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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브 크리에이터 도티 “10대의 마음을 사로잡은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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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자 235만, 누적 조회수 20억. <도티TV> 채널의 ‘도티’는 요즘 주말이 없다. 주 시청자 층이 10대인만큼 7-8월은 1년 중 가장 바쁠 때다. 더구나 <도티TV>는 매일 콘텐츠가 업로드 된다. 매일 시청자와 소통하고, 매일의 이슈를 파악하고, 새로운 시도를 해보기 위해서는 하루를 온전히 콘텐츠 제작에 쏟아야 한다. 그리고 어쩌면 그 성실함과 꾸준함이 도티를 지금 유튜브 크리에이터라는 치열한 분야에서 가장 인기 있는 크리에이터의 위치로 올려놓은 것일 터다.


2014년 도티가 창업한 디지털 엔터테인먼트 ‘샌드박스 네트워크’는 10대가 가장 가고 싶어하는 회사로 꼽힌다. 도티, 잠뜰, 풍월량, 백수공방, 장삐쭈, 라온 등 150여 팀의 크리에이터가 소속되어 있으며 이들의 구독자를 모두 합치면 천만이 넘는다.  『나는 유튜브 크리에이터를 꿈꾼다』 는 샌드박스 네트워크의 크리에이터들이 실제 크리에이터의 생활과 고민을 직접 들려주는 책이다. ‘많이 경험하라’, ‘가장 중요한 것은 성실함’, ‘사랑과 관심의 무게를 이겨내자’와 같은 팁은 크리에이터를 꿈꾸는 사람들, 이제 크리에이터 생활을 시작한 사람들이 눈 여겨 봐도 좋겠다. 도티의 말대로 크리에이터는 “노력한 만큼 성과를 얻을 수 있는 생태계”니까.

 

“크리에이터 일이 마냥 행복한 일만 하는 건 아니에요. 특히 10대 친구들은 게임 하면서 돈 버는 사람이라고 쉽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요. 진짜 많은 노력과 정성, 시간이 필요한 일이라는 점을 알려드리고 싶어요. 내가 정말 좋아하고 오래 할 수 있는 주제를 선정해서 성공한 크리에이터가 아니라 행복한 크리에이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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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이 되도록 하자


도티의 하루가 궁금합니다.

 

<도티TV> 채널은 매일 편성돼요. 공휴일이건 주말이건 매일 영상이 올라가죠. 그러다 보니 평일은 거의 대부분 촬영 일정이 잡혀 있고요.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는 촬영을 준비하거나 실제 촬영을 하는 시간으로 활용해요. 오후 6시부터 8시 사이에 완성된 편집본 업로드를 하고요. 프라임 타임이 그 시간이거든요. 영상 올라간 후에는 댓글 확인하고, 피드백을 하죠. 하트도 눌러 드리고요. 다 마무리 하면 밤 9시 정도 되는 것 같아요. 정말 매일이 정신 없이 지나가요.

 

몇 년 동안 계속 그렇게 지낸 거잖아요.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텐데요.


꾸준함, 성실함이 중요한 것 같아요. 영상 단위로 콘텐츠를 소비하는 게 아니에요. 채널을 구독하는 거죠. 내일 올라올 영상도 기꺼이 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려면 편성이 정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특히 게임 콘텐츠는 대부분의 채널 운영자 분들이 데일리로 업로드를 하고 있거든요. 어쩌면 제가 그 포문을 연 것 같기도 한데요.(웃음) 처음에는 저 혼자 콘텐츠 제작, 기획, 편성, 유통을 다 했어요. 그때는 버거웠죠. 편집을 직접 한다는 게 워낙 손이 많이 가는 일이라 힘들었지만 지금은 기획팀도 있고요. 채널 운영을 전반적으로 관리해주시는 분들도 있어서 조금은 수월해졌어요.

 

처음 채널을 시작할 때부터 매일 콘텐츠를 올려야겠다고 생각한 거죠?


팬 분들이 자주 놀러 오실 수 있는 채널을 만들려면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도티TV>를 보는 게 습관이 되게끔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거든요. 내일도 올라올 테니까 꼭 내일도 <도티TV> 채널을 방문해주세요, 라는 거였죠. 시트콤 같은 거예요. 하루 20분을 책임지는 일상의 한 부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전략이 주효했던 것 같아요. 이제는 3천 개가 넘는 영상이 누적되어 있고요. 3년 전에 올린 영상도 꾸준히 조회수가 발생하고 있죠. 굉장히 뿌듯하고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럼 언제 쉬세요?


쉬려면 휴가 때의 일을 전부 미리 소화해놓고 쉬어야 해요. 4박 5일 휴가를 간다고 하면 그 기간의 콘텐츠를 미리 다 만들어놓고 예약 업로드를 건 후에 쉬다 올 수 있죠. 정말 쉽지 않아요. 하루나 이틀 콘텐츠를 미리 만들어두는 것도 버거울 때가 있거든요. 5일 이상 휴가를 가려면 거의 한 달 전부터 준비를 해야 해요.

 

그렇게 해보신 적 있으세요?


1년에 한 번 정도는 해요. 거의 9월쯤이 되는데요. 7-8월이 여름방학이잖아요. 그때가 어떻게 보면 성수기거든요.(웃음) 학생들이 방학을 한 시기고, 트래픽도 많이 발생해요. 다양한 콘텐츠를 시도해볼 수 있는 시기죠. 그때 열심히 일을 하고요. 추석 즈음에 일주일 정도 쉬는 것이 약간 전통처럼 되었어요.

 

공교롭게도 지금이네요. 요즘 많이 바쁘시겠어요.


7-8월은 너무 바빠요. 주말이 없어요. 지금 한 3주 전부터 주말에 계속 일정이 있었어요.

 

 

지속가능했으면 좋겠다


그 바쁜 와중에 책이 나왔어요. 샌드박스 네트워크의 크리에이터와 구성원들의 인터뷰 내용이 많은데요. 이 책은 어떤 책인지 직접 소개를 해주시면 어떨까요?


전에도 유튜브 생태계나 디지털 미디어 관련 서적이 있었죠. 그런데 기술서 같은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채널 개설은 어떻게 하는지, 수익 창출은 어떻게 하는지, 미리보기 이미지 제작 툴은 어떤 것인지, 이런 내용들이 많았잖아요.  『나는 유튜브크리에이터를 꿈꾼다』는 실제로 크리에이터를 꿈꾸는 분들이 이 직업을 본질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자는 생각에서 만든 책이에요. 크리에이터에 도전할 때의 마음, 자리를 잡은 이후 팬들과 직접 소통할 때의 감정 등을 전반적으로 담았어요. 크리에이터를 꿈꾸는 분들이나 이제 시작하신 분들, 혹은 슬럼프를 겪고 계신 분들에게 실질적인 조언과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그래서일까요. 크리에이터 한 명, 한 명의 목소리가 꽤 많이 담겨 있어요.


크리에이터마다 채널 성격도, 채널 성장의 과정도 다르거든요. 저는 3-4년 동안 꾸준히 성장한 경우인데요. 취미로 시작했다가 영상 하나가 화제가 되어서 본격적으로 채널을 운영하게 된 경우도 있어요. 처음에는 정말 반응이 없다가 과거의 영상까지 재조명 받으면서 채널이 성장해나간 경우도 있고요. 이런 것들은 경험을 통해서만 전달할 수 있는 부분이라 생각하고요. 실제 겪은 크리에이터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면 진짜 도움이 되는 유튜브 교과서가 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또 채널을 운영하면서 겪은 고충이나 어려움도 진짜 많거든요. 그런 것을 실제 어떻게 극복했는지 노하우도 있으니까요.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2013년, 처음 <도티TV>를 시작했을 때는 워낙 이런 정보가 적었죠. 그래서 더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기도 했을 것 같아요.


현재 크리에이터로 활동을 하고 있고, 샌드박스 네트워크라는 크리에이터가 모인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입장에서는 이 생태계가 정말로 지속가능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미디어의 한 축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죠. 아직도 색안경을 끼고, 디지털에서 유통되는 콘텐츠는 B급이야, C급이야, 저런 콘텐츠는 프리미엄 콘텐츠가 아니야, 라고 말하는 분들이 있는데요. 그런 편견을 깨부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또 앞으로 크리에이터 활동을 하시는 분들도 본인의 직업에 대해 충분한 자부심과 콘텐츠의 가치에 대한 생각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거든요. 저 때만 하더라도 그런 부분을 먼저 경험하고 조언해주는 분들이 없었어요. 그냥 유튜브가 핫하대, 해외에는 크리에이터라는 사람들이 있대, 정도였고요. 그런 면에서 산업에 기여하는, 생태계를 건강하게 이끄는 좋은 분들이 많이 등장했으면 좋겠어요.

 

도티 역시 처음부터 그런 생각을 하진 않은 거죠? 크리에이터가 ‘지속가능한’ 내 직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언제 처음 알게 됐나요?


사실 한국은 디지털 미디어 선진국이었어요. 2007년 전후로 UCC(User Created Contents) 열풍이 있었죠.(웃음) 콘텐츠를 직접 제작하는 분들이 그 당시에 벌써 있었는데요. 직업화가 되지 않았던 이유는 콘텐츠로 수익 창출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플랫폼이 그런 노하우가 없었고요. 미디어 생태계가 무르익지 않았기 때문에 결국에는 다 취미로 끝났죠. 그런데 유튜브의 광고 시스템, 콘텐츠 앞부분에 광고를 해주고 그 광고 영업을 콘텐츠 제작자와 나누게 되면서 수익이 발생했어요. 크리에이터가 본인의 콘텐츠의 가치를 평가 받을 수 있는 세계가 된 거죠. 저도 처음에는 이게 직업으로써의 가치가 있을까, 정말 이걸 직업으로 생각하고 도전해도 될까, 하는 걱정이 있었는데요. 3-4개월이 지나고, 실제로 업로드한 콘텐츠로 수익이 발생하니까 직업으로 생각하고 도전을 해봐도 되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됐던 것 같아요.

 

직업에 대한 개념부터 재정의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돼요. 지금, 크리에이터라는 직업은 어떻게 이해되어야 할까요?


간단하게 말하면 ‘1인 미디어’라는 거예요. 그 말로 다 설명이 되는 것 같아요. 과거에 미디어는 전파를 보내는 방송국이 필요했고, 탤런트를 매니지먼트하는 엔터테인먼트가 있고, 더 나아가 프로덕션과 탤런트 개인이 다 따로 있었잖아요. 그러다보니까 의사결정에도 시간이 오래 걸리고 트렌디한 콘텐츠를 만드는 데 한계가 분명히 있었어요. 반면 1인 미디어는 그 모든 과정이 개인에게 통합되어 있죠. 개인 스스로 콘텐츠를 만들 의지만 있고, 노력만 기울인다면 누구나 할 수 있고요. 유튜브 채널을 누구나 개설할 수 있고, 콘텐츠를 업로드 할 수 있잖아요. 그런 일련의 과정들이 분명히 다 직업으로써의 가치가 있는 것 같아요. 콘텐츠를 만드는 일, 그 콘텐츠로 사용자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일, 이건 전통적으로 있었던 일이죠. 그것을 이제는 개인이 할 수 있고, 거기서 수익도 발생하니까 이 생태계가 구축되어 있는 상황에서는 누가 뭐라고 하건 충분히 직업으로 인정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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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에서 콘텐츠를 소비하는 건 이제 문화다


지금, 사람들이 1인 미디어에 열광하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기존 ‘레거시 미디어’가 유통하는 콘텐츠는 여러 제약이 있죠. 방송 심의가 있을 테고요. 시청률과 광고 집행 이슈로 보편적인 시청자 층이 있는데요. 그러다 보니까 정말 내가 필요로 하는, 내 취향을 저격하는 콘텐츠를 만나긴 쉽지 않아요. 그 예가 10대를 위한 콘텐츠죠. 기존 미디어가 10대 대상 콘텐츠 제작에는 소극적이었잖아요. 그런데 유튜브는 범대중적인 콘텐츠를 만들 필요도 없고, 일정 부분 심의로부터도 자유로워요. 그래도 자체 심의는 필요하고, 너무 자극적인 콘텐츠는 안 좋겠지만 말이에요. 그러니까 나만을 위한 맞춤형 콘텐츠가 존재하는 세계가 됐어요. 그런 부분이 가치 있다고 생각해요.

 

다양성이 정말 중요하죠.


주제도 다양해지고, 연출 면에서도 혁신이 많이 일어났어요. 또 팬들과 직접 소통하는 크리에이터 문화가 있잖아요. 기존처럼 한 방향으로 소비하는 콘텐츠가 아니라 사용자와 창작자가 함께 만들고, 서로 피드백을 주고받아요. 크리에이터가 시청자 이름을 언급해주기도 하고요. 이런 쌍방향 소통 콘텐츠라는 점도 굉장한 매력인 것 같아요. 덕분에 좀 더 트렌디하고, 다양한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거죠.

 

그만큼 크리에이터는 트렌드에 민감해야 할 것 같아요.


진짜 민감해져요. 하루, 아니 몇 시간 싸움이기도 하거든요. 어떤 이슈를 주제로 콘텐츠를 만들 때는 속도가 필요하고요. 제 경우 일단 국내뿐 아니라 해외의 다양한 채널을 구독하고, 수시로 모니터링해요. 팀원들과도 오늘의 이슈를 주기적으로 공유하죠. 정말 중요해요. 몇 시간 차이지만 거기서 승부가 갈리거든요. 누가 먼저 키워드를 선점하느냐가 디지털에서는 정말 중요하잖아요. SNS도 마찬가지예요. 어떤 주제가 가장 먼저 시발된 포스팅, 영상은 사람들의 많은 관심을 받아요. 그런 면에서 트렌드를 빨리 포착하는 게 중요하고요. 저도 여러 채널을 통해 정보를 최대한 많이 보고 들으려고 하고 있어요.

 

특히 도티는 ‘초통령’이라고 불릴 정도로 10대 팬이 많은데요. 10대를 대상으로 한 콘텐츠를 만들겠다고 생각한 이유가 뭐였는지도 궁금해요.


솔직히 처음부터 10대 대상 콘텐츠를 할 거라고 생각한 건 아니었어요. 그냥 게임을 좋아했고 게임 콘텐츠를 만들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당시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 있던 게임이 ‘마인크래프트’였고요. 해외에는 그 게임을 통해 천만 단위의 구독자를 확보하고 있는 크리에이터도 있었거든요. 게임으로 발생하는 트래픽 절반 이상이 마인크래프트일 정도로 국내에만 발생하는 트렌드가 아니었어요. 이걸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 콘텐츠를 만들다보니 거기에 호응하는 세대가 10대였던 거예요. 게다가 저는 어린 친구들과 소통하는 데 큰 불편함이 없었거든요. 대학생 때 보습학원 강사도 했었고, 어린 친구들이 편했기 때문에 이들이 좋아해준다면 좀 더 그들 친화적인, 그들의 취향에 맞는 콘텐츠를 해보자, 하고 개발하게 된 거예요.

 

지금 10대의 트렌드는 무엇인가요?


저희의 10대 때와 지금 10대가 사실 크게 다르지 않아요. 어른들은 요즘 10대들이 어렵다고 생각하는데요. 실제로 들여다보면 고민이 똑같아요. 친구 관계, 성적, 부모님과의 갈등 등 누구나 한 번쯤 10대 때 경험했던 그런 것들이거든요. 그런데 그런 것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물어봐 주지 않으니까 그 친구들이 외롭다고 느끼는 거죠. 사실은 어른들이 다 경험해봤던 것들이에요. 그런 것들을 잘 파악해서 콘텐츠를 만들고, 공감하는 것이 제게는 제일 중요한 부분이에요. 조금 더 구체적으로는 ‘조카 콘텐츠’라고 해서요. 도티 삼촌이 조카를 데리고 여기저기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상황극으로 만드는 콘텐츠를 시도했는데 호응이 좋더라고요. 무인도 설정도 반응이 좋았고요. 모험과 생존기를 좋아하니까요.

 

 

많은 일상의 경험들이 필요하다


앞서 자체 심의 말씀을 하셨는데 내 콘텐츠에 있어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이 뭔지도 말씀해주세요.


10대 친구들이 많이 보는 채널이고요. 저는 조카들도 있다 보니 아무리 방송 심의로부터 자유로운 플랫폼이라도 내가 세운 적정 수위로 콘텐츠를 지켜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자극적인 콘텐츠를 비하하는 건 아니지만 너무 많이 나가면 결국 기대수준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점점 더 자극적으로 만들어야 하더라고요. 결국에는 크리에이터가 지쳐요. 게다가 저는 누구나 볼 수 있는 톤앤매너로 영상을 만들다보니까 추가적인 장점도 생겼어요. 따로 2차 편집을 하거나 가공을 하지 않고도 케이블TV 같은 곳에 제 콘텐츠를 납품할 수 있게 됐거든요. VOD 서비스도 편하게 할 수 있게 됐고요. 결국 당장의 인기나 트래픽에 연연해서 콘텐츠를 만들면 스스로 함정에 빠지게 되는 것 같아요. 매운 맛에 익숙한 시청자들은 순한 맛을 재미없게 느끼거나 아예 떠나버리기도 하니까요. 장기적으로 건강한 콘텐츠를 만들겠다 생각하면 그런 부분에서도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중요한 말씀 같아요. 크리에이터가 되고 싶은 10대 분들에게 당부의 말이 될 수도 있을 것 같고요. 의심의 눈을 거두지 못하는 보호자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될 수도 있을 거예요.


디지털에서 콘텐츠를 소비하는 건 이제 문화예요. 디바이스와 네트워크가 발전해서 언제 어디서나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게 되었잖아요. 이 방식이 일상이 되어버린 거죠. 기성세대도 이 세대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어요. 단순히 어린 나이, 한때의 유행이 아니라 이것이 시청습관으로 자리 잡았거든요. 이 방식에 익숙한 세대가 20대가 되고, 30대가 되어도 콘텐츠를 모바일에서 소비하는 게 아주 익숙할 거예요. 때문에 “거기에는 자극적인 콘텐츠만 있으니까 보지 마!”라고 하는 건 너무 시대에 역행하는 일인 거죠. 아무리 막아도 어디에나 디바이스는 존재하니까요. 콘텐츠를 올바르게 소비하는 방식에 대해 알려줘야죠.

 

학교생활이나 직장생활 경험 모두를 소중히 하라고 조언했잖아요. 경험이 콘텐츠에 어떤 영향을 준다고 보세요?


디지털 미디어와 레거시 미디어의 가장 큰 차이점은 소통이에요. 소통하면서 콘텐츠를 상호보완 해나가거든요. 그래서 굉장히 많은 부분 공감능력이 필요해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쏟아지기 때문에 그들의 감정, 취향을 이해하려면 많은 일상의 경험들이 필요한 것 같아요. 게임만 잘한다고 게임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는 건 아니거든요. 그런데 많은 10대 크리에이터들이 오해해요. 게임만 잘하면 된다고 말이에요. 그건 게이머지 크리에이터가 아니죠. 크리에이터는 결국 콘텐츠로 소통하는 사람이고요. 콘텐츠는 누군가를 공감시키거나 누군가로부터 온 피드백을 공감할 수 있어야 꾸준할 수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내 옆에 있는 친구와의 교우관계가 크리에이터 활동에 중요할 수 있고요. 책을 통해 간접 경험한 세상이 콘텐츠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어요. 너무 지엽적인 하나의 콘텐츠 주제에만 빠지면 성공한 크리에이터가 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그렇다면 10대의 도티가 좋아했던 것은 뭔가요?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는 데 어떤 작용을 했나요?


어릴 때는 책을 굉장히 많이 읽는 학생이었고, 친구들을 재미있게 해주는 걸 좋아했어요. 초등학교 전교어린이회장도 했거든요. 그런 경험이 많은 사람을 대하는 크리에이터라는 직업에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게다가 김연아 선수도 굉장히 좋아해서 쫓아다니고, 관련된 자료 모으는 것도 좋아했는데요. 그래서 누군가를 팬으로서 좋아하는 마음을 이해하죠. 제게도 팬이 생겼는데요. 그분들의 마음을 경험해봤기 때문에 이해하는 거예요. 그 마음이 절절하게 와 닿고,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도 하죠. 그런 모든 일들이 크리에이터 활동에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철없는 행동, 시간을 낭비하는 일로 여겨질 수 있었는데요. 물론 결과론적인 이야기이긴 하지만 제가 이 일을 하는 데 있어서는 다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김연아 선수 ‘덕질’을 하면서 영상 편집도 배우기 시작했거든요. 그것도 다 의미가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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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티, 그리고 나희선


지금의 도티에게 영감을 주는 것들은 뭔가요?


이제 만 4년 넘게 이 일을 했는데요. 그동안 도티는 계속 성장했죠. 반면 개인으로서의 나희선은 많이 변한 것 같지 않거든요. 그 차이 때문에 불안하기도 했어요. 도티는 어디론가 계속 나아가는데 촬영이 끝나고 나를 돌이켜보면 나희선은 그 자리에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혹시 도티 인기가 떨어지면 나희선도 별로 의미 없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불안해지는 거죠. 조급해지고, 걱정이 늘고요. 그걸 해소하기 위해 저는 회사를 만들고 나희선으로서 할 수 있는 외부활동들을 적극적으로 했어요. 강연에서 10대와 직접 만나 제 얘기를 전해주기도 하고, 다른 크리에이터와 만나기도 했죠. 그렇게 나희선의 역할을 함께 성장시켜나가니까 그것이 원동력이 되더라고요.

 

크리에이터로서의 성장 외에 나 자신, 개인의 성장도 잘 꾸려야 한다는 말씀이군요.

 
정말 많이 봤어요. 어떻게 보면 크리에이터가 너무 외로워요. 1인이잖아요. 내 방에서 모든 작업이 다 이루어지고요. 특히 생방송 하는 분들은 방 안에서 많게는 수천 명, 수만 명과 정신 없이 얘기하다가 방송 종료를 누르는 순간 끝이잖아요. 진짜 귀에서 ‘삐-’소리가 나기도 한대요. 그만큼 공허하고 외로운 상황이 발생하거든요. 그 부분에 있어 마인드컨트롤 하는 게 정말 중요하고요. 그게 안 됐을 때 슬럼프를 겪거나 정신적인 고통을 겪는 분들이 많이 있죠. 그런 면에서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들고 일상생활에서도 가치 있는 일을 만들어내야 해요. 안 그러면 진짜 계속 외딴 섬에 갇힌 기분으로 살게 돼요. 어려운 부분이죠.

 

앞으로 크리에이터는 어떻게 변화해갈까요?


점점 콘텐츠를 소비하는 시간이 늘어날 거라고 봐요. 일상의 많은 부분이 기술 발전으로 해소될 거니까요. 그렇게 발생한 여유 시간을 콘텐츠 소비에 사용할 텐데요. 때문에 콘텐츠 산업이 아주 빠른 속도로 발전해나갈 거라고 생각하고요. 그 중심에 디지털 미디어가 있을 거예요. 실제 미국 등 디지털 미디어 선진국은 많은 부분 디지털이 레거시를 대체했거든요. 국내도 마찬가지죠. 네트워크는 훨씬 좋잖아요. 그 과정에서 콘텐츠를 담당하는 크리에이터라는 일은 수요도 훨씬 많아질 거고, 더 고도화된 방식으로 직업화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물론 너무 희망적인 생각만 가지고 무모하게 다가가면 안 되겠지만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이 명확하고, 이 일이 얼마나 많은 노력과 경쟁이 필요한지 제대로 된 인식을 갖고 있다면 충분히 도전해볼 만하다고 생각해요.

 

도티는 언제까지 크리에이터로 활동할 생각이세요?


제가 하고 싶을 때까지 콘텐츠로 활동하는 사람이고 싶어요. 이 채널은 제 것이잖아요. 주변의 어떤 제약도 없으니까요. 하고 싶을 때까지 할 거예요. 그건 또 언제든 새로운 꿈이 생길 수도 있다는 뜻이기도 해요. 제 성향이 그런 건지는 모르겠는데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조금 더 나아가면 단순히 개인 크리에이터로서가 아니라 디지털 미디어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좋은 생태계를 만드는 데 기여하고 싶어요.


 

 

나는 유튜브 크리에이터를 꿈꾼다샌드박스 네트워크 저 | 위즈덤하우스
크리에이터를 관리하고 콘텐츠를 함께 기획하는 샌드박스의 파트너십 팀, 제작 팀, 사업기획 팀 등 유튜브의 콘텐츠가 어떻게 탄생하고 발전하고 있는지를 알려준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류은경 “아침 사과 3개, 내 몸이 확실히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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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은 아픈 데가 참 많다. 머리도 아프도, 항상 피곤하며, 소화도 잘 안 된다. 그런데 살은 찌고, 체력은 고갈돼가다보니 운동이라도 해 보자고 마음먹지만 그거라고 쉽게 되지 않는다. 살은 안 빠지는데 운동하느라 더 피곤해지는데 먹는 것도 제대로 먹지 말라고 하는 바람에 더 이상 사는 낙이 없다.


이런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 하나 있다. 『완전소화』 . 제목은 불량한 소화기관과 트러블메이커인 나의 장들에 관한 이야기일 것 같지만 그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원래 경로를 벗어나버린 우리 몸 전체에 관한 이야기다.


이 책을 읽으면 왜 그렇게 항상 피로한지, 왜 운동을 해도 효과가 없고, 살은 찌고 소화가 안 되는지 어지간한 것은 알 수가 있다. 우리가 입으로 먹는 것이 우리 몸에 꼭 필요한 영양인지 독인지 아주 예민하게 구분하는 우리 몸은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가 제대로 쓸만한 것을 먹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하고 있지 않다. 먹기 편하고, 맛있고, 혀에 착 붙는 것들만 찾다 보니 그런 음식들을 소화시켜서 영양가로 써야 하는 우리 몸 속의 장기들은 늘 고달픈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나마 쓸데만 없으면 다행인데 해독 작용을 하지 않으면 몸을 망칠 것들을 먹으니 간은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하지만 여기까지도 다 아는 얘기라고 할 사람들이 많다. 몰라서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 힘들어서 못하는 것이니까 길게 얘기할 것 없다고 무시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진짜 몰라서 못하든 힘들어서 못하든 다 좋다. 지금부터 이 책이 제시하는 방법은 놀랍도록 쉽고도 간단하니까 말이다.


몸을 정상적으로 작동하도록 하는 방법은 영양가 있는 것을 먹고, 독이 든 것을 피해야 한다. 영양가 있는 것은 자연에 가까운 것이고 독이 든 것은 인간이 가공한 것이다. 아 그래도 뭔가 어려워 보인다. 자연식이라면 현미, 채소, 과일이고, 가공식이라면 흰 쌀밥, 라면, 빵, 치킨, 고기, 햄이다. 어느 쪽이 더 맛있는지는 길게 고민할 필요도 없다. 자연식을 먹으며 덜 아프게 사느니, 가공식 먹으며 좀 아프게 살겠다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그럴 줄 알고 이 책은 더 간단한 방법을 제시한다. 먹고 싶은 것을 마음껏 먹어라. 대신 이것 하나만 지켜라. 아침에 사과 세 알. 그 마법 같은 이야기를 지금부터 여러분에게 소개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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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은 몸 속에서 생긴다


대학에서 수의학을 전공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사람의 건강에 관심을 갖게 되셨나요?

 

수의학을 공부하면 외과 실습 시간에 여러 종류의 수술 실습을 하는데요, 그 때 제가 임상 쪽은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래서 다른 일을 찾던 중 국립 암센터에서 수의학을 전공한 연구원을 채용한다고 하는 거예요. 마침 고등학교 때부터 암과 같이 정복하지 못한 질병을 치료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이익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했었는데 기회가 돼서 일을 하게 됐어요.


꼭 수의학 전공 연구원이 필요한 이유가 있나요?


왜냐하면 모든 질병과 관련된 실험에는 동물실험이 들어가거든요. 암에 관한 연구 역시 암세포를 동물에게 주입해서 종양 모델을 만드는 실험을 하는데요, 대학원에 다니던 중 연구원으로 들어가게 된 거죠. 책을 보니 암뿐만 아니라 모든 병은 내부에서 생긴다는 ‘내부환경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것은 동시에 자연치유와도 관계가 깊을 텐데요, 어떤 이야기인지 소개를 좀 해 주세요.

 


질병에 걸리면 보통은 아픈 부위만을 보게 돼요. 피부가 안 좋으면 피부를 보고, 여드름이 생기면 여드름만 보게 되는데, 사실 피부 상태라는 것은 간 상태나 장이 좋아지면 자연스럽게 좋아지거든요. 그런데 이런 식으로 질병 그 자체나 증상이 있는 부위만 봐서는 사람의 몸이 개선이 안 되기 때문에 같은 문제가 반복될 수밖에 없어요. 따라서 근본적으로 몸 전체 환경이 바뀌면 건강해진다는 개념입니다. 몸 전체의 환경이 좋아지면 병이 걸리지 않거나 병이 걸리더라도 근본적인 해결이 된다는 앙투앙 베샴 Antonine Bechamp과 같은 맥락의 관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병이란, 생활 습관을 바꿔야 근본적인 치료가 된다는 이야기네요.


암도 마찬가지로 암 덩어리를 떼 냈다고 치료가 되는 것은 아니잖아요. 암에 걸리지 않도록 몸의 환경을 만들고 면역력을 개선하지 않으면 암은 다시 전이가 됩니다. 그래서 몸의 영양과 독소 상태를 개선하는 것이 내부환경설이 바라보는 치료의 관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양은 이해가 되는데, 독소도 관리해야 하나요?


어떻게 보면 영양과 독소라고 하는 것이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요소인데요, 영양과 해독의 원리가 곧 건강의 원리라는 것이죠. 영양가인 줄 알고 먹은 것 중에는 독으로 들어오는 것들이 많거든요. 고기도 많이 먹게 되면 동물성 단백질이 독으로 될 수 있고요, 인스턴트 음식을 생각 없이 먹게 되면 식품첨가물을 1년에 5kg이나 섭취하게 된다고 해요.


식품 첨가물만 5kg를 먹게 된다고요?


통계학적으로 그렇다고 합니다. 이런 것들이 독으로 작용해서 우리 몸의 신진대사를 방해하게 되는 거예요. 어떤 사람은 조금만 먹어도 살이 찐다는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물만 먹어도 살이 찐다고 하잖아요. (웃음)

 

저도 그런 사람이에요. (웃음)


생활습관이 입에서 당기는 대로 먹고, 보는 대로 먹게 되면 몸에는 독소가 쌓이게 되고 신진대사가 무너지게 되니까 살이 찌고, 여러가지 증상들이 나타나게 되는 거죠.

 


자연치유, 올바른 것을 먹고 잘 해독하는 일


그런데 좀 단순하게 말씀드리면 ‘자연치유’라고 하면 아파도 아무것도 하지말고 그냥 내버려두라는 것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렇지는 않은 거죠?


그렇죠. ‘자연치유’라고 하는 것은 자연의 순리와 원리 그리고 이치에 근거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사람의 몸은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수치로 딱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간 수치가 정상이라도 간암에 걸릴 수 있는 것처럼 말이죠. 그래서 아픈 사람의 몸을 고장난 기계로 접근하는 것 보다는 사람은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에 올바른 영양을 몸 속에 넣어주고, 우리 몸이 알아서 해독을 해 내면 건강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작정 내버려 둔다고 몸이 자연적으로 좋아진다는 뜻은 아니네요.


저 같은 경우에는 직접 치료를 하는 것이 아니라 연구를 하기 때문에 자연의학 또는 영양의학을 공부했는데요, 우리 몸이 어떤 영양소를 필요로 하고 그 영양소들이 어떻게 상호작용을 하는지 연구하는 것이죠. 그래서 이 책이 자칭 자연주의자들이 말하는 자연치유처럼 대체 의학에 관한 것으로 오해하실 수 있는데요, 그런 것은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순리대로 좋은 것을 먹고, 잘 배설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자연의학이기 때문에 차이가 있겠네요. 그럼에도 책에 보면 약을 먹는 것이 치료에 도움이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셨어요. 이건 어떤 의미인가요?


당뇨병을 예로 들어볼게요. 당뇨병을 치료할 때 혈당강화제를 쓰거나 더 심해지면 인슐린 주사를 맞게 되죠. 그런데 이렇게 하면 당뇨병이 낫나요? 혈당을 맞춰주고 인슐린을 주입한다고 해서 치료는 되지 않아요. 잠깐 증상만 완화시켜줄 뿐이죠. 그래서 당뇨병이 생긴 근본 원인은 그대로 둔 채 약만 먹는다는 것은 치료를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한국형 제2형 당뇨는 대부분 그 원인이 부드러운 탄수화물의 과다 섭취예요. 흰 쌀밥, 라면, 우동, 국수, 빵, 과자, 케이크처럼 정제된 쌀이나 밀가루로 만든 음식을 먹으면 우리 몸의 혈당이 순간적으로 빠르게 올라가요. 그렇게 되면 우리 몸은 혈당을 낮추기 위해 인슐린을 많이 분비해서 혈당을 또 확 내리게 되겠죠. 이런 패턴이 반복되면 남는 당이 지방으로 쌓여 지방간이나 고지혈증을 유발하게 되고, 끈적한 피를 보내기 위해 심장이 더 강하게 피를 내보내다 보니까 고혈압이 오게 되는 거예요.


마치 제가 진료를 받으러 온 것 같네요. (웃음) 지금 예로 든 것들은 전부 우리가 흔히 먹는 맛있는 음식들인데요.


그렇죠. 그런데 이런 습관이 오래 반복이 되면 췌장이 지쳐서 인슐린에 대한 민감도가 떨어지게 돼요. 인슐린이 버스라면 버스를 너무 자주 부르니까 버스 기사님이 화가 난 거죠. (웃음) 그러다보면 결국 췌장 세포가 망가져서 인슐린이 안 나오게 되고, 당을 사용할 수 없게 돼서 당뇨병의 증상들이 나타나게 되는 겁니다. 결국 인슐린 주사를 맞을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약이 치료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몸의 근본적인 신진대사에 맞는 음식이 치료를 해 줘야만 합니다. 현미라든지 과일이나 채소처럼 자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음식을 먹으면 혈당이 빠르게 올라갈 일이 없고, 췌장이 고장이 날 이유가 없는 것이죠. 그러니까 약이 아니라 순리에 맞는 식습관이 병을 치료할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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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와 고기, 그리고 단백질을 먹는 법


본격적으로 소화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치킨, 햄버거, 우유와 같은 음식이 소화에 도움이 안 된다고 쓰셨는데요, 무엇을 어떻게 먹어야 좋은 건가요?


사람의 몸이 소화를 잘 시킬 수 있는 음식이 있고, 소화를 시키기 힘든 음식이 있는데요, 자동차도 휘발유나 경유나 가스처럼 알맞은 연료가 있는 것처럼 사람에게도 알맞은 음식이 있는 겁니다. 알맞지 않은 음식을 먹으면 소화를 시키기 어려운 것이고 에너지로 사용하기도 어렵겠죠. 우유라는 것은 말 그대로 ‘소의 젖’ 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순리대로라면 우유는 송아지가 먹는 것이 맞고, 만약에 사람이 먹도록 되어 있었다면 모유라는 것이 없었겠죠. 더구나 공장식 축산에서 얻어지는 우유는 몸에 좋지 않은 성분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소를 빨리 성장시키기 위해서 성장 호르몬 넣거나 병에 걸리게 되면 항생제 주사를 놓게 되고, 소가 원래 먹어야 할 풀이 아닌 다른 것을 먹여서 키우죠. 심지어 초식 동물인 소에게 다른 동물이나 소의 골육분을 먹이게 돼서 광우병 같은 것까지 발생시켰습니다.


우유가 원래도 사람에게 안 맞지만, 대량 생산을 하면서 더 우리 몸에는 안 좋은 것이 됐다는 말이네요.

 

 


우유라는 것은 사람이 먹었을 때 항생제나 호르몬 성분 등에 의해서 오히려 암을 유발하거나 아토피, 천식, 크론병(소화 기관 어디에서든 발생할 수 있는 만성 염증성 질환으로 과도한 면역 반응에 의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현재까지 치료법이 없다) 과 같은 많은 자가면역질환의 원인이 된다고 학자들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낙농 협회 등에서 완전 식품으로 광고를 하고 있어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알고 있는 것이죠.


우유에 있는 성분이 면역 체계를 교란시킨다는 건가요?


자가면역질환이라는 것은 내 몸이 내 몸을 공격하는 거잖아요. 알레르기나 아토피, 천식, 류머티스 관절염이 모두 이러한 자가면역질환이죠. 크론병도 마찬가지고요. 결국 이런 병들은 면역계에 교란이 일어났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우유에 있는 성분이 독소로 작용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거예요.

 

그래도 우유가 단백질이나 칼슘 섭취라는 측면에서는 좋은 기능을 하지 않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굳이 먹을 이유는 없다. 왜냐하면 칼슘이나 단백질은 식물에 들어 있는 것이 사람이 흡수하는 데 더 좋기 때문이에요.


콩을 먹는 것으로는 단백질 섭취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고기를 먹어서 동물성 단백질을 섭취해야 한다는 말도 있는데요, 이런 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고기를 먹었을 때 기분이나 속 상태에 대한 느낌을 채식을 했을 때와 비교해 보면 알 수 있을 거예요. 그래서 동물성 단백질은 굳이 먹을 필요는 없지만 먹는다면 자신의 몸무게를 0.9로 곱한 수를 그램으로 따져서 드시는 것이 우리 몸이 해독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보면 됩니다. 예를 들어 몸무게가 70kg이라면 63g정도가 우리 몸이 하루에 해독할 수 있는 고기의 양이라고 보시면 돼요.


보통 고기 1인분이 150g이 넘기 때문에 쉽지 않겠네요.


동물 실험으로 밝혀진 수치예요. 실제로 모유에도 단백질은 5%정도 밖에 들어 있지 않아요. 엄청난 영양소가 필요한 아기도 단백질이 5%면 충분하다는 것이죠. 신진대사가 잘 돼야 단백질을 만들 수 있는 것이지 닭가슴살을 먹는다고 근육이 되는게 아니에요. 단백질은 현미나 식물성 음식에도 다 많이 들어 있어요.

 


소화라는 것은 온 몸의 장기들이 펼치는 오케스트라


‘소화가 안 된다’거나 ‘속이 불편하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요. 소화라는 것은 무엇이고 왜 이런 증상이 현대인들에게 많은 건가요?


소화라는 것은 내 몸 안에서 일어나는 하모니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우리는 입에만 넣어주면 내 몸이 알아서 소화를 시켜줄 것이라 생각을 하죠. 그런데 소화에 참여하는 장기는 정말 오케스트라처럼 많아요. 위는 먹은 것을 잘 섞어주고, 위가 일을 하는 동안 췌장에서 소화 효소나 호르몬이 나오고, 간은 영양소를 합성하고, 소장은 흡수해서 대장까지 이르게 하는 굉장히 복잡하고 많은 에너지를 소모하는 작업이 소화라는 과정이에요. 그런데 우리가 먹는 가공 식품은 그 성분을 모두 표시하도록 정해 놓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가 무엇을 먹는지 정확히 알 수가 없어요.


봐도 알기가 힘들죠.


봐도 모르고, 정확히 표시도 해 놓지 않고요. 그래서 우리가 먹는 식품이 정말 우리의 세포에 필요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먹게 된다는 것이죠. 그 성분이 영양소라면 간은 해독할 필요가 없지만 첨가물들은 간에서 모두 해독을 해야 돼요. 따라서 첨가물이 많이 들어간 가공 식품일수록 소화 기관이 해야 될 일이 많아지게 되고 과부하가 걸려서 피곤하게 되죠. 그래서 음식을 먹었는데 더 피곤하고 식곤증이 오는 거예요.


보통은 음식을 먹으면 소화를 시키느라 혈액이 위에 몰려서 원래 졸음이 온다고 알고 있어요.


그런데 과일을 먹으면 그렇지 않아요. 식곤증도 없고 피로가 풀리면서 에너지가 오히려 남아 돌아요. (웃음) 우리 몸은 우리가 먹은 걸 어떻게 해서든 소화를 시켜서 에너지를 만들려고 하는데요, 좋지 않은 것을 먹을수록 그 중에서 영양소를 골라내는 일이 많아지고 해독 작용도 더 많이 해야 되기 때문에 만성 피로가 올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과일만 먹고 살 수는 없는 것 아닐까요?


푸르테리언 (과일식주의자)들의 말에 의하면 인간이 원래 과일만 먹는 과식동물이라고 해요. 푸르테리언들의 주장이 맞다면 과일만 먹어도 되겠지만 실제로 우리나라에는 주로 수분이 많은 과일이 많아서 과일만 먹고 살기는 어려운 환경이에요. 그래서 현미와 채소를 같이 먹고 망고나 바나나 같은 과일을 먹죠. 결론적으로 푸르테리언처럼 할 수는 없겠지만 두 끼 정도만 과일을 먹어도 몸이 편하고 가벼워집니다.


과일에는 당분이 많기 때문에 과일도 많이 먹으면 살이 찐다는 말도 있는데요.


백미나 밀가루, 육류, 가공식품을 많이 먹고 또 과일을 먹기 때문에 문제가 있는 것이지 식사를 과일로만 한다면 당이 오른다거나 살이 찌는 문제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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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3개가 우리에게 줄 수 있는 놀라운 선물


식습관이라는 것을 바꾸기 힘들기 때문에 갑자기 밀가루가 들어간 음식을 끊는다거나 육식이나 가공식품을 멀리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간단히 할 수 있는 과일 식사법이 있다면 소개해 주시죠.


이렇게 생각하시면 돼요. 제가 말씀드린 건강의 큰 원리가 영양과 해독이라고 했잖아요. 제가 아는 분 중에 다이어트를 시작한 후에 식사는 어떻게 하고, 몇 시 이후에는 안 먹고 하는 규칙들이 너무 지키기 어려웠던 분이 있어요. 그래서 그 분은 우리 일상적으로 먹는 것처럼 치킨도 먹고, 빵도 먹고, 야식으로 과자도 먹으면서 딱 하나만 지켰더니 효과를 봤어요. 그렇게 꼭 지킨 규칙이 바로 아침 과일 3개예요. 점심하고 저녁은 일반 사람들처럼 식사를 하고요.


아침 과일 3개라는 것이 뭘 말하는 건가요?


중과 정도 크기의 사과 3개를 말하는데요, 약 500g 정도를 말해요. 사과 하나에 복숭아 2개를 먹는 식으로 해도 상관 없고요. 이런 식으로 아침에만 먹어도 큰 효과가 있어요. 과일은 영양소이자 해독제라고 제가 말씀드리는데요, 아침에 이렇게 먹어주면 그 전날 먹었던 음식의 독소를 아침에 해독해 주는 거예요. 이렇게 드시면 몸이 정상적으로 작동을 하게 되고, 체중도 자연스럽게 정상 체중으로 줄어들게 되는 거죠.


결국 이 책의 핵심은 아침 과일 3개로 요약할 수 있겠네요.


그렇죠. 다른 건 못해도 꼭 이것만은 하라고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이 바로 아침 과일 3개입니다.


그렇게 간단한 방법으로 몸의 균형을 찾고 해독 작용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운데요.


그 이유는 아침이 배출의 시간이기 때문이에요. 그 시간에 뭔가를 먹어서 소화기관을 일하게 하면 지치는데 독소를 빼 주는 음식을 먹으면 다시 생기를 얻게 되는 거죠. 그 중에서도 특히 간이 좋아져요. 보통 암을 예방한다는 폴리페놀이나 안토시아닌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하는데요, 과일에 들어있는 이러한 파이토케미컬(식물성 천연 항산화 물질)이라는 성분들이 간에 좋은 것들이거든요. 다른 장기도 중요하지만 먹고, 대사하고, 합성하는 축은 간이잖아요. 그래서 간이 좋아지면 소화 뿐만 아니라 면역력도 좋아지게 되는데요, 아침에 먹는 과일이 그렇게 중요한 간을 회복시켜 주는 것입니다. 지방을 분해하는 것도 간의 역할이기 때문에 달리기를 하는 것보다 간 건강을 챙겨주는 것이 다이어트에도 더 도움이 되죠. 그러니까 핵심은 아침 과일 3개와 간 건강입니다.


스트레스 등의 문제로 소화에 어려움을 겪는 분들에게도 아침 과일 3개가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소화에는 효소가 도움이 되는데요, 살아있는 모든 것이 갖고 있고 모든 생명 반응에 꼭 필요한 것이 바로 효소예요. 살아있다는 것은 자연 상태에서 말리거나 찌거나 끓이지 않은 상태를 말해요. 섭씨 약 42도가 넘으면 효소가 불황성화 되니까 과일을 그냥 먹는다면 그 자체가 효소를 먹게 되는 것이죠. 말하자면 소화가 안 되는 분들은 효소가 살아있는 과일이나 채소를 먹어서 그 자체를 에너지원으로 삼으시면 돼요. 소화 효소가 꼭 필요한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은 최대한 적게 드시면서 과일을 먹는다면 분명히 도움이 되죠.


과일을 먹을 때 특별히 방법이 있다면 어떻게 먹는 것이 좋을까요?


아침에는 사과나 복숭아처럼 당도가 있는 과일을 먹어서 에너지원으로도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좋고요, 식사 후에는 당도가 낮은 과일이나 야채류를 먹으면 좋아요. 바나나 혹은 망고처럼 수분이 적은 과일은 식사로 드시고, 토마토는 식사 후 뿐만 아니라 간식으로 먹는 것도 아주 좋습니다.


 

 

완전 소화류은경 저 | 다산라이프
살아 있는 음식을 먹을 때 소화 기관의 활동이 활발해지고, 비만, 당뇨, 고혈압, 고콜레스테롤 등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오늘도 소화불량과 각종 질병에 시달리는 독자들이 속 편한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안녕달 “『안녕』, 괜히 혼자 쓸쓸해 하면서 그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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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 수영장』으로 유명한 그림책 작가 ‘안녕달’이 신작 『안녕』을 펴냈다. 소시지 할아버지의 삶과 죽음을 그린 이번 작품은 우리가 흔히 쓰는 인사말 ‘안녕’을 모티프로 세상에 홀로 남겨진 존재들에 관한 이야기다. 소시지 할아버지의 탄생부터 시작해 사후 세계의 별에서 지내는 소시지 할아버지의 모습까지. 4부가 시작되기까지는 온전히 그림만으로 서사 되는 이 작품은 총 662컷의 그림으로 구성된 264쪽의 거대한 그림책이다. 그림책 평론가 김지은은 『안녕』을 두고 “미래 그림책의 서사를 예고하는 작품이다. 사랑은 가장 외로운 곳에서 시작된다. 『안녕』은 그 사실을 고요하게 전한다. 오래도록 천천히 울리는 종소리 같은 그림책”이라고 평했다.

 

『메리』 이후 1년만에 독자를 찾아온 안녕달 작가를 서면으로 만났다. 담담한 문체로 전하는 『안녕』의 출간 뒷이야기를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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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만남과 헤어짐에 관한 이야기

 

올해 어떻게 보내셨는지 안부를 여쭙고 싶습니다.

 

여름이 오기 전까지 끝날 듯 절대 끝나지 않던 『안녕』을 마감하느라 계속 바쁘다가 여름이 시작할 때쯤 책 작업이 거의 끝나서 지금은 휴가 중이에요. 몇 년 동안 평소보다 너무 열심히 일한 것 같아서 스스로에게 아주 큰 포상 휴가를 줬어요. 오랜만에 노니까 너무 좋네요.

 

『메리』  이후의 책입니다. 1년이 좀 안 된 시점에 나온 다섯 번째 책인데요. 아마도 지난번 인터뷰 때, 겨울에 나오려고 했던 책이었을까요?

 

맞아요. 사실 작년 겨울에  『안녕』  작업을 끝냈어야 했는데요. 『메리』를 출간한 뒤 제가 너무 방전이 된 상태였고 『안녕』은 원고가 완성된 상태에서 계약이 된 것이라 저는 그림을 전부 다시 그려야 될 줄은 몰랐는데 새로 다시 그려야 되는 상황이 되었어요. 그래서 한숨 쉬고 다시 그리느라고 반년 정도 늦게 작업을 끝내게 되었어요. 계약서에 나온 작업 기간을 못 맞추는 게 처음이라 혼자 조금 안절부절못했는데요. ‘3월에는 끝낼 수 있겠지?’ 했는데 못 끝내고 결국 7월이 되어서야 작업이 끝났어요. 제가 저의 작업 속도를 과대평가한 것 같아요.

 

『안녕』 은 어떻게 출발한 작품인가요? 처음 제목도 ‘안녕’이었나요?

 

정확하게 어떻게 원고를 시작했는지는 아득하고 처음 원고의 가제로 쓴 건 ‘만남’이었어요. 3장과 4장으로 이야기를 짜다가 설명이 안 되는 부분이 생기고, 이야기에 자꾸 살을 붙이다 보니 2장이 만들어지고 이후에 1장이 붙으면서 꽤 두꺼운 책을 만들게 되었어요. 그림책의 제목을 정해야 될 때쯤 다양한 만남과 헤어짐에 관한 이야기로 정리가 되어서 두 의미를 다 담은 ‘안녕’ 이라는 제목을 쓰게 되었어요.

 

작품을 완성하는 데 얼만큼의 시간이 걸렸는지 궁금해요.

 

몇몇의 캐릭터가 제가 구상하던 다른 이야기에서 넘어와서 정확하게 말씀드리긴 어려운 것 같아요. 원고를 처음 시작한 시점은 조금 애매하지만 『수박 수영장』이 책으로 나오고 그해 겨울에 『안녕』 콘티를 짜기 시작했어요. 2015년 말에 시작해서 2016년 가을쯤까지 책과 애니메이션의 형태로 네 개의 이야기를 완성했는데요. 출판사와 원고를 계약한 후 한 권의 책 구성으로 다시 그려서 올해 여름에 책이 나오게 되었어요.

 

주인공이 ‘소시지 할아버지’입니다. 왜 ‘소시지’였을까요?

 

개와 소시지 할아버지 캐릭터를 놓고 보면 조금 이상한 조합이라고 여기시겠지만 제가 이야기를 만들 때 왠지 소시지가 개를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두 캐릭터를 그려 나가면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만들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소시지 할아버지 캐릭터를 그릴 때, 소시지가 앉으면 통통한 배가 접히는 게 너무 귀여워서 배에 두 줄을 그리면서 혼자 항상 좋아했어요.

