반부, 어떤 여행자가 패터슨에게 시인이냐고 묻는 질문에 “그냥 버스기사입니다”라고 답하죠. 저도 똑같은 질문에 똑같은 대답을 한 적이 있어요. (웃음)

 

서문에 딸아이의 이야기가 실렸어요. “아빠, 더 이상 발전하지 마! 절대 노력하지 말고 그냥 버스를 즐겨”라고 했다고요.


딸은 제 뮤즈예요. 출산할 때 저산소증으로 태어나서 지적장애 2급이에요. 올해 26세가 됐는데, 지금은 바리스타로 아르바이트를 해요. 딸아이는 뇌세포가 좀 죽은 대신 살아남기 위한 직감이 많이 발달했어요. 그래서 가끔 선문답 같은 이야기를 툭툭 던지곤 해요. 사실 딸아이 말이 맞아요. 생심 갖고 사는 것보다 그냥 사는 게 나아요. 제가 사업할 땐 그래도 외식도 자주 하고 여행도 했는데, 지금은 삶에 꺼둘리면서 살고 있잖아요.

 

하지만 착해지는 게 재밌으시다고요.


재밌어요. 저는 시내버스 운전을 하지만 이걸 도시 귀농이라고 생각해요. 꼭 시골로만 가는 게, 농사를 짓는 게 귀농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마음의 본양을 찾으면 그게 귀농이죠. 버스기사의 삶은 고되지만 우린 떳떳하거든요. 많은 돈을 벌진 못하지만 어디 가서 눈치 볼 것도 없고요.

 

 

버스기사도 사람이거든요

 

버스기사 동료들도 책을 보았나요?


좋게 읽어준 동료도 있고 관심이 없는 동료들도 있고 그렇죠. 주52시간 노동이 시행되잖아요. 시내버스 기사들도 1일2교대 근무를 해야 하는데, 2교대를 찬성하는 직원들이 30%, 그렇지 않은 직원들이 70%였어요. 저는 30%에 속하고요. 논쟁이 굉장히 치열했거든요. 70%에 속한 동료들은 제 책을 곱게 보긴 어려울 거예요. 하지만 2교대가 답이라고 생각해요. 선진국에서는 이미 운수노동자의 장시간 운행이 기사의 건강을 해칠 뿐만 아니라 시민의 안전도 크게 위협한다는 사실에 근거해 운수노동자의 노동시간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어요. 새벽 6시부터 운전을 시작해 저녁 8시쯤 되면 온몸이 안 결리는 곳이 없어요. 그 뒤로도 서너 시간을 버텨야 하며 영혼까지 갉아 먹게 돼요.

 

“자기 능력의 70%를 쓰며 사는 사람이 제일 현명하다(81쪽)”는 이야기도 있던데요.


나머지 30%의 여유 공간에 인간다운 면모가 나오니까요. 다음날 쉬어도 근무 날 자기 능력의 150%를 써버리면 늘 피곤에 절어 살 수밖에 없어요. 마음만 비울 게 아니라 몸도 비워야 해요. 이 말은 신영복 선생님의 말을 응용한 거예요.

 

버스기사로 일하면서 가장 화가 날 때는 언제인가요?


생업이 조롱 당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낄낄대면서 버스카드를 찍 찍고 가는 학생들이 있어요. 승차하면서, 강아지 부르듯 손을 까불거리는 사람들도 있고요. 기분이 겁나게 나쁩니다.

 

하지만 “아무리 불량기사라도 마음 한편에는 승객의 욕망을 실현해주는 데 큰 보람을 갖는다.”(178쪽)고요.


버스기사도 사람이거든요. 오로지 먹고 살기 위해서 버스운전을 하는 사람은 없어요. 간혹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신호를 주는 사람들이 있어요. 안 타니까 어서 가라고 열렬하게 손을 저으시는 영감님을 볼 때, 고마운 마음에 정류장을 지나며 인사합니다. 또 가뭄에 콩 나듯 정류장 뒤로 몸을 숨겨주는 할머니도 있어요. 자기는 안 타니까 어서 가라는 신호죠. 분명 그분들의 삶도 고단할 거예요. 하지만 상대의 노동을 완전하게 이해하고 배려하는 거죠.

 

‘윤리적 버스 승차’, ‘윤리적 버스 하차’ 챕터 글은 사진을 찍어 어디에 붙여 놓고 싶더라고요. 승객들이 지켜주면 좋을 ‘승차 태도’를 몇 가지 소개해주시겠어요?


대부분 안전을 위한 내용이에요. 승강장 인도 밑으로 내려오지 말고, 차가 완전히 멈추기 전에 버스로 달려들지 말 것, 자신이 탈 버스가 오면 가만히 서 있지 말고 가볍게 손을 들 것, 노약자와 같이 버스에 오를 땐 맨 나중에 탈 것, 수고한다는 인사는 마음이나 몸으로 할 것(입으로 수고한다는 승객 중 절반이 진상이다. 특히 수고한다며 바로 기사 뒤에 앉는 사람은 100% 진상이다), 버스가 막 출발하는데 당신이 뛰어와 타려는 경우 버스가 그냥 가버린다고 해도 서운해 말 것(방금 버스에 오른 승객이 자리를 잡고 있는 불안정한 상황에서 브레이크를 밟을 수도 없고 바짝 뒤따르던 버스도 예상치 못한 급정거를 해야 해서 몹시 위험하다) 등이에요.

 

하차할 때, 벨은 되도록 빨리 누르는 것이 좋다고요.


그렇다고 정류장을 다 지나지도 않았는데 누르면 기사가 괴롭고요. 딴짓하다가 뒤늦게 벨을 누르는 승객이 있기 때문에 이번에 내릴 승객인지 다음에 내릴 승객인지 전방 주시를 못 하고 룸미러로 간을 봐야 해서 위험해요.

 

오랫동안 사업을 하셨기 때문일까요? 시내버스기사 5년차에 이렇게 사람을 잘 파악할 수 있나? 이해할 수 있나?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동료들이 그래요. 버스 시스템을 진짜 빨리 파악했다고요. 이유가 있다면, 스스로를 오래 관찰했기 때문일 거예요. 인간은 다 똑같아요. 저를 알기 때문에 타인을 이해할 수 있어요.

 

“대한민국 감정노동자의 가슴에 명찰 대신 ‘감정 표시등’을 달아주는 상상을 해본다.”(51쪽)는 이야기도 기억에 남습니다.


저도 투명인간이지만요. 마트에 가서 물건을 살 때면 마음이 아플 때가 정말 많아요. 일상적으로 갑질을 하는 손님들이 있잖아요. 너무 힘들어 겨우 버티고 있는데, 그걸 건드리는 사람을 볼 때, 진짜 괴로워요. 이건 마인드 문제가 아니라 몸의 문제거든요. 조건이 너무 열악한데 어떻게 마음의 힘으로만 이겨낼 수 있겠어요. 물리적인 한계를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없는 듯 살아야 하는 위치에서 보면 사람 됨됨이가 잘 보인다. 상대방이 돈도 없고 완력도 없어 보이면 굳이 노력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97쪽)고 쓰셨지요.

 

속된 말로 제가 사업할 때는 돈을 좇았잖아요. 빚을 갚아야 하는 상황에서 얼마나 제가 영혼이 피폐했겠어요. 그런데 버스기사를 하면서 돈을 추구하는 삶을 졸업해버린 거예요. 몸으로 깨달은 거죠. 관광버스 기사로 일할 때, 초장에 좀 헤맨 일이 빌미가 되어 세 시간 자고 허벌나게 돌아다녀야 했어요. 깜깜한 향일암 굽잇길을 가는 내내 귀에서 이명이 울렸죠. 관광버스 경력이 어느 정도 찼을 때 종친회 사람들을 태우고 1박2일 남쪽 바다를 돈 적이 있는데, 자신이 공직자로 은퇘했음을 여러 번 강조하던 총무님을 잊을 수 없어요. 일행에게는 공손하고 헌식적이었는데 기사에겐 야박했죠.

 

동료들의 사진을 찍어주는 일이 취미시라고요.


사진을 찍을 때 내가 맑아지는 걸 느껴요. 인정 중독일 수도 있는데요. 동료들 사진을 찍어서 카톡으로 보내줄 때, 제가 좀 착해지는 기분이 들어요. 기도하고 명상해야 착해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행동으로 내 삶의 방향을 만들어야 하지 않나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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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이라도 버스를 타본 사람이라면

 

글이 굉장히 쉽게 읽히면서도 묵직해요. 애환이 깊은데 또 유머도 잃지 않아요. 그래서 유쾌하게 읽었어요.


지식인들이 쓴 책에는 생계가 빠져있어요. 너무 매끄럽지만 문장이 걸리지 않죠. 제 책은 노동자가 쓴 거잖아요. 되도록 나의 동료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쓰고 싶었어요. 곧 일흔이 되는 저희 버스회사 회장님이 “한 방에 읽었다”고 문자를 주셨어요. 너무 생생하게 잘 읽었다고, 직원들의 상황을 잘 알게 돼서 고맙다고 하시더라고요. 더할 나위 없이 좋더라고요.

 

어떤 사람을 만날 때, 좋으세요?


솔직한 사람이 좋아요. 버스운전을 할 때 가끔 정류장을 지나칠 때가 있단 말이에요? 저도 승객을 못 보고, 승객도 버스기사의 시야에 보이지 않게 서있었던 거죠. 그런 경우 정류장에서 살짝 지나쳐 버스를 세우는데, 손님들을 보면 딱 두 가지예요. “미안합니다”라고 인사하고 타는 사람, “아저씨, 왜 그냥 지나가요?”라고 성내는 사람. 둘이 똑같이 잘못한 상황인데, “미안하다”고 말하면 그 마음이 참 고맙고, 저도 미안하다고 말하면서 마음이 훈훈해져요.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는지가 보이죠. 그런데 이 마음이 한 30분 가요. 또 새로운 손님들이 오기 때문에. (웃음) 하지만 마음을 삭힐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거예요. “화 내지 말고 부끄럽게 하라”는 말이 있잖아요. 되도록 같이 화를 내지 않고 상대를 부끄럽게 만들죠. 그래야 느끼니까요.

 

싱어송라이터를 꿈꾸는 아들에게 “노동과 자발적 가난만이 너를 구할 수 있다”고 말하셨다고요.


사실 폭력이죠. 아들은 자기 나름의 걷고 싶은 길, 스토리가 있는데, 아빠가 과도하게 요구하면 안 되는 문제인데요. 아빠가 너무 처절하게 살아온 걸 아니까, 아빠의 말을 우선은 들어요. 아들이 너무 착한 거죠. 저도 잘 알면서도 자꾸 말하게 돼요. 제가 시행착오가 너무 컸으니까 아들은 다르게 살길 바라는 마음인데, 이것도 아들에게 가하는 폭력이라고 봐요. 그래서 직접적인 이야긴 안 하려고 해요. 살고 싶은 대로 살라고 말하려고 노력해요. 아들도 많이 갈등하고 있을 거예요.

 

예전 프로필 문구가 “분노조절장애가 있는 시내버스 기사입니다”였다고요. 지금은 좀 어떤가요?


많이 좋아졌죠. (웃음) 책을 쓰면서 더 그렇게 됐고요. 이제는 책이 또 나왔으니까 더 잘 살아야죠. 살기 위해서 성찰하다 보니까 시인의 마음을 조금씩 배워가고 있어요. 영혼이 시에 닿아가고 있다는 기쁨이 있어요.

 

이 책을 꼭 읽었으면 하는 사람이 있을까요?


국토교통부 장관이 읽었으면 좋겠어요. 고용노동부 장관도 좀 읽고요. 2교대 실시로 곧 버스대란이 일어날 거란 말이죠? 어떤 사건이 생길 때,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일 때가 많아요. 갈등의 95%는 오해와 무지에서 발현된다고 생각해요. 버스기사들의 어려움을 구조적으로 이해해주셨으면 합니다.

 

책을 자주 읽지 않는 사람들도 읽었으면 좋겠어요. 고등학생이 읽어도 좋겠고요, 나이가 지긋한 중년 이상의 독자들도 충분히 몰입하고 읽을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해요.


전 세대를 아우를 수 있게 쓰려고 했어요. 출판사 덕분에 책이 젊은 감각을 얻게 됐고요. 학생 때는 다 시내버스를 타고 다니잖아요. 한 번이라도 버스를 타본 사람이면 읽어도 좋겠다 싶어요. 어떤 화합의 에세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요.

 

마지막 장 ‘버스기사가 되어 더욱 확실히 알게 된 나의 무의식들’을 읽고,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를 쓸 수 있었던 이유를 발견했어요. 내 안의 진짜 나를 무의식을 통해 알게 되셨다고요.


이부영 선생님의 책 ‘그림자 시리즈’ 세 권을 2년 동안 다섯 번 정도 읽은 것 같아요. 어려웠어요. 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거의 씹어먹었다고 생각해요. 불가에서 하는 마음수련은 아스피린 같아요. 그때 잠깐은 회복될 수 있는데 오래 가지 못해요. 그래서 정신분석학 책을 보게 됐는데, 이 책을 쓰면서 무의식을 경험했어요. ‘아버지’라는 글은 제 무의식이 올라와서 쓴 글이에요. 11살 허혁이 썼다고 생각해요. 그 글을 쓸 때 이틀 동안 아무 것도 못하고 울기만 했어요. 11살 허혁의 인격이 따로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내 안에 또 다른 내가 있고, 그 자아가 나보다 힘이 더 세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 글은 외워서 쓴 거예요. 제가 이렇게 훌륭할 순 없어요.

 

벌써 두 번째 책이 기다려집니다.


저는 계속 시내버스기사로 일하면서 생계에 대한 이야기, 자기성찰에 관한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그게 저의 책무라고 생각합니다. 내 문제를 해결하는 이야기도 될 거고요. 책을 냈지만 제 일상이 변하진 않을 것 같습니다.

 

“버스기사가 되어 크게 느낀 것은 꼭 돈이 많아야만 멋진 인생을 즐길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이다. 눈물 나도록 알뜰하게 보약도 챙겨 먹고 스포츠도 즐기고 밥도 사 먹고 동료애도 나눈다. 서로 뻔한 수입이라 눈치 볼 것 없이 있으면 있다 없으면 없다 당당하게 밝히고 형편에 맞춰 함께 논다. 사람이 재산이라 모이기만 하면 큰돈 안 들이고 남들 누리는 것 다 누릴 수 있다.” (175쪽)



 

 

나는 그냥 버스기사입니다허혁 저 | 수오서재
기사가 난폭운전을 한다고 투덜거려본 사람이라면, 버스 차창을 멍하게 바라보며 생각에 잠겨본 사람이라면, 그런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냥 버스기사’인 저자의 글에 마음이 움직일 것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색소포니스트 김오키가 앨범을 만드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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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첫 앨범을 발표한 이래로 색소포니스트 김오키는 국내 재즈계에서 가장 파격적인 인물로 활동해 왔다. 동시에 그는 지난 5년 동안 가장 앨범을 많이 낸, 다작하는 뮤지션 중 한 명이다. 최근 그는 자신의 일곱 번 째 앨범 <퍼블릭 도메인 포미>를 발표했다. 소위 아방가르드 파에 속한 그가 발표한 첫 발라드 앨범이다. 과거 앨버트 아일러의 데뷔 앨범과도 같은 기이한 분위기의 발라드 앨범. 신작 앨범을 중심으로 묻고 싶은 것들이 많았기에 한 낮에 망원동의 한 커피숍에서 그를 만났다.
 
최근에 유럽에 갔다고 들었다.


그저께(4월 16일) 왔다. 네덜란드와 체코를 다녀왔는데 재즈 공연으로 갔다 온 것은 아니고 국악 연주자들 팀에 속해서 갔다 왔다. 피리 부는 박지하 씨가 이끄는 팀이다.

 

앨범 한 장이 또 나왔다. 몇 번째 음반인가.


일곱 번째 음반이다.

 

앨범을 매우 자주 낸다.


맞다. 그런데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다. 나는 학교에 출강하는 것도 아니고 레슨을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내 생활 방편은 오로지 공연과 앨범뿐이다. 그런데 앨범을 발매하면 수익이 생기는 것이 대략 2개월 정도더라. 음원 판매는 그보다도 짧고. 앨범 발매하고 2개월이 지나면 그 앨범은 수명이 다하는 것이다. 그러니 계속 후속 작품을 생각해야 한다.

 

앨범 제작 할 때 돈이 들어갈 텐데 2개월 뒤엔 흑자가 발생하는가?


그런 앨범도 있고 그러지 못한 앨범도 있다. 흑자가 나면 생활비 정도는 벌게 된다. 음반사에서 제작 배포해주면 뮤지션에게 돌아오는 돈은 너무 미비하더라. 결국 뮤지션이 자체 제작하고 배포해야 그나마 수익이 생긴다.

 

그러면 일반 음반 매장에 가면 음반을 살 수 있나?


아니다. 내가 공연 때 음반을 갖고 나가 직접 팔고 있다. 아울러 데뷔 때 만들었던 밴드 '동양청년'에서 드럼을 연주했던 (서)경수와 통신 판매 인터넷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는데 그곳을 통해 판매한다. '봉식통신판매'라는 곳이다(www.btprecords.xyz). 전에는 음악 마니아들이 자주 가는 몇몇 소매점에 직접 들고 가서 위탁 판매를 해봤는데 이제는 그것도 안 하고 공연 때 직접 팔고 있다. 판매는 더 어렵고 판매량도 줄긴 하는데 수익 면에서는 혼자 파는 게 더 낫더라. 수익을 나눌 필요가 없으니까.

 

이런 식의 판매를 언제부터 택했나?


대략 1~2년 됐다. 데뷔 앨범과 2016년에 나온 <거대한 뿌리>는 유통사가 있었고 나머지 앨범들은 대부분 직접 판매했다.

 

재즈클럽에서는 연주를 하지 않는 걸로 알고 있다.


재즈클럽에 가면 사람들이 음악을 듣지 않는다. 그냥 분위기만 즐기러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클럽 쪽에서도 내 음악 스타일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내가 주로 연주하는 곳은 음악의 장르를 가리지 않는 곳인데, 예를 들어 연남동에 있는 '채널 1969' 같은 곳이다. 그곳에서 연주할 때 관객들은 정말로 내 음악을 듣고 싶어서 온 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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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앨범 제목이 기발하다. <퍼블릭 도메인 포 미>. 영어가 아니고 한글로 쓰니 더 멋있다. 역시 김오키는 네이밍의 천재라고 느꼈다.


(웃음) 앨범을 구상하면서 저작권이 없거나 시간이 지나서 없어진 곡들을 찾았는데 그런 곡들을 영어로 퍼블릭 도메인(public domain)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만든 제목이다.

 

지금까지 해오던 음악과는 성격이 또 다르다. 어떻게 이런 앨범을 구상했나.


사실 난 조용하게 부는 색소포니스트들을 좋아한다. 지금까지 그런 음악을 시도해 보지 못했기 때문에 아마도 사람들은 그 점을 모르실 거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색소포니스트는 조 헨더슨, 찰스 로이드와 같은 연주자들이다. 그들이 연주한 발라드를 무척 좋아한다. 그런데 그런 발라드 곡을 쓰자니 시간이 너무 들 것 같고, 또 스탠더드 넘버를 녹음하려면 저작권을 많이 내야 하는데 그러다가 보니 생각하게 된 것이 '퍼블릭 도메인'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곡이라기보다는 경제적인 이유에서 고른 것이다. (웃음)

 

곡목을 보니 조지 거슈윈의 'Someone to Watch Over Me'와 제롬 컨의 'The Song is You'가 있던데 이런 곡들이 이미 저작권이 사라졌나?


그렇다. 이런 곡들은 이미 작곡가가 세상을 떠난 지 70년이 지나서 저작권이 사라졌다. 노랫말 저작권은 살아있던데 우린 연주곡이었기 때문에 상관없었다.

 

같은 이유로 홍난파의 곡 <봉선화>, <사공의 노래>, <고향의 봄>을 선택한 건가?


그렇다. 그런데 내가 알아본 시점에서는, 이유는 모르겠는데, 홍난파의 곡은 어떤 곡은 아직 저작권이 살아 있고 어떤 곡은 없어졌더라. 그래서 없어진 곡 중에서 골랐다.

 

<심정>과 <어둠>은 자작곡인가?


아니다. 백현진씨의 곡인데, 이 곡들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곡이다. 원래는 저작료를 내야 하는데 현진이 형과는 잘 아는 사이여서 무료로 쓸 수 있었다.

 

외국에서는 저작권이 없는 흑인 영가들을 재즈 연주자들이 녹음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 앨범은 그런 곡들을 포함 안 해서 훨씬 신선했다.


저작권이 없는 곡 가운데 멜로디가 서정적인 곡을 녹음하고 싶었다. 발라드를 녹음하는 것이 이번 앨범의 목표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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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은 어디서 녹음했나?


창동에 있는 '플랫폼 창동61'이라는 공간이 있다.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곳이다. 주로 음악인들이 활동 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공간이다. 그곳에는 상주하는 레지던스 뮤지션이 있고 또 그곳에서 정기적으로 공연하는 협력 뮤지션이 있는데 나는 그곳의 협력 뮤지션이다. 협력 뮤지션이 되면 그곳 공연장을 쓸 수 있다. 그래서 그곳 공연장에서 장소 사용료 없이 녹음했다.

 

그러면 누가 녹음을 해주었나?


그곳에 계신 엔지니어 황승연 씨가 해줬다. 하지만 믹싱 마스터링을 위해서는 돈을 지불해야 한다. 그 부분이 앨범 제작비에서 가장 많이 들었다.

 

이왕에 저예산 제작을 해야 한다면 믹싱, 마스터링도 직접해보면 안 되나?


전에 한 두 곡을 직접 해본적도 있다. 생각해 보면 전체 앨범도 직접 하라면 할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믹싱 마스터링이 신경이 많이 쓰이는 일이라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을 것 같다.

 

스트레스를 받는 것만이 문제라면, 아티스트가 노하우를 갖고 있다면 직접 해봐야 하는 것 아닌가? 그래야 재즈 앨범도 수익 모델을 찾을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렇긴 하다. 특히 이번 음반은 색소폰, 피아노. 베이스, 악기가 모두 세 개뿐이어서 믹싱을 해볼 만 했다. 드럼만 더 들어가도 복잡해진다.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겠다. 그렇게 되면 인쇄비와 프레싱 비만 들어가게 되니까.

 

믹싱과 마스터링을 직접 하려면 따른 현실적인 문제는 없나?


고가의 장비를 구입해야 하는데......하기야 전에도 스피커 없이 헤드폰으로 들으면서 아이패드로 믹싱을 한 적이 있다. 별 차이가 없긴 했다. (웃음)

 

현실적으로 함께 녹음한 뮤지션들에게 연주비용을 지불하지 못하지 않나?


그렇다. 그게 제일 마음이 아프다. 재즈 뮤지션들끼리는 무료로 서로 다른 뮤지션들의 녹음에 참여해 주는데 그게 장기적으로 보면 악순환이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생각하는데 만약 믹싱 마스터링 비용을 줄일 수 있으면 그 비용을 뮤지션들에게 줄 수 있을 것 같다. 그 부분을 고민해 보겠다.

 

그러면 앨범 제작비가 얼마나 들었나?


CD만 130만 원 정도 들었다. 테이프도 찍었다.

 

테이프도 발매했나?

그렇다.

 

아직도 카세트테이프를 생산하는 업체가 있나?


국내에 한 군데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젊은 팬들은 테이프가 가격도 싸고 신기하고 재미있으니까 하나씩 산다. 테이프를 사면 디지털 파일을 무료로 다운 받을 수 있는 코드를 준다. 그런데 국내에 한 군데 있는 업체의 제품이 그렇게 질이 좋지 못하다. 그래서 외국에 생산주문 하는 분들도 있는데 나는 주변에 아는 뮤지션 한 사람이 테이프 찍는 장비를 갖고 있어서 그곳에 부탁했다. 이번 앨범도 테이프는 이미 거의 팔았다.

 

이전 밴드였던 '뻐킹매드니스'도 제작비가 비슷하게 들어갔나?


비슷했다. 그때는 스튜디오도 렌탈했지만 CD를 프레싱하지 않고 주문이 들어오면 CD-R 형태로 하나씩 구워서 판매했다. 그래서 비용을 줄였다. 앨범 커버도 만들지 않고 주문이 들어오면 CD 주얼 케이스에 스티커를 붙여서 배송했다. 음반 판매 사이트 운영하는 경수가 스티커 출력 일도 하는데 그 일을 도와줬다. 이게 그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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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이 많은 스티커를 붙이려면 이것도 보통 일은 아닐 것 같다.


(웃음) 그러게 말이다. 그런데 경수는 그걸 앉아서 하더라.

 

이번 앨범 CD를 보니 표지에 그림만 있고 아무런 정보가 안 쓰여 있다. 피아노와 베이스는 누가 연주한 건가?


(몇 초 생각하더니) 테이프에는 쓰여 있다. 피아노에는 진수영, 베이스는 전제곤이다.

 

병풍 같이 생긴 앨범 커버 디자인이 독특하던데 누가 해줬나?


여자 친구가 해줬다. 무료로.

 

이번 앨범을 들어 보니까 솔로에서 곡의 코드 진행을 상당히 염두에 두는 것 같더라.


평소에도 코드 진행은 늘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그 위에서 뭔가 '아웃'된 느낌을 더하려고 한다. 이번 앨범은 발라드 앨범이니 특히 코드 진행에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왜 편성에서 드럼을 뺐나?


원래는 피아노가 없이 베이스, 드럼과 연습을 했었다. 그런데 코드 악기가 없으니까 발라드 연주 같지 않고 너무 프리하게 음악이 나왔다. 무슨 '예술병' 걸린 음악 같았다. 그런 걸 연주하고자 시작한 게 아니었는데 말이다. 그래서 드럼을 빼고 피아노를 넣었다. 분위기도 더 차분해지고 좋았다. 그러고 보면 마음에 맞는 드러머를 찾기가 참 어렵다. 특히 국내에서는.

 

그러면 만약 해외 뮤지션을 포함해서, 이미 죽은 연주자들 전부 포함해서 누구하고도 연주할 수 있다면 어떤 드러머와 녹음하겠는가?


앨 포스터. 조 헨더슨 트리오에서 오래 연주했었다. 국내 드러머들은 대체로 너무 큰 소리로 연주한다.

 

뜻밖이다. 그러면 베이시스트는?


찰리 헤이든. 혹은 에디 고메즈. 흑인 베이시스트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좋아하는 색소폰 주자들은 거의 흑인 뮤지션들 아닌가?


그렇다. 조 헨더슨, 찰스 로이드, 파로아 샌더스, 아치 솁 등이다. 하지만 그들이 연주한 발라드, 영적인 곡들을 좋아한다. 조 헨더슨의 <더블 레인보우 Double Rainbow>와 더불어 아치 솁의 발라드 앨범들은 재즈 발라드의 최고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백인 색소폰 연주자 주트 심스, 스콧 해밀턴의 발라드도 즐겨 듣는다.

 

그런데 왜 지금까지 김오키의 음악은 거칠고 전위적인 것이었나?


그것은 내가 잘 할 수 있는 음악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싫어하는 음악은 아니었지만. 발라드는 하고 싶어도 도전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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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런 발라드 녹음을 계속 할 것인가?


그렇다. 이미 다음 발라드 앨범의 구체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 이번 앨범을 마치고 조금 아쉬운 생각이 들었다. 좀 더 사이드맨들에게 구체적인 주문을 할 걸, 하는 후회가 들더라. 지금 연주도 좋았는데 다음에는 더 뚜렷한 색깔을 낼 수 있을 것 같다.

 

바로 다음 앨범인가?


아니다. 이미 두 장의 앨범을 녹음해 놨기 때문에 그 앨범들을 먼저 내야 할 것 같다. 하나는 미디로 작업한 앨범인데 2016년에 발표했던 <러보키 Luvoki>의 후속 작이다. 또 다른 하나는 베이스와 북(타악기)과 함께 트리오로 녹음한 건데, 아프리카 음악을 바탕으로 한 영적인 분위기의 재즈다. 나는 확실히 스윙, 비밥 보다는 이런 스타일의 음악이 좋은 것 같다.

 

이번 앨범은 흑자가 될 것 같나?


앨범 발매 하고서 '벨로주'에서 발매 기념 공연을 하고 CD와 테이프를 판매했는데 그곳에서만 믹싱, 마스터링 비용을 뽑았다. 조금 더 활동하면 흑자는 충분히 될 것 같다.

 

앨범 제작과 유통 방식에 대해서 거의 정답을 찾은 것 같다.


그렇다. 이제 내 음악이 더 발전 하는 것이 정말 숙제다. 이제 나이 마흔인데 쉰 살 정도 되면 뭔가 이뤄져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계속 이 밴드, 저 밴드 만들면서 시험해 보고 있는데 그 때 즈음 되면 확실한 나의 밴드도 만들어져 있을 것 같다. 그때까지 계속 음악 생활하는 것이 목표다.

 

인터뷰 끝나고 다른 약속 있나?


홍대, 망원동 근처로 이사 와야 할 것 같다. 연주의 90%가 이 근처에서 이뤄지는데 집이 너무 머니까 자동차 기름 값만 한 달에 30만 원 정도 든다. 이 주변에 와서 스쿠터 타고 일 보고 다니면 생활비를 확 줄일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부동산 몇 군데 들려보려고 한다. 월세 안 내고 전세금만 받는 집을 찾아야 할 텐데......이 지역에서 어느 동네가 전세가 좀 싼가?

 

 

황덕호(saturnman28@naver.com)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범 “청년들이 정치를 해야 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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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눈앞에는 극단적인 저출산으로 인한 ‘장기 파국’과, 노동 시장 진입 인구의 증가로 인한 ‘단기 파국’이 겹쳐서 펼쳐져 있습니다. 일단 단기 파국을 막아 내지 못한다면 출산율은 더 떨어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장기 파국을 막을 가능성은 더더욱 멀어집니다. 그럼 여러분의 나이가 50대쯤 되었을 때 우리나라가 망하는 꼴을 보게 될 가능성이 높아요.(164쪽)

 

학원가 스타 강사로, 서울시 교육청 정책 보좌관으로, 현재는 교육평론가이자 MBC FM <이범의 시선집중> 진행자로 활동하고 있는 교육평론가 이범. 그가 청년 세대에게 직접 말 걸어 개인적 차원에서 ‘나의 직업’을, 집단적 차원에서 ‘우리의 미래’를 함께 고민했다. 『나의 직업 우리의 미래』는 2017년에 진행된 이범의 강연을 기반으로 한 책으로, 이범은 여기서 무엇보다 “파국이 임박했다”고 강조하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구분되는 노동 시장의 이중화 문제, 세계 최저 출산율(1.1명)로 인한 국민연금 고갈 문제 등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며 현재의 한국 사회에 변화를 요구한 이범은 ‘우리의 미래’에 어떻게 이 난국을 헤쳐나갈 것인가, 청년 개개인은 어떤 방식으로 미래를 준비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더 이상 막연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이범이 말하는 진짜 의미의 ‘자기 주도 학습’과 ‘사회적 대타협’이 무엇인가. 다가올 미래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나의 직업 우리의 미래』는 이 같은 질문에 꼼꼼하게 답하면서 불확실성의 시대, 막연하게 걱정하고 있는 모든 개인들에게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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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 과제, 그리고 집단적 과제


2017년에 있던 강연 내용을 바탕으로 한 책이에요. ‘여러분’이라는 말에서도 알 수 있듯, 수신자를 직접 호명하고 있거든요. 의도가 읽히기도 합니다. 누구보다 우선 청년들에게 전하고자 한 내용이었던 거죠?

 

네, 명확하게 젊은 세대에게 이야기하는 겁니다. 교육과 관련된 일을 꾸준히 해왔기 때문에 대학생보다는 중고등학생이 더 친숙한 편이긴 하고요. 지내다보니 결국 그 학생들이 대학에 가고, 성인이 되면서 그들이 부딪히는 문제를 비교적 많이 고민하게 됐어요. 2014년 민주당(당시 새정치민주연합)의 민주연구원(당시 민주정책연구원)에서 일을 하면서 청년들의 취업난, 민생경제 등을 들여다보게 됐는데요. 개인적으로 풀어야 하는 문제와 집단적, 사회적으로 풀어야 하는 문제가 있더라고요. 개인의 문제만 쓰는 것도 한계가 뚜렷하고, 집단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만 쓰는 것도 공허할 수 있다고 봤어요. 그래서 결과적으로는 아주 특이한 책이 되었어요.(웃음)

 

개인과 사회 양쪽 측면에서 봐야 한다는 말씀이 중요할 것 같아요. 이 “특이한 책”이 청년들에게는 이 문제로 들어가는 좋은 문이 될 수 있다고도 생각하고요.


예를 들면 학벌이나 스펙의 중요성이 떨어지는 건 맞거든요. 사람들이 전체적인 느낌은 그렇게 받고 있는데요. 이것이 채용 시장이나 노동 시장의 변화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단 말이에요. 이런 수준의 해석은 거의 없었던 것 같고요. 왜 이런 변화가 일어났느냐를 이해하면 개인 차원의 대응이 가능하죠. 한편 양극화 같은 것은 개인적 대응이 안 돼요. 그러니까 개인적 과제와 집단적 과제를 병렬적으로 볼 필요가 있죠. 물론 다른 차원의 문제기 때문에 동일한 활동을 통해 해결할 수는 없는 것이고요. 어쨌든 인식은 동시에 하고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제목이 『나의 직업 우리의 미래』 인 거죠.


제가 지은 제목이에요.(웃음) 막판까지 제목을 못 짓고 있었는데요. 결국 나의 얘기와 우리의 얘기를 같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만들어보자고 생각을 한 거죠. 출판사 내에서는 격론이 있었던 걸로 알고 있어요.

 

먼저 ‘나의 직업’ 이야기부터 해보면요. “일생 동안 직업을 여러 번 바꿀 확률이 높아졌다”(62쪽)고 한 부분이 핵심일 것 같아요.


영어로 ‘job’인데요. ‘직업’으로 번역되기도 하고, ‘직무’라고 번역되기도 해요. 실제로는 그렇지 않지만(웃음) 우리나라에서는 한 직장에서 쭉 일하는 식으로 직업을 생각하는데요. 설령 한 직장에 있다 할지라도 직무(job)는 바뀔 가능성이 크거든요. 점점 고용 안정성이 떨어지고 산업 변화 속도가 빨라지면 무엇이 성장하는 산업이고, 무엇이 사양 산업인지 알기 어렵죠. 교체주기가 짧아지니까요. 직업도 직업이지만 특히 직무 수준에서 보면 당연히 여러 번 바꾸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거예요. 저도 지금 세 번째 직업이고요.(웃음) 결국 ‘4차 산업혁명’이라면서 무엇을 가르쳐야 한다, 라는 것보다는 자기가 골똘히 여러 상황을 종합해 생각하면서 내가 무엇을 배울지 결정하게 하는 것, 그런 예행연습을 학교 교육 과정에서 시키는 것, 그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된 거죠.

 

바로 ‘자기 주도 학습’이에요.


현재 자기 주도 학습은 오용되고 있어요. 심지어 요즘은 초등학교 때부터 학원에서 자기 주도 학습을 시킨다고 하는데요. 그런 것은 대개는 자기 ‘관리’ 학습이고요. 나쁜 것은 아니지만 한계가 뚜렷해요. 자기 주도 학습은 원래 목표 설정부터 자기가 하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지금 말하는 자기 주도 학습은 목표가 ‘시험 만점’과 같은 거잖아요. 이건 자기가 만든 목표가 아니에요. 목표 자체를 스스로 설정하는 게 우리나라 교육의 큰 취약점 중 하나죠. 선진국은 크게 두 가지예요. 하나는 수강신청을 중학교 때부터 하거든요. 핀란드 통계를 보면 중학교 이수과목의 15%가 자기가 선택한 과목이에요. 고등학교가 되면 다들 과목을 개인 수준에서 정하니까 문과, 이과 구분이 의미가 없어져요. 어떤 이유로 무엇을 배울 것인가를 어렸을 때부터 배우게 되는 거죠.

 

다른 하나는요?


프로젝트 학습이에요. ‘과제 연구 수업’이라고 번역하는데요. 코딩을 배우는 데도 맛집 어플 개발이라는 목표를 스스로 정해요. 스웨덴 대학 입시 문제를 하나 공개했는데요. 사업 기획서를 써보라고 하더라고요. 스웨덴은 워낙 프로젝트 수업을 많이 하니까요.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 학생들은 너무 취약하고요. 심지어 대학에 가서도 주입식 수업을 받잖아요. 스스로 생각해서 배울 것을 결정하는 능력이 매우 떨어져요.

 

개인이 목적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하셨는데요. 학교 현장에서는 사실상 이 연습이 거의 되지 않고 있어요.


고등학교에서 그런 교육을 제공 못하는데 대학에서라도 의도적으로 자신이 뭘 배울지 스스로 생각해보고 결정하는 훈련을 하라는 거예요. 이제 ‘고교학점제’도 시행된다고 하고, 프로젝트 학습도 조금씩 늘어날 테니까 여건이 나아지긴 하겠지만, 하여튼 우리나라 젊은 세대들은 자율성이 무척 떨어진 세대거든요. 이전 세대는 부모가 지금처럼 세심하게 관리 안 했어요. 사교육도 지금보다 적었고, 80년대의 십 년 정도는 아예 금지되어 있었죠. 학교에서는 매도 맞고, 주입식 교육을 받았지만 일단 학교가 끝나면 자기 시간이 있는 생활을 했단 말이에요. 그런데 지금 세대는 그렇지 않죠. 양육 과정에서도 그렇고 제도적으로도 자율성이 떨어져요. 자기가 배울 것을 스스로 결정하는 장치를 갖추지 못한 교육 제도여서 전체적으로 자기 결정 능력이나 자율성이 상당히 낮은 세대라고 봐요.

 

학부모 대상 강연을 할 때 요즘은 “‘하고 싶은 게 있는 사람’이 효자”(131쪽)라는 말을 하신다고 하셨잖아요.


학부모 대상 강연에서 꼭 하는 얘기예요. 요즘 효자의 개념이 바뀌었다는 거죠. 부모들은 아이가 공부 엄청 잘해서 의대 같은 데 탁 합격해주길 바라지만 대개 그런 애들은 옆집에 살아요.(웃음) 몇이나 되겠어요? 하고 싶은 게 있는 사람이 효자예요.

 

 

내신은 다양하고, 창의적으로 해야 한다


교육 선진화를 방해하는 장벽으로 사교육과 대학서열화를 꼽으셨어요.


대학서열화가 더 근본적인 이유고요. 정확히 말하면 서열 격차가 크다는 거죠. 서열 있는 나라도 많아요. 일본, 미국도 서열이 있잖아요. 서열 자체가 문제라고 하기는 어려운 면도 있는데요. 우리나라는 서열 격차가 워낙 심한 거죠. 그 때문에 사교육도 발달하고요. 어떤 교육정책을 시행하는 데 아주 심각한 제약이 돼요. 우리도 미국 SAT처럼 여러 번 볼 수 있게 하고, 공교육과 분리시키자, 라고 해봐요. 그랬다간 수능 수요가 전부 사교육으로 갈 테니 정부가 감당 못할 거고요. 대입 시험을 논술형으로 바꾸자고 하면 또 학원을 보내게 되겠죠. 결국 경쟁 압력을 낮추면서 교육 제도의 선진화를 추진하는 병행 전략이 필요해요.

 

대학이 장기적으로는 평생교육 쪽으로 가야 한다는 말씀도 하셨잖아요.


예전 스웨덴 통계를 봤더니 30대의 십 몇 퍼센트가 대학을 다니고 있다는 거예요. 이것은 대단한 수치죠. 우리나라 30대 전체 가운데 열 명 중 한두 명이 대학을 다니고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진짜 대단한 거거든요. 4차 산업혁명이니, 산업 변화 주기 단축이니 해서 직무를 바꿔야 하는 일이 일어날 텐데 그때마다 뭔가를 배워야 하잖아요. 대학이 효과적인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는 기능으로 역할 전환을 하지 않으면 어차피 살아남기 힘들 거예요. 요즘 많이 하는 얘기인데요. 창의성, 이런 것보다는 자기 주도 학습 능력이 중요한 거고요. 그것을 사회적으로 지원하는 차원에서 고용 보험 확충이라든지 대학을 재교육 기회의 기능으로 개편한다든지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앞서 고교학점제 말씀을 하셨는데요. 현재 특별히 관심을 갖고 있는 교육 정책에는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요.


고교학점제는 문재인 대통령 교육 1호 공약이고요. 2022년 고등학교 1학년부터 하게 되어 있죠. 개인에게 수강신청의 기회를 주는 건데요. 그 정도만 되어서는 안 되고요. 배움의 과정 자체가 좀 더 학생 주도로 바뀌어야 해요. 더 파격적인 접근이 필요하죠. 크게 보면 대입을 어떻게 논술형으로 바꾸느냐, 거든요. 대입이 객관식인 나라가 OECD국 중 단 세 곳이에요. 한국, 일본, 미국이죠. 미국은 조금 다른 게 SAT 같은 시험을 학교에서 다루지 않도록 제도적으로 분류를 해뒀고요. 한국, 일본은 오지선다 대입시험이 제도화 되어서요. 이것을 어떻게 바꾸느냐가 관건이에요.

 

금방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겠네요.


다른 하나를 책에는 쓰지 않았는데요. 교사 강연에서 꼭 하는 얘기거든요. 지금은 교사에게 진짜 기회와 권한이 없어요. 사교육 업계에 있다가 공교육을 보고 가장 깜짝 놀란 것이 교사가 몇 학년, 어떤 과목을 담당할지 새 학기 시작 일주일 전에 알게 된다는 거였어요. 저는 학원 강의 하면서 두세 달 전부터 준비했는데 공교육 교사들을 일주일 전부터 준비시키면 될 리가 없잖아요. 2월에 인사이동을 하고 배치하는 건데 그건 말이 안 되는 얘기죠. 선진국은 모두 적어도 두 달 전에는 예고를 해요. 이런 나라는 대개 교사에게 교과서 집필 권한을 주거든요. 물론 모든 교사가 집필하는 건 아니지만 원칙적으로는 기회를 준단 말이에요. 그러려면 시간이 걸리고요. 미리 예고하는 게 너무 당연한 거죠.

 

‘교과서 자유 발행제’가 그것이죠?


최근 정부에서도 단계적으로 도입할 계획을 세웠는데요. 예를 들면 ‘중3 1학기에 2차 함수를 이 정도 수준으로 가르쳐라’라는 정도의 추상적 지침만 주는 거예요.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론을 사용하고, 어떤 교재를 사용할지는 알아서 하는 거거든요. 그럼 교사가 쓰기도 하고, 민간 출판사 책을 쓰기도 해요. 과목에 따라서는 교과서가 없는 수업도 있겠죠. 소설책 몇 권 가지고 수업하는 경우도 있고요. 흔히 자율 이야기를 하는데요. 이건 기회이기도 해요. 교사가 뭘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없어요. 우리나라는 어떤 것을 가르치라고 정하고 교과서라는 형태로 만들어서 쫙 내려 보내잖아요. 거대한 국정 시스템에서 교사는 전달자 역할만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담당을 일주일 전, 아니 하루 전에 알려줘도 아무 문제가 없는 거죠.

 

평가 문제도 있지 않을까요? 

 

제도를 변화시켜야 하는데요. 예를 들면 1반에서 3반까지 가르치는 역사 선생님이라고 해봐요. 임진왜란 가르치면서 『난중일기』도 읽히고, 의견을 써보도록 해서 평가하고 싶어도 현재 교육부 규칙을 보면 1반에서 10반까지 시험문제가 똑같아야 하거든요. 4반부터는 아이들 얼굴도 모르는데 시험문제는 똑같아야 해요. 한국, 일본만 그래요. 다른 나라는 내가 가르친 반만 시험문제를 내거든요. 교육학적으로 당연한 거예요. 교사에게 빨리 기회와 권한, 자율을 파격적으로 줘야 해요.

 

워낙 신뢰가 부족한 사회잖아요. 1반부터 10반까지 시험문제가 똑같아야 한다는 압박도 여전히 존재하는 것 같아요.


어느 나라를 봐도 교사 내신은 다양한 거예요. 그래서 입시가 필요하기도 하죠. 교사가 창의적인 수업으로 90점 준 것과 다른 방식으로 90점 준 것이 같을 수 없잖아요. 원래 내신은 그런 거예요. 우리나라는 안 그렇지만요.(웃음) 내신은 다양하고, 창의적으로 하는 거고요. 대학 입시는 별도의 학생 선발 시험이 어떤 식으로든 존재하는 거죠. 이게 없는 나라는 제가 본 바로는 캐나다, 노르웨이뿐이었어요. 결국 내신과 입시가 각각 담당해야 할 부분이 존재한다는 거고요. 내신은 공정성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상대적으로 다양성과 창의성에 방점을 두고 운영을 해야죠. 입시가 내신 교육을 주입식으로 만들면 안 되니까 그래서 대부분의 나라는 논술형으로 진행이 되는 거고요.

 

관련해서 “대학에 대한 대규모 재정 지원과 학생 선발권을 맞바꾸는 대타협”(200쪽) 을 제안 하셨어요.
‘국립대 통합 네트워크’ 이야기를 많이 해왔는데요. 저는 안 된다고 봤어요. 지방에는 국립대가 꽤 있지만 서울, 수도권에 인구 절반이 모여 있고요. 수험생이 30만 명 넘는다고 하는데 국공립대 입학 정원을 다 합쳐도 만 명이 안 돼요. 지역별로 비교적 균등한 국공립대 정원이 있어야 하고, 서울과 수도권에서 되어야 하는데 확보가 안 되는 거죠. 이 수준에서 지방 중심으로 하자고 하면, 하나 마나가 되고요. 서울, 수도권을 포괄하려면 사립대를 잡아야 하는데요. 강하게 끌려고 하면 위헌이 되거든요. 사립대의 자율권을 정부가 가져가려면 뭔가를 줘야 한다는 거죠. 저는 그냥 돈을 주자는 거예요. 정부 예산의 1% 수준이거든요. 그 정도면 타협이 가능하지 않겠느냐, 생각해요. 매년 4-5조 정도면 큰돈이지만요. 그렇게 되면 진짜 입학경쟁 압력이 확 줄어들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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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차원의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하다


제목의 또 다른 부분 ‘우리의 미래’에 대해서 “파국이 임박했다”(165쪽)는 정도의 심각한 위기론을 말씀하셨어요.


