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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오 “4차 산업혁명에 필요한 건 ‘기본소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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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주행차’의 보급이 일반화되면, 운전을 업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인공지능 의사는 인간 의사보다 정확한 진단을 내릴 수 있을까?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우리는 로봇이 쓴 단신 기사를 읽고 있고, 한편에서는 데이터 분석을 통해 출판이 결정된 책이 만들어지고 있다. 결코 기계가 대신할 수 없을 것 같았던 ‘지식 노동’의 영역도,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닌 셈이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도, 나는 지금의 일자리를 지킬 수 있을까?’ 우리는  『밥벌이의 미래』 가 궁금하다.

 

머지않아 사라질 직업과 새로 생겨날 직업을 예측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상황을 면밀히 살펴야 한다. 『밥벌이의 미래』는 4차 산업혁명을 이끌 핵심 기술이 무엇인지, 어느 수준까지 개발돼 있는지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다. 과학을 잘 모르는 사람이 읽어도 쉽게 따라갈 수 있도록 세심하게 배려한 것. 일상 속의 다양한 사건과 순간들을 예로 들면서 ‘4차 산업혁명이 우리 삶에 미칠 영향’을 피부로 느끼게 한다.

이진오 저자는 서울대학교에서 물리학을 공부한 후 동대학원에서 실험물리를 전공하며 석ㆍ박사 통합과정을 수료했다. 이후 대치동 학원가의 인기 강사로 떠오르며 국제물리올림피아드를 준비하는 학생들을 가르쳤다. 현재 메가스터디에서 과학 강의를 하면서, <시사인>에 과학기술 분야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물리 오디세이』 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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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주행차’의 사고율은?

 

과학 기술에 관한 책이라서 읽기 전에 걱정을 했는데, 어렵지 않더라고요. ‘과학 문외한’인데도 불구하고요(웃음).

 

물리학 책이 아니라서 저 역시도 잘 아는 분야는 아니에요. 제가 이해하는 만큼만 쓰려고 했어요. 그리고 예시가 중요한 것 같아서 많이 다루려고 했습니다.

 

학생들을 가르치고 계시잖아요. 상대의 눈높이에 맞춰서 이야기하는 게 몸에 배어있는 것 아닐까요?

『물리 오디세이』는 이해하기 쉽게 써야겠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썼어요. 이번 책을 쓸 때는 편집자 분한테 계속 들은 이야기가 있었는데 ‘최대한 간결하게, 비문 없이, 쓰고 싶은 말은 다 써라’는 거였어요. 그 부분에만 집중해서 썼어요. 그리고 <시사인>에 칼럼을 쓰면서 글쓰기가 많이 늘었어요. 고쳐 쓰는 과정을 계속 반복하니까 늘더라고요.

 

‘자율주행차’, ‘인공지능 의사’, ‘빅데이터’ 등 다양한 소재를 다루셨어요. 어떤 기준으로 고르셨나요?


4차 산업혁명이라고 했을 때 사람들이 떠올리는 것들이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에, 그 중에서 무엇을 빼고 이야기할지를 결정하는 게 힘들었어요. 그런데 ‘자율주행차’, ‘인공지능 의사’는 뺄 수 없더라고요.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수많은 B2B 기술이 있는데, 그 두 가지가 유일하게 B2C 기술이거든요. 블록체인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오지만, 우리가 블록체인으로 언제 B2C 기술을 만나게 될지 저는 잘 모르겠어요. B2C 상품을 말할 때 ‘자율주행차’와 ‘인공지능 의사’가 가장 대표적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책의 앞부분에서 다뤘죠.

 

‘자율주행차’와 관련해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질문은 ‘과연 얼마나 안전할 것인가’, ‘사고가 나면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라는 건데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자율주행차’ 때문에 사고가 일어나는 확률이 혁명적으로 ‘0’이 되지는 않을 거예요. 급발진 사고 같은 것만 보더라도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보다 안전할 거예요. 그렇지 않다면 사람들이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자율주행차’를 사지는 않을 테니까요. 만약 ‘자율주행차’가 시판된다면 그런 수준은 넘어선 거예요. 이 상황에서 사람들이 인지부조화를 느끼겠죠. 이전에는 사람이 (기계보다) 더 안전했으니까요. 시간이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흥미로웠던 건, 차량을 판매하는 회사와 보험 회사도 지금과 달라질 거라는 예상이었어요.


보험 회사는 금융적으로만 책임지면 되잖아요. 이미 나와 있는 상품들이 그렇듯이 소비자 책임으로 하면 끝인 거예요. 그런데 이율배반적인 거죠. 보험 수익이라는 게 손해기대치에서 나오는 것인데 ‘자율주행차’는 손해기대치가 없을 거라고 광고를 할 거잖아요. 보험 회사는 (손해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고 하고요. 이상한 거죠. 제가 생각하기에는 ‘자율주행차’는 민낯을 다 드러낼 거예요. 사고율이 얼마나 되는지 다 드러나는 거죠.

 

자동차 회사와 보험 회사는 다가올 변화에 어떻게 대비하고 있나요?


‘자율주행차’가 도로를 지배할 때까지는 시간이 걸릴 거예요. 처음 ‘자율주행차’가 도입되고 나서 몇 십 년이 흐른 뒤겠죠. 회사 입장에서는 그 시간이 아주 커요. 지금의 보험 회사들은 몇 대의 ‘자율주행차’가 운행을 하다가 사고가 났을 때를 대비하고 있어요. 그것과 관련된 보고서만 해도 엄청 많아요. 보험 회사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문제가 ‘자율주행차가 망가졌을 때 어떻게 옮길 것이냐’ 하는 거예요. 운전대가 없잖아요. 옮기다가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있을 수 있고요. 또 30~50년 뒤에 ‘자율주행차’가 상용화됐을 때를 생각해 보면, 차가 스스로 회차하는 과정에서 사고가 날 수도 있는데, 그때는 누가 차 문을 열어야 할까요? 이런 문제들이 해결돼야 하기 때문에 수많은 보고서가 나오고 있는 거예요.

 


‘기본소득 보장’이 필요하다


자동 회차에 대해서 말씀하셨는데요. ‘자율주행차’를 택시처럼 이용할 수 있다는 거잖아요. 사용자를 목적지에 데려다주고 또 데리러 오고요.


그렇죠.

 

그러다 보면 전체 차량의 숫자가 줄어들고, 공유경제도 가능해질 거라고 하셨는데요.


그렇지만 운전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다 사라지는 건 아니고, 분명히 살아갈 길이 생길 거예요. 비행기 같은 경우를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죠. 옛날에는 비행기를 조종하기 위해서 항법사도 필요하고 무전사도 필요했다고 하잖아요. 요즘에는 기장과 부기장만 있으면 돼요. 자동항법장치가 있잖아요. 그렇다고 해서 기장이 쓸모없어진 건 아니거든요. 오히려 연봉은 더 높아졌어요. 자동차가 스스로 회차할 수 있게 되면, 물론 운송업에 종사하시는 분들은 어려운 상황에 놓이시겠지만, 분명히 다른 시장을 찾을 거예요. 다른 수요의 차도 분명히 만들 거예요.

 

회차 중에 차가 고장 날 경우, 접근해서 견인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람도 필요하잖아요. 새로운 직업이 생기는 거죠.


그렇죠. 혼자 그런 생각도 해봤어요. ‘그러려면 모든 차의 마스터키를 가진 사람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그런 경우에는 보안을 어떻게 해야 하지?’ 싶은 거죠.

 

『밥벌이의 미래』 에서 강조하는 건 ‘사람이 주체로서 기술을 선택한다’는 거예요. 사람들이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혹은 이득을 기대할 수 있도록 만드는 기술이 선택을 받는다는 뜻인데요. 그런 점에서 ‘스마트홈’은 아직 사람들을 유혹하지 못했다고 생각하세요?


네, 아직은 그런 기술이 나오지 않았죠.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요. 세탁기나 식기세척기가 꼭 말을 할 필요는 없어요. ‘스마트홈’이 부가가치를 창출하려면 사람이 할 수 있는 실수를 줄여줘야 하죠. 예를 들어서 냉장고에 우유가 없으면 그걸 미리 알려주는 거예요. 날씨를 알려주는 건 꼭 필요한 기능이 아니에요. 책에서 에어컨의 예를 들었는데, 냉매가 없으면 미리 말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필요를 채워줄 수 있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이미 우리가 쓰는 제품들의 대부분은 자가 진단, 자체 절전이 다 되거든요. 그런 기능은 굳이 ‘스마트홈’에 넣을 필요가 없겠죠.

 

4차 산업혁명이 가져올 변화 중에서 가장 기대하시는 건 뭔가요?


제일 기대되는 건 ‘기본소득’이에요.

 

‘기본소득제’의 도입인가요?


네. 그건 많은 걸 나타낸다고 봐요. 산업혁명을 가장 크게 외치는 사람들이 투자자들이에요. 혹은 투자를 해야 되는 사람들이죠. 4차 산업혁명이 끝나고 나면 분명히 새로운 노동 체계가 생길 거예요. 그 체계 안에서 기술들이 잘 작동한다면 또 다시 혁명적으로 노동 생산성이 급증할 거고요. 놀면서 행복하게 지내는 사람들이 반드시 나올 거예요. 그런 사람들이 지금처럼 한 계층에만 집중되기를 원하지 않아요. 그러려면 ‘기본소득’의 보장이 필요하다는 거고요.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에요. 조앤 롤링도 ‘기본소득’을 받으면서  『해리포터』를 썼잖아요. ‘기본소득’의 보장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사례죠. ‘기본소득’을 받는다고 해서 사람이 나태해진다는 건 말도 안 되는 거죠.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고 안정적인 상태에 있다면, 사람들이 비파괴적인 경쟁을 할 수 있을 거예요. 생산과 직접 관련이 없는 시장이 커질 거고요. 그런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있어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기본소득’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그건 이미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자본가들의 욕심은 끝이 없잖아요. 빈부 격차는 훨씬 더 심해지겠죠. 4차 산업혁명에서 주인공이 되려면 투자자나 기술자가 돼야 해요.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손해를 보는 건데, 손해 보지 않으면서도 주체가 되기 위해서는 다 같이 ‘기본소득’ 담론을 만들어서 얻어내야 돼요. 책에서도 ‘러다이트 운동’을 언급했는데, 단순히 기계를 부순 운동이라고만 볼 게 아니라, 그게 왜 산업혁명 때 발생했는지 생각해 봐야 돼요. 왜 산업혁명 시기에 노동자의 복지를 이야기하게 됐는지. 새 판을 짤 때에는 노동자에게 위기가 오지만, 그게 기회이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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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단순 지식 노동을 대체하다


빈부 격차와 관련해서 ‘빅데이터’ 이야기가 인상 깊었어요. ‘빅데이터’를 만들고 관리할 수 있는 주체는 자본을 가진 사람들이잖아요. 갈수록 부의 편중은 가속화되겠죠.


‘빅데이터’가 가르쳐줄 수 있는 건 사람에 관한 것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어떻게 보면 심리학적 실험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장이기도 하죠. 연구 목적으로만 잘 쓰면 굉장히 좋은 거예요. 예를 들어 ‘휴대폰이 인간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가’와 관련된 연구는 아주 좋은 거죠. ‘빅데이터’의 좋은 선례예요. 그런데 과연 그렇게만 쓸 것이냐, 하는 생각이 들죠.

 

‘인공지능 의사’와 인간 의사가 상호보완적인 관계가 될 거라고 생각하세요?


그렇죠. 의사들이 공부해야 할 게 정말 많잖아요. 그만큼 시간도 많이 걸려요. 공부할 게 많다는 건, 그것들을 다 합쳐서 볼 수 있는 통찰력을 발휘할 기회도 많다는 거예요. ‘인공지능 의사’가 나와서 한순간에 넘어설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사람들이 알파고가 대단하다고 생각하는데, 알파고는 가로 세로가 각각 19줄인 제한된 환경에서 놀라운 가능성을 보여준 거예요. 제한된 환경이라는 게 굉장히 중요해요. 실제로 더 큰 환경에서 얼마만큼 능력을 발휘할지는 모른다는 거죠. 그런 점에서 ‘인공지능 의사’가 훌륭한 인간 의사보다 더 훌륭하게 일할 날이 쉽게 올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가천대 길병원에도 ‘인공지능 의사’가 있는데, 암에만 국한돼서 사용하고 있어요. 암은 인공지능으로 개발하기 쉬워요. 모든 암이 플로우차트가 있거든요. 그 차트 대로만 따라가면 암인지 아닌지 알 수 있게 돼 있어요.

 

「지적 노동의 위기?」라는 제목의 꼭지도 있잖아요. 요즘에는 로봇이 기사도 쓰고 있어요.


쉽게 생각해서 단순 지식 노동은 다 대체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돼요. 

 

그렇다면, 인공지능이 대체할 가능성이 적은 직업들은 무엇인가요? 그것들 사이에는 어떤 공통점이 있나요?


오히려 전문직이 더 뜰 거예요. 정말 크리에이티브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요. 단순 계산이나 정보의 처리는 인공지능이 다 할 테고, 그걸 바탕으로 해서 진짜 창의적인 걸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이 주목받을 거예요. 편집자나 영화감독 같은 사람들도 그렇고요. 그런 사람들이 모든 영역에서 해야 하는 일이 많아진 거예요. 아직까지 인공지능은 전산화되지 않은 데이터를 처리하기 힘들어요. 그건 단기간 안에 이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책에 썼듯이 인공지능 세상은 앞날을 예측하기 힘들어요. 몇 년 뒤에 어떻게 될지 저도 몰라요. 다만 현재 인공지능의 수준을 이야기하자면, 결과가 나온 이유를 설명하지 못해요. 예를 들어서 고양이의 이미지를 보고 그게 고양이라고 판단할 수는 있는데, 그 이유는 말 못하는 거예요. 지금의 단계를 넘어서기까지 시간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금방 이루어질 거라고 보지는 않아요.

 

4차 산업혁명이 밥벌이에 많은 변화를 가져올 텐데요. 지금 우리가 잘 준비하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이보다 더 잘 준비할 수는 없죠. 다들 4차 산업혁명에 대해서 이야기하잖아요.

 

필요 이상으로 걱정하고 있지는 않나요?


전혀 아니라고 생각해요. 초점이 엇나갈 수는 있지만, 그런 에너지 자체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책의 마지막에서 ‘재미’를 말하셨어요. “변화 곁에는 ‘재미’가 있다.”, “재미를 느끼면 사람들은 배우려고 한다”고 쓰셨는데요. 재미를 느끼고 공부하다 보면 변화에 대비할 수 있을까요?


공부보다는 일단 사용을 많이 해보셨으면 좋겠어요. 사업하시는 분들은 공부를 하셔야겠지만요. 예를 들어서 구글에 사람 얼굴을 인식하는 서비스가 있는데, 젊은 친구들은 일부러 다른 표정도 지어 보고 ‘이래도 인식하나?’ 하면서 경험을 해요. 그런데 조금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굳이 해보려고 하지 않거든요. 조금 더 적극적으로 써보면 좋겠어요. 숙제하듯이 접근하는 게 아니고요. 처음 스마트폰이 나왔을 때 다들 재밌게 가지고 놀았잖아요. 그 세대들이 지금 앱을 개발하고 있듯이, 재미를 느끼고 경험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밥벌이의 미래이진오 저 | 틈새책방
미래를 알고 싶다면 10년 후가 아니라 지금 당장 일어나는 변화를 살펴야 한다. 딱 반걸음만 앞서서 치밀하게 관찰하고 상상하면 우리의 미래도, 밥벌이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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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박지민 “고음과 가창력이 노래의 전부는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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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전 <K팝스타>의 초대 우승자 박지민을 기억한다. 15살 어린 나이가 믿기지 않는 풍부한 감정 표현과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20% 시청률을 기록한 화제의 오디션 프로그램 초대 우승자의 영광을 안았던 소녀의 모습을 말이다. 오디션 직후 백예린과 함께 결성한 그룹 피프틴앤드(15&)의 'I dream'에서 '상상했었어 무대에 오르는 그 순간을'이라 수줍고도 힘차게 노래하던 소녀의 이미지, 지난 6년간 박지민을 대표하고 박지민을 규정해온 단어였다. 더없는 수식이었지만 때로는 그것이 어린 재능을 가두는 틀이 되기도 했다.

 

2년 간의 공백을 끝내고 새 EP <jiminxjamie>를 발표한 박지민은 그런 타이틀과 대중의 인식 속 본인만의 색채를 찾고 있었다. 많은 고민과 방향 갈등이 있었음에도 '음악이 즐겁다!'라 자신 있게 말하는 그에게선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멜로디와 가사로 풀어낸다는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과거의 '지민', 향후 지향의 '제이미'와 함께 개성 있는 아티스트를 꿈꾸는 스물한 살의 박지민. 인터뷰 내내 비로소 본인의 나이로 말하고 노래하는 그의 모습에 미소가 지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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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앨범 <jiminxjamie>, 타이틀 'April fools'로 오랜만에 돌아왔다. 소감을 말해준다면.


앨범을 냈다는 자체에 의미를 둔다. 원래 'April fools'보다 2번 트랙 'Money'가 타이틀 후보였다. 후자가 밝고 발랄한 느낌이 난다면 전자는 상대적으로 무거운 느낌이 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갖고 있던 이미지와 비교해 상당한 변화가 있어 처음에는 박진영 PD님이 안 좋아하실 줄 알고 기대를 덜 했는데, 의외로 타이틀곡으로 잘 어울릴 거라 기대해주셨다.

 

'April fools' 전과 후의 박지민은 다르다는 건데, 어떤 변화인지?


<K팝스타> 이후로 지금까지의 박지민은 참하고 소녀스러운, 당시 어린 나이에 맞는 스타일이었다. 사실 내가 즐겨 듣는 음악은 좀 더 그루브 있고 '어른스러운'블랙 뮤직이었는데, 오디션 무대에서 선보인 'Over the rainbow'나 이후 피프틴앤드(15&) 팀을 거쳐 완성된 이미지가 있었기에 완전한 취향 위주로 가지고 나가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본인의 말대로 대중은 박지민을 'Hopeless love'같은 곡의 발라드, 소울 가수로 기억한다. 기존 이미지를 고수해도 나쁘지 않다고 보는데.


그런 장르를 싫어하진 않는다. 다만 내 성격이 활발하다 보니 슬로우 템포, 우울한 감정의 음악과 맞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그럼에도 'Money'는 급격한 느낌이라 생각해서, 팝적이면서 가요 느낌도 어느 정도 들어간 'April fools'를 타이틀로 선정했다.

 

현재 반응은 어떤가.


발매 전에는 대중에게 굉장히 낯설게 다가갈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곡이 공개되고 나서 팬 분들께선 발매 소식 자체로도 좋아하셨고, 일반 팬분들은 조금 낯설어하시긴 해도 그 반응이 긍정적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 다음 앨범을 통해 새로운 정체성을 더욱 각인할 수 있을 것 같다.

 

EP <19에서 20까지> 이후 2년 간의 긴 공백기가 있었다.


주로 작업실에서 시간을 보냈다. '전화받아'를 만든 친구들과 함께 - 펜타곤 키노, 세븐틴 버논 - 크루 활동을 하면서 작업을 계속했는데, 작곡에 큰 욕심 없던 내가 멜로디를 만들고 곡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재미를 붙이고 흥미를 갖게 되었다.

 

곡을 직접 만듦에 있어 박지민이 원하는 것은 좋은 음악인가, 히트하는 음악인가.


좋은 음악이다. 좋은 음악은 결국 히트하지 않을까.

 

히트하는 음악, 특히 R&B 쪽에서는 박진영 PD의 도움도 생각해볼 법 한데.


PD님의 손길이 필요 없다는 건 전혀 아니다. 과거에는 본인의 색을 강조하고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최근의 PD님은 소속 아티스트들의 결과물에 크게 터치하지 않는다. 좋은 가사 표현 등은 충고해줄 때도 있지만 최대한 저희의 작업물에 대해 공감하고 존중해주시는 편이다.

 

2년 동안 '나만의 음악'을 만들어갔던 과정이 궁금하다.


나 자신을 싱어송라이터로 인식하기보다는 멜로디를 붙이는 게 재미있어서 시작하게 됐다. 그러다 PD님이 작곡 레슨을 해주셨는데, 화성이나 코드 대신 영화를 보고 악상을 만드는 등 감각을 알아가면서 본격적으로 내 이야기를 노래로 써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이야기를 노래로 만들어 들려줬을 때 다른 사람들이 공감하고 좋아해 주는 것이 신기했다.

 

JYP에는 갓세븐, 트와이스 등 아이돌 그룹이 많다. 작곡을 시작하면서 아이돌에게 본인의 곡을 선물하고픈 마음도 있을 텐데.


아이돌 그룹들을 가까이서 보면서 항상 멋있다고 생각한다. 아이돌이 가창력 논란, 음악성 논란도 있지만 무대에서 춤추고 노래하고 항상 미소 짓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은 시작하는 단계지만 많이 듣고 노력하면 좋은 결과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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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minxjamie>의 곡들을 소개해보도록 하자. 'Money'를 타이틀 후보로 삼았다고 했는데.


무대에서 무거운 노래를 주로 하다 보니 부르면서도 신나는 노래를 하고 싶었다. 나 자신도 즐길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보고 싶었는데, 이런 후크 송 스타일은 처음인지라 다가가기 쉬울 것이라 생각해서 타이틀 곡 후보에 올려뒀었다.

 

세 번째 곡 '하나 빼기 둘'도 타이틀 후보곡이었다. 아리아나 그란데도 많이 생각났고. 지금의 내 나이에서 보여줄 수 있는 곡이라고 생각했다. 부모님 세대 팬 분들은 이 곡을 가장 좋아하시더라.

 

'전화받아'는 혼자 대신 같이 만든 곡이라 더욱 재미있었다. 앞서 언급했던 몰라(M.O.L.A) 크루의 사운드클라우드 계정에 올라온 'Chillin'을 PD님이 접하고 한 곡이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말씀해주셨다. 평소엔 잘 나오던 노래가 막상 작업에 들어가니 고민이 됐는데, 그 과정에서 멤버들이 전화를 받지 않고 잘 모이지 않는 데서 자연스럽게 아이디어가 나왔다.

 

퓨처 R&B 스타일을 앨범에 많이 반영했는데 평소 좋아하는 장르였나.


장르 가리면서 음악을 듣진 않지만, 평소 취향대로 음악을 듣다 보니 퓨처 R&B 스타일 음악을 많이 듣게 됐다. 아티스트의 색깔이 강한 노래를 많이 듣는데 엘라 마이, 즈네 아이코, 켈라니 등이 끌렸다. 매우 대중적이진 않더라도 뮤지션 개성이 확실한 음악을 좋아한다.

 

앨범 설계하면서 참고한 아티스트가 있다면?


사람을 정하기보다는 개별 무대를 보면서 참고하는 편이다. 언더그라운드 스타일로는 즈네 아이코, 대중적으로는 아리아나 그란데의 무대를 많이 봤다.

 

한국에서 제일 존경하는 뮤지션은 누구인가.


특정한 분은 없지만 오래오래 음악하고 계신 분들이 멋지다. 그렇게 보면 박진영 PD님을 존경하는 가수로 꼽을 수 있겠다.

 

박지민에게 <K팝스타> 우승을 떼놓을 수 없다. 어떻게 생각하나.


처음엔 'K팝스타 우승' 수식어가 계속 따라다니는 걸 바꾸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저를 기억해주시는 모습이니까. 더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깊고 풍부한 가창력으로 대중에게 사랑받았다.


예전엔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내가 노래를 부르면서 단조롭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그건 아마 내가 하고 싶었던 음악이 아니라서 그랬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의 바탕이 되어준다는 생각이다.

 

랩에 대한 욕심은 없나. 이번 박지민의 스타일은 랩이 꼭 필요할 것 같은데.


영어로 하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한국어로 하는 랩에는 별로 자신이 없다(웃음). 노력해야겠다.

 

많은 음악 팬들이 <K팝스타> 결승전 이하이와의 대결을 기억한다. 그 이후 이하이는 급속히 인기를 끌었는데 상대적으로 박지민은 그러지 못해 아쉬운 부분이 있다.


하이 언니는 한 번 들으면 귀를 잡아끄는 매력이 있고 그때 당시 흔치 않은 스타일이었다. 언니의 음악과 보컬 스타일에 귀가 더 가는 것도 사실이다. 아쉬운 점이라면 하이 언니와 나를 라이벌 구도로 엮어 판단하는 분위기다. JYP에 왜 들어갔냐, 후회되지 않냐 류의 질문을 너무 많이 받았는데, 사실 나에게 그런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음악을 반짝하고 그만둘 것은 아니지 않나. 내 음악을 즐겁게 하자는 마음이 크다.

 

15& 활동은 끝난 건가. 초기와는 약간 양상이 달라진 모습이다.


성향이 달라진 건 백예린과 나의 취향 차이가 크다. 예린이와 나는 동갑에, 같은 대전 출신이고, 같은 혈액형에 별자리도 같다 (웃음). 그렇지만 함께 그룹 활동을 하면서 성격, 음악 장르 등 많은 부분에서 다른 점이 있었고, 예린이가 음악에 욕심을 갖고 먼저 곡을 쓰고 노래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나도 해볼까'하는 생각으로 곡을 쓰기 시작한 것도 있다. 하지만 팀이 끝난 건 아니다. 피프틴엔드(End)가 아니라 계속되는 앤드(And)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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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만드는 박지민의 모습을 보면 즐겁고 신나 하는 모습이 보인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들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기타 치고 노래하는 장면이 즐거워 음악을 시작하게 된 거라, 음악을 해서 돈을 엄청나게 벌어야지하는 생각은 크게 해보지 않았다. 기획사와의 입장은 상호 간 조절을 많이 해야 하는 부분도 있지만(웃음). 많이 다릅니다.

 

부모님도 음악을 하셨는데, 딸의 음악 방향에 대해 조언해주는 부분이 있나.


어떤 음악을 하든 다 좋아해 주신다. '가수는 항상 솔직해야 한다. 꾸밈이 있더라도 그 안은 항상 솔직해야 한다'는 조언을 해주셨다.

 

언론과의 인터뷰를 찾아보니 지난 2년간 고민도 많이 하고, 생각도 깊었던 시간이었다고 말했는데 결과물은 오히려 가장 젊고 발랄한 스타일이 나온 것 같다.


노래를 잘 한다는 기준에서 고음과 가창력이 다가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 2년이었다. 어떤 분들께는 가볍게 들릴 수도 있지만, 나 자신에게는 표현하기 쉬우면서도 성격이 많이 드러나는 노래들이었다.

정규앨범은 언제쯤 도전해볼 생각인가.


좋은 곡이 나오면. 곡을 써서 계속 회사와 피드백하는 과정이다.

 

앨범 타이틀 속 '지민'은 과거의 박지민, '제이미'는 앞으로의 박지민을 의미한다고 들었다.


대중은 새로운 변화보단 꾸준함을 선호하는 것 같다. <K팝스타>에서 보였던 가창력과 고음 위주의 무대가 과거의 내 모습인데, 지금의 나는 다양한 음악을 지향하지만 과거의 요소들 또한 놓치고 싶지 않다. 지민과 제이미 둘 다 나다. 지민은 대중이 저를 기억하는 모습, 제이미는 대중에게 내가 보여주고 싶은 모습이라고 생각해주시면 되겠다.

 

'제이미'라는 이름을 택한 이유가 있다면?


영어 이름이 제이미다(웃음). 새 캐릭터를 재미있게 풀어내 보고자 했다.

 

이 앨범을 들을 사람들에게 전하고픈 핵심 메시지는?


결과와 순위에 연연하기보단 즐겨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내 결과물과 감정들을 함께 공유하고 나누는 것.

 

 

인터뷰 : 임진모, 김도헌
사진 : 김도헌
정리 : 김도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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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태완 “외국어 울렁증이 생기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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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6개 국어를 공부한 동양학자다. 한문, 중국어, 일본어, 영어, 불어, 독일어를 활용해 대화가 가능할 뿐만 아니라 깊이 있는 인문 지식까지 섭렵한다. 언어에 대한 뛰어난 감각과 능력을 타고난 게 아닐까 생각하기 쉽지만,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다르다. 경상도 산골에서 나고 자랐고 체계적인 외국어 학습법이 전무하던 시절에 학교를 다녔다. 독일어 교사가 영어 수업을 진행하고, 입시 위주의 교육이 이뤄지던 때였다. 지금의 4, 50대에게는 낯설지 않은 풍경일 터. 그 안에서 저자도 자연스레 영어와 담을 쌓았다.

 

‘외국어 문외한’이었던 그는 어떻게 6개 국어를 구사할 수 있게 되었을까. 해답의 실마리는 『나의 외국어 학습기』  안에 있다. 언어 공부를 시작하게 된 계기, 경험으로 터득한 학습법, 각 언어의 특성에 관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김태완 저자는 다수의 책을 번역하기도 했는데, 번역가로서 느끼는 언어별 미묘한 차이와 그 가운데에서 생겨나는 고민도 엿볼 수 있다. 동양학자로서 한중일의 말과 글을 넘어 영어, 유럽어까지 공부하게 된 이유도 흥미롭다.

 

율곡 이이의 책문을 통한 실리사상 연구로 철학 박사학위를 받은 김태완 저자는  『율곡문답』 , 『경연, 왕의 공부』 ,  『책문, 이 시대가 묻는다』 ,  『책문, 조선의 인문 토론』  등을 집필했다. 외국어로 된 중국학 연구서와 인문 교양서의 번역도 활발히 이어가면서, 이이의  『성학집요』 , 마르셀 그라네의 『고대 중국 축제와 가요』 , 이나미 리쓰코의 『고전이 된 삶』, 앙리 마스페로의 『도교와 중국 종교』(공역)를 우리말로 옮겼다. 수징난의 『주자평전』으로 ‘제56회 한국출판문화상’ 번역 부문을 수상했다. 현재 광주의 대안학교 지혜학교철학교육연구소의 소장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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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학자가 프랑스어를 공부한 이유


6개 언어를 사용하시는데요. 최근 공부하신 또 다른 언어가 있나요?

 

관심이 있어서 이탈리아어와 러시아어를 조금 공부했어요. 사실 라틴어를 배우고 싶었는데 아직 시작하지는 않았어요.

 

라틴어는 공부하기 어렵다던데요. 어떠세요?


처음에 한 언어를 공부할 때는 되게 어려운데요. 어느 정도 틀이 잡혀 있으면 그 언어와 유사성이 있거나 언어 계보학적으로 친연성이 있는 언어를 공부할 때 시간이 단축돼요. 제가 프랑스어를 공부할 때 문법이나 특징을 이해하는 데 1년 반에서 2년 정도 걸렸어요. 그런데 이탈리아어는 6개월 정도 공부하니까 문법 같은 것들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스페인어를 봤더니 이탈리아어와 단어나 문법이 굉장히 가까웠어요. 그러니까 유럽에서 몇 개 국어를 한다는 건, 사실 우리나라 사람이 몇 개 국어를 하는 것보다는 쉬운 거지요. 유럽 언어는 문법이나 어휘 체계, 철자법에 있어서 친연성이 강하니까요.

 

영어를 배우시는 과정에 어려움이 많았더라고요. 선생님 복이 없으셨던 것 같아요(웃음).

 

그랬는지 모르겠지만(웃음), 그때는 그런 상황 속에서도 명문대에도 가고 했으니까요. 선생님 복이 없어서 그랬던 건 아닌 것 같고(웃음), 약간 상스러운 말로 하자면 맨땅에 헤딩하듯이 공부했지요. 

 

외우는 식이었나요?


외워도 안 되더라고요. 시험공부를 해야 되는데 언제 단어를 외우고 있겠어요. 그때는 대학 전공 수업도 다 영어나 독일어로 되어 있었는데, 일일이 단어를 외우고 있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이왕 늦었으니까’ 하고 생각하고, 먼저 문장을 축자적으로 번역했어요. 그런 다음에 보니까 우리말과 영어의 앞뒤 연결이 어떻게 다른지 조금씩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그걸 말이 되게 다듬고 우리 문장으로 정돈하고, 그렇게 반복해서 보니까 영어 구조가 조금 이해가 됐어요.

 

영어 공부를 시작하신 뒤에 중국어, 일본어를 공부하셨어요?


중국어와 일본어를 공부할 무렵에 제대로 영어 공부를 시작한 것 같아요.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도 영어를 잘 못 했거든요. 과제물이 주어지면 억지로 하는 정도였어요. 그러다가 대학원 박사 과정에 들어갔을 때, 지도 교수가 영어로 된 명저를 번역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었는데, 그걸 하면서 영어 공부가 체계적으로 됐던 것 같아요. 말하자면 영어를 배운 게 아니고 습득한 거지요(웃음).

 

문법부터 공부하신 거예요?


문법도 안 했어요. 학창시절에 아무리 공부를 겉핥기로 해도 어느 정도 문법 체계를 듣기는 하잖아요. 그리고 짧은 기간 동안은 학원에 가보기도 했는데, 그렇게 해서는 문법을 잘 모르겠더라고요. 문법을 먼저 공부하면 참 어려운 것 같아요. 일단 원문을 놓고 단어 하나하나를 사전에서 찾아가지고 끼워 맞추기 식으로 했지요.

 

그러면서 형식도 알게 되셨군요.


그렇지요.

 

동양학자는 우리말과 한문 정도만 알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요. 다양한 언어를 공부하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지금도 한학을 전승하고 계신 분들이 계시고, 굉장히 소중하고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우리가 새로운 시대에서 과학적 또는 근대적 교육 체계 속에서 공부를 하게 됐잖아요. 그러니까 ‘동양학 하는 사람은 한문만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또 당시의 사회 풍조가 공부 잘하는 사람은 철학 중에서도 서양 철학을 하는 게 당연했어요. 심지어 철학과 교수들도 ‘동양에는 철학이 없다’거나 ‘동양 철학은 철학이 아니다’라는 식의 말을 공공연하게 하실 정도로요. 그러니까 저처럼 영어도 못하고, 시골에서 와서 견문도 짧고, 공부도 못하는 사람은 동양학을 공부했지요(웃음). 시골에서 자라서 한문, 한자는 낯설지 않았는데 그렇다고 서당에 다니면서 제대로 배운 건 아니었어요. 그래도 뭔가 공부는 하고 싶었고, 어떤 학문을 하더라도 언어가 기본이 된다는 사실은 어렴풋하게 느꼈어요. 선배들한테 한문, 중국어, 일본어는 꼭 공부해야 된다고 듣기도 했고요. 그래서 한문을 제대로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민족문화추진회 시험을 봤어요. 한문을 가르치는 곳이었는데, 지금은 한국고전번역원으로 바뀌었죠, 그런데 시험에서 떨어졌어요(웃음). 박사 과정에 들어가면서 다른 곳도 한 번 더 시험을 봤는데 또 떨어졌고요. 영어 때문에 떨어졌는지도 모르겠어요(웃음).

 

저자님도 그런 과거가 있으실 줄 몰랐는데요(웃음).


자존심도 상하고 ‘한문 책만 주야장창 볼 필요 있나’ 하는 생각도 들더라고요. 그리고 김용옥 씨나 다른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른 언어에서 동양학을 바라보는 것도 우리를 계발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되니까 시야를 더 넓히라고 하고요. 또 김용옥 씨가 강조했던 책 중에 시경을 사회학적 시각에서 해석한 게 있었어요. 그 책이 나오기 전과 후로 시경을 보는 관점이 바뀌었을 정도로 중요한 책이라는 거예요. 프랑스 학자가 쓴 책인데, 우리나라에 번역이 안 되어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것들이 동기가 되어서 자극을 줬어요. 유럽이나 영미 쪽에서 이루어지는 동양학 연구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체계적이고 깊다는 말을 들어서, 우리 학문의 발전을 위해서 소개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프랑스어도 공부하게 됐고요.

 

책에도 김용옥 선생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요.


당시에 동양학을 공부하는 사람들한테는, 요즘 말로 하자면 아이콘 내지는 롤모델 같은 분이었지요. 그때 우리한테 깊은 영향을 준 분이 두 분 계세요. 우물 안의 개구리 수준에 머물지 않도록 눈을 틔워 준 게 김용옥 씨라면, 동양학의 과학적 방법론을 알려준 분은 송영배 교수예요. 송영배 교수가 쓴 책이 있는데, 중국 대륙이 사회주의로 발전해가는 과정 속에서 유교와 마르크수주의 사이의 연관 관계를 연구한 책이에요. 그게 굉장히 큰 도움을 줬어요. 말하자면 혁명적인 인식의 전환을 가지고 온 거지요.


 

외국어 공부할 때는 낯이 두꺼워야 돼요


“동서양 철학을 회통會通하겠다는 허황된 꿈”을 갖고 계셨다고요(웃음). 외국어를 공부하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됐나요?

 

그렇지요. 제가 프랑스어를 배울 때 알리앙스를 갔었는데, 유학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많이 있었어요.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유학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위기였어요. 서양이 더 선진이라는 의식이 체화돼 있어서, 공부를 깊이 있게 하려면 무조건 유학을 가야 된다는 의식이 있었지요. 저는 그게 조금 기분 나쁘더라고요(웃음). 왜 가서 배워온다고만 생각할까, 가르치러 간다고 생각할 수는 없을까, 싶더라고요. 젊은 시절의 약간의 과신이었을 수도 있지만, 알리앙스에서 학생들을 보면서 생각한 게 그거였어요. 배우러 간다고만 생각하지 말고 가르치러 간다는 자세로 공부했으면 좋겠다 싶더라고요. 당시만 하더라도 한국 문화를 잘 이해해서 가르치는 외국 사람들이 그렇게 많지 않았어요. 우리가 불어만 잘하면, 또는 영어만 자유롭게 하면 얼마든지 가서 가르칠 수 있는 거지요. 우리는 외국어 실력이 부족해서 한국 문화를 설명해주기 어렵고, 외국 사람들은 한국학이나 동양학에 대한 이해의 결이 조금 달랐던 거예요. 그걸 적당히 잘 중재만 해줘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나라 문화와 관련해서 외국어로 적으실 때 어려움이 많을 것 같아요. 외국어로 쓰여진 자료를 읽는 것보다 더 힘들지 않나요?


아무래도 그렇겠지요. 원어민만큼 언어에 대한 감각이 있지는 않으니까요. 미묘한 차이를 살리지는 못할 거예요. 그런데 시험 삼아서 중국어로 글을 써보니까, 우리말과 어떻게 다른지 명료하게 드러나더라고요. 번역을 할 때는 잘 몰랐는데요. 써보니까 진짜 달라요. 먼저 우리말로 논문을 써놓고 그걸 중국어로 번역해서 실으려고 한 적이 있었는데요. 우리 언어의 맥락에서는 당연히 그렇게 쓰고 이해함직한 것도 중국어 문법 체계 속에 집어넣고 보니까 말이 안 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런 점에서 외국어를 공부할 때 우리말을 외국어로 써보는 훈련도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책에서 말씀하시길, 외국어를 우리말로 번역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하셨어요. 번역을 목적으로 공부하는 게 아니더라도 이 과정이 필요할까요?

 

외국어를 공부한다는 것은 외국의 문화나 언어를 우리말로 받아오는 거잖아요. 그 지역에 가서 사는 게 아닌 한 외국어 텍스트를 우리말로 받아들여야 하는 건데요. 직접 번역을 해보는 게 왜 좋으냐면, 우리가 머릿속으로 이해하는 것은 다 이해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몸이 체득을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냥 지나가 버리는 거지요. 손으로 직접 쓰는 것이 정말 도움이 될까, 시간 낭비 아닌가 싶겠지만, 몸을 쓰는 순간 체화가 되는 거예요. 늦게 공부를 시작한 사람일수록 조바심이 나서 자꾸 속성으로 하려고 하고 끝을 보려고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느리게 가는 게 오히려 빨리 가는 방법인 것 같아요.

 

언어를 공부할 때, 실력이 느는 걸 방해하는 습관이나 태도가 있을까요?


건방져지는 거지요. 어느 정도 할 줄 안다 싶어서 건방져질 때가 있잖아요. 어떤 단계가 되면 금방 그렇게 돼요. 언어가 보이기 시작하거든요. 예를 들면, 중국어를 조금 공부한 다음에 ‘판관 포청천’ 같은 드라마를 보면 들리는 부분들이 있어요. 그러면 갑자기 내가 잘하는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거예요. 책에 홍대용에 대한 이야기 나오는데, 그런 장면이 있잖아요. 홍대용이 처음에는 자기가 중국어를 엄청 잘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국경을 통과하니까 하나도 안 들리는 거예요. 낯선 환경이니까 긴장도 되고 겁도 나서 그랬겠지요. 언어뿐만 아니라 모든 학문에서 가장 경계해야 될 것이 시건방인 것 같아요(웃음).

 

틀릴까 봐 무서워서 아예 입을 떼지 못하는 경우도 있잖아요.


그건 100% 잘못된 거예요. 틀려도 해야 돼요. 아이들이 처음 말을 할 때 틀리지 않을 수 없잖아요. 우리는 나이가 들었으니까 ‘이 나이에 그렇게 말하면 창피하지 않나’ 하고 생각하는데, 그게 아니에요. 한 어어를 처음 배울 때는 그 언어의 어린아이잖아요. 어린아이가 말 한 마디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 수천 번씩 말한다고도 하는데, 언어를 처음 배우는 사람이 틀리는 건 당연한 거지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갖고 있는 생각 중에 ‘중각만 가자’는 게 있어요. 나서지 말고, 뒤떨어지지도 말고, 중간에 묻혀있으면 덜 얻어맞는다는 건데요. 모르는 것과 아는 것 사이의 중간은 아무것도 아닌 거예요. 모른다고 생각하면 알려고 할 수 있어요. 특히 외국어는 진짜 낯이 두꺼워야 돼요. 외국 사람이 우리나라에 와서 더듬더듬 한국어를 말할 때, 우리가 ‘한국에 여행 오면서 말도 잘 못 하나’라고 생각하지는 않잖아요. 마찬가지인 거지요.

 

실용 회화를 목표로 외국어를 공부할 때는 ‘굳이 문법까지 공부할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해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그게 나쁜 건 아니에요. 늘 영어 쓰는 사람과 같이 있으면서 영어를 듣고 말할 수 있다면 굳이 문법이나 텍스트를 공부할 필요가 없지요. 그런데 현실적으로 그렇게 안 되잖아요. 그리고 우리가 나이가 든 뒤에, 한 언어의 체계가 갖춰진 상태에서 외국어를 배우기 때문에, 일상생활에서 단어 하나 문장 하나 문법 하나를 일일이 공부해서는 별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언어라는 것은 보편적인 체계로 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 언어의 체계와 외국어의 다른 점을 변별할 줄 아는 눈이 생기면 훨씬 공부하기 쉬워져요. 초급, 중급 수준을 넘어서 고급 언어를 쓸 수 있게 되는 거지요. 실용 회화를 하더라도 사용하는 어휘나 문장의 수준이 높아지는 거예요.

 

한문의 경우에는 문법 공부부터 시작했을 때, 그 난관을 넘지 못하면 좌절하거나 포기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아요.


외국어 교과서를 보면 처음에는 이야기가 있는 문장이 나오고 문법은 부가적으로 설명되어 있잖아요. 한문은 그게 더 심한 것 같아요, 다른 언어보다. 한문 문법은 정돈도 잘 안 되어 있고, 심지어 학자들마다 보는 관점이 다르기도 해요. 그리고 근대적 한문 문법의 상당 부분은 영문 문화권에서 만든 문법 체계를 참조한 게 많아요. 그래서 차라리 진짜 좋은 시나 문장을 외우는 게 낫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옛날 사람들은 『고문진보』  같은 책을 200~300번씩 읽었잖아요. 그렇게 하면 사이사이의 단어만 바꿔 끼워 넣어서 의사소통하는 게 가능해요. 지금 사회에서는 그렇게 할 시간이나 여력이 안 되지만, 한문 공부를 할 때 너무 문법에 사로잡히지 말고 텍스트를 직접 접해보면 좋겠어요. 언어 공부에서 제일 중요한 건, 내가 목표를 세우고 시작하는 거예요.

 

매일 매일, 최소한 2년은 공부하라고 하셨죠? 경험에서 우러나온 이야기인가요?


그렇지요. 1~2년 공부해서 중간급 정도가 되면 본인은 아직도 멀었다고 생각하는데, 다른 사람들 눈에는 엄청 실력이 는 것처럼 보여요. 실제로 그렇기도 하고요. 제 경험을 돌아보면 조금 어려운 언어 같은 경우에 한 2년 공부해 보니까 조금 감이 잡히더라고요. 그 뒤에 다른 언어를 공부할 때는 같은 수준으로 올라가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단축됐어요. 절반 이상, 1/3까지 단축되기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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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시작하세요


번역자로서 일하실 때도 한문 텍스트는 다루기 힘드실 것 같아요. 어떠세요?


한문은 수천 년을 써온 것이기 때문에, 용어 하나가 가지고 있는 맥락이나 의미의 폭과 깊이가 굉장히 넓어요. 용례를 얼마나 많이 아느냐가 한문을 잘하는 비결이기도 하고요. 중국의 수천 년 역사의 섬세한 부분까지 알고 있어야 그 맥락을 짚을 수 있지요. 또 한문의 특징 중의 하나가 고사성어나 유명한 사람들의 일화를 몇 글자로 압축해서 표현하는 경우가 많다는 거예요. 그걸 모르면 엉뚱하게 해석할 수도 있고 감을 못 잡을 수도 있어요. 그래서 한문 공부는 필연적으로 박학을 요구해요. 독서 폭이 넓은 사람이 유리하지요. 중국의 역사를 다 알 수는 없지만 많이 알면 알수록 오류가 적어질 거라고 생각해요.

 

『설국』에 자극 받으셔서 일본어 공부를 시작하셨어요?


그건 아니고요. 일본어를 중급 쯤 공부할 때 강사가 『설국』의 제일 앞부분 한 페이지를 복사해서 줬어요. 번역을 해보라고 하더라고요. 번역하면서 소리 내서 읽어봤는데 작가의 표현 기법 같은 독특한 맛, 또 일본어가 주는 언어적인 울림 같은 게 굉장히 감성적이었어요. 정말 재밌더라고요. 외국어를 공부할 때 소설이 도움이 많이 돼요. 소설을 읽다가 어려운 어휘가 나왔을 때 그걸 일일이 사전에서 찾아가면서 읽으면 재미가 없잖아요. 그러니까 알든 모르든 그냥 끝까지 읽어 나가거든요. 어휘라는 게 사전적인 의미도 있지만 맥락 속에서 이해되는 게 있듯이, 소설은 우리가 나름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조금 익숙해질 수 있어요. 그래서 소설로 외국어를 공부하기가 좋은 거지요. 그 언어 현실에 간접적으로 참여하는 거거든요. 언어라는 건 항상 맥락성이 중요해요.

 

원서를 읽으면, 번역서를 읽을 때와는 다른 쾌감이 있나요?