 

색감을 특히 신경을 많이 쓰셨을 것 같아요. 우리가 즐겨 먹는 분홍 소시지가 떠오르기도 하고요. 다른 작품을 그릴 때보다 뭔가 더 간결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평소보다 연필을 적게 쓰셨을 것 같기도 하고요.

 

원래 대충 그린 그림을 보는 것도 좋아하고 그리는 것도 좋아하는데요. 그동안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할 때는 돈을 받고 일하는 건데 대충 그리면 안 될 것 같아서 차마 못했는데 『안녕』은 처음에 출판을 염두에 두고 그린 이야기는 아니어서 다른 그림책보다 더 자유롭게 그렸어요. 그림은 간결해졌지만 제 나름대로 등장인물이 사는 별마다 미묘하게 다른 채색 방법을 쓰고 싶어서 소시지 할아버지가 사는 별은 연필을 적게 써서 표현했어요. 그림이 단순하고 배경이 적게 들어가서 자연스럽게 색도 적게 쓰게 되었고, 색을 적게 쓰니까 오히려 색을 쓸 때 의미를 담아 쓰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소시지 할아버지를 채색한 분홍색을 이야기의 중요한 장면들을 표현할 때 고민을 많이 해서 썼어요.

 

‘탄생’, ‘개와의 만남’, ‘개와의 이별’, ‘사후 세계에서의 할아버지’ 등 총 4개 장으로 이뤄져 있는데요. 어떤 장면을 그릴 때 가장 신나고, 또한 가장 힘들었나요?

 

가장 신났던 부분은 1장에서 소시지 할아버지의 엄마가 소시지 할아버지를 낳는 부분이요. 그림이 단순해서 금방 그리기도 했고 그 장면이 희한하지만 귀엽다고 생각해서 그릴 때 즐거웠던 것 같아요. 힘들었던 장면은 쓸쓸하고 슬픈 장면들을 그릴 때 모두 힘들었어요. 제가 그림을 그릴 때 저도 모르게 그리는 대상이랑 똑같은 표정을 지으면서 그리게 되는데 등장인물들이 슬픈 표정을 지을 때는 저도 같이 슬퍼하면서 그리는 바람에 그런 부분을 그릴 때 우울해서 힘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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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그적느그적 걸어 다니는 게 더 잘 맞아요

 

그림책을 다 읽고 나니, ‘돌봄’이라는 글자가 생각나더라고요. 쓸쓸하면서 다정한 느낌도 들었고요. 작가님은 다른 작품과 비교해서, 어떤 감정이 많이 드셨나요?

 

굉장히 기분이 가라앉은 상태에서 그렸어요. 전에 그린 것보다 덜 밝은 이야기라서 괜히 혼자 쓸쓸해하면서 그렸어요. 그게 힘들어서 다음에는 아무 생각 없이 밝은 걸 그려야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면 저도 아무 생각 없이 밝은 마음으로 그리지 않을까 싶어서요.

 

‘가져 가세요’라는 팻말이 계속 나오는데요. 이 글자를 쓰자면, 왠지 쓸쓸해졌을 것 같습니다.

 

씁쓸한 장면인데 제가 실제로 봤던 장면이기도 해요. 대학가에 살았을 때 번잡한 골목에 있는 가로수에 강아지가 묶여 있고 그 위로 가져가라는 종이가 붙어 있었어요. 사람들이 강아지가 귀여우니까 만지면서 안타까워하고 데려가지 않았어요. 다들 작은 원룸에 사는 자취생들이니 강아지를 덥석 데려가 키울 수는 없으니까요. 다행히 그다음 날에는 강아지가 그 자리에 없었어요. 전에 큰 마트 입구에서 토끼와 햄스터를 파는 것도 본 적 있어요. 한 토끼가 유독 그곳에 오래 있으면서 쑥쑥 자라고 있었어요. 저는 그 토끼가 너무 커지면 유리창 너머에서 더 이상 지내지 못할 것 같아서 걱정스럽게 지켜보다가 저희 집에 데려오는 상상을 했어요. 그 토끼 또한 다행히 어떤 주인을 만나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았어요.

 

강아지를 보면서, 『메리』 를 떠올려도 될까요?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개를 그리면 자꾸 저희 할머니 집 개 ‘메리’화 되는 것 같아요. 제가 제일 좋아하는 개여서 그런 것 같아요. 반성하게 되네요.

 

‘폭탄 아이’는 어떻게 생각하셨는지 궁금해요. 폭탄과 아이, 두 조합을 어떻게 떠올리셨을까요?

 

폭탄 아이는 아주 예전에 구상했던 캐릭터예요. 취직할 생각으로 3D 디자인을 배울 때 폭탄 아이를 입체 캐릭터로 디자인한 버전도 있어요. 폭탄 아이와 불 캐릭터를 만들어 놓고 둘의 관계로 이야기를 짜다가 그만두었는데 두 캐릭터 모두 『안녕』에서 개의 친구로 등장하게 되었어요. 함께 기차 놀이를 하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폭탄 아이는 머리카락이 하나만 나 있어서 친구들과 어울리기 힘든 아이인데요. 얼굴이 폭탄 모양을 닮아서 모두에게 ‘폭탄 아이’라고 불리는데 저는 이야기 속에서 폭탄 아이의 머리카락이 불이 붙어 끝까지 타더라도 폭탄처럼 터질지 안 터질지는 모른다고 생각하고 그렸어요.

 

그림으로 쭉 이야기가 전개되다가 뒷부분에 가서야 글이 등장해요. 저는 끝까지 글이 나오지 않을 줄 알았는데요.

 

원래 제가 혼자 완성한 『안녕』의 이야기는 1장이 플립북, 2장과 3장이 그림책, 4장은 애니메이션 형태였어요. 처음 이야기를 만들 때는 움직이는 이미지에 음성도 들리는 애니메이션의 특성을 잘 활용해 보고 싶었어요. 시각뿐만 아니라 청각을 통해서도 이야기를 들으면 좋겠다 싶어서 애니메이션에 내레이션을 넣었어요. 나중에 네 개의 이야기를 한 권의 그림책에 담아 작업할 때도 내레이션의 느낌을 살리고 싶어 마지막 장에 글이 들어가게 되었어요.

 

요즘 즐겁게 보신 그림책이 있다면 한 두 권 소개해주세요.

 

‘토닥토닥 잠자리 그림책’ 시리즈의 『오늘아, 안녕』 에서 아이가 자기 전에 오늘 있었던 일을 잠자리 친구 토닥이한테 이야기하는데 나른하고 귀여워서 좋아해요. 그리고 『꽃에서 나온 코끼리』라는 그림책은 설명하기 힘든데요. 읽으면 평화롭고 좋아서 종종 꺼내 보고 있어요.

 

올해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요즘도 게으른 일상을 살고 계신가요?

 

계획은 제가 저에게 준 휴가 동안 하루에 한 번씩 산책을 나가서 조금 건강해지려고 하고 있어요. 제가 너무 집에서 누워만 있는 걸 좋아하고 일할 때만 책상에 앉는데 제가 집중을 하면 요상한 포즈로 일을 해서 척추 건강을 잃었어요. 친구가 조깅을 하면 허리가 건강해진다고 해서 비싼 조깅용 신발을 사서 조깅을 한번 따라 나갔다가 너무 힘들어서 바로 그만두고 산책으로 바꾸었어요. ‘느그적느그적’ 걸어 다니는 게 더 잘 맞는 것 같아요.

 

홈페이지에서 독자 분들과 소통하고 계세요. 오프라인 행사는 하실 생각이 없으신지요?

 

네…. 제가 낯을 많이 가리기도 하고 독자 분들 대하기를 조금 더 어려워하는 것 같아요. 홈페이지의 방명록에서도 친구가 남긴 글에는 쉽게 대답하면서 독자 분이 남긴 글은 짧은 답글도 어떻게 써야 할지 너무 오래 생각하고 대답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오프라인 행사는 거절할 수 있을 때까지 안 하고 싶어요.

 

후속작의 힌트를 주신다면요.

 

다음으로 나올 이야기는 ‘쓰레기통의 요정’ 이라고 발랄한 쓰레기통에 사는 요정 이야기예요. 예전에 그렸던 더미를 수정하고 있어요. 또 하나는 ‘눈 아이’가 있는데 서늘하고 쓸쓸하지만 조금 따뜻해지는 이야기예요


 

 

안녕안녕달 글그림 | 창비
소시지 할아버지의 탄생부터 소시지 할아버지와 개의 만남과 이별 그리고 사후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까지 거침없이 이야기가 펼쳐져 뛰어난 이야기꾼으로서 작가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글렌체크, 계속해서 새로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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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에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접목하며 성장 중인 글렌체크는 김준원(보컬, 기타), 강혁준(신시사이저, 일렉트로닉스)으로 이루어진 팀이다. 2011년 <Disco Elevator>로 국내 전자 음악 신에 처음 눈도장을 찍으며 인지도를 높여왔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어느 특정 장르로 규정할 수는 없다. 두 정규 앨범 <Haute Couture>, <Youth!>만 봐도 기존 음악의 형식을 벗어나 버리는 부분이 많고 <The Glen Check Experience EP>에서는 이전의 밝고 청량한 스타일을 감춘 어둡고 묵직한 스타일을 보여줬다.

 

서울 마포구에 있는 비스츠앤네이티브스(BANA)에서 만난 글렌체크는 '좋아하는 음악을 하고 살 수 있어 행운'이라며 '끊임없는 도전으로 신의 분위기를 바꾸는 게 의무'라고 덧붙였다. 데뷔 초부터 한결같이 틀에 머무르기를 거부하는 김준원과 강혁준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인터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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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강혁준(신시사이저, 일렉트로닉스), 김준원(보컬, 기타)

 


'글렌체크'라는 팀을 소개한다면.


김준원 : 간단히 설명하면 도전적인 팀이다. 준비 기간을 포함하면 2010년부터 한 거니까 꽤 활동한 팀이다. 여러 시도를 하면서 음악 작업 중이기도 하고, 대한민국에 없는 캐릭터 같아서 자부심을 느낀다. 시간이 흐르고 나니 우리도 '글렌체크'를 객관적인 시선으로 볼 수 있게 된 것 같다.

 

두 사람은 고등학생 때 처음 만나지 않았나. 서로의 어떤 점에 끌려서 시작하게 됐는지.


강혁준 : 우선 음악 취향이 잘 맞았다. 이후에 곡을 같이 만들기 시작했는데 알면 알수록 준원이 형이랑 나랑 다른 부분이 많았다. 내가 좋아하는 것 중에 형이 별로 안 좋아하는 것들도 있고. 교집합도 있지만, 오히려 그런 다른 부분들이 장점이 됐다. 그래서 둘이 있을 때 더 좋은 음악이 나올 수 있었다고 본다.

 

2집 <Youth!>와 작년에 발매한 <The Glen Check Experience EP> 사이에 4년이라는 시간이 있었다. 소속사도 바뀌었는데.


김준원 : 그 사이에 삶 자체가 바뀌었다. 예전에는 안에서 잘 안 나왔다. 방 안에서 혼자 고민하는 사람이었다. 최근에 밖으로 나가기 시작하면서 사람들도 많이 만났고 지금은 디제이도 한다. 3~4년 동안 서울이라는 도시에 대해서도 많이 알게 됐고, 우리랑 비슷한 일을 하는 젊은 친구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배웠다. 그러면서 지금의 소속사(BANA)를 알게 된 거다.

 

초창기부터 지금까지의 음악을 살펴보면 하나의 장르로 정리하기가 어렵다. 록, 신스 팝, 알앤비, 힙합 등 여러 장르를 시도했는데 그만큼 영향 받은 뮤지션이 많다는 건가.


김준원 : 엄청 많다. (웃음) 1집은 뉴 웨이브, 신스 팝 쪽이 컸다. 주로 조이 디비전(Joy Division), 뉴 오더(New Order), 듀란 듀란(Duran Duran)과 신시사이저로 열풍을 일으킨 사람들의 음악을 많이 들었다. 2집 넘어가면서는 록 음악도 많이 들었다. 프랑스 음악도 들었고. 중간에 낸 EP로 가면 디스코, 펑크(Funk)나 그 당시 프랑스에서 유행하던 사운드가 녹아있다.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도 우리에게 영향을 줬다.

 

<The Glen Check Experience EP>는 어떤가.


김준원 : 알앤비와 테크노, 애시드 사운드, 사이키델릭 등 정말 여러 장르가 담겨있다. 특히 애시드 사운드를 구현할 때는 TB-303이라는 악기에 중점을 뒀다. 당시 유행하던 사운드나 장르의 분위기에서도 영감을 받았다. 그래서 특정 뮤지션을 얘기하기가 어렵다. 사실 이런 음악들이 우리가 살아보지 않은 시기에 만들어 졌기도 하고, 국적도 달라서 제대로 이해하고 흡수하기 위해 연구를 많이 했다.

 

<The Glen Check Experience EP>가 조지프 캠벨의 책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을 기틀로 삼았다고 들었다. 어떻게 이 책을 앨범 콘셉트로 삼게 된 건가.


김준원 : 스탠리 큐브릭 전시회를 보러 갔던 적이 있다. 하나의 영화를 만드는데 필요한 것들이 서류로 남아있더라. 그런 자료들을 보면서 앨범도 영화처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별 곡도 중요하지만, 전체적인 틀도 중요하니까. 그런 틀을 고민하고 있던 도중 책을 알게 됐다. 정말 어쩌다 접하게 됐다. 친구가 어떤 수업에서 이 책을 보고 과제를 해야 했다. 그러다 관심이 생겨 읽게 됐다. 좋아하는 영화들의 구조도 공부할 수 있었고, 그걸 자연스럽게 앨범 작업할 때 접목했다.

 

글렌체크의 앨범 아트를 보면 상징적인 요소들이 많다. 작업하면서 기억에 남는 예술 작품이 있나.


강혁준 : 항상 음악뿐만 아니라 비주얼적인 요소에서 영감을 많이 받으려고 노력한다. 영화 장면을 비롯해 많은 작품에서 아이디어를 얻는다. 특정 작품으로 설명하기에는 광범위하게 영향을 받았다.

 

음악만 하려는 팀 같지는 않다. 다양한 아티스트가 활동하는 그룹인 베이스먼트 레지스탕스와 작업했던 경험, 백남준 비디오 아티스트를 오마주하는 공연을 했던 걸 보면 종합 예술을 추구하는 팀으로 보인다.


김준원 : 그렇게 봐주셔서 감사하다. 비디오 쪽에도 더 참여하고 싶고, 다른 분야에도 많이 참여하고 싶다. 예술 활동을 하고 싶긴 하지만 지금은 말처럼 쉽지 않은 상황인 것 같다.

 

글렌체크의 행보는 차트에 올라와 있는 가수들의 행보와 다르지 않나. 이 부분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나.


김준원 : 완벽하게 모든 걸 할 수 있게 되면 오히려 더 대중적인 음악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항상 느끼는 건데 대중은 자기의 취향보다는 마케팅 시스템에 의해 노래를 듣게 된다고 생각한다. 히트한 노래들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차트 상위권의 음악을 계속 따라 하는 게 문제라고 본다. 그러다 보면 차트가 똑같은 음악들로 채워지게 되는 거다. 이건 좀 안타까운 거다. 우리처럼 안타깝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을 것 같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시간이 좀 걸릴 것 같다.

 

초창기 글렌체크의 청량한 스타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럼에도 그때 스타일을 유지하지 않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김준원 : 데뷔 앨범이 가장 대중적인 작품인 건 맞다.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 취향이 계속 바뀌었을 뿐이다. '상업적으로 성공한 노래를 바탕으로 앨범을 만들자'라는 식으로 데이터를 분석하듯이 작업을 하는 게 아니니까. 그래서 매번 다른 음악이 나온다. 해보지 않은 걸 도전하는 게 음악을 만드는 진짜 재미다. 이런 재미를 놓치고 싶지 않다. 물론 1집을 듣고 우리를 알게 된 분들도 있지만, 이번 <The Glen Check Experience EP>를 듣고 알게 된 분들도 있다.

 

강혁준 : <The Glen Check Experience EP>가 나온 뒤 '많이 변했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런데 사실 우리는 매번 변해왔다. 1집 때 이미지가 강렬해서 그런 건지, 많은 분이 우리를 신스 팝 밴드라고 보시는 것 같다.

 

김준원 : 변했다는 얘기가 나는 좋게 들린다. 이전에 했던 음악들이 그만큼 강렬했다는 뜻일 테니까.

 

밴드 사운드에서 컴퓨터 음악으로 넘어가기도 하고, 창법도 다르게 하는 등 계속해서 여러 시도를 해오지 않았나.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변화를 추구해야 한다고 보는 건가.


김준원 : 누군가는 그 도전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각자 다른 생각을 하고 사는데 음악이 어떻게 계속 똑같을 수가 있나. 삶이 달라지면 거기서 비롯한 고민이 반영되어 작품이 나오는 건데. 작업은 매 순간이 선택이다. 어떤 소리를 쓸 것이며, 어떤 멜로디를 짤 것이며… 여러 음악적 영향을 받으면서 접근하는 방법도 있고. 그런 고민 없이 위험하다고 말하는 상황이 안타깝다. 옛날에는 그런 사회를 향해 화가 났었지만, 지금은 여유로워졌다. 안전하게 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우리 같은 사람도 있는 거라는 생각이다.

 

강혁준 : 음악도 그렇고, 문화 전반적으로 새로운 걸 계속해서 시도해야 자극이 된다.

 

글렌체크의 싱글 중에서 각자 가장 좋아하는 곡이 있다면.


김준원 : <The Glen Check Experience EP> 수록곡인 'Long strange days pt.1'을 고르겠다. 하나의 작품을 만든 기분이다.

 

강혁준 : <The Glen Check Experience EP> 자체에 기승전결의 구조가 있는데, 'Long strange days pt.1'은 노래 안에서도 구조가 있다. 나도 그 곡을 말하려 했지만 바꿔서 'Disco elevator'를 고르겠다. 우리는 라이브를 위해 거의 모든 곡을 다시 편곡한다. 공연을 보러 오시는 분들에게 또 다른 재미를 주고 싶어서 기존 곡 그대로 하지 않는다. 그중에서도 특히 'Disco elevator' 편곡이 많이 달라진다. 제일 재밌기도 하다. 가끔 보면 무대에서 나만 혼자 들떠있고 관객들은 아닌 것 같긴 하지만. (웃음)

 

그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두 사람에게는 좋았지만 막상 대중의 반응이 아쉬웠던 음반이 있나?


김준원 : 대부분이 그렇다. <The Glen Check Experience EP>는 성취감이 제일 큰 앨범이다. 우리가 실험적인 음악만 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도 다른 사람들이 즐겨 듣는 음악을 좋아한다. 그런 면에서 이 앨범도 더 많은 얘기가 나왔어야 하는 건데… 아직은 자기 취향을 찾아갈 수 있는 사회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아쉬웠다. 1집도 개인적으로는 더 주목 받아야 할 앨범이라고 본다. (웃음) 그 정도의 자신감이 있어서 앨범을 낸 거다. <The Glen Check Experience EP>를 만드는 데도 3년 걸렸다. 이러다 내가 죽고 나서 뜨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웃음)

 

두 사람의 음악 작업 방식은 어떤가.


김준원 : 서로 방식이 다르다. 콘셉트를 짜는 건 둘 다 비슷하지만, 나는 큰 그림부터 그린다. 혁준이는 소리나 디테일에 신경을 많이 쓴다.

 

강혁준 : 난 정치 외교학을 공부해서 예술 쪽을 잘 몰랐다. 반면에 형은 패션 공부를 했었다. 그런 경험이 음악 작업과 연결이 된다. 준원이 형이 콘셉트를 짜고 거기에 적절한 요소를 넣는 걸 잘한다. 나는 디테일한 부분을 조금 더 신경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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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각자 솔로 활동을 준비하고 있지 않나.


김준원 : '글렌체크'라는 팀 자체가 워낙 콘셉추얼하다 보니 대중에게 전달이 잘 안 되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한다. <The Glen Check Experience EP>만 해도 언론이나 음악 관계자분들이 앨범을 두고 여러 이야기를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계속해서 좋은 이야기가 나올 수 있는 앨범을 만들고자 했다. 그러다 보니 작업을 할 때 콘셉트와 구조 쪽으로 접근하게 되는 거다. 이렇게 아이디어에 집중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내 목소리를 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사람 김준원과 강혁준이 표현하고 싶었던 걸 담아내는 일에 집중하게 된 거고 그게 솔로 프로젝트가 됐다. 시나리오를 쓰던 사람이 일기를 쓰게 됐다고 하면 적절할까. 시선이 개인의 이야기에 맞춰진 거다.

 

준원씨는 어떤 음악 스타일로 활동할 예정인가.


김준원 : 장르로는 어반 소울, 알앤비, 힙합이 섞여 있다. 혼자서 할 수 있는 건 다 할 예정이다. (웃음) 요즘 알앤비 쪽에 푹 빠져있다. 이것저것 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흘러가게 됐다. 그중에서도 예를 들자면 프랭크 오션(Frank Ocean)이 있다. 사실 프랭크 오션도 따지고 보면 알앤비는 아니다. 한 앨범 안에 사이키델릭도 있고 기타 여러 장르가 있지 않나. 나도 프랭크 오션처럼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을 자기 방식대로 소화하는 걸 추구한다. 물론 프랭크 오션과 나는 다른 사람이기 때문에 그와 같은 음악이 나올 수는 없지만, 방향이 그렇다는 거다.

 

이전에 솔로로 낸 곡들은 대체로 몽환적인 분위기였다. 그런 느낌도 있는 건가.


김준원 : 사실 벽이 없어서 뭐가 나올지 모르겠다. 어쩌면 더 조용하고 감성적인 음악이 나올 것 같다. 앨범 전체적으로 그런 분위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 솔직하고 어두운 면을 많이 담으려고 한다.

 

더 구체적으로 얘기한다면.


김준원 : 결국 내 얘기를 하는 거다. 글렌체크에서는 내 얘기를 한 적이 없다. 다 추상적이고 콘셉트적인 면만 있었다. 이번 솔로에서는 개인적인 감정들을 많이 넣었다.

 

혁준씨의 솔로 활동 준비는 어떤가.


강혁준 : 솔로 작업이다 보니까 개인적인 이야기가 담길 것 같다. 그렇다고 해서 내 얘기만 하고 싶지는 않다. 오히려 콘셉트를 잡고 갈 수도 있다. 지극히 개인적이면서 추상적인 앨범을 만들고 싶다. 지금 작업하면서 많이 듣고 있는 건 수프얀 스티븐스(Sufjan Stevens)와 시규어 로스(Sigur Ros)다. 약간 붕 떠 있는 음악을 듣고 있다.

 

솔로 활동을 하면서 함께 작업하고 싶은 아티스트가 있는지.


김준원 : 개인적으로는 프로듀서들과 작업하고 싶다. 원래 자기 목소리 내던 사람도 있겠지만 나처럼 솔로 활동을 준비하는 사람들이랑 해보고 싶다. 지금은 준비 과정이기 때문에 우선은 나를 중심에 두고 생각하고 있다. 당장은 생각나지 않지만 여러 사람의 색이 들어갔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강혁준 : 솔로 프로젝트이니까 누군가랑 작업 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딱히 없다. 일단 주변 친구들과 작업을 많이 하려고 한다. 어렵고 이론적인 음악을 할 게 아니라서 친구들끼리 즐겁게 이것저것 시도해보고 싶다.

 

이것저것 시도해본다고 했는데 실험적인 느낌이 강하다는 건가.


강혁준 : 굉장히 실험적이라고 본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만 대중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글렌체크 음악에서는 피처링을 찾아보기 힘들다. 이유가 있나.


김준원 : 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니다. 활동을 시작할 당시에는 주변에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마음 맞는 사람이 있었으면 같이 했을 거다. 그렇지만 피처링을 꼭 해야겠다는 상황도 아니었다.

 

강혁준 : 열린 마음이긴 했는데 기회가 없었다.

 

원래는 각자 공부하던 게 있었다고 하지 않았나. 준원씨는 패션, 혁준씨는 정치 외교학. 음악에 집중하기 위해 하던 걸 내려놓아야 했을 텐데 그 과정에서 후회는 없었는지.


김준원 : 패션 공부 조금 하다가 바로 포기했다. 후회를 할 수가 없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딱히 없다. (웃음) 그냥 하다 보니까 여기까지 온 거다. 나는 진로를 정할 때 산을 넘어야 하는 순간이 있다고 생각한다. 패션 같은 경우에는 옷 입는 걸 좋아한다고 해서 다 옷을 잘 입고, 디자인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뭔가를 하려고 할 때 어떤 건 힘들게 느껴지고, 어떤 건 '내가 이걸 어떻게 했지' 싶은 게 있다. 음악은 후자다. 내가 3일 동안 밤을 새서 작업하고 있더라. 그럼에도 또 하고 싶었다.

 

강혁준 : 이렇게 음악을 할 수 있는 것 자체가 행운이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 수 있으니까. 음악의 길을 가는 게 후회스럽지 않다.

 

김준원 : 그래서 우리가 실험적인 음악을 할 수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고민 좀 한다고 해서 얻는 스트레스 정도야 멋있게 느껴진다.

 

이야기를 듣다보니 묻고 싶어진 게 있다.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의 차이란 무엇이라 생각하나.


김준원 : 보통 좋아하는 걸 잘할 가능성이 높지만, 좋아한다고 다 잘하지는 못한다고 본다. 잘한다고 무조건 좋아할 수도 없다. 키가 엄청 큰 사람이 운동을 하면 잘 하겠지만 그 사람은 막상 운동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으니까.

 

강혁준 :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고등학생 때만 해도 음악을 하면서 돈을 벌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때는 잘하는 걸로 돈을 벌고 좋아하는 일은 취미로 즐기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지금은 좋아하는 걸 하면서 살아갈 수 있으니 진짜 행운이라 생각한다.

 

글렌체크도 이 시대 청년이지 않나. 진로를 고민하는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김준원 : 지금도 음악을 하고 싶어 하는 친구들에게 여러 질문을 받는다. 그런데 사실 답은 없다. 나도 지금 과정 중에 있으니까. 아직 정해 놓은 목표에 가까이 가지도 않았고… 갈 길이 멀다. <The Glen Check Experience EP>를 보면 굉장히 비효율적인 작업이지 않나. 3년 걸려서 만들었지만 인정을 못 받았다. 빵 터져야 하는데. (웃음) 진로를 고민하는 친구들이 보면 우리가 되게 바보같이 보일 거다. 결과가 어떻게 날지도 모르는 걸 3년 동안 잡고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일단 시작해야 한다. 다 갖추고 하는 게 아니라.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 '어떤 악기부터 사면 되냐'는 거다. 그냥 지금 당장 시작할 수 있는 것부터 하는 게 중요하다.

 

글렌체크가 대중에게 어떤 이미지로 남았으면 하는가.


김준원 : 이전에 음악 하는 분들과 자리를 할 기회가 있었다. 거기서 뵙게 된 분들이 글렌체크는 '아티스트들의 아티스트'라고 해주셨다. 대중음악 쪽에서 정말 유명한 분들이 칭찬을 해주시니까 그게 너무 기분이 좋았다. 과찬의 말씀이셨지만 우리가 그런 이미지로 남았으면 한다.

 

강혁준 : 뭔가에 얽매이지 않는 팀. 또 음악이라는 틀에 갇히지 않으면서 문화 전반적으로 새로운 시도를 계속하는 팀. 그렇게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다.

 

끝으로 이즘의 공식 질문이다. 인생 앨범 3장을 고른다면.


김준원, 강혁준 : <The Glen Check Experience EP>를 먼저 선정하겠다. (웃음) 그만큼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김준원 : 그리고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의 <The Wall>, 마이클 잭슨의 <Thriller>를 고르겠다. 특히 마이클 잭슨 앨범은 진짜 훌륭하다. 앨범 안에도 장르가 여러 가지 들어있고, 노래도 정말 좋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의 영향으로 많이 들었던 앨범이다.

 

강혁준 : 포티스헤드(Portishead)의 <Dummy>. 진짜 명반이다. 고릴라즈(Gorillaz)의 <Gorillaz>도 그렇고.

 

 

인터뷰 : 정민재, 정연경, 정효범
정리 : 정효범
사진 : 비스츠앤네이티브스


정효범(wjdgyqja@naver.com)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민경 “결혼하거나 혼자 살거나, 왜 둘밖에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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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상위 로펌의 고문 변호사로 화려한 삶을 살던 추 와이홍. 남성중심사회에서 어렵게 부와 명예를 쟁취하다가 뒤를 돌아보니 애인도, 아이도, 인간다운 삶 그 어느 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내면에서 들리는 목소리를 따라 일을 그만두고 선조들의 땅인 중국 윈난성에서 여신을 모시는 부족, 모쒀족을 만났다. 그곳에서는 아버지, 결혼, 혼외자식이라는 개념이 없다. 혈통과 재산은 모두 할머니에서 어머니로, 어머니에서 딸로 이어진다. 남자들은 평생 어머니의 집에 살며 누나와 여동생이 낳은 아이들을 돌본다.


페미니스트 판타지처럼 느껴지는 이야기가 담긴  『어머니의 나라』 가 편집자의 눈에 띄었고, 책의 가치를 알아볼 번역자를 찾던 편집자의 머릿속에 『우리에겐 언어가 필요하다』의 이민경 작가가 떠올랐다. ‘맨땅에 헤딩하기’ 같은 섭외였지만, 이민경 작가는 흔쾌히 번역하겠다고 나섰다. “여태까지 두려워하던 여성들 중에 적지 않은 수가  『어머니의 나라』를 딛고 다른 길 위에 설 결심을 하게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2005년 가족 구성원이 호주에게 종속되던 호주제가 폐지되었다. 현재 헌법재판소에서는 낙태죄 위헌법률 심판이 진행 중이다. 느리게 바뀌는 사회 속에서 ‘오래된 미래’인 『어머니의 나라』는 어떤 통찰을 전달할 수 있을까. 페미니즘 활동가이자 번역자 이민경은  『어머니의 나라』 에서 모계 사회만을 볼 것이 아니라, 이성애 결혼 관계가 아닌 친밀성으로 맺어진 타인과의 결합을 상상해볼 것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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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로 책이 나온 게 신기해요


출판사에서 먼저 어머니의 나라』  번역 제안을 했다고 들었어요.

 

백지선 편집자님께서 먼저 연락을 주셨어요. 통번역대학원 불어과를 나왔는데, 보통 불어를 하면 한-영-불어를 다 하시는 줄 알거든요. 영어 번역자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페미니스트의 에세이였기 때문에 그 관점에서는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하겠다고 했어요. 사실 통번역자가 되려고 대학원에 들어갔는데, 본의 아니게 페미니즘 활동가가 되면서 본 직업으로는 첫 데뷔를 하게 된 거죠.


제안은 언제 받으셨어요? 번역은 어느 정도 걸렸는지도 궁금해요.


작년 9월 즈음에 제안을 받고 졸업 시험이 끝난 뒤 작업을 시작해서 3월까지 했었어요. 한 석 달 걸렸던 것 같아요.


모쒀족 이야기가 처음이 아니라고 하셨어요. 수업에서 들은 적이 있으시다고요.


수업에서 들었을 때는 해방감을 느꼈어요. 가부장제가 항구적이거나 절대적인 게 아니라는 걸 알았고, 제가 페미니스트가 되는 단초 중 하나였던 것 같아요. 동시대에 가부장제 말고도 다른 게 존재할 수 있겠다는 실제 사례가 있으니까요.


다시 책으로 모쒀족의 사례를 만났을 때는 어떠셨어요?


때때로 사회가 잘못됐다고 생각할 때 무언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위안이 되잖아요. 포기하지 않게 만들어주고요. 수업에서 만난 뒤 저는 페미니스트가 되었고, 책으로 다시 만난 모쒀족에게서 제가 희구하는 사회의 모습이 있다는 걸 새로 깨달았어요. 페미니스트가 쓴 책이라 만나는 지점이 더 정확했던 것 같고요.


여성이 쓴 에세이가 첫 역서가 됐다는 점에서 뿌듯하셨겠어요.


페미니즘 책을 번역하고 싶다는 모호한 꿈을 가지고 대학원에 들어갔었는데, 첫 작업으로 이 책을 하게 됐다는 게 좋았어요. 중학생 때부터 생각한 진로는 번역가가 유일했어요. 십몇 년 만에 꿈을 이룬 거죠. 서점에서 제 이름을 찾는 상상을 해도 늘 ‘옮김’과 같이 있을 거라고 상상했는데, ‘지음’으로 어떻게 하다 보니 먼저 나왔어요. 하지만 역자로 책이 나온 게 더 신기한 느낌이 들어요.


이민경이라는 이름이 알려진 게 『우리에게도 언어가 필요하다』 였잖아요. 이렇게 팔릴 거라고는 예상 못 하셨을 테고, 예상하지 못한 만큼 그 당시에는 이름이 알려지는 게 부담이었을 것 같아요.


힘들죠. 이후로 단행본을 3권 내고도 작가라는 생각을 안 해 봤어요. 이것도 여성으로서의 자기 비하가 어느 정도 담겨 있겠죠? 제가 작가라는 게 무슨 상황인지 가끔 생각해요. 돌이킬 수 없는 일을 해버렸다는 생각이 들면 등줄기가 쭈뼛거릴 때가 있어요. 봄알람 팀으로 출판한 건 훨씬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아요. 안 그랬으면 버티기 어려웠을 거예요.


최근 『유럽 낙태 여행』 을 내기도 했어요. 여행은 어느 정도 다녀오셨어요?


한 달 정도요. 꽤 바쁘게 돌아다녔어요. 일곱 개 나라를 돌아다니고 나라마다 인터뷰하고요. 말도 안 되게 스케줄을 잡았었어요. 이 책도 많이 알려졌으면 하는 게, 올해 안에 낙태죄가 폐지되어야 하거든요. 내 몸이 내 것이라는 게 무슨 의미인지 다들 조금 더 알았으면 좋겠어요.

 

 

기본이 여성인 사회


우리나라에서는 김숙 씨가 ‘가모장제’라는 단어를 유행시키는 데 일조를 했어요. 『어머니의 나라』는 가모장제와 모계 사회가 둘 다 쓰이는데요. 둘의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모계는 혈통을 엄마 성을 따른다는 거고, 엄마가 가족 안에서 피를 잇는다는 뜻이에요. 그 안에서 누가 가장이 되고 힘을 갖느냐가 모권제 혹은 가모장제인데요. 모계제와 모권제가 항상 같이 가진 않는 것 같아요. 모쒀족은 가모장제이기도 한데, 권력이 여성에게만 있지는 않아요. 가부장제에서는 권력을 누가 잡는가, 누가 가장이 되는가, 피가 어디로 이어지는가가 모두 잘 합쳐지는데 반대로 생각하면 그렇게 되지는 않는 것 같아요.


한국에서는 가모장제를 농담 같은 걸로 받아들여 모두 웃어넘겼는데, 언어가 없기 때문에 상상하기 힘든 것 같긴 해요. 언어 자체가 없던 개념은 어떻게 번역했나요?


가족관계를 설명하면서 친할머니라는 말을 쓰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어요. 엄마 쪽의 사촌을 이종사촌이라고 부르는데, 모쒀족에서는 사촌이든 이종사촌이든 모두 사촌인 거예요. 부모, 남녀, 애미애비처럼 보통은 남성이 먼저 오고 비하적인 발언에서는 여성이 먼저 오는 단어를 거꾸로 번역했던 것도 새로운 질서를 설명하려면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고 고민한 결과였어요. 어떤 면에서는 영어에서 ‘she’와 ‘he’로 구분하는 대명사를 한국어로 번역하면 모두 ‘그’로 할 수 있어서 자유롭기도 했어요. 굳이 성별을 드러내지 않으면 기본이 여성이라는 걸 낯설게 보여주고 싶었어요.


모쒀족에는 아샤오라는 연인의 개념이 있어요. 아버지가 따로 없이 여성이 주가 되어 맺는 관계인데요. 이 과정을 보다 보면 폴리아모리 관계가 떠오르기도 해요.


『어머니의 나라』를 번역하면서 가보지 않은 나라인데도 저에게는 모쒀족이 훨씬 더 편안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사랑을 상상하는 방식이 저와 닮았고 이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저도 폴리아모리인데요. 별게 아니에요. 모쒀에 있었으면 저는 규범을 따르는 사람이었을 거예요. 말 그대로 정상인이었겠죠. 하지만 여기서는 이상한 사람이 돼요. 저는 이곳의 규범이 더 이상해요. 가부장제는 재생산으로 돌아간다고 저는 생각하는데, 재생산을 위해 짝을 지어주면서도 여성에게만 일부(一夫)지 남성에게는 일처(一妻)가 아니잖아요. 재생산을 단위화 하지 않으면 아샤오 관계가 대수롭지 않거든요. 질문하지 않게 될 것들이 많다고 생각했어요.

 

예를 든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지금 사회에서 아샤오를 둔다면 ‘애가 생기면 어떻게 할 거야’ ‘누구랑 결혼할 거야’ 질문하면서 규명해야 할 텐데, 모쒀족은 규명할 필요가 없고 물을 필요가 없어요. 누군가 애가 생기면 모쒀족 안에서는 누구 애냐고 물어볼 필요 없이 축하 받고 축복받고 끝날 일이에요. 어떤 곳에서는 이게 질문 거리가 되고 어떤 곳에서는 질문 거리가 되지 않은 현상이 나타나는 거죠.


모쒀족의 여성들은 어렸을 때부터 존중받기 때문에 침착함과 자신감이 자연스럽게 배어 나왔다(171쪽)고 적혀 있어요. 이 부분에서 용기를 많이 받으셨을 것 같아요.


그 부분을 번역하면서 울었어요. 어떤 문제에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에게 이 장면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지금 사회 문제에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당당하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모르고, 동시에 지금 자신이 겪고 있는 기분을 앞으로의 올 세대의 사람들은 모르게 하겠다고 노력하는 거잖아요. 단순히 가부장제가 아닌 곳에서 자라난 사람을 부러워하고 지금 제 상황을 억울해하기보다, 이런 문화가 더 널리 사람들에게 전해졌으면 했어요.


울었다고 했지만 즐거운 경험이었겠죠?


너무 좋아서 울었어요. 『이갈리아의 딸들』  같은 소설적 상상력이 아니고, 어떤 사람은 지금 이 순간 실제로 자기 성별이 자신을 침해할 이유가 되지 않은 채로 자라나요. 계속 그렇게 바뀌기 위해 싸우고 있는데 누군가는 그 삶을 실제로 산다는 게 참 큰 위안이었어요.


마지막 장에서는 자본과 시장의 변화 때문에 모쒀족 전통이 급격히 없어지는 내용이 나와요. 지금은 더 심할 것 같고요. 그 장면을 번역하면서는 안타깝지 않으셨나요?


저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살아왔으니 가모장제를 보면서 유토피아라고 생각하죠. 하지만 한편으로는 제가 가모장제 안에서 자라났으면 싫었을 거예요. 왜 우리 사회는 다른 사회처럼 아빠가 없을까 반항도 했을 테고요. 사람들은 자신의 터전으로부터 반동을 일으키잖아요. 제가 개인주의를 한창 주장했을 때는 가족주의가 너무 싫었기 때문이었거든요. 하지만 정말 필요한 결속감조차 채우지 못하는 파편화된 사회에서는 가족주의를 좋아할 수도 있어요. 그래서 모쒀족이 현대 중국을 바라는 게 단순히 자본의 권력 문제만이 아니라고 이해해요. 모쒀족이 희망인 저로서는 좀 씁쓸하긴 하죠.


앞으로 모쒀족은 어떻게 될까요?


글쎄요. 생각보다 빠르게 변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심성이 모여서 제도를 바꾸지만, 제도가 들어서면 정말 심성이 빠르게 바뀌더라고요. 예를 들어 낙태죄가 있으면 모두 다 낙태를 반대해요. 낙태죄가 폐지되면 낙태에 관한 인식이 바뀌고요. 어떤 상황 속에서 오래 살아왔다 하더라도 제도가 바뀌면 금방 사람들이 다른 생각을 하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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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이 누구와 살아갈 것인가


번역자로서 자기 의견을 넣기는 힘들겠지만, 저자가 모쒀족 사회를 너무 이상화하는 게 아닌가 경계하기도 했을 것 같아요.


저자의 관점과 제 관점이 긴장하는 순간들이 있었어요. 이 사람의 글을 그저 따라가는 게 아니라 다시 저자를 관찰하는 역할이었던 것 같아요. 추 와이홍도 페미니스트이고 저도 페미니스트인데다 둘 다 타문화권에서 모쒀족 문화를 이야기하는데, 저자 입장에서는 남성 중심 사회에서 격무에 시달리다 모쒀족을 보니 너무 좋아보이잖아요. 백인들이 빈곤한 나라에 가서 이게 진정한 행복이라고 주장하는 여행 서사처럼요. 예전에는 몰랐지만 제가 ‘여행자’가 아니라 ‘여행지’에 가깝더라고요. 그걸 모르고 여행자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고 로망을 가졌던 사람이라, 제가 모쒀족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는지 긴장을 하고 보기는 했어요.


불어를 공부했던 영향도 있었을까요? 서양 언어를 배우면서 느끼는 박탈감이 있잖아요. 특히 불어는 성수가 엄격하게 나뉘고, 자유롭고 평등할 것 같지만 실상 프랑스 여성 인권이 그렇게 평등하지도 않고요.


불어의 특징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가부장제만 아는 사람은 가모장제를 알면 가부장제를 더 잘 알고 다른 걸 꿈꾸듯이, 저는 불어라는 반사판이 있으니까 다른 언어와 문화를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듯 보게 된 것 같아요.


번역 작업을 ‘영어를 한국어로 옮긴다는 의미에서라기보다는, 가부장제 사회에 가부장제의 바깥을 들여온다는 의미에서의 번역’(308쪽)이라고 설명해주셨어요.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주신다면요?


이 언어를 저 언어로 옮겨온다기보다 지금 우리 문화에 없는 문화, 혹은 가려져 있는 문화를 부각하고 섞이게 하는 일을 하고 싶어요. 페미니즘이 그런 일이잖아요. 직업인 내지는 페미니스트로 다른 것을 지금 이 문화 속에 들여오는 문화 번역자가 되고 싶어요. 결국 역서는 화자가 어느 나라 말을 구사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우리끼리 찾지 못하는 관점을 들여올 수 있느냐가 문제거든요. 그런 의미에서의 번역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많았어요. 책 이야기를 넘어서 이 사회에서 제가 하고 싶은 것도 비슷해요. 책에서는 삶의 안정감을 누구와 찾는지, 생활 기반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가 우리와 다르잖아요.


그 이야기가 역자 후기에 많이 들어가 있는 것 같아요. 곧 여자 셋이 같이 살 예정이라고요.


여성이 누구와 살아갈 것인가, 여성이 어떤 식으로 관계를 맺을 것인가가 요즘 제 고민이에요. 인간은 혼자 살 수 없거든요. 우리나라는 개인을 가족주의로 묶어버려서 완전한 개인으로 회구하는 개인주의 이데올로기가 부각되지만, 개인인 채로 사는 건 너무 어려워요. 개인들에게 통로를 주면 안정감을 가지고 제법 잘 살 수 있어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여성이 누구와 통로를 놓을 것인가 물으면 이성 관계만이 유일한 통로거든요. 친구는 결혼하기 전까지 시간 때우는 존재고, 새로운 가족을 만나기 전까지의 과도기로만 여겨요. 그래서 다들 버티다가 결혼을 하고요. 레즈비언이 아니더라도 여성은 여성과 살 수 없는 걸까요? 『어머니의 나라』 에서는 그게 어머니 쪽 가족이 되겠죠. 우리나라에서도 모계 사회를 따르자는 게 아니라, 지금의 삶과 다른 선택을 하다 보면 또 다른 선택도 할 수 있잖아요. 그런 의미로 동시대의 고민이 어디에 있는가 생각하면서 번역을 하다 보니 관계를 많이 봤던 것 같아요.


누가 책을 읽었으면 하나요?


비혼 여성들이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어요. 비혼이 ‘혼자 살기’와 동의어가 되었는데, 비혼을 꿈꾸지만 혼자 살기 싫은 사람들은 결혼이 필요 없어요. 친밀성과 연결감이 필요한 거죠. 여성은 왜 빈곤이나 치안 문제를 결혼 하나로 퉁치거나, 이 모든 두려움을 감싸고 혼자 살거나 선택지가 둘 중 하나밖에 없는 걸까요? 연애 외 친밀성으로 맺어진 타인과의 결합을 조금 더 상상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어머니의 나라』는 어머니의 가족들끼리 살지만, 우리는 여기서 조금 더 나아가서 핏줄도 아니고 연애 관계도 아닌 타인들끼리 친밀성을 가지고 모여 사는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어요.



 

 

어머니의 나라추 와이홍 저/이민경 역 | 흐름출판
남성중심사회에서 어렵게 쟁취한 부와 명예를 내던지고 여성이 평생토록 온전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사회를 찾아 떠난 페미니스트의 여정을 이야기한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종산 “식물에게서 배운 밝은 쪽으로 나가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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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종산의 연애소설 『코끼리는 안녕』에는 동물원이 나온다. 『게으른 삶』 에서는 ‘참치’와 ‘너구리’가 주인공인데다 수족관이 중요한 배경이었다. 장난처럼 다음 작품은 식물원을 배경으로 ‘정원 3부작’을 써야겠다는 말이 씨가 되어 첫 에세이집이 나왔다. “나는 뭔가를 돌보는 일에 소질이 없다”라는 고백으로 시작하는 『식물을 기르기엔 난 너무 게을러』는 맨 처음 무언가를 길렀던 기억, 다른 존재와 우정을 시작하는 방법에서 나아가 ‘식물교’를 세상에 전하고 인간성이 무엇인지 고민한다.


우리는 모두 무언가를 기르고 생기 있게 만들고 싶다. 자주 터전을 옮기는 계약직 생활과 자기 자신을 기르기도 벅찬 시대에서도 누군가와 삶을 공유하고 싶다. 배추에 딸려 온 개구리거나, 보일러실에 사는 이웃 고양이, 용기를 내서 산 하나의 화초가 될 수도 있다. 동적인 것에서 정적인 것으로, 제 전부를 내어주는 일에서 일부를 내어주는 이 동거 방식은 외로운 사람들을 위로하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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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분 하나라도 삶을 공유하는 것들


출판사에서 먼저 에세이집 출판을 제안하셨다고요.

 

편집자님이 『코끼리는 안녕』을 읽으셨었대요. 출판사에서 식물을 주제로 에세이를 기획하다가 ‘공원 3부작’을 써야겠다는 제 SNS를 보고 생각하는 방향과 맞아서 연락했다고 하더라고요. 일이 들어와서 일단 좋았고요. (웃음) 에세이 청탁이라서 새로웠어요. 항상 에세이 청탁이 들어온 적이 없었는데 한 편도 아니고 에세이집을 해보자고 하셨어요.


처음 기획 의도는 무엇이었나요?


우리가 함께 살아갈 것들이 필요한데 현실적으로 동물과 살아가기는 어려운 사람들이 있잖아요. 저도 그렇고요. 동물까지는 용기가 나지 않지만 화분 하나라도 삶을 공유하는 것들을 가지고 싶은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기획 단계에서 편집자님과 이야기를 나눌수록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였구나 싶었죠.


처음 쓰는 에세이라 막힐 때도 있었을 것 같아요.


에세이집 자체를 처음 해서 기쁜 것도 있었지만, 제가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어요. 정해진 호흡이 필요하겠다 싶어서 일주일에 한 번씩 편집자님께 글을 보내겠다고 했어요. 원하는 톤이 무엇인지 서로 맞출 시간이 필요했고, 잘하고 있나 계속 확인을 받고 싶었어요. 그렇게 차근차근 쓰다 보니 괜찮았어요.


계절마다 무엇을 했는지 나와요. 식물이 자라나는 계절과도 비슷했어요.


식물이 계절에 너무 많이 영향을 받더라고요. 이렇게 이야기하면 되게 당연한데 그걸 매일 눈으로 보니까 너무 신기한 거예요. 식물을 이야기하다 보니 계절 이야기를 하게 되고, 쓰다 보니 기간이 길어져 올해 초봄까지 써서 사계절이 들어갔어요.


『커스터머』도 그렇고, 이제까지 작품에서 이종 간의 관심이 많이 드러난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 책도 ‘무심하고 게으르고 예민하며 이기적인 한 인간이 낯선 언어를 쓰는 종족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일어난 일’(10쪽)이라고 하셨어요.


그러고 보니 첫 번째 소설도 드라큘라와 연애하는 이야기였고, 두 번째는 참치와 너구리의 연애였네요. 의식하지는 않았는데 에세이를 쓰다 보니 더 저 자신과 가까운 이야기를 하게 되고, 제가 다른 존재끼리 만나는 것에 관심이 많다는 의식을 처음으로 했던 것 같아요.


다 쓰고 나서야 무엇을 썼는지 알아차리는 편이세요?


그런 것 같아요. 적어도 중반은 넘어가야 알아요. 에세이도, 소설도 그렇고요. 소설은 막연하게 얼개를 짜는데 그게 변해요. 제가 서사가 강한 작가가 아니다 보니까 얼개는 중요하지 않더라고요.


에세이와 소설을 쓰면서 다른 점이 있었다면요.


이것도 당연한 건데, 제가 이야기를 지어낼 필요가 없다는 게 제일 달랐어요. 에세이라고 해서 사실 그대로를 받아 적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소설은 제가 처음부터 끝까지 다 정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어요. 에세이를 쓰면서 줄거리나 등장인물의 운명을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저에게 자유로운 마음을 주었어요.

 

 

환한 쪽으로


식물교 신자라고 자신을 소개하셨어요. 책에 따르면 ‘사람과 식물이 같은 곳에서 왔다는 것을 느끼고, 언젠가 식물과 소통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 것’(66쪽)이라고요.


친구가 그걸 읽고 ‘빵상 아줌마’ 같다고 하더라고요. (웃음) 저도 사이비 종교처럼 받아들여지면 어쩌나 걱정했어요.


식물과 소통한다는 건 뭘까요?


거창한 게 아닌 것 같아요. 식물을 돌보고 있으면 그 식물이랑 친숙해지잖아요. 식물이 잘 자라고 있나 보면서 말로 하진 않아도 속으로 최근 있었던 일을 생각하는 거죠. 어떤 일은 힘들었고, 어떤 일은 기뻤다고 생각하면서 소통한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쌍방 소통인지는 모르겠지만 소통한다는 느낌을 받는 거죠.