한국사회가 해결할 가장 큰 문제는 전쟁과 저출산이에요. 저출산이라는 부분에서 아직은 현실로 다가오지 않아서 그렇지, 지금 청년세대 입장에서는 지금이 최악이 아니란 말이에요. 앞으로 훨씬 더 최악의 상황이 올 가능성이 커요. 1.2명 이하라는 출산율은 전문가들은 전쟁 터지면 나타나는 출산율이라고 하거든요. 우리나라는 거의 15년째 이어지고 있어요. 생산성 높은 청장년세대가 확 줄어드는 거죠. 그러면 난국을 타계하기가 거의 불가능해져요. 파국이죠. 여의도 정치권을 경험하면서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아무도 장기를 고민하지 않는다는 거였어요. 이런 상황에서는 결과적으로 청년들이 피해볼 가능성이 제일 높죠. 이들은 탈조선 전에는 이 피해를 고스란히 살아생전에 경험할 사람들이에요. 이들의 피해를 줄일 수 있는, 견딜만하게 하는 정책이 무엇이냐? 결국 주거, 고용, 교육이죠. 주거는 꾸준히 하면 해결될 가능성이 있는데요. 고용과 교육은 사회적 대타협이 없으면 불가능해요.

 

고용 측면에서의 사회적 대타협,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 있을까요?


가령 최저임금 정도는 정부가 겨우 접근할 수 있는 것이지만 평균임금이나 상한임금에 정부가 접근하긴 힘들죠. 그렇게 되면 아마 위헌 결정의 가능성도 있고요. 강력한 저항이 있을 수도 있어요. 노동 시간 단축도 그래요. 노동 시간을 단축하면 일자리가 늘죠. 중요한 문제인데요. 하층 노동 시장에서는 노동 시간을 줄이면 그만큼 임금이 줄기 때문에 감당할 수가 없어요. 결국 상층 노동 시장에 있는 사람들이 노동 시간을 줄이면서 임금을 깎고 대신 청년 고용을 늘리는 해법이 가능하거든요. 하지만 상층 노동 시장에 있는 사람들, 우리나라에서 노조 조직이 가장 잘 되어 있단 말이에요. 저는 심지어 ‘애국진보’라는 표현까지 써가면서 말을 했는데요. 그러니까 이것은 거래적인 타협도 필요하고요. 눈물로 호소해서 얻어낼 각오가 있지 않으면 힘들어요. 이런 큰 차원의 사회적 대타협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세대 전체가 사실은 암울한 거죠.

 

흔히 비정규직으로 시작해서 정규직으로 경력 이동을 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하지만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비율에서 확인할 수 있듯 현실적으로는 여러 어려움들이 있고요.


OECD 가운데 통계치가 존재하는 곳이 16개국 정도 있어요. 그 16개국을 비교하면 우리나라가 꼴찌예요. 우선 상층 노동 시장만이 노조에 의해 잘 보호된 성벽 안에 있다는 요인이 있겠고요. 또 하나는 그 성벽 안에 들어가면 거의 자동으로 월급이 오른다는 점이에요. 호봉제인데요. 최근 아주 재미있는 연구가 나왔어요. 호봉제를 개혁하면 청년 고용이 는다는 거예요. 개혁한 기업 사례를 분석하니 실제로 청년 고용이 늘었어요. 당연한 거예요. 근속 년수에 따른 임금 차이가 세계에서 제일 큰 나라가 우리나라거든요. 아무리 스웨덴도 오래 되면 연봉이 올라가죠. 하지만 우리나라는 훨씬 가파르게 올라갑니다. 이 상승 기울기를 낮추는 노력을 하면 당연히 청년 고용을 할 여력이 생기죠. 이런 개혁을 개별 기업이 조금씩 하는 정도가 아니라 사회적 대타협의 형태로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를 고민해야죠. 제가 보기에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 중 하나가 노동 시간 단축이에요.

 

그래서 “정치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159쪽)고 하신 거군요.


관심 정도가 아니고요. 청년들이 정치를 해야 해요. 영국의 경우 30대에 당대표를 하기도 하거든요. 보수당, 노동당 모두 그래요. 우선 우리 같은 연령 서열 문화가 별로 없으니까요. 우리나라는 나이 가진 분이 권력 가지는 게 당연하잖아요. 자기보다 나이 어린 사람의 지휘, 감독 받는 것을 매우 불편해해요. 이런 문화를 통째로 바꿔야 하는데요. 나이 든 양반들이 알아서 바꿔줄 리가 없죠. 청년들이 어떤 식으로든 직접 정치를 해야 하고요. 정당 가입도 하고, 직접 조직을 만들고, 활동하고, 당을 접수(웃음)할 생각을 해야죠. 그래서 40대에는 당대표도 하고요. 이 정도가 되지 않으면 어려울 거예요. 새로운 당을 만들 수도 있지만 우리나라는 사실상 양당제거든요. 그것이 바뀌지 않는 한 기존 정당에서 해볼 수밖에 없어요.

 

이 맥락에서 지적하신 것이 노인 빈곤 문제잖아요. 양보를 요구할 수가 없다고요.


청년 담론을 볼 때 의아한 것은 ‘청년들이 어려우니까 도와달라’예요. 안 먹혀요. 외계인더러 누가 더 어려운지 판단해봐라, 라고 하면 노인들을 선택할 거예요. 일단 더 어려운 세대가 있는데다가 우리나라는 압축 성장을 해서 심지어 절대 빈곤의 기억을 갖고 있는 분들이 꽤 있어요. ‘옛날에는 더 힘들었다’가 거짓말이 아니에요. 불쌍하니까 도와달라, 보다는 차라리 우리나라가 장기적으로 망하게 생겼는데 우리 안 도와주면 안 된다, 처럼 뻔뻔스러운 것이 훨씬 필요한 태도라고 봐요.

 

 ‘나의 직업과 우리의 미래’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 꼭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세요?


당신들이 얼핏 들어 왔던 것보다 훨씬 큰 위기가 예고되어 있다. 저는 경각심을 얘기하고 싶어요. 장기를 생각하는 순간 암담해진다는 거죠.

 

 


 

 

나의 직업 우리의 미래이범 저 | 창비
최근 노동 시장이 보내는 두 가지 신호, 즉 ‘탈스펙’과 ‘양극화’를 분석하면서 이에 적절한 대처 방법을 개인적ㆍ사회적 차원에서 각각 모색한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커버 스토리] 김소영, 책을 향한 좋은 편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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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며 기다리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시기가 있었다. 방송으로 바빴던 시절에는 한 번도 내려가본 일이 없던, 사내 도서관에 매일같이 출근 도장을 찍었다. 출판사별 세계문학전집을 섭렵하는 시간을 지나 방송 출연 금지 1년을 두 달쯤 남겨두었던 어느 날, 김소영은 ‘MBC 아나운서’라는 타이틀을 조용히 버렸다. ‘조금만 더 버티면 될 텐데 왜 그래’라는 말을 숱하게 들은 후였다. 후회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안고 일본으로 책방 여행을 떠났다. 인생이 어떻게 풀려가든 그 길에서 행복을 찾고 싶었고, 2017년 11월 8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당인리 책 발전소’를 열었다. 김소영의 첫 에세이 『진작 할 걸 그랬어』 에 숨겨진 주어를 찾아본다면 퇴사도 책방도 아닌, ‘고민’이다. 짙은 메이크업 대신 쾌쾌한 책 먼지를 마주하고 사는 요즘. 김소영은 ‘삑, 삐빅’ 신용카드 단말기 환청을 들어가며 하루 종일 계산하는 꿈, 손님이 하나도 오지 않아 두려워하는 꿈을 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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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게 책을 보는 일상

 

출간 보름 만에 10쇄를 찍었다고요. 기분이 어떤가요?

 

많이 얼떨떨해요. 전문작가가 아니니까 큰 기대는 안 하시겠지, 엉망이라는 소리만 안 들으면 좋겠다고 마음먹었었는데요. 좋은 반응이 어색하면서도 기분은 좋아요. 우선 궁금해 해주시는 거니까요.

 

방송인 김소영의 사적인 에세이를 예상한 독자들이 많더라고요. 책방을 주제로 한 책이라는 걸 모르고 읽었다는 리뷰를 많이 봤어요.


비슷한 반응이 많아요. 왜 퇴사, 창업, 책방에 관한 이야기를 썼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고요. 그래서 책이 나오자마자 인스타그램에서 독후감을 받는 이벤트를 했는데요.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을 받았어요. 제가 선택한 또 다른 삶을 응원해주시는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말아야겠다, 그런 생각도 했어요.

 

책은 언제부터 썼나요?


작년 가을에 제안을 받고 쓰기 시작했어요. 책방을 열기 전에도 SNS에 꾸준히 글을 쓰고 있어서출판사에서 종종 연락이 오곤 했는데요. 내가 무슨 책을 쓸 수 있을지가 여전히 의문이었어요. 그렇게 망설이던 찰나에 일본 여행을 다녀와서 책방을 열어야겠다고 결정했고, 이 이야기를 써보면 어떨까 싶었어요. 퇴사 후 1년을 정리해보자는 생각이었는데 책방을 열게 됐으니까요. 자연스럽게 책방 이야기가 중심이 됐어요.

 

솔직한 이야기가 많더라고요. 퇴사를 하기까지의 마음, 결혼하기까지의 과정도 털어놓았어요.


‘이 내용은 꼭 쓰자’라는 건 없었는데요.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것 같아요. 사실 처음에는 글의 톤이 굉장히 진지하고 무거웠어요. 가볍게 쓸 수 없다는 부담감이 있었는지, 초고를 완성하고 보니 너무 엄숙한 느낌인 거예요. 어깨에 힘을 더 빼야겠다고 느껴서, 퇴고를 많이 했어요. 요즘 잘 팔리는 책들을 보면 확실히 텍스트가 많지 않은데요. 그렇다고 텍스트가 적은 책을 쓰고 싶진 않았어요. 조금 지루하더라도 글을 풍부하고 담고 싶고 싶었어요. 다행히 책방에 관심이 없던 분들도 비교적 편하게 읽어주신 것 같아요.

 

프롤로그 제목이 ‘조금만 더 자유로워지자’예요.


계속 더 자유로워지고 있는 것 같아요. 오늘 같은 날은 메이크업을 하지만 평소엔 정말 많이 달라요. 책을 옮기려면 편한 복장은 필수고요. 손님들이 가엾게 여길 정도로 몰골이 말이 아닌 날이 믾아요. (웃음)

 

“스물네 살 때부터 방송국이라는 좁은 세계 안에만 있던 나는 세상일을 아무것도 몰랐다”(310쪽)고 했어요.


창업 계획을 짤 때만해도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막상 공사 일정이 진행되고 보니,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창업이라는 게 명쾌하게 몇 줄로 정리되는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죠. 우리나라에도 몇 년 사이 동네 책방이 정말 많이 생겼잖아요. 하지만 새로 문을 여는 속도만큼 폐업을 신고하는 책방도 적지 않아요. 서점 일 자체는 보람되고 순간순간 행복을 주지만, 그 행복이 수익과 정비례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예요. 책방을 여는 데까지도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책방을 지속하는 일은 더더욱 만만치 않다는 걸 뼈저리게 실감하고 있어요.

 

책방 주인, 저자가 된 후로 책을 보는 시선이 많이 달려졌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요. 예전에는 그냥 평범한 독자로 책이 좋아서 책을 읽었을 뿐인데요. 요즘은 이 책이 만들어지기까지 과정, 애쓴 사람들, 파는 서점, 읽는 독자 등을 생각해요. 저희 책방에 오는 분을 보면, 책을 전혀 좋아하지 않는 경우도 많아요. 책을 추천해달라는 분들도 많고요. 지금까지 책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어서 뭘 읽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분도 많고, 선물용 책을 사려고 오는 경우도 있어요. 책방을 운영하면서 생긴 소망이라면, 너무 특별한 날에만 책방을 가는 게 아니면 좋겠다는 거예요. 당연하게 책을 보고, 당연하게 책을 사면 좋겠어요.

 

책 속 부록으로 100권의 추천 도서 리스트를 넣었어요. 각각의 주제가 재밌더라고요. “영감과 상상력, 문장과 이야기, 인간과 삶, 세상을 읽다.”


추천 리스트가 생각보다 빨리 취합됐어요. 꼭 넣고 싶어서 체크해놓은 책도 있고, 나중에 생각나서 추가한 책도 있어요. 책 추천이라는 게 굉장히 어려운 일이잖아요. 상대를 알지 못하면 할 수 없는 일이라 되도록 폭넓게 접근하려고 했어요.

 

 

환상이 없어야 지속 가능한 일이에요

 

‘당인리 책 발전소’의 주간베스트셀러가 독자들에게 꾸준히 주목 받고 있어요. 덕분에 증쇄를 찍은 책도 많다고요.


책방을 열고 두 달 동안 아무도 꺼내보지 않는 책이 있었어요. 『거울 앞에서 너무 많은 시간을 보냈다』 라는 심리학과 교수인 러네이 엥겔른가 쓴 책인데요. 너무 좋은 책인데 손님들이 한 번도 들쳐보질 않더라고요. 그래서 책이 좀더 잘 보이도록 앞으로 비치하고 표지에 추천평을 써서 붙여 놓았어요. 그렇게 한 두 분씩 관심을 가져주시다가 조금씩 소문이 났어요. 증쇄 소식은 너무 기쁜 일인데요. 그만큼 책임감도 생기는 것 같아요. 사실 순위라고 해도 전국 도서 판매량과 비교하면 굉장히 적은 숫자잖아요. 표본이 작아서 금세 순위가 변하기도 하고요. 지금 신경 쓰는 건 책을 선택할 때 형평성을 갖고 들여오는 거예요. 순위를 위해 책을 입고하길 원하는 분들도 많으시거든요. 제 취향을 버려서도 안되지만 책방의 큐레이션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하루 평균, 책은 얼만큼 팔리나요?


날씨에 따라 너무 달라서요. 많이 팔릴 땐, 세자리 숫자로 팔 때도 있고요. 대개 들쑥날쑥이에요. 책방 규모에 비해서 책이 많이 팔리는 건 맞는데요. 추운 날에는 손님이 적고, 지금은 제 책이 나와서 많이 찾아와주세요.

 

아무래도 젊은 독자들이 많이 올 것 같아요.


저도 그럴 거라 예상했는데요. 중고등학생부터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꽤 연령층이 넓어요. 그래서 너무 내 취향만 고려하면 안되겠다고 생각해요. 작년만 해도 정말 제가 좋아하는 책만 비치했거든요. 북 카페니까 갤러리 느낌으로요. 요즘은 저의 애정을 많이 분배하고 있어요. (웃음)

 

아르바이트를 뽑을 때, 지원자가 굉장히 많았다고 들었어요. 면접 볼 때, 어떤 기준으로 직원을 뽑았나요?


책방 일에 환상을 갖고 있는 분은 뽑지 않았어요. 사실 환상이라는 게 있을 수밖에 없고, 저 역시 있었기 때문에 책방을 열었을 텐데요. 육체적으로 정말 힘들어요. 그래서 우리 책방의 장점을 말하기보단 단점을 많이 이야기해줬어요. 저에 대한 호감, 책을 좋아하는 것만으로는 책방 일을 오래하긴 어려우니까요. 책이라는 게 화장품이나 의류 같은 품목에 비해서 수익률이 되게 낮잖아요. 카페를 운영할 수밖에 없는 이유, 책 1권이 팔렸을 때 우리에게 남는 이익 등을 직원들에게도 틈틈이 알려주고 있어요. 책 읽고 차 마실 수 있는 시간도 있지만, 대개는 책을 비치하고 박스를 풀어야 하는 시간이 더 많거든요.

 

독자로서는 책을 어떻게 고르는 편인가요?


베스트셀러보다는 주변 사람들의 추천이나 궁금했던 책들을 주로 검색해서 사는 편이에요. 요즘은 분야에 구애 받지 않고 폭넓게 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책방 주인으로서 가장 힘들 땐 언제인가요?


각오에 비해 힘든 건 크게 없어요. 제가 책방을 연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엄청 말렸거든요. 자영업은 할 일이 못 된다고요. (웃음) 그런데 감사하게도 책방에 오는 분들의 매너가 대부분 좋으세요.

 

‘최소한 몇 년은 버티겠다’ 하는 생각이 있나요?


없어요. 사실 작년에 책방을 열면서도 1년은 버틸 수 있을까? 반년 만에 망하진 않을까 생각했어요. 이렇게 잘될 거라는 예상은 조금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인테리어도 크게 안 했고, 투자 자체를 크게 하지 않았어요. 지금도 ‘내년에 망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큰 무리가 없는 한 오래하고 싶지만,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지금 당장은 ;더 많은 사람에게 책을 읽히고 싶다는 것’ 외에 구체적인 목표가 아직 없어요. 방송을 하는 사람이니까, 책에 관심이 없던 사람도 친숙한 얼굴의 책방 주인에게 이끌려 독서라는 취미를 갖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2호점이 곧 오픈한다고요.


위례신도시에 준비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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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 년 동안 읽어온 문장들이 저를 만들었어요

 

요즘 가장 큰 고민이 있다면요.


체력이죠. 어쨌든 방송도 소홀히 할 수는 없으니까요. 에너지가 많이 소진되죠. 방송 스케줄이 있는 날에도 짧은 시간이라도 꼭 서점에 나오려고 해요. 어떻게 하면 계획성 있게 균형감각을 잃지 않고 일할 수 있는지가 지금 제 숙제예요.

 

책 뒤쪽에 『시바타 신의 마지막 수업』  이야기를 담았잖아요. 50년 동안 서점을 운영한 시바타 신은 마지막 일터인 이와나미 북센터를 운영할 때, 이렇게 말했죠. “매일매일 잘 운영해내는 것이 중요해. 특히 서점에서 일하는 모든 직원이 하루하루 행복해야 해.” 그가 팀장으로 서점을 운영할 당시의 모토가 “휘파람을 불며 책을 팔자”였다고요. ‘당인리 책 발전소’가 품고 있는 모토가 있나요?


모토라기보다는 우리 책방이 사람들의 일상 속에 있는 공간이면 좋겠어요. 너무 특별한 공간이 아닌 평범한 날에 평범한 기분으로 올 수 있는 곳이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해요. 책 덕후들만 오는 책방이 아니라 작은 호기심만 갖고도 편하게 드나들 수 있는 책방이면 좋겠어요. (웃음)

 

“책을 좋아한다고 하면 왠지 편견 섞인 호감이 생기곤 했다”(314쪽)는 글이 기억에 남아요.


편견은 계속 강해지고 있는 것 같은데요. (웃음) 이제는 좀 더 많은 사람에게 책이 주는 재미, 감동을 전하고 싶어요. 책이 없었다면 나라는 사람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상상하기 어려워요. 30여 년 동안 읽어온 문장들이 차곡차곡 쌓여 지금의 저를 만들었다고 생각해요.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도 절망하지 않았던 건, 언제나 책이 제게 말을 걸어준 덕분이에요.

 

얼마 전 오상진 씨의 책 『당신과 함께라면 말이야』도 출간됐어요. 부부가 같이 쓴 에세이를 기다린 독자도 많았을 것 같아요.


그동안 남편과 같이 책을 써보자는 제안을 정말 많이 받았는데요. 연인, 부부가 어떤 틀 안에서 책을 같이 쓴다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 같아요. 내 책이 잘 안 되더라도 내 책을 먼저 써보는 게 나을 것 같았어요. 어떻게 하다 보니 같은 시기에 둘 다 첫 책을 내게 됐는데요. 서로 글을 보여주거나 조언을 구하지 않았어요. 저희가 의외로 일에 있어서는 꽤 개인적이에요. (웃음)

 

책에서 “책 읽는 남자를 사귄 게 남편이 처음이었다”고 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이상형은 운동을 잘하는 사람이었어요. 특히 잘 달리는 남자, 아니면 노래를 잘 부르는 남자. 확고하게 예체능 쪽이었는데요. 남편과는 연애할 때 정말 말이 잘 통했어요. 눈치가 정말 빨라요. 굳이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상황을 이해하고, 말을 꺼내면 맥락을 이해해요. 왜 그럴까 생각해본적이 있는데 책을 많이 읽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저희 집은 온통 책투성이에요. 특히 안방 침대에는 각자의 베개 주변에 책이 잔뜩 쌓여 있어요. 매일 밤 그날의 기분에 따라 읽고 싶은 책을 읽어요. 서로가 좋아하는 시간이죠.

 

김소영의 두 번째 책은 언제쯤 볼 수 있을까요?


아예 계획이 없어요. 제안이 많이 들어오긴 하는데요. 새로운 뭔가를 할 에너지가 현재로서는 없어요. 집중해야 할 일도 많고요.

 

책방의 미래, 어떻게 보시나요?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웃음) 저희 책방의 미래도 볼 수 없지만, 그럼에도 저는 책방이 계속해서 늘어나면 좋겠어요. 창작자가 모여드는 책방, 독창적인 북 큐레이션이 있는 책방, 인테리어가 멋진 책방, 한 분야만 파는 책방 등 어떤 형태든지요.

 

“모두가 어제 본 티브이 프로그램 대신 간밤에 읽은 책에 대해 수다를 떠는 모습을 상상한다. 방송인과 책방지기, 두 직업을 다 가진 나지만. 예전부터 처음 만난 사이에도 책을 좋아한다고 하면 왠지 편견 섞인 호감이 생기곤 했다. 책방을 열고 얼마나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는지 모른다. 나의 편견은 날마다 더 강해진다.” (314쪽)

 


 

 

진작 할 걸 그랬어김소영 저 | 위즈덤하우스
훗날 너무 빠른 포기였다고, 조금 더 참았어야 했다고 그날의 선택을 후회할지도 모르지만 자신에게 이야기했다. 조금 더 자유로워지자.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독립출판물 저자를 만나다] 모순을 끌어안는 정병일지 - 백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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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라는 제목이 인상적이에요.


제목이 제 이야기였어요. 저는 자살 충동을 굉장히 자주 느끼는 편이고, 자살 충동만큼 배고픔도 잘 느껴요. 항상 뛰어내리는 상상에 골몰했는데, 친구가 떡볶이를 먹으러 가자고 그러면 신나서 떡볶이를 막 먹는 제 자신이 너무 싫었던 거죠. 왜 죽고 싶은데 떡볶이 먹어? 하면서 스스로 자책하는 거예요. 되게 모순적인 마음인데, 다들 제목을 보면서 ‘아, 이거 난데?’ 하며 많이 사주신 것 같아요. 그리고 떡볶이를 생각보다 사람들이 좋아하더라고요.(웃음)


기분부전장애를 다룬 책이에요.


우울증을 뭉뚱그려 하나의 병으로 여기지만, 공황장애라든가 불안장애처럼 기분부전장애도 우울증에서 파생하는 질병 중 하나예요. 만성 질환이라 초기 발병 기간을 2년 이상으로 잡는데, 저는 어렸을 때부터 앓아서 거의 10년 이상 앓았어요. 그동안 병원을 많이 다니면서도 정확하게 맞는 질환을 찾지 못해 ‘난 왜 이렇게 유난일까?’ ‘난 왜 이렇게 약하고 예민하고 어두울까?’ 이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마지막으로 간 병원에서 기분부전장애라는 진단을 받고 보니 딱 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책으로 낸 계기는 무엇인가요?


비슷한 증상의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블로그에 내원 기록을 올리기 시작했어요. 출판사에서 일하기도 했고, 문예 창작이 전공이라 책을 내는 건 늘 버킷 리스트 중 하나였어요. 막연히 에세이를 내고 싶긴 했지만 콘셉트나 주제를 잡기 어려웠는데, 생각해보니 제가 가장 잘 쓸 수 있는 주제가 제가 앓고 있는 병이었어요. 같은 병을 앓는 사람이 꽤 있을 것 같은데 다들 잘 몰라서 알리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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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질환은 신체 질환보다 편견을 받을 때가 많아요. 


정신병을 왜 편견을 가지고 봐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주변에서 편견을 가진 사람이 있다 해도 제가 그렇게 느끼지 않아서 개의치 않았거든요.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용기를 냈느냐 물어보는데 제게는 자연스러운 일이었어요. 아무렇지 않게 가볍게 이야기하니까 상대방도 가볍게 받아들이더라고요.


크라우드펀딩을 통해 만든 책이에요. 순식간에 2천만 원이 모였어요.


처음에는 200부 정도 찍을 생각이었는데, 그렇게 모여서 깜짝 놀랐죠. 혼자서 감당이 안 되는 양이라 대행업체를 이용해 발송했어요.


아무래도 정신 질환을 앓는 사람이 늘어나고, 겪어본 분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요?


맞아요. 숨겨져 있는 걸 드러냈더니 많이 공감해주더라고요.


프롤로그에 마르탱 파주의 『완벽한 하루』를 인용했어요.


제게 큰 의미가 있는 책인데, 스물다섯 살 남자가 아침에 일어날 때부터 권총 자살을 떠올리고 종일 자살을 생각하는 이야기거든요. 어두운 내용 같지만 엄청 웃기기도 해요. 책에서 빛과 어둠이 따로따로 가는 게 아니라는 이야기를 읽고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예전에는 행복과 우울함이 동시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어요. 너무 힘든데 친구랑 만나면 농담하는 제 모순적인 모습이 자연스럽다는 걸 이 책을 읽으면서 느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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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 선생님과의 대화를 그대로 싣기도 했어요.


많은 정병일지가 감정의 나열에 그쳐서 전문가의 해결법도 들어간 책을 만들면 어떨까 싶었어요. 타인의 감정을 나열한 것으로 위안은 받을 수 있지만 직접적인 해결 방법을 제공해준다는 느낌은 없었거든요. 정신과 전문의가 쓴 책은 거리가 조금 멀게 느껴졌고요. 그래서 제가 어떤 상태인지 보여주기도 하지만, 의사 선생님이 제 상태를 진단하고 왜곡된 부분을 바로잡아 주는 대화를 그대로 실으면 우울을 한번쯤 경험해본 사람에게 조금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리뷰를 읽을 때는 어땠어요?


처음에는 너무 두려웠어요. 자기 일기장에나 쓰지 책까지 냈느냐는 이야기를 들을까 봐 밤마다 악몽에 시달렸거든요. 악플이 생각보다 없어서 많이 안도했어요. 그다음으로는 이렇게 마음이 안 좋은 사람들이 다들 숨어 있었다는 생각이 드니까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자기 자신이 발가벗겨진 느낌이라는 리뷰도 있었고, 제3자가 되어서 상담실에 앉아 있는 것 같다는 분도 있었고요.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이야기가 가장 많았던 것 같아요. 단지 우울만 있는 게 아니라 외모 강박이라든가 자기 검열, 남과 비교하는 것, 알코올 의존, 피해 의식 등 공감할 부분이 많기도 했고요.


3쇄까지 나오고 2,000부가 나갔어요. 곧 절판된다고 들었는데요.


1인 출판사인 ‘흔’을 통해 6월 중순에 정식 출판할 예정이에요. 디자인은 어느 정도 바뀌겠지만 내용은 거의 동일하게 나갈 것 같아요.


앞으로도 계속 백세희 작가의 책을 만나볼 수 있을까요?


두 번째 책도 내고 싶어요. 늘 에세이를 쓰고 싶었거든요. 우울이 아닌 다른 소재로 쓴다면 제 ‘찌질의 역사’를 쓰면 어떨까 싶어요. 굴욕적인 사건도 많고, 부끄러움도 많아서 다른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아 하는 일에도 끙끙 앓는 이야기를 엮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요.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상은 “대화가 어려울 때는 아래에서 위로 바라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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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빠르게 상대의 의중을 파악하는 사람들이 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감정을 읽어낸다. 한 번의 손짓으로 상대를 집중시키고 호소력을 높이는 이들도 있다. 소리 없는 커뮤니케이션에 강한 사람들. 그들은 단지 ‘감’이 좋은 것일까?

 

『몸짓 읽어 주는 여자』에 따르면, 그들은 비언어적인 메시지를 읽고 활용하는 데 능통한 사람들이다. 시선, 손동작, 자세에 담긴 수없이 많은, 그리고 조용한, 신호에 대해 알고 있다. 그들 앞에서 우리의 태도는 더 우호적으로 바뀌곤 한다. 이심전심,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 앞에서 누군들 빗장을 열지 않을 수 있을까. 실제 연구 결과도 이 사실을 뒷받침한다. 『몸짓 읽어 주는 여자』 는 “어느 분야든 두드러진 성과를 보이는 사람들의 90%는 바디랭귀지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고 말한다.

 

미국과 호주에서 이루어진 연구 결과에 의하면 바디랭귀지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세일즈맨은 평균 이해도의 세일즈맨보다 연봉을 3,000만원 이상 더 받는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다른 동료들에 비해 판매량도 20% 더 높고 공감능력도 10% 더 높았다. 그러다 보니 이들의 삶에 대한 만족도 또한 다른 사람들에 비해 42%나 더 높았다. (『몸짓 읽어 주는 여자』 15쪽)

 

『몸짓 읽어 주는 여자』는 이렇듯 강력한 힘을 가진 언어 ‘바디랭귀지’를 읽고 활용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저자는 MBC <전지적 참견시점>, SBS <김어준의 블랙하우스> 등 다수의 방송을 통해 대중과 만나온 ‘행동분석가’, ‘비언어 커뮤니케이터’ 이상은이다. 사람들의 몸짓과 표정 등을 분석하는 전문가로서 공공기관, 기업, 대학 등에서 활발하게 강연하면서 쌓아 은 경험과 지식을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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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가 어려울 때, 아래에서 위로 바라보세요


아직까지도 ‘행동분석가’라는 직업이 생소한 것 같습니다.

 

조금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분야예요. 이 분야가 방송과 접목이 되면서 이해하시기 편하도록 ‘행동분석’이라고 이야기가 된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많은 분들이 저를 행동분석가라고 말씀해주시는데요. 행동분석에는 비언어 커뮤니케이션 분야도 있고, 아이들이나 장애인을 위해 활용되고도 있어요. 대학에서 전문적으로 배울 수 있는 학문으로까지는 아직 발전하지 못했고, 교과목의 하나로 수업이 진행되는데요. 외국에는 관련 기관들이 많이 있어요.

 

평소에 우리가 상대의 몸짓을 보면서, 무의식중에 감정을 읽고 있는 걸까요? 작가님의 설명을 듣다 보면 ‘저런 의미가 숨어 있었구나, 몰랐네’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놀라시는 이유는 선택적 지각의 폭이 넓어졌기 때문이에요. 주변에 항상 있던 정보들이고 그걸 읽고 계시면서도, 이전까지는 그걸 설명하지 못했던 거죠. 제가 설명을 드리다 보면 ‘맞아, 그랬었지’ 하고 느껴지시는 거예요. 예를 들면, 우리가 무언가를 생각하거나 고민할 때는 턱을 비비는 행동을 하거든요. 너무 자연스러운 행동인데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거예요. ‘나의 두뇌가 활동하기 시작할 때 나는 그런 행동을 한다’고 느끼지 못했던 거죠. 그러다가 설명을 해드리면 ‘그렇구나’ 하고 놀라시는 거고요. 사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비언어적인 사인들을 해석하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다 가지고 있었어요. 말을 배우기 전까지, 엄마의 표정을 보고 소리를 내면서 메시지를 보냈잖아요. 언어가 없던 시절의 인류도 마찬가지죠. 소리의 높낮이라든지 그런 비언어적인 방식으로 의사를 전달했어요. 그런데 성장하면서 언어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다 보니까 잊어버리기 시작한 거죠.

 

감정이 행동으로 드러난다는 건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인데요. ‘행동이 바뀌면 감정도 바뀐다’는 생각은 잘 못하는 것 같아요.


네, 감정도 바뀌고요.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에서 연구한 결과를 보면 생리적인 변화도 일어나요. 행동을 바꿈으로 인해서 창의력, 기억력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는 이전에도 많이 있었어요. 기억력이 3배 이상 높아진다든지, 엄마가 손동작을 많이 쓸수록 자녀의 창의력이 높아진다는 결과들이었죠. 그런데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호르몬의 변화까지 가져온다는 거예요. 자신감과 관련된 테스토스테론, 스트레스와 관련된 코르티솔 같은 호르몬을 조절할 수 있다는 거예요. 굉장히 큰 발견이었죠. 나의 행동을 변화시킴으로써 어떤 것들이 달라지는지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거니까요.

 

상대에게 호감을 주기 위해서는 ‘열린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하셨는데요. 어떻게 하는 건가요?


반가운 친구를 만났을 때 하는 행동들을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아요. 정말 만나고 싶었던 사람을 만나면 일단 껴안는 듯한 자세를 취하잖아요. 양팔을 둥글게 벌리면서 환영한다는 인사를 보내요. 그 사람을 향해서 몸을 열어주고요. 닫힌 게 하나도 없는 거죠. 반대로 만나기 싫은 사람과 있을 때는 마주보고 앉아있는 것도 불편하잖아요. 마주보고 앉아 있지만 몸을 약간 옆으로 피한다거나 팔짱을 끼기도 하죠. 그러한 행동들이 대부분 ‘닫힌 자세’예요. 나의 중요한 부위, 생명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심장, 폐, 간, 위 같은 신체 부위를 가리고 막는 건데요. 그러면서 심리적 안정을 얻는 거예요. 정말 좋아하는 사람, 적극적으로 다가고 싶은 사람을 만났을 때는 그렇게 하지 않죠. 상체를 다 오픈하고 몸을 열어줘요. 이야기를 나눌 때도 고개만 돌려서 쳐다보는 게 아니라 자꾸 몸을 돌려서 보고 싶어 하고요.

 

“시선의 높낮이가 가진 힘”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셨는데, 굉장히 흥미로웠어요.


남성과 여성을 보더라도 키가 다르니까 항상 여성이 남성을 올려다보잖아요. 그런 것 때문에 우리도 모르게 파워에 대한 것을 인식하기 시작한 거예요. 아이들도 부모를 올려보게 되죠. 보통 CEO나 대표는 연단 위에 올라가서 이야기를 하고, 직원들은 앉아서 올려다보면서 듣고요. 더 중요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올려보게 되어 있는 거예요. 시선의 높낮이에 의해 파워가 정해지는 거죠.

 

“대화를 나누기 어려운 자녀가 있다면 자녀를 소파에 앉게 하고 부모는 바닥에 앉은 채로 자녀를 올려다보며 대화를 시도해 보자”고 제안하셨어요. 낮은 곳에서 올려다보면서 이야기하면 부탁을 하기가 조금 더 쉬운 건가요?


그렇죠. 예전에 저한테 컨설팅을 받으시던 분이 계셨는데, 자녀들이 사춘기가 되니까 대화하기가 굉장히 힘들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아이를 소파에 앉히고 바닥에 앉아서 이야기하시라고 말씀을 드렸어요. 위로하실 때도 절대 서서 하지 마시고 앉아서 하시라고 했고요. 그렇게 하시고 난 뒤에 실제로 자녀분과 대화하는 게 더 수월해지셨대요. 저한테도 굉장히 의미 있고 기억에 남는 사례가 됐어요.

 

“거만한 사람을 상대하려면”이라는 꼭지도 있는데, 읽으면서 통쾌했어요(웃음). 뒤로 기대앉아서 팔짱을 끼고 있으면 물건을 건네줄 때 직접 받도록 하라는 거잖아요. 앞에 내려놓지 말고요. 세일즈를 할 때도 활용할 수 있는 팁일 것 같아요.


네. 고객한테 설명을 해야 되는데 뒤로 기대 있고 아예 관여하지 않겠다는 행동을 보이면, 보여줘야 하는 입장에서는 마음이 급하잖아요. 그러면 몸이 더 앞으로 가거든요.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몸을 숙일 수 있는 기회 자체를 상실해 버리는 거죠. 그때는 물건을 내려놓지 말고 손으로 직접 받을 수 있게끔 건네주는 거예요. 손을 뻗어야 받을 수 있을 정도로 거리를 조정하고요. 굉장히 세세하지만 상대방의 행동을 조정할 수 있는 팁이 되는 거죠.

 


남과 여, 서로 다른 ‘비언어’ 사용법


‘그린라이트’에 관해서 블로그에 쓰신 글을 봤어요(웃음). 부담스럽지 않게 그린라이트를 보내는 방법이 있나요?


우선, 여성분들이 마음에 든다는 사인을 보낼 때 남성분들이 그걸 잘 캐치하지 못한다는 걸 이해하셔야 할 것 같아요. 남성분들은 비언어적인 사인을 캐치하고 이해하는 일을 관장하는 뉴런의 숫자가 여성분들보다 적어요. 그래서 사인을 보내고자 할 때는 남자가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여성분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조금 더 많은 횟수로 보내줘야 돼요. 남녀가 만나서 호감을 가지는 동안 일어나는 다섯 가지 패턴이 있어요.

 

어떤 건가요?


첫 번째가 눈맞춤이에요. 상대가 그곳에 있다는 걸 시선을 통해서 인지하는 거죠. 여기에서부터 남녀의 차이가 생기기 시작해요. 여성은 마음에 드는 남성을 쳐다볼 때, 남성은 그 눈빛을 빨리 인지하지 못해요. 네 번 정도 시선을 주면 그 의미를 조금 알아차리기 시작해요. 그런데 바로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확인하는 작업을 해요. 거절을 당할 수도 있으니까요. ‘날 쳐다본 게 맞나?’ 하고 다시 여성을 쳐다보는 거죠. 그때 여성분이 다시 한 번 사인을 주셔야 돼요. ‘내가 보낸 신호가 네가 지금 해석한 그 신호가 맞다’는 사인을 주는 거죠. 두 번째 현상은 미소예요. 시선이 마주치고 나서 둘 중의 한 명이 미소를 보냅니다. 호의적으로 다가와도 된다는 사인을 보내는 거예요. 그 뒤에 나오는 행동은 ‘깃털 고르기’라고 하는데요. 새가 깃털을 다듬고 펼쳐서 멋진 모습을 보여주는 거랑 비슷해요.

 

그때도 남성과 여성이 보이는 행동이 다른가요?


여성분들은 보통 이야기를 하다가 머리를 넘겨요. 목 뒤를 만지거나 웃을 때 입을 가리고 웃기도 하고요. 여성성을 드러내려는 행동들을 굉장히 많이 하는 거예요. 목선을 드러내는 건 내가 굉장히 여린 사람이라는 걸 보여주면서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거거든요. 웃을 때 손등으로 입을 가리면서 손목을 드러내 보이는 것도 그래요. 손목이나 목은 생명과 관련된 신체 부위이고, 이것을 드러낸다는 것은 ‘당신한테 복종하겠습니다’라는 의미가 있는 거예요.

 

‘깃털 고르기’ 다음 단계는 무엇인가요?


대화를 하기 시작하는 게 4단계고요. 5단계가 터치예요. 대부분 여성 쪽에서 먼저, 우연을 가장한 터치를 시도해요. 웃으면서 혹은 이야기를 하면서 툭 치는 거죠. 터치가 소유권을 주장하기 위한 행동 중에 하나거든요. 커플 사진에서도 이런 모습이 굉장히 많이 보여요. 여성분이 남성분을 옆에서 안으면서 가슴 쪽에 손을 얹는다거나, 남성분이 옆에 앉아서 여성분의 허벅지 쪽에 손을 얹어놓는 경우가 있는데요. ‘이 사람은 내 거야’라면서 소유권을 주장하는 거예요. 우리가 갖고 싶은 물건이 있으면 손을 갖다 대잖아요. 그런 거예요. 그런데 처음 만나서 호감을 느끼기 시작한 때에는 그 정도까지 친밀한 관계는 아니니까, 미세한 터치를 하면서 소유권을 주장하는 거죠. 터치는 큰 힘을 발휘해요. 접촉이 1/40초만 늘어나도 상대방과 자신이 친한 걸로 인식하거든요.

 

책에서 말씀하셨죠. 우리 뇌가 ‘저 사람과 친해서 접촉했을 것이다’라고 인식한다고요.


맞아요.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와 접촉을 하면 그 사람의 뇌에 나를 더 강하게 인식시킬 수 있어요.

 

의도 없이 한 행동이지만 상대방은 거리감을 느낄 수도 있겠죠. 그런 점에서 ‘이건 꼭 고쳐라’고 말하고 싶은 행동이 있나요?


팔짱도 그 중에 하나인 것 같아요. 팔짱을 끼는 게 편할 수밖에 없는 상황도 있어요. 너무 춥다면 그렇게 되겠죠. 그런데 추울 때 끼는 팔짱과 방어적으로 끼는 팔짱은 달라요. 추워서 팔짱을 끼게 되면 조금 더 자기를 껴안는 듯한 자세를 많이 취하거든요. 방어적일 때는 그냥 벽을 세우겠다, 거리를 두겠다라는 의미가 많이 담겨요. 사실 팔짱을 끼고 있으면 손을 두 개 다 묶어놓고 있는 거니까 자신도 불편하거든요. 그 자세가 편하다는 건 그에 상응하는 감정이 있기 때문이에요. 팔짱 끼는 게 습관인 사람이라도 너무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고 기쁜 순간이 되면 팔짱을 낄 수가 없어요. 꼈던 팔짱도 풀 수밖에 없어요. 그 자세를 편하다고 느낀다면 이유가 무엇일까 자문해 볼 필요가 있는 거죠.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어떤 감정을 주로 느끼는지, 외부적인 자극들을 어떻게 해석하는지, 나의 표정이 어떤지, 그런 것들이 굉장히 많은 영향을 미치는 거죠.

 

많은 사람들이 무심코 쓰는 손짓 중에도 그런 게 있을 것 같아요.


상대의 이야기를 듣다가 갑자기 생각난 게 있어서 말하고 싶을 때, 허공에서 손을 위아래로 흔드는 분들이 계세요. 그러면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굉장히 방해받았다고 느껴요. ‘빨리 너의 이야기를 끝내, 내 이야기를 할 거야’라는 의미가 전해지는 거죠. 직장의 매니저 같은 분들이 이런 제스처를 사용하시면 팀원들의 불만이 굉장히 많아져요. 협조를 잘 안 하려고 하고요. 자기가 어떤 말을 해도 무시당할 것 같으니까요.

 

‘무심코’, ‘의도 없이’ 하는 행동에도 신경을 써야겠네요.


내가 하는 행동이 의도했던 것과는 다른 메시지를 전달한다면 얼마나 억울하겠어요. 그래서 모두가 상대방한테 잘못된 메시지를 전달하지 않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하는데요. 그 중에 하나가 옷을 입는 거예요. ‘이 옷을 입으면 내가 어떻게 보일까’를 생각하면서 신경을 많이 쓰잖아요. 그런데 사실 상대방이 어떤 사람인지 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건 옷이 아니라 그 사람이 보여주는 행동들이거든요. 그런 점에서 저는 ‘뭐 입지?’라는 질문의 숫자만큼이나 ‘어떻게 행동해야 하지?’라는 질문을 해봐야 된다고 생각해요. ‘본의 아니게’ 한 행동이었더라도 그것이 잘못된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걸 알게 됐다면 수정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나한테 어울리지 않거나 잘못된 옷을 입지는 않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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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보다 진심이 먼저입니다


<전지적 참견시점>에 출연하고 계신데요. 출연자 중에서 ‘평소 대중에게 보여진 이미지와 실제 몸짓이 전하는 의미가 사뭇 다른’ 출연자도 있었나요?


이영자 씨가 가장 컸던 것 같아요. 약간 센 언니, 직언을 하는 사람으로 보일 때가 많잖아요. 그런데 실제 녹화 현장에서 보면 다른 사람들을 굉장히 많이 배려하시고 조심성도 굉장히 많으세요. 리더 역할도 정말 잘 해주시고요. 마음이 약한 분에 더 가까워요. 그래서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하는 것도 굉장히 조심스럽게 하시고요. 프로그램을 위해서 장난도 치시거나 상대방을 곤란하게 할 수 있는 이야기도 하시는 거지, 사실은 사람 하나하나를 굉장히 깊게 보세요. 전현무 씨랑 양세형 씨도 TV에서는 까불까불한 이미지로 보이잖아요. 그런데 그분들도 상처받는 것에 대해서 굉장히 예민하세요. 양세형 씨는 장난꾸러기가 아니라 굉장히 차분하고 똑똑하신 분이고요. 전현무 씨는 사람이 상처받을까 봐 말 하나도 정말 조심스럽게 하세요. 같이 녹화를 하면서, 그 분들이 그런 성격과 인성을 가지고 계시기 때문에 그 자리까지 올라가신 거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책에서 이런 이야기도 하셨어요. 송중기, 송혜교 커플이 연인 관계라는 걸 발표했을 때 놀라지 않았다고요(웃음). 미러링이 많이 관찰된 건가요?


네. 두 분이 개인적인 자리에서 편한 모습으로 찍은 사진을 몇 장 봤었는데요. 단순히 동료 사이가 아니라 호감이 있고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행동들이 많이 보이더라고요.

 

<김어준의 블랙하우스>에서 말씀하시길,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사이에서도 미러링 현상이 보인다고 하셨어요.


이번에 <전지적 참견시점>에서 유병재 씨 통해서 미러링 현상을 이야기했는데요. 도보다리 회담에서 같은 현상을 보신 분들이 계셨더라고요. 블로그에 그런 글이 올라왔대요. 어떤 기자 분께서 저한테 전화를 주셔서 설명을 해달라고 하셨고, 그래서 인터뷰를 했었어요. 많은 분들이 미러링 현상을 이해하기 시작하신 거니까 저한테도 굉장히 의미 있는 일이었고요. 예전에도 그랬다면 미러링 현상에 대해 아시는 분들이 많았다면, 송중기, 송혜교 커플 사진을 보고 ‘혹시, 둘이?’라고 생각하셨을 수도 있어요. 지금 다시 사진을 찾아보시면 아마 알아보실 거예요.

 

미러링 현상이 가능한 이유는 우리에게 ‘거울신경세포’가 있기 때문이죠? 상대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면 나도 모르게 그 사람의 행동을 따라하는 건가요?


네. 유대감이 있고 호감을 갖고 있을수록 더 자연스럽게 많이 관찰되는 거예요. 서로 데면데면하다가 어떤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미러링 현상이 많이 나타날 수도 있어요. 그 주제에 대해서 서로가 강한 유대감을 가지고 있고 집중하고 있다는 이야기죠. 그런 주제가 아니더라도 관계 자체에 유대감이 있기 때문에 미러링 현상이 보일 수도 있고요. 중요한 것은, 상대방을 공감하지 않으면 절대 나올 수 없다는 거예요. 상대방을 관찰하고 이해하려고 하지 않고, 공감하지 않고, 유대감이 없다면, 나오기 힘든 거예요.

 

김어준 총수를 두고 ‘쉽게 사기당할 사람이 아니지만 한 번 당하면 크게 당할 것 같다’고 말씀하셨어요(웃음). 턱을 만지는 행동을 자주 해서 그런가요?