그렇지요. 우리가 접하는 언어는 다 쓰여진 글이잖아요. 듣거나 말하는 게 아니라 머릿속으로 이해만 하는 거지요. 책에서  『죄와 벌』을 러시아어로 읽어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러시아어의 경우에는 어휘의 철자가 굉장히 길어요. 『죄와 벌』은 러시아 말로 ‘Prestuplenie i nakazanie’라고 발음해요. 우리가 ‘죄와 벌’이라고 써놓은 것과 ‘Prestuplenie i nakazanie’라는 말이 러시아 문화 속에서 가지는 의미는 다른 거지요. 원어에 익숙해지고 원어의 문화를 이해하면 그런 것들이 들어오는 거예요. 일본의 하이쿠든 한시든 아니면 다른 문학 작품이든, 그 언어가 가지고 있는 유기적 발음 구조와 음성 구조가 들어 있잖아요. 특히 시 같은 건 말할 것도 없지요. 흔히 드는 예 중에 하나가 조지훈의 「승무」인데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라고 했을 때 ‘하이얀’과 ‘나빌레라’가 맥락상 번역은 돼요. 그런데 울림이 주는 맛을 번역을 통해서 접하기는 어렵지요.

 

“번역이든 해석이든 나의 선-이해가 전제되므로 숙명적으로 오해를 동반한다”고 쓰셨어요. 번역자로서 고민하시는 부분일 것 같아요. ‘내가 이해한 바가 어디까지 들어가도 될 것이냐’라는.


번역과 관련된 책에서 늘 나오는 말인데요. ‘먼저 가지도 말고 쳐지지도 말고 반걸음 뒤따라가라’는 격언이에요. 내 경험이나 선-이해를 가지고 글 쓴 사람의 의도를 미리 읽어버리는 경우가 있기도 하지요. 욕망이 자꾸 생기고, 정확하게 잘 번역해야 된다는 강박 관념이 있으니까 성급하게 판단하는 거예요. 또는 약간 익숙해지면 성급해지는 경우가 가끔 있어요. 그런 걸 조심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어쨌든 ‘이 사람이 왜 이렇게 썼을까, 이 글을 통해서 무엇을 이야기해야 될까’를 찾아내야 하겠지요. 어쨌든 시건방을 떨면 안 된다는 거예요(웃음). 또 멋지게 하려고 해도 안 돼요.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전해야지요.

 

번역하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건 뭔가요?


글쎄요, 뭐가 있을까요(웃음). ‘조금 더 보면 완성도가 높아진다’는 생각은 있어요. 재검토를 많이 할수록 좋다는 거지요. 현실적으로는 실현이 잘 안 되는 경우가 많지만, 최대한 검토해야 된다는 생각이에요. 그리고 누구에게든 묻기를 두려워하지 말자고 생각해요. 사전은 늘 가지고 다니면서 봐야 하는 거고요.

 

사전과 관련해서 놀라운 이야기가 있었어요. 일본어를 먼저 공부하신 뒤에 중국어를 공부하셨는데, 그때 중국어-일본어 사전을 보셨다면서요?


그건 쉽지요. 일본어를 어느 정도 할 줄 아는 상태에서 중국어를 배울 때, 일-중 사전을 보면, 중국어 어휘를 일본어로 설명해 놓은 걸 볼 수 있잖아요. 자연히 도움이 되지요.

 

두 언어를 같이 공부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효율적이었나요?


엄청 효율적이지요. 그리고 같은 일본어 어휘라고 해도, 우리나라 사전이 설명한 방식과 중국어 사전이 설명한 방식이 다를 수 있어요. 나중에는 그게 보여요. 예문 같은 경우도 그렇고요. 예를 들면, 우리가 부사로 처리하는 말을 중국어에서는 부사로 처리하거나 아니면 형용사로 처리한 경우가 있을 수 있잖아요. 그러면 ‘아, 이 사람들은 부사로 처리하는 것보다 형용사로 처리하는 걸 더 선호하는구나’ 하는 생각도 드는 거지요. 그런 게 굉장히 도움이 많이 돼요. 다국어에 관심이 있는 사람에게 적극 추천할 만한 방식이에요. 다른 언어를 배울 때 국어사전은 당연히 참조해야겠지만, 내가 자신 있는 언어로 된 사전을 보는 것이 아주 도움이 많이 됩니다.

 

‘좋은 번역서, 제대로 된 번역서’를 알아보는 노하우가 있으실 것 같아요. 어떠세요?


그건 없는 것 같은데요(웃음). ‘어떤 책이 좋은 번역서인가’에 대한 생각은 계속 바뀌는 것 같아요. 우리말의 어법이나 뉘앙스의 전달에 무리가 없는 것이 잘 된 번역 같다고 생각될 때도 있는데요. 그게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원전에 충실한 것이 좋다고 생각될 때가 있는 건가요?


네. 어차피 번역이라는 건 우리말이 아닌 것을 들여오는 거잖아요. 물론 소설이나 동화 같이 약간의 번안이 필요한 경우도 있어요. 그런 경우는 괜찮을 수 있지요. 하지만 학술서처럼 정확성을 요하는 책에서는, 우리말 읽기를 매끄럽게 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가감을 하면, 오해의 소지가 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책은 이제 막 언어 공부를 시작한 사람보다는, 어느 정도 공부를 하다가 막혀서 돌파구를 찾는 사람들에게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누구한테 도움이 될지는 잘 모르겠네요(웃음). 주위에서 이 책이 정말 자신한테 필요한 책이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꽤 있는데요. 그 분들의 공통점은 어쨌든 공부를 더 해보고 싶은 사람들이라는 거예요. 아니면 공부를 하다가 중간에 멈췄거나. 요즘 ‘영어 울렁증’이라는 말을 쓰잖아요. 외국어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지레 부담을 갖는 사람들이 꼭 이 책을 읽었으면 좋겠어요. 언어는 절대 겁먹을 필요가 없어요. 어떤 언어라도 마찬가지예요. 아무리 어려운 언어라도 사람이 쓴 이상 해결의 실마리가 되는 게 반드시 있어요. 그걸 찾아서 하나하나 넓혀 가면 얼마든지 미로를 헤쳐 나갈 수 있어요. 내가 어느 수준까지는 도달하겠다든지, 2년 동안은 공부를 하겠다든지, 그런 각오만 있으면 어떤 언어라도 어렵지 않다고 생각해요.

 

언어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겁이 나는 이유는 뭘까요?


그 언어를 모르니까 그렇지요. 모르는 대상에 대해서는 두렵거나 겁이 나잖아요. 그런데 알고 보면 별 거 아니지요. 지금 울렁증을 느끼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옛날에 체계도 없이 외국어를 공부하던 때를 지나왔을 거예요. 그때는 학원도 안 다녔고, 성문 기본 영어를 봐도 무슨 뜻인지 모르고, 물어볼 사람도 없었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공부를 했기 때문에 외국어는 어렵다는 선입관이 형성된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 알고 보면 별 거 아니에요. 굴절어를 예로 들면, 우리가 특히 어려워하는 게 굴절어인데, 몇 격으로 굴절한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이 언어는 굴절한다’는 사실만 머릿속에 갖고 있으면 나머지는 그렇게 어렵지 않다는 거예요. 모르면 문법책에서 찾아보면 되지요. 학습서를 보고 대입해 보기도 하고요. 정확하게 어휘를 굴절해야 된다는 강박관념을 가질 필요가 없어요. 물론 시험을 볼 거라면 그렇게 해야겠지만 공부할 때는 굳이 그런 강박관념을 갖지 말라는 거지요. 차츰 익숙해져요. 그리고 언어는 본질적으로 경제성을 추구하기 때문에, 우리가 보기에 과도하게 굴절한 것 같아도 공통적으로 굴절한 게 많아요. 언어에 따라서 조금씩 다르게 굴절한다는 특성만 이해하고 있으면 나머지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공부하면 돼요(웃음). 절대 겁먹을 필요 없어요.

 

외국어 공부에 도전하는 사람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일단 시작하라는 거지요. 마음이 생겼으면 그때 시작하라는 거예요. 오늘 시작하면 그만큼 빠를 테니까 내일이나 먼 훗날로 미루지 말라는 거고요. 예를 들면, 오늘 알파벳 전부를 다 외우려고 하지 말고 시간이 허락되는 안에서 abc만이라도 쓰고 외우는 거예요. 내일 또 덧붙여서 쓰고요. 그렇게 하다 보면 1년 뒤의 오늘에는 분명히 엄청 멀리 가 있을 거예요. 시작도 안 하면 영원히 문 밖이고, 문을 열면 그 순간에 안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나의 외국어 학습기김태완 저 | 메멘토
외국어 문외한의 심경을 누구보다 잘 아는 저자는 각 외국어의 구조를 깨치는 순간부터 심화 학습 과정과 보편적인 공부법을 상세히 기술하는 등 외국어 학습자를 위한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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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정혜신 “모든 사람이 일상의 다정한 전사가 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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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제공: 인사동 도도카페


 

식수 부족으로 고통 받는 아프리카 어느 마을. 한 디자이너가 큰 공(드럼통) 모양의 물통을 만들어 사용하게 했다. 양동이에 물 길어 오다가 절반을 쏟았던 아이들은 공 모양의 통 덕분에 공놀이를 하듯 통을 굴리며, 동시에 물을 하나도 쏟지 않고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그 통에 물을 저장할 수도 있게 되었다. 아이들은 학교에 갈 수 있게 되었다. 일상적이고 간단한 기술로 삶을 바꿔놓는 이 적정기술 사례는 어느 날 정신과 의사 정혜신에게 “화선지 위의 먹물처럼”(13쪽) 스몄다. 전문가들의 심리학이 아닌 모두를 위한 ‘적정심리학’이 필요하다는 데에 생각이 미치자 그는 “이번 책이 내가 마지막으로 해야 할 것”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당신이 옳다』에 담은 정혜신의 30년 치유 활동 경험은 공 모양의 물통처럼 우리들 스스로가 치유를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실전 적정심리학이다.


“지금이 평화시라고 느껴지지 않아요. 길을 걸어가다가 아무나 붙잡고 “지금 마음이 어떠세요?”라고 물으면 열에 여덟은 눈물을 갑자기 뚝뚝 흘릴 수 있는 게 지금 우리의 일상이에요.”라고 말하는 정혜신. 트라우마 현장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과 꾸준히 만나온 그는 ‘심리적 CPR’이라고 부를 만한 질문 하나, “요즘 마음이 어떠세요?”가 얼마나 많은 사람을 변화시켰는지 목격했다. 그러니 우리 모두가 서로를 위한 ‘다정한 전사’가 되어야 한다고, 존재에 온전히 집중하는 충분한 공감이 사람을 살릴 수 있다고 정혜신은 거듭 강조하는 것이다.

 

심리적으로 벼랑 끝에 있으면서도 낌새조차 내보이지 않고 소리없이 스러지고 있는 사람이 많은 현실이라 “요즘 마음이 어떠세요”라는 질문 하나가 예상치 않게 ‘심리적 심폐소생술(CPR)’을 시작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 질문은 심장 충격기 같은 정도의 힘을 발휘한다. 간단한 심폐소생술 교육을 받은 초등학생이 거리에서 갑자기 쓰러진 성인의 목숨을 구했다는 실화처럼 심리적 CPR 또한 마찬가지다. 심리적 CPR은 꼭 배워야 한다. 그러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람을 살리게 된다.(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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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한테는 이게 책이 아니에요


이번 책에 대한 작가님의 남다른 마음이 유독 크게 느껴졌어요. 책 나오고, 어떠세요?

 

전에도 책을 내면 적극적으로 홍보를 한 적이 별로 없었어요. 쓸 때 막 몰입을 하다 책이 나올 때쯤 되면 나는 멀리에 있는 느낌이잖아요. 그랬는데 이번에는 적극적으로 인터뷰도, 북토크도 하겠다고 했어요. ‘심리적 CPR’워크샵도 하고 싶다고 했죠. 왜냐하면 그것을 하려고, 그걸 사람들에게 알리려고 책을 쓴 거니까요. 우리 사회는 전문가를 만나기도 전에 일상에서 소리 없이 쓰러져 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그런 사람들을 구해야 하는 상황이에요. 이 책에서 ‘이렇게 하면 그 사람들을 구할 수 있어!’라는 말을 막 얘기하고 싶었고요. 그 이야기를 할 도구가 책이었던 거예요. 말하자면 나한테는 이게 책이 아니에요. 이것을 사람들과 공유하면 그들이 마구 자기 일상에 들어가 다정한 전사가 되었으면 했고요. 이것이 내 마지막 사회적 역할이다, 생각할 만큼 아주 본질적인 거였어요.

 

방금 말씀하신 다정한 ‘전사’라는 표현도 그렇고요. 책 앞부분에 실린 ‘읽는 이에게’라는 글에서 이명수 작가님이 표현한 “고통의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온몸으로 그것을 감당하며 전진해야 하는 최전방 치유자”라는 말들이 결코 은유적으로만 들리지 않았어요. 이런 표현을 써야 했던 이유를 직접 듣고 싶어요.


저는 지금이 평화시라고 느껴지지 않아요. 길을 걸어가다가 아무나 붙잡고 “지금 마음이 어떠세요?”라고 물으면 열에 여덟은 눈물을 갑자기 뚝뚝 흘릴 수 있는 게 지금 우리의 일상이에요. 아닌 듯 살지만 실제 내면은 그렇지 않다는 걸 저는 너무 잘 알죠. 물론 손에 잡히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아요. 이성복 시인의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라는 말처럼 말이에요. 하지만 저는 그걸 계속 감지해왔으니까 다급하다고 느끼는 거예요. 심지어 이걸 트라우마 현장에서만 느낀 것이 아니라 곁에서도 느끼거든요. 내 후배, 내 친구, 내 조카, 내 지인, 이런 일상을 사는 보통 사람들의 내면이 이런 거죠.

 

그래서 심리적 CPR이라는 표현을 쓰신 거군요. 바로 곁에 있는 사람들이 즉각적으로 실행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로요.


심리적 CPR이 필요한 상황이 우리 일상 속에서 계속 벌어지거든요. 삼시세끼 끼니를 먹듯이 찾아와요. 어떻게 이럴 때마다 상담가를 찾아가겠어요. 그럴 수 없잖아요. 우리 삶이라는 것, 일상이라는 것이 그런 것이니까 곁에 있는 모두가 다정한 전사가 되어야죠.

 

“우울은 삶의 보편적 바탕색”(83쪽)이라고도 하셨죠. 그렇다고 한다면 누구나 실행할 수 있는 적정 기술, 적정 심리학에 관한 것이 더 많이 이야기 되어야 했을 텐데요. 그렇지 않았던 이유는 뭘까요?


무슨 이야기를 하면 “전문가와 상의하세요”가 나오잖아요. 하지만 우리 마음이 어렵거나 어떤 갈등이 있을 때 전문가를 찾아서 어떤 도움을 받았었는지를 하나씩 성찰하고, 복기해볼 필요가 있어요. 진짜 도움이 되는 도움이 무엇인지, 그것의 본질이 뭔지 잘 따져봐야 해요. 거기가 아니라 여기에서 더 많이 얻을 수 있었네, 깨달을 수도 있거든요. 집밥처럼 말이죠. 맛은 셰프의 음식보다 덜할 수 있지만 집밥만 잘 먹을 수 있다면 평생 셰프의 음식 안 먹어도 아무 문제가 없잖아요. 진짜 내 삶에 도움이 되는 도움이란 무엇인가, 그 실체가 뭔가, 이걸 알아야 불필요한 에너지 소모를 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거예요.

 

일상의 회복이나 일상적 교감에 집중하지 않고 전문가적 치유에만 기대려는 행위, 그게 일상의 외주화다.(중략) 일상의 외주화로 인한 결과는 어떤 모습일까. 예를 들어 내 삶의 고통과 외로움이 우울증이라는 의사의 진단 영역으로 한계가 지어지는 순간 나의 존재 자체는 다시 소외되고 우울증 환자 일반으로 대상화되기 쉽다. 고통으로 피폐해졌을 때 사람은 무엇보다 정서적 공급이 시급한데, 그런 순간에 결정적으로 정서적 소외가 일어나는 것이다.(81쪽)

 

그렇다면 이때 필요한 ‘적정심리학’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CPR이라는 게 어린 아이도 할 수 있을 만큼 아주 단순한데 결정적인 순간에 성인의 목숨도 구하죠. 단순하지만 목숨을 구할 정도의 결정적인 의학 지식이 다 집약되어 있는 건데요. 20년 전만 해도 사람이 쓰러지면 아무도 손쓰지 않고 그냥 들것에 실어 보냈거든요. 그런 일을 겪으면서 의학자들이 일상에서 벌어지는 이런 일들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계속 연구하고, 업데이트해서 최종적으로 만든 것이 CPR이에요. 파괴력이 있는 근본적인 동시에 단순한 것인데요. 심리적 CPR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을 보며 발견한 지점인 거죠.

 

그 지점이라는 것은 ‘존재를 확인 받는 것’이고요.


존재의 핵심까지 들어가 그 지점에 집중하고 그 지점에 공감을 퍼부으면 목숨을 구한다는 거예요. 반드시 반응해요. 그 존재에 들어가는 과정과 과녁에 관한 이야기, 여기에 방해가 되는 것들 등에 관한 이야기를 모두 한 것이 결국은 그 한 지점을 들어가기 위함이 아닐까 해요.

 

이를 테면 영혼의 심장이겠군요. 존재를 온전히 확인하는 심리적 CPR이 자극하는 부분이란 말이에요.


그렇죠. 바로 그 부분만 자극을 하면 멈춘 심장이 뛰어서 온몸이 살아나듯 사람이 살 수 있어요. 존재의 핵심, 그 존재 자체를 봐야 하는 거예요.

 

 

공감은 마음에 봄을 불러오는 것


우리는 감정에 관한 이야기를 그러나 많이 하지 않잖아요. 


감정은 믿을 만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거죠. 계속 달라지니까요. 신념, 가치관, 이성, 이런 것은 영원할 수도 있고 일관되지만 감정은 왔다 갔다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데요. 그것 때문에 겪는 우리의 심리적 대가가 너무 크죠.

 

“감정은 언제나 옳다, 그러나 행동까지 옳은 것은 아니다”(165쪽)만 잘 구분하면 되겠죠.


그럼요. 그러면 어떤 경우에도 마음껏 공감할 수 있어요. 행동이 옳다는 게 아니에요. 그 감정이 옳다는 거죠. 그걸 알면 거기서부터 화해가 가능해져요. 그걸 못하니까 공감할 수 있는 부분까지도 공감하지 못하고요. 그러니까 공감 받지 못하는 사람은 억울하고, 서운한 거예요. 그걸 잘 구별해서 사람의 마음을 알아주면 얼마든지 변화를 목격할 수 있어요.


책에는 자세히 적지 않았지만 간첩 조작 고문 피해자 선생님이 있는데요. 법정에서 판사가 최후진술의 기회를 줬대요. 보통 그 시절엔 그런 기회도 안 주는데 말이죠. 그래서 피를 토하듯 거의 한 시간동안 억울함을 토로했다는 거예요. 결국 판사는 사형을 선고했거든요? 후에 무기징역으로 감형되긴 했는데요. 그 분 말이 자기는 그 판사가 밉지 않았다더라고요. 그게 사람 마음이에요. 자기가 할 말을 처음으로 들어준 사람이니까요. 자기에게 사형을 선고한 판사가 고맙다고 하는 거죠. 감정은 별개인 거예요. 
 
중요한 것은 시간이 아무리 지났다 하더라도 공감 받고, 공감하는 일은 유효하다는 점일 거예요. 

 
존재 자체가 받은 모멸감, 상처는 항상 살아 있으니까요. 과거가 아니죠. 시간이 지났어도 심리적으로는 현재진행형이고요. 현재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일 가능성이 높아요. 게다가 부모가 과거에 자녀에게 한 잘못을 사과한다고 해보세요. 설령 자녀는 그것을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그 자체가 얼마나 치유적인 행위인가요. 자녀는 부모의 그 말이 얼마나 고맙겠어요.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그것은 현재진행형이다, 라는 거예요.

 

역으로 만약 과거에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은 사람이 있다면요. 뒤늦게라도 그 상처에 대한 이야기를 자신에게 상처 준 사람에게 해야 하는 걸까요?


내게 상처 준 사람에게 사과를 받지 못할 수도 있어요. 그 사람은 당황하거나 외면하거나 부정할 수도 있겠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말을 하는 것이 왜 의미가 있느냐면 내가 사과를 요구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 때문이에요. 내가 상처에 눌려서 그 사람을 피하거나 위축되어 살았었는데 그걸 얘기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만으로 자신을 인정할 수 있는 부분이 생기거든요. 그 사람이 인정하지 않더라도 나는 당당하게 말을 했다,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거예요. 내가 한 반격인 거잖아요. 피해 다니다가 나를 드러낸 거잖아요. 사과를 떠나서 그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어요. 그럴 수 있죠.

 

책 후반부에도 여러 사례들을 들려주고 계신데요. 나라는 존재를 확인시키는 그 심리적 CPR을 실행한 후 변화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놀라워요. 특별히 기억나는 일화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너무나 많아요. 거의 매순간 발견해요. 얼마 전 예은아빠 유경근 씨가 제 책을 읽고 페이스북에 글을 올리셨더라고요. 목포 신항에 갔다 새벽에 와서 피곤한데 세 시간 만에 책을 다 읽었다고 하시면서 오랜만에 안도감과 후련함을 느꼈다고 하셨어요. 사실 그런 마음을 느끼기 어려운 상황에 계신 분이잖아요. 어떤 말로 그를 위로하겠어요. 여전히 현실적인 이슈가 너무 많고, 여전히 갈등이 첨예하거든요. 정확히 어떤 부분이 안도감을 드렸는지는 알 수 없으나 자기 존재에 눈을 맞춰주는 느낌은 아니었을까 생각해요.

 

어버이연합 노인 분과의 대화 장면도 기억에 남아요. “고향이 어디세요?”부터 시작해 그의 존재와 감정에 집중하니 스스로 생각을 바꾸시더라고요.


그런데 그런 사람에게 “유가족한테 그러면 되냐, 안 되냐”하면서 백분토론을 한들 받아들일까요? 백분토론이 아니라 밤샘토론을 해도, 일 년 동안 쫓아다니면서 설득을 해도 받아들이지 않을 거예요. 가족 안에서도 마찬가지겠죠. “아버지 그 집회 나가지 마세요”라고 아무리 해도 안 돼요. 그분에게 우울증이 좀 있는 것 같으니 항우울제를 먹인다고 되겠어요? 안 되는 거죠. 그 사회적 비용이 얼마나 커요. 그런데 존재를 바라봐주면 단번에 변화해요. 저는 그것을 봄을 불러오는 거라고 말하는데요. 얼어붙은 한강물을 깨겠다고 곡괭이질을 하면 언제 다 깰 수 있겠어요. 봄이 오면 풀리는 거잖아요. 공감이라는 게 그렇게 사람 마음에 봄을 불러오는 거예요. 하나도 기운 빼지 않고, 단번에 그렇게 될 수 있어요.

 

말씀하시는 ‘공감’이 흔히 생각하는 공감과는 조금 다른 것 같아요. 공감에도 연습이 필요할 것 같고요.


우리가 알고 있는 건 공감이 아니라 감정노동이에요. 아버지가 저래도 이해해드려야지, 하면서 꾹 참는 것, 납득하지 않은 채 “네”라고 하는 것은 감정노동이지 공감 아니에요. 납득이 안 가면 “진짜 이해가 안 돼서 그러는데 그때 어떤 마음이었던 거야?”라고 물어보면 되죠. 물건을 들어 엎어도 이유가 있겠거니, 하면서 잘했다고 하는 건 아닌 거죠. 모르는 걸 꿀꺽 삼키면 반드시 탈이 나잖아요. 물어봐야죠. 논쟁 하자는 게 아니라 진짜 그 마음에 눈을 맞추고 물어보면 돼요. 그런 식으로 존재를 짚어주면 반응하게 되어 있어요. 그건 너무나 고마운 터칭이거든요. 이미 그 과정에서 치유가 시작돼요. 

 

이때 함께 생각해야 할 것이 ‘경계’를 인식하는 공감이잖아요. 나의 경계를 침범 당하면서까지 하는 공감은 감정노동일뿐이라는 말씀이 중요하게 들리는데요.


그건 타인을 공감한다면서 나에게는 반공감적인 사람이 되는 거죠. 왜 나한테 그런 대우를 하나요? 나를 왜 이유도 없이 힘들게 해요? 공감을 자기한테 강요하는 건 나에 대한 예의가 아니고요. 그건 공감이 아니에요. 공감은 반드시 양쪽이 다 좋아지게 되어 있어요. 다 자유롭고, 다 홀가분해지는 게 공감이거든요. 흔히 저한테 힘든 사람들을 많이 만나니까 힘들어서 어떻게 하느냐고 물으시는데요. 힘들기만 하지 않아요. 힘든 것도 있죠. 그가 겪은 고통을 생각하면 힘들 수 있어요. 그러나 만나는 과정에서 그 존재를 터치하고 그가 반응하면서 살아나오는 걸 목격하면 내가 얼마나 기운이 나고 얼마나 보람되겠어요. 그 보람은 이루 말할 수 없어요. 힘든 것 같지만 또 힘들지 않죠.

 

이건 아주 직관적이고 멋진 조언인데요. 공감을 하려고 할 때 절대 ‘충조평판(충고, 조언, 평가, 판단)’ 하지 말라고도 했어요.


‘이 사람은 이럴 거야’라고 하지만 막상 물어보면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거든요. 내가 상상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해요. 그런 경험을 몇 번만 하다보면 충조평판 안 하게 돼요. ‘혹시 이런 거 아니야?’라고 생각해서 물어봤는데 전혀 다른 게 나오는 경험을 몇 번 해봐요. 더 이상 넘겨짚지 못해요. 자연스럽게 물어보게 돼요. 그런데 한 번도 안 물어봤기 때문에 충조평판을 계속 하는 거거든요. 전혀 다른 이야기가 나오는 경험을 실제로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으니까요.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존재로, 정면으로 바라보게 되는 경험을 해보면 알겠네요.


저는 진짜 저희 아이들에게 잔소리를 단 한 번도 안 하고 키웠거든요. 사람들이 물어요. 어떻게 그게 가능하냐고요. 가능해요. 어떻게 잔소리를 참느냐고 하는데 참는 게 아니에요. 어렵지 않은 게, 아이들도 다 이유가 있어요. 물어보면 돼요. 미리 생각하지 않고, 넘겨짚지 말고 물어보는 거죠. “무슨 마음으로 그렇게 한 건데?”, “무슨 생각이었어?” 물어보면 뜻밖의 얘기를 한다고요. 그 얘기를 들으면 잔소리를 안 하게 돼요. 들을 때마다 매번 느끼는 건 아이도 스스로 많은 생각을 하는구나, 거든요. 저런 생각까지 하는구나, 저런 마음가짐으로 지내는구나, 의젓하구나, 알게 돼요. 그러면 잔소리 안 하게 되죠. 이건 다섯 살부터 가능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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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마음을 먹든 이유가 있다


“지금 나는 전통적 의미의 정신과 의사와 다를 수도”(22쪽) 있다는 말을 하셨어요. 이건 어떤 의미인가요?


정신과 의사란 아주 기능적인 직업군이에요. 기능적으로 정신의학적 범주 안에서 사람들을 보도록 고도로 훈련되어 있는 사람이죠. 가령 어떤 사람이 회사 사장이지만 다른 정체성을 갖고 있을 수 있어요. 다른 정체성을 다 망각하고 오로지 회사 사장이면, 집에 와서도 회사 사장이면 그건 망가진 사람인 거죠. 그런데 정신과 의사라는 게 묘해서 사람의 정신과 심리에 관한 전문가라고 하면 이게 아주 포괄적이고 근원적인, 온전한 한 인간에 가까울 가능성이 높은 존재로 확대해석을 할 수 있어요. 다른 사람도 그렇게 볼 수 있지만 자신도 그럴 수 있는데요. 제가 보기에 정신과 의사는 다만 아주 기능적인, 어떤 면에서는 테크니션에 가까운 경우도 너무 많거든요. 심지어 요즘은 워낙 우울증 정보도 많아서 아예 약을 먹어야겠다고 정하고 의사를 찾아오면 의사가 그렇게 처방을 해주기도 해요. 그게 뭐예요.

 

“의사는 충실한 약사가 되어준다(69쪽)” 같은 강한 표현을 쓰시기도 하셨는데요. 이런 비판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으셨던 건가요?


비판적인 이야기라기보다 인정해야 한다, 인지해야 한다, 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이런 현주소에 대해서 말이죠. 의사를 만나는 사람도 물론이고 의사로 사는 사람도 자신을 객관화해서 알아야 한다, 자기를 점검해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려고 했어요. 저는 의사가 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형성이 된 정신과 의사라고 하는 직업적인 정체성 안에 저 자신을 가두길 원치 않아요. 그건 대단히 기능적 존재라는 느낌이 많이 들고요. 나는 온전히 한 사람이어야 더 온전한 치유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에요. 지금 시대의 정신과 의사라는 직업적 범주 안에 들어가면 사람을 제대로 볼 수 없다고 생각한다는 거고요. 그런 의미였어요.

 

점점 더 정신과에 대한 일반의 관심도 커지고 있잖아요. 동시에 정신과 의사의 목소리도 많아지는 환경이고요. 그런데 조금 다른 말씀을 하시는 것 같아서 질문 드리고 싶었어요.

 

사람들은 고통스러우니까요. 하지만 그런 사람들에게 전혀 부응하지 못하고 있어요.

 

과연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이 사람들을 치유하고 있느냐, 라고 물으면 아니라고 보시는 건가요?


그렇게까지 일반화하면 안 될 것 같아요. 지금 정신과 의료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것은 너무 폭력적인 이야기죠. 사람마다 다른 거고요. 일반화해서 말하기는 어렵죠. 그래서도 안 되고요.

 

작년 출간된  『내 마음이 지옥일 때』에 ‘영감자’로 이름을 올리셨는데요. 이번에도 같은 이름으로 이명수 작가님이 기재되어 있어요. ‘영감자’란 어떤 의미이며, 이렇게 이름을 함께 올리는 이유가 무엇인지 듣고 싶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정말 어마어마한 둘 사이의 연대와 소통, 우리의 삶 속에서 나와요. 누가 더 주도해서 쓰고, 이런 것은 있으나 모든 작업이 사실은 함께 하는 작업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영감자라는 말을 썼고요. 서로가 서로에게 영감을 주죠. 그 시너지라는 것은 정말 지구 최강인(웃음) 것 같아요. 그런 존재가 내게 주는 힘은 말로 다할 수 없어요. 사인도 ‘혜신명수’라고 하는 걸요.(웃음) 붙어 있어야 의미가 있으니 하나로 움직이는 거예요. 활동만 같이 하는 게 아니고 심리적, 정서적으로 맞물려 움직여요. 그럴 때 온전함을 느끼고요. 한편으로는 서로 의존도가 너무 높아서 위험부담이 크다고도 해요. 다른 삶에서 거의 재미를 찾을 수가 없으니까요. 서로가 서로에게 주는 자극이 너무 크고 만족도가 너무 높아서요.

 

지난 5월 이명수 작가님이 심정지를 겪으셨잖아요. <한겨레> 인터뷰를 봤어요.


둘 중 하나가 없으면 너무 취약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그래서 하고 있었는데요. 심정지를 겪으면서 꼭 그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둘이 비슷한 시기에 같은 말을 했는데요. 이제 죽을 준비가 된 것 같다고 했어요. 살면서 확인해야 할 것은 다 확인했다, 정말 만족스럽게 사랑받고 사랑했다는 것을 경험했다, 이것을 서로 느낀 거예요. 그래서 다 정리가 된 것 같아요. 앞으로 사는 시간이 10년이 됐든, 20년, 30년이 됐든 본질은 같은 거죠. 이번에 심정지를 겪으면서 우리가 진짜로 여한 없게 살았구나, 확인했어요. 진짜 저는 이번 책이 내가 마지막으로 해야 할 것이었어요. 꼭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요. 이것까지 했으니 진짜 여한이 없죠.

 

이 책이 어떤 사람들에게 필요한 책이라고 생각하세요?


누군가와 애정을 가지고 관계를 하는 사람들에게, 라고 생각하니까 결국 모든 사람인데요. 관계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하게 하는 책이고요. 그것이 목표였어요. 그러니까 모든 사람이 봤으면 좋겠어요. 그 중 제일 봤으면 하는 사람을 얘기하라면 선생님과 부모고요. 꼭 다 보셨으면 좋겠어요.

 

이 인터뷰 기사를 읽은 분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한 마디가 있다면 들려주세요.


내가 어떤 마음을 먹거나 어떤 생각을 해봤다고 해도 거기에는 다 이유가 있다, 그러니까 당신은 옳다, 함부로 규정하지 말라, 어떤 마음을 먹든 이유가 있는 것이다, 그 이유에 귀 기울여주고 주목해주는 일을 해야 한다. 이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당신이 옳다정혜신 저 | 해냄
사람의 마음에 대한 통찰과 치유 내공을 밀도 높게 담고 있다. 이론과 통계, 정형화된 사례에 의존하는 기존의 심리학 책과 달리, 풍부한 현장 경험과 육성을 통한 사례로 뒷받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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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차홍 “아름다움의 비결? 내 안에서 찾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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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장소에 들어섰을 때, 차홍은 테이블에 앉아 무언가 쓰고 있었다. 인터뷰가 시작되고, 책에서 인상 깊게 본 사진에 대해 물었다. 처음 헤어디자이너가 되었을 무렵부터 고객, 지인들과 나눈 2천여 통의 편지가 책장을 빽빽이 채우고 있는 사진이었다. “요즘도 고객에게 편지를 쓰나요?” 차홍이 답했다. “사실 지금 편지를 쓰고 있었어요. 11월에 결혼을 앞둔 신부님들께 드리려고요.”


『당신을 아름답게 하는 것들』을 통해 차홍은 자신을 아름답게 하는 데 기여한 사물, 시선, 추억, 습관에 대해 이야기한다. 거창한 것은 없다. 어린 시절부터 해온 일기 쓰기, 손글씨 편지 보내기, 꾸준한 기부, 스태프 시절부터 사용해 온 파우치에 얽힌 사연 등이다. 이 모든 것은 ‘따뜻한 마음’과 ‘한결같음’으로 귀결된다. 그녀가 써 내려간 글을 따라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아름다운 사람이 되는 비결은 결국 마음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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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쓰며 얻은 뜻밖의 위안


헤어디자이너가 아닌 작가로 인터뷰하는 것은 처음이죠?

 

생각해보니 그렇네요. 헤어 스타일링 책을 펴냈을 땐 사인회만 했었거든요. 뷰티 관련 인터뷰는 자주 하지만 책에 관한 건 처음이에요.

 

첫 에세이집이에요. 소감이 어떤가요?


일기와 비슷한 것 같아요. 쓰고 나니 다시 들여다보기가 부끄러워요.(웃음) 저는 제가 출연한 프로그램도 창피해서 잘 못보거든요. 물론 책이 나온 게 창피하다는 뜻은 아니지만 어쨌든 부끄럽고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아요.

 

에세이 출간은 어떻게 이루어진 건가요?


시드페이퍼 출판사와 이전부터 뷰티 콘텐츠에 관한 교류가 있었는데, 대표님과 이야기하다가 언뜻 “에세이를 한번 써보고 싶다”고 말했던 게 현실이 됐어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쓰기 시작했죠. 워낙 바쁘기도 하고, 이런 종류의 책을 쓰는 건 처음이라 출간까지 2년 정도 걸렸어요.

호흡이 긴 글을 쓰는 작업이 어땠는지 궁금해요.


고등학교 때 문예반 활동도 했었고, 짧은 수필을 종종 써보곤 했기 때문에 쉽게 생각했는데 너무 어렵더라고요. 진도가 안 나갈 때는 강연을 하거나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듯이 혼자 말하는 걸 녹음해서 그걸 들으며 글로 옮기기도 했어요. 스케줄 이동 중이나 잠자기 전 한 시간, 출장 가는 비행기 안에서 등 짬 날 때마다 조금씩 쓰다 보니 흐름이 계속 끊어졌어요. 그래도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이렇게 책이 나왔네요.(웃음)

 

출간 전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시간을 많이 뺏기지 않을까 우려했는데 책을 쓰는 게 의외의 힐링을 가져다줬다”고 말했어요.


저는 스스로 10대와 20대 초반이 불우하다고 생각해왔어요. 가정형편이 넉넉지 않아서 어딜 놀러 갔던 추억도 없고, 누군가와의 정서적 교류도 별로 없었거든요. 그런데 책을 쓰면서 어린 시절을 들여다보니 아름다운 순간이 꽤 많더라고요. 그게 저를 다독여주는 느낌이었어요. 사실 책 쓰는 동안 감정의 변화가 심해서 잠을 잘 못 이뤘거든요. 글을 쓰려면 깊숙이 숨어 있던 나의 모습, 꾹꾹 눌러 두고 들춰보고 싶지 않았던 내 모습을 자꾸 마주해야 하니까요. 그런데 그 경험이 다시 한번 저를 돌아보게 하더라고요.

 

어린 시절부터 책을 무척 좋아했다고 했어요. 애독가 차홍에게 ‘책’은 어떤 존재인가요?


성격이 외향적이지 않아서 일을 할 때 빼곤 거의 집에 있는 편이에요. 많은 분들이 제게 밝고 친절하다고 말씀해주시지만 사실 전 낯을 많이 가려요. 이 책에는 정말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제 내면을 많이 오픈한 거예요.(웃음) 그렇다 보니, 저는 책을 통해서 모든 만남이 이루어져요. 외로울 땐 힘과 용기를 주고, 심심할 땐 친구가 되어 주고, 때로는 스승 같기도 하고 가족 같기도 하고요. 책은 어떤 하나로 규정할 수가 없어요. 모든 관계, 모든 의미인 것 같아요.

 

 

아름다움, 나를 바로 아는 것이 먼저


‘내 마음 사랑법’과 ‘내 몸 사랑법’ 두 파트로 나누어 전개돼요. 개인적으로 ‘내 마음 사랑법’ 부분만 확대해 따로 출간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외면을 가꾸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는 흔하지만, 내 마음 사랑법’에 솔직하게 써 내려간 이야기는 오직 차홍만 할 수 있는 거니까요.


처음 에세이를 쓰고 싶다고 마음을 먹은 이유가 ‘아름다움’이 아웃뷰티에만 집중되는 게 안타까웠기 때문이에요. 제가 현장에서 일하면서 명확히 깨달은 건 ‘내면이 아름답지 못하면 외면도 아름다울 수 없다’는 사실이거든요. 실제로 만난 아름다운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스스로에 대한 사랑이 깊은 경우가 많았어요. 그런데 내면의 아름다움을 글로 정리하다 보니 되게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몇 개월을 흘려보내다가 결국 ‘내 안의 이야기를 써보자’고 마음먹었어요. 쓰고 나니 너무 내 이야기를 많이 했나 싶어서 부끄럽더라고요.(웃음) 전면에 ‘내 마음 사랑법’이 들어가 있는 게 저에게는 부담인데, 독자 분들은 어떻게 느끼실지 모르겠어요.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2천여 통의 편지였어요. 요즘도 고객에게 편지를 쓰나요?


사실 지금 편지를 쓰고 있었어요. 11월에 결혼을 앞둔 신부님들께 드리려고요. 제 취미생활 중 하나가 편지지를 모으는 거예요. 외국 출장을 가면 꼭 편지지, 엽서, 스티커 등을 사서 가지고 다니다가 생각나면 편지를 써요. 평소에는 너무 바쁘다 보니 하고 싶은 말을 못 할 경우가 많은데, 편지에는 노골적인 내 마음을 다 담을 수 있어서 좋죠. 얼마 전에는 한 제자가 10년 전 제게 받은 편지를 가지고 왔더라고요. ‘우리 브랜드의 아름다운 씨앗이 되어 주어서 고맙다’고 쓴 편지였는데, 얼마 전 지점을 오픈하면서 “이 편지 덕분에 씨앗이 성장했으니 원장님께 다시 돌려드리고 싶다”면서 편지를 내미는 거예요. 너무 감동을 받았어요. 손글씨가 담긴 편지는 참 좋은 선물인 것 같아요. 직접 쓴 편지를 버릴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거예요.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팁 중, 이것 하나만큼은 꼭 지켰으면 좋겠다고 추천할만한 뷰티 습관은 무엇인가요?


머리 손질을 할 때가 되지 않았는데, 헤어숍을 찾는 손님들을 보면 대게 스트레스가 많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스트레스를 관리하지 못하면 그게 몸으로 나타나요. 우리는 스트레스가 외적인 곳에서 온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내 안에서 그 문제를 부정적으로 받아들일 때가 훨씬 많거든요. 아름다워지기 위해서는 스트레스를 잘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저는 일기쓰기를 권해드리고 싶어요. ‘뷰티와 일기가 무슨 상관이야?’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시겠지만, 일기를 쓰면 하루의 열띤 감정이 고이고이 펴지고 나에 대해 잘 알 수 있거든요. 실제로 많은 분들이 본인에 대해 잘 모르고 살아요. “어떤 계절을 좋아하세요? 쉬고 싶을 때 주로 어디 가세요?”라고 물으면 머뭇거리곤 하죠. 그런데 친구가 무슨 계절을 좋아하고, 어떤 장소를 자주 가는지는 너무 잘 알아요.(웃음) 나에 대해 생각하고, 알아가는 건 무척 중요해요. 내가 이 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잘 모르니까 외부의 모든 자극이 스트레스로 느껴지는 거죠. 

 

외모를 아름답게 가꾸는 게 왜 중요하냐고 반문하는 이들도 있어요.


나를 아름답게 가꾸고, 들여다보는 건 나를 사랑하는 방법이에요. 집의 커튼 하나만 바꾸어도 기분이 무척 좋아지잖아요. 외모를 꾸미는 일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나를 더 아름답게 꾸미는 행위는 삶을 굉장히 풍요롭게 만들어요.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고, 표현하는 가장 큰 방법은 외모를 아름답게 가꾸는 거라고 생각해요.

 

차홍을 아름답게 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게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아무래도 직업인 것 같아요. 누군가를 더 아름답게 만들고, 보살피는 일이잖아요. 전 제 일이 너무 좋아요. 헤어디자이너는 정말 멋진 직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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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홍을 차홍답게 하는 것들


차홍이라는 이름이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것은 방송에서 ‘셀프스타일링 비법’을 전수한 덕분이에요. 지금은 뷰티 정보를 나누는 게 워낙 활성화돼 있지만, 당시에는 신선한 일이었어요.


처음 셀프스타일링 비법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던 건 15년 전쯤이었어요. 제가 파마를 예쁘게 해드린 고객을 압구정 로데오 거리에서 만났는데, 차마 인사를 못 했어요. 산발이 된 머리를 질끈 묶고 계시더라고요. 그때 ‘아 나는 미용실에서만 예쁜 머리를 하고 있구나’하고 충격을 받았어요. 생각해 보니 365일 중 사람들이 미용실을 찾는 횟수는 5일 정도밖에 안 되더라고요. 그럼 남은 날들은 다 고객이 스스로 손질을 해야 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머리를 잘 말리고, 예쁘게 스타일링 하고, 제품을 올바르게 사용할 수 있도록 제 블로그에 정보를 올렸어요. 그게 유명해져서 SBS ‘스타킹’에서 섭외가 왔었죠. 초반에는 헤어디자이너 분들이 너무 많은 정보를 알려준다고 민감하게 반응했어요. 그런데 저는 대중에게 정보를 전달할수록 뷰티에 관심을 갖는 분들이 늘어나고, 폭이 훨씬 넓어질 거라 생각했어요.

 

차홍을 이야기할 땐 언제나 ‘긍정’이라는 수식어가 따라와요. 매사에 긍정적일 수 있는 원천이 무엇인가요?


저는 어떤 문제가 생기면 종이를 반으로 나눠서 이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순간’과 ‘최상의 순간’ 써 봐요. 쓰다 보면 신기하게도 두 내용이 맞물려요. 예를 들어 성격이 내성적이라 사람을 폭넓게 만날 수 없는 단점이 있다면, 대신 누군가를 깊게 사귈 수 있는 장점이 있는 것처럼 어떤 단점도 단점으로만 존재하지 않고, 장점으로 보이는 것도 때로는 단점일 수 있더라고요. 이걸 깨달은 뒤로는 무슨 일이 생겨도 좋은 쪽으로 생각해요. 아직 책장을 다 넘기지도 않았는데 ‘주인공은 죽을 거야’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잘 될 거야’라고 생각하는 게 낫잖아요. ‘안 될 거야’라고 생각하면 안 되는 이유가 순식간에 100개도 넘게 떠올라요. 하지만 ‘잘 될 거야’라고 생각하면 잘 될 수밖에 없는 방법들이 떠오르죠. 저는 그걸 실천할 뿐이에요. 어차피 살아야 할 인생이라면 최대한 좋은 마음으로 살고 싶어요.

 

어린 시절의 이야기가 무척 흥미로웠어요. 어머니께서 머리를 직접 잘라주셔서 고등학교 때까지 미용실을 가본 적이 없었다고요.


저에게는 트라우마예요. 그 현장을 못 봐서 그런지 다른 분들은 이걸 로맨틱하게 생각하시더라고요. 엄마가 그냥 집에 있는 큰 가위로 싹둑싹둑 잘라주셨으니, 마음에 들 리가 없잖아요. 가위선이 다 보이고 너무 안 예뻤어요. 섬세한 사춘기 소녀의 감성을 무시한 일이었죠. 심지어 바가지까지 씌웠다니까요.(웃음)

 

지금은 반대로 어머니 머리를 손질해주시겠네요. 기분이 남다를 것 같아요.


그렇죠. 다른 게 하나 있다면 어머니는 제 머리를 망가뜨렸고, 저는 예쁘게 해드린다는 것?(웃음) 그런데 멀리 떨어져서 생각하니 목에 보자기 두르고, 형제들이 오순도순 모여있던 방에서 머리를 자르던 그 풍경이 되게 아름답게 느껴져요. 당시에는 삐뚤삐뚤한 내 머리카락만 보였다면 지금은 그 따뜻한 교류가 그립네요. 아프고, 예민했던 옛 추억들이 마냥 나쁜 순간만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자연에서 보았던 아름다운 색을 떠올리며 헤어 염색 시술을 한다.(154쪽)’고 했어요. 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랐던 경험이 일을 하는 데 도움이 되나요?


정말 큰 도움이 돼요. 사람들이 신선해하는 제 유머코드도 시골 생활에서 얻어진 거예요. 제가 “도토리, 솔방울 닮았다”, “머리카락이 단풍잎 같아서 너무 예쁘다”라고 하면 다들 당황스러워하며 웃으시거든요. 저는 어릴 때부터 물뱀이나 곤충, 다람쥐 같은 것들을 가까이에서 봤고 예쁘게 들여다봤기 때문에 자연스레 나오는 칭찬인데 도시에 살던 분들은 이게 낯선가 봐요.(웃음) 그때 느꼈던 하늘, 공기, 여유 이런 것들이 너무 좋았어요. 대보름 때는 강강수월래 하고, 모닥불 피워서 고구마 구워 먹고, 냉이 캐와서 된장찌개를 끓였는데 너무 맛이 없었던 기억들.(웃음) 그 씁쓰름한 기억들이 감성이 되었나 봐요. 도시에서 힘들 때 어린 시절을 많이 생각하며 버텼어요. 뷰티 업계는 송곳같이 예민하고 무척 빠르거든요. 이 공간에서 휘둘리지 않고 저만의 감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시골생활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헤어디자이너 생활을 한 지 20년이 다 되어가요. 국내의 대표적인 톱 헤어디자이너로 인정받고 있는데, 20년 전을 돌아보는 감회가 어떤가요?