식물을 기르면서 달라지는 생활이 담겼어요. 식물을 키우고 밖으로 나가고, 사람을 만나기 싫어하다가도 식물교나 전파하고 오겠다는 긍정적인 경험을 하기도 하고요.


의도치는 않았는데 일종의 재활이 됐던 것 같아요. 사실 심각하게 종교로 여기진 않거든요. 고립감이 심하던 시기에 식물을 기르게 됐는데, 식물이 계속 제 손을 타고 변화하는 걸 보고, 매일 햇볕이라도 쬐어주려고 내놓다 보니 저도 밝은 곳으로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더라고요.


요즘 시대가 반려식물을 만들어내는 것 같기도 해요. 혼자 사는 삶에서 동물을 들이기는 힘드니까요.


나 하나 챙기기 버겁잖아요. 웹툰  『혼자를 기르는 법』을 좋아하는데,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혼자 살면서 자기 삶을 챙기는 걸 버거워하는 게 저만 그런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고요.


자기 자신이 너무 게으르거나 잘 못 기를 것 같다는 죄책감 때문이겠죠? 저도 같은 이유로 동물을 못 기르겠어요. 집에 있는 시간이 거의 없고, 잘 돌볼 자신이 없고요.


혼자 있는 게 신경 쓰이죠. 그리고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서 교육을 받아서 반려동물에 대한 문화가 성숙해진 것 같아요. 한 번 더 생각하고 반려를 결정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기고, 그래서 더 조심스러워지는 게 저는 오히려 긍정적이에요. 

그런데도 왜 사람들은 기르는 걸 좋아하는 걸까요?


저도 정답을 내린 건 하나도 없어요. 그저 외로워서겠구나 짐작하고 있어요. 그리고 돌보는 즐거움이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사람 간의 관계가 아니더라도, 신경을 쓰면 피드백이 오고 반응이 있는 즐거움이 있더라고요. 그 즐거움을 느끼면 제 외로움이 사라지는 것 같아요.


뭔가 먹고 커지는 것도 즐거워요. 새잎이 나는 걸 보면 즐겁잖아요.


뭔가 생기고 뭔가 자라는 게, 변하는 게 너무 신기해요. 사실 제가 돌보지 않는 것들은 변해도 잘 모르고 쑥 자라더라도 그저 무심하게 지나치잖아요. 하지만 신경 써서 돌본 식물은 조금만 달라져도 신기하고 좋고 놀라워요.


푸른 색을 보는 안정감도 있어요. 멍하니 앉아서 식물을 보는 거죠.


약간 아직 사람들 몸에 그런 게 있는 게 아닐까요. 자연으로 가는 길 같은 거요. 또 약간 사이비로 가는데(웃음), 본능적으로 푸른색과 자연으로 회귀하는 느낌이랄까요?


‘러브’는 잘 자라고 있나요?


잘 자라고 있는데, 겨울에 잎이 한 번 다 떨어졌어요. 겨울 동파 영향이 있는 것 같아요. 잘하면 꽃도 피웠을 텐데 거기까지는 못 가더라고요. 지금도 아직 반성 중이에요. 안 죽어서 다행이지만, 사람이 원래 그러다보니 어떻게 하겠어요. 내년에는 더 나아지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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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위안


식물에서 인간을 투영할 때가 많았어요. 사람들이 거주할 곳을 찾지 못해서 옮겨다녀야 하는 상황을 분갈이하면서 떠올리거나요. 인간이 떠나야 하는 ‘마음’이라고 하셨는데, 어떤 마음일까요?


내가 어딘가 소속되어 있는데 잘 안 맞는 곳에 오래 있으면 자꾸 뒤틀리고, 뭔가 이 안에서 안온하지 않고 자꾸 삐져나가고 갑갑하고 자신이 아닌 것 같다는 기분이 들잖아요. 그런 마음인 것 같아요.

 

막상 옮기면 또 이곳이 아닌가 싶은 마음도 들고요.


또 직장 이야기만은 아닌 것 같아요. 사람을 만날 때도 그럴 수 있고, 어느 종류든 소속되어 있는 무리라면 다 연결할 만한 이야기예요. 처음에도 그저 분갈이 이야기를 쓰고 있었는데 갑자기 제 인생 이야기를 쓰게 되더라고요. 특히 그 에피소드에서 제 인생 이야기가 많이 들어간 것 같아요.


불안함도 에세이를 쓰면서 녹아들어갔어요. 작가라는 삶이 고정적인 돈벌이를 갖기 쉽지 않잖아요. 요새는 어떠세요?


환경이나 마음이 아주 많이 달라진 건 없어요. 그저 이 에세이를 끝내면서 조금 변한 건 있어요. 끝을 맺으면서 뭔가 나의 한 시기가 끝났다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속해 있지 않은 삶에서는 불안감을 보듬으면서 살아야 하잖아요.


해결책은 못 찾은 것 같고, 20대 중반의 조바심은 많이 줄어들었어요. 판매량을 떠나서 제가 만족할 만한 책을 계속 내 왔고, 많진 않지만 청탁이 이어지고 있고, 매일 힘든 날도 있지만 옛날에 생각했던 미래의 상보다는 잘됐고 즐겁다는 생각이 많이 들어요. 작가들이 일부러 일상의 루틴을 만들기도 하잖아요. 거기서 힘을 얻는 것 같아요. 종일 집에 있으면 조바심이 커질 텐데 일부러라도 스케줄을 짜서 내가 매일 같은 루틴을 살아가다 보면 안정감이 생겨요.


확실히 20대의 불안함과 40대의 불안함은 다르죠.


그래서 40대를 동경하고 있어요. 생각보다 나이를 빨리 먹는다는 걸 알아서 이제는 빨리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없고, 그저 40대의 삶이 기다려져요.


겨울은 끝났지만 폭염이 왔죠. (웃음) 계속 쉬워질 것 같진 않아요. 이 힘듦을 어떻게 헤쳐나갈까 하는 고민은 그대로 남아 있어요.


맞아요. 그런데 예전보다 겨울을 덜 두려워하게 된 것 같긴 해요. 겨울이라고 해서 꼭 얼어 죽는 게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이건 지나가는 거고, 내 안에 이걸 견뎌내고 다음으로 넘어갈 힘이 있다는 걸 식물 에세이를 쓰면서 알게 됐어요.


사람들은 모두 생존에 강한 편이 아니에요. 혼자 상처받고요. 오히려 쉽게 죽지 않는 식물일수록 사람들이 돌보지 않는다는 말도 해주셨는데요.


처음에는 제 고독을 쓰다가 점점 뒤로 갈수록 관계에 관한 이야기가 되더라고요. 집중하다 보니 사람 간 마음에 대해 생각하고, 그래서 식물과 마음이 연결됐던 것 같아요.


꽃을 사와서 화관을 만들고 퀴어문화축제에 간 이야기도 나와요.


1부가 기르기 이야기고 2부가 식물에 관한 이야기잖아요. 여름에 가장 인상깊었던 일이 퀴어문화축제에 갔던 날이었어요. 식물을 꽃시장에서 엄청나게 사와서 밤새 화관을 만들었던 경험이 너무 좋아서 쓸 수밖에 없었어요.


이 책을 어떤 분이 읽어줬으면 좋겠나요?


일단 식물을 좋아하는 사람? 그리고 외로운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어요. 사람들은 외로울수록 사람 만나기가 싫어지는 것 같아요. 외로울수록 더 조용해지길 원하고, 그런 생활에서 식물이 주는 위안이 있어요.


 

 

식물을 기르기엔 난 너무 게을러이종산 저 | 아토포스
혼자 있으면 기어이 외로움을 느끼고야 마는 자신을, 그래서 동물이든 식물이든 다른 생명을 자꾸만 곁에 두고자 하는 마음을 털어놓는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도연스님 “나다운 길은 내가 주인으로 사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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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잘하고 똑똑하다고 소문난 아이는 명성에 걸맞은 대학에 입학했다. TV나 책에 나오던 물리학자, 과학자가 되겠다는 꿈을 등에 업고 입학한 학교는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다. 끝없는 경쟁 속에서 숨 막혀 주저앉고 싶었던 그의 숨통을 트이게 한 것이 명상이었다. 우연히 명상을 접해 완전히 새로운 체험을 했다. 당시 느꼈던 행복감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세포 하나하나가 커다란 깨우침을 얻는 것 같았다. 완전히 명상에 빠져 수행 공동체에 들어가게 되고, 마침내는 출가를 결심했다. 그의 나이 스물한 살이었고, 이제 막 겨울을 보낼 채비를 하던 2월이었다.

 

“운명이라고 믿었던 출가가 운명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 때문에 힘들”기도 했다. 무엇이 괴롭게 하는지 들여다보려고 애를 썼다. 불자가 되기 위한 공부도 좋지만, 못다 한 대학 공부의 끈도 놓고 싶지 않았다.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승려 생활을 하며 10년 만에 대학 졸업을 하고, 대학원에 진학했다. 꾸준히 공부하는 것이 전부를 안다고 자만하지 않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10년 넘게 불교에 몸을 담고 공부를 하며 깨달은 것을  『있는 그대로 나답게』 에 담았다. 동서양 철학자를 가리지 않고, 수많은 성현이 이야기했던 진리를 도연 스님만의 방식으로 담았다. 진정한 가치가 무엇인지 생각하게 하고, 자기다움을 찾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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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통해 진리를 실험하는 길

 

이른 나이에 출가하셨어요. 출가를 결심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고요.

 

스물하나였습니다. 대학엔 스무 살에 입학했고, 전공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내가 좋아하는 것, 내 길은 무엇인지 고민을 많이 할 때였는데 아는 분이 명상을 소개해주셨어요. 그때 명상을 접하고 그동안 몰랐던 신비한 체험을 하게 됐어요. 말로 설명하고 싶은데 설명이 안 될 정도로, 신비한 경험이었어요. 학교에 다니면서 주말마다 수행 공동체에 방문하다가 출가까지 결심한 거죠. 돌이켜보면 그때 함께 지냈던 선배, 혹은 스승 같은 분들이 이끌어주셨기에 가능한 일이었던 것 같아요. 정말 순수하게 삶의 의미나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는 분들이었어요. 출가와 관련한 내용은 첫 번째 에세이인 『누구나 한 번은 집을 떠난다』에 많이 수록했어요.

 

한 페이지에 하나씩 인용이 나올 만큼 많은 책과 이야기 등을 인용한 문구가 나옵니다. 마치 문제 하나를 두고 철학자나 옛 성현들과 대화하는 느낌도 들었어요.


고전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더 많은 사람에게 객관적이고 근거가 명확한 이야기를 전달해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인용을 많이 했던 것 같고요. 또 제가 현재 인도철학과에서 공부하고 있다 보니까 학자의 마인드를 갖게 되는 것 같아요. 근거가 명확하지 않으면 설득하기가 쉽지 않잖아요. 그래서 논문이나 자료도 많이 참고했고, 그러면서도 지루하지 않고 흥미롭게 쓰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가르침이라도 그냥 머릿속에 집어넣는다고 나의 것이 되는 건 아니(114쪽)”라고 하셨어요. 스님께서는 책에 쓰인 것을 전부 깨닫고 체득하신 것인지도 궁금했어요.


당연히 전부 그렇다고 할 수 없죠. 다만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전달하려고 노력했을 뿐이에요. 저 역시 정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에요. 최선의 답이 무엇일지 생각하고 공유하고 싶을 뿐이죠. 책에도 이야기했지만, 맹신하는 게 가장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완벽히 알고 깨달았으니 나를 따르라고 하는 것은 혹세무민(惑世誣民)입니다. 사람들을 낭떠러지로 잘못 인도할 수도 있는 거죠. 간디는 ‘자신의 진리를 실험한 글’이라는 표현을 했습니다. 그 자신도 진리를 깨달은 것이 아니라 삶을 통해서 진리를 실험한다는 것을 솔직하게 표현했고, 그래서 많은 사람에게 공감을 형성할 수 있었던 거죠. 저 역시 부족한 부분을 솔직하게 표현하려고 애썼습니다.

 

스님이 부족하다고 느끼는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책 마지막 장에 언급했던 사랑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사랑이라는 것이 철학적으로도 수많은 의미로 해석되고, 사람들 사이에서도 각자의 기준으로 사랑을 하잖아요. 저는 꼭 인류애적인 사랑만이 위대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 역시 자신을 성숙하게 하고,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게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던 추억을 이야기했습니다. 사실 출가자로 사랑에 관해 언급하는 게 어려운 일이에요. 하지만 사랑을 빼고 우리 인생을 논하기도 쉽지 않죠. 불교에서는 자비라고 하지요. 사랑과 자비에 관한 의미를 책 뒷부분에 담았고, 저 역시 그런 것들을 통해 성숙했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부족하지만, 마지막 장에 제 경험을 조금 보태어서 사랑에 관해 이야기했습니다.

 


철학적 사유로 자신과 세상을 밝히다

 

말씀하신 대로 수많은 철학자의 이야기와 성현을 만나는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렇기 때문에 현실과는 먼 이야기 같기도 합니다.


명상의 정의가 다양하지만, 하나의 문제나 사건에 관해 골똘하게 생각에 잠기는 것도 명상이라고 생각합니다. 평소 살아가는 데는 명상과 철학이 필요하다고 느끼기 어렵죠. 하지만 살면서 힘든 일이 닥쳤을 때 극복할 방법을 찾게 되잖아요. 그럴 때 책에 있는 내용을 자꾸 생각하고, 되뇔 수 있을 거로 생각합니다. 책에 담긴 고전은 오랜 시간 전해 내려온 만큼 읽을 만한 가치가 있고, 종교와 이념을 떠나 모두의 삶에 적용할 수 있는 지혜라고 생각합니다.

 

스님 자신도 “어느 종교에도 속해있지 않다(6쪽)”고 쓰셨어요.


종교를 초월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렇게 하려고 애쓰는 중이에요. 성철 스님이 예전에 한 인터뷰에서 ‘왜 불교인이 되었냐’는 물음에 ‘나는 불교인이 아니라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일 뿐’이라고 답하셨습니다. 불교인이라는 틀에 자신을 묶지 않는 거죠. 성철 스님의 말씀처럼 우리가 한 종교의 틀에 머물게 되면 종교가 추구하는 가르침에서만 깨달음을 얻을 수 있어요. 당연하게도 종교가 설명하지 못하는 영역이 있을 수 있습니다. 더구나 요즘처럼 배울 수 있는 콘텐츠가 넘치는 시대는 특히 더 그렇죠. 진정한 종교인이 되기 위해서, 혹은 종교를 초월한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종교가 가진 틀에서 벗어나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틀에서 벗어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조금 더 설명해 주세요.


현재의 우리는 석가모니나 공자, 노자와 같은 종교인이나 사상가의 깨달음을 문자로 전해져 가르침을 받고 있지만, 그것이 최초 설법자의 원음이라고 한정할 수 없죠. 그들은 이미 세상을 떠났으니까요. 진정으로 그가 무엇을 깨달았는지 언어를 넘어서서 마음으로 깨닫기 위해서는 언어의 형식에 집착하지 않고 마음으로 깨닫고, 언어를 넘어선 절대의 깨달음의 세계에 가 닿아야 합니다. 그런데 종교나 문자가 가진 틀에 묶이면 진정한 깨달음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자신을 특정 종교인으로 한정 지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스님께서는 현재까지 찾은 방법 중에서 종교인으로 사는 게 스님과 가장 잘 어울리고 맞는 가치라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지금까지는 그런 것 같아요.

 

‘지금까지는’이라고 하셨는데요. 책에도 “저도 이 길을 언제까지 걸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85쪽).”라고 하셨어요. 이유가 무엇인가요?


성철 스님의 가르침과 맥락이 닿아있는데요. 더 훌륭한 가르침이 있다면 그 가르침을 따를 수 있다는 말처럼, 불교인이라는 것에 평생 머무르겠다는 의미가 아니죠. 물론 현재 진리를 추구하고 있는 종교에 관한 믿음이나 제가 머무는 길에 대한 신념도 필요해요. 그것도 맞지만, 이것만 답이라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발전이 없어요. 종교인은 곧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인데, 정말 훌륭한 가르침을 끊임없이 추구해야 합니다. 좋은 가르침은 어디에나 있고, 미래는 불확실한 거잖아요. 그러니 당연히 단정할 수 없는 거죠.

 

미래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시는 거네요.


흔히 스님들에게 ‘큰스님 되시라’고 인사해요. 물론 좋은 말이에요. 그렇지만 저는 꼭 큰스님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인류에 좋은 가르침을 줄 수 있는 큰 스승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 더 좋은 말이라고 생각해요. 부처님 또한 스승이자 교사였어요. 누군가에게 가르치는 사람이었던 거죠. 이 세상에서 깨달음을 얻은 선지자나 성현들은 모두 훌륭한 교사였죠. 누군가에게 그 깨달음을 가르치고, 참된 가르침을 추구해나갔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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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자기 운명의 주인공

 

스님께서는 참된 가르침을 고전에서 찾으신 거고요.


우리 시대는 정말 빠르게 변합니다. 이 시대를 사는 스승이라면, 사람들에게 시대에 맞는 훌륭한 가르침을 줄 수 있어야 해요. 그런데 거대한 속도로 밀려오는 변화 속에서 진리에 뿌리를 두지 않고, 현실만 생각하다 보면 제대로 된 가지를 뻗거나 열매를 키울 수 없어요. 그런데 뿌리만 강조하면 시대 변화에 적용하지 못할 수 있죠. 현실을 인지하면서 고전에 정신적 뿌리를 두고, 자기 자신을 깨달아야 합니다. 뿌리는 생명력의 근간인데, 그걸 무시하고 나눌 수는 없죠. 불교에서도 자각각타(自覺覺他)라는 말이 있습니다. 스스로 깨달아야 남에게 나눌 수 있다는 말이에요. 자기 자신을 깨닫고, 그 이후에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먼저 뿌리를 잘 내리는 것부터 시작인 거네요. 자기 자신을 아는 게 먼저라는 뜻인가요?

맞습니다. 처음에 수행할 때는 거의 말을 안 하죠. 묵언 수행하잖아요. 말을 삼가고, 몸을 삼가고, 생각까지 삼가는 거예요. 신구의(身口意)를 절제하는 거죠. 행동, 언어, 정신, 이 세 가지로 업을 많이 쌓잖아요. 그리고 성찰의 과정을 겪어야 나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스님이 최초에 뿌리를 내리는 데 도구가 되었던 것이 명상인 건가요?


명상과 철학이라고 할 수 있죠. 최초에 명상이라는 체험으로 수행을 시작했고, 명상과 철학 둘 중 무엇이 더 중요하냐고 물으면 체험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체험에만 머물게 되면 자기 독선주의, 자기주장만 강해질 수 있어요. 주관적인 게 너무 강해지는 거죠. 반면에 경전이나 철학만 중요하게 생각하면 객관적인 게 너무 많아지니까 자기 생각이 사라질 수 있어요. 그러니까 주관과 객관이 다 필요합니다. 그중에서도 주관적인 체험은 자기만 아는 것이고, 설명하기 힘든 깨달음이기 때문에 중요합니다. 그 깨달음을 설명하기 힘들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있어야 자기 자신을 세우고 행복하게 할 수 있고, 어떤 길을 갈 때 선택할 수 있거든요.

 

명상의 어떤 점 때문에 불자의 길로 가는 것까지 선택하게 되셨나요?


맨 처음 명상을 했을 때 신비한 체험을 했어요. 동양에서는 ‘기’라고 하죠.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새로운 감각이 열렸던 거죠. 운이 좋았어요. 또 명상의 세계에 깊이 들어가다 보니까 과거에 했던 죄의식, 죄업, 악행에 대한 업과 같은 것들이 명상과 기도를 통해 극복을 할 수 있었어요. 얼마 전에 영화를 봤는데 거기에 업에 관한 이야기가 나와요. 극 중 인물이 ‘악한 사람은 없다, 악한 상황만 있을 뿐’이라고 해요. 예전의 나는 저를 악한 사람으로 낙인찍었던 것 같아요. 생각해보면 큰 잘못도 아니었는데 그때는 너무 크게 느껴졌던 거예요. 그러다 보니 제가 저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어요. 그런데 명상과 기도를 하다 보니까 그때 내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이해가 되는 거예요. 또 제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도록 했던 주변 사람도 용서하게 됐어요.

 

명상하는 것만으로 타인의 잘못까지 용서가 되나요?


결국 타인에 대한 용서는 자기 용서로부터 시작되는 것 같아요. 명상과 기도에 깊이 들어가다 보니까 내가 나를 용서하는 힘이 생기는 거예요. 사랑이 커지는 거죠. 명상을 통해서는 나를 바라보는 힘이 생기고, 기도를 통해서는 나를 품는 사랑이 생긴다고 생각해요. 명상은 나를 비우는 거고, 기도는 절대적인 힘에 의지하는 것이거든요. 비운 이후에야 절대적인 힘이 보여요. 기도만 하다 보면 욕심이 생길 수 있거든요. 또 명상만 하다 보면 허무주의에 빠질 수 있어요. 그래서 명상과 기도, 두 가지가 다 필요해요. 나를 비우면서 절대적인 가치에도 의지하게 되는 거죠. 그를 통해 나를 용서하고, 극복할 수 있고, 자기 자신을 치유할 수 있으니까요. 자기 자신을 치유하는 과정인 거죠.

 

 

누구나 확실히 행복해지는 법

 

유튜브로 명상 영상을 찍어서 배포하기도 하고, 봉은사에서 명상 체험으로 사람들을 만나는 이유도 그런 깨달음을 전달해 주기 위해서인가요?


지금 바로 여기라는 말을 하죠. 무언가를 채우지 않아도 확실하게 행복해질 수 있어요. 우리가 착각하는 것 중 하나가 어떤 목표를 이루어야만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잖아요. 그 짧은 순간을 위해서 긴 과정이 불행하다면 그것만큼 어리석은 게 있을까요? 또 그것을 이루었다고 해도 그 행복감이 얼마나 가겠어요. 명상을 통해서 무언가를 성취하지 않아도 지금 바로, 아무 이유 없이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요.

 

탁발하셨을 때 이야기도 나오는데요. 도심에서 탁발하는 스님을 많이 뵙지는 못한 것 같아요.


일종의 수행이었죠. 작은 절에서 발심했고 거기에서는 수행 방법의 하나로 탁발을 했어요. 탁발하는 이유는 세 가지가 있는데요. 나를 위한 수행, 남이 잘되기를 바라는 기도를 하는 것, 생계유지가 탁발의 이유입니다. 예전에 스님들은 실제로 탁발로 먹을 것을 얻어서 생계유지하셨다고 하니까요. 3년 전 조계종으로 옮겼는데 조계종은 탁발이 금지되어 있어요. 사람들에게 민폐가 될 수 있으니까요. 시대에 맞추어 변한 부분이죠.

 

탁발이라는 게 좀 특별한 경험이기도 한데, 그 경험이 어떻게 남았는지 궁금합니다.


수행을 시작하는 발심 수행자(發心 修行者)에게는 하심(下心)이 굉장히 중요해요. 자기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이는 마음이죠. 탁발하면서 만난 사람에게 복을 빌어주기 위해서는 낮은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 사람들이 모멸감을 주는 표현을 할 수도 있고, 불순한 태도로 임하기도 해요. 참아야 합니다. 하심과 인욕(忍辱)을 기르는 거죠. 참고, 욕됨을 용서하는 마음입니다.

 

“처음 출가하고 얼마간은 운명이라고 믿었던 출가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 때문에 힘들었다(153쪽)”는 이야기도 쓰셨어요.


많은 사람과 다른 삶을 산다는 게 힘들었어요.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출가를 선택했는데, 출가 후에 고통이 해결되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정말 많이 노력했죠. 그러다 일반적인 수행자의 길만을 가고 싶지 않다는 걸 깨달았어요. 세상과 소통하고, 배우고 싶은 공부도 하고 싶었어요. 내가 잘하는 걸 하면서 세상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다가 학교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수행자로의 삶이 만족스럽지만, 하고 싶은 공부를 하지 못하고 세상과 소통하는 데 제한이 있다는 게 힘들었거든요. 수행하면서 공부할 수 있도록 공동체에 계신 분들을 설득하고, 학교에 다니며 수행자의 길을 걷는 방법을 마련했어요. 학교로 돌아가 우여곡절 끝에 졸업도 했고, 대학원도 진학하게 된 거죠.

 

스님도 자기 자신이 원하는 것을 계속 들여다보고 방법을 찾았던 거네요.


그렇죠. 저와 같은 시기에 출가하고, 동반 입대한 형이 있었는데 그분은 제대 후 환속하셨거든요. 지금은 잘 살고 계시고요. 그분에게는 그게 길이었던 것 같아요. 저는 승려로 사는 게 잘 맞는 옷인 것 같았어요. 물론 학교 다니는 게 정말 힘들었어요. 대전에 있는 학교에 3~4일 정도 있으면 서울에 나머지 절반을 있어야 했죠. 그래서 힘들게 졸업했어요. 만약 공부만 해야겠다고 생각하면 그만두었을 것 같아요. 그런데 두 가지 모두 다 필요하다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좀 오래 걸리더라도 끝낸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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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비우고 나를 채우다

 

혹시 스님도 마음이나 머리로는 알지만, 실천이 잘 안 되는 게 있나요?


당연히 있죠. 이타적으로 사는 것, 순수하게 베푸는 게 힘들어요. 자리이타(自利利他: 자신을 먼저 이롭게 한 이후에 남을 이롭게 한다)를 하고 싶은데 아무래도 이타적인 것에 대한 무게보다는 자리에 대한 무게가 큰 거 같은 거예요. 자신을 들여다보며 발견하는 이기심을 언제 극복할 수 있을지가 큰 질문이에요. 제가 하는 일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사회적으로 좋은 기운을 준다고 생각하지만, 때로는 그것 역시 나의 이미지를 위한 것은 아닐지 생각하고요. 저 역시 계속 고민하는 문제입니다.

 

‘자기만의 이유를 가진 상태(122쪽)’라고 자유에 관해서 정의하셨는데요.


아무리 사랑하는 연인이나 부모라도 타인이 자기 자신을 완전히 이해하기 바라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를 이해하고, 내가 살아가는 이유를 스스로 만드는 게 자유라고 생각해요. 남의 이유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나만의 이유를 만들어야 합니다. 어차피 누구도 제대로 나를 이해할 수 없어요. 자기만의 이유를 만드는 게 자기만의 삶이에요. 남이 만든 이유나 남이 이해할 수 있는 이유를 따라가면 관념에 갇히는 거죠. 그래서 용기가 필요해요. 남은 어차피 나를 이해할 수 없어요. 그러니까 내가 나를 자유롭게 해 주어야 한다는 거예요. 나만의 이유를 만들어주는 거예요.

 

스님은 이런 부분에서 자유로우신가요?


그렇지 않죠. (웃음) 하지만 한 가지 깨달은 게 있다면, 남이 이해하지 못하는 내가 있고, 남이 이해하지 못하는 내 속마음을 스스로 어루만져줘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렇게 나를 받아들였을 때 내가 행복해지고 편안해지고, 나답게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처음엔 ‘나는 왜 평범하게 살 수 없을까, 나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할까, 나는 왜 이렇게 이상한 거지?’라는 생각을 했어요. 적당하게, 보편적으로 살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이미 그럴 수 없더라고요. 태어날 때부터 남과 비슷하게 살 수 없게 태어난 것 같아요. 그리고 좀 더 생각해보니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누구나 남과 다르게 살도록 태어난 거예요.

 

모두 비슷한 듯 보이지만 다른 길을 걷고 있는 거네요.


사람들은 누구나 타인이 자신을 이해하지 못할 거로 생각합니다. 답답한 부분이 있는 거죠. 그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면서 마음이 편해졌어요. ‘얽히고설킨 삶의 인연, 이 복잡한 실타래 속에 나만 머무는 게 아니라 누구나 그렇구나’ 생각하니 받아들여지더라고요. 그렇게 생각하니 다른 사람들도 다 다르게 보였습니다.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려는 정신으로 보편적인 걸 극복하려고 의지를 보이고, 문제가 있을 때 주체로 나서서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철학자나 명상가로 살 수 있는 것 같아요.

 

혹시 인터뷰 중 하지 못했던 말이 있다면요?


그리스 여행담 작가인 파우사니아스에 따르면 델포이의 아폴론 신전의 프로나오스에 새겨진 말이 있어요. 흔히 소크라테스가 먼저 한 이야기로 아는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이에요. 자기 자신을 아는 게 힘겨운 세상을 사는 데 있어 가장 큰 힘이 될 수 있습니다. 모든 문제를 극복하는 데는 자기 자신을 아는 것부터 시작이에요. 알아야겠다는 의지를 낸다면 행복에 한 발자국 다가간 거로 생각해요. 그게 명상과 철학의 시작이죠. 행복해지고 싶다면 자기 자신을 알아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아는 게 행복의 바탕을 이루는 힘이 되는 것 같아요.


 

 

있는 그대로 나답게도연 스님 저 | 특별한서재
최고의 휴식인 명상은 특별한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가 일상에서 행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오늘 하루 좀 더 나답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과 지혜, 그리고 위로와 용기를 준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젊은 작가 특집] 전석순 “감정에도 계급이 있는 사회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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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감정이 ‘감정 측정기’로 분석되는 시대, 불안과 긴장, 두려움, 불쾌 등의 감정은 숫자로 표기된다. 결혼하는 사람들끼리 감정 진단서를 교환하는 게 유행처럼 번지고, 감정 분석 결과는 개인 정보가 되어 암암리에 직장과 보험 회사에 공유된다. 표준 감정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보호 관찰 대상자가 되어 제대로 된 직장도, 제대로 된 집도 구할 수 없다. 표준 감정으로 돌아가기 위한 감정 치료는 막대한 비용이 든다. ‘나’는 감정 분석 결과를 요구하지 않는 업체에서 밤마다 빌라를 철거하는 일을 맡는다.


미메시스 단편 소설 시리즈 테이크아웃은 젊은 소설가 20명을 선정해 이들의 단편 소설과 일러스트레이터 20명의 작품을 함께 넣어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네 번째 『밤이 아홉이라도』 에서는 소설가 전석순과 일러스트레이터 훗한나가 섬세하게 밤결을 축조해 ‘감정마저 팔아넘겨야’ 하는 시대를 이야기한다. 가로등과 가로등 사이를 지나다니며 켜켜이 쌓았던 밤을 생각하게 만드는 이야기가 작지만 묵직하게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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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체적으로 만든 이야기


이제까지 낸 책보다 작은 판형으로 나왔어요.

 

‘테이크아웃’ 이름에 걸맞은 판형인 것 같아요. 시리즈 중에서는 제 책이 제일 두꺼운데, 정말 작은 작품은 외투에도 들어가겠더라고요. 책을 보려면 속된 말로 각 잡고 보게 되잖아요. 들고 다니기도 쉽고 가방 안에 들어가 있으면 무게가 거의 느껴지지 않아요. 외형의 가벼움에 초점이 맞춰지면 내용도 가볍게 가게 될 때가 많은데, 무거운 내용이든 외부에서 돌아다니면서 읽을 수 있게 만든 시리즈라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소설이 접근하는 방식은 가벼워야 하는 게 맞지만, 내용도 다 가벼워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훗한나 일러스트레이터와 협업한 결과물이에요.


삽화가 들어가는 작업은 이번이 처음이었어요. 개인적으로 소설에 삽화가 들어가면 오히려 소설 내용을 제한해서 읽는 사람이 마음속에 떠올리는 재미를 많이 반감시킨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걱정했는데, 처음 보고 너무 예뻐서 소리 질렀어요. (웃음) 제가 생각하던 소설의 이미지와 거의 일치했어요. 밤의 질감은 문장으로 표현하기 어렵기도 하고 한계도 있는데, 미술만이 할 수 있는 영역이 있더라고요. 이야기의 상상력을 제한하는 게 아니라 튕겨내서 뒷받침해주는 역할을 하고, 일러스트레이터와의 인터뷰가 같이 들어가서 더 좋았어요. 그림을 그린 사람이 그림에 관해 이야기하고, 이야기를 쓴 사람이 또 이야기에 관해 이야기하고, 작품과 함께 세 가지 의견이 다양하게 표출되면서 입체적으로 이야기를 만든다는 게 이 책이 가진 매력인 것 같아요.


밤을 생각하면 대개 어두운 색을 생각하는데, 밝은 노란색이 들어가요. 밤을 더 부각하는 느낌이었어요.


새벽마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운교동 골목을 돌아다녔어요. 오히려 시커먼 밤보다 중간중간 가로등이 있는 거리가 더 무섭더라고요. 그냥 까맣다면 눈이 암순응을 하면서 돌아다닐 텐데, 가로등이 있으면 가로등 사이는 훨씬 어두워 보이고 그 사이가 너무 무서웠어요. 그림에서도 노란색을 넣어서 소설 속 생각한 이미지가 나왔어요.


이전에 발표했던 단편 「고공행진」을 새로 썼는데요.


우연히 인터넷에서 표정을 분석하는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어요. 조만간 표정뿐만 아니라 혈액이나 심박수 등 모든 신체 조건을 통틀어서 사람의 감정을 분석하고 건강검진처럼 감정검진도 받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감정도 중요한 스펙의 하나가 되는 거죠. 그때부터 감정노동자를 썼던 「고공행진」과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처음 감정노동을 조사하고 공부하면서는 마치 허공을 걷는 걸음 같았어요. 분명히 걷고 있지만 땅이 아니라 허공을 걷는 게 감정노동자들의 감정 상태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처음 제목이 ‘고공행진’이었어요.


새로 쓴 가제는 ‘밤결’이었더라고요.


새로 고쳐 쓰면서 생각해보니 감정노동자들은 감정이 뒤섞인 상태 같았어요. 모든 색이 합쳐지면 검은색이 되는 것처럼, 낮 이미지가 응축되면 밤이라는 이미지가 되는 거죠. 감정노동자의 감정도 어둡고 우울하고 칙칙한 것 같지만, 사실 그 상태가 되기 위해서는 모든 감정이 다 응축되어야 하는 것처럼요. 검은색은 결이 있어도 잘 안 보여요. 그래서 밤에도 분명 결이 있고 감정노동자에게도 결이 있지만, 우리는 그걸 모르거나 무시하는 것 같아 ‘밤결’이란 단어를 썼어요.

 

‘밤결’이 ‘밤이 아홉이라도’로 된 과정이 궁금해요.


글을 고치는 와중에 ‘밤이 아홉이라도’라는 말을 알게 되었는데요. 어느 순간까지는 그 일을 끝내야 한다는 말이더라고요. 밤이 아홉이라도 꼭 끝내야 하는 일, 스트레스받는 상황이 오히려 감정노동자의 스트레스를 구체적인 이미지로 그려낼 것 같았어요. 지금 감정노동자가 상처받아 보이는 것도 몇 년 전부터 스트레스가 겹치고 겹쳐서 결을 이루었다는 표현을 하고 싶었어요.


작가님도 밤형 인간에 더 가까운 편인가요?


절대 안 고쳐지더라고요. (웃음) 나이를 먹으니 건강에 안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수면과학센터 같은 곳에서 상담을 받았었어요. 중요한 건 언제 자느냐가 아니고 안 깨고 여섯 시간 이상 자는 게 중요하다고 하더라고요. 안 고쳐도 된다고 해서 안심하고 밤에 안 자고 있어요.

 

 

감정에도 계급이 있는 사회


배경이 된 춘천의 운교동은 ‘구름을 걷는 다리’라는 뜻이 있어요. “그런 이름을 붙여주는 감정이 표준이 되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어떤 감정일까요?


항상 이름의 뜻을 궁금해 하는 편이에요. 운교동은 제가 대학을 마치고 소설을 써야 할지 고민하다 내려온 동네였어요. 언덕이 많아서 집값이 상대적으로 저렴했죠. 왜 하필 운교동인지 지역 홈페이지를 찾아보니 이름을 붙인 공무원이 언덕이 올록볼록하니까 이름만이라도 구름을 걸어간다는 느낌으로 만들었다고 하더라고요. 이 마음이 예쁜 마음이잖아요. 감정의 표준을 정할 순 없겠지만 표준이 있다면 그런 마음이 표준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춘천의 모습을 즐겨 쓰시는 것 같아요.


일단 춘천이 가장 쓰기 쉽기는 해요. 삼십몇 년 전부터 지금까지의 춘천의 모습을 다 알고 있으니까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대개 춘천을 배경으로 써요. 대학 다닐 때 말고는 항상 춘천에 있었거든요. 그래서 춘천에 있을 때는 긴장이 안 돼요. 소설에서만 긴장하고 다른 데서는 긴장하지 않아도 되니까 조금 더 편하더라고요.


『철수사용설명서』에서는 인간 사용설명서, 『거의 모든 거짓말』 에서는 거짓말 능력 자격증, 『밤이 아홉이라도』의 감정측정기까지 인간을 구분하는 특정한 기준과 방법을 많이 쓰셨어요.


우리나라 사회에서 계급이 나누어져 있다는 걸 부정하긴 어려울 것 같아요. 그 계급이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도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돈으로만 계급이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거짓말에도, 감정에도 계급이 있는 사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재밌지만 가볍지 않은 방식으로 널리 퍼져 있는 계급을 이야기하는 게 제가 소설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서요. 대개 단편에서 다루기 어렵다 보니 호흡이 긴 이야기에서 이런 소재를 많이 다뤘어요.


그래서인지 「고공행진」보다 이야기 분량이 늘어났어요.


다른 소설가도 비슷하겠지만, 작품을 쓰면 그 작품과 헤어지는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어떤 소설은 다시는 생각하지 않을 때도 있고, 어떤 소설은 발표하고 나서도 계속 생각날 때가 있거든요. 「고공행진」은 유난히 생각나는 기간이 길었어요. 테이크아웃 시리즈를 준비하면서 기존에 발표했던 단편도 괜찮다고 하셔서 고민하다가 다시 이야기해야 할 때라고 생각했어요. 이전에 등장인물이 너무 평면적으로 등장했다면, 이제는 과거 이야기도 하면서 등장인물을 깊게 바라보는 시선을 주고 입체적으로 바라보고 싶었어요. 감정노동자를 관리하는 사람들도 결국에는 감정노동자잖아요. 감정노동자가 싸우는 건 결국 을과 을이 싸우는 것 같더라고요. 관리자도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이 아니라 그저 시스템에 속해있지 않나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이야기에 영감을 준 사건이 있을까요?


친구가 쇼핑몰을 하는데 어느날 아르바이트생이 못 나와서 제가 도와주게 됐어요. 그때서야 감정노동자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직접 느꼈어요. 여자 후배가 전화를 받으면 상상을 초월하는 욕을 하더라고요. 제가 목소리 깔고 전화를 받으면 욕설을 하지 않고요. 어쩌면 전화를 거는 사람들도 자기 감정을 어딘가 풀어내야 해서 계속 악순환이 생기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고요. 그렇게 경험하고 나니 「고공행진」도 열심히 썼지만, 조금 더 깊이 있게 다른 방식으로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현’은 처음에 ‘그녀’라고 불렸었어요. 성(性)이 모호하게 바뀌었어요.


일단은 감정노동자에게 이름을 붙여주고 싶었어요. 감정노동자가 힘들다는 게 아니라 어디 사는 누가 힘들다고 구체적으로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현이라는 인물은 남자일 수도 여자일 수도 있어요. 폭넓게 보면 여성만의 문제보다는 사람의 문제인데, 굳이 성을 바꾸었다기보다는 뭉뚱그려서 사람이라고 이야기하지 말고 이름을 붙이는 작업이 이 사람에게 좀 더 몰입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현과 화자를 동성애적 관계로 보는 독자들도 있었는데, 저는 그 방향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어요. 사랑도 감정의 일부고, 그 감정에서 나오는 어려움도 있을 거고요.


스펙을 갖추려 발버둥 치는 청춘, 혹은 사회가 요구하는 조건에 맞추려고 애쓰는 주인공이 많이 나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연민 때문일까요?


진부한 이야기지만, 소설은 약자 쪽으로 기울어져 있어야 된다는 생각이 들어요. 소설은 가장 섬세하고 촘촘하게 약자를 위로하는 장르라고 생각하거든요. 머릿속으로 1인칭이 되어서 등장인물을 경험하고, 떨어져서 보는 게 아니라 머릿속으로 그가 되었다고 생각하면서 읽어야 소설의 재미를 느낄 수 있어요. 그래서 그 방향이 약자에게 기울어지면 소설이 하는 기능이 효과적으로 나오지 않을까 싶었어요. 사는 게 편안하고 재미있는 인물보다는 어렵고 상처받고 괴로운 인간에게 초점을 맞추게 돼요.


소장이 감정을 팔라고 이야기하는 부분에 밑줄을 쳤어요. 기술이 인간을 대체하는 과정에 관심이 많으신 것 같아요.


3, 4일 동안 아무도 안 만난 적이 있어요. 택배도 문 앞에 두고 가고, 인터넷이 있으니까 사람을 안 만나도 되겠다는 생각과 동시에 그게 발전일까 싶었어요. 은행 업무를 보러 갔다 할머니가 기계가 복잡하다고 은행원에게 공과금을 내달라고 부탁하는데, 은행원이 오늘까지는 해드리는데 다음 달부터는 배우셔야 한다고 말하더라고요. 이제 그 업무를 보는 사람이 없어졌다고요. 사람을 만나지 않아도 되는 시스템으로 누군가는 돈을 벌지 않을까 싶어요. 은행에 가면 VVIP만 사람이 나와서 은행 업무를 봐주고 나머지는 다 기계에서 처리해야 하는 시스템이 되는 거죠. 나중에는 사람을 만나서 받는 서비스가 가치가 올라갈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나중엔 말이죠. 감정을 쓰는 일도 전부 기계가 대신할 거예요. 그러니까 감정이라도 팔 수 있을 때 열심히 파세요. 되도록 건강한 감정을.

- 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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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가리고 봐도 전석순 소설이 되었으면


채널예스에서 청춘작가 특집으로 인터뷰 (http://ch.yes24.com/Article/View/17825) 를 한 적이 있어요. 이제는 젊은 작가로 호명이 되었는데, 맞는 옷이라고 느끼시나요?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7년이 지났는데 이제는 청춘에서 젊은 작가가 되고, 20대에서 30대로 넘어오는 과정이 실감이 났어요.


작가가 되기 위한 숙련의 과정을 10년으로 잡았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올해가 등단한 지 10년 째인데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아요.


그전까지는 마음이 가벼웠어요. 실수하고 망해도 아직 숙련하지 않은 기간이니까 괜찮다는 생각으로 썼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자유로웠던 것도 있고 말랑하게 썼던 것도 있어요. 어떻게 보면 ‘밤이 아홉이라도’의 아홉은 정말 숫자 아홉이라기보다 많다는 의미거든요. 직업사전에서 작가의 숙련에 필요한 기간을 10년이라고 이야기한 건, 10년 동안 쓰면 잘 쓸 수 있다는 게 아니라 평생 숙련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어요.


소설로 마지막에 이루고 싶은 것이 있나요?


일단 꾸준히 쓰는 게 가장 중요할 것 같아요. 매일 소설을 읽고 쓴다는 게 어려운 일이더라고요. 또 다른 목표는 이름을 가리고 봐도 전석순 소설이라는 말을 듣고 싶어요. 마지막에는 누가 썼는지 모른 채 읽으면 전석순 소설이라고 생각이 들만한 소설이 나와 줬으면 좋겠어요.


요새 재밌게 읽은 소설가의 작품을 소개해 주시겠어요?


너무 많은데요. 누구를 집어야 할까요? 제가 최근에 만난 소설가로 할게요. 테이크아웃 시리즈 낭독회에서 『정선』을 쓰신 최은미 작가님을 만났어요. 작가님을 만나면 그런 스타일이 아닌데 소설은 파격적으로 폭력을 아름답게 그리시더라고요. 미화한다는 뜻이 아니라 폭력을 아름답게 그려서 오히려 폭력이 나쁘다는 생각을 더 선명하게 만드는 작가예요. 다른 소설에서는 볼 수 없는 방식인 것 같아요.


소설가가 되지 않았더라면 어떤 직업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어렸을 때부터 거짓말을 많이 했어요. 혼나지 않거나 뭘 얻어내려는 거짓말이 아니라 묘하게 말이 되는 거짓말을 하니까 부모님과 할머니가 걱정을 많이 했죠. 그러다가 나이가 들면서 거짓말이 나쁜 게 되니까 혼자 생각하다가 소설로 갔던 것 같아요. 다른 사람에 관심이 많고 그 사람이 되어 보고 싶은 생각 때문에 소설을 쓰게 된 것 같은데, 안 됐으면 만화를 그리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연극배우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매번 다른 사람이 되지만 기록으로 남지 않고 끝나니까 다른 매력이 있을 것 같아요. 글이 아닌 몸짓과 목소리로 거짓말을 하는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문득 생각이 드네요.


최근 『소설 제주』  작업도 하셨어요. 꾸준히 쓰시는 편인 것 같아요.


아직은 부침이 없는 것 같아요. 한 편 쓰고 나면 지치고 쉬고 싶은데, 언젠가 한 번은 에너지가 너무 소모돼서 한동안은 읽지도 쓰지도 말아야겠다 하고 작업실 책을 다 치웠어요. 일주일도 채 안 됐을 때 또 뭔가 쓰고 싶은 내용이 생겼어요. 나중에 쓰자고 미뤄두는 것도 안 되더라고요. 쓰고 싶은 게 생기면 다시 에너지가 채워져요. 글이 안 써질 때가 아니라 쓰고 싶은 게 없을 때 위기인 거겠죠? 다행히 아직 계속 쓸거리가 있어요.


언젠가 써보고 싶은 작품이 있을까요? 아버님이 운영했던 세탁소에 관해 쓰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세탁소 자리가 지금은 말끔하게 사라졌고, 아버지가 줄 수 있는 소재는 다 주셔서 아버지 이야기를 먼저 쓰고 싶어요. 또 다른 하나는 비슷한 시기에 고민했던 건데, 고통 체험관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조카가 초등학교에서 늘 체험학습을 하러 가더라고요. 어느날 조카가 지쳐서 얼마나 많은 체험을 하면 어른이 될 수 있냐고 물어봐서, 나중에는 고통 체험도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를 들어 의사가 항암치료를 체험했다는 증명서가 있으면 환자가 신뢰하는 지표가 되고 의사의 가치는 올라가는 거죠. 고통이 공유되면 갈등이 사라질까요, 혹은 더 심해지게 될까요? 그런 소재를 고민하고 있어요.

 


 

 

밤이 아홉이라도전석순 저/훗한나 그림 | 미메시스
표준 감정에서 벗어나 당국의 감시를 받으며 근근이 삶은 이어 가는 보호 관찰 대상자인 [나]는 불안함 감정 때문에 제대로 된 직장도 가질 수 없고, 삶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것 같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홍대선 “철학도, 철학자도 아닌 우리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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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나에게만 급정거한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모두 꿋꿋한데, 홀로 휘청이고 주저앉게 될 때. 단단히 버티고 서있을 마음의 근력은 대체 어떻게 키워야 할까. 홍대선 작가는 그 고독의 순간, 자신의 전공인 철학에서 앞으로 나아갈 힘을 찾았다.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원론적 질문이 철학에서만큼은 유효했다. 『어떻게 휘둘리지 않는 개인이 되는가』는 그가 철학자의 삶과 사상을 경전 삼아 ‘나’라는 정체성을 규정하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다.


<딴지일보>의 편집부국장을 지내고, 인문교양 팟캐스트 <안 물어봐도 알려주는 남 얘기>를 진행하는 그는 『축구문화사』,  『테무진 to the 칸』  등의 전작을 통해 인문ㆍ역사물도 만화처럼 재미있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작가다. 이번 책에도 딱딱하고 심오한 명제와 논증 대신, 철학자의 개인적인 삶과 철학이 생생한 이야기로 담겼다. 일찍이 인생의 진리를 깨달았을 것 같은 위대한 철학자들조차 때때로 주저앉고, 흔들리고, 실수하는 개인이었다는 사실은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묘한 용기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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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치유하고 싶어 쓰기 시작했다

 

페이스북에 연재했던 글이라고 알고 있어요.

 

철학자의 삶과 철학에 대해 대략적으로 SNS에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출판을 염두에 둔 글이 아니었기 때문에 지금처럼 정갈하지 않았고 연재 기간도 제 마음대로였죠. 페이스북은 개인 SNS라는 점에서는 사적이지만, 타인이 글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는 공적이기 때문에 초고를 쓰기 굉장히 좋더라고요. 이 글이 책이 되든, 다른 원고의 한 파트가 되든, 그저 묻히든 상관없다는 생각으로 쓰기 시작했는데 중간쯤부터는 ‘책으로 나오겠다’는 감이 왔어요. 저는 SNS에 연재를 시작해 책을 낸 것이 처음인데, 글 쓰고 출간하는데 꽤 효율적인 방법인 것 같아요.

 

들어가는 말에서 ‘제 자신을 치유하고 싶어서 이 이야기를 쓰기 시작(5쪽)’했다고 했어요. 이러한 주제로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계기가 궁금해요.


개인적으로 고민이 많았어요. 음…….. 저희 가족에게 너무 거대한 불행이 닥쳤는데, 제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거든요. ‘안방의 세월호’라고 불리는 사건(가습기 살균제 사건)에 저희 어머니도 피해를 보았고, 돌아가신지 한참 뒤에야 그 사실을 알았어요. 사건과 관련된 법적, 의학적 시스템 그리고 그 안의 부정부패 등을 목격하면서 사회 구성원 전체에 대한 불신과 증오가 생겼고, 최종적으로는 내가 싫어졌어요. 그래서 2년 정도 굉장히 자학적인 사람이 됐죠. 그러다 내가 자살하거나 모든 걸 포기하지 않고 계속 살아가야할 이유가 있다면 그게 무엇일까 생각하게 된 거예요. 그 지점에서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아야 하나?’라는 아주 원론적인 물음에 맞닥뜨렸고, 철학자들은 스스로를 어떻게 관리했는지 살펴보기 시작했어요.

 

왜 철학에서 길을 찾으려 했을까요? 