턱을 만지는 것 자체가 생각을 하고 있다는 의미인데요. 그 행동이 보여주는 횟수 때문에 더 그런 말씀을 드렸던 거였어요. 어떤 정보가 들어왔을 때 그냥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고, 다 자기의 필터로 거르는 사람이 있는데요. 김어준 총수의 경우는 후자예요. 자기가 처음 듣는 이야기가 나오면 계속 턱을 만져요. 곧이곧대로 듣지 않고 자신이 갖고 있는 경험과 지식을 동원해서 그 말이 맞는지 판단하겠다는 거죠. 그런 사람들은 사기를 잘 안 당해요. 사람 말을 잘 믿지 않고 자기가 필터링을 하니까요. 그런데 당하면 크게 당해요. 자신이 판단한 결과 상대를 믿어도 된다고 결정하면 그것에 올인하거나, 자기 결정을 과신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저 사람은 몸짓 언어를 참 잘 활용한다’라고 생각되는 인물이 있다면 누구인가요?


한 명만 꼽는다면 故 스티브 잡스일 것 같아요. 각자 다 특징이 있는데요. 오바마 전 대통령 같은 경우에는 비언어적인 사인을 통해서 본인의 매력을 굉장히 확장시킨 스타일이에요. 스티브 잡스는 비언어를 통해서 언어적인 메시지를 너무나 명확하게 전달하는 스타일이고요. 우리나라에서는 김창옥 교수님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인상 깊게 본 모습이 있었는데, 김성주 씨가 MC를 맡으셨던 강연이었어요. 김창옥 교수님한테 ‘성악을 전공하셨다면서요?’ 하고 질문하면서 ‘그러면 성악을 한 번...’하고 이야기를 하는데, 말이 끝나기도 전에 교수님이 갑자기 팔을 활짝 펼치시면서 시범을 보이시는 거예요. 그 자세 자체가 ‘어서 오세요, 환영합니다’라고 말하는 열린 자세잖아요. 반전 모습을 보여주면서 상대를 웃게 만들면서, 환영한다는 메시지를 같이 전달한 거예요. 의도하신 건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훌륭한 전략적 태도라고 생각됐어요.

 

“내가 읽은 몇 개의 몸짓을 가지고 그 사람 전체를 판단하는 오류를 항상 경계해야 한다”고 당부하셨습니다.


인간관계에서 도움을 얻거나 일을 더 잘하기 위해서 행동을 공부하실 수도 있겠지만, 결국은 사람을 보고 싶어서 배우시는 거라고 생각해요.  저 사람을 더 잘 이해하고 싶고, 저 사람이 이야기해주지 않는 진심이 뭔지 궁금해 하시는 거죠. 사실은 우리가 나 자신도 이해 못할 때가 많은데, 내가 배운 지식을 가지고 그 사람 전체를 판단한다면 굉장히 위험한 행동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너무 맹신하게 되면 직접 다가가서 풀 수 있는 문제도 풀지 못하게 될 거라고 생각하고요. 누군가 나를 거부한다고 생각하면 다가가기가 굉장히 어려운데, 그게 거부의 제스처가 아니고 그냥 습관일 수도 있는 거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행동분석에 대해 배워서 자신의 우월성을 증명하려고 하지는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다른 사람의 행동을 굳이 해독하고 독해하려고 하지 않아도, 상대의 행동을 미러링하면 그 사람이 느끼는 감정이 자연스럽게 이해되기 시작해요. 그게 더 중요한 거죠. 상대의 거짓말을 밝혀내겠다는 목적으로 이 책을 읽거나 공부하시는 건 원하지 않아요.

 

사람들이 바디랭귀지를 단지 ‘기술(skill)’로써 활용하는 걸 경계하시는 것 같아요. “이 모든 것을 준비하고 실행하기 전에 가장 먼저 준비해야 할 것은 바로 진심“이라고 강조하셨죠.


진심이 없이 이 책을 읽으신다면 잘 활용하실 수 있을 것 같지 않아요. 책을 쓸 때 대전제로 놓았던 게 진심이 있어야 한다는 거였어요. 진심이 없어도 이렇게 ‘척’을 하시라고 이야기한 건 아니었어요. 사람을 좋아하고 진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척’을 해봤자 얼마나 설득이 되겠어요. 나의 진심과 상대가 이해하는 메시지 사이에 간극이 있고, 그래서 상처를 받는 분들이 계신다면 그걸 조금 줄이기 위해서 이 책을 참고하셨으면 좋겠어요. 무엇 때문에 내 이미지가 사람들한테 어떻게 보이는지, 행동을 통해서 다시 한 번 깨달을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고요. 진심이 없어도 이렇게 하면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식의 내용으로는 책을 쓰고 싶지 않아요.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많은 분들이 행동을 조금 더 이해함으로써 행복해지시길 원했어요. 우리가 괜찮다고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괜찮지 않은 순간들이 있잖아요. 그걸 짚어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상태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조금 더 신경을 쓸 수 있고 조금 더 옆에서 지켜봐줄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관계에 있어서 다른 사람들을 말없이 이해할 수 있는 상태가 되기를 원했고요. 상대를 보는 눈을 자신에게 돌려서 나를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는 상태가 되기를 원했어요. 많은 분들이 힘들 때 ‘할 수 있어’라고 언어적으로 자신을 설득하시는데, 그것보다 먼저 어깨를 펴고 하늘을 보는 것만으로도 스스로를 도와줄 수 있다는 지혜를 가지시기를 바랐습니다. 그리고 많은 분들이 이 책을 읽고 도움이 됐다고 생각하셨을 때 주변 사람들한테 경험한 것들을 나누어주셨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점차 물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싶어요. 거기에 작게나마 힘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썼습니다.

 


 

 

몸짓 읽어 주는 여자이상은 저 | 천그루숲
내가 하는 스피치를 사람들의 기억에 남기고 싶다면 그들의 감정을 움직여야 한다. 감정을 움직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몸을 먼저 움직이는 것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오상진 “특별히 남자 분들이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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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작정 손을 잡고 바깥공기를 쐬었다. 철썩거리는 파도 소리가 마음을 달래주었다. 시간이 지나니, 그래도 이 모든 관심이 감사하게 느껴졌다. 아내도 그렇다고 말했다. 백사장에 나란히 서서 그림자를 보며 함께 웃었다. 이렇게 밤늦게 집에 돌아갈 생각 없이 도란도란 술잔을 기울이며 함께 얘기할 수 있는 시간. 이것이 허용된다는 것이 참 좋았다. 물에 반사된 조명이 아내의 탐스러운 볼에 아른거렸다.(23쪽, ‘밤늦게 집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

 

2017년 4월 30일부터 2018년 4월 30일까지. 꼭 1년의 일기를 책 한 권에 담았다. 아나운서이자 배우로도 활동하고 있는 ‘아나테이너’ 오상진의 『당신과 함께라면 말이야』는 새신랑이 된 오상진과 그가 바라본 아내 김소영의 사소하고도 빛나는 찰나를 담은 달콤한 신혼일기다. 아니, 어떤 신혼이 마냥 달콤하기만 할까. 둘이 아니면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서로에게 마음 상한 이야기, 그러다가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화해한 이야기, 그 동안 읽은 책에 관한 이야기와 이들이 몸담은 사회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까지 오상진의 일기는 꽤나 솔직하다. “솔직하지 않은 건 안 담았”다고 말하는 오상진. 서로의 자리를 존중하며 손잡고 걷는 오상진과 김소영의 생활을 한 마디로 정리하면 ‘따로 또 같이’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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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게 생각해요


얼마 전 <채널예스>에 이 책을 편집하신 김지향 달 편집장님의 편집 후기가 올라왔어요. 두 분의 오랜 인연과 책 뒷이야기가 재미있더라고요.

 

편집자님께서 5년 전에 출간 제안을 하셨어요. 당시는 저도 개인적인 고민이 많던 시기였거든요. 그때 글을 쓰고 싶었던 건 제 스스로에 대한 위로 차원이었어요. 그렇게 시작을 했는데 개인적인 위로가 글로 묶여서 나오기 쉽지 않았어요. 쓰다 보니 그렇더라고요. 쓰다가 엎고, 원고 한 번 갔다가 접고, 그러느라 5년이 걸린 거죠. 책 후기에도 썼는데요. 책 계약을 하고 그렇게 오랫동안 기다린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감사하죠. 하지만 이제야 책이 나온 게 저한테는 다행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처음 쓰려고 했던 글이 아니라 『당신과 함께라면 말이야』 에 담긴 글로 책 나오게 된 것이 더 다행이라고요?


두 가지 생각이 있는데요. 먼저 많이 부족한 글인 건 확실하죠. 한편 이렇게 나오게 된 데에 대한 뿌듯한 마음도 있고요. 『당신과 함께라면 말이야』는 결혼 직후에 쓰기 시작한 일기 형식의 글인데요. 일기라는 형식과 결혼 1년을 담는다는 의무가 있었기 때문에 책으로 묶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에요.

 

뒷표지에 김소영 씨의 짧은 글이 있어요. 보니까 일기 형태의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김소영 씨는 몰랐던 것 같아요.


저희 생활에 시차가 있어요. 저는 아침에 빨리 일어나고요. 소영 씨가 조금 늦게 일어나는데요. 그 시간에 글을 썼어요. 소영 씨는 제가 글을 쓴다는 것, 책 계약이 되어 있다는 것까지는 알고 있었는데요. 이런 형식이었던 것은 몰랐던 거죠. 공교롭게 출간 시기가 비슷하게 겹칠 수 있어서 둘이 조율하던 때가 있었고요. 그때야 이런 글을 쓰고 있다는 얘기를 했어요.

 

화자를 오상진 씨라고 하면 김소영 씨는 굉장히 중요한 등장인물, 주인공에 해당하는 인물일 텐데요. 이 책을 읽고 어떤 반응을 보이던가요?


팩트체크를 해주더라고요.(웃음) 제가 기억한 장인어른과의 대화가 실제로는 이런 것이었다, 하는 식으로 확인해준 부분이 몇 군데 있어요. 그런 몇몇 부분은 수정하고 그랬죠. 사진 정도 검열을 받았고요. 그밖에 특별한 말은 없더라고요.

 

김소영 씨의 글에서 “기억보다 훨씬 생생하게 우리의 시간들이 눈앞에 펼쳐진다”라는 부분이 있거든요. 서로 새롭게 알게 된 것들도 있었던 것 같은데요.


그나마 저희는 굉장히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사실은 아주 다른 존재가 만나는 게 결혼이잖아요. 그러니까 얘기를 더 많이, 자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부분에서 저희는 꽤 성실하게 대화를 하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 있었던 일을 제가 이렇게까지 생각한 줄은 몰랐던 거죠. 아내는 그런 걸 새롭게 알게 됐던 것 같아요. 남편이란 사람이 이런 일을 이렇게까지 생각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한 것 같고요. 저로서는 참, 솔직하게 내 속내를 다 보여줬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2018년 4월 30일, 마지막 일기에 “읽어내려가며 느낀 감정은 감사함이었습니다.”(297쪽)라고 하셨어요.

 
일단은 부끄러워요. 사실 그렇죠.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독자로서 책을 접해왔잖아요. 제가 만나온 수많은 훌륭한 책들에 비해 제 책이 많이 부끄럽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요. 어색하고, 이래도 되나 싶고 그렇죠. 그러면서도 내 생각을 말하고 독자와 이야기할 수 있게 된 것에 대해서는 감사하게 생각해요. 부족하지만 글을 쓸 수 있게 응원해주신 주변 분들에게도 감사하고요. 일기를 이렇게 성실하게 쓰기 쉽지 않잖아요. 이 기회에 일기 쓰기가 좋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됐죠. 스스로 돌아볼 수도 있게 되고, 잊고 있던 것을 다시 보면서 그날 이런 일이 있었구나, 생각하게 되기도 했어요. 그런 면에서 조금이나마 기록을 해왔던 것에 대한 뿌듯함, 나 자신에 대한 뿌듯함 같은 것도 있었어요. 글을 주로 아침에 썼는데요. 아내와 있었던 일을 쓰면서 개인적으로는 많이 반성했죠.(웃음) 덕분에 조금 더 성숙할 수 있던 계기가 된 것 같아요.

 

책을 읽으면서 그런 면을 읽었던 것 같아요. 자기반성의 태도 같은 것이 있었어요.


그냥 지나칠 수 있었던 일상 자체를 정리해보니까 좋았어요. 생각을 하게 되잖아요. 깊이 있게 들어가 보기도 하고요. 그러면서 주로 든 생각이 반성이었죠.(웃음) ‘내가 잘못했다’라기 보다는 ‘이럴 때는 이렇게 하는 게 낫지 않겠나’ 하는 발전의 의미였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생각을 솔직하게 썼어요.

 

 

솔직하지 않은 건 안 담았어요


지난 1년을 돌아볼 때 달라진 면도 많이 있나요?


제가 되게 무뚝뚝해요. 생각을 많이 하고요.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 때 불합리하더라도 일단 속으로 삭이는 편이었는데요. 싫거나 좋은 것을 분명히 하는 태도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그걸 잘 못했거든요. 분노의 감정을 막 표현하면 좀 그렇겠지만 조금 더 적극적으로,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다는 얘기를 조금 더 표현하게 된 것 같아요. 특히 아내한테는 그렇죠. 조금 더 제 감정에 충실해질 수 있었다는 부분이 예전의 저와는 조금 달라진 면인 것 같아요.

 

결혼 생활 안에서도 많이 배우는 편인 것 같더라고요. 일기를 쓰면서도 물론 그랬겠지만 생활을 하면서도 관계, 갈등의 이유 등을 살펴보는 일을 계속 해나가죠.

그런 걱정은 돼요. 며칠 전 북토크에서도 한 얘기인데요. 결혼은 다 하는 건데, 왜 네 얘기를 읽어야 하느냐, 오상진이 쓴 일기를 왜 봐야 하느냐, 라는 생각을 하실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서점에서 보면 이렇게 훌륭하신 분들 사이에 내가 꽂혀 있어도 되나 싶고요. 그렇긴 하지만요. 이게 비단 결혼해서 우리 이렇게 행복하게 잘 살아요, 라는 내용만이 아니니까요. 제가 여러 과정 속에서 느낀 교훈들이나 주변에 있었던 여러 일들에 대한 저의 의견들, 가치관들이 담긴 거니까요. 솔직하게 이야기를 담았기 때문에 사적인 일기에 불과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시사적인 내용이나 영화, 책에 대한 감상도 있고요. 저를 많이 드러냈기 때문에요. 신변잡기에 불과한 일기가 아니라 나를 담아낸 책이라는 생각이 있어서 그래도 이렇게 출간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말하자면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당신들은 어떻게 생각하나요?”였던 거네요.


그렇죠. 일기가 사실 누구한테 보여주려고 쓰는 글은 아니잖아요. 내가 나를 바라보는 글인데요. 책은 어느 정도 의식하고 쓴 거죠. 읽으실 분들을 생각하고 쓴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생각을 조금 순화한 부분도 있고요. 사실은 글이 너무 세서 싣지 못한 글도 있어요. 어쨌든 기본적으로는 제 이야기를 들려드리는 것을 전제로 하고 썼어요.

 

솔직함 이야기를 하셨는데요. 쓰면서 갖고 있던 중요한 기준이 있었다면 들려주세요.


솔직하지 않은 건 안 담았어요. 다만 편집자님께서 전체적인 글과 안 맞는다고 판단하셨던 글들은 날아간 것도 있고요. 고집은 안 부렸어요. 프로 작가가 아니니까요.(웃음)

 

솔직한 이야기를 쓰는 것이 부담되지는 않았나요? 고민이 있었다면요?


크게 고민한 건 없었고요. 저는 미디어에 노출된 지 13년 된 사람이라서 그런 부분이 익숙한 편인데요. 아내는 그렇지 않잖아요. 물론 김소영 씨도 입사한 지 꽤 오래된 사람이지만 저에 비해서는 덜 익숙하겠죠. 그런 면에서는 선을 유지하려고 했어요. 알려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던 것 같고요.

 

전반적으로 상쾌하게, 산뜻하게 써내려간 느낌이네요.


네, ‘이게 뭐 어때서?’하는 느낌이 있죠.

 

지금까지 쓰면서 좋았던 이야기를 많이 말씀하셨는데요. 어떤 점이 힘이 들던가요?


많이 배웠고, 즐거웠죠. 하지만 역시 제가 책을 쓰기 전에 많이 읽었던 사람으로서 과연 이렇게 책을 써도 되나, 싶은 생각이 많았어요. 세상에 빛을 더 비춰야 하는데 어둠을 드리우는 게 아닌가(웃음) 하는 생각도 들고요. 게다가 어떤 의견이나 생각이 인쇄 되어서 나온다는 것 자체가 되게 두려운 일이잖아요. 많은 사람들이 과거에 썼던 글 때문에 다시 회자가 되기도 하고요. 책을 통해 저 자신이 세상 앞에 나오는 거니까요. 그런 여러 가지가 두렵긴 했었는데요. 많은 분들이 용기를 주셨어요. 쓰는 과정이 힘들기도 했지만 즐거웠고요. 이제 책이 나왔으니까 부정적인 면을 안 보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책 반응도 좋다고 들었어요.


저는 인터넷 기사 댓글은 잘 안 보거든요. 그런데 책 서평은 보게 되더라고요.(웃음) 제일 와 닿았던 글이 ‘당신이 쓴 일기를 왜 봐야 하느냐’는 내용이었어요. 저도 어떤 정당성에 대해서는 굉장히 고민을 했으니까요. 그 말에 공감이 되거든요. 어떤 연예인이 결혼해서 책 썼다는데 그걸 왜 봐야 하는지,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죠. 그런 것 때문에 자신감이 떨어지다가도(웃음) 좋은 반응들을 보면서 하루, 하루 치유 받는 중이에요.

 

어떤 글은 여행기처럼 읽었고요. 독서일기처럼 읽히는 부분도 있어요. 물론 반성문 같은 면도(웃음) 있었는데요. 전체적으로는 조금 새로운, 편안한 글쓰기를 하셨어요.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한 거예요. 즐겁게, 재미있게 하려고 노력했어요. 독자로서 저는 무거운 책, 어려운 책도 좋아하지만요.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려면 조금 가벼워야 하잖아요. 내려놓기도 해야 하고요. 그렇게 하려고 노력했어요. 이것도 만약 5년 전, 제가 날이 서 있던 30대 초반에 글을 썼다면 많이 달랐을 것 같아요. 이렇게 온화한 책은 안 나왔을 것 같아요.(웃음) 그래서 다행이에요.

 

자꾸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그때의 글이 어땠는지 무척 궁금해지네요.


궁금하시죠?(웃음) 안 나온 데에는 다 이유가 있어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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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되어서 알게된 것들


지난 1년을 돌아봤을 때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들도 있겠죠?


아무래도 가장 큰 일은 소영 씨가 MBC를 떠나고 새로 동네 책방을 연 일이겠죠. 그게 가장 기억에 남아요. 개인적인 아픔을 겪는 입장, 곁에서 지켜보는 입장 모두 힘들었죠. 퇴사를 하고, 해본 적도 없는 책방이라는 곳을 연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특히 책방이라는 게 요즘 같은 때에 엄청난 부담이 있는 선택이니까요. 곁에서 열심히 돕고, 지켜보는데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냥 책을 좋아할 뿐 아니라 책에 큰 애정을 갖고, 책을 통해 많은 사람을 만나는 기쁨을 찾아가는 모습이 대단하게 느껴졌어요. 저라면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도 했고요. 우선 가게 하나를 열기까지 굉장히 많은 일들이 있잖아요. 그런 모든 일들, 제가 몰랐던 것들을 척척 해나가는 모습이 멋있었어요.

 

그 과정에서 김소영 씨 혼자 힘들어했던, 오상진 씨는 뒤늦게 알았던 어려움도 있었잖아요.


소영 씨 퇴사 당일 기사도 그랬어요. ‘오상진 아내 김소영 퇴사’ 같은 제목이 많았어요. 그런 걸 보면 미안하기도 하고 그렇죠. 그래서 앞으로 소영 씨가 더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생기고요. 특히 책방 공간은 정말 전부 스스로 했거든요. 홀로서기를 하기 위해 열심히 움직이는 모습을 보니까 남편으로서는 조심스럽게 돕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항상 주장하는 게 저는 아르바이트라는 점입니다.(웃음) 사장은 소영 씨예요. 그렇게 본인만의 공간과 새로운 커리어를 만들어가는 모습을 응원하고 있어요. 잘 해나가는 모습이 참 뿌듯하고 그래요.

 

“언젠가 ‘김소영 남편 오상진’이라는 기사를 보고 싶네요. 모쪼록, 아내의 건승을 빕니다.”(233쪽)라고 쓰셨죠.


네, 반쯤은 맞고요. 반쯤은 그냥 하는 말이에요.(웃음) 일단 누구의 아내, 누구의 남편이 아니라 각자 홀로서기가 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해야죠. 사실 그렇잖아요. 결혼이라는 것이 남자보다 여자에게 더 큰 결정이라고 많이 생각하는데요. 현실적인 인식, 사회적인 면을 나 혼자 바꿀 수는 없는 것이고, 그런 부분에서 많이 고민을 하게 되더라고요. 결혼을 해보니까 나는 참 모르는 어려움이 있었구나, 하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여성들이 겪는 어려움이 있더라고요. 남편이 아니라 그냥 선배, 후배였으면 그냥 힘들겠다, 잘해봐라, 라고 했겠지만 아내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니까 여성들이 겪는 어려움들을 더 많이 알게 됐어요. 관련된 책도 읽게 되고요. 그러면서 또 많이 배웠죠.

 

여성의 어려움에 대해서라면 특별히 결혼 이후에 생긴 관심사인가요?


결혼 전에도 나름의 평등에 대한 인식은 있었는데요. 이제는 그것을 완전히 나의 이야기처럼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거죠. 아내가 생기니까 그렇더라고요.

 

조금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주실 수 있을까요? 어떤 부분이 힘들어 보이던가요?


책에도 썼는데요. 편하게 외출했을 때 저는 지나가는 분들과 편하게 사진도 찍고 그러거든요. 그런데 여자 방송인들은 힘들죠. 여성분들도 여성 방송인들의 외모 열심히 보잖아요. 평가도 하고요. 단편적인 예로 그런 거고요. 아내는 신혼여행에 가서도 그런 것 때문에 신경을 많이 쓰더라고요. 제가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이었는데 남편이 되니까 보이기 시작했어요. 너무 무심했구나, 싶어서 미안하기도 했고요. 좀 더 아내의 입장, 여성의 입장에서 많은 이슈를 생각해야겠다, 했어요.

 

『처음 읽는 여성 세계사』와 같은 책을 읽은 것도 그 연장선이군요?


저도 배우는 과정이고, 아직 결론에 도달한 것은 아니에요. 『처음 읽는 여성 세계사』도 재미있었는데요. 현재의 관점과 다른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 제가 주로 생각하는 부분이거든요. 그밖에 『나쁜 페미니스트』『맨 박스』  같은 책들도 흥미롭게 읽었어요. 요즘 관련한 책이 워낙 많잖아요. 읽고 있는 중이에요. 공부하는 중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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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많이 생각해요


책 속의 오상진 씨는 ‘완벽해 보이는’ 쪽보다 ‘행복한’ 쪽에 더 중심을 두려는 모습이 있어요. 


저 대학에 가면 행복하겠지, 저것을 가지면 되게 좋겠지, 저 자리에 올라가면 좋겠지, 라는 생각을 하잖아요. 사실 저도 대부분의 인생을 그렇게 보냈는데요. 제가 내년이면 마흔이거든요. 지금 보니까 어떤 이상적인 것을 만들어놓고 그 틀에 나를 맞추는 것보다는 그냥 살면서 느끼는 여러 가지 감정들에 충실하고, 진짜 이것이 내가 원하는 것인지에 대한 해답을 끊임없이 찾아가는 것이 행복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이가 들면서 이런 교훈을 서서히 얻었던 것 같긴 한데요. 요즘은 행복에 대해 굉장히 많이 생각하는 것 같아요. 책 안에서도 그랬던 것이 일기를 쓰면서 하루를 돌아보다 보니까요. 어제보다 나은 오늘,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만들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를 생각하면서 행복에 가까이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책을 쓰면서 정말 많이 생각했어요. 그러면서 아직 정확히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내 행복에 대해서 조금씩 윤곽을 만들어가고 있지 않나 생각해요.

 

많은 분들이 공감하는 생각일 거예요. ‘소확행(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랄까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같은 말들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잖아요.


책에도 썼지만 한국 사회가 지나치게 경직된 면이 있는 것 같은데요. 저는 현재 뭔가를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고 봐요. 산업사회에서 지식 정보의 사회로 넘어가면서 생기는 특징이기도 할 텐데요. 집단적인 사고보다는 개인의 사고 쪽으로 가고 있잖아요. 균형을 맞춰가는 시기라고 생각하고요. 과거에는 개인이 희생해서라도 성과를 내고, 거기에서 개인도 보람을 느끼기도 했지만요. 지금에 와서는 관점이 변화하다보니까 일과 삶의 균형도 찾아가고, 자신의 행복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탕진잼’ 같은 것도(웃음) 하면서 하루의 행복을 찾아보는 거고요. 그런 변화의 과정이 지금 존재한다고 생각하고요. 저도 그 안에 있다고 보고 있어요. 앞으로 또 어떤 변화가 있을지 궁금해 하고 있고요.

 

독서일기도 여러 편 되잖아요. 『한국이 싫어서』 , 『신경 끄기의 기술』과 같은 베스트셀러도 눈에 띄고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자서전 『영화를 찍으며 생각한 것』 도 있었어요. 요즘도 책을 많이 읽으시죠?


책을 읽고는 있어요. 지금은 책 마무리 작업에, 관련 행사도 많고 그래서 조금 소홀히 하고 있는 건 사실인데요. 꾸준히 읽고는 있죠. 하지만 추천은 안 하고 있어요. 열심히 제 책 홍보해주시는 분들이 계신데 제가 남의 책 홍보하기는 좀 그렇잖아요.(웃음) 목록을 모아두고 있는 중이에요.

 

『총, 균, 쇠』도 언급이 됐고요. 분야도 안 가리시는 편인가 봐요.


네, 광범위하게 읽는 편이에요. 이슈가 되는 책은 웬만해서는 다 봐요. 지금 태영호 씨 책이 화제잖아요. 너무 읽고 싶은데 아직 못 읽고 있어요. 게다가 요즘은 소영 씨가 책방을 하니까 입고 대기 되어 있는 책도 보게 돼요. 그런 책들도 쌓아두고 한두 시간 씩 읽고 그러죠. 심지어 요즘은 서평 의뢰도 많이 들어오거든요. 아예 출간 전에 제본만 된 상태로도 받아보기도 하고 그런데요. 다양한 경로로 책을 접하고 있어요. 사실 예전에도 그냥 틈나면 서점에 가서 책 보고 그랬어요. 매일 갈 데 없으면 한 번 씩 서점에 꼭 들르고 했어요. 그렇게 구입하기도 하고요. 참새가 방앗간 들르듯 온 김에 가자, 하고 서점에 가곤 했죠.

 

김소영 씨와 함께 출연한 <신혼일기>에서도 두 분 나란히 책 읽는 모습이 많이 나왔었죠.


저희가 모범 답안은 아니겠죠. 이런 모습이 있으면 저런 모습도 있을 테고요. 그게 저희 사는 모습인데요. 각자 따로 책도 보지만 서로의 책도 돌려 보고, 읽은 책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생각이 다르면 토론도 해보고 해요. 그게 좋아요. 저희 둘 다 그런 과정을 즐기는 사람들이거든요. 제가 느꼈던 재미와 소영 씨가 느낀 재미가 다르기도 하고, 그런 것들을 발견하면서 대화를 또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아서 좋아요. 소영 씨와는 그런 면이 잘 맞는 게 아닌가 싶어요.

 

책 외에 같이 공유하고 있는 관심사가 있나요?


사실 지금은 둘 다 너무 바빠서요. 취미를 함께 나누고 있는 건 많지 않고요. 둘이 앉아서 하루 일과를 정리하는 대화를 하루 30분 이상은 꼭 하려고 해요. 늦더라도 저녁에는 꼭 대화를 하죠.

 

특별히 이 책을 어떤 분들이 읽어주었으면, 하세요?


이 책을 보시면서 나는 이날 이런 일이 있었지, 하면서 각자의 생각도 해보게 될 것 같아요. 그것도 어떻게 보면 이 책의 의미가 되지 않을까 싶고요. 아무래도 신혼이신 분들이 읽어주시면 좋겠어요. 저와 비슷한 또래의, 결혼을 방금 했거나 곧 할 예정인 분들이 봤으면 좋겠고요. 특별히 남자 분들이 읽어주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가볍게 읽고, 함께 읽고, 얘기도 해보고 이 책을 둘의 화제로 올려도 좋을 것 같아요.


 

 

당신과 함께라면 말이야오상진 저 | 달
두 사람을 관통해온 안팎의 여러 사건들을 겪으며 서로가 서로에게 어떻게 의지가 되고 힘이 되어주었는지, 더욱 단단해질 수 있었던 사랑과 신뢰의 마음을 짐작해보고도 남게 한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로버트 파우저 “인류는 무슨 이유로 외국어를 배우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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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가 여행을 떠난다. 발이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지만 언어는 더 멀리 가고 또 가 지구를 몇 바퀴나 돈다. 그 언어의 여행이 꿈 같은 크루즈 여행이나 느긋한 리조트의 휴식 같은 것이었으면 좋았겠지만 불행히도 그렇지 못했다. 언어의 여행은 어떤 점에서는 폭력이었으며 어떤 점에서는 전쟁이었다.

 

외국어는 권력을 위해 전파되었다. 종교와 같이 전파되었고, 제국주의와 같이 퍼져 나갔다. 때로는 국가의 통합을 위해서 이용되었고, 식민지 통치를 위해 쓰이기도 했다. 언어라는 것은 그렇게 낭만과는 거리가 먼 방법으로 전파되어 갔다.

 

한국에도 마찬가지였다. 중국의 한자는 오랜 세월 우리 문화에 영향을 끼쳤고, 일본어는 우리 말을 없애고 그 자리를 차지하려 했다. 지금은 어떤가? 모두가 자발적으로 영어를 배우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왜 이런 일들이 일어났는지 『외국어 전파담』이 말해주고 있다. 우리가 늘 쓰고 있는 말인 ‘국어’라는 것부터 못하면 경쟁력이 떨어질 것 같은 외국어들이 어떤 이유로 우리의 삶에 들어오게 됐는지를 상세하게 설명해 주고 있는 것이다. 언어를 알면 그 속의 역사와 문화가 보인다. 그렇다면 외국어가 전파된 길과 방법을 알면 무엇이 보일까? 로버트 파우저 교수의 이야기를 통해 그 궁금증을 풀어 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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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어 전파, 우리는 왜 궁금해야 하는가

 

『외국어 전파담』은 어떤 책인가요?

 

외국어라는 것이 어떻게 형성됐는지, 어떻게 세계적으로 전파됐는지에 대한 문화적 배경을 풀어본 책입니다. 내용의 핵심은 이런 것입니다. 르네상스 시대에 교역이 시작되고 국가도 형성되었잖아요? 그 과정에서 라틴어와 같은 큰 문명어 대신에 국어라는 개념이 만들어지게 되었는데, 자국어를 남에게 가르칠 때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반대로 외국어가 되죠. 결국 외국어라는 것은 국가 형성, 제국주의와 같은 것을 통해서 전파되어 나가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고, 『외국어 전파담』은 이런 현상을 소개한 책입니다.

 

‘문명어’라는 개념이 생소합니다. 문명어의 의미를 소개해 주시겠어요?


서양의 라틴어나 동양의 한문, 중동의 아랍어처럼 성서나 사상을 담고 전파시킨 언어로서 문명의 기초가 되는 언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언어들은 힘이 있기 때문에 국가가 형성되기 전까지는 문명어가 상당히 많은 문화권에 영향력을 발휘했습니다. 

 

제일 먼저 드는 의문이 하나 있습니다. 언어가 누구에 의해서 어떻게 전파되었는지에 대해 왜 궁금해해야 할까요?


한국 사람들은 영어를 필수로 배우죠. 그렇다면 한국 사람은 왜 영어를 필수로 배우는지 알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 사람은 의식 못할 지 모르지만 저 같은 사람은 한국에 왜 이렇게 알파벳이 어디에나 주위에 많이 써 있는지, 왜 영어가 한국에 많이 들어왔는지 궁금합니다. 즉 우리의 일상에 자신의 언어 외에 다른 말들이 왜 들어와 있는지 이해하기 위해서 외국어의 전파 과정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한국어 속의 일본어라든가 일제 시대의 상처, 억압과 같은 것도 일종의 외국어 전파라고 할 수 있죠. 침략자 입장에서요. 그런 현상들도 외국어 전파 과정을 통해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국에 사는 사람들이라면 한자의 영향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라틴어가 서구 문명에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지는 쉽게 와닿지 않는데요, 어느 정도라고 이해하면 될까요?


한문보다는 조금 더 일찍 사라졌다고 봐야겠지만 오랫동안 과학계와 법조계에 영향을 미쳤고, 지금도 프랑스의 경우는 필수로 배우고 있습니다. 독일의 경우에도 아직 많이 공부하고 있고 심지어는 미국에서도 대학에서 배우는 외국어 중 다섯 번째나 됩니다.

 

생각보다 순위가 상당히 높네요.


그건 문화적인 이유 때문이라고 볼 수 있죠. 라틴어는 오랫동안 지속적인 영향력을 갖고 있었는데, 16세기 이후 국가가 형성되기 시작하면서 영국, 프랑스, 스페인은 자국어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독일은 많은 국가로 분산되어 있었기 때문에 독일어권은 오랫동안 라틴어를 썼고요. 그리고 교황청이 있는 바티칸 시티는 지금도 라틴어를 사용합니다. 물론 지금은 라틴어를 사용하는 나라가 없고, 영향력도 없지만 교양으로 배우는 나라는 여전히 많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라틴어를 배우면 어휘력이 늘어나고 문법의 이해력을 높이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학문을 한다면 당연히 공부해야하는 언어이고요.

 

 

외국어의 전파는 곧 권력과 종교의 전파

 

책에서 언어의 전파가 권력과 관계가 깊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특히 중세 이전에는 종교의 전파와 언어의 전파가 깊은 관련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은 굉장히 오랫동안 외국어의 전파는 종교를 전파하기 위한 것이었고, 더 구체적으로 설교를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종교에 있어 언어의 전파는 매우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서양의 제국주의가 아메리카 대륙이나 아프리카 대륙으로 진출할 때는 항상 선교사가 따라갔죠. 아시아도 마찬가지고요. 선교사의 일은 현지인에게 설교를 하는 것인데요, 선교사가 하는 그 말은 현지인에게 외국어겠죠. 선교사는 현지인의 말을 배우게 됩니다. 그래서 종교의 전파와 외국어의 전파는 굉장히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외국어 전파는 종교를 빼고는 설명하기가 어렵겠네요.


일본의 경우도 명치유신을 통해 새로운 국가를 만들기 위해 서구 문물을 받아들이게 됐지만 처음에 외국어가 들어간 것은 포르투갈 선교사에 의해서였어요. 한국도 마찬가지로 처음 영어가 들어온 것은 국가적 차원이 아니라 선교사를 통해서 들어왔죠. 물론 선교사 중에서는 제국주의에 대해 반감이 있는 사람도 있었고, 반대로 제국주의와 손을 잡은 사람도 있었지만 어쨌든 선교사에게는 종교의 전파가 더 중요하기 때문에 목적은 다르더라도 제국주의와 종교는 같은 배를 타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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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라는 것은 권력의 통치 수단


한국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국어라는 개념에 대해 특별할 것 없이 당연히 배우고 쓰는 것으로 생각할 겁니다. 하지만 자국어라는 개념은 당연히 배우고 쓴 것이 아니라 국가가 전략적으로 만들고 교육시켰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국가를 만들면 통치를 해야 되잖아요. 국가 형성이라는 것은 왕권을 확립하고 중앙집권화 시키면서 통치를 해야 되는 것인데 그 때 국민을 통합하기 위한 수단이 필요하게 됩니다. 그게 바로 언어죠. 통치를 쉽게 하기 위해 통합된 언어가 필요한데요, 그것을 정리해서 자국어로 만드는 것입니다. 프랑스와 스페인이 그렇게 했고, 영국도 간접적으로 했습니다. 영국은 조금 재미있는 사례인데요, 간접적으로 하기는 했지만 영국도 웨일즈라든가 스코틀랜드의 언어를 없애고 영어가 헤게모니를 갖게 되었죠. 결국 하나의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 공통어가 필요하고 그 국가의 영토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가 이것이다라는 개념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한국에 사는 사람이 알고 있는 국어의 개념과 달리 유럽은 국어를 일부러 만들고 이용했다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물론 공교육은 19세기 후반부터 시작됐지만, 그래도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표준 사전도 만들고 문법도 만들고 법도 그 나라 언어로 하는 식으로 점차 국어가 형성이 되어 갔습니다. 한국에서도 그런 현상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예가 19세기만 해도 한국에서 쓰는 말은 다 한국어였지만 문자는 한문이었잖아요. 그래서 한글을 쓰자고 하는 것이 유럽의 국어 형성과 어떻게 보면 비슷한 현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물론 한글을 쓰는 것이 일제침략기를 거치면서 민족주의적인 시각도 개입이 되었지만 한글을 쓰는 것은 국가의 형성과 개혁, 통치와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중국의 그늘에서 탈출하기 위한 움직임이라는 점에서도 유럽과 아주 똑같지는 않지만 비슷한 사례라고 할 수 있죠. 국가 통합을 위해서는 같은 언어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영어의 형성 과정이 다른 유럽의 언어와는 어떤 차이점이 있나요?


문법도 정리하고 사전도 편찬하는 것과 같은 과정은 영어도 프랑스어나 스페인어하고 비슷한 과정을 거쳤는데요, 영국과 같은 경우는 주로 민간 단체나 사설 출판사와 같이 사회에서 주도한 것이 달랐습니다. 스페인과 프랑스는 왕실, 즉 국가가 주도했다면 영국은 민간과 같이 간접적으로 국어 형성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영국은 법적으로 지정되어 있는 국어가 없어요. 미국도 없고요. 그러니까 법적으로 이 말이 우리의 국어다라는 조항이 프랑스 헌법에는 나와요. 그런데 영국에는 그런 것이 없죠.

 

영국만 그렇게 국어 형성 과정이 달랐던 이유가 있을까요?


아마도 왕권을 경계했던 역사와 관련이 있지 않을 까요? 마그나카르타를 통해서 왕권을 경계했고, 크롬웰과 같은 인물이 왕권을 타도하기도 했잖아요. 그래서 영국의 왕권이 스페인이나 프랑스와는 달랐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이긴 후 영국의 해군력이 유럽 최강이 되면서 무역의 규모를 팽창시켰는데요, 그 때 영국 부유층의 영향력이 커져 민간 주도적으로 국어를 형성시켰다고 봅니다. 물론 선교사 활동도 무시할 수 없고요.

 

 

동아시아의 외국어 전파담


동아시아에서 중국과 한자의 영향력이 강력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한국이나 일본, 그리고 베트남과 같은 나라들은 자국의 언어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문자 역시 자신들만의 것을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외국어 전파의 관점에서 볼 때 이런 것은 유럽과 달랐던 것 같은데요, 왜 그랬을까요?


아무래도 말과 문자가 너무도 달랐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문자가 자생적으로 생긴 것이죠. 표현을 하고 싶은 것은 많은데 한자라는 문자는 표의문자이기 때문에 한계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언어학적으로 중국어는 ‘고립어’라고 해요. 그러니까 어미가 없는 언어죠. 한자로 나란히 표기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예를 들어 ‘했다’, ‘했겠죠’, ‘했어요’와 같이 어미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는 것을 표현하지 않고 문자를 나란히 연결시키면서 문자가 각각 의미를 갖는 방식의 고립어입니다. 그래서 한자를 그대로 외국에서 쓰기에는 자국어와 맞지 않았던 측면이 있었던 것이었죠. 어쨌든 한자의 영향을 받은 세 나라가 중국어의 영향은 받지 않으면서 모두 독립적으로 자신들의 문자를 사용한다는 것은 재미있는 현상입니다.

 

중국이라는 강력한 문화권의 영향을 받았고 또 한자의 영향은 받았지만 언어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것에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역사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조선은 ‘소중화’ 즉 중국에 사대라는 전략을 선택했고, 일본은 섬이고 베트남은 남쪽에 있었기 때문에 물리적인 거리가 있었습니다. 즉 조선은 중국에 가까이 있지만 사대라는 전략을 선택했기 때문에 중국에 흡수되지 않았다고 봅니다. 지금은 사대주의를 나쁜 의미로 쓰고 있지만 중국이 확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만주족이 사라진 것과 같은 과정을 밟았을 수도 있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한반도의 문명이 그대로 남아있게 된 것은 전략적으로 성공한 것입니다.

 

언어 하나만 가지고도 재미있는 역사 공부가 되네요. (웃음)


저도 쓸 내용이 너무 방대하다보니 어떤 때는 여러 가지 충돌이 일어나서 생각이 너무 많았어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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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가 권력과 만났을 때, 언어가 힘에 의해 전파되었을 때

 

외국어 전파가 권력에 의해 이용된 대표적인 사례가 제국주의일 텐데요, 아메리카나 아프리카는 물론 아시아에도 식민지가 있었죠. 제국주의자들은 언어를 어떻게 전파 시켰나요?


각각의 제국주의는 성격이 조금씩은 달랐지만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배를 타고 어디론가 가서 누군가를 만나겠죠. 그것이 원주민일 것이고요. 하지만 유럽은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널 만큼의 힘과 기술이 있었죠. 총도 있고, 군사력도 많이 가지고 있고요. 그래서 원주민과 충돌이 일어나면 지배를 합니다. 물론 충돌에 대한 해결책은 조금씩 달라요. 스페인 같은 경우에는 그냥 전쟁을 하고, 영국은 민간 차원에서 갔기 때문에 충돌이 좀 적었고, 프랑스는 오히려 사람을 많이 보내지 않고 무역하는 사람하고 선교사만 보냈기 때문에 충돌이 덜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를 만났다는 것은 공통점이죠. 원주민들은 기술적, 군사적으로 약자의 입장이었기 때문에 강자가 약자를 만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 강자가 자기의 힘을 이용해서 약자를 자기 뜻대로 했던 것이 아픈 역사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흔적이 언어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제국이 식민지를 건설할 때 언어를 전파시킨 것은 관리의 목적도 있겠지만 민족성을 말살하려는 의도도 있다고 했는데요, 한국도 그런 점에서는 경험이 있어서 잘 알고 있죠. 외국어의 전파 과정에서 이런 차이는 왜 일어나는 것인가요?


정말 재미있는 질문입니다. 예를 들어 민족 말살 정책은 영국이 아일랜드에서 실제로 했습니다. 완전히 영어화 했죠. 원래 아일랜드에는 아일랜드어가 따로 있었지만 지금은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똑 같은 식민지 정책에 있어 영국이 인도에서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같은 식으로 일본은 언어를 없애려는 정책을 조선에서는 강력하게 했지만 대만에서는 좀 덜 했습니다. 그 차이는 통치에 대한 위협이 있는지 없는지, 그리고 본국에서 지리적으로 가까운 지 먼 지에 따라 달라졌던 것입니다. 본국에 흡수하고 싶은 지 아닌지 에서도 차이가 났습니다. 챙길 것만 챙기고 느슨하게 통치할 목적인가 아닌가에 따라 다른 정책을 편 것입니다. 일본도 조선을 일본의 일부로 만들려고 했기 때문에 언어 말살 정책을 편 것입니다.

 

당시 일본은 대동아공영권이라는 것을 주장했죠.


네, 그래서 완전히 문화를 없애려고 한 것입니다. 지리적으로 멀다면 대응이 달라졌을 것입니다.러시아도 그런 점에서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일률적으로 똑같이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영국의 인도 지배는 인도인을 공무원도 시키는 식으로 느슨했던 반면 아일랜드에서는 아주 가혹했습니다.

 

한국도 비슷한 경험을 했기 때문에 이해가 빨리 가네요.


그래서 일본은 조선에서 친일파를 만들기 위해 노력을 했고, 친일파는 조선을 일본어화 시키려고 노력을 한 겁니다. 지금 우리가 있는 자리도 경성제국대학이 있던 자리잖아요? (인터뷰는 옛 서울대학교 자리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이루어졌다=담당자 주) 경성제국대학을 왜 만들었습니까? 친일 지배계층을 만들기 위해서였습니다. 경성제국대학은 일본어로만 공부를 하는 학교였습니다. 조선어학과는 외국어였죠.

 

조선인을 교육시키기 위한 학교가 아니었다는 말씀이시죠?


조선인을 일본인화 시키는 교육기관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조선인들에게는 일본과 똑 같은 제국대학이 조선에도 있다고 홍보를 했습니다. 그러면 마치 본국과 대등한 관계로 만들어준 것처럼 보이는 것이죠. 대접해 주는 것 같지만 문화적 흡수일 뿐입니다. 그 문제도 한국에 깊은 반일 감정이 생기게 만든 한 요인입니다.

 

우리가 지금 일본이 조선을 말살하려고 했던 그 역사적 현장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이네요.


여기가 경성제국대학의 본부였습니다. (웃음)

 

외국어 전파라는 측면에서 어쩌면 한국은 여러 가지 연구할 것들이 많아 보입니다.


그래서 이 책을 한국어로 쓴 것입니다. 독자층의 의식도 높고요. (웃음)

 

그 점도 궁금했어요. 아무래도 영어로 쓰는 것이 편하실 텐데, 한국어로 책을 쓰겠다고 결정하기까지 고민은 없으셨나요?


그것보다도 속도가 문제였어요. 쓰다가 힘들고 답답할 때는 그냥 영어로 쓰면 쉽게 썼을 텐데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물론 영어로 쓰면 좀 더 화려한 표현을 쓸 수 있었겠지만 화려한 표현에 대한 필요성이 없었기 때문에 문제는 없었습니다.

 

책 자체는 한국인이 쓴 것 같았습니다. 외국인이 한국어로 썼다거나 번역서 같은 느낌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물론 편집자가 고치기는 했습니다. (웃음)

 

앞으로 외국어 전파는 어떤 식으로 이루어질 것이라 생각하시나요?


외국어는 앞으로 취미로 배울 가능성이 높아요. AI를 이용하여 쉽게 외국어의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시대가 오면 앞으로 외국어를 배우는 의미는 많이 달라질 거예요. 그러면 지금처럼 실용적인 목적으로 외국어를 배울 이유가 사라지기 때문에 큰 동기부여가 없다면 외국어를 배울 일은 없을 것입니다.

 

외국어 전파의 개념도 AI로 인해 상당한 변화가 올 수 있다는 말이네요.