처음 스태프 생활을 시작했을 때는 너무 생경했어요. 저만 빼고 다 세련된 느낌이었거든요. 유학을 다녀온 친구들도 많아서 늘 ‘나는 정말 부족하다. 몇 배는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마치 제가 낙엽 밑에 깔린 도토리처럼 보잘 것 없이 느껴졌는데 그 감정 때문에 정말 열심히 노력했어요. 그러다 보니 확실히 남과 비교하지 않고 저만의 길을 가게 되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그때보다 말이 많아졌고, 목소리가 커졌고, 처음 보는 사람에게 좀더 쉽게 다가가요. 그 외에는 비슷해요. 그때나 지금이나 분주하고, 계속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고요.

 

『당신을 아름답게 하는 것들』을 만날 독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세상에 내가 하나밖에 없다는 건 명확한 진실이에요. 그래서 우리 모두는 특별하고 독창적이고 아름다워요. 누구도 나를 대체할 수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아름답다는 걸 아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그 생각을 한 후부터 삶이 많이 바뀌었거든요. 스태프 생활을 오래 했고, 무척 느리게 성장했지만 흔들리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건 ‘나는 하나뿐이다’라는 생각 덕분이었어요. 누군가를 닮으려 노력해도 결코 그 사람이 될 수 없으니까요. 내가 없으면 세상도 없어요. 그러니 나를 먼저 위로하고, 들여다보고, 잘하고 있다고 북돋아야 해요. 아름다움은 결국 나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시작하는 거예요.


 

 

당신을 아름답게 하는 것들차홍 저 | 시드페이퍼(seed paper)
무작정 트렌드를 따라가는 데만 집중하는 대신 자기 자신의 외면은 물론 내면까지 면밀하게 들여다보며 스스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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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커버 스토리] 전이수, 이상한 세상을 사는 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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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재(英才)


재능이 뛰어난 사람으로서 타고난 잠재력을 계발하기 위하여 특별한 교육이 필요한 사람(영재 교육 진흥법 제2조 제1호)

 

인터뷰 장소에 도착한 전이수는 차에서 뛰어내리자마자 강아지를 발견하고 그쪽으로 달려갔다. 인터뷰보다는 강아지와 노는 게 먼저였다. 물감이 묻은 찢어진 바지를 입고 흔들리는 유치를 잡고 있는 모습은 영락없는 꼬마였다. 동시에 동화책 네 권을 펴낸 작가이자 TV 프로그램 <영재발굴단>을 통해 유명해진 ‘영재’이기도 하다. TV 속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전이수 작가의 상상력은 끝이 없고 표현력이 풍부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고, 카메라 앵글은 시종일관 골똘히 생각에 잠겨 그림을 그리는 그의 얼굴을 비췄다.


누군가는 선천적인 재능이, 누군가는 후천적인 교육이 영재를 만든다고 했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건강하게만 자라달라고 이야기하다가도 빛나는 재능을 발견하면 혹시 아이의 재능을 썩히지 않을까 전전긍긍한다. 그러나 이수의 부모님은 영재 교육을 시키지 않고 어느 곳에든 그림을 그리는 아들을 말리지 않는 걸로 교육을 대신했다. 집 담벼락과 자동차 몸체가 그림으로 채워졌다. 때로는 놀게 내버려두는 일이 아이의 재능을 지키는 길이라고 믿고 있다.


'영재 교육 진흥법'에 따르면 전이수는 영재가 아닐지 모른다. 그에게는 교육이 필요하지 않다. 그저 자신의 눈에 이상해 보이는 걸 표현하는 창작자일 뿐이다. 자연이 훼손되는 게 안타까워 『꼬마 악어 타코』  를, 어른들이 휴대폰에 매몰되어 있는 모습이 이상해 『걸어가는 늑대들』을 쓰고 그렸다. 세상에 떨어진 지 얼마 안 된 작은 사람에게 세상은 늘 이상해 보인다. 따지고 보면 이상한 세상 속에서 사는 게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게 아닐까. 어른 작가와 아이 작가의 차이점이 있다면 더 맑은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다는 것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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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표현의 수단일 뿐

 

그림을 처음 그린 날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엄마가 자고 있을 때 네임펜으로 엄마의 손등과 발등에 그림을 그렸다. 이수의 어머니 김나윤 씨는 작은 낙서였지만 너무 예쁘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크면 이 그림은 사라질 것이라는 생각에 그 자리 그대로 문신으로 새겼다. 악어와 사자와 독수리가 엄마의 몸에 새겨졌다. “발에 그린 아기 악어 타코는 아직 선명하게 남아 있어요. 손목의 문신은 뿌옇게 흐려져서 안타까워요.”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의 몸에 새긴 악어를 주인공으로 첫 번째 책  『꼬마 악어 타코』를 냈다. 꼬마 악어가 사는 세상은 점점 나무가 적어지고 네모가 많아진다. 길쭉한 막대기가 시커먼 연기를 내뿜고 새들은 쉴 곳을 잃어버렸다. 이수는 꼬마 악어의 입을 빌려 더 늦기 전에 자기 자리가 오염되지 않도록 지키겠다고 생각한다.


최근 이수의 그림은 스케일이 크다. 어림잡아 40호가 넘어가는 그림이 즐비하다. 왜 크게 그리느냐는 질문에는 그림에 자신이 스며드는 느낌이 좋아서라고 대답했다. 『꼬마 악어 타코』  와 비교하면 그림체가 많이 달라졌다. 예전에 그리던 것보다 지금 그리는 게 더 마음에 드느냐는 질문에는 그림마다 이야기하고 싶은 게 다 달라서 표현 방법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작가 전이수에게 메시지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나의 가족, 사랑하나요?』 를 쓸 때도 하고자 하는 말을 먼저 글로 쓰고 그림을 그렸다. “잘 그리고 싶지만, 잘 그린다는 기준이 뭔지 모르겠어. 잘 그린다…. 그런 건 없다고 생각해.” 동화책은 자신이 알리고자 하는 이야기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적절하다는 직관적인 판단이었다. 아이에게도 사람들에게 가 닿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책이었다.


이수에게 그림은 가르치거나 배우는 게 아니다.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건 다른 사람이 대신해줄 수 없다. 아무리 그림을 잘 그리는 사람이 옆에 있어도 표현은 각자의 몫이다. 부모의 입장도 마찬가지다.“일반적인 의미로 이수가 그림을 잘 그린다고 말하기는 힘들 거예요. 그저 자기 생각을 잘 표현하는 거라고 생각하죠. 자기 생각을 잘 담아내고 표현하면 그게 잘 그린 그림이지, 자세하게 그리거나 구도가 좋은 그림이라고 해서 잘 그리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와 자신의 감정을 강렬하게 전달했다면 그게 저희에게는 좋은 그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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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동생 우태

                                   “나중에 그림 진짜 잘 그리는 사람이 이수를 가르치겠다고 하면 배우고 싶어?”                          
                                   "아니.그림은 가르치는 게 아닌 것 같아. 내가 표현하는 걸 다른 사람이 대신해줄 순 없잖아.”

 

 

나의 사랑하는 가족


이수의 동생은 총 세 명, 우태와 유정과 유담이다. 같이 홈스쿨링을 하는 우태는 두 살 터울 동생이자 가장 친한 친구다. 우태가 쉬를 하면 이수도 같이 쉬를 한다. 혼자 혼나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싶어서다. 동생이 많아서 힘들지 않으냐고 묻자, 동생들이 놀아달라고 할 때마다 힘들다고 대답했다. 같이 놀면 힘들지 않다. 그러나 자신이 놀아줘야 하는 입장이 되면 자기가 하는 말에 따라야 하니까 힘들다. 떼쓰고 소란 피우고 소리 지를 때마다 동생들이 싫어질 때도 있다. “하지만 괜찮아. 왜냐하면 나도 옛날에 그랬잖아. 그러니까 이해해야 해. 그렇게 생각하면 많이 싫지 않아.”


네 번째 책 『나의 가족, 사랑하나요?』에는 가족을 향한 마음이 가득하다. 그림 속 부모님은 늘 고맙고 미안한 존재다. “동생이랑 내가 있으니까 자유롭게 자기가 하고 싶은 걸 못 하잖아. 엄마 아빠가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거 포기하고 낳아주고 길러주신 건데. 그래서 엄마 아빠한테 고마워.”엄마의 꿈은 세계 일주였다. 아빠는 스키를 타고 싶다고 했다. 나중에 자신이 크고 나면 엄마 아빠가 하고 싶은 일을 했으면 좋겠다. 하지만 여행을 떠난다면 같이 가고 싶기도 하다. 아직은 엄마 아빠와 떨어지고 싶지 않다.


「위로 1」과 「위로 2」에는 키우는 강아지 토토가 나온다. 그림 속 토토는 사람보다 훨씬 크다. 타고 다니고 싶어서 크게 그렸다고 한다. 앞으로 이수가 크면서 점점 무거워질 거라고, 그러면 강아지가 힘들어할 거라고 농담을 걸자 이수는 진지하게 이야기했다. “살 빼면 돼. 나는 어른이 돼도 가벼울 거야.”그림 속의 토토는 울고 있는 사람을 위로한다. 이수가 속상할 때 토토 옆에 있으면 마음이 느껴져서 위안이 된다고 했다. 슬픔과 기쁨을 나누는 토토도 이수의 가족이다.


전이수의 작품은 늘 사랑과 가족을 그린다. 사랑은 불가능한 상황을 가능하게 한다. 사자와 사슴은 자연 속에서라면 쫓고 쫓기는 포식자와 피식자의 관계지만, 사랑이 있다면 서로 애틋하게 쳐다보며 사랑의 하트를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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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랑

              “얼굴이 하트 모양이잖아.”
              “그건 몰랐네.”
              “비밀을 알고 있어야지.”
              “책에서는 가르쳐주지 않았는걸.”
               “재미있는 비밀은 원래 안 알려주는 거야.”

 

 

자연 속 제주도 소년


아빠 전기백 씨는 발전소에서 일한다. 충남 보령에서 인천, 제주도로 이사했던 기억은 어린 나이의 이수가 ‘이야기가 끊기는’ 것처럼 가물가물할 무렵이었다. 그러나 인천의 공장에서 매연이 나오는 모습은 머릿속에 똑똑히 남아 있다.


신해철의 「너무 늦기 전에」 가사처럼, 너무 늦기 전에 환경을 지켜주고 싶었다. 제주도에 와서 그 마음이 강해졌다. 나무가 잘려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무 옆에 있어줘야겠다고 생각하다, 나무 옆에 또 다른 나무를 심어주자고 생각한다. 자연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이 더 나은 결과를 생각하게 했다. 이것저것 재고 따지는 어른보다 훨씬 간명하다.


자연이 가득한 제주도에 와서 이수는 신난다. “밖에서 놀 때 재밌어. 여기 와서 다리가 계속 움직여. 신나서.”변해가는 제주의 모습이 안타까워 문재인 대통령에게 편지도 썼다. 자연은 자신과 동생이 노는 놀이터고, 대통령 할아버지가 다른 것보다 자연을 먼저 지켜주셨으면 좋겠다는 내용이었다.

 


어른들이 밉지 않아요?


2014년 3월에 제주도로 내려갈 당시, 가족이 쓰던 차를 세월호에 실어 보냈다. 한 달이 지나고 세월호가 가라앉았다. 아빠 전기백 씨가 뉴스를 봤을 때는 그저 날씨가 추운데 아이들이 고생하겠구나 여겼다. 그렇게 큰 배가 가라앉을 수 없다고, 너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후에 들은 소식은 기가 찰 일이었다. 집회에 나가면서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세월호에 관해 알게 되었다. 이수의 부모님은 어른이 한 일이라도 고쳐야 하는 일이라면 아이들에게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른들이 부끄러운 일은 아이들에게 알려줘야 아이들이 자라서 세상을 바꿀 수 있다. 부끄러움 때문에 공부나 하라고 면박을 주면 사회는 바뀌지 않는다.


어른에게 실망한 적이 없느냐고 묻고 싶었다. 명백한 어른의 잘못이었다. 뉴스에서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걸 보면 마음이 아팠다. 우리 모두가 그랬다. 아이들에게도 결코 잊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수는 세월호 사건 이후, 선체를 들어올릴 때 기억을 되돌려서 그림을 그렸다. 국정농단 사태로 국민들이 촛불을 들 때도, 백인들이 다른 인종을 차별하는 모습을 볼 때도 이수는 사람을 위로하는 그림을, 자신을 위로하는 그림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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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챙이떼

           형들 누나들을 떠올리며
           하늘로 날아 올라가는 올챙이를
           한 마리씩 한 마리씩 그렸다.

 

 

영재는 길러지는가


이수와 우태는 홈스쿨링을 한다. 어린이집에 다니던 이수는 그곳의 통제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뒤이어 대안학교에 들어갔지만 이수는 초등학교 3학년, 우태는 1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었다. 여전히 자기와 약속하지도 않은 활동을 왜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부모는 아이가 통제에 따르지 않아서가 아니라, 남들처럼 하지 않아서 불안할 때가 많다.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한다고 넘길 일을 이수의 부모님은 수긍하고 받아들였다. “기존에 정해진 교과에 따라 억지로 해야 한다는 걸 싫어했어요. 다른 하고 싶은 게 많은데 그 시간이 너무 아깝다는 거예요.”


부모님이 이수를 키운 마음은 ‘심성 먼저, 학습 나중’이었다. 배려를 하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는 방법은 아이들이 어릴 때만 가르칠 수 있다. 경쟁하고 이기는 걸 주입시키는 교육은 가르칠 이유가 없다. “초등학교에서 공부하는 학습은 별로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어릴 때 기억을 더듬으면 기억나는 게 구구단 말고는 없잖아요. 중학교 즈음에나 공부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왜 지금부터 애들에게 공부하라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다시 학교를 가고 싶어 하면 그때 보내면 돼요. 중학교에 가고 싶다고 하긴 하더라고요. 안 해본 일이라서요.(웃음) 제 입장에서도 아이들이랑 같이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많아야 10년이잖아요. 어른이 되면 떠나버릴 텐데, 그 시간이 아쉬워서 조금이라도 더 같이 있고 싶었어요.”

사람들이 자기를 영재라고 말할 때마다 이수는 기분이 좋지 않다. 이수가 보기에 자기 자신은 셈도 잘 못하고 아는 게 별로 없어서 영재가 아닌 것 같다. 전기백 씨도 “영재 아니에요. 영재라고 생각한 적도 없고요”라고 ‘영재설’을 부인했다. 전이수는 그저 자기 생각을 그림으로 표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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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나라의 이수


다른 예술작품도 이수의 그림 창작을 도와주는 원동력이다. 최근 본 영화는 <죽은 시인의 사회>와 <아무도 모른다>. 기억나는 노래는 김장훈의 「세상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신해철 노래도 많이 듣는다고 한다. “음악이랑 영화가 없으면 세상이 슬플 것 같아. 슬플 때 음악을 들으면 좋아. 우울할 때면 마음을 위로하고 달래려고 영화를 봐.”


최근 이수는 장유권 영화감독과 같이 <하늘을 달리다>(가제)라는 영화를 만들고 있다. 「아빠의 슬픔」은 그 영화의 줄거리를 듣고 떠오른 감상을 그린 작품이기도 하다. 그림 그리는 아이가 주인공인 영화에 필요한 그림을 그리고, 주제곡 등도 같이 상의해 제작에 참여할 예정이다. 주연으로 출연시키자는 이야기도 나왔으나 부모는 지난한 오디션 과정을 거치게 하고 싶지 않았다. 이수도 마찬가지였다.


이수는 남들 앞에서 살갑게 이야기하는 편이 아니다. 특히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쑥스러움을 많이 탄다. 낯을 가리는 편이냐는 질문에 수줍게 그렇다고 대답했다. 「곁눈질」에는 쑥스러워서 옆을 보는 말에 자신을 대입하는 모습이 나온다. TV프로그램 <비블리오 배틀>에 출연했을 때는 수많은 사람이 앉아있는 가운데 혼자 무대에 서서 이야기해야 하다 보니 무서웠다.


영재라는 스포트라이트가 아이에게 비춰질 때마다, 악동뮤지션의 가사처럼 ‘얼음처럼 차가운’ 어른들이 아이들을 상처 입히는 자리가 되기 쉽다. <영재발굴단> 출연 이후로 그림을 팔라는 문의가 많이 들어왔지만, 이수와 부모님은 기증하는 방식으로만 그림을 내보내고 있다. 이수는 카메라가 신기하고 집 밖으로 나가는 게 좋다. 그러나 글 쓰고 그림 그리는 게 더 재밌다.


요즘 이수의 관심사 중 하나는 ‘입양’이다. 동생 유정이가 공개 입양으로 이수의 가족이 되면서 『새로운 가족』이라는 그림책을 완성했지만, 아직 입양에 관해 할 이야기가 많이 남았다. 결혼하지 않은 엄마가 아이를 데려가면 국가에서 매달 7만 원이 나오고, 가정에 아이가 입양되면 15만 원이 나오지만, 아이가 고아원에 가면 100만 원이 넘는 돈이 나온다. 여전히 이수의 눈에는 이상한 일이기에, 앞으로 그림을 그려 나온 수익 중 일부는 미혼모센터에 기부하려고 한다. 그림으로 못다 한 이야기는 앞으로 에세이로도 펴낼 예정이다. 이것이 작가 전이수가 세상을 향해 말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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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꿈

          “어제는 무슨 글을 썼어?”
          “즐거움은 꼭 기억될 것이다.”



 

 

나의 가족, 사랑하나요?전이수 글그림 | 주니어김영사
여름이 가고 난 뒤에도 바다가 깨끗하기를 바라는 마음, 회색빛 도시 속에 집을 지은 새들을 보고 설레는 마음까지 전이수의 곁에는 늘 자연이 있고, 자신의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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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웹툰 작가 버내노 “제 만화는 괜찮은 상황이 별로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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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의 소재를 위해 이 일이 벌어진 것은 아닐까 싶을 때가 참 많다. 머피의 법칙 같은 날들이 내 일상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평범하나 평범하지 않고 기쁘지만 슬프기도 한, 그런 누구가 나다. (중략) 인생은 힘들지만 그런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힘든 일은 더 오래 기억에 남을 뿐이다.
(『괜찮아yo』 , 6쪽)

 

갑상선암 선고를 받았을 때, 버내노 작가는 스물아홉 살이었다. 퇴사 후 KT 웹툰 플랫폼 ‘올레 웹툰’의 스타트 멤버로 뽑히며 정식 데뷔를 한 지 1년 만의 일이다. 독특하고 귀여운 그림과 솔직한 일상이야기로 독자의 사랑을 받았던 그녀는 웹툰 작가의 꿈을 이루고 얼마 지나지 않아 투병 생활을 하게 됐다. 이후 3년의 휴재를 끝으로 지난해 1월 ‘괜찮아yo’ 시즌2로 재기를 시작했다.

 

『괜찮아yo』는 그녀가 KTOON에 연재 중인 웹툰의 일부를 담아 출간한 책이다. 버내노 작가만의 유머 코드가 묻어나는 사소한 일상, 가족과의 에피소드, 사랑, 그녀를 끈질기게 괴롭힌 병에 대한 이야기까지 지난 5년간 그녀에게 일어난 시시콜콜하고 어마어마한 일들이 유쾌한 그림으로 녹아 있다. 갑작스레 닥친 인생의 불행 앞에서도 버내노 작가는 ‘괜찮아yo!’를 외친다. 그녀의 솔직한 이야기에 울고 웃다 보면 어느새 진심으로 바라게 된다. 지금은 괜찮지 않은 삶이라도, ‘괜찮다’ 되뇌며 살다 보면 정말 괜찮은 날이 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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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성취감을 찾아준 책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책을 내는 게 소원이었다고요. 출간한 소감이 어떤가요?

 

책을 만드는 동안은 너무 힘들었는데, 지금은 살면서 가장 뿌듯한 일이에요. 가족의 자랑이 된 것 같아요. 웹툰 작가로 데뷔한 지는 5년 됐지만 3년의 공백이 있었기 때문에 작가로서의 정체성이나 미래에 대한 고민이 많았거든요. 책을 나온 걸 보니 뭔가 해낸 것 같은 성취감이 들어요.

 

계속 웹 작업만 해왔기 때문에 책을 제작하는 경험이 생소하게 느껴졌을 것 같아요.


웹에 연재한 웹툰은 시간의 흐름대로 진행되잖아요. 그런데 책은 주제별로 만화를 묶다 보니, 제 20대 때와 30대 때의 이야기가 혼재돼 있어 독자 분들이 어떻게 보실지 궁금해요. 또 제 웹툰에 있는 모든 텍스트가 손글씨잖아요. 이걸 책으로 만들기 위해 글씨를 전부 다시 쓰는 작업이 너무 힘들었어요. 그림을 다시 그리는 것보다 글씨 쓰는 작업이 더 어렵더라고요. 제가 필압이 센 편이라 손의 피로를 금방 느끼는데 연재와 병행을 하려니 너무 힘들어서 연재를 잠시 쉬고 책 작업에 매진했어요. 빨리 폰트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웃음) 그래도 평소에 아날로그적인 것들을 좋아해서,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작업물이 나왔다는 기쁨이 커요.

 

웹툰  『괜찮아yo』의 특징은 샛노란 배경이에요. 단행본에서 그 부분을 살리지 못해 아쉽지 않았어요?


제 욕심만 생각하면 모든 페이지의 배경을 노란색으로 하고 싶었어요.(웃음) 그런데 책은 빠르게 지나가며 볼 수 있는 웹과 달리 오랜 시간 들여다보는 매체잖아요. 배경이 노란색이면 독자분들의 눈이 너무 피로해질 것 같아 꾹 참았어요.

 

단행본 출간 소식을 전하고 난 뒤, 기억에 남는 반응이 있나요?


제 웹툰을 봐주시는 독자들은 굉장히 특별해요. 3년이나 쉬었는데도 불구하고 계속 제가 복귀하기를 기다리려 준 분들이거든요. 그동안 저에게 닥친 개인적인 불행을 모두 알고 계시기 때문에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전하니 ‘우리 작가님 이제 꽃길, 돈길만 걸으세요!’라며 마음에서 우러나는 응원을 보내주시더라고요. 궁금해서 책 리뷰도 찾아봤는데 ‘이미 다 아는 내용이지만 작가님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서 책을 샀다’는 내용도 있었어요. 하나하나 다 너무 감사해요.

 

처음 웹툰을 연재할 당시, 제목을 ‘괜찮아yo’라고 정했던 이유가 뭔가요?


3년간 다니던 디자인 회사를 그만두고 얼마 안 돼서 캐릭터를 만들었어요. 다시 취직해야 하나, 웹툰 작가라는 꿈에 한 번 도전해봐야 하나 고민을 하던 시점이었거든요. 그때 문득 ‘안 괜찮은 상황이지만 어차피 다들 이렇게 살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안 괜찮지만 괜찮은 척 하며 사는 이야기라는 의미로 ‘괜찮아yo’라고 지었어요. 많은 사람이 그렇게 살고 있으니 공감해주실 것 같았죠. 제목은 ‘괜찮아yo’이지만 ‘괜찮을 거야’라는 위로의 의미가 아니라 우리가 사는 모습을 나타낸 거예요. 괜찮지 않은 삶이어도, 다들 괜찮은척 하고 살아가잖아요. 제 만화는 들여다보면 괜찮은 상황이 별로 없어요.(웃음) 그런데 제목을 ‘괜찮아yo’라고 지어서 그런지, 어느 순간 정말 괜찮아지는 면이 있더라고요.

 

 

이기적이고 뻔뻔하고 솔직하게


퇴사 후 시작된 웹툰작가의 삶은 어땠어요?


독자의 입장에서는 웹툰 작가가 쉬운 일을 하는 직업으로 느껴질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도 ‘회사 때려치우고 집에서 그림이나 그리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무척 많이 했고, 그런 안일한 마음으로 도전을 했어요. 그런데 회사에서 일을 하는 것과 내 작품을 만드는 것은 엄청난 차이가 있더라고요. 작은 구멍가게를 열어서 혼자 운영하는 기분이었어요. 소재 하나를 선정하는 것부터 그림을 그리고, 독자의 반응을 관리하는 것까지 다 혼자 책임져야 했으니까요. 회사를 다닐 때보다 심리적으로 훨씬 힘들었죠.

 

아팠던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어요. 2013년 7월 ‘올레 웹툰’에서 데뷔했고, 갑상선암이 발병해 1년의 연재를 끝으로 3년간 휴재를 했는데요.


흔히 갑상선암은 ‘착한 암’이라고 부르며 쉽게 나을 수 있는 병으로 치부하잖아요. 처음 병원에서 상담을 받았을 때도 3개월 정도면 복귀할 수 있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저는 특이케이스라 살릴 수 있는 부분이 없어서 갑상선 전절제를 해야 했고, 항암치료가 추가되면서 점점 치료 기간이 길어졌어요. 회복도 느려서 목소리가 나오는 데만 두 달이 넘게 걸렸고 갑상선을 전부 제거했기 때문에 기능저하증이 와서 계속 살이 쪘죠. 그 후로도 2년간은 체력이 돌아오지 않아서 거의 누워서 지낼 수밖에 없었어요. 또 갑상선암 치료를 하면서 몸 이곳 저곳이 많이 망가졌거든요. 급성 간염으로 입원하고 자궁근종 수술도 했고요.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다시 웹툰 작업을 하는 게 두렵진 않았어요?


두려웠어요. 갑상선암의 원인이 명확히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의료진이 가장 많이 하는 말씀이 ‘스트레스’가 가장 큰 원인이라고 했으니까요. 저는 원래 예민한 성격인 데다가 만화를 전공하지 않아서 제 부족함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웹툰을 시작하고 1년간 지나치게 저를 많이 소비했던 것 같아요. 요령은 없는데 아마추어처럼 보이고 싶지 않은 욕심은 커서 시즌1 때는 하루도 쉰 적이 없었거든요. 거의 저를 갈아서 만든 만화였죠. 그래서 휴재 중에도 계속 ‘내가 웹툰 때문에 암이 걸렸을 지도 모르는데, 이 일을 계속 해야 할까?’라는 생각을 정말 많이 했어요. 쉬는 동안은 한 번도 그림을 그린 적 없고요. 그런데 몸이 조금 나아지니까 문득 다시 하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고요. 무엇보다 저를 기다려 준 독자분들 생각이 너무 많이 났어요. 웹에서 아무리 인기를 끈 작품이라도 오래 자리를 떠나면 잊히기 마련인데, 계속 편지 보내주시고 힘내라고 말씀해주시는 분들이 많았거든요. 그분들에게 왜 이렇게 늦게 올 수밖에 없었는지 꼭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못다 한 이야기를 마저 한 후에, 이 일을 계속 할지 생각하자는 마음이었어요.   
 
시즌2를 시작하는 기분이 남달랐겠네요.


데뷔할 때와 다르게 무척 묘했어요. ‘내가 드디어 일을 할 수 있게 되었구나’ 싶어 감격스러웠죠. 앉아 있기도 힘들었는데 이제 경제활동을 하게 되었다는 기쁨이 컸어요. 3년을 쉬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도 어려웠는데 내 힘으로 돈을 번다는 기분이 너무 좋더라고요.

 

시즌2를 연재한 지도 1년이 훌쩍 넘었어요. 웹툰 작가로 돌아오길 잘한 것 같으세요?


잘했다고 생각해요. 그때 다시 시작하지 않았다면 돌아오는 게 더 겁났을 거예요. 사실 시즌2를 시작하고 처음에는 ‘내가 공백기를 이기고 다른 작가들을 쫓아갈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어요. 같은 시기에 데뷔했던 작가들이 지금은 승승장구하고 있고, 단행본을 출시하고 이모티콘을 제작하거나 새로운 작품을 시작하는 등 무언가 이룬 상태였거든요. 그래서 초조했는데 얼마 안 가서 그냥 이 상황을 인정하기로 했어요. 욕심을 부리면 제가 또 힘들어지니까‘나는 다시 시작하는 걸로 하자’고 마음먹었죠. 아무래도 공백이 길었기 때문에 시즌1 때보다 구독자 수가 줄어든 건 사실이에요. 저를 아예 잊으신 분도 많을 테고요. 처음 시작하는 작가의 마음가짐으로 다시 연재를 하고 있어요.

 

아프기 전과 후, 생각이나 태도의 변화가 있나요?


엄청나게 달라졌어요. 제 성격이 좀 괄괄하고, 외향적이라 학창시절부터 반장을 도맡아 했어요. 어디서든 분위기를 띄우는 사람이었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애써 무리하는 경향이 있었어요. 그런데 암에 걸리고 난 뒤에는 조금 이기적인 사람이 됐어요. 지금은 ‘나부터 생각하자’는 마음이에요. 내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게 또 내 몸 어딘가를 아프게 할지 모르니까요. 아직 완치가 되지도 않았는데 아픈 곳이 또 생기면 감당할 수가 없을 것 같아서 좀 이기적으로, 뻔뻔하게 살자고 자주 생각해요. 그래서 좀 더 당당해진 것 같아요. 싫으면 싫다고 표현하고 내가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과잉친절을 베풀지 않게 됐어요. 제 감정에 솔직해졌다는 장점이 있는 것 같아요.

 

원래 긍정적인 사람이에요?


절대 아니에요. 오히려 굉장히 염세주의적이죠. 버내노 캐릭터도 사실 표면적으로는 ‘괜찮다’고 이야기하지만, 만화 속에서 잘 살펴보면 화도 잘 내고, ‘어차피 그래봤자 다 안 될텐데 뭐!’라며 부정적인 말도 많이 해요. 하지만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어요. 아직도 염세주의적이고 부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면이 많지만 제가 그런 사람이기 때문에 오히려 작품에서 그 반대의 표현을 할 수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리고 독자 분들이 제 만화를 보고 달아주시는 댓글을 보면서 반성하거나 깨닫는 점이 많아요. 그분들이 저를 괜찮은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사소한 기쁨은 물론 불행까지 솔직하게 만화로 표현하잖아요. 내 상황을 공개적으로 드러낸다는 것에 대한 부담은 없나요?


전혀 없다면 거짓말이지만, 어쨌든 그게 저인 것 같아요. 원래 거짓말하는 걸 싫어하고 솔직한 성격이거든요. 나에게 안 좋은 일이 있어났다고 해서 숨기거나 억지로 포장해서 좋게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아요. 얼마 전, 한 웹툰 작가님의 후기에서 ‘현재 진행 중인 일에 대해서는 웹툰으로 그리지 않는다’고 쓰신 걸 봤어요. 지금은 그게 현명한 길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나중에 후회를 할 수도 있을 테고,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는 우리의 이야기를 드러내고 싶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래도 독자 분들이 제게 공감해주시는 것은 솔직함 덕분이니까 제게 일어나는 일에 한해서는 앞으로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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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괜찮아yo’


마지막 챕터가 ‘가족이라 괜찮아yo’였어요. 끈끈한 가족애를 그린 만화들을 마지막에 배치한 이유가 있나요?


제 만화는 이야기가 가벼운 것도 있고, 무거운 것도 있잖아요. 그중 무거운 내용은 한없이 우울해질 수 있기 때문에 마지막은 훈훈한 느낌으로 끝내고 싶었어요. 독자 분들이 책을 읽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찮다’는 느낌을 받길 바라요.

 

만화의 소재를 정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뭔가요?


주제적인 면에서는 ‘이 이야기를 통해 내가 하고 싶은 말이 뭐지?’를 제일 많이 생각해요. 그 외적으로는 내용에 있어 강약을 조절하는 게 제게 있어서 가장 중요해요. 무거운 이야기, 아팠던 이야기들을 그리면 저를 소진할 수밖에 없거든요. 마음 속 우물을 퍼서 다 써버리면 더 이상 연재를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완급조절을 하는 거죠. 계속 슬픈 이야기만 있으면 독자 분들도 힘들 테니까요. 아프고 불행한 이야기 사이사이에 탈모로 고민하는 제 모습이나, 결혼에 대한 생각 등 가벼운 이야기를 자꾸 넣는 건 그런 이유 때문이에요.

 

얼마 전, 디즈니랜드에서 프로포즈 받은 이야기도 연재했어요. 결혼을 앞두고 있는 건가요?


그렇지 않아도 그 에피소드를 그리고 나서 이걸 언제 해명해야 하나 고민했어요.(웃음) 남자친구가 자기 마음을 확실히 해두고 싶다는 의미로 프로포즈를 한 것뿐이었고, 아직 정해진 건 아무 것도 없어요. 남자친구 부모님께 인사를 드린 것도 아니고요. 결혼하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제가 복귀한 지도 얼마 안 됐고 돈을 더 모아야 하기 때문에 일단 서로의 일에 집중하자고 잠정적으로 결론을 냈어요.

 

이노안 작가와 오랜 연인이에요. 남자친구와 같은 일을 하기 때문에 느끼는 장단점이 있을 것 같아요.


남자친구는 애니메이션 고등학교 출신이고 그림을 굉장히 잘 그려요. 반면 저는 만화를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어서 그림을 잘 그리지 못하는 게 늘 아킬레스건이었죠. 그래서 남자친구에게 제가 부족한 부분에 대한 도움을 많이 받아요. ‘이 포즈를 그릴 때, 반대쪽 시선에서는 어떻게 표현해야 하지?’와 같은 고민을 남자친구가 많이 해결해주죠. 단점은 아무래도 경제적인 부분이 아닐까요? 둘 다 4대보험이 안 되는 비정규직이니까요. 또 매주 연재를 하기 때문에 쉬는 날이 명확히 없어서 데이트 날짜를 맞추기가 어려워요.

 

앞으로 어떤 만화를 그리고 싶어요?


지금 그리는 만화는 제 일상을 담고 있고, 밝은 분위기이지만 사실 저는 어둡고 사회고발적인 이야기를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다음 작품을 연재하게 된다면 범죄나 스릴러와 관련된 이야기를 그려보고 싶어요.

 

『괜찮아yo』가 독자들에게 어떤 책으로 다가가길 바라나요?


가볍게 보는 책이면 좋겠어요. 읽으면서 때로는 생각이 많아지실 수도 있지만,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는 마음에 따뜻한 무언가가 퍼지지 않을까 싶어요. 일단 보시면 후회하지 않으실 거예요.


 

 

괜찮아yo버내노 저 | 세종서적
먹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고, 소심한 진짜 성격을 숨기고 남들 앞에서 활발한 척하고, 나이 드는 것에 대해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는 것까지 작가의 진솔한 고백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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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백영옥 “이제는 환대라는 말이 너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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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거나 어려운 일이 있으면 책부터 찾아보거든요.”라는 백영옥 작가는 자신을 붙잡아 주고, 자신이 붙잡았던 책의 밑줄들을 힘든 시간을 지나고 있는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싶었다. 저마다의 사연과 복잡한 문제를 이 밑줄들로 말끔히 해결할 수는 없을 터. 백영옥 작가는 다만 사람들이 여기에 잠깐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면, 하고 바랐다. MBC 표준FM <라디오 디톡스 백영옥입니다>를 진행하면서 1년 6개월 넘는 기간, 매일 라디오 클로징 멘트를 썼던 백영옥 작가. “라디오가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시기”였던 그때, 작가는 아침에 일어나면 라디오 원고를 썼고, 그러느라 청탁 받은 단편은 하나도 완성하지 못했다. 위로를 건네고픈 간절한 마음과 안쓰러움이 그로 하여금 “방송 직전까지” 원고를 고치고, 또 고치게 했다. 그렇게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쓰인 원고를 모으니 책  『그냥 흘러넘쳐도 좋아요』의 다섯 배 분량이 됐다.


읽고 싶어서 쓰기까지 하게 됐다는 백영옥 작가는 전작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과 신작 『그냥 흘러넘쳐도 좋아요』 를 내고 참 좋았노라고 했다. 자신이 꼭 읽고 싶은 책이었다는 말에서 이 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소중한 순간을 만끽하는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 삶의 기술인지 많이 생각한다는 작가의 현재를 엿볼 수 있었다. 이제는 환대가 너무 좋다는 백영옥 작가는 『그냥 흘러넘쳐도 좋아요』 에서 간절히 울고 싶으면 마음껏 울고, 기쁘면 마음껏 그 기쁨을 즐기라며 우리를 환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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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절하게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


프롤로그에 “책 속의 문장을 약 대신 처방해주는” 책방을 열고 싶었다고 적으셨어요.

 

너무 앞서간 거죠.(웃음)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도 실은 십수 년 전부터 내고 싶었던 책이었어요. 실제로 그 책이 나오기 4-5년 전쯤 지인에게 이런 책을 내고 싶다 했었는데 저작권 문제가 해결 안 돼서 잘 안 됐죠. 그리고 저작권이 해결 되자마자 낸 건데요. 보통은 책이 나오면 우울하기도 한데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은 참 좋더라고요. 정말로 제가 읽고 싶었던 책이었으니까요. 『그냥 흘러넘쳐도 좋아요』 도 마찬가지였어요. 워낙 책이 많잖아요. 그 수많은 책 속에서 실질적으로 누군가에게 꼭 맞는 책을 맞춤형으로 추천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던 거예요. 책으로 치유를 할 수 있다면, 하고 말이에요.

 

책 뒤에 인용된 책 목록이 쭉 있는데요. 분야가 꽤나 폭넓거든요. 이것만 봐도 그만큼 다양한 경우의 사람들에게 건네는 이야기들이라는 걸 알 수 있어요.


라디오를 하면서 많이 느낀 건 뉴스에 나오는 경제 지표나 단어들, 수치로 읽히지 않는 행간들에 개인의 사연이 정말 많다는 거였어요. 더구나 새벽 2시 라디오에 사연 보내는 분들은 대부분 잠 못 드는 사람들, 야간에 일하는 사람들이니까요. 그때 세상에 너무 힘든 분들이 많다는 걸 정말 많이 느끼게 됐어요. 약간 응급 병동 같다는 느낌이 많이 들었는데요. 너무나 응급한 사연들이 많았어요. 살면서 그런 사연을 매일 만나진 않잖아요. 그런데 라디오에서는 매일 그런 사연이 오니까 저도 많이 힘들더라고요. 또 겁이 나서 정신과 선생님들 취재를 진짜 많이 했어요.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해야 도움이 많이 되나, 하고요. 다행히 제가 작가이기 때문에 사연의 숨은 행간을 볼 수 있었던 게 도움이 된 것 같고요. 동시에 가장 많이 배운 건 저였죠.

 

배웠다고요.


그렇잖아요. 글을 쓰거나 라디오를 진행하거나 누군가를 가르친다고 하면 가장 많이 배우는 사람은 선생 자신인 것 같아요. 학생들이 아니고요. 정신과 선생님들, 상담소 소장님들 취재하고, 이야기도 듣고 하면서 배운 게 정말 많죠. 치유, 힐링 관련한 책이 너무 많다고, 누군가는 지겹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텐데요. 저는 그만큼 상처가 많은 사회라는 뜻이라고 생각해요. 아무리 연고를 발라도 계속 긁고 있는 상황이라 상처가 잘 낫지 않는 거죠.

 

글 전반에 아주 간절한 ‘위로’의 정서가 깔려 있거든요. 나를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 행복에 대해 이토록 강조하는 이유가 뭘까, 했었는데 그런 이유였군요.


이 글에는 대상이 있어서 더 그럴 거예요. 라디오를 하면서 느낀 것 또 하나는 DJ와 청취자 사이에 라포(rapport, 상호신뢰)가 생긴다는 거였어요. 1:1 매체에 가까워요. 신기하죠? 듣는 사람은 DJ가 나에게 이야기한다고 느끼고요. 심지어 저도 내가 이 사람에게 얘기하고 있다고 느꼈어요. 진짜 방송 직전까지 원고를 많이 고쳤는데요. 간절하게 도움을 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아요.

 

실제로 구체적인 사연을 하나 알게 되는 일은 막연히 아는 것과 분명히 다르겠죠.


대장암 말기인 분 사연이 있었어요. 사실 이분 소원은 죽는 거예요. 너무 힘드니까요. 하지만 가족 때문에 힘든 항암치료를 다 견뎌낸 거죠. 보통 암은 5년 동안 재발이 안 되면 완치라고 하는데요. 그 안에 재발되는 경우도 많대요. 그래서 이분은 진심으로 죽고 싶다는 이야기를 사연에 하고 계시는 거예요. 편해지고 싶다고요. 이제 안 아프고 싶은 거죠. 사랑하는 사람 때문에 생존해 있기는 하지만 나를 제발 놓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는 거고, 이 이야기를 가족들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사연을 보내셨더라고요. 진짜 힘들어요, 그런 사연 받으면. 얘기하다가 막 울고 그러죠.

 

만약 누군가 내 앞에서 울고 있다면, 흐르는 눈물은 그 사람이 나를 믿고 있다는 증거가 되기도 합니다. 때로는 약함을 내보일 수 있는 게 진짜 용기니까요. 가끔은 그냥 흘러넘쳐도 좋아요.

 

맑은 날만 계속되면 사막이 된다죠. 비 온 후, 우리가 가장 아름다운 무지개를 볼 수 있는 것도 그런 까닭일 거예요.(95쪽)

 

예전에는 사람의 고민이란 기출문제처럼 몇 개 카테고리 안에 다 있다고 생각했어요. 고민은 사실 비슷비슷하다고요. 육아 고민, 취업 고민, 결혼 생활 고민 등등 그런 거죠. 심지어 라디오에서 상담 코너를 시작할 때 PD님한테 “오는 사연 다 비슷해서 6개월 이상 못할 거다, 똑같은 얘기만 하게 될 것 같다”라고 하기도 했거든요. 제가 진짜 착각한 거죠. 그 한 개인의 고민은 정말 저마다 다 달라요. 그 사람의 성격, 상황, 살아온 이력,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들이 다 다르기 때문에 그것은 어떤 카테고리 안에 들어가는 게 아닌 거예요. 그걸 정말 몰랐어요.

 

말씀을 듣고 보니 저도 반성하게 돼요.


세월호 때도 그런 칼럼을 썼거든요. 학생 몇 명, 교사 몇 명, 하는 식으로 사람이 숫자로 표기되는 것을 보고 그러지 말자, 한 사람의 이름 하나 하나를 불러주고, 개별적인 고통을 이야기하자, 라고요. 이런 칼럼을 내 스스로 썼으면서도 말이죠. 사람의 고민이 거기서 거기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나 봐요. 이런 얘기 흔히 하잖아요. 사는 거 다 비슷하다, 사람 다 똑같다, 라면서요. 하지만 이 말을 꼭 하고 싶어요. 거기서 거기, 절대 아니에요.

 

 

나를 지키면서 살 수 있는 방법


특히 걱정하고 있는 것, 위로나 다정의 말을 건네고 싶은 일들은 뭔가요?

 
심리학자들이 요즘 가장 많이 하는 이야기가 스마트폰 사용 시간을 줄이라는 건데요. 나 자신의 안전지대가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과도하게 개방되어 있는 것 같아요. 파도처럼 밀려오는 거죠. SNS만 봐도 다 공개가 되어 있으니까요. 타인과의 비교로 자존감을 찾으려 하는데 그러니까 늘 불안한 상태인 거예요. 바닷물 마시는 것과 같은 건데요. 물론 이 구조를 바꿀 순 없어요. 이게 잘못되었다고 얘기하는 것 자체는 별 효용이 없다고 생각하고요. 그렇다면 우리가 우리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우리만의 안전지대를 어떻게 만들지, 이야기 해야겠죠. 내 마음이 덜 황폐해질 수 있도록 내가 나를 지키면서 살 수 있는 방법을 저는 책이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렇게 믿는 사람이에요.

 

책이어야 하는 이유는요?


개방성의 특징은 처음과 끝이 없는 거예요. 그게 인간을 아주 불안하게 만들어요. 비행기 표를 샀는데 더 싼 표가 계속 나올 것 같으면 늘 불안하잖아요. 여행을 갔는데 같은 장소에서 누가 나보다 훨씬 맛있는 것을 더 많이 먹으면 갑자기 내 경험이 너무 초라해져요. 나는 좋았는데 남이 한 걸 보는 순간 내 경험의 가치가 계속 누락돼요. 우울할 일밖에 없는 거예요. 그런데 책은요. 처음과 끝이 있어요. 이게 정말 중요해요. 끝이 있기 때문에 닫힌 상태에서 자신의 정리된 생각을 펼칠 수가 있거든요. 그래서 한 권의 책,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경험은 끝을 경험하게 한다는 점에서 아주 중요해요. 특히 요즘 같은 현대인들은 완결되는 경험을 거의 못하죠. 시간이 단편화, 파편화 된 상태로만 경험하기 때문에 그것이 영혼에 남기는 상처가 정말 많아요. 그런 방식으로 시간을 경험하면 불안할 수밖에 없어요.

 

불안함, 촉박함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느끼는 어려움이잖아요.


일중독자라 늘 시간에 쫓겨 살아요, 라고 말하는 분들에게 줬던 밑줄들이 있는데요. ‘오염된 시간’이라는 개념이 있어요. 그 순간에 집중이 되지 않고 여러 가지가 섞여 드는 거예요. 파편화된 시간 경험이죠. 그렇게 시간을 경험하면 시간이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못 받기 때문에 시간이 점점 더 없는 것처럼 느껴져요. 우리는 끊임없이 스마트폰의 방해를 받죠. 시간이 잘려요. 그래서 늘 바쁘고 불안하고 쉬어도 쉰 것 같지 않은 거예요. 제가 올해 SNS를 끊었어요. SNS의 좋은 점도 분명히 있는데요. 확실한 건 SNS를 안 해보니까 놀랍도록 시간이 늘어난 경험을 했다는 거예요. 심지어 저는 SNS를 많이 하는 사람도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아예 앱을 다 지우고 습관적으로 보는 일을 아예 안 하니까 다르더라고요. 내가 내 시간을 보호하니까요.

 

내 시간을 ‘보호한다’는 개념이 흥미롭네요.


시간을 보호해야죠. 시간을 보호하지 않으면 계속 오염되고 끊어져요. 아주 맛있는 케이크가 나에게 있는데 계속 먼지도 쌓이고, 누가 침도 뱉고,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내가 커버를 씌워놓아야죠. 그건 정말 중요해요. 꼭 하고 싶은 이야기예요.

 

연결이 쉬워지는 만큼 단절도 필요하다는 거죠.


이때 단절은 고립과는 달라요. 지금 얘기하는 단절은 ‘자립’이라는 거고요. 반드시 연결을 전제로 하는 거예요. 같이 있음을 전제로 했을 때 혼자는 빛나요. 혼자 있는 시간, 중요하지만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죠. 아무리 나를 알고 싶어서 면벽수련을 하며 자문자답 한다한들 쉽지 않잖아요. 자신을 가장 잘 깨닫게 되는 건 관계를 통해서거든요. 상호적인 거고, 어떤 상황에 직면했을 때 알게 되는 것이고요. 고립되라는 게 아니고 독립하거나 자립하라는 이야기예요. 나와의 관계가 좋아야, 타인과의 관계도 좋을 수 있고요. 그래야 내가 건강해야 잘 살 수 있어요.

 

또 중요한 것이 ‘평균의 종말’이라는 글이었어요. “평균적 행복이란 없습니다. 그것은 내가 아닌 타인의 취향에 나를 대입한 것일 뿐이에요.”(147쪽)이라고 하셨죠. 평균적 인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요.