배운 게 그것뿐이라, 자연스럽게 그리된 것 같아요.(웃음) 왜 가끔 할머니들이 안 해도 되는 일을 만들어하시는 모습을 볼 때가 있잖아요. “할머니 더운데 뭐 하려고 하세요”하면 “그냥 영감 생각이 나서 그런다”라면서 마늘을 막 빻는다던가. 사람이 정말 힘들면 없는 일을 만들어 하는데, 이번 글쓰기가 그것과 비슷했어요. 그런데 이왕이면 아무 의미 없는 단순노동보다 도움이 되는 일이었으면 싶었거든요. 철학은 글로 쓰였고, 결국 이야기잖아요. 철학자의 인생도 이야기고요. 저는 이야기를 쓰는 사람이니, 이걸 내 이야기로 한번 정리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실제로 마음을 추스르는 데 큰 도움이 됐어요.

 

책에 여섯 명의 철학자가 등장해요.


한 사람의 철학이라는 건 시대상, 그의 성격, 개인적 경험과 결코 분리될 수 없기에 철학뿐 아니라 철학자들의 삶을 함께 담은 글을 쓰고 싶었어요. 이렇게 접근하다 보니 시대상, 철학자의 삶, 철학 그리고 그 철학을 읽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 지에 대한 인간론까지 하나의 고리로 완성되더라고요. 이렇게 원형의 고리로 완성된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서양근대철학자가 누구일까 생각했는데, 제 눈에는 데카르트, 스피노자, 칸트, 헤겔, 쇼펜하우어, 니체가 보였어요. 이들은 ‘나 자신은 무엇인가’라는 고통적인 질문을 파 내려갔던 사람들이에요. 문학적 활동뿐 아니라 개인의 삶에서도 ‘나 자신’을 찾으려 했고요.

 

어려운 내용을 쉽게 쓰는 게 정말 어려운 일이잖아요. 독서량이 대단했을 것 같아요.


집필할 땐 두 종류의 책 읽기가 있는데 하나는 글을 쓰는 데 필요한 참고문헌 읽기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쓴 말 중 실수가 있는지, 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공신력을 확보했는지 검열하는 책 읽기예요. 둘 중 후자가 훨씬 괴로워요. 말 그대로 노동이잖아요. 하지만 독자를 위해서는 해야만 하는 일이죠. 저는 기본적으로 쓰는 걸 즐기는 사람이라 글 쓰는 시간보다 책 읽는 시간이 훨씬 많이 들었어요. 한쪽에 해당하는 내용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책을 세 권 읽은 경우도 있어요.(웃음)

 

작가님의 글은 쉽고 재미있다는 평이 많아요. 하지만 결코 주제가 가벼운 건 아니잖아요. 글을 쉽게 쓰는 비결이 있나요?


이건 제 개인적인 취향인데, 저는 어린 시절부터 앉은 자리에서 기계적으로 다음 장을 척척 넘기며 책을 읽을 때 가장 즐거웠어요. 페이지터너라고 하죠? 그 기쁨을 공유하고 싶어요. 독자에게 페이지터닝이 잘 되는 책을 쓰고 싶기 때문에 몰입해서 빠르게 읽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늘 염두에 두고 글을 써요. 그래서 자초하는 고생이 많죠. 이번 책도 그랬어요. 최대한 쉽게 쓰고, 그걸 더 쉽게 만들기 위해 고치고 또 고쳤어요. 특히 편집자님께서 도움을 많이 주셨어요. “이 부분은 이해가 잘 안 된다. 더 쉽게 써달라”면서 내용에 대해 계속 질문하고, 무척 세심한 첫 독자가 되어주셨거든요. 덕분에 제가 목표한 것보다 훨씬 쉬운 책이 나왔어요.

 

 

철학자도 흔들리는 개인이었다


철학자들의 사생활부터 성격 등 기존 철학 관련서에서 볼 수 없는 이야기들이 나와요. 칸트가 코감기 이론을 생각했던 부분이나 쇼펜하우어의 미성숙한 모습 등을 보니 ‘이들도 유약한 인간이구나’ 싶더라고요.


그렇죠. 특히 쇼펜하우어는 많이 유약해요.(웃음) 사실 어느 정도의 지적성향을 가진 여성분치고 쇼펜하우어를 좋아하는 분은 없을 거예요. 여성혐오 철학자니까요. 그런데 제가 쓴 글을 읽은 한 페미니스트 여성 지인께서 “쇼펜하우어를 향한 미움이 많이 희석됐다”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그때 되게 기쁘더라고요. 쇼펜하우어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가 괴물이나 악마가 아니라는 걸 알게 돼요. 한심함, 약함, 실수 같은 것들을 보며 그 사람을 이해하고 나면 그렇게 두렵지 않죠. 이 지점에서 철학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기도 하고요. 사실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굉장히 장쾌하고 장대하고 감동적이에요. 성격은 나쁜데, 철학은 장대하다는 건 이상한 게 아니죠. 사람은 좋은 면과 나쁜 면을 모두 가질 수 있는 복합적 존재니까요.

 

철학자의 삶을 다룬 덕분에 철학을 잘 모르는 사람도 충분히 읽을 수 있겠더라고요. 굉장히 먼 존재 같았던 철학자들이 무척 가깝게 느껴졌어요.


보통 처음 철학을 배울 때, 데카르트를 예로 들면 백지상태인 학생이 바로 방법서설부터 배워요. 아무것도 모르는데 현장성, 생동감, 살 냄새, 시대적 상황 같은 것들이 싹 빠져버리니 철학이 마치 수학 공식처럼 느껴지죠. 그래서 외우거나, 억지로 이해하거나, 공부하거나 아니면 포기해버리는 것 같아요. 그런데 철학자들의 삶을 보여주고, 이들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모습을 알려주면 사람들이 좀 더 쉽게 철학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삶이 철학을 이해시키기 위한 도구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니에요. 결국 철학은 철학자의 삶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니까요.

 

여섯 명의 철학자가 가진 공통점이 있나요?


예민함이요. 우리는 학교에서, 직장에서 예민하게 굴지 말고 불편한 게 있어도 참고 묵묵히 헤쳐 나갈 것을 요구받잖아요. 이들에게도 세상은 무뎌지라고 요구했지만, 여섯 명의 철학자 모두 너무 예민해서 그걸 참지 못했어요. 기분 나쁘고, 싫은 걸 다 표현했죠. 그런 면에서는 굉장히 약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요. 예민한 건 어떻게 보면 약함이잖아요. 그런데 ‘그래 나 예민해. 그래서 뭐 어쩔 건데?’라는 태도에 있어서는 강한 사람들이에요.

 

생각의 자유를 대가로 증오와 오해의 대상이 된 스피노자의 이야기는 요즘 시대를 살아가면서 주목할 만한 것이었어요. 자유를 얻으려면, 그만큼 무언가를 포기해야 한다는 거죠.


스피노자는 굉장히 존경스러운 사람이에요. 초연하고, 비장하고, 지성의 깊이 또한 서양철학사에서 수위를 다투는 인물이기 때문에 스피노자 편을 쓸 때는 별로 재미가 없었어요.(웃음) 사람이 좀 모나고 우스운 구석도 있어야 하는데, 스피노자는 정말 선비잖아요. 저는 스피노자가 근대 시민으로서 한 개인이 자유를 누리기 위해 사람이 어느 정도의 핍박을 견딜 수 있는지 그 한계를 시험하려고 당시 유럽이라는 실험실에 자신을 모르모트로 내놓았던 것이라 봐요. 왜냐면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었거든요. 이 책의 저자 입장에서 현대적 시민으로 우리와 같은 개인을 만드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철학자는 스피노자라고 생각해요.


책에 등장하는 여섯 명의 철학자 중 가장 좋아하는 철학자가 누구인가요?


좋아하는 것은 스피노자이고, 애정이 가는 건 쇼펜하우어예요. 결함투성이이고 나약한 쇼펜하우어의 모습이 꼭 저 같아서요. 뛰어난 두뇌와 저열한 성품의 언발란스도 매력적이고요. (웃음) 사실 우리는 모두 언발란스한 면이 있잖아요. 영혼은 남자인데 여자의 몸으로 태어났다거나, 부잣집 자식이고 싶은데 가정환경은 그 반대라던가, 운동선수가 되고 싶은데 운동 실력이 젬병이라던가 하는 것들은 모두 언발란스죠. 쇼펜하우어가 시작한 실존주의 철학은 이 언발란스를 해결해주지 않아요. ‘네가 가지고 태어난 짐이니까 네가 지고 가라’고 하죠. 그런데 그 비정한 결론이 아이러니하게 위로를 줘요. 해결책을 제시하진 않지만 우리를 알아주니까요. 또 쇼펜하우어는 성격이 나빠서인지 몰라도 헤겔까지 쌓아 올려 졌던 서양철학의 피라미들을 다 부수었어요. 부수려고 노력했고요. 전 그것도 용기라고 생각해요. 아, 물론 꼬장입니다.(웃음) 하지만 꼬장이라고 해서 용기가 아닌 건 아니니까요. 그의 결핍, 뛰어남과 모자람, 야심 이런 것들이 얽히고설킨 모습이 우리 모두와 다르지 않은 것 같아서 애착이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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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규정할 수 있는 건 오로지 나


현대의 개인을 가장 휘두르는 요소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알랭 드 보통이 말한 ‘불안’이요. 과거에는 업이 이미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숙명적이고 신성했어요. 왕은 왕으로 살다가 죽었고, 신하는 신하로 살다 죽었잖아요. 하지만 지금은 모두가 평등하다는 세상에 태어나서 몇 살에 어떤 직업을 갖고, 연봉을 얼마 받고, 어떻게 사는지가 비교되고, 남보다 못하면 그건 내 잘못이 되어버려요. 이건 결코 신성하지 않은 성적표죠. 사실 사람이 나쁘면 휘둘릴 필요가 없어요. 상대를 이용하면 되거든요. 사람이 휘둘리는 이유는 선량하기 때문이에요. ‘지금까지 나 좋자고 배낭여행 실컷 다니고 일은 안 했는데 부모님께 미안하네.’ 이런 생각이 들 때 휘둘리잖아요. 휘둘린다는 건 결코 나쁜 게 아니라 당연한 거예요. 그러니까 ‘휘둘리지 말자’가 아니라 자기가 설정한 범위 내에서 휘둘리자는 거죠.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 자기 정체성을 알아야 해요. 그걸 철학자들의 삶과 철학을 통해 함께 알아보자는 거죠.

 

그럼 작가님의 삶을 가장 휘두르는 건요?


탈모요. 탈모에 크게 휘둘리고 있어요. 저의 모근이 바람에 몹시 휘둘립니다.(웃음)

 

쇼펜하우어 『여록과 보유』의 고슴도치 이야기는 현대의 개인이 꼭 지녀야 할 태도인 것 같아요. 고슴도치 이야기를 혐오와 연관 지어 쓴 작가님의 페이스북 글을 보고 공감했어요.


성소수자가 너무 싫다고 가정해 볼게요. 그 마음은 잘못이 아니에요. 생겨난 마음이잖아요. 그것도 욕망이죠. 욕망은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고 그 자체로 인정받아야 하는 거예요. 하지만 “싫으니까 사라져”라고 말하는 건 잘못된 거예요. 싫다는 말을 굳이 공개적으로 해서 그 사람들이 불편해져선 안 되니까요. 사람들이 착각할 수 있는 게, 싫다는 마음이 일면 극렬하게 혐오의 언행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싫다는 마음조차 안된다고 검열하는 분들이 있어요. 그런데 마음이 생기는 것까지 잘못됐다고 할 순 없어요. 고슴도치는 가시가 있어서 추운 겨울에 서로 너무 떨어지면 얼어 죽고, 너무 가까이 붙으면 가시에 찔려서 상처를 입는데, 서로 견딜 수 있는 적당한 간격이 바로 ‘정중함과 예의’라고 쇼펜하우어가 말했잖아요. 내 욕망이 소중한 것처럼, 타인의 욕망도 소중하기 때문에 서로 양해하고 살아가는 거리가 정중함과 예의에요.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태도죠.

 

이 책을 읽고 스피노자에게 반해  『에티카』 를 샀는데 못 읽겠다고 쓴 리뷰를 봤어요. 『어떻게 휘둘리지 않는 개인이 되는가』 를 읽고 철학에 관심이 생긴 ‘철알못’들에게 추천해주실 만한 책이 있나요?


제가 아는 책 중에서는 버트런드 러셀의  『서양철학사』 가 수준과 기품을 잃지 않고, 철학의 맥락을 놓치지 않는 선에서 가장 쉬운 책이에요.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뭔가를 마스터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는 것 같아요. 『수학의 정석』 을 공부해도 『실력 수학의 정석』을 풀지 않으면 수능 볼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듯 원서를 읽지 않으면 철학자를 모르는 것이라고 오해하죠. 그렇지 않거든요. 같은 내용을 쉽게 전달하기 위해 먼저 공부해서 책을 펴낸 저 같은 사람도 있고(웃음) 여러 인문학 관련 서적들이 있으니까 그런 걸 읽으셔도 괜찮아요. 그래서 그 철학자에 대해 알았고, 교훈이든 지적쾌감이든 무언가를 얻었으면 된 거예요. 

 

『어떻게 휘둘리지 않는 개인이 되는가』가 독자들에게 어떤 책이었으면 하나요?


쉽다, 재미있다, 감동적이다 모두 칭찬이지만, 저는 ‘쾌감’이었으면 좋겠어요. ‘아 그렇구나!’하는 지적쾌감. 여기서는 안도감도 쾌감의 일부라고 생각해요. ‘내가 그리 크게 잘못되진 않았구나’라는 안도감이요. 몰랐던 것을 알게 됐다는 지적만족감뿐 아니라 이 이야기가 나의 세계에서도 지속되고 있다는 쾌감 같은 걸 인문학적으로 느끼셨으면 해요.

 

저도 꽤 큰 지적쾌감을 느꼈어요. 다 읽은 뒤, ‘나 이제 어디 가서 철학으로 잘난 척 좀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던걸요.(웃음)


독자분들이 아는 척 좀 하시라고 술자리에서 슬쩍 꺼내기 좋은 이야기들을 철학자마다 신경 써서 넣어두었습니다.(웃음)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요즘 ‘팩트’가 유행이잖아요. 어떤 이야기를 하면 “그거 팩트야?”라는 말을 많이 하곤 하는데, 자기 스스로에 대해서는 너무 따져 물으면 안 돼요. ‘나는 왜 이럴까? 나는 왜 이렇게 부족하지?’라고 하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렇게 생긴 걸 어떡해요. 나는 그냥 나예요. 나는 잘못된 것도 아니고 옳은 것도 아니에요. 내가 있다고 세상이 훨씬 더 아름다워지지 않고, 그렇게 큰 문제가 생기지도 않아요. 그러니 ‘나’라는 팩트를 가지고 싸우지 말고 어떻게 관리하고 유지보수할 것인가, 어떻게 거리를 둘 것인가를 생각해야 해요. 그걸 알아내기 위해서 여섯 명의 철학자가 그렇게 고군분투 했고, 제가 책을 썼고, 여러분은 책을 읽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어떻게 휘둘리지 않는 개인이 되는가홍대선 저 | 푸른숲
무엇을 어떻게 해야 먹고살 수 있을지 앞이 보이지 않는 막막한 현실에서 우리는 철학자들의 내밀한 삶의 태도를 통해 자신만의 열쇠가 되어 줄 해결의 단초를 찾을지도 모른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젊은 작가 특집] 박서련 “한때, 소설가가 신처럼 느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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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고등학교 3학년 때 소설로 ‘15회 대산청소년문학상’ 금상을, 시로 ‘1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을 수상한 박서련 작가는 “쓸 수 있는 사람”이라는 마음과 “쓸 수 없는 사람이 되면 어떡하지”하는 복잡한 마음을 갖고 20대를 시작했다. 등단할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이 점점 몸집을 키웠다. 20대 중반이 되어서야 <실천문학> 등단(2015년)으로 불안이 해소되었지만 원고 청탁이 없었다. 스타벅스 아르바이트를 하며, 중장비 자격증까지 알아보며, 다시 사무직 아르바이트를 하며 그럼에도 소설을 썼다. “그만 두기엔 너무 매력적인 일”이었기 때문에. 그리고 마침내 자신의 첫 장편 『체공녀 강주룡』 으로 제23회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다.


『체공녀 강주룡』은 1931년 평양에서 고무 공장 파업을 주동하고 을밀대 지붕에 올라간, 우리나라 최초의 고공 농성 여성 노동자 강주룡의 이야기다. “강주룡이라는 인물을 남보다 조금 먼저 알아보았다는 자부심이 있다”는 작가의 이야기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강주룡은 매력적인 인물이다. 30년 남짓의 짧은 생에서 강주룡은 남편과 독립운동을 하고, 곧 남편을 잃고, 가족을 부양하고, 평양에서 노동 운동을 하다가 홀로 쓸쓸한 죽음을 맞는다. 사랑하는 남편이 나라의 독립을 원하니까 나도 그것을 원한다고 한 주룡. 낯선 이에게 “입에다 신짝 처넣어버리기 전에 썩 꺼지라”라고 일갈하는 주룡. 파업 현장에서 동지들에게 <국제가>를 부르자고 선도하는 주룡은 내내 씩씩하고 정 많은 친숙한 한 인간으로 살아난다. 마침 지난 8월 15일, 문재인 대통령이 광복절 축사에서 강주룡을 언급했다. 이렇게 기억해야 할 인물이 또 한 명 우리를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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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룡에게 반했다

 

제 23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을 축하드려요. 수상 소식 들었을 때 어떠셨어요?

 

고맙습니다. 그때 사무직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는데요. 외부에서 일을 보던 중에 전화를 받았어요. 너무 좋았어요. 일상의 자잘한 스트레스가 다 잊혔어요.

 

전혀 예상 못하셨어요?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 ‘되면 어떡하지’하는 생각은 있었어요. 되고 싶다, 되겠다가 구분되지 않는 상태로 상상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수상 소식 듣기 얼마 전(4/27)에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회담을 했잖아요. 그래서 ‘어쩌면?’하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내 소설에도 ‘을밀대’가 나오는데(웃음) 하면서요.

 

마침 어제(8/15)는 광복절 기념 축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강주룡을 언급하기도 했어요. 남다른 느낌이었을 것 같아요.


남다르기도 했고요. 저로서는 바라고 있기도 했어요. 이것 역시 예상과 상상이 뒤섞인 느낌인데요. 이즈음에 대통령께서 강주룡을 한 번 언급해주시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죠. 여성과 노동을 한꺼번에 말할 수 있으니까요. 강주룡이 독립유공자이기도 하잖아요. 여러 모로 의미가 있으니, 제 책 한 번만 봐주세요(웃음) 하는 욕망이 있었어요. 오전에 늦잠을 자고 일어났는데요. SNS를 켜니 이미 뉴스가 많이 공유되고 있더라고요. 당연한 일이기도 하지만 이 책을 쓴 저로서는 너무 호사여서 거짓말 같은 느낌이 있었어요.

 

이 소설은 어떻게 시작된 건가요?


많이 받은 질문이지만 답할 때마다 약간 달라지는 것 같은데요. 장편을 쓰긴 써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어떤 이야기를 쓸 것이냐가 고민이었죠. 두 가지 이야기를 고민하면서 친구들에게 말을 했더니 주룡의 이야기가 더 좋을 것 같다고 조언하더라고요. 실은 주룡 이야기는 어려울 것 같았거든요. 우선 사료가 많지 않고요. 감히 첫 장편으로 이 사람에게 접근했다가 누를 끼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어요. 하지만, 힘들지만 힘들수록 의미가 있는 것 아닐까 생각했고요. 그래서 쓰게 됐습니다.

 

작가로서 매력을 느낄 수밖에 없던 이유가 있었을 것 같아요. 다른 이야기가 아닌 주룡의 이야기를 선택한 이유, 좀 더 구체적으로 들려주시면 어떨까요?


어쩔 수 없이 주룡에게 눈길이 갔어요. 어린 남자와 결혼을 했는데 그의 사랑을 받았다기보다 내가 그를 사랑했고, 처음 봤을 때도 아주 귀여운 사람이었다, 이런 말을 했던 자료가 있었어요. 주룡이 자신의 십 년을 차분히 되돌아보는데요. 1-2년밖에 같이 살았을 뿐인 남편에 대한 이야기가 그 인터뷰의 절반 가까이 차지하고 있었거든요. 그걸 보면서 이 사람의 삶에서 사랑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상상해보기도 했고요. 체공 농성을 하면서 단식도 하고, 그런 상태에서 인터뷰를 했는데도 “예전에 감옥에 갇혀서는 일주일까지 굶어봤는데 사흘쯤이야”하면서 농담도 던지고 그랬더라고요. 그 캐릭터가 정말 재미있었어요. 일단 제가 그 사람에게 반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시작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해요.

 

그 주룡의 인터뷰 자료는 어떻게 발견하게 되신 거예요?


타워 크레인 여성 기사들에 흥미가 있었거든요. 중장비 자격증을 따볼까 하기도 했었고, 직접 대화를 해본 것은 아니지만 타워 크레인 여성 기사님들을 가까이서 본 적도 있어서요. 검색을 하다가 김진숙 위원으로 키워드가 넘어갔고, 고공 농성에서 강주룡으로 또 다시 키워드가 넘어갔어요. 자료들이 부족한 가운데서도 그 사람에 대해 상세하게 알아보신, 먼저 그를 주목해주신 역사학자 박준성 선생님의 자료가 도움이 됐고요. 그걸 보면서 이야기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장 가깝다고 느낀 한 사람, 강주룡


사료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공백을 채우는 일이 아주 중요한 작업이었을 것 같거든요. 힘들진 않으셨어요?


사료가 많지 않되, 어느 정도 촘촘함은 있었던 게 이 사람의 육성이 담긴 인터뷰 기사가 남아 있었던 거니까요. 그 인터뷰 기사를 가장 많이 참고하기도 했는데요. 왜 이렇게 말했을까, 에 주목하면서 캐릭터를 먼저 만들려고 노력했어요. 가령 평양에 가족과 함께 이주했느냐 하는 부분이 있어요. 정확하지 않죠. 하지만 주룡의 행적을 보면 빈민굴에서 혼자 죽었다는 내용이 있거든요. 인터뷰에서 “사리원에서는 아들 노릇을 하며 돈을 벌었고, 그러다 평양 온 것이 5년 쯤 됩니다”라는 말을 하는데요. 애매하게 가족에 대한 언급은 없어요. 최후의 행적, 그리고 이런 얼버무림으로 봐서는 이 사람이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숨기고 싶었던 게 아닐까,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다면 주룡은 혼자 사는 여성이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죠. 대부분의 공백들을 그렇게 메웠던 것 같아요.

 

사실은 공백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주룡은 아주 생생하게 살아 있는 느낌이에요. 작가님이 상상한 강주룡은 어떤 사람이었나요?


누구에게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발견되는 매력이 있다고 믿어요. 한 사람에 집중적으로 달라붙어서 그 사람의 내면과 행동 동기를 자세하게 설명하려다보니 그 사람이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던 것 같은데요. 누가 봐도 매력이 있으되 친근한 사람을 상상했어요. 어쩌면 나와 다르지 않고, 나의 친구 같기도 한 사람으로 형상화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제 가까이에 모델로 생각했던 사람이 몇 있는데요. 친구일 수도 있고요. 사회적인 면에서는 저희 어머니를 떠올리기도 했어요. 어머니가 일을 진짜 잘하셨거든요. 생활력이 정말 강하셨어요. 하루의 일을 다 마쳐놓고 “이만하면 오늘도 떳떳하다”고 말하는 여성이어서요. 그런 모습을 많이 떠올렸어요.

 

천변에 나가 빨래를 해 와서 널고, 보리방아를 찧고, 무채를 썰어 꿰어 말리고, 시간이 남아 정주간 황토 칠을 싹 새로 하고, 식구들 밥상을 올리고, 야학에 나가려는 전빈을 배웅하고, 밤불을 홧홧하게 때고, 큰할머니부터 형님네까지 문안을 돌고, 방에 들어앉아 관솔불을 밝히고 식구들 옷깃을 뜯어고친다.

이만하면 오늘도 떳떳하다.(34쪽)

 

쓰면서 가장 애착이 갔던 장면을 소개해주실 수 있나요?


이 책에 대해 코멘터리를 하라고 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데요. 지금 떠오르는 장면은 일단 이거예요. 주룡이 간도 꿈을 꾸고 깨서 옥이의 이마 선을 정리해주잖아요. 그러면서 “앞으로 너는 네가 바라는 대로 살았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는데요. 그 장면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떤 독자 분이 ‘그 말이 독자인 나에게 하는 말처럼 느껴졌다’는 리뷰를 남겨주셔서 정말 감사했거든요. 제가 쓰면서도 주룡의 말이기 때문에 제가 주룡에게 위로 받고 있는 기분이 들었어요.

 

이 작품은 1920-3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과거의 이야기라고만은 볼 수 없었어요. 더군다나 마지막 문장, “저기 사람이 있다”(242쪽)에는 한참 머물게 되더라고요.


마음에 품고 있는 장면들이야 워낙 많았어요. 말씀하시 마지막 문장도 쓰면서 많이 울었던 부분인데요. 소수자, 약자를 위협하는 적들은 언제나 있잖아요. 주룡은 그런 것들을 어떻게 이겨냈는지 보여주는 샘플인 거죠. 그래서 제가 쓴 주룡에게서 저도 기운을 많이 얻었던 것 같아요. 주룡은 쓰는 동안 저 자신이기도 했고요. 제가 가장 가깝다고 느낀 한 사람이었어요.

 

그런가 하면 주룡의 마지막, 죽음에 대해서는 직접 보여주는 방식을 택하지 않았어요. 감옥에 있는 정달헌에게 소식을 전해주는 식으로 독자에게도 주룡의 죽음을 알려주는데요. 그 이유도 궁금합니다.


자료에 따르면 병원에서 나와 주룡을 동지들이 돌아가면서 돌봐주었다고 해요. 동지들도 생계가 있고, 가족들이 있으니 매일 주룡을 들여다볼 수는 없었겠죠. 교대로 간호를 했을 텐데요. 주룡이 이 시기 즈음 숨을 거뒀거든요. 동지들의 간호가 하루 이틀 소홀한 사이, 또는 이번 여름처럼 폭염이 심할 때 그랬겠죠. 그렇다면 돌봐주지 못한 사람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특히 나중에 그 소식을 알게 된 달헌은 어땠을까, 많이 생각했어요. 정달헌은 불운하게도 곁에 누구도 없었을 때 주룡이 죽었다는 것을 알았을 테니까요. 한편 그 죽음을 너무 축소시킬 수도 없었죠. 혼자서 죽음을 맞이할 때의 애처로움을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그리지도 않고, 지나치게 프로파간다의 느낌이 들지도 않게 하고 싶었고요. 그래서 조금 거리를 두는 방향으로 그의 죽음을 가장 안타까워 할 동지의 눈, 동료의 눈을 섞는 정도로 썼어요.

 

균형을 잡는 일이 정말 중요했을 것 같아요. 기억해야 할 인물을 되살리는 작업을 하다보면 경도되기 쉬우니까요. 영웅화 하고 싶은 욕심을 자제시키는 작업이기도 했을 것 같아요.


조금씩은 시쳇말로 ‘뽕’(웃음)을 넣은 부분이 있긴 한데요. 사실 저는 빈말로도 애국자나 애국주의자라고 하기는 어려운 사람이에요. 그래서 아마 주룡도 그런 사람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어요. ‘여자에게 국가는 없다’는 말을 하잖아요. 당대의 여성인 주룡도 비슷한 느낌이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나한테 해준 것 없는 나라를 독립시켜 뭐하나, 그렇지만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원하니까 나도 독립을 원한다, 라고 할 수 있는 캐릭터로 주룡을 그렸어요. 이런 해석에 공감해주신 독자 분들이 많이 계신 것 같아서 다행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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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나를 데려가기를


지금 여기를 사는 박서련이라는 작가가 갖고 있는 고민이 무엇인지도 궁금하네요.


인간의 복잡함에 늘 흥미가 있어요. 강화길 작가님의 『다른 사람』을 인상 깊게 읽었는데요. 그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들이 전부 피해자면서도 서로에게 약간씩 가해를 하기도 하거든요. 입체적인 인간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 보여서 흥미로웠는데요. 인간의 복잡성을 정확하게 포착하고 이해하면서 쓰면 어렵기야 하겠지만 의미도 있고, 재미도 있는 작업이 된다는 믿음을 갖고 있어요. 모든 일이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잖아요. 강주룡과 제주 해녀 항일운동가가 언급된 대통령 축사 기사의 댓글에 ‘가짜 페미들은 꺼져라, 이 사람들이 진짜 여성이다’라는 식의 내용이 있었어요. 여성들은 이 뉴스에 지금까지는 제대로 호명된 적 없는 나와 같은 여성이 역사에 이름을 남겼고 지금이라도 빛을 보려 한다, 면서 감동하는데 일각에서는 그런 댓글을 달 수 있는 거죠. 그런 걸 보면 분노도 하지만 흥미롭거든요. 저는 앞으로도 그런 부분을 계속 바라보고 쓸 것 같아요.

 

묘하게 어긋나는, 인간의 다양하고 복잡한 면모를 보여주는 장면에 늘 매력을 느끼시는군요.


복잡한 생각이고, 엉킨 실타래 같은 생각이지만 계속 생각하다보면 그 끝에서 의외의 더 재미있는 생각이 떠오르기도 하는 것 같아요. 그런 것들을 찾아서 쓰고 싶어요.

 

2015년 <실천문학> 등단 후에 원고 청탁이 없어서 타워크레인 운전 자격증을 따려고 알아보기도 했다는 인터뷰를 봤어요. 사실 고등학교 때 이미 대상문학상과 문학동네 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한 적도 있잖아요. 여러 의미에서 쉽지 않은 시간들이었을 것 같은데요. 그동안 작가님은 어떻게 변해왔나요?


쓴 지 10년은 넘었다고, 스스로는 생각하고 있는데요. 해가 더해질수록 겸손해지는 것 같아요. 어릴 때 칭찬을 너무 많이 받았어요. 과분한 인정을 많이 받았죠. 그것이 저의 자존의 근거이기도 했고요. 나는 쓸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으로 어떻게든 버티고 살기도 했었는데요. 쓸 수 없는 사람이 되면 어떡하지, 라는 두려움도 함께 품고 살았어요. 제가 지난날에 이뤘던 성취들만 쓰다듬으면서 그 자리에 머무르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늘 애쓰고 있어요. 어렸을 때는 칭찬 받으려고, 펼치는 자아의 느낌으로 화려하게 쓰려고 노력했었다면 지금은 쓰기 자체에서 희열과 쾌감을 발견할 때가 있거든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쾌감을 느낄 때가 있어요. 제가 글을 압도하고 있다고 믿을 때를 지나서 글이 저를 어딘가로 데려가길 기다리면서 계속 작업을 거는(웃음) 그런 상태가 된 것 같아요.

 

칭찬을 많이 받았다면, 글과 관련된 이야기인가요?


시골 출신인데요. 학생 수가 적은 학교에서 그나마 성적이 잘 나와서 어른들이 신경 안 쓰는 아이였어요. 그 와중에도 학교 땡땡이치고 서울에 와서 글 쓰는 친구들과 만나고 그랬어요. 합평을 하기도 하고요. 상을 받은 건 어른들한테 인정을 받은 건데요. 또래 집단에서도 그랬어요. 저는 20대 중반까지도 합평을 하면 나쁜 말을 들어본 기억이 없거든요. 아마 나쁜 말을 들었어도 제가 기억에서 지워버렸을 테지만요.(웃음) 수상 실적이 많았기 때문이었을 것 같기도 하고요. 어쨌든 혼자서는 어깨으쓱거림이 있었죠.

 

글을 압도하고 있다고 믿을 때에서 글이 작가님을 어딘가로 데려가길 기다리게 된 때로 바뀌던 시기는 언제쯤이었을까요?


이미 스무 살 때도 그랬을 거예요. 스무 살 때 많은 문청들이 위기를 느끼잖아요. 청소년 리그에서 좀 쓴다, 하다가 성인 리그로 나오면 갑자기 내 글은 비교도 안 된다는 사실이(웃음) 되게 아프게 다가오거든요. 한 번은 글을 안 쓰는 선배한테 투정하듯 이 얘기를 했어요. “앞으로 등단 못하면 어떡하죠?”라고 했더니 선배가 너무 아무렇지 않게 “거기까지가 네 운이었나보지.”라는 거예요. 그날 그 말을 듣고 너무 울었어요. 저도 내심은 그렇게 생각했는데 남이 그렇게 말할 수 있다는 사실이 냉정하게 다가왔던 것 같아요.

 

그렇게 등단을 했는데, 청탁은 없었고요.


등단했을 때는 개인적으로 가족사 때문에도 고통 받던 시기였어요. 그래서 등단 소식이 아주 기쁘긴 했어요. 오랫동안 오지 않던 인정의 순간이 드디어 왔다는 생각에 아주 기뻤죠. 그렇지만 다시 가족사로 고통 받았고, 저 자신으로 살았다기보다 누군가의 가족, 누군가의 무엇으로 휘둘리면서 지냈던 것 같아요.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내다가 2017년 초반에 이 소설의 기획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 지원사업에 다행히 선정이 되었어요. 덕분에 버텼고, 한겨레문학상을 타게 된 거죠. 동료 작가 분이 재등단이라는 표현을 쓰셨는데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다시 기회가 왔다, 이번에는 진짜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야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죠.

 

 

그만 두기엔 너무 매력적인 일


여러 모로  『체공녀 강주룡』 이 의미가 큰 작품이네요. 작가의 말에 ‘이 책의 이름은 끝의 끝까지 내 이름의 옆에 놓일 것이다’라고 쓰셨는데요.


마감 직전이 정말 힘들었어요. 지원금이 떨어지면 취직을 해야겠다, 생각하면서 소설 마무리 단계로 나아가고 있었는데요. 생각보다 빨리 취직을 하게 되었어요. 글을 쓰면서 사무직 아르바이트도 겸하면서 개인적인 사정까지 겹쳤는데요. 저는 할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몸은 아니었던지 한 번은 응급실에 실려 갔어요. 병원에서는 휴가 내서 쉬고, 소설도 쓰지 말라고 하셨죠. 결국은 휴가도 못 쓰고 소설도 썼는데요. 응급실에 실려 갈 때, 만약 이 소설이 잘 되면 이 이야기를 하면서 생색내야지, 생각했었어요.(웃음) 인터뷰에서 처음 얘기하는 거예요.(웃음)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무엇이 이렇게 쓰게 하는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어요.


그만 두기엔 너무 매력적인 일 같아요. 할 수 있다는 걸 안 이상은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일 중 하나인 것 같은데요. 어릴 때는 소설가가 신처럼 느껴졌어요. 어떻게 이야기를 만들지, 신기했는데요. 그러다 고등학생이 되어서 직접 소설을 써봤는데 할 수 있네? 한 번 더 써볼까? 한 거예요. 그러면서 계속 썼어요. 진짜 좋아서 썼죠. 그때 이 즐거운 일을 그만둘 수 없겠다고 생각했고요. 지금까지도 그 생각을 쭉 하고 있어요. 어렵지만 너무너무 즐거운 일이에요. 천계영 작가님 데뷔 단편집 『컴백홈』 작가의 말에 ‘만화를 보는 것보다 그리는 게 더 즐거워서 행복했던 나날’이라는 언급이 있어요. 그 말을 처음 읽을 때는 몰랐는데 지금은 진짜 공감해요. 직접 하는 게 훨씬 재미있는 것 같아요. 

 

언젠가 꼭 써보고 싶은 최종 소설이 있으세요?


『체공녀 강주룡』도 그때의 제가 할 수 있는 최대치였어요. 지금 하라고 해도 다시 못할 최대치라고 생각하긴 하는데요. 그래도 이것이 저의 궁극이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요. 이것은 다음 작업에 대한 태도에서도 마찬가지 같아요. 나의 인생 작품 같은 것은 지금 갖고 있다면 좋기는 하겠지만 지금 갖고 있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요. 약간 질문을 피해가는 말이 될까요?(웃음)


 

 

체공녀 강주룡박서련 저 | 한겨레출판
간도와 평양을 오가는 광활한 상상력에 ‘강주룡’이라는 매혹적인 인물을 불러낸 이 강렬한 이야기는 지금의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깊은 울림으로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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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미 “내 마음을 객관적으로 바라 보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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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는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로 불리고, 교도소, 소년원 재소자들에게는 마음을 치유하는 선생님이다. 꿈을 이룬 어른들과의 대화집 두 권을 출간하고, 동화로 등단한 작가이자 미혼모와 입양인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기록하기도 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박상미’라는 이름 뒤에 붙이는 호칭이 다양하지만, 그가 해 온 일은 죽 하나의 결로 이어졌다. 사람들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마음이 아픈 사람에게 공감하고, 그들의 아픔을 치유하는 것. 이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영화를 찍고, 글을 쓰고, 강연을 한다. 그런 그가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대화를 나누며 깨달은 방법을 한 권의 책으로 펼쳤다.

 

『마음아, 넌 누구니』 는 제목 그대로 마음에 말을 거는 책이다. 오랫동안 우울증을 앓던 저자가 어떻게 고통 속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는지 실용적인 방법을 설명한다. 20대 독자는 피해야 할 상황과 사람, 마음을 들여다보아야 할 적절한 시기를 알려주는 책이라고 평하고, 40~50대 독자는 그동안 놓쳤던 깊은 우울을 가만히 마주 보게 해 주었다고 한다. 60~70대 독자는 저자의 어머니가 뒤늦게 쓰기 시작한 자서전 이야기에 감동했다며 연락을 취하기도 한다. 다양한 연령대, 직군, 수많은 상처를 지닌 사람을 만난 저자의 경험이 한 권의 책에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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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도 단단하게 근육을 단련해야 한다

 

<세상을 바꾸는 15분>에 출연한 영상을 보았어요. 오랫동안 품고 살았던 어린 시절 상처를 소년원 아이들에게 털어놓으면서 공감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어요.

 

어릴 때부터 우울증을 앓았어요. 상담을 받으러 병원에도 많이 다녔죠. 부끄럽고 힘들었어요. 시간이 지나니까 저처럼 마음 아픈 사람이 보이고, 손을 잡아주고 싶었어요. 과거의 상처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은 망원경이 아니라 빨대 구멍을 통해서 내일을 봐요. 시야가 극히 좁아져서, 내일의 희망은 보이지 않죠. 잘 다치는 마음을 보호하려면 마음 근육을 길러야 해요. 근육을 기르지 않으면 육체는 힘을 발휘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든 육체의 근육을 기르기 위해 애를 쓰죠. 우리 마음도 근육을 기르지 않으면 마음의 힘을 발휘할 수도 없고, 불안과 우울 같은 마음 병에 시달리고 마음의 노화는 빨라져요. 포기하는 데 익숙해집니다. 마음 근육에서 긍정 에너지를 발산해야 하면서 내 인생의 기초 대사량을 증가시켜야 해요.

 

마음 근육이라는 말이 재미있어요. 마음을 단련하면 능숙하게 관계 맺을 수 있다는 말인가요.

맞아요. 나의 마음 근육이 튼튼하면 타인이 나를 평가하는 게 상관없어져요. 누군가에게 기대할수록 평가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초라해지고, 힘들어져요. 모든 사람과 잘 지내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날 필요도 있어요.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 잘못된 관계를 정리하는 지혜를 발휘할 필요도 있어요. 대인관계가 힘든 사람들은 최대한 상처받지 않고 나를 보호하는 지혜를 배우고 연습도 해야 해요. 내 감정의 주인이 되어서 내 감정과 대화를 나눌 수 있을 때, 타인의 감정에도 공감할 수 있고, 내 마음을 보호할 수 있어요.

 

감정을 구체적으로 아는 것도 중요하다고 하셨어요.


감정이 통해야 말이 통합니다. 참지 말고 감정을 표현해야 해요. 욕구를 표현해도 되고, 화를 내도 됩니다. 다만 무례하지 않게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면 돼요. 내 감정을 존중하고 파악하는 사람이, 타인의 감정도 읽을 수 있어요. 그래야 상처받지 않고 소통하는 거예요. 눈치 보지 말고 감정의 주인이 되는 연습을 해야 해요. ‘자존감을 키우는 이기적 감정 사용법’을 알아야 나를 지킬 수 있습니다. 내가 내 감정을 존중하고 잘 사용할 때, 타인도 나를 존중하는 거예요.

 

책에는 감정을 바라보고, 글로 쓰고, 소리 내 우는 등 우울에서 빠져나오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있어요. 이런 방법은 스스로 마음을 치료하면서 알게 된 것인가요?


제가 우울증과 마음의 병을 오랫동안 앓았어요. 유명한 신경정신과나 상담 센터를 무수히 다녔지만, 치유가 안 되더라고요. 어느 날 문득, 무엇이 나를 힘들게 하고, 과거의 분노에 갇혀있게 만드는지, 나 스스로와 대화해 보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어요. 내 마음을 객관적으로 마주하고 묻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그때 내 마음과 대화를 나누는 게 가능하다는 걸 알았어요. 글 속에서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를 위로하고, 격려하고, 달래고 있었어요. 그때 깨달았어요. 누구나 아픈 마음을 발견하고 위로하는 능력이 자기 안에 있구나. 저는 상담할 때도 어떻게 해야 한다고 제시하지 않아요. 내 안에 있는 치유 능력을 발견하도록 돕는 역할을 하려고 해요.

 

 

글쓰기로 마음을 들여다보는 연습을 하다

 

주변에 우울증을 겪거나 마음에 상처를 입은 사람을 봐도 어떤 말이 위로될지, 어떻게 위로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위로하는 말을 꺼냈다가 더 상처가 될 것 같아서 망설일 때도 많고요.


우울하다, 죽고 싶다는 이야기를 어렵게 꺼냈을 때는 부정적인 감정이 차고 넘쳐서 SOS를 보낸 거예요. 그때 필요한 건 훈계나 조언이 아니에요. ‘무조건 공감하기’예요. 그리고 왜 그런 감정이 생겼는지 묻고 들어주기만 하면 됩니다. 나라도 그랬을 것 같다고 공감하고, 너니까 잘 견디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위로해주면 마음속에 울고 있는 아이를 달래줄 수 있어요. 가장 위험한 게 지적하고 가르치는 거예요. 그러면 더 깊이 숨게 돼요.

 

어머니에게도 글쓰기를 권유한 일화가 나와요. 그날부터 어머니가 일기를 쓰셨다고요. 한 독자가 어머니의 일기만 따로 책으로 읽고 싶다는 리뷰를 쓴 것도 보았어요.


어머니도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가 많아서 감정을 잘 표현하지 못했어요. 밖에서 많은 사람의 마음을 치료한다고 하는데 정작 우리 엄마의 마음을 들여다보지 않았다는 게 죄송했어요. 어머니가 글을 잘 쓰세요. 그래서 어릴 때 이야기를 하나씩 글로 써보는 걸 권했어요. 뭐 그런 걸 쓰냐고 마다하다 어느 날부터 쓰기 시작했는데, 다섯 살 때 기억을 생생하게 묘사하는 거예요. 엄마의 글을 통해 엄마 마음속에 울고 있는 어린아이를 만나기 시작했어요. 엄마를 안아주고 칭찬했어요. “우리 엄마, 정말 잘 살았네!” 지금은 엄마가 글쓰기를 통해서 과거와 화해하고, 자존감을 찾아가고 있는 것 같아요.

 

‘내 인생의 자서전 쓰기를 하면서 엄마의 악성 두통이 서서히 좋아지기 시작했다’라고도 하셨어요.


‘매일 글쓰기’를 통해서 자신의 상처와 마주하고, 긍정적으로 해석하고 생각하는 습관이 엄마에게 생긴 것 같아요. 올해 69세인데, 기억력도 더 좋아지셨어요. 우리 뇌는 죽기 전날까지 노력하는 만큼 발전할 수 있어요. 천성을 이기는 게 습관이에요. 습관의 힘이 천성보다 열 배가 세요. 이 책은 제게도 하나의 다짐이에요. 한 번 우울을 겪은 사람은 수시로 우울함에 빠져들거든요. 그때마다 책을 읽으면서 다짐을 하는 거예요. 빨리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전환하는 ‘생각 습관’을 기르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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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사람을 ‘찾아가는 마음 치유 학교’

 

책에도 미혼모나 교도소 재소자 이야기가 많이 나와요. 쉽게 만날 수 있는 내담자는 아닌 것 같은데 이분들에게 심리 치료를 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이십 대 중반까지는 너무 가난했어요. 삼십 대가 되어서 돈을 벌면서 이십 대에 계속하지 못한 공부를 했어요. 학부와 첫 번째 석사는 문학을 했어요. 그 후에 내 마음의 병을 나 스스로 치료해보자는 마음이 강해지면서 상담 심리학 공부를 다시 시작했죠. 서른여섯에 돈 버는 일을 접고, 박사과정에 입학했어요. 문화심리학을 토대로 대중문화를 연구했죠. 독일 학술교류처의 장학생으로 뽑혀서 학기 중에는 한국에서, 방학엔 독일에서 연구할 수 있었어요. 독일에서 어릴 때 해외 입양된 친구들을 만났고, 그들의 고통을 알게 됐어요. 그래서 미혼모와 해외 입양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었어요. 미혼모 가정을 돕는 활동을 함께하다가 입양 간 아이들의 아빠 중에 교도소에 있는 사람이 꽤 많다는 걸 알았죠. 그래서 교도소와 인연을 맺은 거예요. 그런데 교도소에 다니다 보니 재소자 가정이 해체되면서 재소자 자녀가 소년원에 가 있는 사례가 많다는 걸 안 거예요. 그렇게 소년원과도 인연을 맺었어요. 다음엔 또 어딜 가게 될지 모르겠어요. 인연의 꼬리를 물고 마음 아픈 사람들을 만나고 있네요.

 

현재 대표로 계신 ‘더 공감 마음 학교’에서 하는 일들인가요?


더 공감 마음 학교에서는 교도소나 소년원에서 ‘찾아가는 마음 치유 수업’을 많이 해요. 커리큘럼도 저희가 짜고, 무료로 운영하고 있어요. 시나 군, 기업에서도 ‘마음 치유 학교’를 열어요. 일반인 상담도 연락이 많이 오는데, 시간이 부족해요. 그래서 위급하다는 판단이 드는 사람을 우선으로 상담을 받아요.

 

교도소나 소년원에 계신 분들을 만나면 반응이 어떤가요?


찾아가는 마음 치유 수업은 영화를 보고 함께 이야기 나누는 수업이에요. 공감할 만한 캐릭터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자기 이야기를 꺼낼 수 있도록 해요.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아요. 열심히 듣고 ‘그랬군요, 그랬구나, 나라도 그런 마음이 들었겠다’는 말을 많이 해요. 그러면 눈빛이 달라져요. 나도 그랬다는 한마디가 상대에게 정말 큰 위로가 되잖아요. 또 어떤 날은 제 고민을 말하고, 저를 위로해달라고 이야기해요. 늘 죄인이라고 비난받았던 사람들인데, 제가 괴로웠던 이야기를 하면서 위로해달라고 하면 놀라요. 자기도 누군가 위로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깨닫는 거예요. 저도 위로를 받고, 그분들도 치유가 되는 거예요.

 

무료로 이런 일을 계속하시는 이유가 있나요?


제 인생이 쓸모없다고 생각했던 시간이 길었어요. 경제적으로도 힘들었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는 너무 괴로워서 매일 죽음을 생각했어요. 그러다 자살 기도를 했는데, 운 좋게 깨어났어요. 그때 나처럼 아픈 사람을 위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신이 나를 이렇게 쓰기 위해 수련의 과정을 거치게 한 거 같아요. 지나간 시간이 쓸모없었던 게 아니라, 다 강의 소재가 되고 마음 아픈 이들을 위로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약이 되기도 하더라고요. 쓸모없는 것 같았던 제 인생이 보배롭게 느껴졌어요. 누군가에게 바라고 뭔가를 베풀면 실망하고 상처받는 일만 생겨요.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베풀었을 때 오는 만족감과 기쁨은 해본 사람만 알 수 있어요. 그리고 그분들은 제가 원하지 않아도 많은 걸 주세요. 힘든 일이 있을 때는 제 기도를 좀 해달라고 부탁해요. 그러면 교도소에 있는 400여 명의 재소자가 저를 위해 기도해 줘요. 제가 무슨 행사를 하면 가장 먼저 미혼모협회 가족들이 와 줘요.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제 일이라면 나서서 도와주세요. 제가 훨씬 받는 게 많아요.

 

책에 쓰인 다양한 방법을 실천하고, 사람들을 만나면서 작가님의 마음의 병은 많이 회복되었나요?


많이 좋아졌어요. 또 제가 괜찮아지니까 저보다 훨씬 상처가 많은 엄마도 많이 회복했어요. 한 가정에 한 사람만 살아나면, 가족 전체를 살릴 수 있어요.

 

어머니의 사례도 그렇고 ‘상처받고 울고 있는 어린아이’라는 말이 굉장히 많이 나옵니다. 어린 시절 상처 때문에 성인이 된 이후에도 고통받는 사람이 그렇게 많은가요?


유년 시절 상처가 우리 인생에서 많은 영향을 끼칩니다. 잘 살다가도 어느 날 툭 튀어나와서 오늘 내 삶을 망치는 경우가 많아요. 어린 시절에 부모가 싸우는 모습만 보고 자란 사람들은 사랑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어요. 싸우는 모습만 보고 화해하는 모습을 보지 못하고 자랐다면, 쉽게 화해할 수 있는 별거 아닌 문제인데도, 화해하지 못하고 쉽게 이별하는 경우가 많아요. 왜 나는 늘 나쁜 남자만 만나는 걸까, 나에게 무조건 잘해주는 남자를 못 만나는 걸까, 사랑은 변하고, 결국 싸우다 헤어지는 거구나, 어차피 헤어질 거라면 하루빨리 헤어지는 게 낫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거죠. 어릴 때 상처가 현재의 관계를 망치는 거죠. 

 

‘누구나 마음에 살고 있는 상처받은 아이를 어떻게 구제할 것인가’가 책이 이야기하는 핵심으로 느껴졌는데요.


그래서 저는 ‘셀프 치유 안내서’라는 이야기를 많이 해요. 돈이 없어서 상담을 못 받는 사람도 많아요. 정말 마음이 아플 땐 글 쓸 용기도 책을 들여다볼 용기도 나지 않잖아요. 상담 센터에 가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에요. 그런 사람들이 이 책을 읽으면 좋겠어요. 물론 약물치료가 필요한 분도 계시고, 지속적인 전문가 상담이 필요한 분도 계세요. 주변에 그런 분이 있다면 알아차리고 도움을 주는 방법도 책에 나와요.