상당히 달라지죠. 예를 들어 대학원 과정에서 원서를 읽는다고 했을 때 클릭 한 번으로 번역이 된다면 원서를 읽을 필요가 없어지게 되잖아요. 그래서 외국어는 재미로 공부하거나 개인적으로 특별히 소통하고 싶거나 할 때나 공부하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토익 같은 시험도 없어지지 않을까요? 과거의 산물이 될 수도 있는 거죠. 할 일도 많은데 영어를 읽을 필요가 없는 분야까지 무리해서 외국어를 시키는 것은 넌센스잖아요.

 

선생님은 평소에 제일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설마 외국어 공부할 때 제일 재미있는 건 아니시죠?


그럴 수도 있어요. (웃음) 제일 재미있는 것은 도시 답사예요. 도시 답사를 해도 외국어를 많이 보게 됩니다. 사진도 찍고요. 외국어 연습할 기회도 되고요.

 

『외국어 전파담』을 읽는 독자들에게 한 마디 해 주신다면요.


지구가 좁아진 것처럼 느끼는 글로벌 시대에 영어는 컴퓨터 운영체제 같은 역할을 하는 언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통해서 외국어나 영어에 대해서 새롭게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외국어에 대한 약간의 문제 의식을 갖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초등학교 1학년부터 영어 교육을 의무화하자고 주장한다면 그냥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정말 필요한 것인가, 효과적인 것인가, 우리 언어에 어떤 영향은 없는가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외국어 전파담로버트 파우저 저 | 혜화1117
단지 지난 역사의 나열이 아닌, 앞으로 우리가 언어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언어는 왜 중요한가에 대해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중석 “바람 쐬고 오면 더 잘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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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쌓여있는데, 만사태평인 누군가가 밖에 나가 놀자고 꾄다면 당신의 선택은? 김중석 작가의 그림책 『나오니까 좋다』는 특별할 것 없는 하룻밤 캠핑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뭐든지 어설픈 고릴라와 툭툭 신경질을 내면서도 고릴라의 곁을 살뜰히 지키는 고슴도치. 마치 우리 아빠, 엄마를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다가, 문득 밖으로 나가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그림책 속 고릴라는 코를 후비다 “날씨가 좋다”며 일이 많은 고슴도치에게 캠핑을 가자고 부추긴다. “바람 쐬고 오면 더 잘될 거야”라고 고릴라의 말에 고슴도치는 잠깐 고민한 후 따라 나선다. 막히는 도로를 달리며 고릴라는 “나오니까 좋다”고 말하고, 고슴도치는 “집에 가고 싶다”고 투덜댄다. 가는 내내 티격티격하다가 마침내 도착한 숲 속. 모습도 성격도 정반대인 두 주인공은 과연 무사히 캠핑을 마칠 수 있을까?

 

그림책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전시 기획자로 활동하고 있는 김중석 작가는 오랜만에 만든 그림책을 앞에 두고 “책 쓰니까 좋다”고 말했다. 그림책 수업, 전시 기획 등으로 쉴 틈 없이 바쁘게 지내다가도 문득문득 떠올랐던 왠지 동질감이 느껴졌던 캐릭터 ‘고릴라’. 우여곡절 끝에 『나오니까 좋다』로 고릴라에게 안부를 전한 날, 작가의 후배는 작품 속 고릴라와 고슴도치를 똑 닮은 인형을 선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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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렁술렁 읽어도 괜찮은 그림책

 

『나오니까 좋다』 , 표지만 봐도 기분이 좋아지는 그림책입니다.

 

제목이 특히 좋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웃음)

 

정말 어딘가 나가야 할 것 같고요.


제목이 빨리 나온 책이에요. 예전에 혼자 전시회를 준비하면서 에코백을 만들었는데요. ‘나오니까 좋다’라는 문구를 무심히 썼는데, 나중에 보니까 제목으로 괜찮겠다 싶더라고요. 제목을 마지막에 정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일찌감치 정해졌어요.

 

오래 전에 계약하셨던 작품으로 들었어요.


햇수로는 4년이 걸린 것 같아요. 제가 그림책 작업을 전집으로 시작했거든요. 동물이 주인공인 책이 있었는데 그 중 고슴고치도 있고 고릴라도 있었어요. 그림책 디렉팅을 하시는 분이 고릴라 그림이 좋다고 하시길래 사무실에 고릴라를 붙여 놓았었는데요. 어느 날 사무실에 들른 편집자분이  “고릴라를 주인공으로 그림책을 만들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주셨어요. 처음엔 고릴라가 꽃집을 하는 이야기를 생각했어요. 외모는 거칠어보이지만 마음은 여린 고릴라 이야기. 그런데 그 사이에 그 편집자는 퇴사를 하셨고. (웃음) 원고는 오래 묵혀 있다가 이제 빛을 보게 되었어요.

 

이 책은 고릴라와 고슴도치가 캠핑을 떠나는 이야기인데요.


일본 책 중에 고릴라가 빵집을 하는 이야기가 있더라고요. 서사가 다르긴 하지만 구조가 비슷할 수 있어서, 새로운 이야기를 찾다가 캠핑으로 소재를 잡았어요.

 

평소 캠핑을 즐기세요?


아이들이 어릴 때 많이 다녔어요. 저는 고릴라랑 비슷해요. 일을 벌리는 걸 좋아해요. (웃음)

 

그림책 치고 서두(?)가 좀 길어요. 본문에 들어가기 위한 일종의 장치일 텐데, 꽤 재밌습니다.


호흡을 천천히 해도 좋을 것 같았어요. 전체 줄거리를 설명하는 약간의 암시인데요. 편집자와 상의하다가 나온 아이디어죠. 여백의 미가 있는 책이에요. 글밥도 많지 않고요. 술렁술렁 읽어도 괜찮은 그림책입니다.

 

왠지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셨을 것 같기도 해요.


더미북을 완성한 건 작년 초였어요. 채색을 해야 하는데 바빠서 못하고 있었는데요 이번 겨울에 일주일 동안 제주도에 갈 일이 있었어요. 오랜만에 혼자 있으니까 너무 좋더라고요. 제주도에 그림책을 연구하는 분이 계신데, 이분이 함께하는 모임에 에어비앤비를 하는 회원이 계시더라고요. 소개를 받아서 그곳에서 채색을 했어요. 장소가 좋아서인지 금세 그렸어요. 원래 그림을 좀 빨리 그리는 편이기도 하고요.

 

그리면서 힘들었던 장면은 없었나요?


밤이 되어 고릴라와 고슴도치가 차를 마시는 그림이 있는데, 중요한 장면이라서 고민을 많이 했죠. 원래는 ‘나오니까 좋다’라고 대사를 쓰려다 나중에 빼 버렸어요. 이 장면은 그냥 그림만으로도 충분할 것 같아서요.

 

글자가 말풍선처럼 날아가는 느낌이라 재밌더라고요. 작가님 글씨도 예쁘고요.


글자 부분이 재밌다는 분들이 꽤 있었어요.

 

선호하는 재료가 있나요?


오일 파스텔을 자주 써요. 이번 작품에는 연필, 크레용, 잉크도 썼는데요. 오일 파스텔이 특히 색이 예쁘게 나왔어요. 하지만 섬세한 표현을 하려면 여러 도구를 잘 사용하는 게 좋아요.

 

고릴라가 고슴도치에게 저녁으로 카레라이스를 만들어주잖아요. 왜 하필 카레였을까요?

 

음식을 그렸을 때 시각적으로 예쁠 것 같았어요. 고기를 굽는 장면도 생각해보았는데, 고기를 굽긴 좀 숲에게 미안하고. 숲이랑 잘 어울리는 메뉴를 생각하다가 쉽게 해먹을 수 있는 카레를 생각했어요.

 

뱀 두세 마리가 계속 두 주인공을 따라다녀요.


숲 속 친구들 개념으로 그렸는데 무섭다는 분도 계시더라고요. (웃음) 사실 처음에 스토리를 짤 때, 고릴라와 고슴도치가 잠들면 뱀들이 나와 자기들만의 캠핑을 즐긴다는 이야기가 있었어요. 나중에 생각해보니 이야기가 좀 흩어질 것 같아서 숲 속 친구들 정도로만 그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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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가 못 되더라도 일상은 잘 유지하자

 

일러스트레이터이자 그림책 작가, 전시 기획자로도 활동 중이세요. 하나의 타이틀만 고른다면 첫 번째는 그림책 작가일까요?


원고 청탁이 왔는데 하나의 직업을 쓰라고 하면, 그림책 작가로 쓰죠. 그런데 글, 그림을 같이 한 작품이 너무 오랜만에 나온 거라서요. (웃음) 이제는 좀 자신있게 써도 되겠다는 마음이 들어 되게 후련해요.

 

강연, 전시 등의 일정이 많으시죠?


기획 쪽 일이 좀 많아요. 작년부터 순천 할머니들과 그림책 수업 ‘내 인생 그림일기 만들기’를 하고 있는데요. 올해 3월에 전시회를 했는데 반응이 매우 좋았어요. 곧 남해의봄날에서 책이 나올 예정이에요. 지금도 매주 순천을 가서 할머니들과 수업을 하는데, 가는 데만 3시간이 걸려요. (웃음) 그래도 참 좋고요. 할머니들의 그림 실력이 정말 일취월장 하고 있어서 저도 매번 놀라는 중이에요.

 

기사를 본 적 있어요. 할머니들의 그림이 굉장히 통일성이 있으면서도 섬세하더라고요.


전시회 때 700부가 팔릴 정도로 인기가 좋았는데요. 그림을 전문적으로 그리는 분들이 특히 더 놀라시더라고요. 우리 같은 경우 그림에 대한 고정관념이 너무 많이 생긴 거예요. 할머니들의 작품을 보면서 왜 우린 이런 게 안되지? 생각했어요. 그림은 꼭 많은 걸 알아야 잘 그리는 게 아닌 것 같아요.

 

작년에 쓰신 에세이 『잘 그리지도 못하면서』를 읽었는데요. 만화 대사 중에 이런 문장이 나오더라고요. “나는 예술가가 아니고 가장이야.” 지금도 같은 생각이신가요?


물론이죠. 저는 예술가라는 자의식이 좀 부족한 것 같아요. 학교 다닐 때도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하면서 자기의 일상은 잘 유지하지 못하는 사람이 싫더라고요. 예술가가 못 되더라도 일상은 잘 유지하자, 그런 주의예요.

 

그림책 작업은 어떤 계기로 하게 되셨나요?


대학 때 추상미술을 주로 그렸는데요. 졸업한 후에는 그래픽디자인을 하고 대학에서 강사 일도 했어요. 그러다 북디자인에 관심이 생겨서 2002년에 서울에 올라와서 출판사 일을 하게 됐어요. 전집 삽화를 그리다가 서른 일곱 살쯤인가 회사를 그만 두고 개인 작업을 시작했죠. 전시 기획도 하고 글도 쓰면서요.

 

요즘 눈에 띄게 그림책을 좋아하는 독자들이 느는 것 같아요. 체감하시나요?


종종 느껴요. 지역 도서관이나 동네책방 등 그림책 수업을 하는 곳이 많이 늘고 있고요. 저도 최근까지 파주 땅콩문고에서 그림책 수업을 했는데요. 수강생들을 보면 처음엔 열심히 그리다가 나중엔 재밌는 그림을 그려요. 재료를 여러 가지 드리면 많이 흥미로워 해요. 식물 그리기도 하고, 동물 그리기도 하고 소재를 다양하게 그려요. 사물과 똑같이 그려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리면 훨씬 멋진 그림을 그릴 수 있어요.

 

예전에 드로잉 수업을 들으러 갔는데, 초코파이부터 그리니까 영 재미가 없더라고요.


(웃음) 저는 연필로 스케치를 하지 않고 바로 그리도록 하는데요. 그림책 수업을 들을 정도면 기본적으로 그림에 흥미가 있는 분들이잖아요? 초보적인 단계부터 시작하면 흥미를 오래 못 갖더라고요.

 

작가님이 가장 좋아하는 소재는 무엇인가요?


풍경 그리는 거 좋아하고요. 아내의 말로는 동물과 풍경을 잘 그린대요.

 

동료 작가들의 전시 기획은 어떤 계기로 하게 되셨나요?


파주에서 매해 어린이 책잔치를 하는데요. 전시회를 열었다가 얼결에 기획도 하게 되었어요. 하나의 책으로 집을 만드는 전시인데요. 책으로 볼 때랑은 다르게 입체적으로 장면을 볼 수 있어서 아이들이 상당히 좋아해요.

 

『나오니까 좋다』 를 어떻게 읽으면 더 재밌을까요?


부모와 아이가 읽는다면 서로 역할 놀이를 하면서 읽으면 좋을 것 같아요. 이 작품은 대화로 이뤄진 책이니까 딱딱하게 글을 읽기 보다는 연기를 하면서 보면 재밌을 것 같아요.

 

최근에 인상 깊게 본 그림책이 있나요?


릴리아 작가의 『파랑 오리』라는 작품을 읽었는데요. 전시를 같이 하면서 알게 된 책인데 참 좋더라고요. 릴리아 작가님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나셨는데요. 한국으로 건너와 그림책을 만들고 동화책에 일러스트를 그리고 있어요. 단순한 선으로 그린 작품인데 기억에 계속 남네요.

 

오랫동안 좋아하는 ‘인생 그림책’과 같은 작품이 있다면요?


『뛰어라 메뚜기』라는 그림책이 있어요. 일본 작가 다시마 세이조의 작품인데, 제가 그림 공부할 때 그림책 디렉팅을 하시는 분이 제게 “너는 이렇게 그릴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신 적이 있어요. 그림이라면 되게 예쁘게 그려야 한다고만 관념이 있었는데, 이때 이후로 개념이 좀 달라진 것 같아요.

 

그림책 수업할 때, 특히 강조하시는 이야기가 있을 것 같아요.


결국 이야기가 중요한 것 같아요.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들은 정말 많거든요? 문제는 자기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이죠. 프로 작가가 되려는 사람에게 “편하게 그리라”는 말만 할 순 없겠지만요. 마음가짐이 편해야 하는 건 맞아요. 그래야 좋은 그림이 나와요.

 

“(   )까 좋다”의 빈칸을 채워보신다면요?


책 나오니까 좋다?! 정말 좋아요. 제 책이 나오니까요. (웃음)

 

앞으로 어떤 작업을 하고 싶으신지 궁금합니다.


우선 책을 계속 내고 싶고요. 우리 그림책 작가들을 소개하는 일을 계속하고 싶어요. 그림책협회 차원에서 준비하는 일들도 많은데요. 독자들을 적극적으로 만나야 저변이 넓어질 것 같아요. 우리 작가들이 전국의 지역 도서관을 많이 다니거든요. 그러다 보니 그림책을 좋아하는 어른 마니아들도 많아졌어요. 모든 작가가 그렇지만 누군가가 읽고 봐줘야 힘이 나잖아요? 서로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어주고 싶어요.

 

『나오니까 좋다』를 읽은, 앞으로 읽을 독자분들께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요.


큰 스토리, 교훈이 있는 책은 아니기 때문에 즐기면서 보셨으면 좋겠어요. 그림책을 보면서 우리의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려보면 가장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무거운 책도 읽어야겠지만 가벼운 책들이 주는 감흥이라는 게 분명히 있거든요?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데, 떠나지 못할 때 보셔도 좋을 것 같고요. 그림책은 어린이 책이라는 편견을 버리고 즐겨 주시면 좋겠습니다.


 

 


 

 

나오니까 좋다김중석 글그림 | 사계절
우리 일상도 그런대로 괜찮은 것 같습니다. 특별한 일 없어도, 아주 가끔 예쁜 하늘을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좋다’를 말할 수 있는 따뜻한 마음이 전해집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안선영 “엄마가 되고 잃어버린 ‘나’를 찾는 다이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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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공채 개그우먼으로 데뷔했다. 그녀의 나이 스물다섯. 누군가는 꿈을 고민할 나이에 안선영은 각종 예능프로그램에서 종횡무진 활동하며 전성기를 맞았다. 그때부터 그녀는 한시도 쉬지 않고 방송을 했다. 때로는 MC로, 게스트로, 연기자로 분한 그녀를 TV에서 만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예쁘장한 신인 개그우먼에서 대한민국 대표 골드미스가 되기까지 안선영의 삶 전반을 차지한 것은 오롯이 ‘일’이었다.


결혼을 하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그녀의 나이 마흔. 반짝이는 조명 아래 섰던 화려한 날들은 졸린 눈을 비비며 겨우 일어나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시간으로 채워졌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그녀는 기적을 선물 받은 듯 기뻤고, 생전 처음 맛보는 행복을 만끽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여자로서의 삶이 끝난 것 같아 두렵고 불안했다. 이따금 헛헛한 마음이 밤을 잠식할 때면 야식을 먹고, 술을 들이켰다. 삶의 주파수가 온전히 아이에게 고정되었던 나날의 일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문득 거울 속에 비친 자신과 마주하고 왈칵 눈물이 터졌다고 한다. 축 늘어진 몸, 초췌한 얼굴이 너무 낯설었기 때문이다. 방송, 결혼, 출산, 육아를 거치며 몸을 혹사한 대가로 요로결석에 걸려 수술대에 눕기도 했다. ‘나, 이대로도 괜찮을까? 내가 죽으면 우리 아이는 어떡하지?’

 

이 물음을 시작으로 방송인 안선영은 몸과 마음이 건강한 엄마가 되기 위해 100일 다이어트에 돌입했다. 그리고 SNS에 다이어트 기록을 공유하면서 자신과 같은 성장통을 겪는 엄마들이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공존할 수 없을 것처럼 느껴지던 ‘엄마’와 ‘여자’라는 단어가 마음속 한 공간에 들어차기 시작했을 때, 그녀는 자신의 노하우를 책에 담기로 했다. 『하고 싶다 다이어트』는 방송인 안선영이 출산 이후, 잃어버린 ‘나’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 100일간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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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온전히 집중한 100일의 시간


『하고 싶다 연애』  이후 5년 만에 나온 두 번째 책이에요. 소감이 어때요?

 

제 스펙트럼이 좀 더 넓고 깊어진 느낌이에요. 첫 책 『하고 싶다 연애』에는 치기 어리고, ‘이럴 것이다’라는 예측으로 쓴 내용이 많았다면 『하고 싶다 다이어트』 는 경험치가 녹아있기 때문인지 많은 분이 공감을 해주시는 것 같아요. 얼떨떨하기도 하고 너무 감사한 마음이에요.

 

깨끗한 분위기의 표지가 돋보였어요. 표지 사진에 입은 청바지가 결혼 전 구입한 것이라고요.


엄마들의 다이어트 목표는 비키니를 입는 게 아니라 청바지에 흰 티셔츠를 찔러 넣어 입는 거거든요. 그래서 처녀 때 입었던 3만8천 원짜리 청바지를 입고 웨딩슈즈를 신었어요. 살찌면 발도 붓는 거 아시죠? 결혼한 이후 한 번도 못 신었던 구두인데 이제야 신었네요. 웨딩슈즈는 살면서 가장 예쁜 날 신는 신발이잖아요. 다이어트를 통해서 나의 리즈시절로 돌아간다는 메시지를 담았어요. 표지를 하얀색으로 디자인한 것도 나름의 의미가 있어요. 첫 책을 쓸 때는 30대였고, 열정과 패기가 넘치는 골드미스였기 때문에 책의 시그니처 컬러로 핫핑크를 선택했는데요. 이번 표지는 하얀색으로 하고, 표지를 열면 보이는 첫 내지는 핑크색으로 구성했어요. 내면에는 아직도 예전의 ‘여자 안선영’이 남아있지만 결혼, 임신, 출산, 육아를 겪으면서 이렇게 하얗고 부드러운 모습까지 갖추게 되었다는 의미예요.

 

독자가 직접 다이어트 일지를 기록할 수 있도록 양면 중 한 페이지를 비워둔 것이 독특해요.


동기부여를 해주고 싶었어요. 기록을 하면 실천을 하게 되니까요. 또 저는 책을 읽을 때 메모하는 습관이 있거든요. 읽으면서 특히 좋았던 책은 제가 쓴 메모가 담긴 그대로 아끼는 사람에게 선물하곤 해요. 그럼 제 생각이 그 사람에게도 전해지잖아요. 한 번 읽고 던져두는 책이 아니라 곁에 두고 자기의 생각이나 다이어트 일지를 끄적이면서 소통하고 공감할 수 있는 책이 되었으면 했어요.

 

다이어트 기간을 딱 100일로 설정했어요. 왜 100일인가요?


제가 뭘 오랫동안 못하거든요.(웃음) 처음 다이어트를 시작할 때 100일을 잡았던 이유는 그걸 넘어가면 못 지킬 것 같았기 때문이에요. ‘곰도 쑥, 마늘 먹으면서 100일을 버티고 사람이 됐는데 나라고 못 할 게 뭐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1년을 하라면 자신이 없지만, 100일 정도 온전히 나를 위해서 운동하고, 식단 조절하고, 함께 술 마시는 친구들과의 단톡방을 끊는 것쯤은 해볼 만하겠더라고요. 과학적으로도 환경의 변화와 상관없이 우리 몸이 일정한 상태를 유지하게 하는 ‘항상성’을 새로운 표준에 적응시키려면 최소한 100일은 필요해요. 생각 없이 먹었던 당류, 탄수화물 등에서 멀어질 시간이 필요한 거죠. 군대에도 100일 휴가가 있잖아요. 사람이 새로운 것에 완전히 적응하는 데는 적어도 100일이라는 시간이 걸리는 것 같아요.

 

인스타그램에 적나라한 인바디 결과부터 출산 후 늘어진 배 사진 등을 가감 없이 올렸어요. 지극히 사적이고, 예민할 수 있는 부분인데 부담은 없었나요?


강제성을 부여하지 않으면 흐지부지하고 그만둘 것 같아서 일단 SNS에 다이어트를 한다고 공표를 했던 거예요. 그리고 제 인스타그램을 오래 지켜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는 항상 솔직하게 일상생활을 공유해왔어요. 신비감 있는 연예인도 아닌데 굳이 숨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책에도 꾸며진 사진이 아니라 제가 직접 찍어서 SNS에 올렸던 날것 그대로의 사진들을 실었어요. 사실 인바디 결과도 그렇고, 살 빠지기 전 사진도 훨씬 더 적나라하고 못생긴 게 많았는데 담당 편집자가 책에 안 실었더라고요. 전 괜찮다고 하는데 주변에서 말려줘서 다행이에요.(웃음)

 

SNS에 정보를 공개하는 것과 책을 출간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일이잖아요. 공유했던 정보들을 책으로 엮어야겠다고 마음먹은 계기는요?


다이어트 과정을 SNS에 공유하면서 복근 사진을 올렸더니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기사가 나더라고요. 덕분에 악플을 많이 받았는데 다수를 차지한 내용이 ‘아줌마가 살 빼서 뭐하게?’, ‘팔자 좋다. 운동하는 동안 애는 누가 봐주냐’는 거였어요. ‘아줌마는 살 빼면 안 되나?’, ‘아이 엄마가 하루에 한 시간 운동하는 게 사치인가?’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게 아니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어요. 사실 엄마의 다이어트는 가족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해요. 제가 다이어트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운동할 때 아이를 봐주고, 냉장고에 닭가슴살과 고구마밖에 없어도 그걸 이해해주는 남편이 있었기 때문이거든요. 엄마가 자기 자신을 되찾는 일에 가족을 동참시키려면, 제가 겪은 경험들을 글로 써서 엮을 필요가 있겠더라고요. 또 SNS에 다이어트 과정을 공유하면서 수많은 엄마들의 관심과 질문을 받았거든요. 제가 겪은 노하우를 책으로 나누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대부분의 가사활동이 그렇지만, 특히 육아에 있어서는 여성의 희생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한 번은 인스타그램에 이런 댓글이 달렸어요. ‘출근 전 두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하루 7시간을 근무하는 워킹맘 입니다. 퇴근 후 돌아와 집안일을 하고나면 제 수면시간은 6시간밖에 안 돼요. 그럼 저는 수면시간을 하루에 5시간으로 줄이고 운동을 해야 하나요? 그것도 못하는 저는 게으른 사람이겠죠? 여유롭게 아침 9시에 필라테스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 거라고 생각하세요?’ 그걸 보고 제가 답변을 달아드렸어요. ‘당연히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18년차 방송인인 저조차도 제게 쓰는 돈은 아깝고 부담스럽습니다. 그런데 왜 엄마만 아이들을 등원시켜야 하나요? 가족들은 왜 도움을 주지 않나요? 아빠가 아이를 보는 건 도와주는 것이고 엄마가 아이를 보는 건 왜 당연한가요? 왜 스스로 희생을 강요하고 있을까요, 우리는…….’ 의문을 주고 싶었어요. 엄마들이 하루에 한 시간 본인을 위해 쓰는 게 잘못인가요? 몇 시간도 아니고, 단 한 시간 운동을 하는 게 왜 특별한 누군가의 것이어야만 하는지 모르겠어요.

 

 

할 수 있어요, 엄마니까


연예인이 출간한 다이어트 책은 많지만, 아이 엄마를 위한 다이어트 책은 드물어서인지 더욱 반응이 좋은 것 같아요.

이렇게 호응을 받게 될 줄 몰랐어요. 단순히 제가 엄마가 되었기 때문에 그 경험을 담은 건데 공감을 많이 해주시더라고요. 책 읽고 울었다는 분들이 많아서 놀랐어요.

 

기억에 남는 독자의 리뷰가 있나요?


‘책보고 따라 해서 몇 킬로그램 뺐다’고 올라오는 글 보는 재미가 쏠쏠해요. 제가 어떤 제품을 개발했는데 반응이 좋으면 이런 기분일 것 같아요. 요즘은 ‘워너비’, ‘멘토’, ‘롤모델’이라고 불러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몸 둘 바를 모르겠어요. 40대에 그런 칭찬 받기 쉽지 않거든요.(웃음) 나이 먹을수록 칭찬 들을 일이 별로 없잖아요. 특히 연예인이라는 직업은 이유 없는 비난도 감당해야 하고, 한 번의 말실수로 두고두고 욕을 먹곤 해서 때로는 감정노동자 같다는 느낌이 들었는데요. 책을 출간하고 나서 ‘팬 됐다’, ‘이런 책을 내줘서 고맙다’는 칭찬을 듬뿍 받게 돼 너무 좋아요.

 

30~40대 여성, 특히 엄마들이 다이어트를 할 때 명심해야 할 것이 있나요?


절대 굶으면 안 돼요. 다이어트 식품에 의존하는 것도 한계가 있고요. 건강한 다이어트 식단과 매일 40분 이상 공복유산소 운동을 하는 것만이 정답이에요. 저는 고단백저탄수화물 식단으로 하루에 4끼를 먹었어요. 출출할 때는 간식 대신 견과류를 꼭꼭 씹었고, 밤에 허기가 지면 오이, 당근 같은 야채를 먹었어요. 빠질 수 없는 회식 자리에서는 고기 먹기 전에 양배추 한 접시를 배불리 먹었고요. 딱 100일만큼은 3 White(설탕, 소금, 밀가루)를 제한하고, 식단을 바꾸면 공복감 없이도 건강한 다이어트를 할 수 있어요.

 

일회용 분유 저장팩에 프로틴 파우더를 담고, 아이 이유식을 만들면서 엄마의 다이어트 식단을 함께 해결하는 등 엄마들을 위한 생활밀착형 다이어트 방법들이 돋보였어요.


제가 잔머리를 좀 잘 쓰거든요.(웃음) 육아용품을 깨알같이 활용했어요. 분유 저장팩을 잔뜩 샀는데, 가만히 보니까 프로틴 담으면 딱 좋겠더라고요. 또 아이 이유식은 다 저염식이잖아요. 아이 식사를 준비하면서 같이 먹으면 자연스레 다이어트 식단이 되고, 유모차를 끌고 나가서 한 시간씩 걷는 것도 운동이 될 수 있죠. 생각을 바꾸면 엄마라서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는 게 많아요.

 

원래 의지가 강한 사람이에요?


아니요. 저는 스스로에게 굉장히 관대한 사람이에요. 뭔가를 끈기 있게 못하고 늘 나와의 싸움에서 지는 스타일이었어요. 결혼 전에는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살이 잘 찌지 않아서 다이어트를 열심히 해본 적도 없었어요. 

 

그럼 결국 엄마라서 다이어트에 성공할 수 있었던 걸까요?


맞아요. 저는 아침형 인간으로 살아본 게 평생의 처음이에요. 아이가 6시 30분이면 칼같이 일어나거든요. 울며불며 매달리는 아이를 떼어 놓고 가는 운동인데 어떻게 꾀를 부릴 수가 있겠어요. 그리고 아이가 있으니까 생활이 정리되는 느낌이에요. 저는 형제도 없고, 홀어머니 밑에서 외롭게 커서 그런지 주변 사람들에게 집착하는 경향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술 약속이나 모임이 잦았고 빠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이가 생기니까 모든 결핍이 다 괜찮아지더라고요. 덕분에 인생의 최우선 순위인 ‘가족’과 그다음 순위인 ‘일’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게 됐죠. ‘애 엄마라서 못해요’라며 시작도 안 해보고 포기하는 분들을 보면 안타까워요.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아이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들도 많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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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행복해지면 가족이 행복해져요


‘엄마로서 아이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마음은 정말 숭고하지만 그렇다고 나를 챙기는 일을 뒷전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105쪽)’라고 했어요. 아이를 낳고 스스로에게 가장 많이 했던 질문이 있나요?


질문이라기보다는 ‘나 방송 다시 할 수 있을까?’, ‘여자로서 내 인생은 끝난 건가?’라는 생각을 자주 했어요. 2000년에 MBC 공채 개그우먼으로 데뷔한 이후 한 번도 쉰 적 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거든요. 그런데 출산하면서 방송이 뚝 끊긴 거예요. 너무 불안했어요. 게다가 노산에, 자연주의 출산을 한다고 43시간 진통 끝에 아이를 낳다 보니 체력적으로도 힘들었어요. 모든 게 복합적으로 저를 우울하게 했던 것 같아요. 아이가 너무 예쁘고, 엄마가 되어서 행복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저를 잃어버린 기분이 들었어요. 수유하면서 눈물을 뚝뚝 흘리고, 남편에게 섭섭하다고 화내고, 친정엄마와 시어머니께도 짜증을 많이 냈어요. 가족들이 제 눈치를 보고 슬슬 피하니까 점점 더 외롭기만 했었죠.

 

다이어트가 출산 이후의 고민과 스트레스를 해결해 준 셈이네요.


운동을 하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제 모습에 자신이 생기니까 자존감도 높아졌고요. 이제 ‘방송이 언제 들어올까?’, ‘누가 나를 불러줄까?’하는 걱정을 전혀 안 해요. 제 의지로 살을 뺐고, 『하고 싶다 다이어트』 를 출간했듯이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스스로 만들면 되니까요. 그래서 줌바 콘서트도 기획하고, 유튜브에도 도전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예전 같았으면 ‘티켓을 아무도 안 사주면 어쩌지? 아무도 안 보면 어쩌지?’하고 걱정했을 거예요. 지금은 ‘안 팔리면 내가 나서서 열심히 팔아보지 뭐’라는 마음이 들어요. 자존감이 높아진 게 살을 빼고 얻은 가장 큰 수확이에요.

 

살 빼고 제일 보람 있었을 때가 언제였나요?


표지에 입은 스키니 진이 쏙 들어갔을 때요. 결혼 전에 입었던 옷이 하나도 안 맞았었거든요. 그리고 내가 봐도 쓸 만해 보일 때. 다이어트하기 전에는 사진을 100장 찍어도 다 마음에 안 들어서 짜증내고 그랬어요. 누가 저랑 같이 찍은 사진을 SNS에 올리면, 자기가 예쁘게 나온 것만 올렸다면서 기분 나빠하고요. 지금은 운동하고, 아이 키우고, 일하기 바쁘니까 SNS에 올라오는 피드 하나하나 신경 쓰며 받는 스트레스가 아예 없어졌어요.

 

아이도 엄마의 변화를 느끼나요?


만 두 돌이다 보니 아직 “엄마 예뻐”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본능적으로 엄마의 기분을 아는 것 같아요. 제가 기분이 안 좋으면 주눅이 들고, 제가 기분 좋으면 와서 장난치고 뽀뽀하고 그러거든요. 살을 뺀 뒤에는 엄마가 늘 에너지 넘치고 기분이 좋으니까 그걸 느끼나 봐요. 옛날에는 힘드니까 키즈카페에 아이 놀게 놔두고 내내 아줌마들이랑 카톡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그랬는데 요즘은 안고 뛰고, 같이 수영하고 몸으로 놀아주니까 정말 좋아해요. 그래서인지 아이가 좋아하는 사람 1순위가 저인 것 같아요. 예전에는 할머니를 제일 좋아했거든요. 그리고 다이어트 초기에는 운동하러 갈 때마다 울면서 매달렸는데, 이제는 “엄마 운동하고 올게. 이따가 어푸어푸 하러 가자”하면 웃으면서 보내줘요. 엄마가 쫄쫄이 바지 입고 밖에 나가면 기분이 좋아져서 집에 돌아온다는 걸 아는 것 같아요.

 

엄마의 기분을 본능적으로 안다는 게 참 신기하네요.


아이들이 제일 잘 알아요. 그래서 에너지 넘치고 건강하고 즐거운 엄마가 되어야 하는 것 같아요. 그때부터 행복육아가 시작이에요. 단순히 오래 붙어있는다고 아이가 행복하게 자라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100일 다이어트를 마치고 제일 하고 싶었던 건 뭐예요?


저 시원한 맥주에… 삼겹살이 진짜 먹고 싶었어요.

 

드셨어요?(웃음)


남편이랑 곱창에 소주 각 1병씩 먹었어요. 신나게 먹고 다음 날 살쪘을 것 같아서 공복에 유모차 끌고 두 시간을 돌아다녔어요. 그런데 생각처럼 체지방이 금세 늘지 않더라고요. 그리고 옛날처럼 술을 많이 못 마시겠어요. 전에는 맥주를 열 잔 먹어도 간에 기별이 안 갔다면, 지금은 500㏄ 한 잔만 마셔도 얼굴이 빨개져요. 가성비가 좋아졌다고 할까요? 이제 탄산수 마시고 줌바만 춰도 술 열 잔 마셨을 때의 흥이 올라오니까요.

 

요즘 줌바에 푹 빠져있으시죠?


일주일에 한 번씩 하고 있는데요, 너무 재미있어서 강사 자격증을 따려고 해요. 저는 P.T를 받았던 사람이라 홈 트레이닝 영상만 봐도 땀이 날 정도로 운동을 할 수 있는데, 생전 운동을 해 본 경험이 없는 분들은 어디에 힘을 줘야할지 감이 안 와서 홈 트레이닝만으로는 제대로 된 운동효과를 느끼기가 어렵거든요. 그런데 줌바는 몸치, 춤치, 운동치 누구나 일단 따라하면 땀이 흠뻑 나요. 일단 운동에 재미를 붙일 수 있는 수단으로 안성맞춤이라 제가 돈을 내고 배워서 무료로 알려드리려고요. 줌바라는 이름도 너무 좋지 않아요? 아줌마랑 어울리잖아요.(웃음) 제대로 한 번 해보려고, 안선영의 A를 따서 ‘아줌바’라고 상표 등록도 했어요. 앞으로 유튜브에 줌바 영상을 차근차근 올릴 예정이에요.

 

줌바의 매력이 뭐예요?


너무 신나요. 스트레스 타파에는 1등이죠. 그리고 엄마들은 클럽 못 가잖아요. 왕년에 나이트 죽순이였던 난데! 엄마들에게 아가씨 때 신나게 놀았던 열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데다가 유산소와 무산소가 결합된 운동이라 집에서 따라 하기 정말 좋아요. 아이들하고 같이 뛰면서 할 수도 있고요. 아이가 있는 집에는 매트가 깔려있으니, 이것도 엄마라서 더 잘 할 수 있는 운동이겠네요!

 

유튜브도 시작했어요. 어떤 채널을 만들어 갈 계획인가요?


원래 ‘안선영 TV’라고 이름을 생각했었는데 ‘하고싶다 TV’로 바꿨어요. 무슨 일이든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야 시작하잖아요. 다이어트, 요리, 육아, 패션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실시간 채팅도 하는 엄마들의 해우소가 될 예정이에요. 또 유튜브를 보면서 쉽게 운동할 수 있도록 불금에는 무조건 줌바를 업로드하려고요. 아는 인맥을 총동원해서 열심히 해볼 생각이에요.

 

다이어트를 꿈꾸는 엄마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운동할 때 가장 먼 거리는 침대에서 엉덩이 떼고 일어나 운동화 신기까지의 거리예요. 일단 운동화를 신으면, 다이어트는 저절로 시작됩니다. 『하고 싶다 다이어트』를 보면서 저를 따라서 100일만 자기 자신을 찾는 일에 집중해보시길 바라요. 하다가 실패해도 괜찮아요. 저도 부부싸움해서 술 진탕 마시고 실패한 경험이 있어요. 중간에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서면 됩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100일간만 3W(설탕, 소금, 밀가루) 끊고, 다이어트를 방해하는 모임 끊고, 매일 운동해보세요. 수십 년간 잘못 들여온 습관을 고치고, 나의 미래를 건강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데 100일로 충분하다면 해볼 만한 가치가 있지 않나요? 오늘부터 시작해보세요. 엄마가 행복해지면 가족이 행복해집니다.

 

 


 

 

하고 싶다 다이어트안선영 저/김해영 감수 | 다산북스
출산 후 망가진 몸을 회복하기 위해 100일 동안 먹고 싶은 것을 참고, 하기 싫은 운동을 해내고, 좌절했다가 다시 일어서며 자신을 이기고 스스로를 변화시킨 성장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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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주, 재즈 피아니스트의 발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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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주는 명실공이 국내 재즈계를 대표하는 피아니스트다. 지난 2005년을 시작으로 그녀는 지금까지 모두 11장의 음반을 발표했고 그 음반들은 모두 팬들과 평론가들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아왔다. 이렇듯 그녀의 꾸준한 활동은 척박한 국내 재즈의 환경 속에서 전대미문의 족적을 남기고 있는 중이다. 특히 최근에 발표한 그녀의 첫 피아노 독주 앨범 <Late Fall>(BRM)은 오랜 기간에 걸쳐 완성된 송영주 음악의 진수를 담고 있다는 평가다. 음반 발매와 함께 독주회를 앞두고 있는 그녀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따뜻한 봄날 저녁 여의도에서 송영주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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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무척 바쁘다고 들었다.


최근에 크로스 오버 음악 작업에 참여했다. <팬텀싱어>에서 두각을 나타낸 테너 김현수 씨의 앨범에 참여했고 지난 일요일(4월 22일) 음반 발매 기념 공연을 가졌다.

 

그 음반에서 피아노 연주만 맡았나?


아니다. 기타리스트 함춘호 선생님과 함께 전체 편곡을 맡았다. 슈베르트, 브람스, 비제, 벨리니의 가곡을 먼저 화성적으로 분석해서 크로스 오버 음악에 맞게 조금 손질을 한 뒤 여기에 연주를 보탰다. 김현수 씨가 노래를 너무 잘 하시고 곡들이 너무 아름다워 작업하면서 즐거웠다.

 

오래 전부터 재즈 바깥에서 작업 의뢰가 참 많이 들어온다.


사실 그 일 때문에 내 음악 준비 할 시간이 부족하긴 하다. (웃음)

 

대표적으로 누구와 작업했나?


아주 옛날 작업부터 생각하면......비, 보아, 김동률, 수퍼주니어, 엑소, 수호 등등...... 그냥 피아노 세션맨으로 참여하는 게 아니라 편곡까지 맡거나 혹은 피아노 반주의 비중이 아주 높은 곡이 있으면 연락이 온다.

 

외국의 톱클래스 재즈 음악인들도 다른 음악 참여를 많이 하지 않나.


그렇다. 그래서 이런 기회가 내게 많이 오는 것을 감사해 하고 있다. 다양한 음악을 많이 듣는 것이 공부에 참 많이 도움이 된다. 그리고 무대 위에서 메인 뮤지션이 저를 늘 '재즈' 피아니스트라고 소개해 주는데, 그래서 다른 부류의 음악을 들으러 오신 많은 분들에게 재즈를 들려 줄 수 있는 기회라고 여기고 있다. 그래서 지금은 사명감도 조금 느낀다. (웃음) 아쉽게도 재즈를 들으시는 분들의 숫자는 너무 적지 않은가.

 

송영주 씨를 처음 본 것이 2000년대 초반, 미국 유학 중에 잠시 한국에 들어왔을 때였다. 그때 국내 재즈계에서는 대단한 피아니스트가 나타났다고 다들 이야기 했다. 그때 이미 재즈 음악인이 될 거라고 마음먹었나?


재즈 연주자가 되겠다고 마음먹었기 보다는 그냥 재즈가 너무 좋았다. 사실 나는 재즈가 뭔지도 모르고 유학 길에 올랐다. 당시에는 마일스 데이비스가 누구인지도 몰랐다. 클래식을 전공했지만 어렸을 때부터 성가대에서 연주했고 그래서 음악을 화성으로 이해하고 그 화성으로 내 나름대로 연주하는 것이 좋아 더 공부하고 싶어 유학길에 오른 것이다. 그래서 재즈를 그냥 학구적으로 접근했지 앞으로 재즈 피아니스트가 되겠다는 생각은 전혀 안 했다. 그런데 재즈공부를 하면서 어느 날 갑자기 재즈 사운드가 귀에 들리고 가슴에 꽂히더라. 그때부터는 재즈란 음악을 정말 하고 싶어 졌다. 내 인생에서 상상도 못했던 변화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재즈가 단숨에 될 리가 있는가. 나는 재능이 없는가 보다 하고 맨날 어두운 연습실에서 혼자 눈물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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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2005년에 드디어 첫 음반을 발표한 건가?

 

그렇다. 그래서 앨범 제목이 <터닝 포인트 Turning Point>였다.

 

그 이후로 앨범을 매해 쉬지 않고 발매했다. 커리어가 조금 짧기는 하지만 송영주 씨를 제외하면 피아니스트 고희안 씨가 국내 재즈계에서는 음반을 꾸준히 발표하는 유일한 연주자인 것 같다. 혹시 도중에 지치지 않았나?


사실, 앨범을 발표해 봤자 세상이 바뀌는 것은 고사하고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잘 팔리지도 않더라......그러면 그냥 낙담하고 말아야 하는데 또 머릿속에 새로운 영감과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나도 모르게 또 앨범 작업을 하고 있더라. 생각해 보면 나도 잘 이해가 안 간다. (웃음)

 

그러면서 '아이쿠, 그러고 보니 내가 어느새 재즈 연주자가 되어버렸네! 앞으로 어쩌지?' 뭐, 이런 생각은 해 본 적 없나?


맨 처음 그냥 열정만으로 데뷔 음반을 녹음하고 데모 녹음을 한국 EMI(현재 워너)에 제시했더니 얼마 후 음반을 발매하자고 연락이 왔다. 너무 좋았다. 그리고 이후에 '스톰프 뮤직'에서 연락이 와서 계약을 맺고 회사에서 제작, 홍보 등을 전담하고 2집에서 4집까지를 발표할 수 있었다. 맨 처음부터 나 혼자 하라고 했으면 그렇게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그 이후다. 5집부터 10집까지 혼자 힘으로 음반을 발표 한 게 아닌가? 그런 연주자는 송영주 씨가 유일하다.


그러니까, 내가 어떻게 그렇게 했는지 나도 이해가 안 간다. 어떤 음악이 생각나면 전에 겪었던 실망, 좌절 그런 것을 다 잊고 또 새롭게 작업에 들어간다. 사실 회사와 계약을 맺고 발표한 음반들 보다 혼자 작업한 음반들이 훨씬 더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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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한다. 그런데 스톰프 뮤직과 계약이 끝난 후 다시 미국으로 나가지 않았나?


그렇다. 그러니까 2004년도에 학교를 마치고(버클리 음대, 맨해튼 음대 석사과정) 돌아와서 6년 간 활동했다. 그러면서 내가 점점 소진되고 있음을 느꼈다. 학교 강의도 많이 나갔고 또 다른 음악의 레코딩, 라이브 세션도 많았다. 그래서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2010년에 뉴욕 주립 대학에 아티스트 디플로마 과정(Artist Diploma: 능력 있는 직업 연주자들을 전문적으로 교육하는 과정)에 뒤늦게 입학해 1년 간 공부했다. 그때 나이가 이미 서른아홉 살이었다. 하지만 실은 학교 과정은 핑계였다. 그냥 미국 나간다고 하면 너무 막연하고 주변에도 무책임하게 보이니까. 진짜 하고 싶었던 것은 재충전 하면서 내 음악을 만들고 싶었고 또 뉴욕의 뮤지션들과 작업하고 싶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음반이 2011년에 발표된 <Tale of a City>다. 그러면서 3년 반~4년 동안 뉴욕에 머물게 되었다.

 

나이가 들어서 외국서 공부하고 생활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맨 처음 유학 갔을 때 보다 훨씬 힘들었다. 예상 못했다. 한국에서는 그래도 인정도 받고, 누가 찾아 주기도 하고, 수입 면에서도 그래도 안정된 삶을 살다가 나이가 들어 나를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생활하려니 그 격차가 심하게 느껴졌다. 젊었을 때는 아무런 생각 없이 또래 학우들과도 잘 사귀고 했는데 아티스트 디플로마 과정이라는 것이 그런 환경이 아니지 않는가. 많이 외롭고 힘들었다. 그래도 큰 결심을 하고 그곳에 갔으니 이를 악 물자고 마음먹었다.

 

그곳에서의 음악 활동은 어떠했나?


뉴욕 클럽의 문턱이 너무나 높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나 같은 외국인 여성이 그 문턱을 넘기는 정말 버거웠다. 또 내가 사교에 적극인 사람이 아니고 소극적이고 조용하다 보니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래도 뉴욕에서 계속 활동하니까 블루노트 클럽에서 연락이 왔고 2014년 단독 공연을 가졌다. 그 이후에 여러 페스티벌에서 연락이 오더라. 그런 과정에서 발표한 음반들이 <Tale of A City>(2011), <Between>(2014), <Reflection>(2015)과 같은 작품들이다. 이런 작품들을 만들면서 음악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것 같다.

 

2010년대의 음반들을 들어보면 무의식중에 자신이 굉장히 힘든 길을 가고 있다는 점을 언뜻 언뜻 드러내고 있다고 느꼈다. 그렇게 만든 음악이 자신에 위안이 되는가?


물론이다. 음악 때문에 슬프고 좌절도 하는데 또 그 음악 때문에 위로도 받고, 열정도 생기고, 다시 도전하고 싶은 의욕도 생긴다. 그래서 무척 힘들었지만 후회한 적은 없다......(잠시 생각하더니)......생각해 보면 모두 감사한 일뿐이다. 이렇게 오랫동안 직업 연주자로서 활동할 줄은 나도 몰랐다. 신기할 뿐이다.