우리 뇌가 착각하는 것이 정말 많거든요. 취준생들의 사연이 많이 오는데요. 자주 하는 말 중 하나가 ‘매몰비용’이에요. 그동안 투자한 돈이 아까워서 어리석은 판단을 하는 건데요. 가령 등산을 정말 좋아하는데 일기예보에 비가 온다고 되어 있어서 공연 표를 예매했어요. 그런데 그날 날씨가 너무 좋은 거예요. 등산이 가고 싶은데 공연 표를 예매해뒀으니 공연을 보러 가요. 매몰비용 때문인데요. 이럴 때 실은 공연을 포기하고 즐겁게 등산을 가는 게 이득이에요. 우리가 아주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것 같지만 감정적이고 불합리한 판단을 내릴 때가 되게 많아요. 이 책에는 행동경제학 관련한 이야기가 종종 나오는데요. 이런 이야기를 읽게 되면 생각지 못했던 프레임의 사각(死角)이 보이는 경우가 많으니까 기대를 하고 쓴 거예요. 
 
하지만 나와 잘 지내는 게 정말 쉽지 않죠. 변화도 너무 더디고요.


진짜 어려워요. 제가 지향하는 건 ‘미니멀리스트’고, 단순하게 살고 싶은데 그러기가 쉽지 않아요.(웃음) 삶은 너무 복잡하고요. 빠르게 변하죠. 그러니까 나도 그에 맞춰서 흔들려요. 하지만 나침반 바늘이 고정되어 있으면 고장 난 거예요. 계속 흔들려야 해요. 우리도 방향을 찾아 움직여야 하고요. 생각이라는 것도 조금씩 바뀌면서 변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안개가 가득한 숲길을 한 시간만 걸으면 온 몸이 젖었다는 걸 느낄 수 있거든요. 변화는 그런 것 같아요. 되게 느리고요. 잘되는 것 같다가도 안 돼요.

 

자신의 활을 쏘는 게 중요합니다. 바람도 마찬가지예요. 삶에는 끝없이 바람이 붑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바람을 멈추는 게 아니라, 거센 바람 속에서도 중심을 잡으려는 자세와 화살을 목표에 명중시키려는 마음일 거예요. 비록 화살이 빗나간다 하더라도 말이죠.(158쪽)

 

결국 균형 찾기에 관한 이야기예요. 어느 누구도 사는 게 쉬운 사람은 없어요. 마치 정답을 아는 것처럼 얘기하는 사람은 사기꾼에 가까울 확률이 높죠. 무엇을 명쾌하게 얘기하기는 너무 힘들기 때문에 최대한 근사치에 다가가려는 안간힘과 복잡한 과정이 있다는 걸 인정하면 좋겠어요. 다만 약간의 도움을 줄 수 있는 책을 소개하고, 읽는 분들이 거기서 하나라도 ‘그렇지’하고 느낄 수 있으면 좋겠어요. 기본적으로는 라디오 청취자 분들을 위해서 썼기 때문에 안쓰러움이라는 마음이 있고요. 잘 됐으면 좋겠고, 성공했으면 좋겠고, 고백이 이루어졌으면 좋겠고, 그런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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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한 것들이 주는 삶의 의미


라디오를 진행하면서 많이 바뀌었다고 느끼시겠어요.

엄청요. 한 번은 아침에 일어나서 라디오 원고를 쓰다가 이런 생각을 했어요. ‘이 짓을 매일 하겠구나’하고요. 우리는 ‘언젠가는’과 ‘나중에’에 되게 많은 것을 보류해두잖아요. 언젠가는 좋아질 거야, 지금은 이렇지만 나중에는 괜찮을 거야, 라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요. 그것도 중요하긴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이라는 생각을 해요. 지금 밥을 많이 먹는다고 나중에 안 먹어도 되는 건 아니죠. 매일 닦아도 먼지는 또 쌓이고요. 나는 책을 읽어도 늘 까먹을 것이고, 밑줄을 그어도 늘 잊어버릴 것이며, 어떤 사람에게 이 얘기를 해주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엉뚱한 얘기를 하고 있을 거예요. 그러니 그 오차를 줄이기 위해 나는 늘 허우적거리고 발버둥 쳐야 하는구나, 라는 걸 어느 순간 확 깨달았어요.

 

“오늘 당장 한 장의 원고를 쓰겠다는 결심이, 노벨상을 받겠다는 원대한 꿈보다 중요합니다.”(247쪽)라고 한 부분과 연결이 되는데요. 그 글의 제목이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였어요.


그게 진실인 것 같아요. 지금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그것을 하는 게 우리 삶이죠, 사실은. 70대 이후에 가장 높은 행복지수가 유지된다고 하는데요. 큰 이유가 노인들의 시간 시야가 좁아지기 때문이에요.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적으니까요. 지나온 시간의 빅데이터를 통해 지혜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이 축적되어서 손주랑 놀아줄 때도 온전히 그 순간에 집중을 하는 거예요. 부모라면 아이와 단풍을 보면서도 얘가 학원을 가기 전까지 밥을 먹이고, 과일을 줘야 하고, 이런 생각을 하겠죠. 그러니까 결국 꽃이 아름다운 것은 그 꽃이 빨리 사라져버린다는 것을 알기 때문인 것 같아요. 시간 시야가 좁아지면 행복해지죠.

 

발레를 꽤 오래 하셨잖아요. “무용한 세계가 주는 아름다움”(171쪽)을 통해 “원초적 기쁨으로 존재하는 세계”를 알게 되었다고요.


발레를 하면서 렌즈 끼는 게 불편해서 평생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라식 수술을 해볼까 생각하기도 했어요.(웃음) 다치기도 많이 다쳤고요. 그런데요. 제가 잡지 기자로도 일했고, 작가로 지내면서도 유명한 분들을 정말 많이 만났거든요. 이분들이 끝에는 다 ‘공허하다’라고 말을 하더라고요. 그렇게 돈이 많고, 그렇게 성취한 게 많은데 공허하다는 거예요. 이들에게 부족한 건 생각해보면 ‘의미’예요. 우리에게 부족한 건 의미죠. 의미가 있을 땐 힘들어도 살아갈 만하거든요. 발레가 그래요. 제가 잘해서가 아니라 순수하게 즐거운 행위예요. 인간은 기본적으로 ‘호모 루덴스(Homo Ludens, 유희하는 인간)’라서 진짜 즐거운 걸 찾아내면 거기서 의미가 발생해요. 춤을 추는 것, 책을 읽는 것, 하다못해 길가에서 네잎 클로버를 찾는 것이 그런 것 같아요.

 

그런 순수한 즐거움을 경험하면 의미가 만들어지는 거고요.


그 즐거움은 몰입의 시간 동안 채워지는 충만함 같아요. 쾌락과는 조금 다른데요. 저는 그 몰입에서 느끼는 즐거움이 궁극적으로 인생에서 가장 필요한 요소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요. 그 의미를 다량으로 발생시키는 것 중 하나가 예술 행위라고 생각해요. 그림을 보고,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춤을 보는 것. 더 나아가 책을 쓰면 의미가 더 많이 발생하죠. 춤을 보는 것보다는 춤을 추는 것, 그러니까 뭔가를 하는 행위를 한다면 말이에요. 이런 행위가 내 인생에 실용적인 도움이 되진 않아요. 하지만 이게 필요한 이유는 그런 무용한 것들이 주는 삶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에요. 그것이 무엇인지는 각자가 자기 인생에서 하나씩 찾아가야 하는 것 같아요.

 

열렬한 독자로서의 작가님이 많이 느껴지는 책인데요. 예전  『빨강머리 앤이 하는 말』  북토크에서 “글쓰기는 제 집 같은 곳이에요. 언젠가는 돌아갈 곳”이라고 말씀하셨잖아요. 읽는 나와 쓰는 나, 어떻게 관계하고 있나요?


가능하다면 남이 쓴 좋은 글을 많이 읽고 싶어요. 읽는 행위는 제게는 정말 순수한 즐거움이고요. 글쓰기는 기본적으로 잘 쓰려는 강박만 없으면 정말 즐거운 일 같아요.(웃음) 처음 소설을 쓴 이유도 읽기 위해서였거든요. 동네 만화방 단골이었는데요. 더 이상 읽을 만화와 하이틴 로맨스가 없기 때문에(웃음) 썼어요. 중학교 1-2학년 때 한창 하이틴 로맨스와 할리퀸에 빠져 있었는데요. 더 빌릴 책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그때 바른손 노트에 모나미 볼펜으로 소설을 썼죠. 어떤 일을 너무 좋아하면 그 일을 한 번 해보고 싶어지는 것 같아요. 사실 연결되어 있는 거예요. 하지만 역시 더 본질적으로 좋아하는 것은 책 읽기예요. 읽다가 쓰게 됐고, 소설을 쓰는 재미에 푹 빠진 거죠. 쓰는 일은 조금 더 힘들지만 조금 더 많은 의미를 가져다 줘서 특별한 거고요.

 

만약 작가님에게 완전한 하루의 자유시간이 있다면 어떻게 보내고 싶으세요?


저는요.(웃음) 되게 재미없는 답인데요. 똑같이 보낼 것 같아요. 아침에 일어나서 눈을 번쩍 뜨면 커피 한 잔을 마시고요. 창밖을 보면서 ‘글 쓰기 싫다’라고 생각한 뒤에(웃음) 글을 써내려갈 거예요. 그리고는 또 쓰기를 잘했구나, 생각할 거고요. 시간이 되면 점심을 먹고, 산책을 하고, 낮잠을 자겠죠. 또 산책을 하고, 밤에 책을 읽다가 잠들 거예요. 똑같게 살고 싶은데요. 이 일상이 절대 꾸준히 이어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라 그래요. 그래서 이 순간이 소중하고, 순간을 최대한 만끽하려고 하죠. 그 기술이 정말 삶에 있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제는 환대라는 말이 너무 좋아서요. 누굴 만나도 환대 받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라디오를 하면 게스트가 많이 오잖아요. “어서 오세요!”라고 인사하죠. 온천장 주인처럼 말이에요.(웃음)


 

 

그냥 흘러넘쳐도 좋아요백영옥 저 | arte(아르테)
‘밑줄 사용법’이 담겨 있는 독서 노하우이자, 마음이 아픈 이들에게 어떤 말보다 포근한 위로가 되는 문장을 처방해주는 ‘밑줄 처방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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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수미 “지금의 음식문화를 바꾸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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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미가 출연한 <수미네 반찬>은 ‘반찬’에 집중한 요리 프로그램이다. 욕쟁이 할매, 소녀 감성, 밥 잘 챙겨주는 손 큰 어머니 등 다양한 이미지를 지닌 김수미는 이 프로그램에서 계량컵이나 수저 대신 “이 정도” “요만치” “는 둥 만 둥” 요리를 한다. 최현석, 미카엘 아쉬미노프, 여경래 등 유명한 셰프들이 쩔쩔매면서 김수미의 요리를 배우고, 아이디어를 얻어 새로운 요리를 창작하면서 정성 가득한 엄마의 손맛을 재현하고자 했다.


TV 화면에 맛깔스러운 음식이 잡히면 리모컨이 멈추는 것과는 다르게, TV 밖 사람들은 점점 요리하지 않는다. 퇴근 후 장보기와 뒷정리 등을 생각하면 힘들고 피곤하다. 특히 한식은 일품요리보다는 반찬 여러 가지를 차려 먹는 방식이어서 더 엄두를 못 낸다. 한식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수미네 반찬>에 소개된 레시피가 그대로 책으로 담긴  『수미네 반찬』은 ‘집 나간 입맛’을 다시 집 안으로 끌어오려는 시도였다. 상추 무침, 코다리 조림, 간장게장 등 책에 실린 레시피는 누군가 나를 위해 해줬던 집밥의 기억을 불러일으킨다. 요리책으로 내기에 소박해 보이는 레시피지만, 김수미의 어릴 적 기억과 함께 실려 진심의 맛을 더했다.


인터뷰하러 간 곳에서는 <수미네 반찬> 녹화가 한창이었다. 긴 시간 녹화를 끝내고 대기실에서 만난 김수미는 정성과 마음이라는 단어를 여러 번 말했다. “배우인데 정작 연기는 하지 않고 예능 프로그램에 목숨을 걸”(12쪽)었던 이유도, 결국에는 정성껏 만든 음식을 누군가 맛있게 먹어주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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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음식을 세계에 알리고 싶다


<수미네 반찬>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문태준 PD가 먼저 연락이 와서 반찬을 주제로 요리 프로그램을 하고 싶다고 했어요. 점점 집 반찬이 없어지는 게 아쉽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옛날 우리 할머니, 엄마가 해주던 반찬이 없어지는 게 아쉬웠거든요. 코드가 딱 맞아서 한 달 만에 프로그램을 시작했어요. 런칭하기까지 이렇게 빨리 된 프로그램은 없었다고 하더라고요. 전 세계를 돌아보면 일본은 스시가 있고 일본 음식점이 있어요. 중국 음식점도 곳곳에 있고요. 하지만 우리나라는 경제 순위로 그렇게 낮은 나라도 아닌데 음식은 꼴등이에요. 그것 때문에 제작발표회 할 때부터 한국 음식을 세계에 알리고 싶다고 말했는데, PD님하고도 모든 게 잘 맞았어요. 그래서 신나게 하고 있어요.


셰프들과 같이 작업하는 데 거부감은 없었나요?


벌써 미카엘도 불가리아 음식에 한식 재료를 넣고 있어요. 굳이 양식하는 셰프가 양식 요리에서도 김치 한 쪽을 넣는 게 좋았어요. 이렇게 슬슬 변화하면서 한국 음식도 알리면 좋죠. 특히 외국에 있는, 한국을 떠난 지 오래된 교포들은 이 방송을 울면서 본다고 해요. 자기 할머니, 엄마가 어렸을 때 해줬던 음식을 제가 방송에서 만드니까요.


박대 같은 것들이겠죠?


박대나 풀치 같은 거요. 그 음식을 하는 걸 보면서 죽은 줄만 알았던 잃어버린 친척을 만난 기분이라고 쓴 편지를 받은 적도 있어요.


셰프의 요리 방식과 김수미의 요리 방식이 달랐을 것 같아요.


원래 한식은 계량이 없어요. 한약재만 정확하게 계량하고, 왕실 음식에도 계량이 없었대요. 기미상궁이 간을 보고 왕한테 올렸죠. 우리 엄마도 그랬고 할머니도 그랬어요. 그러니까 저도 계량을 해서 요리를 하라면 못 해요. ‘이만큼, 저만큼, 자글자글, 는둥만둥’이 우리 엄마들이 쓰는 방식이에요. 처음에는 셰프들도 제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다가 이제는 익숙해서 알아듣더라고요. 사실 감이라는 게 결국 엄마 손맛이거든요.


반대로 셰프가 요리하는 걸 보면서 새로 배운 점도 있나요?


많아요. 오늘도 오리고기 요리하는 방법을 배웠어요. 또 놀란 게, 셰프님들이 자기 업계에서는 최고인데 무말랭이 한 번 못 무쳐봤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돌이켜 보면 저도 한식밖에 못하니까요. 양식 재료 주고 요리하라고 하면 땀 뻘뻘 흘리죠. 다른 드라마나 영화 제쳐놓고 이 프로그램을 열심히 하는 이유도 그거예요. 한 번도 김치를 안 담가 본 사람이 해보니까 맛있더라, 왜 반찬을 해서 남한테 주는지 그 기분을 알겠다고 하는 말을 들어요. 계속 이렇게 음식을 알리고 하지 않으면 우리의 것을 잃어버리게 돼요.

 

 

‘엄니’ 생각하면서 만든 요리


어머니께서 해주셨던 음식이 많이 나와요. 하지만 어머니에게 직접 배운 적은 한 번도 없다고요. 기억만으로 요리법을 살려내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요?


처음에 있었죠. 처음 결혼하고 애를 낳고 나니까 너무 친정엄마가 그립더라고요. 입덧할 때는 너무 괴로웠어요. 엄마가 조물조물 해주던 겉절이랑 풀치조림 한 입만 먹으면 입덧이 가라앉을 것 같았어요. 그러다 군산에서 풀치를 주문해다 만들어봤어요. 먹어만 봤지 요리하는 걸 본 일이 없으니 기억을 더듬어서 조물조물 하다 한두 번은 실패했어요. 풀치가 너무 축축했죠. 알고 보니 반건조 풀치로 만들어야 했어요. 기억을 더듬어 보니 고추도 들어갔던 것 같아요. 그렇게 해서 아이들을 주니까 너무 맛있다는 거예요. 그게 재밌어서 또 해보고 몇십 년을 하다 보니 나름대로 응용을 하기도 했어요. 그때 우리 엄마는 비싸서 안 넣었던 전복이나 대하를 아귀찜에 넣기도 하고요.

 

한 번에 완성한 게 아니라 혀로 기억한 걸 맞춰가는 단계였군요.


그렇죠. ‘이거였어, 이 맛이었어!’ 할 때의 그 기쁨은 뭘로 말할 수가 없어요.


혹시 시도했지만 어머니의 손맛을 재현할 수 없었던 음식도 있나요?


놀랍게도 한 번도 실패한 게 없어요. 그러니까 제가 우리 엄마 손맛을 닮았나 봐요. (웃음) 그리고 제가 부엌에만 들어가면 눈동자가 살고 힘이 나요.


음식이랑 연관된 추억도 같이 책에 실렸어요. 다른 추억을 하나 말씀해 주시겠어요?


시골에 가서 늙은 호박을 보면 또 엄마 생각이 나요. 시골 농촌에는 호박이 지천에 열렸잖아요. 그러면 아침에 ‘막내야 호박 하나 따와라’ 하고 석석 썰어서 금방 음식을 만들어 주시고는 했어요. <수미네 반찬> 세트 지을 때도 감독에게 평상을 해달라고 했어요. 제가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시절이 다섯 식구가 평상에 둘러앉아 밥 먹던 시절이에요. 우리 엄마는 부엌을 왔다 갔다 하면서 반찬 하나라도 자식 더 먹이려고 하고, 우리는 그걸 받아서 먹고, 봄에는 집 근처의 온 천지에 꽃이 피어 있었어요. 그 유년 시절이 자꾸 그리워요. 그래서 이렇게 세트를 지어 달라고 했어요.


책에 실린 요리 중 하나를 꼽아주신다면요?


풀치 조림이랑 아귀찜. 김치요. 김칫거리만 보면 담고 싶어서 힘이 솟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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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성 ‘엄마’ 김수미


김수미의 요리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간장게장이 떠올라요. 나중에 품질 때문에 비판을 받기도 하셨었죠.


그 오해는 풀어야겠어요. 간장게장을 시작했던 이유도, 우리 집에 온 모든 손님이 간장게장이 맛있다고 했어요. 농담처럼 이걸 팔면 마음 놓고 사가겠다고 말한 게 씨가 되어서 사업을 시작했죠. 하지만 국산 게를 수억 원어치 사서 냉동고에 넣었는데 누가 그걸 다른 게로 바꿔치기했어요. 나중에 게장을 담았는데 열어보니까 품질이 안 나와서 한 달 만에 판매를 중단했어요. 그러던 와중에 다른 사람이 제 이름으로 팔았어요. 그때 팔았던 게 품질이 안 좋았죠. 그런 상황을 어떻게 일일이 해명하고 다닐 수 있겠어요. 제가 이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게 먹을 거로 장난치는 거예요. 그래서 김치 사업할 때도 행여 고춧가루를 바꿔치기할까 봐 버무리는 날 공장 가서 직접 버무렸어요. 그런 일을 겪고 나서는 웬만해서 사업은 잘 안 하려고 해요.


그런 사건을 겪고 나면 다른 사람 앞에 요리로 나선다는 부담감도 있을 것 같아요.


맞죠. 하지만 사실 김치와 게장 사업은 주변 사람이 원해서 시작한 거였어요.


김수미의 요리를 떠올린다면 가장 먼저 무엇이 떠오르게 될까요?


정성이요. 왜냐하면 우리가 어딜 가서 콩나물 하나를 먹더라도, 엄마가 무쳐주는 것과 종업원의 입장에서 무치는 건 천지 차이거든요. 손에는 기라는 게 있어요. 그게 정성이거든요. 조물조물하는 동안 자식을 향한 사랑이 다 들어가는 거예요. 저도 어느 식당에 가서 일한다면 음식을 무치면서 제 자식 주는 심정을 할까요? 물론 그런 장인이 많아요. 하지만 집에서 두부 한 모를 썰더라도 엄마의 마음이 다 들어가 있어요. 손으로 만지는 게 결국 사람의 체온이잖아요. 눈에 안 보여도 기가 다 들어가 있어요. 그래서 집밥이 중요한 거예요.


‘배우 김수미’에게는 여러 가지 이미지가 있는데, 인간 김수미에게 가장 맞는 이미지는 뭘까요?


천상 엄마일 거예요. 욕쟁이 이미지는 영화나 드라마 역할이었지 평소 그렇게 욕하고 다니진 않아요. 한동안 욕하는 드라마를 너무 많이 찍어서 제가 세고 무서운 사람인 줄 알아요. 하지만 저는 집에 있으면 주방에 있는 시간이 더 많고, 천상 꽃 좋아하고 음식 해서 사람들 먹이는 풍류를 좋아하는 천상 엄마예요.


책방을 운영하신 적도 있어요.


신문을 보다 OECD 국가 중에 주부 독서율이 최하위라는 말에 신문을 놓자마자 상가에다가 서점을 만들었어요. 그때 <전원일기>의 일용엄니가 굉장히 유명할 때라, 김수미보다 일용엄니가 더 유명해서 ‘일용엄니 책방’이라는 이름으로 한 3년 운영했죠.


소설과 에세이집도 내셨죠?


원래 문학을 하고 싶었거든요. 지금도 항상 한쪽 가슴은 문학에 대한 열정으로 허기져 있어요. 침대 머리에는 항상 시집을 놓고요. 어떤 날은 한 줄의 시로 하루를 살아요.


앞으로도 책을 낼 계획이 있나요?


요리책으로는 ‘수미네 반찬’ 2탄이 나올 가능성이 있어요. 그 외에는 ‘안녕히 계세요’라는 이름으로 마지막 에세이이자 유언장을 하나 내려고요. 지금 쓰고 있어요. 일 년 정도 뒤에 나오지 않을까요?


독자들에게 마지막으로 한 마디 부탁합니다.


지금은 1인 가구가 많아서, 나 혼자 내 입에 넣자고 음식 하는 것도 어찌 보면 초라할 거예요. 그러나 내가 나를 사랑해야죠. 내가 먹더라도 주말에 책을 보고 멋있게 만들어서 혼자 맛있게 먹는 게 나를 사랑하는 태도거든요. 그리고 음식을 했을 때 맛있게 된 기쁨을 느껴보라고 하고 싶어요. 지방에서 도시로 올라온 사람들은 집에서 부모님이 보내주는 김치도 한계가 있어요. 커피는 7천 원짜리 먹으면서 김밥 몇 개로 끼니를 때우는 건 잘못된 거라고 생각해요. 이 음식문화를 바꿔주고 싶어요.

 


 

 

수미네 반찬김수미, 최현석, 여경래, 미카엘 아쉬미노프 저 | 성안당
조금은 퉁명스럽고, 불친절하기 이를 데 없는 레시피지만 이상하게도 김수미라는 엄마가 하는 요리 속에는 그 정서적 공감대가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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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공학자 윤태웅 “젊은 친구가 필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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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우기지 않는 거다’, ‘부끄러움은 왜 학생의 몫인가’, ‘교수님 제발 수업 좀 제때…’ 얼핏 보면 학생이 쓴 글의 제목 같으나, 윤태웅 고려대학교 전자공학부 교수가 쓴 첫 과학 에세이 『떨리는 게 정상이야』의 목차 제목 중 일부다. 담박하고 단정한 글을 선호하는 사람이라면 꼭 좋아할 책. 문과 기질이 농후한 사람이라도 과학적 사고에 관심이 많은 독자라도 쉬이 즐겁게 읽을 수 있다. 이 책의 핵심 키워드를 추려본다면 공부, 학교, 세상. 세 주제를 한 단어로 묶어본다면 ‘성찰’이라는 표현이 알맞겠다. 나로부터 시작해 세상을 보고, 세상으로부터 시작해 스스로를 성찰하는 글. 윤태웅이 쓴 69개 글의 공통점이다.

 

제어공학을 전공한 윤태웅은 과학자로 사는 시간, 선생으로 사는 시간, 시민으로 사는 시간의 범주를 뚜렷하게 나누지 않는다. 공학을 생각하다 학생들을 생각하고, 학교 문제를 고민하다 사회를 들여다보는 셈이다. “읽기보다 쓰기를 더 많이 하는 처지가 불편했지만”(9쪽) 책을 쓰고 나니, 성찰과 소통의 즐거움이 한결 배가 됐다. 윤태웅 교수는 학생들에게 줄곧 말한다. “진정한 배움(Learning)의 출발점은 의도적 비움(Unlearning)입니다.” 비판을 즐거이 수용하는 태도를 갖고 싶다면, 적어도 꼰대는 되고 싶지 않다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여도 좋을 성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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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할 수 없는 글은 없다

 

서문이 특별히 좋았습니다. 쉽게 읽히면서 깊이도 느껴졌어요. 3년이 걸려 나온 책이라니 후련한 마음이 있었겠습니다.

 

아마 3년도 더 지난 것 같은데요. 무엇보다 출판사에게 마음의 빚을 갚은 느낌이에요. 약속을 지켰다는 것보다 빚을 갚은 느낌이 더 있어요. (웃음)

 

원래 계약한 책 제목은 ‘세상이 실험실이다’였다고요.


공학자로서의 제 이야기가 궁금하셨던 것 같아요. 분류하자면, 이 책은 교양 과학 에세이일 텐데요. 공학, 합리적, 민주주의, 자유 등의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글이 많아요. ‘공학자 윤태웅의 공부, 그리고 세상 이야기’라는 부제가 달렸지만 꼭 공학 이야기만은 아니죠.

 

제목은 어떻게 나왔나요? 


<한겨레> 지면에 썼던 칼럼 제목을 박래선 에이도스 대표님이 ‘떨리는 게 정상이야’라고 고쳐 주셨어요. 본문에 나온 글귀를 꼭지 제목으로 가져오신 건데, 저는 이 꼭지 제목을 책 제목으로 선택한 거죠.

 

『떨리는 게 정상이야』라는 제목만 읽었을 때, 어떤 떨림인지 물음표를 던질 독자도 있을 거예요. 신영복 선생의 서화집에 나오는 지남철(나침반, 指南鐵)의 비유에서 나온 말이죠?


제대로 작동하는 지남철은 바늘 끝이 늘 불안스러워요. 떨고 있기 때문이죠. 반면에 고장 난 지남철의 바늘 끝은 전혀 흔들리지 않아요. 마치 어느 쪽이 남쪽인지 확실히 알고 있다는 듯이요. 저도 학생 땐 흔들림 없이 확신에 가득 차 있던 선배들이 부러웠어요. 뭐가 뭔지 몰라 버벅거리는 제 모습이 불만스러웠죠. 그런데 신영복 선생의 서화집을 보고 나니, 떨리는 게 정상이라는 것을 알겠더라고요. 무지에 대한 단순한 위로는 아니에요. 온전한 지남철은 마구잡이로 떠는 게 아니라, 남쪽이라는 구체적인 지향점이 있으니까요. 이런 떨림을 유지하라는 건 정체되지 말라는 요구죠.

 

공부, 학교, 세상으로 나눠진 목차를 쭉 읽는데, 흥미롭더군요. 짧은 제목의 묘미도 느껴졌고요.


지면에 썼던 글의 제목들을 거의 살렸는데요. 지금의 시점에 맞게 내용을 조금씩 고치긴 했지만 논거와 논지는 손대지 않고 그대로 두었어요. 독자들을 밀어낼 것 같은 제목도 조금 바꿨고요.

 

책의 시작부터 끝까지 ‘과정’을 강조하신 것이 인상에 남아요. “답 찾기보다 더 중요한 게 문제 만들기”(49쪽)라는 말과도 이어집니다. 저자로서 책을 쓰는 과정은 어땠나요? 개인적으로 느낀 점이 궁금합니다.


쓰는 과정에서 특별한 기억보다는 글을 쓴다는 행위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이오덕 선생님의 글쓰기 철학에 영향을 많이 받았는데요. “글과 삶이 무관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에 크게 동의하기 때문에 자꾸 반성하게 됐죠.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되나? 싶고요.

 

글을 쓰고 난 뒤, 삶이 따라오는 경우도 있을 거예요.


그렇죠. 저를 견인하는 것일 수도 있어요. 늘 경계에 있다는 생각을 하는데요. 글을 쓸 때, 완전히 나와 일치된 글을 썼는지 모르겠지만요. 맞춰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갖고 있는 글쓰기의 철학일 지도 모르고요. 제어공학도 그래요. 목표와 현실, 이 둘이 얼마나 다른지를 비교하는 과정일 수 있는데요. 현실과 목표의 차이를 줄이려고 할 때, 이 행동은 성찰적 행동이라고 볼 수 있는 거예요. 사람의 행위를 기계적으로 구현했다고 볼 수도 있는 문제죠. 이른바 사람이 어떻게 제어하는지 보고, 기계도 저렇게 제어하면 되겠다고 생각하는 거니까요.

 

“읽기보다 쓰기를 더 많이 하는 처지가 불편했다”(9쪽)고 말씀하셨어요.


칼럼을 쓴 기간이 ESC 대표 활동을 할 때였어요. 그 전에는 쓰지 않고 읽기만 했다면 완전히 역전됐던 거죠. 안팎으로 써야 할 글은 많은데, 읽을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고. 처음 겪어 보는 스트레스였어요. 가까운 지인들이 “공부가 꼭 책으로만 하는 게 아니다”라고 했지만 공부하는 사람에겐 공부가 제일 중요하니까요. 제 처지가 좀 불편했죠.

 

책이 나오면 주변에서 온갖 축하와 격려가 쏟아지는데요. 교수님께서 페이스북에 공유한 글을 하나 읽어 보니, 완전히 호평만 담긴 리뷰가 아니었어요. 보통 비판이 들어 있는 글을 저자가 직접 공유하는 경우는 흔치 않은데, 비판을 수용하는 태도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일단 인정할 수밖에 없으니까요. 인정하지 않았으면 굳이 공유까진 않았을 텐데요. 제게는 납득이 되는 글이었어요. 그리고 그 누구도 비판할 수 없는 글은 없지 않겠어요? 비현실적인 일이죠.

 

 

명쾌하면 좋은 책이다


보통 퇴고는 몇 번 정도 하시나요?


글을 보내야 하는 시점까지 고치는 것 같아요. 읽을 때마다 걸리는 게 있으니까요. 하지만 어느 시점을 넘어서면 퇴고를 계속하는 게 꼭 좋지만은 않아요. 그만 봐야 하는 게 맞죠. 매주 화요일에 칼럼을 보내야 한다면, 주말에 초고를 쓰고 계속 고치는 편이에요.

 

한 번도 마감을 어긴 적이 없으실 것 같아요.


제 기억으론 없는 것 같아요.

 

48쪽(‘교수님 제발 수업 좀 제때’) 에피소드가 생각나는데요. 제발 정해진 종료 시간에 수업을 끝내 달라는 학생이 있었어요. 요즘은 수업 종료 시간을 정확히 지키고 계신가요?


네. (웃음) 알람도 해 뒀어요.

 

학생이 학과 게시판에 올린 글을 보면, 다음 수업이 진행되는 강의실까지 가려면 이동 시간이 꽤 긴데, 수업 시간이 계속 길어지면서 지각할 수밖에 없다고 했어요. 수업에 굉장히 열의가 있는 예의 바른 학생으로 읽혔어요.


요즘 학생들이 옛날과 많이 달라졌다는 이야기를 많이들 하는데요. 꼭 그렇지 만도 않아요. 아주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좀더 거침없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도 있고요. 물론 각각의 관계, 맥락이 다르고 제가 겪은 일을 일반화할 수는 없을 텐데요. 학생들이 질문을 많이 하길 바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질문하기는 학생의 특권이니까요. 하고 싶은 얘기는 다 했으면 좋겠어요. 물론 질문하는 과정에 있어서 예의가 중요하지만, 예의를 꼭 나이와 연결할 필요는 없어요. 그러면 외려 논점이 흐려지죠. 예의는 나이를 떠나 서로 지켜야 하는 것이고,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반말이나 막 하는 거야말로 무례한 일이죠.

 

학생들에게 ‘수학적, 논리적 사고와 정확한 한국어 문장 쓰기’를 강조하고 있으시다고요. “잘 들리는 글이 잘 읽히는 법”(38쪽), “읽어서 이상하면 고치자! 글은 고치는 거다”(39쪽)라고 쓰셨어요.


이오덕 선생님을 만나고 글이 많이 달라졌죠. 그 전에는 텍스트 대 정보량을 따졌으니까요. 이오덕 선생님의 글을 읽고 충격을 받아서, 그 분과 오래 싸웠어요. 혼자서요. 선생님이 말하는 대로 쓰지 않을 논리적 근거를 찾다가 접은 거죠. “선생님이 옳습니다”라고 두 손을 들었다고 할까요? 선생님 문장이 되게 좋다는 건 아니에요. 그 분의 글쓰기 철학에 동의하는 거죠. 이오덕 선생님을 따라 ‘우리글 바로쓰기’라는 표현을 사용하다 곧 ‘한국어 바로쓰기’라 하기 시작했어요. 한국어는 외국인도 할 수 있으니까요. 국어 대신 한국어라 하는 것과 마찬가지 논리죠. 결국 중요한 건, 말에서 멀어지지 않는 글쓰기 철학이 아닐까 생각해요.

 

글쓰기 책을 쓰셔도 좋을 것 같아요.


책을 또 써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이런 식의 이야기들을 또 쓸 필요가 있을까, 또 책으로 묶을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이공계 글쓰기 책도 찾아보면 꽤 많거든요. 예전에 글쓰기 책을 쓴다고 하면서 생각해 놓은 게 있었는데요.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에 다 나와 있더라고요. 제가 강조하는 논리적 글쓰기, 이오덕 선생님 이야기도 있고요. 내가 또 한 권의 책을 보탤 필요가 있을까 싶어요. 어떤 형태로든 주제가 분명한 것들에 관해서 쓴다면, 쓸 것 같기도 하고요.

 

독자로서 평소 즐겨 읽는 책은 무엇인가요?


아무래도 교양 과학, 교양 수학책이 편하게 읽혀요. 예를 들어 역사와 철학도 일반적인 역사나 철학보다는 과학의 역사, 과학의 철학 같은 구체적인 이야기를 좋아해요. 문학적 소양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많이 듣는데요. 지금 생각해보면 정보 위주의 독서를 많이 한 것이 좋은 전략은 아니었다 싶어요. (웃음)

 

어떤 문장을 선호하시나요?


아무래도 간결한 문장을 좋아합니다. 과한 글, 과잉 표출된 글을 읽을 때는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들죠. 독자에게도 생각할 여지를 줘야 하는데, 자신이 생각한 이상을 쓰는 글을 볼 때가 있어요. 이것이 파랗다라는 걸 보여주려면 파란색을 보여주면 되는데, ‘이건 파란색이야’하고 명시해버리는 글은 좋다고 보기 어려운 것 같아요. 문장 하나하나가 엄청나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문장들을 모아 놓았을 때, 명쾌하면 좋은 책이죠. 멋을 부리려고 하면 멋이 안 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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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하다


대학에서 제어계측공학과를 선택하셨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전공 선택은 모르는 상태에서 하는 거잖아요. (웃음) 당시에는 로봇을 공부할 수 있을 거라고 마냥 생각했던 것 같아요. 기대보다는 좋은 교육을 받았다고 생각하는데, 사회가 어두웠던 시절이다 보니 전공에 집중했던 학생들이 많지 않았죠.

 

과학과 수학이 사유방식으로서 한국사회에 문화로 자리잡길 바라는 마음으로 ‘ESC(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를 만드셨고, 올해 6월 초대 대표 임기를 마치셨는데요. “과학기술자로서 외로움을 많이 느꼈다”는 기사를 읽었어요. 어떤 마음이셨나요?


굳이 말하자면 학교 중심부의 생각과 달랐던 거죠. 연구자는 논문으로 이야기 하는 사람이니까 당연히 논문을 써야죠. 하지만 연구의 성과에만 집중하면 왜곡이 생겨요. 교육과 연구가 상호보완으로 이뤄져야 하는데, 연구가 교육을 왜곡하는 상황도 벌어지는 거예요. 문제제기를 하면 한가로운 이야기로 듣고요. 당연히 해야 할 질문을 안 하는 상황이 벌이지고요. 이런 저런 시도도 하고 실패도 했다가, 조금은 지친 상태였죠.

 

흥미로운 건, 가입할 수 있는 자격이 꼭 과학기술자가 아니라는 점이에요.


ESC(Engineers & Scientists for Change)는 과학기술자가 아니라 과학기술인 단체를 지향해요. 여기서 과학기술인이란 과학기술에 관해 고민하는 과학기술학자, 저술가, 교수, 문화, 예술, 언론인, 관심 있는 시민 모두를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좋은 과학기술자 단체를 꿈꿔왔는데, 과학기술인으로 확장된 건 자연스러운 논리인 것 같아요. ESC는 과학기술의 공공성을 바탕으로 과학기술과 사회의 소통을 추구해요. 궁극적으로 과학기술의 합리적 사유의 문화를 뿌리내리게 하는 것이 목표예죠. 올해 8월을 기준으로 500여 명이 가입했는데 학생은 21%, 여성은 35%, 오프라인 활동의 여성 참여율은 50% 안팎에 이르고 있어요.

 

호칭을 부를 때 ‘~님’을 사용한다고요.


저는 ESC가 ‘무엇을 하느냐’ 보다도 ‘어떻게 하느냐’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학교나 사회나 소통을 잘하는 모습을 많이 못 봤어요. 동의하는 목소리든 아니든 서로 설득하기 어려운 구조일 때가 많아요. 권위적이지 않은, 수평적으로 소통하는 사례를 만들고 싶었어요. ‘님’으로 부르는 것은 기업이 먼저 시작한 문화인데, 결국 기업의 경쟁력이 됐죠. 문제는 기업은 선언하면 할 수 있는데, 사회는 쉽지 않다는 거예요. ESC는 단체의 성명이나 견해를 표명할 때,회원 과반의 응답과 응답자 2/3 이상의 동의를 받아야 해요.

 

크라우드펀딩위원회에서 첫 펀딩으로 ‘트랜스젠더 건강 연구’를 제안했고 성공했어요.


유의미한 결실 중 하나로 생각해요. 의료보험의 사각지대에서 힘들에 일상을 이어가는 트랜스젠더의 건강 문제에 시민들의 연대를 끌어낸 사례죠. 다양성을 핵심 가치로 삼는 것과 우연히 일치한 프로젝트예요.

 

책 제목으로 쓴 칼럼의 원제가 ‘적어도 꼰대는 되지 말자’였어요. 2시간여 대화를 나눈 인상으로는 교수님은 결코 꼰대가 되지 않으실 것도 같은데요. 꼰대가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성찰과 열림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성찰은 혼자 하는 일이지만 열림은 사람들의 말을 들어야만 가능한 일이죠. 제 생각으로는 젊은 사람을 친구로 볼 수 있다면 꼰대가 되진 않을 것 같아요. 가르치려고 하지 않아야 하고요. 실제 ESC 활동을 하다 보면, ‘젊은 사람들이 나보다 낫다’는 생각을 정말 자주 합니다. 한 그룹에 섞여 있으면 이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어요. 사실이니까요.

 

젊은 친구들이 귀신같이 아는 것 같아요. 꼰대스럽지 않은 어른 곁에는 늘 좋은 젊은 친구들이 모여요.


(웃음) 잘 섞이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수평적으로 소통할 수 있으면, ‘이 사람이 내가 못 보는 걸 보네?’ 그런 걸 느낄 거잖아요. 탁월한 마음으로 애를 써야 서로의 마음을 읽을 수 있어요. ‘저 사람이 나보다 직급이 높아서 저런 말을 하는 건 아닐 거야’라는 마음가짐도 필요하고요. 나이든 사람들이 젊은 사람의 실력을 쫓아가지 못하는 건, 너무 당연한 일이라서요. 너무 부끄러워할 만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두뇌도 육체의 일부니까요. 당연히 쇠퇴할 수밖에 없는 거니까, 자연스럽게 인정하는 태도가 필요해요. 우리가 쌓은 경험, 연륜이 언제나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건 아니잖아요. 현재의 문제에 과거의 해법을 제시하는 사람은 꼰대가 될 수밖에 없어요.

 

이 책이 과학 분야로 분류되었지만 오히려 인문, 사회 계열 전공자들이 많이 읽을 것 같기도 해요. 예비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을까요?


과학과 수학이 꼭 이공계 사람에게만 필요한 게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어요. 사유방식이자 문화,시민적 역량의 한 부분으로 과학과 수학을 생각하면 좋겠어요. 문사철 같은 인문학(Humanities)과 더불어 과학과 수학은 핵심 교양(liberal arts)의 또 다른 축이에요. 이과 학생들한테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한 만큼 문과 학생들에게도 과학, 수학적 소양이 필요해요. 과학을 인문학처럼 하는 게 아니라 과학과 인문학을 핵심 교양으로 함께 공부하는 게 답으로 여겨져요.

 

지금 교수님 수중에 이 책이 딱 한 권 있다면, 어떤 사람에게 선물하고 싶나요?


젊은 독자들을 생각하면서 책을 썼는데요. 어쩌면 제 또래의 독자가 읽어도 좋을 것 같아요. 사회적으로 어느 정도 영향력이 있고 나름의 식견, 선의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하지만 조금 더 성찰적인 것이 필요한 사람들이 읽어주면 좋을 것 같아요. 에필로그에도 썼지만, 우리 세대는 청년 친구를 둘 필요가 있어요. 한국 사회에서 스스로 권위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탈권위적인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지 않나 싶어요.

 


 

 

떨리는 게 정상이야윤태웅 저 | 에이도스
시민들에게 왜 수학이 필수교양이어야 하는지부터 과학자와 과학자 공동체의 관계, 그리고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성소수자 문제 등 한국사회의 다양한 이슈를 공학자의 언어와 생각으로 풀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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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인터뷰] 인문학자 김경집의 나이듦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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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집의 통찰력 강의는 언제나 시대를 꿰뚫고 미래를 향해 있다. 교정을 떠나 대중들을 위한 인문학자로 제 3의 인생을 살고 있는 김경집이 그리는 노년은 어떤 모습일까?


서른 살 무렵, 생의 첫 25년은 배우고, 다음 25년은 가르치고, 마지막 25년은 글 쓰며 살겠다고 다짐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이런 계획은 세우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처음 그런 생각을 한 건 삼십대였어요. 막연히 그런 생각이 들었죠. 그러다 학생들을 25년쯤 가르치고 나니까 더 이상 강의가 즐겁지 않더라고요. 신입생이 들어오면 어떤 아이들일까 궁금하고 강의 준비하면서도 설레고 그랬는데 그런 기쁨들이 사위어 가는 걸 보면서 느꼈죠. 그만둘 때가 된 건가 보다. 그 때부터 제 남은 삶을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되었고, 주변의 만류가 있었지만 과감하게 그만두고 지금은 글쓰고 대중들을 위한 강연을 하고 있어요. 

 

『마흔 이후, 이제야 알게 된 것들』은 마흔 이후에 알게 된 인생의 우선 순위에 관해 이야기하는데, 지금 가장 1순위에 놓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요?


여전히 알고 싶은 게 많아요. 호기심. 궁금증. 저희 아버지는 공무원에 장손이었는데도 진보적이셨어요. 자식들과 대화하는 걸 참 좋아하셨죠. 당시만 해도 밥상머리에서 말하는 걸 용납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는데, 저희 집은 밥상머리가 가장 시끄러웠어요. 오만 얘기가 다 나왔죠. 그래서인지 형제가 육남매인데, 전공이 다 달라요. 사실 전 40대 초반까지만 해도 무슨 콤플렉스가 있었냐면 과다한 관심사였어요. 언젠가는 제 누이에게 그런 고민을 얘기 했더니, 그건 지적 산만함이 아니다. 그런 애정과 관심과 열정을 가지고 있는 한 사람은 늙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돌이켜보면 다양한 것에 걸친 관심과 호기심이 큰 자산이 된 거 같긴 해요. 호기심이 멈추는 순간이 노화의 어떤 중심이 아닌가 싶고요.


책은 “속도를 얻으면 풍경을 잃고, 속도를 잃으면 풍경을 얻는다”는 문장으로 읽히기도 하는데요, 속도와 풍경이 조화를 이루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요?


우린 교육 받기도 그랬고, 삶도 그렇고, 그냥 직진이잖아요. 옆길 샛길 이런 것도 용납이 안 되고요. 직선적이고 철저한 속도의 삶이죠. 물론 그게 통했던 건 시대적인 상황도 있었다고 봐요. 사실 20세기 전체를 관통했던 힘이 속도와 효율이었고, 패스트 무빙의 사회였잖아요. 20세기 전반은 전 세계가 전쟁이었어요. 전쟁하는데 누가 인격적이고 도덕적이고 창의적인 것들을 생각하겠어요? 누가 적을 먼저 쓰러뜨리냐의 문제였죠. 그러다 전쟁이 끝나고 세계는 산업화 패턴을 따라갔죠. 하지만 이 때의 산업화는 소수의 몇 나라만 성과를 누렸던 19세기의 산업화와는 달라요. 현지에서 대량 생산해서 현지에서 대량 소비하는 구조의 산업화에요. 똑같아요, 속도와 효율이. 그니까 20세기 전체를 관통하는 게 속도와 효율이라면, 우리가 60년대 이후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도 철저하게 이 속도와 효율에 맞는 교육과 삶을 살아서예요. 그러다 1997년에 IMF를 당하는 이유는 20세기 후반, 서서히 탈속도화 돼가는 흐름에 맞추지 못해서이죠. 창조?혁신?융합으로 넘어가는 흐름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한방에 나간 거죠.

 

우리사회에서 속도와 효율은 여전히 힘이 세요.


맞아요. 안타깝게도 우리는 지금도 속도의 삶을 살아요. 속도에서 어느 정도 획득이 생겼으면 슬슬 둘러 볼 수 있고, 곡면의 길을 갈 수도 있는데 그러질 못해요. 제가 40대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런 균형을 갖출 수 있는 시기이기 때문이에요. 운전을 예로 들면, 초보 운전자는 바깥의 풍경이 안보여요. 목적지를 안전하게 가느냐가 중요한데, 차츰 운전이 익숙해지면서 속도도 낼 줄 알게 되고 바깥을 둘러 볼 여유도 생기죠. 저는 그럴 수 있는 나이가 40대 아닌가 싶어요. 사람들은 풍경을 자꾸 경치로 생각을 하는데, 책을 보는 것도 느린 행위잖아요. 그런 느린 행위들이 다 풍경이에요.

 

『나이듦의 즐거움』이라는 책에는 ‘잃은 것은 시력, 얻은 것은 심력’이라는 구절이 나와요. 몸의 변화가 마음의 변화로 대체되는데요, 나이 들어 잃은 것과 얻은 것은 또 무엇일까요?