 

어린 시절의 작가님이 이 책을 만난다면 어땠을까요?


그런 마음으로 이 책을 썼어요. 제게는 조언자가 한 명도 없었거든요. 누군가에게 아픔을 말하기도 싫었고요. 혼자 너무 오래 앓다 보니까 저 같은 사람이 눈에 띄면 빨리 손을 잡아주고, 이야기해주고 싶었던 것 같아요. 너무 많은 시행착오를 겪고, 둘러왔기 때문에 저의 실패담과 극복 과정을 읽으면서 많은 분이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주변을 둘러보고, 힘들어 보이는 사람들에게 치료 방법의 하나로 책을 선물할 수도 있겠네요. 책의 수익금을 교도소와 소년원, 미혼모 자녀에게 도서를 후원하는 데 쓰신다고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이 책은 마음 아픈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깨달은 것들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혼자 쓴 책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제가 모두 만날 수 없으니까 제 책을 통해서 아픈 마음들을 살리고 싶어요. 또 교도소나 소년원에 검정고시 책을 많이 사서 나누려고 해요. 공부를 통해 인생을 바꿀 수도 있잖아요. 교도소 학생 중에서 살인으로 들어오신 분이 퇴소하면서 선생님 감사하다고, 정말 선생님으로 생각한 유일한 한 사람이 저라고 말해 주셨어요. 그러면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괴롭히는 사람 있으면 이야기하라고 한 명만 죽여주겠다고 이야기하는 거예요. (웃음) 공감의 힘이라고 생각해요. 만약 제가 제 삶만 바라보면서 살았다면 지금 이런 행복을 얻지 못했을 거예요. 앞으로도 아픈 마음과 마음들이 함께 손을 잡고, 같이, 가치 있게 살아가고 싶어요.


 

 

마음아, 넌 누구니박상미 저 | 한국경제신문사(한경비피)
울고 싶을 때 울어야 하는 이유, 내가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방법 등, 나조차 몰랐던 나의 마음을 알게 되는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결국 닫힌 내 마음을 여는 용기를 얻게 된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진순 “시니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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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는 편집의 예술이다. 인터뷰어가 취사선택한 이야기들로 인터뷰는 완성된다. 누군가 질문하지 않으면 우리는 답을 들을 수 없는데, 사람들은 때때로 오해한다. 이야기가 절로 나오는 줄 알고. 『당신이 반짝이던 순간』은 2013년부터 2018년 8월까지, 6년간 <한겨레> 토요판에 ‘이진순의 열림’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된 122개의 인터뷰 가운데 12편을 묶은 인터뷰집이다. 이진순의 인터뷰가 책으로 묶인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 반가웠다. 신문으로 읽는 인터뷰와 책으로 묶인 인터뷰의 농도는 확연히 다르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제목을 듣고는 조금 놀랐다. 너무 서정적인 느낌의 제목이라서. 독자의 폭을 넓히기 위한 전략이겠구나 생각했는데, 12편의 인터뷰를 읽고 나니 이유를 금세 찾을 수 있었다.

 

이진순 풀뿌리정치실험실 ‘와글’ 대표는 ‘열림’ 연재를 마치며 <한겨레> 셀프 인터뷰를 했다. 기사를 읽다가 나는 하나의 문장을 발견했다. “누구든 80%는 소심하다가 아주 가끔 용감해지고, 80%는 이기적이다가 아주 가끔 이타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진순 인터뷰가 왜 많은 사람의 이목을 끌고 사랑을 받았을까의 해답이 여기에 있었다. 이진순은 어떤 사람도 완벽하지 않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대중이 보는 80%만 보지 않고, 눈여겨보지 않으면 눈치 채지 못하는 20%를 볼 줄 알았기에 어떤 이를 만나도 실망하지 않았고, 무작정 찬사만을 늘여 놓지 않았다.

 

이진순이 만난 122명은 “삶의 어느 길목에선가 자신의 가장 선량하고 아름다운 열망을 끄집어내 한순간 반짝 빛을 더하는 사람”(7쪽)이었다. 자신이 무엇을 했을 때 행복한지를 알고 그것을 몸으로 실천한 사람들, 그 중 12명의 이야기가 『당신이 반짝이던 순간』 에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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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탐구할 땐 시그널을 읽어야죠

 

언제 나올까, 기다린 책이었어요.

 

1년 전부터 준비하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작업이 길어졌어요. 책이 나올 무렵, 우연찮게 <한겨레> 연재를 끝내게 돼서 시원섭섭한 마음이 었었는데 그래도 책 때문에 위안이 좀 됐어요. 연재를 마무리하면서 책을 준비한 건 아니에요.

 

12명 인터뷰는 출판사에서 골랐다고 들었습니다.


제가 도저히 못 고르겠더라고요. 누구는 싣고 누구는 안 싣기가 어려우니 출판사에서 독자 입장을 고려해서 골라달라고 부탁 드렸죠.

 

2013년 6월에 시작해 올해 7월까지, 만 5년 2개월간 122명을 만났어요. 격주 연재였기 때문에 일정을 쫓아가기가 정말 힘들었을 것 같아요.


풀타임으로 일하는 느낌이었어요. 최소 4시간, 1박2일 인터뷰를 한 적도 있었고. 취재 노트만 17권, 녹취록은 라면 상자 네 박스가 나왔어요. 긴 시간을 내준 인터뷰이들에게도 감사하고, 6년간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취재에 동행해준 강재훈 사진기자, 매회 녹취를 성실히 풀어준 분들께 고마운 마음이 커요. 혼자서는 이 작업을 못했을 거예요.

 

전작 『듣도 보도 못한 정치』를 함께 펴낸 편집자와 또 작업하고 싶다고 먼저 제안하셨다고요.


『듣도 보도 못한 정치』가 조금 까다로운 구성이 필요한 책이었어요. 글 쓴 사람의 의도와 취지를 잘 공감해주시는 분이 작업해주시길 바랐는데 황은주 편집자님이 굉장히 꼼꼼한 분이라서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한겨레> 연재할 때, 팩트 체크에 신경을 많이 썼는데요. 정말 아무도 모를 거야 싶은 부분까지 체크했는데, 황은주 편집자님은 저보다 더 꼼꼼하게 확인해주시는 분이라 믿음이 갔어요. 글 쓰는 사람들이 흔히 그러듯 저도 제 문장을 고치는 걸 안 좋아하는데, 황 편집자님이 고치는 건 오히려 제 문장보다 좋더라고요. 이번에도 도움을 많이 받았죠.

 

제목은 어떻게 나왔나요?


책 기획 회의를 할 때, 어떤 마음으로 인터뷰를 했는지를 물으셨어요. 사람들을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 따져보니 답이 나오더라고요. 애당초 좌절을 딛고 입지전적 성공을 이룬 인물을 찾으려고 한 건 아니었어요. 누구나 그렇듯, 제가 인터뷰한 분들도 유약하고 소심한 보통 사람들이에요. 다만 좌절의 상흔과 일상의 너절함 속에서도 세상에 대한 낙관과 사람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분들이죠. 누구의 인생도 완벽하게 아름답지만은 않아요. 하지만 누구에게나 한방은 있죠. 모든 사람은 한순간 반짝인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처음엔 ‘당신의 순간’이라고 제목을 붙여볼까 하다가, 좀 밋밋한 것 같아서 서문에 나오는 문장을 갖고 왔어요.

 

책을 다 읽고 나니 자꾸 곱씹게 되는 제목이었어요.


평범한 사람들의 비범한 순간을 담고 싶었어요. 세상을 밝히는 건, 위대한 영웅들이 높이 치켜든 불멸의 횃불이 아니라, 크리스마스트리의 점멸등처럼 잠깐씩 켜지고 꺼지기를 반복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짧고 단속적인 반짝임이라고 생각해요.

 

김혜연, 이국종, 노태강, 임순례, 최현숙, 구수정, 이은재, 손아람, 장혜영, 윤석남, 황석영, 채현국. 열두 명의 공통점이 뭐가 있을까 생각해보았어요. 첫째는 자신이 무엇을 할 때 행복해지는 지를 아는 사람, 둘째는 자신이 미화되는 것을 꺼리는 사람, 셋째는 사회적감수성이 있는 사람이었어요.


인물 선정 기준이 무엇이었냐?는 질문을 듣곤 하는데요. 머릿속에 기준 같은 건 없었어요. 세상에 훌륭한 사람은 정말 많거든요. 그런데 만나보고 싶고, 말해보고 싶은 사람들이 누구였는지 돌이켜 생각해보면요. 사람을 희망으로 생각하고 사람을 위해서 살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 분들이었던 것 같아요. 제가 만난 사람들 중에 시니컬하거나 염세적인 분은 없었던 것 같거든요. 이국종 아주대 교수님도 말투만 보면 되게 시니컬하게 느껴지지만 다 거짓말이에요. 제가 맨날 “뻥 치지 마세요”라고 그래요. (웃음)

 

이국종 교수님이 하는 일들을 보면, 시니컬 한 사람일 수가 없죠. 말투는 까칠하더라도요. (웃음)


그래서 인터뷰하면서 자꾸 물어봤어요. 그동안 얻은 게 뭐냐고. 처음에는 삐딱하게 말하셨지만 결국 대답하셨죠. 동료들을 얻었다고. “바보처럼 순박하고 사심 없는 사람들을 얻었다”고. 겉으로 보이는 냉소적인 태도와 달리 마음속에는 사람에 대한 의리, 신뢰가 있는 분이셨어요.

 

다큐멘터리 작가 경험이 있기 때문일까요? 이국종 교수님 인터뷰는 한 편의 다큐, 단막극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어요. ‘(잠시 침묵)’ 같은 지문도 등장하고, 대답이 “……”인 것도 있어요.


녹취를 부탁할 때, 기침 소리, 한숨 소리 하나 빠뜨리지 말고 적어달라고 했어요. 물론 저도 계속 메모하면서 들었고요. 답이 없는 것도 제겐 대답이었거든요. 질문과 답변 사이의 텐션도 저는 인터뷰의 답으로 받아들였어요.

 

시그널도 대답으로 읽으신 거네요.


인터뷰는 큐엔에이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물론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 단일 이슈를 다루는 인터뷰는 질문과 답이 딱 떨어지겠지만요. 사람을 탐구하는 인터뷰에서는 시그널을 읽어야죠.

 

보통 100개의 질문을 준비하신다고요?


사전 준비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질문지를 보내 달라는 분들도 가끔 있었는데요. 개괄적인 질문은 보내주더라도 전체 질문지를 보내 주진 않았어요. 현장에서도 안 보여주려고 질문지를 손으로 숨기면서 했어요. (웃음)

 

그런데 첫 인터뷰 원고(윤종수 전 판사 편)는 담당 에디터에게 퇴짜를 맞으셨다고요. 초안만 세 번을 쓰셨다고 들었습니다.

 

그 때 주제가 저작권 공유 운동이었는데요. 저도 미디어를 전공했고 석사 논문은 저작권으로 썼기 때문에 질문이 너무 깊이 들어가는 거예요. 아마 그 분이 쓴 논문을 거의 다 읽었던 기억이 나는데요. 공부를 너무 많이 하고 만나서 인터뷰가 학술 토론이 돼버린 거죠. 너무 어렵다, 재미없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평가를 듣고 다 뒤집고 새로 썼어요. 원고 첫 문장을 “미련일까, 몽상일까”로 썼는데 맨 마지막 버전에서 나온 거예요. 나는 그냥 나의 에세이를 쓴다고 생각을 바꾼 다음에 나온 문장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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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자꾸 이런 질문만 할까?

 

에필로그에 12분의 인터뷰 후기가 실렸어요. 내가 이 책의 저자라면 울컥하지 않았을까 생각했어요.


출판사에서 서프라이즈 선물처럼 주신 글이에요. 신문 지면에 이미 나온 글이지만 보완을 많이 했거든요. 책이 나오기 전에 열두 분께 최종 원고를 보내 드렸는데, 몇 분께서 짧은 감상이 있는 인터뷰 후기를 보내주셨다고 하더라고요. 저한테 보낸 게 아니고 출판사 편집자가 받으신 거죠. 그런데 내용이 너무 좋아서 다른 분들께도 물어 보셨나 봐요. 짧은 소감을 써줄 수 있겠냐고, 그렇게 받은 글인데요. 솔직히 말하면 민망하고요. 창피하고요. 너무 감사했어요. 제가 그 분들에 대해 인터뷰 원고만 썼지, 그 분들이 저에 대해서 한 말들은 들어본 적이 없었으니까요. 기사가 나가고 연락을 주신 분도 있었지만 책에 대해 이야기해준 거랑은 다르니까요. 너무 감사하게 생각해요.

 

임순례 영화감독의 글이 기억나요. “인터뷰어는 인터뷰이를 무장해제해 내면의 소소한 말들을 밖으로 끄집어내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명확하고 구체적인 언어로 정리해내는 것이 핵심일 것이다. 나의 평범한 답변에 의미와 윤기를 넣어 아름답게 채색해준 이진순의 인터뷰는 역시 명불허전이었다.” 여기서 제가 밑줄 친 문장은 ‘명확하고 구체적인 언어’인데요. 사람들은 누군가가 자신을 정확하게 봐줄 때, 쾌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인터뷰가 나가고 간혹 “내가 이런 사람이라는 걸 처음 알았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사람들은 의외로 자기 자신을 잘 모르는 것 같기도 해요. 인터뷰라는 게, 인터뷰어를 통해 한 사람을 보는 거잖아요. 발견하고 싶은 부분, 발견 당하고 싶은 부분이 다를 수 있어요. 어떨 때는 이 사람은 왜 자꾸 이런 질문만 할까? 이해가 안 갈 거예요. 하지만 기사를 보면 아는 거죠. 인터뷰어가 왜 자꾸 이런 질문을 했는지.

 

황석영 작가는 “까맣고 잊고 있었던 내 숨겨진 과오들이 드러나는 고통과 자책도 느낄 수 있었다.”고 평하셨어요.


황 작가님 인터뷰는 즐기면서 했어요. 두 번에 걸쳐 진행했는데요. 아시겠지만, 글을 쓸 때 인터뷰이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다 쓰진 않잖아요. 더 내밀한 개인사도 있고 공개되기를 원치 않는 이야기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맥락상 필요한 이야기는 여쭤봐요. 안 쓸 테니까 이야기해달라고 하죠. 제가 무슨 특종을 하는 게 아니잖아요. 남들이 모르는 이야기를 하려는 게 아니라, 다만 어떤 삶의 경험들이 쌓여서 지금의 당신 같은 사람이 되었는가가 제가 궁금한 점이니까요. 좀 더 내밀한 부분도 이야기해달라고 요청하죠. 황석영 작가님 인터뷰의 마지막 문장은 오랫동안 생각한 문장이에요.

 

“황석영은 흠결이 적지 않다. 그러나 투명하다.”(285쪽)고 쓰셨습니다.


황 작가님은 위악적으로 표현하면 했지, 위선적인 걸 못 참는 분이에요. 골방에서 글을 쓰는 스타일이 아니죠. 작가로서 가장 큰 미덕은 늘 우리와 함께 있었다는 점이 아닐까 싶어요. 잘한 일도 있고 못한 것도 있지만, 언제나 시대를 외면하지 않은 작가. 도망가지 않으려고 한 작가의 의지가 얼마나 고마운 것인가. 제가 본 황석영 작가의 반짝이던 순간이죠.

 

윤석남 화가의 인터뷰도 기억에 남아요. 제목이 “핑크 소파를 박차고 나온 ‘우아한 미친년’”. 윤 화가는 “나의 이야기가 많은 여성들에게 힘을 주면 참 좋겠다.”고 후기를 보내오셨어요.


윤석남, 고은광순, 윤종수 선생님 같은 분은 살면서 점점 훌륭해지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자기가 무엇을 원하는지를 아는 사람. 윤석남 선생님은 화가로서의 명성이 아닌 작품하는 것 자체를 너무 좋아하시거든요. 내가 좋아서 미술을 한다는 거죠. 그런데 생활인으로서는 부족했던 부분, 며느리로서는 빵점이었다는 이야기까지 다 해주셔서 참 좋았죠.

 

인터뷰를 자주 당하는 사람들이 가장 곤혹스러운 순간은 ‘자신을 지나치게 미화할 때’인 것 같아요. 물론 미화해주길 원하는 분도 있지만요. 『당신이 반짝이던 순간』 이 제게 특별하게 읽힌 건, 한 사람, 한 시민으로 인터뷰이를 바라본 시선이었어요. 물론 인터뷰를 할만한 사람이 된 건, 조금 특별한 일을 했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찬사, 공로를 앞세워 인터뷰하지 않으셨어요.


제가 만난 122분을 떠올려보면요. “나를 좋게만 쓰지 말아달라”는 이야기를 하신 분이 많았어요. 이 분들이 과연 제게만 이 말을 했을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분들은 원래 그런 분들이니까요. 저는 이 이야기를 강조하고 싶었고요. 그 분들이 하는 말이 저는 이해가 돼요. 사람이 한 사람을 칭찬하거나 긍정적으로 묘사할 때, 아무런 문제가 없는 무오류의 사람이 과연 존재할까요? 처음부터 정의로웠고 불의를 참지 못한 사람이 있을까요? 저는 없다고 봐요. 누군가 나를 두고 정의로운 삶의 표본으로 그린다면, 얼마나 부담스럽겠어요. 자괴감이 들 수도 있고요.

 

스스로 원치 않을 거고요.


그렇죠. 그리고 인터뷰를 읽는 사람들은 어떨까요? “이 사람 진짜 대단하네, 나는 정말 이렇게는 못 살아”라고 생각하지 않을까요? 제가 강조하고 싶었던 부분은 이 사람들도 수없이 회의하고 소심해지고 때려 칠까 고민했다는 점이에요. 그 분들도 우리랑 별반 다르지 않은 사람인데, 어떤 대목에서 반짝이는 순간들이 있었던 거고요. 돌아보면 이렇게 그려낼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많겠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함부로 들으면 안되겠구나, 생각했죠.

 

이진순의 열림’ 시즌2가 기다려지는 데요.

 

체력이 달려서 못한다고 한 거예요. 그런데 그만두고 나니 ‘아, 이 분은 만나고 그만둘 걸 그랬나?’ 싶은 분들이 자꾸 보여요. (웃음) 친구들이 “너는 어떻게 그렇게 안 알려진 훌륭한 사람들을 격주로 찾아내냐?”고 묻곤 했는데, “잘 찾아보면 있어”라고 이야기했죠. 누구든 잘 찾아보면 찾을 수 있거든요. 기자들이 자주 물었어요. “막상 만나보고 나니 별로인 사람은 누구였냐?”고. 그런데 그렇게 생각한 사람이 없어요. 생각보다 이야기를 깊이 못해서 아쉬울 때는 있었지만, ‘훌륭해 보였는데 알고 보니 별로네’ 이런 생각을 한 적은 없었어요.

 

완벽할 거라는 기대를 안 하고 만나셨으니까요.


맞아요. 물론 방어막을 치는 사람들도 있었죠. 나도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는데 살짝 무시하는 느낌? 어리게 보는 느낌을 받은 적도 있고요. 약속 시간을 많이 늦은 분께는 그냥 물었어요. “왜 이렇게 늦으셨어요?” 대답을 듣고 쓸만한 이야기다 싶으면 쓰고 그렇지 않으면 안 썼죠. 인터뷰하는 동안은 대등한 위치에서 말하려고 했어요. 인격적으로 훌륭한 분, 따라갈 수 없는 그런 분을 만날 때도요.

 

‘내가 궁금한 것과 독자가 궁금해 하는 것 사이의 비율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제겐 가장 큰 숙제예요.


아. 저도 묻긴 다 물어요. 하지만 쓰는 이야기가 있고 안 쓰는 이야기가 있죠. 다만, 내가 이 사람에게 왜 이것이 궁금한 지를 독자들에게 알려주려고 해요. 이국종 교수님 같은 경우에는 뻔하게 따라붙는 연관 검색어 같은 키워드가 있단 말이에요. 저도 물론 여쭤 보긴 했어요. 하지만 기사를 쓸 땐, 일반적으로 궁금해 하는 이야기는 제 서술로 간단히 쓰죠. 자료를 찾는 와중에 궁금증이 해소되는 것들도 많으니까요. 이 사람을 분석한 후에 궁금한 것들, 그 점을 많이 물어보려고 했어요.

 

편견을 갖고 만났는데, 부끄러워진 기억은 없나요?


되게 많죠. 거의 다 그래요. 책에 실린 분들을 중심으로 이야기해보면 레즈비언 딸을 둔 엄마 이은재 씨 같은 경우는 인터뷰하러 갈 때만 해도 “나는 내 자식의 편을 들 수밖에 없다”는 모성애를 상상하고 갔는데요. 딸을 통해 자신의 인생을 더 많이 생각하게 됐다는 이야기를 듣고 많은 걸 느꼈죠. 노태강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의 경우에도 뭐랄까 굉장히 감정의 동요가 없는, 자기에게 부여하는 도덕성의 기준이 굉장히 엄격한, 삶의 기본 원칙이 확실한 분이셨어요. 대한민국 공무원이 이분만 같으면 너무 좋겠다고 생각해요.

 

평생 기억하고 싶은, 내 삶에 담고 싶은 말도 들었을 것 같아요.


인터뷰할 당시 제 문제, 관심사랑 관련이 있을 것 같아요. 2014년에는 너무 갑갑해서 어른을 만나고 싶어 채현국 선생님을 찾아간 거고요. 미투 열풍이 한창일 때는 안과 밖이 같은 작가를 만나고 싶어 윤흥길 작가님을 만났고요. 작년에 제가 방송문화진흥회 보궐이사로 선임되면서 이사진 내에서 벌어지는 혈전이 지긋지긋해서 글을 쓴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말이라면 너무 지치는 심정에서 이 현실과 다른 사람을 만나고 싶어 임순례 감독님을 만났어요. 감독님이 “별게 없는데 뭘로 이야기할 거냐”고 물으셨는데, “모든 일엔 다 이면이 있다”는 감독님의 말이 제게 중요한 키워드가 됐죠. 채현국 선생님을 생각하면 “정답은 없다. 무수한 해답만 있을 뿐. 옳고 그른 것을 따지는 게 생각이 아니”라는 이야기가 남죠.

 

최근 『어른이 되면』을 쓴 장혜영 다큐멘터리 감독이 책에 실린 가장 최연소 인터뷰이가 아닐까 싶어요.


나이는 어려도 삶의 밀도가 빡빡한 사람이 있어요. 삶에 대한 달관이라고 할까요. 절대적 시간과는 무관한 삶의 경험치가 있는 분들도 많이 만났어요. 손아람 작가님도 저보다 훨씬 젊은 분인데, 동년배 내지 선배의 이야기를 듣는 것 같았어요.

 

인터뷰어가 꼭 갖춰야 할 자질이 있다면 무얼까요? 잘 들어주는 태도는 빼고요.


상대방에 대해 궁금한 게 있어야죠. 진짜로 궁금한 것. 인터뷰는 아무 행담이나 나누는 시간이 아니잖아요. 정말 궁금하지 않으면 뻔한 질문만 할 수밖에 없어요. 내가 이 시점에서 이 사람에게 뭐가 궁금한 걸까, 어떤 이야기를 듣고 싶은지를 확실히 알아야죠.

 

122명과의 인터뷰를 통해, 사람 보는 눈이 달라졌을까요?


잘 모르겠어요. 다만 “너는 그럴 만해. 너는 다르잖아. 너는 원래 용감하잖아”같은 말이 잘못됐다는 건 알게 됐어요. <한겨레> 셀프 인터뷰를 하면서 제가 “누구든 80%는 소심하다가 아주 가끔 용감해지고, 80%는 이기적이다가 아주 가끔 이타적인 모습을 보인다”고 썼잖아요. 이 이야기가 그동안의 인터뷰를 통해 나온 생각이 아닐까 싶어요.

 

대화의 스킬은 늘었나요?


모르겠어요. (웃음) 말과 글이 익숙하지 않은 분들을 많이 만났는데요. 어눌하다고 세련된 스킬이 없다고 해서 깊이가 없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았어요. 일사천리로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짧고 뭉툭하게 말하는 사람이 있어요. 그런데 길게 대화하다 보면 언어 스킬과 무관한 엑기스가 느껴져요. 함부로 들으면 안되겠구나, 생각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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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현명함은 학벌과는 정말 무관하다

 

책을 읽으면서 나중에 내 아이가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이런 삶도 있다, 이런 사람도 있다’는 마음이 들어서요.


청소년들이 읽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제 딸이 중학교 3학년인데 엄마가 쓴 기사를 챙겨서 읽은 티를 내진 않았는데, 가끔 보면 읽은 것 같더라고요. 우리 딸이 읽어보고 특히 이해하지 못한 이야기는 없었던 것 같아요. 우리가 어릴 때 “훌륭한 사람이 되라”는 이야기를 많이 듣잖아요. 그런데 아이들이 생각하는 훌륭한 사람은 너무 멀리 있고 상상 속에서나 있으니, 그 사람과 비교하면 나는 너무 별 게 아닌 존재처럼 느껴지죠. 이 책을 읽고 그렇지 않다는 걸 알면 좋겠어요. 그리고 훌륭하다고 생각한 사람의 부족한 점을 봤다고 크게 실망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물론 제가 어느 정도 사전 검증이 된 사람을 만나서 하는 말일지도 몰라요.

 

어디에선가 이진순의 인터뷰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당분간 밤샘하는 일에서 자유롭고 싶다는 생각이 커요.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이 “안 쓰면 허전할 걸?”이라고 말하지만. (웃음) 글만 누가 써준다면 계속하고 싶어요. 기자들이 “기사만 안 쓰면 기자 하고 싶다”고 말하는 것과 같죠.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반면, 위대한 사람이 되길 꿈꾸는 사람이 있잖아요. 사람은 꼭 위대한 일을 해야 할까요? 좋은 사람과 위대한 사람은 다른 걸까요?


질문에 대한 답이 될진 모르겠는데요. 말 그대로 사람 좋고 착실하게 사는 사람과 세상의 없는 것을 새롭게 만드는 프런티어 역할을 하는 사람을 나눠 본다면, 그건 자기가 정하는 게 아닌 것 같아요. 그러니까 기질상, 어느 정도 타고나는 것 같아요. 황석영 작가님을 본다면, 그 분이 위대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걸까요? 선택한 걸까요? 저는 세상에는 각기 다른 성향의 사람들이 적당히 섞여 살기 때문에 조화가 이뤄진다고 생각해요. “나는 위대해지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요. 소위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 선봉장 역할을 해야겠다고 다짐하는 사람도 ‘기본만 해도 돼, 내가 꼭 나서야 해? 그런데 왜 아무도 안 하지? 나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싫어 죽겠는데’ 생각하면서 나서는 거라고 생각해요.

 

어떤 의미인지 알겠어요.


자기 존재의 의미를 찾는 방식이 다 다른 게 아닐까 생각해요. 주변의 권유, 어떤 지시에 의해 정해지는 게 아니라 결국 그 사람의 기질인 것 같아요. 인생은 정말 알 수 없죠. 선택을 하지 않으면 운명의 주사위 같은 게 뚝 떨어질 수도 있고요.

 

‘이진순의 열림’이었어요. 선생님은 무엇이 열렸나요?


세상에는 훌륭한 사람이 진짜로 많다는 생각? 진부한 것 같지만 사실이에요. 저는 평범한 보통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더 현명한 솔루션을 찾길 바라는 사람인데요. 제가 서울 태생이고 비교적 좋다는 대학을 나왔고 유학도 다녀왔어요. 주변 친구들도 비슷한 경우가 많고요. 제 경험적으로 자연적으로 개인적 차원에서 사람을 만날 수 있는 폭이 굉장히 좁은데, 인터뷰를 하면서 폭이 넓어졌어요. 그리고 인생의 현명함, 지혜로움은 학벌과는 무관하다는 걸 정말로 실감했어요. 지식인, 전문가주의는 정말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들은 책무가 더 강할 뿐이에요.

 

선생님의 본업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물을 게요. 비영리공익재단 풀뿌리정치실험실 ‘와글’은 ‘와글와글한 군중의 힘으로 만들어가는 더 나은 민주주의’라는 모토가 있잖아요. 올해 어떤 활동을 했는지, 하실 계획인지 궁금합니다.


‘와글’은 개방, 공유, 연결이 중요 키워드예요. 청년층이 정치적으로 과소 대표되고 있다고 생각해요. 2030세대들이 좀 더 많은 사회적 참여, 발언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해요. 그런 맥락에서 청년리더십캠프, 청년평화캠프 등을 기획해 청년들이 주체적인 정치감수성을 갖고 발언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어요. 정치 분야에서 가장 뒤떨어진 게 디지털이에요. 기술적으로 못하는 게 아니라 하려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에요. 시민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의사결정할 수 있는 플랫폼이 필요해요. 지금은 수평적 네트워킹이 가능한 시대잖아요. 정치적인 영역도 빨리 따라 가야죠.
 


 

 

당신이 반짝이던 순간이진순 저 | 문학동네
평범한 “삶의 어느 길목에선가 자신의 가장 선량하고 아름다운 열망을 끄집어내 한순간 반짝 빛을 더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커버 스토리] 윤종신, 노래로 이야기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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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언, 단언, 규정을 싫어하는 윤종신이 딱 하나는 단정했다. “나는 가사로 말하는 사람이다.” 『계절은 너에게 배웠어』가 ‘작사가’ 윤종신에게 초점이 맞춰진 건, 어쩌면 매우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1990년 015B 「텅빈 거리에서」로 데뷔, 지금은 <월간 윤종신>이라는 독특한 플랫폼을 만들어가는 프로듀서이자 싱어송라이터, 방송인. 30년 가까이 400여 곡을 쓰면서 윤종신은 깨달았다. 대중(大衆)은 대중(大衆)이 아니고, 보편적 감성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변하지 않는 건 오직 ‘이야기’. 그래서 윤종신은 여전히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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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는 이야기

 

사람들이 묻더라. “윤종신의 첫 책이 맞냐”고. 당연히 진작에 책을 썼을 거라 생각하더라.

 

종종 제안을 받긴 했지만 선뜻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다 재작년쯤 <월간 윤종신> 때문에 가사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됐다. 평소 ‘나는 가사로 말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가사는 축약을 많이 해야 하는 작업이니까 긴 이야기를 할 기회가 없었다. 가사에 관한 기법이나 기능적인 이야기보다는 ‘평소 이런 삶의 태도, 생각을 갖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노래로 옮겨진다’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다.

 

예약 판매 글이 올라가자 한 팬이 이렇게 썼더라. “정말 못하는 게 무엇?”


이 책은 <월간 윤종신> 편집팀의 공이 가장 크다. 그동안 쓰인 일련의 글들이 많이 채집됐다. 나는 메모가 생활화된 사람이라서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자주 전달하곤 한다. 한번에 툭툭 떠오르는 단상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이 휘발성 있는 이야기들이 나중엔 중요한 주축이 되는 경우가 많다.

 

제목은 어떻게 정해졌나?


초고 제목은 ‘노래는 이야기’였다. 내 카카오톡 프로필 문구이기도 한데, 나는 기본적으로 노래는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음악도 이야기, 영화도 이야기, 엔터테인먼트는 이야기 업계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만큼 내게 이야기는 중요한데, 이야기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하게 쓰이는 것 중 하나가 계절이다. 계절이라는 시간적 흐름에 따라서 변하는 감정이 많아, 계절 때문에 탄생한 곡이 꽤 많다.

 

‘9월(月)’이란 곡이 있을 만큼, 9월을 좋아한다.


9월은 여름과 가을, 두 계절이 다 있는 달이다. 가을인 것 같지만 가을이 아닌 오묘한 달. 묘한 기대감이 있는, 생각하기 좋은 계절이다. 왠지 모르게 의욕적으로 변하는 달이기도 하다.

 

그간 작사한 400여 곡 중에 40곡을 선별했다.


일단 떠오르는 이야기부터 쓰기 시작했다. 쓰고 싶었던 노래가 더 많았지만 조금 쳐냈다. 이 정도면 ‘내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살아왔구나, 곡을 썼구나’를 이해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책을 읽으면서 노래를 듣다 보니 진도가 정말 안나가더라. 계속 노래만 듣고 싶은 생각도 들고. 이 글을 쓸 수 있었던 건 노래가 있었기 때문이니까. 노래를 들으며 읽어야 제맛이 느껴지는 책이 아닐까?

 

예상하는 독자가 있나? 일단 윤종신의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읽을 테고, 가사를 쓰고 싶어 하는 작사가 지망생도 관심을 기울일 만한 책인데.

 

특정한 대상을 생각하진 않았다. 노래를 쓸 때나 글을 쓸 때나, 내 생각을 받아주는 사람들의 폭을 좁히지 않으려고 한다. 콘서트에 가면 의외로 중학생, 고등학생도 있고 60대, 70대 어르신도 있다. 노래를 듣고 책을 읽는 사람에게 ‘이렇게 들어야 한다, 이렇게 읽어야 한다’고 말하는 건 우스운 이야기인 것 같다. 창작자는 창작물을 만드는 일에서 그치는 게 가장 현명하다. 독자의 생각, 상상할 수 있는 여지를 통제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책을 쓴 작가에게 “이런 의도로 쓰셨나요?”라고 묻는 것도 내겐 이상하고, 자연스럽게 답을 하는 작가도 이상하다. “나는 이런 의도로 썼지만 당신이 그렇게 느끼지 않아도 됩니다”가 내 답이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열린 결말을 좋아한다.

 


나이가 들어 보이는 것들

 

윤종신이 만든 노래에는 흔히 대중가요에는 쉽게 쓰이지 않는 단어, 문장이 많이 등장한다. 그래서 가사에 더 귀를 기울이곤 한다.

 

좋은 가사란 구체적이면서도 구체적이지 않은 가사다. 듣는 이가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나갈 수 있도록 충분히 구체적이되, 사람마다 각기 다른 그림을 상상할 수 있는 적당한 여백이 있는 가사가 좋은 곡을 만든다. 영화든 문학이든 미술이든 음악이든 상상력을 자극하는 작품이 좋다. 듣는 사람 각자가 자기만의 상상을 더할 수 있는 가사, 타인의 이야기로 그치는 게 아니라 내 이야기로 확장될 수 있는 가사여야 공감을 얻을 수 있다.

 

요즘 쓴 가사를 더 좋아한다고.

 

과거에는 주로 사랑과 이별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요즘은 삶에 대한 생각과 가치관을 담게 된다. 그동안의 시행착오와 경험이 자연스럽게 묻어나면서 좀 더 내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사랑, 이별 노래를 많이 쓴다. 이 감성을 어떻게 유지하나?

 

꼭 사랑해야만 사랑 노래를 만들 수 있고 이별해야만 이별 노래를 만들 수 있는 건 아니다. 20~30대가 더 유리한 측면이 분명 있지만, 오히려 50대가 되고 나니 보이는 감정들이 있다. 「이별톡」 같은 경우에는 내가 20대였으면 못 썼을 가사다. 3인칭으로 쓸 수 있는 나이가 있는 것 같다.

 

나이, 고요, 탈진, 환생, 야경, 부디, 세로, 배웅 등 두 글자 곡이 특히 많다.

 

기본적으로 길게 늘이는 것보다 축약하는 걸 잘하고 좋아한다. 서술형 제목보다는 짧은 단어를 더 선호하는 편이다. 딱 맞는 단어를 찾았다면 굳이 수식어를 넣을 필요가 없다.

 

“작정하고 쓴 가사가 있다”는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말꼬리」가 그런 곡이라고.

 

극단적인 인물에 처절한 사건과 슬픈 배경, 이 노래는 정말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 작정하고 머리를 굴려 쓴 곡이다. 발라드는 일부러 찾아 듣는 경우가 많다. 아예 바닥을 쳐야겠다는 생각으로 혹은 좀 더 우울해지고 싶거나 슬픔을 즐기려는 마음을 먹고. 흔히 발라드는 흘려 듣는 노래라고 생각하지만, 확실한 목적을 갖고 들을 때가 많다. 이미 울 준비를 하고 듣기 때문에 흔하고 뻔한 이별 노래에 가슴 아파하고 무너져내린다.

 

“설득하고 선동하는 가사는 결코 좋은 가사가 될 수 없다”(122쪽)고도 했다.

 

좋은 가사는 이래야 한다는 법칙 같은 건 없지만, 간혹 의문을 갖게 하는 미심쩍은 가사를 들으면 어김없이 확신이 찬 주장이 들어 있다. 작사가는 어떤 장면도 담담히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

 

더 선호하는 방법이 있다면?

 

평소 짧게 메모했던 것들이 곡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메모를 했다는 건 순간적으로 떠올랐다는 거니까 아무래도 더 직관적이지 않을까? 멍하니 있을 때보단 어떤 상황에 처해 있을 때 생각은 떠오르니까.

 

윤종신에게는 유독 남성 팬이 많다. 가사 때문일까?

 

아무래도 그렇지 않을까. “이거 정말 내 이야기 같았다” “내 마음이 딱 이랬다”는 남성들의 피드백을 받을 때가 많다. 심지어 화자가 여성인 가사도 여성들보다 남성들이 훨씬 더 좋아해준다. 내가 남성이기 때문에 결국에는 남성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어쩌면 내 노래는 남성이 쓴 남성의 판타지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말끝마다 ‘생각한다’라는 말을 붙인다. 버릇인가?

 

단정 짓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옳다, 그르다’를 판단하는 것도 썩 내켜 하지 않는 편이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살아가는 것일 뿐이지 판단을 하는 게 아니니까. 곡을 쓰는 것도 일종의 나와 마음이 맞는 사람끼리 공유하는 정도인데, ‘이렇다 저렇다’하고 단정 지어버리면 수습하기 어려워지는 것 같다. 생각은 언젠가 변하기 마련이니까. 그런데 책은 잘 안 변하니까, 인쇄돼 나오면 끝이니까 조금 낯선 기분이 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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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지 않는 것들에 관심이 간다


2010년부터 <월간 윤종신> 프로젝트를 시작해 8주년을 맞았고, 얼마 전 100호 「MR.REAL」(8월 호)을 발표했다. 매달 한 곡을 발표하는 행보, 쉽지 않을 텐데.

 

8년이라는 시간을 거치면서 지금은 안정적인 프로세스가 만들어져 그다지 힘들지 않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하고 싶은 음악을 마음껏 할 수 있으니까 오히려 내겐 힘이 되고 있다.

 

<행보 2017 윤종신>의 수록곡 「BIRDMAN」은 영화 <버드맨>을 모티프로 만든 노래다. 가수 윤종신이 직접 화자로 등장해 이야기를 풀어나간 노래다. 여기 이런 가사가 있다. “덜 익은 그때가 좋대.” 대중이 좋아하는 나와 내가 좋아하는 내 모습이 충돌할 때 겪는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

 

나는 일찌감치 포기했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움직였으면 좋겠다는 것’에 대해.(웃음) 내가 원하는대로 행동했는데 누군가가 그 행동을 좋아하면 기쁜 일이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괜찮다. 뭔가 의도가 들어가면 반응이 덜할 수밖에 없다는 걸 이제는 안다. 어쩌면 대중이라는 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 같기도 하다. 대중은 하나로 일컬을 수 없는 대상이고, 각자의 취향이 세분화되어 있기 때문에 어떤 것이 보편적인 감성이라고 말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갔다고 생각한다.

 

미스틱엔터테인먼트에서 프로듀서 역할을 하고 있다. 창작자로서 재능 있는 사람을 발견하는 재미, 보람도 클 것 같다.


7년 정도 해본 결과, 발견하는 일까지는 좋은데 육성에는 내가 재능이 없는 것 같다. 육성은 밀착된 매니지먼트 관점에서 해주는 게 맞다. 아티스트 본인이 느껴야 하는데, 누군가가 입혀주는 옷을 자꾸 입어버리면 성공할 수도 있지만, 그 성공이 길게 가긴 어려운 것 같다. 사람은 또 인형이 아니니까, 유동성이 많아서 어려운 부분도 적지 않다. 지금 프로듀싱에는 한발 물러섰고 전체 기획만 보고 있다. 사람을 다루는 건 생각보다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나는 변하지 않는 것들에 관심이 많다.

 

변하지 않는 것이라면?


모든 건 이야기, 라는 사실. 나는 스토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도 이야기다. 아이스크림이 하나 출시돼도 이야기를 부여해야 하지 않나. 인공지능시대에서 가장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건, 이야기꾼이라고 생각한다. 이젠 정말 구라쟁이들의 시대가 왔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다.

 

JTBC <방구석1열>에 출연 중인데, 영화 이야기를 할 때 굉장히 몰입하더라.


영화를 다시 보는 걸 좋아한다. 확실히 나이에 따라 다가오는 게 다른 것 같다. 20대 때 <박하사탕>을 봤을 때는 굉장히 불편했는데, 50대가 되어 다시 보니 영화의 깊이가 이제야 느껴지더라. 시나리오를 써보고 싶은 생각이 있어서, 얼마 전 한 감독님과 수업 같은 술자리를 했는데, 내가 작품을 쓴다면 글이 많이 없을 것 같다고 하더라. 나는 그림 위주로 떠오르는 시나리오가 좋은 것 같다. 아마도 내가 시나리오를 쓴다면 콘티에 가까운 글이 나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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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떠올리기, 거창하게 선언하지 않기

 

일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때는 언제인가?


샤워할 때랑 등산할 때. 샤워하는 짧은 순간에 아이디어가 많이 떠오른다. 혼자 등산할 때도 좋은데, 땀을 뻘뻘 흘리면서 동료들한테 전화할 때가 많다. “이 생각 어때?”하고.

 

1년 전 한 인터뷰에서 “나는 아버지이기 때문에 무슨 일이든 흐르듯 지나가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어떤 일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사람은 매일 수밖에 없다. 언제나 기대치를 내려 놓으면 기대 이상의 생각들이 나온다. 그래서 자꾸 힘을 빼려고 노력한다. 나는 정체성이라는 이야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딱 규정되는 순간, 내가 죽는 순간인 것 같다. 관점은 다양하게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유한 줏대, 탄력적인 마음이 중요하다. 이렇게 꼭 가야 하는 건, 없다.

 

대중과 오래 호흡하기 위해서 가져야 할 태도는 무얼까?


꾸준함, 이게 첫째다. 창작자라면 창작물을 던지고 끝내야 맞다. 성공, 실패에 대한 강박을 버려야지 꾸준히 할 수 있다. 또 하나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떠올리는 태도. 거창하게 선언하지 않고 그냥 쓱 빠져나가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한다. 가끔 은퇴를 선언하고 절필을 선언하는 사람을 보면 걱정된다. 아니, 나중에 또 하고 싶어지면 어쩌라고 그러지?

 

<월간 윤종신>은 언제까지 이어질까?


글쎄, 힘들면 그만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도 8년이라는 시간을 보낸 프로젝트니까 그칠 때는 ‘조금 쉴게요’라고 말은 해야 할 것 같다.

 

마침표가 아닌 쉼표의 의미인가?


쉼표를 찍었으면 안 하게 될 확률이 높지 않을까?

 

이방인으로 1년 살아 보기는 언제쯤 실행할 계획인가?


애초의 계획은 내년이었는데, 내년까지 이어질 프로젝트가 많아서 일단 내후년, 아니면 그 이후를 생각하고 있다. 이건 처음으로 선언할 거다. 아내에게도 이미 허락을 받았고.

 

라익, 라임, 라오. 세 아이들이 보고 싶을 것 같은데.


보고 싶은 감정도 느껴봐야지.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균형감각’인데, 오늘 나눈 이야기에서 많이 느껴졌다.


「Do It Now」라는 곡에 ‘시행착오 당연히 있을 수 있어. 그래도 안 한 것보다 나아’라는 가사가 나온다. 나 역시 그동안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정말 중요한 건 먼 훗날의 내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나인 것 같다. 「좋니」가 잘되고 나서 사람들이 그런 노래를 계속 만들어보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나이도 있으니까 괜한 체력 낭비 말고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걸 하라고. 하지만 난 그러고 싶진 않다. 남들이 좋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내가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 내가 그때그때 가장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하고 싶다. 내가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너는 너대로 살고 나는 나대로 사는데, 네가 살아가는 모습이 참 보기 좋다”는 말이다. “잘 됐, 안 됐어”가 아닌.

 

윤종신의 열린 결말이 궁금하다.


나도 또렷이 예상되지 않는다. (웃음) 다만 말할 수 있는 건, 이 책이 윤종신이라는 사람의 결론은 아니라는 것, 끝까지 창작자로 살고 싶다는 것.


윤종신_ 1990년에 발표된 O15B의 '텅 빈 거리에서'에 객원 가수로 참여하면서 가요계에 데뷔. 1991년 솔로 1집 앨범 <처음 만날 때처럼>을 발표하면서 이름을 알렸고, 이후로 거의 매 년마다 새로운 앨범을 발표하는 행보를 보였다. 가수뿐만 아니라 프로듀서로서 국내 최정상급 가수들과 작업을 해오고 있으며, 2010년부터는 <월간 윤종신>이라는 이름으로 매월 디지털 싱글 음원을 발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계절은 너에게 배웠어윤종신 저 | 문학동네
사랑과 이별에 관한 윤종신 특유의 섬세한 가사를 둘러싼 그의 생각들을 엿볼 수 있다. 일기 쓰듯 가사를 써온 작사가의 인상적인 작사노트로써 하나의 가사가 탄생하기까지의 과정을 따라가볼 수 있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조한혜정 “청년들에게 손해배상을 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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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이곳은 일찌감치 망한 나라(선망국, 先亡國). ‘이게 나라냐’라는 외침에 휩싸였던 곳.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시간 속에서 서구 언론과 지식인들은 희망을 발견한 듯 보였다. “현 시대의 모순을 누구보다 첨예하게 느끼고 움직이기 시작한 한국 시민들에게 기대를 걸어본다”는 것이었다. 과연 한국은 ‘망함’의 시기를 극복함으로서 선망하는 나라(선망국, 羨望國)가 될 수 있을까. 문화인류학자 조한혜정은 쉽게 낙관하는 대신 확실한 진단을 내린다. 세상이 계속 좋아질 것을 믿는 근대 문명은 수명을 다했고 지금 우리는 전환의 시기를 살고 있다는 것, 우리 모두가 “마음속 깊이 다른 시간대로의 이동을 간절히 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선망국의 시간』은 대전환의 시기에 우리 앞에 놓인 문제들과 다가올 시간에 대해 성찰한다. 인류학자로서 시대의 흐름을 읽으면서 대안교육, 마을살이, 청년문제와 관련해 대안적 공론의 장과 실천적 담론을 만들어 온 조한혜정 연세대 명예교수의 통찰과 지혜가 담겼다. 지난 4년간 한국사회를 뜨겁게 달군 사건들을 지켜보면서 <한겨레신문>에 연재했던 칼럼을 비롯해 인터뷰와 강연록, 대담을 모았다.

 

“그간 오로지 부강한 나라가 되기 위해 통합을 강조하며 달려온 ‘국민’이 다양성을 인정하고 연대하는 시민이 되어야 한다고” 저자는 확고한 목소리로 말한다. 선망국(先亡國)의 사람들은 “‘위’의 역사가 만들어낸 주체로서” 단일성과 통합성을 강조해 왔으며, 이들 ‘착한 국민’은 2016년 광화문 광장에서 ‘지혜로운 시민’으로 태어났다는 것. 분명한 사실은, 우리가 건너갈 시간 속에는 “‘아래’로부터 만들어진 주체”로서의 시민과 그들이 가진 다양성과 연대가 자리할 거라는 사실이다. 그러한 바람으로, 저자는 “자신을 돌보기 시작한 시민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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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고르기의 시간이 필요한 때


‘선망국’이라는 말은 이중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먼저 망한 나라(先亡國)’, ‘선망하는 나라(羨望國)’가 그것인데요. ‘먼저 망한 나라’라고 보시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럴 수밖에 없는 조건이잖아요. 일제의 식민지를 겪었고, 그 후에 한국전쟁까지 겪었어요. 일본만 해도 전쟁을 겪은 후의 시간이 서양하고 동시대성으로 가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6.25 때문에 10년 늦어졌고, 그것도 아주 강압적인 형태의 군사독재적인 경제발전을 짧은 시간에 했어요. 그러면서 극단적인 불균형 발전이 됐고 ‘먹고 살면 된다, 강한 나라가 돼야 한다’는 식으로 끊임없이 외부에 목적을 정해놓고 자신을 돌보지 않고 달렸죠. 한편에서는 민주적이고 근대적인 이상향을 갖고 있던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싸우면서 87항쟁을 했고요. 민주화도 굉장히 짧은 시간 내에 한 건데, 그것도 구조라는 거대한 차원에서의 민주화죠. 정말 구성원들이 민주적으로 시민 혁명을 수행할 수 있었던 조건은 아니었잖아요. 사람들이 죽어가는 상황에서 싸워야했을 때는 작은 목소리들은 그냥 잠잠하라고 말했던 거죠.

 

요즘 우리사회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보시면서 ‘선망국(先亡國)’의 징후를 감지하기도 하세요?


현 상태를 보면 사람들이 너무 괴로운 상황인 거잖아요. 우리가 여성 혐오를 계속 이야기하는데 미소지니(misogyny)의 여성 혐오와 달리 우리 사회는 혐오 사회가 된 거죠. 제 생각에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들어설 때부터 굉장한 냉소와 자포자기 같은 것들이 있었는데 그걸 넘어서서 굉장한 혐오와 적대가 일어나는 것 같아요. 선망국(先亡國)이라고 말할 때, 최근 벌어지고 있는 남녀 간의 전쟁이나 기후 변화 문제를 사례로 들 수 있을 텐데요.

 

여성 혐오와 관련된 부분은 어떤 건가요?


며칠 전에 미국에 다녀왔는데 남녀문제와 관련해서 사람들을 만났어요. 미국에도 여성 혐오가 분명히 있어요. 어떤 한 대상을 항상 자기 밑에 놓고 지배하고 싶어 하고, 특히 여자는 자기들을 위해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경우에 그렇게 되죠. 여자에 대한 혐오, 약자에 대한 혐오는 약간 나치적인 경향을 가진 극우 남자들만의 조직에서는 있어요. 그런데 그렇게 여자를 미워하는 마음은 아니거든요. 대부분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는 인종문제가 먼저예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여자를 미워하는 식으로 가고 있죠. 예민 난민 이슈와 관련해서는 난민들이 우리 여자들을 강간할 지도 모른다고 하면서 또 다른 혐오로 가고요. 혐오의 관념이 너무 심하게 돼있는 상태잖아요. 왜 여성을 혐오하느냐, 그에 대한 설명은 굉장히 간단하죠. 우리가 마지막 냉전국가니까, 그리고 남자가 군대를 간다는 이유 하나로 그걸 보상하라는 논리가 이상하게 만들어지면서 그렇게 흘러간 거죠. 굉장히 어리석은 방향을 선택한 거예요.