 

후배 재즈 연주자들을 보면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은가.


창작하는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느낄 것이다. 어느 지점에서 한계에 왔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럴 때는 외부의 자극이 필요하다. 그래서 환경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꼭 외국일 필요는 없는데 스스로 자신을 환기시킬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나도 위기다. (웃음) 학교(서울신학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4~5년 정도 되니 또 매너리즘에 빠지게 된다. 이러다가 또 전부 때려치우고 사라지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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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앨범에서도 연주된 'Uncharted Road'도 그런 음악가의 삶을 그린 것인가?


그렇다. 우리말로 하자면 '지도에 나와 있지 않은 길', '그려져 있지 않은 길' 그런 뜻인데......여성 연주자, 뭐 그런 성별 이야기는 별로 하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여성 재즈 뮤지션이 보컬리스트도 아니고 피아니스트로 산다는 것이 아무도 정해 놓지 않은 길을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써 본 곡이다.

 

그러면 그 길은 'Uncharted Road'처럼 고독하고 쓸쓸한 길인가?


아니다. 물론 그런 면도 있지만 보다 자유롭고 나다울 수 있는 길이다. 만약 다른 음악을 했다면 이토록 솔직하게 자신을 표현하지 못했을 것이다. 재즈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나이의 제약이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많은 재즈 음악인들은 훌륭한 곡이 있으면 그 곡의 화성 진행 등을 분석해서 새로운 곡을 만든다. 음악에 접근하는 태도가 대단히 음악적이다. 그런데 송영주의 음악은 그 근본이 자기 자신, 자신의 일상 속에 있다는 느낌을 준다.


글쎄......내가 내 음악을 객관적으로 보고 있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말하기 조심스럽다. 그런데 나는 음악은 그 사람을 속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어떻게든 그 음악은 그 사람을 드러내게 되어 있다. 그래서 나는 음악으로 내 자신을 과도하게 표현하고 싶지 않다. 그래 봤자 그 한계는 금세 드러난다. 그냥 내 모습을, 내 기량을 들려주는 것이 음악이고 재즈라고 생각한다.

 

일상 속의 경험 같은 것이 작곡에 영향을 주는가?


당연히 그럴 것이다. 예를 들어 이번 음반에 담긴 'Late Fall'은 영화 <만추>를 보고 그 느낌을 피아노로 표현한 것이다. 영화 후반에 탕웨이가 현빈을 찾아 헤매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아련한 느낌에 마음이 너무 아팠다. (웃음) 여행을 통해서 얻은 느낌,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얻은 느낌도 작곡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본다.

 

그렇다면 음악에서 기교, 테크닉은 별로 안 중요한가?


아니다. 그게 없다면 어떤 느낌과 생각이 있어도 그것을 음악적으로 훌륭하게 표현할 수 없다. 느낌과 기교는 균형을 맞춰야 한다. 어느 한 쪽으로 기울면 훌륭한 음악이 나올 수 없다.

 

그럼에도 송영주의 음악에서는 기교를 과시하려는 부분이 별로 없다.


내가 무엇인가를 표현하려고 할 때 화려한 테크닉을 사용하면 당장은 만족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시간을 두고 들어보면 그것은 결코 훌륭한 음악이 아닐 것이다. 난 오히려 그 반대의 결점이 많은데 녹음을 하고 들어보면 늘 기교의 한계가 너무 많다. 그래서 이 녹음들은 절대 세상에 내놓지 말아야지, 라고 생각한다. 그러다가도 이후에 몇 번 들으면 '그렇지, 이게 내 모습이지. 그런대로 날 솔직하게 표현했네.'라는 느낌이 든다. 그러면 결국 음반으로 발표하게 되는 것 같다. 이번 음반도 곡 사이에 박수 소리만 제거 했을 뿐 라이브 녹음 그대로, 아무런 편집 없이 음반으로 발표했다.

 

그래서인지 이번 피아노 솔로 음반은 송영주의 모습이 그대로 실렸고 또 송영주 음악이 비로소 완성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밴드로 연주할 때는 멤버 간에 영향도 주고받고, 특히 젊은 시절에는 당시 선두에서 트렌드를 이끌어가고 있는 연주자들을 부지부식 간에 흉내 내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 음반은 그럴 수 없었다. 피아노 독주이다 보니 어디 얹혀 갈 데도 없었고 그냥 내 모습을 보여 줄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첫 앨범을 발표한 지 10여 년이 흐르다 보니 트렌드보다는 자기 자신에 더욱 충실하게 되었다는 점도 작용했을 것이다.

 

전에 밴드 편성으로 녹음되었던 곡들이 이번에 피아노 솔로로 여러 곡 녹음되었는데, 원래 작곡 당시부터 피아노 솔로를 염두에 두었던 곡들인가?


아니다. 솔직히 이번에 피아노 솔로 앨범에 실린 곡들은 이전에 트리오 혹은 쿼텟 편성으로 녹음해 놓고 실제로 무대 위에서 별로 연주할 수 없었던 곡들이다. 아무래도 밴드로 무대에서 연주하게 되면 보다 에너지가 넘치고 구성이 복잡한 곡들을 선호하게 된다. 그래야 연주하는 재미도 있고 관객들도 흥미롭게 듣는다. 그러다 보니 이런 정적인 발라드 곡들은 프로그램에서 누락되기 쉽다. 'Late Fall'이나 'Uncharted Road'는 전에 발표하고도 무대 위에서 한 번이나 연주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런 곡들을 그냥 묻혀두기엔 나로서는 너무 아까웠다.

 

솔로 피아노 앨범은 어떻게 생각하게 되었나?


늘 선망의 대상이었다. 빌 에번스, 키스 재럿, 프레드 허시, 브래드 멜다우......내가 존경하는 피아니스트들은 모두 피아노 솔로 앨범을 발표했다. 나도 언젠가는 그런 앨범을 꼭 내고 싶다고, 늘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이 무척 어려운 작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무 것도 없이, 즉흥연주로 훌륭한 음악을 계속 만들어 나가야 하는데 그것은 웬만한 고수가 아니면 엄두를 낼 수 없는 연주였던 것이다. 클래식에서 피아노 독주곡을 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능력을 요구하는 것이 재즈에서의 솔로 음악회다. 그걸 알게 되니 그 거장들이 더욱 존경스러워졌다. 특히 키스 재럿의 <Facing You>. 20대 초반에 그런 연주가 어떻게 가능하단 말인가!

 

피아노 독주가 어렵다는 점을 어떻게 실감하게 되었나?


서울 대치동에 있는 마리아 칼라스 홀에서 초청 연주회가 있었다. 내가 프로그램을 생각한 것이 아니라 그 장소에게 내게 피아노 독주회를 부탁했다. 그때도 잠시 망설여지긴 했는데, 피아노란 악기가 본질적으로 모든 성부가 혼자서 가능한 독주 악기가 아닌가. 그래, 더 이상 피하지 말고 한 번 해보자, 마음먹고 그 연주회에 응했다. 그때가 작년(2017년) 8월이었다. 그런데 막상 해봤더니, 너무 너무 힘들다는 걸 절감했다. 이런 연주는 다시는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만이 들더라. 활동 경력이 10년이 넘었지만 처음 느끼는 두려움과 당혹감이었다.

 

그런데 얼마 후 생각이 바뀌더라. 그래, 올해 안에 다시 피아노 독주회에 도전해보자. 그래서 작년 12월에 피아노 독주회 일정을 잡고 녹음까지 하게 되었다. 솔로 피아노는 내게 도전이자 모험이었고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이 시기에 내게 꼭 필요한 도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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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 말고 다른 음악도 즐겨 듣는가?


사실은 거의 못 듣는다. 시간 돼서 찾아 듣는 것은 재즈고 특히 피아노 음악이다. 이번에 브래드 멜다우의 <After Bach>를 들었는데 너무 좋았다. 바흐 음악을 완전히 자기 스타일로 소화시켜 자기 음악으로 만들어 내더라. (그 후 잠시 생각하다가) 그런데 지난 8월에 첫 피아노 독주회를 해보고 난 뒤 독주가 너무 힘들다는 것을 알고 실은 클래식 레슨을 받았다. 맨해튼 음대시절 클래식을 전공하던 친구로부터 배움을 받았는데 바흐, 쇼팽, 슈베르트 곡을 다시 쳐보고 명연주자들의 음반도 찾아 들어 봤다. 그게 참 도움이 되더라. 그래서 이번 여름 방학 중에는 다시 클래식 레슨을 받으려고 한다.

 

이번 음반에 담긴 곡 중에 'Song in My Heart'는 이전에 발표 되었던 곡인가?


2006년 찬송가 곡들을 모은 <Jazz Meets Hymns>에 수록되었었다. 그때는 팝 스타일로 연주했었는데 피아노 독주로 연주하니 색달랐다. 가스펠적인 색채가 강하게 나오더라. 사실, 이 곡은 내가 써 본 곡 중 첫 번째 작품이다. 그래서 내겐 참으로 의미 있는 곡이다. 마지막 수록곡인 'His Love'도 <Jazz Meets Hymns>에 담겼던 초창기 곡이다. 이번 앨범의 첫 곡인 'Prelude'는 내 데뷔 앨범의 첫 곡이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연주회 첫 곡으로 골라봤다. 이번 앨범 수록곡 가운데 'Reminiscence'만이 최근에 쓴 곡이다. 연주를 잘하려면 이 곡을 더욱 완전히 익혔어야 하는데 좀 아쉬움이 있다.

 

연주회 계획은 없는가?


5월 11일 저녁 8시 이번 앨범을 녹음한 JCC 아트센터에서 앨범 발매 기념 피아노 독주회가 있다. 아마도 앨범 보다 더 완숙한 연주를 들려줄 수 있을 것 같다.

 

앨범 녹음 계획은 없는가?


당장 다음 앨범은 아니겠지만 이번 음반은 모두 내 작품이었으니 언젠가는 스탠더드 넘버로 피아노 솔로 녹음을 하고 싶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내 스타일에 가장 잘 맞는 곡들로 채우고 싶다. 그리고 정말 잘 맞는 베이스 주자가 있다면 피아니스트 행크 존스와 찰리 헤이든이 했던 것처럼 가스펠 곡들을 듀오로 녹음하고 싶다. 두 사람이 연주한 것을 들어보면 아무런 기교도 쓰지 않는데 연주가 정말 감동적이다. 그 따뜻함을 과연 누가 흉내나 낼 수 있을까!

 

확실히 어렸을 때부터 내가 듣고 연주했던 가스펠은 내 음악의 고향인 것 같다. 재즈를 연주하던, 클래식을 연주하던 그것이 깔려 있다.

 

어떤 곡에서는 애틋한 사랑의 아픔 같은 것도 깔려 있지 않은가?


(웃음) 그렇다. 그런데 요즘에 통 만남도 없고 헤어짐도 없으니 감정이 바닥나서 큰일이다.

 

 

 


황덕호(saturnman28@naver.com)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경일 “나를 까다롭게 만들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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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잘 풀려 좋은 결과를 얻을 때가 있다. 이때 우리는 열심히 노력도 했고 주위에 도와준 사람도 많아서 좋은 결과를 얻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다시 비슷한 일을 하게 됐을 때 지난 번과 똑 같은 방법으로 열심히 노력하고 주위 사람의 도움을 받아 일을 처리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최악의 결과가 나오고 말았다. 어떻게 된 일일까? 분명 지난 번 성공했던 그 방법 그대로 했는데도 말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경험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경험 중에서 좋은 결과를 가져다준 것은 개인적으로 하나의 원칙이 된다. 그런데 원칙은 결정을 편리하게 해 주는 반면 생각을 움직이지 못하게 한 곳에 고정시켜 버리는 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면 이상한 일을 겪는다. 내가 가지고 있던 성공의 법칙이 자꾸 맞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 이상한 현상을 김경일 아주대학교 심리학과 교수는 『어쩌면 우리가 거꾸로 해왔던 것들』 에서 설명해 주고 있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성공한 것에 대해서는 자신이 했던 노력만을 생각하고, 실패한 것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었던 상황만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상황은 우리의 삶에 생각보다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래서 상황을 기록하고 봐야 한다는 것이 김경일 교수의 생각이다.

 

이제 어려움에 처한 사람에게 좀 더 노력해 보라는 말 대신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생각해 보자. 자신의 길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청년에게 스펙을 쌓으라는 말 대신 상황을 돌아볼 수 있는 힘을 길러주자.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나는 어떤 상황에 있고,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 것인가 돌아보자. 그리고 그 때 『어쩌면 우리가 거꾸로 해 왔던 것들』을 펼치자. 그러면 답이 있을 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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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문제가 있을까? 아니면 상황이 잘못된 것일까?


『어쩌면 우리가 거꾸로 해왔던 것들』  이라는 제목을 보고 지금 나는 어떤 것을 거꾸로 하고 있는 것일까 궁금해졌는데요, 제목이 주는 의미에 대해 설명을 해주세요.

 

이 제목을 학문적으로 풀이하자면 인간은 변수들 사이에서 상호작용을 한다는 의미입니다. 무슨 얘기냐 하면 A라는 상황과 B라는 상황이 있다고 가정을 했을 때 A라는 상황에서는 오른쪽으로 가는 것이 맞고, B라는 상황에서는 왼쪽으로 가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오른쪽으로 가던 사람은 계속 오른쪽으로 가려하고 왼쪽으로 가던 사람은 왼쪽으로만 가려고 하죠. 그래서 서로 자기가 맞다고 싸우게 됩니다. 그럴 때 둘 중 누군가가 틀린 게 아니라 A 상황일 때는 오른쪽으로 가려는 사람이 맞고 B 상황일 때는 왼쪽으로 가려는 사람이 맞다고 교통 정리를 해 주는 게 인지심리학자들이 하는 일이예요. 이런 식으로 수 많은 변수를 가지고 실험을 하다 보니까 상황이라는 변수에 맞지 않게 행동을 하는 사람이 보이겠죠.

 

변수와 상관없이 자신이 늘 해오던 대로 행동을 하는 경향이 있겠죠.


그렇죠. 그런데 재미있는 건 사람들이 변수를 생각하지 않고 잘못된 방향을 선택했을 때 일이 잘 안 될 것 아닙니까? 그 때 사람들이 뭐라고 하냐 하면 ‘더 열심히 해봐’, ‘더 노력해 봐’ 라고 한다는 것이죠. 진정으로 노력하라고 조언을 하는 것이지만, 잘못된 방향으로 더 노력하라는 것은 잘못된 길로 더 가라고 하는 것과 같잖아요. 그래서 저와 같은 인지심리학자들은 ‘진정으로 노력해 보라’는 말을 싫어합니다. (웃음) 그런 의미에서 우리가 지금까지 진심으로 거꾸로 해 왔던 것들, 열과 성을 다해서 거꾸로 해 왔던 것들, 최선의 노력을 다해서 거꾸로 해 왔던 것들, 그래서 망친 것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자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무작정 열심히 하지 말고, 진정으로 노력을 하기 전에 변수를 먼저 파악한 후 시작하자. 이런 얘기네요?


그렇죠. 예를 들어 오전에 집중하고 오후에 결정하라고 하면 말도 안 되는 일입니다. 오전에는 결정하는 것이 유리하고 오후에는 집중하는 것이 적합한데 그걸 거꾸로 하려고 하면 잘 안 될 수밖에 없겠죠. 이렇게 상황이라는 변수를 파악하여 판단을 해 보자는 것이 이 책의 내용입니다. 잘못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상황에 맞지 않게 거꾸로 해왔다는 얘기입니다.

 

교수님이 인지심리학자이다 보니 이 책과 인지심리학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궁금합니다.


인지심리학을 설명하는 방법은 몇 가지가 있는데요, 첫 번째는 1950년대 사람처럼 생각하는 로봇을 만들겠다는 움직임에서 시작됩니다. 그 당시 사람처럼 생각하는 기계를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었던 사람들 중에는 영화 <이미테이션 게임>에 등장하는 앨런 튜링도 있었죠. 이런 사람들이 당시에는 정신 나갔다는 소리를 들었어요. 그런데 그 사람들이 결국엔 여러 학문의 조상이 됩니다. 컴퓨터 공학의 조상이 되기도 하고, 네트워크와 관련된 행정학이나 사회학의 조상이 되기도 하는데, 제가 연구하고 있는 인지심리학의 조상이 되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처럼 생각하는 기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사람이 생각하는 구조의 설계도가 있어야 되기 때문이예요. 사람이 어떤 식으로 생각하는지 알아야 기계도 사람처럼 만들 수 있겠죠. 그리고 설계도는 미시적이어야 하니까 심리학자 중에서도 훨씬 더 미시적인 심리학에 관심을 가진 심리학자들이 인간처럼 생각하는 기계를 만들고 싶은 사람들과 만나면서 인지심리학이 시작된 것입니다. 그래서 인지심리학의 조상 중에는 물리학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연과학을 하는 사람 중 일부가 인간도 물리학적으로 연구를 하게 되어 싸이코피직스(Psychophysics), 즉 정신물리학이라는 것을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물리학적인 전통이 남아서 인지심리학에서는 극단적으로 미시적인 실험을 합니다.


인간의 심리를 물리학적인 방법으로 연구를 하고, 인간의 심리를 이용하여 물리학적인 성과물을 만들기 위한 사람들이 인지심리학을 만들어 낸 것이네요.

 

또 하나 인지심리학을 설명하는 방법은 다른 심리학과의 차이점입니다. 심리학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사람’을 바꿔야 된다는 접근을 합니다. 뭔가 문제가 있다면 원인은 나에게 있고 내가 더 적극적으로 변해야 한다는 것이죠. 대부분의 심리학이 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성격 얘기를 많이 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대부분의 심리학자들이 성격은 바뀌기 어렵다고 하면서도 사람을 바꾸라고 한다는 것이죠. 하지만 인지심리학자들은 기본적으로 사람보다는 상황을 봅니다. 그러니까 사람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바꿔서 결과를 바꾸는 거죠. 내 능력을 더 뛰어나게 만들거나, 내가 더 개방적이 되거나, 내가 더 우호적으로 변해서 결과를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인지심리학에서는 창조적인 사람, 창의적인 사람과 같은 표현보다는 창의적인 상황에 나를 넣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표현을 더 좋아합니다. 아직 사람 변수가 더 강한 지, 상황 변수가 더 강한 지 모르지만 중요한 건 상황 변수가 너무도 많다는 것이죠. 그래서 인지심리학은 ‘자기상황파악 설계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같은 노력을 하고, 같은 진정성을 가지고 있다고 가정했을 때 왜 누구는 더 성취하고 누구는 실패하는가를 설명하는 것이 인지심리학인 거죠.

 

 

우리는 무엇을 거꾸로 하며 살고 있는가?


『어쩌면 우리가 거꾸로 해왔던 것들』은 교수님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얘기를 하셨는데요, 어떤 특별한 상황이 있었나요?


대표적인 사례로 말할 수 있는 것이 설득할 때입니다. 설득할 때 정말 거꾸로 많이 해요. 예를 들어 제가 저희 대학 총장님한테 어떤 프로젝트를 해야 된다고 설득을 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러면 이 프로젝트가 얼마나 좋은 지 열심히 설명을 하게 되죠. 그런데 제가 방을 나가고 난 다음에 총장님은 이렇게 말하죠. “김교수는 아직도 철이 없어.” 그 소리를 듣고 제가 화가 나서 후배 교수들을 모아 놓고 또 설득을 합니다. 그런데 이 때는 이 프로젝트를 안 하면 대학이 망할 것이라고 열심히 얘기를 하죠. 그러면 제가 집에 가고 난 다음에 후배 교수들끼리 이렇게 얘기할 겁니다. “김 선배가 점점 ‘꼰대’가 돼 가고 있어.” 여기서 저는 나이의 변수를 놓친 겁니다. 나이가 나보다 많은 사람들은 나보다 걱정이 많습니다. 그리고 나보다 걱정이 많은 사람들은 ‘그걸 함으로 인해서 어떤 문제를 막아낼 수 있는가, 어떤 걱정을 덜어 낼 수가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나보다 위인 총장님한테 이 프로젝트를 하면 무엇이 좋은가만 열심히 얘기한 것이죠. 반대로 나보다 나이가 적은 사람들은 ‘그걸 하면 무엇이 좋은가’가 궁금합니다. 그런데 저는 후배들에게 그거 안 하면 망한다는 얘기만 열심히 했죠. 그래서 결국 나이 많은 분에게는 철없다는 소리를 듣고 나이가 어린 사람에게는 ‘꼰대’란 소리를 듣게 된 것입니다. 양쪽 모두에게 진심으로 노력했지만 양쪽 다 설득하기에는 실패한 겁니다.


‘생각의 틀 바꾸기’라는 장에서 심리학 용어인 ‘도식’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것을 봤습니다. ‘도식’은 사람의 행동이나 생각이 조직화된 패턴을 말하죠. 그래서 ‘도식’이 어떤 점에서는 일을 효율적이고 편리하게 해 줄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이 ‘도식’이야 말로 우리가 거꾸로 하는 행동의 원인을 제공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왜 그런 것인가요?


앞에서도 설명한 것처럼 상황의 힘이 무섭잖아요. 그런데 사람들은 종종 뭔가를 결정할 때 상황을 전혀 기억에 담지 않아요. 특히 결과가 좋을 때는 절대 상황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서 학생들에게 학점이 정말 좋았을 때와 학점이 정말 나빴을 때에 대해 글을 써보라고 한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학점이 잘 나왔는지에 대한 글에는 자신이 그 학점을 받기 위해 얼마나 열심히 공부를 했는지, 얼마나 부지런했는 지와 같이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가 들어 있습니다. 상황은 담지 않죠. 그런데 왜 학점이 잘 안 나왔는지에 대해 쓸 때는 친구들이 전부 군대에 가서 친구들 챙기느라 그랬다 거나 버스 정류장 공사를 하는 바람에 매일 지각을 해서 그랬다 거나 하는 것처럼 상황에서 원인을 찾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중요한데도 성공 스토리에서는 상황 변수를 찾아보기가 어렵다는 것이죠. 그러니까 이 얘기를 다른 말로 하면 성공 스토리에서는 아무 것도 배울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도식’은 내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했다는 철저히 자기 중심의 스토리예요. 즉 성공했을 때 도식이 많이 만들어진다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성공의 도식은 그 도식과 다른 상황을 만났을 때는 전혀 소용이 없는 지식이 돼 버립니다. 그래서 성공이든 실패든 나라는 변수와 상황에 대한 변수 모두를 잘 기록해 놓아야 합니다. 나의 도식은 나에게 별 도움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성공한 날에 대한 기록을 잘 해 놓아야 돼요.


나의 상황에 대한 도식이 나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지 못한 부분인 것 같습니다.


그렇죠. 내 자신에 대한 변수만 생각하죠. 그런데 상황 변수까지 기록해서 도식으로 만들면 안 보이던 것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내가 오전에 프레젠테이션을 해야 잘 되는 사람이었구나 하는 것을 깨달을 수도 있고, 맑은 날 보다는 흐린 날 일이 잘 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도 있습니다. 흐린 날 더 똑똑해 진다는 것이 아니라 그 상황 변수에 나를 집어넣으면 그 때 내가 취했던 생각의 방식이 더 구체적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걸 알아내기 위해서 상황 기록을 해서 도식화해야 된다는 얘기입니다.


왜 사람들은 상황 변수가 그렇게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감안하지 않게 되는 것일까요?


내가 노력을 많이 해서 뛰어난 결과를 얻었다고만 생각을 하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어떤 결과를 얻기 위해 전후 과정과 생각의 순서를 돌아보지 않기 때문이기도 해요. 그래서 생각은 몰입의 양보다 중요한 게 순서예요. 큰 목표를 만들어 놓은 사람들은 똑 같은 도구를 받아도 다른 사람과 다르게 느껴요. 다른 것을 볼 수 있거든요. 왜냐하면 생각의 순서를 바꾸기 때문이에요. 생각의 순서를 바꾸면 뇌가 얼마나 다른 방식으로 작동을 하게 되냐 하면 예를 들어 거짓말을 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사람이 있다고 해 보죠. 그 사람의 얘기를 끝까지 들어 본 후에 그 얘기가 거짓말인지 아닌지를 알고 싶다면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당신이 지금까지 얘기한 것을 거꾸로 한 번 얘기해 보세요’라고 하는 것입니다. 만약 거짓말이라면 절대 거꾸로 얘기할 수 없을 거예요. 이 실험은 생각의 순서를 바꾸는 것이 전혀 다른 일이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거꾸로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죠. 그래서 강의할 때 농담으로 집에 들어가서 거짓말을 할 때는 거꾸로 된 버전도 미리 생각해 놓으라고 말합니다. (웃음)


이 방법은 쉽게 알려줘서는 안 되는 고급 정보 같습니다. (웃음)


그런가요? 하하하.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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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과 직업이 만났을 때, 잘못된 만남이 되는 이유


우리는 종종 성격과 능력을 연결시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활발한 성격이 영업에 어울린다든지 조용한 성격이 연구원에 어울린다든지 하는 식으로 쉽게 생각하는데요, 여기에도 거꾸로 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서요?


기본적으로 성격에 맞는 일이라는 개념 자체가 허황된 것입니다. 물론 성격적으로 문제가 있다면 다른 얘기가 되겠죠. 하지만 성격을 다섯 가지로 나눠서 분류한 후 이 세상에 있는 수만 가지나 되는 직업과 연결시키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성격이 활발하니까 운동선수가 맞다는 것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얘기입니다. 운동 선수라는 것이 종목으로만 봐도 수십 가지 종류의 일로 나눠집니다. 야구 한 종목만 봐도 그 안에서는 여러가지 일이 있잖아요.


투수와 포수만 해도 적합한 성격이 다를 것 같은데요?


포수가 활발하면 큰일나죠. 결과적으로 성격이 활발하니까 운동 선수가 적합하다고 말하는 것은 성격이 차분하니까 운동 선수가 맞다고 하는 것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성격이 차분해야 잘 하는 운동도 있는 것입니다.


양궁은 성격이 차분해야 잘 할 것 같아요.

그러니까 성격이 차분하면 운동 선수를 하라고 하는 것이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성격이 차분한 사람이 잘 하는 운동은 뭘까요?’라고 질문을 조금 바꿔 보면 수 십가지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성격과 일의 종류를 연결하는 것이 무의미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한 쪽은 엄청나게 정밀한데 한 쪽은 지나치게 단순화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지심리학자의 입장에서는 어떤 성격이 리더에 적합하냐는 질문을 받게 되면 답답해요. 내성적인 사람이 리더가 되어야 좋은 분야가 있고, 외향적인 사람이 리더가 되어야 적합한 분야가 있습니다. 그 차이를 만드는 것이 바로 상황입니다. 나에게 적절한 상황을 만났을 때 더 좋은 리더가 되고 더 좋은 결과를 만들 수 있는 것이죠.


직업이야 말로 성격과의 연관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상황에서 더 많은 것을 찾아야겠네요.


성격 차이라는 말을 많이 하는데 그건 싫다는 표현을 성격을 이용해 돌려서 말한 것일 뿐입니다. 고려대 사회심리학과 한성렬 교수님도 ‘인색한 것과 검소한 것의 차이가 뭐냐’고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똑 같은 상황이라도 싫어하는 사람이 돈 안 쓰면 인색한 것이고, 좋아하는 사람이 돈 안 쓰면 검소한 것이 된다는 얘기예요. 인간이 기본적으로 좋아하는 감정에 상황을 대입했을 때 해석을 어떻게 하느냐의 차이거든요. 따라서 성격은 사람을 묘사하는 도구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성격을 가지고 어떤 사람에 대해 많이 설명하려고 하는 현상을 인지심리학자들은 ‘인지적 구두쇠’라고 합니다.

 

‘인지적 구두쇠’라고요?


생각을 많이 안 해보고 어떤 사람에 대해 판단하거나 예측한다는 말이죠. 인지심리학에서만 쓰는 표현입니다. (웃음)


생각에 구두쇠라는 표현을 쓴다는 것이 학문적 표현으로서는 참 재미있네요. (웃음)

 

 

까다로워지는 것이 적성의 시그널


심리학이라는 학문이 왜 생기게 된 것인가요?


19세기 들어오면서 자연과학이 급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합니다. 자연과학이 발전했다는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 많은 자연 현상을 숫자라는 단일 표기체로 표현하는 것이 가능해졌다는 것이예요. 압력, 온도, 크기, 질량뿐만 아니라 밝기 조차도 숫자로 표현이 됩니다. 자연 현상이 숫자로 표현되기 전에는 예를 들어 ‘어제 광주가 더 더웠을까, 아니면 대구가 더 더웠을까’ 가지고도 서로 더 더웠다고 싸울 수 있죠. 그래도 결판이 안 납니다. 그런데 어제 숫자로 광주 36.2도, 대구 37.4도라고 숫자로 표현이 되면 더 이상 논쟁이 필요 없어요. 도량형이 얼마나 엄청난 발견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걸 보고 부러워한 사람들이 있었어요. 철학자 중 일부가 ‘사람의 마음도 숫자로 표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생각한 것이죠. 사실 지금도 꿈 같은 얘기예요. 예를 들어서 상대방의 마음을 스캔해서 나를 어느 정도 좋아하는 지 알 수 있는 앱이 있다면 연애하기가 얼마나 쉽겠어요? 그런 발상을 한 철학자들이 있었는데, 그러다가 철학계에서 쫓겨난 것입니다. 실제로 칸트가 유럽 대학에 교시를 이렇게 내렸어요. ‘인간의 마음을 숫자로 측정 가능하다고 믿는 정신 나간 철학자들이 있으니 그런 인간들은 유럽의 대학에서 임용을 시키지 마라.’ 즉 심리학자들은 철학계에서 쫓겨난 사람들이에요. (웃음)

 

교수님도 심리학을 하고 계시면서 심리학에 대해 솔직하게 말씀하시네요. (웃음)


그런데 이렇게 얘기를 해주면 심리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무엇을 해야 할 지 알게 돼요. (웃음)

 

아직 자신의 길이 무엇인지 혹은 가고 있는 길이 맞는지 불안해하는 청년들에게 좀 더 힘내라는 말 말고 교수님은 어떤 말을 해 주고 싶으신가요?


저는 적성을 찾는다는 말을 별로 안 좋아해요. 뭔가를 찾는다고 하면 마음이 급해지죠. 적성은 나한테 오는 거예요. 내가 수많은 변수를 겪으면서 나에게 딱 맞는 것이 왔을 때 알아보기만 하면 되는 것이죠. 그래서 알아보는 눈을 갖는 것과 찾아가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찾아간다는 것은 내가 정확한 지점을 파악해서 그 지점으로 달려가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적성을 정확도의 개념으로 생각하기 쉽고, 안착해야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괴롭습니다. 저는 자신이 웬만큼 좋아하는 일을 30대 중반까지만 찾아도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느 정도 운이 작동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세상을 경험하다가 어느 정도 나에게 맞는 일이 왔을 때 그 다음부터 찾아가세요. 나에게 맞는 것은 내가 무엇을 할 때 오래 머무느냐를 보면 알 수 있어요. 결과가 안 나와도 오래 머무른다는 것은 그게 좋다는 뜻이에요. 그러면서 유난히 까다로워지는 지점이 있어요. 이것이 적성의 시그널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상당히 중요한 적성의 시그널이에요. 음악이라면 뭐든 좋아한다는 것은 적성의 시그널이 아니지만 예를 들어 재즈나 인도 음악은 좋아하지만 클래식은 미치도록 싫어한다면 이건 적성이에요. 까다롭다는 거죠. 셰프들도 까다로워져야 되잖아요. 그러니까 지금까지 적성을 찾는 방법과는 거꾸로 자신이 느끼기에 까다로운 분야에서 일을 하다가 완성도 있게 자신의 일을 찾아가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최대한 많이 돌아다녀보고 경험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거꾸로 해왔던 것들김경일 저 | 진성북스
어쩌면 일상에서 거꾸로 해온 것을 반대로, 즉 우리가 ‘거꾸로 해왔던 수많은 말과 행동들’을 조금이라도 제자리로 되돌려보려는 노력의 산물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신용목, 안희연 “또박또박한 문장으로 쓴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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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요일은 상황에 따라 시를 추천하고 매일 시를 배달해주는 큐레이션 검색 앱이다. “위축되어가는 장르인 시를 최소한 하루에 한 편이라도 읽게 하고, 시에 관심을 가지게 된 독자 대중이 더 많은 시 콘텐츠를 손쉽게 향유하게 만들겠다”는 포부로 시작해 이제까지 20만 명이 시요일을 이용했다. 시요일 론칭 1주년을 맞아 펴낸 『당신은 우는 것 같다』에서는 그동안 이용자들이 자주 검색했던 ‘가족’, 그중에서도 아버지를 주제로 안희연 시인과 신용목 시인이 각각 20편의 시를 엮어 아버지와의 경험을 떠올린 산문을 덧붙였다.


그렇게 ‘당신은 우는 것 같다’. 울고 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이 그저 그럴 것이라고 예상할 뿐인, 가장 가깝고 가장 서먹한 사이를 시인들은 어떻게 그려냈을까. ‘삶과 죽음이 싸우듯, 사랑과 미움이 서로를 찌르고 희망과 절망이 자리를 바꾸듯’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시인들은 시에서 각기 다른 아버지를 읽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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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정면으로 다뤄보겠다


시요일 1주년을 기념해서 책이 만들어졌어요. 시를 종이책으로 보는 게 익숙한 사람들에게 재미있는 시도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안희연 : 저는 스마트폰에도 익숙한 세대라, 시가 꼭 화면에 안 될 건 없다는 생각해요. 사실 사람들 곁에는 늘 시가 있었어요. 예전에는 ‘고도원의 아침 편지’가 이메일로 왔었다면 지금은 매체가 바뀐 거겠죠. 시요일에 소개된 시 중에서 반응이 좋았던 주제를 다시 책으로 엮었으니, 상호작용이 잘 되고 있는 게 아닐까요?


신용목 : 실질적으로 시의 생태장에 기여하는 건 시인선을 내는 출판사와 단행본 시장이었는데, 이제까지는 그런 장에서 벗어나 주제에 맞게 시를 골라서 내는 시선집이 더 많이 팔리고는 했어요. 그런 의미에서 시집 시리즈를 내는 창비가 ‘시요일’을 만든 건 새로운 장을 만드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해요. 새로운 매체로 생태장에 기여하는 조건을 만든 거죠.


시를 하나씩 소개하고 산문을 엮는 방식이었어요. 이제까지 읽어왔던 시집을 다시금 복기하는 과정이었을 텐데, 시를 고르실 때는 어땠나요?


안희연 : 의외로 바로 떠오르는 시도 있었고요, 묶으면서 이런 시가 있었지 하고 떠오르는 시도 있었어요. 주로 에피소드를 생각하면서 시를 떠올렸던 것 같아요. 이를테면 아빠 손바닥에 올라와 있던 기억은 꼭 쓰고 싶어서 아버지와 따뜻한 시간을 보내는 소녀의 목소리로 된 시집을 많이 찾아보고, 애호하는 시인들 시집을 다 꺼내놓고 뒤적이는 시간이 있었어요.


다시금 발견한 시는 어떤 건가요?


안희연 : 김수영 시인은 평소 정말 좋아하던 시인이었는데 이사를 하면서 집에 시집을 두고 가서 잊고 있었어요. 갑자기 떠올라 부랴부랴 언니에게 부쳐달라 부탁하고 처음부터 다시 읽으면서 「나와 아버지와 지렁이」를 찾기도 했고요. 아버지와 불화하는 이야기에서는 아버지뿐만 아니라 세계와 불화하고 날 선 목소리를 가진 여성 시인을 떠올리다가 김언희 시인의 「당신의 얼굴」까지 오게 됐어요.


신용목 : 정호승 시인은 워낙 유명하시지만, 「아버지들」은 아버지 이야기를 쓰기 위해 찾다가 만난 시이기도 해요. 고재종 시인의 「땅의 아들」도 오래 지난 시였지만 책을 준비하면서 다시 한번 읽게 됐어요.


안희연 : 아버지와 관련된 시가 없을 것 같은데 많아요. 오히려 그중에서 스무 편을 고르는 게 어려웠어요. 결국 시적으로 좋은 시, 아버지에 관해 절절하게 이야기하는 시를 골랐다기보다 제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맞물리는 시를 기준으로 뽑았어요. 너무 아버지에 관한 시만 스무 편을 싣고 싶진 않아서요. 젊은 시인도 많고, 오히려 아버지와 관련 없는 외국 시를 고르기도 했어요.


말씀하신 대로 아버지를 다룬 시는 정말 많아요. 자주 말해지는 소재는 자칫 진부하게 받아들여지기도 하고요.


신용목 : 아버지는 가부장제라는 부정적인 요소를 함의하고 있어요. 최근 여성주의 관점이나 가부장적 질서의 반성과 비판이 가해지는 지점을 생각하면 앤솔로지로 아버지를 다루는 것은 사실 실패할 확률이 높죠. 어머니로 했다면 더 폭넓고 사랑받을 만한 주제이긴 했을 거예요. 그럼 과연 아버지라는 존재가 왜 그렇게 복잡하게 얽혀 있을까, 부재한 사람이 아닌데 왜 부재한 것처럼 다룰까 그걸 정면으로 다뤄보겠다는 것이 이 책의 의도였던 듯해요.


시인 둘이 각자의 아버지를 이야기한 것도 또 하나의 의도였을까요?


신용목 : 아버지에 대한 뻔한 서사보다는 외진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고 생각해요. 저는 시골에서 크고, 안희연 시인은 도시에서 자라셨죠. 나이 차도 12년 나고요. 또 안희연 시인은 아주 어렸을 때 아버지께서 돌아가셨고, 저는 상대적으로 최근에 돌아가셨으니 이러한 결핍을 하나로 묶어서 드러내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작가들의 숙제, 아버지


안희연 시인님은 처음에 가족에게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쓰겠다고 말하자 첫 마디가 “정말 쓸 거야?”였다면서요.


안희연 : 저한테는 아버지라는 대상이 진부하지 않아요. 왜냐하면 한 번도 이야기해본 적이 없거든요. 워낙 일찍 돌아가셔서 오히려 청탁이 들어왔을 때 제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지, 어떤 기억을 쓸 수 있을지 호기심이 생겨서 하겠다고 했어요. 아버지가 부재한 사람들은 아버지를 말하는 것 자체가 상처지만, 항상 그렇지는 않다는 이야기를 건네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요. 아버지가 빈칸으로만 남아 있는 사람들은 그걸 채워가는 과정이 오히려 더 무궁무진하고, 실제로도 이 책을 통해 부재했던 아버지를 만나신 분들은 과거의 기억을 자꾸 꺼내고 그 빈칸을 채우는 느낌이 있어서 오히려 저한테는 진부한 접근은 아니었어요.


두 분의 차이점은 여러 가지지만, 무엇보다 어렸을 때의 아버지로 가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신용목 : 저도 말씀드릴 때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어요. 아버지가 부재한 분들에게는 어떤 식으로 다가가야 할지 익숙하지 않은 거죠.


안희연 : 어떤 독자분은 제 글에 대해 ‘너무 슬퍼요…’ 하고 별말씀을 안하시더라고요. 저한테는 아버지가 빈 공터처럼 남아있어서 애절하고, 다른 알록달록한 것은 신용목 시인이 하신 느낌이었달까요? 신용목 시인의 에피소드를 읽으면서 너무 재밌고, 부럽기도 했어요. 저에게는 없는 기억이니까요.


신용목 시인의 글에서는 아버지와 심각하게 불화하는데, 그 와중에도 웃음이 나오는 지점이 있었어요. 신병훈련소에서 아버지의 편지를 받은 장면이라든지요.


신용목 : 다 사실들이에요. 제 기억이 강렬하게 남아 있는 지점을 쓸 수밖에 없었어요. 책에는 짧게 썼지만, 만약 아버지와 거리가 좀 가까웠다면 구구절절 이럴 수 있느냐 썼을 거예요. 그때 기억이 처음엔 싫다가도 용서가 되고 객관화해서 바라볼 수 있는 시절이 온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다른 방식으로 쓸 수 있었던 게 아닐까요? 서커스 보러 가는 이야기도 지금은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때는 굉장히 심각한 문제였죠. 파출소에 전화해서 사생활 침해로 고소하겠다고 한바탕 뒤집어졌던 일이 떠올라요.

 

강렬한 경험과 기억을 묻어두고 있다가, 시간이 흐르고 복기했을 때는 다른 감정으로 길어 올려지기도 했을 텐데요.


안희연 : 시를 쓰는 것과는 정말 다른 감정이었어요. 얼마든지 아름답게 아빠와의 추억을 포장하고 드라마를 만들어서 한 편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쓸 수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그렇게 쓰고 싶지 않았어요. 제가 쓸 수 있는 가장 담백하고 또박또박한 문장으로 쓰려고 애를 썼고, 기간이 짧아서 차라리 다행이었다고 생각이 들 만큼 심리적인 압박을 받고 많이 울면서 썼어요. 저에게는 영원히 가지고 있는 크기의 슬픔이기 때문에 멀리서 봐도 여전한 거리가 유지되고, 쓰고 나서도 변한 것 없이 그 질량 그대로 저에게는 보존되고 있는 것 같아요. 다만 사적인 이야기를 꺼내놓고 솔직할 수 있었던 것은 죽음을 같이 감당해왔던 가족들에게 선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고, 엄마를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 아빠의 역할을 대신해야 했던 언니를 위로하고 싶은 마음이 앞섰어요.


가족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신용목 : 지금도 가족들에게 책을 안 보내줬어요. 이 책은 제가 아버지에 대해 갖춘 예의, 혹은 아버지를 추억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했어요. 형들이나 어머니는 또 자기 방식대로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추억하는 방식이 따로 있겠죠. 가족 중에 글쟁이가 한 사람 있다는 이유로 모든 가족이 글쟁이의 시선대로 그려지고 추억이 해석되는 것도 조심스럽고 불안해요. 특히 산문에서는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 이야기를 썼을 때 상처를 주거나 노출되길 원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요.


안희연 : 엄마는 제 기억에 오류가 많다고 하나하나 다 짚어주시면서도, 마지막에는 그 오류조차 너의 아빠고, 그대로 가지고 있으라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언니는 오히려 책이 나오니까 좋아했어요. 제가 상처이자 선물이겠지만 그래도 선물 쪽이었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둘 다 맞다고 대답해 줬거든요. 언니에게는 최대의 표현이었기 때문에 분명히 선물은 된 것 같아요.


아버지라는 존재 자체가 작가들의 숙제가 아닐까요? 가장 옆에 있으면서 어떻게든 쓸 수밖에 없는 소재예요.


신용목 : 제 첫 시집은 아버지 이야기가 정말 많았어요. 다 아버지예요.


안희연 : 신용목 선배님 시 중에 하나 골라야지 했는데… 너무 많더라고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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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우리의 이야기


두 분 다 산문집을 내신 적이 있어요. 시와 산문을 쓸 때 다른 점이 있나요?


안희연 : 시는 시인 안희연이 쓰고 산문은 그냥 안희연이 쓴 것 같아요. 이게 정확할 거예요. 이 책은 시인이 쓴 게 아니고 어린 날의 제가 쓴 거고, 너무나 개인적인 기록이에요. 그래서 자괴감이 들 때도 있었어요. 너무 사적인 것들을 많이 꺼내놔서 어디 가서 나를 감출 수도 없겠구나 싶었어요. 10년 넘게 아무에게도 말을 하지 않고 비밀로 혼자 간직한 아빠의 사인 같은 걸 책으로 내놓았다는 마음의 부담이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너무나 안희연이 안희연의 글을 쓴 거라고 봐주시면 좋겠어요.


신용목 : 다른 상황과 조건이 쓰는 거죠. 최근 문단에서도 시와 정동이라고, 자신이 분위기 때문에 쓰는게 아니라 분위기가 자신으로 하여금 쓰는 거라는 논의가 일어나는데, 그것과 연결되지 않을까요.


안희연 : 왜 갑자기 학술적인 이야기를 하고 그러세요.


신용목 시인의 글은 ‘시인 신용목’이 쓴 쪽에 가까운 것 같아요. (웃음)


신용목 : 지난 산문집은 그런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쉬울 줄 알고 봤더니 시랑 똑같고 너무 힘들다고요. 읽고 나서 ‘이건 신용목 이야기야’ 하면 산문인 것 같고요, ‘어? 이건 내가 썼지만 내 것은 아니야’ 싶은 마음이 들면 시인 것 같아요.


서로 글을 봤을 때는 기분이 어떠셨어요?


신용목 : 안희연 시인이 쓰는 산문은 한단계씩 밟아나가더라고요. 시가 건너뛰면서 다른 세계를 끌어당긴다면, 차곡차곡 한 문장 다음에 다음 문장이 오면서 생각의 순서를 밟아나가면서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느낌을 줬어요. 이 과정이 좋았어요.


안희연 : 신용목 시인을 원래 되게 좋아해요. 평소에는 격의 없이 잘 놀리다가 가끔 제가 좋아했던 시인이라는 걸 망각할 때가 있어요. 이 산문집을 읽고 나서 든 가장 큰 마음은 제가 겉모습만 보고 늘 감춰져 있던 선배의 속살을 내가 본 것 같다는 느낌? 그게 웃기든 슬프든 아름답든 치열하든 온도는 조금씩 다르겠지만 제가 되게 좋아했던 시인 신용목을 다시 만나는 느낌이었어요.


앞으로 두 분의 계획은요?


안희연 : 아마 시집을 묶어야겠죠? 현대문학의 핀 시리즈로 내년 초에 새 시집이 나올 거예요. 신용목 시인님도 같은 시리즈로 낼 거고요. 산문보다 시에 집중하려고요. 맨얼굴이 아니라 거의 뼈를 보여줬기 때문에 산문으로는 당분간 할 이야기가 없는 것 같아요.


신용목 : 저는 계획이 별로 없는 것 같아요. 계획을 짜기 전에 밀려서 사는 기분이 들고, 유능하거나 천재적인 분들이 뭔가를 기획하면 그때그때 오는 걸 쓰고, 앞으로도 저에게 뭐가 올지 모르지만 성실하게 대면했으면 좋겠습니다.


계속 페어로 붙어 다니시게 되겠네요.


안희연 : 그래서 신용목 시인에게 영혼의 단짝이 되겠다고 그랬더니 이미 단짝 아니었냐고 하시더라고요. (웃음)

 

 


 

 

당신은 우는 것 같다신용목, 안희연 저 | 미디어창비
아버지를 마냥 존경해야 하거나 연민하는 대상으로 그리지 않고, 시를 통해 그를 이해하고 그로부터 ‘나’를 성찰하는 시인만의 통찰력이 빛나는 산문집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가라시 미키오 “보노보노는 작품인 동시에 나의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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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는 ‘일상’이었다. 1986년부터 꾸준히 연재를 이어가고 있는 『보노보노』의 이가라시 미키오는 거듭 일상을 강조했다. 만화에서도, 삶에서도 일상은 그에게 가장 중요한 관심사였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같은 시간에 출퇴근을 하고, 정해진 시간에 식사를 한다는 이가라시 미키오는 정돈된 일상에서 생기는 작고 미세한 변화들을 포착하고 그것을 이야기로 그려낸다.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가라시 미키오의 만화 안에서 보노보노와 포로리, 너부리, 세 친구는 그렇게 천천히, 조금씩 성장하며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과 질문을 던지고 있다.