저는 머리가 빨리 하얘졌는데, 직업상 염색할 필요도 없고, 전혀 스트레스가 없었어요. 근데 노안이 왔을 땐 서럽더라고요. 원래 고도 근시였는데 안과 의사 말이 한 만 분의 일의 확률로 원래 따로 있는 근시 근육과 노안 근육이 맞물려있대요. 그래서 노안이 오면서 근시가 풀렸어요. 노안이 왔다는 푸념을 했더니 한 친구가 그러더라고요 “야, 지금까지 가까운 것만 보고 살았으니까 좀 먼 거 보라고 하는 거야. 그게 나잇값을 하는 거야. 가까운 거를 못 본다고 서러워 할 게 아니라 이제 먼 걸 자연스럽게 볼 수 있고 거기에 집중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한번 해 봐.” 친구의 말을 듣는데 그 생각이 들더라고요. 시력은 나빠졌지만 심력을 얻었다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이 드는 걸 몸으로 느낄 때 서럽고 슬프고 당혹스럽고 그렇잖아요. ‘있던 게 없어진다’고만 생각을 하는 거예요.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얻는 것도 분명히 있어요.

 

그렇게 얻은 심력으로 우리의 노년들이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무엇일까요?


저는 그때 사실 이런 말을 하고 싶었어요. 당시에는 그 나이가 되지 않아서 말을 아꼈는데, 이제는 저도 60대니까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우리나라 노인들은 사회적인 삶이 정말 안 되어있긴 하지만, 본인들 스스로도 좀 무책임하지 않나 싶어요. 솔직히 노인은 사회적 비용이 들어가는 사람들이잖아요. 더 이상 경제 활동을 하지 않는. 그렇다면 그 시대가 가야 될 길까지 방해하는 걸림돌은 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나이가 들면 보수적으로 되는 게 아니라 진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왜냐면 젊은 시절이야 ‘이건 아니다’ 싶은 것도 대놓고 싸우거나 고치려고 하기가 쉽지 않아요. 밥줄이 필요하니까. 하지만 나이 들면 여러 의무에서 해방도 되고, 살아온 경험도 있고 내 밥줄을 쥐고 흔드는 놈들도 없잖아요. 근데 그렇게 사는 게 익숙해져서 비겁하게 입 다물고 있고, 공부하지 않고 그러는 건 아니라고 봐요. 특히 지금의 60대 70대는 최초로 고등학교까지 보편적인 교육을 받은 첫 세대, 이른바 ‘쎄시봉 실버 세대’거든요. 뭔가를 배우긴 제대로 배웠어요. 그러면 내 자식들을 위해서, 내 손자를 위해서 ‘내가 살았던 세상보단 좋아져야지, 단지 물질적인 것뿐만 아니라, 나 같은 그런 고민 안 하고 살았으면 좋겠어’라는 게, 지금의 노인 세대가 해 줘야 되는 몫이에요. 전 손자들 사진을 보면서 웃고 있는 친구들을 보면 이렇게 말해요. “네 손자랑 동시대를 살아가는 그 세대 아이들이 전혀 행복하지 못하면, 과연 걔가 행복할 수 있을까? 우리가 아직 힘이 남았을 때 걔들이 좀 더 나은 삶을 살게 하려면, 한 뼘씩 이라도 좀 고쳐놓고 가자”라고요.

 

해마다 유서를 쓰신다고 들었는데 지금도 쓰시나요?


지금은 애들이 눈치 줘서 안하는데, 그래도 짧게는 써요. 근데 예전하곤 좀 달라진 것이,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만약에 내가 갑자기 부재 상태가 되면 얘들이 어떻게 할까?라는 생각에 그런 것 위주로 썼는데, 지금은 애들도 다 크고 다들 자기 알아서 살겠죠. 대신 요즘 제 유서는 12월 마지막 날에 한 해를 정리하는 의미의, 저한테 보내는 편지 같아요. 일 년 동안 이렇게, 이렇게 사는 건 참 잘 했어, 이렇게 사는 거는 좀 별로 맘에 안 들어. 내년엔 이런 거 했으면 좋겠어. 뭐 이렇게요. 

 

지금 같은 정보화 시대에 노년은 어떻게 적응할 수 있을까요?


저는 지금의 시대에 노년의 할 일이 더 많아질 거라고 봐요. 예전의 노동은 몸을 써야 되는 거였어요. 그래서 늙은 사람들 몫이 없어요. 하지만 지금은 몸 쓰는 노동이 없잖아요. 머리 쓰는 노동이지. 나이가 드는 사람은 물론 기억도 조금씩 쇠퇴하고 판단 속도도 더디긴 하지만, 경험이 있고, 지식이 축적돼 있고,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잖아요. 지금이야말로 나이 들어도 멋지게 노동을 할 수 있는 때라고 생각해요.

 

『나이듦의 즐거움』에서 “권세나 막강한 재력이 아니라 부드럽지만 어긋나지 않는 인격에서 비롯된 것”이 권위라는 말씀이 인상적이었어요. 선생님이 생각하는 노년의 권위는 어떤 건가요?


가지고 있는 게 없으면, 내가 너보다 많은 게 나이밖에 없어요. 경험이나. 그래서 그걸로만 유세를 부리는 거죠. 헌데 저는 나이 들면서 갖는 가장 큰 힘이 관용이라고 생각해요. 젊은 애들이 어떤 고민 때문에 끙끙거리면 “야 그거 별거 아니야. 나도 해봤는데”라면서 자신의 경험을 얘기해줄 수 있겠죠, 그리고는 “내가 뭐 도와줄 일 없니?”라고 물으면서 들어줘야 해요. 훈계하는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권위의 큰 힘은 들어주기와 너그러움이에요. 나이 들수록 그걸 마련해야 해요.

 

대중들을 위한 인문학 강연을 많이 하시는데요. 노년의 대중들에게 인문학은 왜 필요할까요?


강연을 갔을 때 노인들이 많으면 제가 하는 말이 있어요. “여러분이 진보적이라고 생각하세요? 보수적이라고 생각하세요?” 그러면 다 보수라고 해요. 특히 경상도에 가면 말할 것도 없이. 그러면 전 나이가 들어가면, 보수가 될 수가 없다고. 사실 보수나 진보의 개념은 미국에서 다르고, 유럽에서 다르고 유럽에서도 영국과 독일에서 말하는 게 달라요. 저는 그들에게 제가 생각하는 보수에 대해 얘기해요. 보수는 내가 집에서 배운 가치, 학교에서 배운 가치다. 그러니까 사람으로서의 도리, 예의, 자유와 평등, 공정성, 정의, 민주주의 그런 것들이죠. 보수란 살아가면서 그런 가치를 실천하고 사는 거라고, 그게 망가지거나 억압되거나 왜곡되면, 비판하고 저항하고 때론 맞서 싸워서 쟁취하는 게 진짜 보수다. 문제는 보수하고 진보의 구조가 아니라, 보수 속에 감춰져 있는 수구가 있다는 거예요. 노인 세대가 해야 될 가장 큰 일은, ‘나는 보수지 수구여서는 안 돼’라고 하는 분기점을 정확히 인식하는 거예요. 근데 그게 인식이 안 되니까, 하는 행동은 수구인데 본인은 보수라고 착각하는 거예요. 그래서 아까 말했듯이 노인들은 진보적이어야 되고 진보일 수밖에 없다. 생각을 좀 바꿔라. 그리고 생각이 바뀌려면, 내 사고와 지식이 머무르는 순간 그냥 고령화 되는 건데, 아니 옛날에는 바빠서 책을 못 읽었다고 치지만, 지금은 남은 게 시간이니 책 좀 읽으라고 말해요. 이상한 페이크 뉴스에 빠져들지 말고. 책을 읽어서 내가 주체적으로 판단 할 수 있고, 그런 힘을 키울 수 있는 게 노년의 시간이라고요. 처음엔 화를 내는 사람들도 좀 있는데 끝날 때쯤 되면 “그런 생각들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제라도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라는 반응들이 많아요.

 

우리 모두 노년을 맞이할텐데요. 좀더 지혜로운 노년을 위한 방법이나 노력들이 있을까요?


저는 지금의 40대, 50대의 몫이 참 크다고 생각을 하고요. 이 세대는 인류사에서 거의 유일한 기회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왜냐면 아날로그의 끝자락 세대잖아요. 아날로그는 온기를 갖고 있으면서 동시에 디지털도 누리고 있는. 60대는 아날로그 끝자락에서 끝난 거예요, 디지털로 들어가지 못하고. 디지털은 해봐야 스마트폰을 쓰는 정도가 다에요. 하지만 지금의 40대 50대는 디지털의 첫 단추를 열어본 세대에요. 속도도 누려요. 그러면서 아날로그의 감성도 가지고 있죠. 따뜻한 온기와 속도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유일한 세대죠. 그런데 이게 엇박자가 나면 감성은 윗세대 보다 딸리고 메말라 있는데, 다음세대의 디지털 속도와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밀리는 거죠. 뒤엉킨 스텝으로 가니까 정신은 하나도 없고, 밑에선 치고 올라오는 거 같고, 불안하고 이런 거죠. 그 속도를 누려봐야 얼마를 누린다고. 하지만 이 속도에 삶의 어떤 온기라고 하는 게 결합 됐을 때 갖게 되는 컨텐츠의 파워, 그걸 극대화하고 전달해줄 수 있는데 지금 40대 50대의 의무이자 권한이라고 생각해요. 그것만 제대로 하고 넘어가도 속된말로 나잇값을 하고 가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어요.

 

그 나잇값을 위해 필요한 게 인문학일까요?


비슷해요. 그런 면에서 우리가 만들어 내야 하는 의제는 누가 권력을 갖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이 시대가 생산한 가치를 미래에 유의미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느냐예요. 이건 빈부와 지위 고하를 떠나서 그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몫이잖아요. 결국은 인문 정신이라고 하는 것은 지식, 교양 이런 게 아니라, 자기가 살고 있는 시대정신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미래 의제에 대해서 고민하고, 어떤 대안을 도출할 수 있는 어떤 동기? 그런 걸 마련하는 게 인문정신이 아닌가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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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인터뷰] 구술생애사 작가 최현숙이 만난 노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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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음도 ‘소문’으로 여기는 힘, 그깟 소문쯤 자력갱생으로 눌러버리는 힘, 최현숙이 들려주는 인생들에는 이 거룩한 내력들이 담겨 있다. 펄펄 살아 있는 말을 하고 있다.

 

『천당허고 지옥이 그만큼 칭하가 날라나?』 에서는 여성 노인들의 생애를,  『할배의 탄생』에서는 남성 노인들을 인터뷰하고 기록하셨습니다. 노인들의 삶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2008년 쯤이던가, 진보정치운동이 분열되면서 진보정당을 통한 사회 개혁에 회의가 들었어요. 그러다 어디서 내 밥벌이를 하며 소신을 실천하며 살 수 있을까를 고민했죠. 당시 우리 사회는 소위 ‘돌봄 노동의 사회화’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말하자면 그동안 여성들이 집 안에서 딸이나 며느리, 아내의 이름으로 해 왔던 온갖 돌봄 노동들 아이 돌봄, 노인 돌봄, 장애인 돌봄 이런 것들이요. 이런 걸 국가가 좀 맡아서 하겠다는 변화가 시작되면서 요양보호사, 장애인활동보조, 산모신생아도우미, 간병인같은 사회 서비스 노동이 늘어났는데, 그걸 하는 여성들이 내 또래 베이비부머 세대의 여성들이었어요. 뭐 가장 싸구려 노동이죠. 여성들조차도 노동이라는 의식 없이 해오던 것들이라 돈을 준다니까 하는 거였는데, 이 여성들과 뭔가를 같이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요양보호사,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고 현장에서 일하기 시작했어요.

 

그럼 거기서 이야기를 듣게 되신 건가요?


그렇죠. 일을 하면서 웬만큼 친해지고 신뢰관계가 생기니까 노인들이 주절주절 살아온 이야기를 하시는 거예요. 누구도 들으려고 하지 않았고, 다들 귀찮아하던 이야기들이요. 근데 그 얘기가 나한텐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됐어요. ‘아, 내가 저 이야기를 남겨야 한다’라는 생각이 들었죠. 아마 내가 살아온 진보정치나 여성주의적 관점이겠죠. 우리 사회에서 계속 배제된 사람들, 사회의 소수자들의 목소리니까.

 

인터뷰한 노인들은 대부분 돈 있고 배운 사람들이 아니라 가난하고 못 배운 노인들이었어요. 


우리 사회는 대체로 가난이나 늙음도 그렇고 못 배운것들에 대해서 기껏해야 ‘동정’하잖아요. 안됐다, 불쌍하다, 그래서 뭔가를 좀 줘야된다는 시혜. 또 거기서 더 나아가면 스스로 게을러서 그렇다는 낙인. 뭐 이런 해석들인데, 저는 어떤 경로로 가난하게 되었느냐도 굉장히 중요하게 봐요. 또 가난이나 고통을 견뎌낸 사람은 그 안에 힘이 있다고 생각해요. 겪지 않은 사람은 도저히 만들어낼 수 없는 힘이 그들 내부에 있다라고 생각해서 그걸 보려고 했어요. 근데 그 힘 안에는 해학도 있고 낙천도 있고, 사회에 대한 시선 같은 것들이 굉장히 복잡하게 섞여 있어요. 누가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내가 그 양반의 고난에 대해 어떤 말로 질문을 하느냐에 따라 내놓는 패들이 달라져요. 어떤 질문에는 자기 안에 뒤섞여있는 해석 중에서 굉장히 긍정적인 해석, 힘찬 해석, 정말 해학적인 해석을 꺼내기도 하고, 불쌍하게만 보는 물음에는 거기에 맞는 것들을 꺼내죠. 하지만 저는 어르신 속에 있는 고난을 견딘 힘, 그걸 존중하고 그런 걸 통해서 뭘 배우고 싶다라는 의미로 다가갔어요.

 

가장 공감되었던 이야기를 들려준 분은 누구였나요?


사실 모든 사람들의 생애를 쭉 듣다보면 공감이 돼요. 선악도 없고, 옳고 그름도 없고, 그럴 수밖에 없었던 맥락과 처지가 있죠. 그래도 ‘아, 이 양반 정말 대단하다’라고 느꼈던 분은 첫 번째 책『천당허고 지옥이 그만큼 칭하가 날라나?』의 평양 할머니에요. 그분은 십대 후반에 화신 백화점이 너무 궁금해서 남쪽에 내려왔다가 전쟁을 겪은 분이에요. 북쪽에서는 초등학교도 나오시고 야학도 다니고, 당시는 평양이 남쪽보다 훨씬 산업이 발달했는데 신발공장, 담배공장도 다니면서 돈도 벌고, 굉장히 파이팅 한 성격이죠. 호기심도 너무 많고요. 아무튼 남쪽에서 남자를 만났는데 아편쟁이였대요. 전쟁에 피난 갔다 와보니까 쥐약 먹고 죽었고. 아들이 하나 있어서 ‘양색시’들 옷장사도 하고 댄스학원에서 일하다가 2차도 나가고 미군 성매매도 하고 그랬는데, 이분 특징이 근본적으로 자신의 삶에 대한 낙인이 없어요. 유일한 외아들이 목사가 됐는데, 아들네 교회에서 새벽기도에 어머니를 불러놓고 통성기도를 하면서 “우리 어머니에게 회계의 영을 내려주소서. 뭐 뭐 한거랑, 자식 뗀거랑 이런 걸 회개해주십시오”이런대요. 그러면 이 양반은 “야, 그게 뭐 회개할 일이냐, 니네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일지 몰라도 내 하나님은 내 속을 안다. 내가 너 공부시켜서 목사 만들려고 그걸 했고, 내가 그 새끼를 낳아야했냐. 그때 그 흑인 혼혈아들 어떻게 되는지 뻔히 보이는데 내가 그때 그 새끼를 낳아서 그 복잡하고 힘든 인생을 만들어야 됐냐”이러신대요. 저는 이 할머니의 그런 낙인 없음과 호기심 이런 것들이 나와 굉장히 닮아서 공감이 갔어요.

 

반대의 경우도 있었나요?

 

제일 안타까웠던 분이  『할배의 탄생』에 나오는 이영식 할아버지에요. 이 양반은 어떤 면에서 평양 할머니랑은 반대인 것이모든 게 낙인이고 자괴이고 부끄러움이고 심지어 죄에요. 가난하게 산 거, 학교를 제대로 안다닌 거, 키가 작은 거, 성적으로 약한 거, 평생 노가다만 한 거, 이걸 다 부끄러움이고 죄라고 생각해요. 우리 사회가 규정한 남성성, 온갖 정상 이데올로기와는 다른 비정상을 자기 안에 내면화한 것이죠. 실은 성격도 조용조용하시고 굉장히 친절하고 겸손하신 분인 것이, 내가 안부전화를 했는데 못받으시면 다른 분들은 다시 전화를 안하는데, 이 분은 꼭 다시 전화를 해서 “고맙다, 잘 있다, 별 일 없다” 그러세요. 제가 “도대체 선생님이 가난하고 키 작고 이게 누구한테 죄냐”라고 하면 이 분은 “최선생이나 그렇게 이야기한다, 그건 교과서에나 나오는 말이다. 나가서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라. 누가 나를 쓸모있는 사람으로 보냐”라고하시죠.

 

두분의차이가 뭘까요?


저는 그것이 원가족 안에서의 상처에서 기인했다고 생각해요. 이영식 할아버지는 어렸을 적에 생모가 한약인 줄 알고 양잿물을 잘못 마셔서 돌아가셨거든요. 이 분에겐 엄마가 숨을 거두는 장면이 가장 강렬한 어린 시절의 기억, 유일한 기억이었어요. 또 나중에 아버지가 재혼을 하셨는데 자식이 엄청 많았어요. 숫자로도 못 셌는데 그 때 계모한테 눈치 볼까 등등 여러 가지 고려 속에서 형과 이 분을 큰집으로 보냈대요. 딸만 있고 또 훨씬 잘 살았던 큰 집에 큰 아들을 양자로 보내면서 작은 아들도 딸려 보낸거죠. 당시 아버지 입장에서는 그런 생각을 했을 수도 있는데, 그 기억이 이 분에겐 아버지가 자기를 버렸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래서 그런 자기 삶의 해석에 관해 많은 얘기를 했는데, 인터뷰가 다 끝나고 나서 이 양반이 너무 울더라고요. 나를 버린 아버지, 늘폭력적이었던 형에 대해 다른 생각도 하게 되고.

 

얘기를 하다 보니까 객관화가 되는 거군요.


그죠, 계속 나랑 해석의 갈등을 겪고 토론을 하면서 내 앞에서는 아니라고, 최선생이나 그러지 누가 그렇게 보냐고 했지만 집에 가서 생각해보니 재해석이 됐던 거죠. 책 나오고 나서 책 갖다 드리려고 갔을 때는 이제 조카도 만나고, 치매 걸려서 알아보지도 못하지만 누나도 만나고 그러시더라고요.

 

김영옥 작가의 노년의 미를 찾아나선 인터뷰집 <노년은 아름다워>에선 되려 인터뷰어가 아닌 인터뷰이가 되셨는데요. 선생님의 노년은 어떤 모습이길 바라시나요?

 

나는 딱 요만큼만 살면 돼요. 원룸이어야 돼요. 집이 넓으면 청소를 누가 해요? 청소하기 싫으니까. 그냥 내가 하고 싶은 일에 집중하면서 사는 게 가장 좋은데, 그 일이 순전히 개인적인 욕망이 아니라 사회적인 공공성도 가진 일이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이 일을 계속 하다가 못하게 되는 어느 시점에는 스스로 자유 죽음을 선택할 생각을 하고 있는데, 그래서 삶이 갈수록 단출해지는 것 같아요. 젊어서라면 사회운동이니 뭐니, 애 키우고 가정 살림하면서 균형을 잡기가 굉장히 힘들어서 항상 칼날 위에서 바들바들 떠는 기분이었지만, 매번 균형을 못 잡고 이쪽으로 떨어지든가, 저쪽으로 떨어지든가 해서 이쪽 저쪽 모두에서 욕을 먹었지만, 지금은 이제 그런 것들에서 벗어나서 좀 편하게 된 것 같고, 몸이 점점 낡아지면서 효율성이 떨어지니까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선택할지, 무엇에 집중할지가 명확해졌어요.

 

나이가 들어서 제일 좋고 제일 싫은 건 어떤 건가요?


단출해지는 게 가장 좋아요. 경계에서 아슬아슬하지 않아도 되니까. 싫은 점은? 글쎄요. 나는 뭐 늙음이든 죽음이든 그냥 시간의 문제라고 생각을 해서, 싫은 건 없어요. 아니 뭐 나만 늙고 나만 죽는 게 아니라 다 죽는데 뭐가 억울해요. 또 저는 사람들이 부정적으로 보는 고통이든 통증이든 가난이든 모든 것들에 대해서 구경하는 마음, 관찰하는 마음이 있어요. 허리 통증 때문에 굉장히 아파서 정말 글을 쓸 수도,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면 핸드폰 녹음기를 눌러놓고 내 허리 통증에 대해서 떠들어요. 하하하. 신음소리도 내면서. 고통에 빠져봤자 계속 아프기만 하니까, 그냥 저 쪽에다가 놓는 거죠. 물론 아주 심할 땐 말려들었다가도 말려드는 순간도 내가 기록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면, ‘그래, 고통, 니가 이렇구나’뭐 이렇게 그러면 달라져요. 고통에 대해서 거리두기를 하는 거죠. 그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을 해요. 고통을 이기는 방법은, 고통에 지지 않는 방법은 고통에 대해서 거리두기를 하고 관찰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선생님 말씀처럼 누구나 나이가 들어가고 노년이 되어가는 데, “너무 두려워만 하지 말고 이렇게  대비해봐라”하는 얘기를 해주신다면요?


나이 듦과 죽음도 마찬가지고, 소문이에요 소문. 신자유주의가 만들어낸, 절대로 믿을게 안 돼요. 하하하. 뭐 신자유주의까지 모른다 하더라도, 유한한 존재인 인간, 생명은 당연히 그 어떤 망가짐, 뭐 이런 것에 대해서 두려움을 갖죠. 당연한건데, 그 자체가 소문이라는 거죠. 그냥 시간이 되면 차츰차츰 늙어가요. 살다가 어느 날 무릎이 안 좋고, 또 어느 날 허리가 안좋고, 이렇게 되다가 누워있을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이 되는 거에요. 저는 모든 나이는 살아볼 만 하다고 생각해요. 그 나이를 어떻게 대하느냐가 문제지. 모든 존재도 살아볼 만 한 거예요. 남과 다른 거지. 그 안에서 자기 살 이유나, 자기의 어떤 생각을 만들어 내느냐 못 만들어 내느냐가 중요한데, 이놈의 이데올로기 때문에, 자꾸 안 좋은 거라는 규정을 하죠. 남들 시선, 사회의 규정 이런소문 말고, 정말 내가 내 것으로 볼 수 있는 어떤 것을 찾아내느냐 못찾아내느냐의 문제 같아요. “너도 나이 들면 다 똑같아져”우리 이런 소리 맨날 듣잖아요. 근데 절대로 아니더라고요. 그냥 고수하면 돼요. ‘나는 여기서 내 것을 찾겠다’라고 고수하고 나가면 절대로 소문에 안 속아요. 소문에 속으면 정말 뒷덜미가 잡혀서, 뭐 오지도 않는 귀신한테 뒷덜미를 잡혀가지고 우물에 빠져 죽는다고, 그냥 두려워서 그냥 허겁지겁 하게 돼버려요.

 

마지막으로 곧 새 책이 곧 출간된다고 들었는데, 어떤 책인가요?


구술 생애사 책은 아니고 에세이에요. 제목은 ‘삶을 똑바로 마주보고.’ 영화 <디 아워스>에 나오는 문구에요. 그간 써온 글과 신문 컬럼에 연재한 글을 모아 엮은 책인데, 그 안에 사회를 바라보는 저의 시선들, 나이 듦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들, 대부분 노인 복지 현장에서 만난 노인들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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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박신영 “평등해야 안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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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혐오는 여성을 싫어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성을 너무 좋아해서, 여성이 너무 필요해서 여성을 공짜로 이용하기 위해 만들어내는 각종 시스템, 사고방식, 차별, 문화가 여성혐오입니다. 여성혐오에 물든 남성들은 여성은 동등한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정당한 대가, 사랑, 보답 없이 이용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여성을 열등하거나 나쁜 존재로 만들어서 이용합니다. 반대로 '모성 예찬', '순결한 성녀 숭배'처럼 찬양해서 이용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여성들은 사랑 못 받을까봐, 나쁜 여자로 찍힐까봐 두려워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참고 자발적으로 이용당하게 됩니다. 이때 인간이 갖고 있는 부정적인 속성들은 전부 여자의 특성이 되어 여성 집단을 비난할 때 쓰이게 됩니다. 한편, 남성들만 여성혐오에 물든 방식으로 여성을 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같은 여성이어도 나이 든 여성, 더 권력을 쥐고 있는 여성은 더 어리거나 권력이 없는 여성을 이런 방식으로 이용합니다. ( 『제가 왜 참아야 하죠?』   288~289쪽)

 

여성이 남성에게, 남성이 남성에게 저지르는 성폭력도 있지만 대개의 성범죄는 남성이 가해자고 여성이 피해자다. 성범죄는 혐오 정서와 관련 있다. 여성을 너무 좋아하는데, 인간으로서 정당하게 대우하지 않고 폭력을 휘두를 때 발생한다. 그런데 이 범죄는 독특한 면이 있다. 가해자를 비난하기도 하지만, 피해자를 탓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 『삐딱해도 괜찮아』, 『이 언니를 보라』의 저자 박신영이 그러한 전형적인 성폭력 현장에 있었다. 목격자가 아니라 피해자로. 10여 년 전 직장에서 상사에게 성추행을 당한다. 가해자에게 당한 피해자는 또 있었다. 피해자들과 합심하여 가해자에게 사과를 받아내고 재발 방지 약속을 얻었다. 그런데 가해자는 입장이 돌변, 회사에서 피해자들이 일을 할 수 없도록 압박하기 시작한다. 가해자 아내까지 가세했다. 형사 고발과 민사 소송이 이어지고, 지난한 2년의 세월을 견뎌 마침내 승소했다.

 

범죄자를 참교육한 실화를 뛰어난 스토리텔링으로 버무려낸 책이 바로 『제가 왜 참아야 하죠?』이다. 이와 함께 저자는 사회 각 영역에서 이루어진 미투 증언과 이를 둘러싼 기득권 층의 반응을 복기하고, 한국사회의 현주소와 나아가야 할 바를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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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해야 안전하다

 

2013~2014년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 『삐딱해도 괜찮아』, 『이 언니를 보라』를 연달아 내시고 그간 저작 활동은 뜸했습니다. 어떻게 지내셨나요.

 

책은 안 나왔지만, 다음 책 준비를 하며 지냈습니다. 여러 건 계약도 있었고 저 스스로 기획안을 들고 출판사 문을 두드린 적도 있었지만 출간으로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사정이 여의치 않았고 제 능력 부족도 있었지요. 덕분에 겸손을 배우며 지냈습니다. (웃음)

 

이번 책 제목은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지요.

 

이 책 내용 중, 저에게 이유없이 욕설을 하는 동네 할아버지와 싸우는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제목인 “제가 왜 참아야 하죠?”는 그때 제가 한 말입니다. 책 51쪽에 나옵니다. 제 초고를 읽은 바틀비 출판사 편집장님께서 이 말에 감동을 받으셔서 책 제목으로 정해 주셨습니다. 아주 마음에 듭니다. 책 출간 소식을 들은 지인분들도 참 좋아하시더군요.

 

책 구상하면서, 이 문장은 “꼭 넣고 말겠다”라고 한 대목이 있다면요?

 

‘평등해야 안전하다’입니다. 제 책 전체의 주제입니다. 이 말은 옆에 메모한 종이를 놓고 문맥에 크게 어긋나지 않는 한, 계속 삽입했습니다. 한 4번 정도 한 것 같네요. 그리고 읽어 보셨으면 아시겠지만, ‘구슬’을 열심히 넣었습니다.  이 책을 통해 가해자 최씨에 대한 사적 복수를 하려는 의도도 있어서요. (웃음)

 

책이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전반부는 최근 한국사회 미투 운동에 관한 선생님의 논평, 후반부가 10년 전 작가님께서 겪으신 이야기로요. 이렇게 배치한 의도가 있을 것 같아요.

 

1부는 2018년 보도된 각각의 사건을 놓고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성폭력 관련 고정관념을 바꿔주는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성폭력은 여성들이 흔하게 겪는 사건으로 남성 지배의 일상을 보장하는 역할을 한다, 일부 변태들의 성욕 때문이 아니라 권력 차이로 생긴다, 그 권력은 젠더 권력이다, 성폭력 발생 원인은 사회 각 부분의 불평등과 관련 있다, 구조의 문제이니 평등해야 안전해진다, 이런 방향이지요. 그 다음 제가 겪은 사건 이야기인 2부로 넘어갑니다. 소설이라면 1인칭 주인공 시점이니, 독자분들은 읽어가며 저에게 감정이입할 수밖에 없지요. 그래서 1부에서 제가 주장한 내용에 거부감이 드는 독자분일지라도 2부에서 제가 겪은 성폭력 사건을 저에게 빙의하여 세세히 같이 겪다 보면 1부에서 제가 쓴 성폭력 관련 기본 개념이 저절로 이해되도록 이렇게 구성했습니다. 특히 남성 독자분이라면 1부에 제가 한 주장이 가슴에 와 닿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책에서 거듭 강조하는 게 성폭력 발생 원인이 구조라고 봤고, 방금도 그 대목을 지적했습니다.
 
구조적으로 보아야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불량 제품 한 두 개를 추적해서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전량 리콜해서 생산 라인을 검토해야 해결이 되는 법이니까요. 남성들이 자꾸 성폭력 문제를 일부 남자의 일탈로 보는 것은 그 일부 남자가 일종의 피뢰침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들 덕분에 전체 남성 집단이 벼락 맞는 것을 피할 수 있습니다. 저를 포함해서, 인간은 누구나 잠재적 가해자입니다. 여성 혐오, 성차별, 강간 문화에 젖은 사회에서는 누구나 잠재적 가해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진짜 가해자가 되지 않으려면 약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책도 읽으며 치열한 자기 성찰을 해야 하는 것이지요. 남성만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잠재적 가해자다’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기울어진 운동장이 아니라 한국 선수가 도쿄돔에서 뛰는 것

 

성폭력이 발생하면 가해자는 처음에는 미안해하는 척하면서 당당해하고 여성이 먼저 유혹했다고 뻔뻔하게 주장하죠. 혹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거나. 가해자의 아내는 피해자 여성을 비난합니다. 피해자의 가족들도 정도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피해자 여성을 비난합니다. 각각 행위자들의 심리는 왜 이럴까요.

 

각각 자신이 처한 위치에서 자신 혹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위해 그렇게 말하고 행동한다고 봅니다. 가해자는 무죄 판정을 받기 위해서, 가해자의 아내나 가족은 범죄자의 가족이 되지 않기 위해 피해자 여성을 문제 있는 여성으로 몰아갑니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모르는 제 3자들도 사건 기사를 접하면 피해 여성에게서 먼저 원인을 찾습니다. “왜 그 시간에 그 자리에 그 옷을 입고 그 사람에게?”를 묻습니다.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의 앞날을 걱정해줍니다. 참 이상하죠? 원래 어떤 문제가 생기면 잘못한 쪽에 “왜 그랬니?”라고 묻습니다. 싸움이 나면 때린 사람에게 “왜 때렸니?”라고 묻잖아요. 맞은 사람에게 왜 맞았냐고 묻지 않습니다.

 

그러니 성폭력 사건에서 피해자에게 왜라고 묻는 현상이 바로 사람들은 성폭력 사건에 대해 피해 여성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증거이지요. 성폭력을 당한 것보다,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고발한 것이 더 잘못이라고 생각하기에 그런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사회 전체적으로 나쁜 여성, 문란한 여성이 계속 공급되어야 남성의 성폭력할 권리가 보장되고, 나쁜 여성들이 계속 비난받으며 존재해야 다른 여성들을 후려쳐서 지배할 수 있습니다. 결국 이 불평등한 사회 시스템이 그대로 유지되어 기득권을 누릴 수 있으니까 다들 피해자부터 비난하게 되는 겁니다. 안타깝지만, 워낙 이런 문화가 만연하기에 피해자 측 지인들도 그런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범죄 자제도 문제이지만, 이후에 법정에서도 여성과 남자의 권력 관계는 너무나 불평등한 듯합니다.

 

현재 성폭력 가해자에게 팁을 제공하여 무죄나 불기소, 기소 유예, 집행 유예를 받게 하는 산업이 호황입니다. 인터넷 카페는 물론 전문 변호 집단도 많습니다. ‘성폭력 사건 대응’ 등으로 검색해보면 여성 대상으로는 예방법이나 호신술 등인데 남성 대상으로는 사건 후 빠져나가는 방법에 대한 팁을 주는 내용이 대부분입니다. 남성들은 가해자가 되어서도 유리한 위치에 있다는 증거지요. 이를 몇 번 페북에서 글을 썼더니 불쾌하다는 댓글을 다는 남성분이 있었습니다. 검색 해보면 다 나오는 뻔한 사실인데, 왜 저에게 화를 내는지 모르겠습니다. (웃음) 우습게도요, 페북에 이런 글을 쓰면 모르는 남성에게 이따금 공격 받아요. 욕설 댓글, 협박 메시지도 자주 받고, 칼이나 남성 성기 사진도 종종 받습니다. 저는 꽃다발이 아니라 좆다발을 받으며 살고 있죠. (웃음) 이로 보아 여성에게 불평등한 현실을 알리고 대처 방법을 찾게 하는 것 자체가 남성 집단에게는 괘씸죄를 지은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상상 외로, 기존 불평등을 유지하여 남성 집단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보이지 않는 손’의 활동이 있다는 증거겠죠. 맞습니다. 성폭력 사건의 피해자가 되어서까지 여성이 접하는 정보는 가해자 남성보다 적습니다. 경찰서에서도 법원에서도 불평등합니다. 일상의 권력 관계 자체가 불평등하니까요. 기울어진 운동장이 아니라 한국 선수가 도쿄돔에서 뛰는 거예요. 아무리 멋진 플레이를 펼쳐도 비난을 받죠.
 
미투 운동 이후로 관련하여 다양한 책이 나왔죠. 그 중 한 권이  『그 페미니즘은 틀렸다』인데요. 올바른 페미니즘을 규정 지으려는 시도에 관해 어떻게 보시나요.

 

오세라비 저자의 책에서나, 주위 명예 남성이신 여성분들이 하는 말씀은 한 마디로 표현해서 ‘시어머니의 페미니즘’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포장되었든 어떤 근거를 갖고 말하든 결국 ‘옛날(내가 젊었던 시절)에는 불평등한 것이 사실이었다, 페미니즘이 필요했다, 그러나 요즘은 그렇지 않다, 여성들이 이렇게나 살기 좋은데 왜 불만이냐? 남자(내 아들)가 더 불쌍하니 남자에게 잘 해 줘라’, 하는 말이니까요. 누구의 주장이든, 기본적으로 불평등한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출발하는 것은 페미니즘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또 페미니즘 책이 다양하게 나오고 있어서 ‘페미니즘은 돈이 된다’며 한때의 유행으로 치부하는 말도 있는데 의미 없다고 생각합니다. 안티 페미니즘이 훨씬 돈이 됩니다. 양진호 회장의 성공 사례를 보십시오. 온갖 성범죄 관련, 여자 장사 자체가 얼마나 호황인데요.

 

개저씨, 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사람들이 등장하죠. 주변에도 드물지 않고요. 오히려 흔한 듯한데 이유가 뭘까요? 특히나 남자들은 유사과학인 진화심리학적 설명, '남자의 성욕은 제어하기 힘들다'를 주술처럼 외우고 다닙니다.

 

저도 그게 의아합니다. 현재 40대, 50대 남성들은 386세대, 엑스 세대, 이러면서 민주적 가치와 탈권위를 지향하던 집단이었습니다. 왜 이들이 자라서 개저씨가 되었을까요? 나이 들어 경제력과 지위 등 권력을 가졌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지위 보고 나이 보고 어린 여성들이 참고 대우해주는 것을 굳이 이성적 호감으로 착각하는 것도 권력에 대한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겠죠. 해도 되니까 하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성폭력의 원인이 성욕이 아니라 권력 확인이라고 이 책에서 내내 주장했고요. 그런데도 진화심리학이니 뭐니 들어서 성폭력을 합리화하려는 남성들을 보고 있으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아, 그러니까 ‘우리 남성들은 계속 나쁜 짓을 할 것이지만 우리를 나쁘게 보지는 말아달라’, 이 말인가? 하하. 설사, 그렇게 진화했다고 치더라도 그렇게 해도 된다는 말은 아닌데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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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혐오는 예나 지금이나 같다

 

“딸 같아서 그랬다.”라는 발언에서 친족을 강간해도 큰 문제가 아니었던 고대사를 연관 지어 설명했습니다. 평소 역사에 관심이 많고 관련 책을 다양하게 읽잖아요. 지금 한국 사회는 미투 이후로 얼마나 진보했을까요?

 

제가 쓴 첫 책이 역사 에세이였죠. 네, 저는 역덕이어서 어떤 일이 생기면 그 역사적 유래를 찾아야하는 습성이 있습니다. 여성사를 공부해 봤더니, 현재 벌어지는 모든 성차별적이고 부당한 일들의 유래를 보려면 고대사, 문헌으로는 특히 함무라비 법전과 구약성경을 보면 답이 나오더라고요. 두 문헌을 보면 여성을 동등한 인간으로 보지 않고 가부장의 소유물로 보고 있죠. 여성은 남성에게 있어서 가축이나 노예와 같은 수준으로 취급됩니다. 이 사실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고대에서 성욕을 부정적으로 보았다고 해도, 그 성욕을 유발하는 존재인 여성을 부정적으로 본 것이니 뭐 여성혐오 역사로 보면 예나 지금이나 같죠. 미투 이후 사회의 인식이 바뀌기는 했다고 실감합니다. 특히 여성들이 크게 바뀌었습니다. 문제는 여성혐오에 물든 일반 남성들과 인식 차이, 그 갭이 더 커진 점에 있다고나 할까요. 이 부분에서 일어날 폭력이 저는 심히 우려됩니다.

 

꽃뱀의 실체를 알 수 있는 유용한 책이었습니다. 성범죄 피해자로서 민사까지 가서 받아낼 수 있는 돈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내용인데요.

 

제 경우 500만원을 받았는데, 소송에 져서 보상을 받지 못한 다른 피해자분들과 균등분배 했으니 300만원 받은 셈이죠. 2년간 투자해서 겨우 300만원 번 겁니다. 그 기간 동안 직장을 다니면 그 돈의 10 ~ 20배는 벌죠. 이 부분을 책에서 강조해 썼습니다. 왜냐하면, 남성들이 꽃뱀에 대해 비현실적 공포감을 갖고 있는 경우를 많이 봤기 때문입니다. 단적으로 말합니다. 돈 벌자고 성폭력 고소를 허위로 하는 여성은 없습니다. 시간이건 돈이건 에너지건, 득보다 실이 많습니다. 그래도 굳이 고소하는 이유는 진짜 성폭력 피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다른 피해자 발생을 막기위해 사회 정의를 위해 힘든 길을 가는 겁니다. 이들을 꽃뱀으로 몰아 2차 가해를 해서는 안 됩니다. 아니다, 꽃뱀은 있다, 주위 아는 형님이 꽃뱀 피해를 봤다, 라고 말하는 남성분도 많이 봤는데, 그건 그 형님이 사실을 제대로 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범죄자는 불리한 것은 가족과 지인에게 말하지 않습니다. 이를 모르고 지인의 말에 속아서 피해자를 2차 가해하다가는 모욕죄로 고소당합니다.

 

블로그에서 페이스북으로, 작가님의 글쓰기 플랫폼이 확장되었잖아요. 이런 플랫폼 변화가 선생님의 글쓰기에 미치는 영향이 궁금합니다.

 

블로그는 서점에 리뷰를 쓰기 위해 시작했습니다. 제가 자꾸 산 책을 또 사서 말이죠. (웃음) 페북은 그때 그때 이슈를 잡아 글 쓰기 좋은 곳이어서 강남역 살인남 사건과 촛불 시위를 거치면서 주로 페미니즘 이슈 관련 글을 쓰고 있고요. 그저 제가 쓰려는 글의 목적에 따라 블로그와 페북을 오가며 쓰고 있지요.

 

소설가 지망생이셨다고 들었습니다. 소설을 쓰실 생각은 없는지요?

 

제가 대학 다니던 시절에는  『태백산맥』  등 대하역사소설 붐이 일고 있었습니다. 저 또한 그런 소설을 쓰고 싶어서 문학과 역사 관련 책을 주로 읽었습니다. 지금은 아직 어리니, 더 나이 들어 세상을 보는 시선이 익으면  『삼대』『까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같은 다양한 세대가 한 시대를 통과하여 살아가는 이야기를 여성 인물들을 등장시켜서 쓰고 싶습니다. 차기작은 다시 역사 에세이입니다. 명작의 역사적 배경을 이야기하는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 다닐까』의 개정판과 2편이 내년 1월에 나올 예정입니다. 동양편인 3편도 기획 중이어서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 다닐까』는 3부작이 될 예정입니다.

 

어느덧 2018년이 끝나고 있는데요. 2018년은 어떤 해였는지요?

 

이 책을 쓴 해였네요. 1월 서지현 검사의 미투 고발 이후 계속 성폭력 관련 기사를 읽고 관련 이론서를 찾아 공부했습니다. 현재 이 시대 이 사회에 의미 있는 책을 쓴, 보람찬 한 해를 보낸 것 같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을 통해 제 인생의 중요한 사건을 정리하였기에, 뭔가 ‘레벨 업’한 기분도 들고요. (웃음)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예스24 블로그, 채널예스 독자분들은 제게 각별합니다. 이 책에 쓴 직장 성폭력 사건 겪고 힘들어 하던 시절, 무작정 책 읽고 영화 보고 블로그에 글 쓰며 지냈지요. 그때 댓글 달아 ‘글 좋다, 작가 되라’며 격려해주고 오프 모임을 통해 손 내밀어 주신 분들 덕분에 여기까지 왔네요. 같은 시대를 살며 함께 고민하고 성장해가는 친구들이 곧 제 책의 독자인 것은 작가로서 큰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이번 책  『제가 왜 참아야 하죠?』 도 많이 사랑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제가 왜 참아야 하죠?박신영 저 | 바틀비
지금 당장 고통받고 있는 여성들에게는 실용적인 정보를, 강간당할까 두려워 제한적인 삶을 살고 있는 여성들에게 용기를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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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김혜나 “용서라는 말을 믿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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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지영에게는 친구 미영이 있다. “‘씨발’, ‘좆 같은’이라는 말들을 입에 달고 살”아가는 그녀는 룸살롱 사장의 아내다. ‘선생님’이라 불리는 지영을 보며 미영은 생각한다. 자신은 예쁘지도 않고 맛있지도 않은 청귤 같고, 미영은 달고 부드러운 “진짜 귤” 같다고.

 

닮은 점보다 다른 구석이 더 많아 보이는 이들은 또 있다. 필리핀에서 온 여성 로레나와 가족이 된 ‘나’가 있고, 늘 왕따였던 ‘나’와 늘 사람들의 호감을 샀던 ‘리나’가 있다. 그들은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를 밀어내기보다 호기심을 가지고, 호의를 보이고, 관계를 맺는다. 김혜나 작가는 “서로 다른 사람 속에서 나 자신을 찾아가는” 일에 대해 말했다. 타인을 바라보는 것이 곧 거울을 들여다보는 일이라고.

 

6편의 소설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그 누구도 자기 안의 상처를 외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통스러운 기억을 지그시 응시하고 덤덤하게 이야기한다. 그들의 방식 그대로, 김혜나는 ‘작가의 말’의 첫 문단을 다음과 같이 썼다.

 

어린 시절, 나는 못생기고 뚱뚱한 아이였다. 어릴 때 앓은 뇌수막염의 후유증으로 나는 실제 사시이기까지 했다. 학교에 가면 아이들은 나를 돼지, 사팔뜨기라고 부르며 놀리고 괴롭혔다. 학교에 가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고, 당연히 공부도 잘하지 못했다. (『청귤』  243쪽)

 

김혜나의 인물들은 그녀를 닮았다. 그들은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아팠던 순간을 끄집어내길 두려워하지 않는다. 꺼내놓고 보니 내 안에 있던 나쁜 감정들이 사라진 것 같았다고, 작가는 말했다.

 

전작 『제리』 ,  『정크』 , 『나의 골드스타 전화기』와 마찬가지로 작가는  『청귤』  안에도 개인적 경험을 녹여냈다. 그녀는 인물의 입을 빌려 “거짓말을 통해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방식으로는 그 어떤 이야기도 할 수가 없”다고 말했지만, 그보다는 “나는 오로지 진실을 이야기해요”라는 한 마디가 더 깊숙이 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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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스러운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하고 싶었어요


2010년에 등단하셨는데  『청귤』이 첫 번째 소설집이에요. 늦게 나왔다는 생각이 들 법도 해요. 어떠세요?

 

맞아요. 제가 장편소설로 등단했고 계속 장편 형태로 발표를 하다 보니까 단편을 많이 쓰지도 못했고요. 아무래도 장편으로 등단한 분들은 단편 청탁이 많지는 않은 것 같아요. 물론 장편으로 등단해서 좋은 점도 굉장히 많았죠. 그런데 보통은 신춘문예나 문예지에 단편으로 등단을 해서 첫 번째 책으로 소설집을 내잖아요. 저는 조금 다른 길을 걷게 된 것 같은데(웃음), 소설집이 나와서 정말 기뻐요. 첫 소설집이라는 말이 주는 어감이 너무 새롭고 설레요. 처음 이 책을 만들 때부터 지금까지, 인생 첫 책을 만드는 것처럼 행복했어요. 그동안 작업했던 다른 책들과는 확연히 다르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쓰신 작품도 실려 있잖아요. ‘작가의 말’에서 직접 밝히기도 하셨고요. 잊고 싶은 기억일 것 같은데 피하지 않고 직면하셨어요. 『청귤』의 인물들처럼요.


사실 어릴 때 기억이 별로 좋지는 않아요. 특히 중고등학교 때는 학교에 적응도 못했고 항상 겉도는 학생이었기 때문에 졸업한 이후로는 빨리 잊었던 것 같아요. 한 번도 그때를 떠올린 적도 없고요. 그런데  『제리』를 쓰고 난 다음부터, 의도하지는 않았는데, 자연스럽게 더 어렸을 때의 이야기들을 쓰게 되더라고요. 처음에는 ‘이걸 왜 써야 되지? 왜 자꾸 쓰게 되지?’ 하는 생각도 했어요. 그런데 한 편 두 편 쓰고 나서 보니까 불편했던 기억들이 더 이상 내 안에 머물지 않고 사라진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다른 일들이 그렇듯이 지나고 나니까 아무것도 아닌 게 된 걸지도 모르겠어요. 그동안은 말하지 않고 감춰두고 있었기 때문에 더 불편했었을 수도 있고요. 사실 이 책을 쓰기 전에는 잘 말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사시였다거나 왕따였다거나 그런 이야기들이요. 그런데 지금은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됐어요. 물론 있었던 일이기는 하지만, 그 사실들에 대한 나쁜 감정들은 사라진 것 같아요.

 

계기가 있었나요?