 

그렇지만 ‘선망하는 나라’가 될 가능성이 있을까요?


결국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건 우리가 국민에서 시민, 시민에서 난민이 됐다는 거거든요. 우리 모두가 난민이라는 걸 인정하자는 거예요. 기후 문제만 보더라도 이건 재난이고 우리는 난민이 된 거잖아요. 이런 시점에서 ‘조금만 어떻게 하면 되지 않을까?’라는 식의 사유를 아예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조급하게 굴다가 더 망가뜨리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근본적으로 문제를 잡아야 되는 거니까요. 그런 맥락에서 ‘시간’이라는 단어를 넣은 거죠. 선망국이냐 아니냐는 식의 이야기에 시간을 많이 쏟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근대적인 시간을 넘어서 정말 다른 시간으로 이동할 수 있는 숨고르기와 최소한의 여유가 필요한데, 그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느냐가 중요한 거죠.

 

<한겨레신문>에 연재하셨던 칼럼도 다수 실려 있어요.


칼럼을 쓸 때, 특히 세월호 이후에는 계속 우울해졌어요. 그래서 ‘우울해지지 않고 이 시간을 그대로 살아내는 방식이 무엇일까’ 생각했고요. 그러니까 글 쓰는 시간 자체가 기도하고 명상하는 시간이 된 건데, 그러면서 나 자신도 견디게 됐고 칼럼도 계속 쓸 수 있었어요. ‘그만 써야지’라는 생각도 했었거든요.

 

글쓰기가 괴로운 순간도 있었던 것 같아요. “진리를 말하려는 행위 자체가 무모하게 느껴지는 시대”라고 쓰셨고, “더 이상 합리가 통하지 않는 세상에서 글 쓰는 괴로움”을 토로하기도 하셨는데요.


사안 사안마다 해결될 수가 없는 거라는 걸 느끼는 거죠. 우리가 ‘청년일자리’라고 이야기하는 것도, 이게 일자리라는 개념으로 풀릴 수가 없는 거거든요. 기본적으로 사유의 개념을 바꿔야 되는 거예요. 제가 계속 이야기하는 게 모든 것은 우리가 가진 공공재이기 때문에 시민배당을 줘야 된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런 게 하나도 들어가 있지 않은 형태로 국가의 정책이 굴러가고 있잖아요.

 

쓰는 행위가 공허하게 느껴지실 때도 있나요?


우리는 나라가 막 좋아지는 계몽주의 시대도 살았잖아요. 그런데 이제는 혐오와 가짜 뉴스가 더 판을 치는 세상인데, 글쓰기를 즐겁게 하기는 힘들죠. 탈계몽주의 시대에는, 정말 기도라든가 다른 어떤 게 있지 않은 한, 어떻게 글을 쓸 수 있겠어요. 그리고 ‘왜 문제를 풀지도 못하면서 어려운 소리나 하냐’고 지식인에 대한 적개심을 가진 사람들도 있고요. 최근에는 책을 세 페이지 이상 못 읽는다는 이야기도 나오잖아요. 그건 정말 이해가 돼요. 그만큼 바쁘니까 그런 거죠.

 


‘난민이 된 시민들’의 지혜를 빌려야


기본소득, 시민배당에 대한 이야기도 책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데요. 우리 사회에서 이 담론이 활성화되고 긍정적인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요? 회의적인 게 사실입니다.

 

그렇죠. 그런데 실제로는 그 방법밖에 없잖아요. 모든 사람한테 100만 원씩만 주면 자존감 구기지 않고 굉장히 생산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있다는 거예요. 안 되면 실험부터 시작하면 되거든요. 그런데 아무도 실험하지 않아요. 하면 다 줘야 된다고 생각하고요. 그러니까 엄두를 못 내는 거죠. 길게 10년을 두고 준비를 하면 되는 거잖아요. 누가 대통령이든 상관없이. 그런 식의 사유를 하지 않으면 먼저 망하는 나라가 될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단계적으로 뭔가를 하지는 않고 이상한 복지 체제를 만들어 가고 있어요. 청년 중에서도 어떤 사람한테만 준다고 조건을 달고요. 그래서 아무런 성과 없이 모든 돈이 낭비되면서 우리가 사회를 바로잡을 시간을 다 뺏기고 있는 거예요.

 

그렇지만 희망을 발견하실 때도 있겠죠?


그래도 모여서 책을 보는 사람들이 생기잖아요. 거기에 희망을 두는 거죠. 광화문에 나갔던 시민들이 자각을 해서 같이 모여서 밥을 먹고 ‘이게 삶이구나’ 생각하고 취미 활동도 하고. 그러느라 더 바빠져서 책을 안 본다고 하더라도 상관이 없다고 생각해요. 책을 같이 본다고 했을 때는 정말로 희망이 있는 거고요. 요즘에는 ‘엄마들의 페미니즘’ 같은 모임들도 생겼다고 하는데, 엄마들이 페미니스트가 되는 것과는 상관없이, 어떤 주제를 가지고 토론을 하면서 스산한 난민에서 시민이 되어간다고 생각해요. 내가 난민인데 다잡고 나서 시민이 되는 거죠. 지금은 정말 ‘난민이 된 시민들’의 지혜를 빌려야 될 때거든요.

 

국가 주도적으로 끌고 갈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말씀이시군요.


얼마 전에 <민들레>에서 본 건데 ‘우리에게 필요한 건 즐거운 놀이터, 안전한 피난처다’라는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뭐든지 실험할 수 있는 즐거운 놀이터와 정말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피난처에서 뭔가 새로운 게 나올 수 있는 거죠. 그걸 하기 위한 시민배당을 줘야 이 사회가 사는 거예요. 지금은 국가가 할 수 있는 건 절대로 아니라는 거고요. 국가주의적인, 선진국이라는 시간 속에 있는 한 이 문제는 풀 수 없는 거예요. 문명이라는 게 흥망성쇠 하는 건데 지금은 그 곡선이 내려가고 있는 거잖아요. 그게 다시 오를 때 난민적인 시민들이 주역이 된다는 거예요. 그 사람들은 지금 자기 삶을 들여다보면서 생각하고 있죠. 스스로 상호부조 하는 관계를 맺으면서 ‘내가 누구인지, 그 동안 내가 어떤 짓을 했는지’부터 시작해서 ‘다음 단계로 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라는 질문까지, 근본적으로 다른 방향을 생각할 수 있게 되는 거예요. 그런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야만 나라가 다시 살 수 있는 거죠.

 

청년배당의 경우에는 성남시에서 실시한 바 있는데요. 작가님과는 조금 다른 시각으로 접근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어떤가요?


굉장히 좋은 실험이라고 생각하고, 그런 실험을 곳곳에서 다 했으면 좋겠어요. 기본소득을 연구하시는 강남훈 선생님이라고 계신데, 그 분과 성남시가 같이 많이 연구해서 실시한 정책이었어요. 그런데 지원 금액이 너무 적었죠. 제가 이야기하는 건 열심히 노동하면 기본적인 생계가 해결될 수 있는 정도가 돼야 한다는 거예요. 지금 서울시에서도 그런 걸 많이 하는데, 진짜 제대로 된 전문가와 관과 당사자가 모여서 의논을 하면서 가줘야 돼요. 그렇게 안 하고 관은 관대로 주도를 하고 결정을 해버리니까 낭비가 되는 거죠. 그리고 장단기적으로 실험을 해야 되는데, 돈을 확 풀어서 빨리 써야 된다고 다 쓰면서 낭비를 하잖아요. 이런 지점이 그야말로 선망국(先亡國)의 특징적인 일의 방식이에요. 지금 문재인 정부도 관료행정을 단순화시켜야 돼요.

 

자세하게 말씀해주신다면요?


국가는 시장을 일정하게 견제하면서 모든 사람이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를 만드는 거잖아요. 그런데 그게 관료체제화 돼버려서 아무도 뭘 할 수가 없는 상태가 되어 있어요. 그 지점을 바꾸지 않으면 문재인 정권이 할 수 있는 건 없어요. 계속 소득주도다 뭐다 해서 머릿속에 갖고 있는 어떤 걸 실현해 보려고 하는데요. 지금 시민들이 난민화 되고 세계화(globalize)되고 인터넷에서는 남녀가 대립하고 있는 상황인데, 과연 50대가 된 세대 중에서 몇 명이나 이런 현실을 인식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그런 사람이 아니면 정책을 할 수가 없는 거잖아요. 문제를 제기하면 와서 듣고 같이 의논해서 빨리 해결방법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한데, 사회가 너무 빨리 변해서 무지하고 무능하거든요. 그런 지점에서 난민화 된 시민들의 힘을 빌려야 된다는 거예요.

 

그런 시민들을 위해서 기본소득 제도가 필요하고요.


난민화 된 시민이 진짜 시민이 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안전망이 있어야 되는 거죠. 기본소득이라든가 집이라든가, 적어도 모여서 살고 잠이라도 제대로 잘 수 있게 해야 되는 거예요. 그게 아니고 계속 프로젝트를 하라고 하니까, 사실 빈집 같은 게 굉장히 많아도 아무런 일이 안 일어나잖아요.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는 장소가 되지 못하고 있는 거거든요. 계속 낭비되는 공간인 거죠. 뭔가 하는 척을 계속 하지만 낭비되는 공간인 거예요.

 


청년들에게 손해배상을 해줘야 한다


청년배당과 관련해서 “지원이라기보다는 청년들에게 손해배상을 해줘야 한다는 차원”이라고 하셨어요.


시민배당 이야기를 하면 ‘그 많은 사람한테 어떻게 주느냐’라고 하니까, 계속 단계별로 하자고 이야기하는 건데요. 실제로 60, 70대 분들도 정말 고생 많이 하셨죠. 그런데 우리 사회가 누구한테도 고생 많이 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없어요. 그렇지만 청년들이 희망을 가지고 살아야지, 어쨌든 우리는 그 사회를 만든 책임도 있는 세대인 거죠. 그리고 저는 이렇게 시대착오적인 입시교육을 시킨 것에 대해서는 당연히 손해배상을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실제로 대학에서 수업을 진행하시면서 청년들과 만나고 계시잖아요. 기성세대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이나 울분을 느끼는 청년들이 많다고 생각하세요?


우석훈 박사가 『88만원 세대』를 썼을 때는 꽤 있었죠. 이제 10년이 지났는데, 반대로 신자유주의에 자발적으로 편입하기로 한 친구들도 있는 것 같아요. 그 친구들은 자기계발서를 거의 성경처럼 읽었더라고요. 흔들릴 때마다 읽는 거예요. 그런 친구들은 그렇게 생각 안 하는 거죠.

 

‘나는 차별에 찬성합니다’라고 이야기하는 건가요?


‘내가 노력이 부족해서 그런 거다’라는 거죠. 지금 세대들은 그들과 또 다르게 생각하는 거예요. ‘계속해도 이게 아니구나’라는 건데, 구의역 사건이 굉장히 영향을 많이 미쳤을 것 같아요. 강남역 사건이 여성들을 각성시켰다면 구의역 사건을 계기로 청년들이 굉장히 각성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많이 달라지고 있는 거고요. 밑에서는 뭔가 달라지고 있겠죠. 이 책도 달라지고 있다고 믿고 싶어서 쓴 거고요(웃음).

 

‘교육의 전환’, ‘전환의 교육’과 관련해서 말씀하신 내용이 인상적이었어요. “‘아이의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는 자만이나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을 깨어나게 할 수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하며, 부모는 아이를 자신이 책임져야 할 존재로 여겨 불안과 공포 속에서 관리하려는 강박을 내려놓아야 한다”고 하셨죠.


그런 착각이 엄청난 불행을 몰고 온 거잖아요. 지금 입시교육이 안 바뀌는 이유도 그런 거죠. <민들레>에서 또 재밌게 본 내용이 있는데, 아이들이 밤에 한두 시간 유튜브를 보고 웹서핑을 하는 게 ‘유일하게 내가 스스로 선택해서 보는 시간’이라는 거예요. 학교에 가면 전부 타의적이잖아요. 그러니까 그 시간은 ‘나를 완전히 망가뜨리지는 않겠다는 자존을 유지하는 마지막 힘’이라고 하더라고요. 그게 어디로 가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나는 살아있는 사람이야’라는 걸 확인하고 싶어 하는 시간이라는 거죠. 아이들 나름대로 자기를 살리려고 어떤 시간을 확보하고 있는 건데, 그런 걸 엄마들도 조금 생각해야 될 것 같아요. 아이를 이미 난민으로 만들어버린 체제에서, 그 체제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면 안 되잖아요. 타이타닉이 계속 가라앉고 있는데, 그러면 빨리 배를 건져서 아이를 구제해야죠. 그렇게 해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야 하는 때인데, 지금은 계속 침몰하는 타이타닉 속으로 밀어 넣고 있다는 거예요.

 

“나는 좋은 사회란 사람들 얼굴에 화기가 돌고 홀아버지가 아이 하나를 잘 키워내는 사회라 생각한다”고 쓰셨습니다. 어떤 모습의 사회를 꿈꾸세요?


제가 계속 이야기하는 게 주민자치회관 같은 데를 그냥 오픈을 하라는 거예요. 주민들이 열쇠를 가지고 있으면서, 국 잘 끓이는 사람은 와서 국 끓이고 반찬 잘 만드는 사람은 와서 반찬 만들고 그러면 된다는 거죠. 그러면 집밥 좋아하는 청년들이 가서 배우고, 그 날은 거기에서 밥을 먹는 거죠. 홀아버지도 아무런 문제없이 아이랑 거기 가서 밥을 먹는 거예요. 정말 안전한 삶의 장소가 되는 거죠. 그러다 보면 거기가 놀이터도 되고 정보도 나누고 서로 취직도 할 수 있는 거고요. 그때의 취직이라는 게 ‘일자리’가 아니고 ‘일거리’가 많이 생기는 거죠. 밥 먹을 데가 있고 잘 데가 있고, 그렇게 주거 문제가 잘 해결되면 굉장히 좋은 시민이 될 분들이 많아요. 그런데 그런 시민이 될 사람이 없는 거죠. 여유를 하나도 안 주고 생존에 허덕이게 하니까요.

 

다시 시민배당의 필요성을 이야기하게 되네요.


저는 정말로 시민배당 논의를 단계별로 시작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문재인 정권이 뭘 하려면, 경제 쪽에서 그것부터 시작을 해야 된다고 봐요. 소득주도는 전체 중에 하나의 이슈일 것이고, 적어도 큰 세 개의 주제 중에 하나는 기본소득 내지는 시민배당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다른 개념보다도 ‘여기에서 번 돈은 공유재다’, ‘최소한의 삶에 대해서 극단적인 불안에 살게 하는 건 국가가 아니다’라는 생각에서 접근해야 돼요. 그 다음부터는 시민들이 알아서 할 텐데, 저는 시민들이 굉장히 잘할 거라고 생각해요. 자기 삶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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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학번에게 기대를 거는 이유


“싸울 대상이 누구인지 제대로 알아차릴 수 있다면 세상은 평화를 되찾을 수 있을 테지요”라고 하셨는데요. 지금 우리는 무엇을 대상으로 싸워야 하는 걸까요?


혐오와 적대를 일으키는 세력이 누구라고 가리키는 체제를 벗어나야 할 것 같고요. 요즘 댓글을 계속 보고 있으면 죽을 것 같잖아요. 혐오와 적대 세력이 하는 일들을 보고 있는 게 힘들죠. 그런데 우리를 살게 하는 건 서로를 돌보는 사람들이니까요. 일단은 나를 살게 하는 삶의 장소, 시간, 관계를 확보하는 게 되게 중요해요. 온라인을 보면 지금이 적대와 혐오로 가득 찬 것 같지만, 사실은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형태로 고민하면서 살아가고 있을 거거든요. 그런데 SNS에서는 적대와 혐오만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거죠.

 

맞습니다. 인터넷이나 SNS를 잠깐만 봐도 불안감을 느껴요.


사실 페이스북의 주커버그도 불쌍한 사람이에요. 대학에 다닐 때는 자기한테 지금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상상도 못한 사람이잖아요. 어쨌든 회사를 망하게 하지 않으려면 누구한테 팔든가, 아니면 빅데이터를 어떻게 할 수밖에 없는 엄청난 압력이 들어오는 거예요. 그 사람도 자율성이 거의 없는 거죠. 그런 게 적인 거죠. 여자가 적이 아니고, 문재인이 적이 아니고요. 그리고 AI로 끊임없이 가게 하는, 무기를 끊임없이 사게 하는, 그런 것들도 모두 적이죠. 호락호락한 적은 아니고, 그 체제에서 정면으로 칠 수 있는 적도 아닌 것 같아요. 골리앗이랑 싸웠던 다윗처럼 어떤 다른 식의 전쟁이 될 것 같은데요.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우리가 삶을 추슬러야 된다는 거죠. 하루하루 혐오와 적대 속에 휩쓸리지 않는 형태로 살 수 있는 지혜와 명상의 시간, 같이 방안을 찾는 관계, 그런 것들이 있어야 되는 거죠.

 

90년대 학번에게 많은 기대를 걸고 계신 것 같아요.


80년대 학번 남자들은 군부독재에서 민주화를 하기 위해서 개인이 될 수가 없었어요. 시민이 될 수 없었고, 국가 대 국가로서 자기는 국가인 거예요. 그게 586 세대를 보면서 굉장히 걱정하는 부분인데요. 자신들은 여전히 국가인 거죠. 그런데 근대 국가가 성숙하고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가 만들어지려면 개인이 돼야 하거든요. 그 개인이 90년대 학번들부터는 됐다고 생각해요. 남자들의 폭력적 구조에 들어가지 않고 개성 있는 나로서 살겠다고 생각한 세대죠. 그리고 여자들하고도 굉장히 친하게 지낸 세대예요. 그래서 결혼을 해도 명절에 자기네 집과 아내네 집을 번갈아 가면서 간다든가, 그런 생각을 상식적 논리적으로 하는 세대이기 때문에 기대를 하는데요. 이 사람들이 IMF가 터지면서 생존에 급급해지고, 그러면서 그 중에 일베처럼 된 사람도 있을 것 같아요. 살다가 힘드니까.

 

그들이 어떤 역할을 해줄 수 있을까요?


여성들이 안전한 사회를 만들자고 말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대로 구조를 보지 못하고 약자한테 적개심으로 분풀이하는 것을 막아줘야 된다는 거죠. 그 위의 세대들은 국가가 돼야 했기 때문에 못했다면, 그 밑의 세대는 신자유주의에서 생존하기 급급해서 ‘차별에 찬성합니다’라고 할 수밖에 없었거든요. 구조를 보기가 굉장히 힘든 세대죠. 그 중간에 있는 세대가 지금 이야기를 해야 되는 거죠. 90년대 학번 친구들이 여자와 남을 도구화하지 않고 자율적으로 즐겁게 공생할 수 있는, 그런 가족과 사회와 마을을 만들어가야 될 거라고 생각해요.


 

 

선망국의 시간조한혜정 저 | 사이행성
근대 산업사회가 구조적으로 접어들 수밖에 없는 파괴의 단계인 ‘위험사회’이기도 하다. 이 책은 대전환의 시대를 슬기롭게 헤쳐 나가는 지혜와 방법을 모색해 본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빠숑 김학렬 “지방도 서울처럼 좋은 데 많아, 실거주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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똘똘한 서울 아파트 한 채, 라는 표현이 등장했다. 최근 서울 아파트값이 무서운 기세로 올랐다. 반면 지방 대부분의 집값은 보합세다. 서울에 집을 보유하지 않은 사람들 대부분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있고, 똘똘한 서울 아파트 한 채를 마련한 사람도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다. 보유세 인상 등 정부에서 준비 중인 규제 책에 관한 소문이 연일 들려오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빠숑 김학렬의  『서울이 아니어도 오를 곳은 오른다』는 부동산 관련 책으로 드물게 종합 베스트 1위에까지 올랐다. 저자의 유명세와 현재 시장 상황이 반영된 결과이겠다. 이번 책은 빠숑의 부동산 3부작 시리즈 중 마지막 권으로, 서울을 제외한 지역 부동산을 다뤘다. 제목처럼 지방에도 입지가 좋은 곳은 있고 이곳은 오를 수밖에 없다고 저자는 말한다. 다만 모든 곳이 동일하게 오르지는 않는다. 서울이 양적 시장에서 질적 시장으로 분화하면서 가격 차이가 더 커졌듯, 지방도 그렇게 전망되리라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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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대책 이후 1년, 서울에서 서민이 집 마련하기 더 어려워져

 

『서울이 아니어도 오를 곳은 오른다』가 종합 베스트 1위에 올랐습니다. 부동산 책이 종합 1위에 오르는 게 흔한 일은 아닙니다. 

 

대한민국 성인 남녀, 특히 결혼한 세대에서 부동산이 가장 큰 관심사입니다.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의식주가 필요하죠. 옷과 음식은 아이를 낳았다고 해서, 또 경제적 능력에 크게 영향을 받지는 않습니다. 그에 비해 부동산은 경제적 능력이 있어야 하고, 가격이 비싸니까 좀 더 계획이 필요한데요. 부모님 세대는 내 집 마련이 평생의 꿈이었지 않습니까. 필수품인데도 금액이 워낙 크니까, 집을 가졌든 안 가졌든 평생 안고 가는 짐이죠. 특히 집이 없는 경우는 애환이 될 수 있고요. 지금 현 시점에서 부동산 관련 의사결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 더 어려워졌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제 책에서 도움을 받으려는 것 같습니다. 저도 부동산 서적이 종합순위 1위를 한 것은 처음 보았습니다. 감사한 일이죠.

 

8.2 대책 이후 1년이 지났고, 서울은 많이 올랐습니다. 그에 비해 지방은 일부 지역을 빼고는 오르지 않았는데요. 이런 상황도 책을 향한 기대에 한몫한 게 아닐까요.

 

2010~2013년이 서울 수도권 부동산은 지옥이었는데요. 이른바 폭락론이 인기를 끌 때였고, 그때 지금의 제 책이 나왔으면 많이 보지 않았겠죠. 2013년 이후로는 일부 조정 지역도 있었지만 거의 모든 지역이 오르기 시작했고, 8.2대책 이후로 서울이 특히 많이 올랐죠. 이런 상황이 반영된 것 같아요.

 

8.2 대책에 대해서, 1년 전에는 준비를 많이 했다고 평했습니다. 지금 8.2 대책을 비롯하여 현재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어떻게 보시나요.

 

1년 전 제 평가가 8 2 대책을 호의적으로 본 건 아니었고요. 이전 정부보다는 준비를 많이 했다는 것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였습니다. 노무현 정부 때 2003~2005년 3년간 부동산 규제 정책이 17번 있었습니다. 그때 시행착오를 겪었던 것을 반영한 것 같아요. 김수현 수석이 『부동산은 끝났다』에서 그때 좀 더 강하게 할 걸이라고 토로하셨어요. 그래서인지 할 수 있는 규제책을 한꺼번에 폭탄처럼 투하했죠. 효과를 빨리 보고자 한 듯합니다. 그런데 과거 규제책이 실제로 시장에 먹혔는지를 검증하진 않았던 것 같아요. 지금 저는 시장과 정책이 미스매칭 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2002년도부터 부동산 칼럼을 써오고 계신 아기곰님께서 이번 시장 실패는 100퍼센트 정책 잘못이라고 하셨어요. 서민을 위한 부동산 정책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세수 확보 목적이었다는 거죠. 차라리 솔직하게 세금 더 걷겠다고 하면서 시작했다면 배신감을 안 느꼈을 텐데, 서민들이 저렴한 가격으로 부동산을 살 수 있게 해주겠다고 시작한 정책이었거든요. 결과는 세수는 많이 걷혔는데, 서민은 집을 더 살 수 없게 됐습니다. 저도 아기곰 선생님과 같은 생각이고요.

 

문 대통령 지지율이 집권 후 처음으로 50퍼센트 대로 떨어졌습니다. 부동산 정책 때문일까요.

 

부동산 문제만은 아니고 최저임금을 비롯한 경제 쪽 정책의 국민들의 기대대로 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실망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좋지 않는 평가가 나오는데도 계속 기다리라고만 하니까요. 국민들은 더 답답한 거죠.

 

이번 책이 3부작 중 마지막 책이죠?

 

『대한민국 부동산 투자』는 첫 번째 책으로 총서 격입니다. 전반적인 입지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내용을 객관적으로 정리한 책이고요. 실제로 입지를 적용해서 서울을 설명한 책이 『서울 부동산의 미래』입니다. 1권에서 설명한 내용으로 서울 중에서 좋은 곳 나쁜 곳, 더 오를 곳과 안 오를 곳을 이야기했습니다. 서울을 제외한 나머지, 그러니까 16개 광역 지자체를 다룬 게 이번 책 『서울이 아니어도 오를 곳은 오른다』입니다. 공교롭게도 서울이  『서울 부동산의 미래』가 출간된 뒤에 더 많이 올랐어요. 지금 지방 분들이 현 부동산 시장에서 제외되었다고 소외감을 느끼는데, 정부의 정책처럼 실망만 하게 두면 안 되잖아요. 지방도 서울처럼 좋은 데가 많거든요. 그런 데는 사도 괜찮다, 실거주해도 괜찮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대한민국 인구 5천 만 명 중에서 80퍼센트가 서울이 아닌 곳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번 책은 그 80퍼센트의 국민들을 위해 쓴 책입니다.

 

지난 책처럼 이번 책으로 공교롭게도 지방 부동산도 가격이 오를까요.

 

오르기보다는, 저는 소외받는 곳이 없이 활성화 됐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너무 많은 지방 분들이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예로, 경상남도 창원이 그런데요. 객관적으로도 굉장히 좋은 입지입니다. 인구가 무려 120만 명이고 좋은 일자리가 많습니다. 이 지역은 2년 동안 조정 받고 있어요. 심한 지역은 40퍼센트까지 빠진 곳도 있거든요. 보통 서울 수도권에 이런 문제가 생기면 대책이 바로 나와요. 양도세 면제라든지, 분양권 전매 허용 등등. 이런 정책은 진보와 보수 등 정치적인 이해관계와 무관해요. 김대중 정부 때 가장 파격적인 부동산 활성화 대책이 나왔으니까요. 오르고 있는 서울은 계속 규제를 한다 치더라도, 불황인 지방은 활성하려는 대책이 있어야 하는데 정부에서는 정말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관심을 안 가지고 있어요. 『서울이 아니어도 오를 곳은 오른다』에서 좋은 비서울 지역을 많이 소개했고, 비서울 분들의 불안을 해소하고 주거가 안정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정말 간절히 바랍니다.

 

 

부동산 폭락론, 의미 없어

 

똘똘한 서울 아파트 한 채, 라는 표현이 등장했어요. 반복된 학습 효과로 서울이 떨어지지 않을 거라는 확신은 있는 거 같습니다. 그럼에도 아직 지방 소멸, 지방 부동산 하락이라는 불안감이 있습니다.

 

부동산은 필수품인데도 우리는 지금까지 제대로 된 경제적 교육은 제대로 받은 적이 없잖아요. 특히 부동산 쪽으로는 전혀 교육을 받은 적이 없지요. 저는 책을 쓰는 저자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부동산 대중화 캠페인을 하고 있습니다. 일반 국민들의 부동산 관련 지식 수준이 올라왔으면 해요. 다행히 2007년보다는 지금 부동산 지식 수준이 훨씬 높습니다. 기사 수준도 객관적인 펙트에 기반해서 쓰려고 하고요. 지금은 묻지마 폭란론 논리가 나와도 이제 신뢰를 안 해요. 이제 그분도 안 나오시잖아요. 무조건 아파트 가격이 빠져야 해, 이건 아무 의미 없는 선언이고 막연한 기대거든요. 일종의 포퓰리즘이죠. 실제로는 몇몇 경제학자 분들이 퍼펙트 스톰이 2014년도 전후로 온다고 했는데, 폭락으로의 퍼펙트 스톰이 아니라 상승을 하는 스톰이 왔어요.

 

폭락론자 주장은 폭락을 기대하고, 사람을 호도해서 호객으로 만들어요. 언제까지 기다리면 된다라는 구체적인 메시지도 안 주잖아요.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인플레이션이 지속되는 한 장기적으로 빠질 수가 없는 구조입니다. 물론 쉬지 않고 계속 오르지만은 않습니다. 하지만 입지 좋은 지역의 경쟁력 있는 상품은 빠져도 단기 조정될 뿐 다시 오르죠. 방향성은 결국 우상향이에요. 강남 집값이 2000년도에 평당 1,200만 원이었고 지금은 4,800만원 수준입니다. 도봉구, 금천구는 평당 800만원에서 지금은 평당 1,200만 원대에요. 만약 그 당시로 돌아가서 아파트를 살 사람은 그 시점에서 어떤 집을 매수하는 게 옳은 선택이었을까요.

 

과거 시행착오에 대한 분석은 마음만 아플 뿐입니다.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보죠. 향후 강남 아파트가 평당 1억으로 가는 게 빠를까요. 도봉구가 평당 2천이 되는 게 빠를까요. 이제는 부동산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분들은 압니다. 여전히 폭락을 기대하는 분들은 강남구 아파트 시세가 도봉구 수준으로 내려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할 겁니다. 물론 이런 지역별 가격 차이가 심하게 나는 것을 저는 희망하지 않습니다. 되도록 막고 싶고요. 그런데, 경제라는 것이 기대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쩔 수 없이 받아 들여야 하는 것이 있어요. 결국 부정적인 의미로 양극화이겠지만, 다른 말로는 다양화라고 보시는 것이 옳은 해석입니다. 어떤 상품이든지 비싼 상품이 있고 중간 상품, 싼 상품으로 나눠져요. 우리는 경제적 능력에 맞게 사면 됩니다. 비싼 건 무조건 싸져야 해, 이건 바람직한 생각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이것이야 말로 투기적인 심리죠. 비싸면 비싼 것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그리고 부동산은 비쌀수록 세금이 많이 나올 거 아녜요. 거기서 나오는 더 많은 세금으로 도봉구나 금천구에 교통, 문화 등 혜택을 무상으로 제공하면 양쪽 모두 불만이 커질 것 같진 않습니다. 모든 지역이 무조건 똑같아야 해, 상향평준화는 안되니까 하향평준화가 되어야 해. 이건 정말 나쁜 심술 밖에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부동산 가격을 투기 세력이 올리고 있다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 않습니까.

 

이미 8.2 대책이 나오기 전에 투기지역에는 투기 세력이 거의 없었어요. 서울은 전세가와 매매가 갭이 컸기 때문에 이미 소위 말하는 갭투자자들이 들어올 수 없는 시장이었어요. 그런데 정부에서 2017년부터 뜬금없이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합니다. 투기 지역을 지정해서, 여기는 못 들어와, 했는데요. 이미 그곳들은 갭이 적게는 5억, 많게는 20억 이상이었어요. 일반적인 다주택자 투자자들이 투자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닌 지역이 된 것이죠. 결국 투기지역 지정 입지처럼 좋은 입지에 들어갈 수 없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서민들이 미워할 대상을 만들어 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종의 지지율을 더 받기 위한 정치적인 활동인 것이죠. 제 주변에도 투자자들이 있지만, 부동산 투자자들이 대부분 평범한 일반인들입니다. 주식 투자하시는 분들과 똑같아요. 적게는 몇 천 만 원, 많아야 몇 억으로 투자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주식이 아니라 부동산에 투자하는 것이고요. 그런데 지금 시장에서는 이미 이 금액으로 서울에 웬만한 곳들은 투자 못하거든요. 김수현 수석님께서 본인의 저서에서 말씀하신 대로 양질의 아파트에 살고자 하는 수요가 많은데 그런 주택의 수는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가격이 오르는 것인데, 공급 문제 해결이 아닌 투기꾼을 잡는 정책이 나오게 되니, 이 정책이 지금 시장에서 먹히겠습니까.

 

좋습니다. 투기꾼들을 막는 역할을 했다고 칩시다. 그런데 이 정책의 목적은 투기꾼 제거가 아니라 실수요자 보호입니다. 맘 편히 자기 주택에 거주하도록 해줘야 합니다. 그런데 뭐가 문제냐 하면, 투기 지역으로 지정된 곳을 사는 무주택자들이나 1주택자들이 이 지역을 사게 되면 투기꾼이 되는 느낌을 줍니다. 매수하기 꺼려지는 거죠. 게다가 정부가 규제해서 집값을 잡을 거라고 하니 오르지도 않을 주택을 사면 안될 것 같기도 하고요. 이러니 누가 주택을 사겠어요. 실제 실수요자들의 심리를 전혀 파악하지 못한 것이죠. 정책의 목적과 방법, 그리고 결과가 완전 미스 매칭이죠. 제가 만약에 정책 발표를 했다고 하면 이런 식으로 이야기 했을 거에요. 향후 한동안 다주택자들이 못 들어오게 할 테니, 실거주자는 지금 들어오라고 말이죠. 그렇게 다정하게 정책의 목적을 전달해 주는 하는 친근한 정책이었으면 좋겠어요.

 

인구 감소로 부동산 가격 하락을 예견하기도 하는데요.

 

역시 묻지마 폭락론자들 논리인데,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애들을 안 낳으니까 이 상태로 가면 인구가 주는 게 맞겠죠. 그런데 생명이 연장되다 보니 여전히 안 줄고 있어요. 요즘은 생산 가능 인구가 줄어서 문제라고 하는데, 우리는 경제 공동체이기 때문에, 국민이 다 같이 번 돈으로 나누는 구조라서 생산성을 높이면 아무 상관 없어요. 누가 많이 벌고 덜 벌긴 하겠지만 많이 버는 쪽이 덜 버는 쪽에 대한 복지를 강화하면 되는 것이잖아요. 애들도 아니고, 굳이 편을 나누어서 싸우게 할 일은 아닌 거 같아요. 일본을 보면 알아요. 일본도 생산 가능 인구가 줄었는데, 일자리가 늘고 아베노믹스로 활성화되었어요. 사람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는 시스템이라면 인구가 문제가 되지는 않아요. 유럽 선진국들도 그렇잖아요. 게다가 우리나라가 더 살기 좋은 나라가 되면 외국에서도 오겠죠. 살기 좋은 나라가 되면 애를 더 낳을 거고요. 지금 우리가 애를 못 낳는 게 돈이 없어서가 아니에요. 봐줄 사람이 없어서잖아요. 이런 시스템만 보완해준다 하면 사회가 발전하니까 출산율이 회복될 수 있다 생각하고요.

 

인구 감소를 걱정하기보다 대한민국을 좋은 사회로 만들면 된다는 말씀이네요.

 

행복하게 살 집도 많이 만들어야 해요. 돈이 없는 분들도 괜찮은 환경에서 살게 해주면 좋겠습니다. 도심재생, 도심재생 하는데요. 종로구 창신동, 숭인동을 뉴타운으로 지정했다 취소하고 도심재생 한다고 해요. 가보면 아시겠지만 다세대 반지하로 정말 거주환경으로는 척박합니다. 거기서 그 상태 그대로 유지하게 해줘서 뭐할 거예요. 오히려 그 분들을 그곳에서 나와서 양질의 임대주택으로 가게 해주는 게 맞죠. 그분들이 왜 안 나오려 하냐면, 그 지역 만큼 싼 가격으로 서울에 갈 다른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가격으로 딴 데 갈 수 있게 해 주면 그 곳에 있을 이유가 없잖아요. 그렇게 양질의 주택으로의 이주 대책을 만들어준 다음에, 그 지역은 일자리 지역으로 만드는 겁니다.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상업지역으로 만들어도 좋고요. 그곳은 서울 성곽길이잖아요. 외국인 관광객이 얼마나 많이 찾겠어요. 성곽길을 도보로 걷게 하면서 그곳에서 돈을 쓰게 하는 거죠. 이렇게 해야 서울 도심 낙후된 곳에서도 부가가치가 생길 텐데, 결국 외국 관광객도 못 들어오게 하고, 개발도 못하게 하고, 거기 현주민에게는 집도 새로 준 것도 아니고요. 페인트칠만 해주고, 동네도서관 만들었는데 그분들이 도서관에 갈 시간이 어디 있겠습니까. 대부분 맞벌이고 그곳에서는 밤에 잠만 주무시는 분인데요. 결국 전체로 봐도, 개인적으로 봐도 마이너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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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부동산도 질적 시장으로 이행

 

서울은 이미 양적 시장에서 질적 시장으로 바뀌었습니다. 질적 시장은 다양화이고요. 지방 부동산도 그렇게 될 거라 전망하셨는데요.

 

서울은 아파트를 다 살아봐서, 좋은 아파트와 좋은 입지를 알아요. 비싼 지역이 왜 비싼지 이해합니다. 지방은 얼마전까지는 아직 좋은 상품에 얼마를 지불해야 하는지 기준이 없었어요. 그런데 지방에서도 질적인 시장이 광역시부터 시작합니다. 부산 해운대부터 시작했어요. 해운대 우동 마린씨티, 센텀시티, 이런 지역 아파트가 평당 2천 만 원을 넘기죠. 펜트하우스는 5천만 원대에 거래가 되고요. 부산 분들도 이제 알았어요. 좋은 입지, 좋은 상품은 평당 2~3천 만원을 받을 수 있구나, 학습 효과가 생겼죠. 그렇게 되면 해운대구, 수영구 쪽 좋은 아파트는 2천이 무조건 넘어갑니다. 그 다음은 대구 수성구도 평균 2천을 넘기 시작했습니다. 일자리, 학군, 상권, 환경이 좋으면 평당 2천이 넘어 가는구나, 역시 대구도 알았습니다. 이런 시장은 이제 3천 만 원 가는 아파트를 주목해야 하는 것이죠. 물론 모든 지역이 다 오르는 건 아니에요. 광역시에도 평당 1천이 안 되는 데가 있죠. 일자리, 학군이 안 좋은 곳이 그렇죠. 대전도 서구나 유성구는 평당 2천을 향해 가고 있고, 이미 넘은 지역도 있어요. 광주는 서구나 남구, 이렇듯 지역마다 질적인 시장으로 분화되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가 있으니까 현지 주민분들도 투자자들도 지방이라고 무조건 1천 이하의 싼 상품만 사지 말고, 2천~3천이 될 수 있는 지역이 있으니까 오히려 이 지역을 봤으면 좋겠다고 제안하고 싶어요.  『서울이 아니어도 오를 곳은 오른다』에 이런 내용들이 지역별로 구체적으로 담겨 있고요.

 

이 책에서 인구 100만 명 정도면 충분한 수요가 있다고 설명하셨습니다.

 

더 적은 단위로 말씀 드리면 60만 명 정도부터는 지역 분화가 됩니다. 구로 구분된 지자체가 있습니다. 한 개 구가 보통 30만 정도인데, 두 개 구가 되려면 60만 명이 되거든요. 이 정도면 이쪽에서 가고, 저쪽에서 오고 하는 도시 내 순환이 이루어집니다. 자녀가 학령기일 때는 학군 좋은 데 살다가, 학교 졸업하면 상권이 좋고 조용한 곳으로 이사 한다든지 하는 식이죠. 이러한 자체 이동 수요가 60만 명 정도면 충분히 생겨요. 이 정도면 인구가 줄어들면서 폭락하는 일은 없습니다.

 

제일 답답한 게 비서울 지역 분들은 자기 지역에 자신이 없어요. 당연히 서울과 비교하면 입지 조건이 떨어지지만 조금만 더 보완하면 좋아질 게 상당히 많아요. 이런 걸 정부나 지자체에 요구해야 하는데, 그러려면 부동산을 좀 알아야 하잖아요. 지역 내 학교가 필요하다, 하면 우리 지역에 현재 몇 가구가 있는데 이 정도면 다른 지역은 다 학교가 있다, 그러니 만들어 달라. 이렇게 구체적으로 민원을 제기하면 정부나 지자체에서는 들어줄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지역 현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필요한 걸 구체적으로 요구하시는, 자신의 거주 지역을 사랑하는 시민들이 되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정부나 지자체는 절대 먼저 해 주지 않아요.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아마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민원을 제안하는 곳이 강남구일 거에요. 그러니까 점점 더 좋아지죠.

 

경기도와 세종시, 제주시를 독립된 장으로 다루셨습니다.

 

서울이 특별시고, 지방에도 특별 자치 지자체가 몇 개 있어요. 세종시가 행정 특별시이고, 제주도는 특별 자치도이죠. 이곳은 나라에서 특혜를 줍니다. 이곳은 더 윤택하게 지방 자치 활동을 할 수 있어요. 보조금도 더 받고, 지방에서 걷은 세금을 마음대로 쓸 수 있어요. 제주, 세종시는 원래 17개 지자체 중 가장 쌌던 곳이었는데요. 저는 이곳은 특별한 곳이니까 더 올라갈 거고 그 순위는 서울 특별시 바로 밑까지 갈 거라고 『대한민국 부동산 투자』에서 이미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됐죠. 이렇게 지자체별 지원정책도 알 필요가 있습니다. 광역시와 도는 일반 지역이고, 서울 특별시나 기타 특별 자치도보다는 수요가 적을 수밖에 없으니 이런 점을 감안해서 입지 가치를 평가 하셔야 합니다.

 

부동산 외 다양한 역사적 배경 설명해줬다는 의미에서 이 책을 역사서로도 읽을 수 있었어요.
 
무작정 입지만 소개하면 사람들이 왜 지금의 가치를 갖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이해를 못하죠. 입지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역사를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데요. 그래서 이런 목적의  책은 원래는 인문학자가 쓰는 게 맞겠죠. 제 전공 베이스가 인문학입니다. 전공이 신문방송학이고 부전공이 사학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역사에 관심이 많았고, 지방 답사를 다니면서 많이 배웠죠. 과거에 아무리 화려했던 곳이라도 일자리가 줄어들게 되면, 인구가 주는구나, 학교가 중요하구나 이런 입지를 종합적으로 보는 통찰인데요. 그곳의 생활 환경을 직접 보면서 스스로 정리한 거예요. 저는 어디 투자하면 좋다가 아니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입지를 찾는, 만드는 공부를 하다 보니까 어떤 입지가 좋은지는 자동적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부동산 전문가들과는 목적도 방향성도 달라요. 저는 찍어주기를 못해요. 정확히 말씀드리면 못하는 게 아니라, 하고 싶지 않습니다.

 

 

문화적 프리미엄이 포함된 대한민국 아파트

 

집값 하면 아파트값이고, 대한민국의 대표 주거 형태가 아파트인데요. 한국에서는 아파트가 투자의 원흉, 이런 식으로 이성적으로 접근하지 못하는 듯합니다.

 

원래 아파트보다는 단독주택이 훨씬 좋은 상품입니다. 그런데 한국은 땅이 좁아요. 그나마 78퍼센트가 산악이고, 주거로 쓸 수 있는 용지가 5퍼센트 전후죠. 주거로 좋은 입지가 적어요. 인구가 적을 때는 단독주택으로도 문제가 없었지만 인구가 늘면서 공동 주택을 만들 수 밖에 없었습니다. 한국인이 참 영리한 게, 다른 나라와는 달리 아파트에 문화를 넣었어요. 옛날 주공 아파트는 부가적인 생활편의성이 떨어졌었는데, 2009년 전후부터 아파트 문화가 확 바뀌어요. 레미안 퍼스티지, 반포 자이가 2009년 입주였는데 단지 내 수영장, 사우나, 커뮤니티가 생겨요. 돈을 주고 멀리 나가야 하는 활동을 아파트 내에서 즐길 수 있는 거예요. 수영장 가는 비용, 도서관 가는 비용, 헬스장 가는 비용과 시간이 모두 절약이 되는 거죠. 그런 것이 다 아파트 가격에 녹아 있고, 다른 단지의 사람들이 그 아파트 사는 사람을 부러워해요. 그래서 이전까지는 입지가 좋은 데면 낡아도 비쌌는데 이제는 입지가 좋고 상품까지 좋아야 더 가격이 올라갑니다. 지금 한국 아파트는 단순하게 잠만 자는 공간이 아니에요. 문화적 프리미엄까지 포함된 게 아파트인 거죠. 그 의미는, 문화적 프리미엄이 없는 상품은 가격이 내려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현재 정부나 폭락론자들은 이걸 거품이라고 평가절하해 버리죠. 문화적인 현상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아파트 문화를 중국이나 동남아 등지에서 따라하지 않나요?

 

한계가 있어요. 저도 출장 가보면 유심히 보는데요. 해외에는 버려진 집이 많아요. 버려진 아파트도 많고요. 땅덩이가 넓기 때문이죠. 풍수지리로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풍수지리는 원래 중국에서 만들어졌고 한국이 받아들였습니다. 중국은 명당을 찾죠. 명당이 아니면 버려요. 심지어는 지기가 빠졌다고 해서, 명당인데도 시간이 흐르면 버리고 새로운 곳으로 옮겨가기도 합니다. 한국은 명당은 정말 적기 때문에 명당이 아닌 땅도 개선해서 써야 해요. 한국은 땅을 버리는 순간, 다른 갈 데가 없으니까요. 한국은 명당이 아닌 땅도 명당으로 만드는 비보책이 잘 마련되어 있어요.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입지 가치가 낮아지면, 공원이나 상권, 지하철을 넣어서 입지 가치를 높이죠. 참 대단한 민족입니다. 제가 대한민국 국민들을 사랑하는 가장 큰 이유죠.

 

예약판매 때 사은품인 ‘빠숑이 실거주 목적으로 검토했던 서울 아파트 리스트’가 인기였습니다. 리스트를 보니 입지 좋고 새 아파트 위주였고요.

 

외국은 한국처럼 집값이 많이 오르는 걸 기대하진않아요. 집값이 빠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우리나라는 일단 사면 거의 빠진 적이 없었죠. 과거에는 양적으로 부족했으니까요. 집을 사면 무조건 올라야 하는 줄 아니까, 제가 오르지 않을 수도 있다고는 설득 못하잖아요. 그러니 저를 비롯해 많은 부동산 전문가가 오를 수밖에 없는 지역과 상품을 추천할 수밖에 없죠. 그렇게 선별하다 보면 입지가 좋고 새 상품을 가장 먼저 볼 수 밖에 없죠. 하지만 비싼 아파트만 추천드린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상대적으로 저렴한 아파트들 위주로 추천드렸어요. 실거주 목적이니까.

 

서울 중간 정도 지역의 30평대 아파트가 10억인 시대가 됐습니다. 흙수저들은 어떻게 집을 사야 할까요.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제입니다. 하지만 과거는 쉬웠는데 지금은 어렵다는 식으로 엉뚱하게 생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과거랑 지금이랑 달라진 건 없어요. 예전에도 월급쟁이는 집이 비싸서 못 샀습니다. 대부분 대출을 받아서 사야 했고요. 대출 없이 사는 사람은 극히 일부였습니다. 큰 부자가 아니라면 대출 받을 수밖에 없었어요. 서울은 조선시대부터 이미 비쌌기 때문이죠. 서울은 과거도 비쌌고, 지금도 비싸고, 미래도 비쌀 거예요. 과거에 쌌는데 지금이 비싸, 이게 아니란 말이에요.

 

그리고 많은 분들이 인정 안 하시는데, 소득도 엄청 늘었어요. 이제 억대 연봉자가 주변에 꽤 많잖아요. 당연히 무리한 대출은 안 되죠. 이자 내고 생활비 될 정도의 조건에서 가장 좋은 걸 사야 합니다. 맞벌이 한다면, 한 사람 월급을 이자와 원금 상환 비용으로 저는 다 써도 된다고 봐요. 현재 미국도, 일본도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거주비, 월세 낸다는 생각으로 비용을 지불하고 대신 집값이 인플레이션만큼만 올라도 물가에 대한 헷지가 되잖아요. 적극적으로 살 생각을 하면 방법은 다 있는데, 빚 지지 않고 내 돈으로 사려고 하니까 답을 모르겠고 힘들기만 하죠.

 

현재 정부도 대출에 대해서는 어떤 지침을 주지 않고 있어요. 심지어는 서울 같은 경우 대출규모를 줄이기까지 했어요. 왜 대출을 못 받게 하는 정책을 쓰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중산층 수준의 무주택자가 강남으로 이사 간다 하면 90퍼센트까지 대출해 줬으면 좋겠어요. 10퍼센트만 있어도 들어갈 수 있잖아요. 당연히 이자를 받아야죠. 혹시 이자를 못 내면 회수하면 되거든요. 갑자기 대출 규모가 줄어드니까, 이제 강남은 기존에 돈 있는 사람만 살 수 있는 지역이 거예요. 어찌 보면 지금 정책이 양극화를 만들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물론 강남이 아니어도, 서울이 아니어도 상관 없고, 경기도 좋은 지역에 지금 가용 한도 내에서 대출을 최대로 받아서 들어갔으면 좋겠습니다. 실거주인데 왜 주저하실까요. 정부에서 불안하게 하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자기 집 살겠다고 하는 분들에게 왜 자꾸 부동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주시려는지 모르겠어요.

 

오른 게 집값만은 아니잖아요. 새우깡 가격도 계속 올랐는데요.

 

맞아요(웃음). 예전에도 월급 받은 거 하나도 안 쓰고 모아도 집을 못 샀단 말이에요. 지금은 쓸 거 다 쓰시면서 못 산다고 하시죠. 집 없어도 차는 다 사잖아요. 휴대폰도 최신 기종으로 요금제 비싼 걸로 쓰시고요. (웃음) 자신의 지출은 생각하지 않고, 나라만 원망하고, 투기꾼만 원망하죠. 사람들이 죄지, 사실 주택이 무슨 죄가 있겠어요.

 

북한과 관계 개선이 화두인데, 북한이 개방되었을 때 부동산 시장은 어떻게 변할까요.

 

북한 사람들이 남한으로 내려온다면 가장 안전한 지역을 찾는 경우가 대부분일 거에요. 대한민국에서 가장 안전한 지역은 서울입니다. 서울 가치가 더 높아지겠죠. 물론 북한 지역에서는 일자리가 많은 지역에 주목해야겠죠. 평양, 개성, 신의주, 청진, 함흥 이런 데가 좋은 곳이겠죠. 시베리아 횡단철도가 생길 텐데 시베리아 철도가 지나는 역들도 주목해야 하고요.