지난 6월 8일부터 12일까지, 4박 5일 간 한국을 방문한 이가라시 미키오는 인터뷰와 북토크, 사인회 등의 일정으로 독자와 만났다. 한국 독자의 관심이 매우 놀랍다는 그는 김신회 작가의 에세이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와 각종 굿즈가 인기를 얻은 것에 대해서도 일일이 언급했다. 『보노보노』뿐 아니라 아기 보노보노와 아빠의 육아를 담은 이야기 『보노짱』 , 2016년 보노보노 30주년을 맞아 출간된 새로운 시리즈 『보노보노스』 와 보노보노 공식 웹사이트 ‘보노넷’에서 모집한 고민과 답변을 묶은 책 『보노보노의 인생상담』까지 번역되어 있지만 아직 보노보노와 친구들을 만나지 못한 독자가 있을 터. 이 만화를 어떻게 소개하고 싶은지 묻자 “이 질문에 대해서는 정말 오랜 시간 생각해왔”다며 이렇게 말했다.

 

“당신 주변에 있을 법한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느긋하게 편안한 기분이 드는 동물 만화예요. 그러면서도 읽을 때는 가끔 진지하게 읽을 수도 있는 만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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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똑같은 일상을 보내는 것


작년 한 해 한국에서 만화 『보노보노』 와 캐릭터가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기분이 어떠세요?

 

제 작품이 해외에서 인기를 얻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못했습니다. 때문에 한국에서의 인기가 매우 놀랍습니다. 원래 저의 만화가 해외에서 받아들여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꽤 이전이지만 한국의 여러분에게 『보노보노』가 받아들여졌다는 것에도 놀랐었죠. 그로부터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보노보노』의 인기가 한 번 더 한국에서 나타났다는 사실에 무척 놀라고 있습니다. 저는 33년 동안 『보노보노』 를 연재했는데요. 이것에 대한 선물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어요. 김신회 작가님의 에세이, 애니메이션, 굿즈 등이 한국에서 인기가 있다는 점이 정말 놀라워요.

 

『보노보노』의 특징이라면 친근함, 편안함, 유머, 위로와 같은 것들이죠. 작가로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들은 무엇인가요?


일본이나 한국 모두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같을 거라고 생각해요. 나라는 달라도 사람이 살아가면서 생기는 감정은 만국 공통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우리 주변에서 만날 수 있는 모습을 그리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는데요. 주변에서 일어나는 것을 보고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어떻게 마주하고 있는지를 그리려고 하죠. 어디까지나 저는 주변에 있는 것을 그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일본과 한국의 독자 분들이 친근하게 느끼는 면이 아닐까요.


소위 만화라고 하면 판타지 세계기 때문에 저로서는 그쪽으로 가지 않고 좀 더 일상적인 것에 마음을 두고 그리려고 하는데요. 이런 점이 일반 만화와 『보노보노』가 다른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바로 그 점이 사람들에게 재미를 준 것이 아닐까 해요.

 

일상의 이야기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시는군요.


그렇지요. 뭐라 할까요. 만화가로서 저는 그다지 승부를 가리고 겨루는 이야기, 그를 통해 우정을 쌓고, 성장하는 모습을 그리는 타입은 아니죠. 일상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그리고 싶어요. 삶에 있어서도 저는 제 일상과 그 일상에 대해 제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가 아주 중요하거든요. 그것이 저의 중요한 관심사예요. 즉, 저의 삶의 방식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처럼 『보노보노』에도 일상의 이야기를 다루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만화도 늘 그렇게 그리고 싶습니다.

 

『보노보노』의 인기가 33년 동안 그려온 것에 대한 선물 같다고 하셨는데요. 33년은 아주 긴 시간입니다. 꾸준히 작업하면서 쌓인 작업 규칙, 루틴 같은 게 있을 것 같아요.


저의 규칙은 매일 똑같은 일상을 보내는 것입니다. 이것은 만화가로서 계속 해오다보니 점점 가능해진 것입니다만 저는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서 같은 시간에 출근하고 같은 시간에 퇴근하고 같은 시간에 저녁밥을 먹고, 같은 시간에 잡니다. 이것을 반복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묻는다면 이렇게 답하고 싶어요. 계속해서 같은 일상을 반복하다 보면 저의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조금 다른 변화 같은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아주 작은 변화도 쉽게 눈치 챌 수가 있는 거죠. 그런 변화 같은 것이 제 만화에 있어서는 중요하기 때문에 매일 같은 것을 반복합니다. 그것을 의식해서 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새 그렇게 되었습니다.

 

매일 같은 생활을 이어나가는 것이 힘들 때는 없었나요?


보통 매일 같은 생활을 하면 자극이 없게 마련입니다. 역시 그러한 자극이 없으면 곤란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런 것 때문에 그다지 곤란하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같은 것을 반복하고 머릿속에서는 그것과 다른 것을 반복해요. 뭐라 할까요. 저는 꽤 엉뚱한 것을 생각하기 때문에 오히려 컨디션의 변화가 문제가 됩니다. 매일 똑같이 생활을 하면 무엇보다 몸이 편합니다. 편한 일상을 살아가면 조금 편하지 않은 것을 생각할 수 있는 컨디션도 생기는 거죠. 오히려 매일 같은 것을 하지 않아서 편하지 않으면 엉뚱한 것을 떠올릴 수 없어져요. 대답이 되었을까요.(웃음)

 

에너지 배분에 관한 이야기 같네요.(웃음)


같은 것을 반복하면 체력적으로나 생활면에 그다지 부담을 주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상상력에 도움이 됩니다. 예를 들어, 혹시 누군가가 연애를 하느라 매일 꽤 기복이 심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고 합시다. 아마 그 사람은 만화를 그리지 못할 겁니다. 연애가 신경 쓰여서요. 저는 일상은 완만하게, 평탄하게 보내되 머릿속에서는 기복을 스스로 만들어 갑니다. 그것이 긴 시간 저의 컨디션을 생각해서 마침내 발견한 환경이 아닐까 합니다.

 

 

어른에게 어린이가


‘동굴 아저씨’와 같은 설정은 순수한 어린이의 시선이 잘 표현되어 있죠. 이 밖에도 『보노보노』 만의 순수한 상상력은 큰 매력인데요. 30년이 넘는 시간을 돌아봤을 때, 지금이라면 그리지 못했을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것도 있으세요?


처음 『보노보노』를 그릴 때는 제가 어린 시절에 갖고 있던 궁금증이나 상상 같은 것에 대해 어른이 된 제가 대답하는 방식이었어요. 하지만 어릴 때 생각한 의문이 지금도 저에게 있어서 간절한가, 라고 생각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간절했다면 아마도 대답하지 못했겠죠. 그런 의미에서 돌아보면 역시 ‘동굴 아저씨’와 같은 이야기는 지금은 그리지 못할 것 같아요. 저는 어렸을 때 망상을 정말로 실제 있는 것처럼 생각해버리는 아이였어요. 만화에 ‘아빠가 정말 우리 아빠일까’하는 의문이 나오는 부분도 있습니다만 그건 틀림없이 제가 어릴 때 했던 질문, 우리 가족이 정말 우리 가족일까, 라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에요. 지금도 그렇게 느끼진 않죠. 딸이 있는데요. 보기만 해도 “내 딸이구나” 알 수 있거든요.(웃음) 어렸을 때의 그런 의문은 역시 옛날이 아니면 생각할 수 없지요. 지금은 반대라고 볼 수 있어요. 어른인 저에게 어린이가 대답하는 방식이라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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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에 그려보고 싶은 작가님의 경험이 또 있을까요?


16살 때 쯤 메모만 남겨놓고 집을 나간 적이 있습니다. 학교가 싫고, 제 주변의 상황이 싫어서 가출을 했어요. 하루 종일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도망갔습니다. 도망갔지만 하루 만에 경찰에게 발견돼서 잡히고 말았어요. 그런데 단지 하루였음에도 굉장한 해방감을 느꼈어요. 드디어 도망쳤다, 라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비록 하루뿐이었지만 말이에요. 뭐랄까. 여러분에게 추천하고 싶은 경험은 아니지만 굉장한 시간이었습니다. 이건 아직 그리지 않았기 때문에 보노보노가 숲을 떠나는, 집을 나가는 것을 그려볼까 하는 마음도 있습니다.  
 
작가님이 가장 좋아하는 면을 닮은 캐릭터, 가장 싫어하는 면을 닮은 캐릭터를 각각 하나씩 말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언제나 같은데요. 우선 저와 가장 닮았다고 생각하는 캐릭터는 너부리입니다. 너부리는 매번 결심을 합니다. 저도 그렇거든요. 일을 그만 두고 어디론가 떠나볼까, 하는 결심을 늘 하지만 그것이 뜻대로 되진 않아요. 결심을 했다가도 흐지부지 되죠. 너부리처럼 말이에요.(웃음) 또 뭔가 잘 되지 않으면 금방 무기력해지는 면이 닮은 것 같습니다.


저의 싫어하는 점을 닮은 것은 너부리 아빠예요.(웃음) 매일 나쁜 말만 하고 다닙니다. 저도 가끔 너부리 아빠처럼 공격적인 말을 하거든요. 그런 점이 저와 쏙 닮았죠. 제일 좋아하는 점을 닮은 캐릭터는 물론 보노보노의 아빠고요.

 

좋아하는 캐릭터가 매번 바뀐다고 들었어요.


원래는 린의 아빠를 제가 가장 좋아한다고 답변하려고 했는데 깜빡하고 보노보노의 아빠라고 대답을 했군요.(웃음) 린의 아빠라고 답할게요. 매번 바뀌지만 이 자리에서는 린의 아빠라고 답하겠습니다.(웃음) 린의 아빠는 자신의 본심을 솔직하게 이야기하지 않아요. 린의 아빠 이야기 중에 ‘비겁한 사랑’이라는 에피소드가 있어요. 그 이야기를 다 설명하긴 너무 길지만요. 그 에피소드에서도 린의 아빠는 누군가를 사랑하지만 잘 표현하지 못해요. 그런 우유부단함이 마음에 들어요. 사실 그건 제 이야기라서요(웃음). 자세한 이야기는 책으로 꼭 봐주시기 바랍니다. 또 생각이 났는데요. 저는 야옹이 형의 남의 일은 신경 쓰지 않는 점을 좋아해요. 제가 좋아하는 저와 닮은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비겁한 사랑’에피소드, 아주 간단하게만 소개해주세요.


간단하게 말하면 린 아빠가 누군가를 조용히 좋아하는데 그것을 표현하지 못합니다. 자신에게 아이가 있어서기도 하지만, 본인이 좋아한다고 느끼는 것이 전부기 때문에 솔직하게 표현해야하는지 말아야 되는지 본인도 잘 모르죠. 그러한 우유부단한 부분이 역시 저와 닮은 것 같아요.

 

보노보노와 너부리, 포로리, 이 세 친구가 노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덩달아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릴 때도 그렇겠죠? 제일 즐겁게 그린 에피소드가 무엇이었는지 궁금해요.


보노보노와 포로리, 너부리, 이렇게 셋이서 폭포를 보러 여행을 떠나는 장면이 있어요. 저도 어린 시절에 친구들과 자전거를 타고 떠났다가 돌아온 경험이 있거든요. 그렇게 먼 곳은 아니었지만 굉장히 큰 경험이었죠. 때문에 그 추억을 떠올리면서 보노보노와 세 친구의 이야기를 그릴 때 굉장히 즐거웠습니다. 옛날에 제가 친구들과 자전거를 타고 갔던 경험이 되살아나더라고요. 마치 영화 <스탠 바이 미> 같았습니다.


또 하나는 보노보노의 아빠 등에 사마귀가 났던 ‘사마귀 승부’라는 에피소드인데요. 그 장면을 그릴 때 어떻게 하면 고통을 잘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어요. 너무 고민한 나머지 그 장면을 그리는 저의 등까지 아파질 정도였습니다.(웃음) 가장 흥분하면서 그린 에피소드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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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성장하고 있는 느낌


한 인터뷰에서 보노보노의 엄마 이야기를 가장 좋아하는 에피소드 중 하나로 꼽으셨어요. 그 이야기가 더 일찍 나오지 않은 이유는 뭘까요?


그러게 말입니다. 어째서 더 빨리 그리지 못했던 걸까요.(웃음) 아마 빨리 그릴 수 없었던 것이겠지요. 슬픈 이야기가 되어버릴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런 슬픈 이야기를 울지 않고 그릴 자신이 없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리지 않을 수 없었을 테고요.


처음 시작할 때는 아예 보노보노의 엄마가 나오지 않는 만화로 시작한 거예요. 그 이유로 꽤 긴 시간 엄마 이야기는 그리지 않았습니다. 엄마가 있는지 없는지조차도 모르는 상태로 시작을 했는데요. 그리다보니 언젠가 그려야겠다는 생각은 들었어요. 하지만 그릴 기회를 좀처럼 찾지 못했습니다. 점점 아무래도 엄마 에피소드는 그린다면 최종 에피소드로 해야겠다, 생각했고요. 인터뷰에서도 “엄마 이야기는 안 그리나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면 늘 가장 마지막에 그릴 겁니다, 라고 대답해 버렸습니다. 그런데 30년이 넘게 그리다보니 슬슬 엄마 이야기를 그려야 할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이제야 엄마 이야기가 나오게 된 겁니다.

 

보노보노의 엄마 이야기 외에, 앞으로 『보노보노』에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앞으로 보노보노라는 만화가 어떻게 될지는 생각해 본 적 없지만, 아까 말했던 보노보노가 집을 나가는 이야기를 그려보고 싶네요. 너부리가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를 그렸습니다만, 보노보노가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도 언젠가 그리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그것이 마지막 화가 될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앞으로 보노보노가 어떻게 될지는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다만 지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비극적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뿐입니다. 아직까지 앞으로 어떤 이야기가 진행될지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처음 만화를 시작할 때는 30년이 넘게 『보노보노』를 계속 그리게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하셨던 거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처음에는 10년 정도는 그리지 않을까 생각했었어요. 하지만 30년 넘도록 그리게 될 줄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지금도 그래요. 30년이 훨씬 지났다는 것이 실감이 나질 않아요.

 

작가님도 독자처럼 『보노보노』를 즐기시나요?


그건 무리입니다!(웃음) 아무래도 제가 그린 것이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고요. 여러분에게 보여드리기 전에 이미 머릿속으로 20-30번 생각해보거든요. 그러다가 이걸로 충분하겠지, 하는 단계에서 내놓기 때문에 혹시 10년 정도 지나서 다시 읽는다고 해도 역시 독자와 같은 입장이 된다고는 말할 수 없겠지요. 불가능해요. 단지 제가 그린 작품이라도 10년 정도 지나서 읽으면 저도 풉, 하고 웃을 때가 있습니다.(웃음) 기억하고 있는데도 웃깁니다(웃음)

 

보노보노와 친구들은, 변하지 않을까요? 이들도 나이가 들까요?


사실 아주 미묘하긴 하지만 보노보노와 친구들은 캐릭터 성격이 조금씩 변화해왔어요. 특히 포로리는 굉장히 많이 변했습니다. 포로리는 점점 강해지고 있죠. 그와 비슷하게 너부리도뭐랄까. 사람들에게 조금 다정해졌습니다. 보노보노는 어떻게 됐는지 생각해보면, 보노보노는 그다지 변하지 않았네요. 가장 변하지 않았습니다. 몇 년이 지나면 만화 안에서도 이 친구들이 나이 먹었다는 표현이 나올 수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캐릭터는 점점 성장하고 있는 느낌이에요. 저는 보노보노를 30년 이상 그려 왔으니까요. 이것은 작품이면서 동시에 저의 인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노보노와 친구들도 언젠가 죽는다고 한다면 그것은 역시 제가 더 이상 ‘보노보노’를 그릴 수 없게 될 때겠죠. 그러니까 가능한 한 계속 그려나갈 생각입니다.
 


자신이 그리고 싶은 것을 믿기를


꾸준히 만화를 그리는 것이 힘든 이유는 아이디어가 잘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 작가님은 어떻게 하세요?


물론 저도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정말 젖은 빨래를 꽉 짜는 기분이에요.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을 때는 그냥 일을 중단하고 집으로 돌아갑니다.(웃음) 젖은 빨래를 꾹 짜면 물이 나옵니다만, 그게 나오지 않을 만큼 짜도 하루 밤 두고 나면 또 조금 짤 수 있지요. 그래서 어쨌든 우선 집으로 돌아가죠.

 

한국에도 만화가를 꿈꾸는 분들이 많이 있는데요. 나만의 캐릭터로 30년이 넘는 시간을 그려온 작가님 입장에서 만화가를 지망하는 분들에게 꼭 해주고 싶으신 말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다른 사람을 흉내 내지 마세요. 자신이 그리고 싶은 것을 믿으세요. 자신이 그리고 싶은 것을 믿지 못하게 될 경우 그만둬도 상관없을 거라 생각합니다. 시대적으로 옛날 만화가와도 다릅니다만, 젊은 사람들은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너무 많이 듣는 것 같습니다. 만화가는 아무래도 출판사와 같은 주변의 이야기를 들을 수밖에 없지요. 현재 한국 만화의 상황을 잘 모르긴 하지만 지금 일본에서 만화가가 되고 싶고, 30년간 계속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만 두는 게 좋겠다고 말하고 싶어요.(웃음)

 

그만 두는 게 좋겠다고요.


예를 들어 지금 만화는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등으로 바로 받아들이고 있잖아요. 영화도, 만화도, 음악도, 전부 데이터로밖에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제가 만화가가 됐을 때는 만화 자체가 실물이랄까요. 이것은 진짜다, 라는 마음으로 그려왔죠. 반면 지금 독자는 만화를 진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인터넷이나 스마트폰 등으로 만화를 보고, 소설을 읽고, 음악도 들어요. 전부 여기서(스마트폰) 나옵니다. 그것이 진짜 음악일까요. 데이터에 불과할 거예요. 진짜 음악은 라이브, 혹은 음악 페스티벌 등에 있지요. 조금 다른 것이겠지만, 만화도 본인이 그릴 때는 라이브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데이터로 존재하기 때문에 저에게는 재미없는 부분도 있습니다.

 

디지털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으시군요.

 

어디까지나 VR(virtual reality, 가상현실)이라고 할까요. 아무리 훌륭한 것을 본인이 그려도 그것조차 데이터가 되어버리기 때문에요. 데이터가 되는 것이 좋다, 나쁘다, 라 할 것은 아니겠지요. 시대가 그렇게 되어버린 겁니다. 그래서 앞으로 30년간 할 거라면 저와는 전혀 다른 각오인 만화가여야 할 것 같아요. 그게 아니면 계속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혹시라도, 아직 『보노보노』를 만나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소개하고 싶으세요?


이 질문에 대해서는 정말 오랜 시간 생각해왔어요. 지금 생각해도 그 답변 외에는 없을 것 같은데요. ‘당신 주변에 있을 법한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느긋하게 편안한 기분이 드는 동물 만화예요. 그러면서도 읽을 때는 가끔 진지하게 읽을 수도 있는 만화입니다.’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보노보노스이가라시 미키오 글그림/고주영 역 | 더스토리
단순하지만 귀여운 그림체의 세 캐릭터들이 나누는 깊이 있는 대화 속의 문장들은 우리에게 잔잔한 감동과 재미를 안기며 보노보노를 사랑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태균 “조금 먼저 아팠던 거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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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살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에 암 판정을 받으면서 처음으로 ‘인생…, 이 더러운 자식…’이란 생각을 한 이후로 운명은 정말이지 창의적인 방법으로 꾸준히 저희 태클을 걸고 있지만, 그래도 저는 나름대로 운이 좋은 20대를 보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잘생김은 이번 생에 과감히 포기’해야 했어도 잘생김보다 더 많은 것들을 얻을 수 있었으니까요.” (6쪽)

 

혈액암에 걸린 사실을 처음 알게 된 건 스물두 살이었다. 별다른 증상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코피가 자주 났는데 원래 그런 사람도 있다는 말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다 어느 날부터 코에서 이상한 냄새가 났다. 둔감한 후각 때문에 주변에서 먼저 알았다. 아무래도 심상치 않다는 가족의 손에 이끌려 억지로 병원에 갔을 때 혈액암 판정을 받았다. 1년간 입원과 치료를 반복했다. 방사선 치료가 끝난 다음 해 편입학원에 등록하던 날, 재발 판정을 받았다. 오전에 학원에서 오리엔테이션을 듣고, 오후에 병원에서 입원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리고 그때는 생각지도 못했던 긴 싸움이 시작되었다.

 

『잘생김은 이번 생에 과감히 포기한다』는 일종의 싸움 일기다. 어떤 날에는 병과 싸우고, 어떤 날에는 자신과 싸운다. 시선과 싸우기도 하고, 내면의 고요함이나 외로움, 기쁨이나 슬픔과 같은 감정과 싸우기도 한다. 스물둘부터 시작한 싸움을 들여다보며 무심하게, 어쩌면 지나간 지금에서야 내뱉을 수 있는 문장 하나가 남았다. ‘잘생김은 이번 생에 포기한다.’ 책 한 권을 읽고 나면 이 문장에 담긴 의미가 묵직하게 느껴진다. 가볍지만 가볍지 않은 이야기를 가만히 듣다가 문득, 나는 무엇과 싸웠으며 싸움의 대상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았는지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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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기억할 자료가 너무 없다

 

출간된 지 2주 정도 지났어요. 주변에선 어떤 반응이었나요?

 

의외라고들 해요. 주변에 출판한 작가가 있는 게 신기한 것 같아요.

 

원래 글을 쓰던 분일 거라고 추측했어요.


아니요. 전혀. 주변에서 좀 당황했어요. 평소 외향적인 편이었어요. 책 읽는 건 어릴 때부터 취미였는데, 그걸 자랑하듯 이야기하지 않잖아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보기에 저는 전혀 책과 관계없는 사람처럼 보였을 거예요. 독자로는 오랜 시간을 보냈지만, 쓰는 건 병원에서 처음이었어요.

 

생각했던 감정이나 마음이 글로 잘 표현이 되던가요?


좋은 책을 많이 읽었던 것 때문에 힘들었어요. 쓰는 건 몰라도, 읽는 건 항상 수준 높은 작가의 글을 읽잖아요. (웃음) 그러다 보니 제가 쓰는 글이 제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건 물론이고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지는 거예요. 그러다 문득 누가 나한테 대단한 작가의 수준을 기대하는 게 아니니까. 친한 친구랑 대화하듯이 쓰자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생각하니까 쓰는 것도 자연스러워졌어요.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어요?


글을 올릴 때는 암 치료 자체는 끝난 상황이었고, 성형수술을 할 때였어요. 성형수술을 8차까지 했거든요. 투병하며 썼던 글을 그동안 올렸어요. 원래는 개인 출판을 해서 간직하려고 했어요. 알아보던 중에 친동생이 브런치라는 사이트를 알려주면서 한번 올려보라는 거예요. 드러내서 활동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라 고민했어요. 안 될 거로 생각하고 작가 신청을 했는데, 된 거예요. 책에 담긴 글을 쓴 시기는 암 투병 시작했을 때부터 2016년 정도까지인 것 같아요. 그때그때 생각나던 순간이나 감정을 솔직하게 썼어요.

 

몸이 힘든 것보다 마음이 힘든 게 더 괴로웠다고 하셨어요. 마음을 치료하는 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하셨는데, 글을 쓰면서 감정적으로 힘든 부분이 많이 해소됐는지 궁금해요.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하기 힘들잖아요. 매일 아프다는 걸 이야기해서 나아지는 것도 아니고, 주변 사람도 영향을 받으니까요. 그래서 그냥 하고 싶은 말을 생각 없이 썼던 것 같아요. 글을 쓰면서 매일 차올랐던 감정이 해소되는 느낌이 있었어요.

 

아팠던 이야기를 하는 게 불편하지는 않았나요?


아팠다는 게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누구나 아플 수 있는데 내가 좀 더 일찍 아팠던 거고, 글로 썼더니 사람들이 좋아해 줬다.’ 이 정도로 생각해요. 다만 사람들에게 보이는 글이니까 좀 덜 냉소적으로 쓰자고 생각했어요. 자칫 제 글을 본 사람들이 ‘암 별거 아니네.’같은 인식이 생겨서 누군가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잖아요. 글을 올리면서 그런 생각을 하지는 않았는데, 주로 아픈 분들이나 상처받은 분들이 제 글을 읽고 공감했다는 이야기를 해 주시더라고요. 나는 내 이야기만 한다고 생각하지만, 누군가에겐 아픈 사람이 하는 이야기니까 저 때문에 편견이 생길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거죠.

 

주로 어떤 피드백이 오던가요?


투병 중인 분이 많았어요. 어떤 병을 앓고 있고, 얼마나 되었다고 이야기하면서 힘을 받았다는 글이었죠. 그러다가 저랑 나이가 비슷한 분에게 메일이 오면, 그런 날은 힘들었어요. 이 사람이 얼마나 힘들지, 지금 어떤 상황일지 짐작이 가니까요. 그런 날은 멍하게 보냈어요. 브런치 할 때는 이따금 연락이 왔는데, 책을 낸 후에는 꾸준히 오는 것 같아요. 


초음파 검사를 받는 중, 불편한 부분은 없냐고 물어보는 간호사님께 “저…  배 속의 아기는 건강한가요?”라고 물었지만 웃어주지 않았다. 아…,병원 생활 중 베스트 5 안에 드는 상처로 남을 것 같아. (108쪽)

 

2009년 카투사 복무 중에 암 발병 사실을 알았을 때와 2011년에 재발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느낌이 달랐을 것 같아요.


처음 암에 걸렸다는 걸 알았을 때는 와닿지 않았어요. 누구나 아플 수 있잖아요. 그러니까 내가 아프구나. 그랬어요. 친구들이 문병 오면 ‘암이래.’ 했던 거 같아요. 치료하면 괜찮아질 거로 생각했거든요. 재발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좀 암담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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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 투병 전 김태균 저자의 모습.

 

주변에선 암에 걸렸다는 이야기 들었을 때 어땠는지 궁금했어요.


책에도 자주 등장하는 친한 친구 셋은 아무 생각 없었어요. 저랑 비슷했던 거죠. 암에 걸렸으니까 이제 이별 여행 가야겠다고 온천으로 이별 여행도 갔거든요. 어머니가 이별 여행이 뭐냐고 어이없어하시고요. 재발했을 때는 친구들도 다 바쁜 시기였어요. 군대 가기 직전인 친구도 있었고, 외국에 있는 친구도 있었어요. 그땐 친구들도 저도 좀 슬펐죠.

 

책을 읽으면서 많은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암 환자의 이미지가 병실과 병원복 같은 것에 고정되어 있었어요. 아픈 사람에게도 입체적인 감정과 모습이 있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된 것 같아요.


누구에게 어떤 부분을 알려야겠다고 쓴 글은 아니었어요. 그냥 개인적인 치료 목적으로 썼던 것 같아요. 마음이 정말 힘든데,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이야기하기도 그렇잖아요. 이야기한다고 나아지는 것도 아니고요. 그래서 그냥 하고 싶은 말을 생각 없이 썼던 것 같아요. 매일 느끼는 감정을 따라갔어요. 그래서 글을 보면 슬픈 날에는 슬픈 글, 기쁜 날에는 기쁜 글을 썼어요. 계속 쓰다 보니까 감정이 해소되는 느낌이 있었어요.

 

평소에는 그렇게 자기감정을 자세히 들여다볼 기회가 없잖아요.


맞아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아프고, 매일 누워있었으니까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었어요. 그래서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때그때 들었던 감정 상태나 떠오르는 걸 핸드폰 메모장에 쓰고, 글로 풀었어요. 

 

병원에서 쓴 글인데도 우울하거나 슬픈 감정만 담긴 게 아니라 상황을 객관화하고, 곳곳에 농담이 있어요.


처음 쓸 때는 모든 감정을 다 털어놓았죠. 그러다 브런치에 올릴 때는 감정을 절제하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감정을 드러내는 글보다는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게 좋은 글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읽는 사람이 감정을 느끼게끔 하고 싶었어요.

 

‘해리포터 시리즈’의 볼드모트의 외모를 자신과 비교하며, 어쩐지 그의 비뚤어진 성격이 이해가 된다고 하셨어요. 치료를 받으면서 예전과는 다르게 생각하게 되었다거나 관점이 달라진 부분이 있나요?


성격이 많이 달라졌어요. 예전엔 이해할 수 없던 것들을 그러려니 한다고 해야 할까. '어떤 사람이든 각자 생각한 바대로 살겠구나.’ 하는 거예요. 굳이 이해한다기보단 저런 사람도 있다고 인정하게 된 거 같아요.

 


싸움을 그만하기도 계속하기도 했다

 

‘5차 치료를 마치고 더이상 병원에 가지 않기로 했다’고 하셨어요. 굉장히 극단적인 선택으로 보였어요.


맞아요. 정말 더는 치료받기가 힘들었어요. 하기 싫다는 말 외에는 지금은, 왜 그랬는지 설명을 못 하겠어요. 책을 정리할 때도 다시 생각해 봤는데 뭐라고 설명할 수가 없었어요. 그냥 무작정 담당의를 찾아가서 ‘못하겠습니다. 안 할 겁니다.’라고 말했어요. 선생님도 당황했는데, 딱히 어떤 말로 저를 설득하지는 않았어요. 그냥 자연스럽게 알았다고 하고 보내주셨어요.

 

책 곳곳에 간혹 ‘이렇게 아플 거면 죽고 싶다’ 같이 죽고 싶은 순간에 관한 표현이 있었어요. 병원에 가지 않겠다는 결정이, 삶을 포기하겠다는 결정이었나요?


그걸 막연하게 생각했을지는 모르겠는데 그런 결심을 한 건 아니었어요. 그야말로 치료를 그만 받겠다는 것만 선택한 거였어요. 부모님은 평소에도 제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끔 해주시거든요. 그때도 별 말 없이 제 선택을 지지해 주셨던 거 같아요. 지금 생각하면 모두 반쯤은 뭐에 홀린 것 같아요.

 

치료를 중단하고 의왕시에서 얼마간 지내잖아요. 그때야말로 투병 생활 중에 가장 평화로운 시간으로 그려져요.


정확하지는 않은데 3~4개월 정도 지낸 거 같아요. 도시에서 태어나 자라서 시골에서 지내는 게 좋았어요. 늦게 일어나서 대충 아침밥을 차려 먹고, 면역력 높여주는 약 같은 거 챙겨 먹고, 주로 책을 읽었던 것 같아요.

 

그 시간 자체는 행복했지만, 치료를 중단한 것 때문에 심각한 상황까지 갔잖아요.


얼굴이 퉁퉁 부어서 다시 병원을 찾았어요. 의사가 보더니 남은 수명을 3개월 예상하더라고요. 그 이야기를 듣고 채혈실에 피를 뽑으러 내려갔는데 그때는 좀 많이 울었던 거 같아요. 권위 있는 사람에게 곧 죽는다는 말을 들었던 게 처음이었으니까요. 우는 걸 수습하느라 힘들었어요. 치료받으며 숱하게 죽고 싶었고, 죽는 게 나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정말 죽고 싶었던 게 아니었던 거예요.

 

치료를 중단했던 걸 후회하지는 않았어요?


만약 계속 치료했다면 이렇게까지 얼굴이 상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을 때는 후회하기도 했어요. 그래도 의왕시에서 생활했던 것 자체는 즐거웠어요.

 

돌아와서 3개월 판정을 받고, 다시 치료를 받잖아요.


막상 죽는다는 이야기를 들으니까 뭔가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친구들에게 농담 삼아 그런 이야기도 했어요. 만약 내가 죽으면 내 유산은 네가 책임지고, 노트북이랑 외장 하드에 있는 건 네가 좀 어떻게 해줘. (웃음) 진지하게 한 게 아니라 그냥, 계속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내가 죽어도 너무, 낙담하지 말아라. 주변 사람들이 너무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다행인 건 그때 제가 처방받은 약이 임상시험을 막 끝낸 신약이었어요. 그전까지는 거의 살 가망이 없었는데, 기적적으로 그 약이 제게 잘 맞았던 거예요. 의사 선생님도 놀랄 정도였어요. 약 먹고 하루하루 치료를 받다 보니까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다시 들지는 않더라고요. 그냥 치료받는 데 집중했던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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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준히 하는 것, 꾸준히 사는 것

 

요즘에는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해요.


일단 치료는 끝났는데 면역력이 굉장히 약해져서 생활하는 거 자체가 남들보다 힘들어요. 감염도 쉽게 되고, 피곤하다는 것도 보통 피곤한 것과는 다르게 급격하게 피곤해져서…. 암 치료가 끝났으니까 아팠다고 말하기도 좀 그런 상황이 된 거죠. 그래서 항상 소소하게 앓고 있어요. 그러면서 현실적으로 앞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위해서 공부하고 있어요.

 

어떤 공부요?


수능을 다시 보려고요. 휴학을 오랫동안 해서 다시 못 간 것도 있지만, 원래 전공이 경영학과였거든요. 면역력이 약해진 상태로 기업에 취직할 수도 없고, 사업을 할 수도 없잖아요.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할까 생각하다가 교대에 가려고 공부를 다시 하고 있어요.

 

최근에 브런치에 올라온 글을 보니까 소설을 쓰신다고도 하셨어요.


이제 에세이로 할 이야기가 없는 것 같아요. 제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한 것 같기도 하고요. 소설도 써 본 적은 없지만, 꾸준히 하려고요. 암 치료를 마치고 일상생활을 하면서 느낀 건데 천재가 아닌 이상 꾸준히 하는 방법밖에 없더라고요. 재능이 없으니까 꾸준히라도 하자. 그러면 대단한 작품이 나오지는 않겠지만, 언젠가 내가 만족할 만한 작품은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하려고요.

 

꾸준히 기록한 걸 책으로도 출판했고요.


맞아요. 인생에서 취미가 정말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림 그리기, 피아노 치기, 목공예가 취미예요. 공부하면서 틈틈이 헤요. 언젠가 일을 시작해도 결국엔 그만두는 시기가 오잖아요. 그때 할 수 있는 취미 생활이 풍부했으면 좋겠어요. 꾸준히 하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잖아요. 꼭 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한다기보다는 그냥 자연스럽게 하는 것 같아요. 공부하다가 잠깐 그림 그리고 싶을 때 그리고, 하루에 20~30분씩 피아노 치고 싶을 때 치고, 그렇게요.

 

독자가 이 책을 어떻게 읽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나요?


그냥 재미있게 읽어줬으면 좋겠어요. 같은 책을 읽어도 재미있다고 읽는 부분이 다 다르더라고요. 어떤 의도로, 어떤 주제를 전달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쓰기보다는 받아들이는 사람이 판단해서 무언가 얻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만약 그게 ‘앞으로 이런 글은 안 읽어야지.’라도요. (웃음)

 

술자리에서 친구가 본인의 슬픔 일부를 공유하고 위안 삼는 것에 묘한 안도감을 받았다고 쓰셨어요.

어린 나이에 이런 이야기하는 게 웃길 수도 있겠지만, 사는 게 엄청 대단하다는 생각이 안 들더라고요. 어떤 상황에서든 어떤 일을 하든,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마음으로 살면 되는 것 같아요. 글을 쓰고,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이런 생각을 했어요. 우리가 배운 교과서나 읽었던 책에는 인간은 소중하고, 아름답고, 고귀한 존재라고 하지만, 생각보다 인간은 아무것도 아닐 수 있겠구나. 우주에서 먼지 한 톨도 안 되는 인간이 바득바득 산다는 이야기를 하잖아요. 거기에 공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래서 인생이 하찮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게 아니에요. 그냥, 먼지가 대단히 움직인다고 해서 크게 바꿀 수 있는 것도 없잖아요. 그러니까 심각하게 생각할 것 없이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잘 살자고, 그렇게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책을 읽고 감동했다는 반응보다는 ‘이런 사람도 사는데 나도 어떻게든 살면 되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해 주셨으면 해요. 그게 제일 좋을 것 같아요.


 

 

잘생김은 이번 생에 과감히 포기한다김태균 저 | 페이퍼로드
이제 갓 서른 초반이 된 저자의 목소리가 나이를 초월한 울림을 주는 이유는, 한창 나이에 누구보다 죽음과 가까이 있었고, 문장 곳곳에 숨어있는 인생사에 대한 통찰들이 있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기호 “당신의 환대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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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산’과 ‘바다’ ‘침몰’ 이후 한국 사회 구성원들은 모두 부끄러웠다. 피해를 막지 못해 좌절했고, ‘착하고 애꿎은’ 사람들에게 비난을 들이대는 게 참담했고, 약자에게 손을 내밀고는 이 행동이 위선이 아니었는지 혼란스러웠다. 소설가 이기호도 마찬가지였다. ‘유머리스트’ ‘재담꾼’이라는 그의 수식어는 이번 단편집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에서 어느 정도 줄어들었다. 모욕을 당하기 전에 먼저 공격하고(「최미진은 어디로」), 화를 내야 할 대상이 아닌 사람들에게 화를 내게 되는(「나정만씨의 살짝 아래로 굽은 붐」 「권순찬과 착한 사람들」) 자신을 볼 때마다 부끄러워 유머를 구사하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책에 묶인 7편의 단편 제목은 모두 등장인물의 이름이 들어간다. 너무나 평범하고 고유한 인물의 이름은 자신이 아는 누군가를 떠올리게 한다. 과연 우리는 권순찬에게, 한정희에게, 이웃과 타인에게 완벽한 환대를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왜 애꿎은 사람들에게 화를 내는 걸까? 독자를 내내 불편하게 하는 질문은 여전히 소설가 이기호를 괴롭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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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향한 친절함

 

제목만 봐도 ‘이기호표 소설’이라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표제작은 어떻게 정했나요?

 

교정지를 받기 전부터 내심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를 표제작으로 내세울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편집부에서도 흔쾌히 제 의견을 받아주셨고요. 다른 단편 제목이 워낙 ‘후져서’이기도 했지만,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라는 제목에 제가 이 소설집에서 하고 싶었던 말이 좀더 함축적으로 담겨 있다고 생각했습니다(프로야구 삼성 라이온즈에서 뛰고 있는 ‘강민호’ 포수를 염두에 둔 제목은 아닙니다. 저는 한화 이글스 팬입니다). 방점은 ‘교회 오빠 강민호’보다는 ‘누구에게나 친절한’에 찍혀 있습니다. 이 자리를 통해서 전국의 수많은, 선량한 ‘교회 오빠’들에게 심심한 사과의 말씀도 드리고 싶습니다.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에서 강민호는 도대체 무슨 일을 저지른 걸까요? 작가님의 머릿속에는 그 답이 있겠죠?


제가 소설에 대해서 세세하게 말씀드리면 독자분들께 누를 끼치는 일이 될 거예요. 그래도 희미하게나마 말씀드릴 수 있는 건, ‘강민호’는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고, 또 무슨 말을 했는지,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이 맞습니다. ‘누구에게나 친절한’ 사람인 것 같지만, 그래서 조금 위험한 인물이기도 하지요. 타인을 자신과 ‘동일화’시켜서 보는 사람의 전형이에요. 그 말은, ‘누구에게나 친절한’ 것 같지만, 실은 ‘자신’에게만 친절한 사람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런 ‘친절한’ 사람들의 정서는 대부분 오래가지 않고 일시적으로 끝나고 말죠. ‘강민호’는 ‘윤희’를 볼 때도 자신을 보는 남자입니다. 자존감이 낮은 남자죠.

 

이전에 등장인물 이름을 지을 때 옥편과 뜻풀이를 보면서 짓는 편이라고 말씀한 적이 있습니다. 이번 책에서는 단편의 모든 제목에 등장인물의 이름이 들어가는데요, 어떻게 나온 이름들인가요?


그동안 제 소설에 나왔던 등장인물 이름이 ‘시봉이’ ‘순덕이’ ‘진만이’ ‘복만이’처럼 좀 촌스럽잖아요? 촌스럽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나름 그 이름들을 옥편 찾아가면서 이런저런 의미를 부여하면서 지었는데, 아무래도 좀 튀는 인물들이었습니다. 그 인물들이 놓인 상황도 특수하고 예외적인 환경이었구요. 너무 특수한 인물이 특수한 상황을 만나 벌어지는 일들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소설집에 나오는 인물들이 겪는 사건 또한 일반적이진 않지만, 등장인물만큼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접하는 이웃들의 모습이기를 바랐습니다. 특별한 인물이어서 특별한 선택을 하는 게 아니고, 누구나 예외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 누구 하나 예외적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그런 마음이 좀 컸습니다.

 

G시에 있는 대학교에서 교수로 일하는 이선생(「권순찬과 착한 사람들」), 안 팔리는 작가(「최미진은 어디로」), 마지막 ‘이기호의 말’ 등 여전히 자기 조각과 이름 일부를 가져다 쓰기를 즐겨 합니다.


소설은 명백히 허구의 산물이지만, 전적으로 그것만 작동하는 세계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쓰는 사람의 조각이 틈틈이 새겨져 있죠. 그걸 숨바꼭질하듯 꽁꽁 숨겨두고 감추고 하는 일이 어느 순간 지겨워졌습니다. 작가인 ‘이기호’를 숨겨둔 채 인물들을 다루다 보면 어쩐지 저 위에서 내려다보면서 글을 쓰는 것 같은 마음이 들기도 했고요. 소설 속에 나오는 ‘이기호’는 실제의 이기호와는 어느 정도 차이가 있지만, 고유명사의 차원에선 ‘최미진’이나 ‘김숙희’나 ‘강민호’와 같은 사람일 뿐입니다. 살아 있는 ‘이기호’를 통해서 소설 속 그들이 좀더 생생한 느낌으로, 허구 속 인물이 아닌 사람으로, 독자들에게 다가가길 바랐습니다.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태도

 

책을 읽고 나면 ‘윤리’와 ‘부끄러움’이라는 단어가 공통으로 떠오릅니다. 오랫동안 천착한 주제라는 느낌을 받았는데, 언제부터 이러한 주제를 고민하게 되었나요?


아마 저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작가가 공통으로 고민하고 있는 주제일 겁니다. 소설이라는 장르가 기본적으로 집단보다는 개인을, 도덕보다는 윤리를 더 깊이 있게 고민해보고자 탄생한 예술이니까요. 문제는 그래서 지금 모두 ‘윤리’에 대해서만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윤리’가 우세종이 되었고, 어떤 집단의 가치가 되어버린 듯한 느낌입니다. 그게 나쁜 것은 아니지만,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고 되풀이한다는 데 문제가 있는 거 같습니다. 예술은 반복하고 되풀이하면 그냥 기술이 되고 말죠. 제 문제도 아마 거기 있는 거 같습니다. 또다른 이야기나 낯선 목소리로 나아가야 하는데, 자꾸 손쉬운 방향으로만 가는 것 같아서, 그게 좀 고민입니다. 제 소설 속 인물들이 나름 윤리적이면서도 ‘부끄러움’이나 ‘죄의식’에 빠지는 이유도, 그 ‘윤리’가 교육받고 어느 정도 ‘뻔한’ 상태에서만 진행된다는 거, 거기에서 오는 부끄러움인 거 같습니다. ‘뻔한’ 게 제일 싫은데, 제 모습에서도 자꾸 그걸 느끼게 됩니다.

 

「나정만씨의 살짝 아래로 굽은 붐」은 용산 참사 이후 그 자리에 오지 않았던 크레인 기사를 만나는 소설가의 이야기입니다. 상대적으로 얼마 지나지 않은 사건이기도 하고, 사건에 연루된 실제 사람들에게 영향이 갈 수도 있다는 부담은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부담은 있었지만, 무언가를 꼭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뜻하지 않은 참사와 그로 인해 고통 받은 사람들이 뻔히, 아주 가까운 곳에 있는데, 나는 왜 이렇게 침묵하는가? 그런 고통을 볼 때마다 왜 내 소시민적 욕망은 더 강화되는가? 그런 마음들에 대해서 정직하게 바라보고 싶었습니다. 정면으로 다루거나 부딪치지는 못했습니다. 저는 아무것도 한 게 없으니까요. 개인적으론 저 자신의 모습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난 소설이기도 합니다.

 

<월간 채널예스> 2017년 5월호 인터뷰에서 “지금 시대에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게 사는 게 좋은 삶이 아니”라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http://ch.yes24.com/Article/View/30682) 아무렇지 않은 태도로 사는 삶을 경계하는 태도가 이번 소설집에서도 드러난 것 같은데, 어떤가요?


맞습니다. 계속 그 지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죠. 어떤 일이 일어나도 아무렇지 않은 태도는 얼핏 보면 쿨한 거 같지만, 타인을 바라보고 있지 않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타인을 보더라도 타인에게 덧씌워진 자신의 이미지를 더 중요하게 보기도 하지요. 그게 다른 사람들 문제라고만 생각했는데, 저 또한 그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작가로 살다 보면 자칫 그런 태도에 빠지기 쉽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작가란 아무래도 혼자 골방에 앉아 자기 자신과 싸우고 대화하는 시간이 길어지니까요. 타인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고 믿었는데, 돌아보니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을 때가 더 많았던 거 같아요. 그 태도에 대한 이야기들이었습니다.

 

「권순찬과 착한 사람들」에서 주인공은 김석만씨를 만나고 이야기를 써야겠다고 결심합니다. 현실에서 애꿎은 사람들에게 화를 낸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솔직히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그 사실을 쉽게 알아차리지는 못하겠죠. 그 소설 역시 처음엔 김석만이라는 인물이 등장하지 않았고, 그냥 권순찬만 소리 없이 떠나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러자니 소설이 계속 막히더라고요. 후에 소설을 완전히 뒤집어 김석만씨를 등장시키는 것으로 정하고 나니까, 그제야 소설이 조금씩 조금씩 전진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소설의 경우고, 우리들의 실제 삶은 애꿎은 사람들이 애꿎은 사람들과 계속 갈등하고 화내고 미워하는 일들의 연속이지요. 「권순찬과 착한 사람들」 속 ‘착한 사람들’ 역시 처음부터 권순찬에게 화를 내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친절했죠. ‘권순찬’이 애꿎은 사람이라는 것을 모두 알았습니다. 하지만 한순간 호의가 적의로 바뀌고 맙니다. 자신들의 호의가 자신들의 생각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우리들의 ‘화’는 대부분 그때 발생하는 거 같습니다. 자신의 예상과는 다른 일들이 발생했을 때, 그때 우리는 애꿎은 사람에게 화살을 돌리죠. ‘차이’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거 같습니다. 그 고민은, 조금 추상적일지 몰라도, 상상만으론 가능하지 않지요. 무언가 ‘노력’이 필요한 지점인 거 같습니다.