스님한테 요가 명상을 배운 적이 있었는데요. 그때 스님이 ‘자비’에 대해서 가르쳐주셨어요. ‘자’는 기쁨을 나누는 것이고 ‘비’는 슬픔을 나누는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렇게 해서 궁극적으로 이 세계가 기쁨으로 가득차고 슬픔은 모두 소멸되는 것이 부처님의 자비 명상법이라고요.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줄어든다는 게, 어떻게 보면 단순한 말이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말을 잘 안 하잖아요. 기쁨 일이 있어도 말 안 하고, 안 좋은 일 같은 건 더 숨기게 되잖아요. 특히 가까운 가족들이나 친구들한테 말을 잘 못 하고요. 그런 것들을 더 적극적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고통스러운 이야기들을 더 드러내놓고 이야기하자, 그러면 슬픔을 가진 사람들한테 위로가 되고 슬픔이 조금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의도로 쓰게 됐어요.

 

등단 전부터 요가 강의를 하셨잖아요. 지금도 강사로 일하고 계시죠?


네, 맞아요.

 

소설가에게 부업 하나쯤은 있는 게 좋다고 생각하세요?


네. 꼭 소설가라서가 아니라, 예술가들은 다 프리랜서잖아요. 수입이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는데, 적은 돈이라도 고정적으로 들어오는 급여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차이가 커요. 그렇다고 하고 있는 일을 아예 놓을 수는 없고요. 제 주변에서도 요즘 요가 지도사에 대해서 많이 물어보세요. 소설가만이 아니라 그림 그리시는 분, 노래하시는 분, 연기하시는 분들도요. 자신이 하는 일과 같이 할 수 있으면서도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어 하시는 것 같아요. 예술가 동료 중에 실제로 시작하신 분들도 있어요.

 

혹시 정유정 작가님인가요(웃음)?


정유정 작가님은 아니에요(웃음). 작가님이 운동을 오랫동안 꾸준히 해오셨는데, 요가는 올해 들어서 시작했다고 하시더라고요. 운동할 때 안 쓰는 근육을 쓰니까, 여러 가지로 몸을 쓸 수 있어서 좋다고 하시더라고요.

 

두 분이 히말라야에 다녀오신 지도 꽤 됐죠?


거의 4~5년 됐죠.

 

계속 친분을 유지하고 계신가 봐요.


네, 지금도 제일 친한 작가죠.

 

정유정 작가님이 먼저 제안하신 거였죠? 어떻게 같이 떠나게 되신 거예요?


그때 유정 선생님이  『28』이라는 소설을 쓰시고 난 뒤였는데요. 번아웃 되셨던 것 같아요. 에너지가 방전되고 뭘 써야 할지 모르겠고, 그런 느낌이 처음이셨나 봐요. 그래서 뭔가 새로운 힘을 받고 싶다는 생각으로 도전의식을 되찾기 위해서 가셨던 것 같고요. 저는 그때 등단하고 장편을 두 권 냈을 때였는데, 꿈이 이뤄진 다음에 오는 실망과 상실감, 회의감 같은 게 있었어요. 간절히 원하던 꿈이었어도 이뤄진다고 해서 항상 행복한 건 아니잖아요. 간절히 취직을 원했어도 회사에 들어가면 힘들 때가 있는 것처럼요(웃음). 그리고 생각했던 것과 실제 작가로서의 일이 다른 점이 있죠. 그냥 글만 쓰면 되는 게 아니라 여러 가지 사회관계도 계속 해야 하고. 그래서 두 번째 책을 내고 나서 ‘내가 글을 평생 쓸 수 있을까, 작가를 계속 해야 되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때는 약간 ‘글을 더 쓰고 싶지 않다’는 심정이었어요. ‘작가를 안 하면 뭘 해야 되나’ 하는 정체성 고민도 했고요. 그래서 내가 진짜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게 뭔지 다시 한 번 찾아보자는 생각으로 갔던 것 같아요.

 


가짜 같은 현실, 진짜 같은 소설


『청귤』 을 읽으면서 ‘끝까지 간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고통의 순간이든 환희의 순간이든, 에둘러 말하는 법이 없는 거예요. 쓰시면서 힘드셨을 것 같은데, 어떠셨어요?


이 책에 여섯 편의 이야기가 있는데요. 「차문디 언덕을 오르며」와 「그랑 주떼」를 제일 힘들게 썼어요. 저는 소설을 쓸 때 중심인물의 입장과 시선에서 묘사를 시작하거든요. 외부에서 바라보는 시선이 아니라, 내가 그 인물이라고 생각하면서 써요. 그러다 보니까 두 소설을 쓸 때는 너무 힘들더라고요. 쓰고 싶지 않은 부분들도 있었어요. 그런데 힘들게 쓰고 나서 느껴지는 보람이나 만족감이 더 컸던 것 같아요.

 

독자 반응도 보셨어요?


사실 저는 되게 재밌게 썼는데, 반응을 보고 조금 놀랐어요(웃음). 이전에 썼던 『제리』『정크』가 굉장히 어둡고 우울한데, 그에 비해 단편은 분량이 적고 구조도 작으니까 재밌게 써봐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야기의 이야기」의 화자도 그렇고 다른 인물들도 명랑한 아이들이라고 생각하고 썼어요. 그런데 강유정 평론가님의 해설을 받고 ‘이 소설집에서 상처와 고통이라는 부분을 크게 보셨나 보다’ 하는 생각을 했어요. 그리고 독자들 리뷰를 보거나 주변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 봐도 너무 고통스러웠다고 하시더라고요.

 

작가님은 재밌게 쓰셨는데, 독자들은 왜 고통스럽게 읽었을까요?


저는 계속 이 글을 읽고 고쳤잖아요. 언어폭력도 매일 시달리다 보면 그게 폭력인 줄 모르는 것처럼, 제가 하도 많이 읽다 보니까 그렇게 상처와 고통이 심한 소설인지 몰랐던 것 같아요(웃음). 쓸 때는 그런 거에 깊이 빠져 있지 않았어요. 「차문디 언덕을 오르며」, 「그랑 주떼」 외에는 다 즐겁게 작업한 것 같아요. 객관적으로 보면서요. 그렇게 쓰다 보니까 끝까지 감정을 밀고 나가듯이 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제 성격이, 에둘러 말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요. 직접적으로 말하는 걸 좋아하고요. 그래서 내가 사회생활에 적응을 못하는 건가, 하는 생각도 들어요(웃음). 회사 같은 데 가면 다 돌려 말하던데, 저는 의도를 모르겠더라고요(웃음).

 

안 좋은 기억이면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쓰기도 하잖아요.  『청귤』 의 인물들은 안 그래요. 작가님도 그런가요?


저도 생각 안 하려고 하는 편인 것 같아요. 묻어뒀던 감정의 응어리라든가, 그런 걸 기억하고 있으면 살기 너무 힘들죠. 특히 회사 생활하시는 분들은 상사한테 들었던 안 좋은 말을 계속 기억해서 뭐하겠어요(웃음). 빨리 털어버리려고 노력하는 거죠. 그런데 그렇게 묻어뒀던 것들이 사라지지 않고 내 안에 남아있다는 걸 알게 될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언제인가요?


글을 쓸 때랑 요가 할 때인 것 같아요. 「이야기의 이야기」가 그런 걸 비유적으로 쓴 소설인데요. 글을 쓰다 보면 내 안에 감춰놨던 감정의 응어리들이 많이 쏟아져 나오더라고요. 나도 모르게 더 깊게 쓰게 되고, 자연히 그 감정의 끝을 보게 되는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글쓰기도 나를 바라보고, 발견하고, 평상시에 쉽게 말하지 못했던 것들을 끄집어내게 만드는 하나의 매개체인 것 같아요. 요가라는 것도 결국은 나를 바라보는 행위라고 생각해요. 요가 명상 하면서 내 안에 숨겨져 있었던 진짜 욕망, 진짜 상처, 진짜 나 자신을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대부분 우리는 그렇게 못 살죠. 바빠서 그럴 시간도 없고, 감정적으로도 이미 지나간 일을 굳이 꺼내볼 필요도 없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다들 그냥 잊고 사는데, 그런 것들을 조금 더 바라보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게 우리 삶과 개개인의 존재에게 굉장히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지 못하니까 자꾸 인간의 본성을 잃어버리는 것 같아요.

 

글을 쓸수록 내 안의 이야기를 깊이 보게 된다고 하셨는데요. 내면에서 반발이 일어나지는 않나요? ‘여기까지만 이야기하자, 그것까지는 말 안 해도 될 것 같아’ 하는 거죠.


그렇지는 않아요. 저는 항상 더 솔직한 이야기, 더 깊은 이야기, 더 진실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다만, 그걸 소설적 기법이나 장치로 바꿔서 쓰는 경우는 있죠. 허구, 상징, 알레고리 같은 걸 써서 더 작품적으로 만들어낼 수는 있는 것 같아요. 중간에 멈추지는 않는 것 같고요.

 

‘이 소설은 내 경험을 바탕으로 쓴 것이다’라고 말하면서 솔직한 이야기를 쓰기란 어려울 것 같아요. ‘이건 상상해서 쓴 이야기이고, 나는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없다’라고 말할 때 보다요.


아직도 제가 현실적인 것보다는 꿈과 환상을 더 믿고 쫓는 것 같아요. 이야기가 실제인지 허구인지 선택하는 건 독자의 몫이고, 저는 그게 거짓말이라 할지라도 어딘가에 있다는 걸 믿고 싶어 하는 인간인 것 같아요. 만들어진 세계, 만들어진 인물들보다는 진짜 인물들을 토대로 쓴 소설들을 좋아하고요. 소설가가 자기 자신을 주인공으로 설정해서 쓰는 경우도 있는데, 저는 그런 소설이 되게 재밌어요. 그게 더 진짜 같다는 느낌을 주는 것 같아요. 제가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가 있다면, 이게 가짜 같지가 않고 진짜 같기 때문이에요.

 

소설이 진짜 같아서 좋다고요?


현실의 모든 일들은 거짓말 같은 거예요. 가족도 나한테 진실을 말해주지 않고, 선생님도 나한테 진리를 가르쳐주지 않아요. ‘그냥 이렇게 해, 이게 너한테 좋은 거야’ 하면서, 누가 봐도 거짓말인 거 다 아는데도, 그렇게 말하고 진실을 말해주지 않잖아요. 그런데 소설은 형식은 허구이지만 그 안에서 항상 진실한 이야기를 전해준다는 생각을 어릴 때부터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리얼리즘 소설들을 좋아했고 그러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저 자신에게서 소설적 모티프를 찾는 성향이 생긴 것 같아요. 항상 생각하는 건 ‘내가 해보지도 않은 걸 쓰지는 말자’는 거예요. 내자 잘 알지도 못하는 것을 그냥 괜찮아 보인다고 해서 혹은 유행한다고 해서 가져다 쓰는 게 아니라, 정말 내 눈으로 보고 내 머리로 생각하고 내 가슴으로 느낀 걸 쓰자는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제 안에 있는 이야기들을 더 끄집어내게 되는 것 같고요.

 

“김혜나의 소설은 육체적이다” 강유정 문학평론가가 해설에 쓴 문장인데요. 육체성에 집중하신 이유는 뭔가요? 고통을 시각적으로 생생하게 보여주기 위해서였나요?


아무래도 요가를 하다 보니까 그런 것 같아요. 요가도 신체를 다루는 일이잖아요. 손가락을 위로 하느냐 아래로 하느냐에 따라서도 신경의 반응이 달라지고 에너지의 흐름이 달라지는데, 그런 것들을 매일 수련하고 연구하다 보니까 소설을 묘사할 때도 자세하고 세밀하게 묘사하게 되는 것 같아요. 평상시에 훈련이 되어 있어서 그런 것 같은데요. 몸에서 일어나는 반응들을 더 전문적으로 쓰려는 노력도 했어요. 특히 「그랑 주떼」나 「차문디 언덕을 오르며」를 쓸 때 그랬죠. 저는 몸과 마음은 결국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평상시 몸의 반응들이 다 내 마음의 상태를 보여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육체가 흔들리면 마음도 흔들리는 거죠. 그런 부분들을 대충 묘사하지 않고 조금 자세하고 세밀하게 묘사해서, 그만큼 마음이 고통스럽다는 걸 잘 보여주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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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라는 말을 믿지 않아요


「로레나」의 ‘나’는 필리핀에서 온 외숙모 로레나에게 호감을 갖는데요. 그 감정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궁금했어요.


저와는 다른 것들에 잘 이끌리는 면이 저한테 있는 것 같아요. ‘로레나’는 ‘나’와 외모도 다르고 살아온 곳도 다르잖아요. 저 사람은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그런 게 알고 싶고 궁금하고 호기심을 유발하는 장치가 되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시선이 가고요. 그렇게 다른 것들 속에서 제가 발견할 수 있는 건, 결국 우리가 다 같은 인간이라는 한 가지 정서죠. 똑같이 마음을 가지고 있고 똑같이 살아있는 인간이고, 겉보기에는 죽어 있는 듯 보이는 사람도 분명히 어딘가에는 불씨처럼 진심이라는 게 살아있다는 것. 그런 것들을 발견하기 위해서 유심히 들여다보는 거죠. 그게 인간관계를 잘 해나가고 사람들과 소통하며 살아가는 데 도움을 주는 것 같아요. 나랑 너무 달라 보이거나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사람도 내면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이야기를 나눠보면 결국에는 우리가 다 연결돼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되잖아요. 그러면 함부로 타인에게 상처 입히지 않을 거고, 내 욕심만 생각하고 이기적으로 살아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럼으로 인해서 궁극적으로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환상을 가지고 있어요(웃음).

 

「청귤」의 미영과 지영도 상반된 타입 같잖아요. 작가님 안에는 두 사람의 모습이 다 있나요?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것과 책을 읽는다는 건, 내가 모르는 하나의 세계를 알아가는 일이잖아요. 저는 그게 거울 같다는 생각을 해요. 내가 잘 바라보지 못했던 나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인 거죠. 소설을 읽다 보면 ‘이 사람도 나처럼 아팠고 상처 받았구나, 나만 이렇게 힘든 게 아니었구나’ 싶을 때가 있고 ‘나도 이랬는데, 정말 내 감정이랑 똑같다’ 하고 공감하게 될 때가 많잖아요. 우리가 책을 ‘읽는다’고 말하는데, 읽는다는 건 깊이 있게 하나하나 들여다보는 거잖아요. 사람도 책을 읽듯이 들여다보면,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다르지만, 그 안에서 나와 같은 심리나 본성 같은 걸 찾게 되는 것 같아요. 미영과 지영의 커뮤니케이션도 서로 다른 사람 속에서 나 자신을 보게 되고 찾아가는 과정이죠.

 

소설가 지영이 이런 생각을 해요. “소설가야말로 겉보기에만 멋지고 신비로워 보일 뿐 실제로는 씹을 수도 삼킬 수도 없는 청귤 같은 존재였다” 여기에 작가님의 목소리가 담겨 있는 것, 아닌가요(웃음)?


네, 아무래도 「청귤」에는 제가 작가 생활 하면서 현실적으로 느꼈던 부분들을 의도적으로 쓰고 싶었어요.

 

작가로서 느끼는 바를 한 번쯤 이야기하고 싶으셨어요?


그런 것 같아요(웃음). 작가의 생활이 어떤 건지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잖아요. 워낙 작가들이 소수이기도 하고, 그래서 그런지 제 주변 분들은 되게 환상을 가지고 보시더라고요. 그런데 겉보기에 좋아 보여도 막상 들여다보면 안 힘든 사람 없잖아요. 그런 것들을 소설을 통해서 한 번 말해보고 싶다고 생각해서 일부러 넣게 됐어요. 편집자랑 나누는 대화부터 시작해서 문예지는 점점 줄고 청탁은 점점 없어지는 이야기도 일부러 쓰게 됐어요. 그리고 소설가라는 직업은 조금 특수한 면이 있는 게, 주변의 동료 작가들이 다 그런데요, 이게 직업이냐 아니냐의 논쟁이 항상 있어요.

 

이유가 뭔가요?


소설가는 직업이라고 하는데 봉급이 없잖아요. 물론 고료를 받을 때도 있지만 안 받을 때도 있고, 인세가 들어올 때도 있지만 안 들어올 때가 더 많고요. 그래서 ‘정해진 벌이가 없는데 이걸 직업이라고 말할 수 있나’라는 고민들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저도 ‘소설가라는 직업은 뭘까’라는 고민들을 하게 됐고요. 사람들은 작가라고 하면 환상을 가지고 대단한 일을 하신다고 하는데(웃음), 사실 소설가들 안에서는 자괴감이 되게 큰 것 같아요. 내가 돈벌이를 못한다는 것에 대한 자괴감이라고 할까요.

 

소설가가 감귤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청귤과 다르지 않다는 건, 언제 처음 느끼셨어요?


전자책이 확산되고 출판 시장이 축소되면서, 그쯤부터 느낀 것 같아요. 출판시장에 위기가 왔을 때 가장 먼저 축소시키는 게 한국 문학이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명성과 허울만 남았을 뿐이고 실체는 되게 보잘 것 없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됐죠. 그런데 제가 작가의 생활에 대해서 소설에 쓴 이유는, 작가들이 사는 게 이렇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보다는, 결국 모든 사람들이 이렇다는 걸 말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돈을 많이 번다고 해서 행복한 것도 아니고, 원하는 걸 가진다고 해서 그게 곧 행복한 삶을 보장하는 건 아니잖아요. 사는 건 누구나 똑같이 힘들고 불편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가 서로를 연결해주고 위로해주고 공감해주잖아요. 그 정서 하나로 우리가 계속 삶을 버티면서 살아가는 것 아닌가 싶어요. 그런 걸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작가님은 지금 ‘감귤’인가요(웃음)?


청귤이나 감귤 사이에 본질적으로 별 차이가 없다는 게 제 생각인 것 같아요. 우리 다 똑같은 인간이잖아요. 사실 저는 용서라는 말을 잘 안 믿어요. 그 단어 자체가 성립이 잘 안 된다고 생각해요. 누가 누굴 용서해요. 결국은 우리 다 똑같은 인간인데. 누군가 나에게 상처를 주고 괴롭히고 나쁜 짓을 했어도 우리는 그 사람을 용서할 수 없죠. 용서가 되지도 않고요. 용서하려는 시도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나에게 나쁘게 했던 사람이 있어도, 나도 그 사람과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나도 누군가에게 똑같이 상처 주고 있고 나로 인해 상처 받는 사람이 분명히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걸, 저도 되게 늦게 알았던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다 똑같은 피해자이고 가해자이고, 다 똑같은 청귤이고 감귤인 거죠. 그걸 느끼고 알게 되면 사람들에게 덜 상처 받게 되고 덜 화나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차문디 언덕을 오르며」의 ‘메이’는 유독 안쓰러운 인물이었어요. 아직도 어두운 시간 속에 있는 것 같았거든요.


지금 제가 가장 집중해 있는 인물은 ‘메이’예요. 그 소설을 올해 1~2월에 썼는데, 실제로 인도에 있을 때 썼어요. 현재 구상중인 장편소설이 「차문디 언덕을 오르며」의 확장판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인도에서 일어나는 사랑 이야기와 힌두 신화들이 버무려진 소설을 쓰고 있는데요. 그게 쓰고 싶어서 일단 단편으로 써본 거예요. 지금 계속 구상중이고 ‘메이’라는 인물에 빠져 있어요.

 

읽는 동안 ‘메이’가 가지고 있는 사랑의 기억, 사건이 계속 궁금했는데요. 언제 만날 수 있나요?


이번에 인도에 가면 쓰려고 해요.

 

언제 가세요?


내년 1~3월 동안 있을 것 같아요.

 

요가 학교에 계시는 거죠?


네. 수업이 주로 오전에만 있어서요. 오후에는 작품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일부러 가는 면도 있어요(웃음). 외국에 있을 때 긴 시간 동안 집중해서 쓰기 좋은 것 같아요.


 

 

청귤김혜나 저 | 은행나무
자신이 떠안고 있는 상처로 인해 누구보다도 고통스럽고 절망적인 삶을 살아가지만 그 고통과 절망을 딛고 피투성이가 된 발을 힘겹게 떼며 한 걸음씩 걸어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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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국화, 김현식, 시인과 촌장 뒤에는 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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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진, 김현식, 들국화, 봄여름가을겨울, 빛과 소금, 어떤 날, 장필순, 이소라, 푸른 하늘, 한동준, 박학기... 이 이름들로 뭘 더 언급해야 할까. 1980년대의 대한민국에서 오버그라운드와 언더그라운드, 어디든 가리지 않고 인기를 날리던 사람들이다. 이들을 모아놓고 한 자리에 중첩시키면 확연히 나타나는 교집합이 있다. 동아기획. 위대한 저들은 바로 동아기획을 배경으로 두고 세상에 등장한 뮤지션들이다. 과거 속히 좀 듣는다고 하는 음악광들은 다들 동아기획 산(産)음반을 들으며 세월을 거쳐 온 셈이다.

 

동아기획은 늘 선두에서 실력 있는 아티스트들을 배출했고 그 때마다 음악의 판도를 바꿔온 1980년대 K팝의 산실이다. 그 동아기획이 가는 길이 곧 우리나라 대중음악의 큰 운명이었으니 이들이 걸었던 발자취는 곧 전설의 행보다. 그럼 이 전설을 만든 '보스'는 과연 누구였을까. 이 세계에서 전설의 주인공은 뮤지션의 얼굴을 달고 나온 이들이 대부분이지만 그들이 역사의 페이지를 장식할 수 있게끔 지원하고 이끈 보이지 않는 진짜 주인공도 존재한다. 동아기획의 대장으로 통한 김영 사장이다. 서울 여의도 한 빌딩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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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입니다. 사장님 입장에서 보시는 7080이란.


이 세대는 듣는 귀나 분별력이 지금 10대, 20대보다 뛰어납니다. 왜냐하면 한국의 팝송세대가 바로 그 사람들입니다. 1970년대와 1980년대, 적어도 1990년대 초까지 내려오며 팝을 미친 듯이 듣던 젊은 세대란 말이죠. 그 사람들은 귀가 열려있어요. 그 사람들에게 시장으로 접근하는 게 이제 숙제입니다. 10대, 20대 때 팝이든 클래식이든 재즈든 민요든 국악이든 닥치는 대로 섭렵하고 듣는 사람들과 아이돌 음악만 듣고 자라는 사람들과 감성이 비교가 될까요.

 

아무래도 기획 얘기가 나와서 말입니다. 동아기획도 역시 상기하신 명작들만 취급하는 그 방침으로 운영되어 왔지요. 바로 그 부분이 역사적 인정을 받기도 했고요. 이 인정을 받게 해준 명작을 꼽으신다면.

딱 하나 뽑으면 '들국화'죠.

 

1985년 그 해에 나와서 대박을 쳤죠. 그때쯤 부도 위기가 있었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아니에요... 경제적인 문제는 오히려 뜻밖의 질문이에요.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어요. 경제적인 얘기라 하면 전 늘 부자였습니다. 오히려 전 혜택을 많이 받았죠. 1974년에, 무려 그 시대에 전 제 차가 있었고 운전기사가 있었어요.

 

1974년 그 해가 동아기획이 출범한 해입니까.


아뇨, 그건 나중의 일이죠. 생각해보면 서울 시내에 차도 별로 없을 때에요. 그 해에 전 기사도 있었고 차도 있었으니 부자였던 거죠. 그런데 왜 제가 앞서 '들국화'를 포인트로 꼽았냐하면, 사람들이 모르는 그 전의 이야기가 있어요. 동아기획에서 낸 첫 음반이 1984년에 만든 조동진, 김현식, 우순실의 앨범들이에요. 냈을 때 안 터졌습니다. 좀 나중에 뜬 거죠.

 

그럼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제가 늘 다른 길을 생각했어요. 사실은 그 세 음반이 나온 줄 아무도 몰랐을 겁니다. 홍보를 아예 안 했어요. 그러니까 첫째로 방송국에 음반을 안 돌렸어요. PD가 틀고 안 틀고를 떠나서 적어도 어느 정도 로비를 해야 홍보 효과가 나오는 건데, 전 절대 하지 않았습니다. 이건 애초부터 스스로 했던 생각이에요. 저와의 약속이고, 제가 지키는 거죠. 그러니 방송에 나올 리가 있겠습니까. 홍보도 덩달아 안 되죠.

 

심의도 안 냈다는 건데요.


그렇죠. 방송국에 안 줬으니까. 기본적으로 알릴 길이 없는 거예요. 모색했던 다른 방법이 여기서 시작하는 겁니다. 아까 말씀드렸듯이 경제적으로 전 무리가 없던 사람이에요. 그때 제가 했던 게 뭐냐면 서울에서 제주도까지 레코드 가게라는 간판이 붙어있는 곳곳을 차타고 정처 없이 돌아다니는 겁니다. 가보면 대부분 레코드 가게에 조동진이나 김현식이나 우순실이 없거든요. 그럼 박카스 한통 들고 찾아가서 하나씩만 진열대에 꽂아만 주십시오, 부탁을 해요. 뭐 안 팔리면 반품처리하면 되니까. 그렇게 다 꽂아주며 돌죠. 그러고 나면 한 번 더 돌아요. 이번에는 하나만 틀어 주십사, 하고 말이죠. 그렇게 전국을 다 다녔습니다. 관건은 이거에요. 하나는 진열대에 꽂혀있나, 다른 하나는 가게 스피커로 틀어 놓나.

 

방송국이 아니라 음반 가게를 뚫는 작업이었군요.


레코드 가게 말고 하나 더 뚫는 곳이 있습니다. 1980년대 하면 그나마 음악다방이 많이 있잖아요. 성황이라곤 할 순 없다만, 서울 종로통에는 확실히 있었죠. 그러면 그 음악다방 DJ들에게 또 부탁하는 겁니다. 거기선 더 간단하죠. 파는 일이 없이 틀기만 하면 되잖아요. 음반 가게는 진열, 재생, 확인 작업까지 세 번 가야한다면 다방은 대개 한 번에 되요. 차 한 잔까지 같이 하고 나면 확실해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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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1984년의 일이었던 거죠.


그러고 1985년이 왔죠. 그 가을에 '들국화'를 냅니다. 1984년에 조동진, 김현식, 우순실 셋을 냈는데 알려진 게 전무하잖아요. 전국 소매점에서나 틀고 비교적 잘 알려진 음악다방에서 틀고 그게 끝이죠. 이 현상은 들국화 낼 때까지 지속되고요. 그런데 그쯤 되어서, 그러니까 1985년 가을 직전의 1년 정도, 그 사이에 뭐가 바뀝니다. 귀 밝은 PD들이 제 사무실로 찾아오더라고요. "아 김 사장! 음반 냈다며? 나 좀 듣게 줘봐!" 하면서 몇 장씩 가져가죠. 방송에서 틀기 시작합디다. 그러면 부산, 대구, 광주 등 해서 전화가 와요. 음반 왜 안 보내 주냐는 전화죠. 애초에 제가 보내주질 않았으니. (웃음) 그것도 따지듯이 말을 합니다. 방송국들이 그렇게 강압적으로 나왔어요. 그럼 전 더 세게 나가요. 그럼 보내줄 테니까 한 번씩 트는 데 200씩 줄래? 이런 날강도 새끼가 어디 있어. (웃음)

 

동아기획 출신들은 유독 얼굴 없는 가수로 이름을 알렸습니다. 들국화가 대표적이었죠. 방송에 출연시키지 않는다는 계약 조건이 그 이유인데, 여기에 대해서는 이야기가 없습니까. 소속 아티스트들의 반대와 같은 것들 말이죠.


예전부터 원칙이었으니까요. 또 그게 그 친구들이 원하는 거였습니다. 들국화가 그랬어요. "우린 방송하지 않는다. 우린 예전부터 방송하길 원치 않았다. (김영) 대장이 하라고 해도 안 할 거다!" 이게 당연한 거죠. 내가 하지 않겠다고 처음부터 애기했으니까. 어쩌면 그런 쪽으로는 들국화가 더 깊게 생각한 걸 수도 있어요.

 

전국 순회 자체 홍보는 언제까지 했습니까.


그것도 그쯤이었죠. 어느 날은 제가 먼저 지치는 겁니다. 매번 전국 소매상 돌고 음악다방 찾아가는 게. 몸이 피곤한 일이잖아요. 고생이죠. 그래서 들국화랑 상의했죠. 이제는 조금 힘들다.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을까. 들국화가 말을 꺼냈습니다. 우린 공연하면 됩니다. 이게 또 다른 숙제가 된 겁니다. 당시에는 우리나라에 콘서트라는 용어가 없었어요. 극장 쇼나 리사이틀이라는 형태는 있었는데 콘서트는 없었던 겁니다. 물론 공연은 알고 있습니다. 세션도 붙이고 조명도 붙이고 그 정도를 모르겠습니까. 그런데 콘서트는 새로운 마음으로 보게 된 거에요. 전혀 새로운 세계,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작업이란 말이죠. 부족한 정보를 퀸(Queen) 라이브 공연 실황 같이 낡아빠진 비디오로 돌려보면서 채웠어요. 어떻게 구성하고 어떻게 진행되나. 눈이 빠지게 봤죠. 그리고 난 뒤 콘서트를 가졌습니다. (서울 대학로) 샘터파랑새에서 했어요. 한 달 치 대관을 미리 내준 계약으로. 경제는 됐다고 했잖아요. 이제 무대만 올리면 되는 겁니다.

 

그러고 들국화가 터졌죠.


이게 말도 안 되는 얘기야. 한 달도 안 돼서 터졌어요. 9월에 콘서트를 했는데 10월에 터진 거야. 1984년 조동진, 김현식, 우순실은 안 터졌는데 콘서트를 하고 나서 이놈의 들국화는 터져버린 거야. 이제 주문이 쇄도하죠. 그러고 혼자 남산 팔각정에 올라갔어요. 올라가면 딱 서울 시내가 보이잖아요. 거기다 대고 오줌을 누면서 속으로 '야 이 새끼들아 내가 해냈다. 내가 해냈다!!' 그 감동은 정말... 나만 아는 거예요. 그런데 말입니다. 세상은 참 알 수 없어요. 들국화가 터지니까 (김)현식이가 다시 터진 거예요. 순서가 그렇게 됩니다. 전에 1984년에 냈던 게. '사랑했어요'죠. 1985년 말, 1986년 초지요.

 

동아기획의 전성기가 시작되는 거죠. 1986년 전후로 사람들이 동아기획 음반은 거의 다 샀습니다.


그쯤부터 또 새로 시작한 일이, 이게 한국 음반 역사상 최초입니다. 음반에다 '패밀리 카드'를 만들어 넣었어요. 아, 사실 1984년부터 했네요. 그 때 현식이 음반에도 패밀리 카드가 있었죠. 들국화에도 있었고. LP 판이 있고 속지가 있잖아요. 가사집이나. 여기에 별개로 A4 용지 사이즈로 해다가 엽서를 넣었어요. 그럼 질문들도 같이 수록시키는 거죠. 왜 샀습니까, 어디서 샀습니까, 음악은 어떤가요. 이 패밀리 카드도 들국화가 터지고 나서 덩달아 밀려들어옵니다. 제 기억으로는 1987년, 1988년 쯤 회원이 5만이 넘었어요. 이러면 방식이 또 하나 나오게 된 셈입니다. 누구든 신보를 낼 때면 패밀리 회원들에게 사전 편지를 보내요. 몇 월에 '시인과 촌장'이 나온다, 또 몇 월엔 장필순이 나온다. 신보 안내를 보내는 겁니다. 이러면 나만의 시장이 새롭게 열리게 되죠. 노래가 한 번도 안 나오고 방송도 안 탄 상황에서 패밀리 회원들이 발매일 맞춰 막 사기 시작하는 거예요. 한영애, 어떤 날, 장필순 등등 대부분 패밀리 회원제 혜택을 받았죠.

 

당시 아티스트들 계약할 때 단 한 번도 오디션을 안 봤다고 들었습니다.


예. 맞습니다. (딱 보면 아는 건가요? 하자 바로) 예! (웃음) 저절로 된 건 아니겠죠. 여기에는 또 잘 모르시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1974년부터 차가 있고 기사가 있다고 했죠. 이게 제가 벌어 만든 자금들입니다. 뭐라 해야 하나. 표현이 이상한데, 고등학생 때부터 제가 프로 기타리스트였어요.

 

원래 뮤지션이었나요?


예. 그렇죠. 1968년부터 1975년까지 우리나라에 통기타 붐이 불잖아요. 심지어 통기타 못 치면 간첩이라고도 할 정도에요. 송창식 윤형주 뭐 이런 사람들 많지 않았습니까. 그 때부터 제가 기타 학원을 열어서 돈을 벌었습니다. 떼돈을 벌었죠. 뭐 기업이나 재벌 개념에 빗대면 뭐 말도 안 되지만 그 연령 때의 똑같은 젊은이들과 비교하면 상상도 못 할 돈을 만졌습니다. 그러고 나서 1975년 그 해 대마초 파동이 터지죠. 그렇게 통기타 부대가 구속되고 몰락해요. 붐도 같이 식죠. 그 때 음반을 꽤 만들었어요.

 

운영했던 광화문 소재 음반 가게 '박지영 레코드'는 언제 낸 겁니까?


그게 1978년입니다. (박지영이 누굽니까) 집사람이죠. 1978년부터 1982년까지. 한 번 봅시다. 프로 뮤지션이라 했잖아요. 78년까지 기타 학원을 했습니다. 중간에는 음반 가게 박지영 레코드도 냈고요. 직후에 공부를 엄청 했어요. 현장공부를 한 겁니다. 이게 대단히 중요한 포인트에요. 두 가지 장점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음반 가게를 하며 좋은 게, 그 시대의 웬만한 음악들은 다 듣게 된다는 점이죠. 두 번째로 이게 더 중요해요. 시장을 알기 위해 매일 오는 손님들 못해도 손님 열 명 정도는 간단이라도 인터뷰 했다는 거예요. 이 음반을 왜 삽니까, 뭐가 좋아서 삽니까. 그걸 4년 동안 했습니다.

 

어떤 음악이 먹히고, 어떻게 팔아야하고.


그걸 다 알게 된 거죠. 정리가 되는 겁니다. 동시에 들었던 생각은... 사실 말도 안 될 수도 있지만 웃지 마세요! 제 마음 속에 크게 들었던 마음이 애국심이었다는 겁니다. 이게 또 다른 숙제였어요. 음반을 팔던 그 때를 다시 들여 보자고요. 8대 2나 9대 1 정도로 팝이나 클래식이 훨씬 팔리던 시기에요. 가요를 누가 삽니까. 이 대목이 제게 충격이었어요. 왜 가요는 안 팔릴까요. 공부를 해보니까 너무 뒤떨어지는 겁니다, 가게에도 제가 음반을 틀어놓잖아요. 비틀스도 틀고 비지스도 틀고 사이먼 앤 가펑클도 틀고. 한참을 틀다가 한국 음반을 틀어보면.

 

차이가 나죠.


무진장 나는 거야. 내가 다 창피할 정도로. 여기서 의식화가 된 거 같아요. 그러면서 이 판을 바꿔야한다 생각한 거죠. 미친 일이죠. 고민이 생기더라고요. 음악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하는 문제. 답은 빨리 나왔어요. 완성도 있게 만들자는 겁니다. 말은 간단하죠. 이제는 어떻게 할까? 에서 또 막혀요. 편곡, 프로듀싱, 레코딩 이런 모든 게 총망라되어야 하잖아요. 한국은 일단 스튜디오 상태도 많이 뒤떨어져 있단 말입니다. 우리나라가 8 채널로 녹음하고 있을 때 미국은 32 채널로 돌렸어요. 기술뿐만이 아니라 연주, 편곡 같은 실력 면에서도 창피하죠. 하지만 이건 꼭 해야 하는 일이에요. 그러니 늘 선택을 해야 합니다. 세션도 골라 하고 녹음실도 찾아해야죠. 시간도 그만큼 많이 들여야 하고 돈에 정성까지 엄청 쏟았어요.

 

자주 찾은 스튜디오는 어딥니까.


서울 스튜디오(동부이촌동 소재)죠. 최(세영) 사장 있을 때입니다. 약간 달리 봤던 건, 전 작업은 늘 일류를 고집했어요. 세션이나 편곡자, 스튜디오뿐만 아니라 인쇄소와 사진, 디자인 모두 일류여야 했어요. 그래야 제대로 된 게 나올 거 아닙니까. 만들어 놓고도 예를 들어 들국화와 당시 딴 가요 음반들을 비교해보면 확실히 차이가 나는 거예요. 우리 식으로 얘기하면 우리 음반은 미국 것이라 할 수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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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었던 음반 중에서 제일 매혹적이었던 작품은 뭐였나요.


제일?

 

아뇨. 여럿 꼽아도 됩니다. 들국화도 충격이었고 한영애의 '여울목'도 쇼크였을 거고, 푸른하늘 1집도 대단했고요.


그런 건 평론가들이 해주세요. (웃음) 내가 하긴 뭐 하잖아.

 

결정적인 순간엔 다 피하시네요. (웃음)


아니 그게 아니라, 하도 많은 사람들 음반을 내주다 보니 누구라 예를 들 수 없어요. 아닌 사람들이 얼마나 섭섭하겠습니까. 다들 대단했어요.

 

이번에 미공개 곡으로 꾸린 김현식 앨범이 나왔습니다. 어떻게 보면 김현식 편애라고도 할 수 있을까요? 김현식에게 빚을 많이 졌다는 느낌도 받았어요.


아, 그거는요, 전에 어디 인터뷰에서도 했던 말이 있어요. 음... 그냥 간단히 정리해서 '김영이 가장 아끼는 사람이 누구냐'하고 물으면 김현식입니다.

 

진짜 뮤지션이라 생각해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것도 포함되고요, 그것보다는 현식이는 진짜 남자였습니다. 마초라는 의미와는 다른 걸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현식이하면 가장 좋은 점은 의리입니다. 의리.

 

김장훈과 이소라까지, 최근에 한 걸 포함하면 동아기획 누적 음반판매량이 얼마나 됩니까.


몰라요. (대충도 모르시나요?) 한번은 따져 봐야겠다고 생각은 했는데 모두 따져본 적은 없어요.

 

가장 많이 팔린 건 김현식이었죠.


네. '내 사랑 내 곁에'가 300만 이상 팔렸습니다. 1991년이었죠. 또 1995년에 이소라로 100만 장을 팔았어요. 그렇게 딱 두 장이 100만 이상 팔았네요.

 

들국화도 못 했던 기록입니다.


못 했던 기록이에요. 그런데 시장의 규모를 시대별로 비교해봐야 합니다. 들국화 때는 시장 규모가 상당히 작았어요. 그러니 그 전인 1980년대 초는 어땠겠어요. 5만 장만 나가도 성공했다고들 해요. 이게 1985년 이후로 매해 바뀝니다. 1985년 성공 기준이 10만 장이라고 하면 다음 해에는 20만이 되고 그 다음 해에는 30만이 되죠. 아까 말씀드렸죠. 가요 판매고가 팝을 앞지르던 시기. 그게 이때입니다. '푸른 하늘'도 6집까지 만들면서 30만 이하로 팔린 게 없어요. 35만이 될 수도 있고 50만이 될 수도 있는데 아래로 리미트 30만이라는 겁니다.

 

동아기획이 시장 흐름의 축이었네요.


오해를 살 대목이기도 합니다. 1980년대와 1990년대 사이, 음반 시장이 커지는 그 흐름에 디딤돌을 놓았다고 봐도 돼요. 그 때 제가 음반 시세를 좌우했어요. 동아기획에서 소비자 음반 가격을 2000원으로 정해 놓잖아요. 그럼 다른 기획사들은 1800원에 내놔요. 또 2200원에 내놓으면 뒤 이어 2000원에 내놓고. 내가 출고가를 정하면 총알받이 되기 싫은 사람들이 뒤를 따라오는 형식입니다. 그렇게 시장이 움직였어요. 그래요. 들국화 얘기가 나왔으니까, 1995년에 들국화가 나왔다면 150만까지도 팔렸을 겁니다.

 

장악을 했다고도 할 수 있죠. 그 이후로 어려웠던 시기는 없었습니까. 1992년 봄여름가을겨울 이후로 꺾이지 않았나요.


그런 건 없었어요. 전혀. 오히려 전 잘 나갔죠. 1992년이 굉장히 중요한 해라고 할 수 있어요. 1991년 8월까지 현식이 '내 사랑 내 곁에'가 30만 장 나갔어요. 그러다가 92년 연말까지 갑자기 300만이 나간 겁니다. 그때 광화문 사옥 옥상에 올라가서 현식이랑 이렇게 얘기했어요. “현식아, 그만하자.” 하늘 쳐다보면서요. 그만 팔자는 뜻이죠. 그리고 하나 더 말을 했어요. “이제 1년 동안 쉬자.” 왜 그랬을까요. 아까 제가 스스로 한국 음반 산업의 대표자처럼도 생각했다 했잖아요. 동시에 들었던 생각은 현식이를 아무도 못 넘는다는 거였어요. 너무 높으니까요. 소매상 수금을 제가 제일 많이 했습니다. 가져갈 판이 없어 미안할 정도였어요.

 

너무 잘 나갔으니까요.


그때 서태지가 등장하죠. 여기서 하나 보셔야 할 것은 방송 순위는 다 가짜입니다. 기획자 입장에서 진짜로 보이는 것은 도소매상에 판매되는 숫자에요. 그렇게 봤을 때, 시장을 딱 보면 현식이가 다 덮고 있는 모양입니다. 아무도 못 뚫어요. 시장이 바뀌려면 현식이가 그만해야 하고 다음으로 제가 신보를 그만 내야해요. 그래서 1992년에 현식이와 결심을 했다는 겁니다. 저도 모든 음반을 멈췄어요. 김현철 '그대 안의 블루'는 영화에 쓰일 곡이니까 당장 내지만 봄여름가을겨울이니 누구니 하는 음반은 다 그만했죠. 어차피 내 마음이니까. 대장이 하라니까 또 다들 그만 하는구나 해요. 속뜻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그러고 나서 서태지가 터지고 신승훈이 올라왔어요. 반가운 거죠. 박수를 쳤습니다.

 

그렇게 판이 바뀌었죠.


그런데 1993년 되어선 생각이 바뀌었어요. 그 전까지는 음악 장르나 유형의 시대가 빠르게 바뀌었어요. 들국화가 시대를 열면 밴드가 나오고 현식이나 소라가 시대를 열면 또 솔로 가수들이 뒤이어 나오죠. 동아기획 안에서 신촌블루스가 열고 나오면 부활, 시나위, 백두산, 송골매, 이렇게 안 보이는 그룹들이 쭉 등장해요. 이제 서태지를 봅시다. 서태지가 새로운 시대를 열었어요. 그러고 나서는 댄스 가수들이 수두룩하게 쏟아졌습니다. 쏟아지는 양을 봐서는 도저히 다른 시대가 올라올 여유가 보이질 않아요. 여기서는 위기를 느꼈습니다. 내가 스톱을 한 건 잘 된 일인데, 그 다음 상황은 아 이건 안 되겠구나 하는 거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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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김현식이 죽고 나서 엄청난 앨범판매고를 기록했지요. 사람들이 왜 그렇게 김현식 앨범을 좋아했을까요.


두 가지죠. 하나는 아까운 사람이 세상을 서른둘에 떠났다는 아쉬움. 그 다음은 '내 사랑 내 곁에'가 담고 있는 혼, 혼이랄까. 그 소리가 지금도... 아마 나중도 마찬가지 일거예요. 바이올린 인트로를 듣고 있으면 뭉클하게 오는 뭔가가 있어요. 인트로에서부터 잡는 음악 별로 없어요. 모든 음악이 그럴 순 없습니다. 그런데 '내 사랑 내 곁에'는 달라요. 그렇게 노래가 시작하면 현식이가 목소리로 뱉죠.

 

녹음은 언제였나요.


녹음은 1989년에 했습니다. 여기도 비화가 있어요. 현식이는 보컬이 되는 사람이에요. 보컬을 찍어내며 녹음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건 해당되지 않고. 완(完)창할 수 있는 사람, 현식이가 그랬어요. 스튜디오에서 최사장이랑 제가 지켜보고 현식이가 들어가서 노래를 부릅니다. 한 번 부르고 노래의 흐름을 알아야하니 한 번 또 불러요. 그러면 대강 다 익히거든요. 그러고 이제 나와서 담배를 피든 소주를 마시든 합니다. 제가 얘기하죠. 이건 그냥 연습이다. 녹음 들어가는 게 아니란 의미에요. 그러고 다시 들여보내면 맘 가는대로 불러요. 이때부터 엔지니어랑 제가 초긴장을 합니다. 현식이 모르게 녹음을 뽑아내는 거예요. 가장 좋은 상태로 가는 거죠. 현식이는 모르지만 나랑 기사는 느낌을 딱 받는 겁니다.

 

그러고 나면 녹음하자고 다시 나올 거 아닙니까.


그렇죠. 현식이는 이제 녹음해도 되냐면서 나오는 거죠. 하지만 저랑 엔지니어 둘은 이미 녹음을 끝낸 상태입니다. 다시 들어가서 이제 시작하는구나 하고 노래 부르면 그때는 대강 전체의 느낌을 봐요. 그러면 끝입니다. 대장이 됐다고 하면 된 거죠 하고 끝내는 거예요. 이게 평소 녹음할 때 현식이입니다.

 

그럼 '내 사랑 내 곁에'는 달랐나요?


더 부르겠대요. 나랑 최세영씨는 다 끝냈어요. 그런데 걔는 시도 때도 없이 녹음한 거예요. 사실 보컬 혹사하면 안 되잖아요. 넉넉잡아 세 시간 하면 힘들거든요. 어떡합니까. 자기가 하겠다는데. 제 입장에서도 녹음은 끝났지만 더 좋은 게 나올 수 있으니. 좋은 게 매일 나오는 게 아니잖아요.

 

녹음은 1989년에, 발매는 6집에 수록되며 1991년에 됐습니다.


타이틀곡 선정은 100 퍼센트 제가 결정합니다. 원래대로라면 '내 사랑 내 곁에'도 '넋두리'와 함께 5집에 실렸어야죠. 그런데 그 때 생각했던 건 '내 사랑 내 곁에'는 6집 레퍼토리로 쓰자하는 거였어요. '추억 만들기'도 그렇고요. '내 사랑 내 곁에'는 너무 잘 녹음됐어요. 타이틀이 될 수도 있었고요. 하지만 수록시키지 않은 상태로 5집을 다 끝냈죠. 믹싱이며 레코드며. 그렇게 일찍 세상을 떠날 줄은 몰랐어요.

 

새 음반이 나왔습니다. 어떤 경위로 나오게 되었나요.


말씀드렸듯 1992년 현식이한테 제가 그만하자 했잖아요. 얼마 전까지도 전 그걸로 얘기가 다 된 줄 알았습니다. 끝이었죠. 여느 때랑 마찬가지로 길을 걷는데 갑자기 현식이 목소리가 들리더라고요. “대장, 왜 내꺼 안 내.” 딱 그거였어요. “대장 왜 내꺼 안 내.” 그런데 오늘 현실을 보면 음반 시장이 이미 죽어있어요. 게다가 녹음된 노래들이 카세트잖아요. 디지털도 아니고 아날로그도 아니고 아예 카세트다 보니 소리를 잡아내려면 보통 일이 아닌 겁니다. 그렇게 계속 미루고 미루는데 현식이가 그 얘기를 하네. 왜 안 내냐고. 마스터링하러 갖다 줬어요. 카세트를 CD로 떠서 들어봤는데 이게 대책이 서질 않아요. 결국 모든 문제는 이 소리들을 어떻게 살려내느냐. 여기서 시작했습니다.