 

시베리아 철도 하니 용산이 생각나는데요. 박원순 시장이 여의도 용산 개발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전에 잠정 보류한다고 했죠.

 

저는 용산 개발에 적극 찬성합니다.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타고 유럽 관광객들이 온다가 상상해 보세요. 용산역에 내려요. 앞에 한강이 쫘악 보이고 뒤로 관악산이 멋지게 펼쳐져 있습니다. 그런데 여의도에는 35층짜리 아파트만 있다고 상생해 보세요. 그걸 외국 관광객들이 보고 싶어 할까요? 홍콩, 상하이, 뉴욕 야경처럼 150층짜리도 있고 60층짜리도 있고, 40층도 있고, 이런 멋진 포토존들이 많은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용산, 여의도는 그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대한민국 대표 상품을 만들자는 차원에서 활용해야 합니다. 여의도와 용산을 케이블카로 이어도 정말 멋질 거 같아요. 다행히 여의도랑 용산은 강남이나 서초처럼 한강변에 주거 지역이 많지 않고 대부분 상업 지역이라서 업무시설로의 대규모 개발이 가능하거든요. 참 딱하다고 생각한 것이 여기 몇 개 없는 아파트 단지 가격이 올라갈까 봐 무서워서 개발을 억제하겠다고 하는 건 국가적 차원에서 낭비라 생각합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큰 그림으로 서울을 활용하셨으면 좋겠어요.

 

정부에서 함께 일하자고 한다면 의향은 있나요.

 

부동산 관련해서는 많은 아이디어 제공할 수 있고 어떤 식으로든지 일도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지금 정부에서는 제가 아무리 선의로 이야기를 해도 저 같은 사람들은 투기를 조장하는 사람으로밖에 보지 않을까요. (웃음) 저는 여당 야당 상관 없이, 진보 보수 상관 없이 대한민국의 미래 부가 가치 만드는 방향이라면 언제든지 좋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창출된 경제적 부가가치를 온 국민이 함께 나눠가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제가 진심으로 바라는 건 그거 하나입니다.

 

칼럼, 방송, 강연까지 다양한 활동을 하는데 어떤 게 제일 편하세요?

 

제가 신문방송학과 출신이라 그런지 매스미디어가 친숙합니다. 이런 일이 다 재밌고요. 원래 꿈이 드라마 PD, 영화 감독이었어요. 돈이 되는 일도 아니고 욕을 먹기도 하는 일인데 정말 재미 없으면 못하죠.(웃음)

 

방송이나 강연 중에 많은 질문을 받을 텐데요. 이 질문은 그만 받았으면 하는 게 있다면?

 

대책없이 찍어주세요! 이런 질문들은 물론 이해해요. 정말 궁금하니까요. 서울 집값 언제까지 오를까요? 이건 되게 우스운 질문이에요. 언제까지 오르겠어요, 계속 오르지. (웃음) 시세가 빠지면 사겠다는 일종의 공짜 심리에서 나온 질문이잖아요. 단기적으로 투자해서 벌고 빠지겠다는 건데요. 이게 진짜 투기꾼이에요. 부동산은 무조건 장기 투자해야 합니다. 그래야 실거주자든, 임대 거주자든 주거생활이 안정되거든요. 결론을 말씀드릴께요. 서울은 입지 좋으면 계속 올라요. 강남이 빠질 거라는 기대는 하지 마세요. 그러니 단기 투자를 위한 목적으로는 질문은 안 하셨으면 좋겠어요. 장기투자할 건데 이런이런 지역에 관해 미래가치 판단 해 달라, 이렇게 부동산 공부할 수 있는 질문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3부작을 다 쓰셨습니다. 다음에 나올 책은?

 

서울은 한 개 지자체로 한 권으로 썼는데, 비서울 지역은 16개 지자체를 한 권으로 썼습니다. 이제 지자체별로 1권씩 쓰고 싶어요. 부산 한 권, 대구 한 권, 이렇게요. 대한민국 지역별 부동산을 공부하실 때 이 빠숑의 대한민국 부동산 대전집 세트를 갖고 있으면 되는 거죠. 그 시리즈를 쓰려는 장기 계획이 있고요. 그 전에도 써야 할 것이 5개 정도 있어서 뭐가 먼저 나올지는 모르겠네요. 물론 지방 시리즈는 수요가 매우 적으니까, 많이 판매되진 않을 거예요. 책으로 돈을 벌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그래도 대한민국 부동산 전집 세트가 나오면 뿌듯하고 행복할 것 같아요. 허준이 동의보감을 정리한 것처럼요. 원래 저는 부동산으로 책을 낼 생각은 없었어요. 그저 답사 다니면서 지역별 그 지역의 사람 사는 이야기를 글로 옮기고 싶었어요. 지금 부동산과 전혀 상관 없는 인문도서 팟캐스트인 다독다독 진행하는 이유도, 더 많은 세상과 사람들의 대한 지식과 소양을 쌓기 위해서인데요. 사람 사는 에세이를 쓸 겁니다. 제가 좋아하는 역사 소설을 쓸 수도 있을 듯 합니다.


 

 

서울이 아니어도 오를 곳은 오른다김학렬(빠숑) 저 | 알에이치코리아(RHK)
모두가 서울만 바라보고 있을 때 대한민국 국민 80퍼센트가 살고 있는 서울이 아닌 지역으로 눈을 돌려보자! 기회는 많고, 반드시 수익은 난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차상진, 하태욱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고민할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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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  하태욱교수 오른쪽 차상진 연구가

 


14년 동안 ‘하이스코프(high scope, 아이를 자발성을 가진 배움의 주체로 여기는 교육)프로그램’을 기반으로 유아교육을 연구해온 차성진, 대안교육과 혁신교육, 마을교육공동체 등을 연구하며 건신대 대안교육학과 주임교수를 지내고 있는 하태욱. 이 부부가 자녀를 키우는 데 있어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자녀의 초등학교 생활 시작 후 3년 간이었다. 영국에서 영유아기를 보낸 이들의 자녀는 한국에서 시작된 초등학교 생활을 무척이나 힘들어 했다. 그 동안 해온 연구가 무색하게 ‘남들처럼’ 키우려고 했던 부부의 선택이 자녀를 행복하지 않게 했던 것이다. 어느 날 부부에게 ‘우리 왜 이러고 있지?’라는 물음이 사이렌처럼 떠올랐고, 이들은 그때부터 다시 자녀의 본성과 우리의 행복에 집중하는 선택을 했다. 중고등학교를 비인가 대안학교에서 졸업한 이들 자녀의 “최종학력은 초졸”이다.

 

『남들처럼 육아하지 않습니다』는 이 교육학자 부부가 어떻게 선택의 순간 자녀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는지, 그 기본적인 태도가 어떻게 남들과는 다른 육아라는 형태로 뻗어나가게 되었는지를 보여준다. 이들은 “이 책을 내고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 ‘그럼 당신들 자식은 어떻게 키웠어?’예요. 하지만 저희도 어려워요. 힘들죠. 힘들지만 하는 거고요. 어렵지만 하고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도 의미가 있을 거예요. 부모는 다 어렵고, 다 잘 안 되죠. 답은 없지만 이런 길도 걸어보았다, 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그 말이 힌트가 될지 모르겠다. 책에서 여러 번 얘기했듯 우리는 모두 ‘함께 배워가는 중’인 완벽하지 않은 각자이기 때문이다. 평일 오후, 서울 마포에서 부모 교육을 막 마치고 온 두 저자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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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왜 이러고 있지?


강연에서 자주 듣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궁금해요. 요즘 부모들이 관심 갖고 있는 것에 대해 알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차상진 : 일단 관심 자체를 많이 갖고 계시죠. 대안교육에 대해서도 관심 있다는 말씀을 많이 하시고요. 지금 이대로 키워도 될까, 하는 걱정도 많이 하시는 것 같아요. 특히 저는 영유아 부모 대상 교육을 많이 하는데요. 영유아, 초등까지는 소신대로 키운다 해도, 이대로 중고등학교에 간다면 아이가 낙오자가 되지는 않을까,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하셔요. 제가 꼭 하는 얘기는 대안교육이나 그 외의 교육이라는 건 선택의 폭을 넓혀주는 것이라는 이야기예요. 오직 한 길만이 정도(正道)고, 이 길을 가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패러다임은 벗어나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씀을 많이 드리죠.

 

책에서 이른바 ‘사다리론(다른 선택을 한다는 것이 마치 사다리를 잘 오르고 있는 아이를 끌어내리는 건 아닌가, 하는 걱정)’을 말하는 부모에게 ‘길론’으로 대답한다는 이야기도 하셨죠.


하태욱 : 내 아이의 인생을 섣불리 잘못 인도하는 건 아닐까, 걱정을 하시는 건데요. 거기에는 몇 가지 함정이 있죠. 먼저 내 아이의 인생을 내가 책임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도 어떤 의미에서는 이치에 맞지 않는 얘기일 수 있고요. 또 인생이 계획해서 된 게 아니라는 점도 생각해야 해요. 잘 가고 있는 아이를 끌어내린다는 건 어쨌든 사다리를 올라가면 도착하는 한 곳이 있다는 전제가 있는 거잖아요. 흔히 서울대, 대기업으로 이야기되는 사다리인데요. 사실 우리는 길을 가다가 갈림길이 나오면 그때그때 선택할 뿐이고, 그것이 모여 지금의 내가 된다고 저는 생각해요. 그러니까 사다리를 잘 올라가도록 돕는 것보다는 세상에는 굉장히 많은 길이 있다, 네가 그 중 선택을 할 때 조언이 필요하면 얘기 나눌 수 있다, 때로 혼자 걷는 게 외로우면 같이 걸어준다, 라고 할 수 있는 동반자여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이것이 제가 얘기하는 ‘길론’이에요.

 

여전히 불안함을 많이 갖는 것 같아요. 많은 분들이 ‘다른 길’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실제로 내가 남과 다른 길을 간다는 것은 낯설게 느껴요.


하태욱 : 많이 낯설죠. 머리로는 알지만 몸으로 체감되지 않아요. 일단 저는 다양한 선택지가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싶어요. 저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 세대예요. 학교 외에 다른 선택지가 있다고는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죠. 그에 비하면 지금은 어쨌든 대안학교, 혁신학교 등이 있고요. 조금씩 선택지가 늘어나고 있잖아요. 저는 그런 선택지를 더 많이 늘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결국 남들처럼 육아하지 않아도 된다, 라는 이야기죠. 더구나 이것이 그저 당위론에만 머무는 게 아니라 아주 구체적인 근거가 있고,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라는 것을 독자 분들에게 알려주고 싶었어요.


차상진 : 책에 아주 자세하게 내용을 넣었고요. 이를 통해 작은 데에 해답이 있다, 해답은 당신에게 있다, 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당신이 용기만 내면 해답은 당신, 그리고 아이에게서 찾을 수 있다고요. 사소한 데서 큰 게 만들어진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어요.

 

아주 인상 깊었던 부분은 “진짜 물어봐야 하는 질문은 다른 것이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25쪽)라는 대목이었어요. 부모됨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 이런 질문을 먼저 하는 것, 참 중요하겠더라고요.


하태욱 : 저희 아이가 영국에서 태어나 8살 되던 해에 한국에 초등학교 입학을 하러 왔어요. 이후 3년이 가장 힘들었어요. 이유를 생각하면, 우리도 남들처럼 육아하려고 했기 때문이라는 결론이에요. 아이는 안 바뀌었는데 영국에서는 장점이라고 받아들여졌던 면들이 한국에서는 다 단점으로 받아들여진 거죠. ‘남들처럼’의 기준에 안 맞으니까요. 에너지 많은 아이가 산만한 아이로, 스스로 잘하는 아이가 혼자만 튀는 아이로. 저희는 이런 주장을 하고, 이런 공부를 했음에도 한국에 들어와 살다보니 나도 모르게 휩쓸려 간 거예요. 그러다 어느 날, “우리 왜 이러고 있지?”했어요. 정말 정신이 번쩍 들었죠.


차상진 : 남들이 원하는 틀에 아이를 맞추려니까 아이를 잡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고요. 아이에게 가장 미안했던, 부모로서 하지 말아야 할 짓을 했다 싶은 때가 바로 그 3년이에요. 그 시간을 거치면서 저희 생각이 확고해졌고요.


하태욱 : 그 이후에 아이가 자기 본성대로 해나갈 수 있는, 다른 선택을 해나가면서 그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즐거운 일인지 깨달았어요. 아이도 행복하고, 우리도 행복한 길이 그것이라는 것을 다시 깨달았죠.

 

그 3년 동안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궁금하네요.


하태욱 : 학원을 보내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기본적으로 학교에서 해야 하는 일들은 다 해야 한다고 생각했죠. 숙제를 잘 한다거나 시험을 잘 봐야 한다거나, 이런 거예요. 선행까지는 바라지도 않았지만요. 어쨌든 학교와 동떨어진 아이가 되지 않기 위해 기본적으로 따라야 하는 질서가 있으니까요. 저희가 그 질서를 확 내려놓거나 떠나오지 못했던 거죠. 그러는 동안에도 아이는 꾸준히 ‘이건 아니야, 난 싫어, 나는 행복하지 않아’라는 신호를 보내왔던 것 같은데요. 저희는 어쩔 수 없다, 는 이야기로 그 신호를 무시해왔던 거죠.

 

책에도 자녀 교육에 있어 당위와 현실 사이에서 고민이 많았다고 하셨잖아요.


하태욱 : 중요한 건 소통이고요. 대화도 많이 하고, 소통도 많이 했죠. 그러다가 사춘기 때는 또 벽이 확 쳐지더라고요. 힘들었죠. 하지만 아이를 보며 우리의 선택에 교육적인 의미가 있겠구나, 느꼈던 때가 있었어요. 아이가 고2때예요. 너무 불안해했어요. 비인가 학교를 나왔으니까 최종학력은 초졸이잖아요. 아이가 다닌 학교는 고등학교 2-3학년 때 인턴십이라고 해서 실제로 사회에 나가 관심 있는 분야의 일들을 한 학기씩 해보거든요. 그게 만만치 않았던 거죠. 이런 사회에서 초졸 학력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확 불안해진 것 같더라고요. 18살에게 얼마나 무거웠겠어요. 어느 날 펑펑 울면서 따지는 거예요. 무섭고, 길이 보이지 않는데 왜 부모님은 괜찮다고만 하느냐고요.

 

괜찮다고만 하는 부모를 원망할 만하네요.(웃음)


하태욱 : 저는 그때 ‘아, 그렇구나, 다행이다’했어요. 사실 그 고민은 각자가 언젠가 해야 하잖아요.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는 고민은 살면서 꼭 해야 하는 건데 우리는 계속 뒤로 미뤄요. 좋은 고등학교, 좋은 대학교 가서, 취업해서, 승진해서, 이런 식으로요. 그런데 얘는 18살에 이미 그 고민을 심각하게 한 번 한 거죠. 눈물이 펑펑 쏟아질 정도로요. 이 아이가 이 시기에 이런 고민을 하는 건 너무나 중요하다, 우리는 그 고민해볼 기회를 아이들로부터 빼앗고 있는 거다, 라고 생각했어요. 우리가 그 고민을 아이들에게 돌려줄 필요가 있어요. 그 두렵고, 막연하고, 힘든 시기를 거치도록 하는 것이 더 교육적인 것이라고 생각해요.


차상진 : 아이에게 잘 하는 말이 “네 인생이야. 너 좋으면 돼.”예요.(웃음) 조금 마음에 안 드는 것이 있어도 말이에요. 그 태도는 아주 중요해요. 그런데 저희가 가는 길이 완벽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물론 부작용도 있고요. 하지만 많은 분들이 가는 길에 있는 부작용도 생각해보면 어차피 위험은 양쪽에 다 있는 거예요. 그런데 한쪽 길은 가는 내내 힘들고 아이와의 관계도 나빠지지만 한쪽 길은 아이도 행복하고 부모와 관계도 좋아졌어요.

 

 

각자가 각자의 파도를 타는 것


그러면서도 걱정되지는 않으셨어요?


하태욱 : 글쎄요. 소위 ‘내비맘’이라고들 하죠. 종착지를 정해두고 빠른 길을 부모가 선택해서 가도록 해요. 아이들이 그 길을 벗어나지 않도록 조절하는 역할이 부모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건데요. 그렇게 해서 성공적인 목표 지점에 도착했다고 해도 끝이 아니잖아요. 요즘은 서울대를 졸업해도 절반이 취업되지 않고요. 그 전이 이미 금수저, 은수저 싸움이 있죠. 저는 ‘서핑맘’ 이야기를 많이 해요.

 

서핑맘이요?


하태욱 : 일단 파도는 예측할 수 없어요. 서핑을 할 때는 그냥 몸으로 파도를 타야하죠. 그것은 수많은 시행착오와 경험을 통해 쌓이는 것이고요. 저는 실제로 방학 때 부모님들이 아이들과 함께 서핑을 해보라고 말씀드리는데요. 서핑할 때 옆에서 잡아주는 건 불가능해요. 잡으면 빠져요. 결국 각자가 각자의 파도를 타는 거죠. 부모 스스로가 행복하려면 자기 파도를 잡아서 타야 하는 거고요. 내가 재미있는, 내가 즐거운, 내가 잘할 수 있는 파도를 타면 되는 거죠. 아이를 파도에 잘 태우는 게 나의 파도라고 생각할 때 불행이 시작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아이가 한 번만 빠져도 절망하는 거죠. 각자 파도를 타다가 나도 때로는 빠지고, 아이도 어떨 땐 짠물을 먹고 그러다가 다시 신나게 파도를 타기도 하고, 해야죠. 중요한 건 부모가 뭘 해줄 수 있다고 믿지 말라는 이야기고요. 부모가 뭘 알려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이야기예요.

 

사회의 불확실성이 점점 커지고 있기도 하니까요.


하태욱 : AI가 모든 걸 다 해준다고 하고, 우리가 알고 있는 직업의 절반이 사라진다고 하는 시대에 미래를 안다고 하는, 나에게 지도가 있다고 하는 태도는 아주 큰 오만이고요. 어찌 보면 너무나 어리석은 일이에요. 나는 모른다, 라는 태도가 오히려 정답이죠.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면 아이에게 이리 가라, 저리 가라, 함부로 말할 수 없어요.


차상진 : 중요한 것은 나도 살아 있고, 너도 살아 있고, 우리가 살아 있는 그런 삶이어야 한다는 거예요. 부모가 뭐든 해줄 수 있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죠.

 

각자의 파도를 탄다, 함께 배운다, 는 태도가 참 중요한 것 같아요. 책에는 아주 작은 생활의 한 부분에서도 그런 태도를 강조하고 있거든요. 가령 놀이를 할 때도 “부모도 아이의 놀이에 뛰어들어 충분한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한다”(129쪽)고 말해요.


차상 : 저는 이른바 ‘엄마표 놀이’에는 조금 회의적이에요. 거기에는 아이에게 무엇이 재미있는지가 빠져 있거든요. 엄마표 놀이는 엄마 욕심인 경우가 많아요. 요즘 유행하는 놀이, 요즘 유행하는 교구, 이런 것들이죠. 엄마가 공부한 걸로 아이에게 보여주고요. 엄마가 기대하는 성과를 아이에게 기대해요. 하지만 똑같은 재료를 줘도 어떤 결과물이 나올지는 아무도 모르거든요. 아이는 각자 다 다르니까요. 또 아무리 부모 눈에 별 것 아니어도 아이에게는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 수 있죠. 그 의미를 찾아 읽어주는 게 중요해요. 같이 놀 때도 마찬가지예요. 부모 방식으로 놀려고 하지 말고 아이가 이 놀이 안에서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그걸 읽고 그 의도대로 움직이게끔 해주는 게 중요해요. 어리석어 보이고, 웃겨 보이더라도 너무 재미있어서 깔깔거리게 되는 그 ‘놀이성’이 살아 있는 놀이를 해야 한다고 말씀 드리고 싶어요.

 

역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존중’이 아닐까 싶네요.


차상진 : 맞아요, 그리고 존중이라고 할 때는 우리 모두에 대한 존중이어야 한다는 점도 중요해요. 아이에 대한 존중, 엄마에 대한 존중, 아빠에 대한 존중이 모두 있어야죠. 우리 모두는 존중 받아야 하고요. 우리 모두는 다르다는 것을 인정받아야 해요.


하태욱 : 흔히 오해하시죠. 아이를 존중해야 한다고요. 강연에서 질문을 받았어요. 한 분이 이런 말을 하셨어요. “나는 아이 감정의 하수구가 되어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라고요. 아이는 어떤 감정이든 나한테 발산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거였어요. 그러다 아이가 부모를 때리기 시작했는데 그걸 받아줘야 하는지 고민이다, 가 질문이었어요. 하지만 그 존중에 아이에 대한 존중은 있지만 나에 대한 존중은 없죠.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아무리 우리 사회가 존중이라는 말을 쓰든, 자기주도라는 말을 쓰든 오직 아이의 성공만이 의미 있어지는 상황으로 남게 될 거예요.

 

체벌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요. “체벌이라는 ‘손쉬운’ 교정법은 대화와 설득이라는 ‘수고스러운’ 교육 방법을 배제하게 만듭니다.”(116쪽)라고 하셨잖아요. 원칙 있는 훈육 방법에 대한 말씀도 함께 부탁드립니다.


하태욱 : 앞서 받은 강연에서의 질문에도 이렇게 대답했는데요. 일단 아이의 감정을 존중하는 것, 중요하죠. 하지만 그것만큼 중요한 것은 소통이에요. 그 과정에서 나는 어떤 기분이 드는지도 분명하게 아이에게 전달되어야 해요. “너의 분노는 내가 이해하겠지만 네가 나를 때리면 나는 이런 감정이 든다.”라고요. 그것 없이는 안 돼요. 또한 어떤 경우에도 폭력은 안 된다는 원칙이 있어야죠. 폭력이 어떤 결과를 낳느냐에 대해서도 잘 소통해야 해요. 한계를 분명히 하는 게 중요해요. 아이들은 한계를 정해줘도 살짝 넘어보거든요. 그럴 때 네가 민다고 해서 이 원칙이 밀리지는 않아, 를 분명하게 가르쳐줘야죠. 핵심은 소통이에요. 아이를 때리면 문제를 쉽게 멈추게 할 수는 있겠지만 실은 문제가 하나도 해결이 안 돼요. 그냥 덮여버리는 거죠. 무서움 때문에요. 하지만 아이가 언제까지 부모를 무서워하겠어요.


차상진 : 체벌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었으면 해요. 고려할 수 있는 선택지에 체벌은 없어야 하고요. 그건 폭언도 마찬가지예요. 아이와 대화를 하면서 네가 이런 행동을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인과관계를 충분히 설명해주고요. 그래서 다음에 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죠.


하태욱 : 강연에서 “저는 아이가 아직 어리니까 때려도 되죠?”라고 질문하시는 분께 저는 “지금 제 강의 들으러 오셨으니까 제가 때려도 되나요?”라고 반문해요. 권력 관계 문제잖아요. 내 아이가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선생님한테 맞았다고 하면 분노하면서 나는 내 아이를 때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아이가 나의 소유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거든요. 이건 아이를 하나의 존재로 인정하지 않는 거예요. 아이를 주체성을 가진 하나의 존재라고 생각한다면 소통하고, 설득하고, 동의를 얻어야 하는 문제가 돼요.

 

분명히 학교에서도 체벌이 금지되어 있고, 사회적인 인권 감수성도 높아지고 있다고 하지만 가정 내 폭력, 부모의 체벌은 아직도 제대로 문제되지 않는 것 같아요.


하태욱 : 실제로 통계를 보면 아동폭력의 대부분은 가정에서 일어나요.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자기가 폭력을 저질렀다고는 생각 안 하죠. 내 자녀이고, 내가 아이를 교육시키기 위해서 한 일이니 문제가 없다, 라고 말해요. 또 폭력이 나쁜 걸 알면서도 왜 하느냐면요. 그만큼 즉각적인 효과를 내는 게 없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즉각적인 효과 때문에 계속 하게 되는 대표적인 것이 중독약물이죠. 그렇죠? 그러니까 체벌을 그만두는 것은 마약을 끊는 것처럼 한 번에 딱 끊어야 하는 일이에요. 천천히 줄여나간다, 는 불가능해요. 저는 체벌이 그만큼 나쁜 일이고, 그만큼 역효과가 많이 나는 거라는 인식이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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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가르쳐야 할 것인가


안타까운 것은 이런 책을 읽는, 이 인터뷰 기사를 읽는 분들은 문제의식이 있는 분들이라는 점이에요. 정말 공부가 필요한 분들은 관심이 없잖아요.


하태욱 : 맞아요. 하지만 그럼에도 의미가 있는 것은 이런 이야기를 함으로써 확산이 된다는 거죠. 이것이 담론의 형성이잖아요. 내 입을 통해 다른 사람의 귀에 들어가고, 그 이야기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점점 더 전달될 때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는 일로 전환되기 때문에요. 의미가 있죠. 과거에는 한 번에 사회를 전환시킨다고 했지만 이제는 그런 시대는 지났어요. ‘마이크로 폴리틱스(micropolitics, 미시정치)’라고 하죠. 삶의 정치에서 어떻게 우리 목소리가 들리도록 할 것인가, 라는 고민을 늘 해요. 책을 쓴 이유도 그것이겠죠.

 

책에서 한 문장을 꼽는다면 “결국 한 인간이 사회화되는 과정의 질은 일상의 작디작은 경험이 모여서 결정되는 것”(66쪽)이라는 문장이었거든요. 지금 말씀과 닿는 것 같아요.


차상진 : 존 듀이의 말 “삶은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여야 한다”는 말이 중요할 거예요. 제가 공부하면서 계속 마음에 두고 있는 말이기도 해요.


하태욱 : 우리 교육의 큰 비극은 삶과 교육을 분리하면서 벌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부모의 삶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 이유기도 한데요. 아이는 학교에서 잘 배워야 하지만 나는 막 살아도 된다, 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집에서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는 거죠. 나는 퇴근한 후 집에서 스마트폰 게임 하다가 잠들면서 아이에게는 게임하지 말라고 하면 절대로 안 먹혀요. 일 년에 책 한 권 안 읽으면서 책 읽으라고 하는 것, 안 먹힌다는 거죠. 내 삶, 아이의 삶, 우리의 삶이 아이의 교육과 아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요. 그것을 우리가 깨달을 필요가 있죠. 삶과 교육이 분리가 되니까 지금 삶은 희생되어도 되는 거잖아요. 교육을 통해 얻을 성취들을 위해 지금의 삶은 지옥이어도 되고요. 이것이 지금의 교육 지옥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쓰여요.

 

변해야 한다는 것 알지만 걱정이 된다, 다른 길로 가기 불안하다, 세상은 아직 그렇지 않다, 라고 생각하는 분들께는 어떤 이야기를 해주고 싶으세요?


하태욱 : 사다리론-길론과 더불어 자주 하는 이야기가 ‘이 세상-저 세상론’이에요. 우리 아이는 이 세상에서 존중하며 키웠는데 저 세상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아이가 저 세상에 적응하기 힘들 것 같다, 라는 이야기를 하는데요. 가령 대안학교에 오는 아이들 중에 공동육아부터 시작해 오는 아이들과 일반 학교를 거쳐 오는 아이들이 있어요. 문화가 확연히 달라요. 1학년 때는 충돌이 굉장하죠. 하지만 그러다가 변해요. 일반 학교에서 온 아이들이 욕설을 쓰다가 이런 것을 안 써도 충분히 쿨하고, 충분히 괜찮구나, 깨닫는 순간 이 선한 영향력, 그 질서 안에 들어오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이 세상에 있던 아이가 저 세상에 가서 살아야 하는 게 아니고요. 저 아이들이 이 세상에 와서 살 수도 있는 거예요. 우리가 문제를 그렇게 이분법적으로 나누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달나라에 가서 사는 게 아니잖아요. 우리 사회 안에서 사는 거니까요.

 

대안교육을 연구하시면서 최근 느낀 변화는 무엇인가요?


하태욱 : 국내에 대안교육 운동이 일어난 게 벌써 20년 정도 됐고요. 혁신학교가 지난 10년 간 확산된 것도, 모두 대안학교 덕분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대안학교가 굉장히 많은 영향력을 끼쳤다고 봐요. 왜 부모가 돈을 들여가며 저런 특별한 공간에 아이를 보내야 해? 공교육 안에서는 그게 왜 불가능해? 라는 문제제기를 했던 많은 교사와 학부모가 혁신학교라는 또 다른 물꼬를 틔운 거고요. 예전에는 다른 선택지를 만들어주는 것만이 중요했다면 지금은 어떤 선택지가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느냐 하는 질적인 고민들이 중요한 것 같아요. 요즘은 어떤 다양한 대안들을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어요. 또 그것의 문턱을 낮추고요. 돈 있고, 정보력 있는 중산층 부모뿐 아니라 모든 부모가 대안을 인지하고, 혜택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일도 중요할 거예요.

 

공교육에 대한 제언도 해주실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하태욱 : 이제 산업 사회의 역군을 길러내는, 군사를 길러내는 방식의 교육은 유효기한이 다했죠. 하지만 그렇다고 공교육이 망할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진 않아요. 구질서를 유지하려는 관성이 늘 있죠. 다만 기존 교육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어요. 결국 무엇을 가르쳐야 할 것인가, 인데요. 나머지를 다 AI가 해준다면요. 인간의 감정, 관계, 소통, 협력 등이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를 가르칠 수 있겠죠. 이때 교육은 기존처럼 밑줄 긋고, 정답 고르는 식으로는 할 수 없어요. 직접 해봐야 알죠. 싸우고, 협력 안 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경험해봐야 알 수 있어요. 우리에게는 그 경험들을 아이들과 끊임없이 소통해야 하는 과제가 있어요. 교육이 그렇게 가야 한다고 봐요. 공교육의 핵심 화두 중 하나도 ‘마을교육공동체’라고 하는데요. 결국 마을이란 관계잖아요. 관계망들이 해체된 지금 사회에서 그것을 되살려내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고 생각해요.


차상진 : 공교육이 틀렸다는 이야기는 아니에요. 다만 공교육 안에서 다름을 인정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예요. 지금까지 얘기한 존중과 소통, 아이의 입장, 이런 것이죠. 그동안 이것들을 무시해왔다면 이제부터는 존중을 해줬으면 좋겠어요. 저희는 학교 밖에서 아이를 키웠지만 학교가 나쁘다는 건 아니에요. 그냥 다르게 산 것이고요. 학교에서도 학교 바깥에서 다르게 살고 있는 사람들을 틀렸어, 문제야, 가 아니라 그 인생도 훌륭할 수 있다, 각자 인생은 다 다르다, 라는 얘기를 해주면 좋겠어요.

 

이 책을 어떤 고민을 하는 분들에게 권해주고 싶으세요?


차상진 : 책에 한 이야기는 제가 하이스코프에서 배운 내용이 굉장히 많아요. 제가 14년 동안 하이스코프를 붙잡고 있었던 이유가 그것이 제 삶과 제 사고를 변화시켰기 때문이에요. 교육학을 통해 내 삶을 바꾼 이야기라서요. 다르게 살고 싶은 분들, 어떻게 살면 좋은지 고민하시는 분들도 이 책을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임신하신 분이나 이제 막 아이를 키우는 분들도 작은 도움이나마 받으실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정말 작은 도움이요. 강연에서 자주 하는 이야기가 강연을 한 번 듣고서 좋은 부모가 될 거라고 절대 기대하지 마시라는 거거든요. 제 얘기 중 딱 하나만 실천해서 바꾸실 수 있으면 성공이라고 말씀드리는데요. 책도 그랬으면 좋겠어요.


하태욱 : 남들처럼 육아하고 싶지 않은 사람, 이겠죠.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은 많은데요.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고, 그게 맞는 건지도 잘 모르겠고, 용기도 나지 않아요. 이런 분들이 읽으시면 좋지 않을까 싶어요. 이 책에는 오늘 저녁에 당장 아이와 할 수 있는 일도 있고요. 지향점을 생각하게 하는 내용도 있으니까요. 이 책이 용기를 드리고, 힘을 드릴 수 있으면 좋겠어요.


 

 

남들처럼 육아하지 않습니다차상진, 하태욱 저 | 휴(休)
아이가 스스로 자신의 욕구를 발견하고, 또 부모가 아이의 욕구를 이해하고 존중해주는 ‘아이 주도 육아’가 훗날 아이가 주도적인 인생을 사는 데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지 다양한 연구와 사례를 들어 설명한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민형 교수 “우리는 매일 수학적으로 사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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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새벽, 알람이 울린다. 출근까지 남은 시간은 1시간 남짓. 10분 더 자기 위해 아침 식사를 포기하기로 한다. 집을 나서기 전, 스마트폰 화면에 표시된 ‘배터리 잔량 30%’를 보고 보조배터리를 가방에 챙겨 넣는다. 최대한 빨리 지하철역에 도착하기 위해 지름길로 발길을 재촉하고, 라디오 뉴스에서 흘러나오는 환율 하락 소식을 들으며 다가올 해외여행에서 쓸 돈을 미리 환전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매일, 매 순간 수학적 사고를 하고 있다. 동시에 줄곧 수학은 어렵다고 말하면서.


한국인 최초 영국 옥스퍼드대 수학과 정교수이자 세계적인 수학자인 김민형 교수는 방학이면 한국을 찾아 대중을 위한 수학 강연을 한다. 수학은 나와 무관한 것이라 생각하는 이들을 수학의 세계로 안내하기 위해서다. “여러분은 선한 사람입니까? 악한 사람입니까?”라는 물음을 시작으로 확률론을 설명하고, “서로에 대한 선호도가 다른 남녀 100명을 어떻게 짝지으면 안정적일까요?”라는 질문으로 게일-섀플리 알고리즘을 이야기한다. ‘수포자’는 알아보기 어려운 복잡한 수학 공식도 김민형 교수의 언어를 통하면 이해할 여지가 생긴다. 『수학이 필요한 순간』은 그 강연의 정수가 담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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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의 아름다움, 세상의 아름다움


‘지은이의 말’에서 편집자들을 향한 애정이 묻어났습니다. 출간 제의를 받고 소감이 어땠나요? 

 

고맙고 기뻤습니다. 수학에 대해 소통할 기회가 생기는 것을 무척 즐겁게 생각하기 때문에 재미있게 받아들였습니다.

 

1년여의 강의가 책으로 묶였어요. 책 작업은 어떻게 이루어진 것인가요? 


인플루엔셜 출판사 편집자들로부터 수학에 대한 궁금증이 담긴 질문들을 받았고, 이를 토대로 한국에 올 때마다 편집자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진행했어요. 이 책은 그 강의의 내용을 엮은 것입니다.

 

책에 실린 7개 강의는 어떤 기준으로 구성되었나요? 


접근하기 비교적 쉬우면서도 수학의 진실된 맛을 전해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수학에 호기심만 가지고 있거나, 학교에서 배운 수학을 어느 정도 기억하는 수준의 사람들이 들었을 때도 이해할 수 있을만한 내용은 어떤 것들이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일반 대중을 위한 강의라고 해도, 겉핥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깊이 있는 주제를 잡아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대중과학서들 중에는 무슨 뜻인지 모르면서 멋있는 말로만 치장하려 쓴 글을 종종 봅니다. 그걸 피하고자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기 때문에 주제를 잡는 데 무척 고심했습니다. 여러 해 걸쳐 대중강연을 하며 쌓아둔 자료들이 책을 구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됐어요. 

 

대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어 강연을 듣는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공부를 할 때, 대화가 굉장히 큰 도움을 줍니다. 수학이라고 하면 혼자 머리 싸매고 고민하는 모습을 주로 떠올리는데 사실 수학 공부를 할 때도 대화가 무척 중요하죠. 책을 읽고 난 뒤에도, 그 책을 읽은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면 훨씬 더 이해가 잘되고 오래 기억할 수 있잖아요. 수학도 마찬가지입니다. 배울만한 깊이가 있는 내용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공부하는 게 중요한데, 그중에서 대화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 방법론을 살리고 싶었습니다.

 

수학에 ‘아름답다’는 형용사를 붙이는 경우가 드문데, 교수님의 강의는 ‘수학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는 평을 받습니다. 교수님께서 생각하는 수학의 아름다움은 무엇인가요?


어려운 질문입니다. 아름다움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수학을 업으로 삼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의 관점 차이가 있는 것 같습니다. 가령 화가에게 “그림을 왜 그리는가?”라고 물었을 때,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위해서라고 답하진 않을 것 같거든요. 진리를 추구하거나, 자신의 신념을 명확히 표현하려고 한다는 경우가 더 많겠죠. 그런 관점의 차이가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느끼는 수학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한다면 아마도 세상의 아름다움이 아닐까 싶습니다. 몰랐던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깨우치는 과정에서 오는 아름다움이 있겠지요.

 

 

수학은 세상을 이해하는 과정이다


책을 읽고 가장 많이 들었던 생각은 ‘그동안 수학을 오해했다’는 것입니다. 수학은 어려운 논리 혹은 특별한 사고라고 생각했어요.


제가 생각할 때 수학은 세상을 이해해가는 과정입니다. 흔히 수학은 세상을 이해하는 것과 다른 종류의 문제라고 오해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건 대중뿐 아니라 때로는 수학자들조차 하고 있는 오해이기도 합니다. 또, 보통 우리가 하고 있는 사고를 좀 더 정밀하고 정확하게 하려고 노력하다 보면 수학적 사고를 하게 됩니다. 저는 거의 모든 사고가 수학적 사고로 이어지는 면이 있다고 생각해요.

 

수학사에는 틀린 증명과 틀린 정리가 굉장히 많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 수많은 실패가 현상을 이해하게 하는 데 더 큰 도움을 주곤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제약이 무엇인가를 확인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178쪽)

 

‘반드시 답이 있다’는 것도 흔한 오해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물론 답이 중요할 때도 있습니다. 가령 ‘어떤 현상이 있는가, 여기에서 내가 알고 싶은 게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나면 이를 이해하기 위해 답을 찾아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는 정답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죠. 하지만 궁극적인 목적은 ‘이해’거든요. 답을 찾는 것은 결국 이해하기 위한 과정의 한 도구일 뿐이죠.

 

가장 인상적인 파트는 ‘확률론의 선과 악’입니다. 깊이 있는 사고를 가능케 하고, 편견에서 벗어나는 데 수학적 사고가 필요하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알 수 있는 내용이었어요.


그 부분은 수학적 사고는 특별한 사고가 아니라는 주장과도 연결됩니다. 우리가 매일 하는 생각을 좀 더 정확하고, 정밀하게 하려고 노력하면 수학적 사고가 되는 것이죠. 우리는 지금 이 순간에도 수학적 사고를 하지 않고 있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해당 부분에 나오는 “지능이 굉장히 높은 여자는 대부분 자기보다 지능이 낮은 남자와 결혼한다는 통계가 있는데 왜 그럴까요?”라는 질문을 수강생들에게 던지면 우스갯소리로 ‘여자가 남자를 이용하려 한다’든지 ‘똑똑한 남자는 똑똑한 여자를 싫어한다’는 등의 다양한 답변이 나옵니다. 이러한 답은 “근거가 무엇이냐”는 물음에는 대답을 할 수가 없습니다. 단순한 느낌이고, 사회적 편견이니까요. 그런데 확률적으로 대다수의 사람들은 지능이 ‘굉장히 높은’ 여자보다 지능이 낮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수학적 사고는 정밀하게 생각하는 도구가 되곤 합니다. 물론 수학자도 사회적 편견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어요. 하지만 보다 더 일관적으로 생각하고, 근거가 없는 이야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는데 수학적 사고가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대학에서 배우는 수학이론도 미래에는 상식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한 시대가 왔을 때,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은 어떻게 달라질까요?

현재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과 17세기 사람들이 바라보는 세상은 상당히 다릅니다. 가령 우리는 확률에 대해 굉장히 많은 것을 이해하고 있거든요. ‘비 올 확률 37%’라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슨 뜻인지 알고, 복권을 사면서 기댓값이 얼마인지도 이해하고 있죠. 이처럼 미래에 대해 체계적으로 사고할 수 있다는 것은 과거와 현재의 큰 차이입니다. 또 우리는 별의별 신기한 이론들이 다 실현된 세상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그럴싸한 아이디어를 생각해낸다면, 그걸 현실에서 만들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있습니다. ‘아이디어가 중요하다’는 시각도 100년 전에는 생각하기 어려운 관점이었을 거예요. 이런 변화를 토대로 비교적 단기간 내에 일어날 변화 중 하나는 정보와 굉장한 연관이 있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정보를 정밀하게 수학적으로 생각하는 방법론이 현재 부단히 개발되고 있는데, 이런 것들이 생활화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엑셀을 통해 여러 정보를 질서정연하게 정리하고, 간단한 수식을 쉽게 할 수 있는 것처럼 정보를 손쉽게 처리하는 현상이 지금보다 훨씬 심화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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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을 못한다는 생각이 문제다


우리 사회에는 ‘수포자’를 자처하는 이가 많습니다. 왜 그런 걸까요?


수학이 어려우니까요.(웃음) 사실 수포자는 전 세계적으로 많습니다. 저는 수학을 포기한 게 잘못된 것이 아니라 수학을 포기했기 때문에 수학을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하고 싶어요. 어떤 일을 할 때, 포부가 지나치게 크면 대체로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포부를 이루지 못했다고 해서 그 일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에요.

 

국민의 수학적 목표가 높다는 뜻인가요?


높은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두 가지 효과가 나타나요. 첫째는 평균적 수학 수준이 굉장히 높습니다. 이뤄야한다는 기준이 높기 때문이죠. 사회에서 100을 요구하면 아무리 못하는 사람이라도 50은 달성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평균 수준 자체도 높아집니다. 이건 좋은 효과에요. 하지만 반대로 ‘나는 50까지밖에 못 갔기 때문에 수학을 못 한다’고 낙담하는 나쁜 효과도 나타나죠.

 

그럼 교수님께서는 국내의 수학 교육을 긍정적으로 평가하시나요?


좋은 점과 나쁜 점이 공존하지만, 아주 부정적으로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수학과 관계없는 사람들에게 수학을 설명할 때 기초적인 함수를 알아보거나 어떤 산술들을 알고 있는 모습을 보며 깜짝깜짝 놀라곤 하거든요. 이건 외국에서는 거의 경험할 수 없는 일이에요. 전반적으로 수학 수준이 높다는 것은 교육의 힘인 것이죠. 또 중?고등학교 수학 선생님들의 수준이 굉장히 높아요. 실력이 좋을 뿐 아니라 교육열과 학구열이 강하다는 것도 무척 인상적이죠. 사회적으로 가르치고, 배우고자 하는 열의가 높다는 것은 상당한 강점이에요.

 

그래서 포기하는 사람도 많은 것 같습니다.


맞아요. 열의가 높은 만큼 실망도 강하게 하는 것 같습니다.(웃음) 이를 극복하는 방법을 다함께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공계생 중에는 문학을 멀리하는 이들이 많고 문과생들은 수학, 과학과 담을 쌓았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러한 현상은 어떻게 바라보시나요?


마찬가지입니다. 방금 이야기한 것처럼 문과라고 해도 상당히 많은 이들이 수학을 알고 있고, 이공계생들도 충분히 문학을 즐길 줄 압니다. 컴퓨터로 계산을 못하는 사람은 거의 없잖아요. 그것도 수학입니다. 하지만 이걸 굉장히 낮은 수준의 수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수학을 못해’라고 단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반대의 경우도 같아요. 지금처럼 모든 사람들이 글을 읽고 쓰게 된 것은 상당히 최근의 일입니다. 우리나라는 문맹률도 낮죠.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본다면 어떨까요? 어느 수준에서 포기하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는 것이지, 서로 접하지 않는다거나 모른다는 가정은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신보다 이 분야를 잘하는 사람이 있다거나 혹은 내가 원하는 만큼 이룩하지 못했다고 해서 얻은 게 없는 것은 아닙니다. 스스로 가진 것을 귀하다고 생각하는 관점이 필요해요. 

 

 

이해하면 달리 보인다 


문과생의 입장에서 『수학이 필요한 순간』은 결코 쉬운 책이 아닙니다. 하지만 완벽히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끝까지 읽을 수는 있어요. 교수님의 친절한 설명과 풍부한 예시 덕분입니다. 깊이 있는 수학의 내용을 쉽게 전달하는 비결이 무엇인가요? 


이게 비결인지는 모르겠지만, 여러 사람과 대화하려고 노력을 합니다. 수학 전공자가 아닌 분들과도 이야기를 많이 나누려고 하고, 수학에 관해 궁금한 것이 있는 분들께는 언제든지 제가 알고 있는 한도 내에서 그것을 설명해드릴 용의가 있어요. 방금 “모두 이해하지 못했지만,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고 말씀하셨는데 이것도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인 것 같습니다. 한 번에 이해를 안 해도 괜찮다는 걸 아는 게 중요하죠.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은 대충 보고 넘어가도 됩니다. 한참 지났을 때 다시 살펴보고, 또 살펴보면 언젠가 흡수할 수 있는 순간이 오거든요. 처음 읽었을 때는 무슨 내용인지 몰랐던 책을 몇 년 지나서 다시 펼쳤을 때 감동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수학도 그렇게 접근하는 게 필요합니다. 사람은 굉장히 복잡한 과정을 통해 배워나가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쓰면서 ‘어렵다면 그냥 넘어가도 괜찮다’는 직관을 전해주려고 노력했어요. 한 번에 이해하지 않아도 되니 나중에 다시 생각해보고, 이 사고의 과정을 거듭해보라는 권유가 암시적으로 들어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웃음)

 

과거 인터뷰에서, 어린 시절부터 수학을 좋아했던 것은 아니라고 말씀하신 것을 보았습니다. 언제부터 수학에 관심을 갖게 되신 건가요?


고등학교 때를 생각해보면, 수학보다 논리학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철학과에 입학을 했었어요. 아마 세상을 이해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을 텐데, 지금 세상의 관점에서는 수학적 사고 없이 세상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게 너무도 자명하더라고요. 그래서 수학과로 전공을 바꾸었고, 대학에서 수학을 제대로 공부하면서부터 점점 흥미를 느꼈던 것 같습니다.

 

대중을 위한 수학 강연에 힘쓰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첫 번째 이유는 재미있기 때문입니다. 학문을 하는 이의 가장 지속적인 즐거움은 다른 사람들에게 알만한 사실을 알려주고, 사람들이 그것을 즐겁게 받아들여주는 것이거든요. 수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을 위한 강의도 즐겁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과 이러한 즐거움을 나눌 수 있는 경험이 참 좋습니다. 더불어 우리나라의 수학 교육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자신의 실력에 낙담하는 사람들을 북돋우는 데 도움을 주고 싶습니다.

 

수학적 사고를 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어떤 도움을 줄까요?


세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더 거창하게 설명하면, 지금 우리가 살면서 느끼는 두려움이 많잖아요. 물론 정당한 두려움도 있지만, 세상에 대한 이해가 없어서 오는 두려움도 분명 있을 거예요. 모르는 요소, 미지의 세계에 대한 공포가 우리를 두렵게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면에서 볼 때, 결국 이해한다는 것은 삶을 지금보다 쉽게 만들어줍니다. 그런데 세상을 이해하는 데는 수학적인 사고가 굉장히 중추적 역할을 하죠. 수학과 관련된 예는 아니지만, 가령 모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그런데 모기를 공부해서 이해하게 되면, 모기가 다르게 보입니다. 이 동네에도 굉장히 여러 종류의 모기가 있어요. 모기마다 생활습관도 상당히 다르고요. 조금 공부를 하고 나면 모기가 나타났을 때 짜증이 나기 전에 궁금해지죠. ‘저건 어떤 모기일까? 왜 저런 식으로 행동할까?’ 하면서요. 그렇다고 물린 부위가 가렵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무작정 싫어하거나 두려워하게 되지는 않습니다. 이해가 우리 삶에 도움을 주는 예죠.

 

모기를 정말 공부하신 건가요?(웃음)


아주 예전에 조금 공부를 했었어요. 지금은 다 잊어버렸지만. 하하하. 이해하면 싫은 마음이 사라지고, 궁금증이 생겨요. 수학적 이해력 또한 세상을 알아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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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이 필요한 순간김민형 저 | 인플루엔셜
우리는 인간이 우주를 이해하는 법도, 윤리적인 판단까지도 수학적 사고를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더 깊게 생각하는 데서 오는 짜릿하고 매력적인 희열에 빠지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우창 “부도덕한 사회에서 도덕적으로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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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인문학의 거장’으로 손꼽히는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 그의 사상은 우리 문학과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며 큰 물줄기가 되어 흘러왔다. 문학평론가로서 한국문학비평에 기여했고, 진영 논리에 휘둘리기를 거부한 채 이분법 너머의 것들을 말했다. 동서고금의 문학과 철학을 아우르면서 치열한 이성적 사유를 거친 끝에, 그의 글들은 탄생했다. 『법과 양심』  또한 그 연장선상에 있다.

 

책은 2010년부터 2014년까지 김우창 교수가 강연했던 내용을 바탕으로 엮었다. 헌법재판소, 사법정책연구원, 사법연수원 등 사법기관의 요청으로 이루어진 강연이 주를 이루는 까닭에, 자연스레 주제는 ‘법’과 ‘양심’이 됐다. 이에 대해 김우창 교수는 “양심의 문제를 생각하는 사회적 사정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말한다. ‘양심이란 무엇이고, 법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 그것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때 발생하는 문제들, ‘법과 양심은 어떤 관계를 맺으며 상호작용 하는가’ 등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지난해 출간된 책이지만 여전히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지난 50여 년간 저자의 사상이 녹슬지 않은 채 이어져온 것과 같은 맥락이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는, 악인도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양심의 인간은 그 양심이 이데올로기적일 때 다른 양심의 인간에 대해 잔인하다”, “좋은 사회란 진실의 사회라기보다는 인간적 현실의 여러 요소가 균형을 이룬 사회이다” 같은 말들이 그러하다. 인간사회에서 끝없이 성찰되어야 할 것들이다.