 

김형중 평론가의 해설처럼 “환대하는 자는 항상 자신의 불철저한 환대에 대해 부끄러워”합니다. 소설가에게 최선의 환대란 최선의 소설을 펼쳐 보이는 것일까요? 이기호 소설가의 환대는 어떤 의미인가요?


소설가의 환대에 대해선 생각해보지 않았지만,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지금 막 들었습니다. 저는 소설가의 환대와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의 그것이 다르다고 생각하진 않았습니다. 환대의 어려움이나 불가능성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고민하는 정도이지요. 하지만 질문을 다시 생각해보니, 소설가로서의 환대 역시 존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속적으로 예외적인 인물을, 예외적인 상황을 독자에게 들려주는 것, 어쩌면 그게 소설가로서의 최선의 환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윤리를 책으로, 소설로,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하나? (중략)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 그것이 우리가 소설이나 책을 통해 배울 수 있는 유일한 진실이라네.” 라는 마지막 말을 작가의 말로 대신 읽어도 될까요? 그럼에도 소설과 책을 읽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아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서부터 무언가 다시 시작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 인식은 어쩌면 강한 긍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실패나 불가능하다는 걸 빤히 알지만, 그래도 한번 가보는 거. 그게 제가 많은 작가의 소설을 읽으면서 배운 유일한 ‘윤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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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랑을 위해서 쓰진 않습니다

 

등단한 지 20년 차 소설가가 되었습니다. 감회가 궁금합니다.


어후, 감회랄 게 없습니다. 뭐가 좀 늘고 여유 같은 게 생기고, 성숙해져야 감회 같은 것도 생길 텐데, 계속 허우적거리고 당황하고 실수하고, 그러고 있습니다. 소설 쓸 때만 그러면 그래도 좀 나을 텐데, 실생활에서도 그냥 똑같습니다. 30년 차에는 좀 나은 모습이 되어 있길 바라지만, 아마 안 될 겁니다. 안 될 거라고 생각하면 너무 암울하니까, 그냥 숫자 같은 거 세지 않으면서, 20년 차, 30년 차, 이런 거 의식하지 않으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 좀 괜찮습니다.

 

항상 작품에 유머와 블랙코미디 등의 단어가 수식어로 따라다닙니다. 계속해서 ‘웃긴 이야기를 쓰는 작가’로 호명되는 것에 불만은 없나요?


불만 없습니다. 제가 그런 소리 하면 안 되죠. 저는 충분히 보상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가진 거보다도 더 많은 사랑을 독자들에게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독자 중에는 제 전작을 따라 읽어준 분들도 꽤 많이 계신데, 그분들은 어떤 고정된 이미지로 제 소설을 따라 읽진 않더라고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받았지만, 그 사랑 때문에, 그 사랑을 위해서 쓰진 않습니다. 제가 주의하고 경계해야 할 것이 바로 그 ‘사랑’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불만이 있다면 저나, 제가 쓰는 소설에 있지, 다른 거에 있진 않습니다.

 

작가 이기호와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 이기호 사이에 차이점이 있을까요?


차이가 좀 크죠. 아무래도 선생 이기호가 문제입니다. 요즘 선생이라는 직업은 가르치고 연구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거든요. 숙련된 행정가의 역할까지 해야 합니다. 그 점에선 거의 빵점에 가까운 선생이에요. 재능이 없는 일을 열심히 하면 학생과 학교까지 망치게 될 거 같아서 스스로 자제하고 있습니다. 낮에는 재능 없는 선생의 삶을 살고, 밤에는 허우적거리는 작가로 살다 보니, 그 간극이 점점 더 넓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기분이 내키는 대로 무언가를 결정하거나 선택을 하진 않죠. 작가가 선생보다 나을 것도 없고, 또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소설을 쓰는 것과 마찬가지로 선생으로서의 삶도 그저 노력하고 고민하고 깨지고, 그러고 있습니다.

 

다음 작품은 어떤 세계를 그리게 될지 궁금합니다.


경장편 한 권이 곧 나올 거 같습니다. 다 썼는데, 또 한번 뒤집어서 다시 쓰는 바람에, 지금 생고생하고 있습니다. 소설 내용도 ‘생고생’하는 이야기라서…… 그냥 거기까지만 말하고 나머지는 영업비밀로 남겨두겠습니다.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이기호 저 | 문학동네
웃음기를 조금 거두고, 이 세계에서 유머를 잃지 않고 살아가기란 왜 어려워져버린 것인지 특유의 속도감 있고 재기 넘치는 문장으로 들여다보았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명진스님 “믿음이 아닌 '행위'로 내 삶을 결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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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진스님은 종교면보다는 사회면에서 좀 더 자주 등장하는 종교인이다. 근대 이후 기독교에 비해 사회 참여가 약했던 불교지만, 명진스님은 사회적 현안에 거침없이 발언을 해왔다. 특히 『중생이 아프면 부처도 아프다』는 처음부터 끝까지 정부를 비판한 책이었다. 그 뒤로 7년이 흘렀고 『스님, 어떤 게 잘 사는 겁니까』가 나왔다.

 

이번 책에서도 스님은 사회적 발언을 멈추지 않는다. 경제민주화, 종교인 과세, 분단 극복 등 다양한 현안을 다뤘다. 이와 함께 『스님은 사춘기』 때 주로 썼던 내면을 성찰하는 방법과 중요성도 썼다. 스님이 그간 썼던 두 권의 책을 종합한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스님 어떤 게, 잘 사는 겁니까』는 나도 잘 살고, 사회도 잘 사는 법을 모색한 책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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앎으로부터의 해방, 을 담는다면 불경

 

7년만에 새 책을 내셨습니다. 그간 근황이 궁금합니다.

 

몸담았던 조직인 조계종과 대척점에 섰죠. 최근에는 <PD수첩>이 조계종을 다뤘고, 그걸 보면서 저도 괴롭습니다. 거기서는 저를 배후로 보고요. 이런 사태들에서 느끼는 아픔이 있습니다. 불교만이 아니에요. 가톨릭, 기독교, 대법원까지 한국사회가 망가졌습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행태를 보세요. 판사는 사회적으로 존경받아야 하는 사람이에요. 신의 대리인으로 공정하게 판단해야 하는 위치인데, 권력과 야합하면서 억울한 사람을 양산했어요. KTX 여승무원 한 분이 자살했잖아요. 이런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고민하며 아픈 시간을 보냈어요.

 

『스님 어떤 게 잘 사는 겁니까』는 어떻게 나온 제목인가요?

 

전에 나온 책 『스님은 사춘기』는 제가 정했어요. 두번째 책은 서이독경(쥐 귀에 경 읽기)이 원래 제목인데, 쥐가 이명박 전 대통령이거든요. 소귀에 경 읽기라는 말은 잘못됐어요. 소는 나쁜 데 비유하면 안 되거든요. 죽을 때까지 일하고, 죽어서는 고기와 가죽까지 다 남기잖아요. 마이동풍이라는 말도 문제죠. 말도 진짜 영리합니다. 그래서 서이독경으로 고집했는데, 출간 당시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현직이었어요. 출판사에서 도저히 못 내겠다 해서 『중생이 아프면 부처도 아프다』가 되었습니다. 이번 책에서는 '이단의 칼, 부처의 목을 베다'로 고집부리려 했어요. 출판사 실무자들이 특정 부분에 관한 이야기로 들린다고 해서, 출판사에 맡겼습니다. 절에 가면 중 말을 들어야 하고, 책 내려면 출판사 사람 말을 들어야 하잖아요. 여론조사를 했는데, 이 제목이 가장 좋았다더라고요. 아직도 미련은 남아요. 다음 책 제목은 꼭 '이단의 칼, 부처의 목을 베다'로 정할 겁니다. (웃음)

 

전작과 이번 책은 어떻게 다를까요?

 

『스님의 사춘기』는 제 인생 이야기입니다. 젊은 사람들이 불교에 접근하기 쉬운 책이 있으면 해서 쓴 책이죠. 불경이 한문이고, 어렵거든요. 게다가 근대화 과정 속에서 동양적인 것을 다 천시했죠. 불교도 거기에 들어가요. 기독교는 모던하고, 불교는 케케묵은 대접을 받았어요. 그런데 불교는 전혀 그렇지 않거든요. 불교야말로 젊은 사람이 접근해야 해요. 왜냐하면 불교는 믿음의 종교가 아니니까요. 다른 분은 다르게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기독교는 믿음으로 구원을 바란다면 불교는 끊임없는 질문으로 지혜를 얻어가는 종교입니다. 그런 걸 제 삶으로 이야기했던 책이 『스님의 사춘기』고 『중생이 아프면 부처도 아프다』 는 사회 현실에 대한 제 판단을 썼죠. 이 두 가지 책이 딱 갈라집니다. 첫 번째 책은 내적 고민으로 얻어진 깨달음이고, 두 번째 책은 그로부터 얻은 내공으로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을 썼습니다. 『스님, 어떤 게 잘 사는 겁니다』 는 두 책을 종합했다 볼 수 있죠. 그래서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교외별전, 불립문자, 언어도단 등 선불교에서는 언어에 얽매이는 걸 경계하는데요. 스님으로서 글을 쓴다는 의미, 쉽지만은 않을 듯합니다.

 

8만4천 불경이라 하죠. 별 이야기가 다 있어요. 부처님이 나의 말은 강을 건너는 뗏목과 같다고 했어요. 강을 건널 때는 뗏목에 타도, 건넌 뒤에는 걸어가야 하잖아요. 뗏목을 이고 갈 수 없어요. 집착하지 말라는 거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 불립문자는 손가락입니다. 문자에 의지해서 문자를 부정할 수밖에 없기에 글이 필요하다 보고요. 불교라는 프레임에 갇히지 않고 불교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독교도 마찬가지죠. 우리는 기독교에 갇혀 예수님을 못 보고, 불교에 갇혀 부처님을 못 보고 있어요. 불교라 하면 산에 있어야 하고 마하반야바라밀다 해야 한다 생각하지만, 이게 불교일까요? 앎으로부터 해방, 이런 가르침을 담은 말이면 불경입니다.

 

제가 개와 늑대의 비유를 들었는데요. 개가 갖고 있는 DNA는 늑대인데, 인간이 늑대를 잡아 개로 만들었어요. 늑대에게 너는 원래 늑대이니 돌아가라 하고 밀림에 보내요. 사냥하고 혼자 살아야 하는데, 밀림에는 호랑이도 있고 곰도 있고 하니까 이전 삶이 편해서 다시 돌아와요. 기꺼이 자유를 포기하고 익숙함을 선택해버리죠. 그런데 사실 늑대에게는 자유가 있어요. 그 자유의 세계는 모름의 세계와 같아요. 모름의 세계는 익숙하지 않고, 불안합니다. 우리가 아는 지식, 지식으로 분별하면 편해요. 누군지, 어딘지 아무것도 모르지만 불안하니까 안다는 거짓 가설을 세우고 안주하는 거예요. 개처럼. 우리는 개가 될 것이냐, 늑대가 될 것이냐. 그건 우리의 선택입니다. 이런 식으로 불교를 쉽게 알려주고 싶었는데, 쓰고 보니 제가 글보다는 말을 더 잘하더라고요. (웃음)

 

 

너는 누구냐, 묻는다면 대답할 수 있는가

 

‘어떤 게 잘 사는 겁니까’라는 질문은 모두에게 절실하겠지만, 특히 젊은 사람들에게 더 와닿는 물음 같습니다. 스님께서는 젊은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네티즌 선정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 지도자로도 꼽혔습니다. 대한민국의 청춘, 지금 어떤 상황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요즘 젊은이들의 최대 고민이 취업이죠. 젊은이들의 고통은 단지 그들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우리 사회 모두의 고통이고 고민이에요. 취업문제는 개개인들만의 힘으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국가의 정책, 사회의 시스템이 바뀌어야 하는 문제입니다. 그러자면 정치를 바꿔야 해요. 젊은이들이 살맛나는 세상을 만들려면 자신들이 바라는 세상을 위해 정치에 참여하고 세상과 연대해야 합니다. 세상에 참여하는 만큼 젊은이들의 꿈이 이뤄지는 겁니다. 지금 세계의 생산력은 120억명을 먹여 살릴 수 있습니다. 한국의 경제력이면 충분히 나눠먹고 살 수 있어요. 그런데 부가 한쪽에 독점되어 있죠. 정치는 경쟁 속에서 몇 몇만 행복한 세상을 만들 것인지 함께 나누고 행복한 세상을 만들 것인지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혼자 고민하지 말고 함께 세상과 연대하면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라고 하고 싶어요. 동시에 기존의 관습과 고정관념에 갇히지 말고 자유롭게 생각하고 결정하는 이단의 정신을 가져보라고 하고 싶습니다. 왜 남 따라, 유행 따라 살아야 합니까? 왜 호박에 줄 그어 수박 되려고 하나요? 나는 나로서의 개성과 길을 찾아서 살면 됩니다. 우리 안에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어요. 그걸 믿으면서 세상과 연대해 나간다면 희망의 문을 열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책에서 잘 사는 법은 잘 묻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물음이 왜 그렇게 중요한가요?

 

우리는 육하원칙에 의해 사물을 설명하죠. 너는 누구냐, 고 물으면 뭐라 대답할 수 있을까요. 명진? 이름은 바뀝니다. 그럼 누구냐, 하면 그 사람이 했던 말, 얼굴을 떠올리죠. 하지만 얼굴이나 말, 그 사람의 생각도 자꾸 변하죠. 어느 것이라 규정할 수가 없어요. 정확히 설명을 못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마치 알고 있는 것처럼 넘어가요. 언제냐? 2018년 6월 2일? 왜 그 날이냐고 하면 누구도 대답 못해요. 시간이 어디서 출발했고 어디로 가는지 몰라요. 어디냐? 이 광활한 우주, 허공 속 지구의 위치, 주소를 적을 수가 없어요. 지구도 이 우주 속의 티끌에 불과한데 말하자면 우리는 그 티끌에 붙어 사는 진드기 같은 존재죠. 내가 누구인지, 시간이 언제인지,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 이 세 가지 질문에도 대답을 못합니다. 모른다는 거죠. 허구, 가상으로 설정된 세상 속에 사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허구일 수도 있다는 걸 인식하고 세상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래야 깨어 있는 삶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허구, 가상의 세계에 자꾸 끌려가요.

 

물방울에 비친 무지개를 생각해봐요. 그 무지개가 예쁘다고 사람들이 쳐다보지만, 무지개도, 물방울도 허구거든요. 모양은 다 다르게 나타날지라도 본래 물인 거죠. 무지개나 물방울이나 본래 물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면 무지개를 쫒아가거나 물방울에 현혹되지 않겠지요. 현상에 끌려가지 않고 실상을 보는 것이 깨어 있는 겁니다. 우리가 수행할 때 깨달음을 구한다고 하지요. 그 핵심이 나는 뭔가? 혹은 이뭐꼬?라는 물음입니다. 내가 나를 물으면 알 수 있나요? 답을 구할 수 있나요? 솔직히 모릅니다. 이 물음에는 답이 없어요. 깨달았다 하는데, 깨달았다고 말하는 사람은 다 사기꾼이에요. 뭘 깨달아요? 깨달을 게 없는 걸 깨닫는 겁니다. 깨달았다는 데는 실체를 인정하는 건데요. 경전에도 나와요. 본래 깨달을 게 본래 없다고. 깨달을 게 없다고 받아들이면 됩니다.

 

지금 스님이 안고 있는 물음은 무엇인가요?

 

절에서는 화두를 받죠. 화두가 진짜 막연합니다. 가섭의 염화미소? 2,500년 전 부처님이 법문하는데 꽃을 들어요. 가섭이 웃습니다. 부처가 왜 꽃을 들었고, 가섭은 왜 웃었을까요? 대답이 나올까요? 몰라요. 조주스님이 개에게 불성이 있느냐고 물었을 때 ‘무(無)’라고 했어요. 부처님께서 일체만물에 불성이 있다고 했는데 조주스님은 왜 개에게 불성이 없다고 했을까? 라고 물으면 답이 나옵니까? 답이 없어요. 답이 있을 것처럼 묻지만 실은 화두에는 답이 없기 때문에 끝까지 묻다 보면 결국 물음만 남아요. 모른다는 거죠. 이렇게 일체 모르는 상태에 든 걸 불교에서는 삼매에 든다고 표현해요. 모름에 몰입하면, 아(我)가 없어지죠. 거짓 내가 없어지는 거죠. 모름 속으로 깊이 들어갔을 때, 모든 앎이 무너진 자리, 거짓된 내가 받아들였던 모든 설정된 세계가 무너진 거예요. 이 모름의 상태가 진리의 상태입니다. 따로 진리를 구할 필요가 없어요. 거짓된 세계가 무너지면 진실의 세계는 드러나니까요. 구름이 흩어지면 달은 저절로 드러나듯이.

 

그런데 저는 화두를 정해놓고 묻는 걸 싫어합니다. 책에도 썼지만, 화두보다도 제게 더 절실한 물음이 있어요. 예를 들어, 비가 오면 지렁이가 많이 나오잖아요. 이 지렁이가 어디로 갈까. 이 지렁이를 꿈틀거리게 만드는 건 뭘까. 지렁이가 반토막이 났는데, 둘 다 꿈틀거리면 어떤 게 원래의 생명일까? 이게 저는 더 궁금합니다. 이처럼 남에게 화두를 받아서 그걸 묻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삶의 절박한 물음을 가지면 그것이 다 화두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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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적 분단보다 머릿속 철조망을 걷어내는 게 중요

 

구성을 생각할 때 처음과 끝을 고민하기 마련입니다. 『스님 어떤 게 잘 사는 겁니까』의 처음은 조계종과 대립한 이야기고, 마지막은 분단을 다루셨습니다.

 

인터뷰 처음에서 고통스럽다는 걸 말씀드렸는데요. 고통에는 개인적 고통이 있고, 시대적 고통이 있습니다. 한반도에는 분단이 시대적 고통입니다. 분단이 우리를 얼마나 억압하고, 우리 사고를 묶어 놓았나요. 인간은 무한 자유를 누릴 권리가 있습니다. 타인에게 피해는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맘껏 자유를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특히 생각은 그 어떤 것에도 묶이지 않고 무한대의 자유를 누려야 하지요. 그런데 우리는 이런 자유를 못 누리고 살았어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갖고 있으면 국보법 위반이었습니다. 얼마나 잘못된 세상입니까? 공산주의는 무조건 나쁘다? 지향의 측면에서 보면 더불어 같이 살려는 정신이 담겨 있어요. 그런데 그런 이야기하면 빨갱이로 몰리고 왕따가 됩니다. 분단이 극복된다는 것은 이런 사유의 감옥이 부서지고 완연한 사유의 자유, 그 어떤 것도 자유롭게 걸림 없이 생각해볼 수 있게 된다는 거죠. 그래서 저는 물질적 분단보다는 머릿속 철조망을 걷어내는 게 훨씬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유라시아 철도 같은 경제적 자유는 사유의 자유에 비하면 훨씬 작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공산주의가 무너졌지만, 지향해야 할 건 더불어 같이 가는 세계거든요. 평등과 평화를 이야기하는데요. 평등하지 않으면 평화가 올 수 없죠. 차별이 있으면 서로 미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설사 유토피아가 안 온다 하더라도, 유토피아를 찾아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유토피아란, 능력껏 생산하고 필요한 만큼만 가져가는 세상입니다. 간단하게 설명하면 공산주의인데, 모든 인류의 부처화, 예수화를 의미합니다. 나만 잘 먹고 잘 사는 세상이 아니라 함께 잘 살아야죠. 자본주의가 인간의 욕망에 근거한다면,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는 도덕에 기반하는데요. 지금은 욕망에 도덕이 진 거죠.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분단, 불평등의 문제는 종교인일수록 깊이 고민하고 성찰해야 합니다. 종교인이 아니면 누가 하겠어요. 

 

책에서 쓰신 경제 민주화, 종교인 과세 등이 평등을 향한 메시지일 텐데요. 지금 한국사회는 젠더 문제가 심각합니다. 이에 관해서도 말씀해주시죠.

 

간단합니다. 부처님 전생담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어요. 수행자로 전생에서 수행하는데, 비둘기가 날아와요. 그 다음에 독수리가 와서 말합니다. 비둘기를 내놓으라고. 부처님이 말합니다.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수행자가 어떻게 내놓겠냐, 너가 잡아 먹을 텐데. 독수리가 말하죠. 나도 며칠을 굶다가 마지막 힘으로 쫓아왔다, 내가 죽는 건 괜찮고 비둘기가 죽는 건 안 괜찮나. 그러자 부처님이 비둘기 만큼의 살을 독수리에게 주기로 합니다. 독수리는 "나는 신세 지는 게 싫으니 딱 비둘기 만큼의 무게만 받겠다"고 하며 저울을 갖고 와요. 허벅지 살을 올려요. 보기만 해도 비둘기의 두세 배인데, 비둘기가 무겁습니다. 엉덩이 살도 좀 떼서 올리는데, 여전히 비둘기가 무거워요. 할 수 없이 부처님이 저울 위로 올라갑니다. 그제서야 저울이 똑같아집니다. 그때 독수리가 제석천왕으로 변하면서, "미래의 부처님이 될 성인이시여, 당신이나 비둘기 목숨이나 생명의 가치는 똑같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절집에서 들었던 가장 좋았던 대목입니다. 생명의 가치는 똑같다는 거죠. 어찌 남녀 차별이 있겠습니까. 물론 천주교도 수녀가 평신도교 불교에서도 비구니와 비구 사이 차별이 있긴 해요. 왜 차별했을까요. 불교가 생겼을 당시 워낙 인도 사회가 계급사회였잖아요. 불과 1960년대만 해도, 미국에서는 여성에게 투표권이 없었고요. 여성 차별은 전세계적으로 있었는데, 그게 지금 무너지고 있죠. 무너져야 하고요.

 

북한에 직접 다녀오셨고, 북한 사정을 잘 알고 계신 스님께서는 향후 남북 관계를 어떻게 전망하시나요?

 

문재인 대통령이 잘하고 있고요. 갑작스러운 탄핵이 나라에 축복이에요. 왜냐하면 촛불이 없었더라면 탄핵이 없었고 올해 말 선거는 너무 늦거든요. 트럼프라는 사람이 묘한 데가 있어요. 월가는 한국이라는 큰 무기 시장 없어지는 걸 원하지 않습니다. 트럼프는 그들의 돈을 안 받았으니 눈치를 안 봐도 되죠. 트럼프는 돈도 벌었고, 대통령도 됐는데 여전히 사람들이 미친놈이라 욕한단 말이죠. 노벨상을 타야겠다, 이런 욕심이 있습니다. 트럼프는 개인의 욕심을 위해 미국도 팔아먹을 수 있는 사람이에요. 남북 관계가 지난번에 출렁일 때도 저는 절대, 무조건 간다고 생각했습니다. 북미관계가 좋아질 수밖에 없어요. 이명박, 박근혜였다면 어려웠을 겁니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에 대해선 북에서 기본적으로 신뢰가 있습니다. 믿음이 있으니 함께 잘 해나갈 수 있을 겁니다. 그게 이 한반도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일이구요.

 

이전 책에서는 이명박을 최악으로 꼽았는데 그 뒤로 박근혜 대통령을 거쳤습니다. 지금 시점에서 꼽으면 평가가 달라질까요?

 

여전히 이명박 대통령이 최악입니다. 사악하잖아요. 두 사람의 공통점이라면 둘 다 책을 안 읽어요. 책을 안 읽어서 저 모양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어 구사력을 보면 박근혜는 거의 유아 수준이죠. 솔선을 수범해서, 지하경제의 양성화 이런 말들. 독서량이 부족한 거예요. 이명박은 어릴 때 고학생으로 돈 벌어서 학교 다니고 고생 많이 해서 사유가 깊을 줄 알았는데, 자기 이해에는 밝지만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 능력이 전혀 없어요. 타인의 고통을 내 고통으로 받아들이는 게 올바른 사회를 만들어가는 발전 동력인데, 이명박은 그게 없고 사악하기까지 해요. 박근혜는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는 것 같고, 이명박은 뻔히 알면서도 지금 저렇게 몸부림을 치고 있는 거죠.

 

지난 이명박 정권은 거의 막장이었죠. 있어선 안 될 일이 있었죠. 그런데, 국민이 선택한 건데요. 가끔 저에게 이렇게 물어봐요. 나는 왜 이렇게 이명박을 미워할까. 결국 제 내면에 꿈틀거리는 이명박 같은 욕망이 싫은 거예요. 그래도 제가 올바른 스님이고, 불의를 보면 불같이 화내는 사람인데 타협하고 싶을 때가 있거든요. 이런 걸 스스로 제어하고 싶어서, 그 욕망을 미워했던 게 아닌가 싶어요. 이명박은 법정 스님을 존경했다고 하지만, '무소유'에 한 글자 더 넣어서 ‘무한소유’를 지향하다 지금은 감옥에 갔습니다. 무한소유, 무한욕심은 자기파멸로 이끌어간다는 걸 적나라하게 보여준 게 이명박, 최순실 같은 사람입니다. 권력도 물질과 똑같죠. 욕망은 결국 파멸이에요.

 

지난 두 대통령이 책을 안 읽는다 말씀해주셨는데, 스님께서는 다독가입니다. 이번 책에서도 여러 책을 소개해주셨고, 토마스 폐인의 『상식』은 한 장에 걸쳐 이야기해주셨는데요.

 

책을 보고 흥분한 가장 첫 순간이, 초등학교 2학년 때입니다. 『괴도 뤼팽』 , 『기암성의 비밀』 이런 책으로 시작해서 김종래의 『엄마 찾아 삼천리』 박기당의 『만리종』처럼 글과 그림이 함께 들어간 만화를 미친 사람처럼 봤어요. 돌아가신 어머니 바로 밑 동생, 즉 외삼촌이 국문과를 나왔고 부자집이라 책이 많았어요. 외가집에 가면 민중서관에서 나온 한국문학전집, 정음사에서 나온 세계문학전집, 장준하 선생님의 '사상계'가 서가에 꽂혀 있어요. 한없이 읽었죠.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책에 빠져든 거예요. 그러다가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 , 『데미안』 , 『좁은 문』을 고등학교 때 읽었고, 헤세 책은 지금도 좋아해요. 헤세 작품이나, 리처드 바크의 『갈매기의 꿈』은 거의 부처님 말씀이죠. 고전 속에는 삶의 지혜가 녹아 있어요.

 

요즘은 『태백산맥』 을 다시 읽고 있습니다. 제가 이 책을 1986년 12월 시국사건으로 감옥에 갔을 때 처음 봤습니다. 감옥에서 읽은 책들로 인해 제가 세상에 대해 새롭게 눈뜰 수 있었죠. 고 리영희 선생님의 『우상과 이상』 『전환 시대의 논리』  등을 읽으며 그때부터 운동권 스님이라 불리는 길을 걷습니다. 그전만 해도 사회 문제에 관심이 없었거든요. 어머니와 동생의 죽음으로 출가했고 삶이 왜 이렇게 힘들까라는 개인적 고통과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쭉 살았는데. 저런 책을 보면서 사회관, 역사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지금도 언제든지 감옥에 가라 하면 가고 싶어요. 그리고 저는 사회 변혁에 대한 입장이 있으니까, 상징적 의미가 있잖아요. 독방에서 공부할 수 있고. 일석이죠인데 그런데 잘 안 가지더라고요. (웃음)

 

 

종교 인구 감소, 사회 발전에 긍정적

 

동생의 죽음이 불도로 이끈 결정적 계기였다고 책에서도 밝혀 주셨는데요. 만약이라는 가정은 무의미하긴 해도, 만약 동생이 죽지 않았고 스님이 속세에서 살았다면 어떤 일을 하며 어떻게 살았을까요.

 

만약에 출가를 안 했더라면 글쎄요. 뭐가 됐을까 생각해보면, 이런 환경에서 불교를 안 만났다면...... 죽음을 택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주변에는 늘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있었어요.  우리 외할머니도, 내가 제일 좋아했던 막내 삼촌도, 모친도 자살했고 집안 내력에 자살 DNA가 있는 것 같아요. 특히 외가 쪽으로. 저도 초등학교 5학년 때랑 중학교 2학년 때 자살 시도한 적이 실제로 있었고요.

 

스님의 경우에는 종교가 삶에 큰 영향을 끼쳤는데요. 저출산 등 인구 구조 문제도 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한국에서 여러 종교가 신자 수 감소를 걱정하지 않습니까.

 

제가 보기에 종교가 성립되는 데는 세 가지 조건이 있는데요. 하나는 간음하지 마라와 같은 계율, 윤리죠. 윤리는 이슬람, 불교, 기독교 대부분 비슷합니다. 그 다음이 신앙적인 측면입니다. 인간은 약합니다. 불안하니까 의지하고 싶죠. 마지막이 철학적 측면입니다. 유교는 신앙적 측면이 좀 약하고, 기독교나 불교는 신앙적 측면이 있죠. 그리고 불교는 철학적 측면이 강한데, 불교는 다른 곳으로 넘어가면서 샤머니즘과 합쳐집니다. 실제로 불교는 신앙적 측면이 거의 없는데, 살아남기 위해서 칠성님, 산신님, 용왕님에게도 빕니다.

 

종교 인구 감소하는 건 사회 발전에 대단히 도움이 됩니다. 마르크스가 종교는 아편이라 했듯, 종교가 사람을 어리석게 만들거든요. 이성적 판단을 흐리게 만들죠. 믿어서 구원을 받는다고요? 사기꾼이죠. 내 행위가 지금의 삶을, 삶의 미래를 결정해야죠. 누구를 믿고 빌어서 삶이 바뀌면, 부처님과 예수님을 사기꾼으로 만드는 거예요. 빌어서 좋은 학교 가고 잘 되면, 이건 다 뇌물수수죄, 입시부정으로 구속시켜야 하고 하나님과 부처님을 감방에 쳐넣어야 합니다. (웃음) 이런 의미로 종교 인구가 줄어들면 자기 문제는 자기가 사유하고 자기가 풀어나가는 세상이 되겠죠. 이런 게 종교를 믿고 따르는 것보다 낫다고 봅니다. 우리 삶에 굳이 제도화된 종교가 필요한지는 진지한 물음이 필요할 것 같아요. 그보다는 자기 스스로 존재와 삶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게 더 종교적이고 철학적 행위를 할 수 있게 만든다고 봅니다. 누구나 인간답게 살기 위해 의식주교가 해결된다면 사람들이 더 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러니까 병원에 가고, 밥 먹을 권리라든지 결혼하면 무조건 25평 아파트를 준다, 고등학교까지는 교육 받게 해주고 이런 건 국가가 해주는 거죠. 그 다음 나머지, 조금 더 잘 살고 못 살고는 개인 능력에 따라 달라질 수 있어요. 모든 사람이 일하다가 여행가고 싶으면 가끔은 여행도 가고, 거기서 '왜 살지' 이런 고민을 할 수 있는 세상, 이게 제가 꿈꾸는 세상입니다.

 

쓰고 계신 책이 있나요? 앞으로 계획도 궁금합니다.  

 

『스님은 사춘기』 증보판을 준비 중입니다. 미처 못 담은 부분과 봉은사 이후의 삶에 대한 고민을 더 담아서요. 더 나아가서 앞으로 ‘모름’에 관한 책을 집중해 쓰려고 합니다. 모름은 뭘까, 앎과 모름은 뭘까, 해방이 뭘까, 인류의 궁극 목적이 해탈이라 하는데 해탈은 뭘까, 해방이 뭘까, 이런 걸 쉽게 풀어서 써 보고 싶어요. 6월 30일에 세월호 유가족, 용산 참사 유가족, 쌍용차 해고 노동자, 조작간첩 피해자 등 국가폭력으로부터 상처받았거나 소외받은 사람을 모시고 북콘서트를 열어요. 남북화해 시대에 발맞추고 동시에 시대의 어둠 속에서 고통 받은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는 재단도 만들려고 준비 중에 있습니다.

 


 

 

스님, 어떤 게 잘 사는 겁니까명진 저 | 다산초당
“내가 나를 찾는 공부를 하고 있는 그 순간이 나에게 삶의 의미를 주고 힘”을 준다는 명진 스님이,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진짜 행복하게 사는 법을 담고 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강태식 “55세기에도 인간의 삶은 지금과 비슷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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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4회째를 맞는 황산벌청년문학상 수상작은 『리의 별』이다. 이 작품은 서기 55세기를 배경으로 지구와 한 행성 사이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행성 이름은 플랜 A. 원래는 유원지로 개발된 곳이나, 정체불명의 바이러스로 폐허가 된 곳. 그곳에 리라는 사람이 홀로 쓸쓸하게 관람차를 타며, 지구인에게 전화를 걸고 있다. 그 전화를 받은 지구인들이 리와 더불어 소설을 이끌어가는 인물이다.

 

이 작품을 쓴 강태식 소설가는 2012년 『굿바이 동물원』 으로 한겨레문학상을 받은 바 있다. 어느 날 갑자기 회사에서 잘리고, 마늘 까기ㆍ인형 눈 붙이기 등등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 동물원에서 고릴라 탈을 쓰고 동물 연기를 해야 하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다. 그 뒤로 발표한『두 얼굴의 사나이』에서는 쫓고 쫓기는 두 남자의 추격전을 통해 인간 내면의 폭력성을 다뤘다.

 

이렇게 본다면 『리의 별』 은 강태식 소설가의 전작과는 다소 다른 색의 소설이다. 적어도 배경에서는 그렇다. 전작이 현실에 기반했다면, 『리의 별』은 시공간적 배경이 지금 여기서부터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전작을 좋아한 강태식 소설가의 독자라면 안타까울 수도 있겠지만, 안심하길. 『굿바이 동물원』에서 보여줬던 풍자와 유머는 여전하고 개성 넘치는 인물도 여럿 등장한다. 문장은 보다 강렬해졌다. 덤으로 배우자인 서유미 소설가를 향한 사랑도 변함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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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의 별』에 한국인이 한 명도 나오지 않는 이유

 

요즘 어떻게 지내셨나요.

 

책이 나온 뒤라 한가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아이와 시간을 보내고 예전에 썼던 장편소설을 천천히 퇴고하고 있어요. 새로운 소설도 구상 중입니다.

 

『리의 별』로 제4회 황산벌청년문학상을 수상하셨습니다. 그때 기분이 어땠나요.

 

그때가 2월 말이었는데, 하늘이 맑았고 도서관 주위에 눈이 지저분하게 쌓여 있었고, 실버 체어를 끌고 가는 노인들이 보였습니다. 얼떨떨하다는 느낌은 들었지만 비교적 차분했어요. 저보다도 소식을 전해들은 서유미 작가가 정신이 없었어요. 그 날 라디오 방송을 위해 일산에 갔는데, 통화를 하는 동안에도 울더니 전화를 끊은 뒤에도 이리저리 걸으며 한참 울었다고 하더라고요. 
 
당선 소식을 들은 다음 날 저는 만화책을 읽었어요. 소설이 잘 되면 만화책 가게에서 1주일을 보내고 싶었거든요. 『진격의 거인』을 한 이틀 정도 봤는데, 1주일까지는 못 있겠더라고요. 예전에는 만화책이 참 재밌었는데 이제는 소설이 더 재미있는 것 같아요.

 

최근에 장강명 작가의 『당선 합격 계급』 이라는 르포 에세이가 나왔는데요. 혹시 읽어보셨나요. 한겨레문학상과 황산벌청년문학상, 이렇게 두 번이나 당선되셨는데요.

 

아직 책을 읽지 않아 자세한 내용은 모르겠지만, 제목이 흥미롭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는 아무래도 당선 이후에 대해 더 생각해보게 됩니다.


한겨레 문학상 시상식 때도, 이번 황산벌 문학상도 박범신 선생님이 축사를 해주셨는데 이런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사람들은 누가 당선돼서 상을 타면 빈집에 소 들어가는 줄 알고 부러워하는데 몇 년동안 빚진 거 갚고 나면 남는 게 없다."

 

힘들게 장편소설을 써서 당선된 뒤에도 어느 수준으로 올라가기 전까지는 수입이 거의 없어 막막한 것 같아요. 내가 오랫동안 꿈꾸던 일이 직업이 되었다는 성취감과 눈치보지 않고 마음껏 쓸 수 있다는 해방감은 주어졌지만, 돈을 벌며 일할 때보다 삶의 질은 더 떨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웃음) 문학상 당선도 당장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지만, 상 받고 난 뒤에 나올 다음 소설을 생각하면 막막할 때가 많지요. 그런 면에서 당선으로 계급이 올라가는 거라면 그 계급은 유지되는 것인가, 한시적인가 고민하게 됩니다.

 

『리의 별』 이 SF 소설입니다. 시간적 배경과 공간적 배경이 지금 여기와 거리가 있고, 인물 중에서 한국인이 한 명도 등장하지 않는데요. 이렇게 설정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독자들이 이 소설을 읽으시면서 시대가 언제인지 많이 헷갈려하신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작품의 배경을 55세기 정도로 멀게 잡은 건 오랜 시간이 지나 다른 행성을 자유롭게 오가며 살게 된 때에도 인간의 삶은 지금과 비슷하지 않을까, 라는 얘기를 해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때도 누군가는 결혼하고 누군가는 연애 때문에 힘들어하고 사랑하고 오해하고 돌아서고…… 인간이 살아있고 인류가 이어지는 한 사랑도 삶도 죽음도 형식이 바뀔 뿐이지 내용이나 감정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세계 어디서든 인간의 감정, 인간이 감당해야 할 것들은 변치 않고 닮아있다는 걸 말하고 싶었죠. 이 작품에 나오는 리는 성만 보면 한국인일 것 같지만, 스페인 교도관이고 외국에서도 흔히 사용하는 이름이에요. 그를 리라고 명명하면서 한국인으로 그리지 않은 건 그 인물과 저 사이의 거리감을 두기 위해서였고 이곳만의 얘기로 국한시키고 싶지 않아서였습니다.

 

주인공 리를 유원지에 홀로 남겨둔 설정으로 이야기가 전개됩니다. 이렇게 설정한 데는 어떤 사연이 있을까요.

 

비 오는 날의 유원지나 놀이공원 같은 풍경을 좋아합니다. 비 오는 날에는 사람들이 그런 곳에 거의 오지 않지요. 제 머릿속에는 놀이기구가 정지해있고 넓은 공간이 텅 비어 쓸쓸하고 모든 것이 축축하게 젖어있는 풍경에 대한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 있어요. 만약에 거기 어딘가의 놀이기구가 움직이고 한 사람이 타고 있다면 어떨까, 그게 작은 유원지나 놀이 공원이 아니라 유흥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하나의 행성이라면? 상상과 함께 그림을 그려나가기 시작했는데 혼자 남은 사람에 대해 쓰려니 소설이 나아가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지구의 사람들과 통화하면서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서사로 바꿨어요.

 

 

강태식 소설에 영향을 준 두 가지, 독서와 아이

 

선생님 전작은 현실적인 이야기였습니다. 『굿바이 동물원』이 자본주의에서의 노동, 『두 얼굴의 사나이』는 인간 내면에 잠재한 폭력을 다뤘죠. 이번은 SF 요소가 가미된 작품인데요. 변화를 시도한 계기는?

 

두 가지 정도의 계기가 있는데요. 첫 번째는 SF에 관심이 많았고 클라크, 레이 브래드버리를 좋아해서 많이 읽다보니 써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요. 제 장점이자 단점인데 저는 좋은 소설을 읽으면 그 책에 영향을 많이 받아요. 평소에도, 수업할 때도 좋은 글을 읽고 장점을 익혀야 그것을 넘어서는 글을 쓸 수 있다고 얘기하고요.
 
두 번째는 아기 때문인데요. 예전에는 사회의 시스템이나 외적인 부분에 관심이 많았어요. 누군가 어떤 일 때문에 권고사직 당하고, 누구의 것을 횡령하고 빼앗기고 버려지고, 이런 움직임을 유심히 봤던 것 같아요. 그런데 아이가 태어난 뒤에는 어떤 인간을 바라보면서 그 안에 담겨진 인간 자체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됐습니다. 예전에는 백화점에 가거나 예술의 전당의 음악 분수에 가서 다른 사람들을 둘러봤다면 요즘은 그냥 아기 뒷모습, 그것 하나만 바라봐요. 구조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아이를 낳으면서 인간에 집중하게 됐어요.

 

‘일주일간의 휴가’가 아빠와 아들의 이야기입니다. 아빠는 아들을 그리워하고, 아들은 아빠의 존재를 모른 체 살아가는 이런 줄거리인데요. 소설에서 아버지는 왜 이런 모습일까요.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의 변형이라고 할 수 있고 부성에 관한 저의 생각이 담겨있어요. 영화의 주인공인 귀도가 죽기 전까지 아들에게 웃어주는데 예전에는 그 모습이 이해가 가지 않았어요. 아이가 태어난 뒤에 그 영화를 다시 보진 않았지만 머릿속에서, 아 저게 인간이구나, 아버지라는 거구나, 깨달았어요. 어쩌면 소설이 다루는 것은 세 가지 뿐인지도 몰라요. 인간, 인생, 세계. 결국 인간에 관한 것인데 인간의 고귀함, 아름다움이 바로 다른 대상을 위해서 희생한다는 부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이기적이면서도 인간이 인간에 대해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이 자식에 대한 사랑이 아닌가 해서 '일주일간의 휴가' 부분을 썼어요. 이 소설의 주제가 되는 단락이기도 하고요.

 

‘행성 심사대’는 『굿바이 동물원』과 비슷한 결이었습니다. 이처럼 사회적인 걸 비틀 때와, '일주일간의 휴가'처럼 개인적인 걸 쓸 때 중 언제가 더 즐거운지.

 

둘 다 즐겁습니다. 사유하는 방식이나 쓰는 맛이 달라 어느 쪽이 더 즐겁고 어느 쪽이 더 잘 맞는다고 하기 어려워요. 제 안에 있는 두 개의 길인 것 같습니다. 행성 심사대의 내용이 화려하고 자극적이라면, 일주일간의 휴가는 천천히 우러나오는 맛이 있는데요. 조금씩 '일주일간의 휴가' 쪽의 사유와 표현 방식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음 소설에서는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깊이있게 파고 들어보려고 하고 있습니다. 

 

아이 낳고 나서는 자본주의, 사회의 시스템에 관해 더 생각하게 되지 않나요. 행성 심사대에서는 화폐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본주의를 비튼 느낌이었습니다.

 

아이와 관련해서는 오히려 자본주의의 시스템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이가 생기기 전에는 막연하게 키우고 가르치려면 돈이 많이 들 것이다, 걱정했던 것 같은데 막상 아이와 함께 지내니 아이는 사랑의 대상이고, 사랑해줄 수 있을 때까지 사랑해주고 하기 싫다는 것에 대해서는 강요하지 말자는 개인적인 부분에 대한 생각을 더 많이 하고 있습니다. 아직 입학 전이라 그럴 지도 모르겠고요. 아들은 사랑해줄 수 있을 때까지 사랑해주고, 나가고 싶을 때 보내줘야죠. 멀리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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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주의자가 아니지만 허무하다고 쓰는 이유

 

일본 애니메이션 중에 「신세기 에반게리온」, 「기동전함 나데시코」, 「무책임함장 테일러」처럼 이런 배경의 작품이 많았는데요. 『리의 별』에 영향을 준 작품이 있나요.

 

예로 들어주신 애니메이션은 저도 다 보았고 지금도 애니메이션을 많이 보고 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좋아해서 은연 중에 그런 세계에 영향을 받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소설에서는 「은하영웅전설」에 등장하는 양웬리의 이름을 가져다 썼습니다. 좋아하는 캐릭터라서 애정을 담아 썼습니다. 참고로 『리의 별』 을 쓸 때는 카우보이 비밥을 두 번 정도 더 보았고요.

 

인생이란 그런 거라우. 좋은 시절도 있지만 좋은 시절은 얼마 못 가지. 결국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똥 덩어리가 되는 데, 밥을 먹고 똥을 싸고 숨을 쉰다고 다 제대로 사는 건 아니잖수. (56쪽)

 

허무주의라고 할까요? 전작도 그렇도 이번 소설에서도 세상이 시시하고, 인생 별 거 없다는 뉘앙스의 문장이 자주 등장합니다. 선생님의 허무주의에 관해 물어보고 싶었어요.

 

기본적으로 저는 허무주의자가 아닌데요. (웃음) 소설에서는 이렇게 이야기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세상은 아름답다기보단 시시하고 어쩌면 엿같은 곳이고, 그런 세상에서 인간이 관계를 맺고 함께살아가는 동안 피어나고 쌓이는 정 같은 게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저의 사유는 그 방향으로 계속 나아가는데, 그런 것을 이야기로 풀어가다보니 아름다움이나 따듯함은 아주 작고 인생의 허무함은 크게 부각되는 것 같습니다.  

 

전작이나 이번 작품에서 유머에 대한 애착을 느꼈습니다. ‘행성 심사대’같이 통째로 웃긴 장도 있었고요. 유머 감각을 유지하는 비결은?

 

대중적인 유머 감각은 없는 편입니다. 소설 수업을 할 때도 처음에는 차분하던 분들이 수업 횟수가 쌓여가는 동안 웃기 시작하거든요. 일상 속에서도 수업을 하거나 소설을 쓸 때도 유머를 많이 구사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는 인간에게 유머만큼 훌륭한 무기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소설에서도 진지하고 깊게 사유하는 부분과 유머가 어우러질 때 폭이 넓어진다고 여겨서 멋지게 사용해보려 애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두 얼굴의 사나이』 에는 그런 요소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 소설은 블랙 코미디에서 벗어나 문체를 바꿔보는 실험에 집중했던 시기에 썼습니다. 『굿바이 동물원』과 많이 다르고 『리의 별』과도 다른 지점에 놓인 징검다리 같은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죠. 『두 얼굴의 사나이』 의 서사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헐크나 지킬 박사와 하이드씨의 이야기와 동일합니다. 그 뻔하고 오래 반복되어온 서사를 저만의 방식과 문장으로 써보고 싶다는 욕심에서 시작했습니다. 어떤 서사를 쓰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던 시기이기도 했고요. 그러다보니 『굿바이 동물원』에는 비유가 거의 등장하지 않았고  『두 얼굴의 사나이』  는 비유에는 많은 공을 들이면서 유머는 구사하지 않았네요. 미흡했지만 이것을 넣고 저것을 빼면서 실험을 했던 것 같습니다.