 

앨범 반응은 어떻습니까.

 

초토화된 음반 시장 속에서도 대강 판매량이 10위권은 됩니다. 그렇게 보면 전 행복한 거죠. 그런데 전 다른 그림이 있어요. 그 정도 양이 팔리면 제겐 또 부족한 결과에요. 하지만 전 다른 그림을 그립니다.

 

다른 그림이라면.


아직 안 끝났어요. 이 그림은 총 3막짜리입니다. 지난해 10월, 언론을 통한 홍보가 첫 시작이에요. 그리고 2막은 SBS에서 12월 방영한 김현식 다큐멘터리지요.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김현식을 소재로 뮤지컬과 드라마를 만들 거예요. 올해 될 것 같습니다.

 

1980년대, 1990년대 초반까지 만든 동아기획들의 음반들, 이걸 저희는 시대의 소리였다고 규정하고 싶습니다. 허나 이건 어디까지나 저희 생각이죠. 대표님께서 스스로 생각하시는 업적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새로운 시장을 연 것, 시장을... 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인터뷰 : 임진모, 이수호
정리 : 이수호
사진 : 이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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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친해지고 싶은 사람과 술 마시러 가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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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생각보다 재빠르게 훌훌 넘어갔다. 새내기를 지나 대학을 졸업하고 회사에 취직했다. 서른 살이 훌쩍 넘어버렸다. 지갑에는 현금과 신용카드가 제법 그럴싸하게 채워졌다. 이도 저도 아닌 탐욕에 빠져 허우적대며 긁어댄 할부 결제로 빚진 인생이 시작되긴 했지만, 더 이상 종이컵에 소주를 마실 일은 없어졌다. 그렇게 지나버린 가난의 행복을 잊고 술을 마시게 되었다. 행복을 잃어 가난해진 기분이었다. (하련, 29쪽)

 

우울할 때 술은 약인데, 우울함의 정체를 모르니 술이 독이 됐다. (재은, 189쪽)

 

취하지 않고서야 할 수 없는 말들이 많아요. 그래서 나는 오늘도 또 취하고, 한참을 취하고 나서야 늦게, 보고 싶다는 말을 짧게 남겨요. 올여름 비가 내리는 날에 함께 술 한잔 기울이면 좋겠어요. 이번엔 조금만. 또다시 여름이네요. 곧 봐요. (현경, 224쪽)

 

술과 글을 참 좋아하는 세 사람이 우연히 만났다. 당연히 술에 관한 글을 쓰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책이  『취하지 않고서야』다. 우울증 수기집 『아무것도 할 수 없는』을 쓴 김현경, 『유통기한이 지난 시간들을 보냈다』의 장하련, 『모든 순간의 너에게』의 재은, 세 필자가 술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2018년 초여름에 독립출판물로 발간된 이 글은 같은 해 10월에 흔 출판사에서 다시 출간되었다. 당신이 젊은 사람들과 술자리에 끼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부장님이라면, 술이라곤 맥주 한 잔만 마셔도 취해서 대체 저렇게 맛도 없는 술을 왜 부어라 마셔라 취하는지 모르겠다면, 다른 사람들은 술 마시면서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하다면,  『취하지 않고서야』에서 답을 찾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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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경

 

 

궁금하다, 술의 매력

 

독립출판물로 먼저 나온 뒤에 흔 출판사에서 나왔는데요. 어떤 게 바뀌었나요?

 

하련 : 분량을 각자 추가로 했고요. 그거 말곤 특별히 바뀐 건 없어요. 표지도 그대로 갔어요. 판형이 좀 더 커졌네요.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를 펴낸 흔의 두 번째 책이 이 책이 되었는데요. 사연이 궁금합니다.
 
재은 : 흔님이랑 커뮤니티에서 만나 알던 사이였는데, 연락을 받았어요. 술 좋아하는 자기 같은 사람이 많이 읽으면 좋겠다면서 내자고 했죠. 이 책의 독자가 내고 싶어하니까 좋았죠.


하련 :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만큼 할 수 있을까, 하는 부담감도 있었죠.

 

정보보다는 감성이 주인 에세이잖아요. 이 책에서 어떤 정서를 담고 싶었나요.
 
재은 : 같이 마시는 사람, 내가 좋아하는 사람, 누구에 관한 이야기, 다정함에 관해 썼어요.


하련 : 정해놓고 쓴 건 아니었는데, 쓰다 보니 그리움이 많이 들어갔네요. 나이 들어서 못 만나는 친구도 있고, 20대 함께 했던 친구에 관한 기억이 많더라고요.


현경 : 저는 이 두 분과 다른 게, 기획자 입장에서 썼거든요. 두 분에게는 마음대로 써주세요, 했고 저는 겹치지 않게 다양한 걸 쓰려고 했어요. 몇월의 어떤 술, 이렇게 맞춰 썼어요. 계절별 술과 사람, 이렇게 다양하게 쓰려 노력한 거라 어쩌면 재미 없을 수도 있어요.
 
이 책의 주제이기도 할 텐데요. 술이 지닌 매력은 뭘까요?
 
현경 : 술을 안 마시면 말을 잘 못하겠어요. 지금 인터뷰도 술을 안 마셔서… 사람들과 친하게 지낼 수 있는 매개?


재은 : 교환학생으로 외국 갔을 때, 처음에 영어가 안 나왔어요. 술 들어가면 잘 나오더라고요. 한국인에게 영어는 용기의 문제인 거 같아요. 맥주 한 잔 하고 하면 잘 나오거든요. 우울할 때 마시기도 하고요. 또 술 마시는 이미지가 있다보니, 안 마시고 싶어도 마시기도 하고요.
 
『취하지 않고서야』는 어떤 독자가 읽으면 좋은 책일까요?
 
재은 : 술 좋아하는 사람들이 읽으면, “내가 술 마시고 했던 생각이 다 여기 있구나.” 하는 공감이 들 것 같고요. 술 안 좋아하는 사람들도 읽어봤으면 좋겠어요. 술 마시면 사고 치고 나쁜 짓 한다, 이런 술에 관한 나쁜 이미지만 갖고 있는 사람이 꽤 많은 것 같아요. 맨정신으로는 못하면서 술을 마셔야만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안 하는 게 낫지 않냐고 하는 사람도 있고요. 저는 꼭 그렇지 않아요. 쑥스러워서 못하는 이야기도 있고, 경직된 분위기를 풀어주잖아요. 가까워지고 싶은 사람들, 친해지고 싶은 사람들과 술 마시러 가면 좋겠어요. 딱 이 책을 건네면서 “내 마음이야!” 하면서요.

 

하련 : 재은 생각과 비슷해요. 저는 처음에는 생각 없이 썼어요. 쓰다 보면서 술 마시고 있었던 이야기를 저희처럼 부끄러워하지 않고 나눴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현경 : 술 좋아하는 분은 혼술하면서 “나도 이런 일이 있었지.” 했으면 하고요. 처음에는 저도 재은 생각처럼 술 안 좋아하는 사람들도 이래서 술을 마시는구나, 술 좋아하는 사람을 이해했으면 하는 생각도 있었는데요. 책이 나오고 읽어봤는데, 이해하기 힘들겠다, 그냥 술 좋아하는 사람이 읽겠구나,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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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은

 

 

편집 방향 없는, 세 사람의 솔직한 음주기
 
책 만들기 위해 편집회의 하지 않았나요? 기본적인 편집 방향, 이런 게 있을 거 같아요.
 
재은 : 전혀 없어요. 알아서 다들 혼자 썼어요.
 
표제작은 어떻게 정했나요.
 
현경 : '취하지 않고서야'가 표제작은 아니고요. 이렇게 제목을 정했는데, 아무도 이 제목으로 쓰지 않더라고요. 표현 그대로 정말 술에 취해서 쓴 글이에요.

 

독립출판물에 실렸던 에필로그가 빠졌더라고요. 독립출판물로 나왔을 때는 편집 후기가 다소 교훈적이었잖아요. 앞에서는 잔뜩 술 마시고 취한 이야기를 했는데, 마지막에서는 술을 적당히 마시자고 끝내셨거든요. 이 글이 빠진 사연이 궁금합니다.
 
현경 : 그 글은 제가 알코올 중독으로 병원 가기 직전에 쓴 유작처럼 쓴 글이었는데요. 빠졌어요? 처음 알았어요.


재은 : 출판사에서 공유를 계속 해줬는데, 체크가 안 됐네요.
 
공감 가는 문장과, 감성 충만한 표현이 많아요. 우리 모두가 술 마시면 어느 정도는 시인이 되잖아요. 혹시 책에 들어간 글은 술 마시면서 썼나요?
 
하련 : 저는 술을 마시고 썼어요. 이 책이 독립출판물로 5월에 나왔는데, 그때 퍼블리셔스 테이블이라고 북마켓을 기획하고 있었어요. 회의 끝내고 술 마시면서 밤마다 썼거든요. 피로와 우울과 술에 찌들어서 힘들게 썼던 글이죠.


재은 : 저도 회사 다닐 때 썼는데요. 회사에서 쓴 것도 있고요. 흐흐. 마켓 때까지 책이 나와야 하니까, 그때를 마감으로 정해놓고 기한 내 써야 했죠. 저는 글을 되게 많이 고치는 편이라서 회사에서도 계속 볼 수밖에 없더라고요. 집에 와서도 쓰고요. 술 마시고 쓴 적은 많이 없었던 거 같아요. 글을 쓸 때 마침 사랑니 신경 치료 하다 보니 본의 아니게 금주 하면서 썼어요.


현경 : 2~3월에 쓴 글은 아주 맨정신을 썼죠. 일요일 아침에 깔끔한 정신으로요. 이번에 추가된 글은 바에서 쓴 것도 있긴 해요.
 
이번 책 덕분에 세 사람의 약속은 무조건 술 약속이겠네요?
 
재은 : 다 업보인 거 같아요. 술 못 마신다고 하면 친구들이 알아서 다음에 보자고 말해요.
 
요즘 직장 내 회식 분위기라든지 대학 문화를 보면 요즘 젊은 사람들은 예전보다는 술을 덜 마시는 것 같았거든요. 이번 책을 보면서 젊은 사람들도 마시는 사람은 많이 마시는구나,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현경 : 저는 예전 상사와 술 마시고 싶지 않았습니다.


재은 : 사람에 따라 다르겠죠. 마시고 싶은 사람이 있고, 마시기 싫은 사람이 있고.
 
녹취록 재밌었습니다. 어떤 사연으로 책에 싣게 되었나요. 
 
현경 : 2016년부터 술자리를 녹취하고, 그걸 책으로 엮어보려고 했어요. 블로그에 하나씩 올리기도 했고요.


재은 : 팟캐스트를 짧게 했는데, 콘셉트가 마시면서 이야기하는 거였어요. 팟캐스트가 녹취나 다름 없으니, 팟캐스트 내용을 그대로 넣었죠.

 

이 책이 청춘의 술 이야기인데요. 30년 뒤에 쓴다면 어떤 내용일까요?
 
현경 : 하련은 모르겠지만 재은과 저는 분명 이런 이야기를 쓸 거 같아요. 30년이 지나도 철이 안 들고 술을 이렇게 마시고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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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하련

 

 

100종 책이 천 부씩 팔리는 세상이 건전한 사회
 
세 사람 모두 글을 계속 쓰고 있잖아요. 특별한 계기가 있을까요.
 
하련 : 예전부터 일기를 썼어요. 친구 통해 독립출판물 알게 되고, 책으로 만들게 되었네요.


재은 : 기록을 좋아해요. 원래는 사진을 많이 찍었고, 거기에 글을 덧붙이다 보니 글을 더 많이 쓰게 되더라고요. 영화도 좋아해서, 영화 볼 때마다 기록했는데요. 기록하는 사람이 글로 뭔가를 만들어내게 되는 것 같아요.


현경 : 이하동문입니다.
 
독립출판물이 많이 나오는데, 만드는 입장에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현경 : 한 권의 책이 10만 권 팔리는 것보다 10권의 책이 각 1만 권 팔리는 책이 더 좋다는 인터뷰를 어디선가 읽었는데요. 저도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더 나아가서 100권의 책이 천 권씩 팔리는 게 더 좋을 수 있고요. 예전같았으면,  『취하지 않고서야』  이 책도 책으로 나오기 어려웠을 수도 있죠. 쓰려고 했다면 "니가 뭔데 이런 걸 써? 알콜 전문가야?" 이런 반응이었겠죠. 평범한 사람들이 다양한 이야기를 하고 보이고 읽히는 게 좋은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재은 : 한 명의 입김이 커지는 것보다, 여러 명이 여러 이야기를 읽는 게 건강한 사회죠. 사람들이 서로 이해할 수 있는 범위도 넓어지잖아요. 『취하지 않고서야』도 그런 거 같아요. 술 안 읽는 사람들이 읽으면 술 읽는 사람을 이해할 수도 있고요. 저는 모든 사람들이 뭔가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차피 사람의 손이 필요 없어지는 일이 많아지겠죠. 일이 아니라 다른 것에서 의미를 찾아야 할 텐데, 글쓰기가 그 중 하나입니다.
 
어떤 글을 좋아하나요, 앞으로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알려주세요.
 
현경 : 저는 작가라기보다는 기획을 좋아해요. 사람들에게 뭔가를 물어보고, 함께 쓰고, 모으는 걸 하고 싶어요. 거창한 이야이길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데,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게 있잖아요. 어, 나만 힘든 줄 알았는데 다른 사람도 그랬구나, 공감하면서 함께 나아질 수 있는 걸 계속 만들고 싶어요.


하련 : 얼마 전에 저도 책 한 권 냈거든요. '같은 향수를 쓰는 사람'이라고. 저도 기록하는 걸 좋아해서, 기획하는 게 있어요. 지금 준비하는 건 '늙은 내 동네'. 장이동에 살았는데 재개발되고 있거든요. 1회용 카메라로 찍어서, 이렇게 추억을 이야기할 수 있는 책 만들고 싶어요. 감정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책 계속 만들려고 해요.


재은 : 저는 글쎄요. 현경이 이거 하자고 하면 같이 하게 되지 않을까요. 사람들과 있었던 일을 쓸 거 같아요. 누구랑 어딜 가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이런 게 기억에 많이 남아요.


 

 

취하지 않고서야김현경, 장하련, 재은 저 | 흔
서로의 촘촘한 간격, 따뜻한 눈빛, 헐렁한 표정, 솔직해진 자신과 한껏 진지하거나 가볍고, 쉽게 울고 웃는 그 모든 순간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을 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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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성표, “이 작품을 택한 건 지난 정권 때문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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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출간된 『바닷가 아이들』에 수록된 권정생 선생의 단편동화 「장군님과 농부」가 이성표 작가의 그림이 담긴 그림책으로 다시 태어났다. 적군에서 포위를 당한 부대에서 홀로 도망쳐 살아남은 장군과 사람들이 모두 떠나버린 마을에서 묵묵히 농사를 짓는 농부. 정반대의 성향을 지닌 두 인물이 전쟁을 피해 마을을 떠나는 모험의 이야기 속에는 웃음과 해학이 넘친다. 시종일관 권위를 내세우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권력자의 위치에 선 장군과 자신의 본분을 다하며 장군을 지키고 먹여 살리는 농부 중, 우리가 섬겨야 할 진짜 장군님은 누구일까.

 

『장군님과 농부』의 그림을 그린 이성표 작가는 권정생 선생의 이 해학적 물음에 통쾌함을 느끼고 그림 작업에 돌입했다. 홍익대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30년 넘게 그림책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그의 통찰이 담긴 유쾌한 그림에는 글을 더 즐겁게 읽을 수 있도록 독자를 이끄는 힘이 있다. 북한산 아래 위치한 이성표 작가의 작업실을 찾아  『장군님과 농부』에 얽힌 남은 이야기들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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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시원했던 이야기

 

『장군님과 농부』의 그림 작업을 결심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요?

 

이 작품을 꼭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결정적 이유는 지난 정권 때문입니다.(웃음)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되고 얼마 되지 않아 청탁 연락을 받았거든요. 원고를 천천히 읽어 보았는데 마음에 들었어요. 동화 속 장군님은 병사들을 두고 홀로 전쟁터에서 도망치고, 아무것도 하는 일이 없잖아요. 우리나라의 리더였던 사람에 대한 큰 실망으로 마음이 힘든 와중, 이 원고를 읽으니 속이 시원했어요. 자격이 없는 권력자의 모습과 말로(末路)를, 적당히 가볍고 우스꽝스럽게 만든 이야기가 참 재밌더라고요.

 

농부의 모자 위에 쓸쓸히 선 장군의 모습을 담은 표지가 좋았습니다. 동화의 주제를 함축하고 있는 느낌이었어요.


편집자 분께서 골라 주신 표지예요. 작가는 미학적으로 아름다운 것을 고르려는 경향이 있는데, 편집자는 책의 전체적인 부분을 바라보는 시선으로 주인공의 성격, 이 사람들의 처지, 이야기의 구조가 보이는 그림을 선택해 주신 것 같습니다. 제 스타일이 잘 드러난 작업이기도 했고요. 하지만 솔직한 심정은 전작  『소년』의 표지 느낌과 달랐으면 싶었습니다. 내용과 분위기는  『소년』과 전혀 다르지만, 화이트 바탕에 블루 계열 인물이 들어간 것이 비슷하지 않나요. 물론  『장군님과 농부』의 내용을 딱 한 장으로 압축한다면, 이 그림이 표지로 가장 적합할 듯합니다.

 

어떤 재료를 활용해 그림을 그린 건가요?


아크릴릭 물감 중 ‘리퀴텍스’의 물감을 이용해 그렸습니다. 굉장히 미끄러운 질감의 물감인데 물을 많이 타면 수채화의 느낌이 나요. 아마 아크릴릭 물감 중 리퀴텍스의 제품이 입자가 제일 곱기 때문인 것 같아요. 섬세하고 맑은 느낌을 주어서 작업하는 데 무척 용이합니다.

 

아크릴릭 물감을 선호하는 이유가 있나요?


수채화 물감은 종이에 한 번 색을 칠한 뒤, 그 위에 물이 떨어지면 얼룩이 져요. 또 노란색을 칠한 다음 파랑색을 칠하면 겹쳐진 부분은 녹색이 되죠. 하지만 아크릴릭 물감은 아래의 색과 위의 색이 섞이지 않아요. 저는 아크릴릭 물감에 물을 많이 섞어 작업합니다. 얇게 색이 칠해진 위에 또 다른 색을 올리면 섬세하고 독특한 표현이 가능해요. 색이 서로 섞이지 않기 때문에 열 번도 겹칠 수 있죠. 아주 매력적인 재료예요.

 

작가님의 작품에는 푸른 계열의 컬러가 자주 사용되는 데요. 특히 사람의 전체적인 모습을 파란색으로 표현하신 게 독특하게 느껴집니다.


파랑이 너무 좋았어요. 그림을 그릴 때 파랑색을 쓰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래서 ‘파랑에 미친 사람처럼 실컷 써 보면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한동안 파랑색만 주로 사용해 그림을 그렸어요. 우리들 속에는 넓은 세상이 있잖아요. 사람을 파랗게 표현하면 그 넓은 내면세계를 슬쩍 품게 할 수 있거든요. 특히 이 책에 등장하는 장군은 한없이 경박한 인물입니다. 그렇지만 파랑으로 표현된 장군에게는 동정의 여지가 생겨요. 이 사람도 우리와 같은 고민이 있고, 유약하지만 도움을 주어야 하는 상대라는 느낌을 주니까요. 최근 몇 년간은 파란색을 많이 사용했는데 아마 이 책이 파랑을 벗어나는 기폭제가 될 것이고, 다음 작품에서는 전혀 다른 느낌을 발견하실 수 있을 겁니다.

 

이제 파랑에게서 마음이 떠나신 거예요?(웃음)


아니요. 사실 아직도 너무 좋아요.(웃음) 파랑은 영원한 느낌이에요. 연민이 있는 색이죠. 아무리 봐도 지루하지 않고 늘 색다른 느낌을 준다는 점이 큰 매력이죠. 어떤 블루는 뾰족하고, 어떤 블루는 강하고, 어떤 블루는 굉장히 따뜻해요. 하늘은 파랗지요? 이처럼 파랑은 우주를 담은 색입니다.

 


도망치는 장군은 결국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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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이 재미있게 표현된 그림들이 인상적이에요. 장군이 입 안 가득 감자를 넣고 있는 모습이나, 농부가 흙 위에 엎드려 연장을 찾는 모습 등이요.


원고의 내용을 충실히 반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의식의 세계나 비현실적인 이미지가 곁들여지면 좀 더 재미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감자를 그렇게 먹을 순 없어요. 그런데 순 엉터리이지만 즐겁죠. 농부가 연장을 찾는 것도, 어린 시절에 개미굴을 들여다보는 모습을 상상해 그렸어요. 아이들을 이야기 표면에 머물게 하기보다 안쪽으로 끌고 가고 싶었거든요.

 

장군과 농부가 전쟁을 피해 이동하는 장면 중, 전쟁을 묘사한 그림은 작가님의 평소 작품과 다른 느낌이었어요. 탱크, 자동차, 병사 등은 어린이가 그린 그림처럼 보이기도 했고요.


사실 굉장히 공을 많이 들이고, 고민해서 완성한 그림인데 생각처럼 재밌게 안 나왔어요.(웃음) 지금도 그 그림을 생각하면 힘들어요. 여러 종이에 따로따로 그림을 그리고, 포토샵에서 레이어를 합쳐 완성한 작품이에요. 동화 속에서 권정생 선생님은 전쟁을 글로 묘사하지 않으셨잖아요. 그저 ‘쿵쿵’ 소리와 무서워서 도망치는 사람들의 심리에 대해서만 표현돼 있지요. 선생님 글에서 제가 느낀 건 ‘전쟁은 아이들 장난 같은 것’이었어요. 병정이나 대포 같은 무기들로 사람을 위협하고 죽이는 싸움이지만 규모가 클 뿐, 아이들 장난처럼 유치하게 보였습니다. ‘이건 모두 아이들 전쟁놀이다, 한 겹만 벗기면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느낌을 주고 싶었어요. 폭탄이 터지는 모습이나, 비행기 같은 것들도 반투명하게 얹혀 있는데 그만큼 가볍고 무의미한 것이라는 걸 표현한 거예요. 와글거리고 굉장한 것 같지만 하나둘씩 들여다보면 아무렇지도 않은 것. 아마 그림 속에 위협적으로 느껴지는 건 하나도 없을 거예요. 무기도, 군인들도 다 장난감 같은 모습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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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마음에 드는 그림이 있나요?


바다 장면들이 특히 좋은데, 그중에서도 장군님과 농부가 뗏목을 타고 가다 무인도를 발견한 장면이 마음에 들어요. 제가 좋아하는 레이아웃이거든요. 멀리서 먼 데 있는 어떤 것을 발견했고, 그 주변을 물이 둘러싸고 있는 단순한 구성이지요. 무인도인 섬을 어떻게 그려야할지 고민이 많았는데, 나무줄기들을 그려 넣어 분위기가 더 살아났어요.

 

그럼 반대로 가장 표현하기 어려웠던 그림은요?


농부가 무인도에서 밭을 일구는 장면이 제일 어려웠어요. 이 페이지를 작업할 때 그림이 안 풀린다고 여겼는데, 질문을 받고 생각해 보니 결국 텍스트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것 아닐까 싶습니다. 편집자와 이 부분에 대해서 깊이 상의하고, 전체 이야기에서 이 텍스트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지 유추해 봤다면 더 좋은 그림이 나올 수 있었을 거예요. 삽화를 그려 온 세월이 있기 때문에 제가 설마 글을 이해하지 못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겸손하지 못했던 거죠. 그림이 잘 안 그려진다고만 생각했지, 이야기의 이해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못한 게 이 작업을 어렵게 만든 요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림책 삽화 작업을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가요?


첫 번째는 글쓴이가 전하려고 하는 핵심을 놓치지 않는 것이고, 두 번째는 쉽고 아름다워야 한다는 거예요. 화가의 그림이 담긴 책은 아름다웠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어깨에 힘을 준 ‘위대한’ 작업이기보다는 누구나 쉽게 들여다볼 수 있는 그림이었으면 싶죠. 쉽게 이해되는  강의가 제일 좋은 강의라고 하는데, 그렇게 되도록 준비하는 것은 무척 어렵잖아요. 그림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독자 분들이 편하게 마주할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은데, 하면 할수록 어렵게 느껴집니다.

 

삽화를 그린 화가의 입장에서  『장군님과 농부』가 어떤 책인지 소개해 주세요.


책에 등장하는 장군은 경박하고 무책임하면서 권위는 권위대로 부리는 인물이에요. 겁쟁이이지만 동시에 위세를 떨고 싶어 하죠. 권정생 선생님이 권력자의 그런 모습을 참 부드럽게 풀어내셨어요. 기존의 권위, 위대하게 여겨지는 것들이 어쩌면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의심을 아이들에게 던져 주는 좋은 그림책이죠. 처음 작업을 시작할 때는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과 너무 닮았기 때문에 ‘장군을 실컷 풍자하고 놀려 먹어야지.’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작업을 하면서 보니까 제가 그 장군이더라고요.(웃음) 병사들을 두고 전쟁터에서 홀로 도망친 장군을 보고 혀를 끌끌 차며 작업을 시작했는데, 그림을 그리다 보니 장군의 마음에 아주 쉽게 이입이 되는 거예요. 그림을 그릴수록 ‘이 장군이 나였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이런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만 있다면 충분히 권해 볼만한 책이에요. 사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 모두에게 그런 모습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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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다른 그림을 그리고 싶다

 

일러스트레이터로 오래 활동했는데, 이전의 작업들과 그림책 작업은 어떤 차이가 있나요?


기사에 삽입될 그림을 그릴 때는 ‘어떻게 하면 한 장으로 압축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어요. 긴 내용을 그림 하나로 표현해야 하니까요. 반대로 그림책 작업을 할 때는 ‘어떻게 하면 이 이야기를 20장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요. 정반대의 고민이죠. 과거에는 함축하는 게 중요했다면, 지금은 넓고 많은 이야기를 담아 아이들에게 여러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줘야 하기 때문에 그걸 고민하는 일이 만만치 않아요.

 

그림책 작업이 더 어려울 수 있겠네요.


제게는 훨씬 어려워요. 이번 작품을 예로 들면 권정생 선생님께서 이야기를 쓰셨지만, 저는 그걸 그대로 따라가며 사생하듯 그리고 싶진 않았거든요. 선생님의 뜻은 존중하고, 살리되 그림에 한해서는 제가 이야기를 풀어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림책에서 그림은 일종의 연극무대이니까요. 주제를 관통하고 글쓴이의 내밀한 뜻을 충분히 반영하는 동시에 시각적으로는 새로운 즐거움을 줄 수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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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힐스와 나눈 인터뷰에서 “신인시절의 나는 필자의 주장을 드러내되 내 상징을 가지고 그림을 그리겠다는 생각이 강했다”고 말씀하셨어요. 그 연장선상에 있는 이야기죠?


맞아요. 글과 다른 해석이 있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요. 글쓴이와 동등한 위치에서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은 거예요. 일제 강점기 때부터 그림을 그리신 선배 일러스트레이터 분들이 계시는데, 그분들은 그림 실력이 정말 뛰어나고 사실적인 묘사를 잘하세요. 교과서 삽화가 주로 그분들의 작품이죠. 저는 그다음 세대의 일러스트레이터잖아요. ‘밥상에 둘러 앉아 여덟 식구가 밥을 먹었어요.’라는 글이 있을 때, 그 내용을 그대로 옮겨 그리기 보다는 밥을 먹으면서 나눈 이야기나, 가족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건 등 그 문장에 담긴 글쓴이의 의도가 분명 있을 테니 그 뜻을 반영하되 저는 글과는 다른 그림을 그리는 거죠.

 

독자는 글과 그림의 두 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거네요.


책을 읽는 분들이 그렇게 느끼신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아요.

 

어린 시절부터 미술을 좋아셨어요?


네, 매일 그림을 그렸어요. 미대에 가고 싶다고 하니 어머니께서 반대하셨죠. 그때 당시에는 드물게 어머니께서 석사 학위가 있는 분이셨거든요. 왜 미대에 가고 싶은지 진지하게 이야기를 하니까 들어 주셨어요. 부모와 자식 사이에 그런 이야기를 나누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 제 설명을 들으신 뒤로는 미대 진학에 대해서 별 말씀을 안 하셨어요.

 

순수 회화를 하지 않고, 일러스트레이터의 길을 간 이유가 있나요?


어머니와 타협을 했던 거예요. 서양화과나 회화과를 가는 건 납득을 못하셨거든요.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돈을 벌어야 했거든요. 시각디자인과는 그래도 밥은 먹고 살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셨으니 허락해 주신 거죠. 미대에 가는 걸 아예 반대하기는 미안하니까 대신 돈벌이가 될 수 있는 과로 가는 걸로 진로를 정했었어요. 하지만 결국 그림 그리는 쪽으로 돌아와 버렸네요.(웃음)

 

북한산 아래 위치한 집과 작업실이 인상적이에요. 언제 이곳으로 오신 건가요?


벌써 10년이 됐네요. 신혼 때부터 아파트에 줄곧 살다가 40대 중반에 안식년을 맞아 캐나다 로키 산 속에서 2년을 지내고 돌아왔더니 아파트에 도저히 못 살겠더라고요. 그래서 평창동에 주택을 얻어 5년 정도 살고, 이곳으로 이사 왔어요.

 

자연이 바로 곁에 있어 작업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맞아요. 한 10년쯤 숲 가까이 사니까 작업에도 변화가 있더라고요. 자연에는 딱딱한 선이 없어요. 전부 돌아가고 이어지죠. 인간이 만든 것은 반듯하게 잘린 부분이 있잖아요. 자연은 그렇지 않아요. 색채도 명확히 끊기는 게 아니라 여러 색이 조금씩 겹쳐서 묻어 있죠. 이런 것은 책으로 배워서 알 수 있는 게 아니지요. 살면서 알게 되는 것입니다. 물감을 쓰는 방식도, 색을 느끼고 표현하는 방식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가까운 미래에 계획하고 계신 일이 있나요?


『장군님과 농부』  작업이 끝나고 새로 계약한 일이 있어요. 그림책 작업인데, 주제가 ‘성공’이에요. 저는 성공에 대한 그림을 10장~15장 내외로 그려야 하죠. 글이 참 좋고, 주제 자체도 흥미롭습니다. 어떤 그림을 그릴지 고민하며 ‘성공의 풍경’을 상상하는 요즘 시간이 참 좋아요. 지금까지의 결론은 ‘성공했다는 건 결국 평화를 이루었다는 뜻 아닐까.’라는 생각입니다. 평화가 이루어진 장면들을 이것저것 떠올려 보고 있습니다.

 


 

 

장군님과 농부권정생 글/이성표 그림 | 창비
전쟁 통에 만난 두 사람의 우스꽝스러운 대화를 통해 참다운 인간성에 대해 날카롭게 묻는 동시에 백성을 사랑하는 지도자는 어떤 사람이어야 하는지를 일깨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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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트렌드 분석가 김용섭 “소비가 곧 트렌드라는 생각은 오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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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렌드 분석가이자 비즈니스 창의력 연구자 김용섭 날카로운상상력연구소 소장은 2013년부터 매년 라이프트렌드를 분석하고 있다. 2013년 ‘좀 놀아 본 오빠들의 귀환’, 2014년 ‘그녀의 작은 사치’, 2015년 ‘가면을 쓴 사람들’, 2016년 ‘그들의 은밀한 취향’, 2017년 ‘적당한 불편’, 2018년 ‘아주 멋진 가짜’에 이어 2019년 트렌드로 그가 제시한 것은 ‘젠더 뉴트럴(Gender Neutral)’. 젠더 뉴트럴은 “성의 구분을 없애고 중립성을 택하는 것”(25쪽)을 말한다.

 

이미 성별 구분을 하지 않고 출시하는 화장품과 젠더 프리 편집숍이 등장했고, 뉴욕 지하철에서는 “신사 숙녀 여러분” 대신 “승객 여러분”이라고 표현을 바꿨으며, 글로벌 투자 펀드는 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을 평가 항목으로 다룬다. 젠더 뉴트럴이 “엄청난 비즈니스 기회와 라이프스타일 전반의 놀라운 변화를”(87쪽) 일으킬 것이라 말하는 김용섭 소장은 특히 소유보다는 경험에 더 관심이 있고, 디지털 사용에 능통하며, 사회적 이슈에도 관심이 높은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세대)’와 ‘Z세대(1990년대 중반 이후 출생한 세대)’를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향후 20년을 주도할” 이들 세대가 유튜브를 좋아하는 이유, 사회적인 목소리를 거침없이 내는 이유, 디지털 네이티브로서 이들이 보여줄 창의성과 소비력을 이해하면 누군가는 삶의 방향이, 누군가는 소비의 즐거움이, 누군가는 비즈니스의 방법이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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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소비가 트렌드는 아니다


2013년부터 라이프트렌드를 꾸준히 정리해오고 계신데요. 트렌드를 아는 것이 왜 필요한 일일까요?

 

우리는 혼자 살지 않아요. 세상과 무관하게 살지 않거든요. 그런데 사람들은 가끔 그 사실을 잊어요. 그러고는 10년, 20년 전에 배워왔던 것을 죽을 때까지 쓸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아요. 누군가에게는 취업에 트렌드가 필요하고요. 누군가에게는 투자에 필요하죠. 누구는 이사 갈 때도 트렌드를 볼 거고, 창업할 때도 볼 거예요. 트렌드는 수시로 새로운 것이 나오고, 소멸되는데요. 다만 수명이 달라서 어떤 것은 몇 년을 가고, 어떤 것은 1년도 안 가요. 트렌드 연구자는 화초 키우는 사람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돼요. 어떤 건 1년 살이 화초일 수 있고, 어떤 건 나무가 되어 수십 년 살 것일 수 있어요. 이번에 2019년 트렌드로 제시한 것도 갑자기 튀어나온 게 아니거든요. 몇 년 전부터 씨앗이 생겼고, 싹이 텄고, 이런 과정들이 있었죠. 저는 이런 과정을 분석하는 일을 하고요. 트렌드 연구는 세상 변화의 연속성, 변화의 과정을 연구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어요.

 

“매해 연말연초에만 트렌드 책에 관심을 기울이는 문화가 아쉽다”(<채널예스>, 명사의 서재)고도 하셨죠.


저는 주로 기업 강의를 하는데요. 일반 독자분들에게도 이 정도는 알면 좋겠다, 싶은 트렌드를 책으로 알려드리려는 마음이 있어요. 이 정도 알면 그래도 흐름을 이해할 수 있을 테니까요. 무엇보다 무조건 소비가 트렌드는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어요. 한국에서는 가장 유명한 트렌드가 소비 트렌드이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죠. 라이프스타일 안에 문화, 의식주, 비즈니스가 모두 있잖아요. 그 범주 안에 소비도 있지만 소비가 곧 트렌드라는 생각은 오해예요. 책을 시작하게 된 것도 그 이유인데요. 독자분들도 라이프스타일 전반에 대한 이해를 갖게 된 후 소비를 이해하면 자신만의 변별기준을 가질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소비가 곧 트렌드는 아니라는 사실이 중요하겠어요.


그렇게 이해하면 무조건 다 사야 할 것 같고, 기업이 무슨 메시지만 던지면 다 수용해야 할 것 같지만요. 그것은 오히려 트렌드를 받아들이는 아주 무모한 태도라고 볼 수 있어요. 트렌드는 뒤에서 따라가는 것이 아니에요.

 

특별히  『라이프 트렌드 2019:젠더 뉴트럴 Gender Neutral』에 대해서 “라이프 트렌드 시리즈 중 가장 완성도와 만족도가 높다고 자부”(9쪽)한다고 한 이유는 뭔가요?


사실 이 작업은 매년 완성도가 높아질 수밖에 없어요. 새해가 된다고 ‘리셋’되는 게 아니니까요. 사람들의 욕망과 사회적인 변화를 계속 안고 가는 거고요. 당연히 계속 데이터가 쌓이죠. 트렌드 연구자가 해마다 끊어서 보여주는 건 독자가 읽는 방식이 그러하기 때문이에요. 만약 매달 새로운 트렌드를 원하는 독자가 충분하다면 매달 전할 정보는 충분히 있어요. 이미 기업들에게는 그렇게 하고 있고요. 
 
그렇다면 책 한 권을 작업하는 데 얼마가 걸렸는지 설명하는 것은 의미가 없겠네요.


그렇죠. 아직 2019년이 되지 않았지만 저는 이미 2020년, 2021년 트렌드를 연구하고 있어요. 아까 말씀드렸듯이 트렌드는 화초 같은 거라서요. 올해 씨앗이었던 것이 갑자기 다음해에 나무 되는 게 아니에요. 계속 지켜보는 것들이 있죠. 2019년의 화두를 ‘젠더뉴트럴’이라고 제시했는데요. 이것은 이미 2017년 말부터 지켜봐왔던 거예요. 흐름에 따라 가장 유력한 후보는 추려지니까요. 2019년 대두될 것이 전에는 없다가 2018년에 갑자기 튀어나오지 않으니까 키우고 있는 수십 가지 화초를 전부터 계속 지켜보는 거예요. 이런 과정이 없으면 신기한 것만 쓰게 돼요. 그건 트렌드 분석이 아니죠.


이번 책에 10개의 화두가 있는데요. 각각이 분절되어 있지 않아요. 다 연결이 돼요. 신문에서 정치, 사회, 문화를 따로 보지만 그건 인위적으로 나눠놓은 것이지 실은 연결되어 있는 것이잖아요. 마찬가지예요.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


“2019년은 버라이어티한 해면서, 비주류가 주류로, 미미한 존재감에서 갑자기 열풍처럼 번질 트렌드가 많은 해”(5쪽)가 될 것이라고 했어요.


그간 지켜보던 트렌드 몇 개가 모두 2019년을 기점으로 어른 나무가 될 거예요. 나무가 되면 쉽게 쓰러지지 않거든요. 젠더뉴트럴도 그런 거죠. 한국 사회에서 젠더 이슈는 보편적이지 않았어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젠더’라고 하면 사회 이슈로 여겼죠. 이번 책에서 중요하게 강조하는 것은 이제 젠더뉴트럴은 경제 이슈라는 건데요. 어떤 이슈가 사회 이슈일 때와 경제 이슈일 때는 다르거든요. 경제 이슈가 되었다는 이야기는 그만큼 그 이슈가 무르익었다는 이야기고요. 사회 안에서 주류가 되었다는 의미예요. 젠더뉴트럴만 그런 게 아니고요. 작년 화두가 ‘아주 멋진 가짜’였는데요. 보세요, 과거 모피 반대라고 하면 극소수의 까다로운 목소리로 여겼지만 이제는 아니에요. 기업이, 패션이 나서고 있죠. 또 밀레니얼 세대가 더 이상 모피 입는 것을 멋있다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나무가 된 거고, 젠더뉴트럴도 그 시점이 왔다고 봐요.

 

이제 경제 영역에서 젠더뉴트럴이 확산될 거라고 보는 근거는 뭔가요?


백 명 중 한 명이 아는 것으로는 바뀌지 않아요. 젠더뉴트럴, 환경문제 모두 과거에도 한 명 정도는 알았어요. 그 기간이 길었죠. 그러다 2010년대 들어서 전 세계적으로 이 이슈가 많이 촉발되었고요. 결정적으로 2016년, 2017년에 ‘미투운동’이 확산되면서 거침없이 이슈가 확장되었어요. 이런 이슈가 자꾸 제기된다는 것은 사람들이 받아들일 준비가 어느 정도 되었다는 이야기거든요. 사람들은 많이 접하고, 충분히 설명을 들으면 이해하게 되니까요. 애초에 단어를 거부하고 듣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설명하지 못하지만 지금은 백 명 중 20-30명쯤은 저 말에 관심을 갖는단 말이죠. 트렌드 분석가는 이때 이것이 트렌드의 화두가 될 거라고 제시하는 거예요.

 

‘젠더뉴트럴’을 “다양성과 인간에 대한 존중 문제”(69쪽)라고 했는데요. 직접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남성과 여성은 물론 생물학적으로 구분이 되죠. 하지만 우리는 사회적 관계를 살고 있어요. 회사에서 우리는 그냥 동료이지 남자 동료, 여자 동료가 아니고요. 학교에서 우리는 그냥 학생이고, 선생이에요. 여태껏 구분된 관점으로 바라보았던 것은 사회적 관계와 사적 관계를 혼재시켰기 때문이에요. 개인이 갖고 있는 사회적 역할, 사회적 가치를 무시했단 얘기죠. 그냥 저 사람을 여자로만 바라봤다는 거잖아요. 남교수, 남기자는 없지만 여교수, 여기자는 있어요. 그 구분이 배려를 위한 것이 아니고 차별을 하려고 했다는 증거 같은 거거든요. 이것을 없애는 작업이 젠더뉴트럴이라는 거예요. ‘신사숙녀 여러분(Ladies And Gentlemen)’이 왜 필요해요? 공연 보러 왔으면 다 ‘관객’이고요. 버스 타러 왔으면 다 ‘승객’인 거죠. 결국 젠더뉴트럴은 곧 인권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이에 대해 “남녀 대결 구도로 보는 오류에 빠져선 안 된다”(84쪽)라고 강조하기도 했죠.


엄밀히 따지면 모든 인간은 동등하게 태어났어요. 하지만 공교롭게도 물리적으로 힘이 센 남자가 주도권을 더 많이 가져갔죠. 그것뿐이고요. 지금은 사회적 관계가 물리적인 힘으로 결정되지 않잖아요. 지금 시대는 남녀의 생물학적, 물리적 속성과 무관하게 인간적인 자질과 인간으로서의 능력이 중요한 시대예요. 그렇다면 그 구분을 없애야 하는 게 맞죠. 아직도 성별을 따지는 것은 과거의 방식이라는 이야기고요. 그 구분을 지우면 굉장히 많은 변화가 생길 거예요. 젠더뉴트럴은 단지 여자를 끌어올려주자는 개념이 아니에요. 우리는 동등한 인간이라는 거고요. 이 관점이 완성되어야만 경제적, 사회적 측면이 지금보다 나아진다는 거예요.

 

젠더뉴트럴이 기업의 생존을 위해서도 필수 요소가 되었다고 제언했는데요.


아베 정부가 2020년까지 기업들의 여성 임원 비율을 10% 이상으로 높이겠다고 했어요. 현재 상장기업 여성 임원 비율이 3.3%인데 말이에요. 이 비율을 높이기 위해 정부가 여성 임원 비율이 낮은 기업에 대해 기업 설명회 같은 때 왜 여성 임원이 없는지 설명하게 만들었거든요. 이런 강제 조항을 만든 이유가 있어요. 실제로 여성 임원 비율이 높은 회사의 이익이 높아요.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그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기존의 개념을 벗어야죠.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에 따르면, 2011년 여성 등기 임원이 적어도 3명 이상 있는 기업은 5년 뒤 자기자본이익률(ROE)이 10%포인트 높아졌고 주당순이익(EPS)도 37% 높아졌지만, 여성이 없는 기업의 경우 5년 후 ROE가 1%포인트 감소하고 EPS도 8% 떨어졌다. 기업을 위해서도 여성 임원의 비율을 높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74쪽)

 

기업이 과거의 젠더 마케팅 관성을 벗지 못하면 기업에 위기가 올 거라고 보시는 거죠?


대표적인 예가 ‘빅토리아 시크릿’이에요. 그동안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을 것 같은 몸매의 모델을 내세워왔거든요. 과거의 젠더 마케팅이죠. 남성다움과 여성다움, 섹시해야 잘 나가, 이걸 받아들이던 시절에는 이 회사의 제품을 샀는데요. ‘바디 포지티브(Body Positive, 자기 몸 긍정주의)’ 화두가 받아들여지면서 이제 그 제품을 사지 않겠다는 사람들이 생겨났어요. 섹시하지 않으면 어때 이게 자연스러운 내 모습인데, 이대로 멋진데, 라고 하는 거예요. 이런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빅토리아 시크릿이 어려워졌어요. 주가도 떨어졌고요. 그건 그 기업이 젠더 뉴트럴의 흐름을 파악하지 못했거나 했어도 대응을 안 했거나, 한 결과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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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레니얼 세대의 상식


이전 세대와는 다른 기준과 생활양식을 갖는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의 관심을 지켜보는 일도 중요한 것 같습니다. 


우선 이들의 사회적 관점이 기성세대보다 훨씬 좋아요. 그만큼 사회가 진화한 상황에서 태어난 사람들이니까요. 거기다 정보도 충분히 받아들이고요. 때문에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거나 환경에 문제가 있다거나 남녀를 다르게 보는 기업들 제품을 사지 않겠다고 하는 거죠. 물건만 사지 않는 게 아니에요. 어떤 기업에 여성이 임원으로 올라가지 못한다고 하면 여성 인력만 그 기업에 안 가는 게 아니고요. 밀레니얼 세대가 취직하기 싫어해요. 비전 없다고 보는 거죠. 이들의 관점 안에는 젠더뉴트럴, 환경문제가 상식이니까요. 그만큼 변화한 거고요. 사회가 진화한 거예요.

 

“한국의 Z세대도 이전 시대의 어떤 10대보다 더 성숙한 세대일 가능성이 크다”(149쪽)라고 한 이유는 뭔가요?


10대의 음주율과 흡연율을 보시면 알아요. 2005년 대비 2017년 비율이 확연히 줄었어요. 이건 한국만이 아니고요. 영국, 미국도 다 그래요. 10대가 음주와 흡연을 하지 않아요. 결정적으로 10대들이 과거에 비해 사고를 덜 쳐요. 성숙하기 때문이죠. 지금 10대가 어른이 된 거고요. 그건 많은 정보를 얻어서 그래요. 판단력이 높아진 거예요. 책에서 만18세 이상 투표권을 아예 단정한 것은 그 때문이에요. OECD 국가 중 투표권이 19세 이상인 곳이 딱 한 군데 있어요. 한국이죠. 말이 안 되는 거잖아요. 실은 정치권의 이해관계 때문에 결정을 계속 미뤄왔던 건데요. 만약 청와대 국민청원에 수백만이 서명을 하고, 밀레니얼 세대들이 엄청나게 요구를 하면 더 이상 미룰 수 없을 거예요.

 

그만큼 의견을 개진하기도 좋은 환경이 됐어요. 심지어 ‘유튜브’로 자신들만의 문화를 만들고 있고요.


지금 10대들은 유튜브로 가장 많은 정보를 접해요. 요리법을 동영상을 찾죠.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이 아예 다른 건데요. 텍스트로 정보를 접하고 쓰는 건 쉽지 않을 수 있는데요. 영상은 버튼만 누르면 돼요. 편집할 필요도 없이 실시간으로도 막 보여줘요. 그것도 콘텐츠가 되니까요. 그렇게 나의 안목, 시선이 콘텐츠가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 세상 모든 게 콘텐츠가 되는 거고요.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달라지는 거예요. 지금까지 콘텐츠는 많은 사람이 봐서 돈이 되는 것만이 의미가 있었잖아요.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세상 모든 건 가치가 있고요. 지금까지 훌륭한 사람, 공부 잘하는 사람, 엘리트를 만들었다면 이제는 모든 것이 가치를 갖게 되는 거죠.