 

김우창 교수는 1965년 <청맥>지에 「엘리어트의 예」로 등단했다. 하버드대학교에서 미국문명사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서울대 영문과 교수를 거쳐 고려대와 이화여대 석좌교수를 지냈다. 공공지식인, 문명비평가, 문화사가, 문학이론가, 철학자로서 인문, 사회, 자연과학을 아우르는 사상적 깊이를 보여줬다. 저서로 『궁핍한 시대의 시인』 , 『지상의 척도』 , 『심미적 이성의 탐구』, 『정의와 정의의 조건』,  『깊은 마음의 생태학』  등이 있으며, 저자의 모든 글을 모은 『김우창 전집』 이 출간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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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시적 청탁’은 죄목이 될 수 있나


이번 책에는 사법 기관에서 강연하신 내용들이 실려 있습니다. 법학자나 법조인이 아닌 인문학자를 초청해서 법과 윤리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아마 (법과 관련된 영역에) 객관적인 이야기가 별로 없을 거예요. 그래서 기록을 했던 건데요. 사법정책연구원의 최송화 교수가 저를 초청해서 강연을 했던 적이 있어요. 그 분이 보실 때 객관적으로 이야기하는 사람이 너무 없기 때문에 저를 데리고 와서 이야기를 듣는 게 좋겠다고 생각하셨던 게 아닌가 싶어요. 우리나라에서 어떤 문제를 놓고 이야기를 할 때 ‘내 편이냐, 저쪽 편이냐’, ‘이것이 옳은가 그른가’를 따지지 않고 객관적으로 생각해본 분들이 굉장히 적어서 그런 말들이 가닿지 않은 것 같아요.

 

문학작품을 예로 들어서 설명하실 때가 많더라고요. 이론이 아닌 문학으로써 접근할 때의 이점이 있나요?


문학, 법, 정치, 철학이 한 덩어리가 되어 있어야지요. 그것이 사회의 문화를 이루고 있어야지, 다 분리돼 있으면 안 되지요. 법은 두 가지로 우리와 관계가 있어요. 하나는, 범법을 하지 않는 한 법은 나와 상관이 없어요. 아마 일생동안 법과 아무 관계없는 사람이 대부분일 거예요. 또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은 사람이 사는 데 필요한 것이니까 존재한다는 거예요. 누구에게나 가까이 있지요. 그러니까 법이라는 건 우리 일상생활과 매우 가까이 있으면서도 멀리 있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법을 하는 사람들도 사람 사는 문제를 알아야지, 그것이 없이는 법이 존재할 수 없어요. 간단한 판결은 가능하겠지요. 사람을 죽였는지 안 죽였는지, 이런 건 판결할 수 있을 거예요. 그렇지만 거기에 대해서 정말 깊게 생각하려고 하는 경우에는 ‘사람을 죽이려고 하는 사람은 왜 죽이느냐’ 이런 질문도 해야 하잖아요. 또 어떤 사람은 죽이는 게 괜찮다고 하지요. 가령 사형을 집행한다든지, 전쟁이 났을 때 적을 죽인다든지. 그러면 어떤 때에 사람을 죽이는 것은 옳지 않은 것인지, 그에 대한 생각도 할 수 있지요.

 

법을 다루는 사람에게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법 조항과 판례를 잘 아는 게 전부가 아니고요.


깊이 생각하는 법관이라면 그런 감각이 있어야지요. 그런 배경이 자신한테 없더라도 법 전체에 있어야 하고요. 시카고대학 로스쿨에 ‘마사 누스바움(Martha Nussbaum)’이라는 교수가 있어요. 그 분의 원래 전공이 희랍 철학, 희랍에서 전파된 헬레니즘 철학이에요. 그런 분을 법과 대학에서 모셔간 거지요. 법학 교육의 배경에 철학도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 거예요. 그게 정상적인 나라이지, 법이 따로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건 잘못이지요. 이건 함부로 이야기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사실 굉장히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게 있어요.

 

무엇인가요?


박근혜 대통령에게 징역 30년이 구형됐잖아요. 실제 그 케이스를 잘 보지 않아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신문에 나온 걸 보면 ‘묵시적 청탁’이 큰 죄로 되어 있어요. ‘국정농단’ 하고. 그런데 국정농단이라는 게 법에 없을 거예요. 또 묵시적 청탁이라고 하면 은근히 압력을 줬다는 건데, 그렇게 하면 죄목이 안 되지요. 실제로 판결문을 안 봐서 모르겠지만, 이런 법 제도가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사회가 건전한 상식과 양식이 있는 사회냐는 거예요. 아마 박근혜 대통령에게 잘못은 있을 거예요. 대통령으로서 직책을 바르게 수행하지 못했다는 도덕적 윤리적 책임이지요. 이건 죄로 다룰 수 있지만 법으로 재판할 수 있는 건 아니지요. 여론이나 양식 있는 사람들한테 책임을 묻고, 거기에 대해서 본인이 답변할 수 있어야지요. 법은 어디까지 증거를 가지고 판단하는 것이지, 증거 없이 재판한다는 건 불가능하지요.

 

책에서 말씀하신 부분이 떠오르네요. “법은 증거로 제시할 수 있는 행동이나 언어에 의하여서만, 사람을 처벌할 수 있다. 말하지 않는 것, 행하지 않는 것을 다루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쓰셨죠. 법에 의한 제재나 판단, 처벌은 최소한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세요?


최소한이라기보다도 정당한 근거와 절차에 의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정당한 절차는 법관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는 게 아니라 법으로 제정돼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또 관례로써 수립이 돼 있어야지요. 자기 마음대로 하면 안 되지요. 법관들이 다 자기 양심에 따라 재판하게 되면 법 제도라는 게 없어져 버리잖아요. 법 자체가 가지고 있는 정당성이 없어져 버리지요. 한 사람의 양심이 절대적인 건 아니거든요. 그것이 제도화되기 위해서는 많은 절차가 필요하고, 절차를 정해놓았다고 하더라도 어떤 경우에는 그것을 넘어가는 판결도 할 수 있어야 돼요. 그런 건 드문 경우이지요.

 

일부 범죄에 대해서는 ‘형량을 더 늘려야 된다’는 주장이 제기됩니다. 특히 약자를 대상으로 한 범죄일 때 그렇죠. 이 또한 양심에서 나온 목소리이고, 동시에 현재의 법을 넘어서자고 말하는 이야기이기도 한데요. 이런 경우는 어떻게 보시나요?


그것은 정치와 사회 운동으로 이야기해야 될 일이지, 법으로 하여금 형량을 넘어서 약자를 보호해야 된다고 말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생각해요. 약자라는 말 자체가 우습지요. 법 앞에는 만인이 평등해요. 대통령이나 청소부나 똑같은 자격에서 재판을 받는 것이고, ‘이 사람은 불쌍한 사람이니까 사람을 죽여도 괜찮다’라고 하지 않잖아요. 그건 정치, 사회, 문화의 문제이지 법으로 정할 수는 없지요. 이렇게 할 수는 있어요. ‘여성에 대한 범죄는 특히 강하게 처벌한다’고 법으로 정하면 그대로 해야지요.

 


부도덕한 사회에서 도덕적으로 산다는 것


「모든 계절의 사람」과 관련해서 말씀하신 이야기가 굉장히 인상적이었습니다. (「모든 계절의 사람」은 로버트 볼트가 BBC라디오의 각본으로 쓴 작품으로 토마스 모어의 삶을 다루고 있다. 이후 TV 각본, 연극, 영화로 만들어졌으며 우리나라에서는 <사계절의 사나이>라는 제목의 연극으로 공연됐다. - 필자 주)


정의가 무엇인지, 법이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이상이 잘 구현되어 있지요. 그건 볼트 개인의 생각일 뿐만 아니라 문명사회가 다 가지고 있어야 되는 규칙들이에요. 작품에서 토마스 모어가 생각하는 것도 굉장히 정확하잖아요. 법에도 맞고, 국가에도 맞고, 내 양심에도 맞는 선택을 하려고 하지요. 접합점을 찾으려고 노력을 많이 하는 거예요. 자신을 영웅으로 만들려고 하는 게 아니라, 법에 따라서 행동을 하면서 자신도 살아남는 방법을 찾으려고 하지요. 비겁한 사람처럼 보이면서도, 동시에 법 제도나 인간 사회에서 윤리와 법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잘 보여줘요.

 

모어는 ‘악마도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요. 로퍼라는 인물은 그를 반박하면서 “악마를 잡기 위해서는 모든 법의 나무를 베어낼 용의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모어가 “법의 나무가 모두 베어져 없어지고 악마의 바람이 불어닥치면, 너는 어디에 숨을 것인가”라고 묻죠. 그것이 바로 초법적인 심판과 처벌을 하면 안 되는 이유가 아닐까 싶어요.


정확하지요. 로퍼는 젊은 사람이기도 하니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의감, 분노 의식을 가지고 해결하려고 하는데, 모어는 절차에 따라서 해결하려고 하는 거예요. 절차를 존중하면 쓸데없는 ‘절차 미신주의자’라고 할 수도 있는데, 그게 아니지요. 모든 사람이 적절한 인간적인 사회에서 살려면 그래야 된다는 의견을 가지고 말한 거예요. 그게 ‘절차 망상주의’에서 나온 건 아니지요. 우리나라에 부족한 게 그거예요. 절차라는 게 거기에 얽매인 사람들의 생각을 표현한 게 아니라, 모든 사람이 평화롭게 같이 살기 위해서 필요한 건데, 그런 인식이 참 부족해요.

 

“정직한 사회에서는 정직한 사람으로 살고 부정직한 사회에서는 부정직한 사람으로 산다”고 하셨어요. “도덕적인 사회에서 도덕적으로 산다는 것은 거의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부도덕한 사회에서 도덕적으로 산다는 것은 자연스러움을 넘어서 정진과 결단을 요구하는 일”이라고요. 법조인도 예외가 아니겠죠. 누구보다 엄중한 책임을 느껴야 하는 사람일 거고요.


그렇지요. 양심은 두 가지가 있어요. ‘법의 양심’과 ‘개인의 양심’. 법을 다루는 사람은 법 전체의 정신에 따라서 행동해야 하고, 정 안 될 경우에 자신의 양심을 발휘해야 하지요. 그건 죽음을 각오하는 결심이에요. 깊이 있는 법률 교육에는 이런 것에 대한 교육도 있어야지요. 앞서 이야기했듯이 ‘마사 누스바움’ 교수처럼 철학적인 문제를 연구하는 사람을 법과 대학에 모셔오는 것도 그런 이유이지요.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떤 것 같으세요? 도덕적으로 정직하게 사는 일이 자연스럽게 되는 곳일까요?


최근에 나온 최승호 시인의 시집 제목이 『방부제가 썩는 나라』잖아요. 굉장히 살기 어려운 사회이지요. 우리나라가 개인 소득이나 GDP가 상당히 높은데도 불구하고 사회적 신뢰도는 OECD 국가 중에 꼴등이에요. 서로 믿지 못하고 살기 어려운 사회인 것이지요. 그런데 한 가지 변호할 수 있는 것은, 우리 사회가 짧은 시간에 엄청난 변화를 겪었다는 거예요. 거기에 맞춰서 사회 윤리나 문화, 규범이 바뀌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지요. 사회는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바뀌는데 거기에 문화적으로 적응할 시간을 갖지 못했어요. 그런 이유를 떠올리면 너그럽게 생각할 수는 있어요.

 

더 나은 사회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사회 정책의 근본에는 두 가지가 있어야 돼요. 하나는 사회 평화예요. 모든 사람이 날마다 싸우거나 상대가 나를 해치려고 한다는 의심을 할 필요가 없는, 사회적 신뢰와 평화가 있는 사회여야 하지요. 또 하나는, 모든 사람이 적절한 수준의 생활을 유지할 수 있어야 된다는 거예요. 이것들의 기본에 있는 것을 한 가지 이야기하자면, 자비심이에요. 옆에서 누가 굶어죽는데 나는 날마다 진수성찬으로 먹는다면 비인간이지요. 다른 사람이 샘을 내서 내 밥을 뺏어갈 수도 있지만, 내가 자비심에서 나누어 먹을 수도 있잖아요. 사람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인 윤리적 감각을 문화 속에서 살려야 돼요. 그런 반성을 하는 사람들이 있어야 되는데, 우리 사회는 그런 게 거의 없어요. 모든 걸 분노로 해결하려고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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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시대의 소산이지요


‘개인의 양심’과 관련해서 생각해 보면, 사회적으로 갈등이 첨예해지는 이유 중의 하나는 서로의 양심을 못 믿어서가 아닐까 싶어요. ‘나는 양심적이지만, 당신도 양심적인지는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거죠.


그리고 양심을 싸움의 수단으로 생각하니까 그렇지요. ‘나는 양심적이야’라고 하면서 자신을 내세우는 거예요. 양심이라는 것도 매우 복잡한 건데, 사실은 법도 그렇지요. 어떻게 시행돼야 하는지, 어떤 때에는 시행되는 게 잘못이 되는지, 이런 걸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돼요. 그건 굉장한 훈련을 통해서 이뤄질 수도 있지만 사회가 그렇게 돌아가고 있으면 괜찮지요.

 

정치에 있어서도 ‘나는 윤리적이다’라고 생각하는 독단이 위험할 수 있잖아요.


정치 지도자가 사람을 죽이는 경우에 왜 그러겠어요? 사람 죽이는 걸 좋아해서가 아니라 ‘더 큰 정의를 위해서는 이 사람을 죽여야 된다’ 하면서 자신을 내세우고 정의라는 미명 하에 사람을 죽이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법 작업에 섬세한 감각이 다 들어있어야 돼요. 그러한 판단은 훈련을 통해서도 생기지만, 정상적인 사회라면 저절로 작용돼야 해요. 그것이 어려운 사회일수록 사회 전체에 문제가 많다는 이야기이지요.

 

강연장에서 법과 관계된 사람들을 많이 만나셨잖아요. 그들이 ‘양심’에 기반해서 판결을 잘 내리고 있다고 평가하세요?


그래도 엉뚱한 법을 가지고 사람을 처벌하는 일은 별로 없지요. 지금 필리핀에서 두테르테 대통령이 마약에 관계된 사람들을 그냥 죽여 버리라고 하잖아요. 우리는 그런 건 없지요. 법 절차를 존중해야 된다는 생각은 있어요. 이건 조선조 때부터 있는 전통이지요. 그래도 우리나라도 어느 정도 해당이 돼요. 정권을 잡으면 적폐청산을 말하지만, 자신들이 차지하기 위해서 그럴 수도 있고 복수하기 위해서 그럴 수도 있지요. 그러나 우리는 베네수엘라나 니카라과 같지는 않잖아요. 니카라과는 오르테가(다니엘 오르테가)라는 사람이 옛날에 혁명을 일으켜서 정권을 잡았는데, 뉴스를 보면 부패가 심하다고 해요. 옛날 부자들이 차지했던 걸 자기들이 다 차지하려고 하는 거지요. 그런 건 우리도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심성이 착해서도 그렇겠지만 유교 전통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관료는 부를 축적하면 안 된다, 민생을 위해서 노력해야 된다, 검소해야 된다, 이런 건 조선조 때부터 내려오는 생각이거든요.

 

이제는 그런 전통이 유명무실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드는데요.


그런 정신적 전통이 온전한 상태로 없기 때문에 여러 가지 문제들이 일어나는 것이지요. 그러나 완전히 없는 건 아니라는 이야기예요. 

 

간혹 교수님의 글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내가 부족해서 말을 쉽게 못해서 그런 거지요. 그래서 어렵다고 하기도 하고, 또 하나는 우리가 ‘사태의 해명’에 말을 쓰는 것에 익숙하지 못해요. 사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스타일로 말을 하지요. ‘이래야 된다, 저래야 된다’ 하면서. 자신의 성공에 대해서 그렇게 이야기하면 ‘저 사람은 저렇게 살려고 하나 보다’ 할 텐데, 우리는 ‘나라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래야 된다’는 이야기가 너무 많지요. 거기에서 벗어나는 이야기는 알아듣지 못해요. 나는 신문에 칼럼을 쓸 때 제목을 ‘~해야 된다’고 안 쓰거든요. 그런데 신문사에 가져가면 다 그렇게 만들어내요. ‘~해야 된다’, ‘~하라’, ‘~이 대세다’ 하는 식으로. ‘아마 원인은 이럴 것이다, 사실은 이럴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하지 않지요.

 

단정적으로 말하는 걸 좋아하고, 다각도에서 접근하면서 가정해보는 걸 답답해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결론이 뭔데?’라고 묻는 거죠.


네, 결론을 원해요. 그렇다 보니까 그냥 사실적인 이야기를 해명해서 쓰려고 하면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다고 말하지요.

 

지금까지 교수님은 ‘이분법적 논리에서 벗어나 있는 학자’로 평가받아 오셨어요. 한국 사회는 ‘당신은 어느 쪽이냐’고 묻는 경우가 많은데요. 그런 점에서 힘드실 때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출세하는 데 별로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괜찮아요. 힘든 게 하나도 없어요. 거기에 관심이 없으니까. 지금처럼 글을 써달라고 부탁을 받기도 하고, 그래서 다행이지요.

 

‘한국 인문학의 거장’, ‘우리 사회의 지성인’으로 손꼽히시잖아요.


그건 공연히 누가 만들어낸 말이지요.

 

굉장히 무거운 수식어일 수도 있겠습니다. 거대한 존재로 인정받으셨기 때문에, 그에 따라 견디셔야 하는 것들도 있었을 것 같거든요.


그게 사실에 안 맞기 때문에 마음이 괴로울 때가 있지만, 내 작업이 그렇게 좋은 결실을 맺지 못한 것이 괴로울 때도 있어요. 내 실력이 부족해서 그렇지만, 다른 한쪽으로는 지금 우리 사회의 발전 단계가 거기에 있기 때문에 그걸 넘어서서 더 잘하는 건 어려운 것이지요. 그건 다음 세대와 또 다음 세대에 점점 나아질 것이고, 그러면 우리나라에서 세계적으로 생각을 깊이 한 사람도 나오고 노벨상도 나올 거라고 생각해요. 시대를 비판한 나도 시대의 소산인 것이지요. 내 한계도 거기에 들어있고, 우리 시대가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도 완전하지 못한 것이고... 그렇게 핑계를 대지요(웃음).


 

 

법과 양심김우창 저 | 에피파니
‘사실의 객관적 구조’가 갖고 있는 필연 안에서 비슷하게 살 수밖에 없는 우리 모두의 삶도, 저마다의 처지에 따른 제각각의 다른 이유로 선택하고 받아들인 삶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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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유튜브 크리에이터 여행자MAY “여행의 행복을 일상으로 끌어오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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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MAY에게 여행은 어떤 의미냐고 물을 참이었다. 일상을 제쳐두고 떠났고, 돌아와서는 그녀의 삶을 완전히 뒤바꿔 버린 일이었으니까. 그런데 한 문장을 읽고 머릿속에서 그 질문을 지웠다. 여행자MAY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 자명했기 때문이다. “의미는 없어. 그저 좋을 뿐. (193쪽)”

 

가끔 그럴 때가 있다. 그저 좋아서 하는 일인데, 누군가 기대하는 눈빛으로 ‘의미’에 대해 물어오면 특별한 의미 없이 단지 그것을 좋아하는 내 마음이 한없이 덧없게 느껴지는 때 말이다.

- 190쪽

 

고된 업무, 반복되는 하루에 지쳤던 여행자MAY는 우연히 사진 한 장을 보고 퇴사 후 세계 일주를 시작했다. 딱 1년만 자신에게 충실한 시간을 갖기 위해 내린 결심. 그 후 300일간 30개국, 60여 도시를 여행했고, 진솔한 여행의 순간을 담은 영상을 유튜브에 업로드 해 현재는 구독자 수 5만 명을 지닌 여행 크리에이터가 됐다. 여행자MAY의 일상을 바꾼 것은 사실 여행이 아니라 여행 내내 되뇐 자신을 향한 질문이었다. 앞만 보고 달리기 전, 먼저 나에게 물었어야 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고, 어떤 가치를 추구하며 살고 싶은지. 여행을 통해 그녀는 ‘자유’라는 답을 얻었고, 그 순간순간의 마음이 『때때로 괜찮지 않았지만, 그래도 괜찮았어』 에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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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영상을 분리하고 싶지 않다


글과 영상은 서로 다른 성격의 콘텐츠잖아요. 두 가지 모두를 해 본 소감이 어떤가요?

 

비슷한 듯 달라요. 상호보완적인 것 같아요. 영상은 좀 더 가볍게 볼 수 있고, 실제 상황을 담아낸다는 점에서 훨씬 생생해요. 하지만 제가 그 당시 어떤 마음을 느끼고 있었는지는 표현하기 힘들죠. 자막 처리를 할 수는 있지만 한계가 있으니까요. 그 갈증을 책으로 채울 수 있었어요. 매체는 다르지만 어쨌든 제가 추구하는 방향성은 같아요. 최근에 업로드 한 ‘시베리아 횡단열차 에피소드’ 영상은 책의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시간’의 내용을 거의 그대로 영상에 옮겼어요. 책과 영상을 함께 보면 훨씬 더 좋을 거예요.

 

열차에서 만난 러시아 친구 ‘P’와의 에피소드죠? 그렇지 않아도 영상과 책을 함께 보며 뭉클했어요. 

 

현지인들과 헤어질 때는 특히 더 슬퍼요. 언제, 어떻게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하기가 어려우니까요. 그렇지만 P는 꼭 다시 만나러 갈 생각이에요.

 

브런치에 먼저 글을 연재한 걸로 알고 있어요. 책 작업은 어떻게 이루어졌나요?


처음 유튜브를 시작할 때부터, 여행에세이 같은 영상을 만들고 싶었어요. 그런데 영상을 하나둘씩 만들다 보니, 영상에 담을 수 없는 말들이 있더라고요. 그게 아쉬워서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고, 여행에서 돌아와 출판사 문을 여기저기 두드렸어요. 이 여행기를 책으로 엮고 싶었거든요.

 

글 쓰는 게 어렵진 않았어요?


저는 아침에 있었던 일도 밤이 되면 가물가물해요. 특히 감정적인 부분은 더 그렇고요. 그래서 순간순간 떠오르는 생각을 자주 메모해뒀어요. 순례길을 걷다가도 한 마디 적고, 산을 오르다가도 한 마디 적고 그랬거든요. 작은 노트를 늘 가지고 다니면서 적어둔 말들이 많아서 그걸 꺼내 보며 연결하는 작업이었기 때문에 그리 어렵거나 힘들진 않았어요.

 

여행의 순간을 영상으로 기록하는 것과 유튜브에 공개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일이에요. 여행 영상을 업로드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처음 영상을 찍고 편집한 목적은 여행을 기록하기 위함이었어요. 그런데 여행에 관해 검색하다 보니 여행 정보를 적어 둔 블로그는 많지만, 여행기를 다룬 유튜브 채널은 거의 없더라고요. 당시에는 1년짜리 세계여행을 한 영상 안에 집약해 예쁘게 편집해 놓은 것 정도밖에 찾을 수가 없었거든요. 여행을 하면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떤 마음인지, 얼마나 행복한지 등을 이야기해주는 영상이 없다는 것을 알고 내 생각을 촬영해 올리면 나처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었어요. 막연히 한번 해보면 재미있겠다는 마음도 있었고요.(웃음)

 

여행 중간중간 영상을 편집하는 모습이 담겨있었어요.


오랜 기간 여행을 했기 때문에 체력을 비축해야 하거나, 몸이 좋지 않을 때 아무 데도 나가지 않고 숙소에서 쉬곤 했거든요. 그런 날을 저는 ‘쓰레기 데이’라고 불렀는데(웃음), 쓰레기 데이마다 짬짬이 영상을 편집하곤 했어요. 일주일에 한 번 정도였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아무것도 몰라서 촬영한 동영상을 자르고 붙이는 방법부터 일일이 검색해가며 만들었어요.

 


때때로 괜찮지 않아서 더 괜찮았던 여행

 

여행 중 제일 좋았던 순간이 언제인가요?


신기하게 이 질문은 받을 때마다 제 대답이 바뀌어요.(웃음) 지금은 사하라 사막이라고 답할게요. 사하라 사막에서 웃고 있는 여인의 사진 한 장을 보고 여행을 결심했거든요. 그래서 사막에 도착하자마자 ‘와 내가 여기를 진짜 왔구나’라고 감탄했어요. 머무는 9일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내내 사막만 바라봤죠. 보고 또 봐도 너무 좋더라고요.

 

어떤 사진이었나요?


‘10년, 20년 후에도 이런 삶을 살고 있으면 어쩌나’하는 불안과 함께 회사생활에 회의가 들던 시점에 우연히 사하라 사막을 배경으로 환하게 웃고 있는 여자의 사진을 보았어요. 사진을 보는 순간 이 사람이 행복한 척을 하는 건지, 진심으로 행복한지 단숨에 알겠더라고요. 그 표정은 어떤 불순물도 없는 순수한 행복이었어요. 그걸 보고 저를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어떻게 해야 이런 미소를 지을 수 있지? 나는 저렇게 웃어본 적이 언제였지?’ 라는 생각이 들면서 곧장 여행을 가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준비 기간도 없이 2017년 1월에 퇴사해서 몇 주 뒤에 바로 베트남으로 떠났죠.

 

혼자 떠나는 여행의 장점은 뭔가요?


제가 여행 전에는 다수가 옳다고 이야기하는 가치에 치중해서 살았거든요. 그런데 여행을 하면서 ‘내가 생각하는 삶의 중요한 가치는 무얼까?’를 깊이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그 끝에 얻은 답은 자유였어요. 자유를 가장 또렷하게 만끽하는 것이 혼자 하는 여행이에요. 내가 가고 싶으면 가고, 먹고 싶으면 먹고, 머물고 싶으면 머물고. 아무 거리낌 없이 스스로의 감정에 충실해질 수 있으니까요.

 

여행을 통해 수많은 것을 깨닫고, 얻었잖아요. 그중 가장 소중하게 느껴지는 게 무엇인가요?


삶의 길을 걷는 자세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그 생각을 했어요. 과거의 저는 그저 빨리 달려가기를 원하는 사람이었어요. 지금은 그 길을 누구와 갔는지, 길 위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내가 원하는 걸음이었는지를 생각하는 게 더 중요해요. 지난 1년 사이에 여행 크리에이터가 무척 많이 생겼어요. 과거의 저였다면 그들을 다 경쟁자라고 생각했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지금은 그분들과 친분을 유지하고 있고, 같은 길을 이렇게 좋은 사람들과 걷는다는 자체가 즐거워요. 우리가 걷는 이 길은 전에 없던 새로운 길이라는 자부심도 느껴지고요.

 

제목처럼 여행의 모든 순간이 괜찮을 수는 없어요. ‘때때로 괜찮지 않’을 때, 힘든 마음을 어떻게 이겨냈나요?


두 가지로 나뉠 것 같은데요. 고산병처럼 신체적 한계가 찾아왔을 때는 ‘열 걸음만 걷고 포기하자’라는 생각으로 계속 걸었어요. 열 걸음을 채우고 나면 ‘마지막 열 걸음만 더’라고 되뇌면서요. 그 외에 감정적으로 우울하거나, 외롭거나, 집이 그리워지는 순간에는 ‘나 오늘 그래도 돼’라고 생각했어요. 사회생활을 할 때는 힘든 일이 있어도 내색할 수가 없잖아요. 그런데 여행 와서까지 그럴 필요는 없죠. 사실 초반에는 행복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힘들었어요. 수많은 것을 포기하고 행복을 찾아 떠나온 길인데, 우울하면 안 될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나는 꼭 즐거워야 한다’는 마음을 놔버리니까 오히려 자유가 찾아오더라고요. 그런 날이 오면 우울한 순간을 잔뜩 만끽했어요. 아예 BGM부터 제일 우울한 것으로 틀고 ‘오늘은 우울한 여행을 하는 날이야!’라며 작정하고서 혼자 바닷가 앞에 앉아 청승맞게 울고 술 마시고.(웃음) 감정에 흠뻑 젖어 들곤 했어요.

 

그렇게 세계여행을 마치고 현실로 돌아왔을 때, 수많은 감정이 오갔을 것 같아요.


옛날에 유럽 여행을 갔던 적이 있는데, 그땐 돌아올 때 되게 우울했거든요. 여행하는 동안의 나는 반짝반짝 빛이 났는데, 귀국하는 비행기를 타는 순간 그 빛이 탁 꺼지는 느낌이었어요. 그런데 이번에는 다르더라고요. 아마 유럽 여행을 했을 때는 여행에서 행복한 순간을 찾는 데 집중했다면, 이번 여행에서는 제가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데 집중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여행을 마치고도 그 행복을 일상으로까지 끌어올 수 있겠다는 확신이 있었어요. 돌아가는 길이 마치 새로운 여행을 시작하는 것 같더라고요. 지금까지 살아온 것과는 확연히 다른 새 삶이 시작될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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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가도 떠날 거예요


퇴사 전에는 마케팅 회사에서 근무를 했다고요.


스타트업에서 근무를 했어요. 업계 특성상 굉장히 바쁘고 야근도 많았어요. 누구나 다 비슷하겠지만, 저는 20살 때부터 앞만 보고 달려가는 삶을 살았거든요. 직장생활도 그 연장 선상이었어요. 집에 갈 시간이 없어서 찜질방에서 출퇴근을 하기도 했고, 책임감 때문에 혼자 사무실에 남아 일을 처리한 날도 많았어요. 모두 그렇게 사는 게 맞는 거라고 이야기하니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묵묵히 지냈어요.

 

 “장난이 아니라 나 지금 정말 움직일 수가 없어. 오 분 정도면 괜찮아질 것 같은데, 딱 오 분만 쉬면 안 될까?” 내가 정말 괴로워하자, 내내 수더분하고 밝은 인상이던 가이드가 정색을 하고 말했다. “올라오면서 내가 몇 번이고 괜찮으냐고 물었지? 너는 그때마다 괜찮다고 말했고. 네가 내려갈 힘이 없었다면, 내가 물었을 때 괜찮다고 하면 안 됐어. 올라오면 안 됐다고.”

무섭게 내뱉은 그의 말에, 나의 6,088미터는 순식간에 부끄러운 정상이 되었다. 
- 213쪽

 

볼리비아의 고산을 등반하고 얻은 깨달음은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였어요. ‘애초에 내게 10을 주었을 때, 9밖에 할 수 없는 게 당연하다는 것을 내 목소리로 직접 이야기했어야 했다.(중략) 꾸역꾸역 일의 성과를 내고,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친 내가 거둔 것은 아름다운 성공이 아닌 못난 성공이었다.(218쪽)’는 문장이 특히 기억에 남아요.


산을 오르는 순간 그걸 알게 됐어요. 산은 내려가는 것까지가 끝이고, 가이드의 “괜찮아?”라는 말은 “팀원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을 정도의 체력과 자신이 남아 있어?”라는 물음이었다는 것을. 저 하나 때문에 모든 팀원의 생명이 위험해질 수 있는 일이었잖아요. 회사생활을 돌아봐도 마찬가지더라고요. 아닌 것을 아니라고, 못하는 것을 못한다고 말하고 포기할 줄 알았다면 저와 제 팀원들에게 훨씬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못난 성공을 거둘 바에는 아름다운 포기가 더 의미 있을 때도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여행이 삶의 태도와 가치관을 바꿔버려서 예전 생활로는 결코 못 돌아갈 것 같은데요? (웃음)


맞아요.(웃음) 원래 딱 1년만 나를 위해 쓰고, 그 뒤에는 다시 취업할 생각이었거든요. 그래서 계속 “1년만!”을 외쳤었는데, 그 1년이 2년, 3년으로 계속 늘어나고 있어요. 아마 평생 그러지 않을까요?

 

유튜브 크리에이터를 직업으로 삼아도 되겠다고 생각한 시점은 언제인가요?


어떤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고 자연스럽게 이어졌어요. 구독자분들께 긍정적인 피드백을 많이 받았거든요. 여행하고 싶은 꿈이 있었는데 가슴에 묻어두고 살다가 제 영상을 보고 용기를 얻어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거나 우울한 일상에서 힐링이 되고 있다는 말씀들이 제게 여행과는 또 다른 치유가 되더라고요. 구독자분들이 들려주신 이야기들 덕분에 유튜브가 계속 하고 싶었어요. 감사한 마음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책임감이 생기고, 자연스레 크리에이터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요즘 일과는 어때요? 회사 생활을 할 때와는 확연히 다를 텐데요.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요.(웃음) 저는 새벽에 영상 작업이 잘 되더라고요. 보통 일주일 중 4일은 영상을 제작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발전한 모습을 보여드리기 위해서 영상 기술을 공부하고 있어요. 혹은 클라이언트와 미팅을 하거나 지금처럼 인터뷰 하고, 책과 관련된 행사에 참여해요. 또 하나 달라진 점은 친구들을 정말 자주 만난다는 거예요. 억지로라도 약속을 잡으려 노력해요. 회사 다닐 때는 서로 얼굴을 거의 못 봤거든요.

 

‘퇴사 후 세계일주, 그 이후의 삶에 대하여’라는 영상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돈을 버는 이상적 삶이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가능하게 하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라고 말했어요. 이제 그 삶이 실현 가능할지, 윤곽이 좀 잡힐 것 같아요.


그때는 돈을 한 푼도 못 벌 때여서 중고나라 전전하고 그랬거든요.(웃음) 좋아하는 일만 하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는 건 가능하다고 느껴요. 물론 어느 정도 현실과 타협해야 하는 부분이 있죠. 제가 진짜 좋아하는 일만 하려면 지금도 여행지에 있어야 할 테니까요. 지금처럼 자유를 영위하기 위해서는 돈을 벌어야 하니까 스스로 기준을 잡고 최소한의 타협은 해요. 광고 영상도 조금씩 제작하고요. 언젠가 제 친구가 “수학을 하지 않고 시를 읽는 사람이 좋다”고 말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저는 “시를 가슴에 품고 수학을 하는 사람이 더 멋지다”고 했거든요. 저는 지금 시를 읽으면서 수학도 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어떤 크리에이터가 되고 싶어요?


궁극적으로는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요즘은 크리에이터가 연예인처럼 여겨지는 느낌이 있는데, 저는 그걸 원하지 않아요. 그래서 구독자 분들께 늘 저를 막 대해달라고 이야기해요. 저는 구독자를 팬이라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그러니까 구독자분들도 저를 어떤 우상화 된 존재보다는 여행을 같이하는 동료나 동행 정도로 생각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꽃으로 비유하자면 들꽃이요. 여행지에서 아무렇게나 편하게 만날 수 있는 들꽃 같은 여행자, 들꽃 같은 크리에이터가 되고 싶어요.

 

고시원을 정리하는 영상에서 앞으로 본인이 거쳐 가는 곳들을 기록으로 남겨두고 싶다고 했어요. 독립생활의 시작은 고시원이었는데, 여행자MAY가 꿈꾸는 마지막 거처를 상상해 본다면 어떤 공간일 것 같나요?


외적인 조건은 아무래도 상관 없고요. 여행하면서 게스트하우스를 많이 옮겨 다녀서 그런지, 그저 ‘내 공간’이라는 느낌이 물씬 났으면 좋겠어요. 지금까지 여행한 곳들의 지도와 사진이 가득한 여행자MAY의 느낌이 막 묻어나는 곳이요. 무엇보다 그 공간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살고 있었으면 좋겠네요.(웃음) 


 

 

때때로 괜찮지 않았지만, 그래도 괜찮았어여행자 May 저 | 더시드컴퍼니
통장 잔고가 바닥날수록 행복의 잔고가 복리로 불어나는 짜릿함을 알아버린 그녀는, 두 평짜리 고시원 쪽방에서도 평생 여행하는 삶을 꿈꾸며 오늘, 지금이 더 행복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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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건우 “인간이 선한 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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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들』 의 서문을 쓴 김봉석 문화평론가는 ‘카리브해 지역 원시 종교인 부두교의 무당이 만들어낸 시체 같은 사람’이 좀비의 시초였다고 말한다. 흡혈귀나 늑대인간은 고대 이전부터 존재했으나 좀비는 20세기 들어 태어난 캐릭터다. 100년이 채 되지 않은 좀비가 다양한 모습으로 변주할 수 있었던 건 ‘이래야 한다’는 큰 제약이 없기 때문이다. 영화, 소설, 만화 등 좀비를 소재로 한 콘텐츠 속에서 많은 작가가 자신이 원하는 좀비를 보여주었다.

 

좀비 문학 컬렉션 『그것들』에도 다양한 좀비와 그로 얽힌 관계가 등장한다. 일곱 명의 작가 중 한 명인 정명섭 작가가 나머지 작가를 모으고, 출판사에서는 단편소설과 좀비라는 소재 이외에는 아무런 제약을 두지 않았다. 전건우, 김이환, 한차현, 정해연, 임태운, 인기영, 정명섭 작가는 그들이 탄생시킨 좀비와 주변 인물이 각자의 세계에서 어떻게 관계하는지 그리고 있다.

 

잘못된 사랑과 희생으로 탄생한 좀비를 그린 「부활」, 바이러스 감염으로 좀비가 되었다가 감염에서 깨어난 인간을 그린 「미로」, 좀비가 지배하는 2057년의 도시를 보여주는 「노스트로모호 증후군」, 인간을 위한 과학 실험 때문에 뱃속에서부터 좀비가 된 아기가 태어나 질문을 던지는 「아이」, 지구를 떠나 우주로 이민을 하는 중 우주선에서 벌어진 일을 다룬 「백혈(White Blood)」, 사랑에 빠진 좀비를 그린 「28일 전」, DMZ로 넘어온 좀비를 상대로 싸우는 군대의 모습을 그린 「Z : WAR - 검은 새벽」까지 일곱 작품의 좀비도, 그들이 사는 배경도 가지각색이다. 「부활」을 쓴 전건우 작가는 『그것들』을 순서대로 읽기를 권한다. 좀비의 탄생부터 현재, 미래, 우주를 넘나들면서도 그 안에서 벌어지는 작은 사건에 집중하는 등 원래 순서가 있었던 것처럼 어우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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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로 만든 일곱 개의 세계

 

『그것들』  작가 중 한 분인 정명섭 작가가 제안해 작품에 참여하게 되었다고 들었어요. 제안을 들었을 때 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있었나요?

 

일단 좀비 앤솔로지를 한 권의 책으로 내는 기획 자체가 한국에서는 처음이라 흥미를 느꼈어요. 또 장르 소설을 쓰는 작가로서 좀비를 소재로 꼭 써보고 싶었거든요. 게다가 함께하는 작가님들 이름을 들었는데 제가 좀 묻어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웃음) 

 

작가님도 출간 이후에 작품집을 읽었겠네요. 처음 읽었을 때 느낌은 어땠나요?


일단 겹치는 소재가 없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어요. 또 저는 생각하지 못했던 소재를 건드려주는 작가가 있어서 흥미롭기도 했어요. 다른 작가가 이런 걸 쓰니까 피해야 한다는 제약 같은 건 없었어요. 틀에 갇히면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기 힘들잖아요. 그래도 다 다른 이야기가 나오더라고요. 신기했어요.

 

처음 『그것들』을 읽었을 때 다른 작가들의 작품 중에서 특히 흥미로운 작품이 있었을 것 같아요.


모든 작품이 다 저와 다른 부분이 있는 게 흥미로웠어요. 특히 정명섭 작가님의 「Z:WAR - 검은 새벽」은 흔히 사람들 좀비 소설에서 느끼는 재미있는 요소를 다 버무린 것 같았어요. 좀비라는 소재에 군대를 더하고, 교묘하게 한국의 현실을 비틀고 있는 것도 재미있었고요.

 

안전가옥과 진행한 인터뷰에서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범법이라도 저지를 관계를 고민하다가 단편소설 「부활」을 썼다.”라고 하셨어요.


좀비가 나오는 세상에서는 인간이 좀비보다 무서운 경우가 훨씬 많잖아요. <워킹 데드> 같은 작품을 보면 좀비보다는 세상에 던져진 인간의 욕심이나 이기심이 더 무섭게 느껴져요. 소재를 생각할 때 그런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싶었어요. 좀비라는 소재와 희생이라는 낱말을 묶을 수 있는 이야기를 해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부모, 자식 간의 관계를 떠올렸고, 자식을 위해서 모든 걸 희생하는 캐릭터를 그리게 된 거예요.

 


누군가에게 즐거움을 주는 소설

 

가족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언급하세요. 2014년에 채널예스 인터뷰에서도 ‘육아가 가장 큰 관심사’라고 하셨어요.


지금 초등학교 3학년이 된 아들이 있는데 이야기를 만들 때 아들과 연관된 이야기를 많이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전업 작가라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서 다른 아빠에 비해 아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거든요.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까 소설의 소재로도 많이 쓰게 되고, 아이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지는 것 같아요. 좀비 이야기를 구상할 때에도 자녀를 위해서 기꺼이 희생하는 부모라는 소재를 생각했을 때 아들 생각이 났어요. 그런데 좋은 아빠가 되는 게 좋은 소설가 되기보다 훨씬 힘든 일인 것 같아요. (웃음) 좋은 소설가는 노력하면 어느 정도 경지에 이를 수 있을 것 같은데, 좋은 아빠가 되는 건 변수가 너무 많은 것 같아요.

 

소설가로 데뷔하기 전에 잡지사에 다니며 글을 쓰셨다고요. 첫 번째 장편 이후 전업으로 작가 활동만 하다가 다시 직장에 다니게 되었다는 글을 보았어요.


맞아요. 왔다 갔다 했는데 지금은 다시 소설만 쓰고 있어요. 글만 써서 먹고 사는 게 힘든 건 쓰고 싶은 것만 쓸 수 없는 거예요. 어떻게 하면 쓰고 싶은 소설만 쓰면서도 잘 살 수 있을까, 늘 고민해요. 힘든데 그걸 견디면서 쓰게 되는 게 장르 소설의 매력인 것 같아요. 소설 쓰는 일만큼 재미있는 일도 없는 것 같아요.

 

재미라는 건 이야기가 주는 즐거움을 뜻하나요?


그렇죠. 그 즐거움이 감동이든 무서움이든 쾌감이든 다른 사람의 감정을 자극하는 즐거움을 우선으로 하는 게 장르문학이라고 생각해요. 우리나라는 순 문학과 장르문학이 나뉘잖아요. 단순하게 생각하면 순문학 이외의 소설이나 문학이 다 장르문학인 것 같아요. 그 안에는 세부적으로 가면 공포, 추리, 로맨스, SF, 스릴러 등이 다양하게 들어가 있고요.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재미를 우선으로 하는 문학이 장르 문학이 아닐까, 좀 더 엔터테인먼트에 가까운 게 아닐까, 해요.

 

소설 쓰는 일만큼 재미있는 일이 없다는 건, 어떤 점 때문인가요?


일단 매력적인 이야기를 만들어낸다는 것 자체가 흥미로워요. 내가 만든 이야기 속에서 독자가 울고, 웃고, 놀라고, 짜릿한 쾌감을 얻는다는 게 신기해요.

 

일단 쓰고 있는 이야기에 본인이 먼저 매료되어야겠네요.


그렇죠. 기계적으로 쓰는 것과 내가 이야기에 몰입해서 쓰는 건 분명히 차이가 있는 것 같아요. (웃음) 초기에는 저도 굉장히 기계적으로 쓴 작품도 있었어요. 청탁이 들어와서 마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썼던 작품들인데, 작가로 이력이 쌓인 후부터는 그런 소설이 없어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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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하는 이야기를 찾기까지

 

장르 소설을 쓰고 싶은데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 모르겠는 사람도 있을 것 같아요. 작가님은 어떻게 데뷔하고, 작품을 발표하게 되었나요?


장르소설은 등단이라는 절차가 따로 없어요. 문학상을 타야 작가가 되는 시스템 같은 게 없고, 예를 들면  『그것들』  같은 지면에 소설을 발표하는 게 먼저인데요. 저의 경우는 황금가지 출판사에서 나왔던 한국공포문학단편선에 글을 발표하면서 등단했어요. 그때 한 공포 문학 카페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작품집에 소설을 쓸 작가를 모집하던 작가님이 카페에서 글을 읽고, 제안을 주셔서 등단을 하게 된 거예요.

 

2012년에 첫 장편소설  『밤의 이야기꾼들』이 나오기 전까지는 계속 직장에 다니면서 소설을 쓰신 거군요.


네, 맞습니다. 퇴근하고 잠자는 시간을 줄여서 쓰고, 출퇴근하는 길에 지하철에서 노트북 펴놓고 쓰기도 하고, 그랬죠. 장편을 연재하게 된 것도 우연이었어요. 정명섭 작가님은 작가로 데뷔한 초창기부터 잘 알던 분이었어요. 장편 소설을 연재할 만한 작가를 찾고 있다고 하는데 해볼 생각이 있느냐는 연락을 해주셨죠. 준비할 시간이 한 달이 채 안 된다는 말을 듣고도 욕심이 났어요. 해보겠다고 하고, 예전부터 머릿속에 있던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했죠. 그때쯤 회사 일과 병행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만두고 한동안 소설만 쓰는 시기가 있었어요. 다행히 연재를 잘 마치고, 장편소설까지 나오게 된 거예요. 운이 참 좋았어요.

 

블로그에서 ‘그런 소설을 왜 쓰냐’는 질문도 많이 받는다고, 쓰신 걸 봤어요.


아직도 많이 들어요. (웃음) 친척들도 그런 거 말고 좀 더 평범한 이야기, 순한 이야기를 쓰면 주위에 소개해 주기도 좋을 텐데 왜 그런 걸 쓰냐고 이야기해요. 저는 작가가 제일 재미있어하는 이야기를 써야 독자도 재미있다고 생각해요. 작가마다 잘할 수 있는 게 따로 있는 것 같은데 저는 공포, 스릴러 같은 이야기를 잘하는 것 같아요.

 

자기가 잘할 수 있는 이야기가 뭔지 아는 것도 대단한 것 같은데요.


시행착오가 많았어요. 저도 작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신춘문예나 문예지 등단밖에 몰랐어요. 관련 학과를 졸업한 것도 아니어서 혼자 공부를 많이 했어요. 그런데 아무리 써도 재미가 없는 거예요. 글 쓰는 건 좋은데 소설을 쓰려고 하면 너무 힘들고, 재미가 없었어요. 그러다 공포문학 카페를 발견하고 글을 올리기 시작한 거예요. 쓰면서 정말 신났어요. 그래. 어릴 때 내가 친구들에게 들려주기 좋아했던 게 미스터리, 추리소설에 나오는 이야기였고, 아직도 내가 좋아하는 게 이거라는 걸 알게 된 거예요. 소설을 통해서 내가 독자에게 전하고 싶은 게 즐거움이었다는 걸 깨닫게 되었죠.

 

얼마나 시행착오를 겪었나요?


한 5~6년 걸린 것 같아요. 고민과 공부와 학습 끝에 결국 알게 되더라고요. 그래도 그 시간이 절대 허송세월은 아니었어요. 결국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걸 알게 된 시간이고, 공부를 많이 했던 시간이라고 생각해요.

 

안전가옥에서 호러 단편 소설 강좌도 하셨어요. 수강하는 분들께 어떤 이야기를 가장 많이 해주시는지 궁금해요.


수강생분 대부분 작가님이셨어요. 그분들께 글을 어떻게 쓰라는 강의를 하는 건 어불성설인 것 같아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어떻게 만드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독자가 재미를 느끼는 부분이 어디인지, 어떻게 기술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지에 관한 것들이요. 영업비밀 같은 거죠. (웃음)

 

하나만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제가 생각하기에 독자는 사건이 벌어지는 순간보다 벌어지기 전을 더 좋아해요. 그래서 사건 당시를 장황하게 쓰는 것보다 그 이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세밀하게 묘사하는 게 훨씬 흥미롭더라고요. 예를 들어 공포영화도 괴물이 튀어나왔을 때보다 나오기 전에 모퉁이를 바라보는 게 더 무섭고 짜릿하잖아요.

 


무서운 이야기 속에서 빛을 발하는 선한 인간에 관한 이야기

 

작가님이 소설을 쓸 때 가장 많이 고려하는 부분은 무엇인가요?


독자는 센 이야기에서 오는 자극을 모두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쓰는 사람이 강약조절을 잘해야 독자가 내가 만드는 이야기 세계에 마음 편하게 들어오더라고요. 그래서 요즘에는 단편이나 장편이나 이야기가 강만 계속 되면 지치기 마련이니까 강약조절을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최근에는 웹 소설도 완결하셨죠. 처음 웹 소설을 쓸 때 지면에 나오는 소설과 문법 자체가 달라서 힘드셨다고요.


둘은 완전히 다른 매체인 것 같아요. 같은 소설이라는 말이 붙지만, 시나리오와 소설의 차이랑 비슷한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일반 소설은 이야기로만 이루어지지는 않잖아요. 이야기와 적절한 묘사, 작가의 생각이 어우러져서 한 편의 소설을 완성하는데, 웹 소설은 이야기로만 진행이 돼요. 일일 연속극 보는 것과 똑같아요. 막장드라마 안에도 정말 다양한 이야기가 담겨 있잖아요. 더 자극적이고, 더 많은 이야기가 매일 계속되어야 하는 거예요. 그래서 기존 작법으로 쓰면 힘에 부치더라고요.

 

웹 소설도 계속 도전할 생각이세요?


그렇게 하고는 싶은데 아직 효과적인 해법을 찾았다고 보기 힘들어요. 일단 도전하는 마음으로 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도 여전히 지면으로 읽히는 소설을 쓰는 게 저에게 더 맞는 것 같아요.

 

『그것들』과 비슷한 시기에 세 번째 장편소설이 나왔어요.


고시원에 살던 시절에 썼던 단편 소설을 장편으로 쓰고 싶었어요.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쓰기 시작하니까 신나게 써지더라고요. (웃음) 처음 장편 소설 발표하고 두 번째 소설이 나오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렸는데, 이번엔 다행히 1년 만에 나올 수 있었어요. 전업 작가로 살면서 가장 좋은 건 1년에 두 권 정도 장편 소설을 출간하는 것 같아요. 네 번째 장편 소설도 내년 정도에 나올 것 같아요.

 

‘인간애가 느껴지는 이야기를 쓰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기본적으로 인간이 선하다고 생각해요. 선함을 위해서라면 다른 것들을 희생할 거라고 믿고 있어요.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을 우선적인 가치로 두고, 인류애가 있다는 생각을 하는데, 그런 것들이 작품에 반영되는 것 같고, 그런 이야기를 계속 쓰고 싶어요.

 


 

 

그것들김이환, 정명섭, 한차현, 전건우, 정해연 저 외 2명 | 에오스
SF, 판타지, 추리 등의 분야에서 참신한 소재와 탄탄한 필력으로 활동해온 작가 7인은 각자 개성 있는 좀비의 모습을 보여주며 색다른 공포의 세계를 창조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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