 

 

앞으로 쓰고 싶은 작품

 

서유미 소설가의 최근 '파경 3부작'에 관해 물어보고 싶었어요. 남편으로서 어떻게 보셨나요.

 

저도 최근에 출간된 책들이 파경 3부작으로 불린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 상황에 대해 우리는 이렇게 보고 있습니다. 도시 속에서 계속 사는 사람은 도시를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다, 매일 지하철을 타는 사람에게서 지하철에 관한 새로운 시선이 나오기 어렵다, 파경 3부작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일상의 관계가 삶을 위협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편하고 자유롭게 파국을 들여다볼 수 있는 게 아닐까. (웃음) 일상이라면 책 한 권 분량의 소설을 연달아 세 편씩 쓰기 힘들었을 것 같아요. 일상이 아니니 거리감을 유지하며 쓴 것 같고, 그런 면에서 앞으로 5부작이든 10부작이든 쭉 써도 좋겠습니다. 

 

앞으로 어떤 글을 쓰고 싶으세요?

 

지금 퇴고하는 글은 제일 처음 썼던 장편소설입니다.  『가드를 올려라』라는 제목으로 한겨레 웹진에 연재했었는데요. 출간을 앞두고 다시 읽어보니 너무 못 써서 퇴고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 다음에 쓰게 될 소설은 『리의 별』  과 비슷한 방향으로 나가게 될 것 같습니다. 사유와 유머를 좀 더 담을 수 있는 스토리를 찾고 있는데 SF는 이야기를 무한히 확장해나갈 수 있는 매력적인 장르라 그 안에서 많은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 이야기를 SF로 풀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하워드 필립스의 『러브크래프트』 나 조지 오웰처럼 써보고 싶은 마음도 있고, 초등학교 때부터 농구를 좋아해서 농구를 소재로 한 소설을 써 보고 싶기도 합니다. 물론 아직은 아이가 잠든 뒤에 하는 밤의 농구가 더 즐겁지만요. 

 

선생님과 서유미 작가님의 작품, 객관적으로 뭐가 더 괜찮다고 평가하시나요.

 

자본주의 사회의 관점에서는 제가 상금을 두 배 더 받았지만(웃음) 쓰는 건 서유미 작가가 더 잘 쓴다고 생각합니다. 12년차의 중견 작가가 되었고, 차분하게 깊어지는 게 느껴집니다. 그녀가 먼저 등단할 때도 그렇게 말했지만 저는 언제까지나 서유미 작가의 남편으로 남고 싶습니다. 처음에 그렇게 시작했고, 죽을 때까지 서유미의 남편, 그걸로 족합니다.

 

마지막 질문이 ‘어떤 작가로 남고 싶은지?’였는데 '서유미의 남편'으로 정리하면 될까요.

 

그것도 좋고요. 작가로서 저는 경계 문학 작가로 기억되면 좋겠어요. 다양한 장르적 특징을 가진 소설들을 쓰고 싶고 그 안에서 인간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작가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스티븐 킹같은 작가가 되고 싶은데 쉽진 않겠지만 애써보겠습니다.


 

 

리의 별강태식 저 | 은행나무
무인행성의 궤도를 십오 년째 돌고 있는 리와 지구에서 삶의 쓸쓸함을 견디는 다섯 남녀의 소통과 위안, 사랑과 죽음의 문제가 시공을 넘나들며 옴니버스 형식으로 전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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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 김남주 “번역은 늦가을 낙엽 쓸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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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굶어죽을 위기에 놓였다. 겨울이 왔고, 먹을 것이 없었다. ‘그위친 부족’의 족장은 그간 부양하던 ‘두 늙은 여자’, ‘사’와 ‘칙디야크’를 버리고 떠나기로 한다. “사람들도 생존을 위해 이따금 짐승의 방식을 따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19쪽) 이윽고 황량하고, 잔인하게 추운 겨울 벌판에 외로이 남겨진 사와 칙디야크. 이들은 부족에 대한 배신의 고통에 몸을 떤다. 사람들은 이들에게 “죽음을 선고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두 늙은 여자는 이대로 죽을 것인가. 이때, 좌절에 빠진 칙디야크에게 사가 온 힘을 끌어 모아 말한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우리 뭔가 해보고 죽자고!”
 
대대로 전해오던 알래스카 인디언의 전설적인 이야기, 알래스카 ‘아타바스칸족’ 작가 벨마 월리스의 『두 늙은 여자』는 외따로 남겨진 두 늙은 여자가 처절한 위기의 순간 어떻게 삶을 다시 만들어 가는지 보여주는 이야기다. 이 ‘작은 책’을 친구에게 전해 받은 번역가 김남주는 “기본으로 돌아가는” 이 이야기가 좋아서 꼭 번역해 출간하고 싶었다. 로맹 가리의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 , 『가면의 생』 , 가즈오 이시구로의『녹턴』 , 『나를 보내지 마』 , 『창백한 언덕 풍경』  등을 번역하고, 『나의 프랑스식 서재』 , 『사라지는 번역자들』 을 쓴 번역가 김남주에게 이 책은 “노년의 의미를 되짚어봤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아주 중요한 이야기”였다. 책이 출간되어 무척 기쁘다는 김남주는 인터뷰에서 노년과 삶의 원시성, 번역과 독서의 의미를 넘나드는 풍성한 이야기를 전했다.


특히 노년에 대한 생각에 골몰하고 있다는 번역가 김남주는“마흔 개의 여름이 어떻게 여든 개의 여름을 이기겠는가.”(170-171쪽)라고 되물으며“나이라는 건 부끄러울 것도 자랑스러울 것도 없다. 다만 내 나이가 내게 소중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각자가 자신만의 노년의 아름다움을 찾아내기를, 친구와 함께 하기를, 그것이 책이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사와 칙디야크가 혼자였다면 이렇게 해내지 못했을 것 같아요. 외로웠겠죠. 저는 우리가 그런 친구를 발견하면 좋겠어요. 친구는 현실에도, 책 속에도 있어요. 책은 엄청나게 위대해서요. 책을 읽는 인간은 외롭지 않아요. 진짜로 책을 읽으면 삶이 달라져요. 우리가 벌써 칙디야크와 사를 떠올릴 수 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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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한 걸음


이 작품을 무척 좋아하셨다고요. 그간 많은 문학 작품을 번역해오셨는데요. 특별히 이 작품의 어떤 점이 마음에 담겼던 건가요?

 

기본으로 돌아가는 이야기였던 것 같아요. 사실 이 책은 문학 쪽이 아니에요. 문장도 울퉁불퉁하고요. 그래서 좋았고, 그래서 또 번역이 어려운 부분도 있었는데요. 최근 이런저런 상황으로 노년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노년에 대한 책도 좀 읽어보고, 실제로 노년에 대한 책을 쓰겠다는 생각으로 일을 진행하고도 있거든요. 그러다 이 책을 보니까 ‘그래, 이게 기본이었지, 사람 사는 일에서 나이를 먹는다는 것 그게 당연하지’라는 생각이 확 끼치더라고요. 그래서 책을 내고 싶었어요. 실제로 내게 될 줄은 몰랐는데 출판사와 얘기를 어떻게 이야기를 하다 내게 됐어요. 기뻐요.

 

선생님은 이 작품을 어떻게 만나셨어요?


어떤 친구가 읽던 책을 제게 줬어요. 작은 책인데 재미있다면서, 한 번 읽어보라고 해서 슬쩍 읽어봤는데 좋았어요.

 

짐작은 되지만, 말씀하신 ‘기본’이라는 것은 정확하게 뭘까요?


코맥 매카시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같은 소설도 있는데요. 결국 노년이 청춘에 밀리는 시대가 점점 온 것 같아요. 그건 또 디지털과 연동된 면이 있다고 생각하고요. 그런데 『두 늙은 여자』 를 읽다보니까 결국은 어느 시대에나 노년은 그랬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육체적인 힘이 약해졌을 때 퇴장해야 하는 존재가 되는 거죠. 그렇게 사회적인 관계에서 밀려나고요. 그것을 타계하는 방법을 요즘 사람들은 ‘노후 준비’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돈을 벌어놓자고 하는데요. 그것이 노후준비는 아닐 것 같아요. 이 책은 노년에 대한 핵심을 짚어준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그야말로 쉰 몇 개의 봄을 봤는데요. 지금이 좋아요. 내가 사라지기 전까지 다시 볼 봄들이 설레고요. 제가 좀 그랬나 봐요. 20대, 30대 때는 불안정하고 그랬어요. 지금은 오히려 나답게, 내 시각으로 삶을 살아낼 수 있을 것 같고요. 그런 점에서 이 책이 중요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작품은 독립적이고 진취적인 ‘두 늙은 여자’를 통해 ‘늙음’의 가능성을 다시 생각하게 했어요. 특히 좋았던 건 이 두 여자가 부족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점이었고요.


“좀 더 해주세요, 언니들!”(웃음) 이런 메일도 받고 그랬죠. 저는 나아가 그런 생각까지 들었어요. 만약 이 사람들이 성공을 못했다고 해봐요. 이들이 그 설원에서 죽었다 해도 그 전의 삶과는 다른 것 같아요. 부족을 따라다니고, 부양을 받으며 살았던 삶과 스스로 삶 자체를 마주하고 살았던 기억은 다르겠죠. 그게 이미 성공인 거고요. 사람은 다 죽잖아요. 그러니까 꼭 잘 돼서 성공했다, 그래서 이 노년이 의미가 있다, 가 아니라 노년의 의미를 되짚어봤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아주 중요한 이야기인 것 같아요. 삶을 바라보는 시각을 바꿈으로써 우리의 기억을 바꿀 수 있고요. 그러면 삶이 달라지죠. 그 점이 저는 참 좋았어요.

 

역자 후기에서 “마흔 개의 여름이 어떻게 여든 개의 여름을 이기겠는가”(170-171쪽)라고 적기도 하셨죠.


정말 그래요. 예전 같으면 못했을 삶에 대한 너그러움을 지금은 갖고 있거든요. 살아서, 그동안 살았기 때문에 그 기억이 축적되어서 그런 거예요. 그런데 사람들은 이를 테면 마흔 살의 여자와 여든 살의 여자를 볼 때 마흔 살의 여자를 훨씬 더 경쟁력 있다고 생각해요. 그 부분을 우리가 다시 생각해봐야겠다, 하는 생각이 들어요.

 

선생님께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나 대사가 뭔지도 궁금해요.


많은 분들이 “어차피 죽을 거라면, 우리 뭔가 해보고 죽자고!”(45쪽)라는 얘기를 좋아하시더라고요. 좀 강렬하죠? 그런데 저는 이 문장이 좋았어요. “우리가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우리가 가려는 곳에 가까워지는 거야.”(69쪽) 삶은 이것 같아요. 가고자 하는 곳에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는 것. 이 한 걸음이 제일 중요한 것 같고요. 그것을 하고 있는 한 그곳이 이미 현재라는 생각이 들어요. 노년을 생각하고 있는 많은 분들이 한 걸음을 생각하셨으면 좋겠어요. 매일, 한 걸음.

 

우리가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우리가 가려는 곳에 가까워지는 거야. 오늘 나는 몸이 좋지 않지만, 내 마음은 몸을 이길 힘을 갖고 있어. 내 마음은 우리가 여기서 쉬는 대신 앞으로 나아가기를 원해. 그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이야.(69쪽)

 

지금 말씀은 현재에 대한 다른 생각처럼 들려요. 흔히 노년을 먼 미래라고 생각하잖아요. 그게 아니라 매일, 지금, 그리고 내일이 되면 다시 돌아오는 현재에 더 관심을 두는 거죠.


바로 그거예요. 그렇다고 해서 현재만 중요하다는 건 아니고요. 비중을 잡자면 과거를 1정도로 보고요. 미래를 2정도, 현재를 3정도로 보는 거예요. 과거는 지나갔어요. 미래는 사실 안 올지도 몰라요. 누가 알겠어요. 그러니 우리한테는 현재만 있죠. 거기서 너의 현재와 나의 현재가 만나는 거예요. 80세의 봄이 40세의 봄한테 잴 것도 없어요. 우리는 그냥 현재 이렇게 만난 거니까요.

 

 

가슴을 콱 잡아다놓는 글


또 좋아했던 장면은 뭔가요?


원시성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라 좋았어요. 토끼 머리로 스프를 만드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토끼 고기를 다 먹고 마지막에 스프로 먹는 거예요. 토끼 한 마리를 알뜰히도 써요.(웃음) 가죽으로 털신도 만들고, 털로는 토시도 만들고요. 연어도 껍질로는 가방을 만들고, 그런 식이잖아요. 결국 그게 인간이었던 거예요. 지금은 부위별로 포장된 고기를 슈퍼마켓에서 사고, 이전의 과정을 무섭다고 하지만요. 사실은 그것을 제대로 보지 않는다는 게 더 무서운 일이에요. 그래서 죄책감을 안 느끼도록 만들어버리죠. 실제로는 다 관여해야 하는 거거든요. 각 과정에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요. 덫을 놓고 토끼를 잡아서 먹는 게 훨씬 건강한 삶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점에서 저도 반성을 했어요.

 

지금은 너무 단계가 많고, 너무 거리가 멀죠.


네, 그런 점을 보여주는 게 재미있었어요. 신발을 만드는 장면도 그렇잖아요. 지금 신발이라면 상점에 가서 사는 것이지만 여기서 신발은 만드는 거예요. 나무줄기를 잘라 휘어서 반원을 만들고, 거기에 동물의 가죽을 무두질하고 얽어서 만들죠. 그 설명을 보면서 유튜브를 찾아 봤어요. 인디언들이 어떻게 만드는지 제가 알아야 제대로 번역하겠구나 싶어서요. 그런데 그게 의외로 어떤 카타르시스를 줬어요. 기본으로 돌아가자면 결국은 먹고,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을 만들어 쓰는 것이면 전부인 거예요. 그리고 자기 전에 이야기를 들으면서 문학으로 지혜를 남기는 것이죠.

 

일과를 마친 두 늙은 여자가 긴 겨울밤에 서로의 삶을 이야기하는 장면도 참 좋죠. 이런 상황, 이런 시간이 마련되어서야 서로의 경험이 공유되었잖아요. 그 과정을 통해 이들의 과거는 기억이라는 기록으로 남게 되었어요. 과거가 다시 살아난 거예요.


과거가 다시 살아나 현재로 이어진 거죠. 인디언도 그랬지만 우리도 옛날에는 훨씬 더 육체노동을 많이 했던 거예요. 나이가 들면서 제 자신한테 많이 말하는 것은 매일 몸에 대해서 생각하자는 거거든요. 지상에 살아 있는 한 몸에 묶여 있으니까요. 그리고 죽기 전까지 제대로 움직이기를 원하니까 몸에 대해 생각하자, 했어요.

 

앞서 “문장이 울퉁불퉁”하다고도 하셨는데 이번 작품을 번역하시면서 고심한 부분이 있었다면 들려주세요.


두 타입의 작가가 있는 것 같아요. 열심히 하는 타입과 타고난 타입이죠. 물론 열심히 하는 타입도 타고난 부분이 있겠고, 타고난 타입도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 되죠. 그런데 벨마 월리스는 교육을 많이 받은 분도 아니고요. 그렇다 해서 타고난 분도 아니에요. ‘그위친 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열망이 글을 쓰게 만들었던 건데요. 그래선지 문장이 울퉁불퉁하고, 매끄럽지 못해요. 그런데요. 그게 또 매력적이에요. 번역자로서는 어린 아이가 쓴 가슴을 콱 잡아다놓는 글과 같은, 그것을 전달해주고 싶었죠. 그런데 동시에 이야기가 들어와야 하잖아요. 읽혀야 하니까 그 두 가지를 하느라 조금 애를 썼어요.

 

“어린 아이가 쓴 콱 잡아다놓은” 것이 어떤 의미인지 느껴지네요.


번역학자 조르주 무냉(Georges Mounin)은 “번역자는 유리”라고 묘사하는데요. 채색유리도, 투명유리도 있을 수 있죠. 어떤 작품에 채색유리를 끼우면 번역자가 있다는 걸 사람들이 딱 알 수 있어요. 어떻게 생각하면 적어도 충실하게 번역했다는 거죠. 그런 부분에서는 ‘정숙한 추녀’예요. 원문에는 충실하지만 번역투일 수 있죠. 반면 투명유리가 끼워 있어서 거의 한국 소설 같아 좋다가도 원문과 대조하면 ‘아닌데?’할 수도 있어요. 물론 ‘정숙한 미녀’면 제일 좋겠지만(웃음) 번역자마다 치중하는 부분이 다른 것 같고요. 어떤 이는 원문의 충실도를 높게 보고, 어떤 이는 문장의 매끄러움을 선호하는데요. 저는 굳이 얘기하면 ‘정숙한 추녀’ 쪽이에요. 하지만 때론 번역자의 욕심 같은 게 생겨서 ‘아, 이건 내 문장을 만들어봐야겠다’라는 부분을 몇 군데 만나요. 그리고 그런 정도의 권리는 역자한테 있다고 생각하죠. 역자 개인이 책임을 지는 거고요.

 

『두 늙은 여자』 를 번역할 때는 욕심을 조금 내셨던 건가요?

 
로렌스 베누티(Lawrence Venuti)는 점점 더 역자의 역할을 중요시 하고 있죠. 결국은 개인적인 것으로 남을 거예요. 그렇게 오랫동안 이 논란이 계속되어 온 걸 보면 말이에요. 독자들도 자신이 좋은 쪽을 선택해서 읽는 거고요. 그런 걸 텐데요. 『두 늙은 여자』는 제가 원문의 투박성과 진솔성을 살리면서도 가독성 있게 읽히게 하려고 애쓴 번역이었어요.

 

기존에 해오던 번역과는 많이 다른 작업이었군요.


많이 다르죠. 일단 분량도 적고요. 피카소 같은 화가도 그렇고, 작가도 마찬가지로 나이가 들어서 어린 아이처럼 돌아가요. 실은 그건 굉장한 경지이지만요. 그런 것처럼 반환점을 돌아 근원으로 회귀하면서 좀 까다로워진다고 할까, 거추장스러운 것을 벗어버린다고 할까, 그런 본질에 가까운 것을 찾게 되는 것 같아요. 저에게도 이번 번역이 그중 하나가 아닐까 싶어요. 계획하는 번역 중에 대작이 하나 있어요. 그런 것도 할 테지만 또 이런 식의 번역, 지금 현재의 우리들한테 조금 더 직접적으로 다가가는 번역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요. 바로 지금 호소력이 있는 그런 작품을 하고 싶었어요.

 

그렇다면 이만한 현재의 이야기가 또 있을까 싶어요. 노년의 이야기, 그것도 자신의 삶을 되찾은 여성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여성, 게다가 여성‘들’이죠. 나아가 약자들의 연대까지 같이 얘기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을 거예요. 제목을 정할 때 고민이 있었어요. ‘Two Old Women’이 원제인데요. 그대로 번역하면 안 팔릴 것 같아서요. 제목 때문에 몇 달 묵혔어요. 그러다가 결국 이 제목으로 결정된 거거든요. 지금은 그러길 너무 잘했다고 생각해요. 또 띠지에 적힌 ‘노년의 성장소설’이라는 말이 정말 마음에 들었어요. 출판사에서 정한 건데요. 우리는 생명이 붙어있는 한 성장하거든요. 생명이 있는 한 가능성이 있어요. 중요한 것은 삶의 길이를 늘이는 것이 아니고요. 삶의 깊이를 갖는, 나답게 사는 것이죠. 그래서 이 책을 읽으신 분들이 메를로 퐁티(Merleau Ponty)가 누구지, 하면서 『지각의 현상학』도 한 번 읽어보시면 좋겠어요. 책 속에 길이 있다는 건 별 게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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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의 어려움


번역가는 이를 테면 첫 번째 독자잖아요. 그렇게 생각하면 아주 적극적인 책읽기를 하고 계신 셈이에요.


두 가지예요. 밥벌이니까요. 밥벌이의 치사함과 엄숙함이 함께 있고요. 십여 년 전부터는 조금 먹고, 조금 살기로 해서 제가 좋아하는 것만 번역하기로 마음먹었는데요. 그 전에 제 기준은 느슨했어요. 나쁜 책만 아니고, 조건이 맞으면 한다. 조금 더 나아가서는 내 번역으로 독자들이 만나면 더 행복해지는 번역을 하자, 였어요. 그보다 더 전에는 더 느슨하게 절대 오역을 하지 말자, 세상에 없어야 할 책을 번역하지 말자, 였고요. 이를 테면 저는 멜로 소설이 참 나쁘다고 생각해요. 젊은 여자 후배들의 의식을 좀먹을 수 있거든요. 왕자님 같은 사람을 만나서 자기 삶이 변화되는, 그런 식의 소설은 정말 큰일이라고 생각해요. 드라마도 마찬가지죠. 어쨌든 번역자로서의 제 정체성, 책임감은 그런 정도이고요. 그 다음은 원고료에 타협한다(웃음), 여전히 이런 느슨한 기준을 갖고 있어요.

 

1988년부터 번역을 해오셨으니 벌써 30년의 시간인데요. 여전한 번역의 어려움 같은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번역에는 아주 징글징글한 게 있다니까요.(웃음) 번역은 늦가을 낙엽 쓸기 같아요.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계속 나와요. 그러니까 계속 고쳐야 할 것 같아요. 벤야민도 번역되지 않는 부분은 늘 남는다, 는 이야기를 했는데요. 번역은 어쨌든 텍스트가 있잖아요. 정답이 있는 거예요. 때로는 진짜 잘 번역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하지만 때로는 어떻게 해도 미진한 것 같을 때가 있죠. 그런 번역의 본질적 어려움이 있고요. 또 하나는 번역료가 너무 싸요. 30년 전 번역할 때는 번역료가 그런 대로 괜찮았던 것 같아요. 가끔 만나는 번역하는 친구가 있는데요. 우리는 사양 산업의 귀퉁이에 매달려서 살아왔다고 자조적으로 이야기 하곤 해요. 어쨌든 30년 간 일을 해왔는데 제대로 보상 받지 못하는 직업이라는 게 상당한 스트레스와 걱정이 있어요. 그래서 주변에 번역하겠다는 친구가 있으면 말려요.(웃음)

 

그럼에도 번역이 주는 즐거움이 있으신 거겠죠.


저자의 머릿속에 그렇게 오랫동안 있기는 어려울 거예요. 어떤 경우에는 저자한테 ‘너 이거 틀렸어!’(웃음)라고 얘기도 해줄 수 있고요. 게다가 그 저자가 마음에 들 경우는 정말 좋은 거죠.

 

가즈오 이시구로처럼 번역 당시에는 지금처럼 많이 읽히지 않았던 작품들도 있잖아요. 이렇게 뒤늦게 빛을 보는 작품들을 보면 아쉬움도, 반가움도 있으실 것 같아요.


가즈오 이시구로는 말이죠. 진짜 사람들이 몰랐어요. 심지어 다들 그랬어요. “너 일어도 하냐?”(웃음)라고요. 그런데 저는 정말 좋았어요. 가즈오 이시구로가 좋은 게 그는 기억의 문제에 천착하거든요. 굉장히 영리한 작가예요. 작품마다 장르는 바뀌지만 기억이라는 주제 하나는 물고 늘어지는 거예요. 이렇게 좋고, 재미있는 책을 왜 안 보는 걸까, 그랬는데요. 저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고 생각해요. 내가 현재 번역하고 있는 작가가 노벨상을 받는 일에는 행운이 함께 하는 일인 것 같아요. 참 감사하고 있어요.

 

그밖에 또 좋아하는 작가는 누구인가요?


이상하게 한 작가를 하면 계속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로맹 가리도 그랬고요. 가즈오 이시구로도 그렇죠. 또 야스미나 레자(Yasmina Reza)라는 작가가 있어요. 희곡으로 시작했어요. <아트>라는 작품이 있고요. <대학살의 신>이라는 작품은 영화화되기도 했죠. 이 사람이 99년부터 소설을 쓰기 시작해 2016년에 ‘르노도상’을 받았어요. 그 작품이 국내에 『지금 뭐하는 거예요, 장리노?』라는 제목으로 나왔는데요. 정말 매력적이에요. 소설이 대단히 현장성이 있고요. 대성할 작가예요. 요즘 아주 빠져있어요. 지금도 야스미나 레자의 교정지를 보다가 왔어요. ‘비탄’이라는 소설인데요. 이것도 노년에 대한 이야기예요. 『두 늙은 여자』가 아주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면 ‘비탄’은 현재예요. 난삽할 수도 있고요. 무엇보다 굉장히 재미있어요.

 

 

노년의 아름다움


앞서 최근 노년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됐다고도 하셨고요. 삶에 너그러워졌다는 말씀도 하셨는데요. 이것은 어떤 이야기인가요?


우리가 늙음을, 노년을 너무 평가절하해온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있고요. 또 최근 들은 얘기가 있는데요. ‘그렇게 고루한 생각을 하고 있다니 그는 서른이었지만 이미 노인이었고, 그렇게 진취적인 생각을 하고 있다니 그는 칠십이었지만 청년이었다.’서른 노인과 칠십 청년이라는 말이잖아요. 그런데 여기서 청년과 노인이라는 단어는 가치중립적이지 않아요. 청년은 좋은 의미, 노인은 나쁜 의미로 쓰였죠. 사실 그래서는 안 되는 거거든요. 나이라는 건 부끄러울 것도 자랑스러울 것도 없어요. 다만 내 나이가 내게 소중한 거죠. 이 작품에서 두 늙은 여자가 무리에서 뒤처지고 중요한 계기를 맞이하기 전까지 살아온 그런 식의 생활 태도가 결국은 노인에 대한 편견을 만든 게 아닐까, 하고요. 이런 생각이야말로 가장 좋은 노후준비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달리 노후준비가 아닌 것, 나이를 현재로 받아들이는 것에 관한 말씀이시죠?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는 말도 하잖아요. 그 말 자체에 이미 나이에 대한 자격지심이나 가치평가가 들어 있는 거예요. 저는 그런 말을 들으면 오히려 좀 속상해요. 나이의 아름다움, 그것을 우리가 회복하자는 생각이 들어요. 특히 안타까운 건 30대 후반이나 40대 후반 정도의 후배들이 너무 나이 드는 것에 스트레스를 받아요. 심지어 결혼을 안 했다면 더 스트레스를 받고요. 절대 그럴 필요가 없거든요. 나이는 부끄러울 것도 자랑스러울 것도 없어요. 다만 소중해요. 나의 기억이니까요.

 

서로 더 만나야 할 것 같다는 생각도 종종 합니다. 너무 다른 존재로 보기도 하니까요.


한 선생님이 아흔 몇 해를 살아보니 인생의 절정은 65세부터 80세까지더라, 하신 적이 있는데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매일이 절정인 것 같아요. 지금의 현재, 나의 현재가 삶의 절정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죠. 평균 수명을 고려했을 때 제가 지금으로부터 20-30년 더 살 수 있다고 한다면 제가 지나온 그 어느 때의 삶보다 더 나답게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해요. 지금부터 펼쳐질 삶이 훨씬 더 기대돼요. 참 신기해요. 그러니까 그러기 위해서 해야 할 몫이 있는 거예요.

 

노년에 관한 책도 생각하고 계신다고요?


모친이 편찮으세요. 저희는 병원에 안 모시고 집에 계신데요. 그러면서 노년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됐어요. 저의 노년, 주변의 노년을 생각하고 책도 읽고 하면서 자연스럽게 어디서 원고 청탁이 오면 그쪽으로 쓰게 되는 거예요. 그렇게 글이 조금 모이면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겼어요. 노년의 아름다움에 관한 것이죠. 노년이 생각보다 괜찮은 때인데(웃음) 말이에요. 하지만 차이가 참 많이 나요. 젊은이들은 다 젊음인데요. 노년은 사람마다 차이가 많이 나는 것 같아요. 특히 몸은 40-50년을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유전적 요인에 따라 각각 다르죠. 몸은 마음의 스승인 것 같고요. 몸이 가르쳐주는 것을 잘 들어야 해요. 몸을 무시해서는 안 돼요. 이런 생각들을 지금 쓰고 있는데요. 아마 내년쯤에 나올 수 있을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이 책을 어떤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으신지 여쭐게요.

 
나이듦에 대해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이 읽어주시면 좋겠어요. 노인이라는 말이 원래의 아름다운 의미를 되찾게 되기를 바라고요. 나이와 상관없이, 한겨울에 꺼져가는 모닥불 앞에 외롭게 앉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모든 분들이 읽으셨으면 좋겠어요. ‘박새(칙디야크)’와 ‘별(사)’의 이야기가 마음의 온기를 전해줍니다. 우리 안에는 우리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놀라운 것들이 있다고요!


 

 


 

 

두 늙은 여자벨마 월리스 저/짐 그랜트 그림/김남주 역 | 이봄
두 노인이 서로를 응원하는 모습만큼 그녀들의 성장을 도운 사냥감인 다람쥐와 토끼와 순록 등의 동물을 세밀하게 묘사했다. 동물을 사냥하는 두 여인들의 동작 역시 생동감 있게 전달해준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영미 “몸이 강해지면 많은 것들이 해결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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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 편집자를 떠올리면 책상 앞에 앉아 글 읽는 것이 업이고, 저질 체력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사람이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마녀체력』 의 이영미 저자도 26년 동안 편집자로 평생 책상 앞에서 책을 만들었다. 30대 중반에 유전으로 물려받은 고혈압으로 약을 먹기 시작했고 늘 등과 어깨가 무거웠다. 글을 읽어야 하는 직업인데 어느 순간부터 글을 읽는 게 짜증이 났다. 지식노동자의 자부심은 부부 동반 모임에서 지리산 하나 못 올라가는 몸을 발견하면서 무너져 내렸다. ‘그렇게 마흔 살 넘은 아줌마가 처음 달리기를 시작했다.’ 수영의 ‘음파음파’를 비로소 이해하고, 바구니 자전거로 슈퍼를 다녔다. 한 바퀴가 두 바퀴가 되고, 두 바퀴는 네 바퀴가 되다가 결국 철인3종 경기를 소화하는 트라이애슬릿이 되었다.


비혼이든 기혼이든, 자녀 유무와 상관없이 마흔은 인생의 변곡점이다. 『마녀체력』은 작은 키의 마흔 살 넘은 여성이 ‘나도 했으니 너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26년 편집자 인생을 통틀어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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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탈자 없는 책


여러 매체에서 인터뷰가 나왔어요.

 

왜 관심을 가질까요? 아마 제가 에디터여서 그런 것 같아요. 철인 3종을 한다고 해도 기록으로 치면 저보다 잘하는 친구들이 훨씬 많은데 책상에 앉아서 오랫동안 일하는 대표적인 직종이잖아요. 특히 여자 기자분들이 열광했어요. 책에 나온 이야기에 공감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오늘 북토크도 하신다면서요?


앞으로 강연을 많이 할 것 같아요. 늘 저자가 책만 내서는 안 되고 독자와 만나야 한다고 했는데 이제 저도 많이 다닐 예정이에요. 농담으로 다 죽었다고 얘기하죠. (웃음) 말하기 전에도 책이 이렇게 소문이 났는데 말하기 시작하면 더 큰일 난다고요.


26년 동안 일했지만 자기 책 편집은 어려우셨다고요.


편집자가 여섯 꼭지 정도를 빼더라고요. 처음에는 제가 괜찮다고 했는데 왜 고치지 하고 생각했는데 결과적으로는 빼고 나니까 훨씬 주제가 흩어지지 않고 밀도 있게 모였어요. 저도 저자가 되니까 안 보이더라고요. 정말 편집이 신의 일이라는 게 맞는 말이었어요. 이번에 저자님들 마음을 너무 잘 알았어요. 저도 원고 독촉받을까 봐 두 달 동안 피해 다녔거든요. 그래서 편집자들보고 다 책 쓰라고 말하고 다녀요. 저자 마음이 이렇게 느껴질 수가 없어요.


‘남해의봄날’에서 책이 나왔는데요. 어떻게 계약하게 됐나요?


‘남해의봄날’ 정은영 대표는 제가 힘들어할 당시 같은 회사 동료였어요. 회사를 나오고 통영으로 간 후에 출판을 할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전화가 온 적이 있어요. 그때는 서울에서도 출판사가 안 되는데 통영에서 뭘 하냐며 말렸는데, 한 2년 하더니 솜씨가 나오더라고요. 목차를 보내줬더니 바로 계약하자고 해서 작년 10월부터 썼죠.


책 인용구에는 이제까지 읽어왔던 책이 녹아있어요.


얼마나 많은 책을 인용하고 싶었겠어요. 처음에는 목차마다 들어갈 인용구를 모은다고 집에 아래위 접고 줄 쳐진 책을 난장판으로 흩어놨었어요. 3개월 쓰고 3개월 퇴고했는데 퇴고 과정이 너무 힘들더라고요. 책을 다 쓰고 너무 힘들고 다시는 쓰지 말아야지 했는데, 한편으로는 쓰고 나니까 인생의 결정적인 부분을 되새기는 작업이 위안이 됐어요. 매일 사람들이 책은 안 읽으면서 글 쓴다고 불평했는데, 글을 쓴다는 것 자체가 그 사람의 마음을 충만하게 만들더라고요.


편집자로서 자신의 책에서 오타를 발견하면 어떤가요? 그것만큼 무서운 일이 없을 텐데요.


제가 오케이 하고 나서도 여섯 명이 번갈아 가면서 봤어요. 오탈자 없는 완벽한 책이라고 자부합니다.

 

여섯 번 교정이라니, 그게 더 무섭네요. (웃음) 편집자로서 일하는 내용도 많이 나와요.


처음에는 편집자를 대상으로 내용을 잡았는데 출판사에서 모든 직장 여성들에게 도움이 되는 내용이라고 해서 책 이야기는 많이 줄였어요. 편집자는 책에서 기껏해야 판권 내용에 이름 딱 한 번 나와요. 아무리 책을 잘 만들어도 저자가 빛나고 편집자는 뒤에 일하는 사람이에요. 지금 책 산업이 힘들다지만 제가 로또 1등 되면 이만큼 관심을 가질까요? 책을 냈기 때문에 이렇게 주목하는 거고, 아직도 책이라는 매체의 힘은 대단하고 희망이 있다는 걸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 성공이 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약간의 추진력이 되었으면 하는 게 바람이에요.

 

 

육체로 같이 한번 싸워 보자


부제에 ‘마흔’이라는 특정 나이를 밝힌 이유가 있나요?


첫 번째로 어느 정도 힘든 시간을 보내고 마흔 정도 되면 아이들도 크고 정말 좋은 세상이 온다고 말해주고 싶었어요. 대부분 후배도 서른 즈음이 육아와 일 사이에서 자기 몸은 전혀 신경 못 쓰는 시간이더라고요. 두 번째로는 회사 고민이 많았어요. 회사에서 결혼했든 결혼하지 않았든 여성이 가장 속상한 시기가 마흔이에요. 사실 해결 방법이 없어요. 갑자기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상황도 바뀌지 않아요. 그때 자기 몸이 강해지면 직업인으로 의지도 생기고 많은 것들이 해결돼요. 환경을 바꿀 순 없어도 자신이 바뀌면 환경도 달라지는 법이거든요.


남편분께서 먼저 철인 3종을 시작하셨다고요.


처음에는 같이 해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안 들고 부부싸움만 했어요. 아버지가 아들 데리고 어디 나가야 할 주말에 새벽에 나가서 자전거 탔다가 달리기하고 또 수영하러 나가니까 너무 화가 나는 거예요. 남편 반응은 ‘너도 해 봐’ 였는데 그러면 또 어떻게 나 같은 사람한테 해보라고 하냐며 화를 냈죠. 누구나 할 수 있는 운동도 아니고 하필이면 그런 힘든 운동을 해서 아예 따라가지도 못할 머나먼 사람처럼 느껴지니까 또 섭섭했고요.


그러다 수영을 시작하고, 차례차례 단계를 밟아나가는 모습이 그려져요. 마른 몸매에 연연하는 사람, 퇴사를 고민하는 직장 후배, 그리고 엄마들을 위한 글이라고 했어요.

여성성에 갇혀 있는 후배들이 안 됐다고 생각했어요. 하이힐을 신고 매니큐어를 칠하면 당연히 움직이기 싫어져요. 예뻐 보이지만 너무나 힘든 족쇄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람을 수동적으로 만드는 거죠. 저도 대학교 졸업하고 첫 직장에서 하이힐을 신고 취재를 하러 갔다가 길에서 엉엉 울었거든요. 선배 언니들이 다 그러고 다녔으니 선배들 보고 배운 거죠. 그 이후 맨발로 택시 타고 들어와서 평생 힐은 안 신겠다고 다짐했어요. 그런 생활이 운동을 하는데 영향을 미치긴 했을 거예요.


페미니즘으로 읽히는 이야기가 있어요. 제목도 ‘마녀 체력’이고요.


박혜란 선생님도 칭찬해주시더라고요. 그전까지는 어떤 구호나 말로 페미니즘을 했다면 이 책은 육체로 같이 한번 싸워 보라는 식이잖아요. 여자도 몸이 강해지면 정신도 강해지고 싸움이 쉬워진다는 말이 새롭게 들리나 봐요.


남자를 이겨보는 경험이 일상생활에서 자신감으로 이어진다는 내용도 같은 맥락일 것 같아요.


지금도 대기업의 임원 중에 여성이 거의 없어요. 여성들은 야심을 드러내기보다 다 같이 잘살자는 식으로 키워지는데, 소녀 때부터 남자와 같이 운동한다면 다른 경험을 가지고 다른 생각이 들 거예요. 다음엔 꼭 따라잡을 거야, 내가 꼭 때려줄 거야 하는 경험이 많으면 많을수록 안 진다는 거죠. 자전거를 타면 바구니에 개를 태운 할아버지조차도 저를 따라잡으려고 해요. 말도 안 되죠. 저와 같은 강도로 운동하는 남자들에게는 질 수 있어도 그런 분들은 아예 엄두도 못 내게 멀리 가버려요. 자전거는 순전히 자기 동력만으로 가는 스포츠인데, 그것만으로도 남자를 따라잡을 수 있다는 게 너무 좋다고 생각했어요.


여성이 운동하면 제일 먼저 몸매가 좋아지고 살이 빠질 거라는 말을 듣잖아요. 그런 목적을 가지고 시작하지 않아도 사회가 그렇다 이야기하면 위축되고요.


단단하고 강한 체력이기만 하면 뚱뚱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해요. 저는 세레나 윌리엄스를 좋아해요. 우리가 생각하는 아름다움과 가장 거리가 먼 여성이지만 자유롭게 뛰고 포효할 때면 너무 예뻐요. 긴 머리보다는 짧은 머리, 큰 소리로 웃으면서 하고 싶은 말 정확하게 밝히는 게 제가 생각하는 건강한 여성이에요.


철인 3종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뭐든 한 가지를 오래 하면 도인이 된다잖아요. 저도 자전거를 10년 타고 나니까 일종의 도를 깨닫게 되더라고요. 명상을 오래하면 붕 뜨는 느낌이 드는 것처럼, 오랫동안 달리기나 수영을 하면 기도하는 시간으로 삼을 수 있어요. 철인3종의 세 경기 모두 자연에서 해야 하는 운동이라 디지털 기기를 멀리할 수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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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박한 영웅의 이야기


서문에 로맹 가리의 말을 인용하셨어요. “영웅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한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은 그걸 하지 않는다.”


이 책은 영웅으로 시작해서 영웅으로 끝나는 책이에요. 자전거, 수영, 달리기나 체력 이야기가 아닌 저질 체력의 25년 차 에디터가 어떻게 삶에 균열이 오고, 그것을 자각하고, 어떻게 훈련하고 이겨냈는지 차례대로 쓴 영웅서사에 가까워요. 제 삶에서 가장 약했던 부분을 깨닫고 이겨낸 소박한 영웅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어요.


책을 읽고 자신도 운동을 시작해야겠다는 리뷰가 많았어요.


한 사람만 바꿔도 좋겠다고 썼는데, 정말 이 책을 읽고 운동 시작한 사람이 너무 많아요. 하느님이 저에게 체력 천사의 자리를 주셨나 봐요.


자전거를 타고 고개를 넘으면서 목표를 너무 멀리 잡으면 포기하기 쉽다는 깨달음을 인생에도 접목하고 있어요. 운동과 생활이 어떤 점에서 맞닿는다고 느끼시나요?


직장을 여섯 번 옮겼는데 다섯 번을 운동하기 전에 옮겼어요. 마지막 직장은 운동을 시작할 때 들어가서 11년간 다녔고요. 그전에는 사람이 싫어서 그만두고, 출근 카드에 스트레스 받아서 그만뒀는데 정신적으로 견딜 힘만 있으면 금방 그만두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오르막길을 오르면서 자전거에서 중간중간 내리면 다시 올라가기 더 힘들잖아요. 대편집자 이름을 달았을 때도 그만둬야 하나 고민을 많이 했는데, 가능하면 끝까지 가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회사에서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모습을 보면서 뒤에서 달리고 있는 여성들을 위한 책이라고 생각했어요.


어떤 분이 운동에서 실패한 이야기보다 직장에서 실패한 이야기가 와닿았다고 서평을 남겨주셨어요. 저도 제가 회사에서 어떤 마음이었는지 쓰는 부분이 마음에 걸렸는데, 선배로서 좋은 이야기만 해주는 것보다 실패하고 굴곡이 심한 이야기를 해주는 게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저 말고도 이후에 두 명의 대편집자가 더 생겼어요.


‘‘용기’란 두려움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이 두려움보다 더 중요하다는 판단(95쪽)’이라는 말이 있었어요. 두려움보다 중요한 건 뭐였나요?


밤 늦게 사무실에서 노끈을 밟으면 뱀인 줄 알고 깜짝 놀라잖아요.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그럴 리가 없는데 편도체는 본능이라서 그 두려움을 못 이기죠. 두려움보다 더 큰 소리로 다른 생각을 해야 해요. 처음 철인3종 경기에 나가서 발이 닿지 않는 새까만 바다를 보고 죽을 것 같은 공포를 처음 느꼈어요. 공포를 이길 수 있었던 건 두 가지였는데, 일단 장비를 다 샀잖아요. 순간 무서워 죽겠는데도 “그 장비 어떡하지?”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웃음) 두 번째로는 아이가 응원하러 왔는데, 제가 무섭다고 기어 나오면 평생 아이한테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깜깜했어요.


운동을 하면서 육아와 자녀 교육은 어떻게 하셨는지 궁금해요.


저는 엄마들에게 육아하지 말라고 해요. 아이를 쥐잡듯이하고 모든 생을 아이에게 올인하면 둘 다 결과적으로 불행해지는 거죠. 아버지가 흔들려도 엄마만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잘 사는 모습 보여주면 아이는 삐뚤어지지 않는다는 게 제 원칙이에요. 그게 꼭 운동이 아니더라도 상관없어요. 엄마가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주면 아이들이 중간에 흔들려도 반드시 따라온다고 생각해요.


엄마 입장에서는 늘 아이를 잘못 키우는 게 아닐까 조바심이 들잖아요.


저도 모성이 강한 사람이에요. 아들이 초등학생일 때 회사를 1년 쉰 적이 있어요. 엄마가 일하다 보니 아이가 너무 내성적이고 부진해졌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그게 아니더라고요. 천성일 뿐이고 단점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깨달은 거죠. 그래서 다시 회사 나가면서 아이와 마주 앉아 지금부터 어른으로 대접하겠다고 했어요. 일을 하는 워킹맘으로 줄 수 있는 건 자립심밖에 없었어요. 고 3때 아이가 팔에 가재 문신을 하고 왔는데, 그걸 보고 “엄마도 문신 너무 하고 싶었는데 무서워서 못 했어. 말도 안 하고 혼자 갔냐, 데려가지” 하면서 속으로는 좋았어요. 이제 스스로 결정하는 아이가 됐다는 것 때문에 너무 기뻤고요. 아이는 부모를 뛰어넘어야 하거든요.

 

 

삶을 즐기는 법


인생학교 선생님으로 강의 하신다고요.


‘일과 삶의 균형’과 ‘짝 잘 찾는 법’ 강의 두 개를 맡았었어요. ‘일과 삶의 균형’ 강의에서는 퇴사하고 싶어서 오는 사람이 절반, 나머지는 퇴사하고 오는 사람이 절반이에요. 열심히 일하다 암 걸렸다는 친구도 있었고, 와서 우는 분들이 많았어요. 다음 시즌으로는 ‘삶을 즐기는 법’을 주제로 강의하고 있어요. 여기서는 환경을 바꿀 수 없지만 보는 눈을 바꾸면 얼마든지 살만해진다는 이야기를 할 거예요.


요즘은 무슨 운동을 하나요?


올림픽 코스는 나갈 수 있을 정도로 몸 상태를 유지하고 있고요, 요즘에는 배드민턴 해요. 3년째 레슨 받고 있는데 배드민턴도 강력하게 추천해요. 남자와 같은 필드에서 할 수 있는 운동이기도 하고, 철인 3종을 까먹을 만큼 재미있어요.


일본어도 배우신다고 들었어요.


여성복지관에서 한 달에 만 원 내고 배우고 있어요. 젊은 여성들은 일하고 육아하느라 바빠서 없고 할머니만 있는데, 너무 좋아요. 그런 할머니들을 보면 제 노후의 모습 같거든요. 늙어서도 저렇게 공부하겠구나 싶어서요. 그런데 할머니들은 제가 건강하니까 또 부러워하는 거예요. 배우고자 하는 호기심에 육체만 받쳐준다면 예순, 칠순에도 너무나 창창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어요. 마흔은 아기예요. 나이 들어서 못한다고 할 나이가 전혀 아니라는 거죠.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 모두 여든 넘어 과부인데 혼자 씩씩하게 잘 사세요. 그런 걸 보면 저는 늙는 것도 겁나지 않아요.


책이 인생의 분기점이 됐는데, 다음 계획이 있나요?


여전히 책 만드는 게 재밌어요. 프리랜서로 일하지만 월급을 이기지는 못하죠. 하지만 지금이 제일 행복해요. 출퇴근 안 하고,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고요. 최근 콘텐츠 대회 심사위원 제안이 들어왔는데 얼마 주냐고 안 물어보고 몇 편 봐야 하냐고 물어봤어요. 왜냐하면 늙어 죽을 때까지 책을 보고 싶은데 정말 눈이 안 좋아져요. 좋은 책 보는 것도 부족할 판에 심사로 눈을 혹사할 수 없다, 정말 제가 하고 싶은 일만 하겠다는 거죠. 그게 백만장자 마인드잖아요.

 


 

 

마녀체력이영미 저 | 남해의봄날
하루 종일 일에 치여 복잡했던 머릿속을 말끔하게 비워주고, 사람들 사이에서 지쳐버린 마음에 숨길을 틔워준다. 삶의 에너지를 충전시키고, 내 안에 잠든 무한한 잠재력을 끌어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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