 

여기서 강조할 것은 이들이 향후 트렌드를 주도하는 세대가 된다는 점이잖아요.


밀레니얼 세대에 관심 갖는 기업들이 많아졌잖아요. 한 해 지나면 끝나는 게 아니기 때문이에요. 밀레니얼 세대는 향후 20년을 주도할 거예요. 10대가 사회적 중추세력이 되는 30-40대까지의 시간을 생각해보세요. 지금도 영향력이 이렇게 만들어지는데 이들이 30-40대가 되면 얼마나 영향력이 크겠어요. 지켜봐야 하는 거죠.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가 지금껏 봐왔던 10대, 20대와는 다른 삶의 궤적을 갖고 있다면 그 궤적 속에서 어떤 라이프스타일이 나오느냐에 따라 정책이 결정되어야 하고요. 기업도 어떻게 이들에게 다가설지 고민해야 해요.

 

 

경제 이슈가 되어야 트렌드가 된다


트렌드의 흐름을 꾸준히 지켜보고, 트렌드 사이의 연결성을 확인하는 작업을 하다보면 예측도 가능한 건가요?


트렌드 분석가는 무르익은 것을 보여주기만 하지 않아요. 트렌드 방향 조정 작업을 하기도 하죠. 트렌드 분석가는 트렌드 유도자의 역할도 하는 거예요. 2018년, 지금의 우리가 느끼는 젠더뉴트럴과 2019년, 일 년 뒤의 우리가 느끼는 젠더뉴트럴은 다를 거거든요. 내년에 한 번 보세요. 내년이 되면 이 단어를 대중매체에서도 더 많이 쓸 거고요.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쓸 거예요. 제게 대단한 예지력이 있다는 게 아니고요.(웃음) 지속적으로 흐름을 관찰한 사람이라 좀 더 잘 볼 수 있는 거예요.

 

이 개념이 받아들여질 토양이 마련되었다는 의미겠군요.


올해 이미 많은 기업들이 젠더뉴트럴 관점을 반영해서 비즈니스를 했어요. 우선 세계적인 명품 패션 기업들이 패션쇼를 통합해서 진행했죠. 남성 패션, 여성 패션을 구분하던 것을 말이에요. 이 얘기는 ‘남자다움’, ‘여자다움’의 기조에서 그냥 ‘멋짐’으로 바뀐다는 건데요. 이런 시도를 2015년에 영국 ‘셀프리지(selfridge) 백화점’에서도 했고요. 다른 기업들도 많이 했어요. 다시 말하면 젠더뉴트럴을 사회적 이슈가 아니라 경제적 이슈로 봐야 한다는 것이 이 얘기고요. 어떤 이슈건 경제 이슈가 되어야 트렌드가 되는 거예요.

 

트렌드를 볼 때 기업의 변화를 관찰하는 것도 중요하겠네요?


그럼요, 기업이 관심을 갖는다는 건 소비자가 원하기 때문이거든요. 순환인데요. 소비자가 관심을 가지면 기업이 따라 가고, 기업이 관심을 가지면 소비자가 따라 가죠. 이미 바뀌고 있는 것 중 하나가 환경문제잖아요. 최근 많은 기업들이 플라스틱 포장재를 고민하기 시작했어요. 페트병에 ‘에코절취선’이라고 해서 포장 비닐을 쉽게 뗄 수 있도록 했죠. 소비자가 이런 걸 사겠다고 하면 기업은 따라가요. 이것이 바로 환경문제가 경제 이슈가 되는 과정이죠. 트렌드 측면에서 보자면 적어도 ‘얼리어답터’가 움직이기 시작할 때, 그때가 되면 기업은 귀를 기울여야 해요. 안 그러면 망하니까요. 『라이프 트렌드 2017:적당한 불편』가 겨우 2년 전이에요. ‘적당한 불편’이 그때는 마이너 이슈였는데 지금은 메이저 이슈가 됐거든요. 그걸 대비한 기업은 올해 수월했을 거고요. 전혀 관심 없던 기업들은 올해 고민이 많았을 거예요. 그래서 트렌드의 연속성이 중요한 거죠.

 

한편 디지털이 진화할수록, 연결이 편리해질수록 오프라인의 가치와 역할이 변화한다는 점이 흥미로웠어요. 가령 빨래방, 편의점 등의 기능이 다양해지는 것처럼 말이에요.


이 책에서 다룬 ‘살롱의 부활(취향 맞는 사람들의 아지트)’이라는 트렌드와 ‘로케이션 인디펜던트(살고 싶은 곳에서 일한다)’라는 트렌드가 실은 대척점에 있지 않아요. 살고 싶은 데서 살면서도 어느 동네에 있건 그 동네에서 관계를 만드는 거죠. 사실 디지털이냐 아날로그냐를 구분하는 사람들은 나이 든 사람이에요.(웃음) 밀레니얼 세대는 얘기도 안 해요. 디지털과 아날로그, 온라인과 오프라인, 구분이 왜 필요해요? 연결되어 있으니까요. 구분하는 것이 이미 넌센스가 된 상황이에요.

 

특이한 점은 독립서점을 살롱 문화 챕터와 비즈니스 챕터에서 두 번이나 다뤘다는 건데요. 여기에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독립서점은 그냥 작은 곳에서 책을 판다, 가 메시지가 아니에요. 지금껏 책은 상품으로 팔았는데요. 어느 순간부터 큐레이션으로 팔기 시작했어요. 이제는 소비자들이 입맛에 맞는 데서 큐레이션 한 것을 보는 거죠. 게다가 모두가 책을 읽는 게 아니잖아요. 제한된 독자가 사요. 결국 독립서점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책만 팔아선 안 되고요. 다양한 관계를 맺어야 하는 거죠. 사람들과 모임도 만들어주고, 이런저런 이벤트를 하는 건 모두 관계를 위한 거거든요. 독립서점은 그 역할을 해야 하는 공간이에요. 그러면 그곳이 살롱이 되는 거죠. 또 지금 소비자 중 가장 영향력이 큰 게 밀레니얼 세대, 그 중에서도 여성들인데요. 이들이 가장 재미있게 놀고, ‘핫’하다고 생각하는 공간이 어딘지를 보면 그곳이 독립서점이에요. 이들이 그곳에서 어떤 것을 재미있어 하는지, 뭐가 잘 팔리는지, 어떤 잡지를 보는지 보면 트렌드를 알 수 있어요. 안테나 공간이죠. 두 측면이 모두 있어요.

 

책의 가장 마지막 부분에서 “지금은 ‘기승전 서비스’의 시대다.”(434쪽)라고 했는데요. 결국 이 이야기로 모이는 것 같아요. 


그렇죠, 그 이야기는 일반 소비재 기업에도 통하는 이야기고요. IT기업, 자동차기업, 모두 통하는 얘기예요. 이제는 하나의 업(業) 범주를 넘나드는 시대인 거죠. 여러 범주가 연결되는 시대고요. 이것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훨씬 눈이 많이 떠질 거예요.

 

종이책 작업을 꾸준히 하시는 이유는 뭔가요?


한국 사회에서 콘텐츠를 안정적으로 소비하는 사람들은 책 사는 사람들이에요. 그런 분들에게 책은 소유물이죠. 트렌드 책은 소유물이어야 하거든요. 몇 년이 지나서 다시 읽어도 이런 흐름들이 왜 그때 제기되었는지, 그때 이야기 된 이슈가 지금 어떻게 되었는지, 파악할 수 있도록 말이에요. 당연히 전자책으로 사셔도 돼요. 어쨌든 책을 다 읽은 후에 내년 4월쯤 다시 한 번 보시고요. 가을쯤 다시 한 번 보세요. 2017년, 2018년 버전도 한 번 꺼내보고 하면 흐름이 아주 잘 읽힐 거예요. 흐름의 과정, 연결성이 보일 거예요.

 


 

 

라이프 트렌드 2019김용섭 저 | 부키
자신의 취향과 자기다움에 집중하는 사람들, 오리진에 눈뜨고 경험을 소비하며 공유의 가치를 깨달은 이들이 만들어 갈 2019년의 대한민국을 한 걸음 앞서 만나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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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찌라' 이가희 “괜찮지 않아도 괜찮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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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을 시작하고 괜찮지 않은 날이 많았다. 녹초가 되어 집에 돌아와 침대에 누우면 “알 수 없는 검은 형체와 나란히” 누워 있는 것만 같았다. 가까운 이에게 털어놓지도 못하고, 아무 이유 없이 눈시울만 붉히던 날이 이어지는데 왜인지 알지 못했다. 이제 와 돌이켜보면 그때 느꼈던 감정을 명확히 정의하지 못해 더 아팠던 것 같다. 유튜브 채널 <책읽찌라>를 운영하며 사업은 조금씩 길이 보였다. <책읽찌라>는 3분 남짓 동안 한 권의 책에 담긴 핵심을 요약해 주는 채널이다. 1년 정도 <책읽찌라>를 운영하다가 하나의 주제를 깊이 있게 다루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시온>이라는 채널을 따로 만들어 첫 번째 프로젝트로 ‘우울증’을 다루었다.


이가희 작가의  『아임 낫 파인』은 <해시온> 채널의 첫 번째 프로젝트 ‘우울증’을 키워드로 한 영상을 정리하고 기록한 책이다. 프롤로그에 이가희 작가는 사업 때문에 힘들었던 때 자신이 겪었던 ‘알 수 없는 감정’에 관해 썼다. 돌이켜보니 그때 자신의 모습과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의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영상을 보고 공감한 사람들의 반응과 ‘사실은 나도 이랬던 적이 있었어.’라는 주변의 고백이 프로젝트를 계속 이어갈 수 있게 해주었다.


『아임 낫 파인』은 우울증에 관한 저자 개인의 기록이나 학술적인 설명이 아니다. 정신과 문턱 앞에서 들어갈지 말지 망설이는 사람이 막연하게 가질 수 있는 질문에 하나씩 답을 준다. 지금 사로잡혀 있는 감정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정신과와 상담센터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혹시라도 정신과를 내원하거나 심리상담 치료를 받은 기록이 나중에 불리하지는 않을지, 질문을 던지고 전문가나 경험자의 말을 빌려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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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에 관한 질문에 답을 찾아서


<책읽찌라> 채널에서는 다양한 책을 소개하는데, 우울이라는 키워드만 뽑아서 <해시온> 채널 프로젝트를 한 계기가 있나요?

 

<책읽찌라>는 한 영상에 한 권의 책을 소개해요. 그렇게 하면 널리 퍼지는 영상도 있지만, 아닌 것도 있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깊이 있는 주제로 오랫동안 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어요. 또 책읽찌라는 이미 만들어진 책을 재가공해서 요약하거나 감상을 말하는 콘텐츠잖아요. 이것 외에도 우리만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해시온>이라는 채널을 만들고 우울이라는 키워드로 첫 번째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된 거예요.

 

우울이라는 키워드 선정은 어떻게 하게 된 건가요?


프로젝트를 하기 전에 600여 편의 영상을 만들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키워드가 보였던 것 같아요. 사람들이 심리나 인간관계, 불안 같은 주제로 만든 영상에 관심이 많았어요. 작년 말이었는데 그때만 해도 책에 ‘우울증’이라는 키워드가 들어가면 안 팔린다고 했어요. 물론 전문 서적은 많았지만, 우울증에 관해 보편적으로 말하는 책은 많이 없었거든요. 독립출판물 중엔 우울을 일상적으로 이야기하는 책이 많았고, 텀블벅(크라우드펀딩 사이트)에도 우울 관련 콘텐츠로 성공한 프로젝트가 많았어요. 저도 이걸 좀 더 보편적으로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해시온> 기획하면서 출판도 하려고 했고, 출판사를 찾았죠.

 

유튜브에서 영상을 보면 우울증을 겪는 사람이나 전문가 등을 인터뷰한 형식이 많아요. 인터뷰집으로도 나올 수 있었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처음부터 인터뷰를 중심으로 한 프로젝트는 아니었어요. 심리상담전문가나 정신과 전문의 선생님들을 만났을 때 프로젝트 자체에 관해 반대하는 분이 꽤 있었어요. 우울함이 분위기가 되는 현상을 좀 우려하셨던 것 같아요. SNS에 우울증이라고 자가진단하고 공유하잖아요. 우울증이 유행처럼 번지는 현상을 걱정하셨던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왜 바깥에 있는 너희가 그런 이야기를 해?’와 같은 시선도 있었고요. 여러 가지로 부정적인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영상이나 책을 통해서 한 사람의 이야기를 부각하는 게 아니라 질문을 가지고 있고, 질문에 대한 답을 찾고 싶었어요. 답을 제일 잘 푸는 방법으로 접근하겠다고 전문가분들을 설득했어요. 짧은 르포르타주 형식으로 영상을 찍고, 책도 같은 형식으로 쓰려고 했어요.

 


우울증 때문에 아픈 사람들

 

인터뷰 할 사람을 찾는 게 큰일이었겠네요.


처음엔 페이스북으로 인터뷰 대상자를 찾았어요. 많은 분이 이야기하고 싶다고 연락을 주셨는데 SNS로 연락을 해오는 분들의 인터뷰를 전부 다 쓰진 못했어요. 저희가 던지는 질문에 대표할 만한 답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거든요. 고민하다가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알게 된 전문가분들께 추천을 받거나 주변에서 소개를 받는 방식으로 대상자 찾는 방식을 바꿨어요. 그렇게 조금씩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한 거죠. 품이 많이 들었는데 그것보다는 영상을 만들면서 어떤 메시지를 전달할지 선택하는 게 어려웠어요. 영상의 경우 편집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전달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잖아요. 인터뷰 대상자가 하고 싶은 이야기와 우리가 짚은 포인트가 다를 수도 있고요.

 

예를 들면 어떤 경우가 있었나요?


실제 상담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담고 싶어서 상담을 원하는 내담자를 찾고 그 과정을 영상으로 찍었어요. 상담 과정이 90분이거든요. 처음 편집했을 땐 주로 상담 선생님이 하는 말을 위주로 담았는데, 그러다 보니 꼭 강의하는 것 같은 거예요. 상담은 강의가 아닌데, 영상만 보면 오해가 생길 수 있겠더라고요. 또 내담자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면, 개인 정보가 영상에 노출될 위험이 있어서 그것도 어려웠고요. 상담하는 90분을 전부 다 담지 않으면 맥락을 모르기 때문에 왜곡이 되는 거예요. 욕심으로는 최대한 많은 관점과 내용을 전달하고 싶은데 편집을 어떻게 해야 할지부터 너무 개인적인 이야기는 삼가야 한다는 것 등 제약이 많더라고요. 상담 선생님도 처음에 상담 내용을 담고 싶다고 했을 때 ‘어려울 거’라고 걱정하셨거든요. 업계에서는 보수적일 수밖에 없으니까 걱정하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물론 그런 부분도 있었지만, 정말 어려웠어요.

 

인터뷰를 하기 위해 만났던 분 중 인상 깊었던 분도 있었나요?


어머니가 우울증을 겪고 있는 분을 만났어요. 전혀 모르다가 발작하는 어머니를 보고 응급실에 갔다가 우울증과 공황장애를 겪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 거예요. 이후에는 느닷없이 화를 내거나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려는 걸 보기도 했고요. 처음엔 같이 화도 냈는데 나중엔 조금씩 받아들였대요. 가족이 받아들이는 게 중요하다는 책을 읽고, 엄마가 화를 내면 ‘기분이 안 좋구나?’ 이렇게 너스레를 떨기도 하고. 그렇게 받아들이고 나니까 어머니도 조금씩 좋아지는 거예요. 나중에는 욱하는 감정이 올라올 때마다 ‘엄마가 별로 기분이 안 좋아.’ 이렇게 표현을 하기 시작하셨대요. 그러면 같이 산책하거나 몸을 움직여서 안 좋은 감정을 덜어내려고 했대요. 그분 말씀을 듣는데 우울증을 사랑으로 이겨낼 수도 있겠다고 처음 생각했어요. 곁에 있는 사람이 관심을 주고 우울한 감정을 해소하려고 함께 노력하면 괜찮아질 수 있겠다는 걸 알게 된 것 같아요.

 

“사람들 모두 자신의 감정을 담을 수 있는 항아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우울증을 가진 사람의 항아리는 그저 매우 작은 거예요. 그 사람들은 감정이나 분노를 조절할 수 있는 힘이 훨씬 약하고, 빨리 해소해주지 않으면 터져서 버틸 수 없는 상황에 놓이는 거죠. 그 차오르는 감정을 함께 해소하려는 노력만으로도 큰 도움이 돼요.”

- 162쪽, 우울증을 겪는 어머니를 지켜본 B 군의 인터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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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과 우울증 사이에서 고민하는 사람들

 

전혀 몰랐는데 주변에도 우울증 때문에 고민했던 분이 많았다고요.


알고 지낸 시간이 길었어도 그런 것까지는 몰랐는데, 프로젝트를 시작하니까 ‘나도 그랬다’고 털어놓는 친구들이 있었어요. 자주 만나더라도 피상적인 이야기만 하고 헤어지는 경우가 많잖아요. 일로 만난 경우는 일과 관련한 대화 말고는 나누지 않고요. 그러니까 평소엔 일상을 잘 꾸린다고 보여졌던 분들이 우울증 치료를 받았거나 겪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또 저한테 털어놓은 분 대부분 일이나 일상에서 많은 성취를 하면서 살고 있었거든요. 저도 그런 경험이 있었고, 주변에서도 많은 이야기를 듣다 보니 우울증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거라고 여겨지더라고요. 그런데 많이 이야기되지 않았다는 게 안타까웠죠. 『아임 낫 파인』이라는 제목도 마음에 있는 이야기를 좀 하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지은 거예요.

 

우울증에 관해 아무런 정보도 없고, 자기감정에 의심하는 사람들이 이것저것 찾아보기 전에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책이나 영상을 만들며 작가님이 상정한 독자 군은 있었나요?


‘내가 우울증인가?’라는 짐작만 하고 있는 분들이요. 제가 만난 분들은 이미 1~2년 우울증을 겪고 치료도 많이 받아보신 분이었어요. 그런 분들에겐 책에 담긴 내용이 너무 익숙하거나 많이 들어본 이야기일 수도 있어요. 그런데 치료를 받는 분보다는 정신과를 찾기 전에 고민하는 분이 훨씬 많다고 생각해요. 병원 문턱만 넘어봐도 자기감정을 이해하는 수준이 달라지는데 막연하게 우울이라는 감정에 압도돼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사람이 많잖아요. 그런 사람을 위한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감성적인 접근보다는 다양한 정보를 주고 싶었고요.

 

프롤로그에 작가님이 우울을 겪었던 시간에 관해서 쓰셨잖아요. 이후에 인터뷰를 진행하면서도 느낀 게 많으셨을 것 같아요.


스타트업 특성상 운영하면서 많은 압박을 받아요.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고, 계속 성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두려움도 있고요. 그런데도 그때는 병원에 가지 못했어요. 왜 그랬는지 생각해보면 ‘내가 능력이 없어서 사업을 못 하니까 이런 감정이 드는 건데 병원에 간다고 해결될까?’ 이렇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인터뷰를 하면서 제일 좋았던 건 우울증을 여러 방면으로 보니까 이제 우울한 감정을 두러워하지 않게 된 거예요. 물론 다시 우울한 감정이 오면 힘들겠지만, 끝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희망적이잖아요. 최의헌 원장님이 우울증은 삽화이고, 시작과 끝이 있다고 말씀하시거든요. 돌이켜보면 제게도 몇 번의 삽화가 왔다 갔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어요. 그땐 몰랐지만 지금은 병으로 바라보게 되었고, 앞으로 또 우울증이 온다면 고치면 되니까요.

 

최의헌 원장님 말씀 중 흥미로운 게 많았어요. 특히 성인이 되어서 우울증이 걸리는 건 세 살 이전의 훈육 방식에 의해 결정된다고 하시는데요.


세 살 이전에 어떤 경험을 했느냐에 따라 똑같은 스트레스를 다르게 받아들인다는 거였어요. 단순히 우울한 기분으로 끝나거나 우울증으로 이어지는 사람이 있는데 그걸 결정하는 게 1~3세의 경험이라는 거죠. 물론 모든 정신의학과에서 동의하는 생각은 아니에요. 우울증의 원인이 호르몬이나 유전이라는 연구도 있거든요.

 

“만 1~3세의 성장 과정에서 모종의 결함이 생긴 사람은 같은 사건을 두고도 우울증까지 갈 수 있는 거죠. 계속 문제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아니고, 포장을 하고 살아가요. 어렸을 때는 단순하니까 문제가 크게 드러나지 않다가, 사춘기 이후에 사회적으로 복잡한 관계를 맺게 되면서 숨겨져 있던 문제가 드러나는 거예요.” - 62쪽

 

우울한 감정과 우울증이 다른 건가를 질문하기도 하셨어요.


그게 정말 어려웠어요. 전문가마다 의견이 다르고요. 어떤 분은 불편을 느끼면 마음에 대해 돌아봐야 하는 시간이라고 하셨고, 의학적 기준에 의해서 따져봐야 한다는 분도 계셨어요. 실제로 우울증 판명을 받는 기준은 굉장히 까다롭다고 해요. 그것과는 별개로 일상에서 우울한 기분이 오래되고 신체적인 무기력함으로 나타난다면 조치가 필요한 것 같아요. 그게 쌓여서 결국 병이 되거든요. 불편하다고 느낄 때 한 번씩 들여다보는 게 필요할 것 같아요.

 

구마다 있는 센터도 소개해주셨어요. 구에 있는 센터가 일반 심리상담센터와 비슷한 수준으로 상담을 해주나요?


일단 신청을 하면 한 번이 아니라 회차별로 진행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신청자는 많고 인력이 부족하다 보니 대기가 길닥 하더라고요. 만약 자살충동이 일어나거나 급하게 안정이 필요한 분들은 병원이 제일 먼저인 것 같아요.

 


귀 기울이면 들리는 마음의 소리

 

작가님은 요즘 어떠세요?


저는 너무 좋아요. 요즘에 심리상담을 받고 있거든요. 상담을 받으면서 제가 심리적으로 불필요하게 집착하고 있는 것들을 발견했어요. 옛날엔 많이 조급했거든요. 계속 성과를 내야 한다는 강박감이 있었고, 거대한 목표를 향해서 가는데 그 과정에서 저를 대하는 방식이 친절하지 않았어요. 나를 채찍질하면서 내일만 바라보고 가는 사람이었던 거예요. 그런데 상담을 받다 보니까 너무 ‘미래에 있는 아름답고 멋진 나’만 바라보면서 가고 있었기 때문이란 걸 알았어요. 지금은 바라보는 시선을 현재로 당겼어요. 지금 일어나는 일과 지금의 나를 바라보게 되었거든요. 그렇게 제 마음을 들여다보기 시작하니까 주변 사람들도 조금씩 보이는 것 같아요. 여전히 어렵지만, 지금은 정말 좋아졌어요.

 

작가님한테는 심리상담이 정말 큰 힘이 되었네요.


맞아요. 언젠가는 상담도 의료보험이 되면 좋겠어요. 처음엔 저도 병원이 더 비싼 줄 알았어요. 그런데 병원은 보험이 되니까 오히려 상담을 받는 것보다 저렴해요. 상담을 받고 나니까 이걸 왜 이제 했나, 생각이 들 정도로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나 화를 내는 방식이 달라졌어요. 남과 내가 반응하는 지점이 어떻게 다른지 알게 되니까 그걸 조절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마치 헬스장에서 PT 받는 기분이에요.

 

알고 나니까 두려움이 없어지는 건가 봐요. 막연하다가 이야기를 하면 명료해질 때가 있잖아요.


마음의 문제를 말로 꺼내고 테이블 위에 올려놓는 게 시작이라고 생각해요. 올해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으니까 그런 주제로 대화하는 게 힘들지 않을 것 같아요. 어머니 세대에서는 우울증이라는 말도 없었고, 미쳤다고 표현했잖아요. 자살률은 세계 1위인데 외국과 비교하면 정신과를 찾는 비율이 1/4 정도라고 해요. 사람들이 여러 이유로 병원에 가는 걸 미루는데 결국은 못 가는 거 같아요. 정신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게 떳떳한 일이 아니라는 문화가 있기 때문인 것 같고요. 이제는 우울증에 관한 이야기가 수면 위로 많이 올라왔잖아요. 조금만 더 우울증에 대한 이해가 높아져서 우울증으로 병가를 쓸 수도 있고, 병원에 가는 것도 아무렇지도 않아졌으면 좋겠어요. 여기에 조금이라도 역할을 하고 싶어요.

 


 

 

아임 낫 파인이가희 저/제니곽 그림 | 팩토리나인
괜찮다고 말하지만 괜찮지 않은 너와 나, 우리가 안고 사는 우울. 그리고 그 감정이 가져온 마음의 병 우울증. 화제의 채널 ‘#해시온’이 국내 최고 정신의학 전문가들과 함께 ‘우울’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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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이다혜 “글이 좋으면 된다는 시대는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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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 21> 이다혜 기자는 이십여 년 동안 글을 썼다. 회사 지면 바깥에서도  『책읽기 좋은 날』  『여기가 아니면 어디라도』  ,  『아무튼, 스릴러』  등의 책을 내고, 책을 낸 것보다 더 많은 글을 각종 매체에 실었다.


각종 북토크와 라디오, 팟캐스트에 출연하는 걸 볼 때마다 언제 글을 쓰고 언제 책을 읽는지 궁금했었다. 늘 자신만의 글쓰기를 보여준 이다혜 기자에게도 글을 쓰지 못해 울었던 때가, 좋다는 방법을 다 써봤지만 여전히 글이 써지지 않을 때가 있었다.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는 ‘못 쓰는 사람’에서 ‘쓰는 사람’이 된 사람의 경험담이자, 빠르게 변하는 시대를 살면서 계속 시대와 부딪히는 사람이 어떻게 글을 써야 하는지 말하는 고백록이다.


누구나 자기 먹을 걸 가지고 태어났듯이, 이제는 누구나 자기 미디어를 가지고 글쓰기를 시작한다. 타인에게 읽히고 싶은 욕망도 어느 때보다 많다. 그러나 글이 늘어난 만큼 독자에게 가닿기 위해서는 글에 담긴 내용을 고민해 봐야 한다. 글쓰기 책은 많지만, 이다혜 기자의 책이 그중에서 빛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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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었어요


인터뷰이로서의 인터뷰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인터뷰하신 적이 없더라고요.

 

웬만하면 인터뷰를 잘 하지 않아요. 할 이야기는 다 글에 쓰기도 했고, 사진 찍히는 걸 편하게 생각하지도 않아서요. 하지만 예스24는 거절할 수 없다고 생각했죠. (웃음) 요즘은 책을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저자가 홍보를 열심히 하고 마케팅을 하는 것도 중요하잖아요. 할 게 많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  는 제목 그대로 처음 쓰는 사람을 위한 작법서예요.


글쓰기 수업을 진행하면서 만난 분들을 거칠게 나누면 두 가지인 것 같아요. 아예 남이 보는 글을 처음 쓰는 분들이 아무래도 많고, 이미 글을 쓰고 있지만 조금 더 전문적으로 글을 써보고 싶은 분이 있어요. 아무래도 후자는 글을 쓰던 사람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기초가 있다고 할 때, 전자는 학교 다닐 때 리포트 쓴 거 말고는 글을 써본 적이 없는 분이죠.


그런 분들을 위한 글쓰기는, 다른 사람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처음 쓰는 분들은 남이 쓴 걸 보면 자기도 비슷하게 쓸 수 있을 것 같은데, 막상 뭔가 쓰려고 하면 똑같은 표현 안에서 맴돌게 되는 것 같아요. 그리고 글을 업으로 쓰는 분들도 남이 시켜서 정해진 규격에 맞춘 글이 아닌 자신이 쓰고 싶은 걸 쓰겠다고 하면 만만치 않은 거예요. 그런 부분에서 ‘처음 쓰는 사람’에는 포괄적인 의미가 담긴 것 같아요.


10년 전 자신에게 하는 말을 적으면서 ‘그만 울라’고 하셨어요. 10년 전 얼마나 글 빚이 많으셨길래 이런 표현이 나왔을까요?


그 부분은 사죄문 같은 것일 텐데요. (웃음) 일을 시작하고 한참 이것저것 글을 썼어요. 라이선스 잡지가 엄청 많이 나올 때여서 잡지 번역도 거의 다 한 번씩은 한 것 같아요. 일이 어느 순간 확 쌓이게 된 거죠. 사실 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일을 쌓으면 안 되거든요. 그때는 요령이 없기도 했고 원래 처음 냈던 책  『책 읽기 좋은 날』  전에도 냈어야 할 책이 몇 권 있었는데, 욕심도 많아서 일을 쌓아놓은 다음 전혀 수습을 못 하는 상황이었죠. 제가 힘든 것보다는 다른 사람이 힘든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계약 파기할 건 파기하고 계약금 돌려주면서 한 번 크게 정리한 적이 있어요.


여러 가지로 글쓰기 방법을 설명해 주셨어요. 글쓰기 루틴을 만드는 법으로 시간과 장소 정하기를 말씀해 주셨는데, 그리고는 ‘나도 못 하고 있지만’ 하고 사족을 붙이시더라고요. (웃음) ‘내가 해봤더니 좋은 방법이다’가 아니라 ‘나도 안 되긴 하는 데 이런 게 좋다더라’ 하는 청유형 책이 아닌가 했어요.


안 될 때는 아무것도 안 되더라고요. 10년 전 글쓰기가 망한 이유도 단행본 작업 자체가 긴 호흡으로 써야 하는 일이고, 긴 호흡의 일은 그만큼 스케줄을 짜야 하는데, 그때는 회사 일을 하면서 일정하게 시간을 내고 글을 쓰는 게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었어요. ‘이 음악을 틀었더니 영감이 떠오른다’ 하는 루틴이 된다면 제일 좋겠죠. 하지만 그건 만들기 쉽지 않고, 최소한 이런 때는 내가 글쓰기가 편한 것 같다고 나를 설득하는 과정 쪽에 더 가까운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글 쓰는 방법, 마감을 지키는 방법보다는 어떻게 내가 생각한 걸 잘 전달할까에 초점을 맞춘 글쓰기 책이 아닐까 싶었어요.


공감을 사는 글은 크게 다르지 않아요. 나고 자라서 성장하고 경험한 게 아무리 특별한 일이라고 해도 막상 이야기해보면 비슷한 결이 있거든요. 그걸 어떻게 표현하고 어디까지 용기를 내서 솔직하게 이야기할 것인가에 문제가 있는 거죠.


최근 자기 생각을 전하려고 독립 출판을 내는 사람도 많아졌죠.


한 권에는 한 가지 생각이 들어가 있어요. 만약 쓰고 싶은 생각이 있더라도 한 권 분량이 안 되면 책으로는 낼 수 없어요. 이번 책도 글쓰기 책 많은데 뭐하러 한 권을 보태나 싶은 생각도 들었는데, 제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에 쓴 것이기도 했거든요. 내가 읽고 싶은 어떤 게 아직 없다면, 나라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문장보다 생각

 

‘자기계발서는 원래 자기계발서 쓴 사람만 성공하는 장르’라는 이야기가 재미있었어요. 사실 글쓰기 책을 쓴 사람만이 책을 완성했고, 그 책을 읽은 사람은 나도 한 번 써볼까 충동을 느끼고는 쓰지 않죠. 아이러니인 것 같아요.


그렇죠. 그런데 제가 10년 전에는 못하던 걸 지금은 하고 있잖아요. 그동안 뭐가 달라졌나 생각해봤는데, 제일 중요한 건 쓰고 싶은 게 있어야 하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인스타그램의 감성 글을 쓰는 걸 보면서 저런 글은 나도 쓰겠다는 생각은 쉽게 하는데, 막상 쓰려고 하면 못 해요. 그런 글을 쓸 수 있겠다고 생각하는 것과 그런 글을 쓰고 싶다는 건 다른 문제니까요. 사람들은 자신이 쓰고 싶은 걸 먼저 생각하지 않고 보통은 남이 만들어놓은 일종의 시안을 보는 것 같아요. 특히나 글쓰기에서는 이른바 명문을 쓰는 유명한 사람이 있잖아요. 그 글은 그 사람이 가진 지식과 경험, 성격, 가치관으로 쓰인 글인데 문장을 잘 익히면 그 사람처럼 잘 쓸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하죠.


글을 잘 쓰는 사람은 문장을 잘 쓰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강하죠.


20년 전 글쓰기 책은 문장을 고치는 책이 많았어요. 그런 부분도 중요해요. 하지만 요즘 독자들은 문장의 완결성에 엄격하지 않아요. 오히려 개성 있는 글을 훨씬 좋아하죠. 제일 난감한 건, 완전히 다른 누구처럼 쓰는 거예요. 주제에 대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는데 표현은 엄청나게 장중하고 언뜻 보면 그럴듯하죠. 사실상 자기가 가진 지식을 자랑하려고 문장을 오남용할 때가 너무 많아요. 다른 한 편으로는 자기 전에 생각난 걸 쓴 문장이라고 해도 그냥 그 느낌을 잘 전달하면 성공일 때가 있어요. 그게 요즘 달라진 가치관인 것 같아요. 그렇게 생각하면 기술적인 부분보다는 내가 뭘 쓰고 싶은지 집중하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슬픈 일이죠. 완성도 있는 글보다는 공감하는 글을 훨씬 더 좋아하게 된 거거든요.

 

공감하는 글쓰기가 유행하면서 글의 질이 하락한다는 우려도 하시나요?

 

그런 우려도 있어요. 진짜 너무 좋은 책인데 왜 안 읽는지 보면 어렵다고 하는 말이 많아요. 그 어렵다는 수위가 점점 낮아져요. 분량이 긴 것도, 문장이 긴 것도, 내용이 복잡한 것도 다 어렵다고 해요. 그런데 당연히 그런 글을 읽는 습관이 들지 않으면 그런 글을 쓰기도 어렵거든요. 어떤 때는 도저히 안 읽히지만 내가 관심 있거나 궁금한 걸 읽어서 끝을 내는 경험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정말 글을 못 써서 어렵고 이해가 잘 안 되는 책도 있지만, 많은 경우 생각을 많이 하고 노력을 많이 한 글이기 때문에 읽는 쪽에서도 후룩 읽을 수 없거든요. 책 쓰는 사람 입장에서 몇 달, 몇 년씩 걸려서 쓰는 책은 받아들일 때도 그만큼의 소요 시간이 필요해요. 한 번에 읽혀서 바로 영감을 주지 못하는 책은 별로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져서 아쉽고 안타깝죠.


최근에 읽은 어려운 책은 뭐가 있나요?


어제는 도리스 레싱 단편집을 읽는데 내용은 짧지만 초반 설정이 이해가 가지 않아서 계속 앞의 몇 페이지를 다시 봤어요. 저도 이해를 못해서 읽고 또 읽는 책이 있어요.


글쓰기 수업에서 남의 글을 보는 것도 중요할 것 같아요. 처음 글 쓰는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의 시선이 도움이 많이 되겠죠.


다른 사람의 눈으로 글을 보는 게 되게 중요해요. 과제 내라고 설득할 때면 남이 자기 글을 그렇게 꼼꼼하게 보는 경험 자체가 드무니 그런 경험 한다고 생각하고 글을 내라고 하죠. 누구나 잘 쓰는 방법과 특별한 부분이 있어요. 제일 좋은 건 이 사람이 잘 쓰는 부분을 키우는 거라고 생각하는 쪽이에요. 어떤 분들은 자기가 경험한 걸 잘 쓰는 분이 있고, 어떤 분들은 자기 이야기를 엄청 솔직하게 쓰시거든요. 유머가 뛰어난 분도 있고 묘사를 잘하는 분이 있어요. 잘하는 부분을 중심으로 쓰면 돼요.


글쓰기 수업의 좋은 점이 있다면 뭘까요?

 

주변에서 항상 글쓰기를 어떻게 가르치고 배우냐고 하는데, 글쓰기 수업에서는 보통 합평을 위해서 과제를 내라고 해요. 그게 마감이거든요. 마감이 없이 글을 써 온 사람들에게 마감 안에서 일 정 정도 형식에 맞는 글을 쓰게 만드는 일이 글쓰기 수업이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엄청난 노하우를 배운다기보다, 억지로라도 글을 써야 나오는 게 있으니까요.


글을 쓰는 방법 중 제일은 마감이라고 이야기해주셨는데, 마감은 언제까지나 업으로 글쓰기를 하는 사람들에게 생기잖아요. 자기만족과 자아표현을 위한 글쓰기는 마감이 안 통할 텐데요.

 

요새 SNS나 유튜브를 운영하는 1인 크리에이터분들이 많은데, 그런 분은 다 자발적으로 마감을 만들더라고요. 이를테면 하루 몇 번 올리겠다고 정하고 그걸 지키는 거죠. 누구는 좋은 아이디어만 있으면 크리에이터로 성공한다고 하고, 누군가는 얼굴이 잘생기고 예쁘면 된다고 하지만 제가 봤을 때 꾸준하게 일정한 속도로 일정한 결과물을 쌓는 게 제일 중요해요. 기분 내킬 때 만드는 걸로는 안 된다는 거예요.

 

시대가 변했어요


트위터에서 ‘‘글‘은’ 잘 쓰는 사람들을 위해 썼’’다고 하셨어요. 글’은’ 잘 쓰는 분들은, 누구실까요?


이건 정말 최근의 상황인 것 같아요. 제가 일을 시작하고 글 쓰는 걸 배우는 긴 시간 동안 어떤 표현이 여성 혐오적인가에 대해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어요. 최근 몇 년 동안 페미니즘 이야기가 오가면서 새삼 생각하게 된 거죠. 예전에는 문장이 좋으면 됐거든요. 예전에는 밤을 꼬박 새우는 마감 중에도 선배들이 들어온 원고를 보고 너무 좋다고 감탄할 때가 있었어요. 실제로 너무나 훌륭한 분들이 쓴 원고였는데, 그런 좋은 원고의 기준이 얼마나 섬세하게 표현하느냐 같은 부분인 거죠. 최근 들어서는 그게 다가 아니게 되었어요. 아무리 표현이 좋아도 여성혐오적인 표현이 들어가면 좋지 않다고 느끼는 거죠.


같은 글이라도 독자가 받아들이는 게 달라졌다는 뜻일까요?


나이가 많거나, 유명하거나, 자기 글에 책임을 지는 좋은 선생님들의 글은 예전에 심각한 오탈자가 아니고서는 쉼표 하나도 안 건드리는 문화가 분명히 있었거든요. 설령 이상한 이야기를 해도 글을 잘 쓰면 그 사람만의 논리와 세계관을 존중했다면, 요새는 그런 분위기는 아닌 거죠. 글이 좋으면 된다는 시간이 지나간 건 확실한 것 같아요. 저도 원고 쓸 때 가장 조심하는 부분이기도 하고요. 어떤 부분이 차별적이라거나 혐오적이라는 지적을 받았을 때 저도 기분이 나쁠 수 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면 지적이 틀린 경우는 거의 없거든요. 영화에서도 마찬가지예요. 우디 앨런의 영화를 이야기하면서 그의 소아성애 경향을 이야기할 것인가? 로만 폴란스키가 아동 성추행으로 문제가 되었는데 그의 영화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작품 안에서 완결성이 있으면 설령 이상한 이야기를 해도 존중해야 한다는 시간이 있었다면 지금은 그게 바뀌고 있고, 바뀌는 게 맞는다고 생각해요.


일하는 현장에서도 시대가 변한 걸 느끼시나요?


언젠가부터 저도 들어오는 원고에 대해 그런 지적을 할 때가 있어요. 예를 들면 인터뷰 원고에서 ‘여배우라 까다로운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털털해요’, 이게 칭찬으로 쓰인 표현이었어요. 그 부분을 문제 삼은 건 문장이나 전개가 이상한 게 아니라 생각 자체가 달라졌기 때문이거든요. 그건 통찰력 있는 문장이 아니라, 자기가 어떤 편견을 가졌는지 말하는 것에 지나지 않은 표현인 거죠. 그러나 그런 표현을 지적하면 자신은 딸을 키우는 아빠인데 성차별주의자일 리 없다는 식으로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가장 갈등하는 부분이기도 하고 저도 조심하게 되는 부분이 있죠.


미문보다는 글의 구조를 신경 쓰고 무엇을 전달할지 초점을 맞추는 건 기자의 글쓰기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아무래도 기자로 오랫동안 활동한 이력이 글쓰기에 대한 생각에 많은 영향을 끼쳤을 것 같아요.


그것도 그렇죠. 저는 편집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쪽인데, 글쓰기 수업에서도 원고 앞부분을 어느 정도 빼라고 항상 강조해요. 보통은 앞부분이 너무 장황해요. 어떤 영화에 대해 리뷰를 쓴다면, 많은 분이 갑자기 글의 시작을 ‘비 오는 금요일 오후 무엇을 할까 생각하다 검색을 해보니 요즘 유행하는 영화…’로 시작을 해요. 극장까지 간 이야기를 쓰는 게 한 단락이에요. 그게 한두 번이 아닌 거죠. 그래서 일단 극장까지 간 이야기는 쓰지 말라고 해요. 편집이 별 게 아니고 제삼자의 눈으로 자기 글을 보는 건데, 기자로 오래 일하면 익숙해지지만 처음에는 그런 판단이 힘드니까 일단 앞을 날리라고 하죠. 그럼 본론으로 바로 들어갈 때가 많으니까요.


첫 번째를 빼는 게 좋다면, 마지막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최후의 한 문장 같은 걸 써야 한다는 강박이 있어요. 누구나 한 마디로 모든 걸 아우르면서 그럴듯하게 끝내고 싶죠. 하지만 이것도 훈련이 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마지막에 힘을 주면 고등학교 과제처럼 ‘가치관이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 글쓰기에 대한 좋은 지침서를 읽었다는 생각이 든다.’ 라고 끝나 버리는 거예요. 그러실 필요 없어요.

 


첫 번째와 마지막을 여쭤봤으니, 글의 중간은 어떻게 쓰면 좋을까요?


맨 앞에는 줄거리, 두 번째 좋은 점, 세 번째 나쁜 점, 마지막 총평. 이것도 과제 글쓰기의 전형적인 방법이잖아요. 내용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순서를 바꿔보라는 거죠. 나쁜 점 먼저 쓰고 좋은 점 먼저 나올 수도 있고요. 글을 쓰고 한 글자 한 글자 고치기보다 덩어리를 옮기는 작업만 잘해도 훨씬 더 글이 살아있는 경우가 많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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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글을 좋아해야 해요


글쓰기의 동력을 얻기 위해 자기 글쓰기를 좋아해야 한다고 하셨어요. 어렸을 때부터 책과 친하고 글과 친한 게 체득된 사람은 글쓰기가 좋을 수 있는데, 체득이 안 된 사람은 자기 글을 좋아하는 게 먼 이야기처럼 느껴질 것 같아요.


저야 책 읽는 걸 좋아하지만, 읽는 걸 싫어하는 사람에게는 읽힐 수 없다고 생각하는 쪽이에요. 설득할 수 있다면 무슨 문제겠어요. 이렇게만 하면 모든 아이들이 책 앞에 앉아있다, 그런 방법이 있으면 좋을 텐데요. 요즘에는 특히나 더 심해지는 것 같아요. 자기 글을 좋아해야 하는 이유도 그거예요. 자기 글을 좋아한다는 건, 자신이 느끼기에는 잘하고 있다는 뜻이거든요. 보통은 잘하는 걸 노력하는 게 훨씬 쉬워요. 사실 요즘에는 사람들이 남의 글을 열심히 안 읽기 때문에 최소한 자신이 자신의 글을 좋아하고 읽을 수 있어야 계속 쓰고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것 같아요.


쓰는 사람보다 독자가 많아지면 좋겠다는 말도 있었어요. 예술 분야에서는 늘 비슷한 말이 나오는 것 같아요. 음악을 하기보다 음반을 사라, 배우를 지망하지 말고 연극을 보라, 라고요.


사람들이 창작하는 사람들은 좋아서 하는 거니까 어느 정도의 굶주림과 절망을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먹고 살자고 하는 거예요. 먹고 살아야 하고요. 영화가 되었든 음악이 되었든 무언가 만들었을 때 좋은 평가를 받고 싶고 나아가 그걸로 돈을 벌고 싶다는 마음은 항상 같이 있어요. 요새 회사로 신간을 많이 보내주시는데, 보내주시는 책 외에도 책을 많이 사요. 어쨌든 이 업계에서 일하고 돈을 버니까 최소한의 기여는 해야 한다는 거죠. 내 책을 파는 사람이면 남의 책도 사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누군가는 책을 사야 하고 누군가 사야 이 시장이 돌아간다고 생각하는데, 뭘 써보고 싶은 분들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남이 쓴 글을 읽기도 하고 사기도 하면서 소비를 하지 않으면 이 산업은 돌아갈 수 없어요.


직업 외에도 부업이 많아요. 글쓰기 수업은 언제 하시며, 팟캐스트는 언제 녹음하시고, 북 토크는 언제 하세요? 바깥에서 보면 마치 『해리포터』의 시간을 돌리는 헤르미온느 같아요.


그렇게 보일 수도 있는데요. 아마 제가 결혼을 안 한 게 제일 큰 이유일 거예요. 영향 없는 것처럼 보이고 싶지만 실제로 그 영향이 커요. 제가 엄청 부지런한 편도 아니고, 엄청 게을러요. 물론 일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일정표 짜놓고 하는 스타일도 아니거든요. 적당히 좋아하는 일을 오랫동안 했기 때문에 계속해왔고, 그렇게 하려면 절대 시간이 필요해요. 저는 혼자 살고 있고, 집에 들어오는 순간 모든 시간을 제 마음대로 쓸 수 있어요. 저만큼 일하는 남성분들은 많아요. 하지만 남성분들은 그저 저 사람이 일을 많이 하나보다 싶은데, 제 또래의 여자가 이렇게 일을 하면 색다르게 보죠. 선배든 동기든 후배든 여성 분들은 결혼하면 남편 따라 이동하거나 일을 그만둘 때가 많거든요. 둘째 낳고 나면 자기가 버는 돈보다 아이를 맡기는 돈이 더 들고, 중요한 시기에 자기가 집에 없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퇴직하면 가족 모두가 그 결정을 환영하는 거죠. 결혼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에요. 그저 이런 상황이 불합리하다는 것 정도는 공유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요즘은 기자와 에세이스트 중 어느 쪽에 속해 있나요?


지금은 에세이스트 쪽에 더 가까운 것 같아요. 회사에서는 편집 일이 주 업무가 되었고, 글 쓰는 일은 에세이스트로 쓰는 일이 많아졌어요.


앞으로 이다혜 이름으로 나올 책이 더 있을까요?


여행 책이 두 권 나올 거예요. 영국을 여행하면서 아서 코난 도일을 소개하는 책이 나올 거고요. 도쿄 여행기도 내년까지 나올 거예요. 그다음 계속 지금 패턴으로 할지는 모르겠어요. 일단 추가로 일을 벌이지는 않으려고요. 계속하면 제일 좋겠죠. 하지만 제 의지만 가지고 하는 건 아니기 때문에 계속 고민은 하고 있어요.

 


 

 

처음부터 잘 쓰는 사람은 없습니다이다혜 저 | 위즈덤하우스
글을 쓰며 내가 되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글 쓰는 즐거움을 잃지 않고 지속적으로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다혜 작가만의 생각들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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